조인래 서울대 물리학과 및 과학사 · 과학철학 협동과정 교수 박은진 성균관대, 서울대 철학과 강사 김유신 부산대 전자공학과 및 과학· 가술의 역사와 철학 협동과정 교수 이봉재 서울산업대 인문학과 교수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교수
아르케 (arche, d p x11) 는 ‘시초 , ‘시작 ’ 이라는 어원적 의미를 가지며. 학술적으로는 뭔리’를 의미합니다.
현대 과학철학의 문제들
현대 과학철학의 문제들
책을 펴내면서 과학철학은 인류 문명을 특징짓는 과학 활동과 그 산물의 성격 . 지 위 등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자 하는 메타 과학적 연구 활동의 일환이 댜 이러한 철학적 활동은 현대에 들어와 과학의 비중이 현저하게 증 가함에 따라 한층 활발해졌다. 특히, 1920 년대에 빈 학파 V i enna Cir cl e 의 과학철학적 견해로 성 립 한 논리실증주의 Log ica l Pos itivis m 는 과학 철학 분야의 테두리를 넘어 철학 일반. 나아가서는 인접 학문 분야에 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운동으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이러 한 빈 학파의 활동은 라이헨바흐H. Re ic henbach 등에 의해 주도된 베 를린 학파의 활동과 연계되어 보다 폭넓은 과학철학적 전통을 형성하 게 되고. 이 전통은 편의상 논리실증주의와 구분하여 논리경험주의 Log ica l Em pirici sm 라 불리는데, 크게 보아 20 세기 전반의 주된 과학철 학적 논의는 이 논리경험주의의 전통 속에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 이 아니다 . 먼저 논리경험주의의 과학철학자들은 과학 이론의 논리적 구조와 그 경험적 토대를 해명하는 데 많은 관심을 가졌다. 포퍼 K.P opp er 같 은 과학철학자도 여러 점에서 논리경험주의자들과 의견을 달리하였지 만, 과학의 논리적 측면과 경험적 토대에 주된 관심을 쏟았다는 점에 서 공통적이었다. 예를 들어, 논리경험주의자들은 과학적 추론의 많은 부분이 귀납 논리에 의존하는 것으로 본 까닭에 입증 co nfirm a ti on 의 논리를 해명하고 정당화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와 달리 포 퍼는 귀납 논리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입증 개념 의 방법론적 의의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 역시 반증fa ls ifi ca ti on 의
논리적 성격과 그 경험적 토대를 해명하고 정당화하는 데 주력하였다. 과학적 탐구 방식의 정당성과 효율성을 그것의 논리성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는 20 세기 중반에 이르러 과학 활동의 역사성에 주 목하는 과학철학자들의 등장과 더불어 어느 정도 희석되기는 하였지 만 , 과학적 탐구의 논리적 성격과 정당성을 해명하거나 따지는 문제는 현대 과학철학자들의 주요 관심사로 남아 있다 . 과학적 탐구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설명 활동의 본성을 이해하는 것 역시 과학철학자들의 빼 놓을 수 없는 관심사인데, 이에 대해 체계적 인 논구를 시작한 현대의 과학철학자는 헴펠 C. Hem p el 이다. 논리경험 주의자답게 헴펠은 과학적 설명을 일종의 논증 ar gum en t으로 간주하였 는데, 그의 이론은 설명에 대한 현대의 철학적 논의에서 표준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과학적 설명에 대한 현대의 대표적 이론들이 그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극복하려는 시도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아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 이론은 일상적 의미에서 관찰 가능하지 않는 존재자들, 예를 들어 원자, 유전자 등에 대해 말한다. 이러한 이론적 주장들이 지니는 인식론적 지위는 무엇인가? 초기의 논리실증주의자들은 과학 이론에 대해 대체로 도구론적인instrum en talisti c 견해를 채택하였다. 그러나, 이론적 술어(또는 진술)들을 관찰적 술어(또는 진술)들로 명시적으로 정의하려 했던 시도들이 실패하면서, 그리고 과학 이론을 이론적 용어 들을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재정식화하는 기법들이 실패하면서, 과 학 이론에 대한 도구론적 견해가 옹호될 수 있다는 것이 불확실하게 되었다. 과학 이론에 대한 도구론적/실재론적 논란은 20 세기 후반에 들어와서는 과학적 실재론/반실재론 논쟁으로 비화되어 현대 과학철학 의 주요 쟁점 중의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논리경험주의자들뿐만 아니라 포퍼 같은 반증주의자들도 과학의 합 리성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과학적 합리성의 소재를 정당화의 맥락에서 찾았다. 즉, 그들은 과학 이론들이 인식론적으로
하자 없는 경험적 자료와 논리적으로 정당한 추론을 통해 평가되고 이러한 평가를 바탕으로하여 이론 선택이 이루어지는 데서 과학의 합 리성이 성립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과학에 대한 역사적 접근 과 더불어, 관찰은 이론적재적 th eo ry -laden 이며 경쟁 이론들은 공약불 가능하다는 inc ommensurable 주장이 등장하면서 과학의 합리 성 은 더 이상 당연시하기 어려운 것이 되고 그 성격은 더 이상 명약관화하지 않은 것이 되었다. 따라서 과학의 합리성 여부와 그 성격을 규명하는 일은 계속 현대 과학철학의 주요 과제로 남아 있다. 지금까지 언급된 것들이 현대 과학철학의 문제들을 망라하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주된 문제들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다룬 저작이 아직까지 없었다. 물론 하나하나 무게 있는 문제들을 모두 연구 대상으로 삼는 것이 한 사람 의 철학자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기는 하다. 이러한 현실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한 방편으로, 과학철학을 주된 연구 분야로 삼는 몇 사람이 공동 작업을 하는 방안을 강구하게 되었다. 특히 대우재단으로부터 공 동 연구 지원을 받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이 머리말을 쓰고 있는 필자 이외에 김유신 교수(부산대), 신중섭 교수(강원대), 박은진 박사, 그리고 이봉재 교수(서울산업대)가 앞서 언급된 문제들 중에서 각자 평소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 온 과제를 하나씩 맡아 집필을 하 게 되었다. 집필을 하는 과정에서 톰톰이 서로 의견 교환을 하는 것 이외에, 각자가 쓴 글을 적어도 두 번 이상 발표하고 토론할 기회를 가짐으로써 공동 연구의 의의를 살리려고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글의 내용과 질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은 각 과제를 맡아 쓴 필자 개인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공동 연구의 과정에서 우리는 번역어 선정의 문 제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동일한 용어에 대한 여러 번역어 들의 난립이나 부적절한 번역어들의 통용으로 인한 불편함과 비효율 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공동 연구는 원래 예정했던 것보다 많은 시간이 경과한 다음에
야 마무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작업에 참여한 필자들이 이 공동 연 구에만 전념할 수 없었던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각자 어려운 시간 사 정에도 불구하고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협력해 주신 공동 연구 원들께 우선 감사드린다. 공동 연구와 관련된 발표회에서 유익한 논평 을 해 주신 분들께도 거듭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공동 연구가 현실 적으로 가능하도록 재정적 지원을 해 준 대우재단과 예정보다 많이 늦 어진 연구 결과를 무한한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준 대우재단 학술사 업부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린다. 비록 그 나름의 한계를 가진 저술이지 만. 한국 과학철학계의 발전을 위해 하나의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 1999 년 1 월 관악산 기슭의 연구실에서 조인래
차례
책을 펴내면서 · 5제1장 과학적 방법 : 입증의 개념 131 들어가는 말 112 입증 사례의 문제 173 가설·연역적 입증 이론 234 헴펠 : 입증에 대한 만족 기준 265 굿맨의 〈초랑 역설〉과 입증의 문제 296 글리모어의 구두띠 입증 이론 327 베이즈적 입증 이론 50참고문헌 · 76제2장 반증과 반증주의 791 〈과학적 철학〉과 〈과학철학〉 792 비엔나 학파의 과학철학과 방법의 문제 822.1 〈언어적 전회〉와 과학철학 · 832.2 〈방법〉의 문제로 · 853 〈검증〉에서 〈반증〉으로 904 반증가능성 994.1 논리적인 기준으로서 〈반증가능성〉 · 1014.2 방법론적인 것으로서 〈반증가능성〉 · 107
5 과학에서 〈진리〉의 문제 1115.1 포퍼의 진리에 대한 이해 · 1135.2제4장 과학적 실재론 223
1 들어가는 말 2232 과학적 실재론 2262.1 과학적 실재론의 직관 · 2262.2 경험적 가설로서의 과학적 실재론 · 2293 성공과 설명 2333.1 설명에의 요구 · 2343.2 양자역학의 해석 · 2394 과학사의 해석 2424.1 과학사의 반례들 · 2424.2 지시와 실재론 · 2484.3 대안으로서의 은유 · 2525 경험론의 새로운 형식 2565.1 반 프라센의 구성적 경험론 · 2575.2 이론에 대한 의미론적 관점 · 2606 관찰 가능성의 개념 2666.1 맥스웰과 반 프라센 · 2666.2 쟁점 : 경험론과 자연주의 · 2727 이론의 경험적 미결정성 2807.1 미결정성과 동등성 · 2817.2 증거 개념의 재검토 · 2917.3 실험의 인식론적 의의 · 2978 맺는 말 305참고문헌 · 315제5장 과학의 합리성 319
1 인간과 합리성 3191.1 합리성의 정의와 과학의 합리성 · 3202 논리경험주의의 합리성과 그에 대한 도전 3252.1 비판으로서 합리성 : 포퍼 · 3292.2 과학적 실천의 합리성 : 쿤 · 3402.3 과학적 연구 프로그램의 방법론 : 라카토슈 · 3512.4 〈연구 전통〉의 방법론과 합리성 : 라우든 · 3572.5 대화로서 합리성 : 로티 · 3633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할 과학철학과 과학의 관계 3703.1 철학에서 합리성에 대한 논의 · 3753.2 과학 해석학으로서 과학철학 · 384참고문헌 · 387찾아보기 · 393제 1 장 과학적 방법 : 입증의 개념1) 조인래*
*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부교수 및 과학사 • 과학철학 협동과정 겸임 교수. 1) 〈 co nfirm a ti on 〉은 그동안 국내에서 〈확증〉으로 많이 번역되어 왔다. 그러나 원어 의 의미에 비하여 〈확증〉이라는 번역어의 의미가 지나치게 강하므로 새로운 번역 어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확증하다〉의 사전적 의미가 〈확실 히 증명하다〉인 데 반해 〈 co nfirm〉은 〈어떤 주장을 그와 관련된 증거에 의해 지 지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따라서, 〈확증〉보다 〈입증〉의 일상적 의미가 〈 co nfirm〉의 의도된 의미에 더 가깝다고 판단되어 이 글에서는 후·자를 사용하기로 하였다.
1 들어가는 말 과학적 탐구에서 사용되는 방법은 과학자와 철학자 모두의 공통된 관심사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이 표출되고 실질적으로 성취되는 방 식은 상이한 것처럼 보인다. 과학적 방법에 대한 과학자들의 관심은 보통 과학적 탐구를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하고자 하는 관심에서 비롯 된다는 점에서 실천적인 성격이 강한 반면, 철학자들의 관심은 과학적 활동 및 지식의 본성을 이해하고자 하는 관심이 앞선다는 점에서 보 다 이론적이다. 그리고 과학적 방법에 대한 이해 역시 전자의 경우 과학 교육이나 훈련을 통해 보다 암묵적인 형태로 획득되는 반면에,
후자의 경우 과학 적 방법 자체에 대한 메타 적 인 논의 를 통해 보다 명 시적인 형태로 이루어진다. 과학적 활동은 크게 보면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는데 , 가설 또는 가설들의 체계로서의 이론 그리고 관찰이나 실 험을 통해 얻어지는 세계에 대한 경험적 자료가 그것이다. 물론, 이 두 개의 축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과학적 방법에 대한 논의의 많은 부분은 사실상 이 관계에 대한 것이다. 이 두 개의 축과 그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많은 질문들이 있어 왔다. 두 개의 축은 각 각 어떻게 형성되는가? 각 축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다른 축의 역할은 무엇인가? 형성된 축은 어떻게 평가되는가? 그리고 한 축에 대한 평 가 과정에서 그것이 다른 축과 맺는 관계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 역 사적으로 본다면,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다양한 답들이 제시되어 왔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그 중요성이 더해지는 과학의 방법론은 선험적 방법 A prior i me th od 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이 방법론은 고대 로 거슬러 올라가면 아리스토텔레스Arist o tl e 에게서, 그리고 근대로 오 면 데카르트 R.Desc art es 에게서 그 대표적인 예를 발견할 수 있는 것 이다.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선험적 방법의 주요한 특징은, 세계에 대 한 우리의 지식 체계에서 토대 역할을 하는 제일 원리들이 선험적 경 로를 통해 획득되며 여타의 지식들은 이 원리들로부터의 연역적 추론 을 통해 확보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선험적 방법의 이러한 특징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리스 과학의 이상으로 추구한 〈 논증적 과학 demonstra t iv e s ci ence 〉에서 잘 예시된다. 그에 따르면, 이상적 형태의 과학이란 직관에 의해 파악되는 확실하고 필연적인 원리들 arch ai로부 터 연역적 규칙을 통해 나아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 근대 의 데카르트 역시 방법론적 차원에서는 이와 유사한 입장을 채택하였 다. 그는 기하학적 형태의 지식 체계를 추구하였는데, 공리들에 해당 굴는 제일 원리들은 선험적 사유의 경로를 통해 확보되고 여타의 지 식들은 이상적으로는 이 원리들로부터 연역적 추론의 과정을 밟아 얻
어져야 하는 것들이었다. 이러한 선험적 방법의 채택은 전통적으로 오 류 불가능한(또는 절대적으로 확실한) 지식의 추구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즉, 후자는 전자의 주요 동기에 해당하였다. 예를 들어. 데카 르트는 의심의 여지 없이 확실한 지식을 추구하였는데, 그는 인간의 선천적인 감각 기관을 통한 경험이 그러한 목표의 달성을 위한 토대 역할을 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는 한편, 인간 이성의 순수 사유에 서 그 방법론적 탈출구를 찾았다. 그에게서 방법적 회의를 길잡이로 하는 선험적 사유는 세계에 대한 참된 이론의 발견 경로이자 정당화 의 경로였다. 반세기 후의 뉴턴 I.Ne wt on 은 이러한 선험적 방법과 매우 대조적인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죽, 그는 소위 귀납적 방법 ind ucti ve me th od 에 해당하는 것을 주창하고 그의 잘 알려진 역학 체계 역시 이 방법의 사용을 통해 얻어진 것으로 간주하였다 .2) 뉴턴 역시 확실한 지식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그가 추구한 확실한 지식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 라 오류 가능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그는 현상들로부터 〈연역〉된 명 제들이 그 자신의 실험 철학 experimen tal phil oso p h y에서 어떤 명제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증거를 가지는 것으로 간주하였지만. 이러한 명 제들 역시 여타의 현상들과 충돌할 때는 오류 가능한 것으로 인정하 였다. 뉴턴 역학의 대단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가 표방한 귀납적 방 법론은 그 니름의 문제가 없지 않다. 먼저 뉴턴 역학의 기본 원리들 이 귀납적 방법을 통해 얻어진 것이라는 뉴턴의 주장을 어느 정도 액 면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다음으로 , 설사 보편 중력의 법칙과 같은 기본 원리들이 귀납적 추론의 과정을 밟아 도출 된 것이라는 그의 말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발견의 논리가 관찰 불가능한 존재자들에 관한 원리들을 이끌어 내는 데는 별 도움 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빛의 구성을 다 2) 참조: Thaye r (1 9 53), pp. 3-5, 6 & 10.
루는 광학 분야 그리고 원자 및 그에 관한 원리들을 다루는 화학 분 야에서 역학에 버금가는 성공을 거둔 19 세기에 들어와 가설 • 연역적 방법 hyp o th e tic o -deducti ve me th od 과 같은 대 안적 방법 론이 자리 를 잡 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가설 · 연역적 방법의 한 중요한 특징은, 귀납적 방법과는 달리, 관 찰 불가능한 존재자와 그에 대한 가설의 도입을 폭넓게 허용할 뿐만 아니라 귀납적 추론을 통해서는 그러한 부류의 가설에 도달할 수 없 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나아가서 가설 • 연역적 방법은, 그것에 대한 20 세기의 논의에서 두드러진 것처럼, 발견의 논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 한다는 점 에서 귀추적 방법 retr od uctiv e me th od 과도 구별된다. 이 러한 중요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근대 이후의 가장 대표적인 과학 방법론들인 귀납적 방법과 가설 • 연역적 방법은 도입된 가설들의 평 가와 관련하여 매우 유사하다. 즉, 이 두 방법론에서 과학적 가설은, 그것으로부터 관찰 또는 실험 가능한 예측들을 연역적으로 도출해 내 고 그것을 실제의 관찰 및 실험 결과들과 비교함으로써 평가된다. 여 기서, 가설 또는 이론으로부터의 예측과 관찰 및 실험 결과가 일치할 경우 주어진 가설이나 이론에 대한 경험적 지지(또는 입증)가 발생하 는 것으로, 그리고 양자가 일치하지 않을 경우 문제의 가설이나 이론 을 의심할(또는 거부할) 이유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 다. 이와 같이 가설(또는 이론)과 경험적 자료 사이의 관계 및 그것의 방법론적 의의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귀납적 방법과 가설 • 연역적 방 법은 선험적 방법과 대별된다. 또한 그런 점에서 전자의 두 방법은 근대 이후 과학적 방법과 관련하여 인식론적 주류를 형성하게 된 경 험론적 전통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근대 이후 발견의 논리와 관련하여 상이한 견해들이 제시된 반면, 가설(또는 이론)의 평가(특히, 정당화)와 관련해서는 폭 넓은 합의가 이루어져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죽, 가설(또는 이론)로 부터의 예측과 경험적 자료 사이의 일치 여부, 달리 말해 후자에 의
한 전자의 입증 co nfirm a ti on 여부는 경험론적 전통에 속하는 방법론들 의 공통 분모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 따라서 , 과학의 방법에 대한 현대의 논의에서 입증의 문제가 그 초점에 놓인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입층의 개념은 외관상 매우 단순하게 보이며, 따라서 이론적으로 복 잡한 논의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러한 외관 상의 단순함과 달리, 입증에 대한 논의가 보다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하면서 그것에 대한 이론적 이해는 많은 문제들의 해결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이 곧 드러났다. 그와 더불어, 입증 개념의 이해를 위해 여러 상이한 이론들이 제시되어 왔다. 이 글에서 나는, 입증에 대한 논의 과정에서 등장한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 제시된 대표적인 이론들 을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입증 개념의 보다 만족스러운 이해를 위 한 방향을 모색 하고자 한다. 이 를 위해 입증 사례 con fmning instanc e 에 대한 헴펠 C. Hem p el 의 이론적 제안, 가설 • 연역적 입증 이론, 글리 모어 C. Gl ym our 의 구두띠 입 증 이 론 boots trap the ory of con firma tio n , 베이즈적 입증 이론 Ba y es i an the ory of con fmn ati on 등을 차례로 다룰 것이다. 2 입증 사례의 문제 가설(또는 이론)과 경험적 증거 사이에 성립하는 입증 관계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은 아마도 가설과 그 입증 사례 사이의 관계이다. 실제로 귀납적 방법에 의거한 가설의 형성 및 평가에서 문제시되는 것은 바 로 경험적 일반화에 해당하는 가설과 그 사례들 사이의 입증 관계이 다. 일견 가설과 그 입증 사례 사이의 관계는 그 형식이 매우 단순하 고 따라서 그들 사이에 성립하는 입증 관계는 쉽게 정의 가능한 것처 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외양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가설을 입증하
는 사례들은 어떤 것들이며, 반증di sco nfirm하 는 사례들은 어떤 것들 인가 하는 물음에 답하는 것조차 합의에 도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이 〈까마귀 역설 raven's p aradox 〉 에 대한 헴펠의 잘 알려진 논의를 통 해 밝혀졌다. 보편 양화의 모양을 가지는 가설과 그 사례들 사이의 입증 관계에 대한 단순하면서도 그럴 듯해 보이는 제안은 헴펠이 니코드 N ic od 의 입증 기준이라 부르는 것이다. 니코드의 기준에 따르면, <(x )(Fx::) Gx) 〉와 같은 보편 양화에 의해 표현되는 가설은 〈 Fa&Ga 〉 와 같은 형 식의 관찰 보고에 의해 입증되는 반면, 〈 Fa&-Ga 〉 와 같은 형식의 관 찰 보고에 의해 반증된다 . 그리고 F 가 아닌 개체들에 대한 관찰 보고 는 주어진 가설을 입증하지도 반증하지도 않는다는 의미에서 무관하 다(또는 중립적이다 ).3) 그런데 , 니코드의 기준을 그대로 받아들일 경 우, 주어진 가설에 대한 입증은 그 가설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것이 정식화되는 방식에 의존하게 된다. 예를 들어, 〈 모든 까마귀는 검다 (S1) 〉와 〈검지 않은 어떤 것도 까마귀가 아니다 (S2) 〉 라는 두 문장을 생각해 보자 . 〈어떤 대상 a 가 까마귀이고 검다 〉 라는 관찰 보고는 , 니 코드의 기준을 따르면. 문장 (S1) 을 입증하지만 문장 (S2) 에 대해서 는 중립적이다. 반면. 〈 어떤 대상 b 는 검지도 않고 까마귀도 아니다 〉 라는 관찰 보고는 문장 (S2) 를 입증하지만 문장 (S1) 에 대해서는 중 립적이다. 심지어 임의의 보편적 조건언은 , 니코드의 기준에 따르면 어떤 입증 사례도 존재할 수 없는 형태로 진술될 수 있다. 이러한 결 과를 피하는 한 가지 방법은 니코드의 기준의 일부를 이루는 주장. 죽 F 가 아닌 개체들에 대한 관찰 보고는 〈 모든 F 는 G 이다 〉 에 대해 중립적이라는 주장을 철회하고 헴펠이 동치 조건 equ iva lence cond ition 이라 부르는 주장을 수용하는 것이다. 그 조건은 다음과 같다 . 3) 참조: Hemp el (19 45), pp. 10-11.
(EC) 동치인 두 문장 중의 하나를 입증(또는 반증)하는 것은 다른 한 문장을 입증(또는 반증)한다. 그러나, 이 조건의 수용은 니코드의 기준에 의해 야기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헴펠의 〈까 마귀 역설 〉 이 그것이다. 수정된 니코드의 기준 (N* )를 디음괴- 같이 정식화하자. (N*) 어떤 대상이 보편적 조건언의 형태를 가지는 가설의 전건과 후건 을 만족시키면, 그 대상은 주어진 가설을 입증한다 . 이제 (EC) 와 (N*) 를 결합하면. 검지도 않고 까마귀도 아닌 대상은 모두 〈 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가설을 입증한다는 결과가 나온다. 다 시 말해, 붉은 펜 갈색 구두, 푸른 잔디 등은 모두 〈 모든 까마귀는 검다 〉 는 가설울 입증하는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확장 하면, 검은 까마귀뿐만 아니라 까마귀가 아닌 대상은 모두 〈 모든 까 마귀는 검다 〉 는 가설을 입증하게 된다. 즉, 까마귀가 아닌 대상들을 관찰함으로써 〈 모든 까마귀는 검다 〉 는 가설을 입증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어서, 이는 일견 매우 역설적이다. 이에 대하여 헴펠은 그러한 결론을 받아들여야 하며. 그것을 역설적 이라고 느끼는 것 자체가 〈 심리적 착각p s y cholo gi cal ill us i on 〉에 불과 하다고 주장한다. 먼저 , 문제의 결론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 장을 위한 헴펠의 논거를 살펴보도록 하자. 〈모든 염화나트륨은 노란 빛을 내며 탄다 〉 는 가설을 실험실에서 시험하는 상황에서, 일차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실험은 염화나트륨으로 확인된 물체를 불에 태워 보는 것이다. 그 결과, 노란빛을 낸다면 이는 주어진 가설을 입증하는 사례 로 간주될 것이요, 다른 색깔의 빛을 낸다면 이는 반증하는 사례로 간주될 것이다. 문제는, 염화나트륨이 아닌 물체나 노란빛을 내며 타
지 않는 물체를 가지고 실험하는 상황에서 나오는 결과가 주어진 가 설을 입증하는 효과를 가지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직관은 엇갈리는 것처럼 보인다. 즉, 염화나트륨이 아닌 것으로 확인된 물체 (예를 들어, 얼음)를 불에 태워 보는 실험은 그 결과가 무엇이든 간에 주어진 가설의 입증과는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반면, 노란빛을 내며 타지 않는 물체의 성분을 분석해 보는 실험은 그 결과가 염화나트륨 이 아닌 것(예를 들어, 얼음)으로 밝혀질 경우 주어진 가설을 입증하 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 헴펠은 이러한 직관적 판단이 옳지 않다 고 생각한다. 그는 후자의 실험에서 입증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며, 따라서 전자의 실험에서도 그 결과가 노란빛울 내지 않는 것으 로 밝혀지면 이는 주어진 가설을 입증하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아마도, 두 실험 결과에 대한 보고가 서로 동치인 관계에 있으며 따라서 그 중 하나가 주어진 가설 울 입증한다면 다른 하나도 그렇게 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에는 허점이 있다. 물론, 두 실험 보고문은 헴펠과 같은 논리경험주의자들이 과학 이론에 대한 분 석을 위해 주로 많이 사용하는 일차 술어 논리의 관점에서 본다면 동 치인 관계에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판단에는 각 실험 보고문을 구성 하는 두 연언소(즉 〈개체 a 는 얼음이다〉와 〈개체 a 는 탈 때 노란빛을 내지 않는다〉) 사이의 시간적 순서에 대한 고려가 빠져 있다. 문제의 실험 보고문들을 구성하는 두 요소 문장 사이의 시간적 순서를 고려 하기 시작하면, 입증과 관계 있는 두 보고문 사이의 차이가 드러난다. 여기서 어떤 가설에 대한 시험은 그것이 반증fa ls ifi ca ti on4) 될 가능성을 4) 앞에서 나는 헴펠의 〈dis co nfinna ti on 〉을 번역하는 데 〈 반증 〉 이라는 용어를 사용 하였다. 헴펠의 〈dis co nfinn a ti on 〉은 〈fa ls ifi ca ti on 〉과 그 내용이 거의 같다. 단, 전자 의 경우
한 조건으로 삼는 견해롤 채택하면서 순환을 피하려면 필수적이다.
전제로 하여 성립한다는 견해를 받아들이고 이 반증가능성의 조건을 다음과 같이 정식화하자. (F) 자료 D 가 가설 H 를 입증하려면. D 를 산출한 관찰 또는 실험 과정 은 H 를 반증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었던 경우여야 한다. 개체 a 가 염화나트륨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 그것을 불에 태워 보는 순서로 진행되는 실험의 경우 주어진 가설이 반증될 가능 성이 없으며. 따라서 실험의 결과가 무엇이든 간에 입증이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 반면, 개체 a 가 탈 때 노란빛을 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 한 다음에 그것의 성분을 분석해 보는 순서로 진행되는 실험의 경우 주어진 가설이 반증될 가능성이 있고, 따라서 개체 a 가 염화나트륨이 아니라는 분석 결과는 문제의 가설을 입증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반증가능성의 조건 (F) 를 매개로 한 두 실험의 차별화는 앞서 언급한 우리의 직관적 판단과도 일치한다. 그러나 조건 (F) 를 채택할 경우 다음과 같은 결과도 받아들여야 한다. 죽, 주어진 물체 a 가 염화 나트륨임을 확인한 다음에 그것이 노란빛을 내며 탄다는 것을 확인하 는 실험 과정 및 결과는 〈 모든 염화나트륨은 노란빛을 내며 탄다〉는 가설을 입증하지만, 개체 a 가 노란빛을 내며 탄다는 것을 먼저 확인한 다음에 그것이 염화나트륨임을 확인하는 실험 과정 및 결과는 문제의 가설을 입증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이 결과는 매우 반직관적이다. 왜냐 하면 개체 a 가 노란빛을 내며 탄다는 것을 먼저 확인한 다음에 그것이 염화나트륨임을 확인하는 실험 결과 역시 그 역의 순서로 이 루어진 실험 결과와 마찬가지로 문제의 가설을 입증한다는 것이 우리 의 직관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은 반증가능성의 조건 (F) 를 다음과 같이 (F* )로 수정하는 것이다.
(F*) 자료 D 가 가설 H 를 입증하려 면, D 를 산 출 한 관찰 또는 실험 순 서를 적절하게 조정하였더라면 H 를 반증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 었던 경우여야 한다. 이 경우 우리는 개체 a 가 노란빛을 내며 탄다는 것을 먼저 확인한 다음에 그것이 염화나트륨임을 확인하는 실험 결과 역시 그 역의 순 서로 이루어진 실험 결과와 마찬가지로 문제의 가설을 입증하는 것으 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F*) 의 채택은 그 나름의 문제가 없지 않 다. 먼저, 개체 a 가 염화나트륨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 그것 이 노란빛을 내며 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는 실험 결과 역시 그 역의 순서로 이루어진 실험 결과와 마찬가지로 문제의 가설을 입증하 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의 직관에 반하는 결과이고, 따라서 (F 지울 채택할 경우, 이러한 직관을 설명해 야 하는 부담이 남는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에 다시 논의할 것이다. 나아가서, 증거의 채택 여부와 관련하여 관찰 또는 실험 순서가 변수 역할을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이러한 문제 제기를 포용하는 방식으로 반증가능성의 조건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F**) 를 생각할 수 있다. (F**) 자료 D 가 가설 H 를 입증하려면, D 를 구성하는 관찰 또는 실험 결과 중 일부가 달랐더라면 H 를 반중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었 던 경우여야 한다. (F*) 또는 (F** )를 채택하는 입장은 결과적으로 헴펠의 입장과 동 일하지 않은가? 헴펠의 입장에서는 검은 구두에 대한 관찰 보고문 역 시 〈모든 까마귀는 검다〉는 가설을 입증한다. (F*) 또는 (F** )를 채 택하는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왜냐 하면 〈개체 b 는 검은 구두이다〉 圭 관찰 보고의 경우, 관찰의 순서를 어떻게 조정하든지 간에 그리
고 관찰 또는 실험 결과 중 일부가 달라지더라도 반증가능성은 성립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판결은 입증에 대한 우리의 직관과 부합 한다. 그러므로 . 반증가능성의 조건 (F* ) 또는 (F** )를 받아들이는 입 장은 헴펠의 입장에 비해 우리의 직관과 더 잘 부합하고 따라서 상대 적으로 부담이 적은 경우라고 말할 수 있다 . 3 가설 • 연역적 입증 이론 2 절에서 다룬 입증 사례의 문제와 관련하여 만족스러운 기준이 제 시된다 하더라도 과학 이론에 대한 평가의 맥락에서 등장하는 입증의 문제를 충분히 해결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왜냐 하면, 과학 이론의 평가에서 등장하는 입층의 문제는 어떤 보편 진술과 그것의 사례들 사이에서 성립하는 입증의 문제 이상이기 때문이다. 이는 과학 이론의 다층적 구조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과학 이론들은 일반적 으로 〈 전자 〉 , 〈 전하 〉 , 〈 유전자 〉 와 같은 소위 이론적 용어들을 포함한 다. 그리고 이 이론적 용어들을 포함하는 가설들은 관찰 사례들의 일 반화에 해당하는 가설들보다 높은 수준에서 등장한다. 따라서, 과학 이론은 일반적으로 관찰 사례들과 그것들의 일반화로 구성되는 2 층 구조가 아니라, 이론적 용어들을 포함하는 가설들이 그보다 높은 층에 서 등장하는 다층 구조를 이룬다. 그 결과 이론적 용어들을 포함하는 가설들에 대한 입증의 문제는 긍정적 사례들에 의한 경험적 일반화의 입증 문제보다 복잡한 구조를 가지게 된다. 다시 말해, 과학 이론의 입증 문제는 관찰 가능한 사례들에 의한 경험적 일반화의 입증을 그 보다 높은 층에 있는 가설들에 대한 입증으로 끌어올리는 문제이다. 과학 이론에 대한 평가는 그 이론으로부터의 예측이 들어맞는가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견해가 자주 제시되어 왔는데, 헴펠이 말하는 예측의 기준p re di c ti on c rit e ri on 은 이러한 견해롤 정식화한 것이다. 그
의 정식화에 따르면. (PC) 관찰 자료 D 는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성립 할 경우 가설 H 를 입 중한다. ( i ) D = D1 U D2, D1 n D2 = ¢ 그리고 D2 ;.!c ¢ . (ii) D2 는 D1 과 H 로부터 연역 가능하다. (iii) D 눅 D1 으로부터 연역 가능하지 않다 . (PC) 는 이론을 구성하는 가설들 사이에, 그리고 가설과 관찰(또는 실 험) 자료 사이에 성립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연역적 관계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 따라서 (PC) 와 같은 입증의 기준을 사용하여 과학 이론에 대한 평가를 이해하고자 하는·이론은 가설 • 연역적 입증 이론이라 불 리기도 한다 . 그런데 어떤 과학적 가설 하나로부터 관찰 가능한 예측 을 연역해 내는 것은 일반적으로 불가능하다. 주어진 가설에 대한 시 험이 행해지는 상황에서 성립하는 초기 조건들에 대한 정보를 필요로 하는 것이 보통이다 . 따라서, (PC) 에서 D1 은 초기 조건들에 대한 진 술들로 구성된다고 볼 수도 있다 . 나아가서, 많은 경우에 예측을 위해 서는 시험 대상인 가설 이외에 다른 보조 가설들이 필요하다. 이와 같이, 과학에서 관찰 가능한 예측을 위한 연역의 기초는 시험 대상인 가설, 보조 가설들 그리고 초기 조건에 대한 진술들로 구성되는 것이 보통이다. 예측을 위한 연역 기초의 이러한 복합성은 입증과 관련하여 불확실한 상황을 유발한다. 연역의 기초를 구성하는 진술들로부터 도 출된 예측이 들어맞는 경우에도, 시험 대상인 가설은 여전히 틀린 것 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결과는 주어진 입증이 완벽하지 않다는 데서 비롯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또 다른 가능성은 시 험 대상인 가설을 포함하여 예측의 연역적 기초를 이루는 진술들이 그릇됨에도 불구하고 상호 보정의 효과 때문에 맞는 예측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소 우연적인 결과이기는 하지만 가능한 상황이
다. 이러한 이유로 일어날 수 있는 오판을 막기 위해서는 시험 대상 인 가설을 다른 초기 조건 아래서 다른 보조 가설들을 이용하여 시험 하는 방법을 택할 수 있다. 다양한 조건 아래서 이루어지는 예측들이 틀린 진술들 사이의 상호 보정을 통해 계속 맞는 것으로 드러날 개연 성은 현저하게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예측을 위한 연역 기초의 복 합성은 반증과 관련해서도 불확실한 상황을 유발한다. 예측이 틀린 것 으로 밝혀졌다는 사실로부터 시험 대상인 가설이 틀렸다는 결론은 곧 바로 도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초기 진술들이나 보조 가설들 중의 일 부가 틀렸기 때문에 그릇된 예측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이러한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다양한 조건들 아래서 잘 확립된 초기 조건 및 보조 가설들을 이용하여 문제의 가설을 시험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이, 가설의 입증이나 반증에서 야기되는 불확실성을 원 천적으로 제거할 수는 없지만, 그 정도를 현저하게 감소시킬 수는 있 다. 따라서, 문제의 불확실성은 가설 • 연역적 입증 개념을 위협할 정 도로 심각한 사안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 가설 • 연역적 입증 개념과 관련된 보다 심각한 문젯거리가 있다 . 시험 대상인 가설 H, 초기 조건 I 및 보조 가설 A 로부터 연역 된 예측 E 가 들어맞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하자. 그리고 E 는 가설 • 연 역적 입증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앞에서 언급된 다른 조건들도 만족 시킨다고 하자. 덧붙여 가설 H 가 가설 H' 으로부터 연역 가능하다고 하면, E 는 H 와 마찬가지로 H' 도 입증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는 입 증에 관한 논의에서 〈 역귀결 조건 converse consequ e nce con diti on 〉이라 불리는 것이다. 이 〈 역귀결 조건 〉 은 가설 • 연역적 입증 개념의 불가 피한 귀결인 것처럼 보이는데, 그런만큼 이 조건과 관련하여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면 이는 바로 가설 • 연역적 입증 개념 자체의 문제가 되기 쉽다 . 이제 H' 이 H 와 임의의 가설 H* 의 연언에 해당한다고 하 자 . 그러면 증거 E 는, 기존의 H, I 그리고 A 와 더불어, H* 도 입증하 게 된다. 즉, 입증에 관한 논의에서 무관한 연언의 문제 pro blem of
irrel evant conj unc ti on 라 불리는 상황이 발생한댜 이는 별 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임의의 가설이 무임승차하는 것을 허용한다. 여기서 헴펠이 〈특수 귀결 조건 spe cial consequ e nce con diti on 〉 이라 부르는 것, 죽 〈증거 E 가 가설 H 를 입증하면 E 는 H 의 논리적 귀결들도 입증한 다〉는 조건을 도입하게 되면, 최악의 상황이 야기된다. 〈 역귀결 조건 〉 과 〈특수 귀결 조건 〉 을 동시에 적용하면, 임의의 증거는 모든 가설을 입증한다는 결론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론은 입증의 논의에 서 파국을 의미한다. 이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두 조건 중의 하나 또 는 두 조건 모두를 거부할 수밖에 없다. 헴펠은 한동안 〈 특수 귀결 조건〉을 채택하는 대신 〈 역귀결 조건 〉 을 거부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이는 헴펠이 입증의 문제를 다룬 맥락을 고려하면 납득할 수 있는 선 택이다. 그는 주로 입증 사례의 문제를 다루었고, 이러한 논의의 맥락 에서는 우선 〈역귀결 조건〉의 필요성이 등장하지 않는다 . 뿐만 아니 라, 〈특수 귀결 조건 〉 을 거부하고 〈 역귀결 조건 〉 을 채택하면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파국은 막을 수 있지만, 무관한 연언의 문제는 여 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는다. 그러나 과학 이론의 다층적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입증의 문제를 다루는 맥락에서는 〈 역귀결 조건 〉 또 는 그와 유사한 기능을 할 수 있는 조건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상황 에서 우리는 역귀결 조건이 제한된 형태로 성립하는, 따라서 특수 귀 결 조건의 채택 여부와는 상관없이 무차별 입증의 역설이나 무관한 연언의 문제가 해결 또는 해소되는 입증 이론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에 다시 논의하도록 하자. 4 헴펠 : 입증에 대한 만족 기준 헴펠은 입증에 대한 정의가 만족시켜야 할 적합성의 조건들을 제시 굽는데, 앞서 언급한 〈동치 조건〉과 〈특수 귀결 조건〉을 특수한 경우
들로 포괄하는 〈 귀결 조건 consequ e nce cond iti on 〉 이 이에 포함된다. 그 외에도 〈 어떤 관찰 보고가 함축하는 문장은 그 관찰 보고에 의해 입 증된다 〉 는 내용의 〈 함축 조건 enta ilm ent condit ion > , 그리고 〈 임의의 관 찰 보고는 그것이 입증하는 모든 가설들과 논리적으로 양립 가능하다 〉 는 내용의 〈 일관성의 조건 consis te n cy con diti on 〉 이 포함된다. 그리고 이러한 제안의 연장선에서 헴펠은 그가 〈 입증에 대한 만족 기준 sati sfa c tio n crit er io n of co nfi血 1a ti on 〉 이 라 부르는 입 증의 정 의 를 제 시 한 다. 이 정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체들의 어떤 집합에 대한 주어진 가설의 전개 develo p men t라는 개념을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 개 념에 따르면. 보편양화사는 연언에 의해 그리고 존재양화사는 선언에 의해 대체된다 . 예를 들어, 개체들의 집합 {a, bl 에 대한 가설 〈 (x)Fx 〉 의 전개는 〈 Fa&Fb 〉 이다. 반면에, 동일한 개체들의 집합에 대 한 가설 <( 크 x)Gx 〉 의 전개는 〈 GavGb 〉 이다. <(x )( 크 y )Hx y 〉 의 전개는. <(x )(H xa v Hxb) 〉 를 거쳐, <(H aa v Hab) & (Hba v Hbb) 〉가 된다. 그러면. 헴펠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SCl ) E 가 E 속에 포함된 개체들의 집합 I 에 대한 가설 H 의 전개를 함축하면 그리고 그럴 때에만, E 는 H 를 직접적으로 입증한다 dire c tly conf inns. 그리 고, (SC2) E 가 직접적으로 입증하는 문장들의 어떤 집합이 가설 H 를 함축 하면 그리고 그럴 때에만, E 는 H 를 간접적으로 입증한다. 여기서 정의 (SCl) 은 E 의 입증 대상 속에 E 와 관계없는 요소가 끼 여드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 즉, (SCl) 은 E 와 관계없는 요소가 포 함된 가설에 대한 입증을 거부함으로써 무관한 연언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예를 들어 . 관찰 보고 E 는 〈a 는 까마 귀이고 검다 그리고 b 는 까마귀이고 검다〉라고 하자. 가설 H 는 〈모든 까마귀는 검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현명하다〉라고 하자. E 와 H 를 적
절한 기호들을 사용하여 기호화하면 각각 <(R a&Ba) & (Rb&Bb) 〉와 <(x )( Rx ::J Bx)&Ws 〉가 된다. 이제 H 를 E 속에 포함된 개체들의 집합 에 대해 전개하면, 〈 (Ra 그 Ba)&(Rb ::J Bb)&Ws 〉가 된다. 여기서 전개 된 H 속에는 E 와 무관한 내용을 지니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고, 그 결 과 E 는 전개된 H 를 함축하지 않는다. 따라서, 헴펠의 만족 기준에 따 르면 E 는 H 를 입증하지 않게 된다. 다른 한편, (SC2) 는 귀결 조건의 만족을 보장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실제로 헴펠의 만족 기준들은 그가 제시한 세 적합성의 조건들, 죽 〈함축의 조건〉, 〈귀결의 조건〉 및 〈일 관성의 조건〉을 만족시킨다. 뿐만 아니라, 까마귀의 〈역설〉에 대한 헴 펠 자신의 처방과 일관되게, (SCl) 과 (SC2) 에 따르면
할 만한 과학적 가설들은 대부분 〈 이론 적 용어 〉 들을 포함하기 때문이 다. 이러한 문제는 귀납적 방법의 틀 속에서 행해지는 입증과 관련하 여 흔히 지적되는 것이다 . 따라서, 귀납적 방법을 비판적으로 보는 헴 펠 5) 에 의해 제시되는 입증의 기준이 같은 문제를 드러낸다는 것은 역 설적이다. 물론 만족 기준의 제시와 관련하여 헴펠이 염두에 두었던 것은 입증 사례의 문제였고, 따라서 그 기준의 적용 범위도 그러한 맥락에 한정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변명이 가능하다. 그렇게 본다면, 헴펠의 만족 기준은 입증 문제의 기본적이지만 매우 한정된 부분에 대한 답에 불과하다. 실제로 헴펠이 거부하는 〈 역귀결 조건 〉 에 대한 요구는 입증 사례의 맥락을 벗어나 보다 폭넓은 영역에서 입 증의 문제를 다룰 때 등장한다. 따라서, 입증 사례의 맥락에 논의의 영역을 제한해 놓고, 〈 역귀결 조건 〉 이 쉽게 거부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문제의 해결이라기보다는 회피에 가깝다는 지적이 가능 하다 . 따라서, 과학 이론에 대한 입증의 문제를 제대로 다루려면 보다 폭넓은 적용 범위를 가지는 입증 기준의 고안이 필요하다. 헴펠의 만 족 기준, 특히 (SC1) 에 포함된 조건의 장점을 살리면서 그 적용 범위 를 확장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가? 이것이 우리의 당면 과제이다. 그 런데 이 문제를 다루기 전에 먼저 논의해야 할 사안이 있다. 그것은 굿맨 N. Goodman 의 〈 초랑gru e 역설 〉 에 의해 제기되는 〈 귀납의 새로운 수수께끼 〉 이다. 5 굿맨의 〈초랑 역설〉과 입증의 문제 모든 일반화는 그 자신의 긍정적 사례들에 의해 입증되는가? 굿맨 의 답은 〈 아니다 〉 이다. 예를 들어, 〈이 강의실에 있는 모든 남학생은 5) Hemp el (19 45), pp. 5-6.
셋째 아들이다〉라는 일반화의 긍정적 사례는 〈 어떤 특정한 개체가 이 강의실에 있는 남학생인 동시에 셋째 아들이다 〉 라는 형식을 가진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의 사례들은 원래의 일반화를 입증하지 못한다. 반면. 〈모든 금속은 열을 가하면 늘어난다〉라는 일반화는 그것의 긍 정적 사례들에 의해 입증된다. 이와 같이 외형상으로는 동일한 형식을 가지는 일반화들 중 일부는 그것의 긍정적 사례들에 의해 입증되는 반면. 나머지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굿맨의 지적이다. 이러한 지적 이 옳다면. 문제의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하는 것일까? 굿맨의 진단에 따르면. 이는 주어진 일반화가 법칙성을 가지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즉, 자신의 긍정적 사례들에 의해 입증되는 일반화들은 법칙적 일반화 lawl ike g ene rali za ti ons 인 반면 그렇지 못한 일반화들은 우연적 일반화 accid e nta l g ene ralizati ons 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굿맨의 이러한 생각 은 법칙에 관한 논의에서 그 동안 폭넓게 받아들여져 왔다 . 물론 반 대 의견이 없는 것은 아니다.6) 그러나 일반화가 그것의 긍정적 사례 들에 의해 입증받기 위해서는 법칙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매우 설득 력 있는 통찰에 기초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일반화가 우연적이 라 함은 그것을 구성하는 긍정적 사례들 사이에 어떠한 의존 내지 구 속 관계가 없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 그 긍정적 사례들 중의 일부가 성립하는 것으로 밝혀진다 하더라도 그 정보를 토대로 하여 나머지 사례들 역시 성립한다고 추론하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반면 어떤 일반화가 법칙적이라 함은 그것을 구성하는 사례들 사이에 특정한 부 류의 질서 내지 구속 관계가 성립함을 의미한다. 물론 이러한 질서 내지 구속 관계의 원천이 무엇인지는 법칙의 본성에 대한 논구를 통 해 밝혀야 할 사안이다. 그러나 그 원천이 무엇이든 간에 문제의 질 서 또는 구속 관계가 성립한다면, 주어진 법칙적 일반화의 긍정적 사 례들 중 일부가 성립한다는 정보를 토대로 하여 나머지 사례들의 성 6) van Fraassen( l98 7), p. 255; Wi lso n( l98 6); Hemp el (1 9 65), p. 176, n. 6; van Fraassen(1 9 89) , pp. 136-7; Jac kson & Parge t te r (l 98 0) , pp. 423-4; Sober(l 98 8) .
립에 대해 추론하는 것은 정당화된다. 달리 말해 법칙적 일반화는. 우 연적 일반화들과는 달리. 그 자신의 긍정적 사례들에 의해 입증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7) 따라서 굿맨이 〈 초랑 역설 grue p aradox 〉 을 통해 선명하게 부각시킨 법칙성과 입증가능성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일반화하여 입증 기준 속에 포함시키도록 하자 . 즉, (L) 가설 H 가 관련된 자료 D 에 의해 입증을 받으려면, 그 가설은 법 칙적이어야 한다. 여기서 주어진 가설이 법칙적이어야 한다는 요구는 그것이 관련된 자료에 의해 입증가능한 대상이라는 것을 확보하기 위한 것인만큼, 조 건 (L) 은 입증가능성의 조건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법칙적 일반화와 우연적 일반화를 구분하는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낳는다 . 이와 관련하여 여러 시도들이 있어 왔 으나, 굿맨의 결론은 구문론적인 또는 의미론적인 특징들을 통해 두 부류의 일반화를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 예를 들어. 법 칙적 진술은 구문적 외양으로나 의미상으로 시공간적인 제약이나 개 별적 대상에 대한 언급을 필수적으로 포함해서는 안 된다는 기준을 생각해 보자 . 앞서 언급된 〈 이 강의실에 있는 모든 남학생은 셋째 아 들이다 〉 라는 일반화는 이러한 조건을 구문적 차원에서 만족시키지 못 하기 때문에 법칙적 일반화의 요건을 구비하지 못하는 경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 모든 에메랄드는 푸파랗다양 ue 〉의 경우. 구문적 외 양에서는 어떤 결격 사유도 발견할 수 없다. 물론 〈 푸파랗다〉는, 〈시 점 t 이전에 관찰되고 푸르거나 시점 t 이후에 관찰되고 파랗다〉는 의 미를 가지기 때문에, 의미의 차원에서 특정 시점에 대한 언급을 포함 하고 따라서 법칙적 진술의 요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지적이 가능 7) 참조 : Lang e( l99 6), pp. 625-6.
하다. 이에 대한 굿맨의 대응은, 그러한 점에서는 우리가 정상적 술어 로 간주하는 〈 푸르다gr een 〉 의 경우에도 사정이 마 찬 가지라는 것이다. 실제로 〈푸르다〉는. 〈 시점 t 이전에 관찰되고 푸파랗거나 시점 t 이후 에 관찰되고 파푸르다〉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 푸파랗다 〉 와 〈 파푸 르다바 een 〉 술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 의미 속에 특 정 시점에 대한 언급을 포함한다. 따라서, 조금 전에 언급된 이유로 해서 〈푸파랗다〉는 술어를 사용하는 에메랄드에 관한 일반화를 법칙 적이지 않다고 말한다면, 〈 푸르다 〉 는 술어를 포함하는 일반화 역시 법칙적이 아니라고 해야 하는 상황이 초래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결과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문적인 또는 의미상 의 특징에만 의존하지 않는 법칙성의 기준이 제시될 필요가 있다. 그 런데 법칙성 자체를 해명하는 일은 이 논문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 다. 이제 무관한 연언의 문제가 재발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SCl) 에 포함된 입증 조건과 그 적용 범위를 확장하는 문제로 돌아 7 1-자 . 6 글리모어의 구두띠 입증 이론 8) 헴펠의 (SCl) 에 포함된 입증 조건이란, 가설 H 가 증거 E 에 의해 8) 〈구두띠 입증 이론〉은
입증되려면 E 가 H 의 사례들을 함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앞서 이야 기한 것처럼 이 입증 조건은 무관한 연언의 문제를 방지하는 효과를 가진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인 면을 지니지만, 증거 E 속에 이미 포 함되어 있는 술어들 이외의 다른 술어들, 특히 〈 이론적 용어 〉 에 해당 하는 술어들이 가설 H 속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에만 적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 적용 범위가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E 에 포함된 술어들과 H 의 사례에 포함 된 술어들을 연결해 주는 보조 가설들의 도입이 필요하다. 물론 이러 한 역할을 하는 보조 가설들 ({A i})을 도입할 경우, E 에 의한 H 의 입 증은 {A i)에 상대적인 것이 된다. 즉, 입증은 증거와 가설 사이의 2 자 관계가 아니라, 증거, 가설 그리고 일단의 보조 가설들(또는 이론) 사 이의 3 자 관계가 된다. 글리모어는 그의 구두띠 입증 이론에서 이렇게 확장된 만족 조건 satis fa c tio n con diti on 을 입증의 필요 조건으로 삼고 있다. 그가 구두띠 조건 boots trap con diti on 이라 부르는 것의 세 번째 항목이 이에 해당한 다. 먼저 그의 용어 사용법을 살펴보기로 하자. 글리모어는 주로 〈양 q uan tity 〉 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데, 이는 이론을 일차 술어 논리의 언 어로 기 호화할 경우 열 린 원자식 ope n ato m ic fo rmula 에 해 당한다. 그 리고 〈 양의 값 〉 은 원자 문장이나 그것의 부정 또는 논리적 동치에 해 당하는데, 편의상 이들을 기초 문장이라 부르자. 그러면, 그가 〈계산 com p u t a ti on 〉 이라 부르는 것은 증거를 구성하는 기초 문장들과 보조 가설들로부터 시험 대상인 가설 속에 포함된 양의 값에 해당하는 기 초 문장을 연역적으로 도출해 내는 과정이다. 이제 글리모어식의 확장 된 만족 조건에 해당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SC*) E 가 {A i 1 에 대해 H 를 입증한다면. H 속에 포함된 모든 양들의 값을 E 와 {A i)로부터 계산한 결과들은 E 에 대한 H의 전개를 함 축한다.
글리모어의 구두띠 조건은 (SC*) 이외에도 몇몇 다른 조건들을 포 함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구두띠 조건의 첫번째 항목에서 제시되는 데 일관성의 조건이라 부를 만하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Cons) H&E 는 {A i}와 일관되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계산 가능성의 조건인데. 그의 구두띠 조건의 두 번째 항목이 이에 해당한다. 이 조건에 따르면. (Comp ) 가설 H 속에 포함된 모든 양들의 값은 E 와 {A i)로부터 계산 가능해야 한다. 왜 우리는 (Com p)를 입증 조건의 일부로서 채택해야 하는가? 만약 (Com p)를 구두띠 조건 속에 포함시키지 않을 경우, 우리는 어떤 주어 진 가설을 입증하는 증거가 그 가설의 역오캄화된 deocc ami zed 변형까 지도 입증하는 것을 허용해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 글리 모어의 생각이다. 역오캄화 deocc ami za ti on 의 대상은 어떤 이론적 용어 를 포함하는 가설이다. 만약 h 가 그러한 가설이라면, 우리는 h 에 포함 된 문제의 이론적 술어를 새로운 이론적 술어들의 어떤 임의적인 복 합체로 모두 대체함으로써 h 를 역오캄화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가설 들의 이러한 역오캄화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글리모어의 분석에 따르면 이는 역오캄화의 과정에서 도입된 과외의 redundant 술 어들에 대한 계산이 가능하지 않다는 데 그 이유가 있다. 또 다른 하 나는 반중가능성 fa ls ifi ab ility의 조건이다. 구두띠 조건의 네 번째 항목 이 이에 해당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F#) E 속에 포함된 양들만을 포함하나 그 양들의 적어도 일부는 E 속에서 가졌던 값과는 다른 값을 가지는 가능한 증거 E' 과 보조
가설들 {A;) 로부터. 가설 H 속의 양들의 값을 계산한 결과가 H 롤 만족시키지 않는 그러한 증거 E' 이 존재해야 한다. (F#) 의 기저에 놓여 있는 생각은, 어떤 가설과 관련된 증거를 산출 하려는 의도로 시행되는 관찰이나 실험의 모든 가능한 결과들 중 어 느 것도 H 를 반증하지 않는다면 문제의 관찰 또는 실험을 통해 얻어 진 결과는 주어진 가설에 대한 증거를 제공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다. 이러한 생각, 즉 가설이 반증가능해야 한다는 생각은 반증가능성 이 방법론적으로 독점적인 지위를 가진다는 포퍼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다수의 과학철학자들에 의해서도 매우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글리모어의 구두띠 조건이 이 반증가능성의 조건을 그 일부로 포함한다는 사실은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조건들로 구성되는 구두띠 입증 개념은, 글리모어에 따르면, 여러 이점들을 가지고 있다. 첫째, 구두띠 입증 개념을 채택할 경우, 다양한 상황에서 무관한 연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글리모어 (1980, 135) 가 제시하는 논변은 다음과 같다. 가설 • 연역적 입증 개념 을 받아들일 경우 가장 현저하게 부각되는 무관한 연언의 문제는, 어 떤 가설 h 가 입증된다면 h 와 양립 가능한 임의의 가설 g와 결합된 h 역시 입증된다는 결론을 허용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데서 발생한 다. 특히, 이 문제는 h 와 g가 내용상으로 무관한 경우에 발생한다. 그 런데 h 와 g가 내용상으로 무관하면, 글리모어의 지적대로 , h 속에 포 함되어 있지 않는 양들이 g 속에 포함되어 있는 형태로 나타날 가능 성이 많고 따라서 h 의 증거를 토대로 하여 g 속에 포함된 과외의 양 들의 값을 계산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기 쉽다. 그렇다면, 글리 모어의 구두띠 조건을 채택할 경우, 주어진 중거로부터 계산 불가능한 양을 포함하는 가설은 입증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둘째, 이론이 다양한 증거에 의해 더 잘 지지된다는 주장은 표준적 인 방법론적 원리이다. 글리모어 (1980, 139-40) 에 따르면, 이 방법론
적 원리의 호소력은 구두띠 입증 이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잘 이해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구두띠 입증 이론에 따르면. 입증은 국소 화된 형태로 일어난다. 즉, 어떤 주어진 증거는 관련된 이론 전체를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론을 구성하는 가설들 중에서 문제의 증 거와 구조적으로 연결되는 일부 가설들만을 입증하는 것이 일반적이 다. 따라서, 주어진 증거에 의해 입증되지 않는 가설들의 입증을 위해 서는 다른 증거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론 전체의 입증을 위해서는 다양한 증거들이 요청된다. 구두띠 입증 이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증 거의 다양화가 요구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9) 구두띠 입증은 일반 적으로 입증 대상인 가설과는 다른 가설들을 사용하는 계산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런 상황에서는 시험되는 가설과 계산에서 사용되는 가 설(들)이 모두 그릇됨에도 불구하고 상호간의 보정을 통해 주어진 증 거와 시험되는 가설 사이에 합치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러한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입증에 대한 오도된 판단을 방지하기 위해 서는 다양한 증거를 통해 시험 대상인 가설을 평가하는 것 이외에 다 른 방법이 없다. 셋째, 과학자들 사이에 과외의 양들을 포함하는 이론들에 대한 오래 된 혐오가 있다. 오캄화되지 않은 이론에 대한 이러한 혐오, 바꾸어 말해 단순한 이론에 대한 과학자들의 선호는 구두띠 입증 이론의 관 점에서 본다면 자연스럽게 이해될 수 있다. 앞의 논의에서 이미 언급 된 것처럼, 오캄화되지 않은 이론이란 관련된 증거들로부터 계산 불가 능한 과외의 양들을 포함하는, 따라서 시험 불가능한 가설들을 포함하 는 이론들이다. 그러므로 어떤 이론의 역오캄화는, 구두띠 조건의 관 점에서 본다면, 많은 경우에 그것의 시험 가능성을 저하시킨다 .10) 예 를 들어, 뉴턴 역학에서 〈 F 〉가 등장할 때마다 이것을 〈 F1+F2 〉에 의 해 대체한다고 생각해 보라. 그러한 대체 이전의 뉴턴 역학과 대체 9) 참조 : Glym o ur(1980), p. 140. 10) 참조 : Glym o ur(1 9 80), p. 143.
이후의 이론이 비록 동일한 관찰 귀결들을 가질지라도, 구두띠 입증 이론에 따르면 전자의 이론을 입증하는 증거가 후자의 이론을 입증하 지는 않는다. 왜냐 하면 F1 과 F2 의 값을 계산할 방법이 없고, 따라서 시험 대상이 가설 속에 포함된 모든 양둘의 값을 계산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구두띠 입증 이론은 오캄화되지 않은 이론을 과 학자들이 싫어하는 이유를 제공한다 .11)
11) 오캄화되지 않은 이론을 과학자들이 기피하는 이유에 관한 구두띠 입증 이론의 설명에 대해 제기될 수 있는 이의들이 어떻게 처리될 수 있는가에 관한 논의를 위 해서는. 참조: Edidin(19 81 ), pp. 299-300.
넷째, 글리모어 (1980, 139) 에 따르면, 구두띠 입증 이론의 최대 장점 은 입증을 국소화하는 데 있다. 물론 어떤 가설에 대한 구두띠 입증 은 다른 가설들에 상대적으로 rela ti ve to 성립한다. 따라서, 구두띠 입 증은 그 나름의 방식으로 전체론적이다. 그러나 구두띠 입증의 전체론 적 성격은 어디까지나 제한되고 국소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목할 점은 구두띠 입증 전략의 사용이 어떻게 극단적(또는 전면적) 전체론을 거부하는가 하는 것이다. 오늘날 전체론이 주요한 인식론적 주제에 해당한다는 글리모어의 언급은 틀린 말이 아니다. 특히, 과학 철학 분야의 경우, 논리경험주의의 대표적 인물들인 카르납R. Carna p 과 헴펠이 이론과 증거 사이의 관계에 대한 오랜 기간의 철학적 사고 를 거쳐 종국에는 전체론적 입장을 취하였을 뿐만 아니라, 논리경험주 의적 전통에 대한 근본적 비판을 통해 새로운 과학철학을 추구한 대 표적 인물인 쿤 T.Kuhn 역시 패러다임의 수용 형태와 관련하여 전체 론적 입장을 취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20 세기 후반에 미국 철학을 대표하는 사람 중의 하나인 콰인 W. Quin e 이 행한 전통적 경험론의 중심 논제들에 대한 비판과 전체론의 옹호가 그 이후의 인식 론적 논의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이론과 증 거 사이의 관계에 대한 전통적 견해는 양자 사이의 논리적 함축 관계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 이러한 견해의 한 가지 형태는 가설(또는 이론)
이 증거를 논리적으로 함축함으로써 후자에 의한 전자의 입증이 성립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주어진 증거를 논리적으 로 함축하는 가설들의 집단 속에서 증거와는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가설들을 가려 낼 수 있는 적절한 기준이나 절차를 강구하는 데 성공 적이지 못하였다. 이러한 문제점은 입증에 대한 가설 • 연역주의적 시 도가 경험한 시행착오들에서 잘 드러난다. 또 다른 문제점은 이론적 진술과 증거적 진술을 연결하는 데 이론적 용어와 비이론적 용어들을 필수적으로 포함하는 부류의 진술들이 필요하다는 데 있다. 이 교량 역할을 하는 진술들은 그 자체 사례들에 의해 입증될 수 있는 대상은 아니며 따라서 분석적 진술에 해당한다는 생각이 일반적으로 받아들 여졌는데. 이러한 생각은 논리경험주의자들 사이에 당연한 것으로 간 주되어 온 종합적/분석적 구분의 타당성을 콰인 등이 문제삼고 철저하 게 비판함으로써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게 되었다. 전통적 견해의 또 다른 형태는 증거가 가설 또는 가설의 사례(들)을 함축함으로써 양자 사이에 입증 관계가 성립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 역시 문 제가 없지 않다. 이 경우 역시 이론적 진술과 증거 진술을 연결해 주 는 진술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따라서. 이러한 교량 역할을 하는 진 술들을 분석적인 것으로 간주한다면. 앞서 논의된 형태의 접근에서 발 생하는 것과 같은 문제 상황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콰인 등의 주장 에 따르면, 분석적 진리라고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 렇다면 분석적 진술로서의 교량 원리들에 의거해 추구된 입증의 국소 화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전체론적 결론이 뒤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이 대목에서 글리모어의 주장은, 구두띠 입증 이론이 이러한 막다른 골목에서 탈출구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물론, 주어진 증거가 시험 대 상인 가설을 〈구두띠 입증〉하는 과정에서 양자를 연결해 주는 다른 가설들의 동원이 일반적으로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 계산 과정에서 사용되는 가설들은. 전통적 견해에서 말하는 분석적 가설들 이 아니라, 시험 대상인 가설을 포함하여 어떤 가설이라도 무방하며
따라서 전통적 견해가 직면했던 것과 같은 문제 상황에 빠지지 않는 다는 것이 글리모어 (1980, 150) 의 주장이다. 구두띠 입증 이론이 글리모어가 말하는 이점들을 모두 가진다면, 그 것은 매우 매력적인 이론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글리모어의 그러한 주 장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 동안 글리 모어의 구두띠 입증 이론에 대해 많은 논의와 비판이 있어 왔다. 특 히, 그의 입증 이론은 지나치게 제한적이거나 방만하다는 지적이 비판 의 주류를 이루어 왔다. 대표적으로, 크리스텐슨 D. Christe n sen(1 9 83) 은 구두띠 조건을 만족시킴에도 불구하고 입증이 발생한다고 볼 수 없는 몇몇 사례들울 제시하였다. 예를 들어, (CEl ) E = Ra&Ba, H1 = (x) (Rx:::>Bx), H2 = (x)Gx. 그리고 T = H1&H2 인 경우를 생각해 보자. 글리모어(1 980) 의 입증 이론에 따르면, 증거 E 는 이론 T 에 대하여 가설 H1 을 입증한다. 그런데, H1 과 H2 의 논리적 귀결 중의 하나인 가설 (x)((Rx 그 Bx)=Gx) 를 사용하여 계산하면, E 로부터 H2 의 사례 Ga 를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리고 E' = Ra&-Ba 는 방금 언급된 가설과 일관될 뿐만 아니라, 그 가설을 사용하여 계산하 면 E' 으로부터 -H 려 사례인 -Ga 를 이끌어 낼 수 있다. 따라서, E 는 T 에 대하여 H2 를 입증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원하는 결론이 아니다 . 다른 예들도 지금 소개된 예와 그 유형에 있 어 유사하다. 이러한 반대 사례들을 척결하기 위해 글리모어 (1983a, 627) 는 그의 구두띠 조건에 또 다른 항목 (R) 을 다음과 같이 추가 한다. (R) 모든 i에 대하여, 가설 H 속에 필수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essenti all y occu rring 어 떤 양의 값을 계 산하는 데 사용되는 가설
T가 어떤 가설 Ri, 죽 그 자신의 필수적 어휘 essenti al vocabular y 가 T i의 필수적 어휘의 진부분 집합인 어떤 가설과 동치라는 사실 울 H 가 함축해서는 안 된다. 이 추가 조건을 부과하면, 크리스텐슨 (1983) 의 사례들에서 구두띠 입증이 발생한다는 결론을 피할 수 있다. (R) 은 방금 언급된 것과 같 은 긍정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글리모어 (1988) 자신이 인정하는 바대 로, 개념적 동기 부여가 분명치 않다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지트카우J .Z ytk ow(1986) 의 지적대로, 앞서 소개된 크리스텐슨의 예 (CEl) 에서 E' 은 가설 (x)(Rx::)Bx) 를 반증하고 따라서 E' 으로부터 -Ga 를 계산하는 데 사용된 가설은 그 지지 기반을 상실하게 된다. 왜 냐 하면, 후자의 가설은 그것이 (x)(Rx::)Bx) 와 (x)Gx 로부터 연역될 수 있다는 것 이의예 별도의 지지 기반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렇다면, E' 은 (x)Gx 의 반대 사례로서는 설득력을 결여하는 것처럼 보 인다. 이런 이유로, 글리모어와 이어먼 J. Earman(1988) 은 (R) 을 (R' ) 으로 대체할 것을 제안한다. 그들에 의하면, (R') E 와 T1’ 이 함께 Q가 어떤 값을 가진다는 사실을 함축하지 않으 며 E' 과 T i’이 정합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i에 대하여, f- Ti 三 T i’〉라는 사실을 H 가 함축하지 않는다 .12) (R') 을 구두띠 입증을 위한 추가 요건으로 채택하면, 지트카우(1 986) 에 의해 지적된 사항을 반영하면서, 크리스텐슨 (1983) 의 반대 사례들 을 피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 )에 의해 강 화된 구두띠 조건이 입증에 대해 만족스러운 이론적 설명을 제공한다 고 보기는 여전히 어렵다. 이와 관련하여 크리스텐슨(1 990) 의 문제 제 12) Eannan & Glym o ur(1 9 88), p, 263.
기와 그 원천에 대한 진단을 살펴보자. 크리스텐슨(1 990, 646) 에 의하면 , 그가 1983 년 논문에서 제시한 사 례들 중 네 번째 것은 나머지 사례들과 다른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 이 사례는 (CE2) E = Ra&Fa, H1 = (x) (Rx.:) Bx), 그리고 H2 = (x) (Rx 그 Fx) 인 경우이다. 여기서, 가설 (x)(Rx 그 (Fx=Bx) )는 H1 과 H2 의 논리적 귀결에 해당한다. 이 가설을 사용하여 계산하면 E 로부터 H1 의 사례를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리고 같은 가설을 사용하여 E' = Ra&-Fa 로부 터 -H 려 사례를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러므로 , 원래의 구두띠 조건에 따르면, E 는 H1&H2 에 대하여 H1 을 입증한다 .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원하는 결론이 아니다. 이 문제는 글리모어의 조건 (R) 이나 (R') 에 의해 해결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 이 사례의 한 변형을 생각해 보 자. 즉, (CE3) E = Ra&Fa, H1 = (x) (Rx::J B x), 그리고 H3 = (x) (Rx:: J (Fx= Bx)) 인 경우를 생각해 보자 . 이 경우, 원래의 구두띠 조건에 따르면, E 와 H1 사이에 입증 관계가 당연히 성립한다 . 반면, 수정된 구두띠 조건에 따르면, 입증 관계가 성립하지 않게 된다 . 그런데 이러한 결과는 크리 스텐슨의 관점에서 보면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왜냐 하면 변형된 사례의 경우, 주어진 증거와 가설 사이에 입증 관계가 성립한다는 것 이 그의 직관이기 때문이다. 결국, 크리스텐슨의 관점에서 보면, 원래 의 구두띠 조건은 지나치게 느슨한 반면, 수정된 구두띠 조건은 지나 치게 제한적이다. 다시 말하면, 두 사례는 입증과 관련하여 차별화가 필요한 경우인데 글리모어의 구두띠 접근은 그러한 차별화를 산출하
지 못한다는 것이다 . 이러한 문제점은. 크리스텐슨의 진단에 따르면. 글리모어가 이론에 대해 〈 고전적 classic a l> 접근 방식, 죽 이론을 공리 들과 그 논리적 귀결들의 집합으로 보고 오로지 그것의 논리적 구조 에 의해서만 증거적 유관성의 관계를 결정하는 접근 방식을 채택하는 데 기인한다. 구체적인 예를 통해 말하면, 앞서 살펴본 변형된 사례에 서 가설 (x) (Rx 그 Fx) 는 H1 과 H3 의 논리적 귀결이다. 이것은 두 사례 룰 구성하는 가설들이 사실상 동일하며 그들 사이의 논리적 구조 역 시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 고전적 〉 접근 방식을 통해서는 두 사례를 차별화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구두띠 입증 이론을 이러한 〈고전적〉 접근 방식으로부터 분리하지 않는 한, 그 이 론에 대하여 제기되는 반대 사례들을 지나치게 느슨하지도 않고 지나 치게 제한적이지도 않은 방식으로 다룰 수 있는 전망은 어둡다는 것 이 크리스텐슨의 판단이다. 그러나, 크리스텐슨이 〈 고전적 〉 접근 방식 이라고 부르는 것을 포기할 때, 글리모어의 구두띠 입증 이론은 그 자신의 이론적 정체성 i den tity을 유지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 구두띠 입증 이론의 여러 이점들을 유지하면서 , 그것에 대 해 제기된 문제들을 해결할 수는 없는가? 구두띠 이론에 대해 크리스 텐슨 등이 제시한 반대 사례들 중 글리모어의 구두띠 조건에 따르면 입증이 성립하지만 실제로는 그렇다고 볼 수 없는 사례들을 들여다보 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시험 대상인 가설이 그것의 사례 를 증거로부터 계산해 내는 과정에 개입할 뿐만 아니라 계산을 위해 서는 그러한 개입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CEl) 과 (CE2) 를 포함하여 크리스텐슨(1 983) 의 반대 사례들이 모두 그러한 경우이다. 즉, 시험 대상인 가설과 다른 보조 가설들의 논리적 귀결에 해당하는 가설이 중거로부터 시험 대상 가설의 사례를 도출해 내는 데 사용되고 있는 경우이다 . 반면에, 실제로는 입증이 성립함에도 불구하고 수정된 구두 띠 조건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는 결론이 나오는 사례인 (CE3) 의 경 우에는, 증거로부터 시험 대상 가설의 사례를 계산하는 과정에서 시험
대상 가설 자체의 개입이 요구되지 않는댜 이와 같이, 공리들과 그 논리적 귀결들의 집합으로서의 이론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CE2) 와 (CE3) 사이에는 차이가 없지만, 계산 과정에 시험 대상 가설의 개입 이 요구되는가 하는 물음과 관련해서는 두 사례 사이에 중요한 차이 가 있다. 이러한 관찰을 통해 우리는, 구두띠 입증이 성립하려면. (R) 이나 (R') 대신 다음과 같은 조건이 만족될 필요가 있다는 제안에 도 달하게 된다. (Exe) 증거 E 가 이론 T 에 대해 가설 H 를 입증하려면, H 속에 포함된 양들의 값을 E 로부터 계산해 내는 데 사용되는 가설들의 집합에 는 H 와 H 를 함축하는 가설들이 포함되지 않아야 한다 .13)
13) 이 제안은 어디딘 A. Edid in(1 981, 296) 에 의해 행해진 것과 같다.
일단 조건 (Exe) 를 채택하면, (CEl) 과 (CE2) 를 포함하는 크리스텐 슨 (1983) 의 반대 사례들에서 입증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그리 고 (CE3) 에서는 입증이 성립한다는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러나, 크리스텐슨(1 990) 은 원래의 구두띠 조건에 (Exe) 를 추가하 더라도 우리가 원하지 않는 입증이 성립한다고 주장하고 그 구체적 사례들을 제시한다. 만약 이러한 주장이 옳은 것으로 밝혀진다면, (Exe) 를 포함하는 구두띠 조건조차 여전히 충분하지 못하거 나 구두띠 입증 개념 자체가 방향이 잘못 잡힌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 러면, 그가 제시한 반대 사례들 중의 하나를 살펴보자. (CE4) E = Sa&Pa, H1 = (x) (Ix 三 Zx), H2 = (x)(Sx:::>Zx), 그리고 H3 = (x) (Px=Zx). 여기서 I 는 〈영생한다〉, P 는 〈아우라 마즈다 Ahura-Mazda 에게 기도한
다〉, S 는 〈수드라 sudra 를 입고 있다〉, 그리고 Z 는 〈조로아스터교인이 다〉를 의미한다고 하자. 원래의 구두띠 조건에 따르면, E 는 (H1&H2&H3) 에 대해 H 울 입증한다. 왜냐 하면 E 의 일부인 Sa 와 H2 로부터는 Za 를, 그리고 E 의 일부인 Pa 와 (H1&H3) 로부터는 Ia 를 도출 해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E'(=Sa&-Pa) 로부터는 동일한 계산 과 정을 통해 Za 와 -Ia 를 도출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조건 (Exe) 를 부과하면, E 가 H1 을 입증한다는 결론을 막을 수 있다. 왜냐 하면 계산 과정에서 H 례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건 (Exe) 는 우리 의 기대에 부합하는 결론을 산출한다. 그런데, 크리스텐슨의 제안에 따라, Pa 로부터 Ia 으로의 계산이 두 단계 (즉, Pa 와 H3 로부터 Za 를 도출 해 내는 단계 그리고 Za 와 H1 으로부터 Ia 를 도출해 내는 단계)로 이루어 지는 것으로 보지 않고, 바로 (x) (Px 三 Ix) 를 통해 한 단계에 행해지 는 것으로 보자. 이렇게 단축된 계산 과정에서 사용되는 보조 가설에 는 시험 대상인 가설이 포함되지 않으며, 따라서 (Exe) 가 추가된 구 두띠 조건을 만족시키는 입증이 성립한다는 것이 크리스텐슨의 생각 이다. 물론, 이처럼 계산 과정이 단축된 상황에서도 입증은 성립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야 하며, 따라서 그러한 상황에서 입증이 성립한다는 결론을 낳은 입증 조건 내지 이론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 다. 그러나 크리스텐슨의 논변은 우리의 판단을 오도하는 것처럼 보인 다. 먼저 그가 말하는 단축된 계산 과정에서 성립하는 입증은 적어도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한 가지는, 증거 E 가 (H1&H2&H3) 에 대해 가설 H1 을 입증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중거 E 가 (x)(Px=Ix) 와 H2 에 대해 가설 H1 을 입증한다고 말 하는 것이다. 계산 과정에서 (x) (Px=Ix) 가 사용되는 경우에도 그것이 H1 과 H3 로부터 도출된 것이라면, H1 이 (x)(Px 三 Ix) 속에 명시적으로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하더라도 여전히 계산 과정에 개입한 것으로 보 아야 하고 따라서 증거 E 는 (H1&H2&H3) 에 대해 가설 H1 을 입증한다 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이 H1 의 개입을 인정할
경우 조건 (Exe) 가 위반된 것으로 볼 수 있고. 따라서 E 와 H! 사이의 입증 역시 성립하지 않게 된다. 반면. (x)(Px 三 Ix) 가 H1 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도입된 것이라면. 증거 E 는 (x)(Px 三 Ix) 와 H2 에 대 해 가설 H1 을 입증한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뿐만 아니라 E 와 H1 사 이에 구두띠 입증이 성립한다는 주장 역시 인정되어야 할 것처럼 보 인다. 문제의 단축된 계산 과정에 대한 이러한 두 가지 다른 이해 방 식의 구분은 사실상 구두띠 입증 이론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크리스텐 슨 자신이 강조한 것이다. 즉, 앞서 논의되었던 (CE2) 의 경우, 계산 과정에서 실제로 사용되는 보조 가설은 (CE2) 의 H1 과 H2 가 아니라 그것들이 함축하는 (x)(Rx::>(Fx 三 Bx) )이다. 이처럼 (CE2) 와 (CE3) 에서 사용되는 보조 가설은 동일한 가설` (x)(Rx::>(Fx=Bx) )임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텐슨은 두 사례가 구분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 그에 따르면 (CE2) 에서는 입증이 성립한다고 보기 어려운 반면, (CE3) 에서는 입증이 성립한다. 그런데 두 사례 사이의 차이를 돌이켜보면, 계산에서 실제로 쓰이는 보조 가설인 (x) (Rx::> (Fx=Bx)) 가 (CE2) 에서는 시험 대상인 가설 H1 에 의존하여 도출된 반면 , (CE3) 에서는 H1 과는 별도로 도입되었다는 것이었다. 결국, 문제 의 핵심은 계산에 사용되는 보조 가설(들) 속에 시입 대상인 가설이 명시적으로 포함되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보조 가설(들)의 도입이 시험 대상인 가설에 실질적으로 의존해서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조건 (Exe) 가 배제하고자 하는 것은 크리스텐슨이 이 해하는 것보다 더 포괄적이다. 그것은 시험 대상인 가설이 계산 과정 에 몸소 개입하는 것을 배제할 뿐만 아니라 대리인을 통해 간접적으 로 개입하는 것도 배제한다. (Exe) 의 이러한 성격을 보다 분명히 하 려면, 그것을 다음과 같이 재정식화하면 된다. (Exe*) 증거 E 가 이론 T 에 대해 가설 H 를 입증하려면, T 를 구성하는 가설들 속에 H 또는 H 를 함축하는 가설들이 포함되지 않아야
한다. 조건 (Exe) 를 이렇게 포괄적인 것으로 이해하면, 구두띠 조건의 〈 속 기 쉬움gulli b ility〉을 지적하기 위해 크리스텐슨(1 990) 이 제시하는 다 른 반대 사례들 역시 유사한 방식으로 처리될 수 있다 .14)
14) 나의 〈과학 방법론 연구〉 세미나를 수강한 학생들 중의 한 사람이 글리모어의 구두띠 조건에 원래 포함되어 있는 반증가능성의 조건에 의해 크리스텐슨의 반대 사례들을 처리할 수 있다는 제안을 하였다. 죽, 증거 E' 이 시험 대상인 가설 H 를 반증하는 역할을 하려면 그것은 H 에 속한 양들의 값을 계산하는 과정에서 사용되 는 가설들과 정합적 cons i s t en t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제안 역시 E' 과 정합적일 필요가 있는 가설들의 집합을 계산에 사용·되는 가설들의 집합이 아 니라 (Exe* )에서처럽 이론 T 를 구성하는 가설들의 집합으로 보아야 소기의 목적 울 달성할 수 있다. 그런데 크리스텐슨의 반대 사례들을 처리할 수 있다는 기술적 인 효과 이외에 반증가능성의 조건을 그런 식으로 규정할 어떤 개념적인 이유가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앞서 본문에서 언급된 방법 론적 순환을 허용하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 결국. 반증가능성의 조건에 의한 해 결 방안 역시 그 정당화는 (Exe* )에서 찾게 될 것으로 보인다 . 15) 구두띠 입증의 이론 상대적인 성격에 초접을 맞춘 논의로는. 참조 : Edidin (19 88).
이러한 외형적인 성과와는 별도로, 계산 과정에 시험 대상 가설이 개입하는 것을 배제할 어떤 내적인 이유가 있는가? 한 가지 가능한 이유는, 문제의 개입을 허용하면 순환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가설을 시험하기 위해 그 가설 자체를 사용한다는 의미에서의 순환이다. 그러나 모든 순환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 제시되고 있는 순환은 어떤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인가? 글리모 어의 구두띠 입증은 이론 상대적인 입증이다 .15) 그런 점에서 그것은 조건부 입증의 성격을 가진다. 죽, 이러이러한 가설들로 구성되는 이 론 T 에 대하여 증거 E 는 가설 H 를 입증한다는 주장에 해당한다. 이 런 상황에서 시험 대상인 가설이 계산 과정에 개입하거나 그러한 개 입을 허용하는 것은 조건부 입증의 원래 취지에 배치되는 일이다. 계
산 과정에서 어떤 가설을 사용한다는 것은 조건부 입증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 가설의 참을 방법론적으로 가정하는 것인데 , 시험 대상인 가설을 미리 참으로 가정하고 사용한다는 것은 일종의 방법론적 악순 환(또는 문제 회피)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구두띠 입증의 조 건부적 성격과 계산 과정에서 시험 대상인 가설을 사용-하는 방안은 양립하기 어렵다. 여기서 계산 과정에서 시험 대상 가설의 개입을 배제하는 것은 구 두띠 입증 이론의 정체성을 파괴한다는 이의가 제기될 수 있다. 이러 한 이의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 하는 것은 계산 과정에서 시험 대상 가설의 사용을 허용하는 것(이것을 편의상 (Inc) 조건이라 부르자)이 구두띠 입증 이론의 성격을 규정짓는 데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 는가에 의해 정해질 사안이다. 이와 관련하여 많은 사람들은 글리모어 가 그의 책, 『 이론과 증거 Theory and Ev i dence 』의 5 장에서 구두띠 입 증 이론을 제안하는 방식으로부터 강한 인상을 받았을 수 있다. 거기 서 글리모어는 구두띠 입증의 첫번째 예로서 하나의 가설, 죽
강조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의 허용이 두 입증 이론의 차별화를 위해 핵심적인 사항은 아니다. 두 이론의 핵심적인 차이점는 오 히려 구조적인 데 있다. 먼저 가설 • 연역적 입증은 시험 대상 가설과 보조 가설들의 연언이 증거를 논리적으로 함축한다는 사실에 의존한 다. 반면. 구두띠 입증은 보조 가설들과 증거의 연언이 시험 대상 가 설의 사례를 논리적으로 함축한다는 사실에 의존한다. 그렇다면, 구두 띠 입증 이론을 두 가지 경우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Inc) 조건을 채택하는 경우와 (Exe*) 조건을 채택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편의상 전자를 강한 구두띠 이론, 그리고 후자를 온건한 구두띠 이론이라 부 르자. 그러면 후자는 어떤 의미에서 여전히 구두띠 이론이라 불리는 가? 중거가 시험 대상 가설이 속하는 이론의 일부인 다른 가설들에 대하여 그 가설을 입증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다음 문제는, (Exe* )를 채택한 이후의 구두띠 이론(즉, 온건한 구두 띠 이론)도 원래의 구두띠 이론(즉, 강한 구두띠 이론)이 지닌다고 주 장되는 이점들을 유지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 물음과 관련된 우리의 답은, 강한 구두띠 이론이 글리모어가 말하는 이점들을 실제로 가진다 면 온건한 구두띠 이론 역시 그렇다고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 하다. 강한 구두띠 이론이 지닌다고 주장되는 이점들은 (Inc) 조건을 채택하는 데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며, 그 원천은 딴 곳에 있는 것으 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Inc) 와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 은, 글리모어가 입증 문제에 대한 논리경험주의적 접근 방식과 자신의 구두띠 접근 방식을 차별화하면서, 전자의 경우 이론과 증거를 연결하 는 교량 원리들을 분석적 진리들에 한정하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시험 대상인 가설을 포함하여 어떤 가설이라도 무방하다는 입장을 취한다 고 말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Inc) 의 채택은 필수적인 요소 가 아니다. 왜냐 하면 강조점은 교량 원리들이 분석적 가설들일 필요 가 없다고 말하는 데 있는 것이지, 시험 대상 가설도 교량 원리로 사 용될 수 있다고 말하는 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글리모어가 주장하는 구두띠 이론의 이점들은 그 이론의 어 떤 요소들로부터 비롯하는 것인가? 앞서 언급된 네 가지 이점 중에서 첫번째와 세 번째의 이점들, 즉 무관한 연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 다는 주장과 단순한(또는 오캄화된) 이론들에 대한 과학자들의 선호를 설명할 수 있다는 주장은 앞서 내가 계산 가능성의 조건이라 불렀던 것, 즉 (Com p)에 주로 의존한다. 두 번째의 이점, 즉 증거의 다양화 가 요구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는 주장은 가설에 대한 입증이 일 반적으로 특정한 보조 가설들에 대하여 성립한다는 방법론적 가정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네 번째의 이점, 즉 입증의 국소화를 보장한다 는 주장 역시 두 번째의 이점과 마찬가지로 가설에 대한 입증이 보조 가설들에 상대적으로 성립한다는 가정을 그 근거로 삼고 있는데, 이 경우 어떤 증거가 주어지는가에 따라 계산에 동원되는 보조 가설들도 달라진다는 점이 특히 중요하다. 나아가서, 앞 절에서 이미 언급된 것 처럼 , 계산에 동원되는 보조 가설들은 분석적 가설과 같은 특정한 부 류의 가설들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도 구두띠 입증 이론의 중요한 요소이다. 구두띠 입증 조건의 한 항목으로 논의된 바 있는 반증가능 성의 조건은 구두띠 입증 이론에 특유한 것이라기보다는 입증 이론에 서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사항으로 보는 것이 옳다. 마지막으로, 까마귀의 역설과 같은 입증의 역설들이 구두띠 이론의 틀 속에서 어떻게 다루어질 수 있는가에 대해 살펴보자 . 까마귀 역설 에 대한 글리모어의 궁극적인 처방은 다음과 같이 선택적 입증의 개 념을 도입하는 것이다 .17) (SC) 증거 E 가 이론 T 에 대하여 가설 H 를 입증하려면, T 를 사용하여 E 로부터 H 의 사례를 도출해 낼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H 의 어휘를 사용해 표현 가능한 어떤 경쟁 가설 H' 의 사례를 도출해 17) 참조: Glym o ur (1980), pp. 156-161.
내는 데 실패해야 한다. 이 제안과 관련하여 주목할 점은, 구두띠 입증 개념에 단순히 덧붙여 진 것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SC) 는 구두띠 입증 개념에 자생적 인 견해가 아니다. 따라서, (SC) 를 채택하면 까마귀 역설이 해결된다 는 주장은 엄밀하게 말하면 구두띠 입증 이론의 이점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우리는 구두띠 입증 이론의 문제점과 이점들에 대해서 논 하였다. 먼저, 크리스텐슨 등에 의해 제시된 반대 사례들은 주로 (Inc) 조건에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그리고 (Exe) (또는 (Exe*)) 의 채택이 구두띠 입증 이론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지적되었다. 다른 한편, 구두띠 이론의 이점으로 주장되는 것들은 주 로 (Comp ) 조건에 의존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Comp ) 조건이 외 양상의 이점들 이외에 그 나름의 문제점이 없는지는 별도의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다. 7 베이즈적 입증 이론 지 금까지 우리 는 정 성 적 입 증 qua l itat iv e co nfm na ti on 에 대 한 몇 몇 대 표적인 이론들을 다루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 방식과는 달리 입증 을 양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시도가 꾸준히 있어 왔다. 그 중에서 가 장 대표적인 것이 베이즈적 입증 이론이라 불리는 것이다. 먼저 베이즈적 입증 이론의 주요 요소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베이즈적 입증 이론에 따르면, 입증에 대한 논의는 어떤 진술 P 가 참 이라고(또는 참인 것으로 밝혀지리라고) 어떤 사람 S 가 믿는 정도 degr ee of be li e f를 출발점으로 삼아 이루어진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어떤 진술을 참이라고 믿는 정도는 어떻게 결정되는가? 이 물음과 관
련하여 베이즈주의자들은 대체로 램지 F. Ramse y의 접근 방식을 따른 댜 램지(1 926, 68) 는. 어떤 사람이 주어진 진술에 내기를 거는 조건 을 조사함으로써 그가 그 진술을 믿는 정도를 측정하는 방법을 제안 하였다. 가령 S 가 P 에 대해 내기를 하는 상황에서, P 가 참인 것으로 밝혀질 경우 S 가 취하게 될 이득을 a, p가 거짓인 것으로 밝혀질 경 우 그가 감수해야 할 손실을 b 라고 하자. 문제의 내기에서 S 의 승률 betti ng odds 은 b/a 이다. 여기서 한 가지 가능한 제안은. 주어진 내기에 서 S 의 승률을 그가 P 를 믿는 정도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 승률은 믿는 정도의 측도로서 적합하지 않다 .18) 자연스러운 대안은 내 기 에 참가하는 사람이 공평 한 승률fair odds 로 간주하는 것, 죽 n/m 으로부터 유도되는 특정한 비율 n/ m+n 을 그가 주어진 진술을 믿는 정도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때 후자의 비율은 공평한 승률 n/ m 과 연 계된 내기 몫 be tting q uo ti en t이라 불리는 것이댜
18) 단순 승률이 믿는 정도로서 적합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논의를 위해서는, 참조 : Howson & Urbach(1 9 89), p. 58.
둘째 일단 이런 방식으로 결정된 믿음의 정도들은 확률 계산법의 공리 및 정리들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것이 베이즈주의자들의 주장이 다. 바꾸어 말하면. 베이즈주의자들은 확률을 합리적 믿음의 정도 rati on al deg ree s of be li e f로 해 석 한다. 이 때 확률에 해 당하는 것으로 간 주되는 믿음의 정도는 확률 계산법의 공리들을 만족시킨다는 점에서 합리적이고, 바로 그 점에서 단순히 주관적인 믿음의 정도와 구분된 다. 확률 계산법의 공리들을 만족시키는 믿음의 정도들이 합리적이라 불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사람 S 가 지닌 믿음의 정도들이 확률 계산법의 공리들 중의 하나 또는 그 이상을 위반한다고 하자. 이러한 믿음의 정도들을 토대로 내기를 하는 사람 S 에 대해 더치 북 Du t ch Book 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죽, 내기의 결과가 무엇이든 간에 S 가 순손실 ne t loss 을 입게 되는 내 기 상황을 연출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 런데 S 가 합리적이라면 그러한 내기를 하기 원치 않을 것이라는 것이
베이즈주의자들의 생각이다. 다시 말해 S 가 가진 믿음의 체계가 합리 적이려면. s 에 대해 더치 북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지 않아야 하고 따 라서 S 의 믿음 체계는 확률 계산법의 공리 및 정리를 만족시켜야 한 다는 것이다. 물론. 확률 계산법의 공리들을 만족시키는 것이 어떤 사 람(또는 그가 지닌 믿음 체계)의 합리성을 위해 충분한가 하는 것은 별도의 논의를 필요로 하는 사안이다 . 셋째 주어진 가설과 증거를 각각 h 와 e 라고 하자. 그리고 p (h) 를 사전 확률 prior pro babili ty, p(h/e) 를 사후 확률 pos te ri or p robab ility이 라 부르자. 사전 확률은 증거 e 를 고려하기 이전에 가설 h 를 믿는 정도, 그리고 사후 확률은 e 를 토대로 h 를 믿는 정도의 측도 또는 그 정도 를 측정한 결과에 해당한다. 이제 베이즈주의자들에 따르면. 증거 e 에 의한 가설 h 의 입증은 사후 확률이 사전 확률보다 큰 경우에 성립한 다. 즉, p(h/e) >p ( h)인 경우에 그리고 그런 경우에만 e 는 h 를 입증한 다는 것이다. p(h/ e) 가 p (h) 보다 크다는 것은 e 가 h 에 긍정적으로 유 관함p os iti vel y relevan t을 의미한다. 따라서, 방금 소개된 입증 기준은 긍정적 유관성의 기준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리고 p(h/ e) 의 값이 p(h ) 의 값보다 작은 경우에 e 는 h 를 반증하며, 값의 변화가 없는 경우에 e 는 h 에 대해 중립적이라고 말해진다. 넷째, 확률 계산법의 정리들 중에서도 베이즈의 정리 Baye s 's th eorem 를 중시한다는 데 베이즈적 입증 이론의 특색이 있다. 이는 앞 에서 소개된 베이즈주의자들의 입증 기준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 다. 베이즈주의의 입증 기준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사후 확률 p(h/ e) 의 값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베이즈 정리는 p(h ), p(e /h ) 및 p(e ) 의 값들을 토대로 p(h/ e) 의 값을 계산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 주기 때 문이다. 물론 이 정리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p (h) 와 p (e) 의 값들을 먼 저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 이는 사전 확률들을 결정하는 문제라고 불리는데, 이 확률값들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어떤 방식을 채택하는가 에 따라 베이즈주의자들도 순수한 개인주의자p ure per sonalist s , 완화된
개 인주의 자 tem p er ed per sonalis ts 또는 객 관주의 자 obj ec tivi s ts로 나누어 진다 .19)
19) 베이즈주의자들 사이의 이러한 구분에 대해서는, 참조 : Earman( l99 2), p. 35.
다섯째 베이즈적 입증 이론에서 경험으로부터의 배움은 조건화를 통해 정식화된다. 새로운 지식 E 의 획득 이전과 이후의 믿음의 정도 를 나타내는 확률 함수들을 각각 Potd 및 Pn c w 로 나타내자. 〈 엄 격 한 조 건화 s tri c t con diti ona li za ti on 〉 로 불리는 것에 따르면 , 두 확률 함수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연결된다. 즉, 어떤 A 에 대해서나. Pncw(A) = Potd ( A/ E) = Potd ( A&E)/Pot d( E) 이 다 . 20)
20) 이 〈 엄격한 조건화 〉 의 정당성에 대한 논의를 위해서는, 참조 : Sk yrms( 1987), p. 16f.
이제 베이즈주의자들의 주장은 이러한 요소들로 이루어진 입증 이 론을 채택할 경우, 그 동안 논란거리가 되어 왔던 입증의 〈 역설들 〉 과 방법론적 문제들을 만족스럽게 해결하거나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 까마귀의 역설 〉 에 대해 생각해 보자. 베이즈주의자들이 일반적 으로 선호하는 해결책은 이 세계에는 검은 것보다 검지 않은 것들이 더 많으며 까마귀의 수보다 까마귀가 아닌 것들의 수가 훨씬 더 많다 는 사실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i = 이 세계에서 까마귀의 비율은 x 이고 검은 것의 비율은 y이다. h = 모든 까마귀는 검다. 라고 하자. 그러면, 다음과 같다.
p(pe (/eh e/&i )i ) Rax&yxB a Rxa( &l。-- yB)a -言)
따라서, p(R a&Ba /h&i) > p (Ra&Ba/ i)가 된다 . 베이즈의 정리에 의하 면, p(h/(R a&Ba)&i ) > p(h/i)이댜 그리고, p( -Ra&-Ba/h &i) > p (-Ra&-B a/i)이다. 베이즈의 정리에 의하면, p(h/(- Ra&-Ba)&i ) > p(h/i)이다. 따라서, (Ra&Ba) 와 (-Ra&-Ba) 는 각각 h 를 입증한다. 그 런데, (Ra&Ba) 가 h 를 입증하는 비율은 xf x y이고, (-Ra&-Ba) 가 h 를 입증하는 비율은 (1-y)/(1- x) (1-y) 이댜 그러므로, X, y {: 1 인 경우, x/xy ~ (1-y)/(1 -x) (l-y)이다. 즉 (Ra&Ba) 가 h 를 입증하는 정도는 (-Ra&-Ba) 가 h 를 입증하는 정도보다 훨씬 크다. 반면에, y-x < y(l -x) 이고, 따라서 p(h/(- Ra&Ba)&i ) < p(h/i)이다. 즉, (-Ra&Ba) 는 h 를 반증한다 .21) 이와 같이 베이즈적 입증 이론을 까마귀의 역설 상황에 적용하면, 부분적으로는 헴펠의 결론과 유사한 결론이 도출된다. 즉, 헴펠의 해 결책에 따르면, (Ra&Ba) 뿐만 아니라 (-Ra&-Ba) 도 h 를 입증하는 것 으로 간주된다. 베이즈적 입증 이론의 결론도 이 점에서는 마찬가지이 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까마귀와 검은 것의 비율이 각각 1 보다 현저하게 작고, 따라서 (Ra&Ba) 가 h 를 입증하는 정도는 (:...Ra&-Ba) 가 h 를 입증하는 정도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 베이즈주의자 의 주장이 다. 결국 베 이즈주의자들은 (-Ra&-Ba) 도 h 를 입증한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우리가 그러한 헴펠식의 결론에 저항감을 가지는 이 유를 설명한다고 볼 수 있다. 다른 한편, 헴펠의 해결(또는 해소) 방 안에서는 (-Ra&Ba) 역시 h 를 입증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반면, 베 이 즈적 입증 이론에서는 (-Ra&Ba) 도 (Ra&-Ba) 와 더불어 h 를 반증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베이즈주의자들의 이러한 결론은 일견 헴펠의 결론 못지않게 역설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베이즈주의자들의 양적 접근 방 식을 일단 받아들이고 숙고해 보면, (-Ra&Ba) 가 h 를 반증한다는 주 장은 처음 접할 때보다 훨씬 그럴 듯하게 들린다. 이러한 인상의 전 21 ) 참조: Hesse(1 9 74), p. 157.
환을 경험하기 위해 까마귀의 비율과 검은 것의 비율이 같은 세계를 생각해 보자. 이러한 세계에서 〈 모든 까마귀가 검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 모든 검은 것은 까마귀이다 〉 라고 주장하는 것과 마 찬가지이다. 따라서 문제의 세계에서 〈 모든 검은 것은 까마귀이다 〉 라 는 가설의 전형적인 반증 사례인 (-Ra&Ba) 는 〈 모든 까마귀는 검다 〉 는 가설 역시 반증하는 효과를 가진다. 앞서 설정했던 상황에서 계산 해 보면, (-Ra&Ba) 가 주어졌을 때 h 의 확률값은 (Ra&-Ba) 가 주어졌 을 때 h 의 확률값과 마찬가지로 0 이다. 나아가서 까마귀의 비율에 비 해 검은 것의 비율이 더 큰 가능한 세계들을 생각해 보자. 후자의 비 율이 큰 세계일수록 (-Ra&Ba) 가 주어졌을 때 h 의 확률값은 더 커진 다 . 그리고 겁은 것의 비율이 까마귀의 비율보다 상대적으로 매우 큰 세계에서, (-Ra&Ba) 가 주어졌을 때 h 의 확률값은 (-Ra&Ba) 가 주어 지지 않았을 때 h 의 확률값에 근접한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세 계는 방금 언급된 부류의 세 계 에 해 당한다. 따라서 (-Ra&Ba) 의 증거 력에 대한 베이즈주의적 계산 결과는 우리가 (-Ra&Ba) 유형의 관찰 보고들이 h 의 입증과 무관하다고 느끼는 이유를 설명한다고 볼 수 있 다. 결국, 베이즈적 입증 이론은 h 와 관련된 여러 유형의 관찰 보고들 이 지니는 증거력을 양적으로 차별화할 뿐만 아니라, 정성적 차원에서 우리가 가지는 입증적 직관들을 이론적으로 설명해 준다는 점에서 매 우 매력적이다. 입증에 관한 논의에서 까마귀의 역설과 더불어 문제시되어 온 것은 임의의 증거가 모든 가설을 입증한다는 무차별적 입증의 문제이다. 이 러한 극단적 상황은 역귀결 조건과 특수 귀결 조건을 함께 받아들일 때 발생한다. 이와 관련하여 많은 입증 이론가들이 취한 태도는 두 조건 중의 어느 하나 또는 모두를 거부하는 것이었다. 베이즈적 입증 이론에서 이 문제는 어떤 형태로 등장하며 어떻게 해결되는가? 베이 즈주의자들의 입증 기준, 즉 긍정적 유관성의 기준을 따르면, 역함축 조건 converse enta ilme nt con diti on 이 성립한다. 따라서, 연역적 체계 속
에서 입증의 이행이 보장된다. 가령 h 가 e 를 함축하고 따라서 역함축 조건에 의해 e 는 h 를 입증한다고 하자. 나아가서 h' 은 h 를 함축한다고 하자. 그러면, e 는 h' 을 입증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러한 결론은 역 귀결 조건과 같지는 않으나, 후자의 특수한 형태로 볼 수 있으며 나 아가서 특수 귀결 조건과 결합하면 제한된 방식으로나마 무차별적 입 증을 유발한다. 그러나 베이즈적 입증 이론에서는 특수 귀결 조건이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무차별적 입증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 베이즈적 입증 이론에서 역함축 조건이 성립한다면, 앞 서 우리가 무관한 연언의 문제라고 불렀던 것은 여전히 발생하는 것 처럼 보인다. 가령 h 가 e 를 함축하고, 따라서 역함축 조건에 의해 e 는 h 를 입증한다고 하자. 그러면 h 와 임의의 가설 h' 의 연언 역시 e 를 함 축하고, 역함축 조건에 의해 e 는 (h&h' )을 입증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앞 단락에서 언급한 것처럼 특수 귀결 조건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e 가 h' 을 입증한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e 와 무관한 h' 이 h 와 더불어 e 에 의해 입증된다는 결론은 여전히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베이즈주의자들은 우리의 이러한 저항감을 다시 한번 양적 분석에 의해 설명하려고 할 것이다. 먼저 그들은 p (h&h'/e) 의 값이 p(h/ e) 의 값보다 작다는 점을 지적할 것이다. 이는 유용한 정보이기는 하나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 왜냐 하면 h' 이 e 와 유관한 경우에도 p( h&h'/e) 의 값은 p(h/e) 의 값보다 일반적으로 작을 것이기 때문이다 . 따라서, h' 이 e 와 유관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사이의 차별화가 아직 이루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불만에 대해 베이즈주의자들은 h' 이 e 와 전혀 무관한 경우 p(h/ e) 의 값에 대해 p (h&h'/e) 의 값이 감소하는 추세는 h' 이 e 와 유관한 경우에 일어나는 확률값의 감소 추세보다 더 현저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로써 두 경 우 사이의 차별화를 시도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관한 연언의 문제 이외에도 베이즈주의자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 들이 있다. 그 중의 하나는 다양한 증거에 대한 방법론적 선호롤 설
명하는 일이다. 베이즈적 확률 이론의 특징인 확률적 분석을 통해 이 문제에 접근해 보도록 하자. 하우슨 C. Howson 과 어바크 P.Urbach(1989, 114) 의 지적대로. 〈 증거의 다양성은 그것의 확률의 문제이다. 〉 이러한 생각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증거의 다양성은 우선 증거들 사이의 유사 및 차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댜 즉 , 증거들이 다양하다는 것은 그것들이 서로 유사하지 않은 상황을, 그리고 증거들이 다양하지 않다 는 것은 그것들이 서로 유사한 상황을 말한다. 나아가서 증거들이 서 로 유사하다(또는 유사하지 않다)는 것은 그 증거들 중의 일부가 주어 졌을 때 나머지 증거(들)이 성립할 확률이 높다(또는 낮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하우슨과 어바크는 증거의 다양성과 그것의 확률 사이 의 밀접한 관계가 증거의 다양성에 대한 방법론적 선호를 어떻게 설 명하는지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이제 이 부분을 밝혀 보도록 하 자. 증거 e1 과 e 2 가 다양하지 않다는 것 , 죽 유사하다는 것은 p(e z/ e1 ) 의 값이 p (e2) 보다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증거 e1 과 e2 가 다양 하다는 것은 p (e z/ e1) 의 값이 p (e2) 보다 작다는 것을 의미한다 . 그런데 베이즈 정리에 따르면, p(h/ e&b) 의 값은 p (e /b)의 값에 의존한다 .22) 즉, 후자의 값이 증가(감소)하면 전자의 값은 감소(증가)한다. 이제 증거 e 을 배경 지식 b 로 간주하자. 그러면 p (e ift.))의 값은, e1 과 e2 가 다양할 경우 p(e 2 ) 의 값보다 작으며, e1 과 e2 가 다양하지 않을 경우 p (e2) 의 값보다 크다. 따라서 증거들이 다양할 때의 p(h/ e&b) 의 값이 다양하지 않을 때의 값보다 크게 된다. 그렇다면 증거력이 큰 증거를 선호하는 것은 방법론적으로 당연한 일이다.
22) 여기서 b 는 배경 지식을 나타낸다.
또 다른 문제는 입증의 국소화와 관련된 것이다. 입증의 국소화란 주어진 증거가 반드시 해당 이론 전체룰 상대로 해서 입증 또는 반중 한다기보다는 그 이론의 어떤 특정한 부분을 입증 또는 반증하는 것 울 말한다. 이런 방식으로 이해된 입증의 국소화는 방법론적으로 바람
직한 것이댜 따라서 어떤 입증 이론이 입증의 국소화를 위한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다면 이는 그 이론의 중요한 이점으로 간주될 것이다. 그러면 입증(또는 반증)의 국소화에 관한 논의에서 자주 거론되는 뒤 엠적 문제 상황을 생각해 보자. 뒤엠 P . Duhem 의 문제는 시험 대상인 가설 및 그것과 연계된 보조 가설들로부터 도출된 계산 결과가 실제 의 관찰(또는 실험) 결과와 어긋나는 상황에서 생긴다. 물음은, 이런 상황에서 불일치에 대해 책임이 있는 가설은 어느 것인가? 시험 대상 인 가설인가 아니면 보조 가설(들)인가? 특정 가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시험 대상인 가설과 보조 가설들로 구성되는 이론 전체를 상대로 하여 책임 추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즉 혼히 말하는 전체론적 holi sti c 상황에 빠진다. 그러면 시험 대상 h 와 보조 가설 a 로부터 도출된 예측이 실제의 관찰(또는 실험) 결과 e 와 어긋나는 상황에서 그러한 불일치가 h 와 a 의 사후 확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보자. 베이즈의 정리에 따르면. p(h/e) = p(e /h )p( h)/p( e), 그리고 p(a/e) = p (e/a) p (a)/ p (e) 이다. p(h/ e) 와 p( a/e) 의 값을 구하기 위해서는 등식의 오른편에 있는 확률값들이 결정되어 야 한다. 하우슨과 어바크(1 989, 97-102) 의 계산 사례에 따르면. p(h ) 와 p (a) 의 값을 각각 0.9 그리고 0.6 으로 추정한 상황에서 p(h/ e) 와 p(a/ e) 의 값은 각각 0.878 과 0.073 이 된다. 이러한 계산 결과는, 일단 그들의 계산 과정을 받아들이면, 주어진 중거 e 가 두 가설 h 와 a 에 대 해 현저하게 비대칭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즉, 이러한 계산 사례는 베이즈적 입증 이론이 입증 및 반증을 효과적으로 국소 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을 입증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문제의 계산은 p(h/ e) 와 p(a/ e) 의 값을 계산하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확률값들을 효과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 중에 서 특히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어 온 것은 사전 확률들을 결정하는 문제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볼 때, 베이즈적 입증 이론은 잘 알려진 입
증의 역설들뿐만 아니라 주요한 방법론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유력한 이론적 툴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러한 외양상의 성공은 정당성이 확인될 필요가 있는 그 나름의 전제들에 의존하고 있다 . 따라서 남은 과제 중의 일부는 베이즈주의자들의 논의가 의존하 고 있는 주요 전제들을 확인하고 그 정당성을 검토하는 일이다. 베이즈적 입증 이론에 대해 그 동안 많은 문제들이 제기되어 왔다. 이제 몇몇 대표적인 문제점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베이즈주의자 들은 입증 문제를 디루기 위해 확률이라는 수학적 도구를 사용한다. 특히 그들은 확률을 믿음의 합리적 정도로 해석하고 우리가 가지는 믿음들이 (따라서 우리 자신이) 합리적이려면 그 믿음들의 정도가 확 률 이론의 공리 및 정리들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 하여 두 가지 부류의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하나는 우리의 믿음들이 확률 계산법의 공리들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확률 계산법의 공리들을 만족시키는 것만으 로 충분한가 하는 것이다. 먼저 전자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 우리가 가진 믿음들의 정도가 합리적이려면 확률 계산법의 공리들을 만족시 켜야 한다는 주장을 위해 베이즈주의자들은 더치 북 논증 Du t ch book ar gum en t에 주로 의존해 왔다. 램지의 제안을 따라, 어떤 사람 S 가 명 제 P 를 믿는 정도는 그가 P 에 대해 내기를 할 때 받아들일 가장 낮은 승률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자. 즉, 문제의 승률이 n/ m 일 경우, S 가 P 를 믿는 정도는 n/ m+n 이라고 하자. 그러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 들을 증명할 수 있다. 즉, 방금 언급된 방식으로 결정되는 S 의 믿음의 정도들이 확률 계산법의 공리들 중의 적어도 하나를 위반할 경우, 내 기의 결과가 무엇이든 간에 S 가 순손실을 입게 되는 그러한 내기 상 황(즉 더치 북)을 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 .23) 그리고 S 가 가지는 믿 음의 정도들이 확률 계산법의 공리들을 만족시킬 경우, 그에 대해서는 23) 이 부분은 더치 북 정리 Du t ch book th eorem 라 불린다.
더치 북을 구성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24) 나아가서 이러한 더치 북 울 허용하는 믿음들의 체계 또는 그러한 믿음들을 가지는 사람은 불 합리하다고 하자. 그러면, S 가 합리적이기 위해서는 그가 가지는 믿음 들의 정도가 확률 계산법의 공리들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결론이 성립 한다.
24) 이 부분은 역 더치 복 정리 converse Dutc h book th eorem 라 불린다. 참조: Kernen~(1955) 와 Lehman(1 9 55).
이러한 논증에 대하여 여러 문제들이 지적되어 왔다. 그 중 하나는 사람들이 종종 그 자신의 실제적인 믿음의 정도 real deg ree of be li e f와 는 아무 관계가 없는 승률로 내기를 한다는 점이다. 이 경우, 설사 그 의 실제적인 믿음의 정도들이 확률 계산법의 공리를 위배한다 하더라 도 그에 대해 더치 북을 거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 다시 말 해 그가 승률에 대해 현명한 선택을 하는 한, 그는 확률 계산법의 공 리를 위반하는 믿음의 정도들을 가져도 무방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 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진 실제적인 믿음의 정도들에 의해 결정되 는 승률로 내기하는 것을 사람들이 거부하는 다양한 상황들이 존재한 다. 즉,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자신의 실제적인 믿음의 정도 와 무관한 승률로 내기를 하거나 아예 내기 자체를 거부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는 그가 가지는 믿음의 정도들이 확률 계산법 의 공리를 위반한다 하더라도 그에게 어떤 불이익도 가져오지 않으며, 따라서 그를 불합리하다고 부를 이유도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 나 이 단락에서 소개된 문제 제기들은 앞 단락의 논증에서 베이즈주 의자들의 주장이 그 기저로 삼고 있는 가정들을 분명히 해 주기는 하 나 그들의 주장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즉, 더치 북 논증에 의거한 베이즈주의자들의 주장은 어떤 사람이 그 자신의 믿음의 정도들에 부합하는 승률로 상대방이 제시하는 어떤 내기에나 응하는 이상적 상황에서 성립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그럴 경우 그 효력을 유지한다.
그러나 더치 북 논증에 의거한 베이즈주의자들의 주장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앞 단락에서 언급된 조건 이외에 다른 조건들이 만족될 필 요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서 논리적 참들이 무엇이며 문장들 사이의 논리적 관계가 무엇인지, 각자가 가지는 믿음 의 정도들이 확률 계산법의 공리들을 만족시키는지 그리고 그것들에 의해 결정되는 승률이 무엇인지 등에 관해 완벽한 지식을 가져야 한 다는 요구 조건이다. 이러한 지식 중 일부라도 결여되면 확률 계산법 의 공리들을 만족시키는 방식으로 믿음의 정도들을 결정하거나 수정 하는 일이 어렵게 된다. 물론 어떤 사람이 방금 언급된 사항들에 대 한 불완전한 지식 때문에 자신의 믿음의 정도들이 확률 계산법의 공 리들을 만족시키는 것으로 그릇되게 판단하고 이를 근거로 내기에 임 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이 경우 그 사람은 그 자신이 믿는 한 에 있어서는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부류의 사람은, 그 자신의 믿음의 정도들이 확률 계산법의 공리를 만족시키는 가에 대해 개의치 않거나 심지어 위반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것들로 부터 계산된 승률을 토대로 내기에 임하는 사람들과는 분명히 구분될 필요가 있다. 실제 우리 인간의 판단이 자주 불완전한 지식을 토대로 하여 이루어지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전자의 부류의 사람들에게 어떤 형태의 합리성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한 가지 방안은 무지를 바탕으 로 해서 성립하는 소극적 합리성과 완전한 지식을 토대로 하여 성립 하는 적극적 합리성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더치 복 논 증에 근거한 베이즈주의자들의 주장은 적극적 합리성의 성립을 위한 조건을 제시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지금까지 언급된 조건들 이외에도 더치 북 논증에 근거한 베이즈주 의자들의 주장은 내기 대상이 되고 있는 명제(들)의 진위가 내기에 참여하는 당사자들이 받아들일 수준에서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 로 한다. 따라서, 그러한 조건을 만족시키기 어려운 부류의 명제들은 일반적으로 내기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다. 그렇다면 보편 진술의 형태
를 가지기 때문에 검증이 불가능한 과학적 가설들에는 베이즈주의자 들의 주장이 적용될 수 없지 않은가? 문제의 과학적 가설들이 내기의 대상으로 부적절한 것은 사실이댜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과학적 가설 들을 믿는 정도가 확률 계산법의 공리들을 만족시키지 않아도 무방하 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과학적 가설들을 믿는 정도에 베이즈주의 자들의 주장을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은 . 과학적 가설들의 진위가 내기 상황의 성립을 위해 요구되는 방식으로 결정되는 반사실적 상황을 설 정하는 것이다 . 이러한 반사실적 상황의 설정은 그 자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적 가설의 적용은 흔히 그러한 반사실적 상황을 전 제로 한다. 예를 들어. 뉴턴의 관성의 법칙은 물리계에 적용되는 힘의 총합이 0 인 경우에 적용된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는 현실적으로 거의 성립하지 않으며 따라서 반사실적인 상황에 해당한다고 말해도 지나 치지 않다. 이처럼 과학적 가설들의 적용이 흔히 반사실적 상황을 전 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베이즈주의자들의 주장도 과학적 가설들의 진위가 반사실적으로 결정되는 상황을 전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이 합리적이려면 그가 가지는 믿음의 정도들이 확률 계산 법의 공리들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것은 모두 베이즈주의자들이 받아 들이는 주장이다 . 그러나, 그러한 조건의 충족이 합리성의 충분 조건 인가에 대해서는 의견들이 한결같지 않다. 일부 베이즈주의자들은 충 분하다는 입장을 취하는 반면, 다른 베이즈주의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입장을 취한다. 후자의 예로는 쉬모니 A. S him on y를 들 수 있다. 쉬모 니(1 970) 에 따르면. 과학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그들의 동료가 진지하 게 제안하는 가설에 0 이 아닌 사전 확률값을 부여해야 한다 . 이러한 제안은. 과학적 탐구가 과학자들에 의해 주도되는 활동으로 다른 대안 울 생각하기 어렵다는 점. 그리고 어떤 가설의 사전 확률값이 0 일 경 우 그 사후 확률값 역시 관련된 증거와는 무관하게 0 이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거의 사소한 진리 truis m 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쉬모니 의 제안은 베이즈적 입증 이론에서 동장하는 사전 확률값 부여의 문
제 pro blem of assig ning prior p robab iliti es 를 해 결 하는 데 도움이 되 는 구체적인 지침의 역할을 한다는 의미가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과학 적 가설의 평가를 위해 베이즈의 정리를 사용하려면, 가설 h 와 증거 e 의 사전 확률값이 정해져야 한다 . 그런데 무한 수의 가능한 가설들에 게 전체 확률값 1 을 어떻게 나누어 부여할 것인가? 이 문제를 해결하 는 한 가지 유력한 방안은 유한한 수의 가설들에게 전체 확률값 1 을 나누어 부여하고 나머지 가설들에게는 0 의 값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 럴 경우, 0 이 아닌 확률값을 부여받는 가설들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 이 대목에서 쉬모니의 제안은 구체적인 지침 역할을 한다. 즉, 현역 과학자들에 의해 제시되는 가설들에 우선 0 이 아닌 확률값을 부여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방식으로 선정된 가 설들에 부여되는 0 아닌 특정한 확률값들에 대해 모든 과학자들의 의 견이 일치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베이즈주의는 이 대목 에서 개별 과학자들의 판단에 따라 다양한 사전 확률값들의 채택을 허용한다는 점에서 매우 개방적이다. 그러면 사전 확률값들의 채택에서 나타나는 다양성은 사후 확률값 들의 결정에서도 되풀이하여 나타나는가? 아니면 베이즈적 입증 이론 은 사전 확률값의 채택에서 나타나는 초기의 다양성을 제거하는 어떤 기제를 포함하고 있는가? 경험 이전에 허용되는 다양성이 경험 이후 에도 계속 유지된다면, 이는 베이즈주의자들에게 매우 불리한 결과가 될 것이다. 왜냐 하면 과학 공동체들은 어떤 가설 또는 이론을 채택 할 것인가에 대해 자주 매우 인상적인 합의에 도달하는 것처럼 보이 기 때문이다. 이러한 합의 과정을 베이즈주의에 의해 이론적으로 해명 하는 것이 가능한가? 베이즈주의의 잘 알려진 이론적 주장 중의 하나 는, 사전 확률에서의 차이가 적어도 장기적으로는 별 문제가 안 된다 는 것이다. 그 이유는, 베이즈주의자들에 따르면, 증거가 축적됨에 따 라 사전 확률에서의 차이가 사라지고 과학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공유 하는 사후 확률이 등장한다는 데 있다. 이러한 주장은 베이즈주의자들
의 단순한 희망 사항이 아니다. 일정한 조건들이 충족 될 경우. 의견의 합일에 대한 수학적 결과들을 도출해 내는 것이 실제로 가능하기 때 문이다. 즉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된다고 하자. (Bl ) 믿음의 정도들이 확률 계산법의 공리들을 만족시킨다. (B2) (SC) 에 의한 확률의 변화를 통해 경험으로부터의 배움을 나타낸 다. (B3) 관련된 사람들은 0 의 사전 확률값을 가지는 가설들에 대해 합의 한다. (Bl) 과 (B2) 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논의한 바 있다. (B3) 는, 과 학자들이 자신의 동료 과학자가 진지하게 제안하는 가설에 대해서는 0 의 사전 확률값을 부여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상황에서 만족되는 조 건이다. 이제 동전을 던지는 실험을 생각해 보자. 그리고 이 실험의 결과들은 모두 교환 가능하다고 상정하자. 이런 실험 상황에서 위의 세 조건 (B l) -(B3) 가 충족된다면, 실험 횟수가 증가할수록 관련된 사 람들의 의 견은 점 점 더 합치 하게 된다 .25) 베이즈주의자들의 이러한 수학적 증명(즉, 수렴 정리의 증명)은 그 나름의 문제가 없지 않다. 헤시 M. Hesse(1975, 78) 의 지적대로, 수렴 정리의 조건들은 과학적 추론의 전형적 사례들에서 충족되지 않는 것 처럼 보인다. 특히, 교환 가능성의 조건은 비통계적 가설과 관련된 실 험 결과들에 적용되지 않는다. 객관적 가망성 li ke liho od 의 가정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헤시가 지목한 의심스러운 가정들 을 하지 않고도 수렴 정리를 증명하는 것이 가능하다. 수학적으로 증 명된 수렴 정리의 형태들 중에서 가장 강한 결과에 해당하는 것은 개 이프맨 H. G aifm an 과 스널 M. S nir (1982) 의 것이다. 개이프맨-스널 정 25) 참조 : Eamtan (19 92), pp. 142-3.
리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것의 첫번째 부분이 주장하는 바는 다음과 같댜 증거 집합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연속적으로 점검함 으로써 증거가 축적되면 거의 모든 세계에서 사후 확률의 극한값은 l 이 된다. 그런데 주어진 가설에 대한 의견의 수렴이 균일한 속도로 일어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이와 관련하여 개이프맨-스널 정리의 두 번째 부분에 따르면. 어떤 가설들이 0 아닌 사전 확률값을 가지는 가에 대해 합의하는 두 과학자의 의견에 합치가 일어나는 속도는 균 일하다. 그러나 이 주장은 그 나름의 한계가 있다. 별도의 조건들이 추가로 만족되지 않을 경우, 0 이 아닌 사전 확률값을 가지는 가설들에 대해 합의하는 모든 과학자들의 의견 합치가 균일한 속도로 일어난다 는 주장은 정당화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26) 따라서 과학 적 판단의 객관성에 대한 베이즈주의자의 설명은 그 적용 범위가 상 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27)
26) 참조: Earman( l99 2), pp. 146-7. 27) 또 다른 문제점에 대해서는. 참조: Bannan(1992), pp. 148-9.
위에서 언급된 문제들 이의에도 베이즈적 입증 이론에 대해 제기된 문제들이 여러 가지 있다. 지금부터 우리는 이 나머지 문제들 중 세 가지를 주로 논의하고자 한다. 그 중 하나는 귀납적 확률이 불가능하 다는 주장에 관한 것이요, 다른 하나는 이미 알려진 증거의 문제 pro blem of old ev i dence 라 불리는 것이다. 마지막 것은 사람들이 베이 즈적 추론을 하지 않는다는 주장에서 비롯하는 문제이다. 먼저 전자의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자. 포퍼 K. Po pp er 와 밀러 D. W. Mill er (1 983) 에 따르면, 확률의 증가는 진정한 귀납적 지지라는 의미의 입증으로 간주 될 수 없다. 베이즈주의의 입증 기준을 그 근저에서 부정하는 이러한 주장의 논거를 살펴보기 위해, h 는 임의의 가설, b 는 배경 지식 그리 고 e 는 b 가 주어졌을 때 h 로부터 연역적으로 도출 가능한 경험적 증 거라고 하자. 그러면, 포퍼와 밀러의 논증은 대략 다음과 같다.
(PM l) h 는 (h v e) 와 (h v -e) 의 연언과 동치이다. (PM2) (h v e) 는 e 에 의해 연역적으로 함축된다. (PM3) [(PMl) 과 (PM2) 로부터] (h v -e) 가 h 의 내용 중 e 를 넘어서 는 부분에 해당한다. (PM4) [(PM3) 으로부터] h 의 내용 중 e 에 의해 귀납적으로 지지되는 부분은 (h v -e) 이다. (PMS) p(h/e&b ) < 1 그리고 p( e/b ) < 1 이면, p( hv-e/e&b)
n)Pa i]이라는 것이 그의 주 장이다. 레드헤드 M. Redhead(1985) 역시 (PM3) 를 비판하였는데. h 는 e 의 귀결도 아니고 (hv-e) 의 귀결도 아닌 귀결들을 가지며 따라서 (hv-e) 가 e 를 넘어서는 h 의 부분에 해당한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이러한 비판들에 대하여 길리스 D. Gi llies (1 9 86) 는 위의 논증이 (PM3) 에 의존하지 않는 방식으로 재서술될 수 있다 고 주장함으로써 포퍼와 밀러의 입장을 옹호하였다• 그는 증거 e 가 가 설 h 를 지지하는 정도를 재는 측도로 S(h, e)(= p(h/ e)- p (h) )를 사용 할 것을 제의한다. 그런데 S(h, e) =S(hv-e, e) +S(hve, e) 이다. 그리 고 e 가 (hve) 를 함축하는 까닭에 S(hve, e) 는 순전히 연역적인 지지롤 나타낸다. 따라서 베이즈적 의미의 귀납적 지지가 존재한다면, 이는 S(hv-e, e) 속에 포함되어야 한다. 그러나 포퍼와 밀러 (1983) 가 제시 한 정리들 중의 하나에 따르면, S(hv-e, e) 는 음의 값을 가진다. 그러 므로 베이즈주의자들이 상정하는 그러한 종류의 귀납적 지지는 존재 할 수 없다는 것이 길리스의 결론이다. 이러한 옹호 논변에 대응하여
던 M. Dunn 과 헬먼 G. Hellman (1 986) 은 길리스적 제안이 또 다른 방 식 으로 적 용될 수 있음을 지 적 한다. 즉, h 는 (h&e) v (h&-e) 와 동치 이고 따라서 s(h, e) = s(h&e, e) + s(h&-e, e) 이다. 여기서 주어진 등식의 우변을 구성하는 두 번째 항은 연역적 역지지 deducti ve coun t ersu pp o rt에 해당하고, 음의 값을 가진다. 따라서 어떤 양의 지지 가 존재한다면 이러한 기여는 비연역적 지지의 측도에 해당하는 첫번 째 항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논증을 토대로 하여 그들은 귀 납적 지지의 존재를 부정하는 길리스의 결론을 수용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우슨(1 989) 이 지적하는 것처럼, 던과 헬먼의 이원 화 논증 dua lizin g ar gum en t은 성 공적 인 것으로 보기 어 렵 다. 그들의 주 장대로 h 가 ((h&e)v(h&-e)) 와 동치이고 s(h, e) 가 s(h&e, e) 와 s(h&-e, e) 의 합과 같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이원화된 논증은 길 리스류의 논증이 성립하려면 만족되어야 할 또 다른 조건을 만족시키 지 못한다. 즉, 길리스류의 논증이 성립하려면, 던과 헬먼의 논증에서 등장하는 (h&e) 와 (h&-e) 는 그들의 결합이 h 와 동치 라는 조건만이 아니라, 그 각각이 h 의 내용상 부분이라는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물론 어떤 명제의 내용상 부분이라는 개념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p는 q에 의해 함축된다〉라는 조건은 〈p가 q의 내용상 부분이다〉라는 주장이 만족시 켜야 할 최소한의 조건인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던과 헬먼의 논변은 길리스류의 논증 이 성립하려면 어떤 조건들이 만족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주의 깊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이제 이러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길 리스의 논증을 다시 검토해 보자. 그의 논증에서 등장하는 (hve) 와 (hv-e) 는 각각 h 의 논리적 귀결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h 의 내용상 부 분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만족시킨다. 문제는 그것으로 충분한가 하는 것이다. 어떤 명제의 내용은 그것의 논리적 귀결들의 총집합이라 는 관점에서 논의를 시작해 보자. 우리는 (hve) 의 내용과 (hv-e) 의 내
용이 h 의 내용을 분할하는 경우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h 의 논리 적 귀결들의 집합이 (hve) 의 귀결도 아니고 (hv-e) 의 귀결도 아닌 명 제들을 많이 포함한다는 사실은 쉽게 확인될 수 있다. h 자신 그러한 명제들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hve) 와 (hv-e) 는 h 의 내용상 부분이 기는 하나. h 의 내용을 분할하는 부분들은 아니다. 이것은 (hve) 대신 e 를 문제삼더라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hv-e) 가 h 의 내용 중 e 를 넘어 서는 부분에 해당한다는 주장, 즉 (PM3) 는 그 근거를 상실하고 따라 서 베이즈적 의미의 귀납적 지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포퍼와 밀러의 주장은 성 립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이미 알려진 증거는 관련된 가설을 지지하지 못한다는 주 장에 관한 논의로 넘어가자. 이미 알려진 증거를 e, 그리고 관련된 가 설을 h 라 하자. 나아가서 h 는 e 를 함축한다고 하자. 그러면 p(h/ e) 는 베이즈 정리에 따르면 p (e /h)p (h)/ p (e) 와 같고, 가정에 의해 p( e/h ) = 1 그리고 p( e)=1, 따라서 p(h/ e)= p (h) 가 된다. 결국 베이즈주의의 입증 기준에 따르면, 이미 알려진 증거는 관련된 가설을 입증하지 못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주어진 상황에서의 입증 에 대한 우리의 선분석적인 판단과 일치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아인 슈타인 A. E inst e in은 그의 일반상대성 이론을 1915 년 11 월에 제출하고 수성의 근일점의 운동을 그 이론의 주요 경험적 근거들 중의 하나로 간주하였다. 그런데 수성의 근일점의 운동에 대한 관찰 자료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잘 알려져 왔던 것이다. 그러면 아인슈타인의 판단이 그 릇된 것이었는가? 수성의 근일점 운동이 일반상대성 이론의 주된 경험 적 증거에 해당한다는 생각은 관련된 과학자 공동체에 의해 일관되게 유지되어 온 것이다. 따라서 잘못이 있다면, 이는 그러한 판단과 어긋나 는 이론적 결론을 산출하는 입증 이론 쪽에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문제 상황과 관련하여 제시된 해결책 중의 하나는, h 가 e 를 함축한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 여부가 h 의 확률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 장이다. 즉, p(h I- e) 의 값이 1 보다 작다고 하면, p(e ) =1 인 경우에도
p(h/h 卜 e) 는 p (h) 보다 크다는 결론이 성립하며, 따라서 (h 卜 e) 임을 알게 됨에 따라 h 에 대한 입증이 발생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여기서 p(h 卜 e) 의 값이 1 보다 작다는 가정은 인간이 논리적으로 전지(全知) 하지 못하다는 현실론에 의해 정당화된다. 이 해결책은 일견 그럴 듯 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 나름의 문제점들을 지니고 있다. 먼저, 그것 은 문제를 회피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원래의 문제 는 이미 알려진 증거 e 가 관련된 가설 h 를 입증한다는 판단을 이론적 으로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현재의 해결 방안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은 증거 (h 卜 e) 에 의한 가설 h 의 입증이다. 이 두 문제는 내포에 있어서나 외연에 있어서나 서로 다르다. 따라서 한 문제의 해결이 다 른 문제의 해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론 증거 e 가 이미 알려져 있 는 상황에서 h 에 대한 입증은 e 에 의한 것이 아니라 (h 卜 e) 에 의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명을 통해 문제의 해결책이 정당화된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주어진 해명이 옳다면, 증거 e 가 이미 알려진 상황에서 고안된 가설 h 가 얻게 되는 입증의 정도는 (h 냐)가 제공하는 입증의 정도와 일치한다. 즉, 문제의 해명이 나오 게 된 배경에는, 어떤 증거를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가설은 그 중거 에 의해 입증될 수 없다는 견해가 자리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런데 이러한 견해가 옳다면, 가설 h 가 고안되는 과정에 증거 e 가 깊숙 이 개입할수록 (h 卜 e) 는 점점 덜 놀라운 사실이 되고 따라서 (h 卜 e) 가 h 를 입증하는 정도 역시 작아지게 된다. 그러나 앞서 언급되었던 아인슈타인의 사례를 통해 볼 때, 그러한 논리가 성립한다고 보기 어 렵다. 아인슈타인은 그의 새로운 중력 이론이 수성의 근일점의 운동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일반상대성 이 론에 앞서 고안했던 대안 이론을 채택하지 않았던 이유 중의 하나가 그 이론이 그러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데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 다. 따라서, 그의 일반상대성 이론으로부터의 계산 결과가 수성의 근 일점의 운동에 대한 관측 자료와 일치한다는 것, 즉 (h 卜 e) 의 성립은
그에게 상대적으로 덜 놀라운 것이었다. 다른 한편. 아인슈타인은 수 성의 근일점 운동을 일반상대성 이론의 주된 증거들 중의 하나로 간 주하였고, 이 점에서는 현금의 물리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 이미 알려진 증거의 문제를 해결하는 또 다른 제안은 반사실적 확 률 coun t e rfa c tu al p robab ility에 호소하는 것이다. 하우슨(1 984 & 1985) 에 따르면, 이미 알려진 증거의 문제는 조건화 원리 principle of con diti onal izati on 에 의해 증거 e 가 가설 h 를 지지하는 정도를 계산할 때 사용되는 배경 정보에 무엇이 포함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그릇된 견해를 가지는 데서 비롯한다. 따라서, 가설 h 가 고안되는 시점에 중 거 e 가 알려지지 않았더라면 어떤 과학자가 h 를 믿었을 정도와 그 후 에 그가 e 를 알게 되었다면 h 를 믿게 되었을 정도 사이의 차이를 계 산함으로써 이미 알려진 증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죽, p (h) 와 p(h/ e) 는 배경 정보 K 에 대해서가 아니라 K-{e} 에 상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결 방안과 관련하여 제기되 는 문제점은 우선 K-{e} 를 결정하는 일이다. 하우슨(1 984, 246) 은 {e} 가 K 에 속하면서 e 에 의존하는 모든 정보를 포함하는 것으로 간주해 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제안이 실제로 적용될 수 있으려면 〈 e 에 의존하는 정보〉와 같은 개념이 제대로 해명되어야 한다 .28) 그런데 p (h) 와 p(h/ e) 가 배경 정보 K 에 대해서가 아니라 K-{e} 에 상대화되 어야 할 필요성은 증거가 이미 알려진 경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 설 h 가 고안된 이후에 증거 e 가 알려지는 상황에서도 p(h ) 와 p(h/e) 의 계산을 위해 도입되는 배경 정보는 K-{ 아여야 한다. 결국, K-{e} 를 결정하는 문제는 증거 e 가 가설 h 의 고안 이전에 알려지는지 아니 면 이후에 알려지는지와는 무관하게 등장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오 히려 증거 e 가 알려진 후 그것과 관련된 가설 h 가 고안되는 상황에 고유한 문제는, 어떤 가설의 고안에 기여한 자료가 그 가설을 입증하 28) 이와 관련된 어려움에 대한 논의를 위해서는, 참조 : Chihara(19 87), pp. 553-4.
는 역할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일단 , 주 어진 자료가 관련된 가설의 내용을 결정하는 데 어느 정도 깊이 개입 하는가에 의존한다. 깊이 개입할수록, 즉 고안된 가설의 내용 결정이 주어진 자료에 의존하는 정도가 크면 클수록 후자의 자료는 전자의 가설을 입증하는 역할을 아예 하지 못하거나 그러한 역할을 하더라도 그 정도가 줄어드는 경우가 될 것이다. 베이즈적 입증 이론에 대하여 제기된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사람 들이 베이즈적 · 추론을 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지적은 일부 심리학적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하고 있는데, 카네만 D.Kahneman 과 트 버스키 A.Tvers ky의 작업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들이 한 실험 중에 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29) 즉, 린다는 솔직하고 매우 똑똑한 31 세 의 독신 여성이다 . 그녀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였고, 학생 시절에 는 인종 차별이나 사회 정의의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핵실험 반대 운동에도 참여하기도 하였다. 이제 이러한 가상의 인물을 놓고, 실험 주체들에게 그녀에 대한 여러 진술들의 순위를 그 들의 확률값에 의해, 즉 가장 개연성이 높은 진술을 1 그리고 가장 개연성이 낮은 진술을 8 로 하는 방식으로 정하도록 요구하였다. 그 결 과 실험 주체들은 〈 린다가 여성 운동에 적극적이다 (S1) 〉라는 진술에 대해 2,1, 〈 린다는 은행원이다 (S2) 〉라는 진술에 대해 6.2, 그리고 〈린 다는 은행원인 동시에 여성 운동에 적극적이다 (S3) 〉라는 진술에 대해 서는 4.1 이라는 순위값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결과를 - 놓고 볼 때, 주 어진 상황에서 실험 주체들의 추론이 확률 계산법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자못 분명하다. 만약 실험 주체들이 확률 계산법에 부 합하는 추론을 하였다면, (S1) 과 (S2) 의 연언에 해당하는 (S3) 에 대 해 각 연언소의 확률값보다 낮은 확률값을 부여하였을 것이고 따라서 (S3) 의 순위값을 (S2) 의 그것보다 낮게 책정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29) 참조 : Kahneman, Slov ic and Tversky ( eds.) (19 82), pp. 90-96.
이런 부류의 실험 결과들과 관련하여 두 가지 물음이 구분될 필요가 있다 . 사람들이 확률 계산법에 따른 추론을 하는가 하는 물음과 사람 들이 확률 계산법에 따른 추론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이 그것이다. 물론 두 물음이 서로 무관하지는 않으나, 전자의 물음에 대한 부정적 인 답이 후자의 답에 대한 부정적인 답을 자동적으로 보장하거나 정 당화하지 않는다. 가령 다양한 실험에서 다수의 실험 주체들이 확률 계산법을 따르지 않는 추론을 하는 것으로 밝혀지면. 이는 사람들이 베이즈적 추론을 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위한 증거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관련된 실험에서 적어도 소수의 실험 주체들이 확률 계산법에 부합하는 추론을 하는 것으로 밝혀질 뿐만 아니라 그러한 추론 방식 이 더 바람직한 것으로 인정될 경우, 확률 계산법의 규범적 지위는 여전히 보장된다. 따라서. 별도의 규명 없이는. 카네만과 트버스키 등 의 실험 결과가 사람들이 종종 도덕적 규범을 어기는 방식으로 행동 하거나 연역 논리의 오류에 해당하는 추론을 한다는 사실과 다른 의 의를 지닌다고 말하기 어렵다 . 물론 확률 계산법에 따른 추론이 현실 적으로 매우 어렵거나 거의 불가능하다면. 베이즈적 입증 이론은 비현 실적인 공론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 그리고 베이즈적 이론만큼 이상적 이지는 않을지라도 사람들 특히 과학자들의 판단 속에서 작동하면서 그것의 합리성을 담보해 주는 것처럼 보이는 추론 양식이 있다면. 이 룰 이론적으로 규명하는 일은 가치 있는 작업일 것이다. 8 맺는 말 지금까지 우리는 입증에 대한 몇몇 대표적인 이론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였다. 그러면 이 이론들 중에서 어떤 것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가? 이 물음과 관련하여 입증에 대한 최근의 논의에서 주목할 만한 주장이 하나 있다. 가설 • 연역적 입증 이론이나 구두띠 입증 이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베이즈적 접근 방식울 취하는 것이 불가피 하다는 주장이 그것이댜 30)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변은 대략 다음과같댜
30) 참조 : Eannan(1 9 92), pp. 76-7. Edidin(19 81 ) 역시 유사한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1) 가설 • 연역적 입증이나 구두띠 입증은 둘 다 〈 증거 E 는 보조 가설들 A 에 대하여 가설 H 를 입증한다 〉 는 형태를 취한다는 점에서 상대적 입증에 해당한다. (2) 이러한 상대적 입층 판단으로부터 가설 H 를 실제로 칭찬하거나 비난하는 단계로 나아가려면 보조 가설 A 의 인식적 지위가 먼저 확보 되어야 한다. (3) 보조 가설 A 의 인식적 지위는 배경 지식 K 에 의존하며, 따라 서 A 의 신뢰도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베이즈적 접근 방식이 필요 하다. (4) 그러므로, 가설 H 를 실제로 칭찬하거나 비난하는 판단을 하려 면 베이즈적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가설 • 연역적 입증이나 구두띠 입증이 상대적 입증의 형태를 띤다 는 점은 본 논문에서도 이미 논의한 바 있다. 그런데. 이어먼 (1992) 의 경우, 상대적 입증의 의의를 과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글리모어의 주장대로 구두띠 입증을 통해 입증의 국소화가 이루어진다면, 이는 작 은 성과가 아니다. 이 점은 과학적 방법에 대한 논의가 오랫동안 전 체론적 궁지를 벗어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왔다는 것을 생각할 때 특 히 그렇다. 물론 어떤 특정한 가설 H 를 바로 칭찬하거나 비난할 수 있는 입지를 확보하는 것은 방법론적 이상이다. 이를 위해서는 보조 가설 A 의 인식적 지위가 먼저 확보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 역시 수긍 할 만하다 . 그러나 이와 관련하여 구두띠 입증의 구조 속에서 가설 H
와 보조 가설 A 가 비대칭적 관계에 있다는 점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가설 H 가 보조 가설 A 에 대하여 증거 E 로부터 구두 띠 입증을 받는 경우에도. 그 역은, 즉 보조 가설 A 가 가설 H 에 대하 여 증거 E 로부터 구두띠 입증을 받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구두띠 입증의 이러한 비대칭적 구조 속에서 입증을 받는 것은. 비록 보조 가설 A 에 상대화될지라도. 어디까지나 H 이지 H&A 가 아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가설 H 에 대한 칭찬 또는 비난이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하려면 보조 가설 A 에 대한 신뢰가 먼저 확보되 어야 한다는 사실까지 부인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궁극적으 로 베이즈적 접근은 불가피한가? 주어진 문제 상황에서 구두띠 이론 은 그 나름의 자구책을 내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양한 증거에 의한 입증이 그것이다. 6 절에서 이미 논의된 것처럼, 상대적 입증의 구도 속에서는 시험 대상인 가설을 포함하여 연루된 가설들이 거짓임 에도 불구하고 가설들 사이의 상호 보정을 통해 입증이 성립하는 상 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함정을 피하기 위한 한 가지 유력한 방 안은 다양한 증거를 통해 문제의 가설들을 시험하는 것이다. 거짓인 가설 H 가 거짓인 보조 가설들 A 와 상호 보정하여 증거 E 로부터 입증 을 받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러한 우연적 성공이 다른 보조 가설 들과 결합을 필요로 하는 다른 증거들에 대해서도 반복될 개연성은 급속히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양한 증거를 통한 시험은 가설들이 연쇄적으로 입증될 필요성을 낳고 따라서 입증의 순환이나 무한 퇴행 infinite re gre ss 을 야기하게 되지 않는가? 순환이나 무한 퇴 행을 피하는 한 가지 방안은 비상대적 입증의 채널을 확보하는 것이 다. 그러나 어떤 가설 H 를 다른 가설들에 의존함이 없이 입증할 수 있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 뿐만 아니라. 설사 그러한 경우들이 존재 한다 하더라도 그것들이 나머지 가설들의 상대적 입증을 위해 충분한 토대를 제공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다른 한 가지 방안 은 어떤 가설 자신에 대하여 그 가설의 입증을 산출하는 것이다. 구
두띠 입증에 대한 논의에서 마초 macho 입증이라 불리는 것이 그것이 다 . 그러나 그러한 형태의 입증을 허용하는 것은 순환이나 무한 퇴행 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지 몰라도 6 절에서 이미 논의한 다 른 심각한 문제들을 산출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해결 방안으로 보기 어렵다. 그러면 어떤 해결 방안이 남아 있는가? 한 가지 방안은 순환 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모든 순환이 악순환은 아니며 때로는 순환을 받아들이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들도 있다. 문제 는 그것이 얼마나 나쁜가 하는 것이다. 구두띠 입증의 구도 속에서 발생하는 순환은 전체적으로 보면 규모가 큰 순환이 될 것이다. 그리 고 순환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악순환의 여지는 줄어든다. 구두띠 입증의 틀 속에서 발생하는 순환이 악순환일 여지가 적다고 해서 구두띠 입증 이론이 다른 입증 이론들보다 우수하다는 결론은 뒤따라 나오지 않는다 . 예를 들어 까마귀의 역설에 대한 글리모어의 처방은, 앞의 논의에서 이미 지적한 것처럼, 구두띠 입증 이론에 내재 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도입되어 덧붙여진 것에 해당한다. 반 면, 동일한 문제에 대해 베이즈주의자들은 양적 분석을 토대로 하여 그들의 입증 이론에 내생적이고 설득력이 있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 외에도 글리모어가 구두띠 입증 이론의 이점으로 간주하는 문제 해결 들(즉, 무관한 연언의 문제. 다양한 증거의 방법론적 의미. 입증의 국 소화 문제 등에 대한 해결들)에 대해 베이즈주의자들도 그 나름의 그 럴 듯한 해결책들을 제시한다. 물론 구두띠 입증 이론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없지 않다. 예를 들어. 베이즈주의자들 의 양적 분석과 그것을 토대로 한 설명은 이점인 동시에 실천적 차원 에서는 난점이 되기도 한다. 왜냐 하면. 많은 경우에 확률값의 부여는 실질적으로 매우 어렵거나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그리고 이런 상 황에서는 베이즈적 입증 이론을 가동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해진다. 반 면에. 구두띠 이론은 확률값과는 무관하게 입증에 연루된 당사자들 사 이의 논리적 관계만으로 입증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이점을 지니
고 있다 . 이와 같이 구두띠 입증 이론과 베이즈 입증 이론을 놓고 볼 때.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우세를 선언하기는 아직 어렵다 . 참고문헌 Chihara, C. (19 87) , Some Problems for Baye s ia n Con finnat io n Theory , Bri tish Jo urnal for the Phil oso p hy of Sci en ce 38 : 551-560. Christe n sen, D. (19 83), Glyr no ur on Ev ide nti al Relevance, Phil oso p hy of Sc ien ce 50: 471-81. Christen sen, D. (19 90) , The Irrelevance of Boots trapping, Phil oso p hy of Sci en ce 57: 644- 62 . Dw m, J. M. and Hellma n, G. (19 86) , Dualling : A Cri tiqu e of an Argu me nt of Popp er and Miller , Briti sh Jo urnal for the Phil oso p hy of Sci en ce 37: 220-223. Bannan , J. (ed.) (19 83 ) , Testin g Sci en ti fic Theories : Mi nn esota Stu d ie s in the Phil oso p hy of Sc ien ce, Vol. X, Un ive rsity of Mi nne sota Press. Bannan , J. (19 92), Baye s or Bust? , MIT Press. Bannan , J. and Glyr no ur, C. (19 88), What Rev isio n s Does Boots trap Testin g Need? A Rep ly , Phil oso p hy of Sc ien ce 55 : 260-4. Edidin, A. (19 81), Glym o ur on Con finnat io n , Phil oso p hy of Sci en ce 48: 292-307. Edidin, A. (19 88), From Relativ e Con firmation to Real Con finna tio n , Phil oso p hy of Sc ien ce 55 : 265-271. G aifm백 H. and Sn ir, M: (19 82) , Probabil ities over Rich Lang ua ge s , Jo urnal of Sym boli c Log ic 47: 495-548. Gil lies, D. (19 86) , In Defe n ce of the Popp er -M iller Argu me nt , Phil oso p hy of Sc ien ce 53: 110-113. Glym o ur, C. (19 80) , Theory and Evid e nce, Princ eto n Un ive rsity Press. Glym o ur, C. ( 1983a) , Revi sio n s of Boots trap Testin g, Phil oso p hy of Sc ien 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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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반증과 반증주의 박은진*
* 성균관대학교 강사.
1 〈 과학적 철학 〉 과 〈 과학철학〉 1)
1) 〈 과학적 철학 sc i en tifi c phil oso p h y 〉 과 〈 과학철학pil oso p h y of sc i ence 〉은 현대의 자연과 학 에서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 이 점에서 이 둘은 비슷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들은 나 름 대로 구분해서 사용된다. 일반적인 이해로` 〈과 학적 철학 〉 은 철학에 대한 자연과학적인 접근을 말한다 . 다시 말해서 기존의 〈 사변적 〉 철학에서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사변적 성격을 씻어 내려는 시도이다. 이는 그 당시의 자연과학의 발전에 따라 구태의연한 기존의 비과학적 접근 방식에 대한 불신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것은 자연과학적 접근이야말로 기존의 사변적 철 학을 엄밀하게 과학적으로. 죽 과학적 철학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깔고 있다. 다시 말해 철학의 (자연)과학화를 기대한다 . 이런 의미에서 〈과학적 철학〉은 〈 과학철학 〉 과 분명히 구분될 수 있다. 물론 〈과학철학〉이 〈과학적 철학〉과 같은 유 사한 생각을 깔고 있기는 하나 . 〈 과학적 철학〉과 다르다 . 〈과학철학〉은 〈과학적 철학〉 과 마찬가지로 그 동안 발전을 보여 준 자연과학이나 자연과학적 탐구의 특징을 보려고 한다 . 〈 과학철학〉은 과학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말한다. 축, 금세기 들어
금세기 초 철학의 영역에서 그때까지의 전통적인 논의와는 아주 다 른 ,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났다. 앞선 시기의 논의와 분명히 다른 이런 시도는 기존의 철학자들과는 다른 지적 배경의 1) 학자들에게서 시작되
놀라운 발전을 보여 준 과학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래서 진부한 표현으로 철학의 특징을 〈반성적〉이라고 말할 때. 〈과학철학〉은 과학에 대한 반성적 작업으 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초창기의 〈과학철학〉에 관한 더 자세한 논의는 앞으로 다루어질 것이다.
었댜 이들의 철학적 출발점은 그 시작에서부터 달랐다. 무엇 보다도 그들은 그 당시의 새로운 자연과학의 논의에서 많은 자극을 받았다. 전통적인 〈사변으로서의 철학〉은 이제 〈학문 [또는 과학]으로서의 철학〉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2) 그 당시의 자연과학이란. 자연과학적 논의만으로도 이전과는 뚜렷이 구분될 만큼 엄청나게 급속한 발전을 이룬 새로운 것이었다. 이에 자 극받은 한 부류의 철학자들은 자연과학의 영역에서 놀라운 발전의 가 능성을 되새기고, 이 새로운 자연과학을 철학적으로 꼼꼼히 따져 보고 자 했다. 그래서 새로운 자연과학이 주는 가르침을 기존의 철학적 논 의에 접목시키려고 했다. 그리고 당연히 기존의 철학의 논의를 쇄신하 고. 새로운 철학울 이루려고 했다. 이런 움직임은 무엇보다도 1920 년대 초, 비엔나를 중심으로 활발히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 이들에게 비트겐슈타인 L. W ittg ens t e in이 『논리 철학 논고』(『논고』로 줄임)에서 보여 준 논의는 의미심장했다. 러셀 B. Russell 은 이 책의 서론에서 다음과 같이 비트겐슈타인의 논의에 대해. 〈어떻게 해서 전통적 철학과 전통적 해결들이 상징 체계의 원 리들에 대한 무지와 언어의 오용으로부터 발생했는가를 보여 주고 있 다〉 3) 고 지적한다. 러셀의 이 표현은 전통적인 논의에서 가장 핵심적 인 문제가 바로 언어와 관련된 문제라는 것을 꼬집어 보여 준다. 여 기서 비트겐슈타인의 논의는 새로운 논리학을 사용함으로써 언어를 새롭게 문제삼을 수 있었다. 죽, 새로운 논리학을 받아들여 기존의 철 학적 문제를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규명해서. 철학을 엄밀하게 만들어 보려는 시도였다. 물론 철학의 논의가 원래 분석적이라고 말할 수 있
2) 참조: Reic h enbach( l99 4), pp. 6-7. 3) Wi ttge nste in(l99 1), p. 9.
기는 하다 . 그렇지만 이들의 논의는 자신들의 분석적 작업을 무엇보다 도 논리적으로, 즉 새로이 나타난 논리학의 도움으로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이전의 논의와 뚜렷이 나누어진다. 심지어 라이헨바흐 H. Re i chenbach 에게는 〈 사변으로서의 철학이란 철학적 문제들을 해결 하는 데 필요한 논리적 도구들이 마련되지 않았던 구시대의 유물이라 고 주장하고 싶다 〉 고 쓸 수 있을 정도로 중요했다 .4) 말 그대로 논리학은 언어로 나타난 것, 언어화된 것을 다룬다. 철학 적 문제를 논리적으로 분석한다는 것은 그 논의가 언어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철학의 고유한 문제는 언어와 관련을 맺으면서 드러난다. 그래서 철학은 본격적으로 언어를 진지하게 문제삼을 수 있었다. 언어 룰 문제삼는 논의는 자연과학을 문제삼던 학자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기도 했고, 또 자연과학으로부터 영향받은 학자들에게도 그대 로 이어졌다. 자연과학의 논의도 철학의 논의와 마찬가지로 언어 체계 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을 포함해 모든 과학적 논의는 이 세계에 대한 것으로 이해된다. 즉, 자연을 포함한 세계를 논의하는 자연과학이나 세계에 대해 말하는 철학이나, 세계에 대해 말하기는 마 찬가지이다. 세계에 대해 말하는 방식만이 다를 뿐이다. 라이헨바흐의 말에 따르면, 그때까지의 철학은 〈 사변으로서의 철학〉 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 낡은 철학 old phi loso p h y 〉 이었다. 이와 달리 라이헨바흐는 〈 학문으로서의 철학 〉 인 〈 새로운 철학 new phil oso p h y〉을 주장했다 .5) 자연과학의 새로운 논의가 새로운 수학을 받아들였듯이. 새로운 철학은 〈 철학함의 새로운, 과학적 방법 〉 을 말하는 〈새로운 논 리학 〉 을 사용함으로써 가능할 수 있었다. 이런 철학을 그는 〈과학적 철학 〉 이라고 불렀다. 〈과학적 철학 〉 은 철학의 과학화를 추구한다 . 과학적 철학은 〈철학적 물음과 그 해결책의 진술 방식을 개별 과학의 귀결들에 대한 분석과 4) Reic h enbach( l99 4) , p. 6 . 5) Reic h enbach( l99 4) .
비판에 의해서 발전시키는 철학적 방법 〉 6) 을 강조한다 . 라이헨바흐가 말하는 〈 과학적 철학 〉 은 새로운 논리학의 도움으로 〈 낡은 철학 〉 의 문 제들을 다룬다 . 이와 달리 〈 과학철학 〉 은 〈 낡은 철학 〉 의 오래된 문제 룰 다루는 것이 아니다. 〈 과학철학 〉 은 새로운 자연과학과 이에 따른 철학적 문제들을 문제삼는다. 그리고 새로운 자연과학의 철학적 문제 나 새로운 자연과학의 근거를 묻고자 한다. 이를 통해서 〈 과학철학 〉 은 궁극적으로 〈 통일 과학 〉 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새로운 철학 〉 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보다도 〈 새로운 논리학 new lo gic〉을 강조하고, 또 그 논의에서 논리적 분석을 중요하게 내세운다 는 점이다. 또 논리적 분석에서 분석의 대상은 바로 언어적 표현이다. 이런 특징은 카르납R. Carna p의 말에서 아주 잘 볼 수 있다 . 철학은 오직 논리학의 관점에서 과학을 다룬다. 철학은 과학의 논리학 . 즉 과학의 개념, 명제. 증명. 이론에 대한 논리적 분석이다 .7) 2 비엔나 학파의 과학철학과 방법의 문제 과학철학은 과학을 논의 대상으로 했다. 다시 말해서 무엇보다도 과 학철학이 문제삼고자 했던 것은 자연과학의 논의 대상이라기보다도 , 자연과학 그 자체를 다루고자 했다. 과학철학은 외부 세계의 경험적 대상들이나 그것들이 나타난 모습을 나름대로 기술한 표현들과 이와 관련된 논의들을 다룬다. 이는 이른바 이론이나 법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들과 관련된 것들이다. 이것들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언어 화된 것이요, 문자화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과학철학은 언어를 문 제삼는 언어 철학의 논의와 관련맺는다. 6) Erkenntn is, Bd.l, 1930, S. 72. 7) Camap (l93 4a).
2.1 〈언어적 전회〉와 과학철학 비트겐슈타인은 〈참된 명제들의 총체가 전체 자연과학(또는 자연과 학들의 총체)이다.〉 8) 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초창기의 과학철학과 언 어 철학의 연관을 말할 때, 방법상의 그 둘의 밀접한 관계를 잘 보여 준다. 즉, 명제를 다루는 언어 철학의 논의와 자연과학의 논의를 다루 는 과학철학의 논의는 서로 이질적일 수가 없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 서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철학적 논의에 대해서 〈철학의 목적〉은 사 고의 논리적 명료화이다.…… 철학의 결과는 ‘철학적 명제들'이 아니 라, 명제들이 명료해짐이다. 철학은 말하자면 흐리고 몽롱한 사고들을 명료하게 만들고 명확하게 한계를 그어야 할 것이다.〉 9) 라고 말한다. 철학에서 〈명제들이 명료해짐〉을 찾는다면, 과학철학에서 과학적 명제 들의 명료화를 문제삼는다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자연과학이 논 의 형식의 엄밀함과 논의 내용의 투명함을 내세우기 때문에 더욱 그 러하다. 세계에 대한 어떤 방식의 논의이든, 언어는 자연과학과 철학에서 서 로 아주 밀접한 관련을 맺도록 한다. 이 상황은 바로 초창기 과학철 학의 논의에서 잘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초기의 비트겐슈타인처럼, 논리실증주의자들은 세계의 논리적 구조에 들어맞게 될 〈언어의 논리 학〉을 만들어 내고자 했다.〉 10) 이런 상황을 베르크만 G. Ber gm ann 은 〈모두는 비트겐슈타인이 『논고』에서 시작했던 언어적 전회 linguistic tum를 받아들였다.〉 11) 고 말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바로 이 〈언어적 전회〉라는 용어는 20 세기의 분석철학적 논의를 특징짓는 표현으로 사 용될 수 있을 정도였다 .12) 로티 R. Ro rty의 말대로 금세기에 일어난 8) Wi ttge nste i n (l92 1 ), 4.1 1 . 9) Wi ttge nste i n (l92 1), 4.112. 10) Misa k( l99 5), p. 60. 11) Bergm a nn( l96 1 ), p. 63. 12) 로티는 금세기의 철학적 논의에서 언어적 방법의 사용을 특징적으로 말하고` 베
르크만의 용어를 빌어 금세기의 철학을 〈 언어적 전회 〉 로 특징지어 부른다 . 참조: 박은진(1 997a).
〈 언어적 전회 〉 는 철학의 논의에서 단순히 언어의 중요성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방법의 전회를 말한다 . 이런 의미에서 로티는 언 어적 방법. 언어 분석의 방법이 철학의 전통적 방법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철학적 방법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13) 사실 얼 핏 언어 철학이 언어를, 과학철학이 과학을 다룬다는 것만을 문제삼는 다면. 이 둘은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들의 논의는 여 태까지의 철학과 다른, 새로운 논리적 철학을 이용해 〈 세계 〉 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자연과학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것이다.
13) 〈언어적 전회〉라는 표현은 로티가 편집한 Lin g u i s t ic Turn. Recent Essays in Phil o sop hi c a l Me t hod 의 책 제목 (Ro rty (1961)) 으로 쓰이면서 널리 알려졌다. 그러 나 이 용어는 원래 베르크만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에 관한 자세한 논의와 그 철학사적 의미는 위의 책에 실린 로티의 머릿글
논리실증주의의 주장은. 〈 과학적 세계관 〉 이란 제목의 선언적인 글에 서도 보듯이 . 단순히 과학철학의 논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들 주 장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오늘날 다시금 삶에서뿐만 아니라, 학문에서도 형이상학적 사유와 신학 적 사유가 늘어난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주장되고 있다.…… 그러 나 계몽과 반형이상학적 사실 탐구의 상반된 정신도 오늘날 강화되었다. …… 모든 경험 과학 분과의 탐구 작업에서 이런 과학적 세계관의 정신 이 활발하다. 14) 그래서 그들은 〈형이상학으로부터 지유로운 학문 me tap h y s ikfr e i e W iss en- sch aft〉을 가능하게 할 〈 과학적 세 계 관 wis s enschaft lich e Welta nsc ha- uun g〉을 확립하고자 한다. 〈과학적 세계관에 의해 형이상학적 철학은
14) Neurath (19 29), S. 81.
거부된다 .〉 그래서 〈 형이상학으로부터 자유로운 학문 〉 은 올바른 세계 상과 , 더 나아가 〈 과학적 세계관 〉 과 이어진다 . 이런 세계관의 확립은 새로운 학문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들의 논의는 여태까지의 철학과 다른, 새로운 논리적 철학을 이용 해 〈 세계 〉 에 대한 논의를 자연과학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것 이다 . 그들의 논의는 단순히 학문이나 세계에 대한 또 하나의 견해룰 보태려는 게 아니라, 과학적 세계관이 일상적 세계관과 일상의 삶에 서로 도움이 될 것으로 이해한다. 새로운 과학에 의해 얻어진 과학에 대한 관점인 과학관은 세계에 대한 관점인 세계관과 굳이 다를 이유 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과학적 세계관〉은 이렇게 끝맺는 다. 〈 과학적 세계관은 삶에 기여하고, 삶은 이를 받아들인다.〉 1 5) 2.2 〈 방법 〉 의 문제로 철학의 행위로서 명료화가 이루어지는 방식은 당연히 언어가 명료 화되는 방식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논리실증주의의 과학철학은 과학 에서 사용될 언어의 명료화를 문제삼는다. 이 부분은 비엔나 학파의 이론적 체계를 잘 보여 준 카르납의 논의에서 아주 분명히 볼 수 있 다. 카르납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트롭 프레게와 버트런드 러셀……에 의해서 인식 체계의 구축을 위 한 수학의 근본적인 의미가 나에게 명백하게 되었고、 수학의 순수하게 논 리적이고 형식적인 성격. 죽 현실 세계의 우연성과 무관한 수학의 특성 또한 나에게 명백하게 되었다 .1 6) 그래서. 15) 윗글 참조할 것. 16) Camap( 19 28), S. X-XI.
철학함의 새로운 방식은 개별 과학. 즉 수학과 물리학의 작업과 밀접하 게 관련을 맺으면서 나타나게 된다. …… 이러한 새로운 태도는 사고방식 뿐만이 아니라, 과제 설정을 바꾼다 .17) 여기서 말하는 사고의 새로운 방식과 과제의 새로운 설정은 이제 프레게 G. Fre g e 와 러셀, 그리고 더 나아가 비트겐슈타인이 했던 논의 의 많은 부분을 받아들였다. 죽, 언어 철학에서 진술의 의미를 문제삼 듯이. 과학철학도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과학적 진술의 의미에 대해 말 하고자 한다. 이런 맥락에서 〈원래 논리실증주의의 철학적 입장은 카 르납과 비트겐슈타인 이 두 철학자의 예리하면서도 심오한 통찰에 영 향을 받아 이루어진 것이었다. 〉 18) 이제 과학철학에서 과학적 진술의 의미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이 만큼 언어 철학과 과학철학 을 상징하는 이 둘의 논의는 가깝게 있다. 비엔나 학파의 논리실증주의적 입장은 다음의 글귀로 잘 알려져 있 다 .19)
17) Camap (l92 8), S. XVIII-X IX. 18) Joe rge n sen( l99 4), p. 13. 19) 이것은 1929 년에 발표된
우리는 본질적으로 과학적 세계관을 두 가지의 규정을 통해서 특징짓는 다. 첫째로 과학적 세계관은 경험주의적이고 실증주의적이다. 죽, 직접 주 어진 것에 근거한 경험 인식만 있다. 이것에 의해 합법적 과학의 내용에 관한 경계가 설정된다. 둘째로 과학적 세계관은 확실한 방법의 적용, 죽
논리적 분석을 통해서 특징지어진다 . 과학적 작업의 추구는 경험적 자료 에 이런 논리적 분석의 적용을 통해서 도달하려는 목표로 나아간다. 과학 의 모든 진술의 의미는 주어진 것에 관한 진술로 환원을 통해서 진술하도 록 해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학문 분야에 늘 속하게 하는 개념의 의미도 주어진 것에 관계하는 가장 낮은 단계의 개념까지, 다른 개념으로 조금씩 조금씩 환원을 통해서 진술하게 한다. 여기서 보듯이 직접 주어진 것에 근거한 논리적 분석이 무엇보다도 강조된다. 직접 주어진 것에 근거한다는 것은 철두철미하게 경험적인 기반 위에 서 있다는 것이다. 즉, 과학의 내용은 경험적이냐 아니냐에 따라 과학의 합법성을 보장받게 된다. 그리고 경험적 합법성에 의해서 과학적 진술의 의미가 판가름나게 된다. 따라서 과학적 진술의 의미가 있고 없음은 경험적으로 결정된다. 언뜻 의미의 문제와 과학철학이 아 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과학철학이 다루고자 하는 자연과학의 진술들은 철저히 경험적 성격을 띠기 때문에, 경험 세계를 그린 자연과학의 진술에서 그 옳고 그름은 경험 세계에 되물을 수밖 에 없다. 이 논의는 카르납에 의해 이론적으로 체계화된다. 우선 카르납은 세계에 대한 철학의 논의를 논리적으로 구축하려는 구체적인 시도로 〈구성 이론 Kons tituti ons th eo ri e 〉을 제시한다 .20) 이 이 론에 따르면, 유의미한 과학적 진술은 경험 세계의 구체적 대상들에 관한 진술로 바꾸어 기술할 수 있다. 즉, 합법적으로 판정받은 것들은 물리적 언어로 바꾸어 (즉, 환원해서) 쓸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카 르납이 노리는 것은 궁극적으로 〈과학적 세계관〉의 확립이다. 이런 원대한 프로그램을 위해 카르납은 〈논리적 통사론 lo gi sche S yntax〉을 내놓는다 .21) 우리의 언어 체계가 형식적으로 통사론의 구조에서 성립 20) Camap (l92 8). 21 ) Camap (l93 4) .
될 수 있듯이. 카르납은 〈 논리적 통사론 〉 으로 모든 종류의 과학을 하 나로 묶을 수 있는 〈 통일 과학 E inh e its w i ssenscha ft 〉 울 주장한다. 즉, 카르납의 〈 논리적 통사론 〉 은 통일 과학의 구조를 마련하기 위한 형식 적 틀인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특히 이상 언어 ide al lan gu a g e 를 주장 했던 초기의 언어 철학과 과학철학은 논의 대상에서 다르나, 논의 방 식에서 유사한 모습을 보여 준다 .22) 카르납의 논의를 대표로 하는 논 리실증주의에서 〈 이 작업의 부정적 임무가 형이상학적 사변적 진술들 을 무의미하다고 제거해 버리는 일이라면, 긍정적 임무는 과학적으로 성립할 수 있는 진술들의 의미를 할 수 있는 한 더욱 정확하고 충분 하게 정 의 하는 일이 었다. 〉 23)
22) 이런 맥락에서 언어 철학과 과학철학은 논의 대상에서 다르나. 논의 방식에서 유사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언어와 과학이 철학의 논의에서 그 중요성 울 계속해서 인정받기는 했지만 . 겨우 금세기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그리고 집중적 으로 다루어지기 시작했다. 따라서 언어와 과학은 20 세기 철학의 새롭고 중요한 주제인 셈이다. 23) Joe rge n sen(1 9 94), p, 1 6.
언어 철학이 명제의 논리적 분석을 말한다면, 과학철학은 과학적 명 제를 논리적으로 분석하려고 한다. 바로 〈 이런 논리적 분석의 방법은 새로운 경험주의와 실증주의를 앞서 있던 것과 본질적으로 구분짓는 것이다.〉 24) 이것은 현대 논리학의 발전에 의해 가능하게 된만큼 논리 학의 형식적 특성과 아주 밀접하다. 자연과학의 명제도 명제인 한, 과 학적 명제도 그 사이의 논리적 관계를 따져 볼 수 있다. 즉, 이론이나 법칙을 이루는 과학적 명제는 원자 명제로 구성된다. 그리고 이 원자 명제가 경험에 의해 진리값을 갖기 때문에, 과학적 명제, 또 이론이나 법칙은 논리적으로 분석된다. 논리실증주의의 과학철학이 이를 위해 구체 적으로 제 시 한 것 이 바로 〈검증 veri fica ti on > 이 다. 잘 알려졌듯이 〈검증〉은 의미 문제와 깊은 관련을 맺는다. 물론 과 학철학의 논의에서도 검증이 중요했지만, 사실 검증은 과학에 대한 논
24) Neurath (19 29), S. 87( 인용문의 굵은 글꼴은 원문의 이탤릭체).
의 상황보다도 언어가 문제되어 논의되던 상황에서 훨씬 먼저 그리고 중요하게 다루어졌댜 이런 맥락에서 그들의 〈 검증 〉 에 대한 이론은 한마디로 〈 의미의 검증 이론 〉 이었다. 이 〈 의미의 검증 이론 〉 은 어떤 종류의 진술이든 그 진술이 갖는 의미의 유무를 따지며, 이때 의미 있는 진술은 참이고 의미 없는 진술은 거짓이다. 마찬가지로 과학철학 의 논의에서도 과학적 진술의 검증가능함은 참이고, 검증가능하지 않 음은 거짓이다. 따라서 의미의 검증 이론은 진술의 참과 거짓을 가리 자는 것이고, 그래서 과학적 진술에서 그 과학적 진술의 의미가 있고 없음은 그 과학적 진술의 참과 거짓을 경험적으로 말할 수 있다는 것 울 뜻한다. 논리실증주의의 과학철학에서 말하는 검증가능성의 원리에 따르면, 원자 명제 또는 요소 명제인 기초 진술의 참과 거짓은 경험 에 의존해 판가름난다. 즉, 경험적으로 참과 거짓을 가릴 수 있어야만 의미 있는 명제인 셈이며, 의미 있는 명제는 원자 명제의 진리 함수 이다. 여기서 경험에 의해 참이거나 거짓인 진술은 과학적이며, 여기 서 형이상학적 진술같이 , 경험에 의해 참과 거짓을 가려 낼 수 없는 진술은 비과학적이다. 다시 말해서 과학적 진술이란 참인 기초 진술에 의해 검증될 수 있는 것이다. 논리실증주의에서 말하는 검증가능성의 원리는 논리실증주의의 과학철학이 전통적인 (그러나 새로운 모습의) 경험주의와 실증주의, 그리고 논리주의와 절묘하게 얽혀 있음을 잘 보 여 준다. 이 상황은 〈 표현 가능성과 검증가능성은 하나이고 같은 것 이다. 논리학과 경험 사이에는 대립이 없다. 〉 는 슐리크 M . Sc hli ck 의 조금쯤 투박해 보이는 주장과 전혀 다르지 않다 .25) 표현 가능하다는 것은 의미 있을 수 있다는 것이고 표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의미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표현 가능성은 진술의 의미와 관련된 다. 한마디로 여기서의 〈표현 가능성 〉 이 의미의 유무를 따져 참과 거 짓을 말하는 언어 철학의 논의라고 한다면, 〈검증가능성〉은 관찰을 25) Sch lick (1 9 38) .
통한 기초 명제의 참과 거짓에 의해 과학적 진술의 검증가능 여부를 밝혀 과학적임을. 또는 바과학적임을 밝히려는 논의이다. 물론 어떤 논의이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노리는 한 가지는 〈 언어의 논리적 분 석을 통한 형이상학의 극복 〉 2 6)이다 .
26) 카르납이 쓴 잘 알려진 논문의 제목 ( Uberw in dun g der Meta ph y si k durch Logi sch e Analys e der Sp ra che in Erken n tn is, Bd.11, 1932 ) 이 기 도 하다.
3 〈검증〉에서 〈반증 〉 으로 27)
27) 〈반증falsifi ca ti on 〉 이란 용어는 토론 과정에서 다시 논란이 되었다 . 이 과정에서 〈f als ifi ca ti on 〉이 어원상 〈 거짓 f alsum 〉 이라는 라틴어에서 나왔기 때문에, 〈 반증 〉 보 다는 〈허위화(虛僞化) 〉 가 나으리라는 의견이 있었으나 앞에서 쓰였던 용어를 그냥 쓰기로 했다. 사실 〈반증 〉을 〈 허위화 〉 로 바꾼다면, 〈 검증 〉 도 〈 진리화 〉 로 바꿔야 마 땅해 보인다 . 그러나 〈검증 〉 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 제기가 있지도 않았으나. 사 실은 〈검증〉이란 〈 ve rifi ca ti on 〉도 라틴어의 〈 참 verum 〉 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렇다. 여기서 위 두 단어의 어미 〈 -fi ca ti on 〉 은 〈 -로 됨 〉 이나 〈 -화 〉 를 뜻하기 때문에, 있 는 그대로 보자면 〈반중 〉 의 〈허위화 〉 는 〈 거짓으로 됨 〉 을. 〈 검증 〉 의 〈 진리화 〉 는 〈참으로 됨〉을 말해야 한다. 많은 학술어가 그렇듯이, 원어의 뜻이 우리의 어감에 딱 들어맞는 말을 고르기가 쉽지도 않거니와 〈 반증 〉 이 이미 웬만큼은 관례화되어 쓰이고 있다는 이유에서. 그리고 애써 고른 새로운 말이라도 〈 바로 이거다 〉 싶은 우리말이 아니라 어설플 경우 일어날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앞에서도 인용했듯이, 논리실증주의의 논의란 한마디로 〈 철학은 오 직 논리학의 관점에서 과학을 다룬다. 철학은 과학의 논리학, 죽 과학 의 개념, 명제. 증명, 이론에 대한 논리적 분석이다 .〉 라고 잘라 말할 수 있다 .28) 즉, 이것은 과학의 명제를 논리적 형식에 따라 논의하는, 〈명제의 논리〉라고 부를 수 있는 논의이다. 비엔나 학파를 중심으로 한 〈 논리실증주의 〉 에서 내세운 철학의 할 일이란 (자연)과학을, 과학의 진술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이었다 . 이런 분석 작업의 가능성은 〈 [과학의] 진술이 원칙상 궁극적으로 검증
28) Camap( 19 34a).
가능하거나 반증가능하다 〉 는 슐리크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29) 검증 과 반증, 또는 검증가능성과 반증가능성의 쓰임이 나중에 서로 엇갈리 기는 하지만, 이 둘은 〈 철학의 할 일 〉 을 위해 검토해야 할 것으로 나 타났다. 이것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한 논리실증주의는 〈 의미의 검증 이론 〉 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검토했다. 이는 새로 나타난 과학의 성격을 규명하려는 작업이기도 했다. 그 주장에 따르면 자연과학에서 다루게 될 명제는 관찰과 실험에 의해서, 즉 경험적으로 검증될 수 있어야 유의미하다. 여기서 논리실증주의는 그 의미의 있고 없음을 밝 히는 〈 검증가능성 〉 의 원리를 제시했다. 논리실증주의 과학철학에서 말하는 〈 검증가능성의 원리 〉 는 의미의 유무를 따지는 〈 의미의 검증 이론 〉 처럼 단순히 진술의 참과 거짓을 가늠하는 잣대가 아니라, 자연과학의 진술이 과학적인지 아닌지를 따 지는 잣대이다. 이렇게 보면 포퍼 K. Po pp er 가 꼬집은 대로, 비트겐슈 타인의 논의부터 논리실증주의에 이르는 〈 의미 기준은 그래서 위에서 특징지은 귀납 논리적 구획 기준에 해당한다. 〉 30) 여기서 〈검증가능성 의 원리 〉 는 진술의 과학적인 것과 비과학적인 것을 나누는 잣대인 셈 이다. 이를 통해 형이상학적 진술이나 자연과학에서 흔히 쓰이는 전칭 명제도 제대로 검증될 수 없다는 한계에서 의미 없는 셈이고` 그래서 비과학적인 것이다. 단순히 이 정도가 아니라, 논리실증주의 과학철학 의 〈 실증주의적 급진주의는 형이상학을, 또한 자연과학을 부정한다.〉 31) 즉, 그들의 논의는 귀납적 방법에 기초해 과학적인 것과 과학적이지 않 은 것을 나누는 것이며, 포퍼는 이룰 〈 인식론의 두 가지 근본 문제〉의 한 가지인 〈 구획의 문제 Ab gr enzun g s p roblem 〉라고 특징지어 부른다. 32) 29) 참조: Sch lick ( l93 8), S. 41-82. 30) Popp e r(l 93 4), S. 11. 31) Popp er (l 93 4), S. 11. 32) 참조 : 신중섭(1 992) 153 - 190 쪽 (신일철(1 990) 31-58 쪽과 같음) . 이 글에서 신중섭은 〈 포퍼의 방법론 및 구획 기준에 대한 비판과 그 반론〉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필자는 가능한 한 내용상 위의 글에 겹치지 않도록 했다.
사실 논리실증주의의 구획 기준은 귀납적 방법의 문제점을 그대로 담고 있으면서도. 바로 이 귀납 논리의 문제점을 소홀히 하고 있다. 이 점을 포퍼는 지적한다. 포퍼의 논의는 아주 간단하다. 즉, 자연과학 의 이론이 과연 그들의 주장대로 의미 있는지 없는지를 검토할 때 사 용하는 검증 과정은 다음과 같다.
p n qq
그러나 이 검증 과정은 형식 논리학에서 말하는 〈 후건 긍정의 오류 〉 를 범하고 있다. 논리실증주의의 검증은 기본적으로 이른바 귀납적 방법에 기초해 이루어진다. 첫째 전제의 전건은 자연과학의 영역에서 적어도 의심할 여지 없는 과학 이론이기 때문에, 위의 논증식은 형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자연과학의 논의에서 첫째 전제는 (x)(Px 그 Q x) 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때 Q x 에 해당하는 몇 가지의 특수 진술인 관찰 명제 Qa , Qb 등으로 첫째 전제의 전건인 Px 의 참을 이끌어 낼 수 없 다. 죽, 원리적으로 (x)Px 에 해당할 (Pa • Pb • … • Pn • Pn+ l • … • P (X)가 경험적으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편 진술 의 형태인 자연과학의 이론은 가설적 성격을 떨 것이다. 다시 말해 위의 과학적 방법에서 경험적 진술 〈 S 〉는 〈 S 〉의 참을 보여 줄 수 있 는 긍정적인 경우를 제시하여 검증된다. 그러나 위 논증이 자연과학의 논의에 사용될 때, 상황은 달라진다. 만약 〈 S 〉에 어긋나는 한 가지의 경우라도 찾아질 수 있다면. 그 〈 S 〉가 무엇이라고 하더라도 받아들일 이유가 없게 된다. 이런 면에서 논리실증주의의 검증은 방법론적으로 나름대로 한계를 갖는 셈이다 .33)
33) 검층에 대한 포퍼의 지적은 논리실증주의의 과학철학을 주도하던 카르납으로 하 여금 검증 대신 한 발 물러서 〈입증 〉 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게 만들었다. 〈우 리는 법칙을 검증할 수 없다. 그래서 검증 대신 접차로 증가하는 법칙의 입증을 말 할 수 있다. 〉 Carnap (1 936). 이와 관련된 더 발전된 논의는 이 책의 제 1 장을 볼 것 .
과학적 방법으로서 논리실증주의의 검증에 대한 포퍼의 대안은 바 로 〈 반증 〉 이다 .34) 적어도 이는 경험 과학인 자연과학의 영역에 적용 될 때 갖는 검증의 문제점을 벗어난댜 포퍼의 반증과 반증가능성은 후건 부정식 modus t ollens 의 논리적 형식이며, 전건 긍정식 modus p onens 과 마찬가지로 형식적으로 타당하다.
34) 철학사에서 볼 때, 〈 검증 〉 에 비해서 〈반증 〉 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이유는 언 제나 모든 논의에서 진리를 한가운데 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글의 초고에 대한 논평을 맡았던 이종권은 그 논평문의 첫머리에 이렇게 썼다 . 〈 인간이 철학적 사유 룰 시작한 이래 ‘진리'가 아닌 ‘허위'를 자신의 철학의 중심 개념으로 삼은 철학자 는 포퍼가 유일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 철학의 논의에서 진리에 대해 말할 때의 방식은 보통 진리를 통해서 진리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그러나 포퍼의 논의는 거 짓을 통해서 진리를 말하려는 태도에 있다.
p :) q
그러나 검증과 달리, q가 아닌 것을 찾아 낸다면. p는 거짓으로 판 명날 것이다. 즉, p는 반증될 것이다. 첫째 전제 (x)(Px 그 Q x) 의 형 태에서 특정의 ~Q x 를 통해서 ~R 를 이끌어 낼 수 있다. 다시 말해 서 검증의 방법을 통해서 (x)Px 의 참을 말할 수는 없지만, 반증의 방 법을 통해서 (x)Px 의 거짓을 말할 수는 있다. 위의 과학적 방법이 경 험 과학인 자연과학에 적용될 때, 경험적 진술 〈 S 〉는 〈 S 〉 가 거짓임을 보여 주는 부정적인 경우 한 가지를 제시하여 반증된다. 아주 잘 알려진 예인 전칭 문장 (A) 〈모든 백조는 희다〉를 들어 보
자. 분명 수많은 관찰 문장 (aI, a2, … , an, …)을 통해서. 어느 누구라 도 A 를 이끌어 낼 수 없으며 또 논리적으로 A 의 참을 말 할 수 없다. 즉, 특칭 문장을 통해서 전칭 문장의 검증은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전칭 문장의 반증은 가능하다. 즉, A 는 〈 어떤 백조가 희지 않다 (~a 서〉를 통해서 〈모든 백조가 희지 않다 〉 라는 전칭 문장 (~A) 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경험적 일반화에 의한 전칭 문장 형태의 과학 법 칙은 완전히 검증될 수는 없겠으나, 완벽하게 반증될 수 있다. 검증과 반증은 얼핏 조건문의 후건과 관련맺는 점에서 아주 유사한 논의처럼 보이지만, 결과에서는 완전히 상반된다. 포퍼가 반증으로 논 리실증주의의 검증을 비판했을 때, 심지어 라이헨바호는 반중을 검증 의 변형된 모습으로 받아들였을 정도였고, 심지어 검증과 반증을 서로 대칭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해석에 따르면, 반증된/반증가능 한 진술의 부정이 검증되어아 1 검증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검증 원검증가능한 진술의 부정이 반증되어아 1 반증가능해야 하기 때문이기 도 하다 . 그러나 이미 정확히 포퍼가 지적하고 있듯이 , 귀납적 방법에 기초해서 성립되는 검증과 연역적 방법에 기초해 성립되는 반증은 논 증 과정에서 보듯이 논리적으로 비대칭적이다. 즉, 이 둘의 형식은 〈검증과 반증의 비대칭성〉 , 더 나아가 〈검증가능성과 반증가능성의 비대칭성〉을 보여 준다 . 35)
35) 이에 대한 포퍼의 논의는 다음을 참조: K. R. Pop per, The Asym me tr y betw e en Falsif ica ti on and Veri fica ti on in Pop per (1 9 83) .
검증과 반증 사이에 성립될 논리적 비대칭성을 방법론적으로는 대 칭적으로 보려는 논의가 있기도 하다. 여기서의 방법론이란 구체적으 로 경험 과학에서 이루어질 논의이기 때문이다. 이런 논의는 유호스 B. von J uhos 에게서 찾을 수 있다 .3 6) 죽, 그는 포퍼의 〈반증〉에서 〈 반 증된〉이라는 용어를 〈‘완벽하게' 검증된 ‘co mp le te l y' veri fied > . 또는
36) 참조 : B. von Juh os, The Meth o dolog ica l Sy mme tr y of Veri fica tio n and Falsif ica ti on in Juh os (l97 6) .
〈 ‘충분하게' 겁증된 ‘suff icien tl y' ve rifi ed 〉 으로 이해한다 . 그러나 〈 반증 된 〉 것이란 더 이상 〈 완벽하게 〉 검증될 수는 없는 것이다 . 왜냐 하면 〈 반증된 〉 것은 이미 거짓인 부분을 드러낸 것인 반면, 〈 ‘완벽하게 ' 검 증된 〉 것은 거짓인 부분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물론 방법론적으로 보려는 유호스의 논의에서는 반증의 대상이나 검 증의 대상이 동일하고, 서로 정반대의 방향에서 하나의 목표점에 다가 간다 . 바로 이 점에서 유호스가 검증과 반증에서 방법론적 대칭을 말 할 수 있기는 하다 . 또한 유호스의 논의에서 〈 완벽하게 〉 나 〈충분하게〉 라는 용어는 여전히 귀납적인 성격의 것이다 . 여기서의 문제는 이 과 정에서 포퍼의 논의가 귀납을 바판하는 정도가 아니라 철저히 반국기 납적 태도를 취하는 데에 있다. 아마도 이에 대한 논의는 진리 개념 과의 관계 에 서 〈 시 험 가능성 의 정 도 Grad der Priifbar keit , the degr ee of t es ta b ility 〉 라는 용어와 관련될 것이다 . 37) 그러나 이는 포퍼에게 논 리적인 차원의 논의이다 . 분명 포퍼에게 이 부분은 개별 과학에 적용 될 방법론적 논의가 아니다 .
37) 이와 관련된 논의는 다음의 5 절에서 다루어질 것이다.
검층이나 반증은 모두 과학의 실제 논의를 정형화하기 위한 모델로 주어진 것이다. 이미 앞에서도 보았지만, A 를 과학의 이론이고 a1, a2, …, an 을 A 에 대한 구체적 사례라고 할 때, 관찰 문장 a1, a2, …, an 을 통해서 A 는 쉽게 검증되고 또 검증될 수도 있다. 이때 A 는 이론으로 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A 가 검증되어 참인 A 가 나오는 경 우와 달리, A 가 반증되어 ~A 가 이끌려 나올 수 있다면, 상황은 다르 게 나타난다 . 여기서 ~A일 가능성 있는 A 는 당연히 포기되어야 하 기 때문이다 . 그렇지만 실제로는 이와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 문제이 다. 잘 알려진 예로 아인슈타인 A. E inst e in의 일반상대성 이론의 결론 이 1919 년의 실험에 의해 뉴턴 I. Ne wton 의 중력 이론과 일치하지 않 았다. 그렇다고 해서 뉴턴의 중력 이론은 포기되지 않는다. 포퍼의
반증 논의에 따르면. 뉴턴의 중력 이론에 따른 결과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에 따른 실험 결과와 어긋날 경우 뉴턴의 중력 이론 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에 의해 반증된 셈이다. 그래서 포퍼 의 입장에서야 당연히 뉴턴의 중력 이론은 버려야만 할 것이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보자면, 적어도 경험적 차원의 반증은 분명 나름대로 한게를 갖는 셈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검증과 반증은 철두철미하게 경험 과학으로서 자연 과학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과학적 행위에서 이루어진다 . 이는 검증과 반증이 경험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논의라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러나 검 증가능성과 반증가능성은 이와 다르다. 즉, 검증가능성과 반증가능성은 경험적 논의가 아니라, 논리적 차원의 논의이다. 또한 포퍼의 반증가능 성은 논리실증주의의 검증가능성과 달리 방법론적 차원의 논의이기도 하다. 물론 논리실증주의의 검증도 그렇지만. 특히 포퍼에게서 〈 반증 〉 은 단순히 현대 자연과학의 경험 과학적 방법을 뜻한다. 그리고 바로 이 〈경험 과학의 방법을 분석하는 것이 과학적 발견의 논리 또는 지식의 논리의 과제라고 주창〉하기까지 한다 .38) 물론 〈 과학적 발견의 논리 〉 라는 구절에서 보듯이, 〈발견 〉 이라는 비논리적인 과정을 논리적으로 정당화시키려고 한다. 그래서 포퍼에게서 이 경험 과학적 방법을 논의 하는 것이 이 방법을 경험(과학)적으로 다룬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경험 과학적 방법을 논의하면서, 경험 과학적 방법을 경험적 차원에서 보는 것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경험 과학적 방법이 경 험적 차원의 것으로만 논의된다는 것은 어딘가 어색해 보인다. 경험 과학적 방법은 차라리 경험적 성격을 넘어선 〈이차적 〉 영역에서 다루 어야 할 것이다. 즉, 포퍼의 생각에 따르면, 경험 과학은 특정의 대상 울 경험적으로 다루는 것이다 . 여기서 사용하는 경험적 방법에 대한 논 38) Popp er (l 99 4), p. 29.
의는 바로 특정 개별 과학의 방법에 대한 논의인 〈 방법론 Me t hodolo gi e 〉 이며. 이는 당연히 경험적 차원에서 규명될 것이다. 그러나 방법에 대한 논의가 여기에 머문다면, 경험적 방법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함정 에 빠져 버릴 것이다. 따라서 경험적 방법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메 타 차원의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물론 방법에 대한 경험적 논의가 필 요하기야 하겠지만. 전적으로 경험적인 부분에 의존하지 않아야 한다 는 의미이다. 그래서 이 모든 개별 과학들의 방법에 대한 논의는 위에 서 말한 개 별 과학의 방법 에 대 한 <방 법론 Me th odolo gi e 〉과는 다르다. 그래서 포퍼는 방법에 대한 메타 차원의 논의를 〈방법-론 Me th oden Lehre> 이 라고 부른다. 분명 개별 과학들 각각의 논의는 구체적으로는 분야에 따라, 또 논 의의 대상에 따라 차이가 있다 . 그러나 모든 과학적 논의가 이루어지 는 과학자의 행위에 대한 말로 포퍼는 자신의 『과학적 발견의 논리』 를 시작한다. 과학자는 이론가, 실험가를 막론하고 언명들 또는 언명들의 체계를 제 시하고 그것들을 단계적으로 검사한다. 특히 경험 과학의 분야에서 그는 가설(假說)들 또는 이론들의 체계를 구성하고 관찰과 실험을 통해 그것들 을 경험에 비춰 검사한다 .39) 이는 과학자들의 과학적 행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포퍼는 과학 자들이 그들의 분야에서 하는 〈과학 탐구자들의 행위di e Tatig k eit des wis se nschaft lich en Forschers 〉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눈다. 40) 여기서 첫 39) Popp e r(1 9 94), p. 29. 40) 과학의 행위에 대한 생각은 그의 박사 학위 논문인 Zur Meth o denfr ag e der Denkp syc holog ie, Po ppe r(1928) 에서 다루어지기도 했다. 여기서 그는 인간의 지적 행위 가운데서 가장 특징적인 과학적 행위를 과학의 〈기술(記述)의 측면 Dars t ellun g sse it e 〉과 과학의 〈탐구의 측면 Forschun g sse it e 〉으로 나눈다. 그리고 앞의 것은 철저히 논리적 분석을 필요로 하지만, 뒤의 것을 위해서는 방법론적 논의를,
특히 유기체에도 적용되어 온 방법적 논의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좀더 세부적인 논의는 다음을 참조: Al t(1 982) 와 Park(1996).
부분에 해당하는 〈 언명들 또는 언명들의 체계를 제시 〉 , 죽 〈 경험 과 학의 분야에서…… 가설들 또는 이론들의 체계를 구성 〉 하려는 것은 〈명제의 논리 〉 에 따른다 . 여기서 〈 명제의 논리 〉 란 철저히 형식 논리 의 논의이다 . 그러나 포퍼에게 그 다음에 나오는 〈 그것들을 단계적으 로 검사 〉 하는, 즉 〈 관찰과 실험을 통해 그것들을 경험에 비춰 검사 〉 하려는 것은 꼭 논리적으로만 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 여기서 포퍼는 〈 명제 〉 나 〈진술〉보다도 〈 탐구 〉 라는 과학적 행위를 문제삼고자 한다. 다시 말해서 〈 탐구 〉 라는 과학적 행위의 특정 부분 을 강조하는 〈탐구의 논리〉로, 논리적으로 짜인 명제 체계들을 분석 하고자 한다. 이런 뜻에서 물론 〈 탐구의 논리 〉 가 부분적으로는 〈 명제 의 논리〉와 마찬가지로 형식 논리에 따른 논의를 하겠지만, 〈 탐구의 논리〉는 오히려 〈명제의 논리 〉 만으로는 다룰 수 없는 〈 탐구di e Forschun g〉의, 또는 〈 과학적 발견 sci en ti fic di scove ry 〉 의 문제를 다루고 자 한다. 이 점에서도 포퍼의 논의는 벌써 논리실증주의의 논의와 분 명 다르다 . 〈반증〉은 철저히 경험적으로 다루어지겠지만, 〈 반증가능성 〉 은 경험 적 차원의 논의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증가능성과 반증을 명백 하게 구분해야만 한다. 〉 41) 이 둘이 나름대로 밀접한 관련을 맺긴 하지 만, 이를 구분해야 하는 이유는 반증가능성이 반증을 위한 잣대를 마련 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증이 경험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논의라면, 반증가능성은 단순히 경험적 논의가 아니다. 반증가능성은 우선 논리적 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반증가능성은 반중의 논리 적 가능성이다 . 바로 〈검증〉과 〈검증가능성〉의 관계와 마찬가지이다 .
41 ) Popp er ( 1934) , S. 54.
〈반중가능성〉에 대한 분석은 〈검증가능성〉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발 전을 이룬 논리학의 도움으로 형식적으로 다루어진다. 그러나 포퍼의
견해에 따르면. 〈 반증가능성 〉 은 방법론적으로도 논의되어야 한다 . 따 라서 〈 반증가능성 〉 은 동시에 두 가지 방식으로, 즉 논리적으로 또 방 법론적으로 다뤄져야 한다. 과학의 논의가 제대로 다루어질 수 있으려 면 . 과학적 진술은 검증가능하거나 반증가능해야 한다. 물론 검증가능 한 진술과 반증가능한 진술. 이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나울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은 다음의 문제이다. 논리실증주의자뿐만이 아니라 포퍼도 이를 통해 과학만의 고유한 특성, 죽 〈과학성 W iss enschaft lich keit, sc i en tifi c ity 〉 을 확립하고자 한다. 그러나 포퍼가 제시한 반증/반증가능 성이 논리실증주의의 검증/검증가능성보다 나아 보일 수 있는 한 가지 의 중요한 이유를 든다면, 〈 실증주의적 급진주의 〉 라고도 부를 수 있 을 논리실증주의의 논의에 의해 버려진 형이상학이 다시 제자리에 놓 일 수 있을 가능성이다. 다시 말해서 포퍼는 형이상학적 진술이 비과 학적이라고 매도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더 적극적으 로 그는 형이상학에 과학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고자 한다. 4 반증가능성 논리실증주의의 논의에서 검층과 검증가능성은 의미의 있고 없음을 따지는 기준이고, 그대로 과학적인 것과 과학적이지 않은 것을 따지는 기준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그들의 기준에 따라 의미 없는 것은 바로 과학적이지 않은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따지려는 진술이 검증될 수 있다면 과학적 진술이고, 검층될 수 없다면 과학적이지 않은 진술이 다. 그래서 〈 검증가능성의 원리 〉 는 과학적인 것과 비과학적인 것을 가르는 기준인 셈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꽤나 심각한 문제점이 놓여 있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검증가능하지 않은 진술과 관련된다. 죽, 형 이상학적 진술 종교적 진술 등은 검증가능하지 않으며, 그래서 이것 들을 바로 의미 없는 것으로 내쳐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의미를 모
든 논의의 한가운데에 놓았기 때문에 나타난 상황이다. 그러나 과학적 이지 않다는 이유에서 내버리기에 이런 진술들은 의미심장하고 또 모 두에게 아주 진지하다. 논리실증주의의 논의와 달리, 포퍼는 의미를 문제삼지 않는다. 이를 통해서 포퍼는 무엇보다도 이런 진술들의 의미심장함과 진지함을 있 는 그대로 살릴 수 있었다 . 심지어 그는 이런 진술들의 역할을 적극 인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입장과 자신의 목적에서 의미 를 중심으로 논의하는 철학자들, 대표적으로 언어 분석철학자들과 분 명히 다름을 아주 강조한다. 이제 포퍼는 의미를 문제삼지 않으면서, 그들의 핵심적인 논의를 말 할 다른 가능성을 보여 준다 . 여기서 그는 의미 있음과 과학적인 것 의 고리를 끊음으로, 그들의 비과학적이지만 의미 있는 것이 설 자리 를 마련할 수 있었다. 죽, 어떤 진술이 검증될 수 있더라도 반증가능 하지 않은 한에서, 여전히 그 진술은 유효하다. 우리의 관점은 전칭 문장의 논리적 형식과 관련된 검증가능성과 반증가 능성 사이의 비대칭성에 근거한다 . 죽, 전칭문은 절대로 특칭문에서 추론 될 수 없으나. 특칭문과 모순될 수는 있다. 따라서 순수 연역적 추론으로 사람들은 특칭문에서 전칭문의 〈 거짓 〉 을 이끌어 낼 수 있다 .42) 포퍼는 (경험) 과학과 (경험) 과학 아닌 것을 나누는 찻대인 〈 구획 기준〉으로써 논리실증주의의 〈검증가능성 〉 에 반대한다. 그리고 그는 〈반증가능성〉을 내세운다. 포퍼의 논의는 우선 논리실증주의의 논의가 의미의 있고 없음을 따지는 데에서 생긴 심각한 문제를 없애고 , 과학적 인 것과 과학적이지 않은 것만을 따지고자 한다 . 더 정확히 말하자면 경험 과학적인 것과 경험 과학적이지 않은 것을 나눠 보려고 한다. 이 42) Popp er (1 9 34) , S. 15 f.
문제는 포퍼의 논의에서 보자면 바로 〈 인식론의 두 가지 근본 문제 〉 의 한 가지인 〈 구획의 문제 〉 이다. 이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경험 과학적 이고 경험 과학적이지 않은 것을 나누는 잣대는 바로 〈 반증가능성 〉 이다 . 이제 경험 과학적인 것과 경험 과학적이지 않은 것의 둘로 구분하 는 〈 구획의 문제 〉 와 이를 가르는 〈 구획 기준 〉 은 서로 뗄 수 없을 정 도로 이어져 있다 . 〈 구획의 문제 〉 가 논리적이고 방법론적인 문제이듯 이, 〈 구획 기준 〉 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맥락에서 〈 우리는 반증가능성 의 요구를 두 부분으로 나눈다. 〉 그 두 부분은 〈 첫번째 부분에 방법 론적 요구를 〉 말하고, 〈 두 번째 부분, 즉 논리적 기준 〉 을 든다 .43) 이 처럼 〈 나눔 Ab gr enzun g , demarca ti on 〉 을 따지는 논의에서 반증가능성은 논리적인 부분과 방법론적인 부분의 둘로 나눠 보아야 한다. 4.1 논리적인 기준으로서 〈 반증가능성 〉 반증이 경험 가능한 영역에서 일어난다면, 여기서의 반증가능성은 경험적인 것이 아니라 논리적인 것이다. 한마디로 반증가능성은 반증 의 논리적 가능성이다 . 즉, 〈 우리는 한 이론의 반증가능성을 [반증가 능한 체계]와 기초 진술 사이의 논리적 관계로 특징지울 수 있 다. 〉 44) 포퍼가 〈 나눔의 논리적 잣대 〉 로 반증가능성을 말하거나 〈(순 수 논리적) 반증가능성을 통해서 경험 과학을 특징지으려고〉 4 5) 할 때, 반증가능성의 논의를 위한 필연적인 부분은 논리적인 것이다. 나눔의 잣대를 말하는 〈 구획 기준 〉 이자 논리적인 기준으로서 반증 가능성은 〈 진술들간의, 즉 이론과 기초 진술들 사이의 논리적 관계 로 〉 46) 말할 수 있다. 앞에서의 검증과 반증, 더 나아가 검증가능성과 43) Popp er (1 9 34), S. 55 : Popp er (1 9 79), S. 354. 44) Popp er (1 9 34) , S. 52. 45) Popp er (1 9 34), S. 425f.
반증가능성 사이에 성립된 논리적 비대칭성을 통해서 보았듯이. 보편 진술 형태의 명제는 특칭 진술들의 일반화로 얻어질 수 없고. 언제나 특칭 진술과 모순되지도 않는다. 단지 보편 진술의 형태로 이루어진 명제는 특칭 진술에 의해 연역적으로 그 보편 진술의 거짓을 이끌어 낼 수만 있었다. 물론 이를 통해서 포퍼 자신은 전통적으로 철학의 골칫거리였던 귀납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주장할 수 있을 정 도였다• 여기서 보듯이 이 논의는 검증가능성처럼 귀납적 추론에 근거 한 논의가 아니라, 철저히 연역적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포퍼의 논의 에 나타나는 이런 특성 때문예 새먼 W. Salmon 은 연역 중심으로 이루 어지는 포퍼의 논의를 〈 연역 우월주의 deducti ve chau vini sm 〉 라고 특징 지어 부르기도 한다 .4 7)
46) Popp er (1 9 34), S. 55. 47) 새먼에 따르면 , 일반적으로 〈 중요한 철학적 문제 〉 로서 〈 귀납의 문제 〉 에 대한 포 퍼의 해결은 귀납에 대한 완벽한 반박을 포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새 먼은 〈합리적 예측〉을 위해 〈 포퍼에 의해 제시된 귀납의 문제에 대한 해결 책 이 아 주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말하고 , 과학적 설명을 위한 포퍼의 연역 , 죽 〈 설명적 연 역주의는 몇 가지의 어려움과 마주친다 〉 고 말한다. 여기서 새먼은 포퍼의 〈연역 우월주의〉에서 예측과 관련해서 〈추론적 연역주의infe m ti al deduc tivis m 〉 로 , 그리고 설명과 관련해서 〈설명적 연역주의 ex p lana t o ry deduc tivis m 〉 로 나누어 부른다. 참 조: W. Salmon, Rati on al Predict io n in Griinb aum & Salmon(1 9 88) : W. Salmon, Deductiv is m Vis ited and Revi sited in Griinb aum & Salmon(1 9 88).
포퍼의 논의에 따르면, 보편 진술의 거짓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특칭 진술들은 〈잠재 적 반증자 Falsifi kation smog lich keit en , pot e n ti al fals if ier > 이댜 여기서 말하는 〈 잠재적 반증자 〉 는 모든 가능한 〈 기초 진술 Basis sa tz , basic sen t ence 〉 이다 . 이 논의를 위해 우선 〈 기초 진술 〉 과 〈초기 진술initi al sen t ence 〉 을 구분해 보아야 한다. 우선 이론이나 법칙 의 논리적 형식에 해당하는 (x) (Px :JQ x) 를 생각해 보자• (x) (Px:J Q하 x다). 는 여당기연서히 (특Pa정 :J의Q a)a 는 에 (대~해Pa서V Q성 a립) 와하며 ~,( P그a 래• 서~Q (a P)a. 그 이Q a둘) 가과 가논리능
적으로 동치이댜 그래서 Q a 가 거짓인 경우, 즉 ~Q a 가 참인 경우, (Pa=> Q a) 는 검증될 것이다. 그러나 이론이나 법칙에 해당하는 (x) (Px =>Q x) 는 기초 진술에 해당하는 Q x 의 거짓에 의하여 참으로 판정나는 셈이 된다. 그렇다면 Q x 는 〈 검사 언명들(또는 [잠재적 반증자들])의 역 할을 할 수 없는데, 그것이 바로 기초 진술들이 감당하게끔 되어 있는 역할이라는 데 있다. 〉 48) 포퍼의 논의에서 기초 진술이란 어떤 특정의 조건 아래에서 관찰되 어 얻은 명제라는 관찰 명제를 뜻할 것이다. 이론이나 법칙이라 불리 는 보편 진술의 참을 보여 주는 기초 진술은 무한히 많다. 이와 같이 관찰 명제는 너무 광범위해서 초기 조건에 대한 단서를 필요로 한다 . 이와 달리 보편 진술의 거짓을 보여 주는 관찰 명제는 어차피 특수한 조건을 전제로 일어나기도 하지만, 굳이 초기 조건에 대한 단서를 따 로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왜냐 하면 초기 조건에 대한 관찰 명제들 에서 거짓인 관찰 명제가 나타날 때까지만 이론이나 법칙이라 불리는 보편 진술의 참은 유효하기 때문이다. 즉, 어차피 이론이나 법칙이라 불리는 보편 진술은 늘상 잠정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론의 [잠재적 반증자]들의 집합이 공집합이 아닐 때, 이론은 반증가능하다.〉 49) 〈이 론의 반증의 가능성들 〉 , 즉 〈잠재적 반증자들〉이란 바로 보편 진술의 거짓을 보여 주는 관찰 명제일 뿐이다. 따라서 포퍼의 논의에서 이론 이나 법칙에 해당하는 보편 진술이 뒤엠 P. Duhem 이나 푸앵카레 H. Po in care 가 주장하듯이 굳이 규약적이라고 규정될 이유는 없다 .50) 논리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포퍼의 논의는 뒤엠이나 푸앵카레가 말하 는 이론이나 법칙의 규약적 성격과 관련을 맺지 않는다. 뒤엠이나 푸 앵카레의 논의는 논리적 논의가 아니다. 만약 이 두 논의가 서로 비 교될 수 있으려면, 이 두 논의가 같은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48) Popj :,er (1 9 94), p. 1 37. 49) Popp er (1 9 34), S. 53. 50) 참조 : Brown(1 9 87), pp. 111-114: Popp er (1 9 94), pp. 144-145.
반증의 논리적 가능성은 말 그대로 형식 논리적 논의이다. 논리적으 로 반층가능하다는 것과 경험적으로 반증될 수 있다는 것은 다르다. 죽, 논리적인 영역과 경험적인 영역이 꼭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 렇다. 그래서 논리적으로는 반증가능하나 경험적으로 반증될 수 없는 경우도 일어날 수 있으며, 또한 경험적으로 반증가능한 것이 논리적으 로 반증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연역적으로 이론과 모순되지 않는 관찰 명제는 많이 찾을 수 있겠으나, 이 상황이 그 이론의 참을 말하기 위해 결코 긍정적이지는 않다 . 왜냐 하면 이론과 모순되지 않 는 관찰 명제의 수많음이 이론과 모순되는 관찰 명제의 없음을 꼭 보 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론과 모순되는 관찰 명제가 없을 수는 있겠으나, 역설적으로 만에 하나 이론과 모순되는 관찰 명제가 있다면 그 이론의 참과 거짓을 말하기에는 훨씬 수월하다. 참에 대해 말하기 위해, 참만큼이나 거짓도 중요하다 . 이는 거짓을 통해서 참을 말하려는 포퍼의 역설적인 태도이다. 아마도 여기서 포퍼가 말하는 논리적 기준으로서 반증가능성에 대 한 중요한 비판으로 고려될 수 있는 한 가지는 뒤엠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이론이나 법칙의 해석에서 이론이나 법칙의 규약적 성격을 말 하는 규약론에 관한 것이 아니라, 특히 뒤엠의 논의에서 나타나는 이 론 물리학과 실험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이 논의는 보조 가설이 사 용된 시험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이다. 이는 다움과 같은 방식으로 일어날 것이다.
(H • A) ::, I
이는 논리적으로 후건 부정식의 타당한 논증이다• 그리고 이 논증의
결론인 <~ (H • A) 〉 는 논리적으로 (~H V ~A) 와 동치이다 . 원래는 H 의 반층을 위해 A 를 끌어들였지만, 여기서 H 가 반증되었는지 아니 면 A 가 반증되었는지에 대해서 말하기 힘든 상황에 빠져 버리고 만 다. 뒤엠의 말에 따르면, 〈 물리학자가 실험을 통해서 시험할 수 있는 것은 고립된 가설 하나가 아니라 가설 전체이다. 〉 51) 즉, 위의 상황에 서 <(H • A) 〉 가 부정된 것이지, 〈 H 〉 와 〈 A 〉 의 한 가지가 부정된 것이 라고 볼 수 없다. 그래서 여기서 보자면 논리적으로 반증가능성을 주 장하는 것이 힘들어 보인다. 이 상황에서 뒤엠의 반론은 분명 포퍼에 게 아주 심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겉으로 드러난 이에 대한 포퍼 의 대응은 아주 미미해 보이거나 아주 소극적이다. 심지어 〈 보조 가 설을 잠정적으로 문제점을 안고 있지 않은 배경 지식에 포함시킨다면 뒤엠의 문제가 가설의 반증을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배경 지식 자체를 타당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포퍼의 반증가능성의 원리는 뒤엠의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52) 다 시 말해 이는 배경 지식일 보조 가설이 참이라야 가설의 반증 여부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라면, 뒤엠은 개별 과학의 경험적 방법에 관한 논의를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뒤엠 의 논의는 반증가능성의 논리적 논의가 아닌, 반증에서 일어나는 경험 적 차원의 논의이다. 즉 , 반증가능성은 논리적 차원의 논의이고 , 반증 은 경험적 차원의 논의이다. 또한 뒤엠이 반증가능성으로서 반증의 논 리적 가능성에서 일어날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라면, 뒤엠은 이론 물리 학과 실험의 관계에서 경쟁 가설들 사이의 〈결정적 실험 exp erime ntu m cruc is 〉 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에 반대해야 한다. 더 나아가 뒤엠은 바 로 이 〈 결정적 실험〉에 근거해서 물리학적 가설이 참으로 될 수 있다 는 것에도 반대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논의에 충실해 보일 것이다. 5521)) D신u중h섭em(1( 1 999 524)),, ppp. , 118834. -6.
그렇지 않으면, 뒤엠의 논의는 물리학에서 그러한 실험의 가능성을 부 정하는 것이다. 포퍼가 드는 이에 대한 이유로는. 뒤엠이 〈 [결정적 실 험]들을 검증들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 53) 또 하나는 〈 결정적 실험 〉 에 대한 뒤엠의 이해에서 찾을 수 있다. 죽, 뒤엠은 포퍼의 논의에 적용 될 〈결정적 실험 〉 을 〈불합리하게 ad-absurdwn> 이끓으로 이해한다. 뒤 엠이 〈결정적 실험〉과 관련해서 굳이 이를 〈‘불합리하게' 이끓 〉 으로 보려는 이유는, 반중이나 반증가능성의 논의에서 거짓을 중심으로 전 개되는 익숙지 않은 논의 때문이다. 즉, 그때까지의 모든 논의는 항상 진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 따라서 거짓을 중심으로 한 포퍼의 논의 도 이미 익숙해져 버린 논의 방식인, 진리 중심의 논의로 보려는 것 은 아주 자연스러울 것이다 . 54)
53) Popp er( 1934) , S. 47f. 54) 이 논의는 진리를 중심으로 보는가. 거 짓 을 중심으로 보는가 하는 차이일 뿐이 다. 그래서 이 논의는 두 가지 중 어느 하나의 낫고 못함을 따질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상황은 핸슨 N.Hanson 의 논의로 유명해진 행태심리학 Ges ta l t Ps y cholo gy에서 사용되는 그립과 잘 비교될 수 있다. 잘 알려졌듯이 이 그림들은 보는 사람의 보 는 방식에 따라 두 가지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한 그림을 보고, 어떤 사람은 어린 아이가 서로 얼굴을 마주 쳐다보고 있다고 말하거나 다른 어떤 사람은 멋진 희랍 식의 장식대라고 말한다. 또는 어떤 그림을 보며. 토끼라고 말하거나 오리라고 말 하기도 한다. 이런 그립을 보면서 그 어느 하나라고 보는 것이 다른 것으로 보는 55것) 보Po다pp e낫r (거1 9나 34 못), 하S.다 2고22 .말 그할 수밖는에 도없 다이. 런 생각은 같은 책의 s. 4 7, 54 등에서도 찾을 수 있다.
포퍼의 논의가 물론 보조 가설을 이용한 뒤엠의 비판에 직접적으로 관련맺지는 않는다. 뒤엠과 달리, 포퍼는 다음과 같이 〈 결정적 실험 〉 을 결정적으로 반증하는 실험으로 이해한다 . [포퍼]는 결정적 실험에서 한 이론을 (가능하다면) 반박하는 실험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특히 두 경쟁 이론들 사이의 결정을 반박을 통해서 (적 어도) 하나로부터 다른 하나롤 이끌어 내는 것으로 이해한다 .55)
포퍼의 전략은 모순을 해결한다기보다는 그 모순을 피하려는 것이 다. 사실상 포퍼의 이런 태도는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너무나 뻔한 얘기겠지만 . 포퍼의 주장은 여전히 반증과 반증가능성이기 때문이다. 〈 결정적 실험 〉 을 검증을 위한 것으로 이해하는가, 반증을 위한 것으 로 이해하는가 하는 선택의 문제일 수도 있다. 이 점에서 〈결정적 실 험 〉 을 둘러싼 포퍼와 뒤엠의 차이는 뚜렷하다 . 어쨌거나 경험적 방법 으로서의 반증에 대한 논리적 논의가 반증가능성인 셈이다 . 그렇다고 해서 이것으로 반증이 과학을 위한 경험적 방법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5 6) 여기서 다시 한번 강조할 것은 경험적 차원의 논의 인 반증과 논리적(이고 방법론적) 차원의 논의인 반증가능성의 차이이다.
56) 이에 대한 논의는 앞의 3 절을 볼 것.
4.2 방법론적인 것으로서 〈 반증가능성 〉 반증가능성의 논의를 위한 필연적인 부분은 논리적인 것이다 . 그러 나 나눔의 잣대에 관한 논의는 구획의 문제를 위해 다른 논의를 더 필요로 한다. 포퍼가 이 논의를 위해 사용하는 표현은 드물게는 〈방 법 론적 결단 meth o dolog isch e Beschltis s e 또는 meth o dolog isc he Fests e t- zung en , meth o dolog ical de ci s i on 〉 이고. 주로 쓰이는 것으로는 〈규약으로 서 방법 론적 규칙 meth o dolog isc hes Rege l n als Fests e tz unge n, meth o dolo- gical rules as conven ti ons 〉이다. 이러한 새로운 논의가 필요한 것은 경 험 과학을 위해서 꼭 논리적으로 말하기 힘든 부분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퍼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이것을 〈경험 과 학 〉 이라는 놀이의 놀이 규칙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논리학의 규칙과 구분된다.〉 57) 이에 대한 조금 더 자세한 포퍼 자신 의 논의는 다음과 같다.
57) Popp er (l 93 4) , S. 25.
이것과 순수 논리적 연구를 같은 차원에 놓는 것이 아주 적절하지 않으 리라는 것을 그런 방법론적 규칙에 대한 두 가지의 간단한 보기는 보여 준다. (1) 과학이라는 놀이는 근본적으로 끝이 없다. 어느 날 과학적 진술을 계속해서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검증하려는 사람은 놀이룰 그 만두어야 한다 . (2) 한번 세워지고 용인된 가설은 〈근거 없이〉 포기되어서는 안 된다. …… 58)
58) Popp er (l 93 4), S. 26. 인용문의 〈용인된 가설 bew ahrt e H yp o th esen 〉이란 구절의 〈용안〉이, 이 책의 영 어 번역판을 우리말로 옮긴 박우석(1 994) 에는 〈방증(傍證)〉이란 단어로 사용됐다. 그러나 이 책을 위해 함께 토론하는 과정에서 〈방증〉이나 〈확증〉이란 용어 대신 에 〈용인〉을 우선 사용하기로 했다. 이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이 글의 5 절, 특히 <5.2 . B ewahrung : 용인과 입증〉을 참조할 것.
이처럼 포퍼는 〈논리학의 규칙〉과는 분명히 다른 부분인 〈방법론적 규칙〉을 보았다. 즉, 이 부분은 반증가능성의 방법론적 논의라고 이름 지을 수 있다. 사실 앞에서도 이미 보았지만, 포퍼의 반증가능성에 대한 강력한 비 판으로 보이는 규약론은 이미 포퍼 자신에 의해 제기된 부분이다. 이 른바 포퍼가 말하는 〈규약론적 책략〉 때문에 과학의 이론이나 법칙은 결코 반증가능하지 않다. 왜냐 하면 규약론은 기본적으로 자연과학의 이론이나 법칙은 관찰을 통해서 반증가능하지 않다고 전제하기 때문 이다. 굳이 자연과학의 영역에서 이론이나 법칙의 반증이나 반증가능 성을 피하기 위해 세운 입장이라면, 규약론적 책략에 따른 결론은 분 명하다. 즉, 〈규약론적 견해에 따라 이론 체계를 반증가능한 것과 반 증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나눌 수 없다• …… 그래서 반증가능성의 기 준은 적절한 구획 기준이 아닐 것이다.〉 59) 그러나 포퍼는 이에 대해
59) 이에 대한 포퍼의 세부적인 논위는 특히 다음을 볼 것: Popp e r(l 93 4), S. 47ff .
규약론적으로 〈 규약론적 책략 〉 을 간단히 무시해 버린다 . 죽, 〈 우리는 규약론을 단지 결단을 통해서 피할 수 있다. 우리는 그 방법을 사용하 지 않기를 이런 체계가 위협받는 경우에라도 규약론적 책략을 통해서 벗어나지 않기를 결정한다. 〉 60) 그리고 자신의 방법론적인 것으로서의 반증가능성을 규약론과 구분하기 위해서 그는 〈 방법론적 결단 〉 또는 〈 규약으로서 방법론적 규칙 〉 을 내세웠다. 〈 방법론적 결단 〉 이나 〈 규약으로서 방법론적 규칙 〉 을 위해 〈 우리는 가장 높은 단계의 규칙을, 즉 여타의 방법론적 규칙들의 포괄적 관점 을 위한 규범, 그래서 가장 높은 유형의 규칙을 세운다. 〉 61) 이 규칙은 방법론적인 것으로서 반증가능성을 〈 규약론적 전략 〉 으로부터 지켜 낸 다. 왜냐 하면 〈 규약론적 책략 〉 의 규약이란 말 그대로 약속 또는 확 정을 말하겠지만, 포퍼의 〈 가장 높은 유형의 규칙 〉 이란 단순히 기술 적 desc ripti ve 이 아닌, 규범적 nonna ti ve 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 양한 모습으로 있는 개별적 방법들의 성격을 규정짓고. 이를 통해 개 별적 방법을 사용하는 개별 과학의 과학적 성격을 파악하는 것 때문 이기도 하다 .62) 규약이란 상황에 따라 약속을 정한 사람들의 동의로 변경 가능할 수 있겠지만, 규범적 성격을 지닌 포퍼의 〈가장 높은 유 형의 규칙 〉 이란 특정한 이해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60) Popp e r(1 9 34), S. 50. 61 ) Pop pe r(1 9 34) , S. 26. 62) 이런 맥락에서 포퍼는 〈 방법론 Me th odolo gi e 〉 과 〈방법-론 Me th oden-Lehre 〉을 구 분한다 . 즉, 앞의 방법론은 개별 경험 과학들 각각에 해당하는 방법에 대한 개별 과학의 구체적인 논의 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뒤의 〈 방법 - 론〉은 방법론의 논의들 을 위한 것이며, 개별 과학의 경험적 방법들에 대한 메타 차원의 논의이다. 이런 의미에서 포퍼는 〈 방법-론 〉 의 방법을 〈 방법론적 방법〉이라고 하며, 〈특별히 인식 론적〉이라고 규정한다 .
포퍼가 내세우는 반증가능성의 방법론적 논의는 스스로도 밝히듯이 아주 불분명해 보이기까지 한다. 아마도 그 이유는 방법론을 더 이상 논리적 차원에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론과 같은 논의 선상에
놓으면서 일어나는 혼란 때문이다. 그러나 포퍼에게는 이 논의가 아주 자연스러 운 상황이 다 .63)
63) 이와 관련해서 퀼페 O.K i.i l pe와 관계된 철학사적 논의는 박은진(1 993) 에 간략하 게 언급했다. 조금 더 상세한 것은 Park (l 996) 을 참조할 것 .
인식론은 경험 과학의 일반적 방법론이다. 인식론은 경험 과학의 방법 을 단순히 기술적(記述的)으로 확정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 과학의 방법 을 설명하려고, 즉 최소한의 원칙 혹은 정의에서 연역적으로 이끌어 내려 고 한다. 그래서 인식론은 방법-론이다 .64) 그렇기는 하지만 여기서 아주 분명한 한 가지는 논리실증주의가 문 장의 의미 유무로 과학의 특징을 말했던 반면, 포퍼는 자신의 〈방법 론〉을 통해서 과학의, 더 정확히는 경험 과학의 고유한 특징을 말하 고자 한다. 포퍼가 말하는 〈방법론적 결단은…… ‘경험적 방법'을 특 징짓고, … ••• 과학에 대한 관점을 특징짓는다.〉 65) 결코 전칭문의 형태 를 띤 보편 명제의 확정이나 특칭문의 형태인 기초 진술의 확정에 의 해서가 아니라, 오직 방법에 의해서이다. 다시 말해 방법론적 규칙으 로 경험 과학을 규정지으려 한다. 따라서 〈방법론적 결단〉이나 〈규약 으로서 방법론적 규칙〉으로 말하는 방법론적인 것은 반증의 경험적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반증가능성의 방법론적 영역에 속한다. 이것은 어떤 구체적인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 한다. 우리는 최상의 규칙을. 그 밖의 방법론적 규칙의 결단을 파악하기 위한 규범을 내세운다. 또한 최고 유형의 규칙, 죽 과학적 과정의 상이한 규정 을 과학에 쓰이는 문장의 있음직한 반증이 방해 되지 않도록 처 리한다 .66)
64) Popp er (l 97 9), S. 423. 65) Popp er (l 97 9), S. 359. 66) Popp er (l 93 4) S. 26.
적어도 방법론적 규칙에서 논리적으로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 한, 반증가능성은 과학과 과학 아닌 것을 나누는 잣대 노릇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 하면 반증가능성은 순수하게 논리적인 것만을 말하 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포퍼의 반증가능성은 방법론적 인 것으로서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 방법론적 규칙은 나눔 의 잣대의 적용 가능성을 확실하게 내세우기 위하여 전개되었다. 죽, 방법론적 규칙의 성립은 단지 더 높은 유형의 규칙을 통해서 세워졌 다. 〉 6 7) 여기서 포퍼의 방법론적인 것으로서 반증가능성은 포퍼의 논 의에서 오히려 가장 의미심장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논의가 반증 가능성의 논리적인 부분보다도 훨씬 덜 논리적일는지 모르나, 포퍼는 논리적으로 규명되지 않는 것을 굳이 논외의 것으로 내던져 놓지 않 는다. 적어도 과학적 행위에 반논리적이 아니라 비논리적인 것이 있다 고 해서 그것을 비과학적이라고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런 이유로 포퍼는 방법론적인 것으로서 반증가능성을 방법론적 규칙으로 파악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 이제 방법론적 규칙은 분명히 과학적 태 도로 주어졌다. 〉 68) 여기서 말하는 포퍼의 〈과학적 태도〉란 〈방법-론〉 의 논의 대상이자, 인식론적 논의 대상이다. 또한 포퍼의 논의에서 방 법론과 인식론은 보조를 맞춰 다루어진다. 5 과학에서 〈진리〉의 문제 진리라는 것이, 특히 과학에서 진리란 고대 이래 늘 추구되었고, 그 런만큼 많은 그리고 여러 가지의 문제를 낳았다. 물론 굳이 이에 대 한 논의가 필요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1900 년을 전후해서 시작된 근대 의 과학에서 현대의 과학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다시금 진리에 대한 67) Popp er (1 9 34), S. 26. 68) Popp er (1 9 79), S. 393.
논의를 새롭게 하도록 만들었다. 이에 비엔나 학파의 논리실증주의는 그 상황에서 진리를 말할 수 있을 마땅한 방도를 찾고자 했던 셈이다. 그리고 그들의 〈검증 〉 과 〈 검증가능성 〉 은 아주 참신했으나, 포퍼는 논 리실증주의의 참신함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문제점을 드러내 보여 주 었다. 곰곰이 따져 본다면. 포퍼가 지적했던 것은 논리실증주의에서 말하 는 진리 개념과 관련된 문제였다 . 논리실증주의자들은 가설로 쓰이는 부분의 진리를 미리 전제했고, 이것의 참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보여 주고자 했다. 그러나 여기서 나타나는 〈검증〉과 〈 검증가능성 〉 의 논리적인 문제점은 그들로 하여금 〈입증 〉 과 〈 입증가능성 〉 이란 용어로 바꾸어 나타낼 수 있게 했다. 그에 대한 포퍼의 대안이 또 나름대로 문제를 안고 있다 하더라도 그렇다. 그리고 자신들의 입장을 〈 논리실 증주의 log ica l p os itivi sm 〉에서 〈논리경험주의 log ical em pirici sm 〉로 부 르게 되었다. 적어도 그 〈신실증주의 neo- p os itivi sm 〉 의 꽉 짜인 이념이 나름의 방식에서 조금쯤 느슨해진 것이었다. 즉, 자연과학의 이론은 검증가능하다는 뜻에서 곧바로 참이었다면. 이제 자연과학의 이론은 경험적으로 입증가능하다는 뜻에서 참일 개연성만을 말할 수 있게 되 었다. 이제 진리에서도 개연성을 말한다. 한마디로 진리를 말하는 것 이 아니라, 개연적 진리를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 서 우선 진리와 관련해서 그들이 가졌던 생각의 조각들을 되짚어 보 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그들의 논의에서 중요한 〈입증〉이니 〈 용인 〉 이니, 그런 것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들의 논의에서 진리와 관련된 부분은 얼핏 작아 보일 수 도 있다 . 그러나 사실은 전통적으로 말해 왔던 〈진리〉리는· 개념을 예 전대로 말하기 힘들어져 버린 상황에서 그들은 〈진리〉를 다르게 말하 고 싶어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그들의 논의는 여전히 진리와 밀접하게 이어져 있다 .
5.1 포퍼의 진리에 대한 이해 진리와 관련해서 논리실증주의자들과 포퍼의 논의는 아주 심하게 뒤엉켜 있다. 사실 그들의 논의에서 진리에 관한 부분은 아주 중요하 기는 하지만. 다른 논의에 비해 덜 두드러져 보인다. 겉으로 드러난 부분은 검증-검증가능성이나 반증-반증가능성이라는 방법론적 용어와 관련되어 있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논리실증주의는 물론이고, 또한 거짓을 문제삼은 철학자라고 평가받고 있기야 하지만 포퍼의 논의는 진리와 밀접하게. 그러나 아주 간접적인 방식으로 관련을 맺는다. 논리실증주의는 현대 자연과학의 논의가 자연 세계에 대한 진정한 모습을. 자연 세계의 참모습을 보여 준다고 파악했다. 여기서 말하는 자연 세계의 진정한 모습이나 참모습이란, 어떻게 나타났든 간에 자연 세계를 제대로 그려 낸 진리를 말한다. 그 당시에 나타났던 자연과학 의 이론이나 법칙 같은 것들은 곧바로 진리로 여겨질 수밖에 없던 상 황이었다. 그만큼 20 세기를 전후한 현대 자연과학의 논의는 엄청났다. 그래서 그들은 현대 자연과학이 진리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으로 검 증과 검증가능성을 검토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당연히 진리에 대 해서 말할 수 있으리라고 보았다 . 포퍼의 논의도 그 출발점에서 이와 다를 바 없다 . 자신의 『탐구의 논리』라고 이름붙여질 책으로 골머리를 썩이던 포퍼는 한 편지에 다 음과 같이 털어놓고 있다. 나의 책은 인식론이고. 더 자세히는 방법론이다. 이 책은 시대의 산물이 고. 위기의, 굳이 말하자면 무엇보다도 물리학의 산물이다. 이 책은 위기 의 영속성을 주장한다. 만약 그것이 옳다면. 위기는 고도로 발전된 합리적 과학의 정상 상태 이 다 .69) 69) Popp er (1 9 79), S. 443 Fn.5.
그 당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나 이론 물리학 영역에서 나타 난 플랑크 M. Plank 의 양자론의 논의로 상징되는 자연과학, 특히 물리 학의 엄청난 발전에서 포퍼는 놀라움이나 경탄 대신에 〈위기〉를 보았 다. 그리고 발전은 이 〈위기〉를 넘어서는 데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래서 위기를 넘어서는 데에 필요한 것은 나타난 것의 진리를 확인 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끄집어 내는 방법이었다. 그렇다고 이것이 진리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진리를 말하는 것은 결국 사후의 논의로 이미 나타난 것의 진리를 확인하는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달리 포퍼는 그것의 진리를 말하기 위해서 먼저 그것의 거짓을 말할 수 있 는 방법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이것은 아주 역설적인 상황이다. 포퍼는 『탐구의 논리. 자연과학의 방법론에로』 70) 에서 진리를 흔히 쓰 는 방식대로 말하지 않고 굳이 다르게 말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70) 이 책은 포퍼가 비판했던 논리실증주의의 발표 무대였던
어떤 언명에 대해 그것이 어제는 완벽하게 참이었으나 오늘은 거짓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통상적인 어법이 아니다. 만일 오늘 우리가 거짓이 라 평가하는 어떤 언명을 어제 우리가 참으로 평가했다면, 우리는 오늘 적암묵으로적 으거로짓 어_—제 이우었리으가나 그 우릇리되었가다 잘고,못 하그여 언〈명그은것 을어 참제으도로 거 취짓급_했었무다시〉간고 주장하는 것이 다 .71) 이런 상황은 참으로 난처하다 . 흔히 하듯이 진리를 말할 때. 같은 것에 대해 그 참과 거짓이 완전히 뒤바뀌는 경우 그 이유를 과연 어
71 ) Pop per (1 9 94), p. 376.
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런 상황은 오늘날 특히 과학사의 논의에서 볼 수 있듯이 아주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단지 그 무엇에 대해서 〈 이것은 참이다 〉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참으로 여 기거나 또는 〈 잘못하여 ‘그것을 참으로 취급했었다' 〉 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 무엇의 참이나 거짓을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포퍼는 〈 wahr( tru e) 〉 와 〈 Wahrhe it(truth) 〉 란 표현을 더 이상 쓰려고 하지 않는 다. 그래서 포퍼의 〈 과학의 논리에서는 ‘참'과 ‘거짓'이란 개념들의 사 용을 피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것들의 자리는 도출 가능성 관계들에 의해 대신될 수 있다. 〉 72) 포퍼는 〈 인식론의 두 가지 근본 문제〉 가운데 하나로 〈귀납의 문제〉 룰 든다. 그에게 이것이 문제인 이유는 〈귀납적 추리가 비록 ‘엄격히 타당'하지는 않으나 어느 정도의 ‘신빙성’ 또는 ‘개연성'울 가질 수 있다 〉 거나 〈 귀납적 추리들은 ‘개연적 추리들'이다〉라는 데에 있다. 바 로 이어서 포퍼는 다음의 라이헨바흐의 말을 인용한다 .73) 우리는 귀납의 원리를 그에 의해 과학이 진리에 근거하여 결정하는 수단 으로 기술해 왔다 . 더 정확하게는 그것이 확률에 근거하여 결정하는 데 기여 한다고 말해야 한다. 왜냐 하면 그것은 진리와 허위 자체에 도달하기 위해 과학에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적 언명들은 단지 연속적인 확률도 를 얻을 수 있을 뿐이고 진리와 허위는 성취 불가능한 상하의 극한인 것이다.
72) Popp er (l 99 4), p. 375. 73) Popp er (l 99 4), p. 32 에서 재인용.
여기서 보듯이 과학적 언명의 참값 ST 는 0 < ST 三 1 이 아니라. O < sT < 1 이다. 결국 귀납에 기초한 과학적 언명은 언명의 참, 거짓 을 전혀 말할 수 없게 되었다 .74) 물론 귀납적 방법에 기초한 논리실
74) 이 논의와 관련해서 확률에 대한 포퍼의 해석은 Po ppe r(l994) 의 〈제 8 장확률〉을 볼것 .
증주의는 그 참값을 O< S r< 1 에 둔 과학적 언명의 진 리값 l 을 말하기 위해 검증을 말하기도 했다 . 다시 말해 ST=l 은 검증을 통해서 가능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래 봤자 결국 검증된, 검증 절차 롤 거친 과학적 언명의 참값, ST 士 1 이다. 결국 포퍼의 생각은 〈 ‘참'과 ‘거짓'이란 개념들의 사용을 피하는 것 〉 이었고. 그래서 〈 wahr 〉 와
75) 〈 bew alut 〉 의 사전적 정의는 〈 적절한 것으로|적당한 것으로 증명된 〉 정도이다 . 이처럼 〈 bew alut 〉 와 〈 Bewahrun g 〉 은 참 . 거짓과는 다른 용어로 . 참이란 단어 를 굳 이 피하려는 포퍼의 의도를 잘 보여 준다.
5.2 : 〈용인(容認) 〉 과 〈 입증(立證) 〉 76) 이제 새로 도입된 이 용어는 포퍼의 논의에서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진리라는 용어를 애써 피하려는 그의 생각은 아주 생소할 수밖에 없다.
76) 〈 Bewahrun g〉이란 포퍼의 용어를 Po ppe r(I959) 를 우리말로 옮긴 박우석은 Popp e r (1 994) 에서 〈 방증( 傍證 ) 〉 이란 말로 사용했다 . 그러나 여기서는 포퍼의
우선 진리와 용인에 대한 차이를 보여 주는 그 자신의 글귀를 보자. 우리는 진리와 [용인]의 차이룰 아주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한 언명에 대해 그것이 그 자체로 〈[용인]〉된다고 (그것이 〈참〉이라고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식으로) 단순히 말할 수 없다. 우리는 들다여만진 그 것체이계 —어—떤 에[ 기관초하 진여술 ][들용의인 ]체된계다 고_ —말 할특 정수 시있점을에 따이름르이기다.까 지〈 한받 아이 론이 어제까지 받은 [용인]〉은 〈한 이론이 오늘까지 받은 [용인]〉과 논리 적으로 동일하지 않다.…… [용인]은 그러므로 〈진리치〉가 아니다. 즉, 그것은 〈참〉과 〈거짓〉의 개 념들과…… 동렬에 놓일 수 없다.…… 7 7) 포퍼의 생각은 더 이상 과학적 지식의 진리를 말하기 어려워진 시 점에서 굳이 진리라는 개념을 살리려고 하지롤 않는다. 그렇다고 경험 적 차원의 과학적 지식을 버리려고 하지도 않는다. 실제로 논리실증주 의자들은 참값 1 이 될 수 없는 과학적 지식을 1 의 참값을 가진 과학 적 지식으로 만들려고 했다. 물론 여기서 논리적으로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도가 쓰이기는 했지만, 그 시작부터 가능할 수 없었다• 포 퍼의 경우도 논리적으로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도를 사 용하고는 있지만, 결코 진리를 말하지 않는다. 포퍼에게 있어서 결코 〈[용인]은…… ‘진리치'가 아니다〉. 다시 말해 〈[포퍼]는 [용인]의 개 념과 진리의 개념을 동일시하는 것은 결코 ‘유용'하지 않으리라고 생 각한다.〉 78) 더 나아가 〈용인〉의 개념은 보통 그렇듯이 〈참〉(이나 참 을 중심으로 따지는 〈검증〉)과 관련맺는 것이 아니라, 〈거짓〉(이나 거짓을 중심으로 따지는 〈반증〉)과 관련을 맺는다. 포퍼의 〈용인〉이란 개념은 〈한 이론은 그것이 더 잘 검사 가능 7787)) • PPoopppp eerr ((11 99 9944)) ,, pp,p , 373776. ~7.
[t es ta ble] 할수록 더 잘 용인될 수 있다 〉 79) 는 점에서 자칫 오해를 일으 킬 수 있었다. 즉, 말 그대로 〈 더 잘 검사 가능 〉 한 이론은 그 이론의 참인 특성 때문에 참일 이론의 참을 보증해 주는 근거로 생각됐던 것 이다. 그러나 여기서 〈더 잘 검사 가능할수록 더 잘 용인될 수 있다 〉 는 말은 포퍼에게는 다르게 이해된다. 자세히 말하자면 참일 이론이라 고 할지라도 〈참인〉 이론이 아니라 단지 〈참일 〉 이론에 불과하므로, 〈더 잘 검사 가능〉한 이론일수록 더 잘 검사 가능하므로 바로 〈 거짓 인〉 이론으로 더 잘 판명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논의는 아주 역설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이 개념은 논리실증주의의 주장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켜 약간의 수정으로 이어 졌고, 그래서 반증과 용인과 관련된 포퍼의 논의를 백지화시킬 수 있 을 듯 보이기도 했다. 물론 이와 관련된 그 당시의 학문 외적인 상황 은 검증을 주장하는 논리실증주의가 주류였던 반면에, 포퍼의 주장은 그들의 논의에 대한 본질적인 첫 반론이었다는 점을 고려해야만 할 것이다. 당연히 논리실증주의자들에게 포퍼의 논의가 어느 정도나마 어색하지만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카르납은 자신들의 기본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주장 강도 를 완화시켰다. 여기서 나타난 카르납의 변화는 포퍼의 〈용인 Bewahrun g 〉 이란 개념 이 나타남으로써 가능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검증이나 검증가능성이 갖는 문제가 적어도 카르납이 부분적으로 포퍼의 〈 용인〉을 받아들여 새롭게 내세운 〈입증〉과 〈입증가능성〉이란 개념으로 누그러질 수 있 으리라 여겨졌다. 왜냐 하면 포퍼가 말하는 〈반중〉과 〈용인 〉 의 관계 를 카르납은 〈검증〉과 〈입증〉의 관계와 다를 바가 없으리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르납도 포퍼의 〈용인〉이란 개념을 적극 수용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카르납이 〈입증〉 개념을 포퍼가 썼던 그대로 받 79) Popp er (1 9 94) , p. 368.
아들인 것은 아니다. 그래서 특히 이론적으로 논리실증주의의 논의를 실질적으로 주도하던 카르납은 검증가능성과 의미를 말하는 대신에 〈 시험 가능성 Tes ta b ility과 의미 〉 를 문제삼게 되었다 . 그러나 여전히 의미가 그들의 논의 한가운데 놓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제는 〈 검증의 문제가 아니라 입증의 문제에 대해서 언급한다. 〉 80) 사실 논리실증주의를 위시한 이론이나 과학적 지식에 대한 상식적 견해는 철저히 귀납적 원리에 기초한 것으로 과학적 지식의 참을 확 률을 이용해서 개연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라이헨바 흐는 확률론의 상대 빈도를 이용해 확증도를 말할 수 있을 것으로까 지 여겼다. 이와 달리 카르납은 다행스럽게도 포퍼의 논의와 마찬가지 로 〈 사건들의 확률 〉 을 말하는 확률론의 빈도에 따른 개연성과 〈가설 의 확률 〉 을 말하는 확증도를 구분했다 .81) 그러나 포퍼는 〈반증〉과 〈 반증가능성 〉 을 이용해서 적극 적 으로, 또한 이 〈용인 〉 이란 용어로 논 리실증주의의 일반적인 견해에 반대했다. 이에 대한 포퍼의 생각은 다 음을 통해서 분명히 볼 수 있다.
80) Carnap (19 36), p. 20. 81) 이에 관한 포퍼의 논의는 특 히 다음을 볼 것: Po ppe r(1994) 의 80 절 , 81 절, Popp er (1 9 83) Pa rt II 의 Ch. 1 과 Ch. 3. 카르납의 논의는 헴펠에 의해 Stu dies in the Log ic of Con finna tio n (in Readin g s in the Phil o sop hy of Sc ien ce, ed. B.A . Brody, 1970) 에서 처음으로 세 련 되게 다듬어지기 시작했다 . 이에 대한 세부적인 논의는 제 1 장을 참조할 것 .
한 차례의 긍정적 결정은 다만 일시적으로 그 이론을 지지해 줄 수 있 울 뿐이라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왜냐 하면 뒤이어 내려진 부정적인 결 정들이 언제든지 그것들을 뒤집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론이 상세하고도 가혹한 검사들을 견뎌 내고 과학적 진보의 과정에서 다론 이 론들에 의해 대치되지 않는 한 , 우리는…… 그것이 과거의 경험에 의해 〈[용인]되었다 corrobora t ed 〉고 말할 수 있다 . 82)
82) Popp er (1 9 94), p. 38.
포퍼의 견해로는 논리실증주의의 논의란 〈 일시 적 으로 그 이론을 지 지해 줄 수 있을 〉 뿐이나, 그들은 〈 그 이론 〉 을 참이라고 잘못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그 대신에 포퍼는 〈 그 이론 〉 을 〈 과거의 경험에 의해 [용인]되었다 corrobora t ed 고 〉 ( 〈 적절한 것으로|적당한 것으로 증명된 〉 것이라고) 표현한다. 물론 포퍼의 경우, 〈 한 이론의 [용인]도를 평가함에 있어서 우리는 그것의 [반증]의 정도를 고려에 넣는다. 한 이론은 그것이 더 잘 검사 가능[t es ta ble] 할수록 더 잘 [용인]될 수 있다 〉 83) 여기서 검사 가능성의 높음이 논리실증주의의 경우에는 검증 가능성이나 입증가능성의 높음, 죽 참일 가능성이 높음을 말한다. 그리고 이 논의는 참값을 따지는 논의로 나아갈 여지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포퍼에게 있어서 검사 가능성의 높음은 용인 가능성의 높음, 즉 거짓일 가능성의 높음이다. 과학적 지식이 거짓일 가능성이 높더라도, 죽 반증가능성이 높더라도 반증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적절한 것으로|적당한 것으로 증명된 〉 것 일 뿐이며, 〈용인된〉 것일 뿐이다. 이처럼 포퍼의 〈용인 〉 은 이론이나 과학적 지식에서 전략적으로 그것들의 참을 직접 거론하지 않는다. 그 렇다면 이론이나 과학적 지식이라는 시험 대상의 시험 가능성이나 반 증가능성이 높을수록, 그 대상의 용인 가능성도 높을 수밖에 없을 것 이다. 앞에서 반증을 말하면서 아주 역설적이라고 했듯이 , 이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포퍼의 경우, 이론이나 과학적 지식은 참되어 참일 여지가 많다는 것이 아니라, 반증으로 거짓으로 판정되어 거짓일 여지가 많다는 것이 다. 그래서 이론이나 과학적 지식은 용인될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아 주 단순하게 말해서 과학적 지식이 반증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그 과 학적 지식이 많이 다루어질 가능성을 말한다. 그리고 바로 이 과학적 지식이 반증되어 더 이상 다루어질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83) Popp er (1 9 94), p, 368.
만약 이 지식이 반증되지 않은 채로 남게 될 경우 , 이 과학적 지식은 〈 적절한 것으로|적당한 것으로 증명된 〉 것으로, 즉 포퍼의 용어로 〈 용 인되어 〉 남을 것이댜 그리고 〈 용인되어 〉 남은 그 과학적 지식은 계 속 논의의 대상으로 다루어질 것이다. 따라서 포퍼가 말하는 〈 반증가 능성 의 정 도 Falsif izie rb arkeits grad > 나 <시 험 가능성 의 정 도 Grad der Prufb a rkeit, deg ree of tes ta b ili ty> , 그 리고 〈 용인의 정도 Bewahrungs g r ad , degr ee of corrobora ti on 〉 는 서로 엇갈릴 것이다. 포퍼는 반증이나 반증 가능성이란 용어로 거짓을 내세워 말하기는 하지만, 아주 우회적인 방 식으로 참을 보여 주려는 시도로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포퍼가 진리 의 가능성을 굳이 부정하지 않는 데서 그렇다. 또한 포퍼 자신의 학 문에 대한 굳은 신념을 보여 주는 『과학적 발견의 논리』에 실린, 〈과 학의 도정 〉 이라고 이름붙여진 맨 마지막 절에 이런 구절이 있다. [과학]이 진리도 확률도 성취할 수 없다 하더라도. 지식에 대한. 분투와 진리의 탐구는 여전히 과학적 발견의 가장 강한 동기이다.…… 과학자를 만드는 것은 [과학자]의 지식과 반박 불가능한 진리의 소유가 아니라 [과 학자]의 불굴의. 그리고 앞뒤를 헤아리지 않는 비판적 진리의 추구이기 때 문이다 .84) 이렇게 포퍼는 진리와 관련을 맺고자 한다. 진리를 내세워 말하지 않을 뿐이다. 이제 카르납도 한 발 양보해서 〈검증〉 대신 확률을 끌어들여 논의 하는 〈입증 Bewahrun g, co nfirm a ti on 〉을 따지게끔 되었다. 여기서 카르 납은 〈입증 〉 의 독일어식 표현인 〈 Bewahrun g〉을 〈진리 Wahrhe it〉와 구 분하기 위해서 사용하기도 했다 .85) 이론이나 과학적 지식의 진리를 84) Popp er (1 9 94), pp. 382-384. 85) Cama p(1 936a) 에서 카르납은 〈 Wahrhe it〉와 〈 Bewahrun g〉의 차이를 심각하게 고 려하며, 검증과 관련된 자신의 입장을 처음으로 누그러뜨린다. 그리고 그는 이어서
발표된 Carna p(1936b) 과 (1937) 에서 본격적으로 〈 입증 con firm a ti on 〉 과 〈 입증가능 성 co nfirm ab ility〉을 말한다 . 또한 이에 대한 그의 견해는 Carna p (1993) 에서도 찾 을 수 있다 . 〈입증〉에 대한 더욱 세련된 논의는 Hem p e l( 1945) 에서 다루어졌다 . 최근의 과학철학 논의에서 입층 이론은 여전히 활발히 다루어지는 주제이다 . 그 러나 논리실증주의 전통에 선 과학철학에서 〈 입증 〉 과 〈 입층가능성 〉 은 카르납의 논 의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이 논의는 물론 포퍼의 논의를 다르게 받아들이긴 했지만. 포퍼의 〈 Bewahrun g 〉 을 적극 고려하면서 나타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말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카르납은 진리 를 절대적 의미를 갖는 개 념으로 여기지만 입증은 상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카르납 이 말하는 입증의 상대성은 점차로 과학적 지식의 입증도 때문에 성 립된다. 다시 말해 과학적 지식의 입증도가 높아진다는 것은 바로 확 률값이늘어난다는 것이다. 즉, 입증이란. 말 그대로 진리의 보존을 말한 다. 그리고 포퍼와 아주 다른 방식으로 카르납은 〈 입증도 Bewahrun g s gr ad, deg ree of co nfinn a ti on 〉 를 말하는 셈 이 다. 포퍼에 따르면, 카르납의 〈 입증 〉 개념은 철저히 진리와 관련을 맺는 다. 죽 카르납의 〈입증〉은 참임을 〈 확인하는 bes t a tig en 〉 것이거나. 참 임을 〈굳건히 하는 erh art en 〉 것을 뜻한다 .86) 〈 반증 〉 이란 개념을 중심 으로 나타났던 포퍼의 논의가 카르납으로 하여금 검증 대신 입증을 사용하게 만들기는 했지만. 그 개념이 계속 별문제 없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댜 왜냐 하면 기존의 진리 개념을 보장할 만한 논의를 완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것이 완벽한 논의라면. 분명 진리 개념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논리실 증주의의 논의는 자신들의 입장을 진리 대신에 확률을 이용한 〈 입증 〉
86) 이 용어와 관련해서 최근에 완간된 독일어권의 철학사전 (En zy klo pii d i e Phil oso p h ie und Wi sse nschafts th e orie , Hrsg. J. Mi ttel stra B , 1980) 은 원 래 대 로 포퍼 의 용어를 〈 Bewahrun g(영어로는 corrobora ti on) 〉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카르납의 〈입증〉은 Cama p (1936a) 에서 보듯이. 원래 〈 Bewahrun g 〉 이었으나. 이제는 〈 Bes t a tigung(영어로는 co nfinn a ti on) 〉 으로 쓴다 . 이는 그 동안 약간의 혼란이 있었 겠으나. 이제는 포퍼의 〈용인〉과 카르납의 〈입증〉을 분명히 구분해서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 준다.
으로 물러서게 만듦과 동시에 , 자신의 〈 반증 〉 은 〈 용인 〉 과 더불어 말 하게 되었다. 그러나 〈 입증 〉 과 달리 〈 [용인]의 정도는 개연성의 계산 울 만족시키지 못한다. 〉 87)
87) Popp e r(1 9 83), p. 227. 또한 포퍼의 〈 용인 〉 과 카르납의 〈입증 〉 의 차이에 관해서 는 특히 다음을 참조할 것: Popp er (1 9 83). pp. 217- 25 5.
그렇더라도 여전히 〈 반증 〉 이든 〈 용인 〉 이든, 그 기본적인 논리적 틀 은 마찬가지로 철저히 연역적이었다. 그러나 논리 경험주의의 〈 검증 〉 이나 〈 입증 〉 은 철저히 믿음과 관련을 맺을 뿐만 아니라, 귀납 논리와 더 나아가 확률 논리의 토대 위에 서 있다. 이 과정에서 카르납은 믿 음과 관련된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부분을 논리적인 틀에 의존해 제거 하려고 한다. 이와 달리 포퍼의 〈 용인 〉 은 믿음이나 확실성과 같은 주 관적인 요소를 배제한 객관적 논의이다. 또한 자기 모순적으로 보일는 지 모르나 역사적 사실에서 그 근거를 보여 주려고도 하는 비논리적 인 부분을 가지기도 한다. 최근의 논의에 비추어 보면 아주 어설퍼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과학이 참과 관련을 맺는 한, 〈 용인 〉 은 〈 입증 〉 에 비해 과학적 탐구에 대한 긍정적 관점을 보여 준다 . 다시 말해 〈 입증 〉 이 참에 대한 믿음의 정도를 강화해 준다면, 〈 용인 〉 은 그의 반 증이나 시험 개념과 함께 과학적 탐구에서 거짓된 내용을 줄여 참일 가능성의 정도를 타진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 입증〉은 직접적으로 참을 말하고 , 〈 용인 〉 은 간접적으로 침을· 말한다. 이는 입증이 〈참 verum 〉 을 어원으로 하는 검증 ve rifi ca ti on 과 이어지고, 또 용인이 〈 거 짓 fa lsum 〉 울 어원으로 하는 반증fa ls ifi ca ti on 과 이어진 논의라는 데서 잘 볼 수 있다. 여기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참일 높은 정도란 결국 참에 대한 모호한 태도를 취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불분명한 태도 는 과학의 동적(動的) 측면을 보려는 데에서 나온다. 따라서 만약 포 퍼의 관심이 과학의 동적인 측면에 놓일 수 있다면, 이 또한 어떤 역 할을 할 여지를 남겨 두고 있다. 과학의 동적 측면이란 과학적 탐구
의 과정을 말한다. 바로 과학의 탐구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완성된 것에 이르기 위한 과정을 말한다. 따라서 포퍼의 논의는 과학적 〈 명 제의 논리 Log ik der Pro p os iti on 〉나 그 명제들로 이루어진 〈 과학의 논 리 W i ssenschaf ts logi k 〉롤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 탐구의 논리 Forschung slo gik〉를 다룬다. 보통 〈과학의 논리〉는 〈명제의 논리〉를 가리켰다. 왜냐 하면 과학 에 대해서 말할 때. 과학이란 과학적 명제나 명제들의 체계를 의미했 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학의 영역에서 탐구와 관련된 논의는 늘 제외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포퍼의 생각은 달랐다. 포퍼가 〈과학의 논 리〉를 말할 때. 〈과학의 논리〉는 〈명제의 논리〉와 마찬가지로 〈탐구 의 논리〉를 포함한다. 그래서 포퍼가 〈과학의 논리〉를 말할 때. 이 용 어에서 말하려는 것은 〈명제의 논리〉가 아닌 〈과학의 논리〉에 속할 〈탐구의 논리〉. 또는 〈(과학적) 발견의 논리〉이다. 6 반증주의 포퍼의 과학철학과 논리실증주의의 과학철학은 처음부터 중요한 점 에서 달랐다• 그 가운데 하나가 과학에 대한 견해이다. 반증을 중심으 로 한 포퍼의 과학철학은 기본적으로 근대 이래의 귀납에 기초한 과 학관이나 과학철학에 반대했다. 포퍼는 귀납에 반대하면서도 과학을 논의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보여 준 것이었다. 물론 그 당시 과학 에 대한 포퍼의 견해는 논리실증주의의 견해와 별차이 없어 보이기도 했다. 과학이 진리를 문제삼는다고 할 때, 과학철학은 과학의 진리를 확인 할 수 있는 방식을 내놓고 싶어했다. 그래서 과학철학은 과학 방법론 과 동의어로 말할 수 있기도 했다. 이 상황에서 논리실증주의는 검증 을, 그리고 입증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와 달리 포퍼는 반증과 용인을
내세웠다 . 무엇보다도 포퍼는 반증을 중심으로 그 무엇이 (경험) 과학 적 진술이고 아닌지 를 . 그리고 그 무엇이 (경험 ) 과학이고 (경험) 과 학이 아닌지를 방법론적으로 따져 보려 했다 . 그래서 밀러 D. Mi ller 는 〈 포퍼와 다른 철학자들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는 방법론적인 것이지 . 인식론적인 것이 아니다 .〉 88) 라고 주장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포퍼의 관심이 우선 자연과학의 방법에 쏠려 있기는 했지만, 그가 단순히 방 법만을 본 것은 아니었다. 이 방법론적 논의를 통해 그는 과학의 제 대로 된 모습을 보고자 했다. 그래서 포퍼가 처음부터 일관되게 주장 했던 것은 〈 방법론으로서의 인식론 〉 이었다 . 달리 말해서 새롭게 나타 난 자연과학에 대한 인식론적 논의가 방법론적으로 규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89) 포퍼의 방법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반증이 포퍼에게는 현대의 자연과학의 방법으로 특징지어지는 것이기도 했지만, 더 나아가 포퍼 의 과학철학의 성격을 〈 반증주의 fa ls ifi ca ti o ni sm 〉 라는 방법론적 논의로 규명하게 만들기도 했다. 심지어 반증주의가 더 일반적인 표현으로 〈 비판적 합리주의 crit ical ra ti on alis m 〉 라고 불리기도 한다 .90) 그만큼 반 증주의는 과학철학만이 아니라 사회 철학까지를 아우르는 포퍼의 철 학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이기도 하다.
88) Miller (l 994 ) . p. 6. 89) 참조 : 박은진(1 993) . 90) 여기서 〈 비판적 합리주의 〉 라는 용어는 포퍼의 사회 철학에서 말하는 〈비판적 자세 〉 와 관련해서, 알버트H. Albe rt가 포퍼의 철학을 특징짓는 표현으로 사용했다. 이에 관해서는 Albert (l96 0), (19 68), 또한 〈비판적 합리주의〉와 관련된 포퍼 자신 의 말은 다음을 볼 것: Sch ilpp(l97 4), p. 92, p. 172n .
6.1 포퍼의 과학관과 과학의 발전 포퍼는 과학을 인간에게서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이해하나, 그렇다 고 허황된 것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 그래서 〈과학은 결코 그것의 답
을 최종적인 것으로나 심지어 개연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환상적 인 목표를 추구하지 않는다. [과학]의 진보는 차라리 한 가지 끝없는, 그러나 획득 가능한 목표를 향한 것이다. 〉 91) 라고 포퍼는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본질적으로 과학을 구성하고 있는 〈 과학 이론들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실제 과학의 행위는 〈 끝없는 목표 〉 를 위해 매 단계마다 설정된 작 은 목표에 도달하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 끝없는 목표 〉 는 결국 〈획득 가능한 목표 〉 로 받아들여진다. 그렇다고 이 목표가 과학적 진 보의 끝에 놓일 마지막의 목표, 죽 더 이상 설정될 게 없다는 의미의 목표를 뜻하지는 않는다. 한마디로 여기서 말하는 〈 목표 〉 란 궁극적으 로 도달해야 할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래서 과학은 여태까지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언제까지나 나아갈 것이다. 그의 방법론이 란 바로 이런 과학예 대한 이해를 토대로 제시되었다. 과학을 논의함에 있어서 논리실증주의는 과학을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철저히 논리적 분석의 대상으로 보았다. 여기서 그들이 말할 수 있는 발전은 검증이라는 시험 과정에서 참이라고 단정된 과학적 지식 이 귀납적으로 보태지는 것을 의미한다. 죽, 그들의 발전은 참인 과학 적 지식이 점점 늘어나는 과정이다. 이와 달리 포퍼는 논리실증주의처 럼 과학을 논리적으로 규명하려고는 했지만, 참이라고 과학적 지식을 규정짓기에는 과학이란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참인 과학 적 지식을 거론하는 것도 꺼렀고, 단지 어떤 과학적 지식에 대해서 〈잠정적으로나마 참으로 여기기 〉 를 주장할 정도였다 . 이것도 빙 돌아 최소한 그 과학적 지식의 거짓 아님을 말할 정도였다. 여기서 거짓 아님을 말한다고, 그것이 참임을 말하는 것은 아니기 떄문이다. 포퍼의 방법론은 계속 이어져 나타날 과학적 행위에 적용되겠지만, 다양한 과학적 행위들에 의해 드러나는 과학의 진행 모습을 그려 보 91) Popp er (l 99 4), p. 385.
여 주는 데에 적용되기도 한다. 사실 과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 불 굴의, 그리고 앞뒤를 헤아리지 않는 비판적 진리의 추구 〉 가 결국은 과학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과학의 발전이란 결국 〈 진리의 추구 〉 과 정에서 나타난다. 여기서 그는 과학 발전의 모습이 꼭 유기체가 살아 나가는 방식과 유사하다고 보기도 했다. 즉, 과학은 이론이나 법칙이 라는 과학적 지식을 통해서 그 발전된 모습을 보일 것이다 . 이때 과 학적 지식이란 대담하게 추측하여 제시되고 또 이 이론이 가진 허점이 제거되면서 , 과학은 발전한다. 이것이 이른바 〈추측과 논박 conj ec tur es and refu tat i on s>, 또 는 〈 시행착오 Versuch und lrrtum, trial and error 〉를 통한 발전이고, 〈 선택의 방법 die Meth o de der Sele kti on 〉에 의한 발전 이다 .92) 여기서 포퍼가 말하는 과학의 발전은 점진적인 발전이다. 사 실 과학의 발전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주장은 포퍼가 비관하는 귀납주의 과학관의 주장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방법을 둘러싼 그 동안 의 긴 논쟁은 과학의 점진적 발전 과정이 귀납 중심으로 이루어졌는 지, 혹은 연역 중심으로 이루어졌는지를 가리는 문제였던 셈이다. 따 라서 이전의 과학철학의 논의는 과학의 발전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92) 여기서 〈 시행착오 〉 나 〈 선택 〉 같은 표현은 포퍼의 논의가 생물학적 성향과 이어 져 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 논의는 포퍼의 논의에서 〈 진화론적 인식론〉으로 발전된다.
포퍼의 논의에서 과학의 발전 과정은 이론과 관찰 사례 사이에서 벌어질 〈 논박 〉 의 와중에서 일어난다. 〈 추측 〉 에 의한 이론은 이에 대 한 구체적 관찰 사례에 의해 반증되거나 반증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 나 다행히 반증되지 않는 경우는 이론에 아무런 손상을 입힐 일이야 없겠지만, 만약 반증되는 경우가 문제이다. 즉, 반증되는 경우, 해당 이론은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포퍼의 방법론에 따르면 이 상황에서 문제되는 것은 관찰 사례가 아니라 이론이다. 왜냐 하면 포 퍼의 논의는 철저히 객관적인 관찰과, 관찰자의 중립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93) 그래서 여기에 해당하는 이론은 당연히
93) 포퍼의 논의에서 과학의 발전은 관찰에 의한 이론의 반증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 따라서 포퍼에 대한 비판은 주로 반증을 일어나게 만드는 관찰에 맞춰진다. 특히 과학에서 관찰의 〈이론적재적 the ory -l aden> 성격이라는 관찰의 이론적재성은 관찰 이 중립적일 수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 이에 대해서는 특히 다음을 볼 것 : Hanson( l95 8) : Hanson( l96 9).
폐기되어 버린다. 물론 해당 이론을 붙잡아 두기 위해 다양한 방식이 모색될 수 있겠으나, 이런 시도는 포퍼의 논의에서 보자면 과학의 발 전에 아주 부정적이다. 예를 들어 문제 있는 이론을 어떤 식으로든지 정당화시켜 굳이 붙잡아 두려는 시도가 일어날 수도 있겠으나, 포퍼에 게 있어서 이는 문제점을 드러낸 해당 이론을 붙잡아 두려는 비과학 적이고 비합리적인 태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의 발전을 위해서 는 차라리 끊임없는 〈추측 〉 과 〈 시도 〉 , 그리고 〈 논박 〉 과 〈 착오 〉 의 제 거가 계속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포퍼의 논의가 ' 진정 의미 있으려면, 실제로 현장에서 벌어지는 과학의 영역에서도 그래야 한다. 과학의 발전에 대한 포퍼의 논의가 이론적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심각한 문제는 그의 논의가 구체적 인 사례와 동떨어진다는 데에 있다. 즉, 실제로 과학의 발전 과정을 들여다보면, 포퍼가 논의한 방식대로 반증된 과학의 이론들이 내팽개 쳐지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반증된 이론은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뚜 렷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영역에서 나름대 로 역할을 하고 있다. 분명 이에 대한 여러 비판 가운데서도 가장 결 정적인 비판은 쿤 T. Kuhn 에 의해 이루어졌다. 쿤의 논의는 실제 과학 의 발전 과정에서 있었던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여 과학 발전에 대 한 포퍼의 이론을 반증시킨 셈이다 . 이제 포퍼의 방법론을 토대로 성 립된 과학의 점진적 발전은 중대한 허점을 보여 주었고. 더 나아가 과학의 발전이란 어떤 방식으로든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리라는 생각 은 이제 점진적이지 않은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게 되었다.
6.2 과학의 발전과 과학 혁명 포퍼의 논의에서 과학의 발전은 관찰에 의한 이론의 반증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포퍼에 대한 비판은 주로 반증을 일어나게 만드는 관찰에 맞춰진다 . 이와 관련해서 포퍼의 논의는 철저히 객관적인 관찰과, 관 찰자의 중립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핸슨 N. Hanson 의 과학사적 논의를 토대로 이루어진 관찰의 이론적재성 논 의는 이미 포퍼가 전제한 관찰의 중립적 성격을 부정한다. 즉, 실제로 이루어지는 과학자들의 관찰은 철저히 기존의 지식이나 신념에 따라 이루어진다. 94)
94)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볼 것 : Hanson( l95 8) : Hanson( l96 9).
핸슨의 논의가 주로 관찰과 관련된 지각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면, 쿤의 논의는 과학의 발전을 위한 과학자들의 행위가 결코 객관적일 수 없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더 나아가 포퍼의 논의에서 보는 과학 의 합리적 발전도 더 이상 합리적일 수 없음을 쿤은 주장한다. 또한 포퍼의 논의에서 과학의 발전이 점진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반면, 쿤 이 말하는 과학의 발전은 급진적으로 일어난다. 즉, 과학의 발전을 〈 혁명 〉 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과격하기까지 하다. 한 혁명에서 다른 혁명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과학 행위를 쿤은 〈정 상 과학 nonnal s ci ence 〉 이라고 부른다. 쿤이 말하는 〈‘정상 과학'은 과 거의 하나 이상의 과학적 성취에 확고히 기반을 둔 연구 활동〉이 다 .95) 정상 과학의 상태에서 과학자들은 확립된 패러다임에 따라, 〈패 러다임이 이미 제공한 그러한 현상과 이론을 명료화하는 것을 지향한 다.〉 9 6) 물론 패러다임이 좁은 의미의 규칙이나, 과학자들의 구체적 활 동을 세세히 제약하는 규정 같은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차라리 과학 자들의 활동에서 어느 정도의 테두리를 정해 주는 정도의 의미를 지
95) Kuhn( l99 2). p. 31. 96) Kuhn( l99 2), p. 49.
닐 것이며, 그래서 패러다임에 따른 〈 정상 과학 전통의 일관성의 원 천〉 9 7)을 마련해 준다. 그래서 이 과정에서 정상 과학의 활동은 〈 수수 께끼 풀이〉로 비유해 부를 정도이다. 정상 과학이 지속되는 동안, 과학자들의 모든 과학적 행위의 기준점 은 바로 패러다임이다. 그리고 이 패러다임에 따르는 과학자들의 집단 이 형성될 것이며, 이는 〈 과학자 사회 sci en ti fic comm unity 〉 로 불린다. 그러나 이 과학자 사회는 그들의 패러다임에 어긋나는 구체적 반증 사례를 보더라도, 이에 전혀 동요되지 않는다. 차라리 구체적 반증 사 례를 경험한 과학자의 능력에 의혹을 보내거나 바로 이 반증 사례를 포기해 버릴지언정,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과학자 들의 구체적 반증 사례를 자신들의 기준점에 따라 해석해서, 기준점을 고수하려는 억지스러움을 보여 줄 정도이다. 그러나 이런 과학사에 의 존한 논의를 통해서 드러난 쿤의 논의는 포퍼의 반증주의 과학관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며, 구체적 사례를 동원한 강력한 비판이기도 하다. 패러다임의 바뀜에 따른 과학의 급진적 발전을 보여 주는 쿤의 논 의는 이제 과학과 과학의 발전이 더 이상 합리적으로 이루어지지 않 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계기였다. 또한 과학은 더 이상 진리를 추구 하고 진리를 말할 수 있는 논의가 아니었다. 그래서 1962 년 나온 쿤 의 『과학 혁명의 구조』는 포퍼의 논의에 대한 결정적인 비판으로 평 가받았다. 6.3 합리적 과학 발전 〈탐구의 논리〉나 〈발견의 논리〉로 특징지울 수 있을 포퍼의 과학철 학은 〈반증〉이란 개념을 이용해서 현대 과학철학의 다양한 논의에 지 속적으로 관여했다. 즉, 포퍼의 과학철학은 논리실증주의나 논리경험 97) Kuhn(1 9 92) , p. 72.
주의의 과학철학과 달리. 계속해서 나타난 과학철학의 새롭고 다양한 주제들을 다룰 수 있었다. 그래서 이를 〈 새로운 과학철학th e new philo sop hy of s ci ence 〉 98) 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 논리실증주의나 논리 경험주의의 과학철학이 과학 발전을 논의하기란 쉽지 않았다. 과학적 이론이나 과학의 논리적 구조를 밝히려는 것이 그들의 기본적 관심이 었고. 그래서 그들은 과학적 이론이나 과학의 논리적 구조를 고정된 체계로 보고 이를 다루었기 때문이었다.
98) 여기서 〈 새로운 과학 철 학〉이란 용어는 〈 쿤 이후의 과학철학po s t -Ku hnian philos oph y of s ci ence 〉 이나 〈 실증주의 이후의 과학철학po s t-po s itivisti c p h i l , , 、 'l p h y of s ci ence 〉 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참조: 박은진(1 997b) .
브라운 H.Brown 은 이 상황에 대해서 아주 간결하게 잘 표현하고 있 다 . 즉 포퍼의 〈 반증주의 과학관은 여러 측면에서 논리경험주의로부 터.…… 새로운 과학철학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다리 구실을 하고 있다. 〉 99) 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런 〈 다리 구실 〉 이라는 포퍼의 과학 철학이 갖는 특징은 전통적 과학철학이나 새로운 과학철학에서 보면 양쪽의 논의 모두에 충실하지 못해서 비판의 여지가 많을 것이다. 죽, 포퍼의 과학철학은 전통적 과학철학에서 보면 형식적으로 엄밀하지 못하고 .100) 쿤 이래의 〈 새로운 과학철학〉에서 보면 여전히 너무 형식 적이다. 그래서 포퍼의 과학철학은 부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 그러 나 이와 달리 긍정적이기도 하다. 죽, 형식적 엄밀성만으로 과학을 말 할 수 없게 된 형편은 이제 과학철학의 논의를 형식적으로만 따질 수 없도록 만들었다. 이때 포퍼의 과학철학은 논리실증주의의 과학철학보 다 형식적 엄밀성에서는 떨어질지 모르나 새로운 논의에서 훨씬 유연 하다. 포퍼가 〈 발견의 논리〉를 말하면서. 이를 형식적으로만 규명하려
99) Brown( l98 7), p. 103. 100) 소홍렬은 과학의 발전에 대해서 논의하는 포퍼의 과학철학을 논리실증주의의 과학철학에 비해서 논리적으로 엄밀하지 못하다고 지적하며. 이 를 〈역사주의 과학 철학 〉 이라고 특징지어 부른다. 이 〈 역사주의 과학철학〉은 브라운 등이 사용하는 〈 새로운 과학철학〉이라는 용어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소흥렬(1 990) 을 볼 것).
고 했던 점에서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특히 현대 과학철학의 초창기에 검증과 입증 ` 또는 반증과 용인을 중심으로 주로 형식적으로 다루어졌던 그 동안의 전통적인 과학철학처럼, 어떤 방식으로든지 〈 완 성된 이론의 논리적 구조를 분석하기보다는 과학적 발견과 이론 변화 의 합리적 근거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새로운 과학철학의 관심사이 다.〉 101) 물론 포퍼의 과학철학은 과학철학의 여러 논의에서 약간씩 변형된 모습을 보여 주긴 했지만, 그렇다고 기본적인 입장이 바뀐 것은 전혀 없다. 〈 반층주의 f als ifi ca ti o ni sm 〉란 포퍼의 방법론적 이념에 따른 그의 철학적 입장을 말한다. 특히 라카토슈 I.Laka t os 는 과학의 발전과 관련 된 논의에서도 무엇보다 포퍼의 〈 탐구의 논리 〉 , 즉 〈 과학적 발견의 논리〉에 주목한다. 여기서 포퍼는 과학적 발견을 심리학적으로가 아니 라, 논리적으로 말하려고 했다 . 사실 포퍼는 과학적 발견의 문제를 심 리학적으로 다루거나 또는 인식론적으로 정당화하려는 게 아니라, 발 견이라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다루려고 했다 .102) 포퍼의 논의에 나타나 는 문제는 바로 이 부분이다.
101 ) Brown( l98 7), p. 14. 102) 여기서 포퍼는 칸트의 용어인 〈 타당성의 문제qui d juris 〉 와 〈 사실의 문제qui d fa c ti〉를 사용한다 . 그에게 있어서 이 〈 타당성의 문제 〉 는 바로 과학적 언명의 정당 화로 이어진다. 따라서 포퍼의 논의에서 그의 관심은 〈 타당성의 문제 〉 가 아니라 〈사실의 문제〉에 맞추어지며. 사실을 논리적으로 밝히려는 데에 있다 .
라카토슈에 따르면, 〈포퍼의 과학적 발견의 논리에는 두 가지의 다 른 입장이 뒤섞여 있다.〉 103) 여기서 라카토슈가 말하는 포퍼의 두 입 장은 〈소박한 (방법론적) 반증주의 the nai ve fa ls ifi ca ti o ni sm 〉 (또는 〈엄격한 반증주의〉)와 〈 세련된 반증주의 the sop histc a te fal sif ica ti on - ism〉(또는 〈완화된 반증주의 〉 )이다. 소박한 반증주의는 〈 새로운 과학 철학의 관심사 〉 가 생기기 전의 포퍼의 과학철학을 가리킨다. 그러나 세련된 반증주의는 포퍼의 방법론을 중심으로 이런 〈새로운 과학철학
103) Lakato s ( l97 8), p, 10.
의 관심사 〉 에 초점을 맞춰 이루어진 논의이다. 그리고 라카토슈가 제 시하는 연구 프로그램의 방법론은 바로 후자의 반증주의인 〈 세련된 반증주의 〉 에 의존한다. 그러나 여기서 세련된 반중주의가 성립하기 위 한 필수적인 조건들은 당연히 라카토슈에 의해 체계화된다 .104) 라카토슈에 따르면, 쿤의 포퍼에 대한 비판은 바로 전자의 〈소박한 반증주의〉에 맞춰졌다. 소박한 반증주의에서 그대로 짐작할 수 있듯 이, 이 논의는 무엇보다도 비엔나 학파의 논리적 엄밀성을 논리적으로 흩어 놓으려는 시도였기 때문에 당연히 엄격한 톨 속에서 다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포퍼는 과학의 발전에서 나타날 전 형적인 모습을 말하고자 했다. 전형적인 모습이란 당연히 정해진 흐름 을 말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을 쿤은 비판했다. 당연히 구체적인 역 사 속에서 나타난 과학의 발전은 엄격한 형식 논리의 틀이나 정형화 된 틀로 규정지어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포퍼는 굳이 자신의 논의를 정당화와 관련짓지 않으려고 했지만, 라 카토슈는 바로 이 부분에서 포퍼의 과학적 발견의 논리를 정당화시키 려고 시도한다. 이 과정에서 포퍼는 과학사의 구체적 논의를 주목하지 못했댜 그러나 라카토슈는 쿤의 과학사라는 강력한 무기를 포퍼식의 과학 발전 논의에 접목시키려고 시도했다. 죽, 한 이론 T 에서 다른 한 이론 T' 으로 나아가는 이론의 변천 과정에서 발전된 이론이 성립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여기서 T' 은 T 보다 내용적으로 나울 것인데, 더 나 은 구체적 사례들은 과학사의 수많은 사례 가운데서 그 무엇보다도 강조된다. 여기서 더 나은 구체적 사례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T' 의 이 론적 우월성은 용인된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이론적 우월성을 위한 귀납의 적극적인 수 용이다. 즉, 포퍼에 의해 이루어졌던 〈소박한 반증주의〉가 반귀납적 논의에 기초했다면, 라카토슈의 〈세련된 반증주의〉는 발전을 위한 귀 104) Lakato s (1 9 78), p. 32. 참조 : 신중섭(1 992), pp. lITT-108, pp. 206-207.
납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달리 말해서, 포퍼의 〈 소박한 반증 주의〉는 과학의 발전을 설명하는 데에서 역사적 구체성을 결여한 채 독단적으로 이루어졌던 셈이다. 이와 달리 라카토슈는 귀납적으로 제 시될 수 있을 구체적 사례를 끌어들여 〈 소박한 반증주의〉의 독단적 성격을 씻어 낸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합리적인 과학 . 발전의 모습을 보여 주고자 했다. 여기서 그는 칸트의 말을 이용해서 과학사와 과학 철학의 관계를 〈과학사 없는 과학철학은 공허하고, 과학철학 없는 과 학사는 맹목적이다.〉 105) 라고 요약한다 . 그리고 더 나아가 〈 포퍼의 과 학적 발견의 논라… .. 가 과학적 합리성에 대한 한 가지의 이론이 다.〉라고 강하게 주장한다 .1 06) 물론 자연과학이 합리적 인간의 이성에 의한 최고의 산물이며, 또 그런 현대 자연과학에 자극받아 나타난 것이 포퍼의 과학철학일 때, 포퍼의 논의가 과학의 합리성을 전제로 하고 있음은 틀림없다 . 그렇다 고 해서 처음부터 포퍼가 자신의 과학철학에서 과학의 합리성을 논의 의 큰 주제로 삼은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1 07) 그러나 합리성이 과학 철학의 핵심적인 문제로 떠오르게 된 이후, 포퍼의 과학철학은 합리성 이란 주제를 중심으로 재해석될 수 있었다 .108) 그래서 라카토슈의 새 로운 해석에 따르면, 〈포퍼는 고전적 합리성의 중요한 문제, 죽 근거 105) Lakato s (1 9 78), p. 102. 106) Lakato s (1 9 78), p. 140. 107) 본격적으로 〈합리성〉이 학문의 직접적인 논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겨우 1800 년대 후반 베버 M. Weber 에 의해서였다. 특히 서구 문화의 〈 합리화 과정 Ra ti o nalizati on 〉이 문제되면서부터이다. 또한 1800 년대 이래 자연과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여전히 자연과학이 인문 과학에 비해 낮게 평가되고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음미할 만하다 . 합리성이, 특히 과학의 합리성이 철학의. 특히 과학 철학의 주제로 떠오른 것은 대체로 쿤의 논의가 등장하고 난 뒤이다 . 108) 그렇다고 해서 포퍼가 자신의 논의에 대한 다양한 모든 종류의 재해석에 만족 한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바틀리 W. Ba rtley ill가 포퍼의 논의를 이용해서 합 리성에 대한 논의를 제시했을 때, 포퍼는 이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 Lakato s & A. Musgr av e(1 9 65).
에 대한 오랜 문제를 오류 가능한-비판적 성장에 대한 새로운 문제로 바꾸 었고, 이런 성장의 객관적 기준을 다듬기 시작했다.〉 109) 사실 포퍼의 논의에서 커다란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과학의 성장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면서부터이다. 포퍼가 보기엔, 〈인식론의 중심 문제는 언제나 그랬듯이,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지식의 성장의 문제이다. 그 리고 지식의 성장은 과학적 지식의 성장을 연구함으로써 가장 잘 연구될 수 있다.〉 110) 요약해서 말하자면, 새로운 과학철학의 논의를 이끈 두 주제라면, 바로 과학의 성장과 합리성이다. 여기서 포퍼의 논의는 무엇보다도 과 학의 성장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라카토슈에 따르면 〈포퍼의 연구 프로그램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성장에 대한 기술을 목표로 한다.〉 111) 그러나 라카토슈에게 과학적 성장 못지않게 합리성 도 무척이나 중요했다. 다시 말해 그에게 합리성 없이 과학의 성장을 논의한다는 것은 문제였다. 그래서 당연히 라카토슈에게 자신의 〈과학 적 연구 프로그램의 방법론이 새로운…… 방법론〉 112) 일 수밖에 없다. 처음에 포퍼는 라카토슈의 연구 프로그램의 방법론에 만족했으며, 심 지어 라카토슈의 논의에 대해서 자신의 방법론을 이어받아 발전시킨 것으로 받아들였을 정도였다. 이렇게 포퍼의 논의는 현대 과학철학의 새로운 논의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검증〉이나 〈입증〉으로 말하는 근대 이래의 과학관은 기본적으로 귀납적 이념에 의존하기 때문에, 포퍼의 과학철학은 귀납에 의존한 과 학관의 문제점을 파헤쳤고, 반귀납적 성향을 강하게 내비쳤다. 특히 논리실증주의나 논리경험주의가 기존의 일반적 과학관을 논리적으로 보여 주려고 애썼다면, 소박한 반중주의는 (연역) 논리적으로 바로 그 109) Lakato s (1 9 78), p. 91. 110) Popp er (1 9 94), p. 8. 111) Lakato s (1 9 78), p. 92. 112) Lakato s (1 9 78), p. 178.
검증과 검증가능성.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한 검증주의 과학관의 논리적 허점을 드러내 보여 주었다. 포퍼의 논의가 성공적일 수 있었던 중요 한 이유 하나는 논리실증주의의 논리적인 논의의 허점을 논리적으로 보여 주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근대 이래의 귀납적 방 법에 기초한 귀납주의 과학관 대신 연역주의 과학관을 제시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 입장은 단순히 알맹이 없이 귀납주의 과학관의 형식적인 그 논리적 허점만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로 그 논리적 허점을 뚜렷하게 보여 주기도 했다. 사실 논의의 형식성은 논 리적으로 다루어질 수 있겠지만. 논의의 역사성을 논리적으로 다룬다 는 것은 무리가 있다. 60 년대 이래 과학철학의 논의는 특히 쿤의 『과학 혁명의 구조』에 나타난 작업을 통해서 더 이상 단순한 형식 논리적 문제로 여길 수 없게 되었다. 과학철학의 논의는 이제 본격적으로 역사 속에서 드러나 는 과학 발전의 문제로 바뀌었다. 과학의 발전이 가능했던 역사적 상 황과 그 철학적 배경이 문제였다. 원래부터 포퍼의 관심은 바로 이 점에 있기는 했지만. 사실은 그 동안 소홀히 여겨졌던 부분이기도 했 다. 이때 포퍼의 과학철학은 자신의 과학관에 따라 역사 속에서 나타 난 과학의 발전 모습을 두드러지게 보여 주기도 한다. 이제 이 문제 가 더 이상 형식 논리적 논의가 아닌 이상, 그의 논의가 라카토슈에 의한 것이기는 했지만 〈세련된 반증주의〉로, 〈완화된 반증주의〉로 나 타나는 것은 당연했다. 이 점에서 포퍼의 과학철학이 아주 유연해 보 이는 것은 틀림없다. 그렇지만 바로 이 점이 포퍼의 과학철학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여기서 말하는 장점이란 포퍼의 과학철학은 새로이 강조하기 시작했던 논의에 적극 대처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동안 과학철학의 논의에서 가장 중요했던 논리적 엄밀성을 부분적 으로나마 버려야 하는 단점을 포퍼의 과학철학은 감수해야 했다. 기존 의 논의를 옹호하는 과학철학자에게는 포퍼의 논의가 허술해 보일 거
고, 새로운 논의를 받아들이던 과학철학자들에게는 여전히 논의가 너 무 형식적이고 경직되어 보일 것이다. 7 과학의 진보: 반증주의의 한계인가? 진보란 무엇인가? 사실 어떤 종류의 진보라도, 그에 대해 앞으로 나 아감에 의한 막연한 앞으로의 모습을 그려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 러나 그 모습이 어느 정도 뚜렷이 그려지지는 않는다. 뚜렷이 그려질 여지가 있어야 나름대로 형식적으로 다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 우리의 논의에서 형식적이란 바로 논리적이라는 뜻이다. 이제 진보를 말하는 데에서. 더 이상 논리적인 논의가 쉽사리 허용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점에서 반증주의가 엄격하지는 않다. 포퍼의 반증과 반증가능성을 철저히 논리적으로 파악하려는 시각에 서는 반증주의 과학철학이 한계를 맞은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철저 히 논리적이지는 않으나. 어느 정도 형식적인 논의의 가능성을 모색한 다는 점에서는 전통적 과학철학의 돌파구로 보일 수도 있었다. 과학의 발전을 논의하기 시작한 새로운 과학철학을 주장하는 입장에서 보면. 포퍼의 과학철학은 여전히 구태의연할 수밖에 없다. 또 포퍼의 반증주 의는 분명 기존의 과학관에 대한 많은 도전적 내용을 담고 있다 . 그 래서 포퍼의 과학철학은 두 대립된 입장 사이에 엉거주춤 놓여 있었 다. 또한 새로운 과학철학의 풍토에서 나타났던 라카토슈의 논의는 포 퍼 과학철학의 세련화로 보일 수는 있었겠지만, 지나친 인위적 성격이 라는 함정에 빠져 버렸다. 즉, 〈세련된 반증주의〉가 과학자의 실제 과 학 활동을 보여 주는 과학사의 구체적 논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 실제로 따져 보자면 그의 논의는 과학자의 과학 활동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과학의 역사 속에서 밝혀진 가장 결정적인 한 가지 논의에 따르면.
과학은 결코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포퍼의 과학철학 은 전통적 과학관과 과학철학의 입장을 버릴 수 없었다. 여기서 포퍼 는 형식적으로는 어렵더라도 이념적으로나마 진리를 버리려 하지 않 는다. 따라서 포퍼의 입장은 전통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과학의 이념을 포기한 것이고. 새로운 과학철학에서 보면 반증주의의 한계를 보여 주 는 것이다. 과학의 역사에 대한 논의는 그 동안 근대 이래 자연과학과 철학의 결탁으로 확립된 진리를 더 이상 말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현대의 철 학은 전통적인 의미의 말 많은 진리 없이 철학할 방도를 모색하고자 한다. 아니면 새로운 진리의 가능성을 이리저리 탐색하고 있다. 그것 이 과연 가능할 수 있을지 어떨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그러나 진리 에 미련을 갖는 포퍼의 논의는 여전히 유효하다. 이를 논의하고 평가 해야 할 우리는 아직도 진리에 관한 한 〈불확실성의 시대 〉 를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신일철(편) (19 90), 『포퍼』 신중섭 (19 92), 『포퍼와 현대의 과학철학』 소홍렬 (19 90), 『실증주의 과학철학과 역사주의 과학철학」, 《 철학과 현실 》 1990 년, 봄. 박은진 (19 91 ), r 칼 포퍼의 인식진보이론」, 『니이체와 현대철학』. (19 92), r 포퍼의 과학사상과 철학」, 《 과학사상 》 , 1992 년 봄. (19 93), r 포퍼의 방법론적 이념」, 《 철학논고 》 , 1993 년. —(( 1199 9974a),) , r 포r 쿤퍼과의 로인티식의론」 ,신 실《 철용학주과의 적현 실과 》학 . 관19 9-4 년‘.패 러다임’에서 ‘연대성' (19 96), 『과학철학의 어제, 오늘, 내일」, 《과학과 철학 》 , 1996 년. 으로J, 『로티와 철학과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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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과학적 설명 김유신*
* 부산대학교 전자공학과 교수 및 과학 • 기술의 역사와 철학 협동과정 겸임 교수.
1 들어가는 말 현대의 발달된 과학은 기술에 응용되어 우리에게 많은 편리를 가져 다 주고 있다. 전기, 컴퓨터, 원자력, 유전공학, 고온 초전도체들은 현 대 과학 없이는 불가능하다 . 그러나 이런 것들 자체는 과학이 아니라 과학의 적용의 결과이다. 과학은 이러한 것들 외에 우리에게 지적으로 실천적으로 흥미 있고 유용한 세계에 대한 지식을 가져다 줌으로써 세계를 이해하는 데 큰 공헌을 하고 있다. 그러면 과학적으로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이 질문은 과학적 지식의 영향 아래에 살 고 있는 현대인에게 아주 중요한 질문이다. 과학철학은 이 질문에 반 드시 답할 수 있어야 하고, 답해야 한다. 과학적 설명에 대한 철학적 탐구는 세계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어디에 있는가를 밝히는 데 핵심 적인 역할을 한다. 과학은 세계에서 현상이 어떻게 일어난다는 것만 기술하는 것이 아 니라 왜 일어나는지를 묻고 답한다. 이러한 〈왜?〉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을 우리는 과학적 설명이라고 부른다 . I) 〈 왜 일식이 일어나는가? 〉 , 〈왜 구리는 전기를 잘 통하지만 유리는 전기를 잘 통하지 않는가? 〉 등등의 질문에 과학은 훌륭하게 답하고 있다. 이처럼 과학이 자연 현 상에 대한 설명을 제공한다는 데 대해 오늘날에는 많은 학자들이 동 의하고 있다 .2)
1) 설명이 〈왜〉에 대한 답변만이 아니고, 〈어떻게〉라는 것에 대한 답변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죄수가 감옥을 탈옥한 사건에 대해 그 사건의 발생에 대해서는 왜 죄수가 탈옥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질문이 아니라 어떻게 탈옥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질문이고, 이때 설명이란 이 〈어떻게〉에 대한 답변 이다. 이러한 문제는 여기서는 답하지 않고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간단히 언급 2) 할S a것lm이o다n.(1 9 84), p. 3.
과학적 설명이 무엇인가를 적절히 해명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 다. 이것은 오랫동안 많은 과학자와 철학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어 왔 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이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오늘날에 도 과학자 및 철학자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과학적 설명이 무엇인가에 대한 표준적이라 할 만한 이론이 형성 되지 못하고 있었다. 20 세기 중엽에 이르러 비로소 헴펠 C. Hem p el 에 의해 포괄 법칙 모형이라고 불리는 설명 이론이 제안됨으로써 설명에 대한 철학적 이론에서는 상당한 합의가 이루어진 것처럼 보였다. 특히 과학적 설명의 주요 문제들은 해결된 것처럼 보였다. 새먼 W. Salmon 같은 유명한 철학자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스마트J. Sm art가 새 먼에게 현대 과학철학의 풀리지 않은 주요한 문제 중에 하나가 과학 적 설명이라는 이야기를 했을 때 헴펠에 의해 과학적 설명 문제는 거 의 해결된 것으로 생각했던 새먼이 아주 놀랐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 여 준다 .3) 그러나 헴펠에 의해 제안된 설명 이론은 경험주의 형이상 학에 기초해 있기 때문에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들에 부딪치고 있다. 과학적 설명이란 형이상학적으로 중립이 아니다. 다만 20 세기
3) Salmon(1 9 89), p. 4.
과학 철 학은 선험적 형이상학과 신학에 깊게 물들어 있었던 포스트-칸 트p os t - Kan t 또는 포스트-헤겔 po st- H ege l 관념론이 지배적인 상황에 서 일어났기 때문에, 초기 논리실증주의와 논리경험주의자들은 이러한 영향을 제거하는 것이 그들의 사명의 일부라고 보았던 것이다 .4) 따라 서 경험주의자인 헴펠의 설명 이론이 기초해 있는 경험주의 자체가 형이상학인 것을 무시하고 헴펠의 설명 이론이 설명에 관한 문제를 해결했던 것처럼 생각해 왔던 것이다.
4) 같은 책.
과학적 설명은 과학철학에 있어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 중에 하나이면서, 형이상학적으로 중립이 아니다. 그러나 헴펠의 설명 이론 이 주류로서 그 힘을 잃어 가기 전에, 오랫동안 계속된 설명 이론에 대한 논의는, 몇 가지 예외를 제의하고는 주로 형식적인 특징에 관한 것이었다. 예를 들면 , 〈 포괄 법칙 〉 , 〈‘ 왜'라는 질문〉 , 〈발화 행위 spe ec h act> , 〈 통계적 유관성 〉 과 같은 것들이었고, 〈 경험주의〉, 〈화용론〉 또는 〈 실재론 〉 같은 형이상학적인 주장을 지칭하는 단어들이 서두에 붙지 않았댜 5) 다시 말하면 설명이 형이상학적 입장에 따라 달라지는 어떤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설명에 관한 이론 을 전개할 때 그 이론의 전개에 참여하는 자들은 경험주의자거나, 화 용론자 또는 실재론자들로서, 그들의 이론은 그들이 지닌 형이상학에 기초해 있었댜 헴펠의 이론이 그 힘을 잃게 되고 대체할 만한 새로 운 주류 이론이 나오지 않자, 많은 학자들은 설명에 관한 주제에서 실재론과 반실재론에 관한 질문을 포함해서 다른 질문으로 주의를 돌 렀다. 그러나 과학철학의 다른 질문에 관한 논쟁에서도 설명에 관한 이론은 필수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한편에서는 과 학적 이론에 대한 해석을 최선의 설명에로의 추론에 의해 정당화되어 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과학 이론은 그 이 론의 관찰적인 환원에 의해 인정되는 것들을 넘어서서는 어떠한 경험
5) Ra ilton (1 9 89), p. 220.
적 예측도 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한다. 이렇게 보면. 위의 형이상학적 인 논쟁에서 설명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설명이 무엇인가에 대해 합의된 것이 없는 상황에서 각 진영에서는 자신의 목적에 맞는 설명 개념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설명에 대한 기존 의 연구는 효용성이 별로 없게 되어 설명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않게 되거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론을 발전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렇다고 해서 설명이란 중요한 개념을 세계와 세계의 존재 방식에 관 한 일관된 관점에 결정적으로 의존하지 않으면서, 어떤 경우는 이러한 관점에 의촌하고 또 다른 경우에는 저런 관점이라는 파편적인 방식으 로 어떤 철학적 관점에 의존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따라서 설명에 대한 형이상학적 논쟁은 과학적 설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매 우 중요한 일이다. 경험주의 입장에 서서 과학의 주제가 되는 내용을 경험에 한정시키 게 되면, 어떤 두 가지 서로 다른 경험적 사건이 있다고 할 때, 그 두 사건 배후에 깔려 있는 비관찰적인 안과적 메커니즘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가 다른 것을 그 자체로서는 intrinsica lly 일으킨다고 인정 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어떠한 개별 경험도 그 자신으로서는 다른 경험들을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하지 못한다.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앞선 또는 동시적인 사건 및 조건들에 의해 다른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 답은 그들을 연 결시키기 위한 일반적 성격을 지닌 진술이 존재한다면 가능하다는 것 이다. 예를 들면 주어진 공기는 그 자체로서는 열을 받으면 팽창된다 는 사실이 필연적으로 일어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공기는 열을 받으면 항상 팽창한다는 일반화된 진술이 있으면 가능하다. 경험주의 자는 관찰할 수 없는 필연성이란 관념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 에게는 이 필연성이란 주어진 사건 및 조건들과 설명해야 하는 사건 을 기술하는 기술들 descri ption s 사이 의 관계 이지 사건 자체들의 관계 는 아니다.
만약 우리가 개별 경험을 경험주의자의 세계에 한정시키지 않는다 면, 또는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간에 필연적 연결이 있다는 생 각에 어떤 가능성을 둔다면, 어떤 개별 현상의 필연성을 보여 주기 위하여 반드시 법칙에 기초한 연역에 호소할 필요는 없다. 물리적으로 비결정론적인 시스템에 의해 나타나는 상대적 빈도 수는 개별적인 우 연적 사건들의 chance events 축적된 결과로서 설명된다고 생각하는 것 처럼, 오히려 구체적 물리적 시스템의 필연적 성질을 이용해서 일반화 g ener ali za ti on 를 설명할 수도 있다.6) 이때는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 법 칙에 기초한 연역에 반드시 호소할 필요가 없다. 이처럼 설명은 형이 상학적 입장에 따라 다르다. 이 논문에서는 설명에 대한 표준적 이론으로 알려진 헴펠의 연역 법칙적 모형과 40 여 년 간 헴펠을 비판하면서, 이를 보완하거나, 대안 으로서 제안된 여러 입장의 설명 이론을 검토하고 문제점을 지적하고 미래의 전망에 대해 서술하고자 한다. 그 구성은 다음과 같다. 2 절에 서는 헴펠의 이론이 기초하고 있는 흄 D. Hume 의 인과 개념을 다루 고, 3 절에서는 헴펠의 연역 법칙 모형을 소개하고, 문제점을 지적한다. 4 절에서는 헴펠을 보완하면서 여전히 경험주의 전통을 유지하려는 반 프라센 B. van Fraassen 의 화용론적 설명 이론7)을 다루고 문제점을 지 적한다. 5 절에서는 키처 P. K it cher 의 통일로서의 설명 이론 8) 을 소개하 고 문제점을 지적한다. 6 절에서는 실재론적 입장에서의 인과적 설명 9) 울 소개하고 문제점을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미래의 전망을 간단히 논 의하고 마친다. 6) Ra ilton (1 9 89), p. 222. 7) van Fraassen(1 9 80). 8) Kit ch er(1 9 89). 9) Salmon(1 9 84) .
2 흄 방식의 인과 개념 많은 경우에 사건이 일어난 것을 설명한다는 것은 그 사건의 원인 이 무엇인가, 다시 말해서 그 사건이 무엇의 결과인가를 진술하는 것 이다 .10) 그러면 원인과 결과 혹은 인과란 무엇인가? 인과의 본성은 쉽게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인과에 관한 질문은 아리스토텔레스 Aristo t l e 이래로 많은 철학자들을 괴롭혀 왔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 면 인과 개념의 문제들은 소크라테스 Socra t es 이전의 철학자들에 의해 이미 제기되어 왔던 것이다. 우리의 전-분석적이고 상식적인 관점에서 볼 때, 〈사건 E1 이 사건 E2 의 원인이다〉라는 진술은 E1 과 표가 단지 우연히 일치한다는 이상의 것을 제보해 주며, 어떤 종류의 필연성이나 인과적인 힘이 인과 관념에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필연성이나 인과적인 힘들은 우리에게는 관찰되지 않는 것이다. 전통적인 논리경험주의자의 검증주의는 두 개의 중요한 부분, 곧 검 증주의 의미론과 지식경험론을 갖고 있다. 후자에 의하면 종합적인 진 술에 대한 증거는 찬반에 관계없이 관찰 가능한 예측들이 연역되고 그들의 옳음이나 그름을 입증하는 관찰들에 의해서만 유일하게 주어 진다 .11) 따라서 인과 관념은 지식경험론을 받아들이는 경험론자들에게 는 문제가 많은 것이었다. 어떤 현상이 왜 일어났는가를 설명하기 위 해서는, 상식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어떤 종류의 인과 법칙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인과 법칙이 무엇인가? 인과 법칙은 단순히 어떤 종 류의 규칙성인가? 인과 법칙은 비관찰적인 사건과 관찰적인 사건들 사이를 연결하는 관계인가? 만약 인과 법칙이 보편자들간의 관계로 간주된다면 그러한 보편자들의 존재론적인 지위는 어떠한가? 이러한 질문들은 관찰되지 않는 존재자들과 연결되어 있어서 경험론 철학자 들에게는 매우 당혹스러운 것이다. 이리하여 경험론자들은 인과 법칙 10) Boy d( 1 9 85), p, 358 11) Boyd ( 1 9 9l) , p, 5
에 호소하지 않고 현상이 왜 일어났는지를 설명하는 방법을 발견하려 고 시도해 왔댜 위대한 경험론 철학자 흄은 18 세기에 그의 유명한 책 『인간 오성에 관한 탐구 』 에서 이 문제에 관해 논의를 시작했다. 흄의 해결책은 인 과 개념을 비인과적인 용어로 환원시킴으로써 인과 관념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흄은 그의 책에서 인과에 대한 두 가지 정의를 제시했다. 우리는 원인을 다른 대상이 뒤따라오는 어떤 대상으로 정의할 수 있고, 첫번째 대상과 유사한 대상들이 있는 경우에는. 두 번째 대상과 유사한 대상들이 뒤이어 나타난다. 또는 다른 말로 이야기하면. 거기에는 만약 첫 번째 대상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두 번째 대상이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원인의 나타남은 항상 일상적인 전이 transiti on 에 의해서 정신을 결과라 는 관념에 전달한다 . 우리는 이것에 대한 경험도 역시 갖는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러한 경험에 적합하게 원인에 대한 다른 정의를 형성하고 그 것을 다른 것에 의해 뒤따라오는 하나의 대상으로 부르고` 그것이 나타날 때는 항상 사고를 다른 대상에 전달한다. 그러나 비록 이 두 개의 정의가 모두 원인에 대해 낯선 환경으로부터 유도되지만. 우리는 이러한 불편함 을 수정하거나 혹은 원인 안에서 원인을 그것의 결과에 연결시키는 그러 한 환경을 지적해 낼 수 있는 더 이상의 완벽한 정의를 달성할 수 없다. 우리들은 이러한 연결에 대해 알지 못하고 우리가 그것의 개념에 대해 깊 이 생각할 때 우리가 알기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구별되는 관념 조차도 알지 못한다 . 12) 첫번째 정의에 의하면, 하나의 사건이 다른 사건의 원인이라고 말하 는 것은, 첫번째 사건과 같은 사건이 일어나면 항상 또는 일반적으로 12) D. Hume, An Enq ui ry Concernin g Human Understa n din g , 2nd Edition , ed. Eric Ste im b erg, Hackett Publi sh i ng Comp an y 1993, p. 51. 텍스트는 1777 년에 출판된 버전을 따랐다.
또는 전형적으로 두 번째 사건과 같은 사건들이 뒤따라 일어난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기에서 〈 같은 〉 , 또는 〈 한 사건에 유사한 〉 이란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 흄에게 있어서는 유사성이란 말은 심리 학적인 용어로 자세히 설명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두 사건을 모을 수 있는 심리학적인 경향을 갖고 있다면 그 두 개의 사건들은 유사하 다.〉 13) 이와 같이 관찰할 수 없는 인과성이란 관념 대신에 흄은 주관 적인 요소를 도입했던 것이다. 인과성이란 관념을 주관적인 토대 위에 놓는다는 것은 현대의 경험 주의 철학자들에게는 만족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 그러므로 현대의 경 험주의자들은 다른 노선을 취해 왔다. 러셀 B. Russell 은 자연의 법칙 이란 것을 선호하여 인과 개념을 제거하기를 원했다 . 그는 유명한 『인과 관념에 관해서」라는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우리는 철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인과성의 법칙이 거 짓이고 과학에서는 채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 그래서 우리는 과 학 법칙들의 본성을 고려했고, 한 사건 A 에 다른 사건 B 가 반드시 뒤따 라온다고 말하는 대신에. 그들은 어느 시간에 어떤 사건과 더 앞선 시간 에 혹은 동시에 또는 나중에 일어나는 다른 사건들 간에 결정소 De t e rminants라고 불리는 기능적 관계를 이야기한다 . 우리들은 여기에 개 입된 선천적 범주를 찾을 수 없다. 과학 법칙들의 존재는 무내용적이거나 과학적으로 유용하지 않은 형태를 제외하고는 순수히 경험적인 사실이고 . 필연적으로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 .14) 실제로 과학자들은 이론 의존적 방법으로 유사성의 유관한 면을 확인한 다i den tify . 만약 유사성의 관찰 가능한 면들이 현재 받아들여진 이론들에 의해 적절한. 그리고 관찰할 수 없는 인과 메커니즘의 증상으로 정체성이 13) Gaspe r (1 9 91 ), p. 290. 14) Russell(1 9 19), pp. 207-208.
밝혀진다면 . 그들은 유관하다. 흄의 분석에 대한 논리실증주의자들의 20 세 기 버전이 시도하려고 하는 것은 과학적 실천의 이러한 특징에 대한 지시 를 인과 관념의 합리적 재구성에 포함시키려는in co rpo ra t e 것이다. 한 사 건이 다음에 일어나는 사건의 원인이 되는 것은 단지 두 번째 일어나는 사건이 자연의 주어진 법칙들과 이전의 조건에 대한 적절한 진술들로부터 연역적으로 예측 가능할 경우이다 .15) 이러한 재구성에서, 인과는 자연의 법칙들로 정의된다. 경험주의자 들에 의하면 〈 인과 관계〉라는 것은 자연의 법칙들에 대한 규약적인 conventio n al 정의의 한 부분이고 이론 의존적인 방법은 단지 그러한 법칙들을 찾아 내려고 하는 과학자들의 노력의 표현인 것이다. 자연의 법칙이란 관념을 인과 관계의 그 정의에 포함시킴으로써, 오늘날 흄의 버전 vers i on 으로 된 인과 진술은 인과 관계에 대해 과학자들이 어떻게 평가하든지 간에 무엇이든지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 다 .1 6) 헴펠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함으로써, 어떤 사건이 다른 사건의 원인 이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한 법칙을 전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사건의 발생에 대해 설명을 한다는 것은 그 사건의 원인 cause 이 무엇 인가를 지적하는 것으로 종종 받아들여진다. 이리하여 듀이J. Dewe y에 의해 기술된 비누 방울의 초기의 팽창은 바닥이 평평한 컵에 잡힌 공 기가 따뜻해지는 것이 원인이었다고 말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인과적 부여는 일정한 압력 아래에서는 기체의 부피는 온도가 중가함에 따라서 중가한다는 적절한 법칙을 전제한다. 원인과 결과를 연결지어 주는 일반적인 법칙을 전제함으로써 인과적 설명은 자연스 럽게 D-N(Deductiv e -Nomologi ca l) 모형을 따른다. 그는 설명의 문맥에 서, 〈원인〉은 진술들의 집합으로 기술되는 환경과 사건들의 다소 복 15) Ga sper (1 9 91 ), p. 290. 16) 같은 책.
잡한 일련의 집합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동일한 원 인〉, 〈동일한 결과〉라는 원리에 의해 제시된 것처럼, 그들 환경들이 공동으로 주어진 사건을 일으켰다 caused 는 주장은 질문이 된 종류의 환경들이 언제, 어디서 일어나든지 간에 설명되는 그러한 종류의 사건 들은 일어난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이리하여 인과적 설명은 묵시적 으로 C,, C2, …, Ck 속에 언급된 인과적 선행 조건들의 발생이 설명 되는 사건의 발생을 위한 충분한 조건이 되는 L,, L2, …, L 로 표현되 는 일반적 법칙들이 존재한다고 묵시적으로 주장한다. 인과적 요소와 결과 사이에 존재하는 이러한 관계는 D-N 도식에 반영되어 있다. 인 과적 설명은 적어도 묵시적으로 연역-법칙적이다. 이리하여 헴펠은 흄 의 방식의 인과 개념을 취하여 그의 연역-법칙적 설명 이론을 제안한 다 .1 7) 3 설명에 대한 헴펠의 D-N 이론 헴펠의 포괄 법칙 모형은 설명이 논증 또는 연역이라는 생각으로부 터 시작한다. 이 모형에서는 과학적 설명은 반드시 다음의 기준들을 만족해야 한다. 설명의 유관성 : 〈제시된 설명에 사용되는 정보는 설명되는 현상이 참으 로 일어나거나. 일어났다는 사실울 믿을 만한 좋은 근거를 제공한다 . 〉 18) 시험 가능성 : 〈과학적 설명을 구성하는 진술들은 반드시 경험적으로 검 증될 수 있어 야 한다.〉 19) 17) Hemp el (1 9 65), pp. 348-349. 18) Hemp el (1 9 66), p. 300. 19) 같은 책.
위의 두 요구들은 독립적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다. 유관성의 요구를 만족하는 제안된 설명은 시험 가능성의 요구도 역시 만족한 다 .20) 왜냐 하면 어떤 설명이 한 현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믿을 만 한 좋은 근거를 제공하면 그 설명이 제공하는 근거들 또는 근거들의 논리적 귀결이 되는 진술을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러나 경험적으로 검증될 수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 현상에 대해 믿을 만한 근거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예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두 기준을 만족하는 과학적 설명은 어떤 형태를 이루는가? 헴펠은 다 음과 같은 설명 이론을 제안했다. 핵심적인 사상은, 이론이 한 사건을 설명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 은 문제된 사건의 이전 조건들을 적절히 명시하는 이론으로부터 그 이후 의 사건에 대한 예측을 끄집어 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 21) 이 포괄 모형의 형식은 다음과 같은 도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L1, ~. …… L 설명하는 문장들 C1, C2, …… Ck E 설명되는 문장 L1, Li, …… L 들은 일반적 법칙들이고, C1, C2, …, Ck 들은 사건 E 앞의 적절한 조건들이다. 이 포괄 법칙 모형에서는 자연의 법칙들 L 과 사건 E2 에 앞선 적 절히 정의된 조건들을 표현하는 진술 C 가 존재하고, L 과 C 와 사 건 E1 의 발생을 보고하는 진술로부터 다음에 일어나는 사건 E2 의 20) 같은 책 21 ) Boy d( 1 9 85), p. 353.
발생이 연역될 수 있을 경우에만 사건 E1 이 사건 L 의 원인이 된 댜 22) 이러한 설명 이론에서는 〈 인과적 힘들, 배후에 깔려 있는 메커니즘 들 숨겨진 본질 그리고 자연적 필연성과 같은 감각되지 않는 것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개입은. 인과 관념을 자연의 법칙들 아래 연역적으 로 포섭시킴으로써 ‘합리적 재구성'을 하는 방향으로 제거된다. 〉 23) 이 포괄 법칙 모형은 때때로 설명의 연역-법칙적 모형이라고 불린다. 이 모형은 단순한 철학적 추상이 아니며 과학 연구에 중요한 영향을 끼 쳐 왔다. 이 D-N 모형은 헴펠의 설명이 만족시켜야 할 두 가지 기준을 만족 시키는 매력적이고 그럴 듯한 이론이다. 보이드R. Bo y d 에 의하면 설 명에 대한 D-N 이론은 세 가지의 철학적 장점들을 가진다. (1) 그것 은 이론이 갖고 있는 설명적 힘을 그것이 적용되는 보다 일반성이 있 는 배경에 의존하는 것으로 묘사한다. (2) 그것은 자신이 발생했던 철학적 전통에서 보편화되어 있는 인과 이론에 기초하고 있다. (3) 그것은 설명 이론에 대한 방법론적 선호를 관찰적 증거에 의해 지지 받는 이론의 선호에 대한 특별한 경우로 묘사한다 .24) 이러한 D-N 설 명 모형은 설명에 대한 적용면에서 매우 넓고. 아주 풍부하고 재미있 는 다양한 영역의 논문들에서 비판을 받아 왔고 또 옹호되기도 했다. 위에서 언급한 매력적인 특징들과 D-N 모형의 여러 개정판에도 불 구하고 D-N 모형이 해결할 수 없는 예들이 있다. 그것들은 대개 다 음과 같은 세 가지 범주들로 나누어진다. 즉, 비대칭성 문제. 합리적인 설명의 거부. 그리고 설명적 힘과 이론 선택 간의 관계에 대한 설명 적 무력성이 그것이다. 비대칭성에 관해서는. 브롬버거 S. Bromber g er 의 깃대가 좋은 보기이다. 22) Boyd ( 1 9 85), p. 355. 2234)) BBooyyd d(( 11 99 8855)),, pp.. 335535..
(1) 어떤 높이를 가진 수직의 깃대가 평평한 땅 위에 놓여 있다. 태양은 어떤 높이에서 밝게 빛나고 있다. 그 깃대는 어떤 길이의 그 림자를 던지고 있다. 주어진 깃대의 높이, 태양의 위치에 대한 사실들 과 빛이 직진한다는 자연의 법칙을 가지고 우리는 깃대의 그림자의 길이룰 연역해 낼 수 있다. 비슷한 방법으로, 주어진 태양의 위치와 그림자의 길이와 위에서 사용한 동일한 법칙을 가지고 우리는 깃대의 높이를 연역할 수 있다. 비록 이 두 설명이 동일한 포괄적 구조를 갖 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깃대의 높이가 그것의 그림자의 길이에 의 해 설명된다고 말할 수 없다. 이것이 설명의 비대칭성이라고 불리는 데, 이것은 법칙들 아래로 포섭한다는 것이 좋은 설명에 대한 충분한 조건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와 유사한 예들이 있는데, 곧 기압계와 폭풍, 달과 조수 둥이다. 이러한 것도 역시 법칙들 아래 로 포섭시킨다는 것은 좋은 설명을 제공하기 위한 충분 조건이 아니 라는 것을 보여 준다. 이러한 유형의 설명이 갖는 두드러진 특징은 설명한다는 것은 곧 법칙적인 기대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25) 헴펠의 대칭성 논제 2 6)는 두 종류의 논제로 나누어질 수 있다. 하나 는 좁은 대칭성 논제라고 불리고, 다른 하나는 넓은 대칭성 논제라고 불린다. 좁은 대칭성 논제에 의하면, 모든 비통계적 예측은 D-N 설명 이다. 넓은 의미의 대칭성 논제에 의하면, 모든 예측은 D-N 설명이거 나 I-S 설명의 변형이다 .27) 죽, 넓은 의미의 대칭성 논제는, 사건을 25) Salmon(1 9 89), p. 47. 26) 헴펠에 있어서 사건 P 를 설명한다는 것은 단순히 사건 P 가 일어난 후에 P 를 예 측하는 것이고, P 를 예측하는 것은 단지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그것을 설명하 는 것이다. 물론 예측은 옳을 수 있고 틀릴 수도 있지만 설명은 아니다. 설명은 적 절하거나 혹은 부적절하거나이다 . 따라서 헴펠의 대칭성 논제란, 곧 사건 P 의 예측 울 정당화하는 것으로 사건 P 의 설명과 대칭적이라는 것이다. 27) I-S 설명은 ind ucti ve sta tistica l 설명의 약어이다. 헴펠에 있어 I-S 설명은 D-N 설명과 유사한 형식인데, D-N 은 보편적 형식의 법칙 아래 연역적으로 포섭하는 데 비해 I-S 설명은 확률적 법칙 아래 귀납적 포섭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 음과같다.
확률 P(O, R) 은 1 에 가깝다. i는 0 의 경우이다 . -- - ---------------(높은 확률을 가지고) •. --·----------···-- i는 R 의 경우이다. 참조 : Salmon( l98 9), p. 48 ; Hemp el( 1966), Ph ilos oph y of Sci en ce, Ch. 5, pp. 47-69.
설명한다는 것은 높은 확률을 갖고 사건을 예측한다는 것이고, 동시에 높은 확률을 갖고 사건을 예측한다는 것이 곧 사건을 설명한다는 것 이다. 보기 (1)의 브롬버거의 깃대는 대칭성 논제에 반대하는 예로서 좁은 대칭성 논제에만 적용될 수 있다. 다음에 나오는 예는 넓은 대 칭성 논제에도 적용될 수 있는 반대 예이다. (2) 매독과 국소마비 증세를 생각해 보자. 국소마비중은 매독 3 기의 한 형태로서 페니실린으로 치료받지 않은 상태로 질병의 1 기, 2 기와 잠복기 단계를 거친 사람에게 일어나는 것이다. 만약 사람이 국소마비 증에 걸린다면, 그것은 잠복되어 있고 치료하지 않은 매독에 기인한다 고 설명한다. 그러나 잠복되어 있어 치료하지 않은 매독으로 인해 국 소마비중에 걸릴 확률은 상대적으로 적어 약 25% 정도이다. 비록 설 명하는 항들이 높은 귀납적인 확률을 가지고 좋은 이유를 제공할 수 없는 경우라도, 그것은 좋은 설명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것은 법칙 아래로의 포섭 또는 좋은 논증을 제공하는 것이 좋은 설명의 필요 조 건조차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이리하여, 만약 한 사람이 잠복되어 치료를 받지 않은 매독을 갖고 있다면, 통계적으로 올바른 예측은 그는 국소마비 중세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반대 예는 진화론적 생물학에서도 보인다. 비록 진화론적 생 물학이 진화 현상에 대한 설명을 제공한다고 하더라도 , 어떤 변이가 일어날 것이며 그 변이 중에서 어떤 것이 살아남아 진화될 것인지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다 . 28) 이 두 반대의 예들 (1)과 (2) 는 대칭성 논제가 성립될 수 없음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다음의 반대 예들은 위의 두 가지 예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의 것이다 . 이것 은 설명의 유관성에 관한 것이다. (3) 어떤 종류의 질문들은 분명히 통사론이나 의미론에서 볼 때 〈 왜? 〉 라는 질문 wh y-q ues ti on 이 되지만, 이에 대한 답을 기대할 만한 가치 있는 질문이 아닌 경우가 있다 .29) 예를 들면 〈 왜 힘이 가해지지 않은 물질은 속도를 유지하는가? 〉 라는 질문은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 학에서는 중요한 질문이었지만 뉴턴 I . New ton 역학에서는 질문으로 적합하지 않다. 우라늄 붕괴의 경우에, 현대의 양자역학은 왜 어떤 양 의 우라늄 원자들은 어떤 기간에 붕괴되는가 하는 것은 설명하지만, 왜 어떤 특정의 우라늄 원자가 붕괴되는지에 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 다. 나아가서 양자역학의 영역에서는 그러한 질문 자체가 합당한 것으 로 간주되지 않는다. 이것은 〈 설명의 거부 〉 라고 불린다. 설명에 대한 D-N 모형 또는 1-S 모형은 이러한 반론적인 예들에 대해 좋은 해석을 제공하지 못한다. 또한 1-S 설명은, 특정한 사건에 대한 통계적 설명 개념은 본질적으로 주어진 지식 상황에 대해서 상 대적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만약 우리가 새로운 지식 상황을 갖게 되면 우라늄 원자의 붕괴와 같은 사건들에 대한 설명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다. 양자역학은 이런 의미에서는 완전하고 세계는 비결정론적이며 객관적이다. 그러므로 D-N 이나 1-S 는 설명의 거부에 대한 좋은 해석을 제공할 수 없다. (4) 마지막으로 깊이를 결여한 설명을 고려해 보자. 주어진 배경 조 건들에 관한 지식과 적절한 일반 법칙을 갖고 사라예보에서 일어난 페르디난트 대공의 암살에 관한 정보에 기초해서 1 차 세계 대전의 발 발을 예측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가정하자. 이러한 예측은 주어진 배경 28) Salmon(1 9 89), p. 49. 29) 참조 : van Fraassen(1 9 80), pp. 111-112.
조건과 일반적인 법칙이 포함되는 과학 이론에 기초해서 피설명항의 연역이 이루어지면, 피설명항은 설명된다고 보는 헴펠의 포괄 법칙 모 형에 의하면 분명히 만족할 만한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 리의 직관에는 분명히 그러한 예측은 여전히 전쟁의 발발에 관해 만 족할 만한 설명을 구성하지는 않는다. 인용된 사건들은 기껏해야 갈등 의 직접적 촉발제이지 배후에 깔려 있는 참된 원인들은 아니다. 왜냐 하면 페르디난트 대공이 암살되지 않았더라도 당시의 정치 경제적 조 건에서는 다른 촉발제에 의해 1 차 대전이 일어나는 일이 가능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페르디난트 대공의 암살을 가지고 1 차 세계 대전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깊이가 결여된 설명이기 때문에 설명으로 선택하지 않는다. 비록 1 차 세계 대전이 이런 방식으로 발발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즉 페르디난트 대공이 암살되지 않았다 하더라 도, 배후에 깔린 원인들로 인해 대신에 어떤 다른 방식으로 1 차 대전 이 일어났을 것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따라서 만족스러운 설명을 하 려면 밑에 깔려 있는 원인들에 호소하여야 한다. 그러나 포괄 법칙 모형의 기준을 만족하는 연역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원인들에 호소하 는 데 실패할 수 있다. 따라서 헴펠의 설명 이론은 설명력이 강한 이 론과 그렇지 못한 이론의 차이점을 해명하지 못한다 .30) 헴펠이 비대칭성 문제를 전연 의식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추의 길 이와 추의 주기와의 관계를 예로 이야기한다 .31) 추의 길이를 가지고 추의 주기를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추의 길이가 추의 주기를 설명 한다고 하면 이것은 문제가 있다. 그 이유는 추의 길이는 임의로 변 화시킬 수 있고, 종속 변수로서 그것의 주기를 제어할 수 있기 때문 에 추의 길이가 추의 주기를 설명한다고 하는 것이 우리의 상식적인 개념에 들어맞지만, 그 역의 경우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헴펠에 30) 참조 : Gaspe r (l 99 l) , p. 292. 31) Hemp el (l 96 5), pp. 352-353.
의하면. 이러한 우리의 상식 적 개념에 문제가 있다. 왜냐 하면 우리가 추의 주기를 변화시키지 않고 추의 길이를 변화시킨다는 것을 타당하 게 논증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경우는 설명에 대한 우리 의 상식적인 개념이 연역적인 포획을 설명으로 간주하는 것에 대해 분명한 근거를 제공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답한다. 따라서 그는 비대칭성 문제는 그의 설명 이론에 큰 문제라고 보지 않는 것 같다. 4 반 프라센의 화용론적 설명 이론 4.1 반 프라센의 설명 이론 위에서 본 것처럼, 헴펠의 D~N 설명의 문제점은 대략 세 종류로 나 누어진다. 비대칭성 문제, 설명의 거부 그리고 설명의 평가, 즉 설명력 과 이론 선택의 관계이다 . 반 프라센은 그의 유명한 책, 『 과학적 이미 지』에서 경험론자인 흄의 인과 개념을 지니면서 새로운 설명 이론을 제안했다 . 반 프라센의 설명 이론의 요점은 〈비대칭성〉 문제와 〈 설명의 거부 〉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문맥적 요소들을 도입하는 것 이다. 문맥적 요소는 주로. 유관 관계 relevance rela ti on 와 대조 집합 contr as t class 이 다. 반 프라센에 의하면, 만약 설명의 비대칭성이 문맥적으로 결정된 유 관 관계에 의해서 결과된 것이라면. 비대칭성은 적어도 문맥의 변화에 의해 때때로 바뀔 수 있어야 한다 .3 2) 이러한 유관 관계와 대조 집합 의 개념을 가지고 반 프라센은 헴펠의 당혹스러운 비대칭성 문제를 풀려고 시도했다. 여기서는 반 프라센의 설명 모형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32) van Fraassen(1 9 80), p. 130.
헴펠의 문제를 해결하는지 살펴본다 . 반 프라센에 의하면 설명은 논증 이나 명제의 나열이 아니라 〈 왜? 〉 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이다 .33) 설명 은 대답이기 때문에 그것은 본질적으로 상대적이다 . 34) 무엇이 〈 왜 〉 라 는 질문인가? 그리고 왜 설명은 논증 대신에 대답인가? 반 프라센은 〈왜 아담이 사과를 먹었는가? 〉 라는 질문을 여러 방식으로 구성하여 논의한다 .35) (1) 왜 사과를 먹은 자가 아담인가? (2) 왜 아담이 먹은 것이 사과인가? (3) 왜 아담은 사과를 먹었는가? 브롬버거에 의해 제시된 질문의 정규 형식은 동일하지만 세 가지의 서로 다른 설명 요청이 있다 . 이러한 여러 요청들간의 차이점은 그들 이 서로 모순적인 대안들을 지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경우 (1)은 왜 사과를 먹은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고 아담인가를 질문하 고, 반면에 (2) 는 왜 아담은 어떤 다른 과일이 아니고 사과를 먹었는 가를 묻는다. 위의 질문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반 프라센은 〈 왜〉라는 질문은 〈 왜 X 와 대조해서 P 인가?〉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X 는 대안들의 집합이다 .3 6) 이리하여 〈왜〉라는 질문은 본질적으로 대조적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의도된 대안이 무엇인지는 토론자들에게 문맥상 분명하기 때문에. 대조 집합은 명시적으로 기술되어 있지 않다 . 37) 반 프라센은 대조 집합이 그의 설명 이론을 위해 충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유관 관계를 도입한다. 설명은 종종 어떻게 한 사건이 일어났는가에 33) van Fraassen( l98 0), p. 134. 34) van Fraassen( l98 0), p. 156. 35) van Fraassen( l98 0) , p. 127. 36) van Fraassen( l98 0), p. 124. 37) van Fraassen( l98 0) , p. 127.
관한 완전한 이야기를 지시하는 두드러진 sa li en t 요소들을 나열함으로 써 구성된다. 두드러진 요소들의 선택을 통해서 우리들은 어떻게 이러 한 사건이 초래되었는지에 관해 여러 대안적인 가설들을 제거할 수 있다. 대조 집합에 덧붙여서. 문맥은 여러 대안적인 가설들을 제거할 수 있는 유관성을 결정한다• 이에 기초하여. 반 프라센은 설명의 화용론에 관한 형식적 이론을 제시한다. 그에 의하면. 주어진 문맥에서 의문사에 의해 표현되는 〈왜〉 라는 질문 Q는 세 가지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3 8). 논제 top i c pk 대조 집합 con tr as t class X={P1, P2, …… Pk, ……) 유관 관계 R 추상적인 〈왜〉라는 질문은 다음의 정렬된 세 항으로써 확인한다 ide nti fied . Q=
어떤 명제 A 가 정렬된 이항
40) van Fraassen(1 9 80) . p. 145.
주어진 문맥에서 일어나는가? 반 프라센에 의하면 K 가 Q의 중심적 전제를 함축하고
41 ) Kitch er and Salmon(1 9 87), p. 318. 42) van Fraassen(1 9 80). p. 144.
발생하지 않는다. 이것은 〈 질문이 발생되는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은 이러한 배경 이론이 결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44) 이를 좀더 자세히 설명하기 위하여, 반 프라센은 중심적 전제란 용어를 도입한다. 질문 Q의 중심적 전제는 명제 pk, 그리고 i *k 인 모든 i에 대하여 not P i를 말한다. 질문이 발생되는지 않는지는 K 가 중심적 전제를 함축하고 있는지 않은 지에 의존한다. 중심적인 전제가 이 문맥에서 이미 가정되어 있는 것. 또 는 이 문맥에 부합되는 것의 부분이 아닌 한에 있어서는 〈왜〉라는 질문 은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 둘째로 덧붙여서 Q는 그것의 주제와 대조 집합에 유관한, 명제들 중의 하나인 A 가 참이라는 것을 전제한다. K 는 그것을 함축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우에. K 가 그들 모든 명제가 거짓이라는 것을 함축하지 않는다면 질문은 여전히 발생할 것이다 .45) 이렇게 하여, 반 프라센은 〈이러한 문맥에서 질문이 발생한다〉는 것 은 정확하게 다음을 의미한다고 제안한다. 〈 K 는 중심적 전제를 함축 하고 어떠한 전제의 부정을 함축하지는 않는다.〉 4 6) 이상과 같은 반 프라센의 설명 이론은 헴펠의 문제점, 곧 설명에 대 한 철학적 이론이 지니는 문제점인 설명 요구에 대한 합법적인 거부, 설명의 비대칭성을 그의 이론으로 해결하는 데 성공했는가? 그의 설 명 이론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가? 반 프라센은 〈지금까지 자신이 개 발해 온 꽤'라는 질문에 대한 이론에 의해 이러한 문제들은 성공적으 로 해결되었다. 〉 4 7)라고 이야기한다. 과연 그러한가? 필자는 그의 이론 43) 같은 책 44) 같은 책 45) Kit ch er and Salrnon(1 9 87), pp. 145-146. 46) Kit ch er and Salmon( 1987) , p. 146. 47) 같은 책
이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그는 헴펠의 비대칭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고 또 다른 문제, 곧 설명력과 이론 선택 사이의 관계 라는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고 생각한다. 4.2 반 프라센의 설명 이론의 문제점 설명 요청에 대한 합리적 거부라는 문제는 반 프라센의 이론에 의 해서 잘 해결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양자역학에서 우라늄 원자가 붕 괴를 하는데 여러 우라늄 원자 중에서 어떤 원자가 붕괴하는지에 대 한 질문에 대해서 양자역학은 그것을 합당한 질문이라고 보지 않는다. 반 프라센에 의하면, 결정론적 세계라는 문맥에서는 위의 질문이 타당 하지만 비결정론적인 세계를 문맥으로 받아들일 때는 위의 질문이 질 문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양자역학은 비결정론을 문맥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위의 질문을 합리적으로 거부할 수 있다. 그러나 비대칭 성 문제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는다. 이에 덧붙여서 반 프라센의 설 명에 대한 화용론적 설명 이론은 또한 설명력과 이론 선택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부딪치게 된다. 첫째로, 비대칭성의 경우로 잘 알려진 예를 살펴보자. 그림자의 길 이로부터 탑의 높이를 유도할 수 있지만, 그 유도가 탑의 높이를 설 명하는 것은 아니다. 반면에 탑의 높이로부터 그림자의 길이를 유도하 는 것은 그림자의 길이에 대한 좋은 설명이 된다. 그러나 반 프라센 에 의하면, 이것은 질문의 문맥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간주된댜 그는 어떤 종류의 설명 요청은 〈왜〉라는 질문이 배경 지식에 의해 함축되는 중심적인 전제를 만족시키지 못할 때 거부될 수 있다는 점 을 지적한다• 비대칭성은 유관 관계가 단지 설명 관계의 특정한 방향 만 받아들이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그림자의 길이에 대한 설명을 탑의 높이로 하려 할 때의 문맥, 즉 유관 관계는 탑의
높이를 그림자의 길이로 설명하려는 문맥과는 다르다. 탑의 높이를 가지고 그림자의 길이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 왜 〉 라 는 질문이 발생하는 문맥, 즉 유관 관계는 그림자의 길이로 탑의 높 이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 왜 〉 라는 질문이 발생하는 문맥과는 다르 다. 반 프라센은 한 설화를 제안하여 그 설화 속에 나오는 등장 인물 이 탑의 그림자의 길이라는 수단에 의해서 탑의 높이를 설명하는 예 를 제시한다 . 기사가 광적인 정도로 사랑했던 하녀를 죽이는 장소를 탑이 표시를 한 다. 그리고 탑의 높이는? 그는 그림자는 해가 질 때마다 그가 처음 그의 사랑을 선언했던 테라스를 덮을 것이라고 맹세했다-그것이 그 탑이 그렇게 높아야 했던 이유다 .48) 건축자의 의도에 관한 정보와 결합해서 탑의 높이를 탑의 그림자의 킬이와 어떤 보조 조건들로부터 유도해 낼 수 있다 . 따라서 새로운 문맥에서 그림자의 길이로부터 탑의 높이를 설명할 수 있다. 이것은 만족스러운 답인가? 브롬버거의 깃대는, 깃대의 높이는 그림자의 발생 에 물리적으로 인과적으로 기여할 수 있으나, 그림자의 길이는 깃대가 그렇게 높아지는 데에 아무런 기여를 못 한다는 뜻에서, 깃대의 높이 는 그림자의 길이를 설명할 수 있으나, 그림자는 깃대의 높이를 설명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는 반 프라센이 동의하는 것 같다. 반 프라센이 동일한 문맥에서 그림자에 의한 깃대의 높이의 설명은 성립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다른 문맥을 제공하여 그 역이 가능한 것처 럼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일단 대칭성 문제는 접어 놓고` 그림자의 길이를 어느 정도까지 해야겠다는 설계자의 의도와 물리적 작업들과 물리 법칙들을 가지고, 탑의 높이가 왜 그러한 높이가 되었 48) Kitch er and Salmon(1 9 87), pp. 133-134.
는지를 훌륭히 설명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 . 〈 왜 깃대의 높이를 그 렇게 했는가? 〉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설계자가 어떤 이유로 그 렇게 하고 싶어서 그에 맞도록 설계를 하고 건설하는 인부들이 그 높 이가 되도록 했다고 했을 때. 그것이 훌륭한 설명이 될 수 있다는 것 은 직관에 부합된다고 볼 수 있다 . 그러나 탑의 높이에 의해 깃대의 그림자를 설명한다는 것은 직관적으로 타당한데, 탑의 그림자로써 탑 의 높이를 설명하는 것은 우리의 직관에 너무나 타당하지 않다 . 왜냐 하면 그림자가 탑의 높이 를 결정할 수 없다는 아주 자명한 이유 때 문이다. 따라서 반 프라센은 설계자의 의도를 문맥으로 사용했다. 왜 냐 하면 그러한 의도를 가진 설계자는 탑의 높이를 조정할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설명을 만들기 위하여 고의적으로 문맥 을 도입한 것이지, 주어진 문맥에서 그것이 설명이 되는 것과는 거리 가 멀다. 비대칭성 문제는 동일한 문맥일 때 문제가 되기 때문에 일 어나는 것이다. 반 프라센식으로 설명이 안 될 때 문맥이 다르다는 것을 주장한다면, 설명이 안 되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반 프라센 의 설화에서 보이는 방식으로 문맥을 설정한다면 모든 것을 설명으 로 만들 수 있다. 이것은 이미 그림자의 높이는 그 자체로서 탑의 높 이룰 〈결정하는〉 힘이 없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 곧 이미 설명의 역 이 안 된다는 이유가 〈결정하는〉 어떤 힘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 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반 프라센은 문제를 회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비대칭성의 다른 예를 생각해 보자. 지구와 태양 사이의 인력의 존 재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죽, 이것은 헴펠의 연역 모형에 부합된다. 그런데 헴펠의 연역 모형에서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회전한다는 사실. 그 밖의 다른 보조 조건들과 자연의 법칙들을 가지고 지구의 인력의 존재를 유도할 수 있지만, 명백히 그 것은 설명이 아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사실이 지구와 태양 사이의 인력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는 예는 될 수 있으나, 인력의 존
재를 설명할 수 없댜 반 프라센의 문맥, 즉 지구가 태양 주위를 회전 한다는 사실이 지구와 태양 사이의 인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설명이 되는 그러한 과학적 문맥이 있을 수 있을까? 아마 한참 찾아 야 할 것이다. 이것이 설명이 안 된다는 사실은, 지구의 회전이 인력 이 존재하도록 보조 사실들을 가지고 결정하지 못한다는 것이기 때문 이다. 그런데 이것을 문맥이 달라서 그렇다고 주장하고 그것만 있으면 설명이 된다고 하는 것은 설명을 위해 억지로 문맥을 만드는 것으로 문제를 회피하는 것에 불과하다 .49)
49) 이 대목에 대해서 마치 반 프라센은 모든 설명은 반드시 그 역도 성립하여야 한다는 강한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 같다는 이유를 들어 비판하는 경우가 있다 . 이것은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하는 말이다. 경험주의 입장 에 설 때, 설명은 논증이기 때문에 역 방향의 유도 과정을 끌어 낼 수 있으면 설 명이 된다 .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직관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에 비대칭성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 그때 반 프라센은 문맥을 도입하여 그 역의 논증 과정이 직관적 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은 잘못된 문맥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며 적절한 문맥 을 도입하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이 문맥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 여 주기 위하여 지구-태양의 사례 를 든 것이다.
반 프라센의 이론에 대한 또 하나의 비판은 유관 관계를 찾는 데에 제한을 가하지 않으면 유관 관계의 선택을 임의적인 것처럼 만들어 버리고, 또한 설명이 되지 않으면 문맥 때문이라는 주장을 할 가능성 을 배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 즉, 설명적 유관 관계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가 있는데, 반 프라센의 관점에서는 이들 중에 서 유관성의 결정 기준은 어떤 객관적인 것보다는 개인의 욕망과 이 익들에 기초해 있고, 욕망의 정확한 내용과 유관성이 어떻게 잘 만족 하는지에 대한 평가는 상황에 따라 변한다 .50) 사실상 화용론은 유관 성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 이 점을 자세히 살펴보자. 반 프라센의 관점에서 순수한 〈 왜 〉 라는 질문은 앞에서 이야기한 것
50) 참조 : Grime s(1 9 87), p. 89 ; van Fraassen(1 9 80), p. 156.
처 럼
의 선택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비록 반 프라센의 설명의 선택에 관한 이론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유관 관계 R 을 설정하기에 는 부족하다. 더 이상의 어떤 객관적인 제약이 없는 한 설명이 무내 용적으로 되어 버리는 가능성을 피할 수 없다. 질문 Q는 토픽 B 를 가 지고 대조 집합 X={B, C, …. N) 이라 하자. 그리고 이미 받아들여진 이론과 정보의 배경 K 를 가진 문맥에서 질문 Q가 발생했다고 하고. A 를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이라고 하자. 반 프라센에 의하여
어진다. 〉 53) 이 K( Q)는 문맥에 의해 결정된댜 셋째 기준에서는 다른 대안적인 대답이 존재하여. 이것이 배경 이론에 바추어 더 높은 확률 을 얻울 수 있을지, 곧 A 를 차폐할 screen off 수 있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54) 반 프라센의 이러한 세 가지 평가 기준은 설명력과 이론 선택 사이 의 관계를 해명하는 데 충분치 못하고 몇 가지 문제점을 가진다 . 특 히 그라임스 T. G rim esSs) 는 구체적인 예를 만들어 반 프라센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평가하는 이론이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키처와 새먼은 위의 세 가지 평가 기준을 잘 만족 하는 대답은 A 뿐만 아니라 우리가 임의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두 가지 방식으로 보여 주고 있다 .5 6) 하나는 형식적인 이론을 통해서 보여 주고, 하나는 점성술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다는 예를 들어 보여 준다 . 반 프라센에 의하면 유 관 관계 R 은 본질적으로 화용론으로 결정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관 관 계 R 울 다음과 같이 결정하자 . B 를 다음의 명제 A • (A-Pk) • -z 라 고 하자. 이때 p k 가 B 의 논리적 귀결인 경우에 R 이 B 와
사 이에 성립한다고 약정하자. z 를 대조 집합 X 에 있는 P 를 제외한 모든 구성원의 선언 di sj unc ti on 이라고 하자. 그러면 명제 B 는
폐 screen o ff될 이유가 없다 . 따라서 B 는
구성하는 충분한 명민성울 갖고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 세 번째로, 다 른 어떤 답도 A 보다 낫지 않다. (1) A 는 참이고. 이리하여 다른 답은 확률이 더 높을 수가 없다. 게다가 점성술 이론으로 말하면, 사람이 태어날 때 하늘의 별자리는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에 (2) 어떤 대답도 그 토픽을 더 강하게 인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3) 어떤 다른 사실은 대답 A 의 위치를 빼앗지 못하거나 . 또는 A 를 별로 관련이 없는 것으로irr elevan t 만들지 못할 것이다 .58) 이렇게 하 여 별자리가 아무런 관계 없는 이순신 장군의 죽음과 관련을 맺게 된다. 이러한 새먼의 비판에 대하여, 반 프라센의 입장에서 점성술은 배경 이론이 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 하면 배경 이론은 이미 받 아들여진 과학 이론들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막을 수 있다 고 보는 듯하다. 〈 ……어떤 사실도 과학적으로 적절한 관련을 갖지 않으면 설명에 있어서 적절하지 않다. 과학적으로 적절한 요소들 중에 서. 문맥이 설명에 있어서 적절히 관련이 있는 것을 결정한다. 〉 59) 필 자는 이것이 〈 사람의 죽음과 별자리 사이의 관계는 과학적으로 받아 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점성술의 영향을 사람의 죽음에 대한 설명을 위한 유관 관계로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 고 생각한 다. 이 답은 과연 반 프라센에 대한 키처와 새먼의 비판을 성공적으 로 막아 낼 수 있는가? 이것을 자세히 살펴보자. 반 프라센의 〈과학적인 유관 관계 〉 에 대한 주장은 필자에게는 문제 를 회피하는 것처럼 보인다. 반 프라센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과학 과 일치하는 여러 가능한 관계들로부터 우리의 이익과 욕망에 의해서 하나의 유관 관계를 끄집어 내는 것이다. 점성술의 영향은 유관 관계 로 간주될 수 없다. 왜냐 하면 그것은 배경이 되는 과학 이론과 모순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 프라센의 관점에서는 키처나 새먼의 비판 은 의미 있는 비판이 아니라는 주장을 할 수 있다. 58) van Fraassen(1 9 80), pp. 142-143. 59) van Fraassen( l98 0) , p. 126.
별들의 위치와 인간의 죽음의 관계는 현대 과학의 배경 이론에는 없다. 그렇다고 하여 별들의 위치와 인간의 죽음의 관계가 현대 과학 이론과 모순되느냐고 한다면,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모순되지 않는 댜 이순신 장군이 태어났을 때의 별들의 위치는 우리의 천문학적 주 장에 의해 밝혀지므로 그것은 현대 과학의 배경 이론과 모순되지 않 을 뿐 아니라, 이순신 장군의 죽음의 날짜 역시 우리의 배경 이론과 모순되지 않는다. 다만 그 둘의 관계가 점성술 이론에 의해 추론된 다면 구태여 점성술 이론이 우리 과학과 모순된다고 말할 수 없다. 다음으로 반 프라센이 〈 과학적인 유관 관계 〉 라고 했을 때, 과학은 아 마 그 시대에 받아들여진 과학을 뜻할 것이다. 고대 과학에는 점성술 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점성술 이론을 배경 이론으로 간주해도 무 방하다. 그렇다면 별자리의 위치를 이용한 이순신 장군의 죽음에 대한 설명은 반 프라센의 설명 이론을 만족시킨다. 따라서 고대에는 참된 설명이었고. 현재는 거짓된 설명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별자리의 위 치에 의한 설명은 비록 고대에는 받아들여졌을지는 모르지만 그때도 잘못된 설명이고 지금도 잘못된 설명일 뿐이다. 다만 고대에는 그 사 실을 몰랐을 뿐이다. 왜냐 하면 별자리의 위치는 인과적으로 이순신 장군의 죽음에 영향을 줄 수 없기 때문에 참된 설명이 되지 않는 것 이다 .60)
60) 만약 반 프라센의 과학의 의미를 오늘날의 과학으로 보면. 접성술은 비록 과거 의 과학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오늘날에는 더 이상 과학이 아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의 과학도 어떤 부분은 시간이 많이 흘렀을 때 전연 잘못된 과학 또는 과학이 아 닐 수 있기 때문에 마찬가지이다 . 따라서 과학을 그 시대의 과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반 프라센은 이론의 평가를 위한 정교한 장치를 도입하여 유관 관 계를 결정하더라도, 여전히 화용론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위에서 보여 준 것처럼 어떠한 명제도 어떠한 명제에 의해 설명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피하지 못한다. 우리의 욕망과 이해들이 비록 우리의
탐구 방향을 이끌어 가고, 반 프라센의 의미에서 인과적 요소들의 선 택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 많은 경우에 설명을 위해 적절한 유관 관계를 결정하는 일은 바로 과학 이론의 작 업 목표 중의 하나이다 . 따라서 반 프라센의 화용론적 이론은 그것이 지닌 장점에도 불구하고, 비대칭성 문제를 해결하기는 힘들다. 설명력과 이론 선택의 관계에 대해 포괄 법칙 모형은 성공적인 해 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위에서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반 프라센의 화용론적 설명 이론은 여기에 대해 성공적인 해명을 하고 있는가? 반 프라센은 설명하는 이론을 찾는 것은 사실상 경험적으로 적절한 이론 을 찾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설명의 평가를 통해서 이론의 선택에 대 하여 이야기한다. 두 이론 사이에서 한 이론을 선택할 경우, 그 각각 이 경험적으로 적절할 때, 설명력이 증거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논 의한다 . 그러나 그는 설명력은 우리에게 한 이론을 다른 이론보다 선 호한다는 것에 대해서 단지 화용론적인 이유밖에 제공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실상 과학자들이 이러한 화용론적 방식으로 이론을 선택하 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다. 반 프라센의 모형이 과학 활동에 있 어서 , 이러한 전형적인 실천을 설명하는지에 관해서는 필자는 의문을 가진다 .61) 또한 설명이 가능한 이론의 이러한 선택이 왜 타당하게 잘 61 ) 태가드 P. Tha g ard 는 설명력을 적어도 근사 적 인 참에 대한 인도로 취 하고 있는 과학자들의 여러 예들 __- 연 소에 대한 산소 이론을 위한 라부아지에 Lavo isi er 의 논증이나, 빛의 파동 이론에 대한 호이겐스 Hu yg ens 의 논증둘을 인용하고 그러한 예들을 〈과학사에서 공통된 현상〉으로 결론내리고 있다 . 참조 : Thag ar d(1 9 78). 이 점은 자세히 다루어야 하는데 여기서는 생략한다. 보이드의 추론처럼 설명은 바람 직하다는 일상적 진리에 의존하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여겨질 것 같지만, 반 프라센은 여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비록 이론의 경험적 적합성에 대한 절대적 확신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그 확신은 이론이 참이라는 믿음을 동반하지 않을 수 있다 . 따라서 반 프라센의 이러한 비판과 과학 사의 예들로 인해 과학적 성공에 대한 일반적인 패턴으로부터의 추론이 과학적 실 재론의 올바른 근거가 되기 힘들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 그러나 보이드는 최선에 의 설명에의 추론을 선험적인 원리로 사용하지 않으며, 과학적 활동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 원리를 이론 의존적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보이드의 주장을 논파하기 에는 아직 부족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
기능하는지를 또한 설명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설명 이론 에 있어서는, 화용론적 차원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반 프라센의 화 용론적 설명 이론은 많은 공헌을 했다. 그러나 우리가 위에서 본 것 처럼 비대칭성 문제를 해명하지 못하고, 설명력과 이론 선택의 관계에 대한 적절한 논증을 제공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게 한다. 이것은 단지 과학 이론의 경험적 적합성만 인정하고 비관찰적인 인과 작용은 인정하지 않아 유관 관계에 대한 어떤 객관적인 제한울 가하지 않는 반 프라센의 경험주의 형이상학의 한계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경험론적 설명 이론에 대한 대안으로서, 키처의 통일로서의 설명 이론 과 실재론자의 인과적 설명 이론이 제안되어 왔다 . 다음 절에서는 키 처의 통일로서의 설명 이론을 다룬다. 5 키처의 통일로서의 설명 이론 키처는 헴펠의 D-N 모형과 인과적 설명 이론에 대비되는 새로운 설명 이론인 〈 통일로서의 설명 exp la nati on as unifi ca ti on 〉을 제안했다. 키처는 그의 새로운 관점을 그의 논문, 「설명을 위한 통일과 인과 구 조 Ex p lana t o ry unifica ti on and Causal s tru c tur e 」 에 서 광범 위 하게 설 명 한 다. 그의 논증의 구조는 대략 이러하다. 먼저, 그는 간결하게 헴펠의 포괄 모형과 반 프라센의 화용론적 설명 이론을 비판한다. 이에 대한 대안은 인과적 설명 이론과 통일로서의 설명이다. 키처는 인과적 설명 이론은 헴펠과 반 프라센의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다고 인정한다. 그 러나 그는 인과적 설명 이론 역시 다른 문제를 야기시킨다고 논변한 다. 키처는 설명에 대한 인과적 접근의 문제를 논의한 후 그의 설명 이론을 제안하고 그것을 옹호한다.
이 절에서는 키처의 전도 유망한 관점인 통일로서의 설명을 논의하 고, 그 이론을 비판적으로 평가할 것이다. 5.1 통일로서의 설명 이론 비대칭성을 해결하는 데 대한 헴펠의 실패는 경험주의적 인식론을 유지하기 때문에 인과적 관념의 사용을 피하려고 한 사실에 기인한다. 반 프라센은 설명에 대한 화용론적 해명을 도입함으로써 비대칭적 문 제를 극복하려 했지만, 그 비대칭적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인과 적 설명에서는 유관 관계는 인과 관계이고 설명은 원인들의 확인이다 . 이러한 해결 방식은 비대칭적 문제를 즉각 해결할 수 있다. 키처에 의하면, 우리는 경험주의 인식론을 희생함으로써 비대칭의 문제에 대한 빠르고 죽각적인 해결을 취하거나, 아니면 인과에 대한 경험주의적 관심으로부터 일어나는 제한을 받아들이고 비대칭성에 대 한 다른 해결을 발견하려고 시도하는 방법 중에 하나를 택할 수 있 다 .62) 키처는 전자의 노선, 곧 인과적 접근 대신에 후자의 노선을 택한다. 과학은 많은 현상들의 기술들을 어떻게 유도하는지를 보여 줌으로써, 유도의 동일한 패턴을 다시 재사용하여서. 자연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증 진시킨다. 그리고 이것을 드러내는 데 있어서 우리가 궁극적인 것(또는 기초적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의 유형의 수를 어떻게 줄이느냐 하 는 것을 가르쳐 준다 .63) 인과적 접근을 채용하지 않고서, 키처는 어떻게 비대칭성 문제를 해 결하려고 하는가? 키처의 설명을 추적해 보자. 키처에 있어서 설명은 6623)) KKiittcchh ee rr((11 99 8899)),, pp.. 442302..
통일이고 설명력이란 통일하는 힘이다. 코어트게 N. Koe rtg e 는 키처의 프로젝트를 간결하게 표현한다. 키처의 야심적인 프로젝트는 논리경험주의 전통으로부터 나오는 설명에 대한 해명을 하는 문헌들 소위 〈 역사적 학파 〉 라 불리는 포퍼 K. Pop per 와 쿤 T. Kuhn 을 따르는 연구로부터 나오는 과학의 성장과 방법에 대한 문헌들을 통일하거나 적어도 연결시키는 것이다 .64) 키처의 통일로서의 설명 이론은 복잡한데 여기서 간단히 요약한다. 키처는 〈 통일로서의 설명 〉 이론을 해명하기 위하여, 먼저 〈설명저장 소 ex p lana t o ry s t ore 〉 란 개념을 정의한다 . 그리고 성공적인 설명은 그것 이 설명저장소에 속하기 때문에 그러한 이름을 얻을 수 있으며, 설명 이론의 근본적 임무는 설명저장소의 조건들을 규정하는 것이라고 주 장한다. 직관적으로 어떤 특정한 시간에 과학과 연결된 설명저장소는 우리의 믿음들에 대한 최선의 체계화를 집합적으로 제공하는 유도들 de ri va ti ons 을 포함한다 .65) 키처는 이상적i deal 설명은 유도 de ri va ti on 라 는 제안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이것은 설명은 논증으로 전제와 결론의 쌍이고 결론은 전제의 유도라는 헴펠의 설명 이론을 받아들이는 것처 럼 보인다. 그러나 키처는 더 나아가서 체계화 s y s t ema ti za ti on 라는 해 명에 기초하여 전제가 되는 진술들의 집합에서 진술들의 위치나 배열 들이 헴펠처럼 단순한 목록이 아니라 적절한 규칙에 의해서 규정된다 는 점에서 헴펠과 다르다. 키처는 체계화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K 의 어떤 구성원들을 K 의 다른 구성원들로부터 유도하는 논증의 어 떤 집합을 K 의 체계화라고 부른다. K 가 과학 공동체에 의하여 보증되 는 진술들의 집합이라고 가정하자. E(K) 가 K 에 대한 설명저장소라고 하면 E(K) 는 K 를 최선으로 체계화시키는 유도들의 집합이다. 그리고 64) Koert ge (1 9 92), p. 92. 65) Kitch er(1 9 89), p. 430.
키처는 체계화의 기준은 통일이라고 상정한다 .66) 그러면 E ( K) 는 K 를 최선으로 통일시키는 유도들의 집합이 된다. 키처는 통일의 기준은 E(K) 가 채용된 유도의 패턴의 수를 최소화시키는 것과 발생되는 결 론의 수를 최대화시키는 것 사이의 최선의 균형을 찾는 유도의 집합 이라는 사상에 기초하여 통일의 기준을 분명히 하려 한다 .67) 과학적 공동체에 의해 보증되는 진술들의 집합이 K 라는 상황에서 하나의 유도들의 집합이 그것의 결론에 대해 받아들일 만한 이상적 설명으로서 간주되기 위하여서는 그 유도의 집합은 E(K) 에 속해야 한다. 이러한 설명저장소를 사용하여, 키처는 한 사건을 설명한다. 개 략적으로 이야기하면. 설명저장소, 즉 특수한 연역 도식들 schema t a 의 집 합을 예화함 instanti a ting으로써 그 사건을 기술하는 진술들을 유도해 내는 그러한 설명 이론을 제안한다 . 키처에 의하면 우리는 고립된 어 떤 특수한 유도 de ri va ti on 에 설명적 가치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 . 유도 가 설명이 되기 위해서는 그 유도는 현상의 규칙성에 들어맞아야 할 뿐 아니라, 그것은 우리의 지식의 최적의 코드화를 제공할 수 있는 체계화된 집합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유도들 , 연역 도식들 혹은 논증 패턴 argw ne nt p a tt ern 들이 논 층의 논리적 형식 혹은 공리 도식을 취급하는 실증주의자의 논리적 재구성에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키처의 논증 패턴의 전제들은 논리적 상수가 아닌 항과 도식적 문장의 더미 dummy 글자들이 어떻게 대치되는지를 직접 지시하는 〈 채우는 지시 사항 filling instru c ti on 〉을 포함하고 있다. 키 처 의 설명 이론을 위 한 논 증을 살펴보자. 설명 이론을 위해서 키처는 여러 도구들을 제안한다. 비대칭성 문제 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키처는 일반적 논증 패턴의 관념을 개발한다. 66) Ki tch er(1 9 89), p. 431. 67) Ki tch er(1 9 89), p, 432.
하나의 일반 적 논증 패턴은 도식들. 도식 변항의 각 용어를 위해 채우 는 지시 사항들의 모임으로 구성된 하나의 집합. 그리고 도식 변항을 위 한 분류 등의 세 항으로 구성된다 .68) 키처는 도식들과 채우는 지시 사항과 분류들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한다. 도식의 문장은 한 문장 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그러나 반 드시 전체적일 필요는 없는, 법칙적 표현들을 대치함으로써 얻어지는 표현이다. 도식적 논증은 도식 문장의 정렬…… 도식 문장을 위한 채우는 지시 사항은 도식 문장의 더미 글자들을 대치하기 위한 지시들의 집합인데, 각 각의 더미 글자에 대해 그것이 어떻게 대치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에 게 이야기해 주는 그러한 것이다. …… 도식 문장을 위한 분류는 도식 논 증의 추론적 특성을 기술하는 진술들의 집합이다. 그것은 그 정렬의 어떤 항이 가정으로 간주되는지를, 어떤 항이 어떤 항으로부터 추론되는지 그 리고 어떤 추론 규칙이 사용되는지 등을 말해 준다 .69) 그렇다면 무엇이 일반 논증 패턴을 예화시키는가instanti a t e? 키처에 의하면 , 과학적 작업에서 발견되는 어떤 특정한 유도, 문장들의 정렬 , 그리고 공식, 예를 들면 바로 다음과 같은 경우에 일반적 논증을 구 체화시킨다. 〈유도는 일반 논증 패턴의 도식적 변항과 같은 수의 항 을 지닌다. 그 유도 속에 있는 각각의 문장과 공식이 그 도식적 문장 울 위한 채우는 지시 사항에 따라 대응하는 도식적 문장으로부터 얻 어질 수 있다. 유도의 항들이 도식 변항의 대응하는 항에 분류에 의 해 부가되는 성질들을 가진다. 〉 70) 68) Kit ch er(1 9 89), p. 432. 69) 같은 책. 70) Ki tch er(1 9 89), p. 434.
이제 문제는 K 를 가장 잘 통일하는 설명저장소 E(K) 를 어떻게 결 정하는가이다. 키처는 E(K) 가 만족해야 하는 요구 사항과 E(K) 를 어 떻게 선택하는지에 대해 제시한다 .71) (1) 초기 요구 사항: E(K) 가 포함하는 모든 논증은 K 에 상대적으 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각각의 유도는 연역적으로 타당하고 그리고 각 각의 유도의 가정은 K 에 포함된다. (2) 유도들 de ri va ti ons 의 집합 속에 있는 각각의 유도는 발생 집합 속에 있는 어떤 패턴을 예화시키도록 유도들의 집합이 논증 집합의 패턴이 되게 하도록 발생시키는 집합g enera ting se t을 정의한다 . (3) 만약 우리가 유도들의 집합 D 와 그것을 위한 발생 집합 G 를 가지고 있으면, 모든 K 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G 속에 있 는 한 패턴을 예화시키는 유도는 D 에 속하는 바로 그 경우에 그 G 는 K 에 대하여 완전하다고 말한다. (4) E(K) 를 결정함에 있어, 우리는 K 에 상대적으로 받아들여질 만 한 논증들의 집합에 우리의 선택을 제한한다. (5) 질문 속에 있는 체계화의 기초 bas i s 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각각의 받아들일 만한 체계화를 발생시키는 완전한 발생 집합의 모임 collec ti on 을 연결시켜, 통일을 위한 기준에 의해 가장 잘 들어맞는 완 전한 발생 집합의 관련된 모임의 구성원을, 우리는 각각의 받아들일 만한 체계화를 위해서 선택해 낸다. 이것을 기초라고 부른다. (6) 우리는 그들의 통일하는 힘으로서 받아들일 만한 체계화의 기 초들에 등급을 매긴다. E(K) 는 기초의 등급이 제일인 받아들일 만한 체계화이다 . 72) 비대칭성 문제에 키처의 이론을 적용해 보자. 그림자의 길이로부터 7712)) 같같은은 책책.
탑의 길이를 유도하는 것은 설명이 될 수 없지만, 탑의 길이로부터 그림자의 길이를 유도하는 것은 왜 설명이 되는가? 키처는 후자의 논 증 패턴이 설명이 된다고 느끼는 것은 후자는 특권이 있는 도식들, 곧 설명저장소의 한 일원이 될 만한 후보인 반면에, 전자는 그렇지 못하다고 논증한다. 키처는 어떻게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는가? K 는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믿음의 집합이고, E(K) 는 어떤 K 의 믿 음들의 체계화이다. E(K) 내부에는, 대상이 생성되고 변형을 겪었던 조건들을 추적 하여 현대 의 차원들 dim ens i ons 을 발견하는 일반적 패 턴 을 예화시키는, 탑의 높이, 창문의 넓이, 인공물과 자연물의 차원들에 관한 결론을 산출하는 유도 과정이 있다 .73) 키처는 다음의 추론을 따 르는 유도를 〈 기원과 성장 o rigin -and-develo p men t〉 설명이라고 부른다. 〈 우리는 기원과 현재 사이에 이루어진 조건들에 관한 가정들로부터 출발한다. 우리는 그 대상이 명목적으로먀 m 패y 변하지 않고 유지됨 을 추론한다. 이리하여 그것의 현재 차원에 관한 결론에 도달한다고 추론한다. 〉 74) 이것을 이용하면 때때로 깃대와 탑을 사용하는 그 유도 는 상대적으로 간단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물, 예를 들면, 조직, 별들, 그리고 산맥이나 별들에 관해서는 그 대상들이 크게 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유도 과정은 매우 복잡하다. 이 모든 경우에 현재의 크 기를 설명하기 위하여 예화될 수 있는 바로 일반적인 패턴이 있다. 이러한 패턴에 의하여 발생되는 유도를 키처는 〈기원과 성장〉 설명이 라고 부른다 .75) S 를 그림자의 길이와 태양의 높이에 관한 가정들로부터 탑의 높이 에 관한 결론에 이르는 유도를 포함하는 어떤 체계화라고 하자. 그리 고 이 S 의 통일하는 힘을 E(K) 의 통일하는 힘과 비교해 보자 .7 6) 73) Ki tch er(1 9 89), p. 485. 74) 같은 책. 75) 같은 책. 76) 같은 책.
그림자로부터 탑에의 추론, 곧 그가 그림자 패턴이라고 부르는 것을 포함하는 S 는 기원과 성장 설명을 갖고 있지 않댜 그러므로 E(K) 의 기초는 S 의 통일하는 힘보다 더 많은 힘을 갖고 있다. 탑으로부터 그 림자의 추론은 E(K) 에 속하나, 그림자로부터 탑에의 추론은 S 에 속한 다 . 그러므로 후자는 그렇지 않지만, 전자는 설명이 될 수가 있다. 만 약 S 가 탑의 높이로부터 그림자의 길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그림자에 서 탑의 추론을 포함하는 기원과 성장 설명을 포함한다고 해 보자. 그러면 S 의 기초는 이러한 유도를 발생시키는 패턴을 포함할 것이다. 그렇다면 S 는 원하지 않는 유도를 포함하기 위하여 S 의 기초는 그림 자의 특성으로부터 현재의 크기라는 결론을 유도하는 다른 패턴도 역 시 포함해야 하기 때문에, 상황은 더 나빠진다. 다시 말하면 S 의 통일 하는 힘은 E(K) 의 그것보다 못하다. 따라서 S 는 기원과 성장이라는 설명을 포함해서는 안 된다. 키처는 위의 논증을 통해서 비대칭적인 문제를 해결했다고 주장한다. 5.2 통일로서의 설명 이론의 문제점 키처는 위의 논증을 통해서 비대칭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성공했 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 비대칭적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이 점을 두 가지 점에서 논의하고자 한다. K 는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믿음의 집합이고, 설명저장소 E(K) 는 어떤 체계화이다. E(K) 내부에는, 대상이 생성되고 변형을 겪었던 조 건들을 추적하여 현재의 차원들dim ens i ons 을 발견하는 일반적 패턴을 예화시키는 탑의 높이, 창문의 넓이, 인공물과 자연물의 차원들에 관 한 결론을 산출하는 유도 과정이 있다 .7 7) 따라서 기원과 현재 사이에 이루어진 조건들에 관한 가정들로부터 출발하여, 그 대상이 명목적으 77) 같은 책.
로 v irtu all y 변하지 않고 유지한다고 할 때, 그 대상은 기원에서 그것 의 현재 차원에 관한 결론에 도달한다고 추론하는 E(K) 는 〈 기원과 성장 o rigin -and-develo p men t 〉 설명을 포함하고 있다. 키처는 E(K) 가 현재의 크기를 설명할 수 있도록 예화될 수 있는 일반적 패턴을 가지 고 있어야 한다는 가정을 하는데, 이것은 우리 상식에 맞다. 그런데 이 상식 배후예는 우리의 일상적인, 분석되지 않는 인과 관념에 관한 선입견이 깔려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헴펠의 포괄 법칙 모형에서는 설명과 예측은 대칭이 된다. 설명을 위한 증거에 관한 진술을 이용하 여, 설명하려는 사건에 관한 자연의 법칙과 기본 가정을 가지고 설명 하려는 사건에 관한 진술을 유도해 낸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우리는 그 역으로 설명하려는 사건에 관한 진술과 자연의 법칙과 기본 가정 으로부터, 증거가 되는 진술을 유도해 낼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떤 결 정체의 래티스 la tti ce 의 구조를 설명하려 할 때, 자연의 법칙과 보조 가정을 가지고 래티스에서 반사되어 나오는 엑스선 X-ra y 패턴을 이용 하여 래티스의 구조가 어떠한지를 유도해 내어 그 결정체의 래티스의 구조를 설명한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우리는 래티스의 구조와 자연의 법칙과 보조 가정으로부터 엑스선의 회절 패턴을 유도해 내어 엑스선 의 회절 패턴이 왜 그러한지를 설명할 수 있다. 이것을 확장하여, 코 어트게는 우리는 그림자에서 막대기로의 유도를 트랙에서부터 게임의 크기 , 배가 지나간 자국에서부터 배의 크기까지, 분화구로부터 운석체 까지, 적외선 스펙트럼들로부터 분자 결합 molecular bond 의 길이까지, 엑스선 회절 패턴으로부터 래티스 la tti ce 차원들로의 추론들을 포함하 는 일반적 〈추적과 지시 trac in g- and-in dica to r > 도식 아래로 포섭할 수 있는 어떤 체계화 S(K) 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78) 비록 코어트게 는 S(K) 가 어떻게 가능한지에 관해서는 이야기하고 있지 않고 오히 려 왜 불가능한가라고만 답하지만 필자는 이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78) Koertg e (1 9 89), p. 157.
생각한다. 특정한 형태의 분자 결합에서 적절한 보조 가설을 사용하면 이론에 의해 적외선 스펙트럼을 유도해 낼 수 있다. 그렇다면. 거꾸로 적외선 스펙트럼이 나오는 데 필요한 보조 가설들과 적외선 스펙트럼의 발생 으로부터, 특정한 형태의 분자 결합을 유도해 낼 수 있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특정한 크기의 운석의 낙하에서 특정한 형태의 분화구의 발 생의 역이 되는 분화구의 모습에서 운석의 형태를 유도해 낼 수 있다. 이러한 작업은 물리학에서 우리가 흔히 다루는 것이다. 코어트게는 이러한 방식의 추론 패턴을 〈기원과 성장〉의 역이 되는 <결 과와 역 성 장 conseq u ence-and-reverse develop m ent> 패 턴 이 라고 부른 다. 우리는 E(K) 에 있는 진술 〈기원과 성장〉의 패턴과는 전적으로 다른 역 추론들로 구성되는 체계화 〈결과와 역성장〉 패턴의 집합인 S(K) 를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S(K) 는 그림자로부터 탑으로의 추론 과 그림자 패턴을 포함해야 한다. 이때 S(K) 는 E(K) 와 똑같은 통일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키처의 〈기원과 성장〉 패 턴이라는 생각은 이미 인과적 과정을 전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과 관계를 고려함 없이, 〈기원과 성장〉 패턴을 포함하는 체계화를 설명 저장소로 전제하고 그것이 S 보다 더 많은 통일하는 힘을 갖는다고 판 단하는 것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 다른 관점에서 동일한 통일하는 힘을 가진 설명저장소를 보여 줄 수 있다는 예를 생각해 보자. 추와 추의 주기에 관하여 생각해 보자. 추의 길이로부터 추의 주기를 설명할 수 있지만 추의 주기로부터 추 의 길이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직관적으로 타당하고 키처도 인정 한다. 왜 그런가? 키처의 설명 방식을 사용해 보자. 후자의 유도를 설 명으로서 간주하려면 우리는 움직이는 추의 길이룰 설명하기 위한 패 턴과 정지해 있는 추의 길이를 설명하는 패턴을 모두 포함하는 설명 저장소를 상정해야 한다. 이것은 두 종류의 추에 대해 한 가지 패턴 만 허용하는 설명저장소보다 통일하는 힘이 적다 . 따라서 후자는 설명
에 포함될 수 없다 . 이러한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반박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추의 성향적 주기에 대한 규정으로부터 추의 크기에 대 한 유도를 구성해 낼 수 있고 , 이리하여 적용할 수 있는 논증 패턴을 발생시킬 수 있다. 이에 대해 키처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 추가 될 수 없어서…… 성향적 주기를 이야기할 수 없는 물체도 존재한다. 〉 여기에 대해 가스퍼 P. Gas p er 의 예를 살펴보자 .79) 곧 성향적 주기를 이야기할 수 없는 다른 물체는 존재하지 않는 추p endulum 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한 세게에서는 추의 주기는 그것의 길 이를 설명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다시 말하면 추의 성향적인 주 기에 대한 규정으로부터 추의 크기에 대한 유도를 구성해 낼 수 있어 논증 패턴을 발생시킬 수 있고 이것을 발생시키는 설명저장소의 통일 하는 힘은 추의 길이로부터 추의 주기를 유도해 내는 설명 저장소의 통일하는 힘과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추의 주기로부터 추의 길이에 대한 설명도 가능하다는 반직관적인 결론이 나온다. 소위 설명에 대한 대칭성이 성립되는 것이다 . 이러한 결과는 결국 추의 길이가 주기를 결정하는 인과 메커니즘은 있으나, 그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메커니 즘은 없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키처는 설명력이 이론 선택의 인도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경험주 의자들이 유관 관계에 객관적안 제약 조건을 제공하지 않으면 임의의 것에 의해 설명된다는 설명 이론이 무내용적으로trivi all y 되어 버린다 는 것을 피할 수 없다고 키처와 새먼은 논증한 적이 있다 . 80) 키처에 게는 이 객관적인 제약이 통일성이다. 유관 관계는 화용론적인 요소를 지닌 것으로 보지만, 통일성이란 것을 제약 조건으로 간주하여 설명이 무내용적으로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과학은 통일된 지식을 추구하 고 있다. 설명력은 통일시키는 힘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과학은 가장 설명력이 강한 이론을 추구한다. 그래서 설명력은 이론 선택의 지침이 79) Gaspe r (l 99 0) , p. 292. 80) 참조 : Kitch er and Sahnon(1987).
된다. 이러한 주장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키처 의 이론은 비대칭성의 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6 인과적 설명 이론 위에서 본 바처럼 흄의 인과 개념을 버리지 않고서 설명에 대한 적 절한 해명을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실재론에 의하면 과학 이론들 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존재자들 과정들. 메커니즘(관찰할 수 있든지. 없든지 간에)은 존재한다 . 실재론적이고 흄 방식이 아닌 인과 개념에 의하면, 인과는 결코 비인과적인 용어들로 환원될 수 없다. 실재론자 들은 인과 연결들은 누군가의 의도적 상태_특히 인식론적이고 교 조적인 상태――와 독립적으로 성립한다고 믿는다. 물론 인과 연결이 그러한 것들에 관심을 가질 때를 제외하고 인과 관계들은 비록 그것 들을 숙고하거나 또는 추론하는 의식적 존재가 없다고 하더라도 성립 한다 .81) 최근의 과학 방법론의 거의 모든 중요한 특징들이 비관찰적인 인과 적 힘과 메커니즘들에 관한 지식에 궁극적으로 기초하고 있다는 많은 증거들이 있다 .82) 이리하여 비관찰적인 인과적인 힘과 메커니즘의 실 험적 지식에 대해 경험적으로 유보를 한다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 다 .83) 인과적인 힘과 인과 관계를 인정하면서 〈인과성〉과 〈비밀적인 힘〉 에 관한 회의적 논변을 거부하는 실재론적인 관점에서는, 비대칭성 문 제를 극복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왜 그림자의 길이가 깃대의 높이를 설명할 수 없는가 하는 것은 깃대에 의해 만들어진 그림자의 길이는 81 ) Kim (l98 7), p. 235. 82) 참조 : Putn am(l97 5a), (19 75b) ; Boyd ( l97 3), (19 79), (19 82), (19 83), (19 84). 83) Boy d( l98 5), p. 363.
인과적으로 깃대에 의존하지만 깃대의 높이는 그림자의 길이에 인과 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의해 쉽게 설명된다. 그러면 왜 설명적으로 힘 있는 이론이 실제 과학적 활동에 있어서 바람직하고 또 선택되는가? 우리가 앞 장에서 논의한 것처럼, 반 프 라센의 구성주의적 경험론은 그 질문에 답하기 힘들지만, 실재론에 의 하면 설명력은 증거가 되며, 어떤 이론이 경험적으로 적합한가에 대한 중요한 지침이 된다 .84) 이 절에서 나는 실재론적 의미에서 설명 이론을 제시하려 한다. 이 때 인과 개념은 실재론자의 인과 개념이다. 이 절은 세 부분으로 나 누어진다. 첫째 부분에서는, 흄 방식이 아닌 인과 개념을 논의한다. 둘 째 부분에서는 인과적 설명을 논의한다. 셋째 부분에서는 인과적 설명 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6.1 흄 방식이 아닌 인과 개념 헴펠과 반 프라센의 경험주의적 설명 이론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 해서 흄 방식이 아닌 non-Humean 대안적인 인과 개념이 필요하다. 이 것은 흄 방식이 아닌 인과 개념, 곧 실재론적인 인과 개념이다. 흉의 인과 개념에서 인과 관계는 규칙성, 상관 관계 혹은 법칙 아래 로의 연역적 포섭이다 .85) 예를 들면 〈사건 E1 이 사건 표의 원인이다〉 와 같은 안과적 진술은 우리는 보통 〈일어나게 하다 make happ en >, 〈초래하다 b ring about> 혹은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하다 necess itat e〉 둥과 같은 용어로 혹은 배후의 메커니즘들과 과정들을 지시하는 용어 로 바꾸어 말하곤 한다 .8 6)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과적 진술을 다른 말 로 바꾸어 말할 때 지시하는 자연적인 필연화 또는 배후에 깔려 있는 84) Gaspe r (1 9 90) , p. 294. 85) Boyd ( 1 9 85), p. 363. 86) Boyd ( 1 9 85), p. 357.
기제나 과정들은 관찰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 87) 이러한 용어들이 우리의 전분석적인 개념을 적절하게 포착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전분석적인 개념이 인식론적으로 결함이 있다고 생각 하기 때문에 흄은 인과 개념을 그러한 용어로 정의하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 우리의 과학적 활동에서 취급하는 사건들의 배후에 깔려 있는 현상 들의 메커니즘들과 과정들은 관찰할 수 없는 이론적 존재자들을 포함 한다. 우리가 관찰하는 것은 오직 유사한 사건 E2 는 항상 혹은 규칙적 으로 유사한 조건 아래에서 유사한 사건 E1 을 따른다는 것이다. 흄에 게는. 〈 E 려 E2 를 야기했다 cause 〉라고 주장하는 것은 관념 i dea 들을 연 결시키는 우리의 정신의 자연적 성향이다. 현대의 경험주의자들은 흄 의 인과 개념 속에 있는 주관적 요소를 강조하는 대신에 자연의 법칙 그리고 명제들을 연역 체계에 논리적으로 결합시키는 작업 등에 호소 한다. 현대의 경험주의자들에게는, 〈사건 E1 이 사건 &를 일으킨다 cause 〉 란 것은 E1 과 E2 사이의 관계는 보조 조건을 가진 법칙들 아래로 연 역적으로 포섭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의 경험주의자에 의하 면, 어떠한 두 개의 동시적이 아닌 사건들, 예를 들면, E1 과 &에 있 어서, 만약 앞서 일어난 사건의 발생을 보고하는 진술이 다른 보조 조건들과 더불어 가설로서 주어진다면, 그리고 E1 이 E2 의 원인이라 한 다면 E1 과 보조 조건들을 이용해서 뒤이어 일어나는 사건 표의 발생 을 연역해 낼 수 있는 사건들에 관한 참인 어떤 일반적인 진술이 반 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만약 이러한 사건들에 대한 참인 일반적 진 술이 단순히 자연의 법칙이라고 한다면, 인과 개념은 단순히 시간적인 우선성과 마찬가지라는 불합리한 결과를 현대의 흄의 인과 개념은 갖 게 될 것이다 .88)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경험주의자들은 〈법 8878)) B같o은yd ( 책1 9 85). p, 356.
칙적인 law-lik e> 것을 법칙이 아닌 일반화로부터 구별하고 자연의 법 칙이 거의 참인 법칙과 같은 일반화라는 것을 이해하려고 시도했다. 만약 법칙적임 law li keness 이라는 것이 문장의 통사적인 성질이라면. 비 록 그들 중 어느 것이 참인지는 경험적인 문제라 하더라도, 어느 문 장들이 법칙과 같다는 문장은 선험적인 a prior i 것이다 . 89) 우리가 법칙 과 같다는 문장을 결정하는 것을 어떤 선험적인 질문으로서 간주한다 면 우리는 굿맨 N. Goodman 의 의미에서의 〈 투사성 p roj ec ta b ility 〉 과 콰 인 W. Quin e 의 〈 자연종 〉 에 관계되는 문제와 마주치게 된다. 이러한 투 사성 판단 혹은 법칙적임의 판단은 선험적인 것인가? 우리의 실제적 과학 활동에 있어서, 투사성 판단이 귀납적인 일반화를 좌우한다 . 특 정한 투사성 판단에 의해 조정되는 성공적인 귀납적인 일반화는 투사 성 판단 그 자체를 위해서 경험적인 증거를 제공하는 것으로 받아들 여지는 데 비하여, 성공적이지 못한 귀납적인 추리들은 그것들이 의존 하는 투사성 판단을 반박하는 경향을 가진다. 그러므로 투사성 판단과 과학 이론을 통해서 형성되는 법칙적 문장은 선험적으로 형성되기보 다는 경험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두 사건들 사이의 인과 관계를 설명하기 위하여 현대의 경험주의자 들은 인과 관계를 비인과적인 용어와 관계에 환원하려고 시도한다. 그 러나 투사성 판단 혹은 〈 법칙적임 〉 에 대한 판단에 관한 성공적인 이 론을 제공하지 않고서는 인과 개념을 제거하려는 경험주의자들의 전 략은 실패할 것이라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들은 흄과 달리 주관적 인 요소들을 도입하는 대신에 인과에 대한 합리적 재구성을 통하여 자연의 법칙에 호소한다 . 그러나 법칙적 문장을 결정하는 것은 선험적 인 요소만으로는 불가능하고 경험적인 요소가 필요하다. 그러면 법칙 적 명제를 형성하는 데 관여되는 경험적 요소란 어떤 것인가? 이것을 과학적 법칙을 입증하는 과정을 통해서 살펴보자. 89) 같은 책.
우리가 법칙이나 또는 이론을 입증할 때, 우리는 오로지 유한한 개 수의 자료를 시험하는데 tes t, 이러한 샘플의 관찰을 통한 이론의 입증 은 이론의 관찰적인 결과의 나머지에 대해 근사적 참이라는 좋은 증 거를 구성할 것이라는 의미에서. 이들을 대표적 샘플 re p resen t a ti ve sam p le 이 라고 부른다 .90) 그러면 대표적인 샘플을 어떻게 결정하는가? 실험적 설계에서 대표 적인 샘플을 결정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그들이 실제적 과학적 활동의 방법들을 사용할 때, 이미 비관찰적인 인과 요소들에 대한 이전의 prior 이론적 지식을 신뢰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과학의 방법론의 거 의 모든 중요한 특징들은 궁극적으로 현실적이든 가능적이든 관찰되 지 않는 인과적 요소에 관한 지식에 의존하고 있다는 진실로 많은 증 거가 있다. 만약 그렇다면, 실험적 지식은 관찰될 수 없는 인과적인 힘과 기제들에는 확장될 수 없다는 경험주의자들의 주장은 잘못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인과 관계의 정의의 철학적 정당화는 거짓된 인식론 적 가정에 놓여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흄의 인과 개념에 서 인과적 관념을 비인과적이고 관찰 가능한 관념으로 환원하려는 바 람은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고 어떠한 철학적 정당화도 얻을 수 없 다 .91) 그렇다면 왜 현대의 경험주의자들은 흄의 인과 개념을 도입하 려 하는가? 그것은 지식경험론 knowled g e em pirici sm 을 받이들이는 그 들의 경험주의 인식론 때문이다. 인과 개념은 설명에 필수적이다. 흄의 인과 개념 정의와 그와 관련 된 법칙 연역적 D-N 설명 이론은 〈과학의 통일성〉 원리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고 법칙적임과 투사성 판단을 결정하는 이론을 받아들이 기 위한 비실험적인 기준들에 대해서 흄 방식인, 즉 비실재론적인 인 식적인 해명을 전제한다 .92) 그러나 D-N 설명 그 자체가 의존하는 90) Boyd ( 1 9 85), p. 362. 91 ) Boy d( 1 9 85), p. 357. 92) Boyd ( 1 9 85), p. 363.
〈 과학의 통일성 〉 원리는 관찰 불가능한 인과적 요소들의 지식을 전제 하고 있다. 그러나 경험주의자들은 관찰 가능하지 않은 인과 요소들을 거부한다. 이리하여 흉의 개념은 철학적으로 방어할 수 없고 좋은 설 명 이론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우리는 흄의 인과 개념에 대한 대안으 로 적절한 인과 개념이 필요하다. 보이드에 의하면 법칙적임과 투사성에 대한 판단은 마찬가지로 본 질적으로 관찰 가능하지 않은 요소들에 대한 흉 방식이 아닌 것들이 개입되어 있다 .93) 그의 기본 논증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우리들은 성숙한 과학에서 실험의 설계에 있어서 샘플링 문제에 대한 해결은 관찰 가능하지 않은 이론적 존재자 혹은 인과적 요소들에 관한 사 전의 지식을 전제하고 있다 . 사실상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은 투사성 문제 의 해결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대략 이론들은 근사적으로 참일 수 있다고 믿을 만한 자명한 이유가 있고 관찰 가능한 증거에 의한 입증을 위한 생생한 후보로서 그들을 취급하는 어떤 이유가 있는 경우에 투사 가 능하다. 샘플링 문제에 대한 해결을 위한 방법론적 규칙은 이것이다. 제안 된 이론의 예측이 가장 많이 틀릴 것 같은 그러한 주제들 issu es 에 관해서 다른 투사 가능한 이론에 의해 확인되는 대표적인 환경 아래서 제안된 이 론을 시험한다 . 샘플링의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이론 의존적인 판단들은 단지 투사성 판단들의 특별한 경우이다 .94) 경험주의에 의하면 인과 관계는 관찰 가능하지 않은 이론적인 존재 이며, 그리고 그들의 인과적인 힘에 관한 지식에 의지하지 않고서도 자연 속에서 분명히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위에서 본 것처 럼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참으로 많은 증거들이 있다. 이리하여 흄의 인과 개념은 과학적 실재론의 이름 아래 거부된다. 실재론자들은 관찰 93) Boyd ( 1 9 85), p. 365, 참조 : Boy d (19 73), (19 79), (19 82), (19 83), (19 85a). 94) Boyd ( l98 5), p, 365.
가능하지 않은 인과적 요소. 인과적인 힘, 그리고 세계의 인과적 구조 의 존재를 믿는다. 따라서 실재론에 의하면, 인과 관계는 비록 그것을 숙고하는 의식을 가진 존재들이 없더라도 성립된다 . 〈 모든 사건은 그 것에 대한 우리의 표상과는 전적으로 독립적인 유일하고 확정적인 dete n n ina te 인과적 역사룰 갖고 있다. 〉 95) 그러면 경험주의자의 인과 개념을 대신해서 인과 개념에 대한 실재 론자의 접근은 어떠한 형태를 이루는가? 흄 방식이 아닌 인과 개념은 철학자들 사이에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아니며 여러 개념을 지니고 있다 . 이것은 마치 실재론이 여러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다고 하여 인과 관계 자체의 성질들을 탐구하는 어 떤 개별 과학이 있는 것도 아니다 . 필자가 비록 어떤 특정한 인과 개 념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흄 방식이 아닌 실재론적 인과 개념이 란 적어도 다음 두 가지 주장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첫째, 인과란 객관적인 현상이다. 둘째, 인과란 단순한 규칙적인 계기 이상이다 . 여 기서 객관성이란 레일턴 P.R ai l t on 과 로젠버그A. Rosenber g의 표현처럼, 〈어떤 것의 탐구에 의해서나 또는 그것에 관한 우리의 견해에 의해 구성된다기보다는 오히려 발견되는 어떤 것이다. 〉 흄이 말한 것처럼 인과성이란 정신적 행위 이전의 어떤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 이러 한 의미에서의 객관성은 인과 실재론자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인과에 대한 전통적 규칙 이론가들도 인과성의 성분인 항상적 연언 cons tant conju n cti on , 시공적 근접성 등은 그 자체로 세계의 객관적인 특징이라 고 생각한다. 따라서 객관성만 가지고는 인과 실재론자나 규칙주의자 룰 구별할 수 없다. 인과는 단순한 규칙 이상이란 두 번째의 특징을 생각해 보자. 흄의 인과에 대한 두 번째 정의를 보면 다음과 같다. 원인 cause 은 한 대상인데 다른 것에 앞서며, 그리고 근접해 있고 또한 95) Kim(19 87), p, 235,
그것과 결합하여. 정신으로 하여금 전자의 관념 i dea 이 후자의 관념을 형 성하도록 하고. 전자의 인상이 후자에 관한 더 생생한 관념을 형성하도록 결정한다 . 96) 여기서 보면 인과란 규칙적인 계기 이상의 어떤 것을 주장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이 어떤 것이란 정신적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정의에 의하면 어떤 두 사건이 인과적인 관계에 있는지 않은지는 우 리가 그것을 어떻게 취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것은 특히 원인이라는 생각이 결과라는 생각을 결정하는지에 달려 있다. 사건들에 대한 우리 의 생각을 치워 버리면 인과도 마찬가지로 없어져 버린다. 인과 실재론은 이와는 달리 인과라는 것을 세계에 실재하는 사실 적인 것으로 본다 .97) 보이드에 의하면 인과 개념에 대해 실재론자들 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성분을 인과 개념이 갖고 있다고 제안한다고 한다. 먼저, 어떤 인과 관념들도 비인과적 관념들로 적절하게 정의된 다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바로 흄의 정의에 대한 비판으로 이 루어진 것이다. 둘째로 과학적으로 중요한 인과 관념에 대해 비록 서 로가 서로의 용어를 빌려서라도 철학적으로 흥미 있는 분석적 정의를 한다는 것은 매우 의심스럽다 .98) 인과를 비록 다른 비인과적인 용어 로 정의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인과를 사용할 수 있다. 우리는 수학에서 수를 정의하지 않고서도 수를 잘 사용·하여 수학을 96) Hume 1739-40/1978. 1992, 170 97) 인과 실재론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실재론자들 사이에 서로 견해가 다양하다 . 툴 리 M. Tool y는 인과 실재론을 의미론적. 인식론적 용어로 정의하고` 이론적 존재 자에 대한 실재론의 표준적인 설명에 주목하여 이를 지지한다 (Tool y (1987), p. 247). 블랙번 S. Blackburn 은
해 나가고, 예술에서 미를 정의하지 않고서도 미를 추구하는 예술 작 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마찬가지로 밀러 R. M ill er 는 과학에서 원인 개념을 〈 핵심 개념 core conce pt 〉 으로 받아들이고 과학 이론에 의해 배 제와 영입 과정을 통하여 그 핵심 개념을 점점 더 넓혀 나가는 것으 로 본다. 원인의 표준적인 패턴은 과학 이론에 의해 주어지고 그것이 바뀔 때는 과학의 변혁, 또는 혁명이 일어나는 경우이다 .99) 양자역학을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인과 개념과 결정론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전통적인 이해가 변화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인과 관념 의 정의에 대한 제안된 철학적 분석은 새로운 이론적 발견의 빛에서 는 원리적으로 결코 수정될 수 없다고 믿을 만한 이유는 존재하지 않 는다 .100) 따라서 많은 인과 혹은 부분적인 인과 관념들에 대한 어떤 선험적인 유익한 철학적 분석이 가능한지는 분명하지 않다 . 인과 개념 에 대한 철학적 분석은 어떤 의미에서는 경험적이다 , 왜냐 하면 인과 관념은 인과 현상들과 여러 영역에서 우리의 과학적 활동에 관한 경 험적 사실들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 실재론자들은 물리적 원인만이 실 재적 원인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물리적 원인에 우선성 을 둘 수는 있지만 결코 물리적인 인과에 환원되지 않는다. 실재론은 철저히 비환원적이다. 흄 방식이 아닌 인과 개념은 각각의 탐구 영역 에 의존하는 다양한 종류의 인과 개념을 인정한다. 6.2 인과적 설명 위에서 논의한 것처럼 흄 방식의 인과 개념을 이용한 경험주의자의 설명 이론의 문제는 비대칭성 문제와 이론 선택과 설명력 사이의 관 계를 제대로 해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험주의 설명 이론의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하여, 실재론자들은 흄 방식이 아닌 인과 개념을 99) Miller (1 9 87), pp. 73-105. 100) Boyd ( l98 5), p. 368.
이용한 인과적 설명을 제안한다. 설명에 대한 실재론자들의 인과 이론에 의하면 과학적 설명은 배후 에 깔려 있는 인과적 요소들을 기술하는 것이고 인과 관계들은 정신 독립적이며 객관적인 것이다. 루이스 D. Lew i s 를 따르면 설명한다는 것은 그것의 인과 역사에 어떤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101) 이때 인과 역사는 관계적 구조를 가지며, 확률적 인과 의존성도 포함된다. 보이 드에 의하면 설명은 〈적어도 여러 핵심적인 경우에는 그리고 D-N 설 명이 적합하다고 의도하는 경우에. 한 사건에 대한 설명은 어떻게 그 것이 일어났는지 caused 에 대한 해명이다.〉 102) 이와 유사하게 새먼은 현상을 세계의 인과적 구조의 패턴에 맞추는 것 103) 이라고 주장한다. 인과적 설명은 어떤 현상들의 집합을 결정하는 인과적 요소들 혹은 그 배후에 깔려 있는 인과적 메커니즘 혹은 과정들을 기술하는 작은 이론들에 의해 주어진다 .104) 인과적 설명 이론의 임무의 일부분은 어 떻게 해서 설명에 대한 인식론적 중요성이 이와 같은 요소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105) 어떠한 사건에서도, 실재론자 는 인과적 설명 이론을 법칙 혹은 규칙성에 대한 설명의 경우까지 일 반화시킨다. 설명에 대한 인과적 해명에 의하면. 법칙 혹은 규칙성을 설명하는 것은 인과적 요소들, 메커니즘들, 과정들과 법칙 속에서 기 술된 현상의 규칙성을 야기하는 그와 같은 것에 대한 아마도 부분적 인 해명을 주는 것이다 .10 6) 이러한 인과적 설명 이론을 갖고 비대칭성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다. 왜 탑의 길이로부터 그림자의 길이의 유도는 설명이라 할 수 있는 데 반해 그림자의 길이로부터 탑의 높이를 유도하는 것은 설명 101 ) Lewis (19 86), p. 182. 102) 같은 책. 103 ) Salmon(1 9 84) . 104) Boy d( 1 9 85), p. 369. 105) 같은 책 106) 같은 책.
이 아닌가? 그것은 간단하다. 탑의 높이는 그림자의 길이를 인과적으 로 일으킬 수 있으나, 그림자의 길이가 탑의 높이를 인과적으로 형성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림자의 길이로부터 탑의 높이를 유도할 수 있지만 이것을 설명이라 부르지 않는 것이다. 인과적 설명이라는 것이 현상의 원인을 적절히 기술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언제 원인에 대한 기술이 어떤 사건의 발생을 설명하기 위하 여 충분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결과를 초래하는 충분한 원인의 목록을 요구한다는 것은 지나치다. 역 사적 설명에서, 어떤 역사적 사건을 설명할 때 그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원인의 목록을 기술하지 않는다. 임진왜란의 원인을 기술하 기 위해 우리는 목수가 일본군을 실어 오는 배를 중간에 물이 새지 않도록 만들었다는 것을 기술할 필요가 없다. 물이 새어 중간에서 파 선하지 않는 배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전쟁이 일어나는 데에 필수적이 지만, 그것의 원인 그리고 병사들이 몰살할 정도로 질병에 걸리지 않 은 원인 등을 기술하지 않는다. 그것은 불가능하고, 의미가 없다. 그렇 다고 직접적인 것만 이야기하기 위하여 지나치게 적은 원인 목록을 기술한다면 그것도 잘못이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감기에 걸려 죽었다고 하자. 그때 그 사람 의 죽음의 원인은 감기 바이러스였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너무 적은 기술이다. 그의 면역 체계가 어떠했다는 것을 기술해야만 제대로 된 설명이 된다. 그러나 〈신익희씨는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할 때 우 리는 심장마비가 일어났다고 하여 왜 죽었는지에 관한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어떠한 경제사가도 대공황은 증권의 판매 파동 때문이라 고 설명하지 않는다. 증권의 판매 파동은 하나의 촉발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원인의 목록이 설명을 하는 데 적절한 것인가 하 는 문제가 생긴다. 루이스의 말을 빌리면, 인과적 설명 이론이 받아들 여졌을 때, 문제는 인과적 역사와 인과 연결망에서 얼마나 많은 설명
적 정보가 요구되는가 하는 것이다 . 우리가 설명을 위한 정보에 적용 해야 하는 기준이 있는가? 설명을 위한 정보나 인과적 연결망에 관해 서 특권을 가진 집단은 없다. 데이비드 루이스에 의하면. 〈 설명을 위 한 정보는 여러 모양과 크기 등으로 오며. 인과적 역사가 포함하는 것에 대한 정보는 그 범위가 매우 구체적인 것에서 매우 추상적인 것 에까지 걸쳐 있다. 〉 107) 여러 원인들 중의 한 가지를 명시할 수 있는 가 하면, 때로는 인과 연결망 안에서 매우 복잡한 분기된 branchi ng 구 조를 설명으로서 명시할 수 있다. 물론 설명을 위한 모든 정보들이 다 똑같이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설명을 위한 정보의 다양 성을 알아야 한다 . 우리는 어떻게 한 사건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어떤 정보를 주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의 원인들 중의 하나 혹은 여러 가지 를 이름짓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108) 그러나 문제는 어떤 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인과적 그물망 전체를 취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 레일턴은 D-N-P(Deducti ve - Nomolo gic al-Probab ility)를 위해. 이상적 설명을 위한 텍스트와 설명을 위한 정보를 구별할 것을 제안했다 .109) 〈주어진 사건에서, 우리는 이 상적인 설명을 위한 텍스트는 그 사건에 유관한 모든 인과적 그리고 법칙적 연결을 다 포함한다고 설명하기를 원한다.〉 110) 이상적인 설명을 위한 텍스트는 너무 방대하고 복잡하다. 이것의 범 위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원자 이하의 입자. 원자들. 무수한 분자 들로부터 일상적 사건에 개입되는 상호 작용에까지 걸쳐 있을 수 있 다. 그러므로 이상적인 설명을 위한 텍스트는 결코 실현되지 않는다. 설명을 위한 정보는 이상적인 설명을 위한 텍스트에 있는 정보를 모 두 포함할 필요가 없다. 이상적인 설명을 위한 텍스트는 매우 복잡하 107) Lew is(19 86), pp, 187-188. 108) Lewis (19 86). p. 188. 109) Ra ilton (1 9 81 ) . 110) Salmon(1 9 89), p, 159.
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과학자는 우리가 이상적 설명을 위한 텍스트의 부분들을 채울 수 있도록 설명을 위한 정보를 탐구하는 것 이다. 이상적인 설명을 위한 텍스트의 어떤 부분이 설명을 위한 정보로서 주목을 받아야 하는가? 우리가 인과 그물망 전체에서 적절한 설명을 위해 얼마나 많은 자료들을 고려해야 하는가? 실재론자의 입장에서는 이것은 경험 과학적인 문제로 분야에 따라 다르고. 어떤 선험적인 원 리는 없다. 또한 헴펠의 의미에서 항상 실용적인 문제이다. 매우 넓게 이야기한다면. 어떤 것을 어떤 사람에게 설명한다는 것은 그것을 그에 게 분명하게 하고. 납득하게 하고,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구 성되었을 때, 단어 〈설명〉과 그의 동족어 co g an t e 는 화용론적인 용어이 다. 그들의 사용은 설명의 과정에 개입된 사람에 대한 언급을 요구한 다. 화용론적인 문맥에서 우리는. 예를 들면, 주어진 설명 account A 가 사실 X 를 사람 P1 에게 설명한다. 우리는 동일한 해명이 사람 P2 에게 는 X 의 설명을 구성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는 아마 X 를 설명이 필요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을지도 모르며, 해 명 A 를 X 에 관하여 그를 당혹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설명이 되지 않 울 수도 있고 또한 그것과 아무 관련이 없을 수도 있으며, 납득할 만 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화용론적인 의미에서 설명은 이리하여 상대적인 개념이다. 이 사람 을 위한 또는 저 사람을 위해 이러한 의미에서 설명을 구성한다고 어 떠한 것이 의미심장하게 말하여진다 .lll) 이러한 의미에서는 설명은 본질적으로 화용론적인 요소를 갖고 있 다. 그렇다고 하여 설명을 선택하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만드는 우리의 관심이 반드시 받아들일 만한 적합성의 표준을 산출하는 것은 아니며, 과학자들의 관심과 설명의 적합성의 관계는 결코 전부이거나 또는 아 111 ) Hemp el( 1 9 65), p. 425.
무런 관련 없는 어떤 것도 아니다 . 설명의 실제적 적합성은 현재의 관심을 단순히 만족시키는 것에 반대해서 질문이 되는 분야의 실제적 상태에 관한 사실에 의해 지배된다. 우리의 과학적 활동은 전적으로 이론 의존적이고, 이론 중재적인 방법을 채용한다. 이론을 위한 경험 적 증거로서 이론 의존적인 방법에서는 직접적 증거와 간접적 증거 사이를 구별할 수 없다 . 또한 우리는 어떤 이론적 배경 조건 아래에 서 활동을 하기 때문에, 적절한 설명으로 인과 그물망 내부에서 얼마 나 많은 정보를 적절한 설명으로 간주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염려할 필요는 없다. 적절한 인과적 기술은 다음 두 가지 특징을 만 족해야 한다. 첫째, 설명되는 사건이 발생하는 환경 속에 있고 그들이 그러한 환경 속에서 서로 연대하여 충분히 설명되는 사건을 일으키는 인과 요소들이 기술되어야 한다. 둘째, 배경 이론에 주어진 표준적 인 과적 패턴을 따라야 한다 . 이때 표준적 인과 패턴은 이 분야에서는 이러이러한 현상에 대한 적절한 설명은, 이러한 방식으로 이러한 종류 의 인과적 요소들을 가지고 있어서 질문이 되는 현상은 이러한 인과 적 요소들의 작용에 기인한다고 부를 만한 인과 패턴이다 .112) 이러한 표준적 인과 패턴으로 우리가 사건을 설명할 때 명시적으로 규정해야 할 인과 목록과 , 묵시적으로 인정되어 있어 규정할 필요가 없는 것을 나눌 수 있다. 표준적 인과 패턴은 선험적이 아니고 경험적으로 결정 되며, 한 표준적 인과 패턴은 어떠한 기간에 어떤 분야에서 그 표준 적 인과 패턴을 따르는 경우 가장 정확한 인과적 기술을 추구하게 된 다면, 그 분야에서 그러한 기간에 적절하다고 말하여진다. 이러한 표 준적 인과 패턴이 변한 경우가 과학 이론의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난 때이다. 예를 들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지배적인 시대에는 사 물의 운동의 원인을 사물 내부의 내적 경향들의 균형에 호소하는 패 턴 이 표준적 이 었고, 17 세 기 에 는 데카르트 R. Desc art es 의 기 계론적 운동 112) M비 er (1 987) , p. 87.
이론이 나와서 접촉에 의한 충돌을 중심으로 운동 궤적을 설명하려는 인과 패턴의 변화가 있었다. 이러한 기계론적 모델은 그 후 2 세기를 거치면서 무너졌다. 전자장을 설명하는 데에 기계론적 모델을 사용하 는 것에 대한 논쟁은 거의 1 세기 가량 계속되었댜 이제 양자역학 이 론에 의해 다시 인과적 패턴은 변하지 않으면 안 되었댜 특히 확률 적 인과를 도입해야만 했다 .113) 이 표준적 인과 패턴을 따르기만 하면 충분하지 않다 . 위에서 논의 한 표준적 인과 패턴은 워낙 넓기 때문에, 표준적 인과 패턴을 만족 하더라도 설명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때 배경 이론과 그 분야의 그 시기의 과학 이론에 의해 최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인과 목록의 선택을 통해 설명이 이루어진다 .114)
113) 참조 : Miller (l 98 7), pp. 88-89. 114) 밀러는 이것을 좀더 자세히 인과적 깊이라는 용어 를 도입하여 설명한다 . 인과 적 깊이가 있는 설명을 선택한다고 주장한다. 참조 : Mi ller (l 98 7), pp. 98- 10 5. Y 를 일으키는 한 원인 X 가 다음 조건을 만족하면 원인 X 가 인과적으로 얕아서 왜 Y 가 일어났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Y 의 원인 Z 가 다음 두 가지 방식 중에서 한 가지로 X 를 손상시킨다면 , X 는 인과적으로 깊이를 결여해서 또는 너무 얕아서 Y 를 설명할 수가 없다. a) X 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 Y 는 어쨌든 일어났을 것이다. Z 는 다른 방식으로 Y 를 일으키는 X 에 대해 어떤 인과적 대체를 만들어 내었을 것이다 . 이때 X 가 결여한 것을 〈필연성으로서의 깊이 dept h as necess ity〉라고 부른다. b) Z 가 Y 가 일어나는 조건이고 Y 의 원인이며. 부분적으로는 X 를 야기함으로써 Y 를 야기했다 . Z 는 X 에 대해 인과적으로 우선적이고 ` Y 에 너무 친밀하게 연 결되어 있어서 먼 원인으로서 괄호를 쳐 바깥으로 끌어 낼 수가 없다 . 이것을 〈우선성으로서의 깊이 dept h as pri o rity〉라고 부른다. 이상 두 가지를 밀러는 인과적 깊이라고 부른다.
인과적 목록을 기술하는 것은, 오랜 역사를 가진 여러 이론들을 서 로 연결시키는 작업을 수행해야 하는 사회적 활동이다. 그 방식은 여 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 이때 우리는 인과적 표준에 들어맞으면서 인과적 깊이를 결한 설명은 가치가 없는 것으로 버린다. 그리고 가장 인과적 깊이를 가진 인과 목록을 기술함으로써 현상에 대한 인과적
설명을 할 수 있다. 이제 설명력과 이론 선택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과학자들은 실제의 과학 활동에서 경험적으로 적합한 이론을 독립적으로 확인하 고. 그러고 나서 설명력에 관하여 그들을 서로 비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설명력에 대한 판단이 미래의 연구를 인도하는 신뢰할 만한 이론을 선택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또한 과학자들은 설명력 은 과학의 성공적인 영역에서 이론을 받아들이는 데에 대한 안내로 간주하고 있다. 이러한 과학적 실천을 진지하게 살펴보면, 설명력은 결국 어떤 이론들이 경험적으로 적합한지에 대해 적어도 안내 역할을 하는 셈이다. 다시 말하면 설명력은 이론이 경험적으로 적합한지에 관 한 증거 역할을 한다. 과학적 설명은 어떤 현상들의 집합을 결정하는 인과적 요소들 혹은 그 배후에 깔려 있는 인과적 메커니즘 혹은 과정들을 기술하는 작은 이론들에 의해 주어진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실재론의 인과적 설명의 중심적인 경우에 적절히 해당된다 .115) 따라서 여기서 설명은 그러한 작은 이론을 지칭하는 데에 사용된다. 한 이론 E 가 어떤 현상 p에 대한 설명이라고 하자. 그때 우리는 〈 설명한다 〉 , 〈설명력〉을 다음과 같이 이해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긴 다. 즉, 우리는 현상 p를 설명하는 것은 바로 E 이고, 따라서 현상 p의 설명을 통하여 드러난 것은 바로 E 의 설명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적 실천은 이러한 그림을 따르지 않는다. 비록 E 가 현상 p를 설 명한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과학적 실천에서 그보다 한 걸음 더 나 아가. 우리는 E 의 설명적 성공을 다른 더 일반적인 이론이 p를 설명 하는 근거로 간주한다. 다시 말하면 E 의 설명적 성공을 E 의 설명력이 드러난 것으로 보기보다는 다른 더 일반적인 이론의 설명력을 지시하 는 것으로, 그 일반적 이론들에 대한 증거적 지지로 보통 간주한 115) Boy d( 1 9 85), p, 369.
다 .116) 더 일반적 이론을 T 라고 하고, E 는 T 와 독립적으로 입증된 이 론 또는 법칙이라고 하자. 이때 T 의 이론적 자원들 resources 이 어떤 현상 p에 대해 설명을 제공하는 입증된 E 를 해명하는 데에, 곧 왜 E 가 p를 설명할 수 있는가를 해명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때, 이 T 가 설명력을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떤 화학 반응에서 원소들이 특정한 무게에 대한 비를 가지고 결합한다는 현상을 배수 비례의 법칙 law of fixe d combin ing ra ti os 을 가지고 설명을 한다. 그런데 이 배수 비례의 법칙은 원자 이 론과 독립적으로 입증된 법칙으로. 더 일반적인 이론인 원자 이론의 여러 자원을 이용해서 그 현상을 설명하거나. 또는 원자 이론에 의해 그 법칙이 해명된다. 이때 배수 비례 법칙에 의한 설명이 원자 이론 이 갖는 설명력을 지시하고, 그것이 현상에 대해 성공적인 설명을 한 다는 사실은 원자 이론에 대한 증거적 유관성 evid e nti al relevance 을 지 닌다. 다시 말하면 배수 비례 법칙에 의한 현상에 대한 성공적인 설 명은 원자 이론이 근사적으로 참이라는 데에 증거 역할을 한다. 어떤 특정한 현상을 위한 설명이 어떤 더 일반적이고 더 넓은 이론 의 자원들. 존재자들. 메커니즘, 과정. 인과력. 물리적 양 둥에 의존한 다는 것은 과학적 설명의 한 전형적인 패턴이고. 그 설명은 현상이 어떻게 야기되었는지를 기술할 때 이러한 이론적 자원들을 채용하고, 더 정교하게 변형시킨다 .117) 이때 설명된 현상 혹은 그 현상을 기술하 는 진술들은 그것의 설명을 구성하는 이론을 시험하는 데에 결론으로 서보다 가정으로 생각되며, 설명 그 자체가 기초하는 이론의 증거적으 로 유관한 설명력을 지적하는 경우들이 진실로 많이 있다 .118) 예를 들 면, 투사 가능하고 이론 매개적인 경험적인 증거에 의해 지지를 받은, 관련된 현상의 넓은 클래스에 인과적으로 유관한 것으로서 어떤 종류 116) Boy d( 1 9 85), p. 370. 117) 같은 책 118) Boy d( 1 9 85), p. 371.
의 메커니즘을 가정하는p os tu la t e 어떤 일반적인 이론 T 가 있을 때. 이 T 는 그러한 현상을 예측할 만큼 충분히 성장한 것은 아니라고 하 자. T 그 자체로서는 질문이 되는 현상의 배후에 깔려 있는 메커니즘 울 자세히 규정하지는 않으나, 그러한 메커니즘을 담고 있는 이론적으 로 중요한 일반적인 기술을 규정한다. 이때 관련된 어떤 현상 p에 대 하여, 설명 E 가 제안되었다고 하는 것은 E 는 p가 T 에 의해 기술되는 일반적 종류의 어떤 더 정확하게 구체화된 메커니즘에 의해 이루어진 다는 것을 말한다. 만약 p의 예가 발생한다면, E 에 의해 규정되는 메 커니즘의 작동의 여러 실험적으로 특유한 징표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 렇다면 E 를 실험적으로 입증한다는 것은 p를 일으키거나 p의 발생을 발견하는 것과 관련된 징표들을 위한 시험들에 있다. E 를 실험적으로 시험하는 것은 p가 언제 어디에서 발생하는지를 E 가 예측하는 그곳 그때에 p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E 와 p가 그리고 필요한 보조 가설들과 더불어 가정으로 주어질 때, 관련이 있는 징표들이 언제 어디에서 일어나는지를 발견하는 데에 있다. 그러 한 예측의 성공은 E 를 입증하고 덜 직접적이지만 T 를 입증하는 경향 을 지닌다 .119)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방식의 입증이 성공적인 설명이 사용하는 많은 자원을 가진 이론, 곧 그 설명이 기초하는 이론에 대한 증거가 된다는 것과 이론 그 자체로부터 만들어지는 관찰적 예측의 실험적 입증에 의해 제공되는 종류의 입증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성숙한 과학에서는, 모든 이론의 입증은 이론 매개적이다. 우리들은 투사 가능한 이론에 대한 관찰 가능한 예측이, 관련이 있는 적절한 시험이라는 것을 이론 결정적인 고려들이 지적하지 않으면. 한 이론을 입증된 것으로 간주할 수 없다. 만약 이전에 형성된 배경 이론들에 119) 같은 책
의해서 유관한 것으로 지적되는 가능한 실험적 인공물들에 대해 적절 하게 제어할 수 없으면. 특정한 실험들도 역시 잘 설계된 것으로 간 주되 지 않는다 .120) 만약 이론 자체로부터 끌어 내어진 관찰적 예측을 실험적으로 시험 하는 것을 통해서 경험적 증거가 제공되면 그러한 경험적 증거를 이 론을 위한 직접적 증거라고 부른다. 그 이론들 자체는 실험적 시험에 의해 입증된 다른 이론들로부터 이론적 수준에서 귀납적 추론에 의해 경험적 증거가 제공되어지면 그러한 경험적 증거를 이론을 위한 간접 적 증거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런데 과학적 인식론의 실재론자의 개념 의 중요한 결과는 직접적인 경험적 증거와 간접적인 경험적 증거 사 이의 구별은 근본적으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121) 이론을 위한 직 접적인 실험적 증거를 제공하는 관찰은 그 자체로 이론에 대한 증거 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이론 자체를 옹호하고 다른 여러 이론 울 옹호하는 데에 간접적인 증거적 고려이기 때문에 이론에 대한 중 요한 증거가 된다. 바꿔 말하면 이론 그 자체를 지지하는 데에서는 그 직접적 실험적 증거는 투사 가능해야 하는데 그것은 배경 이론에 의해 이루어지고, 다른 여러 아론을 지지할 경우에는 그러한 실험적 증거는 역시 투사 가능하다고 판단된 논리적으로 가능한 경쟁적인 다 른 이론들 가능한 실험적 장치에 대해 그럴 듯한 이론적 해명 등을 통해서 직접적 실험적 증거를 제공하는 관찰들이 중요한 증거가 된다. 그렇다면 직접적인 실험적 증거는 단지 피상적인 의미에서 직접적 임에 불과하다. 간접적 경험적 증거도 진실로 매우 강한 증거가 될 수 있다. 한 이론이 아주 많은 수의 현상들에 대한 적절한 상황에서 그것의 경쟁 이론들 중에서 어떤 이론도 제공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 론적으로 그럴 듯한 해명을 제공한다는 그 사실이 바로――비록 그 이론을 위한 어떠한 증거도 거의 그 이론의 관찰적 예측을 직접적으 112201)) BBooyydd (( 11 99 8855)),, pp.. 337721..
로 시험에 의해 제공하지는 않더라도-그 이론을 위한 진정한 입증 적 증거가 된다. 이것은 최근까지의 종의 기원의 다윈 C. Darw in의 이 론적 상황이고 많은 천문학적 이론들의 현재의 상황이다 .122) 뿐만 아 니라 종종 한 이론의 예측을 입증하는 것만이 이론에 대한 증거가 되 는 것이 아니라 이론적으로 그럴 듯한 다른 것들을 배제함으로써 그 이론에 대해 현저한 입증을 제공할 수 있다. 이처럼 직접적 그리고 간접적 증거의 구별은 인식론적으로 근본적인 구별은 아니고 그 둘은 서로 가깝게 관련되어 있으며 똑같은 인식론적 현상으로 서로 서로 깊이 침투해 있다. 이러한 논의에서 이제 우리는 이론의 설명력을 보여 준다는 것이 이론에 대해 증거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T 가 이론이라고 하고, E 는 T 의 이론적 자원에 의존하는 설명이고, p는 E 가 설명하는 현상이라고 하자.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E 를 위한 증거 는 배경 지식과 그 배경 지식이 결정하는 귀납적 표준 아래 주어졌을 때 E 가 T 의 이론적 자원에 의존하는 방식이 E 가 근사적으로 참이라 는 사실은 T 도 역시 근사적으로 참이라는 것을 믿을 만한 귀납적인 이유를 제공하는 그러한 방식인 경우에 T 의 설명력을 보여 줄 것이 다 .123) 따라서 일반적인 이론 T 의 자원을 채용하여, 어떤 이론이 현상에 대한 어떤 이론적인 해명을 T 와 독립적으로 입증한다는 것은 이론적 수준에서 T 가 근사적으로 참이라는 결론으로 귀납적인 추론을 하기 위한 기초를 제공하기 때문에, 한 이론이 근사적으로 참이라는 것을 평가하는 데에 그 이론의 설명력이 증거적으로 관련된다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리하여 〈최선의 설명으 로의 귀납적 추론〉은 과학적 방법론의 이론 매개적인 귀납적인 추론 의 단순히 특수한 경우가 된다. 최선의 설명으로서의 귀납은 그것의 122) 같은 책. 123) Boy d( l98 5), p. 373.
정당화와 신뢰성을 위해 인과적 메커니즘의 해명에 대한 증거를 판 단하고 또한 독립적으로 입증된 설명적 해명을 위한 증거적 도입을 평가하는 배경 이론이 근사적인 참이라는 사실에 의존한다 . 124) 한 이 론이 어떤 관찰 현상의 대해 좋은 설명을 제공한다고 말하여질 때는, 우리가 보고하는 것은 그 이론이 어떻게 그러한 현상이 일어났는가 에 대한 근사적으로 참된 해명을 제공한다고 믿을 만한 이론적 이유 (종종 실험적 이유도 물론 있으나 이것은 이론 의존적이다)가 있다는 것이다.
124) Boy d( l98 9). p. 15. 하르만 Hannan 의 〈 최선의 설명에로의 귀납적 추론 〉 이란 용어에 대하여 오해하기 쉬운 점은 이 용어가 이론적 이해 이전에 성립될 수 있는. 마치 〈 공통-원인〉과 같은 설명의 어떤 개념이 있다는 함축을 동반하고 있다는 것 이다 . 최선의 설명에로의 귀납적 추론은 역시 이론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
왜 우리들은 가장 설명력이 강한 이론을 선택하는가? 우리들은 설 명력이 강한 이론이 이론의 근사적 참에 대해 증거가 되기 때문에 그 렇게 한다. 다시 말하면 현상 p에 대한 설명 E 가 더 일반적인 이론 T 가 설명력을 가진다는 것을 지적함으로써 T 를 위한 증거를 제공할 때, 결정적인 것은 E 가 T 에 독립적으로 실험 가능하고 E 가 근사적으 로 참이라는 것은 T 가 근사적으로 참임을 믿는 좋은 이유를 구성한다 는 것이다 .125) 그러므로 실재론적 입장에서 이론의 근사적 참에 대한 증거가 되는 설명력이 강한 이론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하고, 실재론자 들의 인과적 설명 이론은 비대칭성 문제와 이론 선택과 이론의 설명 력 사이의 관계를 극복할 수 있다.
125) Boyd ( l98 9). 배경 이론의 근사적 참에 관하여는 다음을 참조 : Boy d( I98 3). (19 82).
우리는 가능한 이론들 범위 전체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다 . 이러한 이론적 고려들은 역시 이론 선택울 위한 증거로 간주될 수 있다. 투 사성 판단과 귀납적인 추리를 통해서, 우리는 적절한 이론을 얻을 수 있다. 인과 이론적 설명은 D-N 설명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다. 이 것은 D-N 설명이 아무런 매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은 아니다. 그것의 가장 매력적인 세 가지 특징은, 그것이 인과에 대한 적절한 해 명에 놓여 있고, 그것은 이론의 설명력이 잘 입증된 더 넓은 이론에로의 통합에 의존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그것은 관찰 가능한 증거에 의해 지지 를 받는 이론들에 대한 선호의 특별한 경우로서 설명을 위한 이론에 대한 선호를 나타낸다 .12 6) 우리는 지금까지 비대칭성 문제와 이론 선택과 설명력 사이의 관계 문제를 D-N 설명 이론이 해결할 수 없음을 살펴보았다. 그 이유는 D-N 설명 이론의 세 가지 매력적인 특징이 거짓이라기보다는 D-N 설명 이론이 잘못된 흄의 인과 개념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 므로 흄 방식이 아닌 인과 개념이 실재론자들에 의해 제안되고, 인과 적 설명 이론이 경합주의자의 설명 이론을 극복하기 위하여 제안된다. 우리가 실재론자의 인과 관계와 인과적 힘을 세계의 실제의 특징으로, 다른 이론들과 연합하여 conjo in t 연역적으로 예측하는 것은 물론 이론적 지식의 귀납적 통합을 인정하는 이론의 통합에 대한 설명으로, 그리고 그 러한 귀납적인 통합의 결정적인 방법론적인 역할을 인식하는 경험적 증거 에 대한 설명으로 도입할 때, 우리는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경험주의자의 설명이 포로가 되는, 극복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피하면서 D-N 설명의 가 장 좋은 특징들을 보존할 수 있다 .127) 6.3 인과적 설명의 문제점 실재론적 설명 개념은 설명하는 명제들의 집합을 C 라고 하고, 설명 126) Boy d( 1 9 85), p. 373. 127) 같은 책
되는 명제 를 E 라고 하고. C 가 사건 c 가 일어났다는 것을 말하는 명제 이고. E 는 사건 e 가 일어났음을 지시하는 명제라고 할 때. 사건 c 는 사건 e 에 어떤 객관적이고 결정적인 관계 R 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주 장한다. 이때 R 을 설명적 관계라고 부르고. 이 설명적 관계는 사건들 사이에 존재하는 객관적인 관계이며. 이 객관적 관계를 인과적 관계라 고 부른다 .128) 이때 이 설명적 관계는 인과적 관계뿐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댜 루이스. 새먼 등은 과학적 설명은 모두 인과적 설명이라고 주 장한다 .129) 인과적 설명은 대칭성 문제와 비유관성 문제를 쉽게 해결해 주지만, 명백히 단칭 설명이면서 인과적 설명이 아닌 경우들이 제시되고 있 다 .130) 여기서는 인과적 설명의 여러 비판에 대해 답변하고, 인과적 설명의 문제와 한계를 다룬다.
128) Kim (l98 7), p. 229. 129) Salrnon( l98 4) , Lewis ( l 97 5) ,
에친스타인 P . Ac hinst e i n 은 어떤 사건의 발생을 설명할 때 법칙의 예 화로써 설명한다는 예화 설명 ins ta n ce ex p lana ti on 을 이용하여 인과적 설명을 반박한다. 여기에 대해 루이스는 다음에 나오는 비인과적인 설 명의 대표적인 예라는 주장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 131) 변하는 굴절률을 가진 일정한 두께를 가진 유리를 생각해 보자. 이 때 빛 한 줄기가 A 점에 들어와서 B 점을 떠난다고 하자. 그때 그 빛은 A 와 B 사이에 있는 C 점을 통과한다. 단 이때 C 는 A 와 B 를 시점과 종점으로 하여 만들어지는 선상에 있다 . 왜 그런가? 왜냐 하면 C 는 빛이 통과하는 데 가장 시간이 적게 드는 A 로부터 B 에 이르는 통로 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최소 시간의 페르마 Ferma t의 원리 에 의하면 A 로부터 B 에 이르는 어떠한 빛도 따라야 하는 것이기 때 문이다. 이러한 설명은 빛의 진로에 대한 페르마의 법칙에 의한 설명
131 ) 참조 : Lewi s( l97 5), pp. 189-192.
이지 인과적 설명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인과적 설명에 대한 반박으로 에친스타인이 제안한 어떤 사건의 발생을 설명할 때 법칙의 예화로써 설명하는 예화 설명 instanc e ex p lana ti on 의 한 예이다. C 는 저 앞에 있고, B 목적지까지의 최소 시간의 통로를 계산하여 그에 따라 방향을 정해서 가기 때문에 빛이 C 를 통과하는 것은 아니 다 . 빛이 아직 도달하지 않은 유리의 부분들의 굴절률은 빛으로 하여 금 C 에 도달하는 데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그것은 C 가 A 로부터 B 에 이르는 최소 시간의 통로에 놓이게 하는 것의 한 부분이 다 . 여기에 대해 인과론자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이것은 결코 빛이 C 를 통과하는 것을 제대로 설명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그 러나, 만약 그러한 설명이 제대로 된 것이라면 이러한 설명이 설명되 는 것의 인과적 역사에 관한 어떤 것을 함축하는 어떤 정보와 결합하 고 있기 때문이다. 페르마의 원리를 이용하는 설명을 받아들이는 어떠 한 사람도 빛의 전파에 관해 많은 것을 이미 알고 있어야 한다. 그는 어떤 점에서 빛줄기가 굽어지는지는 그 점 주위에서의 굴절률의 변화 에 의존한다는 것을 알고 있든지 적어도 추측할 수 있울 것이다. 그 리고 페르마의 원리는 빛의 속도와 관련 있는 굴절률과 굴절률에 대 한 의존성을 기술하는 어떤 법칙으로 아마 증명될 것이다. 그렇다면 A 점에서부터 C 점에 이르는 통로가 따라 굴절률의 변화의 패턴이 빛 이 C 를 통과하는 인과 역사의 한 부분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 뿐 아 니라, 그 패턴은 인과적 역사의 부분이 아닌 그 밖의 다른 변화의 패 턴과 더불어 A 로부터 C 까지의 통로가 A 로부터 B 에 이르는 최소 시 간의 통로의 부분이 된다는 것도 알 것이다. 그렇다면 그 설명은 그 설 명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필요한 다른 가정을 공급할 수 있다는 조건 아 래에, 설명되는 것의 인과적 역사에 관한 독특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법칙의 예화로써 설명한다는 것은 인과적 설명이 압축한 많은 것을 이미 가정한 단순화이지, 비인과적 설명인 것은 아니다• 성향적인 dispo sit ion al 설명은 명백한 비인과적인 설명이라고 루벤
D.-H . Ruben 은 주장한다 .132) 루벤의 성향적 설명이란 왜 어떤 대상은 그의 구조적 특성에 의해 그러한 성향적인 속성을 지니는가에 대한 설명이다. 예를 들면, 한 덩어리의 소금은 물에 녹는 성향을 지닌다. 이때 소금 덩어리가 물에 녹는 성향은 물이 갖고 있는 미시 구조로 설명할 수 있다. 루벤에 의하면 이러한 설명은 인과적 설명이 아니라 는 것이다 .133)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루벤은 인과 개념은 여러 가지 로 정의할 수 있지만 어떠한 경우라도 적어도 다음 두 가지를 만족해 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째는 어떠한 것도 자기 자신의 원인이 될 수 없다. 둘째는 인과 관계는 우연적이어야 한다 .134) 그런데 구조-성향이 라는 속성 pro p er t y 관계는 인과 관계와는 달리 우연성을 갖지 않는다. 왜냐 하면 소금 덩어리가 물에 녹는 성향이란 속성은 어떤 구조적 기 초 위에서 필연적으로 이루어진다. 즉, 소금 덩어리가 물에 녹지 않는 그러한 가능 세계는 없다는 것이다. 왜냐 하면 소금 덩어리의 미시적 구조는 소금을 소금 되게 하는 본질적인 특성이고, 그러한 구조를 가 진 것은 물의 본질적인 구조로 인해 반드시 물에 녹기 때문이다. 소 금이 물에 녹는 성향 같은 속성은 형이상학적 필연성의 문제이지 우 연적인 성질이 아니다. 소금이 가지고 있는 구조가 소금이 물에 녹는 성질을 인과적으로 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132) 참조 : Dav id- H illel Ruben( 1992) , pp. 209-233. 여 기 에 는 여 러 학자들이 주장 하는 비인과적 설명의 예가 많이 있다. 133) Dav id- H illel Ruben(1 9 92), p. 227. 134) Dav id- H illel Ruben(1 9 92), p. 217.
루이스는 성향적 설명 역시 인과적 설명이라고 면역성이라는 성향 에 대해 이야기한다. 철수는 천연두에 대한 면역성을 가지고 있다. 왜 그런가? 왜냐 하면 그는 침투하는 어떠한 천연두 바이러스라도 죽일 수 있는 항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항체의 소유는 면역성의 원인이 아니다. 면역성은 성향이다. 성향을 가진다는 것은 어떤 인과적 역할 을 차지하는 어떤 것을 가진다는 것이고. 철수의 경우는 그러한 인과
적 역할을 하는 항체를 소유하는 것이다 . 그런데 루벤의 주장에 따른 다면 항체가 바이러스를 죽일 수 있는 것은 항체가 갖고 있는 구조에 의한 것이고 이것이 항체의 본질이라면, 면역성을 갖지 않는 항체는 어떠한 가능 세계에도 없다. 그렇다면 면역성-성향이라는 속성 관계는 형이상학적 필연성의 관계이다. 과연 그런가? 적절한 조건 아래에서 성냥을 켜면 반드시 불이 난다. 불난 것의 원인은 성냥을 컨 것이다. 성냥의 본질이 어떤 구조 M 이라고 하자. 이때 M 을 적절한 조건 아래 에서 적절한 물건과 마찰하면 반드시 불이 난다. 그렇다면, 성냥을 켜 서 불이 나지 않는 구조는 어떠한 가능 세계에도 없다. 그렇다면, 성 냥을 컨다는 사실과 불이 난다는 사실은 형이상학적 필연성의 관계이 다 . 이것은 명백하게 반직관적이다. 그렇다면 루벤의 추론은 틀린 셈 이 된다. 그렇다면 성향적 설명은 루이스의 정의를 따르면 인과적 설 명이 되는 셈이다. 루이스의 정의를 좇아서, 소금이 물에 녹는 성향을 따져 보자. 소금이 물에 녹는다는 것은 소금이 지니는 구조가 물과 인과적 상호 작용을 통해 물에서 분해되기 때문이다. 이때 소금의 구 조가 물에서 녹는 인과적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과적 설명에 대한 더욱 강한 비판은 다음과 같다. 소위 정 체성 확인을 통한 설명 ide nti ty exp la nati on 같은 경우는 분명히 설명으 로서 타당한 것 같지만 이것은 인과적 설명이 아니다. 단순-케임브리 지 의존성 mere-Cambri dg e de p endence 의 예로 쓰이는 소크라테스의 죽 음과 크산티페가 과부가 되는 사건의 관계, 수반 관계 등을 이용한 설명은 직관적으로 볼 때 설명은 되지만 인과적 설명은 되지 않는다. 이것은 세계 속에 있는 사건들과 대상들 사이의 인과 관계가 아니면 서 서로를 결정하거나 의존하는 관계의 어떤 구조적 관계가 존재한다 는 형이상학적 주장에서 오는 비판이다. 김재권은 세계에 있는 대상들 혹은 사건들은 설명이 가능하기 전에 이미 어떤 적절한 〈구조적〉 관 계에 실재로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이 구조적 관계는 결정하는 또는 의존적인 관계이고 인과 관계는 이러한 구조적 관계의 부분 집
합이다 . 김재권이 옳다면, 이 세상에는 인과적 관계가 아닌 다른 종류 의 결정하는 관계가 있고 그들은 비인과적인 단칭 설명에 대한 기초 를 제공할 수 있다. 이 외에 에너지 보존의 법칙, 파울리 배타 원리 Pauli exclusio n principle 등을 이용한 설명이 있다. 이것은 인과적 설 명이라기보다는 어떤 형태의 구조적 설명이라고 보아야 되지 않는가 하는 반론도 또한 있다. 그 밖에 설명에 대한 의미 또는 범위의 문제들과 연결되어 인과적 설명에 대한 비판들이 있다. 소위 설명은 오직 〈 왜 〉 에만 국한되지 않 고 〈 어떻게 〉 라는 질문에 답변하는 것도 포함되지만, 이것은 그렇게 답변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죄수가 감옥에서 탈옥했을 때. 설명을 요구하는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탈옥했는가 하는 것이지 왜 탈옥했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이때 〈 어떻게 〉 란 것 은 그 상황에서 우리의 언어 사용 방식 때문에 〈 왜 〉 대신에 사용된 것이다 . 이것은 쉽게 〈 왜 〉 란 질문으로 바꿀 수 있다. 곧 이러이러한 조건 아래에서 왜 그러한 시도가 성공할 수 있었는지란 질문으로 바 꿀 수 있다. 〈 어떻게 〉 는 과정으로 과학적 질문이고, 〈 왜 〉 란 것은 목적 을 나타내는 형이상학적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 어떻게 〉 란 질문과 〈왜 〉 라는 질문의 정의로 간주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 나 그것은 단순히 언어롤 바꾼 것에 불과하고 설명의 구조나 내용이 바꾸어지는 것이 아니다 . 또한 그렇게 정의를 한다는 것은 실재 우리 의 과학적 활동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언어 사용상 적합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언어적 정의 문제를 가지고 하는 비판은 잘못 된 것이다. 인과적 설명은 흄 방식이 아닌 인과 개념을 취하지만 여기에 대해 어떤 명확한 철학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경험주의 설명의 한계를 인정하지만, 문제가 많은 인과 개념을 도입한다는 것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는 비판이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인과 개념 을 다른 것으로 환원되지 않는 세계의 특징으로 보고, 세계의 인과
메커니즘을 밝히는 것을 설명의 주요 목표라고 볼 때, 더 많은 연구 를 통해서 어느 정도의 합의가 되는 인과 개념에 도달할 수 있기 때 문에 현재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인과적 설명 자체가 잘못 이라는 방식으로 인정하여 인과적 설명 자체를 버리기에는 지나친 비 판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는 자연의 현상을 이용하고 그것이 언제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 한댜 따라서 자연 현상이 우리에게는 매우 낯익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부의 메커니즘은 신비하게 보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들은 우리 에게 소위 검은 상자 black box 로 보인다. 이 세계에서 사물들이 어떻 게 움직이고, 그 숨은 메커니즘은 무엇이고, 우리가 이해하려는 현상 은 어떻게 만들어지며, 이 검은 상자의 내부 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 는지를 밝히고 이해하는 데에는 현상을 일으키는 인과적 요소를 기술 하는 인과적 설명이 매우 유익하다. 이 내부 구조를 더욱더 깊이 밝 히기 위해서는 점점 더 미시 세계에 대한 이해로 접근해야 한다. 이 미시 세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쌓이면 우리의 자연 현상에 대한 이해가 더 넓어지고 깊어진다고 볼 수 있을까? 나아가서 이러한 깊이 있는 인과 요소를 다 서술한다고 해도 자연 현상 전체에 대한 이해를 가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인 과 메커니즘을 찾아 내고 그 메커니즘들의 원인을 또한 추구하여 근 본적인 인과 메커니즘을 발견하고 그것을 쌓아서 더 넓은 범위의 현 상을 설명하여 전체를 파악하려는, 소위 아래에서 위로 추구하는 설명 방식이 인과적 설명 방식이다. 이것으로 전체를 파악하기는 분명히 힘 들다. 따라서 자연 현상에 대한 이해는 위에서 논의한 통일로서의 설 명과 연결되어 있는 통일된 세계상과 전체적 틀 속에서 현상이 어떻 게 적절하게 들어맞는지에 대한 통찰을 가질 때 현상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지고 현상에 대한 설명을 잘 할 수 있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이것이 옳다면 인과적 설명만으로는 설명으로서 한계를 지닌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인과적 설명 이론이 비대칭성 문제를 가지고 비판했던
통일로서의 설명 이론은 오히려 인과적 설명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에 서로 기여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인과적 설명은 통일로서의 설명 이론과 어떤 형태의 화해를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이 들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앞으로의 과제이다. 7 맺는 말 이 논문에서는 헴펠과 반 프라센의 경험주의적 설명, 키처의 통일로 서의 설명 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인과적 설명 이론을 옹호했다. 그러나 인과적 설명 이론 역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문제 점도 지적했다. 설명은 무엇을 모르는가 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하 고, 또한 인과적 깊이를 가진 인과 목록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자 연히 화용론적인 요소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인과적 설명은 이 화 용론적인 요소가 설명에 대해서 가지는 차원을 여기서는 깊이 있게 다루지를 않았다. 인과적 설명은 실재론을 유지하면서 이러한 화용론 적 차원을 잘 해명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이다. 인과란 개념은 여전히 문제가 많은 것이다. 소위 흄 방식의 인과 개 념이 비판을 받고 흄 방식이 아닌 실재론적 인과 개념으로 가야 된다 고 했지만 그것이 어떠해야 하는 것인지는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았다. 특히 확률적인 인과가 가지는 설명적 역할을 인정하려는 사람에게 이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 인과의 형이상학에 관한 보다 깊은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과학적 설명은 법칙 또는 법칙적인 명제들을 사용하고 있다. 이 법칙적임이란 어떤 것인가는 아 직 완전히 밝혀진 것이 아니다. 그것이 단순한 규칙 이론으로 설명되 지 않는다는 것에는 동의를 하지만. 그렇다고 법칙의 본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동의할 만한 이론이 나와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인과와 법 칙 간의 관계 또한 중요하다. 인과적 진술은 인과 법칙적 진술인지
아닌지, 단칭 인과가 성립되는지에 관해 여러 학자들간에 논쟁 중이 다. 이러한 것들에 대한 해명이 주어지지 않으면 인과적 설명 이론은 여전히 절 름발이일 수밖에 없다. 그 밖에 중요한 것은 양자역학적 설명에 관한 것이다. 아인슈타안 포돌스키-로젠 E inst e i n - Podols ky - Rosen 의 사고 실험에 의해 보여 준 원격 작용과 이것을 더 깊이 논의한 벨 정리 Bell's Theorem 에 관한 것이다. 벨 타입 실험은 아스펙 A.A spe c 등에 의해 이미 실제로 실험 실에서 이루어졌고 벨 정리는 이론적으로뿐만 아니라 실험적으로 증 명되었다 . 이것에 대해 벨 정리나 아스펙의 실험은 양자역학적 설명과 일치되는 당연하면서 사소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 반대로 이것을 물리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발견으로 보는 사람도 있 다. 어떤 입장에 선다고 하더라도 그 실험은 멀리 떨어진 두 입자의 스핀의 상관 관계는 상대성 이론에 의한 광속 이하의 인과적 신호만 인정하는 국소적 인과적 원리에 의해서는 설명되지 않는다 . 그렇다면 서로 멀리 떨어진 두 입자의 비국소적 상관 관계에 대한 설명은 인과 적 설명이 될 수 없지 않은가 하는 문제에 직면한댜 이때 인과적 설 명의 포기냐, 아니면 새로운 인과 개념의 도입이냐 하는 문제가 생긴 다. 필자는 상대론적인 인과 개념인 국소적 인과 개념 외에 탈상대론 적인 인과 개념 extr a- r e lati visti c cause 이라고 볼 수 있는 전체적 원인 holi stic cause 또는 인과적 전체론 causal ho li sm 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면 여전히 인과적 설명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 론 이때 전체적 원인, 또는 인과적 전체론이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정 확히 정의할 수 있어야 하고 국소적 원인의 배후에 있는 상대성 이론 과의 모순도 없어야 한다. 이때는 새로운 세계관이나 새로운 형이상학 이 등장해야 할지도 모른다. 또는 아마 우리는 미시 세계에 대한 더 많은 이해가 있을 때, 인과 개념의 의미가 정확히 밝혀지고 올바른 설명 이론이 나올 것으로 보고, 미시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이론은 과 학철학에 대해 큰 도전을 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있다.
위에서 논의한 것을 보면 설명은 크게 헴펠, 반 프라센, 키처에 이 르는 유도로서의 설명 전통과 메커니즘을 확인하는 인과적 설명으로 크게 나누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자의 설명이 갖는 미덕은 각 경우마다 유도의 동일한 패턴을 사용하도록 일반적 원리에 호소하여 통일을 성취하는 것으로, 소위 위에서 아래로의 설명 방식이다. 후자 의 경우에도 전자와 마찬가지로 서로 매우 다른 상황에서 동일한 종 류의 메커니즘이 작용하는 것울 볼 수 있고, 전자의 설명이 일반 법 칙에 호소하여 유도하는 것처럼, 인과적 설명도 일반 법칙에 따르는 기본 메커니즘을 파악한다. 따라서 둘 다 포괄 법칙 원리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일반 원리 아래 다양한 현상의 통합이라는 관념 에는 동일하게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인과적 설명은 사건의 내부 메 커니즘을 다루어 전체를 이해하려는 아래에서 위로의 설명인데, 이것 으로 전체를 파악하기는 분명히 힘들다. 반대로 통일로서의 설명은 자 연 현상에 대한 이해는 통일된 세계상과 전체적 틀 속에 현상이 어떻 게 적절하게 들어맞는지에 대한 통찰을 가질 때 현상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지고 현상에 대한 설명을 잘 할 수 있다는 주장이기 때문에, 전체의 위치에서 세부를 바라보려는 경향이 강하다 . 이를 위에서 아래 로의 설명이라고 부를 수 있다. 만약 위에서 아래로의 설명 방식의 장점을 인과적 설명이 수용해야 한다면 그 둘은 어떻게 화해할 수 있 는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새먼은 최근에 두 접근법, 인과적 접근과 통일을 위한 접근은 서로 반대라기보다는 상보적이며 서로 화해시켜 야 한다고 주장한다 .135) 그러나 그 둘의 화해가 어떻게 가능하며, 서 로 상보적인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찾아 내기가 쉽지 않다. 인과를 국소적이라고 정의하는 이상, 인과적 설명이 두 가지 설명 방식의 화 해에 기여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만약 둘의 화해가 인과 개념 의 변화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적절한 둘의 결합에 대한 새로운 설명 135) 참조 : Sahnon(1 9 98). pp. 68-91.
이론에 의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미래의 설명 이론의 중요한 과 제는 이 두 이론의 통합이 아닌가 생각된다. 여기서 다룬 설명 이론은 개별 과학과 관련된 설명에 관한 주제들 은 전연 다루지 않았댜 예를 들면, 생물학적 설명 . 심리학적 설명, 역 사적 설명 등 구체적인 분과 학문에서의 설명은 다루지 않았다. 두 설명 이론의 전통은 미래에는 개별 과학의 설명 구조를 어떻게 정확 히 기술해 내고 밝혀 내고 그들을 인도해 내는지에 관해 경쟁하게 되 고. 거기에서 서로의 갈등과 화해의 방향이 주어지리라 예상된다. 따 라서 이들 개별 과학의 설명 이론 역시 앞으로 다루어야 할 중요한 과제이면서, 또한 설명 이론 전체에 대해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Bell, J. S. (19 64) , On the Ein stein , Podolsky , and Rosen Paradox, Phys ic s I pp. 195-200. Boy d, Rich ard(1 9 85), Observati on , Exp la nato r y Power, and Sim plicity: Toward Non-Humean Account , in Phil oso p hy of Sci en ce, eds. Rich ard Boy d, Ph ilip Gaspe r , and J. D. Trout MIT Press, Cambri dg e, Mass., London, Eng la nd, 1991, pp. 349-377. (19 89) , W 回 rea lism implies and W 回 it does not , Di al ecti ca , vol. 43, No. 1-2, pp. 5-29. ( 1991 ) . Con firma ti on , Semanti cs , and the Inte rp re ta tion of Sc ien ti fic Theori es , in Phil oso p hy of Sc ien ce, eds. Rich ard Boyd , Ph ilip Gasper, and J. D. Trout M 汀 Press, Cambri dg e , Mass., London, Eng lan d, pp. 3-35. Gaspe r , Ph ilip (19 90) , Expl a nati on and Sc ien ti fic Re alism , Exp la nati on and its Lim i t s ed. Dudly Knowles, Cambri dg e , 1990, pp. 285-296. (19 91 ) , Causati on and Expl a nati on , Phil oso p hy of Sc ien ce, e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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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과학적 실재론 이봉재*
* 서울산업대학교 인문학과 조교수 .
1 들어가는 말 영미 과학철학계는 1970 년대 이래 과학적 실재론을 중요한 주제로 다루고 있다. 철학사적으로는 중세 말의 〈 보편 논쟁〉에 시원을 두고 있고, 근세 철학의 인식론적 전회(轉回) 이후로는 관념론i de alis m 과의 대립항으로 다뤄지던 실재론이란 논제가 과학 지식을 매개로 하여 다 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 이러한 주제의 역사는 쉽게 납득할 만하다. 실재론이란 논제는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 지식 체계가 상정하는, 그 러나 그 타당성 및 존재 여부를 〈일반적인 〉 수준의 관찰이나 경험을 통해서는 확신하기 어려운 주장이나 대상들(보편자. 추상적 존재자)의 타당성 및 존재 여부에 관련된 것이었다. 오늘날 가장 중요하고 성과 많은 지식 형태는 과학. 그 중에서도 자연과학이며, 그것 또한 관찰 불가능한 존재자들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따라서 실재론 이라는 큰 주제는 과학적 실재론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퍼트남H. Pu tn am 이 말하듯 〈과학 지식은 분명히 우리 지식
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며, 따라서 그 본성 및 의의는 인식론에 관 심 갖는 모든 위대한 철학자들의 관심거리였다. 〉 (Pu tn am 1976, 20). 과학적 실재론은 실재론이란 일반적 주제의, 20 세기의 합법적인 후계 자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전문화된 철학 논의 속에서 과학적 실재론은 다양한 형태 의 주장들로서 나타난다. 그러나 이 주제를 이끌어 가는 기본적인 문 제 의식은 오히려 단순하다. 그것은 과학 지식(과학 이론)이 세계에 대하여 말하는 내용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부터 시 작된다. 즉 이론의 인식론적 해석과 관련하여 제기된다. 과학의 이론 적 지식(주장)을 세계에 대한 〈올바른〉 기술(記述) 내지는 설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문제이다. 과학적 지식이 구조적으로 직접적 관 찰이 불가능한. 이름하여 〈이론적 존재자들 the oreti ca l en titi es 〉 과 분리 될 수 없기 때문에 이 문제는 회피될 수 없다. 자연에 대한 체계적 설명으로서의 과학은, 그것의 기능을 이론에 의 거하여 수행한다는 점에서 탁월하며 특별하다. 과학적 지식은 곧 이론 적 지식이라는 말인데. 이때 이론이란 경험적 수준에서 확인된 규칙성 들을 현상 배후의 존재자들 en titi es, 과정들p rocesses 및 그것들간에 유 지되는 법칙적, 인과적 관계에 의하여 보다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근거 짓는 역할을 한다. 그럼으로써 과학적 설명은 포괄적이며 보다 정확한 것으로 발전되어 가는데, 이렇듯 이론이 본성상 현상적 차원을 넘어서 는 내용을 가져야 한다는 조건으로부터 과학적 실재론이라는 문제가 대두한다. 지각p erce pti on 과 관련된 철학적 논의에서 나타나는 〈상식적 실재론 commonsense re alis m 〉과 비교할 때, 과학적 실재론은 여분의 문제이기 도 하다. 상식적 실재론이 일상의 관찰 가능한 존재자들을 주제로 삼 는 데 반하여, 과학적 실재론은 직접적 관찰이 불가능한 〈이론적 존 재자들〉을 문제삼기 때문이다. 오늘날 첨단 과학들은 전자, 광자, 유전 자. 약력 weak forc e, 쿼크 등 명백히 직접적 관찰이 불가능한 이론적
존재자들을 상정하고 그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과학적 실재론이란 그 러한 이론의 경험 초월적 내용이 세계의 진정한 모습을 기술하는 것 이라고 믿을.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주장하는 입장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이론적 주장은. 그것이 충분히 입증되었을 때, 관찰 가능한 영 역과 관찰 불가능한 영역 모두에 대한 올바른 (참인) 기술로 여겨지 며. 또한 그 이론이 상정하는 중심적인 이론적 존재자들은 〈 관찰 가 능한 일상적 존재자 만큼 〉 실재한다고 주장한다. 일상적으로 관찰 가 능한 존재자의 존재에 대한 회의는 과학적 실재론의 문제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보건대 과학 지식은 언제나 〈 보이지 않는 〉 부분과 관련 하여 그 정당성 문제를 제기받곤 하였다. 고대 희랍 시대 천체 궤도 의 해석에 있어서 아리스토텔레스Ari s t o tl e 와 에우독소스 Eudoxos 가 대 립했던 것이 이런 논란의 역사적 원형이라 알려져 있는데, 그러나 과 학적 실재론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아무래도 근대 과학의 대두와 더불어서일 것이다. 데카르트R. Desc artes, 뉴턴 I. Ne wton 이 고 심했던 가설의 인식적 지위 문제, 그 이후 과학의 발전 과정에서 제 기되었던 힘, 플로지스톤 Phlo gi s t on, 칼로릭( 熱 素, calrori c) , 전자 등의 존재에 대한 논란이 역사적으로 알려져 있는 예들이다. 이 문제들을 통하여 이론 또는 가설이 현상을 설명하거나 예측한다는 것이 그것의 참truth에 대한 충분한 증거(또는 근거)가 되는가. 그 이론에 포함되어 있는 존재자들은 과연 실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들이 관 심의 초점에 등장하게 된다. 이 글은 최근 이뤄진 실재론에 대한 논쟁을 자료로 하여. 오늘날 실 재론의 문제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 그것은 어떻게 옹호|반박되는 가, 주요 논증들은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며, 어떤 문제들을 남겨 놓고 있는가. 이 논란으로부터 어떤 결론이 가능한가 등에 대해 논의해 보 고자한다.
2 과학적 실재론 2.1 과학적 실재론의 직관 최근의 실재론 논쟁을 개괄하면서 레플린J. Le p l in은 과학적 실재론 자들이 너무 세분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 평등권 운동의 경우처럼, 과학적 실재론은 너무나 세분화되어 마치 소수파처럼 보이는 다수파 의 입장이다.〉 (Le plin 1984, 1). 과학적 실재론에 대한 문헌들을 일람 해 보면, 누구라도 논의하는 주제와 영역이 대단히 넓게 펼쳐져 있음 을 알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느냐는 인식론적 주장 이기도 하며, 이 세상에는 어떤 것이 존재하느냐는 존재론적 논쟁인 동시에, 참과 지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는 의미론의 논의로도 나 타난다. 과학사의 해석에 관한 논쟁이기도 하고, 과학적 설명의 형식 과 연관되기도 하며, 입증에 대한 입장과 더불어 논의되기도 한다 .1) 그런데 이 넓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왜 실재론은 이렇게 여러 차원 에 걸쳐 문제로 나타나는가? 이는 일면 실재론 논쟁의 과정 속에서 여러 반론들이 제기되고 답해지는 가운데 실재론이라는 문제가 보다 세밀한 하위 주제들로 심화되는 까닭일 것이다. 그러나 과학적 실재론 에 대한 관심이 세부적인 이슈들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 실재론의 다양한 형태와 논변들을 포괄적으로 분류하고 있는 연구들로는 다음의 것들이 있다. Horw ich (1 9 82), Lep lin(19 84), Merr ill{19 80) 등.
과학철학이라는 철학의 분야 안에는 여러 주제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론과 증거의 관계, 과학적 설명의 구조와 성격, 과학 이론의 역사적 발전 양식 등이 오늘날 중요한 것들로 거론된다. 과학철학의 입문서들 은 이 목록 속에 과학적 실재론이란 주제를 병렬시키곤 한다. 그때 과학적 실재론이란 통상 이론의 인식적 지위 또는 이론적 존재자의 존재 주장을 평가하는 논의의 영역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평면적인
주제 분류를 염두에 두고서는 최근의 과학적 실재론 논쟁이 드러내는 깊이와 넓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앞에서 말했듯이 역사적 맥락 에서 보건대 과학적 실재론이란 주제는 과학적 주장의 신빙성에 대한 의구심이나 논란과 관련된 것이다. 현상에 대한 상당한 설명력/예측력 을 갖고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 이론적 존재 함축에 대해서는 동의 하기 어려울 때, 실재론의 문제가 제기된다 .2) 그런데 과학적 주장의 신빙성이란 사실 과학 인식론의 모든 주제를 의미한다. 인식론이 철학 의 전통적인 영역이 지식의 정당성 근거를 주제로 삼는다고 한다면, 과학철학은 과학적 지식의 정당성을 주제로 삼는 영역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 이론의 인식론적 지위를 논하는 것은 과학 인식 론의 모든 문제들을 다루는 것일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이론/중거 의 관계에 대한 입론을 근거로 이 논쟁에 뛰어들며(미결정성의 문제), 어떤 사람은 설명에 대한 입장으로부터 실재론을 논의한다(인과적 설 명의 문제). 과학의 역사적 발전 양식에 대한 입장으로부터 실재론을 공격/옹호할 수도 있다(과학의 진보라는 문제).
2) 이론이 실용적 기준에서 성공적이면서도 그 존재론적 함의를 의심받게 되는 가장 전형적인 경우는 두 개 이상의 이론이 경합되는 때이다. 만일 우리에게 세계에 대 한 성공적인 이론이 단 하나라면 실재론의 물음이 내용 있게 발생할 수 없을 것이 다. 따라서 그 우열을 판가름하기 어려운 여러 개의 이론들이 공존한다는 사실이 실재론 문제의 실질적인 토양이다. 과학철학의 최근 역사에서 실재론의 반대 입장 으로 등장하는 경험론과 상대주의는 모두 복수 이론의 가능성에 근거하고 있다(이 론의 미결정성 논제). 일례로서 갈릴레오의 지동설이 당대 교회 지도자들의 의견과 어떻게 상충했고, 그 결과 실재론의 논란을 일으켰는가 하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 포퍼 K. Po pp er 에 따르면 당시 교회의 지도자들은 지동설의 도구적 가 치를 부정하지 않았으며, 단지 기독교의 교리에 위배되는 천체관, 그것의 실재론적 해석만을 문제삼았다 (Po pp er 1956, 97-99). 우리의 관점에서는 기독교의 우주관이 라는 형이상학적 이유와 더불어 천동설이라는 대안적 이론이 존재했다는 사실 역 시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렇듯 과학적 실재론이란 주제가 사실상 과학과 관련된 모든 인식 론적 관심을 축약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재론 논쟁에 생산적으로 참여
하기 위해서는 실재론의 여러 세부 논제들 이전에 그것들이 기반하고 있는 공약수로서의 〈 직관 〉 을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통상 과학에 대 한 다음과 같은 이미지들이다. 〈 우리의 외부. 즉 우리의 생각이나 이 론적 개념화와 독립되어 있는 세계가 존재하며 . 우리의 과학적 탐구는 그 세계에 대한 상당히 믿을 만한 지식을 ‘발견'하여 내놓는다 〉 , 〈 과 학적 지식은 그런 점에서 대단히 성공적이며, 계속 진보하고 있다 〉 등 이는 철학자들의 전문적 어휘로 다음과 같이 표현되곤 한다. (Vl) 존재론적 직관: 우리의 인식 능력 또는 인식 가능성과 독립적 으로 세계가 존재한다. 이를 퍼트남은 퍼스 C.Pe ir ce 의 어법을 빌려 〈조작적 유용성, 미와 우아합, ‘그럴 듯함p laus i b ility', 단순성, ‘보수주 의 conservati sm ' 등 모든 기준에서 최선의 이론이라도 틀릴 수 있다 .〉 고 말한다 (Pu tn am 1976, 125) . (V2) 인식론적 직관: 우리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세계에 대해 우 리는 알 수 있다. 증거에 근거하여 충분히 믿을 만한 것으로 평가될 경우, 그 이론은 세계에 대해 근사적으로 참인 이야기를 알려 준다. (V3) 의미론적 직관: 과학 언어는 실재 세계를 올바르게 기술 내지 는 지칭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V4) 과학사적 직관: 과학의 역사는 보다 참인 이론(또는 기술(記 述))을 향해 점진적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이러한 직관은 과학에 대한 상식적 판단을 지배하고 있는데, 실재론 자들은 과학적 활동 및 역사가 그것과 부합한다고 주장한다. 과학자들 은 어떤 자연 현상이나 현상적 규칙성에 대하여 관찰 불가능한 어떤 존재자을 상정하는 이론을 개발하고, 증거와 실험에 입각하여 그 이론 들을 입증해 왔다. 그렇게 입증된 이론에서 추정되었던 많은 존재자들 은 실험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측정 내지는 탐지되어 왔다. 실재론자 들에 따르면, 이런 과정이 적어도 18-19 세기 이후 과학의 표준적인
역사였다 . 세균, 바이러스 , 원자 . 중성미자 neu tri no 등 많은 이론적 존 재자들이 그렇게 확인되었다. 이러한 역사는 과학자들이 항용 사용하 는 〈 이론 또는 이론적 존재자로의 귀납적 추론 〉 이 신빙성 있는 것이 며, 그 이론들이 진리에 어느 정도 접근해 있는 것이라고 믿게 해 준 다는 것이댜 오늘날 실재론의 이러한 직관은 의미론적 어휘를 사용하 여 다음의 명제들로 요약된다 (Bo y d 1983, 41-42). (Rl ) 이론 용어는, 많은 경우 추정(推定)적 성격의 것이지만, 지 시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R2) 이론은 통상적인 증거에 의해 〈 근사적 참 〉 인 것으로 입증될 수 있다. (R3) 역사적으로 볼 때, 〈 성숙과학 ma tur e s ci ence 〉 은 (관찰 가능 한 영역, 불가능한 영역 모두에 대한) 보다 정확한 진리에 접근해 가는 축적적 진보의 과정이다 . (R4) 이론이 기술하는 실재는 대부분의 경우 우리의 생각이나 이 론적 관점으로부터 독립적이다. 2.2 경험적 가설로서의 과학적 실재론 위의 명제들은 〈 근사적 참 〉 , 〈 성숙과학 〉 등 아직 그 의미가 분명치 않은 개념들을 가지고 있지만, 실재론의 직관을 잘 표현해 준다. 그런 데 누군가가 이 명제들을 의심한다면, 실재론자는 어떻게 응답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서 실재론적 직관은 왜 정당한가? 많은 실재론자들 이 과학의 역사와 활동 과정이 실재론을 지지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생각은 정확히 어떤 논증으로 제시될 수 있는가? 오늘날 실재론자들 이 표준적으로 제시하는 논변은. 과학 이론들이 성공적으로 현상을 설 명하고 예측해 낸다는 사실이 실재론을 〈 증거〉해 준다는· 것이다. 죽, 잘 입증된 이론의 예측적 신빙성은 해당 이론의 〈근사적〉 참(관찰 불
가능한 영역에 대한 기술(記述)로서의 참)에 대한 유력한 증거라는 것 이다. 실재론자들은 이러한 경험적 또는 예측적 성공에 대해서 이론에 대한 실재론적 해석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주장한다. 구체 적인 형태를 보자. (1) 이론의 참을 인정치 않으면 과학 이론의 설명력과 예측력은 신 비한 능력이 된다는 논지는 스마트J. Sm art에 의해 잘 표현된다 . 그에 따르면 만일 이론이 상정하는 이론적 존재자(및 관련 이론의 근사적 참)을 인정치 않는다면 우리는 너무나 엄청난 우연적 일치 cosm ic co inci dence 를 인정해야 한다는 곤경에 빠지게 된다. 예컨대 광전 효과 에서 광자p ho t on 의 존재를 인정치 않거나. 전류계 바늘의 움직임이나 안개상자에서 그려지는 궤적을 전자의 존재를 인정치 않고 해석하려 한다면, 그 현상들은 대단히 신비스러워 보이기 때문이다. 스마트는 관찰 불가능한 이론적 존재자을 언급하는 이론 T 와, 그러한 존재자에 대한 언급을 배제하면서 동일한 현상적 귀결들을 함축하는 현상론적 대안 이론 T' 을 대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실재론자들이 T' 의 성공이 원래 이론 T 가 그 존재자에 대하여 참 이라는 사실에 의하여 설명된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다시 말 해서…… 이론 T 에 의하여 상정되는 것이 실재한다는 사실에 의하여. 만 일 그러한 것들이 없다면, 그리고 T 가 실재론적 방식의 참이 아니라면, T' 의 성공은 불가해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관찰 어휘로 기술되는 형태에 대하여 무수한 행운을 도입해야 할 것이다. 그것들이 이론적 어휘로 언급 되는, 그리나 실제로는 존재치 않는 존재자들에 의해 마치 초래된 것처럼 신비하게 움직인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Sm art 1969, 150). (2) 동일한 논지가 개별적 이론들이 아니라 과학 방법론 일반을 단 위로 하여 제시될 수도 있다. 보이드R. Bo y d 가 그러한 논변을 제시하
는 대표적 실재론자다 . 보이드의 논변은 과학이 실험적 방법론에 어떤 방식으로 의존하고 있는가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이뤄진다 . 현대 과학 의 성공은 대안 가설들을 엄격한 실험적 검사에 회부하여 그 중 올바 른 것을 선별해 내는 능력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때 이뤄지는 실험적 검사는 상당 부분 배경 이론에 깊이 의촌하여 설계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 우리가 가능한 모든 가설들을 시험할 수 없기 때문에 유망하게 여겨지는 가설들을 선정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실험적 검사 란 해당 가설을 가장 불리한 상황에 비추어 시험하는 것인데, 과연 해당 가설이 어떤 상황에서 가장 틀릴 가능성이 높은지를 판단해야 한다는 점 등이 배경 가설을 특히 필요로 하는 부분들이다. 현대 과 학이 대단히 성공적인 과업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그것은 실험적 방법 론이 성공적이기 때문이라고 인정한다면, 이러한 〈 방법론적 성공〉이야 말로 배경 이론의 (근사적) 참을 전제하지 않고는 납득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 과학 이론에 대한 실재론적 해석은 과학 방법론의 도구적 신빙성 instrume nta l re li ab ility에 대한, 과학적으로 합당한, 유일한 설명 의 한 부분이 다. 〉 (Boy d 1983, 58) . 과학 이론의 예측적 성공,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현대 과학의 예측적 성공은 실재론의 입론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 이 라는 것 이 다. 이 는 흔히 〈 기 적논증 the mirac le argu me nt> 이 라는 이름 으로 요약된다. 실재론을 전제치 않을 경우 과학의 성공은 기적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과학의 성공을 기적으로 받아들일 생각 이 없다면, 실재론을 수락해야 한다 (Pu tnam 1978, 18). 홍미로운 것은 이렇게 옹호되는 실재론은 철학적 입론인 동시에 경험적 가설의 성격 울 갖게 된다는 점이다. 왜 실재론적 관점을 받아들여야 하느냐는 물 음에 대하여 과학 및 과학 이론의 성공이라는 경험적 사실을 증거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실재론자인 퍼트남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과학이 많은 참인 예측을 하며, 자연을 통제하는 보다 탁월한 방식을 고안하는 데 있어서 성공적임은 의심의 여지 없는 경험적 사실이다 . 실재 론이 이 사실에 대한 설명이라면, 실재론은 그 자체 완강한 과학적 가설 임에 틀림없다 (Pu tn am 1978, 19). 참신하고도 설득력 있어 보이지만, 사실 이런 논증 형태는 실재론의 전형적인 논변이라고 할 수 있다. 러셀 B.Russell 은 지각에 대한 현상 론p henomenal i sm 을 비판하면서, 동일한 유형의 논변을 제시한댜 우리 가 우리 감각 경험의 원인이 되는 외부 세계의 존재를 주장하는 가장 강력한 근거는, 그러한 세계의 존재를 전제할 경우에만 우리의 감각 경험이 보여 주는 여러 규칙적 양상들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기 때 문이라는 것이다 (Russell 1912, 19-26). 예를 들어 우리가 일상적으로 〈배고파서 먹이를 찾고 있다〉고 표현하는 고양이의 움직임 및 행태에 대한 우리의 연속적 감각 경험은 고양이라는 실체의 존재를 인정할 경우에 가장 잘 설명된다는 것이다. 우리 개개인에게 여러 감각 양태 들(시각, 후각, 촉각 등)에 있어서의 규칙적 일치, 그리고 우리의 감각 경험과 타인들의 감각 경험 간에 나타나는 체계적 연관(서로 다른 감 각 경험을 통하여 동일한 대상을 지각하는 경우) 둥은 감각 외부에 있 는. 그리고 감각 경험의 원인이 되는 외부 세계의 존재를 전제할 때 에만 간명하게 이해될 수 있으며, 바로 그런 의미에서 외부 세계의 존재가 옹호될 수 있다는 논지다. 과학적 실재론의 논변은 과학의 (방 법적) 성공이라는 특별한 사실을 증거로 삼는다는 점에서 다를 뿐 이다. 과학 이론에 대한 실재론적 해석은 이론의 경험 초월성에 의하여 언제나 논란거리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광범위한 설득력을 유지하는데. 그것은 무엇보다도 근대 이후 자연과학이 보여 준 놀라운 성공의 역사 때문일 것이다. 이론이 어떤 방식으로든 실재의 모습을 반영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인상적인 실천적 성공의 업적을 이
룰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과학이 이뤄 낸 성공적 업적들은 과학 이론이 상정하는 이론적 존재자들이 실재하며. 우리의 이론들이 그에 대해 최소한 부분적으로 참인 기술을 제공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실재론이 과학과 관련된 현상에 대한 탁월한 설명(또는 가 설)이라면. 실재론에 대해 더 따져 보고 싶은 사람은 그것을 마치 경 험적 가설인 듯 다루면 된다. 즉, 실재론이 내세우는 증거가 과연 하 자 없는 것인가, 그 증거들은 실재론을 어김없이 지지해 주는가 등에 대하여 검토할 수 있다. 그것은 다음의 문제들로 나타난다- 과학이 과연 성공적인가, 성공적이라면 어떤 내용으로 성공적인가, 그것이 과 연 특별한 철학적 해명을 필요로 하는 그런 종류의 현상인가. 그렇다 해도 그 설명으로서 실재론이 가장 합당한가 등. 3 성공과 설명 20 세기 문명에서 과학의 성공은 일종의 〈사실 〉 이다. 그것을 의심한 다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의심하는 정신을 의심받을 기회가 될 뿐이 다. 그렇다고 이에 대해 전혀 따질 이야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상 어휘로서의 성공은 여러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 어떤 목표를 성취했 다는 의미, 대단히 효율적으로 성과를 이뤄 냈다는 의미, 남보다 잘 해 냈다는 의미 등 여기서 과학은 어떤 의미로 성공적일까? 그것은 목표를 이뤘는가? 목표라면 어떤 목표일까? 자연의 통제? 인류의 행 복? 또 그것은 효율적인 성공인가? 과학이라는 사업이 도대체 몇 명 이 투입된 사업이며. 그 중 몇 명이 성공하는 사업인가? 예술, 종교, 사상 등 다른 영역보다 더 성공적인가? 어떤 면에서? 여러 의문점들 이 제기될 수 있지만. 이 글에서는 일단 과학의 〈성공〉에 대한 일반 적인 통념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자연에 대한 예측력. 조작적 통제력
및 설명의 정확도 증진. 설명 원리의 포괄성 등의 기준에 비춰 볼 때. 과학의 〈성공 〉 은 일단 수긍할 만한 사실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성공 〉 이 과연 실재론의 근거가 되는가? 이와 관련하여 과학의 성 공이 과연 설명될 필요가 있는가? 필요하다면. 어떤 종류의 설명이 필요한가? 이와 같은 물음이 제기될 수 있다 . 3.1 설명에의 요구 먼저 대단히 상식적인 것처럼 보이는 실재론자들의 〈 설명에의 요구 〉 가 엄밀히 말해서는 달리 생각할 여지가 없지 않음을 확인해 보자. 과학 이론이 포착해 내는 현상적 규칙성을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치 않은 원초적 사실이라고 받아들이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을 또 다른 존재자들의 차원에 의해 다시 설명해야 한다는 요구 가 유일하게 자연스러운 태도인 이유는 무엇인가? 앞에서 소개되었던 스마트의 논증을 다시 검토해 보자. 스마트는 우 리가 이론이 상정하는 이론적 존재자(및 관련 이론의 근사적 참)를 인 정치 않는다면 너무나 엄청난 우연적 일치 cqs m ic co inci dence 를 인정 해야 한다는 곤경에 빠지게 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관찰 가능한 현상 들에 있어서의 규칙성은 심층 구조의 용어로 설명되어야 한다고 결론 을 내린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관찰 불가능한 이론적 존재자를 언급하 는 이론 T 와, 그러한 존재자에 대한 언급을 배제하면서 동일한 현상 적 귀결들을 함축하는 현상론적 대안 이론 T' 에 대하여 , 이론 T 에 의 하여 상정되는 것이 실재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T 가 실재론적 의미의 참이 아니라면, T' 의 성공은 불가해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논법은 수상하다. 어떤 설명 없이 현상적 규칙성을 상정 하는 것이 하위 이론 T' 을 인식론적으로 위태롭게 한다면. 상위 이론 T 의 경우에 있어서 사정은 마찬가지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기 때문이 다. T' 이 거시적 수준에서의 규칙성을 포착하고 있다면, T 는 미시적
수준에서의 규칙성을 포착하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거시 수준의 규 칙성에 대해서는 추가적 설명을 요구하면서. 미시 수준의 규칙성에 대해 서는 더 이상의 설명이 불필요하다고 말할 합당한 이유가 무엇인가? 이 에 대한 대답이 궁하여 혹 자연적 규칙성의 어떤 수준을 기본적인 것으 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느냐고 말한다면. 그 선이 반드시 T' 이 아닌 T 에 서 놓여져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는 반론을 피할 수 없다. 이에 대하 여 심층 구조 차원의 규칙성을 표현하는 이론 T 에 대해서는 어떤 보 충적 설명이 제공되지 않는다 해도 불가해한 느낌을 받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충분치 못하다. 그것은 과학적 설명, 우연, 이해 가능성 둥의 개념에 대해 선결적인 이해를 전제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3)
3) 이와 관련하여 반 프라센은 우연으로 보이는 현상이 반드시 설명되어야 할 현상 은 아님을 지적한다 . 우연은 설명보다는 의도와 연관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시장 에서 예기치 않게 친구를 만났다면, 그것은 우연적인 사건이다. 그것이 우연인 것 은 그 사건이 설명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예견되지 않았던 일이기 때문이다. 그 우연적 만남은 여러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연의 제거는 과학적 설명의 요건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van Fraassen 1980, 25).
나아가서 과학의 성공을 〈 설명 〉 하려 한다 해도. 자못 형이상학적 의 미가 강한 실재론의 설명만이 가능한 것은 아님을 지적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하여 경험론 철학자 반 프라센 B. van Fraassen 은 과학 이론 의 성공적 속성을 진화론적 설명 구조를 빌어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 한다 . 진화론에서는 어떤 생물종의 성공적인 존속을 관련 개체의 유전 정보와 환경 간의 동형성 같은 것을 직접 거론치 않으며 설명한다 . 개체들간에 여러 변이가 존재한다는 원리, 그것들이 환경 적응을 위해 서로 경쟁한다는 원리의 두 가지로 설명해 낸다. 진화론적 설명에서는 종의 존속, 발생에 대한 〈 특별한 〉 (또는 〈 형이상학적 〉 ) 이유를 묻지 않 는다. 모든 것은 관련 메커니즘의 귀결로 이해된다. 진화론적 설명의 특징을 반 프라센은 이렇게 말한다. 〈 다윈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쥐가 왜 고양이를 피하는지 묻지 말아라, 그들의 천적에 대처하
지 않았던 종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런 식으로 행 위하는 것들만 존재하는 이유이다. 〉 (van Fraassen 1980, 39). 과학의 성공도 마찬가지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 과학 해석에 있 어서 진화론적 관점에 선다는 것은 과학 이론울 주위 환경 —— 즉, 과 학계의 평가 및 포상 제도 ― ―에의 순조로운 적응 여부에 의해 생존 이 결정되는 생물에 비유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과학 이론이 보이는 성공은 전혀 특별한 또는 신비한 현상이 아니다. 〈 왜냐 하면 어떤 과 학 이론도 격심한 경쟁의 장.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태어났기 때문이 다 . 성공적인 이론들만이 생존한다. 즉 자연의 실제적 규칙성에 사실 상 부합하는 것들만 . 〉 (van Fraassen 1980, 40). 과학 이론에서 관찰 불 가능한 이론적 존재자가 상정되는 이유는 경험적 수준에서 파악되는 자연적 규칙성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실재론자는 이렇게 상정된 이 론적 존재자들의 존재를 강조하는데. 적어도 과학의 성공을 설명하려 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 반 프라센 논증의 핵심이다. 과학계의 이론 선택 메커니즘이 성공적인(죽, 경험적으로 적 합한) 이론들만을 선택하도록 되어 있으며, 따라서 과학 이론의 성공 은 더 이상의 〈 형이상학적인 〉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그 자체로 과학의 성공에 대한 홍미로운 해석이다. 반 프라센 은 그것을 진화론적 설명인 듯 말하지만, 달리 보면 과학자 공동체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내지는 설명)을 지칭하는 것으로 들리기도 한다. 과학사회학이란 분야는 과학이 갖고 있는 특별한 인식론적 덕목들을 과학계라는 제도적 틀이 갖는 독특한 메커니즘의 특성에서 설명해 내 려고 한다. 언제부터, 그리고 어떤 연유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 지만, 오늘날 과학에는 가장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진 인력들이 대거 투입되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과학 분야가 가지고 있는 체계적 인 업적 평가 및 포상 체계라는 제도적 틀 아래서 격렬한 경쟁을 하 고 있다. 사실상 과학자로서의 성공은 진리를 발견하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진리를 〈먼저〉 발견하고, 〈먼저〉 이해하는 데서 이뤄지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과학이 어떤 의미로서든 성공적이라는 사실은 자연 스러운 사회적 현상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과학은 성공을 강요하는 제명 도—적— 이장(론:J:島과 ) 이세며계. 따간라의서 동과형학성의( 同성型공性에 s대om해o rp특hi별 sm한) 에 형 대이한상 학실적재 설론 적 주장_—을 덧붙일 필요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반 프라센의 논변에 의해 과학의 성공과 실재론적 설명 간의 긴밀한 관계는 파괴되는가? 과학의 성공에 대한 진화론적 또는 사회학적 설명의 가능성을 고려할 때, 실재론이 아무런 전제 조건 없 이 과학의 성공에 대한 유일한 설명이라고 말하는 것은 타당치 않은 듯하댜 그러나 실재론이 답하려 했던 물음이 진화론적-사회학적 설명 에 의해 답해지는 그 물음과 과연 동일한 것일까? 그렇게 보기 어렵 다. 실재론자들은 이론이 〈 왜 〉 성공적이냐고 묻는 데 반해, 진화론적 관점은 〈 어떻게 〉 성공적이게 되었는가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화 론적 관점은. 과학이 성공적이라는 사실울 그런 이론들을 선별해 내는 메커니즘의 존재에 의해 설명한다. 그러나 그것은 실재론자들의 물음 에 대해서는 전혀 만족스러운 설명이 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대머 리 클럽 〉 에는 대머리인 사람들만이 모여 있다. 이에 대해 왜 거기에 는 대머리들만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에 대해 그 클립이 그런 규정을 가지고 있다, 그 클럽의 가입 조건이 그렇다 하고 대답하는 것은 하 나의 설명일 뿐이다. 그런 조건들 때문에 대머리들만이 모이게 되었다 고 말하는 것은 진화론적-사회학적 설명이다. 그러나 실재론자가 묻고 자 하는 핵심은 그 클럽 회원인 특정한 어떤 사람이 어떻게 대머리가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 물음은 진화론적 설명이 답하는 물음과 전 혀 다른 차원의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어떤 선택 메커니즘의 존재는 선택된 존재자들 모두가 어떤 특정한 성질을 갖는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으나, 어떤 특정한 존재자가 왜 그 성질을 갖고 있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Musgr av e 1985, 21 ).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론들이 왜 성공적인가를
설명하는 것과 왜 성공적인 이론들만 살아남았는가를 설명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진화론적 설명은 경험적으로 성공적인 이론들이 존재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할 뿐. 왜 그 이론들 또는 이론들 각각이 경험적 으로 성공적인가에 대해서는 답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과학의 성공에 대한 실재론적 설명이 별의미 없는 잉여가 아니다. 이는 반 프라센의 반론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반 프라센 이 과학의 성공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을 제시하는 것은 실재론이 성 공에 대한 〈유일한〉 설명은 아님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실재론자들이 많은 경우 실재론이 과학의 성공에 대한 〈 유일한 〉 설명이라고 주장하 는 데 대하여 통렬히 반박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반 프라 센의 대안은 의미 있게 성립하는 듯하다. 과학의 성공을 실재론이라는 형이상학적 입론에 의해 정당화하는 것이나. 제도적 메커니즘이라는 과정에 의한 자연스러운 산물로 해석하는 것이나. 성공을 〈 설명 〉 하기 에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실재론적 설명을 여전히 존중하게 해 주는 물음의 차원이 별도로 존재함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지금 논 의의 요점이다 . 이때 설명의 요구를 어느 수준에서 동결시켜야 하느냐는 반 프라센 의 또 다른 반론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에 대해서는 설명이란 우리 의 관심에 상대적임을 지적함으로써 답해질 수 있을 듯하다. 위의 예 로 돌아가 보자. 대머리 클럽에 왜 대머리들만 모여 있느냐는 물음과 비교해서 각각의 대머리 회원은 어떤 이유 또는 원인에 의해 대머리 가 되었느냐는 물음이 제기될 수 없는 특별한 이유가 존재치 않는다 면 하위 이론 T' 을 굳이 상위 이론 T 에 의해 설명하는 것이 부당하 지 않을 듯하다. 이는 물론 〈설명〉이라는 개념에 대해 보다 세밀한 분석을 필요로 하며, 대머리의 경우와 과학 이론의 경우가 적절한 유 비의 관계에 있느냐는 문제도 남기고 있다. 그러나 일단 증명 부담은 반대편으로 넘길 수 있을 듯하다.
3.2 양자역학의 해석 그러나 논란의 여지는 그뿐이 아니다. 반 프라센은 대머리의 예와 과학 이론의 경우가 적절한 유비가 될 수 없다고 반론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의 철학자로서 반 프라센은 과학 이론에서는 대머 리의 경우에서는 분명히 드러날 수 없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말 할 수 있기 때문이댜 사실 현상적 규칙성을 넘어서는 설명에의 요구 에 대한, 반 프라센의 가장 큰 반감은 그것이 〈숨은 변수〉의 이론이 라는, 현재 양자역학의 주류 이론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입장으로 귀 결된다는 점이다 (van Fraassen 1980, 31-4). 반 프라센의 말을 들어 보7-}. 나는 이런 유의 논변에 반대하는데, 그것은 설명에 대한 그러한 무제한 적 요구가 20 세기 물리학의 주요 학파 중 최소한 하나가 반대하는 숨은 변수hi dden v ari able 에의 요구에 이르게 되가 때문이다 (van Fraassen 1980, 23). 다시 말해서 현상적 규칙성을 다른 존재론적 차원에서 설명해 내라 는 요구의 과도함은 최근 양자역학에서 그 정당성을 의심받고 있는 〈숨은 변수 〉 이론의 노선을 조장한다는 약점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 러한 주장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양자역학의 성과에 대한 전문적인 해석을 동반해서만 가능한 것이므로 이 글이 다룰 수 있는 주제가 아 니지만, 그것이 제기하고 있는 일반적 주제 한 가지는 우리 논의에서 건너뛸 수 없댜 그것은 과학적 실재론의 문제가 개별 과학, 여기서는 양자역학의 성과와 어떤 관련을 가지는가 하는 문제이다. 20 세기 양자역학은 〈실재론〉의 문제를 제기한다고 알려져 있다. 양 자역학의 성과는 우리의 전통적인 세계상. 실재상을 교정할 필요가 있 다고 말해 주는 듯하며. 정확히 그런 의미에서의 실재론 문제를 제기
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양자역학이 야기하는 실재론 의 문제는 그 핵심에 있어서 물리 세계의 본성에 관한 문제. 특히 외 부 세계의 객관성에 관한 문제라는 점이다. 이때 객관성이란 우리의 외부 세계(또는 그 중의 어떤 부분)는 우리의 인식(및 측정) 여부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독립적인 속성을 갖는다는 뜻으로서. 그것은 〈동역학적 변수는 항상 특정값을 가지며, 관측은 그 값에 영향을 주 지 않는다〉는 물리학적 표현을 갖는다. 양자역학에 대한 표준적 해석. 흔히 코펜하겐 해석이라고 불리는 입 장은 이러한 실재상을 거부하며, 〈숨은 변수 〉 이론이란 이에 대하여 실재에 대한 고전적 관점을 고수하려는 시도를 대변한다. 파동함수의 초기 상태에 대한 지식이 그 이후의 측정값을 확정적으로 결정짓지 못한다는 양자역학의 주장에 대하여, 〈 숨은 변수 〉 이론가들은 외견상 동일해 보이는 초기 상태가 사실상 양자 이론에서는 설정되지 않는 새로운 변수값의 차이에 의하여 구별될 수 있으며, 그에 의해 양자 현상의 비객관적 양상은 객관주의적으로 해석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Sq uires 1986). 이러한 입장은 이후 벨 정리 Bell's Theorem 에 대한 실 험적 입증 이후 궁지에 몰린 것으로 판명되고 있는데, 그 세부 사항 은 더 이상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옳건 그르건 간에 양자역학의 해석과 관련된 물리학적 입장들이 과학적 실재론의 논의에 어떤 영향 을 미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만일 〈숨은 변수〉 이론이 분명히 틀린 것으로 판정된다면, 그리하여 코펜하겐 학파가 말하듯 세계(특히 미시 세계)는 본성상 우리의 측정 과 분리되어 논의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분명 실재론적 직관의 전통적 논제라고 할 수 있는 실재의 객관성에 대한 심각하고도 중대 한 위협이 될 것이다. 그때 관념론i dea li sm 에 대비되는 의미로서의 실 재론, 죽 세계의 인식 독립성에 대한 주장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실재론, 도구론과 경합하는 실재론에 대하여 그것이 동일한 종류의 위협일지는 의심스럽다. 실재론/도구론의 논쟁
에서 일차적인 주제는 이론이 현상 적 수 준 을 넘어서는 부분에 대한 정당한 지식인지의 여부이며, 세계의 객관 적 본성에 대한 주장은 이차 적이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의 성과들은 우리에게 세계의 참모습에 대하여 충격적인 사실을 알려 준다. 그것은 동역학의 변수들이 상상키 어려울 정도로 측정 의촌적임을 말해 주고 있다. 이것은 대단히 반직관적이기 때문 에, 그런 의미에서 그 이론들이 실재에 대한 참인 이론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마저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이 의문이 반도구론으로서의 실재론에 대한 의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우리의 실재론자들은 오 히려 양자역학의 기이한 성과를 액면 그대로 수락할 수 있으며, 수락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실재론자는 다른 누구보다도 과학의 성공, 양자역학의 성공에 진지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 성공적인 이론의 존재 론적 함축을 존중하는 것이 우리가 다루는 실재론의 기본 입장이며, 따라서 성공적인 과학 이론이 그려 내는 세계상이 우리의 전통적인 관점과 부합치 않는다면, 실재론자들은 이론을 의심하는 대신 그러한 상충에 합당한 이유가 있으리라고 믿는 편을 택하는 사람들이다. 그 이유는 세계 자체의 성격에서 찾아질 수도 있고 세계를 기술하는 우 리의 개념적 장치에서 찾아질 수도 있을 텐데, 이러한 태도에 반실재 론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시 말해서 양자역학의 물리적 해석에서 야기되는 실재론의 문제는 반도구론으로서의 과학적 실재론이라는 문 제와 구분될 수 있을 듯하다. 양자역학의 체험은 오늘날 과학에 대한 반실재론적 태도의 일리 있 는 원천이다. 그것이 알려 주는 세계의 모습이 너무나 기이하기 때문 에, 그것을 세계에 대한 기술이나 설명이라기보다는 개념적 도구로 보 는 입장이 지지받기 쉽기 때문이다. 이러한 천화성, 양자역학과 과학 이론에 대한 도구론적 해석 간에 존재하는 친화성은 그러나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맥멀른 E.McM ullin이 지적하듯, 새로 대두한 이론이 우 리가 납득하기 어려운 세계상을 제시할 때, 우리가 통상 그 이론의
존재론적 함축을 의심하고 나아가서는 그에 대해 아예 무관심해지기 도 하는 것은 과학사의 일반적인 경험에 속한다 (McMu lli n 1984, 12-18). 뉴턴 역학의 중심 개념이었던 인력과 힘의 개념은 당대의 물 질관과 운동관. 즉 불활적인i ne rt 것으로서의 물질 개념 및 원격 작용 acti on at a d i s t ance 을 인정치 않았던 운동 개념과 상충한다는 까닭에 서 그 존재론적 지위를 의심받았다. 최근 양자역학이 서술하는 세계상 이 고전 역학이 대변했던 객관주의적 세계상과 합치하는 않는다는 점 에서 이해 불가능하게 여겨지고. 그 연장선에서 양자역학에 대한 도구 론적 태도가 조장되는 것은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물론 양자역학의 경우가 단순한 존재론적 낯삶 정도의 문제인가. 아니면 세 계/인간/지식에 대한 모든 관점을 변경시키는 문제인가에 대해 미리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양자역학이 고무하는 반실재론적 태도가 그 자체 실재론의 특별한 의미. 죽 특정한 실재 해석의 관점과 연관 되어 있다는 지적은 부당하지 않은 듯하다. 실재의 본성에 대한 이해 가 변화하는 것과 실재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한 지 식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은 구별될 수 있기 때문이다. 4 과학사의 해석 4.1 과학사의 반례들 과학의 성공을 실재론에 의해 설명하는 것 자체를 부당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해도. 그것이 과연 실재론을 지지해 주는 증거인지에 대해 서는 또 다른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라우든 L.Laudan 은 인상적인 반론을 제기하였다• 그에 따르면 과학의 역사 속에는 성공적 이지만 실재론의 과학 해석과 양립하기 어렵다고 보이는 예들이 상당 수 존재한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통상적인 기준一一즉, 예
측력, 조작적 통제력, 설명적 정확성 및 포괄성 등-에 의해 성공 적인 것으로 평가되지만, 실재론적 의미의 참 또는 〈 근사적 참 〉 이라 는 개념을 전혀 적용할 수 없는 이론들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것들은 그 중심 용어들이 오늘날 〈 지시 〉 하지 않는다고 여겨진다는 점에서 이 론의 참과 관련된 어떤 주장도 불가능하게 하는 종류의 것들이다. 그 목록에는 이런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Laudan 1981, 231). 고대 천문학에서의 수정체 천구 cry s tallin e sph e re 이론. 의 학에 서 의 체 액 이 론 the humeral the ory . 정전기 유체 이론 the eff luv ia ! the ory . 지 질 학에 서 의 격 변 이 론 the cata strop hist geo log y. 화학의 플로지 스톤 이 론 the ph log isto n the ory . 열 에 대 한 칼로릭 이 론 the calori c the ory . 전자기론에서의 에테르 이론th e aeth e r theo ry . 이들 이론의 중심 용어들, 수정체 천구, 체액, 플로지스톤, 에테르 등은 오늘날 지시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러나 이들 이론은 상당 기간에 걸쳐 영향력을 미쳤던 이론이었다. 라우든 은, 이 이론들이 상당한 기간 영향력을 가졌다는 사실에 대해, 그것들 이 제한적이나마 중요한 현상들을 설명해 내고, 나름대로 폭넓은 설명 범위를 인정받았으며, 어떤 정도 입증되기도 했다는 조건을 첨부하여, 그것들이 분명 성공적이었다고 판정한다. 만일 이 반례들에 대한 라우든의 해석이 옳다면, 실재론 특히 과학 이론의 성공(의 역사)을 근거로 삼는 실재론은 심각한 곤경에 처하게 된다. 라우든이 말하듯 실재론자들의 〈참〉 또는 〈근사적 참〉에 대한 주장은 중심적 이론 용어의 〈지시〉에 대한 주장을 선결적으로 요구하 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실재론자란 이론적 존재자의 존재를 인정하 는 동시에 그 이론적 존재자에 대한 이론들은 더 정확한 것으로 점차
개선될 수 있다고 말하려는 사람들아다. 예를 들어 원자에 대한 러더 퍼드 E. Ru th e rfo rd 의 이론이나 보어 N. Bohr 의 이론이 모두 지금의 기 준에서는 옳지 않은 것이라도, 그것들이 공히 원자를 지시했음은 사실 이며, 그런 의미에서 근사적 참일 수 있다는 것이 실재론자들의 생각 이다. 만일 이때 원자가 존재치 않는다면, 관련 이론의 성공은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현상이 될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 과학적 실 재론자에게 이론의 중심적인 설명적 용어가 실제로 지시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그 이론이 진리에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필요 조건이다. 〉 (Laudan 1981, 230-231 )_4 ) 그렇다면 실재론자들은 〈 지시 없 는 성공 〉 과 관련된 러우든의 반례들, 그리고 그것의 의미를 엄밀하게 반성해 보지 않을 수 없다.
4) 이런 맥락에서 머스그레이브A. Mus gra ve 는 실재론을 다음과 같이 정식화해야 한 다고 지적한다 . 〈[예컨대] 전자기 이론이 성공적인 것은 전자가 존재하며, 전자 이 론이 그에 대한 참인(또는 부분적으로 참인) 이론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 (Mus grav e 1988, 237).
(1) 라우든의 반례들을 진지하게 검토하려는 사람들은 누구나 라우 든의 반례 해석에 대하여 당혹하게 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제시되는 대부분의 예들이 현대 과학의 전통과 상당한 거리를 갖는 이론 전통 의 산물들이기 때문이다. 에테르의 경우를 제외하고 나면 , 다른 모든 예들은 현대 과학의 전통이 개발되기 이전 시점의 것들이다 . 5) 과학이 분야별로 , 빠르게는 17 세기경, 늦게는 19 세기에 이르러 그 이전의 과 학 전통과 완전히 구분되는 근대적 과학 전통을 갖춘다는 것은 과학 사의 공유된 내용이다 . 예를 들어 뉴턴 역학 이전의 역학적 연구 성 과들은 오늘날 역사적 자료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고중세의 과
5) 이 접에서 에테르는 중요한 사례이다. 그것은 명백히 실재론자들이 성숙과학이라 고 인정할 시기의 이론적 성취이며, 동시에 마이컬슨-몰리 Mi chelson-Morle y의 정 교한 실험에 의해 그 존재가 공식적으로 부인됨으로 해서 지시 대상을 잃어버린 경우이기 때문이다. 라우든의 반례 중 가장 강력한 의의를 갖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학과 근대 이후의 과학에 대한 우리의 이해 및 태도는 명백하게 구별 되며. 이는 과학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근대 과학 이전과 이후에 대 하여 차별적인 것이 무리가 아님을 알려 준다. 따라서 우리는 라우든 의 예들이 어떤 시대 착오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지 않은가 의심하게 된다. 한편 라우든은 그것들을 제한적이나마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는데, 그 이론들이 성공적이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오늘날의 과학인 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 체액 이론, 폴로지스톤 이론이 성공적이었 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반복 가능한 성공 사례를 가지고 있었는 가? 생산적으로 확장 가능한 이론이었는가? 포괄적이며 체계적인 설 명 구조를 가지고 있었는가? 어떤 이론들이 역사적으로 상당 기간 사 용되었다는 사실이 그 이론의 인식론적 성공에 대해 무엇을 증명해 줄 수 있을까? 그것이 과연 누구라도 수긍할 수준의 현상적 성공을 이루었을까? 엄밀한 사례 연구를 거쳐야겠지만, 이룰 납득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라우든은 이런 문제에 대해 답할 수 없는가? 엄민한 사례 연구야 실제로 진행되어야 어떤 결말에 이를 문제이므로 미결 상태로 보류해 둘 수 있다 하더라도, 반례들이 대부분 근대 과학 이전의 것들이라는 바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라우든의 입장에서는 일단 과학사적 직관으로 제시되는 시대 구분의 근거가 무엇이냐고 반문할 수 있을 듯하다. 다시 말해서 근대 과학과 그 이전 시기의 과학을 차 별적으로 평가하는 통념의 인식론적 근거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것 은 과학의 시대적, 질적 구분이라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인데, 여기서 실재론자들에 의해 많이 사용되는 〈성숙과학 ma ture s ci ence 〉이란 개념 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2) 실재론자들은 통상 그들의 입론을 〈성숙과학〉이라는 한정적 표 현과 같이 놓는다. 그것은 실재론의 주장을 과학사의 모든 시기에 일 률적으로 적용하는 데에는 직관적으로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실재론
의 주장은 과학이 〈 성숙 〉 단계에 들어선 이후 시점의 이론에 대해서 만 적용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실재론 철학자 보이드는 특유의 복잡한 어법으로 이렇게 말한다 . 주장하는 것은 어떤 과학 분야의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도 이론에 의존 해 있는 방법론적 관행이 정교해지고…… 도구론적 신빙성을 드러내는 순간이 있다. 그 신빙성은 …… 과학 지식에 대한 실재론적 설명에 의해 서만 적절히 설명될 수 있다. 초창기 과학의. 상당히 제한적인 성격의 귀 납적 성공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의 설명이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Bo y d 1983, 77). 그러나 〈성숙 〉 의 시점 또는 기준에 대한 보다 분명한 이야기는 어 디에서도 찾기 어렵다. 이 개념은 왜 모호한 채 방치될까? 혹 모호해 도 문제가 안 될까? 성숙의 개념은 모호한 대로 라우든의 반례에 대 한 실재론자의 답변이 되는가? 별로 그렇지 못하다. 왜냐 하면 라우 든의 논변은 바로 실재론자들이 성숙과학의 개념으로 말하고 싶어하 는 과학사의 시대 구분, 이론 전통의 유형 구분의 근거를 묻는 질문 이라고 재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 성숙과학 〉 의 성숙 성의 기준. 정의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실재론자가 말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혹 이론의 경험적 성공, 라우든식으로 해 석된 실천적 성공밖에 거론할 것이 없다면. 라우든의 논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런 성공 개념이라면 라우든이 제시하는 반례들도 모두 성 공적인 이론이며. 따라서 성숙과학이 되기 때문이다. (3) 이에 대해 라우든의 논변 자체 내에 어떤 모순이 있다고 반론 해 볼 수도 있다. 그것은 라우든이 말하는 〈 성공적이나 지시하지 않 는〉 이라는 표현에 분명치 않은 점이 있기 때문이다. 성공에 대해서 는 우리가 앞에서 제시했던 기준. 실천적 효과의 덕목들을 준거로 삼 을 수 있다고 해 두자. 그러나 지시하지 않음은 어떻게 판정되는가? ·
〈 플로지스톤 〉 과 〈 에테르 〉 가 지시 대상 없는 이론 용어라는 판정은 어 떻게 가능한가? 그것은 분명 우리(보다 정확하게는 현대의 과학자들)가 현대의 과학 지식에 의거하여 내리는 판단일 것이다. 그렇다면 라우든 의 논변은 지시 여부를 판정하는 근거로서의 현대 과학 이론들이 참 이며 그 존재 함축에 있어서 올바르다고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데 현대 과학 이론의 참을 미리 전제할 경우 라우든의 주장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라우든의 주장, 즉 이론의 참에 대한 실재론적 해석 이 합리적 근거를 갖지 못한다는 주장이 현대(또는 근대) 이전의 과 학 이론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라면, 라우든의 논변은 자체적 으로 모순적인 동시에, 과학 인식론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이 되지 못한다. 우리에게 가장 관심 있는 문제는 현대 과학의 참 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라우든의 논변은 자기 모순적이어서 가치를 상실하는가? 그러나 이런 식의 반론은, 적어도 실재론의 타당성에 대한 논쟁이라는 맥락에서는 의미 있는 것이 되기 어렵다. 최근의 성공적 이론들이 근 사적 참이라는 주장이야말로 실재론자라면 견지해야 할 최소한의 주 장일 것이다. 실재론자는 과학사의 연속적인 진보를 주장하는 입장이 다. 따라서 과학 이론, 잘 입증되고 경험적으로 성공적인 이론의 (근 사적) 참을 주장한다면, 가장 적절한 후보는 현시점에 가까운 것일 수 밖에 없다. 만일 라우든이 실재론자들의 직관을 존중해서 현대 과학의 (근사적) 참을 일단 가정해 놓고 논변하는 것이라면, 실재론자들은 이 를 거부할 명분이 없다. 실제로 라우든의 반례들은 그렇게 해석될 수 있다. 현대 과학에 대한 실재론자들의 해석을 존중할 때, 과학사는 실 재론의 입장이 적절치 않음을 보여 주는 예들이 풍부하게 존재함을 알려 준다. 그러한 사례들은 역으로 실재론의 직관과 근거 논변이 증 거상 취약함을 말해 주고, 그것은 현대 과학 이론에 대한 실재론적 신뢰 또한 근거 없다고 추론케 한다. 이 경우 라우든 논변의 실질적 요점 은 뉴턴-스미 스 W. Ne wt on-S mith가 말하는 비 관적 귀 납 pes sim istic
in duc ti on 의 논법과 그리 다르지 않다. 〈 [우리의 과학사 적 증거에 의하 면] 다음과 같은 비관적 귀납은 지지된다. 어떤 이론도 제창된 지 약 200 년 이내에 거짓으로 밝혀질 것이다. 〉 (New t on - Sm ith 1981, 237). 라우든의 논법은 긍정적으로 해석하건대, 현대 과학의 참에 대한 실 재론자들의 신뢰를 징검다리로 사용한다고 보인다. 그렇다면 라우든은 실재론을 논파했는가? 그렇게 단정지을 필요는 없다. 라우든의 예들은 일단 실재론자들의 성공 개념이 보다 예리해져야 한다는 요구로 해석 될 수 있다. 라우든이 논변하는 것은 실재론자들에게 보다 정교한 성 공 개념(과 그와 부합하는 지시 개념)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치명적인 반례의 가능성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 실재론자는 성공/지시 의 개념을 새롭게 정교화해야 한다. 4.2 지시와 실재론 라우든의 반례에 대해 적절히 응수하기 위해서는 〈 지시에 성공하는 〉 이론의 성공과 〈 지시에 실패하는 〉 이론의 성공을 구분하는 기준을 제 시해야 한다. 그런 구분이 가능하다면, 그래서 리우든의 반례들은 혹 성공적이라 해도 〈지시에 실패하는 〉 성공의 경우들이라고 말할 수 있 다면, 그것이야말로 라우든의 반례에 대한 결정적인 반론이 될 것이 다. 그러한 기준은 모호했던 〈 성숙성 〉 의 기준으로서 사용될 수도 있 을 것이다. 성숙과학이란 그냥 성공적인 과학이 아니라 〈지시에 성공 하는〉 성공적 과학이 된다. 이런 취지의 지시 개념을 개발하려는 시 도가 하딘 S. Har din과 로젠버그 A. Rosenber g에 의해 이루어졌다 (Har- din-R osenberg 1982). 이들은 반실재론자들이 지시 실패를 지적하는 사례에 대하여, 지시에 실패하더라도 근사적 참을 말하는 것이 불가능 하지 않으며, 또한 지시 개념을 적절히 손질하면 지시 대상이 없어 보이는 용어들에게 지시를 할당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제안한다 . 첫번째 제안을 살펴보자 . 멘델 G.Mendel 이 유전자에 대해 말했을
때 엄밀히 말해서 그 것 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유전 물질이라고 할 수 없댜 오늘날 유 전 물질은 염색체 내의 DNA 라고 알려져 있고, DNA 에 입력되어 있는 유전 정보가 여러 과정을 거쳐 표현형으로 나 타난다 . 이와 비교해 보면 표현형/유전형의 관계에 대해 이해가 전무 하였던 멘델의 유전자 개념은 지금의 유전자 개념과 같은 것일 수 없 댜 그렇다면 멘델의 유전자 개념은 정확한 지시 대상을 갖고 있지 않으며, 멘델의 유전 법칙들은 근사적 참일 수 없을까? 라우든에 따 르면 실재론자들은 그렇게 말해야 한다. 그러나 하딘-로젠버그는 달리 답한다. 혹 멘델이 말했던 그런 유전자가 없다고 인정한다고 해도, 오 늘날에도 그 단순함과 편리함 때문에 유전학 교과과정에서 가르치고 있는 멘델의 유전 법칙들, 예컨대 형질 분리의 법칙, 형질 독립의 법 칙은 현대 유전 이론의 빛 아래 어떻게 근사적인 것인지(경험적으로 성공적인 법칙일 수 있었는지) 설명될 수 있으며, 그런 점에서 근사적 참을 부여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Har din, Rosenberg 1982, 606- 6 07). 이들의 제안이 우리가 근사적 참에 대해 갖는 어떤 직관을 잘 반영 하고 있다. 그러나 실재론자들에게 이런 식의 대안은 불안스러운 것이 다. 왜냐 하면 이들처럼 과학 이론의 성공(근사적 참)을 지시와 분리 시킨다면, 그것이 실재론의 원래 의도에 부합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 다. 하딘 _ 로젠버그의 제안은 현대 유전학 이론에 비추어 멘델 유전 이론의 근사적 참을 설명해 준다는 것인데, 이는 현대 이론의 (근사 적) 참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전제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현대 유전 이론이 대단히 성공적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근사적 참(이론의 성공)을 지시와 분리해 놓는 하딘-로젠버그 의 논법에서는 현대 유전 이론의 성공이 그 이론의 존재론적 신빙성 에 대한 단서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현대 유전 이론의 참은 존재론 적으로 신비로운 것이 된다. 지시에 의한 존재론적 연결고리 없이는 과학 이론의 성공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실재론자들의 주장일 텐 데, 그렇다면 하딘-로젠버그의 제안이 실재론자들에게 만족스러운 것
이기는 어렵다. 그래서 지시 문제를 직접 거론하는 두 번째 제안이 더 중요하다 . 하딘-로젠버그에 의하면 이론 용어의 지시는 그것의 〈 인과적 역할 〉 에 의하여 폭넓게 해석될 수 있다 . 즉, 어떤 이론 용어에 대하여 정확 한 지시 대상이 존재치 않는다 해도. 그 용어(와 그것이 지시했던 대 상)가 담당했던 인과적 역할이 존속. 계승되는 한 그것을 유효한 지시 관계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 내용상 멘델이 말했던 〈 유전자 〉 가 정 확히 DNA 와 같은 내용의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유전 이론에서 DNA 가 하는 기능, 역할과 멘델의 유전자가 담당했던 인과적 역할이 동일 한 것이며. 따라서 멘델의 〈 유전자 〉 를 DNA 를 지시하는 것으로 해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이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에테르에게도 지시를 부여한다. 프레넬에서 아인슈타인에 이르기까지의 이론들을 돌이켜보건대, 우리는 그것들 모두에서 불변적인 인과적 역할을 볼 수 있다 _~ 우리가 오늘날 전자기장에 할당하는 그 인과적 역할 (Har din -Rosenber g 1982, 613). 이들의 제안이 과연 러우·든이 제기한 문제에 대한 적절한 답변이 될 수 있는지 검토해 보자. 하딘 _ 로젠버그의 지시 해석은 이론 용어 의 지시를 지시 대상과 용어 간의 의미론적 관계로 해석하지 않고. 용어가 이론적 설명에서 담당하는 기능. 그들의 표현으로는 〈 인과적 역할 role 〉(의 동일성)이라는 기준에 의거해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과적 역할이란 정확히 무엇일까? 그것은 인과적 연쇄에서 담당하는 부분 내지는 역할로 생각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이러한 지시 개념 아래서 멘델의 유전자는 DNA 와 동일한 지시를 가질 수 있 다. 이때 인과적 역할의 동일성이란 유전 이론(또는 유전 과정)에서의 어떤 역할이며, 그것은. 죽 유전 물질, 유전 정보를 담는 수용체로서의 역할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멘델 유 전 자와 DNA 가 동일한 인과적 역할을 한다고 보는 것은 그것들이 공히 유전 정보를 전달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한 다고 판정되기 때문이다 . 즉, 이것들이 모두 〈 무엇이 유전 물질을 전 달하는가? 〉 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에서 동일한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 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과적 역할의 동일성은 이론적 설명 구조 내에 서의 어떤 동일성. 이름하자면 〈 설명적 역할 〉 의 동일성이라 할 수 있 다. 이때 더 이상의 제약 조건이 없다면, 하딘-로젠버그의 지시 개념 은 이상한 귀결을 함축하게 된다 . 하딘-로젠버그의 제안을 따르면. 아 리스토텔레스의 〈 자연적 장소 na tur al p lace 〉 나 데카르트의 〈 소용돌이 vo rt ex 〉 에도 모두 지시가 부여될 수 있는 듯하다. 그것들은 모두 뉴턴 이 중력으로 설명했던 낙하 현상을 설명하려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중력과 동일한 설명적 역할 또는 기능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 문이다 (Laudan 1984, 160). 이는 분명히 실재론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다. 이러한 분석이 하딘-로젠버그가 가망 없음을 말하지는 않는다. 그들 의 제안은 직관적으로 설득력 있다. 우리가 근사적 참, 지시에 대해 갖고 있는 경직되지 않은 관점을 담아 내려 한다. 실재론자들의 지시 개념에 어떤 유연성과 제한을 동시에 부여해 보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는 여전히 주목받을 가치가 있다 . 다만 〈 인과적 역할 〉 이라는 중심 개 념의 애매함으로 인하여 아직 만족할 만한 대안이 되지 못할 뿐이다. 이 노선에서의 연구도 계속될 가치가 있다. 그러나 달리 이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은 없을까? 이와 관련하여 쉽게 떠오르는 개념은 은유 me t a p hor 의 그것이다. 은유는 그 의미(와 지시)의 내용이 고정되어 있 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 언어의 유연성의 측면을 대표한다. 그 폭을 과학 언어. 지시, 근사적 참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 동원해 볼 수도 있 을 것이다. 그 방식의 일례를 살펴보자.
4.3 대 안으로서 의 은유 보이드는 이론 용어(의 의미 또는 지시)와 은유의 관련에 대하여 흥미로운 고찰을 하고 있다. 과학 언어 속에는 이론적 내용을 쉽게 또는 시각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교육학적 용도로 사용하는 은유가 있 는가 하면. 어떤 이론적 표현에 의해서도 대체 불가능한 것으로서. 이 론의 발전 및 정교화 과정에 본질적으로 기능하는 은유들이 있다 . 보 이드는 후자의 은유를 〈 이론구성적 the ory -c onstit ute 은유 〉 라 이름하며. 그 기능. 역할에 대해 주목한다 . 이런 종류의 은유는 초창기의 과학 분야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보이드의 예를 들자면. 인지심 리학 분야에서 흔히 사용되는 〈사유는 정보 처리다 〉 , 〈 뇌는 컴퓨터 다 〉 등의 은유적 표현이 그것이다 (Bo y d 1979, 360). 이때 뇌를 컴퓨 터에 비유하는 것이 편의적인 설명 방식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이론구 성적 은유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이들 은유는 이론구성적 이다. 보이드에 따르면 과학에서의 은유는 세계의 인과적 특성을 기술하 기에 가장 적절한 언어적 범주들을 개발해 내기 위해 과학 공동체가 사용하는 수단 중의 하나다. 찰 알려져 있듯이 크립키 S. Krip ke 와 퍼 트남이 개발한 인과적 의미론(또는 지시론)은 우리가 해당 용어에 대 하여 의미론적 필요 충분 조건이나 그 의 다른 방식으로 명시적 정의 를 줄 수 없을 경우에 지시를 확정하는 방식 중의 하나이다. 그에 따 르면 우리는 표준적인 샘플을 예시하며 그것에 새로운 이름을 부여함 으로써 새로운 이론 용어를 도입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표준적인 성 분의 금 조각을 놓고 〈이것이 금이다 〉 라고 명명함으로써 지시 확정의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다 (Pu tnam 1975). 그러나 퍼트남류의 예시적 지 시 확정은 상대적으로 순수한 샘플이 존재할 경우에만 가능하다. 만일 어떤 것의 물리적 본성이 다른 자연종과의 인과 관계를 본질적으로 포함하는 그런 것이어서 수많은 애매성의 여지가 있다면. 그에 대한
예시적 정의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 예 를 들어 전류를 갈바노미터의 바늘을 가리키면서 이름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겠는가? 이런 종류 의 대상에 대한 (비정의적) 지시 확정에 있어서 이론구성적 은유가 중요하다는 것이 보이드의 통찰이다. 다시 말해서 은유는 비정의적 지 시 확정의 한 가지 방식이다. 즉, 대상의 본질이 복합적인 관계 속성 relati on al p ro p e rty으로 구성되는 종을 지시하는 용어를 도입하기에 적 절한 지시 확정 메커니즘이다 (Bo yd 1979, 358). 사용되는 은유적 표현의 성질이나 속성이 충분히 잘 이해되어 있을 경우, 그것은 더불어 도입되는 용어의 지시 대상을 어느 정도 애매하 지 않게 해 주는 동시에, 더 중요하게는 그 지시 대상에 대한 이후 연구의 방향도 〈 유연하게 〉 암시한다 . 예컨대 인간은 컴퓨터이며, 사고 는 정보 처리라는 은유적 표현으로부터 우리는 인간에 대한 새로운 연구 방향, 즉 인간/컴퓨터에 대한 아직 알려지지 않았던 유사성, 상 사성을 통한 이해라는 방향을 암시받게 된다. 보이드가 〈귀납적 개방 성 ind ucti ve op en -endedness> 이 라 이 름하는 이 특성 이 과학 언어 를 이 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문학에서 은유의 주된 기능은 독자들에게 은유 문장에서 사용된 표현들이 갖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거나 이해되 지 않은 유사성에 대해 생각하도록 초대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은유 는 본질적으로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었던 어떤 것 , 당혹스러우면서도 신비한 인간사의 양상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하는 수단이다.6) 과학에서도 마찬가지다 . 〈 이론구성적 은유는 은유의 일차 주제와 이차 주제 간에 이론적으로 중요한 유사성, 상사성의 측면이 있다고 믿을 좋은 이유가 있을 때(또는 있어 보일 때) 도입된다. 은유의 기능은 우리들을 유사성이나 상사성의 그러한 측면들을 좇아가도록 하는 것 6) 이러한 은유에 대한 생각은 블랙 M.Black 이 제시한 은유에 대한 상호 작용설의 관접에 따르는 것이다 . 거기서 은유는 그 인지적 내용이 기존의 어휘를 통해서는 완전히 해명될 수 없는 것, 그러므로 새로이 창조된 내용을 갖는 것으로 나타난다 (Black 1955).
이 다.〉 (Bo y d 1979, 363).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론구성적 은유 표현의 개방적 특성이 과학의 이론 용어 일반에 적용 가능한가 하는 문제이다. 일반 적으로 이론 용어를 도입하는 것은 완전히 이해되지 않은 추정적 유 (類)에 대한 임시적 이해를 요구한다. 그러한 용어는 당연히 은유가 갖는 개방성을 갖게 될 것이다. 만약 모든 이론 용어가 개방성이라는 은유의 속성을 갖는다면, 과학적 표현 일반을 은유처럼 기능하는 것으 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까지 말한다면 은유의 속성은 이 론 용어의 도입기에만 활발히 기능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룰 과학 용 어의 일반적 속성으로 확대하는 것은 가능할까? 여기서 이론을 모델 로 보고, 그 지시 대상을 세계 내의 〈구조 s tru c tur e 〉에 대응시키는 맥 멀른의 실재론 논변을 참조해 보기로 하자. 맥멀른에 따르면 실재론에 가장 호의적인 과학 이론의 유형은 19 세 기 이래 발전한 이른바 〈구조과학 s tru c tur al s ci ence 〉 이다. 구조과학이 란 관찰 가능한 물리 현상의 규칙적 특성들을 그 배후의 구조에 의하 여 인과적으로 설명하는 분야이며, 더 정확히는 〈 오랜 기간에 걸쳐 내적 구조에 대한 보다 세밀한 규정이 얻어지며, 거기서 이론적 존재 자들은 ‘배후의 실재'와 관련하여 단순히 가정된 것이 아니라 설명에 서 본질적으로 작용하는 그런 것……〉인 이론들이다 (McMull in 1984, 17). 지질학에서의 지층 구조에 대한 논의, 생물학에서의 유전자 구조 에 대한 논의, 화학에서의 원자 구조에 대한 논의 둥이 대표적인 예 들이다. 맥멀른에 따르면 지난 200 년의 과학사는 세계의 내적 구조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지속적 발전을 보여 준 많은 경우들을 갖고 있으 며, 그러한 구조과학의 지속적이고도 계승적인 성공이야말로 실재론에 대한 강력한 증거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실재론을 지지하며, 그 때 지지되는 실재론은 어떤 것일까? 맥멀른에 따르면 구조과학의 설 명은 다음과 같은 종류의 것이다.
과학자들은 해당 개체의 감춰진 구조에 대한 모델을 상정함으로써 물리 세계의 관찰된 특징들을 설명해 내는 이론들을 만들어 왔다. 이 구조는 관찰 가능한 현상을 인과적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며. 이론적 모형은 현상에 대한 근사(近似)를 제공한다. 거기서 그 모형의 설명력이 비롯된다 (McMul lin 1984, 26-7). 즉, 이론은 모형이며. 모형이 서술하고자 하는 것은 세계 내의 구조 및 그것의 인과적 작용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모형. 구조 등의 개념에 의한 전혀 새로운 실재론의 유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의 논의에 서 보다 궁금한 것은 이러한 실재론에서 과학 이론(즉, 모형)의 성공/ 지시는 어떻게 나타나며, 그것은 라우든류의 반론을 피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보이드는 이론적 은유가 무가치해지는 순간을 이렇게 말하고 있 댜 〈만일 이론적 은유들이 실질적 통찰을 갖지 않는 것으로 드러난 다면, 우리는 은유적 용어의 새로운 지시 대상에 대해 탐구할 필요 가 없다. 〉 (Boy d 1979, 370), 그런데 언제가 그때인가? 이에 대해 맥 멀른이 제시하는 개념은 〈산출력 fertility〉이다. 이론(모델)의 산출력이 란 이론이 마땅히 설명하리라 여겨지는 것을 설명치 못할 때. 기존 이론에게 가능한 수정 내지는 확장의 방식을 제시해 주는 능력을 말 한다. 이때 이론의 확장 방식은 기존 이론으로부터 함축되는 것이 아 니댜 그것은 마치 은유에서 그러하듯 〈시사된다 su gg es t ed. 〉 (McM ullin 1984, 31 ).7 ) 다시 말해서 풍부한 산출력을 갖는 모델만이 보존하고 세련화할 가치를 가지며. 이때 그 모델의 중심 용어들은 은유적이 지만 그 존재론적 함축을 타당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 7) 이와 관련하여 맥멀른은 지질학의 판구조론을 예로 들고 있다. 판구조론은 대륙 표류설을 대체하는 이론이다. 그러나 이 경우는 〈표류하는 대륙〉이라는 이론적 은 유가 여러 변칙 사례 anomal y와 새로운 중거들을 맞이했을 때, 판 구조를 암시해 주었다는 점에서 산출력 있는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McM ullin 1984, 32).
이다 . 주목할 것은. 맥멀른에서 모든 이론적 성공이 실재론의 층거가 아니 며. 이론 용어의 지시에 대한 보증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 상당히 오 랜 기간 동안 내부 구조에 대한 세밀한 해명이 확대되는 것. 거기서 는 이론적 존재자들이 ‘배후의 실재'에 대한 직관적 가정 정도가 아니 라 본질적으로 기능하여야 하며. 원래의 은유가 계속 생산적인 동시에 지속적으로 확장 가능한 것으로 입증되는 경우여야 한다 .〉 (McMull in 1984, 17). 이는 상당 기간 성공적이었던 이론들이 상정하는 모든 존 재자들이 존재론적으로 승인될 필요가 없음을 말해 주며. 그런 의미에 서 라우든의 반례들을 재해석할 관점을 시사해 준다 . 맥멀른에서 성공과 지시는 종래 실재론자들이 생각했던 것과 다르 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유연하며. 다양한 질적 차이를 가질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 이에 대해 〈산출력 〉 이라는 중심 개념의 모호함을 지 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맥멀른의 관점에서 과학 활동이나 언 어에 있어서 어떤 모호함은 본질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왜냐 하면 맥멀른에게서는 실재론이라는 입론 자체가 달리 규정되어야 하 기 때문이다. 이제 과학은 더 이상 참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다. 과 학적 작업의 주된 자원은 은유이며. 은유를 만들고 그것의 모호함을 매개로 하여 지식을 확장해 나가는 것이 과학 활동의 목표가 된다. 〈과학은 풍요로운 은유 그리고 보다 세밀한 구조를 목표로 한다. 〉 (McMu llin 1984, 35). 5 경험론의 새로운 형식 과학적 실재론의 타당성은 언제나 경험론에 비추어 검토될 필요가 있다. 실재론의 문제가 궁극적으로 〈경험 초월성〉의 개념과 연관되는 것이라면, 우리의 지식은 경험에 기반하며, 경험을 초월할 수 없다는
직관에 대한 철학적 표현이라 할 수 있는 경험론의 전통과 대결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8) 인식론에 있어서 경험론은 여러 형태로 나 타날 수 있는데, 그것들의 최소한의 공분모는 다음 명제로 표현될 수 있다. 〈 경험은 우리의 모든 사실적 의견에 있어서 합법적인, 유일하게 합법적인 원천이다. 그리하여 사실에 대한 모든 결론들은 미래 경험에 의하여 수정될 수 있어야 한다. 〉 (van Fraassen 1980, 252). 최근 경험 론의 입론은 반 프라센에 의해 새롭게 정련되었으며. 그것은 실재론에 대한 반론의 새로운 거점을 형성하고 있다.
8) 그와 더불어 현대 과학철학이 경험론의 정신에 투철한 20 세기 초 논리경험주의자 들이 만들어 낸 철학적 논쟁의 산물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 Bo y d (1 991) 는 현대 과 학철학에서 논리경험주의가 얼마나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
5.1 반 프라센의 구성적 경험론 반 프라센의 시도는 1980 년대 이래 철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는 데. 그것은 실재론에 대한 신랄한 공격을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종래 의 경험론이 가졌던 여러 약점들을 상당 부분 극복하는, 정교한 경험 론의 입론들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반 프라센은 자신의 입장을 구성적 경험론 cons tru c ti ve em piri c is m 이라 이름한다. 이는 일종의 경험론인 동 시에 과학의 구성적 성격 - 과학 행위는 근본적으로 관찰 불가능한 영역에 대한 발견이라기보다는 관찰 자료들과 잘 부합하는 이론적 모 형 model 을 구성하는 것이라는 관점――울 포괄하려는 뜻을 담고 있 다. 구체적인 논제들을 검토하기 이전에 반 프라센의 경험론이 정확히 어떤 입장인가, 어떤 점에서 새로운가를 살펴보자. 반 프라센은 실재론과 그 반대 입장들을 과학 이론의 합당한 목표 설정(과 이론 수용 acce ptan ce 에 수반되는 믿음의 종류)에 의하여 구분 한다. 이는 이론의 진리 주장을 목표나 의도의 차원에서 이해하려는 것으로서, 우리가 어떤 개별적인 이론에 대해서도 그것의 참(또는 근
사적 참)을 결정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는 인식론적 상황을 수용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9) 이론의 참에 대한 주장을 실질적 성취가 아닌 목 표로서 이해할 경우. 실재론에 대한 공방은 과학의 합당한 목표는 무 엇이며. 그 목표는 인식론적으로 정당한가를 문제삼게 될 것이다. 반 프라센은 실재론과 경험론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9) 그러나 이러한 규정조차 지나치게 강한 의미일 수 있다. 과학의 실제에서는 근사 나 이상화를 이용해서만 현상을 다룰 수 있는 영역이 있으며. 그러한 현실적인 한 계를 갖는 인간에게 〈완전한 whole> 진리는 적절한 목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Kit cher 1993, 150-151 ).
과학적 실재론 : 과학은 그 이론에 의하여 우리에게 세계가 어떠한지에 대 한. 문자 그대로 참인 liter ally true 이 야기를 제 공하려고 한다. 그리고 한 이론의 수용 acce ptan ce 은 그것이 참이라는 믿음을 포함한다 (van Fraassen 1980, 8). 구성적 경험론 : 과학은 우리에게 경험적으로 적합한 em piri call y adeq u ate 이론을 제공하려고 한다. 그리고 한 이론의 수용은 그 것 이 경험 적으로 적합하다는 믿음만을 포함한다. [이때] 한 이론이 경험적으로 적합 하다는 것은 그것이 이 세계 내의 관찰 가능한 존재자 및 사건에 대하여 말하는 바가 참일 경 우. 죽 그것이 현상을 구제 할 save the ph enomena 경 우이다 (van Fraassen 1980, 12). 여기서 말하는 실재론과 경험론의 차이는 이런 것이다. 이론적 주장 과 관련하여 경험론자들은 관찰 가능한 영역에 대한 인식론적 함의 만을 인정하며. 반면 실재론자들은 관찰 가능한 영역과 관찰 불가능한 영역 모두에 대하여 이론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이런 방식의 정식화에 서 실재론과 반실재론의 쟁점이 종래의 것과 달라진다. 위 정의에서 사용되고 있는 〈문자 그대로 참〉이라는 구절을 주목해 보자. 여기서 〈문자 그대로〉란 제한은 과학 언어를 은유적인 것으로 또는 환원적
해석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겠다는 뜻이다. 어떤 이론이 〈 전자가 있다 〉 라고 말하면, 그 존재 함축, 즉 전자가 있다는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 이는 이론 언어에 대한 비환원론적 입장과 진리 상응론적 해석을 받아들이는 것인데, 반 프라센에게서 이 것은 실재론과 경험론에 공히 적용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종래의 경 험론은 이론 언어에 대한 환원론적 해석을 모토로 삼았으며, 반면 도 구론은 이론의 참, 거짓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러한 해 석을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0)
10) 엄밀히 정의컨대 도구론과 경험론은 구분되는 입장이다. 도구론은 이론의 인식 적 위상 s tatus에 대한 주장인 반면, 경험론은 인식의 정당 근거 및 원천에 관련된, 인식론의 일반적 입장이다. 그러나 과학철학에 있어서 그것들의 연관성은 명백하 다 . 과학철학에 있어서 경험론이란 이론의 인식적 내용을 경험 가능한 영역에 한정 하는 것인데. 따라서 그때 경험 초월적인 내용을 갖게 마련인 이론은 전적으로 기 술적(記述的)인 것으로 여겨지지 않게 된다 . 여기서 환원적 해석의 가능성을 인정 할 경우 경험론의 입장이 되며. 그것을 부정하고 이론을 단지 관찰 명제들간의 추 론 관계를 알려 주는 〈규칙 rule 〉과 같은 것으로 여길 경우 도구론의 입장이 된다 (Nage l 1961, 129-40) .
이는 논리실증주의의 환원 프로그램이 봉착했던 어려움으로부터 얻 어 낸 깨달음, 죽 이론은 관찰 보고로 환원될 수 없으며, 이론은 경험 정보를 체계화하는 단순한 수단 이상의 것이라는 깨달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프라센의 입장은 새로운 형태의 도구론 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 그것은 구성적 경험론에서 이론 언어는 문 자 그대로 해석되기는 하나, 다른 이유(인식론적 이유)에서 관찰적 영 역을 넘어서는 이론적 주장은 어떤 정당 근거도 갖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따라서 이론의 전반적인 인식론적 의의는 일단 〈도구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이론적 주장은 경험 가능한 영역에 대해서 〈 적합한지 〉 의 여부에 의하여 평가되며, 그 이상의 이론적 내용은 우 리의 실용적 관심에 의해 동원되는 개념 도구라는 측면에서 기능할 뿐이다. 이제 경험론-도구론의 논제는 대별하여 두 가지 유형으로 구
분해 볼 수 있으며, 그 중 두 번째 것이 반 프라센의 것이다. (D1) 이론의 인식적 내용은 관찰 자료들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 한편 이론 언어는 문자 그대로 이해되어선 안 된다. 즉, 참이거나 거 짓일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이론은 현상들을 법칙적 유형으로 분류하는 규칙이며, 자연 현상에 대한 신뢰할 만한 예측과 효율적인 통제를 위한 경제적 수단일 뿐이다. (D2) 이론 언어는 문자 그대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관찰 자 료 이상의 참된 정보를 가질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 나 이론의 경험 초월적 내용은 인식론적으로 정당 근거를 갖지 않으 며, 따라서 우리의 이론 수용은 이론의 참이 아니라 이론의 경험적 적합성에 대한 믿음만을 포함한다. 반 프라센의 경험론적 반실재론은 결국 이론의 진리 주장의 어떤 부분을 선별적으로 의심하려는 것인데. 그렇다면 실재론/경험론의 논 쟁은 그러한 선별의 근거가 무엇이며, 그것은 왜 존중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맞이하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반 프라센은 경험론자에게 의미 있도록 관찰 가능한 영역을 정의해 낼 수 있으며, 동일한 증거 집합에 대해서 서로 다른 복수의 이론적 주장들이 동시에 양립할 수 있다는 취지의 〈미결정성 논변〉이 타당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실재론은 인식론적으로 위험한(과도하게 형이상학적인) 입장인 반면 구성적 경 험론은 그러한 부담 없이 과학의 제반 활동을 설명할 수 있는 건전한 입장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제로 나아가기 전에 먼저 이론 에 대한 관점이 교정되는 것이 필요하다. 5.2 이론에 대한 의미론적 관점 이론 해석에 있어서 경험론자들은 언제나 이론의 경험적 내용 및
경험 가능 영역의 정의에 민감하다. 그러한 정의가 불가능할 경우. 그 들 입론의 인식론적 근거가 사실상 상실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이 결코 쉽지 않음은 논리실증주의의 부침을 통해 잘 알려져 있 다. 현대판 경험론으로서의 비엔나 실증주의자들은 관찰 가능한 영역 의 명확한 구분 기준을 언어 차원의 접근을 통해 마련해 보려 했었다. 흔히 구문론적 syn tac ti c 방식 이 라고 불리는 그 방식 에서는 관찰 용어 와 이론 용어(또는 관찰 언어와 이론 언어)의 구분에 의거하여 경험적 내용의 영역을 구획해 보려 한다. 그것이 실패했음은 잘 알려져 있으 며. 반 프라센의 새로운 경험론은 이러한 실패를 넘어서려 한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의 접근 방식은 그들의 이론에 대한 관점에 의해 결정된 것인데. 그것은 통상 〈 구문론적 관점 the syn tac ti c vi ew 〉이라 불린댜 이론에 대한 구문론적 관점이란, 이론을 일종의 공리적 형식 체계 axiom ati c form al s y s t em 로 여기며 . 이론의 경험적 내용은 이론을 구성하는 용어들의 구분을 통하여 별도의 해석 규칙에 의하여 정의하 는 방식을 말한다. 현대 실증주의자들은 19 세기 이후 비유클리드 기하 학과 형식 논리학의 발전에 자극되어. 과학 이론의 해석에 있어서 〈 형식 체계 form al sys t e m > 및 〈 해석 int e rp re tati on 〉의 개념을 원용한다. 그리하여 이론은 일종의 공리 체계로 여겨지며. 이때 이론을 구성하는 〈 무정의 용어들primiti ve t enns 〉 에 대하여 〈해석〉이 부여된다. 그 해석 에 있어서 관찰 용어/이론 용어의 구분이 전제되며, 관찰 용어에 대해 서는 직접적인 〈 의미론적 해석 〉 이 주어지고. 이론 용어에는 관찰 용 어(또는 언어)를 통한 〈 부분적 해석〉이 주어진다는 것이 그들 주장의 골자이다. 이러한 입장은 여러 세부적인 변형을 거쳐 이뤄졌으며, 그 표준적 인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Su pp e 1977, 50-53). (1) 이론은 일차 술어 논리의 언어 L 에 의해 표현된다(이때 동일성 ide nti ty 기호와 양상 연산자 modal o pe ra t or 가 추가될 수 있다). (2) L 의 (논리 용어 이외의) 무정의 용어들은 관찰 용어와 이론 용
어의 두 종류로 나뉜다. (3) L 의 문장들은 관찰 언어와 이론 언어라는 두 종류의 하위 집합 으로 구분된다. 이때 관찰 언어란 양화사나 양상조작사. 이론 용어 등 을 포함치 않으며. 관찰 용어들만으로 이뤄진 문장들의 집합이다. 반 면 이론 언어란 관찰 용어를 포함치 않는 문장들의 집합이다. (4) 관찰 언어에는 의미론적 해석 semanti c int e rp re tati on 이 주어지며, 이때 해석의 정의역 dom ain은 직접적으로 관찰 가능한 사건들. 존재자 들 속성들로 이뤄진다. (5) 이론 용어와 그를 포함하는 이론 언어에는 이론적 공준 the reti ca l po s tul a t e 과 상응 규칙 correspo ndence rule 을 통하여 부분적 해 석 partial int e rp re tati on 이 주어진다. 요약컨대 논리실증주의자들은 관찰 용어와 이론 용어가 구분 가능 하다는 전제 아래 관찰 언어를 구성하고 그에 근거하여 이론 언어에 〈(부분적) 해석〉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이론 전체에 대한 경험론적 해 석을 제공한다. 그들은 관찰 언어에 의해 번역 불가능한 이론 언어의 부분은 무의미하다고까지 말하는데, 문제는 그들이 전제하는 관찰 용 어와 이론 용어 간의 원리적 구분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이 와 관련하여 그러한 용어상의 구분이 실제 과학의 현실에 대하여 전 혀 유효하지 않으며, 그러한 구분이 혹 이뤄진다 해도 경험론자들의 의도와 부합하는 것이 될 수 없다는 비판들이 제기되었다. 관찰 용어와 이론 용어의 구분에 있어서 가장 심각한 난점은 그러 한 구분이 실제 과학의 표준적 범례들조차 포용해 내지 못한다는 점 이다. 일반적으로 실증주의자들은 관찰 용어/이론 용어의 구분을 관찰 가능한 존재자와 관찰 불가능한 존재자 간의 구분에 근거시킨다. 그들 에 있어서 관찰 용어란, 일반적으로 규정컨대, 관찰 가능한 존재자들 enti ties , 속성들 a ttri bu t es 을 지시하는 용어이다. 이때 〈관찰 가능하다〉 는 말은 대략 다음과 같은 조건을 만족시키는 존재자에 적용된다고
여겨진다一 ―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내에. 그리고 대단히 적은 관찰 횟수에 의하여. 대단히 높은 입증도로. 그리고 복잡한 탐지 장치에 의 존치 않고 육안에 의하여 직접 그 존재 및 부재가 확인되는 성질 q ual ity을 가진 것들 .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관찰 용어가 항상 관찰 가능한 존재자들에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며. 반면 관찰 용어가 지시하는 대상이 탐지 장치 의 도움 없이는 지각될 수 없는 경우도 있다는 점에서 이는 실효 있 는 구분이라고 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 붉은빛은 붉은 입자로 이뤄 져 있다 〉 라는 문장에서는 전형적인 관찰 용어라 할 수 있는 〈붉다〉라 는 색깔 언어가 아무런 의미 변경 없이 관찰 불가능한 촌재자에 적용 되고 있으며. 또한 붉은 색종이 조각이 너무 작아서 탐지 장치의 도 움 없이는 그 색깔을 제대로 지각할 수 없는 경우를 상정해 본다면. 관찰 용어가 지시하는 대상은 반드시 〈 직접적으로〉 지각 가능한 것이 라는 말에도 무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론 용어도 어떤 의미 에서는 직접 지각되는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예컨대 전기 쇼 크를 통하여 〈 전기 〉 를 감지하며, 바람의 세기나 자동차의 급격한 가 속을 통하여 〈 힘 fo rce 〉 을 느끼는 경우 등이 그것이다 (Ne wton-S mith 1981, 24-25). 이러한 예들은 과학 언어란 어떤 방식으로든 한편으로는 관찰과. 그 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론과 연루되어 있다는 복합적 성격을 갖고 있음을 보여 주는데, 이런 이유들로부터 퍼트남은 관찰적 정보의 영역 을 관찰 가능한 존재자와 그에 상응하는 관찰 용어/이론 용어의 구 분에 의하여 구획하려는 시도는 과학적 정당화 및 과학 언어에 대한 잘못된 관점에서 시작된, 무망한 시도라고 지적한다 (Pu tnam 1962). 그 러나 문제는 그보다 더 심각하다. 위의 논의가 보여 주듯 (이론 용어 와 확연히 구획되는) 순수 관찰 용어가 있는가. 그리고 있을 수 있는 가 하는 것도 의문스럽지만. 그런 것이 혹 있다 해도, 그에 의한 이론 의 환원(적 재서술)이 관찰 불가능한 것에 대한 정보까지 환원한다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론의 환원적 재서술에 대한 논의는 통상 크레이그 정리 Craig Theorem 를 염두에 두고 있다 . 일반적으로 크레이그 정리는 과학 이론 에 적용될 때(이때 이론은 공리화 가능한 형식 체계라고 가정한다) , 이 론의 경험적 내용을 손상치 않으면서 이론으로부터 일군의 용어들을 제거하는 일반적 방법론을 제공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Sm art 1963, 28-32). 그리하여 크레이그 정리를 이용할 경우 이론의 모든 경험적 귀결들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이론적 용어들을 제거할 수 있으며. 원래 이론에 대해 경험적으로 동등한 경험론적 대안 이론을 제시 할 수 있 는 듯 보인다 . 이론에 대한 구문론적 관점을 따라서 이론 내의 용어들이 이론 용 어와 관찰 용어로 구분된다고 하자. 이때 관찰 용어들의 집합을 E 라 하고, 관찰 용어들에 의하여 표현되는 이론 T 의 정리들의 집합을 T/E 라 하면. T/ E는 원래 이론으로부터 (크레이그 정리에 의해) 환원된 이 론이다. 이에 대하여 이렇게 물어 보자. 〈 환원된 이론 T/E 는 세계의 특정 부분(관찰 가능한 부분)에 대한 기술이라고 볼 수 있는가? 〉 예컨 대 양자역학(코펜하겐 해석)과 관련하여, 이것이 가끔은 공간적 위치 를 차지하고, 가끔은 그렇지 않기도 하는 어떤 것의 존재를 함축한다 고 말한다면. 우리는 양자역학의 중심적인 이론적 주장을 이론 용어에 의존하지 않고 서술한 것이 된다(즉 , T/E 유형의 이론이다). 그러나 이 재서술된 이론의 내용이 관찰 가능한 영역에 대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여기서 재서술된 대상은 여전히 양자적 현상이 라는. 통상적으로 관찰 가능하지 않은 영역의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이론의 비관찰적 내용을 보다 번거로운 방식으로 서술한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어떤 논리적 장치를 이용하든, 순수 관찰 용어로만 서술된 환원된 이론 T/ E는 결코 이론 T 에 의하여 서술된 세계의 (관찰적) 부 분이 아니라 T 의 모든 것에 대한 재서술이 될 뿐이다 (van Fraassen 1980, 54-55). 용어상의 구분은, 혹 가능하다 해도, 결코 관찰 가능한
내용과 관찰 불가능한 내용에 대한 구분이 되지 못한다는 뜻이며. 따 라서 이것은 경험론자들의 의도에 부합치 않게 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과학 이론에 대한 구문론적 접근은 관찰 가능 영역과 관찰 불가능한 영역의 구분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해진다는 난 관에 봉착한다. 이에 반 프라센은 이론을 (논리학적 의미에서의) 〈 의 미론적 관점 the semantic v i ew 〉 에서 보는 대안을 제시한다. 그것은 이 론을 논리학에서의 모형과 같은 것으로 여기는 것이며, 그럴 경우 이 론 해석에 있어서 언어의 문제를 우회하는 이점을 갖게 된다. 거기서 이론은 일군의 모형들과 동일시되고, 〈 이론 T 가 참이다 〉 라는 말은 〈 이론 T 의 모형 중 하나가 실재와 부합한다 〉 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 에 준하여 경험적 적합성이 다시 정의된다. 〈이론을 제시하는 것은 곧 일군의 구조들, 즉 그 모형들을 규정하는 것이며, 둘째로는 그 모 형들의 특정 부분(경험적 하부 구조들)을 관찰 현상에 대한 직접적 표 상의 후보로 규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이론이 경험적으로 적합 하다는 것은, 그 경험적 하부 구조가 모든 외양들 a pp earance 과 동형적 인, 그런 모형을 가질 때이다. 〉 이러한 이론관에서는 이론의 해석과 관련하여 언어의 문제를 회피 할 수 있댜 정의상 모형이란 이론의 공리들axi oms 을 만족시키는 임 의의 구조로서 , 예컨대 물리적 대상들의 집합이나 수학적 대상들(즉, 수 number) 의 집합 등으로도 이뤄질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모형이 공 리에 부속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하나의 모형은 두 가지 이상의 공리 적 표현을 만족시킬 수 있으며, 따라서 공리 및 공리를 표현하는 특 정 언어로부터 독립적이다 . 11) 11) 반 프라센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 〈 이론에 대한 구문론적 관점은 이론을 …… 선택된 특정 언어로 진술된 일군의 정리들과 동일시한다. …… [반면] 의미론적 관 점에서는 이론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는 언어는 기본적이지도 않고 유일하지도 않 다. 구조들의 집합은, 각각 고유한 한계를 갖는, 극단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기술될 수 있다. 모형이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van Fraassen 1980, 44).
이론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일단 하나의 가능성이다. 그것이 이론 해석에 있어서 얼마나 생산적인 노선인지는 계속 논의되어야 할 문제 이다. 여기서는 일단 이 문제를 우회하기로 한다. 우리의 관심상 중요 한 문제는 그 다음 단계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컨대 반 프라센을 따라 이론의 경험적 부분을 그 이외의 부분과 분리하는 문제없는 논 리적 장치가 마련되었다고 하자. 그러나 그에 해당하는 인식론적 구분 도 가능한가? 경험론자들에게 이는 근본적인 문제인데, 그러한 인식적 구분이 가능치 않을 경우 그 논리적 장치는 무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6 관찰 가능성의 개념 앞서 말했듯이 경험론이란 지식의 근거를 궁극적으로 경험에 두는 인식론적 입장이며, 실재론 논쟁에서 그것은 경험(가능) 영역 이외의 부분에 대하여 지식, 진리를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불가지론적 ag no sti c 입장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입장은 당연히 경험적/초경험적(또는 이론 적) 영역의 구분이 가능하다고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구분이 과연 가능한가, 혹 가능하더라도 실재론 논쟁에 유의미한 존재론적, 인식론적 의의가 있는 그런 것인가에 대하여 따져 볼 필요가 있다 . 6.1 맥스웰과 반 프라센 〈관찰(가능성)〉 개념에 대해 유의미한 정의를 마련하려는 언어적, 구문론적 접근은 일단 실패하였다. 그러나 언어의 문제를 떠나서도 이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데, 그것은 인식적 수준에서 관찰 가능한 대상 과 불가능한 대상을 구분해 보는 것이다. 그러나 구문론적 차원이 아 니라 인식적 차원에서 관찰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구분할 경우 에도 결코 반실재론자들이 유리하지 않다는 강력한 논증이 제시되었
으며, 널리 알려져 있는 맥스웰 G. Maxwell 의 논변이 그것이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실재론자들이 취할 수 있는 관점은 이런 것이다. 일단 관찰 가능/불가능의 엄밀한 구분이 가능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 이며, 혹 구분이 가능하다 해도 그것이 반실재론자들에게 필요한 존재 론적 의의를 갖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실재론자로서 맥스웰이 제시하는 논점이 그런 것이다- 관찰 가능한 것/불가능한 것 간의 어떤 원리적 구분도 인정될 수 없으며, 따라서 자의적이거나 맥락 의 존적인 기준에 대하여 어떠한 존재론적 의의도 부여할 수 없다. 맥스웰은 우리에게 물리적 대상을 탐지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이며, 그것과 관련하여 볼 때 대상들은 일종의 연속체 con tin uum 를 이루고 있다는 점과 이 존재의 연속체를 유의미하게 구획할 어떤 존재론적 기준도 마련될 수 없다는 점의 두 가지를 강조한다. 우리의 탐지 방 식과 관련하여 대상들은 육안으로 보이는 것, 저배율 • 고배율의 (광 학)현미경으로 보이는 것, 그리고 전자현미경으로 보이는 것 등, 일련 의 연속체를 이루고 있다. 반실재론자들은 이 연속체의 어떤 부분에 이들 탐지 방식의 차이에 근거하여 특별한 존재론적 지위를 부여하려 하는데, 그것은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육안으로 보이는 것은 실재하는 것이며, 전자현미경으로 보이는 것은 이론적 허구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일리 없지 않다. 이 두 가지 탐지 방식의 차이는 기술적으로 현격한 것처럼 보이며, 따라서 그것들에 의해 감지되는 대상들의 존재론적 위상도 다르다고 추론할 수도 있을 듯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추론은 이 두 극단 사이 에 놓여 있는 여러 탐지 방식 및 그에 의해 포착되는 대상들의 연속 체를 간과할 경우에만 타당해 보인다는 것이 맥스웰의 논점이다. 이에 대해 경험론자들은 〈원리적 관찰 불가능성〉이란 개념에서 그 들의 입지를 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 블랙홀은 원리적으로 관찰 불가능한 대상처럼 보인다. 그것들은 너무나 강한 중 력을 가지고 있어, 모든 빛을 흡수할 뿐 방출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으며, 따라서 우리에게 관찰이 빛의 교환인 한 원리적으로 관찰 불 가능한 대상으로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예의 세부에 유의해야 한다. 블랙홀이 원리적으로 관찰 불가능하다는 판단은 어디에서 비롯 되었는가? 그것은 인간의 시지각에 대한 생리학적 이해 및 블랙홀의 물리적 속성에 대한 과학적 지식에서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원리적 관찰 불가능성의 기준은 당대 과학이 제공해 주는 지식에 의해서 그 내용을 얻게 된다. 그렇다면 이 기준은 존재론적 의의를 갖기 어렵다 는 것이 맥스웰의 의견이다. 여기서 맥스웰은 특히 〈원리적 관찰 불가능성 observabil ity in princip le 〉이란 개념에 대한 명료하고도 선험적인(즉, 과학의 발전에 영 향받지 않는) 정의가 구해질 수 없음을 지적한다. 왜냐 하면 과학에 의존하는 그 기준은 당연히 과학의 발전에 따라 변경 가능한 것이며. 따라서 일반적인 존재론적 의의를 갖는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 를 들어 지금의 과학 수준에서 우리의 생리학적, 물리학적 조건상 전 자를 관찰 불가능한 것으로 규정했다고 해 보자. 그런데 이후 과학의 발전이 우리의 지각 능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기술과 약품을 개 발하여 우리가 전자를 〈직접〉 관찰할 수 있게 되는 경우가 전혀 불가 능한가? 만약 불가능하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면, 그때 지금의 관찰 가능/불가능의 구분은 변경될 것이며. 그에 부여했던 존재론적 의의도 부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느 시점에서의 관찰/이론 간의 구분은 우연적 사건이며, 우리의 생리 학적 구성 ph y sio l og ica l malce-up, 우리 의 당대 지 식 수준, 우리 가 사용하 는 도구의 함수이며, 따라서 어떤 존재론적 의의도 갖지 못한다 (Maxwell 1962, 232) . 그렇다면 이 문제에 관한 한 반실재론은 불가능한가? 맥스웰의 논 변에 대해 반 프라센은 그 논변이 관찰 가능/불가능의 구분이 존재론
적 의의를 가질 수 없음을 성공적으로 논증하지만, 인식론적 의의를 부여할 가능성마저 봉쇄한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반 프라센에 따르 면 관찰 가능성이란 개념은 가능적 존재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결코 촌재론적 함축을 갖지 못한다. 엄밀한 의미를 구해 보건대, 어떤 대상이 관찰 가능하다는 것은 그 대상이 실재한다는 뜻이 아니다. 어 떤 것이 관찰 〈 가능 〉 하다는 것은 만일 그것이 실재한다면 우리에게 관찰될 수 있다는 뜻일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 날아다니는 말 〉 은 관 찰 가능한 대상이다. 역설적이지만 그것은 관찰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실재 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게 된다 (van Fraassen 1980, 18). 이 렇 듯 관찰 가능성의 여부로부터 그 대상의 존재를 추론할 수는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론자들이 필요로 하는 인식론적 구분마저 불 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이 반 프라센의 생각이다. 인간종의 생물학적-생 리학적 조건에 기반하는 , 관찰 가능성에 대한 유의미한 정의가 가능하 다는 것이다. 그의 논변을 따라가 보자. (1) 반 프라센은 관찰을 〈 [기구에 의해] 도움받지 않는 지각 행위 an unaid e d act of p erce pti on 〉 라 정의한다 (van Fraassen 1980, 15). 이러 한 의미로부터의 관찰 및 관찰 가능성은 경험론자들에게 유의미한 인 식론적 구분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당연히 이러한 정의는 관찰과 탐지(즉, 기구에 의해 도움받은 탐지) 간의 연속성에 의하여 관찰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사이에 연속적 추이가 존재한다고 지 적했던 맥스웰의 논변에 답해야 한다. 육안으로 보는 것과 안경을 쓰 고 보는 것, 저배율의 볼록렌즈를 통해 보는 것과 저배율의 현미경으 로 보는 것 사이를 어떤 이유에서 엄밀하게 구분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하여 반 프라센은 관찰 가능성은 모호한 va gu e 개념이라고 말함으로써 답변한다. 개념에 있어서 모호성이 무조건적인 결함은 아 니며, 모호한 개념 또한 명확한 적용례와 반례가 존재할 경우에는 의 미 있게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명백히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경우와 육안으로는 결코 볼 수 없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있다면, 관찰 가능성 개념은 충분히 유의미한 것이다. 반 프라센은 이를 목성 의 위성들의 경우와 안개상자 cloud chamber 에서 입자의 궤적을 보는 경우를 대비시켜, 관찰 가능성은 명백한 예를 갖는 개념이라고 강조한 다. 위성의 경우는 우리의 현실적 조건상 직접 관찰 가능하지는 않지 만 적절한 거리까지 근접할 경우 명백히 육안으로 관찰 가능한 것이 며 . 반면 안개상자 속의 입자는 아무리 가까이 가도 직접 관찰할 수 없는 것으로서 직접적 관찰이 불가능한 명백한 경우라는 것이다 . 이 로써 반 프라센이 말하려는 바는 우리의 생리학적 본성이 관찰 가능 한 영역에 대한 어떤 한계를 정해 주며 . 그것은 모호함의 여지는 갖 고 있지만 우리가 인식론적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van Fraassen 1980, 16-17) . (2) 그러나 이에 대해 맥스웰류의 반론이 다시 제기될 수 있다. 반 프라센이 안개상자 속의 전자는 절대 직접 관찰할 수 있는 것이 아니 라고 말할 때. 그 판정의 근거는 무엇인가? 반 프라센이 그것을 우리 의 생리학적 한계라고 말한다면, 다시 맥스웰의 반론이 상기되어야 한 다 . 우리의 생리학적 한계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우리의 지각 능력 에 대한 지식(관련 과학 이론)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관찰 가능성의 이론 의존성이라는 난관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관찰 가능성 의 실질적 내용이 과학에 의해 판정된다면. 반 프라센의 기준은 맥스 웰의 비판과 더불어 일종의 순환적 오류에 빠지게 된다. 반 프라센에 있어서 관찰 가능성 개념이란 과학 이론에 대한 경험론적 해석을 위 하여 재정비된다 . 그런데 지금 상황은 그 개념이 어떤 측면에서 본질 적으로 과학에 의존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으며, 그렇다면 이는 순 환적이다. 이에 대해 반 프라센은 . 관찰 가능성 개념이 이론이 아니라 〈사실 〉 의 함수임을 주목해야 한다고 답한다 . 어떤 대상이 관찰 가능한 것인 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분명히 과학 지식의 도움으로 가능하지만.
그것을 결정짓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과학에 의해 발견되는 (물리적, 화학 적 . 생물학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관찰 가능성의 한계에 대한 우 리의 판단이 당대 과학 이론의 도움으로 이뤄진다 해도. 그때의 관찰 가능성은 특정 과학 이론에 의해 규정된다는 의미에서의 〈 이론 의존 적 〉 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반 프라센의 표현에 따르면, 관찰 가능 성이란 궁극적으로 〈 세계 내의 유기체로서의 우리에 관한 사실들의 함수 〉 이다 (van Fraassen 1980, 58). (3) 관찰 가능성의 한계는 우리의 생리학적 사실에 의해 결정된다 고 해 두자.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없지는 않다. 우리의 인지 능력은 생물학적으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인데, 그 사실은 반 프라센의 주장에 어떤 영향울 미칠까? 우리 역시 진화한다는 생물학의 통찰을 받아들 인다면, 관찰 가능성의 범위는 진화라는 사실에 의해 가변적인 것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관찰 가능성에 대한 반 프라센의 기준에 부여되 는 인식론적 의의는 손상되지 않겠는가? 여기서 반 프라센의 〈 인식 공동체 ep iste m ic comm unity 〉 란 개념을 주 목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인지 능력이 진화론적 관점에서 가변적이라 는 사실은, 관찰 가능성 개념이 진화사의 특정 시점에 존재하는 인식 공동체의 인지 능력에 상대적으로 존재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룰 표현하는 개념이 인식 공동체이다. 안간 이라는 자연종은 언제나 특정한 인식 공동체에 속해 있으며, 그에 준 거하여 관찰 가능성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인식 공동체의 성격이 변화하면 관찰 가능성의 영역이 변하는 것은 당연하며, 그것은 단지 〈 관찰 가능하다 〉 는 것은 언제나 〈우리에게 관찰 가능하다〉는 자 명한 진리를 말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 반 프라센의 생각이다 (van Fraassen 1980, 18-19). 이는 결국 관찰 가능성의 한계를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그것이 속해 있는 인식 공동체의 일반적 지각 능력에 의존하여 규정하는 것 이다. 관찰 가능성이란 개념에 어떤 원리적 한계가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생물학적 조건이 부과하는 한계 이상일 수 없으며, 그 한계는 우리의 생물학적 조건과 인식 공동체가 안정 적 인 만큼 안정적 일 것이다. 인간종의 지각 능력에 존재하는 생물학적 한계가, 경험론 자가 의거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타당한 경험 또는 관찰 개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개념은 존재론적 의의를 부여할 그런 성격의 것은 못 되지만, 인식론적 의의, 죽 우리 지식의 최종 근거로서의 지위는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관찰 가능성이 존재와는 무관하다 할지라 도, 과학에 대한 적절한 인식론적 태도와는 여전히 많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van Fraassen 1980, 19). 6.2 쟁점 : 경험론과 자연주의 관찰 가능성에 대한. 가변적이기는 하지만 안정적이고도 사실적인 근거가 있는 구분 기준이 있으며, 그것은 인식론적 의미를 부여받을 만하다는 반 프라센의 의견은 사실 대단히 상식적인 입장이다. 정상적 인 존재로서의 우리는 관찰 능력을 갖고 있으며. 그 능력은 자연적인 한계를 갖는다. 그 한계에 입각하여 관찰 불가능한 것을 말할 수 있 다. 그리고 모든 지식은 궁극적으로 그 관찰 능력에 기반하여 경험적 의의를 부여받는다. 여기까지의 이야기에 대해 이의를 달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관찰 가능성 개념이 과학 이론에 대한 반실재론적, 경 험론적 태도의 합당한 근거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듯하다. (1) 반 프라센은 관찰 가능하다는 개념을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인지 능력과 대상에 대해 취할 수 있는 행위 형태에 상대화시킨다. 이 기준 아래 목성의 위성은 관찰 가능한 것인데, 그것은 우리의 현 재 인지 능력 및 그것에 다가갈 수 있는 행위 능력의 가능성 때문이 다. 안개상자 속의 전자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원리적으로 관찰 불가
능한 것으로 평가된다 . 이에 대하여 여러 의문들이 제기될 수 있다. 흔히 제기되는 반론은 이 예가 애매하다는 것이다 . 반 프라센의 기준 에서 원시 시대에 존재했던, 그러나 지금은 절멸한 생물, 예를 들어 공룡은 관찰 가능한 것인가, 아닌가? 만일 관찰 가능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시간 여행의 가능성을 허용하는 것이며. 따라서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물리 법칙을 위반하는 가능성을 함께 승인하는 것으로 보 아야 한다. 물리적 불가능성의 한계를 인정치 않는다면, 도대체 육안 으로 볼 수 없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안개상자 속의 전자가 관찰 불 가능하다는 말은 무의미해지지 않는가 (K it cher 1993, 152-153)?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반 프라센에게 본질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 듯하다 . 반 프라센에게 공룡은 〈 현재의 우리에게 〉 관찰 가능한 존재 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 프라센이 〈날아다니는 말 〉 을 관찰 가능하다고 말했던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 날아다니는 말〉 은 현재 존재하지 않으며 , 혹 지구의 어떤 시기에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다 . 말의 골격, 근육 구조, 식습관 등을 감안할 때, 날 아다니는 것이 생물학적, 진화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도 있 기 때문이다. 이러한 존재를 관찰 가능하다고 말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그것은 혹 존재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관찰할 수 있는 적절한 위치에 있다면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우리가 그것을 관찰할 수 있는 적절한 위치에 현실적으로 갈 수 있 느냐, 아니냐는 관찰 가능성에 관한 한 결정적인 기준이 아니다. 만 약 그러한 이동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그것을 영원히 관찰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사실은 다만 관찰 가능한 존재가 관찰될 수 없다는 또 다른 이유를 말하는 것뿐이다. 굳이 구분하자면 반 프 라센이 말하는 가능성/불가능성은 생물학적 의미의 것이라 할 수 있다. (2) 그러나 이 문제에 있어서 반 프라센이 전혀 어려움이 없는 것 은 아니다. 그것은 반 프라센의 관찰 가능성 개념에는 인간종의 감각
양상 sense moda lity이 처하게 되는 여러 조건들에 대해 편파적인(또는 자의적인) 비중이 할당되어 있다는 점을 주목할 때 드러난다. 우리 인 간종에게 어떤 대상이 관찰되지 않거나 불가능한 경우, 그것은 대상과 의 (시공간적) 거리, 대상의 (상대적) 크기. 또는 대상의 물성(즉, 관 측을 방해하는 대상의 특별한 성질) 등의 여러 이유 때문이다. 이에 대 해 반 프라센은 거리상의 간격이나 물성에 의한 문제점보다 대상의 크기에 의하여 야기되는 관찰의 어려움을 특별한 인식론적 의의가 있 는 듯이 취급한다. 목성의 위성은 거리상 멀리 떨어져 있지만 관찰 가능한 대상이며, 반면 안개상자 속의 입자는 그 크기에 의하여 원천 적으로 관찰 불가능한 대상이라고 분류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대상의 크기라는 것이 다른 성질들보다 특별한 인식론적 의의를 갖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을 수 있다 . 일반화하여 반 프라센에서 〈관찰 가능하나 현실적으로 관찰되지 않는 것들 〉 과 〈원천적으로 관찰 불가능한 것들〉을 구분하는 기준의 근거는 무엇이며. 그것은 인식론적 의의를 부여받을 종류의 기준인가 (Churchland 1985, 39-40)? 대상과의 거리보다는 대상의 상대적 크기가 보다 보편적인 인식론 의 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있을까? 그런 점이 전혀 없지는 않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어떤 대상과 인간 관찰자와의 거리는 사람마 다 다룰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거리 간격이 초래하는 관찰 불가능성 은 모든 사람에게 동질적인 내용의 제약 조건이 아닌 반면, 대상의 상대적 크기가 초래하는 관찰 불가능성은 보다 보편적인 조건으로 보 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차이가 임의적인 것 이상의 인식론적 의의 를 갖는 것인가? 시공간적 간격에서 생겨나는 관찰의 어려움이 크기 의 차이에서 야기되는 관찰의 어려움보다 언제나 덜 심각하다고 단정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만일 우리가 지금은 알지 못하는 어떤 물리적 이유로 은하계 밖으로는 나갈 수 없게 되고, 그에 따라 그 밖의 어떤 혹성을 관찰할 수 없게 된다면, 이 혹성은 〈관찰 가능하나 현실적으 로 관찰되지 않는 대상〉인가, 〈원리적으로 관찰 불가능한 대상〉인가?
이 문제는 앞서 논의했던 물리적 불가능성의 문제에 대한 반복이 아니다. 물리적으로 접근 불가능한 것은 관찰 불가능하다는 명제는 이 미 설득력 없다고 지적되었다. 여기서의 논점은 그것이 아니다. 단적 으로 말해서 크기의 차이가 초래하는 관찰의 어려움이 거리상의 간격 이 초래하는 어려움보다 〈 원리적으로 〉 심각한 것. 더 큰 의미를 가지 는 것이라고 일반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실의 우리들이 시공간적 간격을 관찰 가능성에 대한 원리적 한계로 여기지 않게 되는 것은. 처칠랜드 P . Churchland 가 지적하듯, 우리들이 관찰과 관련하여 대상의 크기나 물성보다는 시공간적 거리가 초래하는 문제에 대하여 보다 많 은 힘과 통제력을 갖고 있다는 우연적 조건 때문이다 (Churchland 1985, 39) . 이 우연적 조건을 〈 관찰 불가능한 것 〉 과 〈 관찰 가능하나 관찰되지 않는 것 〉 을 원리적으로 구분하는 인식론적 기준으로 삼는다 는 것은 자의적이라고 여겨진다 . 이에 대해 반 프라센은 바로 그 우연성이 우리 인식 공동체의 실질 적 내용을 결정짓고 있다고 답할 수 있을까? 우리 인식 공동체의 구 성원들은 바로 그러한 조건 아래서의 경험, 관찰 가능성을 인식의 최 종 근거로 삼는다고 설명할 수 있을까? 반 프라센이 염두에 두는 경 험론자는 우리의 우연적 조건을 회피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답변의 가능성이 배제될 수 없다. (3) 이 지점에서 인식 공동체의 개념에 대해 보다 세밀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 이와 관련하여 처칠랜드가 제시하는 반론을 주목해 보 자. 처칠랜드는 인간이 진화의 결과로 또는 의료 공학 기술의 발전에 의해 전자현미경(또는 그 유사 구조)을 지각 메커니즘의 한 부분으로 갖게 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고 한다. 후자의 경우 외부 세계에 대 한 지각은 전자현미경의 이미지로 포착되며, 그것이 다시 망막을 통하 여 시신경에 전달되는 메커니즘을 갖게 된다. 이때 이 〈새로운〉 인간 과 전자현미경을 탐지 장치로 사용하는 현재의 인간은 그 지각 메커 니즘의 인과적 구조에 있어서 전적으로 동일하다. 대상 세계와의 인과
적 연관 방식에 있어서 동일하며. 경험 내용도 완전히 동일한 이 두 종류의 인간이 〈 미시 세계 〉 에 대하여 서로 다른 인식론적 태도를 취 해야 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Churchland 1985. 42- 44 ). 반 프라 센의 기준에 의하면, 현재 인간의 경우 정당한 지식의 영역은 탐지 장치를 사용치 않는 영역에 한정되며, 〈 새로운 〉 인간의 경우에는 그 영역까지를 포괄한다고 말해야 할 텐데, 이러한 구별이 과연 일리 있 는 7 l-? 여기서 이 두 종류의 인간이 서로 다른 인식 공동체에 속해 있다고 답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왜냐 하면 처칠랜드의 반론의 요점은 육 안이라는 애매하고도 가변적인 조건의 준거점에 기반하는 〈 인식 공동 체〉라는 개념이 어떤 인식론적 의의를 가질 수 있는가를 반문하는 것 으로 해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우리가 지금 논의하는 문제는 육안에 의해 관찰 가능한 영역 너머에 있는 대상의 존재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 합리적인가를 따지는 것이다 . 처칠랜드의 예는 반 프라센 을 따를 때, 우리는 관찰자와 동등한 인과적 관계에 있는 대상 세계 를 어떤 경우에는 관찰 가능한 것으로 다른 경우에는 관찰 불가능한 것으로 달리 판정하며, 그에 대해 심대한 인식론적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는 역설에 빠지게 됨을 보여 준다. (4) 이러한 논의는 결국 반 프라센이 중시하는 〈 육안에 의한 〉 관찰 이라는 개념이 갖는 문제점을 시사한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육안에 의 한 관찰에 특별한 인식론적 의의를 부여하는 이유를 알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자. 육안에 의한 관찰에 대한 신뢰는 과연 무엇에 대한 신뢰인가? 육안으로 관찰하기만 하면 그것 은 믿을 만한 증거가 되는가?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색 맹인 사람이 제출한 색깔에 대한 관찰 보고, 거의 시력을 상실한 사 람이 제출한 물체의 형태에 대한 관찰 보고는 신뢰받을 수 없다. 육 안에 의한 관찰이 신뢰받는 경우는 정상적인 상태의 관찰일 것이다. 이때 정상적인 상태라는 것은 통상 우리 시각 기관의 작동이 정상적
이라는 것을 의미할 것이며. 그렇다면 육안에 의한 관찰에 대한 신뢰 는 결국 시각 기관의 작동 원리에 대한 신뢰다. 이로부터 시각 기관 의 작동 원리에 기반하여 동일한 또는 그 이상의 신뢰를 부여할 수 있는 탐지 기구가 있다면. 그것을 인식론적으로 신빙성 있는 것으로 평 가하는 것은 전혀 부당하지 않다 .12)
12) 이런 관점에 설 때, 관찰 가능/불가능의 구분은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다. 〈 X 가 우리 앞에 놓일 경우 적어도 인간 감관의 작동 원리만큼 신뢰할 만한 원리 들에 의거한 관찰 행위를 통해 우리가 X 를 관찰하는 그런 상황이 존재한다면, X 는 관찰 가능하다. 〉 (조인래 1994, 139-140).
어떤 이들은 어떤 탐지 장치를 사용하든 결국은 육안 관찰의 과정 을 거치게 마련이고 따라서 오류의 확률은 명백히 증가하리라고 주장 하기도 한다. 지각 메커니즘은 복잡해지면 복잡해질수록 그 신빙성이 저하되게 마련이며, 탐지 장치는 지각 메커니즘을 보다 복잡하게 만드 는 까닭에 육안 관찰에 비하여 인식론적으로 의심스럽다고 추론하는 것이다. 반 프라센의 말대로 인식론자에게 위험 부담에 대한 〈 50 보 100 보 〉 라는 태도가 용납되지 않는다면, 이것은 육안 관찰에 특별한 신뢰 를 부여할 인식론적 근거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지각 메 커니즘에 대한 지나치게 단순화된 관점이다. 탐지 장치의 사용이 지각의 신빙성을 저하시킨다는 주장은 전혀 사 실이 아니다. 예컨대 망원경이나 현미경에 의거한 관찰이 과연 우리의 직접적 관찰보다 신빙성이 낮은가? 갈릴레오 G alil eo 가 대단히 먼 거리 의 대상에 대해서는 우리 망막의 구조상 망원경이 보다 정확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고 지적했던 것은 바로 탐지 장치가 지각의 신빙성을 높여 주는 경우의 예이다 (Brown 1987, 180-is l) . 일반적으 로 말해서 탐지 장치의 사용은 관찰의 신빙성을 저하시킬 수 있지만. 우리의 육안 관찰을 수정, 보완함으로써 오히려 신빙성을 중대시키는 효과도 산출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에 있어서 탐지 장치들은 그러한 효과에 대하여 신뢰받을 때에만 관찰의 적절한 연장이나 보완
으로 여겨지게 된다. 우리의 탐지 장치 사용은 탐지 장치의 속성을 이해하고, 그에 따라 신빙성 있는 정보를 얻는 기술을 습득함으로써 이뤄지며, 이때 각각의 탐지 장치들은 그것들이 동일한 현상을 동일하 게 포착해 내는 둥의 교호적 검사 cross-chec king를 거쳐서 그 신빙성 을 입증받는 과정을 거친다. 이런 방식으로 관찰이 보완, 확장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때, 탐지 장치의 사용과 관찰 지각을 인식 론적 관점에서 구분하고, 탐지 장치의 인식적 신빙성에 회의하는 것 은 납득하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반 프라센이 〈관찰 가능성〉 개념에 부여하는 인 식론적 의의는 지나치다고 평가된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우연적인 지 각 수단(육안 관찰)에 과도한 인식론적 비중을 부여한다는 점, 그리고 탐지와 육안 관찰에 대한 경직된 이분법 등에서 설득적이지 못하다. 각각의 탐지 장치가 도입되는 연유 및 그 신빙성은 각각 다를 수 있 지만, 그것들이 일련의 신빙성 검사를 거치고 나면 육안 관찰의 정당 한 연장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태도인 듯하다. 그렇다면 관찰 및 지각에 대한 보다 일리 있는 해석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실재론을 지지하는가? 이런 문제들이 남아 있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한 가지 노선은 자연주의 na tur a li sm 의 그것이다. 이 글의 관점에서 〈자연주의〉라는 것은 다음의 두 가지 명 제를 수락하는 입장이다. (1) 인간종은 다른 생물종들과 마찬가지로 진화의 결과로 나타난 자연종 na tural kin d 의 일종이며, 인간 지식 또한 자연 현상의 일종이다. (2) 지식에 대한 연구는 어떤 특별한 방법론 이 아니라 자연 현상 일반을 이해하는 보편적인 방법론의 정신에서 접 근되 어 야 한다( Quine 1969, Churchland 1979, Hooker 1987 등) . 이 명제들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지는 그 자체가 커다란 철학적 주 제이다. 여기서는 그러한 정신에 입각할 때, 관찰 및 지각이 어떻게 이해되는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실재론적일 수 있는가에 대해서만
확인해 보기로 한다 . 자연주의의 정신 아래 관찰 또는 감각 지각이란 자연 법칙에 지배 되는 인과적 메커니즘이며, 그것은 다른 인과적 메커니즘이 그러하듯 오류와 결함의 가능성을 갖는 것이다. 여기서 인과적 메커니즘의 일종 안 인공적 탐지 장치 dete c ti ve instrum en t는, 그 신빙성만 증명된다면, 아무런 인식론적 부담 없이 감각 지각의 연장으로 여겨질 수 있다. 우리의 감각 지각은 신뢰할 수 있는 수단을 통해 확장될 수 있으며, 그 확장 가능성에 대한 어떠한 선험적 예단도 불가능하며, 따라서 관 찰 불가능한 영역에 대한 어떤 선험적 규정도 불가능하다. 여기서 관 찰 가능한 영역과 불가능한 영역의 〈 철학적 〉 구분에 의존하는 반실재 론적 입장은 유지되기 어렵다. 반사적으로 과학은 관찰 가능한 영역과 관찰 불가능한 영역의 구분에 구애받지 않고 객관 세계에 대한 이론 적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실재론적 관점이 보다 천화적으로 여겨 진댜 자연주의적 관점에 설 때 , 그리하여 우리의 현상태가 진화론적 우연이며 이후 변화 가능하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우리 의 감각 지각에 의해 포착되는 대상들이 세계 내에 존재하는 대상들 전체와 동연적이라고 생각하거나 우리의 직접적 감각 지각에 의하여 포착되는 대상에 대하여 특별한 인식론적 의의를 부여하려는 태도는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13)
13) 이 를 레숴 N. Rescher 는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 〈 [실재론]은 우리에게 경험을 경 험 하부의 대상들. 과정들의 질서로부터 인과적으로 창출되는 것으로 보는 자연주 의의 관점을 제공한다. …… 인간을 물리적 체계의 일종으로서. 그리하여 여타의 물 리적 실재들과 상호 작용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의식적 관찰이라는 현상을 인과적 으로 야기케 하는 그런 존재로 보는 …… 관접 〉 (Rescher 1987, 51).
그러나 이렇게 옹호되는 실재론은 상당히 제한적인 내용의 것이 된 다. 자연주의의 지각 이론에 따르면, 우리의 감각 지각이나 탐지가 대 상 세계를 그대로 모사( 模寫 )해 낸다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연 주의자들에게 우리의 감각 지각에 드러나는 세계의 모습은 대상의 속
성과 감각 구조의 속성. 양자의 함 수이다 . 그러나 이 사실이 대상에 대한 〈 객관적 〉 지식을 부정하거나, 지식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감각 지각이나 탐지가 갖는 인식적 의의를 손상시키는 것은 아니다. 감각 지각이란 대상에 대한 정보inf orma ti on 를 제공하는 것이며, 우리는 정 보로부터 인과 과정에 대한 지식에 근거하여 대상에 대하여 추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지각과 그에 기반하는 과학이 세계를 정확 하게 표상하느냐는 이 추론의 신빙성에 달려 있다. 여기서 다시 과학 방법론의 문제가 대두한다. 어쨌든 자연주의의 관찰 및 지각 개념을 따를 때 실재론은 어떤 의미로든 제한적인 성격의 것이 된다. 7 이론의 경험적 미결정성 관찰 가능성의 개념과 관련하여 실재론이 그다지 훼손받지 않는다 해도, 문제는 종료되지 않는다. 더욱 영향력 있는 반론이 〈 이론의 경 험적 미결정성〉, 보다 정확하게는 〈 이론의, 경험적 증거에 의한 미결 정 성 the underdete r m ina tio n of the ory by emp irica l ev ide nce> 논제 라는 이름 아래 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것은 관련 증거 들이 하나의 이론을 선별적으로 정당화해 주지 못한다는 취지의 입론 인데, 이는 현대 과학철학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반실재론 논변이다 . 어떤 이론도 증거에 의해 선별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 사실 이라면, 어떤 이론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없으며, 이로부터 모든 이 론은 인식론적 정당성에서 동등하다고 주장하는 상대주의 내지는 인 식론적 회의론의 입론들이 도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미결정 성 논제가 어떤 근거를 갖고 있으며, 과연 타당한지, 그리고 미결정성 논제 앞에서 실재론은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 려 한다. 넓은 의미로 이해할 때, 미결정성 논제는 다음의 여러 형태 를 망라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Ul ) 귀납으로부터의 미결정성 : 유한한 관찰 증거들로부터 보편 명 제 unive rsal pr o p os iti on 를 정당화하려 할 경우에 발생하는 미결정성이 다. 이는 연역 논리에 의해 발생하는 미결정성으로서 흄 D. Hume 이 래 주목되어 온 문제이다. (U2) 인식론적 전체론 ho li sm 으로부터의 미결정성 : 전체론이란 흔히 뒤엠_콰인 Duhem-Q uine 논제라고 불리는 것으로서. 모든 과학적 명제 들은 〈 이론으로서 만 as a the ory > 관찰 귀 결을 만난다는 주장이 다. 죽, 과학적 명제들은, 고립적으로가 아니라 . 관련된 이론들의 집단을 보조 가설 aux iliary h yp o th es i s 로 사용함으로써 만 관찰 증거 를 만난다. 그럴 경우 우리는 반증 사례에 직면하여 이론 집합의 어떤 부분을 거부 내 지는 수정할지를 선택할 수 있으며. 따라서 어떤 부정적 관찰 증거에 대해서도 해당 과학 명제의 진리값을 보전할 수 있다. 이는 이론 검 사의 인식론적 상황, 이른바 〈전체론적〉 구조로부터 나타나는 미결정 성이라고 할 수 있다. (U3) 관찰 불가능한 대상에 관련된 미결정성 : 우리의 과학 이론이 관찰 불가능한 대상에 대해 말해 주는 바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발생 하는 미결정성이다. 이는 최근의 실재론 논쟁에 의하여 특별히 주목받 고 있는데. 우리의 증거가 궁극적으로 관찰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경험론의) 근본 가정으로부터 불가피하게 초래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동일한 관찰 증거의 집합을 만족시키면서 서로 다른 존재 론적 주장을 함의하는 이론들이 병립할 경우 , 이 문제는 의미심장해진 다 . 존재론적 함의에 있어서 상충하는 이론들이 병립할 수 있다면. 이 론의 실재론적 해석을 불신할 유력한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7.1 미결정성과 동등성 미결정성의 문제는 과학 이론이 본성상 증거를 초월하려는 것임으 로 해서 생겨난다. 그렇게 볼 때, 귀납 추론은 미결정성의 원초적인
형태를 드러내는데. 경험론자들은 관찰 불가능한 대상에 관련해서도 (귀납 추론의 미결정성과 구분되는) 여분의 미결정성이 있다고 주장함 으로써, 이 문제를 실재론 논쟁에 깊숙이 끌어들인다. 그러나 미결정 성 논제의 논거는 무엇인가? 현대 철학에 있어서 미결정성 논제의 의 의를 결정적인 것으로 부각시켰던 콰인 W. Quin e 은 동등한 이론의 존 재가 그 근거라고 말한다• 물리 이론은 모든 가능한 관찰들에 의해서도 결정되지 않는다. …… 물리 이론은 이러한 모든 [관찰적] 진리에 의해서도 결정되지 못한다. 이론은. 모든 가능한 관찰들이 확정되어도, 여전히 변할 수 있다. 물리 이론들은, 가장 넓은 의미에서도` 서로 다툴 수 있고 그러면서도 모든 가능한 자료 와 일치할 수 있다. 한마디로. 그들은 논리적으로는 서로 상충하면서 inco mp a tib l e 경험적으로는 동등할 em piri call y equiva lent 수 있다(Q u in e 1975, 179). 콰인 이래 모든 관찰 중거에 대하여 〈경험적으로 동등하면서도 서 로 상충하는〉 이론들이 존재한다는 이른바 경험적 동등성 eq uiva lence 논제(이하 〈동등성 논제〉로 약칭함)가 미결정성 논제의 유력한 근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모든 경험적 중거들을 공통적으로 수용하면서 존 재론적 주장에서 상충하는 (동등한) 가설들이 존재한다면, 그 중거들 을 어떤 이론에 대한 결정적 증거로 볼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할 듯하 다. 그렇다면 동등성 논제는 과연 타당한가 ?14) 14) 그러나 동등성/미결정성 논제만으로는 실재론을 위협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선있다택.을 실결재정론짓자는들 은기 타( 경〈험초적경 험증적거 에su pe 의re 한m)p iri동ca 등l>성 덕/목미결들정 성예을컨 대인 단정순하성면 서sim도 p li이cit 론y , 정합성 coherence 등의 이론적 덕목들이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덕목들 이 실재론적 의미를 갖는다면. 실재론이 여전히 정당하게 주장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반실재론의 완전한 논증은 그러한 여분의 결정 기준이 인식론적 의미가 없 다는 것, 죽 참과 관련 없는 것임을 주장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단순치
않은 듯하다. 혹 이러한 덕목들이 인식론적 의의를 갖는다 하더라도 다시 미결정성 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성. 정합성 등의 이론적 덕목들이 요구하 는 기준을 만족시키면서 동시에 경험적으로 동등하면서 서로 상충하는 이론들이 있을 수 없다고 미리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가 논의하는 동등성/미결정성이 대단히 극단적인 것임을 확인해 두자 . 언제나 특정 시점에서 한정된 증거에 기반하여 이론을 평가할 수밖에 없다는 우리의 인식적 조건은 동등성/미결정성의 일차 적 원천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쉽사리. 이름컨대. 〈 국지적 local 동등성 〉 을 만나게 된다. 즉, 당대의 경험적 증거상 우열이 가려지지 않는 이 론들이 존재하게 되는 경우이다. 그러나 이는 실재론에의 심각한 위협 이 되지 않는다. 국지적 동등성은 상황이 변모함에 따라 해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16 세기 코페르니쿠스 Co p e rni cus/ 프톨레마이오 스 P t olemaeos 간의 천문학 논쟁, 19 세기 입자광학/파동과학 간의 갈등. 19 세기 원자론자/반원자론자 간의 논쟁 등은 각각의 시대에 있어서 경 험적으로 동등한 (그러나 서로 상충하는) 이론들간의 대립이었다. 그러 나 그러한 논쟁은 대부분 어느 시점 이후 판가름이 난 것이며(물론 그 러한 판정이 확정적인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그것 은 한 시점의 국지적 동등성이 이후 시점에 파괴될 수 있음을 보여 준 다. 그렇다면 국지적 동등성은 실재론에의 커다란 위협이 아니라고 생 각될 수 있다. 왜냐 하면 거기서는 계속된 증거의 축적이 결국 옳은 이 론. 참이론을 선별해 주리라고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주제는 가능한 모든 증거에 대하여 성립하는 〈전면적 〉 동등성이라 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우연적인 인식적 조건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는 국지적 동등성에 비해 보다 근본적인 성격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런데 이렇게 강한 의미의 동등성이 성립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1) 어떠한 관찰 문장들의 집합에 대해서도 경험적으로 동등한 서 로 상충하는 이론들이 있다고 장담하는 근거는, 일반적으로 표현하면.
어떤 진술들의 집합도 서로 다른 (논리적으로 상충하는) 진술들로부터 귀결될 수 있다는 논리적 사실에 있다. 이에 흔히 원용되는 것이 뢰 벤하임 -스콜렘 정 리 Loewenheim - Skolem Theorem 이 다. 콰인으로부터 최근 퍼트남에 이르기까지 동등성 논제의 핵심적인 논거로 여겨지는 뢰벤하임-스콜렘 정리란. 일차 논리 first-o rder lo gic에 의해 표현 가능 한 모든 형식 언어는 그것이 하나의 모델을 가질 때 , 열거 가능한 denumerable 모델을 갖는다는 논리적 증명이다. 흔히 일차 논리의 형 식 언어는 비표준적 non-s tan dard( 또는 비의도적 wtlnten ded) 모델을 가 질 수 있다고 요약되는 이 정리의 의미를 콰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 요점은 임의의 일관된 형식 체계에 대한 무수한 해석 가능성을 생각 해 볼 때 선명하게 드러난다• 예컨대 양화 체계의 변수들이 어떤 확정적 인 변역 ran g e 을 가지고 있고 해석된 술어들의 사전을 포함하고 있는 우 리의 정비된 표준 기호 체계를 생각해 보자. 술어들에 대한 무수한 재해 석 및 변수들의 변역 조정에도 불구하고. 이 언어의 참인 문장들은 여전 히 참이다• 사실 술어들을 적절하게 재해석하기만 하면. 동일한 크기의 어 떤 변역이라도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다. 만약 주어진 변역이 무한 변역 이라면. 어떠한 무한 변역에 의해서도 그 조건은 만족될 수 있다. 이것이 뢰벤하임 - 스콜렘 정리다(Quin e 1977, 165). 죽, 뢰벤하임-스콜렘 정리는 주어진 임의의 문장 집합의 진리치를 보존하면서도 그 지시 관계(즉 모형)를 변경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장해 주며, 따라서 우리는 그것을 동일한 관찰 문장들의 집합에 대 해 서로 다른 이론적 해석을 부여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논리적 증명으로 여길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리의 철학적 의의에 대해 열광 하는 퍼트남은, 〈모든 것의 스콜렘화th e Skolem izat i on of absolute l y eve rything〉라는 구호 아래, 뢰벤하임-스콜렘 정리는 우리의 언어적 표
상 및 이론적 표상에 대한 해석뿐만 아니라, 심리 철학에서의 감각질 q ua li a 에 대한 해석, 인지심리학에서의 정신 언어 men ta lese 의 술어 해 석 등 지시 refe rence 의 문제와 관련 있는 모든 영역에 적용될 수 있다 고 주장한다 (Pu tn am 1980). 물론 뢰벤하임-스콜렘 정리는 오늘날 그 타당성이 인정되는 논리적 명제이나, 그것이 퍼트남이 주장하는 것처럼 여러 영역에 아무런 제한 없이 적용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단정키 어렵다 .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 러한 확장적 적용을 위해서는 뢰벤하임-스콜렘 정리의 성격상 우리의 과학 전체 및 신념 전체가 일차 술어산 1st- o rder calculus 의 범위 내에 서 형식화 가능해야 하는데, 그것이 가능하다는 보증은 제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Pearce Ranta l a 1982). 오히려 과학 언어의 지시 관계는 결코 뢰벤하임-스콜렘 정리류의 형식적 고려에 의하여 이해될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 많은 이들의 생각인 듯하다. 해킹 I. Hac king이 지 적하듯, 물리 이론의 〈 지시〉는 그 이론 자체, 그리고 그와 연관된 여 러 보조적인 지시 확정 수단들――예컨대 비언어적 도표, 사진 및 실 험 등-에 의하여 규정되며, 따라서 임의의 형식적 해석에 의하여 결정되는 문제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Hac king 1983, 105-107). 요 컨대 물리 이론은 그 자체 이론의 형식 구조에 대한 의미론적 해석을 포함하는 것으로서, 그런 의미에서 임의의 해석이 부여될 수 있는 (논 리학적 의미에서의) 형식 언어와 무조건적으로 동일시할 수 없으며, 따라서 동등성 논제의 논거로서의 뢰벤하임-스콜렘 정리는 결코 결정 적인 것이 아니라고 해야 한다. (2) 동등성 논제는 의미론적 차원에서도 논란의 여지를 가지고 있 댜 우리가 확인했듯이 그 핵심 논거라고 할 수 있는 뢰벤하임-스콜 렘 정리가 적용에 있어서 정당하다고 확신할 수 없지만, 그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경험적으로 동등한 이론들이 (동일한 이론의 〈다른 표현〉 이 아니라) 진정으로 〈다른 이론〉인지를 판정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 이 아니기 때문이다. 임의의 이론을 택하여 그 이론의 순수 이론 용
—어(즉예 컨어 대떤 〈관 전 찰자 〉 문와장 〈에 분서자도 〉 -본 질를적 으바로꾸 어나 타새나로지운 않이는론 을용 어만) 드두는 개경 우를 생각해 보자. 그 경우 우리는 이론의 연역적 구조에 의하여 동 일한 관찰 귀결을 보존한다는 점에서 경험적으로 동등하나, 그 이론적 주장에 있어서는 확연히 다른, 다시 말해서 전자와 분자에 대하여 전 혀 다른 주장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 논리적으로 상충하는 두 이론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것들을 과연 다른 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가? 우 리에게는 이것들이 다른 이론이라기보다는 용어만이 뒤바뀐(또는 재해 석된) 한 이론의 두 가지 표현 방식으로 보인다. 즉 , 〈 전자 〉 , 〈 분자 〉 라고 불렀던 것을 〈 분자 〉, 〈전자 〉 라고 달리 부른다는 사실 이외에 실 질적 차이가 없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이는 이론의 외견상의 경험적 동등성과 논리적 상충이 곧 진정한 의미의 동등성을 보장하지 않으며 , 술어의 재해석 reconstr ua l 가능성에 대한 고려가 추가되어야 함을 말해 준다 (Quine 1975, 319-322). 그렇다면 동등성 논제의 정확한 정식은 이런 것이 된다. 경험적으로 동등하면서, 논리적으로 상충하며, 동시에 술어의 재해석에 의해 논리적으로 동등한 이론으로 변형 가능하지 않 은 두 이론(형식 ).15)
15) 이때 술어의 재해석이란 일군의 술어들을 일군의 열린 문장들 op en sen t ences 에 대응시키는 것을 말한다 . 예컨대 〈전자〉와 〈분자〉는 〈 x 는 분자다 〉 와 〈 x 는 전자다 〉 라는 열린 문장에 대응될 수 있다(Q u in e 1975, 320).
문제는 경험적으로 동등하면서 논리적으로 상충하는 이론들, 그리하 여 그것들의 존재가 동등성 논제의 신빙성을 보증해 주는 이론들이 술어의 재해석에 의하여 동일한 이론의 다른 표현, 죽 같은 의미의 syn o ny mo us 이론들이 아니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 는 것이다. 콰인에 따르면 모든 동등한 이론들은 술어의 교묘한 재해 석을 통하여 사실상 동일한 이론의 다른 표현들에 불과한 것으로 드 러날 가능성을 갖고 있으며 ,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동등성 논제에 대 한 신뢰는 대단히 유보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Quin e 1975, 322-327).
이러한 주장의 타당성은 이론의 개별화 기준 c rit e ri a of in d ivi dua ti on 의 문제. 그 연장선에서 동의성 syn o ny m y 및 번역 가능성 tra nslata b il ity 등 의 복잡한 의미론적 문제들과 연루되어 있다는 점에서 여기서 더 이 상 논의키는 어렵다. 그러나 이는 동등성 논제가 그 정당 근거에서 의외로 논란의 여지가 있음을 여실히 보여 주는 듯하다 .1 6)
16) 이러한 맥락에서 항상 논란거리가 되었던 과학철학 해석의 문제. 죽 이론의 미 결정성과 번역의 불확정성 ind ert er m ina cy 간의 관계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난 다 . 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이론의 미결정성이 번역 불확정성의 주된 근거라는 것인 데. 우리의 논의는 오히려 이론의 미결정성이 번역 가능성의 문제에 의하여 영향받 는다는 것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
(3) 이러한 지적들이 정당하다면. 동등성/미결정성 논제는 결코 결 정적이지 않다. 그러나 유념할 것은 이 논의들은 동등성 논제를 의심 할 이유를 시사해 주기는 하나. 그를 논파해 내는 성격의 것은 아니 라는 사실이다. 뢰벤하임-스콜렘 정리의 적용 가능성에 대해서도 논의 의 여지는 봉쇄된 것이 아니며. 또한 콰인도 인정하듯 의미론적 고려 또한 동등성/미결정성의 가능성을 확고히 부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Quine 1975, 326-328). 이러한 유동적인 상황을 감안할 때, 동등성/미 결정성과 연관된 일련의 예증들이 갖는 의의가 심대하다. 종래 규약론 conven ti ona li sm 에 대한 논란 과정에서 많은 예들이 제시되었으나 . 여 기서는 반 프라센이 제시하는 새로운 유형의 예증에 주목하기로 하자. 종래의 예들이 가공적이거나 아니면 기하학 또는 시공론의 영역에서 제시된 것들임에 반해. 반 프라센의 예는 역학 이론을 다루며 실제 과학사의 전개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새로워 보인다. 반 프라센은 뉴턴 동역학의 한 가지 귀결을 예로 삼는다. 잘 알려져 있듯이 뉴턴은 절대공간, (그 속에서의) 절대운동. 절대속도 둥의 존재 를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동역학에 따르면. 절대운동의 속도는. 그것이 가속되지 않는 한. 어떤 관찰에 의해서도 겁증될 수 없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흔히 〈 관찰 가능한 것은 언제나 (설정된 기준 좌표
계에 의해 포착되는) 상대운동 rela ti ve mo ti on 이다. 〉 라고 요약되는 뉴턴 동역학의 한 가지 귀결이다. 따라서 뉴턴 동역학의 이론적 내용을 받 아들이면서 해당계의 절대속도를 임의로 상정하는 어떤 이론들도 모 두 경험적으로 동등하면서 서로 상충하는 것이 될 것이다. 반 프라센 의 표현을 빌어, 뉴턴 이론(즉, 역학과 중력 이론)을 TN, 그리고 뉴턴 이론에 예컨대 태양계의 절대속도가 V 라는 주장을 덧붙인 이론을 TN(v) 라 하면, 임의의 TN(v) 와 TN(v' )은 경험적으로 동등하면서 논 리적으로는 서로 상충하는 이론이 될 것이다 (van Fraassen 1980, 46). 나아가서 반 프라센은, 이러한 동등성이 이론의 확장적 사용-즉, 이론이 원래 의도하였던 적용 영역 밖에서 서용되는 경우-에서도 유지된다는 점을 들어 단순히 국지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뉴턴 이론과 전자기론이 결합된 경우 동등성을 파괴하는 증거를 얻을 수 있지 않은가 하는 물음을 생각해 보자. 뉴턴 이론에 따르면, 두 물체 의 절대속도는, 가속되지 않는 한 포착될 수 없는 데 반하여, 맥스웰 J. Maxwell 의 전자기장 이론은 대전된 물체들간의 작용력은 그것들의 전자기력 및 가속도 및 그 속도에도 영향받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 이다. 그렇다면 대전된 물체들간의 정지시 작용력을 계산함으로써 절 대속도를 식별할 수 있으며, 그것은 태양계의 절대속도에 대한 상충하 는 가설들간의 경험적 동등성을 파괴하는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증거가 제시된다 해도 그에는 다시금 상충하는 동등한 가설들이 제시될 수 있다는 것이 반 프라센의 지적이다. 예컨대 두 개의 대전된 물체들간에 전자기력 F(v) 가 작용한다고 확인되었을 경 우, 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가설이 제시될 수 있다 (van Fraassen 1980, 47-50) . 가설 (1) 태양계 중심의 속도는 0 이다. 절대속도 V 로 평행하게 운동하는 두 대전된 물체들간의 작용력은 F(v)
이다 . 가설 (2) 태양계 중심의 속도는 w 이다. 절대속도 v+w 로 평행하게 운동하는 두 대전된 물체들간의 작용력은 F(v) 이다. 이 예의 강력함은, 이미 말했듯이, 동등한 이론들의 가능성이 뉴턴 이론의 이론적 주장 내에서 보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으로써 콰인 이 지적한 술어 재해석의 문제, 동의성의 문제 등에 위협받지 않는다 는 장점을 갖는다. 또한 그때의 동등성은 이론의 확장적 사용에서도 파괴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강력하다. 그렇다면 이 예는 어떻게 평가되어야 할까? 먼저 반 프라센의 예가 자체 내부에 어떤 난점을 갖고 있다는 반론 을 살펴보자. 경험 증거에 대한 동등성을 의미 있게 주장하기 위해서 는, 관련 이론들의 모든 부분이 경험적 증거와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 도록 요구하는 것은 합당해 보인다. 다시 말해서 해당 이론의 경험적 내용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론의 어떤 부분이 완전히 제외되어 있다 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동등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부적절하기 때문이 다. 문제는 반 프라센의 예가 바로 이 요건에 위배되는 듯하다는 점 이다. 〈 왜냐 하면, 문제의 뉴턴 이론의 일부를 구성하는 절대공간의 존재와 그에 상대적인 운동에 대한 주장은, 그 이론의 관찰 가능한 결과들을 산출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조인래 1994, 147). 논거는 간명하다. 위 예에서 TN(v) 와 TN(v' )이 경험적으 로 동등할 수 있다는 것은, 역으로 절대공간, 절대속도에 대한 주장이 뉴턴 이론 TN 과 관련된 경험적 내용을 결정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하지 않음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 〈필수적인 역할〉이라는 개념은 애매해 보인다. 조인래 교수는 뉴턴 이론과 관련된 경험적 내용은 물체간의 상대적 운동이며,
그에 대해 절대속도가 필수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그 러나 이 부분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있다. 분명 상대속도의 수량적 관찰 내용은 절대속도와 무관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볼 때 그것들은 전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속도의 측정은 〈 특정한 준거계 frame of re fe rence 〉 의 존재를 전제하는 것이며. 뉴턴 역학에서의 절대 공간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듯 상대속도의 개념이 〈 계의 개념과 불가 분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주목한다면, 계 1 절대공간의 어떤 속성이 물 체의 상대속도 측정에 대하여 필수적이지 않다는 말은 어떻게 이해해 야 할 것인가? 어떤 관찰 내용을 결정짓는 특정한 법칙/이론군을 다 른 것들로부터 의미 있게 구획할 수 있다 해도, 그것들간의 개념적 연관이 긴밀한 경우, 그 구획은 제한적인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필수적인 역할〉이란 어떤 의미가 될 것인가? 이렇듯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논의의 진전을 위해서 반 프라센의 예 자체에 대해 의심치 않기로 한다. 그렇다 해도 다른 문제는 있다. 반 프라센의 예는 일반적 의미를 갖는 것일까? 달리 말하면 이론의 또 다른 확장적 사용에서도 동등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만일 그것을 단언할 수 없다면, 이 동등성은 국지적 동등성이 될 뿐이며, 실재론에 대한 중요한 반론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공상적으로는 태양계의 절대속도에 관한 〈국지적으로 동등한 〉 이론들이 구별될 확 장의 경우를 상상해 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예를 들어 이후 태양계 의 절대속도에 의해서만(말하자면 절대속도가 어떤 한계치를 넘어설 경 우에만) 산출되는 어떤 입자가 발견되고. 그 입자에 의해 지금 동등한 이론들을 구분해 낼 수 있게 된다면, 현재의 예증에게 어떤 의의를 부여해야 할까? 혹 동등성이 여전히 유지될 수 있다고 한다 해도, 다 른 난문이 기다린다. 동역학 이론에서의 상황이 다른 분야의 다른 이 론들. 예를 들어 입자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의 이론에도 그대로 적용 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 중요성을 이 해하기 위해서는 증거의 개념에 대해 좀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7.2 증거 개념의 재검토 지금까지 동등성 논제에 대한 논리학적. 의미론적 논거들과 예중들 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의외로 풍부해 보이지 않는다. 결론적인 판정이 유보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지만. 달리는 과학 이란 원래 지식을 산출하고 평가하는 인식론적 과업의 장인데. 지금까 지 검토한 논변둘은 의미의 문제를 축으로 하는 논리학-의미론의 영 역에 속하는 것들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이론/중거의 관계와 관련된 문제인 미결정성 논제를 의미/논리의 문제로 다루는 것은 분명 어색하다. 이 어색함 속에는 중요한 문제가 들어 있다. 여기서 동등성 논제의 성격을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증거의 문제가 의미/논리의 문제와 밀접히 연관되는 것은 논리실증 주의의 전통이 남긴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논리실증주의 이래의 일 반적 관점을 따르면. 이론들이 경험적으로 동등하다는 것은 그것들이 동일한 관찰 귀결 집합 observa ti onal consequ ence class 을 가질 때이다. 이때 관찰 귀결 집합이란 해당 문장의 논리적 귀결 집합 중 관찰 언 어로 표현 가능한 부분 집합을 말하는 것으로서, 따라서 경험적 동등 성이란 일차적으로 논리적 귀결 conse q uence 의 관계에 의거하여 성립 하는 논리적-의미론적 논제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론의 (인식론적) 증거와 이론의 (논리적) 귀결은 동일시될 수 있는데, 그러나 여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론이 증거를 만나는 실제 방식은 논리적 귀결 이라는 단순한 개념을 통해서 포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이론적 가설로부터 관찰 〈귀결〉을 도출하는 데에는 보 조적 또는 부수적 collate r al 정보가 동원되지 않을 수 없다. 실험 기구 나 시약에 관한 정보, 결정적 시험이 이뤄질 실험 상황을 설계하는 데 필요한 정보 둥이 그것들이다. 이것이 바로 이론과 증거 간의 관 계에 대한 이른바 〈전체론적 관점〉이 말하는 요점이다. 전체론 ho lism 이란 혼히 〈뒤엠-콰인 논제〉라고 불리는 인식론의 논제로서, 이론 명
제는 개별적으로가 아니라 이론 집합(즉, 여타 관련 이론 및 보조 가설 등을 포괄하는 〈 이론 〉 )으로서만 관찰 증거를 만날 수 있다는 입론이다 . 전체론을 따르면 이론의 관찰 귀결은 이론의 공리 자체로부터가 아니 라, 해 당 이 론과 관련 이 론들과의 연언 conj unc ti on 으로부터 도출되 는 것이다. 어떤 명제도 그 동료들과 떨어져서는, 입증이나 정보를 전혀 허용할 수 없다. …… 의부 세계에 대한 우리의 명제는 감각 경험의 법정을 개별적으 로가 아니라, 하나의 단체로서만 대면한다(Quin e 1951, 41 ). 이는 이론의 관찰 귀결에 대한 두 가지 해석이 분별되어야 함을 알 려 준다. 하나는 다른 이론이나 가설과 무관히 해당 이론 자체로부터 함축되는 관찰 진술들의 집합이며, 다른 하나는 다른 가설들과 결합해 서만 연역 가능한 관찰 진술들의 집합이다. 전체론은 실제의 과학에서 두 번째의 해석만이 올바르다고 말해 준다. 이러한 고찰은 관련 보조 적 정보들이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변할 수 있음을 감안하면 더욱 의 미심장해진다. 이론으로부터 관찰 귀결을 도출하는 데 필요한 전제를 제공하는 보조적 정보들이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변화되고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보조적 정보가 새로이 확장 가능하거나 폐기 가능하다는 사실은 이론의 경험 적 귀결 집합의 결정이 과학의 특정 상태에 상대적일 수밖에 없음을 알려 주며, 그것은 곧 경험적 동등성 또한 특정 시점에 대해 상대적 임을 뜻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로부터 중거/귀결의 개념은 혼동될 수 없는 것이며, 동등성 논제 또한 결정적으로 반박될 수 있 음을 살펴보자. 먼저 증거/귀결의 개념적 구분에 대해 따져 보자. 이를 위해서는, 보 조적 정보의 사용 및 그것의 가변성이 의미하는 것은 관찰 귀결에 해 당하는 것의 범위를 변화시킬 뿐, 귀결의 관계를 변경시키는 것은 아
니지 않느냐는 반론을 검토해 보아야 한다. 단순히 이론 T 로부터의 관찰 귀결을 상정한 것이 잘못이라면. 이론 T 와 보조적 정보 C 의 연 언으로부터의 관찰 귀결이라는 개념으로 대체하는 것으로써 문제가 해소되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치 않다. 그 러한 대체 속에는 문제를 의미론적 차원에서 인식론적 차원으로 전환 시키는 계기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 관찰 귀결을 도출하기 위해 어떤 보조적 정보나 가설을 사용하는 경우에 대해 생각해 보자 . 그것 은 보조적 정보가 들어 있는 관련 가설이 신빙성 있는 것인가를 판정 하는 일이며, 그것을 현재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결정하는 판단 등을 포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이러한 판단은 의미와 논리에 대한 형식적 판단이 아니라 분명 인식론적 판단이다 .1 7) 다시 말해서 귀결은 논리적 개념이지만, 증거는 인식론적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는 뜻이댜
17) 이 점은 라우든, 레플린이 잘 지적하고 있다 . 그들은 이렇게 표현한다 . 〈보조 정 보들의 이용 가능성 av ail ab ility은 논리나 의미론의 문제가 아니라 불가피하게 인식 론적이다. 주어진 경험 진술 e 가 특정 이론 T 의 경험적 귀결인지 아닌지를 판정하 는 것은 T 와 e 간의 적절한 추론적 연관을 확립시켜 주는 인식론적으로 잘 근거된 부수적 가설이 존재하는가에 달려 있다 . 그러한 가설의 이용 가능성은 명백히 증거 적 보증 warran t의 문제다 . 〉 (Laudan, Lep lin 1991, 59).
이 차이는 단순한 구별이 아니다. 그로부터 동등성 논제에 대한 결 정적인 반박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실증주의 이래의 전통적 이론관(또 는 증거와 귀결을 동일시했던 이론관)에서는 이론들간의 동등성을 파괴 하는 것으로서의 〈 예기치 못했던 〉 증거라는 개념이 불가능하다 . 그들 의 이론관에 따로면 이론이 증거와 만나는 방식은 논리적 귀결의 관 계를 통해서이며, 따라서 이론에 대한 증거는,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이론의 공리들에 의해 미리 확정되어 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 예기치 못했다 〉 는 것은 우리의 추론 능력의 한계에 의한 것일 뿐, 그것이 이론의 경험적 귀결에 포함되지 않았던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경험적으로 동등한 이론들이 〈 예기치 못했던〉 증거에 의하여 구분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제 이론 검사에 있어서 보조 가설이 하는 역할을 감안한 다면, 그리하여 보조 가설이 변모함에 따라 증거 영역이 계속 확장적 으로 변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이론은 관련 이론 및 보 조 가설들의 발전 및 변화에 따라 진정으로 〈 예기치 못했던 〉 증거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이론 검사에서 보조 가설이 사용된다는 사실. 그 리고 그 보조 가설이 계속 변화 가능하다는 사실 등은 일시적으로 동 동했던 두 이론에 대하여 언젠가는 반드시 그것들을 결정적으로 구분 시켜 줄 새로운 증거가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항속적으로 유지 가능한 동등성이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 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어떤 이론적 발전이 이루어질지 미리 알 수 없는 한, 서로 양립 불가능한 두 이론에 대해. 어떤 증거도 그것들을 구별시켜 줄 수 없다는 의미로 그것들이 경험적으로 동등하다고 주 장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논리적 귀결에 있어서 동등 하지만 증거상 미결정되지 않는 이론에 대해 유의미하게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이론의 동등성에 관하여 어떤 위협도 느낄 필요가 없게 되는가? 그렇지는 않다. 당연히 국지적 동등성의 문제는 제거될 수 없다. 또한 어떤 이론 유형들에 대해서는 동등성의 파괴를 쉽사리 장담할 수 없다는 제약 또한 존재하는 듯하다. 후자의 문제에 대해 세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거기서 이론에 대한 실재론적 기대 가 어느 정도 의미 있게 충족될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결론이 도 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제시된, 동등성 논제에 대한 반박 논변은 이론의 증거 영역은 고정된 것이 아님을 핵심으로 한다. 이름컨대 〈증거 영역의 개방성〉 이 동등성/미결정성 논제를 부정하게 하는 근거인데, 그러나 이러한 개방성은 과학 이론의 모든 종류에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는(또는 적
용되기 어렵다는) 제한을 갖는다 . 이와 관련하여 엘리스 B. Ell is가 논 하는 인과 이론의 특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엘리스에 따르면 예컨 대 동역학 이론, 시공간론 등은 동등성 논제에 우호적인 반면. 최소한 기계론적 이론들 입자물리학의 이론들. 그리고 생물학. 화학 등에서 많이 나타나는 〈 인과(과정) causal(pr o cess) 이론〉들은 그렇지 않다고 여길 만한 이유가 있다. 여기서 인과 이론이란 자연의 기본적 인과 과정을 기술하는 이론 유형을 말한다. 그것은 당연히 이론적 존재자의 존재를 함축하는데. 그것은 예컨대 A 가 B 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A 와 B 가 모두 실재한다 는 주장을 전제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론적 존재자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거기서 상정되는 존재자들은 우리가 그때 까지 가지고 있는 이론들에 의하여 파악된 것 이의의 인과 과정을 통 하여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해야 한다. 우리의 지식(인과 이론)이 발전함에 따라 . 즉 그 존재자의 인과적 속성에 대한 이해가 심화. 확 장됨에 따라 그 이전에는 예기치 못했던 입증 사례를 만나게 된다는 뜻이다. 그럴 경우 이전의 이론적 수준에서는 경험적으로 구분 불가능 했던 이론들을 구분시켜 줄 증거 또한 만날 수 있으리라는 것이 엘리 스의 주장이다 (E lli s 1985, 63-64). 그런데 이때 시공간론이나 동역학 이론보다 인과 이론의 경우를 달 리 평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과 이론의 특징적 성격은 그것이 단 순히 이론적으로 상정되는 것을 넘어서 실재한다고 볼 수밖에 없는 존재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 있다. 인과 이론이 대상으로 하는 (원 인으로서의) 존재자는 특정한 인과적 속성을 가지고 실재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것이 어떤 인과 과정을 통하여 나타날지는 그것이 놓이게 되는 존재론적 상황에 의하여 결정된다. 우리가 그 존재자에 대한 완 전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고 장담할 수 없는 한. 그 존재자가 우리에 게 드러나는 양태를 예단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하며. 바로 이러한 점 이 인과 이론의 경우를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듯하다. 우리의
관련 이론적 지식이 발전함에 따라. 즉 해당 존재자의 인과적 속성에 대한 이해가 깊어짐에 따라 그 존재자는 계속 새로운 증거로써 우리 에게 포착될 것이며. 그것이 특정 시점의 국지적 동등성을 파괴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 점에 있어서 시공간론이나 동역학 이론의 경우는 다른 듯 하다. 예컨대 공간이나 시간. 그리고 힘 등 다른 구체적 인과적 사건 들을 담는 준거들의 역할을 하는 것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론(가장 기 초적인fun damen tal 이론들)의 경우에는. 그것들이 기존의 이론이 말해 주는 것 이의의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이 가능한가? 그것들은 도대체 의미 있는 인과적 속성을 갖는가. 그리고 어떤 인과적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가? 여기서 대안적 이론 체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특정한 인과적 과정. 특히 당대의 이론적 지식에 의하여 예기할 수 없었던 과정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한 우리에게 의미 있는 (실 험적) 증거로 나타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지적이 옳다면 엘리스가 말하는 이론 유형의 구분은 의미 있는 것이다 .18) 그리하여 우리는 다 음의 두 명제에 이르게 된다.
18) 이런 논의가 타당하다면 실재론 논쟁은 이론의 유형 구분과 더불어 진행되어야 한다 . 어떤 이론 유형에 대해서는 실재론이 부적합해 보이지만, 다른 유형에 대해 서는 적절해 보이는 그런 차이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엘리스 는 이론들을 인과 이론. 기능적 이론, 모델 이론. 체계 이론 등으로 구분한다 (E llis 1984, 55).
(1) 동등성 주장은 철저히 당대의 특정 이론적 수준과 상관적으로 만 성립한다. 그리하여 국지적이지 않은 동등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이론적 (그리고 공학적) 발전의 가능성이 어떤 수준에서 끝나 게 되는지에 대하여 예언적인 증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2) 동등성, 미결정성의 위협은 중거 영역의 개방성이 가장 큰 곳에 서 가장 약화될 것이다. 그 부분이 인과 이론이며, 따라서 우리는 인
과 이론으로부터 가장 신빙성 있는 존재론적 정보를 얻어 낼 수 있다 . 7.3 실험의 인식론적 의의 지금까지의 논의가 옳다면, 인과 이론의 경우 오늘날의 어떤 과학 자, 과학철학자들도 부인치 않는 오류 가능주의의 위험이 존재할 뿐, 그것을 굳이 도구론적으로 해석할 어떤 이유도 납득키 어렵다. 그러 나 이때 우리가 인과 이론으로부터 얻어 낼 수 있는 정보는 정확히 어떤 것일까? 인과 이론이 동등성/미결정성의 위협으로부터 가장 자 유롭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해도, 그것이 새로운 증거에 의하여 논박 될 가능성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논의는 일단 신빙성 있는 이 론적 지식을 얻을 가능성이 인과 이론에서 가장 넓게 열려 있다는 것 뿐이며, 그로부터 어떤 정보가 얻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 투명하다. 우리가 인과 이론에 대해서조차 이론적 정보를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어떤 경우에도 이론에 대한 증거가 이 론의 참에 대한 완전한 인식론적 보증을 제공할 수 없으며, 제한된 정보 속에서 구축되는 가설로서의 과학 이론이 오류 가능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론적 지식은 본성상 증거 초월 적, 확장적 추론이며, 따라서 결코 그 참임을 확신받을 수 있는 종류 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상황이 이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보다 신빙성 있는 존재 기준도 있을 수 있다는 의견들이 제출되고 있다. 우리의 문제는 이론의 참과 존재 함축에는 의심의 가능성을 배제하 는 힘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효한 존재 기준은 일단 이론과 독립적인 차원에 있어야 할 것이며, 그런 맥락에서 유효한 존재 기준 의 형식적 요건을 〈이론 초월성〉이라 해 두자. 만일 어떤 존재자가 여러 이론적 변천에도 불구하고 계속 주장된다면, 그것은 이론 초월적 이다. 그러나 모든 이론 초월성이 인식론적으로 가치 있지는 않을 것
이다. 단순한 과학사적 우연이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의 이론 초월적 인 기준에 의해서만 우리는 보다 신빙성 있는 존재 확신에 이르게 될 텐데, 이러한 발상은 즉각 크립키, 퍼트남 등이 주창하였던 인과적 지 시론causal theory of reference을 연상케 한다. 거기서는 관련 이론의 참, 거짓 여부와 무관히 해당 존재자를 고정적으로 지시하고 언급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그것은 이론 초월성의 한 가지 방식을 시사 한다. 인과적 지 시 론이 란 쿤 T. Kuhn, 파이 어 아벤트 P. Feyerabend 등이 주 창한 공약불가능성 incommensurability 논제에 대하여 실재론적 직관을 옹호하기 위하여 제안된 의미론의 입론이다. 공약불가능성이란 말 그 대로 이론들간의 비교를 위한 공통 척도가 없다는 뜻인데, 그것은 이 론 용어의 의미가 이론 내에서 완전히 결정된다는 의미론적 전체론의 논제에 기반하여 주장된다.19) 그로부터 이론 및 이론 용어의 존재론 적 함축 또한 이론에 의해 전적으로 규정된다고 주장되며, 이때 이론 의 변천은 곧 존재론의 변천이 된다. 공약불가능성 논제에 의하면 서 로 다른 이론들은 동일한 세계에 대한 것이라고 말하기조차 어려워지 는데, 이에 대해 인과적 지시론은 이론의 급격한 또는 단절적인 역사 적 변천에도 불구하고 그 이론들이 공통된 객관 세계에 대한 것이라 고 말할 수 있는 의 미론적 근거가 있다고 주장한다. 지시 reference의 부분에서 그러하며, 관련 믿음의 변화(즉, 이론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시를 고정적으로 유지되도록 하는 것은 용어와 지시 대상 간의 인 과적 연관이라고 설명된다.20) 이론(또는 이론적 용어)과 그 지시 대상 간의 관계는 관련 믿음이나 지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과 메커니즘에 19)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이론의 공약불가능성 논제는 용어의 의미에 대한 전체론적 관점과 이론/관찰 이분법의 거부라는 두 가지 전제로부터 도출된다(Newton-Smith 1981, 9-13). 20) 퍼트남에 따르면 이 연관은 용어가 도입되는 상황(〈도입 사건〉)으로부터 출발 硏인과적 연쇄 causal chain에 의해 설명된다(Putnam 1973, 1975b).
의하여 연결되어 있으며, 따라서 믿음, 지식, 이론의 변천이 지시 대상 의 존재론적 위상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자에 대 하여 톰슨 J. Thomson, 로렌츠 H. Lorentz, 보어 , 밀 리 컨H. Millikan 등 이 모두 다른 이론(적 해석)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대상에 대해 말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언급이 궁극적으로는 공통적 인 대상과의 인과적 관계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세부는 차치하고라도 인과적 지시론이 대상 존재에 대한 이론 초월적 기준울 제시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러한 지시론 아래 우리는 관련 지식 또는 이론의 참, 거짓 여부와 무관히 해당 대상에 대하여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입론은 대단히 일반적인 의미론의 논제로서 제시되는 것이므로, 다양한 방식으로 도입되고, 변화/소멸해 가는 과학 용어의 경우를 모두 포괄하기는 어렵다는 문제를 갖는다. 예를 들어 플로지스톤, 칼로릭 등 예전에는 그 존재 및 지시 관계가 확신되었다가 오늘날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는 대상들에 대한 언급들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 또한 산(酸)의 경우처럼 애초 명명될 때와는 달리 두 종류의 물질(Bronsted-Lowry acid와 Lewis aced)로 분화되어 이름지어지는 경우도 인과 지시론이 설명하기 가 쉽지 않다.21)
21) 이런 문제들에 대하여 인과 지시론자들이 전혀 대답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 것들은 각각 지시 실패와 지시 변화의 문제라고 알려져 있으며. 그에 대한 여러 설명들이 제안되고 있다. 참조:Devitt(1980).
그렇다면 과학의 실제에서 인과 지시론의 통찰을 발전시키는 방안 은 무엇일까? 이와 관련하여 카트라이트N. Cartwright와 해킹은 주목 할 만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카트라이트에 따르면 우리는 인과 이 론이나 인과적 설명에서 해당 존재자를 보다 확신할 수 있는데, 그것 은 원인으로서의 존재자(와 그것의 인과 작용)가 〈산출bring about〉의 메커니즘을 갖기 때문이다(Cartwright 1983, 6). 죽, 원인으로서의 존재 자는 일련의 법칙적 과정울 통해서 결과로서의 현상을 산출하며, 따라
서 우리는 그 산출의 결과를 살펴봄으로써 그것이 어떤 존재자의 인 과적 효과인가를 확인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개재되는 오류 가능성의 여지는 통상적인 실험적 방법론에 의해 서 최소화할 수 있다. 일반적인 설명 이론과 인과 가설 또는 인과적 추론이 구별되는 것 은. 인과적 추론의 경우는 실험적 검사에 의하여 존재자 및 그것의 인과적 속성에 대하여 확신할 수 있는 가능성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실험이란 원래 참 원인을 거짓 원인과 구분시켜 주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일치법. 차이법, 공변법 등, 밀J.M비의 실험 방법론이 말하는 요 점이다. 실험에서 우리는 원인을 조작하고 결과가 적절한 방식으로 변 화하는지롤 관찰함으로써 그러한 효과를 산출하는 존재자에 대하여 확신할 수 있게 되는데. 이런 방식으로 실험이란 미결정성의 여지를 최소화하는 체계적 방법론이다. 이때 특히 실험의 조작적 manipulative 측면이 중요하다. 해킹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존재자를 실험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는 사실의 인식론적 의의는 실험물리학자들의 실제적 판단 관행에서 잘 드러난다. 물리학자들(특히 실험물리학자들)은 가설적인 이론적 존재자 와 실험 에서 도구로 사용되는 실험 적 experimental 존재자의 존재론적 위상을 명백히 구별짓는다. 그들은 어떤 이론적 존재자에 대하여 그것 이 실험적 존재자로 사용될 수 있을 경우. 죽 그 존재자를 실험의 도 구로 조작할 수 있을 경우 그 존재를 확신하는 반면. 그렇지 않을 경 우에는 그에 대한 여하한 이론적, 실험적 입증이 제공되더라도 그 존 재에 대한 의심을 갖는다. 예를 들어 오늘날 전자는 (중성 보존neutral boson과 같은 가설적 존 재자와는 달리) 실재한다고 여겨지는데, 그것은 위의 관점에서 손쉽게 이해 가능하다.22) 전자에 관한 어떤 이론적 입증도. 그리고 밀리컨의 22) 중성 보존 neutral boson이 란 약력 weak force을 포함하면서 전하의 전달 및 교환 은 없는 상호 작용. 이른바 약중성류weak neutral-current의 상호 작용에서 운반체
로 상정되는 입자이다.
유적 oil-drop 실험과 같은 〈관찰적〉 실험도 원리상 전자의 존재를 확 립할 수 없었으며, 오직 전자에 대한 실험적 조작만이 그를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이론적 입증은 그렇다치고, 밀리컨의 실험조차도 전자 의 존재를 입증하는 데 미흡한 것은 왜인가? 밀리컨이 확인해 낸 전 하의 최소 단위는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담는 운반체가 어 떤 성질의 것인지, 실재로 존재한다고 단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제시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실제 과학자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사정이 변한 것은 전자에 대한 조작 가능성이 실험에 의해 입증된 다음이라고 한다. 해킹의 보고에 따르면 전자의 존재 론적 신분은, 그것 이 약중성 류 weak neutral-current 나 중성 보존 등을 조사하는 실험에서 도구로 사용될 수 있었을 때 극적으로 달라진다. 이와 관련하여 해킹은페기Peggy II라는 실험 장 치를 소개하고 있다. 그것은 전자총을 이용하여 약중성의 상호 작용에 서 패러티 parity가 보존되지 않음을 입증하기 위해 고안된 실험 장치 다. 여기서 해킹은 전자가 실험 도구로 사용된다는 점, 그리고 전자의 잘 알려진 인과적 속성들만이 이용된다는 점을 주목한다(Hacking 1982, 78-85). 그 상황의 의미는 이런 것이다. 전자가 실험에서 신뢰 할 만한 도구(실험적 존재자)로서 사용될 수 있을 때, 과학자들은 그 것의 존재, 즉 우리가 실험에서 사용한 인과적 속성을 가진 존재로서 의 전자를 의심 없이 믿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해킹의 결론은 그 리하여 이론적 존재자의 존재론적 신분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 대한 실 험 적 조작 가능성 rnanipulatability이 라고 말한다. 우리가 전자의 실재성에 대하여 완전히 확신하는 것은 자연의 다른 가 설적 부분에 개입하기 위하여 전자의 잘 알려진 인과적 성질들을 사용하 는 새로운 장치를 반복적으로 만들어 낼 때. 그리고 대부분 성공적으로
만들어 낼 때이다(Hacking 1982, 77). 여기서 궁금한 것은 실험적 조작이 어떻게 이론과 무관히, 그리고 이론과 달리 존재자 대상의 존재를 확신케 해 주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죽 실험적 조작이 어떻게 카트라이트가 말했던 산출 메커니즘 을 확인하는 결정적 근거가 될 수 있느냐는 문제다. 이는 해킹이 인 과주의 causalism라고 이름하는 원리에 의거하여 이해되어야 한다. 인 과주의란 물리적 존재자의 존재는 그것의 인과적 힘의 존재와 동연적 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죽, 〈실재한다는 것은 곧 인과적 힘을 갖는 것 이다.〉(Hacking 1983, 35-37). 다시 말해서 실제로 존재하는 것만이 (허구적 존재자들과는 달리) 다른 존재자들과 인과적 상호 작용의 관 계에 놓일 수 있다는 뜻이다. 실재하는 존재자는 다른 것에 인과적으 로 영향을 줄 수 있으며, 다른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 원리를 따르면 어떤 존재자의 실재를 확인한다는 것은 곧 그것의 인 과적 힘을 확인하는 것, 즉 인과적 상호 작용의 증거를 가진다는 것 이다. 해킹의 실험적 조작이란 인과주의가 말하는 인과적 힘을 확인하 는 결정적 계기이다. 인과주의의 주장은 전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존재자의 존재에 대한 우리의 모든 추론은 사실상 인과주의에 의거한다.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다고 믿었던 방 안이 어질러져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인 가가 방에 들어왔다고 믿는다. 왜인가? 혼적이라는 인과적 효과 때문 이다. 만일 어떤 것이 원인으로서 혹은 결과로서 나타날 수 없을 경 우, 그것이 존재한다는 말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 우리의 과 학적 세계 이해는 (양자역학 이래로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여러 편차 가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 인과의 틀에서 이뤄진다고 할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인과주의의 원리는 실재성에 대한 상식적이며 과학적 인 관점을 표현한다. 해킹에게서 이 상식적인 원리는 현대 과학의 특 징적 모습이라 할 수 있는 실험과 개념적으로 연관됨으로써 새로운
의의를 부여받고 있다. 실험은 존재자의 인과적 효력을 확인하는 현실 적 장치로서, 다시 말해서 존재자가 그 주위 세계에 대하여 야기하는 차이를 간취해 내는 방식이 된다. 요약컨대 해당 존재자의 잘 알려진 하위 수준의 인과적 속성들을 실험적으로 조작하여 소기의 효과를 산출할 수 있을 때에야 그것의 존재를 확신하는 과학자들의 태도가 단순한 관행 이상의 철학적 의미 를 갖는 것은 인과주의의 원리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실험은 하나의 인과적 과정을 인공적으로 구성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그 리하여 어떤 존재자가 실험에서 제대로 작동한다는 것(예측한 효과를 산출한다는 것)은 그 존재자가 하나의 인과적 상호 작용에서 기능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이것이 존재 추론의 근거이자 기준이 될 수 있 는 것은 인과주의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과주의 아래 실험과 실 재론은 결코 단순치 않은 내재적 관계에 놓이게 되고, 따라서 실험적 조작의 가능성이 곧 해당 존재자의 존재 증명일 수 있다는 해킹의 주 장이 성립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해명되어야 할 문제가 남아 있다. 전적으 로 이론 독립적인 실험적 기준이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이다. 왜냐 하 면 실험을 설계하고, 실험 장치의 신빙성 및 성공을 평가하는 데에는 이론적 지식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실험과 이론의 관계를 보다 정밀하게 해명할 것을 요구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다음 두 가지 사항을 유념해야 한다. 첫째, 실험과 이론 간의 관계에 대한 전 통적 관점이 교정될 필요가 있다. 전통적으로 실험은 철저히 이론 종 속적인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죽, 실험이란 이론의 참을 입증 또는 반증하기 위한 (필수적이지만) 보조적인 절차였으며, 따라서 실험이 이론과 독립적으로 인식론적 의의를 갖는다고 여겨지지 않았다. 해킹 은 과학사의 검토를 통하여 실험의 인식론적 의의가 전적으로 이론에 종속된 것만은 아님을 밝히며, 이에 관하여 시각이 교정될 필요가 있 음을 지적하고 있다(Hacking 1983, 149-166).
그렇지만 이 역사적 사실이 실험적 조작과 이론적 지식 간의 의존 관계에 대한 답이 될 수는 없다. 그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전제되 는 지식이 논란의 여지가 많은 첨단의,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법칙이 나 이론인가 하는 것이다. 만일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이론적 지식을 전제하는 실험이라면, 그럴 경우 이론의 미결정성은 실험(결과)의 미 결정성을 함의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실험에서 전제할 수 있는 지식은 실험적 존재자 및 실험 장치와 관련된 하위의 인과 원리 와 잘 입증된 현상 법칙 등 그 참임이 실증적, 실천적으로 명백한 것 들이어야 한다(Cartwright 1982, 1983). 이때 이들의 참임이 어떻게 확 보되는지 묻는 것은 공허한 논쟁일 뿐이다. 왜냐 하면 하위의 인과 원리 및 현상 법칙의 참에 대한 확신은 도구론자들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현상적, 실천적 차원에서 얻어지는 증거이 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실험이 전적으로 이론 종속적인 것으로 여겨지 지 않으며, 실험이 전제하는 지식이 그 참임에 대하여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하위 수준의 지식들일 때, 실험의 이론 의존성은 크게 약화 될 것이다. 그러한 종류의 지식들은 과학사의 변천에도 불구하고 지속 적으로 축적된다고 할 수 있으며, 이제 해킹의 기준은 상대적으로 신 빙성이 입증된 기구 이론apparatus theory의 축적이라는 과학사적 이해 를 첨부함으로써 그 설득력을 배가할 수 있는 듯하다. 해킹의 기준은 대단히 쓸모 있다. 그것은 인과 지시론이 구별키 어 려웠던 이론적 존재자들의 다양한 차원을 실험적 세심함에 의하여 구 분해 낼 수 있게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존재 결정의 실질적 내용에 있어서 과학자들의 실제적 의사 결정 과정을 참작하게 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현실적인 기준이다.23) 이러한 논의를 통하여 해킹은 보다 일 23) 해킹의 기준을. 그것이 갖는 어떤 제한에 의해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 조작 가능 성이라는 기준 아래서는, 예를 들어 불랙홀 등 너무 거대해서 조작 불가능한 대상 에 대해서는 존재 증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한계는 부정할 수 없으며. 따라 서 해킹의 기준은 미시 세계의 존재자를 확인하는 데 유용하다. 그러나 이것은 해
킹의 기준을 비판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해킹의 기준은 철학적 논변에 의해 강제된 것이 아니라 과학자 공동체의 판단 관행으로부터 확인된 한 가지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다른 존재 기준을 부정하는 것일 수 없다.
반적인 존재론적, 안식론적 교훈마저 이끌어 낸다. 그것은 실재론 논 의, 그리고 나아가서 지식의 본성에 대한 논의는 표상하기 representing 의 차원에 한정되어서는 안 되며, 개입하기 intervening의 차원까지를 포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알지 못하고 있는 무수한 존재자와 과정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아마도 우리가 원리상 결코 알 수 없는 것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실재는 우리보다 크다. 가정되거나 추측된 존재자들의 존재에 대 한 최선의 증거는. 우리가 그것들을 측정할 수 있다는 것 또는 그것의 인 과적 힘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으로 그러한 이해를 가졌다는 최 선의 증거는 우리가 그러한 인과적 연관을 이용하여 부스러기들로부터 신 뢰할 만한 기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존재자에 대한 과학 적 실재론을 옹호하는 최선의 증명은 이론화theorizing가 아니라 공학 engineering이다(Hacking 1983, 274). 8 맺는 말 과학철학에 있어서 실재론이란 일차적으로 이론의 진리 주장, 존재 주장에 대한 평가이다. 과학자들이 이 세계가 무엇으로 이뤄져 있는지 를 논의하는 데 반하여, 과학철학자들은 그에 대한 과학자들의 판단 및 성과를 논리적, 인식론적으로 평가함으로써 〈지식〉에 대한 이해를 얻으려 한다. 이는 과학과 과학자들을 어떤 초월적인 위치에서 평가한 다는 뜻이 아니다. 철학자들은 과학자들의 성취로부터 정합적인 지식 의 모습을 재구성해 보고, 그에 준하여 다시금 그들의 평가를 교정해
보기도 하는 상호 보완적 작업 정도를 희망할 뿐이다. 과학과 그 성 과로서의 이론들을 보다 포괄적인 인식론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려는 것이며, 그것은 철학의 전통적인 관심사라고 할 수 있는 〈지식의 본 성〉에 대한 탐구의 일종이다. 우리의 지식, 그 중에서도 가장 탁월한 지식 형태인 과학 이론은 세계에 대하여 무엇을 알려 주는가, 달리 표현하자면 〈세계에 대한 지식〉이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가 등.24)
24) 어떤 이들은 과학철학의 작업을 통하여 과학자들의 작업을 평가하고 인도해 줄 규범적 원리까지를 도출해 보려고 하지만, 그것이 가능한지에 대해서 필자는 대단 히 회의적이다. 과학과 철학의 명백한 연관은 17세기 이래로 지속적으로 파괴되어 왔으며, 또한 과학 내부가 방법론적 문제 그리고 준철학적 문제에 대한 논의를 자 체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만큼 풍부해졌기 때문이다. 과학철학과 과학의 관련에 대 한 20세기적인 해석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실재론은 왜 중요한 문제가 되는가? 여러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이 문제의 출발점은 〈동일한〉 세계에 대하여 여러 개의 다른 이론적 표현이 가능하다는 사실일 것이다. 만일 우리에게 세계에 대한 성공적인 이론적 표상이 오직 하나였다면. 여하한 이유로도 진지 한 실재론 논쟁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우열을 판가름하기 어 려운 여러 개의 이론적 표상들이 공존한다는 사실-이것이 실재론 이라는 문제의 토양이다. 그렇다면 과학적 실재론의 문제는 단적으로 말해서 〈이론의 미결정성〉이라는 문제, 즉 우리의 증거에 의하여 그 정당성을 구분할 수 없는 양립 불가능한 이론들이 여럿 존재한다는 문제다. 실제로 과학철학의 역사에서 실재론의 반대 입장으로 나타나 는 경험론과 상대주의는 모두 복수 이론의 가능성에 근거하여 논변한 다. 경험론자들은 콰인류의 미결정성 논제를 최고의 근거로 삼으며. 상대주의자들은 병립하는 이론에 대한 어떤 객관적 비교도 불가능하 다는 공약불가능성 논제에 기반을 둔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에게 가장 상식적이고도 설득력 있는 입장은
실재론이라 할 수 있다. 과학이야말로 믿을 만한 지식 표상의 전형이 며. 과학의 성공이 그를 층명해 준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최근 양자역 학. 입자물리학의 성과들. 과학사, 과학철학의 반실재론적 흐름에 영향 을 받아 실재론적 직관은 전면적으로 의심받게 되었으며. 그것이 지금 까지 논의했던 실재론 논쟁의 씨앗이 되었다(McMullin 1984, 9-26). 여러 하위 논제들이 개발되고. 그에 대한 찬반의 논변들이 풍부하게 제시되었다. 이 글에서는 그 중 가장 주목받았던 몇 가지 주제에 대 한 몇 가지 의견들을 검토해 보았으며. 그것들이 실재론을 불가능한 입장으로 만들어 버리는 종류의 것은 아님을 확인하였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실재론적 직관은 고수하려 한다면 고수할 수 있다는 자못 소 극적인 결론에 이른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확인한 내용을 정리해 보자면 이런 것들이다. 일반 적으로 말해서 이론의 오류 가능적 성격과 완전히 제거하기는 어려운 미결정성의 위협 때문에 이론적 성취에 대하여 단정적으로 실재론을 주장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실재론을 결정적으로 논박하는 비판 또한 가능치 않은데, 그것은 과학의 특징적인 모습, 예컨대 방법적 성공과 같은 특징은 실재론 없이 이해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과학이라는 제도 의 활력과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실재론적 지향을 배제하는 것은 더 큰 어려움을 초래할 뿐인 듯하다.25) 그러나 실재론은 지향으 로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특수한 이론 유형(인과 이론)의 경우에는 미 결정성의 위협이 최소화된다고 보이며, 그를 통해 특정 부류의 이론적 존재자에 대해서는 그 존재 여부에 대해 보다 확고한 신뢰를 가질 수 있는 듯하다. 우리의 인과적 추론 및 그 추론의 정당성을 확인해 주 는 실험적 조작의 관행이야말로 존재자의 존재 및 그것의 인과적 속 25) 이 글에서는 논의하지 않았지만, 실재론은 설명적 과업으로서의 과학관에 대한 가장 충실한 해석이라는 접도 중요하다.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과학철학에서 설 명/기술의 개념이 어떻게 구분되는지, 그리고 어떤 철학적 입장과 연관되는지에 대 한 논구를 필요로 한다. 이 책의 〈제3장〉 부분을 참조하기 바란다.
성에 대한 대단히 신빙성 있는 단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의 중에 실재론은 지식 획득의 주체인 우리에 대해 (존재 론적) 자연주의의 관점과 친화적인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것은 대략 세계는 물리적 존재자들과 그들간의 인과적 관계에 의해 구성되 어 있으며. 그 부분인 인간은 인과적 메커니즘 속에서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여 세계에 대해 지식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관점을 갖는다. 실재론과 이른바 자연주의적 관점 간의 친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좀더 생각해 보는 것으로 우리의 논의를 마무리하기로 하자. 최근 파인A. Fine은 실재론/반실재론 논쟁이 봉착한 곤경을 포괄적 으로 진단하여 이 논쟁의 구도를 근본적으로 넘어설 필요가 있다는 흥미로운 의견을 제시했다. 우리의 논의와 관련하여 특히 흥미로운 것 은 다음의 두 가지 주장이다. 첫째, 실재론/반실재론 등 과학에 대한 어떤 과학 외적 주장도 정당하지 않다는 것. 둘째, 우리에게 외부 세 계에 대한 철저히 객관적인 관점은 허용되어 있지 않으며, 그러한 제 약은 사실상 실재론의 모든 가능성을 부정한다는 것. 이에 대해 따져 보는 것은 과학에 대해 실재론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분 명히 해 줄 수 있다. 파인은 최근의 실재론 논쟁으로부터 과학에 대한 어떤 철학적, 인식 론적 해석도 부당하다는 교훈을 읽어 낸다. 과학자들이 특정한 과학적 맥락에서 전자나 DNA, 쿼크 등에 말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그에 대한 철학적으로 일반화된 해석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실재론이나 반실재론 은 모두 과학을 특정한 인식론적 입장에 따라 재단한 일종의 해석학 적 폭력이며. 그런 점에서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과학의 존재론 적 함축에 대한 우리의 올바른 태도는 인식론적 해석 이전의 일상적 태도, 이름하여 〈자연스러운 존재론적 태도the natural ontological attitude(이하 파인을 따라 NOA라 약칭한다)〉여야 한다는 것이다(Fine 1984a, 1984b, 1986) . 파인에 따르면 현대의 실재론/반실재론은 모두 과학의 성과에 호의
적인 입장이다. 그들은 입장의 중심에 과학의 일반적 성과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공통점을 함께 갖고 있으며. 그 성과들은 우리가 일상적 판단에서 〈참〉을 말할 때와 같은 의미에서 〈참〉이라고 인정되는 것이 다. 이때의 참은 어떤 인식론적 해석이 부여되기 이전의 것으로서, 참 에 대해 어떤 설명적 기능도 인정치 않는 진리 잉여론the redundancy theory of truth의 관점과 홉사하다(Fine 1986, 171-177). 파인의 이의 제기는 이 〈참〉인 성과들에 대하여 정당성을 증명하기 어려운 인식론 적 해석이 추가되는 지점에서 이루어진다. 실재론자들·은 객관 세계와 의 관계에 의하여, 반면 반실재론자들은 탐구자로서의 우리와의 관계 에 의하여(예를 들면 관찰 가능성의 개념) 그것의 인식론적 의의를 설 명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객관 세계와 지식 간의 관계. 탐구자로 서의 인간과 지식 간의 관계가 명확하게 그리고 통일적으로 설정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철학적 해석들은 무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 에 대한 어떤 외재적 해석도 거부하고, 과학적 탐구의 결과를 일상적 참homely true과 같은 의미에서의 〈참〉으로 받아들이며. 그에 대한 어 떤 인식론적 해석도 거부하는 철학적 미니멀리즘面rumalism이 NOA라 는 태도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기존의 실재론, 반실재론은 모두 일종의 형이상학적, 인식론적 팽창주의 inflationism에 빠져 있는 것이 다(Fine 1986, 171-173). 이런 논거를 통해 NOA는 실재론과 반실재론(도구론)을 동시에 부 정하는데. 그 때문인지 NOA에는 실재론과 도구론의 요소가 뒤섞여 있다. 얼핏 보아 파인이 참에 대해 취하는 입장은 실재론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음 문장을 주목해 보자. NOA가 우리에게 과학의 결과들을 참으로 받아들이도록 권고할 때, 나 는 우리가 참을 일상의 지시적 방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다. 즉 문장(또는 진술)은 지시되는 대상과 지시 관계에 놓일 때에 참이 明것이다. 그리하여 NOA는 일상의 지시적 의미론을 허용하며, 우리가
참으로 받아들이는 과학적 진술에 의하여 지시되는 개체, 성질, 관계, 과 정 등의 존재를 인정한다(Fine 1984a, 98). 한편 파인은 이론을 도구적 유용성에 의해서만 평가될 수 있다고 말하는 데서 다분히 도구론적이다. 물론 파인도 관찰 가능한 것과 불 가능한 것 간의 구분이 쉽지 않다고 인정한다. 그리하여 그러한 구분 울 전제치 않는 도구론의 유형을 시사하는데, 그것은 모든 존재자를 동등하게 다루며, 오직 도구적 신빙성에 의해서만 평가되는, 말하자면 실용론적으로 경사된 도구론의 입장이다. 〈도구론이란 관찰 가능한 것, 관찰 불가능한 것의 어느 편에도 특별한 의의를 부여치 않으면서, 탐구를 실용적 노선에서 일관되게 재해석하는 입장으로 생각하는 것 이 좋겠다.〉(Fine 1991, 85). 이러한 논의를 통해 파인은 어떤 선험적이고도 일반화된 인식론적 판단이 아니라, 과학이 자체의 기준에 의하여 과학 및 과학의 성과를 이해하는 것이 과학에 대해 가장 정당한 태도라고 주장한다. NOA는 우리로 하여금 과학이 제공하는 것이 사실상 우리의 철학적 요 구를 만족시킨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도록 고무한다. 그것은 우리 에게 우리가 과학을 진지하고도 개방적으로, 죽 어떤 철학적 학파나 관념 에 집착하지 않고 또한 과학을 기성의 철학적 엔진에 복속시키려는 의도 없이 접근할 때 [그것이 사실상] 문제를 철학적으로 탐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Fine 1984a, 177) . 그러나 파인의 입장은 논거에 비하여 지나치게 극단적인 듯하다. 파 인은 위의 인용문에서 과학의 문제와 철학의 문제를 구분치 않으려 하는데, 이에 유보 없이 동의하기는 어렵다. 물론 과학의 존재 주장에 대한 평가는 과학계, 과학자들의 세부적인 결정 메커니즘에 의해, 그 것과 더불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일반적인 철학적 논변이 그 문제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권리는 대단히 제한적이며. 그것은 우리 논의에서 확인된 결론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철학적 또는 인식론 적 문제 및 논의의 여지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과학자들이 나 름대로 신빙성 있는 기준에 따라 이론의 존재론적 함의를 평가하며. 철학자가 그것을 평가할 만한 별도의 초월적 기준을 마련하는 그런 위치에 있지 않다는 근대 이래의 자각으로부터 과학에 대한 철학적 논의의 불필요성을 단정하는 것은 여전히 지나쳐 보이기 때문이다. 라 우든은 우리의 지식을 개선하는 방법론의 문제. 올바른 지식을 구분해 내는 기준의 문제 등은 결코 중요성이 무시될 수 없는 평가적. 인식 론적 문제들이라고 지적한다(Laudan 1991, 134-135). 이 문제들에 어 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와 관련하여 여러 논의들이 가능하겠지 만. 어쨌든 간에 철학적 문제와 과학적 문제를 완전히 동일시하는 것 은 조심스러워야 할 듯하다. 이미 지적했듯이 파인은 실재론자들과 흡사한 〈참〉 개념을 말하면 서도 실재론을 거부한다. 이런 일견해서는 애매해 보이는 입장이 실재 론에 대하여 무엇을 알려 주는지에 관하여 생각해 보자. 파인에 따르 면 NOA와 실재론 간의 차이는 이런 것이다. …… 실재론자가 과학의 결과를 참으로 받아들이는 중심 입장에 대하여 추가하는 것은 무엇인가? .… •• 실재론자들이 추가하고 싶어하는 것은 그 것들이 정말 그렇다는 강조이다. … ••• [다시 말해서] 실재론자들은 그가 이 진리 주장 또는 존재 주장을 요컨대 실재-진실로 진실로 있는 것 ―에 대한 주장으로서 받아들인다는 그 의미를 설명하기를 원한다(Fine 1984a, 97). 참으로 미묘한 차이인데, 어쨌든 파인은 이 차이를 중요하게 여긴 다. 이 부분에서 실재론이 갖는 가장 본질적인 약점을 포착할 수 있 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파인의 실재론에 대한 불만은 전통적인 실재
론이 필연적으로 전제하는 외재적 external 관점의 가능성과 관련이 있 다. 우리들 인간에게 그러한 위치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며, 그것이 실 재론자들이 의거하는 진리 상응론 및 근사적 참의 이론이 봉착하는 난점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파인은 이를 간단히 〈접근 access〉의 문제 라고 이름짓고, 실재론자들이 전제하는 실재에의 접근이 실패할 수밖 에 없음을 상호 관련 reciprocity과 오염 contamination의 두 측면에서 지 적한다. 전통적으로 실재론자들은 우리의 인식(및 과학 지식)이 인식 독립적인 외부 세계에 대한 것이라는 주장을 기본으로 한다. 과학 이 론의 참에 대한 집요한 주장은 그 연장선에서 나타나는 것인데, 이에 대하여 파인은 우리의 존재론적/인식론적 여건상 이론의 참을 객관 세 계와 비교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반론한다. 우리가 인식 또는 지 각하는 것은 모두 우리와의 어떤 인과적 상호 작용에 의하여 이루어 진다는 점에서 우리와 독립적이지 않고(상호 관련의 문제), 우리가 그 러한 상호 작용으로부터 어떤 정보를 얻어 낸다 해도 그것은 이미 상 호 작용된 존재자에 대한 것이라는 점에서 객관 세계의 것 그대로가 아니기 때문이다(오염의 문제). 결국 우리는 세계에 대한 직접적 통로 룰 갖지 못하며, 실재론의 정당화도 궁극적으로 좌절하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Fine 1986, 150-151). 이러한 지적은 일리 있는 측면이 있으며, 이로부터 반실재론자들의 근본적인 직관의 하나를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인간은 세계에 대한 초월적 인식을 가질 수 없는 〈세계 내 존재〉로서 오직 특정한 한계 내에서만 세계를 인식하며, 따라서 우리가 파악한 세계는 우리에게 파 악된 세계일 뿐, 객관 세계의 진짜 모습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철학사에서 면면이 계승되어 온 여러 반실재론의 입장들, 관념론, 상 대주의 등의 사조들은 이러한 발상법과 멀리 있지 않을 듯하다. 그러 나 파인의 비판은 생각보다 통렬하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파인은 인간의 제한된 입지라는 반실재론적 통찰을 〈인과적 상호 작용〉이라는 개념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인과적 상호 작용과
그것이 야기하는 이른바 〈상호 관련〉의 문제는 과학적 실재론자에게 전혀 난점이 아니다. 파인이 말하는 상호 관련은 대상과 인식 주체 간의 인과적 관계이며, 그러한 관계가 있는 한 대상의 독립성은 불가 능하다는 주장인데, 이때의 독립성은 실재론자들이 말하는 독립성과 같지 않다. 실재론자들이 대상의 독립성을 말할 때, 그것은 논리적, 인 식적 독립성이지 결코 인과적, 존재론적 독립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과적 차원에서 독립적인 것이란 플라톤Platon의 이데아와 같은 추 상적 존재자일 것이며, 그런 것들은 과학적 실재론자들의 일차적인 관 심 사항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인간으로부터 인과적으로 독립적인 존 재는, 혹 있다 해도, 실재론자들에게는 전혀 관심거리가 아니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러한 존재는 우리가 접근할 수도, 알 수도 없는 존재이 기 때문이다. 그 존재자가 우리의 세계에 어떤 인과적 영향을 미치는 한, 과학의 적법한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대상의 실재론적 독립성이란 그것이 비정신적인 것이며, 우리가 창조한 것이 아니고, 우리의 인식 행위와 무관히 존재한다는 의미일 뿐이며, 우리 가 인과적으로 접근할 수 없다는 뜻일 수 없다. 같은 이유에서 〈오염의 문제〉 또한 과장된 것이다. 상호 작용된 대 상은 상호 작용되었다는 의미에서 대상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 그 내 용의 핵심인데, 이 말의 진짜 의미는 아마도 측정(장치)에 의한 어떤 〈굴절〉을 염두에 둘 때 분명해진다. 어떤 대상에 대한 정보도 그것과 의 인과 관계를 통해 얻어지며, 그럴 경우 그 정보는 측정의 제반 과 정, 궁극적으로는 인간 유기체의 생물학적 메커니즘에 의하여 〈굴절〉 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로부터 우리의 지식이 대상 자체에 대한 것일 수 없다고 추론하며, 그리하여 실재론은 부당하다고 말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왜냐 하면 실재론자들에게 과학(지식) 이란 대상과 인간의 인과적 연관과 그에 수반되는 굴절의 내용까지를 감안하여 사실적으로 해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지적한 바 있 듯이, 우리의 감각 지각이란 일차적으로 대상의 속성과 감각 속성이
연합하여 산출하는. 대상에 대한 복합적인 정보이다. 그 정보는 당연 히 대상을 모사적으로 반영하지 않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상에 대 한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건전한 실재론자는 인과적 연관에 의한 굴절을 부 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굴절을 타당한 실재론을 위한 현실적 제약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실재론에 대한 파인의 비판 은 퍼트남이 이름했던 〈형이상학적 실재론〉, 즉 객관 세계에 대한 신 적 관점 God's point of view울 전제 하며, 따라서 세 계 에 대 한 단 하나 의 참인 이론이 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에 대한 비판일 수 있지만, 과 학적 실재론에 대한 비판이 되지는 못한다.26)
26) 이런 접에서 퍼트남과 파인은 동일한 논접을 제시하고 있다. 양자는 공히 세계 에 하나의 참된 인식이 가능하다는 철학적 주장에 대하여 그 부당한 인식론적 자 부심 또는 환상을 비판하려 한다. 퍼트남이 집합론적 논증에 의거하여 진리 상응론 의 비판에 집중하는 반면 파인은 인식론적, 과학철학적으로 정위된 논변에 관심을 둔다는 점이 차이다. 퍼트남의 입장에 대해서는 참조 : Putnam(l98l) chs.l-3.
이제 파안의 논의를 통해 우리가 알게 된 것을 정리해 보자. 좋은 교훈은 이런 것들이다. 종래 실재론/반실재론의 실패는 과학의 내부적 결정에 어떤 여지를 남기지 않는 철학적 전횡의 한계일 수 있다는 것, 또 하나는 올바른 실재론은 대상과 인식 주체와의 인과적 연관을 수 용하는 형태이어야 한다는 것. 이 글에서 암암리에 지지되던 실재론은 이 교훈을 외면하고 있지 않다. 구체적인 실재 확인에 있어서 인과적 추론 및 실험의 의의를 강조함으로써 우리의 실재론은 과학자들의 국 지적 판단이 작용할 여지를 열어 놓고 있다. 또한 반 프라센식의 자 의적인 관찰 가능 영역의 한정을 거부함으로써 우리의 실재론은 지각 을 철저히 대상과 우리 관찰자 간의 인과적 관계의 산물로 여긴다. 이 글이 여러 반실재론의 반박에 대하여 고수하려 했던 실재론이란 결국 지식, 세계, 탐구에 대한 다음과 같은 관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현상 배후에 놓여 있는 자연을 탐구할 수 있고 세계에 대하여 이론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앎은 언제나 특정의 제한 된 관점에서만 가능하다. 우리 자신이 세계의 일부분이며, 우리는 언 제나 그 부분의 자리에서 전체를 알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앎이 벗 어날 수 없는 오류 가능성은 거기서 비롯된다. 오류 가능성의 근원적 제약 위에서 우리가 성취한 것이 과학이며, 과학의 인식적, 실용적 탁 월성은 우리가 인간에게 부여되어 있는 제약에 성공적으로 대처해 가 고 있다는 탁월한(또는 인식론적으로 믿을 만한) 증거이다. 이러한 직관을 부인할 수 있는 결정적인 반박이 아직은 제시되지 않았다는 것이, 여전히 실재론은 옹호될 수 있으며, 옹호될 가치가 있 다고 판단하는 〈철학적〉 이유다. 실재론자에게 과학이라는 과업의 목 표는 세계의 존재자들 및 그 작동 방식에 대한 기술적, 설명적 물음 에 대하여 답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현상 배후에 놓여 있는〉 실재적 존재자나 과정을 상정하는 것이 금지된다면, 우리 는 현상적 경험의 인과적 발생에 대한 엄격한 자연주의적 설명을 전 개할 기회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참고문헌 조인래 (1994), r이론 미결정성의 도그마?」, 《철학》 42. Black, M. (1955 ) , Metaphor rp. in Philosophical Perspectives on Metaphor, (M. Johnson, ed.), Minnesota U.P. 1981. Boyd, R. (1979 ) , Metaphor and theory change, in Metaphor and Thought, (A. Orthony. ed.) , Cambridge U.P. Boyd, R. (1983 ) , On the current starus of the issue of scientific realism, in Scientific realism,(J. Leplin ed.), California U.P. 1984. Cartwright, N. ( 1983), How the Laws of Physics Lie. Oxford. Clarendon. Churchland, P. M. (1979), Scientific Realism and the Placiticity of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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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과학의 합리성 신중섭*
* 강원대학교 윤리교육학과 교수.
1 인간과 합리성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인간을 로고스logos를 가진 생물이라 정 의했다. 서양 철학의 전통에서 이 정의는 인간은 이성적 또는 합리적 동물이라는 형식으로 정형화되었다.1) 그런데 인간이 자기 자신을 〈합 리적 동물이다〉라고 정의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인간은 〈인간이 무엇 이다〉라는 정의를 통해 인간을 다른 존재와 구별하고, 인간 자신에 대해서는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규제적 이념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 이다. 그리고 이 정의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인간들은 참다운 인간이 아니며, 그러한 인간들은 이 정의를 충족시키는 〈나〉 또는 〈우리〉와 구별될 뿐만 아니라 열등하다는 가치 판단을 함축하기도 한다. 〈문화
1) 로고스는 이성. 사유의 의미 외에도 일차적으로 언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인간은 로고스적 동물이라는 정의는 이성적 사유와 언어 사이에 특별한 연관이 있음을 암 시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 이영철 「이해와 합리성』(1998). 그러나 이 글에서는 이러한 연관에는 주목하지 않고 인간이 왜 자기 자신을 어떤 방식으로 규정하는가. 합리성과 관련하여 합리적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에 주목 하려고 한다.
인〉과 〈미개인〉, 〈중화인〉과 〈오랑캐〉라는 규정은 〈구별을 통한 차별 화〉를 내포하고 있다. 〈구별짓기와 차별하기〉는 인간의 고유한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나아가 인간의 합리적 사고의 산물인 〈참다운 지식〉 을 찾아 내어 〈진리〉와 〈거짓〉을 구별하고, 진리에 따라 행동하는 것 이 인간의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하였다. 인간은 〈합리적 동물〉이라 하지만, 항상 합리적으로 사고하거나 행 동하는 것은 아니다. 성직자가 자신이 신봉하는 종교의 가르침과 어긋 나는 행동을 하듯이 인간은 비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도 한다. 인간은 증거와 논리에 따라 행동하기도 하지만, 감정이나 편견에 쉽게 좌우되기도 한다. 만일 인간이 항상 합리적으로만 행동한다면 합리성에 대한 논의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합리적이다〉라는 말은 인간 의 본성에 대한 사실적인 기술이 아니라, 〈인간은 합리적이어야 한다〉 라는 강한 규범적 주장을 함축한다. 곧 인간은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잠재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비합리적인 요소를 통제하 고, 그 능력을 성공적으로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합리적 동물임을 인정하다고 할지라도 어떤 사유나 행동이 합리적이며, 어떤 지식이 합리적인가 하는 것에 대한 판단은 역사적으 로 변천해 왔다. 따라서 우리는 〈합리성〉을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해 야만한다. 1.1 합리성의 정의와 과학의 합리성 오늘날 〈합리성〉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합리성은 인간의 사고 행위와 관련이 있다. 〈P와 P가 아닌 것을 동시에 긍정하는 것은 비합 리적이다〉라는 문장에서와 같이 〈합리성〉은 〈논리적 일관성〉을 의미 하기도 하고, 의사 결정 이론에서는 행위자들이 의도한 목적을 달성하 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행위의 과정과 관련하여 〈합리성〉
을 말하기도 한다. 베르그스트룀 Bergstrom(1980, 1-11)은 〈방법론적 규칙들〉, 〈효용의 극대화〉. 〈주관적 효용의 극대화〉. 〈행위에 대한 충 분한 이유〉. 〈타당한 목적들〉. 〈잘 준비된 선택들〉과 연관지어 합리성 을 논의하기도 하였다. 합리성은 사고의 결과인 지식과도 관련이 있다. 합리성을 어떤 의미 로 해석하든 〈합리성〉은 참다운 지식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조건이 라는 생각은 철학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합리적인 지식의 범형 이 무엇인가에 대한 규정은 역사적으로 달랐지만, 적어도 근대 과학의 출현 이후 합리성에 대한 합의에 도달하였다. 곧 과학적 지식은 합리 적 지식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형성되었다. 우리는 과학과 과학자들의 행동이 합리적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사 람들은 합리성과 관련하여 과학과 경쟁하여 이길 수 있는 분야는 없 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과학의 합리성은 모든 합리성의 전형이며, 다 른 분야도 과학의 합리성을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학적 사고가 합리적 사고의 척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학이 합리적이라고 믿지만 왜 합리적인가를 설명하는 것 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을 설명하는, 즉 과학의 합리성에 대한 논 의는 과학철학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과학의 합리성을 밝히는 문제는 과학의 본성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이전에는 〈과학의 합리성〉 문제는 과학철학의 독립된 주 제는 아니었다. 논리경험주의와 반증주의는 합리성에 대한 논의를 정 당화의 문제를 중심으로, 이론과 경험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전개하 였다. 조인래(1996b, 1)도 지적하였듯이 논리경험주의자들에 따르면 〈어떤 과학적 신념은, 그 신념이 중립적인 관찰을 토대로 하여 그것 의 경험적 내용이 적합하다고 믿을 좋은 이유가 있다면, 합리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과학의 합리성은 과학 이론의 합리성과 동일시되었다. 〈과학이 합리적이다〉라는 사실을 과학 이론의 정당화, 과학의 방법,
관찰의 객관성에서 논리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다. 정당화의 맥락 과학의 방법, 관찰에는 우리의 주관적 요소가 개입 될 수 없기 때문에 과학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과학의 합리성을 규칙에 따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객관적이라 함은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다는 것을 의 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수는 객관적이다. 예를 들어 100이라는 숫자 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기 때문에 객관적이다. 수와 달리 감정이나 고통이나 욕망은 주관적이다. 수가 객관적이듯이 과학이 객관적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믿었던 것이댜 적어도 과학적인 지식이나 과학과 관련 된 과학자의 활동에는 주관적인 요소가 개입될 수 없으며, 과학적 지 식의 정당화, 과학의 방법, 관찰 언명은 수가 객관적이듯이 객관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엄밀히 따지면 객관성과 합리성은 구별되는 개념이다. 객관성 은 과학이 실재 또는 자연에 대한 충실한 기술이며, 인식 주체가 대 상에 주관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과 연관이 있다. 전통적으 로 과학의 객관성은 정당화의 문제와 관련을 맺고 있다. 반면에 합리 성은 지식뿐만 아니라 인간의 행위과 관련이 있는 개념이다. 과학 이론인 전칭 명제와 관찰 보고 명제인 단칭 언명 사이의 관계 에 주목한 과학적 지식의 정당화 프로그램은 〈이론적재적 관찰 theory-laden observation>,〈이론의 미결정성〉, 〈공약불가능성〉의 테제 에 의해 강한 도전을 받고 위기에 봉착하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과 학철학자들의 관심의 초점은 과학의 역동적인 측면, 곧 과학 혁명과 과학자들이 이론을 선택하는 과정으로 옮아갔다. 〈과학자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이는 것은 일종의 개종이다.〉라는 쿤T.Kuhn의 폭 탄 선언은 〈과학의 합리성〉을 과학철학의 핵심적인 주제로 만들었다. 쿤은 합리성이 논의되는 맥락을 이론과 경험의 관계에 대한 논의에서 과학자들이 패러다임을 선택하는 과정에 대한 분석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는 이전에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과학의 진보, 연속성의 개 념을 부정하고 패러다임 사이의 불연속성과 패러다임의 선택은 규칙 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혁명적인 주장을 함으로써 합리주의 대 상대주의 논쟁을 몰고 왔다. 이론 선택의 문제를 둘러싼 합리성의 논 의는 합리성이 논의되는 맥락을 과학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과학자 들의 의사 결정의 합리성으로 이동하였다. 쿤의 주장은 〈과학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주요 과제로 삼은 전통 적 과학철학을 위기에 빠뜨린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철학 내부에서 자명한 것으로 여겨졌던 과학의 본질에 대한 합의는 무너지고 지금까지 새로운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전통적인 과학철학〉2)에서 과 학, 진리, 객관성, 합리성, 진보라는 개념들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개 념으로 간주되었다. 이에 도전하는 〈새로운 과학철학〉은 이러한 개념 들을 새롭게 정의하거나 재해석함으로써 과학에 대한 통념을 무너뜨 리거나 과학철학 자체를 해체하려고 한다.
2) 헴펠C.Hempel은 비엔나 서클과 베를린 그룹의 논리경험주의와 포퍼K.Popper, 브레이트웨이트Braithwaite, 네이글T. Nagel과 같은 과학철학자들을
로티 R. Rorty는 〈객관성〉을 〈연대〉로 대치하여 〈연대로서의 과학〉 울 이야기하면서, 전통적인 과학철학을 해체하려고 한다. 그는 실재에 대한 정확한 표상으로서의 진리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쿤의 과학관을 폭넓게 수용하면서도 더 이상 과학울 합리성의 모범으로 보 지 않는다. 이 점에서 여전히 과학의 합리성을 옹호하려고 한 쿤과는
일단 구별된다. 전통적인 과학철학자들은 새로운 과학철학을 〈상대주의〉로 규정하 고 혹독하게 비판하였다. 그들이 쿤이나 로티에게 이름붙인 〈상대주의〉 는 어떤 입장에 대한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그 개념 속에는 경멸의 의미. 매도의 의도. 욕설의 의도가 내재해 있다. 쿤과 로티가 자신들은 〈상대주의자〉가 아니라고 끈질기게 해명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맥락에서 그들은 〈본의 아닌 혁명가reluctant revolutionary〉3)이다.
3) 포퍼는 〈본의 아닌 혁명가〉라는 개념을 다윈C.Darwin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사 용하였다. K. Popper(l970), Nonna! Science and its Dangers, I. Lakatos and A. Musgrave(eds.), Criticism and the Growth of Knowledge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p.54. 호건 J. Horgan은 쿤을 가리켜 이 개념을 사용 하였다. John H_organ(l991), Profile: Reluctant Revolutionary: Thomas S. Kuhn 血leashed'paradigm' on the world, Scientific American, May 1991, pp. 14-15.
최근에 과학의 합리성을 둘러싸고 과학철학자들은 열띤 논쟁을 벌여 왔다. 포퍼 K. Popper. 라카토슈 I. Lakatos` 쿤, 파이어아벤트P. Feyerabent, 라우든L.Laudan, 로티 등 많은 철학자들이 이 논쟁에 관여하였지만, 과학의 합리성에 대한 뚜렷한 합의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그것은 이들 이 상대방을 비합리주의자 또는 상대주의자로 정죄하면서도 그들이 생 각하고 있는 합리성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들은 각기 싱이한 합리성의 개념을 서용하고 있다. 라카토슈는 쿤을 〈군중 심리학〉을 옹호한다는 이유로 비합리주의자로 못박아 비판하는가 하면, 쿤은 〈나는 바합리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변명한다. 이들이 사용하고 있 는 합리성의 기준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일어난 혼란이다. 포퍼나 라카 토슈의 관점에서 보면 분명히 쿤은 비합리주의자이지만, 쿤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실제 과학과 거리가 먼 합리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의 합리성은 과학의 목적, 비교 대상이 되는 패러다임 또는 연 구 전통 사이의 관계, 비교의 기준과 그 기준의 성격, 선택의 기준을 적용하는 문제, 선택된 패러다임의 인식론적 성격과 같은 여러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합리성을 이론과 이론의 관계 또는 이론과 세계의 관계에서 확보하려고 하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과학자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찾으려는 입장도 있다. 이 글은 과학에서 이론 선택의 합리성을 중심으로 영향력 있는 입장을 개괄하 고, 이 입장들이 안고 있는 난점을 살펴보고 대안적인 논의를 모색하 려고 한다. 우선 논리경험주의와 반증주의의 합리성에 대한 논의를 살 펴보고, 이들의 입장과는 구별되는 맥락에서 합리성의 논의를 제기한 쿤 라카토슈, 라우든, 로티의 합리성에 대한 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 하고, 과학과 과학철학과의 관계를 다시 살펴봄으로써 논자의 입장을 개진하려고 한다. 2 논리경험주의의 합리성과 그에 대한 도전 이론 선택과 관련하여 보편적 기준에 근거하여 과학의 진보를 평가 할 수 있다고 보는 논리경험주의자들은 과학의 합리성을, 〈실재〉, 〈객관성〉, 〈보편성〉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고 있다. 그들은 유의미한 명제와 무의미한 명제를 구별하는 기준과 합리성을 같은 맥락에서 이 해한댜 그들의 합리주의는 경합 관계에 있는 이론의 상대적 장점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하고, 비역사적안 보편적 기준이 존재한다는 전제 를 가지고 있다. 논리경험주의자들은 이론이 사실에서 얻는 지지도를 보편적 기준으로 설정하였다. 논리경험주의자들에 의하면 과학의 합리성은 논리의 형식을 띠고 있다. 따라서 과학의 합리성은 형식적이다. 귀납 논리가 경험 과학의 근거가 된다고 믿은 카르납R.Camap과 헴펠C.Hemple은 과학의 합리 성을 귀납 논리를 적용하는 문제와 동일시하였다. 헴펠(1965, 10)은 순수히 논리적인 방법으로 가설과 증거 사이의 관계를 입증 또는 불 입증의 개념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입증의 기준은 〈가설의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합리성 울 옹호하는 철학자들의 기본 입장은 셰풀러 I.Scheffler(1982, 9-10)의 다음과 같은 언급에 명확하게 나타나 있다. 이론의 역사적 변화의 기저에는 …… 논리와 방법이 지속적으로 존재한 다. 이러한 방법이 그 과학의 시대와 그 이전 과학의 시대를 하나로 연결 시켜 준다. 이러한 지속성은 형식적 연역 논리의 기준뿐만 아니라 가설이 경험에 의해 테스트되기 위해서 필요한 기준과 비교에 의해 평가하기 위 해서 필요한 기준을 포함한다. 그들은 항구적인 합리성의 기준을 탐구하였다. 그들은 자연법을 믿 는 사람들과 같이 합리성의 기준이 보편적이고 불변적이라고 믿는다. 자연법론자들이 〈자연과 일치하는 하나의 법. 올바른 이성이 실제로 존재한다. 그것은 모든 것 속에 존재하며. 불변적이고 영원하다. …… 그것은 로마에서 이렇고 아테네에서 저런 것이 아니다. …… 그것은 모든 나라와 모든 시대에 대해서 영원하고 불변적이다.〉(Cicero, 1829) 라고 믿듯이 그들은 합리성의 기준에 대해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과학철학의 중심 문제를 〈정당화의 문제〉로 이해하였다. 전 통적인 과학철학은 증거와 이론의 관계를 중심으로, 과학 이론이 증거 에 의해 검증될 수 있거나. 입증될 수 있거나. 반증될 수 있기 때문에 과학은 정당화된 지식이며. 합리적인 지식이라고 보았다. 여기에서 증거 구실을 하는 관찰 언명은 객관적이며. 이론과 논리적 관계를 맺는다. 중거와 논리가 과학의 합리성을 보장한다고 믿었다. 조인래(1996a, 155)도 지적하였듯이 논리경험주의자들은 과학적 추론 의 논리성과 경험적 기초가 과학의 합리성을 보장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경험적 기초는 이론 독립적인 것으로 이론 평가를 위해 객관 적이고 중립적인 토대를 제공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물론 여기에서 는 합리성을 중심으로 이러한 논의가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뒤에 합
리성 논쟁이 일어나면서 〈정당화의 논리〉를 과학의 합리성의 논리로 재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 입장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주장들이 나 타났다. 핸슨N.Hanson이 발전시킨 관찰 언명은 〈이론적재적〉이기 때문에 관찰 언명에 의해 이론이 지지될 수 없다는 〈이론적재적 관찰〉 논제 와 논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증거만으로는 이론들 사이의 차별화가 가능하지 않다〉는 콰인 W. Quine의 이론 미결정성의 논제는 전통적 인 합리성의 기초를 결정적으로 반박하였다. 이 두 논제는 과학의 합리성을 위협하고, 상대주의를 정당화해 준다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 주었다. 어떤 철학자들은 성급하게 전통적인 과학철학의 파산을 선고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문제가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다. 포퍼와 조인래4)는 이 테제 4) 조인래는 이론 미결정성 논제의 도그마적 성격을 부각시켜, 상대주의의 주요한 철학적 기반으로 간주되어 온 미결정성 논제가 갖는 설득력과 과학 이론 선택과 관련된 상대주의의 입지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경쟁 이론들 사이의 증거적 차별화가 가능하지 않다는 미결정성 논제는 과학의 합 리성에 대한 전통적인 입장을 비판하는 논거로 사용되었다. 미결정성 논제는 경험과 무관하게 이론 선택이 이루어진다는 주장이 아니라 이론이 논리적으로 경험에 의해서 만 결정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하여 조인래는 다음과 같은 분석을 하였다. (1) 증거에 의한 이론간 차별화가 가능하지 않다. (2) 증거에 의한 이론간 차별화가 가능하지 않다면. 이론 선택은 이해 등과 같은 비증거적 또는 비인식적 요소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 (3) 그런데 이러한 요소들은 그 성격상 과학자 개인 또는 공동체에 상대적이다. (4) 따라서, 이론 선택은 불가피하게 과학자 개인 또는 공동체에 상대적이 된다. 위의 분석에 잘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경험의 동등성(EE)에 근거한 이론의 미 결정성은 상대주의적 주장을 지지하는 철학적 논거로 이용되어 왔다. 그러나 (EE) 는 이론의 경험적 내용이 불확정적이기 때문에 이론간에 강한 경험적 동등성이 성 립할 수 없으며. 이론간의 경험적 동등성에 대한 주장이 그 현실성을 결여하고 있 으며, (EE)가 성립하든 하지 않든, 두 경쟁 이론간에 증거상의 동등성이 성립함을 입증할 수 있는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작기 때문에. 상대주의는 그 성립 근거의 중
요한 일부를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 조인래의 진단이다. 참조: 조인래(1994, 133-134), 앞의 논문.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과학자들은 실제로 필요한 때에 이론 선택 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합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보편적인 방법론적 규 법을 따라 이론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도덕을 지키지 않 으면 그들을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과학철학자들이 제시한 규법을 어기 고 비중거적 요소에 근거하여 이론 선택을 한 과학자들은 비과학적 또는 비합리적 으로 행동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해 포퍼는 과학자들이 비합리적이라 하 고, 쿤은 철학자들이 잘못 설명하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누구의 주장이 옳은가? 5) 증거의 객관성을 부정하는 〈이론적재적 관찰〉 논제가 과학의 객관성이나 합리성 의 부정을 논리적으로 함축하는 것은 아니다. 포퍼의 경우를 살펴보자. 그는 〈이론 적재적 관찰〉 논제를 받아들이면서도 과학은 객관적이며 합리적이라는 주장을 하 고 있다. 그는 전통적 입장과 달리 〈자연 과학은 단순히 ‘사실의 덩어리'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자연과학에서도 사실을 수집하는 과정은 관점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여 기서 말하는 관점은 과학 이론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가 다양한 사실들 중에서 어 떤 사실을 수집하는가는 우리가 사전에 가지고 있는 과학 이론의 영향을 받는다. 과학에서 사실에 대한 서술은 이론 의존적이며, 선택적이다. 이러한 상황을 설명 하기 위해 포퍼는 〈양동이 마음의 이론〉과 구별되는 〈탐조등 과학론〉을 이야기한 다. 탐조등을 통해 무엇을 볼 수 있는가는 탐조등의 위치, 탐조등의 방향, 탐조등의 밝기. 색깔의 영향을 받는다. 물론 탐조등 빛을 받는 사물이 무엇이냐도 중요하다. 과학에서의 서술은 우리의 관점. 관심에 의존한다. 과학자는 관점을 통해 작업 가 설을 형성한다. 포퍼는 이 작업 가설은 우리가 사실을 선택하여 조직하는 것을 돕 는 참정적 가설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그가 이론과 사실의 관계가 단순히 순환 논증이라는 입장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이론을 테스트하는 과정에서 이론을 지지해 주는 사실만을 수 집하는 것도 아니고. 이론을 단순히 반복하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에 의 하면 이론은 사실의 도전을 받는다. 그러한 도전을 견디어 낼 때에만 이론은 잠정 적으로 살아남는다. 이론에 대한 실험은 그 이론으로부터 도출된 예측을 반증하려
를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극단적인 상대주의를 옹호하는 근거가 상당 부분 약화될 수 있다고 믿는다. 포퍼는 〈이론적재적 관찰〉 테제 를 받아들이면서도 과학에서 관찰이 합리성과 관련하여 중요한 역할 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5) 나아가 그는 이론 미결정성의 논제도 〈배
는 시도이다. 그는 관찰이 이론적재적이지만 이론은 관찰에 의해 테스트될 수 있다 는 입장은 유지될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론의 실험 가능성. 축 이론의 과학성을 구성하는 것은 그 이론을 전복할 수 있는 가능성. 또는 그 아론의 반증가 능성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관찰의 이론적재성과 과학의 합리성과 객관성은 모순 관계에 있지 않다는 것이 포퍼의 기본 입장이다.
경 지식〉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극복하려고 하였다. 포퍼의 합리성 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자. 2.1 비판으로서 합리성 : 포퍼 포퍼는 모든 지식은 가설적이거나 추측적이라고 주장한다. 과학적인 지식은 우리가 범한 잘못에서 배움으로써 성장한다. 그는 과학의 고유 한 특성을 그것의 성장과 진보에서 찾는다. 과학의 끊임없는 성장이 과학적인 지식의 합리적이고 경험적인 성격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 는 과학이 성장을 멈춘다면 과학은 과학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과학에 합리성과 경험성을 부여하는 것은 바로 과학의 성장이 다. 그에 의하면 기존의 과학 이론이 전복되고 새로운 과학 이론이 그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과학은 성장한다.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실험과 관찰이다. 실 험과 관찰을 통해 과학 이론을 테스트하고,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이론은 새로운 이론에 자리를 내어 줌으로써 과학은 진보한다. 과학의 진보는 객관적 지식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고 진리에 접근하는 것이다. 우리는 진보의 기준을 객관적 진리와 관련하여 확보할 수 있기 떄문 에 이론들 가운데 선택하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이론 선택의 합리적 기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 포 퍼의 합리성 이론의 핵심이다(Popper, 1963, 215-217). 그는 〈이론들이 가지고 있는 테스트 가능성의 정도 또는 경험적 내용 또는 설명력의 정도의 비교에 기초한 진보와 합리성의 기준〉(1963, 248)을 제시함으
로써 과학의 합리성을 확보하려고 하였다. 포퍼는 진보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과 이론 선택의 합리적 기준을 같은 것으로 본다. 쿤의 『과 학 혁명의 구조』에 대한 포퍼의 대응은 바로 이 기준을 확대 적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포퍼의 합리성 이론을 뒷받침하고 있는 그의 오류 가능주의적 과학 관은 확실성의 부정에서 출발한다. 과학 이론은 확실하지 않으며. 이 론을 테스트하는 〈기초 진술〉도 확실성을 확보할 수 없다. 그는 〈과 학에서 독재주의는 과학 이론을 확립하려는 생각, 곧 증명하거나 검증 하려는 생각과 관련을 맺고 있다. 비판적 접근은 과학의 가설을 테스 트하려는 생각, 말하자면 반박하거나 반증하려는 생각과 관련을 맺고 있다.〉 ( 1994, 94) 라고 말한다. 포퍼가 내세우는 오류 가능주의의 핵심은 비판이다. 그는 정당화주 의적인 전략을 취하지 않는다. 그는 가설을 증명하거나 정당화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정당화는 완전할 수 없으며 과학은 확실성에 도달 할 수 없다고 본다. 따라서 과학자는 자신의 가설이 안고 있는 오류 를 찾아 내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에 있어서 과학의 방법은 시행착오, 추측과 가설, 오류의 발견과 제거의 방법이다. 추측 자체는 합리적이 아니다. 과학의 합리성은 오 류를 발견하고 제거하는 방법에 있다. 이 방법에서 논리적 논증, 곧 반증은 결정적이다. 추측으로서 가설에서 논리적 과정을 통해 그 추측 이 안고 있는 오류를 제거할 수 있다. 논리적 과정에 의해 그 가설이 거짓임이 밝혀진다. 합리적인 절차는 과학의 생명과 같다. 모험을 수반한다. 모험이 없 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이 과정을 통해 과학은 성장하고 진보 한댜 포퍼는 과학에서 이론이 대치되는 과정은 이러한 의미에서 합리 적이며, 진보의 기준에 따라 이론 사이의 우열은 판단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론의 대치, 곧 이론 Tl이 이론 T2로 대치되는 과정, 과학자들이
이론 Tl을 버리고 이론 T2를 선택하는 과정은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포퍼는 생각한다. 새로운 T2는 이전의 이론 Tl보다 진보하고 성장한 이론이며, 우리는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보편적 기준을 가지 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과학에서의 이론 전환은 〈원리적으로 새로운 이론이 그것의 선행 이론보다 더 좋은 이론인가 아닌가를 합 리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합리적이다.〉(1994, 12) 나아가 우리는 〈한 이론의 질을 그것의 선행 이론과 비교해서 판단할 수 있 는 기준을 가지고 있다.〉(1994, 12)고 포퍼는 말한다. 그는 이러한 주 장을 과학 혁명에도 그대로 적용한다. 포퍼는 과학 혁명은 〈진보에 대한 두 가지 합리적인 기준〉(1994, 8-9)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 혁명과 구별된다고 본다. 두 가지 기준은 Tl과 T2가 모순되어야 한다는 것과, T2가 Tl이 성공적으로 설 명한 현상을 모두 설명하고 나아가 다른 현상도 설명해야 한다는 것 이다. 첫째 기준은 논리적 관점에서 새로운 이론이 선행 이론을 전복시켜 야 하기 때문에 그것과 모순되어야 한다는 조건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과학은 항상 혁명적이다. 둘째 기준은 과학의 진보가 혁명적으로 이루 어진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이론은 선행 이론이 성공적으로 설명한 현 상을 모두 다 설명할 뿐만 아니라, 선행 이론이 설명하지 못했던 새 로운 사실까지도 설명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포퍼는 이 기준을 다음 (1963, 232)과 같이 바꾸어 표현하였다. 이론 T2의 경험적인 내용이 이론 Tl의 경험적인 내용을 앞지를 때, 이 론 T2가 이론 Tl보다 더 엄밀한 주장을 하거나 더 많은 사실을 설명하고 기술할 때…… 이론 T2가 이론 Tl보다 더 잘 사실과 일치할 때, 이론 T2 가 이론 Tl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과학의 이론 선택에서 합리성은 새로운 이론이 그것의 선행 이론보
다 인식론적으로 더 좋기 때문에 우리는 그 이론을 선택한다는 사실 에 있다는 것이다. 이론 T2가 Tl보다 인식론적으로 더 좋다는 말의 의미는 〈경험적인 내용이 풍부하다〉, 〈더 엄밀한 테스트를 견디어 낸 다〉, 〈진리에 더 접근한다〉는 것이다. 그는 합리성은 과학적 지식의 성장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그는 합리성과 진보의 관 계를 다음(1963, 248)과 같이 설명한다. 낡은 철학은 합리성의 이념을 논증될 수 있는 최종적인 지식과 결합시 켰다.…… 반면에 나는 합리성을 추측적인 지식의 성장과 연결시켰다. 이 것 자체를 진리로 향한 점진적 접근이라는 개념 또는 증가하는 진리 접근 성(truthlikeness 또는 verisimilitude)과 결합시켰다. 이러한 입장에 따르면 과학자가 목적으로 하는 것은 진리에 접점 더 가까이 가는 것이다. 과학 의 목적은 더 많은 것을 아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이론의 내용의 성장, 세계에 대한 우리 지식의 성장을 포함한다. 포퍼는 과학의 진보를 과학이 진리예 점점 더 가까이 접근한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진보〉는 규범적이고 목적에 대해 상대적인 개념이 기 때문에 자연적이고 기술적인 용어인 〈변화〉나 〈전개〉라는 개념과 는 구별된디Q 목적을 무엇으로 설정하는가에 따라 합리성의 이론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포퍼는 과학의 목적은 사실과 일치하는 객관적인 이론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과학의 목적인 사실과 일치하는 객관적 의미 에서의 진리를 구름에 가려져 있는 산정(山頂)에 비유한다. 등산가들 은 산봉우리들이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산정과 다른 산 봉우리들을 구별할 수 없으므로 산정에 도달했는가 도달하지 못했는 가를 알 수 없지만, 산정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6) 〈진보〉의 의미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 Niiniluoto (1987).
않는댜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진리에 얼마나 가까이 갔는지를 알 수 없지만 객관적 진리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다. 포퍼가 객관적 진리와 과학의 합리성을 끊임없이 옹호하는 까닭은 그것이 인간의 삶과 관련하여 대단히 중요한 함축을 갖기 때문이다. 2.1.1 포퍼의 상대주의 비판 과학의 합리성과 관련하여 전통적인 입장을 가장 선명하게 대변하 고 있는 포퍼는 상대주의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다. 쿤에 대한 포퍼 의 비판적 평가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다. 쿤에 대한 그의 비판은 〈정상 과학〉과 〈공약불가능성〉의 테제를 향하고 있다. 그는 이 테제 가 과학의 본질적인 특징인 〈비판〉의 가능성을 부정한다고 보고 있다. 포퍼(1994, 33)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날 학계에 나타나고 있는 대단히 당혹스러운 특징 가운데 하나는 비합리주의가 폭넓게 지지되고 있다는 것과 비합리주의자들의 주장들이 당연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 생각으로는 현대 비합리주의를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상대주의(진리는 우리의 지적 배경 또는 틀framework에 상대적이라는 주장이다. 달리 말하면 조리는 구조가 바뀌 면 변한다는 주장이다)이며. 특히 상이한 문화. 세대, 역사적 시기 사이에 는 상호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원리이다. 포퍼는 비합리주의의 배후에 〈틀의 신화〉가 존재한다고 보고` 이 신 화를 비판한다. 그는 이 신화를 만들어 낸 사람으로 콰인과 쿤 등을 지목한다. 포퍼는 상대주의를 뒷받침해 주는 쿤의 공약불가능성의 테 제는 〈참여자들이 기본 가정들에 대한 공통의 구조를 공유하고 있지 않다면 또는 적어도 그들이 토론을 위하여 그러한 구조에 동의하고 있지 않다면,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토론은 불가능하다〉(1994, 34-35) 는 입장, 곧 〈구조의 신화〉를 결과하기 때문에 〈지식의 죽음〉에 귀착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구조의 신화〉는 인류의 통합을 위태 롭게 할 뿐만 아니라 폭력과 전쟁 가능성을 증대시킨다. 왜냐 하면 이러한 입장은 〈칼에 의한 전쟁〉을 종식시키고 〈말에 의한 전 쟁〉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더 살 만하고 평화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준 토론과 논증과 상호 비판의 가능성을 허용하지 않 기 때문이다(1994, 35). 과학을 옹호하든 과학을 비판하든 대부분의 과학철학자들은 과학의 지위와 관련된 문제들이 정치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 는다• 다만 과학을 옹호하는 과학철학자들은 과학을 사이비 과학과 구 별할 수 있는 선명한 기준을 발견함으로써 인간 정신을 비이성적인 경향으로부터 보호하려고 하는 반면. 반대 입장에 선 사람들은 과학의 역사적 상대성을 밝힘으로써 과학에 대한 맹신이나 과학 중심의 문화 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을 갖게 함으로써 인간 정신을 자유롭게 하려 고 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전자의 입장에 서 있는 라카 토슈(1978, 6-7)는 과학과 비과학의 구획 기준이 갖는 윤리적. 정치적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과학과 사이비 과학 사이의 구획 기준의 문제는…… 비판의 제도화에 대해서도 중대한 함축을 갖는다. 카톨릭 교회는 1616년 코페르니쿠스 Copernicus 이론을 그것이 사이비 과학이라는 이유로 금지했다. 카톨릭 교회는 1820년이 되어서야 그의 이론을, 그것이 사실에 의해 증명되어 과 학적이 되었다고 판단하고 비로소 금서 목록에서 해제하였다. 1949년 소 련 공산당 중앙 위원회는 멘델 G. Mendel의 유전학이 사이비 과학이라고 선언하고 그것을 옹호한 학술회 회원인 발비로프를 강제 수용소에서 살해 했다. 발비로프가 살해된 뒤에 멘델의 유전학은 복권되었다. 그러나 당은 무엇이 과학이며, 어떤 이론이 출판될 수 있으며, 무엇이 사이비 과학이 며. 처벌받아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권리를 행사한다. 우리들이 인종과 지 능의 문제에 대한 토론의 경우에서 보아 온 바와 같이, 서방의 새로운 자
유주의적 기구들은 사이비 과학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해서는 언론의 자유 를 박탈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모든 관단은 불가피하게 어떤 종 류의 구획 기준에 근거를 둘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과학과 사이비 과 학의 구획 기준의 문제가 강단 철학으로 논의되는 사이바 문제가 아닌 이 유이다. 이 문제는 중대한 윤리적, 정치적 함축을 갖는다. 라카토슈와 같이 포퍼도 합리성과 과학을 옹호하는 것은 절박한 현 실 문제였다. 따라서 그들은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를 흐려 놓은 상대 주의는 지적 • 도덕적 혼란과 동일하다고 생각하였다. 철학의 특권적 지위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은 합리성과 자유, 서구적 생활 양식 의 옹호자라고 생각한다.7) 포퍼, 라카토슈도 예외는 아니다. 포퍼는 과학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재 세계에 대한 참된 지식을 제공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는 쿤과 같이 이론-독립적인 진리 개념을 부정하고 공약불가능성을 인정하는 입장 은 상대주의로 귀착되기 때문에 비판한다(1970, 56). 7) 합리적 또는 객관적이라는 말을 이데올로기와 관련시켜 보는 학자도 있다. 〈객관 적이라는 말은 타인의 관점에서라는 것과 함께, 사물의 관점에서라는 두 가지 측면 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인간 존재의 원초적 상황으로부터 〈상호 주관성〉 과 〈실재론〉의 근거의 실마리를 확립하여 객관성이나 보편 타당성을 확보하려고 하는 입장은 쿤이 말하는 합리성을 〈오직 끼리끼리들 사이에만 존재하는 합의〉에 기초한 합리성이라 비판할 수 있다. 참조 : 이명현. r언어, 사유와 존재』, 한국분석 철학회 편. 『실재론과 관념론, 현대 분석철학 논쟁』(서울: 철학과 현실사, 1993). 인간이 〈이해(利害)〉리는 자기 지평을 떠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원리적 으로 불가능하지 않다는 주장은 〈탐욕을 벗어나면 사물의 실상을 볼 수 있다〉고 가르찬 석가의 경우처럼 그렇게 자명한 것은 아니다. 자기 이해를 초월하고 다른 자리로 갔다고 해서 보편적인 자리에 서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하나의 관접으로 옮겨갔을 뿐이다. 우리는 어느 자리가 실재에 더 가까운 자리인지를 판단할 수 있 는 자리에 있지 못하다. 상대주의가 가져올 수 있는 문화적 부작용에 대해서는 다음 논문 참조 : 김여수. 『상대주의 논의와 문화적 위상』, 《철학과 현실》(1991년 봄) 군미국 문화에 있어서 보편주의와 상대주의』, 《사상》(1993년 봄).
나는 내가 왜 상대주의자가 아닌지를 간단히 밝히려고 한다. 나는 (비 록 내가 나 또는 다른 어떤 사람이 주머니 속에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의미에서의 절대주의자는 아니지만) 타르스키적 의미에 있어 서 〈절대적〉 또는 〈객관적〉 진리를 믿는다. 이것이 쿤과 나 사이의 차이 점 가운데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포퍼는 〈객관적 진리〉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강조함으로써 자신을 상대주의자들과 차별하려고 하였다. 그는 〈객관적 진리〉의 존재를 인 정하는 경우에 한해, 과학 이론이 대치되는 경우 새로운 이론은 선행 이론보다 진보하고 성장한 이론임을 보편적인 기준에 의해 판단할 수 있다(1994, 12)고 생각한다. 그는 과학에서 진보의 객관성과 합리성은 과학자 개인의 객관성과 합리성에 귀속시키지 않는다(1994, 14). 새로운 이론이 선행 이론보다 진보한 이론이라는 의미를 새로운 이 론이 〈경험적인 내용이 풍부하다〉, 〈더 엄밀한 테스트를 견디어 낸다〉, 〈더 많은 사실을 설명한다〉, 〈진리에 더 접근한다〉는 것으로 이해한 포퍼는 (1) 객관적 진리, (2) 이론 선택의 기준, (3) 과학의 진보, (4) 비판적인 토론을 부정하는 입장을 모두 비합리주의 상대주의의 범주에 포함시킨다. 그러나 포퍼의 이러한 과학의 합리성 이론은 극복 하기 어려운 난점을 지니고 있다. 2.1.2 포퍼의 합리성의 난점 포퍼의 과학관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이 제기되었지만, 그 가운데 진 리 집근설과 누적적 진보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핵심적이다. 이론 평 가 또는 이론 선택의 기준인 진리근접도는 경합하는 이론보다 얼마나 더 진리에 접근하였는가를 보여 주는 상대적 개념이다. 포퍼에 의하면 성공적인 과학 이론은 비록 그것이 허위일 수는 있지만 진리근접도가 높다. 그는 과학이 성공적인 설명을 한다는 사실로부터 과학이 근사적 으로 참이라는 추론을 하고 있다. 라우든(1984, 134)은 이 추론의 과
정을 분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다. 만일 한 이론이 근사적으로 참이라면, 그 이론은 설명에서 성공적이다. 이 추론은 〈한 이론이 참이면, 그 이론은 성공적일 것이다〉라는 추론을 약화시킨 형식으로, 근사적 진리와 성공적인 설명 사이에 필연적 연관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이 추리가 어떻게 해서 타당한 추리인가에 대 해서 포퍼는 아무런 설명아 없다. 라우든의 지적처럼 포퍼는 경험적인 성공과 진리근접도의 증가 사 이에 필연적 연관이 있는 것처럼 가정하고 있지만 그러한 가정은 견 고하지 못하다. 더 성공적인 이론이 진리에 더 접근한 이론이라는 주 장은 그것 자체로서 자명한 것도 아니고, 경험에 의해서 증명될 수 있는 것도 못 된다. 나아가 그는(1984, 117) 우리가 허위라고 믿고 있는 이론 중에 많은 것들이 그 적용에 있어 매우 성공적이었고 지금도 성공적이라는 사실 은 포퍼의 진리근접도에 대한 반대 사례가 된다고 말한다. 이로 인해 진리근접도 자체가 난관에 부딪친다. 포퍼에 있어서 새로운 이론에 의 해 대치되는 낡은 이론은 새로운 이론에 비추어 본다면 거짓이다. 새 로운 이론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단정할 수 없다. 이 새로운 이론도 다른 이론에 의해 폐기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 이론이 진리를 향해 접근한다고 말할 수 없다. 다음으로 누적적 진보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살펴보자. 포퍼의 합리성에서 이론 Tl에서 이론 T2에로의 전환은 단순한 이론 변화가 아니라 이론의 진리를 향한 질적인 상승이다. 애거지 E.Agazzi (1985, 56)의 지적처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옛 이론과 ‘차이점' 을 가진 새로운 이론이 나타난다. ‘차이점' 이 있음은 ‘변화'가 있음을 의 미한다. 그러나 변화 자체가 ‘진보’를 함축하는 것〉은 아니다. 단순한 변화와 진보는 서로 구별되는 개념이다. 차이점을 수반하는
변화가 진보가 되가 위해서는 〈새로운 이론이 그 이전의 이론보다 더 좋다〉라는 가치 판단이 개입하여야 한다. 여기에서 이론의 비교는 단 지 차이점을 지적해 주는 과정이 아니라, 어느 이론이 보다 낫기 때 문에 그것을 선택한다는 가치 판단이 개입된 그러한 비교이다. 페라Pera(1985, 267)는 과학 지식의 진보를 다움과 같이 분석하 였다. 선행 이론을 Tl이라 하고 새로운 이론을 T2라 할 때. T2가 Tl이 설명 한 사실들을 모두 설명하고, Tl이 설명하지 못한 사실들을 더 설명하는 경우에 T2는 Tl보다 진보적이다. 페라(1985, 267)는 〈이전의 이론에 포함된 진리가 없어지지 않고 계 속 남아 있으며, 서로 모순되지 않고 확장된다.〉라고 말한 휴월 w. Whewell을 누적적 진보의 개념을 처음으로 체계화시킨 과학철학자로 든다. 누적적 진보라는 것은 〈이론 변화에 있어서 참인 명제는 계속 보존되어야 하고, 영원히 보존되어야 한다는 조건〉, 달리 말하면 〈이 론 변화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는 영원한 사실과 개념, 곧 관찰의 불변성과 의미의 불변성〉(1985, 296)을 필요 조건으로 요구한다. 이와 같은 누적적 진보의 개념은 라카토슈도 받아들인다. 그는 T2 가 Tl을 반증했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이론 T2의 경험 내용이 이론 Tl의 경험 내용보다 많아야 한다. 곧 이론 Tl이 새로운 사실을 예측 하고…… 이론 T2는 이론 Tl이 성공적으로 설명한 것을 모두 설명하 고…… 이론 T2에 더해진 경험 내용을 용인해야 한다.〉(1978, 32)라 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누적적 진보 개념은 여러 사람으로부터 끊임없는 비 판을 받았다. 라우든(1976)은 이 테제를 가리켜 〈독단 dogma〉이라 했 고, 쿤, 파이어아벤트는 누적적 진보의 테제는 논리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례들과도 일치하지 않는다고 비판하였다. 라우
든(1976, 146)은 누적적 진보의 테제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비관하 였다. 한 이론 T2가 다른 이론 Tl에 비해 진보했다고 말할 수 있는 필요 조 건은 T2가 Tl이 해결한 문제를 모두 해결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라우든은 이와 같은 진보 개념이 과학의 역사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고 주장한다. 쿤과 파이어아벤트의 과학관에도 잘 나타나 있듯이 〈선 행 이론이 새로운 이론에 의해 대치되는 경우에는 통상적으로 이득뿐 만 아니라 손실도 수반하기 때문이다.〉(1976, 153). 과학 이론의 변화 에는 항상 〈얻는 것〉과 〈잃는 것〉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누적적 진보의 테제는 오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잃는 것〉과 〈얻는 것〉이 그 질과 무게에 있어 같은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 기하기는 하지만 〈잃는 것은 없고 얻는 것만 있다〉라는 주장에 대한 반론으로는 충분하다. 지금까지 논의한 바와 같이 그간에 전개된 새로운 과학철학의 발전 으로 전통적인 과학철학의 기본적인 인식론적 전제들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들이 드러남으로써 전통적인 과학철학은 더 이상 지지될 수 없 게 되었다. 객관적인 관찰이 이론을 정당화하는 기초 구실을 한다는 전제는 핸슨 등의 이론적재적 관찰의 테제로 말미암아 무너지고, 이론 은 개별적으로 경험에 의해 테스트된다는 전제는 과학 이론은 전체적 으로 경험에 의해 테스트된다는 뒤엠-콰인Duhem-Quine의 테제에 의 해 반박당했으며, 과학은 누적적으로 진보한다는 전제는 라우든 등이 지적한 비누적적 진보의 테제에 의해 더 이상 지지될 수 없게 되었고、 과학자들은 과학 이론에 대해 항상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반증된 이론을 즉각적으로 폐기해야 한다는 전제는 정상 과학 안에서의 과학 자들의 활동에 의해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2.2 과학적 실천의 합리성 : 쿤 과학철학에서 과학의 합리성에 대한 새로운 토론의 장이 전개된 계 기는 쿤의 『과학 혁명의 구조』(1962)이다. 이 책은 이론 선택의 기준 은 불변적, 형식적이며. 과학은 진리를 향해 누적적으로 진보한다고 주장한 논리경험주의와 반증주의를 강타하였다. 그는 과학의 역사성을 강조하고 불변적인 기준과 누적적 진보를 부정하는 관점을 제시함으 로써 과학철학의 전개 과정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과학 혁명의 구조』는 합리주의와 상대주의의 논쟁을 야기하였다. 전통적인 합리주의는 경합하고 있는 이론들의 상대적 장점을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보편적 기준이 존재한다 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귀납주의자들은 이론이 사실에서 얻을 수 있 는 귀납적 지지도를 보편적 기준으로 생각하고, 반증주의자는 지금까 지 반증되지 않은 이론의 반증가능성의 정도를 이 기준으로 간주한다. 반대로 상대주의는 한 이론이 다른 이론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판단 할 수 있는 합리성에 대한 보편적이고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 기준 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어느 과학 이론이 더 좋은 것 으로 판단되고 더 나쁜 것으로 판단되는가 하는 문제는 개인이나 공 동체에 달린 문제로 생각한다. 이러한 이분법을 몰고 온 당사자인 쿤 은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상대주의로 몰려 고전을 면치 못한 입장 이 되었지만, 과학철학을 홍미로운 논쟁의 장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합리주의와 상대주의의 논쟁은 잘못된 이분법에서 출발하였 기 때문에 생산적이지 못한 결과를 초래했고, 불필요한 혼란을 가중시 켰다. 합리주의와 상대주의의 이분법은 오랜 철학적 전통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 전통을 검토함으로써 이러한 이분법이 근거 없음을 밝힐 수 있다. 이분법을 통해 과학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벗어나게 되면 우 리는 과학의 합리성을 새롭게 이해할 이론적인 눈을 갖게 될 것이다• 만일 합리주의라는 개념을 포퍼적인 방식으로만 이해한다면 실재론
적 진리 개념8)을 인정하지 않는 입장은 모두 비합리주의이거나 상대 주의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합리주의를 지나치게 협소 하게 정의함으로써 그들이 합리주의를 가장 잘 보여 주는 사례라고 생각하는 과학조차 비합리적이라는 원하지 않은 결론에 도달하게 한 다. 과학이 합리성의 전형임을 인정하면서 과학의 합리성을 다른 방식 으로 이해하고 있는 쿤의 입장을 살펴보기로 하자.
8) 로티는 다음과 같은 근거에서 실재론을 비판한다. (1) 철학사적으로 볼 때 현재 까지 실재와의 대응 관계를 설명하려는 모든 중요한 시도나 표상 이론들이 자신들 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들에 의해 모두 실패했고` 실재와의 대웅 관계를 설명해 줄 수 있는 내용 있는 이론의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2) 실재와의 대응을 설명하 기 위해서는 언어적 표현들의 지시 기능에 대한 설명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지시란 바확정적이고 체계 상대적이므로 대응도 체계 상대적이다. 죽, 하나의 개념 체계에 독립적인 실재와의 대응은 성립할 수 없다. 따라서 개념 체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많은 실재와의 대웅 중 어느 것도 올바른 대웅이라 할 수 없다. 참조:손병 홍, 『언어 분석과 분석 철학의 위상』, 《철학연구》. 철학연구회. 제32집(1993년 봄). pp. 238-239. 그러나 손병홍은 이러한 난점 때문에 언어와 실재의 대응 관계 를 설명하려는 이론의 성립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쿤이 상대주의자 또는 비합리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게 된 이유는 그 가 과학 혁명을 통한 패러다임 변화를 전통적인 방법과는 다른 방법 으로 설명했기 때문이다. 그는 패러다임 선택이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두 패러다임 사이에 누적적 진보가 이루어지 는 것도 아님을 밝히려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그 의 말은 해석의 여러 가능성을 열어 놓음으로써 논쟁의 불씨가 되었 다. 이러한 논쟁은 그와 파이어아벤트가 과학 혁명을 계기로 분리되는 두 패러다임의 관계를 설정하기 위해 공약불가능성 incommensurability 이란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야기되었다. 과학 혁명에서 나온 정상 과학의 전통은 이전의 전동과 양립 불가능할 뿐 아니라 공약불가능하다(Kuhn, 1970, 103).
호이닝엔 휘네 Hoyningen-Heune(1990)의 지적처럼 기본적으로 관계 적 개념인 〈공약불가능성〉은 그 동안 많이 논의되어 왔음에도 불구하 고.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은 고사하고 문제 자체의 성격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완전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렇게 됨으로써 공약불가 능성은 중요한 철학적인 문제의 지위를 획득하였다. 호이닝엔 휘네(1990, 259-266)의 분석에 따르면 공약불가능성은 〈문 제 영역의 변화〉. 〈의미 변화〉. 〈세계 변화〉라는 세 가지 다른 측면을 가진다. 나아가 쿤(1970, 151)은 공약불가능한 패러다임의 선택은 〈강 요될 수 없는 개종의 경험이다.〉라는 극단적인 주장을 하였다. 패러다 임 선택이 〈종교적 개종〉이라는 말은 오직 개종자의 마음을 이해함으 로써 설명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함축한다. 전통적인 합리주의자들은 일제히 쿤의 이러한 입장을 반박하였다. 그들은 우선 쿤의 공약불가능성은 비교 불가능성을 함축하기 때문에. 비교를 전제로 성립하는 패러다임의 우열을 논리적으로 가능하게 할 수 없다는 반론을 제기하였다. 다른 맥락에서 조인래(1996a, 155-187) 는 쿤의 공약불가능성의 테제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그는 쿤이 공약불가능성이 성립하는 것으로 생각해 온 과학사의 사례에서 이론간의 비교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보여 줌으로써, 공약불가능성 논 제의 방법론적 합의와 그 한계를 검토하였다. 그의 이러한 연구가 성 공적이라면 공약불가능성이 갖는.파괴력은 상당히 약화되고, 패러다임 의 대치에 대한 쿤의 설득력은 상당 부분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 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조인래의 논증이 전통적인 합리성의 타당성을 논리적으로 함축하는 것은 아니다. 정병훈은 조인래와 다른 입장에서 쿤을 〈온건한 합리주의〉로 해석 한다. 그는 쿤을 〈극단적인 비합리주의자〉인 파이어아벤트와 차별화함 으로써 다른 방식으로 합리성을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정병훈(1985, 218, 222)에 의하면 쿤은 논리경험주의나 반증주 의가 제시한 합리성의 기준에서 비합리주의자가 아니라. 〈쿤은 과학의
합리성에 대한 개념 자체를 변화시키려고 하였다.〉 정병훈은 쿤울 비 합리주의자로 볼 수 없는 여섯 가지 이유를 제시하면서 자신의 주장 울 뒷받침하였다.9)
9) 첫째, 자연과학의 역사에서 뒤에 나온 이론은 이전의 이론보다 퍼즐 풀이 능력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 곧 퍼즐 풀이의 도구로서의 뉴턴I.Newton의 이론은 아리스 토텔레스의 것보다, 아인슈타인 A. Einstein의 이론은 뉴턴의 이론보다 더 진보한 이 론이다. 둘째, 우리는 자연이 제시하는 수수께끼를 성립시키고 해결하는 증명된 능 력에 의해서 경쟁적인 이론들을 비교할 수 있다. 셋째, 이러한 〈비교의 원리〉가 되 는 것이 과학자 집단에 의해서 합의된 정확성, 일관성, 넓은 범위, 단순성, 산출력 이라는 기준들이다. 이러한 기준들은 패러다임 중립적일 수 있으며, 모든 패러다임 의 지지자들에 의해 동의될 수 있는 것이다. 넷째, 이러한 기준을 구체적인 상황에 적 용시키는 것은 개개의 과학자이고, 이론 선택의 최종적 결정은 과학자들의 개인적인 판단에 의한다. 다섯째, 그러한 판단의 합리성의 근거는 논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기계적인 연산 방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 개개인의 합리적 판단이 지니는 합리 성에 있다. 여섯째, 이론 선택의 과정에 대한 합리적 설명을 위해서는 이론 선택에 작 용하는 내적인 요인뿐 아니라, 외적인 요소도 밝혀져야 한다. 이러한 외적인 요소의 분석은 심리학과 사회학의 연구 대상이다. 정병훈, 위의 논문, pp. 217-218.
많은 사람들이 공약불가능성에 대해 여러 방식으로 해석하였지만, 가 장 핵심적인 논제는 쿤은 합리주의자라는 주장이다. 라카토슈(1978, 9) 는 패러다임 선택의 문제가 〈다수결, 이론 지지자들의 신앙심과 설득 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면〉 진리는 결국 설득력에 의존하게 되고, 과학 이 론의 변화는 〈군중 심리〉(1978, 91)의 문제가 되고, 과학의 진보는 본 질적으로 〈시위 효과〉(1978, 178)에 지나지 않게 된다고 비판하였댜 2.2.1 공약불가능성 이와 같은 반론에 직면하여 쿤은 『과학 혁명의 구조』 후기와 그 밖 의 논문에서 자신이 상대주의자가 아님을 〈공약불가능성〉이 〈비교 불 가능성〉을 함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임으로써 논증하려고 하였 다.10)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그가 상대주의자라는 근거를 공약불가
10)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다음 논문 참조 : H. Siegel(1980),0bjectivity, Rationality, Incommensurability and More , British Journal for the Philosophy of
Science 23. pp.359-375 : T. S. Kuhn(l977) , Theory-Change as Structure Change : Comments on the Sneed Fonnalism, R. E. Butts(ed.), Historical and Philosophical Demensions of Logic, Methodology and Philosophy of Science (Dordrecht: D. Reidel Publishing Company), pp. 300-301. 어느 세미나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 세미나에서 교수와 학생들은 쿤의 책이 어떻게 진리와 허 위의 개념을 부정하였는가를 토론하고 있었다. 이때 쿤은 한 패러다임의 맥락 안에 서는 진리와 허위는 완전히 타당하고 실제로 대단히 필요한 개념이라는 사실을 설 명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교수는 쿤의 말을 가로 막으면서 〈당신은 이 책이 얼마 나 급진적인가를 모른다.〉라고 하였다. 참조:John Horgan(l991).
능성이 비교 가능성을 배제하기 때문에 패러다임 중립적인 이론 평가 의 기준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이끌어 내었기 때문이다. 우리 가 공약불가능성을 논의하면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공약불가능성이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약불가능성을 좁게 해석하 여 쿤을 비합리주의자로 분류하는 것은 적절한 해석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쿤을 비합리주의자로 해석하려는 사람은 호이닝엔 휘네의 지 적처럼 세 가지 오해에11)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쿤(1983) 자신도 자신이 말하는 공약불가능성은 의미 변화에 대한 주장인 한, 온건한 형태의 공약불가능성으로 국소적인 공약불가능성이라고 말하였다. 그 는 〈이론 변화를 통해 그 의미를 유지하는 용어들은 이론 선택과 관 련된 차이점에 대한 논의나 비교를 위한 충분한 기초를 제공해 준다〉 (1983, 229)고 생각한다.
11) 호이닝엔 휘네는 세 가지 오해로. 과학 혁명을 계기로 〈근본적인 의미 변화〉나 〈전면적인 의미 변화〉가 일어나고, 두 패러다임 사이에는 어떤 연속성도 존재하지 않으며, 공약불가능한 이론들은 결코 합리적으로 비교될 수 없다는 해석을 지적하 였다. 참조 : Hoyningen-Heune (1990), pp. 269-272. 나아가 그는 쿤의 공약불가능 성이 패러다임 사이의 합리적 비교를 가능하게 하는 근거로 다음 세 가지를 제시 하였다. (1) 공약불가능성의 국소적 성격 때문에 비교가 가능하다. (2) 예 이론의 주창자는 새로운 개념적 어휘 중에서 그 자신의 것과 다른 부분들을 가려 내어 배워 야 한다. 이 과정에서 두 이론은 비교될 수 있다. (3) 두 패러다임은 일 대 일이 아니 라 전체적 차원에서 비교될 수 있다. 참조: Hoyningen-Heune (1990), pp. 270-272.
이 글에서는 공약불가능성의 다양한 의미 가운데 의미 변화와 관련
된 공약불가능성과 선택의 기준과 관련된 공약불가능성에 초점을 맞 추어. 공약불가능성은 같은 단어에 대해서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기 때문에 부분적인 번역 불가능성은 함축하지만 그렇다고 비 교 불가능성은 함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줄 것이다. 우리가 어 느 하나의 패러다임을 따른다고 해서 그와 대립 관계에 있는 패러다 임을 전혀 이해할 수 없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학습에 의해 그 패러다임을 이해할 수 있고. 그 패러다임을 지지하는 사람과 대화 할 수도 있다. 우리는 비록 우리의 관점에서 출발하긴 하지만 두 패러다임을 비교 하여 어느 패러다임이 더 우수한 패러다임인가를 판단할 수도 있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비교는 전통적인 합리주의자들이 말하는 동일 기준에 의한 비교가 아니라. 다양한 기준에 의한 비교이고. 이러한 비 교는 왜 과학자들이 한 패러다임에서 다른 패러다임으로 옮겨가는가 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제공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의미의 변화와 관련된 공약불가능성을 공약불가능성1이 라 부르고. 이론 선택의 기준과 관련된 공약불가능성을 공약불가능성2 라 부를 것이다. 〈두 이론이 완전히 번역될 수 있는 공통의 언어가 존재하지 않는다〉(Kuhn, 1989)는 주장이 공약불가능성제 해당한다.12) 12) 김재권은 인식적 상대주의를 개념적 상대주의와 교리적(doctrinal) 상대주의로 구분하는 것이 유용하다고 하였다. 불가공약성1은 개념적 상대주의와 관련이 있고, 불가공약성2는 교리적 상대주의와 관련이 있다. 〈개념적 상대주의는 어떤 한 체계 의 용어나 표현이나 개념은 다른 체계의 개념으로 해석되거나 번역될 수 없는 환 원 불가능한 자율적 영역을 형성하고 있다는 입장을 의미한다. 개념적 상대주의는 ‘불가공약적인 패러다임’ 이라는 쿤의 학설의 일반적인 형태이다.〉 교리적 상대주 의는 〈진리와 합리적 승인 가능성과 같은 중요한 평가적 개념들이 본질적으로 불 가피하게 체계와 틀에 상대적이어서 여러 체계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 말하 자면 특정의 체계와 틀에 독립해서 타당한 진리의 기준 혹은 합리적 승인 가능성 의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나아가 다른 모든 체계가 환원될 수 있거나 혹은 번 역될 수 있고. 다양한 체계를 비교하고 평가할 수 있는 공통의 기초를 제공할 수 있는 하나의 ‘보편적으로 타당한’ 체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김재권.
『현대철학의 상대주의적 경향에 대한 반성』. 《철학과 현실》 (1991년 봄). p. 36.
필자는 공약불가능상과 공약불가능성2가 라카토슈와 같은 전통적인 과학철학자가 우려하고 있는 것과 같은 상대주의를 결과하지 않을 수 도 있다는 입장을 밝히려고 한다 공약불가능상의 의미는 쿤이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을 찾아 내기 이 전인 1947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그는 뉴턴 역학의 뿌리를 보여 줄 수 있는 간단한 역사적 사례를 찾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Physics』을 읽었다. 그는 그것이 대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랐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그렇게 탁월한 철학자가 어떻 게 물리학에 대해서는 그렇게 그릇된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이 해하기 힘든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갑자기 아리스토텔 레스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motion이나 matter와 같은 기초 개념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이 뉴턴의 그것과 완전히 다르다 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운동〉이라는 말을 위치의 변화뿐만 아니라 변화 일반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하였다. 태양이 지평선으로 넘어가는 것뿐만 아니라 붉어지는 것도 운동이라 고 생각하였다. 쿤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 자체의 개념들을 통해서 이해할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은 〈나쁜 뉴턴bad Newton이 아니 라, 다만 달랐을 뿐이었다.〉(Horgen, 1991, 14-15). 뉴턴 물리학에서 사용된
있다. 그는 하나의 용어는 언어의 장(場)에서 다른 용어와의 차이에 의해서 정의된다고 주장한다. 〈사자〉가 의미하는 바는 〈호랑이〉가 무 엇을 의미하는가에 의존하며, 〈사자〉와 〈호랑이〉의 차이에 의존한다. 그렇다면 한 용어의 지시 대상은 독립적으로 확보될 수 없다. 왜냐 하면 한 용어와 지시 대상의 관계는 언어의 장에서 그 용어와 대상과 다른 용어와 다른 지시 대상 사이의 차이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글(1993, xii-xiii)에서 분류학과 관련지어 공약불가능성을 설명하 고 있다. 과학 혁명이 일어나면 분류학의 체계가 변하기 때문에 두 패러다임은 불가공약적이라는 것이다. 쿤에 의하면 과학은 본질적으로 집단적인 활동이다. 의사 소통이 성 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공동체 구성원은 유사성/차이의 관계에 대한 패 턴, 분류학적인 구조를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과학 혁명은 이 러한 분류학의 체계에 변화를 가져온다. 과학 혁명이 일어나면 선행 분류학의 체계에서 구성된 일반화는 새로운 체계로 완전히 표현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완전한 번역은 불가능하다. 비록 완전한 번역이 가능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다른 어휘와 언어를 배울 수는 있 다. 따라서 공약불가능성이 비교 불가능성이나 이해 불가능성, 의사 소통 불가능성을 필연적으로 함축하는 것은 아니다. 공약불가능성2는 〈이론 선택에 대해서 중립적 알고리듬, 적절하게 적용되었을 때 한 집단에 속한 개인들 각각을 동일한 결정에 이르게 하는 이론 선택에 대해서 중립적 알고리듬, 체계적인 의사 결정의 절 차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Kuhn, 1970, 200). 그는 패러다임 선택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열거하고 있다(Kuhn, 1977, 321-322). 첫째 한 이론은 정확해야 한다. 그 이론의 영역 내부에서, 곧 그 이론 에서 연역된 귀결들은 기존의 실험과 관찰 결과와 일치한다는 사실이 증 명되어야 한다. 둘째 한 이론은 모순되지 않아야 한다. 내부적으로 또는
그것 자체로 모순되지 않아야 할 뿐 아니라 자연의 어느 측면과 관련되어 현재 승인되고 있는 이론들과 모순되지 않아야 한다. 셋째, 그 이론은 폭 넓은 영역을 포괄해야 한다. 특히 한 이론의 귀결은 그 이론이 애당초 설 명하려고 한 특정의 관찰 법칙 또는 하위 이론을 넘어 확장되어야만 한 다. 넷째 …… 그 이론은 단순해야 한다. …… 다섯째, …… 한 이론은 새로 운 연구에서 좋은 결과를 가져야 한다. 그 이론은 새로운 현상을 드러내 거나 또는 이미 알려진 현상들 사이에 존재하는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관 계를 드러내 주어야 한다. 쿤(1977, 322-325)에 따르면 이러한 사항들이 패러다임 선택에서 알 고리듬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기준이 어떻게 적용될 것 인가는 그것을 적용하는 개인이나 공동체에 의존한다. 그는 이론 선택 은 집단적인 결정의 결과로 파악하고 있다. 이러한 기준은 엄수해야 할 규칙이라기보다는 가치이다. 이러한 가치는 과학자에게 길잡이 구 실을 할 수 있지만 선택을 기계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다. 쿤이 말하는 패러다임 선택의 기준은 도구적 합리성에 근거한 과학 의 합리성을 옹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목적과 관련하여 이러한 기준에 의해 이론 선택이 행해지는 한, 그러한 선택은 명백히 합리적 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양한 고려를 해야 할 사항들의 상대적 중요성 울 올바른 방법으로 측정할 수 있는 고유한 방법이 존재한다고 가정 해야 할 이유는 없다. 이러한 경우에 진리가 과학의 목적일 수는 없다. 과학의 진보는 진 리로 점점 더 나아가는 이론을 구성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확률 적 진리라는 개념으로도 이론을 평가할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진 보에 대한 도구주의적 개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곧 뒤의 이론 이 이전의 이론보다 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을 뿐이다. 곧 더 많 은 현상을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쿤의 『과학 혁명의 구조』는 〈과학자들이 결코 ‘실재 세계'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쿤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고, 객관적 이고 절대적인 실재와 일치한다는 의미의 진리 추구로서의 과학이라 는 개념을 버렸다. 그러나 그는 진리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또는 진리가 알려질 수 없는 것이라는 결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 는 진리는 각각의 패러다임에 대해 다를 수 있고 다르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하나의 유일한 객관적인 진리를 용인할 수 있는 기준이 존재 하지 않기 때문에 진리에 대한 기준이 전혀 존재할 수 없다고 비약해 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쿤이 설명하고 있는 패러다임 선택에 대한 주장이 상대주의를 결과하지 않는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자연주의 적인 요소를 강조하면서도 과학을 여전히 합리적인 것으로 본다. 그 (1971, 144)에 의하면 〈전체적으로 볼 때 과학 행위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합리성 가운데 가장 좋은 예이다. 만일 역사 또는 다른 어떤 경 험적 연구가 과학의 전개가 본질적으로 이전에 우리가 비합리적이라 고 생각한 그러한 행동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 준다고 하더 라도 우리는 과학이 비합리적이라는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합리성의 개념을 여기저기 재조정해야만 한다.〉 그는 합리성의 모형 가운데 과학이 최선의 모형이라는 전제 아래서, 과학적 실천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합리성의 개념에 우선한다고 생각 한다. 쿤은 과학이 자연을 어떠한 방식으로 기술하고 있다고 믿는다. 과학 은 자연 또는 세계를 탐구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질제로 존재하는 것’과 같은 것을 재구성할 수 있는 이론 독립적인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곧 한 이론의 존재론과 자연에 존재하는 그것의 실제적 대응물 사이의 짝과 같은 개념은 원리적으로 나에게는 환상처럼 보인다.〉(1970, 206)라는 말은 그가 규정한 과학의 목적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쿤은 하나의 과학 이론이 다른 과학 이론보다 더 잘 받아들여지는
이유를 설명함에 있어 사실상 〈세계가 존재하는 방식〉에 호소하고 있 다. 만델바움M.Mandelbaum(1982, 51-52)도 지적하고 있듯이 그는 다 양한 점에서 과학 이론들이 〈자연에 귀속되어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나아가 그(1970, 201)는 혁명 이전의 패러다임과 이후의 패러다임을 논의하면서, 상이한 패러다임을 받아들이는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이 들 모두는 일상적이고 대부분 과학적인, 세계와 언어를 공유하고 있 다.〉고 주장한다. 그(1970, 77)에 의하면 〈하나의 패러다임을 거부하 는 결정은 항상 다른 패러다임을 승인하려는 결정과 동시에 발생한다. 그리고 이러한 결정에 도달하는 판단은 패러다임과 자연. 패러다임과 다른 패러다임의 비교를 포함한다.〉 또 다른 곳에서는 〈패러다임의 변화와 더불어 세계가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 후에 과학자들은 하나의 다른 세계에서 연구한다.〉(1970, 121)라고 말한다. 이러한 구절에 비추어 보면, 쿤이 우리가 과학을 통해서 설명하려고 하는 물리적인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 은 〈자연의 행태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관심을 두어야 한다.〉 (Kuhn, 1970, 168)는 말에도 나타나 있듯이 쿤에 있어서 과학은 여전히 이론 독립적인 세계에 대한 탐구이다. 그러나 그는 〈자연〉. 〈세계〉13), 〈실재〉라는 개념을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개념들이 함 축하고 있는 인식론적 갈등이나 모순에 대한 설명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것이 쿤이 근대 인식론의 중압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직면하게 된 문제처럼 보인다.
13) 〈세계〉라는 말의 여러 의미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Hoyningen-Heune(1990), pp. 261-266.
다음으로 전통적인 과학철학에 대한 쿤의 비판을 폭넓게 수용하면 서 과학의 합리성을 옹호하려는 라카토슈의 입장을 살펴보자.
2.3 과학적 연구 프로그램의 방법론 : 라카토슈 라카토슈는 〈연구 프로그램의 방법론〉을 제안함으로써 포퍼의 반증 주의에 대한 쿤의 비판을 선택적으로 수용하면서. 쿤이 초래한 비합리 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합리성의 이론을 구성하려고 하였다. 그 (1978, 102)는 〈과학사가 결여된 과학철학은 내용이 없고 과학철학이 없는 과학사는 맹목이다〉라는 전제 위에서 〈쿤이 제시한 패러다임의. 사회. 심리적 개념을 객관적으로, ‘세계 3적으로'14) 재구성하려고〉15) 하였다. 그(1978, 69)는 〈과학사를 서로 경쟁하는 연구 프로그램들의 역사〉로 봄으로써 단일 이론이 아닌 이론의 복합체가 과학적 탐구 대 상의 기본 단위이고, 단일 이론이 경험과 직접 대면하는 것이 아니며. 과학자들은 그들이 지지하는 이론이 경험에 의해 반증된다고 하더라 도 그 이론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이것이 바로 그 에게 남아 있는 쿤적인 유산이다. 그러나 그는 그가 보기에 비합리주 의일 수밖에 없는 쿤의 결론은 피하려 한다.
14) 〈세게 3〉이라는 개념을 포퍼는 그의
그는 과학에 있어서 합리성의 문제를 어떤 이론을 받아들이는 것 이 합리적인가 하는 문제, 이론 승인과 거부의 근거가 되는 〈보편적
기준〉을 찾아 내는 문제와 동일시하였다. 그에 있어서 합리성의 문제 는 〈과학 : 이성인가 종교인가〉(1978, 8)라는 물음에 과학이 〈이성적 (합리적)〉임을 보여 줄 수 있는 근거를 탐구하는 것이다. 그(1978, 168-169)에 따르면 〈과학철학의 중심 문제는 이론이 과학적이기 위해 서 갖추어야 할 보편적인 조건을 밝히는 문제〉이며, 이 보편적인 조 건은 〈우리가 어떤 과학 이론을 합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어떤 것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도록 길잡이 구실 을 한다.〉 그는 포퍼의 객관적 진리설을 지지하고 있다. 객관적 진리설에 따르 면 진리는 인식 주체와 독립된 객관적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인간이 갖는 신념의 강도가 진리의 척도일 수 없다. 따라서 많은 사람이 무 엇을 진리로 믿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거짓일 수 있으며, 진리로 믿 는 사람이 전혀 없어도 그것은 여전히 진리일 수 있다. 그(1978, 1)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 이론의 인식론적 가치는 그것이 정신에 미치는 심리적 영향력과 아 무 관계도 없다. 신념, 공동체의 약속, 이해, 관심은 인간의 정신 상태이 다. 그러나 한 이론의 객관적, 과학적 가치는 그 이론을 만들어 내거나 이해하는 인간의 정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한 이론의 과학적 가치는 그 이론이 실제로 가지고 있는 객관적 지지에 달려 있다. 라카토슈는 지식은 그 지식을 산출해 내는 인식 주체와는 무관하게 객관적으로 정당화되는 경우에 한하여 지식으로 인정될 수 있다는 입 장을 견지하고 있다. 라카토슈는 경쟁 관계에 있는 이론들의 상대적 장점을 평가할 수 있는 보편적인 기준을 확보하기 위해, 반증주의를 소박한 반증주의와 세련된 반증주의로 구분하고, 단일 이론이 아닌 연구 프로그램을 이론 평가의 단위로 설정하여 〈반증〉과 〈구획 기준〉을 새롭게 해석하였다.
그에 있어서 반증은 포퍼의 반증과 그 의미가 다르다. 포퍼는 어디 까지나 개별적인 이론에 대한 반증이라는 의미에서 반증 개념을 사용 하고 있지만, 라카토슈는 개별적인 이론에 대한 반증이 아니라 이론군 또는 연구 프로그램에 대해서 반증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소박한 반증주의에 따르면 관찰 언명과 일치하지 않는 이론은 반증 되었기 때문에 폐기되어야 한다. 이론과 일치하지 않는 관찰 사례에도 불구하고 애드 혹ad hoc 가설을 도입하여 반증을 피하려고 하는 것은 과학자의 정직하지 못한 태도이고, 이것은 과학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 인이 된다. 이러한 소박한 반증주의는 과학의 실제 역사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난점을 지니고 있다. 라카토슈는 이러한 난점을 해 결하기 위해 반증은 이론과 경험의 양자의 대결에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하는 이론과 경험의 3자에서 일어난다는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였다. 세련된 반증주의에 따르면, 과학 이론 Tl이 새로운 과학 이론 T2에 의해 반증되었다고 할 수 있으려면, T2가 다음과 같은 조건을 충족시 켜 야 한다(Lakatos, 1978, 32) . (1) T2의 경험적 내용이 Tl의 경험적 내용보다 많아야 한다. 곧 T2 가 새로운 사실을 예측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이론 Tl에 비추어 볼 때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사실이나, Tl이 금지한 사실을 T2가 예측해 야한다. (2) T2는 Tl이 성공적으로 설명한 것을 모두 설명해야 한다. 바꾸 어 말하면, 반증되지 않은 Tl의 모든 내용이 T2에 포함되어야 한다. (3) T2에 부과된 내용은 용인되어야corroborated 한다. 새롭게 제시된 이론 T2는 그 이론이 도전하고 있는 선행 이론 Tl에 포함된 경험적 내용을 모두 포함하면서, 새로운 경험적 내용을 덧붙이 고 새로운 경험적 내용이 용인될 때 비로소 Tl을 반증하였다고 할 수
있게 된다. 반증이 성립하려면 Tl과 T2의 내용을 비교할 수 있어야 하며, T2로 Tl을 재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련된 반증주의에 의하면 이론 Tl에 대한 반증은 Tl과 모순되는 기초 진술이 나타남으로써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T2에 포함된 새로 운 내용이 용인될 때 T2에 의해 성립되기 때문에 변칙 사례(반례)의 출현과 반증은 서로 다른 문제이다. 이론과 모순되는 사실이 나타난다 고 하더라도 이것은 이론에 대한 반증이 아니기 때문에 이론의 폐기 를 함축하지는 않는다. 반례의 출현과 반증 또는 이론의 폐기는 구별 된다. 이론의 반증 또는 이론의 폐기는 새로운 이론이 나타나기 전에 는 성립할 수 없음을 강조하여 라카토슈(1978, 35)는 다음과 같이 말 한다. 궁극적으로 이론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테스트의 결과가 아니다. 곧 기초 진술에 대한 합의가 이론의 운명을 결정하지는 못한다. 실험 보고, 관찰 언명 또는 잘 지지된 반증적인 가설만으로 반증이 성립하는 것은 아 니다. 더 나은 이론이 나오기 전에는 반증이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라카토슈에 있어서 반증은 쿤의 〈과학 혁명〉에 해당하는 〈연구 프로그램의 전환〉이 올 때 일어난다. 라카토슈는 반증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근거로, 연구 프로그램이 전 진적 progressive인가 퇴행적 degenerating인가를 경합 관계에 있는 연구 프로그램의 상대적 장점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으로 제시하였다. 그에 따르면 톨레미 Ptolemy의 천문학이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으로 대치된 이유는 후자가 전자보다 더 전진적이었기 때문이다. 다음 인용문 (1978, 33-34)을 통해서 이 기준의 의미를 분석해 보자. Tl, T2, T3……로 계속 이어지는 일련의 이론을 생각해 보자. 이때 뒤 에 나온 이론에는 어떤 변칙 사례를 조정하기 위해 이전의 이론에다 보조
가설을 첨가했다. 뒤에 제시된 이론 각각은 적어도 이전의 이론이 가지고 있었던 반박되지 않은 내용만큼의 내용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새로운 이론이 그 이전의 이론과 비교해서 경험적 내용이 더 풍부하며, 달리 말 해서 지금까지 기대하지 못했던 사실 곧 새로운 사실을 예측하면. 이러한 일련의 이론들을 이론적으로 전진적인 이론이라 하자. 만일 이론적으로 전진적인 일련의 이론들에서 그 이론이 가지고 있는 첨가된 경험적 내용 가운데 일부가 입증되었을 때, 즉 새로운 이론이 예측한 새로운 사실이 실제로 발견되었다면 그 이론을 경험적으로 전진적인 이론이라 하자. 마 지막으로 이론적으로 전진적이면서 경험적으로 전진적인 일련의 이론들을 전진적이라 하고 그렇지 못한 것을 퇴행적이라고 하자. 일련의 이론들이 적어도 이론적으로 전진적일 때, 우리는 그것을 〈과학적〉인 것으로 받아 들이고. 그렇지 못한 것을 〈비과학적〉인 것으로 거부한다. 진보는 문제 전이가 어느 정도 전진적이냐에 따라, 곧 일련의 이론들이 새로운 사실의 발견을 유도하는 정도에 따라 측정된다. 일련의 이론들이 더 높은 정도의 입증된 내용을 가진 다른 일련의 이론에 의해 대체되는 경우에 한하여 그 것은 〈반증되 었다〉라고 말할 수 있다. 라카토슈는 첨가된 경험적 내용을 (1) 새로운 이론이 선행 이론보 다 경험적 내용을 앞지르는 경우와 (2) 앞지른 경험적 내용이 입증된 경우로 구분하여 (1)을 수용가능성1이라 부르고 (2)를 수용가능성2라 부른다. 위의 인용문에서 〈이론적으로 전진적〉이란 개념은 수용가능성 1과 일치하고, 〈경험적으로 전진적〉이란 개념은 수용가능성2와 일치하 는 개념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1)은 경험 없이도 논리적 분석에 의 해 즉각적으로 용인될 수 있지만, (2)는 오직 시간이 경과된 후에 경 험에 의해서만 용인될 수 있다. 라카토슈는 수용가능성1과 수용가능성2를 동시에 충족시킬 때 그 일련의 이론들을 〈전진적〉이라 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를 〈퇴행적〉이 라 한다. 나아가 적어도 일련의 이론들이 수용가능성1을 충족시킬 때
그것을 〈과학적〉이라 하고, 그렇지 못한 것을 〈비과학적〉인 것으로 거부한다. 세련된 반증주의에 있어서 일련의 이론들의 과학성은 그것 이 이론적으로 전진적인가 그렇지 못한가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한 연구 프로그램이 전진적인가 퇴행적인가를 라카토슈적인 의미로 결정하는 데에는 기술적인 문제점이 따른다. 〈시간적인 제한〉 이 주어질 때에만 우리는 어떤 연구 프로그램이 퇴행적인 프로그램이 라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시간적인 제한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얼마 나 오랫동안 기다렸다가 그 프로그램이 예측한 새로운 사례가 나타나 지 않았다는 판단을 내려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쿤과 파이어아벤트 도 지적하였듯이 라카토슈가 〈시간적인 제한〉을 제시하지 못한 것은 그의 합리성 이론의 치명적 약점이다. 우리는 한 연구 프로그램이 어느 특정 시간까지는 전진적이었고 그 와 경쟁 관계에 있는 연구 프로그램은 퇴행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연구 프로그램이 좀더 탐구된다면 이 판단은 바뀔 수도 있 다. 이렇게 되면 라카토슈의 원래 목적과는 달리 그의 연구 프로그램 은 과학자들에게 아무런 지침을 제시할 수 없다.16) 〈한 연구 프로그 램을 앞으로 몇 년 동안 더 탐구해 보아도 그 프로그램이 향상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퇴행적이었던 그 프로그램을 제거하라〉는 규칙은 임의적인 규칙일 수밖에 없다. 파이어아벤트(1981, 163)의 주장과 같 이 〈라카토슈는 방법론적 요소처럼 들리는 말을 제시하긴 하였지만, 하나의 방법론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학자에게 어느 한 연구 프로그램을 고수하거나 포기하도록 하는 방법론적 규칙의 역할을 더 16) 라카토슈의 방법론이 과학자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제시해 주고 있지 못하 기 때문에. 그의 본래 의도와는 달리 합리주의자로서의 의견을 견지하지 못했다 는 비 판은 다음 논문 참조 : A. Musgrave ( 1976) Method or Madness : Can the methodology of scientific research programmes be recued from epistemological anarchism? in R, S. Cohen et. al. (eds.) , Essays in Memory of Jmre Lakatos, pp. 457-491.
이상 하지 못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는 라카토슈를 아나키스~ 동지라고 불렀다. 라카토슈(1978, 113)는 이러한 비판을 타당한 비판으로 받아들이면 서 〈자신의 상대자가 아무리 뒤떨어졌다 할지라도 그가 다시 복귀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편이 우세하다고 할지라 도 그 우세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한 연구 프로그램의 승리가 영 구적일 수 없듯이. 한 연구 프로그램의 패배도 영구적일 수 없다.〉라 고 말한다. 따라서 〈경쟁 관계에 있는 프로그램이 퇴행적인 프로그램 을 따라잡을 때까지 그리고 퇴행적인 프로그램을 따라 잡은 후에도 퇴행적인 프로그램에 매달리는 것도 합리적일 수 있다.〉(1978, 117)라 고 말한다. 그는 어떤 연구 프로그램이 합리적인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즉각적인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라카토슈는 〈과학 전문지의 편집자들이 퇴행적인 프로그램에 매달 리는 과학자들의 논문을 게재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1978, 117)라 고 말함으로써 난점을 피하려고 하지만, 이는 만족스러운 해결이 되지 못한다. 그렇게 하면, 결국 과학의 합리성을 〈편집자들의 결정〉에 맡 김으로써 공동체의 합의에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4 〈연구 전통〉의 방법론과 합리성 : 라우든 라우든은 전통적 합리주의와 극단적인 비합리주의를 넘어 새로운 합리성을 모색하였다. 그는 이론 선택의 보편적인 기준을 제시함으로 써 과학이 합리적임을 보여 주려고 하였다. 그는 누적적 진보를 받아 들이지 않고 합리성과 진리를 분리하여 기존의 합리성 이론이 안고 있는 난점을 극복하려고 하였다. 라우든의 기본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1) 과학의 목적은 우주에 대한 진리 탐구가 아니라 인식적 문제의
해결이다. (2) 진리를 과학의 목적으로 설정한 방법론자는 과학이 비합리적이 라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 왜냐 하면 진리나 진리 접근도는 용인될 수 없기 때문이다. (3) 인식적 문제에는 경험적인 문제와 개념적인 문제가 있다. (4) 이론은 그것이 갖는 문제 해결의 유효도에 의해 선택된다. (5) 문제 해결의 유효도는 해결된 문제의 수와 중요성의 함수이다. (6) 진보는 문제 해결의 유효도의 증가로 정의된다. (7) 과학의 합리성은 과학의 진보를 최대로 하는 데 있다. (8) 평가의 중요 단위는 개별 이론이 아니라 연구 전통이다. (9) 연구 전통의 적절성은 그 연구 전통을 구성하고 있는 이론들의 문제 해결의 유효도의 함수이다. 라우든(1977, 11)은 〈과학을 본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활동〉으 로 규정한다. 과학의 목적은 문제 해결에 있다. 과학에서 이론 선택의 합리성은 이론의 문제 해결 능력에 의해 정의된다. 그에 따르면 문제 해결 능력이 높은 이론이 그렇지 않은 이론보다 진보적인 이론이며, 이 같은 진보적인 이론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인 이론 선택이다. 합리성은 진보의 함수이며, 진보는 문제 해결의 유효성의 함수이다. 과학의 목적은 높은 정도의 문제 해결 능력을 지닌 이론을 얻는 것이 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과학의 진보는 선행 이론보다 더 많은 문제룰 해결하는 이론을 선택하는 데 있다. 라우든은 과학의 목적은 설명할 수 있는 경험적 문제롤 최대화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변칙적, 개념적 문제를 최소화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최대화와 최소화를 가능하게 해 주는 이론이 진보적 인 이론이고, 진보적인 이론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인 이론 선택이 다. 전통적 합리주의와 구별되는 라우든의 합리성 이론의 특징은 진리
문제와 관련지어 이론 선택의 합리성을 규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가 제시한 합리적인 이론 선택의 모델은 참. 거짓, 확률, 용인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1977, 123)는 〈합리성은 우리가 그렇게 할 좋은 이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행동을 하는 데 있다.〉라는 매우 일 반적인 개념 정의에서 출발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이유〉는 과학의 목적과 관련이 있다. 과학의 목적이 문제 해결이기 때문에. 문제 해결의 유효도를 높여 주는 이론 울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인 이론 선택이다. 라우든(1977, 125)은 지금 까지 합리성과 진보와 관련하여 제기되어 온 문제를 다음과 같이 요 약하였다. 합리성 또는 과학의 진보에 대한 모든 평가는 불가피하게 과학 이론의 진리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일반적인 이 주장에 따르면 합 리성은. 참이라고 믿을 만한 좋은 이유를 가지고 있는 세계에 대한 언명 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역으로 진보는 진리 접근과 자기 수정의 과정을 거쳐 진리를 계속적으로 획득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나는 합리성을 진 보에 종속시킴으로써 이 문제를 역전시키려고 한다. 이 입장에 따르면 합 리적인 선택은 진보적인 것(곧 우리가 승인하는 이론의 문제 해결의 유효 성을 증진시키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합리성을 진보와 관련시킴으로써 이론의 진리 또는 진리 접근성을 가정하지 않고서도 합리 성의 이론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라우든은 합리성을 진보와 관련시키고 있지만. 합리성보다는 진보 개념이 더 중심적인 개념이다. 그는 합리성을 통해서 진보를 정의하지 않고. 진보를 통해서 합리성을 규정한다. 달리 말하면 진보적인 이론 울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인 이론 선택이지 합리적인 이론을 받아들임 으로써 진보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라우든은 진리 접근성이라는 변형된 진리 개념을 통해 합리성을 정
의하려고 하면 과학은 비합리적이라는 결론에 귀착된다고 주장한다. 그(1977, 127)는 과학의 목적을 진리로 설정하는 것은 유토피아적이라 고 말한다. 왜냐 하면 우리가 진리에 얼마나 도달했는가를 알 수 없 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떤 이론이 참이거나 또는 확률적으로 참이거나 전리에 접근하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진리라는 목적에 얼마나 도달했는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문제 해결의 유효도에 따른 합리성 의 모델은 이러한 난점을 가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인 상황에 서 한 이론이 이전의 이론보다 문제 해결에 있어 더 효과적인가 그렇 지 않은가 하는 것만을 결정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 다. 그런데 여기에서 어떤 이론이 더 효과적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형 식적인 계산의 문제가 아니고 철저하게 역사적인 문제이다. 예를 들면, 18세기 데카르트적이고 라이프니츠적인 연구 전통이 무 너지고 뉴턴적인 연구 전통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 진보였는 가 그렇지 않았는가 하는 것은, 그 당시 과학계의 토론과 논쟁을 면 밀히 검토해야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역사가의 역사적인 상황 판단이다. 역사적으로 상황을 판단하는 경우에 한해서, 그 당시 토론과 논쟁 속에서 어떤 문제가 경험적이고 개념적인 문제 로 제기되었는가를 알 수 있으며, 역사적 맥락 안에서 이러한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가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이 론 선택이 합리적이었는가 비합리적이었는가 하는 것은 형식적인 계 산의 결과가 아니라, 철저하게 그 선택이 행해진 역사적 맥락에 의존 하게 된다. 과거 과학의 합리성을 분석함에 있어 그와 관련된 그 시대의 과학 자들이 생각하고 있었던 과학 활동에 대한 합리성의 개념을 무시해서 는 안 된다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나게 되었다. 그 이유는 〈과거의 과 학자들은 현대의 합리성의 기준에 구속받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의 기 준이 아닌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그 당시 이론의 수용 가능성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만 했기〉(Laudan, 1987, 129) 때문이다. 물론 우리가 가 진 합리성의 이론이 그들의 그것보다 더 낫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 지만. 우리들의 기준에 따라 그들을 판단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가능하 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이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라우든의 이러한 주장이 과거 과학자들의 실제적인 평가 모두를 합 리적인 것으로 간주해야 된다는 것을 함축하지는 않는다. 실제 과학자 들이 판단한 것을 모두 합리적인 것으로 간주해야만 한다면, 합리성의 이론은 단순히 기술적인 차원에 머물게 되고 규범적인 단계까지는 나 아가지 못하게 될 것이다. 과거 과학자가 〈이론 T2가 이론 Tl보다 더 낫다〉는 판단을 했다고 해서 〈실제로 T2가 Tl보다 더 낫다〉는 것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라우든에 따르면 〈과학자들이 어떻게 경합 관계에 있는 이론들 가 운데 한 이론을 선택하는가?〉라고 하는 기술적인 물음과 〈과학자들이 어떻게 경합 관계에 있는 이론들 가운데 한 이론을 선택해야만 하는 가?〉라는 규범적인 물음을 구별해야만 한다. 그는 형식적 합리주의의 고유한 특성인 기술과 규범(과학철학자들이 의삽한)의 이분법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라우든과 같이 합리성을 문제 해결의 유효도 함수로 볼 때 제기되 는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경합 관계에 있는 연구 전통들 사이에서 무엇을 문제로 간주하고, 무엇을 그 문제에 대한 해결로 간주해야 하 는가에 대한 일반적인 합의가 없는 경우, 어떻게 합리성이 결정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맥멀른E.McMullin(627)이 지적하고 있듯이 〈무엇이 문제로 간주되어야 하는가가 궁극적으로 연구 전통에 의해 결정된다〉면 한 연구 전통이 갖는 문제 해결의 유효도는 오직 한 연 구 전통의 내부에서만 측정할 수 있기 때문에 연구 전통들 사이의 비 교는 불가능하게 된다. 맥멀른은 문제와 이론 사이의 관계를 고려함에 있어 완전히 쿤적인
입장을 따라 문제가 완전히 연구 전통에 의존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 연구 전통과 다른 연구 전통이 공약불가능하다는 전제 위에 서 이러한 비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전제는 비판의 여지가 있다. 문제가 완전히 연구 전통 의존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라 우든은 문제가 완전히 연구 전통에 종속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경 합 관계에 있는 연구 전통들은 의사 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로 공약불 가능하지는 않기 때문이댜 전통적 합리주의자들의 주장과 달리 한 이 론이 다른 이론으로 환원되거나 제 3의 이론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연구 전통은 서로 공약불가능하긴 하지만, 공통의 문제가 전 혀 없다거나 의사 소통이 완전히 불가능하다는 의미에서 두 연구 전 통이 공약불가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연구 전통이 공통의 문제로 간주할 수 있는 그러한 문제는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겔H.Siegel(1980, 135)은 라우든의 이러한 주장을 인정한다고 하 더라도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고 말한다. 경쟁 관계에 있는 연구 전 통의 지지자들이 어떤 문제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할지라도 지지자들은 그러한 문제의 본질과 중요성을 때때 로 달리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곧 두 연구 전통의 지지자들은 어 떤 것이 하나의 문제라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그것의 상대적 중요성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할 수도 있기 때문에 경쟁적인 연구 전통의 장점을 평가함에 있어서는 합의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라우든의 입장에 따르면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에서 연구하 는 과학자들은 연구의 비중과 중요성에 대해서 공통적인 인식을 가지 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문제〉라는 개념을 집합 명사로 사용하면, 시간과 장소를 달리하면서 나타난 문제들 사이의 중요성이나 특징이 모호해질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을 떠나서 객관 적으로 문제의 중요성을 매기려는 입장은 결국 전통적 합리주의자와 다를 바가 없다.
2.5 대화로서 합리성 : 로티 다음으로 과학의 합리성에 대한 로티의 입장을 검토해 보자. 로티의 과학의 합리성에 대한 논의에 앞서. 그의 인식론에 대한 입장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로티가 보기에는 전통적인 과학철학은 전통적인 인식 론의 연장선에 있으며, 과학의 객관성이나 합리성에 대한 현대적 논의는 전통적인 인식론을 과학 지식에 적용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로티는 거울 이미지에 근거한 철학과 그렇지 않은 철학을 대비한다. 전통 철학은 우리의 마음을 다양한 표상을 반영할 수 있는 거울이라 고 생각하였다. 마음을 거울로 생각하는 철학에서 참된 지식은 세계를 정확하게 표상하는 지식이다. 로티는 이러한 지식 개념은 데카르트 R.Descartes와 칸트I.Kant의 인식론에 극명하게 나타나 있다고 주장한 다. 전통 철학에서는 마음은 자연의 거울이고, 지식은 자연의 정확한 표상이다. 그는 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이 메타포가 현대 분석철학 전반, 곧 인식론, 심리 철학, 언어 철학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신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없기 때문에 객관적인 관점에 설 수 없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서 세계를 기술할 수 있을 뿐이며, 언어는 인간이 만들어 낸 우연의 산물이다. 어떤 어 휘가 다른 어휘보다 실재에 더 가까이 가 있는가 하는 물음은 잘못된 물음이다. 각각의 어휘들은 각각의 목적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다 른 목적과 비교하여 실재에 더 접근해 있는 목적은 촌재하지 않는다. 특히 사물의 운동을 예측하는 방법을 발견하거나 사물의 행태를 설명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사물이 어떠한가를 발견하는〉 목적은 존재 하지 않는다. 로티는 모든 종류의 지식은 전통에 묶여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그대로의 사물을 결코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가다머 H. -G. Gadamer의 철학적 해석학을 전격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규범과 신념
이 전통의 제한을 받는다고 강조한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히 선입견과 영향사를 강조하는 가다머를 따르고 있다. 그(1982, xix)는 가다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가 속해 있는 전통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으 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실재에 대한 개념을 존재하는 그대로의 실재 와 비교하기 위해 〈우리의 피부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믿는다. 모 든 형태의 지식은 〈찾아 내거나〉 〈발견한 것〉이 아니라 〈만든 것〉이 라는 로티의 주장도 이와 맥을 맞대고 있다. 만일 지식이 표상 기능 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죽 지식이 세계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거 울처럼 비추지 않는다면, 그러한 주장을 정당화할 수 있는 토대 또는 근거를 추구해야 할 필요가 없게 된다. 로티의 이러한 사유는 전통적인 인식론, 곧 기초주의에 대한 비판에 서 시작한다. 전통적인 인식론은 모든 지식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그 무엇을 발견하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 기초란 절대적으로 확실한 어떤 이론 체계 또는 사실적 기술을 의미한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아주 단순하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지식 전체를 획득할 수 있다고 생 각하였다. 그는 지식의 기초를 발견하려는 시도는 그러한 기초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포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그는 지식의 확실한 기초를 발견하려는 충동과 노력은 무익할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고 경 고한다. 로티(1979, 3)는 기초주의 위에 서 있는 인식론의 특징을 자 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철학은 나머지 다른 문화에 대해 기초적일 수 있다. 왜냐 하면 문화는 지식에 대한 주장들의 집합이고, 철학은 그러한 주장들을 판결하기 때문 이다. 철학이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까닭은 철학이 지식의 기초를 이해 하고 인식 주체로서의 인간에 대한 연구와 그러한 지식을 가능하게 하는 〈정신적 과정〉 또는 〈표상 활동〉을 연구함으로써 이러한 토대를 발견하 기 때문이다. 안다는 것은 마음 밖에 존재하는 것을 정확하게 표상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식의 가능성과 본질을 이해하는 일은 마음이 그러한 표 상을 구성할 수 있는 방법을 이해하는 것이다. 철학의 중심적인 관심은 일반적인 대표설에 있다. 대표설은 문화를 실재를 잘 대표하는 영역. 전혀 대표하지 못하는 영역. 잘 대표하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전혀 대표하지 못 하는 영역으로 나눈다. 로티는 〈데카르트적이고-로크적이고_칸트적인 전통〉이라 불리지는 근대 인식론의 전통을 허물려고 하였다. 이러한 기초주의는 번스타인 R. Bernstein(1983, 16) 이 말하는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라는 〈데카르 트적 불안〉을 보여 주고 있다. 〈존재와 지식의 확고한 토대를 지지할 수 없다면, 우리는 우리를 광기와 지적 혼란과 도덕적 혼란으로 감싸 는 어둠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17)는 불안이 기초주의를 찾는 이유라는 것이다. 로티는 근대 인식론의 전통을 비판하면서 과학적 지 식에 대한 해석을 새롭게 하고 있다.
17) R. J. Bemstein(1983), Beyond Objectivism and Relativism: Science, Hermeneutics, and Praxis (Philadelphia: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p. 16.
로티는 자연과학과 그 나머지 문화와의 관계를 반표상설적인 관점 에서 설명한다. 자연과학이 인식론적으로 다른 것보다 우월하다는 생 각은 근대 인식론의 소산이다. 반표상설적인 해석에 따르면 과학 지식 은 마음과 언어로부터 독립된 〈참되고〉, 〈객관적인〉 실재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를 잘 처리할 수 있는 행동의 습관을 획득하는 것 이다.〉 이론 물리학과 문예 비평의 차이는 인식론적인 것이 아니고 사회학적인 것이다. 그는 과학, 문학, 예술 사이에 존재하는 것으로 생 각되었던 인식론적인 위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의 입장을 프래그 머티즘이라고 한 로티(1982, xliii)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프래그머티즘은 과학을 한때 하나님 God이 차지하였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우상으로 떠받들지 않는다. 프래그머티즘은 과학을 문학의 한 장
르로 본다. 즉 프래그머티즘은 문학과 예술을 과학적 탐구와 동일한 발판 위에 서 있는 탐구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프래그머티즘은 윤리학이 과학 적 이론과 비교해서 더 〈상대적〉이거나 또는 〈주관적〉이라고 보지 않으 며. 〈과학적〉일 필요도 없다고 본다. 물리학은 우주의 다양한 부분의 어 느 한 부분에 대처하는 방법이다. 윤리학은 다른 부분에 대처하는 방법 이다. 로티가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하고 있는 벨라민 추기경과 갈릴레오 Galileo의 논쟁을 살펴보기로 하자. 오늘날 우리는 추기경은 틀렸고, 갈릴레오가 옳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한 까닭은 무엇인가? 〈실 재〉에 비추어 추기경이 틀렸고 갈릴레오가 옳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로티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18) 계몽주의자들은 추기경이 성서에 근 거하여 코페르니쿠스 이론의 범위를 제한할 목적으로 교회와 유럽 전 통의 보존과 관련된 종교적이고 문화적인 문제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취급하려는 잘못을 범했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추기경은 과학적인 관심사를 비과학적인 가치로 판단한 것이다. 그 결과 그는 신앙과 구 별되는 합리적 지식의 특성을 구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로티가 밝히려는 핵심은 과학적인 것과 비과학적인 것이라 는 구별 자체가 하나의 역사적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갈릴 레오의 옹호자들이 벨라민을 반박하기 위해 과학과 비과학이라는 구 분을 사용하기 이전에는 그 구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한 구 별이 하늘에 쓰여져 있는 것도 아니고 있는 그대로를 표상하고 있지 도 않다. 곧 〈‘철학자’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17세기 개념 과 ‘합리적' 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계몽주의적 개념의 영향으 로 갈릴레오는 절대적으로 옳고 교회는 절대적으로 틀렸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1979, 328)는 것이다. 18) 이에 대한 논의는 다음을 참조. Wamke(1987), pp. 147-148.
이 구분 자체는 갈릴레오와 벨라민의 논쟁 과정 자체에서 나온 것 이다. 이 구분이 갈릴레오의 입장의 일부라면 갈릴레오의 입장을 정당 화하는 데 사용할 수 없다. 확실한 것은 벨라민이 성서에 호소하는 태도는 우리가 볼 때 과학과 종교를 혼동했다는 점에서 오류를 범하 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로티(1979, 330-331)에 따르면 그것이 그러 한 까닭은 과학과 비과학을 구별하는 우리가 옳고 구별하지 않는 벨 라민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갈릴레오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는 과학과 종교, 과학과 정치, 과학과 예술. 과학과 철학 등에 대한 첨예한 구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300년 동안의 레토릭을 이어받은 후손 들이다. 이 레토릭이 유럽 문명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문명이 오늘의 우리 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구별에 대해 충성심을 선언하는 것이 그 러한 구별을 채택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논증이 존재한다 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갈릴레오는 그러한 논증을 해 냈고` 우 리는 갈릴레오의 승리의 결과로서 근대 철학이 발전시켜 온 적절함과 부 적절함을 구분함에 있어 공통의 기준을 가지게 된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전통 위에 서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과학과 과학적 가 치를 종교와 종교적 가치와 구별하는 것을 수용한다. 오늘날 우리가 과학을 수용하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자연을 가장 잘 표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자연을 정복하고 인간의 삶을 개선함에 있어 엄청난 프래그머틱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학은 자연의 〈복사〉 가 아니라 〈대처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관점이다. 로티의 견해에 따르면 어떤 주어진 하나의 목적을 달성함에 있어 갈릴레오는 종교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어휘보다 더 나은 어휘를 만 들어 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목 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갈릴레오를 선택하고 있다. 그러나 만일 과
학적인 관심과 비과학적인 관심이 어떻게 구별되는가 하는 것이. 관련 된 전통이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가에 달려 있고 절대적인 의미 에서 〈합리성〉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철학자들이 일반적으로 행하 고 있는 인식적 지식의 문제와 속견의 문제를 나누어 보는 구분은 폐 기되어야 마땅하다. 로티는 프래그머티즘의 특징인 〈진리〉, 〈지식〉, 〈언어〉. 〈도덕〉 등 의 관념에 적용된 반본질주의, 사실과 가치, 도덕과 과학 사이의 이분 법의 폐기, 대화적인 것만이 탐구에 제한을 가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프래그머티즘의 전통에서는 대상, 정신, 언어의 본성은 우리에게 어떤 제한도 부과하지 않는다. 다만 동료 탐구자들이 부과하 는 제한이 부분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탐구의 출발점은 미리 어떤 것 에 의해 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우연적이라는 것이다. 출발점이 우연하다고 함은 우리의 탐구를 안내하는 것은 대화와 동료 인간들뿐 이라는 의미이다. 인간에게 인식의 구조나 능력이 선험적으로 들어 있 는 것도 아니고, 세계가 어떤 본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듯이 우 리 인간도 인식의 기제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로티의 설명에 따르면 〈객관적〉, 〈인식적〉이라는 개념의 사용은 탐 구자들 사이의 합의의 존재를 표현하는 것에 불과하다. 로티에 있어서 객관성이라는 개념은 실재를 성공적으로 표상하고 있다는 의미로 이 해되어서는 안 되고. 다만 합의를 표현하거나 희망을 표현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만일 이것이 객관성이라는 이념의 전부라면, 지식과 속견 사이의 구별뿐만 아니라 지식 일반의 기초에 관한 인식론적인 관심도 필요없게 된다. 토론에서의 핵심은 실재를 올바로 볼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는 것 이 아니라 대화를 계속하는 것이다. 〈대화를 계속하는 것〉은 〈철학의 충분한 목적〉이 되며, 지혜는 인식의 근거를 찾아 내는 능력이 아니 라 〈대화를 지속하는 능력〉이다(Rorty, 1979, 378). 그렇다고 로티가 모든 주장의 평등을 내세우는 것은 아니다. 어떤
분야의 여러 신념들 가운데 어느 하나의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중립 적인 알고리듬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그 신념 가운데서 우리가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주장과 동일한 의미는 아니다. 그러한 알고리 듬의 부정은 다만 진리 개념, 실재, 또는 도덕 법칙에 근거하여 어떤 특정의 견해를 긍정하거나 부정할 수 없음을 뜻할 뿐이다. 그러한 결 정은 어떤 입장이 가지고 있는 구체적인 장점이나 결점과 관련된 대 화의 과정을 통해 결정된다. 그는 합리적이라는 말을 〈방법적〉이라는 의미로 사용하지 않고 〈양 식 있는 sane>,〈분별 있는reasonable〉과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그는 합리성을 객관적 진리, 실재와의 대응, 방법, 기준과 관련시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 또는 상대적인 것을 구별하 지도 않으며, 〈진정한 지식〉과 〈단순한 의견〉 또는 〈사실적인 것〉과 〈판단적인 것〉을 구별하지도 않는다. 이것은 일군의 도덕적 덕목을 지칭한다. 관용,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의견에 대한 존중, 다른 사람들 의 말을 경청하려고 하는 태도, 힘이 아닌 설득에 대한 존중을 의미 한다. 이러한 것은 문명화된 사회를 계속 지속하려면 갖추어야 하는 덕목이다.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 〈합리적〉이라는 말은 〈방법적〉이라 는 말보다는 〈교양이 있는〉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이렇게 해석될 때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것의 구별은 예술과 과학의 차 이와는 특별한 관계를 맺지 않게 된다. 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합리적 이 된다는 것은 어떤 주제이든, 곧 그 주제가 종교적이든 문학적이든 과학적이든 관계없이 교조적 태도나 방어적 태도를 가지고 논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Rorty, 1991, 37). 로티는 합리주의와 상대주의의 문제는 어떤 견해가 다른 견해와 똑 같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 목적, 제도가 대화를 통해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다른 지지 기반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 사이 에 발생한다고 말한다. 자신은 기초주의에 반대하지만 새로운 의미의
합리성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다만 이성을 대화로 대체시키려고 하였을 뿐인데 이러한 입장을 기초 주의자들은 상대주의로 비난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패러다임에서 본다면 로티의 이러한 프래그머티즘적인 주 장은 과학의 합리성에 대한 일종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꾀하는 것이다. 그는 근대적인 인식론과 과학철학의 종언을 선언하고 포스트 근대적 인 관점에서 합리성의 개념을 재구성해 보려고 하였다. 근대의 특징은 인식론에 있어서 기초주의, 언어 철학에 있어서 대응 설로 규정되며, 포스트 근대의 특징은 인식론에 있어서 전체주의, 언 어 철학에 있어서 언어의 의미는 그 사용에 있다는 의미 이론으로 요 약될 수 있다. 이 양자 사이에는 이데올로기 문제에서와 같은 수렴 이론도 적용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로티의 합리주의는 포스트 근대 의 과학철학에서 말하는 합리성 옹호에 해당한다. 따라서 근대적인 관 점에서 본다면 로티의 합리주의는 상대주의의 아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로티의 합리주의는 근대적인 합리성 이론의 부정을 일차적인 목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부정하려고 하는 기준을 자신을 평가하는 잣대로 삼으려 하지 않는다. 근대적 세계관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의 관점에서 본다면 포스트 근대적인 성격을 지닌 합리성에 대한 주장은 필연적으로 상대주의와 비합리주의로 귀착된다. 따라서 포스트 근대적 의미의 합리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합리성을 자신의 과제로 삼아 온 과학철학의 기본 전제를 검토해야 한다. 3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할 과학철학과 과학의 관계 지금까지 합리성에 대한 여러 입장들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살핌을 통해 합리성에 대한 논의들 사이에도 공약불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사 실을 알게 되었다. 보편 타당한 하나의 합리성을 추구해 온 전통적인 과학철학은 명백한 한계에 부딪치게 되었다. 이제 합리성 이론 자체의
성격을 살펴볼 시점에 도달하였다. 〈과학〉의 본질에 대한 설명은 과학자가 스스로가 제시하지 않고 과 학철학자들이 제시하여 왔다. 과학철학자들은 과학의 목적, 방법, 이론 선택의 기준, 과학적 개념, 과학 이론을 논리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과 학의 의미와 논리적 구조를 설명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입장은 〈철학 은 오직 논리적 관점에서 과학을 디룬다. 철학은 과학의 논리학 곧 개념, 명제, 증명, 과학 이론에 대한 논리적 분석이다.〉라는 카르납 (1984, 6)의 과학철학에 대한 정의에 잘 나타나 있다. 포퍼도 경험 과 학에 대한 〈논리적 분석〉, 곧 〈경험 과학의 방법을 분석하는 것〉을 〈과학적 발견의 논리〉 또는 〈지식의 논리〉의 과제로 보고 있다 (Popper, 1959, 27).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과학철학자들이 과학의 본질을 찾아 내려고 한 이유이다. 이들은 플라톤 이래 지식론 전통의 안에서 과학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시도하고 있다. 진리를 추구한다고 자임하 여 온 철학은 끊임없이 〈구별짓기와 차별하기〉를 해 왔다. 플라톤 Platon은 〈에피스테메 episteme〉와 〈독사doxa〉를 구별하였다. 이데아계 에 대한 지식은 〈에피스테메〉이고 〈감각 세계〉에 대한 지식은 〈독사〉 이다. 철학자만이 이데아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 있다. 이들만이 이성 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이러한 구별을 통해 지식을 서열화할 수 있는 위계 체계를 제시하였다. 그(Rorty, 1997, 174)가 제안한 위계에서는 순수한 논리만 사용하는 수학이 맨 위에 있고, 대부분 레토릭만 사용하고 전혀 논리 를 사용하지 않는 문예 비평과 정치적 설득은 맨 아래에 있다. 지식 에도 인간들 사이의 신분처럼 높고 낮음이 있다는 것이다. 철학자들은 항상 이 위계를 정당화하고 설명하려고 했다.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 하는 것이 어떤 형태의 지식이고, 가장 낮은 자리를 차지하는 지식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되지 않았지만, 이 시도만은 끊임없 이 존재하였다. 중세의 철학자들 근대의 데카르트, 스피노자B. Spinoza,
로크J.Locke, 칸트도 지식의 〈구별짓기와 차별하기〉를 해 왔다. 근대 이후 이러한 철학 전통에서 과학은 가장 합리적인 지식으로 독점적인 지위를 누렸다. 그러나 쿤은 과학이 어떤 과학 고유의 〈방 법〉을 적용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도 아니며, 패러다임의 대치는 엄격 하고 엄밀하고 논리적인 기준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정치 제도가 다른 정치 제도로 대치되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일어 난다고 주장함으로써 이러한 전통에 도전하였다. 로티의 해석에 따르 면, 그는 과학 혁명이 논리적인 추론의 과정을 거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 후보자가 형성되는 적절성의 기준이 변화함으로써 일어 난다고 함으로써 논리와 레토릭 사이의 구별을 흐려 놓았다. 곧 그는 갈릴레오는 따르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따르지 않은 〈과학적 추론의 규 칙〉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깨는 데 도움을 주었다. 로티(1997, 179)는 쿤의 혁명적인 통찰에 힘입어 커다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 말한다. 나를 비롯해서 쿤울 읽은 사람들은 맨 위에 논리적인 것, 객관적인 것, 과학적인 것이 자리잡고, 맨 아래에는 레토릭, 주관적인 것, 비과학적인 것이 자리잡은 인식론적-존재론적 체계의 문화 지도 대신에. 기준이 끊임 없이 변하는 왼쪽의 혼돈과 적어도 당분간 기준이 고정되어 있는 오른쪽 의 말쑥한 질서를 포괄하는 사회학적인 스펙트럼의 문화 지도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한 스펙트럼에 의해 생각하게 되면, 하나의 학문이 혁명적인 시기 에서는 왼쪽으로 움직이고 쿤이 〈정상 과학〉이라고 부른 시기, 곧 안정적 이고 단조로운 시기에는 오른쪽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부 분의 철학이 스콜라적이었고, 대부분의 물리학이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 에 만족하였던 15세기에, 물리학과 철학은 오른쪽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 었다. 17세기에 물리학과 철학은 왼쪽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문예 비평은 낭만주의 운동 이후와 비교하여 오른쪽에서 더 멀리 있었다. 19세 기에는 물리학은 자리를 잡고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철학도 그렇게 하려
고 처절한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20세기에 와서 철학은 두 전통(〈분석적〉 전통과 〈대륙적〉 전통)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이 분리된 두 전통은 서 로 〈참된 철학을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각각 자기 분야의 성공에 대한 명백한 내적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누가 가치 있는 연구를 하고 있 는가에 대한 국제적인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철학은 현대 자연 과학과 같은 처지가 아니라 현대 문예 비평과 같은 처지에 있다. 문화의 위계에서 과학을 맨 위에 놓고 싶어하는 과학철학자들은 쿤 이나 로티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로티가 문화의 위계에서 과학을 결코 더 낮은 자리에 앉히고 싶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다만 그러한 질서를 구성하기 위해 〈실재〉와 〈객관적〉 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학문의 지위 에 대한 질문을 학문의 유용성에 대한 질문으로 대체하고 싶어한다. 그에게는 분과 학문들 사이에 위계를 세우거나 문화적 활동 사이에 위계를 세우려는 것은 연장통의 도구들 사이에 위계를 세우거나 정원 의 꽃들 사이에 위계를 세우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일처럼 보인다. 전통적인 철학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 로티의 이러한 입장은 상대주 의로 분류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통적인 철학이 설정해 온 합리성 의 기준을 과학이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상황은 달라 질 것이다. 쿤이나 로티가 상대주의자가 아니라 전통적인 과학철학자 들이 잘못된 합리성에 대한 기준을 설정한 것으로 밝혀지고, 쿤과 로 티가 합리주의자임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우선 과학철학에서 합리주 의를 옹호한다고 자인하는 사람들이 결코 반성해 본 적이 없는 사유 지평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철학자들이 추구하는 합리성은 인류학자들이나 사회과학자들이 추 구하는 합리성과 구별된다. 그들이 사용하는 합리적이라는 말에는 강 한 규범적인 의미가 들어간다. 합리적 행동에 대한 정의 가운데 하나 는 어떤 행동을 그 행동이 도모하려는 목적과 연관하여 판단하는 경
우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어떤 목적을 성취하려고 하는 행위자가 그 행동이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믿고 그 행동을 하면 합 리적 행동이다. 비가 오지 않아 걱정하던 농부가 산에 올라가 기우제 룰 지내면 비가 온다고 믿고 기우제를 지내면, 이 농부의 행동은 합 리적 행동이다. 14세기 유럽 인구의 30% 이상의 생명을 앗아 간 혹사 병이 창궐하였을 때, 교회는 사람을 모아 놓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 다. 신앙이 과학의 자리를 대신할 수 았었던 그 시대의 사람들은 기 도가 역병을 물리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이때에 이들의 행동은 합리적 행동이다. 이때 아비뇽에서 교황의 주치의는 교황 주변에 불을 놓아 혹사병으 로부터 교황을 보호하였다. 주치의는 불길한 구름이 혹사병의 원인이 기 때문에 불을 피어 구름을 멀리 보냄으로써 혹사병으로부터 교황을 지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교황은 살아남았다. 쥐 벼룩이 불길을 뚫고 교황에게 접근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본다면 우연의 일치였지만, 주치의는 양자 사이에 필연적 연 관이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주치의의 행동도 합리적 행동이다. 이러 한 의미의 합리성을 자비 I.Jarvie와 애거시 J.Agassi는 〈약한 의미의 합리성〉이라고 불렀다. 경제학자, 인류학자, 사회학자, 사회 심리학자를 비롯한 사회과학자 들은 인간이 약한 의미에서 합리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오늘날 에는 보통 사람이나 과학철학자의 관점에서 볼 때, 기우제나 마술과 같이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행동도 문화 인류학자들은 약한 의미의 합 리적 행동으로 이해한다. 인류학자의 눈에는 모든 사람이 약한 의미에 서 합리적으로 보일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인공 강우를 시 도하는 현대 과학자들의 노력과 기우제를 지내는 농부의 행동은 모두 합리적 행동이다•
3.1 철학에서 합리성에 대한 논의 철학자들은 약한 의미의 합리성은 합리성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철 학자들은 세계에 대한 이론을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것으로 구별 하여 합리적인 것은 받아들이고 비합리적인 것은 물리치려고 하기 때 문이다. 전통적으로 철학자들은 합리적인 이론과 비합리적인 이론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며 이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 다. 철학에서 합리성의 이론은 방법론의 일부이다. 적어도 1960년 이전까지는 합리성의 문제를 정당화의 문제로 생각 하여 정당화된 지식만이 합리적인 지식이라는 입장이 주도적이었다. 고전적 정당화주의는 증명된 지식만이 합리적인 지식이라는 관점을 취하였다. 이러한 입장 배후에는 과학적 지식은 정당화된 지식이라는 관점이 전제되어 있다. 정당화주의자들은 지식과 단순한 믿음을 구별 하고 지식만이 합리적이라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그러나 쿤의 『과학 혁명의 구조』는 과학의 합리성을 논의하는 방식 을 바꾸어 놓았다. 그는 패러다임 선택의 문제를 중심으로 합리성의 문제를 논의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과학의 합리성의 문제는 정당화의 문제가 아니라 이론 선택과 관련하여 논의되었다. 곧 이론 선택의 객 관적 기준이 존재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둘러싸고 합리성의 문제가 진행되었다. 최근에 〈절충 모델〉을 내세운 키처 P. Kitcher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정당화주의는 합리성의 문제에 대해 분명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 정 당화된 이론이나 주장만을 세계에 대한 합리적인 이론이나 주장으로 간주하였다. 경험에 의해 증명된 주장만이 합리적으로 수용할 가치가 있다는 관점이다. 반중되었거나 증명이 불가능한 주장은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참으로 증명된 세계에 대한 주장에 근거하여 행동한다면 강한 의미에서 합리적이다. 인공 강우를 시도하는 노력은 기우제보다 더 합리적이다. 인공 강우로 비를 오게 할 수 있다는 주장은 논증에
의해 입증된 주장이지만 기우제가 비를 오게 한다는 주장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근대 합리론과 경험론은 논증적 증명에 앞서 〈확실한 기초〉를 찾으 려 하였다. 데카르트는 이성을 사용하여 의심의 여지가 없는 명석 판 명한 코기토의 개념을 전제로 인식의 지도를 만들었다. 공리로서 코기 토는 이성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자명하다. 논리적 논증에 의한 증명으로서 합리성은 공리가 이성에 의해 스스로 〈증명〉되었기 때문 에 확보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경험론은 무한 퇴행이 멈출 수 있는 계기를 무오 류적인 감각 또는 경험에서 찾았다. 〈기초 진술〉은 감각 경험에 의해 참으로 알려지게 된다. 기초 진술은 논리적 논증이 아니라 경험에 의 해 증명된다. 〈증명된〉 전제가 주어지면 논리적 귀납에 의해 세계에 대한 주장이 진리임을 논증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 논증에 의한 증명 이라는 의미에서 합리성은 증명의 기초가 경험에 의해 증명되었기 때 문에 가능하다. 후세 철학자들은 데카르트의 철학과 베이컨F.Bacon의 철학을 합리 론과 경험론으로 규정하고 대립적인 사조로 기술하고 있지만 포퍼의 지적과 같이 양자 사이에는 동일성이 있다. 학문의 확고하고 영원한 구조를 발견하려고 한 데카르트는 우리 인식의 기초를 확립하고 지식 의 기준을 제시하였다. 그는 〈명석하고 판명한 지식만〉이 지식의 이 름에 걸맞는 지식이라고 생각하였다. 데카르트의 관점에 따르면 과학 은 〈보편적인 방법론적 규칙〉에 의거하여 확실한 지식을 추구해야 한 다. 그렇지 않으면 과학은 비합리적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논리적 으로나 실제적으로 우선하는 것은 데카르트가 제시한 지식의 자격 기 준이지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형태의 지식이 아니다. 따라서 이 조건 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모든 형태의 앎은 폐기되어야 한다. 데카르트의 절대적인 영향 아래에 있는 현대 과학철학도 페라(1986, 360)가 말하 는 〈데카르트 신드롬〉에 빠져 있다. 페라는 〈과학적 탐구는 비개인적
이고 보편적인 어떤 방법론적 규칙에 복종합으로써 그것의 목적을 추 구한다〉는 이념인 〈데카르트의 신조〉와 〈과학의 합리성은 그러한 규 칙에 의존하며 그 규칙을 위반하면 비합리주의에 빠진다〉라는 이념인 〈데카르트 도그마〉가 결합하여 〈데카르트 신드롬〉을 형성하였다고 말 한다. 합리성을 온당하게 이해하려면 〈데카르트 신드롬〉에서 빨리 벗 어나야 한다. 데카르트의 전통에 서 있는 네이글T.Nagel은 지식이 갖추어야 할 객관적 원리를 이성에서 찾는다. 그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원리의 타 당성을 이성에서 찾으려 하였다. 그에 의하면 그것의 타당성은 사람들 의 관점이나 실천과는 무관하다. 근거 없는 편견, 의결, 전통, 또는 의적 권위가 아니라 이성 자체의 권위에 의존해야 한다는 데카르트의 전통에 서 그는 이성이 보편적인 기준 구실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이러 한 입장을 〈합리주의〉라 부르고 그렇지 않은 입장을 〈주관주의〉라 불렀 다. 합리주의에 따르면 이성의 이념은 비국지적이고 비상대적인 정당화 의 방법을 가능하게 한다. 네이글은 이러한 방법을 통해 비상대적 진리 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성의 본질적인 특성은 일반성에 있으며, 보편적이고 예외가 없는 원리에 도달하는 것이 목적이다. 반면에 상대 주의자와 주관주의자는 이러한 일반성을 부정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네이글이 말하는 주관주의에 따르면 대부분의 신념과 방법의 불일 치는 서로 다른 준거틀, 사유 양식 또는 실천 양식, 생활 양식에서 발 생한다. 따라서 이것들 가운에 어느 하니를· 선택하는 판단은 객관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오직 힘의 대결이 존재할 뿐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주관주의자들이 언어. 과학, 정치 공동체 구성원 들 사이의 합의의 조건 형식에서 일반성에 도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 은 정당하지 못한 일반성이다. 그 일반성은 통계적 일반성이지 이성적 일반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네이글(1997, 1-11)은 데카르트와 프레게 G.Frege에 공명하면서 인 간 이성이 미칠 수 있는 것에 대해 한계를 설정한 흉D.Hume, 칸트,
비트겐슈타인L.Wittgenstein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였다. 그는 콰인, 굿맨 N. Goodman, 퍼트남 H. Putnam. 로티를 주관주의자로 분류하고 혹평하였다. 데카르트와 네이글의 입장은 〈합리적 작업〉의 모델은 〈과학〉이 아 니라 〈법학〉이라고 생각한 16세기 학자들의 입장과 극명한 대조를 이 룬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초시간적인 것이 아니라 시간적인 것 에.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것에,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국지 적인 것에.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것에 물음을 제기하였다 (S. Toulmin, 1997, 63-64). 무엇을 〈합리 적 인 것〉으로 여 기 는가는 역 사적 우연인 것처럼 보인다. 번스타인(1988, 8)의 표현에 따르면 데카르트와 네이글의 철학은 〈객관주의〉이다. 번스타인은 합리성, 지식, 진리, 실재. 선. 옮음의 본 질을 결정할 때, 우리가 궁극적으로 호소할 수 있는 어떤 불변적이고 비역사적인 매트릭스 또는 틀이 존재하거나 존재해야만 한다는 기본 적인 확신을 〈객관주의〉라 부른다. 번스타인에 따르면, 객관주의자는 그러한 매트릭스가 존재해야만 한다고 믿고. 철학의 일차적인 과제는 그것이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것이며, 있을 수 있는 논거 가운데 가장 강한 논거를 이용하여 그러한 매트릭스를 발견했다는 자신의 주장을 지지하려 한다면 한다. 객관주의자는 철학, 지식 또는 언어에 대한 엄 밀한 근거를 제시할 수 없다면. 우리는 극단적인 회의주의를 피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곧 그들은 객관주의냐 회의주의냐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곧 번스타인의 표현을 빌리면 데카르트의 불안에 젖어 있다. 반면에 객관주의자의 적극적인 주장을 부인할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철학자들이 가장 근본적인 것으로 여겨 온 개념, 곧 합리 성. 진리. 실재. 옳음. 선의 개념 또는 규범의 개념을 검토할 때, 최종 적으로 분석할 경우 그러한 모든 개념들은 하나의 특수한 개념 도식. 이론적인 틀, 패러다임. 삶의 양식, 사회 또는 문화에 대해 상대적인
것으로 이해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번 스타인은 상대주의라 부른다. 상대주의자들은 상호 환원 불가능한 다 수의 개념 도식이 촌재한다고 믿을 뿐만 아니라. 경쟁 관계에 있는 대안적인 패러다임의 주장들을 합리적으로 판결하고 통일적으로 평가 할 수 있는 실질적인 구조틀이나 단일의 메타 언어는 존재하지 않는 다고 생각한다. 합리성의 기준 또는 표준과 관련하여 상대주의자는 〈우리〉 또는 〈그들〉의 합리성의 기준에서 평가할 수밖에 없다는 관점 울 취한다. 참으로 보편적이고 역사적 변화와 시간적 변화와 무관한 〈합리성의 보편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Bernstein, 1988, 8). 셰플러(1967, 1)는 이러한 이분법의 전통 위에서 〈과학적 지식의 기 본적인 특성이 객관성(합리성)에 있으며. 이 객관성의 이상은 독립적 이고 불편 부당한 기준에 의해 모든 과학적 진술들을 테스트하고, 인 식의 영역에서 개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성취될 수 있다〉 고 하였다. 이러한 이분법을 배경으로 과학의 합리성을 이해하고 있는 과학철학의 합리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은 전제를 자명한 것으로 생각 한다(Tianji, 1985, 415) . (1) 적어도 과학이 실제로 시작된 이후 모든 과학자들이 모든 시대 에 사용한 통일된 과학적 방법이나 방법론이 있다. 이것이 방법론의 통일성, 보편성, 안정성이다. (2) 비록 지금 우리가 그 원리를 형식화하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방 법론이나 합리성의 원리를 형식화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방법의 형 식화 가능성의 원리이다. (3) 형식화 가능한 원리나 형식적 원리는 과학의 목적, 곧 진리의 발견, 인식적 진보, 설명과 이해, 예측과 기술적 통제, 문제 해결 등을 성취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4) 형식화된 방법이나 형식화 가능한 방법은 과학과 비과학의 구 별 기준으로 사용될 수 있다.
이러한 과학적 방법을 통해 획득된 과학적 지식은 가치 중립적이며. 누적적이다. 과학적 법칙과 이론의 평가는 경험과 직접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다. 한 이론을 지지하는 경험적 사례가 나타나거나. 경험에 의 해 반증되지 않으면 그 이론은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반박 사례가 나 타나면 그 이론은 폐기된다. 이론과 관찰 경험은 명확히 구별되며, 이 론과 경험적 층거를 비교하여 이론의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일은 결 코 복잡한 과정이 아니다. 고유한 과학적 방법이 형식화되면 경합 관계에 있는 이론 가운데 한 이론을 선택하는 문제도 간단히 해결된다. 경합 관계에 있는 이론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 그 선택은 기계적인 방법에 의해 결정된다. 브라운H.Brown(1988, 5)의 표현을 빌린다면 그 선택 은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규칙〉에 의해 결정된다. 브라운이 그 결과가 〈보편적〉이라 함은 동일한 정보를 가지고 타당 한 추론을 하는 경우 동일한 결과에 도달함을 뜻한다. 만일 두 사람 이 어떤 상황에서 서로 다른 결과에 도달했다면. 그들은 같은 정보를 가지지 않았거나 적어도 두 사람 가운데 어느 하나가 합리적 방식으 로 결과를 유도해 내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수학과 논리학이 합리성의 전형이다. 브라운이 〈필연적〉이라 함은 주 어진 정보에서 합리적으로 승인될 수 있는 결과가 필연적으로 도출되 어야 함을 뜻한다. 이 조건이 필요한 이유는 합리적 추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집단적인 합의를 통해서도 동일한 결과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학과 논 리학이 필연적 추론의 전형이다. 수학과 논리학에서 보편적이고 필연 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규칙에 따라 추론을 했기 때문 이다. 따라서 규칙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합리성의 조건에 첨가된다. 규칙에 따른다 함은 그 규칙이 알고리듬의 역할을 수행함을 의미한다. 규칙은 알고리듬적으로 적용된다. 타당성에 대한 진리표의 방식이나 컴퓨터 프로그램이 알고리듬적인 규칙 적용의 실례이다
(Brown. 1988, 5-23). 전통적 합리주의자들은 이론 선택을 알고리듬적으로 결정해 줄 수 있는 일반적인 원리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형식적 합리주의에 따르 면. 이러한 일반적이고 비역사적인 원리에 의해 과학자들이 어떤 이론 을 선택하는 경우, 그 이론 선택은 합리적이고 그렇지 않은 이론 선 택은 비합리적 또는 상대적이다. 그러나 과학사에 근거한 새로운 과학철학은 이전의 과학철학자들이 파악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많이 깨닫게 하였다. 그들이 가져다 준 과학에 대한새로운 통찰은 다음과 같다. (1) 과학적인 변화의 가장 중요한 단위는 규모가 크고 오래 지속되 는 개념적 구조이다. 이것은 패러다임, 연구 프로그램, 연구 전통 등으 로불린다. (2) 이론들이 일단 승인되면 단순히 경험적안 문제를 만난다고 해 서 포기되는 일은 아주 드물다. 부정적인 실험이나 관찰 테스트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지속된다. (3) 데이터가 이론 선택을 충분히 결정할 수는 없다. 곧 관찰과 실 험이 경합 관계에 있는 이론들 사이의 선택을 결정하는 데 충분한 기 초를 제공하지는 못한다. (4) 이론 중립적인 관찰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관찰은 이론적재 적이다. (5) 후속 이론들이 선행 이론들이 성공적으로 설명한 것을 모두 포 함하지는 못한다. 이론들의 대치 과정에는 잃는 것도 있고 얻는 것도 있다. (6) 입증 이론이나 연역 논리는 이론의 평가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이와 같이 두 가지 입장이 대립하는 경우 우리는 어떤 관점에서 두
입장을 판단해야 할 것인가? 그 동안 합리성을 둘러싼 과학철학자들 의 논의는 데카르트의 이것이냐/저것이냐에 사로잡혀(Bernstein, 1988), 필연적으로 객관주의나 상대주의 가운데 하나는 선택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였다. 과학의 합리성에 대한 논의를 이러한 이분법적 툴 안에서 제기하는 사유 방식 자체를 문제삼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합리성에 대한 새로운 전망이 열릴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물음을 제기해 보자. 과학철학자들은 합 리적인 지식이 갖추어야 할 조건을 인식론적인 관점에서 설정하고. 그 조건을 과학이 충족시키기 때문에 과학을 합리적인 지식으로 인정하 게 되었는가. 아니면 합리적인 지식의 전형으로 과학을 전제하고 그 〈과학〉의 특성을 발견하려고 했는가. 만일 전자라면 과학철학은 자율성을 쉽게 유지할 수 있지만 후자라 면 자율성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전자의 경우 과학철학자들이 제시 한 기준이 실제 과학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제시한 기준을 유지하면서 과학이 그 기준을 충족할 때 참다운 과학이며. 그 렇지 않을 경우 과학은 수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할 수 있다. 곧 과 학철학자들이 제시한 합리적 지식의 기준을 실제 과학이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 과학이 합리적인 지식이 아니기 때문에 기준을 폐기할 것이 아니라. 과학을 폐기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는 지식의 탄생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후자인 경우 상황은 바뀌게 된다. 과학철학자들은 그들의 기준을 버리고 새로운 기준을 다시 모색해 야만 한다. 이 경우 과학철학의 정당성은 실제 과학에 의존하게 되고. 실제 과학이 과학철학에 우선한다. 과학철학자들이 제시한 합리적 지 식의 기준을 과학이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 과학이 아니라 기준을 폐기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과학철학자들은 이 점에 충분한 주목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포퍼는 전자의 입장과 후자의 입장을 구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듯하댜 그는 그가 제안한 기준이 실제 과학과 일치하면서 규범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였댜 그(1945, 260)는 〈과학의 방법에 대한 나의 견 해는 과학사에 의해 용인된다corroborated. 과학사에 따르면 과학 이론 들이 실험들에 의해 전복되며, 실제로 이론의 전복을 매개로 과학은 진보한다. 과학은 순환적이라는 주장은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였다. 포퍼는 자신의 과학관이 실제 과학과 일치한다고 생각한 것 이다. 그리하여 그는 전자의 입장에서 과학적 탐구가 준수해야 할 기준과 규범을 제시하였다. 이 규범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활동은 과학의 영역 에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과학임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고 그는 주장 하였다. 그가 구획 기준에 골몰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마르크스 주의와 아들러 A.Adler의 정신 분석 이론이 과학이 아님을 밝혀 사람 들을 미망에서 구하기 위함이었다. 포퍼의 이러한 입장은 〈규약론의 책략〉을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반 박하는 전략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규약론을 회피하는 유일한 길 은, 규약론의 방법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 리의 체계가 위협을 받을 경우에도, 어떤 종류의 규약론의 책략에 의 해서도 우리의 체계를 구출하지 않겠다고 결심해야 한다.〉라고 한다. 포퍼는 경험 과학을 하나의 게임으로 보고, 그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 들은 〈방법론적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보았다. 방법론적 규칙은 참 가자들의 행동을 규제하는 약속의 체계이며, 이 방법론적 규칙은 〈반 증을 피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우리들의 이론을 명확한 형태로 반박 가운데 드러내 놓는 것〉이다. 이 규칙을 지키지 않는 과학자는 과학 이라는 게임에 참여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사람이다. 이때 방법론적 규 칙은 과학자의 활동보다 논리적으로 우선한다. 정상모(1998)도 이와 유사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합리성을 위한 〈기본 규 칙〉은 정언적 규칙이며, 이를 지키지 않으면 과학을 합리적으로 수행 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퍼는 과학의 실천을 다양한 심리학적, 역사적, 사회 문화 적 관점에서 기술하거나 자연주의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과학에서 합리적으로 건전한 절차가 무엇인가에 대한 기준으로 과학의 방법과 규범을 제시하였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실제로 이 규범 을 위반할 수 있지만, 그 경우 잘못은 규범에 있는 것이 아니고 과학 자에게 있기 때문에 과학자는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그 규범을 따 라야한다. 그러나 포퍼의 생각과는 달리 그가 제시한 규범이 실제 과학자의 활동이나 역사와 맞지 않는다면 포퍼의 과학관이 수정되어야 한다. 실 제 과학이 과학철학에 선행하고 우선하기 때문이다. 쿤은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통찰을 주었다. 그는 과거와 현재의 과학의 실행에 나타난 연구, 이론 형성과 이론의 전환과 관련된 사항들을 검토하였 다. 그는 과학철학자들이 제시한 합리성의 기준이 과학자 집단이 행하 는 건전하고 생산적인 탐구에서 지켜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들의 활 동을 비합리적인 탐구로 규정할 것이 아니라 적절한 과학적 탐구의 절차가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Hempel, 1993, 7-8). 나아가 우리가 과학이 합리적임을 이론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과학의 합리성에 대한 과학철학자의 실패이지 과학의 실패는 아니다. 〈과학철학〉은 명백히 과학을 존재론적으로 선행하는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 따라서 과학이 합리적이라 한다면 과학은 과학철학과 무관하게 합리적이다. 과학만 존재하고 과학철학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과학은 여전히 합리적일 수 있다• 〈과학 없는 과학철학은 공허하지만, 과학철학 없는 과학은 맹목이 아니다.〉 3.2 과학 해석학으로서 과학철학 이러한 입장을 받아들인다면 김국태의 입장도 수정되어야 할 것이
다. 그는 과학의 규범성을 주장하면서 쿤과 파이어아벤트를 비합리주 의자로 해석한다. 쿤과 파이어아벤트가 과학의 인식을 하나의 논리적 준칙에 따라 설명하거나 유도하려는 카르납, 귀납 논리, 포퍼의 규범 주의적 시도를 역사의 날조 또는 합리주의적 환상에 불과하다고 비판 하였다고 논평하면서 김국태(1992, 97-98)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과학에 대한 철학적 사고는 역사 구성적인historiekonstitutiv, 그러나 궁 극적으로는 미래 통제적 zukunftsregulativ인 비판적 의도에 의해서 규정된 다. 그런 한에서 과학에 대한 철학적 사고는 규범적일 수밖에 없다. 과학 사 우선주의 내지 비합리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예를 들면 파이어아벤 트) 과학의 역사가 비합리성을 증거하기 때문에 과학은 합리적으로 설명 될 수 없고 어떤 규범적 논리도 미래적으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고 하 지만. 과거가 비합리적이었다는 사실에서 미래도 비합리적으로 진행되어 야 한다는 결론은 추론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규범이 잘 지켜지지 않는 다고 해서 규범이 버려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규범은 행위를 통제할 합 리적 기준을 제시하는 기능 자체만으로도 존립 가치를 가진다. 규범주의 적 시도는 바로 과학적 사고의 미래적 진행에 가능한 합리적인 논리 체계 를 제공하고자 하는 통제적 의도에 근거하고 있다. 역사주의적 사고가 내 포하고 있는 가장 큰 위험성은 합리적 인식 행위로서의 과학을 익명의 (예측 불가능한 우연적인) 역사적 흐름 자체에 맡겨 버리고, 인식 통제적 기능을 포기하는 데 있다. 과학을 역사적 과거의 흐름에서 정당화시키는 것과 미래적인 진행에 하나의 규범을 제시하는 것은 철학하는 이성의 가 치 의식의 관점에서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김국태와 반대 입장에 선다고 해서 과학의 규범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윤리학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라고 해서 사람들이 모두 비윤리 적으로 행동하거나, 윤리적 기준을 갖지 않고 사는 것은 아니다. 만일 과학철학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과학자들은 아무런 규범 없이 행동
하고. 과학은 결국 비합리적이 되는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윤리학 자가 없는 사회에서도 그들이 지키고 있는 규범은 존재하고, 그 규범 을 어기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고, 사람들의 행동을 통제하려 는 규제는 여전히 존재한댜 과학철학자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도 과학은 존재하며. 그 과학 활동을 규제하는 규범은 존재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과학철학자들이 과학의 규범을 발 견하려고 한 이유는, 과학이 합리적인 지식의 전형임을 인정하고, 그 것이 갖추어야 할 규범이 무엇인가를 찾아 내려고 했다는 것이다. 과 학에 버금가는 지식이 유의미하거나 가치 있거나 합리적인 지식이라 는 판단의 근거로서 과학의 보편적 특색을 찾으려고 했을 것이다• 과 학철학자들이 합리적 지식의 조건을 찾아 냈는데 그 조건이 우연히 과학과 일치한 것은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앞뒤가 바뀐 판단이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비록 나는 현재의 과학철학이 과학사와 밀집 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과학철학의 저술 과정에 서 역사가 폭넓은 배경적 역할을 한다면, 나는 그 저술들이 많이 개 선될 것이라는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쿤(1977, 12)을 받아들여 야 한다. 우리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옳든 그르든, 실제로 활동하는 과학자가 아닌 최근의 철학자들로부터 온 메시지는 본질적으로 사용 할 수 없기 때문에, 무리 없이 무시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 댜〉는 홀턴G.Holton(1986, 167)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해리스H.Hanis(1981, 46-47)의 주장처럼 〈만일 철학자가 과학 실 행의 기초가 되고 있는 일반 원리를 밝히고 싶어한다면, 그는 대단히 복잡한 인간 활동에 인위적인 논리적인 구조물을 강요하지 말고, 과학 자들이 실제로 행하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세심한 연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과학자가 과학철학자들이 제시한 평가 기준을 과학 활동에 자유롭게 적용하거나 변형하거나 하는 것은 과학자 자신에게 달린 문제이다. 철학자는 과학에 대해 겸손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철 학자는 기준의 발견자이지 주창자는 아니다. 철학자가 할 수 있고 해
야 하는 일은 과학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일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 도 아니다. 참고문헌 김국태 (1992), r과학철학에서 역사주의는 가능한가J, 《철학연구》 30집, 철학 연구회. 김여수 (1993), “미국문화에 있어서 보편주의와 상대주의」, 《사상》 봄. 김여수 (1991), r상대주의 논의와 문화적 위상」, 《철학과 현실》 봄. 김재권 (1991), 「현대 철학의 상대주의적 경향에 대한 반성J, 《철학과 현실》 봄. 로티 (1997), 『토마스 쿤 바위, 그리고 물리법칙」, 신중섭 역, 《과학 사상》 봄. 소홍렬 (1990), 『실증주의 과학철학과 역사주의 과학철학」, 《철학과 현실》 봄. 신중섭 (1992), r로티의 네오 프래그머티즘: 대화와 연대의 철학」. 신일철 외, 『현대 철학과 사회』, 서광사. 신중섭 (1992), 『포퍼와 현대의 과학철학』, 서광사. 신중섭 (1993), 『과학과 가치」, 《철학연구》 33집, 철학연구회. 이명현 (1993), 『언어, 사유와 존재」, 한국분석철학회 편, 『실재론과 관념론』, 철학과 현실사. 이영철 (1998), r이해의 합리성」, 『합리성의 철학적 이해』, 한국분석철학회 편, 철학과 현실사. 정대현 (1991), r지칭: 언어적인가, 존재적인가J, 한국분석철학회 편, 『비트겐 슈타인과 분석철학의 전개』, 철학과 현실사. 정병훈 (1985), r과학의 합리성 : 쿤을 중심으로』, 《철학연구》 41집, 대한철학 회. 정상모 (1998), 『과학의 합리성」, 『합리성의 철학적 이해』, 한국분석철학회 편. 철학과 현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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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O~.s:DI
기 가다머 H. -G. Gadamer 363, 364 가설 • 연역적 방법 hypothetico-deductive method 16 가설 • 연역적 입증 35, 48 가설 • 연역적 입증 이론 17, 23, 24, 47, 72 가설의 전개 development of hypothesis 27 갈릴레오 Galileo 366, 367, 372 개 이 프맨 H. Gaiftnan 64, 65 개인주의자 52 객관성 65 객관적 진리 336 객관주의 378 객 관주의 자 objectivists 53 검증 88-96, 98, 99, 101, 103, 106, 107, 112, 113, 116-119, 121-124, 126, 132, 135, 136 겁증가능성 89, 91, 94, 96, 98-102, 112, 113, 118, 119, 136 검증주의 136, 150 검증주의 의미론 150 결과와 역성장consequence-and-reverse development 186 결정 적 실 험 experimentum crucis 경험론(또는 경험주의) 37, 146, 148, 256 경 험 적 동등성 empirical equivalence
282 경험주의적 인식론 178 계산 가능성의 조건 34, 49 공약불가능성 I 345, 346 공약불가능성2 345-347 공약불가능성 incommensurability 298, 299, 322, 333, 341-344, 370 과학 혁명 331, 354 과학 혁 명 의 구조 340, 343, 348, 375 과학의 통일성 193 과학의 합리성 9 과학적 방법 13 과학적 설명 8, 146, 147 과학적 세계관 84-87 과학적 실재론 223, 227, 232, 258 과학적 이미지 161 과학적 철학 79, 81, 82 과학적 추론 7 과학적 합리성 8 관찰 가능성 266, 271 관찰적인 환원 147 교량 원리 38, 48 교양이 있는 369 교환 가능성의 조건 64 구두띠 입증 이론(또는 구두띠 이론) bootstrap theory of confinnation 17, 32, 33, 36, 38, 39, 42, 45, 47-49, 72, 74, 75 구두띠 입증 조건 49 구두띠 입증(또는 입증 개념) 40, 43,
45. 47, 48, 50, 73, 75 구두띠 조건 34-36, 39, 41, 42 구별짓기와 차별하기 320, 371 구성 적 경 험 론 constructive empiricism 257, 260 구조과학 structural science 254 구조적 설명 214 구획의 문제(또는 구획 기준) 91, 92, 100, 101, 105-108, 334 굿맨 N. Goodman 29, 30, 32, 378 귀 결 조건 consequence condition 27, 28 귀납 논리 7, 385 귀 납적 방법 inductive method 15, 29 귀 납적 지지 65, 66, 68, 340 귀납적 확률 65 귀추적 방법 retroductive method 16 규약론의 책략 383 규약적 인 conventional 153 그라임스T. Grimes 172 극단적인 비합리주의자 342 근사적 참 229 글리모어 C. Glymour 17, 32-35, 38-42, 46-49, 73, 75 긍정적 유관성의 기준 52. 55 기 적 논증 the miracle argument 231 기초 진술 330, 376 기초주의 364, 365 길리스D. Gillies 66 김국태 384, 385
김재권 214 까마귀 역설 raven's paradox 18, 19, 28, 49, 50, 53-55, 75 L-
네 이 글 T. Nagel 377 논리경험주의 7, 37, 48, 321, 325, 340, 342 논리경험주의자 8, 20, 38, 147 논리실증주의 7, 83-86, 88-94, 96, 98-100, 110, 112, 114, 115, 117-120, 122, 124, 126, 130, 131, 135, 136, 147, 259 논리실증주의자 8 논증 패 턴 argument pattern 180 누적 적 진보 336, 338 뉴턴 I. Newton 15, 37, 346 뉴턴 역학 36 뉴턴-스미스W. Newton-Smith 247 니코드의 기준 18, 19 c 단순-케임브리지 의존성 mere-Cambridge dependence 214 대조 집합contrast class 161, 163, 171, 172 대칭성 논제 157. 159 대칭성 문제 168대표적 샘플 representative sample 192 더 치 북 논증 Dutch book argument 59-61 더 치 북 Dutch Book 51 던 M. Dunn 66, 67 데카르트 R. Descartes 14, 15, 360, 363, 365, 371, 376-378, 382 도구론 8, 259 도구적 신 빙 성 instrumental reliability 231 도구적 합리성 348 도식적 논증 181 독단dogma 338 동등성 281, 287, 288, 290, 294 동치 조건 equivalence condition 18, 26 뒤엠-콰인의 테제 339 뒤엠 P. Duhem 58, 103-106 2 라우든 L. Laudan 242, 245, 248, 324, 336-339, 357, 358, 361 라이 프니 츠 G. Leibniz 360 라이 헨바흐 H. Reichenbach 7, 81, 115 라카토슈 I. Lakatos 132-136, 324, 334, 335, 338, 343, 346, 350-352, 354, 355, 357 램지 F. Ramsey 51, 59
러셀 B. Russell 152, 232 레 드헤 드 M. Redhead 66 레일턴 P. Railton 194 레플린 J. Leplin 226 로고스 logos 319 로젠버그 A. Rosenberg 194, 248 로크 J. Locke 365, 371 로티 R. Rorty 323, 363, 368, 370, 378 루벤 D.-H. Ruben 212 루이스D. Lewis 197, 199, 210, 211, 213 □ 만델 바움 M. Mandelbaum 350 만족 조건 (또는 기준) satisfaction condition 26-29, 33 말에 의한 전쟁 334 맥멀른E. McMullin 241, 254, 361 맥 스웰 G. Maxwell 267, 268, 270 멘 델 G. Mendel 334 모형 255, 265 무관한 연언의 문제 problem of irrele-vant conjunction 25-28, 32, 33, 49, 56, 75 무의미한 명제 325 무차별적 입증의 문제 55, 56 무한 퇴행 376 문제 해결 358
미결정성 227, 280, 281, 287, 291, 296, 306 미 래 통제 적 zukunftsregulativ 385 믿는 정도 degree of belief 50, 60-62, 64 믿음의 합리적 정도 51, 59 밀 러 D. Miller 65, 66, 68 1::1 반 프라센 B. van Fraassen 149, 161, 162, 164, 170, 172, 175, 177, 178, 218, 235, 257, 270, 271, 273, 287, 290 반사실적 확률 counterfactual probability 70 반실재론 147 반중 falsification 7. 18-22. 25. 52 54, 55, 57, 58, 79. 90, 91, 93-96, 98, 99, 101, 103-105, 107, 108, 111, 117. 120, 121, 125, 127-130, 137 반증가능성 falsifiability 23, 35, 91, 93, 94, 96, 98-102, 104-109, 111, 113, 119-121, 137 반증가능성 의 정도 340 반증가능성의 조건 21, 28, 34, 35, 49 반증주의 79, 124, 125, 130-138, 321, 340, 342 반증주의자 8
발견의 논리 15, 16 발생 집합 182 발생 시 키 는 집 합 generating set 182 방법론伐방법-론 Methodologie/Methoden-Lehre 91, 97, 109-lll, ll3, ll4, 124-128, 133, 135 방법론적 결단/ 방법론적 규칙 107-Ill, 383 방법론적 성공 231 방법적 369 배경 지식 328 배수 비례의 법칙 law of fixed com-bining ratios 204 번스타인 R. Bernstein 378 번역 불가능성 345 법칙성 30-32 법칙적 31, 32, 191 법 칙 적 일 반화 lawlike generalizations 30 베르그스트룀 Bergstrom 321 베를린 학파 7 베이즈의 정리 Bayes's theorem 52, 54, 57, 58, 63, 68 베이즈적 입증 이론 Bayesian theory of confinnation 17, 50, 52-56, 58, 59, 62, 63, 65, 71, 75 베이즈적 추론 72 베이즈주의 63, 65, 66, 68 베이즈주의자 51-54, 56, 59-66, 75 베 이 컨 F. Bacon 376
벨 정리Bell's Theorem 217, 240 보이드 R. Boyd 156, 193, 230, 246, 252, 253 불입증 325 브라운H. Brown 380 브롬버 거 S. Bromberger 157, 158, 162, 167, 169 비결정론 159, 166 비교 불가능성 343, 345, 347 비대칭 184 비대칭성 156, 157, 160, 166-168, 178, 179, 183, 188, 209, 216 비대칭성 문제 162 비트겐슈타인 L. Wittgenstein 80, 83, 86, 378 비합리주의 333 비합리주의자 324, 341 빈 학파 7 人
사이비 과학 334 사전 확률 prior probability 52, 58, 63 사전 확률값 부여 의 문제 problem of assigning prior probabilities 62 사후 확률 posterior probability 52, 58, 63, 65 산출 력 fertility 255 상대적 입증 73, 74 상대주의 324, 327, 328, 333, 335,340, 346. 349. 369, 370 상대주의자 341 상식 적 실 재 론 commonsense realism 224 새로운 과학철학 323, 339 새 먼 W. Salmon 102, 146, 172, 175. 188, 197. 219 샘플링 193 선입견 364 선택적 입증 49 선험적 방법 A priori method 14. 16 설명 8 설명 이론 147 설명되는 문장 155 설명 력 166, 172. 179, 187. 209 설명에의 요구 234 설명의 거부 159. 161. 165 설명의 유관성 154 설명저장소 179, 180, 182, 185, 186 설명적 힘 156. 설명하는 문장 155 성 숙과학 mature science 229. 245 성향 187 성향적 설명 212, 213 세계 3 351 세련된 반증주의 353, 354, 356 셰풀러 I. Scheffler 326, 379 소극적 합리성 61 소박한 반증주의 353 수렴 정리 64
수용가능성 1 355 수용가능성 2 355 숨은 변수 239 쉬모니 A. Sh imo ny 62, 63 슐리크 M. Sch lick 89, 94. 95 스널 M. Sn. ir 64, 65 스마트 J. Sma rt 146. 230, 234 스피노자 B. Sp ino za 371 시간적인 제한 356 시험 가능성 154 실재론 8, 147, 149, 223 실재론자 147, 177 실험적 조작 302 。 아나키스트 357 아리스토텔레스Ari s t o tl e 14, 15, 159, 319, 346, 372 아스펙 Aspe c 217 아인슈타인-포돌스키 -로젠 Ein stei n - Podolsky -R osen 217 아인슈타인 A. Ein stei n 68, 69 알고리듬 380 애 거 시 J. Ag as si 374 애 거 지 E. Ag az zi 337 애드 혹 ad hoc 가설 353 양자역 학 166, 196, 239, 241 어 디 딘 A. Edidin 43 어바크 P. Urbach 57, 58
엄 격 한 조건화 stri ct condit ion ali za ti on 53 에친스타인 Achi nstei n 210, 211 엘 리 스 B. Ell is 295, 296 역귀결 조건 converse consequ e nce con- clition 25, 29, 55, 56 역사 구성 적 인 histo r i ek onstit utiv 385 역 오캄화 deoccam iza ti on 34, 36 역 함축 조건 converse enta i lm e nt condi- tion 55, 56 연구 전통 357, 362 연구 프로그램 351-353 연구 프로그램의 전환 354 연역 도식들 schemata 180 연역-법칙 모형 149, 156 예 측의 기 준 pre dic t io n cri ter i on 23 예화 212 예 화 설 명 instance expl a natio n 210 예 화함 instan ti at in g 180 오류 가능주의 330 온건한 합리주의 342 용인 corroborati on , Bewahrung 112, 116-120, 122, 123, 383 우연적 일반화 ac ci den tal gen eraliz a- tion s 30, 31 원인 목록 198 유관 관계 relevance relati on 161, 163- 165, 167, 173, 188 유관성 155, 169 유의미한 명제 325
유호스 H. von Juh os 94, 95 은유 256 의미론적 관점 260 의사 소통 불가능성 347 이론 미결정성의 논제 327, 328 이론 선택 9, 156, 166, 172, 187 이 론구성 적 the ory - co nstit ute 은유 252, 254 이론적 용어 23, 28, 33, 34, 38 이 론적 존재 자들 the oreti ca l enti ties 224 이론적재성 127, 129 이 론적 재 적 관찰 the ory -l aden observa- tion 322, 327, 328, 339 이미 알려진 증거 68 이 미 알려 진 증거 의 문제 pro blem of old evi de nce 65, 70 이상적 설명 199 이 어 먼 J. Eannan 40, 73 이원화 논증 dua li z ing argu me nt 67 이해 불가능성 347 인과 법칙 150 인과 실재론 195 인과 이론 295, 297 인과성 189, 194 인과적 설명 149, 177, 218 인과적 전체론 causal holi sm 218 인과적 접근 178 인과적 지시론 298 인과적 힘 156
인과주의 302 인 식 공동체 epi ste m i c commu nity 271, 275 일관성의 조건 consis te n cy condit ion 27, 28, 34 일반상대성 이론 68 일반화 gen eral iza ti on 148, 149, 191 입증 사례 18, 19 입증 사례의 문제 17, 23, 29 입 증 조건 32, 34, 44, 45 입증 con fmn ati on , Besta t og iing 7, 16- 23, 25, 27-31, 33, 35-50, 52-58, 68, 69, 72-74, 92, 112, 118, 121-124, 325 입증가능성 31 입증의 국소화 37, 38, 49, 57, 73, 75 A 자비 I. Jarvie 374 자연법 326 자연종 252 자연주의 natu ralism 272, 273, 278, 280, 308 잠재 적 반증자 poten ti al fals if ier, Falsi- fika ti on smog lich keit 102, 103 적극적 합리성 61 전진적 pro g ressive 354, 356 전체 론 37, 58, 73
전통적인 과학철학 323, 339 절충 모델 375 점성술 173, 175 정당화의 맥락 8 정당화의 문제 326 정당화주의 330 정병훈 342 정상 과학 333 정상모 383 정체성 확인을 통한 설명 ide nti ty expl a nati on 214 정치적 혁명 331 제프리 R. Jef fr ey 66 조건화 53, 70 조인래 278, 289, 290, 321, 326, 327, 342 종교적 개종 342 좋은 이유 359 중심적 전제 164, 165, 167 증거 의 다양화 36, 49, 57 지 겔 H. Sie g e l 362 지 식 경 험 론 knowledg e emp iricis m 150, 193 지식의 죽음 333 지트카우 J. Zy tko w 40 진리 근접설 336 진리 근접성 332, 359 진리근접도 336, 337 진보 227
* 차페 screen off 172. 173 채 우는 지 시 사항 filli n g ins tru c tio n 181 처 칠 랜드 P. Churchland 275 체계화 sys t e m ati za ti on 180, 183 초랑 역 설 grue par adox 29, 31 최선의 설명에로의 추론 147 = 카네 만 D. Kahneman 71 카르납R. Carnap 37, 82, 85-87, 118, 121, 122, 325, 371, 385 카트라이트 N. Ca rtwrigh t 299, 302 칸트 I. Kant 363, 365, 372, 377 칼에 의한 전쟁 334 코어트게 N. Koert ge 185 코페르니쿠스 Cop ernicu s 346 콰인 W. Qu in e 37, 38. 282, 284. 287, 306, 327, 333, 378 쿤 T. Kuhn 37, 322, 324, 330, 333, 336, 338-344, 346-351, 373, 385, 386 크리 스텐슨 D. Christen sen 39-46, 50 키처 P. Kit ch er 149, 170, 172, 175- 177, 179, 188, 218
드 탈상대론적인 인과 개념 ex-relati vi s ti c cause 218 통일로서의 설명 149, 177, 178 통일하는 힘 179 퇴 행 적 dege n eratin g 354, 356, 357 투사성 판단 191, 193, 194, 209 트버스키 A. Tversky 71 특수 귀 결 조건 spe c i al consequ e nce condit ion 26. 55. 56 툴의 신화 333 고: 파이 어 아벤트 P. Feye r abend 324, 338, 339, 342, 356, 385 파인 A. Fin e 308, 310 패러다임 37, 341, 345, 346, 349, 372, 379 퍼 스 C. Peir ce 228 퍼 트남 H. Putn am 223, 224, 228, 231, 252, 263, 284, 298, 299, 314, 378 페 라 Pera 338, 376 페르마의 원리 211 편집자들의 결정 357 포괄 법 칙 모형 146, 160 포퍼 K. Popp er 7, 8, 35, 65, 66, 68, 91-96, 98, 100, 103, 107, 111,
116. 122, 124. 130. 132. 137. 138. 324, 327-329. 332, 382. 383. 385 표준적 인과 패턴 201 푸앵카레 H. Poin c are 103 프래그머티즘 365, 368, 370 프레 게 G. Frege 377 프톨레마이오스 P t olemaeos 346 플라톤 Plato n 371 피설명항 160 필연성 148 필연적 연결 149 총 하딘 S. Hardi n 248 하우슨 C. Howson 57, 58, 70 함축 조건 enta il m ent cond ition 27, 28 합리성 8, 52, 61, 62, 72 합리적인 설명 156 합리주의 340, 369, 370, 377 해 리 스 H. Ha rris 386 해킹 I. Hacki ng 299, 302-304 핵심 개념 core concept 196 핸슨 N. Hanson 106, 129, 327, 339 헤 시 M. Hesse 64 헬 먼 G. Hellman 67 헴 펠 C. Hemp el 8, 17-20, 23, 27- 29, 32, 54, 147, 149, 160, 162, 166, 178, 218, 325 헴펠 C. Hemp el 146
현상론 phe nomenali sm 232 호이닝엔 휘네 Hoyn inge n-Heune 342, 344 홀턴 G. Holto n 386 화용론 170, 172, 178, 188 화용론자 147 화용론적 설명 이론 149, 166 확률 51, 57, 59, 60, 64, 65, 72 확률 계산법 51, 52, 59, 61, 62, 64, 71
확실한 기초 376 환원 151, 191, 192 환원 프로그랜 259 휴월 W. Whewell 338 흄 방식 193 흄 방식이 아닌 인과 개념 189, 196 흉 D. Hume 151, 191, 192, 377 흉의 인과 개 념 192, 193, 209
조인래 서울대 물리학과 및 과학사 • 과학철학 협동과정 교수 박은진 성균관대, 서울대 철학과 강사 김유신 부산대 전자공학과 및 과학 • 기술의 역사와 철학 협동과정 교수 01 봉재 서울산업대 인문학과 교수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교수 현대 과학철학의 문제들 대우학술총서 442 공동연구 1 판 1 쇄 펴냄 1999 년 4 월 20 일 지은이 조인래·박은진·김유신·이봉재·신중섭 펴낸이 이형진 펴낸곳 도서출판 아르케 출 판등록 .19 99. 2. 25. 제 2-2759 호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5 가 526 대표전화 310-0525, 팩시밀리 777-3809 E-M ail hxl5@nets g o . c o m 값 16,000 원 © 조인래 • 박은진 • 김유신 • 이봉재 • 신중섭, 1999 과학철학 KDC/401 Pri nt e d in Seoul, Korea ISBN 89-88791-21-5 94130 89-88791-00-2 (세트)
宇學術薔書는 대우재단 학술사업의 결정체로서 1983 년 『문화사회학』을 시작으로 논저, 연구번역, 공동연구의 형태로 출간되어 왔습니다. 論著는 ‘대학원급 수준의 고급 학술개요서’ 라고 정의되고 있는뱌 해당 분야에 대한 개설적 입문서 수준을 넘어서 그 분야에 대한 세계적 연구동향을 집약한硏究提要的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이를 통하여 학술용어 내지 이론적 표현을 정착시키는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硏究觀譯은 논저를 보완하는 성격을 갖는 것으로서 이 역시 전문연구서가 아닌 고급개요서에 대한 연구번역입니다. 특히 지난 98 년부터는 古典과 古典級 저작의 연구 번역에 중점을 두고 있는뱌 학술용어 및 경합되는 학설 등을 역주로 그리고 해당 저자 및 원저에 대한 학술적 평가는 해제의 형식으로 포함함으로써 원문에 대한 단순한 번역을 지양하고 있습니다. 또한 共同硏究는 연관학문간 (In t er di s cip l in a ry) 공동연구를통해 점점 세분화·전문화되어가는 학계의 경향을 극복하고자 하는 재단의 기획의도를 반영한것입니다. 아針 연구지원에서 연구결과의 출판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를 일관성 있게 지원한디는 학술사업 지원 방침에 따라 ‘대우학술총서’ 는 과제의 지정에서부터 연구계획서, 그리고 연구결과에 이르기까지 엄격한 심사와 평가를 거쳐 출판되고 있습니다.
| 의 대우학술총서 : 422 한중관계사 I 김한규 423 한중관계사 11 김한규 424 두보와 이백 이병주 425 한국의 전통민가 주남철 426 의학철학 울프 · 페데르센·로젠 베 르그/이호영·이종찬 427 지구환경정치학 바이츠제커/ 이 필렬 428 기후학 I : 기후와 대기순환 오재호 429 기후학 1l : 변화하는 기후 오재호 430 앙시앙 레짐 I 구 베 르/김주식 431 앙시 앙 레집 11 구베르/ 김주식 432 다양체의 미분위상수학 조용승 433 스페인 피카레스크 소설 김춘진 434 독일의 통일과 위기 코카/김학이 435 언어학파의 형성과 발달 암스테르담스카/ 임혜순 436 성간화학 덜 리 • 월리업스/ 민영기 437 생태학 매킨토시/김지홍 438 웨이브렛의 기본이론과 통계에의 응용 김충락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