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암스테르담스카 ( Olga A mste r dasmska ) 1953 년 폴란드 출생 미국 컬럼 비아 대학교 사회학 박사 현재 네 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교 교수 임혜순 서울대학교 언어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교 영문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 받음 현재 한림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아르케 (arche, d p x11) 는 ‘시초’ , ‘시작’ 이라는 어원적 의미를 가지며, 학술적으로는 '원리’ 를 의미합니다

언어학파의 형성과 발달

서문 이 책은, 과학의 발달은 사회적 및 지적 발전 과정의 양면에서 이해 해야 한다는 가설에 바탕을 두고 있다. 과학의 내면사와 외면사의 구 분, 죽 과학의 사상사와 과학의 사회학을 구분하는 것은 과학적 합리 성뿐만 아니라 과학 발달의 사회적 과정을 이해하는 데에도 방해가 되어 왔다. 과학철학은 그 역사를 통해 이해해야 하듯이 과학사회학도 역사적으로, 철학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가설을 토대로 하여 과학의 발달과 학파 형성의 제도적 과정은 물론, 언어학 사상의 내용 과 그 변화를 상세히 검토하고자 한다. 19 세기와 20 세기 초에 걸친 언어학의 발달은 학문적 제도화를 이룩한 현대 과학의 맥락에서 인지 적 변화와 연속성에 대한 연구를 하는 데 좋은 사례를 제공해 준다. 이 책은 19 세기 중반까지의 관념체계와 역사 • 비교언어학의 형성에 대해서 먼저 검토하고, 그 후는 세 학파, 즉 신문법학파, 신관념주의학 파, 소쉬르의 주네브 학파의 형성과 발달에 초점을 맞추었다. 현대 과학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혁신과 전통, 독창성에 대한 요구와 규범의 준수, 단절과 연속 간의 〈본질적 긴장〉이다. 그리 고 이러한 긴장에 대한 설명은 과학 발달에 대한 사회학적, 철학적 이 론에 도전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철학이 이러한 이중성을 탐구하고 정 당화하려는 한편, 과학적 지식의 발달에 관한 사회학적 이론은 연속성 이 존재하는 이유에 답하거나 단절이 나타나게 되는 것을 설명하는 데 치중하는 것 같다. 과학에 있어서 관심, 권위, 조직의 역할을 강조 하는 사람들은 종종 연속성의 문제에 몰입되어서 독창성의 규범을 문

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한편 실험실에서 행하 는 연구 작업의 우연적인 결과나, 과학 지식의 불확정성, 혹은 사실과 이론의 사회적인 타협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변화를 강조하면서 전 통의 역할이나 혁신에 대한 제약, 공인된 용어 및 가설의 위력을 당연 한 것으로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과학의 발달에 있어서 이러한 연속과 단절의 상호작용에 대한 사회학적 관심의 결핍은 최근의 과학 사회학의 몇 가지 특징에서 나온 결과다. 그 일부는 행동이 사회 구조 (가치, 규범, 이해관계 둥)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라거나 혹은 대체적 으로 자발적이며 각 상황마다 새로 구성되는 것으로서 파악하는 경향, 죽 사회학적 이론화라는 보다 일반적이고도 상존하는 문제를 반영한 다. 또 일부는 최근의 과학철학의 몇몇 결론을 과장하는 추세에서 나 온 결론이다 예를 들면, 이론적 지식은 경험적 증거에 의해 불확실성 을 갖게 된다는 인식으로부터 어떤 사회학자들은 과학적 논쟁을 순전 히 과학자들의 이해관계, 권위, 혹은 수사적 능력만이 힘을 발휘하는 사회적 타협 과정이라는 관점에서 종결해야 한다고 논한다. 이 경우, 실험, 이론, 신념체계 둥의 개념은 그러한 설명에 슬쩍 끼워 넣어진다. 마지막으로, 과학사회학자들은 대부분의 케이스 스터디에서 비교적 짧 은 기간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그리고 과학 분야의 지적 역사를 재 구성하려는 시도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식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본질 적 긴장〉의 문제를 다루지 않은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언어학사를 검토하는 데 있어 인지 변화 과정과 연속 성의 패턴을 주요한 관심의 초점으로 삼고 있다. 철학적 신념, 이론, 일련의 언어학의 사상학파의 방법론들을-꼭 아주 일관성 있고 조 리 있는 완벽한 체계는 아니지만-여기서는 상호 연관되는 관념체 계들로서 취급한다. 이것들은 앞으로의 연구에 지침 역할을 하며 새로 운 연구를 평가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분야의 인지 적 발달을 구성하고, 물질적 및 상징적 자원을 배분하는 데에 한몫을

담당하기 때문에, 과학의 사회적 구조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이 러한 관념체계는 과격한 단절을 가져오는 혁신이 일어날 가능성을 억 제한댜 이러한 관념체계들은 긴장과 모순으로 차 있기 때문에, 필연 적으로 미결의 불확정 상태인 채로 있게 되어, 인지적 변화와 단절을 허용하게 되고 학자들간에 불일치, 대립, 협상 등을 수용하게 한다. 또 한 특정한 제도적 • 사회적 맥락의 범위 내에서 작업하는 개별 학자들 이나 학자 집단으로 하여금 다양한 책략을 받아들일 여지를 주게 된 다. 이러한 관념체계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어떤 관념이 변화하고 그 이유는 무엇이며 어떤 관념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 가를 살펴보겠다. 그리하여, 언어 사상의 사적 발달에 관한 특정의 〈논리〉를 재구축해 보고자 하지만, 이 〈논리〉를 불변인 것으로, 또는 미리 정해진 것으로 다루지는 않겠다. 긴장과 모순은 공유하는 관념체 계의 다양한 요소에 영향을 줄 수 있다(혹은 반대로 그 요소들에 의 해서 긴장과 모순이 일어날 수도 있다). 제시된 해결책들은 다른 형태 들을 취할 수 있다 학자들이 위치한 지적 • 제도적 맥락이 인지 발달 의 방향에 제약을 주는 반면, 제도와 지적 풍토는 그 자체가 변하게 마련이댜 그 결과로 과학의 변화 과정은 전통에 의해서 제약을 받기 도 하고 훼손되기도 하며 그 변화와 연속성에 대해서는 모두 사회 적 • 인지적인 설명이 필요하게 된다. 과학에 있어서의 변화와 연속의 과정 및 인지적 • 사회적 맥락의 상 호작용에 관한 이러한 관심은 연구 대상의 선정과 그 연구를 위한 조 직에 특정한 조건을 부여한다. 인지 발달의 역학을 검토하기 위해서 는, 인지적 연속성의 정도와 더불어 다양한 변화를 감안하여 상대적으 로 오랜 역사적 기간을 연구하고, 혁명적 변화는 물론 그 분야의 연구 성장이 누적되어 온 것으로 보이는 긴 기간 동안의 발달을 추적할 필 요가 있댜 학파에 초점을 맞추면 비교적 일관된 관념체계를 재구성하 기가 용이하며 동시대에 경쟁적이었던 체계들을 비교 •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그 체계들로 인한 분기의 정도에 의해서). 이것은 이러한 관념체계들이 처음 공식화되고 수용되었던 다양한 제도적 환경의 역 할을 연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언어학 발달에서 지속 과 단절을 연구하려면, 우선 계승되는 학파들의 관념체계를 재구성하 여 이전 학자들과 비교하고 지속과 단절에 대한 인지적 정당성을 검 토해야 할 것이다. 그런 후에라야만 그 관념체계들이 공식화되고 수용 된 제도적 환경 및 대학 제도 내에서의 언어학의 위치, 대학에 영향을 끼친 변화들, 언어학의 명성 구조에서 학파 구성원들의 위상 등과 같 은 요인들이 학파들에 의한 인지적 변화의 도입이나 특정한 신념의 보존에 어떤 역할을 했는가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이 책의 구성은 사상학파들 및 이 책의 관점에 대한 소개에 이어, 먼저 각 학파의 관념체계를 다루고, 다음으로 그 학파가 출현하게 된 사회 적 • 제도적 맥락에 초점을 두게 될 것이다. 언어학에서의 인지적 • 사회적 변화의 과정을 숙고해 볼 때, 저자는 학파 및 과학의 변화와 발달 과정,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게 되 는 다양한 제도적, 지적 맥락의 역할에 대하여 어떤 일반화를 시도하 면서도, 또한 다른 과학 분야들 및 그 연구가 이루어지는 서로 다른 제도적 상황이 다양한 발달 패턴을 초래한다는 사실도 충분히 인식하 게 된다. 마찬가지로 비교적 긴 역사적 기간에 걸쳐 한 과학의 발달을 검토한다는 사실에는 특정한 제약이 따른다. 언어학의 연구가 이루어 지는 제도적 상황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언어학 발달과 보다 광범위한 사회 • 정치적 과정과의 가능한 상관관계를 상세히 추적하는 것은 삼 갔다. 또한 언어학의 지적 발달의 주요 맥락을 선정하면서 영향력이 덜한 사상가들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 연구의 초판본은 컬럼비아 대학의 사회학 학위 논문으로 준비된 것이었다. 그것을 쓰면서 본인의 지도교수인 로버트 머톤 Robe rt K.

Mert on 교수와 해 리 어 트 주커 만 Ha rriet Zuckerman 교수의 많은 도 움을 받았다. 로버 트 어 스터 리 츠 Robert Auste r litz 교수는 유익 한 제 안을 해 주었다 나는 초고를 읽고 유익한 평을 해 준 제르지 작키 Je rzy Szacki , 요안나 쿠르제브스카J oanna Kurczewska, 헬레나 플 람 Helena Flam, 제 이 슨 쉐 히 터 Jas on Schechte r , 그리 고 아버 지 슈테판 암스테르담스키 Ste f a n Ams t erdams ki에게 모두 감사한다. 제 5 장은 전에

차례

서문 • 5

제1장 사상학파:이론적 관찰 15

1 사상학파의 정의 • 20

2 사상학파의 인지적 분기 • 29

철학적 분기 • 30

이론적 분기 • 32

실체적 • 방법론적 분기 • 33

인지적 분기 체계에 함축된 내용 • 34

3 사상학파의 사회적 분기 • 39

학파 대 학문분야 : 자율성과 제도화 • 40

학파와 연구 결과의 정당성 • 42

학술과학에서의 학파 • 46

이중적 정당화 체계 • 49

이중적 정당화 체계의 인지론적 귀결 • 51

4 분기 여건 ·51

중심과 주변 • 51

지도자의 위상 • 54

5 언어학의 사상학파 • 56

제2장 초기 비교문법학자들의 관념체계 61

1 초기 비교문법학자들 : 철학적 • 이론적 신념 • 65

2 슐라이허의 통합: 현상을 구제하기 위하여 • 80

3 1870년 이전의 언어학 방법론 • 89

제3장 독일 대학에서의 언어학 109

1 고등교육에 대한 관념과 언어학의 성장 • 111

2 가르치고 연구하는 기관 • 122

3 언어학과 문헌학 : 제도화의 양식 • 131

제4장 신문법학파 이론 147

1 신문법학파의 유산 : 언어학 방법론 • 152

2 이론 탐구 방법 • 167

제5장 신문법학파의 위로부터의 혁명 199

1 문제점 • 203

2 과학적 권위를 얻기 위한 시도로서의 사상학파 • 206

3 제도적 환경 • 211

4 신문법학파의 <위로부터의 혁명 > • 218

5 제도적 변화의 인지적 반향 • 223

제6장 관념론자의 반응 233

1 언어학의 인과성과 설명 : 과학의 부정 • 237

2 예술로서의 언어학과 언어학 연구의 이상 • 250

3 언어학의 부정 : 신관념론자와 학문의 위기 • 261

제7장:소쉬르의 내부로부터의 혁명 279

1 공시성으로의 길 : 지나친 편향과 그 장애물 • 286

균일주의 • 289

유추 이론 • 292

공시적 현상으로서의 모음교체 • 302

2 언어 사실의 구축 • 313

3 구조주의 : 자율적 대상으로서의 언어 • 340

제8장 주변 학파들 363

1 주변인으로서 소쉬르 ? • 369

2 주변부의 언어학 • 374

제9장 결론 391

옮긴이의 말 • 417

참고문헌 • 431

찾아보기 • 453

제 1 장 사상학파: 이론적 관찰 과학지식 사회학은 사회적 맥락이 과학 사상의 본질을 형성하고 있 다는 가설에 바탕을 두고 있다. 과학지식 사회학에서는 과학적 작업을 수행하는 사회 조직뿐만 아니라 과학적 신념의 본질과 이 신념이 변 화하는 방식까지도 사회학자들이 연구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 댜 과학 이론이나 사실들이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거나, 경 험주의 em piri c i sm 를 거부한다거나 또는 암묵적 지식 의 역 할을 증 명 한다든가, 또는 다소 급진적 인 형 태의 상대주의 rela tivi sm 를 받아들 인다든가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과학적 변화의 저류에 흐르 는 사회적 추이를 이해하려면, 우선 과학 관념체계들의 여러 요소들이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 변화는 어떤 인지적 상황 에서 일어나게 되는가? 이 변화는 기존의 이론, 방법 혹은 철학적 신

1) 이러한 신념은 최근 다양한 과학사회학 연구의 기초가 되고 있으며, 특히 콜린스 Coll ins , 피 커 링 Pic k eri ng , 크노르 Knorr, 멀 케 이 Mulkay , 반즈 Barnes, 블루어 Bloor 둥의 연구에서 두드러진다 . 다음을 참조 Ka rin D. Knorr-Ceti na and Mich ael Mulkay, Intr od ucti on : Emergi ng Principle s in Socia l Stu dies of Scie n ce in Sc ien ce Observed: Perspe cti ve on the Soc ial Stu d y of Sc ien ce, eds. Ka rin D. Knorr-Ceti na and Mich ael Mulkay (L ondon: Sage , 1983).

념에 의해서 어떤 제약을 받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잇따른 새로운 신념의 틀들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연속성과 단절이 존재하는가? 연 구와 논의의 결과로 나오는 우연적 산물들에 의하여 과학적 혁신이 제의되고, 받아들여지고 이용된다고 할 때, 과학의 사회적 측면과 인 지적 측면을 구분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도(모든 인지적인 것은 또 한 모두 사회적인 것이라는 확실한 논거로) 그 우연적인 산물들도 지 적 전통과 공유하는 관념의 틀이라는 맥락에서만 의미를 지닐 수 있 다는 사실을 무시하지 못한다. 과학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것도 그것이 〈순진한 na ive > 사회학적 관찰자가 관찰한 것이 아니라면 당연한 것 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논하는 최근의 실험연구학파에서는 오 히려 역설적으로 과학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면을 당연한 것으로 받 아들이고 있다. 즉, 연구 문제와 결과들이 과학자들의 합의를 통하여 비교적 일관성 있는(이 역시 변하지만) 지식체계 속에 통합되었을 때 (혹은 안 되었을 때나, 나아가, 예를 들면, 교과서에 실리게 되었을 때) 이러한 문제와 결과가 한 주어진 분야의 연구자들에게 어떻게 공 통의 주관적 의미를 지니게 되는지, 또는 개별적 지식들은 어떻게 어 떠한 기준에 의하여 타당성을 갖게 되는지에 관해서 거의 질문을 던 지지 않고 있다. 사회학이 과학 변화를 이해하는 데 기여하려면, 과학 자들이 그 안에서 기능하고, 그들의 혁신이 전달되는 광범위한 인지적 맥락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과학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 과 업 중의 하나는 과학적 관념체계 scie n ti fic ide a s y s t ems( 죽, 연구 과 제를 공식화하고, 탐구와 조사 방법을 제시하고, 지식을 평가하는 데 사용되는 기준을 제공하는 공유된 신념들의 조직망)와 그 변화를 재 구성하는 일이어야만 할 것이다. 물론, 과학의 사회 학적 연구는 관념 체 계 ide a s y s t ems 와 그 발달 에 대한 설명을 제공해 왔다. 그러나 새로운 세부전공과 학문분야의 출현에 중점을 둔 연구(멀케이 Mulka y의 가지 모형 branchi ng model

과 같은 ) 2) 를 제외하고는, 실제로 과학의 관념체계 안에서 변화의 구조 와 역학을 분석할 수 있는 이론적 틀을 개발하려는 시도는 아직 없었 다. 패 러 다임 이 나 표본, 정상과학 normal sc i ence 의 어 휘 들을 폭넓 게 수용한다 해도 실질적으로 이러한 상황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왜냐 하면 우리는 제반 과학 활동에서 패러다임과 표본이 어떻게 작용하는 지 그 방법에 대해서 아는 바가 거의 없으며, 다양한 분야와 다양한 발달 단계에서 변화 과정과 혁신을 비교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용어 가 없기 때문이다 사회학자들은 인지 발달이 과학의 관념체계만으로 는 충분히 결정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구성과 협상 과정에 집 중하게 되었으며, 대체적으로 그러한 협상에 있어서 이미 기존의 공인 된 인지적 맥락과 관련된 역할에 대해서는 소홀히 취급해 왔다.

2) Mich ael Mulkay , G.N. Gil be rt , and S. Woolga r , Problem Areas and Research Netw o rks in Scie n ce, Socio lo g y, vol.7 (19 75), pp. 187-203 ..

그러나 과학적 고려 사항들(즉, 이론 , 방법론, 사실 등)만으로는 과 학의 발달 방향을 설명하기에 충분치 않다는 주장과, 큰 인지적 맥락 (공유된, 의심할 여지 없는)을 자연주의적으로 기술할 수 있는 기정 사실로 다루면서 이론과 사실이 구성되는 사회적 우발 과정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과학 발달을 이해할 수 있다는 암묵적 가정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 3) 결국 특정한 과학 문제들이 의미를 지니게 되 고 , 어느 한 분야에서의 문제점들이 명시되고 정당한 해결책으로서 갖 추어야 할 조건들이 밝혀지는 것은 바로 이러한 더 큰 인지적 맥락에

3) 예 를 들 면, 콜린스는 적 절한 실험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타협이 중력파에 대한 연구 를 조직화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순과 타협이 광범위한 동의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지만, 연구와의 모순을 조직화하는 데에 있어서 동의가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H. M. Coll ins , The Rep lica ti on of an Exp erime nt in Phy si c s in Sc ien ce in Conte x t: Readin g s in Soc iol og y of Sc ien ce, eds. Ba ny Barnes and Dav id Edge (Milton Key n es: Op en Un ive rsit y Press, 1982).

의해서이다. 휘틀리Whit le y는 그의 연구에서, 독창성이라는 규범이 현대 과학자 들의 연구를 지배하긴 하지만 〈 공동체 내에서의 평판 있는 업적은 그 분야의 주요 목표들과의 연관성에 의해서 평가되기 때문에 독창성이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 기존의 절차와 이들 목표 를 해석하는 방법들과 맞지 않는 지식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 지 않기 때문에 그 분야에서는 좋은 평판을 얻지 못할 것이다. 〉 4 ) 라고 했다.

4) Ric h ard W 血 le y, The Esta b li sh ment and Str uc tu re of the Scie n ces as Repu ta tion al Orga niza tio n s, in Sc ien ti fic Esta b lish ments and Hi er archie s , eds. Norbert Eli as , Herm ina Ma rtins and Ric h ard Whitley , Socio l og y of the Scie n ces Yearbook VI(Dordrecht: Reid e l, 1982), p. 330.

그러나 〈참신성 novel ty이 지나쳐서는 안 된다 〉 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의 연구가 어느 때 〈너무 독창적인 〉 것으로서 거부 될 것인가는 사회적 상황만으로 결정되는가? (물론 이것은 특정 연구 룰 거부할 수 있는 명시된 이유는 아니다!) 〈그 분야의 주요 목표들 〉 과 〈이러한 목표들을 해석하는 기존의 방법들 〉 은 얼마나 제약적이고 침범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인가? 목표들만이 유일한 제약 요소들인 가? 좀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독창성의 규범 norm of or igi n ality〉이 라는 것이, 다른 인지적, 사회적 상황에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질문들 또는 이와 유사한 질문들에 답할 수 있기 위해서는 특정 한 과학적 관념과 이들의 개별적인 변화를 구체적으로 기술하는 일을 넘어서, 인지적 변화의 다양한 유형들을 구별하고 혁신을 도입하고 수 용하는 데 관계된 인지 과정을 분석하기 위한 틀을 개발할 필요가 있 다. 과학지식의 사회학이 다루는 문제 중에는 과학의 관념체계의 여러 요소들간의 문제와 그 변화에 대한 기회를 제한하거나 제공하는 역할 의 문제가 있다. 과학의 발달 과정에 대한 이러한 이해를 토대로 해야

만 비로소 사실과 이론에 대한 타협의 역할과 이러한 관념체계가 변 화하는 사회적 • 제도적 맥락의 역할울 함께 연구할 수 있다. 적어도 자체 발견의 목적을 위하여 인지 발달은 사회적 맥락과 분리되어 분 석되어야 한다. 어떤 학문이나 특정 분야의 장기간의 발달 과정을 연구하는 것은 인지 발달 과정을 분석하는 데 특히 도움이 된다 . 긴 역사적 안목으로 보면, 그 학문 분야가 태동해서 제도화되는 동안에 일어나는 변화뿐만 아니라 그 후에 일어나는 변화, 즉 이미 완전히 제도화된 학문 안에서 발생하는 변화들까지도 살펴볼 수 있다. 잇따른 관념체계들을 재구성 해 보면 단절과 연속의 정도를 검토할 수 있으며, 변화를 고립된 현상 으로서 보지 않고, 현행 관념체계와 지적 전통 안에서의 문제 및 기 회 , 그리고 제약이라는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 오랜 세월에 걸쳐 발달해 온 분야의 지식에 대해 그 발달을 추적하는 것은 이런 의미에 서 인지적 변화의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데 아주 적합한 전략이다. 그러나 오랜 역사적 관점이 인지 발달 연구에 도움이 되긴 하지만, 이 관점은 인지 발달이 일어난 사회적 • 제도적 맥락의 분석에 있어서 는 문제를 야기한댜 오랜 기간을 놓고 볼 때는 변화나 혁신의 수용을 특정한 과학자들의 집단에 국한시키기도 어려우며, 개별 과학자들의 다양한 논의와 처리를 추적하기는 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과 학의 사회적 측면과 인지적 측면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가장 큰 도움 이 되는 것은 대규모의 과학공동체가 아니라 분명히 그러한 국부적인 제도적 • 사회적 상황이라는 사실을 많은 사회학적 분석들이 시사하고 있다. 제럴드 가이슨 Gerald Ge i son 은 인지 변화에 대한 분석을 그 사회 r적e se맥ar락ch과 sc어h떠oo한ls —방법즉으, 로 사연상결학파시,킬 정것 확인하가게 하같는은 문 제것는은, 아연니구지학 파만 一로 통합된 과학자들의 비교적 작은 집단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상

당한 정도 풀어 나갈 수 있다고 주장한댜 5 ) 역사적으로 모든 시기에 있어서의 모든 학문의 발달을 그러한 프리즘을 통하여 연구할 수는 없지만, 어떤 분야, 예를 들어 19 세기와 20 세기의 언어학과 같은 경우 에는 그것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사회적으로는 물론 인지적으로 통 합된 과학자들의 비교적 작은 집단을 구별해 낼 수 있는 분야에서는, 연속적이고 공존하는 다양한 사상학파들을 분석함으로써 과학의 사회 조직과 과학 변화의 역학과의 관계를 검토할 수 있는 매우 적절한 입 지가 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사상학파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그 학파 의 구성원들이 그 안에서 연구하고 혁신을 이룰 수 있었던 특정한 제 도적 • 사회적 맥락에 따라 비교적 명료하면서도 독특한 관념체계를 분석할 수 있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장기적인 역사적 관점에서 다 양한 종류의 인지 변화를 구조적으로 비교 분석할 수 있다.

5) Gerald Geis o n, Scie n ti fic Chang e, Emergi ng Sp ec i al tie s , and Research Schools, Hi st o r y of Scie n ce, vol.1 9 (1 9 81), pp. 20-40.

1 사상학파의 정의 〈사상학파 schools of t hou g h t〉란 말은 대부분 다양하면서도 서로 관계없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들에 무분별하게 일반적으로 적용되었다. 때때로 그 용어는 그 주창자들이 문제의 관념체계를 공통적으로 고수 하고 있다는 것밖에는 공통점이 거의 없는 이론들을 분류하는 수단으 로 사용된다(피티림 소로킨 P itirim Soro ki n 은 〈학파 schools 〉란 용어 롤 이렇게 사용하고 있다 ).6) 어떤 경우는 그 용어는 같은 국적을 가진

6) 소로킨 Soro kin에 의하면, 모든 이론들은 몇 개의 주요 학파들로 나누어지는데 각 학파는 다시 하위 구분되고 그 각각은 몇 개의 가장 전형적인 연구들로 대표될 수 있다.

학자들이 막연하게 공통적으로 지닌 외관적 유사성을 지칭하는 데 사 용되기도 하였다(예를 들면, 피에르 뒤앙 P i erre Duhem 의 〈영국 물리 학파 En gli sh school of p hy s i cs 〉에 대한 연구에서와 같이 ) .7) 또한 학 파는 공통된 견해를 가지고 있으면서 서로 일정한 사회적 관계를 유 지하고 있는 학자들의 집단으로서 기술되기도 했다. 가이슨은 연구학 파를 〈 동일한 제도적 상황에서 상급 연구원들과 나란히, 비교적 일관 성 있는 연구 계획을 추구하며, 직접적이고 지속적인 사회적 • 지적 상 호작용에 참여하고 있는 성숙한 과학자들의 소집단〉으로 정의하고 있 댜 8) 비슷한 정의가 명시적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고, 모렐 Morrell 과 프리드만 F ri edman 과 같은 실험연구학파의 연구에서처럼 암묵적 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9)

7) Pie r re Duhem, The Ai m and Str uc tu r e of Ph ys ir o l Theory (New York: Ath e neum, 1962), Pa rt I, Ch. IV. 8) Geis o n, op. cit. , p. 23. 9) J. B . Morrell, The Chem ist Breeders: The Research Schools of Lieb ig and Thomas Thomp so n, Ambix , vol.2 3 (1976), pp.17 5-86. Robert Mare Fri ed man, Constit uting the Polar Front, 1919-1920, Jsi s (l 982), pp. 343-362.

연구학파에 대한 가이슨의 정의는 일차적으로, 학파 구성원들의 가 까운 지리적 인접성이 아마도 사회과학과 인문학의 경우보다 더 중요 한 실험실 과학 labora t ory sc i ence 을 지칭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그의 정의가 학계의 모든 분야에 있는 사상학파들을 포함하고, 다양한 발달의 시점에서 그 학파들을 고려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 정의는 수 정될 필요가 있다. 한 연구 조직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사회 적 통합을 유지하는 학파들을 포함하기 위해서는 〈동일한 사회적 맥 락〉이라는 요구 조건은 수정되어야만 할 것이다. 아마도 연구학파와 사상학파의 구분이 그어질 필요가 있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과학의 변화 과정을 연구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면, 먼저 우리는 〈 비교적 일관성 있는 연구 계획〉을 이루고 있는 것이 무엇인

가, 그리고 그러한 계획이 전체적으 로 다 른 학파 들 의 계획이나 혹 은 한 전문 분야의 계획과는 어떻게 관련이 되어 있는가 를 물어야 한다. 한 사상학파 안에서의 인지적 통합의 본질에 관하여 기술하고자 한 사회학적 시도가 몇 가지 있어 왔다. 예 를 들어, 데이비드 크란츠 David Kran t z 는 학파를 〈지도자의 관념체계를 제자 집단이 비판 없 이 받아들이는 것이 필수적인〉 집단으로 간주한댜 10 ) 다이나아 크레인 Dian a Crane 도 학파의 폐 쇄 적 성 격을 강조함으로써 학파를 다른 과 학 집단과 구별하고 있댜 즉, 학파는 특정한 관점에 분명한 태도를 갖고 그들의 관념에 대한 내적 또는 외적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다.II) 크란츠와 크레인이 제시한 인지적 통합에 대한 설명은 그 학파의 관 념체계의 폐쇄적 성격이 다른 과학 집단의 관념체계와 구별되는 특징 이라는 경우에만 유용할 것이다 . 다시 말해서, 크란츠와 크레인은 과 학적 지식은 무조건 모든 형태의 비판에 노출되어야 한다고 가정한다 . 그들은 한 사상학파의 엄격한 내부 규율 및 〈그들의 연구에 대한 외 부적 영향이나 정당화〉를 거부하는 것을 학파만의 고유한 특징으로 간주하고, 보다 큰 과학 집단에서는 비판에 대해 이러한 제한이 없음 을 암시적으로 대조하고 있댜 1 2) 과학에 대한 이 견해는 누구보다도 카를 포퍼 Karl Po pp er 가 주창한 것 이 댜 포퍼 에 의하면, 〈과학적 방 법으로 비판적인 토론 방법보다 더 합리적인 것은 없다 . 〉 1 3) 그러나 과 학적 방법론이 정말로 끊임없는 비판적 토론에 의존한다면, 학파는 과 학 발달의 정상적인 과정에서 역기능을 하는 반과학적인 탈선이 될

10) Davi d L. Krantz , Schools and Sy st e m s: The Mutu a l Isolati on of Op e rant and Non- op e ra nt Psyc h olog y as a Case Stu d y , Jou rnal of the Hi st o r y of the Behavio r al Scie n ces, vol. 7( 1971), p. 90. 11) Dian a Crane, Invis i b l e Colleg e (Ch ica g o : Un ive rsit y of Ch ica g o Press, 1969), pp. 얽 -88 . 12) 같은 책, p. 없 13) Karl Popp er, Obje c ti ve Knowledg e (Ox for d: Clarendon Press, 1972), p. 없

수밖에 없다 . 포퍼는 학파에 대한 불인정을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모든 문명에서 우리는 종교적이고 우주론적 교육과 같은 어떤 것을 발 견하며, 또한 여러 사회에서 학파를 발견한다. 이제 학파, 특히 초기 학파 들은 모두 특징적 구조와 기능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 비판적 토론의 여 지는커녕 일정한 이론을 전달하고 그것을 순수하게 변하지 않도록 보존 하는 것을 그들의 임무로 안다. 전통과 학파 창설자의 이론을 다음 세대 로 전하는 것이 학파의 임무이댜 이 목적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이론이 침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학파는 결코 새로운 사상을 허용하지 않는다. 새로운 사상은 이단이며 분열을 가져온다. 그 학파의 구성원이 이론을 바꾸려 한다면 그는 이단으로 추방된다 .1 4)

14) Karl Popp e r, Conje c tu re s and Refu t a tion s(London: Routl edge and Keg an Paul, 1963), p. 149.

크란츠와 크레인이 제시한 정의는 명확하지 않은 면은 있지만 규범 적이댜 과학적 방법을 거부하는 폐쇄적 집단으로 학파를 정의하기 때 문에, 학파 존재 그 자체가 과학 발달에 장애가 된다. 그러나 비판적 토론의 이성적 방법에 의존하는 과학과, 과학적 방법 론의 규칙을 위반하는 학파 사이에 이러저러한 강한 대립 관계를 설 정하는 것이 잘못일 수도 있다. 토마스 쿤 T . S. Kuhn 은 당시의 패러 다임의 조건에 아주 잘 부합하는 〈정상과학〉의 개념을 도입하면서, 과 학 발달에서 비판의 중요성과 효율성에 대해 의문을 던졌다 .15) 한 패 러다임의 범위 안에서 작업하는 과학자들은 기본적인 이론적 관념들 의 효용성을 손상시키는 증거를 종종 무시하고 있다 .16) 마이클 폴라니

15) Thomas S. Kuhn, The Str uc tu re of Scie n ti fic Revoluti on s(Ch ica g o: Un ive rsit y of Ch ica g o Press, 1962); also The Essenti al Tensio n : Selecte d Stu d ie s in Scie n ti fic Tradit ion and Cmng e (Ch ica go : Un ive rsit y of Ch ica g o Press, 1977).

Mi ch ael Polan yi는 자전적 예를 들어 〈 과학에서 정설의 힘〉은 포퍼 모델에서 가정했던 것보다 더 강력할 뿐 아니라, 역설적으로 과학 발 달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의 흡착 이론 theo ry of adso rpti on 을 채택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과학적 방 법은 제한된 수준의 이견만을 허용할 수 있는 정설에 단련되며 또 그 래야만 한다〉고 결론짓고 있다. 그는 비판에 완전히 노출되면 발전이 전혀 없게 된다고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과학에서 전혀 비판이 있 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이 어디까지 유용 할 수 있는가에는 한계가 있으며, 일정한 시기에 취할 수 있는 주제의 수에도 한계가 있음을 의미할 뿐이다. 어떤 역사적 상황에서 비판할 수 없는 사상이 다른 상황에서는 비판받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과학에서 어떤 관념은 비판에서 면제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 사상학 파들의 인지적 통합을 설명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 내야만 한다. 학파가 반대 의견을 제한하고 있다는 사실이 학파와 다른 집단을 구 별짓는 기준으로 사용될 수는 없으며, 또한 그들의 관념체계에 대해서 도 아무것도 알려 주지 못한다(비판을 전혀 용납하지 않는 집단으로 학파를 정의할 수는 있지만, 그런 상황에서 학파라 불리는 현상은 완 전히 공허한 것이다). 크레인은 그녀가 〈결속집단 so li d arity . g rou p s 〉 이라고 부르는 집단과 사상학파룰 구별하려는 한편, 모든 결속집단은 그 구성원들이 특정한 견해를 따르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학파와 결 속집단의 차이가 다소 빈약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특히 이 문제(문 제를 해결하지는 못하지만)에 유념하고 있댜 17) 만약 사상학파가 정상 과학에서는 상례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는 어떤 관념들의 비판을 체 계적으로 막는 기준을 명시할 수 있다면, 학파와 다른 과학자 집단을

16) Mich ael Polanyi , Theory of Pote n ti al Adsorp tion , Scie n ce, vol. 141 (19 63), 1010-13. 17) Crane, 앞의 책, pp. 얽 _88.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에서 어떤 관념들은 항상 그리고 무조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또 어떤 관념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역사를 초월한 ahist o r i ca l cri ter i a 기준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학파에 대해서도 그런 기준은 없는 것 같다 .18 ) 오랜 역사 기간 동안 논란의 여지가 없어 보였던 합리성에 대한 방법론과 기준 도, 비판에 대한 다른 제한이 설정됨에 따라 일련의 다른 상황에서는 비판을 받게 될 수도 있댜

더군다나, 사상학파에 대하여 제시된 어떤 정의도 학파가 과학의 발 달에 이익이 될지 방해가 될지의 문제를 미리 판단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 과학의 개방적 본질과 학파의 폐쇄적 성격을 대비시키는 가 설들이나, 합리성에 대한 탈역사적 기준에 바탕을 둔 과학적 발견의 불변적 논리와 이러한 기준에 대한 학파로부터의 거부를 대비시키는 가설들은, 학파란 본래 〈 정상적인〉 과학 발달에 대한 연구에는 적절하 지 않다는 이유로 학파에 대하여 묵시적인 평가 태도를 취하게 된다. 그렇다고 할 때 어떤 분야에 학파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특히 사회과 학에서, 그 분야가 아직 발달 단계에 있다는 후진성의 또 다른 증거로 받아들여진댜 학파의 관념체계의 특성에 초점을 맞추어 학파의 지적 일관성을 기 술하는 데 노력하는 대신 , 학파의 연구 계획과 그 학파가 활동하는 지 적 상황과의 관계를 검토하고자 한다면 이러한 문제들은 피할 수 있 울 것이댜 여러 저자들이 사상학파들의 대립적 성격에 주의를 기울였고, 이 대 립의 구성적 역할에 대해 언급했다 . 예를 들면, 에드나 하이드브레더 Edna He i dbredder 는 심 리 학에 서 기 능주의 fu nc ti on ali sm 를 <항 의 의 심리학p s y cholo gy of p ro t es t〉의 출현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 지도

18) 헤세 Ma ry Hesse 는 그녀의 The Str uc tu re of Sc ien ti fic lrif ere nce(London: 1974) 의 1 장에 있는 개념들에 관해서 이 점을 주장하고 있다.

자들은 당시 미국 심리학계의 기성 세력에 반대했다. 그들은(기능주의 자들은) 자신들의 입 장을 옹호하고 주장하기 위하여 잠시 학파적 성 격이라고 할 만한 것을 가진 적은 있지만 구조주의에 반대하는 경쟁 학파를 설립하려는 노력은 하지도 않았댜〉 19 )

19) Edna Heid b redder, Funti on alis m , in Schools of Psyc holog y : A Sy m p o siw n, ed. David L. Krantz (N ew York : Ap ple to n - C entu ry- C roft s, 1969), pp. 35-36.

동시대의 관념에 반대하는 철학 학파들에 대해서도 종종 비슷한 표 현으로 기술되었다 . 1929 년에 비엔나 학파 (W i ener Kreis , Verein Ernst Mach) 의 회원들 은 일련의 선언들 중 첫번째가 되는 발표를 했다 . 그들의 어조는 분개한 아웃사이더의 어조였으며, 그들은 독일 학계 기성 세력의 철학에 있어서 의 〈형이상학적 • 신학적 경향의 신장〉에 식상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그 기성 세력 안에 있는 모든 주요 학파들을 독설로 바난했다. 그들은 지금 까지 소위 철학적 문제라고 했던 모든 문제들이 의미의 혼동과 논리의 반복에서 나온 산물이었다고 선언했댜 20)

20) Fri tz K Ringe r, The Declin e of the German Mandarin s (Cambri dg e : Harvard Un iv. Press, 1969), p. 308.

자연과학에서 사상학파가 생겨날 때는 다른 과학적 탐구 방식과 대 립되는 개방적 표현이 종종 수반되었다. 예를 들면 1840 년대의 환원 주의 자 생 리 학자들 reducti on ist p hy s i olo gis t s 의 경 우가 그러 했다. 혁명이 일어나기 1 년 전 1847 년에 루드비히 Ludw ig와 그 외 몇몇 사 람들이 베를린에서 만났는데, 거기서 생리적 욕구와 방법론에 있어서 혁 명이 될 계획이 수립되었다고 한다. 생명력을 지배하는 자율적 삶에 대한

관념이 그 들 의 적이었다 . 그 들 은 논쟁의 힘을 지탱하기 위한 부분적인 이 유에서 위 이론의 지지자들로 자연철학자들을 지목하고 자연철학자는 과 학을 책임질 사람이 아니라 형이상학자였다고 선언했다 . 2 1)

21 ) Wi lliam Coleman, Bi ol og y in the XIXt h Centu ry(C ambri dge Un iv. Press, 1977), p. 151.

혁명의 의지를 선언하는 것은 특히 예술사상학파나 예술운동과 관련이 있는 분야(문학비평과 같은)에서 혼한 것 같다. 많은 문학 집단의 〈혁명 적 〉 선언(예를 들면, 프랑스의 초현실주의자 Surre ali s t s 나 러시아의 미 래학파들 Fu turi s t s) 이나 자신들에 앞서 있었던 모든 것에 대해서 계 획적으로 경멸하는 것은, 앙드레 말로 Andre Malraux 가 회화학파 schools of pai n ti n g를 〈 사라지는 의미들에 대한 일치된 공격 운동〉이 라고 한 것과 같은 의미에서 , 형식적으로 꼭 필요했을지 모른다 . 22) 마찬 가지 로 빅 터 얼 리 크 Vic t o r Er li ch 는 러시 아 형 식주의자들 Forma list s 이 다른 문학비평학파와 대립했던 점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22) Andre Malraux, The Voic e s of Sil e nce(P rinc eto n : Princ eto n Un iv. Press, 1978), p. 381.

형식주의는 대부분의 새로운 사상학파와 마찬가지로 대체적으로 지배적 인 지적 추세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 대부분의 러시아 사상학파들과 마찬 가지로 그 것 은 격렬한 반작용이었다 . 젊은 형식주의 이론가들·은 러시아의 문학 이론과, 사회비평가돌의 메시지에 대한 치중, 상징주의자들의 형이상 학적 편향 등에 부담이 되는 학계의 절충주의를 마찬가지로 격 렬히 비난 했다 . Zl) 모든 사상학파들이 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나 독일의 환원주의자

23) Vic tor Erlic h , Russia n Forma lism , Jou rnal of the Hi st o r y of Ideas, vol. 340973), p. 6 없

생리학자들과 같은 정도로 〈 혁명적 〉 은 아니지만, 그 들 의 인지적 통합 올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한 가지 특징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 댜 그것은 사상학파는 그들과 연관된 준거분야 re f erence field 내의 우세한 체계들로부터 분기된 관념체계를 개발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인용한 저자들이 이러한 대립의 인지적 측면을 강조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 러 한 분기 di ver g ence 는 성 격상 이 중적 이 다. 즉, 학파의 관념체계가 준거분야에서 지금까지 수용되었던 관념들에서 분기되었 다는 점에서는 〈인지적 co gniti ve 〉이며, 학파의 구성원들과 준거집단 의 구성원들과의 사회적 유대가 끊어졌다면, 그것은 〈사회적 soc i al 〉이 다. 여기에서의 나의 분석은 정상과학에 한정하는데, 정상과학에 있어 서 학파가 반대하는 〈준거집단 re f erence g rou p〉은 당초에는 동질적 일 수 있고, 그 경우 새 학파는 그 자신이 일부였던 학문이나 전공 분야로부터 분기된 것이거나, 혹은 준거분야가 이미 분리되어 여러 학 파들로 구성되어 있고, 새 학파가 다시 기존 학파에서 분기되는 경우 인 것이다(그것이 분리된 학문이나 전공 분야에서의 지배적인 지적 추세와 관련해서만 그 인지적 분기를 설명할 수 있지만). 해당 준거분 야의 구조는 그 학파가 주장하는 반대의 본질과 성공할 가능성에 영 향을 미치는 요인들 중 하나가 된다. 그러나 나는 일단 이런 측면은 무시하고 그 학파 자체가 일부가 되어 있는 보다 큰 준거분야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우리는 사상학파와 그 학파가 일부를 이루는 분야와의 이러한 관계 를 〈사상학파란 그들의 학문이나 전공 분야 내의 다른 학파로부터, 혹 은 총체적 학문이나 전공 분야로부터 갈라져 나와 공통의 인지적 • 사 회적 분기점에서 통합하는 학자나 과학자들의 집단〉으로 정의함으로 써 요약할 수 있다. 이 연구의 목적 중 하나는 현대 학술과학 academ ic sc i ence 의 맥락에서 이 〈이중적〉 분기의 범위와 특성을 확 정해 보는 것이다 .

2 사상학파의 인지적 분기 사상학파들은 이따금 종파와 비교되고, 보통 이러한 비교는 학파와 종파의 어떠한 내부 사회 구조가 명백히 유사하다는 점에 바탕을 두 고 있지만, 실제 이러한 비교를 불가피하게 만든 것은, 보다 큰 분야 에서 파생된 학파들의 인지적 분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니버 H. R. N i ebuhr 는 교회를 종파와 비교했는데, 죽 교회는 항상 지속의 원리에 신경을 쓰고 있는 반면에, 종파는 교회와 국가, 개종한 사람들과 그렇 지 않은 사람들 또는 현재와 미래 간의 단절을 강조한다(그 종파의 성경 해석과 그 종파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의 성경 해석과의 단절은 말할 것도 없다 ). 24)

24) H. R. Nie b uhr, Sects , Ency cl op e dia of the Soci al Sc ien ces, 1967. 학파와 분파에 대한 광범위한 비교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 F. Znani ec ki , The Socia l Role of the man of Knowledg e (New York: Columbia Un iv. Press, 1940)

이 비교를 너무 확대하여 한 학파의 관념체계와 그 준거분야의 관 념체계 사이의 분기를 과장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모든 학파들과 제도화된 학술과학의 구조 안에서 활동하는 모든 학파들이 다 〈신생 종교나 또는 …… 이단과 같은 집단적 분리〉라는 기술에 부합하는 것 은 아니다 . 25) 분기로 인해서 한 학파의 구성원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 는 문제들이 영향을 받을 수는 있어도 〈과거와의 단절〉이 __- 실제로 그렇게 될 수도 없지만――-총체적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한 학 파의 사상과 그 학파가 일부가 되어 있는 분야와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단절된 것들은 물론 연속되는 것들도 고려해야 한다.

25) Malraux, 앞의 책, p. 367.

한 학파의 관념체계는 여러 면에서 준거분야의 관념체계에서 분기 될 수 있다. 다양한 유형의 관념들과, 신념, 원칙들은 비교되는 관념체

계간의 인지적 대립을 일으키거나 어느 정도 연속성을 유지시킨다. 따 라서 인지적 연속과 단절의 근원과 성격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어떤 유형의 관념들이 상이한 관념체계들을 구성하며, 이 관념들의 상호작 용이 어떻게 한 사상학파의 형성에 영향을 주는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슈타니슬라브 오쏘브스키 Sta n is l aw Ossows ki는 그의 저서 『 과학 사회 학의 특성 에 관하여 On the Peculia r iti es of the Socia l Scie n - ces 』의 〈위상과 학파 Pos iti ons and Schools 〉라고 제목을 붙인 장에 서, 다양한 유형의 인지적 분기를 확인하려고 했다흐 그는 관념체계들 의 철학적 • 이론적 • 방법론적 구성 요소들을 구분하고, 이 각각의 범 주들의 다양한 견해들이 어떻게 새 사상학파를 탄생시키는가 하는 방 법들에 주의를 기울였다.

26) Sta nisl aw Ossowski , Dzie la , vol. 4, 0 Nauce (Collecte d Works, On Scie n ce)(Warsaw: P.W.N., 1967). 오 쏘브스키로부터의 번역은 저자 자신의 것입

철학적 분기 오쏘브스키가 분류한 분기의 첫 유형은 어느 학파를 그 분야의 다 른 나머지들과 구분하는 것으로서 그 학파의 주장이 〈검증할 수 없는 unve rifi able 〉(비엔나 학파가 이 용어를 사용하는 의미에서) 경우이다. 과학의 통합적인 경향에 대립되는 한 학파가 생기게 되는 조건들은 그 학파의 위상에 기본이 되는 가설들이 증명할 수 있는 정도까지 발전되지 않았을 때, 그리고 이 가설들의 소통성이 일차적으로 표현적인 기능이나, 견해, 기분, 연상, 지시 둥의 전달에 의존할 때 일어나게 된다. 기본 가설 들을 논리적으로 검증하거나 허위임을 입증할 수 없을 때, 그 학파의 구 성원들은 개인적 선호나 사적인 판단에 따르게 된다 .m)

오쏘브스키가 〈 검증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한 종류의 기본 가설 들 은 최근에 많은 주의를 끌었다. 오쏘브스키는 이들의 역할을 인문학과 사회과학에 한정하고 있는데, 과학철학자나 역사가들은 이들을 자연과 학에 있어서도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라카토스 Imre Lakato s 는 그 가설들을 그가 과학 프로그램의 〈핵심 core 〉이라고 부르는 것 에 포함시켰으며 쿤은 〈가치 values 〉로 기술하고, 홀튼 Hol t on 은 〈주 제t hema t a 〉라고 부르고 있다. 과학철학자들 사이의 많고도 심오한 차 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분석은 이러한 철학적 신념들을 단순히 〈검증 할 수 없는 〉 또는 〈허위임을 입증할 수 없는 u nf als ifi able 〉 것으로 기 술하는 것은 불충분하다는 점을 명백히 하고 있다. 나는 오쏘브스키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수정하고자 한다 . 과학자들간의 분기의 한 유형은 그들의 기본 철학적 가설들이 상충 할 때 발생하는 것이댜 이 철학적 가설들은 〈무엇이 적합한 설명이 되는가? 〉 또는 더 일반적으로 〈무엇이 과학적이며 무엇이 과학적이 아닌가? 〉 와 같은 문제들에 관련된 것이다. 분기는 연구 중에 있는 대 상의 본질(예를 들면, 사회, 인간, 사물, 삶, 언어, 정신 등의 본질)에 대한 문제와 관련될 수도 있고, 〈과학적 연구의 목적이 무엇이며, 어 떻게 다론 종류의 과학적 활동을 평가할 수 있는가?〉와 같은 문제와 관련될 수 있다 . 다시 말해서, 다소 광범위하게 정의된 이 인식론적 • 본체론적 문제가 과학적 이해의 분야를 한정하고 과학자들의 인식론 적 위상을 설정한다. 과학적 관념체계에 대한 이러한 철학적 토대는 종종 암묵적으로 존재하는데, 특히 그 분야 전체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공통된 견해롤 가지고 있거나, 철학적 가설의 존재 자체가 〈신통치 못한 과학 bad sc i ence 〉의 표시로 받아들여질 때 그러하다. 그러나 한 학파가 정확히 이러한 용어를 사용하여 반대 입장을 표현 해야 하는 경우에는 명시적으로 토론할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

27) 같은 책, p. 226.

물론 모든 철학적 분기가 다 사상학파를 낳게 하는 것은 아니며, 그 문제로 하여 다론 영역에서 심각한 불일치를 초래하지도 않는다(예를 들면, 그런 불일치는 특정한 발견의 해석에만 관련된 것이거나, 따라 서 매우 제한된 관련성만을 가질지도 모른다). 언어학에서 아우구스트 슐라이허 Aug u st Schle i cher 의 혁신은 광범위한 철학적 분기라도 다 론 측면에서의 분기와 일치하지 않았던 상황의 한 예가 된다 . 슐라이 허는 초기 비교문법학자들의 주요한 철학적 가설들을 수정된 헤겔주 의 관점에서 거부했지만, 그는 앞선 학자들의 많은 이론적 관념들과 그들의 방법론적 규칙들을 계속 견지하고자 했다. 이론적 분기 오쏘브스키에 의하면, 한 사상학파가 형성되는 두 번째 조건은 경쟁 적인 가설들이 이상적 조건에서 검증되거나 허위임이 입증될 수 있다 고 하더라도 이러한 행위들이 실제로는 성취될 수 없을 때, 주어진 현 상에 대한 둘 이상의 설명이 존재하게 되는 경우이다. 당연히 관련된 가설이나 이론들은 이러한 맥락을 따라 분기가 보장될 만큼 충분히 그 분야에 중심적이라야만 한다(예를 들면, 토론하고 있는 문제가 앞 으로의 연구 방향을 결정하는 데 기본적인 역할을 할 때). 이상적으로는, 이런 종류의 분기는 동일한 철학적 가설이 두 개의 다른 혹은 모순되는 이론들에 기초를 제공해 줄 수 있을 때 일어난다. 그 두 이론들은 다론 개념적 모델과, 다른 유형의 증거 또는 다른 형 식성들을 이용하여 동일한 현상들을 설명하려는 시도를 나타낼 수도 있다. 이 모든 예에서의 분기에는 어떤 철학적 또는 방법론적 분기라 도 포함될 수 있다(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예를 들어, 프라그 학 파 Prag u e Lin g uist ic C ir cle 는 자신들의 학파가 주네브 학파 Geneva School 와 구별되는 것은 언어 변화에 대한 그들 각자의 이론적 분기

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주장했다 . 그 두 학파는 공시 구조언어학 syn chronic str uc tu r al li ngu i s ti cs 의 주요 문제에 동의했지만, 주네브 학파가 언어 변화는 구조적 조건과는 독립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프라그 언어학자들은 체계의 기능적 재조정에 의해서 변화를 설명했다. 모순된 이론들이 사상학파의 탄생의 기반이 되는 경우에는, 이상적 상황에서 시험할 수 있는 경험적 결과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에 있어서는 양쪽 기준을 모두 충족시키는 방법으로 시험할 수~ 없는 이론들이 종종 포함되었다 . 후에 보게 되겠지만, 프란츠 보프 Franz Bo pp와 슐레겔 형제들의 굴절 이론에 대한 불일치가 바로 이 런 종류의 것이었다 . 그들의 반대 이론들은 원리상으로는 시험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실제상으로는 검증할 수도 없고 허위임을 입증할 수 도 없는 것이었다. 물론 그러한 시험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론적 불일 치는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다. 왜냐 하면 일정한 시험에 요구되는 어 떤 기준에 들어맞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으며, 이러한 종류의 주장 은 항상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더군다나, 시험이 행해지는 조건들을 보면, 단 하나의 어떠한 지식도 그 지식에 수반되는 모든 〈배경지식 backg ro und knowled g e 〉을 떼어 놓고 시험할 수는 없댜 경험적 시 험이 행해지는 조건들은 항상 모호하다. 그래서 문제의 이론을 수정하 고 그 이론울 정립하기 위해서 한 관념체계의 어떤 다른 요소들을 수 정하려는 노력이 항상 있게 된다. 이런 식으로 해서 이론적인 상충은 쉽사리 철학적 혹은 방법론적 상충으로 변형될 수 있다. 실체적 • 방법론적 분기 마지막으로 오쏘브스키는 하나의 사상학파룰 탄생시키는 세 번째 종류의 분기를 구별한다. 이것은 제도적으로 경계가 분명한 학문분야 내의 어떤 집단에만 특유한 문제점들, 즉 독특한 개념적 도구라든가,

상징화 방식, 특정한 연구 방법, 연구 결과 를 발표하 는 방식 들 을 서로 다르게 선택함으로써 나오는 결과로 일어날 수 있다 쁘 조사 중인 현 상에 대한 연구에 적합한 방법론의 선택이라든가 또는 전문 분야나 학문의 발달에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특별한 문제점들에서 차이가 있 는 모든 학파들을 이 세 번째 범주에 넣는다.

28) 같은 책, p. 2 업.

방법의 특이성과 유일성을 강조히는- 학파들을 새로운 연구 영역을 개 발하는 다른 학파들과 구별하기 위해서는 이 범주를 더 세분하는 것이 유용할 것 같다. 이것들을 각각 〈방법론 지향적 meth o dolog ica lly- ori en te d > 학파와 〈실체 지향적 substa n ti ve ly- or i en te d > 학파로 부르 기로 하겠다. 새로운 문제점은 새로운 방법론을 수반하고, 반대로 새 로운 방법론은 새로운 문제점을 가져오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이 둘을 명확히 구분하기가 힘들다. 〈실체 지향적〉 학파들은 델브뤼크 Delb rii ck 의 파지 ph ag e 연구 그 룹이 나 기 센 G i essen 의 리 비 히 Lie b ig 농화학파처 럼 새로운 전문 분야 로 발전할 수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기존 전문 분야의 실체적 관심을 바꿔 놓으려 할 수도 있다. 〈실체 지향적〉 사상학파들의 출현은 과학 에 있어서 전문화 및 분업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방법론 지향적〉 사상학파들은 그들의 기술과 도구에서 차이가 있 거나, 자료를 제시하고 다루는 상이한 공식 절차를 개발하는 학파들로 정의될 수 있다. 인지적 분기 체계에 함축된 내용 하나의 관념체계를 이루고 있는 방법론적 • 철학적 • 이론적 • 실체적 신념은 분명히 상호 의존적이다. 전체적인 일관성과 긴밀성을 유지해 야 하기 때문에, 과학적 관념체계의 개별적 요소들은· 그 체계의 다른

요소 들 에 의해서 완전히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 제한되는 〉 것이 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한 관념체계의 철학적 • 이론적 • 방 법론적 • 실체적 요소들은 다른 체계적 요소들을 규제하고, 제한하고, 한계를 정하면서도, 단정하거나 논리적 필연성을 수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서로를 제한한다고 말할 수 있다. 주어진 연구 대상의 본질에 대한 혹은 과학적 표준에 대한 철학적 신념은, 어떤 이론적 설명은 반 드시 지지하고, 어떤 설명은 불가한, 비과학적이며 부적절한 또는 무 의미한 것으로 제거해 버린다. 마찬가지로, 방법론적 도구의 선택이 과학자의 한 집단(멀케이 Mulka y와 에지 Ed g e 가 연구한 전파천문학 radi o as tr onom y의 경우처럼)의 실체적 관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체적 관심을 명확하게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 .291 방법론적 착상은 주어진 분야에서 이론적 혹은 개념적 도구장치를 재정립하는 데도 도 움이 될 수 있다(예를 들면, 수량화가 필요없다고 생각되는 곳에 수량 화를 도입하거나, 혹은 지표를 실제 변수로 변형시킴으로써). 반대로 새로운 실체적 관심이 새로운 방법론적 실행을 개발하도록 촉진하는 경우도 있으며(우생학 eugen i cs 에 대한 관심이 통계적 방법을 개발시 키는 데 도움이 되었던 골턴 Gal t on 과 피어슨 Pearson 의 경우와 같 이 ), 30) 이론적 혁신이 방법론적 • 실체적 조정을 수반한 경우도 있다(예 를 들면, 하나의 현상에 대한 이론적 설명이 새로운 실체의 발견 및 경험론적인 조사의 필요성을 지적할 때). 철학적인 가설들 자체는 이 러한 인지적 제약들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방법론적이거나, 이론적 또는 실체적 관념들은 다른 것들을 고려 대상에서 제외시키면서, 특정

29) D. 0. Edg e and M. J. Mulkay, Astr on omy Transfo r med(New York and London: Wi ley , 1976). 30) Donald A. Mackenz ie, Sta tist i cs in Brita in, 1865-1930: The So cial Constr uc ti on of Scie n ti fic Knowledg e (E dinb urgh : Edinb urgh Un ive rsit y Press, 1981).

한 인식론적 원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선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 론적 또는 방법론적 혁신은 암묵리에 철학적 가설을 변형시킬 수도 있댜 비록 형이상학적 규칙에 관한 중요한 실험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자체 발견적인 가치는 지속해서 모든 과학 연구에서 시험되고 있다. 한 관념체계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구성 요소들의 상호 의존성은 결코 완전한 것이 아니다. 복잡한 관념체계는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것들과 거기에서 나오는 결과들과 더불어-이들은 어떠한 특정 시 기에도 대부분 알려져 있지 않았다-아마도 완전히 통합되어 내적 일관성을 지닐 수는 없을 것이다. 새로운 실체적 정보의 발견이, 때로 는 이론적 설명을 벗어나거나 이들과 모순이 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으며, 그러한 경험론적 변칙들 em piri cal anom ali es 은 과 학에서 주요한 변화의 원동력으로 간주되며(포퍼 Po pp er 는 말할 것도 없고 쿤 Kuhn 에 의해서도), 또한 이론적 • 방법론적으로 상충되는 경 우로도 간주된다. 유사한 긴장과 모순을 관념체계들의 철학적 • 이론 적 • 방법론적 구성 요소들 가운데서도 발견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과학의 관념체계들은 상호 제약하면서도 완전히 확정되지 않은 신념 과 주장들의 개방된 구조로 간주될 수 있다. 죽, 이러한 관념체계들의 특징은 종종 긴장이나, 논리적 또는 설명상의 괴리, 불일치, 가능한 변 칙, 논리적 모순까지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가설-과학의 관념체계라는 것은 논리적 혹은 준논리적 qu asi- lo g ica l 모순들에 의해 끊임없이 위협을 받는, 부분적으로 통합 된 신념체계라는――은 과학의 변화와 발달 과정을 해석할 수 있는 이론적 틀을 제시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과학적 설명이 나 기술에는 일관성 cons i s t enc y이 있어야만 한다고 가정한다면, 하나 의 관념체계 안에 있는 모순된 혹은 양립할 수 없는 요소들을 발견할 경우에 이러한 인지적 난관을 극복해야만 할 것이다(물론 일관성이

최소 요구 조건이긴 하지만, 어떤 주어진 경우에 어떠한 일관성을 취 해야 하는가에 대한 특정한 해석 자체가 주어진 관념체계 안에 통합 되어 있듯이, 모든 나머지 조건들도 그 체계 자체 안에 통합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일관성이 바람직한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고 해서 주어진 인지적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방법이 하나밖에 없다거나 일 관성이나 양립성에 대한 기준이 항상 동일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사실상 어떤 상황에서는 아주 이상적인 일관성 자체가 수용된 관념들 을 재정립하고 수정함으로써, 혹은 어느 한 관념체계의 주어진 요소들 이 내포하는 바를 확장시켜 보려고 함으로써 인지적 문제 및 비일관 성의 발견이 촉진될 수도 있댜 게다가, 지적 풍토나 과학의 본질, 실 재, 나아가서는 도덕성 등에 대한 통상적 견해에 있어서의 보다 일반 적인 변화가 과학적 관념체계를 이해하는 데 영향을 미치며 내부의 인지적 긴장을 감지하게 할 수도 있다. 끝으로, 과학철학자들이 강조 하는 바와 같이, 단순히 긴장이나 모순을 인식했다고 해서 관념체계 안에서의 이들의 정확한 위치가 결정된다고는 할 수 없다. 궁극적으로 는 잘 정립되어 있는 이론적 모델을 파괴하고 결과적으로 현존의 이 론의 틀과 양립하게 될 경험론적 변칙들이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은 기술적 난관으로만 생각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과학의 발달은 세계에 대한 통합적이고 일관된 견해를 얻 기 위한 영속적인 노력, 복잡하지만 열린 관념체계로부터 다양한 긴장 과 모순을 제거함으로써 전진하고 있는 하나의 과정으로 간주될 수 있다. 관념체계가 열려 있다는 가정은 과학 발달에서의 단절은 물론 지속성에 대한 설명을 가능하게 한다 . 왜냐 하면 전면적 혁명은 깊은 갈등의 상황에서 가능한 반면에, 한 관념체계의 특정 요소들 사이의 긴장은 전체 체계를 무너뜨리지 않고도 부분적으로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댜 예를 들면, 철학적 가정과 방법론적 규칙 간의 갈등은 어떤 실체적 혹은 이론적 변화 없이도 해결될 수도 있다. 일관성을 회복하

거나 좀더 포괄적인 응집력을 도입할 필요에서 변화가 오기 때문에, 문제의 발견이나 분기 자체가 합리성에 대한 기준이 변화함으로써 영 향을 받는 때에도 새로운 분기는 합리적이고 동기유발적인 것으로 간 주될 수 있다. 과학의 변화는 일련의 인식론적 단절이 아니라 동적이 며 지속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발달이 부분적으로는 지속적이라는 사 실은(예를 들면, 한 관념체계의 어떤 요소들은 가장 급진적인 과학혁 명의 경우에도 변하지 않고 존속된다) 그것이 과학적 발견에 대한 오 직 하나의 논리에 따라서만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 댜 변화는 다른 시기에 그 체계의 다른 부분들에서 일어날 수도 있고 다른 주장에 의해서 정당화될 수도 있으며, 어느 특정한 모순이나 긴 장, 혹은 간극에 대해서는 하나 이상의 반응이 있을 수도 있다. 물론, 사실, 방법, 이론의 〈구축 cons tru c ti on 〉이나, 논쟁과 타협의 여지가 생기는 것은 바로 이 마지막 가능성 때문이다. 여기서 설명한 것처럼, 과학의 변화 모델은 빈약하고 추상적인 경향 이 있다. 우리가 특정한 역사적 변화를 검토하고 인지적 분기와 지속 의 특정한 사례들을 해석하려고 할 경우에나 변화 모델의 유효성을 시험해 볼 수 있다. 우리는 문제들이 어떻게 발견되고 정의되는가에 대해 물어야 한댜 어떤 종류의 인지적 갈등, 긴장, 모순이 각기 다른 유형의 분기를 가져오는가? 관념체계 내에서 주어진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다양한 시도가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이러한 다양한 시도에 서로 어떻게 다른 차이가 있는가? 인지적 지속성의 본질은 무 엇이며, 어떤 과정을 통하여 과학자들은 서로 다른 시기에 그들 관념 체계들의 서로 다른 요소들에 대하여 의문을 갖게 되는가? 다음 장부 터 이들 중 몇몇 문제들이 언어학에서의 제 사상학파의 출현이라는 맥락에서 다루어질 것이다.

3 사상학파의 사회적 분기 인지적 분기로만 사상학파들을 특징지을 수는 없다. 모든 종류의 인 지적 분기가 반드시 사회적 실재로서의 사상학파를 만들어 내지는 않 는다 . 예르지 작키 Jer zy Szac ki는 이를 간단히 요약하여 〈하나의 사 상학파가 발생하는 것이 단지 여러 견해들이 발전하는 데 따라 나타 나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하고 있 댜 3 1) 사상학파들은 항상 그것이 일부를 이루고 있는 분야로부터의 인 지적 분기로서 출현하는 것이긴 하지만, 인지적 분기가 항상 한 학파 형성에 대한 시발적 인과 요인이라는 것을 연역적으로 확인할 수 있 는 것은 아니다(학파 구성원들의 사회적 통합이 그들의 인지적 분기 보다 우선하고, 그렇게 되어 인지적 분기는 그 집단의 사회적 분리로 부터 나오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31) Jer zy Szacki , Schools in Scie n ce, Polish Socio l og ica l Bulleti n, vol. 1 (19 76), p. 19.

그렇다면 한 사상학파의 사회적 통합에 대해서는 어떻게 기술할 수 있을 것인가?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동일한 제도적 환경에서 학파 구성원들의 지역적 위상은 공통적이기는 하지만 보편적인 것은 아니 며, 학파 구성원들과 연구생들이 새로운 지역으로 자리를 옮길 가능성 이 있는 후기 발전 단계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일정한 한 학파의 구성 원들이 그 전체 분야의 다른 구성원들보다 더 활발한 상호작용을 하 게 되는 것은 확실하댜 그러나 이러한 상호작용은 다른 분야, 다른 역사적 시기에는 다른 형태를 지닌다. 현대 학술과학의 맥락에서 이러 한 상호작용 방식은 임시적 모임과 세미나에서부터 문하생 제도, 공동 저자 관계 및 특별한 전문지의 출판이나 독립된 과학 협회의 설립(다 양한 심리분석학파나 프라그 학파와 같이), 과학자 모임이나 집회의 조직과 같은 비교적 제도화된 상호작용 형태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활

동들은 학파들에만 특별한 것은 아니다. 특정 전 문 분야나 눈에 보이 지 않는 단체 혹은 연구 영역의 구성원들도 서로 밀접한 상호작용을 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들의 상호작용 방식이 본질에 있어서 분명히 학파 안에서의 상호작용과 다른 것은 아니다. 그러한 밀집한 사회적 상호작용이 인지적 분기와 일치하는 경우도 학파들은 물론 전문 분야 와 연구 영역에는 흔히 있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상학파의 구성원들은 다른 과학자 집단의 구성원들과 비슷한 사 회활동에 종사하기 때문에 그들의 활동을 곧바로 분석한다고 해서 사 상학파의 특정한 사회적 성격을 분리시킬 수는 없다 . 그 대신 제도화 된 과학 내에서의 학파의 위상을 검토하고 학파 자체와 그들이 활동 하는 맥락의 관계를 기술해 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학파 대 학문분야 : 자율성과 제도화 세부전공 s p ec i al ty이나 학문분야들di sc ipli nes 과는 달리 현대 학술 과학에서 활약하는 사상학파들은 그 활동이 어느 정도 독립적일 수는 있으나 따로 독립해서 제도화되는 것은 아니다. 학파들은 어느 정도의 제도화를 위해 노력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학파로서 제도화되려는 시도를 하지는 않는다 . 오히려 제도화하려는 모든 시도는 새로운 세부 전공을 정립하거나 준거분야나 세부전공 분야의 모든 다른 구성원들 로 하여금 그 학파의 관념체계를 수용하도록 강요할 것이다. 쉴즈 S hil s 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지적 활동의 제도화는 그 활동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비교적 밀접한 상 호작용과 관계가 있다 . 그 상호작용은 하나의 구조를 지닌다. 상호작용이 밀접하면 할수록 그 구조는 평가, 수용, 추진, 할당에 관한 결정을 담당할 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 낸다. 지적 활동이 높은 정도까지 제도화되면 규

제되고, 계획되고, 체계적으로 운영되는 조직체 안에서 교육과 연구가 이 루어지게 된다. 그 조직은 자격을 엄격히 따져 일을 규제하고, 수행에 대 한 조직화된 평가를 제공하게 되고 수행을 위한 시설과 기회, 보상 등을 할당한댜 예를 들면 연구, 교육, 검토, 출판, 약속 등등 그렇게 함으로써 외부로부터 조직화된 도움을 얻게 되고 자신의 경계를 넘어선 활동의 결 과를 수용하고 이용할 수 있게 된다 .32)

32) Edward Sh ils, Trad ition , Ecolog y, and Insti tution in the Histo r y of Socio lo g y, Daedalus, p. 763.

사상학파가 이러한 제도화의 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반면, 학문분야 및 세부전공 분야들은 이러한 기준에 맞고, 쉴즈가 밝힌 것처럼, 제도 화로써 어느 정도 자율성을 갖게 된다. 특히 그 분야의 전문지가 나오 고, 논문들이 그 분야의 구성원들에게 심사를 받으며, 학생들은 그들 로부터 교육받고 자격을 얻고, 그들이 쓴 책으로 배운다. 그들에게는 대학이나 연구기관에 특별한 자리가 주어지며, 외부에서 이루어진 연 구 결과를 이용하는 것은 아주 제한되고, 마침내는 특별한 엘리트들이 출현하게 되는데, 이들은 자체 세부전공자들의 연구 결과를 심사하는 자신들의 능력에 대하여 다른 세부 분야 전문가들이 문제를 제기하더 라도 개의치 않는다. 이러한 부분적 자율성은 다양한 세부전공(학문분야가 아니더라도)의 엘리트들이 다소 중복된다는 사실로 인해서 약화되지만 서로 다른 세 부전공들간의 경쟁의 종류와 그 정도를 제한한다. 세부전공자들은 연 구비나 연구 인력 같은 형태의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서로 경쟁을 한 다. 그들은 위신을 지키기 위해서도 서로 경쟁을 한다. 그러나 하나의 원칙으로, 어느 한 세부전공 분야의 구성원들이 제출한 연구 결과를 판정하는 권위와 능력과 관련해서는 세부전공들간의 경쟁은 없다. 일 반적으로 세부전공 분야 안에서 과학적 연구를 평가하는 엘리트들의

권리와 능력은 전공 분야 내부에서 문제 제기가 있을 수는 있지만 엘 리트 구성원들이나 다른 세부전공자들이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는다. 사상학파들이 별도로 제도화되는 것은 아니므로, 보통은 세부전공 분야들과 동일한 정도의 자율성을 갖지는 않는다. 과학적 연구 결과의 내부적 정당성 int e r nal le giti ma ti on 에 대한 그들 자신의 권리에 대하 여, 다른 학파들이나, 자신들이 속해 있는 또는 분리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분야나 세부전공의 구성원들이 문제시할 수도 있다. 학파와 연구 결과의 정당화 과학공동체는 평등주의적인 e galitari an 것이 아니며 과학 엘리트는 다른 여러 기능 중에서도 과학적 연구 결과를 평가하고 정당화하는 책무를 맡고 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식되어 있는 바이다. 마이클 폴라니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권위는 과학자들 사이에 골고루 배분되어 있지 않다. 영향력에도 순위 가 있지만 특별한 권위는 직책이 아니라 사람에게 부여된다. 한 과학자에 게 특별한 권위가 주어지는 것은, 그의 견해가 높이 평가되고, 그의 의견 울 필요로 한다는 사실 때문이댜 그래서 그는 관리위원으로 발탁되기도 하지만 이런 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과학의 자치는 일반적으로 비공식적이다. 결정은 폭넓은 신임을 받고 있는 가장 유능한 전문가돌이 각각의 특별한 경우에 초점을 맞춰 표현하는 일반 과학적 의견에 달려 있다. 과학의 통치는 …… 그것이 통제하는 활동들에 대하여 특정한 지휘권을 행사하지는 않는다. 그 기능은 연구와 발표, 교육에 대한 기회를 주도하 는 것이 아니라 부여하거나 억제하고 개개인이 내놓는 논문들을 보증하

거나 불신하는 것이다 . 33)

33) Mich ael Polany i, Scie n ce, Fait h and Soci et y (C h ica g o : Un ive rsit y of Ch ica g o Press, 1946), p.16 .

과학에서 명성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대하여, 휘툴리는 그의 논리 에서 의견 일치보다는 갈등과 권력의 역할을 강조하여 더 강력하게 표현하고 있기는 하지만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죽, 높은 명성은 상징적 보상일 뿐 아니라 〈자원 분배와, 간접적으로 연구 조직에서의 작업 할당에 영향을 주는〉 수단이며 〈지식 목표와 절차에 관한 권력 〉 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34) 따라서 과학 엘리트는 〈개인이 집필한 논문들을 보증하거나 불신〉함으로써 〈인정, 명성, 자원의 부여 에 대한 권위를 행사〉하며, 간접적일지라도 세부전공의 계속적인 발달 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과학공동체의 바로 그런 부분인 것으로 정의 할 수 있댜 과학 엘리트의 이러한 정당화 및 지휘 역할이 항상 문제 가 없는 것은 아니며, 사상학파들은 과학 엘리트의 정당성과 인지적 권위를 의문시하고 과학적 연구 결과를 정당화하는 그들 자신의 수단 과 기준들을 정립하려는 범위 내에서 바로 그들의 준거분야와 사회적 으로 분기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사상학파는 그들 자신의 과학 엘리 토, 즉 어느 한 영역에서 이전에 연구 평가를 책임졌던 엘리트로부터 부분적으로 독립한 엘리트를 형성하려 한다. 과학적 연구 결과의 정당 화를 위한 독립된 수단을 강구하려는 이러한 시도가 반드시 이전에 수용됐던 정당화의 수단과 완전한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학파 는 〈기존 esta b li sh ment> 엘리트 측의 권위에 대한 주장을 모두 거부 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어느 한 영역에서만의 연구 평가 능력을 문제 삼을 수도 있고(즉, 기존 엘리트가 권위를 주장하는 영역이 너무 광범

34) Rich ard W 血 le y, The Inte l lectu al and Soc ial Orga n iz a ti on of the Sc ien ces (Oxfo rd : Clarendon Press, 1984).

위하다고 주장하며), 기존 엘리트의 평가들 중 몇 개만을 문제삼을 수 도 있댜 다시 말해서 엘리트의 평가가 잘못되었다고 직접 주장함으로 써 엘리트의 권위에 대해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별도의 권한 영역을 주장함으로써 엘리트를 기피하려고 할 수도 있다. 한 사상학파 가 주장하는 권한의 범위가 아무리 넓거나 혹은 좁다고 하더라도, 기 존 엘리트의 권한이나 정당성을 무시하거나 전복시키려는 이러한 집 단적 시도에 의하여 그들은 자신들이 기능하고 있는 분야로부터 사회 적인 분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 과학적 연구 결과를 정당화하는 데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 어떤 정당화의 경우는 현대 학술과학이라는 맥락에서 볼 때조차도 비공식 적이며 비제도화된 환경에서 일어난다. 존 지만J ohn Z im an 의 말을 빌리자면 〈명성은 세계 곳곳의 모든 실험실에서 계속적으로 흘러나오 는 잡담에 좌우된다.〉 35) 그러나 주어진 연구의 중요성에 대한 자세한 평가와 판정은 종종 비공식적으로 전달되지만, 한 편의 과학적 연구가 정당한 기여를 했다고 받아들여지는 가장 중요한 계제의 하나는 이 연구가 공인된, 권위 있는 과학전문지에 발표될 때이다. 〈사실상 과학 적 논문 발표는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다. 논문이 명성 있는 전문지 에 실리는 것은 단순히 저자의 의견을 나타내는 것만이 아니라, 그가 상의했을지도 모르는 편집인과 심판들로부터 그것의 과학적 신뢰성에 대하여 승인을 받는 것이다.〉 36) 한 사상학파의 구성원들이 새로운 전 문지를 창간하고 편집하고 판정함으로써 과학적 연구의 정당화에 관 한 독립적 수단을 강구하고 종종 시도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 서이다. 현대의 제도화된 과학적 맥락에서 활동하는 많은 사상학파들 이 그러한 전문지를 출간하거나 이미 있는 전문지를 통제하려고 애쓴

3.5) Joh n Zim a n, Public Knowledg e (Cambri dge : Cambri dge Un ive rsit y Press 1968), p. 133. 36) Zim a n, p.1 11 .

다. 때때로 그러한 전문지의 출 판은 한 학파의 구성원들에게 반대편 학자들의 논문을 비판하는 ___ 그리하여 그 정당성을 파괴하려는――- 기회를 허용하기도 한다. 독립된 전문지의 창간이 사상학파에게 과학 적 연구의 정당화를 위한 독립적 수단을 부여한다는 사실은, 자발심리 학 o p eran t p s y cholo gy에서 크란츠에 의하여 지적되었다. 〈그들 자신 의 관심사에 특유한 기준을 가지고 전문지를 간행함으로써, 그러한 연 구 접근법을 채택한 그들 자체의 내부적 통제를 수립하는 동시에, 있 을 수 있는 외부적 제약을 면제받는다.〉JI ) 마찬가지로 크레인은 〈자신 들의 전문지를 창간함으로써 한 학파 집단은 다른 영역으로부터의 심 판들의 비판을 무시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38)

37) Krantz , p.8 7 . 38) Crane, p.8 7 .

과학자들의 연구는 과학자 모임과 집회에서 발표되고 토론됨으로써 정당화될 수도 있다 . 그러한 회의를 조직하고 전문지를 발간하고 회원 을 받아들이는 특별한 기준을 채택하는 특별한 전문 협회도 비슷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앞으로 보겠지만 사상학파들은 그들의 연구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이러한 모든 수단을 이용한다. 또 한편으로, 보다 덜 제도적인 측면에서 정당성에 대한 주장을 하 는 경우가 있는데, 사상학파들이 몇몇 탁월한, 널리 칭송받는 학자들 의 권위를 빌어 그들의 사상을 발전시킨다든지,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든지 혹은 처음으로 정확하게 해석한다든지(대부분의 경우에서 마르 크스 Marx 와 프로이트 Freud 가 이 역할을 했다) 등의 주장을 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것은 고전적 자료가 새로운 저작에 의해서 밀리는 경우가 드문 사회과학과 인문학에서 특히 혼한 것 같다. 그렇게 인용 되는 선구자의 역할은 종종 순전히 상징적이다. 때로는 다른 분야에서 뛰어난 학자들의 지지를 인용하거나(많은 구조주의 학파들이 그들 분 야와 관계없이 소쉬르의 권위를 빌려 오는 것처럼) 혹은 한 학파의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분야보다 더 발전된 분야의 엄격한 기준을 자신 들의 〈보다 덜 과학적인 분야〉에 적용할 것을 주장하는 등(예를 들면 사회과학자들은 종종 자연과학의 방법을 주장한다), 정당성에 대하여 비슷한 주장을 하기도 한다. 또 때로는, 한 학파의 관념체계, 특히 문 제되고 있는 관념들이 실제로 적용될 수 있거나 사회적으로 평가받는 이념을 지지하는 데 쓰일 때, 그 관념체계를 바탕으로 한 혁신에 대해 서 사회적 가치를 환기시키고 강조합으로써 정당성에 대한 주장을 하 기도 한다. 뒤에서 논의하겠지만, 한 학파의 지도자가 더 넓은 분야에 서 차지한 위치와 명성은 정당성에 대한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기초 룰 그 학파에게 부여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학술과학에서의 학파 모든 사례를 고려해 볼 때, 새로 출현하는 사상학파의 정당성과 권 위에 대한 주장은 과학 연구가 이루어지는 특정의 제도적 장치들로 인해서 그리고 과학적 권위가 당해의 시기와 장소에서 어떻게 발휘되 느냐 하는 방식에 의해서 수정된다. 예를 들면, 서유럽에 있어서의 국 립 과학 아카데미들의 기능은 과학이 아마추어적이었던 시기와 과학 이 학문적으로 제도화된 이후의 시기에 동일하지 않았다. 18 세기에는 국립 아카데미들은 직접적으로 과학적 권위를 행사했지만, 19 세기 이 후는 과학적 연구 결과를 평가하고 정당화하는 과정이나 자원 분배에 관한 결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지 않았다(아마도 그러한 학술원들이 연구기관으로 바뀐 동유럽 국가들은 예외로 하고)우 따라서 과학적

39) 아카데미들의 이러한 역할은 다음의 논문에 기술되어 있다. Jos eph Ben-Dav id, Orga nizat i on , Socia l Contr ol and Cog nitive Chang e in Scie n ce in Jos eph Ben-David and T.N . Clark, eds., Cultu r e and Its Creato r s(Ch ica g o : Ch ica g o Un iv. Press, 1977), pp. 244-55 pass im .

정당성을 추 구 하 는 책략에 있어서 현대 사상학파들은 18 세기보다는 국립 아카데미 들 의 지지를 얻는 데 노력을 덜 기울일 것이고, 권위에 대한 주장의 형태와 이러한 주장들을 관철하는 특정한 방식도 상이할 것임을 알 수 있다. 지금부터는 학술과학의 맥락에서 활동하는 사상학파들에만 관심을 집중하여, 이러한 과학적 제도화 방식에 따라 학파들의 인지적 • 사회 적 분기의 발달에 수반되는 제약들을 분석하고자 한다 . 19 세기를 거치면서 학술과학의 제도화는 무엇보다도 과학이 하나 의 전문직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과학 교육과 과학직(업)은 패턴 화되었댜 즉, 과학자들은 대학에서 먼저 교육을 받고 난 다음, 대학의 연구원과 교사의 자리에 임명되었다. 이 제도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대 학이 과학 교육을 효율적으로 독점하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대학에서 과학 훈련을 받은 사람들만이 과학적 전문지식에 관하여 정당한 권리 를 주장할 수 있었고, 과학자로서의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혹은 과학 전문지식을 요하는 전문직을 가질 수 있었다). 거꾸로, 대학의 자리에 임명된다는 것은 과학자가 일정한 수입과 그의 연구에 필요한 얼마간의 자원을 공급받을 수 있음을 의미했을 뿐 아니라, 미래의 경 력에 필요한 특정 학위를 따려는 학생들에게 시험을 치르게 하고 평 가하는 권리가 부여되었음을 의미했다. 학생들이나 잠재적 제자들을 갖는다는 것은 과학의 지속적 발달과 과학적 관념체계를 다음 세대의 학생들에게 전수하는 데 있어서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것은 사상학 파들의 지속적인 발달에도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사상학파들이 자신들의 학생들을 위한 개별 훈련기관을 설립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과학 전문직은 주로 대학 교육을 마치고 필요한 학위를 취득한 사람들에게 개방되었으며, 사상학파들은 수입 및 연구 기회가 따르는 대학의 정규 과학 전문직에 나갈 장래 연구원들(다른 전문직과 더불어)을 훈련시킬 정당한 권리를 먼저 획득하지 않고는

학생 및 연구비를 놓고 경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프로이트 학파는 대학 밖에서 그들 자신의 학생들을 훈련시켰기 때문에 중요한 예외였 다 . 그러나 이것은 분석가로서의 그들의 직업을 통해 직접 연구나 가 르치는 일보다는 치료 활동에서 파생되는 수입을 얻을 수 있었기 때 문에 가능했댜 연구기관이나 실험실을 설립했던 학파들까지도 대학들 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자 했다(예를 들면,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그들 자신들의 연구소를 프랑크푸르트 대학과, 후에는 컬럼비아 대학과 제 휴시키기 위하여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40)

40) M주 Jay , The Di al ecti ca l Imag ina ti on (Bosto n : Lit tle, Brown and Co., l'J7 3 ), pp. 3-40.

사상학파들이 일반적으로 그들 자신의 학생들과 제자들을 위한 독 립된 훈련기관을 설립할 수 없었다는 사실은 그 학파 구성원들의 출 세가_―그리고 그들이 연구비와 학생들을 요구할 정도가 되기까지 는 학파들의 발달 자체가 __ ―무엇보다도 대학의 자리에 접근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접근의 가능성과 대학에 서의 과학 경력의 진전, 특히 어떤 연구원이 학문 사회의 정당한 구성 원으로 인정받는 것, 이 모두가 일차적으로는 그의 과학적 연구 활동 에 대한 평가에 바탕을 두고 있다(여기에 있어서는 평가 자체가 중요 하다는 것이지, 이 평가가 그 연구 자체의 질에 바탕을 두고 있든지 않든지는 상관없고, 또 여기서 평가에 사용되는 특별한 기준이나 외부 의 〈과학 외적 non-scie n ti fic> 요인들이 평가에 미치는 영향에도 관 심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 평가는 일반적으로 과학자들 자신, 특 히 어느 한 세부전공이나 학문분야의 엘리트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학생들에게 과학자로서의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나, 과학자들을 학문적 지위에 임명하거나 승진시키는 것에 관해 결정하는 특별한 메커니즘 은 대학 조직의 특수한 구조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어떤 조직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의 결정은 과학자들이 하지 않고, 정치적 혹은 행정적으

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하며, 이들은 학계 동료들에 의한 평가에 의 존할 수도 안 할 수도 있으며, 이러한 결정 과정에서 이들이 상의하게 되는 과학공동체의 구성원들을 종종 선발하기도 한다. 이러한 일은 독 일의 제 3 제국과 소련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예를 들면, 교육부가 통상적으로 모든 수준의 교수 임명에서 교수단의 추천을 무시했던 19 세기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결정 과정의 세밀한 장치는 물 론 사상학파들의 행태에 영향을 준다. 어떤 상황에서는 행정적이거나 정치적인 힘에 의존하는 것이 과학 엘리트에 의존하는 것보다 사실상 훨씬 효과적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해서, 과학 활동에 대한 엘리 트의 평가는 과학 경력의 진로와 자원의 분배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 에서 상당한 역할을 하며, 정당성과 명성을 부여하는 최고의 역할을 한다. 이중적 정당화 체계 사상학파와 그 구성원들이 대학 제도를 통하여 가능한 자원을 획득 한다는 사실은(개인적 수입은 말할 것도 없고 학생과 연구 시설 및 기금과 같은) 새로운 사상학파의 출현이 그들 연구에 대한 평가와 관 련된 자원 분배에 권위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명성 있는 엘리트 에 좌우되었음을 의미한다. 새로 출현한 사상학파가 과학적 연구 결과 를 정당화할 수 있는 독립적 수단을 강구하려고 해도, 어느 정도는 우 세한 과학 엘리트의 권위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한 엘리트가 정당성을 부여하거나 철회하고 한 분야에 있어서의 미래의 인지적 발달을 지시하는 권위를 가지고 있다면, 사상학파는 이러한 권 리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더라도 현재의 인지적 • 제도적 조건과 관련 하여 자신의 방향을 조정하고, 이러한 조건에서 역할을 수행해 나가야 한다.

학파들의 이러한 〈 이중적 충성 double alle gi ance 〉에 대해 작키는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는 과학자 들 이 한편으 론 한 (하위) 분야를 대 표하는 모든 사람들과, 다른 한편으로는 그 들 중 몇몇 학파하고만 유 대관계를 발전시키는 두 가지 경향이 있다고 학파의 구성원들에 대해 서 말할 수 있다〉고 언급했댜 4 1) 이 〈두 종류의 유대〉는 사상학파들이 제도화된 과학 구조 안에서 발달해 온 상황에서 직접 유래된 결과인 것 같다. 사상학파들은 부분적으로 독립된 정당화 수단을 개발하려고 하면서도, 여전히 그들의 연구가 그들 세부전공이나 학문분야의 기존 엘리트들에 의하여 정당화되는 데 어느 정도 의존하고 있다. 한 학파 가 독립된 세부전공으로의 제도화를 시도하고 나아가 내부적으로 자 신들의 연구를 정당화할 권리를 획득하려 하거나 기존 엘리트를 대체 하고자 하는 것은, 보다 통합된 정당화 제도를 도입하려는 시도로 이 해될 수 있다.

41) Szacki , Schools in Scie n ce, p. 19. 42) Szacki , Schools in Sci en ce, p.19 .

어느 한 사상학파의 과학적 산물들을 정당화하는 이중 체계를 통 해서 우리는 학파들의 인지적 분기에 대한 어떤 특징들을 설명할 수 있다. 학파들의 인지적 구조를 논하는 데 있어서 나는 인지적 연속성 은 단절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해 왔다. 작키도 사상학파들의 특징 인 자율성의 결여를 논하면서, 사상학파들이 결코 〈공식적인 과학 전 체에 대립〉 42) 한 적은 없다고 주장하며 비슷한 소견을 피력하였다 . 사 상학파가 제 역할을 하는 이중적 정당화 체계의 맥락 안에서 사상학 파를 본다면, 우리는 그러한 연속성의 기능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 다. 한 사상학파에서 학자들의 연구가 내부적으로는 그 학파 구성원들 에 의해서, 외부적으로는 기존 엘리트에 의해서 정당화되는 데에는, 그 학파의 인지적 분기가 어느 정도 이 이중적 체계의 요구에 의해서 제약을 받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한편으로 학파들은 정당화를 위한

독립적 수단 을 강 구 합으로써 분기된 인지의 틀 안에서 부분적으로 활 동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학파가 기존의 제도적 틀 안에 끼여들 어감으로써 어느 정도의 인지적 연속성을 따르게 된다 . 물론, 그러한 제약들이 인지적 분기에 영향을 주는 정도는 한 분야 의 엘리트 구조, 대체청중 al t erna ti ve au di ence 의 존재, 이전의 인지 적 공감의 범위, 주어진 전공이나 학문분야의 제도화 정도 및 방식과 같은 요인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다. 또한 그 학파의 지도자의 위상, 제도화된 구조 안에서의 그 학파의 위치, 자원 이용 능력 등에 따라서 도 영향의 정도는 달라질 것이다. 이 요인들은 그 학파 및 그 학파의 관념체계에 대한 반대의 정도에도 영향을 주게 되고, 이 대립은 간접 적으로 그 학파의 발달을 허용하거나 방해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 가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이중적 정당화 체계의 인지론적 귀결 사상학파들이 이중적 정당화 체계의 절박성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 면, 한 분야의 제도화 정도 및 그것이 대학 체계 내에서 제도화되는 방식은 , 사상학파들이 형성될 수 있는 기회와 인지적 분기의 가능성에 영향을 준다고 할 것이다 .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서 보다 많이 체계화가 이루어진 분야는­ 저명한 교수직이나 학과로 뒷받침되고 잘 구분되어 독립된 조직적 정 체성을 가진 분야는-~몇몇 학문분야에 흩어져 있거나, 반드시 인지 적으로 통합되어 있지는 않은 더 큰 분야에 속해 있어 그 정체성이 공식적으로 덜 인정받고, 그 연구자들이 학문공동체에서 부분적으로 차별화된 하위집단만을 형성하고 있는 분야보다는 사상학파를 형성하 기에 다소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다. 고도로 제도화된 분야의 엘리트 들은, 경계가 보다 잘 구분되어 있고 보다 세력이 있기 때문에(그리고

그들의 위상이 보다 공식적인 조직에 의해서 뒷받침되기 때문에), 그 러한 환경에서 출현하는 학파는 상대적으로 기존의 제도적 틀과 그 학파의 성공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존 엘리트의 능력에 따 라 제약을 받는댜 따라서 우리는 고도로 제도화된 분야에서 출현한 학파들의 인지적 분기의 정도가 비교적 제한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전반적으로 이러한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엘리트들의 권리에 도전하는 것보다 그들의 평가 및 정당화에 관한 몇몇의 사항에만 도전하는 것이 그 학파의 성공을 위해서 더 나 을 것이다. 고도로 제도화된 분야에서는, 실체론적 내지 방법론적 지 향의 사상학파가 그 분야의 철학적 가정이나 기존 이론의 유효성에 도전하는 사상학파보다 성공할 가능성이 더 클 수 있다. 할당되어 있 지 않은 가용 자원이 있는 상황에서도 실체론적 내지 방법론적 지향 의 사상학파가 생겨날 기회가 더 많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은 고도로 제도화된 분야에서는 급진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은 아니고, 단지 다양한 집단들이 출현한다고 해서 이러한 변화가 일 어나는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 작키는 과학의 관료화는 〈공식적 조 직이 후원하지 않는 관계들을 배제〉하게 되고 이러한 것은 사상학파 의 발달을 저해한다고 기술한 바 있다 . 43 ) 이러한 조직적 요인들이 학 파의 출현을 막는 데 상당히 큰 역할을 할 수 있으며, 공식적으로 권 위 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힘이 증가되고 이러한 힘이 〈관료화된 과학 bureaucra tiz ed s ci ence 〉에서 중앙집권화됨으로써 보 다 급진적인 인지적 분기의 기회를 제한할 수 있다 . 따라서 제도화의 정도는 자원의 가용성 및 자원에 대한 통제의 중앙집권화와 같은 요 인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게 된다. 부족한 자원이 중앙에서 통제되는 분야에서는 분명히 학파들이 발전할 기회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는 어느 한 일정한 분야 내에서의 권위의 중앙집권화와 한 학파가 출현

43) Szacki , Schools in Sc ien ce, p. 20.

하기 이전의 그 분야의 일반적인 구조가 학파의 발달 기회 및 인지적 분기의 정도 등에 작용하는 제약의 본질을 결정한다는 것을 시사하기 도 한댜 어느 한 분야에 학파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추가적으로 학 파가 생겨나기 쉽다고 말하는 것은 아주 동어반복적인 얘기는 아니다. 4 분기 여건 중심과주변 우리는 과학을 원래 국가의 경계를 초월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어떤 학문이나 전문 분야는 어떤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보다 더 제도화되어 있고, 어떤 학문분야의 엘리트들은 그들의 평판이 보다 국제적이라 하더라도 매우 지역화되어 있다는 것이 공통적인 인식이 댜 자원의 분배에 관한 결정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지역적 수준이나 혹은 국가적 수준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보면, 어느 한 분야가 여 러 지역에서 일률적으로 제도화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다른 환경에서 사상학파들이 생겨날 또 다른 기회들을 만들어 준다. 다시 말해서, 그 분야가 고도로 제도화되어 있고 그 엘리트의 권위가 더 직접적인 중 심에서보다는, 제도적 구조의 주변에서 또는 엘리트가 그들의 힘을 간 접적으로밖에 행사할 수 없는 지역에서 학파가 창설될 기회를 더 많 이 기대할 수 있다. 우리는 그 학파가 속해 있는 분야가 고도로 제도 화되어 있고, 현재의 엘리트 구성원들이 아주 응집되어 있는 중심 위 치에서 나오는 학파는, 제도적 구조의 주변에서 나오는 학파보다 더 많은 반대에 부딪치고, 인지적 분기 상태가 다소 미진하며, 엘리트에 더 의존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만약 주변성이 혁 신에 도움이 된다면, 일반적인 사상학파들, 특별하게는 급진적인 사상

학파들을 주변에서 더 많이 만나게 될 것이댜 이것은 분기 를 돕는 사 회적 · 인지적 조건이 일반 분야보다 그 곳에 더 많기 때문이댜 ’ ~ I) 만 약 그러한 주변적 위치에서 사상학파가 형성되는 것이 어느 한 나라 에서 그 분야의 발달을 촉진시키는 수단으로 간주되어 다른 학문분야 의 구성원들 및 자원의 분배를 담당하는 관계자들로부터 지원을 받게 된다면 그 학파의 발달에 더욱 도움이 될 것이댜 이러한 주변적 위치 에 있는 학자들의 유동성이 적은 것이 학파의 발달에 유리할 수도 있 댜 45)

44) 과학의 주변성과 혁신에 대해서는 다음 논문을 참조. Mich ael Mulkay, The Soc ial Process of Innovati on (London: Macm illa r 1972); Jos eph Ben-David and Randall Coll ins , Soc ial Facto r s in the Ori gins of a New Sc ien ce: The Case of Psyc holog y, America n Soc i olo gi따 l Revie w , vol. 31(1 9 66). 45) 주변적 위치에서 오는 이점은 특히 〈거대 과학 B ig S ci ence 〉의 경우에, 필요한 장비와 자원이 부족한 데서 오는 불이익으로 인해 감소될 수도 있다 .

지도자의 위상 마지막으로, 한 학파의 지도자의 위상은 그 학파의 기회를 결정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그 지도자의 위상이 높으면 높을 수록 그 학파가 성공하게 될 확률은 그만큼 클 것이다. 피에르 부르디 외 Pie r re Bour di eu 는 서 로 다른 과학자들이 그들의 직 업 상 채 택하는 <계 승 successio n > 전략과 <전 복 subversio n > 전략을 구분하고 있 댜 46) 이것은 정상과학과 혁명과학을 과장해서 구분한 데 따른 것이지 만, 학파 지도자들의 경력을 시간적 연속성에서 볼 때 두 가지 전략 패턴을 따르는 것으로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되며, 그리하여 계승 전략

46) Pie r re Bourdi eu , The Sp e cif icit y of the Scie n ti fic Fie l d and th e Socia l Cond ition s of the Prog re ss of Reason, Soc ial Sc ien ce Inf orm ati on , vol. 14 (1975), p. 33.

에서 파생된 자원의 축 적은 한 과학자가 그의 학파 를 지도함에 있어 더 다양한 노선의 발달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이미 높은 명성을 누리고 있 는 과학자는 다른 과학자들로부터 저항 을 덜 받을 것이며, 어떤 자원을 직접적으로 통제하거나 자원 분배에 대한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위치에 있을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대학 이나 연구기관에서 유리한 지위도 갖고 있어, 학생들을 끌어들이는 일 과 다른 과학자들의 활동을 지시하는 데 수월할 것이다. 예를 들면, 19 세기 독일에서는 연구소장들이 그 기관에 대해 힘을 행사할 수 있 었고 , 외부의 과학 당국으로부터 비교적 독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유리 한 입장에 있었다 . 47)

47) 예 를 들면, 연구기관의 독립성에 대하여 벤 데이바드 Ben-Dav i d 와 콜린스 coll ins , The Socia l Fact or s… … 참조 . 연구기관장들의 독립성은 후원자로서 파리 대학 교수들의 힘과 비교할 수 있는데, 다음을 참조` T. N. Clark, Proph ets and Patr on s : The Franch Univ e rsit y and the Emerge nce of the Soc ial Scie n ce (Cambri dg e : Harvard Un ive rsit y Press, 1973).

학파 지도자들의 그러한 유리한 입장은 아주 중심적이고 가시적 위 치에서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다 . 때로는 주변적 위치에서 오는 이점 들도 높은 지위를 누리는 지도자들의 유리한 점과 일치할 수도 있다. 모렐 J. B. Morrell 은 기 센의 주변적 위 치 가 리 비 히 L i eb ig의 화학 학 파를 성공으로 이끄는 데에 도움이 되었음을 시사하고, 리비히가 기센 에서 교수직에 임명되기 전, 그리고 그의 실험실과 연구학파가 형성되 기도 전에 높아지고 있던 리비히의 명성이 이룩한 역할을 강조했다. 앞에서 제시한 가설들은 이 서론에서 검토한 사상학파들의 현상을 다루는 이론적 틀의 몇몇 개략적인 의미를 반영한다. 특정 사상학파들의 발달이 인지적 • 제도적 조건의 복잡성과 다양성 을 볼 때,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가설들을 아주 엄격 한 경험적 시험을 통해 검증하기는 어렵다. 특정 관념체계는 발달하면

서 다론 유형의 변화에 대한 가능성을 억제하 는 동시에, 체계화하기는 어렵더라도 스스로 분기할 수 있는 기회 를 나타내 보인다. 즉, 각 특 정 분야에서, 다른 대학 체계 내에서 그리고 다 른 역사적 시기에서의 제도적 장치들 또한 학파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많은 변수들로 인하 여 이들에 대한 단정적이며 포괄적인 취급을 어렵게 한다 . 앞에서 요 약한 가설들은 엄격한 의미의 가설로서보다 앞으로 검토해 나가는 데 지침으로서 또는 관련된 변수들을 분리시켜 좀더 특정한 문제들을 공 식화시키는 데 보조 역할로서 더 유익할 것이다 . 앞으로의 장에서, 유 럽 언어학의 몇몇 학파의 역사적 사례 연구를 통하여 여기서 제시한 관점들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한편, 특정한 역사적 환경과 특별한 인지 적 • 제도적 상황에서 사상학파들이 형성된 것을 설명하는 데 고려되 어야 할 변수들을 상술하고자 한다. 5 언어학의 사상학파 19 세기와 20 세기 초의 언어학 발달은 사상학파들을 연구하기에 아 주 매력적인 환경을 제공한다. 언어 연구 자체가 새로운 (19 세기) 현 상은 아니었지만, 언어학은 19 세기 초기 몇십 년 동안을 통하여 학술 분야로서 발전했는데, 그 당시도 역시 급진적일 정도로 아주 새로운 역사적 인지 방향을 취하고 있었다. 이 학문의 제도화는 여러 나라에 서 고르게 진행되지 않았는데, 19 세기 인지적, 제도적 발달 양면에서 의 독일의 우위성은 20 세기에 들어와서야 프랑스, 스위스, 러시아, 체 코 등에서의 언어학 발달로 도전받게 되었다. 독일 대학 체계 내에 언 어학이 제도화되면서 언어학적 관심의 급진적인 방향 전환을 하게 된 것은 언어학의 인지적 • 제도적 발달을 연구하는 데 편리한 출발점이 되고 있다. 새로운 연구 분야가 각국에 고르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독일에 초점을 맞추면서 , 인구 제어의 역사에 대한 초기의 관심을 학술 연구 공동체의 지속적인 관심사가 되도록 성공적 으로 변형시키지 못했던 다른 나라들(특히 프랑스)과 비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다음 두 장의 주제는 독일에서의 언어학의 인지 적 발달과 독일 대학 체계 내에서의 언어학의 제도화이다. 제 4 장과 제 5 장에서는 언어학에서 첫번째의 두드러진 사상학파였던 신문법학파 Neo g ramm ari ans 를 검토할 것이다. 신문법학파의 경우는 언어 연구 활동의 중심에서 가까운 지역에서 발달하고 그 구성원들이 지배적인 언어 엘리트와 가깝게 접촉을 했던 사상학파를 연구할 기회 를 준다. 이 학파가 출현한 것은 언어 연구가 크게 성공적이었던 때였 고, 그 출현은 전례 없이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따라서 신문법학자들 은 권위의 중심에서 가깝고 비교적 잘 제도화된 환경에서 人PJ-학파가 발달하는 데에 영향을 미치는 제약과 기회를 연구하는 데 좋은 주제 가 된다. 동시에 신문법학파의 예를 통하여 인지적 • 제도적 제약이 분 기된 관념체계의 형성에 미치는 효과를 확인할 수 있으며, 새 학파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던 독일 언어학의 제도화에 관한 특징들을 검토할 수 있다. 제 6 장의 주제인 신관념론 사상학파 Neo-Ide ali s t school of tho ug h t 는 신문법학파의 우세와 그들 관념체계의 한계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 어났다. 관념론자들은 광범위한 지적 풍토의 변화와 언어학이 독일 대 학에서 조직화되는 방식에 의해 조성된 기회를 이용하고자 했다. 그들 은 하나의 학파로서 특히 홍미가 있는데, 왜냐 하면 비교적 성공하지 못한 데다가(분기의 사회적, 인지적 한계를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된다) 독일 학계에서 언어학이 더 이상의 발달을 하자면 부딪치게 되는 본 질적인 난관들을 예시했기 때문이었댜 신관념론자의 예는 사상학파의 형성에 있어 외부의 지적 추세의 중요성을 가늠하게 하고, 우세한 엘 리트와 밀접한 제휴 관계는 갖지 못한 채 그들의 권위가 미치는 범위

내에 위치했던 학파의 발 달 에 가해 지는 고 도 화된 제 도 화의 제약을 인 식할 수 있게 한댜 20 세기 전반 몇십 년 동안에 일어났던 언어학의 근 본적인 방향 전 환은 성공적인 과학적 혁명을 초래한 인지적 변화와 그러한 발달을 용이하게 했던 제도적 장치를 검토하는 기회 를 제공한다. 더구나, 이 러한 방향 전환은 페르디낭 드 소쉬르 Fer di nand de Saussure 가 주 도하는 주네브 학파 Geneva school 와 같은 급진적으로 분기된 사상 학파들의 형성을 검토할 수 있게 한다 . 전부는 아니라 하더라도 대부 분의 20 세기 언어학의 기초로서 널리 인정받고 있는 소쉬르의 언어학 이론은 극적인 인지 변화 과정과 근본적인 단절di scon ti nu ity이라는 조건에서 아직도 효력이 있는 인지적 제약에 대한 연구 기회를 제공 한다. 제 7 장의 주제는 소쉬르와 그 당시 지배적이었던 후기신문법학파 po st- N eog ra mma rian s 관념체계와의 관계이다. 소쉬르의 분기의 한 계를 확인한다는 것은 주변부에 있는 사상학파의 발달에 영향을 주었 던 제도적 • 인지적 제약이 존재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제 8 장에서는 주네브와 같이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제도화가 잘 되어 있지 않은 환경에서조차 사상학파에 가해지는 제약과 함께, 주네브의 주변 적 위치 및 언어학 엘리트 사이에서의 소쉬르 자신의 애매한 위치에 의해 주어진 기회들을 검토한다. 만약 신문법학자들이 제도적 권위의 중심 가까운 곳에서 발달했던 학파의 최상의 예라면, 주네브 학파는 주변부에 있던 학파의 상황을 예증한다. 앞으로 검토하게 될 세 개의 사상학파에서 19 세기와 20 세기 언어학 발달의 주제를 모두 규명할 수는 없어도, 이러한 선택이 우리의 연구 에서 역사적 연속성을 상당한 정도로 유지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언어학에서의 인지 변화 과정을 상당히 자세하게 분석할 수 있고, 과학적 관념체계의 발달을 논의하기 위한 분석의 틀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제 2 장 초기 비교문법학자들의 관념체계 19 세기 동안 내내 비교역사언어학 com p ara ti ve and hist o r i ca l li ngu i s ti cs 은 거의 독일의 학문으로 인식되었다. 다른 나라의 학자들 (예 를 들 면 , 그림 G rimm의 선구자인 덴마크의 라스무스 라스크 Rasmus Rask, 그 뒤 의 이 태 리 의 아스콜리 G. I. Ascoli, 프랑스의 미 셸 브레알M i chel Breal 과 같은 언어학자)의 공헌을 간과할 수는 없 지만, 그들의 업적은 독일 비교문법학자들의 꾸준히 누적된 작업과 비 교해 볼 때, 제각기 고립되고 산만했던 것 같다. 독일 언어학자들은 새로운 학문에 대한 초석을 세우고, 비교 • 역사 문법, 사전, 학문의 대 요 comp e nd ia 등을 만들어 19 세기 내내 이 분야를 지배했다 . 그렇다 면, 이러한 독일 언어학의 꾸준한 우세를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독일 비교문법학자들의 우세함은 결코 이 분야에서 그들이 먼저 출 발했다는 점에서 비롯된 단순한 결과는 아니었다. 프란츠 보프 Franz Bo pp가 그의 비교언어학 연구를 시작하기 이미 몇십 년 전에 새로운 학문의 기초가 될 사상은 분명하게 나타나 있었다. 18 세기 후반에 많 은 저술가들이 산스크리트어와 유럽 제어와의 유사성을 관찰했지만 어떠한 연구도 끌어 내지는 못했다 .0 1786 년에 영국의 식민지 판사로

인도에 와 있었던 윌리엄 존스 W illi am J ones 는 이 모든 언어들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유사성이 〈아마도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어 떤 공통적인 근원〉에서 내려온 것으로 생각했고 , 2) 이 문제를 공식화했 지만 아무런 반응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댜 20 년 후 프리드리히 폰 슐 레겔 F ri e dri ch von Schle g el 이 산스크리트어, 페르시아어, 라틴어, 희 랍어 등에서 발견되는 언어의 유사성은 우연히 또는 차용만으로는 생 겨날 수 없고, 이들 언어의 공통된 역사에서 유래되었음이 확실하다는 죤스의 견해를 되풀이했을 때야 많은 동조자가 생겨나게 되었다 . 슐레 겔이 이 언어들의 관계를 공식화할 때, 존스의 연구 결과와는 다르게, 죽 유럽 제어가 산스크리트어로부터 직접 내려왔다는 그릇된 가설에 의존했음에도 불구하고, 문법을 비교 • 연구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반응을 얻게 된 것이다.

1) MoO 血tt o n , JeHs pi se tro s ie rn e , dLe anlag ul aingg e ( uNisetwi q u eY odreks: oNrio grit noen s , a1u9 6X4)x, 'p'•. s3i3e ;c leG e(Porag rie s s: PUF, 1 얽 4), p. 161. 2) 같은 책, p, 33.

영국과 프랑스에 비해서, 독일은 인도와 접촉이 없었기 때문에 불리 한 위치에 있었댜 1800 년경 전후에 산스크리트어는 유럽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언어였고, 실제로 연구할 수 있는 사전이나 문법책도 없었다. 산스크리트어 교재는 구하기가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유럽에 서는 인쇄할 수도 없었댜 비교문법의 창시자인 프란츠 보프는 빈디쉬 만 W indi schmann 에게 보낸 서한에서, 인도에서 발행되는 산스크리트 어 교재를 구하기 힘들고 구할 수 있다 하더라도 너무 비싸다고 자주 불평했댜 3) 독일의 이러한 상황과는 달리, 영국인들은 인도와 직접 접 촉을 하고 있었고, 프랑스인들은 산스크리트어 원고를 다량은 아니더 라도 얼마간 수집할 수 있어서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영국의 식민지

3) S. Lefr na nn, Franz Bopp , sein Leben, sein e W i ssensc 며 c(Ber li n:1897), pp. 10·, 33•, 37•,

관리들은 산스크리트어에 대한 지식과 함께 고대 인도의 종교, 철학, 문학에 대한 문헌들을 유럽에 들여왔다. 비전문가인 이들은 점차적으 로 산스크리트어 교재를 영국에서 출판하기 시작했고 처음으로 산스 크리트어 문법서와 사전들에 대한 편집을 시작했다. 그러나 먼저 출발 을 했고 보다 쉽게 인도와 접촉할 수 있었다는 이점에도 불구하고, 영 국의 산스크리트어 학자들의 연구는 독일 학자들의 상세하고도 광범 위한 연구에 의해서 그 빛이 가려졌고, 비교언어학은 영국에서는 19 세 기 후반에 가서야 비로소 연구 영역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4)

4) 영국에서의 언어학 발달과 장애물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 Lin d a Dowli ng, Vi ct o r i an Ox for d and the Sci en ce of Lang ua ge , in PMLA, Vol. CJ'! No. 2 (March 1982), pp. 160-178.

산스크리트어에 대한 지식은 비교문법 발전을 위한 필수 조건이었 다. 그러나 19 세기의 첫 10 년 동안은 독일에는 산스크리트어를 아는 사람이(다른 곳에도 거의 없었지만) 아무도 없었다. 독일 학자들은 산 스크리트어 및 그 밖의 동양어들을 배우기 위해서 프랑스를 드나들었 고, 그곳에서 인도어 교재와 몇몇 산스크리트어 교사들과 접촉할 수 있었댜 프리드리히 폰 슐레겔은 1803 년 파리에서, 인도로부터 본국으 로 돌아오는 도중 나폴레옹의 봉쇄로 인해 파리에 머물러 있던 영국 인 공무원 알렉산더 해밀턴 Alexander H amilt on 과 함께 산스크리트 어를 공부했다. 해밀턴은 후에 콜레주 드 프랑스 Colleg e de France 의 산스크리트어 교수가 된 앙투안 레오나르 드 쉐지 Anto i n e Leonard de Chez y와 파리의 산스크리트어 원고 수집 담당 사서인 랑글레 Lan g les 에게 산스크리트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쉐지와 랑글레 두 사람은 나중에 산스크리트어를 연구하는 많은 독일 학자들에게 도 움을 주었다. 프란츠 보프는 1812 년 파리로 와서 1816 년 런던으로 갈 때까지 동양어를 연구했다. 보프는 산스크리트어를 가르쳐 줄 마땅한 교사를 구하기가 어려워 거의 혼자 공부했지만, 쉐지와 랑글레에게서

약간의 도움을 받기도 했댜 후에 독일에서 맨 처음 산스크리트어 교 수가 된 아우구스트 빌헬름 폰 슐레겔 Au g us t W illh elm von Schle g el 은 쉐지와 같이 연구하기 위하여 1814 년에 파리로 갔다 외 국에서 공부했던 다른 독일 학자들 중에는 후에 그라이프스발트 대학 에서 교수가 된 코제가르텐 J. G. L. Koseg a rte n (1813-14 파리 체 류), 뮌헨 대학 산스크리트어 교수 오트마르 프랑크 Ot hm ar Frank(1813-17 파리에서), 보프와 슐레겔의 제자이며 후에 쾨니히스 베르크 교수가 된 피터 폰 볼렌 Pe t er von Bohlen, 역시 보프의 제자 이며 후에 브레슬라우 대학 교수가 된 슈텐츨러 St en zler, 슐레겔의 제자이며 1820 년대 중반에 런던과 파리를 여행하고 후에 본 Bonn 대 학 동료가 된 크리 스티 안 라센 Ch rist i an Lassen 등이 포함되 어 있다. 그러나 라센이 파리로 여행할 때는 이미 독일의 몇몇 대학에서 산스 크리트어를 가르치고 있었으므로 동양어 연구를 반드시 파리에서 할 필요는 없었댜 그 후 유학의 방향 자체가 뒤바뀌게 되어, 산스크리트 어와 비교언어학에 관심이 있는 학자들이 전 유럽에서 독일로 건너오 게 되었다 .5)

5) 예를 들면, 다음을 참조. 쿠르티우스 C urti us 의 빈디쉬 Ernst W i n di sch 의 의국 학생들의 목록, George Cu rtius , Bio grap h is h es Jah rbuch fiir Alte r tu m skunde, vol. 9 (1886), pp, 75-128; A Sebeok, Portra i t of Lin g u ist s ( Bloom int o n : Ind ian a Un iv. Press, 1966), vol. 1, pp. 344-45.

19 세기 초 동양에 대한 유럽의 관심은 이미 널리 퍼져 있었고, 이 는 비단 인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와 영국이 그들의 식 민지롤 확장하고 강화하면서 새로운 문화와 전통이 학자들의 연구 주 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 두 나라에서 당초 관심이 폭발한 이후 산스크 리트어 연구는 도리어 주변적으로 되었고, 인구어 비교언어학 comp a rati ve Indo-Europ e an li n gu i s ti cs 도 1860 년대와 70 년대까지는

연구 분야로서 거의 존재하지 않았댜 분명히, 산스크리트어 자료에 대한 접근이 산스크리트어 문헌학의 발전을 뒷받침하지 못했고 산스 크리트어에 대한 지식 자체도 비교언어학의 관념체계를 정립할 만큼 충분한 것은 아니었댜 그러나 독일에서의 상황은 달랐다. 독일은 인도나 그 이외의 지역에 식민지를 갖고 있지 않았지만, 독일인들의 상상 속에서 인도라는 나라 는 강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헤르더 Herder, 하만 Hamann, 빈디쉬 만의 저서에도 나타나 있듯이, 인도에 대한 그들의 관심은 산스크리트 어와 산스크리트어 문학을 직접 접촉하기 이전부터 존재했었다. 슐레 겔에 따르면, 〈최고의 낭만주의를 찾을 곳은 바로 동양〉이었댜 6) 낭만 주의는 독일의 지적 삶의 모든 면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 댜 그렇다면 독일에서 언어학 연구를 자극한 낭만주의의 역할이란 어 떠한 것이었는가? 이 낭만주의는 독일에서 비교언어학의 관념체계가 일찍이 정립되는 것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었는가?

6) Edward Sa id, Orie n ta / ism (New York : Random House, 1978), p. 98.

1 초기 비교문법학자들 : 철학적 • 이론적 신념 중요한 사상가의 저서를 읽을 때 먼저 그 텍스트에서 명백한 부조리로 보이는 것들을 찾아서, 판단력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그런 것들을 쓸 수 있었을까를 자문해 보아라 .7) 새로운 학문분야는 지적 진공 상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한 학 문이 제도화되기 전, 특히 그 분야가 형성되는 초기 단계의 광범위한

7) Thomas S. Kuhn, The Essenti al Tensio n (Ch ica go : Un iv. of Ch ica go Press, 1977), p. xii.

지적 사조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분야의 자율성 이 아직 인정되지 않고, 경계가 정해지지 않은 초기 단계에서는 외부 적인 정당성이 무엇보다도 먼저 적극적으로 추구돼야 할 것이다 . 따라 서, 우리는 새로운 분야에서 채택되는 사고방식이 지적(혹은 사회적) 삶의 다른 영역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방식과 광범위하게 일치되 는 것을 알 수 있댜 19 세기 초 몇십 년 동안에 일어났던 독일 낭만 주의 운동과 역사언어학 발달의 관계는, 보다 광범위한 지적 추세들이 새로 생겨나는 과학적 관념체계로 통합되는 현상의 다면적 성격을 예 시해 준다. 가장 일반적 측면에서, 이국적이며 동양적인 것을 동경했던 낭만주 의가 산스크리트어에 대한 관심 및 산스크리트어와 유럽 제어의 관계 에 주의를 기울이게 한 이유 중 하나였을 수도 있다. 산스크리트어와 유럽 제어의 관계를 가장 먼저 찾아 내어 언어에 대한 역사적 연구에 착수했던 학자들 중에는 프리드리히 폰 슐레겔, 아우구스트 폰 슐레 겔, 야콥 그림과 같이 낭만주의 작가로 활동한 몇몇 사상가들이 있었 다. 프리드리히 슐레겔에게 있어서 산스크리트어와 고대 힌두교 지혜 의 발견은 그 효과에 있어서 르네상스에서의 고전 문화의 재발견과 비견할 만한 유럽 문화 부활의 시작이었다 .8)

8) Fri edrich von Schlege l , On the Lang uage and Wi sd om of the India ns (1808), in The Aesth e ti c and M isc ellaneous Works, tran s. E. J. Millinton (London: Bohn, 1849), p. 4'Z7.

〈보수적 사고 Conserva ti ve Thou g ht〉에 관한 그의 논문에서 카를 만하임 Karl Mannhe im은 〈낭만주의는 자본주의적 합리주의의 진전 에 의해서 억압된, 궁극적으로는 종교에서 나온 모든 생활방식과 태도 를 끌어 모아 구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9) 고 말했다. 인구어

9) Karl Mannheim , Conservativ e Thoug h t , in From Karl Mannheim , ed. Ku rt Wolf f (New York : Oxfo rd Un iv. Press, 1CJ 71 ), p. 147.

조어를 찾는다는 것은 이러한 구제의 일면이었으며, 이러한 의미로 볼 때, 낭만주의 사상이 비교언어학 연구의 출발에 기본적 정당성을 제공 했다는 주장은 과장이 아니다. 산스크리트어가 그리스어, 라틴어, 고트 어, 그 밖의 다른 유럽 제어와 서로 친족 관계가 있다는 사실의 발견 은, 이 언어들의 공동체가, 언어가 아직 유기적 통합체로서 후기 발달 단계에 와서 소멸되어 버린 완전성을 보였던 먼 옛날을 지적해 준다 는 견해와 결합되면서 비로소 지속적인 연구의 시발점이 되었다. 신화 적이며 이상적인 과거에 대한 연구가 낭만적인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10 ) 광범위한 지적 동향은-여기서는 낭만주의――새로운 연구 영역에 자극과 타당성을 제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영 역에 개념적 자원을 제공하고, 나아가 개념들이 정의되고 문제들이 공 식화되는 방법을 구축해 준다. 언어의 본질과 역사에 대한 비교문법학 자들의 이해는 분명히 낭만주의의 흔적을 지니고 있었다. 원래의 인구 어가 〈훌륭한 구조 wonde rful s tru c tur e 〉(존스 W. J ones 가 산스크리 트어에 대해서 그렇게 말했듯이)를 지녔다는 생각은 비교문법과 역사 언어학의 초창기부터 있었으며 비교문법학자들의 연구에 본질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진보에 대한 계몽주의적 사상을 버리고, 초기 의 비교문법학자들과 언어사가들은 인구어의 초기 단계를 후기의 더 타락한 언어들보다 더 풍부하고 순수한 것으로 생각했다. 독일어의 첫

10) 물론 언어 기원 문제는 새로운 것은 아니었고; ~ 18 세기 후반에 더욱 두드러졌는 데 , 장 자크 루소J ean - J ac q ue Rousseau 와 헤르더 G. Herder 가 그에 대한 해답 울 모색하던 많은 사람들 가운데 포함된다. 이 두 사람은 그들의 사고에서 낭만 주의는 물론 계몽주의 요소들을 통합시킨 전환기의 인물이었다. 루소, 특히 헤르 더의 반-계몽주의 견해에 대해서는 내가 낭만주의로 기술한 바와 비슷한 관념으 로 이들을 취급한 아이제이어 벌린 Isai ah Ber lin의 Vico and Herder (New York : Random House, lff7 6 , pp.1 77-78) 참조 비교문법학자들은 언어가 가장 완전성에 도달했던 언어 발달 단계를 회복하고 이해하는 문제에 비하여 인간 능 력으로서의 언어 기원 문제에는 관심을 덜 기울였다. 그러나 그림과 슐레겔은 기 원 문제가 비교문법에 의해서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다.

역사적 문법서인 『 독일어 문법 Deutc h e Gramma ti k 』 의 서두에서 그 림은 자신의 책에서 배워야 할 중요한 교훈들을 예시했다. 13 세기의 고지 독일어가 현대어보다 더 고상하고 순수한 형태 를 보이 고, 8 세기와 9 세기의 형태들은 13 세기의 형태보다도 더 순수하고, 4 세기 와 5 세기의 고트어는 보다 완전한 형태를 나타내기 때문에, 1 세기에 독일 사람들이 사용하던 언어는 고트어보다도 훌 륭할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 다 .11)

11) Jac ob Gri mm, Vorreden zur deuts c hen Grammati k von 1819 und 1822, ed. Hug o Ste g e r (Darmdta d t: Wi ss enschaft lich e Buchg e selscha ft, 1968), p. 18.

그림은 조금 뒤의 해설에서, 언어의 발달은 인류의 문화가 형성되는 방향과는 반대 방향으로 진행한다고 주장했다. 초기의 언어는 물질적 이며, 감각적이고, 순수함으로 가득 찼으나, 후에 〈보다 정신적이며, 덜 직접적인 것이 되고, 그 언어의 낱말에서는 겉모습과 모호성을 보 게 될 뿐이다.〉 1 2) 낱말과 낱말 관계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언어의 초기 단계에서뿐이다. 초기의 언어는 자연적이고 인간의 직접적인 경험을 반영했지만, 이성이 발달하면서 언어는 인위적, 추상 적으로 되었고, 초기에 지녔던 세계와의 의미 있는 관계는 파괴되었 다. 그림은 언어 변화에 관한 기술에서 이성에 의한 계몽주의의 찬미 롤 거부하고, 이성과 자연을 동일시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그림에게 있어서 이성은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고 시(詩)는 감각을 파괴하는 것 이다.

12) Gri mm, p. 19.

〈비교문법의 아버지〉 프란츠 보프는 언어 발달의 초기 단계가 〈문 법 관계를 특징짓는 형태들의 기원〉 13) 을 이해하는 데 중요할 뿐만 아

니라, 언어가 〈초기의 중요한 구성 요소나 형태였던 것들이, 차츰차츰 더 피상적인 덩어리로 되고, 버려지거나, 시들어지거나 혹은 잘못 쓰 이게 됨에 따라――즉, 그들의 기원에 따르면 적합하지 않은 목적으 로 사용되어 __ 이해할 수 없게 되고 조금씩 죽어 감으로써〉 14 ) 소멸 하게 되는 유기적 통합체라고 생각했다.

13) Franz Bopp , A Comp a rati ve Grammar of Sanskrit, Zend, Greek, Lati n, Goth i c , German and Slavonic Lang uages , vol. I (1833), trans . E. B. Eastw ic k (London : Wi lliam s and Norga te , 1862), p. v. 14) Franz Bopp , Vocalism us (Berlin : Nic o lai sc he Buchhandlung, 1836), p. l.

그의 많은 계승자들과 마찬가지로, 보프에게 있어서 언어의 완전성 은 언어의 완전한 유기적 성질에 있었고, 그 완전성은 언어가 처음에 지녔던 유기적 원리를 〈잊고〉, 각기 형태가 〈피상적인 덩어리 sup er f icia l mass 〉로 될 때 소멸하게 된다. 원래는 하나의 투명하고 완전했던 유기체로서의 언어가 부패하고 퇴화했다는 사상이 슐레겔에 게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이러한 두 가지의 철학적 가설 __- 언어는 하나의 유기체라는 가설과 언어는 완전함에서 쇠퇴하고 있다는 언어 역사에 대한 가설一一이 비교언어학 연구의 초점을 명확히 했다. 그 가정들이 방법론적인 방향 제시와 이론적인 일반화로 통합되었고, 언 어 연구를 평가하는 기준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두 개념 이 초기 문법학자들의 관념체계 속에서 어떠한 역할을 했는가를 이해 하기 위해서는 〈유기체〉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했고 그 역사는 어떻게 생각되었는지를 보다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초기 인구어는 그 요소가 기능적으로 상호 의존적인 부분들로 잘 통합된 조직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형태론적 범주에 깊 이 스며 있는 내적 생명력 Lebenskra ft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기 때문 에 하나의 유기체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15) 따라서 모든 언어 구성의

15) 유기체에 대한 낭만주의 개념과 구조에 대한 현대적 개념의 차이가 명백해지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 유기체에 대한 우리의 개념은 낭만주의자들의 개념과

다르며, 따라서 우리의 유기적 은유는 다른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슐레겔과 보프 에게 있어서 한 언어는 하나의 유기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요소 들의 관계를 보았기 때문이 아니고 이 모든 요소들과 그것들의 통일성이 동일한 생명력에 의해서 발생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유기체에 대한 그들의 개념은 19 세기 중반의 환원주의 생물학자의 개념보다는 〈자연철학〉과 활력론자의 개념에 훨씬 가깝다. 또한 어떤 것이 유기적으로 지칭되면 그 속에는 분명한 규법적 판 단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유기적 실체들은 우연이나, 조작 또는 의적 결정 자의 혼적 없이 조화를 이루며, 자연적이고 활력적이었다. 다음을 참조 Wi lliam M. Norman, The Neog ram mari an s and Comp ara ti ve Lin g uist ic s, Ph.D . Diss . Princ eto n , 1972 (Ann Arbor : Un iv. Micro fi lms Inte rn ati on al, 1 罪 5), p. 19.

기초에는 비슷한 방법이긴 하지만 각각의, 그리고 모든 문법 범주를 독립적으로 구성하는 중대한 원리가 있었다(초기 비교문법학자들이 이 방법론적 범주들을 기능적으로 동일시하는 데만 관심이 있고, 통사 론 연구에는 분명히 관심이 없었다는 증거는 없다). 언어가 노쇠해 감 에 따라 그 구성 요소들의 유기적 성질은 점점 희미해지게 되었다. 낭만주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는 이렇게 세계를 기계적 인 특징이 아니라, 유기적 특징으로 보는 데 매혹되어 있었다는 것이 다. 헤르더와 괴테에 있어서도 그러한 생각은 이미 나타나 있었고, 쉘 링 Sche lli n g과 슐레겔 형제에 의해서 이것은 더욱 발전되었다. 초기 문법학자들의 언어의 유기적 성질에 대한 생각에 가장 가까운 유추 개념 analo gy을 제공한 것도 아마 괴테의 유기체 세계에서의 변형 연 구일 것이다. 딜타이 D ilth e y에 의하면 〈괴테 Go th e 의 유기체에 대한 첫번째 지침서적 연구는 동일한 하나의 유기체에 있는 서로 다른 부 분들 사이의 유사성에 관한 연구였다. 개별적 조직들은, 말하자면, 같 은 부분들의 변장된 복사형임을 나타내고 있다. 같은 잎이 처음에는 싹으로서 나오고, 이어서 수술, 꽃받침, 꽃, 꽃가루, 암술, 마지막으로 열매로 나타난다.〉 16) 언어적 유기체의 부분들에서도 마찬가지의 유사

16) Wi lhe lm Dil the y, The Schleie r macher Bio g rap h y , in Selecte d Wr iting s,

ed. H. P. Rick man (Cambri dge Un iv. Press, 1976), p. 19.

성이 존재한다는 동일한 개념이 보프와 슐레겔의 언어에 대한 개념을 뒷받침해 주고 있었다. 언어의 모든 요소들이 동일한 형태론적 원리에 의해서 구성되기 때문에, 그것들은 같은 한 기본형의 구현들로서, 본 질적인 유사성은 그 다양한 요소들을 비교함으로써 드러난다. 언어학 의 기본 과제는 괴테의 연구 목표가 생물학적 유기체의 다양한 변종 에서 같은 원리를 알아 내는 것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변화하는 다 양한 것으로부터 변하지 않는 유사한 것을 가려 내는 것이다. 낭만주 의에서 고취된 이러한 언어의 유기체 개념은 순수한 언어의 가치에 대한 신념과 결합되었다 . 언어 조직 뒤에 있는 유기적 생명력을 드러 낼 수 있는 것은 현대의 타락한 언어가 아니라 원래의 〈조어 ances t or 〉에 가장 인접한 언어의 초기 형태들이다. 그러므로 유기체에 대한 연구는 역사적이어야 한다. 에른스트 카시러 Ernst Cass ir er 는 괴테의 변형 meta m orp h osis 개념을 진화 개념으로 해석하는 것에 대 해 경고했댜 괴테에게 있어서 , 하나의 조어형 ancestr al fo rm 이 조어 의 특징을 알 수 있는 다양한 후기 형태들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견해 는 결정론적이고 법칙에 입각한 발달 과정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형태들의 가능한 다양성을 전제로 한 것이다 . 만약 우리가 처음부터 자연의 규칙성을 안다면, 우리는 그것이 당연히 그래야 하고 바로 초창기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었으므로 고정되어 있는 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 그러나 우리가 변이형들, 왜곡된 형태들, 기형들을 처음 만나게 되면, 일정 불변의 법칙이라 하더라도 그 법은 살 아 움직이는 것이며, 유기체는 법칙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순응함으로 써 기형으로 변하는 것이고, 동시에 재갈에 물린 것처럼 피할 수 없는 지 배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17)

17) Joh ann Wolf gan g Goeth e, Princ ip es de Ph ilos op hie zoolog iqu e disc ute s en

Mars 1830 au sein de l'Ac adem ie Roy a le de Sc inc es, in Na tun.vis sensc庫 l i sche Sch riften , Werke, Vol. VII (Weim ar : Bohlau, 1890); qu ote d after Ernst Cassire r, The Problem of Knowledg e (New Haven: Yale Un iv. Press, 1950), p. 140.

변화에 대한 이러한 비진화적 non- e voluti on ary 이해는 괴테뿐만 아니라 초기 문법학자들의 역사주의 사상의 특징이었다 . 그 들 은 변화 와 변이를 믿었지만 언어의 역사적 발달을 지배하는 법칙을 발견하려 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목표는 초기 형태론적 형태 morp h olog ica l fo rm 의 원래 구조, 완전히 투명한 초기 형태에서 타락한 후손에게는 나타나 있지 않은 언어적 유기체의 살아 있는 원리를 기술하는 것이 었다 . 따라서 낭만주의는 바교문법 연구에 일반적인 자극과 정당성을 제 공했을 뿐 아니라 초기 언어학자들에게 어떤 개념적 자원을 제공함으 로써, 문제를 공식화하고 연구의 목표를 정하는 방법도 구성해 주었 다. 두 개의 낭만주의적 개념, 죽 유기체는 생명력에 의해서 지배되는 유추적 부분들의 구조라는 것과 역사는 자유롭게 변할 수 있는 (이 예 에서는 쇠퇴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비교문법학파의 중심 사 상이었는데, 그 이유는 그러한 개념들이 연구 주제와 목표를 이해하는 방법을 구축했기 때문이었다. 이 개념들 역시 결정적인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비교문법의 초기 이론과 방법론에 영향을 주었다(후에 초기 비교문법학자들의 방법론을 자세히 논하기로 하겠다. 여기서는 언어를 하나의 유기체로, 언어의 역사를 초기의 완전성으로부터 타락하는 것 으로서 이해하는 것은, 형태론적 범주의 역사를 연구하고 그 구성의 유기적 원리를 파헤치기 위한 방법론적 지시로 해석하였다는 것만 유 의하면 된다. 초기 언어의 핵심은――二 l 생명력은――:모든 문법 범 주의 구조에 나타나 있기 때문에 언어학자는 문법 구조에 관심을 기 울여야 한다). 관념체계의 철학적, 이론적 요소들의 복잡한 관계는 보

프와 슐레겔이 제안한 초기 언어 구조에 대한 이론들을 비교함으로써 잘 이해할 수 있댜 이 두 이론은 언어의 본질과 그 발달에 관한 낭 만주의적 사상을 통합시켰지만 상호 모순적이다. 보프와 슐레겔의 인구어의 초기 구조에 관한 이론은, 초기 언어가 유기적으로 완전한 것이라는 개념과, 지시적 의미 refe r enti al mea ni n g를 나타내는 언어 형태 (어근)와의 관계를 나타내 주는 형태 (굴절 i n fl ec ti on) 의 구분 개념 (이 개념은 라이프니츠 Le i bn i z 로 거슬 러 올라갈 수 있다)을 결합한 것이었다. 인구어는 어근과 굴절이 내적 이고 직접적인 관계를 지녔기 때문에 유기적이었다. 이 관계의 실제 본질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이 관계롤 설명하는 두 이론이 제시되고 토론되었다는 사실은, 철학적 관념이 그것을 기초로 한 이론 체계들을 완전히 결정하지는 못한다는 가설을 뒷받침해 준다. 프리드리히 슐레겔에게 있어서, 어근의 모든 변형들이 내부적 변화 일 때에만 정말로 그 언어는 유기적인 것이었다. 그 언어에서는 시제, 격, 법, 인칭 등과 같은 〈문법적 관계〉가 별개의 접사가 아니라 어근 의 변화에 의해서 표현되었다. 어근마다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그 내부에 지니고 있으며 〈사물의 본질적 중요성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반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기적 언어만이 발달을 할 수 있었다 .18)

18) Fr. v. Schlege l , On the Lang uage and Wi sd om ... , p. 懿

인도어와 그리스어에서 각 어근은 실제로 의미를 갖고 있어서 내적 변 화에 따라 상황과 정도가 각기 달라지며 살아서 번식하는 싹과 같았다. 따라서 그 발달의 더 자유롭고 풍부한 생산력은 사실상 거의 무제한하다. 그러나 어근에서 이렇게 생겨나온 모든 단어들은 공동의 근원에서 동시 에 생겨나와 성장했다는 점에서 유사성의 혼적을 지니고 있다. 이 구조에 서 한 언어는 한편으로는 풍부성과 다산성을, 다른 한편으로는 힘과 지속 성을 얻는다. 그것은 그 근원이 매우 조직적이었기 때문에 곧 정교한 예

술적 조직으로 짜이게 되었고, 수세기가 지난 후에도 엉키지 않았으며 , 그 조직에 의존한 언어들의 관련성을 추적해 보면, 그 언어들이 세계 여 러 곳에 흩어져 있더라도 원시적 근원까지 거슬러 올라가 볼 수 있는 단 서를 제공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어근의 굴절이 없고 보충어들에 의한 곡용이 일어나는 언어들은 그러한 결합의 결속이 없다. 그 어근들은 살아서 번식하는 싹이 아니라, 숨을 쉴 때마다 쉽게 흩어지고 분산되는 분자들의 집합처럼 보인다. 그것들은 보충어와 접사를 순전히 기계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19)

19) Fr. v . Schlege l , On the Lang uage and Wi sd om .... , p. 449.

따라서, 슐레겔에 의하면 유기적 언어의 반명제는 기계적 언어였다. 유기적 언어에서는 어근 자체에서 의미와 관계가 직접적으로 그리고 내부적으로 표현되지만, 기계적인 언어에서는 그와는 반대로 의미와 문법적 관계가 일치하지 않고, 모든 변형을 그 속에 지니고 있지 않으 며, 전체 〈구조〉는 형태 없는 집합체이다. 아우구스트 슐레겔은 유기적 언어와 기계적 언어의 발달에 대해서 그의 형 프리드리히와 견해가 같았다. 예술과 희곡에 관한 강의에서 그는 언어 조직의 두 유형을 구별해야 한다고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밝 히고 있다. 형태는 의부적 힘을 통하여 그 자체의 형질과 관계없이 그저 우연한 첨가물로서 어느 물질에 더해질 때 기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부드러운 뭉치에다 특정한 형태를 주어, 그것이 단단하게 된 후에도 동일 한 형태를 유지할 때처럼 유기적 형태는 또한 내재적이다. 그것은 내부 로부터 전개되며 완전한 발아와 동시에 그 결정체를 갖게 된다.…… 간단 히 말해서 그 형태는 의미를 가진 외면, 개체를 표현하는 얼굴일 뿐이며, 어떤 파괴적 사건에 의해서 형태가 망가지지 않는 한, 감추어진 본질에

대한 진정한 증거가 된다 20)

20) Aug us t Wi lhe lm von Schlege l , Lectu re s on Drama 寧 Art and Lit era tu re (18 08), tran s. Joh n Black (London : Bohn, 1848), p. 340.

슐레겔과 훔볼트 Humbold t는 이러한 바탕 위에서, 굴절이 전혀 없 는 단음절어인 고립어 iso lati ng lang u ag es , 어근에 접사를 첨가하여 굴절하는 언어인 교착어 ag glu ti na ti ng lang u ag es , 어근의 내부 변화 에 의해서 관계를 나타내 주는 정말로 유기적이라 할 수 있는 언어인 굴절어 inflec ti on al lang u ag es 등으로 구분하는 언어의 분류 체계를 전개했댜 2 1) 슐레겔 형제는 오래된 인구어, 특히 산스크리트어, 라틴어, 그리스어 등은 세 번째 부류(굴절어)에 속한다고 믿었다. 1816 년 산스크리트어의 활용 체계에 관한 연구에서, 프란츠 보프는 초기 인구어는 굴절어였고 문법 형태는 어근의 내부 변화를 기초로 한 것이라는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 2) 그러나 그는 때로는 굴절이 내적인 것이 아니라 진정한 동사

21) 훔볼트 Humbold t의 분류는 단 하나의 〈낱말〉이 주어, 목적어, 동사 둥을 표현하 는 〈통합어〉의 네 번째 법주를 포함하고 있다 . 22) Franz Bop p, Ko 따 u ga ti ons sy s t em der Sanskri t Sp ra che (Fra nkfurt am Ma in, 1816).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언어 가운데서 힌두어라는 성스러운 언어는 내 적 굴절과 어간 음절의 변화에 의해서 〈정말 유기적으로〉 다양한 조건과 관계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이다 . 그러나 훌륭한 유연성에도 불 구하고 이 언어는 이따금씩 추상 동사를 어근에 결합시키기를 좋아하며, 어간 음절과 추상 동사가 그 동사의 문법적 기능을 공유한다(강조는 저자 의 것임 ).23)

23) Franz Bop p, Ko 따 u ga ti onss y s t em , p. 332.

1819 년에 보프는 인구어가 굴절 어라 는 개념을 완전히 부인하고 모 든 굴절의 밑바닥에는 교착이 깔려 있다는 견해를 채택했다. 단음절 어근은 문법적 관계를 나타내도록 결합되어 있다. 예를 들면, 보프는 동사 어간에 인칭대명사룰 붙임으로써 동사 활용의 기원을 설명했다. 그는 단음절 어근은 모든 문법 관계를 나타내는 변화를 수용하지 못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교착 이론의 우월성을 설명했다. 2,J)

24) 〈산스크리트어와 그 친족어들에서 어근이 단음절이라는 사실로부터 어떤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면, 그것은 그러한 언어들이 의적 요소 를 첨가하지 않고 원래 의 요소를 변형시킴으로써 문법적 변화를 나타낼 수 있는 기능을 보여 줄 수 없 다는 것이다. 그 언어족에서는 낱말을 결합하는 원리가 인칭, 동사의 시제, 명사의 격 둥에서와 같이 언어의 첫번째 기본 요소까지 확대 적용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 그렇다면 나는 이 논문에서 산스크리트어와 그 친족어들의 문법 형태가 오 로지 굴절로, 죽 낱말의 내부 변형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는 유명한 독일 저자 의 의견과 반대의 입장에서 중명할 수 있기 를 바란다.〉 Franz Bop p, Analyt ica l Comp ariso n of Sanskrit, Greek, Lati n and Teuto n ic Lang uage s, in Annals of Or ien ta l Lit er atu re, 1820, p. 10.

보프가 채택하고 그의 많은 계승자들이 지지한 교착 이론은 문법적 관계를 나타내 주는 형식과 지시적 의미를 나타내는 어근의 관계를 재정의했다 인구어들의 구조 원리를 어근이 내부적 성장을 하는 살아 있는 〈싹g erm 〉이라고 생각하는 슐레겔과는 달리, 보프는 〈형태적 요 소와 의미적 요소 간 l 대 l 의 대응관계〉에 기초한 새로운 원칙을 제 안했다흐 보프에 의하면 각 언어 요소는 (어근이든 굴절어미든) 일정 한 형태와 일정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보프는 실제로 원시인구어에 서는 일반적으로 별개의 독립된 형태소 mo rp hemes 들이 근원 요소들 울 나타냈다고 주장했던 것 같다.〉 26) 어간과 굴절접사는 완전한 지시 적 의미를 갖고 있고, 각 요소는 그 자체의 일정 형태를 갖고 있다.

25) Paul Kipa rsky , From Paleog ra mrna rian s to Neog ra mrna rian s, in Stu d ie s in the Hi st o r y of Lin g uist i cs : Tradit ion s and Paradig ms, ed. Dell Hy me s (Bloom ing t on : Ind ian a Un iv. Press, lrt7 4 ). 26) Kipa rsky, p. 332.

〈산스크리트어에서 의미 를 비 슷 하게 바꾸는 것은 형태 를 비슷하게 바 꿈으로써 나타나며,…… 어느 의미에서는 유기적 굴절의 의미는 중요 한 어간 음절의 의미처럼 고정 불변이다.〉刀)

初) Bop p, Kon jug a ti on ssy s te m p. 37.

보프는 교착 이론을 받아들이면서도 초기 안구어가 유기적이며 완 전하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언어에서 〈생명을 부여하는 원리〉는 더 이상 특정한 어근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의미와 형태의 독 특한 대응관계 및 단어를 구성하고 있는 특정한 의미 요소의 투명한 결합에 존재했댜 여기에서 단어의 의미는 말하자면 그 단어를 구성하 고 있는 각 형태소의 의미 가치의 총계였다. 한 단어의 각 형태적 단 위의 가치가 아주 분명히 드러나는 한-다시 말해서 한 언어의 문 법 구조가 규칙적이고 완전히 교착 원칙에 바탕을 두고 있는 한―一­ 그 언어는 유기적이댜 28) 언어는 접사적 요소의 원래 의미가 음 변화 에 의해서 나타나지 않게 되면서 유기적 특성을 잃었다. 초기에 완전 했던 문법적 배열이 규칙성을 잃고, 의미와 형태의 초기 결속 관계가 붕괴될 때, 언어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자매어들은 〈통사적으로는 그 자체가 완전할지 모르지만, 문법적으로는 서로 정확한 비율로 완전 히 배합되었던 것이 어느 정도 사라지고, 파생 형태가 아직은 알아볼 수 있는 온전한 결속에 의해서 파생이 일어난 원래의 형태와 연결되 어 가는군 단계에 있었댜

28) 보프는 기계적 법칙의 작용을 설명함으로써 〈형태음소적 변이〉를 인정했다. 그 는 어근절 모음교체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 모음들에 의존하고 있는 어근과 접사 에 무게를 부여 했다 . Bert ho ld Delbrt ick , Intr od uctio n to the Stu d y of Lang uage (1880), tran s. Eva Cha nning (Amste rd am : Joh n Benja mins, p. 1 2). 29) Bopp , Vocalism us, p. 12.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 왔듯이, 초기 비교문법학자들의 철학적 신념 은 이러한 신념을 기초로 해서 정립한 이론들을 제약하면서도 완전히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 보프의 교착 이론은 슐레겔의 내부 굴절 이론

만큼이나 언어가 유기체라는 낭만주의 사상과도 부합했고, 언어가 쇠 퇴한다는 역사적 관점과도 일치했다. 두 이론은 지시적 의미를 나타내 는 어근이 명백하고도 직접적으로 문법 관계를 나타내는 요소들과 결 속되었을 때에야 완전하다는 개념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두 이론 다 문법 형태의 기원을 설명하려 했다. 우리는 여기서 비슷한 철학적 입 장이 상반된 이론들, 또는 적어도 모순된 가설을 낳는 이론들의 토대 로 사용되는 상황을 보게 된다. 보프에 의하면 교착은 역사적으로 모 음교체 Ablau t에 선행한 것이며, 이 모음교체는 교착의 부차적 결과로 설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슐레겔에 의하면, 모음교체는 다른 언어 변화에 선행하며 문법 형태의 기원을 설명해 준다. 이 두 이론 중 어 느 것을 선택하느냐는 어떤 직접적인 경험적 증거를 기초로 해서는 불가능하다. 물론 고대 언어 자료가 없기 때문이지만, 자료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자료들의 연대, 중요성, 신빙성 또는 배경지식에 대 해서 의견의 일치룰 얻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이 두 이론을 뒷받침 하는 기본적인 철학적 가정이 비슷하더라도). 이 예에서 보면 이론의 선택은 궁극적으로 보프와 슐레겔 형제가 각각 비교언어학 연구에서 담당했던 역할에 의해서 결정되었던 것 같다. 슐레겔 형제는 둘 다 비교문법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않은 반면, 보프 는 대부분의 관심을 경험적 비교 연구에 두었다. 예나 대학에서 산스 크리트어롤 가르쳤던 아우구스트 슐레겔은 대부분 동양 문헌학에 몰 두했으며, 『산스크리트어, 젠드어, 그리스어, 라틴어, 고딕어, 독일어 및 슬라브어에 관한 비교문법 The Comp a rati ve Grammar of the Sanskri t, Zend, Greek, Lati n, Goth i c , Gerr ruin and Slavonic Lan gua,ges 』과 같은 보프의 저서는 비교 연구의 모델을 제시했고, 새 로운 학문을 연구하는 학생들에게 교과서로 사용되었다. 슐레겔은 학 생들에게 산스크리트어를 가르쳤고, 보프는 비교 연구에 대한 방법을 가르치고 풀어야 할 문제들을 공식화했기 때문에, 보프의 영향력은 슐

레겔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교착 이론은 신 문법학자들이 출현할 때까지 확고한 위치를 차지했고, 비교언어학에 있어 하나의 보편적인 이론으로 인정받았다. 우리는 동일한 철학적 신념이 과학자들로 하여금 하나 이상의 이론 을 공식화하는 충분한 자유를 허용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았다. 마찬 가지로 동일한 이론이 다른 철학 체계의 맥락에서도 공유하는 관념이 있다면 공식화되고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초기 비교문법학자들의 많은 기본적 철학 관념은 1870 년대까지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 당시 까지 대부분의 언어학자들은(슈타인탈 S t e i n th al 과 같은 중요한 예외 적 인물도 있지만) 언어란 화자로부터 독립되어 발전해 나가는 자체 추진적인 유기체이며, 현대어들은 오랜 세월에 걸친 언어의 타락을 보 여 주는 한편 , 언어학의 기본 목표는 완벽한 초기의 인구어를 찾아 내 는 것이라고 믿었다. 당대의 뛰어난 언어학자 게오르그 쿠르티우스 Georg Cu rti us 는 1871 년에 〈비교언어학의 주요 목표는 각 개별어에 서 입증된바, 다양하게 변형되고 훼손된 형태를 초기의 완벽하고 순수 한 형 태 로 재구성하는 reconstr uc t 것〉 이 라고 주장했다.3)) 이 미 이 보 다 50 년 전에 보프도 같은 주장을 했다 . 그러나 그들의 결론이 기본 적으로 동일해도 논지는 변할 수도 있으며, 낭만주의 영향을 받은 철 학적 가설과 그와 관련된 이론들이 견지되었다고 해서, 이것이 후세 언어학자들이 초기 비교문법학자들의 철학 체계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신념들에 대한 낭만주의적 정당화 가 의미를 잃게 됨에 따라, 그 신념들은 전혀 다른 철학적 들에 통합 되어 새로운 정당성을 얻게 되었다. 이 새로운 체계화를 이룬 가장 중 요한 인물이 아우구스트 슐라이허였다.

30) Georg Cu rtius , Zur Erlarung der Personalendung en , in Stu d ie n zur griech is c hen und late i n i s c hen Grammatik , vol. 4 (18 71), p. 213 ; quo te d by Kipa rsky , p. 333.

2 슐라이허의 통합: 현상을 구제하기 위하여 19 세기 중반에 이르러 초기 비교문법학자 들 의 언어 모델의 기초가 되었던 철학적 관념들은 급속히 시대에 뒤떨어지게 되었다. 때묻지 않 고 유기적이었던 과거를 찬미한 낭만주의는 더 이상 강한 지적 영향 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되었댜 동시에 역사적, 생물학적 변화의 다양 한 진화 모델들이 제시되었고 탐구되었다 . 자연사와 사회사는 둘 다 보편적 법칙의 작용에 따르게 마련이다. 인간 정신의 발달을 단 하나 의 일반 공식으로 설명하려 한 헤겔에서부터 라이엘 L y ell 이나 스펜서 S p encer 와 같이 영향력이 덜한 일단의 사람들을 거쳐, 자연의 변화를 지배하는 선택과 적응의 법칙이 끊임없이 작용하는 것을 발견한 다윈 과 피할 수 없는 계급투쟁의 연속으로 사회 발전의 모델을 제시했던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 19 세기 사상가들은 〈모든〉 발전을 지배하는 법칙을 찾아 내고자 애썼다. 거대한 역사적 이론을 향한 전환은 언어학에서도 나타났다 . 보프나 그림보다 한 세대 젊은 아우구스트 슐라이허는 언어의 다양성과 언어 변화의 역사를 보편적 법칙으로 설명하는 언어 발달의 진화 모델을 추구했다. 생물학의 진화 모델뿐만 아니라 헤겔 사상에서도 크게 영향 을 받은 슐라이허는 언어 진화를 설명하면서 또한 언어를 분류할 수 있는 자연적 수단을 제공할 언어 이론을 개발하려 했다 . 3 1) 슐라이허는

31) 슐라이허를 헤겔주의자로만 기술하려 하고 (Jo hn Arbucke in Schleic h er and the Lin g uisti c s /P hilos oph y Contr ov ersy , in Word, vol. 26 (19 70), pp. 17-31), 자연과학이 그의 생각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견해가 있 어 왔다. 그가 지속적으로 생물학을 참조했고 자연과학으로부터 은유를 사용한 것 을 보면, 슐라이허를 단순히 헤겔 추종자로만 보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을 것 같 다. 그러나 진화의 생물학적 모델을 다윈의 직접적인 영향인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슐라이허는 다윈의 연구를 찬탄했고, 비교문법의 언어학적 중거가 다윈 의 이론을 지지한다는 것을 중명하려 했지만(Di e Dan. vini s c he Theorie und

die Sp rachw i ssensc 며t, 1860. 2nd ed. 1873, Weim a r : Bohlau), 그의 이 론의 핵심적인 면과 그의 언어 모델은 다윈보다 앞선 것이었다.

일반 법칙에 의 존 해서 언어 발달의 역사 를 설명해 줄 이론의 정리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초기 비교문법학자들이 완전한 유기체로서의 고대 언어와 그 언어의 문법 규칙을 찾아 내어, 형태와 소리의 쇠퇴를 고증 하려고 하면서도, 언어의 역사 및 다양한 언어의 존재를 보편적 법칙 의 작용에 의한 결과로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과는 기본적인 차이가 있었다 . 그러나 슐라이허가 새로운 이상적인 해석을 수용했다고 해서, 이전 학자들로부터 내려온 언어학의 전통 전부를 거부한 것은 아니었 다. 슐라이허는 이전 학자들에게 중심이 되었던 철학적 • 이론적 신념 에 의해 제약을 받았고, 그것을 논의와 가정을 위한 새로운 틀 안에 통합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한 철학 체계에서 정당화되었던 신념과 이 론을 다른 철학 체계에 결합시키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어떠한 논 증과 의미의 변화로 이 같은 재공식화가 가능해질 수 있으며, 그것은 언어학의 관념체계 구조에 대하여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인가? 슐라이허에 의하면, 언어학은 자연과학이다. 문헌학이 언어 사용에 대해서 그리고 언어의 문화적 측면에 관해 연구하는 것이라면, 언어학 은 인간의 의지와 생각과는 별개로 발달하는, 독립된 자연의 유기체로 서 언어를 연구하는 것이다. 언어학은 인간에 대한 자연사의 일부 이댜 언어학의 대상은 …… 언어인데, 언어가 생겨난 방식은 꾀꼬리가 종달 새와 노래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인이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벗어난다. 인간이 신체 형태를 변경할 수 없 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자유의지를 유기적으로 변경할 수 없는 것은, 그 것이 자유로운 정신의 영역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영역에 속 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어학의 방법 은 모 든 역사과학의 방법 들 과 는 전혀 다르며, 본 질적으로 자연과학의 방법 들 과 같은 위치에 있게 된다 . 32)

32) Schleic h er, Di e Sp ra chen Europa s in sys t e m atis c her Ubersic h t (Bonn: Kon ig, 1850).

언어를 인간의 의지와 주관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은, 언어학의 방 법을 역사과학이 아니라 , 자연과학의 보호 아래 두는 것이다. 왜냐 하 면 역사과학은 자유의지와 주관성을 다루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이 방 법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슐라이허는 그의 첫번째 저서 『 비교언어사에 관해서 Zur vergl - eic h enden Sp rach g esch i ch t e 』 (18 48) 에 서 ,33) 언 어 는 역사를 가지 고 있 기 때문에 인간의 정신 발달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2 년 후에 그는 (헤 겔로부터 이어받은) 이 견해롤 버리고 역사 발전을 정신에게로만 돌 리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지구가 지질학적 연대를 거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광물, 식물, 동물들이 세계 역사에서 연속적 이면서도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언어는 자연 질서의 한 부분으로서 덜 복잡한 앞 단계의 발전을 나중 단계에서 통합시켜 가면서 변화와 발달의 질서 있는 과정을 거친다 . 자연의 유기체 조직 에서의 분류가 자연의 역사 단계를 나타내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언 어 분류는 공존하는 언어들의 다양성과 언어의 발전 역사를 보여 주 어야만 한다.

33) (Bo nn : Kon ig, 1848).

슐라이허는 그의 언어 분류 체계를 이전 학자들에게서 전수받았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음성표상p hone ti c re p resen t a ti on 이 주어지 면 별개의 어근을 구성하고, 어근이 함께 합쳐질 때는 한 단어를 형성 하는바 의미 Bedeu t un g와 관계 Bez i ehun g를 구분했다. 그는 이를 기초로 하여, 본질적으로는 슐레겔이 제시한 것과 같은 3 중 분류를 복

제했다. 첫째, 관계를 명시적으로 나타내지 않은 채, 의미를 지닌 고립 어근들로 구성된 언어들이 있댜 슐라이허는 이 언어들을 고립어 또는 단음절어라고 불렀댜 둘째, 보다 발전된 수준으로, 의미를 나타내는 어근과 원래는 의미만을 나타냈지만 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일반화 된 다른 어근이 느슨하게 결합된 언어들이 있다. 슐라이허가 교착어라 고 부르는 그러한 언어들은 의미를 나타내는 형태와, 관계를 나타내는 형태의 결속이 아주 피상적이다. 마지막으로, 의미를 나타내는 형태와, 관계를 나타내는 형태가 아주 밀접하게 결속되어 하나의 통일체를 형 성한 언어들이 있다. 이것들은 굴절어이며 언어 발달의 가장 높은 단 계를 보여 준댜 첫번째 고립어류에서, 관계는 아직 음성적 존재로까지 되지 않지만, 두 번째 부류는 의미와 관계가 음성적으로 완전히 분리되어 낱말의 엄격한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세 번째 부류에서는 이 차이는 하나의 통일체 가 되지만 첫번째 부류의 구분이 되지 않는 통일체가 아니라 그 자체 안 에 이 차이를 아주 중요한 요소로서 지닌 더 높은 통일체가 된다. 그것이 소리로 나타난 통일체이다 .34)

34) Schleic h er, Di e deuts c he Sp r ache (Stu ttgart : Gott as chen Verlag , 1860, 2nd ed. 1869), p. 21.

슐라이허는 이 언어적 변증법을 이용하여 현존하는 언어들에 대한 분류 도표를 만들었다. 예를 들면, 중국어는 고립어이며 미국 인디언 어들은 교착어인 반면, 인구어와 셈어들은 세 번째의 굴절어에 속한 다. 슐라이허의 언어 분류가 슐레겔 형제가 제시한 분류와 같다는 사실 에도 불구하고, 굴절어의 특징들에 대한 두 견해에는 차이가 있다. 슐 레겔 형제의 경우, 굴절어의 어근은 원래적인 것이며 변형은 내적인

것이댜 슐라이허에 의하면 굴절 어에서 어 근 의 변형 은 의미 를 나타내 는 어근과 관계를 나타내는 어 근 이 강력하게 결 속된 결과이다 . 이것으 로써 슐라이허는 보프와 슐레겔 형제의 차 이 를 극 복하게 된다. 보프는 인구어 낱말은 지시적 의미를 나타내는 어근에다 문법 관계 를 나타내 는 어근을 접합시킨 교착의 산물이기 때문에, 인구어는 굴절어로 분류 될 수 없다고 슐레겔 형제에 대해 반론을 폈다. 슐라이허는 이 두 견 해를 통합했다. 즉, 인구어는 확실히 굴절어지만 모든 굴절언어들은 아주 철저하고도 직접적인 교착 과정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 분류의 순 서는 슐레겔 형제가 제시한 것처럼 고립어, 교착어, 굴절어이지만 인 구어를 굴절어로 분류하면서 보프의 교착 이론을 지지한 것이다. 슐라이허가 보프의 견해와 슐레겔 형제의 견해를 조정했다는 것은 슐라이허와 이전 학자들 사이에 다른 차이점들이 있음을 말해 준다. 초기 비교문법학자들에게 있어서 언어 분류 체계는 언어 발달 과정과 는 구분되는 것이었지만, 슐라이허에게 있어서는 언어 분류 체계도 역 시 언어 발달의 모델이다. 처음의 언어는 지시적 의미는 나타내지만 문법적 관계는 나타내지 않는 단음절 어근만이 있는 고립어이다. 나중 에 이 어근들은 관계를 나타내기 시작하고 , 다른 어근에 느슨하게 결 합됨으로써 어근의 기능이 변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의미와 관계의 결 합이 긴밀하고 직접적으로 되어 언어 발달 과정의 막바지에 이르게 됨으로써 완전한 문법적 배열에 도달한다 . 만약 우리가 형태론적 형성과 그 구성 요소 , 비교 형태들을 생각하면, 언어 발달이 형태적 체계에서 각 시기가 시간적 연속선 위에 서로 나란 히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가설에 곧 직면하게 된다. 우리는 발달 의 한 시기에 체계 속에 나타나는 한 부류로 보이는 것이 무엇인가를 발 견할 수 있다. 조직화된 언어일수록 원래는 어근만으로 구성되어 있고 교 착되는 언어 형태는 여러 어근이 한데 합쳐진 데서 나온 것이며, 나중에

는 어 근 자체가 변할 수 있는 결과물로서 언어 발달의 최고 수준에 이르 는 언어 들 이 있다고 가정하게 될 것이댜 35)

35) Schleic h er, Di e deuts c he Sp ra che, p. 33.

슐라이허의 언어 진화 모델은 이전 학자들의 견해를 더욱 조정한 것이다. 그는 언어가 굴절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쇠퇴한다는 그들의 의견에 동의했다. 이 결론에 이르기 위해서 슐라이허는 언어 발달 과 정을 단절된 두 시기로 나누었다. 하나는 선사 시기로서 언어가 교착 이론에서 기술한 패턴에 따라 성장하고 발전하는 시기이다. 두 번째는 역사 시기로서 언어가 파멸과 쇠퇴를 겪는 시기이다. 슐라이허는 헤겔 식의 발달 과정을 이렇게 역으로 설명했다. 그는 언어와 사고의 동일 성을 설정하고, 언어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으면 사람은 충분한 의식을 갖고 행동할 수 없으며 역사를 창조해 낼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언어 를 가지고 충분히 의식적으로 사고하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을 때, 즉 역사 세계로 들어갈 때, 언어는 쇠퇴하기 시작한다. 역사에 참여하 는 정신이 자유로우면 자유로울수록, 또는 역사가 좀더 활발히 진행될 수록 소리의 쇠퇴는 그만큼 더 커지며, 굴절 형태의 퇴화는 그만큼 더 빨라진댜 이 결과는 불완전한 언어를 가진 민족들이 역사적일 수 없고, 역사적 삶은 언어를 전제로 한 것이며, 사람은 그의 소리에 얽매인 채로 인간 정 신 활동의 무의식적인 움직임의 목표만으로서의 언어를 창조해 낼 수는 없으며, 동시에 의식적으로 의지를 행사하고 정신 활동을 전달하는 수단 으로서만 언어를 사용하면서는 정신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로부 터 쉽게 추론될 수도 있을 것이다 . 역사와 언어 발달이 서로 반비례한다 는 것은 객관적으로 증명될 수도 있다. 역사가 풍요롭고 강력할수록 언어 의 쇠퇴는 그만큼 빠르게 되고, 역사가 보잘 것 없고 속도가 느릴수록,

역사가 껄끄럽게 흘 러갈수록 언어는 그만큼 더 정확하게 보존된다 36 )

36) Schleic h er, Di e deuts c he Sp r ache, p. 35.

슐라이허는 여기서 〈정신의 보존 법칙〉이라고 기술할 수 있는 원칙 에 의존했다. 시초에 정신은 언어 발달에 내재하며 언어가 발달하는 데 참여한다. 이 단계에서 인간은 의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따라서 역사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언어를 갖지 못한다. 정신이 자기의 의무 롤 완수하여 충분한 언어 발달을 이끌면, 언어로부터 (따라서 자연으 로부터) 물러나와 자유의 영역, 죽 역사로 들어간다. 그러나 정신이 없는 언어는 쇠퇴하기 시작한다 이런 식의 설명은 슐라이허의 모든 요구를 만족시키는데, 죽 그 설명은 언어의 성장과 쇠퇴를 둘 다 말해 주고, 격렬한 역사적 활동이 타락을 더욱 빨리 재촉하게 되는 이유를 (정신이 역사에 좀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때, 정신은 언어를 더 빨리 떠난다) 알려 주며 언어 발달과 타락의 전 과정을 자연 세계에 맡김으로써 자연 법칙을 따르지 않을 수 없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슐라이허가 헤겔의 개념과 사고방식을 아주 개방적으로 조작하는 이 부분에서도 그는 자연 유기체의 생활에서 비슷한 예를 찾으려 했으며, 언어 형태의 쇠퇴나 타락은 자연 역사에서의 〈퇴행적 변형 riic k schreit en de Me tam orp hose 〉의 과정 과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언어 철학과 이론의 이중적 원천은 __5 헤겔 철학과 자연과학, 특히 생물학은――-그의 모든 설명 단계에서 드러난다. 슐라이허가 이 전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언어 발달을 단절된 두 시기로 구분하고, 그 구분을 정당화하는 아주 새로운 이론적 설명을 제공했지만 , 그럼에도 그는 선사 시기의 굴절언어에 가치를 두고 역사 시기에 이루어진 언 어 발달을 추하고 타락한 형 태로 간주했다. 그렇다면 그 당시 슐라이허가 내놓은 혁신의 본질은 무엇이었을 까? 그의 이론은 언어학에 대하여 그 이전 학자들과는 다른 철학적

가설을 기초로 한 것이었다. 그는 언어 변화를 발전 법칙에 의해서 지 배되는 과정으로 보는 진화론적인 설명을 제공했다. 그는 언어 분류의 어떤 체계도 관례적 기준이 아닌 자연의 기준에 기초해야 하고, 분류 체계 역시 발전을 이해하는 열쇠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언어학은 자연과학이며, 그 방법은 그가 자연과학 연구 방법의 기본이 라고 생각했던 객관적 관찰, 분류, 그리고 일반화를 기초로 해야 하는 것임을 그의 선임자들보다도 더 강력하게 그리고 더 분명하게 주장했 다. 이런 모든 원칙들은 그 이전 학자들의 연구에는 결여된 것들이었 다 . 한편 이러한 가설을 기초로 해서 슐라이허는 보프, 그림, 슐레겔 형제의 가장 중심적 개념들을 그의 이론에 많이 결합시켰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언어는 유기체라고 주장했지만, 유기체가 자유변이보 다는 불변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라고 한 점에서 낭만주의자들과는 약 간 다른 어떤 것을 의미했다 . 그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공통 인구어(그 리고 어느 정도는 인도, 그리스, 로마의 고전어들)를 언어학적으로 완 전한 것으로 간주했으며, 언어의 역사는 점진적으로 붕괴해 가는 과정 이라고 생각했댜 완전성의 의미나 부패의 의미가 어느것도 바뀌지 않 았다. 죽, 슐라이허는 관계와 의미라는 동일한 개념 및 투명한 구조라 는 동일한 이상을 가지고 작업을 계속했다. 이러한 철학적 관념과 규 범적 가설의 결합으로 슐라이허는 술레겔 형제의 분류 체계와 보프의 교착 이론과 같은 이론적 구축을 형성할 수 있었다(처음에는 상충되 었지만 슐라이허가 재정의하여 모순을 제거했다). 분명히, 상호간 의 미를 규정하는 신념들의 통합된 연결망으로서 과학적 관념체계에 대 한 개념은 지엽적인 변화를 받아들일 만큼 충분한 유동성을 감안해야 한다 . 이것은 우리가 과학적 관념체계들을 개방적 구조로 간주하고, 과학 언어가 다른 일상 언어나 난해한 언어에 실질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신중하게 받아들일 때만 가능하다. 헤겔주의와 진화론의 이중적 영향을 받아, 슐라이허는 초기 비교문

법학자들의 철학적 • 이 론적 관념 들을 통합된 체계로 〈재정리했다〉. 모 든 언어 발달을 지배하고 언어 분류에 대한 기 준을 제공하는 엄격한 역사 법칙으로 자유 〈 변형〉을 대치함으로써 이 론 구조의 변화를 가져 오고 이론적 관념을 새로이 정당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관념들 자 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댜 슐라이허는 무엇이 과학적 이론인가를 결 정하는 기준이 이전 학자들과 달랐기 때문에 언어 발달 이론에 대한 새로운 주장을 했던 것이다. 이 기준이 이론 구조를 결정지었고, 이론 적 논거로서 관념을 정리하고 이 논거 안에서 관념들을 정당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일단 논거가 재정립되면 전수된 관 념은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게 되고, 그 의미는 근소하게 달 라질 뿐이었다. 슐라이허의 경우, 이론적 관념은 그 정당성을 다른 철 학적 맥락 안에서도 발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논거 구조의 변화가 반드시 개념적 단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콰 인 뒤앙Quin e-Duhem 의 논문에 의하면, 관찰적 보고와 이론적 예측 간의 불일치는 불일치를 제거하는 지엽적인 재조정을 충분히 하여 일 관성을 재수립하더라도, 잠재적으로 전체 과학 관념체계의 완전성을 위협한다. 슐라이허가 도입한 변화는 철학적 가설의 수정으로 인하여 〈하위 수준〉의 이론적 구성을 포기하도록 요구할 필요는 없다는 역 과정의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 같다. 따라서 연속성이란 것은 중심이 되는 철학적 가설을 유지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론적, 방법론적, 혹은 실체론적인 것을 불문하고 그 관념체계의 다른 요소들을 보존함으로 써도 확보될 수 있는 것이다. 3 1870 년 이전의 언어학 방법론 과학적 관념체계에 관한 어떠한 토론도 그 방법론에 대한 고찰 없

이 는 불완전하댜 과학자는 철학적 • 이 론적 신념을 가지고 연구 문제 를 공식화하고, 개념 들을 정의하고, 그 들 관계를 명시하고, 한 문제에 대해 수용할 만한 해 결책 에 조건을 부여하는 등의 일을 할 수 있다. 이 기능을 수행함에 있어서 신념들은 경험적 연구의 방향을 정하고 방법론적 접근에 대한 선택을 제한한다. 그러나 철학적 • 이론적 신념 의 통합이 유동적이면서 우연한 것처럼 보이듯이, 방법론적 실행과 그 실행을 정당화하는 초방법론적 신념이 철학적 • 이론적 틀 속에 완전 하게 통합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 19 세기 초 비교 • 역사언어학의 방법 론이 발달함으로써 우리는 방법론적 • 이론적 • 철학적 신념들이 어떻 게 통합되었는지 그 성격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고, 그 방법론을 그러 한 변화의 인지적 중요성을 검토하는 기초로 사용할 수 있다. 초기 비교문법학자들의 많은 방법론적 실행은 처음에는 그들의 철 학적 • 이론적 관념과 관심을 별문제 없이 표출한 결과로 보인다. 그러 나 점차적으로 공통 인구어를 재구성하고 그것이 각양각색으로 훼손 된 현대어로 변형된 변화를 고증하려는 시도에서, 초기 비교문법학자 들은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은 철학 및 언어 이론과는 독립된 방법론 을 개발했다 回 슐라이허의 통합은 철학적 • 이론적 틀 속에 방법론을 부분적으로 재결합시킨 것이지만, 방법론과 이론 간의 긴장은 19 세기 동안 줄곧 중요한 문제로 남아 있었고 신문법학파 Neo g ramm ari ans

37) 보프와 그의 직계 제자 들 은 실제의 또는 가설적 원시인구어 Proto - Indo-Europ e an 어근이나 낱말들을 재구성하려 하지 않았다. 그것들을 바교할 때, 가장 완전한 형태를 식별하여 의미 를 부여하고, 관련 낱말들이 다른 인구 제어에서 겪 었던 변화 를 추적하고자 했다. 추측된 형태를 완전하게 재구성하려고 제일 먼저 시도했던 사람은 슐라이허였다. 그러나 형태의 기원을 기술하기 위하여 기존 형태 의 어떤 요소들이 초기의 것인지에 대한 추측을 했다는 점에서, 초기 언어학자들 에 대해서도 재구 를 말할 수 있다. 보프에 따르면, 그들의 목표는 완전하면서도 그 기원을 아주 투명하게 반영하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순수한 형태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가 이것을 해결하는 데 착수했다. 〈보수적 사고〉에 대한 논문에서 만하임은 낭만주의는 계몽운동의 합리주의에 대한 반작용이었지만, 그것이 단지 반작용이었기 때문에 대립하려 했던 바로 그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낭만파가 했던 일은 삶의 기반과 근거로서 중세 시대나 종교 또는 불합리성을 재구성하거나 부활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어떤 것, 죽 이러한 힘들을 되돌아보고 인지적으로 이해하는 일이었 다.〉 38) 언어 및 비교문법학자들의 연구 작업과 관련하여 이 말을 바꾸 어 보면, 이 언어학자들이 시도했던 것은 완전한 유기적 언어로서의 인구어를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이해에 도달하고 그것이 어떻 게 사라졌나를 알아 내는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은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 현존하는 자료를 가지고 초기 언어를 재구성할 수 있는 방법론이 필요했다.

38) Mannheim , Conservati ve Thoug h t , pp. 147-48.

비교문법학자들의 방법론적인 기본 지침은 언어의 본질 및 그 역사 에 대한 철학적 • 이론적 신념들과 직접적으로 분명한 관계가 있다. 즉, 언어는 유기체이며, 역사적으로 입증된 언어들의 퇴화한 형태가 그들의 순수한 유기적 조어 ances t ors 들과 유사한 면이 있다는 생각이 비교 방법을 낳게 되었다. 왜냐 하면 가장 퇴화하지 않은(죽, 가장 오 래된) 형태들을 비교해야만 본래 언어의 본질적 특성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목적을 가지고 괴테는 그의 변형 연구에서 비 교 방법을 사용했으며, 형태의 비교는 19 세기 초의 연구 방법으로서 많은 분야에서 사용되었고, 특히 비교해부학 분야에서 두드러졌다 .39 )

39) 많은 언어학 역사가들은 초기 비교문법학자들이 비교해부학자, 특히 조르주 퀴비 에 George s Cuv i er 의 연구로부터 칙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시사하고 있는데, 퀴 비에는 보프와 슐레겔이 파리에서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던 때와 같은 시기에 그 의 연구를 수행했다. 슐레겔은 비교해부학 연구와 언어의 내적 구조 연구의 유사 성을 분명히 인식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점, 죽 모든 의심스러운 것을 해결하

고 모든 난제 를 밝혀 줄 것에 대한 연구가 있다. 비교해부학 연구가 자연과학의 가장 고결한 분야에 대한 확실한 열쇠였던 것처럼 여러 언어들의 비교문법 구조 는 이 들 의 일반적 유추에 대한 확실한 열쇠가 된다 .〉 (Schle g el, On the Lang u ag e , p. 439). 그러나 비교해부학에 대한 언급을 퀴비에가 슐레겔에게 영향 울 주었다는 증거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 같다. 퀴비에는 상관관계의 원리로 가장 잘 알려져 있고, 그 원리에 의하면 유기체의 각 부분은 다른 모든 부분과 아주 밀 접 하게 상관관계 를 갖고 있어서 한 부분을 알면 모든 나머지 다른 부분들 의 형태와 모양을 추론할 수 있다 . 보프와 슐레겔은 둘 다 언어의 문법을 받쳐 주는 원리가 각 어근의 모습 을 형성한다고 믿었지만, 형태의 기능적 상관관계를 제시하지 않았으며, 퀴비에의 원리에서 요구되는, 언어의 한 측면의 변화가 반드 시 다른 측면의 변화 를 가져온다는 주장을 하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퀴비에는 유 기체는 역사적 변형을 갖는다는 어떤 시사에도 강력하게 반대했는데, 이것은 슐레 겔과 보프에게 있어서 언어와 그들 자신의 방법론에 대한 핵심적인 신념이었다 . 퀴비에는 유기체의 과학적 분류에도 많은 관심이 있었는데 이것은 보프와 슐레겔 에게는 2 차적 문제였다 . 자연과학에 대한 언급은 너무 산만해서 어떤 하나의 자 연과학이 비교문법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는지를 추측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보 프는 그의 작업을 〈 언어의 물리학과 생리학〉, 〈비교와 해부학적 연구에 대한 엄격하고 체계적인 과정 〉 이라고 부르고 (Comp a ra ti ve Grammar, pp XIII, VII), 〈언어의 역사와 자연적 기술〉과 〈자연사〉 사이의 유사성을 발견한다(H ans Arens, Sp ra chwi ss enscha ft, Minich : Alber, 195. 5, p.1 98). 다른 곳에서 그는 그 의 분석 방법을 〈 해부학적 절개나 화학적 분석〉과 비교하고 있다 (Comp a ra ti ve Grammar, p. 12 4). 다양한 자연과학을 여러 가지로 막연하게 언급하는 것이, 생 리학 , 해부학 , 물리학, 화학이 비교문법에 어떤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중 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학문에 자연과학의 방법론적 엄격성을 요구할 필요 가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반영하고 있다.

초기 언어학자들이 이 방법을 채택하는 데 어떤 다른 특정한 과학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는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이 방법은 언어 메 커니즘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관한 철학적 가설과 아주 잘 부합되었기 때문에 거의 이러한 가설로부터 연유했다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초기 언어의 정수인 생명력이 모든 문법 범주의 구조에 나타나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초기의 언어 형태를 재구성하려는 언어학자들은 제일 먼저 굴절에 관심을 가졌다. 따라서 개별 낱말을

어원적으로 비교하 는 것만 으 로는 불충분 하다 고 생각하 여 , 보프 , 그림, 슐레겔 형제는 형태론적 범주 를 비교 • 분석하 는 것을 선호했다(예를 들 면, 보프의 초기 업적 들 은 다양한 인구어 들 의 활 용과 굴절 에 집중됐 다). 그들이 언어의 유기체적 정수로 간주했던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 내기 위해 비교문법학자들은 여러 언어에 있는 언어형을 모아서 형태 론적 구조를 비교하는 일에 착수했다. 이러한 비교의 목적은 초기의 완전한 형태론적 형태를 찾아 내어 언어 발달에서 일어났던 쇠퇴 현 상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형태론적 비교는 개별 낱말의 바교보다는 더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고, 교착 이론과 함께 초기 언어의 분 석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형태론적 비교만으로는 충분치 못했다 . 교착 이론을 충분히 적용하기 위해 언어학자들은 원래 어근의 의미와 형태를 명시해야 했 다. 그들은 현대 인구 제어들의 쇠퇴한 어근으로부터 이 어근의 초기 의 완전한 형태를 재구성해야 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비교는 친족 어들의 문법 구조의 형태상의 유사성을 넘어서, 의미와 관계를 나타내 는 실질적이며 어원적인 유사성까지 확대돼야 했다. 따라서 비교문법 학자들과 역사언어학자들은 공통 인구어 어근을 변형시킨 (처음에는 문자 변화와 동일한 것으로 믿었던) 음 변화를 추적하려고 했다 . 4 0) 이 러한 변화 중 몇몇은 규칙적이라는 관찰 결과, 죽 이러한 변화가 모두 혹은 대부분의 경우 자매어 내의 일정한 음에 체계적으로 영향을 준 다는 관찰 결과는 앞으로의 비교 • 역사언어학의 발달을 위해서 대단 히 중요한 것이었다. 친족어에 있는 음의 규칙적 대응 관계를 처음 알 아 낸 것은, 1818 년 라스무스 라스크 Rasmus Rask(1787-1832) 였는

40) 새로운 〈과학적〉 어원론을 위한 음 법칙의 중요성은, 보프의 제자로서 비교문법 의 어원적 측면을 개발하는 데 주로 관심을 가졌고 새로운 과학을 위하여 음성학 과 음 법칙이 중요하다고 주장한 최초의 비교문법학자 들 중 하나였던 아우구스트 포트 Aug us t Po tt의 연구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

데, 그는 게르만어의 몇몇 자음 들 이 희랍어와 라틴어에서는 다 른 자음 들로 체계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발견했다. 〈 게르만어 음운추이 German sound-s hift〉라고 하는 이 발견은 야콥 그림의 『 독일어 문 법 Deuts c he Gramma ti k 』(1 822) 제 2 판에서 체계화되었다 〈그림 법 칙 Gri mm' s Law 〉 으로 알려진 이 음 법칙의 발견은 친족어에서 규 칙적인 음의 대응 관계에 대한 다른 초기 관찰과 더불어 비교문법학 자들로 하여금 음성학 연구에 더욱 주의를 집중하도록 만들었고, 규칙 적으로 작용하는 음 법칙에 대한 새로운 발견들은 19 세기 동안 내내 계속되었다. 음의 규칙성에 대해 관찰함으로써 형태론적 비교는 점차적으로 보 완되었고 언어학 방법론에 대한 기초가 형성되었다. 〈그림 법칙〉은 하 나의 전형적 발견으로서 커다란 역할을 했으며, 음의 규칙적 대응관계 를 발견함으로써 언어학자들은 더욱더 넓은 분야의 언어 자료를 정리 하고 기술할 수 있게 되었다. 공통 인구어의 음 체계를 재구성하고, 특정 어근 형태를 추측해 내고 형태론에서부터 어원론에 이르기까지 연구 범위 를 넓히게 되었다 . 형태론적 유사성과 마찬가지로, 음 법칙 은 비교에 대한 패러다임, 실제로 무엇을 비교할 수 있는가에 대한 기 존의 수용된 기준, 그리고 초기 형태를 재구성할 수 있는 지침도 제공 했다. 그러나 방법론적으로 음 법칙에 점점 더 의존하는 것에 대하여 용 인된 언어철학적 • 이론적 신념으로는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 었고, 어떤 음 변화의 규칙성을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전혀 없었다. 언 어는 유기적이라는 견해와 언어는 쇠퇴한다는 신념이, 이러한 쇠퇴가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못했다. 음 변화가 규칙적이라 고 생각할 만한 이유는 없었다(만약 괴테의 변형 연구의 영향을 신중 하게 받아들였다면 규칙적 변화라는 것이 법칙이 될 수는 없었을 것 이다) . 철학적 • 이론적 신념과 전개하고 있는 방법론이 통합될 수 없

었기 때문에 언어 이론을 바꾸려 는 다 른 시 도들 이 생겨났다. 첫 번째 시도는 1840 년대에 시작된 방법 론 적인 논쟁에서 비 롯 했다. 음 법칙에 의존하는 것이 철학적 • 이론적 틀 에 통합되지 않고 음 변화 규칙성이 설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테오도르 벤파이 Theodor Be nf e y와 레오 마이 어 Leo Me y er 는 이 미 알려 진 법 칙 이 나 조음음성 학arti cula to ry ph oneti cs 연구를 기초로 하여 공식화되었던 음 변화 원칙으로부터 일탈한 음 변화를 상정하는 것은 아주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 젊은 세대의 언어학자들, 그 중 특히 게오르그 쿠르티우스 Georg C urti us 와 아우구스트 슐라이 허 Aug u st Schle i cher 는 벤파이 와 마이어를 비판하고 음 법칙이 재구성의 주요 기준임을 고수했다. 이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음 변형의 규칙성을 언어 발달 이론에 통합시키고 이 규칙성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려 했다. 슐라이허는 언어 발달의 전 과정을 법칙의 작용으로 설명하려 했다 는 점에서 , 그 이전의 학자들과 아주 달랐다. 언어가 필요한 법칙에 따라 발달한 것은 선사 시기였을 뿐만 아니라 언어 쇠퇴도 규칙에 의 해서 지배를 받는다. 〈언어 발달과 마찬가지로 언어 쇠퇴도 우리가 언 어의 관찰울 통하여 확정할 수 있고, 수세기 수천 년 동안을 통하여 추적할 수 있는 일정한 규칙에 따른다 . 〉 4 1) 슐라이허는 언어는 자연과 학이며 자연과학으로서의 언어학은 자연과학의 방법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따라야만 한다고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41) Schleic h er, Die deuts c he Sp ra che, p. 47. 그는 이 미 1 8.50년에 같은 것을 주장 했다. 〈언어의 진보 역사가 규칙적 과정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언 어의 쇠퇴에서도 규칙과 법칙은 분명하다 . 〉 (Die Sp ra chen Europa s, p.1 5).

유기체와 그 생명의 법칙을 면밀히 조사하고, 과학적 대상에 완전히 몰 두하는 것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우리 학문의 기초 를 형성할 수는 없다 . 설명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이 확고한 기반올 소홀히 하는 설명

은 공허한 것이며 과학적 가치 를 결여한 것이다. 언어는 인간 의지의 통제를 받지 않고 성장하며 발전하고 시간과 더불 어 죽어 가는 자연의 유기체이다 .4 2)

42) Schleic h er, Di e dan. vini s c he Theori e, p. 7 .

언어 변화의 규칙성과 법칙에 따르는 특성을 주장하는 것 외에도 슐라이허는 이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설명하려고 했다. 이 이론 에 의하면 언어는 발음기관에서 요구되는 노력을 줄이려는 경향이 있 기 때문에 음성적으로 쇠퇴한댜 변화는 항상 노력을 많이 줄이고 발 음을 쉽게 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도 발음기관은 대체적으로 비슷하기 때문에, 이 변화의 방향은 항상 같다 . 언어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해부학적 구조이며, 언어가 최소 저항의 길을 따르는 것은 인간의 나태성이나 부주의성 때문이 아니라 자연 현상이라는 것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 하다. 언어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음 변화는 일차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 로는, 발음기관을 편하게 움직이려는 노력에서 오는 결과이다. 발음을 편 하게 하고 근육의 움직임을 적게 하려는 것이 여기에서의 실제적인 동인 이다. 음성학사의 사실들은 발음기관의 생리학으로만 설명될 수 있다 .43)

43) Schleic h er, Di e deuts c he Sp r ache, p. 5 0.

음 변화를 지배하는 동일한 일반 원리가 형태의 파괴에도 적용된다. 슐라이허에 의하면, 다양한 언어 형태를 최소화하려는 경향에서 나온 결과가 바로 유추의 작용이다. 역사적으로 정당화되었다고 하더라도 통상적이지 않은 원래의 형태를 많은 단어에 공통된 다른 형태로 대 치하게 되면 그 언어의 문법적 복잡성이 줄어든다 .44 ) 이러한 통일성을

향한 노력은 더 많은 노력의 절 약과 용이합 을 위한 것이다. 많은 단어 들이 같은 방식으로 다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유추의 경우, 슐라이허 는 이러한 용이성에 대한 경향을 발음기관의 해부학적 구조로 돌릴 수 없었댜 유추는 개별 음이나 단어의 발음이 아니라 한 언어의 문법 을 단순화한다. 그러나 슐라이허는 이와 같이 더 많은 노력의 절약을 요구하고 더 큰 통일성을 요구하는 특정한 동인의 문제는 제기하지 않았다 . 그는 어떠한 언어 변화도 인간의 의지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 이 아니라고 확신했댜 그는 헤겔의 이론을 따라, 인간의 개인적 • 사 회적 행동을 자유의지와 동일시했으며, 통일성에 대한 경향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인간의 본질 human na tur e 〉로 돌리지 않고는 달리 설명 할 수 없었다. 언어의 쇠퇴는 자유롭고 의식적인 결정 밖의 사항이다. 그것은 인간이 자연적 존재라는 데 기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다른 역사적 사건들처럼 개인의 자유로운 의지에서 출발하지 않고, 모든 언어에 동등하게 영향을 미친다. 확실히, 언어의 쇠퇴는 역사적 사건들, 특히 문학의 영향을 통하 여 속도가 빨라지기도 하고 느려지기도 하지만 그 원인은 인간의 본질에 있다 .45)

44) 소리가 보다 확고했던 가장 이른 시기의 언어에서도 형태의 다양성을 최소로 필 요한 정도까지 제한하기 위하여 이에 반대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힘이 효력을 갖기 시작한다 .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 통상적으로 덜 사용되지만 정당화되어진 특정 형태를 다른 형태로, 특히 언어감정에 강하게 영향을 미치는 자주 사용되는 형태로 __- 다시 말해서 유추 과정_분화하는 것이다 . 편하고 통일성 있게 하 려는 노력, 최대한의 낱말들을 통일성 있게 다루고, 특정한 형태의 의미와 기원에 대해서는 점점 쇠퇴해 가는 감정 둥, 이 모든 것이 후기 언어가 초기 언어보다 문법적 형태를 덜 지니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 언어 구조가 점점 단순해진다는 사 실을 낳는다.〉 (Schleic h er, D i e deuts c he Sp r ache, p. 55). 45) Schleic h er, Di e Sp ra chen Europa s, p. 19.

슐라이허는 언어 변화 를 자연과 동일시합으로써 언어 발달을 법칙 에 의해서 지배되는 것으로 보고 그의 방법론적 실행을 정당화할 수 있었지만, 유추적 변화의 근거가 되는 원인을 설명하지는 못했다 . 규칙적인 언어 쇠퇴의 원인을 제시하면서 슐라이허는 왜 이 원인이 유사 이전의 언어 발달에는 작용하지 못했는가를 설명해야 했다. 여기 서 처음으로 언어에 대한 철학적 • 이론적 신념과, 음 법칙을 상정함으 로써 언어 변화를 설명하려는 방법론적 지침 간에 일어나는 모순(통 합의 결여는 아닌)의 조짐을 보게 된다 . 슐라이허는 음 변화의 규칙성 을 설명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달라도 발음기관은 근본적으로 유사하 다고 단정했다. 이는 발음하는 데 드는 노력을 줄이려는 성향이 유사 이전에도 틀림없이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슐라이허는 언 어 발달의 가장 초기 단계에서 언어는 점진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완 전해졌으며 단지 퇴보와 타락을 가져오는 음 법칙, 유추 효과, 문법 형태를 단순화하는 경향들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그의 선임자 들의 주장에 동의했다. 이러한 명백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 슐라이 허는 유사 이전에서 유사 시기로의 전환에 대한 헤겔의 설명에 또다 시 의존했댜 그는 언어가 창조되고 점진적 발달을 하는 기간 동안에 는 특별한 언어감정 Sp rach g ef ii hl 이 편의와 노력 절약의 경향에 저항 했다고 주장했다. 유사 시기에 들어와 낱말의 기능과 의미에 대한 감 정이 시들어 가면서 퇴보를 가져왔다. 우리는 낱말과 그 낱말을 구성하고 있는 부분들의 기능에 대한 감정을 단순히 〈언어감정〉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이 감정은 약화되어 전부 소멸 될 때까지, 음성적 부패가 그 낱말을 침해할 때까지 언어 형태를 보호해 주는 정신이다 . 따라서 언어감정은 음 법칙, 유추, 언어 형태의 단순화 둥 과 정비례 관계에 있다 . 4 6)

노력 절약에 대한 성향과 마찬가지로, 언어감정은 결코 화자의 주관 적 특징이 아니다 . 그것은 언어 자체의 정신이며, 그 정신이 작용하고 사라지고는 언어 사용자의 심리적, 사회적 특성과는 별개의 것이다. 언어 창조에 참여한 〈정신〉이 역사의 영역으로 물러나면서 언어는 목 표가 아니라 오로지 수단으로써만 사용되기 시작했다. 오래된 민족일수록, 그들의 역사적 발달이 활발할수록, 정신이 언어에 서 더욱 물러나게 되고, 정신이 한때 그 안에 홀로 깃들어 있던 소리로부 터 더욱 멀어지며, 한때 정신의 삶에 대한 목표 그 자체였던 언어는 더욱 더 정신의 삶을 위한 수단, 생각을 교환하는 수단으로만 되어 갈 뿐이 다 . 47)

46) Schleic h er, Di e deuts c he Sp ra che, p. 6 5. 47) Schleic h er, Di e deuts c he Sp r ache, p.6 4.

슐라이허의 역사관에 동의하지 않았던 언어학자들은 유사 이전의 시기에 언어가 타락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그의 설명을 단지 언어의 완전성과 타락에 대한 수용된 가설에 억지로 맞추려는 시도라고 생각 했다. 언어 발달의 초기 단계에서 언어가 쇠퇴하지 못하도록 하는 특 별한 언어감정이 존재하다가 나중 단계에서 사라졌다는 생각은 신문 법학자들에게는 단지 이러한 〈현상을 구제하기 위한〉 임시 변통의 비 과학적인 시도처럼 보였는데, 바로 그 현상의 존재에 대하여 그들은 도전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슐라이허가 언어 발달의 전체 과정은 법칙을 따르게 되어 있으며, 음 법칙은 언어학 방법론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비교 문법학자들의 첫 세대와 그가 다른 점이다. 그러나 슐라이허는 조음음 성학의 연구 결과에 의존하고 있었지만 산발적이고 불규칙한 음 변화 에 대한 설명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는 그의 경험적 연구에서 귀납적

증명을 통하여 언어 쇠퇴가 불변의 법칙을 따른다는 그의 신념을 구 체화하지도 못했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도 않았다. ,18)

48) 슐라이허는 Comp e ndiu m of the Comp ara ti ve Grammar of the Indo-Europ e an, Sanskrit, Greek and Lnti n Lang uage s (London : Tr ilbn er, 1874) 에서 〈덜 규칙적으로〉, 〈자주〉, 〈결코 불변이 아닌〉, 〈일반적으로〉 둥과 같 은 구를 반복해서 사용했다.

이론적인 가설과 방법론적 가설 사이의 모순은 다른 면에도 존재했 고 이론적 • 방법론적 사항들뿐 아니라 보프의 추종자들의 경험적 연 구에도 영향을 주었다. 윌리엄 노만 W i l li am Norman 이 보여 준 것처 럼, 음 변화의 엄격한 규칙성의 원칙을 적용함으로써 교착 이론과 맞 지 않는 초기 인구어 형태를 재구성하는 경우들도 있었다. 교착 이론 에 의하면 언어 발달의 어느 시점에는 모든 어근이 의미나 혹은 관계 를 나타내는 단계가 있었는데 그것도 아주 규칙적으로, 죽 주어진 관 계(혹은 주어진 의미)가 이 발달 단계에서는 어떤 형태음소론적 교체 morp h op h onem ic alte r natio n 없이 항상 동일한 어근에 의해서 표시 되었다는 것이다. 노만은 완전한 형태론적 통일성에 대한 이 가설이 때때로 음 법칙이 규칙적으로 작용한다는 가설과 상충되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다시 말해서 규칙적 음 교체에 대한 가설에서 추론할 수 있는 형태는 교착 이론과 일치하는 재구성을 이루어 내지 못했고, 이 이론과 일치하는 재구성은 산발적이고 불규칙한 음 변화를 가정해야 만했다. 보프가 개발한 교착 이론은 재구성된 형태의 형태론적 및 의미론적 구 조에 제약을 주었고, 음성학 연구와 규칙적 음 변화 개념은 재구성의 음 성학적 구조에 제약을 주었다. 이 두 원칙을 적용하는 데는 본질적 모순 이 있었다 .49)

49) Norman, The Neog ram mari an s, p. 3 9.

슐라이허와 그와 같은 시대의 게오 르그 쿠르티우스는 이 두 방법론 적 요구를 조화시키려고 애썼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결국 그 들은 대체로 교착 이론의 조건 들 에 맞추는 편을 택하고, 많은 경우에 서 불규칙적 음 변화를 상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교착 이론이 궁극 적으로는 유효하다는 신념은 언어에 대한 이론적 • 철학적 신념체계에 깊숙이 박혀 있었기 때문에, 따라서 교착 이론은 규칙적 음 변화에 대 한 최근의 보다 피상적인 이론적 통합보다도 재구의 유효성을 더 잘 판단할 수 있는 기준으로 보였다. 관념체계의 서로 다른 요소들간의 긴장은 아우구스트 슐라이허보다 도 게오르그 쿠르티우스의 연구에서 훨씬 더 분명했다. 쿠르티우스는 슐라이허가 지나치게 헤겔주의를 옹호하는 태도에 동의하지 않는 한 편, 역사적으로 언어가 쇠퇴한다는 슐라이허의 신념과 교착 이론을 견 지하면서도 일관성 있게 그 방법론을 정당화하려 하는 데에서 더 큰 난관에 봉착했다. 쿠르티우스는 그의 친구 슐라이허와 마찬가지로, 언어학 방법론에 대하여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근거로서 규칙적 음 법칙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쿠르티우스에 의하면, 과학은 그 주제물의 체계적이며 법칙에 따르는 면을 분석함으로써만이 유효하고 신뢰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 〈왜냐 하면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것은 규칙적이 고 내적인 일관성을 지닌 것만이며, 자의적인 것은 결코 확실성을 가 지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기껏해야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 다.〉 50 ) 따라서 언어학 연구는 〈음 법칙의 가장 엄격한 관찰〉 51) 에 의존

50) Georg Cu rtius , Princ ip le s of Greek Ety m olog y, tr. Eng la nd (London Murrey, 11575), p.1 04. 51 ) Georg Cu rtius , Bemerkung e n iibe r die Trag w eit e der Lautg e setz e ins besondere im Gr iec h isc hen und Late i n isc hen (1871), in E. Wi nd isc h, ed. Klein e Schri ften (Leip z ig : Hirze l, 1886), p. 52.

해야만 한다. 쿠르티우 스는 언어학이 자연과학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규칙 적 음 변화 를 자연적 힘의 작용과 비교하기를 좋아했다. 〈자연적 힘과 같은 일관성을 갖고 작용하는 고정된 법칙은 정확히 음의 삶 속에서 발견될 수 있다 음성 법칙은 모든 합리적 어원학의 확실한 하나의 기 초가 된다〉 우 음 법칙의 중요성에 대한 논문에서 그는 〈어느 일정한 시기에 음의 침투 변화는 일종의 자연력을 가지고 음의 광범위한 영 역에 영향을 미친다〉 53) 고 거듭 주장했다

52) Georg Cu rtius , Pr inc i ple s, p. 105. 53) Georg Cu rtius , Bemerkung en , p. 55.

그러나 쿠르티우스는 모든 음 변화가 예의없는 법칙에 따른다고 믿 지 않았댜 그는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기준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규 칙성의 가설이 필요했지만, 이론적으로는 좀더 유연성을 발휘하여 규 칙적으로 음을 변화시키는 〈 일종의 자연력〉에 따르지 않는 산발적 음 변화도 인정했다. 쿠르티우스는 『그리스어 어원의 원칙 The Princ ip le s of Greek E ty molo gy』 에 서 규칙 적 음 변화와 산발적 음 변화를 조심스럽게 구분했으며 그 책의 다른 부분에서도 이를 다루었 다. 이러한 경과를 그가 어떻게 정당화했는가에 대한 설명이 매우 홍 미롭기 떄문에, 여기서 〈상세히〉 인용하기로 한다. 모든 이성적 과학 절차는 예외와는 구별되는 규칙에만 단순히 의존하 며 이것이 음 변화의 두 부류를 완전히 분리하기를 주장하는 이유이다. 이 논문의 두 번째 책에서 우리는 그리스어에 인도 게르만어 음이 그대 로 지속되었던 점과 하나의 법칙이 되어 온 그 음들의 규칙적 변화를 포 함해서 멀리까지 영향력을 가진 규칙을 검토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이 유로 해서 그 역할을 담당할 한 어휘집을 마련했다. 세 번째 책에서는 예 외를 다루고 일련의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음성 전이와 변화를 좀더 분명

하게 밝히고자 했댜 동시에 이러 저러 한 음 변화 를 우연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법칙이 전체를 관통하는 것과 같이 언어의 이러한 음성적인 면도 침투한다는 의견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댜 그러나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정상적인 것과 비정 상적인 현상을 구별하려고 하는 것처럼 언어를 연구하는 사람들도 그래 야만 할 것이다. 바정상인 것에 대한 이유를 발견하는 것이 항상 가능하 지는 않겠지만, 바슷한 비정상적인 것들을 비교함으로써 그것들 속에서도 어떤 질서를 발견할 수 있으며 , 통계적 정확성으로 이러한 질서의 범위를 확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수로 따지면 규칙이 예외를 훨씬 능가한다 는 사실이 이 방법에 의해서 분명하게 밝혀질 수 있으며, 미래의 가능한 어원적 결합에 대한 기준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집)

54) Georg Cu rtius , Pr inc i ple s, p. 110.

쿠르티우스가 여기서 산발적 음 변화를 원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비정상적〉 현상이라고 주장했는지, 또는 이 산발적 음 변화가 〈전체 를 관통하면서 언어의 음성적인 면도 관통하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어떤 법칙에 의해서 지배되는 것으로 믿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 다. 그는 언어학이 과학이어야 한다면 법칙에 의존해야 한다고 믿었지 만, 그러면서도 언어 변화 과정을 전적으로 법칙에 의거해야 한다고 보지는 않았다. 언어학의 방법론과 언어 변화 이론의 이러한 괴리는 언어 변화 원 인에 대한 쿠르티우스의 설명에서 다시 나타난다. 쿠르티우스는 그의 〈음 법칙의 중요성에 대한 논평〉에서 언어 변화에 대한 그의 이론을 정교화했다. 그는 규칙적 음 법칙은 노력을 최소화하려는 성향의 결과 라는 슐라이허의 견해에 동의했지만, 이런 성향은 그들 음성기관의 구 조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그 언어 화자의 심리적 특성에 기인한 것으 로 보았다. 쿠르티우스는 산발적 음 변화와 선사 시대의 언어가 쇠퇴

하지 않았음을 설명하기 위해서 발음을 쉽게 하려는 성향과는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힘을 상정했다. 이러한 저항력은 쿠르티우스에게는 언어에서 분리되어 있는 정신, 죽 슐라이허에게 있어서는 수호천사였 던 것이 아니라 화자들이 (무의식적으로) 의미를 보존하려고 애쓴 데 서 나온 결과인 언어감정이다. 화자가 편하게 발음하려고 하는 데서 음 변화와 유추적 혁신이 일어나며, 의미를 보존하기 원하기 때문에 형태가 음성적으로 쇠퇴하는 것을 막게 된다. 〈소리의 약화는 화자가 발음을 편하게 하려 하거나 게을리 하는 데서 직접 발생하며, 이는 언 어 역사 과정에서 증가하고 있다. 발음에 대한 이러한 나태함과 발음 울 정확히 하려는 노력이 맞서 있고 두 성향은 서로를 제한하고 있 다.〉 55) 그리하여 어떤 형태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 에 음성적 쇠퇴를 겪지 않게 되었다 .56)

5.5) Georg Cu rtius , Bemerkung en , p. 5.5. fi6) 예를 들면, 쿠르티우스는 지시적 의미를 나타내는 어근은 관계를 나타내는 어근 보다 음 변화의 영향을 덜 받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발음을 편리하게 하려는 안 이함은 의미에 관하여 무게가 덜 실리는 음절과 낱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 이며, 의미가 가장 많이 실린 음절과 낱말에는 최소의 영향력을 가지게 될 것이 라고 가정할 수 있다. 물론, 그 차이는 화자가 의식적으로 생각해서가 아니라 심 리적으로, 죽 화자의 혼으로부터 이해되어야 한다. 〉 (Bemer kung en, pp. 5.5-fi6).

음 변화의 원인에 대한 쿠르티우스의 설명은 규칙성과 이러한 규칙 에서의 일탈을 둘 다 설명하고 있지만, 규칙성의 원리가 방법론적으로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해야 한다거나 그것이 재구성의 타당성을 평가하 는 기준으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을 정당화하지는 못하고 있 다(어떤 변화는 의미적인 조건에서 기인하는 수많은 예외를 가질 수 도 있기 때문에). 그러나 왜 언어 발달의 후기 단계에서만 음 변화와 유추적 형성이 특징적으로 나타나는가에 대한 그의 설명을 곤란하게 만드는 더 어려 운 문제들이 있다. 그는 한 언어의 화자가 언어 형태들의 기원을 알고

그 단어를 형성하고 있는 각 요소 들을 독 립적인 고유의 의미 를 가진 어근으로 인식하고 있기만 하다면, 의미 를 보존하려는 성향이 발음을 좀더 쉽게 하려는 성향으로부터 언어를 지켜 준다고 주장했다 . 나중에 언어 형태의 기원이 과거 속으로 잊혀져 갈 때면, 나태와 편의가 그 대가를 지불하게 될 것이었다. 언어의 쇠퇴를 막아 주는 것이 언어의 초기 형성에 대한 〈기억〉, 죽 언어의 기원에 대한 실제적 의식이라고(쿠르티우스가 때때로 시사 한 것처럼) 가정하지 않는다면, (신문법학자들이 인지했던 것처럼) 그 의 논리에는 오류가 있다. 쿠르티우스가 주장한 것처럼 언어 형태가 원래의 특성 (다시 말해서 분명하고 의미를 지닌 어근에 대한)을 유지 하는 동안 음 변화와 유추적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면 언어가 도대체 변화할 이유가 없다 쿠르티우스에 따르면, 결국 음 법칙과 유추적 형 성은 언어 변화가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근거이다. 슐라이허와 마찬가 지로 쿠르티우스의 경우에도 물려받은 이론적 틀과 새 방법론의 모순 은 점점 표면화되었다. 신문법학자들은 언어 발달의 〈두 단계〉 모형이 함축하고 있는 그러한 모순들을 재빨라 지적했고, 이들로부터 자신들 의 급진적 결론을 또한 신속히 끌어 냈다. 요약하자면, 초기 비교문법학자들은 모든 인구어의 형태는 인구어들 이 발달해 내려온 조어의 규칙적이고 투명한 문법 구조에서 파생되어 나왔음울 증명하는 일에 착수했다. 그들의 목표는 이 완전한 언어를 재구성하는 일, 즉 한 단어의 각 요소가 의미 혹은 관계를 나타내는 단음절 어근인 언어 유기체를 기술하는 일이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그들은 재구성을 위한 지침과 더불어 제안된 형태 및 상정된 변화의 유효성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해 줄 방법론이 필요했 다. 바로 그러한 방법론적 기준은 언어 변화에 규칙성이 있음을 발견 함으로써 마련되었다. 그러나 음 법칙이 규칙적으로 작용한다는 생각 은 언어에 대한 이론적 • 철학적 신념으로 통합되지 않았다. 이러한 신

념을 바탕으로 음 변화가 체계적이어야 할 이유 를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댜 비교문법학자들의 제 2 세대들 중에서 슐라이허와 쿠르티우스를 포 함하여 여러 사람이, 언어학의 방법론은 법칙에 의거한 음 변형의 가 설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이러한 신념을 정당화 하기 위해서 그들의 방법론을 언어과학의 이론적 체계에 통합시키려 했다 . 즉, 그들은 음 변화가 규칙적인 이유를 설명해야만 했다. 동시에 그들이 재구성하는 언어가 완전하다는(즉, 형태론적 • 의미론적 구조가 규칙적이며, 한 단어의 각 요소가 형태음소론적 변이 없이 의미를 가 진 어근들의 결합이라는) 신념을 유지하고 있는 한, 음 변화의 규칙성 에 대한 그들의 설명은 어쩔 수 없이 시대적으로 한정적인 것일 수밖 에 없었다. 즉, 법칙과 같은 음 변화의 원인들이 언어 발달의 선사 시 대에는 효과적일 수 없었다. 음성적 (그리고 유추적) 변화를 쉽고 편 하게 발음하려는 성향에서 나온 것으로 설명하면서 유일하게 또는 주 로 선사 시대에 작용했던 대립되는 힘을 상정했다. 이것이 신비스러운 언어감정의 역할이었다. 슐라이허는 헤겔 이론과 언어의 유기적 관점 에 의존했기 때문에 역사와 선사를 구분하는 데 있어서 쿠르티우스보 다 성공적이었다. 그러면서도 동일한 법칙이 발달의 전체 과정을 지배 할 것을 요구하는 그의 진화론적 관점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지는 못 했다. 마지막으로 그의 언어에 대한 유기적 관점과 언어는 문화보다는 자연에 속한다는 그의 주장으로 인해서 유추적 변화롤 설명하기가 힘 들었다. 헤겔주의자도 아니고, 언어를 자연의 유기체로 간주하지도 않았던 쿠르티우스는 언어 변화를 심리적 성향의 결과로 설명하려 했다. 그러 나 이러한 심리적 모델은 언어의 쇠퇴가 언어의 구성 과정과는 본질 적으로 다르다는 견해와는 조화되지 않았다. 따라서 그가 제안한 언어 학 방법론의 정당성은 모순을 안고 있었다.

보프가 제안하고 쿠르티우스와 슐라이허가 계승한 교착 이론은 또 다른 장애물인 것으로 드러났다. 노만이 보여 준 것처럼, 교착 이론에 집착함으로써 슐라이허와 쿠르티우스는 둘 다 인정된 음 법칙과는 맞 지 않는 음 변화를 상정해야만 했다. 슐라이허가 언어 쇠퇴기도 모든 다른 자연 현상과 같이 법칙에 지배되는 것이라고 일생 동안 주장한 것을 보면 이 모순을 깨닫지 못한 것 같았다(쿠르티우스는 산발적이 고 비정상적인 변화가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이 모순을 시정하려 했 다). 또한 쿠르티우스와 슐라이허는 음 법칙(그리고 유추)이 비교 • 역 사언어학의 방법론적 기초로 간주되기를 요구했지만, 실행에서는 그들 자신의 방법론적 처방을 따를 수 없었으며 그 처방들을 일관성 있게 이론적으로 정당화하지도 못했다. 이상의 언어학 방법론 발달의 개략은 언어학자들이 그들 관념체계 의 다양한 요소들간의 불완전한 통합으로 인해서 이론적으로 설명되 거나 정당화되지 못한 방법론적 실행을 채택하게 되었음(그리고 경험 론적 연구 결과도 받아들였음)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나타난 이질성은 하나의 결점으로 생각되었고, 언어학자들은 언어학 방법론을 언어 발달 이론과 통합시키고자 노력했다. 이론들은 언어의 본질 및 과학의 본질에 대한 신념들과 일관성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언어 연구에서 사용되는 방법론에 대한 정당성도 제공하는 방향으로 구성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방법론적 실행에 대한 이론적 정당성이 결 여된 것으로 간주되었던 것이 그 관념체계 안에서 모순으로 인식되면 서 비로소 더욱 철저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나아가 이러한 인식은 언 어와 과학에 대한 새로운 철학적 가설들을 받아들이는 데 따라 결정 되었다.

제 3 장 독일 대학에서의 언어학 우리는 19 세기를 통하여 언어학이 독일의 학문이었다는 사실을 어 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언어학의 출현에 대한 논의를 시 작했다 초기 비교문법학자들의 관념체계에 낭만주의 개념과 사상이 깊숙이 배어 있었다는 주장은 독일 학자들이 산스크리트어와 유럽 제 어의 관계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지 만, 언어 비교 연구가 독일 대학들에서 꾸준히 관심을 끈 주제가 되었 던 이유는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어쨌든 낭만주의가 독일에서 지적 삶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된 훨씬 이후에도 비교 • 역 사언어 학 comp a rati ve and hist o r i ca l li n gui s ti cs 은 여 전히 성 장하는 연구 분야였다. 동양에 매료된 낭만주의는 산스크리트어와 유럽 제어의 관계에 새 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순수하고 자연적인 문명 이전 세계에 대한 시대적 향수는, 초기의 타락하지 않은 단계의 언어 발달에 관한 연구 저변에 있는 동인의 하나로 설명될 수 있다 . 유기적 구조 및 각양각색 인 그 변형의 본질에 대한 자연철학 Na turphi losop h i e 의 가정들이 언 어학 방법론의 어떤 특징은 물론 언어 및 그 역사적 쇠퇴의 본질에

대한 초기 비교문법학자 들 사상의 근 원 을 밝혀 주고 있다. 그러나 돋 일에서 비교문법과 독일 여론의 지적 분위기가 서로 인지적으로

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언어학을 제도화하려는 사람들이 독일 학문 조 직에서 자리롤 차지할 만큼 유능하고 자격을 갖춘 학자로서 인정받아 야 언어학이 제도화될 수 있었다면, 이 조직 내에는 이 새로운 학문에 대해 특별히 호의적인 어떤 특징이 있었을 것이며, 역으로 이 특별한 조직적 환경에서 바교문법이 제도화됨으로써 이후의 인지 발달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은 타당한 일일 것이다. 1 고등교육에 대한 관념과 언어학의 성장 독일에서 언어학이 일찍 제도화된 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독일 대학들에서 일어나고 있던 변화의 결과였다.I) 비교문법 관념체계의 최 초 공식화는 저 유명한 신인문주의 대학 개혁과 때를 같이했다. 1810 년 베를린에 설립된 왕립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학 Fri ed r ich - W i lhelms-Un i vers it a t은 훔볼트 Humboldt, 피 히 테 Fic h te , 슐라이 어 마허 Schle i ermacher 의 이상적 대학상을 구현한 것이었는데 그들 모 두가 그 대학의 설립과 행정에 깊게 관여하고 있었다(훔볼트는 교육 장관으로서, 슐라이어마허는 신학부 학장으로, 피히테는 총장으로). 이 후 베를린은 다른 대학들의 개혁의 모델이 되었다. 보프의 『동사의 활 용 체계 Konj u ga ti onss y s t em 』는 1816 년에 출판되었는데, 그것은 비

1) 독일 대학의 발달과 이념적 토대, 조직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 Charles E. McClelland, Sta te, Socie t y and Univ e rsit y in Germany 1700-1914 (Cambri dg e : Cambri dg e Univ . Press, 1980) ; Fri tz K. Rin g er , The Declin e of the German Mandarin e s: The German Academi c Communit y 1890-1914 (Cambri dg e : Harvard Un ive rsity Press, 1969) ; Fri edrich Paulsen, Di e deuts c hen Univ e rsit iiten und das Univ e rsit iitss tu d iu m (Berlin : Asher, 1902) ; Jos eph Ben-David , The Scie n ti st 's Role in Socie t y (En g le wood Cli ffs: pre nti ce Hall, 1969).

교문법의 첫 업적으로서 그리고 이후의 비교 연구의 원형으로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이 시간적인 우연의 일치 그 자체가 새로운 학문이 대 학 교과과정 속에 포함되는 것을 용이하게 했다 . 기존의 기구들이 오 랫동안 틀에 박힌 기능밖에 하지 못했고 당국자들은 단지 현상 유지 를 하는 데에만 관심을 쏟고 있었던 데 비해, 새로 설립된 조직은 혁 신에 대해서 보다 유연하고 개방적이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 그 러므로 산스크리트어와 비교언어학의 교수직이 처음으로 마련된 것이 새로 설립되었거나 개혁 중에 있는 대학들에서였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산스크리트어 문헌학의 첫 교수직은 그 과목이 창설된 지 꼭 1 년 후인 1819 년에 본 Bonn 대학에 생겼고, 비교언어학 교수직 은 1821 년 베를린 대학에 보프를 위하여 마련되었다. 이미 개혁이 끝 난 뮌헨 대학과 브레슬라우 대학도 산스크리트 문헌학 교수직을 수용 한 선두 그룹에 속했다. 새로운 제도적 장치의 유연성이 신인문주의 대학 개혁을 통해 비교 문법과 산스크리트 문헌학의 제도화를 용이하게 한 유일한 원인은 아 니다. 새로운 분야를 확립으로써 대학 개혁론자들의 이상과 비교문헌 학자들의 이상이 이념적으로 부합되었던 것도 한 원동력이 되었다. 베를린 대학의 창설에 참여했으며 현대 언어학의 창시자인 빌헬름 폰 훔볼트는 학자이면서 정치가로서 이러한 조화를 대표하는 사람이 다. 훔볼트 자신의 언어 연구는 보프와 그 제자들이 한 연구와는 차이 가 있었지만, 훔볼트는 보프와 함께 산스크리트어를 연구하면서 그의 연구를 격려하고, 보프가 베를린 대학에 교수직을 얻는 데 도와 주기 도 했다. 보프의 전기 작가 레프만 S. Le frn ann 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훔볼트는 다론 일들, 죽 그와 바이에른 정부의 관계 및 미래에 대한 그 의 견해 둥에 대해서도 보프와 얘기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10 년 전에, 왕

에 게 중요한 인물 들, 죽 그들 분야에서 가장 훌륭한 교사들 및 대표가 되 는 사람들을 추천하는 <대 변인 〉 으로 등장했던 그가 찬란한 미 래 를 믿어 의심치 않는 학교에 프란츠 보프를 채용하도록 추천했을 것임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보프를 그 중요성에 대하여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표명했던 한 지식과학 분야의 최초이자 최고의 대표자라고 생각했다 . 2)

2) S. Lefin a nn, Franz Bopp , sein Leben, sein e Wi ss enscln ft (Berlin : 1877), pp. 81- 82 .

훔볼트가 베를린 대학에 보프롤 위한 교수직 마련에 직접적으로 관 여했든 않았든 간에, 그의 교육관과 인간의 경험에 있어서 언어의 역 할에 대한 그의 견해는 대학에서의 비교문법 연구를 장려하게 했다. 역사 • 비교언어학의 궁극적인 발달이 훔볼트가 예상한 것과는 멀리 빗나갔지만, 그는 이 새로운 학문은 대학 교육이 연구와 수업을 통해 서 촉진해야 할 문화와 문명의 이해라는 일반적 이상을 반영한다고 믿었다. 훔볼트는 대학의 임무는 개인의 완전하고 자유로운 교양 B i ldun g과 재능을 증진시키는 것이라고 믿었다. 학생은 실용적인 필요성이 있다 거나 외부적인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원만하고 풍요롭고 조화로운 인격을 배양하기 위해서 학문에 전념해야만 했다. 문명이란 의적 제도 및 관습과 이들과 관련된 내적 정서로 나라를 인 문화시키는 것이다. 문화란 여기에다 사회적 조건과 과학, 예술의 순화를 덧붙인다. 그러나 우리가 독일어로 B i /dun g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죽각 더 높고 더 내적인 어떤 것, 즉 조화롭게 감정과 인격에 전달되며 인간의 총체적인 정신적 • 도덕적 노력에 대한 통찰과 감정으로부터 나오는 기질 을 의미하는 것이다. 3)

3) Wi lhel m von Humboldt, Humanis t wit ho ut po rt foli o : An Anth o log y of the

Wr iting of Wi lhe lm van Humboldt, tr. Ma rian ne Cowan

지식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필요성과 스스로 촉발된 탐구에 의해서 얻어지는 결과이어야 한다. 이 탐구 자체가 긍 정적 가치를 지니고 있었고, 그것이 인간 내면의 교양을 개발하는 데 기여하는 한, 지식을 추구하는 것은 지적 • 도덕적 활동이었다. 대학은 학문에 전념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임은 물론 탐구의 자유를 제공해 주 는 기관으로서, 이러한 탐구를 인도하고 촉진해 주어야 했다. 그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은 간단하고 확실하다. 대학은 〈 모든 〉 학생들 의 재능을 조화 있게 개발할 것을 고려해야 하며, 그들의 능력을 가능한 한 적은 대상에만 집중시키고, 가능한 한 철저히 탐구하고, 이해와 지식 과 창의력이 외부 환경에 의해서 조건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학생 자신의 내부의 주도면밀함과 조화와 아름다움으로부터 자극 을 얻도록 모든 자료 롤 학생의 머릿속에 주입시켜야 한다. 이런 식으로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자연히 과학을 택하게 될 것이 다. 준비가 다르면, 이러한 힘과 재능은 그때 그때 또는 너무 때 이르게 실제적인 일에 묻혀 버리게 되어 과학에는 부적합하게 되거나 아니면 보 다 높은 과학적 소명의식 없이 세분화된 지식에 소진하게 될 것이다 .4)

4) Wi lhe lm von Humboldt, Schrift en zur Politi k und zum Bi ld ung s wesen. Werke in fiinf Bii nd en, Vol. IV (Stu ttgart : J. G. Cott a's che Buchhandlung , 1964), p. 2 61 .

대학 교육의 목표는 어떤 기술적 능력이나 기교를 획득하거나, 실용 적, 전문적인 일에서 이용되는 전문화된 지식에 숙달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덕택으로 민족과 국가에 봉사하도록 준바되어진 전인

적이고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개인을 만드는 것이다. 인격 수양으로서의 교육에 대한 이러한 이상은 전통적으로 존중되 어 온 그리스와 라틴의 고대 문화에서부터 새로 부각되는 동양어, 게 르만어, 로만스어 문헌학 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에 대한 연구 를 장려 했다. 아우구스트 뵈크 Aug u st Bockh 의 포괄적 인 방식으로 이해하자면, 문학, 언어, 예술, 종교, 관습, 법률 등의 연구를 통하여 한 민족 Volk 이나 한 공동체의 문화생활을 종합적이고 공감적으로 이 해하려고 애쓴 신안문주의자들에게 문헌학은 이상적인 관심거리였다. 문헌학은 한 문화를 총괄적이고 통일되게 이해할 것을 장려하기 때문 에, 모든 대학생들이 개별적으로 추구하는 동일한 목표들에 이바지할 것이었다. 어느 의미에서, 교양인이 되는 한 방법은 다른 시대와 장소 의 문화를 공부하여 그 지식과 가치를 되살리고 흡수하는 것이다 . 이 것이 바로 문헌학자들이 할 일이었다. 슐레겔에게 있어 문화에 대한 연구가 문화를 향상시킨다는 생각은 인도 문헌학을 개발시킬 필요성을 정당화시켰다. 그리스 고대 문화가 첫 문예부흥에서 했던 것과 똑같은 역할을 산스크리트 문학, 철학, 신 화 등이 할 것이기 때문에, 원래의 고도로 세련된 인도 전통을 발견하 는 것은 유럽에서의 새로운 문예부흥에 대한 자극이 될 것이라고 슐 레겔은 주장했다. 훔볼트가 비교문법을 지지한 것도 그 새로운 방법이 학자들로 하여 금 모든 언어가 그것을 사용하는 나라의 역사적 발달 요인 및 정신적 특징과 상관관계에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준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훔볼트는 언어의 비교 연구가, 언 어는 인간의 지적 능력의 표출이라는 언어에 대한 보편적 본질 및 한 민족의 특별한 정신적 • 지적 상태와 그 민족 언어 사이의 밀접한 관 계를 밝혀 준다고 믿었다.

수많은 민족 들 이 인간의 본성에 의하여 자신 들 아 부여받은 언어의 과 제 를 푸는 다양성에 관한 연구인 비 교 언어학은 언어가 민족 정신의 일반 적 형상과 연결된 논점에서 출 발하지 않을 때 모 든 관심을 잃게 된다. …… 연결된 요소 들 의 그물 속에서 그것(언어)은 민족적 언어 감각의 결 과일 뿐이기 때문에 , 언어 연구에 대하여 앞서 말한 고양된 관점을 가정 하지 않는다면 언어 형성의 핵심과 관련되어 있고 가장 중 요한 언어적 차이가 생겨나게 되는 바로 그 문제들에 대하여 철저하게 답 할 수 없다. 물론 이러한 고양은 사적 고 찰 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 는 언어 비교를 위한 어떤 자료도 주지 못하지만 , 다양한 사실 들 간의 원초적 관계에 대한 유일한 통찰력을 제공하고 언어가 내부적으로 연결된 유기체임을 깨닫게 해 준다 .5 )

5) Wi lhe lm von Humboldt, H umanis t . .., pp. 252-253.

비교언어학이 민족 정서 nati on al e th os 를 이해하는 수단이 될 것이 라고 훔볼트가 기대했다는 것은 그가 그 새로운 학문을 일반 문헌학, 즉 정신적 삶의 통합적 성격을 이해하는 방법과 같은 관점에서 보았 다는 것을 의미했다. 비교문법은 언어와 지성의 관계 혹은 언어와 민 족 정신의 관계와 같은 문제를 후기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처음에는 그 포괄적이면서도 역사적인 방법이 언어를 보편적 인간 행위로 그리 고 각기 특정한 문화나 민족공동체의 특성으로서 연구할 수 있는 가 능성을 제시했다. 보편적이면서도 특수적이라는 언어의 이중적 성격은 독일의 정치적 분열과 관련하여 언어롤 민족 통일, 역사적 연속, 문화 적 정체성의 주요 기준으로 생각한 19 세기 초기의 많은 독일 사상가 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끌었다. 예를 들면, 훔볼트와 슐라이어마허는 대학은 독일 정신을 보존하고 계발해야 하며, 학문 W i ssensc haft의 공 통어로서의 독일어는 독일의 정체성은 물론 모든 과학의 통일성을 보

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댜 6) 분명히 이러한 태도는 역사언어학을 포함 하여 독일어 연구의 발전을 촉진시켰지만, 보다 넓은 의미에서 독일어 와 친족 관계에 있는 언어들을 그들의 역사와 계통론과 함께 연구하 도록 고무했다 보프와 같은 학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일 학자들 이 인구어족의 명칭을 인구어 Indo-Euro p ean 가 아니라 인도-게르마 닉 Indo-Germ ani c 이라고 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6) Germa nist ik und deuts c he Nati on 1806-1848, Lit er atu rwiss enscha ft und Sozia lw i ss enscha ften 2 ed. Jor g Joc hen Mi lller (Stu ttgart : J. B. Metz le r, 1974), pp. 51-58.

신인문주의의 교육철학은, 비교언어학과 여러 분야의 문헌학에 대하 여 특정한 〈이념적〉 지지를 제공한 것 외에도, 비교언어학을 독립적 가치를 지닌 순수한 연구임을 강조함으로써 언어학 발달을 고무했다. 훔볼트는, 진리 그 자체를 위해서 진리를 추구하는 순수학문을 교양인 의 최고 소명이라고 생각했다 . 실용적인 고려에 오염되지 않고, 내적 인 욕구로 학문에 전념하는 것은 대학에서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 모두의 목표라야 했다. 더군다나 학교는 완성된 그리고 공인받은 경험적 지식만을 택하여 가 르치기 때문에, 학문울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항상 연구 상태로 남아 있는 문제로 다루는 것이 우리 고동 연구기관의 특수성이다 . 따라서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의 관계는 과거와는 전혀 다르다 . 전자는 더 이상 후자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둘 다 학문을 위하여 존재한 다 .7 )

7) Humboldt, Sch riften ..., p. 256.

순수학문을 이렇게 강조함으로써 언어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자 연과학과 인문학의 모든 종류의 연구가 활발하게 되었다. 그러나 19 세

기 초까지 언어 연구 는 일반적으 로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생각됐기 때문에, 이것은 언어학에 특별히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 언어가 문학 이나 종교, 역사를 연구하기 위하여 숙달해야 하 는 단순한 기술이 아 니라 언어 자체가 연구 대상일 때에도 , 독립적인 문제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우선적으로는 규범적 또는 교육적 목적에서 검토하는 것이 보 통이었다 보프는 그의 『비교문법 Vergl e ic h ende Gramma ti k 』 의 서 론에서, 언어의 문법적 유기성과 언어의 역사가 독립적 연구의 목적임 을 주장함으로써, 언어에 대한 그의 접근법을 보다 전통적인 방법과 구별했댜 〈이 연구에서 조사된 언어들은 그것들 자체를 위해서, 즉 연구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연구 목적으로서 조사된 것이다. 우리는 그 것들을 가르치는 실질적 수단을 제시하기보다는 그것들의 물리적 현 상이나 생리적 기능을 제시하려고 한댜〉 8) 보프가 순수한 언어학 방법 의 독립적 가치를 주장한 것은 진정한 과학은 본래가 가치 있는 것이 며 외적 • 실용적인 정당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그의 신념과 일치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신념이 신인문주의자들의 정론이었지만 , 결코 보편적으로 공통된 견해는 아니었고, 실용성이나 전통적 정당성을 주 장할 수 없었던 새로운 학문의 발달을 위해서 이러한 신념이 실제로 중요하다는 것은 보프 자신의 경력이 설명해 주고 있다.

8) Franz Bopp , Vergl e ic h ende Grammati k (Berlin , 1833), p. XIll.

보프가 파리에서 런던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바이에른의 한 대학에 서 동양어나 산스크리트어 교수자리를 얻기를 희망했다 . 그러나 산스 크리트어가 학생들에게 아무런 홍미가 없는 〈문학적 사치 〉 라는 이유 로, 그는 강력한 신학부를 가진 전통적인 카톨릭 대학 뷔르츠부르크 W tir zbur g에서 교수자리를 거부당했다. 그 대학은 이미 히브리어와 칼데아어, 시리아어, 아랍어 등을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에, 산스크리트 어를 가르칠 사람은, 수강할 학생들이 없으므로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

댜 9) 보프를 심사하는 교수부가 사용한 기준은 그의 연구 가치나 학문 에 기여하는 잠재력과 는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 . 오히려 대학의 임무가 우선적으로 가르치는 것이라고 볼 때, 이러한 맥락에서 손님(학생)이 없을 수 있다는 것과 신학에 산스크리트어 연구가 무용지물이라는 것 은 결정적인 것이었다 .

9) F. Babbin g e r, Ot hm ar Frank(l770- 18 48), Ein Beit rag zur Gesch ich te der Morge nland isc hen Stu dien in Baye rn, Zeit sc hrift fiir Baye ri sc he Landesg e schic h te , Vol. 22, Heft I (19 59), pp.7 7 -123, p.11 2.

뷔르츠부르크 교수부가 대학의 임무에 대한 전통적 신념을 반영한 것과 꼭 마찬가지로, 이러한 거부에 대한 보프의 반응은 학문의 목적 에 대한 〈 현대적〉 견해의 특성을 잘 나타내었다. 보프는 뷔르츠부르크 교수부가 사용한 기준에 대해서 아주 조소적이었다. 〈이 신사들은 식 탁에 빵을 가져다 주는 것만을 가르치기를 원할 뿐이다.……〉 10) 분명 히 언어학은 빵을 제공할 수 없고, 학문에 대한 관심은 실용적인 배려 가 아니라 오직 이상에만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 보프에게 있어 서는 거의 자존심의 문제였다. 그의 태도는 베를린에 있는 프러시아 개혁자들과 일치했지만 뷔르츠부르크에 있는 전통적 교수단에게는 별 중요성이 없었다.

10) Left ma nn, p. 73.

순수 연구에 대한 가치를 인정해 준 것이 독일 언어학을 제도화하 는 데 있어서 실제로 어느 정도의 역할을 했는가는 평가하기 힘들지 만, 프랑스에서는 보다 실용적인 태도가 받아들여졌으나 프랑스 실용 주의가 비교언어학이나 산스크리트 문헌학의 발달을 촉진시키지는 못 했다는 지적이 있다 . 슐라이어마허와 피히테, 훔볼트와 같은 독일 학 자들은 순수학문을 장려한 반면, 프랑스에서 아마도 가장 영향력 있는 동양어학자였던 실베스트르 드 사시 Sil v estr e de Sac y는 보프에게, 아랍어의 신학적 중요성이 그에게 유용하고도 성공적인 학문적 경력

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가 아랍어 연구로 주의를 돌릴 것을 제안하는 편지를 썼다 . 당신이 이 분야의 문학에만 전념할 수 없다는 것은 치욕스런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산스크리트어는 큰 대학들을 제외하고는 일반 교육 과 목일 수가 없습니다. 산스크리트어와 고전 및 신학 연구의 관계가 산스크 리트어가 대학의 필수 과목이 될 것을 바랄 만큼 직접적은 아닙니다. 따 라서 당신은 당신이나 지식인 세계의 만족을 위하여 산스크리트어를 계 속 연마하는 한편, 당신 스스로 계속 실력을 향상시켜 왔고 당신 제자들 을 견실하게 교육시킬 만큼 충분한 진전을 보여 온 아랍어를 가르치는 일에 몰두함으로써, 절대적으로 당신 나라의 젊은이들을 위해서 당신의 재능을 보다 유용하게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독일 대학에서는 아랍어를 수박 겉 핥기 식으로 배우는 데다 이 과목에 대한 견실하고 체계적인 연 구의 부족으로 많은 문헌학자들이 성경의 주해에 그것을 잘못 사용하기 때문에, 계몽의 원천이 되어야 하는 것이 그렇게 되지 못하고 때로는 우 스꽝스러우면서도 언제나 부끄러운 오류와 실수의 원인이 되는 것을 자 주 목격했기 때문에 나는 의도적으로 〈견실한 교육〉이라고 말합니다. 그 래서 신학을 전공하는 젊은이들이 이 언어의 피상적인 지식에 만족해서 는 안 될 것입니다 .11)

11) 같은 책, p. 131*.

사시의 편지는 아무런 독립된 생계 수단을 얻지 못한 젊은 학자에 게 주는 좋은 현실적인 충고로 단순하게 해석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사시는 보프, 그리고 훔볼트와 같은 보프의 지지자의 가설과는 정반대 되는 가설을 세우고 있다. 사시는 언어 연구를 문학(과 특히 종교) 텍 스트에 접근하는 수단으로만 생각했다. 아랍어 지식은 성경의 주해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유용했다. 사시는 언어 자체를 연구 대상으

로 고려한 적도 없었고, 단지 언어를 배운다는 것에 가치를 두지도 않 았다. 둘째로, 사시는, 대학은 우선적으로 가르치는 기관이며, 대학의 책임은 견실하고 유용한 지식을 전수하고 특수한 기술을 가르치는 것 이라는 견해에 동의했다 . 연구는 개인적 만족의 근원일 수도 있고 다 른 학자들에게는 흥미로울 수 있지만, 대학에서 가르치는 사람의 임무 는 전문적 직업을 위하여 학생들을 훈련시키는 것이었다. 사시와 보프의 견해 차이는 그들 각자의 나라에서 고등교육에 대해 널리 퍼져 있던 철학 사이의 보다 일반적인 차이와 일치한다 . 독일에 서는 신인문주의자들이 교육의 이상을 교양과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것으로 발전시킨 반면, 프랑스에서는 혁명 후 잇따른 정부들이 고등교 육을 직업훈련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했다. 고등교육은 주로 광범위 한 학문이나 연구를 중진하는 데보다는 주로 의사, 변호사, 약제사, 기 술자, 관리, 성직자, 교사 등 전문직과 기술직을 훈련하는 데에 기여하 도록 되어 있었다. 교육이 전문직 훈련이라는 견해는, 어떤 전문 분야와 직접적으로 관 계가 없었던 분야의 지식은 고등교육기관에서는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인문학의 발달은 아주 직접적으로 이러한 정 책에 의해서 영향을 받았다. 자연과학은 사회적, 경제적 발전을 증진 시키는 데 도구적으로 생각되었으며, 특히 나폴레옹의 통치 시기에는 국민과 정부의 지지롤 받았다. 1800 년 무렵에 프랑스 과학자들이 수 행한 수학과 물리학, 화학, 생물학의 연구가 실제 적용과는 거리가 멀 었지만, 뉴턴 과학에 대한 숭배와 전문기술자에 의한 통치 이상에 대 한 존경은 과학이 독립된 전문직으로 다루어지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과학자들은 기능대학 Ecole Pol yt ec hniq ue 과 같은 전문 직업학교에서 과학 교육의 필요성을 충족시켜 주는 외에도, 그들의 전문화 훈련과 도제 연한울 마치자마자, 측량국 Bureau des Long itud es, 천문대 l'Ob servato i r e, 자연사 박물관 Museum of Natu ral Hi s t o ry과 같은

정부기관에 연구원으로 고용되었다 . 조셉 밴 데이비 드 J ose p h Ben- Dav i d 와 모리 스 크로스 랜드 Mauric e Crosland 는 19 세 기 초 몇 십 년 간 프랑스에서 자연과학이 급속한 성장을 하게 된 것은 이러한 과학 계 직업의 전문화였다고 주장했댜 1 2 ) 그러나 인문학(문학, 고전어와 현 대어, 역사, 철학)은 창의적 연구를 추구하여,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응용할 수 있는 실증과학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비전문 적인 인문학의 위상은 한 제국대학을 위한 나폴레옹의 계획에 반영되 었는데, 그 대학에서 인문학부fa cul t e des le tt res 는 주로 중등학교 학생들의 시험을 책임지게 되어 있었다. 황제의 견해로는 대부분의 인 문학 교육은 중등학교에서 끝나야 하는 것이었다 .1 3) 정부가 때로 인문 학 연구를 지원했더라도(이집트 탐사의 경우와 같이), 자연과학의 방 법과 목표를 문학 belles-le ttr es 의 그것과 엄격히 구별하면서 교육의 목적은 학생들에게 특수 직업에 대한 준비를 시키는 것이라는 신념이 팽배했던 것은, 프랑스에서 인문학 연구가 전문직이나 고등교육의 기 본적 요소로 간주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12) Ben-David , Sc ien ti st' s Role, chapt er 6 ; Mau rice Crosland, The Developm ent of Profe s sio n al Career in France, in Mau rice Crosland, ed. The Emerge nce of Sc ien ce in Weste m Europ e (New York : Scie n ce Histo r y Publi ca ti on s, 1975), pp. 139-160. 13) Lou is Lia r d, L'enseig ne ment sup e rie u r en France 1789-1893 (Pa ris : Coli n, 1894), Vol. II, Chap ter s I-III .

2 가르치고 연구하는 기관 프랑스와 독일에서의 고등교육에 대한 서로 다른 철학은 고등교육 과 그 연구기관의 조직 방식에 반영되었다. 이런 식으로 이념적 차이 는 이 두 나라에서 언어학의 발달에 즉각적이고 실제적인 영향을 끼

쳤댜 벤 데이비드가 19 세기 후반에 프랑스 자연과학이 비교적 쇠퇴하 게 된 (독일에서는 성공했던 것과 비교해서) 원인으로 간주했던 조건 들은, 19 세기 초기 인문학과 대비되는 경우에서 먼저 발견할 수 있 댜 H ) 독일에서 1850 년 이후 자연과학이 발달한 것은 고전과 독일 문 헌학 분야, 부차적으로는 산스크리트어와 비교언어학과 같은 분야를 위해 처음 수립됐던 대학의 패턴을 따른 것이었던 반면, 프랑스에서 같은 시기에 자연과학이 비교적 쇠퇴한 것은 일찍이 인문학 연구의 발달을 저해했던 바로 그 조직적 결함 때문아었다.

14) Ben-David , Scie n ti st' s Role, ch. 6.

프랑스에서는 고등교육과 직업훈련을 동일시함으로써, 많은 직업전 문학교를 만드는 교육제도가 생기게 되었다. 관리, 기술자, 행정가를 위해서는 기능대학, 토목대학 Ecole des Pants et Chaussees, 광업대 학 Ecole des M i nes 이 있었고, 중등학교 교사를 위해서는 고등사범학 교 Ecole Normale Su p e ri eur 가 있었다. 한편 대학은 법 학부, 의 학부, 약학부가 우위를 차지했다 . 식민지 통치를 위해서 고용할 통역자를 훈 련시 킬 동양어 전문학교 Ecole Sp ec ia le des Lang u es Or ien ta l es V i van t es 도 있었댜 이 학교가 실용적 임무에 전념 했고, 현존 언어 livi n g lan g ua g es 에만 교육을 한정했다는 사실은 이 학교가 비교언어 학이나 산스크리트 문헌학 발달에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음을 의 미했다 그곳의 몇몇 교수들과 기관장들(사시와 랑글레 Lang les, 훨씬 뒤에는 메이예A. Meil let 등)은 프랑스의 언어학 발달에 중요한 공헌 을 했지만, 행정가가 되려는 학생들에게 현용 언어들을 가르치는 이 대 학에서의 그들의 위치는 보통 콜레주 드 프랑스나 소르본 Sorbonne 혹 은 더 이후에 고등전문학교 Ecole Pratiq u e des Haute s E tu des 에서 그들이 차지했던 교수직보다 낮은 자리였다. 이러한 직업학교들의 맥락에서, 대학 인문학부의 기능은 아주 불분 명했다 . 그들은 대학입학자격시험 baccalaurea t을 치르는 고등학생들

울 심사하고, 학위 lice nse 및 교사자격 시 험 a gr eg a tio n 을 시 행 하여 중 등교사들을 인증하고, 대학에서 가르치는 데 필요한 국가박사 doc t oral d'e tat를 포함한 학위들을 수여했다. 그러나 학부 교수들, 특히 파리 밖에 있는 대학의 교수들이 반드시 연구에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지 방에서 학부는 때로 근처에 있는 고등학교 ly cee 의 원로 교수들로 구 성되었고, 파리에서는 당초에 고등학교는 물론 콜레주 드 프랑스나 과 학기술대학의 교수들로 구성되었다. 미개척 연구를 했던 그 교수들까 지도 통상적으로 전문 과목들을 가르치지 않았다. 학생들은 대개 독자 적으로 학위룰 위한 시험 준비를 했고, 시험 바로 전에 대학에 등록을 하였으며, 학부 교수들의 강의를 듣는 사람들은 모두가 학구적인 사람 들만은 아닌 다양한 종류의 대중들이었다. 문학부 교수들은 고등학교 교사들의 양성을 담당했기 때문에, 중등 학교 교과과정에 들어가지 않는 과목들은 일반적으로 대학에서 가르 치지 않았다. 교과과정에 대한 같은 제약이 교사 준비를 전담하는 고 둥사범학교에도 있었다 .1 5) 산스크리트 문헌학이나 비교문법과 같은 비 전통적이며 〈이국적 exo ti c 〉인 분야들은 중등학교 교과목이 될 가능성 이 없었기 때문에, 대학 교과과정에 포함되지 않았다 . 소르본 대학이 1852 년에야 확실하게 비교문법의 첫 교수직 (샤를 베누아 아즈 Charles Benoit Hase 를 위한)을 받아들였지만, 이것이 프랑스에서 이 후에도 오랫동안 비교문법이나 산스크리트 문헌학 교수자리가 있었던 유일한 대학이었고, 새로운 자리가 만들어질 희망도 거의 있을 수가 없었다. 아주 대조적으로, 광범위하고 학구적인 교양으로서의 교육 및 순수 학문의 추구라는 독일적 이상은 철학부의 발전을 증진시켰다. 프랑스

15) Terr y N. Clark, Prop h ets and Patr on s : The French Univ e rsit y and the Emerge n ce of the Soci al Sc ien ces (Cambri dge: Harvard Un iv. Press, 1973) ch. I.

의 인문학부와 마찬가지로, 독일 대학에서도 실제로는 철학부가 기본 적으로 교사 양성을 전담했지만, 그들의 교육에 대한 다른 이상은, 이 러한 칙업 훈련이 학문적 가치와 연구 윤리의 전수에 항상 부차적이 었음을 의미했댜 따라서, 철학부의 교육 조직은 완전히 학자를 양성하는 방향으로 되어 있었다 . 문헌학자, 사학자, 수학자, 물리학자 모두는 강의와 세미나에서 자기들 앞에 미래의 학자들, 미래의 교수들만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 들은 대개 실제로 그들 청중의 대다수가 교직이라는 실용직에 종사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한다. 혹은 오히려 그들은 이 사실을 간과하는 * 것이 아니라, 교사라는 직업에 있어서는 참된 학자의 교양 있는 자세보다 더 중요한 게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 16)

16) F. Paulsen, Wesen und ges chi ch tl ich e Entw ick lung der deuts c hen U ni vers i댜te n, in W. Lex. is, ed. Di e deuts c hen Univ e rsit ate n , Vol. I (Ber 恥 : Asher, 1893), p. 40.

따라서 프랑스 문학부는 프랑스 고등교육제도에서 주변적이었지만, 독일 대학에서 철학부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발전 및 교양 계급의 교육을 책임진 중심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 독일에서 하위 학부의 중 요성이 증가되었다는 것은 학생들의 등록에서 반영되었다. 19 세기의 중반에 학생들의 전체 숫자는 고정적이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철 학부에 등록한 학생은 그 기간에 거의 두 배가 되었다 (1831 년에 2395 명에서 1866 년에는 4392 명으로 ).17) 철학부 자체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에 훨씬 다양한 학문을 가르치 게 되었지만, 그 외에도 대학이 광범위한 인문학 교육을 제공해야 하

17) J. Conrad, Allge m ein e Sta tist i k der deuts c hen Un ive rsita t en , Lexi s, p. 121.

며 학문적 가치를 주입시켜야 한다는 신념은, 실용성을 내세울 수 없 는 주변적이고 난해한 분야도 교과과정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댜 1860 년대까지 전체적안 학생 인구가 현저하게 늘어나지 않았기 때 문에, 대학과 정부 양쪽 모두 새로운 교수자리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 지만, 비전통 과목의 영역에 교수자리를 추가할 가능성에 대해서 반론 이 없었고, 산스크리트 연구와, 동양 문헌학, 비교문법의 경우는 분명 히 유리해졌다. 보프가 사망한 1867 년에 이르러는 대부분의 독일 대 학에 이 분야의 교수직이 설치되어 있었다(프라이부르크 Fre i bur g, 기 센 Gi es sen, 뮌스터 Munste r , 로스토크 Ros t ock 는 예외 ). 독일어 문헌 학에 16 자리, 로만스어 문헌학에 7 자리였는데, 대부분이 비교언어학이 나 역사언어학에서 적어도 얼마간의 연구를 했던 학자들로 채워졌다 . 아마도 프랑스와 독일의 과학 조직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가르치는 것과, 연구 전문직 패턴 사이의 관계와 관련된 것이었다. 이상적 신인 문주의 대학에서는 학문의 가치를 지식의 습득만큼이나 발견 과정에 도 두기 때문에, 가르치는 것과 연구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더 군다나 가르치는 것은 바로 그 본질상 새로운 발견으로 이끌 수 있는 상호작용의 과정으로 간주될 수 있었다. 배우는 과정은 확실히 수많은 정력적이고 기운찬 젊은 두뇌가 할동하 는 대학에서 더 빠르고 더 활기 있다. 아무튼, 지식으로서의 지식은 독립 적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는 제대로 제시될 수 없고, 수많은 발견이 그러한 직접적인 상호작용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면 이해 될 수도 없을 것이다 .18) 동일한 제도적 환경 내에서 이와 같이 연구와 교육을 통합한 것은

18) Humboldt, Humanis t . .. , p. 138.

새로운 학생들에게의 직접적이고 지속적인 지식의 전수 및 미래의 학 자를 위한 실용적인 연구 도제제도 a pp ren ti cesh ip를 고려한 것일 뿐 아니라, 독특한 유형의 학술 전문직 설치에 대비한 것이기도 했다. 학 자의 도제 생활은 흔히는 여러 대학의 순방 연구로부터 시작되었다. 강의를 듣는 외에도 학생들은 일정한 분야에서 교습과 연구에 종사하 는 선임학자들과 직접적인 접촉을 할 수 있는 세미나 연습과 발표에 참여할 수 있었다. 19 세기 후반까지 비교문법을 위한 별도의 세미나는 없었지만, 19 세기를 통해 고전학에서 연속적으로 개최되었던, 세미나 에, 그리고 나중에는 게르만어, 로만스어, 영어 문헌학의 세미나에도 많은 비교 • 역사언어학 연구가 포함되었다. 게오르그 쿠르티우스의 〈문법학회 Grammati sc he Gesellsc haft〉는 라이프치히에서 1876 년에 만들어졌는데, 이는 최초의 진정한 언어학 세미나로서의 기능을 하며, 당시의 가장 뛰어난 언어학자들 여러 명을 양성하고, 신문법학파에게 본거지를 제공함으로써, 라이프치히에서 비교문법이 성공할 수 있게 했다. 세미나 활동은 학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학술 전문직에 임 용되기 전에 요구되는 두 개의 창의적 연구 중의 첫번째인 박사학위 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 두 번째인 교수 자격 취득은 젊은 학 자가 무급 강사 Pr i va t dozen t로서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할 수 있게 하며, 계속적인 연구 작업은 그가 임시 교수로 그리고 나중에 정식 교 수로 임용되는 근거가 된다 이상적으로 볼 때, 대학의 경력 사다리 위의 연속적인 각 단계는 각 학술직의 지원자가 만들어 내고 동료들 이 평가하는 학문의 기여도에 의존하는 것이므로, 연구는 교습 및 지 식의 전수와 밀접하게 연관된 직업적 필수 요건이 되어야 했다. 산스크리트어 문헌학과 비교언어학의 교수자리가 본과 베를린에서 일단 생겨난 후, 문헌학이나 비교언어학 주제에 대한 논문을 쓴 보프 와 슐레겔의 제자들은 마침내 독일 대학에서 특별한 직책을 맡기 전 에 〈대학 강사들〉로서 가르치기를 기대할 수 있었다. 보프와 슐레겔은

독일의 새로운 세대의 산스크리트어 학자와 비교언어학자들을 교육시 켰는데, 슐레겔의 제자 가운데는 포트 , 슐라이허, 쿠르티우스와 같은 미래의 비교언어학자들이 있었다. 보프는 인기 있는 강사도 아니었고 그의 과목은 매학기 몇 명의 수강생밖에 없었지만 이 학생들 중에서 많은 미래의 산스크리트어 교수와 비교문법 교수가 배출되었다 . 이들 가운데에는 포트 (할레 대학), 뤼케르트 Rli ck ert (에를랑겐 대학), 볼 렌 Bohlen (쾨니히스베르크 대학), 슈텐출러 Ste n zler (브레슬라우 대 학), 호퍼 Hofe r (그라이프스발트 대학), 쿠르티우스 (라이프치히 대학), 아우프레히트 Au fr ech t와 프라이타크 Fre ytag(본 대학), 델브뤼크 Delbrt ick (예나 대학), 에벨 Ebel 과 베버 A. Weber (베를린 대학), 그 리고 브레알 Breal 과 휘트니 Whitne y 같은 외국인도 있었다. 이렇게 보프와 슐레겔의 제자들이 자신들의 연구 수행뿐 아니라 새로운 세대 의 언어학자들을 양성함으로써 언어학 연구에 기여했던 까닭에 비교 문법은 지속될 수 있었다. 신문법학자들 , 예를 들어, 독일 비교문법학자들의 제 3 세대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대부분이 슐라이허 (예나 대학에서)와 쿠르티우스(라 이프치히 대학에서)의 제자들이었다. 아마도 교습과 연구를 조직화된 학술 전문직과 결합시킨 데서 온 장점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 은 독일 교수들의 이러한 학자적 계보에서인 것 같다. 독립된 20 개 대학이 서로 종종 경쟁 관계를 이루며 공존했다는 사 실은 이러한 학술 전문직 패턴이 일정한 분야에 있는 많은 학자들에 게 호기를 제공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학교들간의 그러한 경쟁은 산스 크리트어와 비교문헌학의 새로운 교수직을 개설하는 데에도 한몫을 담당했다는 증거가 있다. 1819 년에 뷔르츠부르크에 있는 산스크리토어 교수직에 보프롤 추천했던 사람들은 본에도 그러한 자리가 있었다는 것을 증거로 들었다 .19) 그들은 또, 보프가 그의 고향 바이에른에서 자 리를 얻으려는 희망을 포기한 지 몇 년 후에, 뮌헨에 새로 생긴 대학

에도 모든 〈큰 대학과 마찬가지로〉 동양어-특히 산스크리트어 -교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20) 마찬가지로 그라이프스발트의 철학부장은 1835 년 비교언어학 교수직을 개설할 것을 주장했다.

19) Ste fanie Seid e l-Vollmann, Di e romanis c he Phil o log ie an der Univ e rsit at M iinc hen (1826-1913)(Berlin : Duncker & Humblot, 1977), pp. 12 0-21. 20) 같은 책, p. 123.

훔볼트와 보프, 그리고 그 의 사람들의 연구 업적으로 인해서 언어에 대한 비교 연구는 독립적인 학문의 위치를 얻기 시작하고, 인도-게르만어 를 기초로 한 분야에서까지도 언어과학이라는 명칭에 손색없게 되어, 이 과목을 위한 별개의 교육직이 모든 프러시아 대학과 대부분의 독일 대학 에 개설되었으나 우리 그라이프스발트 대학만이, 이러한 교수직이 없는 유일한, 혹은 거의 유일한 대학이 되었다 .2 1)

21) Fests c hrift zur 500-Ja h rf eie r der Un i vers it성t Greifs w ald(Greif sw ald 1956), vol. II, p. 235.

비교언어학이 독립된 학문이라거나 혹은 대부분의 독일 대학에서 별도의 교수가 그 학문을 다루었다고 1835 년에 주장한 것은 분명히 시기상조이긴 했지만, 쇼만 Schomann 이 호소한 바로 그 형식은 다른 대학들과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는 경쟁심과 열망이 새로운 분야의 교 수직 개설에 대한 강한 논거로 간주됐음을 말해 준다. 상급 과정이 창의적 연구와 결합된 유일한 프랑스의 기관으로는 거 능대학이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프랑스 교육제도는 교육과 연구를 밀 접하게 연계시키지 않았으며, 인문 분야의 교수직에 나갈 수 있는 기 회는 극히 한정돼 있었다 . 인문학부 교수들은 상급 과정에 전념하지 못했으며, 교수직에 필수 조건인 국가박사 학위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연구는 종종 후보생이 고동학교에서 가르치면서 하는 것이 보통이었

댜 19 세기 내내 사실상 대학에 초급 교수직이 없었기 때문에 (대리 강사 sup p lron t로서 원로 교수를 대신하지 않는다면) 오랫동안 고등학 교에서 가르치다가 본격적인 교습이나 독립적인 연구보다는 심사와 시험을 주로 맡는 지방 대학에 임명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소르본이나 콜레주에 빈 자리를 기다린다는 것은 평생이 걸리는 일일 수 있었다. 인문 분야, 특히 산스크리트 문헌학이나 비교문법과 같은 고등학교 교과에 없는 분야의 연구에 가장 많은 기회를 제공했던 것이 이 후자 의 교육기관이었다. 그러나 콜레주 드 프랑스는 그들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은 몇몇의 뛰어난 학자들만을 고용하는 엘리트 기관이었다. 초 급 교수직이나 정규 학생도 없었다. 어떤 상급 과정은 콜레주 교수들 이 이끌어 갔지만, 강의는 대중에게 공개되었고, 입학 시험도 없었으 며, 학위나 증서도 수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콜레주에서 공부하는 것은 정규 교육에 대한 바공식적인 보완일 뿐이고 학문 세계로 가는 형식 적인 통과의례였다 .22) 소장 학자는 콜레주의 교수와 공동 연구를 할 수 있었지만, 자신의 경력을 쌓기 위해서는 시험을 통과해야만 했고, 1880 년대 이전에는 전공이나 상급 과정이 거의 없었던 학부에 제출할 논문을 써야만 했다.

22) Clark, pp. 51-55.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레주 드 프랑스는 프랑스에서 동양어 연구의 초기 발달에 기여를 했다. 이 대학에는 1806 년 이래로 당초 사시가 맡았던 페르시아어 강좌가 있었고, 1814 년에는 유럽에서는 그런 종류 로 첫번째인 산스크리트어 특강을 쉐지 Chez y에게 맡겼다. 쉐지와 사 시는 다 같이 많은 유럽 학자들에게 동양어들을 가르쳤지만 그 가운 데 프랑스 사람은 거의 없었으며 리아르 L i ard 는 〈동양어 과목들에는 거의 사람이 없었다〉고 보고했다 .23) 빈디쉬 W i n di sch 의 말에 의하면 콜레주에서 쉐지의 후임인 외젠 뷔르누프 Eu g ene Burnou f도 마찬가

23) Lia r d, p. 63.

지로 학생이 없어서 괴로워했다고 한댜 뷔르누프의 강의가 유명한데도, 프랑스에서 학생이 그렇게 적었다는 것 은 그의 학문적 중요성에 비추어 보아 주목할 만하다. 1851 년 2 월에 그 의 조카 에밀 뷔르누프 E mil e Burnou f에게 쓴 편지에서 그는 거의 의국 인들에게만 말을 하기 때문에 슐레겔의 바가바드 기타 Bha g avad- gita에 대한 설명에 더 많은 프랑스인들이 경청했으면 하고 바란다고 썼다. 그 이유는 아마도 파리 밖의 전 프랑스에 산스크리트어 교수직이 없었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 24)

24) Ernst Wi nd isc h, Geschic h te der Sanskri t-ph il olo g ie und ind is c hen Alte rtu m skunde (Str as sburg : Tri .ibn er, 1917), part I, p. 1 47.

프랑스의 산스크리트어 학자들이 부딪친 어려움은 적어도 일부는 고등교육제도 때문이었는데, 이 제도로 인해서 콜레주와 소르본에서 일단 산스크리트어나 비교문법의 자리가 생긴 이후 19 세기 동안 이러 한 자리가 새로 생길 가능성은 사실상 배제되었다. 언어학이나 산스크 리트어에 상급 학술직 수는 아주 적었고, 한 학자가 여러 학교에서 많 은 교수직을 맡도록 허용되어 있는 관행에 의해서 더 줄어들었다. 브 레알은 콜레주와 소르본, 고등전문학교에서 가르쳤고, 메이예도 동양 어학교에서 가르쳤댜 게다가, 연구와 교육을 필요로 하는 자리에 젊 은 언어학자들이 고용될 기회도 없었고, 자신들의 주요 관심 분야가 고등학교 표준 교과과정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학자들이 종사할 만한 확립된 전문직 패턴도 없었다. 콜레주에서 강의롤 듣는다는 것은­ 탁월한 학자들이 강의를 한다고 하더라도―~전문직에 대한 준비로 생각될 수 없었다. 연구는 전문직과는 별도로 사적으로 행해지는 것으 로 생각됐으며, 교습과 연구 및 전문직 사이의 이러한 분리가 프랑스 에서 언어학이 지속적으로 발달하는 것을 가로막았다.

프랑스 교육제도를 비판하는 프랑스 학자들 가운데 독일 대학과 독 일 학문에 정통한 동양어학자들과 비교문법학자들이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댜 뷔르누프와 브레알은 독일에서 공부했고, 브레알 과 르낭 Ernest Renan 은 프랑스 대학의 단점 에 대해서 광범 위하게 글을 썼다. 그들은 〈고등교육문제연구희 Socie t e po ur l'etu d e des qu esti on s d'enseig ne ment sup er i eur 〉의 회원으로 다른 학자들과 함께 대체적으로 독일 모델을 본뜬 〈대학 설립과 조직 계획〉의 초안 을 작성하기도 했다 . 25)

25) Lia r d, pp. 341, 494 ; Mich el Breal, Qu elqu es mots sur !'ins tr uc ti on pu bliq u e en France (Pa ris : Hachett e, 1872) esp. Les Faculte s , pp. 327-401 ; and Claude Dige on, La Cri se allemande de la pe nsee fran i;: aise (18 70-1914) (Pa ris : PUF, 1959).

브레알도 프랑스에서 언어 연구의 중심이 될 기관의 조직에 참여했 고, 고등전문학교 제 4 부(문헌학 및 역사학)의 첫 책임자가 되었다. 이 학교는 고급 과정 의 교육과 창의 적 연구를 위 한 장소로서 1868 년 설 립되었다. 언어학을 포함한 다양한 문헌학 분야에 원로 교수를 둔 외 에도 많은 초급 교수자리가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 대학 제도의 주요 한 단점들에서 오는 결과를 개선할 수 있었다. 이 학교는 20 세기 초 까지도 언어학의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는데, 브레알, 소쉬르, 메이예, 베르게뉴 Ber gaig ne, 레비 Levi, 다름스테테 Darmeste t e r , 마 르티네 M artine t, 방브니스트 Benve nis t e, 방드리에 Ven dry es 는 모두 여기서 가르쳤거나 연구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20 세기 초에 이르러 서도 프랑스와 독일 대학에서의 산스크리트어 연구와 인구어 언어학 박사논문의 수를 비교해 보면 적어도 생산성 면에서 독일이 우세하다 는 것을 알 수 있다. 1906 년과 1909 년 사이에 독일에서는 인도어 연 구 영역에서 프랑스 논문이 단 1 개였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15 개의 논 문이 나왔으며, 인구어 언어학에서는 하이델베르크와 괴팅겐, 할레, 브

레슬라우, 마르부르크, 뮌스터, 슈트라스부르크 등의 세미나에서 10 개 의 논문이 나온 것과 대조적으로 프랑스에서는 고등전문학교에서 쓰 여진 단 한 편의 논문이 있었을 뿐이었다 . 26)

26) Ferdin a nd Lot, Di plo mes d'etu d es et dis s erta tion s ina ug ura te s . Etud e de sta tist i qu e comp are e (Pa ris, 1910), p. 28.

3 언어학과 문헌학: 제도화의 양식 프랑스 교육제도와 비교해서, 독일 대학들은 인구어 언어학의 발달 에 유리한 조직적 • 이념적 환경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 안에 서도 새로운 연구 영역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과학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권한 범위를 획정하려는 비교문법학자들의 시도가 반대에 부딪 쳤다. 비교문법의 관념체계와 신인문주의자의 교육철학이 원래 양립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독일 대학들의 철학부가 인구언어학 과 같은 분야에 제도화의 기회를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언어학이 대 학 교과과정의 일부가 되고 정당한 연구 영역이 되는 과정에 아무런 마찰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 반대의 근원과 성격을 보면, 그 원 인들은 인지적인 것은 물론 제도적인 것이었으며, 또한 그 연구자들에 의한 새로운 방법의 가치 및 과학적 타당성에 대한 시비는 19 세기 초 반 대학에서의 세력 구성 형태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역 으로, 이러한 반대에 대한 비교문법학자들의 반응과 그것을 중립화하 거나 극복하기 위하여 사용한 전략은 언어학자들이 비교문법과 다른 학문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방식-그들이 그 분야의 권한 범위, 자 율성의 정도, 비교문법이 문헌학 연구의 다른 영역에서 하는 역할 등 을 결정짓는 방식一~에 영향을 미쳤다. 비교문법에 대한 반대는 철학부 내의 강력한 집단인 고전문헌학자

들로부터 나왔댜 그들은 수적으로 학부에서 가장 큰 분과 집단을 이 루고 있었을 뿐더러, 신인문주의 철학 neo 一 human i s t p h i loso ph y에 의하면 고전문헌학은 대학 교육의 심장부에 있었다. 동시에 고전주의 자들은 내부적으로는 갈라져 있었다 . 그들 분야의 위상을 현학적 교육 의 잔재가 아닌 과학적 작업인 것으로 방어하면서, 고전주의자들은 지 속적으로 방법론적 주장과 고전 연구의 과제와 목표에 대한 논쟁에 참여했다. 독일 대학에서의 〈연구 준칙 research imp era ti ve 〉의 기원 을 논하면서 터너 S.Turner 는 다음과 같이 썼다. 문헌학의 방법에 대한 끝없는 전쟁은 전문적 정당성에 대한 경쟁, 태동 하고 있는 한 전문 과학의 적절한 목적을 획정하기 위한 투쟁으로 보인 다. 기선을 잡기 위한 과정에서 나타나는 특징인 정당성과 기초에 대한 새삼스러운 관심은 그들의 학문을 신학, 교육학, 철학으로부터 제도적 • 철 학적으로 독립시키려는 문헌학자들의 노력에서, 그리고 해석학과 방법에 그들이 몰두하는 데서 나타났다.'!I)

업) Ste v en Turner, The Prussia n Profe s sori at and the Research Imp e rati ve 1790-1840, in H. N. Jah nke and M. Ot te, eds., Ep iste m olog ica l and Soc ial Problems of the Sdences in the Early Ni ne te e nth Centu r y

가장 유명한 〈방법론 전쟁 wars of me t hod 〉은 희랍과 로마 문헌학 에 대하여 엄격한 문학적 개념을 옹호한 라이프치히 대학 교수 고토 프리드 헤르만과, 이를 다양하게 표명되는 문화의 전체론적 연구 holi sti c s tu d y로 간주한 베를린의 아우구스트 뵈크 사이에 벌어진 것 이었다. 비교문법에 대한 반대는 전적으로는 아니지만 주로 헤르만과 그의 학파에서 나왔다. 뵈크와 오트프리드 뮐러와 같은 문헌학자들은 그 새

로운 방법을(그들이 문헌학의 많은 관심사 가운데 단지 하나일 뿐인 것으로 간주했던) 언어 연구의 합리적 접근 방법으로 기꺼이 받아들 이는 반면, 문학과 문학어의 상세한 형식적 연구를 강조한 헤르만의 접근법은 보다 직접적으로 비교문법에 의해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였 으며, 따라서 헤르만은 비교문법학자들이 〈야만적 barba ric> 언어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그들을 경멸과 조소로 공격했다. 브라민 Br ahrni n 의 동양어나 원시 게르만어 텍스트의 잔재들과 비교함으로써 고대 희랍어나 라틴어의 특성을 설명해 보겠다는 생각은 터무니없고 모욕적이기까지 한 것 같고, 산스크리트어가 고전어들보다 덜 부패했 고 더 순수하다는 주장은 모독이나 다름없었다 .28) 쿠르티우스는 비교 언어학에 대한 고전주의자들의 반응을 하나의 불신과 오해로 묘사 했댜

28) 헤르만 Hermann 의 견해는 다음을 참조 Karl Brug m ann, Zum heuti gen Sta nd der Sp ra chwi ss enscf,o ft (Str as sburg Trubner, 1885), p. 6, note .

처음에 비교문법은 여러 가지로 오해되었다. 확립된 음 법칙의 기초 위 에 확고히 세워진 비교문법으로부터 나온 어원론은 차라리 〈엉터리 거짓 말하가(p seudolo gy)〉라는 명칭을 붙이는 게 나을 이전의 창피스러운 시 도들과 혼동되었댜 문헌학에서는 희랍과 로마의 위상이 확고했기 때문에 야만의 갠지스 강으로부터 개명을 약속하는 새로운 과학은 경멸받았다 .29)

29) Georg Cu rtius , Di e Sp r achvergl e ic h ung in ihr em Verhi iltn is zur klassis c hen Phil olo g ie ( Dresden : Blochman, 1845), p. 3.

비교언어학은 난해한 한 언어를 기초로 하여 단지 몇 명의 학자들 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주변적인 분야였기 때문에 본격적인 반박을 받 을 만큼 충분한 이해를 가진 관심과 주의를 끌지는 못했다. 그보다는

고전학자들 사이에서는 비교문법학자들에 대한 농담과 가시 돋친 말 들이 예사로웠는데, 주로 그들의 광범위하지만 얕은 언어 지식 , 또는 난해한 초기 언어와 단편적인 문학 작품들에 대한 그들의 관심에 관 한 것이었다 . 30) 더 예사로운 것은 고전학자들이 비교 연구의 결과와 비교언어학자들이 개발한 방법을 무시하는 일이었다. 19 세기 내내 비 교언어학자들은 고전어들의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비교문법의 언 어학적 정보가 주목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해서 불만을 나타냈다. 1821 년 보프는 스승인 빈디쉬만에게 베를린에 대한 그의 인상과 거기서 받은 대접에 대해 서술하는 편지를 썼다.

30) Ludo Rocher, Les philolo g u es classiq u es et Jes debuts de la gr amma ir€ comp a ree, in Revue de l'Un iv e rsit e de Bruxelles, Vol. 10 (1958), p. 251.

이와 관련해서 전형적인 희랍 연구자들에게는 기대할 수 있는 것이 거 의 없습니다 . 그들은 자신들의 집단에 너무 얽매여 있어서 만약 다른 곳 에 주의를 돌린다면 비판에 대한 죄를 짓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 지만 이런 일이 쉽게 일어나지도 않고 이 점에서 그들은 아직도 무지의 천국에 살고 있습니다 . 3 1)

31) Lefrn a nn, p. 69*.

4 반 세기가 훨씬 지난 후인 1848 년에 게오르그 쿠르티우스는 고전 학자들에 대한 이러한 비난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이 학문은 아직도 커다란 무관심 속에 놓여 있고, 많은 사람들 은 그것을 문헌학의 핵심을 건드리지 않는 주변적인 것으로 취급했다. 그 리하여 문헌학 활동의 주요 과제로서 모든 종류의 문헌학자들에게 항싱 인정을 받았던 고대어들의 특별한 문법 연구에는 새로운 빛이 침투한 적 이 거의 없었다. 고전학자들의 집단은 고전어들을 특별히 다루어야 하는

때에도 여전히 비교 연구에 주의를 돌리지 않고 있다. 해마다 나오는 거 대한 양의 문법 연구들은 비교 연구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있다 . 즉, 어떤 것들은 여기저기서 반 정도 이해하여 역사적 연구와 문헌 연구의 결과를 경솔하게 혼합해 버리는가 하면, 또 어떤 것들은 옛 문법에 맹목 적으로 매달리면서 한정되고도 지나치게 꼼꼼한――·그러나 학자적인 一방식으로 고대어를 댜고 있다 .32)

32) Cu rtius , Di e Sp ra chvergl e ic h ung ... , pp. 3-4.

고전학자들이 비교문법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은 인지적, 사회적 근거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인지적으로는, 루도 로허 Ludo Rocher 가 주장한 것처 럼, 산스크리트어는 고전어의 친족일 것 같지도 않을 뿐 아니라, 비교 방법은 많은 언어를 대충 알기만 하면 되었지 문학적으로 능통해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에, 철저함 대신 광 범위한 피상성만을 조장하는 것으로 보였다. 게다가, 비교언어학자들 이 (통사론보다는) 형태론과 음운론에 주의를 기울인 것은 언어로부터 그 의미와 표현 가능성을 빼앗는 기계적이고도 혼이 없는 일인 것처 럼 생각되었다 .33) 그러나 문헌학자들이 비교문법을 경멸하고 무시한 것은, 그들이 이전에 항상 자신들만의 것으로 생각했던 전문 영역에 있어서의 권위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권리를 다른 분야에 내주기를 꺼린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다. 만약 비교언어학자들이 희랍어와 라틴 어 문법을 그들이 유일하게 과학적 방법이라고 생각하였던 방식으로 연구하기 위하여, 보프와 포트, 그림이 개발한 방법에 따라서 몇몇 전 문가들만이 숙달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를 기초 로 자신의 연구를 해야 하는 것이 필요했다면, 고전문헌학자들은 산스 크리트어 학자들과 비교언어학자들에게 적어도 몇몇 언어 문제에 대 한 자신들의 글을 평가할 정당한 권리를 부여해야 했을 것이다. 학문

33) Rocher, pass im .

분야의 자율성은 19 세기 초반의 몇십 년 동안 문헌학 발달에서 중요 한 요인이었다는(그리고 방법론 전쟁에서 고전학자 들 의 지배적인 관 심 사항이었다는) 터너의 주장으로 미루어 보면 , 고전학자들이 비교문 법학자들과 그들의 업적을 조롱함으로써 비교문법을 배제하려 한 것 은 바로 그러한 자율성 투쟁의 또 다른 모습으로 볼 수 있다. 고전 연구의 영역 밖에 있는 지식체도 계속 참조해야 하는 비교방법의 본 질이 바로 이 자율성을 근본적으로 위태롭게 하는 것 같았다. 이런 점 에 비추어 보면, 고전학자들이 〈빛은 동방으로부터 올지 모른다〉는 생 각을 경멸한 것은, 희람과 라틴의 고대에 대한 숭배의 반영이며 서양 —의 문화그 적러 므편로견 을당 연나히타 낸무 관것하일거 뿐나 아부니당라,한 _그들_의 평 가연 구기 분준야으를로 부외터부 의분 리하려는 시도였던 것이다. 초기 비교언어학자들과 역사언어학자들이 대체적으로 고전어학자들이 아니라 동양어학자들과 게르만어 문헌학 자들이란 사실은 문외한들, 아니면 아마도 사기꾼이라고까지 할 수 있 는 사람들이 고전 연구의 자율성에 도전하고 있다는 인상을 가중시켰 음에 틀림없다. 문의한들로서의 비교문법학자들의 위상은 또한 문헌학 자들이 새로운 방법에 논쟁적 대응이나 반박보다는 경멸과 무시로 반 응했던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의부로부터 나온 도전, 새롭 지만 아직 확립되지 않은 분야로부터의 도전은, 고전 연구의 방법과 고유한 관심사에 대해서 내부적으로 의견 차이를 보이는 것과는 다르 게 취급될 수 있었다. 후자는 합리적이고도 문헌에 입각한 논쟁을 필 요로 하는 반면, 전자는 부당한 침범으로 판단되어 조롱과 무시로 기 각해 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분야를 무시해 버릴 수 있는 선택의 자유가 비교언어 학자들에게는 없었는데 그것은 또다시 인지적이며 제도적인 이유 때 문이었다. 새로운 언어학 방법의 핵심은 많은 언어들과 그 역사들을 동시에 분석하고 비교하는 데 있었다. 희랍어와 라틴어의 고대성, 원

전의 희귀성, 인구어족 안에서의 중심적 위치들을 생각해 보면, 고전 어들은 전에는 고전문헌학 전유의 주제로 간주되기도 했지만, 비교언 어학에서도 두드러진 역할을 해야만 했다. 이렇게 인지적으로 중복되 는 것은 비교언어학자들이 산스크리트어, 게르만어, 로만스어 문헌학 자들과 함께 일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전 영역을 침범하지 않 으면 안 되었다는 것을 뜻했다. 그러나 그들 관심의 영역을 획정하고 동시에 언어학으로서 제도적 구조를 확립 중에 있던 이들 분야들은 비교방법론과 그들 자신의 학문적 출발로부터의 증거에 의존했던 한 편, 고전문헌학은 그들 자신의 학문과 평가 기준에 대한 규정을 이전 에 끝마치고 이미 확립되고 제도화되어 있던 학문분야였다. 유일하게 완전한 정당성을 가진 문헌학 분야로 인정받았던 고전문헌학과의 그 들의 피할 수 없는 인지적 중복으로 인해서, 비교언어학자들은 고전학 자들로부터 적어도 암묵적인 정당성을 인정받을 필요가 있었다. 이러 한 인정, 죽 언어 형태와 그 역사적 변화들에 대한 새로운 설명 방법 이 그리스어와 라틴어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고전학자들로부터 인정받는 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을 수 있었다. 비교문법 이전에 고 전학자들의 영역으로 간주되었던 어떤 문제들을 제기할 수 있는 권위 를 갖고 독립적인 학문으로서의 위치를 부여받거나, 혹은 고전문헌학 에 통합되어 동양어와 게르만어, 로만스어 학자들의 전문지식 분야 내 지는 개별적인 고전학자의 세부 전문 분야가 될 수도 있었다. 언어학이 제도화될 수 있었던 이러한 두 가지 방식은 그 실행자들 에게 각각 다른 발달 전략을 요구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다른 제도적 문제와 마찬가지로, 나중에 인지적 발달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정체성의 선택 문제였다. 독립된 학문분야의 실행자로서 언어학자들은 그 구성원이 자신들을 비교문법학자라고 정의하는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의해 정의되는바) 비교적 자율적인 과학공동체를 형성하고, 다른 종류의 연구에 관여하

지 않고, 인접 학문분야에 대한 권위를 동시에 주장하지 않으면서 대 체적으로 비교문법 분야 안에서만의 전문가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 그 들은 별도의 비교언어학이란 교수직을 만들려고 애쓰며, 자신들의 연 구를 주로 다른 바교언어학자들이 참고할 전문지에 발표하고, 다른 분 야에 있는 학자들과는 비교적 미미한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비교문법이 단일한 연구 분야로서가 아니라 다양한 별개의 문헌 학 분야에서 제도화되었다면, 비교언어학자들의 일차적 준거집단은 비 교문법학자들이 아니라 이 분야들에 있는 학자들일 것이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문헌학적 능력을 필요로 하는 전문 분야에서 비비교 non-comp a rativ e 연구를 하게 될 것이 며, 그들은 비 교문법 에서 만이 아니라 동양어 (혹은 슬라브어나 라틴어와 희랍어) 문헌학에서도 전문 가로 간주될 것이다 . 언어학 연구에 관여하는 사람들은 문헌학의 다양 한 분야에서 교수직을 갖게 되고 독립적 정체성을 수립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에 있어 이 두 제도화i ns tituti on ali za ti on 방식은 상호 배타적 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항상 공존한다. 어떤 학문도 그 이웃에서 완전 히 독립되어 있는 섬은 아니며, 어떤 것도 세부 전문화와 전문적 지식 의 분리, 유사한 연구 관심사를 공유하는 과학자들의 하위 분야 형성 을 배제할 만큼 그렇게 내적으로 잘 통합되어 있지도 않다. 그러나 비 교언어학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 분야 자체의 통일성이 불안정하기 때 문에, 이상적 유형의 견지에서, 여기서 설명한 두 가지 제도화 방식 사이의 중요한 차이를 알 수 있다. 언어학은 별개의 학문이 되거나, 최소한의 방법론적 통일성을 유지하면서 많은 문헌학 분야로 분할될 수 있다. 이 선택 중의 첫번째 것은 비교문법학자들과 고전문헌학자들 사이 에 그들 각각의 능력 범위를 둘러싼 대립뿐만 아니라, 동양어 및 게르 만어 문헌학, 죽 언어학이 그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동시에 비교

문법학으로서 정당성을 얻고 있는, 이러한 새로운 학문분야로부터 비 교언어학의 분리를 필요로 했다. 두 번째 선택은 비교언어학자들이 고전문헌학에 침투해서 언어의 비교 연구가 그리스어와 라틴어의 연구에 효과적인 접근법을 제공한 다는 것을 적어도 몇 명의 고전문헌학자에게 확신시킬 수 있는 능력 의 정도에 달려 있었다. 이 두 번째 선택은 언어학이 문헌학적 접근 방법의 틀에 통합됨으로써 언어학의 자율성을 상실해야 했지만, 언어 학에 더 큰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각 대학에서 학문분야 마다 하나의 정교수직을 주는 전통을 생각하면 , 언어학을 하나의 독립 분야로 제도화한다고 해도 비교언어학자들의 교수직 수는 자동적으로 기껏해야 20 개, 아마 그보다 더 적게 제한될 것이었다 (20 개 대학이 있었고 작은 대학들은 중요하지 않은 분야에는 교수직이 없었다) . 한 편, 비교문법학과 다양한 문헌학 분야의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비교문 법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잠재적으로 가능한 대학 교수직 수가 확대될 것이었다. 게다가 〈 침투i n filtr a ti on 〉 전략은 비교언어학자들에게 다양 한 문헌학적 분야에 홍미를 느끼는, 상대적으로 많은 학생들에의 접근 을 보장해 주었다 34)

34) 비슷한 주장은 다음을 참조 . Jos eph Ben- D avid , Socia l Facto r s in the Or igin of New Scie n ce : The Case of Psyc h olog y, Ame ri函 So ci olo gi떠 Revie w , Vol. 31( 19 66).

〈침투〉 전략의 장점은 비교문법학자들의 언어학은 독립된 학문이어 야 한다는 주장에 방해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아우구스 트 슐라이허는(그가 Glo tti k 이라고 부론) 언어과학은 자연과학이며 따라서 인문학(정신과학적) 분야에 포함시켰던 문헌학 연구와는 전적 으로 구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슐라이허는 언어학과 문헌학 사이의 철학적, 방법론적 차이는 본질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아마도 이들이 별도로 제도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을 것이다.

언어학을 별개 분야로서 제도화하려는 추세 는—―- 그리고 이 추세 가 부딪친 곤경은 — —모든 바교문법학을 포함할 언어학 전문지를 발 행하려고 여러 번 시도한 데서도 발견할 수 있댜 그라이프스발트 대 학의 호퍼 A Hofe r 교수는 1844 년에 이러한 전문지 《언어학지 Zeit sc hrift fiir die Wi ss enscha ft der Sp rache 》의 발행을 시도했으 나 1852 년 쿤 Kuhn 의 《독일어, 그리스어, 라틴어 영역에서의 비교언 어 연구지 Zeit sc hrift Jiir vergl e ic h ende Sp r achf ors chung au f dem Gebie t e der Deutc h en, Grie c his c hen, und Late i n n is c hen Sp rachen 》가 나온 후에는 발행을 계속하지 못했다. 쿤의 학술지는 그 제목이 가리키듯이 비교 연구 전문지였지만, 희랍어와 라틴어, 게 르만어의 세 영역에만 국한된 것이었다. 쿤은 슐라이허와 함께 1856 년에 이 저널에서 다루지 않은 영역들을 보충하기 위하여 《아리아어, 켈트어, 슬라브어 영역에서의 비교언어연구 기고 Be itr ag e fiir vergl e ic h ende Sp r ach-fo r schung au f dem Gebie t e der Arisc hen, Celtis c hen, und Slawi sc hen Sp r achen> 를 출판하기 시 작했댜 이 렇 게 분리를 한 것은 비교언어학이 문헌학 부문에 계속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는 것을 일부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진정한 종합적(그러 면서도 비교학만의) 전문지들이 발간되기 시작한 것은 두 전문지가 통합된 1876 년에 이르러서였고, 이어서 베첸베르거 Bezzenber g er 가 《인도 • 게르만어 정보 기고 Be itr a g e 2ur Kunde der lndog e r- manis c hen Sp ra chen> 를 편집할 때인 1877 년이었다. 1876 년은 언어 학의 제도화 패턴에 변화를 기록한 사건인 신문법학파가 처음 출현한 의미 있는 해이기도 했다. 그러나 비교문법을 독립된 학문으로 확립하려는 노력은 그것을 여 러 문헌학 분야에 포함시키려는 시도만큼 일반적이고 꾸준하지 못했 다. 비교문법이 동양어, 게르만어, 희랍어나 라틴어 문헌학의 하위 분 야로 제도화될 가능성은 19 세기 초부터 명백했다. 초기 언어학자들은

다른 유형의 문헌학적 연구, 즉 편집, 문학비평, 민속 연구, 역사 등에 관례적으로 참여했다. 다른 사람 아닌 보프와 같은 인물도 비교 연구 를 개척한 만큼이나 산스크리트어 텍스트를 편집한 것으로도 유명하 다 . 로만스어와 게르만어 문헌학의 창시자인 야콥 그림과 프리드리히 디에츠 F ri e dri ch Di ez 는 문학과 민속 연구를 역사 문법, 어원론, 비교 연구 원칙에 의거한 저술과 겸했다. 오랫동안 비교문법을 가르치거나 연구를 했던 사람들은 산스크리트어 문헌학 〈및〉 비교언어학 교수직 을 담당했거나, 드물게는 몇몇 다론 문헌학적 학문과 결합된 비교언어 학 교수직을 담당했댜 후자의 경우가 드문 것은 대개는 19 세기 초반 동안에 비고전적 문헌학 교수직의 수가 적었기 때문이었다. 인구어학 에만 전념하는 별개의 교수직은 1880 년대 이전에는 예외적인 경우였 다 . 포트 Po tt만이 할레 대학에서 1833 년 이후 그러한 교수직을 담당 했고, 언어를 개별 학문으로 보았던 슐라이히까지도 그의 생애가 끝날 즈음 예나 대학에서 가르칠 때 비교언어학 〈및〉 독일어 문헌학 교수였다. 다시 말해서, 비교 연구와 다론 문헌학 영역의 계속적인 제휴는 비 교문법을 문헌학적 〈 영역 연구〉의 한 측면으로 보는 제도화 패턴을 재확인하는 것이었다. 바교문법이 언어와 문학 연구에 대해 모든 종류의 문헌학적 연구에 필요한 넓은 폭과 역사적 배경을 제공한다는 주장이 〈침투〉 전략을 뒷받침해주기도 했지만, 문헌학자들이 행하는 문학 텍스트의 학술적 편집과 비판적 분석은 비교언어학 연구에 필요불가결한 것이었다. 비교문법과 문헌학의 통합은 동양어와 게르만어, 로만스어 (그리고 후에는 슬라브어, 영어, 켈트어) 문헌학 영역에서 가장 뚜렷했지만, 비 교문법 이 문헌학에 유용함을 고무하는 주장은 고전문헌학과 관련하여 가장 두드러졌는데, 이는 언어학이 가장 큰 저항에 부딪친 곳이 바로 고전문헌학이었기 때문이다. 고전학자들 사이의 비교언어학에 대한 편견을 완화시킨 것으로 알

려진 게오르그 쿠르티우스는 비교문법은 다른 고전 문화의 연구와 분 리될 수 없는 것이며 비교 방법으로 얻은 지식은 희랍어와 라틴어를 가르치는 데 가장 좋은 하나밖에 없는 진정한 과학적 바탕이 된다는 것을 거듭 주장했다. 고전문헌학은 희랍과 로마 문화를 보존하고 그것을 앞으로의 세대에게 새로이 심어 줘야 할 아름답고도 실제적인 소명을 갖고 있다. 이는 언어 에 대한 보다 견고하고 정확한 지식의 바탕 위에서만 가능하고 또 그래 야만 한다. 고전적 고대성의 다른 면들을 내버리지 않고 언어들을 학습하 는 것은 문헌학적 작업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러한 언어 학습 이 오늘의 언어과학의 정신과 의미에 바탕을 둘 때, 그것은 가르치는 사 람들에게는 더 매력적이고, 배우는 사람돌에게는 더 효율적일 수 있다 .35)

35) Georg Cu rtius , Ph ilo log ie und Sp ra chwi ss enscha ft, Antr ittsu orlesung ge lnlte n zu Leip z ig am 30. Ap ril 1 862 (Leip zi g : Trubner, 1862), p. 23.

비교문법이 고전문헌학의 절대적 요소가 되어야 한다는 쿠르티우스 의 신념은 그의 강령적인 취임 강의와 그 자신의 연구에서만 아니라 언어 교습을 비교언어학이 주는 통찰력에 바탕을 두려는 그의 시도에 서도 나타나 있었다. 쿠르티우스는 중등학교 교재로 사용될 희랍어 문 법책에 언어학의 요소들을 첨가하고, 희랍어의 역사적 분석을 통해 수 립된 원칙들을 따랐다. 비교 방법과 원리를 도입함으로써 언어 교육을 개선할 수 있다는 주장은 가장 좋은 교육학적 방법에 대한 쿠르티우스의 학자적 견해를 표현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언어학에 대한 관심을 넓 히고 더 많은 학생들은 끌어들이는 수단이기도 했다. 대학 수준에서 고전문헌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직업으로 고등학교 Gy m- nas iu m 의 그리스어와 라틴어 교사룰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기 때문에,

언어 교육에의 비교 방법 도입이 필연적으로 비교언어학 강의에 출석 인원이 늘어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었다. 만약 비교문법과 고전어의 역사적 발달에 대한 지식이 고등학교 고전교사자격 국가시험에 필수 가 되었다면 학생들의 출석은 계속적으로 증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언어의 역사적 발달에 대한 건전한 지식〉과 〈문법의 과학적 기초에 대한 건전한 지식〉이 게르만어, 로만스어, 영어 문헌학의 국가 시험에서 요구되었다 하더라도 고전문헌학에서는 이런 수준의 제도화 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36 )

36) Karl Brug m ann, Der Gym nasia lu nte r rich t in den beid e n klassis c hen Sp ra chen (Leip z ig : 1910), p. 7-8.

이러한 조건 없이도, 결국에 가서는 언어학의 제도화는 고전문헌학 과의 제휴를 통하여 그 발달에 도움이 되었다. 산스크리트어 문헌학과 는 대조되게, 고전어 연구는 19 세기 독일 대학들에서 중심 연구 분야 였고, 고전어 연구로 인해 비교 관념과 방법은 더 널리 보급되었다. 보프와 같은 비교언어학자들은 계속해서 소수의 학생밖에 끌어들이지 못한 반면, 쿠르티우스는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사 중의 하나였댜 고전어 교사로서의 그의 성공은 그의 순수한 비교언어 학 강의로까지 이어졌다. 쿠르티우스의 전기 작가인 빈디쉬는 쿠르티 우스의 희랍어 강의가 어떤 때는 250 명을 초과했으며 그의 〈비교언어 학 개론〉은 231 명까지 끌어들였다고 적고 있다.-:rl) 쿠르티우스의 인기 는 그 원인을 강사로서의 그의 개인적 자질에 일부 돌려야 하겠지만, 그가 (산스크리트어보다는) 모든 대학 졸업자라면 알아야만 했던 언어 인 희랍어와 라틴어를 가르쳤다는 사실이 비교문법을 보급하는 데 틀 림없이 성공적으로 기여했을 것이다. 언어학 세미나의 원형인 쿠르티

37) Ernst Wi nd i sc h, Georg Cu rtius , Bi og r aph is c hes ]ahrbuch fur Alte r tum sk.un de, vol. 9 (18 86). pp. 75-128 ; rep rinted in Thomas A. Sebeok, ed., Portra i t s of Lin g uist i cs (Bloom ing ton : Ind ian a Un iv. Press, 1966), Vol., p.3 44.

우스의 문법학회 Grammat isc he Gesellsch aft와 그가 편집한 정기간 행물 《그리스어 및 라틴어 문법 연구 S t ud i en zur gr ie c his c hen und lat ei n n is c hen Gramma ti k 》도 역시 고전문헌학과 비교문법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관념에 바탕을 두고 있었고, 이것들은 쿠르티우스의 〈침 투〉 전략이 성공했다는 증거가 된다. 1867 년과 1885 년 사이에 600 명 가량의 학생들이 학회 활동에 참여했고, 연구지는 비교 • 역사언어학 분 야의 박사학위 논문 및 기타 연구 발표를 위한 편리한 출구가 되었다 .38) 요약하자면, 비교문법은 단지 점진적으로 정당성을 갖춘 연구 영역 이 될 수 있었는데, 이러한 정당성은 자율성을 요구하거나 독립된 학 문으로서의 정체성을 요구한 결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비교 방법을 다양한 문헌학적 분야에 통합시킴으로써 획득한 것이었다. 이 같은 통 합은 동양어, 게르만어, 로만스어 문헌학의 경우에 원만하게 진행되었 지만, 비교언어학이 정당성을 얻기 위하여는 보다 지도적 지위에 있는 고전주의자들로부터의 새로운 분야에 대한 인정이 필수적인데, 이들의 반대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 자신이 고전주의자인 게오르그 쿠르티우 스는 비교문법을 고전 연구에 성공적으로 통합시켰는데, 이러한 통합 은 그가 비교 연구에 반대하는 동료 고전주의자들의 반대를 물리칠 수 있도록 거들은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학의 중심 학문으로서의 고전 이 비교문법을 대학 교과과정에 완전하게 도입시키는 데 편리한 매개 체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문헌학자들이 언어학 문제에 대하여 비교문법학자들의 전문적 지식을 참조함으로써 정당성 인정이 표출된 것 외에도, 〈침투〉 전략으로 인해 문헌학 분야가 더 광범위하 게 퍼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언어학의 제도적 팽창을 가능케 했던 이 같은 통합이, 비교역사언어학의 관념체계의 통일성을 위태롭 게 했고, 결국은 다른 문헌학 영역에서 연구에 종사했던 비교문법학자 들간에 유지되었던 관계를 손상시킬 수 있었다.

38) 같은 책, p. 344.

제 4 장 신문법학파 이론 1878 년, 독일의 두 젊은 언어학자 카를 브루크만 Karl Bru g mann 과 헤르만 오 스 트호프 Hermann Os t ho ff는 학술지 《인도게르만어 영역에 대한 형태론적 연구 Morp hologi sche Unte r suchung e n au f dem Gebie t e der Indog e rmanis c hen Sp rachen 》의 첫 호를 발간했다. 이 책의 〈 서문 〉 은 일반적으로 당시의 새로운 언어학파인 신문법학파 Neog r amrna rian s J un ggra mma ti ker 의 선언으로 간주된다. 브루크만 과 오스트호프는 〈 낡은 언어학 전체를 지배했던 근본적 오류〉”를 비 난하고 〈초기 인구어 형태 연구에 강요되었던 가설의 구름들로 뒤덮 인 작업장 분위기에서 일단 벗어나 실재적인 현실의 맑은 하늘 속으 로 나아가는 비교언어학자만이, 언어 형태가 살고 변하는 방법에 대한 정 확한 관념 에 다다룰 수 있다〉 2) 고 주장했다. 브루크만과 오스트호프

1) Prefa c e to Morph olog ica l Investi ga ti on s in the Sp h ere of Inda-E urop e an Langu age s (1878), in A Reader in Ni ne te e nth Centu ry Inda-E urop e an Lin g u ist ic s, ed. and tran s. by Wi nfred P. Lehmann (Bloom ington : Ind ian a Un iv. Press, 1976), p. 199. 2) Osth o ff and Brug m ann, Prefa c e, p. 200.

에 의하면 언어학의 이 새로운 시작은 빌헬름 쉐러 W ilh elm Scherer 와 아우구스트 레스킨 Au g us t Les ki en 의 연구로부터 처음 자극을 얻 었고, 그들 자신 및 그들이 집합적으로 〈신문법학 운동J un ggr am­ mati sc he R i ch tung〉이라고 부른 다른 젊은 언어학자들의 연구에 의 해 수행되었다. 〈신문법학 운동의 가장 중요한 원칙들〉 3) 을 공식화하 기도 한 〈서문 Pre fa ce 〉에 뒤이어, 헤르만 파울 Hermann Paul 의 『언 어사의 원리 Prin z ip ien der Sp rachg esch i ch t e 』(1 880) 나 베르트홀드 델브뤼크 Bert ho ld Delb ri.i ck 의 『언어사 입문 Ein l eit un g in das Sp rach g esch i c ht e 』 (1880) 과 같은 신문법학파 원칙들에 대한 광범위한 설명서들이 나왔는데 ,4) 이 저서들은 언어학사에서 가장 격렬했던 논쟁 의 하나를 불러 일으켰다. 〈서문 Pre fa ce 〉에 대한 반론적 인 논평은 일 찍이 1879 년에 나왔지만 ,5) 논쟁은 공격과 반격이 꼬리를 물고 잇따라

3) 같은 책, p. 204. 4) 델브뤼크의 저서는 원칙들에 대한 기술과 언어학사에 대한 신문법학파식 저서이 다. 그는 지속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너무 온건한 논조로 설명함으로써 다른 신문법학자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 델브뤼크와 파울의 저서들은 영어로 번역되었는 데 다음과 같다. Bert ho ld Delbrl ick , Intr od ucti on to the Stu d y of Lang uage, tran s. Eva Chann ing (Amste r dam : Joh n Benja r runs B. V., 1974) ; Hermann Paul, Pr inc i ple s of the Hi st o r y of Lang uage , tran s. from 2nd ed. (1886) by H. A. Str on g (1890, rpt. College Park : McGrath Publi sh ing Co., 1970). 5) A. Bezzenberge r, revie w of Morph olog isc he Unte r suchung e n in Gott ing sc he Gelehrte Anzeig e r (1879), pp. 641-81 ; Ludw ig Tobler, ‘압 ber die Anwendung des Beg riffes von Gesets e n au f die Sp ra che, in Vier t elj ah rsch rift fiir wis s enscha ftlis c he Phil o sop h ie , vol. III (函 9) ; Hermann Coll itz, revie w of Morp h olog isc he Unte r suchung e n in Zeit sch r ift fiir deuts ch es Alte r t hu m, vol. XXIII (l'o/ 9) ; Franz Miste l i, Lautg e setz und Analog ie: Meth o dolog isc he ps yc holog isc he Abhandlung , in Zeit sch ri ft fiir Volkerps yc holog ie und Sp r achwi ss enscha ft, vol 11, pp.3 63-475 ; vol. 12, pp. 1-?:7 (l'o/ 9) .

발표된 1885 년과 1886 년에 절정을 이루었댜 6)

6) 다음 책들을 참조 . The Lautg e setz - C ontr ov ersy : A Documenta tion (1885-86), ed. Terence H. Wi lbu r (Amste rd am : Joh n Benja mins B. V., 1977); Georg Cu rtius , Zur Kr itik der neueste n Sp r ac}if or schung (18 85) ; Bert ho ld Delbri ick , Di e neuest Sp ra c}if or schung : Betr ac ht un g e n iibe r Georg Curtiu s ' Sch rift Zur Kr itik der neueste n Sp rac 납o rschun g (1885) ; Karl Brug m ann, Zurn heuti ge n Sta nd der Sp ra chwi ss enscha ft; Hug o Schucha rt, Ober die Lautg e setz - G eg e n die ]ung gram mati ke r (1885) ; Hermann Colli tz, Di e neueste Sp rac납 o rschun g und die Erklii ru ng des ind og e rmanis c hen Ablaute s (18 86) ; Hermann Osth o ff , Di e neueste Sp rac 납o rschun g und die Erkliir u ng des ind og e rmanis c hen Ablaute s : Antw o rt au f die gle ic h nami ge Schr ift von Dr. Hermann Collitz ( 1886) ; Ot to Jes pe rse n, Zur Lautg e setz frage (l'i!Z /) ; (not inc luded in Wi lbu r's collectio n ) G.I. Ascoli, Sp r achwis s enscrc ftlic h e Br iefe, tran s. Bruno Gute r bock (Leip z ig : Hirze l, 1887) ; M. Bloom field , On the Probabili ty of the Ex iste n ce of Phoneti c Law, in Ame ri따 1 Jou rnal of Phil olo g y, vol. 5 (1884) ; F. Muller, Sin d die Lautg e setz Natu rge setz ? in (Techmer's) Inte r nati on ale Zeit sc hr ift fiir allge mein e Sp r achwi ss enscm ft, vol. 1 (1884).

표면상으로는 논쟁은 언어 변화에서 음 변화의 규칙성 및 유추적 형 성 analog ica l fo rma ti ons 의 역 할과 관련된 문제 에 중심 이 모아졌 다. 〈서론〉에서 공식화된 신문법학파 운동의 두 기본 원칙은 유추와 음 법칙 Lau tg ese t z 에 관한 것이었댜 뒤이은 논쟁은 종종 음 법칙 논쟁이라고 불리며, 그 시기의 몇몇 주요 논문 등의 제목이 바로 신문 법학파 학설의 지지자들과 반대자들의 마음 속에 이 문제가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7) 의견이 일치되지 않은 다른 몇 개 의 문제들도 있었는데, 그 가운데는 인구어 모음체계의 본질과 발달 과정, 초기 인구어의 특성 같은 것이 있었다. 콜리츠 Co llit z 와 오스트 호프는 〈구개음 법칙 Law of Palata l s> 발견의 우선성을 놓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8) 그리고 많은 과학적 논란에서와 마찬가지로, 한쪽에

7) 앞의 주를 참조.

서는 신문법학파 학설의 정확성에 대한 논쟁을 벌이고, 또 다른 한쪽 에서는 이미 오래 전 수립되어 일반적으로 인정된 원칙들에 대한 소 란이라는 비난과 함께 신문법학파의 독창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 다 .9)

8) Hermann Colli tz, Di e neueste Sp r ach{ or schung ... , Hermann Osth o ff , Di e neueste Sp rac 납'o rschun g. .. , also Coll itz, Wahrung mein e s Rechts (l887), in Wi lbu r; Karl Verner, Zur Frag e der Entd e ckung des Palata l ge setz e s, in Lit er arisc hes Zentr a lblatt fiir Deutc h land, vol. 14(1886), pp. 1707-10. 9) Ascoli , Sp ra chwi ss enscha ftlic h e Brief e ; Joh annes Schmi dt , Schleic h ers Au fas sung der Lautg e setz , in (Kuhn's) Zeits c hrift Jiir vergl e ic h ende Sp rac 납o rschun g, vol. 28 (1887), pp. 307 ff., and Schmi dt ' s revie w of Georg Cu rtius ' Zur Kr itik der neueste n Sp r ach{ or schung in Deuts c he Lit era tu r zeit un g, 1885, no. 10, pp.3 39-344.

이 마지막 문제는 많은 현대 언어학사에서 다른 모습으로 재등장하 고 있다. 변화하는 과학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과학의 발달을 해석한 쿤의 영향으로 현대 언어학사가들은 신문법학파의 논쟁이 언어학에서 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렇다면 신문법학파의 패러다 임은 이전의 것과 어떻게 다른가 하는 문제를 자주 다룬다 .10 ) 그러나

10) 물론 언어학사에 대한 모든 설명이 쿤의 분석툴 구조 를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사실의 기술 fac tu a l desc ripti on 〉을 목표로 하고 어떤 역사적 기술의 관점을 인 정하지 않는 학문이 많이 있다(예를 들면, H. Pedersen, The Di sc overy of Lang uage, tran s. by J. W. Sp ra g o (Blo om ing ton : Ind ian a Un iv. Press, 1931, 또는 R. H. Robin s , A Short Hi st o r y of Lin g uist i cs (Bloom ing ton : Ind ian a Un iv. Press, 1967). 신문법학파의 업적을 그들의 연구가 현대 언어학에 기여했다는 관점에서 평가하려는 작업도 있다 . 그러한 개방적 평가의 관점을 취하 고 있는 학자들 중에 쿠르트 얀코브스키 Ku rt J ankowsk y와 윌버 T. H. Wi lbe r 가 있다. 얀코브스키는 The Neog ram marian s: A Re-evaluati on of Their Place in the Develop m ent of Lin g uist i c Scie n ce (The Hag u e: Mouto n , l f57 2) 에서, 윌버는 음 법칙의 논란 The Lautg e setz Con tr over sy의 〈서론〉에서 각기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 이 두 저자는 다 신문법학자들에 대한 홍미로운 주 장을 하고 있다. 물론 나는 현대 언어학에 대한 신문법학파의 기여에 관하여 평 가할 의도는 없다.

우리가 인지적 변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 관심을 쏟는다면, 신문법학파 관념체계의 출현 이 과학혁명의 한 예가 될 수 있는지 아닌지의 문제 는 특별히 중요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어떤 특별한 인지적 변화가 패러다임의 변화에 관여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는 어떠한 기준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식으로 과정을 설명하는 것은 인지적 변화의 역학 에 대해서 거의 알려 주는 바가 없댜 그 대신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는 있다. (가) 신문법학파의 개혁의 본질이 무엇이며, 무엇이 신문법학파로 하여금 개혁을 하도록 했는가? (나) 신문법학파 관념체 계로의 전환을 특징짓는 인지적 지속성은 어떤 것이며, 그것을 정당화 한 것은 무엇인가? 제 2 장에서, 나는 과학적 관념체계의 개방성에 대한 가설, 죽 그 체 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철학적 ·이론 적·방법론적 ·실체적 관념들은 그들끼리 서로 완전히 융합되지 않고, 완벽하게 일관성 있는 총체를 형성하지는 않는다는 가설에 대해 설명했다. 언어학 관념체계가 일찍 재정리되고 언어학 방법론이 부분적으로 독립적인 발달을 하게 된 사 실은 당초의 이 가설을 어느 정도 뒷받침한다. 그러나 동시에 과학 사 상이 개방 〈 체계 s y s t em 〉 라는 생각은 개방성을 증명하는 데 덧붙여 그 요소들은 사실상 상호 의존적이며, 과학자들은 긴장과 모순과 불일 치를 깨달았을 때 이를 제거하려고 애쓴다는 사실도 입증할 수 있어 야 의미를 갖는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초기 비교문법학자들의 관념체 계에 도입된 혁신과 재조정은 융합이 되지 못했으며, 결국은 2 세대 비 교문법학자들의 방법론적 실행과 그들의 철학적 • 이론적 신념 사이에 긴장과 모순을 가져왔다. 이러한 긴장과 모순은 언어학적 관념체계에 대한 당초의 철학적 정당화가 그 적절성을 잃게 되면서 먼저 눈에 띄 게 되었댜 이제부터 다룰 새로운 사상학파의 관념체계 출현에 대한 검토는 슐라이허와 쿠르티우스의 관념체계 안에서의 이 같은 이론 • 방법론 • 철학적 가설들 간의 긴장과 지적 견해의 풍토 변화롤 배경으

로 한 것이다. 1 신문법학파의 유산: 언어학 방법론 과학적 관점의 대규모적 전환은 당대에 통용되는 학설들이 현존하 는 틀 안에서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연구 문제들을 제기 할 수 있는 능력이 소진되는 것과 종종 관련이 된다 .II) 이것은 확실히 신문법학자들이 이전의 비교문법학자들의 연구 수행에 불만을 표시했 을 때의 역사 • 비교언어학의 상황은 아니었다. 새로운 학파의 출현이 새로운 언어학적 발견이 쏟아져 나온 것과 우연히 일치했던 것이다. 1860 년대와 70 년대에 많은 새로운 음 법칙이 만들어졌고 많은 예전 의 법칙들이 재정립되고 보다 정밀하게 되었다. 1863 년에 헤르만 그 라스만 Hermann Grassmann 은 산스크리트어와 그리스어에서 기식음 aspi rat i on 분포를 지배하는 법칙을 발견했다 . 70 년대 초기에 그라지 아디오 이사이아 아스콜리 Grazia d io Isai a Asco li는 인구어들에 있는 후두음 gu tt ural 연구에 관한 보고를 했는데, 이 것은 70 년대 중반에 빌헬름 톰센 Vi h elm Thomsen, 에세 테네 Essai s Tegn er, 헤르만 콜 리츠 Hermann Coll itz, 카를 베르너 Karl Verner, 요한네스 슈미트 Joh annes Schm idt, 페 르디 낭 드 소쉬 르 Ferdi na nd de Saussure 등 많은 학자들이 동시에 〈구개음 법칙〉을 발견하는 데 선구적 역할을 했다. 1875 년에 카를 베르너는 그림 법칙을 재정립하고 설명이 안 되 었던 자음군에 대한 설명을 가능케 한 〈제 1 자음추이에 대한 예외〉라 는 제목의 논문을 썼다 . 1 년 뒤에 카를 브루크만은 〈음절을 이루는 비음 nasalis sonans 〉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 논문은 아르투

11) Mich ael Mulkay, The Soci al Process of Innovati on : A Stu d y in the Soc iol og y of Sc ien ce (London: Macm illan , 1972).

르 아멜룽 A 마 1ur Amelung , 요한네스 슈미트, 헤르만 콜리츠, 헤르만 오스트호프, 소쉬르 둥의 연구와 더불어, 인구어 모음체계의 역사에서 새로운 음 법칙을 수립하고 초기 모음체계에 대한 당시의 생각을 완 전히 바꾸어 놓았다. 소쉬르는 그의 논문 r 인구어 원시 모음체계에 관 한 논고 Memoir e sur le sys t e m e pr im i tif de voy e lles dans !es lang u es i ndo-europ eennes 」 (1879) 에서 이러한 발견들을 체계화하여 더욱 발전시켰다. 인구어 모음체계를 다루는 이러한 마지막 일련의 발견은 역사 • 비 교언어학의 가장 까다로운 영역에 발전을 가져왔다. 새로운 학파의 구 성원들(예를 들면, 브루크만)이 이 영역의 발전을 떠맡고 있었지만 이 문제 해결에는 신문법학파에 대해 가장 직설적인 몇몇 비평가들(예를 들면, 콜리츠)도 중요한 기여를 했다. 또한 원시인구어 모음체계의 새 로운 설명에 대해서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지만 이 불일치가 학파를 갈라 놓은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면, 쿠르티우스는 1885-1886 년에 신문법학파의 원칙들에 대한 〈팜플릿 전쟁 ba tt le of p am p hle ts〉을 개시했을 때 이미 원시인구어 비모음의 존재에 대한 브루크만의 증명 이 옳다고(이전에는 이것에 대해 논쟁을 벌였지만)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신문법학파에 반대했던 몇 사람을 포함하여 여러 학자들 이 동시에 발견한 〈구개음 법칙〉의 정확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했 다 . 동시에 신문법학파의 주도자 중 하나인 오스트호프는 소쉬르가 그 당시에는 새로운 이론의 주요한 견해들을 지지했음에도 소쉬르의 「논 고 Memo i re 」 를 혹평 했다 . 12)

12) 다음을 참조. Cur tius , Zur Kriti k . . ; Osth o ff and Bru gma nn, Morp h olog ish ce Unte r suchung e n, vol. IV.

그렇다면 왜 새로운 언어학파는 이 분야가 급격히 발전하고 있는 시기에 생겨났는가? 왜 그러한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켰는가? 신문법 학파가 언어학에서 급진적 변화를 창시했다고 하는 신문법학파의 주

장의 근거는 무엇인가? 만약 이 변화가 역사비교언어학의 여러 새로 운 연구 결과에 대한 언어학자들의 평가에 영향 을 주지 않았다면 언 어학 학설의 어느 영역에 영향을 미쳤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충분한 답은 신문법학파가 출현하게 된 사회적 • 제도적 조건이 검토될 때까 지 미루어져야만 한다. 여기서는 단지 신문법학파 이론을 발전시킨 인 지적 결정 요인만을 검토하며, 신문법학파와 그들의 선임자들 간의 연 속과 단절이 이전의 언어학 발전 및 변화하는 지적 풍토에 의해 어떻 게 영향을 받았는가를 설명하려고 한다. 우리는 규칙적인 음 변화에 대한 관념을 기초로 한 언어학 방법론 의 발달이 비교문법학자들의 철학적 • 이론적 신념과 융합되지 않았고, 때로는 상충이 된다는 것을 보아 왔다. 그 학설에 있어 이러한 요소들 간의 일관성 결여는 신문법학파의 〈혁명〉에서 최고조에 이르렀는데, 그 혁명의 방향은 당시 언어 연구의 발전 및 19 세기 말 철학적 견해 의 변화로 인해서 부분적으로 정해졌다. 따라서 우리는 내부의 발전에 서 신문법학파와 그 이전 학자들 간의 불일치의 본질과 연속성에 대 한 설명을 찾을 수 있는 한편, 좀더 광범위한 지적 풍토의 변화는 이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암시하고 언어학 이론의 변화 방향을 시사했 다고할수있다. 신문법학자들은 예의없는 음 법칙의 원칙을 고집한 것으로 알려졌 고 그들의 개혁은 주로 방법론적인 것(예를 들면 페더센 Pedersen) 으 로 종종 비쳤다. 신문법학자들도 자신들 이론의 이러한 면을 자주 강 조했다 . 브루크만과 오스트호프는 《형태론적 연구 Morp holo gi sche Un t ersuchung en 》의 서문에서 언어학 방법론은 두 가지 원칙을 받아 들이는 데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 모든 음 변화는 기계적으로 일어나는만큼 예의를 인정치 않는 법 칙에 따라 발생한다 . 죽, 전이의 방향은 방언이 파생되는 경우를 제외하

고 어 느 한 언어 공동체 구성원 모두 에게 항상 동일하다 . 변화 대상의 음 이 그 음을 갖고 있 는 모든 단어 들 안에서 동일한 관계 를 갖고 있으면, 그 단어 들은 모두 예외없이 그 변화의 영향을 받는다. 둘째, 형태 연상fo rm associa t i on , 즉 유추에 의한 새로운 언어 형태의 창조는 보다 근대적 언어의 생명에 있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명백하므로, 이런 형태의 언어 혁신은 고대, 나아가 상고 시대에 대해서 도 주저 없이 인정되어야 한다 .1 3)

13) Osth o ff and Brug m ann, Prefa c e, p. 204. 비슷한 견해는 이 두 사람 및 파울과 레스킨에 의해 그 이전에 표명되었다.

언어학 방법론에 대한 이전의 설명들과 이 두 원칙을 비교해 본다 면, 이 원칙들이 언어학사에서 가장 격렬했던 논쟁 중 하나에 대한 근 거가 되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신문법학자들과 1850 년대 이후 언어학 방법론의 기초로서 음 법칙 과 유추적 형성을 주장했던 그들의 스승인 쿠르티우스 및 슐라이허의 차이는 무엇인가? 쿠르티우스는 그의 음 법칙의 중요성에 대한 논문 에서 〈언어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기본 개념은 유추와 음 법 칙의 개념〉 1 4) 이라고 주장했다. 앞에서 보아 온 대로 슐라이허는 언어

14) Cu rtius , Bemerkung en tibe r die traw eit e der lautg e setz e ins besondere irn Gri ec his c hen und Late in isc hen(l871), in E. Wi nd isc h, ed., Klein e Schri ften (Leib z ig : Hirze l, 1887), p.5 3 . 쿠르티우스와 슐라이허가 산발적인 것으로 간주했 던 것들의 대부분은 신문법학파가 자신들의 음 법칙의 무예외성 Ausnahmslo­ sig k eit der La. u tg ese t ze 에 대한 원칙을 발표한 1876 년에는 규칙적인 것으로 인 정되긴 했지만 70 년대에도 여전히 설명되지 않은 불규칙한 음 변화가 상당수 있 었댜 그리고 신문법학자들은 그들의 원칙이 귀납적으로 일반화한 것이 아님을 거 듭 주장했다(예를 들면 〈서문 Prefa c e> p .2 0 5, 델브뤼크의 서론 p.11 7, 오스트호 프의 등 ).

쇠퇴는 법칙에 지배되며, 유추와 음 법칙은 언어 변화에 대한 두 가지 설명 원칙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슐라이허가 음 법칙에는 예외가 허용 되지 않는다고 명시적으로 밝힌 것도 아니며, 쿠르티우스가 별개의 산 발적인 음 변화의 범주를 특별히 인정했는지에 관해서는 마땅히 논의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를 방법론적으로 중요한 것이라고 보 기는 힘들다. 슐라이허와 쿠르티우스는 두 사람 모두 가능한 한 많은 변화를 법칙 아래 포함시킬 수 있는 규칙적 음 변화로 설명하고자 했 다. 정말로 신문법학자들은 유추가 아니라면 〈불규칙한〉 변화일 수밖 에 없는 변화에 대한 설명의 수단으로 유추를 더 강조했으며 언어 발 달 초기에도 유추가 작용한 것으로 간주했다 . 유추적 형성은 신문법학 파의 언어와 언어 변화 이론에 중요했지만 방법론에 관한 한 유추는 아직도 부가적인 설명 원칙일 뿐이었다. 유추적 변화가 일어났을 때 설정할 독립된 기준이 없었다. 신문법학자들이 설명의 완벽성을 고집 하고 산발적 음 변화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음 법칙이 알려진 법 칙에 따르지 않는 경우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들은 유추를 이용했다. 신문법학자들 편에서 이처럼 결정적인 방법론적 분기가 결여된 것 이 1878-1886 년의 논쟁에서 주목을 끌게 되었다. 신문법학파 원칙들 을 기본적인 방법론적 규칙으로 간주한 몇몇 학자들은, 이 새로운 학 설이 비교문법에서 일치를 보았던 기존의 이론과 동일하거나, 기껏해 야 그 확장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언어학이라는 학문이 새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는 신문법학자들의 주장은 종종 근거 없는 허풍으로 일 축돼 버렸다. 아스콜리에게는 신문법학자들의 주장은 공허한 과장이며 이미 오래 전부터 공인되어 온 원칙들을 새삼 요란하거나 뻔뻔스럽게 선언한 것일 뿐이었다. 나는 역설적이거나 완고하게 생각되기는 싫지만, 신문법학자들이 스스 로를 구별짓게 하는 바로 그 장점들이란 것이 혁명이라거나 나아가 원칙

이나 방법에 있어서의 본 질 적인 혁신이라는 점에 아무런 의문이 있을 수 없다는 간접적 증거라고 진 술 하는 데 대하여 다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 다 . 바로 이러한 장점들이라는 것 이 전혀 어떠한 새로 도입된 학설에 근 거한 것도 아닐 뿐더러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조사 기술이나 증거의 제시를 수반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1 5)

15) Ascoli, Sp ra chwi ss enscha ftlic h e Br iefe, p. 134.

마찬가지로 요한네스 슈미트는 신문법학자들은 슐라이허의 추종자들 이며 그들이 처음이라고 주장하는 이론은 실제로는 슐라이허의 방법 이었다는 것을 여러 번 주장했다. 슈미트는 〈오늘날 언어학을 연구하 는 사람들은 언어과학의 방법이 새로이 정립된 것은 그들에게서가 아 니라 슐라이허에게서 나왔다는 점을 인식해야 하며, 새로운 연구와 그 이전 연구를 구별짓는 바로 그 문제에 이르기까지 슐라이허에 힘입고 있다〉 16) 는 것울 입증하고자 했댜

16) Joh nnes Schm idt , Schleic h ers Au ffas sung , p. 304.

신문법학자들의 방법론이 그들의 선임자 및 반대자들의 방법론과 비슷하다는 주장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것은 때로 신문법학 파의 이론이 언어학에서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구획한다는 것을 부인 하는 수단으로서도 사용된다. 따라서 폴 키 파스키 Paul Kip ars ky는, 70 년대에 나온 많은 음 법칙에 대한 발견은 신문법학파의 원칙을 지 지하는 학자들은 물론 반대하는 학자들에 의해서도 이루어졌기 때문 에, 경쟁적인 두 집단의 언어학자들 사이에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단절 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만일 두 집단의 학자들 사이에 방법론 적인 차이가 없다고 해서 이들 사이에 중요한 차이가 전혀 없다고 주 장한다면 이것은 그릇된 추론일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과학에 대한 기술관료적 태도롤 반영하는 것인데, 서로 다른 방법론적 규칙과 다론 결과를 이끌어 내지 않는 한, 과학자들 사이의 철학적 • 이론적 차이는

무관하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간과되고 있는 점은, 이 들 결 과의 해 석과 그 의미가 이 들을 바라보 는 일정한 이 론적 • 철학적 틀 에 의해서 제약을 받는다는 것이다 . 이러한 형편들을 염두에 두고 키파스키의 신문법학자들의 방법론에 대한 주장을 좀더 자세히 검토하기로 하자. 키파스키는 신문법학자들 의 방법론을 그들의 예외없는 음 법칙과 동일시하고, 수많은 새로운 음 법칙의 발견이 이 원칙을 받아들이는 데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 문제에 대한 신문법학파의 입장을 거부한 언어학자들 은 수많은 중요한 음 법칙을 발견해 냈다. 반드시 예의없는 음 변화에 대한 신념이 1860 년대 및 1 8 70 년대에 많은 새로운 음 법칙을 발견하게 된 원인이라는 극히 유감스러운 신화가 존재 하고 있다 . 예를 들면, 블룸필드는 그라스만의 발견이나, 비 슷한 경우로 베르너의 발견도 이러한 신념 때문인 것으로 돌리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라스만이나 베르너 모두 음 변화에 예외가 없다고는 믿지 않았다. 그리 고 어찌해서 1870 년대 정립된 신문법학파의 음 변화 이론 을 명백히 거부 하는 언어학자들이 브루크만 , 오스트호프, 레스킨 같은 신문법학자들이 발 견한 것에 상응하는 중요한 음 법칙들을 발견하게 된다는 말인가 ?17)

17) Paul Kipa rsky , From Paleog ram ma rian s to Neog ra mma rian s, Stu d ie s in the Hi st o r y of Lin g uist i cs : Tradit ion s and Paradig ms , ed. Dell Hy m es (Bloom ing ton : Ind ian a Un i. Press, 1974), p. 304.

기본적으로 키파스키는 옳다. 음 법칙을 찾아 내기 위해서 언어학자 는 음 변화는 대체적으로 규칙적이라고 믿어야 하겠지만 이 규칙성에 예의가 없다고 믿을 필요는 없다. 60 년대와 70 년대의 대다수 언어학 자들은 음 변화는 규칙적이라고 믿었고 , 따라서 음 법칙을 찾아 내고 자 했다. 쿠르티우스와 슐라이허는 규칙적 음 변화가 비교역사언어학

자 들 의 주요한 방법론적 기 준 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의없는 음 법칙이라는 신문법학파의 원칙은 방법론에서 큰 변화를 필요로 하지 않았고, 신문법학파가 이렇게 확고한 공식화를 고집한 것은 실제적이 며 방법론적인 이유에서 유발되지 않았댜 그러나 다른 두 집단의 과 학자들이 하나의 비슷한 방법론을 공유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그들의 전체 관념체계가 동일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지는 않다. 한편, 동시적이고 독립적인 〈구개음 법칙〉의 발견은 신문법학자들과 그 반대자들 사이의 방법론적 유사성에 대한 강력한 논거가 된다. 산 스크리트어 연구개음 velars 의 구개음화p ala taliz a ti on 는 다음에 오는 모음에 달려 있다는 것과 인구어 모음체계는 모음 e 를 포함하지 않으 면 안 된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으로 간주되는 이 발견은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테네, 톰슨, 베르너, 슈미트, 콜리츠, 소쉬르 등에 의해서 독립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들 학자 중에는 음 법칙에 대한 신 문법학파의 입장을 받아들인 사람들도 있고(소쉬르와 슈미트), 그렇지 않은 사람들(베르너와 콜리츠 )1 8) 도 있었다

18) 이러한 발견들은 1876 년쯤에 이루어졌다. 나는 테네나 톰센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가 없다 . 콜리츠는 1886 년에는 슈미트와 비슷한 견해를 어느 정도 수용함으 로써 그의 견해를 수정했지만 1879 년에는 신문법학자들의 입장을 거부했다 (Morph olog isc he Un t ersuchun g en 의 서평에 그의 견해롤 참조). 슈미트는 신문 법학자들이 예외없는 음 법칙에 대한 원칙을 처음으로 공식화했다는 의견에는 반 대했지만, 그 원칙을 적절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음 법칙에 관한 한은, 소쉬르 Saussure 도 신문법학자들의 견해와 같았고 Cours de ling uist i qu e ge nerale (19 16; Pa ris: Pay ot , pp. 132-33) 에서 음 변화의 규칙성에 대한 신념을 재확인했 다. 그러나 카를 베르너 Karl Verner 는 그의 논문 Zur Frag e . .. ” 에서 밝혔듯이, 음 법칙에 예외가 없다고는 믿지 않았다.

대체적으로 신문법학자들은 그들의 선임자들과 동일한 비교 방법을 사용했지만, 자신들이 의존하는 움 법칙과 교착 이론 사이의 긴장과 모순을 제거하고자 했다. 앞 절에서 보았듯이 언어 쇠퇴의 법칙적 성 격에 대한 연구에는 규칙적인 음 법칙을 가정해야 하는 한편, 쇠퇴 이

전 어근의 원래 형태와 의미 를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산발적인 음 변 화를 가정할 필요가 있었다. 신문법학자들은 술라이허로부터 음 변화 는 규칙적이라는 신념을 이어받고,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함 으로써 그것을 더 강화시켰다. 그러나 교착 이론과의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서, 초기의 완전한 언어를 재구성하려는 시도를 단념했다. 이 〈단 념〉에 의하여 법칙을 따르는 과정으로서의 언어 변화에 대한 역사적 연구(그리하여, 신문법학파와 쿠르티우스에 의하면 과학적 조사의 대 상이 되는)와 교착 이론에 따라 형태를 재구성하는 데 요구되는 조건 들 사이의 긴장이 해결되었다. 재구성의 목표에 변화가 생겼다고 해서 교착 이론을 정면으로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 신문법학자들은 이 이 론을 매우 그럴 듯한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 이론과 일치할 초기 형태 를 재구성함으로써 이룰 증명하려는 시도를 단념했다. 델브뤼크는 〈교착 원칙은 형태에 대하여 납득할 만한 설명을 제공히는· 유일한 것〉 19) 이라는 주장을 했고, 브루크만은 동사의 접미사가 인칭대명사로부터 파생되었다고 하는 것은 〈매우 그럴 법〉 20) 하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 두 사람은 현재의 지식 상태로서는 교착 이론을 증명할 수 없다고 주 장했으며 재구성의 목적으로서의 이 같은 증명을 거부했다. 신문법학 자들은 교착 이론을 실증과학p os iti ve sc i ence 에는 끼지 못하는 증명 할 수 없는 가설로 간주했다.

19) Delbri lck , Intr od ucti on , p.10 1. 20) Brug m ann, Zwn heuti ge n Sta nd , p. 101.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차라리 초연해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실주의적인 이 시대에 이러한 분석의 가설적 본질에 대한 의식이 점점 늘어났고 따라서 우리는 적지 않은 숫자의 언어학자들 사이에 모든 언어 기원론적 가설들, 죽 모어의 형태들을 설명하고 이들에 관한 굴절의 역사 를 수립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들이 인기를 잃게 되었다고 단언할 수 있

21) 다 .

21) Delbri ick , 앞의 책 , p. 56.

재구성의 목표는 원래의 가설적 어근과 굴절의 기원을 찾으려 하는 게 아니라, 인구어의 입증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형태를 찾고, 개별 언어들의 역사에서 일어난 음성적 변형과 유추적 변형을 추적하는 것 이어야 한다. 신문법학자들이 제시하는 질문은 더 이상 〈원래의 형태 가 무엇이며 어떻게 쇠퇴했는가?〉가 아니라 〈재구성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형태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변화했는가?〉였다. 신문법학파 의 원칙들을 받아들였지만, 독창성에 의문을 던졌던 언어학자 요한네 스 슈미트는 이러한 〈 좁은 〉 목표가 과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유 일한 전략이라고 주창했다. 인구어에 대한 언어과학의 임무는 모어의 형태가 어떠했는가 그리고 어떤 방식에 의해서 개별 언어들의 형태가 모어의 형태로부터 생겨났는 가를 증명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 우리는 소위 어근에 첨가되 는 형태적 요소들의 의미 있는 가치를 해석할 수 없으며, 한편에 치우친 희랍어 문법 연구가 그러했던 것과 마찬가지 이유로 희랍어 낱말들의 구 성 요소들을 설명할 수 없다. 건전한 과학답게 , 이 분야에서 무지에 대한 인식이 해마다 중가하고 있다 .22 )

22) Joh annes Sch midt , q u ote d in Delbruk, Intr od ucti on , p.5 7.

원래의 언어를 재구성하려는 목표를 포기함으로써 저절로 새로운 방법론적 실행이 도입된 것은 아니지만, 신문법학자들이 음 법칙을 찾 기 위한 기존의 방법을 좀더 일관성 있게 따를 수 있게 되었다 . 23) 그

23) 예외없는 음 법칙에 대한 방법론적 태도가 비교적 결여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신 문법학파와 그 반대자들 간에 다른 중요한 방법론적 차이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

규칙적인 음 변화 를 찾으려는 처방은 일찍이 존 재했지만 이 추구 과정에서 채택 한 방법은 바뀌었을 수도 있다 윌리엄 노만 W i ll i am Norman 은 이것이 바로 그 런 경우이며, 이 새로운 방법 들 은 신문법학자 들 의 이 론 적, 철학적 혁신의 직접적 인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신문법학자 들 은 음 법칙을 찾기 위해서 형태론 적 균일성을 사용한 첫번째 언어학자 들 이며, 이것은 언어가 모든 발달 단계에서 형태론적으로 규칙적이라는 그들의 신념에서 직접 나온 결과라고 주장한다. 노만 에 따르면, 이 신념으로 신문법학자들은 형태론적으로 관련된 집단에서의 음 변이 를 연구하고 역사적 음 변화의 지표로서 형태음소적 변이룰 이용하게 되었다 . 노 만은 음 변화 조건을 알아 내기 위해서 동일한 언어에서 관련된 형태소들을 공시 적으로 비교하는 〈내적 재구성 int e r nal reconstr uc ti on > 방법을 〈 가장 중요한 신 문법학파의 방법론적 혁신〉이었다고 주장한다 (The Neog r ammarian s, p.17 7). 그 는 신문법학파가 그렇게 신랄하게 공격을 받으면서도 이러한 〈근본적〉 혁신을 주 목하지 못했고, 그들이 이 예에서 혁신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노만은 과학자들은 사실상 자신 들 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 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그들이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그 둘의 가정과 관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학자들이 그들의 방법론의 독창성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이것은 원시인구어에 모음성 비음 voca lic nasals 의 존재를 증명한, 가장 논란이 되었던 브루크만의 논문이 이 방법 을 적용함으로써 이루어졌다는 사실에서 보면 특 히 당혹스럽게 한다. 브루크만의 논문은 공격을 받았지만 방법론의 적합성은 공격을 받지 않았다 . 노만이 신문법학 자들은 그들의 선임자들보다 더욱 광범위하고 보다 일관되게 이 방법을 사용했으 며 브루크만이 모음성 비음을 설정하고 소쉬르가(정말 새롭게 사용한) 인구어 모 음체계 발달에서의 불규칙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방법을 확대 적용했기 때문이라고 한 점은 옳다. 그러나 신문법학자들이 이 방법을 처음 사용 한 학자들이었다고 제시한 점은 옳지 않다. 그 방법은, 전에 아마도 소규모이긴 하지만 제한된 음 변화를 발견하는 데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슐라이허는 Comp end i um 에서 공시적 형태음소적 변이에 의한 동화를 지배하는 법칙을 도출 해 내면서 여러 번 사용했다(pp. 93, llO-lll, 그리고 pa ssim ). 이 방법은 그라 스만 Grassmann 이 산스크리트어와 그리스어의 기식음의 분포를 지배하는 법칙 을 증명하는 일부로써 1863 년에 사용되었고 또한 베르너도 그림 법칙 Gr im m's Law 에 대한 연구에서 보다 광범위하게 의식적으로 이 방법을 사용했다 (Uber die Aspi ran te n und ihr gle ic h zeiti ge s Vorhandensein im An-und Auslaute der Wurzeln in (Kuhn's) Zeits h crift fiir vergl e ic h ende Sp r achf ors chung , vol. 12, 1863; Ein e Ausnahme der erste n Lautv e rsch ieb ung (Kuhn's) Zeit sch ri ft, vol. 23, 1877). 노만이 모든 이전의 발견은 서로 다른 언어들의 친족

어근을 비교함으로써만 이루어졌으며 어떠한 형태음소적 변이도 인정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한 것 역시 잘못된 것이다. 초기 언어에 형태음소적 변이가 없었다 고 생각하는 것과 역사적 〈자 매어 〉들 에 형태음소적 변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주 다른 문제댜 슐라이허와 쿠르티우스를 포함한 초기 비교문법학자들은 이 명 제들의 첫번째 것은 믿었지만 두 번째 것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자 매어들에서 형태음소적 변이 룰 받아들여 자매어들을 제한된 음 변화에서 오는 결 과로 설명하려 했다. 그들은 조건부 음 변화가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알아 내기 위해서 형태음소적 변이의 패턴들을 검토해야만 했다(그러나 때로는 이 설명은 형태적으로 조건지어진 음 변화를 설정하는 문제와 관련되었다一·신문법학자들에 게는 금물인). 더군다나 슐라이허는 공통 인구어에서도 형태음소적 변이를, 대체 적으로는 제거하려고 노력하긴 했지만, 어느 정도 고려했다(예를 들면 모음교체). 노만이 인용한 예에서도 슐라이허는 공통 인구어에서 소망 접미사 j a 와 i 간의 그 러한 변이를 고려하여, 그의 견해로는 인구어가 분기되기 전 두 접미사로 갈라진 원접미사로 추정되는 j a 에 영향을 미치는 음 변화를 설정함으로써 그것들을 설명 하려고 했다. 신문법학파가 포기했던 것은 공통 인구어가 다양한 언어로 발전하기 전에 일어났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러한 마지막 음 변화의 설정이었다. 슐라이허와 는 반대로 그들은 〈원래의 ori gina l> 언어를 재구성하는 것이 더 이상 필요하다고 (혹은 정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인구어의 이미 검증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형테롤 재구성하는 것으로 아주 만족했는데 그것은 주로 형태음소적 변이와 관련 되었다. 교착 이론과 언어 변화의 균일적 견해에는 무관한 태도를 취한 이러한 특유의 〈자제 res trai n t〉는 그들의 언어 이론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러나 언어학자는 각 어근과 접사의 역사를 그것이 속한 단어와는 별 도로 조사할 것이 아니라 전체 단어의 역사를 조사해야 한다는 신문 법학파의 주장은, 교착 이론은 증명될 수 없는 것이라는 견해를 함유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원래의 완전한 언어를 재구성하는 것이 연구 의 궁극적 목표인 한에는 언어학자는 분명히 단어가 아니라 어근의 역사에 관심이 있었댜 결국, 교착 이론에 의하면 원래의 언어는 최소 한의 형태음소론적 변이 morp h op h onem ic v ari a ti on 를 허용했으며 의 미와 관계를 나타내는 별개의 어근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신문법학자 들이 교착 이론을 입증하고 원래의 언어를 재구성하려는 그들의 노력 울 일단 포기하자, 개별 어근들은 중요성을 상실하게 되고, 특정한 경

험주의 내지 〈인위적〉 혹은 〈추상적〉 과학 범주들이 현상에 부과될지 모른다는 의구심이 대신 대두되었다 . 신문법학자들은 어근, 접사 둥은 발견적 기제로서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실체 속 으로 구체화되지 못하는 문법적 추상물들 abs tr ac t s 이라고 믿었다. 언 어롤 연구하는 사람은 그것이 말해지는 대로 단어를 가지고 연구해야 한댜 화자들이 세대에서 세대로 전하는 것은 개별적 접사, 어근 등이 아니라 단어이기 때문에 이전의 연구는 정당화되지 않았다. 〈예외없는 음 법칙 Ausnahmelosig k eit der La. u tg ese tz e 〉의 원칙을 처음으로 명확하게 밝힘으로써 신문법학자들의 신망을 얻었던 아우구스토 레스 킨에 의해서 1876 년 새로운 방법이 주창되었다. 레스킨은 그의 『슬라 브 _ 리투아니아어 및 게르만어에 있어서의 격 변화 D i e Deklin a ti on in Slawi sc h-Lit anisc hen und Germanis c hen.JJ 의 첫 페 이 지 에 서 아 래와 같이 썼다. 격 변화, 죽 어근과 특정한 격 형태의 고착은 인도-유럽어의 분- 기 이전 에 완성되었다. 그러므로 , 이 언어들의 단일어군의 비교문법은 격 접미사 의 기원이나 아마도 가장 오래된 형태 및 원래의 의미와는 아무 관련이 없고, 오히려 어간과 격 접미사의 결합으로 나타난 단어 형태의 구조 및 역사와 관련이 있다고 할 것이다 .24)

24) Aug u st Leski en , Di e Deklin a ti on im Slawi sc h-Lit au is c hen uni Gennanis c hen (Leip zi g : Hirze l, l'o7 6 ), p. 1.

비슷한 주장이 헤르만 파울과 베르트홀드 델브뤼크에 의해서 진전 되었는데 전자는 단어를 〈해부하는〉 이전 연구들을 인위적이고 부당 한 것이라고 비판했고, 후자는 레스킨과 마찬가지로 공통 인구어 시기 에 이미 어근과 접사가 아닌 단어가 존재했는데, 전달에 있어 바뀌는 것은 어근이 아니라 단어라고 주장했댜 25) 헤르만 히르트에 의하면 언

25) Hermann Paul, Di e Vokale der Flexi on s-und Ableit ung-S il be n in den alte s te n ger ma nisc hen Dial ekt en in (Paul and Braune's) Beit riige zur Geschic h te der deuts c hen Sp r achen und Lit er atu r, vol. IV (lfr/ 7) , p. 322. 델브뤼크도 마찬가지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개별어에 어근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굴절된 인구어에도 존재하지 않으 며, 그 뒤의 시기에만 존재한다면, 우리는 인구어 어근을 제외하고는 산스크리트 어, 그리스어, 라틴어, 독일어 등의 어근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 가 개별어에 대한 어근을 설정한다면, 그것들은 과학적 가치가 없고, 실제적으로 보조적인 의미만을 지닐 뿐이다. 이러한 점에서 개별 언어들의 고대어는 별로 중 요하지 않다.…… 그 역사적 관계는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인구어 굴절이 존재하 지 않았던 시기는 모든 전통에서 무한히 떨어진 때였는데, 그때는 da 가 give 또는 give r 둥을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후 dami I give , data r give r, 동이 형성될 때는 어근 da 그 자체는 그 언어에서 이미 사 라졌다. 그때부터 (굴절이 완성된 후에), 어근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단어들 만 존재하게 되 었다.〉 (Delbri ick , Intr od ucti on , p.7 6).

어학자는 (별개의 어근과 접미사가 아니라) 단어 전체를 다루어야 한 다는 신문법학자들의 주장은 인구어 모음교체를 지배하는 음 법칙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었댜 26 ) 그러나 이 점에서도 신문법학자들이 다 론 언어학자들로부터 분기해 나온 것 같지는 않다. 베르너의 발견이 있은 후에 음 변화에서 액센트의 역할에 대한 연구는 아주 일반적인 것이 되었고 단어 전체에 대한 연구도 이 연구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이 변화에 대해 신문법학파가 도리어 그들의 반대자보다도 어느 정도 까지 책임이 있었는지를 결정하기는 어렵다. 어쨌든 이 새로운 작업은 논란의 주제는 아니었다. 대체적으로 신문법학자들은 언어학 방법론을 실제로 크게 바꾸지는

26) 히르트 Hirt는 각 단음절 어근, 접미사 둥을 개별적으로 추적해 가게 되면, 모음 교체에서 강세의 역할은 알아 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홀츠만 Hol tz man 과 벤파이 Be nf e y가 1840 년대에 강세가 모음교체에 미치는 영향을 발견하지 못했던 이유의 하나는, 개별 어근을 연구해 오던 오래된 관행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Hermann Hirt, Indog e rmanis c he Grammati k, Teil II (Heid e lberg: Wi nter, 1921), p. 10.

못했다. 대신에 그들은 그들 스승의 방법론적인 장점들을 받아들여 보 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절대적인 것으로 만듦으로써 이전에 공식화 되었던 것들을 확고히 했을 뿐이었다. 즉, 음 법칙은 단순히 규칙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예의가 없다는 것, 유추에 의한 형성은 현대 언어가 발달하는 동안은 물론 유사 이전에도 있었다는 것 등이다. 동시에 그 들은 교착 이론과의 대립을 피하기 위하여 언어학의 목표를 재정의 했댜 신문법학자들은 이 학문분야에서, 그리고 우리가 나중에 보게 되겠 지만, 언어학 연구의 공인된 중심에서, 중요한 경험주의적 발전이 이 루어지는 시기에 등장했다. 따라서 그들은 이러한 발전을 가져다 주는 방법론을 물리치지 못했다. 그러나 언어의 역사 • 비교 연구에서 이루 어진 바로 그 발전이 언어학의 방법론과 언어 발달 이론들 간의 모순 을 두드러지게 했다. 더군다나 이 방법론의 적용에 대한 정당화는 언 어 변화의 메커니즘을 설명하지 못하면서 단지 언어에 대한 과학적 접근의 필요성만을 야기시켰기 때문에 부적당하게 생각되었다. 그래서 신문법학자들은 그들의 방법론을 정당화하고 언어 변화 과정을 설명 해 주는 이론을 탐구하는 일에 착수했다. 이러한 탐구 과정에서 그들 은 그 당시 독일 학계에 널리 퍼져 있던 실증주의와 심리주의의 인도 를 받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한 학문의 내적 발달의 지속성이나 전체적인 과학적 관점의 급진적 변천이라는 개념으로는 적절하게 설명할 수 없는 과학 의 변화 과정에 직면하게 된다. 그 대신 내적인 역학적 발달과 그에 수반되는 과학 이론의 다양한 요소들 사이의 긴장은 그 이론을 선택 적으로 재조정하도록 했던 것 같다. 이러한 재조정의 방향은 그 학문 의 현재 상태(이 경우, 기존 방법론의 적용을 통한 경험주의적 연구의 성공), 사회적 요인(이 경우, 신문법학자들의 중심부적 위치와 반대자 들로부터 자신들의 경험주의적 연구의 정당성을 인정받아야 할 필요

성), 그리고 보다 광범위한 지적 추세에 의해서 영향을 받았다. 이 장 의 다음 절에서는 이러한 영향들과, 신문법학자들이 물려받은 방법론 에 적합한 언어학 이론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그들에 의해 도입된 변 화 등을 논한다. 2 이론 탐구 방법 신문법학자들과 그 이전 학자들 간의 포괄적인 방법론적 연속성은 새로운 일련의 철학적 가정을 바탕으로 그들이 펼친 광범위한 이론적 혁신과 대비될 수 있다. 만약 신문법학자들의 철학적 혁신의 선포가 실제 작업을 설명하기보다는 수사학적이라고 하더라도, 언어 본질과 그 역사에 대한 그들의 이해, 과학으로서의 언어학에 대한 그들의 개 념 및 수용된 연구 작업에 대한 정당화 등은 새로운 것이었다. 신문법 학자들은 그들이 물려받은 방법론이 새롭게 정당화될 수 있고, 언어와 과학의 본질에 대한 그들의 신념과 일치할 수 있도록 그들의 언어 및 언어 변화 이론울 수립했다. 신문법학파의 철학적 신념은 강력한 경험주의 및 심리주의적 경향 을 띤 19 세기 후반의 실증주의에 바탕을 두었다 . 그러나 신문법학자들 이 받아들였던 실증주의의 가닥들을 정확히 분리하기는 힘들다. 실증 주의 철학의 영향은 특정한 철학적 이론에서라기보다는 심리학과 당 시의 〈슬로건〉으로부터 온 간접적인 것이었다 .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렇게 분명한 철학적 안내자가 없었다는 점이 모든 표명을 통하여 확 고하게 반형이상학적 an ti -me t a p h y s ic al 이었던 실증주의 그 자체와 아주 잘 부합된다. 신문법학자들에게 있어 모델로 유용한 것은 철학이 아니라 〈과학〉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어떤 철학에 관련시킬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신문법학자들은 과학은 모든 형이상학을 피해야 하고

될 수 있는 한 추상적인 것을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과학자가 사 용하는 개념들은 조사 중에 있는 경험주의적 실재의 직접적인 반영이 어야 하며, 이러한 실재는 물질적이거나 정신적이기 때문에 모든 과학 의 개념은 이 두 영역 중 하나를 직접적으로 언급해야만 한다. 과학 개념이 추상을 피해야 한다는 사상은 신문법학자들의 언어에 대한 정 의에 분명히 예시되어 있다 . 그들은 언어를 모든 문화 현상과 마찬가 지로 정신적 물질적 양면을 다 가진 인간 언어 행위와 동일시했다. 이 는 언어학이 말을 가능하게 하는 심리학적 및 생리학적 과정에 관한 연구를 기반으로 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언어 행위의 물리적인 면, 죽 발음기관에 의한 발성을 조사하는 것 은 생리학의 한 분야인 조음음성학arti cula t o ry phone ti cs 이다. 언어 의 정신적인 면, 즉 개인의 말할 수 있는 능력과 관계된 정신 과정에 대한 연구는 실험심리학이 이루어 놓은 결과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끼)

업) 언어학과 심리학의 관계에 관심을 둔 최초의 학자들이 신문법학자들은 아니었다. 1850 년대 이후, 헨만 슈타인탈 Henrnann S tei n th al 과 그의 동료 모리츠 라자루스 Mori tz Lazarus 는 언어 사용에 대한 심리적 연구를 추구했댜 슈타인탈과 라자루 스는 훔볼트의 후계자들로서 언어는 자연의 유기체라는 개념에 반대하고, 언어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지능과 독창성의 표출이라는 생각을 옹호했다. 그러한 것으로 서의 언어는 심리적으로 연구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 슈타인탈과 라자루스는 요한 카스파 헤르바르트J ohann Kaspa r Herb art (l776-1841) 의 기계론적 심리학을 수 용하여 정신 속에서 일어나는 언어 과정을 다른 정신 활동과 마찬가지로 같은 종 류의 법칙에 따르는 것으로 기술하고자 했다 . 그들의 연구는 신문법학파가 출현하 기 전, 비교문법학자들에 의해서 무시되었는데 슈타인탈이나 라자루스는 두 사람 다 언어 역사에 관심이 없었고 그 분야의 경험적 연구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 문법학자들은 슈타인탈과 라자루스로부터 그들 자신의 생각들을 취했고 심리학을 언어 변화 이론에 통합시키는 것을 주요한 이론적 과업이라고 보았다. 그들은 슈 타인탈과 라자루스와 동일한 헤르바르트의 심리학적 모델을 수용하기까지 했다 . 그러나 신문법학자들이 단순히 슈타인탈과 라자루스를 따랐다고 기술할 수는 없 다. 그들의 견해는 유사점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었다. 예를 들면, 슈타인탈과 라 자루스가 〈집단정신 Volkg e i s t〉에 대한 개념을 지지한 반면, 신문법학자들은 순전 히 개인적인 접근 방법을 주장했다. 슈타인탈과 라자루스에 따르면, 심리학의 특

별한 분야인 집단심리학 Volkerp sy cholo gie 의 주제가 된 집단정신은 신문법학자 들에게는 추상적인 것이었고, 과학은 모든 불필요한 추상적인 것들로부터 방어되 어야 했다. 〈모든 정신 과정은 개인의 마음에서 완성되는 것이지 다른 어떤 곳에 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집단정신이나 예술, 종교 동과 같은 그 요소들은 어 떤 구체적 실체를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그들 속에서나 그들 사이에 서 일어나게 될 수는 없다 . 그러므로 이러한 추상적인 것들을 피해라! 왜냐 하면 우리가 실제 사건이나 과정의 요인들을 정의하려면 ‘ 모든 추상적인 것들을 피해 라! ’ 가 우리의 표어가 되어야 한다.〉 (Paul , Pr inc ip le s, p.3 5). 후에 신문법학자들 은 빌헬름 분트 W ilh elm Wund t와 그의 집단심리학에 반대하기 위하여 동일한 논거를 사용했다.

이런 식으로 심리학과 생리학은 언어학의 보조 과학으로 간주될 수 있다. 역사비교언어학의 원칙과 방법론은 심리학과 생리학의 확고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 인간의 언어 메커니즘은 정신적 및 신체적인 이중적 양상을 띠고 있다. 그 활동에 관해서 명확히 파악하는 것이 비교문법학자들의 주목표가 되 어야 한다 . 이러한 심리적 메커니즘 작용의 배열과 양식에 대한 보다 정 확한 지식의 토대 위에서만 일반적 언어에서 무엇이 가능한가에 대한 관 념을 얻을 수 있다. 더욱이, 이러한 지식을 통해서만 비교언어학자는 개인에서 시작된 언 어 혁신이 어떤 식으로 언어공동체에서 통용되게 되는가에 대한 정확한 견해를 가질 수 있게 되며, 오직 이렇게 함으로써 역사언어학에 관한 모 든 조사 연구에서 그 자신을 인도해 줄 방법론적 원칙들을 획득할 수 있 다 . 28)

?.8) Osth o ff and Br ugm ann, Prefa c e, p. 198.

신문법학자들은 말의 생리학과 심리학은 언어학에서 떨어질 수 없 는 것이라는 그들의 반복된 주장을(파울이 1880 년에 주장한 것처럼) 〈원칙의 과학〉에 대한 요구로 해석했는데, 이것은 그들의 관점에서 볼

때 언어 본질에 대한 철학적 논의가 아닌, 언어 사용과 메커니즘에 대 한 경험론적인 기술을 뜻한 것이었다. 철학은 실증과학에서 아무런 역 할을 못 하지만, 모든 문화 • 역사과학 들은 그들의 주제를 지배하는 보 편적 법칙에 대한 경험론적 연구에서 얻어진 지식을 끌어들여야만 한다. 이러한 원칙의 과학은 한 가지 어려운 문제를 풀어야 한다. 죽, 불변의 힘과 관계가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면, 어떻게 역사적 발달이 아직도 가능 하며 혹은 가장 단순하고 원시적인 것으로부터 가장 복잡한 계통화로의 진보가 가능한 것인가? 그렇다 하더라도 역사적 발달의 조건들을 충분히 정밀 조사하고 일반 논리와 통합시키면 각각의 개별 사실 을 입증하는 데 있어 따라야 할 방법 이론의 토대가 주어질 것이다 29)

29) Paul, Pr inc ip le s, pp. XXIV- X XV.

변화를 연구하기 위해서 언어학은 언어의 불변의 특성에 대한 지식 에 의존해야 한다는 주장은 나중에 소쉬르에 의해 수립되고 20 세기의 많은 언어학파에게 공통적으로 받아들여진 공시태 s y nchron y와 통시 태 diac hrony 구분의 첫 전조로 간주될 수도 있다. 그러나 신문법학자 들에게 있어서는 언어를 언어 행위로 정의하는 것이 언어학보다는 생 리학과 심리학에 적합한 주제인 언어 상태에 대한 연구로 보였기 때 문에 이러한 구분은 고유 언어학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었다. 나 중에 언어의 공시적 연구가 언어학에 통합된 것은 언어에 대한 정의 가 바뀌고(사회과학에서의 모델 학문이 역사학에서 사회학으로 바뀐 것과 마찬가지로) 언어학 분야의 제도적 자율성이 증가됐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 이 문제는 다음 장들에서 다시 다루어질 것이다. 신문법학자들에게는 이전의 학자들에게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언어학 은 역사적 연구로 남아 있어야 하며 언어에 대한 심리학과 생리학의 지식은 일차적으로 적정한 방법론적 작업을 위한 기초로 쓰여야 하는

것이었댜 언어를 유기체로 정의하는 것을 거부하고 언어에 대해 심리 • 물리 학적 개념을 채택했다고 해서 신문법학자들이 언어학 연구의 초점에 변화를 불러온 것은 아니댜 신문법학자들은 모든 언어학은 역사적이 어야 한다는 신념을 견지했을 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학자들과 동일 한 방식으로 이러한 선택을 정당화했다. 파울은 그의 『언어사의 원리 Prinz ip ien der Sp rachg esch i ch t e 』의 〈서론〉에서 언어에 대한 순수 한 역사적 접근의 필요성을 밝혔다.

언어에 대하여 역사적 관점 외에도 또 다른 관점이 있을 수 있다고 하 며 반대 의견이 제기되어 왔다 나는 이것을 반박해야만 하겠다. 비역사 적이며 더욱이 과학적 언어 연구라고 해석되는 것은 사실상 일부는 관찰 자의 결함에 의해서 그리고 일부는 관찰 자료의 결함에 의해서 불완전하 게 된 역사적 연구일 따름이댜 우리가 개별 사실들을 단순히 진술하는 것을 넘어 전체적인 관련성을 파악하고 그 현상들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 즉시 우리는 역사적 기반에 의지하게 된다 .30)

30) Paul, Pr inc ip le s, p. XXVII.

파울의 이러한 설명은 〈만약 어떤 것이 어떻게 현재의 모습이 되었 는지를 우리가 모른다면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고 하는 슐라이허의 신념과 실제로 다룰 바가 없댜 3 1) 그러나 이 두 가지 공식 화는 현상에 대한 인과적 설명 causal exp lana ti on 만이 과학적으로 타 당하다는 철학적 가설에 바탕을 두고 있다 . 어떠한 상태를 그것을 야 기시킨 과정을 무시하고 설명한다면 만족스러운 것이 못 된다. 타당성 있는 유일한 설명은 인과적인 것이다. 언어는 변화하고 진화하기 때문

31) Aug u st Schleic h er, Di e Darwi ni s c he Theori e und die Sp ra chwi ss ensclr ift (2nd. ed., W eim ar: Bohlau, 1873), p. 10.

에 _사람이 말할 수 있는 불변의 생리학적 • 심리학적 능력과는 대 조적으로 __- 언어학은 역사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연구 중인 주제에 대한 정의의 변화는, 허용될 수 있는 설명 에 대해서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파울과 슐라이허는 적절한 설명이 란 인과적이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하더라도(그리고 이 맥락에서 그것은 역사적인 것을 의미했다), 이 인과적 설명을 타당성 있도록 하 기 위하여 동원할 수 있는 요인들의 개념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했 다. 죽, 슐라이허에 따르면, 언어는 자연적 유기체이며, 그 발달을 지 배하는 법칙들 중 몇몇은 언어 자체에 내재한다는 것이다 . 따라서 언 어는 아무런 의부적 요인의 영향을 받지 않고 유사 이전의 발달 단계 (죽, 고립, 교착, 굴절 단계)를 거친다. 이런 의미에서 고립 단계는 그 자체가 교착 단계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언어감정은 언어 자체 안에 있는 고유한 것이지 인간 정신의 특성은 아니다. 그러나 일 단 언어감정이 쇠퇴하면 역사적 발전을 야기하는 외부적 요인들도 있 다 . 노력을 줄이려는 경향은 기본적으로 생리적인 것이며, 유추적 형 성 analog ica l fo rma ti ons 을 가져온 통일 성향은 외부적(어느 정도 분 리된) 힘으로 작용한다. 슐라이허에게는 언어 발달과 언어 형태를 보 존하는 원인은 유기체로서의 언어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며, 외부 적인 힘은 파괴적이며 쇠퇴를 가져온다. 외부적 힘은 내부적 힘이 작 용하지 못하게 될 때 비로소 효력이 있다. 언어를 유기체로 보는 관점 올 거부한 파울과 다른 신문법학자들에게 그러한 설명은 불합리한 것 이다. 브루크만과 오스트호프는 어떻게 언어를 하나의 유기체로(혹은 그 점에 있어서 인간의 언어 행위가 아닌 다른 것으로) 생각할 수 있 는지 실제로 이해할 수 없었으며, 슐라이허의 견해를 용어의 혼동으로 돌렸다. 이러한 관점은 언어와 언어 형태는 개별적인 화자들과 분리되며 그 자

신의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및 은유적 표현을 실체 그 자체 로 계속 간주할 정도로 용어에 의해 지배되는 것을 허용하는 사람들 사 32) 이에서 생겨났댜

32) Osth o ff and Brug m ann, Prefa c e, p. 205. 마찬가지로 델브뤼크는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 더구나 언어학이라는 학문의 한 창 시자가 되는 사람이라면 언어에 대해 그 사용자와는 독립된 삶을 언어에 부여하지 는 않을 것이며, 누군가가 보프에게 당신은 언어가 정신 상태 를 갖는 것으로 간주 했다고 지적해 주었더라면 보프는 〈현실에서 이러한 정신 활동은 언어에서가 아니 라, 말을 하는 개인들에게서 일어난다는 점을 인정했을 것이다 . 〉라고 주장했다 (Delbri ick , Intr od ucti on , p. 19).

만약 언어가 말하는 개인을 넘어선 실체를 가지지 않는다면 모든 인과적 설명은 언어 자체에 내재한 힘이 아니라 말의 메커니즘과 관 련되어야만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심리학적 • 생리학적 원인만이 언 어 현상의 설명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언어를 보존하는 힘과 변화 시키는 힘은 슐라이허에게 있어서처럼 더 이상 두 가지 별개의 실체 영역으로 돌려질 수 없다. 동일한 정신물리학적 메커니즘이 신문법학 자들에게서는 언어 변화와 언어 보존에 관여한다. 슐라이허가 대립되 는 힘이라고 한 것과는 달리, 신문법학자들은 동일한 심리적 • 물리적 과정이 지속적인 변화와 발달 과정은 물론 언어 변화를 초래한다고 주장했다 . 언어 변화와 안정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둘 다 일 상의 언어 사용에서 나온 것이므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언어 사용이 다양한 실제 이유는 통상적 언어 행위에서만 찾아야 한 다.〉 33 )

33) Paul, Pr inc iple s, p. 13.

언어의 발달과 지속을 지배하는 〈내부적〉 힘과 쇠퇴를 야기하는 〈외부적〉 힘을 구분하지 않는 것과 동시에 언어사에서 상이한 힘이 상이한 단계에서 작용한다는 생각도 버림받게 되었다. 우리가 보았듯

이 슐라이허는 이 주장의 기본적인 전제, 즉 사람은 본 질 적으로는 항 상 같기 때문에 언어에 대한 외부적 힘(노력 을 줄이려 는 충동)이 역 사를 통하여 작용하고 있다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언어는 유기체라는 생각 때문에 언어가 역사 이전의 발달에서 역사적인 쇠퇴로 옮아가면 서 그 효력이 변하는 내적 발달 과정을 상정하게 되었다. 이러한 〈인 과적 이원론 causal dual i sm 〉으로 인해서 슐라이허는 비교적 일관성 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신문법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언어 변화를 심리적 현상의 결과로 설명했던 쿠르티우스는 공통 인구어의 화자와 현대어 의 화자들의 차이를 상정하지 않고는 언어 발달과 언어 쇠퇴의 차이 를 설명할 수 없었다. 신문법학자들은 이 과정을 아주 완전히 부조리 한 것으로 생각했다. 오늘날 언어를 지배하는 정신물리학적인 메커니 즘이 과거의 것과 왜 달라야만 하는가? 사람은 본질적으로 같지 않은 가? 언어 발달에 미치는 요인들이 후대에 있어 전대에 있어서보다 근본적 으로 다르다거나, 혹은 더구나 이러한 요인들이 동일함에도 그 작용을 하 는 방식에 있어서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가설 을 받아들일 권리는 아무 에게도 없다. 34)

34) Brug m ann, Zurn heuti ge n Sta n d, p.8 8.

심리학과 생리학이 가르치는 것처럼, 만약 말을 하는 심리적 • 물리 적 과정을 지배하는 법칙이 항상 같다면, 그리고 언어가 단지 이러한 과정의 결과일 뿐이라면 수천 년 전의 언어 발달의 원인들과 오늘날 에 작용하는 원인들이 다르다는 생각에 동의한다는 것은 비과학적이다. 언어 변화의 원인은 항상 같다는 것을 신문법학자들이 처음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젊어서 지질학을 연구했고 라이엘의 균일론을 지지했 던 미국 언어학자 윌리엄 드와이트 휘트니는 그의 책 『 언어와 언어

연구 Lan g ua g e and the St ud y of Lan g ua g e 』 (1867) 와 『 언어의 삶 과 성 장 Li fe a nd Growt h of Lan g ua g e 』 ( 1875) 에 서 같은 점 을 주장 했댜 35)

35) 〈우리는 우리가 관찰 중인 힘의· 작용과 그 작용 방법들을 연구해야 한다. 또한 이 들 을 비슷한 결과로부터 비슷한 원인을 추론하는 세심한 유추적 판단에 의해서, 낡은 힘이나 행동양식이 우리가 찾고 있는 설명을 절대로 제공할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 새로운 힘이나 행동양식을 가정함이 없이 그 과정이 정당하게 진행될 수 있는 한-그리고 그때에도 최대한 세심하게 억제하며――·과거로 옮겨가 보아야 한다. 이것은 현대적인 귀납적 과학의 친숙한 방법이다. 그리고 언어과학 에 대한 그 적용성 또한 의문의 여지가 없다. 언어학과 자연과학에서 가장 역사 적 성격을 가진 지질학의 유사성은 여기에서 가장 가깝고도 가장 교훈적이다. …… 언어 연구가 과학적 성격을 띠려면 언어사의 모든 국면과 단계에서의 본질 적 통합이 언어 연구의 기본 원칙이 되어야 한다.〉 (W illi am Dwi gh t Whitne y, Lif e a nd Growt h of Lang uage (l 87 5), New York: Ap ple to n , 1 얽 7). 아이 러 니 컬하게도 휘트니는 이 원칙을 교착 이론을 지지하는 데만 이용했다 . 현대 언어들 에서 교착 과정을 관찰하면서 그는 동일한 과정이 언어 발달의 초기 단계에서 일 어나 굴절로 옮겨갔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서문〉의 첫 문장에서 〈비교언어학의 외관 군 을 바꿔 놓은 것으로 언급된 빌헬름 쉐러 W ilh elm Scherer 는 역사적 발달 단계와 역사 이 전의 발달 단계, 혹은 발달과 쇠퇴를 구분할 수 없다는 자신의 신념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같은 주장을 했다.지 ) 휘트니와 쉐러에 동의하면서, 신문법학자들은 모든 언어 발달은 유사 이전에 일어났으며 역사는 단 지 타락과 쇠퇴를 증명할 뿐이라는 신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관찰하고 있는 모든 과정이 과거에도 틀림없이 존재했던 것처 럼, 언어 발달을 이끈 힘은 오늘날에도 틀림없이 작용한다. 유추적 혁 신은 현대어에서 일어나는만큼, 공통 인구어, 그리스어, 산스크리트어, 라틴어에서도 일어났음에 틀림없다 초기 언어에서의 유추를 받아들이 지 않으려는 옛 관행은 객관적인 과학적 기준이 아니라 규범적인 기

36) Osth o ff and Brug m ann, Prefa c e, p. 198. 37) Wi lh elm Scherer, Zur Geschic h t e der deuts c hen Sp ra che (Be rlin , 1868).

준에 바탕을 둔 것이다. 교착 이 론 에 대한 그 들 의 애매한 태도와 마찬 가지로 그들이 언어의 발달과 쇠퇴를 구분하지 않은 것도 언어 이론 에서의 긴장을 풀게 했다 . 이제 일련의 요인 들 로써만 모든 언어 발달 을 설명할 수 있고 모든 언어학 방법론을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신문법학자들은 언어의 본질을 개개인의 생리적이며 심리 적인 행위로 새로이 이해하고, 역사적 현상의 인과론적 설명을 위해서 는 일정하고도 시간을 초월한 , 심리적 • 생리적 법칙에 의존한 과학적 설명을 지향하는 새로운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브루크만과 오스프호 프는 《형태론적 연구 Morp hologi cal Inves tiga ti ons 》의 〈서문〉에서 아래와 같은 그들 이론의 철학적 바탕을, 논쟁의 여지가 없고 직관적 으로 명백한 사실들로 제시했다. 이러한 방법론적 원칙은 〈그 진실성이 직관적으로 명백한 이중적 개념〉 에 근거하고 있다. 그것은 첫째, 언어는 인간을 벗어나서 독자적인 삶울 사는 것이 아니고, 개개의 인간 안에서만 진정하게 존재하며 따라서 언어 의 삶에 있어서의 모든 변화는 개개의 화자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것 과, 둘째, 인간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언어를 습득하여 이러한 의식 속에 흡수된 언어 형태를 재현하고 수정할 때도 인간의 정신적 • 육체적 활동은 항상 근본적으로 동일했음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 38) ( 〈〉 부분은 저 자의 강조)

38) Osth o ff and Bru gm ann, Prefa c e, p. 204.

신문법학자들의 이러한 철학적 신념은 언어 변화와 언어 안정의 과 정을 설명하는 기반으로서 그리고 그들이 물려받은 방법론을 정당화 하는 데 사용되었다. 따라서 그들의 과제는 정신물리학적 행위로서 언 어를 이해하는 것과 일치하고 정신적 • 육체적 요인들이 꾸준히 작용 한다는 가설에만 의존하는 언어 변화 이론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동시

에 이 이론은 예외없 는 음 변화와 유추적 형성의 토대가 되 는 원인 들 울 설명함으로써 언어학 방법 론 을 정당화해야 했다 . 브루크만과 오스 트호프는 이 과제 를 〈서문〉에서 완성하려고 하지는 않았고, 이후 오스 트호프 , 델브뤼크, 파울에게 맡겨지게 되었다. 유추적 형성 과정에 대 하여 신문법학자들이 개발한 이론적 설명은 언어와 과학에 대한 자신 들의 철학적 신념과 언어 변화를 유추적 형성과 음 법칙으로써 설명 하기 위한 방법론적 조건을 어떻게 통합시키고자 했는지 잘 보여 주 고 있다. 신문법학자들은 유추적 형성을 인간의 언어 능력에서 결정적 으로 중요한 측면이자 광범위한 언어 변화의 근원인 것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유추 작용에 대한 설명은 이론적 과제로서 그리고 방법론적 실행의 정당화로서 중요했다. 신문법학자들은 그들이 유추에 둔 중요 성으로 해서 때로는 〈유추론자 die Analo gi s t s 〉라고까지 일컬어졌 다 .39)

39) Gust a v Mey er, revie w of Morph olog isch e Unt e rsuchung e n in ]enaer Lit era tu r zeit un g, 1ITT9, No. 13.

2 단계 발달 모형을 거부한 데 따른 주요한 결과의 하나는 유추 작 용을 언어 발달의 초기 단계까지 확장시킨 것이었다. 더군다나, 신문 법학자들은 언어가 쇠퇴한다는 생각을 버렸을 뿐만 아니라 유추를 파 괴적인 힘으로 평가하지도 않았으며, 유추는 정상적이며 구조적인 언 어의 과정임을 주장했댜 초기 유추가 〈잘못된 유추f alse analo gy〉로 불리는 반면 , 신문법학자들은 그것에 대해 〈잘못된〉 것은 아무것도 없 다고 주장했다. 〈잘못된 유추〉라는 말은 이 과정에 정당화될 수 없는 비난이 붙기 때문에 찬성할 수 없는 것이었다. 왜냐 하면 무의식으로 사려 없이 하는 창조적 언어 행위는 〈경험적 a po ste r iori .> 사고에 의 해 도달한 문법 규칙과는 관계없는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40) 파울은 유추적 형성이 연상의 정상적인 심리 과정의 결과라고 주장

40) Ost h off , Das phys io l og isc he und p sy c holog isch e Moment, p. 5.

하면서 유추 를 모든 언어 행위의 기본이 되는 과정으로 보았다. 19 세 기 초에 헤르바르트 Herb art는 인접하거나 동시적인 비슷한 표현은 항상 심리적으로 일련의 연상 요소들로 조직화된다고 가정했다. 동일 한 과정이 언어 사용에서도 일어난다고 가정되었다. 파울에 의하면 비 슷한 의미나 기능, 소리를 가진 단어들은 집단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한 집단을 〈물질적인 mate r ial > 것과 〈형식적인 for mal> 것 의 두 종류로 구분했다. 물질적인 집단은 기본적으로 의미론적이고 그 성분들은 비슷한 의미를 공유하며 흔히 비슷한 음성 구조를 갖기도 한다 . 한편 형식적인 집단은 기본적으로 형태론적이며 그 성분들은 비 슷한 문법적 기능을 공유한다. 〈물질적 집단은 형식적 집단과 항상 교 차된다. 개별 단어는 집단 속에 융합되는 경향이 있을 뿐 아니라, 서 로 다른 단어들 사이의 유추적 비례관계 analog o us p ro p or ti ons 도 마 찬가지다.〉 4 1) 이리하여 물질적 집단은 형식적인 집단과 비례관계를 형 성 할 수 있지 만(파울은 tag : tag es : tage = ann : annes : anne 와 같은 예를 인용한다) 비례적 집단도 물질적 집단 자체 안에서 형성되기도 하고(그래서 〈단수의 경우는 복수의 경우와 비례할 수 있다〉 12) ) 이러 한 집단은 〈음 대체〉, 즉 형태음소론적 교체(예를 들면 knif e : kniv e s = wi fe : wi ve s 등)에 의존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파울은 통사론적 연상집 단 assoti at e d g rou p도 제 시 한댜

41) Paul, Pr inc i ple s, p. 93. 42) Paul, Pr inc i ple s, p. 94.

언어 성분들이 이러한 교차집단들에서 연상되는 다양한 방식으로 인해 개별 화자들은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 파울은 한 사람이 사용하 는 모든 단어와 문장이 단순히 기억에 의존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우 스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렇기는커녕 인간의 언어 행위는 창조적 과 정이다. 비례집단이 존재함으로써 화자는 기억되는 비슷한 다른 단어 들 및 문장들의 형태와 유사한 단어들 및 문장들의 형태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말이란 불변의 창조적 • 조합적 행위의 산물이다 지난날 언어과학의 근본적인 잘못 중의 하나는 단순히 기억에 의해 재 현되는 것을 다루듯이, 통상적인 관용어법에서 항상 사용하는 한 인간의 모든 발화를 다 다룬다는 것이다 . …… 일단 습득한 것을 기억에 의해 단 순히 재현하는 것은 우리가 말할 때 사용하는 단어들이나 단어군에 있어 단지 하나의 요인이 될 뿐이라는 것이 사실이다. 또 하나 마찬가지로 중 요한 요인은 비례집단의 존재에 근거한 조합 행위이다. 조합이란 이미 친 숙한 단어에 대하여 마찬가지로 친숙한 비례 모델에 의거해서 제 2 비례 함수를 자유롭게 창조하는 과정으로 비례관계 방정식을 푸는 것과 어느 정도 같다 43)

43) Paul, Pr inc ip le s, p. 97.

따라서, 유추적 형성 과정은 정확한 사용법을 잘못 인식한 데에서 온 병리적 과정이 아니라 모든 화자들에게 공통된 것이며 언어를 사 용하는 바로 그 능력에 결정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 정상적 심리 과정 은 때때로 혁신을 가져온다. 즉, 전혀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내거나, 전통적으로 수용된 형태의 변이형을 만들어 낸다. 파울은 언어가 완벽 하게 규칙적이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어떤 형태는 흔히 하나 이상의 연상집단에 속하면서 비례관계가 어느 한 집단과만 성립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개개의 단어들이 주는 인상이 다소 불완전하고 약할수록 더욱 새로운 창조에 대한 제약이 그만큼 적기〉 때문에 어린이들에게 특히 유추적 혁신이 일어나기 쉽다(예를 들어 그들은 〈fo o t s 〉과 같이 -s 를 붙여서 모든 복수형을 만든다 ).44l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해서 어린이들에 의해서 생겨난 유추적 혁신은 사라지게 마련이다. 성인 화자들에 의한 대부분의 혁신도 마찬가지 운

44) Paul, Pr inc ip le s, p. 105.

명이지만, 만약 같은 종류의 혁신이 공동체 내의 다른 개개인들에 의 해서도 반복된다면 이 새로운 형태는 영구적이 될 수도 있다. 〈인간의 언어에 영향을 미치는 관념군 구성에 있어서의 압도적인 일치〉 45 ) 로 인 하여 서로 다론 화자들이 만들어 낸 유추형들이 자동적으로 일치할 수 있는 것이다. 상당히 강력하고 자주 보강되는 기억심상 memo ry­ pi c tur e 과 연관된 단어들이나 구의 경우에 있어서는, 이러한 새로운 형태들이 강력한 표상과 상충되기 때문에 유추적 혁신이 불가능하거 나 거의 일어나지 않는댜 오히려 그것들을 〈교정하는〉 강한 경향이 있게 마련이댜 게다가, 하나의 형태가 일단 기억되고 나면, 유추에 의 한 새로운 형태가 생겨나기보다 단순한 재현이 일어나기 쉽다. 그러니 때때로 하나의 주어진 형태의 표상이 너무 약해서 강력한 바례집단을 기초로 한 유추적 혁신이 실수로 나타나지는 않고, 결국에 가서는 기 억심상보다 우세해지거나 기존의 것보다 더 강력한 기억심상을 만들 어낼수도있다.

45) Paul, Pr inc ip le s, p. 105.

그러나 혁신적 유추 형성까지도 타락이나 쇠퇴로 간주하는 것은 질 못이다. 이들은 언어를 풍부하게 하고 그 활동은 언어를 규칙화한다 브루크만은 1876 년의 논문 「음절을 이루는 비음 Nasal i s Sonans 」어 서 이러한 유추적 혁신의 긍정적인 기능에 주목하고 그것들을 부정 적 인 시각으로 보는 경향에 반대했다 .46 )

46) Karl Brug m ann, Nasal is sonans in der ind og e rma nisc hen Grundspr a che in Stu d ie n zur griec his c hen und late i n s chen Grammatik , Vol. IX, 1876 foo tn o te on pp. 317-18.

신문법학자들이 발전시킨 유추 이론은 어떤 특정한 유추적 형성을 야기하는 분명한 조건들을 설명하지는 않고, 그 대신 혁신을 가져오는 일반적 과정의 모델을 제공한다 . 유추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일반조 으로 말해서, 신문법학자들이 방법론적으로 유추에 의존한 것을 정닫

화하고 유추가 모든 정신적 활동을 지배하는 일관된 법칙에 따라 작 용하는 정상적 심리 과정의 결과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간단히 말해 서 신문법학자들의 유추 이론은 〈이중적〉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보였 다. 이 이론은 그들의 철학적 관념과 일치하는 방식에서 유추적 형성 을 설명했으며, 분명히 불규칙적인 언어 혁신을 설명하는 데 있어 방 법론적으로 유추에 의존한 것을 정당화했다. 신문법학자들은 음 변화의 이론적 설명에 있어서는 유추 이론보다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 그럼에도 다음의 논지가 보여 주는 것처럼 이론 수립에 있어서는 두 경우가 아주 비슷했다. 신문법학자들은 어떤 특정 한 방법론적인 일과 특정한 철학적 가설들이 주어지면, 이 가설들의 요건에 맞는 음 변화 이론을 수립하는 동시에 그들의 방법론도 정당 화하고자 했다. 신문법학자들이 음 변화의 이론을 정립하려고 시도한 것을 논의하 기에 앞서, 우리는 음 법칙은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그들이 주장 한 이유를 검토해야만 한다 . 어쨌든, 이것은 그들이 이론적으로 설명 하고자 한 신념이었고 그들에게 가장 큰 이론적 어려움을 야기한 것 이기도 했다. 앞 절에서 나는 음 법칙의 예의없는 적용 원칙이 방법론 적 엄격성을 높이기 위한 필요에서 나온 게 아니라, 신문법학자들의 철학적 신념에서 나온 것이라고 논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은 단지 간접적으로만 옳다고 할 것이다. 그 원칙을 특별히 강력하게 공 식화한 것이 방법론적 실행에는 그다지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 신문법학자들이 〈예의없음 Ausnahmslos ig ke it〉을 주장한 것은 그들이 음 변화를 인과적으로 결정된 현상으로 이해했기 때문이 라고 나는 생각한다. 만약 음 변화가 아무렇게나 일어나는 일이 아니 라 규칙적인 현상이라면, 그것이 작용할 때마다 동일한 결과를 낳는 어떤 유효한 원인이 있음에 틀림없다. 다시 말해서 어떤 〈명시할 수 있는〉 주어진 조건에서 발생하는 규칙적 음 변화의 원인이 〈무엇이든

지〉 간에, 이러한 조건이 있을 때마다, 그 원인은 작용을 해서 원래의 원인이 작용하는 것을 막는 다른 힘이 없다면 동일한 결과가 생길 것 이댜 음 변화의 관점에서 이 원칙은 음 A 를 음 B 로 변하게 하는 특 정한 원인이 무엇이든(어떤 주어진 음 환경과 언어에서) A 가 이 환경 에서 일어날 때마다 B 로 변화하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 과 마찬가지다. 신문법학자들에게 있어서 예외없는 음 법칙 원칙은 〈동일한 원인/동일한 결과〉의 원칙에 대한 주장이었다. 따라서, 만일 우리가 음 법칙의 일관된 작용에 대해 말한다면, 이것은 같은 방언 내에서 음 변화가 발생하는 경우, 같은 음성 조건이 생기는 모 든 별개의 경우는 동일하게 취급된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을 뿐이다. 그 러므로 어느 경우에는 어느 음이 생기고 또 다론 경우에는 다른 음이 생 긴다는 사실에 대하여, 동일한 음이 이전에 존재했던 곳에는 동일한 음이 이후의 발전 단계에서도 마찬가지로 항상 존재해 있어야 하거나, 아니면 다른 음으로의 이탈이 일어난 곳에는, 독자적으로 음에 영향을 미치는 종 류의-이웃하는 음의 효과, 강세, 음절의 위치 등과 같은-특별한 이유가 있어 야만 한다 .47)

47) Paul, Princ iple s, p. 58.

신문법학자들은 음 변화는 전체 단어가 아니라 개별적인 음에 영향 을 준다고 믿었기 때문에, 의미가 음 변화룰 결정짓는 요소의 하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고, 단지 주어진 단어의 형태론적 혹은 의 미론적 범주에만 영향을 주는 음 변화를 상정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댜 따라서 음 법칙은 그 음성 환경에 의해서만 결정될 수 있다. 그리하여 음 변화의 원인이 무엇이든지 음 자체에 맹목적으 로 그리고 기계적으로 작용한다. 신문법학자들은 음 변화를 일으키는 원인들과는 별도로 언어 변화의 다른 원인들이 없다면 움 법칙은 모

든 변형들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고 예외는 남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 했댜 이것은 분명히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규칙적이 아닌 변화는 어 떤 다른 과정의 결과이어야만 하고, 그렇지 않다면 〈동일한 원인/동일 한 결과 〉 의 원칙에 위배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만약 명백한 음 변화가 규칙적이 아니라면 규칙적 변화를 만들어 내는 동일한 요인들의 산물 일 수는 없기 때문에, 신문법학자들은 이것은 결코 음 변화가 아니라 유추적 형성이나 차용 또는 방언의 혼합에서 오는 것이라고 가정해 나간다. 음 변화와는 대조되게 유추적 형성은 형태론적으로나 의미론 적으로 조건지어지기 때문에 그 원인들은 음 변형을 만들어 내는 원 인들과는 전적으로 다를 것이다. 우리의 어원 의식 __? 연관된 형태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一·―은 음 법칙의 작용에 방해가 된다는 주장이 있어 왔다. 이것을 주장하는 사람이 라면 우선 이 것 이 음 변화 를 촉진하는 요인의 부단한 작용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고 , 다만 이러한 요인에 반작용을 하는 전적으로 다른 성질의 요인을 가정할 뿐이라는 것을 분명히 이해해야만 한다. 우리가 하나의 요 인이 어떤 때에는 작용하고 또 어떤 때에는 작용을 하지 않는다거나, 그 작용하는 힘이 또 다른 요인의 반작용에 의해서 방해받는다거나 하는 것 을 가정하거나 하는 일은 명백히 , 아무래도 좋은 그런 일이 아니다. 어쨌 든 우리가 만일 음성 요인의 효과가 먼저 그 영향력을 발휘하되 다른 요 인에 의해 반작용을 받는다고 인정한다면 이로써 음 법칙은 인정되는 것 이다 . 48)

48) Paul, Princ ip le s, pp. 59-60.

여기서 예의없는 음 법칙의 원칙은 분명히 인과적 유효성과 완벽한 설명의 필요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규칙적 음 변화을 만들어 내는 요인들의 결과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은 무엇이든지 어떤 다른 요인들

―유추적 형성을 일으키는 요인들一__의 결과로 설명되어야만 한 다. 신문법학자들의 가정이 방법론적 엄격성을 높이고자 하는 필요에 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인과관계의 본질과 언어학적 설명에 있어서의 그 역할에 대한 신문법학자들의 철학적 신념의 결과라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이댜 이 경우에 제약으로 작용했던 것은 방법론적 실천 이라기보다는 철학적 가설이었다 . 그러나 신문법학자들은 음 변형의 특정한 원인들을 끌어 내 오는 데에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고, 어떤 주 어진 음 법칙을 인과적으로 설명하려고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 의 원칙을 이러한 견지에서 보기는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들은 어떤 주어진 음 법칙의 작용을 특정한 역사 시기나 한 주어진 방언 집단에만 제한하는 다양한 조건들을 명시할 수 없었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이러한 실패는 신문법학자들의 기계론적이고 개별주의적인 접근 방법과 과학에 있어서의 추상적 개념에 대한 혐오에서 온 것이 었다. 신문법학자들은 음 변화 이론을 발전시키기 위한 두 가지 뚜렷한 시도를 했다. 보프와 슐라이허의 굴절 이론의 경우에서처럼, 신문법학 자들의 두 이론은 근본적으로 동일한 철학적 신념에 바탕을 둔 것이 었다. 게다가 신문법학자들의 두 이론은 동일한 방법론을 정당화하도 록 고안된 것이기도 했다. 이러한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그들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들이 있었는데, 이 차이점들은 비록 많은 요소들이 엄격 하게 결정된다 하더라도 그로써 다른 모든 요소들까지 결정되는 것은 아닌 과학적 관념체계의 내재적인 개방성을 다시금 입증한다. 기젤라 슈나이더 Gis e la Schne i der 는, 오스트호프가 『언어 형태 구 성 에서 의 생 리 학적 • 심 리 학적 계 기 Das phys io l og isc he und ps y- cholog isch e Moment in der sp r achlic h en Formb il dun g』 에 서 명 확 히 제시하고, 파울과 브루크만이 1877-79 년의 논문에서도 받아들안 신문법학파 이론의 첫번째 공식과, 파울과 델브뤼크가 1880 년의 연구

에서 제안하고 이후 1885-86 년의 논쟁에서 모든 신문법학자들의 입장 으로 채택됐던 두 번째 공식의 차이를 설명했다 .49 ) 이 두 이론의 중요 한 차이는 음 법칙에 관한 그들의 설명에 있다. 음 변화의 요인과 음 법칙 상태에 대해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요인들이 두 이론에서 다르다. 첫번째 이론에 의하면 음 법칙의 원인은 순전히 생리적인 것이며, 음 법칙은 자연과학의 법칙과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댜 두 번째 이론에 의하면 음 변화는 생리적 • 심리적으로 조건지어지며, 음 법칙은 더 이 상 보편적이며 필연적인 관계를 진술한 것으로 생각할 수 없다. 슈나이더가 구분한 이 두 이론은 곧 잇달아 나왔었다. 첫번째 이론 은 1879 년에 오스트호프에 의해 정교화되고 파울과 브루크만에 의해 간단히 언급됐었다. 1880 년에 이 이론은 델브뤼크의 책 『언어연구입 문 Intr od ucti on to the Stu d y of Lan gun,g e 』 과 파울의 책 『 언어사 의 원 리 Princ ip le s of the Hi st o r y of Lan gun,g e 』 에 서 비 판을 받았 고, 델브뤼크와 파울에 의해서 다른 이론으로 대체되었다. 1885-1886 년의 논쟁에서 첫번째 이론은 신문법학자들로부터 언급조차 되지 않 았다. 다시 말해서 음 변화의 인과적 설명을 전개하려는 신문법학파의 첫번째 시도는 실패했고, 거의 채택되자마자 버려졌다. 첫번째 이론은 유추적 형성과 대립되는 음 변화는 순전히 생리적으 로 결정된다는 생각에 의존한 것이었다. 발성이 발음기관의 움직임에 달려 있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발음 변화는 이 발음기관의 변화에 따 른 것이라는 것이다.

49) Gis e la Schneid e r, Zurn Beg riff des Lautg es etz e s in der Spr a chwi ss enscha ft seit den Jun g gram mati ke m (Tti bi n ge n, l

두 사람 A 와 B 가 어느 주어진 음을 발음하는 데 있어서, 아니 오히려 그렇게 할 수 있는 그들의 능력과 관련해서 서로 다를 때, 이러한 현상에 대한 가장 분명하고도 편견 없는 결론은 그들 각자의 음성기관 사이에

차이가 있어 A 에게 는 발음 가 능 한 것 이 B 에게 는 불 가 능 하고 반대의 경 우도 마찬가지라 는 것 이다. 50)

50) Osth o ff, Das phys io l og isc he und ps yc h olog isc he Moment, p. 15.

오스트호프에게 있어서는 음 변화 과정은 완전히 기계적·물리적 현상에 의해서 일어난다. 오스프호프를 포함한 신문법학자들이 믿었던 바에 따르면 음 변화는 무의식적일 뿐 아니라 모든 심리적 • 사회적 요인들과는 무관하다 . 생리적 현상은 분명히 단어의 의미나 기능에 의 거할 수 없기 때문에, 음 변화에 대한 이 생리적 설명은 의미론적으로 혹은 형태론적으로 조건지어지는 음 변화를 배제하는 것을 정당화했 다 . 오스트호프의 설명은 또한 분명히 음 변화에 관련된 메커니즘과 유추적 형성의 도입에 관련된 메커니즘을 구분했다. 유추는 순전히 심 리적인 결정에서 나온 것이며 기본적으로는 의미 론 적 범주나 형태론 적 범주에 영향을 주었다. 오스트호프는 한 방언의 모든 화자들이 동 일한 음 변화에 따르는 이유에 대해, 발음기관의 생리적 변화는 아무 렇게나 일어나는 게 아니라 환경적 • 문화적 조건에 따라서 일어나는 것이라는 주장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 인간의 모든 신체기관의 형성과 마찬가지로 발음기관의 형성은 주로 그들이 살고 있는 기후와 문화적 조건에 달려 있다.〉 5 1) 사회에서의 문화적 • 기후적 연속성으로 인해 자 연히 그 사회 구성원들의 발음기관은 생리적으로 동일하게 되고, 따라 서 음 변화는 같은 기후 , 지리, 문화의 조건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살 고 있는 전체 사회집단 및 방언집단에 공통적이다. 오스트호프에 의하 면 규칙적 음 변화는 모방 본능에 의해서도 증진되기 때문에 공동체 의 모든 구성원이 생리적 변형에 의해서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하더 라도 생리적으로 일어난 음 변화는 더 멀리 퍼져 나갈 수 있다. 모든 음 변화의 일차적 원인은 생리적인 것인 반면, 모방은 훨씬 덜 중요한

51) Osth o ff, Das phys io l og isc he und ps yc holog isc he Moment, p.1 9.

요인이댜 1879 년에는 브루크만과 파울이 오스트호프와 음 변화에 관하여 견 해를 함께했던 것으로 보인다. 파울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동일한 조건의 동일한 음을 다루는 데 있어 불충분한 결과나 가변적 인 것을 묵인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음 법칙을 다르게 공식화해서도 고쳐지 지 않을 때에는, 그때는 동일한 조건에서 일어난 여러 다론 변화들 가운 데 한 가지는 생리적 방식으로 생겨날 수 있는 한편, 다른 변화들은 형태 연상을 통하여 심리적 방식으로 일어났음이 분명하다 . 52)

52) Paul, Zur Gesch ich te des ge rmani sc hen Voca lism us, (Paul and Braune's) Beit riige zur ge schic h te der deuts c hen Sp r ache und Lit er atu r, Vol. IV (1879), p. 3.

그리고 브루크만은 〈음 변화는 발음기관 자체에서 시작된다〉 53) 고 언 급했댜 음 법칙에 대한 이러한 생리학적 설명은 일정한 장점을 지녔는데, 그것은 음 변화가 형태론적 또는 의미론적이 아닌 음성적 조건에 의 해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신념을 정당화했으며, 유추의 원인과 음 변화 의 원인을 아주 명확히 구분했고, 음 변화가 특정한 시기에 소집단의 화자들에게만 영향을 미치기는 해도 인과적으로 균일하게 일어나는 과정의 결과임을 밝힌 점이었다. 그럼에도 그 모델은 유지되기 어려웠 다. 사람들의 음성기관이 다르다는 증거가 없었고, 가까이 살지만 관 련이 없는 언어들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종종 어느 정도 비슷한 발음 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기후의 영향만큼 문화적 접촉에 의해서도 쉽 게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어린애들은 그들 부모가 사용하는 음성

53) Brug m ann, Zur Geschi ch te der Nom ina lsu ffixe -as, -jas , -vas, in (Kuhn's) Zeit sc hrift fiir vergl e ic h ende Sp r achf ors chung, Vol. XXIV, p. 4.

체계와는 별도로 그들 주위에서 사용하는 음성 체계를 배운다는 것도 지적되었댜 마지막으로 또 다른 신문법학자들은 정확하게 발음하는 것이 무의식적이기는 해도 심리적 현상과 무관하지 않으므로 음 변화 에 관련된 생리학적 과정은 물론 심리적 과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고 주장했다. 따라서 음 변화의 정확한 이론은 생리적 및 심리적 두 요인들의 작용을 고려해야 했다. 발음에 수반되는 정신적 • 신체적 과정에 의거한 신문법학파의 두 번째 음 변화 이론은 헤르만 파울의 『언어사의 원리』에서 가장 광범 위하게 전개되었다. 파울은 음 변화는 정상적인 언어 행위에서 오는 결과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에서 규칙적 발음에 수반된 과정의 논의로 부터 시작했다. 파울에 의하면 발음하는 동안 발성기관의 동작에는 항 상 운동감각 moto r sensa ti on 과 그 소리 에 의 해 생성 된 청 각 aud itor y sensa ti on 이 수반된댜 〈이 감각들은 생리적 과정일 뿐 아니라 심리적 과정이기도 하다 . 〉 54 ) 이 감각들은 발음된 소리나 일련의 소리들의 지 속적인 기억심상을 남긴다. 그러면 기억심상들은 〈 모체 ma tri ces 〉가 되어 나중에 같은 발음을 재생하도록 통제한다. 기억심상은 운동감각 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자신이 내는 소리를 듣는다는 사실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그 심상은 발음을 담화공동체 commun ity of di scourse 의 말과 일치하도록 통제한다. 모든 음의 재 생은 항상 어느 정도는 부정확하다. 다음에 하는 각각의 발음은 앞의 발음과 조금씩 다르다. 그리고 전체적 과정이 무의식적이기 때문에, 이러한 변이가 감지할 수 없을 만큼 미세하다면 그 변이는 말에 남아 서 주어진 음과 관련된 운동감각을 수정할 수 있다 . 보다 최근의 운동 감각이 더 이전의 운동감각보다 더 강력하므로 기억심상과 운동감각 은 모든 이전 감각의 단순한 평균이 아니라 보다 최근의 발음 변화에 의해서 약간 수정이 될 것이다. 이러한 작은 변이들이 축적되면, 모든

54) Paul, Pr ind pl e s, p. 36.

변이를 특정한 발음 쪽으로 향하게 하는 심리적 또는 생리적인 요인 이 있을 경우에, 점차적으로, 대규모의 음 변형이 될 수도 있다. 만약 이러한 원인들이 동시에 정확히 똑같은 힘을 갖고 서로 반대 방 향으로 작용한다면, 그때는 이들의 작용이 서로 상쇄되어 절대적인 정확 성을 갖고 작동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러한 경우는 실제로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이댜 거의 대부분의 경우는 어느 한쪽으로 기울게 될 것이다. 어 쨌든 이러한 힘의 관계는 상황에 따라서 복합적인 변화를 겪을 수도 있 다 . 만약 이러한 변화가 양쪽에 똑같이 작용하고, 어느 한쪽으로의 편향 이 그에 상응하는 다른 쪽으로의 편향과 항상 엇갈려 일어나면, 이 경우 에는 운동감각의 가장 미미한 전이일지라도 즉각 저지당할 것이다. 그러 나 한쪽으로 밀어 내는 원인이 반대쪽으로 향하게 하는 원인보다 우세할 때에는, 이것이 개개의 특정한 경우든 아니면 일반적인 경우든 간에, 사 정이 아주 다르다. 당초의 편향이 아주 미미했다면 이에 따라 운동감각에 가능한 최소의 변이만이 일어났겠지만, 그럼에도 다음 번에 당초의 편향 이 다소 더 커지는 수가 있게 되면 이와 더불어 감각의 전이도 동시에 더 커질 것이다 . 이렇게 되어 모든 전이가 다 축적됨에 따라 뚜렷한 변화 가 점진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 55 )

55) 같은 책, p. 45.

파울은 운동감각의 추이를 특정 방향으로 이끄는 요인들의 본질에 대해서는 불분명한 태도를 취했다 . 그는 발음을 보다 편하게 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 대해 슐라이허, 쿠르티우스, 휘트니와 의견을 같 이하고, 발음하는 데 들어가는 노력을 생리학적으로 연구함으로써 편 의 정도를 측정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생리적 편의는 또한 심리적 요인에 의해서도 조건지어진다. 그리하여, 슈타인탈 S t e i n th al 을 따라서 파울은 순행동화p ro g ress i ve ass imil a ti on( 앞의

소리가 다음에 오는 소리에 동화되는 것)를 〈 아직 발음하지 않은 소 리에 대한 관념이 앞의 소리에 작용〉5(j)하는 과정의 결 과라고 설명했 다. 이 〈관념 i dea 〉은 물론 심리적 요인이댜 파울은 특별히 어떤 주어 진 방향으로 운동감각이 변하는 원인을 논하는 데에 관심이 있지는 않았다. 음 변화의 일차적 원인은 항상 운동감각이 변하는 데 있었고 모든 다른 요인들은 부차적이었다.

56) 같은 책, p. 46.

파울에 의하면 모든 음 변화는 무의식적이며, 기억심상에 천천히 영 향을 미치면서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규칙적 언어 행위의 산물이다. 더 욱이 모든 음 변화는 개개인의 발음에서 시작된다 . 파울은 동일한 방 언을 사용하는 개개인들의 전체 집단이 동일한 요인들의 자극에 의해 서(예를 들면, 편의) 자연스럽게 동일한 발음의 변화에 따르게 되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는 기후, 토양, 생활방식 등이 발성기관 과 전체 공동체의 언어 패턴에 영향을 미친다는 오스트호프의 생각을 즉각 거부하지도 않았지만, 이 주장을 입증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고 이러한 설명은 가능성이 별로 없는 것으로 보았다 . 그는 개개인들 사 이에서 언어 변화의 방향이 일치하는 것은 한 공동체 내의 모든 화자 들에게 영향을 주는 동일한 힘의 자연스러운 효과라기보다 그 공동체 의 구성원들끼리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더 잘 설명이 된다고 믿었다. 다른 사람들의 발음을 듣는 결과로 생기는 감각은 한 음의 기억심상 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한 집단 내부의 긴밀한 상호작용에서 볼 때 한 개인이나 몇몇 개인들로부터 시작되는 변화는 집단 전체로 천천히 번져 갈 수 있다 파울은 이것은 어린아이들이 언어를 배울 때 특히 두드러진다고 믿었다. 같은 세대 안에서 일어나는 전이는 미미하고 빈약하다 . 더 나이 많은 세대가 새로운 세대에 의해 옆으로 밀려난 후에야 좀더 뚜렷한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우선, 전 이가 이미 대다 수 의 사람에게 침투해 있을 때에 는 소수가 아직 이에 반대하고 있더라도, 특 히 대다수가 발음하는 편이 더 편리한 경우에 앞으로의 세대 는 자연스럽게 대다수 쪽에 적응하게 될 것이댜 따라서 본격적인 음 변화의 시기는 새로운 개개인에게 음이 이전 되는 때라고 말하는 것이 적합할 것 이다 . 57)

57) 같은 책, pp. 53-54.

델브뤼크는 심리학적으로는 상세하지 않지만 비슷한 언어 변화 모 델을 『 언어 연구입 문 Intr o ducti on to the Stu d y of Lan g ua g e 』 에서 제시했다 델브뤼크는 언어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언어학자들이 예증 한 원인들의 본질에 대해서 파울보다 더 회의적이었다. 그는 기후의 역할에 대해서 회의적이었고, 발음 편의의 역할에 대해서는 분명한 입 장을 밝히지 않았다. 그는 변화는 한 개인의 발음에서 시작되어 담화 공동체 전체로 확산된다고 하는 파울의 견해에는 동의했다. 그러므로 모든 언어 변화의 궁극적 원인은 다음과 같은 사실일 수밖에 없다 죽, 개개인은 그에게 전수된 언어를 그가 습득한 그대로 정확하게 유통시키는 것은 아니고, 편의 때문이든지, 미적 충동에서든지, 또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도 정확하게 듣지 못하고 재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든지, 아 니면 어떤 다른 이유에서든지, 그에게 전해진 것을 항상 개인화한다는 것 이댜 58)

58) Delbrt ick , Intr od ucti on , p. 120.

첫번째 모델에서는 음 변화 배후에 있는 원인들은 언어공동체 전체 에 공통된 것이며 자연스럽게 모든 개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 다. 두 번째 모델에서는 변화는 한 개인이나 몇몇의 개인들로부터 시 작돼서 나중에 나머지 언어집단으로 확산될 수 있었다. 따라서 첫번째

〈생리학적 〉 모델은 음 변화는 일정한 시점에서 전 공동체 내에 균일 하다는 생각을 뒷받침했고 , 음 변화는 개인에서 개인으로 전달된다는 생각에 기초한 두 번째 〈심리학적 〉 모델은, 공동체 내의 어느 〈한〉 개인에게 있어 주어진 하나의 음이(동일한 음성적인 상황에서) 일어나 는 모든 예는 함께 다 변형된다고 할지라도 집단 내에는 옛 발음을 여전히 지니는 개인들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이미 새로운 발음 을 받아들인 경우도 있다는 것을 가정해야 했다. 변화를 점진적 과정 으로 보았다는 사실은 이러한 변이의 정도를 제한하기는 했어도 변이 롤 배제하지는 못했다. 델브뤼크는, 예외없는 음 법칙이 개개인들에게 만 영향을 미칠 뿐이며, 그것이 통상적인 언어든 문어이든 간에 현존 하는 어느 언어의 집합체 내에서 완전한 균일성을 발견하기를 기대해 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어느 한 언어공동체 내의 모든 개개인이 정확하게 똑같이 말을 한다는 것은 있음직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한 개인의 경우에서, 아니 아주 정확히 말한다면, 단지 어느 한때 한 개인의 통상적 인 말에서만 이러한 법칙들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할 뿐이다. 어느 한 개인이 그가 아는 어휘 전체를 그의 발성기관을 통해 발음하게 한다고 가정하고, 그가 일생의 어느 일정한 순간에 말하거나 말하려는 것으로부 터(가장 넓은 의미에서) 차용된 것으로 간주되는 모든 것을 먼저 뺀 다 음, 유추 작용에 의한 음성 형태를 모두 빼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한 다음 남는 형태가 음 변화만에 의한 결과인 것이다. 여기서 그리고 단지 여기 에서만 …… 우리는 모든 유추적 경우를 다루는 데 있어서의 완전한 균 일성을 기대할 수 있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음 법칙은 이와 같이 예의를 인정치 않는다고 주장해야 할 것이다.5 9)

59) DelbrUck, Intr od ucti on , p.12 0.

균일한 음 법칙의 작용을 개인에게로 좁혔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진 모든 제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 델브뤼크의 원칙에 대 한 신중한 설명은 모든 신문법학자들에게 공통된 개념, 죽 음 법칙은 음에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리고 음 변화의 원인들은 적용될 수 있는 모든 예에서 균일하게 효력이 있기 때문에 , 예의를 인정할 수 없 다는 생각을 여전히 나타내고 있댜 〈음성학에 진지하게 주의를 기울 인 모든 학자들이 모든 변화를 촉진하는 원천은 임의적이거나 우연한 것이 아니라 아주 규칙적이라는 관념에 의식적으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 . 60) 그러나 이러한 음 변화를 〈촉진하는 원천〉에 대한 개인주의적, 심리학적 설명은 음 법칙의 예의없는 작용을 적용할 수 있는 모든 예가 한 순간의 한 화자로 좁혀져 내려왔다는 것을 의 미했다. 〈 동일한 원인/동일한 결과〉의 원칙은 여전히 예의없는 음 법 칙의 특성을 정당화하는 것 같지만, 음 변화의 진정한 원인은 명백한 의적 결정소를 가지지 않은 구체적이며 심리적인 요인들이었기 때문 에 결과는 독특한 개개인들에게서만 충분히 식별될 수 있었다.

60) Delbri ick , Intr od ucti on , p.11 6.

음 변화에 대한 신문법학파의 두 번째 이론은 신문법학자들의 철학 적 주장을 대부분 만족시켰다 . 음 변화는 규칙적 언어 사용에 관련된 동일한 일상적 요인들로부터 나온 결과로 설명되었다. 이 요인들은 본 래 심리적 및 물리적이며 모든 시기에 균일하게 작용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파울과 델브뤼크가 제공한 인과적 설명은 불완전했다. 일반적 언어 변화를 설명하는 것은 어떤 특정한 음 변화를 설명하는 것과는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 모든 알려진 음 법칙은 제한적으로만 타당해서 화자집단에만 적용되었고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만 유효했다. 게다가 결코 기존의 조건들에서 나오는 필연적인 결과로 보이지 않았다. 그들 자신의 특정한 음 법칙에 따르면, 둘 또는 그 이상의 언어들이 같은 모어에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인데 신문법학자들은 이것이 어떻게 가

능한지를 설명할 수 없었다. 우리가 신문법학파의 음 변화 법칙을 다 윈의 진화론과 비교한다면, 상대적으로 말해서, 파울은 자연도태론 없 이 언어에서의(발생론적인) 변이에 대한 메커니즘의 정교한 이론을 발 전시킨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편의〉라는 요인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댜 __ 그것 역시 일반적인 것이어서 환경과는 무관하 게 작용하기 때문에, 동일한 근원에서 나와 다르게 발달한 과정을 설 명할 수 없었다). 첫번째 이론으로부터 두 번째 이론에로의 전환에는 음 변형을 설명 하기 위해 끌어들인 요인들에 변화가 있었을 뿐 아니라, 음 법칙 자체 의 과학적 위상에 대한 변화도 수반되어 있었다. 신문법학자들은 자연 과학 법칙은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루드비히 토불러 Ludwig Tobler 의 의견에 동의했댜 두 가지 조건이란, 자연 법칙은 〈예의없는 타당성 except ion less val idity〉을 지녀야 한다는 것과, 자 연과학은 특정한 힘의 작용을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다시 말해서, 인과적이어야 한다 ).61) 음 변화가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이유와 방법 에 대한 설명과 음 변화가 특정 조건에서 특정한 방법으로 일어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의 불일치가 오스트호프 이론에서는 문제가 안 되었 기 때문에, 신문법학자들은 음 변화의 생리학적 이론을 고수하는 동안 은 음 변화를 자연 법칙과 유사한 명제로 간주했다. 특정한 기후, 환 경, 문화적 조건이 발음기관에 영향을 미쳤고, 음 변화는 이러한 변화 들로부터 진행되었다. 음 법칙의 타당성이 일정한 시기에 특정한 지역

61) 토블러는 음 법칙이 자연 법칙과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맹렬히 비판했 다 (Uber die Anwendung ). 파울은 그의 Pr i nc ip les 에서 음 법칙은 자연 법칙 과 유사하다는 그의 이전 주장을 철회하면서 토불러를 인용했다 . 토불러는 음 변 화와 관련된 인과 요인들에 대한 오스드굵立의 공식화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어 떤 주어진 변화의 원인을 명시하지 않은 음 법칙에 대한 표준적 기술을 비판한 것이다. 그는 이러한 공식화가 자연 법칙들에서 필수적인 사항들을 충족시키지 못 했다고 주장했다.

에 살고 있는 일정한 집단에 한정된다는 사실은 이 이론으로 충분히 이해가 되며 인과적으로 설명이 되었다 음 법칙에는 예외가 없으며, 〈그리고〉 독특하고 필연적인 인과관계로 생각되었다. 그래서 파울은 1879 년에 〈나는 모든 음 법칙은 화학이나 물리학의 법칙과 꼭 마찬가 지로 절대적 필연성으로 작용하고 어떤 예외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가 설로부터 출발한댜〉 62) 라고 썼다 첫번째 모델이 일단 거부당하자 음 법칙을 자연법칙과 동일시한 것도 마찬가지가 되었다. 음 법칙을 자연 법칙과 동일시한다고 주장한 지 꼭 1 년 후에 파울은 그의 견해를 바 꿨다. 〈음 법칙에 대한 생각을 우리가 물리학이나 화학의 ‘법칙들’에 대해서 말하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음 법칙을 어떤 일반 적 조건에서 항상 규칙적으로 일어나야만 하는 것으로 설명하려는 게 아니라, 단지 특정한 역사 현상의 한 집단 내에서 균일성이 지배한다 는 것을 표현했을 뿐이댜〉 63 )

62) Paul, Prin c ip le s, Zur Gesch ich te , p.l. 63) Paul, Prin c ip le s, p. 57.

파울과 그 밖의 다른 신문법학자들은 음 법칙이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여전히 주장하기는 했어도 이 〈예의없음 exce pti on­ lessness 〉에 대해서 자연 법칙은 시간과 장소에 제한되지 않는 반면, 음 법칙은 시간과 장소에 제한되는 것임을 인정했다. 그리고 두 번째 이론은 이러한 제한을 특정한 인과적 요인의 작용으로 돌리지 못했기 때문에, 자연과학의 법칙에 요구되는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어떠 한 음 법칙도 이 〈법칙〉이 기술하는 변화를 야기시키는 힘의 작용을 설명하지 못했다. 어느 의미에서는 음 법칙은 전혀 법칙이 아니라 역 사적 규칙성에 대한 기술일 뿐이라고 신문법학자들이 인정한 것은 실 패를 자인한 것이었다어) 신문법학자들은 언어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64) 첫번째 모델에서 음 법칙과 자연 법칙을 동일시한 것은 모든 언어학은 자연과학 이라는 신념과 동일한 것은 아니었다 . 첫번째 모델이 주장한 것은, 음 법칙에서

포섭되었던 바와 같은 언어학의 중거는 자연과학에서의 중거와 본질상 유사하다 는 것이었다. 이것이 사실인 한에서는 언어학이 자연과학과 어떤 유사성을 지니고 있었다. 더구나, 파울은 『언어사의 원리』에서 자연과학과 문화과학 사이에 표의적 및 법칙적 과학의 이분법에 의거하지 않은 구분을 제안했고, 신문법학자들이 문화 과학은 법칙적일 수 없다고 믿었다는 중거도 없다. 파울에게 있어서 문화과학도 법칙적일 수 있지만 자연과학과는 대조되게 심리학이 문화과학을 위한 기본적 학 문으로 쓰인다는 것이었다 . 〈문화의 특징적 표지는 정신적 요소와 다른 요소들이 협력한다는 데 있다. 이것은 순수하고 단순한 자연과학의 대상들과 비교해서 이 영역에 대해 가능한 단 하나의 규정인 것으로 보인다.〉 (Prin c ip le s, p. XXVIII). 파울이 『언어사의 원리』를 쓸 당시 그는 모든 언어 현상은 심리적 요인에 달려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모든 언어학은 문화과학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첫번째 모 델에 따르더라도 유추 작용은 심리적 작용의 결과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이때에 도 이러한 정도까지는 언어학이 문화과학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기껏해야 신문법 학자들은 오스트호프가 Das phys io l og isch e und ps yc holog ish ce Momen t에서 주장했던 것처럼 언어과학이 부분적으로는 자연과학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그 들은 결코 모든 언어학을 자연과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실제 요인들〉을 통하여 인과적 설명을 해야 할 필요성을 누차 강조 했지만, 그들은 특히 일정한 변화가 일어난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해 줄 음성 변형의 인과적 이론을 발전시킬 수 없었다. 파울의 원칙과학 은 단지 음 변화가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설명했을 뿐이다. 신문법학파 이론이 음 변화의 특정한 원인을 설명하지 못한 데는 이 원인들의 연 구에 대한 궁극적인 관심의 결여도 있었다 . 처음에 신문법학자들은 그 러한 연구를 옹호했고 〈어떤 요인들이 말을 하는 데 관여하며, 어떻게 이러한 요인들이 함께 작용하여 말의 실체를 진행시키고 수정하는 지〉 65) 를 연구하지 못한다고 이전의 언어학자들을 비난했다. 〈죽은 언 어 dead lan g uag es 〉가 아니 라 〈살아 있는 방언 livi n g di alec t s 〉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언어 변화의 원인과 과정에 대 한 연구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신문법학자들이 결국은 자신들의 방법론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줄 것이라고 믿었던

65) Osth o ff and Brug m ann, Prefa c e, p. 198.

방언의 경험론적 연구에 대해서 신문법학자 자신들은 주의 를 기울이 지 않았댜 그 학파 최초의 구성원들은 19 세기 마지막 4 반 세기에 이 러한 유형의 연구가 증가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들 자신의 충고 를 따르지 않았다 66) 그렇다면 신문법학자들은 〈보다 최근의 언어 발 달과 살아 있는 방언에 대해 연구할 것〉과 〈심리적 • 물리적 메커니즘 의 관찰을 통해 언어학자들이 즉각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된 것들에 대해 주목할 것〉 m) 을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은 왜 인구어의 가장 오래된 시기에 대한 연구만을 고집하고, 왜 문헌에서 입증된 다양한 역사적 언어들로부터만 음 변화의 규칙성을 찾으려고 했는가? 신문법 학자들은 왜 언어학의 개혁에 대한 그들의 분명한 요구나, 그리고 자 신들의 이론에 관해서 스스로 권고했던 연구에는 착수하지 않았는가?

66) 신문법학자들은 살아 있는 언어에 대한 연구 를 칭송했고, 오스트호프 Os th o ff와 브루크만 Bru g mann 은 Pre fa ce” 에서 요스트 빈텔러 Jos t W int eler 의 고향 방언 에 대한 연구 를 언급하고 있다 (D i e Kerenzer Mundart des Kanto n Glarus). 살아 있는 방언과 지리언어학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I. Iordan and J. Orr, An Intr od ucti on to Romance Lin g uist i cs

이 질문들은 우리가 신문법학파가 형성되었던 당시의 제도적 상황 과 독일 대학 제도 내에서의 비교언어학파 및 그 학파 최초의 구성원 들의 위상을 고려할 때만 답할 수 있다 . 이것이 다음 장에서 다룰 내 용이댜

제 5 장 신문법학파의 위로부터의 혁명 과학사회학자들은 일반적으로 과학자들이 연구 업적을 서로 인정해 주는 어떤 교환 형태가 과학적 작업을 조직화하는 데 중심적 역할을 하고 혁신을 탐구하는 추진력이 된다는 것에 동의를 하면서도, 연구의 가치가 동료들 사이에서 평가되는 방식이나, 과학자들이 보상(또는 신 뢰성이나 신용)을 축적하기 위해 채택하는 책략이라든지, 또는 명성이 따르는 그 사용 방법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동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과학적 연구 업적이란 사심 없는 학자들의 공동체에서 대체적으로 별문제 없는 것으로 평가하고 인정해 주는 선물이라고 본 하그슈트롬 Ha g s tr om 을 비 판하면서, 라투어 La t our 와 울가 Wool g ar 는 보다 경 제 적으로 풍족하고 공리적인 교환 체계를 제시했다.J) 그들의 모델에 의 하면, 연구 업적의 가치를 평가하는 이유는 과학의 규범에 따라 당연 히 인정되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연구를 수 행하기 위해서는 그들 동료들의 연구 업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

1) Lato u r, Bruno and Ste v e Woolga r , Laborato r y Lif e: The Soc ia Constr uc ti on of Sc ien ti fic Facts (Be verly Hills and London: Sa ge Publi ca ti on s, 1979).

서 평가는 다른 사람들이 이용한 데에서 생겨나고, 거기에서 얻어지는 신뢰성은 〈재투자〉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자본으로 전환될 수 있 다. 한 과학자에게 있어서 〈성공적 투자란 사람들이 그에게 전화를 하 고 그의 논문이 받아들여지고, 그의 연구가 관심을 끌고, 더욱 쉽게 믿음성을 확보하여 그의 말이 주목을 받게 되고, 보다 좋은 일자리가 제공되고, 그의 분석이 좋은 효력을 보여 자료가 보다 신뢰성 있게 유 통되고, 그래서 더욱 믿을 만하게 되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2)

2) 같은 책, p. 207.

라투어와 울가의 신뢰성 순환 c y cle of cred ibi l it y 모델은 수요의 본질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에서(이 수요는 그 성격이 항상 같 고 특정한 대상으로부터 나온다는 가정은 너무 속단적일 수도 있지 만), 그리고 축적된 신뢰성이 새로운 투자에 필요한 다양한 자원으로 전환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여하튼, 그들 이 제시하는 모델은 그 기원에 대한 분명한 표지, 죽 특정한 기간에 단 하나의 실험실 내에서 행해진 연구임을 밝히고 있다. 그리하여 라 투어와 울가는 신용을 축적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책략을 세우는 데 사용하는 좀더 광범위한 제도적 맥락의 역할을 경시하고, 다양하게 구 축된 분야들간의 차이를 무시하고 있다. 라투어와 울가는 과학자들 자 신의 분야 및 전체적 과학 사회의 조직체 안에서 다양한 위치에 있는 과학자들에게 주어지는 기회와 한계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소여 사항으로 다루고 있다. 죽, 서로 다른 역사적 시기와 다양한 분 야에서 동일한 것으로 간주한다.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들이 다른 사람들의 연구를 이용하는 방식과 정도에 대해서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휘틀리 Whitl e y는 그의 최근 연구에서 서로 다른 지적 분야들을 구분하는 데 통용되는 변수의 하나로 상호 의존도(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연구

업적을 사용한 정도) 를 사용했다 . 31 비교적 낮은 기능적 의존도 fun cti on al de p endence 를 가진 분야에 서 <이 용 가치 use value> 에 바 탕을 둔 신용도는 좀더 통합적인 분야에서보다는 덜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타당하다. 그렇다면 〈이용〉만이 과학자들이 그들 동료 들의 연구를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인가?

3) Rich ard Whitley , The Inte l lectu al and Socia l Orga n iz a ti on of the Sc ien ces (Oxfo rd : Clarendon Press, 1984).

라투어와 울가가 투자에 대한 설명에서 이렇게 보다 광범위한 제도 적 구조 및 다양한 과학 조직의 차이에 주목하지 않은 것은 명백하다. 신뢰성의 특정한 투자 형태로의 전환은 다양한 제도적 상황과 과학 사회 내에서 서로 위상이 다른 과학자들에 따라서 다르게 형성될 것 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신뢰성이나 명성이 〈원칙적으로〉 다양한 형 태의 새로운 투자로 전환될 수 있는 반면, 이들 투자의 실제 형태는 자원의 이용 가능성, 그 분야의 제도적 조직과 권위 구조 , 그 안에서 한 명의 과학자 또는 과학자 집단이 차지하는 위치 등과 같은 요인에 의해서 형성될 것이다 . 극단적인 예를 들면, 제도적으로 급속히 팽창 하는 시기에는 한 과학자가 쌓은 신뢰성으로 인해서 그에게 〈더 좋은 자리가 제공〉될 수 있지만, 축소되고 있는 〈시장〉에서는 똑같이 쌓은 신뢰성이 학자로서의 지속적 취업을 보장할 만큼 충분치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재투자〉는 후자의 경우에 아주 다른 대상(예를 들면, 산업 쪽)으로 갈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공식 • 비공식 서열 관계에서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의 미래 가치를 높 이기 위해서, 축적한 신뢰도를 그들 분야의 경계선을 재정의하거나 앞 으로의 인지적 발전에 영향을 줄 만한 힘으로 전환시켜 차별적으로 재두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휘틀리가 하그슈트롬에 대해 비판한 것은 라투어와 울가에게도 적용된다.

동동한 지위와 자원 을 갖고 서 로 상부상 조 하 는 동료들 에 관한 이 모델 은 과학에서의 권위의 계 층 화와 자원의 불 평동한 분 배 를 무시한다 . 이것 은 또 차별적 인정과 보상이 과학지식의 생산 체계에 미치 는 영향을 경 시하며 , 따라서 보상 체계에 대한 중요한 점, 죽 이것이 통제 수단이라는 것을 〈 잊어버린다 〉 . 그리하여 과학에서 명성 을 추구하는 것은 , 예술이나 문화적 생산의 다 론 체계에서와 마찬가지로 , 단순히 서 로 둥을 두드려 주 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식의 목표와 과정을 지배하 는 힘에 대한 추구인 것이다 높은 명성을 가진다는 것 은 다른 사람 들 로 하여 금 당신 자신의 견해와 생각을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여 당신의 방향으로 따라오게 하는 능력이라는 뜻을 내포한다. 그것은 자원의 할당과 , 간접적으로는 명성이 기관을 통제하는 실무 조직에서 일자리의 할당에 영향 을 줄 수 있는 능 력이기도 하다. 따라서 명성을 얻기 위한 노력은 자원과 우선권에 대한 투쟁을 수반한다 . 마찬가지로, 과학자들은 명성에 중립적이고 무감각한 시 장에다 연구 결과 를 내 놓 기보다는 다른 사람 들 의 의견과 평가 를 적극적 으로 조작하기 위해서 자원의 양과 종류 를 바꾸어 가며 다양한 책략에 종사한다 . 4 )

4) 같은 책, pp. 25- 26 .

명성을 얻기 위해 상이한 투쟁을 한다는 생각은 사상학파들의 형성 을 논할 때 어느 한 분야 안에서의 권위의 서열 관계와, 보다 광범위 한 제도적 틀(자원의 가용성과 분배 , 학생들과 일자리에 접근할 수 있 는 기회, 〈외부의〉 지식소비자들의 역할 등)에 의해 주어지는 기회와 제약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 더군다나, 명성을 얻 기 위한 투쟁에 〈지식 목표와 과정〉을 규정하는 힘을 둘러싼 갈등이 수반된다면, 이러한 노력이 일어나는 제도적 맥락에서 이에 관한 연구 를 하는 것은 하나의 주어진 지적 분야에서의 인지적 발전의 특정한 방향을 밝혀 주고, 더 일반적으로는 제도적 • 사회적 요인들이 인지적

발전에 영향을 주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 다시 말해서, 인정받기 위해서나 권위를 넓히기 위해서 과학자들이 이용하 는 책략들을 이러한 책략들이 사용되는 특정한 제도적 구조의 맥락에 서 보면, 특정한 과학 분야가 발달하는 사회적 조건과 이러한 발달의 특정한 인지적 방향 사이의 연결 관계를 밝혀 낼 수도 있다. 이제 이러한 견지에서 신문법 사상학파의 형성을 검토해야 할 것이 댜 1 문제점 1885 년 뛰어난 비교언어학자이며 고전학자인 게오르그 쿠르티우스 Georg Cu rti us 는 이미 수년 전에 언어학에서 새로운 사상학파의 형 성을 선언했던 그의 몇몇 제자들의 주장에 대해 논하면서, 비교언어학 에 근본적인 이론적 • 방법론적 점검과 새로운 기반이 필요하다는 주 장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쿠르티우스는 〈 60 년 동안 인도-게르만 언어학은 평탄하게 커다란 내부적 모순 없이 발전해 왔다〉는 점을 상 기시키며, 〈많은 분야에서 이전의 견해로부터 철저히 일탈할 필요〉를 의치는 〈새로운, 아니면 아직 미숙하고 분명 더 까다로워 보이는 성향〉 의 출현에 대해 개탄했다 .5)

5) Georg Cu rtius , Zur Kriti k der neueste n Sp rac 사o rschun g (Leip z ig : Hirzel 1885), pp. 1~2.

쿠르티우스의 당혹감은 이해할 만했다. 1870 년대에 이르러서는 비교 문법은 여러 문헌학 분야에서 인정받는 위치에 있었다. 쿠르티우스의 노력에 크게 힘입어 비교 • 역사언어학 연구는 고전문헌학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다른 문헌학 분야에서의 연구와 교육도 비교 • 역사적 방법론에 폭넓게 기반을 두고 있었다. 더군다나, 60 년대와 70 년대에는

언어학에서 새롭고 중요한 발견이 홍수를 이루었으며, 언어학의 급성 장은 널리 인정받았다. 그러나 새로운 음 법칙에 대한 발견이 잇달아 성공을 거두고 있을 때, 독일 언어학 연구의 가장 두드러진 중심지인 라이프치히 대학과 연관된 일단의 촉망받는 젊은 학자들이 새 원칙들 을 받아들여, 언어학의 방법론을 수정하고 비교언어학의 기본 가설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음을 선언했다. 1878 년에 새로운 학파의 창설을 발표했을 때, 이 최초의 반란자들은 대부분이 이미 인구언어학에서의 중요한 연구 업적으로 명성을 얻었던 사람들이었으며, 명성 있는 대학 에서 교수직을 갖고 있었고, 화려한 학문의 길이 예정돼 보이는 사람 들이었다. 무엇이 이렇게 보장받은 언어학자들로 하여금 반란을 일으 키게 했던 것인가? 왜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하나의 운동이나 방향R i c htu n g으로 칭하고 언어학이 지금까지 이루어 놓았던 것들을 비판함으로써 그들의 동료 • 선배들과의 불일치를 강조하려 했던 것인 가? 왜 이 사건이 그러한 폭풍과 같은 오랜 논란을 몰고 왔는가? 한 사상학파가 형성되는 것은 동일한 분야의 연구에 종사하는 둘 이상의 학자 집단간의 심원한 혹은 타협할 수 없는 인지적 차이에서 나온 직접적인 결과이며, 인지적 분기가 크면 클수록 한 학파의 출현 가능성이 그만큼 높고 그에 따른 논란도 그만큼 거세리라는 것은 타 당한 가정일 것이다(예를 들면, 오쏘브스키 Ossosws ki의 가정 ).6) 그러 나, 우리가 앞에서 본 신문법학파의 관념체계에 대한 분석은 이러한 상식적 견해를 뒷받침해 주지 않고 있다. 우리는 앞 장에서 신문법학 자들과 그들 선배들 사이의 인지적 차이가 실제이긴 하지만 새로운 학파 주창자들에 의해서 과장되었고, 신문법학자들과 그들에 대립한 학자들 사이의 논쟁은 실제 연구에서는 모순이 거의 없었던 문제들에

6) Sta nisla w Ossowski , O wlasciw oscia c h nauk spo le czny ch (On the peculiarities of the Socia l Scie n ces) in O Nauce. Vol IV of Dzie l a (Warsaw PWN, 1967).

집중됐음을 보았다 . 신문법학자 들 은 19 세기 후반에 독일 학계에 퍼져 있던 실증주의 및 심리주의와 보조를 맞추어 어느 정도의 철학적 • 이 론적 단절을 언어학에 불러왔댜 그들은 언어를 하나의 유기체로 간주 한 그들 선배들의 낭만주의적 개념과 언어가 성장하고 쇠퇴한다는 역 사주의적 신념을 둘 다 거부했다. 그 대신 신문법학자들은 언어에 대 한 심리적 • 생리적 활동으로서의 정의와 인과적 균일주의 가설에 바 탕을 둔 언어 변화 이론을 공식화하기 시작했다. 이 새로운 학파의 반 대파 학자들은 대체적으로 이러한 이론적 • 철학적 혁신에 반론을 제 기하지 않았고, 바교언어학의 이론적 • 철학적 기반이 현대화될 필요가 있다는 것에 단지 암묵적이더라도 동의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 대신, 그들의 의견 차이는 신문법학자들이 음 법칙의 예의없는 특성과 유추 원리의 보편적 적용을 강조함으로써 개혁했다고 주장했 던 언어학적 방법론에 집중되어 있었다 . 예의없는 음 법칙 원리가 언 어학의 방법론적 엄격성을 강화했다는 신문법학파의 주장에도 불구하 고, 그들의 실제 연구 작업은 그들 바로 앞의 선배들이나 반대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실상, 신문법학자들이 내놓은 연속적이고 정말 로 혁신적인 언어 변화 이론은 많은 중요한 발견을 지속해서 가져오 게 했던 수용된 언어학 방법론을 수정하기보다는 보존하는 식으로 만 들어진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신문법학자들의 범주적 공식화는 철학적 으로나 이론적으로 필요하게 생각되었을지 모르지만 방법론과는 거의 관계가 없었다. 더군다나, 신문법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에서 그들이 권장했던 이론 들을 무시하고, 기존의 연구 패턴을 따랐다. 예를 들면, 그들은 언어 변화에 대해서 인과적 설명을 주장하면서도 이에 대한 설명을 제시하 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언어학자들은 살아 있는 언어와 구어 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그들의 연구를 문서로만 보 존되어 있는 거의 죽은 언어들에만 한정시켰다.

따라서, 신문법학자들은 사실상으로는 은폐된 아주 실제적인 〈이론 적 혁신 the oreti ca l i nnova ti ons 〉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논쟁을 결여하 고 있었다 〈방법론적 지속성 meth o dolog ica l con ti nu ity〉을 둘러싸 고 열띤 논쟁을 벌인 한편, 그들 스스로 이행하지 못한 이론적 요구와 그들의 방법론적 엄격성의 강조, 공표된 연구 목표와 성공적인(그러나 전통적인) 연구 실행과의 모순 등 이 모두가 인지적 사항들이 신문법 학파라는 사상학파가 형성되는 데에 최우선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음 을 시사하고 있다. 그보다는 이 언어학자들의 집단이 하나의 사상학파 의 창설을 공표하도록 만들었던 사회적 • 제도적 상황들이 있었으며, 몇몇 이론적 혁신에 대한 공식화는 물론 이어받은 방법론적 원칙들의 절대적 공식화 등도 적어:£ 순전히 지적인 고려에서 나온 만큼이나 제도적인 압력과 제약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는 과학에서 명성을 얻기 위한 투쟁은 일정한 지적 영역에서 목표, 방법, 평가 기준들에 대한 특정한 개념을 진전시키려는 시도를 수반하며, 한 사상학파의‘ 형성은 학자로서의 연구를 정당화하기 위한 독립된 권리를 수립함오로써, 제도적인 재약이 있더라도 그 분야의 권 위 구조에 대한 도전을 해 보려는 조직화된 시도로 볼 수 있음을 논 했다. 여기서 답해야 할 문제는 신문법학파의 형성을 그러한 권위를 얻기 위한 노력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이며, 그렇다면 왜 이 러한 노력이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해설이 신문법학자들의 어 떤 인지적 주장의 설명에 도움이 되는가? 신문법학자들의 비교언어학 자들 사회 속에서의 위치와 독일에서 언어학이 제도화하게 된 특별한 방식은 신문법학 관념체계의 성격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

2 과학적 권위 를 얻기 위한 시도로서의 사상학파 신문법 사상학파의 출 현 을 촉 진했던 사건은 분명히 과학적 권위에 대한 상충된 주장 들 과 관련이 있다. 1876 년 게오르그 쿠르티우스가 라이프치히를 떠나 있는 동안, 쿠르티우스의 제자이며 《그리스어 및 라틴어 문법 연구 Stu d ie n zur gr ie s chis c hen und late i n i s c hen Gramma ti k 》의 공동 편집인이었던 카를 브루크만은 〈음절을 이루는 비음 nasal i s sonans 〉에 관한 자신의 논문을 이 잡지의 제 9 권에 실었 댜 브루크만의 결론에 동의하지 않았던 쿠르티우스는 브루크만이 자 신의 연구를 이 잡지에 발표함으로써 자기에게 위임된 권위를 모독했 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쿠르티우스는 그 잡지에 실린 연구에 대하 여 책임이 없다는 주석을 붙였고 브루크만을 이 자리에서 쫓아냈다 .7 ) 쿠르티우스와 브루크만과의 의견 차이는 특정한 인지적 문제(원시인 구어에 모음성 비음 voc ali c nasals 들이 존재했다는 것)에 관한 것이 었지만 그 갈등이 편집 논쟁의 형태를 띠었다는 사실온 중요하다. 어 쨌든, 과학 잡지의 편집인에게 고유한, 학자의 연구를 출판하는 데 영 향을 주거나 통제까지도 할 수 있는 능력은 과학적 권위를 행사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의 하나다. 브루크만의 논문이 출판된 데 대한 책임 을 부인함으로써 쿠르티우스는 이 논문만이 아니라 책임 있고 타당한 과학적 판단을 할 브루크만의 능력도 의문시한 것이었다. 그 잡지의 제 9 권에 붙인 주석으로 브루크만의 연구의 정당성을 박탈하고, 동시에 연구 평가에 대한 브루크만의 권리도 손상시킨 것으로 간주할 수 있 었다. 브루크만과 그의 동료들은 그들의 권리를 재천명해야 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신문법학파를 창설했다. 1878 년에 브루크만은 헤르만 오

7) Terence Wi lbu r, Intr od ucti on to The Lautg e setz - Cont rov ersy : A Documenta t i on U885-1886)(Amste r dam : Joh n Benja rnins B.V .), p. xxxiv.

스트호프 Hermann Os t ho ff와 더불어 그들 둘만의 논문을 실은 《형 태론적 연구M orp h olog is che Unte r suchung e n> 를 출판하기 시 작했 댜 오스트호프와 브루크만은 그들의 〈서문〉에서도 분명하게 기존 엘 리트들의 평가 기준을 혹평했던바, 이제 이 잡지를 출판함으로써 이들 을 무시해 버린 것이다. 같은 시기에, 다른 두 명의 신문법학자인 헤 르만 파울 Hermann Paul 과 빌헬름 브라우네 Wi lh elm Braune 는 보 다 전형적인 잡지 《독일어문학사 기고 Be itra g e zur Geschic h te der deuts ch en Sp r ache und Lit era tu r > 를 편집하고 있었다. 마침내 브루 크만은 정기간행물 《인도게르만어 연구 Indog e rrnan is che Forschung e n> 를 출판할 수 있게 되어 다른 언어학자들의 연구 논문을 발표하고, 언 어학 연구에 대한 평가와 판정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얼마 후 《기 고 Beit rag e > 와 《인도게르만어 연구I ndo ge rman is che Forschung e n> 는 그들 분야에서 주도적 학술지가 되었다. 신문법학자들이 독자적인 과학적 권위를 주장했다고 해서 비교언어 학의 기존 엘리트들과 결속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논 란 이전과, 논란이 한창일 때, 그리고 논란 이후에도 그들의 논문들은 당시의 주요 비교학 전문지였던 쿤 Kuhn 의 《비교언어 연구지 Zeits ch rift fur vergl eic h ende Sp rach fo rschun g》에 자주 실렸으며, 이 전통적인 토론장에 그들의 논문을 발표하는 데에 어떤 어려움이 있었던 흔적도 없댜 브루크만의 논문들은 1879 년에 3 편, 1881 년에 3 편, 1885 년에 4 편이 실렸다. 오스트호프와 휩쉬만 He inri ch Hti bs chmann, 델브뤼크 Be rth old Delbrt ick 등도 《비교언어 연구지》 에 기 고했다. 신문법 학자들이 비신문법 학 non-Neog ra mrna rian 전문 지에 논문을 쉽게 실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다른 언어학자들이 그들 의 연구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연구 발표를 위한 독자적 출구를 정립하려 한 것이 아니었음을 말해 준다. 실제로, 신문 법학자들의 경험론적 연구의 타당성은 일반적으로 인정을 받았으며,

기존 전문지에 그들의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외부로부터 정당성을 획 득하게 되었고 과학 사회에서의 위상을 높여 업적을 더 널리 인정받 게 되었다 . 이렇게 해서 신문법학자들은 기존 과학 엘리트로부터 인정을 받고 정당성을 얻어 내려는 시도를 하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정기간행물을 출판하고 그들 나름대로의 엄격한 평가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언어학 에서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과학 엘리트로서의 위상을 획득하려 애썼다. 혼히 〈이중적 정당화 체 계 dual leg itima ti on sys t e m > 안에 서 기 능을 해 야 하는 , 모순된 것 처럼 보이는 이러한 책략이 일반적인 학파의 특성인 것 같다. 과학에 서 가치 있는 자원에 대해 접근하려면 학문적 기여의 가치를 인정받 아야 하기 때문에 , 학파들은 그들의 연구에 대해 의부로부터 정당성을 얻어 내려고 애써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목표가 독자적인 과학적 권 위를 주장하기 위한 것이라면 과학적 연구 업적의 정당화를 위한 독 자적 수단을 강구해야만 한다. 신문법학자들의 경우에 있어서, 그들의 연구 업적을 기본적으로 인 정받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젊은 언어학자들이 그렇게 강력하게 권위에 대한 주장을 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인가에 대하여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 이 질문에 대해 그 학파의 창립 멤버들의 초 기 위상과 전망을 살펴보면 도저히 명백한 답을 찾아 낼 수가 없다 . 새 학파의 핵심을 이루고 있었던 언어학자들은 아주 뛰어난 집단이었 다. 브루크만, 오스트호프, 레스킨, 파울, 델브뤼크, 지버스, 브라우네, 휩쉬만들의 전기를 검토해 보면 그들의 학문적 성공은 대단히 빨랐으 며, 논란이 있기 이전에 이미 상당한 정도로 성공했다는 사실에 놀라 지 않을 수 없다. 이 8 명의 학자 가운데 6 명은 논쟁이 공공연해지고 학파 선언이 발표된 때인 1878 년에는 이미 정교수가 되어 있었다(브 루크만과 브라우네 2 명 이 예의 였다). 1870-79 년에 인문대학의 초임

교수 평균 연령은 34.9 세였고 신문법학자들의 경우 평균 연령은 31 세 였댜 브루크만(프라이부르크에서 교수에 임명될 때 35 살)과 레스킨 (라이프치히에서 임명될 때 36 살)만이 정교수가 되었을 때의 나이가 30 살을 넘었다. 대학에서의 자리가 불안정한 기간-즉, 강사 임용 Hab il ita ti on 에 서 첫 교수 임용 Ber ufu n g까지의 시간――도 신문법학자들의 경우는 독일 학계의 다른 교수들의 평균보다 짧았다. 신문법학자들은 첫 교수 직 Ordin a ria t 임용까지의 기간이 인문학 전체 교수들의 경우가 평균 8.5 년인 데 비해서 평균 5 년 정도였다(강사직에서 부교수직 Extr a- ord i nar i a t까지는 3년). 간단히 말해서 신문법학파의 초기 멤버들은 일찍이 (25 세에) 강사직에 임명되었고 기타 임용을 기다린 기간들은 그보다 더 짧았으며, 평균보다 젊은 나이에 독일의 대학에서 서열의 최고자리에 이르렀댜 8)

8) 신문법학자들과 비교하기 위해서 사용된 일반 인문학에 대한 자료는 다음을 참조 Ch rist i an Ferber, Di e Entw ick lung des Lehrkorpe rs der deuts c hen Uniu e rsit ate n und Hochschulen 1864-1954, in Unte r suchung e n zur Lag e der deuts c hen Hochschullehrer, ed. Helmuth ple ssner (Gott ing ge n: Vandenhoek und Rup re cht, 1956). 특히 도표 19 와 20 에서 인용.

신문법학자들의 제도적인 성공은 그들의 과학적 생산성으로 뒷받침 되었다 . 1875 년과 1876 년에만도 브루크만은 〈음절을 이루는 비음 nasalis sonans 〉에 관한 논문을 썼고, 지버스는 「음성심리학 기초 Grundlag e der Lau tp s y cholo gi e 」를 발표했으며, 레스킨은 슬라브어 와 게르만어의 동사 활용에 대한 책을 출판했고, 휩쉬만은 아르메니아 어와 다른 인구어들과의 관계를 입증했고, 오스트호프는 인구어의 강 변화와 약변화 및 격의 기원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이 연구들은 모 두 폭넓은 반응을 얻었고 기본적으로 호평을 받았다. 그들의 제도적 입지와 마찬가지로, 신문법학자들의 초기의 학문적 성공은 이 학파 형

성에 대한 공공연한 논란이 있기 전에 이루어졌다. 라이프치히 대학과 관련된 소장 학자들로서, 그리고 쿠르티우스와 슐라이허와 같은 비교언어학 권위자들의 제자들로서 개개인의 신문법 학자들은 그들 스승의 뒤를 이어 각기 분야에서 그리고 전체 독일 학 계에서 뛰어난 위치에 오르도록 예정된 것으로 보였다. 그들의 첫 경 력에서의 진전은 이러한 조기 가능성을 충분히 뒷받침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러한 언어학 엘리트 집단에로의 점진적 흡수가 젊은 학자들 에게는 충분한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음에 틀림없고, 이 들은 자신들의 분야에서 비교적 꾸준하게 조화로운 발전을 할 수 있 는 전망을 놓고 권위자들에 대한 공개적인 도전을 선택했다. 엘리트까 지 반기를 들 만한 상황이란 것이 있는가? 이러한 것은 어떤 조건에 서 이성적인 행동으로 생각될 수 있는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 해서 1860 년대와 70 년대에 독일 대학에서 일어난 변화와 이 변화들이 언어학 연구 영역에 끼친 영향을 검토해 보기로 하자. 3 제도적 환경 신문법학파의 도전은 독일 대학들이 급속히 팽창할 때 일어났다. 특 히 학생 등록이 극적으로 늘어났다. 1830 년과 1860 년 사이에 전체적인 학생 등록은 거의 정체적이었지 만 1860 년부터 독일 대학들의 학생 수는 유례 없는 속도로 증가했댜 1881 년에는 1861 년보다 두 배나 되는 학생이 있었다 철학부에 등록 한 학생의 수가 약간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났지만, 가장 큰 변화는 주요 대학들의 철학부 등록에서 일어났다. 186 1/6 2-66 년과 188 1/8 2-86 년 사 이에 베를린 대학 철학부 학생 수는 150% 까지 중가했고, 같은 기간 동안에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이 학부에 등록한 학생은 5 배로 증가했다.

독일 대학에서 학생들의 등록 변화, 1830-18869 )

연도 1831 /32 -36 1861/62— 66 1871/7 2 — 76 1881/82-86 전체 철학부 2,395 4,392 5,896 9,1 2 3 전체 학부 13,029 13,284 16,1 2 4 25,858 베를린 대학 철학부 381 740 816 1,874 철라이학프부치 히 대학 184 226 1,011 1,212

문헌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학생들의 숫자도 증가했다. 1878/79 년에 는 294 명의 학생들이 문헌학에서 중등학교 교사 자격을 위한 프러시 아 국가시험에 합격했다. 이 숫자는 1885/86 년에는 422 명으로 늘어났 다가 1891/92 년에 190 명 으로 급격 히 줄어 들었다 .10 ) 대학 교수들은 등록한 학생들의 숫자만큼 늘지 않았다. 특히 정교수 의 경우는 더 했다. 대학 강사P r i va t dozen t en 의 수는 증가했다 . 1864 년과 1880 년 사이에 독일 대학에서 가르치는 정교수의 수는 30% 까지 증가했고 이 증가는 인문학과 자연과학 (39% )보다 약간 높은 것이었 다. 그러나 가장 큰 변화는 여러 문헌학 분야에서 일어났다. 1864 년과 1880 년 사이 16 년 동안 문헌학 교수는 90 명에서 138 명으로 53% 증 가했다. 이 증가는 여러 문헌학 분야에 골고루 분배되어 있지 않았다. 고전문헌학에서는 교수의 수가 비교적 소폭으로 30% 까지 증가했지만, 다른 문헌학 영역에서는 엄청나게 늘어났다. 1864 년의 47 명과 비교해 서 1880 년에는 비고전문헌학의 정교수가 82 명이었다 (74% 증가).

9) Joh annes Conrad, Allge mein e Sta tist ik der deuts c hen Unversita ten , in Di e deuts c hen Univ e rsit iiten I, edited by W. Lex is (Berlin : Asher, 1893), pp. 118-121. 10) Wi llhel m Lexi s, ed., 1893. Di e deuts ch en Univ e rsiti iten I (Be rlin : Asher, 1893), pp.1 18-121.

과목 영역별 독일 대 학의 정교수 수 11)

연도 1864 1880 1890 증가( , 백18분6율4)-1 880 인문학 179 254 282 42 자연과학 135 181 204 34 모든 문헌학 분야 90 138 149 53 고전문헌학 43 56 56 30 바고전문헌학 영역 47 82 93 74 전체 학부 총계 723 947 1,037 31

독일 대학의 문헌학 교수칙, 1864-1890 12)

연도 1864 1880 1890 로만스어 문헌학 3 14 18 영어 문헌학 。 4 7 독일어 문헌학 14 23 24 슬라브어 문헌학 1 2 3 산스크리트어와 비교언어학 10 17 20 산스크리트어를 제외한 비유럽어 17 22 21 고전문헌학 43 56 56 총계 88 138 149

11 ) Ferber, Tables I and II. 12) 각Fe주rb e1r3, ) 도Ta b참le조s II and data from individu al uni ve rsiti es .

1890 년까 지 11 개의 교수자리가 더 늘어났기 때문에, 1890 년에는 1864 년의 두 배나 되는 다양한 비고전어 및 문학 분야의 교수들이 있 었댜 새 교수자리의 창설은 많은 문헌학 분야에 영향을 주었지만, 가장 극적인 변화는 현대 언어 분야에 있었다. 19 세기 초반에 제도화되기 시작한 독일 문헌학은 1870 년대까지는

대학의 필수 과목으로 간주되었댜 규모가 큰 몇몇 대학 들 (예 를 들면, 베를린, 슈트라스부 르 크, 라이프치히)에서 는 고대 언어 문서와 텍스트 는 현대 문학과 다르게 별도로 연구되어야 한다 는 전제 아래 독일 어 • 독일 문학의 제 2 교수직이 또 하나 생겨났다. 디에츠 D i ez 가 할레 대학에 그리고 불 랑 Blanc 이 본 대학에 임용되 었던 1830 년대에 대학 제도 내에 진입한 로만 스 어 • 로만스 문학에 대 한 연구는 그 후 30 년 동안 완전히 주변에 머물러 있었다 . 그러나 1860 년대와 70 년대에 이르러 곧 로만스 문헌학은 대학 과정에 필수로 여겨지는 학문 목록에 끼게 되었다 . 1880 년까지에는 로만스어 • 로만스 문학 교수자리는(종종 영어도 추가로 맡고) 예외적이라기보다는 이미 통례적인 것이 되어 있었다. 예나 대학, 프라이부르크 대학, 튀빙겐 대 학만이 로만스 문헌학을 맡은 정교수나 부교수가 없었다. 영어 문헌학 이 〈해방 emanc ip a ti on 〉과 더불어 독자적 학문으로 제도화한 것은 1870 년대 초반이었다. 베를린, 본, 할레, 라이프치히와 같은 큰 대학들 과 슈트라스부르크와 같은 신생 대학만이 1880 년 이전에 독립된 영 어 • 영문학의 정교수를 두었지만 다른 대학들도 곧 뒤 를 따랐다. 게다 가, 베를린 (1874 년 이래)과 라이프치히 (1876 년 이래)에는 슬라브어 문 헌학의 새로운 교수자리도 있었다 . 한편, 많은 대학에 산스크리트어 문헌학과 비교언어학의 교수직이 새로 설치되고 있었댜 프란츠 보프가 사망한 후, 베를린 대학에서 산 스크리트어 연구직은 비교언어학 교수직과 분리되었다. 비슷한 분리가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에서도 일어났다. 하이델베르크에서는 1872 년에 산스크리트어와 비교언어학의 새로운 교수자리가 하나 만들어졌다. 마 르부르크에서는 산스크리트어 학자들이 종종 맡았던 기존 동양 문헌 학 교수직을 보완하여, 1869 년에 비교언어학 및 독일 문헌학 교수직 이 생겼다. 1868 년에 기존의 비성서적 non-Bi bl ic a l 동양어 교수직에 산스크리트어 및 비교언어학 교수직이 추가로 생긴 뮌헨에서도 마찬

가지였다 1880 년에 는 배 를 린 , 본, 브레 슬 라우, 에 를 랑겐(이 대학에서 는 명칭이 여전히 〈 동양어 Orie n ta l is c he S p rachen 〉 였다), 괴팅겐 , 그 라이프스발트, 할레, 하이델베 르 크, 예나, 킬, 쾨니히스베르크, 라이프 치히, 뮌헨, 뮌스터, 슈트라스부르크, 뒤빙겐, 뷔 르 츠부르크 대학 들 에서 는 산스크리트어를 가르치는 교수가 적어도 한 명씩(정교수 아니면 부교수)은 있었댜 로슈토크 대학에는 산스크리트어 교수직이 없었지 만, 비교언어학 강의는 셈어 전문가가 개설하고 있었다. 로스토크 대 학을 제외하면 프라이부르크와 기센 대학에만 산스크리트어나 비교문 법학 전문가가 없었다. 이것도 곧 바뀌었다. 1884 년에 브루크만은 프 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산스크리트어와 바교언어학 교수가 되었고, 1886 년 에 브라드케 Pete r von Bradke 는 기센 대학에서 부교수가 되었다 .1 3)

13) 교 수직 에 대한 정보 는 여러 출처에서 수집했으며 개별 대학별로 다음 자료들을 참조 . Berlin : Max Lenz, Geschic h te der konig li ch en Frie d rich - W i lh elms- Univ e rsit iit zu Berlin (Ha lle: Wa ise nhauses, 1910) ; Hans Leusin k , Eduard Neumann and Georg Koto w ski , eds., Stu d iu m Berlin e nse:A u fsii t ze und Beit rii g e zu Problemen der Wi ss enscha ft und zur Geschic h te der Frie d rich - W i lh elms- U niv e rsit iit zu Berlin (Berlin : Gruy ter , 1960). Bonn: Ott o Wenig , Verzeic h nis der Profe s soren und Dozente n der Rhein i s c hen Frie d ric h - W i lh elms-U niv e rsit iit zu Bonn 1818-1968 (Bonn:1 9 68); Fri ed rich von Bezold, Geschic h te der Rhein i s c hen Frie d rich ~ W i lh elms- U niv e rsit at von der Grundung bis zum ]ahre 1870 (Bonn: Weber, 1920). Breslau: Theodor Sie b s, Zur Gesch ich te der ger man isc hen Stu dien in Breslau, Zeits ch rift Jiir deuts c he Phil o log ie, vol.4 3 (1911), pp. 202-235. Erlang en : Theodor Kolde, Di e Univ e rsit iit Erlang e n unte r dem Hause Wi ttels bach 1810-1 9 10 (ErJa ng e n and Leip z ig : Deic h ert 'sc he Verlag sb uchhandlung , 1910). Freib u rg: Badis c he Schulsta t i st i k: Di e Hochschulen (Karlsruhe 1912); Ursula Burkhardt, Germanis t il c in Sii dw estd e utc h land (Tti bi n g e n: Mohr, 1976).

Gott ing e n: Wi lh elm Ebel, Cata lo g us Profe s sorum Gott ing e nsiu m 1734-1965 (Gott ing e n, 1962). Greif sw ald: Fests c hri ft 2ur 500-]ahresfe i e r der Univ e rsita t Greifs w lad (Greif sw ald, 1956). Heid e lberg: Badis c he Schulsta tist i k; Die ge rmani sc hen Vorlesung en zw isc hen 1803 und 1900 an der U ni vers i沮t Heid e lberg , Rup e rt uzrola Zeit sch ri ft, XIX. Jah rga ng , Vol. 42 (19 67). Jen a: Diet r ich Germann, Di e Anfan g e der deuts c hen Ang list i k und die Entw ic k lung des Faches an der Un i vers i댜t Jen a, Archiv fiir Kultu rg e schic h t e, vol. 41 (19 59), pp.18 3-200, 342-372; Max Ste n rnetz , ed., Geschi chte der Univ e rsita t J en a. 2 vols. (Je na 1958/6 0 ). Kiel: Fri ed r ich Volbehr and Rich ard Wey! , Profe s soren und Dozente n der Ch risti a n- Albrecht s- U niv e rsita t 2 u Ki el , 1 856-1 9 54(K iel: Hirt, 1956). Leip z ig : Franz Eulenburg, Di e Entw ick lung der Univ e rsit at Leip z ig in den jet z t e n Hundert Jah ren (Leip z ig : Hirze l, 1909); Fests c hri ft zur Feie r des 500 ]iihrigen Beste h ens der Univ e rsit at Leip z ig , Band IV:D i e Instit ute und Semi na re der Phil o sop h is c hen Fakulta t an der Univ e rsita t Leip z ig (Leip z ig : Hirze l, 1909). Marburg: Franz Gundlach, Di e Akademi sc hen Lehrer der Phil li p ps - U niv e rsit at i n Marburg von 1527 bis 1910 (Marburg: Elwert 'sc he Verlags buchhandlung, 19'2 :/); H. Hermelin k and S. A. Kaehler, Die Phill ipps -U niv e rsita t 2u Marburg 1527-1927, Fii rif Kap itel aus ihr er Geschi ch t e (15 27-1866); Di e Univ e rsit at Marburg seit 1866 in Ein z eldarste l lung e n (Marburg: Elwert 'sc he Verlagb uchhandlung , 19'2 :/). Mun ich : Franz Babin ge r, Ein Jah rhundert morge nland isc her Stu dien an der Mi .inc hener U ni vers i닳t, Zeit sch ri ft fiir Deuts c he Morge nlandis c he Gesellscha ft, vol. lITT (19 57), pp. 242-269; Ste p h a nie Seid e l-Vollman, Di e romanis c he Ph ilo logi .e an der Univ e rsit at M i inc hen (Mun ich : Duncker and Rumbolt, 1977). Ti. ibi n ge n: Burkhardt, Germanis t i k. Ferber ; Lex is; Gusta v Kort ing, Ency c lopa e die und Meth o dologi .e der Romanis c hen Ph ilo logi .e (Heid e lbronn: Henn inge r, 1884); Mine rva: ]ahrbuch der Univ e rsit ate n der Welt (Str as sburg, 1893 ff).

19 세기 초에 비교언어학이 제도화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언어학이

독자적 학문으로 정립된 것은 아니었다. 제도화로 인해 언어학 방법론 과 관심사가 여러 문헌학 영역(고전학과 같은 기존의 분야들과 산스 크리트어와 로만스 문헌학과 같은 새로운 분야 둘 다)에 도입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보면, 문헌학 교수가 늘어남으로써 바교언어학자들은 실질적으로 그들의 입지가 넓어졌다. 문헌학 연구의 어떤 영역에서도 모든 새로운 교수자리는 비교언어학 분야에서 훈련된 학자나, 언어 발 달의 역사적 연구에 주력하는 학자로 채울 수 있게 되었다. 모든 학생 들은 역사비교언어학 연구 방법과 결과를 공부하도록 요구될 수도 있 었다. 문헌학의 어느 분야롤 막론하고 새로 나온 전문지는 언어학 연 구 발표룰 위한 잠재적인 토론장이었다. 그러나 문헌학 교수들이 이렇 게 늘어남에 따라 인지적 전문화와 사회적 차별화가 더 커졌다. 문헌 학 교수의 증가와 차별화는 문헌학 연구에 대하여 권위 있는 판정을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는 한편, 엘리트 개개인들의 권 한 분야는 더욱 제한되어 감을 뜻했다. 주커만 Zucherman 과 머튼 Me rt on 은 편집자들과 심사원들(전문지 에 과학적 연구를 발표 여부를 통제하는)의 역할을 과학의 파수꾼으 로서 고찰했다 . 1 4) 다른 사람들의 논문을 평가하여 발표할 것인가롤 결 정함으로써 전문지를 책임 맡은 사람들은 상당한 과학적 권위를 행사 했다 . 따라서, 정기간행물의 수가 많을수록(그리고 일정 영역에서의 연구 발표에 관한 결정을 하는 편집자의 수가 많을수록) 그만큼 과학 엘리트임을 주장하는 학자의 수도 많아질 것이다. 과학 엘리트 모두가 전문지의 편집인도 아니고(과학적 권위를 행사할 다른 수단들도 있었 고), 전문지의 편집인 모두가 엘리트에 속한 것은 아니더라도, 독일에 서 창간된 문헌학 전문지 수가 급격히 변한 것은 그 엘리트롤 열망하

14) Ha rriet Zuckerman and Robert K. Mert on , Patte rns of Evaluati on in Sci en ce: Instit ution a liza tio n , Str uc tu re and Functio n s of the Refre e Sy st e m , Mi ne rva, vol. 9 (1971), pp. 66-100.

독일 에서 발간된 문헌학 정기간행물의 수, 1850- 18 85 15)

연도 1850 1860 1870 1875 1880 1885 고전문헌학 63l2503 272532 133310 214431 32904146 1655 독일 문헌학 로만스어, 영어 , 슬라브어 문헌학 동양어 문헌학 언어학 총계 12 15 20 32 44 62

15) Joa chi m Kirch ner, ed., Bib l io g rap h ie der Zeit sc hrift en des deutc h e1 Sp ra chg e bie t e s , 2 vols. (Stu ttgart: Hier semann, 1971).

망하는 문헌학자들 수의 변화에 대한 대체적인 지표로 볼 수 있다. 1870 년대와 1880 년대에는 독일에서 발간되는 정기간행물의 수가 급 격히 증가했다. 그렇게 많은 정기간행물이 처음은 고전문헌학과 독일 문헌학에, 나중에는 다른 현대어 문헌학에 새로 추가된 것은 실제에 있어 문헌학 교수의 증가가 새로운 엘리트 자격에의 요구와 더불어, 적어도 여러 문헌학 분야의 권위 구조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올 가능 성을 수반했음을 시사한다. 문헌학 정교수의 수가 50% 증가하는 동안 문헌학 전문지의 수가 거의 3 배 (15 개에서 44 개)가 되었다는 것은 주 목할 만하다. 이러한 불균형도 권위 구조가 어느 정도 불안정했을 것 임을 시사한다. 4 신문법학파의 〈위로부터의 혁명〉 라이프치히 대학의 젊은 언어학자들이 새 사상학파를 형성함으로써 과학적 권위를 추구한 것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였다. 한편으로는,

신문법학파의 형성은 언어의 역사 • 비교 연구가 〈모든〉 문헌학 분야 연구의 중요한 일면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고히 하기 위한 노 력을 통하여 문헌학 연구의 학문적 팽창을 이용하고자 한 것으로 고 려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권위에 대한 신문법학파의 강력한 요구 는 기존 엘리트의 분산과 해체에 따른 〈명백한 상속자 he i rs a pp aren t〉의 응답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신문법학파의 반란은 일종의 〈위로부터의 혁명 revoluti on from above>, 즉 관념체 계의 현대화를 수반하며 더 광범위하고도 더 다양화된 분야에 대한 권위를 재천명한 것이었다. 여러 문헌학 분야의 발달에 있어 하나의 중요한 요인으로서 비교역 사언어학의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하여, 신문법학자들은 모든 언어 연 구에서 언어학과의 관련성울 강조해야만 했다(전에 비교문법학자들이 고전어 연구에서의 효용성을 증명해야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신문 법학자들은 급속한 세분화에 맞서 비교언어학이 독립된 학문이 아니 라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세분화된 문헌학 분야들을 통합한 영역 이 라고 주장하면서 소위 <침 투 전략 str at e g y of infiltrat i on > 이 라는 것을 추구했다. 대학에서 문헌학자들의 자리가 급속히 늘어나고, 학문의 세분화 추 세도 증가하고 있었댜 산스크리트어와 독일어, 독일어와 로만스어, 로 만스어와 영어 문헌학 겸직 교수가 각 과목마다 독립된 교수직으로 대체되고 있었다 . 우르술라 부르크하르트 Ursula Burkhard t는 하이델 베르크에서 이렇게 세분화되는 과정을 추적했다. 아돌프 홀츠만 Adol f Hol t zman 은 독일 문헌학과 동양어를 함께 연구 했다. 1870 년 그가 죽은 후 하이델베르크 대학 철학 교수들은 각 개별 분야가 너무 세분화되어 이중 겸직을 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두 개의 정 교수직을 요청했댜 하나는 산스크리트어 및 비교언어학에, 또 하나는 고

대 독일어 및-좀 이상하게도-고대 불 어 ·불문학에 . IG)

16) Burkhardt, 앞의 책, p. 35.

이 두 번째 자리가 로스토크 대학에서 전에 독일어와 로만스어 문 헌학롤 가르쳤던 카를 바르취 Karl B art sch 에 게 주어 졌다. 그러 나 1888 년에 그가 죽었을 때 이를 더욱 분리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 각되어 로만스어 문헌학의 독립된 자리가 기존 독일어 자리에 추가되 었다. 이 세분화 과정은 다른 대학, 특히 베를린 , 라이프치히 , 뮌헨과 같은 큰 대학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났다. 그러나 제도적 차별화에 따른 인지적 세분화도 역시 언어학의 독립된 교수직을 정립시키는 데 한몫 울 했다. 1872 년 베를린 대학에서 별도의 비교언어학 교수자리가 만 들어진 것은 다른 학파들도 그렇게 발전할 수 있음을 예시한 것이었다. 언어학자들 자신이 그들의 분야를 독립적 학문으로 정립하려는 이 러한 압력에 저항했다는 것이 역설적일지는 몰라도, 신문법학자들은 비교언어학의 분리를 반대했으며, 이 문제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문헌 학 팽창에서 이익을 얻으려는 시도로 이해한다면 , 그것이 모순된 것처 럼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1885 년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인구언어학 교수가 된 브루크만은 그 의 취임 강의에서, 언어학은 여러 문헌학 분야들에서 분리될 수 없는 부분이며 인구어학은 일반언어학의 일부가 아니라 (인구어) 문헌학의 일부, 즉 〈한 공동체(이 경우는 인구어 공동체)의 정신적 삶〉에 대한 연구의 일부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다. 우리는 오늘날 모든 학문이 이미 과학 체계 안에서 최종적인 적합한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에, 연구의 발전으로 인해 도전받을 수 없다고 믿어 서는 안 된다 . 그러나 과학 연구의 분화와 세분화가 과거 어느 때보다 중 가하는 것을 보면, 연구의 분업이 일어나는 곳에서는 어떤 인위적 한계를

세워서는 안 되며 오로지 인정할 수 있는 경계선은 연구 중에 있는 대상 과 과학의 개념 그 자체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한다는 점을 항상 명심해 야 한다. 이것은 특히 인구어학 연구와 문헌학의 관계에서는 더 그러한 것 같다 17)

17) Karl Brug m ann, Zurn heuti ge n Sta nd der Sp r achwi ss enschq ft (Str as sbu rg Tr iibn er,1885), p. 4.

언어학이 독립된 학문이 아니라 여러 문헌학 분야들 안에 촌재하는 연구 영역이라고 주장하면서 브루크만은 사실상 언어의 비교 • 역사적 연구의 제도적 위상과 인지적 관련성을 강화하고 있었다. 독립된 학문 으로서의 비교언어학은 소수의 연구 종사자와 한정된 학생만을 끌어 들일 수 있는 미약한 분야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 당시 독일에는 21 개 대학밖에 없었으며 비교문법은_라틴어, 독일어, 불어 문헌학 과는 대조적으로_중등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았다. 특정 문헌학 영역과 깊은 결속 없이는 언어학은 인지적, 제도적으로 쉽게 주변적 학문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언어학은 독일어, 로만스어, 고전어, 영어 문헌학의 일부로서, 그리고 학문적으로 중심적인 많은 분야들을 통합하는 전공으로서 대학 교육과 연구의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었 다 . 연구 종사자들은 다론 많은 분야에서 학문적 위치를 차지하고, 그 엘리트들은 광범위한 연구를 평가하고 . 정당화하는 권위를 주장할 수 있었다 . 브루크만은 기본적으로는 보수적이었지만_그는 언어학과 문헌학 사이의 기존의 관계가 유지되기를 원했다一—그는 국가적 또는 문화 적 기준에 바탕을 둔 문헌학이 점차적으로 세분화되는 것에 동의하고 지지했다. 이러한 점에서 1885 년의 브루크만의 강의와 1862 년 쿠르티 우스의 비슷한 강의를 비교해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쿠르티우스는 비교문법이 그리스와 라틴 문화의 문헌학적 연구에 보조 수단이 되어

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브루크만은 문헌학에 대해 쿠르티우스와 같은 정의를 사용하여 비교언어학이 〈모든〉 문헌학 연구의 기본이며 모든 문화는 동일한 문헌학적 • 언어학적 방법의 도움을 받아 연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댜 한 공동체의 정신적 삶은 언어, 신념, 종교, 관습, 법률, 문학, 과학, 예 술에서의 다양한 활동과 다양한 창조와 공적, 개인적 삶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적어도 이러한 인간 정신 활동의 몇 가지 형태는 지구상의 모든 민족들 사이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 언어와 신념 없는 민족은 없으며, 예술적 감홍, 과학적 행동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기 자신과 주위 세계에 대한 개념이 없는 민족은 없다 __- 모든 민족에는 문헌학적 연구 를 할 만한 타당성 이 있다 .1 8)

18) 같은 책, p. 8.

이전에는 학문적 연구의 가치가 없는 것으로 생각되었던 문화 현상 들에까지 문화적 삶에 대한 연구를 확장시키는 것을 신문법학파가 지 지한 것은, 사실상 문헌학에서의 새로운 상황을 인정한 데 지나지 않 았다. 1870 년대에 고전문헌학은 더 이상 유일하고 정당한 문헌학 분 야가 아니었고, 현대문헌학 분야들은 그 규모와 중요성이 점점 더 커 져 가고 있었다. 언어학자들이 최대한의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바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비교적 새로운 분야에서였다. 첫째는 이 분야들 이 내부에서 팽창하는 한편, 확고하게 정립된 권위 구조가 결여되었기 때문이었고, 둘째는 이 분야들의 바교언어학과의 전통적 연관관계 때 문이었댜 따라서 신문법학자들이 권위를 가장 강력하게 주장했던 것 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5 제도적 변화의 인지적 반향 비교언어학과 비고전문헌학 분야들의 관계는 현대어에 대한 연구가 단순히 실용학문과 문학 작품의 감상(항상 도락적이라는 비난을 받기 쉬운)을 넘어선 것이라는 것은 증명하기 위해서 독일어, 영어, 불어, 이태리어, 스페인어 문헌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언어 역사와 비교문 법 방법론의 연구에 관심을 기울였던 19 세기 초부터 시작되었다. 다시 말해서 과학적 정당성과 존중을 얻으려는 시도에서 문헌학자들은 1830 년대부터 언어학과 문학에 있어서 모두 역사적 연구에 방향을 돌 리고, 가장 오랜 문학과 언어학적 문헌의 재구성 및 비판적 제시와 설 명에 대한 연구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러한 시도를 할 때 비교문법의 방법론은 특히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따라서 자이델-폴만 Se i del-Vo ilm an 이 보고한 것처 럼, 〈로만스어 문헌학은 현대의 다론 개별 분야들과 마찬가지로 19 세기 초 낭만주의적 정신과학 Geis t w is- sensc haft이라는 틀 안에 정립된 비교언어학의 토양에서 자라났다.〉 19) 언어학과 여러 비고전문헌학의 초기의 상호 의존성은 19 세기 내내 지속되었지만, 1860-70 년대 이전에 현대 언어에 대한 연구는, 필시 독 일어의 경우를 제외하고, 독일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문헌학 연구에서 부차적 위치를 차지했을 뿐이었다. 비교문법가들은 가장 오래된 언어, 특히 산스크리트어, 희랍어, 라틴어 등에 관심을 기울였다. 초기 언어 학자들의 관념체계는 이 언어들의 〈완전성〉과 문법적 명료성을 강조 하는 한편, 현대어들을 과거의 유기적 언어들의 쇠퇴한 잔존물로 간주 하고 그 선조 언어들의 구조에 단서를 제공하는 한에서만 언어학자들 에게 관심거리가 되는 것으로 보았다. 현대어 학부의 중요성과 규모가 급속히 늘어남으로써 문헌학 학부 내의 〈힘의 균형〉이 변했댜 현대어와 문학에 대한 연구는 대학 과정

19) Seid e l-Vollman, 앞의 책, p. 15.

에서 점점 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 현대문헌학이 학문적 자율성을 이루어감에 따라, 현대문헌학의 새로운 위상으로부터 혜택을 얻고, 언 어학과 현대문헌학 분야들과의 결속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서 현 대 언어에 대한 연구는 산스크리트어 , 희랍어, 라틴어 연구에서와 동 일한 이론적 • 경험적 적합성을 가져야 했다. 이것은 언어학자들이 비 고전어들은 쇠퇴했다거나, 비고전어들의 발달은 고대 언어의 변형을 지배했던 것과는 다른 법칙에 따라서 진행되었다는 생각을 더 이상 견지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비교언어학의 이러한 전통적 신조에 대한 신문법학파의 공격은 그 들이 권위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여러 문헌학 분야들의 상대적 위상 변화에 반응한 것임을 시사한다 . 신문법학자들은 산스크리트어로부터 나온 증거가 항상 최우선이 아니며, 언어 쇠퇴의 과정이 비논리적이라 고 주장함으로써 현대어 연구에 있어서도 비교 • 역사적 방법이 지속 적으로 적절함을 고집했다. 균일주의 원칙에 대한 이러한 신문법학파 의 지지를 통하여 모든 언어 연구에 동일한 인지적 적절성이 부여되 었다. 고대어와 현대어의 이러한 철학적 〈균등화 e qu ali za ti on 〉로 인해 서 여러 분야들의 상대적 중요성이 변화하고 있을 때, 젊은 언어학자 들은 모든 문헌학 분야에 대한 그들 자신의 권위를 재천명했다. 신문법학파의 책략은 현대문헌학 분야들에서 언어학의 역할을 증폭 시키는 데에는 대체적으로 성공적이었다. 언어학적 주제들은 새로운 학파가 탄생하기 이전에도 현대문헌학에서 연구와 교육의 중요한 요 소였지만 그들이 차지하는 몫이 1880 년대에는 상당히 증가됐다 . 우르 술라 부르크하르트는 하이델베르크, 튀빙겐,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의 독일 문헌학에 대한 그녀의 연구에서 다음과 같이 보고하고 있다. 모든 게르만어 강의들 가운데 언어학적 주제가 차지하는 몫이 3 개의 남서부 대학들… •• 에서 1820 년과 1840 년 사이에 약 7% 에서 20-25% 로

상승했으며 1885 년에는 약 35% 에 달했다. 이렇게 하여 1880 년과 1920 년 사이의 공표된 전체 강의 시간 중 3 분의 1 이상이 언어학과 관련된 것이 었다. 20)

20) Burkhardt, p. 129.

1892/93 년 겨울학기 동안 독일 대학에서 개설된 사설 과정 Pr iv- a tv orlesun g en( 수업료를 지불하는)에 대한 렉시스 Le xis 의 목록을 보 면 영어와 로만스어 문헌학에도 비슷한 숫자가 있었음을 알 수 있 댜 2 1) 이 목록을 이용해서 그 해에 언어학 주제에 대한 강의 -로만 스어들의 비교문법, 불어의 역사적 통사론, 영어 음성 체계의 역사, 고 트어 문법과 같은 주제를 다루는-가 독일 문헌학 강의의 약 24% 룰 차지하고 있고(전체 97 개 중 23 과목), 로만스 문헌학 강의에서는 51%(47 개 중 24 개), 영어 문헌학 강의에서는 38.5%(29 개 중 11 개)로 되어 있음을 계산해 낼 수 있다. 확실히 현대문헌학의 팽창은 언어학 의 발달에 기여했다. 신문법학자들은 그들의 인지적 혁신이 현대문헌 학 분야들에 대한 언어학의 적합성을 재확인했기 때문에 특히 이러한 팽창으로부터 혜택을 입을 수 있었다. 신문법학자들이 비교언어학에 대하여 현대어의 중요성을 확언한 방 식은 그들의 권위 주장에 있어서의 보수적인 특성을 설명해 주고 있 다. 균일주의 원리를 받아들임으로써 어떤 방법론적, 이론적 혁신(예 를 들면, 유추적 형성의 결과에서 나온 언어 변화에 대한 설명을 언어 역사의 최초 단계까지 확장하여 적용한 것)을 고취시킨 것은 사실이 지만, 그것이 신문법학자들의 기본적 연구 관심사를 바꾸도록 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현대〉 언어들의 연구를 고트어, 고대 불어, 앵글로 -색슨어(고대 영어) 둥에 초점을 맞추어, 오래 전 시기의 언어 역사를 계속 연구했다. 신문법학자들은 언어 변화 연구가 현재 살아 있는(사

21) On the basis of Lex is, pp.6fJ7-6 12.

용되는) 언어의 연구에서 크게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은 했지만 영국, 프랑스, 독일 등에서 현재 통용되는 구어, 문어의 관용어를 계속 무시했댜 살아 있는 언어에 대한 지식이 모든 언어학에 기초가 되어 야 한다는 생각은 실제 연구 방향에서보다는 미답 분야에 관한 주장 으로서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문헌학계 내에서 당초에 높은 위상을 차지하고 전통적 유형의 역사 언어학 연구에 있어서도 성공을 공인받음으로써 신문법학자들은 현대 문헌학 분야들에 대한 그들의 권위를 정립할 수 있었고, 동시에 전통 적 계통에 따라 그들 자신 분야의 발달을 촉진시킬 수 있었다. 만일 시도된 연구 책략이 계속 보상을 가져오고 나아가 집단의 권위가 확 장된다면, 보다 위험한 유형의 과학적 연구에 대한 자극은 거의 사라 지게 될지 모른다. 보다 혁신적인 주장이 어느 한 연구 분야에서의 특 권의 범위를 확대시키는 수단으로서 이로울 수도 있지만, 보다 일반적 으로 인정된 언어학적 관심사와 방법을 고수함으로써 성공을 거둔, 그 리고 진정으로 혁신적인 시작만큼이나 잠재적으로 위협받는 현상 유 지에 대한 재확인을 통해 반란을 일으킨 학자들이 이러한 주장을 연 구에서 실행으로 옮길 필요는 없었다. 또는 피커 링 P i cke ri n g이 그의 물리학 연구에서 주장했던 것처럼 〈과학 이론의 어떤 특정한 전개, 모 범 예들을 만들어 내고 정교화하는 어떤 특정한 일련의 작업은 관련 과학공동체 내의 이익이나 투자에 관한 기존 패턴과의 관계 때문에 다른 대안적인 전개의 경우들보다 선호된다.〉 22) 분명히, 신문법학자들 의 비교 • 역사언어학 연구에 있어서 기존의 정 립된 방법에 대한 투자 와 이 투자가 그들에게 가져다 주는 높은 수익은 그 방법론이 설사 다른 문헌학 영역이나 수정된 이론적 틀에서 적용될지라도 이것을 그 대로 견지하는 유인물로서 역할을 했다 . 따라서 신문법학파라는 사상학파의 창설은 부분적으로는 모든 문헌

22) On the basis of Lexis , pp. 606 一 612.

학 분야에 전통적인 역사 • 비교언어학의 중요성을 재천명하는 시도였 다. 그러나 모든 역사 시기의 모든 인구어들을 포괄하기 위하여 언어 학의 관련성을 이렇게 확대한 것이 여러 문헌학 분야의 상대적 위상 과 크기가 변화한 데 따른 대응만은 아니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문 헌학의 팽창은 문헌학 엘리트의 분열을 초래했다. 권위 구조의 불안정 성은 1860 년대와 1870 년대에 몇몇 중요한 엘리트 구성원들(프란츠 보 프, 야콥 그림, 크리스티안 라센, 프리드리히 디에츠, 아우구스트 슐라 이허)이 사망한 이래로 언어학에서 특히 심각했다. 1870 년대 중반에 많은 젊은 학자들_~라이프치히 대학은 말할 것도 없고, 베를린 대 학의 요한네스 슈미 트 Joh annes Sch midt, 괴 팅 겐 대학의 아우구스트 피 크 Aug u st Fic k , 아달베 르트 베 첸 베 르거 Adalbert Bezzenberge r, 헤르만 콜리츠 Hermann Co llit z 가 그들의 스승 및 지도자들의 자리를 대신하기 위한 권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었다 . 23 ) 이러한 맥락에서 신문 법학파 형성은 문헌학의 팽창에 따른 불안정성에 대처함으로써 권위 를 떠맡고 홑트러진 엘리트 자리를 채우기 위한, 특히 라이프치히 집 단 측의 강력한 요구로 볼 수 있다 . 신문법학파 주장의 강력함은 광범 위한 문헌학 분야의 연구에 대한 권위를 그들 자신의 손 안에 집중시 키려는 시도에 맞춘 것이었다.

23) 슈미트 Sc hmi d t는 베 를 린 대학 비교문법 교수직을 갖고 있는 것 외에 쿤 Kuhn 이 발행한 의 편집인 중 한 사람이었으며, 베첸베르거는 1877 년부터 새로운 언어학 저널인

이렇게 하기 위해서 신문법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언 어 발달 원리의 중요성을 고집했으며(예를 들면, 헤르만 파울이 『언어 사의 원리 Prin z ip ien der Sp rach g esch i ch t e 』에서 기술했듯이), 더 엄격하고 까다로운 방법론적 기준을 부과하고자 했다. 예외없는 특징 의 음 법칙 원리는 모든 언어 연구 평가를 위한 이러한 정확한 〈과학

적〉 기준으로 이용되었다. 신문법학자들이 이 원리의 가치를 굳건히 고집하고 반대자들이 똑같이 확고하게 이를 거부한 것은, 실제의 인지 적 또는 방법론적 불일치보다는 엘리트의 지위에 끼여들어 평가 기준 을 정립할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한 대립된 주장이라는 면에서 볼 때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신문법학자들의 균일주의 u niformitari a ni sm 는(당대의 철학적 신념 에 바탕을 둠으로써 언어 이론을 현대화시킨) 그들의 언어에 대한 정 신물리학적 설명과 같이 비교적 새로운 것이었지만, 신문법학파 관념 체계의 이러한 독특한 양상들에는 거의 반대가 없었다 . 오히려 음 법 칙은 예의가 없다는 그들의 주장에 논란이 집중되었다 . 실제로 모든 언어학자들은 설명되지 않는 불규칙한 예의 수효를 가능한 한 제한할 수 있도록 일반화 이론을 구축하려 했으나, 신문법학자들이나 그들의 반대자들이나 진실로 예의없는 법칙을 공식화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논란의 초점을 인지적 관점에서 설명하기는 힘들다. 방법론적 지침으로서, 예외없는 음 법칙 원리는 19 세기 후반기의 모든 언어학자 들에게 암묵적으로 존중되었으나, 연구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방법론적 기준으로서는 어느 누구도 이를 따르지 않았다. 신문법학자들이 그들 의 원칙을 고집할 만한 철학적, 이론적인 이유들이 있었다고 하더라 도 이러한 인지적 이유들조차도 신문법학자들이 왜 그렇게 절대적으 로 음 법칙의 공식화를 강조했는지, 또는 왜 그 학파의 이 특정한 주 장이 가장 큰 반대를 불러일으켰는지롤 설명하지는 못한다. 단지 신문 법학파의 주장을, 여러 유형의 언어학 연구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는 평가 기준을 지배하기 위한 신문법학파의 시도로 이해할 때 논란의 초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신문법학자들은 선배 학자들의 느슨하고 정밀하지 못한 기준을 비 판하면서 자신들이 더 엄밀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그들 자신의 연구는 이러한 엄격한 기준에 부합하는 것임을 암시했다. 그들

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확고하게 반론을 제기한 이 주장은 모든 발달 단계의 모든 언어에 적용될 수 있는 원리의 형태로 제시되었다. 계속 해서 세분화가 되고 엘리트들이 계속 흩어지고 있는 동안 신문법학자 들은 모든 언어 연구를 그들 자신의 기준을 바탕으로 한 평가에 따르 도록 하는 권리를 주장했다 . 이보다 더 강력한 권위에 대한 주장은 거 의 있을 수 없을 것이다 . 즉, 다른 사람들의 연구를 평가하고 정당화 하는 권리가 엘리트의 특권이라면, 이러한 평가가 따라야 할 일반 기 준들을 부과할 수 있는 능력은 그들에게 당당한 권위의 정도를 부여 하는 것이기도 하다 . 동시에 예외없는 음 법칙은 부가적이며, 어느 정도 역설적인 장점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진정으로 혁명적인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신문 법학자들은 동료나 바로 앞의 선배들의 방법론과 관심사들을 그대로 지속시킬 수 있었댜 그들은 방법론적 원칙들을 명백히 강화함으로써, 오랜 전통의 보다 과학적인 계승자로서 또한 현대의 과학적 기준을 구식 분야에 도입하는 혁명가로서 부상할 수 있었다. 신문법학자들의 경우는, 제도적 변화, 어느 한 지적 분야의 제도화 양식 및 그 권위 구조, 이 모두가 과학자들이 선택하는 〈투자 전략 inv estm e nt s tr a t e gi es 〉의 모습을 결정하고 나아가 그들의 인지적 주 장들의 성격에도 영향을 주는 하나의 방식을 예시한다. 신문법학파라 는 사상학파의 형성을 제도적 맥락을 떠나서 순전히 인지적으로만 관 찰한다면, 이들이 추구하는 전략과 이론적 • 방법론적 주장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논쟁에는 어떤 의미도 있을 수 없다. 왜 과학자들은 그 들이 제의한 혁신이 실제보다 훨씬 더 급진적이라고 주장하며, 이 바 탕 위에 사상학파를 세우려 하는가? 역사 • 비교언어학이 별개 학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왜 언어학자들은 실 제에 있어서는 아무도 따를 수 없는 방법론적 기준을 제시하며, 왜 그 들 자신이 어떤 연구도 하지 않고 있는 분야들을 포함하려고 그들의

방법과 이론의 관계 영역을 넓히려 하는가? 마지막으로, 왜 사실상으 로는 은폐된 방법론적 지속성에 대해 그렇게 많은 논란이 전개되었는 가? 이런 몇 가지 질문들을 밝히기 위해 여기서 사용한 〈위로부터의 혁 명〉 패턴은 분명히 모든 학파들에게 공통된 것은 아니고, 19 세기 후 반 독일 대학 언어학의 특정한 제도적 상황에서 출현한 것이다 . 다음 장들에서 다른 제도적 책략들과 다른 형태의 인지적 혁신을 대하게 되겠지만, 신문법학자들의 경우와 같이 인지적 지속과 분기의 다른 형 태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과학자들이 그들의 연구를 수행하고 명성 과 권위를 위해 투쟁하는 그곳의 변화하는 제도적인 제약과 과학 내 의 권위 구조에 대한 분석이 따라야 할 것이다 .24)

24) 물론, 과학의 인지적 발달은 그 과학 발전이 이루어지는 제도적 구조가 부여하 는 기회와 한계에 의해서 형성된다는 생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 그러나 이렇게 특정한 인지적 과정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그리 많지 않았다 . 심리학의 출현을 설 명할 때 조셉 벤 데이비드J ose p h Ben-Dav i d 와 랜달 콜린스J and Randall Coll ins (Socia l Facto r s in the Or igins of a New Scie n ce: The Case of Psyc holog y, Americ a n Soc iol og ica l Revie w , vol. 31(1966), pp. 451-65) 는 생리학자들이 자리를 얻을 기회를 막고 철학으로 옮겨가게 했던 19 세기 독일의 대학 제도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벤 데이비드와 콜린스는 한 학문의 출현에 있어서 가장 일반적인 수준을 제외하고는, 인지적 발달을 특정한 제도적 과정과 관련지으려 하지 않았다. 후기의 연구에서 밴 데이비드 (The Scie n ti st 's Role in Soc iet y : A Comp a rati ve Stu d y; Eng le wood Cli ffs: Preti nt i ce Hall, 1971) 는 상이한 제도적 장치의 특별한 인지적 효과는 전혀 다루지 않고 발달 비 율을 다루었지만,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에서의 과학 발달의 차이 를 설명하기 위해서 다시 대학의 제도적 구조에 초점을 두었다. 더 최근에 제럴드 가이슨 (Mi ch ael Foste r and the Cmnbrid g e School of Ph ys io l og y; Pri nc eto n : Pri nc eto n Un ive rsity Press, 1978) 은 제도 설립을 위한 현존 기회라는 관점에서 영국에서의 생리학 발달을 검토했으며, 로버트 콜러 (From Med ica l Chem ist r y to Bio c hem ist r y: The Ma king of a Bio m e dica l Disc i pli ne : Cambri dg e : Cambri dg e Un ive rsit y Press, 1982) 는 생화학의 제도화 를 위한 기회가 독일, 영 국, 미국에서 이 특정 학문의 발달에 미친 효과를 추적했다. 그러나 이 두 연구에

서 특정한 인지적 주장들과 연구가 이루어졌던 제도적 구조의 관계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된 것이 없다 . 한편 과학지식 사회학에서의 연구는 일반적으로, 광범위 한 사회적 관심사라든지(예를 들면, Donald Mackenzie , Sta tist i cs in Br itain 1865-1930: The Socia l Constr uc ti on of Sc ien ti fic Knowledg e ; Ed inb urgh Univ . Press 1981) 또는 제도적으로는 무관한 인지적 관심사라는 관점에서 (Trevor Pin c h, What Does a Proof Do if it Does Not Prove? in The Soci al Producti on of Sc ien ti fic Knowledg e , edited by E. Mendelsohn, P. Wein g a rt, and R. D. Whitley ; Socio l og y of Sc ien ces Yearbook I; Inte r ests and Analog ies in Scie n ti fic Conte x t: Readin g s in the Soc iol og y of Scie n ce, edi ted by Ba rry Barnes and Dav id Ed ge ; Milto n Key ne s: Op en Un ive rsit y Press, 1982) 인지적 발달을 설명하고자 했다. 이 책에서의 연구는 피커링의 관점에 잘 부합되며, 이것은 제도적으로 정착하지 못한 과학공동체의 관 심사보다는 특정한 제도적 구조에 더 역점을 두고 있다.

제 6 장 관념론자의 반응 신문법학자들은 언어학 내에서 독점적인 권위를 얻지는 못했지만, 빠른 시간 안에 언어학의 엘리트로서 확고히 자리를 잡고, 수십 년 동 안 독일과 그 이외의 나라에서 이 분야롤 지배했다. 신문법학자들과 그들의 제자들은 독일 대학에서 문헌학과 비교언어학의 교수직을 많 이 차지하고 이 분야에서 가장 명성 있는 학술지를 편집했기 때문에, 다른 언어학자들에 대한 준거집단의 역할을 했다 . 이것은 신문법학자 들의 철학적 • 이론적 견해나 방법론적 가설에 동조하지 않았던 사람 들까지도 신문법학파 이론과 관련지으며 그들 자신의 견해를 정립했 음을 의미했다. 금세기 초에 신문법학자들에 대한 비판은 언어학에서 아주 다른 두 사상학파, 즉 카를 포슬러 Karl Vossler 의 신관념주의 학파와 후에 주네브 학파 Geneva school 로 알려지 게 된 소쉬르 Ferdi na nd de Saussure 의 구조주의 학파 str uc tu ralist school 의 관 념체계에서 표명되었댜 지배적 이론에 대해 서로 상이한 두 가지 반 옹이 나타났다는 것은 공유된 관념체계가 한 분야에서 미래의 인지적 선택을 제약은 하되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우리의 논쟁을 시험하고, 제도화된 지식 분야 내에서의 혁신을 지배적 이론에서 노출된 긴장과

모순에 대한 반응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로 인하여 생겨나는 지 속성 문제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다. 관념론자들과 구조주의자들의 관념체계는 그들이 공유한 준거분야의 관념들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 았는가? 두 학파는 신문법학파 이론 내의 동일한 난제에 대해 대응했 는가, 아니면 신문법학자들에 대한 그들의 비판들은 서로 무관했는가? 어떤 형태의 연속과 분기가 두 반응의 바탕에 깔려 있었는가? 좀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동일한 지배적 이론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르고 상 호 양립될 수 없는 두 가지 반응이 있다는 것은 지식 발달에서 근본 적인 단절이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하나의 관념체계에 대한 반응으로 동시에 출현한 두 부류의 사상학 파롤 비교함으로써 우리는 지적 • 제도적 환경이 사상학파의 인지적 책략의 구성에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가를 연구할 수 있다. 초기에 구 조주의자들이 언어학적으로 보다 주변적인 위치에서 그리고 제 2 차 세 계대전 이전의 시기에 두드러졌던 반면, 독일에서 발달된 관념주의 학 파가 독일 언어학에는 별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 어떤 의미 가 있는 것인가? 관념론자들과 구조주의자들의 인지적 차이는 이 상 황에서 그들의 독특한 제도적 위치 및 언어학이 제도화된 상이한 양 식과 어떻게 관련이 있는가? 우리가 이 장에서 검토할 카롤 포슬러의 관념주의 학파는 오늘날 언어학사가들로부터 많은 주의를 끌지 못하고 있는데, 이들의 관점으 로는 과학적 탈선이나 죽은 목표처럼 보이는 관념의 역사를 추구하는 데 거의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관념론자들은 당시의 지배적인 역사 적 • 철학적 사조에 바탕을 둔 하나의 언어 이론을 제시했지만, 이후의 언어학 발달은 포슬러와 그의 제자들로부터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포슬러 학파가 독일에서 활약하던 20 세기 초기 몇십 년 동안에도 그 학파의 위상은 애매했던 것 같다. 관념론자들은 일반 언어 이론을 제 안했고 신문법학파 이론에 대한 의식적인 반응으로 자신들의 학파를

구성했지만, 그 영향력은 거의 로만스어 언어학과 문학비평 분야로만 국한되었다 게다가 그들은 신문법학자들에 대한 비판을 통해 독일에 서의 논쟁에 개입했지만, 같은 시기에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서 자신들 의 이론을 발전시키고 있었던 구조주의 학파는 이들을 무시했다. 관념 론자들과 초기 구조주의자들 사이의 상이점은 극명했고 또한 상호 인 정하는 터였다. 주네브 학파 지도자들 중 한 사람인 알베르 세쉐이에 Albert Secheha y e 는 주네브 학파에 대한 회고에서 관념론자들을 그 의 주네브 동료들과 대립했던 유일한 학파로 들었다. 그는 주네브 학 파가 다른 사상학파들과는 대립하지 않았다고 단언하고, 다음과 같이 썼다 . 우리가 방금 기술한 방향에 어느 정도 대립되는 당대의 유력한 학파가 있다면, 그것은 크로체 Croce 의 이론에 고취된 『언어과학에서의 실증주의 와 관념론 Posit ivi s m and Idea lism in Lin g uist i c Sc i ence 』의 저자 카 를 포슬러가 이끄는 학파댜I)

1) Albert Sechehaye , L'Ecole ge nevois e de ling uisti q u e ge nerale, in Indog er man isc he Forschung en , Vol. XLN, p. 24.

관념론자들은 언어를 〈단지 사회 안에 존재하는 실제적이고 경험적 인 실체로만 생각했던〉 소쉬르, 메이예, 바이이, 세쉐이에 등과 같은 언어학자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었다 . 2 ) 그러나 때때로 이러한 비판적 인 언급을 하기는 했어도, 이 두 학파는 논쟁적인 싸움보다는 서로를 무시하는 편이었다 이러한 상호 무시는 그들이 처했던 제도적 상황의 독자성과 관념체계 간의 타협할 수 없어 보이는 철학적 • 방법론적 • 이론적 • 실체적 차이를 생각해 보면 놀랄 게 못 될 것이다.

2) Karl Vossler, The Sp irit of Lang uage in Civ i l iz a ti on (New York: Harcou rt Brace, 1932), pp, 1 얽 -188 .

관념론자들과 구조주의자들의 관념체계는 아주 다론 철학적 가설에 바탕을 두고 있었댜 두 학파는 언어학, 죽 언어학의 연구 대상, 목표, 다른 과학들 가운데서 언어학이 차지하는 위상 등에 대해서 서로 다 른 개념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방법론에서도 서로 달랐다. 관념론자 들과 구조주의자들의 관념체계를 바교해 보면 근본적으로 같은 기준 에 의해 잴 수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데, 그 이유는 그들 각각의 개념적 틀에는 학문적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해 줄 만한 것이 거의 없 는 것 같기 때문이다. 관념론자들과 구조주의자들 간의 소원함을 보 면, 적어도 이 두 학파 중 하나가 과학 발달의 연속성을 캘 만큼 급 진적으로 혁신을 했음직하게 보이기도 한다 . 그러나 앞으로 보겠지만 결코 그런 것은 아니었다. 관념론자들과 구조주의자들은 신문법학파 관념체계 내의 동일한 문제에 반응을 보이고 있었으며, 반옹에 있어서 서로 달랐으면서도 양쪽 다 그들 이전 학자들의 이론을 어느 정도 보 존하고 있었으나, 각각의 경우에 그들이 보존하는 것과 거부하는 것에 는 차이가 있었다 이 장에서 논증하려고 하는 것은, 첫째로 인지 발 달의 연속성은 한 학파의 어떤 관념들이 이를 계승하는 사람들의 관 념체계 내에 그대로 보존되는 것만이 아니라 아마도 더 중요하게는 문제점들과 관심사들이 실체적으로 연속되는 데에 바탕을 둘 수도 있 다는 것이다. 둘째로, 하나의 관념체계 안에서 미해결 문제들과 모순 점들은 단절의 조건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과학자들의 주의를 특정 한 이론적 • 철학적 혹은 방법론적 문제들로 이끄는 압박 요소로서 기 능하며, 관념체계의 어떤 요소가 보존되고 어떤 요소가 거부될 것인지 꼭 명시할 필요 없이 분기에 대한 선택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셋째로, 연속과 단절의 본질과, 사상학파들의 책략적안 인지 선택은 그들의 제 도적 • 지적 환경에 의해서 구성된다는 점이다. 그러한 환경 요소에서 는 학파 구성원들이 바랄 수 있는 자율성과 권위의 정도 및 새 학파 의 기존 엘리트에 대한 의존도, 그리고 한 나라에서 대학과 교수의 사

회적 기능과 위상에 관련된 대학 정치의 문제 등이 있다. 이 장의 첫 부분에서는 신문법학자들과 새 학파 간의 연속성과 관념론자들이 해 결하려 했던 신문법학 체계 내의 긴장과 모순의 본질에 특히 주의를 기울이면서 신문법학자들에 대한 관념론자들의 비판을 검토하려 한다. 신문법학자들에 대한 관념론자들의 반응은 나중에 새 학파의 선언서 로 간주된 포슬러의 팜플릿『언어과학에서의 실증주의와 관념론 Posit ivis m us und Idealism us in der Sp rachw i ssensc haft』 (1904) 에서 처음 공식화되었댜 포슬러의 팜플릿은 저자 자신이 표현한 바와 같이 언어학에서의 실증주의적 형이상학의 지배에 대한 신랄한 비판 의 소리룰 담고 있고, 신문법학자들은 이러한 실증주의의 명백한 축도 라는 점에서, 신문법학자들에 대한 관념론자들의 반응을 분석하는 데 주로 포슬러의 저서에 의거하고자 한다. 그리고 20 세기 전환기에 언어 학뿐 아니라 다른 사회역사과학들에도 영향을 끼친 실증주의의 위기 에 대한 두 가지 주요 반응 형태의 하나로서 신문법학자들의 난제에 대한 관념론자들의 해결책을 예시할 것이다(또한 구조주의자들은 동 일한 〈위기〉에 반응하면서도 다른 대안책을 선택했음을 연상시키고 이들의 관념체계를 다음 장에서 상세하게 검토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장의 마지막 절에서는 정황적인 결정 요소로서 관념 론자들의 인지적 책략을 검토하고, 관념론자들의 선택은 20 세기 초 독 일 학계의 상황뿐 아니라 독일 대학에서의 언어학의 제도화 형태 및 문헌학 교육의 사회적 기능에 있어서의 변화에 의해서도 영향받은 것 임을 증명하고자 한다. 1 언어학의 인과성과 설명 : 과학의 부정 언어 변화에 대한 신문법학파 이론은 그들이 처음에 설정했던 목표

를 달성하기에는 부족했댜 이 이론, 죽 원리에 대한 과학은 역사적 변화를 지속적인 생리적 • 심리적 요인들의 작용에 의한 결과로 설명 함으로써 언어학 방법론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개별 화자를 모든 혁신의 시발자로 하여 신문법학자들은 언어 변화에 대하여 생리 적 • 심리적 법칙에 의해서 공식화될 수 있는 인과적 설명을 주장했다. 그러한 설명만이 그들의 방법론적 실천을 정당화하고 그들의 과학철 학에서 요구되는 바를 이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국에 가 서는 신문법학자들은 그들의 음 법칙 이론이 일반적인 타당성을 갖는 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었으며, 언어 변화의 원인을 명시할 수도 없었 다. 이러한 원인들은 심리적이거나 생리적인 것으로만 생각되었기 때 문에 신문법학자들은 음 법칙은 조만간 어느 한 순간 순간에만 개별 화자에게 예외없이 충실히 작용한다고 인정해야만 했다(경험적 연구 에서 그들은 개별적 변형보다는 일반적 변형을 다루면서도). 그리고 그들은 어떤 외적 변수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균일하게 작용하는 심리적 • 생리적 메커니즘만으로는 특정한 언어 변화라든지 또는 한 언어공동체가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것을 충분히 설 명할 수 없었다. 그들의 인과론적 결정론은 확률적 해석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문법학자들은 결국 음 법칙은 자연과학의 법칙과 비 슷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들의 경험론적 연구와 이론 간의 균열은 그들이 역사언어학에서 잇달아 중요한 성공을 거두었음 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목적을 만족시키고 연구 작업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이론을 개발하지 못했다 . 신문법학파 이론의 이러한 미해결 문제 들이 관념론자들과 초기 구조주의자들의 언어 이론을 위한 출발점이 되었댜 두 학파가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제시한 방식은 정반대 였지만, 그들의 공통적인 분기 근원은 그들의 혁신 형태에 영향을 미 쳐, 공통된 선배 학자들의 관념체계 안에 내재되어 있는 난제를 해결 하려는 그들의 시도는 인지적 연속성을 갖게 되었다. 관념론자들과 구

조주의자 들은 신문법학파 언어 이론과 과학철학 내의 모순과 긴장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양립될 수 없어 보이는 인지적 대안들과 이에 따 른 혁신은 이러한 대안들이 제공하는 선택들로 인해 제약을 받는다는 것을 밝혀 냈다 관념론자들의 경우에 있어서 가능한 하나의 해결책을 선택하는 것은 언어과학의 기본적 문제점들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를 유지하느냐 하는 문제의 결정과 연결되어 있었다. 관념론자들은 아주 새로운 언어과학을 부르짖었지만, 포슬러의 비판 은 언어학의 목표와 본질에 대하여 그의 선배 학자들과 〈동일한 ide nti ca l> 여러 가설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포슬러는 먼저 대부분의 19 세기 언어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언어학을 분명하게 역사적 학문분야 로 분류했다. 언어에 대한 비역사적 non-hi sto r i ca l 연구는 그에게 있 어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두 번째로, 신문법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언어과학의 진정한 목표는 언어 변화에 잠재해 있는 인과적 관 계를 발견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사의 과제가 사건들간의 인과관계에 대한 통찰을 얻는 것 이의의 다른 것일 수 있겠는가? 분 명히 그렇지 않다.〉 3) 현상들간의 인과관계를 설정하는 목적은 물론 신 문법학자들에게만 특정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신문법학파 이론을 실패하게 만든 것은 특정한 언어 변화에 대해서 일반적인 인과적 설 명을 제공하는 문제였다. 신문법학파는 그들의 이론을 위해서 이 목표 룰 설정했지만 그 틀 안에서 해결하지 못했다.

3) Karl Vossler, Posit ivis m us und ldealism us in der Sp ra chwi ss enscln ft (Heid e lberg: Wi nt e r , 1904), p. 2.

신문법학자들은 진정한 과학적 기술언어학의 가능성을 부정했을 때 인과적 설명의 중요성을 재천명했다. 인과성에 대한 그들의 신념이 그 들이 음 법칙의 예의없는 성격을 주장하는 근본적 이유였다. 포슬러는 언어 형태의 역사적 변화에 대해서 인과적 설명이 우선되어야 함을 재확인하고, 신문법학자들이 그러한 설명을 하지 못한다고 비난함으로

써, 신문법학파 이론의 근본적인 문제 를 제기하고 있었다. 관념체계들 간의 연속성은 서로 다른 형태를 취할 수 있는데, 그 중 하나를 문제 점의 연속성 또는 실체적인 연속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때로는 어느 학문분야에서 이러한 연속성이 항상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 되더라도(우리가 초기 구조주의자들의 관념을 검토할 때 보게 되겠지 만) 결코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과학자들이 제기하는 의문은 그들이 관찰한 현상에서 당연히 그리고 확실하게 나오는 것도 아니며, 그들이 연구하고 있는 대상의 본질에 대한 과학자들의 철학적 가설에 의해서 분명히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관념론자들은 신문법학자들과 아주 다 르게 언어를 정의했지만 신문법학자들의 기본적 문제점들은 그대로 유지했다. 즉, 그들은 언어학의 기본 목표는 역사적 언어 변화의 과정 울 인과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관념론자들은 신문법 학자들의 관념체계가 지배적인 맥락에서 관념론자들의 이러한 기본적 선택을 했기 때문에, 다른 철학적 연속성들이 병행되었다는 것은 아마 도 놀랄 일이 아닐 것이다. 앞선 학자들에 대한 관념론자들의 비판 가 운데 대부분은―—전부는 아니지만-신문법학자들도 지지했던 철 학적 원리들에 바탕을 두고 있었으며, 다만 신문법학자들의 방법론적 인 공인과 법칙적인 언어과학을 발전시키기 위한 시도를 볼 때 그들 의 연구 작업을 일관되게 따를 수 없었던 것이다. 포슬러에 의하면, 신문법학자들은 분석적 개념들을 구체화하고 추상 적인 것들을 실체로 다루었기 때문에 언어 변화의 원인들을 설명하지 못했다. 예를 들면, 신문법학자들은 언어를 소리, 굴절형, 낱말, 문장 등으로 분리 • 연구함으로써 이러한 구분들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게 되었고, 그들의 연구는 궁극적으로 이러한 인위적 구분들에 따라서 행 해지게 되었다. 따라서 음성학은 형태론에 우선하고, 형태론은 통사론 에 우선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포슬러는 신문법학자들이 음을 먼저 연 구함으로써 음 변화를 형태론적 변화의 원인으로, 형태론적 변화는 통

사론적 변화의 원인으로 보려 했다고 주장했댜 그래서 음 법칙은 굴 절어미의 탈락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용되었고, 이 굴절어미의 탈락은 더 엄격한 어순의 원인으로 간주되었다. 포슬러에 의하면, 이 절차는 전혀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었으므로, 그 설명은 잘못된 것이었다. 왜 냐 하면 실제로 언어는 소리와 낱말, 그리고 문장들로 〈잘라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문장으로 말을 할 때, 그 문장은 소리가 낱 말로, 낱말이 문장으로 쌓여 가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범주들을 분리 • 환원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인간의 언어를 그 릇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소리가 음절을, 음절이 낱말을, 낱말이 문장을, 문장이 담화를 형성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미 방법론적 실증주의에서 벗어나 형이 상학적인 것으로 부주의하게 잘못 들어간 것이며, 사람은 인체의 기관들 로 구성되어 있다는 주장과 같은 넌센스를 말하는 것이 된다. 다시 말해 서 인과 원리를 이상적인 체계적 통일체로 보지 않고 구성 요소들과 부 분들로 나누었기 때문에 잘못된 인과적 연결 관계를 수립하는 것이다. 사 실상 인과관계는 정확하게 반대 방향으로 진행한다. 죽, 담화 속에 들어 있는 정신이 문장과 절, 낱말, 소리를-~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형 성한다. 그것은 그것들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창조〉하는 것이다 .4)

4) 같은 책, pp. 9-10.

아이러니컬하게도, 포슬러는 신문법학자들이 30 년 전에 그들의 선배 학자들, 특히 슐라이허의 잘못으로 지적했던 것과 똑같은 것에 대해서 신문법학자들을 비난하고 있었다. 슐라이허가 인위적 범주들을 만들어 서 이 범주들을 구체적 현상으로 간주했다고 신문법학자들이 주장했 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포슬러는 신문법학자들이 자신들의 분석적 구

분을 마치 그것이 실체 그 자체를 나타내고 발견 적 고안 이상의 어떤 것인 양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신문법학자 들은 슐라이허가 언어를 화 자로부터 독립시켜 실재화했다고 비난했다. 포슬러는 신문법학자들이 소리와 음절과 단어와 문장들이 마치 담화의 자연스러운 구분과 상응 하고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그 범주들을 이용했다고 비 난했댜 그러나 파울과 포슬러는 분석으로 얻어진 추상적 개념은 어떤 일의 원인이 될 수 없다는 데에 명확히 동의했다. 파울은 집단정신 Volkg e i s t의 개념에 반대했는데, 왜냐 하면 〈어떠한 추상성으로 인해 서 관찰자가 실제 사물의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포착할 수 없게 관찰 자의 눈과 실제 사물 사이에 장애물이 끼여들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 다 . 〉 5) 그러나 원칙적으로 동의한다고 해서 반드시 세부 사항에 대해서 동의하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파울은 소리, 음절, 단어, 문장 등으 로 분석하는 것을 언어적 실체의 자연스러운 구분으로 간주했다. 음성 학과 형태론의 구별은, 언어를 이질적인 실체로 간주했던 신문법학자 들에 따르면, 〈바로 거기에〉 존재했던 차이들을 반영하는 구분이었다. 그것은 과학자들이 추상적으로 그리고 자의적으로 부여한 구분은 아 니었다. 그러나 포슬러는 이러한 계층적 구분은 담화의 자연스러운 통 일체에 잘못 부여된 추상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신문법학자들에 대립해서, 언어를 인간의 동기 부여와 떨어져서는 이해될 수 없는 의 도적인 행위로 보았다. 담화의 모든 요소가 동기 부여에 달려 있기 때 문에, 신문법학자들은 단지 추상성을 인위적으로 부여함으로써 의미와 의도와는 상관없이 소리나 형태들을 연구하게 됐다. 과학은 추상성을 피해야 한다는 데에 대한 원칙적인 동의는 한 언 어 변화가 다른 언어 변화의 동인이 될 수 없다는, 포슬러와 파울이 공유했던 신념과 일치했댜 포슬러가, 신문법학자들이 음 변화를 의미

5) Herman Paul, Pr inc ip le s of the Hi st o r y of Lang ua g e (1880), tr. H. A. Str on g (Colleg e Park: McGrath , 國) , p. XXV.

적 혹은 형태적 변화의 원인으로 믿었다고 주장한 것은 잘못이었다. 파울은 그가 〈음 변화와 의미 변화는 서로 인과관계에 있지 않다〉고 주장했을 당시 이러한 가능성을 분명하게 부인했다 61 신문법학자들에 게 있어서 변화의 동인은 항상 심리적이거나 생리적 과정이어야만 한 다. 따라서 음 변화를 일으키는 운동감각의 변화도 전에는 분명히 달 랐던 연상집단을 심리적으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야기되어야 할 것이 다. 이 심리적 통합은 따라서, 예를 들면 격 체계가 없어지는 것과 같 은 형태적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음 변화 자체가 어떤 것의 원인은 아니댜 운동감각이나 연상집단을 재편성하는 것만이 변화의 동인이 될 수 있다. 분명히 포슬러는 신문법학자들이 관련된 심리적 절차를 그저 간단히 설명한 것으로 간주했을 주장을 문자 그대로 받 아들였다. 파울과 그의 동료들은 〈하나의 언어 변화가 다른 변화의 원 인이 될 수 없고, 기껏해야 거기에 수반되는 특징, 조건, 인과적 매개 체가 될 수 있을 뿐이댜〉라고 한 포슬러의 말에 논란을 벌일 필요가 없었을 것이댜 7 )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포슬러가 언어 변화의 동인으로 인식한 것은 신문법학파가 주창한 보편적인 심리적, 생리적 과정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6) 같은 책, p. 17. 7) Vossler, Posit ivis m us, p. 18.

포슬러가 형이상학적 실증주의자들이 분석적 구분을 구체화시키고 따라서 언어의 인과성을 오해하게 하고 언어과학을 근본적으로 잘못 전개시켰다고 비난한 것은, 이러한 비난이 관념론자들과 신문법학자들 간의 또 다른 중요한 철학적 유사성을 전면에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 관념론자들과 신문법학자들은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개념들은 가장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현실성을 반영할 수 있고 반영해야만 한다는 데에 견해롤 같이했댜 세계는 독특하고 개별적이고도 직접적으로 접

근할 수 있는 사실들로 구성되어 있어, 과학자는 그 명칭을 붙이기만 하면 된다. 개념들은 어떤 추상성을 포함할 수 있지만, 이 과정은 수 동적이고 자연스러워서 문제가 안 된다. 그것은 경험에 부과된 것이 아니라 경험으로부터 나온다 . 어떤 〈능동적인〉 추상은 비과학적이댜 그것은 사실을 흐려 놓으며 인과적 설명을 불가능하게 한다. 관념론자 들과 신문법학자들이 공유했던 이 경험주의 역시, 언어는 담화이며 언 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언어학자들은 왜 그리고 어떻게 개인들 이 그들의 담화를 변화시키는가를 이해해야만 한다고 공통적으로 주 장한 이유였다. 관념론자들과 신문법학자들은 언어란 개인들의 담화이 기 때문에 언어 변화의 원인은 언어 외적인 것이어야 하며 개별 화자 들의 견지에서 설명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했다. 그러나 과학적인 설명이 인과적이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고 해 도 하나의 원인으로 끌어올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동의가 보 장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추상성을 피해야 할 필요성에 동의한 다고 해서, 하나의 개념이 정당한 사실들의 반영인지 혹은 피해야 할 추상적인 것인지에 대해서 동의가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 신문법학자 들과 관념론자들은 추상성을 피해야 하며 언어 변화에 인과적 설명을 해야 한다는 데에 동의했지만, 사실이 무엇인가에 관해서는 상당한 차 이가 있었다. 법칙에 입각한 언어과학이라는, 양립될 수 없어 보이는 신문법학자들의 주장을 관념론자들이 결국 포기하게 된 것은 바로 신 문법학의 문제점들과 추상적인 것을 불합리하게 보는 철학적 원리들 을 유지했기 때문이었다. 포슬러는 신문법학자들이 자신들의 방법론을 형이상학으로 변모시켰 기 때문에 언어 변화를 설명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직접적인 경험적 자료를 주의 깊게 철저히 조사하는 것이 특징인 실증주의적 방법론과, 이러한 당연한 작업을 과학의 궁극적 목표로 변모시키는 실 중주의적 형이상학을 구별했다. 물질적 증거를 수집하고 분류하는 것

과 이 증거가 담화와 같은 인간의 문화적 행위를 이해하는 데 충분한 것으로 가정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포슬러에 의하면 형이상학적 실증주의는 현상의 인과적 설명이라는 궁극적 목표와 과 학의 중간 목표(증거를 수집하는 것)를 혼동하고 있다고 했다. 방법론적 실증주의자가 겸허하게 〈잠정적〉 목표인 지식을 얻는 수단으 로 간주하는 사실들, 모든 주어진 자료에 대한 정확한 지식에 대한 서술 은 이제는 형이상학적(혹은 좀더 정확하게는 극단적) 실증주의자에 의해 서 그 자체가 〈 궁극적〉 목표로서 서술되고 있다. 지식과 인지, 서술과 설 명, 조건과 원인, 물질과 형식, 외양과 인과율 등은 모두 기본적으로 동일 한 것이 되었다 . 〈 왜? 〉 또는 〈 어째서? 〉 라고 더 이상 질문하지 않고 〈 무 엇인가? 〉 또는 〈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 라고 묻는다. 이러한 것이 엄격하 고 객관적인 과학이 된 것이다. 실제로는 이것은 전혀 과학이 아니다 . 그것은 인간 사고의 죽음이며 철 학의 멸망이다 . 8)

8) 같은 책 , p. 18.

신문법학자들은 그들의 이론상 현상의 원인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 하다고 주장한 점에서는 포슬러와 일치했다. 그들의 견해에서 이러한 인과적 설명은 심리 • 생리적 일반 법칙의 형태를 취해야만 한다. 그러 한 법칙들이 특정한 언어 변화에 대한 인과적 설명을 제공하지 못한 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신문법학파 이론의 주요한 실패를 뜻하는 것 이었다. 포슬러에 의하면 이러한 실패는 보편적 과정만이 특정한 사건 들의 동인이 될 수는 없었기 때문에 필연적인 것이었다 . 음성적, 심리적 관점에서 보면 독일어와 불어의 언어공동체에는 음 법 칙과 유추에 공통된 요소가 존재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간의 역사적 연

계관계가 추정되거나 증명될 수 없다면, 문법적 관점에는 공통된 요소가 야무것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9)

9) Karl Vossler, Gesammelte Au fsa tz e zur Sp r achp h il o sop h ie (Mun ich : Hueber, 1923), p. 92.

심리적 • 생리적 법칙에 바탕을 둔 언어 변화의 일반 이론들은 변화 의 조건과 과정을 설명할 수 있지만, 언어학의 목표가 특정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원인적 설명을 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가에 대한 이런 식의 이론적인 토의는 불충분하며 잘못된 것이다. 우리가 관념론자들과 신문법학자들의 중대한 철학적 분기점에 처음으 로 부딪치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이다. 역사적 변화를 설명하는 일반 법칙을 공식화할 수 있는 가능성은 신문법학파의 이론적 책략의 바탕 에 존재했으며, 관념론자들이 그것을 부인한 것은 과학적 설명에 대한 신문법학파 모델을 거부했다는 신호였다 . 그러면 왜 역사적 변화에 대 한 인과적 설명이라는 목표를 유지했던 관념론자들이 이 과제가 일반 법칙을 공식화함으로써 완수될 수 있다는 생각을 거부했는가? 신문법학자들에게 있어서 법칙이란 단순히 사건 사이의 필연적인 인과관계에 대한 요약적인 서술이었다 . 이 법칙들에 사용된 개념들은 그것들이 경험적 사실들과 직접적으로 상응하기만 하면 정당한 것이 었고, 법칙들은 이러한 개념들 사이에 놓인 관계가 사실들간의 관계와 부합한다면 유효한 것 이 었다. 문화과학 cultu ral sc i ence 은 그것 이 심 리적 법칙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과학 na tur al sc i ence 과는 달 랐다. 그러나 심리학은 그 대상이 물질 세계가 아니라, 물리적인 것보 다는 내적 표상으로 구성된 심리적 혹은 정신적 사실의 세계이기 때 문에 자연과학과는 달랐다. 이 차이가 일단 인정되기만 한다면 심리학 은 물리학이나 화학과 같은 법칙과학이 될 수 있었다. 경험적 관찰과 귀납적 방법은 마찬가지로 유효하고 일반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서 심

리적인 사실 들 의 영역으로 이전되기만 하면 되었다. 심리학과 언어학 의 관계는 물리학 또는 화학과 지질학의 관계와 유사한 것으로 생각 되고, 심리학은 정신적 생활 법칙을 수립하는 한편, 언어학은 이 법칙 에 의거해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설명할 것이었다. 그러나 신문법학자들이 선택한 과학철학은 그들의 실행과 일치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들의 이론(일반적인 심리학 법칙에 바탕을 둔)과 이 이론을 인과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던 개별적인 역사적 변형에 대한 서술 간의 긴장을 여러 번 보았다. 이론적으로 신문법학자들은 언어 변화는 보편적인 인과 법칙에 따른다고 주장했지만, 그들의 경험적인 작업에서 그들이 연구했던 개별적 변화에 대해 인과적인 설명을 제시 할 수 없었다. 보편적 법칙은 특정한 언어 변화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 했댜 그러나 이것은 이러한 보편적 법칙이 사실들간의 관계를 단순히 요약한 것이 아니라 이 법칙에 사용된 개념들이 추상적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게다가 이 추상성은 파울이 경계하고자 했던 바로 그러한 종류의 추상성이었다. 예컨대 그는 〈실제 사물들 사이에 원인과 결과 의 관계를 포착〉할 수 없게 하는 것은 추상성이었다고 주장했다 . 10 ) 언 어학자들은 현상들간의 인과적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 역사적이고 이론적일 필요가 있었지만, 여러 부류들의 현상에 대한 일반적인 인과 적 설명들은 역사성과는 결국은 일치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였다. 언어 학자들은 사건들을 분류함으로써 이러한 사건들의 독특하고 특정한 측면들로부터 추상화를 했지만, 바로 이러한 독특한 측면들이 사건들 을 역사적으로 만드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같은 부류의 사건들에 대한 인과적 설명의 요구와 추상화의 거부 사이에는 〈철학적 모순〉이 있었 고, 독특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설명과 일반적이고 역사적으로 조건지 어지지 않은 법칙에 의한 설명 사이에는 문화 • 역사과학 cultur al and hist o r i ca l sc i ence 에 독특한 〈이론적 모순〉이 있었다 . 이 시점에서 언

10) Paul, 앞의 책, p. XXV.

어학자들은 선택의 기로에 있었다. 한편으로 언어학자들은 독특한 역 사적 사건들에 대한 특정한 인과적 설명을 제공하면서 가능한 한 추 상성은 피할 수 있었다. 아니면 그들은 같은 부류의 사건들이나 현상 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추상적인 개념들을 마음대로 만들어 낼 수는 있었지만, 이것은 모든 설명은 역사적이어야 한다는 요구로부터는 벗 어나는 것이었다. 첫번째 〈길〉은 관념론자들이 택한 방법이었고, 두 번째 〈길〉은 구조주의자들이 선택한 방법이었다. 언어학의 문제만이 독특한 현상은 아니었다. 다른 문화과학들도 19 세기 말쯤 비슷한 선택의 기로에 있었다. 휴즈 스튜어트 Hu g hes S tuart는 이것을 〈크로체 Croce 의 신관념론적 역사 이론에서 가정했 던 공감적 직관의 발휘와, 막스 베버 Max Weber 가 후에 정교화했듯 이 비판적 이해의 모델로서의 유용한 허구를 창조하는 것 사이의 선 택〉이 라고 묘사하고 있다 .11)

11) H. Stu art Hug h es, Conscio u sness and Socie t y ( New York: Random House, 1958), p. 65.

실증주의에 대한 첫번째 반응은 20 세기로의 전환기에 나타났다 . 너 무 단순화시키는지는 몰라도 우리는 이 반응을 두 가지 운동으로 생 각할 수 있다. 하나는 사실과 개념 사이의 단순한 직접적 관계에 대한 가정을 파괴하는 것이며, 다론 하나는 역사과학에 특유하게 역사에 대 한 추상적 이론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편으로 철학자들은 이론 적 서술이 단순한 사실의 반영인 개념만으로 구성될 수 있다는, 또는 그렇게 구성되어야 한다는 실증주의자의 주장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 하기 시작했다. 전통주의자 철학은 과학 이론의 수동적이며 구체적인 성격보다는 창의적이며 추상적인 성격을 강조했다 . 〈사실 fa c t s 〉을 개 념과 이론으로 옮기는 것이 관찰자와 무관한 단순하고 문제가 없는 행위로 생각되지 않았다. 실증주의 과학철학자들도 이 문제들에 전념 하여 관찰이나 감각 자료를 개념이나 이론으로 바꾸는 규칙을 개발하

려고 하였다 사회과학에서 이 문제의 중요성은 자율적 학문으로서의 사회학의 발달에 있어서 특히 명백하다. 베버와 뒤르켐 Durkhe im은 추상적 개념을 구성할 필요성을 주장했고 아주 다른 방법으로 구성주 의 cons tru c ti v i sm 를 합리화하고 사용했지만, 뒤르켐의 〈사회적 사실〉 과 웨버의 〈이상적 유형〉은 둘 다 과학자들에 의해 창조된 추상과 〈유용한 허구 use fu l fi c ti on 〉로 간주되었다 .12 ) 그것들은 현실의 역사 적 • 구체적인 반영으로 받아들여지도록 의도된 것은 아니었다. 소쉬르 의 구조주의 언어학이 역사보다는 사회학을 결합시칸 것은 바로 이러 한 사회 현상에 대한 추상적 구성주의적 접근 방식에 따른 것이다. 한편 인간의 문화를 보편적인 추상성으로 이해할 수는 없기 때문 에 문화과학이 일반 이론을 추구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논하면 서, 개별적인 역사적 사건의 독특하고 삭감될 수 없는 성격을 주장했 던 사람들도 있었다. 문화적 사건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인간 정신의 표현으로서, 자유로운 개인의 창의로서 간주해야만 했다. 추상적인 전통적 이론은 자연과학에는 필요하지만 문화과학의 특정 한 역사적 관심과 이 특정한 사건의 원인을 이해할 필요성이 추상적

12) 뒤르켐 Durke im은 실중주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었으나, 그가 〈사회적 사실 들〉로 서술한 것 들 중에는 그 〈구성적〉 성격을 거부하고 〈사실주의적〉 해석을 나 타내는 것처 럼 보이는 것들도 있었다(그러나 뒤르켐의 제자, 파우코네트 Fauconne t와 마우스 Mauss 가 쓴 논문 La Grande Ency c lop e die (Pa ris, 1901 ) 에서는 사회적 개념의 추상적인 성격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베버 Weber 는 그의 이상적 유형들에 대한 추상적, 〈허구적〉 성질을 강조하지만, 그 역시 〈직관주의〉 의 영향을 받았다 . 베버의 예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지금 기술하고 있는 두 가 지 경향은 분석적으로는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서로 대립하고 있지는 않다 . 언어학 에서는 두 경향이 확연히 구분되고 서로 대립되지만, 그 개념들을 구성하는 사회 과학자들과 구체적 명목론적 기술을 주장하는 사회과학자들의 구분은 20 세기 초 의 사회과학자들을 적절하게 분류할 만큼 분명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것은 또한 과학적 관념과 관념체계들의 복잡한 관련성을 말해 주는 것으로 인용된다.

추리를 배제시켰댜 인간 행동의 원인은 기계적인 것이 아니며, 심리 학이 일련의 법칙으로 환원될 수는 없었다. 문화적 사실의 본질은 모 델에 의해서 설명될 수 없는 것이며, 이것이 이해되기 위해서는 직관 에 의하여 재경험되어야만 했다. 중요한 것은 개별성, 그 창의적 잠재 력과 정신적 단일성이었다. 우리가 설명했던 첫번째 추세처럼 이 직관 주의 운동i n tuiti o ni s t movemen t은 다양한 지지자들의 수중에서 다 양한 형태를 취했지만 빈델반트 W i ndelband, 리케르트 R i cke rt, 딜타 이 D ilth e y와 같은 독일 역사가들과 역사철학자들 사이에서 특히 두드 러졌다. 독일의 낭만 사상과 관념론 철학과 직관주의의 관계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이와 비슷한 철학 체계가 이태리의 역사철학자 베네데토 크로체에 의해서 개발되었으며, 포슬러는 크로체의 역사철학과 미학의 영향 아래 그의 관념론적 언어학 체계를 발달시켰다. 2 예술로서의 언어학과 언어학 연구의 이상 크로체에 의하면 인간 지식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보편적이고 논리적이지만 필연적으로 추상적인 지적 지식과, 인간 정신의 구체적 이며 직접적인 창의적 표현인 직관이 그것이다. 추상적이고 보편적 지 식은 정신 생활에 적용될 때 쓸모가 없다. 왜냐 하면 인간을 추상적으 로 그리고 보편적으로 이해하려는 경우에는 인간에게 개성을 주는 요 소를 제거하게 되고 인간의 모든 기본적인 속성인 창의성과 자유를 제거하기 때문이다. 크로체에 의하면 역사 법칙은 용어상의 모순 contr ad i ct io n in t erms 이었다 . 왜냐 하면 〈역사는 구체성과 개별성을 의미하고, 법칙과 개념은 추상성과 보편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13) 개

13) Benedetto Croce, Aesth e ti c as Sc ien ce of Exp r essio n and General Lin g u is ti cs (19 02), tr. by Doug la s Ains lie (London: MacM illan , 1909)

별적이고 구체적인 연구로서 역사 연구는 직관의 영역에 속하게 되었 고 원래의 정신적 경험을 공감적으로 재창조할 것을 요구했다. 이러한 개별성으로서의 역사에 대한 개념과 직관으로서의 역사 연 구에 대한 개념은 포슬러의 관념론적 언어학 이론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는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개념으로는 정신 및 언어의 창의적 생활을 이해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포슬러는 언어를 정신적 표 현 및 직관으로 정의했다. 그는 언어는 뛰어나게 창의적이며 개인적인 것이며 또한 미학적이라고 주장했댜 모든 개인의 언어는 예술적이며 따라서 작가나 시인들에 의한 언어의 창조적 사용과 본질적으로 다르 지 않댜 차이는 본질에 있지 않고 질(質), 죽 절대적 창의성에 있다. 언어적 사고는 본질적으로 시적 사고이고, 언어적 진실은 예술적 진실 이며 의미를 지닌 아름다움이댜 우리 모두가 언어 형태를 창조하는 한에 서 우리 모두는 시인이고 예술가이다-일상 생활에서 우리가 보잘것 없고 평범하고 단편적인 모방적 예술가인 것은 확실하지만 14)

14) Vossler, Gesammelte Au fsat z e , p. 14.

그러나 만약에 언어가 본질적으로 시적이고 미학적이라면, 언어학은 실제로 보다 폭넓은 문학과 예술사의 일부이며 따라서 인간 정신의 발현 및 자유의 역사, 죽 문화사의 일부인 것이다 .15)

15) Vossler, Posti vis m us, pp. 10-11.

포슬러는 언어를 추상적이고 보편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인정했지만, 그의 견해로는, 언어학자가 그러한 연구를 통해서는 언어 가 왜 변하며, 혹은 왜 특정한 방향으로 변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사실 분류에만 영원히 한정돼 있어 언어 변화와 언어사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저해하는 추상적 문법 연구와, 유일하게 진정한 역사적 • 인과적 언어과학인 언어적 창조성에 대한 연구를 구

별했다 . 포슬러에 의하면 언어에 대한 문법 연구는 모든 정신적 행위 와 문화사를 추상화함으로써 시작되는 것이었댜 그리하여 그들은 언 어를 기계론적인 대상으로 취급하고 모든 언어 변화를 자연적 사건으 로 다루었다. 간단히 말해서, 문법의 본질적인 대상온 모든 정신적 활동과 모든 정신 적 생활로부터 분리시킨 언어이다. 그러나 분리시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단 화자의 특별한 특징이나 담화의 목적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 되 어 버린다면, 도대체 관심의 대상으로 무엇이 남을 수 있겠는가? 아마도 이 담화가 일어나고 이루어지는 방식만이 남아 있을 수 있다. 이 발췌 과 정이 끝난 후에는 그것은 더 이상 정신적 사건이나 행위일 수는 없기 때 문에 자연적, 기계적 형성만이 남게 된다 . 문법적 방식에 의해 이해되는 바로는 사실상 모든 언어 생활은 이러한 과정, 즉 물리적 유기체의 메커 니즘과 정신의 메커니즘으로 축소된댜 16)

16) Vossler, Gesammelte Au fsii. tze , p. 66.

관념론자들에 의하면 문법가들은 추상성을 이용하고 일반적 개념을 구성함으로써 언어 변화에 대한 모든 것을 포괄하는, 그러나 본질적으 로는 텅 빈 체계를 개발할 수 있었다. 언어 연구의 이러한 유형은 추 상으로 시작해서 언어를 하나의 사물로 취급했고 따라서 진정한 설명 을 할 수는 없었다. 언어학자는 역사적 사건을 설명하려고 시도하려 할 때, 추상성을 버리고 문화적인 것, 죽 현상에 대한 정신적 이해로 돌아와야만 했다. 언어의 정신적 성격으로부터의 격리는 특정한 역사 적 사건의 원인에 대한 문제가 일단 제기되면 포기되어야만 했다. 추 상적 문법은 〈왜 하나의 사건이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장소에서 일어 났는가?〉와 같은 질문에 정말로 역사적인, 정말로 개인적인, 정말로

정신적인 언어의 본질로 돌아오지 않고는 대답할 수 없었다 역사적인 문제가 제기되는 순간 〈당초에 언어를 정신적인 성취와 개별성으로부 터 고립시켰던 것은 극복된다. 왜냐 하면 언어 역사에서 말하는 행위 는 더 이상 가치와 의미가 없는 말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독특 한 정신적 유형의 특징적 표현으로서 그리고 문화적 가치를 창조하고 전달하는 데에 적합한 도구로서 생각되기 때문이다.〉 17)

17) 같은 책, p. 95.

창의적 • 정신적 표현으로서의 언어 연구는 포술러에게는 언어과학의 궁극적 목표였을 뿐만 아니라 출발점이었다. 그는 신문법학자들이 언 어 변화 과정의 추상적인 심리적 • 문법적 이해를 넘어서지 못했을 뿐 만 아니라 언어의 진정한 본질과 변화 및 요소들의 기능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언어가 일단 표현으로서 그리고 예술 형태로서 정의되자 언어의 모든 요소는 새로운 관점에서 부각되었다. 언어의 모든 요소를 알려 주고 궁극적으로 모든 언어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언어의 미적 본질 이었고 화자가 자기의 정신적 삶을 표현하려는 욕망이었다. 그리고 언 어는 우선 표현으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에 언어학의 기본과 출발은 개별적 표현에 대한 연구, 문체론이 되어야 했다. 포슬러에 의하면 신 문법학자들이 음성학으로 시작해서 형태론과 통사론으로 연구 작업을 진행한 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었다. 왜냐 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신문법학자들은 그 성격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언어의 모든 요소들 을 연구했기 때문이다. 만약에 한 언어학자가 언어의 모든 요소는 의 미 수단이라는 것과 모든 것이 의미적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모든 음 성적 • 형태론적 • 통사적 변화는 화자의 변화하는 미적 감각의 반영, 즉 표현에 대한 그들의 욕망이 되었을 것이다. 포슬러는 신문법학파가 음 변화와 유추를 구별한 것까지도 논박했 다. 그의 의견으로는, 모든 다른 언어 변화는 물론 음 변화와 유추는

궁극적으로 개별 화자가 자기의 미적 직관을 표현하는 데 가장 알맞 은 스타일을 개발시키고 싶은 창의적 충동에 의해서 일어났댜 화자의 창의성은 다른 형태를 취할 수 있 는 데, 어떤 것은 음성적이고 어떤 것 은 형태론적이고 혹은 통사론적이지만 결국은 그들 전부가 문체론적 이고 의미론적이고, 그리고 모두가 정신적 통합체의 반영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자율적인 것은 소리를 가진 언어가 아니라 그것을 창 조하고 그것을 형성하고 그것을 움직이고, 그리고 아주 상세한 면까지 결 정하는 정신이다. 언어과학의 임무는 이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즉, 모든 언어 형태의 유일한 효과적인 원인으로서의 정신을 보여 주는 것이 댜 18)

18) Vossler, Posit ivis m us, p. 63.

이리하여 언어학은 언어와 그 변화의 정신적 본질을 완전히 이해하 는 것으로부터 시작돼야 했다. 포슬러는 이 주장을 〈귀납i nduc ti on 〉 을 위한 주장으로 제시했다. 만약에 언어학자가 언어에서 일반적인 것 을 기술하기를 원하고, 개인의 특정한 구체적인 언어 사용으로부터 집 단 언어의 수동성까지 추상화하기를 원한다 하더라도, 개별성과 창의 성을 연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왜냐 하면 나중에 일반적인 것이 될지도 모르는 모든 것도 처음에는 개별적이고 문체론적이었기 때문이다. 추상적으로 말해서, 언어학은 언어의 수동적인 측면만을 연 구할 수는 있지만, 이러한 수동적 공통 요소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이 러한 것들의 당초 성격을 왜곡하고 언어의 모든 인과적 이해를 간과 하게 될 것이다. 스타일은 일반 언어 사용과 대립되는 개별적인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 으로 일반 언어 사용은 모든 가능한 혹은 적어도 가장 중요한 개별적 용

법의 대체적인 총체일 수밖 에 없댜 언어 사용 은 그것 이 관례적인, 죽 규 칙적인 한도에서 통사론을 규정한댜 문체론은 언어 사용을 개별적인 정 도까지 고려한댜 그러나 귀납적 과정은 개별적인 것 에서부터 일반적인 것으로, 단일적안 경우로부터 관례적인 경우로 진행되며, 그 반대는 아니 다. 〈 따라서 처음에 문체론 , 그 다음이 통사론이다 .〉 19)

19) 같은 책, p. 15-16.

포슬러는 신문법학파의 언어 이론과 그들이 역사적 사실에 대해 결 정론적이고 인과론적인 방법으로 설명하려는 시도 간의 모순의 문제 로 거듭 되돌아왔다. 이론적 개념의 추상성을 인정하며 그는 언어학의 고유 목표는 언어 역사의 인과적, 따라서 구체적인 설명이라는 신문법 학자들과 의견을 같이했다 . 과학적이려면 직접적이어야 하고, 그 개념 들이 쓸모 있기 위해서는 현실을 직접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 댜 과학자 자신의 개입, 죽 관찰자가 그의 연구 대상에 영향을 미치 는 것은 제거되어야만 했다, 포슬러의 귀납주의 i ndu cti v i srn 는 결국은 만약에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 대상을 이해하려 한다면 수동적인 수용 자로 머물러야만 한다는 그의 신념을 다르게 표현한 것일 뿐이었다. 포슬러의 이론을 그 자신의 경험주의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관 념론자로서의 그의 본체론 on t olo gy의 맥락에서는 특이하게 보일는지 모른댜 결국 포슬러는 우리가 경험주의와 보통 연결시키지 않는 실재 와 자질들_정신, 내적 언어 형식, 인간의 창의적 자유_을 설 정했다. 그러나 포슬러에게 있어서 그 자유성, 표현성 및 창의성으로 하여 정신은 추상적인 가설적 실재가 아니라 경험적으로 연구될 수 있고 직관을 통해 칙접적으로 알려질 수 있는 인간 본성의 궁극적인 경험적 실체였다 . 포슬러의 이론과 신문법학자들의 이론을 구별짓는 것은 언어학의 목표를 다르게 이해하는 것이 아니었고 대상을 향한 과학자의 역할에 대한 다른 개념도 아니었으며 단지 다른 본체론이었

던 것이다. 포슬러는 언어를 개인의 정신적 표현으로 정의했기 때문에 언어 변 화의 궁극적 원인에 대한 문제를 해결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런 식 으로 언어를 개별화함으로써 그는 왜 다른 개인들이 각각 자기 자신 들의 말을 만들어 내고 그러면서도 비슷하게 말을 하고 다른 사람들 이 도입한 변화를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 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포슬러는 같은 만족공동체에 속하는 개인 들이 본질적으로 유사하다는 점을 들었다. 민족의 정신적 통합이 그 언어에서의 유사성에 대한 유일한 설명으로 존재했다. 민족성, 정신적 기질과 언어가 관련이 있다는 것은 아직도 많은 문헌학 자들에 의해서 의심받고 있거나 혹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으로 남아 있다. 사실상 그것은 자연적 혹은 역사적 인과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현상론적 관계의 문제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그들이 프랑스적 태도와 정신 혹은 성격을 가지고 있 기 때문이 불어를 말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단지 〈말을 하기〉 때문에 불 어를 한다 . 그들의 언어는 어떤 외부의 영향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 때 문에 불어가 되고, 그들의 담화를 통해서 그들의 민족성은 우리가 불어라 고 부르는 것 속에서 구현되고 실현된다 . 20)

20) Vossler, The Sp irit of Lang uage, pp. 115-116.

정신의 표현으로서의 언어는 개인적이고 따라서 개별 화자의 미적 감각과 일치하여 언어는 변화했다. 언어학이 설명해야만 하는 것은 이 러한 개별적 혁신이었다. 왜냐 하면 이것은 언어의 능동적 부분이었고 개별적 정신은 항상 변화의 동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수준에서 언어 연구는 순전히 미적이었고 문학사와 융합되었다.

그러나 언어학자들이 개인들에게서 시작된 어떤 변화가 공동체 전 체로 퍼지는 이유를 이해하기를 원했을 때는 언어의 수동적 요소를 다루었다. 즉, 그들은 더 이상 원인을 찾지 않았고 조건들을 찾고 있 었다. 혁신의 전파는 개인들 집단의 정신적 통일성과 그들의 문화적 • 미적 감각의 유사성을 입증했댜 이러한 문화적 • 정신적 통일성은 보 다 넓은 문화적 발전의 맥락 속에서 언어 변화를 볼 때 드러났다. 이 러한 연구는 관찰자가 개별적 스타일의 수준으로부터 한 집단이나 한 나라의 미학적 감각의 수준으로 이동할 것을 요구했고, 따라서 포슬러 는 언어 연구의 두 유형을 구별했다. 죽, 개별성의 표현으로서 연구될 필요가 있는 개별 예술가의 독창성에 대한 순전한 문체적 • 미학적 연 구, 그리고 언어 발달의 역사적 • 미학적 연구, 즉 한 공동체의 정신적 통일성을 함께 드러내는 문화적 변화와 혁신에 대한 연구였다. 이렇게 우리는 언어에 대한 다음과 같은 관찰이 포함된 언어과학의 새 롭고도 근본적으로 당연한 관념론적 체계에 도달한다 . 1) 언어에 대한 순수한 미학적 관찰 2) 언어에 대한 미학적 • 역사적 관찰 전자는 단지 특별한 개별성과 특정한 내용에 따라 각기 독립적으로 표 현의 개별적 형태롤 연구하는 전문적 연구일 수 있다. 후자는 민족과 시 대의 언어 형태를 시기에 따라 연대적으로, 민족과 인종에 따라서, 지리 적으로 연구해야 하며 궁극적으로 〈민족성〉과 〈정신의 관계〉에 따라 조 사하는, 포괄적 이면서 분류적 인 작업이어야 한다. 21)

21) Vossler, Posit ivis m us, p. 94.

포슬러와 그의 제자들은 실제적인 역사적 작업에서 언어 연구에 대 한 순전히 미학적 pu rely aes th e ti c 이고 미학적 • 역사적인 aesth e ti c- histo r i ca l 접근 방법을 예시했다. 포슬러 자신은 로만스 문학의 역사

문사에려 체를는많론 은보전 문다연관구적 심넓에인을은 로몰 문가두만졌화하스고 며 ,세문 계학이그의 의 를 학 맥자개제락별들자에적 이들서 었 저중다분자 . 석2많2의) 하은 포고정 슬,사신 러람의불는이 어 표 또문현화한학자으 들로불텍의 어스이 의트해정 의신하역 의적다 양성제한향자 에 양중 상의비을 추 한어프 랑사언스람어 인 민 발족오달의이을 겐 정설 신레명적르하(히문고 화자E적u ,g했 e n다사 . 회L23e )적 r마,ch 찬 는정가 치불지적어로) 통포특사슬성의러으 로써 설명 했으며 또한 에 티 엔느 로르크 Et ien ne Lorck 는 <간 접 화법 > 과댜외 )불 어일 반동적사으 로시 제포 슬사러용의에 서제의자 들많은은 언변어화 에이 론대에해 문대체해적서인는 쓰설지명 을않 고했 (이것이 바로 제 6 장에서 포슬러에 초점울 두는 이유이다), 언어학과 문학사의 경험적 연구에서 포슬러의 이론적 주장을 따르고자 했다.

22) DLi cah tFe or n t(aB ine re n , un1d9 21s)e;i n J eFa anb eRlwaceir nke (H(Meiud ne ilcbhe :r gH, u1e9b1e4r),; D19a2n6t)e; aolrs trhee l i gairotisc ele r rep rint e d in Di e Romanis c he Welt (Munic h : Pip e r,1965). 23) Frankreic h s Kultu r in Sp ieg e l sein e r Sp r achentw ick lung (He id e lberg, 1913) 참조 24) FE(EHrtja uee ngind z e ne o nels b iLesrL ce grho,c erhc 1,k S9,2H p1 ri ) aD s,c t iho eDer i is euc h neSedrlp e rFWba rtcae ehn sszeeRoneslseeiadsnr cet f ho(, Fer s rcaSEhnyuki nn nf tueag r x t us(npaL.d r e aiMpcf rhz.a: il gni c :zD ho eRise eiss it cseU l hr a nwent dee M,rg s, ou 1d9c1 2ih95u,3) 3n 와i)gn; ]ahrbuch fur Phil o log ie, II (19'2 :7).

포슬러의 언어학에 대한 이중 개념은 언어 연구를 문학사,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일반 문화사에 통합시키는 것이댜 이렇게 함에 있어 포 슬러는 문헌학은 문화 세계에 대한 총체적 연구라는 기존의 이상에 의존했댜 포슬러는 언어학에 대한 이러한 개념을 순수한 철학적 • 이 론적 기반에서 정당화했지만, 언어학과 문학의 통합에도 역시 제도적 결정 요인이 있었다. 곧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러한 통합은 소위 〈학 문의 위기 cri si s of learnin g > , 죽 독일 대학 제도의 심각한 위기에

대한 공통된 인식과 잘 일치했댜 이러한 위기에 대한 반응의 일부로 서, 신관념론자 들 은 문헌학 연구의 전통적 통합을 복원하려 했다 . 포슬러의 관념론자 언어학 Ide ali s t li ngu i s ti cs 에 대한 이러한 분석 은 포슬러의 관념체계와 관념론자들이 끈질기게 반대해 왔던 실증주 의 신문법학자들 간의 연속성에 대한 주의를 거듭 환기시켰다. 우리는 이 연속성이 관념론자들이 언어 변화에 대한 신문법학파 이론에서의 모순을 피하면서, 신문법학파 언어학에서 제시되었던 것과 동일한 문 제점들을 다룰 관념체계를 구축하려고 시도한 데서 나왔다는 것을 알 았다. 신문법학파의 틀은 특이한 역사적 변화들을 적절하게 인과론적 으로 설명해야 하는 목표와, 언어를 법칙에 따르는 과학으로 간주하는 이상의 해결될 수 없어 보이는 모순들을 관념론자들(그리고 구조주의 자들)에게 제공했다 관념론자들과 구조주의자들의 대체적 해결 방안 에 대한 시발점을 제공한 것은 바로 이러한 신문법학파 이론이 가지 고 있었던 명백한 역설이었다. 관념론자의 해결 방안에서는 언어를 지 배하는 법칙을 공식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배제되었으며, 이러한 맥락 에서 세기의 전환기에 다른 많은 역사과학들이 당면했던 유사한 문제 들에 대한 반응에서 공식화된 직관주의적 역사철학이 이러한 가능성 의 거부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근거로 이용되었다. 동시에 관념론 자들이 해결하려 했던 기본 문제는 신문법학파의 관념체계에 의해서 명령된 것이었기 때문에, 관념론자들은 많은 철학적 가설들을 그들로 부터 물려받았다. 두 학파가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에는, 과학의 개념들은 추상성을 피해야 하며, 언어 변화는 개별 화자의 언어 수행 을 분석함으로써만 설명될 수 있고, 귀납적 방법만이 합리적인 과학적 방법이라는 등의 신념까지도 포함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신문법학파 의 관념체계는 관념주의 이론을 제약하는 원천이 되었는데, 죽 이것은 언어학이 다루어야 할 기본 문제를 명시했을 뿐 아니라 무엇이 이 문 제의 적절한 해결책을 강구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조건도

함께 부과하였댜 다시 말해서 개별적인 언어 변화에 대한 인과론적 설명이라는 목표를 유지하고자 한 관념론자들의 결정은 관념주의와 신문법학파 관념체계 사이의 수많은 다른 철학적 연속성들을 내포했 던 것이댜 다음 장에서 보게 되겠지만 이러한 목표에 대한 구조주의 자들의 거부는 동시에 이와 같은 철학적 가설들에 대한 거부를 수반 했고, 관념론자들이 이와 같은 철학적 가설들을 받아들임으로써 불가 능했던 것과는 어느 정도의 이론적 연속성의 가능성을 제공하였다. 그 러나 우리가 두 경우 모두에서 인지적 발달을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이끄는 인지적 역동성 cog nitive dy n ami cs 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 하 더라도, 왜 이 두 학파가 신문법학파의 이론적 틀에 내재하는 난제에 대하여 이같이 상이한 해결책을 제시하였는가는 아직도 대답이 필요 한 상태이다. 단순히 대체 해결책의 가능성이나 다른 철학 • 역사과학 들 내에도 유사한 문제점들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는 왜 이 두 학파 에 의해서 특정하고도 상이한 해결책들이 공식화되었는지가 설명되지 않는다.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관념주의(그리고 구조주의) 학파 의 제도적 맥락을 고려해 보는 것이 필요하고, 이것이 다움 절에서 다 룰과제다. 그 위에 우리는 연속성이 존재하는 영역들에도 불구하고 포슬러가 마음 속에 그린 언어학은 궁극적으로 신문법학파의 언어과학과는 공 통점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포슬러는 언어의 정의를 바꾸었는데 이러한 정의는 실체에 대한 극단적으로 다른 개념에 근거 를 둔 것이었다. 그는 〈음 법칙과 유추에서부터 언어공동체에 이르기 까지〉 신문법학파의 모든 개념들을 거부하거나 재정의하고, 전체 분야 룰 심리학의 이론적 의존으로부터 미학과 문화사에의 의존으로 교체 했다. 그가 신문법학자들처럼 방법론적 개인주의를 주장했어도 그에게 있어서의 개인이 신문법학자들의 그것은 아니었다. 비록 그가 경험주 의의 필요성을 고집하고 인과론적 설명에 홍미를 나타내긴 했지만, 그

의 경험주의적 세계와 그가 이끌어 낸 원인이라는 것들이 신문법학파 에게는 순전히 쓸모없는 허구들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분기는 신문법학파 이론 내의 문제점뿐만 아니라 20 세기 초 독일의 지적 풍 토에서의 변화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앞으로 보게 될 바와 같이 관 념론자들에 의해 유발된 분기는 부분적으로 독일 학계 및 독일 내 언 어학의 제도적 위치에 있어서의 변화에 대한 대응이었다. 3 언어학의 부정 : 신관념론자와 학문의 위기 신문법학파 이론에 대한 신관념론자 Neo-Ide ali s t의 공격은 실증주 의 및 이것이 사회과학과 인문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일반적인 반 응과 때를 같이했다. 이러한 반실증주의자 An ti -Pos iti v i s t 반응은 독 일에서 가장 강하게 일어났는데, 1890 년대에 시작하여 1920 년대까지 계속되었다 . 실증주의 철학에 내재한 긴장과 모순으로 인해서, 실증주 의에 대한 독일에서의 지속된 비판은 더욱 고조되었고, 이것은 또한 대학 교수들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이 변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었다. 대학들이 팽창하고 독일의 산업 근대화에 따라 학문 연구가 점차적으 로 전문화됨으로써 전통적 학문의 가치는 위협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또한 독일의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삶에 교수직이 미치는 영 향력을 약화시키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새로운 환경에 대처하고 자신 들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것에 대처하기 위한 노력에서, 독일 대학사회 는 독일의 철학과 교육적 전통의 근원인 19 세기 초기의 신인문주의 및 관념주의 사상들을 재검토하고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1850 년대에 와서야 독일에 영향을 미쳤던 실증주의는 근대 공리주의적 uti litarian , 기술주의 적 tec hnolog ica l, 물질주의 적 mate r i alist i c 시 기 와 밀접 하게 연관되어 있었고, 심리주의 ps yc h olog ism 및 물질주의 ma t e riali sm 와

더불어 실층주의는 순수과학과 교양의 가치 를 왜곡시키는 데 한몫을 했다. 프리 츠 링 어 Fr itz Ri n g er 는 그의 저 서 『독일 지 식 충의 쇠 퇴 The Declin e of the German Mandar i ns 』에서 학계의 지적 전통에 대한 비판과 재평가를 자세히 추적하고, 대학 및 사회의 변화의 연계관계를 검토했다. 1920 년경 독일 학계는 현존하는 학문의 위 기 (Krise der Wi ss en- sch aft)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물론 위기라는 말은 1890 년대부터 사 용되었다. 사회적 • 문화적 위기가 여러 번 지적되었고, 문화적 퇴폐를 논 하는 데는 항상 학문의 방법과 목적에 대한 재검토의 필요성이 포함되었 댜 따라서 학문의 위기가 바이마르에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었댜 이 러한 명칭이 비교적 늦게야 붙여진 것은 아마도 1920 대에는 지식충들이 그들의 상황에 정말로 절망울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학 문의 위기는 마침내 이렇게 명칭이 붙여지기 훨씬 이전에 일어났다. 실 제로 그것은 독일 대학 교수들이 그들이 전에 지녔던 영향력과 활력을 잃었다고 느끼기 시작했을 때인 1890 년쯤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학문에 서 〈실증주의〉와 〈심리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자라고 있었다 . 25 )

25) Fri tz Rin ge r, The Declin e of the German Manclarin e s: The German Aa :ide mi c Communit y, 1880-1933 (Cambri dg e : Harvard Un i. Press, 1969), p. 295.

링어가 보고한 바와 같은 실증주의에 대한 비판과 20 세기 초반 관 념주의 철학으로의 비판적 회귀는 많은 창의적 철학 체계와 사회 이 론들의 발달을 가져 왔댜 신칸트학파 Neo-Kanti an s, 빈델반트W i ndel­ band, 딜타이 Dilth e y, 퇴 니 스 Toennie s , 베 버 Weber, 짐 멜 S irnm el 은 모두 어느 정도 동일한 근거에 기반을 두고 있었으며, 동일한 문제에

반응했댜 인문주의적 교육에 대한 이상과 , 점차적으로 기술화 • 전문 화되고 있는 대학 교육과 연구의 실상이 대립함으로써, 대학과 일반 교육에 대한 방법과 목표가 오랫동안 논란거리가 되었다 . 많은 문헌 학자와 언어학자를 포함한 당시의 가장 뛰어난 여러 학자들이 대학 과 정치의 관계, 중등학교에서의 고전문헌학의 역할, 김나지움 G y mnas i um 과 대학에 대한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서 논의했댜 학문 의 이런 위기 속에서 신관념주의 언어학파가 발달했다. 신관념주의 언 어학파는 이러한 학문적 위기의 한가운데에서 발달했다. 그것은 반실 증주의 반응의 일부로서, 다른 학문분야에서도 지배적이었던 〈실증주 의〉 관념체계에 대하여 공격을 이끈 동일한 사회적 • 제도적 압력과, 인지적 문제점들에 의해서 형성되었다. 과거의 오류에 맞서서 싸우는 데는 언어학에 있어서도 신관념론자들만이 아니었으며 바로 이러한 사실이 새로운 학파의 특성을 형성했다. 동시에 비교 • 역사언어학의 특정한 제도적 상황과 다론 학문들의 관계가, 일반적인 압력과 문제점 들로 하여금 그 학파의 형성에 기여하는 방식을 조정하고 수정했다. 따라서 신관념론자들의 출현을 이해하려면, 관념론과 신인문주의의 부 활을 촉진시킨 요인들과 20 세기 전환점의 독일 언어학의 제도적 상황 의 상호작용을 검토하는 것이 유용하다. 대학의 공식 조직과 학문분야 내에서의 언어학의 위치는, 브루크만 과 오스트호프가 신문법학파 선언 ma nif es t o 을 공표했던 1878 년부터 포슬러가 『언어학에서의 실증주의와 관념론 Pos iti v i smus und Idea— lism us in der Sp rachw i ssensc hajt』에서 관념주의 언어학을 창설할 것을 주창했던 1904 년 사이에는 괄목할 만한 변화가 없었다. 이 기간 동안 언어학은 기본적으로 다양한 문헌학 분야들에 관련된 하나의 전 문 분야로 남아 있었다. 언어학을 전담하는 교수직이 몇몇 대학에 생 겨났지만 (1880 년대 후반에 시작) 언어학 연구의 많은 부분이 비언어 학적 문헌학 과목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들에 의해 전문화된 문헌

학 분야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바뀌지는 않았다 . 그리고 아마도 가장 중요한 점은 대부분의 언어학 강의가 앞으로 중등학교 언어 교 사가 될 사람들을 위한 전문화된 문헌학 교육의 맥락 안에서 행해졌 다는 사실이다. 신문법학자들은 언어학이 이렇게 다양한 문헌학 분야 (특히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현대어 연구) 속으로 침투하는 것을 촉진시켰댜 언어학 관념체계를 그들이 수정함으로써 다양한 언어들이 동등한 과학적 중요성을 지니게 되었다. 균일주의 un iformitarian ism 는 산스크리트어, 그리스어, 라틴어는 물론 독일어, 불어, 이태리어, 러 시아어도 언어학적 연구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동시에, 신문 법학자들은 비교 • 역사언어학이 모든 문헌학 주제의 연구에 필요한 배경을 제공하며, 언어 교육에 역사 • 비교언어학의 원칙들을 도입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거듭 주장했다. 신문법학파의 몇몇 지도자들 은 언어학 연구롤 언어 교사에게 요구할 것과 언어 교육을 언어학 원 리들에 의해서 실시할 것을 주장했다. 델브뤼크는 1875 년에, 오스트호 프는 1879 년에, 브루크만은 1910 년에 이롤 주장했다 . 26)

26) Bert ho ld Delbri ick , Das Sp r achstv .d iu m au f den deuts c hen Univ e rsit ate n (Jen a: Dufft, 1895); Hermann Osth o ff , Der gra mmati sc he Shulunte rrich t und die spr a chw iss enscha ftlich e Meth o de, in Zeit sch ri ft fur diE Oste r reic h i sc hen Gym nasie n , 1880, pp. 55-72; Karl Brug m ann, Der Gym nasia l unte r r ich t in den beid e n k/assis c hen Sp r achen und diE Sp r achwi ss enscra ft (Str as sburg: Trubii ne r, 1910).

나는 언어학 방법에서 변화된 방향이 어느 정도 학교에서 문법을 공부 하는 데 유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와 함께 다음 두 가지 사실을 생각 해 보기로 하자 . 첫째, 이전에는 먼 원시인구어 시기로 돌아가서만이 해 결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던 많은 문법 문제들을 오늘날에는 다행히 도 언어학자가 특정 언어들의 역사 및 특별한 발달의 경계선을 뛰어넘을 필요 없이 해결할 수 있으며, 두 번째로 김나지움에서 특별한 비교언어학

만을 다루는 것은 교육학적으로 받아 들 일 수 없다 . 실제 학교 교사가 김 나지움 학생에게 산스크리트 어형들을 잔뜩 나열하고 모호한 것을 더 모 호한 것으로 설명하는 데 반대하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너무 편협하게 전해지지 않은 한계 내에서 산스크리트어나 더 이상의 비교를 하지 않고도 진정한 언어학적 방법을 행사하기 위한 하나 의 가능성이 제시되었을 때, 새로운 형태의 역사언어학이 중등교육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해야 할 것인지를 시험해 보는 것이 적절해 보이지 않 는가? m)

'lJ) Osth o ff, Das gra mmati sc he Schulunte rrich t , p. 57.

오스트호프의 주장은 신문법학파의 혁신이 어떻게 학계에서 언어학 의 위상에 직접적인 이익이 될 수 있었는지를 시사하고 있다. 언어를 배우는 것과 가르치는 것, 둘 다 언어의 역사적 발달에 대한 지식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면 , 언어학은 주변적이고 신비한 학문이 아니라 중 등학교 라틴어 , 불어, 영어, 독일어 교사들을 위해 대학이 맡아야 할 교육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러한 신문법학파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문헌학 분야 안에 서 언어학의 위치는 전적으로 안정되지는 못했다. 언어에 대한 역사적 연구는 문헌학 연구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도 언어 교육에 서 그 역 할은 확고하지 못했다. 발터 쿠푸스 Walte r Ku hfu ss 가 보고 한 바와 같이, 현대어 교육은 역사언어학에 바탕을 둘 것이 아니라 활 발한 발음 연습에 중점을 두고, 일상 언어를 구어로 완벽하게 할 것을 목표로 하는, 보다 실용적으로 지향할 것을 1880 년대에 이미 주장한 문헌학자들도 있었다흐 알려진 바와 같이 현대어에 대한 개혁 움직임

2.8) Walte r Ku hfus s, Die Rezep tion der Roma nisc hen Ph ilolo g ie in den Prog ra mmabhandlun ge n der hoheren Schulen im 19. Jah rhunde rt, In

Memoriam Fr ied rich Di ez : Akte n des Kolloq u im s zur Wi ss enscha ftsges chic h te der Romanis t i k, Tr ier , 2-12 0kt. 1975, eds. H.J . Nie d erecke and H. Haarman (Amste r dam: Benja mins , 1976).

은 전적으로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 . 고전어가 여전히 모든 언어의 모델이 되었고, 현대어 연구는 적어도 대학 수준에서는 여전히 역사문 법에 크게 의존했댜 휴고 슈하르트 Hu g o Schuchard t가 거듭 언급한 일화가 그 문제를 실감나게 말해 주고 있다. 그(슈하르트)의 시대에 언어 를 어떻게 공부했는가에 대한 전형적 예로 서, 무사피아 Musa fi a(s i c) 가 실제로 경험했던 한 사건 을 (원문 그대로) 언급하고 있다. 무사피아는 한 학생에게 칠판에 〈황 제가 롤 랑을 방문했 다.〉를 고대 불어로 쓰게 했다:

  • 〈一자! 이제 그 문장을 현대 불어로 써라 〉 ― 〈 선생님 , 현대 불어 를 아직 배우지 못했습니다. 〉 29)

    29) Alf Sommerf elt , Hug o Schuhardt , 1929, rpt. in Portr a it s of Lin g u is ts , I, ed. Thomas A. Sebeok

    19 세기가 끝나 갈 즈음 외국어의 효율적 교수법에 대한 필요성이 늘어나면서 개혁 움직임이 확산되었다. 이는, 예를 들어, 대학에서 언 어를 가르치는 〈강사 le ct or 〉의 수가 늘어난 것에서 알 수 있다. 〈강 사〉의 자리는 실제로 19 세기 초기에 거의 없어졌다가 1900 년대에 다 시 회복되었다 .30 )

    30) 크리스티안 페르버 Ch rist ia n Ferber 가 Di e Entw ick lung des Lehrkop e rs der deuts c hen Univ e rsit ate n und Hochschulen • 1864-1954 (Gott ing e n: Vandenhoek & Ru p rech t)에 밝힌 계산에 의하면 , 1873 년에 유럽어 를 가르치는 강사가 16 명이었고 1910 년에는 50 명이었다.

    개혁에 대한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은 전통적 언어를 강조하는 데 위협이 되었다. 언어 교육에서 효율성과 공리성을 지향함으로써 개혁

    은 대학에서의 문헌학 강의의 사회적 위상을 격하시키는 듯 했다. 역 사문법과 비교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문헌학 교수들의 연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지만, 언어 연습과 발음 연습을 강조하는 새로운 방법은 교육과 연구를 분리시켰고 언어 교육을 실용적 기술로 변형시켰다. 전문기술주의 Pro f ess i on ali sm 가 순수한 문헌학 분야로 침투하고 있 었다. 공리 주의 와 기 술 지 향적 인 tec hnolog ica lly- o ri en te d 대 학 교육에 의 반대가 〈학문의 위기〉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가 되었다. 1890 년대 부터 독일 대학은 속된 실용성이 이상적 진리에 대한 〈자유로운〉 추 구를 제압하고 있다고 자주 불만을 나타냈다 .31)

    31) Ring e r, p.2 56.

    1890 년대 이후 독일 학자들은, 대학과 학문에 대한 현대 독일 사상은 그 지적 기원이 독일 관념론 및 신인문주의에 어쩔 수 없이 관련되어 있 다는 데 일반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훔볼트, 슐라이어마허, 피히테가 구 상했던 대학, 즉 할레 대학의 실용성과는 반대되고 , 베를린 대학의 실제 조직과도 대립이 되는 주장들은 미래를 위한 고등교육에 대한 독일의 이 상을 규정한 것이었다. 1800 년을 전후로 한 몇십 년은 원시적 순수성의 시대처럼 보이게 되었다.…… 칼 베커 Carl Becker 에 따르면 당시의 대학 이란 민족적 성지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독일 관념론 철학에 고취되고 파우스트적인 〈순수한〉 철학 연구에 몰두하여 대학은 실용적 결과에 대 한 조급한 요구로부터 보호되고 있었다. 대학은 〈성배(聖杯)를 지키는 요 새(要 塞 )〉처럼 학문을 하는 사도들에게 그리고 전체적으로는 한 민족에게 편협하게 공리적인 영향력보다는 정신적으로 고결한 영향력을 지닌 것으 로 간주되었다 .32)

    32) Ringe r, p p.1 0 3-104.

    링어가 말한 것처럼, 순전히 공리적인 학문에 대한 혐오의 근거는 관념론적 및 신인문주의적 전통 속에만 뿌리박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교양과 학문에 대한 그들의 전통적 가치를 방어하면서 독일 학계는 학생이라는 고객에게 전문화된 봉사를 제공해 주는 기술자나 전문가 가 아닌 〈현자 sa g es 〉로서의 그들의 지위도 방어하고 있었다. 독일 교 수 집단은 급속한 산업 근대화를 겪고 있는 나라에서 도덕적이고 지 적인 지도력을 제공하는 민족의 엘리트로 간주되기를 원했다. 알프레트 베버 Alfr ed Weber 가 독일의 지성 인들이 국가에 미치는 영 향력이 줄어든 것에 대해서 한탄한 것은 문제의 핵심을 찌른 것이었다 . 그의 모든 주장은 지혜로서의 지식과 단순한 기술적 분석으로서의 지식 사이의 전통적 구별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그 요점은 지식충들은 그들 자신의 정원을 가꾸는 것으로 결코 만족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그들은 자 신들을 승려 계급으로 간주했고 농민들에게 궁극적 가치들을 설정해 주 고자 했다.…… 기술적 변화는 지혜의 파괴 를 촉진시켰는데, 왜냐 하면 지적 〈총체 totality〉의 달성을 더욱 어렵게 했기 때문이었다. 지적 전문 화와 〈객관적 정신 obje c ti ve g e i s t〉의 성장은 동일한 효과를 갖는 것이 었다 . 33)

    33) Walte r r Ku hfus s, Die Rezep tion der Roma nisc hen Ph ilolo g ie in den Prog ram mabhandlung e n der horen Schule im 19. Jah rhundert , In Memori am Fr ied ri ch Di ez : Akte n des Kolloq u im s zur Wi ssensc 며'tsge sc hi c ht e der Romanis t i k, Tr ier, 2-12 0kt. 1 罪 5, eds. H. J. Nie d erecke and H. Haarman (Amste rd am: Benj amins , 1976).

    대학 일반에서의 공리적이고 실용적인 추세에 대해 비판적이던 타 분야들에서의 공통된 관심이, 문헌학에서는 현대어들을 단순히 실용적 으로 가르치고, 고전 언어에 들이는 시간 수를 제한하는 근대주의적

    학교 개혁에 반대하는 주장으로 표현되었다 . 만약 대학이 완벽한 교양 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면, 그리고 연구와 교육이 긴밀하게 통합을 유 지해야 한다면, 현대어 공부는 실용적인 노력만으로 해서는 안 되며, 폭넓게 이해된 문헌학 연구의 떨어질 수 없는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대학이 그 진정한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언어를 포 함한 모든 과목들을 가르치는 훔볼트식 전인 교육이 종합적이면서도 순수학문의 가치로 고취된 것이어야 했다 . 가장 기본적 수준에서 이것은 언어 교육이 문법 원리들을 제시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데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댜 포슬러의 제자이며 그의 이론을 따랐던 오이겐 레르히 는 〈고등교육기관에서 현대 언어 교사는 문법 과목에서 규칙들을 설 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문법적 설명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 34) 고 믿 었다. 좀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신관념론자들은 전형적인 언어 교사 의 실용적이며 현학적인 관점 및 문헌학에 대해 편협한 실증주의적 개념을 , 그들 자신의 문헌학에 대한 진정한 〈정신적〉 이상과 대비시켰다.

    34) Eduard Schramm, Gedachtn isr ede, Stu d ia Romanic a , Gedenkschr ift fiir VEuergl ae gn , L19e5rc5h),, pe.1d0s .. Charles Bruneau & Pete r M. Schon (Stu ttgart: Port

    〈 문헌학 〉 이란 단어는 오늘날 이중으로 더럽혀져 있다. 한편으론 교육학 냄새가 나고 또 다른 한편으론 필수적인 기초가 되긴 해도 절대로 목표 는 아닌, 언어와 문학에 대한 실증주의적 과학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 . 우 리는 〈신성하고 세속적인 문헌학phil olo gi a sacra et p ro f ana 〉과 같이 과거의 오래되고 장엄하며 정신적 내용을 가진 단어로 이해하고 싶다 .35)

    35) Eug en Lerch and Vic tor Klemp er er,Vorwort to Jah rbuch fiir Ph ilol og ie, I (19 25).

    학문에서의 공리주의에 대한 반대와 뒤이은 교육과 연구의 분리에 대한 거부가 지적 세분화 형태들에 대한 비판과 맞아 들었다. 학자가 좁은 분야의 전문지식에 제한되면 경험의 총체를 이해하고 평가하는 능력을 잃게 된댜 현대 생활의 단편적인 성격들의 지적 반영으로서 부당한 전문화는 학생들에게 통합된 세계관 Wel t anschauun g을 제시 할 수 있는 개별 교사들 및 대학 전체의 능력을 훼손시키는 것으로 보였다. 단편적이고 분산된 지식은 개성의 조화로운 함양을 위한 기초 가 될 수 없으며, 국가 문화를 통합적, 바판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기 여할 수 없었다. 대학 교수가 세계를 종합적이며 철학적인 지식으로 이해하지 못하고는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생활을 지도하는 사람들의 단순한 전문직 노예가 될 뿐이었다. 전문가로서는 도덕적 또는 제도적 지도를 할 수 없고, 국가의 목적과 문화적 이상을 수립하는 책임을 포 기해야 했다. 거듭해서 지식층들은 학문에서 전문화와 실증주의가 지배하는 것을 통 탄했다. 분명히 이러한 용어들은 상당한 범위에 걸친 죄악을 기술하기 위 한 것이었다. 교육학자인 에두아르 슈프랑어 Eduard Sp ran g er 는 실증주 의의 물결이 인 것을 1840 년경으로 잡고 〈학문의 형이상학적 총체가 전 문화된 학문의 총합으로〉 변형되는 것에 대해서 말했다. 그는 학문과 직 업적 훈련의 구분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학문과 세계관 사이에도 똑같이 심각한 균열이 생기는 것을 감지했다. 야스퍼스J as p ers 도 같은 현상을 주목했다 . 그는 독일 대학이 형이상학의 개념적 세계를 보지 못하고 〈전 통의 전달자〉로서 실패했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꼈다고 썼다.…… 철학자 막스 쉘러 Max Scheler 는 동시대인들의 〈일면적 직업주의 one-sid e d occu p a ti on ali sm 〉와 〈모든 기술 문제와는 구별이 되는 목적의 문제에 대 해서 모든 동의를 체계적으로 포기했던〉 전문화를 비웃었다 . 그는 독일의 고등교육은 모델로서 그리고 지도자로서 나라 전체의 삶에 영향을 주는

    〈정신적 인간g e i s tig e Personen 〉을 더 이상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댜 36)

    36) Rin ge r, 앞의 책, p. 257.

    〈단순히〉 실용적이고 전문주의적인 학문관에 대한 학계의 혐오가, 문헌학에서는 교육은 연구와 통합되어야 하며 언어 교육은 언어학 원 리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통합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타났으며, 전 문화에 대한 비판은 실증주의자들이 언어 사실들을 〈원자론적 a t o mi s ti c 〉으로 다루는 데 대한 신관념론자들의 비난 속에 반영되었 다. 포슬러와 그의 제자들은 언어가 인간 정신의 다른 표현들과는 독 립돼서 다루어지는 것을 거부했댜 문헌학의 통합은 회복되어야 하며 이것은 음성적 사실들을 형태론과 별개로 다루거나 통사론을 스타일 에 대한 미적 관심과는 별도로 다루는 것이 불합리할 뿐만 아니라 언 어 현상은 민족의 전 문화생활과 떨어져서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을 의 미했다. 언어와, 문학, 예술 민족성은 고립된 실체들로서 따로 분리해 서 다룰 수 없었으며, 이상적 총체의 표현으로서만 이해될 수 있었다. 이상적인 문헌학은 하나의 이상, 죽 언어 총체 속에서 정신적 요소를 찾고 전체를 위해서 세부적인 것을 연구하는 이상을 향하여 노력하는 것 이댜 그 이외의 다른 문헌학이 있어서는 안 되며, 이상적인 문헌학은 〈밤 같은 밤 noc turn al nig h t〉처럼 무의미해야만 한댜 진지하게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가 삽입문자 위에 있는 점에 관하여 오절판짜 리 책을 쓴다고 할지라도 그가 추구해야 할 정신적 목표와 총체성만을 의식하고 있는 한에서는 이상적인 문헌학자인 것이다 37)

    37) Vic t o r Klemp e rer, Jd ealis t i sc he Ph ilo! og ie , in Idealist i sc he Phil o log ie: Jah rbuch fiir Phil o log ie, ill (19 Z7), p.3 .

    신관념론자들은 자신들의 주요 과제가 언어와 문학의 모든 현상을 균등하게 다루고 설명할 수 있는 공통된 방법으로 문헌학의 통일성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 이 목표는 언어와 문학의 모든 면에 대한 연구를 이들이 나오게 된 총체에 대한 철학적 이해를 통하여 파악할 수 있을 때만 이룰 수 있었다. 이것은 신관념론자들이 전문화의 모든 형태를 거부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1920 년대에 포슬 러는 교양을 전문화되지 않은 일반 학문으로 해석하는 것을 비난하는 강의를 했다 .38) 그는 전문화는 필수적이고 피할 수도 없는 것이며, 르 네상스적 교양인의 이상은 어리석은 것이었으나, 전문화는 피할 수 없 는 것이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학자들이 보다 광범위한 철학적 문 제들을 아는 게 필요했다고 주장했다. 실증주의자들이 고립된 사실들 만을 다루고 언어 현상의 원인을 설명하지 못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문화적 • 사회적 세계의 통합적 이해만이 문헌학을 진정한 정신과학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신관념론자들의 신념의 필연적 결과였 다. 빅토르 클렘페러 Vic t o r Klem p erer 는 포슬러에 대한 평가에서, 〈원자화하는 a t om 函 ng 전문화된 실증주의 언어학과 철학적 지식에 의거한 통합된 관념주의 문헌학〉의 대립을 강조하면서 문헌학사를 신 관념론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 당시는 실증주의의 시대였다. 문헌학은 자연과학으로 취급되었다. 언어는 본질상 물리적인 것으로 이해되었다. 문헌학자의 일은 개별적 사 실들의 엄밀한 관찰과 수집에 있었고, 궁극적으로는 일련의 사실들을 기 계론적으로 설명하는 데 있었다. 그러한 때에 포슬러는 언어를 정신의 세 계로 승화하고, 언어를 시적인 것으로 파악했으며 〈창조와 계발로서의 언 어〉를 관찰하고-이것은 이 분야에 대한 그의 두 번째 저서의 제목이 다一―언어 현상에 대하여 정신적인 설명을 추구했다. 포슬러의 언어철

    38) Karl Vossler, Di e Univ e rsit iit als Bi ld ung s stii tte (Mun ich : Hueber, 1923).

    학은 본질적으로 신낭만주의 작가들과 동일한 견지에 근거했는데 포슬러 가 낭만주의자들을 모방한 것은 아니고, 실증주의의 개입 시기로부터 풍 성한 양분을 끌어 낼 수 있었던 새로운 정신성을 통하여 그들의 사상을 더욱 발전시킨 것이었다. 39)

    39) Vic t o r Klemp e rer, Karl Vossler, in Jah rbuch fiir Ph ilol og ie, II (1926), pp. 4-5.

    클렘페러가 언급한 것처럼, 신관념론자들이 19 세기 초의 사상으로 회귀한 것에는 지난날 철학 사상의 단순한 재생보다 훨씬 이상의 것 이 포함되어 있었다. 오히려-이것은 언어학에서의 관념론자들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독일 반실증주의자들의 반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사실이었다 ― ――원래의 신인문주의 및 관념론적 신념들은 당시 통용 되던 학술 기준을 비판하는 데 사용되고, 19 세기 말에서 20 세기 초에 학계가 당면했던 문제들을 연구하고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재공 식화되었댜 예를 들면, 언어는 민족 정신의 표현으로 연구되어야 한 다는 훔볼트 사상은 신관념론자들에 의하여 실증주의가 지식을 분해 시킨다고 비판하는 데 이용되고 나아가 문헌학의 통일성을 회복하는 데 이용되었댜 동시에 현대어와 문학에 대한 신관념론자들의 관심은 관념주의나 신인문주의에 의해서 촉발된 것이 아니라 불어와 영어 교 사들에 대하여 인정치 않았던 실용적 필요성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서, 관념론자들의 철학적 관심과 방법론적 입장이 19 세기 초기의 철학 체계에 바탕을 두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실질적 관심은 현대 사회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대학들은 전문화된 실용적 학문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따랐지만, 그러한 추세는 진정한 학문을 파괴하고 순수한 학문과 연구 기관으로서의 대학의 전통적-다소 신화적일지라도―~ 전 복시키는 것으로 생각됐다. 신관념주의의 반옹은 교육과 연구의 통합

    을 유지하고, 교육을 인격 도야로 생각하며, 통합적이고 철학적인 지 식에 근거하여 문화적 • 사회적 생활을 이해하도록 노력함으로써 이러 한 전통적 가치를 살리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신관념론자들은 철학적 연구의 순수성과 통일성, 언어 교육을 언어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 에 대한 폭넓은 문헌학적 이해에 기초하여 실시해야 할 필요성, 그리 고 〈정신적 삶〉의 언어적, 문학적 및 기타 문화 • 사회적 〈표출〉에 대 한 전체론적 관점을 계속 고집하면서도 현대어들울 연구하고, 또한 보 다 최근의 문학적 시기에 중점을 두었다. 우리가 보았듯이, 신관념주의 언어학의 발달은 더 큰 학문운동의 한 국면일 뿐이었고, 그러함으로 해서 그것은 언어학의 관념체계 안에 있 는 인지적 문제뿐만 아니라 전체 학계의 상황에 영향을 미친 보다 일 반적인 변화에 의해서도 제약을 받았다. 그러나 언어학에서 신관념주의의 부활을 초래했던 일반적인 사회적 압력은, 왜 신관념론자들이 하나의 사상학파를 형성했으며, 왜 그들이 그렇게 많은 바판적 반대에 봉착했는지, 그리고 왜 그들이 결국 언어 학 내에서(문헌학 내에서는 아닐지라도) 하나의 의미 있는 운동으로만 사라져 버리게 되었는지를 시사해 주는 예상치 못했던 제도적 귀결을 낳았다. 19 세기를 통하여 언어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언어학을 하나의 독립된 분야로 정립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는 사실(슐라이허의 중요한 예외 가 있지만)에서 볼 때, 비교 • 역사언어학이 제도적으로는 상이한 문헌 학 분야들 내에서 하나의 세부 전문 분야로 존재했으며, 단지 상대적 으로 제한된 자율성만을 누렸음을 알 수 있다. 이 제한된 자율성도 학 문의 세분화에 대한 공격으로 위협을 받았다. 독특한 방법론에 바탕을 둔 역사 • 비교언어학은 종종 미세한 사항이나 동떨어진 사실들, 혹은 하찮은 현학적 문제들을 다루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사실은 특히 〈실증주의〉라는 비난, 즉 분별 없는 세분화라든지, 보다 큰 철학적 문

    제들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비난을 받기 쉽게 만들었다. 이러한 비난 들 은 언어학이 보다 광범위한 문헌학적 연구와 보다 잘 통합되어야 함 을 함축하는 것으로 보였다 . 문헌학의 개념을 모든 정신적 삶에 대한 연구로 승화시켰던 관념론자들은 언어를 분리 • 구별해서 다루는 것은 기껏해야 준비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언어는 한 공동체의 정신적 삶의 한 국면으로 간주되어야 하며, 다른 문화 • 예술적 창조물들의 맥락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으로 믿었다. 만약 관념론자들이 문체론에서 뛰어났다면, 그것은 그들이 언어의 개 별성과 독창성을 강조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문체론이 언어학과 문학 을 충분히 융합시킨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관념론자들의 연구(모든 관념론자들은 문학 연구가이기도 했다)와 그들이 편집한 정기간행물을 보면 그들의 손에서 언어학의 자율성이 얼마나 상실되었나를 알 수 있다 40) 거기서는 문학과 언어가 종종 같 이 다루어졌으며 비슷한 방법으로 연구되었다. 언어와 문학 현상에 대 한 설명이 아주 똑같은 것은 아니더라도 같은 종류의 것이었다. 포슬 러와 그의 제자들이 자주 언어와 예술을 동일시한 사실은 이러한 언 어학의 문헌학 속으로의 융해를 축약적으로 나타내었다 . 포슬러에 의 하면 언어와 문학은 둘 다 똑같은 인간의 정신적 활동의 산물로서 동 일한 방법으로 연구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40) 예를 들면 ]ahrbuch fiir Ph i lolo gi e(l925-26) 와 Idealis ti sc he Phil o log i,e, (1926), pp. 4-5. 관념론자들의 정기간행물은 어느 것도 지속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언어에 대한 미학적 관찰과 역사적 관찰의 구별이 새로운 이원 론을 문헌학에 도입하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그 용어들을 이해 하듯이, 미학적인 것과 역사적인 것은 대립되는 말이 아니라, 실증주의

    체계에서 기술문법과 설명문법을 구분하는 것-우리 체계에서는 결코 혼동되지도 않고 동일시되지도 않지만-과 비슷한 방식으로 연관되어 있댜 우리는 미학적, 역사적이란 말을 사실은 비교론적일 수밖에 없는 동일한 문헌학적 절차의 두 가지 측면을 가리키는 데 사용하고 있다. 만 약 언어 표현을 그에 대응하는 정신적 직관과 비교한다면, 그 관찰은 미 학적인 것이며, 그 표현의 〈의미〉를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말해진 것을 듣거나 쓰여진 것을 읽는다는 것은 이 행위를 분명히 무의식적으로 그리 고 비과학적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의해서 의식적으로 이행하고 그 풀이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면, 그는 미학적 언어과학을 실행하는 것이 다 . 더군다나, 다른 혹은 비슷한 표현을 비교하고 그들의 어원적 관계를 찾아 내려고 한다면, 그 관찰 방법은 역사적이 되며, 그렇다고 해서 미학 적이 아닌 것은 아니댜 죽, 미학적으로 해석된 것이 역사적으로 설명이 되며 언어 발달이라는 맥락 속에 놓이게 된다 .41)

    41) Vossler, Posit ivis m us, p.9 5 .

    신관념론자들이 문화와 역사의 모든 연구를 융합함에 따라 언어학 이 부분적 자율성마저 잃게 되는 것은 어느 의미에서 훨씬 이전부터 시작된 언어학의 제도화 과정이 인지적 측면에서 절정에 이른 것이었 다. 모든 문헌학적 연구의 통합을 고집한 관념론자들의 강령적 주장은 신문법학자들이 제시한 두 연구 영역의 상호 의존성에 관한 전통적 논의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교수들이 언어학과 문학 과 목을 둘 다 가르치고 같은 전문지에 언어학과 문학에 대한 논문을 발 표하고, 문학사와 문화사는 물론 언어학을 포함한 그들의 분야에 대한 조사서(예를 들면, 파울의 독일 문헌학사나 그뢰버 Grober 의 로만스어 문헌학 연구)를 편집했던 당시의 근대적 문헌학 분야의 제도적 현상 을 재확인하고 정당화시켰다. 관념론자들은 실용주의 및 학술과학의 전문화에 대한 보다 일반적

    인 비판을 문헌학 내에 전환시켜 놓음으로써 그 들 은 광범위하면서도 제도적으로는 확고하게 한계가 그어진 자신들의 연구 분야에 대해서 과학적 권위를 주장할 수 있었다 . 신문법학파(이후)의 엘리트 자리를 대신 차지하기 위한 시도에서 포슬러와 그의 제자들은 문학과 언어학 적 역량을 통합하려 했고, 문헌학 내부의 관심의 초점을 보다 최근 단 계의 불어, 스페인어, 이태리어 발달사로 돌리려 했다. 이 모든 변화에 는 당시 우세했던 지적 • 제도적 조건의 변화, 죽 반실증주의 반란, 가 중되는 현대어 교육의 필요성, 또는 조직의 팽창에 관련된 〈사실상〉의 세부전공화 등의 변화를 이용하는 것도 포함됐다. 신관념론자들의 이 러한 언어학 외적인 경향은 외적 정당화의 호소에서도 명백히 드러난 다. 그들은 문헌학적 권위나 언어학적 권위를 거론하는 대신 학술 철 학, 특히 크로체와 딜타이의 저술에 대해 언급했다. 그들은 방법론적 실증주의보다는 형이상학적 실증주의를 공격하며, 언어와 문학 양쪽 모두의 통합적인 이해를 가능케 할 철학적 종합을 요구했다. 그들은 신문법학자들이 논한 사실들에 관해 논쟁한 것이 아니고, 단지 이러한 사실들의 실증주의적 해석, 보다 정확히는 역사적인 언어학적 자료에 관한 어떠한 철학적 해석을 결여한 것에 대해 논박한 것이다. 관념주의 언어학은 다른 학문분야에서 반실증주의 반응을 불러일으 켰던 것과 동일한 압력에서 나온 결과였다. 그러나 하나의 학파로서 관념론자들은 언어학과 문헌학을 재정의하려는 자신들의 시도를 정당 화하기 위하여 반실증주의 반응과 그 인기를 이용하려 했다 . 그들은 독일에서 대체로 비판적 반응에 부딪치게 되었는데, 그 부분적인 이유 는 이렇게 대의적으로 정당성을 얻으려는 호소를 하면서 자신들은 스 스로가 언어학의 자율성을 부분적으로 해체했기 때문이었다. 관념론자 들이 제시한 바, 죽 언어학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문헌학 속에 완전히 언어학을 용해시킨 것은 언어학 엘리트의 통합과 지위를 위협하고 서 로 다른 문헌학 분야에서 행해진 언어 연구를 평가할 권리를 위협했

    다. 한편 언어학이 이미 제도적으로나 인지적으로 독립하게 된 상황에 서 관념론자들의 위협은 쉽게 무시될 수 있었다. 왜냐 하면 일단 제도 적으로 독립성이 확보된 이상(독일에서는 아직 그렇지 못했지만), 언 어학과 문학 연구를 포괄적인 문헌학 속에 통합하려는 호소는 단지 터무니없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제 7 장 소쉬르의 내부로부터의 혁명 20 세기 초반 역사언어학으로부터 구조언어학에로의 전이는 일반적 으로 언어학 이론과 연구에 있어서 대전환으로 간주된다. 그것은 언어 과학에서 하나의 혁명으로 기술되며, 20 세기 언어학의 발달에 있어서 그 중요성에 대하여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I) 따라서 언어 변화에 대한 19 세기의 역사적 연구와 언어 상태에 대한 20 세기 구조 분석 간의 〈틈 g a p 〉 에 대한 많은 토론에서 근본적인 단절을 나타내는 일련의 어휘들이 특징을 이루어 왔다. 페르디낭 드 소쉬르 Fer din and de Saussure 의 일반언어학에 대한 강의는 그의 사후에 『일반언어학 강 의 Cours de lin g u is t i qu e g enerale 』 (1916) 로 출판되어 〈언어과학에 서의 신기원의 시작 〉 으로, 그리고 〈일반언어학에서 새로운 논거의 틀 을 마련하는 혁명적 행위〉 2) 로 일컬어져 왔다. 서로 같은 표준으로 비

    1) 예 를 들면 버틸 말 름 버그 Be rtil Malmber g는 Les nouvelles ten dences de la ling uist iq u e (Pa ris: PUF, 1968, p. 55) 에서 〈소쉬르가 신문법학자들의 전통과는 분명히 단 절 했다 〉 고 주장한다. 쾨르너 E. F. K. Komer 도 여러 저서에서 〈소쉬르 의 패러다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예 를 들 면, Towards a Hi st o r i og r aphy of Lin g uist i cs , Amste r dam: Benja rnins , 1978).

    교할 수 없음i ncomrnensurab ility에 대한 인식은 구조언어학의 선구 자로서 합당한 몇몇 사람들, 다시 말해서 새로운 체계에 대해 적어도 하나 이상의 관념을 예고했던 학자들이나, 구조언어학의 〈아버지〉로 인정받는 소쉬르에게 영감을 줄 수 있었던 학자들에 대해 광범위하게 탐구함으로써만 어느 정도 바뀔 수 있댜 3 )

    2) Roman Jak obson, Selecte d Writi ng s Vol. II (The Hag u e: Mouto n , 1971), p. 717 ; E. F. K. Korner, Towards a Hi st o r io g rap h y, p.3 9. 3)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 Cours 』는 새로운 관념체계가 처음으로 발표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 비평과 역사적 검토의 대상이 되어 왔다. 더군다나, 책이 출판된 방식이 특이하기 때문에 (소쉬르가 적어 넣은 것은 거의 없 고, 대부분을 편집자들이 그의 제자들의 노트에서 모아서 만들었다), 처음 생각을 한 사람들의 저서에 대해 일반적으로 논쟁이 될 수 있는 질문은 〈저자가 실제로 무엇을 의미했는가?〉 하는 것인데 , 이것이 이 책에서는 더 기본적인 질문, 죽 〈소 쉬르가 실제로 무엇을 얘기했는가?〉와 겹쳐 더 복잡해졌다. 이 불확실성 때문에 『 일반언어학 강의 Cours 』 편집할 때 사용된 원 자료와 초판이 나온 이래로 발견 된 추가 자료들을 제시하는 데 많은 노력이 기울여져 왔다. 특히 고델 R. Godel 의 Les sources manuscrite s du Cours de ling uisti qu e ge nerale de F. de Saussure (Geneva: Droz, 1969) 및 엥글러 R. Eng le r Cours (Wi es baden, 1976) 참조 . 소쉬르가 쓰지 않은 저서를 재구성하는 데 들인 무한한 노력 외에도, 19 세기에서 20 세기 언어학으로의 전환에 관한 많은 역사적 작업은 소쉬르 이전의 학자들, 죽 그에게 직접 영향을 준 사상가들이나 『 일반언어학 강의 Cours 』에서도 볼 수 있는 사상을 한때 공식화했던 사람들의 문제에도 관심이 집중됐다.

    소쉬르에 직접 • 간접으로 영향을 준 사람들의 범위는 참으로 놀랄 만하다. 헤 겔 He g el 과 콩트 Comt e, 훔볼트 Humbold t에서 부터 에 밀 뒤 르켐 Em ile Durkheim , 아드리 엥 나비 유 Ad rien Navil le, 가브리 엘 타르드 Gab ri el Tarde, 레옹 왈라스 Leon Walras 와 같은 많은 바언 어 학자들은 물론, 보두앵 드 쿠르트네 Jan Baudou in de Cou rten ay, 미콜라이 크루제프스키 Miko laj Kruszewski , 윌리엄 드와이트 휘트니 W illiam Dw igh t Whitne y , 헤르만 파울 Hermann Paul, 요스트 빈텔 러 Jos t W intele r, 안톤 마르티 Anto n Ma rty, 아돌프 노렌 Ado lf

    Noreen, 칼 스베델리우스 Carl Svedeliu s , 게오르크 폰 데어 가벨렌츠 Georg von der Gabelentz , 미셸 브레알 M i chel Breal, 가스통 파리 Gasto n Pa ris, 핑 크 F. N. F i nck 와 같은 소쉬 르와 거 의 동시 대 의 학 자들에까지 이르렀다. 소쉬르 자신도 이러한 사상가들 중 몇몇에 대해 서는 그들의 직접적인 영향을 인정했거나, 적어도 동의했다(예를 들면, 보두앵, 크루제프스키, 휘트니 ). 4) 다른 사람들의 영향에 대해서는 훨씬 더 추측적이댜 그러나 『강의 Cours 』에서는 그 계통을 어떤 다른 출 처까지 추적하지 못할 만한 사상온 거의 없으며, 소쉬르의 역할은 체 계화의 대가 a gr eat sy s te m ati ze r 정 도로 축소되 기까지 했다 .5 )

    4) Godel, Sources Manuscr ite, p. 5. 5) Iorgu Iordan and Joh n Orr, An Intr od ucti on to Romance Lin g uist i cs, Its Schools and Scholars (Berkeley: Un iv. of Ca lifor n ia Press, 1970), p.2 94; Leonard Bloom field , revie w of the Cours in Modem Lang uage Jou rnal, vol.8 (1924), p.3 18; Karl Jab erg, F. de Saussure's Vorlesun ge n uber allge m ein e Sp ra chwi ss enscha ft, in Sp ra chw iss enscha ftlich e Forschun ge n und Erlebn iss e (Pa ris: Droz, 1937), p. 1 없

    그러나 우리가 소쉬르라는 인물보다 언어학의 발달이나 혹은 보다 일반적으로 과학적 변화 과정에 관심을 가진다면, 때때로 논란의 대상 이 되는, 소쉬르 자신이 어떤 책을 읽은 적이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는 무의미할 것이다(이러한 원전이 소쉬르가 자신의 생각을 공식화하게 된 인지 과정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하더라도, 바이이 Ball y와 세쉐 이에 Secheha y e 가 소쉬르의 생각을 책의 형태로 만들어 놓기 전에, 소 쉬르 자신의 생각이 정확히 어떤 말로 표현되었는가에 대한 중요성도 문제가 되듯이). 왜냐 하면, 소쉬르가 어떤 책을 알고 있었는가 아닌가 와는 별도로, 우리가 『강의』에서 발견하는 것들과 비슷한 사상을 표현 한 동시대의 연구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는 소쉬르의 이론과 그 이전 학자들의 이론 간에 체계적 관련성이 있음을 시사해 주고 있기 때문이 다. 이러한 관련성은 물론 연속성의 경우에만 국한될 필요는 없으며,

    앞 장에서 보았던 것처럼 우리가 인지 발달에서 단절을 발견할 때마다 이러한 단절이 그 이전 이론의 문제점들과 관련해서 항상 무작위적이 라고 가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소쉬르에 앞선 사상들을 탐색하는 연구 중에 많은 것이 터무니없어 보이는 것은 바로 이러한 단절의 기원을 소홀히 하기 때문이다. 단지 검토를 위하여 이전의 사상가들의 저서에 서 소쉬르가 표현한 것과 비슷한 관념들만을 가려 냄으로써, 이러한 연구들은 이론적 사상을 일련의 연관성 없는 의견들과 용어상의 구별 만으로 세분화시켰다. 그러나 이론은 상호 의존적인 관념들을 체계화 한댜 이론은 논리적 혹은 준논리적인 주장을 담고 있으며, 따라서 이 러한 주장들과 이 주장들이 제기하는 문제들에 비추어 고찰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종합 s ynth es i s 에서 이러저러한 용어상의 구별을 예시하 는 의견들을 발견해 내는 습관은 사회과학에서의 구조주의 창시자인 소쉬르의 사상에 적용해 볼 때 이중으로 아이러니컬하게 보인다. 만약 쾨르너 Korner 와 요르구 요르단 Ior g u Iordan 이 시사한 것처 럼 『일반언어학 강의』에 나타난 관념들이 20 세기의 전환점에서 정말 로 〈널리 퍼져 있는〉 것이었다면, 분명한 문제는 왜 이러한 관념들이 당시에 존재하게 되었는가를 묻는 것이며, 내가 아는 한, 이 문제가 체계적으로 제기된 적은 없었다 6) 다시 말해서 고려해야 할 문제는, 19 세기 후반과 20 세기 초의 몇몇 언어학자들, 특히 소쉬르와 그의 주 네브 학파 제자들이 언어학의 새로운 이론 체계를 공식화하게 된 인 지 과정에 관한 것이다. 소쉬르의 사상과 당시의 지배적인 언어 이론 또는 이론들간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19 세기 말에 행해진 역사언어 학의 어떤 면이 -지배적안 신문법학파 관념체계에서 어떤 긴장과 미해결의 문제, 모순 등이 —~ 했는가? 이 새 로운 발달은 이 기간 동안에 일어난 언어 외적인 그리고 철학적, 과학 적 변화와 어떤 관련이 있거나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

    6) Komer, Towards a Hi st o r i og rap h y, p. 39; lordan-Orr, p.2 94.

    우리가 앞 장에서 논한 것처럼, 20 세기의 전환점 에서 공식화된 주요 한 언어학 이론 들 이 신문법학파 신조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 가능성은 희박하댜 소쉬르의 경우, 그의 사상과 신문법학파 사상의 관계 를 검 토하는 일은 사실상 필수적 이댜 7) 소쉬르는 신문법학파가 형성되던 시 기 인 1876 년에서 1878 년까지 라이 프치 히 에서 학교 를 다녔다 그는 라 이프치히에 있는 동안 아우구스트 레스킨 Au gus t Leski en , 헤르만 오 스트호프 Hermann Osth o ff , 휩 쉬 만 H. Hubschmann, 빌 헬름 브라우 네 Wi lh elm Braune, 카를 브루크만 Karl Bru g mann 과 같은 새 로운 학파의 많은 지도자 들 과 접촉하게 되었고 이들로부터 배웠다. 소쉬르 의 「 인구어 원시 모음체 계 에 관한 논고 Memoir e sur le sy s te m e pri m i tif des voy e lles clans les lang u es i ndo-euro p eennes 」 (1878) 는 많은 사람 들 이 신문법학파 사상의 주요한 업적 가운데 하나로 간 주하고 있다. 소쉬르는 「논고 Memo i re 」에 제시된 연구 결과는 전적 으로 자신의 것이었다고 주장하며(브루크만과 오스트호프와는 별도로 음절을 이루 는 비음 nasal i s sonans 을 발견했고, 라이프치히 학파와 접촉이 있기 훨씬 오래 전에 유추 원리 princ ip le of analo gy를 생각 해 냈기 때문에), 그 자신이 신문법학파에게 직접적인 빚을 진 것은 없다고 주장했지만, 그는 신문법학파가 언어학에 공헌했음을 인정하고

    7) 쾨 르너 Komer 는 그의 논문 Hermann Paul and Sy n chron ic Lin gu is t ic s (repr . in Towards a H i s t or i o g ra p h y)와 소쉬르에 관한 논문 F. de Saussure- Orig in and Develop m ent of his Lin g u is t ic Theory in Weste r n Stu d ie s of Lang ua g e (Br aunschweig : f. Vie w eg, 1974) 에서 파울과 소쉬르의 연속성에 대 해 언급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쾨르너는 소쉬르와 파울의 저작들을 양쪽 모두 일 관된 관념체계로 취급하지 않고, 개념, 신념, 용어, 절단된 서술들을 느슨하게 모아 놓은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 이 접근 방법 때문에 쾨르너는 파울과 소쉬르의 연속 과 단절을 비체계적(혹은 임의적) 차용이나 〈영향〉의 결과라는 식 이외에 달리 설 명하지 못한다. 그의 주요 목적은 두 사상 체계 사이에 체계적 연계관계가 있음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파울의 Pr i nz ipi en 이 소쉬르의 〈출처〉가운데 하나임을 중명 하는 것이다.

    다음과 같이 말했다. 1876 년과 1877 년에 라이프치히 대학은 인구어학에 기여하는 과학운동 의 중심지였다…… 그 결과는 인구어들의 바교문법에서 거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 방법에 대한 관점에서뿐만 아니라-보다 직접적이고 신 속하게-이전에 잘못 이해되어 그때까지 인구어학이 원래 어법의 음 성 상태에 대한 그릇된 생각에 기초를 두게 만들었던 일련의 사실들을 인식함으로써 .8)

    8) Souven irs de F. de Saussure concernant sa jeu nesse et ses etud es, in 따i ers Ferdin a nd de Saussure, vol. 17 (1957), p.15 .

    이러한 증언, 그리고 소쉬르와 신문법학파의 직접적인 전기적 bio g r aph ica l 관련성 외에도, 역사언어학에 관한 소쉬르의 생각이 신 문법학자들이 표현한 생각과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아주 유사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강력한 원문의 증거가 있다. 『일반언어학 강의 Cours 』 는 많은 점에서 신문법학파의 원칙들을 단순히 말만 바꿔 놓은 역사 언어학 내지 통시언어학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죽, 역사언어 학에 대한 소쉬르의 견해에 창의성이 없다는 것과 그가 통시태 di achron y와 공시 태 s y nchron y를 엄 격 하게 분리 시 킬 것을 주장한 두 요인의 결합은 언어학자들이 아마도 소쉬르 관념체계의 이 같은 두 가지 측면 사이의 관계를 상세하게 분석할 수 없게 만드는 원인일 것 이다 .9)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구조적 공시태 연구에 대한 소쉬르의 생 각에 토대가 되었던 것은 바로 역사언어학에 대한 신문법학파의 견해

    9) Cours 를 일찍 논평한 사람들 중에는 소쉬르의 통시언어학에는 독창성이 결여되 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Eduard Hermann, Phil olo g isch e Wochenschr ift, No. 11 (19 22), p. 252; Ott o Jes pe rs en, revie w of the Cours (19 16) repr inted in L i n gui s ti따 Selecte d Pape rs in Eng lish, French, and German (London: Allen & Unwin , 1933).

    에 내재된 문제점들이었댜 이 모든 것이 신문법학파와 초기 구조주의 언어학 간에 연속성이 있다는 것만을 시사하는 것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불연속적인 것을 구별해 내고, 가능하다면 그것들을 제도적이며 지적인 언어학 연 구의 맥락과 관련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신문법학파의 관념체계 에 내재한 연속성과 단절의 기원을 신중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목 적을 위해서는 소쉬르와 어느 정도 신문법학파적 배경을 같이했던 동 시대의 다른 이론적 언어학 연구들로부터 증거를 끌어들이는 것이 편 리할 것이다. 그러한 연구들을 활용함으로써, 이 시기 언어학 발달의 논리를 실체적으로 재구성하고 19 세기 언어학에서 20 세기 언어학으로 전이될 때의 불연속적인 것들을 보다 분명하게 분리시킬 수 있다 . 이 러한 다른 연구들을 선정함에 있어 부분적으로는 관례에 따르기도 했 지만 어느 정도는 취사선택한 것이다. 우리는 보두앵 드 쿠르트네와 크루제프스키의 연구, 그리고 소쉬르 자신의 제자 알베르 세쉐이에가 소쉬르의 생전에 출판해서 아주 노골적으로 그로부터 비판을 받았던 책을 중심으로 다루겠댜 세쉐이에의 『이론언어학의 계획과 방법 Prog ram me et meth o des de la lin g u .ist i qu e t屈Jriq ue 』 (1908) 은 이러한 변화 과정을 보여 주는 좋은 예로서, 이 책은 소쉬르가 한 것 과 동일한 구별을 많이 해 내고 있지만(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소쉬르 의 영향을 받아), 전이의 마지막 단계로 볼 수 있는 구별을 하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 보두앵과 크루제프스키는 소쉬르와는 별도로, 비슷한 유형의 언어학 이론을 발전시켰다고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어서 이 들의 연구를 이용하는 것은 거의 관례적이다. 게다가 소쉬르는 이들의 연구를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을 〈어느 누구보다도 언어의 이론적 관점 에 보다 가까웠던〉 두 언어학자로 인정했다 .10) 여기에서의 설명은 직 접적인 영향의 문제는 무시하고 보두앵과 크루제프스키의 연구를 소

    10) Godel, 앞의 책, p. 51.

    쉬르의 연구와 평행한 것으로 취급하며 신문법학파의 개념에서 구조 주의로 옮겨가 는 데 있어 소쉬르 자신이 경험했던 바와 똑같은 변화 과정이 많이 있었음을 밝혀 내고자 한다 우리는 영향 그 자체보다는 인지 발달의 패턴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소쉬르에 영향을 주었을 수 도 있는 그 외 의 자료들은 고려 치 않겠댜11)

    11) 예를 들면, 소쉬르 Saussure 와 훔볼트 Humbold t의 전통과의 관계는 언급하지 않겠다 훔볼트 전통에 대한 주장은 다음을 참조 E. Coseri u, Georg von Gabelentz et la ling uist iq u e syn chroniq u e, Word, vol. 23 , pp.7 4-100. Ch rist in e Bie r bach, Sp r ach als Fait Socia l : Di e ling uist i sc he Theorie F. de Saussure's und ihr Verhiil tn is zu den po sit ivis c hen Sozia lw i ss enscha ften (Tti bi n g e n: Max Nie m ey e r, 1978).

    1 공시성으로의 길 : 지나친 편향과 그 장애물 하나의 관념체계를 이루고 있는 요소들 사이의 통합과 상호 의존이 중심적인 철학적, 이론적 혹은 방법론적 관념들로 하여금 논리적으로 새로운 특정의 인지적 발달을 초래케 하는 상황을 만들어 낼 수도 있 댜 예를 들면, 이러한 것들은 모두 새로운 문제, 새로운 조사 영역, 새로운 경험적 발견이나 이론적 공식화 등을 암시할 수도 있을 것이 댜 아마도 우리가 동시적 발견의 실례들을 만나기 가장 쉬운 곳은 바 로 이러한 복합적인 결정 상황일 것이다. 토마스 쿤 T. S. Kuhn 은 에 너 지 보존 법 칙 law of energy conserva ti on 의 복합적 발견에 관한 그의 논문에서 바로 그러한 가능 성을 시사하고 있다 . 1 2 ) 12 명이나 되는 과학자들이 새로운 이론적 일반

    12) T. S. Kuhn, Energy Conservati on as an Examp le . of Sim u lta ne ous Disc overy , in Marshall Clag e tt, ed., Criti떠 Problems in the Hi st o r y of Sc ien ce ( Madi so n: Univ . of Wi sc onsin Press, 1959), repr . in T. S. Kuhn,

    The Essenti al Tensio n ( Ch ica g o: Univ . of Ch ica go Press, 1977).

    화를 추구해 갔던 과정을 조사하면서, 쿤은 19 세기 초 과학자들 사이 에 존재했던 여러 개의 각기 다른 관념들을 분리시키고, 이 모든 관념 들이 새로운 법칙을 공식화하는 데 다 같이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각 과학자들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새로운 발견을 했기 때문에, 즉 각자 가 서로 다른 관념이 함축하는 바를 따름으로써 새로운 법칙을 이끌 어 냈기 때문에, 과학자마다 이 새로운 법칙을 조금씩 다르게 유도하 고 공식화하여 내놓았다는 사실은 놀랄 게 없다. 쿤은 그 법칙의 다양 한 공식들을 분석하면서, 공유된 관념체계를 이루고 있는 요소들의 역 할을 밝혔는데, 그 요소들이란, 새로이 서술된 에너지 전환 과정, 다양 한 종류의 엔진에 대한 관심의 고조, 그리고 유일하고도 특이한 자연 력의 존재와 관련된 자연철학자 Na t urp h i losop hen 에 대한 철학적 신 념 등이었댜 새로운 법칙을 공식화하는 데 있어서 이러한 관념들의 역할을 논함으로써 〈발견을 위한 때가 무르익었다.〉라든가 〈새로운 관 념이 떠돌고 있다.〉라는 흔히 사용되는 문구의 의미가 분명해졌다. 쿤 은 다수의 공유된 신념들이 동일한 혁신을 단언하는 상황에서 특히 복합적 발견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에너지 보존 법칙은 그것이 단 순히 새로운 실험적 정보를 일반이론화시킨 결과였기 때문만이 아니 라, 그것이 별개지만 관련된 다수의 개념들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에, 〈과학적 의식의 표면에 가까이〉 놓여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그 개념들 중에 어떤 것들은 경험적이고 또 어떤 것들은 이론적이거 나 철학적인 것들로서, 이들 모두가 19 세기 초기의 과학적 관념체계에 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쿤은 〈복합적 결정 multip le de t em 꼬 na ti on 〉을 논하면서 공유된 관 념체계 내에서 새로운 발견을 시사할 수 있었을 요소들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에너지 보존 법칙의 새로운 공식화가 공인된 패러다임의 틀 안에서 일어났으며 정상적인 과학의 연속적인 발달 과정에서 일어

    났다고 믿기 때문에, 새로운 발달을 가져온 복합적 연결고리의 존재가 이러한 발달이 또한 어떤 중심적인 과학적 신념의 단절이나 거부, 혹 은 재공식화에도 달려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는지의 여부를 묻지 않는 다. 다시 말해서, 쿤은 중요한 인지적 혁신이 다수의 공유된 개념에 의거해서 만들어진 것인지, 〈그리고〉 동시에 똑같이 공유된, 중요한 어떤 다른 개념들을 거부한 결과인지를 묻지 않는다. 이것이 정말로 경우에 따라서 그럴 수도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는 인 지적 연속성-어떤 관념들을 유지하거나 완성시키는-은 단절 이 먼저 개입되는 것, 죽 새로운 발달을 사실상 저지하는 다른 신념들 울 거부하느냐에 직접적으로 달려 있게 되는, 역설적으로 보이면서도 홍미 있는 가능성에 직면하게 된다. 이것이 20 세기로 들어와 신문법학자들의 역사언어학hi s t o ri cal lingui s ti cs 으로부터 소쉬르를 필두로 한 몇몇 언어학자들이 제안한 공시 언어 학 sy n chron ic li n g u i s ti cs 으로 전환되 는 상황이 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장에서 보게 되겠지만, 신문법학자들의 많은 중심 관념들 은 공시언어학의 발달을 시사했고, 보두앵, 크루제프스키, 에트마이어 Ett ma ye r, 마이어크뤼프케 Mey e r-Li.i bk e 등과 같은 언어학자들은 새 로운 바탕 위에서 이 분야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음을 어느 정도 분명 히 암시했다 .13) 그러나 신문법학자들의 어떤 철학적 개념들이 효력을 발하고 있는 한, 이러한 모든 암시는 아무 소용이 없었으며, 비역사언 어 학 non- h ist o r ica l li n gui s ti cs 이 가능하다거 나 필요하다고까지 하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언어학자들은 그 새로운 분야에 대한 계획을 공식

    13) Jan Baudou in de Cou rten ay, A Prog r am of Read ings for a General Course in Lin guist ic s , in A Baudouin de Courte n a y Anth o log y, ed. by E. Sta nkiew i cz (Bloom ington : Ind ian a Un iv. Press, 1972); Karl von Ett ma ye r , Benoti ge n wi r ein e wi ss enscha ftlich desla iptive Sp r achwi ss enscha ft? in Pr inz ip ier, frag e der romanis c hen Sp rachw i ssensc庫 (Halle: Nie m eye r, 1910).

    화할 수 없었댜 이 장에서는 다양한 신문법학파의 관념들이 어느 정 도로 언어 상태의 과학을 위한 프로그램을 공식화하는 데 추진력으로 사용되었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동시에, 공시언어학의 발달을 저해하 고, 신문법학자들과 그 제자들이 자신들의 관념에 함축된 암시에 따라 일을 추진하는 데 있어 방해가 된 것이 신문법학 관념체계의 어떤 요 소였는지를 가려 내 보겠다. 균일주의 언어학 공시태에 대한 연구를 정립하기 위한 첫 단계는 신문법학자 들이 언어 역사는 쇠퇴와 타락의 과정이라는 개념을 거부함으로써 시 작되었다. 초기 비교문법학자들에게는 언어의 본질적 성격에 대한 지 식의 근원으로서 원래의 유기적 언어만이 쓸모가 있었다. 나중의 모든 언어들은 완전에서부터 타락한 것들이며, 그것들의 쇠퇴한 잔재들은 원래 언어와 그 해체 과정을 해명하는 한에서만 관심을 끌었다. 신문 법학자들과 당시의 학자들이 쇠퇴라는 개념 대신에, 언어의 모든 발달 단계에서 지속적이며 규범적인 중립적 변화 neu tr al chang e 가 모든 언어에 영향을 미친다는 개념을 채택함으로써, 모든 언어가 똑같이 관 심을 끌게 되었고 언어 메커니즘의 기능을 밝히기 위한 연구가 이루 어질 수 있었댜 신문법학자들이 언어가 쇠퇴한다는 개념을 거부한 것은, 균일주의 u niformitari a ni sm 라는 철학적 원칙에 입각한 것이었다. 항상 똑같은 인과적 요인들이 언어에 작용해야 하기 때문에, 먼 과거에 일어났던 과정은 오늘날에도 일어나는 것들과 일반적 성격이 반드시 같아야만 했다. 언어의 생성 과정이 언어가 일단 〈완전에 도달한〉 이후에도 중 지되지 않고, 언어 역사룰 통해 동일한 일반적 방식으로 계속되어 온 것과 꼭 마찬가지로, 유사 시기의 언어들에서 볼 수 있는 〈쇠퇴〉는

    유사 이전의 시기에서 일어났던 것과 같은 종류였다. 신문법학자들은 현대어에 대한 언어학적 연구의 필요성을 당연한 것으로 주장할 때 균일주의 원칙에 호소했는데, 그 이유는 언어 변화 를 경험적으로 관찰 하는 데는 현대어가 가장 접근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비교언어학자들 은 언어가 어떻게 유지되는가를 정확히 알려면, 초기 언어에서 현재의 언어로 그들의 주의를 돌려야만 한댜〉 1 4) 이렇게 살아 있는 언어에 대 한 연구를 주장한다고 해서 신문법학자들이 언어 변화의 역사보다는 언어를 공시적으로 기술하는 데 더 관심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살아 있는 언어에 대한 연구가 언어에 작용하는 인 과적인 힘에 대한 경험적 정보를 제공하는 방법론적 교정책으로 쓰였 다는 것을 의미했다 . 후에 이러한 정보는 원시인구어 Proto - Indo- Euro p ean 룰 재구성하고 그 발달 과정을 설명하는 데 적용되었다 . 초 기의 언어 발달 단계들과는 대조적으로, 살아 있는 언어들은 발달 원 리들을 시험관 속에서 관찰할 수 있는 하나의 실험실을 제공한 셈이었 다.

    14) H. Osth o ff and K. Brug m ann, Prefa c e to Morp h olog ica l Investig a ti on s(1878) in W . Lehmann, A Reader in Ni ne te e nth - Centu ry His t o r i ca l Indo 一 Europ ean Lin g u is t i cs (Bloom ing ton : Ind ian a Univ . Press, 1967), p. 200.

    언어학자가 자신의 귀로 언어 생활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가를 들 을 수 있을 때, 왜 그가 음운체계의 일관성과 모순에 대한 그의 생각을 오래된 언어의 부정확하고 믿을 수 없는 문헌에만 의존하여 정하고 싶겠 는가? 만약 어떤 사람이 한 유기체의 해부 구조를 연구하고 싶다면, 그는 부정확하다고 알려진 도표에 의지하여 그 준비물들을 검토하지도 않은 채로 두겠는가? 15)

    15) 같은 책, p. 201 .

    이렇게 해서 균일한 인과적 설명에 대한 필요성과 결합되어 현대어 가 고대어와 규범적으로 똑같이 취급됨으로써 현대어의 역할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이 대두되게 되었다 . 동시에 신문법학자들은 균일주의 원리를 공시언어학을 제시하는 방 향으로 확대시켰다 . 그들은 언어 변화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있는 어떤 인과적 요인은 언어 형태의 보존에 대한 설명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댜 이 원리에서 나온 하나의 결과는 변화를 야기시킨 인과적 요인을 찾아내는 데 목표를 둔 경험론적 연구는 일반적인 언어 메커 니즘의 역할에 대한 연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신문 법학자들은 이론적으로 그들이 〈언어 생명의 조건 cond ition s of th e life of lan g ua g e 〉 이라고 부른 것에 관심이 있었고, 그들 자신의 언어 학 연구 작업에서는 역사에만 전념했지만, 이론적 저서에서는 비역사적 언어 연구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소쉬르가 〈 1870 년경이 되어서야 비로 소 학자들은 언어 생명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자문하기 시작했다〉 16) 고 단언할 수 있게 한 것은 아마도 이러한 신문법학자들의 철학적인 생 각에서 나온 결과일 것이다. 알베르 세쉐이에는 언어사상사에 있어 소쉬르 혁명의 자리매김을 시도하며, 언어학의 지속적인 발달과 관련하여 신문법학파 균일주의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 언어의 본질은 …… 고대에 있어서 우리가 현 재 관찰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를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는 이 원 칙은 〈절대적으로 옳을〉 뿐만 아니라 신문법학자들이 그것으로부터 논리적 결과를 끌어 낼 수만 있었다면 매우 생산적일 수도 있었다고

    16) Ferdi na nd de Saussure, Course in General Lin g uist i cs, Charles Bally and Albert Sechehaye , eds., W ade Baski n, tran sl . (New York: McGraw Hill, 1959), p. 4 (이후부터는 CGL 로 줄이기로 한다) . Cours 의 이 번역에서의 모든 인용은 엄밀한 프랑스판 (Cours de ling uisti qu e ge nerate , Charles Bally and Albert Sechehaye , eds., c rit ica l edi tion pre pa red by Tullio de Mauro; Pa ris: Payo t , 1973) 과 비교해서 점검했으며, 몇 가지는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 수정했다.

    단언한댜 〈이 원칙에서 곧바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말과 우리 주위의 말들에서 직접적으로 관찰되는 사실들을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 . 〉 1 7 ) 물론 현대어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과 공시언어학의 필요성을 동일시 해서는 안 된댜 신문법학파의 균일주의는, 역사적 연구만이 인과적 설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진실로 유일한 과학적 언어 연구는 역사적 인 것이라는 관념을 포함하여, 그들이 지지하고 있던 다른 철학적 신 념과 찰 일치했댜 이러한 인과적 • 역사적 설명에 대한 이상에 비추어 볼 때, 언어에 대한 어떠한 공시적 분석도 충분히 과학적이라고 간주 될 수는 없었다 . 신문법학파의 균일주의 속에 들어 있었던 공시언어학 에 대한 착상은 신문법학파의 다른 철학적 이론들과는 상충했기 때문 에 명확하게 표현될 수 없었다. 균일주의와 언어 생명 조건의 경험적 연구에 대한 표제적 관심이 공시언어학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유일한 신문법학파의 관념은 아니었다. 이러한 인과관계의 성격과 과학적 설 명에 대한 철학적 신념 외에도, 공시언어학에 대한 추진력으로서 똑같 이 중요했던 이론적 틀의 구성 요소들과 그 방법론적 실행을 발견할 수 있댜 신문법학자들과 초기 구조주의자들의 유추 이론 간의 비교는 어떻게 신문법학자들이 이론적 신념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관념체계 안에 깊숙이 내재되어 있는 특정의 철학적 가설 때문에 추구할 수 없 었던 언어의 공시적 연구를 수행했는가롤 암시하는 또 다른 실례를 제공한다. 유추이론 언어 변화에 대한 신문법학파의 이론은 언어 변화의 두 가지 기본

    17) Albert Sechehaye , Les pro blemes de la lang u e a la lum ier e d'u n e the ori e nouvelle, in Revue Ph ilo sop h iq u e de la France et de l'Et ran g e r, vol. 84 (19 17), p. 3.

    유형, 즉 음 변화p hone ti c t rans fo rma ti on 와 유추적 혁신 analog ica l i nnova ti on 에 대한 설명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방법론적으로 말하자 면, 유추는 신문법학파의 경험적 작업에서 보조적 역할을 했지만, 그 들의 관념체계 안에서 유추의 역할은 방법론을 넘어선 것이었다. 즉, 유추는 언어 사용에 대한 신문법학파 이론의 기초가 되었다 .1 8)

    18) 기본적으로 설명 방식으로서의 유추 변화는 예의없는 ' 음 법칙의 명백한 예외가 된 언어 형태들을 설명하기 위하여 도입되었다.

    신문법학자들은 헤르바르트 Herb art의 심리학과, 그리고 슈타인탈 S t e i n t hal 과 라자루스 Lazarus 가 이것을 언어학에 적용한 것에 의거해 서, 유추에 의한 언어 형성이 언어 기능에 중대한 기본적 심리 과정이 라고 생각했다. 유추적 형성 analog ica l fo rma ti on 은 유사하거나 인접 한 관념들간의 연상 과정에서 나오며, 이 과정은 심리 작용의 기본 방 식으로 간주되었다. 유사한 언어 형태들간의 연상 과정은 각자의 정신 속에 있는 언어 요소들의 특정한 집단군의 형성을 초래하고 따라서 언어의 구성 자체를 초래한다. 관념들은 집단으로 의식 속에 들어오기 때문에 집단으로 무의식 속에 남아 있다 . …… 이 집단들은 적어도 처음에는 의부 세계가 제공한 것이지 만 점점 더 복잡하게 얽히면서 개개인의 정신 속으로 들어가서 거의 대 부분은 무의식적으로 완성되어 무의식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19)

    19) Hennann Paul, Pr inc ip le s of' the Hi st o r y of Lang uage, tr. H. A. Str ong (1890; repr . C olleg e Park; Mcg ra th , 1 罪 0), pp. 4-5.

    유사한 그리고 인접한 관념들(또는 표상들)간의 연상은 다양한 형태 룰 취하기 때문에 표상집단gr oup s of re p resen t a ti ons 들은 서로 교차 되며 복잡한 언어 형태의 조직망을 형성했다. 바로 이러한 마음 속에

    있 는 언어 형태 들로 인해서 개개인이 독창적 으 로 말을 하고, 언어 롤 사용할 수 있게 되었댜 신문법학자들에 의하면 , 단순히 기억에 의해 서 문장을 재생하는 것은 정상적 언어 행위의 일부일 뿐인데, 그것도 역시 크게는 연상집단에 있 는 다른 요소들이 제공한 모델에 따른 형 태 를 재생한 결과였다 . 이 무의식적인 〈결합 활동 comb i na t or y ac ti v ity〉은 정확히 유추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심리적 연상 과정에 의한 유추적 형성은 언어 사용과 조직에 관한 신문법학파 이 론의 기반이 되었댜 유추적 혁신을 설명함으로써, 신문법학자들은 언 어 변화의 한 가지 유형에 대한 원인들을 분리시켜 내고, 그들에게 있 어 일반적 말의 기본이라고 생각되는 과정들을 기술한 것이었다. 그러나 신문법학파의 유추 혁신에 대한 이론은 불완전한 것이었다. 왜냐 하면 그것은 어떤 특정한 언어 형태가 연상그물 내에서 왜 자리 를 바꿔 새로운 연상집단으로 동화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문법학자들은 일반적인 유추는 설명하면서 과학적인 실례 를 하나도 설명하지 못했다. 이러한 이론적 불충분성으로 인해서 유추 에 의하여 변화를 설명한 모든 것이 임기응변식으로 끌어들인 것처럼 보였다. 신문법학자들과 그 반대자들 양쪽 모두 이러한 이론적 불완전 성을 인식하고 있었댜 헤르만 오스트호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연상적 형성 associa t i ve fo rma ti on 의 수많은 …… 경우에서, 언어학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 심리적 행위가 정확하게 왜 꼭 <이러한> 경로를 취했는가? 왜 A 라는 형태가 B 형태에 영향을 주었으며 그 역은 왜 성립되지 않았는가? 연상적 행위에서 분명히 언어에 속하는 운동의 자유 를 고려하면, 형태 의 연상을 통하여 일어난 언어 변화의 전달은 어느 정도는 단순한 어림 짐작의 성격을 계속적으로 지닐 것 같댜 20)

    신문법학자 들 은 특별한 유추 형성이 왜 발생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답하기 위하여 연상집단의 형성을 결정하 는 다양한 종류의 유사성과 인접성을 분류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한 분류를 함으로써만이 어느 한 형태가 특정한 연상집단의 영향을 받아 원래의 형태룰 변화시키는 특별한 연상 원리를 명확히 기술할 수 있댜 언어 형태 연상에 대한 연구에 진정한 과학의 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즉 비(非)방법 론 적 추측이라는 의심을 벗어나기 위해서 이미 획득한 분명 한 결과나 충분히 많은 양을 유추 원리를 적용함으로써 분류하려는 노력 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어떻게, 어떤 비율로, 만일 존재한다면 자유로 운 연상 규칙이 진행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 21)

    20) H. Osth o ff , Das phys io l og isch e und ps yc holog isch e Moment in der spr a chlic h en Formenbil d ung (Berlin : Habel, 1879), p. 23. 21) 같은 책, p. 24.

    신문법학자들이 명시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정신 속에 존재하는 연상집단의 분류에 대한 필요성은 공시문법의 새 이론을 필요로 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한 문법은 언어형을 연상 법칙 laws of assoc i a ti ons 에 따라 집단 및 관계의 복잡한 체계로 조직화하는 심리 적 기제를 검토한댜 신문법학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적 필요 조건을 채 우지 못하고, 과거의 문법 범주와 의미 • 형식의 전통적 구분을 사용하 여 전통적 방법으로 연상집단을 분류했지만, 유추 이론이 함축하고 있 는 문법의 심리적 • 공시적 성격을 깨닫고는 있었다 . 헤르만 파울은 그 의 『언어사의 원리 Pr i nz ipi en JJ에서 언어학의 공시적 과제롤 아주 잘 인식했음을 보여 주었다 . 언어에서 연상집단과 그 역할을 논한 바로 후에 파울은 다음과 같이 썼다.

    지금 역사가의 과제가 무엇인지 그 대상의 본질을 생각해 보자. 그가 동시에 공존하는 요소들의 큰 집단에 관심이 있는 한, 언어의 〈상태〉를 기술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만약 이 기술이 역사적 관조에 정말로 유익 한 기초가 되기 위해서는 실제 대상, 죽 방금 기술한 심리적 유기체와 결 부되어야 한다. 그러한 기술은 그 구성 요소들을 낱낱이 열거하는 데 그 치지 않고 상호관계와, 상대적 힘, 서로간에 형성해 왔던 수많은 관계 동 을 여실히 보여 주어야 한다. z:)

    22) Paul, 앞의 책, p. 8.

    이러한 주장은 언어의 공시적 연구의 필요성을 명시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공시태에 대한 구조적 접근을 인정한 것이기 도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루겠다). 그러나 이 공시적, 심 리적 문법이 유추 변화의 역사적 연구를 위한 예비 단계라는 것을 명 심해야 한다. 신문법학자들은, 한 언어의 정태적 문법은 그 기초가 무 엇이든지 진정으로 과학적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는데, 그 이유는 그것 이 결코 인과적일 수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파울은 〈한 언어공동체 에 속하는 개인〉 23) 을 기술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가 즉시 그의 말을 취소했다. 연상집단의 배열은 개인마다 다르고 말하고 들을 때마다 변 하기 때문에, 한 공동체의 언어를 공시적으로 기술하는 것은 대단한 추상성에 의존해야만 할 것이다. 주저 속에 파울은 〈사용법 usag e >, 죽 공동체에 있어서의 일종의 언어적 평균의 개념을 도입했다. 그러나 〈사용법〉에 대한 지식이 기술적 목적에는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설명 적 목적에는 소용없었다. 변화의 실제 원인은 추상적 구조와 분리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이 실제 원인은 공동체의 언어 communal lan g ua g e 에는 없고, 개인 언어 ind ivi d u al s p eech 에만 있을 수 있다. 언어 변화의 원인을 발견하기 위해서 언어학자는 〈평균 담화 avera g e

    23) 같은 책, p. 8.

    s p eech 〉를 일반화한 추상적 패턴이 아니라 개인 담화를 고려할 필요 가 있었다. 신문법학자들이 추상성을 배격한 것은 여기에서 진정한 정태언어학 sta tic li n gu i s ti cs 의 가능성을 부인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태적 기술 이 단지 한 순간에 있어서의 개별 화자를 언급한다면 과학적일 수 있 고(그리고 역사적으로 유용할 수 있고), 따라서 개별 언어 과정의 인 과적 설명에 참작될 것이다. 이런 종류의 기술은 실용성이 없어 언어 학자는 특정 언어형의 역사를 연구해야만 했고, 이러한 초점에서만 연 구가 구체적이고 설명적이라는 것이 보장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 하여 유추 이론을 통해 신문법학자들은 공시언어학에 아주 근접하게 됐지만 , 기술언어학에 대한 파울의 반대에 반영되었듯이, 그들의 심리 주의 및 추상에 대한 불신은 언어 정태에 대한 연구가 더 이상 발달 하지 못하도록 가로막았다 이론적으로는 필요하다고 인정되면서도 가 능성 있는 새로운 발전이 관념체계의 다른 요소들에 의하여 불가능하 게 되는 것을 여기에서 다시 한번 보게 된다. 유추 이론이 공시언어학을 위한 토대가 되었을 수도 있다는 주장은 언어 이론의 이 측면에 대한 소쉬르의 접근 방법을 검토해 봄으로써 더욱 구체화될 수 있다. 소쉬르는 많은 점에서 신문법학자들을 따랐지 만, 유추와 공시태 간의 연결고리는 그가 과학에 대한 신문법학자들의 여러 철학적 견해를 거부했기 때문에 설정될 수 있었다. 그는 『강의』에서 유추를 통시언어학di achro ni c linguist ic s 부분에 서 논의하고 있으며, 신문법학파가 유추 이론에 기여했음을 분명히 인 정하고 있다. 〈신문법학파는 유추를 제대로 자리매김한 첫번째 학파였 다.……〉 % ) 파울과 마찬가지로, 소쉬르는 유추 형성 과정을 의식 속에 서 언어 조직이 기능하는 것으로 기술했다. 새로운 형태를 만들기 위 해서, 또는 기억에 없는 형태들을 재창조하기 위해서 화자들은 의식

    24) CGL, p. 163.

    속에서 비 례항들 (예를 들면, orato r em : orato r = honorem : x ; x = honor) 로 조직된 연상집단을 모델로 새로운 형태를 구성함으로써 기 존의 패턴을 확대한댜 이 과정은 신문법학자들과 소쉬르가 모두 인정 했듯이 의식 속에서 언어가 문법적 조직으로 되어 있음을 전제로 한 댜 따라서 유추는 이러한 문법 조직이 직접 반영된 것으로서 공시적 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새로운 유추적 형성은 언어 구조에서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이런 의미에서 유추는 〈언어들이 한 조직 상태에 서 다른 조직 상태로 옮아가는 방식으로서 언어 진화의 주된 요인이 었다.〉 25) 이러한 유추의 이중성 -공시적이며 통시적인―~은 신문 법학파가 인정은 하고도 계속 추구하지는 않은 중대한 결과를 낳았 댜 26)

    25) 같은 책, p. 163. 26) 예를 들면, 신문법학자들과 소쉬르는 양쪽 모두 음 변화와 유추의 차이점 가운 데 하나는 유추는 즉각적으로 일어나서 새로운 형태가 즉시 이전의 전통적 형태 를 대치하지 않는 데 반해(두 형태가 어느 기간 동안 공존할 수 있다), 음 변화는 새로운 음이 나타남과 동시에 불가분하게 이전의 음은 사라져 버리면서 점차적인 변화를 한다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신문법학자들에게 있어서 새로운 유추적 요 소와 옛 형태 사이에 직접적 관계가 없다는 것은 단순히 두 사건 사이에 인과관 계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즉, 유추에 의한 생성은 이전에 사용되었던 형태들 중 어느 것이 없어졌다는 것과는 무관했다. 파울의 말을 빌리면, 〈새로운 유추적 형성은 바슷한 의미를 지닌 이전의 형태를 단번에 몰아 낼 힘을 갖고 있지 않 다.〉 (Paul, p. 106). 소쉬르에게 있어서 이러한 유추의 특징은 변화에 대하여 유 추 현상과 관련지어 말하는 것이 매우 부적합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honor 가 생겨났을 때, honor 가 어떤 것도 대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honos 가 사라진 것도 어떤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다. 왜냐 하면 이 현상은 첫번째 것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언어적 사건의 경로를 따라갈 수 있는 곳에서는 유추적 혁신과 옛 형태의 소멸은 별개의 일이며 어디서도 변형은 일어나지 않는다.〉 (CCL, p. 164). 새로운 유추적 형성은 하나의 혁신이며 변화가 아니다. 왜냐 하면 변화란 이미 존재한 어떤 것이 변형되었다는 것을 가정하는 것이지 기존 형태를 기초로 하여(예를 들면 orato r em: orato r ) 혹은 이미 존재하 고 있는 자료로부터 새로운 형태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honor 로부

    터 honor). 소쉬르는 유추적 형성은 순간적으로 일어나서만이 아니라 언어의 문 법 구조에 바탕을 두고 말하거나 듣기 전에도 잠재적인 것으로서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공시적이라고 주장했다 . 언어 조직에서 중요한 것은 유추적 형성에 필요한 요소들과 패턴들이 형태가 만들어지기 이전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패 턴화된 유추의 창조성은 정신 속에 있는 공시적 언어 조직의 다양한 현시들 중 하나일 뿐이댜 〈새로운 형성이 실제로 일어날 때에만 생산적 과정이 진행된다고 하는 것은 그릇된 생각이다 . 그 요소들은 항상 존재한다. 내가 즉각적으로 만들어 내는 말, 예를 들어 i n-decor-able 은 언어에 이미 잠재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 CGL,p .16 6). 소쉬르가 여기서 발전시킨 언어의 참재성에 대한 개념은, 구 체적이고 관찰할 수 있는 〈사실〉의 직접적인 반영이 아니라 분명히 개념적 구성 이기 때문에 신문법학자들에게는 용인될 수 없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 소쉬르의 이 러한 공식화는 유추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공시적인 본질을 강조하게 되었는데, 그 것은 모든 새로운 유추적 형성이 잠재적으로 존재한다는 주장은, 유추가 〈새로운〉 형태들을 만들어 내는 데 원인이 될 때에도, 심리적으로 새겨진 언어 형태의 배 열, 죽 언어의 문법에 내재하는 기능이라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

    유추를 문법적 • 심리적 현상으로 보면, 유추는 완전히 공시적이며 그 산물(혁신이건, 표준형의 재구이든)은 공시적 상태의 표출이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유추 그 자체는 해석 현상의 한 측면이며, 나중에 활용할 단위들을 가려 내는 일반적 행위의 한 발현일 뿐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유추를 전적으로 문법적이며 공시적이라고 말하는 이유이 댜〉 m ) 유추는 〈그것이 언어 조직의 투영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문법적〉 이었으며, 〈그것은 형태들간의 관계를 의식하고 이해하고 있음을 가정 한다 .〉 28) 신문법학자들과 소쉬르는 모두 동일한 심리적 절차가 유추적 혁신과 전통적 언어 형태들을 재구해 낸다는 데에 의견이 일치했다. 〈기존 소재들이 새로운 단위들 속으로 재분배되는 경우뿐만 아니라, 형태 자체가 불변 상태로 있는 경우에도 역시 유추가 개입된다고 말 할 수 있댜 동일한 심리 절차가 두 경우에 모두 작용한댜〉 29 ) 신문법

    '21) CGL, p. 166. 28) 같은 책, p. 165. 29) 같은 책, p, 172.

    학자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언어 변화 를 일으키는 요인들은 일상 언어 행위에서도 활발하게 작용한다고 단언한 원리를 단순히 확인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신문법학자들은 언어 역사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유추적 형성에 주로 전념했다. 소쉬르에게 있어 유추적 혁신과 유추적 재구성 과정 사이에 차이가 없다는 사실은 공시태와 통시태의 관점을 엄격히 구분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화자의 관점에 서는 새로운 형태의 유추적 형성은 잊혀졌던 표준 형태의 재창조와 동일했다. 하나의 심리 과정으로서 그리고 〈산물〉이라는 관점에서 모 든 유추적 형성은 심리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로서 가장 먼저 존재 한다. 유추를 이해하는 이 방법은 주관적으로 적합할 뿐 아니라 전적 으로 공시적이다. 한편 언어학자가 역사적으로 유추적 형성을 검토해 야 한다면, 그는 화자의 관점을 넘어서서 유추적 형성과 이전에 사용 되었던 표준 언어 형태의 관계에 대해서 물어야만 한다. 이 관점에서 는 새로운 형태의 창조와 옛 형태의 재구성은 더 이상 동일한 것이 아니었다. 신문법학자들에게 있어서, 유추의 두 견해-―一공시적인 것과 통시 적인 것_—는 둘 다 경험에서 직접적으로 주어진 동일한 구체적 사 실로서 발현되었기 때문에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소쉬르에게는 이 두 측면은 분석적으로 별개여서 , 이 구분으로 그는 한 언어의 문법과 그 심리적 기능을 그 문법의 역사적인 결정과는 무관하게 다룰 수 있 었다. 소쉬르는 다른 관점들을 구분함으로써 공시태와 통시태를 분리 했을 뿐만 아니라, 언어의 문법적 조직과 하나의 언어 사건(예를 들 면, 담화 행위)들을 구분하고, 화자의 심리에서 언어가 암호화되는 것 을 〈의부로부터〉만 관찰될 수 있는 역사적 변화와 구분했다. 유추 과 정을 분석함으로써 소쉬르는 공시언어학과 통시언어학 간의 가장 중 요한 차이점 가운데 하나를 밝혀 낼 수 있었다. 통시언어학이 언어롤 상이한 상태들과 이들을 연관짓는 과정을 비교함으로써 · 언어를 의적

    으로 연구하는 반면, 공시언어학은 의식 속에서 조직되는 언어의 문법 을다루었댜 우리가 언어 사실들을 연구할 때 가장 충격적인 것은, 시간 속에서 이 어지는 언어 사실들의 연속성이 화자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화자는 하나의 상태와 대면해 있다. 그것이 바로 하나의 상태를 이해하려 고 하는 언어학자가 이 상태를 만들어 낸 모든 것에 대한 지식을 버리고 통시태에 대해서 잊어야 하는 이유이다. 언어학자는 과거를 억제함으로써 만 화자의 의식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30)

    30) 같은 책, p. 81.

    요약하면, 소쉬르의 유추 이론은 신문법학파 이론으로부터 내려왔다 는 뚜렷한 표지롤 지닌다. 공시태와 통시태의 이원성을 소쉬르가 도출 해 낸 것이 당초에는 단순히 신문법학 원리를 재선언한 것이거나 확 장한 것으로 보였다. 그는 유추와 음 변화의 차이를 신문법학자들이 보았던 바와 동일하게 주목했고, 새로운 유추적 창조의 심리적 과정은 옛 형태를 재구성한 과정과 동일하다는 그들의 의견에 동의했다. 아마 도 가장 중요한 것은 소쉬르의 유추 이론은 신문법학자들의 유추 이 론과 마찬가지로, 유추는 언어의 심리적 기능에 기본적이며 그것은 의 식 속에 언어 조직을 반영시킨다는 신념에 입각한 것이었다. 이러한 신문법학의 원리들에 비추어, 소쉬르의 공시태와 통시태의 구분은 지 속적이며 점진적인 발달에 따른 논리적 귀결로 보였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공시태와 통시태의 구분을 끌어 내어, 이들 중 어떤 관점이 채 택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유추의 국면을 서술하기 위해서, 소쉬르 가 과학적 사실들의 본질과 과학 관찰자의 역할에 대한 신문법학파의 신념들 중 일부를 거부해야만 했다는 것을 알았다. 균일주의와 같이 신문법학의 유추 이론은 공시언어학의 기초로 쓰

    일 수 있었지만, 이 방향으로의 확장은 신문법학자들과 대부분의 동시 대 학자들이 공유했던 기본적인 철학적 신념에 의해서 봉쇄되었다. 과 학자와 그의 연구 대상의 관계, 과학적 기술과 설명의 본질 같은 문제 에 관한 이러한 가정들은 언어학자들 자신들에 의하여 항상 명시적으 로 공식화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들은 과학적인 것이 어떤 것인가를 규정했고, 바로 이러한 이유로 언어학자들을 더 광범위 한 학문공동체와 연결시켰기 때문에 그 가정들은 종종 의문의 여지가 없는 부동의 진리로 보였댜 이들은 신문법학 관념체계에서만이 아니 라 당시의 많은 학술과학에 뿌리를 두었기 때문에, 유추 이론이 시사 하는 새로운 연구 영역이 생겨날 강력한 가능성에도 실제적인 제약이 되었댜 따라서 신문법학의 유추 이론으로부터 소쉬르의 공시언어학에 이르는 발전의 지속성은 이들 각자의 과학철학 사이의 동시적인 단절 에 달려 있었댜 공시적 현상으로서의 모음교체 1870 년대와 80 년대는 신문법학자들과 이들에 대립하고 있던 학자들 간의 이론적 논쟁뿐만 아니라 새로운 발견이 현저히 급증한 것이 특 징이었는데, 가장 중요한 발견은 원시 언어의 모음체계에 대한 전통적 견해를 바꿔 놓은 것이었다. 신문법학자들과 그들을 비판하는 학자들 간의 중대한 방법론적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신문법학파 이론에 대한 이들의 태도와는 별도로, 양쪽 모두 이 새로운 발전에 기여할 수 있었 다. 그렇지만 역시 신문법학자들이 새로운 전개에 중요한 많은 발견을 했으며, 브루크만과 오스트호프의 모음성 비음 vocal ic nasals 과 유음 l iq u i ds 에 관한 연구는 특히 중요한 것이 었다. 소쉬르의 「인구어 원시 모음체 계 에 관한 논고 Memoir e sur le sys t e m e pr im i tif des voy el les dans les lang u es ind o-e urop eennes 」 (1879) (사실상 1878

    년 12 월에 나왔지만)는 한층 더 혁명적이었다. 공시언어학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있어 인구어 모음체계의 분 석에 적용된 방법이 어떤 역할을 했는가를 조사하기 위해, 이 분야에 서 발견된 것들의 순서와 그 상호 의존성을 상세히 추적할 필요는 없 다. 원래 언어는 세 개의 모음 (a, I, u) 만을 가지고 있었다는 그림 Gri mm 이 래의 전통적 견해로부터 1870-80 년대에 제시된 보다 정교 한 원시 모음체계로 옮겨가는 데에는 수많은 발견과 언어 자료의 복 잡한 해석들이 관련되어 있었댜 이러한 발견들을 추적하는 것은 별개 의 일이다. 여기서는 공시언어학의 발달에 영향을 끼쳤던 모음 조직에 관한 역사적 연구의 방법론적 • 이론적인 면, 죽 근본적으로 다론 것처 럼 보이는 관념체계들을 연결하는 인지적 연속의 역학 관계만 다룬다. 모음체계의 문제는 항상 이중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언어학자는 한편으로 인구어 모음체계를 재구성하고 그 역사를 추적하는 데 관심 을 가지고 또 한편으로는 교체 alte r nati on , Ablaut, 죽 동일한 언어에 서 주어진 한 어근의 여러 형태론적 형태 morp h olog ica l fo rms 에서의 모음교체 vocalic al t erna ti on 에 대한 현상을 설명하고자 했댜 70 년대 에는 이 두 가지 문제가 함께 다루어졌기 때문에 언어학은 모음교체 를 분석함으로써 모음 역사의 음성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그리고 음 변화의 분석에 의해서 모음교체, 특히 강세로 인해서 일어나는 모 음교체를 설명하려고 했다). 조어 ancestr al lan guag e 의 모음체계를 재구성하기 위해 언어학자들은 친족어에서 친족 형태 cog n ate for ms 들을 비교할 뿐 아니라 동일한 언어에 있는 변이형들을 비교했다. 이 방법은-후에 내적 재구성 int e r nal recons tru c ti on 이라고 불렀다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모음체계에 대한 연구에 아주 새로 운 발견을 유도했댜 브루크만은 산스크리트어와 그리스어 둥에 있는 굴절어미의 변이형들을 조사함으로써 모음성 비음의 존재를 증명했다. 브루크만은 bib h r-ati, bhara-nti , bib h r-atu , bhara-ntu 둥과 같은

    교체형들을 비교하여, 어미에 있 는 이들 변이가 이전의 음 변화와, 모 음성 비음이 본래 있었음을 시사한다고 결론지었다. 모음교체를 방법론적 도구로서, 이전의 음 변화나 이미 존재하는 형 태론적 규칙성의 표지로 이용하려면, 모음교체라는 바로 그 현상을 이 해해야만 했다 적어도 소쉬르의 견해가 그러한 것이었고, 미콜라이 크루제프스키 Mi kol aj Kruszews ki와 장 보두앵 드 쿠르트네 Jan Baudou in de Co urt ena y와 같은 언어학자들도 그러했다 . 그들은 교체 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 모든 교체는 모두 동일한 종류였는지, 모음 교체를 일어나게 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음 변화와는 어떻게 달랐는지 하는 질문을 던졌다. 모음교체에 대한 신문법학파의 관심은 방법론에 국한되었다. 신문법 학자들은 이전의 음 변화의 그럴 만한 표지로서 모음교체의 유용성을 연구하였지만, 모음교체 현상 그 자체에는 거의 아무런 이론적 홍미를 지닌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신문법학자들은 자신들의 역사적 연구의 관심과 인과적 설명에 관해 강조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교체와 음 변화를 구별해야 할 이유가 없었댜 그들에게 있어 모음교체의 중요성 은 한 언어에 공존하는, 어원적으로 관련이 있지만 음성적으로는 다 른, 한 언어 형태의 변이형들이 과거의 어느 한 시점에서 이 형태들의 한쪽 또는 양쪽 모두를 변형시켰던 음 변화에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는 사실에만 한정되었다. 동일한 언어에서 모음교체되는 형태들의 공 존과 이들 중 몇몇이 수행한 기능 __- 예를 들면 형태론적 차이를 나 타낼 수 있는 능력과 같이_—은 설명 목적에는 부차적이거나 무관 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만약 파울이 『원리』의 초판에서 교체와 음 변 화를 구분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교체의 본질을 전적으로 잘못 이해했 기 때문이 아니라, 그 현상의 역사적 • 인과적 설명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교체와 음 변화는 본질적으로 같았다 (때때로 유추가 양쪽에 모두 개입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한에서). 교

    체를 설명하는 것은 음 변화 과정을 기술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방법론적으로 모음교체에 더 의존하게 됨으로써 이러한 현 상에 대한 이론적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언어학자들은 이들을 독립된 연구 가치가 있는 현상으로 취급하면서, 여러 종류의 교체를 연구하고 분류하기 시작했댜 모음교체를 정의하고 이들의 변별적 성격을 알아 내려는 언어학자들은 모음교체를 특이하게 만든 것이 정태적 성격 一음성적으로는 다소 차이가 있는, 동일한 언어 형태의 두 가지 변 이형이 한 언어에서 동시에 공존했다는 사실―― - 이었다는 것을 재빨 리 지적해 내었댜 모음교체의 역사적 기원과 발달이 연구의 주요한 논제로 남아 있었지만, 보두앵과 크루제프스키 같은 언어학자들은 교 체의 공시적 성격을 변별적 자질로서 주목했다. 보두앵은 그의 동료들 이 모음교체의 공시적인 면을 무시하고, 그것을 독립적 연구 가치가 있는 현상으로 다루는 데 소홀히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가장 최근의 언어학 연구들도 음 변화의 결정이나 문제의 말소 리의 기원에 대해 역사적 우선성을 수립하는 데 주의를 집중하면서 교체 자체를 간접적으로만 다루고 있다. 더군다나 이 연구들은 교체의 개념이 나 공존을 만족스럽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 …… < 음성적으로는 다르지 만 어원적으로 관련이 있는 말소리가 공존한다는 사실>을 확립한 후에라 야만 그 원인들을 조사해 나갈 수 있다 .3 1)

    31) Jan Baudou in de Cou rten ay, An At tem p t at a Theory of Phoneti c Alte rna ti on s (18 94) in A Baudouin de Court en a y Anth o log y, pp. 148- 49 .

    보두앵과 크루제프스키는 둘 다 모음교체의 역사적 발달, 특히 형태 론적 기능을 특정한 교체에 귀속시키는 과정에 관심이 있었다. 그들은 모음교체가 형태론적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언어적 정태 linguist ic s tate에서 기능해야만 했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모음교체의 발생과

    발달에 대한 역사적 설명과 있을 수 있 는 형태 론적 기 능 에 대한 정태 적 기술의 구분을 〈 이론적으로 또 는 철 학 적 으 로〉 중 요하다고 생각하 지 않았다 . 모음교체가 음 변화의 결과로 치음 출 현했 고 ( 그 리고 이 신 념은 신문법학자들과, 보두앵과 크루제프 스 키 , 소쉬 르 등도 공유했다) 나중에 형태론적 차이를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되었다면 첫번째의 (형 태론적으로는 관계없는) 발달을 지배했던 음 법칙을 명시해야만 했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언어학자들은 이 나중의 전환에 대한 역사적 원 인도 설명했어야 했다. 다시 말해서 보두앵과 크루제프스키는 둘 다 어떤 문법적 기능을 수행하는 교체는 (적어도) 두 단계 과정을 거친 결과로 설명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첫번째 단계에서 음 변화는 친족형 간의 새로운 음성적 차이를 가져왔고, 두 번째 단계에서는 이들 형태 간의 차이에 대해서 다른 문법적 가치가 부여되었다 . 보두앵과 크루제 프스키는 교체 자체가 공시적이라는 데 동의했음에도, 교체는 음성 적 • 유추적 변화 과정의 결과로서 역사적으로 설명되어야 한다고 믿 었다. 모음교체에 대한 보두앵과 크루제프스키의 접근법을 대강 아주 간 단히 요약해 봐도 교체에 대한 그들의 분석과 설명이 신문법학파의 원리와 완전히 일치했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보두앵과 크루제프스키의 저서에서 발견되는 교체에 대한 공시적 정의 및 역사적 현상과 정태 적 현상의 차이에 대한 암묵적 인정은 신문법학파 접근법의 연장이며 이론적으로 이차적인 반면, 다양한 종류의 교체 발달에 대한 역사적 설명의 강조는 보두앵과 크루제프스키가 전통적인 언어학적 관심사 및 무엇이 과학적 설명을 구성하느냐에 대한 공인된 철학적 신념에 집착을 갖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었다 . 다시 말해서 보두앵과 크루제프 스키는 정태적 현상과 역사적 현상을 구분했지만 언어 설명에 대한 신문법학파의 신념을 고수했고, 따라서 그 구분을 언어 연구의 중요한 면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

    통시태 /공 시태의 이분법 은 소쉬르에게는 아주 다 른 역할을 했다. 그 는 모음교체의 기원과 발달에 대한 표준적 견해에서 떠나지는 않았지 만(그리고 그 주제에 대한 그의 의견은 보두앵과 크루제프스키보다도 훨씬 덜 자세하고 덜 명시적이었지만), 교체에 대한 공시적 정의와 그 역사적 설명 간의 불균형을 보다 일반적인 언어의 이중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았으며, 모음교체의 이중적 성질을 보두앵이나 크루제프스키 보다도 훨씬 중요한 것으로 생각했댜 소쉬르는 그들이 일반적으로 당 연하게 생각했던 것을 문제로 간주했으며, 앞으로 우리가 보게 되겠지 만, 이러한 차이는 결국 소쉬르가 새로운 철학적 틀을 견지한 데서 나 온 결과였댜 새로운 철학적 관점을 채택한다고 해서 잇따른 관념체계 에 상응하는 요소들간에 모든 연속성이 불가피하게 파괴되는 것은 아 니다 그러나 연속성이 보존되는 때라도, 새로운 관점은 오래된 문제 점들에서 새로운 면을 끌어 내거나, 그 관념체계의 다양한 요소들에 대한 상대적 중요성을 바꿀 수도 있다. 소쉬르는 모음교체 이론울 크 게 재작업하지 않고도, 새로운 철학적 신념으로 그 이론에서 전에는 부차적이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었던 측면을 강조하게 되 었다. 소쉬르는 그의 연구 초기부터 모음교체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논 고」에서 이것을 이전의 음 변화와 문법적 규칙성을 발견하기 위한 방 법론적 도구로 이용했댜 32) 이미 이 책에서 소쉬르는 두 개의 다른 관

    32) Memo i re 에서 소쉬르는 잠재적 음 체계 를 재구성하기 위해서 형태음소적 변이 롤 검토했다 그러나 이 방법의 사용에 있어서 브루크만과 소쉬르 사이에는 커다 란 차이가 있었으며, 이 차이룰 내적 재구성의 논리를 보다 정교하고 일관되게 적용할 수 있었던 소쉬르의 능력에만 돌릴 수는 없다 . 소쉬르에게 있어서 규칙적 음 교체는 바로 이전의 음 변화 를 나타내 줄 뿐 아니라(혹은 전에 설정했던 특정 한 종류의 변형의 불가능성) , 존재 이전의 형태론적, 음성학적 규칙성까지도 나타 내었다 소쉬르는 과거에 존재했음에 틀림없을 음 체계뿐 아니라 형태음소적 변이 도 재구하고 있었다 . 또한 그는 당시에 알려져 있던 인구어들의 어느 언어에서도

    중명할 수 없었지만, 소쉬르에 따르면 초기 언어의 형태론이 균형적이고 규칙적 o · 라면 틀림없이 존재했을, 한 음운의 존재를 설정하기 위해서 이러한 재구와 형티 론적 규칙성에 대한 가정을 이용했다 . Memo i re 의 이러한 측면온 신문법학자들을 포함한 다른 언어학자들의 공격 대상이 되었지만, 모음 영역에서 소쉬르와 다른 언어학자들이 사용한 바로 그 방법은 모음교체를 연구할 필요성을 암시했다 .

    점에서 모음교체를 연구하고 있었댜 한편으로는 모음교체의 발생과 모음교체를 야기시킨 과정을 조사했으며, 또 한편으로는 문법적 기능 에 유의하고 있었댜 이러한 이중적 관점은 그의 노트와 강의록 속의 모음교체에 관한 후기 논평에도 나타나 있다. 신문법학자들, 보두앵 크루제프스키와 마찬가지로, 소쉬르도 모든 모음교체는 원래 음 변화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단지 나중에, 관린된 형태들에서 음의 특정한 교체가 이미 확립된 후에 형 태간의 개념적 차이를 나타내면서 문법적인 역할을 시작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독일어의 Gast : Caste , Hand : Hande, Nacht : Nachte 등에서 a:a 의 교체는 단수와 복수 차이를 표시한다. 소쉬르는 Gg s te 는 Gas t의 음성 변형에서 온 것도 아니며, 단수와 복수 차이를 표시 할 필요에서 온 것도 아니기 때문에 Gas t의 a 가 Gas t e 의 a 로 변화했 다고 설명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보다는 Gas t e 는 다 른 모든 〈음성학적으로〉(형태론적으로보다는) 관련이 있는 형태들과 함께 음 변화 과정을 거쳐 Gas t e 로 변형되었던 옛 복수형 Gas ti의 규칙적 반영이다. 이 초기 변화는 형태론과는 무관했으며, 복수형 여 부를 막론하고 많은 언어 형태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것이 원래 는 우연적인 음 변화에서 왔다고 하더라도 a:a 의 실제 모음교체는 형태론적으로 무관하지는 않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시점에서 가치 가 부여되었고, 현대 독일어에서 그것은 개념적 • 문법적 차이를 나티 내는 데 사용되고 있다.

    교체는 보통 여러 용어들 가운데 규칙적인 방법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기능, 범주, 한정 둥의 중요한 대립과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교체의 문법적인 법칙에 대하여 언급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법칙들이란 근원 적인 음성 현상들이 낳은 우연한 결과일 뿐이다. 가치의 대립을 보여 주 는 두 부류의 용어들 사이에 음성 현상들로 인하여 규칙적인 대립이 생 기면, 정신은 이 물질적인 차이룰 포착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개념적인 차 이를 지니도록 한다 . 33)

    33) CGL, p. 159.

    형태들간의 형태론적 차이를 나타내는 모음교체가 순전히 음성적이 며 문법적으로는 무관한 과정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을 소쉬르가 강 조한 것은, 음성 법칙의 효율성의 한계를 정하기 위해서 문법적 기준 을 인용한 것이 중대한 방법론적 과오였다는 신문법학의 주장과 비견 된다. 그러나 소쉬르가 교체의 기원을 지배하는 음성 법칙과 그 기능 을 지배하는 문법 법칙을 구별한 것은 방법론적 규칙보다도 더 중요 하다. 소쉬르는 모음교체의 두 국면을 구별하는 것은 단순히 두 개의 연속적인 발달 단계 중 하나를 구별하는 것이 아니며, 음성 과정이 끝 난 후에라야 화자들이 문법적인 목적을 위해서 모음교체를 이용하기 시작했다고 단언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서술은, 이 발달의 첫 단계는 통시적으로만 관찰할 수 있는 반면, 두 번째 단 계는 화자들이(그리고 관찰자로서 언어학자들이) 언어를 기호의 정태 적 체계로, 즉 공시적으로 검토할 것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무시했 기 때문에 불완전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모음교체의 처음 원인(우 연적 음 변화)과 결과적인 문법적 기능 간의 차이가 발달상의 두 단 계의 차이로 해결될 수는 없었다. 음성적 과정과·문법적 과정의 구분 도 역시 관점의 변화에 달려 있었다. 언어를 순전히 역사적 관점에서 만 보면, 〈모음교체〉는 음 변화와 구별이 안 되며 교체로 설명할 수

    도 없다 다시 앞의 예로 돌아가서, 하나의 역사적 연구가 이 경우에 발견할 수 있는 모든 것은 Gas ti에서 Gas t e 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실 제 모음교체 (Gas t와 G5s t e 의 관계)가 일어났는가를 알아볼 수 있고 그 형태론적 역할을 이해하려면, 역사적 관점을 버려야 하며 공존하는 기호들의 관계, 죽 공시적 현상을 검토해야 한다. 모음교체가 〈공존하는 형태들간의…… 대응〉외 ) 이라고 정의를 내리면, 그 교체는 음 변화가 아니라 문법적 현상이며, 전적으로 공시적인 것 이다. 역사적(음성적) 과정이 화자가 문법적 차이를 가져올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 화자들(그리고 언 어학자들)은 그들이 공존하고 있는 형태들을 비교하고 공시적 차이를 이용할 때만 이러한 구분을 할 수 있었다.

    34) 같은 책, p. 158.

    소리들이 교체의 실체이며 교체의 발생에 개입한다는 이유만으로, 교체 가 음성학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의 오류이며, 많은 언어학자들이 이에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 사실상, 교체는 출발점에서 혹은 종착점에서 어느 편에서 고려하더라도 항상 문법적이며 공시적이다. 35)

    35) 같은 책, p. 158.

    모음교체에 대한 소쉬르의 분석은 보두앵과 크루제프스키의 모음교 체에 대한 분석과 크게 다를 게 없었으며, 소쉬르가 제시한 이론은 이 들의 보다 자세한 설명과 전적으로 일치했다. 공시태와 통시태의 구분 은, 간결하게 요약하면, 이러한 모든 연구에서 존재했다. 이 구분은 언 어학자들이 공시적 • 형태론적으로 정의하는 것 같으면서도 역사적 • 음성학적으로 설명하는 교체의 경우에 특히 두드러졌다. 이는 모음교 체 이론을 전개시키려는 시도가 공시태와 통시태의 이분법을 공식화 하는 자극이 될 수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중요한 이론적 관념으

    로 공시태와 통시태의 이분법을 고려하기 위해서는 그 존재를 알고 있다는 것으로 충분치 않댜 보두앵과 크루제프스키는 자신들의 모음 교체에 대한 분석에서 공시적 관점과 통시적 관점을 둘 다 수용했다 는 것을 의식했음에도 이것을 전적으로 당연하고도 문제가 되지 않는 절차로 간주했다 이것이 소쉬르의 경우에는 달랐다. 이 관점들 중 하 나를 선택하는 것이 연구 중에 있는 현상을 음 변화로서 설명해야 할 지 혹은 문법적 과정으로서 설명해야 할지를 결정지었고, 이 사실이 그에게 있어서는 언어학에서 공시적 • 통시태적 관점의 엄격한 분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울 뜻했다 . 소쉬르는 『강의』에서 어떻게 공시적 관점 혹은 통시적 관점의 선택 이 연구 중에 있는 현상의 본질을 결정하는가를 입증하기 위해서 모 음교체를 인용했댜 모음교체는 이러한 두 관점의 공통분모가 없다는 예로 특히 적합했는데, 왜냐 하면 모음교체는 통시적으로는 음성적이 고 형태적으로 무관했지만, 공시적으로는 문법적이어서 이들은 어떠한 관점을 택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두 현상들로 설명될 수 있었기 때 문이댜 적어도 통시적 계열에 속하는 현상들은 공시적 계열의 현상들과 동일 차원의 것은 아닐까? 전혀 그렇지 않다. 왜냐 하면 우리가 이미 정립했듯 이, 변화란 어떠한 의도와도 상관없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반대로 공시태 현상은 항상 의미적이다 그것은 언제나 동시적인 두 사항에 의존한다. 즉, 복수를 표현하는 것은 Gas t e 가 아니라 Gast : Gas t e 의 대립이다. 통 시적 사실은 이와 정반대이다. 그것은 단지 한 사항에만 관계되며 새로운 한 형태 (Gas t e) 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그 이전의 것 (Gas ti)이 자리를 양 보하여야 한다 .36)

    36) 같은 책, p. 85.

    소쉬르는 여기에서 그리고 다른 곳에서도 언어학자가 선택한 관점 에 따라서 연구 중에 있는 현상의 본질이 결정되는 보다 일반적인 원 칙을 예시하기 위해서 모음교체를 이용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 형 태에서 볼 때, 이 원칙은 소쉬르가 변이형들을 관찰한 데서 나온 것이 라기보다는, 언어학자들이 공시적 관점에서 통시적 관점으로, 또는 반 대의 방향으로 쉽게 전환을 했던 전통으로부터 소쉬르가 결별하게 된 원인을 설명해 주는 철학적 혁신을 나타낸 것이었다. 요약하자면 균일주의 , 유추 이론 및 모음교체의 방법론적 의존 등에 대한 신문법학파의 신념은 모두가 소쉬르에 의한 공시태/통시태 언어 학의 구분을 내포했거나 적어도 강하게 그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신문 법학파 관념체계의 이러한 주요 요소들을 정교화한 것으로 간주되는 소쉬르의 이분법은, 이전에 지배적이던 언어학적 신념들에 대한 체계 룰 지속성 있게 논리적으로 발전시켜 왔음을 나타낸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지속성이 부분적으로는 애매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소쉬르 가 그의 이분법을 언어학 체계 내에 구성적이며 중심적 관념으로 설 정하기 위해서 신문법학파 관념의 여러 기본적인 철학적 신조를 버리 고 과학적 연구 대상으로서의 사실 및 그 구성에 관하여 새로운 일련 의 가설들을 수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여기서 인지 발달의 지속과 단절이 아주 밀접하게 얽혀 있는 상황을 보게 된다. 한편으로는, 두 관념체계 사이 에 광범위하고도 명백한 연속성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연속 의 가능성이 다른 부분에서의 급진적 단절에 근거한 것으로, 이 예에 서는 기본적인 철학적 가설들을 포기하고 새로운 과학철학을 받아들 이는 것이다. 우리가 복합적 결정이라고 부론 상황에서 볼 때 -즉, 지배적인 관념체계 내의 주요한 하나의 요소가 아니라 몇몇의 요소들 에 의해서 새로운 발전이 제시되는 상황에서는-새로운 관념이 거 의 동시에 여러 학자들에 의해서 제시될 가능성이 크게 증가했다. 그

    럼에도, 공유하는 관념체계의 제약으로 인해서, 이들 중 여전히 그들 체계의 철학적 가설에 묶여 있는 몇몇 학자들은 새로운 관념의 중요 성을 평가하지 못했거나 혹은 그 함축된 의미를 충분히 발전시키지 못했다. 많은 경우에서 예측되었고 암시되었음에도 새로운 관념의 수 용을 저해했던 이러한 철학적 관념들을 고수하는 것이 자동적이지 않 고 의문스럽게 되지 않으면 더 이상 그리고 그렇게 될 때까지 새로운 관념은 충분히 공식화될 수 없었다. 따라서, 새로운 관념이 〈퍼지게〉 되어도 동시에 공식화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 최종적인 정교화가 혁신적 돌파구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연속과 단절의 상호작용에 직면해서 역사가들이 분열되었다는 것은 놀랄 게 없다. 어떤 학자들은 새로운 전개를 이전부터의 신념의 완성으로 보고 연속성의 증거로서 부분적 예견을 인용했으며 또 어떤 학자들은 새로운 관념을 전적으로 새로운 시작, 죽 철학적 관점에서의 혁명적 변화의 결과로 간주했다. 지금까지 보아 온 것처럼, 이 견해들은 둘 다 불완전한 것처럼 보이킨 하지만, 여기 제시한 분석과 일치한다. 우리가 분석한 것은 한 영역에 서의 연속은 다른 곳에서의 단절을 배제하지 않으며, 어떤 단절들은 연속성들을 보다 정교화하는 상황들을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복잡한 연속과 단절의 상호 의존성을 보다 잘 이해하려면, 이전에 막혔던 혁 신을 실제로 공식화하게 한 단절이 어떻게 도입되었는지에 의문을 던 져야 한다. 이전의 철학적 제약을 거부하고 새로운 관점을 수용하게 된 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다음에서 이 해답을 풀어 나가 기로 한댜 2 언어 사실의 구축 개념이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앞의 것들〉에 의해서 결정

    된다 . 과거에 일어났던 것 은 우리가 그것 과의 관런을 의식하지 못 하고 알 지 못 할 때 불 안정해 지는 주 요 원인인 것 이다 - - 아니 불 안정의 원인이 〈될〉 것 이다 . 'SI)

    37) Ludwi k Flek, Genesis and Develop m ent of a Sc ie n ti fic Fact (Ch ica go Ch ica go Un iv. Press, 1979), p. 20.

    유추와 모음교체에 대한 신문법학자들의 견해와 소쉬 르 의 견해를 비교해 보면, 급진적 혁신이 지속적인 발달을 가능케 한 인지 변화의 패턴을 알 수 있다. 인어의 공시적 연구에 대한 필요성을 새롭게 가정 한 것은 부분적으로는 신문법학자들의 이론적 • 방법론적 전통을 정교 화한 것으로 설명될 수 있지만, 공시태/통시태의 이분법도 역시 과학 과 그 방법 및 대상에 대한 새로운 철학적 개념을 전제로 한 것이었 다. 소쉬르가 언어 〈현상p henomena 〉 그 자체 만이 아니라 이러한 현상들의 다양한 측면들을 분리 시 킬 수 있는 <관 점 po in t s of vie w > 들을 검토하고자 한 것은, 과학적 연구를 위해 채택된 관점이 연구 대 상의 본질을 결정하는 데에 있어서 하나의 역할을 한다는 그의 가설 을 반영한 것이다. 이 가설을 받아들이는 것은 과학에 대한 신문법학 파 철학과의 근본적 인 단절을 뜻했다 . 마흐 Mach 와 뒤앙 Duhem 이전의 대부분의 19 세기 실 증 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신문법학자들에게 있어서 사실 들 이란 의심할 수 있는 실 재가 아니었고, 경험에서 직접적이고 즉각적으 로 주어지는 것이었으 며, 초연하고 객관적이어야 하는 관찰자에 의해서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었다 . 소쉬르는 이 의견에 더 이상 동조하지 않았다. 그는 〈사실 fa c t s 〉을 편견이나 관점을 가지지 않은 과학자가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독립된 구체적 실재 concrete en titi es 라기보다는 과학자의 관 점이 만들어 낸 것으로 보았다.

    우선 여 기 에(언어 학 에) 옳거 나 튤릴 수도 있는 관점들 이 있고, 단지 관 점들만이 있을 뿐으 로, 이 들 의 도움을 받아 사 물들 이 이차적으로 〈창조 된 다.〉 이렇게 창조된 것들은 출발점 이 옳을 때 실제 사물과 일치하게 된 다. 그렇지 않을 때 는 그 러한 일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두 경우에 있어서 어떤 사 물 , 어떤 대상도 한 순간이라도 저절로 생존하는 것은 아 니댜 일련의 소리와 같이 저절로 정의된 것처럼 보이는 가장 물질적인 사실이 관련될 때도 그러하댜 38)

    38) F. de Saussure, Note s ine d ites de F. de Saussure, in Cahie r s F. de Saussure, Vol. 12 (19 54), pp. 57-58.

    관찰자가 채택한 관점이 관찰되는 사실의 본질에 영향을 미치며, 그 관점이 이 사실을 〈만들어 낸다〉는 소쉬르의 신념은, 언어학은 상이한 차원, 특히 공시태와 통시태의 엄격한 구분이 유지될 때만이 진정한 과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음운교체와 유추의 분석이 예증 했듯이, 동일한 사실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언어학 자들은 사실에 대한 순진한 태도를 버리고 상이한 견해들을 따로 분 리시켜 정확하게 정의해야 했다. 유추와 음운교체에 대한 소쉬르의 생각과는 달리, 이 새로운 철학적 관념은 신문법학파 이론의 단순한 연장은 아니었다. 이것은 당시에 통 용되던 다른 언어학적 관념체계에 동참하지 않았으며-서로 조화 되지도 않았고 -19 세기 후기 역사언어학의 실증주의적 인식론과는 분명한 단절을 이루었다 다시 말해서, 과학적 사실의 상대화는 소쉬 르가 공시태와 통시태를 엄격히 분리할 것을 주장한 근거 중 하나였 는데, 그것은 근본적인 철학적 단절이었다. 그렇다면 소쉬르는 왜 공시태와 통시태의 분리만이 아니라 그의 관 념체계의 다른 이론적 ‘· 철학적 측면들에도 결정적일 새로운 과학철학 을 받아들였는가? 어떤 상황으로 인해서 그는 언어 사실은 객관적으

    로 주어진 실재라는 신념을 포기하고, 연구 중에 있는 대상을 만들어 내고 그 성격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관점의 선택이라고 주장했는가? 그는 신문법학파 관념체계의 많은 부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왜 그 렇게 급진적인 철학적 혁신에 호소했는가? 소쉬르는 일반언어학에 대한 책을 쓰려고 준비한 것으로 보이는 원 고에서 그의 새로운 철학적 근거에 대해 논했다 . 언어 사실은 연구되 는 관점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그의 신념을 정당화하기 위해 서 언어 사실의 정체성이 수립될 수 있는 조건들을 분석했다. 언어 연 구의 대상들은 가장 물질적인 측면에서도 계속적으로 존재하는 실체 가 아니라 순간적 행위들이기 때문에, 한 언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서는 우리가 둘 혹은 그 이상의 언어 사건들을 동일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기준을 명시해야 한다. 따라서, 언어 사실이 무엇인가를 결정하 기 위해서는 어떠한 자질들이 둘 또는 그 이상의 사건들간에 동일성 의 관계를 수립할 수 있게 하는가를 명시할 필요가 있다. 소쉬르는 언 어 형태들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게 하는 여러 방법들이 있다 는 것과 언어적 동일성의 관계는 다양한 종류의 기준에 의거하여 설 정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예를 들면, 호텐토트어 Ho tt en t o t의 kan ta re 는 라틴어의 can ta re 와 같은 생리적 • 청각적 행위를 수반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들은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 동일성은 라 틴어의 can ta re 와 불어의 chan t er 의 발생론적 동일성에 대한 주장이 나, 담화에서 다르게 사용되는 can ta re 의 공시적 • 구조적 동일성과는 0 芹 상이한 기준에 의거해야만 할 것이다 .39) 이 짝들의 각각에 있는 구성 요소들의 동일성을 수립하기 위한 기준의 선택은 특정한 관점의 선택에 달려 있고, 경험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도 다른 관점들보다 우세한 하나의 관점을 선택하는 독립된 객관적 방법이 없기 때문에, 언어 현상들간에 절대적인 동일성 같은 것은 없으며, 따라서 언어 사

    39) Saussure, Note s i n 陣te s, p. 56.

    실을 연구하기 위해 선택한 관점과 무관한 언어 사실이란 없다. 상이한 종류의 동일성들이 있다. 이것은 언어 사실 들 의 상이한 질서를 만든다 . 한 언어 사실은 그 특정한 동일성을 벗어나서 존재하지는 않는 댜 그러나 동일성의 관계는 채택된 각각의 관점에 달려 있으며, 따라서 언어 사실의 기초는 구별의 기준이 되는 명시된 관점을 벗어나서 존재하 지 않는다. 40 )

    40) Godel, 앞의 책, p. 43.

    소쉬르는 하나의 사실을 창조하는 데 있어서 관찰자의 관점이 가장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마치 언어 관찰에서 직접 끌어 낸 것처럼 제시했다 . 그는 언어 자체의 본질, 물질로서 언어의 존재가 지속적이 아니라는 사실이 바로 언어 사실들과 관련하여 상대주의를 채택하게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 다른 과학에서는 대상온 특정한 관점의 선택과 는 무관한 실체로서 항상 존재하며, 그 관점은 과학적 사실에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그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의 대상 에 대한 물질적 동일성이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4 1) 소 쉬르는 언어학(일반적으로 기호학) 이외에 전적으로 연구되는 관점에 의해서 사실이 결정되는 다른 과학들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명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철학적 추리는 전적으로 오직 언어의 논리적 검 토, 죽 선행하는 가설 없이 행해진 언어 사실들에 대한 객관적 연구에 만 바탕을 둔 것처럼 제시되었다. 소쉬르는 언어를 연구하는 사람은 누구나 사실의 상대적 본질을 죽각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 는 것 같다. 그러나 소쉬르의 새로운 철학이 본래부터 언어학에서 유 래한, 순수하게 경험적이라는 주장은 거의 같은 때에 언어학이나 그 대상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사상가들이 일반적 사실들이나 특정 과학

    41) CGL, p.8 .

    의 대상에 대해서 비슷한 견해를 표명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다 소 의심스럽게 보인다. 소쉬르의 철학적 혁신은, 따지고 보면, 전혀 독특한 것만은 아니었 댜 사실은 경험적으로 주어지는 실체가 아니라 과학자 들 에 의해 창조 되는 것이며 연구 맥락에 의존하는 구조물이란 생각은 19 세기가 끝날 무렵 제시된 많은 다른 관념체계들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생각 의 여러 변형들과 해석들은 신칸트학파 Neo-Kan ti ans 에도 있었고, 후 설 Husserl 의 현상학 그리고 베르트하이머 We rth e i mer 의 형태심리학 Gesta l tp s yc holog ie, 이상적 유형 의 개 념 에 기 초한 베 버 Weber 의 사 회학에도 나타나 있었댜 42)

    42) 프레더릭 제임슨 Frederi c J ameson 은 구조주의 사상사에 관한 그의 책에서,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유사점을 찾고 언어적 사실에 대한 소쉬르의 개념과 20 세기 물리학의 위기 사이의 공통점과 대응관계를 찾고 있다. 그는 또한 한 현상의 본 질(예를 들면, 빛의 본질)은 그것이 관찰되는 관접에 의해 결정된다는 생각이 굳 어지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The Pr iso n-House of Lang u ag e ; Pri nc eto n : Princ eto n Un iv. Press., 1972). 몇몇 대응관계들은 너무 무관하기 때문에 제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하더라 도, 세기의 전환기에 자연적으로 주어진 실재로서의 〈사실〉에 대한 개념에 의존했 던 실중주의적 안식론이 점차적으로 심한 공격을 받았고 소쉬르 언어학이 반실증 주의에 대한 반응의 일부였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 그들의 서로 다른 학 문적 기원에도 불구하고, 실증주의에 대한 이 새로운 반응은 많은 공통된 성질을 공유했기 때문에, 그것을 20 세기 실증주의 사상의 중심적 문제에 해답을 주려 했 던 시도로 생각하는 것은 합리적인 것 같다.

    소쉬르 자신의 철학적 근원에 대한 설명은 언어학의 내적인 문제들 을 지적은 했지만, 소쉬르 철학과 다론 분야들의 당시 몇몇 학자들의 견해가 일치한 것은 사실에 대한 실증주의적 개념을 그가 거부한 이 유들이 언어학에만 독특한 것이 아니었음을 말해 준다. 그러나 소쉬르 의 철학적 혁명의 두 측면을 모순된 것으로 다룰 필요는 없다. 언어학 적 주장에만 바탕을 둔 소쉬르 자신의 설명이 그가 도입한 혁신에 대

    한 충분한 설 명은 되지 못하더라도, 20 세기 로 들 어서면서 많은 분야에 서 실증주의 적 인식 론을 붕괴 시 키 고 이 를 구 성 주의 자 constr u et ivi s t 및 상대주의자 rela ti v i s t의 관점으 로 대체시켜 놓은 광범위한 철 학적 문제들이 역사언어학에도 대두되었다고 하는 것은 매우 가 능 성 있는 설명이댜 정말로 그랬다면, 19 세기 언어학에서 명시된 어떤 일반적인 철학적 난제가 소쉬르로 하여금 언어 사실들의 정체성을 수립하는 기 준을 의문시하게 하고, 따라서 언어 사실이 자연적으로 주어진 실재라 는 개념도 부정하게 만들었는지 묻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인지적 변화에 대한 내적 • 분야별 동기는 이 변화가 광범위한 철학 적 변화로 인한 것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필요가 없다. 그러한 일반적인 지적 추세를 하나의 주어진 관념체계의 특정한 맥락으로 해 석하는 것은 결코 직선적이고 잘 이해될 수 있는 과정이 아니다. 언어 사실들의 정체성 i den tity에 대한 내적 문제와 외적 철학적 변화가 소 쉬르의 철학적 틀을 공식화하는 데에 어떤 식으로 기여했는가를 분석 하는 것은 소쉬르가 도입한 단절의 특정한 기원을 해명해야 할 뿐 아 니라 , 철학 사상의 광범위한 추세와 전문 분야의 맥락에서 명시된 그 특정한 징후 사이의 보다 일반적인 상호작용을 밝혀야 할 것이다. 광 범위한 철학적 문제들과 이들이 언어학에 현시된 것들과의 이러한 관 계는 언어 사실의 정체성에 관한 소쉬르 자신의 문제의 배경을 검토 할 때 분명해진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소쉬르가 해결하려고 시도 했던 철학적 문제는 역사언어학을 실행하는 데 중심이 되는 이론적 난제의 근원이었다. 소쉬르는 언어 사실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정립하는 문제에 첫번 째로 직면한 언어학자는 아니었댜 신문법학자들이 언어를 담화와 동 의어로 취급하여 언어를 심리적 행위로 정의하자, 두 별개의 언어 행 위들을 언제 동일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으며 또한 그것들이 언제 단 일한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야기되었다. 새 정의에서

    언어는 〈상호관계에 있는 개인들 총체에 의해서 생성된 언어 행위의 총체가 되었고, 그 기호 들 이 연상시키 는 관념 들 과 함께 담화되거나 듣 거나 표현되는 모든 소리집단 , 개인들의 마음 속에 있는 담화 요소들 로 인해서 생긴 모든 관계들-이 모두는 언어 역사에 속한다.〉 43)

    43) Paul, p. 2-3.

    역사언어학에서 연구의 대상을 이렇게 기술함으로써 생기는 혼란을 줄이기 위하여, 파울은 언제 (어떤 조건에서) 언어 행위의 둘 또는 세 개의 담화들이, 죽 독특한 담화들이 단 하나의 언어 사실로 간주될 수 있을지를 암시적으로라도 명시해 줄 수 있는 기준을 사용해야만 했다. 그는 개별적 언어 행위와 그 산물들을 의식 속의 언어 요소들의 조직 으로 대치함으로써 이 과제를 완수했다. 의식 속에 언어를 조직하는 연상집단들은 실제 언어 담화들이 동일한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기준 으로 사용되었으며, 그 존재는 시간적으로는 다르지만 청각적으로 (그 리고 의미적으로) 비슷한 담화기관의 움직임들의 관계를 확인해 주었 댜 44) 심리적 원인이 동일하기 때문에 동일한 언어 요소들이 발생했다 . 마찬가지로 파울은 언어 〈산물들p roduc t s 〉 의 이질적 집성체를 줄여 서 조직해 냈다 . 언어는 개인의 마음 속에 있는 표상 심리적 조직을 반영한 것이라는 신념에 바탕을 두고 정체성의 문제를 해결한 것은 과학적 연구에서 추상성을 피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과도 아주 일치했 다 .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원인은 다양한 담화들의 정체성의 기준으로

    44) 여기서 기술한 심리적 유기주의는 역사적 발전의 진정한 〈 매개체 〉 이다. 실제 했 던 말은 발전하지 않는다. 한 낱말이 이전에 말했던 다른 낱말로부터 나왔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 이다. 그 낱말은 ___ 우리 신체기관에서 나온 것으로서 —한번 움직였던 그 기관들이 휴식 상태로 일단 돌아오면 사라져 버리며 아무 런 혼적도 남기지 않는다 . 그리고 마찬가지로 청자에게 남겨진 물리적 인상도 없 어지게 된다. 만일 한번 했던 발음기관의 움직임을 똑같이 두 번, 세 번 혹은 네 번 하게 되면 이 비슷한 네 번의 동작들 사이에는 물리적 관련이 없다. 그러나 그 동작들은 신체기관으로 연결되며 이것만으로 관련이 있다. 과거의 혼적으로 이 것으로만 남아 있게 된다. 역사적 발달의 조건들이 이것에만 있다 (Paul , p. 7).

    쓰이기 때문에 일정한 언어 요소 를 추상적인 또는 〈이상적인 〉 형태로 다룰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신문법학파 이론의 개별주의 i n di v i dua li sm 는 정체성 문제가 비록 다른 수준에서일지라도 곧 다시 등장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 파 울은 개별 담화들의 연결고리로서 연상집단의 조직을 의식 속에 설정 해 놓고, 이러한 조직은 개별 화자에게는 항상 변할 수 있는 상태로 있으며, 더욱이 어느 두 화자에게도 결코 동일하지 않았다고 주장했 다. 언어 조직 속에 내재한 가변성으로 인해서 개개인들의 담화에 있 어서 동일한 요소의 확인(그리고 점차적인 역사적 변화의 인식)이 문 제가 되었으며, 그와 함께 어느 한 기간에 걸쳐 한 공동체의 언어에 대해 기술할 수 있는 가능성도 문제시되었다. 개인들보다 집단에 대한 동일성의 기준을 공식화하지 않고는 언어학자들은 한 순간에 있어서 의 개별 화자들의 언어를 기술하는 것만이 정당화될 수 있었다. 언어의 조건을 적합하게 기술하기 위해서는, 엄격히 말해서, 한 언어공 동체에 속하는 모든 개인들을 아주 정확하게 관찰하여 언어에 의존하는 그의 관념 집단의 성격을 주목하고 각 개인의 경우에서 얻어지는 결과들 을 서로 비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45 )

    45) Paul, 앞의 책, p. 8.

    신문법학자들은 실제로 언어의 정체성 문제롤 공동체적 또는 사회 적 수준에서 결코 제기하지 않았다. 추상성과 정신물리학적 언어 정의 에 대한 혐오에서 그렇게 할 수 없었으며 철학적으로는 일관성을 유 지할 수 있었댜 따라서 파울이 〈사용법〉을 언어의 〈평균적이고〉도 〈엄밀하게 정상적인 부분〉인 것으로 설정하려 했을 때부터 그는 스스 로 모순에 빠지기 시작했다 . 46 )

    46) 같은 책, p. 9.

    사실상 파울은 〈기술 문법 des cr i ptive g rammar 〉 에 반대하는 사항 들을 지적할 때 〈 사용법 〉 에 대한 개념에 반대한다는 주장을 폈다. 〈기술 문법〉의 과제는 〈 하나의 공통어를 사용하 는 한 공동체 내에서 일정한 날짜에 통용되는 문법 형태들과 문법적 조건들을 기록하는 것 이며 , 사실상 한 개인이 오해됨이 없이 자신의 담화가 그 자신에게 이 상하게 생각되지 않으면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채록하는 것 〉 이 었댜 47) 그는 기술 문법의 대상이 〈 사용법 〉 과 어떻게 다른지 명시하지 않았지만 전자(기술 문법의 대상)는 〈사실들이 아니라 단지 관찰된 사실로부터 나온 추상적인 것들〉을 다루었고 따라서 인과관계를 발견 하는 데에 어떤 도움도 될 수 없었다고 주장했는데 〈 왜냐 하면 추상 적인 것들 사이에는 인과관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 원인과 결 과는 실제 대상과 사실들 사이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 48) 인과관계 를 추상적인 것들 사이에서는 발견할 수 없다고 한 파울의 경고는 한 공동체의 평균적 또는 정상적 담화로서, 따라서 추상적인 것으로서, 정의된 사용법은 언어 변화를 지배하는 인과 법칙들을 찾아 내는 원 칙으로 쓰일 수 없음을 암시했다. 실제에서 역사언어학자들은 신문법 학파의 과학철학과 언어의 정신물리학적 정의에서 요구된 대로 개인 담화보다는 〈사용법〉을 연구했던 (그리고 연구해야만 했던) 사실을 고려할 때 언어 법칙을 공식화하는 작업은 신문법학자들이 주도하는 실제 연구에서 일관성 있게 수행될 수 없었다. 일반적 사용법에 영향 을 준 관찰된 음 변화를 설명할 때 신문법학자들은 변화를 일관적으 로 설명할 그들 자신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접근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역사 비교 연구의 수용된 방법론(사용법에 대하여 이론적으로 불합리한 개념에 근거한)과 언어 변화는 개인 담화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 생리적 힘의 결과로 설명되어야 한다는 이론적 • 철학적 요구

    47) 같은 책, p. 2. 48) 같은 책, p. 2.

    의 이러한 갈등은 개인 언어에 대한 관념과 평균 언어에 대한 개념, 혹은 환언하여, 〈 시간과 공간상에서의 언어적 기반의 지속성 및 동일 한 발음의 시간적 지속성에 대한 허구의 혼동 〉 49) 을 가져왔다. 이는 기 술언어학과 역사언어학을 법칙에 따르는 설명과학의 언어학에서 분리 시키는 데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

    49) Baudou in de Cou rten ay, Anth o logy , p. Z74.

    사용법의 개념에 대한 신문법학파의 어려움은 그들의 법칙에 대한 신념과 추상에 대한 신념을 조화시키려 할 때 야기된 난관의 한 측면 일 뿐이었댜 또한 사용법의 경우와 같이, 이 문제는 추상에 의존하지 않고는 동일성의 기준을 정립할 수 없는 문제도 수반하고 있었다. 신문법학자들이 믿었던 것처럼 법칙이 현상의 보편적 인과관계에 대한 기술이라면, 어떤 역사적 사건을 지배하는 법칙의 공식화는 이러 한 사건을 포함한 동일한 부류의 사건들에 의해서 확언된다. 다시 말 해서, 한 언어 변화를 설명해 줄 법칙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동일한 조 건과 원인이 있을 때마다 반드시 일정하게 일어나는 어떤 변화 유형 의 한 예로서 이 변화를 분류해야 했다. 그러나 신문법학파의 관념체 계에서는 동일한 부류의 역사적 변화를 명시하려는 시도는 비합리적 일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는 추상은 철학적 금기였고 추상 없이는 서로 다론 시간과 장소에서, 그리고 다른 개인들의 담화에서 일어나는 동일한 역사적 사건들을 집단으로 분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앞 장에서 논의했던 관념론자들의 예는, 완전하고 적절한 인과적 설 명이란 명분에서 추상을 금지하면서도 법칙을 정립하려는 작업의 모 순이 언어학자들로 하여금 법칙에 의거한 언어과학이란 생각을 어떻 게 포기하도록 했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 역사과학에서의 법칙의 역할 문제가 언어학보다도 다른 분야들에서 중요하다는 것과, 관념론자들의 해결책은 크로체나 빈델반트와 같은 철학자와 역사가들이 제시한 해 결책의 언어학적 변형이었다는 것도 앞에서 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20 세기의 전환점에서 모든 언어학자들이 관념론 철 학으로 돌아섰던 것도 아니고 모두가 언어 법칙을 공식화하려는 목표 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기존의 역사언어학에 대한 보완으로서 또는 대체로서 법칙적 언어학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크루제프스키, 보두 앵 드 쿠르트네, 세쉐이에, 메이예, 반 기네켄에 의해 주창되었다. 〈언 어학은 법칙의 과학이어야 하며 적어도 그렇게 되어 가야 한다〉고 주 장한 것은 철학자 나비유만이 아니었다. 크루제프스키가 〈언어학의 주 제는 ‘언어’라고 불리는 현상의 총체이어야 하며 언어학의 목표는 그 러한 현상을 지배하는 ‘법칙'의 ‘발견'이어야 한다는 데 모든 사람이 동의할 것이다.〉 50) 라고 언급했을 때 분명히 그는 자신의 입장을 전혀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언어 법칙 및 언어 사실 의 동일성에 관계된 문제는 철학적 모순일 뿐 아니라 이론과 방법론 에서 〈실제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 많은 언어학자들이 음 법칙과 관련 하여 이 문제들에 부딪쳤다.

    50) Mikol aj Kruzewski , On Sound Alte r nati on (1881) in Readin g s in Hi st o r i ca l Phonolog y, eds., Ph ilip Baldi and Ronald Wert h (Un ive rsit y par k: Pennsyl v a nia Sta te Un iv. Press, 1978), p. 64; Navil le, Meil let, and G i nneken 에 관한 요약은 다음을 참조 * C. Normand et., Avant Saussure, choix de tex te (l 얽 5-1924) (Br ussels: Ed ition s Comp le xe, 1978).

    70 년대 중반의 처음 열기가 지난 뒤에, 음 법칙이 자연과학의 법칙 에 요구되는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점에 대체적으로 언어학자 들이 동의했지만, 음 법칙의 실제 위상과 그것들을 정말 법칙으로 바 꿀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논의가 계속되었다. 음 법칙에서 가장 문제 가 되는 것이 그 유효성이 공간과 시간상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 로부터 나온다는 점은 신문법학자 자신들도 인정했다. 음 법칙이 진정 한 법칙이 되려면 보편적인 기술로 재정립되어야 했다. 이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서, 어떤 언어학자들은(예를 들면, 쿠르티우스)

    현재 효력을 지니는 법칙과 과거에 효력을 지녔던 법칙을 구별하려 했다. 그들은 어떤 법칙은 한때는 효력이 있었지만 지금 그 자리에는 새 법칙 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어느 과학에서도 들어 보지 못한 상황을 만들어 내게 될 것이다. 〈관찰할 수 있는 자료들의 동 일한 영역이 서로 다른 시기에는 다른 법칙의 규제를 받게 된다는 가정 은 과학적이라 부를 수 없다.〉 5 1)

    51) Kruzewski , 앞의 책, p. 83.

    크루제프스키(메이예와 보두앵과 같은 학자들도)에 따르면 음 법칙 이 실패했던 점은 음 변화를 일으키는 모든 특성들을 필요한 만큼 모 두 상세히 명시하지 못한 것이었다. 알려진 음 법칙이 제한된 유효성 을 지닌다는 것은 음 변화에 관련된 실제 인과관계나, 변별적이며 주 요한 자질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음 법칙은 불완전 한 정보, 즉 분명히 아주 다른 상황을(왜냐 하면 다른 결과를 가져왔 기 때문에) 동일한 것으로 잘못 가정하도록 만든 정보를 기초로 하여 세워졌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제한되었다. 진정으로 과학 적이고 보편적인 음 법칙을 공식화하는 데 방해가 되었던 것은 이러 한 피상적 동일성의 겉모습이나 변별적 자질들을 명시화할 상응하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크루제프스키는 그들이 지금까지 공식화했던 음 법칙은 다론 언어 와 다른 시기에 있어서는 유효하지 않다고 주장했는데, 그 이유는 다 른 언어에서 〈하나의 동일한 음〉으로서 특징지은 것이 사실은 전혀 같은 음이 아니라, 몇 개의 다른 음이었기 때문이다 .52) 예를 들면, 그 리스어 (슬라브어)의 s 와 라틴어(독일어)의 s 에서 후자는 로타시즘 rho t ac i sm(r 로 변화)을 겪 었고 전자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같은 소리 가 아니다 정확히 공식화한 음 법칙은 두 종류의 s 의 차이를 알아

    52) 같은 책, p. &5.

    내야 하며 그들 중 어 느 것 이 로타시즘을 하게 되어 있는지도 명시해 야 한댜 그때에 가서야 로타시즘의 법칙은 진정으로 과학적일 수 있 게 될 것이다. 같은 변화를 따르지 않 는 두 음은 서로 본질적으로 다 른 것이라는 크루제프스키의 주장은 그의 스숭 인 보두앵 드 쿠르트네에 의해서 비 판을 받았는데, 그는 크루제프스키의 가정은 동일한 음(예 를 들 면, 라 틴어와 독일어는 물론 그리스어와 슬라브어의 공동 조어인 s) 이 다른 두 소리(예를 들면, 하나는 로타시즘을 따르고, 다론 하나는 따르지 않는 두 종류의 s) 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불가능하게 했다고 지적 했다 . 보두앵은 크루제프스키의 주장은 서로 다른 법칙을 따르게 되어 있는 다른 언어들의 소리에는 미세하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가 정만이 아니라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서로 다른 화자 들 의 발음에 근본적 차이가 없다는 가정에도 의존하고 있음도 지적했다 . 한 언어를 사용하는 화자들의 발음이 근본적으로 동일하다는 이 가설은 음 법칙 이 한 명의 개인보다는 전체 언어나 방언에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라 면 필요하겠지만, 보두앵은 이러한 가설은 이론적 근거와(언어적 차이 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불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리고 〈이러한 독일어의 균일한 s 나 슬라브어의 균일한 s 라는 것은 극히 순수한 허 구이기 때문에 경험적 근거 양쪽 모두에서 유지될 수 없다고 주장했 댜 서로 다른 슬라브인들은 물론 다른 독일인들도 서로 아주 다르게 발음한다.〉 53 )

    53) Jan Baudou in de Cou rten ay, Dzie l a Wy br ane (Warsaw: P.W.N., 1974), p.16 5.

    크루제프스키와 보두앵의 차이가 본질에서 철학적이 아니었다는 것 은 중요하다. 두 사람 다 동일한 언어 상황이 밝혀질 수만 있다면 ―즉, 서로 다른 화자들의 발음이 어느 때 동일하며, 동일한 심리 적 • 생리적 • 사회적 혹은 음향적 조건에 의존할 때가 어느 때인가를

    언어학자가 결정할 수 있다면 - ~정확하고 결정적인 언어 법칙을 만 들 수 있다고 믿었댜 두 언어학자는 동일한 조건에서는 동일한 결과 가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기본적 • 철학적 공리로 수용했으며, 두 사람 다 기존의 음 법칙은 그러한 동일성의 기준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진 정한 법칙이 아니라고 믿었다. 크루제프스키와 보두앵의 차이는 그 본 질에 있어서 기본적으로는 실제적이었다. 크루제프스키는 언어의 동일 성을 결정론적 법칙을 발표할 만큼 자세하게 정의할 수 있다고 믿었 고, 보두앵은 언어는 너무 복잡하고 이질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절대적 동일성을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진정한 〈법칙〉, 즉 인과 법칙은 가장 다양한 요소들의 복잡한 결합 속 에 〈깊숙이〉 감추어져 있다. 〈법칙〉은 존재하지만 어디서 찾아지는가는 밝혀져 있지 않댜 물론 어느 분야에서고 과학적 사상은, 그것이 자기 부정적이지 않다면, 〈원인〉 없이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으며, 인과관계의 연속적인 사슬 밖 에서, 그리고 조건과 상관없이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댜…… 우리는 과학적 허무주의와 무정부주의자에게 그렇게 하라고 맡겨 놓은 채 인과관계를 거부하지는 못한다. 우리는 〈필연성〉, 〈무예의성〉과 〈절대적 조건화〉를 인정한다. 우리는 〈규칙성〉과 〈절대적으로 동일한 조건에서의 절대적으로 동일한 변화의 필연성〉과 〈절대적으로 동일한 조건에서 절대적으로 동일한 변화가 존재 하지 않음〉을 안댜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우리 관찰 대상인 언어가 극히 복잡한 조건과 수없이 다양한 결합, 자신과의 상호작용을 포함한 사회적 상호작용 과정에서는 물론 개인에게서 작용하는 다양한 요인들을 제시하 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조건의 절대적 동일성은 아주 드물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 54)

    54) Baudou in de Cou rten ay, Anth o log y, p. '2:1 6 잡77.

    언어가 너무 복잡해서 언어 현상이나 그 현상이 일어난 조건 가운 데 절대적 동일성을 설정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소쉬르의 제자인 메이예도 가지고 있었댜 보두앵과 같이 메이예는 음 법칙이 과학적 법칙과 다른 것은 바로 이런 어려움이나 언어 현상에 대한 동 일성 기준 c rit e rti a of i den tity울 세울 수 없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시간과 공간적으로 제한되어 있고 동일하게 재생산될 가능성이 없는 다양한 조건에 의존하는 음 법칙은 그 명칭과는 달리 물리적 법칙과는 공통점이 없다 .56)

    5.5) Anto ine Meil let Les lois d ulang a g e in Revue int e m ati on ale de sodolog i (18 93), repr . in Normand, p. 31.

    크루제프스키는 절대적 언어의 동일성을 정확히 결정하면 결정적이 며 보편적인 음 법칙을 공식화할 수 있다고 믿었고, 메이예는 비슷한 언어 상황을 확인하면 〈필연적인〉 것을 기술하지 않고도 언어에서 〈가능한〉 것을 서술하는 설명을 공식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충분힌 인과적 설명과 구속력 있는 법칙을 설정하는 것은 동일성에 대한 정 의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언어학자들은 이 가능성이 실현되기 위 해서는 정확하게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가를 주장하지 않고 언 어 성향, 죽 언어 발달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가를 기술하는 일반화의 법칙의 발견에 만족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요약하자면, 음 법칙을 진정한 과학 법칙으로 바꾸기가 어려운 데 Aj 언어학자들은 어느 때 언어 현상이 동일하고 따라서 동일한 법칙을 따른다고 생각할 수 있는지롤 결정하기 위해 어떤 기준을 사용하느니

    는 문제 를 제기하게 되었다. 언어의 역사적 발달을 지배하는 법칙을 발견하려는 시도는 수많은 내재적 모순과 긴장에 부딪쳤다 . 언어에 대 한 정신물리학적인 개인주의적 정의와 역사적 변화를 사회적이고 집 단적 현상으로 취급하려는 필요성 사이에는 모순이 있는 것으로 보였 댜 변화, 특히 음 변화는 매우 미세한 변화의 완만하면서도 중단이 없는 과정의 결과라는 신념과, 언어는 적어도 어느 정도는 일관성이 있기 때문에 언어 그 자체와 동일하다고 가정해야 하는 필연성 사이 에, 그리고 동일한 법칙을 따르게 되어 있는 언어 현상온 서로 다른 언어에서 서로 다론 시기에 발생하더라도 동일하다는 주장과 , 동일한 법칙에 지배되지 않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다르지만 표면적으로 동일 한 사건들의 차이를 밝혀야 하는 어려움 등에는 모순이 있는 것 같 았다 . 모든 이러한 긴장과 모순은 19 세기 4 반 세기에 역사언어학에서 가 장 논란이 되었던 문제 중 하나인 음 법칙을 이론적으로 논할 때 표 면으로 나타났다. 음 법칙에 대한 논의는 언어의 동일성 문제를 연구 주제로 바꿔 놓았고, 언어 현상의 동질성과 특성은 경험적, 〈객관적〉 인 관찰에 의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는 가정을 뒤엎고 언어 사실 의 본질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어떤 현상을 어떤 조건에서 동일한 것으로 간주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관례에 의해서 대체로 결정 되고, 동일성에 대한 객관적이며 절대적인 기준보다는 연구 목적과 방 법에 더 의존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기준 없이 언어 사실을 분 리하는 것은 더 이상 당연한 사실로 간주할 수 없었을 것이다 . 동일성을 관례적이고 상대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에, 메이예와 보두앵과 같은 언어학자들이 음 법칙이 진정한 과학 법칙이 될 수 있 다는 희망을 포기하기 시작했을 때, 하나의 추진력이 추가되었다. 메 이예는 음 법칙의 개념을 언어 성향의 개념으로 대치시키면서, 결정론 적인 역사 법칙을 공식화하는 데 적합한 방식으로 동일성을 정의하는

    일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는 견해에 동의했다 그 증거 로 서 그는 일 반적 기술을 공식화하기 위해서 언어학자 는 복잡한 현상 중에서 인과 적으로 설명할 수 있 는 어떤 양상과 자질 들 만을 가려 내어, 추상적인 다양한 방법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했다 . 언어 현상들 사이의 동일성이 전적으로 객관적이며 절대적인 방법 으로 결정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부터, 부분적이며 관례적인 방법으로 만 인식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전환된 것은, 세기의 전환점에서 언어 학자들이 봉착한 내부의 방법론적이며 이론적인 난관에서 온 결과로 풀이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이 내적 문제들은 소쉬르가 과학적 사실 에 대한 개념을 상대화하는 데 기여했댜 그러나 사실들은 과학적 개 념 형성에 직접적으로 충실하게 반영될 수 있는 객관적으로 주어진 실재라는 생각으로부터, 관찰자가 선택한 관점이 연구 중에 있는 현상 들에 나타나는 특징의 선택과 현상, 따라서 그 현상의 본질까지도 결 정한다는 신념으로 옮기게 된 인지 과정은 언어학에만 특이한 것은 아니었다 그 자체의 철학적 기반을 혼드는 수용된 관념체계의 깊은 내부적 어려움은 그 학문 자체의 외적인 보다 일반적인 철학적 추세 와 병행하고 그에 의해 강화되었다. 궁극적으로 소쉬르에 의해 도입 된 철학적 가설의 변화에 기여한 것은 바로 이 두 과정의 상호작용 이었다. 같은 기간에 언어학이 직면한 인식론적 어려움과 다른 역사과학과 사회과학이 부딪친 인식론적 어려움의 관계와 병행은 세쉐이에의 초 기 표제적 연구를 검토해 보면 분명해진댜 세쉐이에는 그의 저서 『이 론언어학의 계획과 방법 Prog ram me et meth o des de la ling u is - tiqu e t婦 or iq ue 』 (1908) 에서 법칙에 의거한 언어과학을 수립할 수 있 는 철학적 근거를 제공하려 했으며, 동시에 더 일반적인 수준이지만 음 법칙에 대한 현상에 관심이 있는 언어학자들에게 기본이 되는 몇 가지 문제들을 제시했다.

    세쉐이에의 철학적 견해는 과학의 분류에 대한 저서 (언어학은 기호 에 관한 과학 , 죽 기호학의 일부이어야 한다는 소쉬르의 생각을 가장 일찍이 언급하고 있다)의 저자인 아드리엥 나비유와 같은 철학자가 해석한 것처럼 전통적인 실증주의자의 입장을 반영했다. 세쉐이에의 저서는 그 책의 실증주의 자료와 일치하여, 언어 사실은 다른 과학적 사실과 마찬가지로 관찰자 및 관찰자의 관점과는 독립적이라는 견해 를 재확인했댜 그럼에도 역사언어학을 법과학으로 보완하려고 시도하 면서 세쉐이에의 철학적 관념은 무엇이 과학적 사실을 구성하는가에 대한 기존의 개념을 혼들어 놓았기 때문에, 우리는 세쉐이에의 연구를 실증주의 내부의 긴장이 철학 체계와 언어학의 중심적 가설을 근본적 으로 바꾸게 된 과정에 대한 실례로 이용할 수 있다. 세쉐이에의 법칙에 근거한 언어학은 메이예와 어느 정도 비슷하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사실적인 것에 대한 과학이라기보다는 언어에서 가능한 것에 대한 과학이어야 했다 . 세쉐이에는 어떤 보편적 법칙도 역사적인 언어 현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견해를 받아들였다. 메이예에 따르면 언어의 일반화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힘의 한계는 언어 현상에 내재한 복잡성의 결과이다 . 세쉐이에에 따르면 이 한계는 모든 역사적 현상이 언어적이든 아니든, 시간적 • 공간적으로 유일한 데서 오는 필연적이며 논리적으로 피할 수 없는 결과였다. 세쉐이에는 법칙에 의거한 (또는 이론적인) 언어학이 그가 사실의 과학이라고 생 각했던 기존의 역사적 학문을 언젠가는 대체할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오히려 법칙의 언어과학은 보편적으로 유효한 인과관계의 일반화를 포함하도록 되어 있었고, 사실의 과학은 실제의 역사적 발달을 계속해 서 기술하는 것이었다 . 사실의 과학 이외에도, 아드리엥 나비유의 말을 빌리자면 법칙의 과학 도 있다. 이 과학은 다른 대상을 가지는 것이 아니고 그 대상을 다른 관

    점에서 고찰한다. 동일한 조건이 있는 곳에서는 동일한 결과가 나와야 한 다는 과학적 가정에서 출발하여,……언제 또는 어디서 하나의 현상이 실 현되는지는 관심이 없지만 현상의 조건들을 일반적인 방법으로 연구한 다 . 56)

    56) Albert Sechehaye , Prog ramme et meth o des de la ling uisti q u e t函riq ue(P ari s: Champ ion , 1908), p. 4.

    세쉐이에가 가정한 두 과학은 전적으로 독립된 것은 아니었다. 법칙 의 과학은 부분적으로는 사실의 과학이 제공하는 경험적 지식을 기초 로 정립되는 것이고, 사실의 과학은 법칙의 과학이 수립한 원칙의 도 움을 받는댜 그러면서도 둘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법칙의 과학은 영원한 것으로 보편적인 일반화를 하여 많은 개별적 사건에 적용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 일반화는 각 개별 사건을 철저히 설명하거나 특정한 역사적 시점에서 그것들이 일어난 모든 인과적 요 인들을 반드시 명시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법칙의 과학에 대립되는 사실의 과학은 역사적 과정을 적절하게 구체적으로 기술해야 했지만, 일반 법칙에 의거해서 이 과정들의 모든 양상을 설명할 필요는 없었 다. 다시 말해서, 법칙의 과학은 일반적이고 설명적이어야 하지만 이 보편성은 그것이 역사적으로 완벽하게 적절하지는 않다는 것을 의미 했댜 한편, 사실의 과학은 역사적으로는 적절하지만 완벽하게 설명적 일 필요는 없었다. 세쉐이에에 따르면, 두 과학은 정확하게 동일한 현상과 동일한 사실 들을 다루었다. 두 과학은 목표는 다르지만, 동일한 방법을 사용했다. 사실의 과학은 구체적으로 완벽한 기술을 목표로 하여 세계의 역사 적 • 지지적 사실들의 배열을 치밀하게 따르도록 되어 있고 법과학도 규칙성과 보편성의 발견을 목표로 했다.

    우리는 두 개의 다 른 목표에 사용되는 단 한 가지 방법을 다루고 있다 . 동일한 과학적 사실이 서로 다른 순서의 원리에 따라 조직된 두 체계를 구축하는 데 쓰이고 있다 . 그 중 하나에서 과학은 위상적 • 시기적 상황에 서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사건들로 다루어지는 사실들에 초점을 맞추고 설명될 수 있는 요소를 단지 기술하고 분류하고 설명하고자 한다. 다른 과학은 사실들에서 시작하지만 사실들로 되돌아오지 않고 대신 연구 목 적인 일반 원리들을 찾으려 한다 . 죽, 이 원리들을 정의하고 목록을 작성 하고 가능한 한 합리적으로 정당화한다. 역사의 실제적인 과정을 불완전 하게 재구성하는 대신, 실제는 가능한 것의 우연한 현시일 뿐이라는 전제 로, 각 영역에서 가능한 일반 체계를 끌어 내기 위하여 이 원리들을 이용 한다 . 얽)

    57) Sechehaye , Prog ram me, pp. 7-8.

    두 개의 과학이 목표가 다르다는 주장은 그들의 기술과 개념들이 서로 다르게 조직되어 있음을 의미했다. 사실의 과학은 현상들의 시간 적 공간적 상호관계를 제시했으며, 법칙의 과학은 역사적으로 별개의 현상 가운데, 혹은 이 현상들의 추상적이고 분석적으로 고립된 양상 가운데 유사성에 따라 실체적인 면을 분리하고 순서대로 기술했다. 그 것은 사건의 실제적(실체적이고 유용한) 원인이 아니라 인과관계의 원 리를 기술했다 이런 의미에서 그것은 사실의 과학보다 더 추상적이고 더 분석적이다. 동일한 자료를 기초로 하여 두 개의 상이한 과학을 구축할 수 있다 는 주장은 사실과 개념의 관계가 더 이상 직접적이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하나의 사 실이 공간적 • 시간적 좌표에 의해서 일부가 정의된,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의 불가분의 부분으로 일단 간주될 수 있다면-그리고 만일 다른 목적을 위하여 〈동일한 사실〉이 분리되어 그 속성들이 제거되고,

    비슷하지만 동일하지는 않은 다른 사실들과 비교될 수 있다면-추 상성을 불합리한 절차, 어떻든 피해야 하는 왜곡 렌즈라고 주장할 수 는 없었댜 따라서 세쉐이에는 신문법학자 들 및 메이예를 포함한 자신 의 동시대 학자들과는 반대로 추상성은 모든 인지의 기본이라고 주장 했다. 〈사실상 미리 비교와 추상 작업을 하지 않고 일을 기술하거나 명칭을 붙일 수는 없댜〉 58)

    58) 같은 책, p. 6

    과학적 방법의 정당한 요소로서 추상성을 수용한 것은 그 자체가 근본적 혁신은 아니었다. 언어학자들과 다른 연구에 종사하는 과학자 들은 그것을 종종 비난했지만, 텐 T ai ne 과 풀랑 Poulhan 을 포함한 19 세기의 많은 실증주의 철학자들은 추상성을 일상 생활의 인지와 과학 적 연구에 모두 필요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추상성은 실증주의 철 학 체계에 충분히 통합되지 못했으며, 현상주의가 개념과 사실의 구분 을 점점 희미하게 하면서, 인지에서 추상성의 역할을 기술하려는 시도 는 과학적 사실의 개념을 상대화하는 데 직접적인 기여를 했다 .59) 과 학적 사실과 개념이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라기보다는 구조물이고 그것이 관찰자가 선택한 관점에 달려 있다는 생각은, 추상성은 모든 지각의 필수 요소이며 서로 다른 유형의 인지에서 다양하게 조작될 수 있다는 주장에서 나온 것 같다. 세쉐이에나 실증주의 철학자들이 추상에 대한 그들의 분석으로부터 이 결론을 끌어 내지 않았다는 사 실은 실증주의 철학에서 〈사실들〉에 대한 신념의 중심성과 중요성을 증명할 뿐이다. 그러나 이 중심성에도 불구하고 사실의 본질과 사실 • 개념 관계에 대한 전통적 견해는 마흐와 아베나리우스 Aven ari us 와

    59) 바바라 스카르가 Barbara Skar g a 는 실증주의와 그 해체에 대한 역사에서, 사실 과 법, 추상의 사용에 대한 실증주의적 개념에 내재한 난점 들을 추적하여, 여기에 서 기술한 것과 유사한 문제들로부터 사실에 대한 구성주의적 개념을 끌어 내고 있다 . Barbara Skarga , Klop o ty Inte l ektu : M ied zy Comt e' em a Bergs o nem (Warsaw: P.W . N. , 1 罪 5).

    같은 실증주의자들의 생각을 포합 한 19 세기 후반의 다양한 철학 체계 에서 혼들리게 되었고 수정되었다. 그러나 세쉐이에가 법칙의 과학과 사실의 과학이 동일한 사실들 을 연구하며 기본적으로 추상성의 정도에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을 때, 그 는 사실상 〈사실〉이라는 개념을 전복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 세쉐이에는 추상을 아주 당연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것이 과학적 관 찰이나 언어적 개념의 설정에 미치는 영향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마찬 가지 이유로, 비록 규칙과 기준이 없어도 〈동일한 것〉으로 여겨지고, 모든 이론의 기초를 구성한다고 여겨지는 〈사실들〉이 다론 과학에서 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될 수 있으나, 그 표현 밖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는 없더라도 다른 종류의 추상성을 지배하는 규칙과 기준이 있는지 문제삼지 않았다 그러나 현상의 구별이 어떤 철학적이거나 방법론적인 원칙에 의해 서 그 사용이 규제받지 않는 추상화의 도움을 통해서만 가능한 상황 에서 〈동일한 사실〉이란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실들이 표현으로 서만 존재하고 그들을 명명하는 데 사용되는 개념들은 다소간의 자유 의사에 따라 과학적 관점을 선택하는 데 따라서 그 본질이 정해지는 구성물이라고 할 때, 경험주의적 사실 이해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가? 이 대상을 완벽하게 객관적으로 밝힐 수 없거나 이 실체가 하나 의 관념으로 적절하게 표현될 수 있는 방법을 명시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때, 관찰자에게 주어진 독립적인 과학적 대상이라는 생각이 유 지될 수 있는가? 사실과 개념에 대한 경험주의적 관념에 대한 소쉬르의 희의적 태도 는 적어도 일부는 이런 종류의 의문에 대한 응답이었다. 이 의문들은 동일한 실증주의 철학의 바탕 위에서 제기됐고 직접적으로 그 변형과 위기의 한 원인이 되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많은 학문분야에서 의미 가 있었고 세기의 전환기에 일반적인 지적 풍조를 바꾸는 데 한몫을

    했댜 그러한 의문 들 은 인과적이며 보편적 법 칙 이 독특한 역사적 사건 의 과정을 설명하 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매우 상세하면서도 기술적으로 조직화된 지식체와 만나게 되는 역사과학에서 특히 중요 하게 되었다. 법칙에 의거한 과학의 인식론적 • 방법론적 기초에 대한 의문 및 사회적 • 역사적 영역에서의 법칙의 설득력에 대한 검토는 어 떤 종류이든 과학적 기술을 공식화하는 데 필요한 절차로서 다양한 종류와 정도의 추상을 받아들이는 결과를 초래하였고, 사실의 동일성 을 결정하는 데 무조건적이고 객관적으로 주어진 기준이 있다는 생각 올 거부하는 원인이 되었다. 사실은 실체가 연구되는 관점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생각과, 추상을 지배하는 규칙의 결여는 특권적 관점의 가능성을 배제한다는 신념의 이러한 연계는 소쉬르 자신의 논리에서 도 하나의 요소를 이루었다. 아무도 언어의 한 양상이 다른 것보다 우선하거나 우월한 것으로 , 혹은 마땅히 하나의 출발점으로서 기여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할 권리가 전혀 없다 . 만일 다른 것보다 우선하는 양상이 있다면, 즉 우리 쪽에서의 추상 과 일반화의 모든 작용 밖에 주어져 있는 어느 양상이 있다면, 그러한 권 리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언어의 측면이 없다는 것을 알기 위해 서는 잠깐 동안 숙고해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 60)

    60) Saussure, Note s ine di tes , p. 56.

    실증주의의 신문법학파의 변형으로부터 소쉬르의 구성주의로 이행해 간 논지는 일반적인 철학적 고려 상황들을 반영했으며 언어학 이의의 다른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적용은 사회과학과 역사 과학을 넘어서도 확장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특별히 힘있게 표현되고 두드러진 것은 역사적 분야, 특히 언어학이었다 .6 1)

    61) 과학적 사실에 대한 개념을 상대화하는 데 있어서 이러한 역사적 분야의 우선성

    은, 일부는 이러한 과학들에서 추상의 사용에 대해 고도의 기술적 작업의 불확실 함을 규제하는 관례들이 비교적 약한 것으로 설명될 수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볼 수 있다 . 추상은 자연과학에서 오랫동안 관례적인 것이었고, 특정한 추상 방식은 그 실행자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으며 어떤 주어진 현상의 본질을 드러내는 유일하게 적합한 자기정당화 방식으로 보였다. 역사과학에서 추싱·은 하나의 현상 에서 여러 측면을 분리시켜 법칙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는 양상을 골라 내기 위해 서 사용되어야 했다. 어떤 역사적 사건의 우연적 성질과 대립되는 것으로서, 본질 을 구성하고 있는 것(혹은 하나의 사건을 구성하고 있는 것까지도)에 대해서는 어떤 동의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면서도, 마찬가지로 법칙의 공식화에 대한 지시는 기존의 기술적 지식이 어떤 다른, 그러나 공통적으로 합의되지는 않은 기준에 따 라 재검토되고 재분류되어야 할 것을 요구했다. 자연과학에서는 개념과 법칙에 대 한 인식론적 상태에 대해 보통 철학적 분쟁을 일으키는 것이, 역사과학에서는 실 질적이며 철학적인 해결을 필요로 하는 중심적인 방법론적 문제로 보일 수 있다. 이러한 차이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 마흐 Mach 의 원자에 대한 개념이 물리학에서 하는 역할과 뒤르켐 Durkhe im의 사회적 서실(〈집단의식〉은 말할 것도 없고)에 대한 개념의 주장이 사회학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비교할 필요가 있다. 왜냐 하 면 추상에 대한 적합한 방식을 결정할 만한 강력한 관례가 없고 법칙을 공식화하 는 데 사용되는 특성의 〈성공적〉 선택에 대한 인정된 예가 없는 곳에는 현상의 정체성을 설정하거나 연구 대상의 기본적 성격을 규정하는 특정의 수용된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회과학에서 이 어려움은 중요한 것이었지만, 우리가 보아 왔 듯이 동일성 기준의 문제가 19 세기 후기 중심 목표와 밀접하게 연계 되어 있던 언어학에서 아주 확고한 형태로 나타났는데, 그것은 음 법 칙을 그 유효성이 시간이나 공간적으로 제한되지 않는 〈진정한〉 과학 법칙으로 재공식화하는 것이었다. 이 과제를 성취하는 데 성공하지 못 한 것은 절대적 동일성, 즉 추상성이 없는 동일성이란 불가능했음을 시사했다. 소리와 그 변형을 정의하려는 수많은 시도에서 나타난 것처 럼 부분적 동일성을 정의하기 위한 가능한 여러 방식에 있어서의 복 합성과 이질성은 언어 사실의 객관적인 경험주의적 본질에 대한 문제 를 부추겼다 . 언어학에서 가능하고 합리적인 추상 방식을 명시하는 일 의 이론적 • 실제적 중요성과 동일성에 대한 기준을 정의하는 관련 문

    제가 바 로 이 새로운 과학 철학 에 대해 소쉬 르 가 일찍이 그리고 긴박 하게 직접적인 어조로 공식화한 이유 를 말해 주 고 있다. 이 것 은 언어 문제에 대한 신념의 공언이다. 다 른 영역에서는 대상 자체 에서 확고한 근거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을 확신하고 〈 이러이러한 견지에 서〉 말할 수 있댜 언어학에서 우리는 주어진 대상 들, 관념의 한 영역에 서 다른 영역으로 옮아갈 때도 계속 존재하는 것들, 마치 그 자체에 의해 서 주어진 것처럼 많은 영역에 존재하는 〈것들〉로서 결과적으로 생각될 수 있는 것들의 존재를 원칙적으로 부인한댜 62)

    62) Saussure, Note s ine dit es , p. 58.

    우리가 보았듯이, 언어학에서 상황이 특이했다고 소쉬르가 주장한 것을 너무 글자 그대로 이해할 필요 는 없다 . 그가 언어학에서 사용했 던 주장은 특히 이 분야에 중심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많은 분야들에 공통된 철학적 문제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 문제 들 은-~지각과 개념 의 구축에서 추상의 역할이나, 법칙에 의해서 기술되는 현상들의 동일 성에 대한 정립을 지배하는 규칙들 -19 세기 과학을 지배했던 실증 주의 철학에 의해서 야기되었다. 이 문제들은 실증주의 구조 안에서 공식화되었기 때문에 그 위기와 변화에 또한 기여했다. 소쉬르의 구성주의적 입장은 언어학에 내재한 긴장과 모순들에서 오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시도로서, 그리고 일반 철학적 문제들이 어떻게 특정 분야에서 명시되고 그 안에서 특별한 해결책들을 받아들 이게 되는가에 대한 예로서 이해될 수 있다 . 이 다양한 해결책들이 서 로 닮은 정도는 그들의 공통된 기원과 특수한 철학의 구조 안에 하나 의 문제를 제시함으로써 그에 대한 응답으로 제시되는 반응들의 범위 와 성격에 미치는 제약을 입증한다. 물론 소쉬르의 반응만이 실증주의의 문제들에 대한 유일한 반응은

    아니었다 . 다른 철학적 전통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던 관념론자들은 신 문법학파 관념체계에 내재한 난제 들 에 아주 다른 방식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신관념론자들은 실증주의자의 전통을 명시적으로 거부한 반면, 소쉬르는 묵시적으로 그렇게 했을 뿐이었다. 많은 점에서 소쉬르의 혁 명은 신문법학파 전통에 영향을 주지 않았고, 그의 새로운 철학까지도 직접적으로 역사언어학을 바꿔 놓지는 않았으나 소쉬르가 윤곽을 그 린 공시언어학의 체계에는 심오한 영향을 미쳤다. 소쉬르가 새로운 과학철학을 도입하게 된 것은 지배적인 언어 관념 체계 내의 내적인 긴장과 난제들의 결과이며, 또한 실증주의 철학에 있어서의 보다 일반적인 위기에서 나온 결과였다 . 이 요인들 중에 어 느 것이 인과적으로 더 앞선 것인지, 또는 궁극적으로 더 결정적인 것 인지를 결정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그 이유는 신문법학자들과 그 계 승자들의 언어 관념체계를 구축했던 철학적 가설들을 무너뜨리는 데 에 다 같이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실증주의를 괴롭힌 일반적인 철학적 문제들은 처음에는 순전히 언어적으로 보이는 문제들에서 표현되었으 며, 마찬가지로 이 언어 문제들에 대한 해답으로 제시된 해결책들은 수많은 철학자들과 사회과학자들이 제시한 보다 일반적인 해결책들과 유사하거나 이들에 의해서 더 강화되었다. 소쉬르의 언어 사실의 본질 에 대한 논의에서 야기된 급진적인 철학적 단절은 의심할 바 없이 유 사한 해결책들이 다른 분야들에서 제시됨으로써 더욱더 수용성을 갖 게 되었지만, 바로 그러한 단절의 도입이 언어학 내부에 존재하는 끈 질긴 이론적 • 방법론적 긴장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했기 때문에 타 당성도 높아지게 되었다. 앞부분에서 본 것처럼, 소쉬르가 도입한 철학적 혁신에서는 포괄적 인 지속의 가능성이 배제되지 않았다. 이러한 단절로 소쉬르는 수용된 과학철학으로 인해 이전에는 봉쇄되었던 신문법학파 관념체계의 특정 한 함의들을 정교하게 만들고 발전시킬 수 있었다. 신문법학파 관념체

    계의 많은 면에서 암시적으로 나타나 있는 공시태/통시태의 이분법은 전에 그 발달을 저해했던 철학적 가설들을 소쉬르가 거부했을 때에야 비로소 제대로 공식화될 수 있었다. 한 관념체계를 구성하고 있는 다 양한 요소들간의 상호 의존성으로 볼 때, 지속적인 긴장과 모순에 대 한 해결로 도입된 인지적 단절은 하나의 관념체계의 다른 측면들에 종종 영향을 미치지만 그들의 영향력이 항상 더 큰 단절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역설적이지만, 아마도 단절은 때로는 지속성을 보존하거 나 재창조하는지도 모른다. 3 구조주의 : 자율적 대상으로서의 언어 랑그 lan g ue 와 파롤p arole 의 이분법의 완전한 공식화가 소쉬르의 관념체계에 뒤늦게 추가되었지만, 1894 년에 이미 소쉬르는 언어학 연 구의 대상으로서 언어에 대한 기존의 정의가 마음에 들지 않아 고심 하고 있었다. 소쉬르는 메이예에게 쓴 편지에서, 언어적 사실들과 언 어 자체가 잘못 정의되고 분류되어 있는 한, 이 분야에서 작업하는 것 은 불가능하다는 불평을 털어놓았다. 이미 이러한 사실들의 논리적 분류와 우리가 그것들을 검토하는 관점 에 이미 오랫동안 몰두해 왔기 때문에, 나는 모든 작업을 미리 정해진 범 주로 제한함으로써 언어학자에게 〈그가 하고 있는 것〉을 보여 주는 데 요구되는 무한한 노력과 동시에 언어학에서 궁극적으로 이루어진 모든 것의 무익함을 점점 더 깨닫게 된다. 나로서는 일반적인 언어에 전념하지 않는 것보다 더 큰 바람은 없지만 (빈번히), 현재 사용하고 있는 전문용어의 무력성과, 그것을 개혁해야 할 필요성, 그래서 일반적인 언어가 어떤 종류의 대상인가를 제시할 필요성

    이 항상 역사에 대한 나의 즐 거 움을 망치고 만다. (j:J )

    63) Godel, 앞의 책, p. 31.

    소쉬르는 왜 〈언어는 어떤 종류의 대상〉인가 를 증명할 긴박한 필요 성 이 있다고 주장했는가? 언어롤 재정의할 필요성은 결코 당시의 다른 언어학자들도 공유한 생각은 아니었댜 신문법학자들과 당시의 대부분의 학자들은 언어를 독립적 유기체로 규정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에, 그들은 언어를 소리 와 관념의 관계에 바탕을 둔 심리 • 물리적 행위로서 정의한 데 전적 으로 만족한 것 같았다. 언어와 담화를 동일시한 것은 거의 의문의 여 지 없는 이론으로 수년 동안 유지되었다. 1908 년에도 소쉬르의 제자 세쉐이에는 여전히 언어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하여 심리 • 물 리적 존재에 의하여 사용되는 일련의 수단〉 어) 이며 담화된 언어는 〈말 하는 주체가 관념을 발성기관의 종종 매우 복잡한 동작 및 그에 상응 하는 청각과 결합시키는 데 따르는 일련의 태도에 달려 있다〉 65 ) 고 주 장하고 있었다. 언어학자들이 언어의 생리적인 면보다는 심리적인 면 을 점점 더 강조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19 세기 후반과 20 세기 초에 언어에 대한 일반적 정의는 기본적으로 언어를 개개 화 자들의 행위로 보는 신문법학파의 개념을 확장한 것이었다 . 그렇다면 소쉬르가 언어의 기존 정의에 불만을 가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소쉬르가 메이예에게 쓴 편지는 소쉬르의 철학적 혁신이 일부는 그 당시까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처럼 생각되었던 원리에 의문을 가진 데 연유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64) Sechehay e, Prog ram me, p. 48. 磁) 같은 책 , p. 51.

    신문법학자들은 언어가 심리 • 물리적 메커니즘이라는 관념은 별개로 정당화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언어를 인간의 담화 능력과 동일시

    한 것은 그 객관성과 정확성을 의심 할 수 없 는 , 어떤 경우에도 경험적 으로 확인할 수 있는 하나의 사실로 간주되었댜 신문법학자들과 마찬 가지로 별개의 사실 들 의 경험적 직접성과 객관성을 믿었던 세쉐이에 도 이 견해를 갖고 있었댜 언어학자가 법칙의 과학이나 사실의 과학 에 관심이 있든 없든, 언어 기능이나 그 발달을 연구하든 안 하든 언 어학의 대상은 항상 동일했다. 즉, 〈자신의 유기체 를 매개로 완성되는 인간의 심리 행위〉 66) 로서 정의되는 언어가 그 대상이었댜 그러나 사 실의 확고함에 대한 세쉐이에의 신념은 과학적 추리에서의 추상 및 서로 다른 정도의 추상을 이용하는 다른 과학을 정립할 가능성에 대 한 신념과 더 이상 일치하지 않았댜 추상의 자유로운 사용을 감안한 후에, 세쉐이에는 더 이상 언어에 대한 어떤 정의도 자명한 것이며 정 당화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당연시할 수 없었다. 과학적 사실들은 과학적 조사 방식과는 무관한 순전히 객관적인 실 체가 아니라 관찰자가 선택한 특정한 관점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소 쉬르의 주장은, 역사 발전을 법칙에 지배되는 것으로 설명하려는 데서 시작하여 다양한 과학적 관점을 엄격히 분리시키는 것으로 끝나는 철 학적 변화 과정의 정점으로서 이해할 수 있다. 대상이 관점을 선행하기는커녕, 대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 관점이다 . 더 구나 문제의 현상을 고찰하는 이 여러 방식 중, 그 어느 것이 나머지에 (j/) 비해 선행하거나 우월하다고 예견할 수 있는 근거는 전혀 없다 . 과학적 사실들의 상대화는 소쉬르가 요구한 근본적인 사항이었는데 그것은 언어 연구에서 채택된 다양한 관점들은 개별적이라야 하며, 언 어 사실들은 경험적으로뿐만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분리되어야 한다는

    66) 같은 책, p. 16. 67) CGL, p.8 .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이 소쉬르로 하여금 언어학 용어의 공식화 및 사용을 지배하는 원리와 관행들에 대하여, 그리고 전통적인 심리 • 물 리적 언어 정의의 타당성과 객관성에 대한 배타적 주장에 대하여 의 심하게 만들었댜 관점과 추상화 방식의 선택이 연구 중에 있는 대상 의 본질을 결정한다고 한다면, 언어에 대한 어떠한 정의도 보편적이며 객관적 또는 경험론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될 수 없다. 따라서 신문법 학자들이 자명한 것으로 취급했던 정의는 소쉬르에게는 단지 있을 수 있는 많은 정의 중 하나일 뿐이었다 게다가 언어에 대한 있을 수 있 는 각각의 정의들은 그것이 공식화되는, 그리고 실제로는 묘사하고 기 술하는 관점에 의해서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언어를 정의하는 우선 적이거나 우월한 방법은 있을 수 없었다. 소쉬르의 철학적 혁신은 언어학 관념체계에 제약적이거나 자유로운 양면적인 영향을 끼쳤다 . 언어 사실의 상대주의적 이해는, 언어학자가 자신의 연구를 위해 선택한 관점을 명시하고, 전적으로 자기가 선택한 관점이 정해 놓은 범위 안에 있는 언어 개념의 사용을 정당화하면서, 그 관점을 일관성 있게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제한적이다 . 다시 말해서 새로운 철학은 언어학 연구 방법론을 위한 새로운 조건을 부 여했댜 따라서 언어학자는 전에는 정의하지 않고 내버려 둘 수도 있 었을 분석적 관점들을 엄격하게 분리해야만 했다. 한편, 새로운 과학 철학에 의거해서 학자들은 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던 정의들에 대 해서 의문을 갖고 하나 이상의 언어 모델을 구성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되었댜 그들은 자신들의 연구를 위해 다양한 합리적 관점들을 선택할 수 있었으며 언어를 다면적이며 이질적인 현상으로 연구할 수 있었댜 그러나 의문을 가질 수 있는 자유는 의문을 가지는 이유와 같지 않 으며, 소쉬르의 철학적 혁신이 언어에 대한 새로운 정의의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사실이 그가 기존의 관념들을 못마땅해 했다든가, 혹은 그

    가 새로운 정의를 선택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소쉬르의 철학이 언어 본질에 대한 관념의 변화를 위한 조건을 야기했다면, 이 변화의 성격과 방향은 다른 고려 사항들에 의해서 형성되어야만 했다. 연구 대상에 대한 정의, 혹은 다소간 형식적이지는 않지만 이 대상 의 본질에 대한 기본 신념은 과학적 관념체계의 가장 중심이 되는 몇 몇 철학적 요소들을 구성한다. 한 현상의 특정한 양상에 주의를 집중 함으로써, 기본적 특징을 주장하고 다른 경험적 영역과의 관계를 수립 함으로써, 연구 대상에 대한 명시적 혹은 묵시적인 정의는 과학자들을 특정한 유형의 의문과 문제, 그리고 특정한 유형의 이론적 설명의 방 향으로 인도한다. 예를 들면, 언어를 개인의 독창적인 표현으로 정의 했던 관념론자들은 언어 변화를 소리를 내는 데 필요한 노력을 줄이 려는 생리적 성향의 결과로서가 아니라 미적 감수성의 반영으로 설명 할 것이다. 언어 정의의 변화는 언어학 관념체계 전반에 영향을 미쳤 기 때문에 소쉬르가 새로운 언어 정의를 옹호한 이유를 검토할 필요 가있다. 많은 사례에서 연구 대상의 재정의는 광범위한 철학적 • 이론적 변 화를 수반한다. 예를 들면, 신문법학자들이 초기 비교학자들이 언어를 유기체로 정의한 것을 거부하고 언어에 대한 심리 • 물리적 정의를 받 아들인 것은 낭만주의와 헤겔 철학으로부터 실증주의로 가는 일반적 인 철학적 추세와, 모든 인문과학에 대한 학문적 모델로서 심리학의 출현에 의해서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역사를 인간의 창조 적 정신의 표현이라는 크로체 사상의 영향으로, 신관념론자들은 언어 를 직관의 미적 표현으로 재정의했다. 이 두 사례에서 언어에 대한 재 정의는 부분적으로는 철학적 • 이론적 변형이었고, 언어 현상의 설명은 이 정의의 변화에 의해서 분명히 영향을 받았다. 그럼에도 이 모든 변화를 통하여 언어학의 기본 문제나 혹은 소위 그 학문의 주제 에 대 한 선이 론적 공식 화 pre -th e oreti ca l form ulati on

    는 본질적으로 같았댜 언어가 유기체로, 혹은 담화의 심리 • 물리적 메커니즘으로, 혹은 예술로 정의되든 않든 간에 19 세기 동안 줄곧 언 어학자들의 실질적 관심과 연구의 주요 과제는 같은 채로 남아 있었 댜 죽, 언어 변화에 대한 인과적 설명을 공식화함으로써 언어 역사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연구하고 있는 대상에 대한 정의와 그 학문의 문제거리들의 직접적 인 혹은 명확한 관계가 결여되었던 것도 공시언어학이 도입된 과정을 검토해 보면 역시 확실해진다. 처음에 공시적 혹은 정태적 연구의 필 요성을 공식화한 것이 언어 정의에 대한 변화를 수반하지는 못했다. 보두앵 드 쿠르트네와 세쉐이에의 연구에서 두 사람 다 정태언어학의 연구를 주창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언어의 정의는 신문법학파의 정의와 동일했다. 언어의 정의가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소쉬르의 저 서에서였다(소쉬르의 경우에도, 랑그와 파롤의 이분법을 충분히 설명 한 것은 세 번째 『강의』에서나 가서였다)뻔

    68) Godel, pp. 147 ff.

    소쉬르가 언어를 재정의한 시기가 늦은 것은 물론, 신문법학자들과 관념주의자들의 경우는 연구 대상의 정의와 일반적인 문제점들의 선 택 간에는 관련이 없음을 시사할지도 모른다. 역사가 보프, 슐라이허, 브루크만에게는 서로 다른 것을 의미했지만, 역사나 혹은 언어 변화에 대한 원인과 과정의 발견이 언어학의 유일한 주제가 되어야 한다는 그들의 신념은 이 모든 학자들이 언어에 대한 정의를 바꾼 후에도 그 대로 계속되었다. 새로운 공시적인 복잡한 문제의 도입과 함께 즉시 언어에 대한 정의가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도 역시 필연적 관계가 없 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래도 두 유형의 관념의 상호 제약이 언제나 직접적일 필요는 없 다. 언어의 어떤 정의와 넓게 정의된 문제점들의 결합은, 그 결합의 귀결이 전적으로 외부적인 이유에서 가치가 없다거나 불가능한 것으

    로 거부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수용될 수 없 을지 모른다. 예를 들 어 이러한 결과는 인접한 어느 한 분야의 방법 론을 훼손하거나 상황에 영향을 줄지도 모른댜 언어학은 심리적 메커니즘이라는 신념과 결합 될 때 공시언어학의 도입은 정말로 그러한 수용할 수 없는 결과를 초 래했다. 이러한 결과는 비이성적이거나 부정확하거나 혹은 모순적인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 아니라 〈언어학자의 관심 〉 영역으로부터 이론 언어학을 제거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소쉬르에게는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이 결과들은 언어학이 심리학으로 변형 됨을 암시했고 언어학의 〈학문적 시도로서의 자율성 〉을 파괴했다. 소 쉬르가 언어를 재정의할 가능성뿐만 아니라 그렇게 할 필요성을 주장 한 것은 인지적 결과는 물론 바로 이러한 사회적 결과 때문이었다 . 신문법학자들이 언어를 정의하고 문제점들을 선택한 것을 볼 때 , 신 문법학파의 언어 이론의 목표 는 지속적이고 보편적인 생리적 • 심리적 법칙에 의해서 언어 변화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 이런 이론적 선입관은 언어의 심리적 구조가 변화를 설명하는 데 이용될 수 있는 한에서만, 신문법학자들에게 홍미가 있었다는 것을 뜻했다(예를 들면, 이론은 교 착에 의한 새 단어 형성이나, 유추적 형성의 메커니즘 또는 널리 알려 진 어원론의 과정과 같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전통적인 문법 범주를 의식 속에 있는 언어 조직과 조화시키려는 시도까지도 언어 변형을 이해하는 보조물로서 생각되었다. 언어 역사와 언어 형태의 형성 및 발달을 설명해 주는 심리적 요소 에 대한 배타적 관심은 순수심리학에로까지 이전되었다. 이 점에서 심 리학자 빌헬름 분트 Wi lh ehn Wund t는 그와 대 립 했던 헤르만 파울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의식 속에서 언어 조직을 유지하면서, 문법을 습 관적, 규칙적으로 사용하고 다른 화자를 일상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에는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우선적으로 새로운 형태를 만들거나 기존 형태의 변형을 유도했던 심리적 과정을 연구했다(분트

    와 파울 간의 의견 차이는 언어 연구에서 개인심리학에 대립되는 집 단심리학의 중 요성에 관한 것이었다). 세쉐이에 는 그 이전의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론언어학은 언어심리학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지만 그는 분트가 변화와 진화에 지나치게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 에 정상적인 언어 사용과 언어 조직에는 충분히 주의를 쏟지 않고 있 다고 비난했댜 분트 는 인 간 의 행위가 언어를 창조하거나 언어를 수정 보완하기 위하 여 개입되 는 현상을 연 구 한댜 그는 완성된 창조나 수정이 습관적이 되어 우리의 언어 성향과 통합 되는 순간부터는 이러한 현상에 관해서 관심을 갖지 않았댜 그러나 우리의 가장 복잡한 사고가 자발적이고 자율적 표현 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바로 이러한 습관이나 언어 성향 때문이다. 이것 이 유일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론언어학의 주요 대상이다 .69)

    69) Sechehay e, Prog ram me, p. 23.

    세쉐이에는 분트가 언어 진화의 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여서 언어심 리의 중심적 문제를 공식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 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언어 습관과 성향을 연구함으로써만(즉, 비역 사적 언어학의 탐구로써만) 언어 기능과 조직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며 이런 것들은 언어심리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문제들이었다. 세쉐이에는 분트는 물론 신문법학자들을 따라서, 언어는 의식 속에 조직화된 체계를 형성했다고 가정했지만, 그 이전의 학자들이 언어의 조직을 문제가 안 되는 당연한 것으로 간주한 반면 세쉐이에는 언어 가 어떻게 조직되는가에 대한 설명이 언어 이론의 주요 목표가 되어 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이(음성과 관념의 표현) 체계는 신경조직에 의해 획득된 기질

    에 의해서가 아니고는 각 개인에게 는 존재하지 않 는 다. 그 것 은 일반적으 로 그의 심리 • 물리적 생명의 불가결한 부분이며 하나의 현상으로서 - 획득한 기질과 구체적 표상의_생명을 지배하는 일반 원리에 의해서 궁극적으로 설명될 수는 없는가? 일반적으로 언어 규칙을 문법이라고 부 르기 때문에, 한 낱말의 구성적 담화를 구별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사전 편찬과 통사론을 거쳐 , 파악하기 힘든 문체의 뉘앙스까지 , 주어진 순간에 개인이나 집단의 습득된 언어를 규제하는 모든 법칙에, 습관, 기질, 사고 의 규칙적 연상에 기초한 모든 것에, 문법을 적용함으로써 이 말의 의미 를 확장할 수 있다 . 문법, 문법의 기원, 법칙, 기능 등에 대한 심리 • 물리 적 근거를 찾을 때 제기되는 문제를 〈문법적 문제 〉 로 부 를 수 있다 .70)

    70) Sechehaye , Prog ram me, pp. 23-24.

    세쉐이에의 언어 정의는 그에 앞선 학자들과 같았기 때문에, 언어학 의 이론적 과제로서 그가 공식화했던 〈문법적 문제〉는 신문법학자들 의 공식과 유사했다. 세쉐이에는 신문법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심리 • 물리적 조직과 언어 체계의 관계를 밝히고 싶어했다 .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세쉐이에는 언어학자는 언어 변화와 발달 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언어의 정적인 면과 일상의 기능과 조직에 대 해서도 심리 • 물리적 설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언어적 정 태에 대한 심리 • 물리적 설명이 필요하다고 한 것은 무엇을 뜻했는 가? 언어의 기능과 조직에 대한 이론은 정확히 무엇을 수반하게 되는 가? 역사언어학에서 심리학과 생리학의 역할은 어느 정도 일치했다(적어 도 이론상으로는 그러했다. 왜냐 하면 실제에 있어서 그 역할은 훨씬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 정태언어학에서의 그 역할은 명확히 할 필요가 있었댜 신문법학자들과 그들의 직속 후계자들은 언어 변화에 관여하

    는 힘들을 분리하고 기술하기 위해서 심리학과 생리학 지식을 이용해 야 한다고 주장했댜 하나의 소리가 다른 소리로 변화되었거나 어떤 굴절접사가 없어졌을 때, 언어학자들은 이 사례들의 심리학적 원인을 찾아야 했댜 세쉐이에는 언어를 심리 처골리적 메커니즘으로 정의했기 때문에 동일한 설명 원리를 정태언어학에까지 확대시켰다. 문법적 정 태는 〈 의심할 바 없이 그것이 실현되는 유기체의 심리적 상태를 반영〉 하며 따라서 정태언어학은 인간의 사고 패턴과 인간의 심리적, 생리적 특성이 어떻게 언어의 문법적 조직을 결정하는가를 설명해야 한다 . 7 1) 예를 들면 정태형태론은 〈 조음적 성격을 가진 기호를 사용하는 사고 의 순서 및 형태에 대응하는 순서 및 형태룰 가진 어떤 것을 구성하 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72) 라는 질문에 답해야만 했다. 마찬가지로 음운론은 어떻게 담화기관의 심리학적 성향과 생리학적 구조가 한 언 어의 음성의 체계를 결정하는지를 설명해야만 한다.

    71) 같은 책, p. 107. 72) 같은 책 , p. 142.

    그리하여 언어를 심리 • 물리적 행위로서 정의하는 것은 언어의 정 태적 조직 그 자체가 언어학적이 아닌 심리학적 과정의 반영 혹은 표 출로서 연구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분트는 언어를 설명하는 이 러한 〈 심리학적 〉 방법을 극단까지 몰고 갔는데, 그 이유는 그가 여러 언어들이 관념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는 실제의 언어 수단보다는 사 람의 심리적 구조에 주어지는, 한 언어가 표현해야 하는 관념들의 다 양한 유형과 형태들에 더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 세쉐이에는 언어학 자는 관념과 사고방식을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 형태와 는 독립된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믿었다 . 따라서 관념이 기호로 구 현되는 방법을 검토함으로써만 정태언어학의 과제를 이행할 수 있을 것이댜

    그러므로 분트는 가치를 나타내는 기호가 아니라 가치에만 관심이 있 다는 것을 알 수 있댜 그는 문법 범주를 그것을 전달하는 기호의 본질과 는 별도로 심리학적이며 논리적인 존재로서 〈추상적으로〉 연구할 수 있 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문법적 문제, 죽 우리 용어에 의하면 차라리 형태 론적 문제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관념과 관계의 추상적 체계를 물질적으 로, 〈구체적으로〉 조직화하느냐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의 중요성 은 표현 수단과 표현되는 사물이 서로를 필요로 하며 절대적인 유대 관 계가 있다는 사실에 있다. 73)

    73) 같은 책, Prog ram me, p. 34.

    그러나 언어를 구체적 기호 체계로서 연구할 것을 이렇게 요구하는 것은 세쉐이에가 언어 상태에 대한 순수한 언어학적 연구가 가능한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았다. 기호와 그것이 조직되는 방 법은 단지 인간의 지성이 다소간에 성공적으로 구현된 것으로서만 생 각되진 않았지만, 그것이 표현하는 사고방식과 분리되어 연구될 수는 없었다. 세쉐이에의 목표는 기호 체계로서의 언어가 어떻게 관념과 논 리적 • 정서적 사고 범주 등을 반영하는가를 발견해 내는 것이었다. 이 어려움은 기호와 관념, 그리고 언어와 사고 사이에 완전한 동일성이 존재한다는 세쉐이에의 주장에서 온 것이었다. 이것은 관념을 그 언어 적 구현과 분리해서 확인할 수 없고 그 역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함축 한다. 그러나 언어의 심리 • 물리적 정의를 고려하면 어떻게 사고방식 과 관련 없이 언어 기호 체계를 기술할 수 있으며, 언어와 관념이 연 대적이고 동일한 것이라면, 어떻게 관념이 언어에 반영되는지를 연구 할 수 있는지가 전혀 명확하지 않았다. 세쉐이에는 언어학자는 세쉐이 에 자신이 별개의 존재임을 부인했던 것들의 관계를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세쉐이에는 언어 조직의 연구는 언어 기호들간의 관계와 배열을 기

    술하는 것이어야 한다 고 주 장하기에 이 르 렀댜 그 러나 언어는 상태가 아니라 활동이며, 언어학 적 현상이 아니라 심리학적 현상으로 규정함 으로써, 공시태 연구 를 위한 순수한 언어학적 프로그램을 공식화하지 못했다 그가 언어와 사고, 즉 〈표현되는 것과 그것을 표현하는 행위 〉 의 절대적 동일성을 주장했을 때도, 이러한 동일성으로부터 어떠한 결 과를 끌어 내기를 중단했으며, 정태언어학의 과제는 (심리학적) 관념 과 (언어학적) 기호들의 관계를 고찰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계속했다 .74 )

    74) 같은 책 , p. 120.

    세쉐이에 씨는 분트가 문법적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다고 정당하게 비 난한 후에도 자신도 만족스러운 공식화에 도달하지 못했다. 만족스러운 관념은 문 법 적 문제 를 그 자체와 모든 다른 심리적 • 논리적 행위로부터 그 것을 구 별 짓 는 모든 것 에서 제 기 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 저자가 사고 와 사고의 형태 간의 비합리적 장벽처럼 생각되는 것을 파괴하려고 애쓰 면 애쓸 수 록 표현 영역을 정착시키고 그 법칙들을 일반적인 우리의 심리 학과 공 유하고 있 는 것 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언어 현상에 독특하고 절대적으 로 특이한 것의 견지에서 생각하려는 그 자신의 목표로부터는 그만큼 더 멀어지는 듯하다 . 75)

    75) Rudolf Eng le r, Theorie et criti qu e d'un princ i ple Saussurie n : l'arb it rai r e du sig n e (Geneva: lmp rim eri es Pop ul ai res , 1962), p. 55.

    소쉬르에 의하면, 세쉐이에는 신문법학자들로부터 물려받은 언어에 대한 정의가 그롤 언어학적 문제보다는 심리학적 문제로 이끌었기 때 문에 언어 조직에 대한 언어학적 기술이라는 목표를 이룰 수가 없었 댜 언어가 심리 • 물리적 활 동으로 밝혀진 이상, 정태언어학, 또는 적 어도 그 이론적 설명은 심리학의 한 전문 분야인 것처럼 생각되었 다 .7 6)

    언어가 심리 • 물리적 활동으로 규정되는 한, 공시언어학의 첫째 과 제는 (하나의 간단한 소리일 수도 있고 전체 담화로서 복잡할 수도 있는) 언어 형태와 그것들이 표현하는 심리적 • 생리적 조건들의 관계 룰 조사하는 것이다. 언어 요소들간의 관계(한 언어의 규칙들)는 의식 의 법칙들과 따로 떨어져서 구성되는 것이 아니고, 언어 조직에 대한 독립적인 논의를 이끌 수 있는 기준은 심리학적 연상 법칙 이외에 다 른 기준이 없었다. 실행에 있어서, 언어의 심리 • 물리적 정의를 받아 들였던 세쉐이에와 다른 언어학자들 및 심리학자들은 전통적인 문법 범주를 참조했지만 이 실행은 이론적으로 정당화되지 못했다. 언어학 자들은 모든 언어 형태를 이 형태가 반영하는 논리적 혹은 정서적 사 고의 패턴과 관련지었다. 정태언어학의 주요 관심사는 〈추상적〉 관념 으로부터 〈구체적〉 담화, 개인의 담화 행위로 가는 과정이어야 했다. 게다가 정태언어학은 사건이 아니라 상태를 연구해야 한다는 사실에 도 불구하고 언어가 일차적으로 활동으로서 정의되는 한, 언어의 조직

    76) 언어에 대한 심리 • 물리적 정의가 도입된 후에 이러한 언어학의 심리학 속의 용 해 역시 역사언어학에 영향을 주었다는 데 반대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정 의가 우세했던 4 반 세기가 지난 후에, 역사언어학은 심리학과 더 이상 결합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상황을 보다 자세히 검토해 보면 이러한 면에서 정태언어학과 역사언어학이 다르다는 것이 곧 분명해진다. 역사언어학의 주요 목표는 여러 종류 의 언어 변화들을 기술하고 밝혀 내는 것이다. 19 세기 동안 구체적 언어 변화에 대한 실제 연대기적 기록이 대부분의 연구 목표였다. 이 변화들에 대한 설명과 이 변화가 왜 어떻게 일어났는가에 대한 이론적 설명은 소홀히 취급되었다. 심리 적 혹은 생리적 과정과 특정한 언어 변화 간의 관계는 이 변화들을 기술하고 여 러 언어 형태들을 비교하고 연대적으로 정리하여 유형에 따라 분류하고 체계화한 후에라야 연구될 수 있었다. 이러한 거대한 역사적 과제 및 신문법학자들에 있어 서의 이론의 이차적 중요성으로 인해서, 언어 변화에 대한 심리적, 물리적 설명의 필요성은 세기가 바뀔 때까지 유의되지 않았다. 정태언어학은 따를 전통도 연구 모델도 없었기 때문에 다른 상황이었다. 그러한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연구 중에 있는 대상에 대한 정의에 의존하여 이 정의가 제시하는 관심사들을 연구하 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을 일련의 심리적이며 생리적인 활동_관념을 단어로 동시적으로 전환한 데 관련된 과정 ___ 으로 연구해야 했다. 다시 말해서, 연구의 각 단계마다 심리학과 생리학, 비언어적인 외적 원리와 과정을 참고해 야 할 필요성이 촌재하는 것 같았다 . 소쉬르는 언어가 언어학 이외의 다른 학문에서도 연구될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고, 다른 광범위한 분야(예를 들면, 사회심리학을 둘 수 있다 . 기호학, 죽 기호의 과학이 언어학의 주요 관련 학문이었 지만)에 언어학을 포함시키는 것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소쉬르 는 만약 언어를 분리될 수 있는 현상으로서 이해한다면, 언어에만 독 특한 성질들에 중점을 두면서 순수히 언어학적으로 그것을 정의할 필 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언어 조직은 어떤 다론 종류의 과정을 반영한 것으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를 하나의 현상으로 따로 연구해야 한다 . 그리하여 언어학자는 언어 형태와 어떤 심리적 범주(예를 들어, 사고) 의 관계에 대해서 묻지 말고, 언어 형태 그 자체와 이 형태들의 조직 방법과 원리들의 관계를 연구해야 한다. 어떤 관점에서 그 문제를 다루든, 어느 곳에서도 언어학의 완전한 대상 은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으며 어디에서나 이러한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 댜 혹은 각 문제에 대해 하나의 측면에만 전념하면, 앞에서 언급한 이중 성을 보지 못할 위험이 있다. 혹은 만약 언어 활동을 동시에 여러 면에서 연구한다면, 언어학의 대상은 서로 전혀 관련이 없는 잡다한 사항들의 혼 란한 더미로 보이게 된다. 이런 식으로 나아갈 때는 바로 언어학과는 분 명히 구별되는 여러 과학들-심리학, 인류학, 규범 문법, 문헌학 둥 ―에게 문을 열어 주게 되는 것인데, 언어학의 방법이 불완전함으로 해서 이들이 언어 활동을 그들의 대상 중의 하나로서 주장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이 모든 어려움에 대해 단 한 가지 해결책이 있을 뿐이다.

    〈우선 처음부터 언어(랑 그)의 영역에서 출발해야 하며, 언어 를 언어 활동 l a, 1 ga g e 의 다른 모든 표상에 대한 규범으 로 이용해야 한다.〉77)

    77) CCL, P. 9. 강조 부분은 저 자의 것 입

    한 연구자가 채택한 관점이 연구 중에 있는 대상을 만들어 내기 때 문에, 언어롤 바언어학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것은 언어의 독특한 본질 을 감추고 언어에 특유한 성격을 고려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것이 되 었다 그러한 비언어학적 관점은 심리학, 생리학, 문헌학에 의존함으로 써 그 분야의 자율성도 파괴했다. 궁극적으로 공시언어학과 관련된 소 쉬르의 모든 개념은 이러한 언어의 공시적 분석의 자율성과 관련해서 이해됐다. 다시 말해서, 언어의 정태적 조직을 포함하기 위하여 언어학의 문제 점들을 확장하는 것, 그 자체가 언어에 대한 정의를 바꿀 필요성을 요 구하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변화로 이끌었다. 왜냐 하면 옛 정의와 새 로운 문제점들의 결합은 이론언어학을 심리학적 연구로 바꿨고, 따라 서 언어의 공시적 연구를 언어학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 었댜 언어에 대한 새로운 정의의 공식화 를 유도한 관심은 인접 과학 들과 언어학의 새 분야의 관련성과 관계가 있었다. 관념체계 안에 실 제적 내부 모순이나 긴장의 문제는 없었다 . 정태언어학을 심리학에서 독립시킬 필요성은 소쉬르 언어 이론의 많은 부분을 지탱하고 있다. 소쉬르는 언어 그 자체가 하나의 현상으 로서 연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언어에서 심리학적 • 생리학적으 로 얽혀 있는 모든 것들을 제거하려 했다. 공시언어학의 자율성에 대 한 소쉬르의 관심을 평가하기 위해서 는 『 강의 』 에 소개된 중요한 몇몇 개념들을 간단히 기술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1) 언어 기호에 대한 소쉬르의 견해는 분명히 심리적 • 생리적 관계

    에서 언어학적 대상 을 벗어나게 하기 위한 시 도 임을 예시하고 있다. 신문법학자 들 은 기호 를 관념 을 표현하 는 〈 물질적 〉 (청각적, 글 을 쓰 는 경우에는 시각적) 요소로 정의했었댜 이러한 기호에 대한 물질적 견 해에 관해서 세쉐이에가 의문을 던졌다. 세쉐이에는 심리 • 물리적 병 행론의 가설에 따라서 하나의 소리가 아니라 심리적 〈청각영상〉이 기 호의 성격을 규정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수정론과 더불어 기호와 관 념은 동일하며 분리될 수 없다는 반복된 주장에도 불구하고 세쉐이에 는 자주 기호 개념을 청각영상이 나타내는 개념 및 관념과 대립된 것 으로서의 청각영상을 가리키는 데에 사용했다. 그의 정태언어학에 대 한 구상_관념 또는 사고와 언어의 관계에 관한 연구― - —은 관념 과 기호의 별개성을 인정하는 데 의존했고, 계속해서 연구자로 하여금 언어를 넘어서 참 조하라고 말했다. 만약 언어 기호가 비언어적인 사 고, 관념 또는 논리적 • 정서적 범주를 가리키는 것으로만 해석될 수 있다면, 언어 연구는 자율적일 수 없을 것이다. 모든 기호는 별개의 실재로서 연구되어야 했으며 그것이 나타내는 비기호적 실체와 관련 시켜야 했다. 기호에 대한 소쉬르의 정의는 외부에 의존할 필요성을 제거했다. 기 호는 심리적이거나, 논리적 혹은 정서적 과정과는 더 이상 관계가 없 었고, 기호끼리 서로 관련이 되었다. 기호는 더 이상 사고의 〈형태〉가 아니라 관념과 개념 그 자체였으며, 동시에 분리될 수 없는 기표이기 도 했댜 기 표 s ignifia n t와 기 의 s ignifi e 의 분리 할 수 없는 결합이 라는 기호에 대한 소쉬르의 유명한 정의는 외부에 의존할 모든 필요성을 제거했댜 언어학자는 기호를 연구할 때 언어의 전부, 그 〈의미〉와 〈형식〉을 둘 다 연구하고 있었다. 더 이상 심리적 과정(예를 들면, 개 념의 형성)이나 생리적 운동, 발성 또는 청각영상의 형성까지도 관련 지을 필요는 없었다. 언어학은 기호들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것이었고, 각 기호는 다른 기호들과의 관계에 의해서 내부적으로 정의될 수 있

    었댜 기호를 기표와 기의의 분해할 수 없는 결합으로 정의함으로써 소쉬르는 특히 언어의 언어학적안 양상을 심리적 • 생리적 결정 요소 로부터 분리할 수 있었다. 왜냐 하면 그는 기호가 특히 언어적인 반 면, 그와 같이 개념은 심리적이었고 소리는 심리적 및 생리적이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언어는 또한 한 장의 종이에 비유될 수 있다. 사고는 소리의 앞면이고, 소리는 뒷면이다. 앞면을 자르면 동시에 뒷면도 잘라진다. 마찬가지로 언 어에서도, 사고에서 소리를 분리시킬 수도 없고 , 소리에서 사고를 분리시 킬 수도 없다. 분리는 추상을 통해서만 가능한데 그 결과는 순전한 심리 학이 되거나 순전한 음운론이 될 것이다. 78)

    78) 같은 책, P. 113.

    2) 소쉬르가 언어 기호를 기표와 기의의 결합으로 기술한 것은 언 어 정의에서 비언어적 사항들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만은 아니었다. 언 어 기호에 대한 개념은 소쉬르가 언어의 자의적인 특성을 강조함으로 써 외적 관계와 더 멀어졌다. 소쉬르는 윌리엄 드와이트 휘트니 W illiam Dw igh t Whitn e y를 따라서 기 표와 기 의 사이 에 는 본질적 으 로 〈합리적〉 또는 〈동기가 부여된〉 연계는 없다고 주장했다. 기표를 기의에 결합시키는 관계는 자의적이다. 나는 기호를 기표와 기 의의 연합에서 비롯되는 전체라는 의미로 사용하기 때문에 간단히 〈언어 기호는 자의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79)

    79) 같은 책, P. 67.

    이러한 단언은 개념과 청각영상의 관계를 의미 있는 언어 문제로 다룰 필요성을 제거했댜 그러나 언어의 자의성에 대한 소쉬르의 개념

    은 더 확대되었다. 전통적인 자의성의 개념을 넘어서, 소쉬르는 하나 의 실체로서의 기호와 그 기호가 가리키는 사물의 관계는 그 자체가 자의적이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해서 언어와 외부 세계의 관계도 약화 되었댜 언어는 명칭, 죽 사물에 붙어 있는 이름들의 연속으로 간주되 어서는 안 되었으며, 같은 이유로, 어떻게 언어가 세계를 나타내는가 하는 문제는 언어적 관심 영역으로부터 제거되었다. 사고에 대한 언어의 독특한 역할은 관념 표현을 위한 재료로서의 음성 적 수단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사고와 소리 사이의 연계 역할을 하 는 것인데 , 이로 인해 사고와 소리의 결합은 필연적으로 단위의 상호 경 계 구분으로 귀결된다 . 원래 혼돈 상태에 있는 사고는 분해됨에 따라 명 확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고의 물질화도 없고 소리의 정신화도 없 댜 〈 사고-소리 〉 가 구분을 내포하며, 언어가 형태 없는 두 집합체 사이에 서 구성되면서 그 단위를 만들어 낸다는 신비로운 사실만이 있다 .80)

    80) 같은 책, P. 112.

    앙드레 마르티네 Andre M arti ne t는 언어의 자의성과 그것이 언어학 의 자율성을 수립하는 데 있어서의 역할을 보다 근본적으로 이해하는 데 주목하였다. 일정한 기표와 기의의 자의적 결합은 언어의 자립성의 한 면일 뿐이며 또 다른 면은 개념의 선택 및 경계와 관계된다. 사실상, 언어의 비언어적 실체로부터의 독립은 개념의 선택에서뿐만 아니라, 실체, 그 개념들 및 그 대립으로 불리는 것들을 참조하면서도 언어가 그 나름대로 실체를 해 석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8 1)

    81) Andre Ma rtine t, Arbit raire ling uisti q u e et double arti[c ulati on , Cahie r s

    3) 언어와 외부 세계 —— 언어 기호가 가리키는 실체는 물론 언어 를 말하는 사람과 그들의 심리적, 생리적 성격을 포함하여 __: 의 관 련성을 제거함으로써 소쉬르는 기호들 사이의 관계만이 언어 연구에 유효한 상황을 만들었다 . 각 개별적 기호는 다른 기호들과의 관계에 의해서만이 정의될 수 있는데, 공유하는 유사점과 그들을 분리시키는 차이에 의해서 정의될 수 있었다 . 이것은 더 이상 어떤 비언어적인 심 리 과정과의 관계에서 설명될 수 없는 기의 s ignifi e 에 해당되는 경우 였을 뿐 아니라, 청각영상의 형태로 특정한 물리적 성격을 가진 구체 적인 소리에 의해서나 발음기관의 생리적 운동에 의해서도 규정될 수 없는 기표 s ignifi an t에도 해당되었댜 다시 말해서 순수하게 언어학적 으로만 공시언어학의 이론적 바탕을 공식화하려 했던 소쉬르의 시도 는 곧바로 구조주의자의 가치 개념, 즉 다른 요소들을 구별짓는 차이 에 의해서 체계의 요소들을 정의하도록 했다. 그것은 마치 언어학자들 에 대해서 소리, 의미, 사고, 심리적 • 생리적 과정 등을 논할 권리를 부정한 후에, 그 형태와 의미가 체계 내에 있는 다른 요소들과 대립에 의해서 소극적으로만 결정될 수 있는 공허한 암호들만 남겨 놓은 것 같았댜 소쉬르의 구조주의를 특징지었던 것은 언어 조직에 대한 바로 이 순전히 형식적이고도 내적인 접근 방법이었다. 언어 체계에 대한 소쉬르의 개념은 그에 앞선 학자들의 체계와는 철저하게 달랐다. 신문법학자들은 언어는 의식 속에서 조직되고 체계 를 형성한다고 믿었지만, 관념과 소리를 심리학과 생리학, 죽 이들 자 체가 체계의 일부를 형성하지 못했던 현상에 의존하여 정의하는 한, 그들은 각 요소롤 체계 자체에 부차적인 것으로 다룰 필요가 없었다. 신문법학자들에게는 모든 언어 형태는 의적으로 정의될 수 있었고, 이 형태들을 하나의 구조로 조직하는 것은 부차적인 별개의 현상이었다. 소쉬르는 외적 관계의 가능성을 부정함으로써 독립적인 언어 기호의

    F. de Saussure , vol. 15 (19 57), pp. 105-116.

    개념을 제거했으며,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보다 구조의 우선성 을수립했다 여기까지 예기한 모든 것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언어에는 차이만이 존재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일반적으로 차이는 그 사이에 차이가 설정되는 실재적인 사항들을 내포하지만, 언어에서는 <실재적 인 사항이 없이> 차 이만이 존재할 뿐이다 . 우리가 개념을 취하든 혹은 청각영상을 취하든, 언어는 언어 체계 이전에 존재하는 개념이나 소리가 아니라, 단지 체계로 부터 나온 개념적 차이와 소리의 차이만을 갖고 있다. 하나의 기호가 갖 고 있는 관념이나 소리의 실체는 그것을 둘러싼 다른 기호들보다 덜 중 요하다. 이에 대한 증거는 한 사항의 가치는 단지 인접한 다른 사항이 변 했다는 이유만으로도 그 의미나 소리에 영향을 주지 않고서도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댜 82)

    82) CGL, P. 120.

    소쉬르의 언어 정의의 바탕을 형성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언어 체 계의 개념이었다. 〈 언어는 상호 의존적 사항의 체계이며, 그 체계 안 에서 각 사항의 가치는 다른 것들이 동시에 존재함에서 비롯된다.〉 83 )

    83) 같은 책, P. 114.

    4) 소쉬르는 랑그를 차별적 가치 체계로 규정함으로써 언어학의 대 상을 자율적인 실체로 확립했고 공시언어학을 독립 학문으로서 설정 했다. 그러나 이러한 언어 정의는 전통적인 언어 정의에서 크게 벗어 났기 때문에 상당 부분의 기존의 언어 지식이 언어학의 범위에서 제 의된 것처럼 보였댜 그러나 소쉬르는 이 점에서는 훨씬 덜 급진적이 어서 전통적인 역사비교언어학은 대체적으로 그대로 유지했다. 그러나 그 대상은 기호의 내재적 체계인 랑그가 아니었고 실제 개인의 담화

    행위인 파롤이었다 . 발화는…… 의지적이고 지적인 개인 행위이다. 그 행위 안에서 우리는 (1) 화자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 부호의 조합과 , (2) 화자가 이러한 조합을 표출하도록 해 주는 심리 • 물리적 메커니즘을 구별해야 한다 .84)

    84) 같은 책, p. 14.

    다시 말해서, 소쉬르가 언어의 역사로 관심을 돌릴 때에는 신문법학 파와 그 지지자들이 받아들였던 기존의 정의로 되돌아왔다. 랑그와 파롤의 차이는 사회적 관점과 개인적 관점의 차이라고 흔히 들 말한다. 『강의』가 랑그는 하나의 사회적 제도이지만, 파롤은 언어 의 개별적 사용이라고 주장하면서 언어 연구의 두 대상 사이의 차이 에 있어 이런 측면을 강조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구분은 독립적 • 추상적인 가치 체계로서의 랑그와, 외적이며 비언어적 자질들과 관련 해서 설명할 필요가 있는 심리 활동으로서의 파롤의 기본적 차이에 비하면 부차적으로 보인다. 소쉬르의 관념체계에서 사회적/개인적 이 분법의 부차적 성격은 소쉬르가 두 번째 『강의』 (1908-1909) 에서도 여 전히 랑그를 개인적 속성(개인의 마음 속에 존재하고 정신적 실체만 울 가진 체계)으로, 파롤을 사회적인 사건(개인들간의 상호작용이 개 입되기 때문에)으로 간주했다는 사실에 반영되어 있다 . 85 ) 이러한 속성 의 전도에도 불구하고, 랑그와 파롤의 개념은 둘 다 소쉬르의 토론에 명백히 나와 있으며, 랑그와 파롤의 구분을 자극한 것은 사회적인 것 과 개인적인 것의 구분이 아닌 어떤 다른 문제임을 암시했다. 내가 논

    8.5) 이 두 영역 중 파롤의 영역은 더 사회적이고 랑그는 더 완전히 개인적이다 . 랑 그는 개인 소유이기 때문에 랑그에 속하는, 즉 정신에 들어가는 모든 것은 개인 적이다.

    증하려 했던 것처럼, 이 문제는 역사비교언어학의 업적과 전통적인 연 구 방식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언어학의 자율성을 수립할 수 있도록 언어학의 대상을 재정의하는 것과 관련된 것이었다. 소쉬르의 공시언어학의 개념적 틀을 이렇게 지극히 간단하게 개관 하는 데도 소쉬르에게 있어서의 언어학 자율성 문제의 중심성과 돌출 성이 드러난다. 소쉬르는 언어의 청각적 성격과 지시적 성격으로부터 추출한 하나의 언어 기호를 규정함에 있어, 그리고 자의성에 대한 근 본적인 이해를 강조하고, 언어 체계를 상호 결정적이지만 개별적으로 는 규정할 수 없는 가치들의 구조로 정의함에 있어, 언어에서 모든 외 부적, 비언어적 사항들을 제거했고, 심리학이나 생리학 또는 어떤 다 른 비언어학적 학문에도 의존할 수 없는 공시언어학 체계를 정립했다. 소쉬르로 하여금 랑그와 파롤의 이분법을 공식화하고 랑그를 공시적 연구의 진정한 대상으로 채택하게 했던 동기는 바로 이러한 자율성에 대한 관심이었다. 일단 공시적 관심이 중심이 된 이상, 전통적인 언어 의 정의를 바꿔야만 하는 내부적 긴장이나 모순, 준논리적 문제들은 없었지만, 독립적이고 자족적인 학문으로서의 언어학의 정체성을 실증 하는 데 대한 그의 관심이 새로운 정의를 선택하도록 이끈 한편, 그의 구성주의자 및 상대주의적 철학 관념들이 새로운 정의를 가능하게 하 고 철학적으로도 수용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왜 공시언어학의 자율성이 소쉬르에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였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인지적 자율성을 이렇게 주장한 데 대한 제도적인 함축성 의 견지에서, 우리는 다음 장에서 주네브 학파의 발달과 활동에 관계 된 제도적 요인들을 분석함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 한다. 소쉬르의 관념체계와 그 근원에 대한 검토는 인지 발달의 연속과 급진적인 변화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거듭 밝혀 주었다. 우리는 내부적 갈등과 보다 일반적인 여론 풍토의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시 도에서 소쉬르가 어떻게 급진적인 철학적 단절에 의존했으며, 과학적

    사실들과 그 개념들은 과학자 , 과학자가 채택한 관점 , 관심 및 문제점 들에 의해 형성된 구성물이라는 가설을 바탕으로 하여 어떻게 새로운 과학철학을 수립했는가 를 보았다 . 그 자체가 불연속적인 발달이었던 이러한 철학적 가설의 변화는 소 쉬르 관념체계 전반에 걸쳐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 영향의 모두 가 더 큰 불연속의 방향을 향한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새 로운 철학적 가설이 공시태/통시태의 이분법을 이끌어 낸 어떤 관념 들을 구성했음을 보았다. 이 구분은 신문법학파의 틀에는 빠졌지만, 그들의 이론적 • 방법론적 개념 속에 내포되어 있었고 이런 의미에서 그 공식화는 발달의 연속과 불연속 양쪽에 모두 의존했다. 궁극적으로, 소쉬르의 공시 구조언어학은 급진적인 새로운 발전이었 지만, 그 새로움이 신문법학파와 소쉬르 간의 여러 중요한 계속성을 흐리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많은 점에서 소쉬르의 혁명은 신문법학 파의 난문제들과 전에는 암시적이었거나 중요하지 않은 듯 이 보였던 관념들의 구성에 해답을 주었다. 소쉬르의 혁명 가운데 가장 급진적이 라 할 수 있는 구조주의 철학은 적어도 일부는 신문법학파 언어학 내 부의 근본적인 문제로부터 나왔댜 그 불연속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접근 방법은 소쉬르로 하여금 신문법학파 관념체계의 실질적 부분, 죽 그들의 역사언어학 이론과 방법론을 그대로 유지토록 했다. 다음 장에서는 언어학의 대변혁적 방향 전환의 한가운데서 소쉬르와 그의 제자들이 그러한 연속성을 왜 고집했는가에 대한 물음에 시안적 인 해답을 찾아보려 한다.

    제 8 장 주변 학파들 소쉬르가 공시언어학 s y nchro ni c ling uist i cs 연구를 공식화함으로써 언어학자들의 실질적 관심은 완전히 방향을 달리하게 되었다. 그것은 철학적, 이론적, 방법론적 성격의 심원한 변화도 초래했다 . 소쉬르는 언어 사실에 대해서 새롭고 상대주의적인 〈구성주의자 cons tru c ti­ v i s t 〉 의 개념을 도입했댜 그는 언어를 재정의했으며, 언어를 엄격하게 언어적인 공시태 연구에 적합한 대상으로 만들었다. 그는 언어 상태에 대하여 인과론적도 아니고 역사적도 아닌, 새로운 형태의 구조적 설명 을 제시했다. 소쉬르의 혁명은 광범위하고 급진적이어서 언어학 관념 체계의 중요한 양상들에 영향을 끼쳤다. 동시에 소쉬르의 언어학은 19 세기 후반의 역사언어학과 어느 정도 의 지속성을 유지했다. 어느 면에서 공시언어학은 신문법학파 이론에 포함되었던 관념들이 자연스럽게 논리적으로 확장된 것이었다. 소쉬르 의 교체와 유추적 형성, 언어의 문법 조칙 등에 대한 신념은 신문법학 파의 신념을 정교하게 발전시킨 것이었고 공시태 관념에 대한 근거가 되었다. 그의 철학적 혁신은 급진적이긴 하지만, 신문법학파 이론, 그 리고 보다 일반적으로는, 실증주의 과학철학의 갈등과 긴장에 대한 있

    울 수 있는 반응의 하나로서 이해될 수 있다. 신문법학자 들 과 소쉬르 의 이러한 간접적인 연계 외에도 직접적으로 의견을 같이했던 포괄적 인 영역이 있었다 『일반언어학 강의 Cours de lin g u is t i qu e ge n- erale 』에 제시된 것처럼, 소쉬르의 역사언어학에 대한 원리들은 라이 프치히에서 그의 신문법학파 스승들의 견해를 충실하게 반영했다. 신 문법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소쉬르는 언어 이론에서 음 변화의 역할을 강조했으며 음 법칙의 예외없는 성격의 원칙을 수용했다. 음 변화는 낱말이 아니라 소리에 영향을 미친다. 변하는 것은 하나의 음소이다 그것은 통시적인 다른 사건들처럼 고립된 사건이지만, 문제의 음소가 들어 있는 모든 낱말을 동일한 방식으로 변질시키는 결과를 가져 오는 사건이다 . 음 변화가 절대적으로 규칙적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 에서다.I)

    1) F. de Saussure, Course of General Lin g uist i cs (New York: McGraw- H ill, 1959), p. 143( 이후로는 CGL 로 함). 7 장의 각주 16) 참조

    음 변화가 순전히 음성적이라는 신념은-그래서 모든 의미론적 이거나 또는 통사론적, 형태론적으로 결정되는 것과는 별개로-소 쉬르처럼 〈동일한 원인/동일한 결과〉의 원칙과 함께 그것을 무예외성 Ausnahmslos igk e it을 위 한 주장으로 사용했던 신문법 학자들에 게로 소급된다. 더욱이, 소쉬르는 신문법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유추를 음 변 화의 수단으로서, 언어 역사에서 변화를 규칙화하는 성향으로 간주했 다. 〈다행히도 음 변화 효과는 유추에 의해 상쇄된다. 음성적 성격이 없는 낱말의 정상적인 외면 변화는 바로 유추 때문이다.〉 2)

    2) CGL, p.16 1.

    소쉬르가 언어 변화에 대한 신문법학파 이론의 중요한 부분을 받아 들인 것도 역시 역사 비교 연구에 관한 한, 언어에 대한 전통적인 심

    리 물리적 정의를 그가 유지했음을 반영했다. 공시언어학의 대상인 랑 그에 대한 정의가 19 세기 개념들과는 달랐지만, 그가 파롤을 〈 개인의 의지적 • 지적 행위〉 및 〈심리 물리적 메커니즘〉으로 규정한 것은 대 체적으로 신문법학파 시대의 역사언어학자들이 사용했던 언어 정의를 재현한 것이었다 . 3) 파롤이 아닌 랑그의 연구는 변화의 실제 근원을 충 분히 밝힐 수 없었다 . 왜냐 하면 〈언어에 있는 통시적인 모든 것은 발화에 의해서만 통시적이며, 모든 변화의 싹이 발견되는 것은 발화에 서이기 때문이댜〉 4) 언어 변화의 역사적 연구에는 파롤과 그 메커니즘 의 연구가 포함되어야만 했다 . 따라서 소쉬르가 발전시킨 〈랑그/파롤〉 의 이분법은 언어 본질을 이론적으로 고려한 결과이며, 언어 변화에 대한 전통적 연구의 유효성과 합리성, 그 연구에서 사용된 방법과 개 념들을 보존할 수 있는 수단으로 설명될 수 있다. 소쉬르와 그의 제자 들이 공시태와 통시태의 관점(나중에는 주네브 학파와 프라그 학파의 갈등의 근인이 되었지만)을 엄격히 구분할 것을 끝까지 주장한 것도 주네브 학파의 언어 변화에 대한 19 세기 이론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시도에서 나왔을지도 모른다 .5)

    3) CGL, p. 14. 4) CGL, p. 98. 5) 예를 들어, Qu elles sont !es meth o des !es mieu x app ro p riee s a un expo s e comp le t et pra ti qu e de la gra mma ire d'une lang u e q uelcon q ue?” 에 대한 대답 을 참조. Ac tes du Premi er Cong res Inte r nati on al de Lin g uist i qu e (Leid e n: Nij ho ff s, 1928), pp. 33 국 52 .

    소쉬르의 언어 혁명의 특징을 살펴보면, 예견된 단절뿐 아니라 인지 적 연속이라는 두 가지 유형이 나타난다. 첫째는, 소쉬르 혁신의 대부 분은 19 세기 후기의 언어학을 지배했던 관념체계의 긴장과 난관에 대 한 반응으로 설명할 수 있으며, 두 번째는 소쉬르의 혁명이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사실상 그대로 받아들였던 신문법학파의 이론의 광범 위한 영역이 있었다는 점이다.

    수용된 관념과 실행에 대하여 혁신적 단절 들 과 보수적 보존을 결합 시킨 한 사회적 혹은 제도적 이유들이 있었던가? 언어학과 그 관심의 방향을 전면적으로 재조정하는 한가운데에서 소쉬르와 그의 제자들이 그들 자신의 혁명에 왜 한계를 부여했는가? 소쉬르의 관념체계와 그 이전 학자들의 관념체계들의 인지적 지속성이 어떤 역할을 했으며 어 떤 요인들이 이 연속성의 성격을 결정했는가? 이 질문들에 대답하는 것도 소쉬르가 『강의』에서 언어사상사 속에 도입했던 인지적 분기의 방향과 정도에 대한 설명을 제시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소쉬르가 도입했던 인지적 분기를 검토해 봄으로써 그의 혁신이 신 문법학파의 관념체계에 의해서 어느 정도 제약을 받았는가를 알 수 있었댜 그러나 소쉬르가 이 제약들을 감수한 것에 대한 설명은 제시 하지 못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쉬르와 그의 제자들이 작업했던 제도 적 상황을 검토해 봐야 한다. 신문법학파를 라이프치히(그리고 일반적으로는 독일 대학 제도)와 일치시키는 것에 별문제가 없는 데 반해, 소쉬르를 어느 하나의 제도 적 배경에만 국한해 놓을 수는 없댜 소쉬르를 제도적으로 연계시킨다 면 언어학이 제도화되는 세 가지 별개 방식은 물론이려니와, 세 나라, 세 대학 제도로 넓혀지게 된다 . 소쉬르는 젊은 스위스 학자로서 신문 법학파의 여러 지도적 학자들 밑에서 공부했지만, 라이프치히의 언어 학계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적은 없었다. 그가 독일을 떠나 프랑 스로 가기 전에도, 《파리 언어학회지 Memoir e s de la socie t e de Lin g uist i qu e de Par i s 》에 그의 논문들을 발표했다. 그의 r 인구어 원 시 모음체 계 에 관한 논고 Memoir e sur le sys te m e pr im i tif des voy e lles dans !es lang u es i ndo-europ eennes 」는 라이프치히에서 출판되었지만 불어로 쓰여졌다. 10 년 동안 (1880-1891) 소쉬르는 파리에서 연구하고 가르쳤다. 그는 프랑스 언어학계의 원로 미셸 브레알Mi chel Breal 대신 선임강사로

    서 고등전문학교 Ecole Pratiq u e des Haute s Etudes 에서 강의 를 했 고, 언어학회 Socie t e de L i n g u i s tiq ue 에서도 활동했는데, 거기서 그는 1882 년에 〈부총무 secreta i r e adjo i n t > 자리를 맡았고, 그 학회를 위 해서 학회지 Memo i res 를 편집했댜 소쉬르에게는 많은 학생들이 있 었는데,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후에 유명한 학자가 되었다. 소쉬르 자신이 고등전문학교의 일원임을 강조하고, 학생들이 자주-때로는 아주 열정적으로――-그의 은혜를 입은 것을 인정했음에도, 소쉬르에 게 배운 프랑스 언어학자들은 소쉬르가 『강의』에서 제시한 것과 같은 공시언어학의 지침들을 충실하게 따르지 않았다. 메이예, 그라몽 Grammont, 방드리에 Ven dry es 의 서평이 입증한 것처럼, 그들은 『강 의』의 출판을 환영하면서도 비난을 했고, 그들은 언어의 사회적 성격 을 강조하면서도 소쉬르의 관념들을 받아들이는 데는 선택적이었다 .6)

    6) Anto i n e Meill e t, F. de Saussure, Cours de ling uist iq u e ge nerale in Revie w criti qu e d'his t o i r e et de litt er atu r e, 1971, no. 4, pp.49 -51, comp te rendu of the Cours in Bulleti n de la socie t e de ling u isti q u e de Pari s, vol.2 9 , pp. 32-36; Mau rice Grammont, comp te rendu of the Cours in Revue de lang ue romanes, vol. 59 (1916-17), pp. 402-410; J. Vend ryes , Le caracte r e socia l du lang a ge et la doctr ine de F. de Saussure in Jou rnal de ps yc holog ie normale et pa th o log iqu e, vol. 18 (19 21), pp. 617-624.

    1891 년부터 그가 사망한 1913 년까지, 소쉬르는 고향인 주네브에서 가르쳤다 . 『강의 』 의 출판으로 유명해진 그의 일반언어학 강의는 그의 경력에서 후기인 1906 년에서 1911 년까지 주네브 대학에서 행해졌다. 그러나 소쉬르 이론의 기본적 윤곽은 실제 강의에서 제시된 것보다 훨씬 전에 전개되었다는 지적(로베르 고델 Robe rt Godel 이 그의 『출 전 원고 Sources manuscr it es 』에서 논한 )7) 이 있다. 그의 관념들 중 몇몇은 그가 프랑스에 체류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가고, 대부분은 1894

    7) Robert Godel, Les sources manuscrite s du cours de ling uist i qu e ge nerale de F. de Saussure(Geneva: Droz, 1969), pp. 29-34.

    년까지는 공식화되었던 것 같댜 노트롤 모아서 편집 한 『 일 반언어 학 강의 Cours de lin g u is t i qu e g enerale 』를 출판한 것은 소쉬르의 주네브 제자, 바이이 Charles Ball y와 세쉐이에 Albert Secheha y e 였댜 이 두 편집인들은 주네브에 서 가르치면서, 소쉬르의 비판가들에게 대응하고 그의 관념들을 정교 하게 완성시키는 일을 스스로 떠맡았다. 비판과 가정된 오해에(예스페 르센, 방브니스트, 피숑, 바르트부르크 등의) 맞서 『강의』의 해석을 옹 호하면서 주네브 학파의 2 세대, 로베르 고델, 앙리 프레, 앙드레 뷔르 제 등, 후에 주네브 학파의 해석적 전통을 이행하며, 『강의』의 강한 영향을 받아 자신의 연구를 추구했던 사람들을 가르쳤다. 1940 년에 그들은 〈소쉬르 학회 Soc iet e de Ferdin a nd de Saussure 〉를 조직했 다 .8) 세쉐이에에 의하면 〈주네브 학파〉라는 표현은 일찌기 소쉬르가 그의 제자들이 그에게 기념 논문집 『모음집 Melan g es 』을 봉정했을 때인 1908 년에 처음으로 쓰여졌다 .9 ) 그러나 주네브 학파가 더 널리

    8) Lin g u ist ia z : Selecte d pape rs in Eng li sh , French and Gem 函 (Cope n hag e n: Levin , 1933; pp. 109-115) 에 재수록된 오토 예스페르센 Ott o J es pe rsen 의 1916 년 Cours 에 대한 서평에 대한 응답은 Jo urnal de psy c holog ie normale et patho log iqu e, vol. 23 (19 26) 에 있는 바이 이 의 Lang u e et Parole 에서 볼 수 있다. 방브니스트 E mi le Benveni st e ( Natu re desig n elin guist iq u e Acta ling uist i az , vol. 1; 1940) 와 피숑 E. Pic h on(La ling uist iq u e en France, Jou rnal de ps yc holog ie normale st patho log iqu e, vol. 33; 1937) 의 비판에 대 해서는 바이이 (L'arb itrair, valeur et sig nifica tio n in Le fran rais modeme, Jul y 1940, pp. 3-16) 와 세쉐이에 • 바이이 • 프라이 Hen ri Frei( Pour l'arb it raire deusin ge in Acta li n gui s ti따, vol. 2, 1940-41, p. 165-168) 가 답을 해 주었다. 마찬가지로 메 이 예 Me ill e t(각주 6) 참조)와 바르트부르크 W. von Wa rtbu rg( Das Inein a ndergr ei fe n von deskr iptive r und hist o r i sc her Sp ra chwi ss enscha ft in Beri ch te iibe r die Verhandlung e n der Sachsis c hen Akademi e der Wi ss enscln ften zn zu Leip z ig . Phil - his t . Klasse, vol. 83; 1931, pp. 5-23) 의 비판에 대한 주네브 학파의 옹답은 세쉐이에의 Les troi s ling uist iq u es saussur ien nes(in Vox Romania z , vol. 5, 1940, pp. 1-48. )에서 발표되 었다.

    인정받게 된 것은 20 년대와 30 년대부터이며, 『강의』의 출판과 그것이 불러온 토론 및 논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주네브 학파 회원들과 소쉬르 간에 밀접한 연계가 있었고, 소쉬르도 자신을 주네브와 강력하게 동일시했지만, 주네브를 소쉬르와의 유일한 一―혹은 가장 우세한-연계관계로 간주하든지 또는 그의 혁신의 특성과 관련하여 특유하게 책임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만족스 럽지 못하다. 소쉬르를 가장 충실하게 따르는 사람들이 주네브에 있었 지만, 『강의』에 나타난 그의 관념체계에 영향을 준 것은 라이프치히와 파리였다. 따라서 소쉬르 관념의 기원에 관한 문제와 이를 주네브 학 파가 받아들여 유포한 문제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1 주변인으로서 소쉬르? 혁신이란 것이 그 주창자들의 사회적 또는 문화적 주변성에서 오는 기능일 수도 있다는 관념은 사회학에서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게오르그 짐멜 Georg S irnrn el 이 「이방인 The S tr an g er 」에 대한 그의 글에서 처음으로 제시했고, 1928 년에 로버트 파크 Robe rt Park 가 r 인 간의 이주와 주변인 Human Mi grat i on and the Margi na l Man 」에 대한 논문에서 재천명한 이 관념은 파크의 제자인 에베렛 스톤퀴스트 Everett V. S t one qui s t가 r 주변인 The Margi na l Man 』에서 자세히 검토하였다 .10) 주변성과 독창성의 관계를 뒷받침해 주는 개념은, 주어

    9) Albert Sechehaye , L'ecole gen evois e de ling uisti q u e gen erale, in Indog e rmanis c he Forschung en , vol. 44, pp. 217-241. 10) Georg Sim me l, The Str an g er , in Soc iolo g y of Georg Sim mel, tr. and ed. Ku rt H. Wolf f (New York: Free Press, 1950); Robert E. Park, Human Migra ti on and the Margi nal Man, in Amer i멕 1 Jou rnal of Soc iolo g y, May 1928; Everett Sto n e quist , The Margi na l Man (New York: Scri bn er, 19'5 7).

    스톤퀴스트와 파크는 또한 프레데릭 테가르트 Frede ri ck Te gg ar t의 Processes of Hi st o r y (New haven: Yale Un iv. Press, 1918) 와 Theory of Hi st o r y (New haven: Yale Un iv. Press, 1925) 에 대해서도 언급했댜

    진 문화적 틀에 느슨하게 통합된 사림 들 이 내부자 들 보다는 냉정하게 그 틀에 대한 규범과 사상을 고참할 수 있는 능력 을 갖고 있기 때문 에 전통적이며 정당화된 사고방식을 더 잘 타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어진 사고방식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이 능력은 다른 문화 세계 로부터 나온 사상들을 결합하는 주변인의 능력에 의해서 더욱 촉진 된다. 더 최근에, 사회적 또는 문화적 주변성이 혁신 능력에 영향을 미친 다는 사상은 마이클 멀캐이에 의해서 과학에 적용되었는데, 그는 과학 에서 혁신적, 전형적 변화들은 종종 한 주어진 분야의 주변에 있는 과 학자들이나, 또는 여러 연구 분야의 전문지식을 결합하는 과학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댜 Ill 이와는 달리, 과학의 주변성은 순전 히 인지적이라기보다는 사회적이며 제도적일 수도 있다. 그리하여 한 주어진 분야의 엘리트들로부터 고립되었거나 소의된 학자는 자기 학 문의 기본적 가설에 대한 의문을 던지거나 체계적으로 제기되지 않았 던 문제들에 주의를 돌리는 경향이 보다 클 수 있다 .1 2)

    11) Mich ael Mulkay, The Soc ial Process of Innovati on (London: Macmi lla n, 1972). 최근에 주변성과 혁신의 관련성은 토마스 기어린 Thomas F. G i e ry n 과 리 차드 히르쉬 Rich ard F. Hirsh (Margi na lity and Innovati on in Sc ien ce, Soc ial Stu d ie s of Scie n ce, vol. 13, 1983, pp. 87-106) 에 의해서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주변성과 혁신의 관련성이 필요로 하는 〈과학적 중요성〉과 〈인지 적 단절〉을 완전히 구분하지 못했다. 과학에서 그러한 단절적 혁신이 드물기 때 문에 그런 관련성은 통계적으로 중명될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느 사람이나 주변 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특정한 관점에서 보는 비판이 보다 적절하겠지만 그러한 애매함을 포함하지 않는 사회과학에서는 정말 드문 개념일 것이다. 어떤 관점에서 는 많은 것들이 정당하면서도 부당하게 보일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정당성〉의 문제를 제거해야 할 것인가? 12) E. Frankel, Corp u scular Op tics and the Wave Theory of Lig h t: the

    Stu d y and Politi cs of a Revoluti on in Phy si c s , in Soci al Stu d ie s of Scie n ce, vol. 6 (1976), pp. 141-84.

    먼저, 피상적인 검토로 소쉬 르를 주변인으로 생각하기는 힘들다. 따 지고 보면, 그는 라이프치히가 비교역사언이학의 명백한 중심지였을 때 그곳 에서 공부했으며, 1880 년대에 언어학에서 라이프치히보다는 훨 씬 못하지만 과학의 침체지로서 생각할 수는 없었던 파리에서 공부했 댜 게다가 소쉬르의 학회지 Memo i re 는 별로 열렬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의 기고문이 충분히 이해받지는 못했지만, 그가 독창적인 또는 뛰어난 언어학자로서 존경을 받게 해 주었다 .13) 소쉬르는 21 살의 학생 일 때 자기 분야의 권위자로서 신문법학파 엘리트에 의해서 이미 인 정을 받고 있었댜 그러나 주변성은 우세한 문화와의 접촉의 결여에서 오는 것이라기보다는 불충분한 접촉 내지는 융합됨이 없이 마주치게 됨으로써 나온 결과이다. 소쉬르 자신도 라이프치히에서의 자신의 위 치를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나는 강의실에 거의 들어 가 지 않았던 것을 많이 후회했지만, 라이프치 히 언어학파의 젊은 지도자들 주위에 일상적으로 모이는 동아리들, 카페 에 모이거나 또는 모이지 않는 동아리들과 충분히 어울리지 못했다. 이것 이 후회스럽지만 불어를 하는 의국인으로서의 내 입장, 더군다나 박사들 일행에 끼여들 수 없었던 19 살의 학생으로서는 아주 당연한 것이었 댜 ..... .1 4)

    13) 소쉬르의 Memo i re 를 다르게 받아들인 것에 대해서 는 다음을 참조 Tullio de Mauro, Note s bio g ra ph iq u esur F. de Saussure in Cours de lin g uist i qu e ge nerate , Ch. Bally and A Sechehaye , eds. (Pa ris: Le pa yo t 1973), pp. 328-29. 14) Souven irs de F. Saussure concernant sa jeu nesse et ses etu d es, Cahie r s Ferdin a nd de Saussure, vol.1 5 (19 57), p. 22.

    소쉬르가 라이프치히에서 공부한 지 거의 30 년이 된 후에도 그는 여전하 불어를 사용하는 스위스인으로서, 그리고 라이프치히의 젊은 학생으로서의 자기의 주변적 위치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러한 주변적 이라는 느낌과, 거기에 치러지는 대가는 원시인구어의 모음성 비음의 발견에 있어서 소쉬르의 분명한 우선성이 인정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의해 더욱 강화되었음에 틀림없다. 소쉬르는 주네브 고등학교 학생이 었을 때 혼자서 산스크리트어와 바교문법을 공부하다가 모음성 n 은 틀림없이 인구어 음운체계의 한 자질이었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 다. 그는 이것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발견을 공표하려 하지 않았다. 소쉬르는 언어학을 가르칠 사람이 없던 주네브 대학에서 1 년을 허비한 후, 라이프치히에 도착했을 때야 비로 소 그가 수년 전에 발견했던 것을 브루크만이 최근에 다시 발견했다 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라이프치히에 있던 언어학자들 사이에 매우 중요한 것으로 생각되어 엄청난 홍분을 자아내고 있었다. 소쉬르 는 그가 앞섰음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 번 확언했지만, 그가 독일 언어학자들과 때늦게 접촉했기 때문에 놓쳤던 기회를 결코 잊지 못했던 것 같댜 모음성 비음의 발견과 브루크만의 관계는, 소쉬르의 유고집 Souven i rs 의 편편에서 중심적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여기 에는 놓친 기회에 대한 느낌 및 완전한 지적 독립성에 관한 주장이 결합되어 있댜 1876 년 아주 우연하게 나는 몇 주일 너무 늦게 도착했고 그것에 대해 서 나는 화를 낼 꿈도 꾸지 않는다. 그러나 1878 년 글을 쓰고 있을 때는 너무 늦어서 첫번째 예에서 주장하지 못했던 우선권을 회복할 수 없었다. 내가 모음성 비음에 관해서 지적으로一―그리고 이것은 대중에게는 아 무런 관심 대상이 아니지만-어느 누구에게도 의존할 필요가 없었다 는 것을 단언하는 것 외에 지금 그것을 주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잘 주

    목해야 할 것 이댜 1 5)

    15) 같은 책, p. 24.

    소쉬르는 그의 독창성과 신문법학자들로부터의 독립성을 같은 페이 지에서 두 번 이상 역설하고 있다. r 논고 Memo i re 」에서 모음성 비음 과 유음에 대해서 브루크만과 오스트호프의 힘을 빌었다는 것을 공개 적으로 인정했으면서도 〈나로 말하자면 , 나는 항상 나의 「논고』가 똑 같이 독창적인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해 왔다.……〉고 주장한 다. 그리고 그는 유추 원리와 관련해서 지적 독립성에 대한 이 주장을 반복하고 있댜 〈나로서는 유추의 방법론적 원리를 라이프치히 학파의 발견으로 생각할 수 없다.〉 라이프치히에서 소쉬르의 주변적 위치 -신문법학파로부터의 개인 적인 고립 및 음절을 이루는 비음과 관련하여 억제된 우선권에 대한 갈등-는 라이프치히 학파에 대한 그의 양면적인 태도에 나타나 있다. 소쉬르는 한편으로는 언어의 역사 비교 연구에 대한 신문법학파 의 많은 원리들을 수용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적으로 지적 독 립성을 주장했다. 소쉬르의 혁명은 라이프치히의 스승들에 대한 그의 초기의 양면적 심리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즉, 역사언어학에 대한 많은 이론적 • 방 법론적 원리들을 유지하면서, 언어학의 초점을 언어 상태의 공시적 연 구라는 새로운 기본 분야로 전향시킴으로써, 그리고 독일에서는 인지 적 • 제도적 이유로 언어학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던 심리학 및 문헌 학과 구별되는 학문으로서 언어학 자율성을 선언함으로써 독립하려고 애썼다.

    2 주변부의 언어학 독일 언어과학에 대한 소쉬르 개인의 양면적인 태도는 보다 일반적 인 수준에서는 20 세기를 전후하여 비독일계 언어학자 집단들이 당면 한 문제에서도 표출되었다. 19 세기를 통하여 독일에서의 유례없는 언 어학 연구 발달은 다른 나라들의 언어학이 독일의 강한 영향 아래 머 물러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교문법과 역사언어학을 공부하기 위 하여 독일 대학으로 가는 것이 언어학자들에게는 국적을 막론하고 전 형적인 교육의 한 부분이 되었다. 언어학 연구를 마치기 위해서 독일 에 갔던 사람들 중에는 윌리엄 휘트니와 같은 미국인과, 보두앵 드 쿠 르트네와 같은 폴란드인, 카를 베르너와 같은 덴마크인, 에르네스트 르낭, 미셸 브레알, 가스통 파리와 같은 프랑스인이 있었다. 독일 학자의 영향과 위세는 언어학과 문헌학을 넘어서 다른 학문들 에까지 확장되었는데, 프랑스에서 특히 강했다. 디종 Claude Dig e on 에 의하면 프랑스 지식인들은 보불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한 것은 프 랑스 교육과 과학이 독일 제도와 비교해서 열등했다는 증표라고 종종 설명했다고 한다. 1870 년대의 10 년 동안 많은 프랑스 학생들이 독일 대학에서 그들 학문분야에서의 최근의 진전을 공부하고 독일의 고등 교육제도를 관찰하기 위해서 장학금을 받았다. 프랑스의 교육제도를 독일의 모델에 따라 개혁할 것도 잇달아 권고했다. 디종은 이러한 무비판적인 경탄의 태도는 1880 년 중반부터 90 년대 에 걸쳐 달라졌다고 보고한다. 전쟁 전에는 대학 과정에 등록하기 위해서 라인 강을 건너는 것이 혼 히 정신적 독립의 증거였고 때로는 프랑스 대학에 대한 경멸의 표시였다. 이것은 1870 년 이후에 바뀌었는데, 그 이유는 국가와 공식 기관들이 이러 한 유학에 호감을 갖지 않고 독일 대학에서 교육시키기 위하여 학생들을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댜 프랑스와 독일 관계의 새로운 시대 를 다음과 같 이 특징지을 수 있다 . 패배 후 에 , 그리고 패배로 인해서, 젊은 프랑스인들 은 더 이상 독일의 모든 것을 숭앙하지 않게 되었다. 신기할 정도로 1880 년부터 1890 년까지의 여행 보고문에서는 그 이전 기간들에서보다 더 많은 비판을 발견하게 된다 .1 6)

    16) Claude Dige on, La cris e fra n 따is e de la pe nsee allemande (1870-1914)(Pa ris: PUF, 1959), p. 357.

    독일에서 돌아온 프랑스 학자들의 보고문은 독일 대학의 박사과정 학생들과 교수들의 지니치게 상세하긴 해도 종종 별로 중요하지도 않 고 철학적으로도 충분한 지식이 없는 연구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다. 그 들은 젊은 교직원들에 대한 교수들의 전제적인 권한과 월급을 받지 않는 대학 강사들의 가난에 주목했다. 독일에 대해 보다 바판적인 이러한 태도는 프랑스에서의 학문의 부 활과 독일에서의 학문의 위기의 첫 징후들과 상응하는 것이었다. 대학 은 이 위기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독일에 대한 프랑스의 평가는 독일 의 지적, 문화적 활동의 다른 영역으로 옮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여전히 대단한 지적 명성을 즐기고 있었으 며 1890 년 이후에도 이 명성은 증가하였지만, 이제 대학보다는 바그너나 니체와 같은 개개의 천재들이라든지 연구 시설, 정치, 유럽 다른 나라의 사회주의에 대한 독일 사회주의의 우월성들이 더 인정되었다. 인문학, 역 사,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독일 대학은 빛을 잃었다 . 죽, 아직도 독 일 대학을 숭앙할 수는 있지만, 들어갈 때, 성역으로 들어간다는 인상은 더 이상 가질 수 없었다” )

    17) 같은 책, p. 383.

    독일의 비교문법학자들에 대한 프랑스 언어학자들의 태도 변화는 디종이 기술한 독일 학계에 대한 태도의 일반적 패턴을 따른 것이었 다. 초기에 르낭이 지녔던 독일 문헌학자들에 대한 무한한 존경은 브 레알에 있어서의 좀더 신중한 반응으로 천천히 옮겨갔다. 브레알은 독 일 학문을 거듭 언급했고 비교문법의 뿌리를 보프로 거슬러 올라가 그의 『비교문법 Comp a rati ve Grammar 』을 불어로 번역했지만, 1860 년대 후반에 와서는 슐라이허의 언어 진화 이론에 대하여 비판적이었 다. 아르슬레프 Arsle ff에 의하면, 브레알은 휘트니와 신문법학자들의 반대를 예견했다고 한댜 18 ) 슐러이허에 대한 비슷한 유보는 1868 년에 가스통 파리에 의해서도 표명되었다 19 )

    18) Hans Aarsleff , Breal vs. Schleic h er, in From Locke to Saussure (Minne apo li s: Un iv. of Minn esota Press, 1982). 19) 같은 책, pp. 304- 30 5.

    독일 전통에 대한 프랑스 언어학자들의 양면적 태도는 순수한 지적 반응 이상으로 볼 수 있다. 프랑스 언어학자들은 한편으로는 독일 문 헌학계의 부인할 수 없는 우위성을 인정했으며 또한 자신들의 연구에 도 의존하고, 프랑스 교육 당국과 대학에 자신들의 연구의 정당성을 공적으로 주장하는 데도 이 우위성을 이용했댜 20 ) 그러면서도 또 한편 으로는 프랑스에 언어학을 확립하기 위해서 그들 자신의 과학적 권위 롤 주장하고, 적어도 어느 정도는 독일 대학의 언어학으로부터 학문적 독립을 확언할 필요가 있었다. 프랑스 언어학자들을 교육하고, 그들의 연구를 평가하고, 연구를 발표하는 일이 프랑스 제도 안에서 이루어지 려면 이것이 필요했다. 사실상 1870 년대 프랑스의 언어학의 상황은, 새로 생겨나는 하나의 사상학파를 대하고 있는 상황과 비슷했다. 죽,

    20) 예를 들면 Breal 의 Le pro g re s de la gra mma ire comp a ree, in Memoir e de la Soci et e de ling uist i qu e de Paris (1868), or the ina ug u ral lectu re at the Sorbonne of Abel Berga ign e, La Placedu Sanskrit et dela gram mair e comp ar ee dans l'en seig ne ment univ e rsit aire (Pa ris: 1886).

    프랑스 언어학자들은 알려진 (독일의) 권위자들로부터 그들의 연구를 인정받을 필요가 있었으며, 동시에 그러한 외부적 정당화의 필요성을 거부해야만 했다 . 토착적인 제도적 기구가 생김으로써 독일에 의한 정 당화의 필요성과 독립에 대한 열망 사이의 갈등이 완화될 수 있는 수 단이 마련되었댜 1870 년대에 비교문법은 프랑스 학계에서 인정된 지위를 얻기 시작 했다. 1868 년에 설립된 고등전문학교가 이 과정에서 매우 두드러진 역할을 했댜 19 세기 중반에 프랑스 언어학이 유명무실하게 된 것은 언어학이 제도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던 앙투안 메이예 An t o i ne Me ill e t는 프랑스에서 언어학 연구를 위한 제도적 환경이 이루어진 것 은 고등전문학교 덕분이라고 했다. 그러나 19 세기 중반 이후 프랑스의 동양학 연구는 왕좌를 빼앗긴 것으 로 보였댜 인구어학, 원시게르만어학, 슬라브어학, 켈트어학 등이 다른 곳에서――특히 독일에서――정립되고 있었지만 프랑스에는 대표할 만 한 사람이 없었으며, 로만스어학을 창시한 영광을 안은 사람도 독일 사람 인 디에츠 Di ez 였다. 이것은 과학이 발명에 의해서만 존속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 이 형성되는 순간부터 이미 얻어진 결과의 도움과, 오류와 쓸데없는 정신 의 방황을 막아 주는 정확한 방법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더 이상 유용하 게 발견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 프랑스 사람들은 일단 창조하고 발견할 수는 있었지만 이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연구와 교육을 조직화해 야만 했다. 고등전문학교의 설립은 프랑스에서 동양학과 언어학을 발달시키고 지속 시킬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 것이었다. 21)

    21) A. Meil let, Let lang u es a !'Ec ole des Haute s Etu d es, in Celebrati on du Cin q u ante n air e de !'Ecole Pratiq u e des Haute s Etu d es (Pa ris: Champ ion ,

    역사비교언어학의 다양한 분야에 대한 체계적 교육이 처음으로 프 랑스에서 행해진 것은 고등전문학교의 역사문헌학부(제 4 학부)에서였 다. 인구언어학 학생들은 미셸 브레알M i chel Breal, 아벨 베르게뉴 Abel Berga ign e, 가스통 파리 Gasto n Pari s, 아르센 Arsene 및 제 임 스 다름스테 테 Jam es Darmeste t e r , 루이 아베 Louis Have t와 같은, 비교문법·산스크리트어·고전문헌학 등의 전문가 밑에서 공부하기 위해 그 학교에 모였다 전공 강의와 세미나가 있었으며 학생들 자신 의 연구도 도와 주었다. 고등전문학교는 언어학 교육의 제도화를 가능케 했으며, 언어학회의 창립은 연구 발표와 토론을 위한 환경을 제공했다. 언어학회는 또한 첫번째 언어학 전문지의 발간을 후원했다. 《파리 언어학회보 Bulle ti n de la Socie t e de Lin g u is t i qu e de Par i s 》와 그 다음에 「논고」가 출판되었는데, 1868 년에 나온 그 첫 호로 해서 프랑스 언어학자들에 게는 그들의 창의적 연구를 발표할 수 있는 전문화된 정기간행물이 제공되었다 학회롤 창립하려는 충동은 당초 비전문가들로부터 나왔지 만, 전문 언어학자들이 곧 그 활동을 주도했다. 언어학회에서 활약하 는 사람들도 대부분은 이 전문학교에서 가르쳤다. 브레알은 거의 50 년 동안 학회의 총무로 일했으며 (1915 년에 메이예로 바뀌었다), 그 학회 의 회원들 중에는 많은 외국인들은 물론 사실상 거의 모든 프랑스 언 어학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22)

    1922), pp. 19-20. 22) 그 학회의 역사에 대해서는 방드리에 J. Ven d.ry es 의 Prem ier e socie te ling uist i qu e(in Orbis , vol. 4, 1955, pp. 7-21) 참조.

    고등전문학교나 언어학회와 같은 영구적이며 독립된 기구의 창설을 통한 프랑스 언어학의 제도화는 프랑스 언어학에 대한 독일의 우위성 을 감소시키기는 했지만 이를 배제하지는 못했다. 고등전문학교에서의 고급과정 교육의 조직화는 역사비교언어학을 공부하는 젊은 학생들이

    더 이상 독일로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프랑스에 언어학 전 문지가 있다 는 것이 프랑스에서 언어학 연구의 독립적 평가와 정당화 를 위한 기회를 제공했다 하더라도, 프랑스 학문에 대한 독일의 지적 우위는 빨리 극복될 수 없었다. 다양한 인구 제어에 대한 개설서와 사 전, 역사서와 더불어 독일 출판물의 순전한 양과 폭은 프랑스 언어학 자들이 계속해서 독일 동료 학자들의 과거 및 현재의 연구 성과에 의 존해야 했음을 의미했다 . 프랑스 언어학자들이 그들의 연구를 독일 학 자들이 선호하는 비교 • 역사적 주제에만 초점을 두고 있는 한, 제도적 자율성의 성장은 쉽게 지적 독립으로 변모될 수 없었다. 독일에서의 언어학 연구의 발달에 비춰 볼 때, 프랑스 엘리트의 권위는 지역적인 데 머물렀고, 그들의 국제적 위신은 그 분야에 있는 독일 권위자들이 인정해 주느냐에 달려 있었다. 프랑스 언어학의 주변적 위치는 공인된 이론과는 좀 거리가 있는 태도를 선호했으며, 새로운 제도로 급속한 발달의 기회가 제공됐다. 이것은 19 세기 말경에는 프랑스 언어학자들이 독자적 계보를 따라서 프랑스에서 언어학을 발전시킬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비교 역사 연구에서의 독일의 우위는 독일 학자들이 앞섰던 이 영역에서의 기회를 어느 정도 제한했기 때문에, 프랑스 언어학자들은 그들이 신문 법학자들과 같이 역사 • 비교 주제에 일차적 관심이 머무는 한에서는 그들 자신의 지적 자율성을 정립할 수 있는 능력이 제한될 수밖에 없 었다 언어학의 실질적 방향 전환을 수반한 책략은 새로운 엘리트의 확립을 성공적으로 이끌 가능성이 더 컸다. 독일의 권위에 직접적으로 도전하여 신문법학자들과 정면 대결을 하기보다는, 언어 연구의 초점 울 바꾸는 것, 즉 독일 사람들이 소홀히 했던 주제로 전환을 한다면 프랑스 학자들은 그들 별도의 정체성과 권위를 정립할 수 있을 것이 었댜 브레알은 독일에서 전적으로 무시되었던 영역인 의미론에 주의 롤 돌림으로써 그러한 길을 밟은 셈이었다. 훨씬 더 급진적인 의미에

    서 이것은 소쉬르가 언어학의 초점을 언어 구조의 공시적 문제로 옮 길 것을 제의했을 때의 그의 책략이기도 했다. 소쉬르가 프랑스로 왔을 때, 새로운 제도가 그에게 부여한 기회는 이미 분명했다. 비교문법과 다양한 인구 제어의 역사를 가르치는 일은 다음 10 년 동안 계속되었고, 언어학회는 언어학의 전문기관으로 확고 하게 자리잡혀 가고 있었다. 소쉬르는 프랑스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도 않아, 프랑스 언어학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고등전문학교의 교사 로서 그리고 언어학회의 공동 총무로서, 그는 프랑스에서 언어과학의 장래 발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위치에 있었다. 그의 「논고」가 인정을 받긴 했지만 많은 이해를 얻지 못했던 독일에서 방금 돌아왔 기 때문에, 그는 독일 학계로부터의 제약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 다 . 독일에서 비교적 주변적 위치에 있었던 소쉬르가 돌연히 프랑스에 서는 제도적으로 그리고 지적으로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로 옮겨진 데서 프랑스 언어학의 비교적 주변적이면서도 매우 개방적인 특성이 명백히 드러났다. 소쉬르는 고등전문학교에서 처음에는 라이프 치히에서 배웠던 것(고트어와 고대 고지 게르만어)을 가르쳤지만, 특 정한 연구 프로그램이나 정해진 주제 과목이 없고 고급반이나 세분화 된 과목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그 학교의 개방성이 혁신적 연구를 고무했다. 소쉬르는 파리에 있는 동안 프랑스의 신세대 전체 젊은 언어학자들 을 가르쳤으며 모든 보고서가 그의 교육적 영향력이 막대했음을 적고 있다. 메 이 예와 뒤보 Duvau 로부터 방드리 에 Vend ryes , 그라몽 Grammont, 방브니스트 Benve ni s t e 에 이르기까지 모든 프랑스 언어 학자들의 지적인 계보는 소쉬르와 브레알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고등 전문학교에 있는 모든 학생들과 언어학회 모든 회원들은 직접 간접으 로 브레알과 소쉬르의 계보에 속해 있었다.〉 23) 소쉬르에 관한 사망 기 사에서 고티오 Gau thi o t는 소쉬르의 이러한 영향력을 재확인하고, 소

    쉬르는 파리에 신심 깊은 사상학파 를 창설했다고까지 주장한다 .241

    23) Meill et, 앞의 책 , p, 22. 24) Robe rt Gauth iot , Ferdi na nd de Saussure, in Thomas A. Sebeok, ed., Portra i t s of Lin g u is t s (Bloom ing ton : Ind ian a Un iv. Press, 1966), vol. 2.

    따라서 소쉬르가 일하고 가르쳤던 파리의 제도적 상황은 그의 혁신 의 일반적인 취지와 그 혁신에 부과된 한계들에 대해 가능한 하나의 설명을 암시한댜 소쉬르가 역사적 문제로부터 공시적 문제로 언어 연 구의 실질적 초점을 옮길 것을 제안한 것은, 프랑스 언어학의, 그리고 나중에는 스위스 언어학의 부분적인 지적 자율성과 독립적 권위를 확 립하려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 이러한 새로운 실질적 방향 정립은 소쉬르와 그의 제자들을 독일 엘리트와의 직접적인 그리고 본래부터 의 불평등한 경쟁에 개입시키지 않고도 이 학문을 독일 학자들과 제 도의 압도적인 우위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 있었다. 동시에 신문법학파 관념체계의 기본 요소들을 유지하는 것은 이 엘리트들과 계속적인 접 촉을 보장하고 기존의 평가 기준과 방법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생각할 수 있다. 역사 • 비교 연구는 신문법학파 권위자들로부터 인정과 정당 성을 계속 얻어 낼 수 있었다. 신문법학자들의 도움으로 얻어진 평판 있는 연구는-많은 사람들에 의해 신문법학자의 연구로 생각됐던 「논고」에 바탕을 둔 소쉬르 자신의 평판 있는 연구까지도 一 ~의심받 거나, 수정되거나, 거부될 필요가 없었다 . 언어학의 지적 자율성을 위한 이러한 노력과 신문법학파로부터의 독립성 확보에 대한 소쉬르의 뚜렷한 관심은 언어학이 〈자율적〉 학문 이어야 한다는 주장으로도 변용됐다. 언어학을 문헌학과 심리학, 생리 학으로부터 분리시키려는 시도가 소쉬르 관념체계의 중심적 특징 중 하나이다. 소쉬르가 제시한 언어 정의는 언어학에서의 공시적 연구의 대상은 다른 과학의 대상과는 구별된다는 사실을 보장하는 식으로 구 성되었다. 언어는 기호들을 상호 정의하는 체계로서 언어학자들에 의

    해서 연구되어야 하는 것이었댜 죽, 이 체계는 그것이 개인 발화의 심리적, 생리적 특성과 문학 작품의 개별적 판단으로부터 추상화될 수 있는 한에서는 언이학의 주제였댜 언어를 독특한 하나의 현상으로 만 들고 언어학을 독립적인 학문으로 정립하려는 이 시도는, 언어학은 문 헌학과 분리될 수 없으며 언어 사용과 발달에 대한 이론은 심리학과 생리학의 직접적인 도움으로만 완성될 수 있다는 신문법학파의 주장 에 직접적으로 맞서는 것이었다. 우리가 보아 왔듯이, 이 주제에 대한 신문법학파의 견해와 그 후에 신관념론자가 주창한 언어학과 문헌학 의 결합은 독일에서 점점 늘어나는 문헌학 분야들 안에서 언어학이 제도화됨으로써 독일 언어학자들이 부여받는 기회들로 인한 것이었다. 언어학과 문헌학의 통합은 언어학의 학문적 팽창을 촉진했으며 신문 법학자들에게 더 광범위한 영역에서 지적 영향력을 보장했다. 관념론 자들의 경우에도 역시 20 세기 초기 사회과학과 문화과학에서의 세부 전문화에 대한 반작용에서 이것을 지지하였다. 언어학이 오랜 기간 동안 주변적이었던 프랑스에서는 고등교육과 연구의 중앙집중화가 중앙의 유력한 후원자가 이끄는 전문 연구 집단 의 발달을 고무했기 때문에, 언어학과 같은 새로운 분야는 제도적 및 지적으로 유력한 지도자가 이끄는 상대적으로 영역이 분명한 연구자 집단에 의해 추진될 수만 있다면 성공할 확률은 컸다 흐 이러한 지도 자의 역할은 젊은 학자들을 교육하고, 그들의 연구를 평가하고 정당화 하며, 그리고 마찬가지로 중요하게 더 큰 학문공동체 안에서 그 분야 롤 대표하는 것이었다. 브레알이 바로 여러 해 동안 프랑스 언어학에 서 논쟁의 여지 없는 그러한 지도자였다.

    25) 프랑스에서의 사회과학 고등교육 및 연구를 위한 공식, 비공식 기관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 Terr y N. Clark, Prop h ets and Patr o ns: The French Univ e rsit y and the Emerge nce of the Soc ial Scie n ce (Cambri dg e : harvard Univ . Press, 1973).

    1880 년대에 그는 어느 정도의 권위를 소쉬르에게 위임했으며, 소쉬 르가 떠난 후에는 메이예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외부 세계에 대해 그 분야의 대표자로서 후원자의 역할은 그것이 그 분야의 미래 발전을 결정하고, 그 집단에 속하는 젊은 회원들의 전문직 패턴을 형성하 는 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특히 중요했다. 명성 있고 좋은 위치에 있는 고등학교에 임명되고 다음에는 지방과 파리의 대학 교수로 임명되는 것이 어느 정도는 제자들을 유리한 위치에 앉힐 수 있는 그 후원자의 능력에 달려 있었댜 언어학자에게 대학의 자리가 여전히 거의 없었고 취직자리를 얻을 기회가 여전히 제한되었던 1870 년과 80 년대에, 그 분야를 독립된 연구 분야로 규정함으로써 새 집단은 특정한 정체성을 가질 수 있었고, 그 지도자의 외부 권위가 높아질 수 있었으며 그 지 도자와 그 집단의 정통성은 확고해질 수 있었다. 언어학을 자율적이며 지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분야로서 정립하려는 바람은, 독일 엘리트들 의 산재한 권위 주장에 대한 반응으로서뿐 아니라, 프랑스의 공식 • 비 공식 고등교육기관이 가했던 압력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뒤 르캠 Durk11e im과 그 제자들이 사회학을 프랑스 대학 안에 한 학문분 야로서 확립한 것도 하나의 연구 대상으로서 사회의 유일성과 독자성 을 정립하려는 시도와 관련이 있었으며, 이것은 이러한 해석을 추가적 으로 뒷받침하여 보인다. 사회가 독특한 대상이 된다는 뒤르켐의 주장 은 언어는 특유의 언어학적 방법으로 연구돼야 한다는 소쉬르의 신념 과 직접 비교된다 . 요약하자면 소쉬르의 혁명은 독일에서의 그의 주변적 위치는 물론, 프랑스 학제 조직에서 오는 기회와 제약, 그 안에서의 언어학의 위치 등에 의해서 촉진된 것이었댜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소쉬르는 전문 학교에서 가르치던 당시 그의 관념들을 개발한 것이 아니며 적어도 이들을 제시하지도 않았고, 그의 혁신이 받아들여진 곳은 프랑스가 아 니라 주네브였다고 반대할 수도 있다. 소쉬르가 그의 관념들의 일부를

    프랑스에서 전개시켰다는 간접적 증거가 있다고 하더라도-메이예 는 고등전문학교에서 소쉬르의 강의를 들어 봄으로써 『일반언어학 강 의』에서 공식화된 많은 원리들을 추론해 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 했다 26) -소쉬르를 가장 충실히 따르는 제자들은 프랑스가 아니라 주네브에 있었으며, 소쉬르의 관념체계에 대한 엄수를 공언하는 학파 가 주네브에서만 출현할 수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여간 『일반언어학 강의』의 예외적인 사후 출판을 생각해 보면, 소쉬 르 사상의 근원을 따지는 문제는 그의 연구의 수용과 보급을 검토하 는 문제와는 구별해서 다루어야 한다. 소쉬르의 혁명에 대한 추진력이 적어도 그 일부는 프랑스 언어학의 제도적 상황에서 형성되었고, 그의 관념들이 전파되고 한 사상학파를 공식화하기 위한 기초로 사용된 방 식은 주네브에서의 언어학의 위치를 검토함으로써만 이해될 수 있다 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 일이다. 프랑스 언어학자들은 소쉬르의 혁명 울 선택적으로 받아들였고, 그들의 연구의 대부분을 역사비교언어학의 틀 안에서 계속 수행했으며, 소쉬르의 주네브 제자들은 모든 배려를 언어의 공시적 연구와 소쉬르의 사상을 유포하는 데 돌렸다. 이것은 소쉬르 혁신의 수용과 이 혁신을 바탕으로 한 사상학파의 출현을 이 해하기 위해서는 파리와 주네브에서의 언어학의 상황을 비교하는 것 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26) “나는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를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소쉬르가 그의 사 상을 일찍부터 발전시킨 것은 알려져 있다. 그가 일반언어학 강의에서 분명하게 가르친 이론은 20 년 전 당시에 이미 비교문법 교육을 고취했던 내가 들었던 강의 와 동일하다. 내가 이 관념을 다시금 발견한 지금 그것들을 예측할 수도 있었다 는 생각이 든다 .(An t o i ne Meil let, comp te rendu of the Cours in Bulleti n de Socie t e de lin g uisti qu e de Paris, vol. 29, p. 33.)

    1880 년대에 언어학의 엘리트를 수용했던 곳은 프랑스 기관이 아니 라, 라이프치히 대학과 베를린 대학과 같은 독일 대학이었지만, 이때 쯤은 이미 프랑스 학제에서도 비교역사언어학을 정당한 연구 분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고등전문학교나 언어학회와 같은 기관은 언어학을 가르치고 언어 연구를 발표 • 토론하고 출판할 수 있는 상황을 제공했 댜 다시 말해서 , 소쉬르가 파리에서 가르칠 때 프랑스에서 언어학은 이미 충분히 제도화되었지만 주네브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소쉬르가 1891 년 주네브 대학에 신설된 〈 인구어의 역사 및 비교〉 교수직을 맡았을 때 , 그는 실제적으로 거기서 가르치게 된 최초의 완 전한 전문 언어학자였다. 주네브에서 언어학은 처음 1869 년부터 〈독 일어 〉 강사인 헤르만 크라우스 Hermann Krauss 가, 1873 년 이후는 〈 언어학 및 문헌학 〉 교수 베르트하이머 Jos eph We rt he im er 가 강의를 담당했다 . 그러나 그들은 둘 다 장래의 언어학자를 교육한다거나, 중 요한 언어학적 연구를 한 적이 거의 없었다(베르트하이머는 학계에 있는 동안 브레알의 저서 『낱말들의 형태와 기능에 관하여 De la for me et fon cti on des mo t s 』 에 전적으로 바탕을 둔 한 권의 언어학 소책자를 출판했을 뿐이라고 고델은 보고한 바 있다). 'ZI) 주네브에서 간행된 언어학 잡지나 〈언어학회 Soc iet e de L i n gui stiq ue 〉에 비견할 만한 학회 같은 것이 없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주네브는 언어 학의 전통과 제도가 없었을 뿐 아니라, 그것은 스위스에 소재한 불어 를 사용하는 두 대학 중의 하나로서, 보다 큰 학제의 한 부분으로서 실제적 역할을 하지 못했다. 주네브는 프랑스와 독일 대학들과 비공식 적으로 연계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고립되어 있었고 주변적이었다 .28 ) 사상학파가 생겨나는 것은 하나의 학자 집단이 어느 주어진 연구 영역에서 과학 작업의 정당화를 위한 독자적 수단과 기준을 세우려는

    업) Godel, 앞의 책, p. 29. 28) 세쉐이에는 주네브와 파리를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 〈소쉬르가 1891 년 그를 위해서 마련한 비교문법 교수자리를 맡기 위해 그의 고향에 돌아왔 을 때, 그는 … … 언어학 연구에는 덜 좋은 환경에서 일해야 했다.〉 (Sechehaye , L'Ecole ge nevois e , p. 217.)

    시도로 생각할 수 있다고 나는 서 론 에서 주장했다 . 우리가 보아 온 바 와 같이, 권위를 추구하 는 시도는 다양한 제도적 • 지적 상황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소쉬르의 학생 들 과 제자 들 이 창설한 주네브 학파는, 정당성을 확보하는 독립된 제도적 수단이 없이 학파가 형성된 아주 좋은 예인데, 그것은 주변적 위치에 있던 한 학자 들 의 집단이 새로운 실질적 연구 영역에 대한 특별한 능력과 권위를 주장함으로써 하나의 사상학파가 정립할 수 있도록 자극이 된 상황에서 가능했다 . 강력한 엘리트에 의해 선점되지 않은 영구적인 제도적 기구가 있었 기 때문에 메이예나 방드리에와 같은 프랑스 언어학자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사상학파를 만들어 내지 않고도 중심적인 제도적 • 지적 역할을 해 낼 수 있었다. 전문학교나 언어학회와 같은 기관은 프랑스 언어학자들에게 학문적 정체성을 제공했으며, 그리고 적어도 연구를 평가하며 ,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를 지도할 수 있는 권위, 그리고 교수를 임명하고 학위를 수여하는 데에 영향을 미치는 작은 권위들을 부여했다. 이러한 제도적 자율성은, 지배적인 신문법학 파 이론 및 그 대표적 독일 학자들과의 대립에서 뭉쳐진 하나의 비공 식적 사상학파롤 수립할 절박한 필요성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 그러나 주네브에는 그러한 제도적 기구가 없었으며 대학이 조직적 인 면에서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독립성을 확립할 기회 가 없었다. 주네브 언어학자들은 언어 연구의 발표나, 학생들의 취직 이나, 연구를 평가하는 데 사용되는 기준에 거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었댜 29 ) 다시 말해서, 지방 엘리트의 확립이 프랑스에서는 문제가 되

    29) 바이이 Ball y와 세쉐이에 Secheha y e 는 Cahie r s Ferdin a nd de Saussure 가 만 들어지기 전에는, 주로 프랑스 잡지(J ournal • de ps yc holog ie normaie et patho log iqu e, Bulleti n de la Soc iet e de lin g uist i qu e de Paris, revue des lang ue romanes, e tc.)에 발표 를 했다 . 하지만 때로는 세쉐이에의 학파 활동에 관한 검토 논문의 경우와 같이, 그 들 의 사상을 독일 언어학 사회에 제시하려고도 시도했다 .

    지 않았지만, 주네브에서는 그러한 순전히 지방적인 권위는 정말로 별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바이이와 세쉐이에 같은 학자들은 보다 큰 언 어학 공동체와 계속해서 접촉해야만 했다. 그러나 새로운 연구 영역에 전념하는 사상학파가 형성됨으로써, 그들의 특별한 전문지식의 영역에 서 주네브의 권위가 보다 널리 인식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신문법학 파와 그 후계자들의 권위에 도전하지 않고도 이러한 사상학파는 비공 식적으로 고유의 국제적 정체성과 권위를 확립할 수 있었다. 따라서 주네브의 주변적 위치는 프랑스보다도 높은 정도의 혁신을 조장했고, 주네브에 언어학을 위한 제도적 기회가 없었던 것이 새로운 연구의 관심사를 만들어 내게 했으며, 전통적 수용 방식에 의하여 최초로 자 신의 언어학 논문을 발표하여 이미 인정받았던 한 학자의 혁명적인 관념체계를 유포하기 위해 비공식적(처음에는) 엘리트 사상학파를 정 립해야 하는 긴박감을 조성했다. 해를 거듭하면서, 소쉬르의 「논고」의 중요성은 더 널리 인식되었 고, 1913 년 그가 죽을 때쯤에는 언어학에서 주도적 인물로 간주되었 댜 소쉬르의 명성은 그가 주네브에 체류해 있는 동안 새로운 출판물 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므로 그의 사상에 대한 주네브 제자들의 태도가 소쉬르와 그의 프랑스 제 자들과의 관계와 달랐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아마도 프랑스 언어학자들은 소쉬르의 사고방식에 의해 미미한 영향을 받은 반면에, 주네브 학파의 구성원들은 보다 폭넓은 과학 대중에게 일반언어학에 대한 소쉬르의 견해를 소개하고, 그들 자신의 연구에서 이를 정교하게 다듬는 것이 그들의 의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바이이와 세쉐이에는 두 사람 다 박사학위를 독일에서 받았지만(바이이는 1889 년 베를린에 서, 세쉐이에는 1902 년 괴팅겐에서), 소쉬르와 접촉하게 된 이후부터 는 곧 그들의 모든 관심이 언어의 공시태 연구에 집중되었다. 세쉐이 에의 문법과 통사론에 대한 연구와, 바이이가 랑그의 표현적 성격에

    대한 연구로서 이해했던 문체론의 연구는 둘 다 『 강의 』 의 지침을 아 주 엄격하게 지킨 것이었다 . 죽 , 공시태와 통시태의 분리, 랑그와 파 롤, 청각영상과 개념의 이분법 등. 그들은 이미 인정받은 학자의 저서 를 소개하고 , 그것을 정교하게 다듬고, 수많은 비판으로부터 방어함으 로써, 그들 〈스승의〉 사상을 특별히 가까이 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 으며, 그들 스승의 권위와 명성에 거듭 의존 할 수 있었다. 권위 있는 인물의 사상에 대한 특별한 통찰을 주장함으로써 새 학파의 위세와 권위는 더 높아지게 되었다 . 주네브 학파 회원들은 소쉬르의 혁명을 촉진함과 동시에 소쉬르가 이 혁신에 부여했던 한계를 보전하는 데에 도 신경을 썼다. 이에 따라 주네브 학파는 특히 공시언어학과 통시언 어학의 구분을 끈질기게 주장하였다. 이 점에서 주네브 학자들은 그들 스승의 관념들을 보존했을 뿐 아니라 보다 전통적안 언어 연구의 정 당성도 묵시적으로 재확인했다. 주네브 학파 회원들은 거듭 소쉬르를 참조하고, 그의 견해를 따르며, 그들 자신과 스승의 혁신 범위에 대한 한계룰 정하고자 했다. 이 사실들은 그들이 권위롤 얻기 위한 시도에 서는 일반언어학 공동체 안에서도 그들의 정당성을 유지하는 점에 유 의했다는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명성을 인정받은 학자들이 제안하 고, 이전에 우세했던 관념체계와는 적어도 부분적으로나마 모순이 없 는 것으로 제시될 수 있는 혁신이라면 아마도 저항을 덜 받게 될 것 이다. 명확히 경계가 정해진 영역에서 독립적 권위를 요구하며 기존 엘리트에게 정당성을 호소하는 일은 주변적인 위치에 있는 사상학파 에게는 정말로 필요할지도 모른다. 결국 따지고 보면 , 주네브 학파의 발달은 주네브의 새로운 문하생들을 교육시킬 학파의 능력뿐 아니라, 소쉬르의 관념체계를 보다 폭넓게 수용하는 데도 달려 있었다 . 20 세기 초 몇십 년 동안 새로운 언어학파는 주네브에서만이 아니라 프라그, 페테르스부르크, 코펜하겐과 같은 〈언어학적으로〉 주변적인 위치에서도 형성되었다. 이 모든 사례들에서 학파의 주변적 위치는 혁

    신을 조장하고, 독일의 기존 학파로부터 독립된 언어 엘리트를 확립하 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반영했던 것으로 보인다. 언어학이 19 세기 독 일의 언어과학 Sp rachw i ssens haft으로부터 해방되는 이러한 과정은, 보프와 후세대 비교문헌학자들이 기초를 확립한 역사 • 비교 전통으로 부터의 점점 더 과격한 이탈을 수반한 것이었다. 주네브 학파의 형성 은 이러한 인지적 • 제도적 재구성 과정에서의 첫 단계일 뿐이었다. 그 러나 인지적 역학 관계와, 구조언어학의 역사에서 지속과 단절을 결정 한 요인들, 이러한 과정이 일어나게 된 제도적 상황 등은 이 연구의 범위를 벗어난다.

    제 9 장 결론 과학자들이 경험적으로 변칙들을 발견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가 하는 문제는 과학의 발달 및 과정에 관한 철학적 논란의 중심이었다. 오류를 밝히 는 반증 f als ifi ca ti on 의 방법론에 바탕을 둔, 포퍼 Pop pe r 의 과학적 발견에 대한 논리는, 변칙들을 찾아 내는 것, 죽 관찰 결과 의 기술과 이론적 예측 사이의 불일치를 찾아 내는 것이 과학 연구의 주요 목표이며 과학적 방법론의 요체가 되어야 함을 요구한다. 일단 하나의 변칙이 발견되면, 하나의 이론은 기존 이론에 의해서 설명이 되는 모든 현상과 함께 변칙적인 현상도 다룰 수 있는 새로운 이론으 로 수정되거나 대체될 필요가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과학 발달의 이 러한 모델은 과학 지식의 질서 있는 누적된 성장을 보장하는, 역사를 초월한 불변의 합리성의 기준이 있다는 가정에서 나온 것이다. 포퍼 철학에 대한 도전은 과학사가와 과학철학자들로부터 나왔는데, 그들은 경험적 변칙들의 발견이 불가피하게 혹은 신속하게 과학의 이 론적 변화를 초래하게 된다는 주장을 역사적 증거가 뒷받침해 주지 않고 있음을 주시했다. 기존의 이론적 모델로 설명될 수 없는 문제들 은 제쳐놓거나 무시하거나 또는 문제가 아닌 것으로까지 정의해 버리

    기도 한댜 토마스 쿤T. S. Kuhn 과 그 외 여러 학자들은 〈변칙의 바다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 다양한 과학 이론들이 수십 년 또는 수 세기 동안 지지되어 왔다고 밝혔다. 더군다나, 주어진 이론적 전통에 의해서 작업을 하는 과학자들에게는 무엇이 변칙을 이루고 있는가 하 는 것도 분명치가 않다. 『진보와 그 문제점들 Pro gr ess and its Problems 』 에 서 래 리 러 던 La rry Laudan 은 하나의 이 론으로 성 공적 으로 풀 수 없는 문제가 그에 대한 대체 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을 때 라야 비로소 변칙으로 규정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경우에 그것은 반증으로 사용될 수 있다. 포퍼의 몇몇 추종자들(예롤 들면, 라카토스 hnre Laka t os) 도 반증이 란 대체할 수 있는 이론적 설명 이 존재할 때 만 가능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포퍼의 과학 발달 양식을 가장 격렬하게 비판하는 사람들조 차도 과학적 변화의 근원으로서의 변칙에 대해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못했다. 쿤의 과학 변화에 대한 모델은 연속적인 과학의 패러다임들을 분리시키고, 다른 패러다임적 전통에 속하는 이론들 사이에는 공통 분 모가 결여되어 있는 기본적 단절을 설정하고 있다. 쿤에 따르면, 명시 적으로나 암묵적으로나 동일한 철학적 가설에 의존하지 않고, 평가 기 준이 다르며, 동일한 개념, 형식성, 범례들을 사용하지 않는 이론들의 설명력을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쿤은 여전히 과 학에서 주기적인 위기를 초래하는 것은 변칙의 누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변칙의 누적이 지배적 패러다임을 전복시킬 만큼 위기가 되는 시기가 어느 시점인가는 명시하지 않았지만, 변칙 이외의 다른 요인들 이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라는 암시도 하지 않았다. 따라서 쿤은 과학 적 견해에 비합리적인 인식론적 방식을 설정했다고 종종 비난받아 왔다. 경험적 자료와 그 이론적 표현 및 설명 사이에 존재하는 대립을 과학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보는 완강한 실중주의적 견해는 이론적으

    로 이해되지 못하는 경험적 사실의 존재 를 부인하고 과학적 방법의 경험주의적 모델을 거부하는 사람 들 사이에서는 놀라운 일이다. 그러 나 모든 과학적 연구에서 경험적 관찰이 근본적인 역할을 한다는 이 신념은 역사가와 철학자들로 하여금 이 경험적 변칙들을 과학적 변형 의 유일한 근거로 다루게 한다. 과학적 지식의 추구에 있어서 다양한 철학적 가설의 역할을 강조하는 사람들까지도 과학 변화의 근원으로 서 이러한 가설들의 역할을 무시하고 있으며 , 과학적 장애들을 만들어 내는 긴장과 갈등은 이론적 예측과 경험적 자료의 괴리로부터 나오는 긴장과 갈등뿐임을 암시하고 있다. 단일의 또는 복합적인 변칙들이 과학에 위기를 가져온다는 신념의 밑바탕에는, 통합과 내적 일관성을 찾는 것이 과학적 관념체계를 명시 하는 목표 중 하나이며, 그 일관성은 과학적 평가에서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분명한(논란의 여지가 없는) 가정이 깔려 있다. 그러나 만약 과학적 관념체계가 경험적 관찰의 기술은 물론,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들과 함께 다양한 연구 방법의 적합성에 대한 방법론적인 신념과, 과학과 그 대상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가설을 포함한다는 견해를 신 중하게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이 관념들의 상호 의존성과 일관성이 자 동적으로 보장되는 것인지, 그리고 그렇지 않다면 과학 이론의 비경험 적 요소들간의 긴장과 모순을 발견하는 것이 재조정과 개혁에 대한 강렬한 자극이 될 수 있을지에 의문을 던져야 한다. 관념체계의 다양한 요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를 제약하더라도, 철학적, 이론적, 방법론적 및 실체적 관념들의 상호 의존성은 결코 완 전하지 못하다. 이러한 불완전한 상호 제약의 사례들은 언어학사에 허 다하다. 예를 들면, 언어는 역사적으로 쇠퇴하고 타락하는 하나의 유 기체라는 초기 비교문법학자들의 철학적 신념은, 본래의 완전한 언어 를 찾을 것을 장려했고, 그러한 언어 이론은 형태론적 규칙성과 원시 인구어 Pro t o_Indo_Euro pean 의 완전성을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함으

    로써 언어 발달에 관한 이론을 정립하는 데 제약을 부여했다. 그러나 철학이 이론에 미친 영향은 아주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고, 슐레겔과 보프는 원래 언어가 유기적이며 문법적으로도 완전했고 절대적으로 규칙적이었으며 언어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쇠퇴해 왔다는 점에 동의 하긴 했지만 그들은 언어 발달에 관한 두 개의 양립할 수 없는 이론 울 전개시켰다. 즉, 하나는 내적 굴절이라는 개념에 바탕을 둔 것이고, 또 다른 이론은 교착이라는 개념에 토대를 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 문법학자들은 음 변화에 대해 두 개의 서로 다른 모순되는 설명을 정 립했는데, 두 이론은 언어와 과학에 관한 동일한 철학적 관념에 기초 하고 있다. 상호 모순되는 두 개의 이론이 일단의 동일한 철학적 신념 과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은 이러한 신념들이 이 론적 설명을-결정 하지는 않지만-형성하고 있음을 실증한다. 더구나, 이러한 느슨한 상호 의존성은 대칭적인데, 즉 두 개의 모순되는 이론이 같은 철학 신 념에 바탕을 둘 수 있을 뿐 아니라, 서로 다른 철학 체계들이 단일한 이론을 뒷받침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 예를 들면, 슐라이허는 언어 발 달에 관한 그의 대부분의 이론을 초기 비교문법학자들로부터 물려받 았지만, 그것들을 그의 새로운 진화론적 헤겔 철학에 통합시킬 수 있 었댜 이론적, 철학적 관념들은, 완전히 상호 결정적이지 않으면서도 서로 롤 제약하는 과학 이론의 유일한 요소들은 아니다. 철학과 방법론, 실 체적 관심과 이론적 설명 등의 사이에서도 비슷한 관계가 성립한다. 한 예를 든다면, 19 세기 초기의 언어학자들의 비교방법론은 낭만주의 에 고취된 언어 발달 이론이 설정했던 언어의 유기적인 오염되지 않 은 형태를 찾는 데 특별히 적합한 것 같았다. 신문법학파는 몇몇 기본 적 개요에서 이 방법을 여전히 사용했지만, 이들은 본래의 언어를 재 구성하려는 목표를 거부했고, 유사 이전과 이후 언어에 질적으로 본질 적인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언어 형태가 자유롭게

    변할 수 있다는 신념은 언어 발달에 대하여 보다 더 결정주의적인 견 해(규칙적이고 법칙의 지배를 받는 것으로 생각되었던)로 대체됨에 따 라, 계승된 방법론에는 새로운 제약과 요구가 부과되었다. 슐라이허도 공식화했듯이, 비교 방법은 규칙적으로 발달하는 모든 부류의 형태와 소리에 대해 일반적으로 타당한 설명을 제공할 것이 요구되었다. 새로 운 과학철학은 전혀 다른 철학적 틀에서 유래한 옛 방법론에 새로운 제약을 부여했지만, 이 방법론의 유효성과 생산성을 훼손하지는 않았 다. 과학적 관념체계의 다양한 요소들 사이에 있어서의 제약과 양립성 의 이러한 상호작용은 그 내적 조직의 특징이며 그 관념체계들의 발 달을 초래한댜 과학 이론들은 완전한 통합과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일관성이 부족하 기 때문에, 완벽하게 명료한 연역적 관념체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그 일관성과 통합성이 항상 위협을 받는 개방적인 신념 구조를 구성한다. 동시에 관념체계의 다양한 요소들은 서로를 제약하며 일관성 있는 관 념의 틀을 형성하게 된다. 과학적 관념체계의 개방성과 그 조직의 복잡성온 완전한 일관성과 통일성이 실체라기보다는 이상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어떠한 신념도 강력한 다른 신념과 모순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불일치는 묵시 적으로 수용된 철학적 가설들 가운데 가려져 있거나, 혹은 새로운 이 론적 설명을 명시하는 과정에서 드러날 수도 있다. 방법론적 실행에서 철학적으로 수용될 수 없는 가설을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고, 이론 들은 철학적으로 불합리하게 생각될 수 있는 개념에 의존할 수도 있 다. 변칙은 과학적 관념체계에 문제를 일으키는 불일치의 한 가지 예 에 불과하지만, 그러한 관념체계의 다른 요소들간의_이들이 이론 적이든, 철학적, 실체적, 방법론적이든 간에 ―一-복잡한 관계를 보면, 자료와 이론의 그러한 불일치가 유일한, 또는 나아가 가장 골치 아픈 모순이 되리라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언어학사를 보면, 음 법칙으로 설명되지 않는 예외들이나 불규칙하 게 보이는 문법적 형태들과 같은 변칙들이 언어학의 관심을 끌었고, 이들을 해결하려는 시도가 계속 이어지긴 했지만, 이들 경험적 난제들 은 결코 보다 대규모의 전면적인 관념체계의 변화를 초래하지는 않았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명백한 변칙을 해결한 가장 유명한 사례는 카 룰 베르너 Karl Verner 가 1875 년에 그림 법칙의 가장 중요한 예의 부류를 설명한 것이었다. 이 문제의 해결은 계속적인 시도에도 불구하 고 성공하지 못하다가, 결국 50 년이 지난 후에야 자음추이를 기술하는 법칙을 약간 수정함으로써 해결되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해서 언 어학자들은 분명한 변칙에 부딪쳤을 때, 이를 부정적인 사례로서 또는 하나의 이론을 거부하는 논거로서 취급하기보다는 그들의 설명에 경 고(예고기재)를 도입하는 경향이 있었다 . 더구나, 신문법학파 이론의 공식화와 수용은 보다 엄중한 방법론적 기준의 도입이 알려진 변칙의 수를 두드러지게 증가시킨 상황을 예증해 준다. 진정한 음 법칙에는 예외가 없다는 신념은, 신문법학자들이 죽각 동의했듯이, 현존하는 경 험적 증거에 의해서 충분히 뒷받침되지 못했으며, 설명되지 않았음에 도 수용될 수 있었던 많은 수의 〈예외들〉을 진정한 변칙으로 바꾼 것 으로 생각될 수 있었다. 신문법학자들에 대해 비판하는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던 것처럼, 음 법칙에는 예의가 없다는 주장은 경험론적으로 지 지할 수 없는 명제였다. 그러나 이 새로운 방법론적 • 이론적 원칙이 특정의 난해한 철학적 문제를 해결했고, 언어학의 방법론을 〈동일한 원인/동일한 결과〉의 원칙과 같은 기본적인 철학적 가설들과 통합시 켰다는 점에서 더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언어학에서 경험적 변칙들이 이론적 • 방법론적 변형의 충분한 이유 들로서 다루어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다론 종류의 모순과 긴장이 관 념체계를 극적으로 변화시켰다. 이러한 보다 근본적인 재조정은 언어 학자들이 다양한 철학적 신념들간이나, 이론적 설명과 방법론적 실행,

    철학과 이론 또는 방법론간의 긴장이나 모순을 제거함으로써 자신들 이론의 내적 통합을 강화시키고자 할 때 행해졌다 . 관념체계 안에서의 이러한 문제들은 두 신념간이나 일단의 신념들간 통합이 단순히 결여 된 형태부터 직접적인 논리적 모순에 이르기까지 다른 형태들을 지닐 수 있다. 그리고 과학의 다른 요소들과 마찬가지로 내적 모순과 긴장 은 그 나름대로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때로는, 처음에 관념체계룰 구 성하고 있는 요소들간의 통합이 안 된 것이 (비교문법학자들의 방법 론에 있어 음 법칙의 규칙성이나 언어 쇠퇴론의 경우에서와 같이) 궁 극적으로는 중대한 모순과 심각한 긴장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음 법 칙의 초기 방법론은 원시인구어의 쇠퇴론과는 단지 느슨하게 연관되 어 있었지만, 언어학적 방법론이 음 변화는 보편적 음 법칙에 포함될 수 있다는 가정에 보다 더 의존하기 시작하면서, 이 방법론은 언어학 자들이 재구성하려 했던 초기 언어는 퇴행적 변화를 하지 않았다는 이론적 요구와 조화시키기가 점점 더 어렵게 되었다 . 규칙적 음 변화 의 가정에 기초한 방법론도 초기 언어 형태는 어떤 형태음소론적 변 이 없이 의미와 관계를 규칙적으로 나타내는 아주 중요한 부분으로 구성되었다는 교착 이론과도 대립이 되었다. 이러한 이론과 방법론의 대립은 다른 인지 영역에까지 확대되었다. 그리하여 초기 언어를 재구 성하는 데 대한 실체적 관심은 법칙적인 음 변화와 유추적 과정의 관 념에 기초한 방법론과 조화되기 어려웠다. 일반적이고 보편 타당성 있 다고 생각되는 과학 법칙에 대한 철학적 신념은, 유사 이전의 언어는 완전하며 음의 쇠퇴나 유추적 재조직에 의해서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가설과 상충되었다. 신문법학파의 출현은 일부는 비교문법 관념체계 내에 점점 늘어나는 피할 수 없는 깊은 긴장에 대한 반응이었다. 물론 신문법학자들의 실체적 관심은 슐라이허와 쿠르티우스의 방법론을 유 지하면서 이 방법론 및 19 세기 후반기에 유행했던 철학 풍조와도 모 순이 되지 않는 언어 이론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신문법학자들이 공언한 목표는 언어 이론을 선배 학자들의 성공적 인 방법론과 재통합시키고 그것을 당시의 유력했던 철학적 신념과 양 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지만, 그들은 새로운 긴장과 모순이 그들 자신의 관념체계에 들어오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 우선 신문법학자의 과학철학은 내적인 모순을 안고 있었다. 신문법학자들은 과학은 역사 적 사건에 대한 충분한 인과적 설명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 편, 어떤 추상적 형태도 비합리적인 철학의 과정으로 거부하고 사실에 대한 충분한 구체적 제시만이 인과적 관계에 대한 지식을 산출해 낼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신문법학자들이 그들의 이론을 언어의 개별적 사용과 언어 변화의 메커니즘에 대한 설명을 제공해 줄 것으로 생각 되는 심리학에 의존하고, 그들의 방법론은 주어진 시기와 장소에서 예 의없이 전체 언어공동체에 작용할 것으로 생각되는 움 법칙에 의존함 으로써, 또 다른 긴장이 발생했다. 〈동일한 원인/동일한 결과〉의 철학적 원칙은 그들로 하여금 예외없 는 음 법칙을 공리화하도록 했지만, 그들 이론의 개인주의 및 심리주 의적 경향, 추상성의 배제, 그들의 언어철학을 기초로 한 언어 정체성 에 대한 기준을 공식화하지 못한 것 등으로 인해서, 그들이 공리화한 이론적 목표와 실제의 이론적 • 방법론적 실행 간에 긴장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신문법학파 이론의 내적 문제들로 인해서 그 이론의 다양한 요소들 을 통합하고 불일치와 모순을 제거하여 언어학의 관념체계를 재구성 하려는 수많은 시도가 활발히 일어났다. 신관념론자들, 보두앵과 크루 제프스키의 카잔 학파, 소쉬르와 그의 제자들을 비롯한 프랑스 언어학 자들, 이들 모두가 상당한 정도로 신문법학파 관념체계 내의 긴장과 난제에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신관념론자들은 역사 법칙의 가능성을 거부하고 개별적, 역사적 사건들을 구체적인 인과관계로 설명하려고 했다. 같은 이유로, 그들은 신문법학파 이론에 내재한 철학적 문제, 죽

    과학은 모든 부류의 현상을 지 배하 는 일반 법칙을 설정 하되 이 를 위 해 추상성에 의존하거나 개별적 사건들에 대한 완전한 설명을 제공하 려는 목표 를 버려서는 안 된다는 문제를 제거하고자 했다. 크루제프스 키와 보두앵도 언어 법칙, 인과성, 역사적 설명 등과 관련된 신문법학 파의 문제점들에 고심했댜 그들은 서로 다른 역사적 환경에서 일어나 면서도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동일한 법칙에 따른다고 생각되는 언 어 사건들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보다 명확히 명시하고자 했다. 우리 가 지금까지 보아 온 것처럼, 신문법학파의 많은 난제들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어, 철학적 • 이론적 • 방법론적 모순을 초래했던 언어학의 정체성의 문제는, 소쉬르에게도 역시 중요한 문제였다. 그는 이 문제 의 해결을 위해 언어 사실들을 상대화하고 정형화하는 것을 포함한 근본적인 철학적 변화를 시도했는데, 비록 신문법학파의 방법론과 언 어 변화 이론이 다른 과학철학에 의해 새로운 방식으로 정당화되고, 언어과학의 새로운 분과, 즉 구조 공시언어학에 의해 보완되어야 했지 만, 그는 이들 방법론과 이론을 여기에서도 유지했다. 공시언어학으로 의 전환은 언어학의 실질적 방향 전환이었고, 부분적으로는 신문법학 파의 관념체계 안에 존재했던 갈등 , 죽 (가) 언어 사용과 언어 조직의 메커니즘을 심리학적 설명에 의존하려는 이론과, (나) 신문법학파의 역사적 실체에 대한 배타적 관심과의 갈등의 산물이었다. 그들이 유추 와 음운교체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제공함으로써 적절한 문법 이론을 공식화하지 못한 것은 묵시적으로 공시적인 그들의 이론적 구조와 그 들의 역사적인 실질적 경향 간의 이러한 긴장의 증거다. 언어 사상에 대한 이러한 역사적 설명은 관념체계들을 구성하고 있 는 요소들간의 모순과 긴장의 문제들이 어떻게 혁신의 근거가 되었는 가를 보여 주었댜 그러한 갈등은 철학적 가설들과 이론적, 실체적 혹 은 방법론적 관념들 사이에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과 조사하는 방법론 사이에서, 그리고 실체적 관심과 이론적인 구성 사이 등에서

    일어났댜 긴장은 언어학자들이 그들의 목표와 대상을 정의하고 그들 의 방법(예를 들면, 신문법학파식 실증주의)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사 용했던 용인된, 그러나 종종 검토가 안 된 철학적 가설로 인해 발생됐 다. 이론적 정교화(유추 이론과 음 변화 이론을 정교하게 하기 위한 시도처럼)나 방법론적 발달과 성공의 예기치 않았던 결과(음 법칙과 교착 이론과의 상충처럼)로서 모순이 나타났다 . 또 어떤 경우는 그러 한 이론적 방법론의 발달이 실질적 제약이나 알려진 철학적 한계(예 를 들면, 언어 변화를 설명하는 심리학적 문법 이론을 공식화하려는 신문법학파 이후의 시도)와 마찰을 빚는 경우도 있다. 하나의 관념체계롤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간의 갈등이 보다 근본적 인 혁신의 일반적 근거가 되는 것 같지만, 한 관념체계의 다른 문제들 로 인해서 의미 있는 전환이 일어나는 상황들이 있다. 예를 들면, 새 로운 발달이 이론적으로나 실체적으로나 심각한 불완전성이 발견됨으 로써 시작될 수 있다. 유추에 대한 심리학적 설명이 유추적 형성의 단 하나의 사례도 설명하지 못했다는 사실, 또는 음운교체 이론은 방법론 적으로는 중요하지만 이론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신문법 학파 이론을 수정하기 위한 수많은 시도(보두앵, 크루제프스키, 메이 예의 이론을 포함한)를 유도했다. 그러나 언어학에서 이러한 유형의 이론적 불완전성은 심각한 모순과 공존했으며, 그렇게 될 때에야 비로 소 그 관념체계의 근본적 수정을 일으킬 만큼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내적 긴장의 발견은 언어학 발달의 내적 결과만은 아니었다. 언어학 자들은 학문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더 넓은 문화적 환경의 참 여자로서, 다론 학문의 발달뿐 아니라 지적 견해의 분위기 변화에 의 해서도 영향을 받았다. 초기 비교문법학자들의 이론과 그들의 방법론 의 갈등은 낭만주의 철학과 그 후의 헤겔주의와 슐라이허의 진화론이, 19 세기 후반의 실증주의 과학철학 및 문화역사과학에 대한 심리주의 로 대체되었을 때 가시적으로 드러났다. 실증주의 철학을 역사 변화를

    지배하는 인과 법칙의 발견에 적용할 때의 내재적인 난점들이, 실증주 의가 신칸트주의자와 관념론자(예를 들면 딜타이 Dil the y, 빈델반트 Wi nd elband, 크로체 Croce 등)에 의해서 공격을 받은 때부터 언어학 자들에게 더욱 문제거리가 되었다. 같은 법칙을 따르는 동일한 언어 사실들의 부류들을 명시하려는 신문법학파의 시도를 괴롭힌 모순은, 하나의 사실과 그에 대한 과학적 개념들의 관계에 대한 경험주의자의 생각이 첨예한 철학적 문제(예를 들면, 마흐 Mach 와 뒤앙 Duhem 의 체계와 뒤르켐 Durkhe im과 베버 Weber 의 사회학에서)가 되었을 때 뚜렷하게 부각되었다. 외부의 지적 추세가 긴장과 모순의 발견뿐 아니 라, 그 해결에도 영향을 주었다 . 잇단 철학 체계와 언어학 관념체계의 상호 침투는 모든 언어 사상에 드러나 있다. 낭만주의는 비교문법학자 들이 언어를 유기체로 정의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그들이 언어학의 목표를 쇠퇴하지 않은 본래 언어를 되찾는 것으로 공식화하는 데 영 향을 미쳤다 낭만주의는 여러 가지로 손상된 형태들 속에서 원래의 핵을 드러내게 하는 그들의 방법론을 이끌어 주었으며, 굴절과 본래 언어의 구조와 발달에 대한 그들의 이론을 불러일으켜 주었다 . 마찬가 지로, 1850 년대 이후 독일 사회과학자들 사이에 공통된 실증주의 사 상의 영향으로 신문법학자들은 언어를 심리 • 물리적 행위로 규정했으 며, 언어학의 목표를 보편적 법칙을 공식화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 고, 언어학의 방법은 균일주의 가설과 〈동일한 원인/동일한 결과〉 원 칙의 가설에 의존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언어 이론은 심리학적 • 생 리학적 법칙의 바탕 위에서 역사 변화를 설명해야 한다고 가정했다. 신관념론자 언어학을 부각시키는 데 있어 크로체의 역사철학과 독일 에서의 반실증주의적 반응이 한 역할은 그 학파 구성원들에 의해 공 개적으로 인정되었고, 그들 관념체계의 모든 면에서 명백히 나타났다. 광범위한 철학적 추세와 인접 학문의 발달이 새 관념체계의 공식화 에 중심적 역할을 할지라도, 이러한 체계에 도입된 혁신이 새로운 철

    학적 정설을 단순히 반영하는 것은 아니댜 우리가 지금까지 논해 왔 듯이, 만약 수용된 이론의 문제시되는 긴장과 모순을 제거하려는 시도 에서 단절이 나온 것이라면, 새로운 관념체계는 대체될 이론의 어떤 전통을 불가피하게 계속해서 지녀야 할 것이다. 혁신이 기존의 관념체 계 안에 있는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는 바로 그 사실 이, 인지적 지속성이 비록 제한적일지라도 어느 정도는 분명히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적어도 최소한의 지속성이 없다면, 새로운 관념체계 가 동일한 지식 영역에 속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기조차 불가능 하다. 그러나 인지적 지속성이란 통상적으로 보다 광범위한 것 같다. 한 관념체계를 구성하고 있는 어떤 요소들간의 긴장을 완화하는 데 는 다양한 종류의 단절이 개입될 수 있다. 한편으로 슐라이허의 철학 및 이론과, 또 다른 한편으로 그의 방법론 사이의 불일치를 제거하려 는 신문법학자들의 시도에서 이들을 이끈 것은 새로운 과학철학과 언 어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었다. 이 새로운 철학적 관념은 단절적 요소 들을 언어학 이론에 도입했으며, 새로운 언어 발달 이론을 위한 틀로 쓰였댜 그럼에도, 신문법학자들의 실체적 관심은 그들 이전 학자들의 관심과 부분적으로 일치했다. 즉, 본래 언어의 재구성에 더 이상 관심 을 갖지 않고, 입증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언어 형태를 재구성하고 그 역사적 발달을 추적하는 데 몰두했다. 그들은 또 음의 역사에 관한 가장 어려운 몇몇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성공적임이 판명된 슐라이허 와 쿠르티우스의 방법론(이것은 카를 베르너와 아돌프 그라스만의 방 법론이기도 했다)을 유지하는 데에도 관심을 가졌다. 결과적으로 신문 법학파 이론은 지속적 • 단절적 요소들을 모두 함유하게 되었으며, 언 어학의 기존 요소들과 새 요소들을 통합시키는 시도가 되었다. 지속과 단절의 상호작용은 신관념론자들의 관념체계에도 있었다. 근본적인 철 학적 • 이론적 • 방법론적 변혁의 와중에서 관념론자들은 얼마간의 신 문법학파 관념들을 유지했댜 죽, 언어학은 언어 변화의 인과적 설명

    을 공식화하 는 데 목표를 두어야 한다 는 선배 학자 들 의 의견에 동의 했으며, 추상성 을 혐오하는 데서도 신문법학자 들 과 의견을 같 이했고, 언어에 대한 그들 자신의 새로운 정의에도 불구하고 신문법학파가 언 어를 개인 발화와 동일시한 주장도 그대로 유지했다. 아마도 가장 중 요한 것 은 그들의 문제점들이 신문법학자들의 철학과 이론에 내재했 던 난점들을 분석하는 데서 나왔다는 것이며, 바로 이 사실이 어떤 정 도의 실질적인 지속성을 보증해 주고 있다 즉, 언어 변화가 신문법학 파 이론에 의해서 설명되어야 했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관념론자 언 어학에 의해서 설명되어야 했다. 관념론적 설명은 새롭고 매우 단절적 이었지만, 그 들 의 문제들은 해묵은, 당시의 다른 언어학자들과 공통적 인 것들이었댜 지속성은 실체적 관심이 변화할 때조차도 나타난다. 아주 명백하게 도, 소쉬르의 혁명은 새로운 공시적 문제점들을 언어학에 도입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아 왔듯이, 공시적 문제들은 언어 사용에 대한 신 문법학파의 이론의 많은 부분에, 그들의 철학적 신념의 몇몇 부분에, 그리고 그들 방법론의 특정한 양상들에 암시적으로 나타나 있었다. 그 들의 언어 이론, 특히 유추 이론의 심리학적 지향은, 언어는 사람의 마음 속에 조직화된 표상 체계를 형성했다고 전제했다 . 그들이 방법론 적으로 모음교체설에 의존한 것은 암시적으로 언어 상태의 검토를 요 구했고 또 균일주의 원리는 공시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모든 발 달에 장애가 되었던 것은 인과적 설명을 요구하고, 추상성을 금하고 (따라서 사실들의 정체성 문제를 야기했으며), 일반적 역사 법칙을 공 식화할 것을 고집한 신문법학파의 당혹스런 과학철학이었다. 실증주의 의 문제들은 신문법학자들이나 언어학에만 특별한 것은 아니었고 , 소 쉬르가 사실에 대한 구성주의 및 상대주의적 개념과 현상 설명에 있 어 보다 다양한 방식을 받아들임으로써 그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한 시도는, 언어학의 내적 문제 및 다른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철학적

    변화에 의해 의도된 것이었다 따라서 소쉬르의 철학적 혁명도 극적인 것이긴 하지만, 임의적 단절의 결과가 아니라, 지배적인 언어학 이론 과 사회과학철학 내부의 특정 문제들에 대한 반응이었다. 더구나 신문 법학파로부터 구조주의 관념체계로의 전환에서 예시된 철학적 단절은 신문법학파 이론에 암시적으로 나타나 있었지만, 그들의 철학적 신념 으로 인해 봉쇄되었던 공시적 언어 연구 발달의 장애물을 어느 정도 제거해 주었다. 이는 소쉬르가 도입한 단절, 특히 그의 관념체계가 제 일 먼저 자극했던 실체적 관심의 전환도 기존의 관념 틀 안에서의 문 제들로 인해 제시되었던 것이며, 이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들이 역동적 이지만 지속적인 발달의 여지를 어느 정도 마련했음을 뜻한다 . 보다 직접적이지만 분석적으로는 덜 홍미 있는, 소쉬르와 신문법학파 간의 지속성온 소쉬르가 단지 부분적이지만 자신의 언어 이론에 통합시킬 수 있었던 신문법학파의 역사비교언어학 체계의 많은 부분을 그대로 보유한 데서 분명히 나타난다. 이러한 부분적 통합에 내재한 문제들은 후에 프라그 학파에 받아들여져 유럽 언어학의 다음 변혁을 가져왔다 . 우리가 제시한 과학적 발달 모델에 내재한 다양한 체계들 가운데 역사를 초월한 선택 기준이 결여된 것과 더불어, 과학적 관념체계의 개방성은 이전에 수용된 이론 내에서 일어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몇몇의 대안적 관념체계들을 공식화할 여지를 마련할 수도 있 다. 관념론자들과 초기 구조주의자들은 신문법학파 이론에 내재한 동 일한 문제에 대응했지만, 그들의 해답은 정반대였다. 둘 다 신문법학 파와 공유하는 관념들이 있었음에도, 각기 보유한 것과 거부한 것이 달랐다. 이것은 아마도 지속과 단절의 인지적 불확정성에 대한 가장 뚜렷한 예가 되겠지만, 단절은 무작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언어학자들의 선택은 한 관념체계에서 다른 관념체계로 이어지 는 요소들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는 것도 증명하고 있다. 언어학에 있어서의 이러한 인지적 발달의 분석에서 야기된 과학 변

    화의 모델에서는 과학 변화를 지배하는, 역사 를 초월한 기준을 공식화 할 여지가 없다. 관념체계를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문제들 一긴장 , 모순 , 불완전성――_의 본질이 너무 다양해서 그러한 방법 론적 기준의 공식화를 고려할 수 없다. 관념체계와 그 해결책 내의 모 순을 발견하는 것은 외적 발달은 물론 내적 발달에도 달려 있다. 관념 체계의 철학적, 이론적, 방법론적 또는 실체적 요소들에, 혹은 이들 사 이에 문제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 그 해결책은 이러한 관 념체계들의 한 측면 또는 몇몇 측면에서의 변화를 수반할 수 있다 . 철 학적 단절은 방법론적, 이론적 혹은 실질적 지속과 공존할 수 있고, 이론적 혹은 방법론적 변화는 철학적 • 이론적 관념에 영향을 미칠 필 요는 없으며, 더욱이 다른 치환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가장 깊이 있 는 혁명에서도 변화하는 것도 있고 지속되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이 지속성과, 새로운 관념체계가 해결하고자 하는 갈등이 이전의 인지 체 계로 인해 발생했다는 사실은 둘 다 과학 발달에서의 합리성의 보증 이 된다. 비록 이러한 합리성과 그 기준이 영원하지 않고 역사를 초월 한 공식화를 감안하는 것도 아니지만, 과학적 발달의 역학은 너무 복 잡해서 단일 규칙이나 하나의 보편적 기준으로 기술할 수는 없지만, 이것은 우리가 이들을 어느 규칙에도 지배되지 않고 어떤 기준에도 따르지 않는 불가해한 인식론적 중단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 과학 지식의 발달에서 지속과 단절은 관념체계들의 변화를 지배하 는 인지적 역학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과학 연구가 행해지는 사회적 • 제도적 조건에서도 초래된댜 여기에서 우리는 언어학의 경우, 단지 어떻게 대학의 언어학에서 이러한 지속성이 유지되거나 단절되는가 하는 것과, 다른 환경에서는 과학자들로 하여금 급진적으로 혁신을 하 도록 격려하면서 학문공동체의 공식 • 비공식 조직이 어떻게 대학의 단절적 변화를 제한했는가 하는 것만울 검토한다. 그러나 학계 내에서

    의 과학의 제도화는 역사적 현상이며, 대학에서의 과학에 영향을 -미치 는 사회적 힘은 다른 배경에서 과학적 실행에 영향을 미치는 힘과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서, 대학에서의 한 연구 영역의 제도화는 그 지속적 발전을 촉진시킨댜 독일 대학에서의 언어에 대한 비교 역사 연구의 제도화는 이 분야가 다른 분야, 죽 덜 공식적이거나 덜 종합적 으로 발달된 조직 환경에서는 결여되었던 영속성을 이 분야에 부여했 댜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고립된, 그리고 종종 비전문적인 몇몇 학자 들이 언어학 연구를 했으며, 교육과 연구의 기회를 모두 부여할 수 있 는 기관에 정착하지 못했다. 한편 독일에서는 대학에서 교육과 연구 조직의 실제적 개혁은 물론, 새롭게 공식화된 비교언어학의 관념체계 와 신인문주의 교육철학의 이념적 조화 등, 이 모든 것이 결합되어 대 학 교과과정에 일찍 언어학을 포함시키고, 언어학이 영구적 학문분야 로서 제도화되도록 촉진했다. 새 대학은 최신 연구를 젊은 학자들에게 직접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원로 연구자들 옆에서 교육과 연구의 진보 된 도제 신분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었다. 독일에서의 언어학 의 지속적 발달은 연구가 대학에서 교수직 승진에 필수적이었고, 교육 과 연구룰 병합함으로써 대학이 언어학자들에게 정연한 교수직 패턴 을 마련했다는 사실에 의해서도 촉진되었다. 대학 교수들이 젊은 학자 들의 첫번째 독창적 연구 업적들(그들의 박사학위 논문과 교수 취임 논문 Hab il itati onsschr ift en) 을 공식적으로 평가했다는 사실은, 연구 분야의 계승만이 아니라 수용된 관념체계의 계승에 도움이 되었다. 이 초기 논문들은 그들이 앞으로 교수직을 이어 나가는 데 있어서 필수 적인 것이었고, 이로써 젊은 학자들이 수용된 수준과 기준에 따를 수 있는지 직접적으로 평가될 수 있었다. 비교언어학 또는 역사언어학에 대한 합리적인 논문으로 간주되기 위해서 초기의 이 두 저작은 적어 도 그 분야에서 저작을 평가하는 기본적 기준에 합치해야만 했다.

    연구에 대한 평가와 정당화는 일단 한 학자가 전문가 들 의 공동체에 들어왔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댜 다른 사람들의 논문들을 평가하고 그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그 공동체가 특별한 권위를 부여한 과학 엘리 트와 학자 집단의 역할이다. 공인된, 그리고 전문적으로 편집되는, 심 사위원이 있는 잡지에 논문 하나를 발표하는 것이 완전한 정당화로 가는 첫 단계이댜 관련된 다른 자원들(자금, 대학에서의 지위, 학생들 과의 접근)의 분배는 기존 엘리트에 의해서 부분적으로 규제되는데, 기존 엘리트에게는 이렇게 공식 • 비공식적으로 발달의 지속성을 강제 하는 기회가 주어져 있다. 엘리트 자신들의 권위는 그 구성원들이 그 분야에 어느 정도 기여했느냐에 주로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그들 은 통상 지속성을 유지하고 그들의 연구를 정당한 것으로 판단하는 관념체계를 유지하는 데 기득권을 갖고 있다. 그러나 엘리트가 지속성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전반적 관심이 어떤 상황에서는 수정될 수도 있다. 엘리트의 권위 또는 그들의 영향력이 신장되는 기회에 대한 위협이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단절을 불러들이 게 할 수도 있다 엘리트에 대한 다른 학자 집단의 도전, 전체적 학문 구조에서 그 분야의 위상 변화, 그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전 문직 기회의 변화, 또는 예를 들어 그 분야의 제도적 분열이나 차별 화, 또는 그 분야의 제도적 팽창으로 인한 권위 유지의 문제들, 이 모 든 요인들은 엘리트가 기존의 기준을 유지하는 능력에 영향을 줄 수 있고, 그들의 관념체계를 적응성 있게 혹은 단절적으로 수정하도록 촉 진한댜 그 관념체계의 심각한 내적 문제들도 역시 엘리트 구성원들에 게 근본적인 단절은 아니더라도, 단절적 혁신을 도입하게 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이 아마도 엘리트가 그들의 전통적 관념체계를 수정하도 록 만드는 유일한 요인들은 아니겠지만, 우리들은 신문법학파의 출현 에서 적어도 이들 몇몇 요인들의 결과를 관찰한 바 있다. 1860 년대와 1870 년대의 문헌학 연구의 팽창은 언어학 신장의 기회

    를 증가시켰다. 언어의 역사 • 비교 연구는 개별 학문으로서가 아니라, 다양한 문헌학 분야 안에 있는 연구 영역으로서 제도화된 것이었기 때문에, 문헌학의 새 교수자리는 언어학자나 또는 적어도 역사언어학 과 비교언어학 분야에서 훈련된 학자가 차지할 수 있었다 . 그러나 문 헌학의 성장도 위험을 가했다 . 죽, 문헌학의 성장은 그 분야의 세부 전문화와 분열을 조장했으며 엘리트들이 분산될 우려를 가져왔다. 신 문법학파(그 구성원들은 기존 엘리트들의 후계자들이었는데 , 이는 독 일 언어학의 제도적 구조 안에서의 특권적 위치와 일찍이 이룩한 그 들의 학문적 기여 때문이었다)의 출현은 전반적 학문의 팽창에서 오 는 새로운 기회들을 이용하려는 시도로, 그리고 더 광범위하고 더 다 양화된 분야에서 언어학 연구에 대한 엘리트의 권위를 재언명하기 위 한 수단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신문법학파 는 어떤 단절적 혁신을 계승된 관념체계에 도입하는 것에 의존했다. 즉, 그들은 그 관념체계의 철학적 • 이론적 기초를 현대화했으며 그들 의 언어 변화 이론을 모든 언어들의 모든 역사적 발달 단계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광범위한 문헌학 분야에 대한 언어학 관념체계의 관련성을 주장했다 이렇게 인지적 • 제도적 동기를 가진 혁신과 아울러, 신문법학자들은 특별한 과학적 권위에 대한 요구를 강화하는 한편, 방법론적 • 실체적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어떤 준(準)혁신도 도입했다 . 예외없는 음 법칙의 원리는 언어학의 방법론적 실행에 별 영향을 주지 못했지만, 그것으로 신문법학자들은 그 분야에 대한 기여의 정당성을 보존할 수 있었으며, 동시에 그것은 엄격한 방법론적 기준으로 해석되었고 엘리 트 지위에 대한 그들의 요구를 뒷받침했다 . 신문법학자들은 언어 연구 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된 기준을 명시하는 그들의 권리를 확언함으로 써, 언어학의 분열과 언어학 엘리트 분산의 위협에 맞서고자 했으며,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연구의 중재자 역할을 할, 유일하게 자격을 갖

    춘 사람들로 떠올랐댜 역사비교언어학이 독립된 학문으로 되는 것보다는 많은 문헌학 분 야의 하위 분야로 있어야 한다는 신문법학파의 신념도, 역시 모든 비 교 역사 연구 안에 통합된 기준과 집중된 권위를 유지하면서 언어학 자들에 대한 학문적 기회의 팽창으로부터 이익을 얻으려는 시도로 풀 이될 수 있댜 신문법학파의 위로부터의 혁명에 대한 분석은 학문 엘리트들로 하 여금 상당한 정도의 인지적 지속성을 유지하도록 유도한 제도적 요인 들을 구별하는 데 도움이 된다. 비록 이 지속성이 혁신으로 가장된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야에 대한 전통적인 기여의 정당성 울 보존하고 기준을 명시하고, 권위 있는 과학적 판단을 선언하는 권 리에 대한 엘리트의 요구를 보호하는 데 이바지한다. 동시에 신문법학 파의 경우에 대한 분석은 엘리트(또는 그 계승자)가 어떤 인지적 단 절을 도입하지 않으면 안 될 수밖에 없는, 하나의 학파를 만듦으로써 그렇게 추진해 나갈 수 있는 경우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사상학파들은 엘리트한테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과학의 제도적 조직은 과학공동체 안에 있는 비공식적 장치와 함께, 다른 학 자들에게 그 분야의 권위 구조에 도전하고, 변화, 더 나아가 혁신적 변화까지도 관념체계에 도입할 기회를 부여한다. 사상학파들은 지배적 관념체계에 반대하기 위해서 뭉쳐진 학자들의 집단으로서, 종종 인지적 단절의 견지에서 그들 자신을 정의한다. 그 들이 대안적인 과학적 관념체계를 제시하고 과학적 연구를 평가하고 정당화할 수 있는 대체 수단을 만들 때, 그들도 역시 전통적 엘리트의 권위를 손상하거나 무시하게 된다. 이러한 인지적 • 사회적 도전의 성 격은 많은 요인들에 달려 있다. 죽, 그 분야의 제도적 상황, 제도적 구조 안에서의 그 학파의 위치, 외부의 지적 추세, 학파 성원들의 위 상 등, 이 모든 것들이 한 학파의 창설에 영향을 주는 기회와 제약을

    구성한댜 다양한 문헌학 분야들 안에서의 독일 언어학 연구의 제도화는 그 인지적 통합 및 권위 구조의 측면에서 언어학의 분열을 장기적인 위 험으로 몰고 갔다 우리는 신문법학자들이 이 위험을 피하기 위한 노 력에서 그 위험이 제공하는 기회를 이용하는 동시에, 그들의 엄격한 방법론적 기준의 일반적 유효성과 적용성을 강조했다는 것을 보았다 . 몇십 년 뒤에 신관념론자들은 다른 책략을 선택했댜 상대적으로 주변 적인 이 학자들의 집단은, 학문분야의 세부 전문화에 대한 일반적인 반작용에서 힘을 얻어, 언어학과 문헌학의 모든 본질적인 차이를 부인 함으로써 그들의 권위를 강화하려 했다. 전통적인 언어학 엘리트들은 모든 순수한 역사비교언어학 연구에 대해 특별한 권위를 주장했지만, 이러한 연구를 단지 다양한 문헌학 연구의 일부로서만 간주했다. 신관 념론의 도전은 더 광범위하면서도 더 제한적인 주장을 수반했다. 신관 념론자들은 자신들이 단지 언어학자가 아닌 문헌학자이기 때문에 더 광범위하며, 모든 문헌학 연구는 그들의 관념체계에 바탕을 두어야 한 다고 주장했다. 더 제한적이라는 것은, 그들이 각 문화와 언어의 독특 한 면을 강조할 때 문헌학 분야의 각각의 전문성에 중점을 두었기 때 문이었댜 신관념론자들은 언어학을 문헌학과 통합함으로써, 20 세기 초 독일 대학에서의 언어학 조직의 특이한 양식과 학문공동체에서 유 행했던 전문화에 대한 비판에 반응하고 있었다 . 동시에 그들이 통합을 호소하고 신문법학파 이후 엘리트에 도전하는 데 있어서는 전통적으 로 언어학자들의 권위에 부과된 한계를 이용했으며, 이는 또한 관념주 의 언어학의 새로운 능력 범위를 정하는 시도가 되었다. 언어학이 다양한 문헌학들 속으로 분열되는 것은, 소쉬르와 그의 제 자들에게는 하나의 문제(그리고 기회)였다. 그들의 제도적 자원의 한 계 때문에 다른 많은 문헌학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언어 연구에 도전 한다거나 또는 이를 문제시조차 할 수 없었지만, 그들은 언어학을 문

    헌학에서 분리하고 그 자체만의 문제와 방법론 및 이론을 지닌 자율 적 학문으로 취급할 것을 선택했다. 구조주의자들의 언어학에 대한 별 개의 정체성 주장은 그들의 인지적 혁신의 중심적 요소였는데, 그것은 또한 주네브 학파가 고유한 학문적 권위를 주장할 능력 범위를 명시 하기 위한 시도이기도 했다. 그들이 제안한 언어학에 대한 실체적 관 심의 전환이나 언어학의 변별성과 자율성을 지지한 그들의 주장은 모 두 전통적 독일 엘리트의 권위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은 되지 못했다. 대신에, 소쉬르와 그의 제자들은 새로운 관심 영역을 제시하고, 그 독 립적 위상을 주장함으로써, 독일 엘리트의 권위를 무시하고 그들의 능 력 범위를 독일 언어학자들의 범위와 분리하고 있었다. 한 분야가 제도화되는 방식이 새로운 학파가 엘리트에 도전할 수 있는 능력에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고 한계를 부과하기도 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제도적 구조 내에서의 그 학파의 위상은 스스로의 자 극과 제약을 산출한다. 언어학파에 관한 우리의 분석은 주변성과 혁신 성향 사이의 오랜 상관성을 뒷받침해 준다. 주네브 학파의 예는 그리 고 우리가 아직까지 설명하지 않은 카잔 학파, 프라그 학파, 또한 코 펜하겐 학파의 경우 역시 전체적으로 19 세기 역사언어학의 근본적인 재구성이 독일 언어학의 중심부에서는 얼마큼 떨어진 곳에서 일어났 음을 보여 주는 것 같다. 주변적 위치와 혁신의 이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두 가지의 보완적 방법이 있다. 한편으로는, 소쉬르의 경우가 예 시하듯이, 문화적으로 우세한 공동체에 불완전하게 통합되는 것은 우 세한 관념체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게 하고 독립하려고 애쓰게 만들 수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주변적인 제도적 위치에 있는 학자들은 권위에 대한 그들의 요구를 강화하기 위해서 급진적인 방법으로 개혁 울 하려는 경향이 있을지 모른다. 그들이 엘리트로부터 떨어져 있다는 것은 그들의 연구가 종종 무시된다는 것을 뜻하며, 엘리트와 합류하기 어려운 것은 더 큰 인지적 위험을 감행하도록 조장할지도 모른다. 주

    변적 위치에 있는 학자들은 지배적 관념체계를 거부한다 해도 잃을 게 별로 없으며, 그 관념체계를 재공식화하려는 그들의 시도가 다른 학자들의 관심을 끌게 되면 많은 것을 얻게 될지도 모론다. 게다가, 그 엘리트가 다른 사람들에 대한 평가와 정당화를 통하여 행사하는 통제 능력은 이렇게 먼 환경에서는 단순히 더 약해질 것이다. 그러나 주변이라도 급진적인 개혁의 자유는 완전하지 않으며, 개혁 에 가해지는 어떤 제약들은 그 분야의 제도적 중심에서 가까운 위치 보다도 주변적 위치에서 더 강하게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외곽에 떨어져 있는 학자들은 권위가 없을 뿐 아니라 다른 근본적인 자원들도 결핍되어 있다. 죽, 그들의 제자들을 제도적으로 유리하거나 책략적인 위치에 둘 수 있는 능력이 제한되어 있듯이, 통상적으로 학 생들의 확보도 보다 제한되어 있다. 엘리트에 속하지 않는 학자들에게 는 그들의 혁신을 발표해서 보다 더 큰 공동체에 알릴 기회가 일반적 으로 더 적을 것이다. 이 모든 문제들로 인해서 개혁할 수 있는 기회 는 제한되고, 점점 더 기존 엘리트에 의존하게 된다. 신관념론자들이 상대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것은 중심 위치보다 못한 데서 비롯된 이 모든 문제들을 반영한 것이었다. 죽, 포슬러의 제자들은 종종 대학에 도 못 미치는 이름없는 학교에서 가르쳤으며, 거기서 전문 언어학자가 된 학생도 거의 없었다. 신관념론자들도 자신들의 전문지를 출판하는 문제에 부딪쳤으며, 로만스 문헌학을 제외하고는 그들의 이론을 지지 하는 사람들을 별로 확보하지 못했다. 이런 종류의 제약들은 독일 밖에서 출현하는 사상학파들에게는 덜 장애가 되었다. 그들의 주변적 위치는 독일 대학 제도 내에서 관념론 자들이 누리지 못했던 상당한 정도의 제도적 자율성과 결부되었다. 20 세기 초 언어학에서 가장 혁신적인 새 사상학파들은 스위스, 러시아, 체코, 덴마크 등의 대학들에 있었으며, 독일 언어학 엘리트의 직접적 인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러한 제도적인 자율성의 상황에서도, 단절적인 혁신을 도입할 수 있는 능력은 비공식적으로는 제한되어 있다. 평가하고 정당화하는 엘 리트의 권위는 제도적 또는 국가적 경계롤 인정하지 않는 한편, 다른 지역에서 그 연구 분야가 성공한 데 대한 관심은 새로운 제도적 환경 에서도 비슷한 연구를 시작할 수 있다는 논거로 자주 이용된다. 따라 서 독일에서의 언어학 연구의 성공은, 언어학을 그들 자신의 고등교육 제도 내에서 완전히 정당한 연구 영역으로 정립하려는 프랑스 언어학 자들 사이에 공통된 논증이 되었다. 주네브와 같은 몇몇 새로운 위치 들의 고립성은 독일에서 작용했던 제약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제약들 을 부과하였다. 여러 해 동안 주네브 학파의 언어학자들은 그들의 전 문지를 발행할 만한 충분한 자력이 없었고, 적은 인원수로 더 넓은 언 어공동체에 계속 호소해야만 했다 . 주네브의 제도적 고립은 그곳의 언 어학자들이 자신들의 연구를 외부로부터 인정받아야만 했으며, 더 큰 분야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올 수 없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소쉬르의 혁명에 있어서의 깊은 단절에도 불구하고, 그의 관념체계는 역사비교언어학의 전통적 체계의 정당성을 보존하고 있었다. 이것으로 주네브 학파 언어학자들은 기존 엘리트와 직접적인 대립을 피할 수 있기도 했지만, 소쉬르가 초기에 역사언어학에 기여한 업적들의 타당 성을 유지할 수도 있었다. 주네브의 예는 실질적 단절이 주변에 위치 한 사상학파들에게 편리한 혁신의 방식을 제공했음을 시사한다. 그러 한 단절은 직접적 충돌을 피하고 그 학파가 요구하는 권위의 범위를 제한하게도 한다 . 그렇다고 해서 항상 그러한 것은 아니며, 그러한 주 변 학파들이 결코 다른 단절을 도입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다. 다양 한 제도적 위치에 있는 사상학파들과 특정한 종류의 단절과의 상호관 계는 많은 상황적 요인들에 의해 조정되며, 이 상호관계는 모든 과학 분야에 대해 역사적으로 고정된 것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 권위를 추구함에 있어, 언어학의 사상학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그

    들 주장의 정당성을 증대시키고자 했다 . 그러나 신관념론자 들 의 예가 증명하듯이 항상 성공적은 아니었지만 , 독립된 전문지 를 발행하는 일 은 일반적 현상이었댜 여기서 살펴본 몇 학파 들 의 역사 를 통해서, 한 학파의 발달의 어느 시점에서 전문지 를 발행하는 모험이 적 절 하고 유 익할지를 결정하기는 어렵지만, 각 전문지의 발행은 한 학파가 꽤 많 은 지지자들을 얻는 때만 그 학파 지도자들과 더 큰 학문공동체의 관 계를 손상시키지 않고, 그 들 의 권위 를 강조해 주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징표들이 있다. 신문법학자들조차도 그들 학파의 역사에서 아주 늦게 서야 제대로 된 언어학 잡지를 발행했다. 죽, 《인도게르만어 연구 Indog e rmanis c he Forschung e n> 첫 호가 나온 것은 그 학파가 출현 한 지 13 년 후였다 그들이 그 이전에 시도했던 《 형태론적 고찰 Morph olog isc he Un t ersuchun g en 》은 논문이 2 편만 실린 특이한 출 판이 었댜 파울 Paul 과 브라우네 Braune 의 《 논고 Beit ra g e > 는 독 일 문헌학에만 한정되었다. 그 학파가 추진했던 인지 적 분기 유형 , 학 파 회원들의 다른 출판물 이용, 어느 분야의 일반적 출 판물 상황, 이 모든 것들이 그 학파가 독립된 학술지에 그 학파의 권위를 정립하려 는 시도에 영향을 미쳤고, 이것은 더 연구할 필요가 있는 주제이다 . 권위를 추구함에 있어 사상학파들은 놀라울 정도로 자주 그들의 혁 신에 대한 외적 정당화에 호소한다 . 즉, 신문법학자들은 거듭해서 심 리학과 생리학의 권위에, 신관념론자들은 철학과 미학의 권위에 호소 했고, 언어의 자율성을 주장한 주네브 학파조차도 이따끔 그들의 혁신 과 사회학 및 사회심리학의 양립성을 증명해 보이고자 했다. 물론 그 러한 인접 분야에 호소하는 것은 그 학파 관념체계의 과학적 정당성 을 강화하고, 전반적 과학 체계 속에서 자리매김하는 데 도움이 되지 만, 각 분야들의 변화하는 위계 구조와 그것을 결정짓는 요인들에 대 한 흥미 있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나는 지금까지 이 연구를 통하여 과학공동체의 공식 • 바공식 조직

    안에서 한 학파가 차지하는 위치와 더불어 한 분야의 세도적 상황이 , 허용될 수 있 는 단절의 범위에 한계와 제약을 가하 는 한편 , 혁신을 위 한 자극과 기회 를 제공한다 는 것을 주장해 왔다. 보다 명확히 말하면 나는 특정한 지속과 단절들의 실제 특성과 그 주창자 둘 의 사회적 상 황 사이에 연계관계를 수립해 보고자 했다. 예외없 는 음 법칙을 주장 한 신문법학파, 언어를 예술로 정의하고 언어학과 문헌학을 동일시한 신관념론자들, 역사언어학 문제에 대한 전통적인 방법을 묵시적으로 보존하면서 통시언어학의 자율성과 함께 랑그 / 파롤의 이분법을 주장 한 소쉬르, 이들 모두의 예는 그 분야의 권위 구조, 혹은 제도적 기회 와 제약이라는 견지에서, 그 주창자들의 제도적 위치가 긴박한 상황에 처했을 때의 대응으로 보인다. 어쨌든 이러한 모든 신념은 보다 더 넓 은 관념체계로 통합되고 그 스스로 인지적 정당성과 결정 요인을 갖 는다 이러한 인지적 정당성의 존재는 종종 사회적 설명은 더 이상 필 요하지 않으며 지식사회학은 그 연구를 〈비이성적〉 또는 〈무이성적〉 신념에 제한해야 한다는 하나의 신호로서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접근 방법은, 이성적 행동은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명한 것이며, 어떤 주어진 인지적 상황에서도 정당한 근거가 있는 주어진 다른 일련의 신념들로부터 불가피하게 그리고 필연적으로 나온 단지 하나의 이성 적 신념만이 있고 따라서 어떤 〈사회적으로 오염되지 않은〉 사람(만 일 그런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면)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는 가정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나는 과학자들이 사실상 그러 한 분명한 선택을 얼마나 자주 하는지에 의문을 품으며, 과학자들이 내리는 대부분의 〈이성적〉 결정도 여러 가지의 있을 수 있는, 동등하 게 〈이성적〉인 해결들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과학적 관념체계의 개방성(미결정성)의 또 다른 면일 뿐이지만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그것은 과학의 역사적 발달에 있어서의 다양한 인지적 • 사회적 (제도적) 조건들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암시한다. 과학

    자들은 과학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결정 을 내리고 그들의 견해를 제의한다. 이러한 관념과 결정은 그들 학문 의 관념체계 및 과학자들도 지지하는 일반 문화적 신념에 뿌리를 두 고 있지만, 그것들은 또한 과학자들의 사회적 상황, 그들과 다른 사람 들과의 상호작용, 사회적 • 제도적 세계가 부여하는 기회와 한계 등에 의해서도 형성된다.

    옮긴이의 말 이 책은 올가 암스테르담스카 Olga Ams t erdamska 의 『 Schools of Thoug h t : The Develop m ent of Lin g uist ic s from Bopp to Saussure 』 (Do rdrecht I Bosto n / Lancaste r / Toky o : D. Reid e l Pub li 一 shi ng Comp an y , 1987) 를 번역한 것이다. 암스테르담스카는 폴란드 출신의 과학사회학자로서 1984 년 미국 콜럼비아 대학에서 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이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의 의 편집 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 그녀는 콜럼비아 대학에서, 미국 사회학계의 대부 중 한 사람이며 대표적인 과학사회학자인 로버트 머튼 Robe rt K. Me rt on 의 제자로 수학했으며 , 이 책 역시 콜럼비아 대학에 제출된 학위 논문을 수정 보 완하여 시리즈의 한 권 으로 출판한 것이다 . 이 시리즈는 1982 년 이래 출판되어 왔으며, 영국 맨체스터 대학의 휘틀리 R. D. Whitley 교수롤 책임 편집인으로 하여 미국과 유럽의 전문 교수진으로 구성된 편집위원회에서 선정한 각국 의 과학사회학 및 과학철학의 기본 이론서로 구성되어 있다. 암스테르담스카는 과학지식 사회학의 일반 이론에 관한 연구를 계 속하는 한편, 근래에는 금세기의 생의학 발달과 관련한 연구에 집중하 여 , 와 같은 전문지 에 논문을 발표하

    고, (Pa ris : Lib b ey, 1993) 울 공동 편집하기도 했댜 경력에도 잘 나타나 있듯이 저자는 전문 언어학자는 아니고 과학사 회학자이다. 그러나 그녀의 개인적, 학문적인 다국적 배경과 본서에서 도 언급된 전통적인 유럽식 교양 교육의 배경이 과학 창작 및 과학사 회학적 관점에서 언어학의 발달을 고찰하는 특정한 연구 작업에 적합 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 * * 이 책은 일반적인 언어학사나 언어학 이론 개설서는 아니다. 저자는 언어학의 역사적 발전을 검토함에 있어서 그 이론적 변화 과정의 추 적과 함께 이론 형성에 영향을 미친 사회적 환경을 분석함으로써 학 문으로서의 언어학의 정립에 대한 과학사회학적 분석 및 나아가 그 이론적 기초에 대한 과학철학적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현대 학문에서 학제간 접근 방법은 이미 보편화되어 있고, 과학에 있어서도 인지 능력의 한계 및 정치적 • 사회적 요인의 영향을 아울러 고찰하는 접근 방법은 토마스 쿤 Thomas Kuhn 등에 의하여 이미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책은 언어학사에 대한 학제간 연구 접근 방법 의 광범위한 시각을 제공하는 동시에, 바로 이러한 점에서 일반언어학 개설서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유용성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이 책은 이론 분석을 위주로 쓰여진만큼, 내용의 전개가 논리적 검증 으로 일관된 데다 그 내용상 철학, 심리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지식을 기초로 하였기 때문에 독자로 하여금 읽어 나가는 데 딱 딱하고 지루함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책의 성격상 가능한 한 논리적 흐름에 맞춰 원저에 충실하게 직역을 많이 했음을 밝혀 둔다.

    이 책의 구성을 보면, 제 1 장은 언어학의 역사적 전개와 학파별 검토 에 기본이 되는 이론적 분석틀의 수립에 관해 논하고, 제 2 장부터 제 8 장까지는 19 세기 초 독일에서 처음 언어학이 정 립될 때부터 20 세기 초 소쉬르의 혁명에 이르기까지의 변화 과정을 주요 학파별로 분석한 다. 마지막 제 9 장은 요약 및 결론, 그리고 여기에 비춰 본 언어학 이 론 자체에 대한 논평이 덧붙여져 있다. 아래에는 이 책에서 저자가 전 개한 이론의 주제들 및 그 의의만을 간단히 되짚어 보기로 한다. * * * 본서의 대전제는 과학의 발달은 그 지적, 사회적 맥락의 양면에서 이해할 때에만 그 발달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 과학 의 특징으로 모든 학문 내부에는 혁신과 전통, 즉 인지적 단절과 연속 사이에 본질적 긴장이 있다. 언어학에서도 그 바탕이 되는 관념체계는 항상 긴장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고, 필연적으로 불확정 상태에 놓여 있음으로 해서, 학자들간에 불일치와 대립을 야기하고 인지적 발달과 단절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새로운 학파의 성립을 가져온다. 이러한 관념체계의 역사, 이를 대표하는, 죽 학파의 역사를 추적해 봄으로써 어떤 관념이 유지되고 혹은 변화하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를 찾아볼 수 있다 관념체계 내의 긴장과 모순은 거꾸로 관념체계에 영 향을 주며, 이에 대한 해결책은 다양하고도 때로는 상호 대립적인 형 태를 취하기도 한다(신문법학파롤 극복하기 위한 신관념주의 학파와 구조주의 학파의 예). 또한 개별 학문은, 여기에서는 언어학은, 다른 분야에서 일어나는 철학적 변화, 더 크게는 당시의 사상적 사조 및 지적 풍토에 의해서 칙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당초 독일에서의 언어학 발달이 낭만주의 적 계몽 사상의 영향을 받은 사실이나, 이후의 실증주의의 세례를 받

    은 신문법학파 및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서의 신관념주의 학파들의 경 우는 모두 당시를 풍미했던 지적 풍토의 광범위한 변화가 언어학의 전개에 끼친 영향을 보여 준다. 학자들(집단)을 둘러싼 제도적, 사회적 환경은 인지 발달의 방향에 영향을 주는 한편, 이러한 환경에 놓인 학자들로 하여금 이에 대항하 여 다양한 책략을 구사하게 한다. 일차적으로 이들이 일하고 연구하는 대학 조직의 구조, 죽 이들의 연구를 평가하고 지위를 부여하는 사회 적 메커니즘은 학자들 개개인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을 넘어서 학파 의 성립과 그 성격까지를 결정하는 요소가 된다. 이것을 학문 내부의 권위 구조라는 관점에서 볼 때, 자원의 분배 권한, 사회적 명성 등과 관련된 학파 지도자의 위상 및 이러한 권한의 중앙집권화 내지는 분 산이 문제되며, 나아가 이것은 새로운 학파의 발달 기회 및 인지적 분 기의 정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또 한편 학파의 지리적 위치, 사회적 위상과 관련된 중심성과 주변성의 문제는 학파의 성립에 결정적인 요 소의 하나이다. 죽, 어느 학문분야가 고도로 제도화되어 있고 엘리트 구성원들이 잘 응집되어 있는 중심 위치에서 나오는 학파(예를 들면, 신문법학파)는 제도적 구조의 주변에서 나오는 학파보다 더 많은 저 항에 부딪치고 인지적으로도 덜 분기될 가능성이 큰 반면, 이러한 제 약이 상대적으로 적은 주변부에서 생겨나는 학파 (예를 들면, 주네브 학파)는 보다 급진적이고 혁신적인 성격을 띠기 쉬울 것이다. 이러한 분석들에 의거해 각 학파의 성립과 그 의미를 분석해 볼 때, 역사적 발전 과정의 복잡성에도 불구하고, 내부적인 철학적 관념체계의 변화 와 외부적인 제도적 ·사회적 영향을 결합시킴으로써 보다 종합적인 조망을 할 수 있게 된댜

    * * * 학파의 성립을 인지적 측면에서 볼 때, 일반적으로 인지적 분기는 철학적, 이론적, 방법론적 차이와 상충에 의하여 생겨날 수 있으나 반 드시 그러하지는 않다 . 새로운 학파는 이전의 학파로부터 중심적인 이 론 및 방법론을 물려받아 이를 정교화하고 보다 과학적이고 보편화시 키는 데 머무를 수 있다(비교문법학파와 신문법학파). 또한 동일한 철 학적 가설이 둘 이상의 다른 혹은 모순된 이론에 기초를 제공하여 새 로운 학파들이 생겨날 수도 있으며(프라그 학파와 주네브 학파) 서로 다른 철학 체계들이 단일 이론을 뒷받침할 수도 있다(비교문법 체계 와 진화론 및 헤겔주의) . 이러한 사실들은 관념체계의 다양한 요소들 이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 제약하면서도 그 철학적, 이론적, 방법론적 관념들의 상호 의존성은 결코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예시한다. 이 책에서 언어학의 발달을 검토함에 있어서, 인지 변화의 연속성과 단절은 중심적인 개념이다. 단절이라는 것이 기존 이론의 내부적 긴장 과 모순을 제거하려는 시도에서 나온 것이라면, 새로운 관념체계는 대 체될 기존 이론의 어떤 전통을 불가피하게 계속 지니게 될 것이며 이 것이야말로 인지적 연속성과 단절의 기본 성격이 될 것이다. 나아가 혁신이 기존의 관념체계 안에 내재한 난제들을 위한 것이라면 바로 그 사실이 비록 제한적일지라도 인지적 지속성이 어느 정도는 분명히 있음을 말해 준다(예를 들면, 소쉬르 혁명). 더욱 단적인 예는 이러한 단절과 지속의 요소들이 기존 이론에 대항하여 새로 나타난, 그러면서 도 서로 대립적인 학파들의 이론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는 점이 다(예롤 들면, 신문법학파의 뒤를 잇는 신관념주의 및 구조주의). 이 경우 이들은 기존 이론에 내재한 동일한 문제에 반응하면서도 그 해 답은 정반대였고, 기존 이론과 공유하는 관념들이 있었음에도 각기 보 존한 것과 거부한 것이 달랐음을 말해 준다. 여기에서 볼 때 지속과

    단절은 각기 선택의 문제이며 그것은 주로 새로운 철학 사상의 영향 이나 방법론적 필요에서 나온 결과로 볼 수 있다 . 인지 변화 과정을 분석하는 일은 전개 자체가 복잡하고 분류에도 어려움이 있지만, 저자 는 여기에서 음 법칙, 유추 이론, 모음교체 이론 등 몇몇 중심 개념을 주축으로 이들 개념의 의미와 변화를 추적함으로써 이론적 • 방법론적 으로 이들이 다양하게 적용되는 과정을 분석한다. * * * 인지 변화와 관련하여 연구 대상에 대한 정의의 문제가 있다. 이것 은 바로 이론의 바탕이 되는 철학적 가설과 관련된 문제이다. 일반적 으로 연구 대상에 대한 재정의는 광범위한 철학적, 사상적 영향에 수 반되어 관념체계의 중심 요소들을 결정하며, 특정한 유형의 문제 제기 와 함께 특정한 유형의 이론적 설명을 유도한다. 예를 들면 초기 비교 언어학자들은 낭만주의 영향에서 언어를 유기체로 정의한 한편, 신문 법학파는 실증주의의 일반적 추세와 심리학의 출현으로 언어에 대한 심리 • 물리적 정의를 채택하였고, 이후 크로체의 영향을 받은 신관념 론자들은 언어 변화를 미적 감수성의 반영으로 설명한 점 등에서도 알 수 있다. 이러한 변화 과정은 소쉬르에 이르러 다양한 관점을 엄격 히 분리시킴으로써 철학적 대전환을 이루었고, 나아가 언어학을 문헌 학, 심리학, 생리학 등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진정한 학문적 자율성을 이룩하게 하는 바탕이 되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변화를 통해서 언어학의 기본 문제나 주제가 항상 바뀌었던 것은 아니다. 언 어가 어떤 식으로 정의되든 19 세기 내내 언어학자들의 실질적 관심과 주요 과제는 언어 변화에 대한 인지 변화를 찾아 내어 언어 역사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소쉬르 혁명이 있기까지 본질적으로 동일 한 채 머물러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연구 대상에 대한 정의와 언어학

    의 주제 들 사이에 직접적이고도 명확한 관계를 수립하기가 어려운 것 도사실이다 또 한편으로 인지적 긴장은 언어학자들이 그들의 목표와 대상을 정 의하고 방법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철학적 가설로 인해 발생 하기도 한댜 방법론적 실행에서 철학적으로 수용될 수 없는 가설을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고, 이론들이 철학적으로 불합리하게 생각될 수 있는 개념에 의존할 수 있으며(예외없는 음 법칙), 이론적 정교화 나 방법론적 발달의 결과로서 모순이 나타날 수도 있고, 또 어떤 경우 는 그러한 이론적 • 방법론적 발달이 실질적 제약이나 알려진 철학적 한계와 마찰을 빚는 경우도 있다(유추와 모음교체 이론). 그러나 이러 한 이론들도 원칙으로서의 존중이라든지, 방법론적 필요성 등 나름대 로 어느 정도 역설적인 장점을 갖고 있다. * * * 모든 인지적 분기가 학파의 창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학파 발 생과 관련한 제도적 요인의 분석은 이 책의 특징이자 저자의 홍미로 운 분석 관점을 그대로 보여 준다. 학파가 생겨나는 것은 하나의 학자 집단이 어느 주어진 연구 영역 내에서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정당화 하기 위한 독자적인 수단과 기준을 세우려는 시도로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어느 학문분야를 막론하고 자체의 존립을 위해서는 연구를 조직 화하고, 전문직으로서의 패턴을 수립하고, 연구 교류 수단(학회, 학회 지)을 만드는 등 상설의 제도적 기구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학파의 형성이 단순히 철학적 신념의 차이나 방법론적 이견 때문만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하기도 한다. 이렇게 제도 적인 면에서 자율성의 획득과 권위의 추구를 목표로 일단의 학자들이 사회적으로 통합됨으로써 인지적 분기를 유도할 수도 있다. 죽, 신문

    법학파의 경우는 당시 독일 대학 이 급팽창하고 세부 전문화가 추진되 자 이에 따른 엘리트의 증가 및 기 존 엘리트의 분산과 해체가 일어남 으로써 나타난 새로운 권위의 요 구 이기도 한 것이며, 이것은 언어학의 내적 발달의 지속성이나 전체적인 과학적 관점의 급진적 변화라는 개 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언어학계 내부의 역학적 관계와 사회적 요인에 의한 것이다. 이것을 내부적 자율성의 문제라고 한다면 또한 외부로부터의 자율 성의 문제가 있다. 죽, 언어학의 독립성이 미약하고 아직 주변적인 위 치에 머물러 있을 시기에 내부적으로 발생한 학파들은 스스로를 당시 우세하던 분야인 문헌학으로부터 독립된 학문으로 정 립하려 하지 않 고 도리어 문헌학과의 관련성을 강조하여 다양한 문헌학 분야에 〈침 투〉하고자 노력했다(신문법학파, 신관념주의). 이들의 입장을 문헌학의 팽창에서 이익을 얻으려는 시도로 이해한다면 모순되는 것 같지는 않 지만, 신관념론자들의 경우는 문헌학과의 융합까지를 주장하여 자율성 을 훼손함으로써 도리어 실패를 자초한 예이다. 이 모든 것은 학자들 의 정신적 , 물질적 자원, 죽 권위, 지위, 자율성, 연구 여건, 학생의 확 보 둥 현실적 가치에 대한 경쟁이 한편으로는 직업인으로서의 당연한 필요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연구에 대 한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이며 나아가 이론과 학파의 분기에까 지 이르게 하는 원인임을 보여 준다. * * * 학파 분기의 변화와 발달에 있어서 중심성과 주변성은 또 하나의 중요한 제도적 분석 기준이다. 저자는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제도의 영 향과 함께 주변성이 인지 변화에 미치는 역할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한 학문분야의 제도적 구조 내에서의 그 학파의 위상이 혁신에 대한

    자극과 제약을 동시에 산출한다고 전제할 때, 중심적 혹은 주변적 위 치와 혁신의 관계는 일률적이지 못하다 . 일반적으로 주변적인 제도적 위치에 있는 학자들은 자신들의 권위에 대한 요구를 강화하기 위해서 급진적인 방법으로 개혁하려는 경향이 강할 수 있으나, 그렇더라도 이 러한 개혁의 자유는 완전하지도 않고 개혁에 가해지는 제약이 주변부 라고 해서 반드시 약하지만도 않다. 자원과 권위가 결핍된 주변부에서 는 상대적으로 성공할 기회가 더 적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변 부가 반드시 지리적인 개념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는 독일 내에서 엘리트들과 밀접한 제휴를 갖지 못한 채 권위의 중심부에서 떨어져 있던 신관념주의자들의 실패가 말해 준다. 여하튼 중심적 위치에서 성 공적이었던 학자들에 의해 생겨난 학파(예를 들면, 신문법학파)가 인 지적 분기에서는 도리어 제한적이라는 설명은 설득력이 있다. 한편 비 록 주변부에 위치해 있다 하더라도, 강력한 엘리트들에 의해 선점되지 않은 제도적 기구가 갖추어져 있고 자체 내에서 중심적인 지적 • 제도 적 역할을 해 낼 수 있는 경우에는 혁신에 대한 욕구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을 것이다(예를 들면, 프랑스 언어학). 위의 예들이 보여 주는 바는 제도적 자율성이 쉽게 지적 독립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 * * 그렇다고 인지적 단절과 지속을 제도적 • 사회적인 면에만 치중해서 해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 학문의 발생과 발전 과 정을 볼 때도, 주변부의 학파가 제한적인 자율성을 확보했다 하더라도 이것이 쉽게 지적 독립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는 사실에서, 주변적인 위치에 있는 학자들은 분명히 중앙으로부터 인정받아야 할 현실적 필 요성이 있었을 것이댜 또 한편 저자는 프랑스에서 브레알이 의미론 연구에 몰두한 것은 독일 학자들이 소홀했던 분야의 문제로 전환하는

    것이 보다 용이하게 별도의 정체성과 권위 를 정립할 수 있기 때문이 었으며, 나아가 소쉬르가 언어학의 초점을 역사적 문제로부터 공시적 문제로 바꾼 것에 대해서도 프랑스 언어학, 나중에는 스위스 언어학의 부분적인 지적 자율성과 독자적인 권위를 확립하기 위한 시도였다고 해석했다. 즉, 이들의 제안이나 주장은 모두 전통적 독일 엘리트들의 권위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은 되지 못하고 단지 새로운 관심 영역을 제시하여 제한된 자율성을 주장한 것으로 보았다. 저자는 결론에서도 각 학파의 독특한 이론 전개를 권위 구조 내지는 제도적 기회와 제약 이라는 견지에서 그 주창자들의 제도적 위치가 긴박한 상황에 처했을 때의 반응으로 보았다. 이것은 분명히 일면의 정당성이 있는 해석이겠 지만 그 바탕이 되는 학문의 내적 발전이나 국제적 보급이라는 면을 경시한 것으로 보인다. * * * 우리는 이상의 경우에서 인지적 발달과 제도적 발달이 항상 조화롭 게 전개되지는 않고 오히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음을 본다. 또한 근본적인 학문의 혁신은 실제로 나타나기가 매우 어려운 것임을 발견 한다. 이에 관하여 언어학 발달의 패러다임을 구성해 보는 것은 또 다 른 작업이 될 것이댜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제까지의 분석을 통해 본 언어학 이론의 과학적 특질, 죽 과학철학적 관점에서 본 일반 이론의 공식화, 변칙, 오류 가능성 등의 문제에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카를 포퍼 Karl Po pp er 와 토마스 쿤 등에 의 해 제기 되 고 지 금도 과학철학 의 기본 문제로 되어 있는, 과학 발전의 지속적인 가능성 및 인간의 인지 능력의 한계와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언어의 본질에 관 한 연구는 현대 인지과학에서 중심 과제의 하나로 다양한 분야에서 집중 연구되고 있으며 쿤 자신도 만년에 이에 몰두한 바 있다.

    관념체계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볼 때,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일관성 이나 통합성은 불가능한 이상으로 보이며 이들은 항상 위험에 놓인 불확정적 신념들로 구성되어 있댜 또한 관념체계의 다양한 요소들은 서로를 제약하며 각각 일관성을 찾아 이론적 틀 속에 자리잡고, 관념 체계를 둘러싼 긴장, 모순, 불완전성의 성질은 너무 다양해서 방법론 적 기준의 수립을 불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적 불완전성은 모순과 공존하면서 마침내 관념체계의 수정과 변화를 일으키는 변증 법적 발전을 되풀이해 왔다. 이러한 내적 긴장의 발생은 언어학의 내 적 역동성의 결과만은 아니댜 언어학의 관념체계는 더 큰 문화적 • 사 회적 환경 내에서 다른 학문의 발달 및 일반적인 지적 풍토의 변화에 의해서도 크게 영향받는다. 특히 기본적인 철학적 문제들이 언어학에 서 나타나고 변화하는 데 대해, 수많은 철학 사조 및 사회과학들이 제 시하는 보다 일반적인 해결책에서 해법을 찾기도 한다. 가장 깊이 있 는 혁명에서도 변화하는 것이 있고 지속되는 것도 있다. 이러한 지속 성과 갈등이 이전의 관념체계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은 거꾸로 과학 발 달에서의 합리성을 증명해 주고 있다. 언어학의 역사를 통하여 비교 언어 연구, 심리적 기능의 분석으로부터 공시태/통시태의 구분에 이르 기까지 언어학은 지속적이고도 점진적 발달을 거치면서 타당한 논리 적 귀결을 향해 진전해 온 것으로 보안다. 단지 역사를 초월한 기준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서 이것이 어느 규칙이나 기준도 지켜 질 수 없다는 인식론적 중단으로 생각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도리어 학문의 불확정성 내지 개방성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볼 때 저자는 현대 과학철학적 관점에 있어서 보다 온건하 고 낙관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 결국 학문은 갈등과 모순 가운데서 진보한다는 점을 전제로 할 때, 이러한 갈등과 모순은 궁극적으로 학문 발달의 자극과 원동력이 되며, 역설적으로 이러한 갈등과 모순이 적을수록 도리어 정체된다고 할 것

    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모든 관념체계들이 그 스스로의 정당성을 모 색하고 궁극적으로는 더 큰 관념체계에 통합되어 온 사실이 이를 증 명한다 * * *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언어학 발달에 관한 검토가 소쉬르 혁명까 지에만 한정된 것이댜 하지만 이후 촘스키 Chomsk y에까지 이르는 현대 언어학에 관한 고찰은 또 하나의 책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는 점 에서 이룰 기대해 본다. 끝으로, 이 책에서 언급된 학문의 제도적 주 변성의 문제는 우리의 현실과 관련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할 것이다. 카를 포퍼는 학파의 폐쇄적 성격을 논하며, 특히 초기 학 파들이 비판적 토론의 여지를 허용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론이 침해되 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하는 폐쇄성울 지적하였다. 이들 에게 있어서는 새로운 사상은 이단이며 분열을 가져오는 것으로, 학파 구성원이 이론을 바꾸려 하면 이단으로 여겨져 추방까지 당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학문의 혁신은 그 주창자들의 사회적 • 문화적 주변성에서 오는 기능일 수도 있다는 견해(마이클 멀케이), 즉 학문의 혁신적 변화는 종종 한 분야의 제도적 주변에 있는 학자들이나 또는 여러 분야의 전문지식을 결합하는 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주장 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주변적 위치에 있는 학자들은 자기 학문의 기 본적 가설에 대한 의문을 던지거나 체계적으로 제기되지 않았던 문제 들에 주의를 돌리는 경향이 보다 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독일 에서 개인적인 고립과 소외를 경험한 소쉬르 같은 학자에게만 해당되 는 것은 아닐 것이며, 넓게는 서구 학문의 홉수에 주력해 온 우리 학 계에서도 토착적이고 독자적인 학문의 바탕을 진홍하는 것 역시 중요 한 일임에 틀림없고, 이미 그러한 활동이 활발한 것도 고무적인 일이

    댜 그러나 한편, 학문 자체의 개방성에 비추어 볼 때, 도리어 우리에 게는 이러한 개방성과 토착성이 어우러져 새로운 학문적 혁신의 가능 성이 보다 더 클 수도 있다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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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찾아보 71

    가벨렌츠 G. Gabelen t z 277 가이슨 G . Geis o n 19, 21 가지 모형 branchin g model 16 가치 values 31 강변화 206 강의 307, 350 개방 체계 147 개 별성 246, 247, 249, 250, 253 개 별주의 ind i vi d u a lism 317 개인 언어 ind i vi d u al spe e ch 292 개인심리학 342 개인적 관점 356 개인화 187 게르만어 123, 135 게르만어 문헌학 134 게르만어 음운추이 German sound- sh ift 91 결속집 단 soli da r ity gro up s 24 경험론적 변칙들 em piri cal anoma lies 36 계몽주의 66 계승 successio n 54 계층적 구분 238 고대 고지 게르만어 376 고델 R. Godel 363, 364 고동사범 학교 Ecole Normale Supe r i- eur 119 고동전문학교 Ecole Pratiq u e des Haute s Etu d es 119 고립어 81, 82

    고전문헌학 140, 141, 199, 214, 218, 259 고전문헌학자 136, 137 고전어 217 고전주의자 130, 131 고전학자 132 고트어 376 고티 오 R. Gauth iot 376 골턴 F. Galto n 35 공동체의 언어 communal lang u ag e 292 공리주의 263 공리주의적 uti litarian 257 공시 구조언어 학 syn c hron ic stru ct u r- al ling u isti c s 33 공시 언어 학 syn c hron ic linguisti c s 284, 287, 288, 293, 296, 297, 342, 355, 357, 359, 361 공시적 296 공시적 관점 3(17 공시태/통시태의 이분법 310 공시 태 syn chrony 166, 280, 296, 306, 311 과학 법 칙 324, 325 과학공동체 43 과학사가 387 과학적 관념 체 계 sci en ti fic ide a sys - ter ns 16 과학철학 243 과학철학자 앉汀

    과학혁명 38 관계 Bezie h ung 80, 85 관념론 231 관념론 철학 246 관념론자 230, 232, 233, 242, 248, 255, 256, 335 관념론자 언어학 Idea li s t ling u is t i cs 255 관념주의 문헌학 268 관념 체 계 ide a sys te m s 16, 98, 232, 236, 255, 392 관료화된 과학 bureaucrati ze d sci- ence 52 관점 po in t s of vie w 310 관찰자의 관점 313 관찰적 보고 86 광업대학 Ecole des Mine s 119 괴 테 J. Goth e 68, 69, 91 괴 팅 겐 대 학 Gott ing e n Un ive rsit y 128, 211 교양 Bi ld ung 109, 110 교착 74, 76, 82, 173, 390 교착 이 론 74, 77, 82, 90, 104, 156, 159, 172 교착어 agg lu ti na ti ng lang u ag e s 73, 81, 82 교환 체계 195 구개 음 법 칙 Law of Palata ls 145, 148, 149, 155 구개 음화 pa lata liza ti on 155

    구성 주의 constr u cti vi s m 245, 332, 399 구성 주의 자 constr u cti vi s t 315, 359 구성주의적 334 구조언어학 276 구조의 우선성 354 구조주의 26 구조주의 언어학 281 구조주의 학파 str u c tur alis t school 229 구조주의 자 230, 232, 233 구체성 246 구체적 346 굴절 이 론 33, 75, 180 굴절 inf l ec ti on 89, 156, 181 굴절어 inf l ec ti on al lang u ag e s 73, 81, 82 굴절어미 299 굴절어미의 탈락 237 굴절언어 84 귀 납 ind ucti on 250 귀납적 방법 255 귀 납주의 ind ucti vi s m 251 규범 문학 349 규칙성 91, 93 규칙적 99 규칙적 음 변화 99 균등화 equ aliz a ti on 220 균일성 188 균일주의 원리 287

    균일주의 unif ormitar ia n ism 224, 260, 285, 288, 308 균일한 음 법칙 189 그라몽 Grammont 376 그라스만 H. Grassmann 148, 398 그라이프스발트 대학 Gre if swald Uni- versit y 125, 211 그뢰 버 G. Grober 272 그리 스어 148, 299 그림 법칙 Gr im m's Law 91, 148 그림 J. Gr imm 59, 66, 78, 90, 139, 299 기계론적 180 기계적 언어 72 기계적 • 물리적 182 기 네 켄 J. van Gin n eken 320 기능대학 Ecole Polyt ec hn iqu e 117 기 능적 의 존도 fun cti on al depe ndence 197 기 능주의 fun cti on a lism 25 기 센 대 학 Gie s sen Un ive rsit y 34, 122, 211 기 술 문법 descri ptive gr ammar 318 기 술 지 향적 tec hnolog ica lly— ori en te d 263 기술언어학 235, 293 기 술주의 적 tec hnolog ica l 257 기 식 음 asp irat i on 148 기 억 심 상 memory -picture 176, 184 기 의 sig nifie 351, 352, 353

    기존 엘리트 43, 44, 204, 215 기표 s ignifia n t 351, 352, 353 기호 체계 346 기호학 327, 349 긴장과 모순 233 나비 유 A. Navil le '2:16 , 3'2: / 낭만주의 63, 64, 65, 77, 105, 340, 390 낭만주의 사상 76 낭만주의 철학 396 낭만주의자 85 내부적 변화 71 내부적 정당성 int e r nal leg itima ti on 42 내적 굴절 390 내적 재구성 int e r nal reconstr uc ti on 299 노렌 A. Noreen 276 노만 W. Norman

    담화 241, 337 담화공동체 commun ity of disc ourse 184, 187 델브뤼크 B. Delbri ick 34, 124, 144, 160, 187, 204 독일 221 독일 대학 129 독일 문헌학 210, 214, 215, 220 독일어 112, 217 독일어 문법 Deutc h e Grammati k 66 독창성 18, 365 독창성의 규범 18 동사의 활용 체계 Konju g a ti on ssys - ter n 107 동양 문헌학 76, 122 동양어 연구 126 동양어 전문학교 Ecole S 函ci ale des Lang ue s Or ien ta les Vi va nte s 119 동양어, 게르만어, 로만스어 문헌학 111 동양어 Or ien ta lisc he Sp ra chen 211, 215 동양어학자 134 동양학 373 동일성 325, 326, 333, 347 동일성 기준 c riterti a of ide nti ty 324 동일한 원인/동일한 결과의 원칙 178, 189, 392, 397

    뒤르켐 E. Durkheim 245, 276, 379, 397 뒤보 Duvau 376 뒤 앙 P. Duhem 21, 310, 397 디 에 츠 F. Diez 139, 373 디 종 C. Dig e on 370 딜타이 W. Dilth e y 68, 246, 258, 397 라센 C. Lassen 62 라스크 R. Rask 59, 90 라이 엘 C. Ly el l 78 라이엘의 균일론 170 라이 프니 츠 G. Leib n iz 71 라이프치히 210, 211 라이프치히 대학 207, 214, 380 라이프치히 학파 279 라자루스 M. Lazarus 289 라카토스 I. Lakato s 31, 388 라투어 B. Lato u r 195, 196 랑그/파롤의 이분법 361 랑그 /ang ue 336, 355, 356, 361 랑글레 Lang le s 61, 119 러 던 L. Laudan 388 레르히 E. Lerch 254 레비 Levi 128 레스킨 A. Leski en 144, 160, 206, 279 레프만 S. Lefr na nn 108 로르크 E. Lorck 254 로만스 210

    로만 스 문학 253 로만스 문 헌학 210 , 221 로만스어 123, 217 로만스어 문헌학 135 로만스어 언어학 231 로만스어 • 로만스 문학 210 로스토크 대 학 Rosto c k Un ive rsity 122, 211 로타시 즘 rhota c is m 321, 322 로허 L. Rocher 133 뤼케르트 R ii cke rt 124 르낭 E. Renan 128, 370, 372 리 비 히 J. von Lie b ig 34, 55 리 아르 L. Lia r d 126 리 케 르트 Ric k ert 246 링 어 F. Ringe r 258 마르부르크 대 학 Marburg Un ive rsity 129 마르크스 K. Marx 45, 78 마르티 A Ma rty 276 마르티 네 A Ma rtine t 128, 353 마이어」서프케 G. Meye r -Lubke 284 마이어 L. Meye r 92 마흐 Mach 310, 330, 397 만하임 K. Mannheim 64 말로 A Malraux 27 머튼R. Mert on 213 멀케이 M. Mulkay 16, 35 메 이32 예0, A3 24,M 3e2i5l l,e t3 3 6, 131793, , 317'26:1 , 128,

    명성 202 모렐J. Morrell 21, 55 모음교체 이론 303 모음교체 Ablaut, alte rn ati on s 76, 299, 300, 301, 302, 303, 305, 306, 308, 310 모음성 비 음 voca lic nasals 203, 299, 368 모체 matr ice s 184 무예외 성 Ausnahmslosig k eit 323, 360 문법 296 문법 관계 82 문법적 관계 74 문법 학회 Grarnmatis c he Gesellscha ft 123 문체론 251 문학 219 문학사 272 문헌학 philolo g y 79, 208, 217, 223, 229, 265, 267, 268, 349, 370 문헌학자 133 문화 • 역 사과학 cultu ral and hist o r i - cal scie n ce 166, 243 문화과학 cultu ral sci en ce 242, 244, 245, 378 문화사 272 물질적 집단 174 물질주의 mate r ia lism 257 물질주의 적 mate r ia list ic 257

    뮌스터 대학 Munste r Un ive rsit y 122, 129, 211 뮌 헨 대 학 Mt inc hen Un ive rsit y 108, 211 미 래 학파 들 Futu rist s 27 미학적 272 민족 정 서 nati on al eth o s 112 민족공동체 252 민족성 253 바르취 K. Ba rtsc h 216 바르트부르크 W. von Wa rtbu rg 364 바이 이 C. Bally 364 반실증주의 273 반실증주의 자 Anti -P osit ivi s t 257 반증 fal sif ica ti on 387, 388 발음기 관 164, 181, 182, 184, 190 방드리 에 J. Vend .rye s 128, 376 방법론 전쟁 wars of meth o d 130 방법론 지향적 meth o dolog ica lly- o ri en - ted 34 방법론적 분기 152 방법론적 실증주의 업 3 방법론적 지속성 meth o dolog ical con- tinuity 202 방브니스트 E. Benven ist e 128, 364, 376 법칙과학 242 법칙에 입각한 언어과학 240 법칙의 과학 328, 331, 338 베르게뉴 A. Berga igne 128, 374

    배 르 너 K. Ve rn er 148 , 370, 392, 398 베 르 트하이머 ]. Wert he irn e r 381 베 를 린 대 학 Berlin Univ e rsit y 108, 210, 211, 380 배 버 A. Weber 124, 264 베 버 M. Weber 244, 245, 258, 314, 397 베 첸 베 르거 A. Bezzenberge r 138, 223 베 커 C. Becker 263 벤 데 이 비 드 J. Ben-David 118 벤파이 T. Benfe y 92 변칙 388, 392 변칙의 누적 388 보수적 사고 conservati ve tho ug h t 64 보편성 un ive rsa lity 246 보편적 법 칙 78 보프 F . Bopp 33, 59, 60, 61, 66, 67, 77, 78, 90, 104, 107, 109, 132, 390 복합적 결정 multip le dete r m ina ti on 283 본 대 학 Bonn Un ive rsit y 108, 211 볼렌 P. von Bohlen 62, 124 뵈크 A Bockh 111, 130 부르디 외 P. Bourdi eu 54 부르크하르트 U. Burkhardt 215 부패 85 분기 dive rge nce 28, 230

    분트 W. Wundt 342, 343, 347 불규칙한 152 뷔 르누프 E. Bumouf 126, 127 뷔르제 A. Burge r 364 뷔르츠부르크 대학 W iir zbur g Un i- versity 114, 211 브라드케 P. von Bradke 211 브라우네 W. Braune 204, 279 브레슬라우 대학 Breslau Un ive rsity 108, 128, 211 브레알M . Brea! 59, 124, 128, 277, 370, 374, 376, 381 브루크만 K. Brug m ann 143, 203, 211, 279, 299 불랑 Blanc 210 비고전문헌학 219 비교 • 역사언어학 com p ara ti ve and his t o r i ca l ling u is t ic s 59, 90, 104, 105, 199, 260, 270, 356, 374, 380 비 교문법 76, 107, 122, 123, 133, 368, 370, 372, 373 비교문법 관념체계 393 비교문법학 211 비 교문법 학자 90, 136, 148, 390 비 교언어 학 65, 77, 108, 119, 122, 123, 131, 200, 210, 219, 220, 229 비교언어학 교수직 125 비례관계 175 비례집단 176

    비 엔나 학파 Vie n na Cir c le 26, 30 비 역사언어학 non-hi st o r ic a l ling u i s t ic s 284 비 역사적 non-hi st o r i ca l 167, 23.5 비정상적 현상 100 비 진화적 non-evoluti on a ry 70 빈델반트 W. Wi nd elband 246, 258, 397 빈디 쉬 E. Wi nd i sc h 126, 141 빈디 쉬 만 K. Wi nd i sc hrnann 60, 63, 132 빈 텔러 J. Wi nt e l er 276 사상학파 schools of tho ug h t 20, 21, 25, 28, 32, 48, 49, 56, 198, 200 사시 S. de Sacy 115, 116, 119 사실의 과학 328, 331, 338 사용법 usag e 292, 317 사회과학 31, 378 사회사 78 사회심리학 349 사회적 관점 356 사회적 분기 39 산발적 100, 104 산발적 음 변화 99 산발적이고 불규칙한 음 변화 96, ITT 산스크리트 122 산스크리트 문헌학 108, 115, 120, 126 산스크리트어 59, 60, 61, 64, 105,

    108, 114, 116, 119, 133, 135, 148, 211, 261, 299, 368 산스크리트어 교수직 124, 127 산스크리트어 문헌학 63, 108, 123, 141, 210 산스크리트어 연구개음 velars 155 상대주의 relati vi s m 15, 313 상대주의자 rela ti v i s t 315 상대주의적 개념 399 생리적 182 생리적 과정 184 생 리 학 165, 166, 344, 349 생리학적 모델 188 생리학적 설명 183 생리학적 이론 190 생 명 력 Lebensk. raft 67, 89 서로 같은 표준으로 비교할 수 없음 inc ommensurabil ity 275 선사 시기 83 세 계 관 Welta nsch auung 266 세쉐이에 A. Sechehaye 231, 281, 287, 320, 326, 330, 337, 338, 345, 346, 347, 364 셈어 81 소로킨 P. Sorok in 20 소르본 Sorbonne 119 소쉬 르 F. de Saussure 58, 148, 166, 229, 없 5, '2:17 , 294, 303, 304, 311, 376 소쉬 르의 혁 명 '2Zl, 361, 379

    쇠퇴 91, 171, 285, 390 쇼만 Schomann 125 순수과학 258 순행동화p ro g ress i ve assim ilat i on 185 쉐 러 W. Scherer 144, 171 쉐지 A. de Chezy 61, 126 쉘 러 M. Scheler 266 쉘 링 F. Schelli ng 68 쉴즈 S hi ls 40 슈나이 더 G. Schneid e r 180 슈미트J. Sch midt 148, 149, 157, 223 슈타인탈 M. Ste i n t h a l 77, 185, 289 슈텐출러 Ste n zler 62, 124 슈트라스부르크 대 학 Str a ssburg Un ive rsit y 129, 210, 211 슈프랑어 E. Sp ra ng e r 266 슈하르트 H. Schuchardt 262 슐라이 어 마허 F. Schleie r macher 107, 112, 115 슐라이 허 A. Schleic h er 32, 77, 78, 80, 92, 96, 98, 102, 103, 104, 124, 168, 237, 372, 390, 391, 393 슐라이 허의 진화론 396 슐라이허의 통합 87 슐레겔A. von Schleg e l 62, 76, 90, 111, 124, 390 슐레 겔 F. von Schleg e l 60, 90, 111, 124, 390

    스베델리우스 C. Svedeliu s 277 스타일 250 스톤퀴 스트 E. Sto n eq uist 365 스튜어 트 H. Stu art 244 스펜서 Sp en cer 78 시리아어 114 신판겸론 사상학파 Neo-Ideal ist school of tho ug h t 57 신관념론자 Neo-Ide ali s t 257, 267, 268, 270, 272, 340, 378 신관념주의 언어학파 259 신관념주의 학파 229 신문법학파 모델 242 신문법 학파 이 론 233, 236, 297, 361 신문법 학파 Neog ra mma rian s 57, 123, 138, 143, 148, 195, 201, 203, 218, 222, 224, 225, 229, 233, 235, 239, 242, 257, 273, '2:19 , 281, 284, 286, 294, 300, 302, 304, 311, 317, 330, 335, 340, 360, 377, 378, 390, 393, 394, 397 신문법학파의 관념체계 255, 278, 312, 319 신인문주의 107, 263, 264 신인문주의 대학 개혁 108 신인문주의자 114 신칸트주의자 397 신칸트학파 Neo-Kanti an s 258 실용주의 272 실증과학 po sit ive scie n ce 156, 166

    실증주의 162, 163, 201, 231, 233, 244, 257, 258, 266, 268, 332, 335, 340 실증주의 과학철학 396 실증주의 철학자 330 실증주의자 268 실증주의적 인식론 311, 315 실 체 지 향적 substa n ti ve ly- o ri en te d 34 실체론적 내지 방법론적 지향의 사상 학파 52 실험실 과학 labora t ory scie n ce 21 심리 • 물리적 메커니즘 340, 356, 361 심리 • 물리적 행위 337, 345 심리분석학파 39 심리적 103, 239 심리적 과정 184 심리적 기능 296, 297 심리적 성향 103 심 리 주의 ps yc h olog ism 162, 201, 257 심 리 학 165, 166, 344, 347, 349, 350 심리학적 모델 188 아랍어 114, 115, 116 아르메니아어 206 아르센 Arsene 374 아르슬레프 H. Arsleff 372 아멜룽 A. Amelung 148 아베 L. Havet 374

    아베나리우스 R. Avena rius 330 아스 콜 리 G. Ascoli 59, 148 아우프레히트 Au fr ech t 124 아즈 C. Hase 120 야스퍼 스 K. Jas pe rs 266 약변화 206 어근 81, 82, 159, 160 언어 관념체계 335 언어 분류 85 언어 쇠퇴 92, 95, 97 언어 진화 78 언어 진화 모델 83 언어 진화 이론 372 언어 활동 lang a g e 350 언어(랑그) 349 언어감정 Sp ra chg ef ii hl 95, 103, 168 언어공동체 165, 187, 188, 241, 292 언어사의 원리 Pri nz ip ien der Sp ra - chg e schic h te 144, 291 언어의 쇠퇴 94, 102 언어 적 정 태 ling uist i c sta te 301 언어 학 20, 79, 106, 202, 217, 219, 244, 342, 349, 370, 373, 378 언어학의 엘리트 229 언어학의 제도화 141 얼리크 V. Erlic h 27 에너지 보존 법칙 law of energy conservati on 282 에를랑겐 대학 Erlan g en Un ive rsit y 211

    에 벨 I-I. Ebe l 124 에지 D. Edg e 35 에 트 마이 어 K. vo n Et tm ay e r 284 역사 법 칙 246 역사 시기 83 역사 • 비교언어학----> 비교 • 역사언어 학 역 사언어 학 his t o r i ca l ling u is t i cs 113, 122, 280, 284, 316, 325, 360, 370 역사언어학자 90, 318 역 사적 167, 168, 272 역사적 관점 76 역사적 • 미학적 253 연구 도제제도 app r enti ce ship 123 연구학파 research schools 19, 21 연상 법 칙 laws of assoc iat i on s 291 연상 요소 174 연상적 291 연상적 형 성 associa t i ve for mati on 290 연상집 단 assoti at e d gro up 174, 175, 239 연속 230 영 국 물리 학파 Eng lis h school of ph y si c s 21 영 어 문헌학 123, 215, 217 예나 대학J ena Univ e rsit y 76, 124, 211 예스페르센 0. Jes pe rsen 364

    예외 들 392 예외없는 음 법칙 Ausnahmelosig k eit der Lautg e setz e 160, 178, 188, 225, 411 예외없는 타당성 except ion less vali- dity 190 예 외 없음 except ion lessness 177, 191 오스트호프 H. Osth o ff 143, 145, 204, 279, 290 오쏘브스키 S. Ossowski 30, 31, 32 완전성 67, 85, 219 왈라스 L. Walras 276 왕립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학 F ri ed- ri ch-W il helms-U ni vers i댜t 107 요르단 I. Iordan '278 용이성 94 우생 학 eug en i cs 35 운동감각 moto r sensatio n 184, 185 울가 S. Woolga r 195, 196 원시인구어 비모음 149 원시 인구어 Proto - Inda-Europe a n 74, 75, 286, 389 위 로부터 의 혁 명 revoluti on from above 215, 226 위 상과 학파 Positi on s and Schools 30 유기 성 orga ni c characte r 114 유기 적 67, 75, 91, 219, 285, 390 유기적 관점 103 유기적 언어 72

    유기 적 통합체 65, 67 유기 체 67, 76, 79, 85, 167, 168, 338, 340 유추 원리 princ ip le of analog y '2:19 유추 이 론 176, 293, 297, 308 유추 analog y 68, 94, 151, 173, 176, 182, 256, 289, 294, 295, 310, 311, 360 유추론자 die Analog ists 173 유추의 이중성 294 유추적 173, 177, 181 유추적 변화 103 유추적 비례관계 analog o us pro p or - tion s 174 유추적 혁 신 analog ica l inno vati on 171, 175, 289, 290 유추적 형 성 analog ica l fon natio n 101, 145, 151, 168, 173, 176, 181, 182, 289, 294, 342 음 92, 145, 179 음 법 칙 Lautg e setz 91, 104, 145, 148, 151, 256, 320, 325 음 변화 원칙 92 음 변화 pho netic trans fo n natio n 90, 101, 177, 178, 183, 289, 360 음성 표상 ph oneti c repr e senta tion 80 음성학 236 음소 360 음운교체 311 음운교체 이론 396

    음운론 133 음절을 이루는 비음 nasal i s sonans 203, 206, 279 의 미 Bedeutu n g 80, 8.5 이론언어학의 계획과 방법 Prog r am- me et meth o des de la lin g uis- tiqu e the oriq u e 326 이론적 예측 86 이론적 혁신 the oreti ca l inn ovati on s 202 이용 가치 use value 197 이중적 51 이중적 분기 28 이 중적 정 당화 체 계 dual leg itima ti on sy st e m 205 이 중적 충성 double alleg ian ce 50 인과 법 칙 318, 323 인과관계 191, 235, 238, 239 인과론적 결정론 234 인과론적 설명 172 인과성 239 인과적 167, 168, 251 인과적 균일주의 201 인과적 설명 causal exp la nati on 167, 189, 234, 235, 240, 241, 242, 319, 394 인과적 요인 191 인과적 이원론 causal dua lism 170 인구어 공동체 216 인구어 모음교체 161

    인구어 모음체 계 145, 149 인구어 비교언어학 com p ara ti ve Indo- Europ e an ling u is t i cs 62 인구어 음운체계 368 인구어 Inda-E urop e an 113, 149 인구언어학 216 인도 - 게르마닉 Inda-German ic 113 인류학 349 인문학 31, 118, 137 인문학부fa cul t e des lett res 118 인지적 50, 256 인지적 문제점 259 인지적 발달 256 인지 적 분기 29, 34, 38, 50, 362 인지적 지속성 398 인지적 책략 233 인지적 통합 22, 24 인지적 혁신 284 일반언어학 강의 Cours de lin g uist i - qu e ge nerate 275, '278 , 360, 364, 380 자발심 리 학 ope rant ps yc h olog y 45 자연 법칙 84, 190 자연과학 natu ral sci en ce 119, 137, 190, 242, 245 자연사 78, 79 자연철학 Na turphil oso phi e 105 자유변이 85 자음추이 392 자의성 352, 353

    자이 델-폴만 S. Seid e l-V ollman 219 작키 ]. Szack i 39, 52 잘못된 유추 fal se analog y 173 재투자 196, 197 전문기 술주의 Profe s sio n alis m 263 전문화 266, 268 전복 전략 subversio n str at e g y 54 전파천문학 rad io astr o nomy 35 절 대적 조건화 323 절충주의 27 정상과학 normal sci en ce 17, 23, 54 정신물리학적 317 정신의 보존 법칙 84 정신적 인간g e i s tig e Personen 267 정신적 통일성 253 정체성 ide nti ty 315 정 태 언 어 학 sta t i c ling uist i cs 293, 344, 347, 348, 350, 351 정태형태론 345 제 1 자음추이에 대한 예외 148 제도화 ins ti tution a liza ti on 136 조어 ancesto r 64, 69 조어 형 ancestr al form 69 조음음성 학 articu lato r y ph oneti cs 92, 164 존스 W. Jon es 60, 65 주네브 대학 Geneva Un ive rsit y 363 주네브 학파 Geneva School 32, 58, 229, 231, 278, 361, 364 주네브 Geneva 364, 381

    주 변성 365 주제 the mata 31 주커 만 H. Zucherman 213 준거 분야 refe r ence field 28, 230 준거집단 136 중국어 81 중립적 변화 neu t ral chang e 28.5 지 만 J. Zim a n 44 지 시 적 의 미 refe r enti al mean ing 71, 82 직관주의 246 직 관주의 운동 int u ition i st movement 246 직관주의적 역사철학 巧 5 진화 모델 78 진화론적 관점 103 짐 멜 G. Sim me l 258, 365 집단심리학 342 집단정신 Volkg e is t 238 창의성 250 청 각 aud itor y sensati on 184 청각영상 351 초현실주의자 Surreal ist s 업 추상 332 추상물들 abstr ac ts 160 추상성 238, 246, 248, 251, 巧 5, 317, 331 추상적 180, 243, 346 출전 원고 Sources manuscri tes 363 친족 형 태 cog n ate for ms 299

    친족어 90 침투 전략 str at e g y of inf i ltr at i on 139, 215 침투 inf i ltr a t i on 137 카시 러 E. Cassir e r 69 칼데아어 114 컬럼비아 대학 48 코제가르텐 J. G. L. Koseg arten 62 콜레주 드 프랑스 Colle g e de France 61, 119, 126 콜리 츠 H. Coll itz 145, 148, 223 콩트 A. Comt e 276 콰인 뒤 앙 Quine -Duhem 86 쾨니히스베르크 대학 Ko nig sber g Un ive rsit y 211 쾨 르너 E. Komer 278 쿠르트네 J. de Cou rten ay 276, 281, 284, 300, 301, 303, 304, 320, 322, 324, 325, 370 쿠르티우스 G. Cu rtius 77, 92, 98, 99, 100, 102, 103, 104, 123, 124, 131, 132, 140, 141, 199, 203, 393 쿠푸스 W. Kuhfu s s 261 쿤 T. Kuhn 23, 138, 204, 282, 283, 388 크라우스 H. Krauss 381 크란츠 D. Krantz 22, 23, 45 크레인 D. Crane 22, 23 크로스랜드 M. Crosland 118 크로체 B. Croce 244, 246, 397

    크루 제프 스 키 M. Krus zew s lc i 276 , 281, 284, 300, 301, 303, 304, 320, 322, 324 클 렘페러 V. Klemp e re r 268, 269 키 파스키 P. Kipa rsk y 153, 154 킬 대학Ki el Univ e rs it y 211 타르드 G. Tarde '1:16 터너 S. Turner 130 테 네 E. Teg n er 148 텐 H. Ta ine 330 토목대학 Ecole des Ponts et Chaussees 119 토 블 러 L. Tobler 26, 190 톰센 V. Thomsen 148 통사론 236 통시 언어 학 &achron ic ling u is t i cs 293, 296 통시적 관점 307 통시태/공시태의 이분법 303 통시 태 diac hrony 166, 280, 296, 306, 311 통일성 93 퇴 니 스 F. Toenn ies 258 퇴 행 적 변 형 rilc k schreit en de Meta .- morph ose 84 투자 196, 197 투자 전 략 inv estm e nt str at e g ies 225 튀 빙 겐 대 학 Ti. ibi n g e n Un ive rsit y 211

    파 롤 pa role 336, 356 파리 G. Pa ris 277, 370 , 374 파울 H. Paul 144, 160, 204, 238, 276, 292, 317, 318, 342 파지 ph ag e 34 파크 R. Park 365 팜플 릿 전 쟁 batt le of pa mp h lets 149 패 러 다임 17, 146, 153, 283, 388 패러다임의 단절 153 페 더 센 H. Pedersen 150 평 균 담화 av erag e spe ech 292 포슬러 학파 230 포 슬러 K. Vossler 229, 230, 233, 235, 236, 237, 238, 241, 247, 248, 249, 251 포트 A. Pott 124 포퍼 K. Pop pe r 22, 387 폴라니 M. Polany i 23, 42 표상집 단 gro up s of repr e senta t i on s 289, 290 풀랑 Poulhan 330 프라그 학파 Prag u e Lin g uisti c Cir c le 32 프라이부르크 대학 Fre i bur g Un ive r— sity 122, 211 프라이 타크 G. Frey tag 124 프랑크 0. Frank 62 프랑크푸르트 학파 Frank furt School 48

    프 러시아 개 혁 자 115 프레 H. Frei 364 프로이토 S. Freud 45 프리 드만 R. Fri ed man 21 피 숑 E. Pic h on 364 피 어 슨 Pearson 35 피 커 링 A. Pic k eri ng 222 피 크 A. Fic k 223 피 히 테 J. Fic h te 107, 115 필연성 323 필연적 324 핑 크 F. Fin c k 277 하그슈트롬 W . Hag s tr om 195, 197 하만 J. Hamann 63 하이델베르크 대학 He i delber g Un ive rsit y 128, 210, 211 하이 드브레더 E. Heid b redder 25 학문의 위 기 cri si s of lea rning 254 학술과학 academ ic scie n ce 28, 29, 46, 47, 272 학파 schools 20 할레 대학 Halle Un ive rsit y 128, 211 항의 의 심 리 학 ps yc h olog y of pro te s t 25 해밀턴 A. Ha milton 61 핵심 core 31 헤겔 철학 84, 340 헤 겔 G. Heg e l 78, '2:16 헤겔주의 396

    헤르더 J. Herder 63 헤르만 G. Herman 130 헤르바르트 J. Herba rt 289 혁명과학 54 혁신 365 현대문헌학 220 현대어 문헌학 214 형식적 집단 174 형 식 주의 Forma lism 27 형 식주의 자들 Forma list s 27 형 이상학적 실증주의 241, 273 형이상학적 실증주의자 239 형 태 연상 for m assoc iat i on 151 형태론 133, 236 형태론적 90 형태론적 범주 90 형태론적 변화 236 형태론적 형태 morp h olog ica l for ms 299 형 태소 morp h emes 74 형 태음소론적 교체 morp h op h onem ic alte rn ati on 97, 174 형태음소론적 변이 morp h op h onem ic va riat i on 103, 159

    호텐토트어 Hott en to t 312 호퍼 A. Hofe r 124 홀츠만 A. Holtz m an 215 홀튼 Hol t on 31 환원주의 생리학자 27 환원주의자 26 회 화학파 schools of paint i ng 27 후기 신문법 학파 po st- N eog r a- mma rian s 58 후두음 gu tt ur al 148 훔볼트 W. von Humboldt 73, 107, 휘 트10니8, w1.0 9,w 1 血12, n e1 y1 5, 127246, 170, 276, 352, 370 휘 툴리 R. Whitle y 18, 43, 196, 197 휩 쉬 만 H. Hi. ibs chmann 204, 279 흡착 이 론 the ory of adsorp tion 24 히르트 H. Hirt 160 히브리어 114 힌두어 73 힘의 균형 219

    올가암스테르담스카 1953 년 폴란드 출 생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사회학 박사 현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교 교수 임혜순 서울대학교 언어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교 영문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 받음 현재 한립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언어학파의 형성과 발달 대우학술총서 435 번역 1 판 1 쇄 펴냄 1999 년 10 월 10 일 지은이 암스테르담스카 옮긴이 임혜순 펴낸이 이형진 펴낸곳 도서출판 아르케 출판등록 1999. 2. 2 5. 제 2-2759 호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5 가 526 대표전화 756-5634, 팩시밀리 777-3809 E-Ma il arche@dwf .o r. kr 값 18,000 원 한국어판 © 아르케, 1999 언어학 KDC/701 Pri nt e d in Seoul, Korea ISBN 89-88791-14-2 94700 89-88791-00-2 (세 트)

    대우학술총서 大宇財團은 1978 년에 설립된 이후 1980 년 재단 설립자인 金宇中 회장이 200 억 상당의 사재를추가로출연하면서 “韓國學晶T 의 基礎分野 진홍에 사용해 줄 것”을 희망함에 따라 국내 연구가 부진한 `기초학문 분야의 진홍’ 을 목표로 각종 연구를 지원해 왔습니다. 次宇學術衆書 는 재단 학술사업의 결정체로서 1983 년 『문화사회학』을 시작으로 논저, 연구번역, 공동연구의 형태로 출간되어왔습니다. 論著는 ‘대학원급 수준의 고급 학술개요서’ 라고 정의되고 있는바; 해당 분야에 대한 개설적 입문서 수준을 넘어서 그 분야에 대한 세계적 연구동향을 집약한 硏究提要 09 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이를 통하여 학술용어 내지 이론적 표현을 정착시키는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硏究觀譯은 논저를 보완하는 성격을 갖는 것으로서 이 역시 전문연구서가 아닌 고급개요서에 대한 연구번역입니다. 특히 지난 98 년부터는 古典과 古典級 저작의 연구번역에 중점을 두고 있는1:l k 학술용어 및 경합되는 . 학설 등을 역주~ 그리고 해당 저자 및 원저에 대한 학술적 평가는 해제의 형식으로 포함함으로써 원문에 대한 단순한 번역을 지양하고 있습니다. 또한 共同硏究는 연관학문간 (In t erd i s cip l in a ry) 공동연구를 통해 점점 세분화·전문화되어가는 학계의 경향을 극복하고자 하는 재단의 기획의도를 반영한 것입니다. 아울러 연구지원에서 연구결과의 출판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를 일관성 있게 지원한다는 학술사업 지원 방침에 따라; ‘대우학술총서’ 는 과제의 지정에서부터 연구계획서. 그리고 연구결과에 이르기까지 엄격한 심사와 평가를 거쳐 출판되고있습니다.

    | ,,\- - 의 대우학술총서 _ __ J

    422 한중관계사 I 김한규 423 한중관계사 1I 김한규 424 두보와 이백 이병주 425 한국의 전통민가 주남철 426 의학철학 울프·페데르센 · 로젠베르그/이호영 ·이 종찬 427 지구환경정치학 바이츠제커 / 이필렬 428 기후학 I : 가후와 대기순환 오재호 429 가후학 1I : 변화하는 가후 오재호 430 앙시앙 레짐 I 구베르/김주식 431 앙시앙 레짐 I1 구 베 르/김주식 432 다양체의 마분위상수학 조용승 433 스페인 피카레스크 소설 김춘진 434 독일의 통일과 위기 코카/김학이 435 언어학파의 형성과 발달 암스테르담스카/임혜순 436 성간화학 털리·월리엄스/민영기 437 생태학 매 킨토시/김지홍 438 웨이브렛의 기본이론과 통계에의 응용 김충 락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