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교훈(秦敎勳)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철학과 졸업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 철학 박사 경희대학교 부교수, 카톨릭대학교 대우교수, 중앙 대학교 교수, 한국철학회 부회 장 역임. 서우철학상 저술 부문 수상(1 994) 현재 서울대학교 국민윤리교육과 교수, 동대학 중앙도서관 관장, 한국생명윤리학회 부회장, 한국인간학회 회장 저서 『 철학적 인간학 연구(I), (II ) 』 『 현대평화사상의 이해 』 『 현상학과 실천철학』 『 문화철학 』 『 현대사회와 정의 』 , Ober das Verhi iltn i s von Person und Lieb e bei M ax Scheler 외 다수

환경윤리

환경윤리

一동서양의 자연보전과 생명존중 전교훈지음 aL'i °i ^

머리말 1980 년대에 들어와서 서구에서 가장 활발히 논의되었던 윤리학의 과제는 바로 환경윤리(또는 생태윤리학)의 문제였다. 그러나 우리나라 에서는 제 6 공화국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환경보전운동을 공공연하게 할 수 있었다. 그 이전까지는 생태적 위기에 관해서 언급한다는 것은 정부 당국이 불온시함으로써 극히 일부의 용기 있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었다.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환경위기〉, 〈생태계의 위기〉, 〈환경오염〉, 〈자연보전〉 등의 낱말들이 온갖 언론매체와 전문서적은 물론이고 심 지어 대중적인 서적의 제목으로도 활발히 다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많 은 사람들은 자연파괴와 환경공해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다.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 속에서 살고 있다. 인간은 이 자연을 떠나서는 잠시도 살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자연의 위기는 곧 인간의 위기이기도 하다. 무분별한 경제개발로 인한 산업화와 도시화는 자연 환경의 파괴를 초래했댜 생태계의 자연스러운 순환과 자정(自淨) 능 력은 쇠약해지고 생태권의 재생 능력은 급속도로 상실되어 갔다. 이른 바 생 태 학적 위 기 (ecolog ica l crisis)가 닥쳐 온 것 이 다. 우리는 지금 하나의 지구촌에 살고 있다. 이 지구촌은 밑바닥으로 부터 붕괴되고 있다. 이 지구촌의 붕괴 원인은 인간이 자기의 삶의 터 전인 자연을 아끼고 사랑할 줄을 모르고 자연을 착취 수탈하고 파괴 를 일삼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생태학적 위기는 한 생물과 다른 생물, 그리고 모든 생물과 자연환경과의 연대가 무너짐에 따라 지구 자체를

유지시켜 주는 동적 상호작용이 비틀거리면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생 태학적 위기를 근본적으로 극복하려고 하는 것이 환경윤리학의 연구 과제이다. 필자는 철학적 인간학의 연구자로서 인간위기의 문제 를 연구하다가 인간위기의 극복과 해결의 문제가 곧 인간의 환경위기, 즉 인간의 삶 의 터전인 자연의 위기와 직결됨을 알게 되었다. 1975 년 국내 철학자 로서는 처음으로 r 환경문제와 인간」이라는 논문을 통해 환경윤리학에 관한 논문을 학계에 발표하게 되었다. 이 논문에서 필자는 농약의 과 도한 남용으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와 미국의 온타리오 호수가 공장페 수로 오염된 사실을 지적했다. 그러나 이러한 논문의 발표가 시기상조 라는 동료 생물학 교수의 충고와 근대화를 역행하려는 것이 아니냐라 는 야유로 인해 이 논문은 독일어로 활자화될 수밖에 없었다. 1985 년 그리스도철학연구소 창립 10 주년 학술발표회에서 r 환경윤리 학과 그리스도 윤리학의 만남」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는 자연보전의 실천적 과제로서 우리 인간의 절제생활을 피력했는데, 이 발표를 들은 어떤 철학 교수는 현대인에게 절제를 요구한다는 것 은 불가능한 일이며, 자연보전의 문제는 서양에서 한가한 사람들이나 논할 문제가 아니냐는 반문을 하기도 했다. 이 책은 필자가 그동안 환경윤리에 관해 연구해 온 것을 체계화해 서 환경윤리라는 제목으로 저서를 내놓을 계획을 가지고 있던 차 이 번 대우학술재단의 도움으로 집필할 수 있게 되었다. 제 1 장에서는 환 경윤리의 성립배경부터 그 역사적 필연성을 살펴보았다. 제 2 장에서는 생태학적 위기의 실상과 환경윤리 연구의 선결 연구과 제인 생태학의 개념과 생태학적 위기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제 3 장에서는 생태학적 위기의 원인 분석에 대한 다양한 논거를 밝 혔다. 예컨대 서양의 전통적 자연관의 기초를 이룩해 온 전통적 그리 스도교의 자연관의 문제점들, 자연의 탈신화화(脫神話化), 인간 중심주

의 (human chauv inism ), 현세를 멸시하는 구속사(救賊 史 ) 중심의 교의 등을 분석 비판하였다. 그 다음 서양철학의 전통적 자연관과 특히 근 세에 들 어와서 서양인들의 자연관에 대한 문제점들을 인식론적인 측 면과 가치론적 측면으로 나누어 비판적으로 고찰하였다. 인식론적인 측면에서는 자연을 이분법적 사고, 즉 사유하는 인간과 사유되고 있는 대상인 자연을 엄격히 구분하는 데, 여기서 생기는 문제점, 특히 유물 론 적인 자연주의의 문제점들을 검토하였다 . 가치론적인 측면에서는 자연자원은 무한할 것이라는 그들의 자연관과 세상은 계속 발전할 것 이라는 허황된 진보신앙의 영향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을 다루었 다. 그 들 은 자연이 인간을 위한 도구로서만 가치가 있으며 자연을 탐 구하는 과학은 탈가치화(脫價 値 化)되어야 한다고 부르짖는다. 또한 사 람이 시도해 볼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시행착오를 범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함으로써 기술의 남용을 초래했다. 필자는 근 세 이후의 이러한 그릇된 서양인들의 자연관이 결국 생태학적 위기를 초래하였다고 생각한다. 제 4 장에서는 생태학적 위기극복을 위한 다양한 견해를 분석 검토하 였댜 우선 소극적인 의미에서의 자연보존(保存)과 적극적인 의미에서 의 자연보전(保 全 )의 의미를 살펴보고 자연보전의 실현을 위한 선결 요건들을 살펴보았다. 그후 아우어(A. Auer) 등이 말하는 공생적 • 인 간 중심적 자연관과 마이어-아비히 (Me y er-Ab i ch) 를 중심으로 하는 자 연 중심적 자연관을 비교 검토해 보고, 생명 중심적 자연관을 주장하 는 얀치(E. J an ts ch) 를 중심으로 하는 자연의 자기구성화론(自己構成化 論), 크라머 (F. Cramer) 를 중심으로 하는 물질의 창조 가능성의 문제, 로렌츠 (K Lorenz) 를 중심으로 하는 자연의 총체설을 검토해 보았다. 이어서 최근에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생태학적 신학에서의 생태학적 위기 극복을 위한 논의와 새로운 현대적 그리스도교의 자연관을 살펴 보았댜

제 5 장에서는 생태윤리학에서의 여러 견해에 대한 한계와 바판들을 폭넓게 분석 검토하였댜 첫째는 그 동안 발표된 많은 영미계의 환경 윤리학은 주로 공리주의적(功利 主義 的) 관점에서 전개되었는데 이에 관해 그 한계와 문제점들을 검토하였다. 둘째로 감성주의적 관점, 특 히 최근에 논의되고 있는 미학적 생태학 (as th e ti sche Okolo 양 e) 에 관해 검토해 보았다. 셋째로 자연의 고유권( 固有權 )의 범위와 한계에 대한 여러 견해들을 검토하였다. 넷째로 소위 동정윤리학 (I i 1] ’ 情倫理學)에서 말하는 동물권(動物權)에 대한 찬반론과 그 문제점 들을 검토해 보았 다. 다섯째로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낙관적으로 보는 생태윤리학의 문 제점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였다. 여기서 필자는 하나의 가설로서의 진화론의 한계와, 특히 한국에서 잘못 전달되고 있는 진화 론 의 문제점 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보았다. 제 6 장에서는 환경윤리학은 생명윤리학과 공동작업을 펼 수밖에 없 다고 보고 생명보전과 자연보전과의 상관성을 살펴보았고, 이어서 사 회의 근본질서와 평화가 자연보전과 불가불리의 관계에 있음을 살펴 보았다. 그래서 사회안정과 평화구현이 자연보전과 어떤 상관성을 가 지고 있으며 평화를 위한 자연보전의 구체적 실천방안에 대해서 살펴 보았다. 제 7 장에서 동양의 전통적 자연관에 대한 현대적 의의를 살펴보았 다. 굳이 여기서 하강하고 있는 서양의 물질문명에 대해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동양사상이 만병통치나 될 수 있는 것처럼 말 하는 그러한 동양의 자연관을 찬양하고 싶지는 않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현대 동양인들도 서양사람들 못지않게 물질화되려고 애를 쓰고 있으며, 산업화 과정에서 수천년 동안 이어온 동양의 문화전통과 자연 존중사상은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 그러나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자세 에서 노장사상의 자연관 중에서 지금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내용은 무엇이며, 또 유학사상(儒學思想)에서의 자연관을 재발굴하여 이 시대

의 징표를 재해석함으로써 인간과 자연과의 조화를 꾀하려는 역용사 상(易/,Ii思想)의 현대적 의의를 밝혀보고자 한다. 제 8 장에서는 한국의 전통적, 민속적 자연관에 대한 현대적 의의를 밝혀보았댜 한국의 민속적 자연관은 유(儒), 불(佛), 선(仙) 삼교( 三 敎) 와 또 휴머니즘이 짙은 샤머니즘을 포괄하면서 자연과 인간의 공생관 계와 모든 생물의 생명을 존중하며 물활론적(物活論的)이며 범신론적 인 면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한국인이 자연에 대해 인정을 베푸는 것 은 최근에 서양에서 새롭게 주장되고 있는 미학적 생태학과 동정윤리 학과 일맥상통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제 9 장에서는 환경윤리는 결국 자연보전과 생명존중에 대한 인간교 육으로 구현된다는 필자의 생각을 피력하였다. 인간교육으로서의 환 경교육과 생명존중운동과 인간교육의 상관성을 논하고, 최근에 논의 되고 있는 생명조작과 인간복제문제에 관하여 생명존중의 관점에서 비판하였다 끝으로 의료기술의 발전의 역작용과 현대 의학의 반생명 적 작태의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비판적 관점에서 고찰하였다. 필자는 이 책의 머리말을 독자를 위해 기술했으나 맺는말(結語) 또 는 결론을 의도적으로 쓰지 않았다. 그 이유는 첫째로 환경윤리의 내 용은 새롭게 문제가 제기되면서 계속 수정 보완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 책이 판을 거듭할 적마다 수정 또는 증보판 을 내 놓을 생각을 가지고 있다. 둘째로 필자는 이 책의 개정판에서 초판에서 쓰지 못한 생태학적 신학과 생태학적 정치학과 생태학적 미 학의 자연보전의 실천문제를 환경교육학과 상관시켜 기술하려는 의도 룰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보존의 실천운동을 하는 데 있어서 가 장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인간의 자연에 대한 가치감을 갖는 것 이다. 자연보전의 실천은 일차적으로 자연에 대한 미적 가치감을 고양 시키는 것이며 그 다음 자연에 대한 도덕적 가치감을 일깨우는 것이 다. 그러나 자연보전과 생명존중을 위해 가장 영향력이 큰 것은 자연

에 대한 종교적 외경심( 長 敬心)을 갖게 해주 는 것이다 . 그리고 자연보 전을 위해서는 인고( 忍苦 )와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이것은 종교적 신 념이 가능하게 해줄 수 있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자연보전을 구체적 으로 논하려고 한다면 생태학적 미학과 생태학적 신학의 동향을 고려 하고 이들과의 협동작업이 요청된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자연을 보전 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자연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자 연에 대한 사랑은 미적 가치감과 종교적 가치감의 도움없이는 불 가능 하다. 그러므로 자연보전의 실천운동과 환경교육은 도덕교육과 함께 생태학적 미학 교육과 생태학적 신학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 .

차례

머리말 • 5

제 1 장 환경윤리학의 의미

1 환경윤리학 및 생태학적 윤리학의 대두 ---- 17

2 환경윤리학의 과제 ---- 19

2.1 생태학적 양식의 성찰 • 19

2.2 자연보존을 위한 국제적 협력 • 20

2.3 자연보전의 윤리적 실천 • 21

제 2 장 생태학적 위기

1 생태학과 생태학적 위기의 의미 ---- 25

1.1 생태학의 의의 · 25

1.2 생태학적 위기의 의미 • 26

2 생태학적 위기의 실상 ---- 29

제 3 장 생태학적 위기의 논거

1 전통적 그리스도교의 자연관과 그 문제점 ---- 33

1.1 자연의 탈신화화 (Entmythologisierung) • 33

1.2 인간 중심주의 (Anthropozentrismus) • 34

1.3 구속사(救讚史) 중심 • 34

2 서양 근세 이후의 자연관의 문제점 ---- 35

2.1 서양철학의 전통적 자연관 · 35

2.2 인식론적 측면에서 • 41

2.3 가치론적인 측면에서 • 43

제 4 장 자연보전과 생태학적 위기극복의 논거

1 자연보전의 의미 ---- 47

1.1 자연보존과 자연보전 • 47

1.2 자연보전의 실현 • 48

2 생태학적 위기극복의 논거 ---- 54

2.1 공생적 인간 중심적 생태윤리학의 자연관 • 55

2.2 자연 중심적 생태윤리학의 자연관 • 56

2.3 생명 중심적 자연관 • 58

2.4 그리스도교 윤리학의 자연관 • 62

제 5 장 생태윤리학에 대한 비판적 고찰

1 공리주의적 관점에 대한 반론 ---- 90

1.1 인간 이외의 존재자의 생존권 불안정 • 90

1.2 미래세대의 권리 불인정 • 90

1.3 맹목적 인간우월주의에 대한 반론 • 91

1.4 환경비용 • 91

1.5 욕구충족 개념의 내용 변화 요구 • 92

2 감성주의적 관점에 대한 반론 ---- 92

2.1 자연경관 보존의 전통 • 92

2.2 경치의 보존과 관광산업의 딜레마 • 93

2.3 자연미의 보존과 개발의 우선 순위의 문제 • 93

2.4 자연미 자체가 항상 선한 것인가? • 94

3 자연의 고유권설(자연권)에 대한 반론 ---- 94

3.1 자연의 권리(자연권)의 한계 • 94

3.2 자연이용에 대한 권리 문제 • 95

4 동정윤리학에 대한 반론 ---- 96

4.1 동물에 대한 동정(同情)의 한계 • 96

4.2 동물의 생존권의 문제 • 97

5 진화론적 관점에 대한 반론 ---- 98

5.1 패배주의의 비판 또는 비관주의에 대한 비판 • 98

5.2 인간은 진화의 첨단에 있는가? • 99

제 6 장 생명보전 • 평화보전 • 자연보전

1 생명윤리와 자연보전 ---- 101

1.1 생명윤리학의 의미 • 101

1.2 생명 개념의 다의성과 그 정의의 난점 • 103

1.3 생명의 가치의 의미와 그 이해 • 106

1.4 생명가치의 구현 • 111

2 평화와 자연보전 ---- 114

2.1 평화의 의미와 생태학의 상관성 • 115

2.2 인간과 자연의 공존 • 117

2.3 평화구현과 자연보전 • 123

제 7 장 동양의 전통적 자연관의 현대적 의의

1 도가(道家)의 자연관의 현대적 의의 ---- 131

1.1 노자의 자연관 • 132

1.2 장자의 자연관 • 137

1.3 도교의 자연관 • 142

2 유가의 자연관의 현대적 의의 ---- 147

2.1 『주역』과 생명과학 • 147

2.2 유가의 중요한 자연관 • 166

제 8 장 한국인의 전통적 자연관의 현대적 의의

1 한국인의 민간신앙의 자연관 ---- 180

1.1 무속신앙의 자연관 • 181

1.2 풍수지리사상과 자연존중 • 183

1.3 도참사상과 자연보호 • 184

1.4 구비전승의 속신과 자연보호 • 185

1.5 신선사상과 자연보호 • 191

1.6 한국 민속불교와 자연보전 • 195

1.7 천재지변과 기우제 • 196

2 한국인의 전통적 문화생활과 자연관 ---- 200

2.1 한국의 옛 조경과 자연의 조화 • 201

2.2 민화와 자연미 • 206

2.3 한국 민예품의 자연미 • 210

2.4 결언 : 한국 고미술과 자연의 조화 • 223

제 9 장 생명존중 • 환경교육 • 인간교육

1 환경교육과 인간교육 ---- 227

2 생명존중과 인간교육 ---- 229

2.1 생명존중과 인성교육의 상관성 • 229

2.2 인성교육 실패의 원인 • 231

2.3 인간교육의 내실화 • 238

3 생명조작과 인간복제에 대한 비판 ---- 241

3.1 인간복제에 관한 찬반논의 • 242

3.2 생명복제의 문제점 • 247

3.3 인간복제를 금지시켜야 하는 이유 • 250

3.4 생명조작과 인간복제의 예방 • 251

4 의료기술의 발전과 생명존중 ---- 252

4.1 현대 의학의 기조 • 252

4.2 의학의 실천성과 윤리성 • 260

4.3 생의윤리학적 고찰 • 264

참고문헌 · 275

찾아보기 / 인명 • 297

사항 • 301

제 1 장 환경윤리학의 의미 l 환경윤리학 및 생태학적 윤리학의 대두 오늘날 우리는 환경오염, 환경위기, 생태계의 위기, 자연파괴, 지구의 종말이라는 말을 할다반사처럼 듣고 있다. 인간은 자연(환경)에서 태어나서 자연 속에서 살고 있다. 인간은 자연 을 떠나서는 잠시도 살아갈 수 없다. 그러나 인간과 자연환경과의 교섭 은 오늘날 당초에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를, 즉 자연환경의 위기를 가져 왔다. 그래서 자연환경의 위기는 인간에게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무분별한 경제개발은 산업화와 도시화에 의하여 자연환경의 파괴를 가속화하였다. 그래서 생태계의 자연스러운 순환은 단절되고 생태권 (生態圈)의 재생 능력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른바 생태학적 위기가 닥쳐왔다. 우리 인류는 지금 하나의 지구촌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이 지구촌은 밑바닥부터 거의 모든 곳에서 동시에 붕괴되기 시작하고 있 다. 이 지구의 붕괴는 우리 인류가 자연을 아끼고 보전할 줄 모르고 자연을 착취하고 수탈하고 파괴를 일삼아왔기 때문이다. 생태학적 위

기는 한 생물과 다른 생물, 그리고 모든 생물과 자연환경과의 연대가 무너지기 시작함에 따라 지구 자체를 유지시켜 주는 동적 상호작용이 와해되기 시작함을 의미한다. 킨겔바흐 (R Kinz elbach) 는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생태학적 위기의 극복과 해결책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내면적 세계의 위기 를 해결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갈파했다. 왜냐하면 〈생태학적 위기는 인간이 조성한 것이며, 따라서 생태학적 위기는 바로 인간의 위기이기 때문〉 이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낡은 생각에서 벗어 나 자연과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필요로 하며 참된 인간성에로 되돌아갈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자연보호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환경 문제는 인간학의 과제이자 동시에 사회윤리의 과제임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환경위기, 즉 생태학적 위기를 극복하려는 윤리학을 초기에는 환경 윤리 학 (en vir orunen tal eth ics, Umwelt eth ik) 이 라고 부르다가 최 근에 는 생태학적 윤리학 또는 생태윤리학 (ecolo gi cal eth ics , okolog isc he eth ik) 이라고 부른댜 이 새로운 생태윤리학은 1968 년 빈 (W i en) 에서 개최된 제 10 차 국제철학대회에서 환경윤리분과가 창설되면서 철학자들과 세 인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는 환경윤리학 또는 생태윤리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환경윤리학은 인간과 자연과의 교섭에 관해서 도덕적 가치표상과 도덕적 원리와 규범의 비판과 정립을 대상으로 삼는 생명윤리학의 부 분 영역이다. 환경윤리학은 전지구적으로 점점 더 뚜렷해지는 생태학 적 위기에 대한 반응으로 1970 년대 초기에 발생했다. 이 전지구적 위 기는 자연을 오로지 인간의 이해관계를 위한 자원으로만 격하시키는 인간 중심주의에 그 책임이 있다. 생태학적 위기는 동시에 현대 문명 의 위기로도 파악된다. 환경에 대한 기술의 침해는 철학적으로나 윤리 학적으로 특별한 주목을 받았으며 그 결과는 거의 돌이킬 수 없을 것

이라는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 그것의 공간적 시간적 파급 영향을 조 정하는 것은 아주 어렵거나 거의 불 가능하다 . 환경윤리학의 여러 가지 착안은 어떤 자연존재에 고유한, 본질적인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느냐 는 관점에 따라 달라진댜 예컨대 동물 , 식물, 생물학의 어떤 종들, 생 태계, 경관 또는 자연도 도덕적 요청이나 도덕적 및 법적 권리를 소유 하는가 하는 문제는 논란되고 있다. 생명존중과 자연보전은 상이한 정 초의 착안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자연보전 개념은 자연에 관하여 어떤 목표 를 설정하느냐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2 환경윤리학의 과제 2.1 생태학적 양식의 성찰 생태윤리학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도덕적인 가치판단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도덕적인 가치판단의 기준은 견해에 따 라 차이는 있지만 디쉬(R. Disch)에 의하면 인간의 자연에 대한 태도 는 생태학적 양식 (ecolo gi cal consc i ence) 에 따라 선과 악으로 판별된다. 칸 (Cahn) 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환경과 그 속에 살고 있는 모든 생 물종을 아끼고 사랑하며 다른 생물을 직접 • 간접으로 해치는 사리사 욕을 버리며, 환경에 가능한 한 혼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선이라고 해 석한댜 레오폴드 (Leo p old) 는 생물군집을 보호하고 안정성을 유지하며 심미감(審 美感 )을 보전해 주는 행위는 선이며, 그렇지 않은 행위는 악 이라고 환경윤리의 실천지침을 제공한다. 뒤보 (Dubos) 와 파크레 (Fackre) 는 인간이 지혜와 창의를 가지고 자연을 이용하고 관리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식물을 배양하고 동물을 사육해야만 생태권 (ecos pehr e) 을 지 속시킬 수 있다고 보고, 생태권을 지속시킬 수 있는 것은 선한 것이

며, 생태권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악한 행위라고 규정했다. 그들은 생 태권을 위험에 빠뜨리면 결국 인간 자신도 위험에 빠진다고 경고한다. 환경에 대한 윤리적 가치판단은 생태학에 관한 지식에 근거하지 않 을수 없다. 예컨대, (1) 생태계의 보전 및 다양성을 이해할 수 있는 지식, (2) 인 간은 자연의 지배자가 아닌 자연의 한 구성원이라는 것, (3) 모든 생 물종은 생존할 권리가 있으므로, 인간이 함부로 생태권을 위험에 빠뜨 려서는 안된다는 것, (4) 지구 자원의 낭비는 환경의 오염과 파괴에 직결된다는 둥의 생태학적 지식이 요청된다. 그리고 이러한 생태학적 지식은 생태학적 양식을 형성하는 기초가 된다. 우리는 생태학에 대한 지식 없이는 우리의 행동이 환경(자연)에 대하여 유익한지 유해한지를 판단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태학적 양식을 북돋아주는 것은 바로 자연보전 과 환경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상관된다. 자연을 지키려는 마음은 결국 자연을 아름답게 볼 줄 아는 데서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렇 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마음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질 수가 없으며 오랜 시일을 두고 꾸준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 바로 이것이 생태윤리학, 또는 환경윤리학의 과제이다. 2.2 자연보존을 위한 국제적 협력 1972 년 6 월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열린 UN 인간환경회의 (The Un ited Nati on s Con fere nce on the Human Env ir orunen t)는 인류 역사에서 최초 로 〈인간환경선언문〉을 채택하였다. 그 선언은 자연보존과 그 향상에 관한 인류공존의 사상과 원칙을 천명했다. 그 선언은 〈이제 인류는 역 사적 전환점에 이르렀다〉고 주장하면서, 〈현재와 미래의 세계를 위하 여 인간환경을 보호하고 개선한다는 것은 인류의 지상목표가 되었으

며 그 목표는 인류의 평화와 범세계적 경제 • 사회발전이라는 확고하 고 기본적인 목표 아래 조화 있게 추구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 나 〈인간환경선언〉에서 표명된 자연관은 자연보전의 중요성을 인정하 면서도 어디까지나 인간을 위주로 한 것이며 최근에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생태윤리학에서처럼 자연보존의 독자적 의미는 인정되지 않고 있댜 그러면서도 이 선언문에서 제기된 중요한 점은 민족주의의 한 계 를 지적한 것이댜 지구상의 많은 나라들이 제각기 자기 이익만을 추구할 때 그 무책임한 통치권하에서 지구가 온전하기 어렵다는 것이 댜 그래서 제기되는 문제가 초민족 공동체(p os t nati on al commu nity) 이다 . 이제 우리 모두에게 참으로 중요한 것은 지구가 단 하나뿐이며, 단 하나의 인류가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단 하나뿐인 지 구에서 자연과 환경의 보전을 위한 교육이야말로 사회윤리학의 근본 과제이다. 우리나라의 〈자연보호헌장〉도 〈국민 모두가 자연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여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며 모든 공해 요인을 배제 함으로써 자연의 질서와 조화를 회복, 유지하는 데 정성을 다하여야 한다〉고 명기하고 있다. 자연보전은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 또는 민족의 번영과 안녕, 질서 를 도모하는 이데올로기 교육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자연을 사랑하는 정신은 곧 나라에 대한 충성심이며 동시에 인류애와 직결된다. 자연과 인간의 공생관계야말로 자연보전의 윤리적 기반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태윤리학 교육은 인간의 교양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을 차지해야 할 것이다. 2.3 자연보전의 윤리적 실천 환경윤리학은 실천윤리학으로서 구체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점을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깨우쳐야 할 것이다. 첫째, 인간은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든지, 지배한다는 그릇된 생각 을 버리고 자연과 겸허하게 조화를 이루며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모 색해야 한다. 둘째, 인간의 생존을 위한 기본 욕구의 내적 한계를 충족시키면서 지구상의 자연생태계에 대한 외적 한계를 침해하지 않는 새로운 자연 보전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이 제도는 특정한 기술전문가나 관리 들 에 게 기대하기보다 참으로 인간의 삶의 터전을 지키고 가꾸려는 모든 사람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에 의하여 정착될 수 있다. 셋째, 자연보전은 기술개발로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고, 인류 전 체가 자연에 대한 건전한 인식을 가져야 가능하다: 자연은 그 자체로 존재이유를 가지고 있음을 모든 사람들이 올바로 께달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연보전은 가능하다. 따라서 올바른 생태학적 지식에 대한 교 육이 절실히 요구된다. 인간의 삶은 자연생태계의 일부이며, 자연환경 의 파괴는 바로 인간생존의 위협이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와 착 취가 철폐되어야만 인간간의 관계가 평화로울 수 있는 것처럼, 인간에 의한 자연의 지배와 착취가 종식되어야만 인간과 자연 간의 관계가 조화롭고 평화로울 수 있다. 이것은 보편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인 류 전체의 실천적 과제가 될 수 있다. 자연보전에 대한 교육은 가정교 육, 학교교육, 사회교육, 종교교육 등 모든 교육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넷째, 무분별한 자연개발(착취, e xp lo it a ti on) 의 방조와 묵인, 때로는 촉구는 원려(遠慮)없는 정부의 좁은 소견에 기인함으로 정부의 자연보 존정책은 실질적으로 강력하게 그 모범을 보여주어야 한다. 다섯째, 토지소유주의 월권을 법적으로 또는 윤리적으로 엄격히 금 지시켜야 한다. 토지소유주는 토지를 좋은 목적에 선용(善用)할 수 있 는 권리를 가지고 있으나 자기의 토지라고 할지라도 남용(파괴, 오염) 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것은 마치 착한 소작인이 토지롤 선용

하고 잘 보전하다가 더 감당할 수 없을 때 토지 를 주인에게 고스란히 물려주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미국의 아동보호법에 의하면, 어떤 부모가 자기의 자식이라고 할지라도 올바르게 키울 수 없다고 판정되는 경우, 정부는 그 부모로부터 자식의 양육권을 빼앗아, 그 아 이 를 보다 더 잘 기 를 수 있 는 단체나 개인에게 줄 수 있다. 부모가 자기의 자식을 함부로 다 룰 수 없는 것처럼, 토지소유주도 자기의 토 지 를 함부로 다룰 수 없어야 한댜 인간은 누구나, 토지의 소유주이거 나 아니거나 간에 땅, 물, 공기를 선용할 권리는 가질 수 있으되 악용 할 권리는 가지고 있지 않다. 여섯째, 인간은 생명보존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지고 생명가치를 구현시키기 위하여 노력해야 할 것 이다.

제 2 장 생태학적 위기 l 생태학과 생태학적 위기의 의미 l.l 생태학의 의의 생태학 (Okolo gi e, ecolo gy)은 대체로 살아 있는 유기체의 관습, 생활 관 그리고 그 유기체들이 주변 환경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가를 다 루는 생물학의 한 분야로 설명된다 . 1) 생태학은 이론적 • 추상적인 과학 의 입장에서 보면, 직접적으로 분명한 명중성을 가지고 있는 과학이 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다.

1) Webste r's T hir d New Inte rnation al Dic t io n ary (1 971), 458-459 쪽 ; Ox ford Eng lis h D(Siac tui no nd aerry, (1P 9h7 i8la)d, el6p2h8 i쪽a, ;1 9E7u1)g, en1 3e 쪽. . P . Odum , Fundennenta ls of Ecolog y, 3ed.

물론 생태학이 자연보존과 동의어는 아니다. 생태학은 자연에서 생 물이 어떻게 그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가를 탐구하는 데 그 주된 목적 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생태학 연구의 목적은 일차적으로 자연의 생

태계 (eco - s y s t em 또 는 ecolog ica l sys t e m ) 그 자체 를 보다 더 정 확 하게 파악하는 데 있는 것이지 자연보 존 과 자연보 호 의 기 술 만 을 탐 구할 수 는 없을 것이다 . 그러나 생태학은 인간으 로 하여 금 인간이 얼마나 상 호의존적이며, 또 동식물과 무기물과도 얼마나 상호의 존 적인가 를 깨 닫게 해준다. 따라서 이러한 깨달음은 잃어버린 자연 을 회복하고 더러 워진 자연환경을 정화하고 모든 자연파괴의 행동 을 멈추도 록 촉구 한 다. 그러므로 긴 안목에서 보면 생태학은 자연보 존 과 인간의 생 존 에 매우 중요한 학문이댜 1.2 생태학적 위기의 의미 주지하다시피 무분별한 경제개발은 산업화와 도시화에 의하여 자연 환경의 파괴를 초래했다. 그래서 생태계의 자연스러운 순환은 단절되 고 생태권의 재생 능력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 이른바 생태학적 위기가 닥쳐왔다. 우리는 하나의 지구촌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이 지구촌은 밑 바닥으로부터 붕괴되고 있다. 이 지구촌의 붕괴의 원인은 자연을 아끼 고 사랑할 줄 모르고 자연을 착취 수탈하고 파괴를 일삼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생태학적 위기는 한 생물과 다른 생물 그리고 모든 생물과 자연환경과의 연대가 무너지기 시작함에 따라 지구 자체 를 유지시켜 주는 동적 상호작용이 와해되면서 시작되었다. 이것은 생태학의 과제 일 뿐만 아니라 바로 사회윤리와 인간학의 과제로 된다. 왜냐하면 인 간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존재로서 연대성과 공익성과 보조성( 補 助 性, Subs idiari넒t)의 원리 2) 를 준수하면서 살 수밖에 없으며 바로 이 러 한 사 회질서의 윤리와 실천이 생태학적 위기극복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 2) 진교훈, 『사회 • 문화 윤리J, 『 국민윤리학개론 』 , 국민윤리학회 편(서울: 형설출 판사, 1987), 273-280 쪽 참고.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생태학자인 킨젤바흐는 3 )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생태학적 위기의 극복과 해결책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내면적 세계의 위기를 해결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갈파했다 왜냐하면 〈생태학적 위기는 인간이 조성한 것이며, 따라서 생태학적 위기는 바로 인간의 위기라는 것이 다〉 . 다시 말해서 문제의 근원은 과학이나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잘못된 생각 속에 있다는 것이다 .

3) Rag na r K Kinzel bach , Okolog ie, Natu r sch11t z, Umwelt sc hutz ( Darmsta d t, 1989), 166-167 쪽.

생태학적 위기 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인간관에 대한 이해와 미래사회의 구조에 대한 새로운 비전이 요구된다. 킨겔바흐는 그의 책 『 생태학, 자연보호, 환경보호 』 의 말미에서 〈우리는 인간과 세계에 대 한 낡은 생각에서 벗어나 자연과 인간에 대해 새롭게 이해해야 하며, 동물로부터 벗어나 ‘참된 인간성’에로 ‘환골탈피(換骨脫皮)'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자연보호가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환경문 제가 인간학의 과제이며 동시에 사회윤리의 과제라는 것은 아무도 부 정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산업사회에 살고 있다. 산업사회는 자연개발과 경제개 발을 통하여 사회와 인간의 삶이 진보할 것이라는 꿈을 인간에게 가 져다 주었댜 그러나 산업화(in dus tri s i erun g)는 관료제도와 기술지배 (t echnocrac y)를 산출하고 마침 내 인간의 지 적 활동을 부기 화(簿記化, co difi ca ti on) 하고 가치 중립화하였으며, 결과적으로 아노미 현상을 가 져오고 비인간화를 가속시켰다. 뿐만 아니라 자연개발은 전지구상에 생태학적 위기와 자연파괴를 초래하게 함으로써 인간의 존속 자체까지 위협한댜 생태학의 중요성에 관해서는 많은 학자들이 주장해 왔다. 맥클로스키 (H. J. McOoske y)는 〈오늘날 학자들은 사람들이 한때 뉴턴

(I. New t on) 의 물리학에 부여했던 중요성을 생태학에 부여하고 있다. 왜냐하면 근본적인 생명유지가 바로 생태학적 위기로 말미암아 위협받 고 있기 때문이다〉情)라고 말했댜 하딘(G. Har din)은 〈 20 세기에 들어와 서 생물학 분야에서 두 가지 중대한 계기가 있었다. 그 하나는 1953 년 에 왓슨 (Wa ts on) 과 크릭(Cri ck) 이 DNA 구조를 발표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카슨(R. Carson) 이 1962 년에 『침묵의 봄 (S il en t S pri n g)』을 출판 한 것이다. 전자의 중요성은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후자 의 중요성은 그렇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5) 고 말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생태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조직이다. 만일 우리가 미래에도 잘 살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이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6) 뒤보 (Rene Dubos) 는 〈만일 인간이 그 자신 의 한 부분으로 되어 있는 삶의 복잡하고 미묘한 거미줄 같은 사슬(올 가미)에서 본질적인 매듭을 구성하는 유기체를 별 생각없이 제거해 버린다면 인간은 궁극에 가서 자기 자신까지도 파괴하고 말 것이다〉 7) 라고 말했댜 디쉬는 생태학과 환경문제의 중요성에 관해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생태계에서 저지른 변화는 인간의 생명을 존속시키 는 데 있어서 삶을 지탱시켜 주는 조직의 통합(int e grity)을 위협하고 있다.…… 환경문제는 때로 우리의 눈에 띄지 않기도 하지만 그것은 천천히 조용히 작용한다. 이 문제의 처방은 깊이 뿌리박혀 있는 사회 및 종교적 가치관, 생활방식, 경제구조와의 갈등을 유발한다. 환경위기 4) H. J. McOoskey, Ecolog ical Eth ics and Poli tics (New Jers ey : Rowman and Littlefield , 1983). 5) G. Hardi n, Not Peace, but &olog y, Dive rsit y and Sta b il ity in 표 o-s y s tem, Sy mposi u m May 26-28, 1969, Bio l og y Depa rtme nt, Bookhaven Nati on al Laborato r y , Up ton , N. Y., 151 쪽. 6) G. Hardi n, Living in the Env irion ment, , ed. G. Ty le r Miller (Belmont, Mass. : Wadswort h, 1975), 75 쪽. 7) R Dubos, Man, Medic ine and Env irion ment( H armondswort h : Peng uin, 1970), 15 쪽.

는 치명적이댜 이 문제의 해결은 이제까지의 세계사에서 전혀 알려진 적 없는 국제협력에 의해서만 비로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8)

8) R. Dis ch, ed., T he Ecolog ical Consci en ce(Eng lew ood cliffs, N. J. : Prenti ce Hall, 1970), 서 문 xiii.

2 생태학적 위기의 실상 맥헤일(J. Mchale) 은 〈인간이 지구를 우주의 역사에서 가장 위험스 러운 유기체가 되게 만든 것은 가장 최근에 발생한 것으로서, 극히 짧 은 기간에 일어났다〉 “ 고 말했다. 또 모리슨(J. F. Mo nis on) 도 인류가 현재 당면하고 있는 생태학적 위기에 관해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그 자신의 생촌과 이익을 위해서 자연이라는 선물을 이용하기도 하고, 변형시켜 온 것은 자연환경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과학적 발 견, 테크놀러지, 조직적 숙련의 수준은 인간의 환경에 대한 요구와 인 구 수준에 맞추어 자연의 평형을 유지해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인간은 지난 몇십 년 동안 에너지, 물, 공기 및 그 밖의 원료와 열려 있는 공 간을 필요에 따라 함부로 남용하다 보니 자연의 감당 능력을 넘어서 게 만들었다 . 특히 폐기물 처리에서 그러하다.〉 밀러(G. M 沮 er) 는 〈인 류는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참으로 인류가 생태학적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오늘날 생태학은 분명하게 말해 주고 있다〉 10) 고 강변했 댜 부해이 (A S. Bou gh e y)는 생태학적 위기에 관해서 이렇게 관찰했 다. 〈지난 20 년 이래 우리는 너무나 많은 공해요소, 너무나 많은 소비, 너무나 많은 독소, 너무나 많은 긴장을 만들어냈다. 동시에 식량, 에너

9) H G. T. van Racy and A E. Lug , e d., M an and the Env iron ment( T he Hagu e : 10) RGo.t t eTr. d aMmil leUr,n ievde .r,s iL tyi v iPngr e sisn, E19n7v4 ir)o, n 1m8e0n 쪽t( .B ellmont, Mass : Wadswort h), 5 쪽.

지, 주거, 교육, 건강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너무나 부족한 상태에 있 다. 우리는 화석연료, 광석, 농경지, 녹지, 야생생물, 공기, 물, 황야와 같은 자연자원을 낭바했다. 재난은 닥쳐왔다. 재난은 우리 자신과 생 태계의 모든 지평에 걸쳐 있댜〉 11) 이 밖에도 많은 사람 들 이 생태학적 위기에 관해서 경고하고 있다. 자원고갈, 인구증가, 환경오염, 종의 멸 절, 원시림 • 황야의 상실에 대해서 많은 우려가 표명되고 있다 . 에 를 리히 (Ehr li ch) 는 〈인구의 폭발적 증가야말로 지나간 수십억 년의 지구 역사에서 가장 중대한 사건이다 . …… 인류 그 자체가 전멸 할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어떤 지구학적 사건도 인간의 과잉과 견 줄 만큼 지구 의 생명에 위협을 주지 못하고 있다〉 1 2 ) 고 말하면서 생태학적 위기의 주요 원인을 인구증가에 두었다. 카슨은 생태학적 위기의 주원인을 공 해라고 보고 〈환경에 가한 인간의 침해 중에서 가장 심한 공기, 땅, 강과 바다가 위험하고 심지어 치명적인 물질로 오염되고 있다. 공해의 대부분은 자연의 원상회복을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었다. 이제 악마의 사슬, 즉 공해는 생물 속의 주도권을 쥐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생물계 내에서조차도 대부분의 경우 이를 물리칠 수 없도록 만 들 어버렸다〉 1 3) 고 설파하였다. 앞에서 우리가 살펴본 생태학자 및 환경윤리학 • 생태학적 윤리학에 관심을 가진 학자들의 표현은 거의 대부분 인간의 존속만 염려하고 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도덕적 관심에 대해서는 극히 일부만이 관 심을 표명하고 있다 . 아무튼 이제는 지구 생태계의 안녕, 지구에서 살 고 있는 구성원, 생명 없는 구성체의 안녕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관심 을 가진다. 어떤 사람들은 생태계의 위기가 극한에 도달했고 자연은 11) A S. Boug he y, Man and the Enuir o nnumt (N ew York : Mac Millan ), 2 쪽. 12) P. R Ehrlic h and A. H. Ehrlic h, Po pu lati on , Resources, Env iro nnumt (S an Franci sco : W. H. Freem an, 1970), 1 쪽 . 13) R Carson , Sil en t Sp ring (B osto n : Houg hton Mifflin, 1962), 6 쪽.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오염되어 있으며 자연은 과도하게 착취당하고 있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생태학적 위기에 관하여 저술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은, 만일 우리가 생태학의 법칙과 사실에 관하여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면, 이 생태학적 위기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맥클로스키는 이러한 작업은 과학적 작 업이 아니라 철학적 작업이라고 주장한다 . 그는 생태학적 위기의 해결 을 위해서 생태학적 윤리학의 설립을 주장했다 . 그는 생태학적 윤리학 의 과제를 생태학과 윤리학의 상관성, 자연보존, 동물의 생존권의 규 명으로 보고, 이것의 실행을 정치학의 과제라고 보았다 .14) 14) H. J. McOoskey, Ecolog ical Eth i c s and Poli tics( Toto w a , N. J. : Rowman and Littlefi eld , 1983), 107-109 쪽.

제 3 장 생태학적 위기의 논거 1 전통적 그리스도교의 자연관과 그 문제점 l .l 자연의 탈신화화 (En tmyth olo gi s i erun g) 화이트 (L. Whit e) 에 의하면, 유대 그리스도교의 전통은 인간을 온갖 창조물의 군주 자리에 앉혀 놓고 자연을 모독하게 하는 정신적 기반 을 제공했다.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창세기 1 : 28) 〉는 말씀을 자의 적으로 해석했던 곳에서는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이 형성되고 자연을 무제한으로 약탈하고 훼손시키는 만행이 자행되었다 .1)

1) L. White, The Histor i ca l Roots of our Ecolog ica l Crisis, Sci en ce, vol 155 (1967) 참고.

유대 그리스도교는 자연물에도 혼이나 신령(神靈)이 것들어 있다고 하는 물활론(物活論) 및 만유령유론(萬有靈有論)을 철저하게 거부하고 자연을 비(非)신격화하며 자연에 대한 신성한 감정과 신비한 의식을

소멸시켰고 자연을 단지 인간의 필요 를 충족시키기 위한 대상물로 간 주했다. 유대 그리스도교의 자연관에서는 인간과 자연은 대립관계에 있고, 자연은 인간에게 한갖된 경제적 이용물에 불과한 것이 되었다. 1.2 인간 중심주의 (An thr o p ozen tri smus) 아메리(C. Ame ry)에 의하면, 하느님은 온갖 피조물의 보존자된 구 원자로서 인간뿐만 아니라 우주의 모든 생명체들과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이 계약을 인간의 영역으로 축소시켜 인간 중심 적으로 이해했고, 여기서 인간의 자기 중심적 이기주의적 사고와 삶의 태도가 발전되어, 인간의 끝없는 욕구충족을 위한 자연의 무제한적 이 용과 약탈이 합리화되었다는 것이다 .2)

2) C. Ame ry, Das Ende der Vorsehung , Die grad enlosen Folge n des Chr iste ntum s (Rein beck : Rowohlt) 참고.

1. 3 구속사(救讀史) 중십 뢰비트 (K Lo with)에 의하면, 역사를 근본적으로 구속사로 파악하는 유태 • 그리스도적 사고가 역사를 왜곡시켰고, 구속사적 역사관은 세 속화된 형태로 역사 발전의 이념이나 역사주의에 나타나고 있다. 결국 그리스도교의 창조신앙에 바탕을 둔 인간 중심적 세계관이 오늘날의 자연파괴의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고 한다 .3) 따라서 그리스도교로 말미 암아 자연에 대한 인간의 오만이 결과적으로 자연파괴의 원인이 되었 다는 것이다. 그러나 몰트만(J. Moltm ann), 리트케(G. Lied ke), 크롤직 (U. Krolz ik)4>

3) K Low ith, Zur kritik der chri stlich er Uberlief erun g( S tu ttgart, 1% 6) 참고 . 4) G. Lied ke, Im Bauch des Fis c hes(Stu ttgart : Kreuzverlag, 1983) ; U. Krolz ik,

Umwelt Kri se, Folge des Kri ste n tu m s?(Stu ttgart : Kreuzverlag, 1979) 참고.

같은 신학자들은 생태적 위기의 원인이 그리스도교의 창조신앙에 기 인한다고 보는 것에 대해 반대하고, 생태적 위기는 전적으로 인간의 정복욕과 진보에 대한 맹신에 근거하며 성경 본문의 해석에 문제가 있 다고 지적하였다. 2 서양 근세 이후의 자연관의 문제점 2.1 서양철학의 전통적 자연관 서양철학의 자연관 5) 에 관해 고찰하려면, 우선 서구인들이 사용하는 자연이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 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영어나 독일 어, 불어 둥 서구어로 자연을 자칭하는 말은 원래 희랍어로는 ¢UOlC (ph y sis ), 라틴어로는 nahrra 로부터 기원하며, 시대와 장소와 학자에 따 라 전의 ( 轉意) 되 어 왔다. 어 원학적 으로 볼 때, 화랍어 ¢UOlc 는 산출, 창조, 성장, 생성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6) 라틴어 nahrra 는 nas ci(태어 난, 생겨난이라는 뜻)로부터 유래되어 indig enus( 어떤 곳에서 태어난, 토착 의)와 ing e ni um( ingign o 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타고난 것, 자연적 소질)과 연관된 의미를 가지고 있다. nahrra 는 태어나면서 함께 가지고 나온 것의 총체, 즉 타고난 것을 가리킨다 .7 )

5) 진교훈, r 서양의 자연과 인간관』, < 사상과 정책 )> , 제 3 권 , 제 2 호(경향신문사, 1986), 54-58 쪽 참고.

6) G. Cu rtius , Grundsatz der griech is ch en Ety molo g ie(1 B79), 304 쪽 .

7) I. Schudoma, Raum und Natu r, in, Syn u sia , Fests chrift fur W. Schadewalt (1965), 11-22 쪽 .

서양인들의 자연 개념에 있어서 ¢b0lc 의 의미와 해석은 철학적으로 볼 때 매우 중요하댜 이 낱말은 이미 철학 이전의 희랍 고전작품, 호

머 (Homer), 소포 클 레스 (So p hocles) , 핀다 르 (P in dar) 둥 의 시가( 詩歌 )에 자주 나타나고 있는데, 두 가지 의미 를 가지고 있다. 그 하나 는 본 질 (독일어로 Wesen 에 해당)과 성질(소 질, Besch aff enhe it)이라 는 의미요, 다 른 하나는 생성, 성장이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의미는 희랍의 고대 철 학에서도 자연 개념의 기초가 된다. ¢UOlC 라는 낱말이 철 학 적 인 저술 에 나타나서 문제가 된 것은 해라클레이토 스 (Heracle it os) 의 저 술 에서 이다. 이 말이 자연적 존재라는 본질과 생성 및 성장의 법칙이라는 함 축을 가진 것으로 함께 사용된 것은 비교적 후대에 나타난다.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여 비롯된다. 그는 자기 자신 속에 운동과 정지 의 싹울 가지고 있는 대상들을 자연적인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그러한 생각을 개념화했다 .8)

8) F. Kaulbach , Der philos ap hisc he Beg riff der Bewegu n g( 1 965) 18 쪽 이 하 ; Aristote le s, Ph ysi ca , II . 1. 1926 15 참고.

아리스토텔레스는 ¢UOlC 와 반대의 의미 를 가진 것을 기술(t echne) 이 라고 명명하고, 이 기술은 운동과 변화의 원인을 가리키는 것이며 , 또 원인은 사물의 외부로부터 인간의 편에서 손을 댐으로써 생겨난 것이 라고 보았다. 그는 자연이란, 자립적인 것, 자유로운 것 , 힘 있는 것, 근원적인 것 , 선한 것, 모범적인 것으로 설명했다 . 이와 같은 의미의 자연 개념은 전 서양사상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전통으로 정초( 定礎 ) 되고 있다 .9) 그는 또한 이러한 자연의 의미규정과 관련해서 자연을 사 물마다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본질이라는 함의에로까지 발전시켰 다 .10) 그에 의하면 사물의 본질은 상황에 따라 제약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이고 고유한 것으로 보여졌다 . 이처럼 어원학적으로 반영된 자 연 개념은 근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사물 자체를 규정하고 있는 〈실체적 형상 (Subs tanti elle Form) 〉의 의미로서의 사물의 본질이라는

9) F. Kaulbach , Phil os ap h isc h e Beschreib u ng (1 968) 90 쪽 이 하.

10) Aristot l es , 앞의 책, 193 a 9 이하.

개념은 칸트 (Kan t)에서도 작용한댜 그에 의하면, 자연은, 형식적 의미 에서 보면 사물의 현존재에 속하는 것의 제일의 내적 원리로 간주되며, 실질적 의미에서 보면 형상의 장( 場 )으로 법칙 아래에서 파악된다 .11 ) 서양의 중세 사상에는 하느님이 자연의 모든 사물에 개개의 규정을 부여한다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다. 그리스도교인에게는 하느님의 비 파생적 창조성과 자연의 파생성 및 존재성이 구분된다. 그래서 아우구 스티누스 (Au gustin us) 는 모든 것의 원천이 되면서도 그 자신은 그 어 떤 것의 원인이 되지 못하는 최초의 신성한 원인과 그 이외의 원인들, 즉 처음부터 수동적이고 물질적인 원인들을 대조시켰다 .12) 토마스 아 퀴나스 (Thomas A quin as) 에서도 하느님은 능산적(能 産 的) 자연 (na tur a na tur ans) 이며, 소산적(所 産 的) 자연 (na tur a na tur a t a) 과는 구별되며, 창 조자는 창조된 세계와 대조된다 .13) 다시 말해서 초성적인(i.i bema tirli ch) 것과 창조된 자연은 완전히 구분된다. 그러나 이 창조된 자연은 하느 님이 부여한 자연질서에 따라 움직인다. 자연의 질서 또는 법칙은 인 간의 이성의 작품이 아니지만, 인간의 이성은 자연의 원리들을 탐구하 고 그 현상을 설명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 후기 스콜라 철학의 보편논쟁에서 문제가 된 유명론(唯名論)은 관념 적인 보편적 이념보다는 개별적 경험에 관심을 가지게 만들면서 영국 에서 경험론이 발달하도록 만들었다. 프랜시스 베이컨 (Fran cis Bacon) 이래로 경험주의자들은 인식하는 현상에 대한 관찰(측정, 실험)을 통해 획득한 구체적인 데이터를 이론적인 맥락에 결합시켰다. 근세에 들어와 철학의 인식론이 발달하면서, 자연은 그 인식이 경 험론에 근거했건, 합리론에 근거했건 간에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법칙 11) I. Kant, Meta ph ys is c h e Anfa n gs gru·n d e der Natu wisse nschaft, Akade mische Ausga b e, 4 권, Vorrede, 467 쪽. 1123)) TAhuogm usatsi nAu sq, uDinea sC, iSv uitmatne z a D eT i,h evo.l og9 .i ca, II a II ae 85, 6.

이나 원리에 의거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중세에서 자연은 순종하도 록 되어 있는 것(p o t en ti a oboe di en ti al i s) 이었으나 근세에서는 신에 의 해서 애당초부터 자유가 허용되어 있는 것이었댜 그래서 자연은 자율 성과 자족성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다. 칸트는 자연의 개념을 내용적으로 형식적 측면 (na tur a for ma liter s p ec t a t a) 과 질료적( 質 料的) 측면 (na tur a mate r i aliter s p ec t a t a) 으로 구분했다 칸트에 의하면 질료적 측면에서 볼 때 자연은 경험의 모든 대상이 보편적인 법칙에 따라 규정되는 현존재이다 .14) 셸링 (F. W. J. Sche lling)은 자연을 절대적 개념으로부터 인식하려고 하였고, 그의 자연철학을 자연과 자연 속에서 육화 (r쇠 化)된 이성의 체 계에 관한 사상이라고 규정했다. 헤겔은 자연을 절대정신의 실현이라 고 보았다. 그에 의하면, 자연은 그의 영원성을 사물에 불어넣는 수준 으로부터 시작해서, 삶, 의식, 정신의 본질로 발전되어 간다고 한다 . 헤겔에서 자연은 다른 존재의 형식에서는 이념이고, 그 자신의 표현에 서는 정신이다 .15) 루소(J . J. Rousseau) 는 자연을 문화 및 관습에 대 항하여 보호해 야 한 다고 주장했다. 루소는 자연에 관하여 언제나 새롭게 연구하는 예술가 의 미학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인간간의 인위적 장벽과 그것에 결부되어 있는 위선, 위장, 거짓을 척결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그의 자 연 개념은 규범적인 성격을 가진다 .16) 루소의 자연관은 사회철학 및 역사철학적 관심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자연의 변 14) I. Kant, Kri tik der rein e n Vemunft, B VID ; 472-479 쪽 ; F. Kaulbach , Welchen Nutz en gibt Kant der Ge schich ts philos op hie? Kant -S tu d ie n 66(1975), 65- 84 쪽 참고. 15) G. W. F. Hege l, Natu rphilos ophie, Glockner 판, 9 권, 31 쪽 ; His to r is ch es wo·- rte rbu ch der Phil os ap hie, 6 권, 476 쪽 참고 . 16) F. Kaulbach , , in : hrsg. J. Ritter , His to risc hes Wo.,.te rbu ch der Phil os ap h ie, V, 476 쪽.

증법은 정치철학에도 관심을 가지는데, 그는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 간 간의 소외를 지양시키려 했다. 엥 겔스(F. En g els) 는 셸 링 과 헤 겔의 영 향을 받아 그의 뒤 를 따르면서 도 그들의 관념론에는 반대하며, 철저하게 유물론을 전제하면서 자연 의 변증법적 구조를 밝히려고 시도했댜 그는 반관념론적으로 자연과 학의 결과로부터 자연의 변증법을 경험적으로 제시하려고 했으나, 한 편으로는 자연과학에 변증법적 공식을 교의적(敎儀的)으로 뜯어 맞추 려고 했다 .1 7 )

17) F. Kaulbach , , in : hrsg. J. Ritter , His to risch es W«硏 erbuch der Phil os ap h ie , V, 476 쪽.

독일의 관념론을 엥겔스나 마르크스보다 더 일관성 있게 반대한 철 학자가 바로 니체 (F. N i e tz sche) 이다. 그에 의하면 자연은 절대적 필연 성인데, 이것은 주관적 오성에 의해서는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 사물의 영원한 순환은 우리의 이성을 고려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이루어진다. 니체가 이성 및 자유와 자연 간의 대립 속에서 행한 변론과 같은 방향의 다윈주의 (D arwini sm) 영역에서도 소위 진화론이 대두되었다. 니체에 의하면, 코페르니쿠스 (Ko p e mi kus) 이후 인간은 모든 것(우주) 의 중심점으로부터 점점 떨어져나와서,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우주에서 아주 보잘 것 없는 모서리에 서 있는 자로서의 역할을 맡고 있다. 최근에 물리학은 이전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강도로서 통제될 수도 없고 통제되지 못하는 자연의 힘을 우리가 경험한다는 것을 말 해 주고 있다. 현대 물리학의 관점은 고전물리학의 관점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고전물리학에서는 물리학자가 주체자로서 그의 사고와 실험적 행위에서 대상에 대하여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현대의 물 리학자는 자기 자신을 자연과 그것의 작용과 연관되어 행동하는 육체 적 존재로서 파악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은 〈주체와 객체 간의

상호작용〉이라고 하는 전환을 통해서 물리학자에 의해 기술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자연의 개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가져왔다. 죽 물리학자는 자연은 전체 세계의 특성을 받아들이며 그 세계의 작 용(영향) 연관 안에 자신이 포함되고 있음을 파악하지 않으면 안된다 는 것이댜 18)

18) F. Kaulbach , Nie t z sche s Inte rpret a tion der Natu r, in : Nie tz s che-Stu d ie n 10 (1981-1982), 442 쪽 이하.

우리는 앞에서 자연의 개념을 철학사적 시각에서 서양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개괄해서 살펴보았다. 한정된 지면으로 말미암아 아주 간단하게 살펴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서양인에게서 자연이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의 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1)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의미로, 자연은 마음 또는 정신 (Ge i s t) 에 대하여 외적 경험에 의하여 주어진 대상적(객체적)인 세계의 총체 롤 가리키는 것이다. (2) 자연은 문화 내지 인위적인 것과 구별되는데, 인간의 힘(또는 이 성)으로 이루어내지 못한 것, 저절로 생긴 것을 의미한다. (3) 자연은 자유의 영역과는 달리, 인과필연의 법칙의 지배를 받는 영역, 다시 말해서 본체에 대한 이상계를 가리키는데, 특히 이것은 칸 트에 있어서 현저하였다. (4) 인간의 육체적 내지 감각의 영역을 자연이라고 한다. (5) 사물의 내면적 본성울 말하는 의미에서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자연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6) 하느님의 은총 또는 계시에 대하여 인간의 본성이 가지고 있는 이성의 활동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것은 자연이라는 말을 〈있는 그대 로〉 또는 〈저절로 있는 것〉이라고 하거나 인간의 이성이 더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할 때와, 또 문화 또는 이성과 자연을 대립시켜 보는 경우 와는 모순된다. 아무튼 자연관을 기반으로 한 유물론적인 현대인의 인간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영국의 경험론자인 베이컨이다. 그는 〈자연은 순종한 가운데에 정복된다 (na tur a par enolo vincitur)〉고 하였다. 그는 〈지식은 힘 (s ci en ti a est p o t en ti a) 〉이라고 외치면서 지식이란 자연의 힘 을 이용하여 인간의 현실 생활의 실익 (1 也益)에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보았댜 그에 의하면 철학적 노력은 자연의 해석(int e rp re t a ti o) 에 있는 것이다 . 즉 자연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원인과 자연을 지배하고 있는 법칙을 설명하고 있는 일이다. 오늘날에도 서양인의 자연관은 〈자연 의 법칙에 적응함으로써 자연을 정복한다〉는 베이컨적인 사고방식으로 가득 차 있댜 19) 베이컨 이후 자연을 논리학과 인간학의 시각에서 본다 든가, 자연론적으로 해명하는 것은 배제되기 시작하고 한갓 기계론적 설명이 강력하게 대두되어 왔다. 결국 서양인의 자연관은 그가 유물론 적 세 계 관을 가지 고 있느냐, 아니 면 유심 론 (s pirituali sm, Ide alis mus 를 포함시킬 수 있다)적 인생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밖에 없다 . 두 인생관에 의한 자연관을 서로 융합시킨다는 것은 거의 불가 능한 일인 것 같다.

19) F. Bacon , De a~양 ,men ti s sdenti aru m 2. 2, (ed.), Sp edding, Works(London , 1%3), 496 쪽 참고.

2.2 인식론적 측면에서 이분법적 사고(Di cho t o mi e), 예컨대, 데카르트 (Rene Descar t es) 의 정 신과 물질의 구분은 자연경시와 자연파괴의 원인이 된다.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자연탐구에 응용될 때, 인식의 주체와 대상은

분리된다. 인식 주체인 인간은 자연을 대상화하면서 오직 이용물로만 간주하고, 정복의 대상으로 삼는다. 주객의 구분은 대상을 추상화시키 고 세분하며 인간이 대상을 지배하는 원리가 된다. 이런 상태에서는 인간과 자연의 상호교통은 단절된다. 데카르트에게서 가장 확실한 것은 co git o 이므로 인간 밖에 있는 자 연도 나의 사고(思考)를 통해서만 실재를 얻게 된다 . 육체는 자연에 속하며, 사고하는 정신만이 참된 실재가 된다. 사고를 물질로 하는 인 간은 연장된 사물인 자연을 이용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그러나 관념 속에 있는 자연과는 다르게 관념 밖에도 자연은 엄연히 존재한다. 그 러므로 데카르트의 이분법에서는 인간의 주체화와 자연의 대상화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인간의 육체를 포함한 자연을 단지 물질로만 볼 때 자연의 착취와 파괴가 쉽게 일어날 수 있게 된다. 자연은 인간의 계획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재료〉에 불과하다. 여기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오만과 착취의 길이 데카르트의 철학과 함께 시작된 것을 볼 수 있다. 뎀보스키 (Dembows ki)에 의하면, 인간을 자연의 주인과 지배자로 보 는 데카르트의 인간 중심적 세계관과 함께 생태적 위기가 시작되었다 고 한다 .20) 몰트만에 의하면 데카르트가 말한 사유하는 존재와 연장된 자연의 이원론(二元論, Dua lism us van res cog itans und res ex t ensa) 은 인간과 자연의 분리를 그 목적으로 삼는다. 자연을 연장이라는 기하학적 관념 에 예속시키면 인간은 사유하는 존재로만 보게 되고 이것은 인간과 자연 모두에 대해 적대적이 된다 .n) 바더 (Fr. Baader) 에 의하면, 〈데카르트의 정신을 따라가면 자연은 20) H. Dembowski , Nati irlich e Theolog ie-T heolog ie der Natu r, in : G. Altn e r (hrsg. ), bkolog isch e Theologi e, 30 쪽 참고. 21) J. Moltm ann, Gott in der Schfti pfun g (M i inch en, 1985), 21 쪽 참고.

‘정신이 없는(g e i s tl os)' 것이 되고, 정신은 ‘자연이 없는 (na tur los)' 것이 되고, 자연과 정신은 ‘하느님이 없는(g o tt los)' 것이 되고 만다〉 .22)

22) Fr. Baader, Uber die zwiesp a lt des relig iose n Glaubens und Wiss ense(Darmsta d t, 1958), 49 쪽 .

슈바이처 (Alber t Schwe itz er) 에서는 데카르트의 cog ito ergo sum 을 빈 곤하고 자의적으로 선택한 출발이라고 비난한다 .23)

23) A. Schweitz er , Kultu r und Eth ik(M i inc hen, 1923), 229 쪽.

또 일리에스(Illi es) 에 의하면,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키는 과학은 인간 의 생존세계 를 조작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냉담과 교만을 낳게 했다〉 .24 )

24) J. Illie s, Umwelt und Innenwelt (1 974), 115, 229 쪽. 25) Joh n, B. Bu ry, The Idea of Prog res s, Inq uiry int o its Or igin and Growt h (London : MacM illan, 1920), 17 쪽 참고.

2.3 가치론적인 측면에서 2.3 .1 진보신앙(進步信仰, Forts c h rittsg lau be) 자연주의 (Soc i al Darw inism , Freud ianisrn , Mech ani sm) 는 생태적 위기 의 근본 원인이 된다 . 진보에 대한 신앙을 담고 있는 계몽주의 철학은 서구의 사회발전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댜 특히 산업혁명 이후 진보에 대한 신앙은 더 나 은 미래의 행복이란 주로 물질적 번영만을 의미했다 .25)

진보신앙은 산업화를 촉진시켰고 공리주의와 결탁했다. 자본주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산업혁명은 공리주의를 받아들여 자연을 인간의 통제 아래 두려고 했다. 공리주의는 자연을 오로지 유용성에 근거해서 다룬다. 공리주의 의 옳고 그름의 기준은 한마디로 유용성이다. 따라서 행동의 동기가 아니라 효과가 중시된다. 이러한 공리주의의 영향을 받은 고전경제학 자들은 자연을 상품으로만 본다. 그들은 최소의 노동으로 최상의 상품

울 만드는 것을 윤리적으로도 타당한 것으로 본다 . 경제원칙이라는 말 자체가 반( 反 )생태학적이다. 오늘날의 서구사회는 공리주의 문화이다. 공리주의는 분별없이 합리화와 기술만을 추구함으로써 생태적 위기 를 가중시켰댜 26) 근대 이후의 진보사상은 그리스도교의 전통적 섭리 개념을 대치시 켰다고 말할 수 있다 . 27) 이 진보신앙은 진화론을 배태했다. 사회진화론 (Soc i al Da wini sm) 에 의하면 인간존엄성의 기반이었던 이성도 단지 환경에 적웅하는 도구 에 불과한 것이 되고, 인간은 투쟁을 통해 삶을 지속하며 최고의 투 쟁 은 자연과의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며 자연에서는 적자생존, 약육강식, 자연도태가 당연시된다. 인간의 자연지배가 정당화된다. 인간의 자연 지배는 종내에는 자연파괴와 생태적 위기를 초래했다 . 28) 그러나 이제 진보신앙은 더이상 지지받을 수 없게 되었다. 자연자 원의 고갈은 많은 종족의 멸종, 생태적 위기와 성장의 한계는 진보신 앙의 한계를 깨닫게 해준댜 29) 2.3.2 도구적 가치 관 도구적 가치관은 사물들의 고유한 가치를 부정하고 단지 효용성만 울 가치의 척도로 삼는다. 인간과 자연도 효용가치에 의하여 평가된다. 이것은 인간과 자연의 본질적인 하나됨을 부정하는 비극을 초래했다. 26) Alvi n Gouldner, The Commi ng Cri sis of Weste r n Soc iolo g y(N ew York : Basic Books, 1970) ; Alfred Auer, Umwelt eth ik ( D tiss eldorf, 1989), 19 쪽 참고 . 27) J. B u ry, The Idea of Prog ress : An I때 u iry int o its Or igin and Growt h( I.o n don : MacM illan, 1920) 참고. 28) C. Dawson , Progr es s a 뼈 Relig ion (I.o n don : Sheed and Word, 1929), 19 쪽 참고. 29) Eberhard Eemst, Die Fortsc h ri ttside e in 露 r t schaf t slehre und W rtsc haft - Wtiornk (lSictuh kttegita(Mr t /a nMnih ienicm h,e n 1,9 5119)7, 28), 쪽 3 7; 쪽G . 참L고ie.d ke, Von der Ausbeutu n g zur Ko ope ra-

자본주의 경제는 합리적 계산 가능성에 의거한다. 자본주의의 자유 시장론은 모든 합리적 사회행동의 전형이다 . 신성한 금기나 , 혈연적 • 신 분적 • 세습적 특권은 물론이고 , 형제애나 존경의 의무에 구애되지 않 고 시장거래는 철저하게 개인의 이익추구를 극대화, 즉 오로지 상품에 대한 가치 지향에 의해 결정된다. 자유경쟁시장은 사유재산제도의 확립 , 계약의 자유권을 충분조건으 로 전 제한댜 우리는 이것이 전체 사회와 공공재화인 자연의 공유권에 미치 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모든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물, 공기, 땅, 식량 , 에너지 등은 환경오염 방지롤 위해서도 사유화되어서는 안 된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생산자와 사업가들은 고도의 소비를 촉진시키 면서 생태적 비용을 고려하지 않으며, 항상 한시적인 이윤의 극대화를 기도한다. 규제되지 않는 시장경제는 고도의 생산과 소비 수준을 통해 생태적 파괴를 가속화하고 자원의 고갈을 촉진시킨다 . 30 )

30) Fri tjof Cap ra , The Turnin g Po int ( N ew York : Sim o n and Schuste r , 1982).

2.3.3 과학의 몰가치 화와 과학기 술의 남용 근대 이후 과학은 자기의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가치문제를 포 함한 일체의 주관적 요소를 배제하려고 해왔다 . 소위 과학의 단순성 (Scie n ce of s implicity)의 소산이다. 독립성과 분리성 . 과학온 감정보다 도 비정한 수학적 논리를, 정서보다는 합리성을, 내재적 목적보다는 도구적 목표를, 질적 요소보다는 양적 요소를 선호하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31)

31) Alan S. Miller, Gia connecti on s : An Intr od ucti on to Ecolog y, ecoeth ics and economi cs (Savage : Rowman & Littlefield Pub., 1991), 117 쪽 ; Ste p h en R Ste r lin g, Towards an ecolog ica l world view , ed. J. R . Eng el & Joa n G. Eng el, Eth ic s of Env iro nment and Develop ment : Global Chang e, Inte rna ti on al Resp o nse(Tucson : The Un iv. Arizo na Press, 1990), 78 쪽 참고.

과학의 단순성은 환원주의에 의거한다. 특히 하향적 상호 인과관계 를 무시한다. 지식은 단순한 진술이 아니라 평가를 수반하고 요청한 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지식의 상호작용에 대한 적절한 고려이다 . 죽 다른 생물이나 사람들과의 공유하는 결과들, 공생 (S ym b i os) 을 생각 하는 것이댜 미래의 과학은 중립성을 포기하고 결과들의 실천적 사용에 대한 책 임을 보장하고 문화사회적 비판의 관점을 발전시키고 더욱 윤리적으 로 되어야 한댜 32)

32) Mihailo M따 o vi c, Scien ti fic and Eth ica l Rati on a lity, ed. Risto Hilpinen, Ratio nality in Scienc.e : Stu dies in the Foundatio ns of Sdence and Eth ics (Dordrecht : Re ide l Pub., Co., 1980), 89 쪽 이 하.

기술 발전의 역작용인 죽음과 파괴 기술의 발전은 생태계 파괴를 가속화시킨다. 환경오염을 기술적으로 해결하는 시도는 또다른 부작 용을 유발하고 문제를 단순히 다른 상태로 바꾸어 놓는 데 불과하다.

제 4 장 자연보전과 생태학적 위기극복의 논거 l 자연보전의 의미 l.l 자연보존과 자연보전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면 인간은 결국에 가서 그 자신까지 훼손시키 고 만다는 사실이 우리가 자연을 보호해야 하는 근본 이유이다. 이때 인간은 자기를 자연과 대치되는 것으로 이해하며 데카르트의 영향을 받아 주체로서의 자기와 자연을 구분한다. 그러나 요나스 (Hans Jon as) 에 의하면 〈자연은 인간과 분리되어 있는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인간 과는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는 것이며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인간 존 재의 부분이며, 인간 자신의 실존적 완전성의 한 요소이다〉 .1) 인간이 요구하는 것을 자연이 제공해 주는 한, 사람들은 자연에 대 1) H. Jon as, Das Pri nz i p Verantw ortun g Versu 야 eine r Eth ik far die tec hnologi sch e Ziv ilis a ti on (Fran kfurt, 1 979), 246 쪽 .

한 인위적 침해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해 왔다. 그러나 기본적 자연재화인 공기, 물, 토양, 빛, 지하자원들의 이용은 제약을 받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자연재화의 부족과 자연과 인간 모두를 위한 자연재화 보존의 중요성은 정의(正 義 )를 고려할 것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재화들은 개별적으로 분배되고 배당되며 원래 쪼갤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정의의 요구에 부응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 능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세적이고 잠재적인 인간의 환경으로서의 자연을 보편적인 선(善)으로 보호하고 자연을 건전하고 재생할 수 있 도록 보전하지 않으면 안된다 .2) 우리는 여기서 자연을 원형 그대로 소 극적으로 보존(保存)하는 것보다는 자연을 더욱 풍성하게 적극적으로 보전(保全)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2) K H Hansmeye r , Umweltp olitik, in Flunkkolleg- M ensch und Umwelt (Tii- bin gen, 1982), 57, 43-81 쪽 참조.

1.2 자연보전의 실현 경제학은 자연재화를 공공재화(公共財貨)라고 부른다. 공공재화는 그 누구도 그것의 사용에서 제의되어서는 안된다. 모든 사람들은 공공 재화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공공재화는 어떤 시대의 몇몇 사람들만 독점할 수 없는 것이며 탕진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 므로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연의 처리와 사용 능력이 잠시 위임되었울 뿐이다. 따라서 인간은 그 자신의 이해관계에만 얽매여 자 연을 배타적으로 사용해서는 안되는 신탁자(信託者)의 위치에 있다. 우리는 이러한 신탁관계를 두 가지 관점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서 인간이 신탁자라는 것은 전통적 가톨릭의 사유제도의 인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느님만이 사물의

창조자와 최고 지배자로서 사물의 완전한 소유권을 가진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단지 사물을 사용할 권리만을 위임하셨다. 그러나 인간에게 주신 권리 위임은 모든 인간에 대한 인간 존중을 고려한 것이다. 그러 므로 인간의 자연이용은 하느님이 원하는 사용목적에 따라서만 하도 록 의무가 주어진댜 3)

3) 다움의 교황회 칙 참조. Rerum novarum 7 ; Qua drage s im o anno 45 ; Mate r et rnag itra 119 ; Gaud ium et spes, 69 또는 71 ; Pop u lorum pro g ressio 22.

그러므로 우연히 자연재화를 소유하거나 이용할 수 있는 몇몇 사람 들 의 이익만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자연재화가 단순히 재료와 자료로 써만 이용되거나, 또다른 사람들을, 특히 미래에 살 사람들을 함부로 제외시키는 것은 불의한 것이다. 모든 인간에게 생존권이 인정된 것은 최근에 들어와서 선험적으로 정초되었댜 인간은 어느 누구에게서도 거절될 수 없고 다른 사람에게 내줄 수 없는 삶의 근원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이 근원적 권리는 역 사적으로 개인에 대한 국가의 부당한 침해로부터의 보호로서 형성되 어 온 전통적 덕목인 인권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다. 이 생존권은, 가 령 숨을 쉰다, 본다, 듣는다, 마신다, 움직인다 등의 근본적 능력을 적 극화하는 것이다. 이 권리는 인간 존재의 자명한 성립 요소이다. 그러 므로 인간의 삶에 대한 자연적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인간의 권리는 기본권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인간은 언제 어디서나 좋은 공기를 호홉 하고 좋은 물을 마실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이것은 국가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는 개인적인 자유권의 의미로 이해될 수 없으며 사회적 기본권의 의미로 생각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자연재화의 이용은 이 생존권의 수단으로 위임된 것이므로, 자연을 파괴하거나 인 간의 생존권을 위협해서는 안된다. 둘째, 인간이 자연과의 관계에서 신탁자라는 것은, 인간은 자연보존

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보존을 실현하기 위해서 두 가지 방향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한 방향은 자연의 고유한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며 다른 한 방향 은 인간의 윤리적 의무의 범위를 시간과 공간적으로 확대해서 자연을 인간의 삶의 조건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 이 두 가지 방향은 최근에 그리스도교적 신학자들과 철학자들 간에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 4) (1) 첫번째 방향 자연은 단순히 인간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에서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주체성과 같은 독자성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동식물을 도구로만 취급하는 것은 부적절한 것이며, 생물 의 생존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4) 진교훈, 『환경윤리학과 그리스도교 윤리학의 만남-자연보존과 그리스도교안의 책임』, 『현대사회와 종교』, 그리스도교 철학연구소 편(서울 : 서광사, 1987), 222- 225 쪽 참조.

오늘날 많은 저술가들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새로운 용어를 사 용해서 표현하고 있다. 예를 들면, 동반자 관계, 협력관계, 연대성 심지 어 형제관계 둥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이 첫번째 방향을 편의상 3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기) 슈바이처의 생명에 대한 외경이라는 구호에서 볼 수 있다. 〈인 간은 그가 도울 수 있는 모든 생명체를 도와주고 또 어떤 생명체에도 해가 되는 일을 삼갈 것을 간청하고 또 여기에 그 자신이 순응할 때 에만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 윤리적이다. 윤리적인 인간은 이 생명 또는 저 생명이 얼마만큼의 값어치가 있는가, 또 그것을 얼마만큼이나 지각할 수 있는가를 묻지 않는다. 그에게는 삶 그 자체가 거룩하다. 그는 나무에서 나뭇잎 하나 따지 않으며, 어떤 꽃도 망가뜨리지 않으 며, 또 어떤 곤충도 밟아 죽이지 않도록 항상 주의한다.〉 5)

5) A Schwe itzer, Kultu r und Eth ik, in (hrsg. ), R Grabs, 5 권 (M iin che n, 1923), 378 쪽.

슈바이처의 이 글은 생태학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길 잡이 가 되 었다 6 ) 로크(R. Rock) 는 슈바이 처 에 게 자극을 받아 자연 외 경사상을 환경윤리의 최초 요청이라고까지 말했다 . 7)

6) B. Alth ne r, Leide nschaft fiir das Ganze(Stu ttga rt, 1980), 199 쪽 이하, 180, 219 쪽 참고 .

7) M. Rock, Theolog ie der Natu r und ihre anth rop o lo g isch- eth ische n Konsegu e nzen, in : (hrsg. ), D. Bim b acher, Okolog ie und Eth ik (S tu ttgart, 1980), 93 쪽 이하.

슈바이처는 〈윤리학은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무한한 책임을 지 는 것을 지칭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8) 그는 모든 현상에는 각 자가 자기 자신 안에서 느끼는 것과 똑같은 삶의 의지가 있다고 본다.

8) A. Schweitz er, 앞의 책, 379, 383, 396 쪽 .

(니 인간은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자연과 공속(共屬)관계에 있고 아주 밀착된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환경윤리학의 출발점이다. 환경윤리학은 자연과 자연의 개별적 구성 부분이 고유권을 가지고 있 음을 인정한댜 서양 근세사상에서의 주관과 객관의 대립적인 이원론 의 영향을 받아 인간과 자연이 마치 적대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 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인간은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피조물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평등원칙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다? 바이츠제커(C. F. We izsa cker) 는 이와 관련하여 신학자들에 게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이제는 신학자들도 그들이 인정하고 있는 기원설의 결과인 우리와 동류인 피조물에 대한 형제애를 진지하게 고 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10) 우리는 동물보호만으로 자연에 대한 책임을 다한 것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식물이나 무생물계까지도 인간이 책임져야 한다고 전망할 수 있다 .

9) R Gin ter s, We rte und Norme n, Ein fa hr ung in die phi lo s ap h is ch e und the olog isch e Eth ik( Gott ingen , 1982), 19-36 쪽.

10) C. F. Weiz sac ker, Gott es fr ag e und Natu rwissenschaftn , in : (hrsg. ), M Henge l und R Re inhardt , Heute van Gott reden(Mi inch e n, 1977), 167 쪽.

비인간적 존재와 사물은 그 들 의 성분과 질 서 기능 을 파악 할 수 없 기 때문에 그것들은 주체적 권리의 소유자가 될 수 는 없을 것이다. 그 러나 죽은 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 , 의식 을 상실한 자 등의 권리 를 전통적 규범에서도 이미 인정해 오고 있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맥락 에서 그 타당한 근거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11 ) (c) 자연과 인간이 하나라는 생각은 자연의 부분이나 자연을 신적 인 것이 나타나는 양태의 전체로 간주할 때 생길 수 있다. 우리 는 이 것을 특히 아시아의 종교에서, 또 그리스도교 이전의 신화세계에서 찾 아볼 수 있댜 12) 쇼펜하우어(A. Scho p enhauer) 가 어떻게 인간이 세계의 핵심과 모든 생물과의 원일성( 原一性, Urein he it , 근 원 적 으로 하나라는 뜻)을 해석할 수 있는가가 윤리적 과제라고 말한 것은 아시아 종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댜 13) 드레버만 (Drewermann) 은 〈환경윤리는 기존의 그리스도교의 자연관 의 근본적인 수정없이는 전망이 없는 단순한 시도에 그치고 만다. 이 근본적 수정은 그 밖의 다른 종교들과 고대 종교들의 지혜를 그들의 중요한 상징으로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14 ) 그는 이어 서 〈그리스도교가 그 자신을 위해서도 태고의 신화에 대한 터부 를 포 기하고 또 자연종교와의 교류에서 특히 아직 살아 있는 위대한 인도 의 종교성과의 교류에서 그 신앙의 가르침의 우주론적 • 심리학적 관 계를 재발견하고 이를 실현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그리스도교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라고까지 말했다 .15 )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 11) R Gin ter s, 앞의 책 , 28-30 쪽 . 12) E. Drewe rmann, Der tod l ich e Fortsc h ri tt, 109 쪽 ; 진교훈, 『서 양의 자연관과 인 간관」, < 사상과 정책 > , 제 3 권, 제 2 호 (1986), 53 - 62 쪽 참고. 13) A. Schop e nhauer, Die Welt als Wi lle und Vorste ll ung II, in : Werke, Bd. 2, Lohneys e n 판 (Darms ta d t, 1968), 806 쪽. 1145)) D위r의ew e책 r,m 1a4n7n-, 14앞9의 쪽. 책, 143 쪽.

서양의 정신사에서 사이비 범신론으로 또는 무신론으로 취급되어 배 척했던 하나의 종교적 세계의 체험, 즉 하나의 통일사상으로 돌아가서 보다 더 근본적인 새로운 종교적 성찰을 요구하기도 한다 .1 6) (2) 두번째 방향 우리는 첫번째 방향을 자연 그 자체가 자기 가치 를 가지고 있으며 자연과 인간이 하나라는 생각으로부터 환경윤리를 정초하려는 시도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다. 이것은 모두 문명 비판적 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 두번째 방향은 인간과 자연의 올바른 관계를 규명해 보려는 시도라 고 간단히 말할 수 있다. 인간 이외의 것은 인간이 정해 놓은 목적에 따라 이동할 수 있는 원료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 간의 책임이 단지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 형성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 라 그 범위가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편의상 세 가 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기) 인간, 동물, 식물, 무생물 상호간의 질적 차이에 대한 폭넓은 비교 타당성이다. 인간을 동식물과 비교해 보면 실상 그 차이가 아주 작고 별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동물이나 식물, 암석이 인간처 럼 주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아무튼 동물을 학대하는 것은 인간까지도 쉽게 멸시하게 만든다. 동식물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성을 교육시키는 데도 도움이 된다. (니 둘째 문제점은 자연과 인간과의 교제에 대한 표준에 관한 것이 다. 그 표준이 자연 자체 안에서만 발견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자연을 무엇이라고 보느냐에 따라서 그 표준이 달라진다. 따라서 자연 안에서 나타나는 고통이 삶의 원칙에 가장 깊이 저항하는 것으로 파악되거나 아니면 다함께 보전되기를 목표로 하는 삶과 죽음의 형평으로 지향될 때 자연은 도덕적으로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 16) 위의 책, 109 쪽.

(디 세번째 문제점은 자연이 자기 목적을 수행한다고 할 때 과연 일관성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인간성이 인간의 기본적인 요구 와 갈등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은 자기 주장의 필연성과의 갈등에 빠질 수 있댜 가령 영양섭취는 생물간에 갈등을 가져온다. 슈바이처는 이 점을 시인하면서도 17) 어떤 상태에서도 삶을 멸절시 키거나 손상을 주는 모든 행위는 악이라고 주장했다 .18) 우리는 이와 같은 딜레마를 기술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기술은 순기능과 역기능을 가지고 있다. 기술의 부작용만을 문제삼아 기술을 과소 평가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환경위기의 해결책을 기술 발전의 억압에서 찾으려고 해서는 안될 것이다. 끝으로 우리는 인간과 자연과의 올바른 관계를 아시아의 종교에서 찾아보거나 고대 신화를 부활시키자는 요청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것이 현대 산업사회에서 소 생되고 통용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고, 설사 그러한 것이 부활된다 고 할지라도 그러한 생각이 자연을 실제로 절대로 파괴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을 신성시하는 사회 에서도 실제로 우리는 사람들이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2 생태학적 위기극복의 논거 우리는 오늘날의 생태학적 위기를 극복하려고 하는 생태윤리학자들 의 시도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들은 인간과 자연과 17) A Schwe itzer, 앞의 책, 387 쪽 . 18) 위의 책, 396 쪽 참조

의 관계를 인간 중심적 • 자연 중심적 • 생명 중심적인 측 면에서 새롭 게 정초하고 이를 토대로 생태학적 위기를 극복하려고 한다 .19 ) 2.1 공생적 인간 중심적 생태윤리학의 자연관 아우어는 신이 부여한 인간의 특수한 지위에 의하여 인간은 신으로 부터 자연을 다스리는 임무 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자연이나 그 안의 생명체와 동일시될 수 없다 . 물론 그는 인간과 자연 의 이원 론 을 거부한다 . 그는 이분법적 사고를 거부하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 를 공생관계로 본다. 그는 자연은 인간의 안식처이므로 자연을 적 대시하거나 멸시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자연이 그들 나름대로 고유한 가치와 고유권을 가졌다고 보지 않는다. 그는 인간 중심이라는 말은 오늘날 자연을 오로지 인간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서 평가하고 이용하는 데서 오해가 생겼다고 본다. 인간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생태적 위기를 적극적으로 극복할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인간만이 책임을 질 줄 아는 존재이기 때문이다라는 것이다. 그에 의하 면 인간도 자연의 지체이고 자연과 본질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의 중심이다. 따라서 인간을 소우주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발상이 아니다. 인간은 자연과 다른 생명체의 중보자의 역할을, 또 신과 자연의 중보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을 자연의 주인이라고까지 말한다. 그는 성서적인 입장에 서 고식적이고 폐쇄적인 인간 중심이 아니라 열려진 상태에서 인간 중심 적 (anth rop oz entr isc he) 공생 적 자연관을 주장한다. 대부분의 그리스도교적 윤리신학자와 철학자들은 이와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댜 20) 19) G. M. Teuts ch, Lexiko n der Umwelt eth ik (D iiss eldorf , 198. 5) 참고.

이밖에 그래서 ( E . Gra8er ) 와 영미 학 자 들로는 패 트 리 지 (E. Partr idg e) , 브라움바흐 (R Braumbach), 싱 어 (P. Sin ge r), 시 코 라(R. I. Sik o ra) 등을 꼽 을수 있다. 2.2 자연 중심적 생태윤리학의 자연관 자연 중심 적 생 태 윤리 학(p h y s i ozen tri sche 또는 natu rze ntr isc he okolo- gisc he E thik)에서는 무생물까지도 생명의 근거와 환경 이 된다. 따라서 물질도 언젠가는 기능을 다 할 수 있도록 보존되어야 한다 . 자연은 그 자체의 존재이유와 고유한 가치 를 가진다. 모 든 생명은 자연 없이 는 존재할 수 없댜 그러므로 우리는 동식물은 물론 , 자연 을 단순히 도구 로 취급해서는 안된다. 자연 중심적 생태윤리학은 모든 생명체의 생존권뿐만 아니라 자연 보존에 대한 인간의 상응하는 의무 를 부여한다. 여기서 인간과 자연과 의 관계는 새로운 용어로 표현된다 . 예컨대, 동반자 관계, 협력관계, 공속관계, 형제관계, 연대성 등으로 표현된다 . 2 1 ) 우리는 편의상 자연 중심적 생태윤리학의 자연관을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슈바이처가 주장하는 〈생명에 대한 외경 (Ehr fur ch t vor dem Leben) 〉을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다. 그는 〈인간은 그가 도울 수 있는 모든 생명체를 도와주고 또 어떤 생명체에도 해가 되는 일을 삼갈 것 을 간청하고 또 여기에 자신이 순응할 때에만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 서 윤리적이다 . 윤리적인 인간은 이 생명 또는 저 생명이 얼마만큼의 값어치가 있는가를 묻지 않는다. 또 그것을 얼마만큼이나 지각할 수 20) A Auer, Umwelte thi k ( D iiss eldorf : Patm o s, 1989) ; G. Lied ke, Im Bauch des Fis che s, Okolog isch e Theolog ie(S tu ttga rt, 1 979) 참고 . 21) 진교훈, r 환경윤리학과 그리스도교 윤리학의 만남」, 『현대 사회와 종교 』 (서울 : 서 광사 , 1987), 222 쪽 참고 .

있는가도 묻지 않는댜 그에게는 삶 그 자체가 거룩하다. 그는 나무에 서 나뭇잎 하나 따지 않으며, 어떤 꽃도 망가뜨리지 않으며, 또 어떤 곤충도 밟아 죽이 지 않도록 항상 주의 한다〉 .22 ) 슈바이처의 이 글은 생태윤리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중요 한 길잡이가 되었다. 그는 〈윤리학은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무한 한 책임을 지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23) 둘째, 인간과 자연은 공속관계에 있다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자연의 개별적 구성부분이 고유가치와 고유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 한댜 모든 피 조물을 동등하게 대 우하는 평 등주의 (E galitariani smus) 를 요청하는 학자도 있댜 24) 비인간적 존재와 사물은 그들의 질서 기능을 스스로 파악할 수 없 기 때문에, 그것들은 주체적 권리의 소유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통적 규범에서도 죽은 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 의식상실자 등의 권리를 이미 인정해 오고 있다 . 따라서 비인간적 존재자의 고유권의 인정여부는 윤리적 견해의 관습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 25 ) 셋째, 자연과 인간이 하나이며, 자연을 거룩한 것으로 본다. 특히 아 시아의 자연관에서 그리고 그리스도교 이전의 신화세계에서도 볼 수 있댜 또 쇼펜하우어의 원일성 (Ure inh e it )26) 도 여기에 포함시켜 볼 수 있다. 22) A. Schweitz e r, Kultt, r und Eth ik ( Munchen , 1923), 378 쪽 . 23) 앞의 책, 93 쪽. 24) R. Gin ter s, Werte und Nonnen, Ein fa •h ru ng - in die phil o s op h isc h e und the olog isch e Ehik ( Gott inge n, 1982), 19-36 쪽 참고. 25) J. Fein b erg, Die Rechte der Tie r e und zukiinftige r Generati on en, in hisg. Bir nb acher, Okolog ie und Eth i k , 151 쪽 ; W. T. Blacksto n e, ed., Phil os op h y •a nd Env irom enta l Cri sis ( A th e ns : Un iv. Georgi a Press, 1974), 43-68 쪽 참고. 26) A. Schope n hauer, Die Welt als Wille und ~아 s t ellun g II, 2 권 (Darms ta d t, 1968), 806 쪽 .

드레버만은 지금까지의 유대 그리스도교적 인간 중심주의를 깨뜨리 고 서양의 정신사에서 항상 사이비 범신론으로 또는 무신론으로 취급 되어 배척되었던 하나의 종교적 체험, 즉 하나의 통일사상으로 되돌아 가서 보다 더 근본적인 새로운 종교적 성찰을 할 것을 요구한다 . Zl) 마이어-아비히는 인간과 자연과의 공생을 주장하면서, 자연은 고유 한 가치와 고유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28) 그에 의하면 세계가 단지 우리를 위해서만 있는 것처럼 우리가 그렇 게 산다면, 우리는 실존의미와 인간의 품위조차도 잃게 되고 만다. 인 간 중심의 세계관에서는 우리와 더불어 있는 모든 것을 우리의 입장에 서만 본다 . 그 결과 공동세계(Mitw el t)는 인간의 단순한 환경 (Urnwe lt) 이 되고 만다. 그는 자연을 자연적 공동세계 (Na tilrli che Mitw el t)라고 부 른댜 그는 자연이 내재적 가치가 있으며 법적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29) 2.3 생명 중심적 자연관 알트너 (Al tn er) 에 의하면, 생명 중심적 자연관은 자연을 살아 있는 것으로 보고 이 살아 있는 자연의 모든 형태들에 대해 인간이 책임질 것을 요청하는 포괄적인 새로운 행동양식으로 본다. 그는 자연이 지닌 역동성과 인간의 상호관계 속에서 생명윤리의 근거를 세우려고 했다.JO) 그는 단순히 자연보호와 환경보호를 넘어서 모든 종의 보존은 물론, 모든 유기체 발전까지도 생명윤리의 연구과제로 본다. 그에 의하면 관찰자인 인간과 관찰대상자인 자연은 일방적인 주관 27) Drewe rmann, Der T6'd li ch e For tsc hri tt(R ege n sburg, 1 981), 118, 147, 217 쪽 참고. 28) K M Meye r -Abic h, Weg e zum Frie den mit der Natu r (Mi inch en, 1984) 참고 . 29) 앞의 책, 21-47 쪽 참고 . 30) G. Altn e r, Natu rv erge ss e nheit(D armsta d t, 1991), 1 쪽.

과 객관의 관계가 아니라 상호관계를 맺고 있다. 알트너의 생명윤리는 슈바이처의 생명 외경사상을 자연인식에서 과학 이론적으로 더 발전시 킨 것이라고 볼 수 있댜 이것은 자연을 자연사의 맥락에서 새롭게 경 험한다. 자연철학자인 아돌프 마이어_아비히 (Ado lf Mey er -Abic h , Kraus M. Me i er-Ab i ch 의 부친)에 의하면 전체로서의 자연은 우연적인 것들의 집적이 아니라 하나의 살아 있는 세계유기체 (We lt or ganis mus) 이댜 자 연의 현존은 지속적인 현존이며 삶과 죽음의 조화이다 . 알트너에 의하 면, 생명윤리의 문제를 생명 영역 전체로 확대시키면 인식과정에서 자 연에 대한 학문적 관계는 윤리적 의무와 상관된다. 왜냐하면 이때 인 간의 인식은 단순히 자연을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고 생명의 역동성에 참여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알트너는 생태적 위기와 이분 법적 사고를 극복하기 위해서 과학적 인식 자체를 문제삼는다. 그는 자연인식의 전환을 근거로 생명윤리를 전개시키면서 세 사람의 생명 윤리관을 비교 검토했댜 31 ) 2.3 .1 얀치 (E. J an t sch) 의 자연 의 자기 구성 화론 얀치에 의하면 생명의 역사는 끊임없는 자기갱신을 하면서 이에 도 달한 구조의 고유화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유동화(발전)를 내포하고 있 는 비결정적인 와해과정이다. 여기서 발전은 끊임없이 새롭게 개방하 는 것이며 기존의 것의 자기극복이다. 자기구성의 이와 같은 과정은 처음부터 단순하게 유도되거나 예상될 수 없다 .32) 이렇게 보면 발전이란 어떤 의미에서 창조적이 되며, 소위 진화의 일반법칙을 정초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진화론자의 환상을 깨부순다. 쉼 이 없이 자기를 넘어서는 자연의 역동성의 자기 (Selbs t)는 물질 자체인 3321)) E앞. 의Ja n책 ts, c h1,0 D쪽i e 이 Se하lb sto rg a n is a ti an des Univ e rsums(Munchen, 1982), 34 쪽 이 하.

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댜 여기서 자기는 어떤 경우에도 대상화 될 수 없는 것이다. 자연의 자기구성설에서 우리가 유의할 점은 자연사적으로 ' 해석하는 전체에 대한 의식이댜 인간의 현존재도 보편적인 자연사적 역동성에 의해 설명된다. 이와 같은 발전에 대한 전체적 이해는 역사에서 자기 를 이해하는 것과 유사한 점이 있다. 얀치의 발전에 대한 해석은 그 과학적인 해석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신의 창조력을 자연의 자기구성설로 환원시키는 다분히 범신론적 성격을 띠고 있다 는 비판을 받기 도 한다 . 33) 2.3.2 크라머 (F. Cramer) 의 창조 가능성으로서의 발전 얀치에 의해 제기된 자연의 자기구성화 (Selbs t or gani sa ti on) 론은 크라 머에 의해 더욱 발전되었다. 그는 자기구성화를 물질 전체의 창조 능 력이라고 말했댜머) 그는 〈생동하는 체계의 이해에 대해서 나는 ‘발전의 장’을 제안하고 싶다〉고 말했다 .35) 그는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발전으로부터 출발해 서 생명의 장을 기하학적으로 묘사하면서, 생명체를 분자로 특징지우 는 것조차 정적인 것으로 보고 이를 기하학적 대상의 기술(記述)로 보 았다. 그에 의하면, 물질은 어떤 점에서 보면 매우 부드러운 것이며, 선 험적으로 이념을 지닌 것이다. 크라머의 물질은 매우 수용적 (reze pti v) 인 것이다 .36) 크라머가 주장하는 물질의 창조 가능성은 모든 경우에서 입증될 수 있느냐는 의문과 또 그가 사용하는 창조라는 말은 엄밀한 의미에서 창조라고 할 수 있느냐는 반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아무튼 33) Altn er , 앞의 책, 126 쪽 . 34) F. Cramer, Chaos und Ordnung (S tu ttgart, 1989), 231 쪽. 3365)) 같같은은 책책,, 223344 쪽쪽. 이하.

얀치나 크라머의 자연관은 자연은 살아 있는 유기체라는 점이며, 따라 서 윤리적으로 보살핌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2.3.3 로렌츠 (K Lorenz) 의 자연 총체설 로렌츠는 앞에서 논한 자연의 자기구성을 해명하기 위해서 섬광 (Fulgu rat i on , 번쩍이는 것)이라는 개념과 형태인지라는 개념을 도입했 댜 그가 말하 는 섬광은 발전이며 동시에 창조적인 것을 의미한다. 로렌 츠는 진화발생에서 새로운 특징과 질의 변용이 실현된다고 주 장한다. 그가 말하고 있는 질의 변용은 신적인 번개가 작용시키는 결 과 를 연상시키는데, 실제는 거듭하는 진화과정이 새로운 결과를 낳는 개방성에서 생기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진화는 낡은 체계의 특징 변화를 가져오는 열려 있는 과정이다. 이것은 특히 생명의 발생에서, 또 동물과 인간과의 교제의 마당에서 잘 드러난다 . 37) 그는 심신병행(心 身竝 行)을 주장했다. 그는 진화과정을 개방적이고 자기 초월적 형성과정으로 보았다. 그는 생명현상의 다양성에 주목하 고 자연에 관한 인간의 가치감이 생명현상의 인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 38 ) 삶의 모든 형상은 각각 유일한 것이므로 인간을 위한 일시적인 이 용가치와 문화성취라는 관점에서 무분별하게 조절되는 것으로부터 보 호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자연보호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그의 이러한 주장의 배경에는 자연에 대한 총체적 이해가 있다. 인간이 그 중요성을 인지할 수 없고, 진화의 다양한 복합 정도가 있 기 때문에 자연의 자기존재는 항상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37) K. Lorenz, Leben ist I.erne n(Munchen , 1988), 68 쪽 참고 . 38) K. Lorenz, Wirk ungs g ef a g e der Natu r und das Schic k sal Menschen(Mi inc hen/ Zu rich, 1987), 82-109 쪽 참고 .

의 생태위기는 한마디로 인간이 자연의 총체성을 무시하고 자연을 그 때그때의 이용가치로만 간주한 데서 기인한다 . 3 9) 로렌츠는 형태인지와 동물형태학을 근거로 생명의 유일성에 근거한 자연에 대한 경의심에서 가치감을 중시한다 . 생명윤리학의 논거로서 알트너가 소개한 얀치의 자기구성설 , 크라 머의 물질의 창조 가능성, 로렌츠의 자연 총체설 둥은 자연의 역동성 과 창조 가능성을 제시했댜 이것은 자연에 대한 종래의 전통적 이해 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이들의 주장에는 개념상의 혼란도 있고 내용적으로도 논란의 여지가 있겠으나, 종래의 이분법적 사고와 정태 적 기계론을 거부하고 자연의 고유권과 자연 전체에 대한 존중을 일 깨웠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우리는 이 생명 중 심론적 생태윤리학자들이 단순히 과학자들의 연구결과를 뒤쫓거나, 형이상학적 신념을 가지고 관념적으로 생명윤리를 논하는 것이 아니 라 자연과학자들과 함께 자연인식을 새롭게 모색했다는 점에서 그들 을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2.4 그리스도교 윤리학의 자연관 2.4 .1 문제 제기 지금부터 불과 100 년 전 리스트는 그의 「정치 경제의 국가적 조직」 이라는 논문에서 사회의 무한한 발전을 꿈꾸면서 이렇게 기술했다. 아직 농화학은 초년기에 있다. 그러나 머지않아 새로운 발명과 발견에 힘입어 토지의 수확 능력이 지금보다 5 배 내지 10 배 정도 증가하게 될 것 이라는 사실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어떤 힘(능력)들이 아직도 지구 39) K. Lorenz, Die acht Todsu.n d e der Ziv ilisier te n Mensch heit(M i inch en , 1'!7 3 ) : 『 인 류의 여덟 가지 大罪惡』, 林錫珍 옮김(분도출판사) 참고.

내부에 숨겨져 있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 우리가 아주 새로운 발견으 로 이제까지 잘 알려진 연료가 없이도 어디서나 값싼 방식으로 난방을 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른다고 상상해 보자. 그렇다면 어떤 지역은 상당한 문화 혜택 을 받을 것이며 , 그 지역의 생산 능력은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질 수 있지 않겠는가 ? 40) 그런데 이 꿈은 실제로 현실적인 것이 되었다. 1880 년과 1980 년 사 이에 독 일의 농업은 단위당 밀의 수확량에서만도 4 배나 증수되었다 .41)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 이와 같은 생산 증가에 대하여 무조건 적극적 인 찬사 를 보내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생산 증가 에는 엄청난 양의 인공비료와 농약(제초제 및 살충제)이 그 대가로 지 불되어야 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인공비료와 살충제와 제초제 는 인간의 섭생에 해 를 끼칠 뿐만 아니라 토양과 물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고, 급기야는 생태계(또는 생태조직)의 질서를, 죽 자연의 질서를 파괴한댜 42) 지금 우리는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위기 속에서 살고 있다. 자연의 위기는 또한 인간의 위기를 가져왔다 . 인간은 마치 자연 과 적대관계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자연은 아제 삶의 기초와 근거로 는 쓸모없는 것처럼 간주되기도 한다 . 그런가 하면 자연과 인간의 존 속 자체가 의문시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연에 대한 가 치 기준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새로운 환경윤리 (ecoeth ics , 독일어로는 Okoeth ik 또는 Umwe lt e thik)를 요청하고 있다 .43) 40) F. List, Das nati on ale Sys te n 1 der pol it isch en Okonomi e, in F. List Werke, Hg ., 41) EE. .v E. hBleecrsk(eHrag .t)h, . Eu 빽. a. r, uVn gI( Buenrdlin G, e1s9e3ll0sc)h, a1ft6 (9S 쪽t u. t tgart, 1983), 167 쪽. 42) 토양의 이용에 관한 문제점에 대해서는 F. Verste r , Das Uberlebe nspro g ram m (Mi inch en, 1'!7 2 ), 96 쪽 이 하 참조.

그리고 이와 같은 요청은 신학자들에게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 자연 (환경)을 위기로 몰고온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가 바로 그리스도교 문 화의 유산이라고 하는 것은 생태학에 관한 관심을 고취시키고 있는 저술에서 흔히 제기되고 있는 비난이다.4-1) 그리스도교가 자연의 위기를 직접적으로 교사한 공모자이거나 조종 자는 아닐지라도 방조자였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 하면 결과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교가 득세한 곳일수록 자연파괴가 극 심했기 때문이다. 자연파괴에 대해서 그리스도교가 잘못을 저질렀느 냐 아니냐 하는 것을 일단 접어두고 보더라도 윤리신학의 전통이 인 간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해서 아주 오랫동안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 왔던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예컨대 토마스 아퀴나스는 〈사물(자연)은 그 자체로는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으며, 선악과 상관없는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사물 자체는 윤리적으로 무관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개개의 인간이 구체적으로 윤 리와 무관하게 행동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왜냐 하면 의도된 목적이 행위를 윤리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겠기 때문이 다썬 또 우리는 이와 관련하여 전통적 그리스도교 신학이 스토아 학 43) 새로운 윤리에 관한 문헌은 매우 많으나 D. H. Meadow et al., The Limi t s to Grawt h( New York, London : Pan , 1972), 172-174 쪽. 이 책은 〈로마 클 럽 보고 서 〉로 알려 져 있다 ; C. Arme ry, Das Ende der Vorsehung : Die Gnadenlose11 Folge n der 야ris tentu ms(R ein beck, 1972), 221 쪽 ; H. J. McCloskey, Ecolog ical Eth ics and Politi cs( Toto w a , N. J. : Rowman and Littlefi e ld , 1983), 160-163 쪽의 44) 참M고. 문Lo헌h m참a조nn.( Hg .), Ge fahrd ete Zukunft : Progn o sen am erika nis c her Wisse nschaft er (Mi inch en , 1970), 20-29 쪽 ; J. B. Cobb, Jr., Der Preis des Fortsc hri tts. Umwelt sc hutz als Problem der Soz iale th ik(M i inch en, 1972) ; E. Drewenna nn, Der to'd li ch e Far tsch ri tt : Von der Zersto ·r ung der Erde und des Menschen im Erbe des 야ri s tentu ms, 제 3 판 (Re g ensbur g, 1981). 45) Thomas Aq uinas, Summa Theolog ica, I -II , 18. 8.

파의 자연에 대한 도덕 적 무관심설에 대해서 대체로 분명한 태도를 밝히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46) 힐페르트(K. Hilpe rt) 에 의하면 종래의 신학적 윤리학은 대체로 환경윤리학에 관해서 간단 한 소묘, 제안, 요청을 문제삼았을 뿐이댜 4 7) 아주 최근에 들어와서 아 우어가 비교적 잘 연구된 신학적인 환경윤리학을 발표했다. 그렇지만 이 주목할 만한 저서도 어떤 완성된 체계를 분명하게 제시하지는 못 했다. 다만 이 책은 생태학적 논의와 그리스도교적 윤리사상과의 만남 의 장소 를 모색하 는 방도에 관해서 또 하나의 시도로서 환경윤리의 문제 를 다루었을 뿐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션) 필자는 먼저 그리스도교 자연관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인간과 자연 이 불가불리의 관계에 있는 것들 중 하나라는 사실과 자연보전의 의 의를 살펴보고 더 나아가 환경윤리학과 그리스도교 윤리학과의 접목 을 시도하고자 한다. 2.4 .2 그리 스도교의 자연관 그리스도교 신학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전통적으로 창조신앙과 관련시켜 설명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에게 닥친 자연환경의 위기 를 문제삼을 때, 그리스도교인이 성서의 창조신앙을 근거로 이 문제를 해명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생태학의 방향 정립의 가능성도 이 창조신앙에 비추어 보는 것이 그리스도교인에게는 당연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방식은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 성서 해 석학자들에 의하여 매우 복잡하게 해석되며 선택되고 있다 . 그리고 이 46) J. Ste l zenberge r , Ad iap h o ra, RACT, 83-87 쪽 ; W. Tri llhaa s, Ad iap h o ra, in THIL, 제 79 호 (1954), 457-462 쪽. 47) Karl Hilpert, Verantw o rtu ng fur die Natu r. Ansatz e zu eine r Umwelte thik in der geg e n wartig en Theolog ie, in THPH, 제 60 호 (1985), 378 쪽 . 48) A Auer, Umwelt eth ik : Ein Theolog isch er Be itrag zur Okolog isch en Dis k ussi on (Dilss eldorf , 1984). 특히 308-310 쪽 참조

러한 방식은 대체로 체계적 시도에 너무 치중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개별적 탐구결과를 문제삼지 않고 체계적인 면에서 일별하고 그 중에서도 핵심이 되는 것에 관해서만 언급하고 있다 .49 ) 우리는 창 조신앙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번째, 대체로 성서학자들은 성서의 창조에 관한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다음과 같은 것을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자연 계, 인간, 그 밖의 생물들은 그 어떤 차이와 구별되고 위계질서를 초 월하여 그 어느 것도 무시될 수 없는 하나의 통일체로 구성되어 있다 는 것이다. 이것은 흔히 연대성 (So li d arit a t)이라는 개념으로 다루어진 댜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연대성은 사회윤리학에서 말하고 있는 인격 상호간의 관계라든가, 사회 전체와 그 사회의 구성원인 개별 인격과의 관계와 같은 의미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댜 50) 아무튼 모든 피조물이 하나의 통일체라는 것은 사실에서 인정할 수 있다. 모든 피조물이 근 본적으로 서로 함께 속해 있다는 것은 하느님이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진흙으로부터 빚어 만드셨다는 다음과 같은 구약성경의 말씀 에서 그 근거롤 찾아볼 수 있다 . 〈야훼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창세기 2: 7 ), 둘짐승과 공중의 새를 하나하나 진흙으 로 빚어 만드시고(창세기 2:19).> 그리고 성서의 기록자는 지으시다(히브리어로 b r')라는 동사를 인간 과 마찬가지로 어류와 조류의 창조에 대해서도 똑같이 사용하고(창세 기 1:21, 25, 27), 인간과 온갖 생물들에 대해서 하느님은 같은 축복을 내리신 것으로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데(창세기 1:22, 28), 여기에서도 49) G. Lied ke, Von der Ausbeutu ng zur Koop erat i on Theolog isch-philo soph ische Uberleg unge n zur Problem des Umweltsc hu tz e s, in Human61rolog ie und Umwelts c hutz , Hg . E. v. Wei.z sac ker(Stu ttgart / Mi inch en , 1972), 36-65 쪽 . 50) J. Kond ziela, Solid aritatsprinzip, in Kath o li sch es Soz iall ex iko n, Hg . A Klose, W. Monti und V. Zs ifko vi tz(I nnsbruck / Graz, 1980), 2577-2578 쪽.

우리는 하느님께서 지으신 모든 피조물이 서로 함께 속해 있다는 근 거를 찾아볼 수 있다 . 두번째로 성서학자들은 피조물들간에 관계가 아주 밀착되어 있다고 지적한댜 슈테크에 의하면 〈창세기의 창조사업에 의하면 피조물들에 게 그때그때에 제시되고 있는 생활공간과 생물 사이에는 상응관계가 존재한다〉고 한다 . 5 1 ) 예를 들어 육지의 동물과 인간은 하나의 생활공 간을 공동으로 이용하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공존관계는 육지의 동물 들에 대해서 는 창조의 축복이 실수인 것처럼 보이며 서로 투쟁을 유 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구약성경에서 우리는 식물과 동물 간의 관계에서 먹이(양식)가 질서있 게 정돈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가령 풀은 동물에게 식량으로 제공되 고, 인간은 날알과 나무열매 를 먹도록 되어 있다 . 〈이제 내가 너희에 게 온 땅위에서 날알을 내는 풀과 씨가 든 과일나무를 준다. 너희는 이것을 양식으로 삼아라. 모든 들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 위를 기 어다니는 모든 생물들에게도 온갖 푸른 풀을 먹이로 준다(창세기 1: 29-30).> 그런데 문제는 하느님이 처음에 그의 모든 피조물에 대해서 똑같은 말씀으로 축복을 내리시고 나서 하느님을 대신해서 생물의 질서 정연 한 공생( 共生 )을 염려하고 동물을 지배하는(히브리어로 kbs) 과제를 인 간에게 위임하셨다(창세기 1:28-29) 는 성경의 내용과 노아의 대홍수 이후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위룰 기어다니는 길침승과 바다고기가 다 두려워 떨며 너희의 지배 (rdh) 를 받으리라(창 세기 9 : 2) 〉고 하신 말씀으로 인간과 동물과의 관계에서 인간의 우위 를 첨예화하는데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성서해석학자들간에는 지배하다 (kbs 와 rdh) 라는 말을 두고 51) 0. H. Ste c k, Welt und Umwelt (S tu ttgart, 1978), 81 쪽, 이하는 82 쪽 참조.

해석의 차이가 있댜 아무튼 자구( 字 句) 해석을 해보면 원래 kbs 는 짓 밟는다 , 어떤 것 위에 발을 올려 놓는다 , 복종시키다, 지배하다라는 뜻이며 rdh 는 이끌다 , 안내하다, 땅속에 다져넣다 , 강제로 하다, 지배하다 등 여러 가지 뜻이 있다 52) 따라서 인간에 의한 땅의 지배 (do min um t errae) 가 후 세에 남용(오용)될 소지가 이미 말씀 속에 들 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러나 〈하느님께서 아담을 데려다가 에덴에 있는 동산을 돌보게 하시 며(창세기 2 : 15)>, 〈땅을 갈 사람도(창세기 2 : 5)> 〈땅에서 나왔으므 로 땅을 갈아 농사를 짓게 하셨다(창세기 3 : 23) 〉라는 말씀에 비추어 보면, 땅의 지배는 〈땅을 경작하면서 보존한다〉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 따라서 인간과 자연과의 공존관계는 인간이 땀을 홀 리면서 땅에서 일 하도록 되어 있다는 말씀(창세기 5:29 및 3:18- 23 참조)과 연관해서 볼 때 합당한 것으로 평가해도 좋을 것이다 . 세번째로 모든 신학적 전통을 막론하고 성서해석학자들은 창조론에 서 인간에게 우월한 위치를 부여하고 있댜 53) 이러한 인간의 특수한 위치는 항상 두 가지 의미로 묶여져 있다. 하나는 인간도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것과 〈함께 지음을 받았다〉는 근본적 관계 를 의미하 며, 다른 하나는 하느님에게 필적하는 전권( 全權 ) 위임과 책임성을 가 리킨댜 인간의 우월성은 절대군주제의 모델에 따르는 지상의 왕이라는 어 휘에서 강한 뜻이 드러나지만, 그 참뜻은 하느님에 의하여 창조된 질 서 속에서 일하는 파수꾼의 모델에 따라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 다. 다시 말해서 자연(땅)을 단순하게 처치하는 것이 아니라, 형성하고 규제하고 서로 보장해 추고, 조심스럽게 인도하고 양식으로 이용하는 것은 인간이 창조의 전권을 최고로 발휘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52) 같은 책, 78-79 쪽 . 53) Hilpert, 앞 의 책 , 381 쪽 이하.

네번째 특징으로 하느님께서 만물을 질서정연하게 창조하신 후 〈매 우 좋았다(창세기 1 : 31) 〉라고 하신 말씀이다. 실제는 항상 하느님의 의도와는 차이가 날 수 있다. 가령 성서의 많은 곳에서 자연의 참사는 인간이 도덕적으로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결과임을 암시하고 있다(창세기 3:6, 11, 13 및 이사야서 24:4, 예레미아 4:22, 신명기 28:38 이하). 그리고 성서의 기록자는 이러한 지구의 혼란은 인간에게서 시 작되었고, 그 다음 그 밖의 창조를 인간이 파멸로 끌고간다고 기록하 고 있다. 여기서는 자연계와 인류가 그들의 피조성으로 말미암아 하느 님 앞에서 공통의 역사 속에 던져져 있다는 사실을 소극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다섯번째로 성서해석학자들은 창조신앙이 이스라엘의 후기 역사에서 더 잘 드러나며, 종래에는 신약성서시대에 들어와서 그리스도의 우주론 의 의미를 제시해 주었다고 한다. 또 그들은 미래의 창조는 구세주의 궁극적 지배와 연결된다고 적극적인 방향전환을 한다(예를 들어 요한복 음 1 : 3, 사도행 전 17 : 24, 로마서 8 : 19 및 11 : 36, 고린도전서 8 : 6 및 15 : 23 이하, 고린도후서 5 장, 필립보서 2 : 11 및 3 : 21, 히브리서 1 : 2) 언 푀그틀레스 (A Vo gtl es) 에 의하면 사도 바울은 로마서 8 장 19-22 절 에서 창조신학을 말하려 한 것이 아니라 인간학적 구세론을 말하려 했다고 지적한다 .55) 다시 말해서 바울은 인간 이외의 피조물이 비상사 태에 있을 때 세계의 구원상실을 확언하고 신앙인들에게 주는 정신의 선물이 그리스도에 의하여 열린 구원이며 이 구원사업이 완전한 창조 라고 언명한댜 우리는 하느님의 최후 심판을 문제삼는 요한계시록에 서도 생태학적 해석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신약성서는 자연의 구 원을 자명한 것으로 분명하게 말하지 않고 있다는 일부의 주장도 고 54) Ste c k, 앞의 책, 173 쪽 이하 ; W. Bin d em ann, Die Hoffn u ng der Sch iipfun g (Neu kirch en , 1983), 18-27 쪽 참조. 55) G. Frie drich, Okologi e und Bib e l(Stu ttgart, 1982), 45, 64 쪽.

려할 여지가 있다. 반면에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을 그의 창조를 통하여 완전하게 완성시켰다는 주장도 수긍할 수 있는 말이라고 하겠다언 우리는 앞에서 성서해석학자들의 주장에 따른 창 조신앙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우리가 거기서 그리스도교의 자연관에 대해서 무엇을 확언할 수 있겠는가? 자연의 의미는 자연이 근본적으로 피조물로서의 본질을 가지고 있 다는 것이다. 자연은 인간이 함부로 열었다, 닫았다 해도 좋은 중위적 인 것도 아니며, 그 자체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함부로 이용할 수 있는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책임의 대상이다. 인간은 하느님으로부터 자연을 지배하는 능력을 부여받았으며, 인간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진 피조물의 일부분이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자연을 다스릴 전권을 위임 한 것은 질서를 이루고 자연을 생명으로 이용하도록 한 것이다. 전통 적인 그리스도교의 창조설은 이 세계 창조의 최종 목적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비도덕적인 행위가 된다. 사람들이 자연을 단지 기술적으로 조작 할 수 있거나 경제적으로 유용한 것으로 환원시켜 버리는 오늘날의 생태학적 위기에서 성서의 창조신앙을 새롭게 이해하려는 요청은 중 대한 의의를 갖는다. 그러나 사람들이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생태 학적 문제들에 대하여 아주 구체적인 해결 방법이나 행위 지시를 성 서 해석이 제시해 주기를 요구한다면 이것은 지나친 요구이다. 2.4 .3 자연과 인간의 재통합 우리가 자연을 인간이 책임져야 할 대상으로 삼으려고 한다면, 근 본적으로 두 가지 노선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그 하나의 노선은 우리 56) E. GraBer, Neute s ta me ntl ich e Erwag ung~ zu ein e r Scho pfungse輯, in WPKG, 제 68 호 (1079), 109-113 쪽 참조.

가 인간과 비교해서 자연의 고유한 가치를 강화시켜야 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인간의 윤리적 의무의 범위를 시공간적으로 확대해서 비 인간적인 자연을 인간의 삶의 가능 조건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 이 두 가지 노선은 최근에 그리스도교적 신학자들과 철학자들 사이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1) 첫번째 노선에서는 자연과 안간이 하나라는 생각이 특징적이다. 자연은 인간까지도 포함하는 전체로 파악된다. 자연은 단순히 인간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일종의 주체성이 라고 말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자연이나 동물, 그리고 동식물 모두에게 주어져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신학적으로만 그 배경을 물을 수 있 는 성질의 것이다. 아무튼 자연 내지 동식물을 단순히 도구로만 취급 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좀더 신중히 고려되어야 한다. 오늘날 많은 저술가들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새로운 용어를 사 용해서 표현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동반자(同伴者) 관계〉尸 〈협력관 계〉 ,58 ) 〈연대성〉 ,59) 심지어는 〈형제관계〉 60) 등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특 히 일찍이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는 자연과 인간을 형제관계라고 시 사한 바 있다. 우리는 편의상 자연과 인간이 하나라고 하는 생각을 다 음과 같은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57) Lied ke, 앞의 책, 57 쪽 ; H. Sachsse, Der Mensch als Pa rtne r, in iiber leben und Eth ik , Hg . G. K Kalte n brunner(Freib u rg, 1976), 27-54 쪽, 특히 48 쪽.

58) Lied ke, 앞의 책, 56-61 쪽 참조.

59) G. Lied ke, Im Bauch des Fis c hes, Okolog isch e Theolog ie(S tu ttgart / Berlin , 1983), 175-178 쪽 ; So li d ari넒t im Kon flik, in epd -Dokumenta tion , 제 36 호 (1979), 27-34 쪽 ; E. Wi ldb olz, Mensch und Tie r in eine r pro dukti on sori en ti er te n Gesells chaft. Ein Thema christlich er Eth ik, in ZEE, 제 22 호 (1978), 15-20 쪽, 특 히 17 쪽.

60) E. Drewermann, Der toiilich e fo rtsc hri tt(R ege n sburg, 1981), 118, 207, 220 쪽.

(기) 주지하다시피 〈생명에 대한 외경(長敬)〉이라는 구호는 슈바이

처에 의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졌댜 슈바이처는 그의 『 문화와 윤리학 』 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간은 그가 도울 수 있는 모든 생명체 를 도와주고 또 어떤 생명체에도 해가 되는 일을 삼가할 것을 간청하고 또 여기에 그 자신이 순응할 때만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 윤리적이다 . 윤리적인 인간은 이 생명 또는 저 생 명이 얼마만큼의 값어치가 있는가 를 묻지 않으며, 또 그것을 얼마만큼이나 지각할 수 있는가를 묻지도 않는다. 그에게는 삶 그 자체가 거 룩 하다. 그는 나무에서 나뭇잎 하나 따지 않으며, 어떤 꽃도 망가뜨리지 않으며, 또 어떤 곤충도 밟아 죽이지 않도록 항상 주의한다 .61 }

61) Albe rt Schwe izer, Kultu r und Eth ik , in Werke, 제 5 권, Hg . R. Grabs(Mi inc hen, 1923), 378 쪽.

슈바이처의 이 글은 생태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아주 중요 한 길잡이가 되었댜 62) 로크 (Rock) 는 슈바이처에게 자극을 받아 자연 외경사상을 환경윤리의 최초의 요청이라고까지 말했다 .63) 슈바이처는 〈윤리학은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무한한 책임을 지는 것을 가르 치는 것이다〉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62) B. Altn e r, Leide nschaft fa·r das Ganze (Stu ttgart / Berlin , 1980), 119 쪽 이 하 , 180, 219 쪽 ; R Sp ae m ann, Die techno log ies che und okolog ies hce Krise ne rfah rung als Herausfo r drung and die pra ktis che Vemu nft, in Funk-Kolleg pra kti sc he Philo s op h ie I Eth ik(T iibi n ge n, 1981), 63, 65 쪽 ; Auer, 앞의 책, 14, 76 쪽.

63) M Ro ck, Theolog ie der Natu r und ihre anth rop olo g isch- eth isc hen Ko nseque nzen, in Okologi e und Eth ik, Hg . D. Bir nb acher(Stu ttgart, 1980), 93 쪽 이하.

64) Albe rt Schweiz er, Kultu r und Eth ik, Hg . R. Grabs(Mi inch e n, 1923), 379 쪽 이 와 관련된 언급으로는 374, 383, 396 쪽 참조.

모든 것을 포용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계명은 근본적으로 모든 제 약을 벗어난다. 생명이라는 중심 개념은 부분적으로는 인격화되기도

하는데, 이 생명 개념은 모든 주체적 현존자와 행위의 기초가 되는 것 에 대하여 책임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하나의 생명체와의 교제에 서도 항상 기초관계와 전체관계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궁극적 으로 이 사실을 합리적으로 정초시킬 수 없다. 다만 이 사실은 생명이 자기에게로 향해서 부르는 소리에 대해서 둔감할 수 없는 자에게는 자명한 것이댜 〈참된 철학은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포괄적인 의식의 사실로부터 나오지 않으면 안된다〉고 한다면, 이 사실은 다음과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나는 살려고 하는 생명의 한 가운데서 살 려고 하는 생명(삶)이댜〉 65) 슈바이처는 모든 현상에는 각자가 자기 자신 안에서 느끼는 것과 똑같은 삶의 의지가 있다고 본다. 그는 이러한 통찰이 삶의 개별적 형 상 속에서 서열(순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는 이 서열의 차이롤 윤리적으로 중요시하지 않는다 .66) 자연과 인간 의 교제는 인간과 우주적인 생명 의지 사이에서, 그리고 〈하나의 촌 재〉의 신비로운 체험 속에서 그것의 척도를 발견하며 정초한다. 그래 서 슈바이처는 그의 윤리학의 여러 곳에서 생명외경이 〈윤리적 신비 주의〉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67) 그에 의하면 여기서 말하는 신비주의의 본질은 〈세계 안에서 때묻지 않은 나의 소박한 존 재로부터 우주에서 현상으로 나타나는 비밀에 가득찬 무한한 의지를 향한 정신적인 귀의(歸依)〉를 의미한다. 자기 자신 이의의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을 대하는 인간의 행동에 는 하나의 삶의 의지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지만, 거기에는 항상 하나의 만남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 만남으로부터 그 자신의 생명과 65) 같은 책, 377 쪽. 66) 같은 책, 379 쪽 그는 이 공식을 모든 생명력이 있는 것, 따라서 가장 낮은 단계 에 있는 생명체까지도 포괄시킨다. 67) 같은 책, 109, 371, 377, 461 쪽.

꼭같은 생명의경이 살려고 하는 모든 의지에도 부여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생겨난다 .68) (니 인간이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자연과 공속관계에 있고 아주 밀착된 관계에 있다는 것이 환경윤리학의 출 발점이다. 환경윤리학은 자연과 자연의 개별적 구성 부분이 고유권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한다. 서양 근세사상에서의 주관과 객관의 이원론적 대립의 영향을 받아 인 간과 자연은 마치 적대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은 보다 더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것이다. 인 간이 자기의 생존을 위해서 필요로 하는 것은 인간과 동류인 피조물 에게도 마찬가지로 필요한 것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과 다 른 피조물이 같거나 아니면 적어도 비슷하다는 사실에 유의하고, 모든 피조물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평등원칙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다 .69) 바 이츠제커는 이와 관련하여 신학자들에게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이제 는 신학자들도 그들이 인정하고 있는 기원설의 결과인 우리와 동류인 피조물에 대한 형제애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70) 19 세기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동물보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일 어났댜 그 이후 학자들 사이에서는 항상 인간과 비인간 존재 사이의 동등성의 요소로서 감각 능력과 고통을 지각하는 능력이 거론되었다 .71) 동물들도 감각 능력과 고통을 지각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6689)) R같 은G in 책t,e r s3,7 8W 쪽e .r te und Normen, Ein fa h rung in die p hi lo s op h isc h e und the olog isch e Eth ik(G ott inge n / Diiss eldorf , 1 982), 19 - 36 쪽 . 70) C. F. We izac ker, Gott es fra ge und Natu rwissenschaften , in Heute van Gott red en, Hg . M Heng el und R Rein hardt ( M i lnc hen / Mainz, 1977), 167 쪽. 71) C. M Teuts ch, Tie rve rsuche und Tie rs chutz (M i lnc hen, 1983), 114 쪽 이 하 ; J. Benth am, An Intr od ucti on to the Pri nc i ple s of M 아a ls and Leg ista tion ; J. H. Bums(ed.), The Collecte d Works(London : Oxfor d Un iv. Press, 1970), 제 1 권, 17 장, 282 쪽 이하. Ben tham은 철학자로서는 최초로 이 책에서 동물보호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문제삼았다.

많은 경우 인간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했으나, 동물들은 원래부터 감각 능력과 고통을 지각하는 능력을 그 자체 안에 독자적으로 가지고 있 댜 물론 어떤 인간도 동물들이 실제로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를 정확 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동물의 표정은 인간과 아주 유사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 동물의 표정(몸짓)은 건강하다든가 아 프다든가 하는 감각에 관해서 무엇인가를 말해 주며, 또 좋다든가 싫 다든가 하는 것도 말해 준다. 주위 환경의 변화에 따르는 수많은 육체 의 반응은 동물들도 인간과 비슷하다. 적어도 고등동물은 고통을 체험 하는 해부학적 • 병리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 그러므로 동물들은 이 러한 근거에 의해서도 인간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우리는 동물에게 함부로 고통을 가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단순히 얄팍한 동정심을 가지고 인간의 도덕적 감정의 손상을 염려해서도 아 니며 ,72) 또 칸트가 요청한 것처럼, 단지 우리의 자연스러운 도덕적 감 수성을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73) 〈동물들은 그들 자체로 다루어져 야 한다〉 74) 는 힐페르트의 주장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인간은 동물을 동물로서 대우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것은 부당한 것을 하는 것이 된다

72) 아주 최근까지도 독일과 스위스의 동물보호법에서도 이러한 주장을 하고 있다. U. Vog el , Der bundesstr afr e ch tl ich e Ti e rschu tz (Z 函ch, 1980), 7-13 쪽. 예를 들어 어린 소녀의 감상주의와 유사한 심정으로 동물에게 고통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Teuts ch, 앞의 책, 114 쪽. 그는 이 책에서 독일의 동물보호법은 어떤 특정한 동물의 수렵 금지기간과 동물을 보호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고 인 간의 기분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폭로한다.

73) Immanuel Kant, Die Meta physik der Sit ten , in Werke, A 판, 108 쪽.

74) Hilpert, 앞의 책, 386 쪽.

우리는 자연에 대한 책임으로 단순히 동물보호만 가지고 책임을 다 한 것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식물이나 무 생물계의 일부에까지도 인간이 책임지는 보다 더 포괄적인 동등권에

대해 전망할 수 있댜 최근에는 법학자들도 인간과 동물을 훨씬 벗어 나는 데까지 공동체로서의 이해관계가 있다는 것을 문제삼는다 . 여기 서 말하는 이해관계란 생명보전과 그 종(種)에 특유한 태도방식의 집 행과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려는 모든 생명체에 내재한 충동을 의미한 댜 75) 모든 생물은 고통으로부터 행방되는 것과 그 자신의 현존권을 요구하는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어떤 생물이 이 이해관계 를 스스로 느낄 수 없고 타당한 것으로 보지 못하더라도 이 이해관계는 엄연히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이 사실은 그것을 참이라고 여기 고, 그것을 그 생물의 이름으로 요구하고,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보 호자를 필요로 한댜 결국 생물의 보호는 인간만이 의도적으로 실행할 수있댜

75) J. Fein e rg, Die Rechte der Tie r e und zukunftiger Generati on en, in Okolog ie und Eth i k , Hg . Bim b acher, 151 쪽 ; 영 어 판으로는 W. T. Blacksto n e(ed.), Phil o -sap h y and Env ira nmenta l Cri sis ( At he ns, Ga. : Un iv. of Georgi a Press, 1974), 43-68 쪽 .

비인간적 존재와 사물은 그들의 성분과 질서기능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들은 주체적 권리의 소유자가 될 수 없다 . 그러나 죽은 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 의식을 상실한 자 둥의 권리를 전통적 규 범에서도 이미 인정해 오고 있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맥락에서 그 타당한 근거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76) 그러므로 비인간적 존재자의 고유권의 인정 여부는 윤리적 견해와 관습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 .71)

76) Gin ter, 앞의 책, 28-30 쪽 참조.

77) Vog e~ 앞의 책, 171 쪽; UNFSCO 가 1978 년에 선포한 〈동물의 권리에 대한 보 편적 선언〉 참조.

(더 자연과 인간이 하나라는 생각은 자연의 부분이나 자연을 신적 인 것이 나타나는 양태의 전체로 간주할 때 생길 수 있다. 우리는 이 것을 비성서적 종교에서, 특히 아시아의 종교에서 또 그리스도교 이전 의 신화세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동양사상의 전통적 자

연관에 대해서 숙고해 보지 않을 수 없다한 우리는 도가( 道家 ), 유가 ( 儒家 )와 불가(佛 家 )의 자연관은 물론이 고 한국인의 전통적 자연관에 서도 자연과 인간이 하나됨을 찾아볼 수 있다 .79)

78) J. B . Callico tt , Concept ua l Resources for Env iron menta l Eth ics in Asia n Trad ition s of Thoug hi, in Phil os ap hy East and West, 제 37 권, 제효 (1987), 115-130 쪽 ; 진교훈, r 한국인의 민간신앙에 나타난 자연관』 , <韓 中哲 學~ , 1 호 (1995) ; r 주역과 생명과학』, < 周易硏究 ~, 1 집 (1996) ; 최영진, 『 人物性同 異 論의 생태학적 해석 』 (한국유교학회 , 1998), 53 쪽 이하 .

79) 이 책의 제 7 장 〈동양사상의 전통적 자연관의 현대적 의의〉와 제 8 장 〈한국인의 전통적 자연관의 현대적 의의〉 참조 .

그리스도교 신학 자체에서는 자연을 신성시해야 함이 누구에게도 지지받지 못한다. 세계(자연)의 피조성에 대한 성서의 증언들은 하느 님이 자연이나 특정한 대상이나 장소에 내재하고 있다는 생각과 자연 을 신성시하는 것과 를 아주 분명하게 구별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현대의 환경위기 를 근본적으로 그리스도교 사상과 또 그리스도교의 인간관에 그 잘못을 전가하는 시점에서는 자연 신성사상은 아주 진지 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드레버만은 〈환경윤리는 기존의 그리스도교의 자연관의 근본적 수 정 없이는 전망이 없는 단순한 시도에 그치고 만다〉고 말했으며 , 이어 서 〈이 근본적 수정은 그 밖의 다른 종교들과 고대 종교들의 지혜를 그들의 중요한 상징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80) 고 했다. 그는 〈그리스도교가 그 자신을 위해서도 태고의 신화에 대한 터부를 포기 하고 또 자연종교와의 교류(교환)에서 그 신앙의 가르침의 우주론적 • 심리학적 관계를 재발견하고 이를 실현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라고까지 말했다 .81)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의 유태교적 • 그리스도교적 인간 중심주의를 깨뜨리고 서양의 정신사에 서 항상 사이비 범신론으로, 또는 무신론으로 취급되어 배척되었던 하

80) Drewe nnann, 앞의 책, 143 쪽 . 81) 같은 책, 147-149, 202 쪽 참조 .

나의 종교적 세계의 체험, 죽 하나의 통일사상으로 되돌아가서 보다 더 근본적인 새로운 종교적 성찰을 요구하기도 한다 . 82) 드레버만에 의 하면 사람들이 우주론적 • 심리학적 관계를 확신하는 한, 또 우리가 자 연과의 조화 속에서 살며, 삶과 ' 죽음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는 우주의 질서를 지키려는 의지에 가득 차 있는 한, 자연의 순환의 여러 가지 모델뿐만 아니라 야만인들이 했던 사람머리 사냥, 인간을 희생제물로 바치는 것, 그리고 짐승을 제물로 바치는 것조차도 소위 고등 종교의 불관용과 비교해 볼 때, 자연의 경건성에 대한 대단한 형상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83) (2) 앞에서 살펴본 세 가지 방식은 간단히 말해서 자연 그 자체가 자기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환경윤리를 정초하려는 시도 라고 볼 수 있다. 이 세 가지 방식은 모두 문명 비판적인 배경을 가지 고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것들이 서양 근세의 자연지배라 는 지도적 이념의 위기로 판단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발전되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므로 그 방식들은 이러한 전통을 포함해서 인간과 자연 과의 올바론 관계를 규정하는 것을 회피하며, 제약없는 자의(窓 意 )와 또 모든 것을 도구화하는 것을 저지하는 데만 관심을 가졌다. 인간 이 외의 것은 인간들이 정해 놓은 목적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원료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방식들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래서 그 방식들은 우리의 책임이 단지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 형성에만 그 치는 것이 아니라 그 책임의 범위가 확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 대충 이렇게만 살펴보아도 우선 눈에 띄는 첫번째 문제점은 인 간, 동물, 식물과 무생물 간에 질적(質的) 차이에 대한 폭넓은 비교타 당성이다. 특히 동물, 식물, 무생물에 대해서 재평가해 보면 그들과 인 82) 같은 책, 109 쪽. 83) 같은 책, 111-113 쪽.

간의 가치 차이는 실상 아주 작고 별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지만 동물, 식물 , 암석이나 자연 전부도 인간이 주체인 것처럼 그 렇게 주체라고 해도 좋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 서양 사람들이 로마법을 받아들여 인간이 더 고동하게 발달된 동물 이라고 보고 인간과 사물에 관해서 지금까지 구분해 온 것을 재검토 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자아의식, 자유의지, 언어로 의사 전달 하는 능력, 그리고 이러한 것과 함께 도덕적인 토론에 참여하는 가능 성 등은 다른 모든 피조물에 비해서 인간이 가지는 우월성이며 윤리 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인간학이 인간은 초 월성을 부여받았다는 신념을 고수할 때, 인간의 우월성은 더욱 타당한 것이 된다 . 그러므로 인간의 서열에 대한 중립을 고려할 수 있는 것은 인간상(人 間象 ) 그 자체 안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인간 을 동물로, 식물로, 또는 물건으로 평가하거나 취급하는 경우이다. 가 령 이 세상에서 매일 같이 4 만 명 이상의 어린이가 굶주림으로 죽어 간다든가, ) 전쟁으로 말미암아 한 종족 전부가 몰살된다든가, 달리 해 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엄청난 숫자의 임신중절과 인간고문이 자행되고 있지만,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이 인간사회가 무 력하거나 무관심한 채로 있으면서 인간 아닌 피조물들의 자기 가치에 대해서까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좀 아이러니컬한 점이 없지 않다 .

84) UNICEF 가 1984 년 4 월 28 일 발표했다. FAZ 에 의거.

아무튼 동물을 학대하거나 멸시하는 것은 결국에는 인간까지도 쉽 게 멸시하게 만들며, 또 동물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성을 교육시키는 데도 도움이 된다. 동물보호에 찬성하고, 동물을 박해하는 행위에 대 해서 분개하는 자는 인간의 고통스러운 상황과 인간 경시에 대해서도 침묵을 지킬 수는 없을 것이다. 독일의 알렌바흐 (Allenbach) 설문조사 에 의하면, 독일인의 7% 가 동물학대에 대해 분노를 느끼며, 캐나다의

어린 바다 표범을 죽이는 것에 대해서는 48% 가 반대를 했으나, 건강 한 부인의 임신중절에 대해서는 불과 34% 가 반대했다고 조사된 바 있댜 85) 일찍이 알렉산더의 클레멘스는 고대 도시인의 생활을 비판하 면서 이렇게 한탄한 바 있다. 강아지보다 훨씬 가치가 있는 정숙한 과부에 대해서 저들은 걱정하지 않 았다 . …… 그들은 앵무새를 기르면서도 단 한사람의 고아가 단 한번 그 들 가까이 근접하는 것조차도 허용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 들 은 자기 들 이 낳은 아이들까지도 내버렸으나, 새새끼들은 집에서 길렀다. 그 들 은 이성이 없는 동물들이 이성을 가진 존재보다도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86) 이와 유사한 상황이 오늘날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소위 관상 용 조류와 열대어, 개와 파충류의 수입은 엄청나게 늘어가고 있으나 반면에 많은 고아들이 의국으로 입양되어 가고 있다. (니 두번째 문제점은 자연과 인간과의 교제에 대한 표준에 관한 것 이다. 그 표준이 자연 자체에서 발견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자연이 또 한 무엇이냐에 따라서, 예를 들어 우리가 인간의 표준에 의해서 자연 울 파괴, 투쟁, 잔인, 무자비로 보는 데 따라서 그 표준은 달라진다. 따라서 자연 안에서 나타나고 있는 고통이 삶의 원칙에 가장 깊이 저 항하는 것으로 파악되거나, 아니면 다 함께 보전되기를 목표로 하는 삶과 죽음의 형평으로 지양될 때 자연은 도덕적으로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첫번째 경우에 자연 내지 피조물에 궁극적으 로 물리적 • 병리적 현상 이상의 세계관적 해석을 부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만 두번째 경우에는 자연의 모든 요구들이 단지 형평을 85) Christ und Welt, in Merkur(1984. 2. 24), 3 쪽. 86) Oemens von Alexander, Paid I, ill, c, 4 : 독일어 번역은 0. S tahlin의 『알렉산 더 전집』, 제 2 권, VIII, 163 쪽.

이루는 것만을 목표로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자기의 생존을 위해서 다 른 생물을 희생시켜야 할 경우 이 를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이렇게 단 순히 통계학적 결과에만 관심을 두는 그러한 윤리학은 이성에 의해서 는 정당화될지 몰라도 인간에게 그러한 것을 넘기려는 것은 모든 것 이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고 보는 그리스도교의 믿음과는 일치할 수 없다. (디 세번째 문제점은 자연이 자기 목적을 실행하는 데 있어서 일관 성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 인간성이 인간의 기본적 요구와 갈 둥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은 자기 주장의 필연성과의 갈등에 빠져 있다. 가령 영양섭취는 생물간에 갈등을 가져온다. 어떤 생물과 병의 원인이 되는 다른 생물과의 싸움에서도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슈바이처도 이 점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나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하여 나를 해치는 존재자로부터 나를 방어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내 집에서 살고 있는 쥐새끼의 박해자가 되며, 내 집 안에서 집을 짓고 살려고 하는 곤충의 살해자이며, 나의 생명을 위협하는 박테리아의 대량 살상자가 되고 있다. 나는 나의 양 식을 식물과 동물을 파괴함으로써 획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바이처는 어떤 상태에서든지 삶을 멸절시키거 나 손상을 주는 모든 행위는 악이라고 주장했다 .88) 이와 같은 딜레마 는 기술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기술은 서구 문명을 이룩했지만 그 부 작용도 적지 않다 . 그렇다고 부작용만을 문제삼을 수는 없다. 우리는 기술이 가져다준 성과를 부당하게 과소 평가해서는 안된다. 환경위기 의 해결은 기술 발전을 억압하는 데서 찾아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기 술을 자연으로 대치시키려고 하는 것은 낭만주의자의 단순한 꿈일 뿐 87) Schweitz er , 앞의 책 , 387 쪽. 88) 같은 책, 396 쪽 참조.

이댜 끝으로 우리는 인간과 자연과의 올 바 른 관계 를 아시아의 종교에서 빌어오거나 또는 신화 를 부활시키자는 요청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 문제는 과연 그러한 전통이 현대 산업사회에서도 사회적으로 중 요한 부분에서 소생 • 통용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 간단히 대답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많은 학자 들 이 매우 회의 적이다. 설사 그러한 전통이 현대 사회에서 부 활 하는 것이 성공한다 할지라고 그것이 자연을 절대로 파괴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 8 9) 왜 냐하면 우리는 자연을 신성시하는 사회에서도 실제로 사람 들 이 자연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90 ) 2.4 .4 자연보전의 의미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면, 인간은 결국에 가서 그 자신까지 훼손시 키고 만다는 사실이 우리가 자연보호를 해야만 하는 근본 이유이다. 이때 인간은 자기를 자연과 대치되는 것으로 이해하며, 데카르트의 영 향을 받아 주체로서의 자기와 자연을 구분한다. 그러나 요나스가 말한 것처럼 〈자연은 인간과 분리된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는 불가 분리의 관계에 있는 다른 것이며,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인간 존재의 부분이며, 인간 자신의 실존적 완전성의 한 요소이다〉 . 91 ) 사람들은 인간이 요구하는 것을 자연이 제공해 주는 한, 자연에 대 한 인위적 침해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해 왔다. 그러나 기본적 자연재화인 공기, 물, 토양, 빛, 지하자원들의 이용은 실제로 89) J. Passmore, Remov ing the Rubbis h : Refl ec ti on s on the Ecolog ica l Creze, in Encounte r(1 974. 4), 11-24 쪽 참조 . 90) 같은 책, 13 쪽 . 91) H. Jon as, Das Prinz ip Verantw artun g Versuch eine r Eth ik ju•r die tech nolog isch e Ziv ilisa ti on (Fran kfurt, 1979), 246 쪽.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없댜 그러므로 자연재화의 부족과 자연과 인간 모두를 위한 자연재화 보존의 중요성은 정의(正 義 )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댜 그러나 재화들은 개별적으로 분배되고 배당되며 원래 쪼갤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정의의 요구에 부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모든 이해 관계자들이 고려될 수 없으며, 특히 미래에서 살게 될 사람들 전부가 고려될 수 없기 때문에 정의의 요구에 부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세적이고 잠재적인 인간의 환 경으로서의 자연을 보편적인 선으로 보호하고 자연을 건전하고 재생 할 수 있도록 보전하지 않으면 안된다〉 92) 고 한 요나스의 말을 경청해 야 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경제학은 자연재화를 〈공공재화〉라고 부른다. 공공재 화는 그 누구도 그것의 사용에서 제외되어서는 안되며, 모든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공공재화는 어떤 시대의 몇몇 사 람들만이 독점할 수 없는 것이며, 탕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연의 처리와 사용 능력은 잠시 위임 되었을 뿐이다. 따라서 인간은 그 자신의 이해관계에만 얽매여 자연을 배타적으로 사용해서는 안되는 신탁자의 위치에 있다. 우리는 이러한 신탁관계를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1)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서 인간이 신탁자라는 것은 전통적 가톨 릭의 사유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느님만이 사물의 창조자와 최 고 지배자로서 사물의 완전한 소유권을 가진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단 지 사물을 사용할 권리만을 위임하셨다. 그러나 인간에게 주신 권리 위임은 모든 인간에 대한 인간존중을 고려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자연 이용은 하느님이 원하는 사용 목적에 따라서만 하도록 의무가 92) K H. Hansmeye r, Umweltp oliti.k, in Funkkolleg -M ensch und Umwelt (Tii- bin ge n, 1982), 57, 43-81 쪽 참조

주어진다 . 93 ) 예컨대 케텔러 주교에 의하면 〈인간의 사유권( 私有 權)은 모든 인간이 지상의 재화로부터 그 들 의 필연적 생 활 용구 를 획득한다 는 의미에서 하느님에 의해 처방된 질서에서 지상의 재화 들 을 이용하 는 하느님으로부터 인간에게 부여된 권리이다〉. 이 그러므로 가톨릭에서는 사유권이 철저하게 정당시되고 있다. 인간 이 에덴 동산을 떠난 이후에 필연적으로 사유권은 나타났다. 그러나 지상의 재화들은 인간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에게 봉사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제기된다. 여기서 인간에게 자선( 慈善 )에 대한 엄중한 의무가 정초된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로 인간이 재화 를 완전히 임의로 처리 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절대적인 소유 개념이 로마법에 등장했다. 이것은 나중에 부르주아의 자유주의에 큰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공리주의적 자본주의를 배태했으며 생태학적 위기 를 초래하게 한 근 본원인이 되었다. 자연재화를 소유하고 이용할 수 있는 몇몇 사람들의 이익만을 충족 시키기 위해서 자연재화들을 단순히 재료와 자료로서만 사용하고 다 른 사람들을 제외시키는 것은 비도덕적이다. 자연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하느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인간은 자 연을 자기를 위해서 이용할 권리뿐만 아니라 미래에 살 사람들을 위 해서 자연을 보전하고 보호할 책임도 가지고 있다. (2) 신탁의 첫번째 특징으로 하느님의 창조 목적에 자연재화의 사용 을 국한시키는 것을 강조했다면, 두번째 논점은 자연재화의 이용을 누 리는 인간에게 유리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에게 존엄성 93) 다음의 교황회 칙 참조. Rerum nova rum, 7 ; Qua drage s im o anno, 45 ; Mate r et mag itra, 119 ; Gaud ium et spe s, 69 또는 71 ; Pop u lorum pro g res sio , 22. 94) W. E. v. Kett el er, Die g ro.& n sozia le n Frage n der Geg en wart : Predig ten geh alt en im Dam Zu Main z , Texte zur kath o li sch en Sozia ll ehre, II / l(Keve Caet, 1 976), 93 쪽.

이 부여된 것은 20 세기에 들어와서 비로소 일반화될 수 있었다. 인간 은 어느 누구에게서도 거절될 수 없고 다른 사람에게 내줄 수 없는 근원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이 근 원적 권리는 역사적으로 개인에 대 한 국가의 부당한 침해로부터 보호되면서 형성되어 온 전통적 목록인 인권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다. 가령 숨을 쉰다, 본다, 듣는다, 마신다 , 움직인다 든 가 하는 근본적 능력을 적극화하는 것이다. 이 권리는 안간 존재의 자명한 성립 요소이다. 대기에 해로운 물질을 내버리는 것, 바닷속에 폐기물을 침전시키는 것, 삼림의 납벌, 공기와 물과 땅의 오염의 점증 등은 불의한 것이다. 인간의 삶의 자연적 기반에 대한 인간의 권리는 기본권으로 존중되어 야 한댜 인간은 언제 어디서나 좋은 공기를 호홉하고 좋은 물을 마실 수 있는 권리 를 보장받아야 한다. 이것은 국가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는 개인적인 자유권의 의미로 이해될 수 없으며, 사회적 기본권의 의 미로 생각되지 않으면 안된다. 2.4 .5 환경 윤리 학과 그리 스도교 윤리 학 이제 우리는 환경윤리학이 그리스도교 윤리학의 전통과 어떻게 접 목될 수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가 자연보호의 출발점(기점)으로 인간을 삼는다는 것은 아주 일 찍부터 사회적으로 수긍될 수 있고 구체화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출발은 집단주의적 이기주의의 발상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가령 〈인간 중심적〉이라는 말은 바로 이기적이라는 말과 동의어이고 윤리적 인 것에 반대되는 뜻이며 ,95) 〈인간 중심적인 것은 인간을 중심적으로 본다는 말로서 인간하고만 관계시키는 것이나, 윤리적인 것은 도덕적 이론이 없는 것으로서 도덕적으로 좋다는 뜻이다〉 .96) 그러므로 윤리적 95) Teuts ch, 앞의 책 , 112 쪽 .

으로 책임지는 환경윤리학의 범위가 너무 협소하다는 비난이 그와 같 은 인간 중심적인 면에 대한 것이라면, 그것은 확실히 경청할 만한 가 치가 있는 것이다 . 자연은 인간의 이용을 위해서만 보전되고 보호되어 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적어도 문제 제기가 되어야 한다. 아무튼 자연 은 개별적 인간의 필요와 집단적 이해를 충족시키는 것이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다. 자연재화는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인간뿐만 아니라 미래에 살게 될 모든 인간에게도 그 이용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따라서 자연보전은 현대에 살고 있는 인간뿐만 아니라 미래에 살 인간에게도 책임이 주 어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책임이 오늘날 비로소 그리스도교인의 의식 에 들어왔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제까지의 인류 역사에서 일어난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살인행위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에서 인류가 영속되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것으로 전제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인류의 자기해체와 지구파멸이 가 능성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인류의 미래는 인간존중의 삶이 불가능 해질 정도로 자연의 삶의 조건을 변화시키는 것을 금해야 한다 . 그러면 인간존중의 삶은 미래에 사는 인간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의 미를 가질 것인가? 이러한 물음에 대답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다. 왜냐하면 우리는 미래에 사는 사람들의 사람됨과 그 수효와 또 기 술 발전의 가능성과 어떤 재난의 위험이 가해질지에 대해 어떠한 예 상도 확실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점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죽 지금까지 그리스도교 윤리학에서 가르쳐온 인간존중의 삶 을 미래에 사는 사람들도 배척할 수 없을 것이며 유념해야 할 것이라 는 점이다. 따라서 미래에 사는 사람들도 인간을 존중하면서 자연 속 에서 살 수 있도록 자연보전에 대한 정의가 요구된다. 이 정의는 자연 96) K J. Ennlat und G. Zoebe, Das Tie r im neuen Recht( S tu ttgart, 1972), 20 쪽.

보전에 상응하는 자연질서를 유지하고, 인간의 미래를 조정하고, 사회 전체 변화(개혁)의 모험을 감행하는 곳에서 생긴다. 인간이 미 래에도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는 연기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한, 인간은 자기 제어를 지속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연보전을 인간 을 중심점으로 강조하는 것은 결코 인간이라는 집단의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왜냐하면 인간의 현재의 자 연에 대한 태도와 이해가 바로 미래에 살게 될 사람들에게도 연장되 고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현대의 개개인의 이해관계와 미래에서도 인간을 존중하는 사람들에게 열려져 있는 인류의 안녕은 서로 긴장관 계에 있다. 그리고 이 간장관계는 자연의 재화를 무한정 사용할 수 없 다는 사실에서 더욱 첨예화된다. 그러므로 이 긴장은 우리로 하여금 도덕적 노력을 요구한다. 인류가 오늘날 비인간적 방향으로 잘못가고 있는 것을 이제 정상궤 도로 가게 하려고 할 때, 인간과 자연과의 올바론 교제를 문제삼는 것 은 참으로 긴요한 과제이다. 자연보전은 과학의 노력과 우연한 새로운 기술 개발만으로 충분하 지 않댜 또 이제는 우리가 기술 이전의 원시상태로 돌아가는 길도 막 혀 있으므로 기술 이전의 환경을 의식하면서 개개인이 자기 자신의 환경문제에 책임질 것을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먼 미래 에도 인간이 인간을 존중하면서 살 수 있기 위한 자연파괴의 효과적 방지는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이 평등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 정하는 철학적 • 정치적 사고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인간의 생 활 세계로서의 자연에 대한 책임은 물론 국가가 일차적으로 져야 하 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다 해결될 수는 없다. 환경윤리의 과제는 어떤 상태에서도 자연보호를 위해서는 누구나 자기의 불이익을 감수할 용의를 지니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모두, 죽 인류 전체는 항상 자연과의 교제에서 사려깊게 행동할

수 있는 기본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신학적으로 그 리고 윤리학적으로 금욕의 전통이 새롭게 교육되어야 한다 . 97 )

97) H. Ringel in g, (Hg .), Zu riick zur Askese? christlich e Etl tlk und die Grenzen des Wachstu ms, in Neue Hamanita 't(G ii terslo h, 1975), 112-123 쪽 ; D. Mieth , Die neuen Tuge n den, Ein eth is c her Entw urf(Diisse ldorf , 1984), 105 쪽 이 하 참조.

그리스도교의 환경윤리는 자연을 좋은 것으로 만드신 하느님께 감 사하고 자연을 보전하고 존속시키는 것에 대하여 인간이 전적으로 하 느님께 대하여 책임지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므 로 지상에서 완전한 행복에는 결코 도달할 수 없다. 그리고 항상 무엇 인가를 추구하기 때문에 지상에서 완전한 행복을 구한다는 것도 불 가 능하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의 현 존재에서 인간과 자연과의 올 바 른 관계가 만족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를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인간과 자연의 연대성에 관한 폭넓은 안목을 가지고 실천적으로 자기 룰 억제함으로써 자연환경 보호의 중요성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이것 은 바로 그리스도교인과 그리스도교 사회 단체의 임무이다. 인간이 하느님의 창조의 협력자로서 보다 나은 자연을 위해 일해야 하는 임무와 자연을 보전해야 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리 스도교 윤리의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자연이 오로지 인간만을 위한 인간의 세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필자는 그리스도교의 수도자들이 항상 부르는 하느님을 찬미하 는 노래를 인용하면서 이 글을 줄이려고 한다. 천지가 그롤 찬송할 것이요, 바다와 그 중의 모든 동물도 그러할지로다 .

제 5 장 생태윤리학에 대한 비판적 고찰 생태윤리학은 응용윤리학으로, 원리윤리학처럼 낙관적으로 이론계 획을 수립할 수 없다 . 따라서 대부분의 응용윤리학이 그러하듯이 생태 윤리학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보편적인 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직관 에 호소하기도 하고 담화나 합의를 통하여 이해를 요청하고 있다. 그 러므로 우리는 생태학적 위기극복의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생태윤리 학의 여러 관점들을 다음과 같이 나누어 보고 이를 비판적으로 요지 만 살펴보기로 하자. 공리주의적 관점에 대한 반론, 감성주의(感性主 義 , Asth e tiz ism us, Okolog isc he As th e tik)적 관점에 대한 반론, 자연권 (또는 자연의 고유권설)에 대한 반론, 동정(同 情 )의 윤리에 대한 반론, 진화론적 관점에 대한 반론.

l 공리주의적 관점에 대한 반론 l.l 인간 이외의 존재자의 생존권 불안정 인간 이외의 존재자도 엄밀한 의미에서 생존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견해에 대해서 공리주의자들은 부정적이다. 비른바허 (B im bacher)1), 패 스모어 (Passmord) 등은 이 점 을 비 판한다. 예컨대 오존층의 보호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이익에서 강요되어 나 온 것이지, Q 분자나 크롤 원자 (Chlora t om) 의 권리나 보호와는 무관 하다. 토양의 침식방지도 인간의 이익과 상관되는 것일 뿐이며, 바람 에 씻기지 않도록 하는 토양의 권리와는 무관하다. 다시 말해서 공리 주의적 관점은 인간의 이익 중심적이며 인간 이외의 자연을 수단으로 서만 인정한다. 1.2 미래세대의 권리 불인정 미래세대는 지금 여기서 권리를 가질 수 없다. 공리주의자들은 무한 히 많은 미래세대를 위해 의무를 부가한다는 것은 패러독스가 아니냐 하는 문제, 즉 미래세대가 현세대와 꼭같은 필수품과 이해관계를 가질 것인가를 확인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현세대가 희생해야 하느냐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 문제에 대하여 캄바르텔 (Kambar t el, 1988), 렌 치 (Ren tsch, 1990), 리샤르 드 조르주(Ri chard de George , 1979) 둥은 현 세대가 미래세대를 위하여 희생하는 것을 반대한다. 그러나 비론바허 (Bim bac her, 1988), 회슬레 (Hosle, 1991), 오트(Ott, 1993), 요나스(J onas, 12)) 0J. . PBaism smb aocreh,e rM(h arnsg's. )R, eOspk oo lnosgii be i liutyn dfa Er thN ik, 131 쪽 이 하 참고. atu r e(London : Duclcwort h, 1980), 2 판, 서문 XII 참고.

1979), 렌크 (Lenk, 1987), 스파에 만 (S p aemann, 1980), 빌 란트 (W i eland, 1989) 동은 현세대가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다. 예컨대, 현재의 자동차 판매 문제와 핵발전 문제는 공리주의적으 로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른바허, 스파에만, 마이어­ 아비히 등은 자동차 자유판매를 반대한다 . 3 ) 그들은 미래세대도 한정된 화석연료 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1.3 맹목적 인간우월주의에 대한 반론 루트레이(R. Rou t le y)는 인간 중심주의와 공리주의는 인간 우월주의 (Human Chau vini sm) 임으로 이를 거부할 것을 주장한다 .4) 공리주의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이익만을 극대화하려는 개인 이기주의 및 집단 이 기주의의 산물이다 . 1.4 환경비용 (1) 개인은 벌지만, 공인(公人)이 그 대가를 지불한다(〈Pri va t e gains, Publi c costs > ) .자 유시장경제는 생산성의 제고와 생산비의 최소화를 위 해 노동자,소비자, 환경을 희생시키지 않을 수 없다(Elkingt o n, Burke, 1989). 소음, 먼지, 유해가스 방출, 페기물 등은 산림, 건물, 인명 및 생물의 안전과 건강에 엄청난 손상을 초래하고 있다. 소위 사회적 비용은 기 3) Konrad Ott, Okolog ie und Eth ik( Tii bin gen, 1993), 116-127 쪽 ; Joe l Fein b erg, Die Rechte der Tie r e und zukiinftige r Generati on en, in : (hrsg. ), Bim b acher, Okolog ie und Eth ik(S tu .ttgart, 1986), 140 쪽 이 하 참고 . 4) R. Routl ey , Ag ainst the Inevi tab il ity of Human Chauv inism , in Good- pas te r , ed., Eth i c s and Problems of the 21 Centt 1ry (N otr e Dame, 1'!7 9 ) 참고.

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고, 많은 경우에 돈으로 환산될 수 없다 . 사회적 총생산 (Bru tt oso zial p rodu ct: BSP) 과 국민의 안녕은 비례하지 않는다 .5) 〈 BSP 가 생활의 질과 수준의 기준이 된다는 생각은 시대착오 적 이다 (Konrad Ot t, 1993).> 따라서 실제로 환경비용 (Umwe lt okono mi e) 을 어떻게 계산하며 이를 누구에게 어떻게 변상시킬 수 있겠느냐 하는 상품가격과 세금문제 등의 문제가 대두된다. (2) 경제성장을 어떻게 조절하느냐 하는 문제는 성장의 한계를 방임 할 것이냐 조종할 것이냐 하는 정치, 경제 및 법적 문제이다 .6) 1.5 욕구충족 개념의 내용 변화 요구 트리베 (T ri be, 1980) 는 공리주의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생태위기 극복 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7) 그는 공리주의자들이 선( 善 )을 욕구충족이라 고 정의하는 것은 잘못된 발상이라고 주장하고 개념의 분석적 한계를 바판하고, 욕구충족을 정당화는 것을 버려야만 비로소 자연보존이 가 능하다고 주장한다. 2 감성주의적 관점에 대한 반론 2.1 자연경관 보존의 전통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와 찬양은 근세 이후에야 서양회화에 5) Orristian Leip ert, Die heim lic h en Koste n des Forts ch r itts(F ran kfurt, 1989) 참고. 6) Ulrich Hanp ick e, Natu rs chutz -O konomi e(S tu ttgart, 1991) 145 쪽 참고 . 7) Laurence Tri be , Was spr ich t geg e n Plastik b aume?, (hrsg. ), Bim b acher, Okolog ie und Eth ik ( Stu ttgart, 1980), 20 쪽 이 하 참고.

서 나타난댜 8) 서양인에게서는 자연지배가 자연미 성립의 전제이다. 예컨대 영국의 터너 (Turner) 등. 칸트는 자연미와 자연 지배와의 관계를 그의 판단력 비판에서 언급 했다 . 자연의 장엄함이란 관찰하는 주체가 이 강력한 장엄함으로부터 내쳐지지 않는 경우에만 쾌락의 감정을 가지고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안전한 상태에 있을 때에만 자연의 장엄함이 두려울수록 점 점 더 매력적이 된다 . 9 ) 예컨대 태풍이나 폭풍우는 육지의 안전한 곳에 있고 사람에게는 아름답지만 , 갑판에 있는 선원에게는 아름답지 않다. 그렇다면, 자연경관 보존의 한계는 어디까지이며 무엇이 선결요건이 냐 하 는 반문이 생긴다. 다시 말해서 자연보전 자체보다는 인간의 안 전과 이익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2.2 경치의 보존과 관광산업의 딜레마 자연미 는 도덕적 보상을 준다 . 경치는 원기를 회복시켜 준다 .10) 그 러나 관광산업이 발달하면 자연경치는 파괴되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서 개발과 자연보존 중 어떤 것을 우선시해야 하는 딜레마가 생긴다 는 것이다. 2.3 자연미의 보존과 개발의 우선 순위의 문제 11) 로크는 자연미를 우선시할 것을 주장하나 가난한 개발도상국은 돈벌 8) B. 瞬 enber g, Landschaft in der deuts c hen Ma/erei (M i inch en , 1987). 9) Kant, 전집, X(Wi es baden , 1968), 186 쪽. 10) Joa ch im Ritter , L andsc haft, i n : ders., S ubje k ti vitti't(F ran kfurt, 1'!1 4 ), 141-163 쪽 참고 . 11) J. LoveLock, Das Gaia - Pri nz i p(Z ii rich, 1991) ; B. Roc le, Theolog ie der Natu r in, Bim b acher(hrsg. ), Okolog ie zmd Eth ik (1 980), 72-102 쪽.

이를 우선시한다. 2.4 자연미 자체가 항상 선한 것인가? 〈자연미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행복한 삶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따라서 우리가 박물관을 짓고 예술품을 보관하듯이 자연경관을 보존해 야 한다. 단테 (Dan te ) 의 바다인 아드리아해롤 청정해로 보존해야 한다〉 는 주장에 대해 공리주의자인 하르그로브 (Har grove) 는 반대한다 .12) 3 자연의 고유권설(자연권)에 대한 반론 3.1 자연의 권리(자연권)의 한계 로크에 의하면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살 때에만 건강해진다〉 .13) 마 이어-아비히에 의하면, 〈인간은 인간의 인위적인 사회에서가 아니라 동식물과 공기 • 물 • 하늘과 땅과 더불어 사는 자연스러운 공동체에서 만 비로소 참된 인간이 될 수 있다〉. 여기서 건강하다든가 참되다는 말 은 뵈메(助 hme) 나 오트(Ott)의 해석에 의하면 인간이 자연과 함께 육 체적이며 생동하는 교제에 의존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인간은 육 체와 감각을 가진 자연존재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14) 12) E. Hargr ov e, Foundati on s of Env i1o menta l Eth i c s (Eng lew ood, Cliffs, 1989), 86 쪽 이하. 13) Martin Ro ck, 'The olog ie der Natu r, in : Bim b acher(hrsg. ), Okolog ie und Eth ik(S tu ttgart), 5 쪽. 14) Gernot 郞 hme, Fur eine okolog isch e Natu ra sth etik( Fran kfurt, 1989), 73 쪽 ; K Ott, Okologi e und Eth ik(1 993), 139 쪽.

뵈메는 〈자연에 대한 주객 관계 대신에 자연환경과의 화해관계에 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5 ) 그러나 자연의 변화를 최소화하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놔두는 것을 최대화하라는 요구가 도시화에서 실제로 가 능할 것인가에 관하여 우리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오트는 〈나는 말똥가리새 (Bussard) 가 나무 위에서 기어오르고 종달 새가 노래부르는 것을 아주 가까이에서 들을 권리를 갖고 있는가? 그 렇다면 나는 내 몸을 얼마나 가까이 해도 좋은가?〉 16) 라고 묻고 있다. 3.2 자연이용에 대한 권리 문제 클뢰퍼 (M . Go f er) 는 〈홈 없는 온전한 환경(자연)은 도대체 법적인 사 용허가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17 ) 라고 반문했으며, 루만 (N. Luhmann) 은 〈헌법에서는 일할 장소, 거주지와 같은 충분하지 못한 재화에 대한 권리를 수용할 것을 요구하는데, 이것은 항상 도덕적으로 옳다고 여겨 왔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대한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18) 고 말하면서 자연이용에 대한 권리의 문제를 제기했다. 따라서 우리는 자연이용에 대한 권리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이것은 현실에서 충족될 수 없는 것임으로 헌법에 대한 신뢰 를 약화시키고 하나의 정치적 선전에 불과한 것이며, 자연파괴의 구실 울 준다. 둘째, 이것은 인간에 자연을 남용할 수 있는 권리를 마치 보 장해 준다는 오해를 낳는다. 셋째, 국가가 그러한 자연을 이용할 권리 를 국민에게 허용해야 한다면 국가는 어떤 자격으로 그렇게 할 수 있 는가를 우리는 유의해야 한다. 넷째, 그러한 권리 부여에는 자연보호 15) 앞의 책, 같은 곳. 16) K. Ott, 앞의 책, 141 쪽. 17) Martin Klofe r , Zurn Grundrecht auf Umwelt sch utz ( Berlin , 1986), 13 쪽. 18) N. Lu hmann, Okolog isch e Kommunik atian (O pla den , 1986), 124 쪽.

가 선결요건이댜 다섯째, 환경보호 규정에 대한 위반을 명백하게 적 시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댜 1 9} 자연의 고유권을 인정한다면, 실제로 인간의 자연이용권을 어떻게 인정할 수 있는가? 자연에 대한 인간의 권리 약화가 이성적이다. 4 동정윤리학에 대한 반론 4.1 동물에 대한 동정(同情)의 한계 볼프 (Ursula Wo lf)는 환경윤리학과 동물에 대한 동정이 상관된다는 것에 강한 반론을 제기한다 . 그녀는 환경과의 적절한 교섭 문제와 어 떤 관점에서 동물이 도덕적 의무의 대상이 될 수 있느냐는 물음은 별 개의 물음이라고 한다 .20) 그러나 동물과 환경의 엄격한 구분을 받아들 일 수 없고, 동정윤리학(同情倫理 學 , Mitli edse thik)은 생태윤리학의 논 의 의 일부분이 라고 본다 .21) 동정윤리학은 인간 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다. 크니게 (Knigg e) 에 의하면 동물도 인간처럼 고통을 느낀다 .22) 따라서 그는 동 물에게 고통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동물을 거칠게 다루는 자 는 인간도 거칠게 다룬다는 칸트의 논증을 그도 받아들였다. 파인베르크 (Fe inbe r g , 1980) 와 트리베 (T ri ebe) 도 동정윤리학을 지지한 다. 그러나 동물에 대한 동정과 채식주의자는 합리적인 동물보호와 자 연보호의 논거가 될 수 없다 .23) 그것은 말못하는 자연에 대한 편견이 19) Lu hmann, 앞의 책, 124-149 쪽 참고 . 20) Ursula Wolf , Das Tie r in der Moral(Fran kfurt, 1980), 148 쪽 이 하 . 21) Bir nba cher, 앞의 책, 118 쪽 ; Maye r -Abic h, 앞의 책, 104 쪽 참고 . 22) Knigge, Uber den Unga n g mi t Menschen(Essen, 1987), 334 쪽 .

다라는 반론이 가능하다. 4.2 동물의 생존권의 문제 동물은 의식, 지향성, 자아관계, 기억력, 이해관계의 분별력, 개성, 언어구사 능력, 도덕적인 분별력 등을 가지고 있느냐에 대한 논의가 난무한다. 헨드릭스 (H . Hen dri chs) 는 돌고래, 침팬치, 영장류와 같은 고등동물 은 인간 못지않는 신뢰, 연대성, 동정, 공감, 양보, 체념, 인내, 자기포 기와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24) 볼프와 레이건 (T. Rea g an) 은 동물살해 금지를 주장하였다. 특히 레 이건은 동물권을 강조하였다한 동물을 죽이지 못한다면 육식동물은 어떤 먹이로 사육할 수 있는가? 늙고 병든 쓸모없는 가축을 죽이는 것도 비도덕적인가? 권리가 권리 주창자가 스스로 획득하고 요구하는 것이라면, 동물은 그러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가? 동물이 죽음과 고 통을 피하려고 한다면, 동물도 살려는 의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따 라서 동물이 살 수 있도록 인간이 도와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롤스톤 (Rols t on) 은 〈동물은 엄밀한 의미에서 생유권(生有權) 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인간은 먹을 수 있는 것을 먹지 말아야 할 의 무도 없고 초식동물이 되어야 할 의무도 없다〉 .26) 사냥과 물고기를 낚는 것은 과연 금지시킬 수 있는가? 여기서 우리 는 먹이사슬에서 생명손상의 최소화를 주장할 수 있고 동물 살해시 23) Ott , 앞의 책, 147 쪽 참고. 24) Hub ert Hend rich s, Lebensp ro zesse und v½'ss nschaft liche s Denken(Frei bu rg, 1988), 238 쪽 참고. 25) Tom Reg an , All tha t dwell the rein ( Berkerley, 1982) 참고. 26) Holms Rolsto n , ls the re an Ecolog ica l Eth ics ? in : Mind (1976), 93-109 쪽 ; Envir o menta l Eth i c s (Ph ilad elph ia, 1988), 805 쪽.

고통의 최소화를 주장할 수 있지 않는가? 적극적인 의미에서 동물보 호와 생명존중을 시도해야 하지 않는가? 인간을 위한 수의학이 아니 라 동물을 위한 수의학이 요청될 수 있댜 폭설이 내렸을 때의 동물보 호, 동물의 병 치 료 등 . XI) 필 (A F ill)은 생태학적 진단학 (Pa th o gn o mi k) 이라는 말을 만 들 어 사용 하고, 적극적으로 동물보호에 대한 책임을 다할 것을 촉구했다. 5 전화론적 관점에 대한 반론 생태윤리학은 발전의 개념을 가지고 정초하려고 하는 자가 흔히 형 이상학을 끌어들이는 입장에 대해 비판적이다. 그러나 테아르 드 샤르 뎅 (Te ilh ard de chor din)과 같은 예외도 있긴 하다. 5.1 패배주의의 비판 또는 비관주의에 대한 비판 인간을 진화의 이탈자로 파악하는 모든 입장들을 패배적 (de faitisti sch) 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입장에 선 패배주의자들은 인간은 멀지 않는 장래에 멸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많은 종류의 생물이 전멸하고 인간도 전멸한다고 할지라도 자연사의 손실은 경미 한 것일 수 있다 . 왜냐하면 다른 종류의 생물들이 존속할 것이기 때문 이다. 특히, 곤충, 조류, 어류. 패배주의 (De faitism us) 는 아이레 (Ey r e) 가 말하는 운명론적인 패배주 의와 호르스트만 (Hors tmann)이 말하는 활동적(akrtivistisch)인 패배주의 Tl) 참A고l.w i n Fill , Okologi e u 뼈 Sp rac he, in : (hrsg. ), Farmer(1989), bd. 2, 131~141 쪽

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아이레에 의하면, 폭발적인 인구증가로 가까운 장래에 인류는 재난 에 직면할 것이며, 박테리아 문화가 지구를 뒤덮을 것이다 .2B) 호르스트만은 어떤 유의 조절은 지성인의 최후 승리를 위해 불가피 한 것이므로 이를 의도적으로 행할 것을 요청한다 .29) 그러나 지페를레 (S i e f erle) 는 이러한 비관적인 패배주의에 대해 반대 하고 우리는 지금 위대한 자연의 연출 한가운데 있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댜 그는 〈환경위기란 자연의 어떤 특정한 구조의 자기파괴의 과 정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손상'아라는 말은 이러한 구조의 정체 의 전망에서 보면 하나의 과정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 다〉라고 한댜 30 ) 그는 예상하지 못했고 원하지도 않은 인간 행위의 결과가 자연체계 에 미치는 것은 재조종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 3 1) 5.2 인간은 진화의 첨단에 있는가? 렌크 (Lenk) 는 적어도 인간은 그 자신의 이익 때문에 자연을 약탈하 는 짓을 그만 두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인간은 진화의 첨단에 있다 고 말한다 . 32) 동물들에게 권리를 부여하고, 자연의 객관적 가치를 인정하라고 주 장하는 모든 저자들은 인간에게 최고의 권리와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 는 것에 대해 일치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러한 존재자를 산출한 자연 28) S. R Ey re, Man the Pest : Eine Frage des Uberlebens, in Kursbuch Nr. 33. (1973), 53-71 쪽 ; Ott, 앞의 책, 162 쪽에서 재인용. 29) U. Horstm ann, Das Unti er( Fra nkfurt, 1985) 참고. 30) R Sie f e r le, Fortsc h ri ttsfe i nd e(Mi inc hen 1984), 368 쪽 . 31) 앞의 책, 308 쪽. 32) H. Lenk, Zw isch en Wisse nschaft und Eth ik (F ra nkfurt, 19C J2), 34 쪽 참고 .

과정이야말로 어떤 방식으로든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라는 것을 진 화론적 체계론자들은 그들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러나 굴드 (Gould) 에 의하면, 〈인간은 계획되지 않은 우연적 결과의 산물에 불과한 것이다〉짠 다위니즘이 의거하는 인과론, 돌연변이, 우승 열패(優勝劣敗), 자연도태, 진보라는 말은 이제 진화론 (Evolu ti o ni sm) 의 논거가 될 수 없댜 그러나 인간 안에 있는 동물성이 다른 동물과 어 떤 방식으로든 간에 어떤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항상 남을 것 이다. 물론 발전론을 따르는 사람들은 슈바이처의 무조건적 생명외경 에 대해서 거의 공감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생태학적 위기 극복의 방안은 이 방안을 제시하는 사람 이 근본적으로 어떤 자연관과 인생관을 이미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많은 논의와 대화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33) Ste pn en Gould, Der Da ymen des Panda(Fran kfurt, 1987) 참고.

제 6 장 생명보전 • 평화보전 • 자연보전 l 생명윤리와 자연보전 l.l 생명윤리학의 의미 오늘날 우리는 미증유의 생명위기를 맞고 있다. 이른바 생태학적 위기와 생명경시는 우리 사회에서 만연되고 있고 가속화되고 있다. 이 러한 생명의 위기는 근본적으로 생명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부족한 데서 생긴 병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이라는 말처럼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되며 다의적인 뜻으로 사용되는 낱말도 그렇게 혼하지 않을 것이다. 종교가, 문학가, 철학자, 의사, 생물학자 등은 각기 그들 나름대로 생명이라는 말을 중요시하고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그들간에 생명에 대한 하나의 통일된 견해를 찾아보기 어렵고, 더구나 같은 학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간에도 관 점에 따라 생명이라는 말의 의미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 그 이유는 생 명의 본질이 워낙 깊고 넓기 때문에 생명은 어떤 하나의 관점에서 간

단히 모두 표현할 수 없는 신비 를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한 사람은 누구나 생명은 고귀하고 소중한 것이며 신성한 것이라고 믿으며 또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 는 생명이 이 세상 질서의 근본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생명의 가치에 대 한 올바른 이해는 무엇보다도 중대한 일이라고 하겠다 . 모든 생명체는 자연으로부터 나왔으며 자연으로 돌 아간다. 모든 생명 체는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서로서로 교제하면서 응답하고 있 는 파 트너이다. 모든 생물체와 자연은 하나의 연대공동체 (So li dar g eme ins ch aft) 이며 운명공동체이다. 그러므로 자연의 순환을 파괴하는 것은 모든 생 명체에게 심대한 타격을 준다. 모든 생명체와 자연 간의 협동은 언제 나 중요하다. 생명의 위기는 이른바 생태학적 위기와 직결된다. 이 위기는 인류의 역사에서 최근에 들어와 발생했고 극히 짧은 기간에 일어났다. 우리는 지난 200 년 동안 계속 너무나도 많은 공해, 너무나도 많은 자연자원의 낭비, 너무나도 많은 긴장을 만들어냈다. 자원고갈, 오염, 생물종의 멸 절, 산림과 야원(野原)의 상실은 지구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 그러면 이러한 생태학적 위기의 근본 원인은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 가? 그것은 생명의 의의에 대한 인간의 무지와 오해에 기인한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생태학적 위기의 극복과 해결책은 근본적으 로 인간의 내면적 세계의 위기 해결 없이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생 태학적 위기는 인간이 조성한 것이며, 따라서 생태학적 위기는 바로 인간의 위기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생태학적 위기의 근원은 과학 이나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잘못된 생각 속에 있는 것이다 . 생태학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인간관과 자연관에 대 해 이해해야 하며, 미래사회의 구조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킨겔바흐가 그의 책 『생태학, 자연보호, 환경보호』의 말미에서 〈우리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낡은 생각에서 벗어나 자연과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 를 필요로 하며, 동물로부터 벗어나 ‘참된 인 간성’에로 ‘환 골탈 피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자연보호가 가능하다〉고 역설한 것에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제 환경문제가 인간 학의 과제이며 동시에 사회윤리의 과제라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 할 것이댜 생태학적 위기극복의 관건은 근본적으로 생태학적 위기를 유발한 인간이 생명과 이 생명의 안식처인 자연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있다고 하겠다. 이 글 은 다음과 같이 나누어 살펴보려고 한다 . 우선 생명 개념의 다 의성( 多義性) 과 그 정의의 난점을 살펴보고, 생명의 가치의 의미를 밝 혀보고, 구체적으로 생명가치의 구현을 시도해 보고, 생명윤리학의 과 제 를 다루고, 끝으로 환경문제의 윤리적 실천을 다룬다. 1.2 생명 개념의 다의성과 그 정의의 난점 1.2.1 생명 개념의 다의성 생명이라는 개념은 철학자들에게서도 매우 다의적으로 사용된다. 사람들은 생명은 대체로 살아 있는 것(생명체, 생물)과 살아 있지 않은 것(무생물)을 분간해 주는 기준, 즉 목숨을 의미하며 생물의 생활현상 에서 추출해 낼 수 있는 일반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 예컨대 생물 현상은 이러저러한 특성이 있다고 설명될 수 있다. 생물은 무생물과는 달리 조직적이고 물질대사를 하며 성장하고 자신과 같은 것을 번식하 며 자연환경으로부터 에너지를 받아 생명현상을 유지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명현상은 생명의 본질을 다 밝혀주지 못한다. 생 명현상을 연구하는 생명과학은 생명의 본질이나 생명의 기원을 다룰 수 없다. 왜냐하면 생명의 출현(발생)은 과거에 단 한번 일어난 유일한 사건이며 자연과학은 규칙적이며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만을 연구

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으므로 생명의 기원문제는 엄격히 실험과학 의 증명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설사 과학자들이 생명의 기원 을 문제삼는다고 하더라도 그 들은 이미 과학의 영역을 떠나 철 학적 종교적 영역에서 생명을 이해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생명이 초자연적인 계획과 설계에 따라 창조되었다고 믿 는 창조론이나 수십억 년이라는 긴 세월을 거쳐 자연적인 방법으로 무기물로부터 자연발생하여 간단한 생물이 출현 하고 그후 복잡 하고 질서 있는 조직을 갖춘 고동생물로 서서히 진화되었다고 보는 자연발 생론 내지 진화론은 다같이 처음부터 생명에 대한 어떤 형이상학적인 전이해(前理解)에 의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명의 본질에 대한 이해는 필연적으로 철학적이거나 종교적인 전제를 요구할 수밖 에 없다. 오늘날 생명에 관하여 연구하는 과학들이 많다. 실험과 관찰을 중 시하는 모든 생명과학들은 그 방법론에서 한계가 주어지기 때문에 어 떤 특정한 생물들의 어떤 부분을 설명해 주는 데 불과하다. 생명 전체 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현상의 특성을 망라 하고 이를 통합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경험과학들은 생명 전체를 설명할 수 없다. 경험과학은 온갖 생물의 생명현상에 대한 연구결과들 을 실제로 모두 종합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그러한 종합은 자의적이 아니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며, 개별적인 연구결과들을 종합하는 데 있어서도 그것의 가능조건으로 먼저 생명 전체에 대한 이해가 전제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전체를 문제삼는 것은 과학의 과제가 아니 라 철학의 과제이다. 1.2.2 생명의 정의의 난점 생명에는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측면이 있고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생명 이 밖으로 드러 나는 현상은 설명 (erklaren)

될 수 있으나 생명의 본질은 설명될 수 없고 다만 이해 (vers t ehen) 될 수 있을 뿐이댜 우리는 실제로 생명의 깊은 뜻을 은유적이거나 비유 적인 표현을 통하여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생명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해서 우리는 한마디로 일의적( 一 義的) 으로 대답할 수 없다. 왜냐하면 생명은 일회적인 것, 내면적인 것, 영 혼이 것들어 있는 것, 역동적인 것 (Das Dynamisc he), 체험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는 것, 따라서 초합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생명은 기계 론적인 사고, 도식화하는 사고, 수학적 • 합리주의적인 사고로는 파악 될 수 없고 오로지 정서적인 느낌을 통해 이해될 수 있을 뿐이다. 생명의 사전적 정의는 엄밀히 말하면 동어반복 (Tau t olo gi e) 이다. 아 리스토텔레스의 엔텔레키아설을 비롯하여 많은 철학자들이 생명에 관 해서 정의를 내렀지만 그러한 논의는 이미 전제 속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을 분석하는 데 불과할 뿐, 새로운 것을 종합하지 못했으며 생명 의 어떤 필요조건을 제시할 수 있었을 뿐이고, 충분조건을 제시해 주 지 못했다 생명의 의미는 셀러(M. Scheler) 나 베르그송(H. Ber gs on) 이 말한 것처 럼, 우리의 인식 대상이 아니다. 생명의 의미는 명중적(明證的, ev ide nt) 이며 본질직관(木質阿設 Wesensanschaun g)에 의해 이해될 수 있을 뿐 이다. 왜냐하면 생명은 그 무엇으로도 환원될 수 없기 때문이다. 1.2.3 생명의 신비 생명의 본질은 신비로 가득 차 있다. 그 누구도 생명의 신비롤 다 파헤쳐 보여줄 수 없다. 인격이나 사랑과 같은 정신활동이 개념정의가 될 수 없듯이 생명은 개념정의를 할 수 없는 말이다. 사람들은 육체적 생명(식물적 생명과 동물적 생명을 포함), 영혼적 생명, 우주적 생명(동양 철학), 영원한 생명에 관해서 언급한다. 관점에 따라 생명의 범위는 크 고 넓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명 논의는 논점이탈의 오류 또는 일반화의

오류에 빠질 가능성에 유념해야 할 것이다 . 우리는 단지 생명은 의미 있고 (s inn er fu ll t), 가치가 충만한 (wer t er fu ll t) 것이라고 말할 수 있댜 우리는 살생과 생명에 손상을 입히 는 것은 바 람직하지 않은 것이며 생명을 존중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정상한 사람은 생명의 가치 를 부인하거나 의심하지 않 는 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생명은 존귀한 것이라고 믿을 수 있을 뿐이다. 우 리는 이제 생명이 무엇인가라고 물을 것이 아니라 어떻게 생명의 존 귀함을 이해하고 어떻게 생명을 고양시킬 수 있는가 를 물 어야 할 것 이다. 1.3 생명의 가치의 의미와 그 이해 1.3.1 생명의 본래적 가치의 의미 생명의 가치라는 말은 효용가치 또는 쾌락가치와는 다른 의미를 담 고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 생명의 가치는 우리가 생명을 존중할 것을 요구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함부로 생명체를 훼손시키거나 죽이지 말 것을 요구한다. 살아 있는 것은 그 자체로 특별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생명체는 도구적 가치만을 가지는 것으로 보 아서는 안된다. 다시 말해서 생명체는 다른 존재자에 의해 이용될 수 있는 한에서 만 가치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그 자 신의 가치, 죽 본래적 가치(inh eren t values) 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세 가지 물음을 제기할 수 있다. 첫째 물음은 생명의 가치 범위에 대해서이다. 이 물음은 어떤 형태 의 생명이 본질적인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할 수 있느냐 하는 물음이 다. 이 물음에 대해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생명의 질(Qualitat)의 문제가 여기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물음은 서로 다른 생명체가 각기 소유하고 있는 본질적 가치 의 정도에 관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물음은 모든 생명체가 하나의 본질적 가치를 가질 수 있느냐 아니면 어떤 생명체는 다른 생명체보 다 더욱 본질적으로 가치가 있을 수 있느냐는 가능성에 관한 물음이 다. 즉 본래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존재자들은 가치의 서열(hi erarch y, Ran g ordnun g)을 포용할 수 있느냐는 문제 이 다. 우리는 가장 많은 본질적 가치를 가지는 것은 최고위에 있고 가장 적은 본질적 가치를 가지는 것은 최하위를 점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 각해 볼 수 있댜 본질적 가치가 정도의 문제인가 또는 그것은 어디서 나 똑같은 것인가 하는 물음이다 . 우리는 이 두번째 물음에서 선언적 (al t erna ti ve) 인 대답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세번째 물음은 본질적 가치 자체에 대해서가 아니라 이와 관계되는 문제, 즉 살생을 반대하는 규정의 적실성(適質性, s tring en cy)의 문제이 다. 다시 말해서 〈살생하지 말라〉, 〈살생은 나쁘다〉는 말처 럼 살생을 반대하는 도덕법의 적용범위를 어떻게 정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이 물 음이 본질적 가치와 관계되는 이유는, 만일 어떤 존재자를 죽이는 것 이 나쁘다면 그것을 죽이는 것을 나쁜 것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본질 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이 그로 말미암아 파괴되기 때문이다. 살생을 금하는 도덕법칙은 축차적으로 절대적으로 준수되어야 하는 것 이 아니 라 정 당한 예 외 (a jus ti fied exce pti on) 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살생을 금하는 도덕법의 적절한 범위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 생명의 가치와 인간 아닌 다론 생명체의 가치, 또 생명체의 삶의 터전인 대지(大地)의 가치를 어떻게 조화롭게 이해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는 앞에서 열거한 세 가지 물음을 간단히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로 생명이 본질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말의 범위는 무엇인가? 둘째로 다른 생명체들이 본질적 가치를 가진다고 하는 것

의 정도는 어떤 것인가? 셋째로 살생을 금하는 도덕법의 적실성은 어 떤 것인가? 이러한 물음들에 대하여 사상가 들 에 따라 상이한 대답이 나올 수 있을 것이댜 여기서 우리는 상이한 대답 들 에 대하여 일일이 검토할 수 없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의 이러한 물음에 대하여 이미 반세기 전에 포괄적으로 깊이 생각해 본 철학자가 있다. 그는 알베르트 슈바이처이다. 그는 생명에 대한 의경 (Ehr fur ch t vor dem Leben) 을 갈파했고, 생태학적 윤리학의 선구자의 역할을 했다. 역 사적으로 보면 이보다 앞서 성 프란체스코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 인 간에 대한 사랑, 존재하는 삼라만상에 대한 사랑을 단일한 생명의 흐 름 속에 일치시켜 보았다. 그는 태양과 달, 불과 물, 꽃과 초목, 들 짐 승과 새들을 형제자매라고 불렀다. 그는 〈삼라만상은 자립적인 독자적 존재들로서 그들 고유의 내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설파했다 . 그는 자연과 그의 합일의 궁극적인 원천으로서 모든 피조물에 대한 자비심과 사랑을 호소했다. 슈바이처 의 생명에 대한 외경 사상과 성 프란체스코의 인간과 자연과의 일치 및 동일화와 존재하는 삼라만상에 대한 인간의 사랑은 우리의 생명가 치의 논의의 길잡이가 된다 . 1.3 .2 생명에 대한 올바른 이해 생명의 가치를 논하는 사람들 중에는 아직도 어떤 특정한 인간의 생명만이 본질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 그들에 의하면 어떤 인간존재는 다른 인간존재보다 내면적으로 더 가치가 있 다고 생각하고 모든 인간이 동등하게 창조되었음을 수긍하지 않으려 고 한다. 그들은 모든 인간이 하나의 인류를 이룬다는 생각을 하지 않 는다. 인간은 누구든지 국적, 성벌 인종, 언어, 종교, 재산, 학식, 신체 의 조건(장애유무) 둥의 차별없이 충분하고도 완전한 생명의 권리를 가지고 있음으로 우리는 인간 생명의 가치 범위에 어떤 제한을 가해

서도 안된댜 또 인간의 생명만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 은 소위 인간 중심주의이다 . 그 다음 인간 아닌 어떤 동물의 생명도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인권처럼 동물권 (The rights of Anima l, The Anima l right s) 의 보호를 주장한다. 또 한 걸음 더 나아가 생명의 가치의 의미를 아주 넓게 해석해서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까지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 이보다 더 넓게 우리가 혼히 무 생물이라고 부 를 수 있는 자연에까지 심지어 우주 전체에까지 생명의 의미 를 확대해서 적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베르그송은 〈광물은 생명이 전혀 잠든 상태요, 식물은 생명의 반쯤 잠든 상태요, 동물은 생명이 잠을 깬 상태〉라고 말했다. 불교에서 말 하는 만법유식론( 萬法 唯 識 論)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고려해 볼 수 있 다. 이렇게 생명의 가치의 범위도 생각하는 사람에 따라 달리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극단적인 입장 을 피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합의할 수 있는 점을 찾아보자는 것이댜 〈극단적인 생명의 평등주의〉는 실천에 옮기기 어려운 난점이 있다. 우리는 인간의 생명이 본래적 가치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인간 을 살해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나쁘다고 생각한다면 똑같은 이유로 어 떤 꽃나무를 죽이는 것도 나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생명이 가치가 있다고 해서 어떤 생명체도 다른 생명 체보다 더 좋은 가치를 가진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것은 현실 에서 실현될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인간은 먹지 않고는 살 수 없 다. 많은 경우에 생명체의 희생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모든 형태의 생 명이 똑같이 가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바현실적이다. 그러므로 우리 는 극단적인 생명의 평등주의를 실제로 수용할 수 없고 생명가치의 질의 차등을 고려하지 않울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보다 큰 조화 속 에서 중용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윤리학자들은 자연의 생태학적 상호연관성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앞에서 제기한 세 가지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어느 정도까 지 해답을 얻은 셈이댜 첫번째 물음인 생명 가치의 적용범위는 인간 의 생명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이 그 자신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 이다. 다른 생명체도 본질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할 때, 그것이 어 느 정도이냐 하는 문제와 생명의 질의 가치 구분은 객관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고 우리의 통념과 주관에 의거한다는 것이다. 세번째 질문은 살생을 금하는 도덕법의 적실성에 관한 것인데 살생 은 때로 또다른 생명의 보촌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 정당화될 수 있으 며 부살생( 不殺生 )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적절한 대응, 즉 중용과 조화가 배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불가피하다고 판단 하는 자가 누구이며 무엇을 불가피하다고 하느냐는 의문이 남는다. 1.4 생명가치의 구현 인간은 전적으로 생명보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 우리는 생명 보전을 실현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시도를 고려해 볼 수 있댜 그 첫번째 시도는 모든 생명체와 자연의 고유한 가치를 인정하 는 것이고, 그 두번째 시도는 인간의 윤리적 책임 범위를 확대해서 자 연을 생명의 터전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며, 세번째 시도는 생명의 아름 다움을 느끼고 이룰 예찬하는 것을 아는 것이다. 1.4 .1 첫번째 시도 이제 모든 생명체와 자연은 인간을 위한 도구로서만 의미 있는 것 이 아니라, 그 자체의 고유한 가치와 존재이유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가 동반자 관계, 협 력관계, 연대 공동체임을 깨달아야 한다. 슈바이처는 생명보전에 대해

서양의 전통적 윤리는 거의 배타적으로 인간과 인간과의 바람직한 관계만을 논해 왔고 매우 인간 중심적이지만, 동양의 전통적 윤리학은 인간과 인간과의 바람직한 관계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도 중시해 왔댜 예컨대 동양의 정신은 한마디로 광대화해(廣 大 和階)의 도(道)로 특징지어질 수 있는데, 〈도와 하나가 된 이 세계의 모든 인 류와 생명은 모두 정이 통하는 통일체 (s yrnp a thi c unity) 속에 일원으로 들어와서 여기서 그들은 다같이 안녕과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 다〉(方東美). 그러나 서양에서도 성 프란체스코, 슈바이처, 셸러, 베르그송 둥은 이와 비슷한 사상을 가졌다. 특히 슈바이처의 생명에 대한 외경 철학 은 인간 아닌 생명체(동식물)의 가치와 그러한 생명체의 보호와 보촌 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강조했다. 만민평등과 〈모든 사람이 형제〉라는 사상이 공공연하게 언급될 수 있게 된 것이 불과 일세기도 안된다면 생명의 터전인 자연에 대한 형 제애의 실현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런지 모른다. 우리는 어떤 생명은 다른 생명의 존속을 위해서 때로 희생되지 않 울 수 없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악한 짓이 된다〉. 가령 심심풀이 스포츠로 살생을 하 는 것은 생명의 모독이며 악한 짓이다 . 따라서 한 생명의 보전을 위해 다른 생명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는 경우에도, 우리는 그 희생을 최소 화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어떤 생명체의 가치가 다른 생명체의 가치 보다 더 높다든가 더 낮다고 말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의 생명체 평가 정도는 통념과 전적으로 주관적인 기 준에 의거할 뿐이다. 모든 생명체는 물론, 자연 전체는 공속관계에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에 대해서만 측은지심(側隱之心)을 발휘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동 정심을 동식물과 무생물에까지 확대해야 할 것이다. 최근의 생태학적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인간은 그가 도울 수 있는 모든 생명체를 도와줄 때, 그리고 어떤 생명체에도 해가 되는 일을 삼갈 것을 간청하고 또 여기에 그 자신이 순응할 때에만,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 윤리적이다. 윤리적인 인간은 이 생명 또는 저 생명이 얼마만큼의 값어치가 있는가를 묻지 않으며, 또 그것을 얼마만큼이나 지각할 수 있는가를 묻지 않는다. 그에게는 생명 그 자체가 거룩하다. 그는 나무에서 나뭇잎 하나 함부로 따지 않 고 어떠한 꽃도 망가뜨리지 않으며, 또 어떠한 곤충도 밟아 죽이지 않 도록 항상 주의한다.〉 슈바이처는 〈윤리학은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 해 무한 책임지는 것을 가르친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는 모든 생명체가 자연과 공속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 댜 이것은 바로 생태학적 윤리학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서양의 근세 사상의 주관과 객관, 자연과 인간, 정신과 육체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부터 우리는 벗어나야 한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생명보전에 대한 우리의 책임은 동물보호뿐만 아니라 식물과 무생 물계에까지 확대되어야 한다. 우리는 인간 아닌 존재들이 어떤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를 확인할 방법을 모른다. 그러나 의식을 상실한 사람, 죽은 사람,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의 생명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듯이, 비인간적 존재의 생존권도 존중해야 하며, 이에 대해 책 임질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는 인간과 자연이 본래 하나라는 것(쇼펜하우어의 Urein hei t ) 을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자연과 인간과의 일치에 대한 가르침을 동양사상에서 배울 수 있다. 천(天), 지(地), 인(人) 삼재는 상 생(相生)하면서 온누리를 온전하게 하는 것이다. 1.4 .2 두번째 시도 우리는 인간, 동물, 식물, 무생물 간에 질적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

댜 그러나 이들간의 차이는 실상 아주 작을 뿐만 아니라, 그 차이를 판정하는 기준은 매우 주관적이라 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생명의 존 속이 다른 생명의 희생을 필연적으로 요구할 때 우리는 살생의 정당 한 예외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때 우리는 차등의 원칙을 적용하여 생명의 질의 가치 차이룰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가능한 한 자연계에서의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배려와 혜택을 주어야 할 것이 며, 인간 중심사상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야 한다. 레오폴드 (A Leo- p old) 가 그의 『 땅의 윤리 (The Land E t h i c) 』에서 주장하듯이 인간의 윤리 적 책임은 인간에서 벗어나 땅위에 있는 모든 것에로 확대되어야 할 것이며, 만물의 공생 (s ym b i oses) 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1.4 .3 세번째 시도 우리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누릴 줄 알아야 한다. 자연의 아름다움 을 완성하면서 생명의 신비를 느끼며 생명의 존귀함을 배우며, 우리의 생존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안식을 찾는다. 자연을 우러러볼 줄 아는 이는 생명을 사랑하고 자연을 감히 훼손시키지 못한다. 그러므로 미학 적 감상 능력의 배양이야말로 생명에 대한 의경심을 길러주며, 생명보 전의 지름길이다. 인간은 모든 생명체를 살게 해주시는 하느님의 창조사업의 조역자 (助役者)이며 착한 목자로서 자연의 파수꾼 역할을 하는 자이다. 인간 은 자연의 한 부분이다. 자연은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인간 존재의 한 부분으로서 인간 자신의 실존적 완성의 한 요소이기도 한 것이다. 우 리는 생명보전을 위해서도 생명의 터전인 자연을 온전하게 보전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물이 본래 가지고 있는 천성을 그대로 실현시켜 그 생명발전을 끊임없이 존속하게 하는 것이 도의(道義)가 할 일이다(成 性存存道義之門, 『역경(易經)』).〉 인간이 다른 생명체의 희생으로 살 수밖에 없다면, 인간도 다른 생

명체를 위해 자기의 불이익과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우리는 절제할 줄 아는 살림살이 (o i kodo m, 6 t Ko6oµ) 에서 우리를 살리고 자연을 살리고 생명을 아끼는 법을 실천할 수 있다 . 이제 우리는 청빈한 삶을 살 줄 알아야 한다. 청빈(p auber t as, p ove rty)은 나와 인류와 온누리를 구하는 길이며, 생명가치를 구현하는 길이다. 2 평화와자연보전 인간은 항상 평화롭게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현대처럼 전 인류가 불안 속에서 전전긍긍하며 사는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 과거의 평화문 제는 국지적인 것이었지만 오늘날의 평화문제는 범세계적인 것이 되 었다. 예를 들어 현대의 무기는 극히 짧은 시간 내에 전지구를 파괴시 킬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으며 오늘날 전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생태학적 위기는 지구의 존속조차도 위협하고 있다. 특 히, 교황 요한 바오로 2 세는 1990 년 신년 메시지에서 〈자연자원의 피 폐로 인하여 세계의 평화는 위협당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 속에서 살고 있다. 인간은 이 자연을 떠나서는 잠시도 살 수 없다. 그러나 인간과 자연과의 교섭에서, 당초 에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 즉 자연의 위기와 함께 인간의 위기가 오늘 날 닥쳐왔다. 역사상 그 어떤 때보다 현대의 전지구적인 자연환경의 위기는 인간의 평화에 심각한 위협을 주고 있다. 무분별한 경제 개발 로 말미암은 산업화와 도시화는 자연환경의 파괴를 초래한다. 그 결과 생태계의 순환은 단절되고 생태권의 재생 능력과 자정(自淨) 능력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오늘날의 생태학적 위기는 근본적으로 하나의 생물과 다른 생물 그 리고 모든 생물과 자연환경과의 연계, 즉 만물의 상호연대성이 무너지

기 시작함에 따라 지 구 전체 를 유지시켜 주는 동적 상호작용이 비틀 거리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것이다. 이러한 자연 파괴는 인간의 단견이 빚어낸 결과로서 인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 이것을 해결하는 것은 환경윤리학의 과제일 뿐만 아니라 사회윤리와 인간학의 과제이다. 따 라서 이 글 은 환경 문제가 평화 문제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를 살펴보 지 않을 수 없다. 2.1 평화의 의미와 생태학의 상관성 평화의 의미는 매우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에 대해 커네스 볼 딩은 〈평화라는 말은 너무나도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오 히려 평화에 대한 학문적 접근이 어렵다〉 l ) 고 지적하고 있다. 평화의 개념은 개인의 심리적 상태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사회단체들과, 국가 들 사이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평화의 의미를 소극적인 의미와 적극적인 의미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 소극적 의 미에서 보면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로 파악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갈통은 평화란 전쟁이 없는 상태만을 의미한다기보다 인간이 자신의 능력을 개발시킬 수 있고, 나아가 다른 사람과 조화를 이루면서 모든 갈등과 분쟁을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토론과 타협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 인간 공동체를 창조하는 과정이라는 적극적인 의미에서 규정 하고 있다? 바이츠제커 역시 평화의 개념을 적극적인 의미로서 사람 1) Kenneth E. Bouldi ng, Sta b le Peace(Austin - London : Un ive rsity of Texas Press, 1978), 6 - 30 쪽 참조. 2) J. G altu ng, Peace Research : Past Experien ces and Futu re Pe rspective s, in Peace and Soc ial Str uc tu re , Essay s in Peace Research(At lan ti c Highland : Hu- manities Press, 1980), 244-262 쪽 참조.

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조건이 조성된 상태라고 규정한다.J) 그에 의 하면 삶의 조건들이란 (1) 전쟁으로부터의 해방, (2) 기근과 빈곤으로 부터의 해방, (3) 질병으로부터의 해방, (4) 무지로부터의 해방, (5) 비 참한 주거생활로부터의 해방, (6) 생활환경(곧 자연환경)의 보호, (7) 착 취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8) 국가와 사회의 민주화를 가리킨다. 우 리는 이러한 조건들이 충족되는 상태, 다시 말해서 우리의 삶을 위협 하는 모든 곤란에서 해방된 상태를 넓은 의미로서의 평화라고 말할 수 있다.

3) C. F. V. Weiz sac ker, Der Ung es ic herte Fri ed e(Gott inge n, 1968), 9 쪽 이 하

평화구현운동은 전쟁 유발의 원인이 되는 모든 갈등과 적대관계의 해소, 탈이데올로기화, 상호이해를 근거로 하는 화해와 공존관계 형성, 반전과 반핵운동, 비폭력, 비무장운동, 불평등의 해소, 억압과 착취로 부터의 해방운동, 소의와 빈곤의 극복운동, 그리고 공해, 오염과 같은 자연파괴에 대한 생태학적 자연보호운동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많은 노력들을 포함하고 있다 .4)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평화 문제가 단순히 국제 정치 또는 의교 및 군사학의 문제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평화 의 조건들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인류의 모든 지성이 총동원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평화에 관해서 생각하는 것부터 배워야 한 다. 평화구현은 현대 사회윤리의 중요한 과제이다. 평화는 일조일석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노력이 요구되는 것이며 이 세상, 죽 자연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실천할 때에 비로소 실현 될 수 있는 것이다.

4) R Vog t(h rsg. ), Ang st vonn Fri ed en : iiber die Sc hwierigkeiten der Fri ed en- sentw ick lung ftir d as Jah r 2000(Darmsta d t, 1989), 277-308 쪽 ; 0. K. Flechth e im , 1st die Zukunft noch zu rette n? (Hamburg, 1987), 83-85 쪽.

환경보호, 죽 자연보전과 생태계의 안전이 우리의 평화구현에 중요 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생기

가 넘쳐 흐르는 맑고 깨끗한 산천초목을 바라볼 수 있을 때, 또한 맑 은 하늘에는 새들이 유유히 날고 강과 바다에는 물고기가 넘실거리며 들과 산에는 뭇짐승들이 한가로이 노닐 때, 인간은 마음의 안정과 평 화를 누릴 수 있다. 2.2 인간과 자연의 공존 〈자연!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나왔으며, 자연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도무지 자연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괴테 (Goe th e) 는 일찍이 갈파 했다 . 인간과 자연은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서로서로 교통하면서 응답하고 있는 파트너이다. 인간은 자연의 구성요소로서만 자기를 파 악할 수 있다. 인간과 자연은 하나의 연대공동체 (So li dar g eme ins ch aft), 죽 같은 운명공동체를 이룩하고 있다 . 그러므로 자연순환의 파괴와 자연자원의 남용은 부메랑처럼 파괴를 일삼는 인간에게 심대한 타격을 되돌려주고 있다. 자연의 미래없이는 인간의 미래도 없다 . 그러므로 인간과 자연 간의 협동은 언제나 중요 하다. 인간과 자연은 서로 대적해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은 값싼 슈퍼마켓이 아니다. 자연이 경제적 목적으로만 이용된 다면, 또 자연이 단지 경제적으로만 취급되어진다면,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파괴되고 만다. 그러한 조치는 자연을 평가절하하게 된다. 자 연을 가볍게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고 직접 소비할 수 있는 상품으로 취급하는 자는, 자연과 불행한 관계를 맺게 된다. 자연을 순전히 공리 적으로, 죽 순수한 물질적 효용으로 생각하는 것은 자연의 가치를 잘 못 본 것이다 우리가 자연을 단지 물질적 평가의 대상으로만 본다든가, 경제적 이용의 대상으로만 본다든가, 기술적 계획과 자연과학의 탐구 대상으

로만 본다면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는 심각할 정도로 악화된다. 자연은 거대한 원료 저장소 이상이댜 우리의 자연적 생활공간은 물질적 요구 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쌓아 놓은 한갖된 〈상품〉의 저장소가 아니다. 사람들의 욕구와 기분에 따라 자연을 할부로 이용하는 거대한 슈퍼마 켓으로 보게 된다면,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참혹하게 파괴된다. 자연 을 쇼핑센터로 간주하는 자와 자작으로 생태학적 상품을 가능한 한 많 이 끌어모으려는 자는 자연환경과 삶의 세계에 대한 관계가 좋지 않 음을 입증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자연은 계획되고 만들어지고, 사고팔 수도 있고, 수리 할 수도 있고, 함부로 사용할 수 있고, 종내에는 버릴 수도 있고, 소모 시킬 수 있는 소비재, 가령 자동차와 같은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 자동차는 대용품이 있다. 그것은 순전히 기술적이고 재정적인 문제이 다. 그러나 자연은 아무런 대용이 없다. 도무지 자연과 맞먹을 수 있 는 것이 없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관계는, 자연은 경제적, 기술적 비용(이용) 분석 으로부터 벗어나는 이상적 • 심리적 • 미적 가치를 현시한다는 사실을 인간으로 하여금 통찰하도록 한다. 인간이 마음을 사로잡는 경치를 감 상하고 나서 누리는 풍요함은, 값으로 따질 수 없다. 이것은 마치 아 테네의 아크로폴리스나 반가사유상과 같은 예술품의 가치는 그들에 투자한 자료의 값과 비례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순전히 이용 도만을 따지는 사람은 자연을 말없고 언제나 교환하고 대치할 수 있 고, 근본적으로는 가치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 자연을 기술 • 산업적인 시각으로만 관찰하는 자는 자연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며 자연을 멸시 하고 평가절하한다. 그러한 자는 자기 자신의 영혼까지도 산업화한다. 2.2.1 자연 손상은 의의 손상이다 자연은 결코 물질적인 생활 수단만이 아니다. 자연은 인간이 전적

으로 의존하는 선( 善 )이다. 인간은 자연을 초월해서 자기 자신에게로 오기 때문에, 인간이 자연과 함께 연대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진정한 운명적인 동지임을 자연은 스스로 입증해 준다. 그러므로 자연보호는 인간의 현존재의 조건을 포괄적으로 확실하게 해주는 데 필연적으로 기여한다. 자연과 경치는 현존하고 있음으로 의 의 를 갖는다. 이용될 수 있는 것만을 의미 있고 사랑할 가치가 있다고 간주하는 것은 인간에게는 합당하지 않다. 조작성과 이용성만을 문제 삼는 인간은 자연의 완전한 의의를 상실한다. 현대 사회의 의의위기 (S innkri se) 는 궁극적으로는 우리에게 본래 주 어져 있는 한계가 무너지고 표준적인 기준점이 무시되고 있다는 사실 속에 그 원인이 있댜 인간이 모든 것을 만둘 수 있고,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인간은 잘못 생각하는 것이 며 미친 것이다. 우리가 자연경치(자연)를 문화경관으로 형성하고, 자연을 기습하여 자연을 문화로 변경시키면, 자연적 생활공간의 핸디캡에 의지하게 된 댜 우리는 자연공간을 만들지 않았으며, 자연공간을 만들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기술로 많은 것을 만들고 싶어한다. 자연에 대한 방향 정립이 되지 않고는 인간은 본질적인 안전도 근본적인 올바른 가치도 잃게 된다 . 그러므로 자연과 경치는 의의를 부여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가 고향이라고 부르는 휴식할 환경과 안심하고 거주할 집 을 지어주기 때문이다. 고향을 체험하는 기분은 안식 (Gebor g enhe it)에 대한 행복한 느낌이 다. 고향을 상실한 사람들은 단자(單子)로, 또는 유랑민으로 정처없이 떠돌아다닌다. 그들은 아무런 정체(正體, 자기동일성)도 발전시키지 못 하며, 삶의 목표와 의의도 없이 서로 무관하게 동요할 뿐이다. 어떤 특정한 경관, 예컨대 풀밭, 전원, 숲, 언덕, 호수, 산 둥에 의하 여 성격이 부여된 고향은 〈인류의 요람 (Theodor Heuss) 〉이다. 니체가

허무주의를 근대의 〈가장 섬찍한 손님〉이라고 평가했을 때 , 그는 의의 상실(생의 무의미)을 고향 상실과 연관시켰다. 자연 상실이란 사실상 의의 상실이다. 자연은 참된 거주공간을 마련해 준다. 자연은, 문화적, 특히 인간적 삶의 형성이 비로소 가능하게 되는 기 본적인 생명적 기반을 제공한다 . 그러므로 자연 없는 인간은 문자 그 대로 지반을, 자기의 발 밑에서 확고한 기반을 잃는다. 고향이란 서정 적 • 도덕적 개념일 뿐만 아니라 , 심오한 생태학적 개념이기도 하다. 우리의 고향집을 건축하고 형성하는 것은 〈자연적인〉, 자연스러운 소 여들이다. 자연보호는 언제나 고향보호와 같은 것이다. 고향보호는 인 간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공간의 보호일 뿐만 아니라 동식물의 거 주공간의 보호이기도 하다. 고향이라는 현상에서 인간과 자연의 연대 적 용접이 가장 빨리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안식할 수 있는 집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은 자연환경으로부터의 소의의 결과이기도 하다. 자연과 생명으로 하나 라고 느끼는 사람만이 건강하고 안식을 얻는다. 인간의 내면적 세계, 즉 집의 안위(安危)는 자연의 집의 안위와 운명적으로 상관된다 . 집의 아늑함을 모르는 자는 뿌리가 없는 자이다. 자연에 뿌리 를 내리지 못 하면 인간의 안정도 통합도 없다. 자기의 발 밑의 지반을 잃은 자는 또한 자기 자신까지도 잃는다. 자연 상실과 고향 상실은 허무주의의 징후이며 나락( 奈落 )으로 떨어 지는 지반 상실이다. 대지와 아무런 관계가 성립하지 않고 자연과의 관계가 일정하지 않은 곳에서는 정신적 평형과 정서적 위생에 극심한 장애가 온다. 자연에 이르는 통로가 봉쇄되면, 탯줄이 끊긴 인간은 바 로 사망경새(死亡便塞)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자연으로부터 이탈된 자는 불행한 의식을 갖는다 (Heg el) . 프랑스의 실존철학자이며 소설가인 카뮈 (A Camus) 는 이렇게 기술 했다. 그는 청년시절, 특히 자살할 생각이 엄습해 올 때 자주 자기 고

향의 해변에 가서 앉아 있곤 했다고 한다. 압도해 오는 광활한 바다와 떠오르는 태양은 바라보기만 해도 부조리의 심연에서 쓰러지기 직전 에 있는 그를 지켜주었다고 했다. 거대한 자연의 연출은 우스꽝스럽게 도 자기의 머리를 쥐어짜려고 하는 인간의 오성보다 훨씬 더 의미 있 는 것이 있음을 그의 눈앞에 펼쳐주었다고 했다 . 안정된 적법성을 가지고 있는 자연은 기준점을 부여한다. 자연의 춘하추동의 변화는 어떤 것을 말해 주고 있으며, 우리에게 말을 건네 고 있댜 인간의 삶은 우리를 떠받들고 지지해 주고 있는 자연의 삶과 연대관계 를 맺고 있을 때만 행복하다 . 인간은 신체의 영양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안녕도, 그의 모든 기분까지도 자연에 의존한다. 확 트인 자연경관은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시원하게 하는가! 조용 히 속삭여오는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우리는 삶의 찬가 를 들을 수 있고, 그때 우리는 삶의 의의를 발견할 수 있다. 빅토르 위 고 (V i c t or Hu g o) 는 이렇게 말했다. 〈자연은 말하고 있으나, 사람들이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슬프기 그지 없다.〉 자연 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의미할 때, 자연은 의의를 가진다 . 일찍이 괴 테는 〈자연은 모든 잎새마다 위대한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책 이다〉라고 읊조린 바 있다. 2.2 .2 자연 상실은 가치 상실이다 자연과의 만남을 감사하게 생각할 때 우리는 가치의 의의를 깨우치 게 된다. 가치란 본질적으로 인간의 정서에 속하는 것이다. 자연은 우 리에게 경이(뺨異)의 의의를 전해준다. 왜냐하면 자연은 인간의 능력 을 초월하는 기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꽃과 곤충에게서 작 품의 합목적성만을 본다면, 우리의 세상과 사람은 더욱 초라하게 보일 것이다. 수십만 종이나 되는 식물의 기묘한 색깔을 만든 마술사는 너무나도

색깔이 화려하고 다양한 나머지 〈왜?〉라는 물음을 잊어버렸는지도 모 른다. 자연은 대양, 원시림, 산맥, 푸른 초원과 자연의 향기 속에서 우 리가 만나는 참된 의의를 전해준다. 자연은 성장의 의의를 전해준다. 이 의의를 깨닫는다는 것은, 현대인들이 초조한 나머지 느린 성장과정 을 기술적으로 촉진시켜 보려고 할수록 더욱 더 어려운 것이다. 현대인은 자연적인 발전에 대해서 전혀 시간을 유예하려고 하지 않 기 때문에 세상일에 쫓겨 분주한 나머지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자연스러운 삶의 진행 의의는, 가령 싹이 트고, 잎이 나고, 꽃 이 피고, 시드는 것은 흥분한 초조와 열띤 스트레스 를 풀어준다. 성장 의 의의는 우리 시대의 모든 조작 가능성의 환상은 위험한 망상임을 지적할 수 있다. 자연은 평화스러운 고요와 명상적 안식의 의의를 가르쳐준다. 전인 미답의 골짜기와 환상에 잠겨 있는 연못의 체험은 고요가 무엇인지, 신앙심을 불러일으키는 고독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아마도 심리적, 도덕적으로 숲이 가지고 있는 중요성도 이와 상관시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숲속에서 영혼은 기운을 얻으며, 정서는 재생된다. 숲은 원동력을 채워주는 주요소이다. 숲은 목제업이 이해를 가지고 있는 이용 대상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조건과 정서적인 형 태를 이룬다. 숲속에서의 자연스러운 안식은 평화의 체험이다. 숲의 적막이 정신건강에 좋은 것임을 평가할 줄 아는 자는 인간의 환경과 의 교제에서 오는 긴장을 풀 줄 아는 능력을 가진다. 자연은 아름다운 것의 의의를 전해준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누 리는 것은 인간의 정서를 풍부하게 해준다. 자연에 대한 미적 관계가 없이는 인간은 얼음같이 찬 실용성의 음울한 주체가 되어 야비해지고 황폐화되고 말 것이다. 자연은 삶의 장소일 뿐만 아니라 또한 심리적 요구가 충족되는 장 소이기도 하다. 우리 인간은 자연과 함께 하나의 삶의 공동체를 이루

고 있다 . 2.3 평화구현과 자연보전 인간이 자연보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를 실현할 때 비로소 이 지 구상에서 평화가 구현될 것이다 . 우리는 자연보전을 실현하기 위해 다 음과 같은 세 가지 방향을 고려해 볼 수 있다 . 그 한 방향은 자연의 고유한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고, 다른 한 방향 은 인간의 윤리적 의무의 범위를 확대해서 자연을 인간의 삶의 조건 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며, 세번째 방향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예찬할 줄 아는 것이다. 이러한 방향의 모색은 최근 그리스도교적인 신학자들 사 이에서도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힐페르트, 아우어, 로크 등의 신학자 들이 이에 속한다. 또한 철학자들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관심사가 되고 있다 . 2.3.1 첫번째 방향 자연은 단순히 인간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에서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주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독자성을 가지고 있다. 예컨 대 동물과 식물을 도구로만 취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저술가들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새로운 용어를 사 용해서 표현하고 있다. 죽 동반자 관계, 협력관계, 연대성, 심지어 형제 관계 둥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이 첫번째 방향울 편의상 3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슈바이처의 생명에 대한 외경이라는 구호를 통해 볼 수 있다. 인간은 그가 도울 수 있는 모든 생명체를 도와줄 때, 그리고 어떤 생 명체에도 해가 되는 일을 삼갈 것을 간청하고 또 여기에 그 자신이 순응할 때에만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 윤리적이다. 윤리적인 인간은

이 생명 또는 저 생명이 얼마만큼의 값이 나가는가 를 묻지 않으며, 또 그것울 얼마만큼이나 지각할 수 있는가 를 묻지도 않 는 다. 그에게는 삶 그 자체가 거룩하댜 그는 나무에서 나뭇잎 하나도 따지 않고, 어떠한 꽃도 망가뜨리지 않으며, 또 어떠한 곤충도 밟아 죽이지 않도록 항상 주의한다 .5) 슈바이처의 이 글은 생태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길 잡이가 되었다 . 로크는 슈바이처로부터 자극을 받아 자연에 대한 외경 사상을 환경윤리의 최초의 요청이라고까지 말한다 . 6) 슈바이처는 〈윤리학은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해 무한한 책임을 지 는 것을 지칭한다〉 7) 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는 모든 현상에는 각자가 자기 자신 안에서 느끼는 것과 똑같은 삶의 의지가 있다고 여긴다. (2) 인간은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자연과 공속관계에 있고 아주 밀 착된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환경윤리학의 출발점이다. 환경윤 리학은 자연과 자연의 개별적 구성 부분이 고유권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한다. 서양 근세사상의 주관과 객관이라는 대립적인 이원론의 영 향을 받아 인간과 자연은 마치 적대 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 지만, 근본적으로는 인간이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는 모든 피조물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평등원칙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 다. 바이츠제커는 이와 관련하여 신학자들에게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이제는 신학자들도――그들이 인정하고 있는 기원설의 결과인_ 우리와 동류인 피조물에 대한 형제애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8) 5) Albe rt Schweitz er, Kultu r und Eth ik , in Werke, V. Hg . R. Grabs(Mi inc hen, 1923), 378 쪽. 6) M Rock, Theolog ie der Natu r und ihre anth rop o lo g isc h-eth isch en Kon sequ enzen, in bkologi e und Eth ik , Hg . D. Bim b acher(Stu ttga rt, 1980), 93 7) 쪽A참 조Sc.h weitz er, 앞의 책, 379 쪽.

우리는 자연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단지 동물보호만으로 다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식물이나 무생물계까지 도 인간이 책임지는 전망을 할 수 있다. 비인간적 존재와 사물은 자신의 성분과 질서 기능을 파악할 수 없 기 때문에 개체적 권리의 소유자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죽은 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 의식을 상실한 자 등의 권리를 전통적 규범에서도 이미 인정해 오고 있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맥락에서 그 타당한 근 거 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3) 자연과 인간이 하나라는 생각은 자연이나 자연의 부분을 신적 인 것이 나타나는 양태의 전체로 간주할 때 생길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특히 아시아의 종교에서, 또 그리스도교 이전의 서양의 신화세계에서 도 찾아볼 수 있다. 유가( 儒家 )의 천인합일(天人合 一 )의 자연관과 만물 일체가 인(仁)이라는 왕양명( 王 陽明)의 생명윤리관 등에서 자연과 인 간이 하나임이 아주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드레버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환경윤리는 기존의 그리스도교 자연관의 근본적 수정 없이는 전망이 없 는 단순한 시도에 그치고 만다 . …… 이 근본적 수정은 그 밖의 다른 종교들 과 고대 종교들의 지혜를 그들의 중요한 상징으로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안 된다. 그 자신을 위해서도 태고의 신화를 금기시하는 것을 포기하고 또 자연종 교와의 교류에서, 특히 아직 살아 있는 위대한 인도의 종교성과의 교류에 서 그 신앙이 가르쳐주고 있는 우주론적 • 심리학적 관계를 재발견하는 것, 그리고 이를 실현하는 것을 배우는 것은 그리스도교가 취할 수 있는 유일 한 해결책이다 .9) 8) C. F. Weiz sac ker, Gott es fr ag e und Natu rwissenschaften , in Heute van Gott red en, Hg . M. Heng el und R. Rein hardt ( M i inc hen / Ma inz, l'm ), 167 쪽.

따라서 그는 지금까지 서양의 정신사에서 사이비 범신론으로 또는 무신론으로 취급되어 배척되었던 하나의 종교적 세계의 체험, 즉 하나 의 통일사상으로 되돌아가서 보다 더 근본적인 새로운 종교적 성찰을 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2.3.2 두번째 방향 우리는 앞서 말한 첫번째 방향에 대해, 자연 그 자체는 자신의 가치 를 가지고 있으며, 자연과 인간이 하나라는 생각으로부터 환경윤리 를 정초하려는 시도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다 . 이것은 모두 문명 비판적 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 한편 두번째 방향은 인간과 자연의 올바른 관계를 규명해 보려는 시도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다. 인간 이외의 것이라고 해서 그것이 인 간이 정해 놓은 목적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원료에 불과한 것은 아 니다. 따라서 인간의 책임은 단지 인간과의 관계 형성에만 그치는 것 이 아니라 그 범위가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편의 상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1) 인간, 동물, 식물, 무생물 상호간의 질적 차이에 대한 폭넓은 비 교 타당성이다. 동물, 식물과 비교해 볼 때 그 차이란 실상 아주 작고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동물이나 식물, 암석이 인간처럼 주체라 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이 생간다. 아무튼 동물을 학대하는 것은 인간까지도 쉽게 멸시하게 만든다. 동물과 식물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성을 교육시키는 데에 도움이 된다. (2) 두번째 문제점은 자연과 인간과의 교제에 있어서 그 표준에 관 한 것이다. 그 표준이 자연 그 자체 안에서만 발견되어야 한다면, 자 연을 무엇이라고 보느냐에 따라서 그 표준은 달라진다. 따라서 자연 9) E. Drewe rmann, Der toa lich e Fortsc h ri tt(R eg en sburg, 1981), 147 쪽 .

안에서 나타나는 고통이 삶의 원칙에 가장 깊이 저항하는 것으로서 파악되거나 아니면 다 함께 보전되기를 목표로 하는 삶과 죽음의 형 평으로 지향될 때 자연은 도덕적으로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3) 세번째 문제점은 자연이 자기 목적을 수행한다고 할 때 과연 일 관성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인간성이 인간의 기본적 요구와 갈등을 느 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은 자기 주장의 필연성과의 갈등 에 빠질 수 있다 가령 영양섭취는 생물간에 갈등을 가져온다 . 왜냐하 면 항상 얻는 쪽과 빼앗기는 쪽이 있기 때문이다. 슈바이처 역시 이 점을 시인하면서도 어떤 상태라고 할지라도 삶을 멸절시키거나 손상시키거나 손상시키는 모든 행위는 악이라고 주장했 댜 우리는 이와 같은 딜레마를 기술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기술은 순기능과 역기능을 가지고 있다 . 우리는 환경위기의 해결을 기술 발전 의 억압에서 찾 으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끝으로 우리는 인간과 자연과의 올바른 관계를 아시아의 자연관에 서 찾거나 고대 신화 를 부활시키자는 요청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것이 부활된다고 할지라도 그와 같은 생 각이 실제로 자연을 절대 파괴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줄 수 있느냐 하 는 것이댜 왜냐하면 자연을 신성시하는 사회에서도 사람들이 자연환 경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2.3 .3 세번째 방향 자연을 〈미학적〉으로 바라보는 자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누리기 위 하여 스스로 자유로워야 한다. 그는 배타적 과학적 탐구의 관심으로부 터도 자유로워야 하며, 농사, 건축공학적 배려, 군사작전, 관광지의 구 획정리 등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 미학적 시야는 마음에 와닿는 경관 전체와 관계된다 . 예컨대, 청남색 하늘은, 기후와 어떤 관계가 있 는가?라는 물음으로 죽, 기상학적 관점으로 고찰되지는 않는다. 한 그

루의 보리수가 얼마나 많은 그림자 를 드리우냐는 물 음으로는 보리수 가 직관되지 않는댜 초원을 장차 수확할 건초로 제일 먼저 생각하도 록 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녹색이 눈을 좋 게 하기 때문에, 보고 감탄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미학적 시야는 자연을 아름다운 것으 로 파악하도록 만든다. 우리는 자연의 아름다움에서 바로 쾌적을 발견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의 초경제적, 전기술적 조명은 과학의 자연지배 가 발전하면서 그 빛을 잃었다. 그래서 휴식과 여가 를 위한 경치는 하 나의 유용한 지역으로 변모되었다. 사회는 경치 를 자기에게 알맞도록 만들며, 이용하고 악용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조차도 상업화된다. 다시 말해서 경치의 아름다움이 상품으로 되고 만다 . 자연은 그 자체로 말미암아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을 자연에 대한 미학적 접근에서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소비하고 함부 로 건드릴 필요가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수성을 회복할 수 있다. 이것은 욕심을 가지고 장악하려 하고 주저없이 남용하는 퇴폐한 욕구에 대적한다. 환경미학적 감수성과 자연 손상에 대한 일종의 분별 력이 없다면 인간은 항상 어디서나 즉시 변화를 기획하려 할 것이다 . 환경미학적으로 교양을 갖춘 인간은 자연에 대하여 볼 줄 안다. 그 러한 사람은 자연을 우러러볼 줄 알며, 허심탄회한 상태에서 자연을 누린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황폐화되 고 도덕적으로 타락하기 쉽고, 삶의 의의를 잃고 만다 . 자연 속에서 그 형형색색을 보려는 사람은 자연을 비정하게 구분하고 도식화하고 저울질하지 말아야 하며 눈앞에 나타나는 자연의 신비를 아무런 편견 없이 그대로 쳐다보아야 한다. 미학적 감수성은 생태학적 감수성, 죽 자연에 대한 적극적인 근본 정조( 情 調)와 공감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훌륭한 생태학적 교제의 분위기〉 10) 를 발견한다. 미학적 감상 능력이 없는 사람은 환경보호의 정조를 누릴 기회를

갖지 못한댜 미학적 교양만이 우리의 지구를 파괴하는 물결을 막을 수 있는 방파제를 이룩한다. 이 미학적 교양은 감상적으로 달빛을 보 고 찬탄한다든가 한갖된 자연에 대한 낭만을 갖는 것과는 무관하며,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의의를 교육하고 이를 섬세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이댜 미학적 감정, 즉 아름다움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만이 자연의 손상 에 대한 둔감을 저지할 수 있다. 자연의 매력적인 아름다움을 볼 줄 알면서 자연을 고찰하는 자는 자연을 존중하고 감탄하고 아끼는 자이 다. 자연을 예찬할 줄 아는 자는 그 아름다움을 지키며, 그 아름다움 을 단순히 남용하지 못한댜 11) 10) Martin Seel, Ein e Asth e ti k der Natu r (Fra nkfurt am Main, 1991), 9 - 10 쪽 참조. 11) Hermann Stu rm, Asth e th ik und Umwelt (Tiibin gen , 1'!7 9 ), 77-98 쪽 참조.

제 7 장 동양의 전통적 자연관의 현대적 의의 l 도가(道家)의 자연관의 현대적 의의 도가는 유가( 儒家 )와 함께 중국의 사상계를 양분하며 유가의 자연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 도가사상은 노장자를 중심으로 성립 된다 . 이 도가사상은 그후로 뚜렷한 계승자도 없으면서 동양인의 정신 세계에 깊이 파고 들고 심지어 동양인의 마음(정신)으로 대변되기도 한 다. 도가사상은 기본적으로 농경사회를 바탕으로 자연에 대한 깊은 통 찰과 그에 따른 인간관 내지 삶의 방법에 관하여 논한다. 도가사상의 핵심은 도(道), 죽 대자연과 천지관(天地觀)에 의해 해명된다. 그러므 로 우리는 도가의 자연관을 천지관을 통해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우 리는 도가의 대표적 인물인 노자(老子)와 장자(莊子)의 자연관을 살펴 보기로 하자. 그리고 송대의 민간도교의 권선서(勸善 書 )에 나타나 있 는 자연존중사상과 한국의 신선사상을 살펴보기로 하자.

l.l 노자의 자연관 1.1.1 노자의 천지관 『노자』는 주지하다시피 5 천여 자로 되어 있는데, 천( 天 ) 및 천자( 天 字)와 연결된 단어의 용례는 88 번 나온다. 예컨대 천, 천지, 천도( 天道 ) 등은 자연을 의미한다. 천은 도(道)로 대치되어 사용된다. 도는 태초의 물(物)이며 형이상자(形而上者)로서 적요(寂 度 )하며, 자본(自 本 ), 자근 (自根), 자족(自足)하는 것이다. 우리는 도가의 자연관의 기초를 이루는 자연과 도의 개념을 노자의 『도덕 경 (道德經)』 에 서 찾아볼 수 있다. 혼돈 중에 이루어진 것이 있었다. 이것은 천지보다 먼저 생겼다. 고요하고 텅 비어 있었다. 스스로 존재하되 변하지 않고 두루 행하여도 다함이 없다. 천하의 어머니라 부를 수 있으리라 .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하나 단지 도라고 부를 뿐이니라. 굳이 그것을 정의해 본다면 크다고 할 것이다. 크다는 것은 무합으로 연장된다는 것이며, 무한으로 연장된다는 것은 끝간 데까지 닿는다는 것이며, 끝간 데까지 닿는다는 것은 곁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는 크다. 하늘은 광활하고 땅은 넓다 . 그리고 인간도 크다. 우주에는 큰 것이 네 가지 있는데, 인간은 그 중에 하나일 뿐이다. 인간은 땅을 따르고 땅은 하늘을 따르고

하늘은 도를 따르고 도는 자연을 따른댜 1 )

1) 老子, 『道德經』 25 章, 有物混成先天地生 寂分廢分獨立不改 周行而不苑 可以 爲天下母 吾不知其名 字之曰道 强爲之名曰大. 大曰造 避曰遠遠曰反 故道大 天大地大王亦大 域中有四大而居其一爲人法地 地法天天法道 道法自然.

우리는 이 글에서 노자에게서 도는 더 이상의 상위개념이 없는 궁 극적 실재이며 도가 곧 자연임을 추론해 볼 수 있다. 왕필(王弼)의 주 석에서도 〈자연이란 가리키는 바가 없는 말이면서 궁극의 표현이다〉 라고 기술되어 있다? 따라서 도는 한없이 크고 넓으며 일체의 것을 모 두 포괄하는 천지, 즉 자연을 성립시키고 유지시키는 근원적 실재이다.

2) 王弼, 『老莊注』, 25 章, 自 然者, 無稱之言, 窮極辭也.

노자는 도(道)를 무(無)라고 표현한다. 〈무는 천지의 시초에 대한 이 름이고 유( 有)는 만물의 어머니에 대한 이름이다 . 천하만물은 유에서 생기고 유는 무에서 생긴댜〉 3)

3) 앞의 책, 1 章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

노자에 의하면 만물은 천지의 소산이며 결국 도는 천지를, 천지는 만물을 낳는 관계가 된다. 노자는 이러한 천지를 마치 대장간의 풀무 와 같다고 비유하였다. 풀무의 속은 텅 비어 있으나 그것은 움직일수 록 더욱 많은 기운을 낸다. 천지는 비어 있는 듯하나 실은 무궁한 가 능성이 잠재해 있다 .4)

4) 『道德經』, 5 章, 天地之間 其猶梁蓋平 虛而不屈 動而兪出.

천지는 자연현상의 본원이다. 자연현상은 끊임없이 바뀐다. 따라서 천지도 그러하다. 그러나 도가 장구(長久)하듯이 천지도 장구하다(天長 地久 天地所以能長旦久者以其不自生 故能長生: 7 章). 노자는 하늘을 도라고도 했다 .5) 그가 천을 단독으로 사용할 때 이것 은 자연을 의미한댜 그는 되돌아가는 것이 도의 운동이라고도 했다 .6)

5) 『道德經』, 73 章, 天乃道 天地所惡 執知其故.

6) 『道德經』, 40 章, 反者道之動.

〈만물은 반드시 그 근원으로 되돌아간다〉는 법(法)에 따르는 것이 자 연, 즉 도의 법이댜 그는 〈 만물이 근원 으로 되돌아가듯이 되돌아간 다음에야 큰 순응에 이를 수 있다〉 7 ) 고도 했댜 그는 〈하늘의 도는 마 치 줄을 당긴 활과 같댜 높은 것을 누르고 낮은 것은 들어올린다 하 늘의 도는 이렇게 남음이 있는 것을 덜어서 부족한 것에 보충하는 것 이다〉 8) 라고 했다. 우리는 이 말에서 자연은 넉넉한 데서 덜어서 부족 한 데 보태주고 많아지면 덜어내고 모자라면 보태준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며, 『 주역(周易)』의 건곤사상(乾坤 思想)과 유사함을 찾아볼 수 있다.

7) 같은 책, 65 章, 興物反矣然後乃至大順. 8) 같은 책, 77 章, 天之道 其猶張弓與 高者 仰之 下者擧之 .

우리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노자에게서 자연은 더 이상의 상 위개념이 없는 궁극적인 실재의 개념임을 추론해 볼 수 있으며 자연 은 단지 물질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정신계까지도 포함하며 따 라서 인간과도 분리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1.1.2 천인합일(天人合-) 노자는 천지와 만물의 관계는 성인(聖人)과 백성의 관계와 같다고 말했다. 〈천지가 어질지 않아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 여긴다. 성 인이 어질지 않아 백성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 여긴다.〉 9) 우리는 노자 가 〈인간이 땅을 따르고 땅이 하늘을 따르고 하늘이 도(道)를 따르고 도가 자연을 따른다〉고 한 말에서도 이와 같은 내용을 찾아볼 수 있 다. 그는 인간은 만물이 그 본원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본받아야 한다 고 말했다.

9) 같은 책, 5 章, 天地不仁以萬物爲腐狗 聖人不仁 以百姓爲魂拘.

나는 그 생동하는 만물이 다시 정적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을 본다. 그 싱싱하고 무성한 수목의 꽃과 잎이 조락하여 각기 그 뿌리로 되돌아 간댜 그 뿌리로 돌아간 것을 고요라고 한다. 이것을 천명(天命)대로 돌아간다 고 한다. 천명대로 돌아가는 것을 영원불변의 법칙이라고 한다. 사람이 이 불변의 법칙을 아는 것을 밝음伊月察〕이라고 한다 . 이 불변의 법칙을 알지 못하고 망동(妄動)하면 불행을 초래한다 . 이 영원불변의 법칙을 알면 그 마음은 천지와 같이 커서 만물을 다 포용 하게 된다. 만물을 다 포용하는 것은 공평한 것이다. 공평하면 그것은 바로 왕도( 王 道)이며 왕도는 곧 하늘의 법이다. 하늘의 법은 바로 도이다. 도는 영원한 것이다. 이 도를 따르면 뜸아 마칠 때까지 위태함이 없을 것이다 .10) 우리는 여기서 노자가 궁극적으로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지향하며 이를 이상으로 여기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는 근본적으로 인간과 자연을 구분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미 그 어머니를 아 니 그 자식을 안댜 그 자식을 알고는 다시 그 어머니를 지킨다.〉 11) 여 기서 어머니는 대자연이며 자식은 인간을 포함한 만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도를 통해서 만물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대자연 을 통해서 인간을 알 수 있으며, 인간을 통하여 다시 대자연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10) 같은 책, 16 章, 吾以觀其後 夫物芸芸各歸其根 歸根曰稱 是謂復命 復命曰常 知常曰命 不知常妄作凶 知常容 容乃公 公乃王 王乃天天乃道 道乃久 沒身不苑. 11) 같은 책, 52 章, 匠得其母 以知其子槪知其子 得守其母.

1.1.3 영원불변성과 덕(德) 노자에 의하면 〈덕의 영원불변성은 의도함이 없이 만물을 생성하고 화육(化育)시킴에 있어서 만물은 어느 하나 이에 비롯하여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다〉 .12) 노자는 도가 천지의 시원(始源)이면서 궁극적으로 만 물을 생성하고 화육시키는 능력을 지녔으며 만물은 도로부터 화육의 능력을 내재하게 된다고 보았고, 이를 달리 말해서 덕이라고 칭하였 다. 그래서 노자는 〈도는 천지만물을 생성시키고 덕은 이 들 을 잘 키운 다〉 13) 고 말했다. 여기서 덕이라 함은 유가에서 도덕이라는 개념이 주 로 인간의 행위규범에 국한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도가에서 는 인간을 포함한 만물의 자연현상을 지배하는 원리로서 보다 넓은 개념으로 사용한다. 노자는 자연의 도에 대해 그의 『 도덕경 』 마지막 장에서 이렇게 말 한다. 〈하늘의 도는 이익을 주고 해로움을 끼치지 않는다.〉 14) 왕필의 주석에 의하면 이 구절의 뜻은 〈도의 작용이 영원토록 만물 을 생성하고 있기 때문이다(動常生成之也)〉라고 해설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노자가 자연의 도에 대해서 대단히 신뢰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노자의 자연관은 농본문화의 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 다. 농사란 시기에 맞추어 갈고 심고 가꾸고 거둬들여야 하거니와 어 떤 이유라도 이 자연의 시기를 놓쳐서는 그 해의 농사를 망치기 마련 이다. 그래서 농부는 그 시기에 대하여 태만하지 않고 농사에 충실해 야만 파종된 씨앗이 도의 생성화육의 작용에 힘입어 풍성한 수확으로 결실맺게 된다. 노자는 이와 같은 농본문화의 생활양식을 바탕으로 한 천연자원의 보고로서의 자연에 대해 깊은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12) 『老子』, 38 章, 道常無爲 而無不爲. 13) 『老子』, 51 章, 道生之, 德畜之. 14) 『老子』, 81 章, 天之道 利而不害.

우리는 흔히 자연은 정직하다는 말을 듣는다. 노자는 〈하늘의 도는 따로 편애함이 없이 그 운행작용이 일정불변하며 항상 착한 사람과 함께 한다〉 15) 고 말했댜 따라서 정직한 자연은 정직하고 부지런한 인 간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면 주었지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믿을 수 있 다. 여기서 착한 사람이란 당시의 부지런한 농부를 지칭한다고 이해해 도 될 것이댜 노자는 자연을 깊이 신뢰했기 때문에 인간은 자연의 꾸밈없음, 죽 무위(無爲)를 따를 것을 가르쳤다. 그는 인위적인 예의규범이나 말 많 은 유가의 학문주의의 조작을 반대하고 무위자연의 투쟁 없는 삶을 중시했다. 1.2 장자의 자연관 우리는 이제 도가의 중심인물 중의 한 사람인 장자의 자연관을 살 펴보기로 하자. 장자는 도가사상을 확대 심화시켰다. 〈그래서 그의 사 상의 요지는 노자의 발언에 귀착한다〉고 사마천(司馬遷)은 논평했다 .16) 『장자』 33 편(篇) 전편에서 천자(天字)는 279 회, 도자(道字)는 306 회 나온다. 우리는 천과 도는 자연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도가에서 자연의 의미는 노자에게서 문자 그대로 스스로 그러함이라 고 할 수 있는 것처럼 장자에게서도 스스로 부리인 것(自本自根 )17) 이며, 따라서 모든 만물의 근원으로 이해된다. 1.2 .1 천지의 무한성 장자는 천지를 시간적으로 무시무종(無始無終)하고 공간적으로 무 15) 『老子』, 79 章, 天道無親, 常與善人. 16) 司馬遷 『史記』, 卷 63, r 莊子列傳」, 然其要本歸於老子之言. 17) 『莊子』, 『大宗師」.

궁무진(無窮無盡)하다고 한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시초가 있다고 하 자. 그러면 그 이전 아직 시초가 없던 때가 있을 것이댜 그리고 아직 시초가 없는 때조차 없던 때가 있을 것이다.〉 1 8) 그러면 장자가 천지를 무한하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가? 그것은 현실의 대소(大小), 장단( 長短 ) 동의 상대적 사고방식 을 타파하기 위해서 언급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천하 에 터럭 끝보다 더 큰 것은 없다. 그러므로 큰 산도 작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장자에 의하면 사물 그 자체는 큰 것도 작은 것도 아 니다. 동일한 사물에 대해서 사람들은 크다고도 할 수 있고 작다고도 할수 있다. 장자는 도의 관점에 서면 시비도 귀천도 없다고 한다. 그는 인간의 분별지(分別智)를 타파하려고 했다. 천지가 무한하다고 보면 사물은 모두 평등하고 균일하다. 장자는 이를 천균(天均), 천예(天使), 제물( 齊 物)이라고 말했다. 도는 무한함으 로 무한의 관점에 선다는 것은 바로 도를 본다는 것이다. 〈천균은 자 연의 본래의 상태인 동시에 정신의 경계이다.〉 왜냐하면 시비와 장단 등의 일체의 분별은 무한의 관점, 죽 도의 관점에서 보면 소멸되고 마 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자는 현세의 상대적 시공(時空)의 세계를 초월한 경지를 가리키는 말을 하곤 했다. 〈무궁(無窮)에서 논다(以遊無窮, r 遣造遊』)〉, 〈서해(四海)의 밖에서 논다(遊平四海之外, 『齊物論』)〉, 〈무궁의 문으로 들어가서 무궁의 들에서 논다(入無窮之門 遊無窮之野, r 在有」)〉 등. 1.2.2 자연무위(自然無爲) 장자에게서 자연과 도는 피조물이 아님은 물론이다. 따라서 천지도 18) 『莊子』, 『齊物論』, 有始也者 有未始有始也者 有未始有不未始有始也者.

피조물이 아니댜 천지만물은 아무런 의도나 목적도 없다 . 그래서 그 는 〈천지는 함이 없으되 하지 않음도 없다〉 19) 고 했다. 그는 〈하늘은 무위로서 맑고 땅은 무위로서 안정되어 있다. 그러므 로 하늘과 땅 두 개의 무위가 서로 결합하여 만물이 화생(化 生 )한다〉젝 고 했다. 그러므로 만물을 창조하는 조물주가 따로 존재할 수 없다. 장자에 의하면 만물은 변하지만 변하게 하는 것은 만물 그 안에 있다. 그는 이 를 물(物)의 자화( 自 化), 또는 독화(獨化) 또는 무시 (無侍)라고 도 했다 . 1.2.3 자연과 인위(人爲)의 구벌 장자는 자연( 天 )과 인위를 구별했다 . 그는 〈소나 말이 네 다리를 가 지고 있는 것은 자연이며 말의 머리에 고깔을 씌우거나 소에 코뚜레 를 끼우는 것은 인위〉 21) 라고 했다. 그는 〈자연은 안에 있는 것이며 인 위는 밖에 있는 것이다〉 22) 라고 했다. 그는 〈자연을 열어 놓아 그대로 따르면 덕이 생기고 인위로 하면 도둑이 생긴다〉 23) 고 했다. 그는 또 〈무위하여 존귀한 것은 천도이고 무위하여 누가 됨은 인도(人道)이다. 주인은 천도(天道)이고 신하는 인도이다. 천도와 인도의 차이는 서로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24) 고 했다. 그는 이렇게 자연과 인위를 구별했다. 오늘날 일상용어에서 자연의 의미를 인위적인 것의 반대 개념으로 사용하거나 소박하다는 뜻으로 사용하는 것은 노장자의 원전적인 뜻 19) 같은 책, r 至樂」, 天地無爲而無不爲也 . 20) 같은 책, 「至樂』, 天無爲以之淸 地無爲以之寧 故兩無爲相合 萬物皆化 . 21) 같은 책, r 秋水』, 牛馬四足是謂天 落馬首 察牛鼻是謂人, 22) 같은 책, 같은 곳, 天在內人在外. 23) 같은 책, r 達生』, 開天者德生 開人者賤生 . 24) 같은 책, r 在有』, 無爲而尊者天道也 有爲而累者人道也 主者天道也 臣者人道 也 天道之與人道也 相去遠矣 不可不察也.

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댜 한국인은 자연스러움을 인위적인 것보다 더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자연을 도시의 대칭으로 간주하고 심산유곡 (深山幽谷)의 산수간(山水間)에서 그옥하게 자적(自適)하는 상태에서 세속과는 절연된 지역으로만 생각한다면, 이것은 도가의 자연관과는 별개의 자연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노자나 장자의 근본 뜻은 일찍 이 도시를 벗어나 심산유곡의 자연에로 돌아갈 것을 주장한 것이 아 니라 오히려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사회 속에서 그 들 로 하 여금 근본적인 자각을 일깨우고자 했던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회를 등지고 조용한 산수간으로 은둔할 것을 주장하거나 이 를 찬 미한 것은 노장사상이 아니라 특히 위진(魏晋)시대의 일부 현학자의 태도나 주장이었다. 위진시대의 원적(院籍, 201-263) 과 혜강(柚康, 223-262) 등은 산천초목을 자연이라고 언명하고 자연을 인간사회와 대 칭으로 구별하였다. 이 영향이 뒷날 잘못 전해져 사람들은 노장자도 사회를 둥지고 조용한 산수간에서 은둔할 것을 주장하거나 찬미했던 것으로 오해한 것이다. 도가에서 자연은 단지 산천초목 같은 물질계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 니라 정신적인 것까지도, 인간사회까지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장자 는 자연스럽지 못한, 즉 인위적인 것을 자연적인 것과 구별하려고 했 을뿐이다. 장자는 〈덕이란 모습이 없다〉고 말하면서 이를 해설하기를 인간의 마음이 마치 잠잠한 물처럼 표면과 속이 투명하가를 요구했다. 그는 투명한 마음울 바탕으로 하여 유가의 지나친 예교주의(禮敎主義)와 그 허식성(虛飾性)을 고발하기도 했다. 1.2.4 자연과 인간의 합일 장자는 천지와 만물과 인간은 도에서 하나가 된다고 보고 자연과 인간을 별개로 보지 않았다. 따라서 자연과 인간은 대립하거나 대적하

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장자는 〈천지와 나[我〕는 함께 태어났으며 만 물과 나는 하나 〔 一 〕 가 된다〉 25) 고 말했댜 그러면 〈만물과 나는 하나가 된다〉고 말할 때의 그 하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하나는 형상을 초월한 것으로 불가사의한 것이며 언어문자로 설명이 불가능한 것이 다.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이것은 바로 말하고 생 각하는 것의 대상이 된다. 또한 그것은 말하고 생각하는 것과 상대되 는 위치에 있게 되는 동시에 나와도 상대적이 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의미에서 하나는 만물과 더불어 내가 하나가 된 다고 말할 때의 그 하나가 아니다. 장자는 그 하나는 설명될 수 없다 고 한다. 이를 두고 풍우란(馮友蘭)은 만물과 나는 하나가 된다고 말할 때의 그 하나는 절대적이며 명가(名 家 )의 혜시( 惠施 ) 등은 변론을 알 고 있었으나 변론하지 않는 변론이 있음을 몰랐고 말하지 않는 말(不 言之 言 )이 있음을 몰랐다고 명가를 논박하면서 장자가 혜시보다 진일 보했다고 평했댜 26) 만물은 비록 서로 같지는 않으나 다만 모두 무엇이 되기에 충분하 고 또 무엇이라는 점에서 같다. 만물은 모두 똑같이 도에서 나왔다. 그 러므로 도의 관점에서 보면 만물은 하나가 된다. 사람에 의해 이루어 지는 사물들간의 차이점과 구별은 모두 상대적이다. 그래서 장자는 〈구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루는 것이다. 그 이루는 것은 결국 파 괴이다. 무릇 사물의 관점에서 보면 건설도 파괴도 없고 ‘다만 도로 되돌아가고 도를 통해’ 하나가 될 뿐이다〉라고 말했다.'Zl) 그러나 사물을 분별하는 경계를 넘어선 혼연(禪然)한 하나를 안다는 것은 성인의 경지라 할진대, 보통 사람들이 이룰 어떻게 수용할 수 있 25) 『莊子』, 『齊物論』, 天地與我並生 而萬物與我爲一. 26) 馮友蘭 『新原道』(대만, 1967) : 『중 국철학의 정신』, 郭信煥 옮김(서광사, 1993), 103 쪽 참고. 27) 『莊子』, 앞의 책, 其分也成也, 其成也 穀也 凡物無成旅段 復通爲一.

겠는가? 생명을 보전하고 해악을 피한다(全生避 害 )고 한 말은 결국 성 인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비로소 가능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세 속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자연보전 문제에 대해 어떤 분명한 해결 책도 제시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다 . 왜냐하면 도가에 있어서 최고 의 경지, 즉 진인( 眞 人)에 도달하는 방법은 지식을 포기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장자는 〈그 하나라 함은 하늘과 함께 함〉 28) 이라고 말했댜 그러나 어떻게 우리가 하늘과 함께 하며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된다 는 말인가? 그래서 장자도 〈그 알지 못하는 곳에서 멈출 줄 아는 것 은 지극한 일이다. 누가 말로 하지 않는 변(辯)을 알 것이며 누가 표현 하지 않는 도를 알 것인가?〉 29) 라고 반문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1.3 도교의 자연관 1.3.1 도교의 자연존중사상 우리는 앞에서 도교의 자연관의 바탕이 되는 노장사상에서의 자연 관을 살펴보았다. 우리는 이를 도가의 철학사상으로 보고 종교적인 도 교와 구분해서 살펴볼 수 있다. 우리는 대부분의 중국인의 신앙과 자 연관의 기충(基層)을 이루고 있는 도교의 자연관을 살펴보기로 하자. 도교의 중요한 경전으로는 포박자(抱朴子), 삼동계(參同契), 황정경 (黃庭經) 등이 있으나 12 세기초 송대(宋代)에 이루어진 이창녕(李昌齡) 이 지은 『태상감응편(太上感應篇)』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 냐하면 이 책의 체계는 『도덕경』과 홉사하지만 그 내용에 유불사상과 신선, 방술(方術), 양생 (養生), 점 복( 占 卜 ), 음양오행 (陰陽五行), 천 인상 감(天人相感) 둥의 사상이 혼재되어 있으면서도 권선(勸善)을 가르치 28) 『莊子』, r 大宗師』, 其一與天爲徒. 29) 『莊子』, 『齊物論」, 故知止其所不知 至矣 執知不 言 之辯 不道之道.

고 있으며, 특히 중국 민중의 신앙의 기초를 이루고 30) 있을 뿐만 아니 라 또한 한국의 도교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 도교의 경전, 죽 도장(道 藏 )으로는 많은 종류의 서책이 있으나 특히 『태상감응편』은 자연존중에 대한 분명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예컨대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찾아볼 수 있다 . 모든 사물에 자바를 베풀어라( 慈 心於物) . 초목과 곤충이 라도 함부로 해치지 말라(昆蟲 草 木 猶不可 傷 ). 약을 써서 나무 를 죽여선 안된다 .31) 도교는 단지 장수연명(長 壽 延命)과 초자연적인 삶과 도만을 구하고 일반적인 도덕을 무시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는 도교의 가 르침 속에 구체적인 자연존중사상과 그밖에 사회윤리의 성격이 있음 을 찾아볼 수 있댜 1.3.2 한국의 신선 사상과 도교 한국의 도교를 논하면서, 특히 한국 도교의 자연관을 논하면서 한국 의 고유한 신선사상과 도교와의 깊은 연관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김범부(金凡父)는 〈신선의 선도(仙道)는 한국에서 발생하였으며, 후 에 중국이 도교의 신선사상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32) 고 한다. 왜냐하 면 〈중국 상대의 문헌에는 신선설이 없으며 유교의 가장 중요한 경전 인 13 경( 經 )에도 들어 있지 않으며 노자에도 없고 춘추시대(春秋時代) 까지도 없기 때문이다. 『장자』에서 비로서 선인(仙人)이라는 말이 나 오며 초사(楚辭)에도 나타나는데, 중국에서 신선설이 시작되는 시기는 30) 小柳司 氣 太, 『 老莊思想과 道敎』, 김낙필 옮김(시인사, 1988), 325-339 쪽 참고 . 31) 앞의 책, 326-339 쪽. 32) 金凡父, 『풍류정신』(正音社, 1986), 145-146 쪽 참고.

전국시대가 된다〉 .33) 仙은 人변(邊)에 山자(字)를 쓴 것인데, 이것은 산에 사는 사람, 곧 산인(山人)이댜 仙의 음(音)이 센이나, 새이라고 하며, 이것은 무당을 말하는데 경상도에서는 산이가 곧 무당이다. 무당은 서로를 사니라고 부르며,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사당이라는 말은 사니당의 줄인 말이 댜 땅재주를 부리는 사람을 아우구산이라고 부르는데 아우구산이는 강신(降神)하는 데 쓰는 소리이다. 이 산이니 센이니 하는 어원은 샤만 (Shaman) 에서 온 것이다. 몽고어로 샤만은 곧 무당이다. 만신(萬神)이 라고도 부르는 무당을 가리키는 말로 샤만의 약어이다.~) 화랑(花郞)을 국선(國仙)이 라 하고 화랑사(花郞史)를 선사(仙史)라고 한 것은 샤머니즘을 계승한 때문이다. 신라뿐만 아니라 고조선 이래 선교(仙敎)는 우리나라에 일관되어 온 민간신앙이다. 진시황(秦始皇)과 한무제( 漢 武帝)가 신선을 동해에서 구하고도 삼신 산불사약(三神山不死藥)을 구했다는 둥, 모든 신선의 본거(本}泉 )를 요 동(遼東)의 동쪽인 해동(海東)에서 구했다. 우리나라 산에는 신선태(神 仙台)와 신선바위가 도처에 있다. 입산하여 수도하는 사람을 선(仙), 곧 신선이라고도 하였다. 풍류를 즐기는 우리나라의 선비의 신선풍미 (神仙風味)나 신선정조(神仙情操)는 어떤 시대에 갑자기 생긴 것이 아 니라 아득한 옛날부터 이미 있었던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의 도교의 연원(淵源)에 대해서는 중국으로부터 들어왔다는 견 해도 있으나 신선사상의 원류를 우리나라에서 찾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보여진다. 이능화(李能和)도 김범부와 마찬가지로 신선(道敎)의 연원을 한반도에 두고 이 렇게 말했다. 단국 삼대의 신화와 도가의 삼청설(三淸說)은 모두 우리 해동의 신선의 33) 같은 책, 145 쪽. 34) 같은 책, 145 쪽.

연원이라고 국내의 서적들이 한결같이 말하고 있다. 예로부터 신선을 말하 는 사람은 누구나 황제(黃帝)가 공동에 있는 광성자(廣成子, 신선의 이름) 에게 도를 물었다고 한댜 그러나 동진(東晋)의 갈홍(葛洪)이 지은 『포 박자 (抱朴 子)』 에는 황제가 동쪽 청구(靑丘, 우리나라)에 가서 자부(紫府) 선생 에게 삼황내문( 三皇內 文)을 받았다고 한다 . 자부 선생은 동왕공( 東王公 )으 로 서 그 가 동방에 있는 까닭에 세상에서 동군( 東君 )이라고 이르는 것이다 .l5} 역사적으로 노장사상을 기초로 한 중국의 도교가 이 땅에 전해진 것은 유 불 사상의 전래와 거의 같은 시대로 추측된다 . 이것은 『 삼국사 기( 三國史記 ) 』 에 기재되어 있댜 36) 그러나 적어도 우리나라에 본래 있 었던 신선사상과 중국에서 들어온 교단도교가 합해져서 한국의 도교 가 오늘날까지 연면하고 있다고 보아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문제삼는 것은 신선사상이 한국인의 자연관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를 살피려는 것이므로, 신선사상과 도교와 무교의 연원에 관한 논의는 일단 중단하기로 하고, 신선사상에 나타난 자연존 중 사상을 살펴보기로 하자. 고려 태조 왕건( 王建 )의 십훈요(十訓要, 943 년) 2 조(條)에 이 런 구절 이 있다 . 모든 사원은 모두 도선(道說)이 산수(山水)의 순역(順逆)을 점치고 개창 (開 g lJ)한 것이다. 도선이 이르기를 〈내가 점정(占定)한 곳 이외에 마루 절 을 지으면 지덕(地德)을 감손(減損)시켜 왕업이 오래가지 못한다〉고 하였 다. 나는 후세의 국왕, 공후(公侯), 후비(后妃), 신하들이 각기 원당(願堂)을 핑계삼아 혹시 더 짓지나 않을까 크게 걱정하는 바이다. 신라말에 다투어 절을 지어 지덕을 감손케 한 결과 결국은 멸망에 이르렀으니 경계하지 않 35) 李能和, 『朝鮮道敎史』, 이종은 옮김(보성문화사, 1977), 201-203 쪽 . 36) 『三國史記』, 이 병도 역주(을유문화사, 1980), 318-322, 376 쪽 참고.

을 수 없다 . 37 ) 우리는 이 구절에서 왕건의 자연(地 德 )보호사상을 엿볼 수 있고 오 늘날 한국에서의 무수한 사찰(寺利)과 교회의 난립에도 경종을 울린다 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큰 건물을 많이 짓지 않았다 . 우리는 그 이유를 도교의 가르침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불선( 儒 佛仙)은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형성해 왔다. 그 중에서도 신선사상은 한국인의 건강과 자연에 대한 이해에 큰 영향을 미쳤다. 우리는 이를 한국의 시( 詩 ), 서( 書 ), 화( 畵 ) 를 통해서 얼마든지 찾 아볼 수 있다. 한국 선비의 신선취미(神仙 超 味)는 도교적이라고 해도 지나 치지 않을 것이다. 선비는 풍월을, 자연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러나 이 신선사상은 유감스럽게도 서양의 합리주의사상으로 말미암아 질식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서양에서도 비합리주의가 교지(巧 智 )나 논하는 합리주의를 배격하고 동방의 도교에 관심을 쏟고 있음에 우리 한국인도 자연스러움이 가지고 있는 그 의미 를 다시금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다 . 이상에서 살펴본 것을 바탕으로 우리는 도가의 자연관으로부터 오 늘날 우리에게 요청되고 있는 자연보전과 자연존중의 사상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도가사상으로부터 〈사물이 자연스럽게 운행해 나가는 데 무리하게 인간이 그 자신의 욕망울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는 무위사상을 배울 수 있으며 자연을 신뢰하고 자연으로부터의 말 없는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자연생태계의 신비로 운 조화(天鈴)와 균형을 깨뜨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무욕(無悠)해야 하며 무심(無心)과 허심(虛心)과 무위를 자연으 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기교와 미작(迷作)과 허식( 虛 37) 『高 麗史 』 2, 太祖 26 年 條 .

飾)을 멀리할 수 있을 때 인간을 포함한 천지만물은 하나되어 순성(順 性)에 따를 수 있을 것이며 자연환경문제는 저절로 해소될 것이다. 2 유가의 자연관의 현대적 의의 2.1 『주역』과 생명과학 2.1.1 서언 서양인이 르네상스 이후 과학기술을 크게 발전시킨 것은 사실이다. 그들은 전세계의 비밀을 다 개척해 보려고 한다. 물질을 구성하는 원 자의 비밀을 개척해 보려고 했고 달에도 상륙해 보았다. 통신, 의술, 과학은 괄목할 만한 발전을 가져왔다. 그들은 이제 생명의 신비까지도 파헤쳐 보려고 하고 인공수정, 심지어 생명의 합성까지도 시도하고 유 전자 조작을 넘어 생물복제, 인간복제도 시도하고 있다. 생명과학의 응용산업은 2000 년대의 주도산업이 될 것이라고 믿고 제 3 의 산업혁명을 기대하면서 지금 전세계는 온갖 노력과 엄청난 투 자를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노벨 (Nobel) 이 다이너마이트의 역작용 을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것처럼, 유전공학기술도 장밋빛 전망만 할 것 이 아니라 잠재적 위험성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미리 대비해야 할 것이다. 생명체를 다루는 생명과학은 종교적, 사회윤리적 문제를 야기시킨 다. 그러므로 21 세기를 눈앞에 둔 우리로서는 생명과학의 문제점, 특 히 그 역작용이 어떠한 것이며, 한국의 전통사상, 특히 역학의 관점에 서 생명과학의 문제를 고려해 보는 것은 시의(時宜)에도 적절한 것이 될 수 있다. 이제 동양사상도 이 시대의 징표를 읽으면서 현실적인 절 박한 문제들에 대해 현실적인 응답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역학을 현대 사회 문제에 적용시켜 볼 경우 먼저 유의해야 할 것은 고대의 사고방식은 현대인, 특히 서구적 사고와 궤(軌)를 같 이 할 수 없어서 함부로 현대 서양사상과 비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서구어는 낱말의 뜻을 고정시키고 동일률(同 一 律) 에 의 거하지만, 한자어는 고정불변하는 추상이 아니라 변화율동하는 관념 들을 제시한다. 이 율동적 관념들은 상보적인 대립과 상호작용을 통해 서 그때그때 규정될 뿐이다. 더구나 과학(생명공학)과 철학 • 종교( 『 주 역.!l)의 비교연구는 근본적으로 연구의 시발과 착상이 각기 다르기 때 문에 자연현상과 생명을 두고 고찰할 때도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생각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동서철학의 근본적인 차이를 무시하고 단순히 서 양의 생명과학과 『주역』의 생명원리를 비교하는 것은 삼가야 할 것이 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동서 비교철학이 서양철학의 관점에서 이루어 진 면이 많다면 이제는 동양철학의 관점에서 서양사상, 특히 과학사상 을 비판하고 검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연구는 여러 가지 점에서 불 비(不備)한 것이며 하나의 시론(試論)에 불과한 것임을 부가(附記)한다. 필자는 생명과학을 좁은 의미의 생명공학에 초점을 두고 이를 『 주 역』의 생명원리에 근거하여 비판적으로 고찰해 보려고 한다. 이 글은 생명과학의 연구범위와 문제점을 살펴보고, 『주역』의 생명질서의 원 리를 별견(警見)하고, 생명공학의 응용에 대해 비판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2.1.2 생명과학의 연구범위와 문제점 (1) 생 명 과학의 개 념 정 의 의 문제 생 명 과학(lif e sci ence) 은 생 명 현상 이나 생물의 여러 가지 기능을 밝히고 그 성과를 의료, 농업, 환경보 존 등에 응용하려는 종합과학으로서 최근에 새롭게 논의되고 있는, 생 명공학 (b i o t echnolo gy), 분자생물학, 유전공학 등을 망라한 명칭이다 .38)

세포증식을 다루는 세포공학, 유전자재조합의 기술을 다루는 유전 공학, 생명현상을 분자 수준에서 연구하려고 하는 분자생물학 등은 학 문적 분류 및 정의에서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생명공학을 생물공학이 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생물공학이란 응용생물학으로서 생물체 혹은 세포 구성 요소를 이 용하는 공학으로 생물학, 화학, 유전학, 면역학, 발생학, 생화학적 지식 에 공학기술을 접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생명공학 내지 생물공학 과 분자생물학과 유전공학 등은 그 연구내용에서 중첩되고 있다. 유전 공학은 생명공학의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생명과학을 자연과학적인 생명공학에만 기반을 두는 것에 반대하여 철학(윤리학), 종교까지도 포함시켜 생명을 정점으로 하는 새 로운 종합과학으로 아주 넓은 의미로 사용하기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댜 따라서 생명과학의 개념정의는 일의적( 一 義 的)이지 못하다. (2) 생명공학의 중요 기술과 연구범위 생명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 는 현대의 생물물리학자, 분자생물학자, 생화학자, 의학자들의 대부분 은 유기체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이미 알려져 있는 물리 • 화학 법칙으로 결국에 가서는 설명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고 말해도 이 말을 거부할 사람은 오늘날 없을 것이다. 이 경우에 대다수의 생명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유물론적 환원 론자가 되고 또 그 가운데 많은 과학자들은 이 환원론을 생명체계를 서술하거나 그밖에 생명체의 발생과정에 대해서도 적용하려고 할 것 이다. 그들에게는 살아 있는 유기체에서 볼 수 있는 구조가 원리상으 로 역사적 과정일 수 있다. 그들은 유전으로 이 역사적 과정이 축적되 고 자연선택 (na tur al selecti on , 자연도태)으로 적응력을 가지며, 계층적 38) 조완규, 「생명과학』, 『 동아대백과사전』 (1983), 13 권, 450 쪽 ; Enz ykl op a iiie Phil o - sop h ie und Wisse nschaft sth e o rie 2(1984), 549-550 쪽 참고.

이며 열역학적으로 가능성이 더 작은 상태가 된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그들을 생리학적 환원론자라고 부 르 거나 진화론적 환원론자라고 부르기 도 한다 . 이 환원론자들은 유기체가 원리적으로 기계에 비유되어 설명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것이다. 그 들 은 기계론적 설명을 믿 는다 . 따라서 유기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론적으로 기계도 할 수 있 어야 한다는 추론이 나올 수 있다 . 따라서 이론기계론자( 理論機 械 論 者)가 아니고는 환원론자가 되기 어렵다. 환원론자들은 모든 사물과 사건에 대한 설명을 기계적 과정의 서술 로 환원된다고 주장함으로써 극단적인 기계론적 입장을 취한다. 그들 은 유전자 재조합, 세포융합 (cell fus io n ), 핵치환 (nuclear tran sp la nta t i on ) 과 같은 기술과 이것을 생산과 연결하는 세포나 조직의 대량 배양, 발 효 등과 같은 물질 생산기술을 사용한다. 그러한 기술들을 간단히 살 펴보기로 하자 .39) (기) 유전자 재조합 기술 유전자 재조합이란 간단히 말해서 유전자 의 암호 테이프라고 할 수 있는 DNA 를 세포로부터 분리시켜 시험관 내에서 잘랐다가 이었다가 하는, 즉 유전자조작 기술이다. 다시 말해 임의의 생물유전자를 잘라내어 이것을 운반할 수 있는 다른 생물의 DNA 에 연결하여 그 생물의 유전자로 만들어 발현시킴으로써 삽입된 유전자가 발현하는 산물, 즉 단백질을 생산해 내는 기술이다. 예컨대, 사람의 유전인자를 대장균과 같은 미생물에 삽입하여 증식 시키면 대장균은 자기 것인 줄로 알고 자기에게 삽입된 사람의 유전 인자를 발현시켜 원래 사람의 생체 안에서만 만들어지는 물질을 생산 하게 된댜 대장균의 증식속도는 매우 빠르기 때문에 사람의 생체 내 에서는 매우 미량으로 생산되는 물질을 대량으로 얻을 수 있다. 39) Priinros e, S. B., Modem Bio tec hnolog y(B lachwell Scien ti fic Publi ca ti on s, 1987) ; Mohr, H, Natu r und Moral, Eth ik in der Bio lo g ie(D armsta d t, 1987) 참고.

(니 세포융합 기술 세포융합은 원래 인접한 두 개의 세포가 융합하 여 막 (membrane) 이 소실된 결과 다핵화가 일어나는 현상을 의미하지 만, 생명공학에서의 세포융합은 일반적으로 서로 다른 두 세포를 인공 적으로 융합하여 두 세포의 특징을 동시에 갖는 새로운 세포를 만드 는 기술을 말한다. 30 년 전까지 만해도 보통 세포간에는 융합하지 못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생명공학의 발달에 의하여 세포융합이 가 능해졌다. 예컨대, 이제는 사람의 세포와 쥐의 세포를 융합시킬 수 있게 되었 댜 이 기술은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호기심을 심어주었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땅위에서는 토마토가, 땅 속에는 감자가 열리는 이른바 포마토(p oma t o) 생산을 위 한 시 도는 바로 감자와 토마토의 세포를 융 합해서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 그러나 이것은 아직도 성공하지 못했 다. 두 세포의 융합은 성공한 것으로 보이나, 토마토는 열리지 않았고 감자만 아주 잘게 열렸을 뿐이다. (다 핵치환 기술 분화된 체세포 (soma ti c cell ) 또는 착상된 배(匠, emb ry o) 의 핵을 분리하여 불활성화된 핵을 갖고 있는 세포나 핵이 완 전히 제거된 세포의 세포질 속에 이식함으로써 이식받은 세포의 세포 질과 이식된 핵으로 구성된 새로운 세포를 만드는 일련의 기술을 핵 치환이라고 한다. 핵치환 기술은 복제동물의 생산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예컨대, 개구리의 대장상피세포에서 추출한 핵을 배의 핵과 치환시켜 소위 복 제개구리 (clone fr o g s) 를 얻는 데 성공했다. 이 기술은 포유동물인 생쥐 에서 도 성 공했고 최 근에는 가축에 까지 적용해서 복제동물 (clone animal) 의 생산 가능성을 더욱 높게 만들었다. 이 기술의 발달은 복제인간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가상을 하게 만들었다. (3) 생명공학 응용의 문제점 생명공학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생명 체의 세포와 유전자를 다루는 기술로서 그 응용범위는 매우 광범위하

기 이를 데 없댜 우리는 왜 그토록 과학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를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살펴보기로 하자. (기) 식량 문제 소위 인공수정은 이제 일반화된 기술이다. 예컨대 한 마리 암소는 1 만 개 이상의 난자 를 가지고 있으나 출산에 사용되 는 것은 20 개 미만이댜 그래서 최근에는 우수한 유전형질을 가지고 있는 암소에게 성선자극호르몬을 주사하여 과배란을 유도하여 난자들 을 채취하고 체외수정시켜 다시 대리모에게 이식시키는 소위 수정란 이식 (emb ry o tran sfe r ) 기술이 실용화되고 있댜 면역학을 이용하여 수 정란의 성을 사전에 감별하여 원하는 성을 인위적으로 선택할 수 있 게 되었고, 일란성 쌍태아를 낳게 할 수도 있게 되었다. 이의에도 유전공학의 기술을 이용하여 지방이 적은 돼지육종, 산유 량이 많은 젖소의 대량 생산 등이 가능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지금 활발히 실험하고 있다. 생물의 형질을 결정하는 유전정보의 집합체인 염색체를 조작하여 물고기의 경우 암컷만을 낳게 한다든가, - 물고기의 맛을 높이기 위해 3 배체라고 불리는 암컷과 수컷의 특성이 없는 물고 기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 이제는 동물의 성을 인간이 원하는 대로 조 작할 수 있다. 식물의 경우는 세포융합이 더욱 용이하여 촉성재배법이 쉽게 실용 화되고 있다. 포마토 외에 피와 벼의 잡종, 오렌지와 탱자의 융합에 의한 신품종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니 백신 개발과 유전인자 조작 유전자 재조합을 이용하여 각종 백 신 (va ccin e) 을 만들고 있다. 백신이란 바이러스나 세균 또는 그 독소들 이 몸속에서 증식하여 병을 유발하지 못하도록 병균을 미리 박멸하거 나 그 해독을 약화시키는 물질을 말한다. 이것은 면역학의 중요 연구 과제이다. 이것을 몸에 접종시켜 항체 생산울 촉진시키면 병원성균에 대한 면역을 후천적으로 인위적으로 할 수 있다. 이것은 대체적으로 안전하지만, 최근에는 병원성 세균을 따로 대량으로 생산하여 세균전

에 사용하고 있다 . 유전병은 유전자에 결함이 있어서 생기는 질병이다. 그래서 유전인 자, 죽 DNA 서열상의 결함을 인위적으로 수정하거나 다른 정상적인 유전인자 를 대체하 는 연구가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여기서 유전인자 가 삽입되는 대상세포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체세포요, 다 른 하나는 생식세포(g erm cell) 이다. 문제는 생식세포를 대상으로 할 때 아직 인간으로 태어나기 전의 태아의 유전자를 조작한다는 점이다 . ( 더 유전공학적 방법에 의한 생리활성 물질의 대량 생산 혈압 상승 작용이 있 는 레닌 (re nin)이라고 불리는 단백질은 소 3 만 5 천 마리의 뇌 하수체에서 겨우 0.5m g만을 추 출 해 낼 수 있다고 한다. 생체 내에는 이것보다 더 적 은 양으로 존재하면서도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하는 생리 활 성 물질 들 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단백질 계통의 생리활 성 물질들을 유전공학의 방법으로 합성해서 대량 생산할 수 있다. (己) 미생물의 이용 사람들은 오랫동안 곰팡이, 효모, 세균과 같은 미생물을 발효식품에 이용해 왔다. 분자생물학의 발달은 미생물에 대 한 연구로부터 비롯했는데, 미생물을 이용하는 생물공학 기술의 발전 은 식품, 의약품의 생산과 환경, 에너지, 광업 등에 광범위하게 응용되 고 있댜 특히 최근에는 썩지 않는 플라스틱, 비닐 등을 분해하는 데 미생물을 이용하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인간과 생물 체를 얼마든지 죽일 수도 있는 세균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가능해졌다 는 사실은 생명공학 발달의 위험성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동물의 성별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문제, 태아의 유전인자 조작의 문제, 복제동물과 형질전환동물의 발생, 침팬지에게 인간의 정자를 인 공수정시키는 문제 등은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존엄성 및 자연질서 의 파괴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생명공학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든지 그대로 무책임 하게 방관할 수 없다. 생명공학은 식량, 질병, 보건 둥에 순기능을 하

기도 하지만, 동시에 역기능을 하기도 한댜 생명공학이 많은 위험성 울 내포하고 있으나, 앞으로도 사람들은 생명공학을 위해 더 많은 연 구와 투자를 하게 될 것이며 발전의 속도도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 인 간의 탐구욕과 호기심의 충족욕구는 새로 얻은 지식을 버리거나 현상 태를 유지하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생 명공학에 제동을 걸 수 있어야 하고 자연과 인류에게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을 생태학적 양심을 바탕으로 미리 과감하 게 막아야 할 것이다. 2.1 .3 『주역』의 생명질서와 자연관 (1) 역학은 생명학이다. 〈시공중에 있는 모든 존재는 다 같은 생명 을 가지고 있으며, 우주는 바로 끊임없이 생생하고 쉬지 않고 굳세게 운행하여 시시로 움직이면서 변화하고 있는 대생명이다〉 40 ) 라고 진입 부(陳立夫)는 말한다. 방동미(方東 美 )도 중국사상이란 한마디로 생명질 서의 사상이라고 말한댜 41) 『주역』은 바로 이러한 생명질서의 이치를 연구하기 위하여 만들어 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선진(先秦)시대의 역학은 생명의 창달을 예찬 고무하고 있다. 우리 는 이를 〈생명의 부단한 계승을 역〉요)이라고 한 말씀과 〈천지의 큰 덕 은 생명〉 43) 이라는 말씀에서, 또 〈천지가 자리를 베풀어 역이 그 가운 데서 행해진다〉)는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우리는 『주역』에 나타난 우주 자연질서, 죽 생명질서와 관련된 말 40) 陳立夫, 『中國哲學의 人間學的 理解』, 鄭仁在 옮김(民知社, 1986), 32, 33 쪽. 41) 方東美, 『中國人의 生哲學』, 정인재 옮김(탐구당), 서문 참고. 42) 『周易傳義大全 A, 『繁辭傳上」, 5 章 , 生生之謂易. 43) 『周易傳義大全』, r 繁辭傳下』, 1 章, 天地之大德曰生. 44) 『周易傳義大全』, r 繁辭傳上』, 7 章, 天地設位而易行平其中矣.

씀을 다음과 같이 찾아볼 수 있다. 하늘은 높고 땅은 낮은데 그것을 본떠 건괘(乾卦)와 곤괘(坤卦)가 자리 를 잡는다 낮고 높음이 펼쳐지는데 귀하고 천한 위치가 정해진다. 움직이 고 고요함에는 항상된 법칙이 있는데 거기에서 굳셈과 부드러움이 판가름 된다 .45)

45) 『周易傳義大全』, r 緊辭傳上」, 1 章, 天尊地卑, 乾坤定矣, 卑高以陳,貸賤位矣, 動靜有常, 剛柔斷矣.

r 계사전」의 첫머리에 나오는 이 몇 구절은 『주역』의 기본사상과 기 본원리를 확실하게 드러낸다. 이 말은 공자가 『주역』의 이치를 정확하 게 꿰뚫어보고 한 말이라고 하겠다. 여기서 우리는 〈건괘와 곤괘가 자 리를 잡는다〉는 말씀은 괘의 배열순서를 말하는 것이며 〈하늘은 높고 땅은 낮다〉는 말은 자연현상을 가리킨다고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두 구절에서 자연에는 엄연한 질서가 있다는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그 다음 〈움직이고 고요함에도 항상(恒常)된 법칙이 있는데, 거기에서 굳셈과 부드러움이 판가름된다〉는 이 두 구절에서 우리는 불변하는 절대 진리인 하늘의 도를 생각해 볼 수 있고, 현대적으로 자연법칙을 생각해 볼 수 있댜 이것은 이른바 변하면서(堤易), 또 일면 불변하는 부역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한 간역명백(簡易明白)함을 드러낸다고 하 겠다. 〈건(乾)은 위대한 시작을 맡고 곤(坤)은 만물을 완성시킨다. 건은 쉬 움(易)으로서 시작을 맡고 곤은 간단함으로써 완성한다.…… 쉽고 간 단해서 천하의 이치가 얻어지니, 천하의 이치가 얻어지면 올바론 자리 가 그 가운데서 이루어진다.〉 46)

46) 『周易傳義大全』, r 繁辭傳上』, 1 章, 乾知大始 坤作成物 乾以易知 坤以簡能 易 則易知 簡則易從 易知則有親 易從則有功 有親則可久 有功則可大 可久則賢人

之德 可大則賢人之業 易簡而天下之理得矣 天下之理得 而成位平 其中矣.

이 떼사전상(緊辭傳 上 )」 1 장의 끝 문장에 대한 한강백(韓康白, 동진 의 역학가)의 주에서 〈천지의 도는 의도적으로 하지 않으니(不爲) 잘 시작하고 애쓰지 않으나(不勞) 잘 완성하므로 쉽고 간단하다〉 ~ 7 ) 고 한 것을 새겨보면 우리는 여기서 하늘과 땅의 길, 즉 자연의 이치는 자연 스럽게 다시 말해 인위적으로 조작하지 않는다 는 내용을 읽을 수 있다.

47) 天地之道 不爲而 善始 不勞而善成 故曰易簡.

공자는 천지는 자연적인 것이고 『 주역 』 도 자연적인 것이라고 생각 하였댜 〈한번 음( 陰) 이 되고 한번 양( 陽) 이 되는 것을 도(道)라고 한 다. 그것을 이어가는 것이 선이고 그 속에서 완성되는 것이 성(性)이 댜…… 일반 사람들은 날마다 도를 쓰면서도 그것 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군자의 도가 드물다.〉 48)

48) 『繁辭傳上』, 5 章, 一陰一陽之謂道 繼之者善也 成之者性也…… 百姓 日 用而不 知故君子之道鮮矣.

주지하다시피 음양(陰 陽) 은 기( 氣)를 가리키는 것이다. 기는 음과 양 의 두 측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낮과 밤, 추위와 더위 , 흐림과 맑 음, 움직임과 고요함, 굽힘과 폄, 말함과 침묵, 위와 아래, 앞과 뒤, 왼 쪽과 오른쪽, 가득참과 기우는 것, 숨는 것과 드러남 둥은 모두 한가 지 사물의 음과 양 두 측면이다. 음과 양 두 측면은 서로 쓰임이 되어 어느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음양이라고만 말하면 그것은 아직 도가 아니다. 일음일양( 一 陰一陽)이라고 말해야 비로소 도인 것이다. 왜냐하면 음양이라고만 말 하면 어떤 사물이 음과 양의 두 측면으로 나뉜다고 말하는 것에 불과 하고 바로 그 사물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며, 일음일양이라고 해 야 운동, 발전, 변화하는 상태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 되고 사물의 운 동, 발전, 변화는 일정한 법칙에 따라 진행되어야만 비로소 도가 되기 때문이다.

일음일양이란 음이 양으로 바뀌고, 양이 음으로 바뀌며 음은 다시 양으로 바뀌고 양은 다시 음으로 바뀌는 것을 일컬음이다 . 음양이 교 대로 번갈아가며 운동하므로 사물이 비로소 발전해 나간다. 예컨대 시 간을 두고 보면 , 낮과 밤, 오전과 오후, 사계절은 일음일양을 보여준 다. 그런데 만일 낮은 있고 밤은 없다면, 여름만 있고 겨울이 없다면, 더구나 이 를 인위로 조작해 낸다면 , 자연은 어떻게 될 것인가? (2) 『 주역 』 의 역간원리(易簡庶理)와 자연의 근본질서 천지는 일정한 질서에 따라 운행한다. 하늘은 일정한 궤도를 항상 불변하는 질서(법 칙)에 따라 운행한다 . 그래서 하늘의 운행은 일정하게 순환한다. 그 순 환의 작은 고리가 지구에서의 계절 변화이다. 이 고리들이 이어져 한 해가 이루어지고 다시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낮과 밤, 더위와 추위, 따뜻함과 서늘함 등 , 죽 기후의 변화가 일어나 춘하추동과 같은 계절 의 질서 를 성립시킨다. 땅은 이러한 하 늘 의 운행 추이에 따라 그에 알맞게 만물을 양육하 고 생장시키며 결실을 거두고 갈무리하게 한다. 그러나 만일 땅이 그 러한 하 늘 의 질서 를 어기고 제멋대로 만물을 영위한다면 그것은 기후 에 맞지 않아 모두 상처를 입거나 고사(柏死)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 로 땅은 필연적으로 하늘의 운행질서를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늘과 땅은 그 위치나 역할, 기능만 다를 뿐 서로서로의 도 움을 필요로 하고 상부상조, 상수대대(相須 對 待)의 관계이므로 평동관 계이지 주종관계라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늘은 하늘의 기능만큼 행할 뿐이고 땅의 기능을 대신해 줄 수 없고, 땅도 땅의 기능만을 행 할 뿐 하늘의 기능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늘은 반드시 땅의 기능을 필요로 하고 땅은 또 반드시 하늘의 기능을 요구하므로 하늘 과 땅의 관계는 그 어느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절대적 대대의 관 계일 수밖에 없다. 『주역』은 이처럼 만물을 천도의 변화에 따라 각기 그 자신의 생의

( 生意) 로 실현해 가는 과정에서 촌재하는 것으로 본다(乾道嬰化 各正 性命). 그러므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기후와 계절의 추이도 바 로 음양이기(陰陽 二氣) 의 대체소장(代 替消長 )의 원리에 비추어 파악한 다. 역(易)의 소위 12 벽괘(群卦)와 12 소식괘(消 息卦 )가 바로 전형적인 예라고 하겠다. 복( 復 , 뜯, 11 월)에서 처음 태동한 일양( 一 陽) 이 점차 자라 나 이양(二陽)이 되는 임(臨 톡 12 월)으로, 삼양( 三陽 )이 되는 태( 泰, 특 1 월)로, 사양(四陽)이 되는 대장( 大壯, 뜹 2 월)으로, 오양( 五!易 )이 되는 쾌(快, 륵 3 월)로 드디어 육양(六 陽 ), 죽 순양(純 陽) 이 되 는 건(乾, 특 4 월)에 이르게 되면, 다시 이 건을 극점으로 하여 음이 양을 대체하여 부상하면서 일음( 一 陰)인 구(始 특 5 월)가 되고 일음이 점차 자라나 양(陽)을 사그라들게 하면서 이음( 二陰 )이 되는 둔(遊, 큽 6 월)으로, 삼 음(三陰)이 되는 부(否, 큽 7 월)로, 사음( 四陰 )이 되는 관( 觀, 쿰 , 8 월)으 로, 오음(五陰)이 되는 박(係-tj, 특 9 월)으로, 드디어 순수한 음인 육음 (六陰)이 되는 곤(坤, 큽듣, 10 월)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다시 이 곤도 극 점이 되어 음이 점차로 사그라들게 되고 다시 양이 돋아나게 된다. 이 렇게 양과 음의 소장(消長)이 교체하면 1 년이 되고 이것은 영원히 반 복된다. 이것이 바로 역의 음양소장과 교체순환의 영원한 원리이다. 우리가 괘(卦)를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음효(陰 조 )와 양효( 賜조) 의 수가 각각 다르지만 양(陽)이 자라나는 과정에 있는 괘와 음( 陰) 이 자 라나는 과정에 있는 괘를 배치하여 놓고 상변괘(相 襲卦)를 대각선 방 향에서 합해서 보면 두 괘롤 합친 음효와 양효의 총수는 모두 음 6, 양 6 으로 똑같음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한쪽 면만을 보면 각 괘 는 음이나 양 어느 한쪽에 치우쳐 있지만 두 면을 합치면 결국 음과 양이 균형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댜 그래서 역(易)의 운동은 올라 간 만큼 내려가고, 나간 만큼 돌아나오며, 나타난 만큼 숨고, 숨은 만 큼 나타나 어느 한쪽의 배타적인 성장만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것은 전체 과정 속에 건과 곤의 두 극점이 있어 모든 것은 극점에 이르면

그 반대편으로 되돌아가게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 이것이 이른 바 물극필반(物極必 反 )이라는 역의 기본원리이다 . 역의 원리는 이렇게 음양소장에 따른 교체순환의 변화를 통해서 항상 전체의 균형을 유지 하고 만물의 휴양과 생식의 계기를 공평하게 제공해 주고 있다 . 우리는 이 역의 원리를 자연의 운행과 인간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 해 볼 수 있을 것이댜 이(利)가 있으면 해가 있고, 득이 있으면 실(失) 이 있기 마련이고 그 반대로 실이 있으면 득이 있기 마련이다 . 만물은 일정한 한계공간에서 무궁한 순환생성을 해왔다. 만물을 전체 대용(大 用)의 커다란 고리 속에서 각기 자기를 조절하여 상호관계를 형평과 조화로 이끌어가는 균형과 조절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만일 어떤 것이 이러한 능력을 상실하면 다른 것과의 교감이 두절되고 나 아가 변화에 적응할 수 없게 되고 종내에는 괴멸하고 만다. 이 세상에는 변하는 것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 변한다는 말은 변하 지 않는 것이 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변하는 법칙 그 자체는 변 하지 않아야 원리가 될 수 있다. 변하지 않는 변화의 원리(不易)가 있 기 때문에 천지의 운행 변화가 조금도 차질없이 계속되고 그러한 변 화과정을 통하여 만물(자연)은 최선의 상태로 계속 생성해 가면서 그 나름의 성능을 형성한다. 이것을 『주역.!l에서는 〈음이 되기도 하고 양이 되기도 하는 것을 도 라고 한다. 이것을 계속하는 것이 선이며, 이것을 이룩하는 것이 본성 이 다( 一 陰 一 陽之謂道, 繼之者善 成之者性 : 繼善成性)〉라고 말했고, 〈만 물이 본래 가지고 있는 천성(天性)을 그대로 실현시켜 그 생명 발전을 끊임없이 존속하게 하는 것이 도의(道義)가 할 일이다(成性存存道義之 門)〉라고 말했으며, 『중용(中庸).!l에서는 〈하늘이 명하는 것이 본성이 다(天命之謂性)〉라고 말했다.

2.1. 4 『주역』의 생명질서 원리의 관점에서 본 현대 생명공학의 응 용에 대한 비판적 고찰 우리는 『 주역』의 생명질서의 근본 원리의 대의( 大義)를 다음과 같은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김범부는 그의 주역 강의에서 r 계사전」에 의거하여 『 주역 』 의 요지 는 〈역은 생각하지 않고, 행하지 않는 것이며, 조용히 움직여지지 않 다가 느끼어 천하에 두루 통하므로 하늘과 땅의 지극한 신비가 아니 면 거기에 누구가 참여할 수 있겠는가?( 易無思也無爲 也 寂然 4 通 b ~£;ifri 遂通天下之故非天下之至神 其執能與於此)〉 49) 라고 언급하였다. 『 주역본 의(周易 本義 )』에도 〈모든 이치가 자연스러운 것에서 나왔으니 사람의 지력(知力)으로 덜어내거나 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皆出於 理勢之自 然 而非人知力所能損益也)〉는 말씀이 있다. 우리는 『계사전상』의 〈천지가 자리를 잡고 있고 역은 그 가운데서 행한다(天地設位而易行平其中矣)〉는 말과 만물은 타고난 성품대로 성 취시키고 그 있을 위치에 있도록 하는 것이 도의( 道義 )가 할 일( 成性存 存道 義 之門)임을 읽을 수 있다. 맹자는 생명의 근본원리를 존양(存 養 )과 자연지성(自然之性)에 두면 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반드시 일함에 있어서 어떤 결과를 기대하지 말 것아며 단지 마음에 새 겨 이를 잊지 말 것이고, 자연스럽게 생장하는 것을 인위적으로 조장(助 長 ) 하지 말아야 한다. 죽 송인(宋人)처럼 해서는 안된다. 송나라에 어떤 사람 이 그의 벼싹이 자라지 않음을 걱정하여 벼싹을 뽑아 올리고서 피곤한 모 습으로 집에 돌아와 가인(家人)에게 말하기를, 〈오늘은 몹시 피곤하고나! 내가 벼싹이 자라는 것을 도왔도다〉 하거늘 그의 아들이 급히 달려가 보니 49) 金凡父, 『周易講義」, 李種益, 『東方思想論毅』(보연각, 1975), 77 쪽 참고.

이미 벼싹은 말라죽었다. 현재 천하의 사람들은 이처럼 벼싹이 자라는 것 을 조장하여 벼싹을 뽑아 올리고 어리석음을 행하지 않는 자가 적으니 이 익이 되지 않는다고 여겨 곧 이 를 버리는 자는 벼싹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김매지 않는 게으른 자요 벼싹의 자람을 조장하는 것은 곧 벼싹을 뽑아 올 리는 자이니, 이는 단지 이득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해를 끼치는 것이댜 50 )

50) 『孟子』, r 公孫丑上』, 必有事焉而勿正 心勿忘 勿助長也 無若宋人然 宋人有閔 其苗之不長 而揮之者뜬뜬然歸 謂其人曰 今日病矣 予助苗長矣 其子越而往視 之 苗則稿矣 天下之不助苗長者芬矣 以爲無益而舍之者 不丘苗者也 助之長者 揮苗者也 非徒無益 而又害之.

이제 우리는 현대인들이 생명공학이나 유전공학을 응용하고 있는 문제점 들 을 몇 가지로 나누어 비판적으로 적시(摘示)해 보기로 하자. (1) 주야( 畫 夜)와 한서(寒署)의 차이의 무시와 인위적 조작 일주일야 ( 一占一 夜)가 있는 것은 우주적 일대조화( 一 大調和)의 원칙에서 그렇 게 되어야 할 원리가 있는 것인데 만일 그것을 변경시키면 예측하지 못한 재난이 있을 것이다. 한대( 寒 帶), 온대(溫帶)를 개조하고 주야( 盡 夜) 없는 세상을 만들고 이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재난을 누가 방지할 수 있겠는가? 추운 얼음 속에 살던 에스키모인이 난방이 잘된 집에서 건강하게 살 수 없고, 더운 열대지방에서 사는 원주민들은 냉방이 잘된 곳에서 오래 건강하게 살 수가 없다. 춥지 않은 겨울과 덥지 않은 여름은 기 상이변이며, 기상이변은 그곳에 사는 모든 생물의 발육에 큰 지장을 준다. 추울 때는 춥고 더울 때는 덥고 추운 곳은 춥고 더운 곳은 더운 것이 자연의 순리이다. 그러나 주야와 한서(寒暑)의 차이를 인간이 함 부로 조작하면 자연도 인간도 손상을 입기 마련이다. 순천자(順天者)는 존(存)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亡)하는 것 이 다.

그러므로 밤과 낮의 차이를 무시하는 동물사육, 예컨대 지금처럼 하는 양계( 殺鷄) 는 되도록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양계장의 닭은 허약하며 병이 많댜 사람이 양계장의 닭고기와 달걀을 계속 먹게 되면 건강에 해롭다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이다. (2) 계절 차이의 무시 천도는 생생( 生生) 의 이(理)이므로 생생의 이 (理)를 춘하추동 사시( 春夏秋冬 四時)의 덕( 德) 으로 표시하는 것이 가 장 방불하므로 원(元) • 형( 亨 ) • 이(利) • 정( 貞 )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원은 춘생(春生), 형은 하영( 夏榮 ), 이는 추성(秋成), 정은 동장(冬藏)의 뜻이다. 이렇게 천도의 원형이정( 元亨利貞 )은 사시(1'. LJ II ` } )의 상(象)과 덕(德)을 가리킨다. 또 낱알의 발아는 원, 지엽( 枝葉) 이 생장하는 것은 형, 개화와 결실은 이, 수장(收藏)하는 것은 정이댜 문언(文 言 )에 의하면 〈천도의 성격은 원 • 형 • 이 • 정인데 군자는 인(仁) • 의( 義 ) • 예( 禮) • 지(智)의 덕행으로 이 건( 乾 )의 사덕(四 德) 에 합치한다( 君子體仁 足以長人 嘉會 足以合禮 利物 足以和義 貞固 足以幹 事 君子 行此四德者 故曰 乾 元亨利貞)〉고 한다. 그러므로 자연의 섭리는 사계절을 정해 놓았으며, 봄에 씨 를 뿌려 싹을 트게 하고 여름에는 잎과 줄기가 자라고 가을에는 열매를 맺게 하고 겨울에는 거둬들여 보관하게 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 렇다면 만일 인간이 자연의 이 법 (理法)을 무시 하고 천도( 天道)를 거 스 려 목전의 이익을 위해 계절을 무시하려고 한다든가 농작물을 인위적 으로 생육하려고 든다면 이것은 자연의 이법, 죽 천도를 거스리는 것 이 될 것이며 따라서 부덕한 것이 될 뿐만 아니라 천벌, 즉 자연의 재 앙을 면치 못할 것이다. 예컨대 온실재배나 비닐하우스의 재배방법은 계절을 무시하는 것이 될 수 있으며 땅을 착취하는 것, 죽 땅의 휴양(休 養 )을 방해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과도한 인공비료나 성장촉진제의 사용은 지기(地 氣 )를 약 하게 하거나 쇠하게 할 수 있게 되고 종내에는 땅을 불모지로 만든다.

땅도 쉬어야만 지력이 생긴다. 제철에 자란 과실과 곡식을 먹고살아야 사람도 동물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다 . 과수 목( 果 樹木)은 해결이를 하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그러나 과일의 다 수확을 위해 이러한 자연의 이치를 무시하고 조작하면 과수목도 허약 해지고 그 과일도 영양이 나빠지며 땅은 곧 황폐하게 된다. 모유 를 먹고 자란 아이는 면역이 잘 되며, 산모가 아기를 모유로 키 우면 연년생을 낳지 않으나 아기를 우유로 키우면 연년생이 나올 확 률 이 높 아지고 산모와 아기는 둘 다 건강에 손상을 입게 된다. (3) 성벌조작과 자연지성(自然之性)의 파괴 초음파나 양수검사를 통 하여 태아의 성별을 판독하고 나서 태아가 여아인 경우 살해하는 것 이 한국에서 유행되고 있다. 특히 대구 지방에서는 국민학교 1 학년에 서 남학생과 여학생의 비가 1 : 1. 7 이나 되고, 신생아의 남녀비가 1 : 1 . 37 이나 된다고 하니 음양의 균형은 완전히 무너지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인위적으로 남녀의 성별의 세포조작을 조장하거나 융합기술로 가축의 성별을 조작하는 행위는 삼가야 할 것이다. (4) 유전자 조작의 문제 유전자 재조합의 기술은 부작용이 없는, 죽 모든 생물체의 존양( 尊發 )과 균형에 지장이 없는 한에서만 사용되어야 할 것이며, 특히 생명의 존엄성과 정체성의 문제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5) 세포융합 기술과 핵치환기술의 문제 세포융합 기술과 핵치환 기 술의 연구는 자연의 근본질서를 파괴할 위험성이 매우 크며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엄격한 감시와 예방책이 우선적 으로 강구되어야 한다 . 예컨대 복제동물은 물론이고 어떤 경우예도 인 간복제를 시도한다든가 고등동물뿐만 아니라 식물 및 미생물을 마구 혼합하는 따위를 함부로 해서는 안될 것이다. (6) 미생물을 이용하는 기술의 문제 우리는 여기서 디쉬가 말하는 생태학적 양심 51) ――-생명보전에 이로운 것이면 선(善)이고 해로우면 악이 된다―-―에 따라 생명 일반의 촌엄성, 죽 자연지성(自然之性)을

51) Rob ert Disch, ed., The Ecolog ical Consci enc e : Values for Suru iva l(Eng lew ood Cliffs, N. J. : Prenti ce Hall, 1970) ; 진교훈, 『生態學과 社會倫理」, <法哲學과 社會哲學>, 2 집(교육과학사), 81 쪽 참고 .

최대한으로 존중해야 할 것이며 미생물의 이용은 그 부작용을 무시하 고 일시적인 이익을 위해서 행해져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세균을 살 상용으로 배양하는 따위는 절대적으로 금해야 한다. 2.1.5 결어(結語) 우리는 앞에서 역학의 관점에서 현대 생명과학의 문제점들을, 특히 그 역기능이 어떠한 것인가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현대 생명과학은 많 은 순기능의 역할도 하고 있다. 아무도 생명 그 자체가 무엇인지 과학적으로 분명하게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생명현상에 이러저러한 특성이 있다고 설명할 수는 있을 것이다. 다양한 생물들을 보고 그 생명현상의 특성을 연구하며 어떻게 생명이 진행되고 있는가를 분자 수준에서부터 생태학적인 수준에 이 르기까지 무수한 방법으로 관찰하고 실험하면서 오늘날 생명과학 분 야는 놀랍게 발전하고 있다. 우리는 생명과학이 의료, 농업, 환경보전 등에 광범위하게 순기능적으로 응용되어 인류에 많은 혜택을 주고 있 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생명을 다루는 학문을 기능적이고 기술적으로만 다룰 수는 없다. 생명의 본질은 깊고 넓은 것이어서 어떤 특정한 관점에서만 다 룰 수도 없고 또 다루어서도 안되는 근본적인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자연으로부터 나왔으며 자연으로 돌아간다. 모든 생 명체와 만물은 따로따로 독립해 있는 것이 아니며 서로 무관한 것이 아니라 서로 교제하면서 반응하고 수수관계(受授關係)에 있다. 모든 생명체와 만물과 자연은 하나의 연대공동체이며, 하나의 운명공동체 이다. 만물은 순환하며 질서가 있다. 그러므로 자연의 순환을 파괴하

는 것은 모든 생명체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 자연자원의 남용, 자연질 서의 파괴는 부메랑의 화살처럼 착취, 죽 개발 (ex p lo it a ti on) 을 일삼는 인간에게도 심대한 타격을 되돌려준다. 자연의 안정 없이는 인간의 안 정도 없댜 그러므로 인간과 자연 간의 협동은 언제나 중요하다. 자연 의 한 부분에 불과한 인간은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면서 살아갈 수 없 다. 인간과 자연은 공존하지 않을 수 없고 공생관계에 있다. 자연은 단순히 인간을 위해서 이용가치로만, 봉사하기 위해서만 의 미가 있 는 것이 아니다. 만물은 각각 그 나름대로 존재 이유와 고유한 의미 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진실을 『 주역 』 의 생명질서의 원리 로부터 배울 수 있다. 환경문제, 생태학적 위기, 생명경시는 처음부터 서구의 과학기술 문 명이 주관과 객관, 자연과 인간, 정신과 물질의 이분법적 사고와 자연 을 한갓 물질과 도구로서, 이용가치로만 잘못 생각해 온 결과이다. 그 러므로 우리는 이제 자연과 생명에 대한 그릇된 사고로부터 벗어나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인간과 자연과의 올바른 관계를 역학의 자연관에서 배 울 수 있다 . 모든 생명과학은 근본적으로 모든 생명을 보전하는 것을 기본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생명의 터전인 자연을 올바르게 보전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물이 본래 가지고 있는 천성을 그대로 실 현시켜 그 생명발전을 끊임없이 존속하게 하는 것이 도의(道 義 )가 할 일이다(成性存存道義之門)〉라고 하는 『역경(易經)』의 말씀이 바로 생 명과학의 지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 책에서 『주역』의 생명질서의 원리를 『계사전」을 중심으 로 살펴보았다. 그러나 방동미(方東美)가 역설하는 것처럼 넓게는 중 국사상 전체가 한마디로 생명질서의 사상이라고 말할 수 있고, 또 생 명질서, 죽 자연 질서사상은 『주역』 전반에 걸쳐 있는 것이므로 생명 질서의 원리를 「계사전」에만 국한시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 주역 』 의 「대상전( 大象傳 )」이라 든 가 「 설 괘전( 說卦傳) 」에 나오는 천지 지도( 天 地 之道) 와 요 물 지정( 要物之情) 의 함의(含意)의 해석 을 통해서도 생명질서의 원리 를 찾아볼 수 있으며, 더 나가서 『 주역 』 의 십익( 十奭) 전부를 망라해서 생명질서의 원리 를 추 출 해 낼 수도 있 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앞에서 밝힌 것처럼 이 책의 초점을 서양에서 비 롯 한 생명공학의 역기능과 생명 질 서의 위기 를 극복 하기 위한 논거로 서 『주역』의 생명질서의 원리를 살피려고 했기 때문에, 『계사 전 」의 인용 만으로도 『 주역 』 의 생명질서사상의 대강을 밝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원래 〈역( 易 )은 쉽고 간단해서 천하의 이치가 얻어지면 올바른 자리가 그 가운데서 이루어진다( 易則易知 簡 !{l j易從)〉고 하지 않 는 가? 모든 생명체가, 우주 만물이 공속관계에 있으며 천 • 지 • 인 삼재가 상생(相 生) 하면서 온누리 를 온전하게 한다는 원리가 생태학적 윤리학, 즉 환경윤리학의 출발점이다. 우리는 댜 구역 』 의 생명질서의 원리가 바 로 현대 생태학적 윤리의 기본원리가 될 수 있다고 자부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자연과 인간, 정신과 물질의 이분법적 사고에 젖어 있거나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고 자연과 생명의 파괴를 일삼아온 자 들 은 이제 언어분석이나 형식논리의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생명의 신비와 자연의 이치를 『 주역』으로부터 터득해야 할 것이다. 2.2 유가의 중요한 자연관 2.2.1 천인상감(天人相感) 한대( 漢 代)의 유가사상의 자연관은 재이설(災 異說 )을 신봉한 것을 그 특징으로 삼는다고 할 수 있다. 재이설에서는 자연계에서 발생하는 천재지변은 전지전능한 하늘[天〕이 국가의 통치를 위임한 절대군주가 실정(失政)을 한 것에 대한 벌을 내리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호적(湖

適)은 이 재이설의 성격을 일종의 천인상감( 天 人 k11 感) 의 정교한 신학 체계가 해석했다 . 5 2 ) 기원전 2 세기의 동중서( 羅 仲 8 f)는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을 바탕으 로 도교(道敎)의 자연관 을 가미하여 천인상감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 현했댜 나 라가 위급한 지경에 이 르면 하늘은 재이( 災媒, 즉 홍수, 기근, 큰 불 등) 를 내려 군주 를 힐책한 댜 이 를 듣지 않을 경 우 하늘은 재이(죽, 일식, 혜성의 출 현, 오성변이(五星 ~ 'J l, ) 등)를 내려 군주를 놀라게 한다 . 그것으 로도 실정을 바로잡지 못하면 결정적 인 파멸에 이르게 한다 . 이로부터 하 늘은 항시 군주 를 돌 보아 파멸로부터 구하려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3) 공자가 지은 『 춘추( 春 秋) 』 에서도 재이에 대한 기록이 있으며 이를 하 늘로부 터 내려진 경고로 해석하고 있다. 인간의 행위에 따라 하늘이 경고하거나 벌을 준다는 생각은 오늘날 인간이 하늘(자연환경)에 끼친 영향으로 말미암아 되돌려받게 된 보복, 즉 생태학적 위기의 영향과 관련시켜 음미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2.2 .2 격물론(格物論) 11 세기에 정씨( 程氏 ) 형제를 거쳐 12 세기에 주희(朱 惡 )에 이르러 집 대성된 신유학운동(新 儒學運動 )의 논거는 한마디로 『대학(大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정주학( 程朱學 )에서는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격물 론이 이론의 기초가 된다. 여기서 격물은 천하지물(天下之物)의 이(理) 를 탐구하는 것이다. 이는 자연현상이 있는 까닭을 의미한다. 이는 기 52) 湖適, r 중국과학 속의 과학정신과 과학사상』, 박성 래 편저, 『 중국과학의 사상 : 중국에는 왜 과학이 없었던가? 』 (전파과학사, 1979), 53 쪽 참고. 53) 댕 힌 }』, 「 黃 仲 舒傳 」.

( 氣) 와 마찬가지로 학자에 따라 많은 해석의 차이가 있어서 그 정의를 내리기가 간단하지 않다. 기는 자연에 관한 설명에서 삼라만상을 구성하고 모든 현상을 일어 나게 하는 기초개념이나, 서구 언어로 간단히 번역하기 어 렵 다. 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질 (ma tt er) 에 상응하 는 것으로 간주되기는 하나, 실제로 그보다 훨씬 광범위한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물질 이라고 단정할 수 없댜 기는 매우 포괄적인 개념으 로 서 여러 가지 개 념들의 복합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기는 물질 과 비 물질을 통 틀 어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을 일으키는 일종의 원리이다. 서양에서 물질 이 비 활 성인 것과는 달리 물질도 운동이라는 성 질을 원래부터 지니고 있다. 5-1) 이 기 개념은 전문적인 학술어로서가 아니라 일상 적 인 경험과 상식적 인 것을 바탕으로 사용된 개념이다.

54) 김영식, 〈朱 흉 에서의 氣 의 개념의 몇가지 측면〉, 『 中國 傳統文 化와 科學』(창작 사, 1986), 167 쪽 참고. 기( 氣 )를 영어로 표기한 것을 보면 eth e r, vital forc e, mate rial forc e, matt er , energy 둥이 있다 . 김영식은 기라는 개념은 물질 (matte r ), 생명(lif e), 정신(min d) , 물질 (ma teri al), 비물질 (noruna teri al), 무생물 (inanimate), 생물(animat e), 물리적(p h y s i cal), 생리적(p h y s i olo gi cal) , 심리적 (psychica l) 둥을 다 포함할 수 있다고 한다 .

이(理)의 개념은 영어로 원리(princip le) 로 번역되나 복잡한 현상이나 물체를 분석하고 설명하는 데 적용되는 기본적인 원리 를 의미하는 것 이 아니다. 이는 주어진 물체나 현상을 총체적으로 가리키는 개념이 다. 이의 의미는 물체나 현상의 이 때문에 그 물체나 현상이 그처럼 존재하거나 일어나는 것이다. 12 세기의 신유학자인 주희에 의하면 땅은 기의 빠른 희전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천지의 태초에는 오로지 음기( 陰氣 )와 양기( 陽氣 )만이 있었다. 그 기는 지속적으로 운동하고 회전하였다. 회전이 대단히 빨라지자 많은 양의 기의 찌꺼기가 옹결되었다. 그리고 이 찌꺼기가 빠져나갈 곳이

없었으므로 그것은 뭉쳐져서 가운데에 땅을 형성했다.〉 55)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주희의 자연관에서는 물질과 생명 , 또 는 물질 과 정신 사이에 불연속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희에 의하면 같은 기 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생물과 무생물은 구별되지 않는 댜 그에 의하면 기는 단일한 것으로서 생명과 정신현상에서 사용되는 기나 물질적 세계의 성질이나 현상에 적용되는 기가 동일한 것이다. 2.2.3 존재의 연속성 두유명(杜써t nJ J, Tu Wei Ming)에 의하면 중국인의 자연관은 존재의 연속성에 의거한댜 56) 그래서 자연은 저절로 자기 발생하는 생명의 과 정이댜 모트 (F. Mo t e) 는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국인 은 창조신화 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분명히 독특하다 . 말하자면 그들은 세계(자연)와 인간을 창조되지 않는 것으로 묘사하고 또 자연 을 어떠한 창조주나 신( 神 )-궁극적 원인-혹은 외부의 의지도 가지고 있지 않은, 저절로 자기 발생하는 우주의 중심적 양상들을 구 성하는 것으로 파악해 왔다.〉 57) 모트의 이러한 견해는 논의의 여지는 있으나 중국적 사고방식의 특 성을 분명히 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인은 무로부터 (ex nihilo) 〈신 의 손에 의한 혹은 신의 의지를 통한 창조〉의 개념들과 또 기계론적 • 목적론적 우주론을 도무지 환대할 수 없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다 시 말해서 창조신화의 결여라기보다는 존재의 연속성에 대한 의뢰가 중국인으로 하여금 자연을 〈비인격적인 우주적 기능들의 포괄적인 조 55) 『朱子語類』, 1270. 1. 4b3. 56) 杜維明, 『試探中國哲 學中 的三個 基調 』, < 中國哲 學 史硏究 > (北京中國哲學史 57) 硏F究. M會,. M2, o1t9e 8, 1I)n, te1 l9l e-c2t0u 쪽a l F참o고un.d ati on s of Chin a (New York : Alfred A Knop f, 1971), 17-18 쪽.

화〉 58) 로 이해하게 만들었다고 하겠다. 조셉 니덤(J. Needham) 은 이 를 두고 〈자연은 제정자(製 定者 )가 없이 질서잡힌 의지 들 의 조화〉 59) 라고 말하였다. 니덤에 의하면 중국의 자연관은 정신과 물질로 구분되는 이 분법적 사고가 적용될 수 없고 우주 를 구성하는 것은 순전히 정신적 이거나 물질적이지 않고, 이른바 융(G. J un g)이 말하는 심신일여적(心 身 一 如血 p s y cho-soma ti c) 인 것이며 하나의 생명력이다. 이 생명력은 육체로부터 이탈된 영혼으로나 순수한 물질로서 파악될 수 없 는 것이 다 .60) 진영첩(陳英捷 Chan W ing-tsit)은 에너지와 물질 사이의 구별이 중 국철학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기술했다. 그는 우주 를 구성하는 기본적 재료에 해당하는 기( 氣)를 영어로 물질-에너지 (ma tt er - energy ) 로 번역한 것은 근본적으로 오역된 것이라고 보고, 기는 11 세가에 신 유학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본래 〈혈액 및 호흡과 관련된 정신적 • 물 리학적 힘〉을 지시했으므로, 생명력으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다 .61) 중국철학에서 우주의 근본적 구조와 기능을 개념화하는 하나의 방 법으로서의 기 개념이 계속적으로 존속하는 것은 정신과 물질 사이 를 분석적으로 구별하는 상징적 차원의 이용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정신 과 물질을 하나의 구별되지 않은 전체로서 종합하는 사고방식을 단념 하지 않으려는 의식적 노력을 의미한다. 기는 서양의 데카르트적 이분 법적 사고에 젖어 있는 사람들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의 영역이며, 기의 다양한 양상들에 관한 이론은 실증주의적 의미로는 이해되는 경 58) 앞의 책, 20 쪽 . 59) J ose 沖 Needham and Wang Ling, Sci en ce and C 函li za ti on in 야i na, 2 권 (Cambri gd e : Cambri gd e Un ive rsity Press, 1969), 2, 287 쪽 참조. 60) 杜維明, <中國哲學史硏究», 21-22 쪽 참고. 61) Wi ng-tsit Olan( 陳英捷), A Source Book in Chin e se Philo s op h y( Prince to n , N. J. : Prince to n Un ive rsity Press, 1969), 784 쪽.

험과학으로는 파악될 수 없고 단지 은유적안 앎의 방식, 즉 비유나 암 시 등에 의해 이해될 수 있고 몰가치적일 수도 없는 것이다. 두유명은 〈저절로 자기 발생하는 생명의 과정으로서의 유기체적 과 정은 세 가지 근본적 주제들을, 즉 연속성, 전체성, 역동성 (d ynami sm) 을 드러 낸다〉 62 ) 고 한댜 먼저 존재의 연속성을 살펴보기로 하자. 돌로부터 하늘에 이르기까 지 모 든 존재의 양상들은 거대한 변화( 『 역경 』 에서는 태화(太化)라고 부른 다)로 종종 언급되는 하나의 연속체의 통합적 부분들이다. 이 연속체 밖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간주되기 때문에 존재의 연쇄는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 모든 존재의 양상들 안에 있는 기의 연속적 존 재는 모든 것으로 하여금 단일한 과정의 전개로서 함께 흘러나오게 한댜 어떤 것도 이 과정의 외부에 놓여 있지 않다. 전체성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것으로서의 연속성이라는 개념으로부 터 파생되었댜 우주가 하나의 연속체이며 그 구성 요소들은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우주가 각각의 복잡성 단계에 따라 역 사적으로 통합된 하나의 유기체적 통일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 유기체적 통일체는 하나의 폐쇄된 체계를 함축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 하고 변화하는 동적인 과정이므로 역동설이 수반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 주역』의 이른바 건괘의 활력적인 건(健)을 지칭하는 것이다. 2.2.4 유기체적 과정과 조화 유기체적 생명의 과정은 개방된 체계이다. 따라서 명시할 만한 시 간적 시초도 또한 아무런 종결도 고려되지 않는다. 우주는 영원히 확 대되고 있으며, 변화는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 변화는 어떠 한 기하학적 의도로도 설명될 수 없다. 따라서 이 변화는 일선적(一線 62) 杜維明, 앞의 책, 19-24 쪽 참고.

的)이라거나 순환적이라거나 나선적인 운동으로 묘사될 수 없다. 중국의 사상가들에게서 자연은 드러난 생명력이며 이 생명력은 연 속적이고 전체론적이고 역동적이다. 그리고 이 생명력은 통합과 통일 과 일치와 수렴의 특징을 지닌다. 그래서 유기체의 과정은 조화롭다고 여겨진다. 장재( 張載 Chang Tsai , 1020-1077) 가 그의 정몽( 正 蒙 )에서 우 주를 태화라고 한 것을 논거로 진영첩은 이렇게 말했다. 태화(太和)는 소위 도( 道 )라고 일컬어진다. 이 것은 부침( 浮 沈), 승강 ( 昇 降), 동정(動 靜 ) 둥의 상호반대되는 모든 과정 들 의 본 성 을 포합하고 있다. 그것은 유합과 혼합의 과정, 승패의 과정 등의 시원(始 原 )이다. 처음에는 이러한 과정들이 어설프고 미세하며 모호하고 쉬우며 간단하지만, 나중에 는 광범위하고 거대하며 강하고 확고하다. 역( 易 )의 지식의 처음이 되는 것 은 건(乾, 하늘)이며 단순성을 모방하는 것은 곤(坤, 땅)이다. 분산되고 구 별되며 형태상으로 식별되는 것은 기( 氣 )가 된다. 그리고 순수하고 관통하 며 형태상으로 식별되지 않는 것은 이(理)가 된다. 만약 전 우주가 모든 방 향으로 움직이는 힘들처럼 융합과 혼합의 과정 중에 있지 않다면, 우주는 태화라고 일컬어질 수 없을 것이다 .63) 왕부지(王夫之, Wang Fu-ch ih, 1619-1692) 는 장재( 張載 )의 기철학( 氣 哲學)을 좀더 설득력 있게 전개시켰다. 〈강이나 산, 식물이나 동물, 지 능을 가졌거나 가지지 않은 것들, 꽃을 피우거나 열매를 맺는 것들 할 것 없이 세계의 만물이 만물에게 유익한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은 기가 움직이는 힘의 자연적인 영향력의 결과이다. 그것은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만물이 번성하고 변화할 수 있도록 완벽 63) Wi ng-tsit Otan(陳英捷), (ed.), A Source Book in Chin e se Phil os ap h y( Prince to n , N. J. : Prince to n Un i. Press, 1%9), 500-501 쪽.

하게 부양하고 있듯이 그만큼 공간적으로 제한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공간적으로 제한되어 있지 않듯이 시간 안에서 작용하며 시간과 더불 어 진행한다. 새벽부터 밤까지, 봄부터 여름까지 그리고 현재에서 과 거에 이르기까지, 그것이 작용하지 않거나 생산하지 않는 시간이란 없 다. 결과적으로 하나의 종자가 발아하듯이 그것은 수많은 큰 가지들을 가진 나무가 되며, 알이 부화하듯이 그것은 발전적으로 배〔舟〕룰 삼킬 수도 있는 물고기가 된댜〉 ) 2.2 .5 자연과 인간의 불가분리관계(不可分離關係) 우리는 기의 움직이는 힘의 배후에 어떤 인간 형태의 신과 같은 존 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비인격이긴 해도 비인간적 인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점에 대해서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주 적 기능이 지니는 자연스러움은 모든 존재의 양상들에게 공평무사하 며 단순히 인간 중심적이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차갑고 인간에게 소 원한 것은 아니다. 인간도 그 기능의 필수적인 부분이며 기의 움직이 는 힘의 결과이다. 인간도 산과 강처럼 우주의 거대한 변화에서 한 몫 을 차지한다. 장재는 그의 저서 『 서명(西銘) 』 에서 인간과 자연과의 불 가불리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하늘은 나의 아버지이며 땅은 나의 어머니이다 . 그리고 나와 같이 작은 존재도 이들 가운데서 친밀한 위치를 발견한다. 그러므로 우주를 가득 채 우고 있는 것을 나는 나의 몸으로 여기며, 우주를 이끌고 가는 것을 나의 본 성으로 여긴다 . 모든 사람들은 나의 형제자매이며, 만물은 나의 식구이다 .65) 64) 앞의 책, 698-699 쪽 . A. H Black , Man and Matu r in the philos op h ic a l Thoug ht of Wang Fu-Chih ( Seatt le and London : Un iv. of Washi ngton Press, 1989), 169 65) 쪽앞참의고 .책 , 497 쪽.

장재가 이렇게 그 자신을 우주 전체에 연관시켜 생각하는 것은 그 가 도덕적 생태학을 심오하게 의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인간은 우주적 과정의 공손한 자녀들이다 . 이러한 인도주의적인 인간 과 자연의 친밀한 관계는 노장사상의 불간섭이나 불가의 초탈관념과 는 다른 유가의 독특한 사상이라고 하겠다. 우주와 만물이 일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모든 존재의 양태 들 이 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인간의 삶은 우주적 과정을 구성하는 혈 액과 호흡의 연속적인 흐름의 일부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돌, 나무, 동물들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 그래서 중국의 소설을 보면 『서유기(西遊記)』에 등장하는 원숭이가 마노로부터의 변신이며, 『홍루몽(紅樓夢)』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가보옥( 買貸玉 )이 하나의 구 슬로부터 변형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찾아볼 수 있다. 중국인에게는 하 나의 마노나 옥이 스스로 한 인간으로 변형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 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옥( 玉 )은 다섯 가지 덕(德) 울 가진 아름다운 돌〉이라고 하였다. 따뜻한 느낌을 주는 윤택은 인 (仁)을 가리키는 것이고 자기와 밖에 있는 것을 함께 생각할 줄 아는 것은 중용(中庸)을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니 이것은 의( 義)를 가리 키는 것이며 그 소리가 낭낭하여 멀리서도 들리니 지(智)를 가리키는 것이며, 굽히지도 않고 꺾이지도 않으니 용( 勇 )을 가리킴이며, 예리하 고 깨긋하니 결(潔)을 가리킴이다. 등숙빈(鄧淑萩)은 옥기 (玉器)가 왜 중국 예술에서 그토록 중요시 되 는가 하는 점을 밝히면서 〈옥의 재질의 견실함과 부드러운 아름다움 은 유가에게는 인, 의, 지, 용 둥의 미덕으로 보이며 이것은 군자를 상 징하는 것이니 옥기가 숭고한 지위를 갖는 것은 마땅한 것이다〉 66) 라고 66) 鄧淑藏 『山川精英-玉器的 藝術 』, 劉俗編, 『中國文 化新 論』 (台北 : 聯經, 1983),

254 쪽.

하였댜 우주와 일체 를 이 룬 다 는 관념은 모 든 존 재의 양태 들 은 기로 이루어 져 있으며 만물은 우주 론 적으로 인간과 동일한 혈연관계 를 공유하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 의 동료라고 불릴 수 있다. 명 대(明代)의 왕간( 王 良, 1483 - 1540) 은 우리가 화생(化 生 )을 통해서 존재하게 되었다면 천지 는 우리의 부모이며, 우리가 생을 통해서 존재하게 되었다면 우리의 부 모는 우리에게 천 지라 는 것이댜 67 )

67) 王長 (心 齊 ), 『王 心 齊 先 生全渠』 (Harvard-Yen ching Libr ar y, 1507), 4, 16b.

여기서 인간은 결코 창조의 주인이나 지배자가 아니다. 우리가 우주 와 일 체 를 이 룬 다 는 은유적 의미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를 성장시키 고 수련하려 는 지 속적 노력 을 요구한다. 우리의 느낌을 최대한으로 심 화시 킬 때 우리 는 느낌에서 전 우주 를 구현할 수 있다. 『 중용 』 의 첫째 장에서 우리의 본성이 하 늘 에 의해서 정해진다는 존재론적 주장이 이 루어 질 수 있기 위해서 우리는 천명이 우리의 본성 안에서 충분히 실 현되도 록 보살피지 않으면 안된다. 왕부지는 이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사 려깊 은 사람은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행동 한댜 그 러나 그는 최선의 선택을 하고 확고하게 중용을 유지하기 위해서 행 동 한다 611 ) 주희는 이와 관련하여 『 역경 』 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68) 陳 英 捷 앞의 책 , 699-700 쪽 .

사물의 가장 인상적인 측면은 그 생명의 정신이다 . 이것은 선( 善 )의 주 요 특성인 생기( 生氣 )가 의미하는 것이다. 인간과 천지는 하나다 . 왜 인간 은 자기 자신을 일부러 작게 만들려고 하는가 ?69)

69) 앞의 책, 539 쪽.

인간의 사사로운 욕심은 천지의 변화과정에 참여하는 진정한 인간 의 능력을 축소시키는 것이 되면 자아중심적인 것이다. 이것은 신유가 의 용어로 사욕(私悠)에 굴복됨이 없이 천리( 天 理)를 따르는 것을 의 미한댜 70) 천지와 더불어 일체를 이룬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주관과 객관을 구분하는 이분법과 자연과 인간을 구분하는 이분법을 자연에 적용하 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을 한갓된 대상으로 보는 것은 우리의 진정한 시각을 방해하고 자연을 안으로부터 체험하는 우리 인 간의 능력을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인위적 장벽을 만 들 어내는 것이다. 생명력이 내적으로 공명(共鳴)함으로써 정신은 인간 신체의 가장 정제 되고 미묘한 기로서 자연의 무수한 사물과 더불어 지속적으로 공감적 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감옹(感應)의 기능은 자연을 거대한 조화로 특징지우며 그래서 정신 에게 알린다. 정신은 그 자체를 환유적(換 l 兪的)으로 확대시킴으로써 자연과 통일을 이룬다. 자연에 대한 심미적 감상은 주관에 의한 대상 의 전용도 아니고 또한 대상에 의한 주관의 부과(賊課)도 아니라 변화 와 참여를 통한 확장된 실재에로의 자아의 투입이다 .71) 방동미는 이를 두고 〈자연은 하나의 끊임없이 낳고 또 낳는 '창조적 전진의 과정 (con tin uous pro cess of Crea ti on)’ 이라고 말하였으며, 자연 과 인간은 둘이면서 하나가 되어 생명 전체는 더욱 서로서로 융화하 고 교섭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내가 말하는 광대화해(廣大和講, Com- pre hensiv e Harmony )를 이 룬다는 것 이 다〉라고 하였다 .72)

70) 앞의 책, 605-606 쪽 참고. 71) Tu We i-Ming, ''The Conti nuity of Bein g : Chine se Vis io n s of Natu re , J. B. Callico tt & R T. Ames(ed.), Natu re in Asia n Tradit ion s of Though t ( S ta te Un ive rsity of New York, 1989), 77 쪽 . 72) 方東美, 『中國人의 生哲學 』 , 鄭仁在 옮김(서울: 탐구당, 1983), 26-27 쪽.

유교의 자연관에서 인간과 자연과의 상호관계에 대한 심미적 접근 은 인간의 지속적인 자기수양의 결과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우월한 지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조화에의 접근에 있어서 특권은 없다. 인간이 자연에서 그 생명력의 내적 공명에 참여하기 위한 조건은 우리 자신의 내적 변화이다. 우리 가 먼저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조화시킬 수 없다면, 우리는 천지의 정 신과의 합류는 고사하고 자연을 향해서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 된댜 우리는 자신을 이에 걸맞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김범부는 『 주역 』 의 어]사하」에서 〈역이 책으로 된 것은 그 내용이 넓고커서 어떤 이치도 다 구비되어 있다. 천도(天道)도 있고 인도(人 道)도 있고 지도(地道)도 있다. 삼재를 겸하여 둘로 곱하니 여섯이다. 여섯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삼재의 도이다(易之爲 書 也廣大惑備有天道 焉 有人道 焉 有地道 務 兼 三 才而兩之故六 六者非他也三才之道也)〉라고 함 은 천(天) • 지(地) • 인(人) 삼재사상( 三 才思想)을 공자(孔子)가 확립한 것이라고 하였댜7J) 다시 말해서 천 • 지의 자연에 참여하여 천도, 지도 와 함께 인도를 정립한 것이 역서라고 한 것은 공자의 주역관(周易觀) 이자 유학의 자연관의 핵심사상이 담겨 있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계사」에서 천지간(天地間)에 음양변화의 이법에 따라 만 물이 타고난 성격대로 성취시키고 그 있을 위치에 있도록 하는 것이 도의(道義)의 문(門)(天地設位易行平其中矣成性存存道義之門)이라고 한 것 이다. 바로 이 성성존존(成性存存)이 삼재에 참여한 인도이다. 우리는 바로 여기에서 오늘날의 자연보전의 단초(端初)를 세울 수 있고 세워 야 할 것이다. 73) 金凡父, r 周易講義」, 李鐘益, 『東方思想論策』(서울 : 보연각, 1975), 98-99 쪽.

제 8 장 한국인의 전통적 자연관의 현대적 의의 한국인의 전통적 자연관은 앞 장에서 논한 도가(道家)와 불가(佛家) 의 자연관에 강한 영향을 받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의 전통사상이 오로지 유불도 사상으로 대변될 수 있는 것만도 아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중국으로부터 유불도 사상을 받아들이기 이전부터 한국인 고유의 사상이 있었으며, 이미 가지고 있었던 우리의 전통사상 을 근간으로 삼고 외래사상을 수용했던 것이다. 그래서 한국불교, 한 국유교, 한국도교의 사상이 엄존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한국인의 전통적 자연관을 우리 선조들의 민 간신앙에서 또 그들의 전통적 문화생활에서 어떤 이론적인 철학 및 종교사상보다 더 여실하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장에서 는 한국인의 민간신앙의 자연관과 한국인의 전통문화생활 속에 나타 나 있는 자연관을 살펴보기로 한다.

l 한국인의 민간신앙의 자연관 우리는 앞에서 동양인의 전통적 자연관의 기 초를 유가와 도교사상 에서 찾아보았댜 그리고 이러한 유가와 도가의 자연관은 바로 한국인 의 자연관의 근간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로정연( 理 路 整 然)한 사상체계만으로는 한국인의 전통적 자연관을 다 드 러내어 보여준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우리는 민중신앙이나 속신(( 谷信 )에 서, 여실한 한국인의 특유한 자연관을 현상학적으로 살펴 볼 수 있다. 동아시아의 지리적 여건으로 보아 한국인의 전 통 적 자연관이 대체 로 중국의 전통사상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 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중국의 도가와 유가의 자연관은 한국의 식 자층(識者 層 )의 자연관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무속신 앙(巫俗信仰), 도참( 圖識 ), 풍수지 리 (風水地理), 신선사상( 神 仙 思 想) 등 과 한국의 민속불교사상이 한데 어우러진 토속적인 민간신앙이 무엇 보다도 대부분의 한국인의 전통적 자연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 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한국의 민간신앙(민중신앙 또는 민속신앙으로 불리기도 한다) 을 무속, 풍수지리, 도참사상, 신선사상, 가신신앙( 家 神 信 仰), 속신, 구 비전승(口碑傳承)되고 있는 금기어(禁思語) 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 리는 이러한 민간신앙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자연관에서 한국인 특유 의 전승적 자연관을 밝혀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민간신앙의 범위 와 한계를 엄밀하게 규정하기 어려우며 또 실제로 무속과 풍수와 도 참과 신선사상 등은 두루 섞여 있으므로 이를 구분하여 기술하는 것 은 더욱 어렵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의 관심사는 한국인의 전통적 자 연관을 규명해 보는 것이므로 아래의 서술은 어디까지나 편의상 구분 해서 우리 선조들의 자연에 대한 이해가 어떠했는가를 개략적으로 찾 아볼 것이다.

필자는 이 절에서 무속신앙의 자연관, 풍수지리사상과 자연존중, 도 참사상과 자연보호, 구비전승의 신앙과 자연보호, 신선사상과 자연보 호, 한국민속불교와 자연보전, 천재지변과 기우제(祈雨祭)를 다루었다. 1.1 무속신앙의 자연관 무속은 종교적 지도자인 무당을 중심으로 하여 민간에게서 전승되 고 있 는 종교적 현상이다. 이 무속은 불교 • 유교 • 도교 등 외래종교가 한반도에 들 어오기 훨씬 이전부터 한민족 신앙의 기간(基幹)이 되어 왔다 . 그러나 한국의 무속도 한편으로는 다른 지역의 샤머니즘과 무관 하지 않으나 다른 한편에서는 다른 지역의 샤머니즘과는 구별되는 특 유한 면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단지 한국 무속 이 한국인의 자연관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만을 살펴보기로 한다. 제주도의 무가(巫歌)인 「초감제」나 함경도의 무가인 「창세가(創世 歌)」 등은 천지창조의 개벽신화(開關神話)로서 우주가 생성된 과정을 해명하고 있다 .1) 무속에 서 나타나는 우주는 천상(天上), 지상(地上), 지 하(地下)로 삼 분( 三 分)된댜 천상에는 천신(天神)을 비롯한 일신(日神), 월신(月神), 성신( 星 神)과 그 시종신들이 살면서 우주를 지배하며, 지상에는 인간, 금수, 그리고 산신(山神)을 비롯한 자연신이 살고 있으며, 지하에는 인 간의 죽은 영혼 그 사령(死孟)을 지배하는 명부신(冥府神)이 살고 있다 고 사람들은 믿는다. 무속의 신관(神觀)은 그 자연관과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 무속의 신관은 다신적 자연신관으로서 우주만상의 모든 물체에 정령(精靈)이 1) 金泰坤 『巫俗信仰』, 『 한국민속대관 』 , 3 권, 237 - 240 쪽 ; 秦聖顧, 『南國의 巫歌』 (제주민속문화연구소, 1968), 866 쪽 이하 참고.

깃들어 있다고 믿으며 산(山) , 수(水), 초목(草木), 암석( 岩石) 등의 자 연물이 신성시된댜 종교학적으로 무속신앙은 애니미즘(animi sm) 이라 고 할 수 있다. 무속연구가 김태곤(金 泰坤 )은 무속의 윤리관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일찍이 잦았던 전화( 戰禍) 와 관구( 官ti ) 밑에서 시달리며 춥고 배고 픈 생활을 통해 단련된 서민의 의식 속에 고등종교가 강조하는 정신적 윤리성이나 내세적 구원의식이 자리잡을 겨 를 이 없었던 것이다.…… 무속은 불안의 해소와 나아가 생활에 희망을 주고…… 종교적 기능을 해왔다.〉 2) 또 무가연구가 서대석(徐 大錫 )도 무가의 윤리적 성격에 대해서 다음 과 같이 말했다 . 〈무가에서는 특별한 윤리가 강조되지 않는다. 강조되 는 것은 인간들 사이의 도리보다도 신에 대한 인간의 도리이다.…… 집단의 질서나 규범보다도 먹고 입는 생물학적 삶이 더욱 근본적이다. 이런 점에서 무속 나름의 규범을 찾기 어렵다.〉 3) 조선조의 성리학적 윤리관은 부정되고 있다 .4) 이 밖에도 근세 조선의 유학자들의 합리적 사고와 그리스도교의 유 일신사상은 가혹하리만치 무속사상을 비판해 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인은 어떤 종교를 믿건 간에 무속신앙에서 연원하는 기복사상(祈 福思想)의 지배를 받고 있다. 한국의 무속은 단군신화로부터 천도교 (天道敎)와 증산교에 이르는 한국의 자생적 종교와 그 밖에 민간신앙 은 물론이고 유교와 도교와 그리스도교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다. 한국 무속에 대한 연구가 일천(日浚)하고 특히 무 속의 윤리적 기능에 대한 연구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나 굿의 사례 를 중심으로 그 윤리적 의의를 연구해 보아야 할 것이다. 예컨대 도당 2) 金泰坤, r 巫俗信仰』 , 『한국민속대관』, 3 권, 262 쪽. 3) 徐大錫, r 巫歌」 , 『한국민속대관』, 6 권, 552-553 쪽. 4) 앞의 책, 553 쪽 .

굿, 즉 마을굿울 통한 공동체 의식의 함양이나 그밖에 인간평등사상, 권선징악 동 윤리사상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지금까지의 무속 연구에서 환경윤리와 직접 관련되는 자료를 찾아볼 수 없었다. 굿과 무가는 무속의 이해의 관건이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수집채 록된 무가에서 필자는 직접적으로 자연을 아끼고 보호해야 한다는 구 절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적어도 무속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은 영적 촌재인 자연물을 존중하고 함부로 자연을 파괴할 수는 없을 것이댜 1.2 풍수지리사상과 자연존중 풍수사상에는 산천을 눈으로 살펴 그 미추(美魏)와 좋고 나쁨의 느 낌을 판별하고자 하는 노력이 결집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풍수사 상은 이미 삼국시대에 중국으로부터 수용된 흔적이 있고 그로부터 근 세 조선에서 극성을 이루었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에게 끊임 없이 지속되어 왔다. 풍수 또는 풍수지리는 음양오행설과 지기설(地氣說)에 기초하여 민 속적으로 지켜내려오는 지술(地術)로서, 집터, 뭣자리의 방위(성향), 지 세와 형국 등의 좋고 나쁨이 사람의 길흉화복(吉凶禍福)에 관계를 가 진다고 보는 설이다. 혈족의식과 조상숭배사상을 가진 민족들에게는 지모사상(地母思想) 이 있다. 인간은 땅에서 나서 땅으로 돌아감으로 땅은 생명의 모체이 고 육체의 고향이며 우리의 신체는 땅(자연)의 일부분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명이 유구한 조상으로부터 면면히 이어와서 혈통을 이루고 연속된다고 보면 부모의 유체(遺體)를 안전하고 지기(地氣)가 왕성한 곳에 안장(安葬)하면 그 지기가 유체에 작용할 것이고 그 힘은 마침내 살아 있는 자손에까지 감응할 것이라는 지기감옹설(地氣感應說)이 생

겨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풍수지리설은 이미 중국에서 한대( i災代) 의 청위자(靑爲子)나 동 진( 東晋 )의 곽박(郭 攻 )이 저술한 『 채경( 蔡經 ) 』 에서 도참설과 도교 등과 혼합되어 이루어졌으며, 한국에 들어와서는 전래의 명산대천( 名 山大 川)을 숭배하는 토속적인 사상과도 결합되어 복잡하게 발전하면서 중 국에서보다 더 그 위세를 떨쳤다. 특히 근세 조선에서 묘지풍수설의 피해는 대단히 심해 실학자들의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풍수지리를 지리학적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있 는 최창조(崔呂祚)는 풍수사상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풍수사상은 모든 지리적 요소 들 에 매우 인간적인 실존 성 을 부여한다. 추 상적이고 기하학적인 공간을 구체적인 삶과 관련된, 상호유기적 관계의 살 아 있는 공간으로 만든다. 땅에 인간적 의미 를 주어, 이용과 착취의 대상이 아닌 더불어 살아가야 할 삶터로 환원시키는 것이 풍수사상이다. 풍수는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질서를 혼융 조화시키고자 하는 사상이 다 .5) 풍수사상은 묘지쟁송( 墓 地 爭談 )이나 의타적 발복( 發福 )사상 등의 반 윤리적 피해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땅을 생명을 가진 것 으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풍수사 상을 믿는 사람에게는 땅과 물을 더럽히거나 깨고 부수는 짓을 함부로 할 수 없고 생명의 근원인 땅을 아끼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1.3 도참사상과 자연보호 세상의 종말과 앞날의 길흉에 대한 예언을 믿는 도참사상은 예부터 5) 崔昌祚, 『땅의 논리 인간의 논리』(민음사, 1992), 233 쪽 .

우리의 민간신앙으로 끈질기게 신봉되어 왔다. 가령 우리나라에는 아 직까지도 『 정감록(鄭鑑錄)』을 믿고 따르는 사람 들 이 있다. 도참사상은 원래 중국의 주왕조(周王朝)의 혼란기에 민중의 욕구에 부응하여 일어난 사상이었는데 한반도에는 삼국시대에 전래되었다. 이 도참사상은 천문, 풍수지리 , 도교 , 역운( 易運 ), 음양오행사상, 천인 감응설 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한때는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도참은 인간 을 비 롯 한 사물의 성쇠와 득실에 대한 예언이나 징조를 나타내 는 용어이다 도참은 한자의 은어( 隱語) 로 표기되며 우리나라에 서 는 비기( 秘記), 비 결 ( 秘談) 또는 밀기( 密記 )라고도 불린다 .6) 신라 말기의 도선(道說 826 一 898) 은 도선비기( 圖洗秘記 )를 저술하고 지리쇠왕설(地 理哀旺說), 지리순역설(地 理順逆說 ) 등을 주장했다. 그는 산형과 지세의 자연적 조건이 인간의 신체와 묘하게도 상응된다고 믿 는 풍수설을 체계화했다. 그에 의하면 땅과 자연의 힘은 때로는 성하 기도 하고 때로는 쇠하기도 하는데, 지기가 왕성한 곳에 자리를 잡으 면 사람이 흥하게 되고 지가가 쇠하는 곳에 자리를 잡으면 사람이 망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지리적 조건이 좋지 않는 자리일지라도 인 공적으로 또는 불력에 의해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여기서 지맥(地脈)이니 수맥(水脈)이니 하는 말이 사람의 몸 속에 있다고 하는 혈맥(血脈)과 상통하는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 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지리적 요소와 인간의 실재성과 상관되고 있으며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엿볼 수 있다. 1.4 구비전승의 속신과 자연보호 우리는 한국인의 전통적 구비전승의 속신에서 인간과 자연과의 공 6) 朴星來 편, 『 한국과학사 』 (서울신문사, 1984), 19 쪽 .

생을 찾아볼 수 있다 . 1.4 .1 고수레 한국인에게는 성묘하러 가거나 산놀이, 들놀 이, 물놀이에 가서 가지 고 간 음식물의 일부를 들짐승이나 벌레와 함께 나누는 관습이 있다. 우리는 이것을 고수레 또는 고시래라고 부 른 다. 사람이 음식을 먹기 전에 먼저 음식물의 일부를 고시래라고 소리쳐서 자연에 기 별을 하고 뿌린다. 이 고시래는 좁은 의미의 무속신앙과는 구별될 수 있 는 한국 특유의 민간신앙이댜 무당이 굿을 하고 나서 음식물을 먹기 전에 음 식물의 일부를 떼어 귀신에게 바치는 것도 고수레라고 한다. 그러나 무당의 힘을 빌리지 않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고시래는 무속신앙과는 구별되어야 할 것이다 . 왜냐하면 필자는 범아시아적인 무속신앙과 한 반도 고유의 민간신앙과는 구별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한 국의 무속신앙 중에는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특유한 국면이 있다. 이 것은 무속신앙의 혼합주의 (s yn cre tis m) 으로 말미암아 한반도 전래의 민속신앙과 결합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1.4 .2 〈까치밥〉 감나무나 그 밖의 과일나무의 열매를 수확할 때 깡그리 다 따지 않 고 일부를 까치나 그 밖의 동물의 먹이로 남겨 놓는다. 이것은 인간과 다른 동물과의 나눔을 의미하며 한국인의 자연과의 공생을 의미한다 고하겠다. 1.4 .3 금기어(禁思語)와 자연보호 우리나라의 금기어 중에는 바과학적이고 미신적이며 백해무익(百害 無益)한 것도 많이 있으나 동식물을 애호하고 자연을 보호할 목적으 로 만들어진 것들이 있다. 금기의 습속(習俗) 중에는 빨리 없어지도록

우리가 계몽해야 할 것도 많으나 오늘날에도 지켜야 할 만한 긍정적 인 기능을 가진 것도 있으며 우리의 조상들의 자연보호관을 찾아볼 수도 있다. 동물보호와 관련된 금기어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7)

7) 검성배, 〈한국어 禁思語〉, 『吉兆語』(정음사, 1975) ; 『禁思俗信의 現代的 考察』, 『金思燁博士回甲論文渠.1 (1973) ; r 禁思語 • 俗信』, 『한국민속대관』, 690~719 쪽 참고.

까치나 제비 를 죽이면 죄를 입는다. 매미 를 잡으면 가뭄이 온다. 방 안에 늘 어온 날짐승을 잡으면 화재가 생긴댜 식물보호와 관련된 금기어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큰 나무 를 베는 사람은 쉬 죽는다 . 고목이 쓰러지면 흉사가 난다. 나무를 많이 때면 산신령에게 미움을 받는다. 식물이 말라 죽으면 집 안에 불길한 일이 생긴다. 그 밖에 〈땅을 파면 어머니가 돌아가신다〉든가 〈어린아이가 실없이 땅을 파면 부모가 죽는다〉는 금기는 땅을 함부로 파헤치지 못하게 하 는 효과가 있다고 하겠다. 1.4 .4 〈고사(告祀)〉와 가신신앙(家神信仰) 고사는 가신신앙의 의식으로서 어떤 큰 일을 도모하거나 가족의 안 녕을 위해 가신들에게 음식물(주로 팥시루떡)을 바치고 비는 행위를 말 한다. 고사음식은 이웃과 반드시 나누어 먹지만 사람들은 동시에 그 .음z z 식물의 일부를 집안 곳곳에 있을 법한 귀신과 대문 밖이나 나무 둥

자연에게 바치기도 한다. 고사는 가신의 종합제( 綜合祭) 로서 흔 히 지신제(地神 祭 )라고도 불 리 며 주부들의 소관이다? 따라서 가신신앙의 수호자는 거의 다 가정주 부들이다. 그들은 만유영유론(萬 有函有論, anim a li sm) 을 믿으며 자연을 존중할 줄 안다. 그러므로 가신신앙을 가진 사람 들 은 자연〔地〕을 합부 로 파괴하지 않고 자연을 보존하려고 한다. 우리는 가신신앙에서 인간 과 자연과의 나눔을 찾아볼 수 있다. 가신신앙에는 분명한 교리도 없고 엄격한 형식도 없다. 그러므로 지역에 따라 안택( 安宅 )의 시행방법과 시기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 것은 사무치는 정(情)에서 나오는 실질적인 종교로서 일상생활과 밀착 되어 있다. 가신신앙의 행사는 흔히 명 절 이나 식구 들 의 생일, 조상의 제삿날에 어차피 차려 놓은 음식물을 가신들에게 바침으로 따로 시간 이나 별다른 비용 없이도 행할 수 있다. 그러나 가신신앙은 무속과 아 주 밀착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로 무속신앙과의 구별은 쉽지 않다. 가 신신앙은 한국의 민속종교의 핵심을 이루며 오랜 역사 를 가져왔음에 도 불구하고 가신신앙에 대한 문헌적인 기록이나 연구의 자취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오늘날 메마른 도시생활에서는 고사가 점차 사라져가고 있으나 인 정과 자연존중사상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존속할 만한 좋은 민속이라 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1.4.5 귀신과 자연관 우리나라의 고대소설과 전설, 민담에는 귀신 이야기가 많이 동장하 며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귀신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8) 張 籍 根, r 民間信仰』, 『한국민속대관』(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편, 1982), 128- 129 쪽 참고.

문헌상으로도 우리 민족은 삼한시대( 三 韓時代)부터 귀신을 섬기고 재사를 드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삼국지( 三 國志)』와 『 진서(晋 書 )』 에는 삼한에서 귀신을 두려운 존재로 소중히 여기고 매년 5 월과 10 월 에 제사하는 행사가 있음을 가록하고 있다 . 9)

9) 『三國志』 , 三韓常以五月 祭鬼神 歌舞飮酒 登 夜無體其無 數十人 ; 『晋書』, 三韓 俗重鬼神.

이익( 李漢 )과 김시습( 金時習) 둥은 귀신울 음양설로 해석하였다. 이 익은 이렇게 말했다. 〈천지간에는 기가 가득 차 있고 곧 그 기가 정령 이며, 음의 정령이 백(魄)이고 양의 정령을 혼(魂)이라 이르며 이 혼백 이 합하여 인간의 정신과 근력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죽으면 양기가 유산(游散)되는 것이니 이것은 곧 유혼(游魂)이 삶을 변하여 죽음으로 되는 것이다. 유산하는 혼 가운데는 그 유산함에서 혹은 오 르고 혹은 내리는데 오르는 것은 양이요, 내리는 것은 음이며 오른 것 은 신이요 내린 것은 귀(鬼)라〉 10) 김시습도 〈귀(鬼)는 음(陰)의 영 (m) 이고, 신(神)은 양( 陽) 의 영( 孟 )(鬼者陰之 m, 神者陽之函)〉 11) 이라고 하여 귀신을 음양설로 해석하였다.

10) 李漢 『星湖懷說』(현암사), 136 쪽.

11) 金時習 『李載浩 證 』, 『金蒸新話』(乙酉文庫, 1972), 214 쪽.

사람이 죽으면 혼령은 저승으로 가는데, 저승으로 들어간 혼령은 선령이 되고 원한이 남아 아직 저승으로 못 들어가고 이승에서 헤매 고 있는 혼령은 악령이 된다. 선령은 선신(善神)이 되고 악령은 악귀 ( 惡鬼 )가 된댜 악귀 는 흔히 원귀 (究鬼)를 가리 킨다. 한국의 신은 자연신계(自然神系)와 인신계(人神系)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하려는 것은 자연관과 관련되는 자연 신이다. 자연신은 천신(天神), 산신(山神), 수신(水神), 지신(地神), 암석 신(巖石神), 식물신(植物神), 동물신(動物神) 등이 있고 무신(巫神)과 결 부되면 더 많은 종류의 신들이 있다. 예컨대 성신(星神), 방위신(方位

神), 화신(火神), 풍신(風神), 역신(度神), 산신( 産 神), 문신(門神) 등이 더 보태진다. 이 자연신은 안간의 자연에 대한 외경사상에서 나왔다고 해석될 수 있으며 결국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물을 촌중하도록 하는 도덕교육 적 효과를 가져왔다고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귀신 이야기 는 비과학적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일종의 환청과 환상 현상에 기인하 는 것이라고 볼 수 있으나 그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우리 조상들의 자연관을 엿볼 수 있다. 1.4 .6 민속의학과 자연관 우리나라의 민속의학은 인간이 자연에 속한 생명체로서 자연과 자 연물에 상응하여 살아가는 가운데서 건강을 지킨다고 간주하며 자연 요법을 가리킨다. 자연요법은 오랜 경험과 속신에 의거하여 대체로 구 전되어 오고 있으며 민간요법이라고도 한다. 동양에서는 자연과 인간을 동일시하며 자연계의 운동이 인체에서도 동시에 일어난다고 본다. 사람이 장수무병(長 壽 無病)하게 산다는 것은 결국 자연계의 변화에 순응해서 생활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해 뜨는 것처럼 봄, 여름에는 자리에서 일찍 일어나서 활동하고 가을과 겨울에는 자리에서 늦게 일어나야 하며 식생활과 기거(起居)에 절도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門 이것이 바로 양생(養生)의 기본원리이다. 1.4.7 민 담 등에 나타난 동물애 호사상 까치나 제비가 보은사상(報恩思想)을 가지고 있다든지, 소도 사람처 럼 질투를 함으로 소가 듣고 있는 앞에서 소의 능력을 함부로 비교평 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저 유명한 『황희 정승과 소』의 이야기 13) 등 우 12) 洪元植, 『上古天眞論』(高文社, 1972), 13 쪽 참고.

13) 李 昭光, 『 芝峰類說 』, 卷 15, 性行部 陰德 .

리나라 전래의 민담을 한국인은 누구나 어려서부터 잘 알고 있다. 우리는 그러한 민담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물을 의인화하며 동 물과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고 믿고 동물을 사랑할 줄 아는 것을 찾아볼 수 있댜 우리 조상들은 추운 겨울에 소에게 쇠죽을 끓여주고 방한용 덮개를 씌어준다든가 농사나 군용으로 부려먹던 우마( 牛馬 )는 함부로 도살하 지 않고 14 ) 사람에게 인정을 베풀듯이 동물에게도 인정을 베풀어야 한 다고 말해 왔다.

14) 『高麗 史 』 卷 39, 刑法 2 에 문종, 예종, 충열왕, 충선왕, 충숙왕 둥이 屠殺과 殺 生 과 屠 牛를 禁 한 것이 기록되어 있다.

말도 조상이 있어 그 마조( 馬 祖)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마제행사 ( 馬祭行事 )라고 하는데, 이것은 말의 번영과 무병을 비는 행사이다. 이 행사는 고려초 태조 때에 시작되어 계속 시행되어 오다가 1894 년 갑 오경장 때에 폐지되었다고 한다 . 1 5)

15) 姜冕 熙, r 畜産」, 『 한국민속대관 』 , 5 권, 453 쪽.

『 고려도경( 高麗圓經 ) 』 에는, 〈고려의 정사(政 事 )가 심히 인자(仁慈)하 여 불교 를 숭상하여 생물을 죽이는 것을 싫어하는고로 왕이나 고관대 작이 아니면 양고기와 돼지고기를 먹지 아니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농민들은 짐승의 고기를 많이 먹지 않으며,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은 육식을 좋아하는 사람을 천하게 보는데, 그것 은 육류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고 값이 비싸기 때문이 아니라 무의식 적으로 동물을 사랑하는 것과 깊은 상관이 있다고 보여진다 . 1.5 신선사상과 자연보호 김범부가 〈신선의 선도(仙道)는 한국에서 발생하였으며, 후에 중국

의 도교의 신선사상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1 6) 고 논한 것을 우리가 받 아들인다면, 신선(神仙)사상은 한국의 고유한 전통사상이라고 하지 않 을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신선사상이 한국인의 자연관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댜 17) 그러나 한국인의 민간신앙으 로서의 신선사상과 한국의 도교(道敎)는 내용적으로, 특히 자연존중을 두고는 중복되지 않을 수 없다. 김범부에 의하면 仙은 人변에 山자를 쓴 것인데, 이것은 산에 사는 사람, 곧 산인이다. 선의 음이 센이나, 새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무당을 말하는 것으로 경상도에서는 산이가 곧 무당이다. 무당은 서로 를 사니 라고 부르며,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사당이라는 말은 사니당의 줄인 말이다. 땅재주를 부리는 사람을 아우구산이라고 부르는데 아우구산은 강신(降神)하는 데 쓰는 소리이다. 이 산이 또는 센이의 어원은 샤만 (shaman) 에서 온 것이다. 몽고어로 샤만은 곧 무당이댜 막신( 幕 神)이 · 라고도 부르는 무당을 가리키는 말 도 샤만의 약어이다 .18) 따라서 무당은 신선에서 연원한다고 추론될 수 있으며, 무교(샤머니즘)와 신선사상은 불가불리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화랑을 국선(國仙)이 라고 하고 화랑사(花郞史)를 선사(仙史)라고 한 것은 샤머니즘을 계승한 때문이다. 신라뿐만 아니라 고조선 이래 선교 (仙敎)사상은 우리나라에 일관되게 전승되어 온 민간신앙이다. 진시황과 한무제가 신선을 동해에서 구하고 또 삼신산불사약(三神 山不死藥)을 구하는 둥, 모든 신선의 본거(本操)를 요동의 동쪽인 해동 에서 구했다. 우리나라 산에는 신선태(神仙台), 신선바위가 도처에 있 다. 입산하여 수도하는 사람을 선(仙), 곧 신선이라고도 하였다. 풍류 16) 金凡父, 『풍류정신』(正音社, 1986), 145-146 쪽 참고. 17) 진교훈, 이 책 의 143-147 쪽 참조. 18) 金凡父, 앞의 책, 45 쪽.

를 즐기는 우리나라 선비의 신선풍미(神仙風 味 )나 신선정조(神仙情操) 는 어떤 시대에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아득한 옛날부터 이미 있었 던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의 도교의 연원에 대해서는 중국으로부터 들어왔다는 견해도 있으나 신선사상의 원류를 우리나라에서 찾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고 보여진댜 이능화도 김범부와 마찬가지로 신선(도교)의 연원을 한 반도에 두고 이렇게 말했다. 단국 삼대의 신화와 도가의 삼청설( 三淸 說)은 다 우리 해동의 신선의 연 원이라고 국내의 서적 들 이 한결같이 말하고 있다. 예로부터 신선을 말하는 사람은 누구나 황제( 黃 帝)가 공동에 있는 광성자(廣成子, 신선의 이름)에게 도 를 물 었다고 한다. 그러나 동진(東 晋 )의 갈홍이 지은 『 포박자 』 에는 황제 가 동쪽 청구(靑丘, 우리나라)에 가서 자부 선생에게 삼황내문( 三皇 內文) 을 받았다고 한댜 자부 선생은 동왕공(東王公)으로서 그가 동방에 있는 까 닭에 세상에서 동군( 東君 )이라고 이르는 것이다 .1 9} 역사적으로 노장사상을 기초로 한 중국의 도교가 이 땅에 전해진 것은 유불사상이 전래된 새대와 거의 같다고 추측된다. 이것은 『삼국 사기 』 에 기재되어 있다 .20 ) 그러나 적어도 우리나라에 본래 있었던 신 선사상과 중국에서 들어온 교단도교가 합해져서 한국의 도교가 오늘 날까지 연면하고 있다고 보아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여 기서 문제삼는 것은 신선사상이 한국인의 자연관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를 살피려는 것이므로, 신선사상과 도교와 무교의 연원에 관한 논의는 일단 중단하기로 하고, 신선사상에 나타난 자연존중사상을 살 19) 李能和, 『朝鮮道敎史』, 이종은 옮김(보성문화사, 1971), 201-203 쪽. 20) 『三國史記』, 이병도 역주(을유문화사, 1980), 318-322, 376 쪽 참고.

펴보기로 하자. 고려 태조 왕건의 『십훈요(十訓要)』 (943) 의 2 조(條)에 이 런 구절이 있댜 모든 사원은 모두 도선이 산수의 순역(順逆)을 점치고 개창한 것이다. 도선이 이르기를 〈내가 점정(點定)한 곳 이외에 마구 절을 지으면 지덕(地 德)을 감손시켜 왕업이 오래가지 못한다〉고 하였다 . 나는 후세의 국왕, 공 후(公候), 후비(后妃), 신하들이 각기 원당(願 堂 )을 핑계삼아 혹시 더 짓지 나 않을까 크게 걱정하는 바이다. 신라말에 다투어 절을 지어 지덕을 감손 케 한 결과 결국은 멸망에 이르렀으니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21 ) 우리는 이 구절에서 왕건의 자연(지덕)보호사상을 엿볼 수 있고 오 늘날 한국에서의 무수한 사찰(寺斜j)과 교회의 난립에도 경종을 울린다 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큰 건물을 많이 짓지 않았다 . 우리는 그 이유를 도교의 가르침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불선(儒佛仙)은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형성해 왔다. 그 중에서도 신선사상은 한국인의 건강과 자연에 대한 이해에 큰 영향을 미쳤다. 우리는 이룰 한국의 시(詩), 서( 書 ), 화( 畵 )를 통해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한국 선비의 신선취미(神仙超味)는 도교적이라고 해도 지나 치지 않을 것이다. 선비는 풍월을, 자연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러나 이 신선사상은 유감스럽게도 서양의 합리주의사상으로 말미암아 질식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서양에서도 비합리주의가 교지(巧智)나 논하는 합리주의를 배격하고 동방의 도교에 관심을 쏟고 있음에 우리 한국인도 자연스러움이 가지고 있는 그 의미를 다시금 돌이켜보아야 할 것이다. 21) 『高麗史』 2, 太祖 26 年條 .

1.6 한국 민속불교와 자연보전 불교가 한반도에 도입된 이래 한국인의 전통사상에 미친 영향은 그 어떤 종교보다도 막강한 것이었다 . 따라서 한국인의 전통적 자연관을 논하면서 불교사상의 자연관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불가의 계율에서 불살생(不殺生)이나 살생유택(殺生有 擇)은 훌륭한 생명존중사상이다. 불교의 종지(宗旨)인 자비(慈悲)는 자 연에도 적용되며 만물의 인연화합사상(因緣和合思想)이나 연기법(緣起 法)에서는 상생(相 生) 의 원리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불교사상 에서 자연파괴의 원인을 찾아볼 수도 없지만 만물순환론(萬物循環論) 이나 제행무상(諸行無常), 허무적멸(虛無寂滅) 등에서 구체적인 자연보 존사상을 찾아보기도 어렵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불교의 경전에서 자 연보존과 직접 상관되는 분명한 자연관을 찾아볼 수 없다. 왜냐하면 불교는 자연이라든가 사물에 집착하는 것을 배격하기 때문이다. 불교의 기본적 가르침인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는 환경윤 리와는 상관되지 않는다 . 우리는 불교의 민속인 〈방생(放生)〉에서 생 명존중사상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불가의 생명존중사상은 생명이 있는 개별에 대한 연민을 말할 뿐 생태계 전체와 자연 전체에 대한 사랑이나 존경을 말해 주지 않는다. 불가는 자연 그 자체를 허깨비로 보고 자연에 대한 애착이나 미련을 헛된 것으로 본다. 우리가 불가에서 자연보호와 관련된 의미를 찾아본다면, 만물이 상 생연관(相生聯關)되어 있음을 깨닫고 인간이 허망한 자연 착취의 욕심 을 버림으로써 간접적으로 자연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의 민속불교에서 자연보전과 관련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왜냐하면 불교는 한국의 고대 신앙체계인 샤머니즘의 바탕 위에서 수용되었고 한국인의 민간신앙인 민속불교는 애니미즘을 신봉 하기 때문이다.

불교가 이 땅에 전래된 이래 한반도의 무수한 토속신들은 불타(佛 陀)의 슬하로 들어 간댜 홍윤식 (洪潤植)은 그의 논문 r 불교의 식 (佛敎儀 式)에 나타난 제신(諸神)의 성격(性格)」에서 이 신들을 크게 세 부류로 나누었다. 인도에서 전개된 신은 24 종, 중국의 영향을 받은 신은 2 종 (칠성신(七星神)과 십왕신(十王神)), 우리나라 토속신은 27 종이다 .22) 현행 한국불교의식에 나타나는 신들 중에 우리나라의 토속신이 과 반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의 토속신은 일반 신자로부터 강력한 신앙적 의미를 지니면서 불공의 주대상신으로 숭앙(崇仰)되고 있다. 이 토속신의 대부분은 자연신들이다. 산신(山神), 화신(火神), 수신(水 神), 금신(金神), 목신(木神), 정신(井神), 정신(庭神), 풍우신(風雨神), 토 신(土神), 용신(龍神), 일월신( 日 月 神), 해신(海神), 주강신(主江神) 등. 따라서 한국 서민불교는 무속사상을 비롯한 우리나라 원시종교의 영향을 받아 불교 본래의 교조적(敎條的) 의의와는 다른 양상을 지니 고 있으면서 자연숭배사상과 일맥 상통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한국 의 민속(서민)불교에서도 만유영유론(萬有函有論)을 찾아볼 수 있을 뿐 더러 그 자연숭배사상에서 또한 자연이 보호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1.7 천재지변과 기우제 한반도에는 기원전 4 세기 무렵 부여국(夫餘國)이 있었다. 부여국에 서는 가뭄이 오래 계속되어 오곡농사의 소출이 적게 되면 그 탓이 왕 의 실덕에 있다는 전통적인 관습을 믿었다. 그래서 왕을 페출시킨다거 나 심지어 처형해야 한다고 나섰다는 기록이 전해진다한 이러한 기록 은 왕의 부덕함이나 실정에 대해 하늘이 벌을 내린다는 믿음이 강했 22) 洪潤植, r 佛敎儀式에 나타난 諸神의 性格』, <韓國民俗學>, 1 집 (1969) 참고. 23) 이기백 • 이기동, 『한국사 강좌 1 : 고대편』(일조각, 1986), 53-54 쪽.

음을 보여준댜 그 이후 오늘날까지도 한국인은 흔히 천재지변이나 각 종 대형 인명사고는 왕이나 통치자의 부덕과 연관시켜 생각한다. 이것 은 일종의 천(자연)인상감설( 天 人相感說)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은 자연에서 발생하는 천재지변을 하늘이 인간의 행위 를 심판하고 벌을 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아주 못된 짓을 하는 사람을 두고 사람들은 벼락이나 천벌맞을 놈이라고 욕을 하는 데서도 우리는 천인상감설을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 현대인이 저지르는 자연 파괴야말로 바로 생태학적 위기로, 하늘이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의 과학기술도 가뭄울 극복하기 위한 특별한 효과적인 대응책 을 제시하지 못하며 많은 경우에 속수무책이다. 우리는 관정을 파서 지하수를 퍼올리거나 큰 강으로부터 물을 끌어들이거나 해수로부터 화학적으로 소금끼를 없애는 방법을 사용하여 물을 얻을 수 있다 . 그 러나 이러한 방법은 엄청난 비용이 들 뿐더러 일시적인 미봉책일 뿐 이며 오랜 기간의 가뭄을 극복하는 데 있어서 기술적 조작을 효과적 대응책이라고 말하기 어렵고, 더군다나 옛날 전통사회에서는 거의 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가뭄울 해소하는 문 제는 항상 매우 심각하고도 중요한 문제였다 .24) 가뭄을 가리키는 한자, 한발(早越)은 그 〈발(睦)〉자가 보여주듯이 귀 신(鬼神)의 작희(作戱)라는 뜻을 담고 있다. 여기서 〈발〉은 중국 남방 에 살았던 귀신의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이 귀신은 한모(早母) 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 귀신이 나타나서 행패를 부리는 곳에서는 가 뭄이 들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뭄은 귀신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라고 믿게 되면 가뭄을 퇴치하는 방법은 그 귀신을 몹시 혼내주어 쫓아버 리거나 잘 달래서 내보내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24) 박성래 편, 『한국과학사』(서울신문사, 1984), 80 쪽 참고、

전통적인 가뭄퇴치법인 기우제 는 바 로 이러한 것 에 의해 정 착 된 것이 라고 하겠댜 우리나라의 역사에는 옛날부터 기우제의 기 록 이 많 이 있다. 박성래 (朴 星來 )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기우제의 첫기 록 은 227 년 백제의 동명 묘( 東 明 廟 )에서 올린 것으로 나타나며 그 다음 253 년 신라의 시조묘 ( 始祖廟 )와 명산( 明 山)에서 올린 것으로 되어 있다. 기우제 는 불 교의 영향 아래에서도 끊임없이 이어져 고려시대에 도 중 요 한 불 사였으며 그 일례로 고려 예종 때, 즉 1160 년에는 송악에서 불교 식 기 우제 를 대 대적으로 지낸 것이 전해지고 있다 .25 )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초기에는 불교식 기우제가 지 속 되었고 그 일례로 1482 년 홍천사( 興天寺 )에서 기우제 를 지낸 후 바가 내리자 성 종(成 宗 ) 임금이 불승들에게 상 을 내렸다고 한다. 그 러나 조선시대에 는 유가사상을 바탕으로 한 가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자리 를 잡는 다. 즉 한발은 인간의 잘못으로 음양의 조화가 깨지기 때문에 일어나 는 현상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 예컨대, 15 세기에는 바오기 를 비는 방 법으로 남문(南門)을 닫고 북문(北門)을 열게 하였다 . 여기서 남문을 닫는 것은 양기(陽 氣 )를 억제하는 것을 의미하고 북문을 열어 놓는 것 은 음기(陰氣)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였다. 다시 말해서 한발현상이란 음양론에 따르면 양기가 지나치게 성해 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또 가뭄이 든 때는 시 각을 알릴 때도 북을 치지 않고 종을 쳤다고 한다 . 왜냐하면 가죽으로 만든 북은 양기를 돋우는 것이고 쇠로 만든 종은 음기 를 돋우는 것으 로 해석되었기 때문이었다 .26) 우리의 전통적 민간신앙 속에서는 비라는 자연현상도 만유영유론 25) 앞의 책 , 81 쪽 참고 . 26) 앞의 책, 83-85 쪽 참고 .

또는 물활론의 영향을 받아 해석되었다. 동양의 전통사회에서는 용 (龍)이 비를 만든다고 믿었다. 따라서 가뭄이 들면 흙울 빚어 용을 만 들어 기우제를 드렸다. 때로는 도롱뇽을 이용해서 기우제의 의식을 행 하였다. 도롱뇽 기우제는 1407 년에 행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다음과 같 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우선 물을 담은 항아리 두 개를 마당에 놓고 도롱뇽을 집어넣는다. 그리고 자리를 펴고 향을 피운 다음 푸른 옷을 입고 버 들 가지 를 든 스무 명의 사내아이로 하여금 이렇게 노래를 부 르게 했다고 한다. 〈도롱뇽아, 도롱뇽아 구름을 일으키고 안개를 토하 여 비 를 퍼붓게 하면, 너를 놓아 돌아가게 하리라.〉) 촌산지순(村山 智 順)은 1938 년 우리나라 각지에서 행하는 기우제를 매우 상세하게 조사해서 보고한 바 있다. 지역에 따라 기우제를 드리 는 장소, 방법, 제관( 祭 官)과 희생제물은 차이가 난다. 가령 전남지방 에서는 산, 냇가 또는 용소(龍沼)에서 지내고 전북과 경기, 함경도 지 방에서는 모두 산에서 지내며 경남에서는 산, 대천(大川), 섬, 시장터 에서 지내며 경북, 충북, 평안도에서는 산에서 지내지만 때로는 냇가 에서도 지낸댜 희생제물은 대체로 산에서 돼지를 쓰지만 때로는 개나 닭 또는 드물게는 소를 쓰기도 한다. 북쪽 지방은 기우제를 하루에 끝 내는 것이 보통이지만 남쪽 지방에서는 3, 4 일 걸리기도 했다. 기우제의 제관은 군수나 면장 둥 행정관료가 주로 담당하는데, 이 것은 가뭄의 원인이 국왕 자신에게 있다는 재이설(災異說) 내지 천인 감옹설의 영향이라고 하겠다. 또 가뭄의 원인이 암장(暗葬)에 있다고 믿어 여자들이 무덤을 파헤치는 일도 많이 있었다고 한다. 또 희생동 물 의에도 흙이나 모래로 용을 만들기도 하고 제단 주위에 나무를 많 이 쌓아 놓고 불을 지르기도 했다고 한다 .28) 27) 成保, 『情齊穀話』, 成樂董 옮김, 『한국의 思想大全集』 ·

우리는 앞에서 1930 년대 우리나라 전역에서 행해진 기우제의 내용 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인공적인 수리시설이 미비했던 시대에는 강우 량이 농업생산을 좌우했고 따라서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을 때에는 임금은 물론 지방수령과 농민이 하나가 되어 비가 내리도록 비는 제 사를 지내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기우제에서 자연 관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물활론적 자연관의 자취와 자 연의 신비와 자연에 대한 의경사상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앞에서 무속, 풍수지리, 도참, 속신, 신선사상, 가신신앙, 만 속의학, 민속불교 등의 한국의 전통적 민간신앙에서의 자연관을 살펴 보았다. 만일 우리가 민간신앙을 고등 종교의 교리와 과학적 사고 를 가지고 검토해 본다면, 민간신앙은 그 미신적 요소를 비롯하여 누구나 수용하기 어려운 점을 많이 가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 그러나 우 리는 한국인 사고의 기저(基底)에 적어도 자연을 경외하고 존중하는 사상이 깃들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한국인의 민간신앙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자연존중사상을 오늘날에도 긍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 는 여지가 있음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2 한국인의 전통적 문화생활과 자연관 앞에서 이미 살펴본 것처럼 한국인의 전통적 자연관은 일부 전문적 인 학자나 사상가들이 주장했던 이론들과 서민들의 민간신앙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한국인의 전통적 문화생활, 특 히 한국인의 실제 생활에 반영되고 있는 미의식 속에서 더욱 여실한 28) 村山智順, r 釋尊 • 祈雨 • 安宅」, 『生活生態調査資料集』, 조선총독부 편 (1938), 76-161 쪽; 金光彦, r 農耕」, 『한국민속대관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340- 348 쪽 참고.

한국인의 전통적인 자연관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국인의 전통적 문화생활의 진솔한 모습을 상류 사회가 향유했던 중국의 영향을 받은 고급 미술보다는 가장 한국적인 옛 조경과 건축과 민화와 민예품 등에서 더욱 잘 찾아볼 수 있다. 따 라서 그러한 것들 속에 배어 있는 우리 조상들의 정신과 그 정신에 깃 들 어 있는 자연관을 밝혀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한국의 옛 조경과 자연의 조화, 민화와 자연미, 한국민예품 의 자연미 를 다룬다. 2.1 한국의 옛 조경과 자연의 조화 〈한국의 조원(造苑)은 인공적 조영물을 속된 것으로 생각하여, 모든 것을 자연에 잘 동화시키고자 하는 생각에 따라 조영된 것이다.〉 조형 물은 자연과의 조화로 구성되어야 했으므로 건물을 세울 때 터를 잡 는 일이 제일 중요했다. 그래서 자연의 순리가 조원의 기본질서로 존 중되고 조경의 원리가 되었댜 29)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지세가 낮은 곳에는 연못을 만들고 언덕에는 꽃과 나무를 심었으며, 꽃과 나무를 인위적인 기하학적 배열로 심지 않고 인위 적 인 수형 (樹形)에 맞추어 전지 (前枝)하지 않고 늘 조경 이 자연스러운 모습을 유지하도록 유념했다. 지형을 존중하여 자연을 허물지 않으려 했고 토질을 변질시키는 일 을 하지 않았다. 습지면 습지에 잘 사는 나무를 심고 계간(溪淵)을 조 성했다. 한반도 어디를 가나 산이 수려하고 맑은 물이 흐르는 곳에는 으레 소술한 정자가 있기 마련이다 정자는 대체로 그 자체가 감탄할 만한 29) 정 재훈, 『한국의 옛 조경』(대원사, 1990), 8 쪽 참고.

훌륭한 건축물은 아니나 장소 선택의 의도와 동기 그리고 그 정자 를 세우고 줄기던 사람의 마음, 이런 것 들 이 어우러져서 우리 를 형이상학 의 세계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이는 맑고 깨끗한 자연에 의탁 하여 자연에 동화되고자 했던 우리 조상 들 이 이룬 고운 심성과 의지 의 표현이기도 하다 . 한국 정자의 조경은 자연적인 숲이나 주변 환경요소인 냇 물 이나 강 등을 자연적인 상태 그대로 받아 들 여 하나의 외부 공 간 을 형성하 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양의 조경이 인위 적 이고 기하학적인 것과 는 달 리 전통적인 한국의 조경은 일반적으로 본래의 자연 형태가 그 대 로 주변의 조경 구성요소로 이용된다. 이것은 자연숭배사상의 영향이라 고 볼 수 있다 .30 ) 정자나 누각을 배치할 때에도 자연의 조화 를 먼저 생각하여 강가, 산자락에 세워 원( 苑 )을 완상하는 장소로 삼았다. 담장은 구획을 정하 는 구조물이 되어 자연의 산림이라 할지라도 담 하나 둘러치면 원내 (苑內)가 되었다. 담도 토담, 바자울, 싸리울 등 환경과 어울리게 만 들 었다. 정원 안의 보도는 지세를 따라 자연에 잘 동화되도록 길을 냈으며 배수구나 계단도 눈에 거스르게 설치하지 않았다. 담장이나 연못의 축 대는 다듬지 않은 막돌로 쌓았고 성곽도 되도록 있는 그대로의 막 돌 울 얼기 설기 맞물리도록 쌓았다. 어찌 이를 돌을 다듬는 기술이 부족 하거나 나태함으로 돌릴 수 있겠는가? 정자의 주춧돌〔礎石]은 가공된 것이 아닌 자연암반이나 자연석을 사용하는 것이 상례이다. 섬돌(오르고 내리고 다니는 돌계단)은 근처에 흔히 널려 있는 자연 그대로의 크고 작은 돌들을 주워 모아 얼기설기 놓되 기하학적으로 배열하지 않았다. 30) 박언곤, 『한국의 정자』(대원사, 1989), 80 쪽 참고.

한국의 전원풍경은 서양이나 중국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을 압도시키는 풍경이 아니다. 자연조건이 그러하듯이 농경조건도 광대 한 대지의 경작이 아니라 개인 능력 안에서 이루어졌으며 주거와 농 경은 밀착되어 있다. 그래서 이러한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은 자연 속 에서 모든 것을 직감하면서 자연에 동화되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줄기 면서 살아간다. 이것은 바로 인간이 자연과 동화되는 방법을 자연스럽 게 터 득 하고 자연이 주는 혜택에 만족할 줄 알고 자연의 시련에도 순 응하 는 다소 곳합을 말해 주는 것이다. 농민 들 은 엎 드 려 일하던 논과 밭을 내려다 보면서 목을 축이고 배 를 채우 는 것도 들 녘 일터에서 한다. 일터 근처의 느티나무 밑이나 그 늘이 드 리운 밭두렁이나 허술하지만 확 뚫린 원두막에서 농민들은 잠 시 쉬면서 신선놀음을 한댜 그들은 거기서 자연과 하나가 되고 자연 에 순응하며 몸과 마음을 쉰다. 김원용( 金元龍) 은 〈조선 정원의 진면목은 서울의 북악산록에 있는 칠궁(七宮)의 후원( 後苑 )에 있다 . 이 후원은 정원이 아니라 산기슭의 일부이댜 산기슭의 일부에 담을 돌려서 칠궁 안으로 연결시켰을 뿐이 다. 그러니까 인공이라고는 담이 그은 경계선의 모습, 다시 말하면 후 원의 평면형과 군데군데 사방석(砂防石)으로 놓은 것 같은 장대석(長 恐石 )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도 위대한 정원이 또 어디에 있을 까, 여기에 들어서면 이 무조작(無造作)의 조작에 그저 탄성이 나올 뿐이다.…… 문자 그대로 천성(天成)의 솜씨요 감각이다. 이것이 바로 조선미술의 특색이다〉 31) 라고 갈파했다. 한국의 옛 정원들은 크게 신림(神林), 민가의 정원, 궁원(宮苑), 서원 ( 書 院), 별서 (別壓), 사원(寺苑), 묘림 (墓林) 둥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정원들에는 반드시 원림(苑林)이 조성되어 있고, 이 원 안에 나무 31) 金元龍, 『韓國美 의 探究』(열화당, 1978), 23 쪽.

들은 철저히 보호되었다. 우리나라의 건국신화에는 〈단군왕검이 무리 삼천 을 이 끌고 태백산 산상 신단수(神 檀樹 ) 아래 내려와 신제(神帝) 를 열었다〉는 기록이 『 삼 국유사 』 의 r 고조선조( 古朝鮮條 )』에 실려 있다. 또 『 삼국사기 』 에도 산 천에 제단이 있음을 알리는 기록이 있다. 이 제단 주위에 는 단군이 내 려온 신단수 같은 신림이 있었다고 하는데, 강화도 마니산 첨 성단, 신 라의 김알지가 태어났다고 하는 계림( 鷄林) , 신라 최초의 절 인 홍륜사 가 있던 천경림(天鏡林) 등은 국가가 보호하는 신성한 신림이었다. 마을마다 산천신(山川神)에 제사지내는 신단이 있었 는 데 이것이 나 중에 부락제(部落祭)를 지내는 당산의 신목(神木)이 되기도 했다. 또 성황당(城陸堂) 주위에도 신림이 조성되었다. 이 신림들은 신성한 숲 으로 존중되었으며 신령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되었으며 부락민들은 이 나무들을 철저히 보호했다. 민가의 정원에는 〈동쪽에 복숭아나무와 버드나무를, 남쪽에 매화나 무와 대추나무를, 서쪽에 치자나무와 느릎나무를, 북쪽에 살구나무와 벗나무를 심는다〉, 〈집 서쪽 언덕에 대나무숲이 푸르면 재물이 불어난 다〉, 〈문 앞에 대추나무 두 그루가 있고 당( 堂 ) 앞에 석류나무가 있으 면 길하다〉는 기록이 홍만선(洪 萬選 )이 쓴 『산림경제(山林經濟)』에 실 려 있다. 아무튼 우리나라 민가는 마을 전체를 구성하는 한 부분으로 집과 집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주위의 산천과도 조화를 이루었다. 집집마다 뜰에 나무를 심었다. 궁궐과 서원과 별서와 사찰은 숲으로 둘러쌓여 있다고 말할 수 있 을 정도로 온갖 나무를 심어 우리 선조들은 풍치를 감상하고 자연을 사랑했다. 이제 우리는 우리나라의 옛 조경과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는 우리나 라 고건축(古建築)의 특징에 대해서 전문적인 미술사가가 논한 것을 이 글의 마무리 삼아 음미해 보기로 하자. 우리나라 고건축의 특징에

대해서 김원용은 다음과 같이 논했다. 우리 고건축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건물의 입지, 공간구성을 자연에 순 응하여 자연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가장 기능적이고 그러면서 자연 속에 안기는 태도였다는 것이댜 32) 그래서 조그만 초가로부터 큰 기와집에 이르기까지 마당에 들어서 면 마음을 부드럽게 하는 따뜻한 분위기가 감도는 것을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댜 김원용은 또 우리나라 건축의 특징에 대해서 이렇게 언급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건축은 마당에 서 있으나 방 안에 앉아 있으나 위대한 대자 연에 대한 외경과 신뢰와 친밀을 느끼게 한다. 아것이 우리나라 고금(古今) 의 건축가들이 의도한 바요 또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3) 우리나라 건축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목조건축의 특징에 대해서 정인국(鄭寅國)은 한마디로 〈자연에의 순응과 무질서 중의 질서의 둘 을 들 수 있다〉 34) 고 말했다. 김원용은 〈확실히 우리나라의 건축은 자연환경의 정복이 아니라 그 에 대한 순응 • 적응 • 융화이며…… 동일평면의 기피(思避), 균제(均 齊 ), 상칭성(相稱性)에 대한 무관심 둥은 자연환경, 자연입지를 가능한 그대로 살리자는 데서 생기는 현상이라 하겠다〉는 말로 우리나라 건 축을 총평하기도 했다. 우리는 이러한 평과 상관되는 구체적인 실례를 다음과 같이 살펴볼 32) 金元龍, 『韓國古美術의 理解』(서울대학교 출판부, 1980), 178 쪽. 3334)) 鄭金寅元國龍,, 『앞韓의國 建책,築 1樣4式7 쪽論.』 (동명사, l'l7 4) , 14 쪽.

수 있댜 민가의 용마루는 산등성이와 나란했으며 담장도 주위 환경과 어울리게 쌓였으며, 기둥이나 서까래도 모가 나지 않게 다듬었고 나무 의 원형을 가능한 한 그대로 보존하려고 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집의 전형(典刑)을 경북 달성군 조길방 초가나 전남 담양군 소쇄원, 또는 경북 월성군 강동면 양동리에 있는 이원용 가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양인들은 무엇을 만들거나 집을 지을 때 자연을 원상회복이 불가 능하도록 깨부수고 늘 자연과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산다. 일본인은 집 안에, 죽 뜰이나 방 안에 자연을 끌어들이는 데 골몰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자연 안에 들어가서 집을 짓고 살며 무엇을 만 들 때도 되도 록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자연과 융화되면서 살려고 했다. 한국의 조원(造苑)은 음양오행사상과 풍수지리설의 영향을 받았으 며, 대체로 선경(仙境)을 동경하는 신선사상의 영향도 받았다. 그러나 한국의 건축과 조경에 줄기차게 일관된 것은 자연과의 조화와 순리를 존중하는 것이 었다 .l5) 2.2 민화와자연미 우리 민화는 우리 겨레의 미의식과 정감이 가시적으로 표현된 옛그 림이며, 한반도에서 우리 겨레가 오랜 역사를 통해 살아오면서 체득한 생활감정과 생활철학이 구체적으로 표현된 생활미술로서 민족회화의 줄인 말이라고 해석되야 할 것이다언 어떤 사람은 민화를 단순히 민 속화로, 심지어 정통화(正統 畵 )와 구별되는 속화(俗 畵 )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김호연(金鎬然)의 주장대로 겨레그림이라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37) 우리는 이와 관련하여 〈민중 속에서 태어나고, 민중을 35) 李重煥, 『擇理志』 ; 洪萬選 『山林經濟』 참고 . 36) 金鎬然, 『韓國의 民 畵』 (열화당, 1'1 76 ), 7 쪽 참고. 37) 김영학, 『민화』(대원사, 1993), 43 쪽 참고.

위해 그려지고, 민중에 의해서 구입되는 그림을 민화라고 하자〉고 주 장한 일본인 미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脫〕의 말을 액면 그대 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 같다. 한국의 전통적인 가옥구조는 민화와 불가분리의 관계가 있다. 한국 의 가장 기본적인 가옥구조는 외통집이다. 외통집은 안방, 건넌방, 부 엌, 그리고 두 칸의 뒷마루로 구성되며, 규모를 넓혀 지을 때도 외통 집을 기본으로 하여 아래채, 사랑채, 별채 등 가옥의 수를 증가시켰다. 집의 방향은 태양광선을 잘 받을 수 있도록 남향을 잡았으며 뒤에는 겨울의 북풍을 가로막을 수 있는 배산(背山)을 고려하여 터를 잡았다. 우리나라의 기후는 일 년 삼분의 일이 겨울이므로 추운 겨울의 냉 기(혼히 외풍이라고 함)를 막기 위해 집 전체를 작게 하였다. 외통집의 벽은 차가운 돌이 아닌 따뜻한 느낌을 주는 흙벽으로 이루어졌으며 흙벽의 부스러기나 먼지가 흘러내리거나 날리지 않기 위해 도배를 했 다. 이 도배는 외풍을 막고 방안의 분위기를 아늑하게 하는 구실을 하 였다. 도배를 할 때 문에 창호지 바르는 것도 같이 하였다. 창호지는 채광 을 가능하게 하면서도 바람을 막아준다. 도배는 지금도 한국인에게는 생활관습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도배와 문바르기를 대체로 흰 창호지 로 하였기 때문에 실내 분위기를 밝게 해주지만 도배를 한 후 장벽과 샛문에 민화를 붙였다. 의통집 안방의 장벽이나 샛문에 붙어 있는 민화와 병풍에 그려져 있는 민화의 대부분은 산수도(山水圖)와 화조도(花鳥圖)로 되어 있으 나 수복장수( 壽 福長 壽 )나 벽사(群邪)의 의미를 담은 그림도 있다. 사랑 방에는 주로 평생도(平生圖), 문자도(文字圖), 책거리 동의 민화가 붙어 있기도 하다. 한국의 전통가옥인 외통집마다 안방과 건넌방의 안쪽 장벽에 2 장씩, 샛문 앞뒤쪽에 2 장, 벽장문에 작은 민화 두 장 둥 합쳐서 적어도 8 장

이 필요하였다 . 이것 들 은 반 드시 2 장씩 하는 것 을 원 칙 으로 하였 는 데 , 이 쌍( 雙 )의 개념은 음양의 이수( 二 數 )와 관계가 있다. 그밖에 아래채, 사랑채, 별채에도 민화가 있고 , 거의 방마다 준 비해 둔 병풍과 별도로 걸어둔 족자의 민화까지 합치면 한 집에 적어도 민화 는 20 장에서 수 십 장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조선시대에 얼마나 많은 양의 민화가 있었는가 를 짐작할 수 있으며 그 많은 민화가 우리 조상들의 정서에 미친 영향을 중시하지 않 을 수 없다. 이 민화의 화제( 溫題 )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주 류는 철 저하게 한 국의 산 , 절벽, 계곡, 기암( 奇岩 ), 강, 수목( 樹木 ), 꽃, 새 , 동 물 , 풀 벌레 둥의 자연을 그린 것이다 . 민화 중에는 수복장수나 벽사, 책거리, 평생 도, 문자도 등도 있으나 특히 안방의 장벽이나 샛문에 붙 어 있는 민화 와, 병풍에 그려져 있는 민화의 대부분은 산수도와 화조도로 되어 있다. 그러면 한국 민화의 산수도의 특징은 무엇인가? 왜 우리 조상들은 그토록 산수도를 좋아했는가? 민화의 산수도는 대체로 채색되어 있으며 필법( 筆 法 )은 정통회화와 는 달리 중국의 화법( 畵法 )에 따르지 않고 주로 철선묘 를 사용하고 있 다. 「금강산도( 金 剛山 圖 )」를 비롯하여 r 관동팔경도』, r 소상팔경도」, 그 밖에 r 실경산수도( 實景 山水 圖 )」 둥의 산수도는 대체로 8 폭(장)으로 엮 어 병풍으로 만든 그림을 말한다. 우리 조상들이 그토록 산수도를 좋아했던 것은 그림 속의 산수 를 바라보면서 자연과 하나가 되고자 했으며 산을 경외하고 산의 한결같 음을 놓치지 않으려는 염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산수도에서는 인간이 대자연의 극히 작은 부분에 불과했고 자연 속에 동화되고 있으며 자연에로의 귀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겠 다 . 조선시대의 전문적인 화원( 畵員 )의 산수도는 중국의 화풍을 모방 했지만, 이러한 민화의 기본정신이 밑바탕이 되어 한국적인 회화가 이 룩되었다고 볼 수 있다.

동양의 산수화는 여백의 조화가 생명이다. 그러므로 여백의 처리가 작가의 가장 어려운 문제이며 관람자는 여백의 묘미에서 감동을 느낀다. 우리나라의 역대 유명화가 들 은 산수화에 정자를 즐겨 그렸다. 화폭 에 담긴 정자는 마치 세속에서 벗어난 곳, 자연의 순수함이 존재하는 그런 부분에 그려져 있다. 그래서 정자는 세속을 떠나 있는 절경이나 이 세상이 아닌 선경(仙境)이 시작되는 지점인듯 느껴진다. 좋은 산과 바위, 좋은 물과 폭포, 보기 좋은 구름과 하늘은 현세와 직접 맞닿지 않고 중간에 있는 정자와 정자에 앉아 있는 사람, 죽 신선으로 보이는 사람 을 통해 전달되게끔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화폭을 들여다 보노라 면 그림 속의 공간으로 끌려들어가 정자 속에 앉아서 절경에 마음껏 도취하게 되어 순간적이나마 보는 이로 하여금 대자연 속에 동화되게 만든다 . 볼 줄 아는 이는 우리나라의 역대화가 중에서 첫손으로 꼽히는 안 견( 安堅 )의 r 몽유도원도( 夢遊桃源岡 )」라고 불리는 산수화에서 신선의 마음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며 정선의 r 금강산도」를 비롯한 실경산수 화에서 나타나는 꾸밈없고 질박한 한국인의 자연과의 동화에서 자연 을 살리는 감동을 받을 것이다 . 민화 중에 비교적 수효가 많은 유형이 호랑이 그림이다. 호랑이 그 림은 작호도(開虎圖)라고도 불리는데, 대개 소나무에 까치가 앉아 울 고 있고 그 밑에 호랑이가 있다. 호랑이는 신의 사자(使者)일 것이며 까치는 신탁(信託)의 전달자라고 해석되기도 하고 설날 새벽에 방패막 이 그림으로 문에 걸기도 했다고 한다. 민화의 호랑이들을 보면, 그 얼굴은 도무지 맹수의 무서운 모습이 아니라 우습고 친근감을 주며 해학적인 표정을 짓고 있다. 우리는 이 호랑이 그림에서, 우리 선조들이 r 금강산도」에서 바위 모양을 마치 고깔을 쓴 승려와 같이 그린 것처럼, 호랑이를 의안화하 여 호랑이에게조차도 적대감을 가지고 대하지 않고 자연과의 합일을

꾀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2.3 한국 민예품의 자연미 민예품이란 서민사회에서 이름없는 공장( 工匠 )의 손으로 가식없이 만들어져서 서민(민중)들의 일상생활에 사용되는 것이다 . 이러한 민예 품 속에서 드러나는 민속적인 조형기질(造形 氣質 )이나 표현애( 表 現愛) 는 다른 어느 분야보다도 개성이 강하고 솜씨는 정직하고도 꾸밈이 없는 것이 특색이라 하겠다. 그러나 19 세기말 서구문물의 수입과 더불어 우리의 전통적 생활체 제가 많이 변혁되었다. 따라서 전통공예품의 수요가 격감되기 시작했 고 일제시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가적인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로 전통적 민속공예는 이제 명맥 유지조차 어렵게 되어 있다. 전래하 는 장인(匠人)들의 비법을 전수받으려는 사람들의 감소와 빈궁한 장인 들의 의기소침과 한국인의 전통문화에 대한 무관심은 한국의 전통민 속공예가 사양의 길을 걷도록 만들고 있다. 이것은 매우 우려할 만한 민족문화의 위기이다. 민예품은 우리 선조들의 정서와 숨결이 배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선조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해 왔고 완상해 왔던 조선시대의 도자기와 목공예품에서 그들의 여실한 생활철학과 자연관을 들여다 볼 수 있다. 〈한국의 미는 조선시대의 도자기나 목공예품과 같은 민속예술품 또는 민중예술품을 가리키는 민속품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38) 는 평들은 한 국인의 미의식을 이해하는 사람은 누구나 수긍할 것이다. 38) 金元龍, 『韓國美의 探究』(열화당, 1978), 38 쪽 ; 安輝 溶 , 『韓國繪 畵 의 傳統』(문 예출판사, 1988), 43-45 쪽 참고.

2.3.1 목공예의 자연미 우리나라에는 양질의 석재가 많음으로 궁궐이나 종묘사직이나 서원 과 사찰 둥이 길이 보존되기를 바라면서 돌로 집을 지을 생각을 우리 선조들도 했을 법한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우리 선조들은 주택은 물론이고 가재도구의 대부분을 나무로 만들 어 사용했다. 주택이 목조이므로 그 안에 놓이는 가구도 목재이기 마 련이었을 것이댜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목공예는 우수하게 발달할 수 가 있었을 것이댜 우리 조상들은 불교의 석탑이나 석불상이나 철불상 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돌이나 쇠를 다루는 솜씨가 대단히 우수했지 만, 집 안에 돌을 끌어들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들이 돌 은 딱딱하고 차갑고 나무보다 덜 자연스럽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김원용은 조선시대의 목공예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 리 조상들의 자연에 대한 애착은 조선의 목공품에서 가장 잘 나타나 있다. 조선의 목공품처럼 소재의 자연미를 살려서 인공의 선과 면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데 성공한 미술품은 없을 것이다.〉 39) 또 황호근( 黃 沮根)은 이렇게 말했다. 〈조선의 목공예에서 가장 중요 한 것은 나무의 원형을 변경시키지 않고 나무의 형태로 작품을 만드 는 것이다.〉 40) 그리고 그는 또 이렇게도 말했다. 〈우리는 조선의 목공 예를 통해서 조선시대의 우리 조상들의 소박한 자연미를 체득할 수 있으며, 그들의 자연에 통하는 마음을 목공예의 형태에서도 발견할 수 가 있다.〉 41) 그러므로 우리는 조상들이 목공예품을 만들 때 소박한 선과 나무의 결을 살리면서 검소하면서도 견고한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 39) 김원용 • 安輝沼 『新版 韓國美術史』(서울대학교 출판부, 1993), 6 쪽. 40) 黃沮根, 『韓國의 美』(울유문화사, 1970), 60 쪽 . 41) 黃沮根, 앞의 책, 68 쪽 .

목공예품에는 그림을 그려서 새기 는 데, 그 그림은 매란 국죽 (梅蘭 菊 竹)의 사군자(四 君子 )를 비롯하여 아름다운 화초와 새, 경치 좋 은 산 수, 십장생(十 長生 ) 등을 내용으로 한다. 목기( 木器) 에 붙이는 장식 쇠 붙이나 열쇠에도 나비꼴, 꽃잎꼴 같은 것을 흔히 사용했다 .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전통 목공예품은 다른 나라의 공예품처럼 기 하학적 무늬를 새겨 기교를 부리지 않았고 되도록 자연미 를 살리려고 했음을 찾아볼 수 있다 . 예컨대, 특히 스님들의 식기인 바리때라든가 나무로 된 제기류( 祭器類 )와 두주와 상류( 床類)들 과 함지 류들 이 그러 하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 조선(朝 鮮 )의 목공품(木 工品 ) 』 이라 는 글 에서 조 선의 목공품은 말로 정의내리기 어려운데, 그것은 〈인간 이외에 자연 이라는 것이 가미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고, 〈작위(作 爲 )가 없고 미망(迷妄)이 없고 자연의 의지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며 자연을 쫓아 더욱 자연에 작용하며, 모두가 자로 재서 만든 것이 아니므로 정밀한 데는 없지만, 그만큼 여유가 있고 따뜻하며 , 이지( 理智 )의 작품이 아니 며 유순하고 순하고 태평스럽고 온화하다〉. 그것은 〈자연을 살리고 있 다. 왜냐하면 자연의 아름다움이 여기서 한층 더 응집되기 때문이다〉 42) 라고 논했다. 야나기의 이러한 논의는 매우 호소력이 있으며 많은 사 람들의 수궁을 얻고 있다고 하겠다. 김원용은 〈자연에 대한 애착, 자연현상의 순수한 수용, 이것이 한국 민족의 특성이요, 또 한국 미술의 본질인 것이다〉라고 갈파하고 나서 특히 조선의 목공예에 대하여 〈인공 이전, 미 이전의 세계에서 일하며 형용할 수 없는 불후불멸(不朽不滅)의 미를 만들어내고, 소재가 가지 는 자연의 미를 의식적으로 보존하려는 노력은 세계에 자랑할 만한 성과요 감각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3) 라고 피력하였다. 42) 柳宗根, 『朝鮮의 藝術』, 朴在姬 옮김 ( 東 西文庫), 213-214 쪽.

우리는 이러한 논의를 통해서도 우리 선조들의 미의식은 자연의 미 를 의식하는 것이며 자연에 대한 애착과 자연존중사상임을 명백하게 숙지할 수 있댜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전통 목공예품보다 우리나라의 전통도자기의 아 름 다움과 그 우수성을 극찬하지만, 한국인 특유의 미의식은 청자(習 磁)보 다 는 백자( 白磁) 에, 백자보다는 도기( 陶器) 내지 토기( 土器 )에 더 잘 담겨져 있으며, 한걸음 더 나아가 도자기보다는 전통목공예품에 가 장 잘 담겨져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안타깝게 생각되는 것은 목공 예 품은 재 질 때문에 보존이 어렵고 그 수명이 짧아서 많은 우수한 것 들 이 세상에 전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예술품 중에서 세계적 보물로 내세울 수 있고 인정받을 수 있 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일본 교토 광융사( 廣隆寺) 에 있는 미록반가사 유상이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그것은 우리 선조가 소나무로 다 듬은 것이다. 이것이 어찌 우연일 수 있으며 어떤 한 천재의 힘만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나무로 만든 것으로 이보다 더 훌륭한 작품이 이 세상 어디에 또 있겠는가? 이러한 미륵반가사유상을 만들 수 있는 신기(神氣)가 알게 모르게 조선인의 목공품 속에 배어 있는 것을 야나기가 통찰하고 나서 종교 적 사유의 극치와 법열( 法稅) 을 느낀 나머지 , 〈만든 물건은 많건 적건 죄에 물들어버리나 조선의 물건은 모두가 죄에서 멀리 있지 않는가, 아니 죄 같은 것은 찾아볼 수도 없다.…… 조선의 공인들은 별달리 어 려운 수행에 의해 이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선)라고 토 로할 수 있었다고 보여진다. 야나기가 조선의 목공품에 대해서 〈보고 있으면 대개의 경우 순순히 주어진 것에다 맡기고 있다. 맡김으로써 43) 金元龍, 『韓國美術史』(洪文社, 1973), 5 쪽. 44) 柳宗稅, 앞의 책, 213 쪽.

물건을 살리고 있다. 그것도 맡긴다는 생각에 맡기는 것은 아니다. 맡 기는 방식이 더 순일(純 一 )하댜…… 있는 그대로 순순히 받아들인다〉 고 한 말은 수도자의 자세를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될 수 있 을 것이다. 2.3.2 도자기의 자연미 인류의 문화생활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 흙 이다 . 기와와 벽돌이나 각종 용기가 흙 으로 만들어진다. 도자기란 흙을 구워 만든 것이다. 따라서 이 도자기 속에는 우리 선조 들 의 사상이 깃 들 어 있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한국인의 전통적인 자연관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우리 조 상들이 만들어낸 도자 속에 스며들어 나타나고 있는 그들의 생생한 자연관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김원용은 조선 도자에 나타난 자연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조선 도자의 기본적 특색은 결국 ‘자연’이라는 말로 귀약될 것이다. 미사여 구를 써서 갖가지 표현이 나올지 모르나, 결론은 결국 다른 한국 미술 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연’이라는 한마디로 귀결될 것이다. 일본도공들 은 ‘자연’을 체득하고 모방하려고 하였으나 끝내 실패하였다. 그들의 ‘자연’이란 생각해낸, 조작된 인공적 자연이었으며, 아무리 애써도 일 본적인 잔재주와 꾸밈새로 빠져버렸다.〉 45) 우리는 이러한 설에 대해서 전폭적으로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김 원용은 이미 그의 다른 책들에서 한국의 미는 한마디로 자연주의(물론 서양의 유물론적 na turalis m 과는 거리가 먼 도가적 표현이다) 특색을 가졌 다고 말했지만, 조선도기에 대한 그의 총평은 정곡을 찌른 것이라고 하겠다. 우리는 그의 글 속에서 우리 조상들이 도자기에 그들의 자연 45) 金元龍, 『韓國美의 探究』(열화당, 1978), 25 쪽.

관을 어떻게 나타내고 있 는 가 를 충 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한 국 도자기에 는 꽃 병이 발달하지 않았다 . 그 이유는 한국인들은 들 이나 산에 있는 꽃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 이외에 는 그것을 굳 이 똑똑 꺾어서 방 안의 꽃 병에 꽂아야 할 필요성 을 느 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 던 야나기 는 한국인은 〈빛깔이 아름다운 꽃을 즐 길 마음을 가지지 못 해 꽃 병 도 별 로 만 들 지 않았다 〉%) 고 잘못보았던 것 같다. 안규 철 ( 安奎哲 )은 홍 만선( 洪萬選 1664 - 1715) 이 그의 『 산림경제(山林 經 治) 』 에서 〈 꽃 병을 위한 화품 (花品) 은 매화, 모란, 작약, 연꽃 , 치자…… 등이 좋 으나 절 기화( 折技 花)는 자연의 모습을 훔 치는 것이므로 삼가하 는 것이 좋 다〉고 말 한 것을 인용하면서,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일본인 의 꽃꽂 이에서처럼 꽃을 똑똑 꺾거나 싹둑싹둑 잘라서 꽂 는 행위를 피해야 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보았다 .4 7) 우리는 여기서 화훼( 花)'f )와 꽃 꽂이와 일본식 꽃 꽂이, 소위 이케바 나 [生 1 티롤 구별해서 보아야 한다. 최 근 우리나라 사람 들 은 화훼를 꽃 꽂이와 혼동해서 사용하지만 화 훼 란 말의 화는 꽃 을 관상하는 초본( 草本 , 죽 화초)과 목본(木 本 , 죽 꽃 나무) 을 , 훼는 꽃뿐만 아니라 줄기와 잎과 가지까지도 관상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화훼는 관상용 식물을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래서 화훼원예라고 말한다. 그리고 화훼는 중국의 『주론서( 査 論 書 )』에 나타나는 용어이며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화훼절지화(花 升 折枝花)라고 부르는 주과( 꿉 科)의 명칭이기도 하다 . 꽃꽂이는 화초나 나뭇가지를 꽃병이나 수반(水盤)에 꽂아 감상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에 꽃꽂이 풍습이 있었던 것으로 전 46) 柳 宗 脫 앞의 책, 124 쪽 . 47) 安 奎哲 , 『山林 經濟 에 실린 조선시대 선비의 사랑방 가구』 , < 季刊 美術2>, 제 28 호 (1983), 겨 울호, 50 쪽 참고.

해진댜 예컨대 『삼국유사 』 의 「헌화가(臥花歌)」라든가 고구려 쌍영총 벽화에 화병꽃이 그려져 있다든가, 안악 2 호 고분에는 수반에 꽂혀 있 는 연꽃 등이 그러하댜 우리나라의 꽃꽂이는 불교의 공화(供花)의 영 향을 많이 받았다고 보여진댜 일본인은 우리나라를 통해 불교의 공화 를 받아들이면서 그들 나름대로 입화(立花)라고 불리는 독특한 양식으 로까지 발전시켰다. 그러나 일본인은 생화를 수반 위에 꽂는 것을 좋 o} 한다. 한국인의 꽃꽂이는 백자 항아리에 생화를 한아름 꽂기도 하지만, 일본인들처럼 화형(花形)을 고려한다든가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 한국 의 전통적 꽃꽂이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주로 조화, 즉 종이꽃을 사용했다. 특히 불교의 연동행사나 관불희(i花佛會)의 의식에서 지화(紙 花)를 사용했다. 조선시대에는 궁중의 의식, 사대부 집안의 잔치에서 종이꽃을 널리 장식용으로 사용했다. 그래서 종이꽃을 전문적으로 만 드는 지화장(紙花匠)이 따로 있었다. 우리 선조들은 불단을 종이꽃이 나 마른 꽃(乾花)으로 장식하는 것을 좋아했고 싹둑싹둑 잘라 꽂거나 수반에 뾰족하고 날카로운 침봉을 놓고 강제로 생화를 꽂는 것을 좋 아하지 않았다. 또 우리 조상들은 단작스러운 분재(盆裁)나 화분을 기 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중국인처럼 새장 속에 새를 가두어 놓고 새우는 소리를 즐긴다든가 일본인처럼 유리항아리에 금붕어를 잡아 놓고 쳐다보지 않았다. 도대체 우리 조상들은 동물을 가두어 놓고 기 르거나 공간이 막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서양인은 자연을 파괴하면서 집을 짓고, 무엇을 만들 때 항상 인간 본위적이고, 일본인은 집 안에 인위적으로 자연을 끌어들이는 데 골몰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무엇을 만들 때도 가능한 한 인위적인 것을 피 했고 자연스러운 것을 중시했다.

2.3.3 한국 자수공예 의 자연 미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자수공예품은 다른 민예품과 같이 우리 민 족 의 정서가 깃들어 있다. 특히 자수공예품은 우리 민족 의 태반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의 손으로 만들어진다. 우리는 자수품 속에서 우리나라 여성 들 의 내면세계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오 늘날 전해지고 있는 전통자수품을 들여다보면 크게는 병풍으로부 터 작게는 골무 라는 소품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지만, 한국의 전통자수품들은 각기 그 나름대로의 주제에 의한 독특한 형태 의 아 름 다움과 가식없는 질박함을 보여준다. 한국의 전통자수의 특 징은 무엇보다도 다른 나라의 자수와는 달리 특 히 어떤 규정이나 규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스러움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대담한 생략과 자유로운 표현이 돋보인다. 자수는 다른 문화유산과는 달리 훼손되기 쉬운 재료의 성질 때문에 조선시대 이전의 것은 오늘날 전해지고 있지 않아 고대 자수의 실상 에 대해서 알 수 없다. 그러나 자수의 주제는 민화의 주제와 크게 다 르지 않다고 보여지며, 한국 여인들의 애톳한 안목과 애환과 정성이 담겨 있다고 하겠다. 한국 전통자수는 특히 그 자연스러움과 아늑함을 추구하고 과장되지 않고 간결함과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점에서 다른 나라의 자수와는 구별되는 한국적인 독특한 아름다움을 창조해 낸다고 하겠댜 한국 자수는 복식뿐만 아니라 수불( 羅 佛)과 가사(装娑) 등 불교적인 자수 이외에도 병풍, 수부채, 마차장식, 여러 종류의 주머니와 보자기 와 띠, 그리고 안경집, 노리개, 베갯모, 방석, 꽃신, 수저집 둥 일상용 구에 이르기까지 널리 보급되었댜 기록에 의하면 이미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 자수의 우수함은 중국에 알려졌고, 4 세기에 백제가 일본에 자수기술을 전했다고 하며, 일본의 족보로 되어 있는 진량 중궁사(秦 良 中宮寺) 소장품인 천수국만다라수장(絲帳)은 고구려 인 가서 일(加西

盜 )이 만들었다고 한댜 48 ) 또 『 삼국사기 』 나 『 고려사(高麗史)』에는 우리 선조들이 자수를 너무 좋아하여 사치풍조에 이 를 정도로 극성(極盛)하 여 국법으로 그 사치풍조를 금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자수는 궁중에서 하는 궁수( 宮結 )와 일반가정에서 하는 민수(民 線 )로 크게 나누어지는데, 궁수는 전문적인 의장(衣 匠) 이 수본 ( 結本 )에 따라 규범에 맞추어 수를 놓는 것이라고 한다면, 민수는 부 녀자들이 본 대로 느낀 대로 표현하는 서민 들 의 미의식이 잘 드 러나 고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미의식 속에서 우리는 조선 여인 들 의 자연 관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 자수는 대체로 불교자수, 병풍자수, 복식자수와 생활자수로 나 누어 볼 수 있다. 예술적인 관점에서 보면 불교자수가 높이 평가될 수 밖에 없겠으나 우리가 문제삼고 있는 자연관을 살펴보려면 병풍자수 와 복식 및 생활자수의 문양을 검토해 보지 않을 수 없다 . 병풍자수는 서화병풍과 그 주제의 내용은 거의 비슷하나 그 표현에 있어서 자수 특유의 멋을 간직하고 있다. 자수병풍의 밑그림은 궁수의 경우 철저하게 도화서( 圖畵署 )에서 그린 수본을 이용하지만 민수의 경 우 자수자가 직접 그림을 그려서 수를 놓기도 한다. 조선시대 후기에 민화가 많이 그려지면서 자수도 민화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당시 서민층들이 만들고 애호했던 자수병풍의 내용은 서민들의 취향과 생 활감정을 소박하게 표현한 것이 대부분이다. 특히 관상용으로 화조(花鳥)를 다루는 것이 가장 많고 수( 壽 ), 부 ( 富 ), 귀( 貴 ), 다남(多男), 복(福)의 염원을 담은 것과 산수와 십장생을 담은 것이 가장 많이 눈에 띈다. 그 밖에 유교적 가르침을 담은 글과 그림을 혼합해서 표현한 효제도(孝佛圖)라든가 농사를 권장하는 경직 48) 柳 喜卿 , 『한국복식사연구』(이화여대 출판부, 1977 ), 52-53 쪽 ; 金惠卿, r 자수공 예』, 『한국민속대관』, 5 권, 614 쪽 참고 .

도(耕織岡), 문방사우( 文房四友, 먹, 벼 루, 붓, 종이)를 묘사한 병풍 등이 있는데 이들 병풍자수의 그림에 역원근법(逆 遠近法 )을 써서 입체적 표 현을 시도하고 있는 것도 매우 홍미롭다 .4 9) 그러나 우리가 병풍자수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여러 종 류의 길조( 吉鳥 )와 꽃과 나무들, 특히 일제시대의 무궁화로 한반도를 수 놓은 것 들 이댜 화조병풍에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는 오동나무 밑에 앉아 있는 봉황, 소나무를 배경으로 날고 있거나 바위에 앉아 있는 학, 암수 한 쌍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원앙이나 오리, 부귀를 상징하 는 모란꽃, 장수 를 상징하는 국화, 고귀와 용기와 봄을 상징하는 매화, 길상( 吉詳 )과 해탈( 解脫)을 상징하는 연꽃과 또 해, 구름, 물, 산, 소나 무, 대나무, 불노초, 거북, 사슴, 학을 소재로 한 십장생, 물고기들이 노니는 풍경 들을 민화에서처럼 인간과 자연이 조화와 하나임을 나타 내고 있는 것이다 언 민화는 남자들이 비교적 쉽게 대충 그린 것이라 고 한다면, 병풍자수는 여인들의 정성이 한올한올 돋보인다는 점을 유 념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조선시대의 복식제도는 특히 궁복(宮腹)이나 공회복(公會腹)이 중국 의 제도를 본받았음을 『경국대전(經國大典)』을 참조하면 알 수 있다. 특히 조선시대 왕의 관복(冠腹)과 왕세자와 문무백관(文武百官)이 입 는 조복(朝腹 일종의 관복)이나 왕비, 공주, 후궁과 상류층의 부인들이 입는 공회복은, 통일신라시대 이후 오늘날까지도 한국의 상류층 복식 이 항상 사대주의에 빠져서 외래의 것을 숭상하듯이,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고 모방을 일삼았기 때문에 51) 한국의 전통적 자연과는 무관하 49) 朴永淑, 『鬼菓刺綠特 別展 圖錄 : 韓國의 刺羅 』 (한국일보사와 국립중앙박물 간, 1978) 참고. 50) 柳 喜卿, 앞의 책, 329 쪽 이하 참조 51) 金惠卿, 앞의 책, 624-627 쪽 ; 級林苑 編, 『李朝의 刺羅』(昌 雲社 , 1974), 44 쪽 ; 金東旭, 「韓國服飾史」, 『韓國文化史大要』, 4 권(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편, 1970), 69-111 쪽 참고.

댜 그러나 조복의 흉배(胸背)자수의 문양이 사슴, 돼지, 따오기, 기러 기, 학, 호랑이, 사자, 공작으로 되어 있는 것과, 특히 무관의 흉배에 나는 새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 것 등은 동양 자연관의 일면을 보여준 다고 하겠다. 아무튼 조선시대에는 문관만을 우대하고 무관을 하시(下 侍)했으며 새가 나는 형상인 길상은 문관에게만 허용되었다. 복식자수 에서는 한국인의 전통적인 자연관에 대해서 특기할 만한 것을 발견할 수없댜 생활자수는 옛 여인들의 소담스럽고 아늑한 정취 를 가독 담고 있어 서 우리에게 더할 수 없는 친근감을 안겨주며 한국 여인 들 의 자연관 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베갯모는 필수불가결한 혼례용품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여인들 스스 로가 만들었다. 베갯모, 방석과 여러 종류의 주머니와 보자기와 바늘 꽂이, 골무, 띠, 굴레 등에는 각종 꽃과 나무와 산수와 새를 그린 문양 이 대부분이다. 한국의 전통자수는 무늬의 종류에 따라 적합한 기법을 창안해 내어 다양한 기법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한 가지 기법만을 주로 사용하지 않고 같은 자수품에다가 여러 가지 기법을 동시에 사용했다. 예컨대 넓은 면적을 메울 때는 평수기법을 보다 세밀하게 처리하고 색을 조 화 있게 꾸밀 때는 자련수기법을, 선은 이음수기법으로, 석류알이나 꽃술 등은 매듬수기법으로, 나뭇잎이나 꽃잎은 가름수기법 또는 평수 기법으로 하였고, 한 가지 기법으로 원하는 표현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위에 반복해서 다른 기법이 사용됐다. 그래서 우리의 전통자수는 단순하게 보이면서도 다양하게 느껴지는데, 그것은 수를 놓는 여인들 의 자유로운 미적 감정에 의한 색과 기법의 변화를 적절하게 구사하 는 풍부한 표현기술 때문이라고 하겠다.

2.3.4 초고공예(草 墓 工藝)의 자연미 초고공예란 주로 풀과 짚을 재료로 해서 만들어진 제품이다. 이러 한 제품 들 은 농가의 보조용구나 단순 소박한 민구류(民 具類 )로부터 고 급 스 러운 화문석(花 紋席 )에 이르기까지 우리 선조들의 옛문화 생활과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 어떤 나라의 초고공예품도 그 나름대로 자연 미 를 나타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문양의 주제나 내용에서 보 면 우리나라의 초고공예는 특별한 아취를 풍기고 있고 특히 우리 민 족 의 정서와 기호에 잘 어울린다 . 우리 나라 도처 에 혼한 완초( 完草 ), 짚, 갈대, 부들은 유성 (油 性 )의 각 피가 알맞게 덮 여 있어 수분 침투가 어렵고 잘 끊어지지 않는 질긴 성 질 을 가지고 있어서 일찍부터 공예품으로 많이 이용되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는 초고공예의 종류가 매우 많다. 예컨대 짚신, 도롱이, 운 반이나 저장 등에 사용되는 멱서리, 멱둥구미, 다래끼, 주루막, 삼태기, 방비 , 와리 등의 기초적인 수공품과 민구(民具)들로부터 함, 고리, 농, 장 등의 수장구(收 藏具 ) 및 많은 종류의 자리[ 席 ]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 특 히 자리는 방이나 마당 등에서 깔개 구실을 했기 때문에 평좌생 활 양식( 平座生活樣 式)을 취하고 있던 한국인의 생활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었다. 이 자리도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였으나 그 중에 도 화문석은 고려 초기부터 외국에 보내는 조정의 선물로 선택될 정 도로 한국의 특산품으로 널리 알려졌다. 화문석은 우리나라 초고공예 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북송(北 宋 )의 서긍(徐統)이 1123 년 고려를 다녀간 후 저술한 『고려 도경』에도 당시의 우리나라 자리제품에 대한 언급이 있다. 〈화문석은 곱고 거친 것이 일정하지 않으며 정교한 것은 침상과 평상에 깔고 거 친 것은 땅에 까는 데 쓰며, 짠 풀〔織草]은 부드러워서 접거나 굽혀도 망가지지 않으며, 흑백 두 색이 서로 섞여서 무늬를 이루고 청자색으

로 단을 두르지만 본래 일정한 제도가 없다〉고 했다. 이 밖에 『 고려도 경』은 멱서리와 짚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우리나라의 초고공예는 조선시대에도 생활 주변의 용구로서 폭넓게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에도 고려 초기 이후에 쭉 그래 왔던 것처럼 중 국에 보내는 조정의 선사품으로 화문석류가 중요한 품목이 되었고 일 본에도 보내졌다. 중국과 일본에서 온 사신 일행과 우리나라에서 파견 한 통신사 일행에 의해 많은 수량의 화문석이 공식적으로, 비공식적으 로 중국과 일본으로 건너가 아낌을 받았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화문석은 국내의를 막론하고 왜 그토록 호평을 받을 수 있었는가? 필자는 우리의 화문석이 곱고 부드럽고 온화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 화문석의 문양은 호랑이, 학, 까치, 원앙, 대나무, 소나무, 바위 등이 적당히 어우러져 있기도 하고 또는 용과 봉황을, 또는 매화, 모란 둥 의 꽃과 함께 수복부귀 ( 壽 福 富貴 ), 만자문(卍 字 紋), 아자문( 亞字紋 )과 구름, 거북, 사슴 둥을 소재로 삼았다. 그러므로 화문석 문양의 내용은 한국 전통자수 문양의 내용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하겠다. 우리나라 초고공예는 매우 오랜 역사를 통해 발전되어 왔고 서민의 정취를 잘 발휘해 주었고 우리의 삶이 풀과 짚과 어우러져 함께 밀착 되어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러나 오늘날 초고공예는 재료의 비보존성 때문에 우수한 옛 유품 이 희귀하여 그 우수성이 잘 알려지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우리의 생 활이 서구화되면서 동남 아시아의 값싼 저질 공예품의 수입 등으로 한국의 초고공예는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일상생활과 밀착되어 있는 목공예, 도자기, 자수와 초고공예가 담고 있는 한국인 특유의 정취와 자연미를 살펴보았다. 극 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한국의 전통민예품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한 국의 전승공예가 사라져간다는 것은 곧 한국인의 전통문화가 사라져

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전통문화는 민예품 속에서 숨쉬고 유지되고 발전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선조들의 슬기를 되찾아 갈고닦아 후손들에게 길이 물려 주어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다 . 그래서 대목장( 大木匠 ), 소목장(小木 匠), 드잡이, 기와장이, 종장( 鐘匠 ), 매듭장, 지공장(紙工匠) 등 각종 전 통공예 기능보유자들을 우대하고 전통공예를 올바르게 배우고 가르치 는 노력이 요청된다. 이러한 전통문화 속에서 우리의 내면에 흐르고 있는 정신세계를 밝 혀보고 여기서 문화민족의 긍지를 찾아보는 일이 바로 우리의 자연을 보존하는 길이기도 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전통문화의 배경과 무 대가 바로 우리의 자연이며, 따라서 전통문화의 경시가 곧 자연을 경 시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2.4 결언 : 한국 고미술과 자연의 조화 우리는 앞에서 한국인의 전통적인 문화생활을 서민(또는 평민)들에 초점을 두고 살펴보려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고대로부터 조신시대 말에 이르기까지 엄밀한 의미에서 상류계급을 배제한 뚜렷한 평민문 화가 존재했느냐는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가령, 사대부 또는 양반계급들이 누렸던 전문적인 도서화원( 圖書畵員 )의 회화를 소 위 정통회화라고 부르는 데 반하여 일반 서민들이 향유( 享 有)했던 그 림을 민화라고 부르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정통회화와 민화 가 실제로 간단하게 엄격히 구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정통화라 고 불리는 것도 전부 중국 회화를 그대로 모방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서가 담기면서 한국적인 것으로 변모하기도 했다. 또한 민화도 비교 적 외래문화의 혼적이 적을 뿐이지 전혀 중국의 영향을 받은 바 없다 고 확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나라의 건축, 회화, 조각, 복식도 항상 지리적, 정치 • 경제적, 문화적 여건과 사람들의 호기심 등으로 말미암아 많건 적건 간에 외 래문화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도 외래문화에 대하여 배타적일 수 없으며 더욱이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전통문화가 고유성이나 특성을 전혀 가 지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한국인의 전통문화 즉, 한민족문화 또는 한국인의 전통적 의식이라는 말은 외래문화가 조금 도 가미되지 않은 순수하게 독창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불교나 유교 또는 그 밖에 외래사조일지라도 우리 민족정서에 홉수 되고 융합되었다면 우리는 그러한 것을 전통문화 속에 넣고 보지 않 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통적 문화생활을 배타적으로 고집할 필요가 없으며 좁은 의미로 소위 평민 또는 서민 문화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상류계급의 문화생활도 그것이 외래문화를 그대로 모사하지 않는 한 우리의 전통문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넓은 의미에서 지금 우리가 문제삼고 있는 한국인의 전통적 자연관도 한국 인의 전통적인 문화생활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한국의 대표적 현대 미술사가인 김원용이 한국 고미술 의 특색을 자연에 즉응(卽應)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을 음미하면서 한 국인의 전통적 자연관을 찾아보기로 하자. 한국 고미술의 특색은 시대나 지역에 따라서 조금 차이는 있으나, 한편 으로는 기본적인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곧 대상을 있는 그대로 파 악 재현하려는 자연주의요, 철저한 나[我〕의 배제이다. 그러니까 그 결과는 자연의 조화를 그대로 받아들여서 재현하게 되는 것인데, 그러한 순수한 사고방식이 작가 자신의 창작일 경우에도 무의식중에, 자연이 만들어낸 것 같은 조화와 평형을 탄생시키는 모양이다.…… 한국 미술품은 요란하지가 않다.…… 그것은 결국 작품 자체의 완전한 조화에도 있지만, 주위 환경이

나 자연과의 융합, 조화가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색과 시문(施文) 면적을 줄이고 될 수 있는 대로 원재료의 특성 그대로를 살려서 자연과 부딪히지 않는 부드러운 조화를 만들어낸다 . 그는 또 이렇게 부연했다. 한국 고미술의 공통적인 특색은 결국 자연에 즉응하는 조화, 평범하고 조용한 효과,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무관심한 무아무집(無我無執)의 철학이 라고 하겠다. 이것이 삼국시대의 불상에서 조선의 석인(石人), 고구려 벽화 에서 조선의 회화, 채색토기에서 조선의 잡기(雜器)에 이르기까지 모두 공 통되고 있는 한국의 특색인 것이다 .52) 김원용은 조선 회화의 특색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조선 회화는 화제( 曲 題)에서, 구도에서, 또 기술에서 중국화의 응대한 기 발과 세련을 도저히 따를 수 없다. 그러나 조선 회화에는 구수한 흙냄새와 진솔한 자기 표현과 순수한 개성의 세계가 있다. 김식(金植)의 r 우도(牛 圓)」, 단원(檀園)의 「산수도(山水岡)」, 변상벽(卞相壁)의 r 동물도(動物圓)』, 신사임당(申師任堂)의 『초충도(草蟲岡)」 둥이 그러한 조선 회화의 특색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고 하겠다.SJ) 우리는 이러한 김원용의 한국 고미술에 관한 논에서 한국인의 전통 적 자연관이 우리의 전통 고미술에서 아주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규지할 수 있다. 그가 말하는 자연주의야말로 모든 한국인의 문화 어 5523)) 金金元元龍龍, 『앞韓의 國책美,의 2 4探쪽 究 . 』(열화당, 1978), 25 쪽.

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것이고 필자가 앞에서 여러 면에서 살펴본 것 의 총론적 결언을 대신할 수 있다고 보여진다 . 우리의 선조들은 서양인들처럼 자연환경을 정복하려고 하지 않았고 인간도 자연 속에서 자연의 한 구성분자처럼 삶을 즐겼으며 자연의 품에 안겨서 조용히 살아가는 것을 숙명처럼 생각했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생각과 느낌이야말로 한국 민족의 근본사상을 이루는 것이다. 우 리는 지금 산업화에 밀려 범세계적인 생태학적 위기 를 맞고 있다. 그 러나 만일 우리가 우리 조상들이 품고 있었던 자연에 대한 외경과 겸 손과 사랑을 배우고 깨달을 수 있다면 이 위기 를 극복할 수 있을 것 이다.

제 9 장 생명존중 • 환경교육 • 인간교육 ] 환경교육과 인간교육 오늘날 우리는 미중유의 환경위기에 처해 있다. 이른바 환경위기는 현대 사회 어디에서나 만연되고 있고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환경위 기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환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부족한 데서 생 긴 병폐이다. 환경위기의 원인 제공자는 바로 인간이다. 그러므로 인 간은 이 환경위기를 극복할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다. 환경이라는 말은 다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지리학, 교육학, 철학, 의학, 생물학 등에서 각기 그 나름대로 환경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 으며, 심지어 동류의 학문에서 조차도 꼭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지 못하다. 그러므로 환경에 대한 통일된 의미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 나 우리는 편의상 환경을 자연 그대로의 환경, 죽 자연환경과 인위적 인 인간환경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따라서 환경문제를 다루는 환경교육은 광의의 환경을 문제삼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환경교육은 환경 그 자체와 또 환경을 구성

하는 여러 요소들간의 관련성과 상호영향에 대한 지식, 그리고 인간이 환경을 이용할 때나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을 할 때 올바른 태도 를 갖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교육은 청소년의 인성교육과 상관 되지 않을 수 없다. 최초의 국제환경교육학회 (1977) 에서는 환경교육의 기본 목적을 모 든 사람이 다양한 형태의 자연환경과 인위적으로 이룩한 환경, 즉 사 회적, 경제적 및 문화적 환경 간의 복잡한 상호관련성을 인지하게 하 는 데 두었다. 그러므로 환경교육은 자연, 인간 및 문화 환경의 상호 관련성을 이해하고 존중할 줄 아는 데 필요한 기능과 태도 를 갖도록 하는 가치관을 기르는 인성교육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환경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과 자연(자 연환경)과의 올바른 관계를 잘 이해하는 데 있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인간의 환경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요소들은 상호관련되어 있고 상호 작용할 뿐만 아니라 종내에는 자연을 근간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며, 인간 또한 자연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연의 군림자가 아 니라 자연의 파수꾼에 불과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촌은 밑바닥부터 붕괴되고 있다. 이 지구 촌의 붕괴는 자연을 아끼고 사랑할 줄을 모르고 자연을 착취 수탈하 고 파괴를 일삼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생태학적 위기는 한 생물과 다 른 생물 그리고 모든 생물과 자연환경과의 연대가 무너짐에 따라 지 구 자체를 유지시켜 주는 동적 상호작용이 와해되므로 시작되었다. 생태학자인 킨젤바흐는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생태학적 위기의 극 복과 해결책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내면적 세계의 위기 해결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갈파했다• 왜냐하면 〈생태학적 위기는 인간이 조성한 것이며, 따라서 생태학적 위기는 바로 인간의 위기〉이기 때문이다. 다 시 말해서 문제의 근원은 과학이나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잘못된 생각 속에 있다는 것이다.

생태학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올바른 자연환경에 대한 이해가 요구되며, 미래사회의 구조에 대한 새로운 비전이 요구된다. 킨겔바흐가 그의 책 『 생태학, 자연보호, 환경보호』에서 역설했던 것처 럼 우리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낡은 생각에서 벗어나 자연과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필요로 하며, 동물로부터 벗어나 ‘참된 인간성’에 로 환골탈피'를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자연보호가 가 능하다. 이제는 아무도 환경문제가 환경교육의 과제일 뿐만 아니라 동 시에 인성교육의 과제라든 것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환경교육의 시 작은 빠 를 수록 좋다. 우리는 어린시절부터 자연환경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 자연보전은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 또는 민족의 번영과 안녕과 질서 를 도모하는 이데올로기 교육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자연을 사랑하는 정신이 곧 나라에 대한 충성심이며 동시에 인류애와 직결된다. 자연과 인간의 공생관계야말로 자연보전의 윤리적 기반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환경교육으로서의 환경윤리학의 교육은 인간의 교양교육에 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야 할 것이다. 2 생명존중과 인간교육 2.1 생명존중과 인성교육의 상관성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모든 국민들을 전율과 공포에 떨게 하는 반 생명적 사건들이 봇물 터지듯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인명경시로 말미 암은 여러 형태의 살인사건과 각종 사고사의 빈발, 고의적인 자살과 자살방조, 특히 선동에 의한 분신자살소동은 우리 모두를 몸서리치게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주택과 교량 둥 각종 토목건축의 부실공사,

불량식품의 제조와 매매, 인신매매, 낙태(태아 살인), 안락사와 같이 돈 만 벌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덤벼드는 인간성을 이미 상실 한 사람들의 창궐과 그 행패, 최근의 우리나라에서의 한의사와 약사들 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저들의 이권을 극대화하려는 더러운 싸움도 반생명적인 사건들이다. 그러나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위협하 는 오늘날의 생태학적 위기는 일시적이고 우연한 사건들의 발상이라 기 보다는 근본적인 조짐, 즉 이 사회의 총체적 붕괴의 조짐으로 보고 있다. 한마디로 말세의 현상이라는 것이다. 비관적 시각이건 다소 낙관적 시각이건 간에 우리 사회가 지금 황 금만능주의와 생명경시로 말미암아 윤리의식이 상실되고 있고, 인간 의 존엄성이 무시되고 있으며, 극도로 사회의 근본질서가 문란하고 극 도로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 이다. 각종 대중매체는 엄청난 인명살상과 독직사건이 터져나올 때마 다 국민들에게 도덕적 가치관과 인간성 회복을 촉구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생명존중과 인간성 회복은 일부 언론과 종교지도자들이 한시 적으로 구호를 외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 필자는 이 문제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연구하고 근본적인 교육 혁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교육은 학교교육을 중 심으로 되어 있으나 인성교육이야말로 생명을 부여받은 순간부터 죽 기까지 인간에게 부과된 숙명적인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우리 는 인성교육이 무엇인지롤 물어볼 수 있다. 인성교육의 개념은 다양하 게 표현되고 있다. 예컨대, 교육학자들은 도덕교육, 도의교육, 인격교 육, 인간교육, 인간성 함양을 위한 교육, 전인교육, 품성교육 등 인간 의 바람직한 특성이나 성격을 육성하는 것 또는 올바른 행동(언어, 태 도, 예절)이나 좋은 감정을 배양하는 것을 인성교육이라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교육열이 대단히 높은 민족이다. 부존자원이 부족한 국토에서 우리나라가 이만큼이라도 살 수 있게 된 중요한 원

인도 배워야만 산다는 생각을 신앙으로 믿고 살아온 한국 부모들의 자녀교육에 대한 열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한국인의 교육 열이 올바른 학구열과 인간답게 사는 인간교육과 연계되지 못하고 있 다는 점에 우리의 고민이 놓여 있다. 특히 한국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청소년의 교육, 즉 고등학교교육 은 지금 비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황금만능주의와 입신출세에 눈먼 대다수의 성인들이 정확한 기준도 없이 임의로 서열을 매겨 놓 은 특정 대학과 특정 학과에 그들의 자녀들을 - 무조건 입학시키는 것 을 최대 관심사로 삼고 있고 학교교육도 이를 추종하고 있다. 이로 말 미암아 입시지옥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우리나라의 대학입시 준비교 육은 주입식이며 암기 위주이고 획일적이며 창의적이지 못하다는 비 판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학교육도 중등교육 못지않게 인간교육 을 무시하고 있댜 주지하다시피 교육의 근본은 생명을 존중하고 인간이 스스로 자기 실현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있으며 자기 분수대로, 제 길수대로 잘 살 수 있도록 자기가 가진 재주와 능력을 길러주는 데 있는 것이 댜 따라서 피교육자에게 알맞는 교육만이 인간을 인간답게 대접하는 인간교육이 될 수 있댜 생명존중은 바로 인성교육의 근본과제이다. 우리는 먼저 지금까지 왜 우리나라에서 생명을 존중하는 인성교육 이 실패했는가를 규명해 보고 그 다음에 인성교육이 어떻게 내실화를 거둘 수 있는가를 모색해 보기로 하자. 2.2 인성교육 실패의 원인 우리는 한국에서 인간교육이 실패한 원인을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 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우리는 넓은 의미에서 인간교육 실패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한국 교

육의 방향 상실과 교육철학의 빈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이 걸어온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방향없는 교육이었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한국 교육은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데 실 패했다. 광복 이후 많은 교육이론들이 조수처럼 밀려왔다가 물러났으 며 그때마다 교육학자들은 색다른 구호를 외쳤을 뿐이고 어떤 이론도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했고 교육정책이 수시로 바뀌었다 . 그동안 이 나라의 교육은 오직 방법과 과정과 제도의 변경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실험주의 내지 도구주의 교육에만 몰두한 나머지 교육의 올바른 방향 과 참된 목적을 찾는 데는 소홀히 하였고, 특히 인간을 위한 교육을 외면하여 왔댜 그동안의 한국 교육은 미국의 실험주의 내지 공리적인 생활적응주 의의 영향 아래 개인화와 대중화의 자극을 받아, 교육의 수단방법과 교육과정과 기술 면에서는 다소 발전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을 너무나 무시해 왔다. 이른바 행동교육이라든 가 새교육의 방법은 우리나라 교육의 전통, 즉 유가에서 오랜 동안 가 르쳐온 인간교육이나 현실과는 너무나도 유리된 방법이기 때문에 실 현성이 희박할 수밖에 없었다. 대다수의 교사들은 이론과 실제의 괴리 로 말미암아 심각한 갈등을 겪었고 적당주의에 물들거나 냉소주의에 빠져버렸다. 많은 교육학자들이 전통적인 교육이 새로운 과학적 교육원리라든가 학습원리에 맞지 않고, 현대 심리학 내지 사회학의 연구방법과 궤를 같이하지 못한다고 보고 우리나라 교육에 과학적 방법을 도입하려고 했다. 그들은 다른 과학들이 이미 사용해 온 통계와 실험 둥의 경험적 인 방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들은 소위 과학적인 방법에 지나치게 경도하였다. 미국에서 발달한 교육심리학은 기계적인 인간관계와 양 적인 관계만을 중요시하였다. 미국에서와는 달리 유럽의 여러 나라에 서는 교육학이 인문과학과 종교, 특히 그리스도교와의 밀접한 연계 위

에서 발전하였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학자들은 이 를 도외시하였다. 경험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을 교육학에 적용시키는 데는 한계가 명백 하댜 이는 인간의 사고와 행동이 다 계량적으로 설명될 수 없기 때문 이댜 그러므로 우리는 교육현상에 관한 단순한 사실 분석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며 무엇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 며 내가 겨레와 인류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배우고 가르치 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교육의 방향과 목적은 철학적 사고에서 찾아볼 수밖에 없다. 나침 반이 없는 기선은 아무리 속도와 그 구조의 견고성과 안전성을 자랑 해도 무의미한 것이다. 목적이 없거나 목적이 불분명한 실천은 무의미 하다 . 지금까지의 한국 교육은 너무나도 철학이 빈곤했다. 한국 교육 은 새로운 교육사조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에 급급했고 모방을 일 삼아왔고 주체성을 상실했다. 특히 미국에서 들어온 실용주의사상과 기능주의적인 행태주의는 우리의 전통적인 인간존중의 교육관과 조화 롤 이룰 수 없었고 종내에는 한국인으로서의 주체성과 역사의식을 망 각하게 만들었다. 주체성과 역사의식의 상실은 필연적으로 인간성의 상실을 초래한댜 따라서 인간교육이 실패하게 된 것은 불문가지이다. 우리는 인간교육 실패의 원인을 거시적으로 현대 후기 산업사회의 전반적인 인간소의현상과 아노미 현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다시 말 해서 인간성 상실은 한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이며 또 단순히 교육만의 책임이 아니라 보다 더 근원적으로 현대 사회의 구조적 특성과 상관이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간교육에 있어 유럽 여러 나라가 한국보다 높은 수준에 있음으로 그 실패의 원 인을 전적으로 사회의 구조적 현상에만 귀의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나라에서의 인간교육 실패의 직접적 원인을 찾아보자. 우리는 이것을 편의상 학교교육과 학교 이의의 교육으로 나누어 살펴 볼수 있다.

2.2.1 학교교육의 문제점 첫째, 입시위주의 교육풍토이다. 학교교육이 입시위주의 교육이 되 게 된 근본요인은 우선적으로 성인들의 잘못된 교육관과 가치관에 있 다. 한국의 대다수 학부모들은 권력 지향적이다. 그들은 자기보상심리 를 가지고 그들의 자녀들이 지배계층에 속하기를 염원한다. 또 그들 대부분은 황금만능주의에 물들어 있다. 그래서 학부모들은 학교란 그 들의 자녀들이 돈 잘 벌고 쉽게 안전하게 출세할 수 있게 해주는 기 관으로 간주한다. 그들에게서 명문대학과 명문학과란 그런 기관이다. 문제는 그러한 명문대학과 명문학과(소위 일류대학과 일류학과)가 그 많은 학부모들의 소원을 다 들어줄 수 없는 데서 대학입시지옥이 생겨 났다. 우리나라의 대학입시는 자격시험이 아니라 선발시험이다. 그래서 고등학교교육은 전인교육의 프로그램이 없어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입시위주의 교육풍토에 물들지 않을 수 없게끔 되어 있다. 학부모와 학생과 교사가 온통 입학시험준비에만 매달려 있기 때문에 입학시험 과 직접적으로 상관되지 않는 교육활동, 예컨대 도덕적 • 정서적 • 신 체적 교육활동과 생명존중교육에는 관심을 갖지 않으며 관심을 가지 려 하지도 않는다. 국민학교 시절부터 대학입시를 걱정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교육풍토 이다. 대학입시 출제경향이 실제적으로 학교교육의 지표가 되고 있다. 대학 입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국어, 영어, 수학과 같은 도구과목이다. 이러한 도구과목을 잘해내지 못하면, 이들 과목 못지않 게 중요한 다른 과목은 아무리 잘해도 소용없으며, 어떤 방법으로든지 도구과목을 잘 암기해서 높은 시험점수를 받아야만 한다는 생각을 학 생들에게 강요한다. 그 결과 학생들의 인성발달에 더욱 중요한 덕육 (德育)이나 체육이나 생활교육은 학교는 물론, 심지어 가정에서도 무 시되고 있다. 폭넓은 독서가 어린이와 청소년 시절에 중요하다는 생각

을 할 수 있 는 부모나 교사까지도 이 를 권장하기는커녕 저지한다 . 청소년기에 누려야 할 풍부한 삶의 체험을 한국의 학생들은 누릴 수 없댜 가령 친구와의 사뀜도 경쟁의식 때문에 진솔한 것이 될 수 없댜 그러므로 입시위주의 교육풍토는 인간교육의 최대 장애요소가 된댜 우리나라 사람들은 학교교육이 교육의 전부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댜 둘째, 인간교육의 또 하나의 중대한 장애요소는 성적우수자 중심의 학교교육이다. 어떤 고등학교에서나 전체 학생의 절대다수를 차지하 는 중하위권에 속하는 학생들은 전체 학생의 5- 1 0%, 많아야 20% 정 도 학생의 학업성취를 위해 둘러리로 희생되고 있다. 그들은 그들대로 고유한 소질과 능력과 적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교과목 의 상대적인 규준평가점수가 낮다는 이유만으로 공부 못하는 열등생 으로 낙안찍히며, 열등생으로 낙인찍힌 학생들은 진도를 따라가기도 어렵고 무시당하고 있으므로 열등감에 사로잡혀 학과공부에 재미를 못느낀댜 그들은 성적우수자 중심의 학교교육에 반감을 가지며 성적이 좋은 학생과 교사에게 거리감을 가질 뿐만 아니라 비행문화에 심정적으로 동조하게 되고 종내에는 교사가 가르치거나 권유하는 가르침에 맹목 적인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이들은 한편으로 심한 마음의 상처를 받 고 인간적인 모욕을 느끼며 다른 한편으로 기성세대에 대해 적개심을 가지게 된다. 이제 학교는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갖게 해주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학생의 꿈을 앗아가고 정신을 황폐하게 만드는 불쾌한 곳으로 변모되고 말았다. 상당수의 학생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반 항심을 갖게 된다. 셋째, 학교의 시설과 학급운영이 인간교육의 장애요소가 되고 있다. 학교의 대형화와 과밀학급은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의 자연스러운 인격적 만남을 저해하고 기계적인 관료제도의 도입을 불가피하게 만

든다. 대규모 학교와 과밀학급은 종내에는 학생 개개인의 적성과 소질 에 맞는 교육을 할 수 없게 만들고 획일적인 집단지도를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따라서 학교교육은 현대 산업사회의 대량 생산체제의 후 유증인 몰개성화와 비인간화를 어린시절부터 촉진시키고 있다. 전인교육을 위한 특별교실, 서클실, 상담실과 예체능교육을 위한 시 설이 아주 부족하다. 따라서 학교는 삭막하기 그지없으며 젊은 학생들 의 정열을 올바르게 순화시킬 수 없고 인간교육을 할 수 있는 분위기 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 넷째, 학교 주변 환경이 인간교육을 저해한다. 학교에서 배우는 교 과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대부분의 학생은 이를 그들의 삶과 유리시켜 생각한댜 특히 학과공부에 자신을 잃었거나 취미를 붙이지 못한 대부 분의 학생은 욕구불만을 비행문화에 투사하기 쉽다. 그런데 학교 부근 에는 유해업소가 즐비하다. 장사꾼들은 학생을 주고객으로 삼는 경우 가 많다. 반생명적 살인과 폭력을 주제로 하는 만화가게, 비디오 대여 점, 영화관 및 오락실을 경영하는 어른들은 학생을 사회교육의 대상으 로 보지 않고 그들에게 돈을 벌게 해주는 소비자로 간주한다. 2.2.2 학교 이외의 교육의 문제점 우리는 학교 이의의 교육울 가정교육, 성인교육, 직장교육, 사회교 육, 종교교육 둥을 망라한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학교 이외의 교육이 부실한 것은 논할 여지도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 고, 더욱이 거기서 인간교육을 찾아본다는 것은 녹목구어(綠木求魚)일 런지도 모른다. 가정 분위기, 직장 분위기, 비도덕적 사회 분위기는 도무지 인간교 육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현대 산업사회의 관료 제도와 기술지배가 가해온 몰개성화와 비인간화 현상온 가정과 사회 와 직장에서 사람다운 삶을 위한 조치를 무시한다. 현대인은 하나의

도구나 기계의 부속품으로 취급되며 이용성, 효용성이라는 관점에서 계량적으로 취급되고 있다. 사회는 개인의 개성, 창의성을 무시하며 사람들에게 경쟁의식과 소의의식을 심어줄 뿐이다. 노동자들은 고향과 가정의 포근함을 상실해 버렸다. 노동자들은 직 장에서의 과중하고도 재미없는 기계적인 노동을 하고 난 후, 기분전환 과 휴식 (recrea ti on) 을 해야 하지만, 직장에서 사람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무사려증에 빠져 있기 때문에 가정에 돌아와서도 심각하게 사 고하지 않거나 반성하지 않는 습성에 익숙해 있다. 그들은 주어진 여 가조차도 자기수양을 위한 독서나 다른 사람들과의 진지한 교제를 하 는 데 선용하지 않고 완전히 무위와 자기도피를 일삼는다. 그들은 과 음과식을 하거나 육체적 건강에 대한 극심한 강박관념 속에서 시간을 보낸댜 또한 호기심이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천박한 잡지나 스포츠 신문을 읽거나 바보를 만드는 TV 등에게 자기를 맡겨버린다. 소비경 향을 부채질하는 대중매체는 인간이 황금이라는 유령의 노예로 전락 되는 것을 더욱 촉진시킨다. 우리나라에는 건전한 놀이문화가 발달되어 있지 않다. 등산과 같은 건전한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각종 체육 및 문화시설은 서민들이 이용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사람들을 심심하지 않게 해주 는 경마, 프로야구, 프로축구 등이 있으나 이것도 알고 보면 사람을 한갓 구경꾼으로 만들고, 구경꾼을 봉으로 여기고 농락한다. 각종 스 포츠는 깨끗하고 공정한 경기를 하지 않으며 구경꾼뿐만 아니라 선수 까지도 사람 대접을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 노인들은 가정에서나 사회 에서나 제대로 사람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며 노인문화란 한마디로 없 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종교를 믿는 사람이 참으로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직자들은 신도들을 인간으로서 키울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신 도들을 돈을 갖다 바치도록 철저하게 훈련시키는 데만 주력한다. 그들

도 다른 장사꾼처럼 배금주의자이고 대체로 가난한 사람 들을 철저하 게 무시하며, 다론 종파에 속하는 사람을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는다. 일부 종교지도자들만이 아직도 인간교육을 말로만 떠들 뿐, 대부분의 종교지도자들은 그나마 인간교육에 관심조차 없다. 그 많은 신자들까 지도 생명존중과 인간교육에는 관심이 없으며 단지 끼리끼리 교제를 할뿐이댜 그러나 우리는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교육을 포기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간교육의 장애요소를 제거하면서 인간교육의 내실 화를 꾀할 수 있겠는가? 2.3 인간교육의 내실화 우리나라에서 인간교육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교육에 대 한 범국민적인 의식개혁이 요청된다. 우리의 교육위가는 교육제도를 바꾸는 것으로만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동안 우리는 입시제도를 비롯 하여 여러 가지 교육제도를 수없이 바꾸어 보았지만 번번히 실패해 왔다. 그러므로 이제 국민 전체가 참으로 교육의 가치에 대한 의식의 대변혁(혁명)을 하지 않고서는 교육문제의 근본적 해결, 특히 인간교 육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교육개혁은 충분한 사전준비 없이 일조일석 에 이루어질 수 없고 국민적 자각과 이해와 합의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논의를 좁혀 우선 인간교육을 위해서 지금 한국에 서 무엇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인간교육의 장애요소를 제거할 수 있는 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로, 우리나라 교육의 지표가 선명하게 제시되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실정에 맞고 구호에 그치지 말아야 하며 구체적 방향을 제시 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의 목적과 교육정책의 근간은 정권이 바뀌더 라도 지속성이 있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교육의 목적은 생명을 존

중하는 인간교육을 기본으로 삼아야 할 것이며 모든 교육정책이나 교 육계획은 인간교육을 중심원리로 삼고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학교교육과 가정교육은 물론이고 사회교육 또는 평생교육 또는 종교교육 등 각종 교육에서 인간교육의 의의와 그 중요성을 국 민들에게 일깨워주어 잘못된 교육적 가치관의 갱정(更正)을 과감하게 시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오늘의 입시위주 교육의 파행을 초래케 한 원인제공자가 바로 잘못된 성인들의 가치관과 교육관에서 비롯했기 때문이댜 우리 국민이 올바른 가치관과 교육관을 갖지 못하는 한 입 시제도의 수정만으로 입시위주의 교육풍토가 근본적으로 개선될 수 없다. 따라서 교육에 대한 국민적 의식개혁이 모든 교육개혁의 선결요 건이다. 그러나 이것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이제까지 우리 정부가 일부 사람들의 불평을 일시적으로 입막음하려고 하거나 정치적 배려로 입시제도를 조령모개식으로 바꾸 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학교교육은 어떤 외부의 압력이 있어도 굴하지 말고 교육의 지표에 충실하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둘째로 입시위주의 교육풍토를 혁파(革破)해야 한다. 입시위주 교육 의 지양은 학부모들의 이기주의로 말미암아 실제로 매우 어려울 것이 다. 그러나 우선 학교는 전인교육에 필요한 모든 교과를 차별하지 말 고 제대로 학생들에게 가르쳐 편지(偏知)교육을 하지 말아야 하며 교 육행정당국은 이를 철저하게 감독하고 인간교육의 시행을 장학방침의 기본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학교에서 인간교육이 제대로 시행되려면 학교와 학생과 학부모들이 대학입시에 구애받지 않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고등학교는 진학지도 의에 직업보도에 대해서 학생들이 다양 한 직업에 대해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일반 종합대학의 교육과정은 학문 중심으로 짜여 있는데 실제로도 학

자 양성에 목표를 두고 있으며 대학에 따라 특성도 없고 일률적이다. 그 결과 대학교육도 소수의 학자가 되려는 학생을 위해 절대 다수의 학생이 들러리로 희생되고 있다. 대학의 교육과정 내용은 학생들의 실제적인 요구를 만족시켜 주지 못하며 일반대학의 교육내용은 실제로 사회에서 거의 응용되지 못하 고 이론에 치우쳐 있다. 그러므로 직업에 꼭 필요한 단순지식이나 기 술 습득은 일반대학이 아닌 전문기술대학에서 더 잘 배울 수 있다 . 대 부분의 청소년은 굳이 대학에서 학자가 되기 위한 복잡하고 어렵고 시간이 많이 드는 공부를 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실제로 우리나라에 필요한 교육기관은 전문기술을 가르쳐주 는 소규모의 다양한 실업, 기술 계통의 학교이다. 유럽처럼 기술계통 의 고등학교와 전문초급대학에서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공부하는 것이 국가 사회발전을 위하는 것이고, 또 청소년과 학부모들에게도 이롭다. 지금과 같은 고등학교 졸업 후 진학의 병목현상은 인간교육을 멍들게 하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우리는 우리의 청소년들이 자기의 소질과 적성과 능력에 맞는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고 안심하게 살 수 있는 비전을 가질 수 있는 풍토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직장 교육에서의 인간교육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할 수 있다. 교육의 근본은 국가나 경제계가 그때그때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들 어 바치는 인간형성공장이 아니며, 교육과정은 곡식이나 과실을 획득 하기 위해 적절하게 비료를 주고 제초제를 뿌리고 김을 매고 가지치 기를 하거나 속아내는 일을 하는 재배과정과 같은 것이 결코 아니다. 교육의 근본은 사람을 짐승이 아닌 사람다운 사람으로 일깨워 사람다 운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며 끊임없는 인격적 각성조성의 작용이다. 우리 사회의 모든 비리의 근본 원인은 한마디로 올바른 가치관 교 육의 실패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올바른 가치관 교육이야 말로 모든 교육의 중심내용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부정부패와 갈등은 황금만능주의와 개인적, 집단적 이기주 의와 같은 그릇된 가치관에서 생겨나왔다. 잘못된 직업관과 직업윤리 의식의 박약, 교육에 대한 편견, 사치와 허영과 낭비, 합리적인 기준도 없이 함부로 자리 매김하는 소위 일류병, 결과중심주의 등은 가치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는 데서 파생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 모 두에게 참으로 중대한 것은 올바른 가치관을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다. 인간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 러기 위해서 모든 사람은 부단한 자기반성을 통해 인간에 대한 풍부 하고 올바른 지식을 가져야 할 것이며 자기연마와 풍부한 인간이해를 할 수 있어야 하며, 폭넓은 교양서적의 독서를 통해 미래지향적인 자 세 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를 위해 참 인간교육을 위한 다 양한 성인교육기관의 활발한 활동이 요청되지 않을 수 없다. 3 생명조작과 인간복제에 대한 비판 주지하다시피 축산계에서는 이미 소와 돼지의 생색세포에 의한 복 제 (clo ning)가 일반화되고 있으며 전세계적으로 이에 대한 아무런 법 적 규제도 없다. 단지 생명윤리학자들, 특히 동양사상가들과 일부 그 리스도교 사상가들만이 자연법에 어긋나보이는 유전자 조작에 대해서 우려하거나 반대의사를 표명했을 뿐이다 .l) 그러나 영국 스코틀랜드 로스린 연구소의 윌머트 (I. Wi lmu t) 박사팀 이 양을 복제한 것은 단순히 지금까지 생물학계에서조차 불가능하다 고 여겨진 성장한 포유동물의 체세포를 가지고 세계에서 처음으로 복 제를 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같은 포유동 1) 진교훈, r 周易과 生命科學」, <周易 硏究 > , 1 집(한국주역학회, 1996), 175-195 쪽.

물인 인간의 복제도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점에서 사람 들 의 주목을 끌지 않을 수 없다. 프린스턴 대학 생물학과 리 실서 (L. Sh ilse r) 교수는 〈이번 암양복제 성공은 이제 기본적으로 복제기술에 아무런 제한이 없다는 것을 의미 한다〉고 말했다. 돌리를 복제한 윌머트도 〈복제기술을 이용하면 심지어 죽은 사람도 다시 탄생시키는 일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말했다. 러시아 생물 구조학연구소장 발레리 비코프 (V . B i kov) 는 〈레닌(구소련의 공산당의 비 조)의 시신에는 세포구조와 유전자 암호 (DNA) 가 보존되어 있어서 집 중 연구만 한다면 죽은 레닌을 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 약 지금으로부터 73 년 전에 죽은 레닌을 복제시킨다면, 이것은 결혼제 도 등의 사회문제와 윤리적 문제 외에도 영혼의 유무 등 인간의 본질 과 정체에 관한 의문을 제기할 3 것이다. 이밖에도 필요로 하는 유전자만을 떼어 이를 대장균이나 식물 등의 유전자에 집어 넣는 유전자 조작을 비롯하여, 인조염색체 합성의 문 제, 생식과 관련된 기술의 문제, 태내진단기술의 우생학적 사용의 문 제, 장기이식과 관련된 문제 등도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지 않 울수없다. 필자는 이 글에서 제일 먼저 인간복제에 관한 여러 나라의 반향을 살펴보고, 그 다음 생명복제의 문제점과, 인간복제를 금지시켜야 하는 이유와 생명조작의 문제점 등을 고찰해 보려고 한다. 3.1 인간복제에 관한 찬반논의 인간복제를 둘러싼 여러 나라의 반응을 살펴보기로 하자. 독일의 과학자들은 나치의 악몽을 되새기면서 1997 년 6 월 5 일 인간복제는 어 디서나 영구히 금지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독일 연구협회 (D.F.G.) 회

장 프뤼발트 (Wo lfg ang F riih wald) 는 본에서 개최된 뉴스회의에서 안간 복제는 인간실존에 관한 폭력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인간복제를 위한 연구비 지불정지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항변하면서 인간복제가 철저 하게 금지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 학술장관 뤼트게르스(Jilrg en R ilttg ers) 는 인간복제는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유일한 인간의 권위와 완전성에 대해서 도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독일에서는 인 간복제가 금지되었으며, 한걸음 더 나가 이와 유사한 인간배자를 복제 하려는 시도를 하여 법을 우회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된다고 말 했다. 뮌헨 생화학 연구소장 빈나커 (Erns t -Lud wig W inn acker) 는 만일 누 군가가 세계적 정구선수인 보리스 베커 (B. Becker) 와 꼭같은 사람을 복 제했다고 하더라도 그 복제된 인간이 베커처럼 정구를 잘할 수 있는 지는 의문이라고 말하면서 복제인간에 대한 환상을 비판했다. 아무튼 독일 과학자들은 어떤 나라의 과학자들보다 인간복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독일은 토마토나 콩과 같은 식용식물을 응용하는 유전공학에 관해 서조차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제한법을 시행하고 있다. 이미 1997 년 3 월 독일 연방의회는 인간복제에 관한 포괄적인 국제적 금지조치를 요청 하는 결의를 통과시켰다. 독일의 콜 (Kohl) 수상 정부는 전세계적인 복 제금지조치를 촉구했다. 프랑스의 시라크(J ac q ues Otlrac ) 대통령은 인간복제에 대해서 범세 계적으로 금지하도록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파 리에서 인간복제에 관한 공포와 환상에 관해 토론하기 위하여 윤리학 전문가들을 소집하였다. 그는 설사 인간복제가 프랑스에서는 명백히 금지된다고 할지라도 문제의 핵심은 이를 전세계적으로 불법화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반면에 미국과 영국의 과학자들과 정치가들 중에는 의학적 이유로

제 9 장 생명존중 • 환경교육 • 인간교육 243

인간의 세포복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양을 복제한 영국 과학자 윌머트는 1997 년 3 월 12 일 생명윤리문제를 다루는 미국 상원의 소위원 회의 청문회에서 인간을 복제하는 어떤 시도에도 반대하며 그러한 기 술의 남용을 전세계적으로 금지할 것을 요청했다 . 그는 죽어가는 아기 를 구한다든가 재창조하려는 것을 포함해서 인간존재를 복제하는 것 을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어떤 시나리오도 들은 바 없 다고 상원 소위원회에서 말했다. 그는 미국 상원의 공중보건 안전위원 회에서 어떤 사람도 복제하기를 원할 이유를 찾을 수 없으며 미합중 국과 영국이 인간복제 금지를 위해 국제적인 기반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을 환영해 마지 않는다고 부연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오와 주 상원의원 톰 하킨 (Tom Har kin)은 여론은 인간 복제에 대하여 확고하게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인간 의 지식을 제한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인간 본성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하면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인간복제를 우리가 지지할 수 있 다든가 금지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의 생애 중에 인간복제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나는 인간복제가 두렵지 않으며 이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윌 머트는 하킨이 틀렸다고 말했다. 정치에 입문하기 전 심장이식 외과전문의였던 테네시 주 공화당 상 원위원으로 상원 소위원회 위원장인 프리스트 (B ill F ri s t)는 복제인간을 반대하나 우리 사회가 의학적 • 사회학적 • 윤리학적으로 얽혀 있는 모 든 문제를 조사해 보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미주리 주의 상원위원 본 드(Oui s t o p her Bond) 를 위시한 입법의원들은 모든 인간복제 연구를 철저히 금지시킬 것을 주장했고 이와 관련된 법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또다른 의원들과 과학자들은 유전학에 대한 과학자들의 이해를 혁신 할 수도 있고 암울 포함한 질병치료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세포 수 준에서 연구하는 것을 저지시키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에서 복제인간

연구를 금지시키기를 바란다고 조심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상원의원 프리스트는 〈공인은 새로운 발견들을 이해하고 포섭하지 않으면 안된 다〉고 말하면서 심장이식이 30 년 전에는 비윤리적이며 과학적으로 불 가능하며 신의 역할을 사람이 하려고 하는 독신적이라고 비난받았으 나 오늘날 수천 명의 인명을 연장시켰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환영받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빌 클 린턴 미국 대통령은 돌리의 복제가 발표된 후, 과학, 법률, 사 학, 철학의 전문가로 구성된 국가생명윤리자문위원회 (NBAC) 위원 18 명 을 임명하고 이 위원희의 위원장으로 프린스턴 대학 총장 스피리오 (S piri o) 를 임명하고 나서 90 일 내에 인간복제에 관한 법안을 의회에 제출할 수 있도록 보고서를 제출해 줄 것을 요청하고 즉각적으로 인 간복제에 관한 연구에 미연방 재정을 사용하는 것을 정지시켰다. 미국 생명윤리자문위원회는 5 차에 걸친 난상토론 후 1997 년 6 월 9 일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마이 클 조던(미국의 유명한 농구선수)들로 이루어진 농구팀, 아인슈타인들로 이루어진 물리학 연구팀, 파바로티(이태리 성악가)들이 출연하는 오페 라는 있을 수 없다〉고 하면서, 영국의 로슬린 연구소가 개발한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킨 기술은 유전자만 복제할 수 있을 뿐이며 100% 똑같 은 양( 羊 )이나 사람은 만들어낼 수 없으며, 로슬린 연구소의 생명복제 연구는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기술의 한계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밝 혔다. 이 보고서는 유전자만으로 개체의 모든 특징이 결정되지는 않는다 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서 복제동물이 지니는 모든 특징은 유전자만으 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수태중 모체의 건강이나 영양상태, 질병, 부 상, 경험 등에 의해 얼마든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함께 성장한 일란성 쌍둥이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그리고 지 능이 각각 다를 수 있다고 이 보고서는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이 새로운 복제기술이 완전히 성장한 성인 복제인간을 만들어낼 수는 없으며 기껏해야 사람이 성장하는 것과 똑같은 속도로 성장하는 복제배자를 만들어낼 수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현재 존재하는 어떤 성인과 똑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배자가 만 들어졌다고 하더라도 이 배자가 자라서 성인이 되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마치 쌍둥이 중의 하나가 뒤늦게 태어나면서 다른 개성을 가 지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인간복제 금지조치가 불행한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 손해를 줄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즉 만약 사고로 독자(獨 子)를 잃은 부모가 복제아들을 만들어 달라고 애원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폭넓은 여론 수렴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댜 이것은 앞으로 이런 저런 이유를 가지고 인간복제를 시도하는 과학자들이 나올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1997 년 6 월 9 일 인간복제를 5 년 동안 금지할 것 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안을 의회에 제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이 날 백악관에서 대통령자문기구인 생명윤리자문위원회가 제의한 생명 복제에 대한 정책대안을 지지한다고 언표하고 앞으로 5 년 동안 인간 복제를 금지하며 4 년 6 개월 후에 인간복제 전면금지법의 연장여부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법안을 의회가 통과시켜줄 것을 요청 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인간복제는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없고 인간 생명 의 사회적 존중심을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그러나 인간이나 동 물의 DNA 복제는 윤리적 문제를 야기하지 않으며 의학이나 농업발달 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법안이 인간생명의 신비에 관한 가장 소중한 믿음과 하느님이 인간 개개인에게 부여한 특성을 재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법안은 인간복제 금지규정을 어길 경

우 25 만 달러, 혹은 이 로 말미암아 얻 는 소득의 2 배 를 벌금으로 부과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아무리 강력한 금지조치가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복제는 암 암리에 나타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얘기다. 예컨대 생명윤리학 연구소인 해스팅 센터 소장인 캘러한 (D. Callahan) 이나 생물철학자인 요나스도 이 를 우려하고 경고한 바 있다. 3.2 생명복제의 문제점 3.2.1 복제의 의미 복제란 본대의 것과 똑같이 만들어진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버드 나무 가지 를 꺽어서 땅에다 심으면 뿌리가 내리고 잎이 생기면서 하 나의 완전한 식물체인 버드나무가 된다. 이것은 버드나무 가지가 뿌리 와 잎을 만들 수 있는 유전자들을 가지고 있고 이 유전자가 언제라도 기회와 조건이 주어지면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이다. 그러나 포유동물의 팔이나 다리를 대어내어 성장한 동물로 키우 는 것은 불가능하다. 영국의 발생학자 킹(King)은 동물의 뇌세포와 팔의 근육세포는 같 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성숙한 개구리의 내장세 포에서 핵을 끄집어내어 미성숙한 개구리 알에 핵치환 수술을 했다. 그가 이 개구리의 알을 배양했더니 부화도 되고 올챙이까지 성장했다. 이 실험결과로 동물의 모든 세포는 같은 유전자로 되어 있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이리하여 복제 개구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후 동물의 복제실험이 고등동물에서 행해졌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고등 한 생물체의 체세포는 이미 오래전에 분화를 했기 때문에 분화 이전 의 유전자 상태로 되돌릴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생물학계의 지배적 인 견해였다.

다시 말해서 성숙한 체세포 유전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매커니즘에 의해 이미 운명이 결정됐기 때문에 미분화 상태인 정자나 난자의 유 전자 상태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론적으로 인간 을 복제할 수 없다는 것을 함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불가능이 영 국의 로스린 연구소의 복제양 연구팀에 의해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불활성화되어 있는 양의 유방세포, 죽 체세포의 유전자를 활성 화시켜 미분화 세포와 같게 만들었다. 이것은 이론적으로 복제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할 수 있음을 말해 준다. 지금 세상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복제는 한 마디로 미수정란의 핵을 체세포의 핵으로 바꾸어 놓음으로써 유전적으로 똑같은 동물을 얻는 기술을 의미한다. 따라서 동물의 복제는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는 DNA 와 난모세포(卵母細胞, ooc yt e) 만 가지고 어미와 유전적으로 동일 한 새끼를 생산하는 것을 가리킨다. 1997 년 2 월 27 일자 <네이처 (Na tu re)~(vo l. 385, 810-813 쪽)에 윌머트 그룹의 양 복제 성공이 발표되었다. 이 논문의 핵심을 간단히 살펴보 면 다음과 같댜 우선 유전공학기술을 이용하여 먼저 성장한 암양의 유선(乳脈)에서 체세 포를 분리하여 이를 배양액에서 세포배양을 했다. 다른 한쪽에서는 다른 암양에서 유전자 핵만을 제거한 수정되지 않은 생식세포인 난모세포를 배 양했다. 그 다음 체세포와 핵이 제거된 난모세포를 한 배지를 넣고 두 세포 가 융합(fusi on) 이 잘 되도록 전기자극을 가했다. 6 일 후 형성된 배자 (em bry o) 를 다른 양의 자궁에 착상(imp lan tati on) 시켰다. 일정한 임신기간이 지난 후 체세포 공여자와 유전적으로 동일한 양, 죽 소위 돌리가 탄생했다. 3.2.2 돌리 출현의 문제점 그러면 이러한 돌리의 출현에 대해서 왜 그토록 많은 우려가 쏟아

져 나오며, 이것은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는가 를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양에서 채취된 체세포 는 정상상태의 배양액에서 배양된 것이 아니라, 저농도 영양상태 배지에서 배양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세포 를 굶겨 세포분열을 정지시키고, 정상활동을 해야 할 유전자들의 기능 을 인위적으로 저하시켰다. 이처럼 비정상 영양상태에서 배양된 세포 들 은 변이( 堤異, mu t a ti on) 가 일어날 확률이 높아 비정상적인 양을 출 산할 확률도 매우 높다. 이것은 당초에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변종의 생산도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둘재, 핵이식기법에 의하여 포유동물을 복제하려면 체세포에서 핵 만, 특 히 유전정보 를 가진 DNA 만 순수 분리하여 핵을 제거한 난모세 포와 융합시켜야 한다 . 그러나 윌머트 팀이 돌리를 만들 때 사용한 체 세포 중에는 체세포 이외에 다른 종류의 세포들도 다량 포함되어 있 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윌머트 팀은 순수한 핵만 이용한 것이 아 니라 핵 이외에도 다른 세포성분들이 함유되어 있어 이들 성분들이 배자 형성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아무도 정확하게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 체세포와 난모세포 융합시 안위적으로 전기자극을 주어 세포 융합이 잘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 전기자극이 배자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 아직까지 아무도 모르고 있다. 넷째, 공여자의 핵과 수용자의 난모세포 간의 세포주기 부적합 (cell cyc le inco mp at i bi li ty) 에 의 한 염 색 체 이 상 (chromosamal abno rmality)의 발생 가능을 어떻게 방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다섯째, 아무도 복제된 양이 다른 일반적인 양과 같은 수명, 같은 방식으로 살 수 있을 것인지, 또는 일찍 노화현상이 올 것인지를 예측 할수 없다 .

3.3 인간복제를 금지시켜야 하는· 이유 왜 우리가 인간복제나 인간복제실험을 금지시켜야 하 는 지 를 인간학 과 윤리학의 관점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는 인간생명의 시작을 자궁 착상( 着床 ) 전의 수정란으로부터 보 아야 할 것이댜 그렇다면 복제인간을 실험하기 위해서 는 임의로 무수 한 수정란이 배양되고 폐기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수정란 을 폐기한다 는 것은 조기(早期)인공유산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 결국 에 가서 복제인간을 만드는 과정에서 무수한 낙태와 사산( 死産 )이 불 가피해 질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복제 실험은 생명체 파괴, 생명경시현상을 초래 한다. 첫째, 인간은 남녀 두 사람의 상호의존에 의하여, 죽 안격적인 교제 와 상호간의 책임과 희생을 감수하는 사랑의 수고가 가능한 상호의존 관계를 기초로 하는 성교(性交)에 의하여 출산되는데, 한 사람( 單性 )의 체세포로부터 많은 복제인간이 태어난다면, 이것은 근본적으로 인간 의 상호의존성을 파괴하게 된다. 인간의 상호의존성이 파괴되면 인간 사회는 와해되고 만다. 둘째, 아기는 부와 모, 두 사람으로부터 각기 다른 유전형질을 물려 받음으로 부와 모의 유전형질과 다른 유일한 유전형질을 갖게 되어 있다. 그러나 복제인간은 유일회성과 대치 불가능성을 파괴한다. 복제 인간은 상품으로 또는 대용품으로 전락될 수 있다. 셋째, 어떤 인간을 복제할 것인가를 사람이 그때그때 자의에 의하 여 기능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되면 인간의 정체성(i den tity)은 상실되 고 만다. 가령 동일한 인간을 대량으로 복제하여 나쁜 수단으로 악용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넷째, 인간복제에 의한 단성생식(單性生殖)은, 다시 말해서 아이로부 터 아기가 생기고, 여성 아닌 남자로부터도 아기가 생길 수 있게 된

댜 그렇게 된다면 인간은 남녀구별이 없게 된댜 결국에 가서는 인간 복제는 결혼제도와 가정제도를 파괴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비윤리적인 극악한 행위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인간복제는 천부적 인권 파괴라든가, 인간의 종말이라는 인간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다섯째, 인간복제는 인간의 기본적 관계들, 예컨대 부자(父子)관계 와 혈족관계 등을 뒤바꾸어 놓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가치를 생물학적 특질에 두고 볼 수 있게 된다. 3.4 생명조작과 인간복제의 예방 우리는 앞에서 인간복제에 초점을 두고 생명복제의 문제점과 인간 복제를 금지시켜야 하는 논거와 생명조작의 문제점과 그 부당성을 고 찰해 보았댜 필자는 생명조작과 인간복제는 근복적으로 예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필자는 현대의 과학교육 내지 의학교 육의 기초학으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절대시하는 인간학 또는 인간교육 이 실시되는 것이 선결요건이라고 말하고 싶다. 인간은 할 수 있다고 해서 무엇이든지 다 시도해서는 안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과학기술 과 의료기술의 시행에 윤리적으로 제한을 두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첫째 제한은 어떤 경우에도 생명은 결코 상품으로 취급되어서 안된 다는 것이다. 둘째 제한은 의학과 생명과학은 병리를 다루어야 하지만, 결코 생 리를 함부로 변경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국가는 이를 위해 생명과 학의 연구범위를 제한시킬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가능하다면 과학자들 이 자율적으로 생명연구의 한계를 정할 수 있어야 하지만, 생명에 대 한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는 인간학자, 윤리학자와 사학자의 생명 존엄성에 대한 가르침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4 의료기술의 발전과 생명존중 현대 의학의 의료기 술 의 발달 은 매우 괄 목 할 만하다. 특 히 현대 의 학의 위생 분야와 각종 전염병 퇴치의 공로 는 아무도 과소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의학기술은 몰가치론을 내세우 는 이 른 바 과학주 의에 경도하면서 특히 윤리학과 단 절 되면서부터 오히려 인간을 소외 시키고 인간의 존엄성에 타 격을 가하는 부 작 용 을 초 래하 기 시작했다. 필자는 이 발표에서 이러한 비윤리 적 인 사태의 근본 원인 을 현 대 의학 의 기조( 基調 )에서 찾아보고 이어서 의학의 생명 존중 실천 성과 윤리성 의 의의를 모색하고 끝으로 최근에 물의 를 일으키 고 있 는 생의학적 문제들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4.1 현대 의학의 기조 현대 의학은 의료기술적인 면에서 눈부신 발전을 했 다 . 그러나 과 학적 세계관이 급진적으로 인간의 삶을 지배하게 되면서 전통적인 종 교적 • 윤리적 인생관은 멸시받게 되고 종래에는 비과학적이라는 이유 로 건강문제에서 배제되었다. 오히려 삶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준( 準 ) 종교적 성격을 띠게 되었고 의사의 지위는 준종교적 차원에 이르게 되었다 . 2 ) 사람을 치료할 능력을 가진 자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능력 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히포크라테스의 가르침에 의하 면 의사는 어떤 환경에서도 지위, 연령, 지식에 관계없이 예컨대, 노 예, 황제, 이방인 및 결성(缺性)아동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전적으로 헌신하기로 한 사람들이다 .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사회는 항상 의사로 2) Joc hem sen, H, The medic al profe ss io n in modern sodety : the importan ce of defini n g limi t s, in : (ed.), Kilner , J. F. ; Ni gel , M S. C., Bio e th ics and future of medid n e(F. erdm anns, Michigan, 1995), 14 쪽 참고.

하여금 살인자가 되게 해왔다. 예컨대 의사로 하여금 결성아동이 출생시 살해하게 한다든가 암환자의 침대 곁에 다량의 수면제를 놓아두게 한 다든가 3) . 이것에 대하여 미드 (Marg are t Mead) 나 카메론 (N ig el Cameron) 은 의사 를 그러한 요구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사회의 의무라고 갈파했 댜 4) 헨리(C. F. H. He nry)는 그의 책 『 위대한 문명의 황혼 』 에서 〈야만 들 이 몰 려오고 있다〉고 부르짖으면서 〈현대 의학은 히포크라테스 이 전의 의학의 야만상태로 시계바 늘 을 되돌려 놓고 있다〉고 한탄했다. 그렇다면 현대 의학의 기조는 도대체 어떤 것인가?

3) Livine , Mau rice , Psy ch ia t r y and Eth ics (New York : G. Braji ller, 1972), 324 쪽.

4) Ni gel Cameron, The Orristian Sta ke in Bio e th ics , (ed.), J. F. Kilne r ; Nig el Cameron, Bio e th i c s and the Futu re of Medid n e(W. B. Eerdmanns, 1995), 11 쪽 .

서양의 현대 의학의 기본구조는 19 세기에 수립되었는데, 요컨대 현 대 자연과학의 지식과 15 세기 이래로 수집된 인체에 관한 지식과 개 념 들 이 새로운 개념적 • 방법론적 접근방식에 의해 통합된 것이다 .5) 우 리는 현대 의학의 특 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 (1) 현대 의학의 설 명 전략은 환원주의 , 이원론 , 결정론이댜 6) 여기 서 이원론이란 데카르트의 이원론적 인간관을 가리킨다. 그는 육체와 영혼뿐만 아니라 인간존재와 자연 및 사회적 환경을 엄격히 구별하였 다 ? 벨라우 (Belau) 는 데카르트의 이러한 이원론이 현대 의학의 이론 의 기조 를 이루고 있으며 현대 의학에 개체주의적 성격을 부여했으며 현대 의학을 소위 〈수선업( 修膳業 )〉으로 전락시키는 단초가 되게 했 다 . 또한 이러한 접근방식은 질병을 조장할 수도 있고 저지할 수도 있 는 자연적 • 사회적 요소를 현대 의학이 무시하도록 만들었다고 비판

5) Seid l er, E., Abendland ische Neu zeit, in : Schipperge s, H, Seid l er, E.,(ed.), Krankh eit, He ilk unst, H e iltm g (M i inc hen : Alber, 1978), 303 - 341 쪽 참고. 6) Foss, L., The challenge to bio m e dicine , Jou rnal of Medic ine 血 d Phil os o ph ie , vol. 14(1989), 165-191 쪽 참조 7) Te n, Have, H., Me dicine and the Cartesian image of man, Theoreti ca l Medic ine , vol. 8(1987), 235 - 246 쪽 참조.

했印 현대 서양의학은 20 세기 후반에 들 어와서야 심신(心身, psy ch o- somati c) 의학과 총체적 (ho li s ti c) 의학이 가정의학에 동장하면서 기계 론적 • 기능주의적 의학의 흐름을 다소 누그러뜨리고 있으나 아직도 의학교육과 병원시술에서는 유물론적 • 물질환원론적 • 기계적 결정론 적 성격이 지배하고 있다고 하겠다. (2) 물리학, 생화학, 분자생물학과 같은 자연과학은 현대 의학의 이 론적 기초로 고려된다. 예컨대,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 등이 그러하다. 인간의 기능과 질은 가능한 한 수량으로 표현되는 측정 가능한 생화 학적 • 생물리학적 과정으로 환원된다. 이것은 현대 의학의 시술이 과 학적 추상성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과학적 추상성의 지배 를 받고 있 다는 것을 의미한댜 9) (3) 현대 의학에서 질병은 존재론적 실체 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간 주되며, 질병은 의사와 환자로부터 별도로 분리되어 있다. 따라서 질병 은 환자 안에서 구조물로 또는 과정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다시 말해 서 질병은 정상한 가치와 측정으로부터 일종의 이탈이라는 것이다 .10 ) (4) 현대 의학의 시술은 질병의 존재론적 개념에 기반을 둔 의학지식 의 배열 (ord ering)에 의거한 것으로 특징지어진다. 예컨대, 질병기술학 (疾病記述學, nosog rap hy ), 분류학(tax onom y), 결의론(決疑論, casu itry). 따라서 현대 의학의 시술은 어떤 특정한 방법론적 방식에서 진행된다. 예컨대 환자와 의사의 주체성을 최소화하는 방식에서 환자의 신체를 검사한다 .11) 다시 말해서 현대 의학의 시술은 기계가 인체를 이끌고 8) Belau, B., Okolog ie, Gesundhe it, Me dizin-o kolog ische Gesundhe itsstrat e g ie, Gesund heitsw esen, vol. 54(1992), 284-296 쪽 참고. 9) Levi n, D. M. , S olomon , G. F., The discursive form ati on of the body in the histor y of med icine , Jou rnal of Medic ine and Phil oso p h y, vol. 15(1995), 533 쪽. 10) Ly on s, A. S., Petr ac elli , R J., M edic ine : An illus str at e d his to r y (N ew York : Adams), 477 쪽 ; Foss, 앞의 논문, 170 쪽 참조. 11) Le vin e 과 Solomon 의 앞의 논문 참고 .

간다는 접근방식의 지배를 점점 더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의학의 이와 같은 개별과학적 해석은 의학의 기술 발전의 중요한 배경을 형성한 다 .12 ) 이러한 접근방식은 인체의 기능을 검사하고 또 많은 질병의 원 인을 본질적 수준에서 찾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보면 매우 성공적이 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치료와 진통(鎭痛)의 분야에서 여러 가 지 가능성을 가져다 주었으며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준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현대 의학의 자연과학적 성격은 건강의 지각에 많은 영향을 끼쳤댜 인간성과 실재에 미친 자연과학적 • 기술적 영향은 과학과 기 술 분야에 한정되지 않았다. 과학이론들은 단순하게 어떤 현상에 대한 기술이나 설명을 위한 모델이 아니라 실재 재생산으로 간주되었다. 따 라서 과학이론과 모델은 세계관을 형성했고 과학적 지식은 삶과 사회 를 기술적으로 조종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래서 〈과학기술이 의학에 미친 영향은 대단히 큰 것이어서 기술은 오늘날 현대 의학의 형태를 구성하는 요소가 되어버렸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13) (5) 이제 우리는 구체적으로 현대 서양의학의 특징을 우생학에서 찾 아볼 수 있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장애의 영속(永續)을 단절할 수 있 는 우생학적 조치를 따르고 있다 . 우생학적 조치는 〈도태와 멸종〉이라는 구호 아래 1930 년대에 나치 정권에서 정책적으로 개발되었다. 열등하고 이질적 요소들을 제거함 으로써 독일 국민을 개량한다는 시도인 독일의 우생학은 기실 이미 19 세기 후반부터 영국과 미국에서 유색인종을 상대로 진전된 논의와 정책들에 기반올 두었다. 12) Ten, Have, H., Me dicine and the Cartesian ima ge of man, Theoreti ca l Medic ine , vol. 8(1987), 235-246 쪽 참조 . 13) Ten, Have, In the grip 。f me dica l tec hnolog y, Wijsge rig Pe rspe kti et, vol. 28, no. 3(1987), 890-895 쪽 참조.

우생학은 1883 년 찰스 다윈 (Charles D arwin)의 사촌 프랜시스 골턴 (Franci s Gal t on) 이 지어낸 말이댜 14 ) 영국의 우생학은 줄리안 헉슬리 (Julian Huxle y)의 논문 『우생학의 필수불가결적 중요서」 (1941) 에서 〈정 신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자녀를 갖지 않도록 배려되는 것이 사회 전 체로 볼 때에 중요하며…… 결혼금지 또는 기관 격리시킴으로써…… 생식이 저지되거나 예방될 수 있다면 정신적 장애 증세는 상당히 격 감될 수 있을 것이다〉 15) 라고 설명하고 있다. 미국의 우생학 운동은 골턴에 기반을 두며 IQ 검사의 연구자로 널 리 알려 진 루이 스 터 먼 (Le wi s Terman) 으로부터 비 롯한다. 그는 <적 자 들로 하여금 다산을 하도록 장려하면서 ‘부적격자'들은 단 한 명의 자 손도 갖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16) 1907 년 인디애나 주에 서 불임법이 제정되었고 1930 년경에는 약 30 개주가 강제불임법을 제 정하였다. 지금도 우생학에 근거한 불임법이 약 20 개주에서 발효하고 있다 .17) 이러한 법은 남부 유럽이나 동구( 東歐 ) 출신의 가난한 이민집 단의 비율을 줄여서 영국 출신과 북유럽 출신의 미국인 자손이 주도 권을 잡을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다. 가령, 미국의 정신과 의사 포스 터 케네디 (Fos t er Kenned y)는 미국정신의학협의회의 공식출판물에서 공공연하게 5 세 이상의 지진아를 죽이는 것을 옹호하기도 하였다 .18) 독일의 우생학은 알프레트 플뢰츠(Alfr ed Plo tz)에 의 해 창시 된 인종 위생학회(人種衛生學會, Gesells chaft fur Rassenh ygi ene) 의 강령 등에서 14) Galto n , Franci s, Ing uiries int o Human Faculty (L ondon : MacM illan , 1883) 참고. 15) Huxley, Julian, The Vit al Imp ortance of Eug en ics , in, Harp e r's Month ly 163(Augu st, 1941), 321-331 쪽 참고. 16) Te rman, Lew is M, The Conservati on of Talent , School and Soc iet y 19(483), (1924), 359-364 쪽 참고. 17) 루스 허버드, 『생명과학에 대한 여성학적 비판』, 김미숙 옮김(이화여대 출판부, 1994), 250-254 쪽 참고. 18) Proc tor , Rob ett N., Raci al Hy giene : Medic ine under the Na zis( Cambri dg e : Harvard Un iv. Press, 1988), 83 쪽.

잘 나타나고 있댜 종종 주장되는 것처럼 독일인과 과학자들이 나치 정권의 인종차별주의에 이용당한 것이 아니라 애당초 인종위생학을 창시한 것은 주로 의학자들이었다 .19) 독일에서 우생학에 의거한 불임법은 1932 년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검토되었으며, 1933 년 히틀러가 등극한 지 6 개월 만에 나치 정부가 우 생학적 불임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에 의거하여 유전보건재판소 (Erb gesundhe itsg e ri ch t e) 가 설치되었다. 이 유전보건재판소는 선천성 정신박약증, 정신분열증, 정신이상증, 유전성 간질, 헌팅턴병, 유전성 맹인, 유전성 농아, 심한 신체기형, 중증 알코올중독 등과 같은 유전적 으로 결정되는 질병을 지닌 사람들에게 강제불임조치를 명령할 수 있 게 되었다 .20) 1935 년 나치 정권은 〈생존할 가치가 없는 삶은 파괴되는〉 계획을 마련하였고 인종차별주의적 우생학적 조치, 소위 〈뉘른베르크 다인종 혼합법〉을 제정 공포했다. 이 법은 독일 민족의 유전학적 건강보호를 위한 법으로서 유태인과 비유태인 간의 성관계를 금지하며 유태인을 금지하며 유태인을 채용하지 못하게 하고 유전적으로 건강한 독일 여 인들로 하여금 가능한 한 많은 수의 자녀를 갖도록 권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독일에서 멸종 캠페인은 주립 정신과병원 입원환자와 정신장애와 육체장애 때문에 주립 요양원에 입원 중인 어린이에게 처음으로 적용 되었댜 1941 년 9 월까지 독일의 저명한 정신과 병원들은 7 만 명 이상 의 수용자를 독극물 주사와 독가스로 학살했다. 그 이후 교회의 항의 로 병원에서는 학살하지 않았으나 어린이들을 굶겨 죽이거나 전염병 에 노출시켜 죽게 한 후 자연사로 처리했으며 나중에는 유태인들을 질 19) Procto r , Robert N., Raci al Hy gien e : Medic ine under the Na zis( Cambri dg e : Harvard Un iv. Press, 1988), 38 쪽 참고. 20) Muller-H ill, Beno, Toii lich e Wisse nschaft Reinb eck(1984), 32 쪽 참고.

병뭉치라고 하면서 아우슈비츠와 다카우 둥의 가스실에서 대대적으로 살해했댜 우리는 이러한 행위를 불임시술과 안락사 프로그램을 담당 했던 의사들이 떠맡았다는 것에 대해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 한 행위는 인간 유전학과 우생학을 위해서 만들어진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의 소장이었던 폰 페르슈어 (Von Verschuer) 와 멩켈레(J ose p h Men g ele) 가 지휘했는데, 물론 이들은 의사들이었다. 우리는 이 문제에서 왜 미국에서나 독일에서 정치가 들 보다 먼저 의 사들이 우생학적 조치와 멸종 캠페인에 앞장섰는가 를 묻지 않 을 수 없다. 그 이유는 근본적으로 의학 연구의 방향이 몰가치적( 좋 게 말해 가치중립적)이고 의사들이 스스로를 수선공으로 자처하면서 비인간화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은 서양 현대 의학의 반생명적 지배적 견해는 결과적으로 지금 여기서 우리가 실재로 경험한 것이 세계와 인생의 전부가 되고 초월적 실재를 부인하게 되고 만다. 야스퍼스 (K J as p ers) 는 〈현대 의 학에서의 초월적 실재의 상실은 지상의 행복 추구를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었다〉고 개탄했고, 롤리(J. Ro li es) 는 〈우리의 문화(서양문화)에서 육체는 신성한 것으로 되고 육체의 구원이 영혼의 구원을 대신하게 되었고 하느님의 역할을 육체가 하게 되었다〉 21) 고 지적했다. 따라서 생명의 조종은 생명에다가 과학기술을 강화시키는 것을 함 축하는 것이 되고 만다. 그래서 현대 의학에 의하면 건강은 만들 수 있는 것이 되고 병원은 건강을 창조하는 기관이며 죽음을 지배하는 힘을 추구하는 기관이 되고 만다. 왜냐하면 과학과 기술은 인간의 실 존을 조종하고 인간의 물체를 해결하는 도구로 간주되고, 생명은 과학 기술의 전유물이 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아무 21) Roli es, J., Health : a new relig ion ? in : De gez onde burge r Ni jme ge n (SUN, 1988), 2 坪.

도 아무것에 의해서도 통제될 수 없게 되고, 종래에는 의학기술이 전 횡을 하기에 이르렀다. 서양에서는 인간의 사고와 생명에 대한 과학기 술의 독점적 지위가 전통적인 종교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 이와 관련하여 파하니안(G. Vah ani an) 은 〈현대에서는 마술이 과학 에 의해 대치되었으며 신화는 기술에 의해 대치되었다. 이제 종교문제 는 기술문제로 바뀌게 되었다〉 22) 고 말했으며, 일리치(I. Illi ch) 는 〈프랑 스 혁명은 두 개의 신화를 만들어냈는데 그 첫째는 의사가 성직자를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안 바이츠제커도 〈과학에 대한 신앙은 우리 시대에서 지배적 종교의 역할을 하고 있다〉 R) 고 갈파하였다. 도아이외르트(H. Doa y eweerd) 는 피조물을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하 면, 그 결과 사고와 인생에서 해결할 수 없는 긴장, 즉 이율배반에 빠 진다고 하였댜 그에 의하면 데카르트로부터 시작된 서양 철학을 지배 해온 현대 서양의 사고방식에서 가장 근본적인 이율배반은 과학의 이 상과 인격의 이상의 모순이다. 과학의 이상은 합리성을 바탕으로 기계 적 인과론으로 실재를 설명하려는 시도를 의미하는 것이며, 인격의 이 상은 실재의 전체를 지배하려는 인간의 인격의 자주적 자유의 이상을 의미한댜 다시 말해서 과학의 이상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사상과 자유를 합리적 • 수학적 사고에 종속시키고 기계적 인과론으로 설명하 는 것이댜 그 결과로 인간의 자유는 환상으로 단정되고 만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과학의 이상에 대항하여 인격의 이상을 세우 려고 한다면, 과학의 이상은 근본적으로 제약을 받지 않으면 안될 것 이다. 현대 의학의 모델은 과학의 이상을 표명하는 것이다. 의학자들 22) Va hanian , G., Christlich e Relig ion und Kultu r, in : Handbuch der Chri stl i c h e Eth ik II(Freib u rg, Basel, We in : Herder, 1991), 439-453 쪽 참고. 23) Illich, Ivan , Medic a l nonsensis - th e expropriat io n of healt h( London : Boy er s, 1

은 가능한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 다시 말해서 제약의 이상을 거부 하려고 한댜 이것은 인격과 환자의 유일성을 무시하는 기계를 모델로 하는 기반에서 환자를 고려하고 취급한 결과라고 하겠다. 따라서 이와 같은 환자의 대접은 일종의 폭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5 ) 우리는 현대 의학이 과학기술의 도움으로 예방학, 진단학, 치료 및 진통(완화) 분야에서 많은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많은 질병, 특히 전 염병 치유에 성공적임을 경시할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자연과학적 사고가 의학을 조종 기구로 취급하고 의학을 사이비 종교의 차원으로 끌고 갔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이것은 상당한 의원병( 醫原 病 iat r og e n ic, 의사의 부주의로 생기는 병)적 손상을 초래했고 보건에 불필 요한 과다지출을 하게끔 압력을 가하는 윈인이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하게 하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방지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 이러한 문제 해결의 청사 진을 간단히 내놓을 수는 없다 . 그러나 적어도 이 문제 해결의 접근방 식을 모색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4.2 의학의 실천성과 윤리성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의학을 단순히 하나의 응용과학이나 기술학으 로 방치해서는 안된다. 의학은 실천적인 과학으로 성격이 부각되어야 한다 .26) 여기서 실천(p rax i s) 이란 지향이나 의무의 실현을 의미한다. 따 라서 실천적인 과학은 이론과 응용과학의 지식을 수단으로 하여 개별 25) Port o, E. M., Social conte x t and histor i ca l emerge n ce : The underlyin g dime nsio n of med ica l eth ics , Theoreti ca l Medic ine , vol. 11(1990), 145-156 쪽 . 26) (1R9a9g1 e)r, , 7G5.-, 85M 쪽e ;d iDzienlk aelssk apmra pk -tiHs cahyee sW , Ci s.s(e e nds .)c,h aScfti e,n cine, : TAecrzhnt o ulongd y Cahnrdi s tt, h ev oalr.t 3o7f medic ine (Dordrecht : Kluwer Achdem ic Pub., 1993), 271-319 쪽 참고.

적 상황들에서 올바른 시술을 할 수 있는 데 주안점을 두는 것이어야 할 것이댜 그러나 일반적으로 과학이 정의에 의하여 , 죽 보편타당성 을 갖는 규정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활동으로 이해된다고 한다면, 실천 적 과학이라 는 말은 자기모순에 빠질 위험이 있다. 그래서 요켐센(H. J ochernsen) 은 의학을 실천적 과학이라고 부르는 대신에 전문적 실습(실천)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했다 . 27) 그에 의하면 실 습이라 는 말은 이론적 지식과 경험적 지식을 개별적 상황에 알맞게 시행하 는 것을 의미하며, 전문성이라는 말은 과학적 지식과 이와 관련 된 기 술 을 사용하 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응용과학과 이론적 과학을 특 징짓는 추상적 관념 들 은 의학과 같은 전문적 실습에서는 지양되어 야 할 것이다. 의학의 전문적 실습은 개별적인 경우에서 어떤 규정을 적용할 것인가 를 결정하는 판별력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판별력 은 일반화할 수 있는 지식이 아니라 실습에 의해서만 획득될 수 있 다 . 28) 전문적 실습으로서 의학은 우선적으로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윤리 적인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의학은 항상 윤리학 적 가치의 실현을 목표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의사는 기계 적 • 의학적 모델에 따라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하며 , 병원뿐만 아니라 심리학적 • 사회학적 • 정신적 요소들을 해명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질병은 육체적 결함 그 이상의 것이기 때문 이다 . 질병이란 바로 신체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전체 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의사는 환자를 치료할 때 건전한 전인 (whole p erson) 을 향해서 일한댜 그러므로 우리는 의사에게 제한 (limitati on) 을 가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제한은 의사는 모름지기 사람 27) Joc hemsen, H., The me dica l pro fe s sio n in modern soci et y in Kilner (ed.), 28) Bi앞o e의t h ic 책 s, a n1d9 쪽t.h e Futu re of Medic ine , 앞의 책, 19 쪽.

다운 삶과 건강에 대한 총 체 적 이해 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는 것 과 그 들 의 전문 적 활동을 인간에 대한 올바 른 전망에 두어야 한다 는 것 이다 . 우리는 의학과 의사의 근본적 과제 를 적어도 다음과 같 은 두 가지 관점에서 윤리적으로 제한울 두지 않으면 안 될 것 이다. 첫째 제한은, 의학의 시술은 히포크라테스 선서 를 준수하 는 것 이다 . 설사 의사의 의도가 환자의 고통을 제거하거나 예방하려는 것 일지라 도 생명은 결코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되어서 는 안된다 . 만일 의사가 환자의 고통을 예방하거나 제거하는 책임을 져야한다면 의사 는 성직 자에 준하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 의사는 낙 태와 안락사와 같은 인간의 삶과 죽음을 다 룰 때 법 적 으 로 허용된 활 동으로부터 벗어나 윤리적으로 인정받는 적극 적 인 활동을 해야 할 것 이다. 모든 문화권에서 생명은 신성한 질서에 의해서만 처리될 수 있 는 신성한 선물로 간주되어 왔다 . 그러므로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한 때 종교의 사제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낙태와 안락사는 처음에 대체로 고통을 예방하거나 제거하기 위해 서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 문제들은 오늘날 공리적인 관점에서 기술문 제로 다루어지고 있다. 고통을 잊기 위하여 인간의 생명을 끊어버린다 는 것은 의학의 전문적 실습의 범위와 의사의 능력을 벗어나는 행위 이다. 도대체 의사가 인간의 고통을 야기시키는 모든 문제 를 해결할 책임을 지게 할 수는 없다. 둘째 제한은, 질병과 신체적 부조화를 회복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 을 뿐, 기술의 발달에 따라 새로운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 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 의학은 병리룰 다루어야 하지만, 결코 생리 룰 변화시켜서는 안된다 . 다시 말해서 의학온 우리가 정상으로 볼 수 있는 것으로부터의 이탈을 방지하거나 고쳐보려고 해야 할 것이다. 여 기서 정상이란 말의 정의와 역사적 이해가 다양할 수 있다고 할지라 도 정상온 무제한적으로 확대 해석되어서는 안된다.

이제 의학의 과업에 대한 실제 적 제약이 명백히 제시되어야 한다 . 환자 를 다루는 의사 는 실존의 많은 관계와 차원들을 가지고 있는 인 격을 다루는 것이댜 의사는 생리적 수준에서 또는 심리적 수준에서 질병의 회복과 예방만을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질병은 물 리화학 적 수준을 넘어서 사회적, 정신적 문제와도 상관되기 때문에 의 사 는 환 자와의 접촉에서 이런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댜 그 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들을 다루는 것은 의사의 능력 밖의 일이므로 이러한 문제들을 다루는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윤리학자 , 신학자 등 )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여기 서 전문가 들 이란, 의학의 전문성을 이해하면서 특수한 전문적인 지식 을 발전시켜 온 특 수한 훈련과 교육을 받은 사람, 또 윤리적인 한계 내에서 공공의 이익을 지지할 수 있는 능력과 지식을 겸비한 개인이 나 집단, 소명의식을 가진 사람을 가리킬 수 있다 .29) 우리는 의학의 전문성에 대한 윤리적 성격을 다음과 같이 규정해 볼 수 있을 것이며, 이것은 아무리 의학기술이 발달하고 변하더라도 최소한 지켜져야 할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30) 첫째, 환자의 건강을 위한 의사의 증진은 윤리적인 제한 아래에서 제일 가치가 되어야 한다. 의사의 전문적 시술은 정치 • 경제적인 이유 나 제삼자의 이해관계에 의해 좌우되어서는 안된다는 의미에서 자유 로울 필요가 있으나 전문성의 자율은 제한울 가지며, 이 제한은 물론 자의적이어서는 안된다. 의사는 환자를 다룰 때 그의 개인적 이해관계 로 행동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의사가 의료처치를 하는 대가로 지불되 29) Mick i es , D. M. , Phys i c ian 's auto n omy -the relati on betw e en pu bli c and the pro fe s sio n al exp ectation s, New Eng lan d Jou rnal of Medic ine , vol. 328, no. 18 (1993), 1346-1349 쪽 ; Webste r 사전, 1811 쪽, 참 고. 30) Unschuld, P. U., Profe ssion alisier ung und ihre Folge n , in : Schipperge s, H, Anth r op o log ien in der Gesch ich te der Mediz in, in : Gadamer, Volge r (ed.), Neue Anth r op o logi e II(St u ttgart : Georg Thiem e, 1992), 535-540 쪽 참고 .

는 재정과 관련된 제도는 윤리적으로 고려되지 않을 수 없다. 이 재정 제도는 의사로 하여금 고장난 기계 를 수선하는 기계공처럼 인간을 기 계의 모델로 삼게 하고 환자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보다는 그 자신의 수입에 더 연연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오늘날 의료기관의 과 잉조치와 과도한 설치를 초래하기도 했다. 둘째로, 의학적 전문성의 특징은 전문성의 구성원이 무엇이 적절한 의학적 실습(시술)인가를 결정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이것은 환자의 동의가 의사의 처치에 필요조건일 수 있지만, 전문가가 환자의 요 구 에 따라서만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사는 환자의 소원을 단 순히 집행하는 자가 아니다. 의학적 전문성은 두 가지 과제 를 가지고 있는데, 첫째 과제는 어떤 의학적 조치에 대해 적절한 지침을 가능한 한 가장 예리하게 형성했는가를 지속적으로 반성하는 것이며, 두번째 과제는 의학적 전문성의 모든 구성원의 실습의 질을 감독하고 증진시 키는 것이다. 우리가 질병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데, 의학에 제한을 두는 것을 수 용할 때에만 비로소 윤리적으로 건강보존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할 것 이댜 인간의 생명을 의료기술에만 맡겨둔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할 뿐더러 종래에는 가능한 일도 아니다. 이제 우리에게 무엇보다 부진한 것은 기술의 전횡을 막는 것이다. 의료기술은 나날이 엄청나게 발전하 고 있다. 과학자의 탐구욕과 호기심은 그칠 줄 모른다. 4.3 생의윤리학적 고찰 4.3.1 유전자 조작 및 재조합의 문제 우리나라 보건복지부는 1997 년 1 월 23 일 생명공학분야 연구 및 산 업화과정에서 빚어질 수 있는 각종 위험과 윤리적 문제의 예방을 위 해 유전자 재조합 실험지침안을 입안 예고하고 이것의 시행을 7 월 1 일

부터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유전자 재조합은 생물체의 유전자를 조작, 새로운 미생물이나 동물 과 식물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의약품, 농업, 공업, 환경 분야에서 이용 된댜 이것은 한편으로는 식량문제와 질병치료를 해결해 줄 것으로 기 대되나, 다른 한편으로는 돌연변이 생물체의 발생 등 환경 및 생태학 적 재앙을 야기시키는 윤리적 문제를 수반하기도 한다. 따라서 선진국 들은 이에 대한 연구를 경쟁적으로 펼치면서도 동시에 이러한 연구에 대하여 엄격한 규제제도를 두고 있다. 우리는 유전자 조작 및 재조합의 기술을 다루는 유전공학 및 생명 공학을 몰가치론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과학자에게만 내맡길 수 없으 며 생명공학에 적절한 제동을 걸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생명공학 의 역기능과 부작용은 근본적으로 생명질서에 위기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댜 31) 유전자 재조합은 우선적으로 돌연변이 생물체의 전파와 확산 등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자연에 가져올 수 있으므로 엄격한 감시와 예방책의 강구가 선결되어야 한다. 유전자 재조합의 연구자는 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해본다는 무책임한 태도를 갖지 말고 어 떤 경우에도 인간의 존엄성과 모든 생명체의 정체성의 문제를 고려해 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도 안전성 확보를 우선시해야 할 것이다. 4.3.2 인조염색체 합성의 문제 윌라드 등은 최근 인조염색체를 합성시키는 데 성공했다. 인조염색 체는 인간복제와 더불어 인간 조작의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복제 가 똑같은 개체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인조염색체는 조물주의 권한 인 인체설계도까지 인간 마음대로 바꿀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염색체는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을 모두 담고 있는 유전자 그릇으로 31) 진교훈, 『周易과 生命科學」, <周易硏究>, 1 집 (1996), 178-183 쪽.

부계와 모계로부터 각각 23 개씩 물려받아 모두 46 개로 구성되어 있다. 예컨대 키가 작은 부모로부터 키가 작은 자녀가 태어나는 것은 인간 의 유전형질을 부모로부터 수동적으로 물려받기 때문이다 . 그러나 윌 라드는 염색체의 원료물질에 해당하는 유전물질 DNA 와 염색체의 본 체를 서로 연결시켜 주는 중심체를 인공합성한 뒤 이를 결합해서 정 상적인 기능을 갖는 염색체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 이것들은 정상보다 5 분 1 의 정도 크기에 불과한 미니염색체지만 이 중 2 개가 이제까지 지구상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는 인조염색체로 단백질 합성과 염색체 분열 둥 정상적인 염색체와 똑같은 기능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인조염색체의 합성은 인간의 존엄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 다. 학계에서는 이 인조염색체가 2005 년경에는 인체게놈사업의 응용에 직접적으로 실용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인체게놈사업으로 인체 설계도는 낱낱이 밝혀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인조염색 체를 이용하여 원하지 않는 유전자 대신 원하는 유전자를 담은 염색 체를 삽입하고 신개념 유전자요법이 가능해진다. 유전자요법은 바로 유전병 치료에 응용될 수 있다. 특히 염색체의 분열 및 합성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중심체의 기능 이상으로 21 번 째 염색체가 하나 더 추가해서 발생하는 소위 다운중후군의 예방과 치료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우리는 복제양 돌리의 출현과 마찬가지로 인조염색체 역시 생명현상의 조작이라는 측면에서 윤리적으로 고려해 보지 않을 수 없 다. 예컨대 인체게놈사업으로 지능과 성격이 우량한 유전자만을 모두 찾아내서 이러한 유전자들만으로 구성된 인간을 임의로 만들어내는 것도 이론상으로 가능해진다. 또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모두 찾아 냄으로써 질병을 미리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염색 체 분리 이상으로 생기는 모든 질병(예컨대 노화현상, 암 둥)을 미리 예 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가질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이렇게

된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많은 문제들이 생겨날 수 있 다. 가령 어떤 기관(이해관계가 있는 보험회사 등)이나 개인이 특정한 사람의 유전자 데이터를 보여달라고 요구할 수 있을 것이며 낙태, 영 아살해, 안락사, 우생학 등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4.3.3 생식과 관련된 신기술 문제 생식과 관련된 신기술의 발달은 자연스러운 방법으로는 아이를 잉 태 또는 임신할 수 없는 여인에게 실제로 임신을 할 수 있게 해주며 이성 배우자 없이도 임신할 수 있게 해준다. 예컨대 인공수정으로 인 체 또는 시험관에 의한 아기출산. 그러면 이것은 단순히 새로운 생명 기술의 이용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새 로운 기술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 주고 여러 가지 새로운 문제들 을 초래하기도 하지만, 애당초 비정상적인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아기 를 갖기를 원하고 또 새로운 기술을 연구하고 이를 이행하려는 집단 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인공수정이라는 기술을 만들어내지 도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공수정은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아기를 갖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85 년 서울대 병원에서 국내에서 첫 시험관 아기 가 태어나면서 인공수정시대가 시작되었다. 이후 의료계의 일반적인 윤리적 불감증과 불성실로 인해 정자제공자의 AIDS 및 성병 등 악성 질환의 감염 여부를 검사하지 않고 수많은 여인들에게 수정시키고 정 자를 돈을 주고 사는 비윤리적 작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우리나라 대 부분의 종합병원에는 불임클리닉, 불임시술센터가 있으며 윤리 부재의 무분별한 인공수정시술이 행해지고 있다. 부부 이외의 비배우자간의 인공수정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사태를 의료기술을 통한 〈기계적 간통〉이라고 단정하고 혼인의 본질을 부정하는 비인간적인 행위라고 규탄한다 .32) 이것은 분명히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32) Joh n Marha ll, The e th i cs of medic a l prac ti ce (London : D arto n , Long man and Todd, 1960), 78 쪽.

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자녀의 출생은 원래 부모와 자녀 모두의 인격적 존엄성에 원칙을 두고 혼인 안에서 부부의 성관계에서만 이루 어져야 한다. 따라서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정자기증자는 정자판매자 인 동시에 수많은 아기들의 익명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되며 심지어는 동일한 정자판매자의 직계 후손들간에 혼인할 수 있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만일 법적 아버지가 자기 아닌 다른 남자와의 인공수정을 동의했다 고 하더라도 정자판매자에 의해 생겨난 아기의 어머니와 법적 아버지 사이에 나타나게 되는 관계는 인륜을 파괴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첨단의료기술의 발달은 인공수정뿐만 아니라 체외수정(시험관 아기), 대리모에 의한 출산(예컨대 부인 아닌 다른 여인을 씨받이로 출산하는 경 우) 둥을 점차 확산시켜 가고 있다. 자연의 섭리에 따른 임신과 출산 이 아닌 인공적 기술에 의한 수태와 출산에는 인간의 방자함과 그릇 된 욕구가 작용할 위험이 너무나 많고 크다. 따라서 우리는 시술하는 의사와 인공수정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윤리의식을 문제삼지 않을 수 없다. 1993 년 1 월 31 일 전국 40 여 개 병원에서 무분별한 인공수정시술 을 하면서 심지어 정자제공자의 각종 질병의 유무도 검사하지 않고 수태시술을 했다는 신문기사는 단순한 우발적인 사건들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한 의료원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650 여 건의 시술을 하면 서 정자를 제공한 몇몇 사람에게 건당 15 만 원씩 돈을 주었고 아무런 검사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은 한국 의사들의 그릇된 인간관과 윤리 수준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긴 하나 이런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배경은 근본적으로 현대 서양 의학의 기조에서 파생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지엽적인 인공수정의 시술과정보다 근본적으로 인공

수정 자체에 대하여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 우리는 인공수정이 근 본적으로 자연법을 거스르고 있음을 문제삼아야 한다. 인공수정은 정 상적인 부부간의 성행위에 의해 남편의 정자가 아내의 자궁 안에 주 입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인공수정은 엄연히 혼인행위의 본질에 위 배된다. 혼인행위는 사랑의 촉진 , 자녀 출산, 성적 욕구의 충족 등을 성취할 목적을 가지며 이러한 목적 중에서 어느 한 가지라도 떼어내 려 한다면 이것은 혼인의 숭고한 목적과 사람다움의 본질을 파괴하는 것이 되며 비윤리적이다 . 우리 는 비배우자간의 인공수정을 다음과 같은 이유로 금지시켜야 한댜 첫째, 부부가 혼인계약 안에서 성교할 수 있는 권리는 그 두 사 람만의 독점적 권리이다. 이 권리는 오직 자녀를 낳아야만 하는 권리 가 아니라 오히려 자녀를 출산하게 되는 자연적 행위에 있다. 이 권리 는 제 3 자에게 양도될 수 없는 것이므로 제 3 자에 의한 자녀출산은 일 종의 간음행위가 될 것이며 혼인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둘째, 인간의 성기능은 해부학적으로 보나 생리학적으로 보나 분명 히 성교 를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녀의 출생이 부부의 성교행위에 의한 것임은 자연법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성교가 아닌 어떤 인공적 인 수단이나 방법에 의해 출산하려는 것은 자연법을 거스르는 것이며, 비윤리적이다. 셋째, 실제로 비배우자간의 인공수정은 실행하는 과정에서 부조리 를 가져오게 된다. 우선 수태를 위해 제 3 자의 정자를 받아들인다는 것 은 부부간에 맺어진 혼인계약의 신성불가침적 관계를 침범하는 것이 된다. 또 이러한 방법으로 태어난 자녀에게 그러한 비밀을 끝까지 유 지할 수 있고 만일 이 비밀이 알려졌을 때 그 자녀가 충격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생기며, 또 부부간에 부모와 자식 간에 생길 심 리적 갈등을 어떻게 해소시킬 수 있겠느냐는 난문이 생긴다.

4.3.4 태 내 진 단기 술의 우생 학적 사용의 문제 양수검사, 융모막 융모샘플링, 수정관치료법 등 태내진단기술은 더 이상 무간섭상태로 방치시킬 수 없다 . 이러한 기술은 처음부터 필요하 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모두를 위한 인도적인 목적으로 의도된 것이 아니라 무분별한 의사들의 지적 호기심 충족과 남아선호사상 등 여성 에 대한 편견을 가진 부유한 사람들을 위하여 개발되었다. 태내에서의 유전 관련 검사와 신진대사검사가 제한없이 증가하는 추세에 있댜 양수 및 양막 검사는 자궁을 통하여 임신한 여성의 복부 내벽에 바늘을 꽂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 과정에서 산모와 태아는 병 균에 감염되기 쉽고 태아의 생명을 위태롭게 한다. 특히 양막검사는 유산시킬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는 교묘하게 무지한 임 신부에게 테스트롤 받도록 압력을 가한다. 문제는 태내진단을 할 것인 가 말 것인가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선택하느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서 임신부가 실제로 태내진단과 위험한 수정란 치료에 대하여, 자발적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하며, 또, 의사가 윤리적인 책임의식을 가지고 이에 임하여 한다는 것이다짠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요 즈음 불필요한 제왕절개시술이 병원 당국의 경제적 이윤추구와 비윤 리적인 의사와 무지한 임신부의 공모에 의해서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 는 것에 대해 유념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태내진단에 있어서 태아의 권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해서 각종 검사에서 태아는 생존권과 침해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임신부는 수태를 하였으면 유산하지 않도 록 조심해야 하며 하나의 생명을 가능한 한 최상의 건강한 상태로 이 세상에 태어나도록 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따라서 모체는 태아에 위 33) Jou rnal of Obste rics and Gy nec olog y(1 982-1996). Hen ifin, Hubbard, Banta , Bois en, Norsig ian, Roth man 둥의 논문 참조.

해를 초래할 행동이나 태만한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할 의무가 있다. 4.3.5 장기이식과 관련된 윤리문제 1991 년 6 월 17 일자 < 타임 (T i me) > 지의 〈윤리〉난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16 살 된 딸(아니사)이 만성 골수백혈병으로 죽게 되자, 그 부모가 이 딸을 살리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다른 딸을 낳아 그 딸 (마리사)이 14 개월이 되었을 때 척수를 뽑아 언니에게 이식시켜 살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골수이식 성공률은 같은 자매끼리는 약 70% 이 고, 이것의 타당성 조사는 찬성 47%, 반대 37% 였다고 한다. 문제는 부모가 자녀들 중 한 자녀의 생명을 구하는 데 필요한 기관이나 조직 을 얻기 위해 새로운 자녀를 의도적으로 낳는 것을 도덕적으로 수용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최근에 자식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합법을 가장하여 입 양을 하고 입양한 아이의 장기를 떼서 장기이식을 하는 경우가 많이 생기고 있다. 동의를 제대로 구하기 어려운 미성년자의 장기이식은 부 도덕한 짓이 아닌가? 부모가 자식의 장기를 임의로 제 3 자에게 떼어줄 권리가 있는가? 아기, 즉 사람이 생물학적인 조직을 공급하기 위한 수 단으로 취급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리 사와 아니사의 부모는 부도덕한 짓을 한 것이 된다. 이 잡지는 천 명을 무작위로 뽑아 장기이식과 관련된 설문조사를 한 것을 기재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콩팥 하나를 다른 사람에게 떼어주는 것은 도덕 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가? : 찬성 83%, 반대 10% —당신은 콩팥을 필요로 하는 친인척의 장기이식을 위하여 당신의 콩 팥을 기중하겠는가? : 찬성 88%, 반대 5% ―질병치료를 위해 태아의 조직을 이용하는 것을 도덕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가? : 찬성 36%, 반대 47% —다론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는 기관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임신을 하고 낙태를 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가? : 찬성 18%, 반대 71% ―태아의 조직이 이식하는 데 적합하지 않는 것으로 판정되었을 때 태아를 유산시키는 것은 도덕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가? : 찬성 11%, 반대 78% ― 18 세 이하인 어린이에게 친척의 장기이식을 위해 콩팥을 줄 것을 청하는 것은 윤리적인가? : 찬성 45%, 반대 42% ―만일 당신 또는 당신의 친척이 장기이식에 의해서만 치유될 수 있 는 치명적인 질병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다음과 같은 조치 중 어떤 것을 택하겠는가? • 필요한 장기를 돈으로 사겠다: 56% • 필요한 장기를 제공할 수 있는 아기를 낳겠다: 24% • 친척에게 장기를 기증해 달라고 읍소하겠다: 15% • 친척에게 장기를 기중해 줄 것을 강요하겠다 : 5% 앞의 설문에 대해서 발표자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질병치료를 위해 태아의 조직을 이용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태아의 생존권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또 질병치료의 수단으로 임신하고 태아를 유산시키는 것도 비윤리적이다. 또 미성년자에게 장기기증을 요청하는 것도 비윤리적이다. 장기를 돈으로 팔고 사는 것은 비윤리적이다 .34) 4.3.6 인간복제 의 문제 영국 스코틀랜드 로스린 연구소의 윌머트는 양의 유선세포(체세포) 34) 진교훈, 여사와 장기이식의 문제』, 『철학적 인간학 연구(II)』, 186-190 쪽 참조.

를 가지고 277 번의 시도 끝에 양을 복제하는 데 성공했고 이를 돌리 라고 명명했댜 이 돌리의 유선세포의 핵치환의 성공은 인간복제의 길 을 터놓은 것이 되었댜 인간복제는 천부적 인권파괴, 인간의 종말이라 는 인간의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다 . 이미 소와 돼지의 복제는 일반화 되고 있는데, 인간복제는 왜 그토록 반대가 심한가? 우리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은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 째, 인간은 남녀 두 사람의 상호의존에 의하여, 즉 성교에 의하여 출 산되는 것인데 , 한 사람의 체세포로부터 많은 복제인간이 태어난다 면 근 본적으로 인간의 상호의존성은 파괴된다. 인간의 상호의존성이 파괴되면 인간 사회는 와해되고 만다 . 둘째, 아기는 부와 모, 두 사람으로부터 각기 다른 유전형질을 물려 받음으로 부와 모의 유전형질과 다른 유일한 유전형질을 갖게 되어 있댜 그러나 복제인간은 인간의 유일성과 대치 불가능성을 파괴한다. 따라서 복제인간은 상품으로 전락될 수 있다. 셋째, 누구를 복제할 것인가는 사람이 그때그때 임의로 결정할 수 있게 되면 인간의 정체성과 미정성과 자발성이 상실되고 만다. 인간복 제술은 동일한 인간을 대량으로 복제하여 나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아이로부터 아이가 생기고 남자로부터도 아이가 생긴다. 그렇게 되 면 인간은 남녀 구별이 없게 된다. 인간복제는 결국에 가서는 결혼제 도와 가정제도를 파괴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비윤리적인 극 악한 행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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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보기·인명

기 갈홍(葛洪) 145 골 턴, 프랜시스 (Fran ci s Galto n ) 256 공자 167 곽박( 郭~ ) 184 괴 테 (Goeth e ) 117 굴드 (Gould) 100 김범부( 金 凡 父 ) 143, 160, 177, 191 김시습( 金 時 習 ) 189 김 원용( 金元 龍) 203, 205, 211, 212, 214, 225 김태곤( 金泰 坤) 182 L 노벨 (Nobe l) 147 노자 132, 133, 134, 135, 136, 137 니덤 , 조셉(J. Needham) 170 니 체 (F. Ni etz sc he) 39 C 데카르트 (Rene Descartes ) 41, 42 뎀보스키 (Dembows ki) 42 도선(道說) 185 동중서( 董 仲舒) 167 두유명(杜維明) 169, 171

뒤 보 (Rene Dubos) 19, 28 드 레 버 만 (Drewermann) 52, 58, 77, 78, 125 둥숙빈(鄧淑 ffi ) 174 디 쉬 (R. Disc h) 19, 28, 163 근 레 오폴드 (A Leop old ) 19, 113 레이건 (T. Reag an ) 97 렌치 (Rents ch) 90 렌크 (Lenk) 91, 99 로렌츠 (K Lorenz) 61 로크(R. Rock) 51, 72, 93, 94, 124 롤리 (J. Roli es) 258 뢰 비 트 (K Low ith) 34 루만 (N. Luhmann) 95 루소(J. J. Rousseau) 38 루트레 이 (R. Routl ey ) 91 리트케 (G . Lied ke) 34 □ 마이어-아비히, 아돌프 (Ado lf Meye r - Abic h ) 59 마이어-아비히 58, 91, 94 맥클로스키 (H: °J, McOoskey) 27, 31 맥 헤 일 0. Mchale) 29

맹자 160 모리슨 CT . F. Morr iso n) 29 모트 (F . Mote ) 169 몰트만Q. Moltm a nn) 34, 42 미 드 (Mar garet Mead) 253 밀 러 (G. M 비 er) 29 닌 바더 (Fr. Baader) 42 바이츠제커(C. F. Weiz sa cker) 51, 115, 124, 259 박성래(朴星來) 198 방동미 176 베 르그송(H. Bergs o n) 105 베 이 컨 (Fran ci s Bacon) 37, 41 벨라우 (Belau) 253 볼딩, 커네스 115 볼프 (Ursula Wolf ) 96 뵈 메 (Bohme) 94 부해 이 (A S. Baug hey ) 29 비 른바허 (Bir nb acher) 90 빌 란트 (W i eland) 91 人 사마천(司馬遷) 137 샤르댕 테아르 드 (Te ilhar d de

chordi n) 98 서긍( 徐 統) 221 서대석( 徐大錫 ) 182 셸 러 (M. Scheler) 105 셸 링 (F W. J. Schellin g) 38 쇼펜하우어 (A Schop en hauer) 52 슈바이 처 (Albert Schweit ze r) 43, 50, 51, 56, 57, 71, 72, 73, 123, 124 슈테크 67 스파에만 91 。 아리스토텔레스 36 아메 리 (C. Amery ) 34 아우구스티 누스 (Au gu stin us) 37 아우어 55 아이 레 (Ey re) 98 아퀴 나스, 토마스 (Thomas Aq uina s) 37, 64 안규철(安 奎哲 ) 215 알렉산더의 클레멘스 80 알트너 (Altn e r) 58, 59 야나기 무네요시 212, 213 야스퍼 스 (K Jasp e rs) 258 얀치 (E. Jan ts ch) 59 에를리히 (Ehr li ch) 30 엥 겔스 (F. Eng els ) 39

오트 (O tt) 90, 94 왓슨 (Wa ts on) 28 왕간( 王 良) 175 왕건( 王建 ) 145, 146, 194 왕부지( 王夫 之) 172, 175 왕필( 主 弼) 133 요나 스 (Hans Jon as) 47, 82, 90 요켐 센 (H . Joc hemsen) 261 요한 바오로 2 세 114 위 고, 빅 토르 (V i c t or Hug o) 121 윌 머 트(I. Wi lm ut) 241, 242 융(G. Jun g ) 170 이 능화( 李 能和) 144 이 익( 李 漢) 189 이창녕( 李昌齡 ) 142 일 리 에 스 (Ill i es) 43 일 리 치 (I_ I llich ) 259 大 장자 137, 138, 139, 140, 141, 142 장재(張載) 172, 173 정 인국(鄭寅國) 205 조르주, 리 샤르 드(Ri chard de Geo- rg e) 90 주희 (朱 {{; ) 167, 175 지 페 를레 (Sie fe rl e) 99 진영첩(陳英捷) 170

天 청위자( 범爲 子) 184 최창조(崔 昌 祚) 184 = 카메 론 (N ig el Cameron) 253 카뮈 (A Camus) 120 카슨(R. Carson) 28, 30 칸 (Cahn) 19 칸트 (Kan t) 37, 38, 75, 93 캄바르텔 (Kambar t e l) 90 케텔러 84 크니 게 (Knigge) 96 크라머 (F. Cramer) 60 크롤직 (U. Krolz ik) 34 크릭(Cri ck) 28 클뢰 퍼 (M. Gofe r ) 95 킨겔바흐(R. Kinzel bach) 18, 27, 228 E 터먼, 루이스 (Le wis Terman) 256 트리 베 (Tr i be) 92, 96

立 파인 베 르크 (Fe in ber g) 96 파크레 (Fackre) 19 파하니 안(G. Vaha nian ) 259 패스모어 (Passmore) 90 푀그톨레스 (A Vog tles) 69 풍우란(馮友 00) 141 플뢰츠, 알프레트(Alfr ed Plotz ) 256 필 (A Fil l) 98 끈 하딘(G. Hardi n) 28

하르그로브 (Har gr ove) 94 헉슬리, 줄리안Quli an Huxley) 256 헤 라클 레 이 토스 (Heracle it os) 36 헨드릭 스(H. Hend rich s) 97 헨 리 (C. F. H. Hen ry) 253 호르스트만 (Horsbnrum) 98 호적(湖適) 166 홍만선(洪萬選) 204 홍윤식(洪潤植) 196 화이트 (L. White) 33 황호근(黃沮根) 211 회슬레 (Hosle) 90 힐 페 르트(K. Hilpert) 65, 75

-T 가신신앙 187 가치의 서열 107 감성주의 89 격물론 167 경제원칙 44 고수레 186 공공재화 48 공동세계 58 공리주의 43 공생 46, 58, 67, 113 공생적 인간 중심적 생태윤리학 55 공익성 26 과학의 물가치화 45 구비전승 185 구속사 34 국제협력 29 국제환경 교육학회 228 권선서 (勸 善書 ) 131 그리스도교의 자연관 65 기술 36 기철학 172 꽃꽂이 216 L 노자의 자연관 132

능산적 (能産的) 자연 37 E: 다윈주의 39 도가(道家)의 자연관 131 도교의 자연관 142 도구적 가치관 44 도자기의 자연미 214 도참사상 184 독일의 우생학 256 동물권 109 동정윤리학 96 『땅의 윤리』 113 □ 만유령유론 33 목공예 211 무속신앙의 자연관 181 물활론 33 미국의 우생학 256 민간신앙의 자연관 180 민속불교 195 민예품 210 민화 206

닌 보조성 26 본래적 가치 106 본질직관 105 人 사유권 84 사이비 범신론 77 사회진화론 44 산업화 27 생명 개념의 다의성 103 생명에 대한 의경 50, 56 생명윤리학 101 생명의 신비 105 생명조작 241 생태계 20, 63 생태권 19 생태학 25 생태학적 양식 19 생태학적 위기 17 생태학적 윤리학 18 세계유기체 59 소산적(所産的) 자연 37 신선사상 143 신탁자 48 실천윤리학 21

。 연대성 26, 50, 66 우생학 257 원일성 52 유심론 41 UN 인간환경회의 20 유전자 재조합 기 술 150 이분법적 사고 41 인간교육 229 인간복제 241 인간존엄성 44 인간환경선언 21 인격교육 230 인성교육 229 인조염색체 합성 265 大 자기구성화론 59 자본주의 45 자수공예의 자연미 217 자연권 94 자연무위 138 자연미 93 자연보전 21, 82 자연보존 47 자연보호헌장 21

자연의 변증법 39 자연재화 48 자연주의 43 자연 중심적 생태윤리학 56 자연철학 38 자연 총체설 61 자유경쟁시장 45 장기이식 271 장자의 자연관 137 전인교육 230 정의(正 義 ) 48 『주역 』 147 『주역 』 의 생명질서 160 중심주의 34 진보신앙 43 진화론 39 天 책임 55 천인상감 166 천인합일 134 초고공예(草築工藝)의 자연미 221 E 탈신화화 33

탈이데올로기화 116 태내진단기술 270 태화 172 立 평등원칙 74 평등주의 57 평화 114 평화의 의미 115 품성교육 230 풍수지리사상 183 E 학교교육의 문제 점 234 한국 고미술 223 한국의 조원(造苑) 201 핵치환 기술 151 현대 의학의 기조 252 화훼 215 환경교육 227 환경비용 92 환경윤리학 18

진교훈(秦敎動) 서울대학 교 문 리대 학 철학과 졸 업. 오스 트 리아 빈 대학교 철 학 박 사 . 경희대 학교 부교 수, 카 톨 릭대 학 교 대우교수 , 중앙대학교 교수, 한국 철 학회 부 회 장 역임 . 서우 철 학상 저술 부문 수상 (1994) . 현재 서 울 대학 교 국 민윤리교육과 교수 , 동대학 중앙도서관 관장, 한국생 명윤리 학회 부 회장 , 한국인간학회 회장 . 저 서 『 철 학 적 인 간 학 연구(I), (II) 』 『 현대평화 사상의 이해 』 『 현상 학 과 실천 철 학 』 『 문화철학 』 『 현대사회와 정의 』 , Uber das Verha1tn is von Person und Lieb e bei M 邸 Scheler 의 다수 . 환경윤리 동서양의 자연보전과 생명존중 대우학술총서·인문사회과학 100 1 판 1 쇄 펴냄 1998 년 5 월 5 일 지은이 진교훈 펴낸이 朴孟浩 펴낸곳 (주)만옵사 출 판등록 1966. 5. 19 제 16-490 호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506 강남출판문화센터 5 층 515-2000( 대표전화), 515-2007( 팩시밀리) ® 진교훈, 1998 Printed in Seoul, Korea 윤리학, 사회윤리/KD C194 값 16,000 원 ISBN 89-374-3100-9 94190 89- 37 4-3000-2 (세트)

1 대우학술총서 1 인 분사 § l 과야 1 1

1 한국어의 계통 김방한 2 문학사회학 김현 3 商周史 윤 내 현 4 인간의 지능 황정규 5 中國古代文學史 김학주 6 日本의 萬葉集 김사엽 7 現代意味論 이익환 8 베트남史 유인선 9 印度哲學史 길희성 10 한국의 풍수사상 최창조 11 사회과학과 수학 이승훈 外 12 重商主義 김광수 13 方言學 이익섭 14 構造主義 소두영 15 외교제도사 김홍철 16 아동심리학 최경숙 17 언어심리학 조명한 1 8 法社會學 양건 19 海洋法 박준호 유병화 20 嶋.의 皇 11 정동오 21 헌대도시른 7J't1기 22 이슬탈 사상사 김정위 m엷 顧祠꾸血의,:-준田 算역사주의 이민호 27 인구어 l:lfji언어확 김윤한 28 중극고대 을운확 문선규 泊2 9 ft:한輝의 ·고 주凍문서속허 지E 김 硏 31 ifH’口언어학 김唄! 32:量 : 현주 33 영국빼혈의 水平濃운등

티무장

40 한국의 家族과 宗族 이광규 41 제 3 세계 심상필 42 코란의 이해 김용선 43 시베리아 개발사 이 철 44 스페인 문학사 김현창 45 영어사 김석산 46 어원론 김방한 47 조선의 서학사 강재언 48 한국음악학 이강숙 49 中國言語學 문선규 50 스포츠 심리학 류정무 이강헌 51 原始儒敎 김승혜 52 전쟁론 김홍철 53 삼국시대의 漠字音 유창균 54 베르고송의 철학 김형효 55 아날학파 김응종 56 자유주의의 원리와 역 A 노명식 57 국민투표구병삭外 58 한국서지학 천혜봉 59 조선통신사 이원식 60 明末淸初思想 빼영등 61 한국의場市 이재하·홍순완 62 고려시대의 后妃 정용숙 63 꾸 AE 구더니즘의 이른 김옥동 64 韓·의 服鑄美 김영자 65 정신신경증 이현수 66 한국住眉史洪亨沃 67 한국어 통사른 권계일 68 러시아어사 강홍주·강덕수69 茶山의 易擧 。 l 을호 70 중남미사 민만식 ·강석영 ·최영수 71 프랄스 고전주의 문학 李 72 라틴아메리카 지리 이전 73 비교문학윤호병

74 중국희곡 양회석 75 사회언어학 이익섭 76 신해혁명사 민두기 77 중국 고대 의 가무희 김학주 78 체질인류학 박선주 79 인도사 조갈태 80 한국의 하천 안수한 81 의상 김두진 82 생물심리학 장현갑 83 경제윤리 이재율 84 아우구스티누스 이석우 85 고구려고고학 I 최무장 86 고구려고고학 Il 최무장 87 토지소유권 법사상 김상용 88 현상학 한전숙 89 보수주의 이봉희 90 지도학 원론 한균형 91 러시아 현대시학 석영중 92 문화기호학 송효섭

93 미

94 D 95 대학사이 96 이슬랄 97 피, 98 국경른검 99 한국 100 환경 101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