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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l ` 李乙浩

1910 년 전납 영광胤 경성약전 졸 서울대학교 철학박 사 전남대학교 문리대 교수 국립광주박물관장 현재 다산학 연구원장 『 茶 i i 還學,思想{if · l·'1 坦 『j :사 | 成 | 0父 .tJ i 1 ;i ;'만史論 』 등의 저 서 가 있음

茶山의 易學

茶山의 易學

李乙浩 지음 民音社

책머리에 그럭저럭 2 년 여의 세월에 걸쳐서 막상 이 책의 원고 千여장을 끝내 고보니 홀가분한 마음의 한구석에는 찜찜하게도 개운찮은 구석이 가시 질 않는다. 끝냈디는 것은 약속한대로의 千장 원고를 끝냈을 뿐 책이 름 그대로 〈 茶山易學硏究 〉 라는 과제는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야말로 우연한 기회에 사실인죽 대우재단 이사장 李奭熙 博士와의 대화 도중 茶山易學이야기가 나오자 문득 떠맡고 싶은 욕심 에서 비롯하였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고보니 시간에 쫓기고 분량의 제 헌에 신경을 써야 하고 게다가 老來의 力 量 에 한계가 있음을 느끼면서 초고를 매듭 짓고 보니 이건 濁앉: 〉 라는 문자가 부끄러울 정도의 자료 집, 그나마도 圖表두성이의 자료집에 지나지 않았음을 어찌하랴 ! 아니나다를까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제출된 원고가 눈에 들지 않아 다시 한 번 더 손질하기를 권고 받고, 있을 법한 권고임에 틀림이 없 기에 냉큼 받아들인 후 또한 반년 여의 바쁜 세월과 더불어 형식상의 개고를 끝낸 후 이 글을 쓰게 되었다. 茶山은 다섯번 개고했는데 두 번쯤의 손질이야 약과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러나 이제 내게도 할 말은 있다. 만일 앞으로 茶山易學에 대한 동 호자가 나온다면 적어도 이 자료집을 한번쯤 훑어보지 않고서는 징검

다리 없는 江언덕을 건널 수 없음을 깨닫게 되리라는 사실이다. 나는 많은 도표를 지루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이것은 결국 어느 누구를 위한 작업인가를 自問自答하면서 만들었다. 그러므로 이 책은 결국 未完의 章으로서 후학을 위한 징검다리의 구실에 만족할 수밖에 없음을 怨諒 하라. 여기서 한마디 더 남기고 싶은 것은 다름아니라 필자는 이미 30 년전 에 「茶山의 易理論」이라는 어설픈 논문 한 편을 쓴 적이 있는데 그 때 만 하더라도 茶山易學이 東洋哲學史上 어느 만큼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지에 대하여서는 거의 몰랐다는 것이 솔직한 告白이다. 그러나 이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 깊이와 넓이에 한도 끝도 없음을 느끼게 되었다. 周易四釜으로 孔子十翼이 改編되고 易學 緖言으로 緖言답지 않게 漢魏 이래 宋明에 이르는 모든 易理論울 재단 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茶山易學의 참된 位相을 정립하자면 그에 선행하는 길잡이로서 자료의 제일차적 정리가 필요하다면 이 책 은 거기에 만족할 따름이다. 많은 同好者들의 이용에 도움이 된다면 서투른 책자를 펴낸 꾸중은 그대로 감당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지 않겠는가. 어쨌든 한 권 冊子룰 엮어낸디는 것은 그것이 비록 수려한 옥동자는 아니라 하더라도 기쁜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므로 내게 이 기쁨 울 안겨준 대우재단 李奭熙 이사장님을 비롯한 관계인사 여러분과 이 책의 까다로운 조판도 아랑곳없이 출판을 담당해 주신 민음사 諸賢의 고마운 뜻에 감사하면서 序에 代하고자 한다. 1992 年 10 月 27 日 李乙浩 識

茶山의 易學

차례

책머리에 • 5

序說 • 11

제 1 장 易學의 成立 15

제 1 절 易의 始源 15

제 2 절 周易의 형성 18

제 2 장 周易의 재구성 21

제 1 절 緊辭傳의 改編 21

(1) 易大傳 • 23

(2) 廢棄句節 • 25

(3) 著卦傳 • 30

(4) 釋爻補傳 • 36

(5) 結語 • 42

제 2 절 大象傳의 另別 43

제 3 절 文言論 46

제 4 절 序卦傳 50

제 5 절 雜卦傳 55

제 6 절 說卦傳 59

제 7 절 彖象傳 62

제 3 장 漢易의 이해 65

제 1 절 漢易의 계보 65

제 2 절 荀九家의 易學 68

제 3 절 李鼎祚 集解論 72

제 4 절 鄭康成 易注論 122

(1) 異字論 • 123

(2) 改字論 • 132 (3) 天象論 • 134

(4) 訓話論 • 136

(5) 卦象論 • 138

(6) 游魂說 • 140

제 5 절 漢魏遺義論 141

(1) 易有三義說 • 142

(2) 三易說 • 143

(3) 伏犧重卦說 • 144

(4) 卦爻辭의 作者 • 144

(5) 十翼說 • 145

제 4 장 義理易의 출현 147

제 1 절 王輔嗣易注論 147

(1) 字詁論 • 148

(2) 句絶論 • 151

(3) 玄談論 • 153

제 2 절 韓康伯玄談考 155

(1) 道 • 156

(2) 太虛說 • 157

제 3 절 分卦直日論 158

제 5 장 宋代易學의대두 165

제 1 절 朱子의 易理論 166

(1) 卦變圖 • 166

① 非易中之―義 /166 ② 一陰一陽之卦外 / 167 ③ 四陰四陽之卦 / 168

(2) 易理四法의 例證 • 169

① 卦變一推移之法 / 169 ② 物象 / 170 ③ 互體 / 171 ④ 父變 / 171

제 2 절 邵氏易의 批判 172

(1) 八卦次序圓 • 173

(2) 八卦方位圓 • 175

(3) 八卦先天說 • 177

① 天池定位 / 178 ② 逆數論 / 178 ③ 卦德論 / 181

(4) 先天橫圖九六七八之說 • 181

(5) 乾坤策數 • 182

(6) 參天兩地說• 184

(7) 老少互藏法 • 186

(8) 八卦之則 • 188

제 3 절 郡氏後學 190

(1) 沙隨古占 • 191

① 太極說 / 191 ② 兩儀論 / 192 ③ 兩儀論 / 192 ④ 父變雜說 / 194

(2) 吳草盧易纂 • 196

제 6 장 明淸의 易學 203

제 1 절 來氏錯編說 204

제 2 절 李氏折中論批判 209

(1) 總說 • 209

(2) 彖傳 • 210

(3) 繫辭傳 • 212

(4) 說卦傳 • 213

(5) 筭數易論 • 214

제 7 장 古今異釋 219

제 1 절 陸德明釋文鈔 219

(1) 八純五世之卦 • 219

(2) 游魂八卦 • 220

(3) 釋文鈔 • 221

제 2 절 郭氏擧正駁 225

제 3 절 王蔡胡李論 228

(1) 王應麟 鄭注論 • 228

(2) 蔡西山掛一論 • 229

(3) 胡玉齋易學論 • 231

(4) 李厚齋互卦論 • 233

제 4 절 茶山雜論 234

(1) 事天地神明論 • 234

(2) 易理問答 • 236

제 5 절 玆山易柬 241

제 8 장 茶山易의 精髓 243

제 1 절 易理四法 243

(1) 推移 • 243

(2) 物象 • 245

(3) 互體 • 249

(4) 爻變 • 251

(5) 新三易論 • 252

제 2 절 讀易要旨 254

제 3 절 易例比釋 263

제 4 절 卦義論 266

제 9 장 茶山易의 經學的 意義 331

제 1 절 曆數學的 古易 ; 順天의 學 331

제 2 절 改過遷善의 道 333

제 3 절 術數學의 批判 334

제 10 장 茶山易學의 思想史的 位相 337

제 1 절 妙合의 原理 337

제 2 절 한 思想의 脈絡 339

結語 • 341

찾아보기 • 345

序說 卜術書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秦火(抗儒禁書)를 면한 『周易』이 漢나 라 천하통일을 계기로 하여 어떠한 경로로 유학의 經典이 되었을까. 이는 소위 古易과 漢易과의 분수령으로써 이때의 사정을 茶山은 다음 과같이 설명한다. 생각건대 『周易』은 秦火룰 면한 까닭에 經文에는 矢缺이 없다. 『漢書』 의 所論에 의거한죽 商뿔 이래 師承이 끊이지 않았고 그 후 荀九家에 이 르러서는 그들의 이름이 널리 알려짐으로써 그들의 訓話나 義理에는 의당 잘못이 없을 듯하나 어찌하여 각자 傳聞이 서로 다르며 고집하는 학설이 서로 엇나가는가. 傅會 察堅하고 破粹 樓燒하여 진실로 후세에 그들의 易 說울 통일하기는 어렵게 되어 있다. 그러나 오솔길이나마 더듬어가면서 그의 門戶룰 찾아낸다면 아마도 周奧에 도달할 수도 있을 것이다(易學緖 言 李鼎祚集解論, p. 14) . 이로써 先秦古易이 商뿔 이래 師承이 끊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師承이 荀九家에 이어지는 경로를 『史記』에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商器魯人 字子木 孔子보다 二十九歲 어리다. 孔子는 易을 器에게 전하 고 盤는 楚人野晋弘에게 전하고 弘은 江東人短子庸紙에게 전하고 紙는 燕 人周子家뽕에게 전하고 笠는 淳于人光子乘刃건에게 전하고 羽는 齊人田子莊 何에게 전하니라(仲尼弟子列傳). 이상 기록의 신빙성 여부는 잠시 별 문제로 치더라도 先秦古易의 전 통성이 漢나라 田何에게 이어전 경로만은 이로써 짐직히기에 넉넉하 다. 그러나 田何이후의 漢易은 荀九家 이후 〈傳聞各殊秉執相外 傅會 察整 破〉하여 갈피를 잡을 수 없으리만큼 갈가리 찢겨져 있으니 田何 이후의 易의 분피를 낳기에 이르렀다(漢易의 理解章參照).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茶山의 지적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荀奭 莫翻 二家의 설은 經旨를 다분히 포함하고 있다. 대개 『易學』에는 三十餘가 있으나 이룰 集大成한 자는 九家요 九家 중에서도 이를 집대성 한 자는 二家인 것이다. 만일 李氏 (鼎祚)로 하여금 널리 二家의 설을 취 하여 문호를 건립하고 諸家의 옛모습을 보존함으로써 그의 근원을 깨닫게 한다면 九家의 學은 진실로 후세에 이르러서도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 (上소書) 라 하여 先秦古易의 전통은 漢代에 이르러서는 荀九家에 의하여 집대 성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荀九家의 易學節 參照). 왜 茶山은 이들 荀九家의 易理롤 높이 평가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荀九家들이 전승받은 易理에는 茶山 자신의 易理四法이 고스란히 보존 되어 있기 때문이다. 佳澳 찾變의 法과 互體 伏體의 例와 交易變易 反對 許合의 妙 등 어느 하나 들추어나지 않은 자는 없다〉 (上全書) 고 한 것은 이룰류-고 이론말이 아닐수없다.

그러므로 茶山易은 荀九家의 漢易울 매개로 하여 先秦古易에 그 서 통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이로써 우리는 茶山의 易理四法 (推移 物象 互體 桑變)의 연원의 소재를 짐작하게 된다. 그러나 魏晋 시대로 넘어와서 王弼의 출현은 先秦古易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는 점 에서 茶山온 이를 중시하고 있다. 儒學은 불행하게도 소위 王弼이 출현하여 독단적 私見으로 百家의 易理 울 소탕하여 버렸다. 무릇 商뿔 이래 전승되어 오던 易說은 모조리 珍滅 되니 卦變 交變 互體 物象 交易變易 反對牌合의 說은 다 없어지고 말았 다. 절묘한 易理의 實은 궁기가 막히고 대신 혼탁한 私說의 물줄기가 열 림으로써 陰으로 玄虛沖漠의 學울 내세우니 온 世上이 따라서 혼탁하여 그의 말을 至言이라 받드니 어찌 한탄스럽지 않은가. (上全書) 라 한 것을 보면 玄虛沖漠之學으로 표현한 老莊思想에 근거한 王弼의 義이 비록 漢代이후 魏晋시대의 요청에 따른 자라 하더라도 茶山 의 象數易의 입장에서는 결코 수용할 수 없는 古易의 異端이 아닐 수 없음을 여기서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로써 先秦古易이 漢代에 있어서는 荀奭處翻 등 荀九家에 의하여 겨우 그의 명백이 이어 져 오다가 급기야 王弼의 출현으로 전멸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을 茶山 은 이룰 못내 아쉽게 여기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茶山易은 推移 物象 互體 父變 등 易理四法울 주축으로 하는 先秦古易 에의 복원이라 이르지 않을 수 없다. 王弼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비록 象數易의 易理는 茶山의 호된 비판 적 지적처럼 전멸의 위기에 봉착하였다 하더라도 그가 象數易 의에 義 理易이라는 새로운 易學의 일면을 정립한 공적은 간과할 수 없을 것이 다. 다시 말하면 易理에는 象數 義理라는 양면이 있으므로 이러한 새 로운 義理易의 입장은 宋代에 이르러서는 程伊川의 義理易으로 그의 서통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程氏易은 王弼의 老莊 대신에 儒理

의 천명이라는 점에서 그의 내실을 달리하고 있다는 사실도 여기서 지 적해 두지 않을수없다. 象數易과 義理易으로 나누어진 易學은 다시금 朱子에 의하여 종합된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 접에 관하여서는 茶山은 朱子 를 다음과 같이 논평하고 있다. 漢으로부터 宋에 이르기까지 易學은 朱子에게서 크게 구비되기에 이르 렀으므로 名言 至理가 많이 本義에 들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俗儒들 은 이룰 살피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卦變圖는 朱先生의 晩年所作으로서 漢魏 諸家들이 비록 推移之義를 말한 자 있더라도 모두 逐卦說變에 그쳤 을 뿐 아칙 이룰 총괄하여 이 도표처럼 만든 자는 없다(易學緖言卷, p. 14). 이렇듯 宋易에 있어서의 朱子의 卦變圓는 茶山의 推移法의 先河를 이루는 자로 높이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召聞瑾節의 先天方位圓나 河圖洛書學이나 太極圖說과 같은 揚 創的 易理에 관해서는 이미 그의 견강부회롤 지적하는 자 많거니와 茶 山도 이에 관한 한 철두철미 비판적이다. 그러나 이 郡氏易은 우리나 라 韓末에 와서 金一夫의 正易으로 계승되어졌지만 어쨌든 茶山易과는 너무도 對離的인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로써 茶山의 象數學的 古易과 金一夫의 卜 莖學的 正易은 近世韓國이 낳은 易學의 二卵性 雙童兒라는 사실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제 1 장 易學의 成立 본론으로 들어감에 있어서 분명히 해두어야 할 사실의 하나는 易과 易學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易이란 卜莖를 의 미한다면 易學이라 한다면 그것은 易의 학문적 체계 곧 이론화를 의미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易의 시원과 易學의 연원과는 저절로 그의 발상의 시기와 그 내용의 형태가 서로 다르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제 1 절 易의 始源 易이란 卜策를 의미한다면 그것은 곧 天命에서 人事의 吉凶울 묻는 방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問 卜의 方法에도 한계가 없을 수 없으니 이룰 茶山은 그의 易'습에서 다음과 같이 분명히 하고 있다. 易이란 왜 만들어진 것일까. 聖人이 天命에게 청하여 그 뜻에 따르고자 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대체로 人事가 공정한 善에서 출발하였기에 天命 의 도움을 받아서 成事가 되어 게다가 복까지 주어지기에 넉넉한 자는 聖

人은 다시금 請命하지 않는다. 人 事 가 공정한 선에서 출발하였지만 시세 가 불리하여 그일이 실패로 돌아감으로써 천복을- 받을 수 없는 자도 聖人 은 다시금 請命하지 않는다. 人 事 가 공정한 선에서 출발하지 않았기 때문 에 天理롤 거역하고 人紀를 손상하여 비록 그 일은 成 事 가 됨으로써 목전 의 복을 받게 된다 하더라도 聖人은 다시금 請命하지 않는다. 오직 人 事 가 공정한 선에서 출발하였으나 그의 성패 화복을 逆諸하여 헤아릴 수 없 울 경우 於是平請命할 따름이다. (周易四墓卷四, p.1 5) 茶山은 여기서 請命의 한계를 四分之一로 국한함과 동시에 請命者의 倫理的 善意志에 人事의 基盤을 두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다시 말하 면 卜莖로서의 易術이란 무조건 점을 쳐서 人間萬 事 의 吉凶을 묻자는 수단이 아니라 인간은 스스로의 善行울 위하여 天命의 소재를 밝힘으 로써 이에 순응하자는 데에 그의 주된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순한 동기나 세불리한 상황에서는 卜莖의 勅能은 기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직 제한된 善意志의 실천궁행을 위한 경우에 한하여 천명의 소재를 묻고자 하는 것이 바로 卜莖로서의 易의 목적이라 하였다. 이 는 소위 )l !Jg운天命之 學 으로서의 易의 根本義룰 천명한 자가 아닐 수 없 다. 그러므로 이는 그의 人性論에 있어서 率性者順天命也 (中 庸 自策) 라고 한 率性之學과도 표리를 이루는 자임은 다시 말할 나위도 없다. 問 卜의 목적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方法에 있어서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태초에 한 성인이 있어 이를 골똘히 생각하던 끝에 一朝에 狀然히 깨닫고 일어나 이르기를 予有術矣 於是 以手 畫地 爲奇偶岡幅;之形曰此天地水火 變 化生物之象也 (此 八卦) 因以爲之進退消長之勢曰此四時之象也 (此十二群卦) 又取之爲升降往 來之狀曰此萬物之象也 (此五十衍卦) 於是 取其所 畫地 爲奇偶剛柔之勢者 玩 其象 憶其似 若得其勢 院 者而命之名曰此馬也 彼牛也 此車也彼宮室也此戈 兵也 彼弓矢也 著之爲法式 冀天之因其名而用之 雜人立之名 非天之所p).爲 實 天荀欲整吾之誠而告之故 則亦庶幾因吾之所爲名而 遂以是用之也 (此

說卦) 於是 出于野 取芳草若干莖 與其所爲升降往來者 合其數而相應 敬以 藏之於室而待之也(此깝策五十) 每有事出而推之 旺又爲之磨而四之曰此四 時之象也 又于是 散之衆之 參任之變通之曰此萬物之象也 t兄已葬其數而著其 形 形成而體立 (此莖得一卦) 於是 取所謂馬牛車宮室戈兵弓矢勢盤之象 察 其所升降往來之跡 而其形之或全或炳 或相與或相背 其情之或舒或盛 或可稅 或可憂 明寺可混 可安可危者 無不以其勞盤者而玩之(此占其吉凶) 玩之誠 吉 於是平 作而言 曰天其命予而行之矣 玩之誠不吉 競競然 莫之政行 此易 之所爲作也 此聖人之所以請天之命而順其旨者也 曰然ff lJ 卜亦然 亦所以請天 之命而順其旨者也 (易論) 이상 問 卜의 방법에 있어서의 奇偶와 剛柔와는 단순한 對待槪念울 제시하였을 뿐이요 이로써 天地水火 四時消長이라는 自然現象울 관찰 하면서 人事의 吉凶禍福을 추출해 내려는 人爲的 조작이요 약속이라 이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 결과에는 논리적 신빙성이 것들어 있 는 것이 아니라 天命의 가상적 (勢~) 象({以)을 얻어냄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易의 卜莖術的 象은 소위 巫親의 신묘한 靈性 에 의하여 얻어지는 占術과는 구별되는 所以가 여기에 있다. 이렇듯 윤리적 목적과 인위적 방법에 의하여 비롯된 易의 시원을 마련한 저 미지의 성인은 과연 누구일까? 이 점에 관하여는 일반적으로 伏磯 神 農 夏后 등 三王說이 있기는 하지만 伏織作卦에 의한 作易說이 가장 유력한 자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디선은 그의 說卦直說에서 先儒謂說卦爲孔子所作 非深密體究之論也 不取物象.QJJ八卦元不必作(徒卦 無所用) 說卦泡磯畫卦之구}] 仰觀天文 (次商爲日 月 )類察地理(良免爲山澤) 遠取諸物 (乾坤爲馬牛) 近取諸身 (良震爲手足) 玩其象而命之名 以與神明約 契者也而侯孔子哉 儒]易四釜卷一, p.7 ) 라 하여 伏織作卦說을 수용함과 동시에 說卦物象論도 伏禮氏에게 그 공을돌리고동시에

其作於孔子之手者 說卦之序詞也 (上同 害 ) 라 하여 孔子十翼의 一인 說卦마저도 孔子는 그의 序詞만을 저술하였 울 따름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作卦作易의 聖人은 다산의 지적대로 伏願라는 통설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그것이 易書로서 형성된 것은 어느 때 누구의 손에 의하여 이루어졌을까? 茶山도 伏儀作易의 한계 롤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伏橫者上古之人也 孔子所列古 書 斷自堯典 明白堯以上 典籍散亡 不可考 也 (論郡氏八卦方位之圖 易學緖言卷二, p. 29) 그러므로 전설적 제왕으로서의 伏儀作易說은 어쩌면 作者未祥說과 도 一脈相通하는 자로서 여기서 얻어전 소득으로서는 동방문화의 시원 으로서 奇偶剛柔 등의 부호가 지닌 언어〔象]를 얻어낸 데 있을 따름 이요 그 후 人文(文字)의 발달로 인하여 이루어진 易辭(家父辭)의 출 현은 周易이라는 易學의 형성에 크게 기여하였으니 이는 과연 어떠한 경로를 거쳐 어느 때 누구의 손에 의하여 이루어졌을까! 제 2 절 『周易』의 형성 앞 절에서 논한 바와 같이 아득한 上古시대에 陰陽의 對待槪念울 기 초로 하여 이루어진 易思想이 儒敎經典化한 작품이 바로 『周易』임은 다시 말할 나위도 없다. 茶山도 康津摘中에 특히 『周易』을 愛讀하여 01 르기를

目之所眠 手之所操 뮴之所哈 心志之所思索 筆墨之所抄錄 以至對飯 登圓 彈指 tr,腹 無一而非周易 (與尹長心睿卷十九, p.1 9) 이라 한 『周易』도 바로 現存 易經上下篇울 가리키고 있음은 다시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디산의 周易四釜에 있어서는 이를 전면 修正 개 편한 사실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하면 현존 『周易』의 체재 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자의에 의하여 재편집한 사실에 茶山易의 새 로운 일면이 있음을 의미한다. 어쨌든 伏樣作卦說에 이어 文王演易說(『史記』 自序)에 따른· 文王作 卦辭說과 周公作桑辭說이 後漢의 馬融 등에 의하여 제창되었고 唐孔類 達이 그의 周易正義에서 〈其家象等十翼之辭 以爲孔子所作 先儒更無異 論〉이라 함에 이르러 伏儀—文王—周公—孔子의 계열에 의한 『周 易』의 체재는 짜여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茶山도 이룰 시 인하여, 周易者周人禮法之所在 儒者不可以不明其微言妙義 在所發揮也 (答仲氏 害卷二十, p,1 6) 文周孔三聖에 의하여 제작된 周禮로서의 周易으로 이룰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렇듯 상고 이래 孔子에 이르기까지 장구한 세월과 더불어 여 러 사람(文周孔)이 참여하여 이루어진 『周易』인 만큼 그 안에 내포한 잡다한 易理룰 정리하기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님은 다시 말할 나위도 없다. 아니나 디를까, 宋代에 접어들면서 歐陽修는 그의 童子「R 1 의 모두에 서 여冬辭傳뿐 아니라 文言 說卦 이래 모두 聖人(孔子)의 作이 아니요 衆說이 沿亂하여 결코 一人의 作일 수 없다〉라는 부정적 선언을 감행 함으로써 『周易』 재평가의 길을 터놓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歐氏의 부정적 태도는 宋代 易學으로 하여금 經說의 解釋學

的 易理論보다도 엉뚱하게도 河圖洛書學(一名 岡書學)이나 太極圖說 과 같은 독창적 易理說을 전개하여 易學의 신경지를 개척하였다. 그러 므로 해서 荀九家 등에 의하여 그의 서통이 계승되어졌던 先秦古易의 흔적은 점차 그 자취를 감추기에 이르렀으니 茶山은 비록 溫채B;f 1 j;華 謂非夫子之書 何其妄矣〉라 하여 『周易』에 있어서의 歐氏의 부정적 태 도를 몹시 못마땅하게 여기면서도 宋易의 圖書學的 세계에서도 벗어 나 周易四蓋의 저술을 통하여 先秦古易에로의 회귀를 시도한 茶山易울 우리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茶山온 歐陽修의 망언을 탓하였지만 歐氏의 周易三聖說의 부 인은 그 후 학계에 만연하여 근래에 와서는 오히려 三聖說울 믿는 이 가 거의 없는 실정임을 여기서 일단 언급해 두지 않을 수 없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茶山의 『周易』 중심의 古易 復元作業의 의의는 古易이 지니고 있는 易學의 순수성의 회복이라는 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적어도 古易으로서의 『周易』은 漢代의 圖識學이나 王弼의 義 理學이나 宋代郡氏의 圖書學 등에 의하여 너무나도 훼손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茶山의 周易四釜에 의한 『周易』의 수정개 편은 학계에 새로운 과제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제 2 장 周易의 재구성 茶山易學울 크게 둘로 나눈다면 周易四釜二十四卷에 의한 周易編制 의 재구성과 아울러 이에 따른 新易理의 定立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 는 易學緖言十二卷에 의하여 漢魏 이래 宋明에 이르기까지의 사이에 변화를 거듭해 온 易理論둘을 다각적으로 비판하여 그의 非理를 別決 한 자를 둘 수가 있다. 전자는 『周易』의 古典的 본질을 확립한 자라 한다면 후자는 周易思想의 역사적 변화를 추적하면서 그들의 정체를 낱낱이 천명한 자라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제 1 절 緊辭傳의 改編 소위 緊辭傳上下編온 통칭 孔子十翼 중의 二篇으로서 朱子는 그의 本義에서 여冬辭란 본래 文王 周公이 지은 辭로서 卦것의 밀에 緊한 자 로서 곧 지금의 經文이다. 이 편은 이에 孔子가 敍述한 緊辭의 傳文으 로서 이는 一經의 大體凡例롤 通論한 자인 까닭에 어느 經에도 附着할 수 없으므로 스스로 上下篇으로 나누어놓은 것이다(原本周易)라 한

것을 보면 이는 文王 周公의 縣詞(본래 이들을 緊辭라 하였다)에 대 한 孔子의 總論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歐陽修 이후 이를 孔子一人 의 所作으로 보는 이는 극히 드물고 그 잡다한 내용으로 보아 다수의 易理論이 하나로 집대성된 자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 교적 孔子十翼說에 대하여 긍정적 수용태도를 취하고 있는 茶山마저도 緊辭傳만은 그래로 반이득이지 않고 一大改編을 시도하고 있다. 緊辭者家詞찾詞也 謂以縣詞緊于卦桑之下也 家詞文王之所緊也 (亦名卦 詞乾元享利貞之類) 桑詞周公之所緊也(亦名象詞fJJ九潛龍勿用類) 孔子取二

聖之詞而發其淵奧 名之曰家傳(家曰大哉乾元類) 象傳(象曰潛龍勿用陽在下 也類) 各成二編 爲十翼之四 此之謂緊辭傳也 若此編則通論一經之大體j朱 子云) 故 史記引此謂之易大傳 (漢儒多稱易大傳) 其稱緊辭傳者 恐亦傳述之 誤也 (周易四釜卷二十二) 이상 茶山의 견해에 따르면 본래의 緊辭傳이란 文王周公의 卦交詞에 대한 孔子의 家象傳울 가리키는 것으로서 여기서 통칭 繁辭傳이라 이 르는 자는 一經의 通'습으로서 이는 漢儒들이 이르는 소위 易大傳에 해 당한다는 것이다• 그 견해의 옳고 그름은 잠시 논의로 치더라도 茶山 은 이 통칭 계사전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이를 나름대로 개편하겠다 는 뜻을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今不可全釋 只就十二牌推移之義 及六桑變動之法 凡有關於四大義理者 約 署疏理 其中專論一卦之縣者(鳴鶴在陰類) 前已論釋於各卦之下 又如撰著諸 文 別爲表章弦不壘論 (上全書) 이로써 茶山은 朱子의 뜻과도 달리 緊辭의 개념을 새롭게 재정립함 과 동시에 이 易大傳울 전반적으로 개편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 점 은 茶山易울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전문을 다음에 싣는다.

(1) 易大傳* U:) 天尊地卑 乾坤定矣 卑高以陳 賞賤位矣動靜有常 岡1gt斷矣 方以類衆 物以群分 吉凶生矣 在天成象 在地成形 變化見矣 是故 剛柔相摩 八卦相過 鼓之以雷霞潤之以風雨 日月運行 一寒―툼} 乾道成男坤道成女 乾知太始 坤作成物乾以易知 坤以簡能 ® (『此以下多不政釋』 ) 聖人說卦觀象緊辭焉而明吉凶 岡腐相推而生變{t 是故 吉凶者得失之象也 梅咨者憂虛之象也 變化者進退之象也 岡1gt者畫夜之象也 六桑之動三極之道也 @) 是故 君子居則觀其象而玩其辭 動則觀其變而玩其占 是以 自天祐之 吉無不 利 象者言平象者也 桑者言平變者也 吉凶者言平其得失也 梅咨者言平其/J엔 E 也 光씀者善補過也 @) 原始反終 故 知死生之說 ® 與天地相似故不違 知周平萬物而道濟天下故不過 帝行而不流樂天知命故不憂 安土敦于仁故能愛® 一陰一陽之謂道 繼之者善也 成之者性也 仁者見之謂之仁 知者見之謂之知 百姓日用而不知 故 君子之道鮮矣 顯諸仁 藏諸用 鼓萬物而不與聖人同憂 盛德 大業 至矣哉 富有之謂大業 日新之謂盛德 ® 夫乾其靜也專 其動也直 是以 大生焉 夫坤其靜也翁 其動也關 是以 廣生焉 廣大配天地 變通配四時 陰陽之義配日 月 易簡之善配至德 ® 聖人有以見天下之蹟而擬諸其形容 象其物宜 是故 謂之象 *숫자는 누락분이 있던 자리로서 누락분의 숫자와 합해서 볼 것.

聖人有以見天下之動而觀其會通 以行其典禮緊辭焉以斯吉凶 是故 謂 之~® 是以 君子將有爲也 將有行也 問焉而以言其受命也如 WI ® 菩之德圓而神 卦之德方以知 六父之義易以貢 ® 乾坤其易之編耶 乾坤成列而易立平其中矣 @ 化而裁之謂之變 推而行之謂之通 @ (下) 八卦成列 象在其中矣 因以重之 桑在其中矣 剛柔相推 變在其中矣 緊辭焉而命之 動在其中矣 吉凶梅咨者生平動者也 剛柔者立本者也 變通者趙時者也 @ 古者庵儀氏之王天下也 仰j! l j觀象於天 1府 j! l j觀法於地 觀鳥獸之文 與地之 宜 近取諸身 速取諸物 於是作八卦以通神明之德 以類萬物之情 作結繩而爲網뿜以個以漁 蓋取諸離 伏獻沒 神農氏作 新木爲相 採木爲未 舞之利以敎天下 蓋取諸益 日 中爲市 致天下之民緊天下之貨 交易而退 各得其所 蓋取諸魄"효 @ 黃帝堯舜 垂衣袁而天下治 盜取諸乾坤 춥 l j木爲舟 刻木爲操 舟橫之利 以濟不通 致遠以利天下 蓋取諸淡 服牛乘馬 引重致遠以利天下 蓋取諸隨 重門擊析以待暴客 蓋取諸豫 斷爲杓 堀地爲臼 臼祚之利萬民以濟 盜取諸小過 弦木爲孤 刻木爲矢 孤矢之利以威天下 盜取諸疾 上古穴居而野處 後世聖人易以宮室上棟下宇以待風雨 蓋取諸大壯 古之葬者 厚衣之以新 葬之中野 不封不樹喪期元數 後世聖人易之以稽 梧盜取諸大過 上古結繩而治 後世聖人易之以書契 百官以治萬民以察 蓋取諸夫 是故 易者象也 象也者像也 家者材也 交也者效天下之動者也 是故 ·吉凶生而梅咨著也 陽卦多陰 陰卦多陽 其故何也陽卦奇 陰卦偶 其德行何也 陽一君而二民 君子之道也 陰二君而一民 小人之道也 ®

其稱名也小 其取類也大 其旨遠 其辭文其言曲而中 其事律而隱 因試 以濟民行以明失得之報 ® 易之爲 書 也 不可遠爲道也 樓遷變動不居 周流大虛 上下元常 剛柔相 易 不可爲典要 唯變所適 @ 六桑相雜 唯其時物也 其初難知其上易知 本末也 @ 若廳 辨是與非 則非其中父不備 ® 知者觀其家辭月lJ思過半矣 二與四同功而異位 其善不同 二多署 四多情 近也柔之爲道 不利遠者 其要元씀其用柔中也 三與五同功而異位 三多凶 五多功 貴賤之等也 其柔危 其剛勝耶 易之爲書也 廣大恐備 有天道焉 有人道焉有地道焉 兼三才而兩之故 六@ 道有變動故日交 찾有等故日物 @ 八卦以象告 桑家以情言 岡臘菜距}而吉凶可見矣 變動以利言 吉凶以情遷是故 愛惡相攻而吉凶生 遠近相取而梅咨生 情備相感而利害生@ 이상과 같이 茶山이 정리한 易大傅의 拔莘는 이미 자신이 설정한 〈只就十二牌卦推移之義及交桑變動之法 凡有關於四大義理者녔룹 기준으 로 하였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하여는 따로 고구함으로써 진정 漢儒들이 주장하던 易大傅의 古義가 제대로 간추려졌는지의 여부를 가려내야 하겠지만 역설적으로 따지자면 그가 〈今不可全釋났t 핑계로 하여 버 려진 廢棄句節에도 버릴 수 없는 古意가 것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 러므로 우리는 지루함을 무릅쓰고라도 다음에 장문의 廢棄句節울 一幣 하고자한다. (2) 廢棄句節 ® 易則易知 簡則易從 易知則有親 易從則有功 有親則可久 有功則可大

可久則貸人之德 可大則緊人之業 易簡而天下之理得矣 天下之理 得而成位 平其中矣 ® 是故 君子所居而安者 易之序也 所樂而 玩者父之辭也 ® 是故 列貴賤者存平辭齊小大者存平卦 辯吉凶者存平辭 C淡 梅咨者存 平介 震無씀者存平海 C 湜故 卦有大小 辭有險易 辭也者各指其所之 C) 易 與天地準 故 能彌給天地之道 Of印j.:Ji視於天文 1 府以察於地理 是故 知幽明 之故 ® 精氣爲物游魂爲變 是故 知鬼神之情狀 ® 範園天地之化而不過 曲成萬物而不遺 通平盡夜之道而知 故 祠萌照方而 易無體 0 ® 生生之謂易 O 成象之謂乾效法之謂坤 極數知來之謂占 通變之謂事 0 陰陽不測之謂神 C 몄랴감廣矣大矣 以言平遠則不禦 以言平造則靜而正 以 言平天地之間則備矣 ® 子曰易其至矣平 夫易聖人所以崇德以廣業也 知崇禮卑 崇效天 卑法地 0 天地設位而易行平其中矣 成性存存 道義之門 ® 言天下之至願而不可惡也 言天下之至動而不可亂也 C 擬之而後言 議 之而後動 擬議以成其變化 O 顯道 神德行 是故 可與酷酒 9 可與祐神矣 C 汗; 曰知變化之道者 其知神之所爲平 O 易有聖人道四焉 以言者尙其辭 以動者 尙其變 以制器者尙其象 以卜莖者尙其占 ® 無有彰顔懿 彰田來物 非天下之至精 其執能與於此 O 非天下之至變 其執能與於此 O 易無思也 光爲也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故 非天下之至 神 其執能與於此 O 夫易聖人之所以極深而硏幾也 C) 唯深也故能通天下之志 唯幾也故能天下之務 唯神也故不疾而速 不行而至 C 汗七 l 易有聖人之道四焉 者此之謂也 C 汗七 l 夫易何爲者也 夫易開物成務 冒天下之道 如斯而己者也 是故 聖人以通天下之志 以定天下之業 以斷天下之疑 C湜 :故 ® 聖人以此洗心退藏於密 吉凶與民同患 神以知來 知以藏往 其執能與 於此哉 古之聽明紋知神武而不殺者夫 O 是以明於天之道而察於民之故 是興 神物以前民用 聖人以此齋戒以神明其德夫 C 湜:故 閔戶謂之坤 關戶謂之乾 一閣一關謂之變 往來不窮謂之通 見乃謂之象 形乃謂之器 制而用之謂之法 利 * 머리숫자는 易大傳의 숫자자리에 맞추어볼 것

甲出入民咸用之謂之神 O 崇高莫大平富質 備物致用 立成器 E上 天下利 莫大平 聖人 深願索隱 拘深致遠以定天下之吉凶 成天下뾰완者 莫 大平 菩 龜 C 湜:故 0 天生祈物 聖AJ! l j之 天地變化 聖人效之 天垂象見吉凶 聖人象之 河出圖 洛出 書 聖人J! I J Z O 定之以吉凶 所以斷也 O 易日自天祐之 吉無不利 子曰祐 者助也 天之所助者順也 人之所助者信也 履信思平順 又以尙賢也 是以自天 祐之 吉無不利也 O 子曰 書 不盡言 吉不盡意 然 }!l j聖人之意 其不可見平 子曰 聖人立象以盡意 說卦以盡情僞 繁辭焉以盡其言 變而通之以盡利 鼓之舞之以 盡神 @ 乾坤旦했lj無以見易 易不可見J! l j乾坤或幾平息矣 是故 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 @ 畢而描之天下之民 謂之事業 O 是故 夫象聖人有以見天下之願 而擬諸 其形容 象其物宜 是故 謂之象 聖人有以見天下之動 而觀其會通以行其典禮 緊辭焉J;J.斷其吉凶 是故 謂之~ o 化而裁之存平變 推而行之存平通 神而明 之存平其人 默而成之 不言而信 存平德行 @ 吉凶者貞勝者也 天地之道貞觀者也 日月之道貞明者也 天下之動貞夫一 者也 O 夫乾確然示人易矣 夫坤限然示人簡矣 0~ 也者效此者也 象也者像此 者也 O 찾象動平內 吉凶見平外 功業見平變 聖人之情見平辭 O 天地之大~ 曰生 聖人之大賓臼位 何以守位曰仁 何以緊人曰財理財正辭 禁民爲非日義 @ 神農氏沒 黃帝堯舜氏作 通其變 使民不俺 神而化之使民宜之易窮則變 變Jlij通 通則久 是以自天祐之吉無不利 ® 子曰乾坤其易之門邪 乾陽物也 坤陰物也 陰陽合德而剛柔有體 以體天

地之撰 以通神明之德 O 其稱名也雜而不越 於稽其類其表世之意邪 O 夫易彰 往而察來 而微顯冊幽 開而當名 辨物正言斷辭月 1 j備矣 ® 易之興也其於中古平 作易者其有憂患平 O 是故履德之基也 謙德之柄 也 復德之本也 恒德之固也 損德之修也 益德之裕也 困德之辨也 井앤§之地也 興德之制也 O 履知而至 謙尊而光 復小而辨於物 恒雜而不狀 損先難而後易 益長裕而不說 困窮而通 井居其所而遷 興稱而隱 O 履J;J.和行 謙以制禮 復以 自知 恒以一德 損以戈훙害 益以與_f lj 困J;J.霧怨 井以辨義 異 EJ .行權 @ 其出入以度 外內使知混 O 又明於憂患與故 無有師保如臨父母 (flJJ率 其辭而揆其方 銃有典常 荀非其人 」 道不虛行 O 易之爲書也 原始要終J;J.爲 質也 ®初辭擬之卒成之終

® 憶 亦要存亡吉凶ffiJ居可知矣 @ 六者非他也 三才之道也 @ 物相雜 故 曰文 文不當 故 吉凶生焉 O 易之興也 其當殷之末世周之盛 德耶 當文王與討之事邪 是故 其辭危 危者使平 易者使傾其道基大 百物不 廢 t溫以終始 其要無씀 此之謂易之道也 C 놨쟁乞天下之至健也 德行恒易以知 險 O 夫坤天下之至順也 德行恒簡以知限 O 能說諸心 能硏諸侯之慮 定天下 之吉凶 成天下之聲豊者 C 湜:故 變化云爲 吉事有祥象事知器 占事知來 O 天地設位 聖人成能 人謀鬼謀 百姓與能 @ 凡易之情 近而不相得 則凶或害之 梅旦咨 O 將販者其事感 中心疑者其 辭 吉人之辭暮 操人之辭多 甄善之人其辭游 失其守者其辭屈 이상에서 우리는 茶山이 孔子十翼의 하나인 緊辭傳에서 그의 易理四 法으로 기준을 세워 易大傳울 정리하고 남은 누락분이 양적으로도 적 지 않을 뿐 아니라 내용면에 있어서도 그대로 지나쳐버릴 수 없는 문 제점들을 적잖게 안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易大傳과 그의 漏落分〉이라는 과제 하나만으로도 홍미있는 많은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겠지만 본 논문의 성격으로 보아서 茶山易學의 입장에서 한 가지 문 제만을 지적힘에 그치고자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필자는 이 두 편의 글 중에서 〈神〉자에 관한 구절을 간추려본 결과 예상했던 대로 다음과 같은 결과로 집계되었다. (1) 易大傳 一 著之德 圓而神 卦.之 .德 方以知 二於知是鬼.作神 . 八之卦情狀以 通神明之德 (2) ?居落分 一四 顯祠塀道업神 5. 而德. 易行無 體 _ 陰陽不沮1]之謂神 五 可與祐神矣

六 非天下之至神 其執能與於此 七 其知神之所爲平 八 唯神也故不疾而速 十十十九 三一 古 神之是利以聽興用知神明出來..物飮 入 知..以 知 民以前咸神.藏民 用武..往用之 而 . 謂不.之殺 神者. 夫 十二 聖人以此齋戒以神明其德夫 十四 天生!神物 聖_M l j之 十五 鼓之舞之以盡神 十十十十六九八七 以神神人. 通而而謀神化明鬼.. 明之之謀.. 之存使百德平之姓 其宜與人之能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 비율은 2 대 19 라는 엄청난 양적 차이 룰 나타내고 있을 뿐 아니라 〈神〉자의 개념도 크게 다름을 알 수가 있 다. 易大傳에 있어서 二例 중 전자의 神은 菩德이요 후자의 神은 卦礎§ 이라 이를 수 있기 때문에 廢棄句節에서 이른바 神明이니 神物이니 하 는 神과는 구별되어져야 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이로써 몇 마디 결론을 내리자면 茶山은 그의 易大傳을 정리함에 있 어서 주로 緊辭傳의 占術的 神秘主義의 늪에서 빠져나오려고 했다는 사실을 여기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19 항에 걸쳐 있는 그 많은 神 들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않고서는 그의 易理四法은 제구실을 다할 수 없음은 너무도 당연한 노릇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易이 란 茶山의 지적처럼 順受天命의 學이지 陰陽不測하는 神物이 아님은 다시 말할나위도없다.

(3) 菩 卦傳 손쉽게 말해서 菩卦傳은 茶山이 스스로 재구성한 하나의 菩 卦法의 시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근거는 어디까지나 緊辭傳 中에서 추려냈기 때문에 이를 계사전 개편의 一項으로 디루게 된 것이다. 易所以莖也 然 其所爲布萊求卦之法 未有傳者 唯緊辭上傳有一二策 說其 義者 猶可以領其大體 故 朱子曰撰 菩 之法 周禮領於太 卜 其法必基詳密 今不 可見 獨輯大傳有此數句 可以暑見衍/佛 而今推之亦無不可通……今取大傳菩 卦之文 別爲表章 롱如疏釋 顧自兩漢以來 緯書大興 霧義公行 承誰習誤 造 至于今 若其有乘於周公孔子之義者不政不辨 ( 『 周易 』 四妄 卷二十三) 이 글을 깊이 음미해 보면 지금까지의 求卦法은 다기다단하여 정론 이 없음을 알 수가 있다. 그대신 설령 있다손치더라도 그것들은 대개 잘못된 이론을 토대로 한 것들이기 때문에 그 잘못된 점을 분명히 가 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먼저 茶山의 試案으로 추려진 菩 卦法의 全文울 적기하여 그 안에 담겨진 그의 根本義롤 찾아내 보기로 하자. 大衍之數五十其用四十有九 O 分而爲二以象兩 C 珪卜一以象三 O 撰之以四 以象四時 O 歸奇於抄以象閔 O 五歲再問 故 再抄以後掛 0 天一地二天三地 四天五地六天七地八天九地十 C) 天數五 地數五 五位相得而各有合 天數二十 有五 地數三十 凡天地之數五十有五 此所以成變化而行鬼神也 O 乾之策二百 一十有六坤之策百四十有四 凡三百有六十 當期之日 O 二篇之策萬有一千五 百二十 當萬物之數也 O 是故 四營而成易 十有八變而成卦 O 八卦而小成 引 而伸之 觸類而長之 天下之能事 畢矣 O 參任以變 緖綜其數 通其 變 遂成天 地之文 極其數 遂成天下之象 O 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卦 八卦定吉凶 吉凶生大業 (녔닫故 法象莫大平天地變通莫大平四時 縣象著明 莫大平日 月 C 湯有四象所以示也 緊辭所以告也

茶山은 이미 그의 易論에서 卜莖의 目的은 順受天命함에 있음을- 분 명히 하였고 天命의 所在를 밝히기 위한 방법으로서 奇偶 剛柔의 形이 나 進退 消長의 勢에 따른 天文曆數를 밝힌 바 있다. 여기에 茶山이 정리한 깜卦傳은 그러한 목적과 방법에 부응하려는 자로서 이는 따지 고 보면 占術的 神認主義에 근거한 易術울 曆맹文學的 象徵主義의 易學 으로 정리한 데에 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여러 가지 求卦法은 茶山 이전에도 물론 漢代 이래 宋代에 이르기까지 많은 易學者들에 의하여 그의 시안이 제시되었음울 무엇보 다도 먼저 밝혀두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茶山의 菩 卦傳의 역사적 정당성이 분명히 밝혀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 이다. 먼저 朱子本義에 나타난 古莖法울 적기하면 다음과 같다. 大衍之數五十其用四十有九 分而爲二以象兩 掛―以象三 撰之以四以象四 時 歸奇於抄以象間 五歲再聞 故再抄而後掛『說文解字引掛作卦今當從之 』 乾 之策二百一十有六 坤之策百四十有四 凡三百六十 當期之日 二篇之策萬有一 千五百二十 當萬物之數也 是故 四營而成易 十有八變而成卦 八卦而小成 引 而伸之 觸類而長之 天下之能事 畢矣 여기에 나타난 내용을 茶山의 菩 卦傳과 바교해 보면 〈再抄而後掛〉 와 〈乾 之策二百一十有六〉과의 사이에서 〈天一地二……行鬼神也〉가 빠 져 있고 〈天下之能事畢矣〉의 뒤에 이어져 나오는 〈參 任以變 鎌綜其 數났근 온통 빠져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朱子의 儒]易本義〉에 서는 燁翔 l 而後掛〉뒤에 빠져 있던 天一地二天三地四天五地六天七地八天九地十 天數五址違好i 五位相得而 各有合 天數二十有五 地數三十 凡天地之數五十有五 此所以成變1 t而行鬼神 也

의 구절이 그 위치를 바꾸어 Q햐衍之數〉의 앞으로 나와 있고 茶山의 菩卦傳에 나와 있던 〈參任以變〉 이하는 그 행방이 묘연하다. 이상에서 대체로 古莖法이 朱子의 周易本義롤 거쳐 茶山의 菩卦傳에 이르게 되기까지의 사이에서 어떠한 변화과정을 가져왔는가를 살펴보 았거니와 이에 근거하여 우리는 여기에 담겨진 몇 가지 의의를 잠시 살펴보기로하자. 첫째 茶山은 여기서 선햐衍之數五十〉의 개념을 확립하였다. 왜 그렇 게 하지 않을 수 없었을까. 茶山은 이르기를 自漢以來 大衍之說 張皇傾惑 千頭萬緖 及至關朗易傳 (1 爲書也) 乃云天數 兆於一生於二成於三 衍於五 成於六 偶於十 凍』第三篇大衍義) 而天一生 7k 地二生火之說 遂爲不刊之典 其後 遂以iiiJ圖洛耆之數 勒合之於大衍 則衍五 十之跡 千載不復明矣 (周易四築二十三菩卦傳) 라 하여 大衍說의 혼미를 지적하고 그 혼미된 내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디음과 갇이 지적하고 있다. 大衍之解 家家不同 有京房說 有馬融說有第奭說 有姚信董遇說 有王弼顧 權說 並見孔類達正義 有干寶崔撮說 見李鼎祚集解 者威냄鬪『 無一可取 然 彼諸說旋亦不行於世也 不足以病 唯此鄭說 其傅會無理 反基於諸家之說 而 獨爲後世之所取 天一生水地二生火 遂爲不刊之典 而風水看相等命擇吉之流 無以此爲之淵萩 窮理之學 業醫之家 皆以此說爲天經地義 登不唯哉 (易 學緖言卷一鄭康成易社論) 뿐만 아니라 朱子도 그의 周易本義에서 茶山이 이른바 〈遂以河圓洛 書之數 勒合之於大衍〉이라 한 것을 뒷받침이라도 하려는 듯이 다음과 갇이 논하고있다. 大衍之數五十 蓋以河圖中宮天五 乘地十而得之 至用以莖 則又止用四十有

九 蓋皆出於理勢之自然而非人之知力 所能損益也 (本義) 라 이름으로써 朱子 또한 大衍之數의 圖書學的 혼미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자가 아닐 수 없다. 이렇듯 茶山 은 그의 天文曆數學的 입징에서 비로소 Q햐衍之數五十〉의 의미를 다 음과같이 천명한다. 大衍者衍卦之謂也 六十四之卦之中 十二粹卦配之於四時 中字小過配之於 再間 餘五十卦 周人謂之大衍 蓋謂此五十卦者 皆受變於十四卦而衍之爲卦也 (法詳推移表) 故曰大衍非五十卦之外 別有所謂大衍者 存焉 (菩卦傳) 알기 쉽게 말하자면 大衍之數五十이란 曆數學的 입장에서 본다면 四 時之象인 十二粹卦와 五歲再間之象인 中半小過兩卦를 제의한 나머지 五十卦를 가리킨 자로서 왜 衍卦라 하는가. 五十衍卦는 推移法에 따르 면 十四牌卦에서 衍之된 卦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로써 萬物之象

으로서의 五十衍卦의 曆數學的 개념은 일단 정립된 것으로 볼 수가 있 다. 둘째 茶山은 그의 著卦傳의 정립을 위하여 大衍之數뿐만 아니라 求 卦의 기본정신이 曆數學的 天地日月의 運行에 근거하고 있음울 디음-과 같이 천명하고있다. 求卦之法如是者 謂太一銃判(分爲二) 天地成列(以象兩)人處其中(掛一以 象) 而四時遷變(探以四) 日月運行(中字小過以成聞) 萬物於此 升降往來 (自十二牌爲衍卦) 進退消長(自復至乾又自始至坤) 而一切 喜怒哀樂 成敗 得失 死生禍福之情之機 莫不由是而生焉 故 聖人者立其象於求卦之時使神 明依其象而指之 此其微旨妙義 誠不可移易其一臺也 (上소書) 여기에는 茶山의 著卦法을 통한 宇宙觀 내지 人生觀이 것들어 있음

울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는 宇宙生成은 天地音 l j判에서 비롯하여 (象兩) 人處其中하게 되고 四時變遷 日月運行으로 萬物이 生成하게 되 는 것이니 人間萬事가 또한 莫不由是함을 그는 설파하고 있다. 이렇듯 그의 菩卦傳을 통하여 정의된 易象은 비록 神明일지라도 여기에 依著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茶山의 神觀의 한계가 있으니 漢 儒들의 神秘主義的 神觀울 배제하고 世間的 神觀에 정착하게 된 소이 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茶山의 다음과 같은 鬼神'습을 주목 하지 않을수 없다. 行鬼神者 謂菩策屬撰 象數應移 則鬼J神得以操其權(撰菩策多少之權) 而 意指其所宜得之卦 所宜得之交也 謂使鬼神得行其志也 漢儒誤解此文 謂可以 奪造化而役鬼神 於是 納甲飛伏之說作而識緯邪誕 九宮風角之術 莫不莊口於 聖經 可勝飮哉 (上全 書 ) 이로써 茶山의 神觀은 그의 曆數論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 을알수가있다. 셋째 太極說도 그의 曆數學的 現象에 의하여 그 개념울 재정립하였 다. 먼저 緊辭傳 〈易有太極 是生兩儀〉 句의 朱子注를 보면 다음과 감 다. 一每生二 自然之理也 易者陰陽之變太極者其理也兩儀者始爲一 盡 以分陰 陽 四象者次爲二 畫 以分太少 八卦者次爲三畫而三才之象始備 此數言者 實聖 人作易自然之次第 이로써 朱子의 太極은 一生二하는 自然의 理法임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茶山은 五十策의 未分者를 太極이라 하였다. 太極者五+솅t之未分者也 (三極未著故名曰太極) 兩儀者分而爲二以象兩者

也 (儀容也法也) 四象者撰之以四以象四者也 (象形也似也) 八卦者內卦夕卜卦 之或袁或免者也 (卽八卦而小成之八卦) (菩卦傳) 이렇듯 太極이란 菩 卦法上의 술어로서 아직 成卦되기 전의 六十四卦 의 回固無別한 경지를 가리칸 자로 이해한다. 太極者六十四卦之回圖無別者也 (五十策之中具六十四卦之旺胎) 兩儀者乾 坤二卦之儀徹也 (八卦之乾坤) 四象者十二牌卦分配四時之象也 (天地水火配 四時) 八卦者震次以成屯 次良以成蒙者也 (故曰八卦定吉凶) 六十四卦의 未分化狀態에서 兩儀 四象八卦가 생성된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太極의 極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極也者屋極之義 屋極者屋育也 (M 藥音 ) -棟爲之育而衆柄分出 亦猶大衍 . 之策爲之極而兩儀四象 皆於是平分出也 (與屋極同義) 이룰 우리는 茶山의 屋極說이라 이르거니와 屋極은 衆植分出의 象으 로서 兩儀 四象이 太極에서 分出하는 象울 방불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茶山은 宇宙生成論的 입장에서 그의 太極說울 디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그는 어디까지나 太極-兩儀-四象-八卦-의 線에서 이해할 따름이요 理法的인 占은 찾아볼 수가 없다. 太極者誰也 天地之旺胎也 兩者誰也 輕淸者位平上 (天) 重混者位平下 (地) 此之謂兩也 四者誰也 天地水火 體質各分 位次有等 此之:『四也 (表記 云天火尊而不親 水火親而不尊) 四者銃立 天火相與而雷風以生 (天包火爲雷 又火與天爲風) 地水相比而山澤以成 (水削土爲山又土園 7k 爲澤) 此四之所以 生八而八卦之所以八 在是也然 一生兩 兩生四 四生八而爲卦者 泡練盡之時 所儀象而爲之也 大衍之數以爲極(當太極) 乾坤之卦以爲兩(當天地)十二群 卦以爲四 (當四時) 或袁或異以當八 (不必全有八) 而爲卦者 (爲重卦) 莖人擊

莖之時所儀象而爲之也 彼象四氣 (卽天地水火) 此象四時者 (E 開g[秋冬) 四氣之運以配四時也 彼以全八爲八卦 (伏羲之八卦) 此以八卦之一二卦爲八 卦者(或袁或興 只二卦) 法象具而理義顯也 乃自漢魏以來 直以天地名之爲 兩儀 儀也者形容也 卽彼窓然之蒼 限然之黃 皆假天地也 烏平 可哉 (先儒以 八卦之二盡爲四象) 이로써 茶山의 著卦傳울 통하여 본 易象은 實體가 아니라 儀象이라 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천지의 象으로서의 兩儀나 四時之象으로서의 四象뿐 아니라 太極 그 자체도 朱子가 이른바 理가 아니라 屋極의 象 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茶山이 推究하는 曆數學的 易象 은 太極―兩儀―四象이라는 象의 學으로 정리되었고 그의 菩卦傳도 따지고 보면 그의 曆象學의 方法論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르지 않을 수 없다. (4) 釋父補傳 易大傳으로서의 緊辭傳은 總論的인 性格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 고 그 안에는 卦交辭를 補完한 내용의 補傳이 上經에 七節 下經에 十 一節 都合 十八節이 따로따로 集約되어 있다. 茶山은 이들을 각각 本

卦로 환원시켜 제자리를 차지하게 하였다. 이를 序卦傳의 순위대로 정 리하면다음과같다. 1) 乾上九 上 옙辭上經) 孔子曰貴而無位 (六者陰位也 乾之上剛以陽居陰) 高而無民 (坤爲民也乾至 於六無一陰) 賢人在下位而無輔頃덴易在下而i皆不爲臣也坤爲臣) 是以動而 有梅也 (動者찾變也) C 塚:亢龍縣徹自亢 不少卑降 故 無民無臣也 C 洙:子曰 當屬文言 此蓋重出 2) 否九五 下 여흥辭下經) 孔子曰危者安其位者也 (陽得三則安其位) 亡者保其存者也 (良亡而震生)

亂者有其治 者 也 (次亂而離治) 是 故 君者安 而不忘危 存而不忘亡 治而不忘 亂 是以 身安而國 家 可保也 (坤國而次 家 ) 易曰 其 亡其亡 緊于包桑 C 筋갱;亡 其亡者 替 戒之詞也 成 言 平良(浙之良)以相戒也(易例良爲戒) 於是 離以修 之 U:::k離) 不以良亡 ck. I 합 多 ) 故 孔子以此父爲可以保國也病之將死 諱死 己基 國之將亡 諱亡意嚴 以亡爲戒 不亡之術也 3) 同人九五上 孔子曰君子之道或出或處 或默或語 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 言 其吳如 蘭(答先號桃而後笑) C海:卦由 震 積(本五陽) 君子之道也( 震 君子)離自 逐 來 (一之五) 又 自大壯 U:之二) 時以 袁 出 0 해士之上 震 ) 時以長止 선§下良) 或 出而或處也 大興如說(逐下良閉口)兼免爲語난해土之兼免) 或默而或語也 逐大壯 各有一乾 U:下乾) 乾則爲人 (處氏云) 此二人也 今皆爲離 나키: 離) 離則虛心 二人同心也 兩心빠治{上下離) 乾뭡軒벨紅上本乾) 是斷金也 (乾爲金) 免 H lj爲利 9 대士之上鏡) 其利斷金也 我以興告 (下互興) 彼以免語 다) 同心之言也 本以 震 卓虹大壯之上震) 雜以異芳(逐大異) 其象蘭也 (興爲香) 興Jl l j爲吳 (說卦文) 其吳如蘭也 離則爲誠 (心虛中) 其利斷離者 離 誠之所透也 離亦爲 뿜 (免得離爲 卷 ) 其吳如蘭者 離 뿡 之所播也 (聲聞美) 所 問者桃笑而後答者如此 明離自逐大壯來也 O 學諒云乾金中斷(下本離) 興草 芳香(本互興) 同人之本象也凡易例 變 象皆起於本象 4) 謙 九上 孔子曰勞而不伐(不以 震 自 l島 ) 有功而不德(有互次而非正次) 厚之至也(地 山皆 厚 土) 語以其功下人者也(以人主而下坤民) 德言盛禮言恭(皆謙德) 謙 也者致恭以存其位者也 (以陽居三得其位) O 案德者直心也 故 次則爲德 (易 例也) 此卦非正次 故 謂之不德 5) 豫六二 下 孔子日知幾其神平(次爲幾互次爲知) 君子(復一陽) 上交不話(不以免稅 言) 下交不 濱 (粹次濱而升) 其知幾平 幾者動之微(未及震動則次形微隱) 吉 之先見者也(漢書云吉凶) 君子見幾아덴 Z 離)而作덴誤g也) 不侯終日 (不待離 之終) 介如石焉 ( 闇 廊於次石之音) 寧用終日 (事已急) 君子知微(臨之時次形 隱而未彰) 知彰 (解而後次形乃著) 知柔知剛 (一之四而陽居陰) 萬夫之望 (坤 民以離見) O 案臨之時次險未著(臨下免) 難有明智之士 不見其有禍亂之兆 也 唯是復一陽之君子知亂之將{투(知次之將成) 見幾而起 航然其近(一之四) 而震足縱動 U:今震) 次亂已作(下今次) 出意乃免 佑갯傳文) 不與其亂(次在

後) 其知不已神平 此孔子所以三復而諒欲也 C 明學核云乾之九三曰終日乾 乾 自復而泰(下三陽) 謂之終日 (一二三離位) 則臨者不終日也(未堯離) 不 侯日者謂不待三陽之爲泰也 C 넵µ學園云知幾豫逃豫之義也 6) p節효f}]九 下 孔子曰小人 (否之良) 不恥不仁 (否無盤) 不長不義 (否無兒) 不見利不勸 (不見免利故罪爲進退) 不威不惡 (卦無震威故坤無咨薔) 小愍而大誠 (원껍:下 坤而上乾亦誠) 此小人之福也 (離爲福) 易曰應校滅址 無씁 此之謂也 C) 案 卦自否來 否者泰之反也 泰之仁義(袁與兒) 否皆無之 此之謂不仁不義也 7) 喇효上九 下 孔子曰善不積不足以成名 (謂泰卦) 惡不積不足以滅身 (否三陰之積) 小人 以小善爲無益而弗爲也 (否小人) 以小惡爲無傷而弗去也 (陰進至於五) 故 惡 積而不可俺U:九之變上無覆) 罪大而不可解(自二至上爲大次) 易曰何校滅 耳凶 O 案漢昭烈云勿以善小而不爲 勿以惡小而爲之 盜本於此 8) 復f}]九 下 孔子 El 顔氏之子 其 5台 庶幾平 有不善 (豫之互次爲罪過) 末常不知 (次爲知) 知之未갭復墓行也 (震出外爲行) 易日不遠復 無祗海元吉 O 案桑變爲坤 R lJ無 不善之象 亦無回復之形 其取豫交易之象 審矣 9) 大過初六 上 孔子曰荀鎖諸地而可矣(一二地) 薛之用茅 何씀之有 愼之至也 U댜 次以敬 之) 夫茅之爲物薄而用可重也 (一陰薄) 愼斯術也 以往其無所失矣 (一岡 1M 主得 位 )O 案卦德位過薛用白茅者過於愼重也 10) 咸九四 下 孔子曰天下何思何慮 (天下坤也) 天下同歸而殊塗 (次爲歸) 一致而百慮 (坤 爲百) 天下何思何慮(次勞心) 日往則月來 月往則日來(次離爲月 日) 日月相 推而明生焉(推移也) 寒往則暑來(乾爲寒) 暑往則寒來(坤爲溫) 寒暑相推而 歲成焉 (次冬以良成) 往者屈也 (觀之時興屈) 來者信也 (今次直) 屈信相感而 利生焉 (內得陽爲利) 尺護之屈以求信也 (興爲煙) 龍蛇之塾以存身也 (小過震 爲龍) 精義入神 (乾精免義又興入良神) 以致用也 (次爲庸) 利用安身 (良止而 安身) 以崇德也(次在上) 過此以往未之或知也(次爲知) 窮神知化(良爲窮神 次知而離化) 德知盛也 O 塞自觀小過來(咸九四) 小過大次也(兼盡三) 坤民 歸次 此天下同歸也(次爲歸) 一次之中震爲大途(小過之上震)良爲經路(雷 山卦) 此同歸而殊塗也 (同作大次而道各不同) 觀者大長也 (兼畫三) 物終平

良 (說卦文) 其所致者一也 兩坤相乘 (四陰兩坤) 其數百也 (地數十) 今以次 思止今次) 一致而百慮也(次勞心) 若是者何謂也 萬物芸芸散而之四 而畢 意同歸於次宮 萬物樓推 百慮勞心 而畢堯同歸於良終 (有生必有死) 由是言 之 天下之事 原不足以勞我心思也 觀移爲寒則上次下離(下互湘佳) 此月往而 日 來也 (次爲月 ) 否移爲咸則坤升乾降 lt之三) 此暑往而寒來也 (乾寒而坤 暑) 推移之故 中成離明(三五互) 此日月相推而明生也 推移之故 上爲次冬 此寒署相推而歲成也 (良以成) 興以柔燒 其象屈也 次以岡 l j直 其象伸也 (信伸 通) 觀以興屈 塞以次伸 냐冷今次) 屈信相感也 (感動也) 剛自外來 lt之三) 以利坤民(內得陽) 此屈伸相感而利生也 移之自觀則異之尺護(異爲蟲) 今以 次直다:今次) 此屈柳以求伸也 移自小過則震之龍蛇 今以次隱 U 二今次) 此 藍伏以存身也(剛不亡) 義以乾精(免爲義) 入於良神(興爲入) 精-義入神也 次爲功庸 (勞平長) 以致用也 良以止之 保此坤安 (觀下坤) 利用安身也 (內爲 我) 次德在上以崇德也 咸至九四 陰陽之感動極矣 故 孔子極言屈伸往來之理 0갭 頓周禮知周公致治之才 在平精義入神 故 規謨節目 菜然森整 後之從 政 內懷租濁 外持大體 何以致治哉 11) 解上六 下 孔子日年者裁也 弓矢者器也(次爲弓衍矢) 射之者人也(乾爲人) 君子(本 上震) 藏器於身(坤四陰以藏之) 待時而動(一二三四五非時) 何不利之有(發 必中) 動而不括(卦無良手不能擊手) 是以 出而有獲(出平乾之中) 語成器而 動者也 C 껴든子日括結礎也(不括言無所製肝) O 案卦體之內 本有弓矢(次與 離) 藏器於身也 括檢也擊也 12) 解六三 上 孔子日作易者其知盜平 日負旦乘 致送至 負也者小人之事也(小過之下民) 乘也者君子之器也 다젝g움君子) 小人而乘君子之器 (長小人欲乘次車) 盜思 奪之矣(陰自外來入爲主) 上漫下暴(震漫而次暴) 盜思伐之矣덴該力聲其罪) 漫藏語盜 (坤爲藏) 治容語治 (離女治其面) 易曰負旦身쫑短距뜬 盜之招也 (良 手以招之) C 洙里子日陰柔居下之上 非其操也 小人居君子之位 非其所塔也 伐 者聲其罪也 O 案小過之時 震之君子乘此大次之車 (兼畫次) 良之小人效而乘 之 (三之二) 逢此害也 恒爲大次 (初五奭) 其象盜也 上震爲漫者岡,1tE下也 (二 陰壓一剛) 本以坤用(本四陰) 藏於室外(小過四陰皆在外) 所以盜也(恒亦陰 在外) 亦以長男 交於離女 (移之爲互離) 所以浩也 (非其配) 13) 損六三 下

孔子曰天地組賜(自泰來天地之 氣 相交) 萬物{頃對大離化) 男女構精(長男 而免女) 萬物化生(袁爲生) 易曰三人 1TH IJt貝一人 一人行則得其友 言 致一也 (不一fl l J疑生其間) O 案天地以兩而細編 (加一月 1 j不成) 男女以兩而構精 (加一 則不成) 兩fliJ相字 (今成離) 三則相疑 (不能離) 凡夫婦之際 朋友之交 皆有 此義 14) 益九 下 孔子曰君子 (否之乾三陽) 安其身 (內卦爲我坤爲安) 而後動 (移之爲益下袁 動) 易其心(次心之位興爲順) 而後語(興爲告) 定其交(袁興本配四)而後求 떠以求之) 君子修此三者 故 全也 0 젭昆l 修之) 危以動 (臨之免乘剛爲 動) 則民不與也(坤三陰相梁不分) 權而語(次湘而兒語)則民不應也(三與上 皆柔) 無交而求 (震次非其配) 則民不與也 (坤三陰不分) 莫之與則傷之者至 矣(次傷之) 易曰莫益之 或擊之 立心勿恒 凶 O 案否之時 乾坤其配也 移之 爲 袁異其配也 (長男與長女) 此所謂定其交而求也 臨之時 免坤非其配 移之爲屯 震次非其配 此所謂光交而求也 15) 困六三 下 孔子曰非所困而困焉 (二陰園四陽) 名必辱 (興爲屈) 非所操而操焉 (免乘 剛) 身必范: u 士位高目廊) 銃辱旦危 (興旦免) 死期將至 (次近良) 妻其可得而 見耶 O 案困之六三以陰居陽 本非其位 故 其變象如此也 交詞物象維用變體: 若其所以然之理則又必由本卦之德(困卦本有次)及本位之當否 此又讀易之大 要也 16) 鼎九四 下 孔子日德薄而位尊(民小人在上) 知小(次位陰在中) 而謀大(乾三陽在中) 力小而任重(長內柔) 鮮不及矣(及於禍) 易曰鼎折足 覆公練 其形混 凶 言 不勝其任也 17) 節初九 上 孔子曰亂之所生也 (節上次爲亂) 則言語 (節下免爲言) 以爲階 (乾三陽爲階 三級) 君不密(泰之乾君開其口) 則失臣(三之五而上坤 L) 臣不密(五之三又 成免言) 則失身 (坤體亡) 幾事 (次爲機) 不密 (乾三陽爲密) 則害成 (三之五 爲次) 是以 君子 (習次之互震 )1 眞密 (次德堅固亦爲密) 而不出也 (免言滅於良 戶內) O 案卦自泰來 其始也 乾君坤臣各安其分(內外位) 移之爲節則君言一 出 (三之五) 坤臣作亂(次爲亂) 當此之時 一言不密 機事盡池 故 戒之如此 18) 中半九二 上

孔 子曰君子居其室 ( 哀夫器妻同居曰室 ) 出 其 言 (免 言 以 袁 出) 善 ( 袁爲仁 ) 則 千里之 外 단타虹在 坤 疆之 外 ) 應之 ( 二柔 而 五 剛 ) 況 其造者 平 ( 初岡 |frffi 二柔 ) 居其室 出 其 言 ( 下本免 ) 不善 ( 本 非 震 ) 則千 里之 外 違 之 ( 二五本 皆剛) 況 其 還 者平 (初 與二 1 具剛) 言 出平 身 (出平 震 ) 加平民( 二 四坤) 行 發平返 @魏 휘 子 ) 見平 遠 (坤國外) 言行 (免 與震 ) 君子 之 樞機 (良門之開閉) 樞機之發 榮辱 之 主 也 ( 震爲榮器爲 屈 辱 ) 言 行君子之所以動天地也 (否之天地動爲益) 可不愼 平 따 浪 節 ) O 案 中 字者 感 應 之卦也 風 雷 益者同磐相應之卦 故 其 象爲 鳴鶴 相和 孔 子 所 謂善 ff l j千 里 之外應之者 亦同 聲相 應也 恨녜 雷 本同 聲 ) 이상에서 가칭 〈釋 交補傳 〉 이라는 이름으로 정리된 적잖은 분량의 이 글의 작자를 茶山은 빠짐없이 안 L 子日 〉 로 시작하기는 하였지만 그 것을 지금에 와서는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실 〈 孔 子 曰 〉 을 증명하기 위하여서는 적어도 통칭 孔子의 저술로 되 어 있는 大小 象 傳과의 비교 硏究에 의하여 결정지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十 翼 의 하나로 되어 있는 象 傳만 하더라도 茶山은 그 중에서 大象傳

만은 따로 拔莘하여 독립된 一篇의 저술로 편술한 것을 보면 이처럼 孔子에 가탁한 글들에 대하여는 엄밀한 재검토가 있어야 함은 다시 말 할나위도없다. 이처럼 釋 交補傳은 孔子曰로 시작하여 名交下에 나누어져 있는 것을 이렇게 한 묶음으로 하여 한 자리에 집약하여 놓고 본죽 일관된 文脈 과 文 意 가 것들어 있음을 곧장 느끼게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것들 은 緊 辭傳의 잡다성 속에서도 理路 정연한 품이 마치 大象傳의 글을 대하는 것과 같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는 『 周易 』 의 神秘主義的 視角에서 벗어나 經學으로서의 『周易 』 의 倫理性이 크게 부각되는 자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이 釋父補傳의 작자나 그 저작 연대는 大象傳 의 그것과 견주어서 考究됨으로써 大象傳울 卦辭에 대한 經學的 補傳 이라 한다면 釋交補傳은 父辭에 대한 選擇的 補傳이라해야 할론지 모 른다.

(5) 結語 周易에 있어서 緊辭傳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실로 막중한 바 있지 만 그의 개념마저도 茶山은 그의 입장을 달리하고 있음을 보아왔다. 一篇의 通論으로 본 朱子와는 달리 緊辭란 象象傳으로서 一編之通論은 따로 史記의 易大傳이 바로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이처럼 모두에서부터 緊辭傳에 대하여 회의적 태도를 취한 茶山은 緊辭傳개편을 위하여 근본적인 수술을 가함으로써 이를 4 大 분야로 나 눈 것이 바로 ®易大傳 ®廢棄句節 ® 菩 卦傳 ®釋父補傳인 것이다. 『周易 』 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그 著作의 연대와 작자는 미상이라는 안개 속에 묻혀 있기는 하지만 이를 구성하고 있는 몇 가지 · 동질성에 의하여 이를 가려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緊辭傳을 놓고 네 개의 분야로 이룰 정리한 것은 그의 동질성의 추구에 크게 기여하 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첫째, 易大傳은 이른바 『周易』의 總論으로서 종전의 緊辭傳上下經 에 가름하자는 자로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오로지 天文曆數 에 따른 易學의 大體가 담겨져 있다. 둘째, 茶山이 고의로 〈今不可全釋 〉 을 핑계로 하여 일체 언급을 회 피하였지만 오히려 그러한 태도 속에 茶山의 微意가 것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 廢棄句節 속에 온통 神認主義的 易象이 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태도로 茶山은 漢代의 磯諱災異說的 卜莖易과 결별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셋째, 著卦傳의 정리는 莖儀 속에 것들어 있는 마지막 神格마저도 제거해 버리고 오직 天地日月四時再閔에 따론 易理만을 정리하였다는 점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 없다. 易이란 順受天命의 학이지 閑 邪 r口 마의 術數가 아니기 때문이다. 넷째, 『周易』은 卜窟易에서 義理易에로의 轉移過程에서 그 대체가

성립된 易 經 인 만큼 거기에 것들인 經 學的 성격은 卜策에 不下하는 큰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釋父補傳 속에 것들인 經義는 크게 주 목되어져야 하리라고 여겨진다. 茶山이 大象傳울 한데 모아 하나로 집 약한 반면 釋父補傳은 오히려 名父下로 분산하였지만 거기에 내포된 經學的 동질성은 우리들에게 주어전 『 周易 』 의 새로운 과제의 하나가 아닐수없다. 제 2 절 大象傳의 另,8 Ij 周易의 성문화는 대체로 伏儀成卦 이후 문왕이 卦詞를 지었고 周公 이 交詞를 썼으며 이에 근거하여 孔子가 卦交詞의 傳文을 저술한 것으 로 되어 있다. 이에 대한 시비는 별문제로 하더라도 이러한 卦父詞와 그의 傳文과는 별도로 各卦下에 붙여서 쓰여진 짤막한 한 줄의 글이 있으니 그 내용을 보면 다른 글과는 달리 특이한 일면이 있음을- 얼른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장절에서도 經學的 동질성이라는 말을 사용한 일이 있거니와 여기서는 그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그 형식마저 도 君子學으로서의 동질성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음을- 얼른 발 견하게 될 것이다. 이를 한자리에 집약하여 茶山이 추려 놓은 대로 적 기해 보면 다음과같다. ◊大象傳原文 三三 天行健君子以 自張不息 三三三三 地勢坤君子以 厚德載物 三뜨 雲雷屯君子以經給 三또 山下出泉蒙 君子以果行育德

雲上於天需 君子以 飮食冥樂 ;=조 天與水違行松 君子以 作事謀始 三三王 地中有水師 君子以 容民畜衆 === 地上有水比 君子以 建萬國 親諸侯 三三 風行天上小畜 君子以 懿文德 三五三 上天下澤履 君子以辨上下 定民志 天地交泰 后以 財成天地之道 輔相天地之宜 以左右民 -=--=---=- 天天 與 地不火同交人否 君君子子以以儉 類德젊族¥辨難物 不可榮以祿 三= 火在天上大有 君子以 過惡揚善順天休命 ==== 地中有山謙 君子以 哀多益霧 稱物平施 프三三 雷出地哲豫 先王以作樂崇德 殷菌之上帝 以配祖考 ---三---三--- 澤山 中 下有有雷風隨盛 君君子子以以 振開民梅入育妻德息 터 EZ 澤上有地臨 君子以敎思無窮 容保民無張 === 風行地上觀 先王以 省方觀民設敎 --三----프--- 雷山 下唯有陸火先賀王 君以子明以罰 明勅庶法政 元政折獄 三타: 山附于也刺 上以 厚下安宅 三三타 雷在地中復 先王以 至日閉關 商旅不行 后不省方 三:프 天下雷行 物與無妄 先王以 茂對時育萬物 曰三 天在山中大畜 君子以多識前言往行 以育其德 ==== 山下有雷頭 君子以 愼言語 節飮食 三三 澤滅木大過 君子以 猫立不 1 ’溫 逐世無問 芸芸 水沼至習次 君子以 常德行 習敎事 三田三 明兩作 離 大人以 繼明照于四方 三三 山上有澤威 君子以虛受人 프三 雷風恒君子以立不易方 === 天下有山逐 君子以遠小人不惡而嚴 뜨---i----三---- i--- - - 雷明明 在入出天地地上上中大晋明 壯夷君 子君君子以子 以以自 夜非昭衆禮明不用德履梅 而明

風自火出家人君子以 言 有物而行有恒 ==== 上山火上下有澤水映塞 君君子子以以 反同身而異修 德 뜨조 雷雨作 鮮君子以 放過有罪 曰三 山下有澤損 君子以 悠念室怒 三三뜨 風雷益 君子以 見善fl l j遷 有過則改 三三: 澤上于天夫 君子以 施祿及下 居德具 l j,思 i=-- ----- 天 下有風括 后以 施命語四方 澤上于地莘 君子以除戒器 戒不處 타;三 地中有木升 君子以 J順德積小以高大 三王 澤無水困 君子以 致命遂志 뚜: 木上有水井 君子以 勞民勸相 三田三 澤中有火革 君子以 治曆明時 木上有火鼎 君子以 正位馮命 ----------兼沼 雷山 갱良휼 君君子子以以 恐思混不修出省其 位 山上有木浙 君子以 居賢德善俗 == 澤上有雷歸妹 君子以 永終知散 프三 雷電皆至뻗 君子以 折獄致刑 -----=---=--=------= 麗風隨山 行 澤 上君水有免子上火君淡旅以子 以君申先子王朋命以以友行 講享明事習于愼 帝用立刑廟而 不留獄 근三 澤上有水節 君子以 制數度 議德行 == 澤上有風中半 君子以 議獄緩死 --뜨----曰--- 7山隨 上永有上雷銃小濟過 君君子子以以 思行過患而平恭豫 防喪之過 平哀 用過平儉 三三 火在水上未濟 君子i人,愼辨物 居方 이상 六十四卦 中 〈君子以〉 54 〈先王以〉 6 〈后以〉 3 (j이 &l 〉와 삽二以〉가 각각 1 로서 君子 Ek 가 절대적일 뿐 아니라 先王 后 大人 上

등도 모두 君子의 別稱이고 보면 大象傳은 애오라지 君 子 學으로서의 易學임을 입증하는 자가 아닐 수 없다. 茶山이 各卦下에 니누어져 있 으므로 해서 제 구실을 다 하지 못한 大象傳을 하나로 묶어놓은 所以 가 여기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茶山은 이 뜻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이르고 있다. 大象傳者 孔子莖家 家 象之外 別自玩象 以資君子之用者也 (四築卷十一 大象傳) 란 이를 두고 이른 자가 아닐 수 없다. 이룰 따로 뽑아서 一經울 만들 지 않을 수 없는 이유도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밝히고 있다. …… 而又以大象傳爲一卦之標題 與 家 詞桑詞混成 一體! 則其薇滋 厚 矣鉉別 疏理以還其 舊 庶夫子用易之旨 因亦 章 顯也 다 ~ ) 이상으로써 茶山이 왜 大象傳을 另別하여 독립된 一經으로 만든 이 유를 알 수 있거니와 이렇게 하나로 만들므로써 우리는 비로소 天地水 火 雷風山澤으로서의 自然現象이 〈君子以〉로서의 작용에 의하여 政治 的倫理의 기틀이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제 3 절 文言論 文言이 언제부터 十翼의 하나가 되었는지에 관하여서는 확실하지 않 으나 茶山은 그의 大象傳울 논하는 자리에서 〈f友之儒者 遂以文言爲十 翼之一而 大象傳不能別自爲經矣〉(四釜卷二一大象傳) 라 한 것을 보면 大象傳과 바꿔치기하여 十翼에 끼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구체적으 로는 呂祖謙의 〈古周易所引〉에서 〈王弼以文言 附於乾坤二卦〉라 하여

王弼說을 기록한 것을 보더라도 文 言 이 十冀에 끼게된 것은 대체로 후대에 이루어진 것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文言의 성격에 관하여 서도 제설이 구구하여 文飾說 桑交誤字說 易話說 등이 있지만 茶山은 易訓園i를 택하고 있다. 山下靜雄著 『周易十翼의 成立과 展開 』 에 따르 면 文飾說은 周易正義에 莊氏說로서 〈文謂文飾 以乾坤德大 故 特文飾 以文言〉이라 했다 하였고 父交誤字說은 山片幡桃의 說로서 史記의 〈孔子晩年好易 序易象緊象說卦文言〉은 〈序易象 緊象 說卦父言〉이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茶山은 文言易話說울 다음과 같이 주장 한다. 接文言者古之字書 若爾雅說文之類 而專爲易話者也 故 孔子之生十三年之 前 穆姜預說文言之詞 斯可驗也 史記孔子世家及漢書儒林傳 並別之於十翼 盜孔子引用文言以爲易傳 而後之儒者遂認爲孔子所作 器矣 君子行此四德者 以下孔子文也(乾卦) 라 하였다. 그러면 乾坤兩卦에서 文言은 어떻게 정리되었는가. ◊乾卦文言 乾元亨利貞 文言曰元者善之長也 亨者嘉之會也 利者 義之和也 貞者事之幹也 君子體 仁足以長人 嘉會足以合禮 利物足以和義 貞固足以幹事 君子行此四德者 故 曰乾元亨利貞•案文言者古之字害…… 孔子曰乾元者始而亨者也 利貞者性情也 乾始能以美利 利天下 不言所利 大矣哉 大哉乾平剛健中正純粹和也 六桑發揮 帝通情也時乘六龍 以御天也 雲行雨施天下平也 初九潛用勿用 孔子曰龍德而隱者也 不易平世 不成平名 逐世無閑 不見是而無閑 樂則行 之 憂則違之 確平其不可拔 潛龍也 孔子曰君子以成德爲行 日可見之行也 潛之爲言也 隱而未見 行之未成 是

以君子弗用也 九二見龍在田利見大人 孔子曰龍德而正中者也 庸言之信 庸行之槿 閑邪存其誠 善世而不伐 德博 而化 易曰見龍在田 利見大人 君德也 孔子曰君子學而衆之 問而辨之 寬以居之 仁以行之 易曰見龍在田 利見大 人君德也 九三君子終日乾策夕楊若無씀 孔子曰君子進德修業 忠信所以進德也 修辭立其誠 所以居業也 知至至之 可與幾也 知終終之 可與存義也 是故 居上位而不駿 在下位而不꽃 故 乾乾 因其時而湯雜危無씀矣 孔子曰九三重剛而不中 上不在天 下겨泊沮] 故 乾乾 因其時而楊 雜危無씀 矣 九四或躍在淵無씀 孔子日上下無常非爲邪也 進退無恒非離登也 君子進德修業欲及時也 故 無씀 孔子日九重剛而不中 上不在天 下不在田中不在人 故 或之 或之者疑之也 故無씀 九五飛龍在天利見大人 孔子曰 同聲相應 同氣相求 水流濕 火就煥 雲從龍 風從虎 聖人作而萬物 視 本平天者親上 本平地者親下 則各從其類也 孔子曰夫大人者與天地合其德 與日月合其明與四時合其序 與鬼神合其吉凶 先大曲大小違 後天而奉天時 天旦不違 而況於人平 況於鬼神平 上九亢龍有梅 孔子曰貴而無位 高而無民 賢人在下位而無輔 是以 動而有梅也 孔子日亢之爲言也 知進而不知退 知存而不知亡 知得而不知喪 其唯聖人平 知進退存亡而不失其正者 其唯聖人平 ◊坤卦文言 坤元亨 利化七馬之貞 君子有伐往先迷後得主 利西南得朋 東北喪朋 安貞 吉 文言曰坤至柔而動也剛 至靜而德方 後得主而有常 含萬物而化光 坤道其順

平 承天而順 1T 이 구절에 대하여는 乾卦의 文言과는 달리 鄭康成의 所加임을 茶山 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案此云文言者鄭康成之所加也 孔子於乾坤二卦 特於家傳象傳之外 重重軟 矣 反復諒欲 雜與諸卦之例不同 其文則亦象傳象傳也 本是一通文字 自東萊 費直 始裂傳文 分隸各縣之下 而鄭玄見章首有文言二字 遂認爲別編 乃於坤 卦之傳 亦增文言二字 然 乾之文言 是孔子引用古文也 此節是孔子所自作 讀 者詳之 初六履霜堅氷至 孔子曰積善之家必有餘慶 積不善之家必有餘秩 臣試其君 子試其父 非一朝 一夕之故 其所由來者浙矣 由辯之不早휴텐 l 易 El 履霜堅氷至 盜言順也 六二直方大不習無不利 孔子 El 直其正也方其義也 君子敬以直內 義以方外 敬義立而德不孤 直方 大不習無不利 則不疑其所行也 六三含章可貞 或從王事 無成有終 孔子 El 陰誰有美 含之 以從王事 弗政成也 地道也 妻道也 臣道也 地道無 成而代有終也 六四括産無씀無웅 孔子曰天地變1 t 草木蕃 天地閉 賢人隱易曰括亞無씀無뿜 蓋言護也 六五黃裝元吉 孔子曰君子黃中通理 正位居體 美在其中而暢於四支 發於事業美之至也 上六龍戰于野其血玄黃 孔子曰陰疑於陽 必戰 爲其嫌於無陽也 故 稱龍焉 猶未離其類也 故 稱血 焉 夫玄黃者天地之雜也 天玄而地黃 이상에서 우리는 文言이란 古代易話로서 易의 字典울 의미한다. 그 러나 孔子가 인용한 文言의 본문은 乾卦의 家詞 다음에 쓰여진 數句에 지나지 않고 각 桑詞 및 坤卦家交詞 다음에 쓰여진 연 L 子日〉의 설명

은 文言과는 관계가 없는 孔子의 傳文이라는- 것이다. 이 장황한 傳文 은 다른 家傳이나 象傳과 그 내용이나 성격에 있어서 디를· 바 없으나 乾坤兩卦에 한하여 거듭 첨가된 傳文이라는 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 하고 있다. 그러므로 총체적으로 볼 때 서두를 〈 文言 〉 이라 했기 때문 에 이 글의 전체를 文言傳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그 내용이 不足하고 이를 별도의 家象傳으로 보기에는 그것이 乾坤 두 卦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그 전체성이 미흡하다 이르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茶山의 지 적대로 이들이 선 L 子曰 〉 로 시작된 孔子의 저작인지의 여부는 별문제 로 치더라도 孔子十翼의 一인 @頃言 〉 으로 치기에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제 4 절 序卦傳 孔子十翼의 一인 序卦傳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六十四卦에 니누어 다음과 같이 분할 배속시켜 놓고 있다.

卦 )I 頂 卦明 序卦傳 乾 有天地然後萬物生焉 坤 屯 屯者盆也屯者物之始生也 四 蒙 蒙者蒙也物之禪也 五 需 需者飮食之道也 /’、 큼Lp` 七 t而 t而者衆也 八 比 H 瀋比也

九 小畜 十 履 物畜然後有禮故受之以履 • • 泰 泰通也 『 又曰泰然後安』 否 物不可以終通故受之以否 同人 與人同者物必歸焉 一四 大有 一五 謙 一^’ 豫 有大而有訓謙必豫 一七 隨 一八 壘 麟事 一九 臨 臨者大也 二十 觀 物友可觀 ’墓陸 鬪合也 實 實也염文飾然後亨』 f/

二九 次 次官也 三十離 離者麗也

威 有天地然後有萬物有萬物然後有 男女有男女然 後夫婦有夫婦然 後有父子有父子然後有君 臣 有君臣然後有上下有上下然後禮儀有 所緖 恒 恒者久也 逐 逐退也 三四 大壯 三五 晋 晋進也 二一/ 、, 明夷 夷者傷也 三七 家人 三八 揆 揆者乘也『乘展也』 三九 塞 塞者難也 四十 解 解者緩也 四一 才員 四二 /.IIIL^= 四三 夫 夫者決也 四四 活 鬪遇也 四五 莘 莘者衆也 四六 升 四七 困 四八 井 四九 革 五十 閉t 革物者莫若鼎 五一 震 震者動也 五二 良 良者止也

五三 浙 鬪進也 五四 §獻 五五 豊 盟者大也 五六 方辰 五七 興 興者入也 五八 免 免說也 五九 淡 淡者離也 六十 節 六一 中字 /,、 一一 4 、過 /,、 -一=- 節齊 六四 未濟 物不可窮也故受之以未濟終焉

이상과 같이 卦名하에 적기된 내용은 주로 卦義룰 설명한 것이 대부 분이요 오히려 序卦의 주문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제의되고 있다. 그러므로 제의된 부분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盆天下之間者唯萬物故受之以屯…… 物生必蒙故受之以蒙 ••• …物桐不可不 養故受之以需……飮食必有松故受之以松……松必有衆起故受之以師…… 衆必有所比故受之以比……比必有所畜故受之以小畜……履而泰然後安故受 之以泰……物不可以終否故受之以同人……故受之以大有……有大者不可 以益故受之以謙……故受之以豫……豫必有隨故受之以隨 以喜隨人者必有 事故受之以壘……有事而後可大故受之以臨……故受之以觀 可觀而後有所 合故受之唯陸 …… 物不可以荀合而已故受之以實 …… 致飾然後亨}l l j盡矣故受 之以刺 ••• … 物不可以終盡……復則不妄矣故受之以無妄 ……有無妄然後可 畜故受之以大畜 …• •• 物畜然後可養故受之以顧 …… 不養j{ Ij 不可動故受之以大 過 … 物不可以終過故受之以次 … 路必有麗故受之以離 … 夫婦之道不

可以不久故受之以恒……物不可以久居其所故受之以逐……物不可以終逐故 受之以大壯……物不可以終壯故受之以晋……進必有所傷故受之以明夷 ……傷於外者必反其家故受之以家人……家道窮必乘故受之以揆……乘必 有難故受之以察 •••••. 物不可以終難故受之以解 ...... 緩必有所失故受之以損 : •• … 損而不己必益故受之以益 …… 益而不己必決故受之£大夫 …… 夫必有所 遇故受之以訴……物相遇而後衆故受之以莘……衆而上者謂之升故受之以升 ……升而不己必困故受之以困……困平上者必反故受之以井……井道不可 不革故受之以革……故受之以鼎……主器者莫若長子故受之以震……物不 · 可以終動 止之故受之以良……物不可以終止故受之以浙……進必有所歸故 受之以歸妹… ••• 得其所歸者必大故受之以盟 ···… 窮大者必失其居故受之以旅 ……旅以無所容故受之以興……入而後說之故受之以免……說而後散之故 受之以洪……物不可以終離故受之以節……節而信之故受之以中字 有其信 者必行之故受之以小過 有過物者必濟故受之以銃濟 이상과 같이 茶山은 序卦傳울 산산이 분해해 놓았고 그 중에서도 序 卦傳의 핵심 부분은 마치 一顧의 가치도 없는 양 幣履처럼 불문에 붙 여버린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것들어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 하면 이는 序卦傳의 심장을 도려낸 것이나 전배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序卦傳의 본문은 언제 누구의 손에 의하여 어떠한 목적 으로 저술된 것일까. 지금에 와서 이룰 十翼의 一로서 孔子의 작이라 고 믿는 사람은 없거니와 그렇다면 그 내용으로 봐서 언제 누구의 작 일까. 이는 漢代에 들어와서 周易이 儒家의 經典으로 정착된후 六十四卦의 서열에도 聖人의 깊은 뜻이 들어 있지 않을까 의심한 나머지 이룰 孔 子에 가탁하여 그 누군가에 의하여 저작된 것이 분명하다. 孔類達의 周易正義의 다음과 같은 글은 이를 찰 설명해 주고 있다. 序卦者文王銃縣六十四卦 分爲上下二篇 其先後之次 其理不見 故孔子就 上下二經 各序其相次義 故 謂之序卦

여기서 孔子만을 作 者未詳 으로 고치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序次의 설명이 저자의 의도와는 달리 견강부회된 대목이 너무독 많다. 王弼의 제자인 韓康伯도 그의 玄談考에서 凡序卦所用 非易之編也蓋因卦之次 託象以明義 라 한 것은 茶山의 입장을 그대로 뒷받침하는 자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茶山이 이미 各卦下에서 託象以明義한 부분만을 추려냈고 序 卦의 이유를 서술한 비논리적 부분은 온통 삭제해 버린 것은 그것이 非易之編이기 때문이었음은 다시 말할 나위도 없다. 이로써 序卦傳은 茶山에 의하여 제모습을 되찾게 된 셈이다. 제 5 절 雜卦傳 雜卦傳도 序卦傳과 함께 孔子十翼의 列에 끼여 있기는 하지만 序卦 傳과도 달리 一人一時의 作이 아니라 명실공히 잡다한 내용을 取合하 여 이를 하나로 편집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茶山은 序卦傳처럼 各卦 하에 나누어 수록하였거니와 그 내용을 명료하게 살피기 위하여 序卦 傳에서와 갇이 이룰 표기하면 다음과 같다.

卦順 圭沼 雜卦傳 乾 乾岡 l 坤柔 坤 三之正 屯 三之反 蒙 蒙雜而著 (雜臨觀二卦之義而其象著)

四之正 需 需不進也 四之反 클R TL\ ’公不親也 五之正 師 比樂師臺(皆以下卦謂主人) 五之反 比 六之正 小畜 小畜暮也닌국有衆也) 六之反 履 履不處也 七之正 泰 否泰反其類也 七之反 否 八之正 同人 同人親也 八之反 大有大有衆也 九之正 謙 謙輕而豫意也(謙豫自-f/< l j來一陽直至下者爲輕 猶在 上者爲窓) 九之反 豫 一0 之正 隨 隨無故也 (余色舒云從否變欲捨其故) 一 O 之反 壘 盛則飾也 (A{ I 多也又致堅也) 一걱 臨 臨觀之義或與或求 一蠶 觀 一二之正 O墓 陸 ’節造食也 一二之反 實 實無色也 一三之正 }felj 刺關也 (如果之'關熟) 一三之反 復 復反也 一四之正 無妄 無妄穴也

一四之反 大畜 大畜時也 一五 頭 頭養正也

一 六 大過 大過順也 _七 次 離上而次下也 一八 홉佳 一九之正 咸 威速也 (蔡氏云感應故速) 一九之反 恒 恒久也 二 0 之正 逐 逐則退也 二 0 之反 大壯 大壯則止 (與逐退相反) 二一之正 晋 晋 盡 也(明出地上也) 二一之反 明夷 明夷諒也 二二之正 家人 家人內也 二二之反 H 찾 i꽃外也 二 三之正 奏 塞難也 二三之反解 解緩也 二四之正 才貝 損益盛裵之始也 二四之反益 二五之正 夫 夫決也剛決柔也君子道長/j、人道憂也 二五之反 始 姬遇也柔遇剛也 二六之正 莘 二六之反 升 莘衆而升不來也 (交詞不言降) 二七之正 困 井通而困才甘遇也 二七之反 井 二八之正 革 革去故也 (項安世云火鎔金爲去故) 二八之反 閉i 鼎取新也 (項氏云以木鑛火故爲取新)

二九之正 袁 麟也 二九之反 良 長止也 三十之正 浙 藝歸待男行也 (義見 象 ) 三 O 之反 歸 歸女之終也 三 0 之正豊 聖多故也 (荀本無也字) 三一之反 旅 親 芬 旅也 三二之正 罪 兒見而興伏也 (朱子曰免陰外見興陰內伏) 三二之反 免 三 三 之正 淡 潟軒也 三三之反 節節止也 三四 中半 中字信也 三五 4 、過 4 、過過也 三六之正 節齊節齊定也 三六之反 - 未濟 未濟男之窮也 (三陽皆居陰)

茶山은 雜卦傳에 있어서는 序卦傳에서처럼 잘라버린 대목은 없지만 孔子十翼의 하나로서의 의미를 특히 강조한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그 런 의미에서 茶山易에 있어서의 雜卦傳은 그다지 큰 비중은 차지하지 않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日人학자 山下靜雄의 「周易十翼의 成 立과 展開」에 따르면 〈雜卦傳은 大象成立以後 家傳成立에 이르기까지 의 周易思想의 展開울 보여준 자라고 할 수 있다〉(p . 71) 고 한 것은 그 署作年代 및 내용을 시사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一家 見이라 일러도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雜卦傳은 雜卦義를 모아논 雜卦 傳일 따름인 것이다.

제 6 절 說卦傳 說卦傳은 孔子十翼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만 큼 이에 관련하여 해결해야 할 문제도 적지 않다. 孔類達은 그의 淵] 易正義 〉 에서 說卦者陳說八卦之德業變化及法象所爲也……故 孔子於此更備說重卦之由 及八卦所爲之象 故 謂之說卦焉 이라 하였는데 여기서 우리의 관심사는 孔子의 說卦傳 참여가 어느 정 도이었던가 하는 점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宋의 歐陽修 이후 近世 談易家들의 대부분이 序卦雜卦 兩傳과 더불어 說卦傳도 漢代 이후의 저술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점을 茶山은 반대하면서 孔子著作說 울 지지하면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易詞取象 皆本說卦 不讀說卦 卽一字不可解 棄繪駐而求啓門 愚之基矣 特 以 漢 儒談易 不知六交之變 (不知乾之Mi) 卽龍求牛 執鷄疑馬 辻回察堅 一往 不合 故 有王弼者起而號曰交荀合)|頂 何必坤乃爲牛 義荀應健 何必乾乃爲馬 (又云接文 責 卦有馬元乾則僞說滋菱) 於是 說卦接不用而易遂以亡矣 陸平 六 交旺變 臨文求象 則淡然氷釋 1 ’ 台然理)|頂 而歐陽修輩 謂非夫子之書 何其妄矣 (周易四釜二十四 說卦傳) 이렇듯 孔子說을 자신있게 주장하면서도 說卦表直說에서는 또 한편 〈 八卦始 畫 之初 說卦並興〉이라 하여 說卦之興울 泡磯畫卦之묶l 1 로 간주 하고 이어서 설명하기를 先儒謂說卦爲孔子所作 非深密體究之論也 不取物象 則八卦元不必作(徒 卦無所用) 說卦者庵磯畫卦之tJJ 仰觀天文 (次離爲 日 月 ) 傾察地理(良免爲山

澤) 遠取諸物(乾坤爲馬牛) 近取諸身(良 震 爲手足) 玩其象而命之名 以與神 明約契者也 而侯孔子哉 (四築卷 一 說卦表直說) 라 하여 孔子說을 부정한 대목이 있다. 이러한 茶山 자신의 자가당착 울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茶山의 說卦傳 注와 說卦表直說울 근거로 하여 이를 자세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說卦表直說에서 茶山은 이르기를 〈其作於孔子之手者 說卦之序詞也 〉 라 하였으니 여기서 이르는 說卦의 序詞는 다음과 같다. 昔聖人之作易也 幽贊於神明之生菩 參天兩地而僚數 觀變於陰陽而立卦 發於岡幅;而生交 和順於道德而理於義窮理盡性以至於命 昔者聖人之作易 也 將以順性命之理 是以 立天之道日陰與陽 立地之道曰柔與剛 立人之道曰 仁與義 兼三才而兩之 故 易六盡而成卦 分陰分陽 造用柔剛 故 易六位而成 章 天地定位 山澤通氣 雷風相薄 水火不相射 八卦相緖 數往者順 知來者逆 是故 易逆數也 (說卦傳) 여기에 담겨진 窮理盡| '生 性命之理 陰陽 仁義 三才 등의 어휘들로 보 아서 泡儀時代의 글이 아님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글이 孔子 의 作으로 보기에도 너무 시대가 내려오는 감이 질다. 적어도 窮理盡

性 仁義 등으로 보아서 孟子 이후로 그 시대를 늦추어야 하지 않을까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庵儀氏의 作으로 간주되는 說卦는 어떻 게 이해하여야 할 것인가. 說卦表直說에 따르면 〈說卦方位之序 唐處 之所不易〉이라 하였는데 說卦方 1幻 字의 본문은 다음과 같다. 帝出平震齊平興 相見平離 致役平坤說言平免 戰平乾勞平次 言平良 이는 所謂 文王八卦方位라 칭하는 자로서 宋의 郡康節에 의하여 伏 橫八卦方位로 改作됨으로써 많은 문제를 야기시킨다. 다음으로는 이

어서 〈說卦物象之名 卦德之分 夏商之所不改也 〉 라 하였는데 소위 卦德! 을 다룬 본문은 디음과 같다. 雷以動之 風以散之 雨而潤之 日以垣之 良以止之 免以說之 乾以君之 坤 以藏之 이로써 茶山이 이른바 古文은 方位 卦德울 논한 두 부분이요 孔子의 傳文은 위에서 이미 적출한 一, 二, 三절과 또 〈自萬物出平震……銃 成萬物也〉까지의 五, 六절이라고 茶山은 지적하고 있다. 이를 적기하 면다음과같다. 萬物出平震 袁東方也 齊平興 異東南也齊也者言萬物之潔齊也 離也者明 也 萬物皆相見 南方之卦也 聖人南面而聽天下 開明而治 蓋取諸此也坤也者 地也 萬物皆致養焉 故曰致役平坤 免正秋也 萬物之所說也 故曰說言平免 戰 平乾乾西北之卦也 言陰陽相薄也 次者水也 正北方之卦也 勞卦也 萬物之所 歸也故曰勞平次 長東北之卦也 萬物之所成終而所成始也 故曰成言平良 神 也者妙萬物而爲言者也 動萬物者莫疾平雷 燒萬物者莫疾平風 操萬物者莫燦 平火 說萬物者莫說平澤 潤萬物者莫潤平水 終萬物始萬物者莫盛平長 故 水 火相速 雷風不相浮 山澤通氣 然後 能變化 匠成萬物也 이를 茶山은 此孔子傳文也(說卦表直說)라 하여 孔子의 저작으로 보 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이 발견된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說 卦表直說에서는 〈自萬物出平震 止匠成萬物也〉까지를 孔子傳文이라 하 였는데 說卦의 注에서는 〈萬物皆致養焉故 El 致役平良〉과 8 컵 E 秋也萬 物之所說也〉의 사이에서 이르기를 십二章蓋古文 此以下夫子之釋義也〉 라 하였으니 도대체 어느 쪽이 옳은지 이를 구분해서 알아낼 수가 없 다. 文脈上으로는 說卦表直說이 옳은 것으로 여겨지지만 일단 여기서 는 이를 賊疑로 해두기로 한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乾健也 坤 )I 傾也 震動也 撰入也 次路也 離麗也 良

止也 免說也났근 朱子도 〈 八卦之性情 〉 이라 했듯이 卦象과는· 구별되며 茶山의 주에서 〈袁罪 以下與序卦之言卦德者同 〉 이라 했듯이 物象論的 說卦의 本義와는 디소 엇나가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說卦古義를 담은 본문은 다음 〈乾爲馬 坤爲牛 震爲龍 興爲鷄 次爲家離爲維 長爲狗 免 爲 〉 에서 비롯하여 그 이하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듯 古文의 說卦와 孔子의 傳文이 서로 뒤섞여 있어서 이를 구분 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태임을 짐작하게 한다. 이는 茶山의 말대로 深 密體究할 과제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說卦傳아야말로 茶山이 이른바 易理四法 중 物象論의 기준이 되는 자로 象數學의 근간이라 이를 수 있다. 그러므로 說卦物 象에 얽힌 여러 가지 과제가 있으나 그 점에 관하여서는 易理四法울 논할 때 다시 다루는 것이 합리적일 것 같으므로 이를 뒤로 미룬다 (『易理四法 』 「物象편」 참조) 제 7 절 家象傳 孔子十翼의 列에 끼여 있는 家傳과 小象傳만은 유일하게도 원위치에 그대로 수록되어 있을 뿐 아니라 오직 象象傳에 관한 한 茶山으로서도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의 저자 및 저작연대에 관한 문제만은 다론 十翼에서와 조금도 다름없이, 우리들이 풀어야 할 과제로서 그대로 남는다. 이상과 같은 논술들을 종합하여 本章의 결론을 내린다면 첫째, 총체적으로- 보아서 『周易』의 내용이 다양하기 때문에 先人의 편저를 그대로 믿지 않고 이를 과감하게 재구성하였다는 점을 지적하 지 않을 수 없다. 그 내용인죽 本章의 一節에서 七節까지에 걸쳐서 약 술하였기 때문에 거듭 이룰 논하지 않거니와 어쨌든 『周易』의 면모를 일신한 것으로 평가하지 않울 수 없다.

둘째, 孔子十翼說울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 울 수 없다. 茶山은 비록 비판적인 입장에서 孔子十翼說울 그대로 수 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의 일부가 孔子의 손에 의하여 저 술되었다는 점을 인정함으로써 孔子十翼說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떨쳐 버리지 못한 아쉬움을 남겨놓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또한 孔子十翼 의 漢代著作說에 대한 지렛대 구실을 하게 된다는 사실도 여기서 상기 해 두지 않을수 없다. 셋째, 재구성된 茶山易을 총평하자면 古易의 神秘主義的 易理에서 탈피하여 卜策學的 自然主義에 입각한 易學으로 再定立하였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곧 曆數學的 易學의 定立울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하여서는 따로 章울 달리하여 논구하기로 한 다.

제 3 장 漢易의 이해 神秘主義的 易理論에서 탈피하여 日月代明 四時相推의 自然易法(太 陰曆)에 기초한 曆數學的 先秦古易으로 回歸한 茶山易을 이해하기 위 하여서는 漢代에서 魏晋을 거쳐 宋明代에 이르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던 모든 易理의 변천을 대강이라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茶山易 의 위상은 다름 아니라 이들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정립되어져 있기 때 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漢代라 하면 秦漢에서 宋明이전 魏晋시대에 걸친 多樣한 易學을 폭넓게 가리키고 있다. 제 1 절 漢易의 계보 漢代易學을 이해하자면 우리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茶山의 다음과 같 은 글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鏞 周易免於秦火 經文無缺 操漢書所論 商襲以降 師承不絶 降及九家 名聞轉燁 其訓話義理 宜若無器 胡乃傳聞各殊 秉執相件傅會察堅破粹繼燒

誠不足以建一統於來世 然 因其賤經 尋 其門戶 庶可以 達 於 周 奧 而斯文不幸 有所謂王弼者起 以私 意 小智 掃 蕩 百 家 凡自商팰以來 相承相傳之說 盡 行珍 滅 滅卦變 滅交 變 滅互體 滅物象 滅交易 變 易 滅反對牌合 塞衆妙之 賣 開池 濁之源 以陰善其玄虛沖漠之學 而 擧 世池池 奉爲至 言 登不唯哉 ( 易 學緖 言 李鼎祚集解論) 이 글을 분석해 보면, 첫째, 秦漢 이래 古易은 師承이 不絶하여 商 뿔 이래 荀九家에 이르기까지 傳承에 찰못이 없었다. 둘째, 魏晋時代 에 이르러 소위 王弼에 의하여 易理四法에 기초한 曆數學的 易理가 전 멸하였다는것이다. 그렇다면 易學의 傳受者로 알려진 商뿔란 어떠한 인물인가를 잠시 『史記』 儒林傳의 기록으로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自魯商뿔 受易孔子 孔子卒 商뿔傳易六世 至齊田何字子莊 여기서 우리는 孔子-商뿔一田何라는 易學의 傳受系譜롤 얻게 된 다. 그러므로 田何이후 易學系譜롤 적기하면 다음의 도표와 같다. 이들의 易學 내용을 알기 위하여 『漢書藝文志』에 실린 이들의 저술를 적기해 보면 다음과 같다. 王同의 王氏易傳二篇. 楊何의 楊氏易傳二篇. 服生의 服氏易傳 二篇. 周王孫의 周氏易傳二篇. 蔡公易傳二篇. 丁 寬 의 丁氏易傳二 篇 易經十二篇에 대한 施 뿜 孟喜 梁丘賀 등 三家의 章句와 그들 의 易傳各二篇이 있는데 여기서의 易經十二篇이란 易의 上下經과 十翼울 合하여 漢大易經을 정리하여 章句와 해석을 내린 것으로 이해된다. 王同系의 易學과는 별도로 漢元帝 때 京房(同名二人이 있으니 荀九家節에서 後論함)은 梁人魚延 壽 의 易說을 계승하여 일파를 형성하였다.

元王瑾奭孫玄融: 賀壽:

馬衆京房 g& 嘉 費 直 陳王鄭荀 鄭 (兩漢 書儒 林傳에의함)

이는 漢代에 성행한 陰陽災異說울 강조함으로써 田何의 十翼派와 구별된다. 그러므로 田何易은 도덕적 해석을 존중함으로써 儒家易의 주축을 이룬 반면 京房易은 漢代 識緯災異說的 미신으로 타락한 자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저술로서는 孟氏京房十一篇과 災異 • 孟 氏京房十六篇이 있다. 漢代易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에 費直이 있다. 그는 田何와 京房 과의 사이에서 비록 注釋書는 남긴 바 없지만, 家象緊辭文言에 의하여 易의 經文울 해석함으로써 災異說的 京房易에서 벗어나 經學的 儒家易 으로서의 면모를 갖추도록 한데 큰 공을 세운 자로 평가되고 있다. 費直系로서는 王瑾 陳元 鄭衆 등이 있으나 남겨논 저술이 없고 馬鄭 荀三家에 의하여 계승되었으니 馬融의 易傳九卷 鄭玄의 易注九卷 荀奭

의 易注十八卷이 곧 그것이다. 이렇듯 대체적으로 災異說的 京房易과 經學的 費直易과의 대립된 배 경하에서 茶山은 다음과 같은 견해롤 피력한다. 其中 荀奭處翻二家之說 多合經旨 蓋易學三十菊令家 其集大成者九家也 九 家之中 其集大成者二家也 若使李氏 廣取二家之說 以建門戶 署存諸家之 舊 以知源本 j!JJ九家之學 眞得不亡於後也… (李鼎祚 集 解論, p.1 4) 이로써 茶山은 漢代易學三十餘家 중에서도 특히 荀奭 處翻의 二家의 說을 多合經旨라 하여 높이 평가함과 동시에 荀九家의 설도 일단 주목 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러므로 절을 달리하여 이들의 易學을 살펴 보기로하자. 제 2 절 荀九家의 易學 여기서 거론된 易學三十餘家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子夏 孟喜 京房 馬融 荀奭鄭玄劉表何姜 宋表 處翻 陸 續 干寶 王肅 王弼 姚信 王撰 張瑠 向秀 王凱沖 侯果 蜀才 醫玄 韓康伯 劉毗 何安崔慣 沈 盧氏 崔銃 孔類達 (易學緖言卷一, p.1 3) 이 중에서 荀九家를 추려내면 다음과 같다. 京房 馬融 鄭玄 宋哀莫翻陸續 姚信 醫子玄 荀奭 (上소 書 , p.1 4 ) 이 중에서 〈荀奭虛翻二家之說 多合經旨〉라 하여 荀奭虛翻이 漢代易 學울 대표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二家之

說의 배경이 되어 있는 荀 九 家 의 易學울 이해하자면 이룰 구성하고 있 는 人的 상황에 의하여 파악함으로써 비로소 그의 전모를 알 수 있게 될것이다. 1) 京房 : 漢易에 있어서의 京房에 同名二人이 있음은 이미 위에서 언급한 바 있거니와 한 사람은 田何系의 楊何로부터 易울 전수받은 京 房으로서 그의 易學은 義理訓話롤 주로 하여 오로지 人事만을 說한 자라는 점에서 孟喜系의 京房과 구별되는 자이다. 소위 孔子十翼도 田 何一楊何—京房의 선에서 이루어전 것으로 간주되며 그의 緖統은 梁丘 賀 에게로 이어진다. 또 디론 사람은 孟喜갓精食-京房으로 이어지는 자 로서 京氏易으로도 불려지는 자이다. 孟喜의 易은 梁丘氏流와는 달리 독창적인 陰陽災變說에 근거하고 있다• 이는 漢代에 있어서의 象數的 周易解釋學의 효시로서 오히려 訓話義理的易學에도 깊은 영향을 미치 었다. 후에 無 贛 이 孟氏易의 災 變 說을 계승하여 이를 占侯易으로까지 전개시키었고 京房이 이를 이어받았다. 京房의 본성은 李氏이나 京씨 로 자칭하였고 자는 君明, 後漢代에 이르러 京氏易으로 거론된 자만 해도 戴 愚 鄭玄 등 二十餘家에 이르고 있으니 荀九家의 京房은 곧 이 룰이름인가. 2) 馬融 : 字는 季長,後漢代 訓話學의 通儒. 門下에 盧植 鄭玄 등 大儒를 배출. 孝 經 論語 詩 易 三禮 尙書 列女傳 老子 淮南子 離駿의 注解와 賊碩 對策遺令 등 21 篇의 著述이 있고 周易馬融章句十卷이 있 다. 그는 費氏의 古文易울 전수받았다. 3) 鄭玄 : 字는 康成. 京兆에 있을 때 이미 京氏易 公羊春秋 三統曆 九等術 등에 通晩하였고 三年간 馬融에게 師事하였다. 上命이 있으 나 언제나 사양하였고 末年에 大司農울 지냈으나 稱病辭退七四歲에 沒 하였다. 平生 著述에 專念하였으니 周易 毛詩 儀禮 禮記 論語 孝經 등 을 注有후하였고 尙書大傳 尙書中侯 乾象曆에도 注를 달았으며 天文七政 論 魯禮諦給儀 六藝論 毛詩譜 駿許|眞五經異義 答臨孝存周禮難 등 百餘 萬言의 저술을 남기었다. 그의 易學은 象數的 互體 父辰說로서 馬融의

太極~t辰說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으며 이는 陰陽五行說的 認 _ 緯術에 도 능한 京氏易과도 깊은 관련이 있음울 알 수가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아니라 현 존易經의 본문에 象象文言傳울 붙인 체재는 언제 누구에 의하여 이루 졌는가 하는 데 대하여 기 )費直說 L) 鄭玄說 'C)王弼說 등 세 說이 있 다. 이는 孔子 十翼說과도 깊은 관련이 있으므로 이를 署述하면 다음 과같다. 기 ) 費直說 : 費直說의 근거는 漢書儒林傳에 〈費直治易 亡章句 徒以 家象緊辭十篇之言 解說上下經〉에 두고 있다. 이는 傳으로써 經울 해 석하자면 반드시 傳울 經에 합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나온 설이지만 따 지고 보면 費直은 단순히 家象緊辭롤 사용하여 經義를 해석했을 따름 이요 家象文言울 經文에 삽입시킨 것은 아닐 것이다. 니 鄭玄說 : 魏志 高貴鄕公紀에 따르면 〈高貴鄕公問曰 孔子作家傳 鄭玄作注 難聖賢不同其所釋 經義一也 今家象不與經文相連 而注連之何 也 易博士淳于俊對曰 鄭玄合家象於經者 欲使學者尋省易了也〉라 한 것 울 보면 鄭玄注本에 의하여 이미 家象傳울 經文에 붙인 체재가 갖추어 진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鄭本에는 文言傳이 아직 經文 안에 들어 와 있지 않고 王弼本에 의하여 乾坤二卦의 經文 중에 들어온 것으로 되어 있다. 디 王弼說 : 王弼本온 鄭玄本울 보완하여 鄭玄本에서 乾卦 以下經 文에 붙여진 家象傳울 나누어서 각 卦父마다 따로따로 붙였을 뿐 아니 라 文言傳도 현존 注疏本처럼 만들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세 가지 설 가운데 費直說온 부정적인 반면에 鄭玄과 王弼 은 相互補完的이면서도 王弼에 의하여 현존체재로 완성이 되었다고 해 야할것이다. 4) 宋哀 : 字는 仲子. 費直易의 마지막 繼承者로서 그의 易學은 鄭玄

易에 가깝다고 한다. 一 面 楊雄의 太玄經에도 정통하여 荊州玄學과도 상통하는 바가 있다. 그러므로 父祖 이래 荊州와 연이 있는 王弼의 家 學은 宋哀의 영향이 없지 않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의 周易注十卷이 있었으나 散亡不傳한다. 5) 虛翻 : 字는 仲翔. 吳의 易學者로서 孟喜系의 易울 傳授받은 것 으로 되어 있다. 벼슬은 刑曹 騎都尉 등을 거쳤으나 자전 練爭으로 放 逐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때로는 방기되었을 때에도 典籍으로 자위하 였고 設象하여 吉凶을 占치기도 하였다. 그의 易學은 陰陽消息 升降上 下함으로써 卦를 논하고 消息卦變 發揮芳通 升降 互體 등의 說울 전 개함으로써 象數學의 정립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여전다. 그의 저술 로서는 周易日月變例六卷 易律曆一卷 周易集林律曆一卷 등이 있으나 모두 더失不傳한다. 이 밖에 楊子太玄經注十四卷 論語注十卷 孝經注 老子注一卷 등이 있다고 하지만 이들도 또한 亡 1失 不傳한다. 6) 陸 續 : 字는 公紀. 吳의 易學者로서 32 세로 요절하였으나 博學多 識하여 天文曆等에도 능하였다. 易學의 계통을 따지자면 虛翻과 더불 어 親交를 맺은 사이로서 孟喜京房系의 易學을 계승하였기 때문에 宋 哀의 太玄經注에 대하여 불만을 표명하고 있는 까닭은 宋表이 太玄經 에 대하여 지나치게 기울어 義理만을 중시하고 占莖方面은 등한시할까 해서 그랬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므로 陸氏易學의 大要는 動것의 설과 卦父의 變 과 發揮芳通에 있다는 것이다. 7) 姚信 : 字는 元直 또는 德裕 吳興人으로서 吳의 太常卿 벼슬을 지 냈다. 그는 陸 續 의 外蝶으로서 陸氏易과 깊은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그의 대요는 虛翻의 易에 가깝다. 그러므로 그의 易은 乾坤致用卦象 芳通 九六上下를 말한다. 그에게는 易注外에 士緯十卷 姚集二卷 등이 있다. 8) 薔子玄:未祥 9) 荀奭 : 名은 詞 字는 慈明. 荀卿의 十一世孫. 그의 易傳은 交象 承應 陰陽變化의 義를 밝히고 있으므로 荀奭易의 大要는 升降 卦變울

특색으로 한다. 그러므로 荀奭은 費直易을 祖宗으로 삼고 있으나 孟氏 易도 兼有하여 各家의 易說을 수용하려고 하였다. 이처럼 荀九家는 後漢의 費直系로서 馬融 鄭玄 宋哀 荀奭과 孟喜系 로서 處翻 陸續姚信 京房이 (醫子玄은 未祥)左右 나란히 침여하고 있 음을 볼 수가 있다. 전자는 荀奭이 대표하고 후자는 處翻이 대표하여 二家之說울 형성하므로써 漢易이 義埋 訓話와 함께 象數學으로서의 발 전을 기약하게 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이러한 荀九家의 易울 茶山은 어떻게 정리하였을까. 제 3 절 李鼎祚集解論 唐代 李鼎祚의 周易集解本은 漢代易學의 보존을 위하여 절대적 공헌 을 남긴 사실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로서 李氏 자신의 易論이 따로 있 어서가 아니라 따지고 보면 三十餘家에 이르는 漢代易論을 집대성했다 는 데에 그 공이 지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茶山도 이를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當時漢魏諸儒之說猶有存者 李鼎祚 權其彌久而彌浪也 於是 抄採名論 爲此集解十卷以胎後世 其功誠大矣 雜其零文斷簡不相統合而其微言妙旨 時 有間見 則周鼎殷葬 藤光菜然 終非牙郞廣物 所政比擬 其中 荀奭 與翻 二家 之說 多合經旨 蓋易學三十餘家 其集大成者九家也 九家之中其集大成者二家 也 若使李氏廣取二家之說 以建門戶 署存諸家之舊以知源本 則九家之學眞得 不亡於後世 今也不然 同一接例之學 而此桑用侯果說 彼桑用蜀才說 破碑離 析 未有全體 本欲諸家之並存 實令諸家而盡破斯可恨也 然 卦變交變之法 互 體伏體之例 交易變易 反對伴合之妙 無一不露其約班 又如坤初積善之說 中 字九二善應之解 尤超絶百家 契合千載所拳拳服廣者也 今之學者誠欲學易 唯 取李鼎祚集解十卷以爲扶鹽 又就其中 擇善而固執之 則庶平其得之矣

이렇듯 漢易 이해의 절대적 敎典으로 평가한다. 그러므로 여기에 동 호자를 위하여 茶山의 周易四墓과 李鼎祚集解本과를- 대비하여 一表를 작성함으로써 漢易 이해에 一助가 되게 하면 다음과 같다.

卦名 原文 漢易 解說 評定 §乞 初九 崔慣 九者老陽之數 動之 所占 故 陽稱焉 此 案 若云九者陽數之極而謂之初九Jj l j至坤而 解也 不通矣 十者陰數之極 何不曰坤初十 易詞 墓 此乾之括也『交初變』 菩 卦第一 盡 三掛之策 實 皆得天數 『 一三五七九 』 日初九也巧여參故』 此義 干寶 陽在구J]九 十一月 之時自復來也 陽在九二 也

自臨來也 陽在九三自泰來也 陽在九四 干賓 自大壯來也 陽在1tJi 自夫來也 稱自 案 孔子釋元曰大哉乾元萬物資始 復卦之謂 復 也 釋亨日雲行雨施品物流形 泰卦之謂 自臨 也(泰之兩互則有次雨) 釋利曰保合大和 來如 不言所利 夫卦之謂也(免爲和爲言爲利) 推移 之法 差爲 未程

여기서 崔慣은 九者老陽之說과 九者陽數之極說 중 전자를 취하여 茶 山의 九六說울 뒷받침해 주고 있다.

乾 |九三 “ I' 骨陽至三 二變成離 陶烏 B 坤爲夕 此義 釜 下卦位離也 離則爲日 故 初爲日出二爲皆非 日 中 三爲 日 夕…萬位旺終 日 之夕矣

陽至三 二變成離나 離爲 B 坤爲夕은 易理에 근거가 없다. 그러므로

茶山은 伏體說에 의거하여 下離日 上坤月說과 初日出 二爲日 三位日夕 說을 내세움으로써 處翻설을 반박한다.

乾 九五 處翻 謂四己變則五體離 離爲飛 不言 五變 去 0 云 四變 其義 非也

九五라면 五變이어야 하는데 四己變이란 어디에 근거한 것일까. 여 기에 袁翻의 잘못이 있다.

乾 用九 劉哉 總六父純陽之義 故 曰用九 旦六 案 蔡以此爲乾之坤 則六 盡 己純陰矣 盡不 墓 此乾之坤也 菩卦十八變成卦之時 其十八 可曰 卦之策 皆得天數 則六位盡變 此之謂用 六父 九也

劉球의 六桑純 F옳 은 이미 桑J{ l j變象이므로 六父純陰이어야 옳다. 그 러므로 用九는 乾之坤이므로 坤則純陰이 아닌가.

乾 萬物資始 荀奭 六十四卦萬一千五百二十策皆始受于乾 此善 猶萬物之生票于天 言易 也 案 乾復一陽是己 p人乾 墓 說卦傳曰萬物出平震復之一陽 萬物之所 爲始 資始也 猶之 未精

萬物의 生이 震으로부터 비롯한다는 점에서 易의 陽動說的 입장을 이해할 수가 있다. 이는 老子의 柔弱說과 대조를 이룬다. 그런 의미에 서 荀奭의 이해는 정당하나 始受于乾이 아니라 出平震이어야 함을 지 적한 茶山說도 음미함직하다.

草乞 雲行雨施 虛翻 己成節齊 上次爲雲 下次爲雨 案 己成節齊者 一二三奇偶奇爲離 四五六偶 奇偶爲次 是銃濟之形 隱然在乾卦之中也 節齊上次 又有互次 故 云下次爲雨 妄 陰不得陽 不成雲雨 坤之時有陰而己 爲 復臨以至於泰 則陽乃交陰 陰以袁發 此雲行而雨施也

處翻은 이미 伏體로서의 次形울 이해하고 있다.

草乞 大明終始 侯果 大明 日 也 六位天地四時 大明以豊夜爲終 始 案 大明者日也 冬至陽終一陽始生 大明終 始也 極平夏至乃成六陽 六位時成也 釜 大明者日也 冬至之時 日惡極南 日暑極 短 於是 終而復始 至於夏至 月1j 日隱極北 日暑極長此大明終始也

견해를 같이하고 있으나 侯果는 畫夜롤 終始라 하였고 茶山은 冬至 와 夏至롤 終始로 간주한 점에서 그 뜻을 달리하고 있다.

乾 大人造也荀奭 大者首事造制 大人造法 見居天位 聖人 作也 案 大人造 聖人作 當是一義 蓋云開物成務 築 離則爲化 造者化也 大人造者聖人之變4 t 也 又造猶作也 策文化與作相近

荀奭의 大人造聖人作으로서 그의 조작설을 받아들인 반면에 鄭玄의 作起 造爲說울 반대한다. 셍店찮昇注聖人作 作起也大人造 造爲也 O 案 作造也 鄭義非.〉

乾 不見是 崔恨世人難不己是而無問 崔義 案 蓋己之所抱極是極正而見屈於世 最是問 露處然而無問乃君子也 極是 釜 興德不壅風以散之 故 其象爲無問也

崔情은 論語의 〈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平〉나 中庸의 〈君子依平中庸 逐世不見知而不梅 唯聖者能之只룹 옳게 이해하고 있다.

乾 同聲相應 虛翻 雷風相薄 山澤通氣 同氣相求 案 大有自姬來 活將爲逐風山備矣 夫由大 壯 雷澤具矣變化升降以成大有 相應而 相求 釜 大有之卦活夫其本也 風雷相會 同磐相應 也 四正之卦火天其類也 火天相遇 同氣 相求也

莫翻說이 옳다.

坤 i申元 九家 萬一千五百二十策 皆受始于乾由坤而生 易 案 :t申元者始 一陰是已 萬物受生之理 活復皆同而乾 道爲父 故日資始 坤道爲母 故日資生 墓 坤元者始也 始之一陰生於地底 此坤土之 本也 象萬之生根皆着土 萬物資生也

乾은 資始하고 坤은 資生한다는 점에서 九家易은 그 뜻을 같이하고 있다.

坤 | tJJ六 뀜 | 占變故有찾 緊曰찾者言平變者也 故 易 案 I 緊如辭此正皆稱義赫九六 R □ 也日 星 後世猶復澄梅 何哉

여기서 우리는 干寶의 交變說의 正論울 확인할 수가 있다.

坤 積善之家 虛翻 謂初乾爲積善 以坤才t F易 滅 出復震爲餘慶 몇說 必有餘慶 謂東北喪朋乃終有慶 蓋此 震仁允義積而爲乾 維以坤i肖 必以復生 意 故曰必有餘慶

莫說이 옳다.

坤 | 積不善之 莫翻 坤積不善 以臣試君以乾通坤極始生興 虛說 家必有餘 爲餘秩 蓋此 秩 案興邪良小 積而爲坤 誰以乾興 必t).姑消 意

故曰必有餘映 築 | 乾以復始 袁仁免義 積之至六 積善之家 也 坤以始始 不仁不義 積之至六 積不善 之家也 |意

虛說이 옳다.

坤 臣試其君 處翻 坤消至二 良子試父至三成否 坤臣試君 子試其父 案 如此正義今復澄時何哉 策 歸疑銃固 乃散販惡 則爲逐爲否 臣試其 君 爲ffe l j爲坤 子試其父 陰;疑之禍 不其速 矣平

虛氏說이 옳다.

坤 一朝一夕 虛翻 剛桑爲朝柔桑爲夕 此義 案 凡卦皆下離上次 離者畫也次者夜也一 터 F 也 朝一夕者一重圭낸 l 釜 下卦位離離則位盡 上卦位次 次則爲夜 一朝一夕者卦之謂也

畫의 象은 伏體의 次離에서 취해야 함에도 불구히코. 剛柔것에서 취한 虛氏설은 잘못이다.

坤 | 暢千四支 1 ~~ 良爲兩肺 興爲兩股 虛義 案 比自復刺來 良手震足是四支也 操 姜 復之震足 泉 l j之良手 移之爲比 則次血流

LJ : I通 美在其中 而暢於四支也

良手袁足이니 處氏의 良興四支說은 근거가 없다.

屯 盤匡 荀奭 盤桓者動而退也 案 屯自觀來 U:.之一)動而退也 釜 盤桓者覽者之行也 卦自觀來興之兩剛 其象股也 移之爲屯 則一股受病 一股獨 行 盤桓之行也 臨之袁足 一病一行亦此 象也

荀奭의 해석은 옳지만 取象의 근거를 대지 못한 홈이 있다. 茶山은 이를보완하고있다.

屯 乘馬班女 o 處翻 班蹟也 案 班還也 墓 班者還也 節自泰來 柔來乘乾是乘馬也 屯自臨來 臨之兒女 依然復還 乘馬班如 也

茶山은 虛氏의 班蹟說울 班還說로 수정한다.

屯 | 十年乃字 | 虛翻 1 :磁辰也 離爲這 釜 字者乳也 臨之兒女不以坤字 進而爲泰 猶不受卒 女不字也 移之爲節 則離腹乃 大 良孩是産 於是平 字育也 兩互爲願 自 良至震 又重始之周而復始販數滿十 十

LJ I; ;;二::: 鬪鬪 女之貞也 亦 I

茶山은 여기서 處氏의 字姬姬說을 字乳說로 수정하고 十年說울 보완 하고있다.

屯 gp鹿無處 虛翻 民爲山 山足稱麗 築 節齊自泰來 免澤震林 坤臣居之 其象虛 也 移之銃濟則次鹿在前 乾王往從 是卽 鹿也 林澤之地 遂無坤臣 1 田無處也 處何 去也 泰之三陽 是本震林 坤之一陰入干 此中 唯入于林中也 外作截荒 亂之本也 個而無虛王親卽鹿 其無害平 離伏戈兵 次隱弓替幾可長也

莫氏의 山麗說은 근거가 없다. 鹿은 處侯卽鹿의 사슴이지 山麗이 아 니기 때문이다.

屯其 虛翻 次雨稱音詩云陰雨蒼之 蒼 釜 觀之坤田 震苗方生而離以唄之 田其魚矣 當此之時 次雲在天 音澤將降 其跋望何 如也 詩云亢亢黎苗 陰雨背之 此之謂也 變而爲 1i ff l j坤德咨薔 次雲全消 屯其背也屯者咨也

여기서 虛氏는 次雨稱蒼라 하였는데 이는 망설이다. 왜냐하면 次雲 全消라야 屯其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家거 童蒙求我 處翻 二 體師象 煥說 案 卦自臨觀來 大篠老師也 大長童蒙也 {驛 釜 卦自臨觀來 臨爲大震 師長之卦也 觀爲 卦形 大良弟子之卦也 易例內卦爲主 我者 r裝 恐未 師自謂也 師不往敎 區我求也 唯彼良童 允 自來求師童蒙求我也

處氏說은애매하다 .

需 有字 處翻 大壯四之五 五降 蜀才 此本大壯卦 六五降四九四升五 四升 案 九六者老陽老陰之名 不當 釜 卦自中字來 中字者大離也 移之爲需 離 言六 誠亦字需有字也 九

蜀才說에서 六五九四云云한 것은 잘못이다. 九六이란 交變의 象이 기 때문에 升降할 수가 없다. 蜀才는 父變說울 몰랐을까 ?

큼pLT\ 室湯 虛翻 避之二也 蜀才 此本逐卦三降居二 案 松又自中字來 故 曰松有字 釜 又自逐來 逐之時 離位虛中 上長天命 其 心楊也 移之爲松則次剛中實 敬以直內 奎楊中也

虛氏說蜀才說皆是也

松 三百戶 處翻 坤爲戶 三交故三百戶 此義 築 邑人者坤民也 否以泰交 泰fliJ上坤 地數 非 十也 交之爲否 否又下坤地數十也 以十 乘十 其數百也 上接互興興爲三倍 其數 三百也 荀當民門 三百戶也

虛氏의 三父三百戶說은 잘못이다. 茶山은 三百戶의 근거를 따로 例 示한다.

~iji 丈人吉 崔恨 子夏傳作大人 竣 師貞者軍旅之事也 謂凡軍旅之事 唯丈人 爲吉 O 卦自復泉 l j來 復一陽丈人也 泉 l j一 陽小人也 軍旅之事有進無退 師退則知其 敗也 師進則知其氣壯也 刺一陽退而返 內 此小人之敗事也 復一陽進而向外 此 丈人之圓功也 故曰軍旅之事 唯丈人吉 出師而遇是卦 未必皆吉 所任者是君子平 師必有功 所任者是小人平師必誤事 若以 年齒.Qlj少年之將不如宿將 此之謂丈人吉

崔恨이 子夏傳作大人說을 따른 것은 잘못이다. 李鼎祚도 子夏傳울 따르고있다.

師 I 剛中 蜀才 1 幻澤卦 上降二 二升上 不言 築 二五相與剛中而應也 復卦

曰五驛 地水師로서 二五相應함으로써 剛中의 象을 얻는다. 蜀才의

泉 l j卦說은 刺卦에서의 上降二上하여 復卦에서의 一升二降은 취하지 않 고있다.

師 師左次 崔情 偏將軍居左次 常備師也 藥 左次者退師也 解自小過來小過之時 震師 出外 良以爲次 移之爲解月 1 j師退一舍 次 以居之師左次也

崔情說은요령부득,

比 原莖 蜀才 此本師卦九二升五 蜀才 案 但云自刺不云自復 又却云此本師卦 可 推移 平 之法 墓 原莖者再莖也 菩卦之法 八卦而小成 此 亦亂 初莖也 因而重之乃得外卦 此再莖也 再 矣 莖得次原莖而貞也

蜀才는 九二升五에서 九의 父變울 간과하였고 推移法 중 一陽之推移 는 自泉 l j自復이어야 함에도 불구히코. 自{fo l] 만을 취하고 自復의 象은 취 카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

小畜 密雲 袁翻 免密次象半見故密雲 築又自夫來 夫之時次塞其下 不能成雨 今 下물距줍而又上壅 不能成雨 是密폭게 而 不雨 也 陰在天上 視次稷密 非密雲平

虛氏說은 옳다. 茶山은 여기에 또 다른 象을 보완 예시한다.

反目 九家 四互體離爲目 案 反目者誤也 兩互作卦 其卦揆也 築 疾自中半來 中字之時 震夫異妻 良夫免 妻 嘉會以合 相見平離 情志交半 間門雍 睦 移之爲揆則兩目之間 一硬中橫 次疑 成疾 閩門乘庚 良免 震 興互相陰産 難有 兩目 不得相見夫妻反目也

小畜의 互體는 三三 三四五로 離目象이 있으나 小畜의 兩互作卦로 얻어진 映三三象에서 비로소 反目의 象울 얻게 된다. 이 점에서 荀 九家易理는미흡하다.

履 素履 虛翻 興爲白故素履 釜 松自中字來 中字之時以籍節烏治上下相安 移之爲松則內亂粹作 君子外逐 遂以興 隱 非禮不履斯何象也 履自姬來 興吾素也 松自逐來興吾素也 我以撰隱 是素履也 以素履往又誰씀焉

素는 白이 아니라 吾素의 素다.

履 幽人 虛翻 麟二在次獄中故稱幽人 但松 案 幽囚之爲幽人可備一義 今人以山林處士 時二 爲幽人 慣見習聞 反以虛說如奇J{ l j誤矣 字不竣 幽人者幽隱之人也 中半之時 本以免幽 可解 移之光妄 遂以興隱 是幽人也

處氏說은 기이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泰 財成 虛翻坤富稱財 衆人以財 故 成天地之道 鄭玄 財節也 案 財與裁通 乾衣坤輿 卽裁輔之象也 釜 下乾則伏離 以離刃而흡 l 殿衣 謂之裁成也

虛翻의 財나 鄭玄의 節이나 다 잘못이다. 財는 裁이기 때문이다.

否 茅 處翻 莊相索引之魏 釜 升自臨來大震之仲有乾三育 其象茅也 移之爲升則大震之 #l 忽高三寸 茅之拔也 出自地底 其根遂露 拔茅莊也

處氏說 이 옳다.

泰 城復于隆 處翻 否良爲城 築 大畜自 中半來 良城之下 免澤爲阪 其象 陸也 移之大畜則良城忽類 下壤免池 城 復于陸也 外郭難好 國何輯焉 築城之法 堀土爲城 因堀爲陸 故 城之銃崩 下頃其 陸此其象也

虛氏의 良城說이 免澤에 의하여 隆象이 된다.

I 同A I 柔中 得位得 1 蜀〈 此本絲仁升上 上六降二 曰

案 1 但言夫卦 不言藍卦 易學 ~ I ffi之時 柔不得位 夫之時柔不得中 移之亦疏 爲同人則位與中皆得矣 矣

蜀才의 九六升降도 잘못이려니와 夫活推移에서 始卦가 빠진 것도 잘 못 0] 다.

同人 1 同人于野 日起翻 乾爲野 麟案侯 果 卦九自二夫升來上 爲邪野 是同人于野 麟

九升上이 아니라 卦自夫來라면 上之二가 된다.

同人 伏戒于拜 異爲伏 袁爲草 離爲戒興爲拜 釜 無妄自中字來 大離之兵 兩敵相對 移之 無妄ff l J震草之¥f, 兵乃退伏 伏戒于拜也 佳芸蒼箕 其象拜也 興爲潛隱 其德1 犬 也

是也

同人 三歲不興 崔情 _桑爲一年 自三至五 顔遇强敵 案 一交爲一年則須有十桑乃爲十年 將若之 何 釜 不興者乾敵不興也我以震起 敵安能興 操說卦方位 自乾至良 捨過三宮 始逢震 起 須過三歲『每以一宮當一歲』 始可發動 三歲三興也

崔情의 一交一年說은 잘못이다. 說卦方位에 의하면 自乾至良이 1 合 過三宮이다.

同人 1 乘興庸 | 虛翻 興蔚庸 撰爲號桃 乾爲邪 釜 家人自逐中字來 大興股也大離塘也 移 之家人則遂以興股踏此離防 乘起蒲也

虛氏說은不知何說

大有 姚規 互體有免 免位在秋 人富有也 釜 大者陽也 有者不亡也 卦自括來一陰難 微 其勢必長 爲逐爲否 陽將盡亡 移之大 有Jl l j柔自 內往 乾陽復完 於是平陽存 此 之謂大有也 又有者富有也 豊年五穀登熟 謂之大有

乾陽復元이 大有의 本象이요 在秋富有之象도 大有之象이다.

大有 大車 莫翻 乾爲大車 案 說卦坤爲大輿 次爲輪爲輿而己 天體圓轉 亦有車象故謂之大車與 釜 離自大壯來 自復以來袁接蕃鮮 至於大壯 麟免秋則是 XI 提션t 岸乾大車 뻗年之象 也 移之爲離則兩離之牛鷲此乾車 大車以 載也

虛氏說是也

謙 |謙亨 “ I彭 城蔡景君 說刻璃후 築 剛自上來 離位光明 剛自下升 震道前通 其占亨也

是也

謙 地道卑而 麟 此本泉 l j卦 乾之上九來居坤三是下濟也 坤 上行 之六三 上升乾位 是上行也 案 下濟者刺上之三也 上行者復一之三也 윷 復之一,옳 本居地位 升而上之 中成震道 地道上行也

侯果之說 半是半非也下濟者是也 上行者非也

謙 鳴謙 姚信 麟善鳴 築 升自小過來 小過之時 君子在上 震以鳴 之 移之爲升則降而自卑 遂成興讓 是鳴 謙

姚信之說是也

豫 I 朋譯 | | 小畜免爲朋 益合也 撰舊讀作点釋也 侯 朋從大合 若以管蔡之固括也

[i I 廊 I] 之小人 今爲君子復之君子 往而相會 朋之合也 良冠t先合 災竹中橫 朋窟智也

處翻侯果之說要領不得

隨 |剛來 “I 否乾璋之坤구JJ 築 剛來而下柔者否之上剛 降而在初也

虛氏說近理

隨 出門 鄭玄 麟日門 此邪 墓 小過之時 下良門也 良之小人以門爲限 說也 與震爲敵 不肯相交 移之爲莘 Hl j良之小人 出其門限以與震交 出門交也

處氏說非也

壘 {邊 壘惑젊 L 也 C 洋鼎祚云案尙睿大傳云乃命五 容 史夫書五帝之壘事 釜 卦自泰來 乾壤其下 坤壤其上此怪壤也 又以長女稅彼少男 此盤惑也秋風所限 山木盡落 此壘蛇也 物壤則筋所以爲事也 以物象Jl lj 興木爲蟲 故風字從蟲 卦有下興 所以壘也

伏是容之說 是也 但 取象未治

壘 先甲三日 子夏 先甲三日者 辛壬矣也 後甲三日者 乙丙 案說 丁也 皆不馬融 甲在東方 良在東北 故云先甲 興在東南遠而 故云後甲 不中 墓 卦自泰來 泰有互震 居卦中央 所謂甲也 擔說卦方位 自震而逆 歷良與次 乃得至 乾 先甲三日也 自震而順 歷興與離 乃得 至坤 後甲三 日 也 泰之爲卦 乾在袁先

子夏之說은 十干說에 의한 자로서 소위 漢代納甲說이라 古易과는 무 관하다. 馬融說은 說卦方位에 의거한지라 茶山은 이룰 不遠而不中이 라하였다.

壘 |剛上 “ I祠 칵 顯止 坤上之初 故柔下 築 剛上而柔來者 謂自泰卦初往而上來也

泰J]之上(虛氏說)은 곧 築에서 이른바 泰卦初往而上來다.

壘 利涉大),, 九家 乾天有河坤地有水 九家案 自一升上 明有大次之/I I 何患平無水 之器 釜 泰之乾人 早活震舟 移之爲壘愛得興風 如此 涉此次 I| 登彼良岸 利涉大川也 矣

荀九家之說不明

臨 | 八月有凶 I 莫翻 I 與逐芳通 臨消於逐六月卦也 於周爲八 | 此解

月 逐試君父故有凶 極是 ~ I 八月者周正建未之月也 易有三易 一曰反 今復 易如臨之反爲觀也 二曰交易如臨之交爲 梅矣 莘也 三日變易如臨之變爲逐也 臨之二陽 今街菱長 若至逐卦之月Jl l j二';;i肖亡矣 故 曰至于八月有凶

十二群卦進退消長表에 따르면 逐은 六月卦다. 處氏說은 이룰 의미 한다.

臨 甘臨 處翻 免口坤土作甘 姜 坤土震核 販味作甘 免啓其口 以臨其民 此甘臨也 亦又何利 食官汚吏唯祿是甘 競然臨民者有此象

處氏說是也

觀 盟p人不菌 馬融 盟者進爵潘地以降神 虛翻 盟沃盟也 良手臨坤器 次 7k 沃之 盟之象 也 孔子曰諦自銃盟 吾不欲潘之矣 案 以潘爲盟 論語之 }}lj 本也 築 卦自大良良爲宗廟 興爲潔濟 下陳坤性 祭祀之象也乃互良之手 上當次 7k 以興 潔之 潔手曰盟也 坤牛在下 未及受射 是 菌血熊炯窟執之禮 皆未及行也 故日盟而 不蔣

馬融之說 非也 ri EI 潔手曰盟也이기 때문이다.

觀 童 觀 處翻 長爲 童 案 觀爲大良故取象如此 築 益自否來 袁 之君子本自上 堅 此大臣失位 遠 於乾君也 乃乾君下觀 視爲良 童 是 童 觀也

長童說是也

觀 閩觀 李鼎良爲門朋 女目近門 閩 觀之 象 也 f作 竣 淡自否來剛之銃移 乾君旺沒 罪妃在上 而長門之下 次盜 隱 伏 興白之眼 從門隊 而嶺視非 閩 觀平

良門之說亦是也

唯陸|剛柔分 I 處翻 此本否卦 築 否之時 陰陽各栗不相鎌雜 今乃分之 剛 柔分也

是也

p麟 p輝滅 鼻 良爲 廣 爲 鼻 案 乾爲帝jl l j坤爲 廣 也 墓 卦自否來 凡柔 畫 此坤 虐 也 否之時 長J{ l j 爲 鼻 二人匠 變 離刃用法 良 鼻 遂滅 此唯 廣 減 鼻 也

良府 良鼻가 아니라 坤府 良鼻가 옳다.

實 I 柔來而文 荀奭 此本泰卦 責卦 剛 築 泰之時 下乾太剛 上坤太柔 今一陰來而 推移 成離 此柔來而文剛也 最明

是也

賀 實其須 侯果 二在願下須之象 築 大畜自大壯來 大壯各人兄也 免口之上震 草鮮 此談毛也 移之大畜 實 然有容實其須也

侯果之說不明

實 實于丘園 荀奭 良山震林 良手 虛翻 興爲用爲繩 良手持故束用 之說案 物十曰束坤之數也 未允 釜 家人自逐中半來 逐者隱逐之士也 中半者 丘園之卦也 陰道浚長 君子外走非隱逐 平 長山之下 震木蕃鮮 非丘園平 移之家 人離禮燦然實于丘園也

荀奭의 長山震林說은 옳다. 虛氏의 長手說은 옳지 않다.

I果 ij I圖 기 티 :驛 ,蔡之下 屈ilj相近 申則相 I I

崔.,景 1 虛言걱燁 當在第足之間 是林座也 釜 辨幾者興滅也 泉 IJ 自活始 括之時 興ff l J爲 股 二其辨也 始之將泉 l j也 興股先滅 以成 逐卦 刺之六二 卽其跡也 故曰泉 l j之 刺林 以辨幾也

鄭玄崔情之說皆不明

泉 l j 貫魚 虛翻 異爲魚爲繩 何安 f/< I J之爲卦 下比五陰 耕頭相次 似貫魚也 築 觀以升交次水之下興魚潛伏 交之爲觀則 震兒釣 興繩高擧而魚亦以升 是貫魚也

虛氏說是也

1 復 出入無疾 虛翻 出震成乾 入罪成坤 十二i肖息 不見次象 此義 故出入無疾 極 釜 一陽之卦必得次疾 故師謙豫比皆不免焉 今 1夏 唯刺與復終不成次 此無疾也 又天行自復 麟 爲臨爲泰歷六位而至乾 終不成次 爲婚爲 逐六位而至坤 終不成次 今而後來復 出入光疾也

袁氏說온 十二群卦進退消長之法에 의거한다. 茶山의 此義極是는 이 때문 01 다.

復 | 七日來復 | 虛翻 | i肖乾六交爲六日 剛來反初故七日來復天 1: : 行也

1 謀 I 五月天行至午 十一月天行至子 凡歷七月 故曰七 8 來復 詩曰一之 8 二之日 案 | 李鼎祚分卦直日之法 除次震離免四方之 卦其餘六十卦三百六十父 以配於三百六 十 日 遂以此法釋七 日 來復

分卦直日法에 의한 七日來復說은 잘못이다.

1 墓 步頁復 虛翻 顔盛也坤爲十年 釜 顔者盛也 大雅之云國步斯顔是也 明夷自 小過來 小過之時震主~tfiE 出在良疆之外 北國盛也 移之爲明夷則震主退步 反平良 疆之內 外國拓疆國步斯顔 是類復也

顔整之說是也

無妄 剛自外來 蜀才 此本逐圭卜 案 中字小過集解諸家絶無用之者 蓋由再閔 之義本不明也 墓 剛自外來者逐之移也 來而爲震 爲主於內 也

是也

光妄 | 不耕稷 | 莫翻 I 有益耕象 無坤田 故不舞 震爲禾核 良爲 手禾 在手中故稱稷. 田一歲日蕃 二三歲 曰會 初桑非坤故不薔而會也

築 I 自括夫來 夫則興未向上 地不破魂 是 不耕也 移之爲履遂以免銃 )(I J此 震 核 不耕 稷也

未)祥

無妄 勿藥 處翻 興爲木良爲石故稱藥 案 良石김賤문 築 自始以來連用興藥 三濟1Y1效 將以良死 移之唯陸興藥遂滅 是勿藥也

虛氏의 民藥說은 잘못이다. 異藥說이 옳다.

大畜 岡止而尙 蜀才 此本大壯圭卜 不言 賢 案 岡1l.t而尙賢者 自大壯之象也 中半 釜 剛上者大壯之移升也 大壯之四 本以사한졸 疏矣僞升於高位非尊賢平

是也

大畜 輿說輯 虛翻 乾爲輿 閉i祚 輯車之g句 1 心奭軸之物 藥 實自泰來坤爲大輿 乾其輯也 剛衆爲圓 其象腹也 移之爲實則抽其中剛 載之輿上 輿說輯『說音脫』

乾爲輿 非也 坤爲大輿也 乾爲輯也

大畜 童牛之特 處翻 良爲童坤爲牛 撰繩綠 長木橫著牛角 故 日童牛之特 築 四變爲離 離則爲牛 本由長成 是童牛也 民之堅木 橫拘其首 童牛之特也

坤爲牛非也離爲牛也

大畜 積家之牙 崔1 景 說文積劇家 今俗呼猶劇猪是也 家本剛突 刺乃性和 雜有其牙不足害物 案 說文積者翔家也 翔者課羊也 課者稽馬也 棟者乘牛也 蝶禁翔積皆去勢之名 又案 爾雅稽積之注曰俗呼小積 猪爲稽子 疏云 積健猪也 或以蝶健作强健之畜 蓋畜類其 强健難制者必去其勢 義得相通也 釜 積釋家之樓也 五變爲剛本以次位 今又 中剛 家.ff l J家矣 其下無陽 是積家也 遂變 爲興爲繩 緊之震木以爲牙杖 積家之牙也

積家者去勢者也

大畜 何天之衛 虛翻 何當也 王弼 何辭也 策 大壯之時 震爲大途 其象衝也下有乾天 天之衛也 移之大畜則忽以良眉荷 此震道 何天之衛也

何當 何辭 非也 何荷是也

頭 觀 侯果 此本觀圭卜 案 不言臨卦惟逐文以求解 墓 卦自觀來可以觀也 本以隱士 下就坤養 唯視禮親此觀願也

臨觀之推移에서 不言臨卦는 侯果의 未安處다.

願 舍爾靈龜處翻 晋離爲龜 四之初故舍爾靈龜 初本五也 處氏 侯果 長爲山龜 自五降初月 1 j爲頭 推移 案 願自晋來Jl l j衍卦皆粹卦也而可平 之法 藥程子 El 龜能明食 不食靈龜 ,兪其明智可以 亂矣 不求養於外也 周禮天龜曰靈 靈龜者大龜 也 通卦爲大離 離則爲龜 此靈龜也

晋卦三五에서 願三드로 推移한다면 그것은 粹卦 없이 衍卦끼리 推 移하는 셈이다. 다산이 莫氏推移之法 亂矣는 이를 두고 이른 말이다. 離爲龜의 象온 虛氏는 晋의 上卦離에서 취하고 茶山은 願의 大離象에 서 취하였다. 靈龜는大龜니 후자가옳지 않을까.

大過 老夫女妻 莫翻 乾老故稱老夫 上免爲少女故曰女妻 初興 不知 爲婦乾爲老故稱老婦也 大壯震爲夫免爲 父變 少故稱士夫 不知 墓 震販 是老夫也 上配免女老夫得其 牌 女妻也 柏楊生稀 非是象平 故其 誤解 如此

處氏說不知何說

次 險旦杭 處翻 杖 'U k 也 良爲止 此皆 干賓 杭安也 言 安忍以上暴政加民 强解 案 此句 當朋疑 築 險古作檢 檢者束也 杭與祝同 緊家之杖 也 次家相逐 其勢容突 三之t況變 束以興 繩 緊之震木 檢旦杭也大則制小人當如 是 小JI lj 爲莖性之占也 若以爲杭席之杭則 文不合理不可讀也

不知何說

次 橋酉篇武 處翻 震主祭器故有樓篇 次爲酒 築卦自臨來 大袁之槍 上受次酒櫓有酒也 變而爲困月 1l 震墓之上 免食有綴 墓有食也 館食之禮 醉食以酒 是篇武也

次酒說是也

係用徽 處翻 罪爲繩 次多心 故穀隸獄外種九練 李鼎 周禮 王之外朝 左九隸右九隸 面二棟 司 i作 窓公卿 議獄於其下 害人者加明刑任之以 事 上罪三年而舍 中罪二年而舍下墨一 年而舍 劉表 三股爲徽 兩股爲濕 皆以繁總罪人 釜 i吳自否來 良之小人罪惡銃積 坤國之內次 律宜正也 移之爲淡則興繩下施 次法是揆 良手袁足 威被拘係 入于大離之獄 係用 徵也

處翻 李鼎祚 劉表 등 不知何說 不知 推移 物象 故也

離 離麗也 荀奭 離亦爲g,j離 炯缺飛升 炭灰降瀋 是其別 此曲 離也解也 案 離者腐也 佳也 B 中有點故稱火鳥 築 麗者權也 雙丙爲目 鹿往離之 如於網也

離非別離離者裁也

離 1 明兩作 |虛翻 1 或以日與火爲明兩作 釜兩離之間 隔之以次夜 兩日相繼也

虛氏說誤解也

日長之離 荀奭 初爲日出 二爲日中 三爲日昊 案 此易之大例金石之典也 今亦脇味 何以解 矣 築 下卦位離故易例 初爲日出 二爲日中 三 爲日快 本以離卦 今當三桑 日炅之離也

荀氏說是也

三::::댜而剛下也 □

蜀才說是也

咸 門戈其揮 1 處翻 良爲指 坤爲掃 I 非也 墓 撮者足之將指也 革自大壯來 剛自下升 感其震足咸其掃也

虛氏說非也

咸 나촌口舌 1 處翻 勝送也 |恐非 案 勝腹相近故有是訓也 釜勝者誘也 柔自下勝 揚其口舌 勝口舌也

勝送說非也勝者騰也

逐 逐 虛翻 長爲尾 案 麟其勢上指 良毛其勢下垂 故震爲首而 民爲尾 如震爲蕃而良爲根 釜 同人自活來 活之一陰 逐之尾也

良尾說是也

逐 肥遷 虛翻 乾肥 案 乾則爲群安得肥也 釜 咸自否來乾馬外走 其骨脣肅 移之爲咸 則得以免口 食먀 U 撲草 乾骨之外坤肉厚包 此肥澤之象也 本以서距壓今爲肥馬 非肥逐 平

乾肥說非也

〔二二追而上行也 □

是也

明夷 I 明샤也中 | 蜀才 1 此本臨卦 築 卦自小過來 陽自上落入于地底 明入地中 也

非也

家人 莫翻 避l]之四也 案 中字小過卒無用之者 釜 卦自中字來 中半者誠也 又自大興來 大 興者齊也 移之家人 離興如 舊 旺誠身矣 始可以齊家也

逐J]之四 是何義哉

誤 ” I 꾹之 無妄二각i也 無妄二之五 故而上行 案 | 柔進而上行者 中字四之五也 莫氏謂無妄 二之五其推移之法亂矣

~ I 柔進而上行者中字之移也 進而居五 是得 中也 二岡旺려: 上下應也

處氏 不明推移 故 有如此說也 柔進而上行者 非無妄之移也 是 中字之 移也

揆 I 其牛擊 I 虛翻 1 牛角국氐一仰磁釋 築製者奉制也 兩離之牛 一在輿前 一在輿 後互相奉製其牛製也

製者 非一低一仰也 製者奉制也

揆 版宗 n 麟 處翻 乾爲宗良爲背坤爲鬼 案 背字從北 次之象也 萬物生平袁而死平良 良者鬼也 釜 乾 I J爲父 父黨爲宗 履者夫來 夫之時 宗 人在下 羊虐在上 移之爲履則乾宗開口 羊慮內入 販宗JJ1i)흡也

長背 坤鬼說 非也 背者次之象也 鬼者長之象也

塞 1 利西南 며:' 觀뵤亡也 釜 卦自小過來 居中兩剛 本得坤卦之中 四 之銃升又得坤中 坤位西南 利西南也

處氏說非也

解 I 利西南 I 處翻 广옮구J)之四 良爲孤 離爲 卑 築 卦自臨來 剛往坤方 得其民而爲主 利西 南也

是也

1員 損下益上 蜀才 此本泰圭卜 築 卦自泰來乾君損富以益坤民 君道之吉也 本由震始 善之長也 以卦位則損下而益上 也 以卦象則損君而益民也 損君益民故其 占吉也

是也

才貝 惡念奎怒 虛翻 乾陽剛武爲念 坤陰咨薔爲欲免說故悠念 良止故奎欲 釜 卦自泰來 乾性太岡iffl l j易念 移之爲免說者 澤水之澄定也 坤性太柔則多悠 移之爲良 節者 山土之室過也 此之謂悠念 室欲

虛氏之說近理

損 | 三人行 1 ~ 1 泰乾三交爲三人 損구JJ之上故損一人 釜 卦自泰來 泰之三陽同以袁行 三人行也 行之至三損其一陽 三人行而損一也

處氏說是也

益 I 利有枚往 1 虛翻 否上之初也 築卦自否來柔往得位 遂成興利 利有 1 炤任 也

是也

夫 克陸 荀奭 克者葉柔而根堅 旦赤克根小 陸根大 處翻 克讀如苑 爾之苑陸 和陸也 此强 婆 五之變爲震 震則爲韋 時當三月生於免澤 解 其象克陸也

兩人之解無理

to I 包有魚 I :IM I 興爲臼茅 箕爲魚 釜 下撰魚也 二之t況變 遂成大興 大興之茅 包此興魚包有魚也

處氏說是也

井 |改邑 ”|祠각i也坤爲邑 藥卦自泰來 泰之坤邑 有徒有改 其改邑也

是也

袁 袁森蘇 虛翻 死而復生稱殊 築 殊者絶而復續也 盟有泰來 三剛皆袁也 移之爲盟剛乃中斷 雷聲之中絶也 乃中剛之出於外者 又成一袁 雷聲之復起也 兩 剛遂連 雷聲之連續也袁雷之聲 每 E 冠色 復生 初銃一,息 絶於二位 離電燁然 至於 三四 鳴而又鳴 震森森也

死而復生者 絶而復續也 是故 虛氏說 是也

良 |長其限 I 處翻 1'朗 肉 墓 良其限本象也觀之時 坤之疆土 漫無界 限 移之爲良 限域分明 長其限也

近理

廊閣心 虛翻 良爲閣 閣守門人也 次望動門故廊閣心也 古閣作黨字 馬因言薰杓其心 未聞易道 以次水薰杓人也 荀氏以薰作動 皆非也 案 虛說亦不明白 築 坤國之內王綱委地 一剛孤升 高而無位 腐執基焉 震之君子憂心如擬 蕙傑穀滅 鷹心也

是何說也

浙 I 女歸 “I 否三津離쭈 墓 浙之進也異於他卦 他卦以升僞進 此卦 以來爲進女歸之象

浙之進也 以來爲進說이 돋보안다.

歸妹虛翻 泰三之四 免爲口 乾爲衣故稱快 釜 歸妹者以兄而採妹也 卦自泰來 泰之時 父毋供存 袁兄免妹在其懷中 移之爲卦則 父母供沒 震兄免妹分體各立 於是平採之 矣 免女在內良增外至 嘉會以合禮 次以 歸之 婚姬之象也 以其義則泰者天地之交 也 今又天氣地體互相交與 交構之象也 諸家說易 皆以震男配于免女 非其配也 傷倫[孛理 不可說也 自泰來者 是也 然 免 口乾衣非婚姬之象也 盟 日中見斗 虛翻 良爲斗斗七星也 築 日 中者離位當中也 斗者北斗四星也 卦自 泰來 泰之時 離之太陽其體正圓 移之爲 鹽則太口入日 醫然侵食而太陽之體黑陰 在中 匡郭猶白日食之象也 斯何故也 剛 往爲萩 遂以震蕃 豊其郁也 乾天之~t四 星慕落 是北斗也離以見之 星之見也本 自二移二爲日中 日中見斗也

虛氏之說不明

鹽 日中見洙 九家 大暗謂之浦洙 斗杓後小星也 釜 洙本作味土雨畫梅 日色庵味也 坤土次 雨 離日梅黑 土雨日昧是見昧也本自離 中 移之爲震 日中見昧也

九家之說不明白

禪祥 | I 今本劑禪 築 興工盡巧 離文淡然 如 班 斯飛 上當天位 尹祭翔也

是也

罪、 類興 虛翻 步麟也 案 顔者盛也詩云國步斯顔 築 顔者足盛而不前也 淡自否來否以泰交 乾剛出外 敵疆內附 移之爲漁則剛乃顔盛 遂自外入是顔興也

顔者非也顔者聲也

興 田獲三品 h回 H f 作 穀梁傳曰田獲三品 一爲乾豆二爲賓客其義 三爲充君 之庵注云上殺中心 次殺中伴 未允下殺中腹 案 三殺之形不見於圭卜象 墓 卦自中字來 次弓離戈 興離之網以適山林 田臘之卦也 亦自逐來 兼 萱 之興本一品也 移之爲興兩興又見又二品也 合之爲三獲 其所麗 田獲三品也

鼎祚之說 其義 不見於卦象

罪 先庚三日 處翻 五動成盛三三乾成于甲 緩成于庚 袁庚 也 案 庚者西方也以盤爲庚 可平 釜 卦本有免 免Jj l j爲庚 操說卦方位 先庚三 日者罪也 後庚:三日者長也 今也免之說言 正操一卦之中 先於免而爲興 後於免而爲 良 此所謂先庚三日後庚三日也

震者東方也 故 以震爲庚 非也

免 虛翻 大壯五之三也 案 中우J!lj不言 쫓 卦自大壯來 柔來成離 嘉會以合禮 其占 亨也 又自中字來 柔往成免 遂成次貞 利 於事也免則爲利

卦自大壯者是也

洪 岡lj來 莫翻 此本否圭卜 墓 剛自外來遂以次通 剛來不窮也

是也

I i吳 | 葬坦JL | 虛翻 | 次爲隸 爲喇核 麟足 良賊 操之뿜机之 象也 藥 | 才象M 机L 也通홍 良 I 壯廟之之案下也坤 牛次之受堅射 木凡上案受匠坤設肉牛 其今

LJ I ::::::次剛綜 軒復生鵬麟 I

虛氏說未允

節 處翻泰三之五 築 處氏曰此本泰卦 分乾九三上升坤五(三之 五) 分坤六五下處乾節三(1i之三) (案曰 九曰六不知桑變也)

是也

上六苦節 I 干寶 I 家稱苦節不可貞 指此父也 築 中半者大離也炎上作苦 此苦節也

是也

中半 藤魚吉 虛翻 良爲山脈所處 免爲澤魚所在 藤者卑賤 魚者幽隱 中信之道 皆及之矣 築 內外齊潔中以離半 祭祀之卦也 卦以大過 交易三三 大過之卦通體爲次是爲大家 下興上興亦有魚梵 交而中~JIJJ魚維如舊 昔之大家今爲小猿 家小日脈 祭之所蕭脈 魚而己 性墓之薄莫此若也 誰然大過之時 誠信未字 今也大離之誠虛中以治 中銃半 矣難脈魚而亦吉

虛氏說非也

中字 鳴鶴在陰處翻 震鳴 離爲鶴 次爲陰 夜鶴知夜半 윷 離爲飛鳥 中字者大鳥也 器爲潔白 其象 鶴也 兩口相向兩震對鳴 和鳴之象也 其 變爲益 坤Jl l j爲母 毋鶴之鳴也 免澤在北 水南曰陰鳴鶴在陰也

處氏之說未允

中字 有字崇如 處翻 異繩良手故華 築 華手曲也 五之銃變良腕遂折 其象競也 一肺誰折一賊尙完 ,I 寺以爲手 左右相救 有字崇女 n 也

虛氏說未允

小過|翰音 :!M l 回禪 麟音 翰高也 禮鵬꿨縣織音 築 卦大過交易 大過之時興難在下三三交而 易之 興難커矣; 難曰翰音

興說是也

小過 | 飛獻遺之 | “ I 晋上之三 離去晋在 音 釜 願爲大離三프是飛鳥也 交而過之則飛鳥 銃去震聲猶止遺之音也

處氏說非也

小過 I 有飛鳥之 1 宋哀 1 二陽在內 上下各二陰 有似飛鳥舒翻之象 象築 象者魏像也 中二剛似腹背 上下四陰雙翼 外張飛鳥之象也

宋哀之說是也

節齊 虛翻 泰五之二 侯果 此本泰卦 釜 卦自泰來 柔降得位 遂以嘉會 其占亨也

是也

統濟 婦喪其弗 虛翻 弗髮謂裝髮也 次爲玄雲故稱炭 俗說以爲 婦人萩漆之弗非也 築 那者車之後萩也 卦有次離 離其婦也 泰 之時 坤輿之後 震竹以萩 其象那也 移之 節齊則盜麻其那 離乃露面 婦喪其那也

那裝 非也 邦者車之後萩也

節齊 伐方 莫翻 坤爲鬼方 乾三之坤五 故伐鬼方 釜 觀lj大良在~t 其名爲鬼 鬼方之國也 移 之爲屯則剛乃~tfiE 伐鬼方也 次之罪惡 震凡聲之 聲罪 El 伐也

坤爲鬼方 非也 大良在北 鬼方之象也

槪濟 京顯文牛 處翻 泰麟東免爲西坤爲牛 墓 明夷自小過來 震 者東隣也 亦自臨來 免 自西隣也 大次之矢 寒殺坤性 東隣殺牛 也

處氏之說是也

未濟 “I 否二후. 良爲尾 釜 炎上者在上 潤下者在下 太陽不!,힌 雲雨 不誘 物不相涉 萬化不興 所以爲未濟也

虛氏說未知何說

緊辭 1 三極 麟 | 此三才極至之道也 初四下極二五中極 傳 案 | 三三上極上無極正也解 旦當開疑

陸續之說非也本無定論

千里之外 虛翻 謂二變Jl l j五來應之體 益卦坤數十 震爲百 此解 應之 里 十之千里也外爲震興同聲相應 故千里 極解 之外應之 還爲坤 坤爲順二變順初故 況 其還者平 案 眞所謂潔靜精微易敎也 金複梅味 何哉

是也

千里之外 處翻謂變體刺試父試君 二陽肥逐則坤違之而 此有무 違之 承於五 故千里之外違之 況其造者平 非也 案 初變體刺者中字之互 實爲願卦 頭之初變 其體刺也 ff,: I j由逐進故遂云陽逐 察堅如此 其誰信之 此王弼之所以起也

處氏說非也

□ 禪 門築 長良門爲開門閉故 曰樞機 麟麟瓚 □

是也

其吳如蘭 |“I 興爲蘭 釜 本以震草 雜以異芳 其象蘭也 興}l l J爲吳 其吳力 n 蘭也

興爲蘭 非也 震草興芳 其象蘭也

祠 1 大衍之數 「? 衍合也 此義 傳 五十 崔恨 良爲少陽其數三 次爲中陽其數五 震爲長 非也 陽其數七 乾爲老陽其數九 免爲少陰其數 二 離爲中陰其數十 興爲長'案其數八 坤 爲陰其數六, 八卦之數抱有五十故云 大衍之數五十也 不取天數一 地數四者此 八圭卜之外大衍所不管也 案 日칸毒九少陽몸七老陰六少陰八 非可惡空說

菩卦之數 參天兩地 故一 盡 三撰之時 一 得奇少得偶者爲少陽七 一得偶再得奇者 爲再陰八 三操皆奇爲老陽九 三撰皆偶爲 老陰六 今以三子三女稱之以長少陰陽 已 是無稽之言 況於老少之外생! 加之以長陽 中陽之名日七曰五 强配以數 登不霧哉 大衍之卦五十故曰大衍之數五十 皆强解 築 | 大不衍可招恐也균 卦之謂也 六十衍卦之中 十二群 卦配之於四時 中半小過配之於再閔 餘五 十卦周人謂之大衍 盜謂此五十卦者皆受 變於十四卦而衍之爲卦也 故 El 大衍非五 十卦之外 別有所謂大衍者存焉

干寶崔情之論非也

其用四十 崔慣 四十有九者法長陽七七之數焉 著圓而神 崔說 有九 象天 卦方而智象地 陰陽之別也 捨―不用 未允 者以象太極虛而不用也 李說 李鼎 其用四十有九者更減一以俳五 備設六桑 尤不 祚 之位 著卦兩兼終極天地五十五之數也 可解 太極包五十全體 不可抽其一策以當太極 釜 其用四十有九者 菩之德圓而神 七七四十 九圓而不方 無以半分無以四破 無以六 解 無以八勢無以十析 亦無以三分五破 故特以是爲著策之用數也 然其體數則五 十也 五十之中任抽其一除之爲起數之本 則五十之策未當不全用也

不可解

二篇之策 侯果 六十四卦 陽桑一百九十二 每父三十六策 바계 : 合六千九百二十二 每桑二十四策 合四千 義也 六百八策 則二篇之策合萬一千五百二十 當萬物之數也 案 解以九六銃如此 解以七八 亦其數 同也 築 六十四卦其陽盡 一 百九十二 皆以老陽之 九而乘之以四 則每一 盡 得三十六策 合之

爲六千九百一十二策也 其陰 盡 亦一百九 十二 皆以老陰之六而乘之以四 則每一 盡 得二十四策 合之爲四千六百八策也通計

陰陽父之所得 則其策爲萬一千五百二十 皆所以求一交之 變 者也

侯果之論是也

如響 |王弼 1 王弼禪隣 婆 受命如需멜讚홉通』 無政意優 猶有不受天 之祐平

王弼說非也

I 易有젝& I “미 擇法乙也 疆却璃生禪也 四象四 | I 時也

案 | 太極兩儀四象皆撰菩之名 太極者太一之 形 兩儀者兩合之儀 四象者四時之象 炭 氏直以天地爲兩儀 四時爲四象 非矣 儀 者徹也 象者撲狀也뾰實體之謂平 [i I 太極者五十策之未分者也……太極者六 十四卦之圓固無glj者也 …• •• 極也者屋極 之義屋極者屋育也 一棟爲之育而衆才角分 出 亦猶大衍之策爲之極而兩儀四象 皆於 是平分出也

太極者非太乙也 太極者五十策之未分者也

河出圖洛 鄭玄 春秋緯云iiiJ以通乾出天包 洛以流坤吐地 出書 符 河龍圓發洛龜書成 河圓有九篇 洛耆 有六篇也 孔安 河圖則八卦也 洛書.IIlj九璃也 國 侯果 聖人法河圖洛耆 制易象以示天下也 侯=說 案 河洛皆易象之本 後世別以洛書爲洪範之 是也 本無枚操也

鄭說 非也 孔安國說 亦非也

服牛乘馬 虛翻 否上之初也 坤初之上爲引重乾上之初爲 至這 案 弓 I 重致遠似相換說 妄 卦自否來 坤牛之後新鷲震車 是服牛也 乾馬之上愛載坤民 是乘馬也 物莫重於坤 土而引之至於上頭 此引重也 道莫遠於境 外而致之來於國內 此致遠也

是也

重 r, 擊相 九家 下有良象從外示之 震復爲良 兩良對合 易 重門之象也 案 泉 I j是外門 豫作內門 是重門也 築 卦自泉 I j來 泉 I] 之時 良城之門販在坤邑之外 此只是外門也 移之爲豫.ff l J長城之門密還 坤邑 此重門也 震 木爲斗 其德善鳴 析之 象也 愛以良手操其坤柄 于以 擊 之長門之 上重門之神也

是也

上古穴居 虛翻 無妄兩易也 無돛乾在上故稱上古 案 兩易者交易之謂也 群卦無所從來故多取交易反易之象 然以乾爲上古 恐未必然 釜 卦以逐反 逐之時 或於長山之穴興入以伏 或於良邑之外乾人露處 此穴居而野 處也

以乾爲上古恐未必然

古之葬者 目葛翻 中半上下象易也 本無乾象 故不言上古 案 大過非牌卦 不必取交易象

釜 卦自逐來逐之時乾人民死

中字交易 大過也 大過非粹卦

上古結繩 處翻 履上下象易也 乾象在上故復言上古 案 所言難未必合理 猶皆以前卦爲古 築 夫者活之反也 始之時 下異爲繩 進而爲 逐 又進而爲否爲觀 每得一繩以良手而拘 結之此結繩而治也

上古說亦未必然

二麟 1T 環云螺蹴也 □

是也

中찾 崔 1 景 上旺具論初上二찾 次又以明其四찾也 崔說 李鼎 子냐性短 E 弼義以此中桑爲二五之찾 必不 是也 i作 然 上論初上二父則此中總言四찾矣 下 論二四三五月lj是重述其功位者也 案 上찾云其初難知 其上易知初辭擬之 卒 成之終

李氏說難解矣

I 人 m 广雪::二尸跋卜莖也 人댜庶 I

朱氏說是也

說卦 水火不相 李鼎 身寸眼也 傳 射 祚 案 其性相反猶不相眼也 築 火行地中 阪有溫泉 水受火氣 乃長仲木 是水火不才目數也

是也

三 謂乾消 從午至亥 上下劇頓也 □

是也

知來者逆 李鼎 謂乾息 從子至巳 上下故逆也 祚 案 十二卦消息之形 彼此酷肖以彼爲順 以此 爲逆 恐不合理 數往者 )l 頂 此是對擧說 非 易家之所知也 築 自初數之 以六爲上 此逆數也 自活至坤 自復至乾 其陰陽消長 每自下達上亦逆 數也

順逆者對擧說也

帝距震 |” | 帝者天之王氣也 至春分則袁王而萬物出立 齊興 生夏則興王而萬物緊齊 夏至ffiJ商王而

皆相見也 立秋則坤王而菓物致義也 秋分 則免王而萬物所說 立冬 H lj乾王而陰陽相 薄 冬至Jl l j次王而萬物所歸也 立春則良王 而萬物之所成始成終也 案 1 四正爲分 至四隅爲啓閉 斯Jl l j是矣

四時始終說是也

三 索求也 乾坤爲父母而求其子 □

是也

I 爲布 | 崔1 미 循布 萬物於致養 故坤爲布

坤布說是也

`e I 1 爲白故宣髮 馬君以宣爲麟 非也

是也

I 科上稿 匡미 陰在內則空中 木中空則上科稿也

宋說是也 以上에서 보아온 바와 갇이 茶山古易의 保存本으로서의 李鼎祚集解 의 분석에서 漢易의 일면을 엿볼 수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推移 物象 父變 등의 片麟울 챙기게 되었다. 다산은 일찍이 漢易三十餘家 중 荀九家에 의하여 전수되고 荀九家는 荀奭 處翻二家에 의하여 집대성되었다고 하였지만 여기에 인용된 漢易 의 빈도를 보면 虛翻이 총 16 따{ 중 94로 서 60% 를 차지하였고 다음 으로 崔情 李鼎祚가 각각 11 항이오 다음 侯果 10, 荀奭 蜀才가 각각 8 항이다. 干寶 九家易이 각각 5 요, 鄭玄 3, 宋哀 2 로서 姚規 姚信 孔 頓達 宋仰之 伏菱容子夏 馬融 何姜 王弼陸續 孔安國 등의 이름이 각 각 1 회씩 나울 뿐이다. 이로써 李氏易은 處翻의 易울 중심으로 하여 이룰 집대성한 것으로 보여진다. 處氏는 字를 仲翔이라 하고 三團六朝 時代 吳의 易學者로서 그의 易學은 陰陽養消息 升降上下로서 卦를 논 한 점을 들어 茶山은 그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는 그가 推移法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李氏集解論에서 古易의 일면을 대강 살펴본 茶山은 그의 易學 緖言울 통하여 좀더 구체적인 비판 분석을 시도한다. 그런 중에서 茶 山易의 실체는 점차 뚜렷하게 부각될 것이다. 제 4 절 鄭康成易注論 後漢 費氏易의 大家 馬融의 세자로서 이름은 玄이며 만년에 大司農 을 지냈고 74 歲로 沒할 때까지 周易 毛詩 儀禮 禮記論語 孝經 등의 注를 저술하였고 尙書大全 尙書中侯 乾象曆注 天文七政論 魯禮諦給義 六藝論 毛詩譜 敗許愼五經異義答臨孝存周禮難 등의 저술을 남기었 다.

鄭玄의 易學의 特色은 互體 및 父辰說에 있는데 父辰이란 十二辰十 二 律 二十四 氣 二十八宿 등을 乾坤二卦의 十二것에 배당하여 작성한 象 數易의 一大組織體系를 지칭한 자이다. 十 二 辰은 十二支라고도 하는데 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로서 十二 辰은 1 년의 十二季節에 해당된다. 十二律이란 黃鍾 大呂 大篠 來鍾 姑 洗 仲呂 雍賓 林鍾 夷則 南呂 無射 應鍾으로서 乾坤二卦의 十二父에 배합하여 陰陽으로 나눈다. (이하 二十四 氣 二十八宿說은 번잡하므로 이를 생략함) 이에 茶山은 鄭氏易注論에 언급하여 다음·과 갇이 평한 다. 鏞案 鄭王二家 (鄭玄 王弼) 皆不言卦용성交變 將無同矣 然 鄭氏猶用物象互 體 王氏並二者而療之 益孟浪矣 今之學者還尊鄭氏 凡鄭所言謂不政 皆 議一字 亦~ (緖言卷-, p. 15) 이에 순위를 따라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異字論 周易의 正本이 정립되기까지에는 많은 異字異文이 생길 수 있음은 漢 文古典의 상례로서 특히 易에 있어서 尤基하다. 이에 鄭氏의 異牟論 울 기준으로 하여 원본과 비교하고 이에 대한 茶山의 四釜을 附記하여 一表를 만들면 다음과 같다.

圭沼 卦桑 上正下異 周易四婆 正 乘馬班如鹿窓 屯 /,、一_ 異 般 正 婚

異 溝 正 幾不如舍 六三 異 機 班 (0) 般 ( X ) 講 (0) 蓋 ( X ) 幾 (0) 機 ( X )

\7 送 (0) 戒 (X)

正 有字奎 鄭玄本 室作座(聲誤也) 馬融 三굽上 異 座 讀作蹟(亦聲誤) 正患至援也 九 九家易綴音除亦器矣 異 恨 上九 正 三橋之 鄭玄易 機讀作花 (鄭云得意而 異 花 顔 1 t之)大器矣 根者脫也 室 (0) 座 ( X ) }졌 (0) t졌 ( X ) 機 (0) :tt ( x )

曰王用還歐 福 (0) 鼓 (X)

三 7止

幡 (0) 壽 ( X )

三乘: 塘 (0) 庸 (X) \\〕言月::也 辨\ (0 ) 辯 (X) 〔浮多蠶 哀 (0) 浮 ( X ) 广:石 介 (0) 硏 (X) 〔實 1 六四 广「門므\〕 幡 (0) 播 (X)

,_ 曰 1榎 /、二 異 卑 古曰人當類作作銀얘) 處又鄭仲玄翔本解作類卑爲(盛或 漢儒之明於字義 往往如此 顔 (0) 卑 (X)

正 良馬逐利襄 大畜 九 異 逐 正 貞日閑輿衛 案宋本 日 作日 OO 誤也) 鄭玄 異 El 虛翻之本皆作日閑 正 童牛之特 六四

異 桂 日 (C)) 曰 ( x ) 特 (O) 桂 ( X )

EE 二〕〕禪生: I案 古文 華菩男萩並相連 華 (0) 第 (X)

正 F왔 旦杭 案玄本 險作檢 (向秀本亦 次 /,、二一. 異 檢 然) 鄭云木在首曰杭 在手曰檢(如 極之類)蓋以九家易以次爲 極桂 故取象如是 然 杭以安 首未聞其爲極桂也

險 (0) 檢 (X)

咸 |上六 三異膜 說 鄭也玄)本鄭勝云作咸勝道 極(薄炭 氏徒云送勝口者舌送 言語相感而己 勝 (0) 勝 ( X ) 舌 (0) 說 ( X )

正 I~ 菱恒 恒 | fl}六 浩井使深 B 浚 (與浦同) 異 | i瑞 浚 (0) 浦 (X)

大壯|九三 二異 壘 舊(鄭本玄風虛作翻媒本) (或王作肅本累) ( 蜀或才作本臺) 皆聲誤也 (風累本相通見井卦) 肅 (0) 壘 (X)

正 文王以之箕 明夷 異 {以 正 子以之 異 {以 /,、 一一 正 夷于左股 案舊本 夷于左股之夷 或作脇 異 膳 (子夏傳及鄭玄陸續本同鄭云 芳視曰~) 或作賊(京房本) 或無此字 (明晋王家本) 又姚 信本左股作右樂 (姚氏云自辰 右旋入丑)馬融王肅本股作般 禪也王肅云日隨天左旋)

以 (0) 似 ( X ) 夷 (Q) AA'J ( X )

映 /,、二一. 正 其牛製 案舊本 擊或作稽 (說文云角一 異 紹 f府一仰也)或作擊 (鄭玄云牛角 皆踊曰崎) 或作草(子夏傳云 一角仰) 或作草(荀奭本)總之 於象 無當也 王弼云紹瀋隔不 EJ 進也 亦非矣製者制手也 製 (Q) 1{l. (X ) 三 罪 (0) 宅 (X)

t貝 正 惡念室惑 古文徵作徵 (陸德明云徵止也) 異 徵慣 鄭玄云淸也(劉璟同) 此是正 義 (蜀才本又作槿此澄之議也) 0 又鄭玄本室作 1 質 (劉峨本亦 然)孟喜本作 1 至皆止也 (陸續本 作脣 )O又 孟喜本欲作浴 (此聲 誤) ~(0) 徵 (X) 室 (0) 慣 (X)

夫 I 九三 尸 案器鄭矣玄 ) 來本面 頃也作(須來 (面蜀者才謂本類作骨仇 也)

頃 (0) 傾 (X)

姬 正 始 鄭玄本 始作違 (馮持云王洙易 異 遇 改今文爲始)石經亦作違 (唯雜 正 諾四方 卦之文作造) 明晋王本作婦 (馮 異 誌 云婚講也)避返之追亦始字之 轉注也 ili(O ) 遷 (X) 語 (0) 話 (X)

曰 曰昇升 升 (0) 昇 (X)

困 九 正 朱跋方來 案鄭玄本 拔作跋與帝通卽萩 異 跋 勝也 (禮作碑) 左傳所云散庭 也 (杜云散韋譯) 說文臼天子 亦跋諸侯朱拔 總之爲朝祭之 服裝下之飾也 (玉溪云一命溫 跋再命赤跋) 跋 (0) 跋 (X)

hBH 九四 正 其形混 泰之時 乾首全矣 移之爲壘則 異 刑屋 良盧之下 乾首乃截其刑屋也 O 案京房易傳云刑在頃爲劇 鄭司農周禮注云屋諒릅円夷三族 (周無夷三族之法) 鄭玄本退 作劃(新唐書元載贊作刑星)

形 ~(0) 刑屋 (X)

良 九三 正 列其食 案食者維也 淮南子曰九州之 異 脈 外有八食 八食之外有J\/lt (食音 寅) 綜者大綱也食者中綱也 (在綜之內) 又食緣也 (皆邊飾 之名 )乃馬融曰食奭存骨 (馬云 分列其食則百體無以相屬)舊 本或作寅 (鄭玄云) 或作音 (荀 奭本) 或作押 (說文引易詞)食 !貴才目近故轉綴致誤也 •(O) 緩 (X)

豊 初九 正 遇其配主 鄭玄本 荊作菩 (薛仁貴本同 ) 異 妃 小席也 或云都前曲曲名『卽魚 正 覽其郁 齊』 以此織席 因以障敬 遂得 /L、..一- 異 菩 那液之名 正 聖其浦 案古文 浦作帝 (鄭玄干寶子夏 九 異帝 傳)謂之薇藤(與跋通) 正 日中見洙 坤土次雨 離日梅黑 土雨 El 昧 異 昧 是見昧也 本自離中 移之爲震 日 中見昧也 O 又接漢書洙作 昧 (馬融本鄭玄本及字林子夏 傳供作昧)服皮云日中而香也 (味微時也日微而室香) 昧者 賞也乃字林云味斗杓後星 (子 夏傳云洙星之小者)九家易亦

云(薛氏云轉星) 然雜日食之 時 小星無 豊 見之理其義非也 味與洙 籠 本皆諸聲 (字相通) 霜之謂 味猶霧之謂時也 (ffl雅 云霧謂之時)土雨曰篠 正 自藏也 上六 異 狀 配 (0) 妃 (X) 荊 (0) 菩 (X) 浦 (0) 帝 (X) 洙 (0) 味 ( X ) 藏 (0) 狀 (X)

이상의 一 覽表롤 하나로 정리하여 一表를 만들면 다음과 같다.

◊鄭玄異字一 覽表 正 班講幾送室恨撰隅璃塘辨哲裵介幡顔日特華險 異 般'꽃限花跋壽庸辯避浮硏潘卑 El 桂第檢 勝 舌浚 臘 以夷 製塀頃始諾 升跋混 食目 凍諒肺洙藏 膜說浦堂似 H弟 紹究傾遇誌昇跋屋»貴妃菩帝味狀

이렇듯 여기 對比表에 나타난 異字는 거의 그의 形態와 聲音에 의하 여 분화된 자로서 會意文字로서의 한자 특유의 문제를 안고 있음이 분 명하다. 그러므로 그가 지니고 있는 뜻을 알아내기 위하여 執是執非를 가려내기란 결코 용이하지 않음은 다시 말할 나위도 없다. 漢代 訓話 學의 최고봉을 점유하고 있는 鄭玄의 異字論도 損의 悠念과 鼎의 刑屋 울 제의하고는 거의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鄭氏의 선택이 易理法 에 충실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茶山은 주장한다. 모든 고전연구가 다 그러하지만 易學에 있어서 字義의 천명은 보다 더 중요한 것이니 왜냐

하면 易의 字義는 일반적인 字義 의에 역의 象으로서의 字義마저도 겸 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茶山이 맨먼저 異字論울 밝힌 소이도 여기에 있다 이르지 않을 수 없다.

(2) 改字論 茶山은 王應麟 (宋人 • 所輯鄭康成注 字伯厚 號深寧 1223-1296) 의 입 을 빌려 얘隨頃§詩 多改字 注易亦然〉이라 하였다.그 이유로서 〈鄭不 知卦變父變則物象無緣得合 所以多改字〉라 하여 卦父變 등 易理四法에 무지하기 때문이라 하였다. 이를 亂短行爲로 비판하면서 그 실례를 다 음과같이 들고 있다.

卦名 卦交 本文 改 坤 쿠刀 履不짬 履讀爲禮 上九 鎌陽 鎌讀如嫌古策作立心 讀者失之 作廉 (嫌雜 也) 履 M) (0) 鎌(嫌) (X)

三不寧 I讀 作曰能 (能猶安也) 能(寧) (0)

蒙 | 九二 包蒙 包當作彩債乞文也) 六五 順以興也 興當作遜 象曰 I 彩(包) (0) 遜 (C) ) 興 (X)

[ I讀 爲秀 位平天位 位音池

秀 ( 需 ) (0) 池 (位) ( X )

門荒 l i n“ 也) 康(荒) (0)

二抵 I 讀爲宣 宣 (m) (0)

二冥 I 讀爲鳴 鳴(冥) (0)

I 大畜 1 六五 1 廳책二 I 牙讀爲互 互(牙) (0)

曰祗 I 當麟(小五也) :tjf (0) 祗 (X )

晋 I 象 1 三接 接讀爲捷(捷勝也) 蕃庶 庶讀爲追 (謂蕃追萬也) 初六 I 才描如 描讀女 u 崔 捷(接) (0) 追(庶) (0) 崔(權) (0)

I 解 1 家曰 1 皆甲宅 | 讀爲解 解 (0)

三担 I 當讀爲夫三爲屋這

屋 (1屋 ) (0)

三保1JC (鼻0) 創月 I l J j{月 l jX ) l

己際 I 當爲卿丙也 療 (0) 際 (x)

異字'습에 있어서는 字體나 聲音의 類似値를 구할 수도 있지만 改字 論에 있어서는 거의 근거를 찾아볼 수 없는 주해자(鄭康成)의 독단이 스며 있다. 그러므로 鄭氏의 改字論은 王應麟뿐 아니라 茶山도 이를 부정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3) 天象論 漢代에 있어서 비합리적 天文地理說도 卦交變說에 무지한 鄭玄으로 부터 비롯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茶山은 此于九家諸易之中 最爲下乘 反不如王弼之盡掃物象也 라 하여 王弼보다도 더 낮춘 最下乘의 易理라 혹평한다. 이를 적기하 면 다음과같다•

円 父辰탸上1 m 井 井玩::織 用告

交辰在未 (0)

三 父辰在卯 春爲陽中 萬物以生 生育者隊姿之 交辰在卯 (0)

次 | 二 I: : 二;::맵:二環也 辰在丑 (0) 辰在巳 (0)

日辰麟丑上値弁星似告 辰在丑 (0)

門::酉辰:?爲股 辰在酉 (0) 在辰 (0)

三辰在午時離氣赤 辰在午 (0)

二 三辰在亥 亥釋 四辰在丑 丑爲踏鹽 三辰在亥 (0)

이는 위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鄭玄의 父辰說로서 왜 이러한 설을 내세우게 되었을까. 실로 鄭氏는 不知卦變 不知父變하였기 때문에 이

렇듯 따로 한 방법을 창안하여 억지로 物象에 뜯어맞추고자 했던 것이 다. 이는 茶山의 易理四法과는 정반대되는 易說의 하나라 이르지 않을 수없다. 4) 訓話論

圭卜名 찾名 訓話 評,金 乾 初九 拔移也(傳) 豫 九四 麟也 p麟 九四 禪也 實 九四 細왑幹也 禮臼戒事翰月 1 揮 l| 之爲幹不可也 斜 l 쿠刀 幾輕優也 刺之足幾 孔子訓之爲滅下 不容他解 復 初九 紙病也 六五 考成也 上六 內生曰借 自外 El 祥 害物曰災 無妄 謂無所希望也 大畜 上九 何庸荷之 願 染動也 咸 I ,、一一 排膳傷也 恒 上六 振描落也 晋 /I 、--_- 康尊也廣也 慈變色稅 明夷 /,、一一 懿也

家人 初九 閑習也 閑有家 本以良門 今以離防 所謂防閑不可 作閑習說 夫 九 莫夜莫如字 說文暮本作莫月 l j莫夜之겁 II 無夜不可也 無也無夜터 F 一 夜 九五 克陸一名商陸 莘 上六 自目曰i弟 自 鼻曰漁 開H 쿠話 類路也無事 曰址設陳曰 足 袁 ’亞딴樂也 十 萬曰億森森 不安也索索

猶縮縮足不 正也斐嬰目 不正也 民 九 限要也 歸妹 / ‘、·二一 須有才智之稱 免 九四 商隱度也 節齊 濟度也 未濟 洪幾

以上 鄭玄의 訓話를 열거한 후 〈漢儒話訓 各有師承 未易誓也〉라 하 여 논평을 꺼리는 태도를 취하였으나 刺 家人 實 夫 등 四卦에 대하여 는 자신의 평론을 서슴지 않았다. 후인을 위하여 여기에 표를 만들었 다.

(5) 卦象論

卦名 桑名 鄭玄論 茶 山 論 評 乾 九 利見九五之大 九者桑變之名 指剛畵而爲九者 二千年斑案 人 也 用九 六父指體乾 以薛爲桑 己非知道之 言 況乾非龍 硬爲之 群龍之象 體乾卽龍象可平 盛 甲者造作新令 先甲後甲明是乾坤 先庚後庚明是興長 之日先之三日 何與平云云 而用辛也云云 觀 互體有良良 萬物生平震而死平良 故 良爲鬼神 兼有門 爲鬼門又爲 腦之象故良爲宗廟…… 門腦至上有 木....而.. 爲鬼 F1 大畜 自九三至上 大離大次 古人所取 其驗在此不可沒也 九有頭象居 外是不食家 而養賢 童牛之桂震 字義姑捨 施桂於足 童牛其塔平 鄭之不曜 爲牛足良手 事如此矣…… 持木以就足 是施桂 逐 良爲門關互 逃去之人 有進無退 何謂進退 是逃去之象 體有興異爲 興之本德爲入爲隱 或可云隱逐之象 進君子出

門行有進退 逃去之象 井 互體離免離 朋認有 口 故 免 Hll 爲뷰瓦 離體周防 何以吐香 外堅中虛 뷰瓦 也免爲暗澤 泉口也言桂 棒弓 I 퓨瓦下入泉 口激 7k 而出 井之象 뉴n H 穆謂之練露 棒麟也 竹荀爲宅則不得復爲范菜 況又 爲竹竹萌曰 以具八珍者爲練 何若是周章平 第荀者練之 爲也練美 傑具八珍之 食鼎三足三 公之象 I 뺄 九三 折其右脈三 豊之震也 小過之時 正良倒良左右手也 鄭 良交長爲手 不知卦變桑變 硬云三爲良찾 又云右手便於 互體爲撰興 進良 將云左手不能屈伸平 又爲進退手而 便於右脈也 節齊 九五 互體爲次又 節齊自泰來 泰之兩互 原有震免 確爲東西 互體爲離離 何如是察堅哉 然 鄭不幸而不生於郡子之後 爲日 次爲月 不見泡檢氏所作先天卦位 故 離東次西之義 日出東方東隣 崎限如此 若使見之何快如之 象月出西方 西郞象

鄭康成은 荀九家의 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茶山의 物象論에 대한

理解는 〈王弼所以不服而以一藝掃之也 〉 (盟九三)의 구실이 될 만큼 불 철저한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鄭玄은 그가 비록 漢代副 I i話學을 대표 하는 碩學이라 하더라도 그의 物象論온 너무도 천착으로 일관했다는 점에서는 宋代 郡康節의 학을 衍佛하게 한다는 茶山의 批判을 받아 무 방하다고 이르지 않을 수 없다. (6) 游魂說 鄭氏易은 그의 天象論에서 父辰說울 창안하여 신비론에 빠져들었고 여기 游魂說에서 더욱 그의 신비주의적 입정을- 심화하여 緯家의 邪說 로 전락하였다. 그러므로 茶山은 鄭氏의 游魂說울 兩分하여 이를 분석 정리하고 있다• ® 精氣爲物游魂爲變 稽氣謂七八也 游魂謂九六也 ® 七八木火之精 九六金水之數 木火用事而物生故日精氣爲物 金水用事而 物變 故曰游魂爲變 游魂謂之鬼物 終所歸 精氣謂之神物 生所信也 言 木火 知神生物東南 金水之鬼 終物西北 ®은 精氣롤 七八의 本體 游魂울 九六의 變體로 간주했다는 점에서 〈必是 商뿔 費直 以來 相承相傳之古訓〉이라 하여 이룰 수용하고 있다. ®는 漢代 이후 織緯家들에 의하여 조작된 邪說이라 이르고 있다. 그러므로 易家의 游魂은 〈古人以龜莖 受命於鬼神〉하던 天命으로서의 游이지 輪廻無雙한 幽怪로서의 鬼神이 아닌 것이다. 이런 점에서 茶 山易은 언제나 神秘主義的 易理論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엿 볼 수 있다. 그러므로 茶山은 鄭氏易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 리고있다.

總之鄭玄之易 不知卦斐不知交變 唯以互體 物象 依{希說義 己不足以破群 惑而開衆荊 別又如之以袁戌 子 午之方位 天尉弁星之次舍 名之曰天象 以炭鼓 其識緯不經之邪說 其能服天下儒者之心平 與其察堅之有康 不若混池之無跡 此王弼之所以勝也 易注如此 未必詩禮之獨無紙 而今人橋托過直 凡鄭氏所 言意不政移動一字 亦過矣 (鄭康成易注論) 라 하여 鄭氏易은 半信半疑 全幅的으로 受容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러므로 鄭氏易울 過信하여 一字도 移動할 수 없다는 태도는 잘못이 아 닐수없다. 제 5 절 漢魏遺義論 茶山은 이르기를 〈漢魏諸家之說 今皆亡秩〉이라 했듯이 모두 없어전 상황에서 李鼎祚集解나 孔類達正義에서 단편적으로나마 전승되어 오 고있다. 먼저 茶山의 易理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을 살펴보자면 易之所以爲易者 一日卦용섣 二曰父變 三曰交易 四曰變易而互體 伏體 反對

牌合之等 唯變所適而後 說卦方位 物象 與之契合 而聖人之情 見平辭 易之 妙理委在於此 라한것을보면 茶山이 이미 정리한바 있는推移 物象互體 交變등 易理四法에 의한 易의 이해라 이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茶山은 王 弼易울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乃王氏之易 恐滅諸法 一不存留 而並與字諾句讀 一無提擧唯其玄虛沖漠 之學 是寫是會 기갑佳易學 無此孟浪 而凡經傳之家 名之曰藥注者 無此法式

이렇듯 王氏易은 茶山易과는 정반대되는 입장에 서 있다고 하지 않 을 수 없다. 그렇다면 漢魏諸易은 이 양자의 중간자로서 어떻게 평가 할수 있을것인가. 漢魏諸家之說 亦於卦용웅桑젖之法 半知半味 或通或塞 故 其所言 破碑察 堅不當人 意 寧以王氏之說 海全不破 爲可邦며: 然 孔氏速學足知王氏之菌 而今以撰疏之 故 推專王氏 至謂之獨冠古今 何其器也集解所列三十六家誰 祠得失 而敦諸王氏之易 皆足以臥於樓上 鳴呼 是何說也 라 하여 오히려 半知半昧하여 王氏說의 潭全不破한 것만도 못하며 集 解 중의 三十六家의 易보다도 우위로 보기에는 문제가 없지 않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易理에 관한 몇 가지 문제를 뽑아논평해 보자. (1) 易有三義說 易의 緯書인 乾堅度와 鄭玄의 易贊 及 易論에서 〈易一名而含三義 〉 라 하였는데 易簡 變易 不易이 곧 그것이다. 그러나 茶山의 易理四法 에 의하여 이를 평정한다면 易은 변화를 위주로 하는 자인 만큼 變易 의 뜻만을 취하고 不易과 簡易의 뜻은 취할 수 없음은 너무도 당연하 다. 더욱이 簡易은 緊辭傳의 〈易jt l j易知 簡則簡從〉에서 취한 易으로서 變 k의 易과는 아주 다른 자임에 있어서랴…… 그렇다면 變易의 易은 어디서 유래하였을까 易者日月也 日月者[易陰也 卦웅臣之法 陽往則陰來陰往則陽來 此日月相易 也 桑變之法 陽純則爲陰 陰純則爲陽 此日月相易也 交易之法咸交爲損 恒 交爲益 此上下相易也 變易之法乾變爲坤 次變爲離 此岡幅:相易也 經所云壤

遷周流委是此義 若所謂 簡易 不易者 緯家之器說 不足述也難易之易於易 1可 干 이렇듯 自然現象으로서의 日月의 變化를 상증한 易의 개념을 상기 乾堅度에서는 太易說울 제창하여 이를 관념화한 데 대하여 또다시 茶 山은 다음과 같이 평정하고 있다. 易之爲字 包函日月 是亦含氣之始何謂未見氣平 常怪 陳希夷太極圓 次離 相交 陰陽己著而尊之爲無形之道 其說 本於太易矣 夫謂有形生於無形者 造 化之謂也 今以太易爲生物之本 可平 王弼云帝者生物之主 緯家之說 不足 述也 이렇듯 易이란 包函日月한 자로서 〈尊之爲無形之道〉함은 緯家의 찰 못이 아닐 수 없다. 王弼은 이러한 緯家의 설을 배경으로 하였기 때문 에 易有三義說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2) 三易說 三易이란 『連山易』 『歸藏易』 『周易』 등을- 가리킨 자로서 이에는 두 가지 說이 있다. 하나는 성狂致連山 殷曰歸藏 周曰周易〉 『鄭玄易替及 易論』이요. 다른 하나는 伏樣 神農 黃帝 등 三易說이다. 그러나 茶山 은 전자를 취하고 후자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周禮太 卜 連山 歸藏 明是夏殷之易 故 孔子之宋得坤乾焉 明g밌打首坤 夏 易首良也 緯家必以二易爲神農黃帝之易 欲與伏接之易並列爲三 亦穆矣 전자를 인정하는 이유로서 殷易首坤 夏易首良울 내세운다. 坤以藏

之하고 良爲山이기 때문이다.

(3) 伏織重卦說 八卦(單卦)에서 六十四卦(重卦)로 발전히는· 과정에서 重卦가 어느 때 누구에 의하여 만들어졌느냐가 문제가 된다. 이에 관하여서는 四說 이 있는데 王弼―伏待說 鄭玄―神農說 孫盛-夏禹說 史遷-―文王說 이 곧 그것이다. 그러나 茶山은 伏織說울 취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다 음과같다. 若無重卦 何用八卦 余謂八卦重卦 說卦요.物象 卦용선交變之法 一時並興於 泡織之時 單作八卦 將安用之 若云卦變之法 當時未有 則損益二卦 何名損益 伏儀氏 때에 이미 重卦에 의한 易理四法이 與起되었기 때문에 易法 이 성립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4) 卦桑辭의 作者 卦桑辭의 작자에 대하여는 두 설이 있다. 一은 文王說이요 다른 一 설은 文王周公說이다. 그러나 茶山은 전자인 文王一人說울 취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易之興也 當殷之末世 周之盛德 則文王演易詞 審矣 然 但 作家詞不作桑 詞亦無是理 其云 周公作交詞者亦精度之說耳 余謂易詞 有備有缺 有蕃有 룡 皆所 以示例出式而己 然則 文王緊辭 本有缺署 後之太 卜 追有補益 如周 召樂府之內 太師追補 甘業 稷李等篇耳 岐山箕子之句 並是後人追補 不必周 公伸찾詞如馬陸之說 文王이 繁辭할 때 家辭와 父詞를 나누었을 리가 없으므로 따로 周公

이 父詞를 지었다는 것은 억측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모두가 추측에 의한 자이므로 시비를 가리기가 어려운 설이다. (5) 十翼說 傳來하는 孔子十翼說냐下象傳 上下象傳 擊辭傳上下 文言 說卦序卦 雜 卦)은 원칙적으로는 찬성하지만 이룰 수정하여 文言대신에 大象傳으 로 그 자리를 메워 놓고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史記孔子世家及漢 書費 直傳 皆以文言,8 1 J之於十翼 唯藝文志 並數文言於十 翼之中 余謂文王者古之易話 如爾雅之有詩訓 孔子釋元亨利貞 引古話以明之 自元者善之長 至貞固足以幹事 八句 爲文言本文其餘 皆孔子大傳 非文言也 大傳 又與卦詞交詞無涉 本當,8 1J 爲一篇 孔子十翼之目 퉁典文言而進大象 柳 所宜也 (第二章 第一節 ~ 第七節 參照)

제 4 장 義理易의 출현 제 1 절 王輔嗣易注論 漢代易學은 대체로 費氏象數易울 중심으로 발전하여 陰陽五行說的 術數學이 주류를 이루었기 때문에 이에 반기를 들고 得意忘象論을 제 창한 자가 다름 아닌 王弼의 義理易인 것이다. 그러나 그의 중심사상 은 시대사조를 반영하여 老莊의 虛無思想이 그의 근저에 깔려 있음~ 또한 여기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茶山은 자기의 易이 易 理四法에 의한 象數易에로의 회귀이기 때문에 王氏易에 대하여서는 사 사건건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는 漢魏遺義論에서도 어:弼 易은 무릇 卦 變 卦象에 아무런 영향도 미친 바 없다〉하였고 王輔嗣易 注論에서도 〈 王氏의 易은 卦象이 全缺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字句의 話訓에 있어서도 可汶할 만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고 이르고 있 다. 王氏易이야말로 茶山易과는 相克관계의 입장에 서 있음을 침직하· 게 한다. 다음에 王氏易의 일면을 살펴보자.

(1) 字話論

圭沼 桑 本文 字 話 (王氏) 屯 /,、_二 君子幾 幾辭也 gifi 家 以此 毒 毒 猶役也 泰 初九 拔茅莊 莊相奈引之統 九二 得尙于中行 尙猶酉 E 也

同人 九 安行也 『 猶 言 安辭也 何行』 大有 九, 四_ 誰其彭 鹿其帝 謙 ,,、一 鳴謙 鳴者 聲 名聞之謂也 豫 九四 朋盆管 益 合也 管 疾也『朋合疾也 』 盤 象 先甲後甲 甲者創制之令也 ’麟 家 曰唯陸 p莖 薔也 ,효合也 初九 戱 校者以木紋校者也 泉 l j 구話 幾 幾猶肖 I J也 復 大象 后不省方 方事也 六三 顔復 顔顔盛之統

이상과 같은 王氏의 字話에 대하여 茶山은 다음과 같이 이를 논평하 고있다. 〈뜻이 불분명하면 곧장 語辭라 해버리는 것이 王氏의 大病이다. 孟 智울 合疾이라 訓하고 省方을 視事라 訓하는 것도 奇語다• 顔은 感인

데 祝러는 것도 잘못이다. > 이런 유의 王氏의 字話를 열거하면 디음괴· 같다.

卦名 交 本文 王氏字話 無妄 大象 物與無妄 與猶皆也 大畜 九三 閑與衛 閑閔也衛護也 上九 何天之衛 何辭也 頓 初九 染願 染頭者增也 /, 、一一 靈 養下日順 t驛 掃違也經猶義也 大過 九 柏 稀者楊之秀也 次 家 習次 習便習之 初六 習次 習次者習爲險難之事 I ‘、·二一 !왔旦才尤 杭者杭枝而不安之謂 九 祗銃平 祗辭也 離 初九 緖 緖音愼之統 逐 九四 小人否 否威否之否 t員 六五十朋之龜 朋黨也 益 /, 、一一 帝吉 帝生物之主 夫 大象 居德lff l J思 思禁也 九 壯于頃 頃而權也 力五 克陸夫夫 克陸草之柔腕者 姑 初六 晟家半『敵蜀 亂家 ~t家也 半猶務操也 力 以f E 包瓜 祀之爲物 生於肥地者也 包瓜爲物 緊而不

食也 莘 家 王假有廟 假至也 /,、 一一 利用輪 論殷春祭名 井 大象 勞民粧井目 相猶助也 九Ji i71J寒泉食 &IJ 潔也 上六 井收勿幕 幕猶覆也 開t 大象 i麟 濕者嚴整之統 九四 其形混凶 混油海之統 震 象 震籠織 鉉衡t恐湘之統 /,、一一 億喪貝 億辭也貝資貨權用之屬 /,、一二 震鬪 混森森다 L 云森森長1 ’ 溫魏』 上六 震J索 情而索索다 L 云索索不安접幻 良 九 良其限 限身之中也 列其食 食育之肉也 浙 九 鴻陸 陸高之項也 覽 初九 難句無씀 句均也 九 豊其浦 浦幡맵切斤以禦盛光也 日中見洙 洙微味之明也 旅 쿠刀 斯其 F斤 取災 爲賤之役 I ,、一一 懷其資 懷來也 興 九 顔興 顔感 六四 田獲三品 三品 一曰乾豆二曰賓客三曰充君之庵 九됴 先庚三日 申命令謂之庚 免 大 麗 麗 1 曾連也

九四 商免未 寧 商商 址裁 制之謂也 介疾 介隔也 i與 九 容其 机机承物者也 上九 逸出 逸遠也 中字 初九 處吉 虛猶專也 九五 華 如 崇I]者緊其信之辭 上九 翰音 翰 高飛也 飛音者音飛而實不從 節 齊 /, 、-一· 婦喪其那 那首飾也 六四 緩有獅 維 宜 El i需衣獅所以塞舟漏也

지루함을 무릅쪼一고 王氏의 字話를 이처럼 表記한 것은 보는 자로 하 여금 王氏易의 得意忘象의 실상을 체감하게 하기 위해서다. 茶山도 본 론의 말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案此諸話 恐失本旨 其或不失者 出於九家 深於源委者 覽之自明 今不能逐 一評織 也 라 하여 茶山易과는 상반된 입장에 서 있음은 너무도 자명하다. (2) 句絶論

圭沼 交 句絶 評定 乾 九 夕 ’湯 若廊 孔子曰雜危無씀J{ lj 若鷹爲句 非也 坤 家 利北馬之貞 塞解之利西南 不可異解則主 句後得主利 利爲句非也

f,、 一一 直方大霧方章襄與之 nH 郞輯方大爲句 非也 蒙 六=- 見金夫 勿用有的 興之吐춥jW, I J見金夫爲句 非也 松 象 有字室湯 九四 復卽命漁 小畜 六四 血去楊出 上九 尙德載句婦貞 唯 尙德載爲句 此載德爲長 廊句 泰 九二 包荒用馮河 不退遺朋亡 豫 上六 冥豫成句 ,_ 隨 /、-=- 隨有求得句 刺 추話 1/,. IW 湜句幾 孔子以足幾爲滅下則度貞凶 非也 貞凶 上九 無妄行 大畜 象 剛健篤實句輝 大有曰其德剛健而文明 大畜曰其德剛上而 光句日新其 尙賢 句法正同月膳[光日新 當爲句也 德句 願 /,、一一 掃經于丘句願 征凶句 次 六四 櫓酒句麟 句用눕 肖惟 大象 明兩句作離 水沼至 明兩作 句法正同 亦不可殊觀也 威 上六 咸其禪舌 恒 六五 恒其德貞 恒其德貞 不可解也 若論幹事之占 婦人吉 晋 쿠祐 岡半句裕無씀 夫子凶也 |I

明夷 /,、 一一 用極馬 H 士吉 用極之義 如王之說則人極馬也 如孔之說則 『 王云可用極 馬極人也 孔墓怨辻長 當以用極爲句 馬而吉 O 孔 云用馬以自極 i齊獲其壯 吉』 益 /I、二-. 益 之句 莘 쿠祐 若號句一 1 星爲 笑 hBH 九 方雨括海

以上 茶山의 평정에 의하여 包용향의 잘못이 지적됨으로써 王氏의 得 意忘象論의 허구성이 자명하게 된다. (3) 玄談論 王弼易과 茶山易과의 대결은 마치 老子와 孔子와의 대결을 방불하게 하는 자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茶山은 이를 다음과 같이 평가한 다. 老子之道 以虛無爲萬有之本以寂靜爲群動之根 行之以慈儉 守之以不爲 人先其道也 內明而外時 內剛而外柔 物各付勃 I 不與之爭 不言而唯不動而化 以有身爲吾身之大累 以無爲爲街物之大權 不强複以踏機 處卑弱以存身 玄虛 沖漠 鹿租禮樂以自篠其玄玄之門此老氏之術也 以之謀一己之利害 誠爲至道 乃若爲天下國家者 所不可與議也 王弼之學 深於老氏 其注易經 -字一句 威 以其所謂玄虛沖漠之旨 播之染之 使三聖人街밴:經園之精義大法 治之於異端 之術 登不借哉 (王輔嗣易注論)

어쨌든 王弼은 魏晋時代에 出現한 義理易의 대표자로서 字는 輔嗣요 24 歲로 요절한 천재적 존재라 이르지 않을 수 없다. 이에 그의 玄談의 구체적 내용을 밝히기 위하여 한 표를 만들면 다음과 같다.

圭卜名 찾 王弼易의 玄談注 乾 家 天也者形之名也 健也者用形者也 夫形也者物之累也 有天之 形而能永保無括 爲物之首統之者 登非至健哉 坤 /,、二一. 有事 Rlj 從 不政爲首 故 曰或從王事 師 六五 柔不犯物 犯而後應 往必得直 故 田有裁也 比 家 無者求有 有者不求 火有其炎 寒者附之 故 己荀安焉 則不 寧方來矣 大有 六五 夫不私於物 物亦公焉 不疑於物 物亦誠焉 銃公旦信 何難何 備不言而敎行 謙 上六 飮食必有松 松必有衆起 未有居衆人之所惡而爲動者所害 處 不競之地而爲爭者所奪 豫 九四 夫不信於物物亦疑焉 實 六五 用莫過儉 泰而能約 故 必咨焉 ~J 家 强亢激掃觸件以限身 身銃傾焉 功又不就 非君子之所尙也

復 家 天地以本爲心者也 凡動息則靜 靜非對衝虐t也 語息則默 默 非對語者也 然貝 l j 天地雜大 富有萬物 雷動風行運化萬變 寂然至無 是其本矣故 動息地中乃天地之心見也 若其以有 爲心Jt l j異子 冬至陰之復也 夏至陽之復也 故 爲復則至於寂然大靜 先王 則天地而行者也 動復則靜 行復則止 事復則無事也 大畜 象 凡銃歌而退者弱也 銃榮而限者薄也

晋 象 自昭明德 周氏等以爲自照己身 老子日 自知者明 用明以自 照 六五 柔得尊位 陰爲明主 能不用察 不代下任也 上九 先夫道化無爲之事 必須攻伐 然後 服邑用斯爲正 亦以賤矣 明夷 象 藏明於內乃得明也 顯明於外 巧所牌也 才貝 家 自然之質 名定其分 短者不爲不足長者不爲有餘損益將何 加焉 疾 上九 俠證瞬怪 道將爲一 未至於治 先見殊怪 見鬼盆車 呼可怪也 孔云莊子齊物論曰擧廷與槿 廊與西施 俠誰孟怪 道通爲一 郭象注云夫廷橫而極 縱廊魏而西施好形 雜萬殊而性本得同 故曰道通爲一也 良 家 背者無見之物也無見則自然靜止 靜止而無見則不獲其身矣

茶山의 입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상 王氏의 易注를 일별하면 그의 易 이 老莊思想에 깊이 젖은 자임을 얼른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제 2 절 韓康伯玄談考 韓伯은 王弼울 私淑한 제자로서 비록 천히 王弼에게서 수업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王弼易의 정신을 계승하여 王弼易에서 누락된 易大傳 注에 주력하였다. 茶山은 韓氏易이 老莊뿐 아니라 불교사상까지도 혼 합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韓伯者王弼弟子也 其注大傳 凡卦象父象之義 一無所發明 意欲引易p).合 於老莊 以證其玄虛沖漠之學與屠隆混合三敎之論 千古一轍 今十擧一二 己公 然如此矣

그리하여 韓氏易은 宋代 陳傅(希夷)의 太極과 楊龜山의 反觀之學에 도 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여기고 있다. 其術傳以太極立爲道體之大本 而淸淨無爲 坐忘迫照爲治心之妙證 希夷黑 白之圖 其源頭在是 而龜山反觀之學 其印證在是矣 이는 王韓易이 義理易으로서 宋代에까지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밝힌 자라 할 수 있다. 이는 宋{t에도 象數易과 義理易이 병존하고 있 음을의미한다. (1) 道 韓氏易의 玄談은 茶山의 象數易과의 대조에서 양자의 입장이 분명해 전다. 전자는 老莊의 玄虛無爲之學에 근거하고 후자는 日月相易의 天 地運行에 입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道의 개념만 하더라도 韓氏는 이를 無를 칭한 것이라 한 데 반하여 茶山은 이를 至健不息之象으로 이해하 고 있는 것이다. 韓氏는 이르기를 道者何 無之稱也無不通也 無不由也 況之日道寂然 天體不可爲象必有之 用極 而無之功顯故 至平神無方而易無體 라 하여 이를 無의 思想으로 밝힌 데 반하여 茶山은 이를 至健之象으 로밝히고있다. 天道至健 一息不停 日 月運行 寒暑以變 而草木萬獸 含生쵸動之屬 以生以 育 以長以成 聖人法天 舊庸熙載 至于俺勤 岡政皇寧 禮樂刑政 以之修擧 典 章法度 以之建明 今曰法令滋章 物失其性 遂以不生不化爲理天下之妙道 登 不浮哉

茶山의 이른바 道는 無의 道가 아니라 有의 道이며 天道이며 陰陽之 道임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一陰一陽之謂道者 天之所 E人 生育萬物 其神化妙用 只是一萱一夜 一寒一暑

而己 草木歲獸 含生쵸動之倫 於是平 鄧薔薔發 而人之所以立經陳紀 代天理 物 亦 Il l}頓時明之節 協冬夏之紀而己 合而明之JliJ一陰一陽 易之所以爲易 法 此而己 ..... 라 하였다. 이렇듯 道란 日月 寒暑로 表現되는 天地 自然의 道로서 이 는 無爲自然(老子)이 아닌 것이다.

(2) 大虛說 易太傳의 〈陰陽不測〉句에 대한 韓氏의 注는 다음과 같다. 原兩儀之運 萬物之動 登有使之然哉 莫不獨化於太虛欽爾而自造矣 造之非 我 理自玄應 化之無主 數自冥運 故 不知所以是以 太極爲始 窮理體化 坐 忘造照 至虛而善應 則以道爲稱 不思而玄覽 則以神爲名 이에 부연하여 孔頓達은 그의 周易正義에서 이르기를 杏寂不測 無形無體 以太極虛無爲始 不以他事係心 端然玄寂 乃能知天之 所爲也 言天之道 亦如此也 坐忘遺照 出莊子大宗師篇 라 하였다. 이에 대하여 茶山은 그의 陰陽論的 易理論에 입각하여 陰 陽不測이란 神認主義的 不可知'습이 아니라 한낱 占莖之說에 지나지 않

음을 다음과 같이 설파하고 있다. 經曰極數之來之謂占 通變之謂事 陰陽不沮 l j之謂神 則三句都是占莖之說 唯 執末一句爲天地造化之本 登不勘哉 莖人操菩也 七八九六無以預度 此所謂陰 陽不測 太虛玄覽 坐忘遺照 何與於此經哉 凡酒於異敎者 必以所i弱者解經 此 大患也 (韓康伯玄談考) 이렇듯 易에 太虛說을 도입한 것은 象數學的 易理에의 도전이 아닐 수 없다. 日月相易 陰陽變1 뵤료 象徵되는 易은 결코 虛無의 극치인 太 虛일 수 없음은 다시 말할 나위도 없다. 제 3 절 分卦直日論 茶山의 易理論의 입장에서 볼 때 王韓易의 反象數學的 易理論이야말 로 異端 중의 異端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漢魏易울 분류 한다면 대체로 象數易과 義理易으로 양분하게 된다. 이 兩易이 宋代에 이르러 크게 변화하게 되거니와 그렇게 되기 전에 唐代에 이르러 分卦 直日法이 생겼으니 그의 淵源은 魚延壽 京房 등에게로 소급된다. 分卦直日이란 〈一父主一日울 원칙으로 하고 六十四卦롤 三百六十日 에 배합한 후 남는 震離免次四卦는 따로 빼돌려 占法에 援用한 자只춘 가리킨다. 十二粹卦 四時之象과 中字小過 再閔之象에 따른 曆象에 근 거한 茶山의 推移法도 曆數學的이라 한다면 이룰 세분한 分卦直日도 曆數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양자는 근본적으로 易理의 근거를 달리하고 있으니 전자는 以易象曆한 반면에 후자는 以曆象易했기 때문 임을 茶山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大 易之爲道 象而己 故 十二粹卦以象四時 中半小過以象兩閔 於是 乾

坤二卦以象天地 餘六十二卦以象五歲再閔 六十二月 之數 聖人於此 亦取其勢 能之似而己 分卦直日 登有經證耶 以易象曆 可也 漢晋以降 以曆象易登可 通平 曆也者日月五星之紀也 逢裝有差 四時乘件 築假象易而爲之哉 또이르기를 易也者象也 以一年Jt l j以十二牌象十二月數 以五年月1j以六十二卦象六十朔 兩閔月之數 其欲直日月1j以乾坤之策三百有六十象期之日 古人之法 其慕落不 荀如此 夫登有分卦直日 之理 六日七分之說平 破粹奪樓 無一而當平理者也 古人以一卦當一月 以一月爲一日 故 自始至復 謂之七日 而漢儒 宗直日之法 謂陽亡七日而來復 今觀此表則小雪純坤之後 尙有未濟塞願中字之等 交亂~令 坤復之間 露陽緖雜 二十七日始得復卦 安在其七日來復也 荒雜淡裂無一而當 平 I 心者也而可述之平 참고로分卦直 B 의 卦氣圖를표기하면 다음과같다.

四正卦 中節 二四氣十 八風 +辰 十卦 二消息 i 六十卦 次구刀 十一月中 冬至 廣 子 復六四 公 中半 復六五 群 復 復上六 侯 屯{~ 次九二 十二月節 IJ 、寒 臨初九 臨九二 大 謙 夫 臨六三 卿 揆

次六三 十二月中 大寒 丑 臨六四 公 升 臨六五 群 臨 臨六

次六四 正月節 立春 糸風 泰泰泰l九九J三二九 卿公粹侯侯大夫 浙泰需益過蒙r 外外內內l (l 次九五 正月中 雨* 寅 泰六四 泰六五 泰上六 次上六 二月節 驚 大壯初九 大壯九二 大隨 夫

震7J九 二月中 春分 明庶風 卯 大大大大壯壯壯壯土九六九四三六五 侯公群却解晋{ 內

豫 外 震六二 三月節 淸明 夫初九

夫九二 大松

夫壘

卿革

夫九三 公夫

震六三 三月中 穀 辰 夫九四 侯粹 旅 夫九五 夫上六 r_內\l 外 震四 四月節 立夏 溫 乾初九 乾九二 大g雨 夫

乾九三 公比 震六五 四月中 小滿巳 乾四 粹 小畜 乾九五 乾

乾上九 侯 大有{內外 震 上六 五月節 禪 括구JJ六 括九二 大 家人 夫 始九三 雅 l 井 離iJJ九 五月中 夏 景 風 午 炳九四公 咸 姬九五 牌 始 始上九 侯 鼎{~ 홉假二 六月節 小暑 逐話 逐六二 大 豊 夫 避九三 卿 浜 웁멉 六月中 大暑 未 逐九四 公 履 逐九五 牌 逐 離九四 七月節 立秋 凉風逐上九 侯 恒{~ 否初六 否六二 大 節 夫 否六三 卿 同人 離六五 七月中 處 申 否九四 公 t貝 否九五 群 否 否上九 侯 興{~ 離上九 八月節 白露 觀쿠m t 觀六二 大 萊 夫 觀/六三 卿 大畜 免구}]九 八月中 秋分 閣闇風 觀六四 公 實

觀丸Ji 牌 觀 觀上九 侯 寧{內外 免九二 九月節 寒露 1/< I J初六 1/< I J六二 大 光妄 夫 泉 l j六三 9ftP 明夷 免六三 九月中 霜 戌 刺六四 公 困 刺六五 粹 泉 l j 泉 lL t九 侯 長{~ 免九四 十月節 立冬 不周風 坤初六 坤六二 大 銃濟 夫 夫 坤六三 卿 p蓮P 효 免九五 十月中 小雪 亥 坤六四 公 大過 坤六五 群 坤 坤上六 侯 未濟{內外 免上六 十一月節 大雪 復tJJ九 復六二 大 塞 夫 復六三 卿 頭 (鈴木田次郞著 『漢易硏究』, p. 175-179)

이렇듯 以曆象易하여 易을 抽象化한 卦氣圖에 대한 茶山의 평론을 들어보면 다음과갇다. 易之爲道 十二牌卦雅潟而己 若無此法 包儀氏原不必畫卦 何者 畫卦無所

用耳 然Jl l j 牌卦之名造造篠魏 必自三古之時 己有此名 非漢低之 F~ 新立也 唯 所謂公侯卿大夫之卦 是漢儒校猶別生贊稅以爲易家之荊惑者 라 하여, 十二群卦와 公侯卿大夫之卦와는 구별하여야 하며 分卦直日之法 原不合理 誠以三百八十四父 配之於三百六十五日四分日之 一必証師而不合 自餘不必硏究 況桑之爲字 本是變卦之名 非一盡二盡之謂 也 以盡爲父原是失實 餘不必言 經曰桑者言平變者也 父登是盡耶 라 하여 分卦直日法은 근본적으로 불합리한 易法이라 하였고 所謂侯卦音 l] 之爲二 內卦屬上氣 外卦屬下氣 押又何義 附會察整 正謂此類 라 하여 侯卦論의 牙眉울 지적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分卦直日에 의한 卦氣'습은 災異說的 術數學의 소산 이라 이르지 않을 수 없다.

제 5 장 宋代易學의 대두 漢代 荀九家의 易에서 唐代 卦氣論에 이르기까지의 긴 시간을 통하 여 『易經』 上下롤 중심으로 하여 孔子十翼이 整理되었다. 그러나 宋代 로 접어들면서 學術的 일대전기가 마련되어 易學에도 새로운 변모를 가져오기에 이르렀다. 먼저 宋의 歐陽修 (1007-1072) 가 그의 易童子 rRT 에서 緊辭뿐만이 아 니라 文言 說卦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聖人의 作이 아니라는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易經』연구의 시각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기에 이르렀 던 것이다. 太極圖說 河圖洛書學 先後天說 등의 대두는 宋代易學의 새 로운 중심과제로 등장하기에 이른 소이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시대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茶山은 宋代易學울 어떻게 이해하 고 있는 것일까. 茶山은 자신의 易理論(易理四法)에 근거하여 朱熹와 郡康節울 디음과 같이 비판한다.

제 1 절 朱子의 易理論 宋代易學은 소위 太極圓河圓洛 書 先天圓 등 三易圖學으로 발전하였 고 朱子는 여기에 어느 정도 깊숙하게 관계하였는지에 관하여는 따로 評議되어져야 하리라고 여겨지지만 여기서는 오로지 그의 周易本義에 담겨진 朱子의 易理論만을 발췌함에 그치고자 한다. 三易圖學에 대하 여서는 郡氏易의 비판에서 다루어지기 때문이다. 茶山은 朱子易學울 평하여 이르기를 〈 自漢以降 易學大備於朱子 名 言至理 多在本義而俗儒不察〉이라 하였으며, 여기서 朱子의 〈 名言至 理멋 그것이 바로 易理四法에 관한 朱子의 名言至理임은 다시 말할 뗀도없다. (1) 卦變圖 戶田豊三郞은 그의 易經注釋史綱에서 朱子의 周易本義의 特質을 논 하여 이르기를 朱子周易本義의 體裁上의 特色은 經傳에 雜柔된 王輔嗣本을 버리고 經 二篇 傳十篇울 分類하여 漢志의 古本으로 復元시킨 데 있다 (p. 588) 고 하였거니와 이는 王弼本의 체재를 그대로 계승하고 그 내용만을 老 子에서 儒家로 옮긴 程氏易傳과도 구별되는 자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朱子의 卦變圖는 그 취지에 있어서는 茶山의 推移法의 先河 롤 이루고 있는 자로 그 本旨는 같으나 그 운영상 약간의 차이를 나타 내주고 있을 따름이다. 이룰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 非易中之一義

朱子는 그의 卦變圓를 茶山만큼 중요시하지 않고 이르기를 象 傳에서 혹 卦용선을 설하므로 이제 이를 圖示하여 분명하게 해놓거니와 대개 이는 易理 중 一義에 지나지 않고 그것은 결코 盡 卦作易의 본지는 아니다. 라 한 데 반하여 茶山은 卦變이야말로 易의 大義임을 다음과 갇이 주 장한다. 案易詞取象 總用推移其或不然者 唯十二牌卦 再閔之卦 質朴少變 斯用交 易 變易之象 自餘 雜評合 互體之類 無一不取象於卦變 此實作易之大義 朱 子以爲一義 未及逐一査驗故也 (朱子本義發微) 이는 卦變圓룰 推移法의 前身으로 보고 이를 중요시하는 茶山과 크 게 인식차를 보여주는 자가 아닐 수 없다. ®一陰一[湯之卦外 朱子는 一陰一陽之卦와 二陰二陽之卦와 三陰三陽之卦롤 다음과 같 이 정리한다. 凡一陰一陽之卦 各六(1/{ I] 比夫大有等) 皆自復始而來(五陰五陽卦同圓異) 凡二陰二'易之卦 各十有五 (願次屯蒙觀小過等及大過鼎革大壯中半等) 皆自 臨逐而來(四陰四陽卦同圖異) 凡三陰三陽之卦 名二十偏t恒損益隨盤浙歸妹 等皆再列之)皆自泰否而來 一陰一陽之卦各六 二陰二陽之卦各十五 三陰三陽之卦各二十으로: 정 리하였으나 여기에는 中字小過再閩之卦가 혼재함으로써 推移法의 기 본이 혼들리게 됨을 다음과 갇이 지적한다.

案漢魏以來 無此序列 或其迫文見逸也 本圖層累序列 各有第次唯中半小 過 混在諸卦之中 則二陰二陽之卦 或受變於二毋或受變於一毋 其義未均而中 字小過則卒無受變之處 原來 推移之法唯有一往一來 若云中字受變於逐大壯 小過受變於臨觀 則須四盡都動乃可受變 其可曰推移平 其査驗之未密也 이렇듯 朱子의 圭透澤]에 있어서는 中字小過의 再閔之義가 천명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거저 二陰二'易之卦 중에서 한꺼번에 처리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茶山의 再閔之義의 발명은 推移法의 이해에 있어서 획기적 의미를 갖는다고 이르지 않을 수 없다. 茶山은 또 三陰三陽之卦에 있어서도 朱子의 〈皆自泰否來녔t 〈從泰 來者〉와 〈從否來者〉로 양분한다. 三陽之卦몸勸亦三陰 三陰之卦몹佳亦三陽 就中亦有主客 泰者三陽之方進也 否 者三陰之方長也 然 Hlj 凡從泰來者皆三陽之卦也 凡從否來者皆三陰之卦也 今 以一卦兩計兼之爲三陰三陽之卦 而數各二十 此恐重復 非古義也 朱子卦變圖 중에서 三陰三[易之卦의 推移를 중복을- 피하여 주객으로 구분한 후 自泰 自否로 양분한 점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 四陰四陽之卦 朱子卦變圖에 있어서의 미비점의 하나는 一卦兩計說이라 할 수 있 다. 예컨대 一陰一,옳은 五陰五陽으로도 계산되고 二陰二'옳은 四陰四 陽으로도 계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朱子는 二陰二,易之卦롤 논한 후에 또다시 四陰四陽之卦와 五陰五陽之卦를 다음과 같이 설한다. 凡四陰四陽之卦 各有十五 皆自大壯觀來(二陰二陽圓己見前) 凡五陰五陽 之卦 各六 皆自夫刺來 (一陰一陽圖己見前)

그러나 茶山은 〈 陽卦多陰 陰 卦多陽 〉 說에 근거하여 이를 다음과 같 이 정리한다. 經 曰陽卦多陰 陰卦多陽 此易家之大義也 始自操 菩 之時 陽 盡 多陰(一奇二 偶乃爲七) 陰 盡 多陽 (_偶二奇乃爲八) 純則變之 (九月 1 j老而反爲陰 六 Ml j老而 反爲陽) 及成八卦之後 陽卦多陰億 g 次良) 陰卦多陽(興商免) 推此例而上之 則 凡二陽四陰之卦是爲陽卦 可名曰二陽之卦而不可名之曰四陰之卦也 凡二 陰四陽之卦是爲陰卦 可名曰二陰之卦而不可名之曰四陽之卦也 五陰五 H옳 之 卦 其義亦然 今 重 現壘列 恐亦非古義也 이에 茶山은 朱子圭透澤]를 중첩을 피하여 中字小過之義를 천명하고 三陰三陽옳을 합리적으로 兩分하여 새롭게 그의 推移法울 정립해놓고 있 음을 알수가 있다. (2) 易理四法의 例證 茶山은 자신이 발명한 易理四法이 朱子의 周易本義 속에 남아 있음 울 강조한다. 그러나 그것은 茶山의 易理四法의 片影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의 발전이 茶山의 易學에 의하여 비로소 완성의 경지에 이르렀다 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쨌든 朱子의 周易本義와 卦變圖에 근거하여 그의 편영이나마 다음에 살펴보기로 하자. ®卦찢—推移之法 朱子卦變圖를 前身으로 하여 茶山의 推移之法이 생성되었기 때문에 茶山은 여러 2 圭澤澤]는 推移의 正法이다〉라 하고 또다시 中우 小過 두 卦는 衍卦가 아니라 群卦임을 강조한다.

但中字小過不入 E 辛卦之列 爲矢典也…… 故曰小過中字者粹卦 非受衍於群 圭卜者也 또이르기를 朱子之言卦變 毋論本義與彼圖皆一往一來而止 此漢以來 推移之本法也 또 다시 OL推 移之法 皆一往一來而止耳〉라 하여 이 원칙에 어긋나 면 비록 朱子의 本義일망정 이를 적발 배격한다. 그러므로 朱子에 있 어서도 그의 本義所論보다도 晩年所著인 卦變圖의 소견을 따르려고 한 다. 大抵 卦變之說 自漢至宋 綿綿不絶 至朱子而大者 然 本義所論每於十二 群卦之外博取諸卦 恐是未定之論 故 以卦욥션圖爲正 ®物象 物象論에 있어서는 朱子도 王弼의 忘象論을 따르지 않았을 뿐 아니 라 한걸음 더 나아가 說卦物象'습과 합치되지 않는 것은 存疑로 남겨둠 으로써 결코 견강부회하지 않은 점을 茶山은 높이 평가하고 있다. 使易詞而不用卦象如王弼之說則己 如其不然 凡所謂馬牛羊家之等 無一非 卦象也 朱子銃於此數卦 論其名物之本於卦象 則四百五十縣之內 凡雜物撰德 者非卦象也 朱子之意 特摘例以示人 其或不以推移 不以父變而不合於說 卦者 姑鬪之以存疑 此大君子公正之心也 近世愚兩之學反欲抵排說卦 指爲 僞書不亦過平 이로써 朱子도 茶山처럼 說卦傳의 物象論을 깊이 존중하고 있음을

알수가있다. ®互體 朱子는 互體說에 대하여서는 卦變圖에서처럼 심도 있게 다루지는 않 았지만 易太傳 雜物撰德~章에서는 이를 援用하여 다음과 같이 이르고 있다. 此爲互體 如屯卦 震 下次上 就中間四父觀之 自二至四.Q IJ 爲坤 自三至五則爲 良 그러므로 茶山은 朱子의 互體說의 일단을 평가한다. 互體 之說 自 漢 以來師承不絶 朱子於本義中 維無所用 其平日所論如此 尙 有異 義 平 이렇듯 비록 朱子本義 속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互體不可廢라 하여 간혹 互體說울 원용하고 있는 흔적이 있으니 自漢以來 그의 師承은 끊 기지 않고 朱子에게 계승되어졌음을 알 수가 있다. ®桑 變 父 變 의 의미를 朱子는 이미 터득하고 있었다. 朱子於乾fJJ九曰陽數九爲老 七爲少 老變而少不變故 謂陽交爲九 朱子於坤fJJ六曰陰數六老而八少 故 謂陰桑爲六 이러한 朱子의 桑變說에 대하여 茶山은 이르기를

菩卦之法 參天兩地 故 三掛皆得天數者爲九三掛皆得地數者爲六 初九云 者謂初 盡 値九而變陰 九字之中己含變陰之義追 初六云者謂fl] 盡値 六而變陽 六字之中己含變陽之義也 今人不達此義 九字只徹陽字 看 六字只微陰字看 此 大認也 朱子謂老變 故陽交爲九則交詞之主平變 朱子早己 言 之而世猶不悟 每 欲排比六父合七縣而成全 不亦惑敗 이로써 朱子는 이미 桑變說울 悟 1 용하였음을 알 수가 있다. 이는 宋 代易學의 새로운 구도 속에 끼여 있는 古易의 遺族이라는 점에 중요한 의미를갖는다. 제 2 절 都氏易의 批判 茶山易을 일관하여 비판의 대상이 된 자로서는 漢에 王弼이 있고 宋 에 郡康節이 있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양자 공히 그들의 독자적 견강부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茶山易에는 易理四法이라는 寶刀가 있다. 이를 尺度로 하여 漢 이래 宋에 이르기까지 모든 百人百易을 재단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朱子易은 卦變圖를 필두로 하여 說卦物象 互體 찾變說에서 겨우 합 격선을 넘어섰다고 볼 수 있지만 郡氏易에 관한 한 茶山은 추호의 가 차도 없이 전가의 보도(易理四法)를 휘둘러 이룰 준열하게 비판한다. 그렇지만 系譜上으로는 朱子도 郡氏易에 관한 한 전연 무관하다고 이 를 수만은 없다. 그러나 茶山은 一意 郡氏易에 대하여 비판의 총력을 경주한다. 그러나 여기서 宋代易의 계보를 참고삼아 일별하면 다음과 같다.

陳輯” [ 細多 [ 李周之훔才터 - 郡:雍:-紅朱(熹太 (極先天圖圓學學)) 張載 李澈-許堅-范誘昌 _쭙 1 Jt文(河圓洛 害 ) (今井宇三郞著 『宋代易學의 硏究』, p. 86) 이 계보상으로 볼 때 宋代 三易圖學中 郡雍의 관여는 先天圓學에 국 한되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본절에 있어서의 郡氏易의 비판은八卦方位圓와 八卦先天說에집중되어있고여타는오히려朱子說 울 근거로 하여 논박하고 있으므로 三易圖學에 있어서의 朱子의 책임 또한 결코 가볍지 않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1) 八卦次序圓 八卦넘火序(橫排)圖를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兩儀 四象 八卦 序-次 乾三 太陽= {犬 免三 義 陽- 八 離三 韋 少陰= 震뜨 四 젊 太極 異三 五 排 少陽== 圖 次근 /’、 陰-- 良曰 七 太陰= 坤曰曰 八

本圖에 대한 郡氏의 설명을 보면 다음과 같다. 太極銃分 兩儀立矣 陽上交於陰 陰下交於陽而四象生矣 陽交於陰 陰交於 陽 而生天之四象 剛交於柔 柔交於剛 而生地之四象八卦相鑑而後 萬物生焉 是故 一分爲二 二分爲四 四分爲八 八分爲十六 十六分爲三十二 三十二分爲 六十四 猶根之有幹 幹之有枝 意大則意小 意細則意繁是故乾以分之 坤以 翁之 震以長之 興以消之 長則分 分月1ji肖 消則翁也 乾坤定位也 震興一交也 免離次良再交也 故 震陽少而陰尙多也 興陰少而陽尙多也 免離陽浚多也 次 良陰浚多也 本圓에 대한 郡氏의 설명은 전무한 창작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그 러나 朱子도 어떠한 연유에서인지 이에 부연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 고있다. 以卦畫言之 太極者象數未形之全體也 兩儀者 -僞陽 而-다닳陰 陽數一而 陰數二也 四象者 陽之上生一陽則爲=而謂之太陽 生一陰ilJ爲-而謂之少陰 陰之上生一陽則爲=而謂之少陽 生一陰月 l j爲土 .= 而謂之太陰也 四象銃立則太 陽居一而含九 少陰居二而含八 少陽居三而含七 太陰居四而含六 此六七八九 之數所由定也八卦者 太陽之上生一陽則爲三而名乾 生一陰則爲三而名免 少陰之上生一陽則爲三而名離 生一陰則爲프而名震 少陽之上生一陽則爲 三而名興 生一陰則爲王而名次 太陰之上生一陽則爲三而名良 生一陰則爲 曰町而名坤 康節先天之說 所謂乾一免二離三震四興五次六良七坤八者蓋謂此 也 라 하여 郡氏의 八卦次序圖를 합리화하여 설명해 놓고 있다. 그러나 이 양자의 설은 독단적 서술로서 아무런 논리적 근거를 찾을 길이 없 다. 그러므로 茶山은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此圖不合於理 不惟伏淡 盡 卦之序 必不如是 卽天地陰陽之氣 斷無此象 何 以 言 之 太極者陰陽混池之物太極分而生一陽一陰 可也 一,옳銃是純陽 如何 生得少陰 一陰統是純陰 如何生得少陽 若云陽中包陰 陰中包陽 是一陽的是 太極 太極荀是一陰混池荀未分矣 操圓 太極半破爲陰陽 陽半破爲太陽少陰 太陽半破爲乾爲免 推此例而求之 則乾半破亦當爲一陰一陽 坤例亦然 是 乾 不得盆純陽之卦 坤不得爲純陰之卦 而可通平 라 하여 茶山은 太極의 分破作用에 의한 四象 八卦 생성의 불합리성을 지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八卦의 序次도 다음과 같은 모순을 안고 있음을지적한다. 雜以其一二三四之序言之 坤毋未生而六子先育 震免未生而免妹先産 母子 兄弟之序 雜亂無統 何得云天地之理本如此平 八卦以父母之倫序 Hl j一乾一坤 三震四興五次六離七長而八免也 以東西之方位則一震二興三離四坤五免六乾 七次而八良也 古經所言惟此二法 今也二免澤三離火爲不易之定名 亦己差矣 그리하여 伊斤謂太陽者九也 少陽者七也 太陰者六也 少陰者八也 純者 謂之太 雜者謂之少〉의 原理와 〈陽卦多陰 陰卦多陽〉의 原則에 違背되 므로 郡氏의 說은 受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宋易에 있어서의 郡氏說에 대한 茶山의 부정적 비판은 執是 執非조1-ol l 논쟁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음이 분명하다. 郡氏易이 卜莖學 的인 데 반하여 茶山易온 經學的이라는 점에서도 그들의 사이에는 넘 나둘 수 없는 도랑이 가로놓여 있는지도 모른다. (2) 八卦方位圖 八卦方位圖는 二種이 있으니 伏橫先天圖와 文王後天圓가 곧 그것이 다.

伏澄先天方位圖 文王後天方位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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觀 11ll1 :I: >卜 汗 燦 腦 ::I Il! 沖 固 令 曲EY- #今 令 상 洙먀i多쌍

文王八卦方位圖는 본래 說卦에 기본하는 자로서 겁 B 氏가 임의로 伏羲 八卦圖롤 조작하여 先天八卦方位圖라 칭함으로써 文王八卦方位圖는 자동적으로 後天圓라 지칭하기에 이론 것이다. 그리하여 후일 正易八 卦圖가 출현하여 第三의 方位圖가 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 茶山은 說卦方位에 입각한 文王八卦方位圖를 뒤엎고 따로 伏羲八卦方位圓를 造作한 겁 B 氏의 불합리성을 다음과 같이 논박한다. 伏磯者上古之人 孔子序列古睿 斷自堯典 明自堯以上 典籍散亡 不可考也 郡子難靈通何以知夫伏養八卦之方位與文王緖然相反 若是其明白無疑也 伏磯氏롤 빙자하여 八卦方位圖롤 개작한 근거가 전무함을 다음과 갇 이 논박하고 있다. 是 不過曰乾坤二卦 形體方正 地位尊嚴 不可處之以隅角 故 爲此變通耳 然 周易一部 上家下家上象下象 以至孔子十翼 春秋官占 諸子百家 都無影 響後學將何以惡信也

신빙할 만한 근거 없이 조작한 郡氏의 先天八卦圓의 허구성은 더 진 행된다. 乾坤縱而六子橫 易之本也 震交陰而陽生 興始消陽而陰生 免陽長 民陰長也 震兒在天之陰也 興良 在地之陽也 故 震兒上陰而下陽 興良上陽而下陰 이에 대한 茶山의 반론은 준열하다. 操圓 四正之卦占四方 而四偏之卦占四隅 乃曰乾坤縱而六子橫 登公論平 有人改之曰次離橫而六卦셉t 其將何辭以擊之平 震一陽生 免二陽長 以成乾卦 興一陰生 民二陰長 以成坤卦 此固八卦之本理 十二牌卦之根基 然 震免之良 以離介之 異長之間以次格之方生之氣以離斷之 方消之運以次直之 此可曰陰 陽消長之象平 臨泰之間 忽揮中半 逐否之間忽揮小過 以之爲十二月消長之 氣 Jl l j未有不擊其非理者 今召t子之圓得無類是平 風雷行平天 山澤附平地 又 震陽卦也 興良陰卦也 今乃日震免在天之陰 興良在地之陽 驗之物理而不合 揆之卦德而不然 將奈何 震免在天之陰 故 上陰而下陽 以此例之 則興良在地 之陽 亦當上陽而下陰 胡乃上陽而下陰平 終日玩究 不知其所主者 何理也 이로써 郡氏의 비논리적 견강부회는 역력히 들추어졌지만 전자와 마 찬가지로 郡氏易과 茶山易과의 논쟁의 여지는 아직 남아 있다고 해야 할는지 모른다. 그것은 곧 神秘主義的 易學과 實證主義的 易理論과의 차이에서 오는 뛰어넘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도랑이라 하지 않을 수 없 다. (3) 八卦先天說 郡氏는 자기가 조작한 先天方位圖롤 합리화하기 위하여 經文울 원용 하였고 朱子도 이에 가세하였다. 그러나 茶山의 實證的입장에서는 이

를 받아들일 수 없으므로 일일이 이를 논박한다• ®天地定位 說卦傳에 의하면 〈天地定位 山澤通氣 雷風相薄 水火不相射 八卦相 鎖〉이라 하였다. 郡子는 이르기를 〈이는 곧 伏樣八卦의 位이니 소위 先天의 學이니라〉라 하여 八卦方位先天說의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茶山은 이에 수긍하지 않고 만일 그것이 先天의 방위를 가리킨 것이라 면 經文에서는 마땅히 天地水火의 順으로 四正卦의 위상을 바로잡아야 할 텐데 어찌하여 天地 山澤 雷風 水火로 뒤섞어서 논했을까 하면서 郡氏의 설은 〈一字半句 無一相合〉함을 다음과 같이 논증한다. 若以郡子所謂四正四偏之位而言之 則孔子必於乾坤之次 先言水火 次言風 雷 次言澤山 今何以先言山澤 末言水火平 若又以郡子所謂二縱六橫而言之 則孔子必於乾坤之次 先言風澤次言水火 次言山雷 今~ 若又以郡 子所謂四象生八之勢而言之 則孔子必於乾坤之次 先言澤山『二與七』 次言離 次『三與六』 次言雷風『四與五』 今何以不然平 若又以郡子所謂往順來逆之勢 而言之 則孔子當先言乾免『一與二』 次言離震『三與四』 次言坤長『八與七』 次 言次興『六與五』 今何以不然平 稽之以郡子之法 一字半句無一相合 胡以是爲 先天之說平 라 하고 孔子의 後天方位說은 다음과 같음을 명시해 준다. 孔子序後天方位 其始平震 終平良首尾無鎌 顧獨於先天方位 顧倒抽接 亂 無次序如此有是理平 그리하여 郡氏先天方位說의 근거 없음을 거듭 지적한다. ®逆數論 說卦傳에서 〈數往者順 知來者逆 是故 易逆數也〉라 하였다. 겁 B 子는

이 구절을 自家流로 해석하여 〈 이 一 ln 은 伏儀八卦롤 밝힌 것이라 〉 이 르고 八卦相緖者明交相鎖而成六十四也 數往者順 若順天而行 是左旋也皆己生 之卦也 故云數往也 知來者逆 若逆天而行 是右行也皆未生之卦也故云知來 也 라 하여 左旋 右行 등의 논리를 펴고 있는 데 반하여 八卦相鎌이 先天 方位의는 무관함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緖交也雜也磨也顧也 經所言者 蓋云天地水火 雷風山澤 高下淸湯 潭雜 摩盜 冷熱乾濕 和合激發以成變化 以生高物 故 八卦八物相交相雜相磨相倒 以成六十四卦 或以正體或以互體 相通相薄 萬變不窮 以象天地萬物之情而 己先天方位何與於是 또 郡氏 左旋說의 모순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旦觀郡子之圖 自震至乾 三陽以成 自興至坤 三陰以成 其勢莫不左旋而 一 消~ 又何以自震至乾爲左旋 自異至坤爲右旋哉 若云左半之一二 三四爲左旋 右半之五六七八爲右旋 則自南而東者是右旋 不可日左旋也 自西 而北者是左旋 不可曰右旋也 何況一二三四自一而數 j{ lj 其爲未生之卦 與五六 七八其情不殊 又何云一逆而一j l 頂也 其說自相*眉 不可究喆 尙可日知道之 言平 그러나 朱子는 郡子의 설에 左担하고 나서면서 다음과 같이 이를 보 완한다. 起而歷離免以至於乾 數己生之卦也 自興而歷次良以至於坤 推未生之卦 也 易之生卦則以乾免離震 興次長坤爲次 故 皆逆數也

그러나 易에는 逆數만 있지 順數는 없으므로 數往者順은 帶說이요 客說에 지나지 않음을 茶山은 이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逆數에 대한 중요한 茶山의 논박이므로 다음에 전문을 싣는다. 數往者 )I 頂一句 是帶說 是客說 如大學 其苗之碩一句 爲其子之惡帶說 言浮 而出一句 爲貨浮而入帶說 此經本論易理 易理只有逆數而己 其云數往者 )I 頂 非易之所有事也 故 統結二句曰易逆數也若如朱子之義 則易有逆數 亦有 )I 頂 數 登可曰逆數己平 朱子以郡氏圓圖 自震而至乾者爲數往之順 自興而至坤者 爲知來之逆 然 四三二一其數正逆而今謂之順 五六七八其數正 )I 衝而謂之逆 登 人心之所安平 原夫郡子所謂橫排之圖 非盡卦之本法 然 論以太極音 l j判之理 則一生兩時 兩節一時並生 必無陽先陰無之理兩生四時 四節一時並生必無 執長執弟之序 四生八時 八節一時並生 必無乾首坤尾之可言 唯吾人讀書之法 先讀第一行 次讀第二行 郡氏以吾人讀書之法 讀其所謂先天八卦橫排之岡 原 屬非理 況可以此當易逆數之實事平 一二三四五六七八天下之順數也 何以謂 之逆數平 甲乙丙丁戊己庚辛非逆數 子丑寅卯辰巳午未非逆數 角亢氏房心尾 箕斗非逆數 何猫一二三四五六七八爲逆數平 周有八士日伯達伯造仲突仲忽 叔夜叔夏季隨季騎 此亦是一二三四五六七八 先生者先數 後生者後數 其將曰 逆數平吾斯之不政知也 朱子의 說대로라면 易에는 逆數만 있는 것이 아니라 順數도 있게 마 련이다. 郡氏橫排之圖는 원래 비합리적인 도표인 데다가 一二三四五 六七八은 天下之)|順數인데 어찌하여 逆數라 이르는가 子丑寅卯도 逆數

가 아니요 角亢氐房도 逆數가 아니거늘 왜 一二三四만 逆數라 이르는 가를 茶山은 郡子와 朱子에게 묻고 있다. 郡 朱 兩子는 대답이 없으니 우리들은 심사숙고 이 문제의 시비를 가려야 할 차례에 와 있지 않나 싶다.

®銅麟 說卦傳에서 〈雷 以動之 風以散之 雨以潤之 日以 垣 之 長以止之 免以 說之 乾以君之 坤以藏之 〉 라 하였는데 朱子는 이에 대하여 雷風 雨日 (次離) 良免 乾坤이 相對가 되어 卦位룰 占한 점을 지적하여 伏羲八卦 方位圓룰 합리화하려 한다. 그러나 茶山은 이에 승복하지 않고 이르기를 八卦有二法 一是方位 _是人倫 以方位則起於 震 而終於良 以人倫 HIl 乾坤爲 父母 六卦爲子女 二法而己 此經先言六子 後言父母故 雷 風相對 雨日相配 何 當 說先天之方位平 若於古經有以 震 離免乾興次良坤 環轉爲說 有如出平 震 紅興之章者 吾方謂之先天之學 於古有徵如其不然 未政信也 도시 郡子八卦方位圖는 茶山의 반론대로라면 결국 郡子의 조작이라 이르지 않을 수 없다. 茶山은 여기서도 未政信의 태도를 견지하여 이 롤 전면 부정한다. (4) 先天橫圖九六七八之說 茶山易에 있어서의 九六七八의 의미는 실로 독특하고도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朱子는 〈其位則太陽一 少陰二 少陽三 太陰四 其數 則太陽九 少陰八 少陽七 太陰六〉이라 이르고. 이어서 이르기를 古人徹易 其巧不可言 太陽數九 少陰數八少陽數七 太陰數六 初亦不知其 數如何 思地元來只是十數 太陽居一除了本身便是九節 少陰居二除了本身 便J\節 少陽居三除了本身 便是七節 太陰居四除了本身 便是六節 라 하여 九六七八에 대한 朱子의 논리는 너무도 애매모호하다. 이에 대한 茶山의 반론은 다음과 같다.

先天橫圓 固非生卦之本理 亦非 盡 卦之本法 然 一生兩時 兩節一時並生 兩 生四時 四節一時並生 如草木出土 本只一幹 分出兩枝 兩枝一時並生 並無先 後之序兩枝又分出四條 四條一時並生 亦無先後之序 今人取木條命之曰此是 第一枝 彼是第二枝 未有不緊其非理者 一太陽 四太陰 原屬非理 一二三四銃 不分命 九六七八 將何所立 等數之家 有除本身之法 然 所謂本身必用實數 不可以兄弟序次 遂當本身之數 荀氏八龍 除其第三 荀是七人 不可曰五人也 竹木七緊 除其第四 荀是六人 不可曰三人也況無故無義 自除其身 乃取其所 餘之數以爲本數 担府茂문也 旦操菩作卦之法 每只一盡己有老陽老陰 少陽少陰 今先天之法 盡到第二盡 乃有此二老二少 審如是也 乾初九坤初六 都不可解 將若之何 九六七八의 數理는 茶山易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므로 따로 밝히기로한다. (5) 乾坤策數 著卦傳에 따르면 〈乾之策 二百一十有六 坤之策 百四十有四 凡三百 有六十 當期之日〉이라 하였다. 이에 대하여 朱子는 이르기를 凡數 生於四象蓋河圓四象 太陽居一而連九 少陰居二而連八 少陽居 三而連七 太陰居四而連六 探菩之法H lj 通計三變之餘 去其初掛之一凡四爲奇 凡八爲偶奇圓園三 偶方園四三用其全 四用其半 積而數之 HIj 爲六七八九而 第三變操數策數 亦皆附會 蓋餘三奇則九而其探亦九 策亦四九三十六 是爲居 一之太陽 餘二奇一偶月1j八而其探亦八 策亦四八三十二 是爲居二之少陰 二偶 꿉則七而其操亦七 策亦四七二十八 是爲居三之少陽 三偶則六而其探亦六 策亦四六二十四 是爲居四之老陰 是其變化往來進退離合之妙 皆出自然 非人 之所有臣움也 라 하였다. 그러나 茶山은 河圖十數와 周易八卦와는 전연 별개라는 입 장에서 이를 전적으로 부정하였다.

河圖十數與周易八卦 全不相當 易傳所謂河出圓 論語所謂河不出圖 顧命所 謂iiiJ圖在束序 今不知何物 先正急以八卦配於iiiJ圖 直云iiiJ圓有四象 然 今之 所謂河圖 一二三四 六七八九 匠皆具存 不可日只有四象 若云一二三四爲四 象之本位 六七八九爲四象之餘數 則五在中 十在次者又將爲何象平 先天四 象 太陽只在右偏 不是居一 太陰只在左偏 不是居四 設如郡子之言 一二三四 荀是標題 不是本數 今乃於iiiJ圓盤上 取一點屈作太陽 取四點居作太陰 己展 强硬 況云一點連九 二點連八 遂坐八九爲少陰老陽之名 登公論平 操召[子之 說河圖者圓圓也 五點在中 十點環外 爲第二重 一二三四又環其外 爲第三重 六七八九又環其外 爲第四重 由是觀之 一與九本不同重 二與八本不同重 三 與七本不同重 四與六本不同重 安得云居一而連九 居四而連六平 若於異重之

位 亦有相連之理 則所謂太陽之居一者 右連九點左連八點 不得單謂之連九 也 所謂南連七點 北連六點 不得單謂之連七也 天地造化之理 寫於此中者矣 무릇 四爲奇說도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凡四爲奇 恐非易例 奇也者零數也 亦陽數也 探菩之法 本探以四 四其爲零 數平 二二相配乃成爲四 四其爲陽數平 以四爲奇 原是器法 況奇圓園三者程 一園三之謂也 程一園三本有餘零 不是精法 安得與隅方園四配之爲至理哉 圓 者以六而園一 方者以八而園一 斯則然矣 奇圓園三 非其實矣 三用其全 四用其半說도 論理的 근거가 없음을 다음·과 같이 논증 한다. 三用其全 四用其半 又何義也 參天兩地本是易例 故 一三五七九皆以三計 二四六八十皆以二計 九六七八 於是平生焉 四本無罪 强去其半 有是理平 이렇듯 著卦傳의 乾坤策數는 겁臼子의 河圖洛書와는 전적으로. 무관하 다는 茶山의 주장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이 양자의 논쟁은 언젠가는 풀어야 할 쟁접을 안고 있음에 있어서랴 !

(6) 參天兩地說 河圖洛書學이 정립되는 과정에서 야기된 數理易學은 해석하는 이의 입장에 따라서 각양각색으로 풀이가 된다. 參天兩地說도 그 중의 하나 가 아닐 수 없다. 朱子는 河圖洛書의 五爲中의 所 Ek 를 밝힘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논리를 전개한다. 陽之象圓 圓者經一而園三 陰之象方 方者程一而園四 園三者以一爲一故 參一陽而爲三 園四者以二爲一 故 兩其一陰而爲二 是所謂參天兩地者也 三二之合 nI j爲五矣 此河圓洛書之數 所以皆以人五爲中也 參天兩地說은 說卦傳의 〈參天兩地而侍數〉에서 유래하였고 朱子는 그의 周易本義에서도 天圓地方 圓者一而園三 三各一奇 故 參天而爲三 方者一而園四四合二偶 故兩地而爲二 數皆倍此而起 故 操菩三變之末 其餘 三奇月 1j 三三而九 三偶 則三二而六 兩二一三則爲七兩三一二則爲八 이라 하여 天圓地方說에 근거하여 이룰 풀었다. 그러나 茶山온 실리에 입각하여 三分損一說을 채택하고 있음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參天兩地之義 微妙難言 然 老子曰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莊子曰一與一 爲二 二與一爲三 漢書鄕社志 有三一之文 而律曆志云太極元氣函三爲一 管 子論樂律 亦以三一起數 此皆古人參天之原義也 在地之物 百穀百果 皆兩緯相 合 人身頭顔以下 亦皆兩合 則形質在下之器 其體兩合 此古人兩地之原義也 然 其在周易 直操卦畫 亦可以參天兩地 蓋柔畫中斷 紋之剛畫 綾得三分之二 非必 ]l j求異義 至於極一園三 本有零餘 不是精法 綾道一基有差 便非玄理所 本 況三用其全而謂之參天 四用其半而謂之兩地 柳又何義 大抵參天兩地者三

分損一也 以三爲本去其 一 分者 律曆第數之家 大經大法 今以四爲本而去其牛 數 則天自天而地自地 亦無以組賜而化醉矣 若云陰數必以兩而爲一 故折四 爲二 則原初經一之時 又何不兩合爲一平 圓樞以一爲 一 Rl j方經宜二爲一 不 得云方圓同例也 그리하여 河圖洛書의 以五爲中說의 연원은 저 멀리 鄭玄울 祖述한 關朗 이하 術數家(卜莖易)에까지 소급하여 이룰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關朗以下術數家 皆祖鄭康成天地生成之說 以一二三四 六七八九 配之於木 火金水而五與十除之爲中央土之配數 故 河圖洛書 皆五點居中 非有他義也 여기서 우리는 實理에 입각한 茶山의 象數學的 古易과 후대 陰陽五

河圓之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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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說的 術數學(卜莖學)과의 사이에 뛰어넘을 수 없는 도랑이 가로놓여 있음을알수가있다. {7) 老少互藏法 그림을 점검하면서 다음과 같은 朱子의 해석을 읽어보면 아래와 같다. 河圖六七八九 銃附於生數之外矣 其九者生數一三五之積也 故 自~t而東 自東而西 以成四之外 其六者生數二四之積也 故自南而西 自西而北 以成于 一之外 七.Q l j九之自西而南者也 八則六之自北而東者也 此又陰陽老少互藏其 宅之變也 九를 生數一三五之積 六울 生數二四之積 등으로 보는 朱子의 老少互 藏法의 이유 없음을 茶山은 디움과 갇이 논박한다. 自一爲九之時 自~t而東 自東而西 歷三歷五察四至九以此例之 則自二爲 六之時 當自南而西 自西而東 歷四察五察三至八 然後 其陰陽互轉之勢 乃均 乃正 今也不然 一至九則自~t而東 卽折而西 二至六則自南而西 又辻而~t 北 一急一緩 一察一親 彼此形勢能語而不f牟 뾰天地玄妙之理哉 然旦 陰陽老少 其所以爲老爲少之法 宜均齊方正 自成此例而九六之宅 其崎眼 幕 積之勢 若是 深奧 接所謂七八之宅 匠無淵源 亦無亭毒 不過困九六之餘勢而委其尾焉 何 天地象數之本 其敍灰而不齊整若是其基也 終日玩究 絶無眞實不易之理誠恐 河圖幾占 都非古聖人之所觀也 도시 河圖의 數理는 茶山이 이른바 古易과는 무관한 자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朱子는 老少互藏法울 계속 수용하고 있다. 老陽之位一 老陰之誠四 今河圖以老陽之九 居于四之外 而老陰之六 却居 平一之外 是老陰老陽互藏其宅 少陰之位二 少陽之位七 却居平 二之外 是少

陰少陽互藏其宅也 그러나 九六七八이 지니고 있는 象數學的 의미를 定立한 茶山은 老 少互藏法의 이유 없음을 다음에 장황히 설명하여 후인의 경각심을 돋 구어준다. 河圓別無深理 唯一二三四列于中層 六七八九環于外 而一六相配 二七相配 三八相配 四九相配 以爲天地生成之數 如鄭康成之說而己 于是 先儒取菩卦 之家七八九之名 附之於成數 又取先天橫排之圖一二三四之標 附之於生數 彼 此照觀 終日叫奇 以爲天地之玄왔 然 天一生水地六成之 地二生火天七成之 乃河圖本法 吾不知 天一生水何以爲老陽 地二生火何以爲少陰 天三生木何以 爲少陽地四生金何以爲老陰 뾰周易之例 次爲老陽 離爲少陰 震爲少陽 免爲 老陰平 若如先天橫排之圖 則乾免屬於老陰 與所謂一六次水 二七離火 三八 震木 四九免金之說 左乘右件 一不相合 斯亦可以知所息矣 又何必凍~塗西株 荀冀其一有合哉 라 하고 결론지어 이르기를 總之九六七八者 卦盡之所以變與不變也 與 7k 火生成之數 太極音 Il 判之理 都 不相當 先儒取此菩卦之家至要至功之數目移以昌之於 7k 火生成之數 太極刻 判之圖 而及其探耆以求卦也 荀不知何者爲九 何者爲六 何者爲七 何者爲八 試間之以乾fl]九 坤初六之義 皆相顧情胎 不能置對 或云陽數極於九 而陰數 又未當極於六 則其說的不可通 損所急而務所緩 喪其實而超其虛 未有基於是 者 是知太極橫排之圖河圓配掛之法 皆易學之大都 不政不辯 茶山易에 있어서의 九六七八은 卦畫의 變 不變울 의미함에도 불구-하 고 河圖學에 있어서의 老少互藏의 논리는 그들의 습성인 견강부회의 소산이라 이르지 않을 수 없다.

(8) 八卦之則 河圓의 數理와 八卦와의 관계는 朱子의 논리적 試圓에도 불구하고 茶山의 實理論에 비추어볼 때 그의 허구성은 명료하게 들추어진다. 朱 子는이르기를 聖人之則也 河圓之虛 五與·十者太極也 奇數二十偶數二十兩儀也 以一二三 四爲六七八九者四象也 析四方之合以爲乾坤離次 補四隅之 空 以爲免 震 興良 者八卦也 라 하여 太極은 五與十, 兩儀는 奇隅各二十 四象은 一二三四以爲六七 八九 八卦는 四方四隅로 논한다. 朱子는 이를 세분하여 八卦의 序次橫 排之位와 四象의 數理와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논하기도 한다. 以四象觀之 太陽之位居一而數則九 乾得其數而免得其位 故 乾爲九而免爲 一 少陰之位居二而數則八 離得其數而 震 得其位 故 離爲八而 震 爲二 少陽之 位居三而數則七 次得其數而興得其位 故 次爲七而興爲三 太陰之位居四而數 則六 坤得其數而良得其位 故 坤爲六而良爲四 今析六七八九之合以爲乾坤次 離而在四正之位 依一 二三四之次以爲 震 免興良而四隅之空也 그러나 茶山이 이른바 四象 八卦의 數理는 參天兩地說에 의거하여 다음과같이 闇明한다. 參天兩地法 凡一陽二陰爲少陽 (三二二爲七) 一陰二陽爲少陰 (二三三爲 八) 由是觀之 震次民三卦都是少陽(皆一陽二陰) 興離免三卦홉限是少陰(皆一 陽二陰) 登無故錫名 曰老 曰少平 그러므로 茶山은 河圓의 數理를 받아들일 수 없음은 다시 말할 나위 가없다.

原來太極兩儀 四象 八卦之說 須有兩件 一 是 天地本物 一是 菩 卦之法象 先儒於太極兩儀 祖有兩件而四象八卦之本物 不知爲何物然 天地水火 雷 風山 澤 卽八卦之本物 人荀 言 之可無異論 惟是四 象 之所象 古往今來 都無 言 者若 以郡氏橫排圓所列 老陽少陰少陽老陰 言 之 則此是四象 不是四物 兩儀銃是天 地或云陰陽 則四象所象 登無其物平 紙上黑白之康 登足以承天地平 若云四 象原可爲本物之名 則太陽太陰少陽少陰 天地間本無此物 亦無此名 將若之何 라 하여 本物과 法象의 불일치에서 오는 朱子說의 불합리를 논박한 후 자설을 다음과 같이 전개한다. 包儀 盡 卦之tJJ 專 籍仰觀 1府 察 先得兩物 兩分爲四 又得四物 四化爲八 遂得 八物 八物者天地水火 雷 風山澤也 八物旺得乃 盡 卦八卦 由是觀之 所謂河圖必 有八物之象 乃可謂聖人所則 今之河圖其有八物之象平 라 하여 河圓에는 聖人J! l j之할 八卦物象이 전무함을 지적하고 이르기를 今論太極音 I j判之理 原來一包兩 앉湘函包天地) 兩包四 (天地包天地水火) 四 包J\ (天地水火包天地水火雷風山澤) 則太極者八物之合 八物者太極之分 其 材料不是各辯 其度數不可各計 磐 如大樂之分只此八音 八音之會還是大樂 非 大樂之外別有八音 八音之外Jj lj 大樂也 今河圓之五與十 本與一二三四六七八 九平爲同列 安得以五十爲太極平 盡 卦者取天地水火雷風山澤削而用之 去其 漆海無用之物 歸之太極 太極其塔平 孔子方生易大傳著卦之法 天一地二天五 地十平爲同列 天五地十未 當 尊之爲太極也 雜以鄭康成之好怪 但云天五生土 地十成之 登可以土爲太極平 朱子以一三七九爲奇數二十 以二四六八爲偶數 二十蓋云十數之內除五與十 H lj奇偶相敵 其事可奇也 然 此是偶然 不是神妙 或倍或均本亦常事 斯不足多也 河圖에 있어서의 數理的 배합의 불합리를 지적하고 또다시 이르기를

今以郡子朱子之法言之 乾免生於太陽 其位其數理所 1 皆得 乾得其數免得其 位無是理也 兒得本數乾得其餘數無是理也 (一者太陽之本數九者一之餘數) 得其位又得其本數者歸於四隅 (gp震免興長) 不得其位但得其餘數者操於四正 (卽乾坤次離) 無是理也 操iiiJ圖方位二七居南ff l j震次宜在南方 一六居北則免 坤宜在北方 三八居東則興離宜在東方 四九居西則良乾宜在西方 而考之於先 天方位一不相合 河圖先天方位圓 先天橫排圓 皆是都子之物 則其理數之妙合 必不可得而移易者 乃其左乘右件前跋後達岡知所描 乃至於此 此物登可通耶 說易到此 義所謂一乾天二免澤亦無地可党而乾坤次離之何以爲九六七八 免 震民之何以爲一二三四 九六七八之何以居四正一二三四之何以居四隅 皆 絶無所以然之實理 將何以推通耶 라 하고 그의 불합리를 통박하며 그의 虛構性울 다음과 같이 지적 한다. 乾爲太陽坤爲太陰 次爲少陽 離爲少陰 四者之名猶云勢能而免爲太陽 良 爲太陰 興爲少陽 震爲少陰當此之時 雜周公復生仲尼在坐 必無以究其理而 說其義 況云這節得其位 那節得其數 這節宜在隅 那節宜居正 是夢之中又 夢 이상에서 郡氏易이 八卦序次 先後天方位롤 조작하여 古代易의 象數 를 변혁한 점을 비판하였다. 단 洛書의 數理에 대하여서는 언급이 없 으므로 그대로 章을 넘기는 수밖에 없다. 제 3 절 部氏의 後學 象數易으로 始源한 古代易은 王弼의 義理易에 의하여 變革되고 또다 시 郡氏의 術數易에 의하여 변질되었다. 茶山은 오로지 古代易에로의

회귀를 시도하며 끈질기게 이들을 추적한다. 郡氏의 후학들도 빠짐없 이 沮上에 울려놓고 자신의 易理論으로 이들을 재단한다. 먼저 沙隨 程廻의 周易古占을 해부해 본다. (1) 沙隨古占 沙隨程週著 周易古占十二篇은 본래 郡氏先天圖學을 근거로 한 자로 서 아칙 그의 似是實非之說울 辯惑하는 이 없으므로 茶山은 銀意 이를 바로잡으려고한다• ®太極說 程氏는 성湘極者乾坤未列 無象可見 大衍未分 無數可數 其理謂之道 其物謂之神〉이라 하여 神認主義的 假想으로 여간 데 반하여 茶山은 이 르기룰 太極者天地未分之先 潭敦有形之始 陰陽之旺胎 萬物之太구}J也 라 萬有의 始源的 존재라 하고 所謂太極者是有形之始 其謂之無形之理者 所未政省悟也 라 하여 太極道理說을 懷疑的으로 비판한다. 만일 太極을 도표로 만든 다면 이미 그것은 太極이 아니라 太極圖의 太極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易大傳에서 〈易有太極〉의 太極은 探著하기 전에 아직 五十策이 未分 된 지를 가리킨 것으로서 太極의 象을 간직하고 있을 따름이라는 것이 다. 여기서 이른바 未分된 太極의 象이란 바로 大衍之數五十일 따름이 다. (菩卦傳 參照)

®兩儀論 程氏는 兩儀를 〈乾 坤之初 盡 也 〉 라 하고 〈儀 四也 言陰陽相四也 〉 라 이 르기도 한다. 여기 乾坤은 說卦傳에서 〈 乾爲父 坤爲母而其餘六卦並得 男女之名 男女云者乾坤之男女也 〉 라 하여 男女 父母를 의미한다. 그러 고 보면 沙隨의 兩儀說은 다음과 같은 모순을 안게 된다. 父母銃具而後 男女可産 若如沙隨之說 則父母男女平等同列 父母之形方始 而男女之體並起 父母之形銃半 而男女之體齊隆 況其成形之時 坤居第八 則 是諸男諸女 蔚然成群 而後母之形方成 違失倫理 不成 事體 云云 …… 그러므로 長幼失序 先後倒次하니 不政信從이라 茶山은 단언한다. 兩儀의 儀는 度也요 容也요 象也이므로 兩儀란 象兩者也인 것이다. 象兩者의 양자는 무엇일까. 茶山은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易者日月也 日月者陰陽也 陰陽者乾坤也 乾之三陽爲六十二卦諸陽之本也 坤之三陰爲六十二卦諸陰之本 然則 象兩云者象陰陽也 亦象乾坤也 謂之儀者 何也 潭天儀爲潭天之儀象而己 非直海天也 黃道儀爲黃道之儀象而己 非直 黃 道也 兩儀云者 菩 策之分而爲二者爲乾坤之儀象而己 非直乾坤也 그러므로 兩儀는 儀象이므로 실체가 아니라 실체의 儀象일 띠름· 01 다. ®四象說 易學에 있어서 四象의 개념처럼 모호한 자도 드물다. 四는 二의 倍 數인 데다가 八의 半數로써 兩儀와 八卦의 中間者로 간주되지만 그의 역할은 兩儀와 八卦에 비하여 그리 대단하지가 않다. 그런데 郡氏는 이를 太陽= 少 F 距= 太陰== 少陰=으로 分類하여 茶山의 論跋을 받은 바 있거니와 그렇다면 程氏는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四象者乾坤初與二相鉛而成也 大衍六윗而得之也 所以配陰陽老少之分也 라 하였으니 이 三者가 다 實理와는 거리가 먼 가공적 개념들이라 이 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茶山은 天地自然의 실리에 입각하여 四 象四時論울 다음과 같이 전개한다. 孔子曰大衍之數五十(節) 探之以四以象四時 歸奇於抄以象間 五歲再閔 故 再抄而後掛 其云操之以四以象四時者非旺四象平 라 하였으니 이렇듯 簡明한 孔子의 四象論울 제쳐놓고 어디서 四象의 개념을 구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四象四時의 四時란 무엇인가. 自復而臨而泰 春也(周以子月爲歲首) 大壯而夫而乾 夏也 自始而逐而否 秋也又觀而刺而坤冬也 그렇다면 再閔 (五歲再間)이란 또 무엇인가. 中半小過 閔月之卦也 其云五歲者何也天地者日月之門戶也 始於甲年之子 月 至戌年之亥月 以求一護之復其tJJ때껍今之冬至』 則其間六十二月 不再置閔 歲律其成平 그러므로 四象이란 四象四時 五歲再閔에 의하여 얻어전 자연의 실상 으로서 그것이 卦象에 다음과 같이 반영한다. 乾坤者大易之門戶也 起於屯卦終於未濟 其數六十二卦 不有兩卦以易再閩 易道其合平 (不合於歲律) 以我之六十二卦 當彼之六十二月則中字小過之名 之爲閔 實亦天地自然之數 不假人安排布置者也 四時再閔之名 皆指易卦而 E. J. 操菩而爲四者謂之四象 若是明切尙有他議平

河圓學의 大家 劉牧(字先之號長民)은 〈 以九六七八爲四象 〉 이라 하였 으니 이는 數의 四象이요. 先倍는 〈 以金木水火爲四象 〉 이라 하였으니 이는 器의 四象이요 或者는 〈 以神物 變 化垂象圖 書 爲四象 〉 이라 하기도 하였지만 이는 兩儀와 八卦와 중간자로서 連續되지 않는 四象說이다. 그러므로 茶山은 太少陰陽으로 표현되는 四象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定한다. 所謂老少陰陽者 卽撰 菩 三 變 之後(得一 畵 ) 立其純雜之名者也 三參爲老陽 (三得天) 三兩爲老陰(三得地) 一參二兩爲少陽(一得天) 一兩二參爲少陰 (一得地) 陰陽之名立於總數而老少之名分於純雜(純爲老而雜爲少) 卽非三 操得總數則陰陽老少之名 不能生矣 이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宋儒들의 논리는 다음과 같이 불합리한 자 라이르지 않을수없다. == 今無法以以異=也爲 參少天陽兩 pl地 =則-궁 紗其少數陰 皆 何五其也立 陰義陽之旦不不公可耶名 夫而其況爲於一老陰少一平陽 之合 =與 라 하여 三探之後의 결과에 의하여 비로소 老少陰陽옳은 결정된디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參天兩地說參照) ®~變雜說 것의 개념은 伏磯 盡 卦 이래 千古의 疑案이다. 父者言平變者也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역대의 易占家둘은 父와 畫 룰 구별하지 못한 채 설왕설래한다. 沙隨程氏도 그 중의 하나임에 틀림이 없다. 몇몇 사 례를 열거하면 디음과 같다. 程氏는 이르기를 여겐 휼 曰周易以變者 占〉이라 하여 오로지 變者로만 점친다고 하였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 도 아님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每云周易以變者占 此又蒙味不明之 言 也 六位成章之後 考其純雜 若六父供 雜(皆少陽少陰) 則本卦不變 於是平 以不變者占 ……今 冒 大名以築之曰周易 以變者占 不亦霧平 그러나 以變者占의 경우도 오직 一父의 變象만을 취하므로 周易之法 一父唯變 故 屯蒙以下 每于一卦 緊以七縣 縣詞唯七而求變者六 十四 惑之基矣 程氏는 또 이르기를 〈二父三桑四桑變以本卦爲貞 之卦爲海〉라 하였 다. 二三四交가 각각 變象이었을 경우 다음과 같은 모순이 제기된다. 周公之爲交詞 本非惡空臼撰 屯之tJJ九 必擦震變爲坤之象 屯之六二 必操 震免之象 若屯變爲豫 則屯之六四 將若之何 其將爲免平 非卽爲豫也 其 將爲震平 非卽六四也 其將互興平 非卽爲豫也 其將互良平 屯五相製也此其 物卦德 貿亂顯倒 雜以周公之子之美 實無以借一辭於其間也 故 周公無此 詞 將臥於作 I 以考占耶 또 程氏는 이르기를 〈六찾 中 五父가 변하면 남는 一것의 不變으로 점치되 劉禹錫이 이르되 變者五요 定者一일 경우에는 宜從少占이라 한 자가 바로 이것이다〉라고 한 데 대하여 茶山은 이를 辨駿하여 이르 기를 良六交之中 九六者至於五 而八者値一 乃謂之民之八 可平 旦夫찾也者卦 變之名不變非父也 故 孔子曰父者言平變者也 孔子曰父也者勅天下之動者也 孔子曰道有變動故曰父 今沙隨之言 日以不變交占 天下有不變之父平 천하에 不變之父는 없기 때문에 沙隨之言은 원천적으로 잘못된 것이 라 이르지 않을 수 없다. 또 이르기를

桑之名 不出於曰j나크六 此周易之大經也 乾卦而六父變 Rl j六交皆九 可以 名之曰九也 故 曰用九也 坤卦而六交찾 則六父皆六 可以名之曰六也 故 日 用六也 請間屯卦而六交變則名將奈何 謂之用九平 六者尙多 謂之用六平 九 者不該 名之不立 象於何觀 此聖人所以不取也 故 六交全變之法 唯乾坤有之 他卦不能也 若夫數三交亂動之法乾坤亦所不能 何者 九六之名不立也 이에 茶山은 全卦變動은 乾坤二卦에 局限되고 (디른 六十二卦는 全卦 變動은 있을 수 없다) 또 數三父亂動도 절대로 있을 수 없음을 밝히고 있다. (2) 吳草麻易纂 吳澄의 字는 幼淸이요 호는 草麻인데 본래 郡氏易의 범위를 벗지 못 한 자이지만 간혹 名論 卓說이 끼여 있기도 한다. 吳氏는 毅皇 畫卦時 에 이미- --두 획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지만 왜 하필---뿐이랴 毅皇畫卦時 이를 본 사람이 없으므로 先作三 次作三三 有何不可하랴 이 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여禪認上. 添畫一層以爲四象 四象 之上 添畫一層以爲八卦〉說울 비판하여 〈天地之理 一生兩 兩生四〉의 논리를 다음과 같이 說破한다. 天地之理 一生兩 兩生四 故 先儒强以毅皇畫卦之法 爲兩四之象 然 一生 兩者分一而爲兩 非於太極之外添出個天地也 얹챈 8 之分爲天地) 兩生四者分 兩而爲四 非於天地之外 添出個四氣也 (今所云二陽二陰) 四生八者分四而爲 八 非於四氣之外 添出節天地水火雷風山澤也 今所云義皇챌圭卜之法 兩儀之上 添層以爲四象 四象之上 添畫一層以爲八卦 是 天地開關之後 添入材料 以作四氣 四氣流行之後 添入材料以作八物 登造化生成之象哉 一生兩은 萬物生成의 원리다. 그러므로 郡氏의 후학인 吳氏의 설을

수용할 수 없음은 다시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디소 선택적인 면이 없지 않으니 一表를 만들면 다음과 갇다.

卦名 吳易纂 茶山i特義 需 緯四陽大壯變 需松均是二陽之卦(注. 二陰之卦의 잘못인 듯) 松 緯二臨逐變 易例少者爲主也 二陽之卦本具二母 各取一毋 亦鍊矣 此自漢儒以來 沿誤如此 泰 經三陽 吳氏之易 又以泰否~~i齊咸恒損益等八卦 名 否 經三陰 之日經卦 此四卦爲天地水火雷風山澤之交易 變易則有之矣 謂之經卦 何所擬矣 乾 元享解曰元首也 釋義皆好 然 始於復而通於泰曰元享 夫之和 文人上爲元在人 而次其位日利貞 乾元者復也 一身之上爲衆體 之長亨字與獻亨 之亨同 百嘉衆會 如亨禮衆美之物具 備也 利貞 解曰利者利 於事如刀之 XI J禾 貞者主其事如木之 禎幹正而固也 初九 曰;f]J之畫得 九字之義 無所建明 唯以剛畫爲九 何以解矣 九爲乾之九 六畫皆七者 其卦不變 占之以象詞 其或得九 九二 曰九居第二 者 其卦遂變 變卦謂之交 父非畫也 畫爲乾之同人 潛龍解日雲爲龍 比之荀九家之以乾爲龍 超悟極矣 但不言復臨 [옳佳才』震體 泰之象 皆可象龍

終日 解曰三變二 讀易之法 欲知終日之義 Jl lJ 盡將二 篇 中 終日 三四成離 日 中 日 長 等字 玩究硏慮 必有一說 能盡通諸 亢龍解曰亢人之 句而無一疑瀋然後 方是正解 三 變 成離登通 唯骨 剛而居高曰 例平 亢 • • • • 坤 先迷後得主(句)利 句絶皆正 Ot!透상坤順 不能直方者次德也 銃 西南得朋 名之曰坤之師 胡獨無次象平 旦其厚三萬里 直方(句)大不習 則樞一園三 其周九萬里 南北戴極之地 相去 (句)解曰以直計之 四萬五千里 亦各三萬里 有是理平 地之 厚 上下相去 三萬里以方計之 地之廣輪東西相 去南北相去亦各 三萬里其大無可 與比故曰不習 習 重也 屯 初떡旦解曰磐 玩易務要硏索然 察 整 至此 亦可以己矣 石也桓杖也足弱 不能動猶磐石桓 杖之在地而不可動 女子貞不字解曰 字者莘乳也 銃隊而貞 猶女子 或曰女子 貞者 禮記曰女子許妹 女子之事也 猶言女貞 婦人貞 等而字 • • 屯其 畜 解曰次爲整矣 然 易詞取象容有此法 家爲雨考工記天 下大獸五 畜 者脂 者 畜 謂犬家五在 次中家之 畜 也時 雨謂之 畜 雨

松 有字(句)室湯(句) 室楊中爲句 與吉終凶 吐韻 吳氏句絶 似誤 中吉(句)終凶 師 貞大人吉解曰崔 案太玄衆首擬師卦 而贊曰丈人1 崔擊 謂f/< I] 之良 恨曰子夏傳作大人 山 權類而降于二也 然 西漢諸易 本作丈人 陸丈人者聖人 可知子夏易傳 本是僞書 不足惡也 也澄案論語莊子 等稱丈人者謂 老人無力扶杖故曰 丈人 師出(句)以律否藏 案出與律 吐韻其句不可改也 左傳別是一義 (句)凶(句) 解曰 吹律之義亦器 左傳日律否藏 . . . . . . . . 上六小人勿用別 案此義 唯深於易者能言之 潛龍勿用 孔子釋 自爲句解云小人 之曰君子弗用 則此句釋之曰小人弗用 不亦可 細民農工商賈也 平 否六二曰小人吉大人否 同遇此父而君子宜 庶人在官者亦是若 用小人勿用 本易道也 O 但象詞 曰丈人吉 上 小人得此桑則勿 六曰小人勿用 皆進君子退小人之說 吳氏細民 用盜開國承家之 庶人說恐不然也 賞 非小人之所可 當

也 . . . . 比 不寧方來解曰考 此義極是 比者建萬國親諸侯之卦也 觀禮日伯 工記曰唯若寧侯毋 父無事歸寧 乃邦文侯之命 日歸寧爾邦 凡受 或若女不寧盜諸 命民 謂之寧 其不受命者謂之不寧 侯之不朝貢者其 占爲前時不寧之國 今旦 王用三福解曰凡 立三表 是大司馬之屈 非王腦也 駐駿以三爲節周

官大司馬仲冬大

OO 立三表 是其法 也 小畜 密雲不雨解曰次 小畜自夫來 昔之免 今之興 皆密雲也 之下盡奎塞不通 象雲之密 上九尙得戴(句)婦 案孔子象傳曰德積載也字爲句 良是也 婦貞者 貞廊(句)昆氏曰京 婦人之事也 猶言女子貞婦人貞也 C 礎효.與得 房袁翻子夏傳皆 未詳흡尤뜯 作得今從之 泰 九二包荒解曰荒 泰之爲卦 天地相交 天之包地並包八荒 況九 與盛通血也邪祭 二者明夷也 夷者荒服也 包血之義 恐無所當 播柴之後最先進 血包荒謂包裏性 血以進也諸本作 荒今依許愼說文 及莫翻本作荒考 象義當作盛 六五帝乙歸妹解 不須作卦용섣說 歸妹六五曰帝乙歸妹 則但當以 曰泰圭卜互體及圭透용 兩互看也 六五銃然 則翻翻不當亦當作歸妹 皆成歸妹故以歸 看此所謂聲援也 妹爲辭 . . . . . . 否 六二包承解曰承 易家元有此解 然 P. M)耆 P. ij借 乾肉 乾膳 隨交 當作츄性之正體 異象 安得一父之內 具有確裁膳茨証替之象 也小人當否唯以 包互鑛遺爲事 六三包墓解曰墓 者確裁膳茨酷뺨之 屬 • • • • • 其亡其亡緊于包 案 否卦元有乾馬坤牛 炎變爲晋 則 桑解曰亡失也與 興木離科卽爲包桑 是可緊也 比之良瓜之義

馬四亡及莊子亡羊 主 n1 以理j頓 之亡同 大者安不 忘危如有一動酸 I 恐其亡曰其亡矣 其亡矣緊于包桑 唯恐繁之不固而或 至효 1 眞之주也 豫 九四益管解曰孟 卦象固然而無合之形 何以謂之益菩 合也管等也所以 收裝一剛貫衆柔 之中 一윔[衆裝 之象 觀 六四利用賓于王 乾賓 興爲主 人不見於漢魏九家 吳公乃用 解曰六四變則成乾 之 乾爲賓 n莖 陸 利用獄解曰離體 古人多以次爲獄 大非也 離果爲獄 中虛獄之象 復 上六之末云案周易 案. 三. 百. 數.十 .桑 皆取銃變之象 其或取.不 .變 .之 .象 難用父變爲占而父 者 唯卦主之留動耳 然 草麻 此說 幾平破福 辭多只就不變起羲 鎖而入官奧 ,1 菅平 其不加硏也 其取變者間見耳 復之六桑 P 佳初 九一,易爲己復者 故父義以不變者

言其餘五陰乃未 復者而父辭各有復 者皆取變者言也 盜不變爲陽.Qlj不可 謂之復

夫 九克陸夫夫 解 案夫本上免 大壯兼免宜用羊象 但克陸二字 曰項氏日克音丸土 終不相聯 夫夫二字又不通貫 旦當關疑 0 羊也陸其群行之 克一作親 一作珪一作親 或云山羊或云野羊 路澄案克字上從 細角而形大者也 字有一點如兎字 寬字從是也 春 羊之角也 中從 目 羊之目也下從 凡羊之足也羊群 行山 奉而引牧於 陸 袁 六二億喪貝 解曰 案••• 最 . 好• 但三代之時 亦有億錢之戱否 未 億者古有誰億之戱 可知也 子謂子貢曰億則屬中 又曰不億不信 億度錢貨之數紋 貨殖之家 億度利害 或喪其財則亦億喪貝也 其 | 中否以相諸 寶也後漢梁冀傳 注云若今難錢也 淡 拜其机解曰次爲 此本强解 輿二在次輿中 如 車中之有机是爲 淡散之時而拜就其

車中之机也 凡身론 安車用机 家傳 家字互互言灰頭象 案祭禮特家體解之法 兩眉兩牌兩曾 謂之六 其上銀之形蓋野 體 家辭在六桑詞之上 加家頭在六體之上也 家也其頭最有力 而銃善斷物故 假借爲決斷之義

제 6 장 明淸의 易學 지금까지 보아온 易學思想은 曆數學的(日月 四時 再閔) 象數學으로 始源하였고 漢代 荀九家에 의하여 그의 근간이 전승되어 왔으나 魏晋 시대에 이르자 王弼派는 老莊울 수용하여 義理易學으로 변형시키었 다. 宋代에 이르자 朱子의 卦變圖는 漢代 象數學(推移)의 부흥에 기 여하는 양하였으나 겁關갭辭의 先天之學(伏磯八卦圖)은 또다시 周易의 源流에 一大變調룰 가져왔다. 王弼의 변질은 卦象의 해석상의 문제에 그쳤지만 郡子의 변조는 易의 원형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쳤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 주고 있다. 견강부회란 단어가 그롤 위하여 마 련됐다는 소이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소위 曆數學的 古易의 수난은 이에 그치지 않고 明末의 來知德에 의하여 더욱더 심화되었다. 來氏는 明末의 距儒로서 名은 知德, 字는 矣鮮, 호는 뿔塘 明朝嘉靖 四年生이요 萬曆三十二年에 壽 八十으로 沒하였다. 半生을 易經硏究에 몰두하여 易經集往十六卷울 저술하였으나 그의 창안인 緖綜說은 끝내 王弼과 郡康節을 잇는 제 3 의 天賊으로 지목되기에 이르렀다. 저간의 소식을 茶山은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器蒲 來知德 有易經集社十六卷 專팎닙寸傳中緖綜二字自立話訓 陰陽變換曰 鎌 上下韻倒曰綜 以此兩義 解釋經旨 而推移卦裝 ! 之說 嚴詞床卿 其于象詞交 詞之旨 一字一句不能偶合 特其自贊自李有若深究而猫悟者 故 淡學蒙識疑有 眞諦 往往宗之爲正學 亦易家之大都也 其論象數之本 荀違郡子先天之義 而 稽其說 乃欲傍越程朱 掃蕩荀虛 實易家之下乘也 이로써 來氏는 그의 鎌綜說로 推移卦變說울 배척하였음을 알 수가 있다. 이에 茶山은 來氏의 緖綜說울 디음괴· 같이 비판한다. 제 1 절 來氏緖綜說

來氏易說 茶山의 緖綜說張判 麟交緖對待 鎌鍵也 緖磯也 緖雜也緖猶造也鎌顯倒也 鎌交緖也 禮 之名 綜者高低 記曰禮樂交緖 詩傳日東西爲交 邪行爲鎖……緖蒲潟t也 織之名 綜也 綜總衆也綜尋緖也 列女傳云推而往 引而來 綜也 O 來氏以對待爲緖 而東西爲交 (正相對) 邪行 爲錄 (斜相行) 則非其本義也 來氏以顧倒爲綜 而推往爲 綜 引來爲綜Jllj非其本義也 求之以字義 本自不然 뾰可强 命之如是平 六十四卦止乾 乾坤次離頭大過中字小過等八卦 顧倒上下皆成本卦 不成 坤次離大過願 反 故 聖人指此八卦曰顧卦 其作交詞 皆用顧倒之象 4 、過中字八卦 雜隋庄 I 大過類也願之詞曰顧願吉 類頭佛經 次之次官 相鎔其餘五十 離之履鎌 皆是此義 蓋於本卦之內取其顧倒之象 非~相

六卦皆相綜而 配之卦 觀其對待之體 乃來氏之法 雙列配卦 觀其對待叫 爲二十八圭卜 奇喝采 指爲神妙 乃云願卦之詞 或取象於大過中字之詞 ....네 .... 或取象於小過 源洞貿亂 全無法純 並與所謂相綜之卦而 皆用此例易固難解 難解則置之而己 何爲此舞弄翻變以 麗J;)JiE哉

~□ 屯蒙之類維 來氏自作八卦相綜圓 以節屯革빴爲次之周 以旅鼎蒙i與爲 屯綜平離蒙綜 離之周 夫革盟二卦本無次體 何以謂之次周 蒙i與二卦本 平次本是二卦 無睦덮 何以謂之離周 自作非理之圖而自引如聖經日屯綜 然一上一下皆 平離 蒙綜平次 其誰知之 C) 經日陽卦多陰 陰卦多陽 故 二陽四陰之卦 屯蒙爲二[易之卦 不可名之曰四陰之卦 其云二陽四陰之卦 也… ... 亦陳矣 O 雜卦者雜物撰德之卦 卽所謂兩互之卦 屯見蒙 雜之兩兩相配 本非異事 今必弓 |此二句爲諸卦相綜之證 其有意味平 孔子沒後儒不 序卦屯蒙相次 反對之義也 次離相次 變易之義也 此不待 知文王周公立 來先生而知之 若夫需松之次於屯蒙 逐大壯之次於咸恒 象皆藏于序卦 雜碩傳文 終不텅器 盜以無法爲法也 今必於序卦之中 求 麟之中止以 其立象之旨 何也 O 來氏之學 專立鎖綜二法 乾f]J九有所 序卦爲上下篇 不通則求之於坤初六曰此緖法也 屯初九有所不通則求之 之序乃將說卦 於蒙初六曰此!綜法也 次象生於離則緖以通之 袁象生於良 執圓求駿 則綜以通之 法銃多變詞或偶合積久內驗 遂篤自信 如 一等擬人爲鬼悠所引 柱入山足꽃 彼荊冒擦 時 得一線開通 不悟從來迷味登不哀哉 自王弼掃象以 王弼掃象誠爲妄率 然 不於聖經之外 別立一門 此爲味 後注易諸儒 經 不是亂經 來氏欲通其象 乃於諸家所言之外 別立鎌綜 皆以象失其傳 二法 狼云周公立象本自如此 登不惑賊……其害執基 其 不言其象止言 罪執大 ...... 其理而易中取 象之旨 遂座埋 於後也 像者乃事理之 有此理 斯有此事 有此事 斯有此像若無此事 亦無此像 衍佛近似可以 荀無此理 亦無此事 今來氏之言 日難有此像實無此事 想像者也非眞 難有此像本無此理 卽此數語 己潭湯不淸矣 ……本無 有實事也非眞 此事 亦無此理 而設空像以怖酷愚 有是理平 有實理也 •• …·

圭國麟翻 卦燮之說 不自處翻始也 孔子家傳明臼如彼 何씀於處翻 之說也後儒信 也 荀奭姚規侯果蜀才之等 皆用推移此其傳授必自高遠 而從之 •• …·不 非今人之所得議也 王弼不取卦용g而賀卦之象 不得不用此 知乃綜卦也需 義 伊川不取卦變而隨鼎 n墓 U효 質咸恒損益 不得不用此義 松相綜乃次之 顧 來氏何人 律然抵后若是其無難也 緖綜變{ L無 象不合 陽桑來于內而 所 侍者此法 奈非孔子之本旨 得中也 乾所屬綜于坤 觀一節 來氏之易 不足以立門戶也 八卦各·有定配 不可 次所屬綜于離 相亂 乾坤一配也 次離一配也 震異一配也 良免一配也 良所屬綜于興 來乾坤次離綜之以本配 於震興良免綜之以他配 天下 震所屬綜于免 有此法平 自以爲伏毅八卦對待之法如此 而今觀郡堯夫先 乃伏毅之八卦 天)남卜方位之圓 則乾南坤北次西離東 而震與異相沖 良 一 )I 頂一逆自然 與免相沖 陰陽對待各自相沖 未常以震免爲一配 民興爲 之對待也非文 一配 卽來氏之易 不唯於三聖古義 范然不省 而郡堯夫先 王之安排也 天一部 亦未常精細一覽也 而可以知易平哉 惟需松相綜故 易有三法一曰交易如水雷屯 交易爲雷水解是也 二曰反 雜卦曰需不進 易如水雷屯 反易爲山水蒙 是也 三曰變易如水雷屯 變易 也松不親也 爲火風鼎是也 序卦Jl l j以反易相次 其顯倒而不成他卦者 若逐則綜大壯 乃以變易相次 卽乾坤次離頭大過中字小過 是也 交易之 故雜卦曰大壯 義亦時用之 泰否旺濟未濟是也 故 大象傳特云天地交 則....止.. 逐則退也 交易者之交義易 雜也各 如經 此El 喪若羊其于消易長 進喪牛退于之易運 唯謂十失二之粹於交卦易爲之也君 三 主 而兩間之卦爲之樞柱 於是 五十衍卦皆受命於是而各 正性命夫然後 升降往來之跡吉凶梅咨之情 有所觀玩 考之於哀王周公之詞 孔子象傳之文 其義歷然 乃來氏之 易 專執反對一法 欲以了此一部之經 登不勘哉 八卦所屬自相 李鼎祚 陸德明所傳古法以八卦之重卦名之曰八純卦乃於 綜圖云乾之屬 八純卦 自一至五 剛腐索還성 名之曰五世之卦 來矣鮮稿 活逐否觀刺坤 見此法爲此相綜之圖 遂以五世之卦爲乾之屬次之屬 登不 책復臨泰大 謀哉 觀射撫索: 何以謂之乾之屬 革覽無次 何以謂之次之 壯夫次之屬節 屬 謂之四世五世 猶之可也 非其族矣 可云屬平

屯銃濟革盟離 之屬旅鼎未濟 蒙漁 損益相綜損之 來氏自以爲知交變之法 而及其釋經也 荀用本象 故但梵 六五卽益之六 綜法奇妙 不知損六五益之六二 皆成中平 中字者兼盡之 二特顯倒耳 大離也 離則爲龜 大離者十朋之龜也 綜者何物 ••• … 故其象皆十朋 之龜 ...... 中交者二三四 易大傳所云中찾者兩互作卦而又變爲卦者也……來氏直 五...所...合 之圭덴 l 康以.. .節互...卦先 天認卦之圖爲 中文桑王 周己公屬大何以夢逆況知三惡離度火 而四以震離雷爲 始三見耶於 郡 乾初九注云陽 河圖洛各書非文王之所用 則五皆居中 非所言也……文王 日九陰日六者 所用 不止於五也……三十年硏究山中 尙不知九六爲것 河圖洛書五皆 變之名 乃曰陽皆言九 陰皆言六 卽少陽七 少陰八 不足 居中 故聖人起 謂之陽陰平 數止于五… •.• 又力 U 咸圭넌냉} 來氏自以爲知桑變之法而諸父變象 荀以本卦之象觀之 少女相感之情 知易者如是平 桑鹿有震足之體 故 得有撮象 것變有興股 周公立象日撮 之體 故 得有排象 徒以男女之情 任取四體百賊之象 則 曰排曰股梅曰 易詞直一倭說完說矣 而可平 輔類舌此則以 男女相感之至 情而立象也 有將緖圭卜立象 震者東方靑龍之象 免者西方白虎之象 夫執云良爲虎耶 者如履卦言虎 荀以鎌卦之法求得卦象 則乾將爲牛 次將爲維 震可爲鷄 以下圭卜免緖良 良可爲羊 八卦物象 恐以相反者爲用 而天然命之 曰此周 也有因綜卦立 易變化法 周易其塔平 …… 象者如井與困 相綜興爲市邑

在困爲免在井 爲興月 lj 改爲邑 矣 乾坤卽利才七 坤爲乾配 故得爲北馬 良爲免配 故 得爲抵羊 此皆說卦 馬免緖良革以 妙用之合於情理者 荀以鎔法 則直當爲杜馬 何以謂之~t 虎言之 馬來先生疏矣 小畜言雲因中 小畜言密雲 如坤言化七馬 坤爲乾配故爲化七馬 興爲稷次故 찾離緖次故也 爲密雲 來先生臨心幣看 指爲鎖象 O 來氏匠用中父 中交 良曰蒸心 中交 者互體也 兼山之良 本有大離 何必崎唱然 綜之以取離火 次 7k 安得薰心 以鎌離有火炯 也 潛[注云此桑 緖法蓋如此矣 可信平 匡信平 變興緖震亦有 龍象 履갑堅氷注云 審如是也桑變何用 霜一陰之象氷 六陰之象 龍戰注云六陽 緖之ffJJ次可爲維 綜之則震可爲犬 天下無難事也 爲龍坤之鎌也 變長綜袁亦龍 之象也

이상으로 來氏鎌綜說의 허구성을 철저하게 분석 이를 비판하고 있음 울 엿볼 수가 있다. 이는 어디까지나 茶山의 易理四法에 따른 준엄한 척도의 결과인 것이다.

제 2 절 李氏折中論 批判 厚菴 李光地 (1642-1718) 는 淸代의 距儒로서 康熙年間에 帝命으로 周易折中울 저술하였다. 그러나 그 내용인죽 茶山易의 척도에서는 너 무도 거리가 멀다. 저간의 소식을 茶山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康熙皇帝 命大學士李光地 撰周易折中而題之曰街頃共二十二卷 其書之例 進朱子本義以爲原注 退程子之傳錄于其次 又次以集說者 就李鼎祚陸德明書 中 抄取漢魏以來先儒之說 就永樂大全中 抄取宋元諸儒之說 而明儒所言因亦 附入 又次以案說者李先地自著也 解經之末 又有啓蒙附論一卷 序卦윙t明義一 卷 總之溶村之學 不信卦換 ! 不知桑變 不用互體 不用物象 難自以爲篤信朱子 而不信卦용!Jlij己非朱子之學 誰自以爲博綜古今 而漢魏儒說及宋元儒說 其有 卦찾物象之跡者怒行陶次 唯取其空言照說 敷衍義理之論者以爲組雜大毅王 弼之摘傳 其不及永樂大全遠基 附論所繪諸圓 又皆等數家之枝流 與周易一部 臺髮無涉 今人往往以爲易學之公議則郁惑深矣 (1) 總說 周易經傳의 구성에 있어서는 經傳分離와 以傳附經 등 두 가지 틀이 있는데 古經은 전자에 속하고 王弼本은 후자에 속한다. 그리하여 李氏 는 전자인 經傳分離하는 古糸룹을 따랐으니 茶山은 그게 옳다 하고 傳十 篇에 대하여서도 어떻게 생성되었는가에 따라서 이룰 수정하게 한다. 但十篇者上家下家上象下象上緊下繁爲六篇 大象說卦序卦雜卦爲四篇 所 謂文言者應與家象之文 奉連爲序 不可別爲一篇 文言은 古代 易話로서 傳十篇 중에서 이를 제의하였다. 또 魏晋시대에 王弼의 破互體 納甲飛伏之說울 李氏가 이를 긍정적으

로 수용하였지만 茶山은 오히려 이를 폐기할 것을 권한다. 易亡於王弼而尊之如此 其學可知 納甲飛伏 固可惡也 卦윗渤物象 登宜棄之 또 王應麟의 乾구J]九復說과 坤初六括說이 桑變울 모르기 때문임을 다 음과같이 설한다. 不知交變之義 則其葬也以活爲復以復爲始所說義理 皆與本旨角弓反張 如此 더욱이 李氏의 坤直方의 數理的해석은 浙入佳境이다. 坤卦六交 都是陽韻 不可作直方大句 幾何家之線面體 何干於周易 數學에는 소위 線面體가 있어서 線의 直이 아니고서는 面의 方울 만 들지 못하고 面의 方이 쌓여서 體를 성립시키는 것아지만 이것이 도대 체 『周易』의 直方大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도시 李氏의 독단은 너무도엉뚱하다. 屯卽鹿無虛의 卽鹿은 〈以卦象則良山震足 麗之象也 麗者山足也〉라 하여 朱子의 鹿當作麗說울 取하고 있다. 大貞小貞은 魏了翁의 해석이 옳다 하고 蒙濱則不告는 兪球의 引擦가 좋다고하였다. 刺忠造은 兪談 李光地의 해석이 옳고 染願는 項安의 설이 좋다. (2) 象傳 說卦 剛來句에 대하여 李光地는 〈家傳中有言剛柔往來上下者 皆虛像 也〉라 한 데 대하여 茶山은 그의 非理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泰否者交易也 小往大來 大往小來者天地 地天之交易也 四時兩閔之卦無~ 所受變 故 多以交易取象 或以變易取象 椿村單執泰否之詞以擊卦용g之義 得 平 天地間物無無所從來而忽現於目前者 銃云剛來明自上體下來 匠云自上體 下來月1j明有一卦爵今卦之舊體 銃有一卦月 1 j唯十二幹卦可以當此 此之謂卦욥홍 卦變非先儒之設造也 處翻蜀才咸有所受 安得一筆句斷 歸之於設同平 王弼力 掃卦變而於質卦之託 不得不違義 伊川不取卦욥f而隨壘唯陸賀威恒損益之傳 得不勉從椿村何得硬定如是 六十三卦皆無卦變而唯質一卦 偶有此象 無是 不也 五十六卦皆無卦變而有隨壘唯陸賀咸恒損益 偶有此象 無是理也 經云 往來 都是虛象 則是聖人所觀 本虛像也 不中鬼慈而眼見虛象平 哀哉 周易一 遺鄭 玄 匠大尼矣 虛翻荀奭槿扶顧 而王弼起矣 再遣王弼 匠大尼矣 李鼎祚洙: 驛 綿綿延脈 李光地又作矣 俠帝王之勢操儒宗之位 以滅此匠亡之周易 仰 獨何哉 莫翻荀奭에 의하여 儀備扶頓하고 李鼎祚朱梅菴에 의하여 綿綿延脈 하던 『 周易』이 鄭玄 王弼에 의하여 액운을 만나게 되었더니 이제 또다 시 李光地에 의하여 큰 액을 만나게 되었음을 탄식한다. 李光地의 易 學은 廣取古今하였지만 오히려 易理四法울 陶洙하였기 때문이다. 〈 隨剛來而下柔 〉 설에 대하여서는 그것이 이미 伏毅名卦之tJJ에 〈卦自 否來드표剛自至高嶺 鹽到至卑之地 斯之謂隨也〉라 하여 古易의 실상 울밝히고있다. 臨八月有凶句에 대한 李氏說울 評하여 이르기를 集古今香濁之說以擊荀虛之正旨 而自演其無理之義 借哉 라 하여 그의 무리한 易說울 애석하게 여기기도 하고 塞利西南句에 대 하여서는 〈椿村不取物象 並后坤良之說 畢意何物爲易〉이라 하여 易이 무엇인지도 모른다고 국언하기도 한다. 解利西南句에 대한 李氏說울 평하여 이르기를

易凡義理皆由卦象 舍卦象而看義理 #II 又何法 典謨者平 春秋者平 舍卦象而看義理하는 태도를 나무라기도 한다. (3) 緊辭傳 緊辭傳에서도 李氏는 많은 지적을 받는다. 父者言平變者也句에 대해서는 荀九家의 代表格인 虛翻의 說을 인용 함으로써 그런대로 솅g z 幾平達於周奧〉의 評을 받았지만 〈天數五地數 五〉句에 대해서는 熊煥의 說울 引用함으로써 〈一六水 二七火 三八木 四九金 登著卦之方位平 椿村謂典說極合圓意 維合圖意 奈於著卦不合〉 이란評울받는다. 大衍之數五十句에서는 孔類達의 〈掛―以象三者 就兩儀之間於天數之 中 分掛其以象三才也只룹 비판하여 이르기를 掛之時 取一策於天數之中 則兩儀之策皆成地數 四四操之 畢意殘餘 不 二ff l J四 不唯二四非奇數也 四探之末以四爲零數 亦不合理『奇者不偶也又零數 也』 必取一策於地數之中 然後 此事乃成何也 取一於地數之中 則兩儀之策 皆成奇數 四四操之 畢意殘餘不一則三 一三者奇數也 又四探之 零奇也 라 하여 그의 불합리성을 지적하고 나아가 朱子의 설도 그의 잘못을 지적한다. 朱子는 이르기를 朱子著卦考誤 日四十九策分置左右兩手 左手象天 右手象地 是象兩儀也 於右手之中取一策 惡於左手小指之間 所以象人 四四之後必有零數 或一或二 或四

그러나 茶山의 논리는 아와는 다르다. 案孔(몽貝達)氏之法 取一於天數之中 故畢意殘餘或二或四朱子之法唯以 左右分天地不以策數之奇偶爲天地 故 難取一於地策之中 而乃其所取或在陽 策或在陰策 偶取於陽 Hl j零者二四 偶取於陰ff l J零者一三 一三固奇 (奇數也又 零奇也) 二四非奇 經云歸奇於抗 不可解也 또 孔類達의 前後閩三十二月說도 다음과 같이 논평한다. 五再閔則六十二月也 六十四卦以乾坤二卦象天地則餘卦六十二卦也 中 半小過以象閔月 不亦可平 (4) 說卦傳 幽贊於神明而生著句에 대한 孔碩達 項安世의 논은 한결같이 神不能 言하므로 神意롤 付度하기 위한 방법으로 生著의 방법을 사용한다는 설은 茶山도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參天兩地說에 대하여서는 朱子의 〈三奇則三三而九 三精月 1 j三二而六 兩二一三則爲七 兩三一二月 1 j爲八〉說이 가장 분명하다 이르고 李氏의 장황한 數理는 견강부회한 자라 한다. 椿村之學深於等數而以之解易則皆傳會也 張說孔說固自有理 而三點求心 之說 是椿村舞文也 幾何家每作圓圖 先作中心一點次作外園一點 於是 打規 而圓形大小 由於外點之遠近 則兩點而己 何謂三里싸以求心平 O 九六七八皆 統一以三者亦傳會也 一四四爲九 二與四爲六二與五爲七 四與四爲八 何所 不可必謂之統於三也 라 하여 李氏의 數理롤 비판한다. 先立卦而後에 生交하므로 〈發揮於剛柔而生父冷근 當然하고 〈數往者

順 知來者逆 〉 이니 易有逆數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易有逆數 本無順數 經文昭然 數往者 ]I 頂 本是帶說 今抱此一句以證先天之 圖 本係窮塞 朱子答王子合 書 可考也 然 旦自古流來以至今日 是順也 自今迎 受以測來年是逆也 若自今曰復數祚日 是逆數 陳說非也 (5) 等數易論 茶山은 李光地의 학을 평하여 이르기를 椿村之學 深於等數而以之解易 則皆傅會也 라 한 것을 보면 椿村易學울 一名 等數易學이라 이름직도 하다. 그러 나 그것은 茶山易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너무나도 많은 난 제를안고있다. 먼저 郡氏先天圖에 대한 李光地의 소론을 보면 朱子의 천명표장한 공적이 돋보인다. 겁 B 子先天圖 낍汗之時 伊川程子J{lj未之見 龜山楊氏見而未之信 惟明道稽見 其書而括以加倍之一言 然則 當時知郡子者明道一人而己 南渡之後 如林栗袁 樞之徒攻郡者尤衆 難象山陸氏亦以爲先天圓非聖人作易本旨 擇朱子與蔡氏 闇發表章而召牌始顯明於世 五百年來誰復有爲異論者而不能奪也 이렇듯 郡氏先天圓에 대한 회의적 반응 속에서 굳이 朱子는 왜 이룰 闇發表章하였을까. 李氏는 다음과 같이 이룰 밝힌다. 顧朱子之意以爲孔子之後 諸儒不能傳受而使方外得之 故 其流爲丹寫小術

至康節然後返之於易道 今 E). 參同契諸쳅范紋: 其六卦月侯 蓋卽納甲之法 其十 二粹卦主歲 蓋卽卦氣之流 所爲始於縱復者 與先天偶同爾 似未足爲先天傳受 之操 惟楊雄太玄 其法始於三方重於九)사 又重於二七部 又重於八十一家 與 先天極儀象卦加倍之法相似也 流行之序始於中疾從 中於更月卒廊 終於滅沈成 則與先天始復終乾 始括終坤之序相似也 首用九九策用六六 則與先天卦用八 八 策用七七之數相似也 意者 康節讀楊雄之耆而心悟作易之本與 然 非楊雄 之時 易傳未浪 則雄亦無自而依敬之 故 康節深服太玄p).爲見天地之心 蓋其 學所啓發得力處也 朱子의 郡氏易 표장은 易道의 邪術化룰 막기 위함이라고 하였으나 사실상 겁 b 氏易이 楊雄太玄經과의 數理的 近似値에서 그의 표장의 당위 성을 엿볼 수가 있다. 양자의 관계를 茶山은 디음괴- 같이 지적한다. 程伯子謂康節之不過加一倍者悟其淡近也 非深許之也 楊雄玄經乘以三三 召 B 子先天乘以四四 而登文之易止於六十四卦 過此以往 皆非所用 今之儒者 一生硏究 唯在加一倍法 卽潛龍二字未當微通而坐談iiiJ洛 何益矣 後天圓方位論에 있어서 郡子는 〈乾統三男於東北 坤統三女於西南〉이 라하여 乾東北 坤西南說을 내세웠는데 李光地는 <::k抵 先天則以東南 爲陽方 西北爲陰方〉이라 한 데 반하여 茶山은 이르기를 文王卦位乾居西北 何謂乾荊於`東北平 興居東南 何謂女統於西南平 若云 陽卦皆居東北則乾登非陽卦平 若云陰卦皆居西南則興登非陰卦平 文王不迷 以北爲陽以南爲陰 有是理平 凡爲先天之說者 其奉强多此類 東西南北의 方位가 陰陽과 더불어 鎌雜하게 혼돈되어 있다• 또 李氏는 河洛未分方圖에 대하여 河圖之數五十有五 洛耆之數四十有五合爲一百 以一百之全數爲斜界而中

分之 則自一至者積數五十有五 自一至九者積數四十有五 二者相交而成河洛 數之兩三角形矣 라 하였다. 그러나 茶山은 이 설의 모순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椿村之學 全抱等數之精柏 蒙以河圖之面皮 名之曰易理之根本其質三聖古 易與拜數家蓬裝無涉 等數之學又與河洛퓰髮無涉 1居 微飾外之人好作圓書以 默恐蒙以釣名聞 于聖人郡天之法無所當矣 洛書等之至九河圖等之至十 則洛 書九數 包在河圓之中 又何以兩數之爲百平 凡直角方形 中分爲兩 三角形者 必自對角之尖 打線中割 乃椿村之法 於所謂河洛之界 打之爲線 則其線不得 平分 不得平分則不得爲兩 三角形 何也 洛界不及其半 猶可作三角形 河界g況 踏其半 不能爲三角形탄三角之外 又費生兩小角矣 其實理如此而詐稱三角形 之相對以默人主以示四方 可平 이어서 이르기를 總之格村諸圓 有所謂河洛動靜圖四首 河圖加減之原 洛書乘除之原 洛書]i_ 乘成百圓 洛書句股圖 河洛未分方圓 河圖三角圖 河圓十位之點數 洛害九位 之幕 形天圖 地方圓 人爲天地心溫] 形形色色 總於葬數之面 蒙以河洛之皮 於周易一部無相須也 이러한 잡다한 圖書는 도시 周易과는 무관한 자가 아닐 수 없다. 後天卦體用圖에 대한 李光地설을 또 茶山은 다음과 같이 평한다. 祖寸以天地水火爲造化之元者得之矣 然 以風山爲天地之交 以雷澤爲火地 水地之交 則喝庚不正非畫卦之本旨也 雷風之出於天火 山澤之生於水土 卽形 顯知之物而件誤如此 況其餘平 라 하고 先後天圖書學의 잡디성을 비판하여 이르기를

此下又有先天變後天圖 先天配河洛圓 後天配河洛[i'4 l 先後天卦산升:卦흉珪卜 圓 大衍圓方之原大衍句股之原 老陽合方法老陰合句股法 大衍迎日推策法 細硏其說 皆傳合索强以卦爲戱 如孩兒 1r1 鬪 累雙陸子作三円塔 又解作四阿屋 又맞爲六花陣 以爲鎔日之資而己 於聖經聖傳至副 |1 大戒之本旨 則一字半句不 可偶通 又雜以句股等法以炫人目 將何用矣 라 하여 葬數學의 희롱을 열거한다. 乾策坤策圖에 관한 李氏의 等數的 해석에 대하여서도 茶山은 이르 기를 膜景之度 寒睿各殊 堅以十八度爲恒定不易之數 己是奉合設令巧合 斯登 毅文之所慮哉 乾策者四九之所用也 坤策者四六之所用也 卦有六桑故其數如 許 何必랭밝겅[法象以默愚蒙哉 십陽也天道也 下篇陰也人事也〉의 설에 대하여서도 茶山은 그의 불합리한 점을 지적하여 이르기를 經云陽卦多陰 陰卦多陽 此誰以八卦而言 然 其例荀可推之於重卦 故 有一 陽之卦 有一陰之卦有二陽之卦 有二陰之卦 三陽三陰難若均適 亦有內外之 別 故 有三陽之卦有三陰之卦 陽卦陰卦各有定分 不可相亂 椿村硬以上篇之 卦爲陽卦 以下篇之卦爲陰卦 卽此己非知道 其湖塗雜說 不足究也 四象相交爲十六事圖에 대한 四象의 개념을 디음괴- 같이 정리한다. 四象者撰四之名 而其所象者天地水火也 天地水火非太陽太陰少陽少陰 太 陽太陰少陽少陰者九六七八之名 …… 郡先生加一倍法 未必爲庵悟所用 設如 其言 今此四畫之卦 是下四盡也非中四畫也 椿村於啓蒙紙面 而偶見其形似 · 遂作巧言以爲互卦之根 登本理實然平

互卦圓圖에 대해서도 〈 此圖別無開發 爲蒙學姑存之〉라 하고 끝으로 이르기를 雜卦序次 終無倫理 其以互卦十六之所屬而爲次者 亦依怖勢脈而己 椿村傳 會合 曲成義理如右而終日玩究 終無快活處 旦當腦疑 라 하였다. 어쨌든 李光地의 易學은 이로써 等數的 奈强傳會로 一貫하 고있음을볼수가있다.

제 7 장 古今異釋 漢代以後 明淸에 이르기까지 易理論의 變數는 너무도 다양하다. 그 러므로 茶山온 그의 古易의 기본이 되는 易理四法으로 종시일관 이들 의 變數롤 비판한다. 陸德明郭京 王應麟 蔡西山 胡玉齋 李厚齋 등의 易理論울 차례대로 논평하면 다음과 같다. 제 1 절 陸德明釋文紗 陸德明 (550-630) 은 唐代의 經學者로서 經典釋文울 저술하였고 그중 에서 그의 八純 遊魂 歸魂 등 卦를 논평하자면 다음과 같다. (1) 八純五世之卦

麟교始프二逐世 三否世 쁘觀五:J!世J

坤 1 莫 恥합 泰 大壯 夫 袁 豫 解 ·t.旦 升 井 興 小畜 家人 益 無妄 P莖 I효 次 節 屯 節齊革 盟 離 旅 開H 未濟 蒙 i吳 民 賀 大畜 t員 !矣 履 免 困 莘 威 塞 謙

茶山온이르기를 이는 漢魏古法으로서 매양 一盡이 始變하면 곧 一世라 칭하고 二盡이 浚變하면 곧 二世라 칭하고 三에 이르고 四에 이론 후 五에 이르니 그 法 이 도대체 신기할 것도 없거니와 아무데도 쓸 곳이 없다. 대체로 卦變이 나 交變의 의의가 혼미불명하다 고 하면서 이는 學易者들에게 무익할 뿐 아니라 俗儒들의 안목을 현혹 시킬 따름이라고 하였다. (2) 游魂八卦

游八卦 乾晋 需―坤 大震過 異願― 巴” 離국―i三

이 游魂說도 漢魏 이래 古法의 하나이기는 하지만 文王卦詞나 周公 父詞와는 무관한 易家의 유희잡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논평을 내리고

있다. 본시 游魂의 예는 下卦는· 全變하고 上卦는 半變하였으니 예컨대 乾 의 游魂이 晋이라 함은 三三또에서 보는 바와 같이 下卦는 全찢하여 坤 이 되고 上卦는 半變하여 離라 된 것이다. 또 次의 游魂이 明夷라 함 은 또三에서 보는 바와 같이 下卦는 全變하여 離가 되고 上卦는 半變 하여 坤이 된 것이다. 다른 卦들도 다 이 예에 준하므로 비록 그 義例 가 均正하여 착란의 여지가 없기는 하지만 종일 완구해도 별의미가 없 으니 이는 한적한 사람들의 소일거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茶山은 논평 한다. 이에 곁들여서 歸魂八卦를 보면 다음과 같다.

I:I:I : I: I: I: I::I : I;1

歸의 예는 下卦는 本體를 그대로 取하고 上卦는 半變올 취한 자로 서 乾의 半變으로는 離를 취한죽 大有三三가 되고 震의 半變은 免가 되므로 隨三프가 된다. 다른 卦들도 다 이에 준한다. 그러나 游魂이 란 易大傳에 〈精氣爲物 游魂爲變〉이라 하였지만 歸魂의 예는 없다. 자못 卦는 內卦(下卦)를 主로 하고 外卦辻卦)를 客으로 하므로 內卦 는 그대로 있으니 마치 出游한 魂이 反於本身한 것처럼 되었기에 歸魂 이라 명명한 듯하다. 어쨌든 별로 묘미가 없는지라 이를 취하지 않는 다고 茶山은 잘라 논평한다. (3) 釋文紗

던 釋文紗 論 評

周易 周代名也周至也 統云代名則周普之義 恐屬枝賢 遷也備也…… 乾元享 此八純卦元亨卦 六十四卦之詞 三百八十四交之詞 無一句用 德也訓通也 斯義者 尊之爲八純卦 將安用之 大人造 鄭云爲也王肅云 大人造孔子解之曰聖人作月1j造者作也 作者 就也至也劉飮父 造也 子{伴栗 文言 文飾卦下之言也 文言 猶言說文 專釋易中文字之義 坤 本又作〈〈〈 今字也 乾坤次離 本作홍 «:I 내! 卦之變文也 文言 者古之易話 故 元亨利貞之解 皆話體也 才舌 結也 閑也塞也 詩云羊牛下括 括者閉也閑也塞也 震爲閉門 象 需 字從兩重而鄭讀 需之爲字 上雨下而i 而者天者天也 從雨而 爲秀 非也 松(節) 有半室一句楊中 室楊中一句吉終凶一句 中凶吐韻 室揚中 吉一句 師(句) 絶句丈人嚴莊之 師貞者軍旅之事來窟者也 今云師絶句 貞丈 貞丈人 稱 人絶句非也 比 子夏傳云地得水而 物之親比而不相離開者 莫如水在地上 故 柔水得地而流故 名曰比卦 子夏傳所言似陳 曰比 泰財成 荀財作裁集類也 乾申輿則裁輔 皆卦象也 案毛刺業者靖 以其案 案古偉字美也背 也 古文作育有所以也 然 幾苗罪草以類相 食出也勤也 連故 取象在是 不可他解 案者類也 쩐 甄荒稿也 7k 廣 案之九二明夷也 夷者四荒之總名 本以乾 也又大也鄭讀爲 天 今爲離明以照四夷 此是包四荒之象 康云虛也

篇 렇輕擧稅偏偏 飛而又飛曰翻翻 卦象妙合不可他解 同人不 一本作反則得得 古經異字異句 若是其多不可不博取也 克則反 則吉 反 l j得 吉也 大有誰 彭作芳彭亨縣滿 鹿其彭 璃離祗等數句 法當朋疑 不可强解 其彭 統冠彭帝徐音同 昔作易築爲之疏釋 至今梅之 明辨哲 章舌反 펴訂司音 哲上與害敗三字吐韻 不可作入聲讀 哲 還造折 謙自牧 牧一昔茂僞指抵 牧字下與得朋則服國等字吐韻 不可作茂音 僞謙 也義與庵同第猶 僞者升擧也諸說皆非 離也 豫介于 音界羅流古文作 案於兩間謂之介 說文作瓜象人介于兩間 石 硏鄭云磨硏也馬 故 曰介者間廊也 人在兩間謂指紹介……介 作粉云觸/J、石聲 于石者臨之初剛 介平次險之中 升而爲解 其身解脫 逃難欲豫也 不可入聲讀 益管 疾也速也坤蒼同 接首等也 貸播威宗 鬪子 以考絶句 有子絶句未當不通 考 p墓諾· 홉 音昔暗於陽而場 膳野獸肉之乾者也 野獸難得 故 敗而得 肉 於火日膳肉 小物 之 暗之場之 以待祭祀之用其或新殺而未 全乾曰膳 辱謂之鮮膳 乾測 維美反有骨謂之 凡字義不明者當以圭넵t決之乾者離之象也 肺貸也含食所遺 肺者剛畫之象 當作有骨解 也一曰肺也音甫

未光大 本亦無大字 光字上與行剛當等字 1lHR 宜無大字 也 實幡女 u 老人홍兒 音築 足橫 幡與翰吐韻音藥似是 行曰幡躍音傾波 装찾 委積見薛禮之多 接此卦象殘殘似是 也音賤狼積親 顯稅殘殘 復無祗 音支辭也大也 接字宜辨似 祗字從禾 祗字從衣 皆非也 此 病也視視安也 經當從示作祗訓之爲多 多 大畜剛 日新絶句 其德넬! 大畜絶句 剛健篤實絶句 輝光日新絶句 鄭 健(句) 下句 義 篤 實輝光 (句) 日 茅斤其德 次首 次中更有次自次 接以詞求象 次二卦二陰 其1!!1路處官 底也次中小次一 日芳入 樓百 舊讀槍酒蓋絶句 接酒告·Jtm格令四字才目承爲韻 £人批孫色句 乃無誤: (句)蓋 武用告絶(句) 也 武 (句)用 눕 (句)象 曰樓酒 蓋 明夷箕 箕作其箕子作姜 漢魏諸家之易 多 1E 芸滋之病 鄭玄其基者也 子 滋訓箕爲芸話子

爲滋漫衍無經不 可至文誌 莘국星 作退混當韻爲夫 鄭之易注 破硏璋溝! 皆夫三爲屋之屋 三爲屋之屋 麟尼 乃計反遂作除泥 遂作除 除或作堡 字相通也 雷火堅地 或 音乃低反 爲石법也 節齊繪 祭之薄者 以翰爲飛 不以爲鷄號 以禎爲祭 不以以爲 祭 浩菜陳矣 大傳易 大音泰大極元也 馬融以北辰爲大極 今人.,흥然不信 然 求諸 有太極 北辰也 字義 實無緖誤 原太極者屋極也 中隆而受 四衆者謂之極 故 皇極居中以受八常之衆 商邑居中以爲四方之極……未有以混治漠 淨之氣 沖漠玄妙之理 名之 B 極者也……由 是觀之 北極爲之帝而南極其膳也 北辰之爲 太極不亦宜平

위 表에서 보는 바와 같이 古易의 殘影이 약간은 보존되어 있기도 하지만 기준이 혼미하여 茶山의 논평의 대상이 되는 자가 많다. 그중 뚜렷한 자가 바로 八純 游魂歸魂 등 八卦가 아닐 수 없다. 다음에 좀 더 추적해 보기로하자. 제 2 절 郭氏擧正駿 郭京은 唐 司戶參軍울 지낸 학자로서 生年代는 미상이지만 稿州人이 라 한다. 저술로서는 易擧正三卷이 있다. 그는 일찍이 王輔嗣 韓康伯 등의 周易注手寫本울 얻어 전수받고 있다. 이에 그의 易理를 茶山의 논평과 대비하여 一表를 작성하면 다음과 같다.

卦名 郭京 茶 山 坤初六 象誤增堅氷二字 履霜堅氷 亦索連說郭氏不知文例 屯六三 象何以從裁也脫 從裁非美事 若加何字 是以不能從歲爲深恨 何字 也何以爲戒 比九五 象失前裁也舍逆 位正中也 失前裁也 上使中也 本自吐韻 裁 取順也今互倒其 音與公工相近故也 •••••• 若如郭說奈落韻何 句 賀 亨不利有枚往今 此類皆不足辨 習次之上 欲加次字 亦其i菱 不字誤作小字天 炳處同人于野 中平藤魚吉 師貞丈人吉 皆 文頭幅交鎌四 直下詞句 未必룡非]之頭 必戴卦名 字 次習次 上脫次字 始九四 以失字作無字

塞九三 以正字作反字 困初六 象幽谷下多一幽 字 鼎家 多而大亨三字 大亨之義 朱子己明之 不足疑也 震象 出可上脫不喪七뷘 一句 浙覽 善風俗今脫豊字 星湖 El 中字家傳 魚與虛爲韻 押恐無誤 O 志行也今脫志字 魚虛吐韻 何可剛也 此其破縮處 執一臨可 象中字 信及下多藤兒二 以爲斷案 象 字 4 넬輝 可小事今脫可字 星湖曰小過小象傳 上與亢爲韻 亦恐無誤 而事字下誤增吉 O 此又破縮處 字 小過六 止字誤作上字 五象

槪濟象 槪濟亨小小者亨 也 今脫一 小 字 緊辭 二多쌍 四多 '1 器託 其僞銃明 雜有近理者 不足述也 云近也今誤以近 也二字爲正文 雜卦蒙 稚而著今稚字誤 {璃字 泰六 四 以反字作失字 象 隨家 大亨脫利字 大壯省人兒也 本是羊象 故 詞曰喪羊 何得 以羊易牛 無妄象 健字上脫?違字 六二象 求字作未字 홉법 繼 明上脫明照二字 大壯六 牛字皆作羊字 五 明夷上 陣字上脫至字而誤 皆是私 意 不足述也 /’、 增不明二字 塞九三 正字皆作反字 象 禪 勿用取上脫女壯二 字勿用取下誤增 女字 井 不改井下脫無喪無 得往來井井兩句 良九四 限字誤作身 斯其所取災 若改斯爲低則不可讀 旅구m t 1 斯賤之低 誤作斯 興家 申命下脫命乃行也 一句 驛 大川下脫利貞二字

節象 以通下脫然後乃亨 也一句 上緊九 其知神之不爲平 蒙者蒙也 比字比也 皆上字卦名也下字卦 章 不字誤作所字 義 未留不成文 郭以私意各增一字 ,西矣 下緊五 不見利不動動字 章 誤作勸字民不輔 也輔字誤 4 佳與字 說卦 乾似人居之居字誤 作君字 序圭卜 始生必蒙始字誤 作物字蒙字蒙味 也脫昧字比字親 比也脫親字

以上 郭氏의 易學은 僞書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유포되어 후학들을 현혹시키므로 星湖를 위시로 하여 茶山은 이를 논평하되 〈不足稱述〉 의 一句로 대신하고 있다. 제 3 절 王蔡胡李論 (1) 王應麟鄭注論 王應麟 (1223-1296) 은 南宋의 학자로서 자는 伯厚요, 호는 深寧居士 다. 그가 저술한 鄭玄周易柱의 서문에 의하면 鄭康成學費氏易爲託九卷 多論互體 以互體求易 左氏以來有之 凡卦桑二至 四 三至五 兩體交互 各成一卦 是謂一卦含四卦

라 하여 鄭氏의 互體說을 강조하지만 茶山의 見解는 오히려 王弼의 淸 脫함만 못하다고 이른다. 王伯厚菓輯零落以爲此篇 其志苦矣 然 鄭玄易說無推移父變之義 其言物象 亦不以說卦爲本 或指星象日斗曰井 或指辰巳曰龍 El 蛇 難散亡之文不足責備 而荀其本質誠美 則吉光片羽古器疑文 必有可得而見者 登止是哉 互體之說 雜是古法而推移不明 交變不著 則所言互體 亦拘崇不伸 不足以爲貴也 余從 玉海 得見此篇 以其古物也 故錄而存之 然 弁 F 西如此 反不如王輔嗣之淸脫 此其所以見魏也敷 改字基多 幾無完句 亦登史腦之義也哉 라 하여 易理四法 중 오직 互體說만을 논했을 뿐 推移 物象 父變說에 대하여는 전연 언급이 없으므로 오히려 王輔嗣의 脫四法的 義理易만도 못한 듯하다고 논평한다. (2) 蔡西山掛!---論 蔡西山 (1135-1198, 蔡元定)은 南宋학자로서 지는 季通, 학자들은 그를 西山先生이라 불렀다. 義理와 象數를 겸했고 朱子와 더불어 易學 啓蒙울 저술하여 朱子學의 干城이 되었다. 薔卦傳에서 大衍之數五十 其用四十有九 分而爲二以象兩 掛一以象三 撰之以四以象四 時 歸奇於初以象間五歲再閔 故 再抗而後掛 라 하였는데 이는 曆數學的 易理의 기본이 되는 자로서 그의 해석에는 여러 가지 쟁점을 내포하고 있다. 먼저 朱子의 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大衍之數五十 蓋以河圖中宮天五 乘地十而得之 至用以超합에又止用四十有 九 蓋皆出於理勢之自然而非人之知力所能損益也 兩謂天地也 掛感一於左手 小指之間也三三才也 操間而數之也 奇所撰四數之餘也 抗勒於左手中三指之 兩間也 閔積月之餘日而成月者也 五歲;之間再積日而再成月 故 五歲;之中凡有 再閔然f鉉 lj 起積分 如一掛之後左右各操而一t h 故 五者之中凡有再抗 然後 )) l 起 또다시 朱子는 이르기를 掛――歲操右二歲 抗右三歲一間 操左四歲抗左五歲再閔也 또이르기를 一變之間 凡兩抗以象閔 然後 置前掛之策 復以見存策分二 掛―而而爲第二 變也 도시 著卦의 원리는 曆數學的 五歲再閔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그것을 상증하는 操右操뇨 抗右抗左의 方法論的 차이가 있음을발견하게 된다. 蔡西山은 상기 朱子之義에 부연하여 디음-과 갇이 설명한다. 再而後掛者 再抗之後復以所餘之者 合而爲一 爲第二變 再分再掛再樓也 不言分二 不言操四 獨言掛―者 明第二變 不可不掛也 五歲再閩울 상중한다는 기본적 입장에는 서로 다를 바 없지만 그의 方法論的 해석의 차이룰 茶山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二變三變之法 皆與第一變同故 經文不復壘述 濁拍其掛之事而壘言於第一

變之末天下無此文例也 그렇다면 왜 서로 착오가 생긴 것일까. 上云掛一 明在撰四之前 而下云再功而後掛 則上掛之爲權卦 而下掛之爲正 卦 杓然無疑今乃以再功而後掛 爲第二變之掛 可平 此漢晋以來 傳述有誤 朱子姑存之不及是正也 漢晋 이래 잘못된 傳述울 朱子가 시정하지 않았을 띠름이라고 한다. 그 잘못된 이유를 좀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掛一及再操再功 非五歲之象也 今年明年歲律皆同 而操法抗法事類判殊 荀 充其數以當五歲之數 本不齊正 況閔者閔月也 非卽閔歲也 再抗所以當兩閔月 而今以爲兩歲之象則只可與再探平等 而不可作閔象看也 故 曰五歲云者六十 二卦之數也 除了乾坤Jl l j卦之數六十而五歲再閔Jl l J六十二月 也 이로써 撰薔의 기본 원리는 曆數學的 五歲再閔에 근거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수가있다. (3) 胡玉齋易學論 胡玉齋는 元代 易학자로서 生卒年代는 미상이요, 명은 方平, 자는 師曾이라 한다. 저서로는 易學啓蒙通釋 등이 있다. 그는 郡氏易울 긍 정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에서 郡子經世演易圓 以太陽爲乾太陰爲免 少陽爲離少陰爲震 此四卦 自陽儀 中來 故 爲天四象 少剛爲興 少柔爲次 太剛爲良 太柔爲坤 此四卦 自陰儀中 來故 爲地四象 詳見原卦畫篇下同

이라 하였다. 그러나 召[氏의 학이 본래 견강부회로 이름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수용한 胡氏의 易學이 또한 어찌 견강부회를 면할 수 있을까. 이에 다산의 直言울 들어보면 다음과 갇다. 易大傳曰 立天之道曰陰與陽立地之道曰柔與剛 蓋以屬平天者有氣而無質 故以陰陽言之 屬平地者有形而有質 故 以柔剛言之 論八卦之德則天火雷風 是有陰陽之氣者也 地水山澤 是有柔剛之形者也 乃郡子執此以作先天八卦之 證案 謂自震而免而乾 是爲天道 故 標之以陰陽 自興而良而坤 是爲地道 故 標之以柔剛 揆之本物之理 己皆不合 況郡子先天橫排之圖 免爲太陽 良爲太 陰 興次爲少陽 離袁爲少陰 而今此經世圓所列 二太二少之名 恐恐相反 仰又 何理郡子先天之學 其桃忽無定 如此 또다시 胡玉齋는 그의 交變說에 一桑變뿐 아니라 二桑變三交變 四 交變 나아가서 五父變 六交變까지를 시인한 데 대하여 茶山은 이룰 반 박하여 이르기를 六父盡變者 可占之卦之家詞 則乾坤笑獨有用九用六之詞哉 用九用六匠冠 I J 有其縣 則他卦之六桑盡變者 亦不當占之以之卦也 라 하기도 하고 또 이르기를 좡卦有二法 一是一交單變 一是諸父雜變 周易有一桑有變 故 易經淮有六 父之詞 若如啓蒙之說『二찾變則以本卦二變 父辭占荀以上父爲主』 當有六十 四縣如魚易之例 登得以六縣應六十四變平 魚易本是夏商之舊法 故 貞屯 梅 豫 見於左氏 斯可驗也 二桑供動而占以上交 恐無是理 라 하여 一父 이상의 交變說은 있을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4) 李厚齋互卦論 厚齋는 人物 미상이나 互卦之義룰 분명히 하기 위하여 茶山은 李厚 齋의 互卦說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李氏는이르기를

六十四卦中爲互卦者 不過十六卦 第三圈所書 是也 十六卦中爲互卦者 不 過四卦 第二圈所書 乾坤銃濟未濟 是也 이에 대하여 星湖 李濱은 이를 다음과 같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其位次齊整不可甄也 紋之於雜卦之序 多不合 然 第三圈十六卦 其四十八 卦中惟十二卦不合 其餘合此 登偶然而然哉 易之奧 未易可晴 而卦中元有此 義則分明 讀易者宜諦看 不必以彼此移換爲疑也

그럼에도 불구하고 茶山은 이에 대하여 회의적인 태도로 비판하여 자신의 互卦說울 분명히한다. 大傳曰雜物撰德 非其中桑不備 中交者二三五也 兩互作卦之法 惟中四交是 觀 而大傳謂雜物撰德 則雜者互也 古者原以互卦謂之雜卦斯其證也 然 雜卦 傳諸卦序次 或似類衆或又差緖 半違半合 不可詳也 旦銃作圖則第三層乾字 之下 當以第四層乾大過活夫承之 第三層坤字之下 當以第四層坤願復泉 l j承之 然後 四卦之各攝四卦其例明著 今李氏之圓 欲與雜卦個荀合 而其以四攝四 之例 却又除亂 此供不及矣 제 4 절 茶山雜論 (1) 事天地神明論 卜莖의 의미에 대하여는 古代 禮書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나 그의 근본은 天地神明울 섬기는 데 있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古人 事天地神明以事上帝 (中庸日部社之禮所£人事上帝亦此義) 故 卜 莖 E還 命 이라 하여 卜莖의 의의는 上帝롤 섬기며 그의 명령을 듣는 것임을 강 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세에 와서는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일까. 今人 平居銃不事神 若唯臨事 卜 策以探其成敗 .Qlj漫天濱神 基矣 라 하여 단지 어떤 일에 부딪혀 그의 성패만을 묻는 問 卜行爲는 결과 적으로 천지신명을 모독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茶山은 스스로

周易울 注疏하는 것은 결코 問 卜하자는 것이 아니라 경서의 의의를 천 명하고자 함을 다음과 갇이 밝히고 있다. 余易象 爲明經也 若有人謂易例t光明 可以行莖 則不惟占驗不合 而其 路漏不少 此 余之所大園也 今人守正者 宜座 卜莖 정도를 지키는 자는 마땅히 卜莖를 폐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占驗 에 깊이 빠지는 行爲는 옛날의 참뜻을 망각한 邪術임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先王之世敬事神明 故 設爲卜莖使民信時日 敬鬼神春秋以降 此義i浙時 左傳諸莖 銃非古義 秦漢以下 卜第占治於邪術 非復先王之本意 故 其在王制 曰假於鬼神 時日 卜莖以疑衆者殺 『王制者漢初所作』 今人立法 當以王制爲正 여기서 邪術이란 漢代의 術數學을 가리키고 있음은 다시 말할 나위 도 없다. 그러므로 占 卜에는 立君 建都 祭祀 征戰 立官 建侯婚妹 疾 病 葬地 立賓 日月 須至 胎産 등 그 목적이 다양하지만 그 卜莖의 總 義는 다음과 같을 따름이다. 總之 卜莖之法 其始也 票天命以前民用也 事雜正而成敗易分者不 卜 利雜明 而義理不充者不 卜 唯考諸義而維正 其成敗利純有不明者 於是平 有占也 라 하여 그 뜻이 비록 바르다 하더라도 成敗利純이 불분명한 자에 한 하여 問 卜 함에도 불구하고 후세에 이르러서는 一種의 占術로 타락하였 음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春秋之世 此法銃溫 卜其身命者 不出於榮祿位名之慕 卜其謀議者 不揆夫 義利迎頓之辨 票命之義遂梅 而探命之志先操 則炫惑妖幻之術 校猶支離之說

得以交亂於其間 不自썼其路入於極天沼神之씀矣 그러므로 그의 易論二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易何爲而作也 聖人所以請天之命而順其旨者也夫 事之出於公正之善 足以 必天之助之成而予之福者 聖人不復請也 事之出於公正之善 而時與勢有不利 足以必其事之敗而不能受天之福者 聖人不復請也 事之不出於公正之善 而逆 天理傷人紀者 雜必其事成而微目前之福 聖人不復請也 唯事之出於公正之善 而其成敗禍福隋不能逆諸而惡度之者 於是平 請之也 請命의 네 가지 경우를 예시한 후 오직 한 가지 경우만을 선택적으 로 제시한다. 이렇듯 卜莖란 聖人이 上帝의 뜻을 헤아리는 방법으로써 그것은 결코 成敗禍福을 占치는 卜術이 아님을 강조한다. (2) 易理問答 지금까지 보아온 바와 갇이 茶山의 易理는 소위 그의 易理四法(推移 物象 互體 桑變)에 근거하고 있음은 다시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므로 茶山은 그의 易理四法을 척도로 하여 漢魏以來 明淸에 이르는 사이에 變變質된 易學을 비판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혹자(甲乙丙)의 질문의 형식으로 茶山의 易理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케 한 후 自問自答의 형식 으로 自說을 재확인한다. 그 중에서 중요한 쟁점 몇만을 추려처 적기 하면다음과같다. 甲者가 說卦物象은 〈原來 聖人屈意取象 變化無方 不可執一〉이라고 한 주장에 대하여 이르기를 易者日月也『字從日月也』 日月者陰陽也 陰陽者四時也 一陽生則爲子月 二

三四五積爲六陽 是爲巳月 一陰生則爲午月 二三四五積爲六陰 是爲亥月 此

十二牌卦之所以配之 而易之所以爲易 斯而巳 라 한 후 부연하여 설명하기를 故 周公於乾卦之詞 首發其義也 乾者何卦也 是唯六震之積耳 坤得一震以 成復卦『復下震 』 復得一震以成臨卦『臨二四互袁』 臨得一震以成泰卦 『泰 三五 互震』 泰軒震p力成大壯『永에上上袁雷』 袁之爲袁以一陽也 銃得一陽尉誰非陰而 亦震也『一陽爲卦主』 故 大壯而得一震 其卦夫也 夫得一震 乃成乾卦 乾也者 六震之積也說卦震爲龍 斯之謂六龍也 夫之得震而成乾也 只得其陽 不取其 陰『不取袁上二盡』 獨陽無陰謂之亢陽『如久早之爲亢早』 故 乾之上九謂之亢 龍也 『 上九gp夫所得以成乾者』 其不合於說卦平 다시 乙者의 〈原來 周易是義理書 不干卜莖〉라는 주장에 대하여 이 르기를 若論八卦 乾坤爲六子之父母 其在重卦 乾只是四月之卦 其消長之體 反對 之形 與諸牌卦陸탕닫也 占法亦然 方其爲夫時 下乾爲馬 上免爲脫失 進之爲乾 馬將自歸而上乾下乾遂成兩馬 或者奉連他馬 如塞翁故事然 旦自免而乾則馬 所由往 或者自西而西北也如是取象 亦可以占其得失 何患平卦詞之晃洋平 ……本之 卜莖而義理萬焉 子欲讀之如禮記論語 遠矣哉 라 하여 易은 義理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卜莖와 義理가 함께 곁들 여 있음을강조한다. 이어 丙者는 茶山의 一交一卦說이 六位의 才德說과는 無關하다고 한 데 대하여 茶山은 卦 없는 交란 존재할 수 없음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 다. 不滿三畫 不成一卦 銃不成卦 卽馬牛羊家 無所取象 健順行止 無所考德 又安有吉凶休씀哉

桑變에 따른 卦形의 변화에 대하여는 燁說說울 주장한다. 誠以卦形雜變而名誰易 (乾 fl )九爲乾之始 其名易也) 若其性 氣 才 德 的有本 卦之舊 쁩 如峨之銃羽 尙有蠶性 禪之銃說 登 無 瑞 質 다시 甲者는 〈 子謂諸卦各有本象 〉 이라 하였지만 〈 父之 E形 變 本象變

幻 〉 하는데 어떻게 〈 六父咸言歸妹 可見六桑 合成一卦 父各成言 〉 이란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대하여 茶山은 이 르기를 峨羽禪說 前銃兪之矣 原來此卦 難以歸妹爲名 其 實 可以占立君 可以占遷 園 可以占戰 可以占祭祀 可以占 日 占賓 可以占性牛 可以占雨時 可以占天 地之間萬事萬物 其有歸妹之象 亦其萬物之中 諸象之一 非必歸妹爲此卦之主 象 而他事皆客也 聖人偶占其一象以之命名日歸妹 因以歸妹之 事 或常或 變 釋其六桑 聯以爲諸卦通例耳…… 子欲以歸妹一 事 遂了此卦之用 陰矣哉 易也 라 하여 卦象의 다양성에 언급하고 있다. 다시 乙者는 묻기를 〈그대 말대로라면 易詞에는 심오한 義理가 들어 있지 않으므로 易이란 꼭 존중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났근 것이다. 茶山 은대답하기를 易之爲道 大可以彌給天地 順二氣而序四時 小可以察蓋繩之飛躍 尙之可以 廊肖長屈信之理 而知所以進退出處 卑之可以稽馬牛犬鷄之得喪 遠之可以達 鬼神考天命 而識風雨早澄之故 還之可以處父子君臣夫婦之變 而耳目 口 鼻 四 枝百體之動 亦可以前知其徵故 易詞立文 或廣大弘故 或細小尖碑 或典重嚴 尊 或卑鄒俠裕 或深奧而有幽超 或沒近而無高論 或洗潔而多變 或抽直而守 常 緖綜雜棋 不一其歸 蓋欲使學者引此而推彼 比左而悟右 期平其參互會通 以約文而耿衆情而己矣 其爲道如是也 而後之說易者 唯大之尊之幽遠之爲務

井其項小卑近之旨而겁 II 之爲河漢而無極也 此易所以時而聖人平tt之敎 歸之 於高妙神奇靈幻之法 而莫之提悟者也 이렇듯 易詞는 다양하므로 꼭 심오한 내용만을 지닌 것이 아님을 설 명한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今欲以二篇六十四卦 三百八十六父之詞 一以歸之於天人性命之理 而欲以 自萬其進退存亡之義 則多見其鎖語柄堅而不相投合也 夫窓而遇之 舍其詞而 玩其象 則二篇六十四卦三百八十六父 皆大義也 何不尊之有 다시 丙者는 〈易詞諸文은 다분히 卜莖用이 많으나 개중에는 占辭 아 닌 것도 있으니 무슨 까닭인가〉라는 질문에 답하여 이르기를 善哉 問也 是亦一例也 不讀詩 無以讀易 易詞之中 原有純用比興之體者 ……覽物象而自反 知所以自處其身者 君子之義也……善用易者 觀物象之 變以處其射 斯亦易道之一也 라 하여 觀象筋射도 易例의 하나임을 시인한다. 또다시 甲者는 聖人의 作易은 嚴正典重하여 互體 倒體說과 같은 巧 密한 取象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茶山은 대답 하기를 聖人作易 唯象是取 象也者像也 像也者似也唯依似衍佛 便以爲象 周流上 下 本無定形 登能木强椿定 如子所言也 라 하고 이어서 설명하기를 重卜之始設也 難陳八卦而重之 及卦銃重 聖人又從而觀之 日是有二卦交中

矣 試論屯卦自二至四實有坤卦 非荀依似而徒佛也 自三至五實有良卦 荀依似 而徒佛也 易爲不取哉 라 하여 兩互取象은 당연하다 이른다. 또 이어서 乙者는 虛中爲離 剛中爲次하여 伏位體로 존재한다~ 茶山 說울 無徵不信한다고 주장함에 대하여 茶山은 이를 그의 天地水火 四 正卦說로 대응하여 말하기를 天地水火易之四維也 風雷山澤皆於是平受變 不可以井列爲八而平等看 之也 라 하여 天地水火야말로 易의 기본이 됨을 설파한 후 易有二觀 曰德曰位 德者乾坤也 位者次離也 凡剛 盡 本天 凡柔遷 盡 本地 凡 六盡之德不外於乾坤也 一二三者離卦之柔中也四五六者次卦之剛中也 凡六 盡之位不外於次離也 故 上純下純 其象益著而聖人用之以撰詞也 登 n 假屯體有 伏次伏離哉 如其不純 凡柔느:者可離也 凡剛五者可次也 其精神骨子在於二五 故 餘雜未合 皆可以爲次離也 라한다. 마지막으로 丙者는 이르기를 OO 九 用六에서 六桑盡變은- 乾坤에 한 한다 하여 郭環 魚贛의 全卦盡變說과 다르니 그대의 說을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茶山은 대답하기를 周易無此法也 諸桑亂勳 則物象雜樣 雜以姬孔之智 亦無以化而裁之矣 ……魚郭之法 俠猶窓律 全失三聖之舊義 如欲用此以爲占 須取兩家之書 自 命以方技雜流之學 而任自叫壤焉 可也若取周易之詞 而求之以魚郭之法 是 猶升仲尼之堂 而求見俳優之戱 登能得影響哉 라 하여 『周易』에는 全卦盡變法은 전무함을 강조한다.

제 5 절 炫山易束 茶山은 辛酉敎獄 때 그의 仲兄 興庵丁若鈴과 함께 유배되어 자신은 康津으로 仲兄은 黑山島로 내려왔다. 鉉山은 黑山의 별칭이다. 茶山 은 周易初稿인 甲子本이 완성되자 黑山島 仲兄에게 보내 일일이 印可 를 받았다. 仲兄의 서한 증에 특히 『周易』에 관한 대목을 초록하여 여 기에 炫山易束이라 일렀다. 주로 茶山易의 核心問題들에 대한 興庵의 追認은다음과같다. 易理四法 중의 하나인 推移說은 十四牌卦와 五十衍卦와의 관계를 논 한 것이다. 興庵은 牌卦之理에 대한 茶山說의 所從來룰 뒷받침하기 위 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粹卦之理 近者念梵的確 粹卦者八卦之大者也 乾坤者大:乾大坤也 臨逐者大 震異也 觀大壯者大長大免也 中字小過者大商大次也 復刺姬夫者袁良興免 之合乾坤而成者也 否泰者乾坤之自相合者也 夫八卦之重而爲六十四fflj復以 八卦之形而爲之君牌 使其餘五十 皆受變者 其理的然無可疑者 是所謂自然 而然不容人力也 라 하고 또 茶山의 天地水火四正卦說을 뒷받침하는 뜻에서 十牌卦說과 乾坤次離四正卦說과의 관계를 디음과· 같이 설명한다. 十粹卦 (除乾坤計之) 莫不借乾坤之形而方能成粹 擇此小過中字不干乾坤 而特特從次離變質者 正如乾坤之不借他質 自其本體中重之而爲乾坤也 此其 所以水火之敵對於天地也敷 라 하여 天地水火의 相敵관계를 설파한 후 이를 더욱 부연하여 설명하 기를

蓋各自成形不受和化者 勢均體敵 了無高下尊卑之 等 故 自其三 盡 之時 而 麟良免之連二 避 或連或絶 莫 不肖形於乾坤 猫此次離二卦 則 變其 中 盡 其 於乾坤홍不相肖 有若分門흡 ll 戶 自成 一家 者然故 至於 重 卦之後 而亦不欲隨衆 依 F tt於乾坤之形 而自立爲粹以敵乾坤 此其所以片辛卦之中 終無次離之形也 그리하여 茶山의 四正卦說에서 특히 小過中半再閩之卦의 발명을 극 구 칭찬하여 다음과 같이 이른다. 大抵 君之於易 可謂長夜晴星 而至於發出小過中字之義者 其功尤大矣 吾 爲君之兄 亦足矣 이렇듯 아우 茶山의 易論에 전폭적으로 찬동한 興庵은 易理를 象學 으로 이해함과 동시에 乾坤六子說도 〈 維非 實 理而 實 有是象 〉 이라 하였 고 八卦方位도 〈亦非 實 理而實有是象 〉 이라 하고 郡氏의 〈乾 南坤北離東 次西〉설을 반대함으로써 茶山의 견해에 동조.한다. 총체적으로 茶山易 을평하여 이르기를 周易四解 執非壯觀 而至於 菩 卦傳 尤是絶奇文字 至於九六之辨 妙妙奇奇 言言字字 lj台如神授鬼指 不可名狀 不知美庸以何 靈 心女州悟 至此也 令人直欲 狂 D 니薔頃듭也 라 하여 茶山易의 妙理를 국구 칭찬한다. 그렇다면 漢宋以來 諸易의 是非를 裁斷한 茶山의 척도는 무엇이었던가. 그것이 다름 아닌 〈 周易 四解 執非壯觀〉이라 이른 易理四法임은 다시 말할 나위도 없다. 이에 그의 장관에 접하여 그의 정수를 음미해 보기로 하자.

제 8 장 茶山易의 精疆 지금까지 易의 始源論으로부터 漢魏以來 宋元明淸에 이르기까지의 易學의 變 遷過程에서 茶山은 그의 易理論을 척도로 하여 오로지 비판 적 태도로 임하였다. 여기서 집약된 茶山의 易理論의 척도는 曆數學的 易理四法이었음은 다시 말할 나위도 없다. 茶山은 자신의 易理四法울 다음과같이 설명한다. 易有四法 -El 推移 二 El 物象 三曰互體 四曰父變 제 1 절 易理四法 (1) 推移 冬至一陽始生 其卦爲復(卽天根) 爲臨 爲泰(爲大壯爲夫) 以至於乾則六 陽乃成 夏至一陰始生 其卦爲活(卽月窟) 爲逐 爲否 (又爲觀爲斜 l) 以至於

坤 則六陰乃成 此所謂四時之卦也 (一卦配一月 ) 小過者大次也 (兼 畫 次) 中

字 者 大離也 (兼 盡 商) 次月離 H (說卦文) 積 奇爲間 (月 與日 取積分以爲間) 此 所 謂 再閔之卦也 四時再間之中 乾坤 爲 父 母 餘十二卦 漢 僞 謂 之十二牌卦 『 卽 類之卦 』 分爲剛 柔 衍之爲五十衍卦 『 卽 群 分之卦 』 此所 謂 大衍之數五十 此 之 謂 推移也 推移法에 얽힌 몇 가지 문제점들을 茶山은 그의 推移 表 直說에서 다 음과같이 정리한다. 첫째, 六十四卦 중 특히 乾坤二卦를 父母之卦라 하였지만 그가· 變 化 하는 과정에서 본다면 乾도 坤으로 말미암아 變 化한 자로서 乾에 앞서 는 자는 夫요 坤도 乾으로 말미암아 변화된 자로서 坤에 앞서는 자는 泉 l1 이다. 이렇듯 乾坤이라고 해서 다른 卦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디는­ 것이다. 둘째, 그렇다면 乾坤은 어떻게 변화되어전 자일까. 乾은 坤으로부 터 비롯하여 復 臨 泰 大壯 夫울 거쳐서 이루어진다. 坤基가 先立한 연후에 復一陽이 始起하므로 이룰 天根이라 하되 天根이 성장하여 급 기야 乾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坤도 또한 乾으로부터 바롯 하여 活 逐 否觀 泉 ll 을 거쳐서 이루어전다. 復에서 夫까지 活에서 刺까지 무릇 十卦룰 얻게 되는데 漢儒 둘은 이 를 十群卦라 이른다. 進退 消長하여 周而復始하므로 여기서 四時之象 이 나타난다. 셋째, 再間之卦인 小過 中字는 次離에서 연유하여 다시 次離(大次 大離)가된 자이다. 天地水火는 혼돈 상태의 宇宙가 나누어져 각각 독자적 形質을 갖춘 자로서 서로 和化하지 않는다 . 그러므로 乾坤次離를 易의 四正卦라 이 른다. 통틀어 말하자면 四時之卦가 十二요, 再閔之卦가 二로서 이를 合하 여 十四幹卦가 되고 이들이 衍之하여 五十衍卦가 되므로 大衍之數五十 이라 이른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推移가 이루어전다.

® 一陽之卦는 다 ,¼lj 復두 卦의 升降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一陰之 卦는 다 始 夫 두 卦의 升降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위에서도 (朱 子 卦 變圖 ) 지적한 바 있듯이 茶山은 一陰一陽之卦外에 거기에 含 薔 되는 Ji陰五陽之卦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 이유로서 茶山 은 〈言 其來者一陽一陰 爲卦主也(易例少者爲卦主) 〉 라 이론다. 二陽二陰 之卦에서 四陽四陰之卦를 취하지 않은 까닭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임 은 다시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二陽之卦는 다 臨 觀 小過의 升降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二陰之卦 는 다 逐 大壯 中字의 升降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위의 朱子卦變圖에 서 설명한 바 있듯이 여기서 中半 小過를 群卦로 내세운 茶山의 易學 上의 공적은 지대한 바가 있다• 그러므로 茶山은 三陽三陰之卦룰 다룸 에 있어서도 이를 泰來 否來의 둘로 나누었으니 〈 三陽之卦는 다 泰卦에 서 오고 三陰之卦는 다 否卦에서 온다〉일렀다. 그 이유로서는 〈泰卦 로부터 온다 이른 것은 二陽이 下卦에 있고 남은 一陽이 上卦에 있는 자는 모두 泰卦에서 온 것이요 否卦로부터 온다 이론 것은 二陰이 下 卦에 있고 남은 一陰이 上卦에 있는 자는 모두 否卦에서 온 것이라〉 이러한 推移法의 本旨는 漢儒荀奭 處翻 이래 朱子卦變圖에 의하여 歷 世相承되어 오기는 하였지만 이를 一陰一陽二陰二陽 三陰三陽으로 정 리하고 거기에 中半小過再閔之卦의 의의를 천명한 것은 茶山의 공적이 라이르지 않을수없다. (2) 物象 說卦傳所云 乾馬 坤牛次家 離維之類是也 文王 周公 撰次易詞 其一字一 文 皆取物象 舍說卦而求解易 猶舍六律而求解樂 此之謂物象也 여기서는 소위 十翼의 하나인 說卦傳의 내용을 절대시하는 저의가 깔려 있음을 얼른 간취할 수가 있다. 說卦傳의 저작에 관하여는 이미

위에서도 언급한 바 있거니와 여기서는 자못 茶山이 왜 說卦物象을 중 요시하는가 하는 점에 대하여 몇 가지 사항을 지적하고자 한다. 茶山은 먼저 說卦物象表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卦名 象 卦德 人倫 人品 遠取 近取 物色 器物 雜物 一乾天 三; 健 父 賓 ,馬 首 大赤 金玉 jk 二坤地 표 l 順 母 衆人 牛腹 里‘., 釜 布 三袁雷 ----- 動 長男 君子 龍 足 蒼 墓 稅 四異風 -- 入 長女 主人 難 股 白 繩 吳 五次 7k 王 !g 中男 盜 家 耳 赤 弓 血 六離火 三 麗 中女 武人 웃佳 目 甲胃 補 七長山 ----- 止 少男小人 1 句 手 節 門賜 八兒澤 三 說 少女 巫 羊 口 賊 剛菌

여기서 우리들이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니라 소위 說卦物象의 창안과 소위 說卦傳의 저술과는 구별해야 한디는- 사실이 다. 그러므로 茶山은 소위 說卦傳의 序詞는 孔子의 저작이라 하더라도 說卦物象 자체의 창안은 이미 아득한 古代 泡檢畫卦 당초부터 있어 왔 음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先儒謂說卦爲孔子所作 非深密體究之論也 不取物象則八卦元不必作 (徒卦 無所用) 說卦者座接盡卦之구}] 仰觀天文(次離爲月 日) 顔察地理(長免爲山 澤) 遠取諸物 (乾坤爲馬牛) 近取諸身 (良震爲手足) 玩其象而命之名 以與神 明約契者也而侯孔子哉 라 한 說卦는 說卦傳이 아니라 說卦物象 그 자체를 이르고 있음은 다

시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므로 說卦傳에 있어서의 孔 子署述 의 한계와 범위는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 것인가. 昔者聖 人之作易也 幽 贊於 神明而 生깝 止易逆數也 此孔 子之傳 文也 又自萬 物出平 襄 止斷成萬物也 此孔 子之 傳文也 라 하여 說卦에 대한 보충설명에 그치고 있다. 그러므로 物象의 이름 이나 卦德의 분류와 같은 것들은 庵樣 때에 비롯하여 夏 禹 殷商時代를 거치는 과정에 있어서도 조금도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說 卦物象之名 卦德之分 夏商之所不改也〉란 이룰 두고 이른 말로서 왜냐하면 夏首民而名曰連山(民爲山) 商易首坤而名日歸藏(坤以藏) 以是 知其然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說卦에서 지적된 說卦方位의 序次도 唐處 (堯舜) 시절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堯典羲和之職 東作 南誰 西成 朔易 捨與四方卦之方位相順 舜典巡守之序 亦然 方見說卦之 書 自前 書 而固有也 離東次西之說 於古經無操 라 하여 소위 伏羲八卦方位(乾南坤北離東次西)說을 부인한다. 그러므 로 古代說卦方位圖롤 다음과 같이 재확인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說卦方位圖는 소위 文王八卦方位圖와 同一하지만 이를 宋儒들처럼 文王八卦方位圖라 지칭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 茶山의 宋易에 대한 부정적 微意가 스며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說卦에 아무런 正文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럴 때는 〈稽之易詞 驗其例〉하면 易詞에 그의 左證이 있을 것이다.

說卦方位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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方 1立 表 五行 四時 四 德 正東 震 出 木 春 仁 東興齊 木 正南離相見 火 夏 義 西南坤致役 土 正西免說言 金 秋 前豊 西北乾戰 金 正北次勞 7k 冬 智 東~t良成言 土

〈春秋左傳 國語 등에서 卜史가 卦웜{을 논한 대목이 있을 것이니 이 를 芳取하면 된다〉고도 한다. 그리고 易詞에서 物象울 取하되 더러는 兼互二卦에 의하여 命名하는 경우도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3) 互體 重卦槪作 大體相連 自二至四 自三至五 各成一卦 此之謂互體也 라 한 것을 보면 互體란 八卦가 重卦로 된 후 一上 盡 울 除外한 알맹이 二三四五 盡 이 相互 二三四 또는 三四五롤 형성하여 또 다른 卦를 형성 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는 互體의 기본형에 지나지 않고 互體의 종 류는 다양하다. 이를 例示하면 다음과 같다. 大體 또는 大互體라 이르는 자로서 이는 次 離 두 卦만 이에 해당한 다. 그러므로 무릇 重卦에서 一至四 一至五 一至上의 경우 剛中者는 次이 되고 虛中者는 離가 되는 까닭에 十二群卦룰 제의하고는 모든 卦 가 다 이 次離를 소유하고 있는 셈이다. 兼互 또는 兼體라 이르는 자로서 重卦롤 通貫하여 一卦를 마련한 후 그 位를 天人地로 三分하여 또 다른 八卦롤 만든 것이니 六畫의 重卦 가 또다시 三畫의 八卦를 이룬 셈이다. 그러므로 以六 盡 分之爲三級以當三才之位(天人地) 兼三才而兩之 則乾坤臨逐小過 中字觀大壯等八卦 嚴亦三畫之八卦也 라한것이다. 倒互또는 倒體도 互體의 하나로서 不取反對하는 八卦 中 乾坤二卦 를 제외한 次 離 大過 願 小過 中字 등 六卦가 이에 해당한다. 그 倒 互表룰 例示하면 다음과 같다. 倒互表只六卦 乾 ------光 反對亦光互體

願大離坤次過 -i_i-ii-_조----Bi 下下光(( 二二顔順反 三三良免對四四 上亦上 ))順元倒韻倒免良箕袁互 體(( 三 三 四四五五) )倒倒興災 中/j字、過 i=_ii=-B ig 下下 r順範 路袁 上上顔順良 免 -

이러한 倒體R의 개념은 婚講之象울 取하게 될 때 사용한다. 이는 評 合之象에서 O프-L 婚講之卦 其少男少女 多一倒而一正 〉 이라 했듯이 本卦 타의 나象게에 서된다 .取 i-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倒體에서 倒 順 反對의 象이 나 더욱이 茶山은 여기서 새롭게 伏體의 象울 정립하였다. 〈伏體者 莖主於數 操其位而考其數 次離之形 雜不現於其外 次離之數 實 伏其中〉이라 하여 形體로가 아니라 數字로 존재함을 의미한다. 이 점에 대하여서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한다. 易有二觀 一曰卦德 二日卦數(一至六) 卦德藩者乾坤之所分試也 卦數者次 離之所占操也 六十四卦 其剛盡皆乾其柔盡皆坤 則六十四卦無一不園於乾坤 之範園也 六十四卦其下卦皆離(-二三奇偶奇) 其上卦皆次(四五六偶奇偶) 則六十四卦無一不函於次離之管轄也 若是者何也 天地水火易之四柱也 故 其 分布諸卦而主其象數女 u 此 마지막으로 互體法에는 兩互作卦法이 있다. 이는 上下兩互롤 合하 여 一卦를 作成하는 자로서 그의 작법이 공교로운 것 같으나 융통성 있는 卜莖의 운용을 위하여 聖人이 창안한 자라 이르지 않을 수 없다. 兩互作卦는 只有十六으로서 이를 예시하면 디음과 같다.

兩互作圭卜表 감乞 三 E三 乾大過妃夫之兩互 坤 三三三三 坤願復刺之兩 互 大過 三三 離小過 盟 旅之兩互 願 三프 次 中字漁節之兩互 1 墓 :타드 蒙 師臨損之兩互 f/

란 이를 두고 이론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斐者로서의 九 六이 라는 數字의 의미는 어떠한가. 九者老陽也 六者老陰也 老無不찢 則九六者銃變之名 不찢 非九六也 九 六이란 數字는 序數的인 자가 아니라 銃變之名으로서의 상징적인 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다음과 같은 第法에서 얻어진다. 莖法 三掛皆得天數(一三五七九) 則其數爲九(參天故) 三掛皆得地數(二 四六八十) 則其數爲六 (兩地故) 此其所以爲老也 그렇다면 왜 老는 변해야만 하는가. 天地之間 不可一刻而無陰 亦不可一刻而無陽 故 純陽ijfj直變爲陰 純陰則 直陽 其曰tJJ九者 謂f}J盡動而爲陰也 其曰初六者 謂初 盡 動而爲陽也 由是觀之 曰九 曰六之直指變卦 審矣 六父之動 各成一卦 三百八十四父者 三百八十四卦也 이처럼 깊은 뜻을 간직한 父變說이 自漢 이래 師承의 길이 끊어지므 로써 易理는 급기야 時盲울 면치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易理四法은 茶山易의 尺度라 이를 수 있다면 父變說이야말 로 易理四法의 척도라 이르지 않을 수 없다. (5) 新三易論 易의 漢代三易說에 대하여서는 이미 위에서 밝힌 바 있거니와 茶山 은 이것과는 별도로 다음과 같은 三易論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易理

四法 중 그 어느 쪽에도 포함되지 않는 새로운 발견이라는 점에서 주 목된다. 推移正義之外 尙有三易 一日交易 二日斐易 三日反易 이라 하여 交 變 反의 三易論을 제시한 후 이어서 泰交爲否 益交爲恒 此之謂交易也 六位皆變 歌德相反 屯斐爲鼎 蒙變爲革 此之謂變易也 卦體順倒又見一卦 需反爲松 師反爲比 此之謂反易也 라 하였다. 茶山은 三易論울 取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座羲 盡 卦之初 只有交易 有他易哉 交而易之重卦 匠成而後 聖人說而玩之 得推移之妙義也其周流六虛 風霜鼓發之妙 . 뮬低不如推移而其往來升降有足取 者 其在易詞十二群卦之强直霧變者 必取交易之義以撰其縣 若泰之云小往大 來 夫之云揚于王庭 是也 又如泉 l j六五之貫魚 大壯六五之喪羊 皆交易之象也 交易而可少哉 라 한 후 反易 變易에 대하여서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周易編卦之序 全用反易 其光反對者 乃以變易作對 乾坤次離等八卦 是也 其在易詞變易之義 亦時有之 臨變爲逐則八月有凶 活變爲復則七日來復 師變 同人則謂之大師 亦所以明此義也 이는 十二牌 再閩之卦에 의한 推移나 兩互 兼互倒互 顯互 등의 互 體 外에 따로 交 變 反의 三易論의 묘의를 천명한 자라 이르지 않을 수 없다. 이도 또한 茶山易의 一斷面임에 틀림이 없다.

제 2 절 讀易要旨 여기 讀 易의 易은 漢 宋以來 偏見에 묻혀 있는 易이 아니라 古 聖에 의하여 창안된 古易을 가리킨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讀 法이라 함은 古易을 이해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앞절에서 一幣한 易理四法은 六十四卦의 曆數學的 본질을 헤아리고 자 하는 방법이라고 한다면 여기서 茶山이 제시한 讀 易要旨는 家象詞 를 중심으로 한 六十四卦의 緊詞를 이해하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양자 는 구별된다. 그러므로 讀 易의 易이란 古易의 象象詞룰 의미함은 다시 말할나위도 없다. 茶山은 왜 이 점에 대하여 이처럼 깊은 관심을 가지고 十八항에 걸 천 요지를 상술하기에 이르렀을까.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易詞의 난 해성의 신비화를 방지함으로써 易詞의 본연의 의의를 되찾기 위함이었 음은 다시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므로 본 讀 易要旨는 古易의 絲詞를 있는 그대로 알기 쉽게 이해하는 방법을 제시한 자라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차례대로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 抽象 …… 易所以莖也 一 卦一桑 各具 萬事 萬物之 象 (不 變 日卦 變 臼父) 第天下之萬 事 萬物 皆有遇此卦此父之理 文王周公於 萬 象之中 抽 其 一 象 以爲 蘇詞故以卦以父 則有應萬 事 萬物之才 而其縣詞 則不能該萬 事萬 物 이는 卦父는 萬象울 갖추었지만 縣詞는 그중의 一象만 논한 자에 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령 乾~JJ九의 潛龍勿用은 그것으로 君子의 出 處進退의 吉凶을 占친다면 모르거니와 그것으로 婚朋 祭祀 建都遷國 등을 占친다면 이 絲詞는 準操로 삼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 該 ~j 'I- ...... 聖 人 [! 짜 111 一 象而爲詞 又 恐 學者 執此 一象 不知裝 通 故 一篠 之 內 雜論 數 事 其 官 此卦此~ · ,iJ 論 之 象不止 此數 事 이는 때로는 한 絲詞 안에 雜 論 數 事 한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抽象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數 gt 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령 屯六二에 서 乘 馬 班女 U 는 女難의 占 이요 稚冠婚탉 者 는 隣國備患의 占이요 十年乃字 는 婦 人 産 育의 占 으로서 각기 독립된 문장으로 되어 있으므로 서로 연 속이 되지 않는다. 이들을 歷 史 書 처럼 읽는다면 뜻이 통하지 않을 것 이다. ® 存 質 ……聖人旺雜 論 數 事 又恐 學 者執此數象 不知 斐 通 故 或於卦詞只 著 卦德以存其 質 而不論事 物 或於父詞只 著 休씀以存其占 而不論 事 物 何也

並一 事 而不 論 所以應 萬事 而無疑也 이는 事 物울 논하지 않고 卦 德 과 休씀만을 나타낸 것은 이로써 萬 事 에 응하더라도 拘疑롤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가령 乾 의 元 亨 利貞이라거나 大有의 元貞이라거나 隨의 元亨利貞이라거나 逐 의 亨 小利貞이라거나 大壯의 利貞이라거나 鼎의 元吉亨이라거나 免의 亨 利 貞 따위가 곧 그것이다• 父詞에 있어서는 恒九二의 梅迅이라거나 大壯九二의 貞吉이라거나 解初六의 光씀라거나 莘九二의 大吉光씀 따 위가곧그것이다. ® 顧名 …… 卦之命名 本無定則 其以八卦之本德及陰陽消長之勢 推移往 來之情 而名之者 其絲詞욥假熙此義 以之爲莖 須觀命名之本 象 至於直取物形 及卽卦벤]象 而偶以命名者 (如歸妹) 其縣詞雜用此義 不可爲諸莖之通象也 이는 卦名이란 본래 정칙이 없으므로 卦名이 바로 卦德울 대표하는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卦가 본래 갖추고 있는 本德으

로 卦名을 얻은 자는 八卦의 重 卦와 같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陰陽消 長으로 卦名울 얻은 지는 復함을 바로 復이라 이르거나 大壯함을 바로 大壯이라 이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推移함으로써 卦名울 얻은 자는 松卦의 이름이 中字에 근본하였다거나 莘卦의 이름이 小過에 근본하였 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곧장 物形울 취하여 卦名울 얻은 자는 井이 니 鼎이니 하는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바로 卦에서 抽象하여 우연히 卦名울 얻은 자는 家人이니 歸妹니 하는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兄으 로서 妹에게 시집가는 일이 雷澤卦에 있지만 그것은 萬象 중 一象에 불과하다. 六桑의 桑詞는 비록 다 歸妹롤 말하고 있지만 반드시 隊妹 만이 本象이 되고 他事는 客이 되는 것은 아니다. 婚姬울 占치는 자는 마땅히 이 炎詞롤 사용해야 하겠지만 만일 祭祀나 戰伐을 占칠 때 이 卦를 만난다면 이 桑詞로 占쳐서는 안 될 것이다. ® 播性……卦變爲桑 其物象事情與本卦大異也然 其性 氣 皆主本卦 若舍

本卦之性氣 而專用之卦之物象(之卦者變卦也) 則大伴也 故 聖人於父詞 必 爲之播本卦之性氣 伴顧其本 이는 變卦로서의 之卦의 物象을 존중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本掛의 性氣를 도의시한다면 그것은 크게 찰못된 일이다. 가령 本卦가 升卦라면 之井이나 之壘(升五六)나 다 升上의 象을 취하였다. (井自泰來一升五) 難有卑降者不顧焉(井亦自泰來 柔自五降而不取焉) 本卦가 復이라면 之震之屯은 다 來復하는 象을 취한다. 비록 出征 하는 자가 있더라도 그것은 불문에 부친다. 그러므로 需의 六父는 모 조리 需待하는 뜻을 취하고 賀의 六父도 모조리 實文하는 이치를 머금 었으니 다 本卦의 性氣를 심어놓고 그 卦德울 갖추게 하기 위한 것이 다.

® 留動… ••• 국陣 槪動 全 卦遂잦 故 聖人之撰父詞 其升降往來之情 皆取 찢象 然 於卦 主 之父 又爲之留其所動 不逐其잦 而專用推移之本象 以Jj此益 之爲卦主此又一例也 이는 桑詞는 原則的으로 變象에 의하지만 卦主의 찾는 推移以甘 U 의 本象에 의하여 卦主임을 밝히는 경우가 있다. 가령 師九二의 王三錫命 이라거나 比九1i의 王用三賜와 같은 것들은 모두 소위 留動하여 卦主 임을 밝힌 예다. 또 謙九三의 有終이라거나 豫九四의 由豫와 같은 것 둘은 모두 桑變의 象을 취하지 않은 것들이다. 이런 것들은 古來로부 터 있었던 本然의 節法임에 틀림이 없기 때문에 周公의 撰詞가 이와 같은 것이다. 대개 策家로서 이 卦롤 만났다거나 또 이 父를 만났다면 神明의 지시도 정녕 여기에 있을 것이므로 이 盡 으로써 占을 치되 다 시금 變象울 詳考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 缺本……聖人銃爲之播性 又恐學者 專執性氣不知模通 故 或於六父 之內 其一二父之詞 缺其本性而不必擧論 其實 此一二父 未當無本性氣也 이는 오로지 卦父의 性氣만을 고집하면 변통할 줄을 모를까 하여 六 桑 中 一二父에서 그 本性울 거론하지 않고 變象만을 논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본래의 性氣가 缺如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마치 屯六四는 屯울 말하지 않았고 蒙六三도 蒙울 말하지 않았고 需上 六도 需롤 말하지 않았고 松六三도 松을 말하지 않은 따위가 곧 그것 이다. ® 用抽……易詞物象無不巧合 然 有時平 取象陝裕 用物窓芝 有若抽還 而霧能者 此正大巧之所寫也 蓋窟家雜窟 萬事安得每卦巧合萬象 必其取象之 法 委曲周備光法不具 而後方可以前民用也 故 聖人或舍其平坦巧合之物 而

別求抽劣之象 用撰阪詞 皆 所p). 示莖例 也 이는 비록 易詞나 物象은 萬象과 巧合하지 않는 것이 없지만 마치 抽溫하여 芬能한 자를 골라서 사용한 것은 大巧가 거기에 것들어 있으 니 그것도 莖例의 하나인 것이다. 屯의 六二는 구차하게 次男이 免女 와 배합하여 이를 婚講라 일렀고 責 의 六四는 구차하게 옛 震 울 취하 여 지금의 離와 배합하여 이를 婚講라 일렀으니 이는 곧 用抽한 사례 요 履의 六三은 家人으로써 兩足울 갖게 되었고 同人의 家詞는 剛으로 써 澤上에 올라 利涉大川하게 되었으니 이도 또한 用j/.ll의 사례인 것이 다. ® 雙潮……卦有二母者 其卦詞必雙潮其本而兩著其象 其父詞則又執之卦 雙潮其本而鑄合爲詞 若是者 明易之爲道 不外平推移也 이는 母卦가 둘일 때는 다같이 두 母卦로부터 象을 얻도록 하는 것 이니 이는 易이란 推移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마치 願의 卦詞에서 觀願라 한 것은 觀으로부터 온 象이요, 自求口實이라 한 것은 臨으로부터 온 象이다. 또 乾의 小畜에서 或躍在淵이라 하였 는데 躍은 始에서 온 것이요 淵은 夫에서 온 것이다. 坤의 豫에서 括 器光씀라 하였는데 産은 復에서 온 것이요 括은 {fe l j에서 온 것이다. ® 登現……此卦 彼卦 其物象相同者 其縣詞或社用前文以現其象 若是者 明諸卦諸桑凡具此物象者 其占可同也 이는 다른 두 卦의 物象이 相同한 경우가 있으니 이는 그 占도 同一 함을 의미한다. 마치 小畜의 家詞나 小過의 六五는 모두 密雲不雨라 하였는데 이 두 卦는 다 興도 되고 免도 되어 次雨가 되지 않았기 때 문이다. 小畜의 上九나 歸妹의 六1i나 中字의 六四는 모두 月幾望이라

하였는데 이 三卦 는 모두 次月의 위치에서 免上이 결하여 곽 차지 않 았기 때문에 거의 乾圓 에 이르기 직전이기 때문이다. @ 比 德 ……聖人於播性之中 兼指事物 銃指 事 物 H IJ不 得不偏 係一 事 而有 不能統殷衆情 故 有 排比 六 父 彼此離校 爲二字詞以顯圭採慈 而不論事物者 若 是者 諸事之莖 皆可以此二字占其大體也 이는 모든 사물의 象 을 다 지시할 수 없기 때문에 사물을 논하지 않 고 卦德만을 二字로 표현한 경우를 의미한다. 마치 臨에서 咸臨 甘臨 至臨 知臨 敦臨이라 하였고 免에서 和免字免 來免 商免 引免라 한 따 위가 그것이다. 또 復卦와 같은 경우는 六父는 대체로 比德하였지만 上六만은 兼指事物하였으니 이는 또한 比德을 卦詞로 삼기는 하였으나 萬事萬物의 象도 없을 수 없음을- 분명히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 泳物……易詞之文 有象有占 占以指 事 婚婦之占不能通祭祀 象以表微 草木鳥獸 之動 車輿器服之斐 皆可以爲萬事之通象 故 泳物兪事 一似風詩之 有比興也至如馬牛羊家之有關人事者 或爲通象 或爲指事 此又有分也 이는 占詞의 表現方法에 있어서 風詩의 諒物兪 事 의 방법을 취하기도 한다. 마치 飛龍在天이니 鳴鶴在陰이니 柏楊生桃니 緊于包桑이니 하 는 따위는 다 興體인 것이다. 마치 抵羊觸藩이니 積家之牙니 하는 따 위는 그것이 바로 두루 통하는 象이요 喪羊于易이니 行人得牛니 하는 따위는 이미 象이 될 수도 있지만 또한 占도 될 수 있다. ® 建維……易有四維 乾坤次離 是也 六十四卦 其陽盡皆本於乾 其陰 畵 皆本於坤 此二維也 六十四卦 其上卦皆位於次 其下卦皆位於離 此二維也 故 易之大義 不出於陰陽之升降 卽所以體乾坤也 若其爲占 則又必以亨貞二字 立其大綱 卽所以察次離也

이는 易의 六十四卦는 어느 것 하나 乾坤次웁!t의 四維가 盡 과 位로 나누어 포함되어 있음울 밝혀놓고 있다. 무릇 陽이 上 에 있으면 順이 라 하고 陰이 剛을 올라타면 廊라 하는데 이는 乾 坤울 바로 세우자는 것이다. 離는 誠으로 여기고 次은 敬으로 여기는데 誠으로써 格天하면 亨이라 이르고 敬으로써 幹 事 하면 貞이라 이르면서 剛柔가 交感하면 이를 有字라 이르니 이는 次離를 나타나게 하기 위한 것이다. @ 辨位……位之名有四 其一日三才之位 一二地 三四人 而五六爲天位 是也 二日二氣之位 一三五爲陽爲剛 二四六爲陰爲柔 是也 三日 貨 賤之位 一 二爲民三四爲臣 五爲君 六爲天 是也 四曰內外之位 一二三爲我 四五六爲 敵 是也 物象誰同 而其詞不同 其詞亦同 而其吉凶不同者 專 由其位之不同 所宜精察也 이는 三才之位 二氣之位 貴 賤之位 內外之位에 따라서 吉凶이 不同하 다는 것이다. 試論컨대 乾卦의 初와 四는 다 같이 變興이지만 初는 潛 龍이라 하고 四는 躍龍이라 하였으니 이는 그 位 때문인 것이다. 二와 五는 다 같이 變離이지만 二는 見龍이라 하고 五는 飛龍이라 하였으니 이도 또한 位 때문인 것이다• 大傳에서 이르기를 〈 二는 多 卷 하고 三은 多凶하고 四는 多權하고 五는 多功하다〉 하였는데 이를 易詞에서 考驗 해 보면 착착 符合하고 있다. 陽이 陰位롤 차지하거나 陰이 陽位를 차 지함에 이르러서도 吉凶이 不同한 것은 孔子의 家傳에서 자세히 언급 되어 있다. ® 寫義……易主於莖而義理萬焉 聖人察進退消長之勢 玩升降往來之象 而寫義理於其間 然 文王周公之詞其義所寫 隱而不彰 微而不著 至孔子家傳 則專闇義理 其父詞之隱微者 文言大傳 又推演而爲之戒 至於大象傳 則不干

第家 而純爲居觀之用 因傳以求經 則義可 1 문矣 이는 易이란 卜莖家 所用이지만 거기에는 義理도 함축되어 있다. 文

言 이란 乾坤의 모든 桑에 있고 大fi!j.에 있는 것으로는 中字의 九二라거 나 同人의 九五라거나 大過의 初六과 같은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 考占 ……卦父之象 本無定吉 亦無定凶 吉於取女者 以之伐國 未必不 凶 吉於祭祀者 以之涉川 未必不凶君子遇之而吉者 或害於小人 君子遇之而 凶者 或利於小人 凡易詞之 言 吉凶者 不可爲諸莖之通占也 이는 卦桑의 象에는 본래 결정된 吉凶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流 動的이라는 것이다. 復 臨으로부터 비롯하여 夫 乾에 이르면 乾卦에 있어서 乘龍御天의 象이 된다. 坤卦에 있어서는 履器堅氷의 象이 되는 데 이는 義理는 동일하지만 吉凶이 不同한 경우인 것이다. 屯의 家象 은 行役의 莖에서는 勿用有往이라 하였지만 立君의 莖에서는 利用建侯 라 하였는데 이는 卦象은 동일하지만 吉凶이 부동한 경우인 것이다. 坤의 黃裝元吉이나 隨의 元亨利貞은 본래 大吉의 占이지만 南創穆姜의 莖에 있어서는 大凶이니 이는 同一縣詞이지만 吉凶이 부동한 경우인 것이다. 屯의 1L1i에서는 小貞吉 大貞吉이라 하고 否의 六二에서는 小 人吉 大人否라 하였으니 모두 이 사례를 보여주기 위해서인 것이다. @ 認字……欲得經旨 先認字義諸經皆然而易爲基 如亨貞梅咨之等 字義 尙多不白 又如序卦雜圭卜之言卦義者 是卦義也 非字義也 而後世字書 並錄爲 字義大器矣 이는 易의 字義는 거기에 卦義도 첨가되었는데 이를 字義로 기록한 것은 잘못이다. 亨이란 感而遂通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亨이란 본래 離火의 德 때문이다. 그러므로 意任의 杰이 亨과 더불어 통할 수 있고 意麟 燕享하게 되는 소이이므로 燕享의 享도 또한 亨과 더불어 통하 게 된다. 貞은 따로 세 가지로 구별된다. 그중 하나는 利貞의 貞이니 貞이란 事다. 不正한 事는 감히 卜莖할 수 없으므로 事롤 貞이라 하는

것이니 貞은 正인 것이다. 또 幹 事 의 法에 반드시 堅固해야 하는 까닭 에 事 룰 貞이라 하는 것이니 貞은 固이기도 한 것이다. 그중 둘째는 貞 節의 貞이요 그중 셋째는 貞梅의 貞으로서 貞梅에는 二種이 있다. 卦윷을 梅라 이르므로 不變울 貞이라 이른다. 이는 洪範에 나오는 의 의다. 또 內卦롤 貞이라 하고 外卦를 梅라 하는데 左傳에서 綠를 貞風 梅山之卦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改過하면 海라 이르고 不改 梅하면 咨이라 하므로 卦象이 함께 변하면 梅라 하지만 卦는 이미 변 했는데도 象이 아직 變하지 않고 있으면 杏이라 한다. 이는 또한 易經 의 大義인 것이다. 序卦에서 〈屯은 盆이다 臨은 大다〉라 하였는데 이 와 같은 것들은 雜卦傳에서 比樂師憂 謙輕豫意라 한 것들과 조금도 다룰 바 없다. 다 이들은 卦義인데 이를 字義로 인정한다면 잘못인 것 01 다. ® 察韻……易詞韻法最嚴 而其格律多變 最難尋索 蓋 一絲之內 有一二 字輯韻者 有二三句乃韻者 有二三絲相承以韻 有全六桑相承以吐者 有三四蘇 恐文相承以마者 有卦詞與交詞相承以吐者 又或三四絲各有數句者 其上句 與上句吐 下句與下句flt 或一縣之內凡有數句 而其詞采堅美者相承 1l 情貝 其字 法零碑如吉凶梅咨無씀等字何不吐韻 其或古韻今韻元有不同者在所審理 而 後世拘曲之士妄造마월 l 之說 指商爲角 變暎爲齒者 又粉然雜出 源洞其間 凡 如此類恐不可信 이는 易詞의 韻法은 最嚴하나 실로 雜多함을 보여주고 있다. 시론컨 대 乾坤 등 數掛는 乾之象에서는 亨貞이 吐韻하고 其初九에서는 龍用 이 吐韻하고 其次는 田乾淵天이 吐韻하고 上九用九는 梅首가 11 -fi貝한 다. 坤之象에서는 亨貞이 II 情貝하고 其六桑에서는 霜方章襄裝黃이 吐 韻하고 其第二句는 至利事卷가 吐韻한다. 蒙卦인즉 發蒙 包蒙 困蒙 童 蒙 등이 登文相承하면서 中父에 一射자를 捕入하였다. 坤之象에서의 有枚往과 父詞에서의 霜方 等字가 吐韻한다. 後得主는 地利 등자와 吐

韻한다. 蒙 之 象 에서 初莖 告 再三沼과 交詞의 用說極桂과 吐音 h 하니 이 는 또한 卦桑가 相承하는 증거인 것이다. 乾三四의 無씀와 蒙 六三의 光枚利와 蒙四五의 客 吉 등자는 소위 零 碑하여 吐韻하지 못한 것들이 다. 用의 音은 庸이요 往의 音은 注이요 慶의 音은 苑이요 廊의 音은 列인데 古韻은 본래 그러하므로 다 널리 증거댈 수가 있다. 이러한 類 의 韻家의 설은 믿을 만하다. 저 塞初六에서 往寒來 용 라 하였는데 塞 音울 고쳐 許로 하였고 ’墓 U효 初九에서 滅址光씀라 하였는데 씀音울 고 쳐 以로 하였다. 어러한 類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이는 炳儒의 곡해인 것이다. 韻을 정밀하게 살핀다면 絶句가 緖雜해지 지 않고 絶句가 착잡해지지 않으면 經旨가 분명해질 것이니 이는 또한 학자들로서는 충분히 밝혀두어야 할 요체인 것이다. 이상에서 보아온 바와 같이 茶山의 讀易要旨는 易詞 (象詞 卦辭 父 辭 등)을 읽는 방법을 천명해 놓은 茶山의 力著의 하나라 할 수 있다. 茶山온 그의 易理四法에서 卦象울 얻어내는 방법을 제시한 반면 讀易 要旨 十八항은 거기서 얻은 易詞의 解讀法인 것이다. 이룰 일러 우리 는 古易의 입문서라 일러야 할 것이다. 제 3 절 易例比釋 茶山은 易理四法과 讀易要旨룰 정리한 후 또다시 易例比釋을 집필하 였다. 이는 占辭의 吉凶에 관한 文例를 모아 그의 奧義를 闇明한 자이 다. 이를 표기하면 다음과 같다.

易例 | . 比釋 元亨偵 | 亨者充賤 貞者人事也 易之爲道 前民用也臨事而莖 紹天 明也 不享天心則時運不通 不致人力.ffiJ事功不集 曰亨 曰貞

爲占法之大觀也 …… 易之大義 正在平亨貞二字 天時人事 於 此平占之也 亨利貞 稽之文言 元亨利貞 明是露離免次之德 然 考之易詞 其例不 一 或二五相應而謂之亨 或當位正位而謂之貞 或卦有震善而 不稱元亨 或卦無免和而得稱利貞 不離而亨 非次而貞者 又 不可枚擧要之 天時人事之通與不通 固與不固 唯在卦檜몽之 大小不可拘也 元亨 元者 始也 大也 君也……大有之傳 皆言其行 亨者行也 亨 其無젭假悳之嘉會者 泰謙復大過四卦也, •• …離德嘉會 震道通 行 則其占亨也 然 難有此象而不得爲亨者 卦왠詳i未然也 利貞 貞者正也 卜 莖之義 紹天明也 不正之事不政以莖 故 謂事爲 貞 貞者事也 利貞者宜幹也 君子之事 元往不正 遇此卦Jl l j宜 正 遇彼卦 Hl j不宜正 天下光此理也…… 利貞也者宜幹事之謂 也 亢一士 口 元者 始也 大也 君也 萬物始平震 陽道始大以爲人主故 震 移之吉 卽元吉 五爲君位 故 又或以得中爲元吉不一例也 貞吉 貞者正也 不正之事 不휴썼炫租 故 謂事爲貞 莖之所問 皆正事 也 正事之莖而卦沼想中正 則正事之吉也 貞凶 貞凶者 難正事而亦凶也 貞凶之卦 未常無中正之象 然 其卦 德卦性 各有不同 故 或爲貞吉 或爲貞凶 永貞 永貞者久長之事也 周禮春官大祝 掌六祝之辭 以 祈福祥以求永貞 居貞 遷居之事也 春秋傳曰鹿居是 卜 唯隣是 卜 楚辭有 卜 居之賊 古人遷居必有 卜 莖 可知也 限貞 限險之事也 春秋傳曰重耳在外十九年 險限眼難備常之矣 于此之時 若莖問貝 l j謂之限貞也 安貞 安靜之事也 安之爲字 象女在室中 所以應坤德也 …… 安貞吉 者用靜吉也

女貞 婦女之事也 婦女之事 賞於柔順 故 卦以罪順則利女貞也 君子貞 君子之事也 幽人貞 山林幽隱之人所莖事也 雜貞 師貞者師旅之 事 也 困貞者困呢之 事 也 旅貞者旅人之事也 不 正之事 不政以莖 故 卦德之貞 莖者受之也 若 E人 不正之事 莖 遇貞吉之卦 則縱云貞吉 其占不驗 此聖人謂事爲貞之微意也 故 孔子之傳 每訓貞爲吉 其實貞者事也 貞吉者幹事之吉也 可貞 可者俺可之意 可貞者利貞之次也 難未宜幹 猶可爲事也 其 次貞咨也 其次 貞廊也 其次不可貞也 最下者貞凶也 最下者 貞吉也 貞咨 咨者小紙不改也 人不改過 謂之咨故 卦不改紙 亦謂之咨也 以之幹事 則 舊 所妹疑者 終不淸脫 不能利幹 故 曰貞咨也 貞腐 廊者危也 ……以之幹 事 危 5 台而不安 故 其占貞屈也 廊 廣吉者昔鷹而今安也 廊光씀者雜危而光尤也 各 易者聖人所以改過而遷義也 故 孔子曰假我數年 卒以學易 庶光大過矣 斯可驗也 改過曰梅 不改過曰咨 梅咨者易家之 大義也 梅亡 人之有梅將以改也 故 易例 象有變改 謂之梅也 元海 卦有三變 本以粹卦 變而爲衍卦 又變而爲六桑 此三變也 再 變而海者 三變之後 反其本象 則其占爲光海 以之行事 則元

可梅改也 梅 光海與梅亡 大意不殊 或以吐韻 或以文勢也 光씁 大傳曰光씀者善補過也 卦之窓尤 不一其規 或柔乘剛 或陰 居陽 或以陰而消陽 皆爲肯씀 或變而順理或變而當位 或剛 自五反 則謂之光씁 又或圭 H 懿덮裏 失其本形者 變而補之 亦 云光씀也……人執無過 改之爲貴 聖人於此 廣開自善之路 以導萬民其旨淵平微矣

有字 1 字者信也 驛]必信 故 虛中年: 此中字간fr以名也 征吉tiE凶 征者伐也 吉者諸侯 接隣數有fiE伐 國之大事 必以莖決 故 fiE 吉 征凶 展示占例 乃後之說易者 或訓爲行或訓爲進 不亦器 平……以卦象 HI J或以卦主之存亡 占其吉凶 或以~硏生之相克 占其勝敗 然 水克火 火克金 金克木 則易詞有徵 至於木克土 土克水 則絶無影響 古之聖人 驗諸實理以爲占例 而後之術 數家 增衍添補 以爲相克相生之說耳(以下省忍)

이상의 論述울 통하여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 유의하여야 할 필요가있다. 첫째, 易道란 紹天明의 道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易道란 결코 術數 學이 아님을의미한다. 둘째, 易의 大義는 亨貞울 이해함에서 비롯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亨이란 天心과 통하는 길이요 貞이란 事功이 성취됨을 의미한다. 謀事 在天하고 成事在人함은 그것이 바로 亨貞의 大義임을 알아야 할 것이 다. 셋째, 易이란 梅咨의 道 의에 그 어느 것도 아님을 알야야 한다. 왜 냐하면 易이란 改過遷義의 道이기 때문이다. 이룰 요약해서 말하자면 茶山이 제시한 古易이란 애오라지 順受天命 改하는 倫理學임을 의미한다. 제 4 절 卦義論 茶山은 그의 역저 『周易四墓』의 서두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 다.

余於甲子陽復之日 ( 嘉俊 九年榮亥冬) 在康津摘中 始韻易 是年夏 始有담1j 錄之工 至冬而畢 此甲子本也 甲子本四義維具 租忍不完 遂殿之 萩明年 改 撰之 (亦八卷) 此乙丑本也 (此本在羅州海中) 乙丑冬 學綜至 f닳樓 賓恩 山房 以前本不取兩互及交易之象 恐改之(十六卷) 至春而畢 此丙 寅本 也(此本在 廣州) 丙寅本 於播性留動之義 多有腦誤 故 又令學核易裁未卒而北還 令李 鶴 (爲二十四卷) 此丁卯本也 (其實此亦丙 寅本 ) 丁卯本 詞理未精 象 義多誤 戊辰秋 余與學삐在橘園 令삐脫稿 (亦二十四卷) 此所謂戊辰本也 이로써 茶山易은 康津에서의 첫 작품인 동시에 甲子에서 戊辰까지 四年의 적공에 學核 學圓 李鶴來 등의 조력에 의하여 완성되었음을 알 수있다. 茶山易은 저술의 체재상으로도 易理四法 讀易要旨 易例比釋을 앞에 서 서술함으로써 본론에의 入門울 용이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本論― 六十四卦論은 오로지 이들의 解釋學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이에 茶山은 그의 十翼論에 의하여 易의 체재를 再編하였고 그의 六 十四卦 三百八十四交辭도 그의 易理四法과 讀易要旨와 易例比釋에 의 하여 중중첩첩 해석에 빌 듬이 없다. 그러나 그런 중에서도 간혹 자신의 接說과 아울러 기타 제설을 인용 縣辭의 의의를 더욱 보완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그 중에서도 各卦 의 첫머리에서 序卦와 雜卦의 卦義를 보완한 그 卦義論(鏞案說)은 그 의 易理各論의 壓卷이라 할 수 있으므로 여기에 그의 全文울 수록하기 로한다.

卦名 卦찾 說者 卦義論 -乾-- 雜序圭卦卜 乾有1天]地坤然柔 後萬物生焉 ---' 說卦 乾健也 程子 乾天也健而無息之謂乾

鏞 乾健者六習之諸聲也 八卦消長之序 亦如重卦陽起 於震 壯於免 究於乾故 說卦傳曰 震其究爲健 健者

乾也 以重卦則卦由復始 爲臨 爲泰 以至於乾 其行 基健 故 謂之乾也 乾者氣也古策 氣作눅 作 多 又作 浜 作 8 후者汶兪之轉隸也 乞者눅르之轉隸也 萬物 之生 皆受氣化 故 爲天爲父 與坤爲配也 又乾者操 也 洞也 坤陰銃煥 免澤今淵 所以爲乾也 夏易首良 商易首坤 以乾爲首者 文王之易也 象 案 文言者古之字書若爾雅說文之類 而專爲易話者也 故 孔子之生 十三年之前 穆姜預說文言之詞 斯可驗 也 史記孔子世家 及漢書儒林傳 並 5l j於十翼 盜孔子 引用文言以爲易傳 而後之儒者 遂認爲孔子所作 證 矣 君子行此四德者以下 孔子文也四方之卦 配於四 時 配於四端 故 又以四德配於四卦也 元亨者猶言春 而夏也 利貞者猶言秋以冬也 又詳易例 初九 案 賈諒新書曰潛龍入而不能出 故 易曰勿用 京房易傳 云潛龍勿用 歌興風行不解 二家似知交變 案 雜卦傳曰免見而興伏 卦相反也 活與夫反 隱而未見 也 興與震反 行而未成也 君子之道 欲見也 欲行也 隱而不行 非其頓也 唯其時也 九 案 班固之試曰尸祿負桑 夕 '1 湯若廊 淮南子曰終日乾乾以 陽動也 夕楊若腐以陰息也 張衡思玄斌曰夕 · I 湯若廊以 省窓令 皆以夕湯若廊爲句 漢儒之疏器如此 學 免lj爲西 7&S.Q 1 J爲日 日在西則夕也 案 此縣以之爲莖 則於出處進退祭祀婚期戰伐之等 皆無 所當 周公撰詞之初 蓋恐與易者專主 卜莖 特於乾卦 之內 揮此一縣 使學者知易之爲用 不止於卜莖也 故 孔子解易 多主義理 其源出於文王周公 非自孔子始 也 案 大傳曰三多凶 四多混 以不得中也 故 乾卦三四 皆 言無씀 孔子所言亦此義也

九四 案 初찾四交均之爲器 而彼爲潛龍者 位在地底也 此爲 躍龍者位近天中也 學삐 興 Rl j 爲魚 或躍在淵者魚也 故蔡墨對龍 不言九四 案 四Jl l j 多湘 所以疑也 ::hJi 案 離則爲維 飛鳥之卦也 離字從佳 裁者從商 荀九家之 璃爲飛其有徵矣 又接 伊尹就見殷湯 師尙父遇見文王 若於此時 莖而遇是 則其占吉也 案 大有之卦 活夫其本 也 風雷相會 同聲相應也 四正之 卦 火天其類也 火天相遇 同氣相求也 免澤之水 移 之爲淵 水流濕也 萬火之炤上延乾煥火就煥也 興 之密雲 上而從震 雲從龍 遂以興風 上而從免 風從 虎也 乾之聖君 化以商文聖人作也 靈陽在下 相 見 平商 萬物諸也 表記日火土親而不尊 火天尊而不親 此所謂本平天者親上 本平地者親下也 火天大有 氣 類相感也 飛龍在天利見大人 亦氣類相感也 世有聖 君則聖人必與相見 此各從其類也 程子 聖人銃得天位 則利見在下大德之人 朱子 所利見者在上之大人 王昭素之對宋太祖 又欲互用於 君臣之占 此疑案也 然 當以孔子之言決之 孔子曰聖 人作而萬物諸 聖人者在上之聖君也 物諸者在下諸之 利見也 又接 近儒之說以風雷爲動聲 山澤爲同氣 次寫爲水火 遂 有乾龍坤虎之說 其義非也 八卦之德 非此父之所得 專 況以乾坤爲龍虎哉 乾本非龍 坤又何虎 案 大人者聖君也 必有聖君而後 爲聖人之所利見 故形 容其德之盛如此 上九 案 洪範曰貞曰梅 梅者其變也 貞者其不變也 又改過 曰 梅不改過日咨 學 上一陽 本袁龍之無陰者 陽道太亢是亢龍也 案 亢龍縣敏自亢 不少卑降 故 無民無臣也

案 聖)\謂下접乞之聖人也 乾變爲免 上失其正 不失正者 下卦也 用九 案 春秋傳蔡墨對龍 以此爲乾之坤 則乾坤之有純變 審 矣 然 六交純變 則用之 其或雜變者 皆所不用 故 謂 其所用者曰用九也 ' 學 其或雜接猪t 九六參鎌 不可指名 故 以法求變 卒歸 于九六 若六位皆變者 九六之名得立故 因而用之也 坤 說卦 :t申)|頂也 三三 鏞 坤之本活也 爲逐爲否 以至於刺 陰每在下 終不政 타: 乘陽 踏陽 順之至也 此所以名坤也 四正之中 在下 者水土也 而一撮之土 投之水中 亦必場然而下沈 蓋 其性有所任載 無所乘踏 順之至也 古文作〈〈〈 亦作 )A 표者卦形也 川者 )I 頂之義也 順周 11 等字 皆從川 其實從 ((〈也 故周行中土謂之巡 而音與訓同也 家 接 程子曰四德同而貞體則異 然 當以朱子說爲正 又案 塞 El 利西南 解曰利西南 此卦亦當以利西南爲句 又接 朋者偶也 坤之三偶 皆成四偶 故 易例朋也 學團 周禮牧師 孟春禁牧仲春通治 此草育之政也 案 此云文言者 鄭康成之所加也 孔子於乾坤二卦 特於 家傳象傳之外 重重贊美 反復諒軟 維與諸卦之例不 同 其文 Hlj 亦象傳象傳也 本是一通文字 自東萊費直 始裂傳文 分隸各絲之下 而鄭玄見章首有文言二字 遂認爲別編 乃於坤卦之傳 亦增文言二字 初六案 乾以復始 震仁免義 積之至六 積善之家也 坤以始始

不仁不義 積之至六 積不善之家也 餘慶餘秩 將然之 效也 陰之i疑合 小人之固結也 節疑槪固 乃散麻惡 則爲逐爲否 臣試其君爲泉 I j爲坤 子試其父陰}疑之禍 不其速矣平 下卦爲ii'!! ~.l{ l j爲萱 上卦爲次 次則爲夜 I 一乾 朝乾一反夕爲者活一 乃卦散之販謂惡也 非活一而朝爲一復夕 坤也而 辨爲者復分 復也而 陰爲

之始疑 不早分之 訓致其惡禍將治天 聖人之義 賀 早辨也 小人之衆合;疑固 其浙雜微 不可不辨 此其戒 也 I ,、 一一 案 諸家皆以直方大爲句 然 霧方章襄本相吐韻 當以直 方爲句也 象傳只擧直方二字 大傳及深衣之文 亦然 直方爲句 無疑也 案 爲人臣者 敬以直內Jl l j不失其身 義以方外Jl l j不托其道 敬義內固而柔順外著 則其德不偏於岡膳t 不偏於柔順 所以爲不孤也 以此道行可以爲臣 無復可疑 大不習 無不利者破疑之辭也 /,、 _二- 學 章者樂之一終也 震爲音樂之卦 故 震則爲章也 學圓 免上訴 故爲口 良上合故 爲合 案 陰有美者坤得剛也 坤得岡輯 l j爲復 復而含Jlij爲謙也 六四 案· 荀九家云坤爲函 非矣 星湖先生曰四之動爲震有襄 象 又接 揚子方言曰括關閉也 良爲開門 震爲閉關 故 復之大 象曰至日閉關括者閉也刺之長門 今以震閉 其象括 也 案 豫自復刺來 復者自坤爲乾之始 卽天地變4 t之卦也 復之時 君子得道 草木蕃鮮 移之爲豫 則天位地位之 間 一才見中橫 而f!

上六 案 左傳龍鬪鄭門 易詞取象 皆合官理 學뻐 陰陽限變 條忽往來 支離樓單困極而死 其血玄黃也 次爲赤血 今次非次 色有諭也 案 坤本純陰陰旺至六又得老陰 是無陽也 觀之二陽 本是同類 血脈相通 故 血爲戒也 屯 序圭卜 屯者盆也 屯者物之始生也 王 雜卦 屯見而不失其居 프 朱子 屯字象中 察之始出而未申也 鏞 卦自臨來 臨之時 震草之萌 上戴坤土 雜己甲訴 未 及察地 移之爲屯 則袁草之萌 仰而察地 腦然 有春 暖物苗之勢 不幸次險中生生意未達 一點坤土 尙戴 句萌之上 而中形句曲 反有向下之勢 此 幾平察地而 未及出地也 屯之字義本然 故 春字從屯 本德如是 故 其在莖法 每有遇險之象 此所謂屯字難也 家 案 大亨貞 不言元利者 明元利二字 依亨貞以成文 其義 麟 亨貞二字去元利亦成文 其義紋實 元利二字之 中 又元字敎實 利字紋虛 故 曰大亨貞也 園語 公子重耳 莖得國遇貞屯之卦 司空季子日吉 主 袁雷 長 故日元 衆而順嘉也 故曰亨 內有震雷 故曰利貞 若夫勿用者 1 炤任 小事不濟 一夫之行也 案 莖立君者遇此則吉 策起程者遇此則不吉 初九 案 磐讀作般還 禮所云般旋也 桓與速吐 史記云覽者 築散行i及 植:-足而運一足 其行盤還然也陶潛詞云 撫孤松而盤桓亦此意也 春秋 孟緊之足 不良于行 孔成子 莖之遇屯之比 史朝占之 傳 日弱足者居 侯主社稷: 不亦可平 案 此之爲覽審矣 I ,、一一 案 字與李通 坤爲子毋 故 其占如是 恐非拜而字之義 六四 學 大傳曰服牛乘馬 蓋取諸隨 隨者乘馬之卦也 學園 易詞長爲求 故 雜卦以觀爲求

九五 案 周禮太 卜 凡國大貞 nl j作龜 小事 Rl j池 卜 又小宗伯 凡 國大貞Jlij奉玉 Wl 貞之爲事 審矣 又漢谷 71 (傳引此父 曰小貞爲臣 大貞爲君 君咨J! l j凶 臣咨Jl l j 吉 又接 洪範云作內吉 作外凶 龜范之象 本無定吉 亦無定凶 小大內外 其占各異 不可拘也 學 盆而不散曰 屯 五雄不變 亦屯其商也 上六 案 屯者摘妻之難也 蒙 序卦 蒙者蒙 也物之 廊 也 :王 雜鏞卦 蒙蒙者雜覆而著也 卦自觀來 大長之綴 下覆坤民 移之爲蒙而 其媒不改 此之謂 蒙也 又蒙者禪也 卦自臨來 震卓相之 萌 察過坤土 始出地面而戴其茅甲 其勢下~ 蒙菩之 #H 也 物生必蒙 此之謂也 蒙者被 也 移其初剛 戴之 頭上如蒙被然也 象 案 屯蒙反對也 蒙不得爲元亨者 臨之初剛 往不得位 乃 以良迷失君道也 胡庭 屯建侯 有君道焉 蒙求我有 師道焉 天地銃位 君師立 矣 學核 初莖告者物象 莖家之詞 而以莖爲象 奇變之文也 初九 案 荀九家以次爲極桂器矣 學團 脫者發也 脫於荷짧.ffij花發 脫於弓弦則矢發 其義一 也 ,,,、一二 案 左傳 女惑男曰壘 桑變爲壘 故 其占如是也 浙與歸 妹 皆乾變爲免而不言勿用者 卦銃非壘 元此不利也 又案 用射吐韻 宜以勿用爲句也 象傳云勿用取女者 括二 句而爲一句 本其文例也 六五 學園 童子不冠 蒙其髮髮 故 謂之童蒙 需 序卦 需者飮食 之道也

조 雜卦 需不進也 三: 鏞 需者須也 卦自大壯來 陽進至四 袁道光關 移之爲需 則次險在前乾行不進 若有需待然者 此其所以名需也 需者 · I 需也 乾馬之健而見險不進 1 爵之基矣 考工記所 云馬不契需者 此 也 又其爲字從雨從天 雨在天則雲也 純陽在下 離 Bl 垣之 免巫之禍 庶幾字格 而次雨在天 澤不下降 人所企待莫此若也 此之謂需也 又需者疑 也 中字之時 信而無疑 移之爲需則次疑在前 所以需 也 左傳曰需者事之賊 此之謂也 九 鄭玄 易 沙作i止 孟喜本 沙下有衍字 上六 案 觀六四 婚九二 皆乾興爲賓主 又案 次爲穴者其兩陰爲穴也 學園 入于穴 自爲一象 與下文不相干 松 雜卦 ’公不親也 --- 朱子 己險彼健松之道也 근 鏞 卦自中字來 中字之時 下免上撰兩口相向中成大離 己有對辯之象而我和彼順 不至爭松 移之爲松則我險 彼剛 兩相疑限第以王法 辨其曲直 此之謂松 松者 公言也 象 鄭玄室作 0 至 馬融讀作蹟 又九家諸易 皆以中吉爲句 誤矣 中與凶吐韻 九 九家 易 援音除亦器矣 九四 學 始也剛者卽命 今也柔者卽命 亦爭松之象也 上九 案 玉森云譯長三尺 庸革帶博二寸 又曰一命編跋 再命 亦跋 肇帶者命服之帶也 揚雄玄經銃周首 El 帶銃釣盤 佳以王環 肇者譯帶也 所以加於袋也 困之六二日朱 跋方來 困之九五曰困于赤跋 困自否來 本有衣裝之 象 鄭玄 易 挑讀作花 大器矣 挑者脫也 免以脫之也

師 序卦 師者衆也 H- 雜卦 比樂師友 i 程子 比一 F 옳在上 君象也 師一陽在下 將師之象也 朱子 次險坤地古者萬兵於農 욥認 師者以一而帥衆也 弟子 銀 集以一人而帥之 H| j名之曰 師也 卒任衆盛以一人而帥之ff l J名之曰師也 周制五百 人爲旅 五旅爲師 師者衆也 立一將謂之軍師 師者法 也 人之模範也 以卦象.1l ll 一陽居中 以領五陰衆之師 也 坤爲國邑 次爲溝池 皆所以出兵也 次之車馬 前 隔坤衆 亦兵象也 兵家類有師卦陣 蓋是卦前縣四翼 大將居中 後勤有備 實行陣之象也 家 案 揚雄玄經 衆首之贊日丈人權祭 此謂泉 l j之良山 今類 也然良不得爲丈人 구話 案 司馬遷律書 全論行師之法 古之義也 故 師者李也 率律也律者次律也 左傳 荀首之言 釋此桑日執事| I 動戌爲威 逆爲否 有律以如 己也故日律否威 案 否者塞也 次則爲通 免以壅之所以否也 左傳之文似 以律否威爲句 然 出律吐韻 旦와바룝之文 明以律字屬 上句 又案 左傳鄭伯伐宋 告則書師出載否 亦女1]之 九 案 周禮典命云車服旗方臣之數 皆如其命之數 以此言之 經云三錫未必取物象也 /,、_二 案 小過之卦 本以願交 頭自臨來 震帥/.illiE 遂以良死 反平本國 此小過之良尸也 六四 案 春秋傳凡行師 再宿爲信 過信爲次 左次字退舍也 兵家尙右 故 以退爲左 八陣圓 前衛爲右 後衛爲左 學 此亦四多情 六五 案 師字律也次則爲律 程子 師之興 必以鹽夷猶夏冠賊森究爲生民之害然後

奉辭以昧之 若 廊獸入于田中 f斐 害 核稽 Hl j 1 嚴取之如 此而動乃得元씀 若秦 皇漢 武皆窮山林以索裁獸 者 也 比 序圭卜 麟比也 三 程子 物之相功比無間 比無間 莫如水之在地上 故 爲比也 三三 鏞 比者密也 相與周密也 四正之中 火天爲類 水地爲類 故 孔子於火天之卦 曰本平天者親上 本平地者親下

則各從其類也表記 El 火天 尊 而不親 水土親而不 尊 皆此義也水之在地 無隊可入 人君之親上t其臣女 07k 附地 則爲國平何有 卦自復來 震 主銃升 遂正君位 以率坤臣 君德池君德宜比故 卦以사 : t名 象 朱 左傳崔武子 卜 姿妻凶 他云先夫當之 此云後夫 正是 一樣語 學團 刺自否變 否之時 乾坤配合 乾之p況亡 乃配長夫 是 後夫也 쿠刀 案 鄭玄以苗僞ii及器 九五 案 毛詩傳曰獲裁面傷不獻 自左膜而射之 達於右膳 爲 上殺故軍禮 其萬在前來者 不逆而射之 唯背我而去 則射之 是所謂舍逆而取順也 又案 軍法前錄曰先福 次前曰申賜 次後曰殿腦 亦三疆也 然王用三縣者 天子之禮 不 食 裁獲三縣而止 如親 耕之有三推 親蠶之有三練 成禮而止不卒 勞 也 上九 案 卦位初爲址 上爲首 而比自刺來 上剛本折 故 其占 如此 諸卦몸昆 楚 爲觀 其占多吉不可拘也 ---小----畜 雜鏞卦 小浪畜畜不者芬育己也也 故 毒 陰也降 亭于毒四之而義蕩也之 畜卦之自 夫畜來之者陽乾道之太元亢氣 發也 大畜則自大壯來 陽道銃壯 發浪不己 故 陰降于四而 畜之止之 其義一也 特以興者陰卦也良者陽卦也陰 小而陽大 故 有小畜大畜之別也 交詞多用六畜之物 卦名銃畜 取象宜然也 芬者陰暮也 歸藏易作小毒大

毒 案 卦德 畜 也 菩而不浪 故 其象爲密 雲 不雨 朱升易以四爲西 蓋以河圓之位 四九在西也 何其 器 也 初九 案 卦德畜也六畜之物 誰出而必反 所以能畜也 九 案 震 次皆馬 則器離皆牛也 故 離卦以異爲牛 左傳以離 爲

學 初九之重興 九二之家人 皆自逐來者 獸走之圭 HL 故 取六畜往復之象 九 案 幅者輪中直木 輯在軸上承輿 二物不同也 幅匠淡穀 不可說也 輯則時驚時脫 唯人所欲 由是言之 幅當作 輯 鄭玄以輯爲伏兎 此以輯福同字也 六四 案 大畜之損云上合志 此亦云上合志 其爲誤之損 審矣 九五 朱子 以猶春秋 以其其師之 以言能左右之也 案 泰六四 謙六五 皆云不富以其隣其兩互成卦 及以乾 爲富 正與此交相合 讀字詳之 學團 國有薔積 然後 可以直隣 卦원 F* 畜 故 其占如此 履 序圭卜 物畜然後有禮 故 受之以履 -三--:- 雜大卦傳 履履不之處基也也 履和而至 履以和行 鏞 履有二用 一日錢履之功 二 El 臨履之戒 卦自夫來 夫 由復進 自復以來 震 足履道 循序以進 母政蹴等 寸 寸踏歷以至於夫 則君子賤履之功 上可以合天德矣 君子之道 賤履筋篤 約之以禮 移之爲履則離禮乃明 文章煥然 非禮弗視 非禮不履 此之謂履也 卦自夫來 夫之一陰下錢五剛腐之至也 子不踏父 臣不錢君 女不擦男 愚不妹賢履匡其地災之招也 移之爲履月 l j 柔乃卑降能以禮讓戴天履地上下以辨 此之謂履也 又自姬來 柔之銃移 遂以興股 下錢離禮 此兩互之象 也

象 案 朱升以離爲虎 唐鶴徵以乾爲虎 唯來知德以免爲虎 免者西方白虎之位也 曲禮云左靑龍而右白虎 袁爲龍 則免虎也 故 革五六 頭六四 皆以免爲虎 學 踏虎尾 履薄氷 本一義也 夫之時乾氷基 厚 今氷乃 薄履薄氷也 學團 易例初爲尾 此以三爲尾者 虎尾仰擧也 九二 學圓 處士如處女故免爲幽人 九四 案 戀想者恐 1 權也 馬融本想作競 荀奭本 震 之銃劍亦作想 想義本同也 九五 毛姓 卦自夫來今之中剛 夫 一 陰之所履也 上 九 案 周禮九莖之法 若巫更 巫咸 巫式 巫目之類 卽所以 考其祥秩 此免巫之所斤掌也 大三 0 少跋 亦指視履之事 蓋以卦沿휼之內 本有離震也 漢 書五 行志 維不可盡信 蓋亦古意也 又案 大戴禮四代篇曰天道以視 地道以履 人道以稽 稽者 考也 視履之各爲一 事 明矣 泰 序圭卜 泰通也 -==- 雜卦 否泰反其類也 三 ; 朱子 天地交而二氣通 故 爲泰 正月 之卦也 鏞 泰內實之效也 物內陽則氣舒 人內誠則形正 榮衛 內旺則四體調適 仁賢內衆則八域安)|頂 此泰之所以爲 通也 天地水火易之四正也 故 諸卦之中 唯泰否及銃 濟未濟 旺爲反易 又兼爲交易 變易 家 案 小往大來 交易之義也 故 孔子特以兩交字明之道長 道消 的是十二牌進退之序也 讀者詳之 初九 案 郭壤洞林以其案爲句 朱子從之 拔字者象也 征吉者 占也 占者專指一事 象者通照萬務 拔毛連莊固爲進 賢之象亦可爲征吉之象 又案 諸家皆以興爲茅 然 易例震亦草也 管子曰江淮之間

一字三背名曰著茅 夫三有者乾卦也 說卦云次爲美 育 三陽者三育也 興不得乾安能爲字 毛氏又以此父 爲倒興之茅 由不知交變也

處翻 것 5 茅根也 六四 學冊 l 泰之本德 不損富益貧 故 其占爲不富以隣 六五 吳幼 泰卦互體成歸妹 故 以歸妹爲辭 淸 學 泰六五需也 需自大壯來 亦以帝乙得此離次 禮以歸 之 三卦皆合 乃緊其詞 易可易言哉 學園 初與上 不取歸妹者 互體所用 本是中四것而己 春k 晋 卜救鄭 陽虎莖之遇泰之需曰微子啓 帝乙之 傳 元子也 祐祿也 若帝乙之元子歸妹而有吉祿 我安得 吉 京房 載湯歸妹之辭 又荀奭傳對策曰湯p.J.姿禮歸其妹于諸 傳 侯 案 帝乙者討父也 其云成湯者漢儒之懿也 疑帝乙當時 原有歸妹一事 史傳失載也 上六 案 泰終月 1 j凶 否終則吉物之必變 班之常也 否 序卦 物不可以終通 故 受之以否 --,_',”, 朱子 否閉塞也七月之卦也 三三 鏞 否者不善也 左傳之云逆爲否 是也 又不然也 楚詞之 云不淸徹 其然否 是也 又否閉口也 卦以三剛塞其 上此之謂否也 初九 學 泰爲升而小人未形 否之元妄Jllj君子復反 故 兩皆 吉也 學團 此桑之占 異於泰例者 押小人也 /,、一一 案 朱升易注 有包耳館遺之語 六三 案 朱升易注云 膳墓之墓興以包之 非也

九上 案 論語子曰吾登抱瓜也哉 焉能緊而不食 緊于包桑者瓜 也 九家 包包也 乾坤相包 桑者上玄下黃降續以興繩緊 易 學삐 晋自觀來 天命絶也 然 商以修治 不以良終 故 其占 如此 案 其亡其亡者音戒之詞也 成言平良 以相戒也 於是 離 以修之 不以良亡 故 孔子以此交爲可以保國也 病之 將死 諱死己基 國之將亡 諱亡意嚴 以亡爲戒 不亡 之行i也 同人 序圭卜 與人同者物必歸焉 三: 雜卦 同人親也 -’-’- 程子 天在上者也 火之性 炎上 與天同也 鏞 同者會也 見也 周禮 時見曰會 殷見曰同 詩所云 會 同有擇 是也 聖人之會合人類 阪有二途 得一家之歡 心 E). 事祖考 得天下之歡心i).事上帝 如斯而己故 宗 廟之禮 所以衆宗族也 邪社之禮 所以衆王公也 此聖 人之微旨也 故 孔子曰知諦之說者之於天下 其如示 掌平 亦此義也 卦自括夫來 五陽之衆乾之族也 人 之相衆 不勘禮會 亂之本也 移之同人則相見平離 嘉 會以禮 家焉而事其祖則宗族相會 邪焉而事上帝則王 公相見 此之謂同人也 同人之義 不其大矣哉 又 天 地水火 易之四正也 四者之中 天火相合 水地相比 此所謂同氣相求也 故 其象爲會同也 /,、 一一 案 古有宗室詩云在宗載考又云于以食之 宗室浦下 卽 所以緊父黨而修睦也 修睦以祭 宗者祭也 九三 學 同人者緊人也 衆人之事莫如師旅 故 此下三桑 皆 爲軍占也 九Ji 案 旅之小過曰旅人先笑後號桃 號味者小過之象也 小過 之卦 良死袁聲 次以哀之 中直卦也

案 卦由袁積 君子之道也 離自逐來 又自大壯 時以g젊出 時以良止 或出而或處也 大興如默 兼免爲語或默而

或語也 逐與大壯 各有一乾 乾則爲人 此二人也 今 皆爲離 離則虛心 二人同心也 兩心統合 乾剛中斷 是斷金也 免則爲利 其利斯金也 我以異告 彼以免語 同心之言也 本以震#屯 雜以興芳 其象月 1 j蘭也 異J{ l j爲 吳 其吳如蘭也 離則爲誠 其利斷金者 離誠之所透也 離赤爲웅 其吳如蘭者 離恭之所播也 所問者桃笑而 所答者如此 明離自逐大壯來也 學 乾金中斷 興草芳香 同人之本象也凡易例 變象 皆 起本象 -大---有 朱雜子卦 大大有有衆所也有 之大也 三 鏞 大者陽也 有者不亡也 卦自活來 一陰雜微 其勢必長 爲 爲否 陽將盡亡 移之大有JI l j柔自內往 乾陽復完 於陽在 此之謂大有也 又有者富有也 型年五菜t 登熟 謂之大有 春秋之云大有年 是也 卦自夫來 夫 由復進 坤之土田 震諒蕃鮮 爲臨 爲泰 積之至夫則 陶有秋 利用'j. l j禾 歲之熟也 移之大有J! l j離以防之 內自富有此之謂大有也 初九 學圓 顧lJ當作眼貞 九 案 蜀才本大車作大輿 九三 案 亨誰爲享 音爲意 故 與誰其彭吐 春처k 天王出居于鄭 晋侯使 卜 個莖之 遇此交曰吉 戰克而 傳 王妻吉 執大焉 旦是卦也 天爲澤以當日 天子降心以 逆公不亦可平 六五 案 春秋傳成季之莖 遇此 ~El 同復于父 敬如君所敬者 中直也 上九 案 夫之五六 陽升陰降 此順也 因以成離 此信也 剛則 爲賢 尊而升之是尙賢也 卦德本廣 其變乃善 有若

德修而福來也 故 曰 自天祐之 謙 雜卦 謙輕而豫意也 三三 大傳 謙之柄也 謙尊而光 謙以制禮 三 朱 謙者有而不居之義 止平內而順平外 謙之意也 웁짧 卦自泉 I J來 良山下類 下於坤地 此君子謙卑下人之象 也 故 曰謙也 又自復來 袁之君子 本自謙卑移而升 之 終不出位甘於在下 君子之謙也 謙者言也 成言 平良所以爲謙也 象 案 侯果諸人亦以泉 I j一,易爲天道 以復一[湯爲地道 推移之 有~iji承 如此 九 案 德者直心也故 次則爲悳 此卦非正次故謂之不德 六四 案 九家易云撰猶擧也 魚竝云捨分裂也 鄭玄云捨音宣 程子曰撰施布之象 朱子臼僞發揮也 今以九家爲正 六五 案 春秋之例 凡潛師擦境曰侵 聲罪致討曰伐 困有次伏 可用侵也 亦次爲律 可用伐也 學 塞自觀來 亦有自北fiE南之象 上九 案 震lj爲鳴 不取倒象 無以鳴也 降Jl l j爲謙 不取倒象無 所謙也 師思輿尸 不取倒象不利行師也 其取倒象 審 矣 上交也 故 上卦爲我而荀取倒象 易例 凡自我伐彼者曰fiE曰伐而不言邑國 此云邑國者 明白自外而伐內也 齊小白之伐齊 晋重耳之伐晋 當 此占也 豫 序圭卜 有大而能謙必豫 =-= 程子 雷動而出地 奪發其聲 通暢和豫 故 爲豫也 터: 鏞 豫者逸也 謙之君子 勞而在下 豫之君子升而在上以

取坤臣 莫不致役以 )l lIDfij動 君逸臣勞 此之謂豫也 又 豫者忠也 卦自1/< I J來 降而居卑 猶在上卦 比之謙輕 運意緩 此之謂豫也 又豫者早也‘ 卦自1/< I J來 譜其門 關以禦次盜 豫備之義也 古易謂之陽豫

象 國語 晋公子重耳 策得國遇豫之八 司空季子曰吉 雲車也 坤土也 豫樂也 土厚而樂其it 不有晋國何以當之 初六 學삐 鳴豫謂鍾 鼓經翔笠 瑟 交 陳 聲 聞 于外也 /,、 一一 案 介間廊也 今訓之爲貞介耿介之介 則文理卦象 兩 無當矣 又案 次之爲石 不見說卦 然 良爲小石 次者大石也 故 困 之六三以次爲石 又次險也 險與巖岳 本相通用 案 臨之時 次險未著 維有明智之士 不見其有禍亂之兆 也 唯是復一,옳之君子 知亂之將作 見幾而起 航然其 造 而袁足綴動 次亂己作出意乃免 不與其亂 其知 不己神平 此 孔子所以三復而泳欽也 輯 乾之九三日終日乾乾 自復而泰 謂之終日 則臨者不 終日也 不侯終日者 謂不待三陽之爲泰也 學圓 知幾豫逃豫之義也 六三 案 向秀以 H 뀐움肝唯 六四學園 豫者和稅之卦也 故 有朋合之象 案 三禮未有待字 唯列女傳姜后脫管家語孔子聞笑吾菩 程子日管之名智 本亦衆裝之意 遂以替爲緊 然 杜詩 韋替 l j姬爲對語 此又以容爲拜者也 又案 易詞皆有所擬 若士相見禮 莖而遇是月 1 j無可疑也 六五 學圓 古者疾病謂之弗豫 故 其占如此 上六 案 鄭玄易云良爲冥門 隨 雜卦 隨元故也 ---- 朱子 隋從也 ’---- 鏞 隋鹽也 落也 卦自否來 乾之上剛 本自至高之位 隋落至卑之地 所以名隨也又鹽者壤也 穀也 否之時 乾坤整頓 移之爲隨則兩體供壤 與怪無異 所以名隨 所以云無故也 又隨者從也 自上落下日隨 自前落後 亦曰隨也 否之上剛最在人前 銃而曰不如在後而從

人也 於是 退而在後 隨人以動 此之謂隨也 遂成允 1 允 所謂以喜而隨人也 良六二之不極其隨 以盛之初 陰爲隨 咸九三之執其隨 亦以自上堅下爲隨 其義一 也 象 案 春秋傳穆姜之莖 遇長之隨 其釋元亨利貞之義 荀與 乾之文言同 然 元亨者君道之亨也 利貞者利於幹事 也故象傳明之 /,、 一一 案 隨從也 隣園交兵 旋保係累 隨之道也 卦德鉢湘 E 故其占如此 /,、一二 案 雜卦傳曰臨觀之義 或與或求 觀者大長也 故 處氏易 良爲求 九Ji 案 五禮香配屬嘉禮 上九 案 來易 El 維與係同 但重係之耳 學團 光妄自中字來 中字者祭祀之卦也 壘 序圭卜 盛者事也 曰 雜卦 盛則筋也 三 春秋 晋侯有盛疾 醫和曰血壘爲盤 穀之飛亦爲壘 女或男 傳 風落山 謂之盛 程子 壘非訓事 盛乃有事也 以卦象言之 所以成盛也 以卦 才言之 所J:J.治壘也 朱子 壘釋而有事也 鏞 卦自泰來 乾壤其下 坤壤其上 此壘壤也 又以長女稅 彼少男 此盛惑也 秋風所限 山木盡落 此壘性也 物 壤則筋所以爲事也 以物象則興本爲蟲 故 風字從虫 卦有下興所以壘也 象 案 先甲後甲之義 先儒解之不同 馬融云良在東北爲先甲 興在東南爲後甲 若然 三日不可解也 鄭玄云令甲之 之首必先令三日 後令三日 以示取信 漢儒皆主納甲 之說 而王弼以先甲後甲爲漢制甲乙之令 然 令甲之

名起於漢 未必周易用漢制也 自此以降 益復粉紙 胡 炳文又以先天方位 說良罪之位 未必文王之易 下達 召『子之圓也 唯處仲翔之言日下卦變乾爲前三甲 上卦잦坤爲後三 甲此爲近之 春平k 泰伯伐晋 卜徒父莖之 遇盛日盛之貞風也 其梅山也 傳 歲云秋矣我落其實而取其材所以克也 案 處仲翔日隨爲否上之初 盛爲泰初之上 初六 案 幹者築腦版也 築膳之法 兩木相奭而中成堅剛 故 文 言以剛爲幹 又膳之爲物 兩剛岡外而用爲防閉 故 易 例 以離爲膳 皆所以汗其壤也 卦有大次 兩異之木 來成中剛 此幹築之象也 卦有大離兩震之木 來持坤 土 亦幹築之象也 故 卦之本象 原有幹盛之形 不待 父變而後方得爲幹也 六五 案 險言爲談 故 次而免則談也 嘉言爲뿜 故 離而免則 麟 上九 表 :c 處其位而不履其事f! I J亂也 故 君使其臣得志 則愼慮 而從之否則熟慮而從之終事而退臣之原也 易曰不 事王侯商尙其事 臨 序圭卜 臨者大也 =----=-- 朱雜卦子 臨臨進觀而之凌義運或於與物或也求 二陽沒長以運於陰 故 爲臨 鏞 臨者臨淵也 免澤極深坤民 1 府臨 是之謂臨也 又臨者 震坤國也 復之一[옮 首出庶物而其位最卑 未有 臨民之象也 進而爲臨則中天下而立 莊萬民而爲君 此之謂臨也 然 臨者大震也 震之爲卦 以剛而下柔 以尊而降卑 何以爲臨也 聖人之臨民也 謙恭而卑屈 也 書曰以左右有民 詩曰湯降不運 皆所以下於民也 後世君道太亢 不知下民之義 則駿溫泰移而失其所以 爲臨也 孔子於此卦曰君子以敎思無窮 容保民無疆

臨民之必以卑降如是也 聖人名卦之義 其不淵矣哉 象 案 左傳知莊子之言日不行之謂臨 有帥不從 臨執基焉 彼次 7k 變爲免澤故 謂之不行 非此卦之本旨也 案 胡炳文以八月爲觀卦之月 此以反易取象也 若然 消 不久一語何以解之 又案 孔子於逐之家 亦云浚而長 文相照也 八月 之爲逐卦 之月 審矣 九 案 兩父之並云咸臨者 明物象銃同 卦位未遷 其占亦同 他卦之逐縣異詞者 亦其中有可以彼此相備者 故 一 詞而兩用之以爲通例也 -=-觀-=- -- 程序圭子卜 行觀物如政亥樓爲可觀民之贈觀觀仰 則人爲君觀上 觀天道 下觀民俗則爲觀 修德 朱子 自上示下曰觀 自下觀上曰觀 鏞 通卦爲大良 良爲門賊 門腕者觀也 爾雅曰觀謂之關 又此卦象 上有興眼 在於君位 可以觀下 下有坤民 在於離位 可以觀上 卽關之名觀 亦以自上而觀下 又 令自下而觀上也 此觀之所以得名 象 案 漢儒並云盟與課通 樣與瑠潘又相通 至朱子本義 始有潔手之解 又案 漢儒之說 或作朝會 或作貢士 或作祭祀 今讀孔子之 傳 銃謂之神道設敎則祭祀之義爲正 程子 天神 故 運行四時 此育萬物 光有差感 至神之 道 莫可名言 唯聖人默契 體斷妙用 設爲政敎 故天 下之人 自然仰觀而戴服也 /, 、_一龜 案 童觀閩觀者象也 其下一二句占也 孔子於象傳 每通 括而爲之詞 此象傳之文例也 此云亦可魏也者 以其 象也 非必女貞爲可魏也 旦貞事也 若訓爲正 便不 可通 毛姓云坤爲闇戶 故 爲閩觀 其義非也 易例 震爲閉

門 i與有互袁 所以岡也 六四 案 鄭玄以 貢 士夜興之說 釋此것 證埃 大司徒夜興之文 本是假借爲文者 뾰有周 公之 詞 反用摘句之法哉 春처k 卿萬公生敬仲周史莖之 遇此父臼坤土也 風爲天於 {專 土上 山也 有山之材 而照之以天光 故 日觀固之光 庭實旅百 奉之以玉用 天地之美具焉 故 曰利用賓于 王 上九 案 京房易傳釋此交日大臣之義 當觀貸人性行以貢于庭 否Jl l j聞善不終 阪異黃 阪씀襲 其說主於父變 此古學 之有師承者也 其災씀之說 荀是講緯之祖 旦其貢士 之義 器展 不典 O憶 陸 序圭卜 ,효者合也 三 雜卦 唯0 효 食也 ----- 程子 口 中有物 間之留而後 合之 在天下fl l j爲有强榎 或談 邪間隔於其間 故 天下之事不得合 當用刑法 小J{ l j徵 戒 大則諒毅 以除去之 然後天下之治得成矣 鏞案 兩剛馬合 其象爲合口 一剛中橫 其象爲列齒 三陰爲 肉 其所唯U 효 也卦自否來 坤肉受唯截爲二段 含在願 中 此唯陸之所以名也 然 唯肉造口 其在此卦 不過 萬象之中一象 故 象詞不言唯肉 如歸妹象詞之不言 妹妹也 家 案 處翻 侯果 盧氏之易 並云卦情足否來 此推移之正脈也 案 實亦似願 然 實.Qij下防 能陸而不能 0墓 此卦下動 故 唯此卦爲唯陸也 人之方唯頭必下動 初九 吳澄 履謂著於其足如納履然 校足械也 案 唯陸之卦本有震足 今袁銃減 亦滅址也 然 ,篤造之時 震足自在 本無履校之象必取小過之象 方爲密切 又案 易例:tJJ爲址 上爲首 如實其址 良其址 皆以位而用象 然 其取象月 1j 皆以震足 又不必震在下也 讀者詳之

案 卦自否來否者泰之反也 泰之仁義 否皆無之 此之謂 不仁不義也 /·、一一 案 禮例太半少半皆有店鼎 古人貴骨 肉無其骨者也 又案 荀九家以良爲鼻 盜以鼻自 中嶽也 /,\ 二一. 處氏 麟鹿 九四 案 說文肺作令 又或作肺 非也 王肅云金矢所以獲野裁 故食之反得金矢 太平 君子于味必思其毒 此六三之光씀也 于利必備其難 御覽 此九四之貞吉也 六五 案 周禮大司冠 禁民松令入束矢 禁民獄令入釣金 然後 聽之 鄭玄云不入矢不入金 是自服其不直者也 朱 子以九四之金矢 六五之黃金 皆作釣金束矢解 此卦 家詞父詞 皆取用獄之象 故解之如是 然 王子雍之 說於詞理爲)|頂 上九 案 初九上九皆取小過之象 而f}]爲履校者 其位卑也 上 爲何校者其位尊也 案 漢昭烈云勿以善小而不爲 勿以惡小而爲之 盜本於此 賀 序圭卜 賀也 =-= 雜卦 實元色也 三: 朱子 內離而外良 文明各得其分 鏞 實形然有文章之稅 周官有虎實氏 亦此義也 卦在 泰 上下無文 今成兩離 所以爲實也 又案 家語孔子莖得責耿然有不平之色 子張曰何也 實非正 色之謂也 夫質也 黑臼宜正焉 今得實 非吾兆也 呂 氏春秋曰孔子 卜得實曰不吉 子貢曰何也孔子曰夫白 而白 黑而黑 實亦安吉平 京房易傳 揚雄玄經 又鄭 玄王肅 孔子正義 黃臼之說 蓋本於此然 京房之說 最古合餘不可信

初九 案 易例 初爲址 三四爲腹腹 上爲首 故 初父必 言 址 然 其取象必以露足 又不必袁在下卦 i作者詳之 鄭張本 車作輿 /, 、_一~ 案 說卦興爲葬裝 故 九家以箕爲裝 然 盤撰供是地毛 興爲芬炭 l j震爲多裝也 故 此卦之六二 疾之六三 皆 以震爲裝 六四 學圓 離之兩互 造爲大過 故 有再女뜹之象 案 易例 婚配之占必以良免 然 若作再姿之禮而必求良 免之合 則物象不合 故 大過以震而姿免 此父以震而 姿離 皆所以前民用而示占例也 又案 懿如翰通 檀弓云戒事乘翰是也 翰者羽也 離爲飛 故 得稱穆女 ll 六五 案 字書云英委積統 此因漢儒誤解此文而承誰不改也 英 者薄小也 水薄小Jl l j爲沒 金薄小月 1j 爲錢 絲薄小月 1 j爲 綾 財薄小Jl l j爲賤 人薄小月 1 j俊 其爲殘薄之意 審矣 子夏傳姜作殘 案 衛風云素絲批之 良馬四之 正是招賢之禮 原有束串 也 學核 本 E人 民手 變爲興繩 繩以束之 故 謂之束閉 上九 案 坤黑fliJ乾臼也 又興爲多白 凡陽盡皆白也 故 家語呂 覽之文如彼 刺 序卦 泉|達rf/{ l j也 ----- 雜卦 刺關也 三三 朱子 泉 l j落也 鏞 泉 l 瀋撲也 自始以往 乾之木果打撲玲盡 此泉 I] 也又 刺者擔也 人去衣曰泉 |l 器去幕日泉 I j 狀去席曰泉 1 j 菜去 皮日1/< I] 擔之謂泉 I j也 卦由乾變 自活以往 每下生一陰 則上援一,易如槪去衣 如林去席 以至於刺.Q lj 乾衣盡刺 而一皮値存此之謂刺也 구祐 星湖 以足幾 以辨幾 三字爲句 度滅也 故 傳曰以滅下也

滅下者足賤也 貞凶與他卦之貞凶無異例 案 句絶之可疑者當以韻決之 兩父之刺狀 性文相承與象 詞之有 1 虹主 0H 貝 以足殺以辨段亦登文相承以相吐 此易知也 若如今釋足與辨 銃不相吐 有枚往又無相 承 不可i h 也 又案 幾者微也 王弼云幾猶削也 又與滅通 荀九家鼓作滅 /,、 一一 案 孔安國曰辨謂林幹也 幹在林核之上 孔碩達從之 崔 情曰辨者林桂也 在第足之間 後來字書皆從此義 承 誰襲誤 不足振也 足爲林足 辨爲林桂 以之臨文ff l jf/< I J 忠섀木足 自 不成理 1/< I J!f;tj:)J休桂 仰又何說 詳玩六五 之詞 ff,. l ]Jlt之義 乃可悟也 六四案 崔恨云林之有荊席 猶獸之有皮毛 不知何解 六五 案 漢儒釋此 皆以妄御當夕 爲魚貫之序 蓋 E人 魚之旺貫 頭皆向上 其勢相)頓而今興后在上 衆陰鹽盛 有妄御 順附之象也 然 以宮人籠當作何解 上九 案 京房易傳臼小人1/{ l j麻 萩妖山崩 雜妖祥之占 不經而 交變IJ知之矣 1良 序圭卜 f/

象審 矣 I ,、 一一 案 君 牌之卦 多取交易 唯 變 所適也 /,、 一二 案 古本顔作唯 又鄭玄本作卑 處 仲翔解頓爲盛 漢 儒之 明於字義往往如此 六五 案 爾雅丘再成曰敦 坤土長山再成之象也 故 易例 坤良 之合爲敦 上六 春平k 鄭游吉如楚歸告于子展日在復之願 曰迷復凶 其楚子 傳 之謂平 欲復其顔而棄其本 欲師元所 是謂迷得能元 凶平 楚不幾十年 未有 TI 血諸侯也 元妄 雜卦 元妄穴也 : 程子 動以天爲元妄 뜨 朱 史記作 元望謂元所期望而有得焉者 其義亦通 鏞 卦自 逐 來 二陰綾生 四陽外逃妄之至也 今也換其 一陽而爲主於內 El 元妄往也此之謂元妄 元妄者勿逐 也 又元妄者至誠也 卦自中字來 中字者至誠也 移之 爲卦 至誠猶 舊 此之謂光妄也 上有乾興 下有 震 良 或動或止 一聽天命 所以爲光妄也 家 案 鹿正者不正也 穆姜遇范 自知不吉 若是者宜占之以 兩互也 /,、 一一 案 免爲秋爲利 利者象以刀'j. l j禾也 故 曰免爲稷 又案 以益之興木爲未距之象 又薔與災裁並通 初壁之田 必先禁 萬 菜故 田一歲曰薔 二歲曰會 案 坊記有凶字 ----大---- 畜 雜朱鏞子卦 大大大畜陽畜者也時以 也以 陽良卦畜而乾畜畜乾之也大 者乾者也 元氣也 卦自大壯來 陽 道銃往 又以震而發之 元氣大浪故 移一陽移畜之此 之謂大畜也 又小畜大畜 皆有六畜之義 故 兩卦之詞 多用,馬牛羊家之象也

蜀才云此本大壯 以四升上 象 案 中字者單免也 中字之震 只升―쌍及 此小言而受小祿 也 大壯者兼免也 大壯之震 直升二級 此大 言 而受大 祿也 孔子之 言 散見諸經者 其巧合易象如此 況在大 傳者哉 案 新與賢天吐韻 當以日新爲句 九二 案 幅者車練也腹者伏兎也 鄭玄云復釣心之木 小畜之 輿說幅 鄭玄亦訓爲輯 未可知也 古文腹作館 其形與 輯不若相遠 又案 畜者薔止也 故 小畜之云奈復輿說輯 大畜之云輿說 幅 童牛之特 皆換留畜止勿令走浪之意 此所謂播性 氣於諸桑也 九 案 宋本日作日 鄭玄處翻之本 皆作日閑 閑之爲言防也 習也 周禮校人云天子十有二閑 蘭以防之 習£具 )II 之 故 謂之閑也 以卦象JlJJ離爲防閑 又案 考工記車六等 曰戈 曰交 曰載曰曾牙類 是也 車輿 之上 設戈兵以衛之曰輿衛也 六五 案 降田坤雅曰牙杖也 海貸之間 以杖緊家 謂之牙 又古 賊曰置牙橋性 上九 案 詞云何天之龍 何天之休 何荷本相通 王弼訓何作語 辭 誤矣 靈光殿試云荷天衝以元亨 願 序卦 願者養也 =---=-- - 程雜子卦 卦願養上正止也而 下動外實而中虛 願領之象也 鏞 卦自臨來 免口坤養 本有自養之象 又自觀~ 興施坤 養 亦有養人之象 移之爲[OOllj上止而下動 如人之方 食 上罰止而下罰動 此卦之所以名願 願之所以爲養 也 以卦義測願者養也 以字義則願者碩也 領者含也 坤之廣肉含之在中也

象 案 侯果曰此觀卦 五降于一 虛翻曰臨二之上 推移之脈 綿綿力 n 此 初九 案 字 書 以手提物謂之染 王弼以此注經 非矣朱者木下 垂也器木下垂 染願者垂願也 /,、 一一 案 經音樞 漢書 以經死爲絶院 莊子云緣督以爲經 掃經 者弓 I 院也 學 禮掃其首漢王芬傳 掃其頭 衝其曾 섰其樞 以此言 之佛經或是緩死之謂 六四 案 頭中有物曰唯陸 p胞효者食肉之卦也 虎視敗助亦以p墓 0효 特以順頭之義 非倒不明 故願之實而其 實唯 陸之 倒象 非取賀卦之正象也 若云此父直是實卦則六三匠 凶 此찾安得獨吉平 在內者占以正頭 自外者占以顧 頭所以異也 又案 漢書 逐作激 又古本或作枚 或作悠 或作悠 說文云 悠者式六 其義則悠遠也 總之 逐逐爲正 又案 荀九家以良爲虎 蓋以推移不明 父 變 不知 至於傾願 之爲倒卦 尤非所意故第以良爲虎也 良若爲虎J! l j次 震 兩萬 皆在虎後 何視何逐 大-三 過 鏞雜卦 大過者過類越也也 度也 小過以願交易 四陰相過以成卦 小者 程子 大者陽過也 過也 大過以中字交易四陽相過以成卦 大者過也 陽 卦多陰 陰卦多陽 故小畜主陰 大畜主陽二過之卦 反瀋以其過也 小過者陰太過也 大過者陽太過 也 又過者意也 肯也 二過之卦本皆虛中 交而過之皆 成次盲 小過猶小 大過太大 此二卦之所以名也 又卦 自逐大壯來 剛自上來 過以得中 剛自下往 過以得中 此象傳之所言也 此卦亦顧倒以取象 故 曰大過顧也

象 案 荀九家以次爲棟 非也本末維弱中剛太短 安能爲 f東 n 脂犬過僞湘댄 l 추刀 案 士處ffim1 寸字長五寸 佐食取恭稷祭于 耳 又取府祭于 耳羅用白茅 蓋 指此禮也 又案 處仲翔直以興爲白茅 陳矣 案 卦德爲過 薛用白茅者過於愼 重 也 九 案 夏小正云正月柳稀 古者氷洋爲婚 正是柳稀之時也 鄭玄本秘作第 弟與秘通 第者茅始生也 葉始生亦爲 第 又案 卦德爲過六交皆播性也 九 案 通卦爲大棟是笠看也 分卦爲小棟是橫看也 學圓 困自否來故其象凶 九四 案 卦德爲過 棟燒棟隆者過於直而曲者也 學삐 井自泰來故其象吉 九五 案 古文莘若男萩並相通 次 序圭卜 次首也 王 雜卦 離上而次下也 ----- 鏞 次者土矢也 大地圓圖 其有矢朋者爲次音也 開陳之 初 水土潭治 其有次官水則就之 大宮 Hl j爲 溫海 小官J{ IJ 爲溪澤 此次之所以爲水也 又次者險也 物之 險者莫如巖石 故 巖之與險 義本相通 次者險也 卦 自臨觀來 天險地險 卽謂是地 家 案 劉球本次作欲 郭京欲于習次上 更增次字 非是 又案 九家易以次爲半 盜以此詞也 然 習次有半 次則非字 也 又案 諸家皆以維心屬下句讀 然 次與心吐韻 旦雜述、亨語 不了 至若象傳之文 其例本然 不必疑也

初六 案 此父 若 不倒 看 則下 變爲 免 免則 爲 脫 脫平次 習 也前 路如 舊 非失道也 /,、 二一. 案 鄭玄本險作檢 鄭云木在首曰杭 在手曰檢 盜以九家 易以次爲極桂 故取象如是然 杭以安首 未聞其爲 極桂也 六四 案 古禮五獻之t尊 門外用告 門內用登 君用瓦甄 此卦 瓦告亦在良之下 所以爲墓武也 又案 此詞絶句 諸家不同 然 酒告踊씀四字 1 合成四韻以韻 絶句 登有誤哉 象傳難以槍酒蓋戴爲句 孔子於象傳 本節取以成文不可拘也 又案 君子之道處險宜儉 故 儉險階聲也 酒用瓦岳 飯用土 篇 皆處險之道也 漢碑直 E). 儉爲險 又案 處仲翔直以震爲告 非也 蒼箕之竹 安得爲土器 必以 離燒之 土合於 震 器 然後 方得爲눕 九五 案 京房本祗作視史記祗取辱作視取辱 皆徒然之意 鄭 玄本作祗 上六 案 劉表曰三股爲徽 兩股爲緖 否之時 三股之徽也 浜而 後 兩股之緖也 聖人之取物象精密 如此 又案 處翻云獨洞這 故 稱鼓隸 九家易 El 司冠公卿議 獄 上罪三年舍 中二年舍 下一年舍 不舍故不得也 又案 荀九家以次爲穀練 亦琉矣 離 序圭卜 離者麗也 三 程子 火體虛麗於物而明者也 三 鏞 一陰麗於兩陽之間 如鳥之麗其翼曰離也 又離別也 辨也 乾三陽相衆而中一陰以jj lj 之曰離也 又離飛鳥也 鳥之羽翻皆脂背所成 故 能衝氣上君得火性者也 古以倉庚爲黃顧 離字以佳 裁字以商 皆其證也 卦自 逐大壯來 日 月之麗平天 草木之麗平土 推移之義也 家 案 逐元妄興離爲牛

初九 案 離自逐來 興主乾賓 相見平離 燕會之卦也 學 次離諸卦 本取倒象 故 袁倒爲履 /, 、一一 案 黃離者太陽麗天之名 離日中於乾天 亦黃離也 今曆 家以 日 度所躍爲黃離 盜本於此莖而遇是者 田猿Qij毛 黃來麗 軍旅則旗黃者來麗也 九 案 鄭玄本鼓作擊 京房本差作程 皆誤 上九 學 易例 初爲址 上爲首 故 上九曰折首 咸 序圭卜 有天地然後有萬物 有萬物然後有男女 有男女然後有 ---- 夫婦 有夫婦然後有父子 有父子然後有君臣 有君臣然 三 後有上下 有上下然後禮義有所鎌 雜卦 咸速也 程子 男女相感之深 莫如少者 故二少爲咸也 朱子 咸交感也 鏞 乾坤天道之始 男女人道之始 此其所以爲首於二篇也 咸者感也 左傳所謂究則不咸 是也 卦自否來 陽上陰 下二氣不交 於是 坤升于上 乾降于下 以相交感 此 之謂咸也 在物 Hl j山澤通氣 在人則少男少女感尤더 咸之時義也 又咸者和也 二氣匠交 物莫不和 乾變爲 免 和之至也 咸者循也 六位皆應 有不循푸 咸者減也 一剛上損 元所減平此 皆名卦之義也 蜀才朱升皆云 卦自否來 象 鄭玄云嘉會禮通 和 )I 頂平義 幹事能正 具此三德而用 以取女所以爲吉 初六 案 咸者感也 感而動之 物乃和脫 故 諸父皆以免稅爲咸 又案 泰JJ九曰志在外 漁六三曰志在外 初與三皆內卦 故 明其志之在外也 臨上六曰志在內 奏上六曰志在內 上六爲外卦 故 明其志之在內也 九四 案 塞自觀小過來 小過者大次也 坤民歸次 此天下同歸 也 一次之中 震爲大途 良爲程路 此同歸而殊塗也

觀者大長也 物終于良其所致者 一 也 兩坤相乘 其數 百也 今以次思 一致而百慮也 若是者何謂 也 萬物芸 芸散而之四 而畢意同歸於次宮 萬物「밝襄 百慮勞心 而畢意同歸於良終 由是言之 天下之事原不足以勞我 心思也 觀移爲塞則上次下離 此月往而日來也 否移 爲咸 R lj坤升乾降 此暑往而寒來也 推移之故 中成離 明 此日 月相推而明生也 推移之故上爲次冬此寒暑 相推而歲成也 興以柔燒 其象屈也 次以剛直 其象伸 也 觀以興屈塞以次伸 屈伸相感也 剛自外來以利坤 民 此屈伸相感而利生也 移之自觀則異之尺埋今以次 直 此屈柳以求伸也 移自小過則震之肯該毛 今以次隱 此藍伏以存身也 義以乾洋i入於長神 精義入神也 次 爲功庸以致用也 長以止之保此坤安 利用安身也 次 德凡崇德也 咸至九四 陰陽之感崩朋귬矣 故 孔子 極言屈伸往來之理 O 鏞當讀周禮 知周公致治之才 在平精義入神 故 規模節目 菜然森整後之從政者內 懷租濁 外宇毛犬體 何以致文治哉 上六 案 荀九家免爲輔類 故 諸家皆連讀五字 恐非也 良六五 云良其輔 此云咸其輔文例本同 不可殊也 ‘ 恒 序圭卜 恒者久也 츠 雜卦 恒久也 三 程子 男尊女卑 夫婦居室之常道也 鏞 恒者常也 卦自泰來 泰以復進 震道自張 爲臨爲泰 移之爲恒則又以此道行之 及物自初至九 唯道是違 由內達外 唯道是行 常之至也 泰之乾剛移不失乾 常 以袁足履此乾德 常之至也 彰販有常德之吉也 此之 謂恒也侯果處翻蜀才及朱升諸易 皆云卦自泰來 九二 案 元海者光所變也 梅亡者變者亡也 語意似異 然 咸之 小過曰元海 恒之小過曰梅亡 由此觀之則光海與梅亡 本無異義 特以吐韻之故 或稱光海 或稱梅亡也 威九 五梅與梅吐 此交Jl l j亡與凶吐

六五 案 左傳畢萬之莖曰車從馬 業姜之莖曰夫從風 皆以變爲 從亦文例也 又案 貞字當屬下句師之家曰貞丈人吉困之象日貞大人吉 貞謂幹紅臣之占也 易凡言貞吉者以之幹事 無所不吉 其云丈人吉 大人吉婦人吉之類 P 距比人得吉 餘未必 吉也 上六 案 恒陽散曰不恒 此云振恒者不恒之類也 -逐------- 程雜序圭子卦卜 逐二逐者陰 I J退生退也而也 小人浙盛 君子退而避之 故爲逐也 鏞 卦以活進 二陰銃長 小人在內旺勢沖天 震之君子 連于長邑之外 此所謂逐于荒野也 遂爲大興 興則爲 隱 爲伏 爲入其象爲逐 乾初九之逐世無問 亦以興 也 又逐者脈走也凡獸逃 El 逐 乾馬外逸 民手執之. 亦逐之所以名逐也 又逐者退也 退之爲字 以民以足 退者良也 內卦爲良 所以退也 侯果云卦自乾來 쿠刀 程子 尾在後之物也 . 逐而在後不反者也 是以危也 案 底却푸亦tJJ尾 策紅處翻云良爲尾 /,、一一 案 震次皆馬則興離皆牛也 然 謂之黃牛者必坤牛也 卦 凡三盡 其中畫爲虐骨 其上下二盡 皆爲皮革 理宜然 也 九 禪 卦今爲否 上乾下坤 其色玄黃 玄黃者馬疾也 上九 案 淮南子師道訓云逐而能飛吉 執大焉 曹植七啓云飛 遷 離俗思玄賊舊本亦作飛逐 文選諸注並引易詞爲證 至 明魚竝又引金陵攝山碑以爲證 然 於象光當 此聲誤 也 楊用修云古肥作뽕 誤輩 又因輩作飛 其說良是 案 平子以逐 上九爲逐之 威原注釋義 亦詳核不緖 是知

交詞之 主 平 덫 古 人 早 有知 者 也 大壯 雜卦 大壯셋 l j止 프 朱 子 大謂陽也 四陽長 故爲大壯也 三 鏞凌 易 緯 云凡卦下爲少 中爲壯 上 爲 究 以 重 卦jt l j一二爲 少 三四爲壯也 陽進至四則大者壯也 又壯者長也 異 爲女長故曰女壯 震 爲男壯 故 此云大壯也 又羊盛 曰詳 詳壯諸聲也 卦爲大免 免ff l J爲羊 羊壯日壯也 九 學 核 抵羊獨藩 小人用壯之象也 以長爲羊 故得此小人 學삐 膳有茨防 i 춥也 折柳煥圓 狂夫뿔뿔 唯禮防也大壯爲 卦 陽壯而陰弱 抵羊觸藩者 强暴演防之象 非婚婦之 吉占也 舊 本 風 作 媒 或作壘 或作 堂 皆聲誤也 九四 案 腹 者車之伏兎也 輯 完則車行 輯脫則車止 此交 震 道 前通 故 車壯其 輯 小畜大畜皆前有榎限 故 輿脫其 輯 不但乾車之不完也 六五 案 陸 續 本易 作場 與場通 朱子曰易或作張場之場 漢食 貨 志場作易 總之不以交易J!Jj羊未 當 亡也 其爲俊易之 易 審矣 旅上九之喪牛于易 亦願之交易也 上六 學團 大壯者陽壯之卦也强暴之盜 斷其歸路則窓急光描 抵羊之誠以戒此也 晋 序卦 晋進也 三! 雜卦 晋 盡 也 터: 鏞 晋者兩之日也 古作習可驗也 卦自觀來 興一陰之始 生者 夏至也 又自小過來 袁 之一陽之始生者 冬至 也 以此興震移之離日 此兩至之日也 七曜之中 太陽 爲主而太陽之行 極於夏至 森於冬至 凡天地之間 萱 夜時明之侯 寒書溫涼之變 神木百穀之榮華洞落 裁 獸昆蟲之胎李伏塾 莫不以此而 變 彬: 故 周易取重活 復 是卦之得晋名 亦所以貴之也 序卦謂之進也者 自 觀來之象也晋進階聲也

朱子 卦自觀來 象 案 朱子以康侯謂如考工記之寧侯 然 帝乙歸妹 高宗伐 鬼方 箕子明夷之類 皆實有是事 則康侯錫,馬 亦必故 實也 又案 周禮大行人職 日諸公三岩三問三勞 諸侯三器再間 再 子男三響一問一勞 經云三接蓋指 此禮也 胡氏 易言柔進而上行者三卦 晋揆鼎也 晋 ~I Jl視四進五也 誤,Q I J中半四進五也 初六 揚左佳 玄經曰丈人權祭 亦山崩日權 /,、 -一· 案 怒者秋心也秋者禁也 坤溫之中 乾寒入心 其氣禁'|束 此其所以爲敬也 升쉽났淸廟 1 秋然如復見文王 亦敬也 九四 案 麟善緣木 良剛之自下達上如範鼠也 爾雅法云範

鼠形大如鼠 頭似兎 尾有毛 靑黃色 陸磯詩疏云今河 東有大鼠 能人立交前兩脚於頭上 蔡伯階云範鼠五技 不成一技 九家易直以五技傳會爲說 器矣 鄭玄云範 鼠卽大鼠子夏傳範作碩 明夷 序圭卜 夷者傷也 -三--三- 鏞雜卦 卦明夷自昧臨也來 臨有震免移之明夷 乃有離次 東夷西戒南 登 北秋 皆入坤國之幅員此包四荒之象也 離以明之 用敷文德 此之謂明夷也 太陽之行 燒地往而周旋 日 在天上則中國明 日入地底則外國明 理則然也今也 日在地下 此明夷之時也 當討之時 微子遜荒 箕子居 夷 文王混於西夷 賢聖外선t 中國時盲 如日入地中而 夷國得明 此明夷之象也 又夷者大:弓也 夷俗用大弓 以傷人 故 六書家假借其字爲傷害之義 周禮羅氏夏 曰夷之 左傳支夷墓崇之 是也 比干音 l j心 文王拘囚 箕子梵웁甘 一時仁賢之士 無不曲땐羅而裁彌 離刑不明 君子受傷 此明夷之禍也周公緊詞至此 覽卦象而哀 傷 追i흙香而悼念於其請父之詞 各以當時賢聖之事辨

物 象 而配之 不但 箕子 爲 然 也 孔 子 知 其 微也 故 象 傳 特 言 文 王 其 實 不但文王爲 然 也 序 卦之訓 夷爲傷 雜 卦之 計 II 夷 爲昧 皆指交詞之本旨 若 其名卦之義 則離 日 明於夷秋也 故 泰之明 夷 曰包荒 盟之明夷曰遇其 夷 主 節齊之明 夷 曰東隣殺牛不如西隣之 蘆 祭 夷之爲 夷秋之夷 若是明基 而後之儒 者幣 見序卦之文 不求 名卦之義 並與箕子之明夷 訓之爲箕子之明傷 文不 合理 語不連脈 尙可以得其旨平 始者女后也 訓之爲 遇 盛者蛇壤也 訓之爲 事 夷秋之夷而訓之爲傷 亦此 類也此六 事 假借之法 讀者宜審焉 家 案 虛 翻蜀才皆云卦自臨來 初九 案 鵬者南方神鳥也 其形似鳳 鷄者山鷄也 皆彩羽之鳥 也 君子比德於鳳所謂明夷者當是鵬鷄之類也 山梁 之維 見幾而作明夷于飛 君子于行 亦此義也 討之時 微子去之當此占也 又案 春秋傳叔孫約之莖遇此交 卜楚丘占之極詳 其言或雜 以術數 恐非周易之正旨 只可參看 /,、 一一 案 舊 本夷于左股之夷 或作賜 或作暎 或無此字 又姚信 本左股作右樂 馬融王肅本股作般 九三 案 春秋傳郡陵之莖 其卦遇復 占之曰南國聲身寸其元王 盜云自刺而爲復也 下卦位離 故 謂之南國 獲其 震 主 故 謂之射王 其法蓋本於此 六四 案 九正易引蔡介夫之說 謂心在左腹 見於醫書 非矣 心不在腹亦不在左也 六五 案 劉向云今易箕子作妄滋 漢書儒林傳蜀人趙賓爲易飾 易文以爲箕子明夷 萬物方妄滋也 晋鄒氏家訓磯荀慈 明之易注云訓箕爲姜 話子爲鉉漫衍元經 不可致誌 善平其言之也 蜀才本作其子 總由先儒以易詞爲文王 所作而箕子明夷 文王不可~ 故 曲解至此 然 王 用亨于西山 王用亨于岐山 亦非文王之筆 漢儒之不

通基矣 上六 案 交易取象字每於上交發之 井上六曰井收勿幕 中半上 九曰翰音登于天 此父曰後入于地 亦一例也 家人 雜卦 家人內也 --·- 程子 文仲子以明內齊外爲義 古今善之 所謂齊于興也 三 鏞 卦自中半來 中字者誠也 又自大興來 大興者齊也 移 之家人 離撰如舊 銃誠身矣 始可以齊家也 欲齊家者 必先平修身也 中字之時 震興良免 銃與同處 移之家 人 次離又著 六子具會一家諸翁 於是 離垣之內 次 以爲宮 剛處其中 爲正家主 離以治之興 E. J.齊之 男處 男位 女處女位 內明外順 各以其法上下二剛防閑至 嚴 此家人之義也 然 此正家之義 其在風火之卦 只 是象 聖人 偶以名之以莖諸貞 未必家人爲本象也 初九 案 閑之爲文象以木塞門 /,、一一 案 大戴記云婦人從夫 元所政自遂 公羊傳云大夫無遂事 遂達也 成也 大壯云不能遂 其義亦同 又案 馬融以二爲奧主 此不知父變也 禪 下離上次本具庶任之象 故 其變爲館食之占也 烈女 傳孟母云婦人之職 郡酒禁而精五飯 九三 案 說文云喝喝嚴酷統 非也 次律嚴酷 故 震鳴璃璃 直 以[高喝爲嚴酷접傾1J非字義也 何氏訂話以晴晴爲飮 I' 權 聲 亦非也 晴者喜發於口也 以會意則爲唱笑之晴 以 諸聲則爲壇欽之晴 字同而義別也 其必謂之噴璃晴壇 者 卦分爲益風雷皆有聲之物也

又案 舊本喝作確精 亦作姬 鄭玄云晴晴苦喪之意 皆非也 又壇或作禧 或作喜 侯果曰晴晴 笑也 禪 益自否來卦有父母故 得稱婦子 學團 次有二陰 故 晴璃憂文 震亦二陰 故 晴晴登文 九五 學 五爲君位 故 論帝王治家之法

映 序卦 ’炎者乘也 雜卦 映外也 욥 r凌 暎者穴也 榮也 發矢之義也 矢發則弓與矢相離也 卦 自大壯來 大壯之時 下有乘矢 上爲袁發 己有發矢之 象 但元次弓無以發也 移之爲映月 1 j H 祭弓銃張 一矢乃 發 弓與矢相離 此之謂誤也 又說文曰疾目不相視也 卦自中字來 中字者大離也 免興二女離目以相視 其 志相字 移之爲瞬月 1] 維有離目 中有一t吳 不相對視 所 謂二女同居 其志不同 此之謂疾也 發矢之義 孔子於 大傳 言 之 目視之義 孔子於家傳發之 此皆名卦之正 義也 又離火炎上 免澤潤下 行相違也陽必居陰 陰 乃居陽 其位乘炅也 此亦名卦之t領幾也 莫翻曰卦自 大壯來 初九 學 揆自大壯來 喪其乾馬 今而得次 故 其占如此 學圓 卦德爲揆 故 其占爲先喪後得 九 案 處氏易 良爲城 長者坤邑之防外者也 元妄六三以良 爲邑 /,、_二. 案 舊本製 或作稽 或作擊 或作葬 或作筋 總之於象無當 也 王弼云認瀋隔不進也 亦非矣 製者制手也 又案 削或{'fi ll 或作親 此聲傳之誤也 創與良製吐韻當是 去聲 朱 天合作而刺賊也 策文天作 天 T 九四 案 卦繼麥尼 故 取先離後遇之象 然 莖父子 !{I J D 矣而遂孤 莖夫婦則誤而復遇 其占不同也 學 大壯之時 四陽相衆 移之爲揆則四六兩剛 離其靈而 孤居 故 四六兩父皆言!쫓孤 蓋亦微旨也 上九 案 此交之詞誤孤 見家 載鬼張孤 婚婦遇雨 六者各爲 一象 不相連續 讀之爲一事便不可通 世事萬變 或 一事之內 兼此數象亦須通看

又案 舊本孤作盛 處 1 萌羽云免口離腹 次酒在中 盛之象也 漢儒之不可宗 如此 孤之形如籠抵 故 其子以瓜登者 萌蘆也故 孤與蓋 古字相通 直釋之爲酒盛 可平 又案 春秋莖法 皆占本卦之交詞 猫史森之莖 遇歸妹之映 兼此交之詞 此亦莖家之一例也 塞 序圭卜 塞者難也 근 雜卦 塞難也 三 程子 塞險限之義 鏞 塞者跋也一足偏廢也 卦自小過來 小過之時 卦有兩 袁 兩足供完 移之爲寒則次疾在足 一足偏廢 此之謂 塞也 又自觀來 昔之興股今受次疾 亦其所以爲塞也 塞之反 解也 亦自小過來 一足受疾與此不殊 故 歸 妹之解 曰跋能履 斯又明驗也 孔子之傳 訓之爲難者 六父之義也 家 案 劉子新論云塞利西南 就土 )I 頂也 不利東北 登山峻也 又案 程子曰卦本坤由 五往而成次 鏞謂卦有三陰以上 皆 坤土也 小過本以頭交 願從臨觀來 塞之四陰 非坤土 平元可疑也 初六 學 二JI lj 多움 初非其時 故 宜待也 九 虛翻 觀爲塞 解 序卦 解者緩也 ----- 雜卦 解緩也 王 程子 解者散也 雷雨之作 和暢而緩散 故 天下患難解散也 朱子 解之散也出於險之外也 鏞 卦自臨來 二陰初;疑 川壅爲澤 臨者疑淸不流之卦也 移之爲解則次川流通 無所疑淸 此之謂解也又自小 過來 小過之時 次罪中衆 兩興之繩 上下牟結 移之 爲解則興繩都解 次省分釋 此之謂解也 險在前則爲

塞險己過則爲解 此解甲也 此卦之所以名解也 家 學圓 險在前則止險己過則動 故 曰解險以動

初六 學稅 此所以存質也 I ,、一二 程子 陰柔居下之上 非其擬也 小人居君子之位 非其所塔 也伐者聲其罪也 案 小過之時 袁之君子 乘此大次之車 良之小人 效而乘 之 逢此害也 恒爲大次 其象盜也 上露演i't닷者 岡,JtE 下也本以坤用 藏於室外 所以盜也 亦以良男交於離 女所以沿也 上六 朱子 括結疑也 案 卦體之內 本有弓矢 藏器於身也 括檢也 紹也 才貝 雜卦 損益盛裵之始也 -三--- 程大子傳 損三德本之剛修而也成 柔損 上先本難柔而後而易成 剛損 以遠害 朱子 損下之陽益上之陰 鏞 卦自泰來 下卦太實 上卦太虛 故 損下而益上也 乾 則爲君坤其民也 損益二卦 皆損君之富以益其民 然 卦體以內爲我 損我益彼則謂之損 損彼益我則謂之益 也 荀奭九家易及蜀才虛翻 皆云卦自泰來 又案 益之震春 物盛之始也 損之免秋 物表之始也 蔡董二 家以損爲盛非矣 象 案 禮誌)\篇六墓 少半四蓋 特性二蓋 又周八墓 殷六 珪 夏四湖 處兩敦二篇者委稷而己 其物最薄 損之時 義 又案 家語孔子讀易 至損益 晴然而軟日自損者益 自益者 缺又淮南子亦有斯言 初九 案 古以了事爲竣事 竣者退立也 成功 RIJ 去 不復留也 退 字從良亦此義也 國語管仲曰有司己於事而竣 虛翻 ,_ 本己事{'Fffi B 事 荀奭本造作前顧 /、二. 案 天地以兩而組賜~ 男女以兩而構精 兩則相字 三則相 疑 凡夫婦之際 朋友之交 皆有此義 六四 案 卦自泰來 泰之乾馬 亦有玄黃之疾 移之爲損則損其

疾也故其變如此 六五 案 損益二卦凡言益之 或益之 莫益之 弗損益之 皆論 卦盡之往來 非有所指 非以十朋之龜益之於其人也 案 班固食貨志元龜長二寸爲大具十朋 公龜九寸爲壯具 十朋 侯龜七寸爲요具十朋 子龜五寸爲小具十朋 凡

兩具爲朋四等之具 皆以二枚相次 謂之一朋 此經之 云十朋之龜 卽周書所謂大寶龜也 詩云錫我百朋 上九 學삐 上之銃變 良麻遂穀 元家之象也 ,.c>,..nn.^ 大傳 益德之裕也 益長裕而不設 益以興利 三 朱 損上之陽益下之陰 ----- 鏞 卦自否來下虛上實 損以益之 王政也 損益二卦 皆 損君以益民 特以損卦버員己者在內 此卦受益者在內 故 立名不同也 蜀才干寶處翻荀奭之易 皆云卦自否 來 初九 案 說卦傳曰震爲作足 耕者擧之有是象也 /,、一二 案 周禮秋官有大行人小行人 春秋之時 有中行氏 古者 以官爲氏 中行者使臣也 又案 周禮典瑞之職 珍圭以徵守 Ek t血凶荒 鄭玄云王使人徵 諸侯 凶荒之國則授圭以往致王命 如今使者持節 禮 記曰大夫執圭以使 所以申信也告公用圭 蓋指此禮 也 又案 地官以委積待凶荒宗伯以荒禮哀凶禮 損上益下莫大 平振荒故易詞如此 又案 荀九家以震爲玉 然 此交與鼎上九 皆乾移 故 曰圭 曰玉 上九 案 舊本偏辭地偏 多作偏 虛翻 El 循周布也 此益形誤也 案 否之時 乾坤其配也 移之爲益 震興其配也 此所謂定 其交而求也 臨之時 免坤非其配 移之爲屯 袁次非其 配此所謂元交而求也

夫 序 卦 夫者決 也 三 雜 卦 夫 決也剛決 柔 也君 子 道 長 小人道 표 也 三; 鏞 案 夫者 缺也 告 夫 爲缺 7 k 夫爲 決 玉夫爲 快 衣夫 爲 快 心 夫爲 快 其義 一 也 卦形充滿而唯免口微缺 此其所 以得名也 以其義則坤陰充滿 無內無外 自復以來 陽 自內 實 陰 自外退 有若投金石以 實浩 澤而 澤 7k 自決 此之 謂 剛決柔也 決之不己 澤必乾洞 乾洞之乾 所以 假借於乾卦也 九 案夫 者盛滿之卦也 君子之義 뽑 戒以持滿 故 卦詞父詞 皆有此 義 又案 蒸日 入於免海之底 亦莫夜之 象 也 虛氏易以次爲夜 荀奭本楊作錫 鄭玄讀莫如字 皆 器 矣 九三 案 鄭玄本頃作圭類 奭面也 程子曰傾骨 學 團 夫 之 一 陰 獨行在外 三之銃 變 遂逢次雨 亦其象也 九四 案 鄭玄本次作越倉卒也 馬融 El 却行不前也 旦一作越 李 鼎祚注作越越 九五 案 處 氏易 克 陸 讀 作堯睦 蜀才本 陸作睦荀奭曰陸亦草 名 說文曰克山羊 總之克之爲草葉小而根深 有 此 卦 之象 始 序圭 卜 辱遇也 --- 雜卦 活遇也柔遇剛也 ---- 鏞 姬者女后也 震 爲人主 興者女后也復一陽之始生而 坤國有主 姑一陰之始生而乾君有后 括者復之配也 故 古來話訓曰遇日追曰造日婦 非元謂也 , 又遇者銃 別而 重 逢也 自復以來 陰被陽縣 不政回顧 今反在 內 與陽相對 此之謂柔遇剛 也 鄭玄本 婚作還 石經亦作 遇 明晋王本作婦 避返之返 亦活字之轉注也 初九 案 泥 舊 本或作稽 或作踊 或作泥 或作尼 或曰金泥木 名 唯漢儒訓泥爲止車木 乾爲大車 然相以止車 非 以緊車其所緊者乾馬也

又案 大畜六五亦以罪爲碩家 盜以次位中象 便有家象 以 少一陽故 謂之碩家 以多一陽 故 謂之亂家也 小畜 大畜本有六畜之義 故 兩卦桑詞多用馬牛羊家之等 此卦羅家 明亦小畜之物也 九 案 荀奭本包作胞謀矣 九四 案 洪範云用靜吉 用作凶 此云起凶 亦斯義也 九ii 學삐 坤活女后之卦也 故 皆云含章 莘 序圭卜 莘者衆也 三 鏞 莘衆階聲也 卦自觀小過來 再經移易 四相往來 而二 三三 陽相衆 終不相離 此莘之所以名也 小過之時 坤陰之 間兩剛硬之不得相緊 三之銃升下乃成緊 亦其所以 名莘也 又莘者盜之莘也 草中有卒其文爲莘 故 周畵曰莘淵萩 亦以盜衆爲莘也 小過者大盜也 崔萊蒼頁 上下蓋蔚 而險毒相衆以亂坤民 此所謂崔蒲之盜也 移之爲莘 福之出境 而猶復1 무然相緊 依然爲盜 非莘 而何 大象傳曰除戒器 戒不虛 盜此義也 此卦六父 皆言光씀 蓋以天下之惡 未有基於大盜 而荀能改之 亦光씀之人也 此聖人所以廣開遷善之路 使其自新也 家 案 王假有廟 神人之莘合也 利見大人 君臣之莘合也 卦 德本莘故兩互之占 如此 又案 莘亨之亨 舊本或無此字 唯王弼王肅本有之 程子曰 麟 學 不以兩互則王假有廟 利見大人 不可解 學圓 不以兩互則卦無乾父無所致孝也 亦無乾興未有天命 也 쿠話 案 傳氏本提作混聲誤也 學團 號笑吐韻 /,、_一 案 論者約也 탉頓之義也 舊本論或作琦 琦與浦通 `浦菜 之祭也 王制春祭臼約 周禮以諭夏享 盜以春夏時物

鮮薄 務從約忍也 王弼以福爲春祭 /, 、一二 學線 讓 l j讓矣 讓 而之上 所以咨也 故 日上 5 문 九四 程子 上比君 下比民 卦今爲比 正有此義 上六 案 盛與資通 故 字耆謂之欽聲 處氏本作齋資i弟演 仲翔 云商持資財以作捕 其義非也 升雜卦 莘衆而升不來也 -==- 吳`澄 莘以觀之四往上爲主 升以臨之三來 初爲主 升上爲 三 往 降下爲來 不來謂升而不降也 鏞案 卦自臨來 二陽旺長 理應爲泰 果然一剛又來以居三 位 是眞三陽之爲泰平 反顧其後 斯乃初一剛之升者· 也 此之謂升也 又自小過來 大次之堂坤臣未合 半 在堂上 半在堂下 移之爲升JI I J一陰速升 坤朋畢蹟此 之謂升也又凡升堂之禮 讓而後乃升也 卦以異議所 由升也 莘合之卦非一而獨 EJ .名莘者 澤與地密附也 升上之卦非一而獨 E人 名升者 地中生木其勢必升也 象 案 春秋傳晋侯伐楚之莖 其卦遇復曰南國盛 亦以下卦爲 南也 九二 學 莘之困 升之謙 皆殺牛之卦 浙歸妹亦然 而別取興震 之象故特下乃字 六五 案 張衡思玄斌以乾爲階 古者階必三等 故 乾三陽爲階 也 震東 免西 興以讓之 離以成禮 升階之象也 上六 案 君子之義 不與民而爭利也 故 威文仲有不仁者三廢 六關其一也 妄織布其二也 孟獻子日畜馬乘不察於鷄 藤 皆此義也 小人冥升 猶欲殖利則害及坤民 故 戒 之如此 又案 月令消息注曰陽生爲息 陰死爲消 消者哀滅也 息者生長也 又案 天之爲冥以上覆也 良之爲冥J;J..上剛也 冥者幕也 物有幕則內暗 故 香 亦謂之冥

困 雜卦 井通而困相遇也 三 大傳 困德之辨也 困窮而通 困以芬怨 또 程子 困者僖之之義 7k 在澤下 柏洞元 7k 之象 鏞 卦自否來 否塞之時 三陽外훤; 維失其路 亦浩然而造 矣 移之爲困 Rl j執一人而下之 兩陰園之 遣一人而升 之 兩人被園 於是乾之三剛 都被 墓 小人之園捨 此 天下之困境也 困之爲字 象木在口中 乾之三剛本皆 震 木也 以陰園木 其象非困平陰德本方 亦口象也 井 則時運本泰無此象也 家 案 處翻云卦自否來 荀奭云此本否卦 陽降爲險 陰升僞i ·It 推移之有師承如此 胡炳文云剛柔自乾坤往來於二 與上 朱子 次岡僞免柔所捨 추刀 案 字 書 木入地曰根 出地曰株 異木入地 其象爲根 震 木 出地 其象株也 陸德明本木作曲 形誤也 學 六釋競 PH t R 二與食祀 P tt貝 九二 案 鄭玄本級作跋與帝通 卽萩藤也 左傳所云賊環也 說 文曰天子赤跋 諸侯朱級 總之爲朝祭之服 袋下之飾 • 也 又案 困之爲卦以之莖獄則凶 以之莖仕則吉 不可以卦名爲 困而築云不吉也 六•=,,. 案 處仲翔曰三在長山下 故 困于石 然 豫六二亦以次爲 石說卦云良爲小石 又案 荀九家次爲疾蔡 非矣 次本非草 學 免 lj 爲銀 石角疾刺之所以傷人也 案 困之六三以陰居陽 本非其位 故 其變象如此也 桑詞 物象 難用變體 若其所以然之理 則又必由本卦之德 及本位之當否 此又讀易之大要也 春秋 崔村欲姿袋姜 莖之遇困之大過陳文子曰夫從風 風 傳 限妻 不可姿也 困于石 往不濟也 擦于疾蔡所|뛰옳也

入于其宮不見妻 凶無所歸也 II 九四 案 飮食車服生民之所大欲也 故 諸交之遇困陀 常由此 !I 事 聖人之戒也 漢 書 輿服志云秦信 l j有金根車 本商~ I 也 又案 困之九四本不當位 故 變而爲次 亦取不當位之象 舊 本徐作茶或作余 學團 二多쌍 三多凶 四多權五多功 於此卦 可驗也 九五 案 舊科 I J月 1 j作綿 J(危京房本月 1l 作會 l l 鄭玄云 ~l j月 1 j當作保任 學 免脫離福 皆困之本象也 故 其占如此 上六 案 泉 l j~高險院 或作泉 l j帥 或作泉 |l fJC 通作蝶峨 許傾云親 謀不安也 總之爲長山唱峨之象 井 大傳 井德之地也 井居其所而遷 井以辨義 -王- 程鏞子 興卦入自也泰 來木 器坤邑入之於內水 下乾 入波緊井居之 象不也可 以無井也 移之爲 井 則於次之位荀爲次泉 不失其居而水fliJ有遷 鉉所

謂井居其所而遷也 井之爲德不改其居而잡澤四散 君 子居敬以徒義 不失其身而民被其澤 有取於是也 又 井者漁之交也 `淡之時 次泉在下 異橘在上 交之爲井 則禪之橘入於水底而次水上出 井之象也然旦 上 次之水不遇是激出者也 大次在下 是井也 家 案 諸家直訓甄爲告 非也 甄之爲物 下大上小有口如免 免也 種子晩겁 ll 泥爲煥 亦有所本矣 處翻曰卦自泰來 乾折坤五 故 改邑 初爲舊井 故 不 改 荀奭曰陰來居구JJ爲光喪 失中爲光得 又云陽往

居五爲井 陰來在下亦爲井 蜀才本肅作累 初六 案 象義云北方謂輔輯之軸曰裁此曲解也 難鷲亮鴨之酸 皆井幹之所本有也 九 案 荀奭本射作耶 子夏傳注船訓作嚴模 程週以爲禍牛

徐幾以爲珪屬 今井底實有節魚 井穀則魚露 不知何

故猫疑如是也 左太沖吳都試云難復臨河而釣應 無異 射節於井 谷陵個曰節小魚 相卽而行名卿 相附而行 名節

程傳 射注也 然 溪燈之俗 至今射魚 中國古俗亦然 故 易 詞如此 九 案 深治井也 謂池 去其仲木之汚樣也 興木今滅 正合字 象 屈原傳井池不食 去汗之意 上六 案 井收勿幕 養民之義也 有字元吉 祭祀之占也 其用不 同 故 彼以勿幕爲吉 此以興剛爲吉 不可拘也 荀奭 本收作梵干賓本勿作岡 革 雜卦 革去故也 三 鏞 革者以火而鎔金也 卦自逐大壯來 乾之剛金 天質未 三 變 移之爲革則銀之以離火 洋之以免 7k 戈兵利斷 戊 器括銃 此洪範所 謂金從革也 去故之義也 又皮去毛 曰革 故 獸退毛謂之革 堯典所謂希革也 逐大壯之時 興髮震毛 質而元文 移之爲革則夏而希革 秋而毛慈 髮毛大變 離文炳然 變革之義也 聖人以之變革隨宜 命而民莫不信言而民莫不況 革之時義也 /,、一一 案 治國之法 革而後 可久也 殷人澳遷歌國乃光周人狂 安表微不振 此其驗也 自宋以來 悠於王呂世之謀國 者 因循爲能 不政言變法 憶其誤矣 九 案 周禮煥線三就 士喪禮馬樓三就 何稽引之爲話 其義 非也 九四 案 象之梅亡以所革 皆當也 此之梅亡以六位皆當也 變革當理Q I J無後海也 九ii 學團 炳然者南方離火之文 上J六 案 同是乾物而五爲大人 六爲君子者逐一卦之內 君子 小人皆有 故 對小人而名之曰君子也 學 逐者兼興也 隱而變者爲約

開H 序卦 革 物 者莫若 鼎 三 雜卦 鼎取新也 三 程子 下植爲足 中實爲腹 受物在中之象 對時于上者耳也 橫巨平上者鉉也 鼎之象也 鏞 鼎者升性之器也 古者者性以錢 升之于鼎 出之以七 藤之用沮 餘潘在鼎 調和五味以爲宅英 荊之用銅 祭 祀燕葬 其禮同也 大牟九鼎七鼎 少牟五鼎 性性三鼎

特藤一鼎 鼎爲之網遷 豆菌銅 皆視鼎而爲差 鼎之重 如是也 卦自大壯來 震帝在上 乾王主祭 不可無훗沮: 也 又自逐來 乾賓在上 興主致養 不可無意任也 移 之爲鼎ff l j興以潔之 離以成禮 此制器之義也 卦形似 鼎 此名卦之義也 鼎字象目在股上 卽離禁之合也 初六 案 鼎者器也 有器斯有主器者 故 其占如是 九 案 此쳅之旅 故 旅之鼎 亦云終元尤 學 鄕射禮謂賓爲精 精者仇也 九 案 漢書五行志云鼎以耳行 耳革月 1 j行塞 史記云有維升鼎 而維維亦鼎實也 九四 案 京房易傳云刑在頃爲刺劉鄭司農周禮注云屋諒謂夷 三族 鄭玄本埋作劃 王弼云形溫常潘之形也 朱子曰 若作形退 却只是澳濕潭身 程子日形混謂毅汗也 孔 子曰鮮不及矣 及者及於刑禍也 梅書曰臣下不匡 其 刑墨 此云其jf l j副 卽此文例也 星lj者副諒也 敬大臣 故 不殺于市 胡炳文云初未有鼎實 故 顧址而出 否 四己有鼎實 故 折足而覆練 六五 案 說文云鉉擧鼎具 周禮謂之而 鼎與橋同 以木貫鼎也 俗以鉉爲鼎耳大誤也 上九 案 大有上九亦云吉元不利 以尙緊也 今乾之大德 起於 至卑升於至高不大吉平 又案 九家易云牛鼎受一料 羊鼎五斗 家鼎三斗 天子飾黃

金諸侯白金大夫銅士鐵 學綜 玉之爲物不中爲鉉 必金鉉而玉飾矣 袁 序圭卜 震者動也 프 雜卦 雲也 ----- 鏞 乾包火而激發之則爲雷 火燒乾而被散之ff l J爲風 此所 謂雷以動之 風以散之也 其所以變1 t之本維同 其性 則雷剛而風柔 此所謂剛在內者 震也 以重卦fflj卦自臨 來 臨者大震也 又自小過來 小過者兩震也移之爲袁 又成兩袁此家詞之義也 象 案 歸藏易震作盤 荀奭本織統作怒戀 說文云破競怒愍 皆云恐湘稅其義通也 又案 吳幼淸以震來笑言二句爲初九父詞之緖出者 其義認 矣 又案 七者木t也 所以載鼎肉而升之於沮也 詩云有球隸七 是也 딛者酒也 程委以韻之 鬱金以和之日텅 -I 노、一- 朱子 億未詳 吳幼淸曰億諸錢 非也 須與六五參看 案 士喪禮注貝水物也 漢志大貝壯貝之貝小貝 皆以二枚 才目次 六三 案 馬融陸續供 E). 森森爲恐 1’ 溫稅 非矣 九四 案 荀奭本遂作除除與整通 六五 案 春秋傳凡祭祀皆云有事 良 序卦 良者止也 曰 雜卦 良止也 三 鏞 混池銃關 坤園次爲澤 次炎 l j坤爲山 山隆於地 故 坤 之上隆者爲良也 君子之道下學而上達 止於其所 不 得不止也 陽起於震 中於次 至於良月 1j 無可復進 故 止也 若以消長之勢則陰始於興 盛於良純於坤 八卦 之有良 猶重卦之有-!f< 1l 也 故 良者小人之道也 夏易以 良爲首 終ilJ有始 天行也 前路旺窮 有退無進 民者

退也 枝條向下反於蕃鮮 良者根也 坤土無疆界tl .t5 k 之 民者限也 柔之銃長 剛乃截之良者節也 止而不 行 良者限也 塞而不通 良者限也 以重卦 Hl j卦自觀來 觀者규간支也 虛財狂감란爲觀 五之三 家 案 處仲翔云良爲背 然 [U). 良而爲背 又何以長其背平 文與庭對 當是堂~t之背也 又仲翔云次爲隱伏 故 不 見其人 初六 案 荀奭本址作止古字通也 I ,、一一 案 詩注云排隨足動 諸家以此解易 疏矣 又接 陸德明本極作承 非也 極林折本相通 學 ”隨之反對也 故 其象相通 九 案 ”維也 淮南子 El 九州之外有八食 八食之外有八鉉 鉉者大綱也 食者中網也 又食緣也 乃馬融曰食來育 骨 舊本或作脈 或作音 或作肺 食脈相近 故 轉緩致 誤也 育管銃裂 死己久矣 ,假薰心哉 又案 漢儒以限爲膜勝 後儒謂之膜眼 盜以諸交多近取諸身 故 率强如此 然 上下四陰 中橫一剛 正有疆域之象 不必曲解 六五 案 張淸子云輔類言之所由出也 故 有序 咸上六 宜參看 虛翻本序作半誤也 浙 序卦 “進也 -三---- 朱雜卦 浙止女於歸下待而男興行於也上 爲不速進之義 有女歸之象 鏞 卦自否來 否之時 君子道消 乾王之德坤民不霜 移之 爲浙J{IJ剛反平內而文治實然 如水浙濱坤民歸化此 之謂浙也 又浙潛通 否之時 君子隱潛 今一剛先歸 二剛在外 興讓而不肯進 此浙進之義也 家 案 哀翻曰五在外體之中 器矣 朱子 之字疑衍 或是浙字 今案經文 之字有味

/,、 一一 案漢番 引易詞 盤作般 裵 開 託 云般水泥淮 然 古無 是 訓 也 學團 中字之時 不勞而食 大腹徒他 是 素 砲也 九 學 鴻今失水故其占不吉 六四 案 春秋傳刻桓宮楠 銃曰緣 方日楠 卦有次宮 四與二 其楠也然 鴻非登屋之物當是平正不圓之木也 九五 學園 振說卦方位 民在東北須歷三宮始逢離卒 亦三歲不 半之象也 上九 案 胡氏以達爲雲路 古來話訓元此棟也 自干而盤 自陸 而木 以至於陵 其位浙高故 胡公訓造如是 然衛路 之上 鴻則高飛 不必겁 I| 之爲雲路也 學圓 達古作旭其字從九 京邑之大衛也 歸 雜卦 歸女之終也 ----- 鏞 歸者以兄而妹妹也 卦自泰來 泰之時 父母供存 震 三 兄免妹 在其懷中 移之爲卦,Q l j父母供沒 震 兄免妹 分 體各立 於是平妹之矣 免女在內 良增外至 嘉會以 合禮 次以歸之 婚姬之象也 其義則泰者天地之交也 今又天氣地體 互相交與 交構之象也 諸家說易 皆以 震 男配于免女 非其配也 傷倫浮理 不可說也 又案 此卦難以歸妹爲名 其 實 以兄妹妹於此卦不過爲萬象 之中一象 未必歸妹爲本象 而他象皆客也 范天下之 萬事 皆有遇此卦之理 登得盡以歸妹之象占之平 聖 人偶 E人 名之爾 象 案 家詞不言妹妹之占者 明隊妹不過爲萬象之一象 歸妹 之象 可以莖行役 可以莖征伐 可以莖天下之萬事 此 所以不言妹妹也 初九 案 周公之詞如是者 卦無定象 唯變所適 或以正體 或以 岭 或卜之變象 或取之卦之本象 縱橫出入光 所奉疑 周流六虛變化不常 而八卦湖困創風霞鼓發之妙

於是平盡之矣孔子每 言信 ]公之才之美 鳴呼其信矣 今易非死法平 九 案 免者西方幽昧之地 故 易例免爲幽 學 周公於 此 不言隊妹之象者 卽所以缺本也 ,,、 -一=- 案 朱袁云天官書須女四星賤妄之象 子夏傳孟喜易 皆作 勝之名 霧矣須者女兄 也 六五 案 兒也者乾口之罪者也 乾沮 l j爲衣 衣口之缺 非卽謂快 平 口 良者本善也 如所謂良知良能 也 不習而駿謂 之 良馬 不葉而肥謂之良田 又案 桓王下姬 吳主隊妹 後亦有之 帝 乙 當時 眞有妹妹之 事 學圓 免自中字來 下免本免也 上免改造者也 此其所p).爲 散快也 上六 案 承舊之實 鄭玄以爲精米 若然 篇也非窟 也 程傳以 爲范臨 若然 豆也 非窟也 胡炳文云袁有虛籠象 若然 天下之籠 皆虛也 耆臼窟歌玄黃 詩云承舊是將 窟産 之實幣也鄭玄本籠作匡 春秋傳晋獻公莖妹伯姬于秦 遇 此 桑 史萩 占 之曰不吉 其縣曰士圭 II 羊 亦元盜也 女承籠 亦無脫 也 歸妹 之 誤 猶元相也 案 杜氏注云離爲 中 女 袁爲長男 故 稱士女 大 器 也 本 非其配何得.J.,...L女 學團 映者反目之卦也 故 其占如此 盟 序圭卜 豊者大也 三 雜卦 豊多故也 三; 鏞 豊器名 所 以盛黎稷也 四升侯 , 豆 三豆爲穀 受穀爲 墓 豊者篇也 考工記旋 人 爲蓋實一穀 豆實三而成般 者 是也 鄕飮酒禮 酒器曰豊 其所受 同也 覽之爲字 象兩宇隆高 古 文 作登 宇者仲盛也 亦 作 밖也 覽滿

曰手也 豆與坪通 象 量 器之上黎稷盛滿也 歲大훤t Rlj 斗料之上委稷盟隆 故 名之曰盟 以卦象 HIJ 下璃假움豆 上麟 於器爲盟也 卦自泰來 泰之時 袁妹免秋 己有樓樓之象 移之爲豊則離豆之上 黎稷隆滿 豊年 之卦也 卦形字形本相酷似 象 案 離位占 日 之法 應見易詞 解自初移 故 解之家曰尻吉 袁自二移 故 盟之震曰 日 中見洙 履移在三 故 乾之 履曰夕楊若 此皆窟家占時之法 可推而通也 初九 案 盟之爲卦 戒在盛滿 兩君相會樂而忘反則盜思奪之 矣 樂 邑之禍 乾侯之敗 非足爲戒平 盟者震離也 震 之諸侯 相見平離 本諸侯相見之卦 故 其占如此 舊 本句或作均或作鈴 周禮公句注作公均 本通字也 學綜 象傳文例與師初六同 /, 、._一. 案 說卦離本爲日 似非日食之象 然 次本爲月而乾爲望 · 離日之以乾爲全 亦猶是也 次則爲耳次在次位 又爲 耳痛 離則爲日 離在離位 又爲日食 其義一也 又案 書云日 食則替奏鼓 春秋必書 又鼓用性于社 今人認 爲災異 非也 今此찾詞以日月地三 直爲日食之象古 人其不知平 鄭玄本荊作菩 小席也 或云菩音市草名 以 此 因以障薇 遂得荊萩之名 揚雄太玄曰斗一~t 而萬物虛 斗一南而萬物益言萬物盟於總夏 託於玄 冬隨斗轉徒也 九 案 古文浦作帝 謂之萩腕 王弼本作飾謂之幡帳 於理無 當 浦者澤萩也 又大雨曰浦 又案 漢書洙作昧 服皮云日 中而香也 味者味霜也 乃字林 云味斗杓後星 九家易亦云 然 維日食之時 小星無畫 見之理 其義非也 味與洙霜本皆階聲 籠之謂昧 猶 霧之謂時也土雨曰籠 六五 案 豊之本象 亦是來章 故 其詞如此

上六 春秋傳鄭公子滿欲爲卿 王子康虐 引此父以告人 El 三 歲不競 弗過之矣 間一歲而鄭人殺之 案 說卦方位 自袁至離 間一宮也 左傳以間一歲爲三歲 似合交象 然稽之易詞 其例不然不可準也 方辰 雜卦 親芬旅也 三三 姚信 此本否卦三五交易 去其本體 故 曰客旅 三 程子 麗于外旅之象 張`淸 旅自否來 三往居五而麗平外 猶人失所居而客於外也 子 鏞 旅者離而止也 離其親族 止於他邦 曰旅也 雜在他邦 行者爲行人 止者爲旅人 卦有良止所以旅也 卦自否 來 離其親族止于他邦 其象旅也 實不爲旅而此獨爲 旅者 旅萬之人必有主人 實元主人 光以爲旅也 卦自 否來 否之時 乾賓外至異主迎之 匠而賓離其位 入 就良次 依於主人以寄其食 其象旅也 先儒如荀奭孔 類達蜀才之倫說此卦 並主推移 然 或以一陰爲旅人 非也 孔子於象傳爲釋小亨之義 斯云柔得中平外 非 以一陰爲旅人也 剛離其族 兩岡1J;t目依 故 El 親霧旅也 初六 案 一說斯離也 分也 詩云芹以斯之 所者行居之處也 鄭 詩日獻于公所 漢書車鷲所在曰行在所 斯其所者析萩 居也 以卦象則長門各馬 離垣各防 析其居也 然 取 災二字又難讀 王輔嗣云寄旅不安爲斯賤之役 此又

, _ 以斯字絶句非也 /、一 案 次字茨舍也 故 次則爲宮良則爲次 九三 案 旅之本象 有麻有火 故 其變爲淡其次 九四 案 諸家易資鈴作齊휴 張軌云商츄者黃銃也 虛喜志林云 齊當作齋 皆非也 資與齊本相通 菜盛或作資盛 或作 志nn 成nn 又案 夫者決也 心夫爲快水夫爲決 免之德本缺 故 免則 爲快

六五 案 諸家皆云離爲矢 然 其在易詞 乾皆爲矢 大傳曰乾其 動也直 又案 朱子於此桑離爲維 說卦不可廢也 上九 案 雜卦傳曰同人親也 親芬旅也 故 同人先桃後笑 旅人 先笑後 I} t 又案 漢成帝報許皇后認云五月庚子 鳥梵其果 太山之域 易日鳥禁其菓 凶言王者處民上 如鳥之處果也百姓 喪其居 若牛亡其毛也 或說易讀作場 其義非也 學圓 不讀興上九則得其資芹之爲大過之井必難悟也 不韻 大壯六五則喪牛于易之爲頭之交易 必難悟也 易賞參 任有女IJ是也 -興--- 雜序圭卦卜 免興者見入而也興 伏也 근三 程子 一陰在二陽之下 所以爲興 鏞 八卦消長之序 自震而免 自乾而興 八卦之有免興 猶 重卦之有夫姬 興者免之反也 免之時 一陰乘剛 其象 不順反之爲異 HI J柔乃卑降 順而讓之 興者遜也 陰自 外來 罪者入也 剛乃在上 興者伏也 策文從兩巴在刀 上 巴者龍蛇也 兩巴者二陽也 万者兩足也 重興之卦 又自逐來 逐者兼盡之大興也 家 案 陸續臼陰爲卦主 故 日小亨 案 朱子曰申者丁寧反復之意 鏞謂堯典日申命毅叔 申者 重也 九二 案 史掌書記離則爲文 離爲史也 其職祝冊也 巫則禎稽 也 學 浙者王疾之名之卦爲浙 故 其占如此 疾病爲字 象 人倍妹 興在狀下 疾病之占也 學園 卦德爲興 故 凡自外而入 皆謂之興也 六四 案 公羊傳注田獲之禮擇取三等 射自左膜達於右膳者 中心死也 爲上殺以奉乾豆爲其速死也 達右耳者中復

死也 爲次殺以供賓客 死租週也 射左牌達于右痛者 中股死也 爲下殺以充君泡 死最選也 此所謂三品之 殺 古之軍禮也 以卦象ff l j箕以潔之 備其離膳以祭乾 宗 乾豆之象也 箕以讓之具其免館以享乾賓 賓條之 象也 撰以入之 治其免嬰以供乾君 君庵之象也 異之 爲卦 罪家誰鹿 亦非孤兎 故 i z • 言三品 不著物名 舊 注以中牌爲次殺 以中腹爲下殺 疏矣 九五 案 漢儒釋此交 皆主更革之義 非也 此在莖家 用爲占日 之通例也 上九 案 漢書王菩遣王尋屯洛陽將發亡其黃鍊房楊曰此所謂表 其資츄者也 此借此經義並擧資휴也 後儒引此以證參 徐之說器矣 學核 橫木之下 指之以股 其象爲林 故 良爲林 異亦爲林 免 序卦 免者說也 三 鏞 免脫也 乾則爲衣 免抵其外 其象脫也肉脫衣 El 脫 三 蟲思穀曰說車脫輯曰稅 其義一也免者銃也 免之 爲卦 下大上小 其象銃也 金上小曰說 木上小日稅 石上小曰說 其義一也 免者稅也 西方之卦於時爲秋 故 免則爲利以刀而j. l J 禾也 免則爲和以口而食禾也 免況也 乾之益滿免以澄之 其象澤也 免者稅也 自袁而起 中心有得 外稅自解 其象稅也免者說也 上訴如口 談話之所出也 以重卦則自大壯來 大壯者 兼免也 九二 學團 重免者重興之反易也 興之九五욧;之九二 皆云梅亡者 明反易之卦二五相照也 / ,、.:一:. 虛翻 從大壯來失位故也 淡 序卦 淡者離也 三 雜卦 韓也 ----- 程子 淡舒散也 水遇風則浜散

朱子 風行水上離被解淡之象 웁釋 老子曰洪若氷釋 漁者氷釋也 卦自否來 否之時 北方 嚴寒 乾거여;疑固 移之爲漁則一片乾氷 入于坤溫之中 而興風柔順 次水流動此所謂漁然氷釋也 以互體則 銃終于良 震以反生 於時春也 春風 n' Iv k 有不漁平 此所謂東風解氷也 乾之堅漏 於是平 離散 故曰漁者 離也 示刀六 案 i與者春氷之釋也 春氷易漏故 其占如此 九 案 凡机本相通 然 凡杖之凡 多作凡 机沮之机 多作机 舊注皆作 凡杖之JLffiJ~字何解 又坊本皆作机 机者橋机 此楚史之名 來氏易注又作 木名 說文云單孤之山多机 皆證矣 六四案 處氏云自二居四 離其莖但 是i與其靈也 得位承尊故 元吉其說疏矣 秘海云靈者聖人之所欲 漁以混一天下者也其說亦非 矣 君子之道 唯當i與小人之懿 至於君子之靈 唯恐其 i吳散 若如森氏之說則天下皆漁 人主岡與成歌功矣 又與其朋黨論義理不合 九됴 案 九家易云乾爲首 下成次水 是汗象 其說疏矣 舊說云汗之爲物有出元入 號令之有行元反 亦猶是也 以卦象則五之旺變 有震元興不可入也 上九 案 違舊本多作怒 通作 1 場 漢書王商傳云無'b1t慈 又案 小畜云有字血 去楊出 此云i吳其血 去楊出 血出 n 뀝 R 也 舊注皆云血去楊出則孔子之云i與其血爲誤讀平 節 雜卦 節止也 -터-- 鏞朱 節節有竹限節而也 止卦也自 澤泰上來有 泰水由復其始容 有復限之 故時 爲蒼頁節之 竹 始 萌始第 爲臨爲泰 其t'n斬長,ff l j抽而上之 一節乃成 此 竹節也 竹節之形 近根則短保 匠抽ff lJ 修潤 靜觀卦形 誠活畫也又節者符節也周禮掌節之職 山國用虎節

澤 國用龍節 今 袁 竹音 I) 分長卽出外 中成離 信 此所謂 節 信 之也 又裕谷之水流而不停 暎乾 之時無以i 勸 匠 故爲之堤澤以藩其 7 k 亦節止之義也 盧氏曰此本泰 卦分乾九 三 上升坤五 分乾六五 下處乾 三 象 案 春 秋傳臼聖人達節 達者通也 次以通之 故 爲節亨 良以塞之故爲不可貞 學 頭之 象 曰願貞吉 彼唯願 養 之 事 吉也 此云不可貞 亦 ”距莖節之 事 不可也 學 삐 漁節之 象 皆以兩互取象反易之卦 文相照也 初九 案 卦自泰來 其始也 乾君坤臣各安其分 移之爲節則君 言 一出坤臣作亂 當 此 之時 一言不密機 事 盡池 故 戒 之如此 六=. 案 泰卦之移爲節 大壯之移爲 需 皆始不節而終節也 故 其占爲無씀 六四 案 人之所不能節者言語也 飮食也 安逸也 故 交詞必以 是 三 者爲戒 中半 雜卦 中字信也 -三--- 朱鏞 衍휴卦從五瓜十從皆子有 推如移鳥之抱本子 故之 象升 降今往之乳來字皆 有亦情從變字 而 四 時之卦亦有進退消長之勢 至於中半小過 銃無推移 亦無消長 故 唯以交易之法 察其 變 動 中字者大過之 交也 大過之卦 四剛中硬 次疑極大 疑則不信 物莫 能字 交之中字則大離之信 洞然中虛 此之謂中字也 邑虛中曰郭 渡虛中日李 腹虛中曰!字 中半者虛中也 又此二卦無所從來 特從次離二卦 升降而往來之 復 成次離 夫次離者 日 月 也 日 之氣盆 月 之朔虛 非所以 立閔平 故 曰小過中字者閔月之卦也 家 案 胡炳文以原兒爲河原江藤 認矣 古者性宇有五等 大 半少宇特性 其厚者也 特脈一鼎 其物最薄 國語觀射 父曰士食魚祀以特脈 庶人食菜祀以魚 又楚屈建 El 士

有藤犬之莫 庶人有魚災之荊 麻魚者性幕之薄品也 若論冥碩之物 笑特脈魚哉 九 案 陸庶作緖 棄者緊也 京房本作削 lft.ij者分散也 於 卦象無當 兩義皆非也 胡炳文云卵生爲字 故 取鶴毋 子之象 案 中半者感應之卦也 風雷益者同磐相應之卦 故其象 爲鳴鶴相和 孔子所謂善 HI J千里之外應之者 亦同聲相 應也 /、,.::_::.. 案 此文與離九三 其象相同者 彼爲重離 此爲兼離 卦德{ 不殊池 又案 荀九家以震爲鼓 非矣離有鼓象 六四 案 月幾望固爲盛滿之戒 然 其在莖家的可以占其日期 小畜之凶 謂月 幾望之夕 不可出fiE也 歸妹之吉 謂月 幾望之夕可以妹妹也 又接 程子以兩馬爲四 然 周禮校人注 四四爲乘 一馬一四 也 謂馬爲四者 兩服兩除 必以其精 故 難一馬亦名 爲四馬也 上九 案 世說以朱博駿至三公爲翰音登天 亦此義也 4 、過 雜卦 /J、過過也 ----- 程子 小者過又爲過之小 曰 鏞 小者陰也 過者交過也 卦以頓交交而過之四陰相過 此之謂小過也 過者態也 卦爲兼次 次則多肯 然 比 之大過 猶之爲小所以爲小過也 餘見中字大過 家 案 周禮大 卜 園大貞月 1j 作龜 小事 H lj莊 卜 小事大事 卽指 是也 루話 案 莫仲翔云離爲網뿜 非矣離銃爲鳥 又爲網뿜則是天 下之鳥無非投羅之雀 惡可平哉 重離之爲網뿜 正以 其異繩 八卦之離 安得爲網뿜哉 I I 、一一 案 卦德本過 故 論過不及之禮

六五 案 小過者 大次 也次 nl j爲雨 故 其占爲密雲不雨 上六 案 小過者過也 故 二三四六 皆以過遇爲占 初與五六 皆以飛鳥爲象 飛鳥亦過者也 三-節-三 齊 程雜鏞子卦 水濟銃在者濟相定火也上涉 也 水 又火救相助交其則不爲及用也矣 故火 性爲炎銃上濟 水性潤下 水 在火上勢必相涉煥熱太基 濕冷太過 水火相涉 理必 救助其不及 此之謂旺濟也 左傳옻嬰之言 水火鹽梅 以意魚肉 濟其不及以浪其過 若以水濟 7k 誰能食之 濟者救也 又濟者益也 卦自泰來 岡脫臼챤車以助其貧 此之謂濟也 又濟者涉 川 也 泰之乾人涉此次 川 至于 坤陸此之謂旺濟也 家 案 逐 亦曰亨 小利貞 孔子日小利貞浚而長也 此經亦當 以/j、字屬下句讀 案 易例次則不窮 此云道窮者 次險重登不能爲通也 初九 案 乾之家傳以復一陽爲首出庶物 震爲首也 明夷之復曰 獲銃大首 震 爲首也 霧爲乾元 元者首也 學圓 泰否之時 本以乾坤爲首尾 故 二濟之卦 潘其首尾也 /, 、一一 案 那者車蘇也 뾰那蒲弗醫弗之類 應見詩禮 爾雅日車 前쁩之根 車後謂之弗 古本那或作盤 或作跋 或作弗 與仲翔曰脫謂冀髮也 王輔嗣曰那者飾也 若荀氏則由 那誤帝 由帝轉散由散誤跋 不顧卦象 唯文字是逐 誤之基矣 銃濟之卦助齊不通也 故 緩獅良輪 皆用舟 車之象 那之爲車萩 審矣 詩云濟益不淸軌 車亦i劑 I | 之具也 又案 王肅日二五相應 七日得也 二五之合成七 本自無義 況六二未有五應 又何以七日得平 其義非也 學園 下卦位離也 乾則離隱 不乾則離露 乾其萩也 九三 案 高宗者武丁也 卦之本象 乾以爲離 離則爲丁 是武丁

也 剛乃北fiE 伐鬼方也 水將克火 何以克之 須至三 年我乃克之也 又案 漢書匡衡傳云成湯化夷俗而懷鬼方 西光傳云殷室中 哀諸侯皆坂高宗征西戒 鬼方三年乃克 古禮人死葬 於北方~t首 故 北國謂之鬼方 以卦象ffiJ良乃爲鬼 次 爲北方也 六四案 古本稿或作潘 或作稽 或作需 或曰當作溫 然 漢書 緩字符串也 合兩而爲信也 卽緖之爲維合 審矣

又案 靈作紫 或作裂 或作莊 盜獅紫펨 本皆同音 卽敗 架之塞舟漏字也 徐薛云用吳也 吳字敗也 總之筋産 爲卦 本是濟 )II 之象 故 車那舟獅皆用卦象 不可他 解也 學團 革之爲卦西天之下 離日遂沒 終日之象也 九五 案 泰之兩互上袁下泰 亦東西也 坤牛受射 東殺牛也 離夏用享 西祭檜也 五之銃變東國遂空 禍福之判也 本象桑象妙合如此 易可易言哉 又案 漢書輪祭作淮祭 檜菜之意也 周禮以爲夏祭 然 王制 明堂位諸篇 又以春約爲輪 又案 鄭玄以上次爲西鄒 以下離爲東部 蓋以禮記月生於西 日 出於東也 其義基器 況下淸針可當殺牛哉 學園 明夷者外國文明也 討之中國不如文王之夷國 明夷之 卦也 上六 案 家人自逐來 乾首亦潘也 然 二濟之卦皆以震良爲首 尾 學園 上一陰以陰居上 所以危也 父象必取於本象 未濟 序圭卜 物不可窮也 故 受之以未濟 終焉 三 雜卦 未濟男之窮也 三 程子 火在水上 不相爲用 故 爲未濟 鏞 節齊自泰來 未濟自否來 時運之通塞不同 卦웬U,:).殊 也 節齊六位皆正 未濟六位皆仲 位置之邪正不同 卦

德以殊也 炎上者在上 潤下者在下 大陽不뻔 雲雨不 騰 物不相涉 萬化不興 所以爲未濟也 次川在內坤民 塾漏 其或前進者又被離防 不能遂達 未濟之象也 易 之爲道方以類衆物以 堡 分 乾坤者類衆之極 所以爲 首也 銃濟未濟者莘分之極 所以爲終也 象 案 諸家皆以尾爲孤尾 然 孔子之傳小孤訖濟爲一句 潘 其尾別爲一句 明兩句各一象也 旦先儒或以飮酒馮首 爲人首之馮 卽兩卦之文 或指虎 或指他獸 或指人也 有是理平 逐之逐尾 亦不言馬而明是馬尾 則此卦之 爲馬之尾 無異例也 若以小 1瓜 訖濟爲未了語 則如 良馬逐飛鳥離之之類 又皆不可讀平 史記春申君傳引 易孤涉 7k i需尾 又韓嬰詩傳云官忠平室成病 加平小念 引此詞以戒之 古語云孤欲渡河 無如尾何 雜諸文如 此今玩經文必非孤尾也 九四 學 詞與節齊九三大同者反易之卦 三四相照也 六五 案 周禮十燁之燁 本與陣通 管絡 E1 日 中爲光 朝 日 爲晴 謂光氣未散也 上九 案 人之沈酒于酒 如馬之塾酒于 7k 故 孔子之傳飮酒潘 首必以並擧 其實各爲一象也 後來詩家每以飮酒爲瀋 首 誤矣 人몹佳沈面 未有難其首於酒中者 唯陶元亮 葛市淮酒 還復著之 未必周公豫用此事也 學團 說卦坤爲腹 離爲日而離又爲腹 以此言之 乾爲首 震 爲足而震又爲首 亦元疑也

여기에 이상과 같이 茶山의 卦義論울 중심으로 한 그의 장문의 案說 울 발췌 초록한 배경에 대하여는 다음에 몇 가지 이유를 기록해 두지 않을수없다. 茶山이 易學에 손을 내자 漢唐宋明의 易學을 두루 섭렵한 후 그의 易理論의 단서를 漢代 荀九家에서 찾아냈고 이어서 推移物象 互體 父

變의 易理四法으로 이를 확립하였다.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讀易 要旨 및 易例比釋의 저술을 정리함으로써 古代易에의 입문의 길을 터 놓았다. 이로써 六十四卦를 읽을 수 있는 모든 준비가 완료된 셈이다. 이제 茶山은 六十四卦의 각론을 다룸에 있어서 그의 寶刀인 易理四 法으로 卦象은 읽을 수 있지만 卦義와 卦桑詞의 字義에 관해서는 그의 보도로서 요리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난점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 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各卦別로 卦交詞의 공식적인 분석은 천편일 률 막힘 없이 서술하였지만 이에서 벗어난 문제들은 따로 案說로서 정 리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저술된 接說은 그야말로 茶山의 力著에 속한 부분이라 이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卦義나 字義를 分析해 보면 그의 讀易要旨 認字項에서 欲得經旨 先認字義 諸經皆然而易爲딴 如亨貞梅咨之等 字義尙多不白 又 如序卦雜卦之言 卦훔稽t是卦義池 非字義也 而後世字 書 並錄爲字義 大 證矣 라 했드시 卦義와 字義가 혼동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이로써 이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接說울 처술하기에 이르론 것으로 추정이 된 다. 그러므로 上記 六十四卦論의 接說울 정리해 보면 적어도 크게 둘 로 나눌 수가 있다. 卦名을 중심으로 한 鏞案說과 그 밖에 卦찾詞의 字句를 다룬 案說 또는 又接說울 들 수가 있다. 전자는 소위 전래되어 오는 序卦傳과 雜卦傳의 卦義룰 비판하여 새로운 卦義論을 전개한 자 요 후자는 考證學的 근거에 입각하여 잘못을 바로잡아 놓은 字義論이 라 이를 수 있다. 任意抽出 방법 (六十四卦 중에서)에 의하여 一表롤 예 시하면다음과같다.

◊ 卦 義 論( 잃 1 t 案 說) 卦名 序卦雜卦 說卦 錦案 乾 剛 健 乾健 氣 宜 蒙蒙 찼佳而 苦 裂禪被 泰 通 內 實 臨 大 與 臨淵震主臨國大 震 ·恒 久 常

이는 그의 鏞案卦義論의 片競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저술은 어쩌면 十 翼 의 列에 낀 序卦나 雜卦의 내용을 합리적으로 보완하여 六十四卦 가지니고있는본연의 卦義를천명해 놓은자로평가하지 않을수없다. 기타 接說의 내용은 잡다하지만 그 중에서도 字義의 고증은 茶山易 學의 一斷面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學核 學團의 참여는 그가 야t 辰秋 余與學圓在橘園 令團脫稿 此所謂戌辰本也〉라 했드시 여기서 그 의 구체적 내용을 확인하게 된다. 六十四卦 三百八十四父 중 學核四六 回 學圓五一回 도합 九七回의 참여는 결코 적은 횟수가 아님을 짐작하 게 한다. 이로써 茶山易學은 鉉山若鉉의 加勢까지를 고려에 넣는다면 丁氏家學이라 일러야 할는지 모른다. 이로써 茶山易은 古易의 새로운 면모를 갖추어 우리의 앞에 우뚝 솟아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제 9 장 茶山易의 經學的 意義 이상에서 산만하게나마 대충 茶山易울 중심으로 한 소위 古易을 둘 러싼 漢魏 이래 宋明에 이르는 術數學的 易學의 都障울 벗기고 보면 茶山易은 애오라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칭을 갖추고 있음을 지적할 수가있다. 제 1 절 曆數學的 古易 ; 順天의 學 易의 始源은 무릇 卜策로부터 비롯하였음은 다시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卜莖의 방법에 이르러서는 실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잡다하지 만 茶山은 이를 曆數學的으로 간명하게 설명함으로써 順天之學으로서 의 古易의 면모를 재정립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易理四法 중 推移之 法은 이를 端的으로 우리들에게 일깨워주는 자가 아닐 수 없다. 그는 推移之義의 발명을 朱子卦變圖의 遺義라 하여 그의 공을 朱子에게로 돌리려 하지만 그의 十二粹四時之卦와 아울러 五歲再閔之卦의 발명은 실로 茶山易의 悼尾라 이르지 않을 수 없다. 茶山易이 비록 日月易으

로서의 陰陽說에 기반을 두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의 전개과정은 오로 지 太陰曆의 曆象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시사해주는 것일까. 첫째로 易이란 幽玄한 신비 속에 묻혀 있는 것이 아니라 8 月처럼 뚜렷하게 우리들 앞에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茶山은 그의 易論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昔者 稙海氏之言 日聖人之道所以不廢者 禮爲之明 而易爲之幽也 人之所 以獲尊者 以其中有所不可發者也 於是 因而作易以神天下之耳目 而其道遂尊 此聖人用其機權以待天下之心 ,.意 萩氏 於是平 失言矣 라 하여 神秘主義的 易學觀울 극구 배격한다. 그렇다면 신비주의적 유 현의 베일을 벗겨버린다면 古易은 우리들 앞에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 나는것일까. 曾謂伏線神農文王周公孔子之聖 而有是平 旦易亦何幽之有 爲之說卦以'兪 其羊牛馬家之象 爲之翼傳以著其推移之跡 爲之曰九而曰六以顯其變崩遷蒲i 之用 占人占其故 下士八人辨其吉凶 中士二人以決國疑以前民用 易亦何幽之 有 (上全書) 라 하여 易이란 결코 유현한 神認易이 아니라 實事求是的 象數學임을 분명히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茶山의 古易은 王弼의 玄 談이나 召聞稽 F 의 圖書學을 수용할 수 없음은 너무도 당연하다 이르지 않을수없다. 다음 둘째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茶山의 古易은 問 卜 이 목적이 아 니라 順受天命이 목적이라는 사실을 그의 易論二에서 다음과 같이 서 술한다.

易何爲而作也 聖人所以請天之命而J I 傾其旨者也 夫事之出於公正之善 足以 必天之助之成而予之福者 聖人不復請也 單之出於公正之善 而時與勢有不利 足以必其事之敗 而不能受天之福者 聖人不復請也 事之不出於公正之善 而逆 天理傷人紀者 雜必其事之成而微目前之福者 聖人不復請也 唯事之出於公正 之善 而其成敗禍福有不能逆親而惡度之者 於是平 請之也 라 하여 네 가지로 분류한 請命의 길 중에서 오직 한 가지 경우만이 허용된 사실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는 順天 之學(道)으로서의 茶山의 古易은 결코 問 卜의 術數學이 아니라 順天 의 象數學임을 짐작하게 한다. 제 2 절 改過遷善의 道 易道란 본시 吉凶禍福울 占치기 위한 자라기보다는 오히려 改過遷善 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占 卜이라 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茶 山은 그의 易例比釋 咨例에서 이르기를 易者聖人所以改過而遷義也 故 孔子曰假我數年 卒以學易 庶光大過矣 斯 可驗也 라하고이어서 改過曰海 不改過日咨 梅咨者易家之大義也 라 하였다. 뿐만 아니라 茶山은 大象傳울 各卦下에서 모아다가 한데 뭉쳐 一經울 만든 所以는 그것이 결코 卜第와는 관계없는 純粹道義論 이라는 점 때문임은 다시 말할 나위도 없다. 愚夫愚婦도 大象傳에 접

하게 되면 분연히 道義롤 각성하여 改過遷善하게 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이르지 않을 수 없다. 제 3 절 術數學의 비판 漢代에 형성된 陰陽五行說에서 五行說울 제의한 陰陽說울 日俺 日照 의 自然現象으로 이해한 茶山은 그의 易理論에서 陰陽옳을 對待原理의 --적 符號로 간주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六十四卦 三百八十四 획이 온통 陰陽의 ---으로 구성되었고 그것들의 進退消長과 互體 父 變에 의하여 取象하는 방법이 다름 아닌 陰陽說的 古易이 아닐 수 없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漢代에 조성된 災異說的 術數學은 다양한 邪術 울 導出하기에 이르렀으니 이에 대한 茶山의 비판을 點檢하면 다음과 같다. 五學論五에서 術數學울 비판하여 이르기를 術數之學 非學也惑也 中夜起贈天步中庭以語人 曰彼榮惑守心主 好臣俠 主勢以謀國 曰彼天狼 5E 紫微 明年必有兵 日彼歲星在箕 分此吾邦域之所贛也 忽秋戱踊道說認記鄭鑑識說日其年兵必起 臼菜年獨鴻唄! 將流血成川 人種以 絶 勸其婚友 펑田宅 棄項墓 入深山虎約之窟以侯其難 忽狀然變色有間而言 曰昔我老先生能通神役鬼書 發食頃己抵八百里 開誠 擔弟子入山谷 柚木葉以 散之 使兵馬壇閣 忽解裝 展圖三幅曰此玉皇朝眞之形曰此仙人騎鶴之形 此 湯馬容川之形 他人不知吾獨知其穴與開 荀能用之 子孫其逢吉 阪明 盟正衣 冠危坐 談太極圓河圖洛書九宮之數 辨理氣善惡同異之松 嚴然一性理先生也 라 하여 術數學에 빠진 세속 性理學者(俗儒)를 묘사한 후 이어서 이르 기룰 鳴呼 麻虛名負重望爲衆愚所歸帶者恐此先生 有眞正不僞之士 講明先王之 道本孝弟愼微隱而究禮樂刑政之文者 則昞之曰彼旦不知明日之事 坐積新層

火之上 談詩說證 烏足以與於斯矣 聖人以精柏示天下留其認以自用 故 孔子 作易冀 朱子注參同契 後人不知其義也 彼蒙默不慧者 尊此卑彼: 日超流平幽 陰邪牌之鄕將誰與禁之 라 하여 眞儒가 俗儒에게 밀리는 현상을 서술한 후 이어서 이르기를 天文五行之志 歷世傳會無一驗者星行咸有定度不可相亂 又何惑焉 燕市 賣幻之人受銀一二鍊 里其技象提歲 語人基恐 又何惑焉 徐乾學葬考斤風水 之說不可與易 又何惑焉 推是以往 若 卜莖看相星~ 凡以術數衍者 皆惑也非學也 라 하여 전면적으로 배격한다. 그러므로 眞儒의 학은 다음과 같다. 堯不能前知 任競以敗事 舜不能前知 南巡守崩於蒼梧之野 周公不能前知 使管叔監殷 孔子不能前知 長於匡 幾不能免 今也病不能前知 必得一前知者 以爲歸 登不惑與 彼事魔好怪 隱然自操平前知之聖 而莫之知恥也 又惡能撲 手同歸於堯舜之門哉 라 하여 前知之術數는 眞儒의 能事가 아님을 분명히하고 있다. 茶山은 그의 術數學의 비판을 五學論에 그치지 않고 따로 風水集議 를 저술하여 그의 서두에서 風水之說 世多崇信不修道義 求福於葬巫 習俗己銅無以峴惑 古人名論甲 乙並存得失以顯 間附替說以章其職 庶平樂善明理者 卽耆悟妄 因有以殺其蕩 i閩軟 寧適勿信 不以罪我 又幸矣 라 하여 風水說울 체계적으로 비판한다. 이로써 茶山易이 지니고 있는 經學的 의의는 애오라지 術數學에서 탈출하여 順天 梅杏의 學으로서 정립한 데서 찾아야 할 것임을 알아야 할것이다.

제 10 장 茶山易學의 思想史的位相 茶山易學이 古易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자 우리는 거기에 따른 茶山易의 哲學的, 思想史的 位相에 따른- 관심을 저버릴 수가 없다. 왜 냐하면 東洋哲學 특히 中國哲學에 있어서의 陰陽五行說이 차지하고 있 는 비중은 막중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茶山의 견해 또한 茶山易學의 思想史的 位相을 가름하는 중요한 열쇠의 하나라 이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제 1 절 妙合의 원리 茶山은 그의 易理論울 定立하는 과정에서 陰陽五行說의 基本構造롤 분해하여 陰陽說만을 수용하고 五行說을 부정한 사실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茶山온 그의 中庸講義에서 今案陰陽之名 起於日光之照俺 日所隱曰陰 日所映 El 陽 本無體質 只有明 暗 原不可以爲萬物之父母 ……聖人作易以陰陽對待爲天道 爲易道而己 陰陽

昴 當 有體質哉 라 하여 陰陽옳을 對待關係의 易道로 파악하였고, 項을 달리하여 이르기 를

天 物理妙隱 未易推測 況五行不過萬物中五物 則同是物也 而以五 生萬不亦難平 라 하여 五行說은 그의 근거조차 인정하려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의 古易에 있어서는 아예 五行說에 관하여서는 가부간의 언급이 없었 던 것만으로도 그의 五行說에 대한 부정적 태도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재 陰陽說만을 對待原理의 易道(天道)로 이해한 茶山은 이를 太 極一元의 妙合으로 파악한 사실을 우리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왜 냐하면 宋學에 있어서의 太極理說에서 벗어난 그의 屋極說은 陰陽의 象數學的 理解로써 思想史的 입장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 01 다. 이렇듯 茶山의 屋極說(太極說)은 그것이 곧바로 二者妙合의 〈 한 〉 思 想과 脈울 감이한다는 사실은 韓國 思想史的 脈絡에서도 극히 고무적 인 사실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易學에서뿐만이 아니라 中庸에 있어 서의 性命一女 u 의 性命論이라거나 大學에 있어서의 神形妙合乃成爲人 의 사상도 한결같이 二者妙合으로 그 脈이 통하고 있음은 다시 말할 나위도없다. 다음 五行說을 배제한 茶山은 金木水火土의 物質的 五元~ 가름 하여 天(乾)地(坤) 7k( 次) 火(離)의 四元構造로 그의 形而上學的 宇 宙論울 정립하고 있다. 그가 推移表直說에서 天地水火者漠洋之分而自成形質 不受和化者也 故 乾坤次離爲易四正

이라 한 것은 이를 두고 이론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乾(天) 坤 (地) 次(水) 離(火)는 自成形質이라 하여 形而下的 形質로 看微할 수 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三 三曰 조 三의 卦形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陰陽울 떠나서 존재하는 자가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易의 四正이 란 바로 陰陽의 四正이기 때문임은 다시 말할 나위도 없기 때문이다. 陰陽對待(二元)의 屋極(一元)으로 파악되는 茶山의 太極陰陽說은 形態學的인 形相論이 아니라 機動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그의 九六의 交變說이나 互體三易의 物象論이 단적으로 이를 설명해 주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므로 茶山에 있어서는 天道도 自强不 息할 뿐 아니라 人性도 끊임없는 內自松의 연속이 아닐 수 없다. 茶山 易學은 명실공히 변화의 학인 소이가 여기에 있다. 제 2 절 한思想의 맥락 필자는 이미 『한思想의 苗脈』 (思社硏刊, 1986) 에서 밝힌 바 있으므 로 여기서의 재론은 피하고자 하거니와 어쨌든 茶山의 二者妙合의 思 想史的 體系는 韓國思想의 主脈인 〈한〉思想과 脈絡울 같이하고 있다 는 사실은 실로 홍미를 돋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바야흐로 우리 韓民族뿐만이 아니라 人類思想史(文化史) 發達過程 에 있어서 조성된 思惟樣式은 실로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도 二元論的 思惟樣式은 실로 絶對的인 스스로의 位相울 굳게 지키면서 오늘에 이 르고 있다. 二元'습의 극복을 위한 노력이 間歌的으로 없지는 않았지만 한思想에서처럼 완벽한 , jij)合 歸一의 원리는 필자 霧聞의 탓일지는 몰 라도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端的으로 말해서 檀君__花郞 一元峴(佛)-茶山(儒)으로 이어지는 〈한〉思想의 脈絡은 人類思想史

에 있어서도 一大壯觀울 이루는 자로 評價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의미에서 볼 때 茶山의 屋極說에 담겨진 陰陽妙合의 象도 결코 우연만 이 아님은 다시 말할 나위도 없다.

結語 이제 茶山易學은 韓國思想(한思想) 뿐만이아니라 東洋思想(陰陽說) 나아가서 人類文化(二元論)의 측면에서도 새로운 과제를 우리들에게 안겨주는 자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의미에서 茶山易學은 神秘主義的 卜術의 늪에서 우리들을 건져내 주는 길잡이가 되어전 것 이다. 茶山의 古易은 우리의 生活哲學이요 倫理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는 易을 難解의 書로 내팽개칠 것이 아니라 孔子의 論語와 함께 나란 히 서가에 꽂아두어야 할 冊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韓國易學은 茶山古易과 더불어 圓書學(河圖洛 害) 의 새로운 第三의 摘子로 간주되는 正易이 함께 並存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茶山古易과는 南極과 1t 極처럼 절대적 兩極관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正易은 茶山이 극구 배격했던 郡氏易의 後身으로서 伏磯 文王 正易 등 三八卦圖를 例示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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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多 三: 令染 器 l:l 밟 汗 출숑 # 令 표 申 t 〈 伏 儀 八卦 圖〉

쏭多 三 %% 輯 tl II; 沖 &% *펴 多쟁 〈 文王八卦 圓〉

쏭# 터: 춥急 헉 IIi ll! 沖 #※ 1:,兪 三 겔 〈正易八卦 圖〉

正易은 金一夫 (1826 - 1898) 의 창안으로서 이에 대한 많은 연구업적 들이 축적되어 있음을 필자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이를 소개 한다거나 비판할 개제는 못 되고 자못 韓國易 學 의 입장에서 따져볼 때 東洋의 易學이 왜 韓半島(韓國)에서 이처럼 兩極으로 분립하기에 이르 렀을까 . 우연일까, 아니면 天運이 거기에 것들어 있는 것일까. 언젠 가는 이 양자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 兩者妙合의 役 事 는 우리 한민 족에게 부여된 역사적 사명이 아닐 수 없다. 天地度數도 人倫的 토대 위에서라야 성사된다는 점에서 茶山古易의 經學的 倫理觀의 존재 의의 가 있을 것이요 茶山의 牧民倫理도 牧者로서 天地神明에 대한 宗敎的 敬長心울 갖추지 않고서는 제대로 제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접에서 度 數 學 의 존재의의를 다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茶山易學은 이제 傳統易學을 그의 易理四法에 의하여 새롭게 정립하였고 一夫易은 또 다른 입장에서 傳統易學울 일신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들 앞에 나타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茶山古易이나 一 夫正易이나 한결같이 우리겨레의 易學으로 발돋움하고 있다는 점에서 는 공통된다. 그러므로 이들의 兩極관계만을 따지기에 앞서 이들이 지 니고 있는 공통분모는 없을 것인가. 여기서 이 과제만은 未決의 章으 로 남겨놓고 後人울 기다릴 따름이다.

찾 o~ .!V I

기 家人 45, 57, 102, 137, 302 良 45, 52, 106, 130, 137, 150, 155, 227, 246, 314 次 44, 51, 57, 99, 126, 133, 135, 149, 152, 224, 246, 294 乾 36, 43, 47, 50, 55, 73, 136, 138, 151, 154, 197, 222, 246, 267 塞 45, 52, 57, 103, 227, 304 乾坤策數 182 建維 259 缺本 257 謙 37, 44, 5µ, 88, 125, 133, 148, 154, 223, 282 京房 69, 279 緊辭傳 21, 42, 113, 212, 227, 228 A 44, 51, 56,89, 138, 148,223,284 顧名 255 考古 261 坤 43, 48, 76, 132, 151, 154, 198, 222, 226, 246, 270 困 40, 45, 57, 129, 134, 135, 310 郭京 225 • 觀 44, 51, 91, 138, 201, 286 卦氣圓 159 卦變圖 166 f;}fj 45, 52, 57, 105, 129, 149, 227, 307 歐陽修 19, 165 歸妹 45, 58, 107, 137, 316

族 45, 52, 57, 102, 128, 155, 303 金一夫 14, 341 銃濟 45, 58, 112, 137, 139, 151, 225, 227, 325 E: 大過 38, 44, 57, 98, 126, 149, 293 大象傳 . 43 大衍之數 31 大有 44, 56, 87, 125, 148, 154, 223, 281 大壯 44, 57, 127, 227, 299 大畜 44, 56, 96, 126, 133, 136, 138, 149, 152, 154, 224, 291 道 156 讀易要旨 254 同人 37, 44, 51, 56, 85, 124, 148, 223, 280 逐 44, 52, 57, 101, 138, 149, 298 2 來知德 204 廊 265 曆數學的 古易 331 老少互藏法 186 陸明 219 離 44, 51, 100, 135, 149, 152, 227, 246, 295 利 263, 264 履 44, 51, 56, 84, 277 李光地 209

李鼎祚 72 李 厚齋 233 咨 265 臨 44, 51, 56, 90, 285 □ 馬融 69 明夷 44, 52, 57, 127, 135, 136, 153, 155, 223, 224, 227, 300 毛姓 278 蒙 43, 50, 55, 81, 132, 152, 227, 272 元씁 265 無妄 44, 56, 95, 136, 149, 227, 291 文言 46 物象 170, 245 未濟 45, 53, 58, 113, 137, 326 ki 刺 44, 51, 56, 93, 136, 148, 152, 154, 289 辨位 260 復 38, 44, 51, 56, 94, 126, 136, 148, 154, 201, 224, 290 分卦直日論 · 158 比 44, 50, 83, 124, 134, 154, 199, 222, 226, 276 否 36, 44, 51, 124, 197, 200, 279 賀 44,51,56,93,125,136,154,224, 226, 288 比德 259 費直 70

人 師 44, 50, 56, 82, 148, 154, 199, 222, 273 四象 192 事 天地神明論 234 三易說 143 參天兩地說 184 商뿔 12, 66 p蓮 l益 38, 44, 51, 56, 92, 136, 148, 201, 223, 287 序卦傳 50, 228 先天橫圖九六七八之說 181 說卦傳 59, 120, 213, 228, 245 召障節 14, 172, 231 小過 45, 58, 111, 226, 324 小畜 44, 56, 83, 152, 200, 276 裝 45, 53, 58, 108, 150, 227, 246, 320 損 45, 57, 104, 128, 149, 155, 305 散 44, 56, 81, 124, 152, 197, 199, 222, 273 宋哀 70 需 44, 50, 56, 81, 124, 132, 197, 222, 273 隨 44, 56, 89, 152, 227, 283 荀九家 13, 68, 280 荀奭 71 術數學의 批判 334 升 45, 57, 129, 309

哲卦傳 30, 42, 114, 232 新三易論 252 十翼說 145 雙湖 258 。 兩儀 192 揚雄 300 方辰 45, 58, 150, 227, 319 呂祖謙 46 易大傳 23, 42, 225, 232 易例i切累 263 易理問答236 易理四法 243, 169 易有三義說 142 易의始源 15 諒 259 豫 37, 44, 51, 88, 125, 133, 136, 148, 152, 154, 201, 223, 282 五歲再閔 193 吳草麻 196, 279 王應麟 228 王弼 13, 70, 147, 153 姚信 71 用抽 257 莫翻 71 萬義 260 元 263, 264 游魂說 140, 220 陸續 71 益 40, 306

願44, 51, 56, 98, 136, 149, 152, 292 益認 45, 105, 149, 152 字 261 z: 鉉山易束 241 雜卦 55 節 40, 45, 58, 110, 228, 322 浙 45, 53, 58, 106, 150, 226, 315 井 45, 105, 139, 150, 227, 311 貞 263, 264, 265 開4 40, 45, 57, 129, 137, 139, 150, 153, 226, 313 戶民軒屯韓2264, 3 2262,2 65917575,22 0 ,, 7 , 0227,66 9991,,,2 2221,772 2315,,8, ·52·1,7 334222,2, 6 82 17, 4528,7…,4 1 39283, 中半 40, 45, 58, 110, 135, 151, 323 震 45, 52, 58, 106, 136, 150, 202, 225, 246, 314 晉 44, 52, 57, 102, 133, 136, 152, 155, 299 天: 寧說 204 察士晶 262 蔡元定 229 麟 258 崔恨 73

抽象 254 推移 169, 243 莘 45, 52, 133, 137, 150, 153, 225, 308 구 夫 45, 52, 57, 105, 128, 137, 149, 202, 307 E 泰 44, 51, 56, 85, 133, 135, 148, 152, 197, 200, 222, 227, 278 免 45, 53, 109, 137, 150, 246, 321 太極 34, 191 太虛說 157 고 播性 256 八卦方位圖 175 八卦先天說 177 八卦吹序圖 173 覽 45, 53, 58, 107, 130, 134, 139, 150, 317

는 河圓 185, 188, 189 學fi 268, 269, 270, 271, 272, 273, 274, 27 어 •• 327 學삐 269, 270, 271, 272, 273, 274,… 327 韓康伯 155 한思想 339 漢易의 系譜 65 咸 38,44,52,57,100, 127,136,152, 296 恒 · 44, 52, 57, 127, 136, 152, 297 鮮 39, 45, .52 , 57, 104, 128, 133 該事 255 革 45, 52, 57, 312 亨 263, 264 胡玉懿 231 互卦論 233 互體 171, 249 換 45, 53, 58, 109, 151, 202, 227 梅 265 交變 171, 194, 251

李乙浩 1910 전남 영광産 경성약전졸 서울대학교철학박사 전남대학교문리대교수 국립광주박물관장 현재 다산학연구원장 댜山經學思想硏究』 따國改新低學史論』 등의 저서 茶山의易學 대우학술총서 • 인문사회과학 69 초판 찍음 • 1993 년 2 월 5 일 초판 펴냄 • 1993 년 2 월 15 일 지은이 李乙浩 펴낸이 • 朴孟浩

펴낸곳 (주)民音社 출판등록 1991 . 12. 20 제 16-490 호 은행지로번호 3007783 우편대체번호 010041-31-0523282 우 135-120 서울 강남구 신사동 506, 강남출판문화센터 영느 515-2000~ 2 (영 업부) 515-2003~ 5 (편집부) 515-2007 , 2100 (팩시밀리 ) © 이을호, 1993 한국철학K.D(刀 151 Pri nt e d in Seoul, Korea. 값 8,50 핵! ISBN 89-374-3069-x 94140 ISBN 89-374-3000-2 (세트)

대우학술총서 ( 인문사회과학 ) 1 한국어의 계통 김방한 46 어원론 김방한 2 문학사회학 김현 47 조선의 서학사 강재언 3 商周史 윤내현 48 한국음악학 이강숙 4 인간의 지능 황정규 49 中國言語學 문선규 5 中國古代文學史 김학주 50 스포츠 심리학 6 日本의 萬葉集 김사엽 류정무 ·이 강헌 7 現代意味論 이 익환 51 原始儒敎 김승혜 8 베 트 남史 유인 선 52 전쟁론 김홍철 9 印度哲學史 길희성 53 삼국시대의 漠字音 221111111111101849732506 현사海韓構韓아외언方重法洋國회어대國造社교商言동의法의심主會과도學제主심 義리시義학學도리庭風박이 론학사 과학준익園水소양김 호섭 두광 건思강조수최김· 정영 수명대홍경유학想동 기철숙한병 오 화이최 승창조훈 外 66556655551390728465 고포한조明한국베자아김역유려스국선유末국만욱르날창사동시트균서그통주淸의투학 노대모의표지송신初場파명의더의의사思市 학 식구김 니 想 응병后천이이철원즘 종 삭혜원재妃학리배의 하식봉영外 와. 정김 동 이 용홍형 론숙순효 완 22 이슬람 사상사 김정위 64 韓國의 服飾美 김영자 23 동북아시아의 岩刻畵 황용훈 65 정신신경증 이현수 24 자연법사상 박은정 66 한국住居史 洪亨沃 m 검테순 67 한국어 통사론 권계일 26 역사주의 이 민호 68 러시아어사 강홍주·강 27 인구어 비교언어학 김윤한 69 茶山의 易 學 이 을호 28 증국고대 음운학 문선규 29 한국의 주거민속지 김광 언 30 한국의 고문서 허흥식 31 역사선 1 교언어학 김방한 32 墨 子 김학주 33 영국 혁 명의 水平派운동 임회완 34 性 格 김경희 35 증국의 考古 學 최무장 36 역사의 방법 양병우 37 朝鮮 時代 地方行政史 이 수건 38 한국女俗史 김용숙 39 한국 農 學史 이 춘령 40 한국의 家族과 宗族 이광규 41 제3Ail계 십상필 42 코란의 이해 김용선 43 시베리아 개 발사 이철 44 스폐인 문학사 김현창 45 영어사 김석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