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숙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기악과 졸업 미국 휴스턴 대학교 음악문헌학 석사 미시건 주립대학교 음악박사 버지니아 커먼웰스 대학 조교수 역임 현재 서울대학교교수 저서 :『열린 음악의 세계』, 『음악의 방법.l, 『음악적 모국어를 위하여』 『음악의 이해』

한국음악학

한국음악학

李康淑 지음 民音社

책 머리에 상당히 오랜 기간이 걸렸다• 작업할 수 있는 기회는 방학·동안뿐 이었다. 학기 도중에는 여러가지 일로 작업을 할 수 없었다• 아무튼 일이 일단 마무리된 것이 참으로 기쁘다. 대우재단과 민음사에 감사 한다. 이 작업의 마무리 단계에서 나률 도운 몇 사람의 이름을 기억 하고 싶다. 송방송, 주성혜, 김혜정, 박은경, 정문혁이 그들이다. 긴 말은 하지 않겠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해 주었으면 싶고 또 많은 비판이 있기를 바란다. 관악에서 이강숙

한국음악학

차례

책 머리에 • 5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 9

제 1 장 음악학의 정의

1.1 시작하면서 13

1.2 음악학의 교차로 주변에 흩어져 뒹구는 어휘들 16

1.3 기존 정의들 22

1.4 나에게 있어서 음악학은 무엇인가 27

1.4.1 〈음악〉을 〈전체〉로 〈보는〉 〈언급〉 활동 27

1.4.2 〈음악〉이 무엇이냐: 빈 그릇으로서의 음악과 내용물로서의 음악 27

1.4.3 〈전체〉는 무엇이냐 38

1.4.4 〈봄〉이 무엇이냐 42

1.4.4.1 선입견을 가져라 42 1.4.4.2 어떤 선입견을 가져야 하나 46 1.4.4.3 선입견을 버려라 50

1.4.5 〈언급〉이 무엇이냐 55

1.5 통합음악학의 시도 64

제 2 장 음악학의 성립

2.1 음악학이 왜 생겼나 85

2.2 데카르트 사상의 현재성 86

2.3 계몽주의 사상 102

2.4 해석학의 태동과 음악 114

제 3 장 음악학의 방법

3.1 옳게 산다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가 131

3.2 지식과 신념: 지식 얻는 길에는 좁은 문밖에 없는가 132

3.3 음악적 소질은 왜 타고나는 것이 아닌가 141

3.4 음악과 철학 147

3.5 음악에 접근하는 다섯 가지 방식 159

3.6 음악학에 있어서의 지식의 단계 179

제 4 장 음악학의 영역

4.1 지식의 지도 209

4.2 음악해석학 217

4.2.1 해석학의 성립 배경 220

4.2.2 음악해석학과 내용미학 228

4.2.3 화용론적 음악해석학 234

4.2.4 한국음악론으로서의 음악해석학 242

4.3 음악수사학(音樂修史學) 245

제 5 장 음악학의 기능

5.1 누구를 위한 음악학인가 293

5.1.1 정치유관련 시대 296

5.1.2 정치무관련 시대 304

5.1.3 정치유무관련 시대 314

5.2 음악학의 역할 315

5.3 한국음악학의 정립을 위하여 332

참고문헌 • 353

찾아보기 • 365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음악학을 전체로서 묶어 보려 하면 그 부분이 무엇이냐. 혹시 빠 뜨린 부분이 없느냐 하는 질문이 나를 괴롭힌다. 끝없이 괴롭힌다. 전체를 보지 못한 채로 음악학에 대한 언급은 할 수 없다. 음악학을 전체로 본다는 말의 의미가 실감 나지 않을 수 있다. 음 악학이면 음악학인 것이지 음악학의 전체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라 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사용하는 말의 의미를 옳게 알아야 한다. 음악이라는 어휘의 경우도 사람마다 그 의미를 달리 이해하고 있 다. 대중음악, 고전음악, 민속음악, 현대음악 등 갖가지 의미를 음악 이라는 용어를 통해서 생각한다. 옛날 음악과 오늘의 음악은 음악의 부분들이다• 고전음악이나 대중, 민속음악도 음악의 부분들이다. 음 악의 부분은 음악의 전체일 수 없다. 음악의 부분을 생각하면서 음 악이라는 용어롤 사용하는 사람이 있고 음악의 전체를 생각하면서 음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음악학자는- 어느 쪽의

사람이어야 할까. 어느 쪽이 음악학에 더 옳게 접근하는 사람일까. 음악학의 부분을 생각하면서 음악학아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옳은 음 악학을 할 수 없다. 음악의 경우 서양음악과 동양음악을 묶으면 음악의 전체가 되는 가. 서양음악 중에서도 중세음악에서부터 현대음악까지 모두 고려 속에 넣으면 전체가 되는가. Bamber g er 와 Bro fs k y의 공저 The Art of Lis t e n in g : Developi ng Music a l Perce pti on 을 읽 고 그 책 에 수반되 는 레 코드를 들어보라.1) 이 세계 안에 얼마나 다양한 음악이 있는지를 알 수 있으리라. 음악의 전체 개념이 얼마나 넓고 깊은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음악학은 〈쓰는 음악학〉이기도 하지만 〈듣는 음악학〉이기도 해야 한다. 반드시 음악을 들어보라. 전체를 둘어보라. 그래야 음악 학에의 옳은 접근 태도를 가질 수 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베토 벤 쇼팡 등만이 음악의 전체일 수 없듯이, 특정 학자가 정의하고 있 는 음악학이 음악학의 전체일 수만은 없다 함을 시사하기 위해서다. 음악학의 정의는 본문에서도 소개되겠지만, 음악학자의 수효만큼이 나많다.

1) Howard Brofs k y & J. Shapi ro Bamberge r , The Art of Lis t e ning (New York : Ha rper & Row, Publis h ers, Inc., 1975).

음악학 운운에서 음악이 빠뜨려질 수 없고, 음악을 하는 인간의 속성이 빠뜨려질 수 없다. 사회, 개인, 집단, 역사, 전통, 이러한 어 휘둘과 음악과의 관계도 빠뜨릴 수 없다. 체계적 음악학과 역사적 음악학이 있다고 하더라라는 식으로 어떤 문장을 암기하고만 있다 고 해서 음악학의 전체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음악학을 음악을 〈전체〉로 보는 눈과 상관시키고 싶다. 본문 에서 이 말의 의미가 자세히 밝혀지겠지만 나는 음악을 전체로 보 려는 노력을 음악학이라고 정의하고 싶고, 전체로 보려는 음악학자

의 활동이다라고 정의하고 싶다. 전체로 보려는 끝없는 〈연습〉이다 라고도 말하고 싶다. 전체를 보는 연습이라는 말은 의심하는 연습이라는 말도 된다. 감 각을 통해서 경험되는 것을 전체로 보는 시각은 중요한 부분을- 빠 뜨리는 시각이다. 감각을 통해서 경험되는 것이 전체의 부분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부분이지 전체는 아니다. 전체를 보기 위해서는 부분의 봄을 의심해야 한다. 전체가 보이기까지는 모든 〈보 임〉을 의심해야 한다. 의심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전체를 본다는 말은 비감각적 경험을 통한 일반화 작업의 결실을 본다는 말과도 통한다. 그러니까 전체 관련적 추상성이 한 눈에 둘 어와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구체적인 감각 경험을 인간들이 중요 시하지만 그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중요시할 수 있는 사항이다. 그러 나 모든 감각 경험의 속성을 분석, 종합, 평가함으로써 하나의 전체 론을 내기는 인간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그래서 나의 음악학은 전 체론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이 우선 첫째로 중요하다. 물론 전체 론에 대한 어떤 결론을 얻었다고 해서 음악학적 작업이 모두 끝나 는 것은 아니다. 부분론의 완결 없이는 전체론을 얻었다고 말할 수 없다. 전체 관련적 추상성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나 본 저서가 부분 의 찾음을 중요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음악학의 초심자에게 음악학을 가르치기 위한 구체적 단계의 서 술 역시 중요하다• 구체적 지식에서 추상적 지식을 단계별로 취급하 는 방법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이 때문에 당연하다전 본 저서는 음 악학의 전체를 찾음과 동시에 그 전체를 초심자에게 보이는 단계의 찾음에도 관심을 가졌다.

2) 이강숙, 「음악학에 있어서 지식의 단계」, r 예술논문집』(서울 : 예술원, 1986), pp. 155-175.

본문에서 자세히 설명이 되겠지만 나는 음악을 전체로, 음악학을 전체로, 언급법을 전체로 알아야 함을 중요시했다. 여기서 언급법이 라고 말하는 이유는 음악학이라는 것은 결국 〈언급〉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음악이라는 객체의 구조(인간의 경험 문제와는 상관없이 독 립적으로 존재하는 음악의 조건)와 음악이러는- 객체의 기능(음악의 효과 및 삶의 조건)을 옳게 언어화하는 작업이 음악학이라는 생각 때문이 다. 음악학을 어떤 〈것〉이라고 하자. 물론 음악학만이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는 〈것〉이 많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은 전부가 〈것〉의 범 주에 들어간다• 하나님이 창조한 해와 달도 〈것〉의 일종이다. 언어, 역사, 문화, 종교, 제도, 예술 등도 〈것〉의 종류이다• 인간은 이〈것〉 울 알고 싶어한다. 〈것〉의 일종인 음악학도 알고 싶어한다. 〈음악〉 울 옳게 알기 위해서 〈음악학〉을 알고 싶은 것이다. 〈것〉을 옳게 알 기 위해서 다론 〈것〉을 알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질문을 어떤 식으로 던져야 그〈것〉의 전체를 알 수 있을까. 그〈것〉의 부분만 알려면 아무렇게나 질문울 던져도 좋을 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음악학의 전체를 알고 싶기 때문에 답이 전 체와 상관되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믿는다. 다섯 가지의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첫째, 그〈것〉이 무엇이냐, 둘 째, 그〈것〉이 왜 생겼느냐, 셋째, 그〈것〉을 알려면 어떤 방법이 있느 냐, 넷째, 그〈것〉에는 어떤 〈것〉이 있느냐, 다섯째, 누구를 위한 그 〈것〉이냐에 대한 질문이다. 말하자면 음악학의 정의, 역사, 방법, 영 역, 기능을 알고 싶다는 것이다. 전체적 대답을 마련하기 위한 준비 를 하기 위해서 이 책이 쓰여졌다.

제 1 장 음악학의 정의 1.1 시작하면서 지금부터 언급되는 모든 것들은 살아 숨쉴 수도 있고 죽어 없어 져 버릴 수도 있다. 우리 앞에 음악이라는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음악적 감수성이 없는 사람에겐 그것이 없듯이, 우리 앞에 학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하자면 〈학문성〉이 없는 사람에겐 그 것이 있을 수 없다. 같은 음악을 두고서도 음악성이 있느냐 없느냐 에 따라 그 음악이 살고 죽고가 결정되듯이, 학문성이 있느냐 없느 냐에 따라 모든 학문적 연구 결과는 그 살고 죽음이 결정된다. 이 문 제는 저자의 학문성에도 관계되겠지만 저자의 언급을 수용하는 수 용자의 학문성과도 관계된다. 그러니까 음악학의 성패는 학문성에 달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이 옳은 학문성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 책을 끝까지 읽으면·밝혀진다. 음악학의 정의는 너무나 다양하다. 연주 행위, 작곡 행위, 감상 행

위, 교육 행위 등이 음악가가 하는 행위라면 음악학은 연구 행위를 하는 분야인 것이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학의 정의는 〈하나〉로 묶여 있지 않다. 음악학자의 수효만큼이나 정의가 많다. 나에게 있어서의 음악학은 기존 정의와 크게 상관되지 않는다. 내 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나에게 있 어서의 음악학이다. 나의 삶이 따로 있고 음악학이 따로 있다는 식 의 그런 음악학은 내게 의미가 없다. 나의 삶이 무엇이냐라는 것과 나의 음악학은 밀착되어 있다. 음악학에 관한 정보로서 나의 삶과 무관한 것이 없는 것은 아니 다. 정확하게 지금 (1990 년 현재)으로부터 127 년전, 크리산더 Chry sa n- der 에 의 해서 Mus i kw i ssenscha ft라는 용어가 세 상에 처 음 소개되 었다. 근대적 의미의 음악학의 태동이다. 그것이 불어 mus i colo gi e 로 소개되고 그 후 영어권에서 mus i colo gy라는 어휘로 소개된 것은 20 세기 초의 일이었다고 한다 .3)

3) Wi lli Ap e l ed ., Harvard Di cti o n ary of Music( Cambri dg e , Mass. : The Be!k na p Press of Harvard Un ive rsity Press, 1969), p.5 58.

인간에게는 관심을 집중하는 〈관심 대상〉이 있다. 소통 체계가 다 르면 관심 대상도 다르게 된다. 〈언급〉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본 저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떤 것에 대한 〈언급〉을 한다는 말 은 언급체계를 사용하고 있다는 말이며 언급 체계가 가지는 〈관심 대상〉에 한정 • 집중한디는- 뜻이다 .4)

4) Charles Seege r , Stu d ie s in Musico logy 1935-1975(LosA nge l es, Ca lif. :Un ive rsity of Ca lifor n ia Press, 1977), p.16 . 구체적으로 지적할 때나 지적하지 않을 때나간 에 저자는 시거 See g er 에 힘 입은 바가 크다. 특히 1 장에서 7 장(pp.1 -167) 까지를 많이 참조했다.

언급 체계의 관심 대상과 음악 체계의 관심 대상은 다르다. 음악 체계에 대한 언급을 하려면 언급 체계의 생리를 벌어와야 한다. 음

악이 〈말하고 있는 것〉을 언어가 〈말해야 하는 것〉이 음악학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서로 다른 두 개의 관심 대상을 연결시키는 것이 음 악학이라는 뜻이 된다. 여기서 연결시킴을 7 P.중하게 하기 위해서는 〈음악 관심 대상〉과 〈언급 관심 대상〉을 비교해야 한다. 다시 말해 서 두 대상은 동일성, 유사성, 상이성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을 알아 야 하고, 음악학은 궁극적으로 유사성 추구를 목적으로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음악〉은 일종의 언급이다. 〈말〉도 일종의 언급이다. 둘이 모두 언 급이지만 언급의 매체를 달리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언급 내용이 서 로 다르다. 〈음 언급〉과 〈말 언급〉의 내용이 동일할 수 없고 그래서 음악학은 유사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전혀 상이한 결과를- 낳는 음악에의 언급은 물론 음악학일 수 없다. 동일한 선율이라고 해도 서로 다른 매체에 의해서 연주되면 그것 이 동일한 선율이 되지 않고 유사한 선율이 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하나의 선율을 피아노, 그리고 현으로 연주할 때에 음색 관련 매체의 속성이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음악적 내용을 운반하는 선율 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 것만 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다. 음악적 뉘앙스가 전혀 다론 두 개의 선율로 우리 앞에 나타나기도 하는 것 이다. 하물며 〈음〉과 〈말〉이라는 아주 다른 매체가 관여되는 음악과 음악학의 관계에서랴. 음 언급(음악)과 말 언급(음악학)이 동일성 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이유를 다른 말로 설명하면 이렇게 된다. 음악 구성 과정과 언급 구 성 과정은 모두가 각자의 관심 대상의 속성에 따라야 한다• 즉 각자 와 관련되는 〈지식〉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음악 구성 과정 관련 지 식과 언급 구성 과정 관련 지식이 같아질 수 있느냐가 큰 문제로 남 기 때문에 동일성 관계 유지가 어려워진다. 음악학이 언급 지식과 음악 지식을 따로 떨어져서 놀아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통일이 되

는 것을 원하는 학문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언급 지식과 음악 지식 이 통일되어 음악학이라는 형식이 이루어질 때 옳은 의미에 있어서 의 음악학은 가능해진다. 나는 이 책에서 이것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자 한다. 책의 뒷 부분에 가서 이 문제는 더 자세히 논의될 것이다. 1.2 음악학의 교차로 주변에 흩어져 펑구는 어휘들 5)

5) 교차로라는 말의 사용 역시 시거의 Stu die s in Mus ic olog y룰 읽다가 생각해낸 말이 다. Stu d ie s in Musico logy , pp.45- 63, p.103 참조.

인간은 경험에 의해서 배운다. 교육은 경험 대상의 제공에서 시작 · 된다. 음악학에 접하는 데 필요한 경험 대상으로 〈관련 어휘〉가 있 울 수 있다. 어휘는 관심 영역을 한정 짓고, 음악학 관련 관심 영역 은 관련 어휘가 무엇이냐에 달렸다. 어떠한 어휘 주변에서 살고 있 느냐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곧 자기라는 인간과 깊은 연관 이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사업가들이 사용하는 어휘는 음악학 자들이 사용하는 어휘와 다르다. 그들의 관심 영역은 서로 다르다. 뗄에 제공되는 어휘를 우선 〈주워둘은 적이 있다〉呼 식의 차 원에서 수용하면 음악학 이해에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된다. 주워듣 는 일을 계속하면, 다시 말해서 서당개 3 년이면, 음악학을 읊울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인간은 개별적 경험에 접했을 때 그것을 다 스릴 수 있는 토대를 가져야 한다. 어휘가 그 토대 역할을 한다. 음 악학을 만날 수 있는 교차로 주변에서 흩어져 됭구는 어휘둘은 그 모습이 어떤 것일까. 체계, 역사, 영역, 방법, 구조, 분석, 전통, 민족, 문화, 수사, 노래, 한국음악,선율,화성,리듬,형식,내용,목적,사실,가치,구체,추

상, 관습, 본유, 시간, 공간, 통시, 공시, 취급, 분류, 지식, 이해, 설명, 응용, 종합, 평가, 표준, 보편, 원리, 일반화, 개별화, 이론, 학설, 언 급, 어휘 지식, 구체적 사실 지식, 구체적 사실 취급 지식, 관습 관 련적 지식, 시간 관련적 역사 지식, 체계 관련적 범주 지식, 분류 지 식, 평가 표준 관련적 지식, 방법론 지식, 보편 • 추상 관련적 지식, 윈리 • 일반화 관련적 지식, 이론 • 구조 관련적 지식, 기능, 절대, 상 대, 현실, 실체, 사회, 주관, 해석학, 기호학, 현상학, 수사학(修史學 혹 은 修辭學), 객관, 선입견, 재료, 종적, 횡적, 자연, 정신, 과학, 개별, 특 수, 상투, 실제, 감수성, 둘음, 작품, 연주, 수용, 역사주의, 구조주의, 소의, 물화, 육화, 전체, 부분, 범부, 현자, 천재, 과거, 비판, 객체, 주 체, 서술, 해석, 소리, 음계, 조직, 점, 선, 개념, 선험, 경험, 범주, 고 전, 낭만, 감정, 정서, 느낌, 정감, 형식주의, 같음, 다름., 신념, 인간, 진보, 구성, 구상, 새로움, 자율, 타율, 자유, 위계, 형상, 과정, 교차 로, 사건, 원인, 결과, 윤리, 묶음, 얽힘, 조화, 열림, 닫힘, 포괄, 이분 법, 일원론, 이원론, 본체, 현상, 기호, 교육, 심리, 인류, 종족, 교양, 전문성, 협화, 불협화, 애매성, 잉여성, 원형, 변형, 분위기, 악식, 기 표, 기의, 부가 의미, 기저 의미, 비평, 종지, 드라마, 표현, 재현, 표 상, 인문주의, 상상, 서정, 미터, 박, 박자, 모티브, 세포,· 발전, 변화, 주관적, 객관적, 오류, 시학, 모방, 구성, 줄거리, 요약, 대의, 정보접 수, 반응, 자극, 세계관, 음악관, 가치관, 감관, 이성, 유사, 대조, 반 복, 양식, 상징, 긴장, 완화, 주제, 하나, 여럿, 관계, 동태, 정태, 생태, 삶, 노동, 사변, 개입, 인식, 존재, 대상, 청자, 수용자, 예견감, 감동, 소통, 정보, 미래, 물리적, 심미적, 실증, 직관, 연역, 귀납, 귀, 제작 자, 제작물, 청중, 창조, 독창 개념, 기교, 비교, 재구성, 준거틀, 일 반,학문,매체,틀,음악내적,음악의적,효용,전문화,말,언어,음 언어, 공적, 사적, 음제도, 부류, 경험 방식, 장단, 옳고 그름, 진리, 도구, 예술, 난해성, 용이성, 해결, 미해결, 연장, 장식, 특정, 범위, 음

향현상, 공간시간, 시간공간, 음악공간, 물리공간, 대위, 이론 실제, 이 론 이론, 이론 실기, 이론의 이론, 그냥 감동, 그려진 감동, 생각과 느 낌, 신분성, 중복, 계속성, 시작과 끝, 통제, 경제성, 다양성, 통일성, 독립, 의존, 해방, 민주, 전언, 불변적, 가변적, 시각, 외적, 내적, 감 지, 정신과학, 문화과학, 인간학, 직접, 간접, 생성, 소멸, 미적 칙접 성, 유형, 매개변수, 관찰 가능성, 자율적 가해성, 있음, 기악, 성악, 보수, 전보, 음, 악, 학, 전, 통, 재료론, 화성법의 본유개념, 대위법의 본유개념, 형식의 본유개념, 서양음악양식사 요약, 음악인식론, 음악 존재론, 음악윤리학, 음악형이상학 등등, 어휘의 수는 밤 하늘의 별 만큼이나 많다. 이상에 소개된 어휘를 전부 정의할 지면은 없다. 그러나 이 어휘 의 개념 이해는 음악학에 옳게 접근할 수 있게 함에 있어서 절대로 필요하다. 음악학이란 결국 이러한 개별적 어휘둘의 의미를 암기 • 이해 ·응용 • 분석 • 종합 • 평가하는 일과 각 의마들간의 관계를 이 해 • 응용 • 분석 • 종합 • 평가하는 작업일 수밖에 없다• 체계와 역사리는· 어휘만을 예 들어 보기로 한다. 체계적 음악학과 역사적 음악학이라는 말을 있게 한 어휘둘이기도 하지만, 그 어휘의 쓰임새와 그 쓰임의 의미에 대한 옳은 이해는 〈음악학〉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에 옳은 모든 대답을 제공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서 알려면 그〈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 과 그〈것〉이 왜 생겼느냐라는 질문을 하면 대충 그것에 대해서 알 만큼 알게 된다. 다시 말해서 그〈것〉의 체계 (죽 조직 혹은 구조)와 그 〈것〉의 역사를 알면 알 만큼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도 체계와 역사라는 어휘는 중요하다. 비단 음악학에서만이 아니라 어 떤 〈것〉이든 그〈것〉을 알려면 중요하다• 각 어휘를 하나의 기호로 보면, 그 기호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는, 다시 말해서 그 관계가 낳는 문장을 놓고 그 문장을 이루는 부분들

의 구조적 기능을 연구하는 학문이 있을 수 있고, 그 관계가 낳는 문장의 의미를 연구하는 학문이 있을 수 있다. 음악학은 양쪽 모두 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말하자면 언어들의 자체발생적 의미 추구와 언어들의 관련발생적 의미 추구 모두를 하는 학문이 음악학이라는 말이다. 말하자면 화음 이 름 chord gr ammar 의 연구격 에 해 당되는 관 심도 가지고 화음 의미 chord s ig n ifi cance 의 연구격에 해당되는 관 심도 가진다는 것이다 .6)

6) Felix Salzer, Str u ctu ral Hearin g : Tonal Coherencei n Music ( New York : Dover Publi ca ti on Inc., 1962), Vol I pp.37- 51 .

그런데 음악학적 작업이 쉽지 않는 이유는 체계나 역사라는 말만 두고 본다고 해도 그 쓰임새가 하나 둘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인간의 경험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서로 구별되는 여러 부분들 의 집합 즉 형식을 가진 어떤 것이면 그것은 체계다. 구성 인자의 단 순한 집합이 아니라, 구심점을 향해서 통일성 있게, 합목적적 기능울 하면서 얽혀져 있는 것이면 체계를 가진다? 어떤 〈것〉이 그〈것〉이 되고 있으면 그〈것〉은 그〈것〉으로서의 체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7) 임석진 감수, 『철학사전』(서울 : 도서출판 이삭, 1983), p.361 .

몇 개 혹은 여러 개의 원리에 의해서 조직된 지식의 통일적 전체가 체계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도 체계라는 말의 의미가 위에서 소개 된 것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 체계나 학설이 있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역사가 어떤 〈것〉이라면 그〈것〉을 그〈것〉 되게 하는 구성인자의 단순한 집합이 아니라, 하나의 구심점을 향해서 합목적 적 기능을 하면서 그〈것〉의 인자가 얽혀 있으면 역사 역시 체계라 고 말할 수 있다. 음악심리학, 음악인류학, 음향학, 음악사회학, 음악 미학이 모두가 체계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체계적 음악학 분야 안에 그것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각각이 자기 속성대로의 체계를 가 진 학문일 수 있기 때문에 체계적 음악학의 한 분과가 되는 것이다.

나의 음악학은 이런 의미로 특정 단계에서 완성된 하나의 체계이 고 싶다. 내 삶의 역사이고 싶은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나에게 있어 서의 음악학은 나의 과거가 아니라 미래일 수도 있다. 미래와 연결 되지 않는 과거는 없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나의 음악학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느 누구에게 있어서나 삶과 무관한 어떤 것은 있을 수 없다. 역사라는 말의 쓰임새는 어떤가. 사건을 나타난 시간의 순서대로 나열해 놓은 것이 역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전 음악수사학에 대한 관심을 조 금만 가지면 아 사람들의 입장이 어떠한 것인지 안다 .9) 〈사건을 나 타난 시간의 순서대로〉의 운운에서 〈사건의 나타남〉이라는 말의 쓰 임새에도 문제는 있다. 서울에 지금 어떤 사건이 나타나고 있나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나타남이라는- 것이 주관적인 것이냐, 객관적인 것 이냐라고 물어보자. 역사가는 나타남 전부를 서술할 수가 없다. 나타 난 것을 선택해야 하는 운명에 놓인 사람이 역사가다. 자기의 눈에 걸려든 것 중에서 또 다시 선택된 것만이 결국 〈나타남〉의 범주에 속하게 된다.

8) Carl Dahlhaus(t r. by J. B. Robin son ), Foundatio ns of Music Hi st o r y (L ondon: Cambri dg e Un ive rsity Press, 1983), pp.33- 53. 9) 음악수사학(修史學 : music hist o ri o gr a p h y)이라는 말은 저자가 써본 말이다. rhe tori c( 修辭學)이라는 말과 혼동되는 약점을 안고 있으나 그 이의의 어휘 역 시 마땅치가 않다고 생각해서 사용하기로 했다. 편사학, 편찬학이라는 어휘도 생 각해 보았었다.

하루 먹고 하루 사는 사회와 일년 계획하에 사는 사회는 사회구 조 자체가 다르다. 사회구조에는 그 구조가 사는 방식이 있다. 그 구 조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개인들은 그 구조의 삶의 방식에 종속된 다. 여기서 〈나타남〉의 개념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느냐의 문제가 또

제기된다. 사회구조의 사는 방식에 개인의 삶이 종속된다는 것을 믿 는 쪽은 그 구조가 〈나타남〉을 규정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즉 전체 론자의 입장을 취한다. 전체론자들은 사회 전체 구조 파악이 역사적 사전이라는 자격을 얻은 나타남의 자리를 찾게 한다는 입장을 취한 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구조는 그 구조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그 구조적 요인(개인도 그 요인의 하나)에게 적절한 기능을 요구한다는 것이고, 개인은 그 요구에 종속적으로 얽혀 있다는 것이다. 이 기능 적 활동이 〈나타남〉이리는 것이다. 물론 개별론자들의 입장은 다르 다 .!Ol

10) W. H. Dray , MPhil os op h y of Hist o r y , The Enc yclop e d ia of Philo s op hy ed. by P. Edwards(New York : The Macm illan Comp an y & The Free Press, 1978), Vol. 6, pp. 247-54.

이런 말은 왜 하는가. 역사는 〈나타남〉의 개념을 어떻게 규정하느 냐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자는· 데 에 있다. 많은 사람들은 역사를 과거의 문제로 생각한다. 이것 역시 문제이며 어휘의 쓰임새에 문제가 생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사 는 과거를 알려고 하는 문제라기보다 현재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서 중요하게 됨을 인식해야 한다. 역사학 교수가 아는 역사 지식이 중요하기 때문에 역사가 우리 앞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시거 C. See g er 에 의하면 체계는 〈내적 • 정적 • 구조적〉, 역사는 〈외 적 • 동적 (발전 변화 관련) • 기능적〉으로 관련된다. 시거의 말을 옳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전자는 시간적으로 한 지점, 독정 지점의 개념 과 상종되고, 후자는 앞 뒤 시간의 연결선(죽 여러 지점)의 개념과 상종된다. 체계 관련적 사고 반경은 정지되어 있는 공간(공간도 시간 속에서 흐르고 있겠지만)에 관심을 가지는 성향이고, 역사 관련적 사고 반경은(시간 속에 공간들의 순간이 있겠지만) 계속되고 있는 시간에 관

심을 가지는 성향이다. 전자는 공간에서 생긴 사건 • 일 • 구조 등의 구조에 관심을 보내며, 후자는 시간에서 생긴 사건 • 일 • 구조 등의 기능에 관심을 보낸다. 언급이라는 어휘의 의미와 그 쓰임새는 또 어떠한가. 소통을 위해 서 인간이 만든 것이 언급이다. 음악에 대해서 우리는 언급한다. 무 엇에 대해서든 우리는 언급한다. 언급 중에는 〈말〉로 이루어지는 언 급과 〈음〉으로 이루어지는 언급이 있다. 〈말 언급〉과 〈음 언급〉은 모두가 소통 체계다. 〈음악 언급〉의 소통 사항을 〈말 언급〉의 소통 사항을 통해서, 죽 전자가 후자를 통해서 소통되길 원해서 이루어지 는 것이 음악에 대한 언급이다. 이러한 언급을 옳게 하려고 하는 것 이 음악학이므로 〈음악학은 음악 언급학〉이다. 언급을 옳게 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언급 지식이라고 한다. 말이 말되게 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 언급 지식이다. 언급 지식에는 일반 언급 지식과 특수 언급 지식이 있다. 무엇에 대한 언급이건, 말이 말 되게 하는 일반 법칙 관련 지석이 전자요, 말은 말이되, 음악에 대 한 말로서 그러한 말을 옳게 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 특수 언급 지 식이다. 체계와 역사라든가 언급이라는 어휘 개념의 이해는 음악학 이해를 위해서 참으로 중요하다. 주에서 이미 소개한 시거의 St ud ie s in Mus i colog y에서도 이 점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1.3 기존 정의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어휘는 그 어휘가 어떠한 어휘 이든간에 모두 대문자 개념과 소문자 개념이 관여된다. 뒤에 이 문 제는 다시 논의된다. 역사 편찬 방법론 논의인 음악수사학에서도 논 의되겠지만, 음악학의 정의 문제에 대한 언급을 하기 전에 이 두 개

념에 대한 설명이 약간 필요할 것 같다. 음악이라는 어휘를 두고 생각해 보자. 시대와 지역에 따라 음악이 라는 어휘는 지칭하는 내용물이 달랐다. 다르기 때문에 관심 대상을 달리 가졌다. 음악이라는 어휘를 통해서 베토벤을 관심 대상으로 머 리에 떠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펫분 같은 가수를 관심 대상으 로 떠올리는 부류가 있다. 〈배우〉라는 어휘의 경우도 관심 대상을 한정 짓는다. 어떤 사람은 배우하면 로버트 데일러 같은 미남 배우 를 관심 대상으로 한정 짓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커크 다글라스 같 은 성격 배우를 떠올린다. 한정 짓지 않을 때 생기는 어휘의 의미를 대문자 의미, 한정 지울 때 생기는 어휘의 의미를 소문자 의미라고 한다면 어휘는 그것이 어 떤 것이든 대문자 의미와 소문자 의미를 가진다. 음악이라는 어휘가 바로 그런 것 중의 하나다. 한정 짓지 않을 때의 음악은 우리가 무 엇인지 모른다. 그러나 한정 지을 때에는 서양음악과 동양음악, 혹은 고전음악과 현대음악 등, 구체적으로 〈음악이라는 그릇〉(대문자 음 악)에 음악이 담긴다. 음악은 그릇이 채워진 상태 즉 구체적 내용물이 채워진 상태로 의 미화되지 않으면 음악일 수 없다. 그러니까 소문자 음악만이 음악이 라는 말이다. 우리는 소문자 음악을 통해서 대문자 음악에 접근한다. 선대의 소문자 음악이 후대에 대문자 음악 구실을 하기도 한다. 곰 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 앞에는 소문자 음악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 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빈 그릇으로서의 음악과 채워진 상태로서 의 음악 개념을 구별한다. 구체적 음악을 지칭하는 어휘로서의 〈음 악〉이 아닐 때의 〈그릇〉으로서의 음악, 죽 빈 그릇의 음악도 역시 음악아다. 그것은 대문자 개념 관련 음악이다• 우리는 대문자 음악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것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것을 구별하는 능력 울 가졌기 때문에 두 개념을 우리는 왈가왈부하고 있다. 물론 그릇

에 구체적 내용물이 잘못 채워질 때가 있고, 꽉 채워지지 않을 때도 있고 음악 아닌 것을 채울 때도 있다. 음악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음악학이라는 빈 그릇에 음악학자들 마다 다른 내용물을 채운다. 채워진 결과물이 서로 다르다. 그것을 같게 만들려고 애를 쓰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어떤 것이 채워지든 그것이 채워지는 순간 소문자 음악학이 된다. 기존 정의라 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소문자 음악학과 상관된다. MGG 에서는 좁은 의미로서의 음악학과 넓은 의미로서의 음악학을 암시하고 있다. 전자는 음악사 연구로서 18 세기 이후 발전된 학문을 뜻하고 후자는 예술학 가운데 가장 최근에 나온 학문이라기보다 가 장 오래된 학문을 뜻한다. 죽 음악의 근거에 관한 이론은 이미 고대 로부터 전문적 지식과 사유의 한 분과학으로 존재해 왔다는 것이다. 11) 『 Harvard 음악사전』에서는 음악학을 음악의 학문적 연구라고 정 의하고 있고, 『 Grove 음악사전』에서는 물리적, 심리적, 심미적, 문화 적 현상으로서의 음악 예술에 관한 지식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연 구라고 설명되고 있기도 하다 .12> E. Blom 이 펴낸 Ever yma n's Di ct i on ar y of Mus i c 에서는 음악의 모든 면에 대한 과학적 • 학문적 연구라고 정 의한다 .13> Di ct i on ar y of Conte m p or ar y Mus i c 에서는 어떤 음악의 어떤 국 면이든지간에 대상이 되는, 모든 국면을 합리적으로 연구하는 방법 으로 음악학을 정 의 한다 .14> The Int er nat ion al Cy cl op ed ia of Music and

11) wMusikw i ss enscha ft, Die Musik in Geschich te und Gege n wart(e d. by F. Blume, Kassel : Druckerei C. Brueg el & Soh n, 1968), Vol. 9, p.11 92. 12) Wi lli Ap e l ed., Harvard Di ct io n ary of Music, 2nd ed., p.5 58 ; St an ley Sad ie ed., The New Grove Di ct io n ary of Music and Musici an s(London : Macm illan Publi sh ers Limited, 1980), Vol. 12, p.8 36. 13) Er ic Blom , wMusico log y, Every m en's Di cti o n ary of Music( New York : St. Marti n's Press Inc., 1973), p.450 . 14) Joh n Vin ton , ed., Di cti o n ary of Contem p or ary Music( New York : E. P. Dutt o m

& Co., Inc., 1974), pp.5 04- 5.

Mus i c i ans 에서는 과학적 연구 결과로 얻은 음악에 대한 체계적 지식 전체를 일컫는다고 했다 •15> Karp Di ct i on ar y of Mus i c 에서는 심미적 음 악 연구 일변도 혹은 실제적 목적 일변도로 음악에 대한 연구를 한 다기보다 학문적 그리고 심미적 음악 연구라고 되어 있다 .16) Ency cl op ed ia B rit ann i ca 에서는 음악과 상관되는 모든 것의 과학적 연 구에 붙여진 이름이 음악학이라고 하면서 상이하고 넓은 연구 영역 을 필연적으로 다루며 유럽과 동양의 예술음악뿐만 아니라 모든 민 속음악을 대상으로 한다라고 쓰고 있다. Paul A. P i sk 는 Int er nat ion al Cy cl op ed ia of Music and Music i a n s, ed. by 0. Thom p son 의 Mus ico lo- gy 라는 항목에서 〈음악과 그것의 구조 • 전통 • 양식의 조사가 음 악학이다, 자연과학이라기보다 인문과학이다〉라고 쓰고 있다 .m Wa- ldo S. Pra tt는 The Music a l Q uar t erly 의 창간호(1 915) 에 쓴 On Beha lf of Mus i colo gy”라는 굴에서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음악학은 한마 디로 음악과학이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쟁점을 음악학이 다루어야 한다〉라고 쓰고 있다 .10> Den is S t evens 은 그의 Music o log y: A Pract ica l Gu i de 에 서 〈음악학의 정 의 는 음악학자마다 달리한다〉라고 쓰고 있다 .19)

15) Ot to Kinkel dey, Mu sico logy , The Inte r natio nal Cy clo p edi a of Mu sic and Mu sicians (6th edi tion , ed . by Oscar Thomp so n , New York : Va il-B allow Pre ss, 1952), p.121 8. 16) Theodore Ka rp, Music o log y, Di cti o n ary of Music( New York : Dell Publi shing Co. Inc., 1973), p.2 56. 17) Paul Pis k, Music o log y, The Int e rnatio n al Cy cl ope d ia of Music and Musicia n s(l O th ed ition , ed. by Oscar Thomp so n , New York : Dodd Mead & Co. Inc., 1975), p.1 467. 18) Waldo S. Pratt , On Beha lf of Music o log y, The Music a l Qu art e rly(N ew York, 1915), Vol. I, No. 1. 19) Den is Ste v ens, Musico logy : A Practic a l Guide (New York : Macm illan Publi shing Co. Inc., 1981), p.11.

G. Ha y don 은 그의 Intr o ducti on to Mus i colog y에 서 〈음악에 관한 지 식의 발견과 체계화와 상관되는 배움의 하나다, 그러니까 음악학은 엄격하고 비판적 음악 연구이고, 음악 관련 사실과 원리의 발견을 위한 연구이다〉로 되어 있다 .20)

20) Glen Hayd on, Intr o dutcion to Mu sico lgoy( C hape l-H ill : The North Carolin a Un ive rsity Pres s, 1941) , p.l.

음악학이 무엇을 하는 것이냐라는 문제를 놓고 Guid o Adler 가 그 의 Vie rt e lj a h rschrif t fur Mus i kw i ssenschaf t에서 1885 년에, Meth o de . der Mus i kg esch i ch t e 에서 1919 년에 각각 음악학의 영역을 한정 지었다. Adler 의 음악학 영역 구분의 영어 번역은 Grove's Di cti on ar y of Music and Music ia n s(5t h e diti on) 에 E. Wellesz 에 의해서 1954 년에 이루어졌 다. 시거는 1939 년에 Acta Mus i colog i ca 에서 음악학 영역을 한정 짓는 댜 위에서 열거된 정의들 이의에도 여러 사전이나 음악학자들에 의 해서 음악학은 다양하게 정의되고 있다. 그것을 일일이 나열할 수도 없고 또 나열할 필요도 없다. 위에서 암시된 바와 같이 음악학의 정 의는 음악학자의 수효만큼이나 많다는 사실을 인식하기만 하면 된 다. 비슷한 성격의 정의도 있고 음악학에의 오리엔데이션이 서로 다 르기 때문에 정의의 성격이 상당히 디른- 것도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궁극적으로 가서 〈글 쓰는 행위〉로 음악학자의 행위는 귀결된 다는것이다.

1.4 나에게 있어서 음악학은 무엇인가 1.4 .l 〈음악〉을 〈전체〉로 〈보는〉 〈언급〉 활동 음악학은 음악을 전체로 보는 언급 활동이다. 여기서 몇 어휘가 등장한다. 〈음악〉 〈전체〉 〈보는〉 〈언급〉 등이 그것이다. 〈음악〉을 〈전체〉로 〈보는〉 〈언급〉 활동이 음악학이라고 한 말의 의미가 옳게 이해되려면 이 몇 어휘의 의미부터 면밀히 검토되어야 한다. 1.4 .2 〈음악〉이 무엇이냐: 빈 그릇으로서의 음악과 내용물로서의 음 악

비가 내리면 왕십리 생각이 난다라고 말하는 사람의 경우에 〈비〉 는 〈왕십리〉라는 관심 대상을 한정 짓는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특정 어휘가 특정인에게 특정 관심 대상을 한정 짓게 한다는 사실 울 지적해 보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서 모든 어휘가 그렇지만, 음악 이라는 어휘도 관심 대상을 한정 짓는다. 추상적 보편 개념으로 한 정 짓기도 하고, 구체적 지각 표상으로 한정 짓기도 한다. 전자는 〈그릇〉으로서의 음악, 후자는 그 그릇에 담간 〈내용물〉로서의 음악 울 지칭한다. 물론 한정 짓는 방식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변한다. 학 자들은 잘못 한정 지어전 대상이 자기를 지배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래서 과거에 한정 짓던 대상으로부터 해방되기도 한다. 종족음악 학적 사고를 배제하고 있던 시절에서 그것을 포괄하는 시절로 음악 학적 관심 영역 내지 대상을 넓히기도 한다안 배제하는 학자와 포괄

21) 종족음악학 관련 기본 저서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이강숙 편, 『종족음악과 문화』(서울 : 민음사, 1982) ; Bruno Nett i Theory and Meth od of Eth rwmus ico log y

(The Free Press of Glencoe, 1964) : B. Nett ~ The Stu dy of Eth nomusico logy : Twenty -nin e Issues and Concep ts( Un ive rsit y of Illi no is Press, 1983) : Mant le Hood , The Eth n omusico logis t ( N ew Yor : McGraw-H ill, Inc., 1971).

하는 학자들이 〈음악〉이라는 어휘를 대할 때, 그 어휘가 마련하는 관심 대상의 범위와 성격은 같은 것일 수 없다. 관심 대상을 어떻게 한정 짓느냐라는 문제 자체가 엄청한 학문적 차이를 불러일으킨다. 〈음악을 듣는다〉라고 누가 말했을 때, 음악이라는 말이 관심 대상 을 어떤 식으로 한정 짓는가. 음악이라는 말의 의미는 너무나 막연 하다. 또 다양하다. HAM 이 나 MM, Musi cs of Many Cultu r es, The Art of Lis t e n in g , 『한국전통음악 선집』 등을 들어보라 .22) 얼마나 서로 다른 음악들이 들리는가.

22) HAM은 His tor i ca l An tho logy 。if Music by A. Dav iso n & W. Ap e l( Cambrid g e, Ma ss: H' arvard Un ive rsit y Press , 1949), MM 은 Maste r p iec es of Mi lsic Befo r e 1750 by C. Pa rrish & J. Ohl(New York : W. W. Nort o n & Comp a ny , Inc., 1951) 의 약칭임. Musics of M any Cultu r es- i:-El i za beth May 편으로 (Los Ang el es : Un ive rsity of Ca lifor n ia Pres s, 1980), 『한국전동음악 선집 』은 〈국립국악원〉 에서 출간되었음.

아무 것도 담기지 않는 〈그릇〉에 비유되는 관념으로서의 음악을 생각할 수 있고, 그릇에 특정 음악을 담음으로 해서 구체적 음악을 생각할 수도 있다. 위에서 구체적 지각 표상으로서 혹은 추상적 보 편 개념으로서 음악이라는 어휘가 그 의미를 한정 짓는다고 말한 이 유가 여기에 있다. 발신자나 수신자의 특성에 따라 음악의 의미나 그 어휘가 지칭하는 관심 대상은 엄청나게 달라진다• 그러므로 음악 학을 옳게 하려면 〈음악〉이라는 어휘의 신분성을 정확히 밝혀야 한 다. 신분성은 그냥 밝혀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연습하는 것만큼 배 운다는 말이 있듯이 신분성 밝힘의 문제도 〈연습〉에 의해서만 해결 된다. 피아노를 치는 사람은 피아니스트이다. 피아니스트가 되기 전

의 사람에 대해서는 〈피아노를 친다〉라고 말하기보다 〈피아노 치는 연습을 한다〉라고 말해야 옳다. 마찬가지로 신분성을 밝힐 수 있는 능력이 기성인 격이 되기 전의 사람에 대해서는 〈신분성을 밝힌다〉 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신분성 밝히는 연습을 한다〉라고 말해야 옳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도구 없이 연습은 할 수 없는 것아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이고 또 연습 도구로서 〈가치〉와 〈사실〉 개념을 소 개하고 싶어서이다. 그래서 열심히 연습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또 연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인간의 마음은 어휘를 저장한다. 필요하면 언제나 끄집어내어서 사용한댜 마치 돈이 은행에 예금되어 있는 것과 같다. 돈이 없으면 끄집어내어 쓸 수 없다. 인간 마음에 많은 어휘가 저장되어 있지 않 으면 끄집어내어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다. 저장되고 있는 어휘의 종류는 다양하다. 관심 대상을 특정 방식으로 한정 짓고 있는 어휘 들이 저장되고 있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관심 대상이 모호한 채로 저장되어 있을 때도 있다. 신분성을 밝히는 일에는 언제나 어휘가 개입된다. 마음 속에 저장 된 다양한 어휘를 끄집어내어 서로를 상호 작동하게 한다. 생리적 조전, 교육적 배경, 개인적 삶의 역사, 자기가 살고 있는 정치 • 문화 적 여건들이 다양한 어휘를 만든다. 그래서 마음 속에 저장한다. 신 분성은 이 어휘들이 마음 밖으로 드러나서 적절히 배열될 때 밝혀 전다. 우리는 어휘를 두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감각 관련 어휘와 이성 관련 어휘가 그것이다. 전자는 주관적 • 가치 관련적 어휘이고, 후자 는 객관적 • 사실 관련적 어휘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전자는 가치의 등급을 설정하고, 후자는 사실을 종류별로 분류한다• 등급 설정과 사 실 분류는 마음의 삶을 위한 양식이다. 이 양식이 얼마만큼 있는가 의 문제가 그 사람 마음의 살찜울 좌우한다. 대부분의 어휘는 〈여

럿〉을 지칭한다. 〈영리함〉이라는 어휘는 내용 하나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 여럿을 지칭한다. 〈사각형〉이라는 어휘는 〈영리〉라는 어휘와 성격이 다르다. 〈영리〉가 여럿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사각 형〉은 〈하나〉를 지칭한다 .23) 개념 • 추상 • 경험 • 류 등과 같이 복합 성을 지칭하는 어휘도 있다. 우리는 이러한 어휘들을 사용하고 있다.

23) Frank Sib l ey , Aesth eti c Concep ts, The Phil os oph ic a l Revie w ( l9 49), Vol. LXVIII. 이 글에서 심미용어에 대한 논의를 하는 과정에 〈여럿〉과 〈하나〉를 지칭하는 어휘 개념을 생각할 수 있다.

어휘의 사용은 그 의미를 사전에 정의하고 사용하는 경우와 정의 없이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일상어는 정의 없이 사용하는 언어다. 〈음악〉이라는 어휘가 일상어로 사용될 때에는 정의 없이 사용하는 격이다. 정의를 하지 않고 사용하더라도 누구나 〈음악〉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사용한다. 그러나 음악학에서의 언 어 사용은 그 성격이 다르다. 음악이라는 어휘가 정의되어야 한다. 정의된 후 사용되어야 한다. 정의하지 않은 채 사람들은 음악이라는 어휘를 제멋대로 사용하는데 이럴 경우의 어휘는 학문적 어휘일 수 없다. 음악이라는 어휘가 사람마다 제멋대로 관심 대상을 한정 짓게 하면 〈학〉을 한다고 말할 수 없다. 음악이 보편 개념과 상관될 때에는 개념으로 정의되어야 한다. 그 러나 음악이라는 어휘가 감각 표상으로 한정 지어질 때에는 정의될 수가 없다. 사람마다 다른 감각적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음악이라는 어휘가 이 때문에 정의된 것으로 사용될 때와 정의되지 않은 것으 로 사용될 때가 있다. 음악학은 정의된 것을 사용하길 원함과 동시 에 정의되지 않은 상태를 동경하기도 한다. 논의를 일부러 어렵게 만둘 생각이 없다. 아 말은 음악이 무엇이 냐라는 질문을 지나치게 현학적으로 다품으로써 헷갇림을 위한 헷

갈림 속으로 사람들을 끌어넣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는 뜻이다. 그러나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 이 말 은 음악인, 비음악인, 전문가, 비전문가 등을 위시한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자기 식으로 생각해 버리는 데에도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음악을 내적 시각만으로 보려고 고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의 적 시각만을 고집하는 사람도 있다. 대상을 감지 대상으로 보는 감 각의 소유자는 내적 시각을, 대상을 관찰 대상으로 보는 감각의 소 유자는 의적 시각을 가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적 시각이라고 해도 자기 가문적(안동소주 맛의 혀, 독일 포도주 맛의 혀, 카나다 위스 키 맛의 혀 중 어느 하나가 자기 가문의 술일 수 있다) 시각을 내적 시각 으로 착각해서는 물론 안된다언 어쨌든 음악의 옳은 이해는 상식적 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음악 물질〉이 아닌 〈음악 정신〉이라는 말의 의미가 검토되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 기서 우리는 〈음악 물질〉의 이해가 〈음악 정신〉의 이해를 어떻게 가 능하게 하는가러는 질문을 던짐으로 음악의 본질에 더 접근할 수 있 다.

24) 이강숙의 『음악의 방법』(서울 : 민음사, 1982), pp .11-28 과 David Hume 의 Of the Sta n dard of Taste in Four Di sser t ation s(London , 1757) 에서 이러한 문 제가논의되고 있다.

음악은 인간이 만든 생산물이다• 생산물 만듦에 개입되는 것에 두 개의 요인이 있다는 사실을 옳게 이해하면 음악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두 개의 요인이란 재료와 사람의 마음이다. 다시 말해서 음악 에 〈재료〉와 〈마음〉이 개입된다는 것이다.’ 재료는 물질이요 마음은­ 정신이다. 음악은 가공된 재료이고 마음은 재료의 생리에 복종하기 도 하고 그것을 다스리기도 하는 어떤 실체다 .25)

25) J os quin만이 재료를 다스릴 수 있었다고 한다. 보통 수준의 작곡가들은 재료의 생 리를 다스린다기보다 복종해야 한다. 이건용의 글 참조(〈낭만음악》(서울 : 낭

만음악사, 1989 년, 봄호), 제 1 권 2 호, pp.141 -79.

재료는 물질이라고 했다. 음악을 있게 하는 토대 역할을 하는 물 질이다. 재료에는 종류가 많다. 음고 관련 재료만 해도 그 종류가 많 댜 5 음, 6 음, 7 음, 12 음 등 음의 수를 불변적으로, 그리고 각 음들간 의 음정 관계 역시 불변적으로 설정한 무수한 음열이 있다. 5 음 음 열만 해도 각 음들의 음정 관계의 차이점을 고려하면 몇 천 종의 음 계가 인간 문화권 안에 있다. 음악에의 이해는 재료에의 반응력과 직결되어 있다. 음고 관련 재료에의 민감성도 중요하지만 음고뿐만 아니라 모든 음악 재료에의 민감성이 중요하다• 음색 관련 재료의 다양성을 청각적으로 경험할 필요도- 있고 음색 관련 혹은 음계 관 련 경험을 위한 학습 활동이 여러 가지로 개발될 필요도 있다. 각 악 기의 음색을 종족음악학적 차원에서 소개하고 음제도의 다양성도 같 은 차원에서 소개할 필요가 있다. 동일한 선율을 서로 다른 음계로 노래 불러 보는 연습 같은 것도 필요하다. 그렇게 하면 음고 관련 재 료가 바뀌면 음악적 의미가 얼마나 바뀌는거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반복해서 이야기한다고 해도 그 도가 지나치지 않을 사실, 그것은 바로 〈재료 생리〉라는 말에 주목하는 일이요 또 그 〈재료 생 리〉에의 이해 없이 음악의 이해는 불 7H 중하다는· 사실에의 인식이다. 재료의 이해는 그것이 탄생된 문화적 • 사회적 • 음악양식적 • 역사 적 맥락의 이해가 또 전제된다. 음악은 언제나 이러한 서로 다른 역 사를 가전 그래서 서로 다른 이해 관련적 속성을 가진 재료를 통해 서 자기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음악이라는 것은 자기는 없고 내용물이 있으면 담기만 하려는 하나의 〈그릇〉 같은 것일지 모른다. 말하자면 내용물이 그릇에 담길 때 우리는 구체적 음악 내지 특정 음악을 운운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그릇만을 음악이라고 생각해도 곤란하고 그릇과 상관이 없는 내용물은 없을 테니까 내용물만을 음

악이라고 생각해도 곤란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내용물은 재료(물질)에 의해서 〈얽힌다〉. 얽혀야 만들어진다. 음악 에의 옳은 이해는 이 때문에 〈얽힘〉의 생리를 중요시한다한 얽힘은 재료의 얽힘이지 다른 어떤 것의 얽힘도 아니다. 음악이 무엇이냐라 고 묻는 것은 재료가 무엇이냐라고 묻는 것과 그 의미가 거의 동일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음악 소질 운운이 바로 음계(재료)에 옳게 반응하는 능력의 문제와 상관되는 것만 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다.

26) 얽힘은 결국 음악 형식의 문제이다. 얽힘의 원리는 Ernst Toch 나 Wallace Berr y 그리고 A. Schoenber g의 작곡원리 갈은 책에 잘 설명이 되어 있다. E. Toch , The Shapi ng Forces in Music( New York : Cherr y Lane Music Co., Inc., 1948) ; W, Berry , Form in Music( Eng le wood Cli ffs, New Je rsey : Prent ice -Ha ll, Inc., 1966) ; A. Schoenberg , Fundamental s of Musica l Compo sitio n (ed . by G. Str a nd and L. Ste i n , New York : St M artin's Pres s, 1967) 를 참조. 아도르노의 분석 의 제문제도 결국 얽힘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얽혀 있는 것은 얽혀 있는 대로 놓아둔 채 그것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 분해를 해아 하는 것이니까. T. Adorno, On the Problem of Music a l Analys i s , intro duced and tra nslate d by Max Padd ison , Music Analysi s ( no. 2 ed. by Jo hatt h an Dunsby , Ox for d : Basil Blackwell Publis he r, 1982), Vol I, pp.1 69-87( 『음악과 지식』, 서울 : 민음사, 1987 에 이건용에 의해서 이 글이 번역되고 있음) 참조.

재료는 불변적 요인을 안고 있다. 이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아는 것 이 음악을 아는 중요한 길이다. 음색이 음색 구실을 하려면, 자기 음 색을 불변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피아노이면 피아노, 바이올린 이면 바이올린, 어머니 목소리이면 어머니 목소리일 수 있는 불변적 요인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음계가 음계 구실을 하려면, 음정 관계 와 음 수효의 차원에서 불변적 성질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과 같 다. 물론 문화권마다 음정 관계는 평균율일 수도 있고 비평균율일 수도있다. 지금까지는 재료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재료에 복종할 때도 있고 그것을 다스릴 때도 있는 마음의 역할은 어떤 것인가.

사람 마음에는 결과물의 생산에 개입하는 마음과 그것의 소비에 개입하는 마음이 있다. 소비에 개입하는 마음 중에는 음악을 사용하 는 마음과 감상하는 마음이 있다. 감상자의 마음은 감수성이 형성된 자의 마음이다. 형성되지 않은 자는 음악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 아닌 것을 음악으로 착각하면서 그것을 사용한다.떠)

27) 한국음악의 갇 길은 이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어느 사회에서나 태고적부터 감 상 대상과 사용 대상으로서의 음악 문제 때문에 많은 논의가 있었다. libe ral a rt러 mecha nic ar ts:'됴 따지고 보면 이 런 맥 락과 상관된다.

생산에 개입하는 마음은 재료의 불변성을 근거로 하여 가변 세계 를 만들려고 하는 마음이다. 가변 세계가 음악 생산물의 속성이가 때문이다 .28) 마음은 여러가지 생각과 느낌을 안고 있다. 마음은 그것 을 드러내려고 한다. 자기 실현을 위해서 인간은 〈안〉의 〈의화〉를 필요로 한다. 의화에는 언제나 재료가 개입된다. 그러니까 드러냄은 재료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음악의 경우 재료는 소리다라고 사 람들은 말한다. 이 말을 더 정확히하면 재료권에 속할 수 있는 소리 가 음악의 재료라고 하는 것이 옳다 .29) 음악이 무엇인지 참으로 알 고 싶은 사람은 이 지점에서, 마음은 볼 수 없는 것이고 재료는 볼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결국 〈안 보임성〉 과 〈보임성〉의 상호작용 결과가 음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안 보임성〉과 〈보임성〉의 조화를 낳으려고 인간 마음은 〈같게〉 그러나 〈다르게〉, 〈법칙적〉으로 그러나 〈비법칙적〉으로 재료를 얽는다. 음 악의 뼈는 모두 같게 그러나 그것에 붙는 살을 모두 다르게 얽기도 한다 .30)

28) 이강숙의 『음악의 이해』(서울 : 민음사, 1985), pp.3 3-75 에서 이 문제는 논의되 었다. 29) 위의 책. 30) 이강숙의 『음악선생님을 위하여』(서울 : 낭만음악사, 1990), pp .284-92 에도 〈갇 게〉와 〈다르게〉의 의미가 또 E 른 차원에서 설명된다.

얽음에 개입하는 마음은 좋은 얽힘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다. 아무 렇게나 얽을 수는 없다는 마음이다. 그리고 〈좋은 얽힘〉에 구조적 보편성이 있음을 믿는 마음이다멕 재료에는 특수성이 있을지 모르나 얽힘의 방석에는 보편성이 있음을 믿는다. 물론 보편성이 없음을 믿 는 마음도 있다. 그러한 마음은 음악과 음악 아닌 것을 구별할 수 없 는 마음이든가 재료의 다름을 얽는 방식의 다름으로 착각하고 있는 마음이다. 음악의 생리를 아는 마음은 보편성을 믿는 마음이다. 위에 서 언급했듯이 사람에 따라서 재료와 음악을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내용물은 재료가 가공될 때 생긴다. 가공 결과의 다름은 좋은 얽힘 의 구조적 보편성과는 무관한 것이 아니며 재료의 다름 때문에 생 기는 것이 아니다. 내용물이 비보편적 성질을 가지는 재료에 의해서 가공되어지는 것을 보고 마치 보편성 자체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32)

31 ) L. Me y er 의 Emotio n and Meaning in Music( Ch ica go : Un ive rsity of Ch ica go Press, 1956), pp,4 3 -4 5 에서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구조적 공백은 반드시 반대 방향으로 채워지길 원한다는 문제와 상관된다. 32) Schoenber g는 자기 제자에게 조성음악 재료 얽는 연습을 시켰다. 얽는 원리는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제자에게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어 설픈 미학보다 얽는 기술을 터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 말의 의미를 이런 맥 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Arnold Schoenberg (tr. by Roy Ca rter ), Tlreory of Harmony( Berkeley : Un ive rsity of Ca lifor n ia Press, 1983), pp ,7-12 를 참조.

좋은 얽힘의 보편적 구조는 무리 없는 울라감 다음에 무리 없는 내려움이 연결되어 있는 구조다. 그 연결은 위계구조적 차원에서 이 루어지고, 무리 없는 〈커짐〉과 〈작아짐〉의 역동적 관계에서 이루어 진다. 그것은 곧 음악을 담는 그릇의 구조이다. 여기서 〈올라감〉(〈커 짐〉에 해당)의 개념이리든-가 〈내려움〉(〈작아짐〉에 해당)의 개념은 음고 나 음세에만 적용되는 개념이 아니다. 음악을 있게 하는 재료 관련 적 매개변수 모두에 적용된다• 음고가 변수일 경우는 물론 말 그대

로 〈울라감〉이 긴장 조성의 기능을 한다. 화음이 변수일 때에는 주 화음격 화음과 멀어지는 화음일수록 긴장 조성의 기능을 한다. 조성 이 변수일 때에는 주조성 체계로부터 멀어질수록, 미터가 변수일 때 에는 그 단위가 짧아질수록, 템포가 변수일 때에는 빨라질수록, 텍스 처의 경우는 빽빽할수록 긴장 조성의 기능이 발생된다 .33)

33) W. Be rry의 Str u ctu r al Functio n s in Music ( Eng le wood Cli ffs, New Jer sey : Prenti ce -Ha ll, Inc., 1976), p.l I 에서 그것이 찰 설명되고 있다. W. Berr y의 Form in Music( Eng le wood clif fs, New Jer sey : Prenti c e-H all, Inc., 1966) 또한 얽음의 원리에 대한 좋은 책이다.

서양음악의 특정 시기에는 내재적 관계성(요인의 구조적 기능)만을 중요시하는 음악시대가 있었다. 지금도 그러한 음악관이 여기저기서 위세를 떨치고 있다. 물론 음들의 관계성을 중요시하는 음악관보다 음이 어떤 다른 것을 상칭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음악관도 있다. 내 재적 관계성울 중요시하는 것은 악식(같음)보다 형식(다름)울 중요 시하는 것이다언 말하자면 〈콩 주제〉에는 〈콩 음악〉이 나오고, 〈팥 주제〉에는 〈팥 음악〉이 나온다는 식의 이른바 유기체주의와 상관된 다 .35)

34) 이건용이 번역한 아도르노의 「음악분석의 문제들」 『음악과 지식』(서울 : 민음 사, 1987), pp.3 37-59 에서 악식과 형식 개념은 잘 설명되고 있다. 35) 쇤베르크 역시 철저한 유기체주의자다.

음악은 물질 대상이며 동시에 정신 대상이다. 음악은 〈소리나는 수 학〉임과 동시에 〈소리나는 감정〉이다. 〈수학〉은 객체 조건 관련적이 요, 〈감정只곤 주체 조건 관련적아다. 객체 관련 음악은 인간이 수용 을 하든 하지 않든 상관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음악이고, 주체 관련 음악은 인간의 마음에 수용될 때 있게 되는 음악이다. 음 악이라는 어휘를 주체 계열로 사용하면 가치 관련적 사건을 낳고 객 체 계열로 사용하면 사실 관련적 사건을 낳는다. 아무튼 음악이라는 것은 정치 • 문화적 역사와 개인적 역사를 운반하고 있는 인간 마음

이 있고 그 마음의 안에 있는, 규정할 수 없는 느낌과 규정될 수 있 는 생각이 외화된 결과이다. 특정 관습 관련 재료를 통한 자기 실현 의 결과라는 말이다. 음악이 이러하디는 사실에의 인식과 더불어, 음악 본질의 이해를 위해서 우리가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바로 음악을 있게 하 는, 그러나 음악 그것은 아닌, 〈음악 재료〉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다. 다시 말해서 재료가 얽힌 결과에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에의 인식이 며 재료는 물질이기 때문에 주인이.있다는 사실에의 인식이다. 주인 이 누구냐에 따라 효과는 달라진다. 재료의 주인이 〈우리〉가 되는 음악을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재료의 주인 개념 또한 재 료를 얽는 기술 못지않게 음악 본질 이해에서 중요하다. 재료에는 〈우리 재료〉와.〈남의 재료〉 개념이 있다. 〈우리 재료〉의 얽음의 작 업은 지적 작업이지만 〈우리 재료〉의 구함과 관계되는 작업은 윤리 적 작업이라는 사실에의 인식 역시 필요하다. 음악의 본질 이해는 물론 음들의 얽히는 방식에의 이해를 전제로 한다. 음들은 횡적으로도 얽히고 종적으로도 얽힌다 .36) 그것이 어떻 게 얽히든간에 얽힘의 목적은 조화의 얻음이다. 조화 얻음의 방식은 재료의 생리에 따라 달라진다. 조화의 원리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원리로 생리가 다론 재료롤 얽으려고 한다는 데에서 다름이 나온다. 조화는 어울림의 문제와 관계를 가지는데, 이 어울리고 어울 리지 않고의 문제는 물론 인간의 지각 방식에 의존적이다. 음들은 화성법적으로도 얽히고 대위법적으로도 얽힌다• 음악의 본질 이해의 또 다론 방식은 본유 개념을 적용시켜서 이 얽힘의 정체를 알면 가 능해전다 37)

36) 횡적 얽힘의 원리는 대위법, 종적 얽힘의 원리는 화성법과 상관된다. 37) 본유 개념과 관습 개념에 대한 설명은 이강숙의 『음악의 이해』, pp.33- 75 참조.

1.4 .3 〈전체〉는 무엇이냐 여기서의 전체는 〈음악 우주〉를 대상으로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다한 찾아진 대상이 아니라 찾음의 대상으로 삼는 개념이다. 그것을 찾으려는 사람의 마음 속에 몇 가지의 생각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 다. 〈소리 나는 수학〉으로서의 음악과 〈소리 나는 감정〉으로서의 음 악이 하나됨으로써 생각되어질 수 있는 음악, 시간과 공간 안에 존 재하는 음악, 내적 시각과 의적 시각의 통합이 낳는 음악, 대문자 음 악(빈 그릇)과 소문자 음악(찬 그릇)이 하나됨으로써의 음악, 이러한 생각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이런 생각만이 전체 개념을 포용할 수 있다. 부분을 지칭하면서 전체를 지칭하는 것 같은 착각을 하지 도, 전체를 지칭한다고 하면서 실은 부분을 지칭하지도 않아야 하는 것 0] 다.

38) See g er 의 Stu d ie s in Mu si colog y의 6 장 Toward a Un itary Fie l d Theory for Music o logy 참조. 이 책의 뒷 부분에서도 이 6 장을 많이 참조하고 있음. 철학 하는 마음은 언제나 전체를 찾자는 마음이며 음악학이 옳게 되려면 철학하는 마음을 가쳐야 한다.

〈전체〉라는 어휘에도 대문자 전체와 소문자 전체가 있다. 소문자 전체는 특정 학자가 〈하나의 전체〉를 찾았다고 말할 때 생기는 내 용물이다. 대문자 전체는 찾으려는 대상이다. 〈음악을 전체로 보자〉 라는 노력은 결국 소문자 전체를 통해서 대문자 전체를 찾는 노력 일 수밖에 없다• 전체는 언제나 〈하나〉라는 개념으로 존재한다. 〈하 나〉는 그것으로서 통일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살아 있는 실체가 된다. 음악을 전체로 보지 않는 음악학은 〈하나〉의 음악학이 될 수 없고, 그래서 통일성 있는 이론과 유관한 음악학이 될 수 없다. 결 국 살아 있는 실체라기보다 뿔뿔이 홑어져 있는, 상호간에 유기체적 관련성이 없는 정보의 산발적 집합체로서의 음악학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음악학이 옳게 성립되려면 음악을 전체로 볼 수 있 는 〈눈〉이 필요하다. 전체를 볼 수 있는 〈눈 기르기〉 학문이 음악학 이다라고 말해도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체를 볼 수 있는 눈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편의상 종교를 보는 눈을 예로 들기로 한다. 신자의 눈과 비신자의 눈이 있을 수 있고, 종교를 보는 전체적 눈은 신자적 눈과 비신자적 눈을 겸비한 사람 이라는 생각에서이다. 신자적 눈만을 고집한다든가 바신자적 눈만을 고집한다면 그것은 부분을 전체로 착각하는 결과를· 낳을지 모른다 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궁극에 가서는 어느 한쪽을 택했음에도 불 구하고 〈전체〉를 보는 눈이 탄생될 수 있을지 모론다. 그러나 현자 가 되기 전의 범부들은 양쪽 모두를 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종교는 인간의 것이지 신자의 것일 수만은 없다. 음악의 경우 그것이 더욱 명백해전다. 음악은 인간의 것이지 음악가만의 것이 아니다. 음악인 만을 위한 음악을 내적 시각에서 본 음악, 모든 인간을 위한 음악을 의적 시각에서 본 음악이라고 한다면, 음악을 전체로 본다는 말은 내적 시각과 의적 시각을 겸비한 눈이 음악을 본다는 뜻이다. 음악을 전체로 보려는 사람은 이런 생각도 할 수 있다• 시대와 지 역을 초월해서 생각되어지는 모든 음악과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와 지역에서의 삶의 조건지움에 관여되고 있는 음악, 이 모든 음악을 하나로 묶었을 때 생각되어지는 어떤 대상을 생각할 수 있다. 또 이 런 생각을 할 수 있다. 이미 언급했듯이, 인간의 경험과는 상관없이 스스로 자족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수학으로서의 음악〉과 인간에게 특정 효과를 발생함으로써 있게 되는 〈감정으로서의 음악〉, 이 두 음악을 하나로 생각할 때 생기는 어떤 대상을 마음에 떠올릴 수도 있다. 시간 속에 풀어놓을 때 고려될 수 있는 음악과 특정 공간에 위 치시킬 때의 음악을 마음에 떠올릴 수도 있다. 대문자 음악과 소문 자 음악이 하나됨으로써의 음악을 떠올릴 수도 있다. 빈 그릇과 꽉

찬 그릇을 동시에 마음에 떠올릴 수도 있다. 전체는 어떤 것의 명칭 울 대상으로, 그리고 부분은 그 내용물일 수 있고, 또 그 반대일 수 도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마음에 떠오르는 것을 대상으로 삼을 수 도 있다. 부분의 경우도, 그것이 〈하나〉로 존재하는 성격을 떨 때, 〈하나〉라는 의미에서 전체 구실을 할 수 있고, 이런 의미에서의 전 체를 마음에 떠올릴 수도 있다. 음악의 전체를 알고, 그것에 대해서 말을 할 줄 알고, 음악이 하 는 말과 말이 하는 말의 내용을 유사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 음악 학이다러는 언급을 했다. 음악의 전체를 안다는 말은 객체의 속성과 주체의 감수 방식, 객체의 구성 재료의 다원성과 감수 방석 형성의 역사성 • 수동성을 안다는- 뜻이고 이것이 바로 전체를 안다는 뜻이 기도 하다. 여기서 이런 언급을 하고 있는 이유는 전체의 의미를 이 와 같은 맥락에서도 이해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말할 줄 안다 는 말은 말 같은 말을 할 줄 안다는 뜻이며, 이성적, 감성적, 일상적 말을 골고루 그리고 그것들을 조화롭게 얽어서 말을 한다는 뜻이기 도 하다. 말을 옳게 할 때 전체가 그 속에 담기게 된다는 의미에서 말함의 옳음성 역시 전체 운운에서 중요한 기능을 한다. 음악에는 질서가 있다고 한다. 이 질서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대 한 답이 전체의 개념을 밝힐 수도 있다. 질서는 수용자의 수용 방식 과는 상관없는, 독립된 질서로 우선 생각해야 한다. 연주가 낳는 질 서가 아닌, 악보 속에 담겨 있는 음악의 질서를 인정할 수 있다는 뜻 이다. 그러나 질서라는 말이 제기하는 문제는 생각하기보다 쉽게 풀 수 없는 성격을 가전다. 음악에 질서가 있다라는 말이 옳다는 것과 〈갑〉이라는 작품에 질서가 있다는 생각이 옳다는 것은 다르다. 이 말은 질서가 있다는· 것과 무엇이 질서가 되느냐의 문제는 같은 것 이 아니라는뜻이다. 200 센트와 185 센트 음정 관계에는 모두 질서가 있다. 여기서 질서

가 있다는 말의 의미를 풀어 보자. 대문자 질서와 소문자 질서라는 개념을 생각해야 한다. 질서가 있다는 말은 200 센트에는 있고 185 센 트에는 없다라는 뜻이 아니다. 200 이나 185 는 모두 소문자 질서이다. 대문자 질서는 200 과 185 그리고 그 이의의 모든 음정 관련적 음계 롤 전부 포함한 의미로서의 질서다. 음악 재료에 질서가 있다는 말 의 의미 역시 대문자 질서가 있디는- 뜻이다. 물론 소문자 질서둘은 각기 서로 다른 내용물을 가지고 우리 앞에 나타난다. 음악을 전체 로 볼 수 있는 눈은 다름을 같음으로 말할 수 있는 그리고 같음을 다름으로 풀 수 있는 눈이다. 그래서 이 눈은 음악을 전체로 볼 수 있게 하고, 결국 음악학을 할 수 있게 한다• 재료에 질서가 있고, 음 악에도 질서가 있는데, 음악의 질서는 재료의 질서에 종속되는 것이 보통이다. 새로운 재료가 창조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재료는 물리적 약속(수용자의 처지와는 상관없는 약속)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그것에 의 수용 방식 내지 이해에는 역사가 개입된다. 그러므로 음악을 전 체로 보는 눈은 시간 속에 풀어놓은 재료를 볼 수 있을 때 생긴다. 역사성이 전체 개념 운운에 관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체로서 의 음악의 의미와 역할을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음악학이라고 할 때, 이 전체로서의 음악의 의미와 역할이 how 차원에서 행해질 때 에는 감정 관련 실재 세계와 상관된다. 그러나 그것이 tha t 차원의 언어로 번역될 때에는 개념 관련 실재 세계와 상관된다• 전체로서의 음악은 how 와 tha t 차원 모두에서 고려되는 것이다. 자기가 서 있어야 할 장소와 서 있는 장소의 성격 구별이 전체를 보게 하고 못하고의 문제를 결정할 때가 있다. 음악적 사고 반경에 따라 자기가 서 있는 장소 내지 위치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 필요가 이 때문에 있다.

1.4 .4 〈봄〉이 무엇이냐 보는 것 죽 〈봄〉에는 경험적 봄과 비경험적 봄이 있다. 가장 옳은 의마에서의 봄은 비경험적 봄이다 .39) 이 말의 의미를 이해시키기 위 해서 경험의 조건인 선입견 개념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음악을 한다는 말은 음악 관련 선입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음 악학의 경우도 그것과 상관되는 선입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선입견을 버려야 옳은 음악학을 할 수 있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39) 비경험적 봄은 현상학적 봄, 현자의 봉, 자연으로 돌아간 봄이다.

1.4 .4.l 선입견을 가져라 어떤 것이 무엇이냐리는· 물음에 대한 답은 인간이 가지는 선입견 에 의해서 내려진다. 음악학이 무엇이냐라는 물음에 대한 답의 경우 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선입견이라는 어휘의 의미를 옳게 이해하는 사람은드물다. 선입견은 경험의 조건이다. 인간의 마음 속에 〈미리 들어가 있는, 무엇을 보는 견해〉가 선입견이다. 무엇을 보는 견해가 미리 마음 안 에 들어가 있지 않은 경우에는 어떤 대상을 접해도 그것이 무엇인 지 알 수 없다. 그런 것이 인간이다. 갓난 어린아이의 마음 안에는 선입견이 없다. 전혀 없다. 무엇을 보는 견해가 미리 들어가 있지 않 다. 어머니를 보거나 아버지를 보아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 그 사람의 얼굴 형상에 대한 〈미리 보는 견해〉가 없기 때문이다• 말 하자면 〈낯 가림〉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낯 가림을 한다는 말은 동일한 대상을 반복적으로 접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그 대 상에 대한 〈보는 견해〉가 이미 마음 속에 들어가 있다는 뜻이고 그 래서 아버지 혹은 어머니를 다른 사람과 구별할 수 있게 된다는 뜻

이다. 아버지를 보면 〈아버지이구나〉라는 의미가 낯 가림의 덕분으 로 발생될 수 있는 것이다. 특정 음악을 듣고 그것에 의미가 발생되 는 경우도 그 음악에 대한 〈귀 가림〉이 성립되어야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낯 가림만을 하는 것이 인간이 아니다. 모든 사물, 언어, 경험 대상에 대해서 모두 낯 가림을 한다. 조성음 악과 비조성음악이 있고, 국악과 양악이 있는데, 이것들에 대한 〈귀 가림〉을 하지 못하면 우리는 그것들로부터 아무런 의미 발생을 일 으킬 수 없다. 〈낯 가림〉이라든가 〈귀 가림〉은 태어나면서부터 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어릴 때의 경험이 인간에게 중요하다. 소질의 형성 이라는 것은 〈귀 가림〉을 하는 어떤 능력의 성장이라는 뜻 이의에 아무 것도 아니다. 인간의 성장이라는 것은 다양한 선입견의 축적 과정이다. 낯 가림의 범위를 넓혀 가는 과정이며 수정해 가는 과정 o] 다. 인간이 무엇을 본다는 말은, 그냥 보는 것도, 볼 것을 보는 것도 아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 인간이다. 선입견이 시키는 대로 본다. 그러므로 관심 집중 대상을 선입견이 정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한국의 수도는 〈서울〉이다. 그런데 우리가 〈서울〉에 대 해서 말한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서울〉을 머리 속에 넣고 있는 것 이 아니다. 자기가 사는 곳과 보이는 곳, 경험한 곳이 서울이다. 서 울이 자기에게 형성시킨 〈서울 관련 선입견〉이 시키는 대로 보는 서 울이 자기에게 있어서의 서울이다. 현실이라는 말도 그렇다. 현실이 라는 말은 쉽게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이라고 해서 모두 현실 이 아니다. 자기의 현실만이 현실이어서는 되지 않는데, 보통 그렇게 된다• 〈자기 〉의 현실과 모든 〈자기 〉둘이 합친 〈우리〉의 현실이 동일 할지 어떨지 〈자기〉는 모른다. 자기의 선입견이 〈우리〉의 선입견과 같으라는 보장은 없다. 자기의 현실과 우리의 현실이 동일할 때 옳 은 의미에서의 현실이 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이라고 인식하는 그

현실도 그렇게 인식하는 당사자격인 다른 어떤 자기의 인식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주관적 현실(자기의 현실)과 객관적 현 실(우리의 현실)이 동일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주〉와 〈객〉을 동일하게 만들기 위해서 선입견의 의미와 역할을 옳게 이해 하려고 한다. 선입견 없이 못 사는 것이 인간이라는 사실에의 인식 이 중요하고 동시에 자기의 선입견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선입견 역 시 중요하다는 인식에 도달하려는 것이다. 즉 자기의 삶도 중요하지 만 우리의 삶 역시 중요하다는 인식에 도달하려는 것이다. 자기는 우리의 부분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자기의 삶일 수밖에 없다. 우리의 선입견에 자기의 삶이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 자기 선입견을 우리의 선입견에 양보해야 한다. 좋은 우리의 선입견은 살리고 나쁜 우리의 선입견은 없애는 일의 첫 단계가 자기 선입견으로부터 해방 되는 연습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자기의 선입견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자기가 산다. 그러나 그것에서 그치면 안된다. 그것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우리의 선입견에 동참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선입견을 가져야 함과 동시에 그것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하 는 삶을 추구할 때 참 인간의 삶이 있게 된다• 경험적 〈귀〉를 먼저 가져야 음악을 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으로부터 해방된, 비경험적 〈귀〉를 가질 때 옳은 의미에 있어서의 음악학이 가능하다 는 것을 치열하게 인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음악학이라는 어휘를 놓고 입문적 차원에서 의미 발생이 되는 경 우도 마찬가지다. 음악학이라는 어휘로부터 선입견이 작동되지 않으 면 〈음악학〉이라는 말의 의미는 있는 것일 수 없다. 음악학이라는 어휘를 처음 둘어본 사람은 분명히 〈음악학이 무엇이지?〉라고 물을 것이다. 음악이나 음악학에 대한 낯 가림을 하지 못할 것이다. 선입견은 이 때문에 어떤 것에 대한 의미 발생의 전제 조건이다. 인간에게 필요 불가결한 것이다. 나는 Gadame 뎨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하고 싶다. 그렇다면 왜 선입견을 가지지 말라는 말이 있는가. 선입견이라는 어휘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미리 들어가 있는 견해〉를 누구나 가지고 있다. 다만 〈미리 들어가 있는 견해〉가 잘못된 경우 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좋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잘못됐다고 판단하는 판단의 근거가 판단자가 가지는 선입견 때문일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인간은 선입견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다. 우리는 〈미 리 들어가 있는, 보는 견해〉 없이는 어떤 것도 볼 수 없다• 이미 언 급된 것이지만 조성음악의 감상은 〈조성감〉이라는 것이 마음 안에 미리 들어가 있을 때만 가능한 것과 같다. 선입견이 경험의 조건, 이 해의 조건인 것이 사실이지만, 잘못 이해케 하는 선입견을 버리려고 데카르트 같은 사람은 모든 선입견을 의심했었다. 모든 이해됨을 거 부했던 것이다. 동양 문화와 서양 문화가 다르다는 것은 세계를 보는 견해를 〈미 리 보는 차원〉에서 달리 가졌다는 뜻이다. 전통과 문화는 선입견 제 공 역할을 한다. 아프리카 사람과 한국 사람이 여럿 모인 곳에 가면 한쪽에서는 첫인상이 발동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발동되지 않는다. 이 말은 그들에 대한 선입견의 유무와 관계된다. 말하자면 경험 형 식이 성립되기 전에는 대상에의 의미 발생이 첫인상의 차원에서라 도 생기지 않는다• 어떤 것을 대하기 전에 그런 류의 형상이 미리 마 음 안에 들어가 있지 않으면 의미 발생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현대 음악 이해 문제에 있어서 지각적 잉여성 개념과도 통하는 것이 선 입견 0] 다 .4 0)

40) L. Me y er 가 말하고 있는 redunduncy 개념의 이해가 필요하다. 이강숙의 『음 악 선생님을 위하여』, pp .263-67 에 설명이 되어 있다.

1.4 .4.2 어떤 선입견을 가져야 하나 음악학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할 때 우리들아 가져야 할 선입견은 어떤 것인가. 여러가지 종류의 선입견이 있다. 그러나 편의상 다음 문장의 의미와 상관되는 선입견을 가지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다. 음악학에는 체계적 음악학과 역사적 음악학이 있다는 문장이 그것이다. 물론 그러한 말이 있다는 사실에 접하는 것보다 왜 그런 말이 나왔는가에 대해서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나 체계라든가 역사라는 어휘에 대한 낯 가림을 하루아침에 할 수는 없다. 동일한 대상을 여러 번 접하고 나서야 인간은 낯 가림을 하는 것이 아니든 가. 한번 낯 가림을 한 후면, 같은 류의 대상을 보는 즉시 의미 발 생이 된다. 우리는 어떠한 분야에서나 연습하는 것만큼 배운다. 체계 와 역사라는 어휘에 친숙해져야만 음악학을 할 수 있다는 뜻은 아 니다. 오히려 나쁜 선입견에 구속되게 할 위험이 있을 수 있다. 그 러나 다른 한편 사람들이 보통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어떤 것이 있 으면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두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 앎의 대상이 어떤 것이든간에 우리가 그것을 알려고 하는 경우에 인간은 반드시 그〈것〉을 〈시간〉과 〈공간〉 속에 풀어놓고 그〈것〉의 정체를 밝히려고 한다. 〈공간〉에 그〈것〉을 풀면 그〈것〉에의 체계적 관심 (공시적 접근), 〈시간〉 속에 풀면 역사적 관심 (통시적 접근)을 갖 는 것이 된다. 공시적 개념과 통시적 개념은 상호보완적 개념이다. 어떤 〈것〉이 있고 그〈것〉을 알고 싶을 때, 우리는 그〈것〉의 구조 체계를 특정 시 기에 국한하여 관찰할 때가 있다. 여기서 특정 시기라고 하는 것은 선 개념으로서의 시기가 아니다. 시간이 연속되고 있는 흐름을 고려 속에 넣은 시기가 아니다. 선이 아닌, 점 개념으로서의 시기를 뜻한 다. 이러한 특정 시기에 국한하여 어떤 〈것〉의 구조 체계를 관찰하 는 것을 공시적 관찰이라고 한다. 통시적 관찰은 그 뜻울 달리한다.

통시적 관찰에서는 시간의 경과 개념을 관여시킨다. 어떤 〈것〉을 점 이 아닌, 선 위에 놓고 본다는 뜻이다. 어떤 〈것〉의 구조가 아니라 기능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하여 왔는가를 관찰한다. 어떤 〈것〉에 구조가 있을 때, 어제의 구조와 오늘의 구조에 어떤 변화가 있는가 에 대한 관찰을 한다. 그것이 가능해지려면 물론 특정 시기의 구조 를 관찰한 후에라야 한다. 공시적 관찰 없이는 통시적 관찰이 불가 능해진다는 말이 이 때문에 나온다. 상호보완적 관계라는 말도 이 때문에 나온다. 정지되어 있는 공간 속에 어떤 것을 고정시킨 후 그 것을 상대할 때에는 그것의 체계, 흐르는 시간 속에 풀어놓고 그것 울 상대할 때에는 그것의 역사를 취급하는 격이 되는데, 전자는 공 시적, 후자는 통시적 접근을 취한다고 보면 된다. 정지되어 있는 공 간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도 시간 속에서 언제나 흐르고 있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많은 정지된 공간적 존재의 순간들이 있기 때문에 이들은 상호보완적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다. 특정 체계를 가진 어떤 대상에 대해서 알려고 할 때, 그 체계를 알 려면, 그 체계의 구조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그 체계 형성 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체계의 역사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다. 잘 생각해 보면 역사를 연구하는 역사학도 하나의 체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학아 무엇이냐, 그〈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을 때 우리는 체계와 상종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학이 무엇이냐라고 묻 는 것이 아니라, 역사학이 어떻게 그리고 왜 생겼느냐라고 물을 수 도 있는데, 그렇게 물을 때에는 역사학의 역사를 묻고 있는 것이다. 역사연구와 관련되는 많은 연구 업적이 실상은 역사적 음악학의 소 산이라기보다 체계적 음악학의 소산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한다. 어떤 〈것〉을 알고 싶을 때, 그〈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을 수 있고, 그〈것〉이 어떻게 또 왜 생겼느냐라고 물을 수 있다는 것인데, 그것

울 음악에 적용시켜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 음악이 무엇이냐라고 물을 때에는 체계적 음악학을 하는 격이 되고, 음악이 어떻게 또 왜 생겼느냐라고 물을 때에는 역사적 음악학을 하는 격이 된다. 여기서 〈음악〉이라 함은 그것을 하나의 영역으로 보고 그 영역과 상관되는 모든 것들을 의미한다. 그래서 음악이 무엇이냐라고 묻는 그 물음이 세부적으로 나누어짐으로 해서, 체계적 음악학이나 역사적 음악학 속에서 분과학이 생길 수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각 분과학은 그 속에서 각각 다시 체계적 접근과 역사적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는 사 실 또한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다. 체계는 부서지지 않고 우리 앞에 〈하나〉의 전체적 모습을 띠고 나 타난다. 그리고 존재한다. 그러나 때로는 부분으로 부서져서 그 속을 보이기도 한다. 우리가 그〈것〉이 무엇이냐라고 묻는 것은 부서점으 로써 나타나는 〈속〉의 모습을 보자는 것이 아닐 때가 있다. 〈하나〉 가 되는 구성 요소를 찾으려고 할 때도 있지만, 그〈것〉의 부분이 종 합되어 〈하나〉되고 있을 때의 모습만을 보자고만 할 때가 있다. 〈하나〉가 되고 있을 때의 모습을 알고 싶어한다는 말은 그것을 분 석하겠다라고 말한다기보다 정의를 내려보고 싶다는 말을 하는 것 과 같다. 그러니까 음악학이 어떻게 또 왜 생겼는가를 묻지 않고 그 것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는 것은 따지고 보면 음악학의 정의에 관 심이 있다는 뜻이다. 물론 〈물음〉이 제기하는 대상과 〈답〉이 마련하 는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옳은 정의를 얻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 래서 여러 종류의 정의가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그것은 전부가 정의하는 사람의 사고 반경 • 선입견 • 선 이해가 다르기 때문에 생 기는 현상이다. 바람직한 음악학의 정의를 소개하기 전에 인간 마음의 속성에 대 한 언급 하나를 더 하기로 한다. 인간의 마음은 개념을 키우는 공장 이며 개념 어휘의 저장소다. 갓난 아이의 마음은· 아무 것도 저장한

것이 없다. 그래서 그 마음을 티 없는 〈무죄〉의 마음이라고 일컫기 도 한다. 그러나 무엇을 저장하는 순간 그 인간은 특정 선입견을 가 지게 되는데, 선입견을 가전다는 말은 그것과 다론 선입견이 있다는 말을 하는 격이 되고 죽 다른 이해 방식의 있음을 인정하는 격이 되 고, 이렇게 말한다는 것은 벌써 다른 선입견의 입장에서 보면 〈죄 있는 눈〉을 가전 꼴이 되므로 〈유죄〉 운운을 하게 된다. 다시 말해 서 관념을 저장하지 않은 마음은 무죄의 마음이지만, 저장을 하게 되는 순간 인간의 마음은 유죄의 마음이 된다. 만일 선입견이 이 세 상에 단 〈하나〉뿐이라면, 관념을 저장한 마음이 유죄일 수 없다. 문 제는 그것이 〈여럿〉이기 때문에 서로간에 유죄 선고를 하는 것이다. 인간은 유죄일 때 비로소 인간 구실을 한다. Gombr i ch 의 Ar t and Illus i on 에서도 이런 논의가 나오는 줄로 안다. 생각이 〈안〉에 있으면 소통이 안된다. 이름 붙여져서 생각이 〈밖〉 으로 드러나야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진다. 그러니까 소통 역할을 하 • 는 생각은 언어화된다. 그래야 인간은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 언어를 통한 소통은 특정 방식의 관심 대상을 전제한다. 이 말은 소통이 되 려면 소통 도구인 언어가 자기 구실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관심 대 상에 구별성과 고정성이 부여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음악학이라는 어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휘에 의미가 생기려면 그 의미를 수용 하는 수용자가 그·어휘가 사용될 때 특정 방식으로(느낌으로든 생각 으로든) 수용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음악학이라는 어휘에 의미 발생이 된다고 할 수 없다. 앞서(기존의 정의들 부분) 언 급했듯이 대문자 음악학은 음악학의 그릇이다. 그 그릇 속에 담기는 것이면 무엇이든 음악학이 된다. 담긴 음악학은 대문자 음악학이 아 니고, 소문자 음악학이다. 그러니까 소문자 음악학은 음악학자들이 하는 활동 내지 그 활동의 결과요 그 결과의 나타남이다. 대문자 음 악학은 음악학이 정의되어야 할 정의 대상이요 소문자 음악학은 정

의된 결과다. 우리는 소문자 음악학을 통해서만 대문자 음악학이 무 엇인지 안다. 대문자 음악학이라는 그릇의 존재 때문에 우리는 소문 자 음악학을 추구한다. 지상에 있는 모든 음악학 관련 기록들은 모 두 소문자 음악학의 일종이다. 음악이라는 어휘 역시 그러하다. 우리 는 음악이라는 어휘를 빈 그릇으로서만 사용할 수 없다. 음악이라는 어휘는 반드시 내용물과 더불어 사용된다. 다시 말해서 소문자 음악 을 통해서 대문자 음악 운운을 할 수밖에 없다. 1.4 .4.3 선입견을 버려라 그런데 하나의 선입견만 가지는 것은 위험하다 .41) 서로 다른 여러 가지의 선입견을 갖는 것이 가장 옳은 선입견이 무엇안지롤 알 수 있게 한다. 그래서 결국 한정된 선입견은 버리는 것이 좋다. 버린 〈눈〉과 〈귀〉를 가질 때 진정한 〈자아〉를 통한 음악 및 세계의 이해 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41) David Hume 의 Of the Sta nd ard of Taste 참조.

음악학을 체계와 역사라는 망을 통해서 보는 것도 좋지만, 영역과 방법이라는 망을 통해서 보는 〈눈〉도 가질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서 음악학을 〈영역〉으로 보는 시각과 〈방법〉으로 보는 시각, 이 두 시각에의 정확한 이해 역시 옳은 음악학을 수행하기 위해서 절대로 필요하다. 영역으로서의 음악학과 방법으로서의 음악학이라는 말은 무슨 뜻 인가. 우리는 그〈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었고, 그〈것〉이 어떻게 또 왜 생겼냐라고 물었다. 체계와 역사를 물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것〉 이 무엇이냐라고 물을 때, 그것에의 정의 내리기 작업과 성질이 다 론 탐구를 할 수 있다. 그〈것〉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느냐, 구성 요 인이 무엇이냐, 그〈것〉을 전체라고 하면, 그 〈전체〉의 부분이 무엇

이냐, 부분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고려 속에 넣으면 몇 개의 부분이 그 전체 속에 있게 되느냐라는 식의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다 시 말해서 체계적 음악학이 무엇이냐라고 물었을 때, 체계적 음악학 을 정의함으로써 그 질문에 대답하는 방식이 있기도 하겠지만, 체계 적 음악학을 〈전체〉로 보면 그것의 부분은 몇 개냐라고 물을 수 있 다는 것이다. 체계적 음악학의 분과학이 무엇 무엇이냐라고 물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음악학이 무엇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느냐라고 물 었을 때, 우리는 체계적 음악학과 역사적 음악학이 있다는 식으로 음악학의 부분을 크게 두 개로 나눈 일이 있는데 그것 역시 영역 찾 기의 문제였던 셈이다. 지식을 얻고 싶다고 할 때 전체 지식 운운을 할 수 있으려면 그 전체를 이루는 부분적 영역 찾기의 문제는 중요 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지식 지도를 그리려고 하면 지도 속에 포 함될 모든 지역들이 찾아져야 가능·한 것과 같다. 이런 의미에서 체 계적 음악학을 전체로 보고 그것의 부분이 무엇이며, 역사적 음악학 울 전체로 보고 그것의 부분이 무엇인가라고 우리는 물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음악학이 무엇이냐라고 묻는 것에 답하는 방식으로서 음악 관련 지식 지도 그리기를 하려고 할 때 그 지도 속에 어떤 부 분들이 포함되어야 하는가라는 것 자체를 하나의 연구 대상으로 삼 는 학문이 지식 영역 탐구로서의 음악학이 된다는 것이다. 무엇을 알아야 하고 무엇부터 알아야 하고 무엇을 어느 정도 알아야 음악 학이 하나의 전체로서 존재하게 되느냐라는 것을 묻는 〈학〉이 영역 으로서의 음악학인 것이다 .42) 체계와 역사를 묻는 것도 중요하지만, 알아야 할 영역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도 중요한 것이다. 많은 음악 학자들은 영역의 문제에 대한 연구를 했다. 그래서 자기 나름대로의

42) GroveD ic tion ary , p .837 에서 music o logy as an area of knowledge 운운이 이 때 문에 있다.

학설을 만들었다. 체계적 음악학과 역사적 음악학이라는 영역이 음 악학 분야 안에 있다라는 것 역시 하나의 영역 관련 학설인 것이다. 음악을 물리적, 심리적, 심미적, 문화적 현상으로 취급하는 선입견은 연구 영역의 범위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과 달리 정한다. 음 악을 예술로 정의하는 사람과 문화라고 정의하는 사람은 음악학적 연구 영역의 설정 자체를 달리할 것이다. 그래서 〈지식 지도 그리 기〉가 음악학의 연구 대상이라고 생각히는- 음악학적 선입견이 있고 연구 영역의 명시를 위한 연구를 중요한 연구로 생각하는 선입견이 있다. 대상 영역 운운에서, 그것이 문화이든 예술이든, 〈음악〉을 연 구 대상 영역으로 생각하는 사고 반경과 〈음악을 하는 사람〉을 연 구 대상 영역으로 생각하는 사고 반경은 서로 다론 음악학을 낳는다. 영역 설정 자체를 연구하는 아른바 대문자 음악학의 할일은 참으 로 재미있는 분야가 아닐 수 없다. 그릇으로의 음악학은 연구 결과 가 나오자마자 소문자 음악학이 되어버리는 숙명을 안고 있지만 음 악학이라는 그릇이 어떻게 생겼느냐를 연구하는 음악학이 있다. 채 워지기 위해서 있는 것이 식욕이지만 식욕이라는 것은 영원히 채워 질 수 없는 것이듯이, 대문자 음악학은 채워지기 위해서 있는 그릇 일 뿐 영원히 채워질 수 없는 그릇이다. 제작물에서 제작자로 연구 대상이 바뀌게 되는 것도 결국 영역 설정과 관계되는 선입견의 고 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새삼 선입견의 역할이 중요 하다는 것을 알수 있다. 방법으로서의 음악학이란 무엇인가. 알아야 할 범위를 결정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학문 영역이 되기도 하지만, 알아야 할 범위가 결 정된 후에 그것을 아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알 필요도 있다. 아는- 방 법이 틀리면 우리는 어떤 것을 옳게 알 수 없다. 자연이 알 대상인 경우는 자연과학적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종교적 방법으로 알려고 하면 문제가 생긴다. 신을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알려고 해도 문제가

생긴다. 음악을 체계로서 혹은 역사로서 알려고 할 때 혹은 그것들 의 부분 체계를 알려고 할 때 종교적 방법 혹은 자연적 방법이 옳 은 방법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 자체가 학문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방 법으로서의 음악학은 바로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 음악학이다. 분석 적 방법, 이론적 방법, 역사적 방법 운운을 하게 되는 이유도 여기 에 있다 .43) 여러 방법 중 어느 것이 옳고 그릇되는가의 문제 자체를 다루는 것이 바로 방법으로서의 음악학인 것이다. 그러므로 옳게 알 기 위해서는 앎의 대상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죽 대 상 영역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방법의 앎 역시 중요하다. 그래서 영역으로서의 음악학과 방법으로서의 음악학 운운이 중요하게 된다.

43) GroveD ic tio nary , p .836 에서 music o logy as scholarly meth o d 운운의 이유가 여 기에 있다.

과학적 방법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것은 음악학에서 상식이지만, 과 학 중에도 정신과학이냐 자연과학이냐의 문제 때문에 방법으로서의 음악학은 열띤 토론을 전개한다 .44) 또 영역이 바뀌면 방법도 바뀌어 야 하는가, 바뀌지 않아야 하는가라는 것 자체가 방법으로서의 음악 학이 연구해야 할 문제다. 〈사물〉과 〈인간〉이 연구 영역일 경우 연 구 방법이 〈하나〉아어야 하는가 〈둘〉이어야 하는가의 문제 역시 방 법론의 문제이다. 그래서 방법으로서의 음악학에서 인류학적, 정치 학적, 경제학적, 경영학적, 행정학적, 사회학적, 현상학적, 기호학적, 언어학적, 해석학적 방법론 운운을 하게 된다• 전통적으로 음악학은 역사학적 방법을 중요시했다. 그래서 과격한 역사주의가 대두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젠 역사학적 방법론만이 음악학적 방법론일 수 없다 는 것을모두 안다.

44) 딜타이, 꽁트, 헴펠, 드레이 등 많은 학자들이 이 문제에 관십을 보냈다.

인간의 성장 과정은 역사를 가전다. 서로 다른 역사는 엄청나게

상이한 〈사고 반경〉을 낳는다. 알고 싶은 대상이 있다고 할 때, 그 것을 어떻게 하면 가장 옳게 아는가를 문제의 핵으로 하는 사람의 사고 반경은 〈방법〉의 문제를 음악학의 우선 순위 제 1 로 한다. 무엇 이 알고 싶은 대상이 되어야 하느냐를 문제의 핵으로 하는 사람의 사고 반경은 〈대상〉의 문제를 음악학의 우선 순위 제 1 로 한다. 알 필요 없는 것을 알아 보았자 그것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리고 무엇부터 아는 것이 중요하냐라는 식의 질문 자체를 음악학의 연구 과제로 삼으려고 하는 자가 〈대상〉 위주적 음악학을 하는 사람이다. 〈방법〉 위주적 음악학을 하는 사람은 〈소문자 음악학〉을, 〈대상〉 위주적 음악학을 하는 사람은 〈대문자 음악학〉을 하는 사람이라고 도 볼 수 있다. 〈소문자 음악학〉이 음악학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음악학은 음악학자의 〈활동〉 없이 〈있울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다. 〈활동〉을 학문적으로 해야 한다는 사고가 밑바닥에 깔려 있는 음악학에의 정의를 좇는 사람이다. 음악학은 〈활동〉 의존적 성격을 띠는 것이라는 것이다. 대문자 음악학이 음악학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활동〉과는 독립되어 있는 〈지식의 영역〉이 있을 것으로 믿 고 그것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저자는 둘이 상호의존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소문자 음악학과 대문자 음악학 이 같이 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고 반경의 필요성이 중요하다. 음악학은 그 자체가 하나의 체계다. 그러므로 음악학이 가능하려 면 무엇보다 사고 체계의 확립이 중요하다. 사고 체계라는 것은 무 엇을 의미하는가. 사고 체계는 이미 있는 것의 발견인가, 만들어가는 것인가. 옳은 답을 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언급된 것의 요약이 필요 하다. 저자는 체계, 역사, 영역, 방법, 기능, 이 다섯 가지의 개념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사고 체계 확립에 결정적 기여를 한다고 믿는 다. 무엇이든 그렇지만 우리는 어떤 〈것〉을 전체로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음악을 전체로 보는 눈이 음악학에서 필요한 것은 말할 필요 가 없다. 여기서 전체라는 말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서 생각되어지 는 모든 음악과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와 지역에서 인간 삶의 조건 지어짐에 기여하고 있는 음악, 이 모든 음악을 하나로 묶었을 때 생 각되어지는 음악을 뜻한다. 그러니까 앞에서도 언급한 것이지만, 음악학은 전체를 보는 〈눈 기 르기〉 학문이다. 1.4 .5 〈언급〉이 무엇이냐 언급은 음악학의 어머니다. 생각이 〈안〉에 있으면 소통이 안된다• 이름 붙여져서 생각이 〈밖〉으로 드러나야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진 다. 그러니까 소통 역할을 하는 생각은 언어화되어야 한다. 그래야 인간은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 언어를 통한 소통은 특정 방식의 관 심 대상을 전제한다. 이 말은 소통이 되려면 소통 도구인 언어가 자 기 구실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관심 대상에 구별성과 고정성을 부 여해야 한다는 뜻이다. 음악학이러는- 어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 휘에 의미가 생기려면 그 의미의 수용자가 그 어휘가 사용될 때 특 정 방식으로(느낌으로든 생각으로든) 수용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음악학이라는 어휘에 의미 발생이 된다고 할 수 없다. 정치가의 직업은 말하는 일이라고 한다. 참말과 거짓말 중 어느 말을 전문으로 하는 것이 정치가인지 모른다. 〈말이 된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 역시 〈말할 수 있는 능력〉의 의미에 두 가지가 있음 울 전제하고 있다. 본유능력으로서의 말할 수 있는 능력 죽 말을 배 울 수 있는 능력 (이 능력으로 인간은 각기 특정 말을 구사하게 된다. 그 러나 이 능력 그 자체는 특정 언어 구사능력은 아니다. 구사력의 근거일 뿐 이다)과 관습능력으로서의 말할 수 있는 능력 죽 특정 언어 구사능력

이 그것이다. 정치가뿐만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 말을 한다. 음악의 세계에서 도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음악가도 말을 하고 음악학자도 말을 한다. 인간은 무엇을 만들기도 한다. 음악을 만들기도 하고 〈언급〉을 만 둘기도 한다. 음악 만둘기에는 작품 만들기, 연주 만들기, 감상 만들 기 같은 것이 있다. 연주한다, 감상한다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제대 로 되는 연주나 감상이고자 할 때에는, 작곡이 제대로 될 때 작곡이 라고 하듯이, 인간 마음 속에서 그것들이 옳게 만들어질 때 가능해 진다. 언급 만들기에는 이성언급, 감성언급, 논증언급 만들기 같은 것 이 있으나 이것들에 대해서는 뒤에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45)

45) 이미 여러 차례 언급한 대로 See g er 의 Stu d ie s in Musico logy , pp.16- 30 참조 바람.

〈언급〉 역시 만들어진다. 만들어전다는 의미에서 그 성격이 작곡 과 같고, 글 쓰는 것과 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만드는 과정에 작용 되는 재료와 그 재료의 생리이다. 언급의 생리는 조직이 허술하다는 것이 특칭일 뿐이다. 음악학은 〈시작〉이 어디인가를 문제로 삼는다. 〈시작〉이 어디냐에 따라서 〈도착〉 지점이 달라진다는· 중요한 문제에의 인식이 요청되 기 때문이다. 연역적 원리 같은, 하나의 근거 (이 근거 찾기 자체가 힘 드는 일이 되겠지만)에서 〈시작〉하는- 것과, 근거는 우선 둘째로 놓고 특정 목적을 앞세워 그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은 벌써 성격이 다 르다. 둘 사이에 있어서는 도착지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가령 구조 접근에서 시작하면, 기능문제에의 앎과 관계가 깊어질 수밖에 없는 기능 분석 같은 것은 망쳐버리게 되고, 〈사실〉에서부터 시작하면 〈가 치〉에 도달하기 힘들 위험이 있다. 〈시작〉이 이렇게 문제가 되니, 어 디에서 시작해야 가장 옳은 것인가라는 질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 다. 〈처음〉에서부터 시작하려니, 어디가 처음인지 알 수가 없어서 겨

정이고, 〈끝〉에서부터 시작하려니 그것 역시 잘 보이지가 않으니 겨 정이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의 나, 알면 아는 대로의 나,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 이러한 〈나〉라는 사람이 서 있는 지점을 그저 어정쩡 한, 아는 지점도 모르는 지점도 아닌, 중간 지점이라 말할 수 있다 면, 시작은 그 중간 지점에서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중간 지점에서부터 사방 팔방의 모든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음악학에서 이 중간 지점은 어디에 있는가. 음악학적 〈교 차로〉라는 어휘가 있는데, 이 〈교차로〉가 바로 그 중간 지점이다. 사 람은 너나할것없이 교차로에 서 있을 때가 있다 .46)

46) See g er 의 Stu d ie s in Mus ico logy , pp.45- 64, p.1 03 참조.

언급자에게 있어서의 교차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언급자가 언급 을 해야 한다는 말은 어디로인가 향해서 말을 해나가야 한다는 뜻 이다. 어디로인가 향해서 출발을 해야 하는, 그 출발 지점은 언급자 가 언급을 할 때 혹은 언급을 해야 할 때, 자신의 위치를 정해 놓는 〈상황〉과 관계된다. 회의 같은 것을 할 때 특정인의 발언을 지지하 겠다라고 사전에 자기의 입장을 정해 놓고 있는 상황 같은 것에 비 유할 수 있다. 정치적 홍미나 자기 이익 때문이 아니고, 가장 옳은 사고 과정을 거치고 싶고 그래서 옳은 결론을 내리고 싶어할 때 자 기가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가가 문제가 될 때가 인간에게 있다. 이런 문제가 어떠한 성격을 띠느냐에 따라 상황의 성격이 결 정된다. 소통 수단을 사용하기 시작하려 할 때, 어떠한 소통 수단을 사용 하느냐의 문제도 상황의 위치 문제와 상관된다. 〈음악〉이라는 소통 수단에 대한 언급을 하는 데 필요한 도구인 〈말〉을 사용하려고 할 때(이 말이 그것 자체로 또 다른 하나의 소통 수단이라는 점을 기억해 두

어야 함), 언급자가 자기를 어디에 놓으려고 하는지, 그 놓음과 관련 되는 상황이 결국 교차로가 된다. 교차로는 현단계의 개념과 상관된다. 사회와 개인의 현단계가 성 의 있게 만나는 지점이 교차로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음악학자 없이도 음악은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는데, 언급이니, 교차 로라느니 하면서, 왜 이렇게 말이 많은가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 것 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말이 많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하는 말 도 결국 말이고, 왜 이렇게도 말이 많은가라는 것도 말인 것이지 음 악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고, 왜 이렇게도 말이 많은가라고 말을 하면서 음악만 하겠다는 태도를 취 하는 사람은 나쁘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후자의 득세 때문에 해야 할 말 자체를 하면 되지 않는다는 풍토 형성에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위에서 언급된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다. 말이 필요 없다, 말을 해야 한다라는 주장이 이미 전부 말이다. 인간 세 상에는 어차피 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결국 어느 쪽의 말이 옳은 가가 문제일 뿐이다. 음악 관련적 언급 연구가로 자처해야 할 음악학자들은 단순한 〈말 놀이〉만을 하고 있어서는 되지 않는다. 〈놀이 연습〉을 열심히 함으 로 해서 〈편견〉 고치는 약을 발견해야 한다. 약 발견의 필요성에 대 한 자각은 교차로 운운이 편견이 아니길 바라는 생각을 낳는다. 음 악학자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음악과 음악학에 대해서 정말 고 칠 수 없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성찰적 생각을 해본다. 음악 학자라는 사람은 원래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는 사 람, 애초부터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 쪽이 오히려 편견으로부터 해 방될 수 있다고 말해야 할 정도라고 한다면, 음악학자의 속성이 원 래 그런 것이라고 한다면, 편견을 완벽히 고칠 수 있는 약은 처음부 터 없다는 뜻이 된다. 이 말은 가치 관련적 판단에는 원래 편견이 언

제나 붙어다닌다는 말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말은 과연 무슨 뜻인가. 주체는 말을 하고, 객체는 말을 하지 않는다. 주체인 인간은 말이 많고, 객체인 자연은 말이 없다. 또 다른 하나의 주체일 수 있는 음 악학자는, 말이 없는 음악어i 대해서, 말을 한다. 예술적 말과 과학적 말은 서로 다르다. 과학은 주체의 주관적 말로는 성립되지 않는다. 객체간의 운동법칙 관련적 관계성의 발견 같은 것으로 성립된다. 그 래서 과학은 〈사실〉을 낳는다. 그러나 인간은 대상 관련적 〈사실〉만 상관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이리는· 것들과 상관하는 주체가 인간 이니까, 인간은 사실 그것보다 사실의 〈가치〉를 인정하는 당사자인 인간을 더 중요시할 때가 있다. 편견 고치는 약이 완벽히 발견된다 고 해도 문제 해결이 여전히 반밖에 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편견을 가지면 되지 않는 영역은 사실의 영역이지 인간 마음 관련적 가치의 영역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시비가 여기서 끝날까가 문제이다. 우리 인간이 가치 관련적 편견을 완전히 의면할 수 있을까라는 말이다. 오히려 가치 관련적 편견을 고치는 약의 발 명이 음악학자를 위해서뿐만이 아니라 인간 모두를 위해서 더 필요 한 것이 아닐지 모론다. 사실 관련적 말은 편견을 무서워해야 하고, 가치 관련적 말은 편견을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여기에 음악학 이론 정립의 어려움이 있다. 말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그리고 말은, 말을 쓰는 사람의 마 음에 복종한다. 말이 아무리 정확하게 되어진다고 해도 그 말은, 말 쓰는 자의 마음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말을 쓰는 사 람의 세계관 같은 것에 복종한다. 그러므로 정확한 말이라고 해도 문제가 있다. 편견으로 말하자면, 목적의 편견이 수단의 편견보다 더 무섭다. 말을 하지 않는다면 몰라도, 또 그 말이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몰라도, 일단 말을 하는 경우에는 화자의 세계관 내지 음

악관이 갖는 편견은 참으로 무섭다. 그렇다면 말이라는- 것은 처음부 터 누구의 것이든지 무조건 믿지 않아야 한다는 말인가. 무조건 믿 지 않는 일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중에서 가장 잘하는 일이 될 수 있 다는 말인가. 그것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고 방식이야말로 오 히려 더 위험한 편견일 수 있다. 말이면 무조건 믿지 않으려는 태도 도 일종의 편견이겠지만 말로 이 세상의 모든 일을 전부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태도 역시 일종의 편견이다. 편견이라기보다 현실을 의 면하면서, 〈말로 하는 마술세계〉 속에서 혼자 심취해 있는 사람이 가지는 태도일 수밖에 없다. 위대한 철학자둘은 모두가 말의 명수이 다. 그들의 대부분은 말로 여러가지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실제 로 해결한 것도 많다. 그러나 철학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갖가지의 철학 체계는 결국 극복 대상이 되고 만다. 더 옳은 말로 보강되어야 하는 운명에 놓이게 된다든가, 완전히 무시되어 버리는 철학이 되어 버린다. 그러니까 말을 믿지 않으려는 편견도 버리고 말로 모든 문 제가 해결되리라는 꿈 같은 것도 버려야 한다. 우리가 취할 태도는 그러니까 또 한번 데카르트가 되는 길과 통할 수밖에 없다. 데카르 트의 이론은 극복되어야 하는지 모르지만, 그의 태도는 아직도 유효 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이다. 모든 말을 의심하되,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말의 발견을 위해서 끝없는 노력을 하겠다는 결심이 중요하다. 학문다운 학문의 뼈대를 이룰 수 있는 근거는 오직 이 결심에서밖 에찾을수없다. 좀 더 계산된 생각이 동원된다면 디음괴- 같은 논리를 펼 수 있다. 회의주의를 무조건 궁극적 목적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최선의 현단 계적이고 현실에 맞는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 서, 감기 들지 않을 상태의 온도에 비유될 수 있는, 적절히 수정된 회의주의가 사고의 바탕이 될 수도 있다. 적절히 수정된 회의주의를 들고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이 이의에도 있다. 인간이 아무리

참의 발견을 위해서 회의주의를 소중히 여긴다고 하더라도, 자기가 이미 믿고 있는 어떤 것에 대해서는 수정된 회의주의조차도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음악가가 음악의 가치를 믿고 덤비 는 경우, 그것에의 믿음에 수정된 회의주의를 적용시키라고 아무리 권유를 해도 그 권유는 먹혀 들어가지가 않는다. 음악가가 음악의 가치를 믿고 덤빌 수 있을 정도로 음악에는 이 미 기득권 같은 힘이 있는데, 왜 음악 언급의 문제가 이렇게 복잡하 게 얽히는가. 그 이유는 이렇다. 음악가끼리의 입장만 있다면 문제는 그렇게 어려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음악학자는· 음악철학적 입장을 의면할 수 없다. 음악가이기만 하면 자기 갇 길로 향해서 가버리면 된다. 그러나 철학적 입장을 외면할 수 없는 음악학자의 생리는 음 악가의 입장과 비음악가의 입장이 갈리는 교차로에 서 있어야 할 운 명에 놓인다. 음악학자는 음악을 아는 사람도 상대를 해야 하지만 음악을 모르는 사람도 상대를 해야 한다. 그래서 음악 언급의 문제 가 어려워진다. 음악을 믿는 음악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음악학적 교 차로에 서 있는 사람이므로 음악에의 믿음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 를 함부로할 수가 없다. 언급은(죽 기표의 활동에 해당되는 소통 수단은) 언급 그것이 아닌 것 (기의에 해당되는 의미 수용 내용으로, 소통 목적임)의 소통을 위해서 사 용된다. 음악 언급의 경우는 그렇다면 어떤가• 음악 기의의 소통을 위해서 음악(음악 기표에 해당되는 음 현상)이 있는 것이 아닌가. 말할 것도 없이 음악에도 기표가 의미하는 기의가 있다• 그러나 언급 기 의와 음악 기의가 동일한 것인가가 문제이다. 우리는 누구나 음악(기표에 해당되는 음악)의 의미 (기의에 해당되는 음악)를 이것, 혹은 저것이라고 말(언급)한다. 그러나 문제는, 음악 기 의가 이것인지, 저것인지를 어떻게 아는가에 달려 있다. 알고 모르고 롤 재는 자는 언급자의 음악 지식인 것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그 지

식의 속성은 무엇인가. 음악에의 지식을 가지는 자는 객체(음악)가 아니고 주체(인간)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주체 관련적 지식이다. 그 렇다고 해서 객관성아 결여된 성격의 지식은 아니다. 음악 지식은 다만 말로 번역될 수 없는 성질의 지식이라는 데에 언급의 어려운 점이 있을 뿐이다. 언급 기의와 음악 기의가 같으냐, 다르냐의 문제는 음악학 성립의 관건이다. 그것들이 서로 다르다면 음악 언급이 음악에 대한 이야기 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언급 기의와 음악 기의가 비슷할 수 있는 근거가 있기 때문에 음악학은 가능하다. 그래서 언급 기표 의 사용으로 음악 기의를 전달해 볼 의사가 생기고 음악학의 할 일 울 있게 한다. 지금까지의 언급이 누구에게 어떠한 설득력이 있는가. 음악을 모 르는 사람에게 설득력이 있는가, 음악을 아는 사람에게만 설득력이 있는갸 음악을 알건 모르건 상관하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를 하려면, 설득력 있는 언급법에 두 가지가 있다는 점 울 알 필요가 있다. 상식적 접근과 비상식적(전문적) 접근이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전자는 일반적 접근법을 사용하는, 음악을 모르는 사 람이 사용할 수밖에 없는, 접근법이다. 후자는 음악을 아는 사람이 사용하는 음악 전문적 접근법이다. 여기서 상식의 의미는 무엇인가. 기의가 무엇이다라는 것에 대한 정의 없이 대화자끼리 〈그것이 기 의이다〉라고 인정해 버린 후, 서로 대화의 성립이 가능할 때, 상식 적 대화, 상식적 의미 운운이 가능하다. 그러나 정의가 없다든가 정 의에 대한 동의가 없이 대화를 한다는 것은, 말은 동일한 말을 쓰는 것 같으면서도 실상에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격이 된다. 다시 말해서, 정의가 없으면, 대화자가 동일한 대상을 놓고 언급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실상에는 동일한 대상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 경우가 생긴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음악학자와는 달리 상식적으로 언급한다. 음악애호가들이 대부분 여기에 속하고, 심지어는 음악전문가들도 그 들이 사용하는 음악이라는 어휘를 정의 없이 사용한다. 정의를 한다 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정의가 아니라 자기식의 가정일 뿐이다. 음악의 본질을 두고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대의 음 악관습 관련적 음악관을 전제로 하고 사고를 전개시킬 뿐이다. 음악 울 몰라서, 음악전문가들이 음악의 정의를 들고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상식적 언급은 음악을 모르는 사람의 음악에 대한 언급으로 해석되어질 수 있는데, 그것이 실상에는 그렇지가 않을 수도 있다. 음악전문가는 물론 음악애호가 역시 음악을 많이 배운 사람이다. 배 웠디는 말은 음악에 대해서 언급할 입장에 설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런 언급은 앞에서도 이야기된 것이지만 특정 관습 의 신봉자 역할의 선에서 머물고 있는 격의 언급만을 하고 있는 것 이지, 음악의 보편적 본질에 대한 언급과는 상관이 없다• 죽 그들의 언급은 상식적(죽 일반적) 언급이긴 하나, 옳은 의미의 음악적 언급 은 아니고,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좀 배운 결과의 언급이니까, 바상 식적 상식 언급이라는 어휘 개념에 흡수될 수 있을 뿐이다. 배우긴 배웠으니까 비상식적이건 하지만, 관습만 배웠으니 상식적인 것이라 는 말이다. 음악의 본유적 속성은 전혀 배우지 못했으니, 배운 점은 그것대로 고려 속에 넣어 주고, 그러나 본유에의 무지롤 계산 속에 넣어야 하니까, 결국 비상식적 상식이라는 개념이 도출될 수밖에 없 다 .47)

47) Uncommon common sense 운운을 See g er 가 하고 있다. Stu d ie s in Mu sico log yp, . 105 참조.

비록 음악은 배우지 못했어도 음악 아닌 것에 대해서 배운 사람 은 많다. 죽 아는 자가 많다. 자기 분야에서 전문적 접근을 할 수 있

는 자가 많다. 그러한 자들에게 있어서의 음악은 무엇이 되는가. 가 령 문화현상을 연구하고 있는, 음악을 전혀 모르는 사회학자들에게 있어서의 음악은 무엇인가. 심미적 경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은 분 명하지만 문화현상 연구를 위한 자료는 분명히 된다. 그런데 무서운 함정이 여기에 있다. 이 자료가 음악 관련적 상식 언급의 선에서 처 리될 수가 있는 것이 그것이다. 중 • 고등학교의 음악시간에서 배운 음악이 본의 아니게도 자기의 음악관 형성의 저변에서 큰 역할을 하 고 있는 사회학자가 있겠고 그러한 사회학자에겐 이 자료가 분명히 일종의 상식의 선에서 처리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옳은 의미 에 있어서의 음악학자는 일반적 언급과 전문적 언급 둘 모두를 통 합한 시각을 가져야 한다• 1.5 통합음악학의 시도 그렇다면 통합된 음악학이란 도대체 무엇이냐. 편견 없는 음악학 이론을 정립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가. 인간은 누구나 감각기관으로 관찰 가능한 대상을 본다. 감각기관 은 인간의 몸의 일부이고, 관찰 대상은 공개되어 있다. 그러니까 몸 으로 밖울 본다는 뜻이다. 그런데 인간은 〈밖〉만을 보지 않는다. 눈 을 감고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전 인간은 자기 스스로의 〈안〉도 본 다. 〈안〉의 봄은 공개 대상의 관찰 방식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안〉 의 봄은 이해적 방식으로 그 의미가 풀린다. 밖과 안의 봄은 우리에 게 비쳐지는 대상에 대해서 세련된 개념적 설명 방식을 제공한다. 보여전 것들이 서로 어떠한 사실 관련적 관계를 가지며 얽혀 있는 지, 혹은 그것들이 우리에게 가치로서 어떠한 관계를 가지면서 나타 나는지에 대한 설명 방식을 제공한다. 사물과 사물의 관계로서의 사

실현상과 사물과 〈나〉라는 인간과의 관계가 낳는 가치현상을 개념 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툴울 제공한다. 사물과 사물의 관계에는 마 음이 개입하지 않는다. 설사 개입한다손치더라도 개입 운운을 하는 당사자인 〈나〉라는 인간은 그것에 관여하지 않는다. 밖의 봄과 안의 봄은 공동으로 〈낳는 것〉을 하나 가진다. 그것이 바로 세계관이다. 학문이라고 하는 것은 이 세계관의 문제와 관계된 다. 세계관에는 보편적 세계관이라는 것이 없다. 학문은 특정 세계관 의 흡수 내지 소화의 결과현상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학문에 몸을 담고 있는 연구자는 그 특정 세계관을 자기식으로 뜯어가서 흡수 내 지 소화한 결과와 협심한다. 세계관은 주체가 가지는 〈안〉 관련적 속성이다. 이 말은 그 안에 대응하는 밖이 또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바로 〈구조적 우주〉라는 개념으로 대신된다. 그렇다면 편견 없는 음악학 이론의 정립을 위해 서 우리는 음악학의 구조적 우주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음악 학의 우주 〈안〉에는 여러 개의 소우주가 있다. 시거에 의하면 첫째,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장소이며 음악이 그 공간 안에 자리 차지하 고 있는 〈의계 우주〉가 있다. 그 다음의 순서로, 〈언급 우주〉 〈음악 우주〉 〈개 인 우주〉 〈문화 우주〉라는 것이 있다 .48) 이 다섯 종류의 우 주 개념에 대해서 생소함을 느끼게 될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위의 우주 개념을 이용한 음악학의 정의를 보면 그 뜻이 풀리리라고 믿 는다.

48) See g er 의 Stu die s in Mus ic olog y의 Toward a Un itary Fie l d Theory for Mus i colo gy에서 이 문제가 상세히 논의되고 있다.

음악학의 정의는 여러 개의 문장으로 나누어 이루어진다. 음악학 은 음악에 대한 언급을 옳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에서 〈언급 공 부〉라고 말할 수 있다. 〈언급 우주〉가 문제시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

다. 물론 언급 공부이긴 하나, 그 공부가 체계적, 역사적, 가치 관련 적, 사실 관련적 공부라는 점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공부의 대 상은 인간이 만든 모든 음악이다. 특정 시공간에 존재했던 특정 음 악만을 공부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그래서 〈음악 우주〉 개념이 음악학의 정의 속에 포함된다. 공부하는 당사자는 어디까지나 〈나〉 라는 〈개인〉이다. 〈개인 우주〉가 이 때문에 중요하다. 개인의 시각 은 물론 다양할 수 있다. 음악전통의 운반 시각과 관련되는 이른바 전문적 시각, 그리고 음악전통 운반과는 무관한 비전문가적 시각으 로, 이른바 일반적 시각(일반적 시각의 예에 사회학적 시각 같은 것이 있음)이라는 것이 있다. 음악학도 결국에 가서는 인간 이해에 공헌하 자는 것이 목적이고 보면, 전문 시각과 일반적 시각 모두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시각의 소유 당사자가 개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개 인 우주의 역할이 중요시되지 않을 수 없다. 인간 이해는 전공 속에 서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생을 유지하는 세계 안에서의 이해이 고 또 음악이나 인간이 살고 있는 문화세계 안에서의 이해이다. 그 러한 의미에서 〈의계 우주〉와 〈문화 우주〉 역시 음악학의 정의 개 념 속에서 의면될 수 없다. 각 우주는 다른 우주들을 내포한다. 언급 우주가 다른 우주를 내 포할 경우, 죽 내포 관련적 언급은 어떠한 속성을 지니는가. 의미를 지니는 속성, 무엇을 나타내는 속성, 무엇을 대신하는 속성을 지닌 다. 어떻게 해서 그러한 속성을 지니는가. 다른 우주권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이름을 붙임〉으로 해서, 대상에 붙여전 이름을 관계지 음으로 해서, 대상 그것들을 관계지음으로 해서, 대상명의 관계들과 대상 그것들의 관계를 관계지음으로 해서, 그리고 이 관계지음들과 우리 인간들 사이를 관계지음으로 해서, 그러한 속성을 지닌다. 음악 이 음악 스스로에게 이름을 붙이지는 못한다• 언급자가 움악이라는 대상에 이름을 붙인다. 〈대상 그것〉과 〈대상의 이름〉은 개념상으로

구별되어야 한다. 대상은 피지칭물이고, 대상의 이름은 지칭명이다. 언급은 언급에게도 이름을 붙인다. 즉 어휘 같은 것을 정의한다. 언 급에도 언급 관련적 대상이 있고 언급 관련적 대상의 이름(즉 대상 명)이 있다. 그러니까 내포 관련적 언급은 위에서 언급된, 〈관련지음 으로 해서〉의 개념과 상관된다. 물론 위에 언급된 것들에 대한 언급 지식을 언급자가 가졌다는 전제하에서의 이야기니까, 내포 관련적 언급은 그것들에 대한 언급 지식을 요구한다. 언급 지식은 그것들에 대한 지각 지식과는 성격이 다르다. 〈대상의 이름〉이나 〈대상只t 지 각할 수 있는 것과 상관되는 지식과 그것들에 대한 언급다운 언급 울 할 수 있게 하는 언급 지식은 그 성격이 다르다. 음악을 할 수 있 는 능력과 음악에 대한 언급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서로 다르다. 음 악이라는 대상을 지각할 수 있는 능력과 지각된 것 혹은 될 것들에 대한 언급 지식 관련 능력의 성격은 서로 다르다. 여기서 가치를 부 여하는 문제와 상관이 없는 대상이 있다는- 말이 필요하다. 이러한 가치부여 무관련적 대상의 경우에는, 피지칭물과 지칭명이, 그리고 대상과 대상명이 일치되는 관계가 거의 틀림없이 이루어진다. 수학 이나 자연과학에 동원되는 대상과 대상명은 동일하다. 동일한 것을 보고 있다는 것을 수학자나 자연과학자들은 안다. 만일 동일하지 않 으면 자연과학에서의 대상명들의 관계에 법칙성이 없게 되어, 과학 을 믿다가는 큰일이 난다. 과학에서는 대상명의 관계가 곧 대상의 관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문과학에서 사용되는 〈대상의 이름〉 감은 것에는 가치가 부여되기 때문에, 문제의 성격이 달라진다. 죽 대상과 대상명의 일치성은 적어전다. 미신이나 신화 관련적 언급에 사용되는 대상과 대상명의 일치성은 거의 전무한 상태로 된다. 오히 려 일치성을 거부하기에 이르기도 한다. 우리는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라는 말을 한다. 여기서 〈내가 말 하고 싶은 것은〉은 대상에 해당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운운은

대상명과 관련되고, 그 대상명 찾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설사 찾기 가 힘들다고 해도, 과학에서는 찾아지면 결국 대상과 대상명은 일치 한다. 그러나 미신의 경우는 찾아져도 일치되지 않는다. 대상에 대한 대상명의 찾음은 미신에서는 애초에 불가한 성격의 것이다. 그래서 찾기가 힘든다. 이 힘듬은 과학에서의 힘듬과 그 성격이 다르다. 미 신에서는 대상명의 관계가 대상의 관계이질 않다. 내포 관련적 음악은, 무엇을 나타내는 속성, 구체화 • 구현화 • 육 화된 속성, 무엇을 대신하는 속성이 아니라, 상황적 맥락 안에서이면 의미발생을 할 수 있는 속성을 지닌다. 기악에서 의미발생이 되는 근거가 마련되는 속성이다. 음악의 의미는 음악 아닌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음악은 스스로를 예증할 뿐이다. 다른 어떤 것 죽 음악 아 닌 것을 지칭하거나, 나타내거나,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음악은 스 스로를 人즈―쿠루서 신분화한다. 음악은 개별화도, 일반화도 하지 않 는댜 음악은 그저 음악일 뿐이다. 음악은 긍정만을 하는 것이지 부 정을 하지 않는다 .49)

49) See g er 의 Stu d ie s in Music o logy , p.109 .

내포 관련적 개인은, 경험적, 유아론적, 심미적 속성을 지닌다. 의 계 우주와 감각 접촉을 하는 당사자도 개인이요, 문화를 운반하는 당사자도 개인이다. 언급과 음악을 만드는 당사자도 개인이다 .50)

50) 위의 책, p.1 09.

내포 관련적 문화는, 가치론적, 합의적, 평가적 속성을 지닌다 .51) 〈의계〉 〈언급〉 〈개인〉 〈음악〉은 모두가 전통의 산물이다• 〈의계〉가 전통의 산물이 되는 이유는, 인간의 힘에 의해서 가공된 의계가 있 다는 데 있다. 전통은 한 차원 더 높은 전통의 산물이며, 제일 상차 원의 전통이 문화라고 불린다. 인간의 집단적 삶의 여러 변형들이

51) 위의 책, pp.109 -10.

총체적으로 묶인 상태로서의 실체가 문화가 아닐지 모를 일이다. 문 화 안에는 그 문화의 운반자가 가장 아끼는 가치가 언제나 간직되 어 있고 파묻혀 있다. 물렁물렁한 밀초에 도장을 눌러 특정 모양을 만들 듯이, 자라나는 어린이 마음에 문화라는도장으로 여러가지 〈경 험형식〉을 눌러 만든다• 문화는 그래서 무섭다. 문화유산은 전해 내 려오게 된다. 그러나 전해 내려오는 과정에서 문화만이 힘을 쓰는 것은 아니다. 문화만이 힘을 쓴다면 문화는 개조된다든가 나아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후세의 사람들이 문화에 복종만 하는 것이 아니 라 문화에 대항해서 그것을 고쳐나간다. 여기에 인간의 역할이 있다. 내포 관련적 의계는, 현상적, 존재적, 사실적 속성을 지닌다. 〈의 계〉가 아닌, 〈개인〉 〈언급〉 〈문화〉 〈음악〉은 의계 우주내의 현상이 라는 뜻이다 .52)

52) 위의 책, p.1 10.

지금까지 언급된 소우주는 끝없는 상호작용을 하면서 음악학의 정 의를 낳는다. 그러니까 음악학의 정의는 언급, 음악, 개인, 문화, 그 리고 의계의 상호작용적 맥락 안에서만 가능하다. 위의 다섯 가지 현상은 각각 음악학의 구조적 우주를 이루고 그 속에서 소우주적 역 할을 한다. 그러니까 음악학의 정의는 여러 개의 문장으로 구성되고 각 문장내에서 위의 소우주 개념이 나름대로의 기능을 한다. 음악학은 한마디로 음악에의 〈언급〉학이다. 체계적 • 역사적 • 비판 적 • 과학적 접근법이 있다. 음악에의 언급학이라는 말이 의미하듯이 음악학에서의 연구 대상은 〈음악〉이다. 여기서 음악이라고 하는 것 은 인류사에서 존재했고 또 존재할 모든 음악을 뜻한다. 연구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음악 그것의 연구와 음악 아닌 것과 음악과의 관계 에 관한 연구가 그것이다. 연구는 물론 〈개인〉이 한다. 개인의 시각 에 두 가지가 있다. 전문적 시각과 비전문적 시각이 그것이다. 비전

문적 시각을 일반적 시각, 전문적 시각을 음악적 시각이라고 일컫기 로 한다. 음악적 시각은 음악전통을 운반하는 운반자의 시각이고, 일 반적 시각은 음악전통을 운반할 수 없는, 그러니까 비운반자의 시각 이다. 비운반자라고 해도 그들에게 음악이 나름대로의 연구재료가 될 수 있다. 가령 비운반자인, 사회학자가 음악에 대한 연구 관련적 관심을 가질 수 있고, 그러한 관심을 가질 때의 음악은 그들의 연구 를 위한 자료가 된다. 음들의 음악내적 기능과는 상관이 없을지 모 르나, 음악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연구는 그 자료로서 연구할 수 있 다. 비전문적 시각의 소유자가 자기의 전문 영역이 없다는 뜻이 아 님을 여기서 명심해 두어야 함은 말할 필요가 없다. 음악학자는 양쪽의 시각을 모두 가져야 한다. 음악적 시각과 일반 적 시각 모두를 가져야 한다. 양쪽 시각 모두를 가진 음악학자의 궁 극적 목적은 인간 이해에 있다• 〈의계〉와 인간의 관계 그리고 〈문 화〉와 인간과의 관계를 연구함으로 해서, 인간 이해를 도모하고자 함 에 있다. 통합음악학의 정의가 되었다고 해도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명심 해야 한다. 언급 소통을 위한 기호학과 음악 소통을 위한 기호학의 상호 수용성에 한계가 있다면, 음악학에도 한계가 필연적으로 수반 된다는 사실에의 인식이다. 전자에 한계가 있는 만큼의 한계가 후자 에 있다고 생각해 두어야 한다. 이 한계를 줄임으로써 음혼 B 학의 설 땅을 옳게 마련하려면 소통과정의 비교학적 연구가 필요하다. 음악 전통 운반자인 음악학자의 한 시각에 의해서 행해지는, 〈언급〉을 통 한 가치 • 사실의 측도와 언급전통 운반자인 비전문음악학자에 의해 서 행해지는, 〈음악〉을 통한 가치 • 사실의 측도의 비교학적 연구가 필요하다. 〈학〉을 하는 이유가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채로 〈학〉을 할 수는 없다. 〈학〉을 위해서는 학의 전제라도 있어야 한다. 음악학이라는 것

이 있고 또 자기가 음악학자라고 불릴 수 있는 처지에 놓여 있으니 까 그냥 〈학〉을 한다는 식의 태도는 기존의 전제를 무의식적으로 받 아들이고 있는 것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학문하는 태도가 아님 이 분명하다. 학문하는 태도의 성립은 어떠할 때 되는가. 언급(사람들이 하는 여 러가지 잡다한 말), 종교, 법률이 인간에게 이야기해 주는 것이 있다. 그리고 음악이 우리 인간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있다. 이 둘이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음악학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 다름이나 같은 점을 발견하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것을 알 때 음악학을 옳게 하는 태도의 성립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다. 다름의 인정성이 합의 되면 그 후에 음악학의 방법론이 나올 수 있다라고까지 말하는 사 람이 있다. 즉 음악학을 왜 하느냐라는 질문을 심각하게 던지는 심 적 구조의 형성이 음악학을 하기 전에 필요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 댜 막연하게 하는 행위는, 그러니까 목적이 없는 행위는, 학적 행위 일 수 없다. 행위를 옳게 하는 방법론은 목적 없는 행위가 아닌, 목 적에 부합한 행위가 되는 원칙의 찾음이다. 지금까지 언급된 음악학의 정의는 전통적 정의와 어떻게 연관시 킬 수 있을까? 연관이 되지 않는다면 현실적인 설득력을 잃게 되고, 이 잃음은 음악학의 현단계를 바람직하게 끌어올리는 일에 장애가 된다. 개념 (나무)과 그것의 지시 대상(〈나무〉리는 명칭에 부합되는 특정 나 무)은 밀착되어 있다. 그것들의 차이를 심하게 두려는 의도에는 문제 가 있다. 물론 이 말이 맞다고 해서, 언급자가 개념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 개념이 내포 • 지시하고 있는 대상을 이야기하 고 있는지, 어느 쪽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가 분명하지 않 아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보편 나무에 대한 나무 이야기인지 특수 나무에 대한 나무 이야기인지를 개념상 구별은 해야 한다. 가

령 리듬에 대한 이야기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보편 혹은 포괄적 개념으로서의 리듬 이야기인지 특정 관습 관련적 리듬에 대한 이야 기인지를 구별해야 한다• 시거의 정의는 일반적 시각이 음악학의 반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울 인정하는 특색을 가진다는 점이 주목 대상이다. 〈안〉의 음악학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밖〉의 음악학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시거의 정의를 이해하려면 반쪽을 전체로 보는 위험이 없게 되고, 어느 하 나의 소우주를 더 중요시하는 가치관이 위험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음악학의 소우주 모두가 동동하게 중요하고 그들이 모두 적철한 기 능을 할 때, 음악학을 위한 합목적적 기능을 할 때, 음악학이 제 갈 길을 가게 된다. 이미 언급된 것이지만, 음악학이 언급학이라고 해서 음악이 그 속 에 끼어들 장소가 없다고 생각하면 틀린 생각이다. 언급은 언급 대 상 없이 성립되지 않는다. 음악이 끼어들 장소의 찾음을 위해서 언 급 관련적 소통 우주와 음악 관련적 소통 우주라는 어휘를 빌어 쓸 필요가 있다. 언급 대상이 관련되어야만 하는 우주가 있는데, 그것아 음악 관련적 소통 우주와 관련될 때, 언급 관련적 소통 우주는 음악 학을 성립시키고, 그럴 때의 음악학에서만 음악이 끼어둘 위치가 있 게 된다• 언급도 믿고 음악도 동시에 믿을 수 있는 지점이 찾아질 때 통합 음악학 이론이 성립된다. 여기서 언급을 믿는다는 말은 언급 지식과 언급 느낌(문학성) 양쪽 모두에서 확실성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고, 음악을 믿는다고 함 역시 음악 지식과 음악 느낌(음악성)에 확실성 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두 믿음은 모두 같은 환경에서 자라고, 튤 지어진다. 성공적인 경우의 노래에서와 마찬가지로 언급과 음악이 같이 갈 수가 있음으로 언급과 음악이 같이 가는 음악학도 가능하 다. 언급 구성 과정과 음악 구성 과정에 유사성이 발견될 수 있다.

음악학 연구는 누차 아야기했듯이 언급 연구이니까, 언급의 생리를 알 필요가 있다. 음악 구성의 생리는 매개변수의 기능성을 아는 것 과 관계된다. 언급구성 역시 언급 매개변수의 생리를 아는 것과 관 계된다. 언급의 의미발생과 관계되는 의미 매개변수의 생리를 알 필 요가 이 때문에 있다. 언급의 의미 매개변수란 무엇인가. 음악을 있게 하는 매개변수에 상응하는, 언급의 의미를 있게 하는 매개변수가 언급 의미 매개변수 이다. 음고 매개변수, 강약 매개변수, 속도 매개변수, 음색 매개변수 등이 있겠고, 이 매개변수들의 총체적 기능이 음악의 매개변수적 기 능을 하는 것은 자명하다. 음악 의미가 언급으로 번역된 언급 의미 룰 얻을 수 있는 이유는 의미 매개변수(언급 의미이거나 음악 의미이 거나 상관없이 동일하게 )라는- 것이 언급과 음악에 같이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긴장〉이라든가 〈완화〉 기능을 하는 언급과 음악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53) 다시 말하면 동등성의 성립이 가능한 이유는 음 악에도, 언급에도, 의미 매개변수가 있고, 그 변수가 동일한 속성일 수가 있다는 데 있다. 언급 표시에 잘못됨이 없게 하기 위해서는 언 급을 조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음악 표시에 잘못됨이 없게끔 또한 조심해야 한다. 언급이 음악을 점검해야 함과 동시에 음악도 언급을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음악학에 있어서의 유사성, 상이성, 동등성의 개념이 정확히 설명되어야 하겠고 그것에의 이해의 중요 성이 강조되어야 하겠다.

53) Monroe Beardsley , Understa n d ing Music , On Cri ticiz in g Mu sic : Fiv e Ph il o 짜 phi c a l Persp ect iv e s(ed. by Kingsl ey Price, Baltim o re : The Joh ns Hop kins Press, 1981), pp,5 5-73, 이 책에 실려 있는 다른 글들도.좋은 글이다.

음악학에서 음악이 중요하냐, 언급이 중요하냐. 이 질문은 자체에 문제가 있다. 어느 한쪽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음악학의

옳은 방법론을 잃어버리게 된다. 음악학은 언급과 음악이 반반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알아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하나의 이론은 소우주들의 특정 방식으로의 묶임이 댜 과학적 이론도 물론 특정 방식의 묶임이다. 그러나 과학에서의 묶임 관련적 요소는 음악학의 그것보다 훨씬 국한된 성격을 띤다. 훨씬 덜 포괄적이라는 말이다. 철학은 과학보다 더 포괄적이다. 보편 적 철학을 참되게 개진하려면 그 속에 음악학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음악학은 청각만 상종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예술과 촉각예술 모두를 포괄적으로 상대한다. 그래서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음악 학적 과업의 수행은 거의 불가능`하다. 음악학이 필요없는 것이 아닌 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음악학의 전통적 정의와 시거의 정의 사이의 차이점은 또 있다. 전통적 정의는 유럽 중심주의와 지나친 역사주의적 경향에 빠지고 있지만, 시거는 그렇지가 않다• 유럽 중심주의 음악학이라는 말은 문 화로서의 음악 개념을 수용하는· 종족음악학적 시각에 무지하다는 뜻 이고 지나친 역사주의적 경향에 치우쳤다는 말은 체계적 음악학에 대한 무관심이 용납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족음악학에 대한 언급에 앞서(이 언급은 음악학 개념 정립에 지극히 중요함) 음악학에 있 어서 이른바 역사적, 체계적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문제들을 다루 어야 할 것 같다. 시거 역시 누차 주장하고 있는 바이지만, 오늘날 에 와서까지 역사 • 체계 개념을 따로 떼어놓고 음악학을 고려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역사 없는 체계 없고, 체계 없는 역사 없 다는 식의 사고가 바람직하다. 전적으로 상호보완적 개념이지 배타 적 개념이 아니다. 한쪽을 파고들면 필연적으로 다른 쪽으로 그 길 이 통하게 되어 있다. 통합음악학이 이루어지려면 우선 역사와 체계 가 개념적으로 분리상태에 놓여 있을 것이 아니라'하나가 되어야 한 다. 과거를 알아야만 현재를 안다(현재를 안다는 말의 의미는 그래서 우

리 인간을 안다는 뜻이 되겠는데 )리순근 말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서, 과 거를 아는 것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 수단으로만 존재해야 한다. 과거에의 앎이, 알아야 하는 원래 목적에 위배되지 않으려면 일반시 간 속의 과거뿐만 아니라 음악시간(이 시간은, 그것이 비록 과거 관련 적일 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현재적 성격울 림) 속의 과거를 동시 에 알아야 한다. 여기가 역사와 체계가 하나가 되는 지점이다. 과거 의 앎이든 현재의 앎이든 결국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역사 • 체 계가 모두 이 앎의 그물 속에 있어야 한다. 일반시간 속의 음악은 과 거 속의 음악이 되니까 역사 관련적 음악이 되겠고, 음악시간 속의 음악은 현재 속의 음악이 되니까 체계 관련적 음악이 된다. 과거시 간과 현재시간이 따로 떨어져 있는 개념이 아니고 하나인 개념이어 야 한다는 말인데 그렇게 되 려면 과거 (역사)와 현재 (체계 )를 필연적 밀착의 관계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일반시간과 음악시간은 발생성, 출생성, 신분성, 계속성, 통제성, 측 정성, 변수성의 속성을 서로 달리 가진다.더)

54 ) See g er 의 Stu d ie s in Musi co log yp, .1 15.

과거의 유적 하나가 땅에서 발견되었다고 했을 때 그것에 대한 연 구는 일반시간과 특수시간 모두에서 연구되어야 한다. 두 시간 모두 가 얼마만큼 충분히 고려되었는가에 따라서 역사와 체계는 하나가 되고 되지 않음을 결정한다• 역사는 곧 체계의 역사가 되고, 체계는 곧 역사의 체계가 된다. 역사체계와 체계역사가 같은 것이라는 말이 다. 의미 해석의 눈은 언제나 특정 전통을 운반하는· 눈이다. 타문화권 유적의 의미에 대한 이해는 그 문화권 전통의 생리의 이해가 전제 된다. 이 전제라는 말이 체계 연구의 전제라는 뜻이 되고, 그 전제 가 바로 그 전통 형성의 역사에 대한 이해와 직결된다는 뜻이다. 이

말은 결국 역사만 알겠다고 나서는 태도가 용납되는 사회, 이러한 사회라는 말 자체가 이미 동일 전통에 살고 있는 사회를 전제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과거 유적이 자문화권 유적이나, 타문화권 유적이냐, 그리고 자문화권 유적인 경우라고 해도 그것이 특정 시대 의 구전통 속에서 태어났던 유적이냐 신전통 속에서 태어났던 것이 냐가 또 문제가 된다. 타문화권 음악에의 연구법도 마찬가지이다• 만 일 체계적 접근이라고 했을 때 자문화권이니까 당연히 그럴지 모르 겠지만, 그 자문화에 대한 역사적 위상에 대한 오리엔데이션이 전제 되고 있는가 없는가를- 물어볼 필요가 있다. 타문화권 음악(무엇이 무 엇인지 모르는 음악)이 연구 대상이 될 때의 전제와 어떻게 다른가를 알아보아야 하고, 이 알아봄의 의미가 시사하는 바를 점검했을 때 비로소 체계와 역사는 따로 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통합음악학으로 더 접근해 본다는 의미로서도 좋은 일이 니 종족음악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언급해 보기로 한다. 영어의 e t hno 리는 말의 의미가 우선 문제이다. 시거는 e t hno 의 뜻 에 두 가지의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본다• e t h ni c 이라는 뜻과 eth n olog y 라는 뜻이 그것이다• 전자는 서양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의 〈야만 인〉(한국 전통음악도 그들의 입장에서는 야만 음악이 됨, 학문의 초창기 단 계, 그러니까 처음 단계에서는 말이다), 〈비기독교인〉 〈이국적 인 것〉 등 을 뜻한다. 후자는 문화이론에 입각한 문화연구를 뜻하고, 그래서 문 화인류학이라는 뜻도 된다. 그러니까 전자의 뜻으로는 음악적 연구 대상이 자동적으로 연구자의 입장에서 본 타문화권의 음악이 되고, 후자의 뜻으로는 연구 대상이 문화로서의 음악, 이 음악의 문화적 기능이 된다. 통합음악학 이론을 위해서는 이 두 가지의 뜻 모두예 문제가 있다. 자문화권의 음악을 연구하면 음악학자가 되고, 같은 음 악을 연구한다고 해도 타문화권 사람이 그것을 연구하면 종족음악 학자가 된다는 모순이 생긴다. 하나의 맥락 안에서 어떤 것을 보는

관점(심미적, 문화적 관점)과, 맥락 운운과는- 상관 않는 입장, 즉 어떤 것을 그것 자체로 보는 관점(물리적, 수학적 관점), 이 두 관점 모두 룰 수용할 수 있는 독립적 학문이 실제적 차원에서 기대하기 힘들 다는 것이 문제이다. 종족음악학은 하나의 개념이지 레시피가 아니다. 음악을 접근하는 하나의 접근법이지 그 이의의 다른 것이 아니다. 음악이면 어떠한 것이든 연구 대상으로 삼는 태도와 관련되는 개념이다. 〈그 자체의 맥락〉으로도, 〈문화적 맥락〉으로도, 양쪽 모두로도 접근하는 개념이 다. 독립적 존재 구조물로, 상황적 • 맥락 관련 존재물로 연구하려는 태도와도 관련된다. 유럽 예술음악전통과 상관이 없는 모든 음악을 연구 대상으로 하는 태도가 그 하나요(이 태도는 유럽의 옛 전통까지 포함한다), 둘째의 태도는 어느 지역도 좋다는 뜻, 그러니까 어떠한 음 악이라도 좋으니, 모든 음악을 연구 대상으로 삼겠다는 태도이다. 가 령 서울에 있는 모든 음악에 대한 연구라면, 서울의 종족음악학이라 는 어휘가 가능하다는 식의, 즉 서울에 있는 서양음악, 국악, 대중음 악 등, 있을 수 있는 모든 음악에 대한 연구를 하는 태도를 말한다. 특정 지역의 사람들에 의해서 사용되는 모든 음악에 대한 연구가 종 족음악학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생각이 두번째 태도다. 여기서 말하 고 있는 특정 지역에는 물론 유럽도 포함된다• 그러니까 유럽 예술 음악도 포함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면 유럽 음악을 연구하 는 것이 음악학이니까(서양인들의 입장에서), 음악학은 종족음악학에 포함된다는 이야기가 된다. 주어전 특정 지역이 유럽이 아니고 전세 계인 경우면, 종족음악학이 시거의 정의와 갇이, 다섯 개의 소우주를 상대하는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유럽이 영역이냐, 세계가 영역이냐의 문제는 학자의 학문적 시야 폭과 관계된다. 유럽의 음악역사학자는 역사 연구 영역을 구라파 음 악으로 한정시키는 절대적 약점을 안고 있고, 종족음악학자들도 비

서구음악적 영역만 자신들의 연구 영역으로 한정한다는 약점을 안 고 있다. 양쪽 모두의 약점이 보완되어야 한다. 그 영역을 세계로 돌 릴 때 비로소 음악학이 옳게 되고 그것이 이루어질 때 통합음악학 운운을 할 수 있다. 물리학자들이 자기네들의 이론을 수학용어로 표현하듯이 통합음 악학 아론도 수학용어로 표현될 수 있는가. 수학용어는 더 일반화된 약호 언어를 의미한다. 더한 보편성과 객관성이 수학언어에 있다는 의미에서 수학용어 사용 가능성이 학문에서도 중요하다. 수학용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좋다. 언어학 이론의 수학화 역 시 값어치를 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 알아야 하는 것은 그 러한 언어학은 오직 〈서술〉일 뿐 가치평가 작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기호학이 서술적이라면, 해석학은 평가적이라는 말도 된다. 언어 사용은 서술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가치와도 관련된다. 음악학은 단순한 서술학일 수만은 없다. 가치 언급학이기도 해야 한 다. 음악가치이론, 음악비평, 음악윤리학, 음악사변철학, 음악시학(좋 은 작품 만듦의 문제와 관련), 비교음악학, 민속음악학 등의 음악학은 가치 언급학이다. 생각과 관찰 관련 사항만큼이나 느낌과 가치 관련 사항이 음악에 있듯이 음악학에도 그런 것이 있다. 결국 가치 우주 도 통합음악학의 소우주로 취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급, 음악, 개 인, 문화 관련 우주는 모두 가치 관련 항목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가치가 무엇인가라고 물어야 한다. 숨막히려고 할 때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은 숨쉼이다. 죽 〈생리적 필요〉가 가치이다. 목마름, 배고품 등은 모두 생 리적 필요함이다. 일이 주는 압박감, 고독(의로움)이 주는 압박감, 친구나 자식의 없음, 자기 자신이 되고 싶은 욕망, 같은 곳 의 천구 속에 끼이고 싶은 바램, 공동활동의 동인이 되고 싶음, 특정 사회 의 구성원이고 싶은 욕망, 전통울 방어 (변호)하고 싶은 욕망, 음악을 만들

고 싶은 욕망, 이런 욕망 충족이 가치 관련항이다 .56)

55 ) See g er 의 Stu d ie s in Music o logy , pp.117 -18.

인간에게 이런 욕망이 있다는 것은 하나의 인간 관련적 〈사실〉인 데 그렇다면, 이 〈사실〉 문제와 가치 문제는 같이 가는 것이니까, 구 별이 필요없다는 말인가. 아니다. 우리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우리들 울 사실에게 다양하게 관계짓는다. 이 관계지음이 가치를 낳는다. 많 이 관계되는 것은 가치 있음이 되고, 관계없음은 가치 없음이 된다. 그러니까 관계에서 생기는 기능이 가치다. 물리적(신체적) 가치(죽 앞에서 언급된 배고픔 같은 것)와 미, 선, 사 랑 관련 가치 같은 문화적, 역사적, 제도적 가치는 같은 성격인가, 다른 성격인가. 두 가치 사이에 경계선이 있는가, 없는가. 인간의 관 심 영역에 침범함으로써 생기게 되는 가치이거나, 최고의 정신적 열 망 관련 가치이거나간에 인간이 주목하게 되는 가치라는 점에서 이 둘은 같다. 그러나 직접 관련 가치(무매개)와 간접 관련 가치(유매개) 는 구별해야 한다. 음악 가치와 언급 가치를 구별하자는 것이 아니 고, 음악 가치에 대한 언급적 설명은 음악가들이 직접적으로 경험하 는 음악 가치와 다르다는 것을 구별하자는 것이다. 기표 가치와 기 의 가치를 혼동 말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음악 언급에 있어서 가치 란 무엇인가. 어떤 것과 바로 그것과의 관계가 아니라 어떤 것과 그것 아닌 것 과의 관계가(관계는 물론 인간이 지음) 가치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 르나 그것의 성격에 불변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전제하에서 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가치는 차려 놓은 관계이다. 장사를 차려 놓 듯이 관계를 차려 놓은 것이 가치이다. 음악 사실이나 음악 가치에의 언급은 비록 그것이 음악에 대한 언

급아긴 하나 음악 그것이 아닌, 음악 언급이니까, 음악을 밖에서부터 보고 디루는 것이 된다. 음악을 안에서부터 보고 다루기도 해야 한 다. 안에서 본다는 것은 음악가가 행하는 행위, 음악 만듦(창작, 연주, 감상 모두)과 관련되는 행위 그것이다. 음악가는- 음악을 보는 것이 아 니라(본다는 것 자체가 이미 대상과의 거리를 인정하는· 뜻이니 대상과 떨 어져 있다는 뜻이고, 그것이 바로 밖에서 본다는 뜻이 됨) 만든다. 언급은 사실에 대한 것 혹은 가치에 대한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음악 그것은 음악이지 〈가치〉라든가 〈사실〉식으로 구별하지 않는다. 음악 은 그러한 언급이 아니다. 가치와 사실 관련 언급을 동시에 하는 어 떤 성격의 언급이 아니고 그냥 음악이다. 가치와 사실이 같은 다발 에 묶인 채로 그냥 소리나는 것이 음악이다. 작곡가적 작곡과 음악 학적 작곡은 그 성질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작곡가적 작곡은 가치와 사실이 감은 다발에 묶여 있는 음악을 만 드는 것이고, 음악학적 작곡은 가치와 사실이 분리되어 논의되는 그 런 음악을 작곡한다. 말하자면 분석을 통한 재구성적 작곡이요 그 재구성 과정에서 특정 소절은 특정 음악 부분에 가치가 있고 가령 이것은 이러한 점에 있어서 사실이다라는 식으로 음악을 해부해 놓 는다. 그러니까 음악학적 작곡도 있을 수는 있다. 그러니까 같은 다 발 안에 음악이 없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 작곡가들이 쟁점의 노예 가 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음악학적 작곡을 해야 훌륭한 작곡을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데에 있다. 언급 우주도 있지만 언급가치 우주도 있다, 가치가 하나의 우주로 개입되기 시작하면 말이다. 음악 우주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음악가 치 우주도 있고, 이런 의미에서 개인가치 우주, 문화가치 우주도 있 댜 개인가치는 개인에 관계되는 가치인데, 이 가치는 개인의 〈관심 권 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일 수가 없다. 관계를 가치라고 하면, 관계되고 되지 않고의 문제 그 자체는 사

실 관련적 이야기가 아닌가라는 문제가 생긴다. 지금까지 사실과 가 치를 구별해 놓고 가치를 인간 개인과 사실과의 관계로 정의해 놓 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가치인가, 아니면 사실인가. 가치가 관 계라면, 그 관계가 사실이어야 하니까 결국, 관계된 것들의 존재는 가치 관련 존재가 아닌가. 사실의 우주에서는 우리가 우리를 사실로 보면 된다. 남에 의해서도 사실로 보면 된다. 이 사실의 우주는 바 로 자연 우주이댜 죽 가치 우주에서는 우리가 우리를 그리고 남이 우리를 가치로 보면 된다. 즉 어느 것을 우주로 놓고 보느냐가 문제 이고, 어느 것 위주적 생각이냐가 문제이다. 선율적 시각에서 하나 의 곡을 분석할 수 있고, 그런 시각에서는 리듬이나 화성이 부수적 이 될 수 있고, 화성 위주적 (Schenker 가 예) 분석에서는 그 이의의 매개변수의 기능이 달라진다. 의미 매개변수를 어느 것으로 택하느 냐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개인, 문화, 언급, 음악, 자연, 가치, 이것 들 중 어느 것의 의미가 어떤 기능을 하느냐의 문제는 어느 것 위 주적 사고를 하느냐 즉 어느 의미 매개변수를 택하느냐의 문제이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가치도 되고 사실도 된다. 가치와 사실의 관 계는 정, 반의 관계는 아니다. 정, 반의 관계는 상호침투성(상호의존 성)이지만, 가치와 사실 관계는 보조적(보충적) 원리 관련의 성격이 다. Max Scheler 의 입장은 럿셀과 오히려 반대다. 가치야말로 이성이 설명할 수 있는 객관적 사실이라고 한다. 폴라톤보다 한술 더 뜨는 가치관이 있다. 기독교 가치관 같은 것이 그것인데, 가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 하나라고 하는 입장이고, 다른 모든 것(사실 포함)은 하 나님에 종속적이라는 것이라는 입장이 그것이다 .56) 힌두이즘의 가치 관은 또 다르다• 사실이라든가 가치라는 것들 모두가 환영에 불과하

56) See g er 의 Stu d ie s in Musi co logy , pp.122 -23 .

다고 보는 입장이다. 존재(사실)의 목적(가치)은 비존재라고 믿는 다 .57)

57) 위의 책, p,1 23.

가치이든 사실이든 결국 언급 관련 개념이다. 그러니까 그것들은 이미 말했듯이 언급 우주권내의 문제라는 말로 다시 귀착된다. 통합 학은 결국 가치 관련 작업이 된다. 가치는 사실과는 다르게, 경험적 실증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신자만 되면 된다. 그러니까 음악학은 신자 만둘기 시합이다. 그러니까 음악학도 결국 손바닥 갖기 시합이 고 그 손바닥 안에 모든 사람 넣기 시합이다. 포괄적이고 통일성 있 는 체계 만둘기 시합이다. 음악학은 음악과 언급 우주가 공유하는 지점에서만 가능하다. 물리 우주에 가치라든가 사실이라는 것이 실 제로 있는지 없는지는 우리는 모른다• 있다, 없다는 우리 인간의 언 급 속에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보조적 원리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 받아들임의 정당성은 오직 언급우주에만 유효하다는 조건이 붙 는다. 음악의 매개변수가 구조적 기능을 하듯이 의미 매개변수는 언 급의 결과로 나타나는 의미발생 문제에 있어서 의미발생 관련 매개 변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협화와 불협화가 음악 매개변 수이듯이 가치와 사실 개념 역시 언급 의미 매개변수일 뿐이다. 〈협〉 과 〈불협〉이 개념상으로 반의어이듯이 가치와 사실이 어휘적 반의 어일 뿐, 음악의 경우와 같이, 가치와 사실은 〈협〉, 〈불협〉이 행사하 는 구조적 기능을 하는 것과 같다. 개별변수(죽 가치 혹은 사실)는 구조적으로는 분리성과 고정성을 가 지고 있다• 그러나 기능적으로는 상황맥락 관련적 의미발생기능을 한다. 어떨 때는 가치가 사실이 되고, 사실이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 이 된다. 가치가 있는 것이 바로 하나의 사실이라는 것이다라는 말 울 우리가 한다는 것이다. 가치, 사실 등 모든 의미 매개변수는 의

미구조가 있을 때, 그 구조형성에 있어서 구조적 기능을 한다고 보 면 된다. 구조적 기능이 사실의 가치화와 관련이 되는 것인지, 가치 의 사실화와 관련이 되는 것인지는 분석 과정이 밝혀낸다. 가치는 다름, 사실은 같음이라는 어휘로 언급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음악학 은 다름을 같음으로, 같음을 다름으로 언급하는 작업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여기서 다름이라 함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깊은 느 낌을 뜻할 수도 있다. 자기만이 느끼는 느낌일 수 있다. 언급에 의 해서 전달될 수 없는 그 무엇으로서, 음악에 의해서만 전달되는 그 무엇을 뜻할 수도 있다. 인간은 음악, 사랑, 황홀의 경지, 자기와 남에 대한 의식, 신(전체 로서의 남의 개념 )에 대한 관심을 가전다. 그리고 살고 싶고 먹고 싶 은 욕망을 가전다. 이런 모든 가짐과 상관되는, 〈나〉만의 것이 가치 이다. 같음이라는 말은 그것을 남에게 전달되어 개념화, 사물화, 이 름 붙이기화된 결과로 우리 앞에 나타나 있게 되는 것을 뜻할 수도 있다. 그것이 〈음〉이 아닌, 〈자연 언어〉로 나타날 때 비로소 음악학 이 생기는 것이다. 해답을 얻으면 침묵하지 않고 겉으로 드러낸다. 그러니까 음악학은 〈음악 언급학〉인 것이다.

제 2 장 음악학의 성립 2.1 음악학이 왜 생겼나 음악학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길고도 긴 세월의 산고를 거친 후 생겼다. 17 세기에 씨앗이 뿌려지고 18 세기에 움이 트고 19 세기에 성장했다. 음악학이 무엇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또 그러한 관심이 왜 일어났는가에 대한 앎은 〈이성의 시대〉와 관련된다. 한 마디로 합리주의의 대두가 먼 원인이다. 베이컨, 데카르트, 록크를 조상으로 하는 18 세기 계몽주의 사상가는 인간의 사고 방식에 큰 변 혁을 가져오게 했다. 음악학의 탄생은 새로운 사고의 전통 때문에 가능해졌다. 이미 언 급된 것이지만 사고에는 선입견이 관여된다: 전통은 집단적 선입견 이며 사람의 삶을 간섭하는 것이고, 새로운 전통이 생기기 전의 인 간은 대부분 권위나 기존 전통이 시키는 대로 사고하게 된다. 그러 던 것이 데카르트의 등장으로 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치적 사

고〉라는 말은 얼핏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러나 권위 나 전통이 시키는 대로 사고하는 것보다 이치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옳다라는 생각이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경우 권위나 전통의 힘은 무 력해질 수밖에 없다. 이 말은 〈이치적 사고〉라는 말의 의미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58)

58) 이강숙, 『음악의 이해』(서울 : 민음사, 1985), pp,1 26-33.

〈이치적 사고〉의 중요성은 처음에는 소수의 인간들에게만 받아둘 여졌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자 17, 8 세기는 온통 이성적 시대라 일 컬어질 정도로 〈이치적 사고〉의 중요성을 인정하게 된다. 〈이치적 사 고〉가 중요해지는 이유는, 한 마디로, 찰못된 생각을 버리자고 하는, 잘못된 생각을 생각의 근거로 삼아서는 인간이 생각하는 모든 것이 처음부터 틀릴 수 있다고 하는 자각에 있다. 음악학의 탄생 역시 따 지고 보면 음악과 관련된 잘못된 생각을 버려야 한디는- 자각에서 비 롯된다고 볼 수 있다. 옳은 생각의 근거에 대한 관심이 이 때문에 중 요해지기 시작했고 데카르트 같은 사람들이 그러한 근거에 대한 치 열한논의를전개했다. 2.2 데카르트 사상의 현재성 59)

59) 이강숙, 「바하시대의 사상적 배경」이라는. 이름으로, 1985 년 10 월 19 일, 서울대 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이론전공 주관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글임.

인간은 관심의 대상을 다양하게 가진다• 관심 활동이 계속되면 그 관심 대상과 관련되는 특정 관념이 인간의 의식 속에 생긴다• 그래 서 인간은 음악 관련적 관념도 가지게 된다• 17 세기 초가 서양음악사상에 하나의 중요한 기점을 이루고 있다 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안다. 17 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인간이라든가

인간의 마음이라든가 혹은 음악이라는 것들이 과거와는 다르게 정 의되기에 이르렀다. 그 이유에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데카 르트의 영향이 아마 제일 큰 것으로 생각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은 언제나 〈참〉이 무엇인가를 알고 싶 어했고, 데카르트에게 있어서도 그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명석 • 판 명하지 않은 관념이면 그것이 어떠한 관념이라고 해도 〈참〉으로 받 아들여서는 되지 않는다라고 말한 데카르트의 이야기는 너무나 유 명하다. 무엇이 명석 • 판명한 관념이냐라는 질문에 접근하는 방법으 로서 명석 • 판명하다고 생각되어지지 않은 관념은 일단 전리인 것 으로 받아둘이지 말고,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는, 의심하는 방법 을 그가 고안했다는 사실도 유명하다• 인간은 원래 아무 것도 알 수 없고, 참된 진리를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고 믿는 사람들을 편의 상 이 글에서는 불가지론자라고 부르겠다. 그렇다면 불가지론자적인 회의론자들은, 모든 것을 회의할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데카르 트가 의심함을 통해서 진리를 얻겠다고 하는 그 방법은 불가지론자 적인 회의론자적 성격을 띠는 것은 아니었다• 보통 사람들이 지식이라고 하는 그런 지식은 데카르트가 생각했 던 지석 개념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지식에 대한 막연 하나마 확실한 개념을 가진 데카르트이니까 지식이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자기 나름대로의 굳은 생각을 가졌음이 틀림없었던 것이었 으니까, 데카르트의 이 굳은 생각은 회의론이라기보다, 회의하고는 전혀 다른 확실한 어떤 믿음인 것이다. 그러므로 일단 모든 것을 무 조건 의심하는 방법을 택했다고 해서 그것이 불가지론자와 관련된 회의론자적 성격이라고는 할 수 없다. 데카르트의 합리론을 이해하 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의심하는 방법, 회의하는 방법이라는 말은,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회의한다는 그런 의미의 회의는 아 니라는 말이다.

데카르트가 얻은 결론 중에 유명한 것이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 가 잘 안다. 의심을 하고 있다는 그 사실은 의심할 수가 없다는 것 이다. 의십한다는 것은 생각의 한 형식이다. 내가 의심하고 있음을 의심 할 수 없다면, 내가 생각하고 있음도 의심할 수 없다라고 말할 수 있 다. 생각은 생각하는 사람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결국 생각하는 사람으로서의 나의 존재를 의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 유 명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결론이 얻어졌고, 그래서 자기의 존재에 관한 지식을 얻게 되었다. 자아의 존재에 관한 지식을 직관지라고 한다. 데카로트는 직관지 와 논증지가 있다고 말했다. 직관지는 가장 기본적인 지식이고 절대 로 의심할 수 없는 것이며 논증지는 보충적 구실을 하는 지식이라 고 보았다. 직관지로부터 필연적으로 연역되는 추리의 지식이 논증 지라고 했다. 직관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자아의 존재에 관한 지식 을 얻을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논리학과 수학에서 발견되는 어떤 원리들에 대한 인식이 가능하다는 데에서 온다. 어떠한 양도 그 자체의 양과 갑다, 혹은 전체량은 그것을 이루는 부분량의 합과 동일하다, 혹은 양의 그 반은 서로 같다, 혹은 서로 다른 두 선 사 이에는 오직 한 개의 직선만을 그울 수 있디는· 등에 관한 지식이 직 관지의 예가 된다. 데카르트는 자아의 존재를 믿었음과 동시에 신의 존재와 의계의 존재를 믿었고, 그 믿음은 직관지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으로 생각되 었다. 자아의 존재에 대한 직관지에 도달할 수 있게 하는, 그러한 자 기의 이성을 데카르트는 믿었고, 그 이성 사용의 보증을 필요로 했 다. 그런데 데카르트는 이 보증은 신의 안에서만 발견된다고 믿었다. 이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즉 그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데 카르트는 관념을 세 가지로 나누었다.

외래관념과 인위관념과 본유관념이 그것이다. 의래관념이라고 하 는 것은 그 관념의 생성 원인이 우리 밖에 있는 사물이라는 데 이 유가 있다. 예를 들면 소리라든가 더위 등이 그것이다. 소리에 대한 관념이나 더위에 대한 관념은 우리 밖에 있는 사물에 의해서 생겼 다는 것이다. 인위관념은 인간이 만든 관념을 뜻한다. 도깨비 갇은 것이 바로 그 예라고 볼 수 있다. 세번째 이야기하려는 본유관념이 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관념인데, 이 본유관념이라는 말은 날 때부 터 가지고 있는 관념이라는 뜻이 아니고, 마음 안에서 저절로 생기 는 관념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 본유관념에서는 앞서 말했지만 자아의 관념, 수학적 공리의 관념, 그리고 인과의 원칙과 관련되는 관념 죽 〈원인은 그것에서 나온 결과보다 더욱 완전할 수는 있을지 언정 그 결과보다는 덜 완전할 수 없다〉라는 명제를 전리로 받아들 일 수 있는 것과 관련된다. 신에 관한· 관념도 본유관념에 속한다고 데카르트는 말하고 있다. 데카르트의 신자가 된다면 신에 관한 관념 도 본유관념이라는 것을 믿는다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이 본유관념을 인정하지 않음은- 물론, 본유관념에 많은 문제 가 있다고 말한 철학자도 있었다. 경험론자들이 본유관념을 거부하 는 선두에 선 사람들이라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아무튼 데카르트는 인간의 마음에 어떤 관념이 생겼을 때, 이 관 념이 생기는 원인이 인간 자신이 아닌 어떤 다른 것에서 오는 것이 라면, 그 다론 것에 의해서 조정되는, 기계 갇은 것이 인간이 아닌 가라는 물음을 가졌었다. 자유의사가 있으면 관념을 스스로 만들어 낼 터인데,모든관념을스스로만들어 내지 못할뿐만아니라그관 념의 원인이 따로 있는 것이라면, 따로 있는 원인에 의해 조작되는 그리고 조건지어지는, 기계 같은 것이 인간이 아니겠는가라는 것이 다. 그런데 인간은 기계가 아니지 않는가 하는,이런 생각이 데카르 트로 하여금 본유관념에 대한 생각을 하게 했다. 본유관념은 인간이

원래 가지고 있는 순수한 지적 역량과 관계되는 것이고, 인간의적인 원인 그러니까 기계 관련적 작용력과는 다른 어떤 것으로 간주되었 다. 인간이 기계일 수 없다는 생각아 옳다면 본유관념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게 된다. 지금 여기서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런 이 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인간이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경험이 그 원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경험이 아니라면 어디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하는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데에 있 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물음에 대하여, 그 답은 이성이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디는 것이다. 죽 이성이라는, 본유관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경험과는 상관없이 인간에게는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러한 이야기롤 하고 있다• 본유관념을 인정하면 그· 본유관념 덕분으로, 우리는 어떤 하나의 방법을 따를 수 있다는 것을 밀하기 위해서이다. 모든 것을 일단 의 심하고, 의심과 관계되는 제문제를 분석하고, 간단하고 확실한 생각 에서부터 출발해서 점차로 복잡한 것으로 가고, 고려해야 했던 것이 단 하나라도 빠졌는지의 여부에 대해서 복습을 하는· 식의 방법, 그 러한 방법을 따르면 된다는 식의 말을 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야만 우리가 전실로 지식을 얻을 수 있디는· 말을 하기 위해서이다. 전실 로 우리가 어떤 참을 얻기 위해서는 경험적으로는 되지 않고, 진실 울 얻는 법, 죽 방법을 따라야만 된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이고 또 그 말만이 오직 옳은 말이다러는· 말을 하기 위해서, 본유개념이라든지 신의 인정, 자아의 존재, 신의 존재 혹은 의계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 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신의 존재, 자아의 존재, 의계의 존재를 인정하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렇게 그 존재를 인정 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 인간의 경험과는 상관없이 원래 있다 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과 지식을 얻는다는 것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 고, 그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결국 지식을 얻기 위해서 고안해 내는 방법을 따라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을 한다든가, 인간이 어떤 사고를 한다든가, 평가를 한다든가 하는 모든 인간 행 위들, 예술 관련적 행위, 지식 관련적 행위, 예술 평가 행위 등은 궁 극적으로 경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고, 지식을 얻는 방법에 의존해 야 하는 것이라는 답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방법〉이 중요하 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지식을 얻게 되는 근거에 대한 언급을 한 것이고, 앞 서했던 이야기로 돌아가면 이런 이야기가 가능해진다. 관념은 반드 시 어떤 것에 대한 관념이다. 만약 그런 것이 관념이 아니라면 아무 것도 관념일 수 없다. 관념은 그 관념의 대상과 일치하는 유형 무형 의 실체를 가전다. 이런 말이 옳은 말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능력 자 체가 결국 본유관념적 사실이라고 볼 수 있다. 관념이 객관적 유효 성을 지니게 되려면 그 관념의 실체는 실체와 꼭같은 다론 실체에 의해서 원인지어져야 한다. 그런데 원인지어져야 한다는, 그 원인의 문제에서 두 가지 종류의 이야기가 가능하다. 기계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 기계에 대한 관념이 나의 마음 속에 있다면, 이 나의 마음 속에 있는 관념이 생긴 원인은 기존 기계의 형 상에 그 원인이 있다. 형상 관련적 관념이 내게 생겼다는 것이다. 기 계에 대한 나의 관념은 기계 형상의 복사일 수밖에 없다• 기계와 나 의 관념은 같은 형상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가령 〈열정〉 피아 노 소나타라는 것과도 연결된다. 〈열정〉의 형상과 나의 〈열정〉에 대 한 관념이 갇은 형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기계가 기존 의 기계가 아니고 내가 고안한, 새 기계인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가. 내가 고안한 새 기계에의 관념이 어떻게 해서 생기느냐는 말이다. 이 새 기계에의 관념의 생성 원인은 물론 나의 마음이 된다. 새 기

계에의 관념은 기존 기계 어느 것의 복사가 아니다. 새 기계 관념의 원천은 탁월한 어떤 능력, 더 높은 어디에 있는 능력일 것이다. 이 능력은 기계 관련적 원인이나 조건에 통제되는 속성을 지니지 않는 다. 그러니까 마음이라는 것이 〈더 높은 어디〉라는 말로 대치될 수 있다는 것이댜 왜냐하면 관념이 기존의 관념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 니기 때문이다. 결국 관념 생성 원인은 기존의 어떤 것이거나(결정 론 관련적 관념) 혹은- 더 높은 데 있는 어떤 것(바결정론 관련적 관념) 이라는 말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를 마음에 두고 데카르트가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과정에서 어떤 생각을 했는가 하는 것을 검토해 보자. 생각의 연습 울 위한다는 뜻에서, 신에 대한 관념은 어떻게 해서 생기는가, 생성 원인은 무엇인가, 이렇게 물어보자. 신에 대한 관념에 대해서 대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 〈무한하고 영 원하며 변치 않고 독립적이며 전지전능하며 나 자신과 그 밖의 모 든 존재들을 창조한 실체가 신이다〉라고 했다. 이상과 같은 생각이 데카르트의 마음 속에 있었던 신 관련적 관념이었다. 이러한 관념이 데카르트 자신의 마음 속에 생겼던 것만은 사실이다. 말하자면 인간 의 관념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 관련적 인간의 관념 속에 는 인간이 자기, 데카르트인 자기로부터 왔다고 볼 수 없는 요인이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자기 안에 이런 관념을 일으킨, 자기 아 닌 다론 원인으로서의 존재가 있는 것으로 믿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분명히 무한하고 영원하지 않은 것이 사실 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러한 관념을 생기게끔 한, 원인 구실을 한 존재는 그 결과인 관념보다 못지 않은 완전성을 구비했을 것이 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이미 말한 본유관념의 예 의 하나인, 인과의 원칙문제와 관련되는 것으로서, 〈원인은 그것에 서 나온 결과보다 더욱 완전할 수 있을지언정, 그 결과보다 덜 완전

할 수는 없다〉라는 것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에게 생긴 신의 관념은 하나의 결과이다. 그것을 있게 한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이 결과인 관념보다는 더욱 완전할 수 있을지언정 덜 완전할 수 없다는 말이 성립된다는 이야기이다. 이 말은 결국 신의 존재를 증 명한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데카르트가 신의 존재를 증명했던 것 이 지금 말하여지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인지 아닌 것인지는 나로서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이 문제는 내가 데카르트를 이해하는 정도의 문제와 관련된다. 이 증명이 옳거나 옳지 않다거나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설사 데카르트가 이런 식으로 증명했고 그것을 그대로 내가 여기서 옳게 복창했다고 하더라도 경험론자들은 그 자 체를 반대했을 터이니까, 옳고 그르고의 문제보다 옳다고 치면 내가 해석한 데카르트식 방법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말이 가능해지고, 많 은 사람들이 한때는 그러한 방법론을 믿었고 또 그 믿음이 음악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기억해야 할 사실이라 하겠다. 그래서 경험보다는 방법을 지킴으로써 생긴 음악이 더 많이 나왔다는 사실 울 우리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에 언젠가 비판받을 수 있을지 모르는 어떤 방법이 만일 현 재에 인정을 받고 있다면, 현실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그 방법에 의 해서 우리가 영향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방법을 따르는 삶은 옳은 삶일 수도 있고, 옳지 않은 삶일 수도 있다. 이것은 우리 의 현재적 삶과 관련되는 모든 행위 선택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하지 않을수 없다• 데카르트의 사고는 데카르트 이전의 사고와는· 아주 다르다. 데카 르트 이전에는 옳게 생각하는 혹은 옳게 판단하는 방법의 근거를 이 성이 아니라 권위 • 전통에 두어 왔다. 권위 • 전통이 판단 근거가 된 다는 것은 결국 판단 주체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가 판단 주 체에게 강요를 한다는 것과 같다. 데카르트는 권위나 전통, 이런 것

들이 자기의 판단을 통제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기가 자기의 판단을 통제하겠다고 나섰던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자신의 정신활동이나 자 기에 의해서 지식을 얻는 방법 그것을 중요시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합리론을 믿는 입장의 예술가들은 일반화하기를 좋아하 고 이상화하기를 좋아하고, 예술을 가장 옳은 〈방법〉에 의해서 창조 하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방법〉이 음악이론을 낳기에 이론다. 이런 음악이론은 어떤 성격을 띤 것인가. 그것은 개별적 음악 현 상을 서술해 주는 서술적 이론이기보다 어떤 규범에 부합되는 현상 이 옳은 현상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관계되는 이론이었다. 그래서 규 범이라는 것이 관습이 되고, 결국 이론이 서술 관련적 학문이라기보 다 관습 관련적 학문과 관련되는 것으로 변해 갔다 .60)

60) 라모의 화성법 등이 예.

그 전에는 말하자면 음악 실제가 먼저 있고, 이 먼저 있는 음악을 나중에 서술해 주는, 예컨대 말이 먼저 있고(경험적 행이 있고), 그 말 에 있는 문법을 서술해 주는 것이 이론이었다는` 식이었지만, 합리론 신봉자의 대두 이후부터는 문법이 먼저 있고 문법에 입각해서 음악 작품이 나온다는 식의 이론이 생겨났다 •61} 이 사실은 합리론의 이해 가 반드시 이런 식의 이론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는 의미에서라기 보다 사람들이 이해의 대상을 곡해해서 엉뚱한 이론을 발전시킨다 면, 또 그런 이론의 발전에 의해서 많은 사람들의 삶 자체가 영향받 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엄청난 사건이 된다는 의미에서 중요 하다. 데카르트의 곡해뿐만이 아니라 가령 성경 곡해만 해도 그 경 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 곡해 결과의 삶도 얼마나 역사상 많았던

61) 말이 먼처 있다는 입장은, 몰라도 말을 한다, 법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은, 알고 말을 해야 한다, 이런 것을 주장하는 셈이 된다. 이 말은 〈꾸근,,干〉 사 는 것이 인간, 〈알고〉 살아야 하는 것이 인간, 이렇게 두 개의 인간 중 어느 인 간이 더 옳은가의 문제를 놓고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는 셈과 갇다.

가. 그리고 그 삶이 비록 곡해에서 비롯된 삶이었다고 해도 좋은 삶 인 경우가 역사상 또 얼마나 많았던가. 작품이 먼저 있고 그 작품을 서술해 준다는 것이 이론이 되는 경우가 있고, 규칙이 먼저 있고 먼 저 있은 규칙에 의해 쓰인 작품과 관련되는 서술문이 이론이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면, 작품 선행 관련적 이론은 서술적 이론이고, 규칙 선행 관련적 이론은 규범 관련적 이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이다. 마치 선율 선행론적 대위법이 16 세기 대위법이라고 친다면 화 성 선행론적 대위법이 18 세기의 대위법이라는 식으로 일컬어질 수 있듯이 우리는 무엇이 선행되어야 하는냐라는 문제와 깊이 관련이 될 수 있다는 것이고, 그래서 작품 선행론적 이론과 규칙 선행론적 이론이라는 것을 언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합리론이 탄생시킨 규칙 선행론적 음악이론과 관계되는 명제에는 이런 것이 있다. 인간의 감관은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을 지 니고 있다, 이러한 즐거움을 유발시키는 조건으로서는 감관과 경험 하는 대상과의 사이에서 어떤 적절한 조화 관련적 관계성이 성립되 어야 한다. 감관과 접촉할 대상은 감관에게 지나치게 어렵고 복잡한 상태로 접해 와서도 안되고 지나친 혼동성과 관련되어 있는 상태로 접해 와도 안된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적절한, 조화 관련적 관계성 형성에 방해가 된다• 전체를 이루는 부분들의 상이점이 적으면 적을 수록 감관은 그 대상을 쉽게 지각하게 되고 그 부분들의 관계성이 조화롭게 어울리면 어울릴수록 그 상이점은 적게 느껴지게 된다 .62)

62) 여기서의 감관은 물리적 감관이 아니고 문화적 감관이다. 귀 가림을 한 후의 감 관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상이접〉이 크고 적고의 문제는 귀 가림 관련적 〈수 용성〉과 관계되기도 하겠지만, 〈재료〉의 〈생소성〉과 관계된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결국 핵심은 조화의 문제이다. 인간의 마음과 가장 잘 동화되는 감 관 관련적 대상은 너무 쉽게 그것이 지각되어도 좋지 않고 너무 어

렵게 지각되어도 좋지 않다. 물론 조화는 변화성이 즐거움을 주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인식할 때 얻어진다. 이상과 같 은 명제들이 하나의 규범, 규칙, 방법 등을 낳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63)

63) 예술의 수용성 없이는 경험이 불가능한 것은 사실이다. 수용성의 전제가 모든 논의의 전제이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말은 수용성이 특정 방식으로 정해져야만 예술적 경험이 가능하다는 말이고, 〈특정 방식으로 정해져야만〉이 라는 말은, 정해지면, 〈너무 쉬워도, 너무 어려워도〉라는 말이 옳은 말이 된다 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렵고 쉽다는 말 자체는 수용성과 관련되 지만 말이다.

지금까지의 언급은, 〈법〉에 의존해야 옳은 음악적 삶(활동)을 영 위할 수 있다는 이유에 도달한 논리적 근거의 서술이었고, 〈법〉의 의미, 〈법〉이 음악에 미천 영향 등에 대한 언급이었다. 물론 음악과 상관되는 원인 관련적 명제도 소개했다. 그런데 이런 식의 원리 관 련적 명제에 대한 언급을 하긴 했어도 그러한 언급을 한 데카르트 자신은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예술에 어느 정도의 적용성이 있느냐 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던 모양이다. 왜냐하면 예술적 경험은 객관 적 성격이기보다는 항상 주관 관련적 성격이라고 데카르트는 믿었 고 이성적이라기보다는 비이성적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데 카르트의 〈방법〉이 상당히 합리적이라고는 했으나 그의 예술관은 오 히려 경험론자에 더 가까웠다고 하겠다. 여기서 경험론자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식 출처의 원천이 경험이다라는 말의 의미 검토도 중요하겠 지만, 우선 인간은 비이성적으로라도 경험을 해버린다는 의미를 검 토해 볼 필요가 있다. 알고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고 경험해 버 린다는 것이다. 알고 경험하고 싶은 것이 인간이기도 하겠지만, 모르 고 경험해 버리는 것도 인간이다. 음악적 경험이라는 것은 규칙 선

행 관련적 경험이 아니고, 실제적으로 보면 그냥 경험을 해버린다는 의미를 지닌다. 인간의 본성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 본성이 음 악에 작용될 경우도, 경험을 먼저 해버린다는 것이다. 규칙을 알고 그 음악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니라는· 그 사실을 무시 하면 벌써 인간의 본질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 된다. 법규에 의존해서 우리가 받아들이는 화성을 왈가왈부하자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협화음과 불협화음의 개념에 있어서 규칙 위주적 사고를 하고 있는 사람은 병행 5 도를 피 해야 한다든가 식의 이야기를 할 것이 분명하나 그 법규를 무시하 고 음악의 모든 문제를 귀가 받아들이면 되지 않느냐 죽 경험이 받 아들이면 되지 않느냐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는 말 0] 다. 존 록크가 경험론 운운에서 상당히 중요한 사람이지만 베이컨 역 시 경험론의 시조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사람이리는· 것 은 알려진 사실이다. 베이컨은 경험자는 개미와 같아서 먹이를 하나 하나 모아서 사용한다고 했고, 합리론자는 거미와 같다고 했다. 거 미는 거미줄을 쳐서 거기에 걸려드는 먹이를 사용하므로 먹이를 하 나하나 모아가는 것과는 전혀 다르디는· 것이다. 합리론자는 거미 같 고 경험론자는 개미 같다는 식의 비유는 아주 재미있다. 베이컨은 선입견 관련적 관념 같은 것은 일체 배제하고 확증을 개 미같이 모아가서 그것을 축적한 후에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인간의 결론은 톨리기 쉽다면서 인간이 선입견 관련적 관념을 가전다는 것의 위험성을 언급했다. 인간은 항상 정신 박약자 비슷하게 허약한 정신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마치 전염병에 감염된 것과 같은데, 전염병에 비유될 수 있는, 선입견 관련적 관념 때문에 인간은 참 진리를 얻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피하는 방법과 관련시켜 베이컨은 우상이라는 말을 사용하곤 했다.

그는 종족의 우상이라는 말을 했다. 모든 사람이 가지는 병이라는 것이다. 곧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고 또 신념의 동물이기 때문에 감 정에 취해 있을 때라든가 신념에 묶여 있을 때는 대상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인간은 여러가지의 감정을 가지게 되는데 무엇에 대한 공포심의 감정을 가 지게 되는 경우도 있다. 무식에 대한 공포심 등도 인간이 가지는 감 정의 일종이다. 현대음악을 싫어하는- 이유를 예로 들어 보면, 인간은 이미 좋아했던 것을 좋아하는데, 그러니까 현대음악은 이미 좋아했 던 부류가 아닌 것이고, 그래서 인간은 현대음악을 싫어한다는 것이 다. 자기가 모르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든가, 무식의 폭로를 무서워 하는 인간의 감정적 속성으로 인해서 인간은 종족의 우상을 모시게 된다는것이다. 동굴의 우상이라는 것에 대한 언급도 했다. 이것은 인간은 자기 나름대로 동굴 즉 자기 나름대로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문화의 수인이라는 이야기이고 고정관념을 형성시 키고 밌는 어떤 배경의 노예라는 것이다. 이유는 모르지만 인간은 그러한 자기 나름대로의 고질병 같은 것, 가치관 관련적 고질병 즉 좋게 말해서 특수성일지 몰라도 그런 것을 가지고 있디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 책이 그 동굴을 만들고, 당파에 소속되면 당파가 그 동 굴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그것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 다는 것이 베이컨의 생각이다. 전자음악을 싫어한다든지, 불확정성 음악을 싫어한다든지 하는, 그런 가치관의 동굴을 생각해 볼 수가 있다. 시장의 우상이라는 것이 또 있다. 이것은 말의 장난에 인간이 구 속된다는 이야기다. 복음이라는 것의 중요성, 그리고 복음이 실린 책 이라든가, 아니면 책에 나오는 말이나, 외래관념이니 인위관념이니 하는 것 등 여러가지 어휘가 어떤 중요한 사실을 뜻하리라고 사람

들은 생각한다. 시장의 우상이라는 말을 하게 된 것은, 시장에 나가 면 물건을 사고 팔고하는 여러가지 문제가 생기게 되듯이, 인간은 인간세상이라는 시장에서 말을 주고받게 되는데, 물건을 사고 팔 경 우, 그 물건이 가지고 있는 가치만큼의 돈을 받고 팔아 이익을 보기 도 하고, 돈을 덜 받아 손해를 보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 왔다갔다 하는 가운데서 말 그 자체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 거래된다는 것 이다. 말과는 상관없는 것이 인간인데 그 말 자체를 그대로 믿어버 리는 잘못, 말을 믿는 인간의 병 그것이 바로 시장의 우상이라고 그 는 이야기했다. 말을 믿는다는 것의 예를 음악에 바유하면 평론가들 이 잘했다고 하면 무조건 잘했다고 믿어버리는 우중을 둘 수 있을 것이다• 극장의 우상이라는 것이 또 있다. 이것은 인간이 쟁점의 노예가 된다는 것과 관계된다. 〈일반이 승인하는 체계들은 모두 무대 연극 에 불과하며 사실과는 관계없이 연극적으로 꾸며진 작가 자신의 창 작 세계에 해당되는 것들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떤 쟁점의 노예가 되어서는 절대로 되지 않는다〉는 명제와 관련된다. 인간이 어떤 학 파라든가, 사고체계, 종교체계가 내거는 쟁점의 노예가 되어서 그런 쟁점과 관련되는 하나의 관념이 정말로 맞는 것 같디는· 생각이 들 므로 해서 우리는 그 세계를 닫힌 세계로 존재시키고 그 닫힌 세계 의 신자가 되고 이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우 리나라 음악가들이 극장의 우상을 믿는 예는 많다. 서양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새 사조의 노예가 되고 있는 것도 그 좋은 예다. 이런 우 상의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그 의미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64)

64) Lew is Rowell, Thin k ing About M usic : An Intr o ductio n to the Philo s o hpy of Mu sic (Amherst : The Un ive rsi ty Massachusetts Press, 1983), pp.106 -7.

인간은 어떻게 해서 아는가.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안다 고는 할 수 없으니까 그냥 안다고 하면 경험적으로 안다는 이야기 이고, 안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알고 나서 안다고 하는 것 이 진짜 앎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65) 인간은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나서 아는 것이 아니라 그냥 경험을 해버린다라고 말 하고, 경험을 해버린다는 것이 결국 아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왜냐하면 그런 식으로 경험하니까 그렇더라는 식으로 어떤 것 에 대해서 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수많은 경험을 하게 되는 데 이 모든 경험을 전부 안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경 험하는 모든 관념이 지식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지식이냐고 물을 때, 관념 연결의 지각이 지식이라고 말하면 서, 그 연결을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의 문제와 지식은 상관이 된 다고 경험론자들은 말한다.

65)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첫 부분에서 언급되고 있는 art. 2} exp er i en ce 개 념과 연결시킬 수도 있다. 현자와 범부의 경험 개념과 연결시킬 수도 있다.

마음은 작동 능력을 가졌을 뿐 작동 재료는 제공하지 않고, 작동 재료는 감각 관련적 재료일 뿐이라고 말하면서 경험론자들은 작동 능력 자체가 관념은 아니므로,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관념은 그 능력 이 작동하는 데 쓰이는 재료의 덕분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지식의 전정한 원천이 작동 능력이라기보다 작동 재료라고 말하는 것이 다 .66)

66) 음악 심(心)보다 음악 물(物)을 더 중요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심(心)이 물(物)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물이 십을 다스린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이 유도 여기에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말을 할 수 있다.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난다 는 사실과 마찬가지로 관념이 나의 마음 속에 생긴다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절대로 아이 스스로에 의해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남자만으로도 안 되고 여자만으로도 되지 않는다는 말을 할 수 있다. 관념이 인간의 마음 속에 태어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마음 속에 원래 있는 작동 능력과 그것에 주어지는 감각적 재료, 이것의 결합이 없이는 관념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이성이 먼저도 아니고, 경험이 먼저 도 아닌, 그것 둘의 결합이 우리의 관념을 낳는다는 말을 할 수 있 는것이다. 그런데 경험에는 인식적 경험과 상상적 경험이 있다. 특히 음악에 서는 상상적 경험이 중요시된다. 〈그냥 경험〉의 가치 인정이 이 상 상적 경험을 더 중시했다. 인식적 경험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고 경 험하는 것이고, 상상적 경험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고 모르고는 상관 없이 그렇게 상상해 버리게끔 되어질 때 생기는 경험이다. 그래서 합리론에서는 규칙이 중요했지만 경험론에서는 상상이 중요해진다. 상상에 의해서 생기는 관념, 이것들이 어떻게 서로 결합되느냐 하는 결합이론 같은 것이 나오게 되었다. 성경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해서 자기 나름대로 해석한 삶이 있을 수 있듯이, 합리론이라든가 경험론이라든가 하는 철학적 체계가 나타났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해석이 있게 되고 그것에 의하여 여러가지의 삶이 나타났고, 여러가지의 예술 유형이 개인적 차원에서가 아니고 집단 적 차원에서도 나타났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면, 그런 사실들의 중요 성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경험은 감각이 유발한다. 이성이 유발하는 것이 아니다. 이성은 알 고 경험하고 감각은 모르고 경험한다는 것인데, 모르고 경험하는 것 에의 가치 인정에 대한 새로운 추세가 경험론과 관계가 되고 이것 이 음악에 미천 영향은 컸다. 상상의 중요성과 더불어, 이성적인 것 과 반대되는, 감성적인 것의 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도 경험론과 관계된다.

합리론도 경험론도 인간을 찾기 위해서 노력했다. 이것들이 서로 다른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물론 다르긴 다르다. 그러나 그것이 다르다는 것을 아는 것보다 그들 모두가 성실히 인간을 찾으려고 노 력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들이 다르다라고 말해 버리는 것이 자칫 잘못하면 또 하나의 동굴의 노예를 만들 위험이 있음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동굴의 노예인 동시에 극장의 노예 인 인간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상을 숭배할 위험을 안고 있다는 사 실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베이컨, 데카르트, 록크의 사상적 유산울 받음으로써 인간에서 새 로운 사고 반경을 제공한 계몽주의 사상가들에는 무엇이 쟁점이었 던가. 그들의 쟁점이 음악학 태동의 밑거름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음악학이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고 오랜 세월을 거쳐 탄생된 역사적 산물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계몽주 의 사상의 핵심 개념을 점검해 보자. 2.3 계몽주의 사상 〈무마음〉(백지)은 마음이 아니다. 〈유마음〉(경험으로 각인된)이 마 음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것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을 고치지는 것에서부터 음악학은 시작된다. 음악학자들의 모든 발언은 유마음에서 한다. 경험적 발언이다. 이 말은 역설적이게도 경험적 발 언은 보편성을 띠는 것이 아니므로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도 한다. 말은 해놓으면 즉시 꼬인다. 그러나 옳은 말을 하기 위해 서는 꼬일 말은 꼬아야 한다. 틀린 말을 하면서 옳은 말을 하고 있 는 것으로 착각하는 음악학자가 있으면 그것이 더 큰일 날 일이다. 그래서 음악학의 출발은 옳은 인식법에의 추구로부터 비롯되는 것

으로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음악학이 왜 일어났고 음악학이 무엇에 대한 관심을 가 지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이성의 시대와 관련되는 쟁점을 알 필요가 있다. 이치적 사고력, 혹은 이성적 사고의 중요성이 강조된 시대, 깨 우친 인간이 많이 살고 있는 시대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계몽주의는 문화사학자들이 주로 사용한 어휘로 서구의 특정 시 대를 가리키는 어휘다. 철학사상과 시대적 쟁점이 별개의 것으로 가 고 있던 시대가 역사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18 세기는 예의였다. 계몽 주의 시대는 그 시대의 쟁점이 당대의 철학사상과 나란히 가는 이 른바 이성의 시대로 불리었다 .67)

67) Crane Br into n , En ligh te n ment , The Enc yclop e d ia of Philo s o phy(edb. y P. Edwards(New York : The Macm illan Co. & The Free Press,1978), Vol 2, pp.5 19-25. 계몽주의에 관한 언급은 주로 이 굴을 참조했음.

18 세기의 일반 대중들은 철학자들의 저서나 직접적 접촉이 아니 라 철학사상을 대중화시키는 데에 압장 선, 이른바 전도사격에 해당 되는 저널리스트, 배운 사람, 살롱에서 유식하게 토론할 수 있는 능 력의 소유자, 죽 젊은 청년들에 의해서 계몽되었다. 전도사격에 속하는 일군의 사람들을 우리는 자유사상가라고 부른 다. 철학자라고 부르기는 좀 뭣하지만, 그래도 모든 사고를 철학적으 로 하는 사람들이 자유사상가들이었다. 볼테르나 디드로 같은 사람 이 바로 자유사상가들이었다. 자유사상가들은 체계를 가진 철학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전문철학자들과 그 성격을 구별해야 한다고 말하 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보기에 따라서는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그것은 디드로나 볼테르 같은 자유사상가들의 저작 수준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의 저작 수준은 대단한 것이었다는 말이다. 니체가 철 학자라고 불리우니까 그들도 마땅히 그렇게 불리어야 한다는 주장 도 있다. 그만큼 그들의 저작 수준이 높았다는 뜻이다. 자유사상가들

은 옳게 알아야 함의 중요성 즉 인식론의 중요성은 인정했으나, 형 이상학을 위한 형이상학을 하는 철학자들을 꾸짖었다. 서양 철학사에서 언제나 문제시되어 오던 두 개의 주제가 계몽주 의 시대의 배운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했다. 첫째는 홉스나 록크 그 리고 롯소 등의 선으로 이어지는 사회계약설과 상관되는 쟁점에의 관심이었다. 그것은 정치 철학 관련 주제에 대한 관심이었다. 일상생 활의 대화에서 언제나 끼어드는 쟁점이었다. 인간의 자연적 권리와 인위적 권리에 대한 이야기가 꽃피었다. 인위적 권리라고 함은 말할 것도 없이 약속에 의해서 권리가 부여되는 것을 뜻했다. 인간 권리 에 대한 논쟁은 삶의 구석까지 관여되지 않을 수 없었다. 삶의 부산 물인 예술 관련 인간 행위에도 이 문제가 깊이 관여되었다. 둘째는 록크, 버클리, 흄, 칸트 등의 선으로 이어지는 인식론 관련 주제에 대한 관심이었다. 철학자들만의 관심이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까지 이 관심이 파고들었다는 것은 계몽주의 시대의 특칭 중 하나이었다. 그리고 이 사실에의 인식이 지금의 논의에 중요성을 부여한다. 게르만족이 로마법을 받아들인 일과 유럽 대륙이 록크 사상을 받 아들인 일이 바견될 정도로 록크가 행사한 영향력은 컸다. 18 세기는 록크의 시대였다. 록크의 세계관이 곧 18 세기의 세계관이었다고 해 도 과언이 아니다. 계몽주의 세계관은 자연과학의 가치를 인정하는 관이었다. 뉴튼의 P ri nc ipi a(1687 년)가 등장한 것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수학, 천문학, 물 리학이 할 수 있는 일의, 그 어마어마한 가능성이 이 책 속에 집대 성되었다. 18 세기 초 서양의 보통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과학〉이 인간을 위해서 할 수 있는 힘 내지 일의 귀중성이 인식되었다. 역사 분야나 음악 분야에서도 과학적 접근이 중요시되기 시작한 것은 너 무나 당연했다• 〈과학이 모든 것을 쉽게 했다〉라는, 현대에 와서 볼 수 있는, 여러가지 현상(전기, 자동차, 비행기 등 수많은 과학의 부산물

이 우리 인간의 삶을 쉽게 했다는 뜻)이 실상에는 뉴튼의 자연에 대한 설명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뉴튼의 저서가 불어로 번역되어 그것이 불란서에서 행한 역할 또 한 무시할 수가 없다. 과학자가 문화적 영웅이 된 것은 뉴튼이 처음 이다. 과학의 중요성이 일반 대중에게 인식되어 과학 관련적 화법 자체가 교양의 자격 문제가 될 정도의 풍토가 되었다. 그래서 과학 자가 문화적 영웅으로서의 선망의 대상이 된 것이다. 마치 오늘날 링컨 센터가 연주가의 선망의 대상이 되듯이 말이다. 다윈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문화적 영웅이 태어난 것도 모두가 뉴 튼이 뿌린 씨앗의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히 아니다• 뉴튼을 문화적 영웅으로 대우하면서 스스로를 행복하게 생각했던 선남 선녀들이 뉴 튼의 P ri nc ipi a 를 이해해서 그랬다기보다 그것의 중요성을 인정한 문 화 풍토가 이미 생겨버렸기 때문에 뉴튼이 무조건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떤 일이 그렇게 일어나게 되는 참 이유라든가, 어떤 것이 그렇 게 되어 있는 참 이유 같은 것을 인간이 알게 되는 것이 바로 과학 의 덕분이라고 믿었다. 그러려니 하는 미신식 생각의 허울을 벗건 것도 과학이었다. 자연과 인간이 왜 지금 있는 꼴로 있는지를 과학 이 알게 했음으로 과학은 인간을 더 잘살게 하는 데 기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음악학이 〈음악 과학〉으로 정의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계몽주의 사상은 많은 분야에서 개혁을 일으켰다. 〈음악 과학〉의 탄생도 그 여파였음은 말할 나위 없다. 자유사상가들의 쟁점은 이성, 자연(과학, 법칙), 진보, 이 세 개념과 밀착되고 있었다. 이 세 개념 이 서로 얽혀서 하나로 이룬 세계관과 상통했다. 하나 둘이 아닌, 수 많은 서로 다른 개별적 사실을 하나로 묶어 주는 정신 구성과 밀착 되고 있었다.

계몽된 사람에게 있어서 아성은 〈논리〉와 〈과학〉(자연철학)으로 훈 련된, 극도로 날카로와전 상식의 일종이었다. 신체의 각 부분들만큼 합목적적 기능을 잘하는 유기체 부분은 없다. 이성은 정신의 한부분 으로서 나름대로의 기능을 한다. 신체를 위한 기능과 정신을 위한 기능을 생각하면서, 정신을 위한 이성의 기능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성의 기능이 백퍼센트 언어화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이성이 기능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인간의 몸만이 아니라 마음도 자연관 같이, 만들어져 있다. 여기서의 자연은 신체를 뜻할 수 있다. 신체는 자연적 산물이라는 의미에서다. 그러나 이성 역시 하나의 자연일 수 있다. 그런데 이 자연이 손상되어 제대로의 기능 울 하지 못할 때 문제가 생긴다. 계몽된 사람의 눈에는 계몽주의 시 대에 많은 사람들의 이성이 손상되어 제대로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비추어졌다. 이성 기관이 제대로의 기능을 할 수 없게끔 환 경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보았다. 자연 환경이 물리적으로 타락되었 다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 환경과 문화적 환경이 타락되었다고 본 것 이다. 신체 기관이 정상 기능을 하지 못할 때에는 몸의 환경이 나쁘 기 때문에 죽 병이 들었기 때문에 그렇겠고, 정신 기관인 이성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에는 마음의 환경에 병이 들었기 때문이라는 것 인데, 18 세기의 마음 환경 죽 제도 • 문화 환경이 타락됐다는- 것이었 다. 문화적 환경의 병은 합병증 같은 것이었다. 교회, 국가, 사회 • 경 제적 계층, 미신, 무지, 선입견, 빈곤, 악덕, 이런 모든 것들이, 힘을 합치기나 하듯이, 이성의 정상적 기능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었다. 자 유사상가들의 생각은 로마의 카톨릭 교회가 가장 타락한 곳이라는 것이었다. 여론 조사를 오늘날식으로 했다면 필경 그러한 결론에 도 달했으리라는 것이다. 신부들은 악의 심볼이었다• 이기적이고 냉혹 하고 비관용적인 사람이 신부였다. 〈파렴치한을 박멸하자〉라는, 신

부에 대한 볼테르의 비판적 말은 한 세기 동안 계속되었다. 계몽된 자들에 있어서 그들의 가슴 밑바탕에 깔린 원한 같은 생 각은, 교회가 안고 있는 가장 악마적인 요소에 기인한 것이었다. 이 요소는 사람에게 불길한 저주를 하는, 점쟁이의 짓처럼, 초자연적 언 급으로 이성 위에 믿음과 계시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착한 인간, 착 한 신자인 사람을 협박한 것이었다. 기독교인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은총이다. 은총을 내리는 것이 바 로 이성적인 것이어야 했는데, 그것이 그렇게 되지 못했던 것이다. 은총의 본유 개념이 이성이라고 자유사상가들은 생각했던 것인데 신 부에게서는 그러한 은총이 완전히 무시되었던 것이다. 전정한 은총 이야말로 진정한 이성이라는 것을 신부들은 알고도 모르는 체했다. 전정한 기독교인이면 그것 자체로 벌써 본유적 은총 관련 사항을 운 반하고 있는 것으로 사료되어야 마땅했다. 이와 똑같은 의미로 진정 한 계몽주의자들에게도 이성이 본유적으로 관여된다. 물론 이성은 이유 없이 그냥 관여되지는 않는다. 적절한 환경 조전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계몽주의자나 그들의 지지자들이 생각하기 로, 필요한 환경 조건의 변화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노 력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역사라는 길고 긴 시간과 노력이 관련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기다림과도 통했다. 어느 정도 더 기다리면 세계의 환경이 이상적으로 바뀌게 되느냐라는 생각을 하 는 계몽주의자가 있기까지 했다• 록크가 문제의 인물이었다. 자유사상가들에게 이성을 믿게 한 장 본안이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철학적 • 심리학적 근거를 마련했다. 우리 모두가 익히 알고 있듯이 록크는 타고나는 관념을 인정하지 않 았다. 종교적 계시의 참됨을 믿는 기독교인들의 전리관도 물론 믿지 않았다. 하나님의 뜻 같은 것은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는 타불라 라사t abula.lasa 라는 어휘를 소개했다. 아무 것도 씌어 있지 않은,

무엇을 기록할 수 있는 백지 같은 판, 평평한 판이라는 뜻을 가전 용 어이다. 의계의 인상을 받아들이지 않은 백지 상태의 마음을 표현하 기 위한 말이다. 그러니까 백지 위에 경험을 통한 내용을 각인하면, 각인 내용이 비로소 특정 마음이 된다는 것이다. 보편 마음이라는 것은 없고, 특정 마음만이 마음이고, 이 특정 마음을 있게 할 수 있 는 근거가, 임신 능력에 비유될 수 있는 백지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임신 능력은 임신이 아니고 아이가 생겨야 비로소 임신한 것이듯이, 백지는 마음이 아니고 특정 방식으로 각인된 백지가 비로소 마음이 라는 것이다. 따라서 경험을 통제할 수 있으면 마음을 〈만들 수〉 있 디는 것이다. 마음 만듦까지 통제할 수 있다는 이론이 성립된다는 것 0] 다. 이 말은 역사 형성도 통제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물론 이 이론 에도 문제는 있다. 통제되는 역사는 벌써 역사가 아닌 것이고, 그래 서 통제되면 역사는 없는 것인데, 역사는 여전히 있는 것이다. 록크 말대로 통제를 한다면 통제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통제를 〈전부〉할 수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통제 관련 변수 〈전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완전한 통제를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록크의 이론이 무가치한 것으로 남는다는 말은 아니다. 마음은 마음의 성질이 특정 방식으로 행사될 때에 바로소 마음이 된다. 죽 성격 관련적 마음일 때 마음일 수 있다. 그런데 이 성격의 형성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 록크의 입장이다. 중복되는 이야기이 지만, 마음이라고 할 수 있는 소지는 보편 마음이냐, 특정 마음이냐 라는 물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특정 마음이 마음이다라 는 사실에의 인식이 중요하다. 신체에 붙어 있다고 그것으로 눈이 되는 것이 아니고, 보는 눈이 눈인데, 보는 눈은 보는 방식에 복종 하는 눈이다. 방식은 이미 특정 방식과 관련된다. 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이라는 말의 의미가 중요하다. 마음으로

쳐줄 수 있는 모든 것은 경험이 각인하지 않는 빈 마음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시해야 한다. 쳐줄 수 있는 것과 쳐줄 수 없는 것이 있다 는 말이 있는데, 돈 값으로 쳐줄 수 있는 물건이 있듯이, 마음 자격 으로 쳐줄 수 있는 속성이 있다. 이 속성은 백지의 〈무마음〉이 아닌, 각인된 〈유마음〉이다• 유마음은 바로 성격이다. 마음으로 쳐줄 수 있 는 성격이 환경에 의해서 형성된다는 것이 록크의 주장이다. 요즈음 도 인간은 문화의 수인이라는 말을 한다• 인위적 성격 조성 이론과 상관된다. 모두가 록크 이론의 변형일 수밖에 없다. 무마음으로서의 마음은 모든 사람이 같게 가전다• 사람을 그 사람답게 하는, 각인된 유마음인 특정 마음은 모든 사람이 다르게 가전다. 이러한 모든 문 제를 권위나 전통이 아니라 이성이 따졌다• 그래서 이성이 새로운 사고 방식을 낳았고, 음악학의 태동이 또한 그에 힘입었다. 이성 다음으로 자유사상가들이 문제시 삼았던 것은 〈자연〉 개념 이었다. 자연이 무엇이며, 삶이 그것과 어떤 연관이 있길래 인간이 그렇게도 문제로 삼았던가. 그리고 음악학과는 어떠한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인가. 이런 문제에 대한 검토는 여러가지의 시사점을 던진다. 자연은 우선 산과 들, 해와 달을 가리킨다. 산과 들, 해와 달은 무 엇인갸 있는 그대로의 〈것〉이다. 여기서 〈있는 그대로의 것〉이라는 말이 중요하다. 인간이 특정 방식으로 가공· 내지 변질시킨 것이 아 니다. 산을 허물고 아파트 촌을 세운 경우 그 아파트 촌은 자연이 아 니다. 자연적인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 수는 있다. 자연이라는 말은 〈있는 그대로의 것〉이라는, 〈태초에 만들어전 것 그대로〉러는 뜻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아파트가 들어선 도 시는 타락된 자연이다. 인간 이성의 경우도, 〈있는 그대로의 것〉으로 있을 수 있다. 타락 되지 않는 이성으로 말이다. 타락되지 않는 이성이 바로 자연 개념 과 상관된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라는 말은 타락된 이성을 회복하라

라는 말과 통한다. 타락된 이성은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 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있는 것은 자연이지 초자연이 아니다. 그런 데 초자연 운운을 하게 되는 인간이 있다. 타락된 이성을 가진 인간 의 경우 그런 말을 하게 된다는 것이 계몽주의자들의 생각이었다. 인간 이성이 둔감해지면 초자연을 믿는다는 것이다. 계몽주의는 자 연을, 있는 그대로의 것을 숭상하는 것이지, 있는 그대로의 것이 아 닌, 초자연 같은 것에 대해서는 〈반〉한다. 이성이 어떠한 경우에 타락되는가. 사회 구조, 관습, 감각적 경험 등이 가져오는 부패 내지 타락이 이성을 부패시킨다. 이성의 작동이 아닌, 잘못 조직된 감각 관련적 인상의 작동에 의해서 자연은 감추 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감추어진 것의 발견은 타락되지 않은 이성 의 작동만으로 가능하기에 이성의 회복에 따른 자연의 발견과 자연 으로의 회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보통으로 계몽된 사람은 타락된 이성, 철저히 깨어 있는 사람은 참 이성을 가전 사람이다. 보통으로 계몽된 사람은 감각 관련적 귀 를 가진다. 참 이성은 이성 관련적 귀를 가전다. 음악학은 감각 관 련적 귀와 이성 관련적 귀 모두를 가져야 가능궁}다. 이 말은 선입견 을 가져야 하고 그리고 나서는 선입견으로부터 해방되어야 옳은 음 악학을 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있는 그대로의 것은 미와 선이다. 그러므로 자연은 미와 선이 실 체화된 개념이다. 이미 언급한 것이지만 자연은 초자연에 반기를 든 다. 이성의 길, 자연의 길에 눈 뜨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무지로 만들기 위해서 일을 꾸민 것으로밖에 생각 되어지지 않는 어떤 상태가 초자연적 상태라고 계몽된 사람은 생각 했다. 가령 교회가 고의로 꾸민 상상적 허구, 비존재를 존재로 착각 하게 하는, 기적 같은 초자연에 반기를 든다. 둘째, 바자연성에 반기 를 든다. 비자연성은 초자연성과 다르다. 초자연성과는 달리 비자연

성은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이다 .68) 계몽된 자에게 있어서 비자 연성은 악마가 지상에서 취하는 형식이었다. 비이성적 관습과 전통 이 역사 속에서 누적됨으로써 탄생되는 〈무거운 짐〉, 죽 비자연성, 인위성, 이런 것에 대한 반기를 든다.

68) 이 대목에서 우리는 한국음악 논의를 할 수 있다. 한국 창작음악은 자연성을 추 구해야 한다.

사탄에 대해서 골치를 앓는 것은 기독교인들만의 문제가 아니었 다. 계몽된 자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기독교인에게는 사탄, 계 몽된 자에게는 비자연성이 해방의 대상이었다. 계몽된 자가 오히려 더 기독교인이었다. 그래서 악마 • 비자연성의 출처를 밝히려는 노력 이 끊어지지 않았고, 자연적인 것이 어쩌다가 바자연적인 것이 되어 버렸는지에 대해서 밝히려는 노력 또한 끊어지지 않았다. 자연 관련 사회에서는 땅이 공유지였다. 담을 치고 이것은 내 땅 이다라는 식의 행위는 필요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유지를 주장하 는 시대로 인간의 역사는 바뀌었다. 비자연적 시대로 바뀌었다. 이것 이 인간의 첫 실수였다. 아담이 사과를 따먹은 실수에 비유되기도 한다. 인간이 지상에서 저지론 첫 실수에 대해서 롯소는 그의 「불평 등의 기원」에서 언급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비자연이 사탄이라면, 자연은 선이다. 자연은 착함과 아 름다움의 표준이다• 이 표준을 구체적으로 언급한다면, 그것은 기독 교 관련적 표준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계몽된 자에게 있어서의 비 자연은 기독교인에 있어서의 사탄과 성격이 비슷하다. 계몽주의자들 은 사탄이 아니라 비자연성을 싫어했으니까, 결국 아주 자연적인 것, 즉 금욕이나 고행보다 쾌락이나 자연스러운 삶 관련적 도구의 중요 성 등을 인정하는, 이른바 천상주의자가 아닌 지상주의자였다. 그러 나 타락한 쾌락적 계몽주의자는 거의 없었다. 설사 타락한 무리가

있었다고 해도 그들은 하나감이 사회적 의식이 철두철미했다 •69)

69) 〈자연으로 돌아가라〉의 〈자연〉이 새 질서 세계에 대한 동경. 새 세계관 정립을 위한 정치적 선전 도구로 이용될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 음악계의 실 정을 생각하면 〈자연으로 돌아가라〉가 새 음악문화 창조에의 동경, 새 음악학 정신 창조에의 동경과 연관된다고 볼 수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사람 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의 음악학 역시 자연으 로 돌아가기 위한 한 방법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전보 개념도 계몽주의 사상 형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생물 은 전화한다〉는 진화론과 상관되는, 생체의 점진적 진화 과정에 대 한 체계적 이론이 18 세기에는 아직 발달되지 않고 있었다. 그런 것 에 대한 체계적 설명 방식은 19 세기에 와서야 아루어졌다. 18 세기에 서는 그냥 진보를 믿었다는 것뿐이다. 글로 그 믿음에 대한 의견 피 력을 했을 뿐이다. 계몽주의자는 진보 개념을 들어, 이성을 잘 사용 하면 물리적 • 문화적 환경을 더 잘 통제해서 인간이 지상에서 더 복 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이성이 이런 일을 옳게 하기 위해서 교육이 잘 되어야 한다는 생 각이 계몽주의자둘에게 중요시됐다. 록크에서부터 룻소와 페스탈로 치에 이르기까지 교육이론이 많이 언급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떠 한 교육이 가장 좋은지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교육계에서 다양한 실 험이 행해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인간이 이성력을 작용시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성력 작용의 행 사가 목적이고, 인간의 삶은 그것의 수단인가.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서 이성력을 작용시킨다면, 목적은 삶이고 이성력 작용은 수단이다. 현실적 삶의 지속 그 자체의 근거가 이성인지 경험인지의 문제가 아 직 해결되지 않았다고는 하나 우리는 여전히 삶과 이성력을 수단과 목적의 차원에 두고 그것을 여러 번 서로 뒤바꾸어 놓고 이야기해 볼 수 있다. 결국에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 이성력이 작용되어져

야 한다고 하겠지만 말이다. 이성 우월설과 경험 우월설 중 어느 것을 우위에 놓느냐에 대한 가장 옳은 판단은 최고로 발달된 이성력이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우 리는 최고로 발달된 이성력 없이도 살아가며 매일 판단한다. 그렇게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최고로 발달된 이성력에 의해서 판단하면 서 사는 것이 인간이 아니다. 〈그냥 경험〉(최고로 발달된 이성력 작동 과는 관계없는 단순한 감각적 경험을 〈그냥 경험〉으로 명명함)을 하면서 영위되는 삶 그 자체가 이성력 작동의 재료가 되어지는 경우가 허 다하므로, 이 그냥 경험함의 역할이 이성력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이성력의 작동 자체가 〈그냥 경험〉 때문에 있어지는 것이니까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의 문제는 더 철저히 검토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 로 보면 앞에서 언급된 혁실적 삶은, 그냥 경험 위주적 삶이 된다고 이야기되어질 수 있다• 이성력 발달이 그냥 경험 전에는 가능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경험적 삶이 앞선다는 이야기는 경험 대상(기존 환경)에 조건지어 지는 삶이 인간의 삶이 된다는 이야기다. 대상 없이는 이 성 작동이 불가능하니까 말이다. 감각을 작동하게 하는 의계의 재료가 선행될 때 경험적 삶이 있게 된다. 즉 한국이라는- 자연현실과 문화현실이 한국에 태어나는 사람에게 어떠한 감각적 재료역할을 하느냐가 문 제된다. 그러니까 이 기존의 감각적 재료가 우리의 삶을 위해서 좋 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좋다, 나쁘다에의 관 념 자체가 기존의 재료에 의해서 형성된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실상 좋지 않은 것을 좋다고 생각하면서 사는 삶이 있게 된 다. 현재의 음악환경의 개조가 필요해전다는 논리가 이 때문에 나올 수 있다. 현재의 환경은 삶을 위한 음악학이 아니고, 기존 음악학을 있게 한 환경이나 권위를 위한 음악학이 중요시되는 환경이다. 그래 서 환경의 개조 문제가 대두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개조론의 근

거가 이성이냐 〈그냥 경험〉이냐가 또 문제된다. 〈인간은 잘 살아야 된다〉라는 생각이 옳은 근거는 이성적 근거냐 경험적 근거냐라는 것 과 관련되는 문제이다. 그 잘 삶의 내용과 재료가 뭐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경험적 근거가 마련한다는 데에 주의하여야 한다. 좋은 재료와 나쁜 재료가 있다면, 그것의 창조작업이 예술작업이어야 한 다. 이런 창조작업의 중요성을 믿는 자들의 세상에는 그것이 창조된 다. 음악학의 창조도 아런 맥락에서 행해져야 한다. 음악학의 태동에 계몽주의가 어떤 식으로 관여했다는 사실을 아 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계몽주의 사상에의 이해는 그것 자 체로도 중요하겠지만 우리가 음악학을 왜 해야 하느냐, 어떤 음악학 울 해야 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 찾음을 위해서도 중 요하다. 과거의 어느 한때 구라파라는 땅덩어리 안에서 잠시 있었다 가 사라진 사상 정도로 치부해 버릴 것이 아니라 그것이 오늘날에 도 살아 숨쉬는, 삶의 정신일 수도 있다는 사실에의 인식이 필요한 것 0] 다. 2.4 해석학의 태동과 음악학 신이 말을 하고 인간이 그 말을 모른다고 하자. 이런 경우 인간이 신의 말을 이해하려면 신과 인간을 중재하는, 신의 말과 인간의 말 모두를 아는 중재자가 있어야 한다.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헤르메 스 Hermes 라는 신이 바로 신과 인간 사이를 중재해 주는 역할을 했 다. 해석학 Hermeneu ti cs 의 어원이 Hermes 와 관련이 있는 이유가 여 기에 있다 .70) 의국어를 모국어로 번역하려면 의국어를 해석하는 능

70) Ri ch ard Palmer, Hermenetuics (Evansto n : North w este r n Un ive rsity Press,

1969), p.12.

력이 있어야 한다. 한국 사람이 영어 해석을 하려면 영어와 헌巨f어 모두를 알아야 하는 것과 같다. 헤르메스격에 해당되는 자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71)

71) 음악의 의미를 보통 안간에게 이해시키려면 음악과 보통 인간 모두를 알아야 가능하다. 물론 음악의 경우 이런 식으로 간단히 말해 버릴·수 없는 여지가 있 다. 음악적 감수성이 없을 때 중재자가 있다고 해서 텍스트를 이해할 수 있는 가라는 질문은 또 다른 하나의 해석학적 질문이다. 감수성 자체가 중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감수성 없는 보통 사람은 아무리 Hermes 격의 인격체가 있다고 해도 음악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감수성을 가졌다고 해도 무조건 음악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감수성을 가전 보통 사람을 위해서도 중재자가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기 스스~ 를 통해서 중재될 때가 있고 남을 통해서 중재될 때가 있는 것이다. Hermes 격 에 해당되는 사람은 〈전언〉이 있다고 할 때 그 전언을 수신자에게 중재하는 인 격체인데, 감수성이 있는 자는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중재한다는 뜻이고 감수성 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악의 의미를 전부 이해하지 못할 때에는 타자를 통해 서 중재된다는 뜻이다. 감수성 자체의 형성은 물론 타자라는· 매개 없이 불가능 굴}다.

해석 행위에는 하나의 구조가 있다. 전언, 해석자, 수신자에게로의 송신, 이러한 것들이 그 구조와 관련된다. 이해 대상을 전언이라고 하고 이 전언을 수신자에게 중재하려면 그 전언의 의미를 안 후 죽 전언을 해석한 후 그 내용을 수신자에게 운반해야 한다. 얼핏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은, 위에서 언급된 몇 가지 사항이 결 국에 가서 해석학의 중요한 쟁점을 제공한다. 그것이 바로 I) 덱스 트의 본질은 무엇인가, 2) 텍스트를 이해한다는 말은 어떠한 의미인 가, 3) 이해와 해석은 어떻게 해서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유도하게 되고 이 질문은 음악의 의미 해석에서도 결국 깊이 관여된다• 음악 역시 하나의 텍스트다. 이해 대상으로 존재한다. 위의 문장에서 덱스 트라는 어휘를 음악이라는 어휘로 바꾸면 음악해석 문제의 본질을

다루는 질문이 된다. I) 음악의 본질은 무엇인가, 2) 음악을 이해한 다는 말은 어떠한 의미인가, 3) 음악의 이해와 해석은 어떻게 해서 가능한가라는,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는 방법은 말할 것도 없이 해석학이 얻은 일반론을 통하는 길이다. 위 에서 해석 행위의 구조 운운에서 언급된 전언, 해석자, 수신자는 음 악해석의 구조에서도 적용된다. 작곡가(작품 • 텍스트), 연주가(해석 가), 감상가(수신자)가 바로 그것이다. 해석학적 지식이 얻어전다는 것아 가능하면, 그 지식은 모든 이해 대상에 적용시킬 수 있어야 한 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 우리는 그것을 〈이론〉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해석학 이론은 이 때문에 음악해석의 문제를 위한 중요한 해답을 제 공해야한다• 해석의 문제는 쉽게 풀려지는 것이 아니다. 여러가지의 매듭을 푸 는 연습이 수반될 때 풀린다. 인간은 의식 무의식적으로 세계관을 가진다. 기존의 세계관을 유지한다든가 새로운 세계관을 가지기도 한다. 〈기존〉이든 〈새로운〉 것이든간에 특정 세계관이 해석에 개입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는냐 하는 것이 해석학의 질문이 된다. 인간이 이미 가지고 있는 예상 • 가정 • 전제 • 믿음 • 지평 등이 이해와 해석을 가능케 하는데 그것이 어떠한 방식 으로 가능케 하는가 하는 질문이다. 국악 텍스트와 양악 텍스트의 의미를 해석하려는 청중은 서로 〈같은〉, 혹은 〈다론〉 해석관을 가지 는가, 그렇지 않는가. 이 모든 문제가 결국 해석 문제는 철학적 과 제가 됨을 의미한다. 해석 문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즉 해석의 해석 문제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할 것인가라는 쟁점이 생간다는 것 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자연과학이나 인문 • 사회과학이나간에 해석 문제는 언제나 관여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모든 지적 작업에서 해석 의 문제는 관여되지 않을 때가 없고 그래서 태고적부터 이 해석의

문제는 거론되어야 했다. 그렇다면 하필 왜 해석학이라는 것이 근대 에 와서 비로소 학문으로 거론되는가. 거론의 시발점은 어디에 있는가. 이 시발점에 대한 논의는 음악학 의 태동 이유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이 논의는 간략 히하기로 한다. 음악학의 태동 이유를 밝히는 것만이 목적이기 때문 Ol 다. 간단히 말해서 해석학은 슐라이에르마허 (F. Schleie rm acher, 1768- 1834) 에 의해 19 세기 중엽에 탄생된다. 물론 딜타이 (D ilt he y, 1833- 1911) 가 자연과학의 객관성에 비견될 만한 학문적 방법을 추구한 나 머지 문화과학 개념을 정립시키려는 꿈을 펼쳤고 그래서 해석학의 지평을 넓히기도 했다 .72) 그러나 딜타이의 꿈은 완전히 성취되지는 못했다. 해석학보다 그것을 위한 방법론이 지적 생활을 지배하게 되 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대학교에 있는 학과목- 즉 예술사, 인류학, 경제학, 역사학, 정치학, 심리학 등은 해석학을 위한 방법론에 불과 한 것이었는데, 그것이 마치 목적인 양 그 성질이 바뀌어져 버렸고, 이룰 딜타이의 입장에서 본다면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음악 학도 결국 이러한 맥락에서 태어난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72) Van Harvey , Hermeneuti cs , Ency clop e dia of Religi on (ed. by M. Eli ad e, London:Macm illan, 1987},V ol 6, pp.2 82-84.

그러나 음악학이 그랬던 것처럼 방법론으로서의 각 학문은 그 속 에서 자기네들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지적 홍미사를 발전시킨다. 그 홍미사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데에 필요한 규범까지 발전되었고, 그것 자체가 홍미롭고, 지적 호기심에 자국과 도움을 주게 된다. 해 석학 그것보다 그것을 위한 방법론이 목적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많은 분과학이 발전되어, 오늘날에는 음악학내에서도 많은 분과학이 발전되고 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가. 모든 분과학

은 통합학을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사 실에 문제의 핵이 있다. 통합학과 분과학 개념은 상호 의존적인 것 이어야 하고 각각의 시각에 장단점이 있디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러한 사실을 모르면서 학문을 하는 것과 알고 학문을 하는 것 사이 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최근에 와서는 다시 통합학적 관심이 되살아나고 있다. 해석학 그 자체에의 관심이 다시 대두된다는 사실이 그러한 예이다. 사회학, 역 사학, 인류학, 신학, 그리고 종교학에 종사하고 있는 학자들에 의해 서 해석학이 싹트고 있는데, 음악학 역시 하나의 해석학이 되어야 한다는 관점을 우리도 가질 필요가 있다. 최소한도 이러한 것에 대 한 논의는 해야 할 것 같다. 위에서 언급된 새로 싹트고 있디는· 해석학은 어떠한 관심 영역을 가지고 있는가. 그것은 〈새로운 인간행위 이론〉이라는 문제를 관심 영역으로 가진다. 이것은 종전의 분과학이었던 심리학적 • 사회과학 적 학문 분야에서 대두되는 이론으로 문화 관련적 표현을 무의식적 표시로 그리고 본능적 욕구의 표시로 보는 것이다. 계급 이익의 반 영으로 파악하는 입장도 물론 있다. 다시 말해서 인간행위를 결국 프로이드 식으로 보느냐 맑스 식으로 보느냐의 문제와 상관시키면 서, 새로운 인간행위 관련 이론을 개전한다는 것이다 .73)

73) Van Harvey , Hermeneut ics , Enc yclo pe dia of Relig ion , Vol. 6, pp.2 83-84.

인식론의 발전과 언어철학의 발전이 또한 새로운 이론을 전개하 고 있다. 주어진 문화권 안에서 실재하는 것으로 생각되어지는 그 실재는 그 문화권이 가지고 있는 언어 구조의 기능이지 그 언어 구 조와 상관없는 어떤 것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론이다. 언어 구조의 기능이 행사되는 것은 경험과 상관된 것이지 경험과 별도로 그 기능이 수행되는 것이 아니다. 일상적 경험이든 심미적 경험이든

종교적 • 정치적 • 사회적 경험이든 경험을 할 때 우리는 말을 한다. 그리고 말을 할 때 언어 구조가 작동된다. 이 때문에 경험 관련적 언 어 구조의 기능이 실재하는 것이지 그 기능과 무관한 어떤 실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론이 대두되고, 그리고 모든 인간 경험은 기 본적으로 해석적이라는 이론도 개진된다. 해석 전에 정의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해석 후에 혹은 해석되는 순간 그 의미가 있어지는 것 이 실재하는 것이라는 논지이다. 그리고 경험은 그냥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관이 선택하는 것이며, 그래서 음악적 경험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감수성이 선택하는 것이라는 말을 성립시 키기도 한다. 감수성 • 문화 • 언어라는 굴레가 중재됨으로써만이 가 능해지는 해석이 있고, 이 해석의 맥락 안에서 모든 판정이 이루어 전다는 이론도 개진된다 .74)

74) Van Harvey , Hermeneut ics , Enc yclop e d ia of Relig ion , Vol. 6, pp.2 80.

위에서 언급된 모든 이론은 결국 인간이 무엇을 안다, 혹은 이해 한다는 것은 모두가 역사와 관련이 된다는 것을 주장한 격이 된다. 음악의 이해는 감수성이 전제되고, 감수성은 그것의 형성 과정이 전 제되고, 그 과정은 역사와 관련이 되는 것이 아닌가. 이 말은 역사 없이는 인간에게 있어서의 이해는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해는 이해의 이력서를 언제나 동반한다는 뜻이다. 역사는 없는데, 의식이 인간 마음에 그냥 생길거수는 절대로 없다. 다시 말해서 모든 이해는 문화적 조건과 관련된다는 뜻이다• 문화적 조건이라는 말은 벌써 역 사를 전제한다는 뜻이다. 문화적 조건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러한 이해를 가능케 하는 역사가 개입된다는 것과 동일한 이야기가 된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딜타이가 주장한 해석학이 완성을 보게 된 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학자마다 서로 다른 이론울 내걸고 있어

서 머리가 아프다. 해석학의 분과학내에서도 그 갈래는 참으로 여러가지로 나타난다. 모두들 인간 이해를 위한 방법론을 찾으려는 일념에서 시작한 일인 데 결과적으로 머리가 아프다. 분과학의 하나인 가령 심리학만 보아 도 그렇다. 행동주의 심리학, 인지 심리학, 프로이드 심리학, 융 심 리학, 형태 심리학, 발달 심리학 등, 모두 자기네들의 접근법이 옳다 면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사회과학 일반에서도 기능주의, 구조주의, 종족학적 방법론, 맑시스트적 입장들이 서로 맞서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이런 말을 할 수 있다. 수단이 목적 화되고 있는, 지나치게 많은 분과학과 그것내에서의 서로 다른 방법 론 등의 대두가 오히려 해석학의 소생을 가능·하게 했다는· 말을 할 수 있다. 머리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그 아픔을 해결하려는 새로운 약의 발명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수많은 주장둘을 통일 시킬 수 있는, 통합학 구실을 하는, 해석학의 소생을 사람둘이 원하 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은 역설적이게도 수많은 갈래의 덕분으로 통 합학의 소생이 가능했다는 말과 같다 해석학을 가장 필요로 했던 분야가 종교 분야였다고 한다. 그 이 유에는 개념적인 것과 역사적인 것이 있다. 개념적 이유란 무엇을 뜻하는가. 우리는 종교라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순간 우리는 종교라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 의 〈해석 단체〉 개념과 상관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석 행위를 하 고 있는 공동체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 종교라고 볼 수 있을 것 이다. 해석을 잘하고 못하고는 우선 둘째 문제로 접어둔다고 해도, 또 종교인들이 서로 다른 종교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 역시 둘째 문 제로 접어둔다고 해도, 일단 종교인둘의 세계는 해석을 하는 사람들 끼리 모여서 사는 동네라고 할 수 있다. 종교라는 것 자체가 이미 〈해석〉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어떤

해석이 가장 옳은 해석인가라는 문제를 학문적으로 다물· 수 있는 〈해석학〉의 필요성이 종교 분야에서 필연적으로 대두될 수밖에 없 었다. 종교의 세계는 믿음의 세계다. 믿음의 세계는 해석의 세계다. 이러한 세계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종교학이다. 종교학은 그 러니까 〈해석의 해석〉이라는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종교적〉 해 석과 출발부터 그 가정이 다른 것이 종교에 대한 〈학문적〉 해석이 다. 〈종교적〉이라는 말과 〈학문적〉이라는 말은 그 어감부터 다르다. 그러므로 해석의 문제를 놓고 종교적으로 해석하는 것과 학문적으 로 해석하는 것은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디를- 수밖에 없다. 종교의 문제를 종교적으로 해석하느냐 학문적으로 해석하느냐라는 것 자체 가 종교학의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종교 분야에서 해석 학에 대한 관심을 제일 먼저 가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음악적 의미 역시 해석의 대상이 됨은 말할 나위가 없다. 종교가 해석의 대 상이 되는 것과 같이 음악도 해석의 대상이 된다. 그러니까 음악학 역시 해석학이 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나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종교를 믿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있어질 수 있는 종교적 해석을 하 는 사람들은, 즉 신자적 해석을 하는 사람들은 종교에 대한 학문적 해석 운운을 비웃음의 대상으로 삼는다. 음악에 대한 특정 감수성만 을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음악적 감수성의 학문적 비판 운운이 비 웃음의 대상이 되는 것과 같다. 종교의 〈학문적〉 해석은 그 출발이 〈종교적〉 해석과는· 성격부터 다르다. 종교에 대해서 학문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그냥 종교인〉 죽 믿는 자는 학문적 해석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저것은 결국 이것이다 라는 식으로 종교를 해석하려고 한다고 비난한다. 영원한 논쟁은 그 러니까 종교가 〈그냥 신자〉를 위해서 있는가, 신학자를 위해서 있는 가라는 문제와 상관된다. 음악 역시 그냥 신자에 해당되는 사람을 위해서 있는가, 음악학자를 위해서 있는가라는 문제로 영원한 논쟁

을 벌일 수 있다. 옳은 의미에 있어서는 신학자만이 종교의 참뜻을 안다고 말할 수 있다. 철학자만이 인식을 옳게 할 수 있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보통 사람들의 설 땅은 어디에 있는가. 종교는 분명히 보통 사람, 그러니 까 잘 인식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서도 있는 것인데 말이다. 종 교를 무식하게 생각하는 사람과 유식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유 식하게 생각하는 쪽이 옳은 생각을 하는 것이라면 종교는 특정인만 을 위해서 있는 꼴이 된다. 음악의 경우도 이러한 아이러니가 생길 수 있다. 음악은 인간 모두를 위해서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음 악을 알려면 감수성이 전제되는데, 죽 음악 신학자격이 되어야 하는 데, 모든 인간이 음악 신학자격이 될 수 없다는·데에 문제가 있다. 그리고 신학자격이 된다고 해도 종교 신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 수준이 동일할 수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동일한 음악적 감수성 울 인간 모두가 가질 수는 도저히 없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종교학에서의 영원한 논쟁과 같은 성격의 논쟁이 음악학에서도 생긴다는- 뜻이다. 물론 편의를 위해서 음악이라는 것 을 자기식으로 정의하면 그것에 따라 이야기의 성격이 달라질 수 있 다. 그러나 그것은 옳은 의미에서의 음악학일 수도 종교학일 수도 없다. 지금까지 언급된 문제들이 개념적 이유와 상관된다. 그렇다면 역사적 이유라는- 것은 무엇인가. 음악에 대한 학문적 연 구라는 것이 근대에 와서 생겼듯이, 종교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근 대 해석학의 태동과 깊은 관계를 갖는다. 이 관계가 역사적 관계이 다. 종교 개혁이라는 사건은 종교적 사건이기도 하지만 역사적 사건 이다. 역사적으로 말한다면 근대 해석학의 태동은 종교개혁의 결과 로 나타난 전보적 프로테스탄티즘의 종교적 전통과 깊은 관계를 맺 는다. 해석학적 논쟁이라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결국 전보적 개신교 파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의미한다. 성경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말 자

체가 보는 자의 입장이니까, 있는 그대로 본다는 말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말 그대로를 믿는 것이 아니라 말을 비 판적으로 해석하자는 입장은 언제나 있을 수 있다. 성경 해석의 문 제에 있어서도 역사적 • 비판적 안목을 적용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이 때문에 생길 수 있다. 해석학적 논쟁이라는 말은 이러한 주장을 근 거로 해서 성경 해석의 옳고 그릇됨을 따지자는 입장과 통한다. 보는 눈은 역사에 따라 달라지고, 성경을 보는 눈 역시 역사에 따 라 달라지는데, 이러한 눈이 성경 해석에 관여된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성경을 보는 눈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할 수 없으며,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뜻대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 다. 음악의 의미를 해석하는 경우 하나님의 뜻대로라는 말은 있을 수 없다. 언제나 역사 관련 〈귀〉가 음악의 의미를 판가름한다. 성경 의 경우도 하나님의 뜻대로라는 주장에 문제가 많다. 그런데 또 다 론 문제는 보통 신자들은 대부분의 경우 역사적 눈보다 하나님의 뜻 을 믿는다는 데에 있다. 이러한 보통 신자들의 사정을 의면한 채로 해석의 문제에 어떤 결론을 내린다면 그것은 성급한 결론일 수밖에 없다. 종교는 그것을 학문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자만의 것 죽 아는 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하나님의 뜻대로 라는 입장을 취하는 자들은 종교의 본성을 학문적으로 모르는 사람 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이 이 세상에 많고 이러한 사람 역시 엄연한 사람이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역사적 눈이라 든가 비판적 눈이 없는 보통 신자가 보는 성경에 힘이 있기 때문에 기독교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종교학자들의 학설 때문에 기독교 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확실히 아니다. 이 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그러니까 이 문제는 종교학의 영원한 논쟁일 수밖에 없다. 물 론 이러한 논쟁 없이 종교개혁은 이루어졌을 리도 없다. 해석학의 태동 역시 있을 수 없다. 이러한 것의 태동 없이는 인간이 더 옳게

사는 길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 01 라는 사실도 물론 우리는 알아야 한 다. 이런 의미에서 아는 자의 설 땅이 또한 생가는 것이다. 모르는 자가 하나님 뜻대로 맡기고만 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아는 자의 입장과 모르는 자의 입장은 함께 이 세상에 엄연 히 존재하면서 영원한 논쟁을 낳는다. 결국 성경의 해석 문제가 해석학 태동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이 야기다. 성경을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진 것〉으로 보는 입장과 〈인간 이 만든 것〉으로 보는 입장이 성경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법을 내 놓음으로써, 그래서 논쟁을 벌임으로써 해석학은 탄생되었다. 정통 파 기독교인들은 물론 역사적 • 비판적 안목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 울 용납하지 않았다. 역사적 눈의 정당성 문제는 진보적 개신교파들 로부터 주장되었다. 경험 위주적 사고와 이성 위주적 사고가 음악 분야에서 있었듯이, 종교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대두되었다. 진보적 개신교파들은 위의 논쟁이 마련하는 문제점을 종교적 믿음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경험 이라고 정의함으로써 해결한다. 진보적 개신교파이며 해석학의 창시 자인 슐라이에르마허가 여기서 중요한 공헌을 했다. 슐라이에르마허 는 정통파를 인정하면서도,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정통파를 설득할 수 있는 타협안을 마련한 것이다. 즉 특정 경험은 이미 특정 역사적 상황과 관련됨을 지적하고 인간이 가지는 경험력은 특정인 의 경험 방식과 관련됨을 지적함으로써 그리고 경험 방식은 역사적 으로 형성되는 것임을 지적함으로써 그는 정통파를 설득하였다. 설 득이 되지 않았다면 해석학이라는 것의 성립은 불가능했을 것임이 틀립없다. 인간은 누구나 원래 종교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관습화되는 과정에 문화가 작용된 것이 소위 말하는 지상에 존재하는 여러가지 의 종교라고 슐라이에르마허는 주장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슐라

이에르마허는 믿음을 신념이 아닌 경험이라고 주장했고, 종교를 신 념의 통로보다 경험의 동로라고 보았다. 홍미롭게도 이 말은 음악의 문제에 대입시켜도 된다. 인간은 누구나 원래 음악성을 가지고 있는 데, 그것이 관습화되는 과정에 문화가 작용된 것이 소위 말하는 지 상에 존재하는 여러가지의 음악이다라고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구한 이론을 다 집어치우고, 근대 해석학이 문제로 삼는 질문을 요약해 보자. 텍스트롤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이며,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무엇인가? 문화과학의 방법론 및 생김새가 자연과학의 방법론 및 생김새와 어떻게 다른가? 어떤 형태의 이해인지 모르지 만 인간은 여러 형태의 이해를 하고 있는데 인간에게 그러한 이해 롤 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무엇인가? 가령 음악의 이해와 미술의 이 해는 속성이 다른데, 그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무엇이냐 식으 로 묻는다는 것이다. 이해 개념 내지 의미 개념과 상관되는 개념적 수수께기를 어떻게 풀 수 있는가, 만일 그것이 풀렸다면 그 풀림이 해석의 임무를 이해하는 데에 우리를 어떤 식으로 도울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서로 중첩되기도 하고 각 질문에 대한 답이 다른 쪽 질문에 적절히 적용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각 질문은 그것대 로 모두 가치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 으려는 시도가 해석학이 추구하는 일로 이해해 두면 될 것 같다. 근대 해석학은 덱스트 해석과 상관되는 문제 해결의 시도에서 그 기원이 찾아진다. 슐라이에르마허가 창시자라는 언급은 이미 했다. 물론 슐라이에르마허 시대 이전에도 덱스트에 대한 종교적 해석관 과 세속적 해석관의 차이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 나 딜타이의 말대로 슐라이에르마허는 해석학의 칸트였다. 성서라고 해서 특별 대우를 받아서는 되지 않는다고 그는 주장했던 것이다. 성경도 결국 하나의 랙스트이다, 그러므로 덱스트 해석법이 있다면 모든 덱스트는 그 법에 의해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서 어떠한 덱스트라고 해도 그것의 의미를 해석하는 데에 필요 한 문법적 • 심리적 조건이 있다면 해석자는 그 조건에 따라야 한다 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해는 기호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그는 지적했다. 여기서 기호란 언어를 뜻했다. 자연언어뿐만이 아니라 인 공언어 모두를 뜻했다. 다시 말해서 슐라이에르마허는 언어의 본성 이 해석학적 이론과 상관되는 핵심적 쟁점(이론적 쟁점)이 된다는 사 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의미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은 하 나뿐인데 그것은 언어라는 매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슐라이에르마허의 해석학적 이론은 두 개의 초점 주변에서 이루 어지고 있다. 그는 표현된 것이 있다고 전제한다. 이 표현된 것은 특 정 표현방식의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라 했다. 이 특정 방식 안에는 반드시 어떤 문법이 있고, 이 문법을 알 때 비로소 이해가 가능하다 는 것이다. 표현 결과는 반드시 언어 형식 • 형태를 통해서 나타나는 데, 이 나타남은 문화권 안에서 나타나며, 그리고 저자는 자신의 생 각을 조건 짓는 바로.그 문화권 안에서 살고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 다, 표현은 표현자(저자)에 의해서 행해지는 것이므로 저자의 마음 울 이해하지 않고서는 텍스트를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의 주장이다. 여기서 저자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말은 저자의 창조적 재능과 저자에게서만 있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주관성을 심리적으 로 또 기법적 • 기술적으로 이해한다는 뜻이다. 1920 년대까지 문학비평의 주된 관심사는 저자의 의도를 발견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미 문학비평 분야에서 슐라이에르마허의 영향이 크지 않았다는 것은 재미있는 현상이다. 성서 텍스트 해석 문제에서는 슐라이에르마허가 막강한 업적을 쌓았을지 모르나, 세속 문학 분야에서의 해석 문제 특히 저자 의도 발견 문제에서는 영향 력을 행사 못했디는 것이다. 아무튼 지난 수십년간 문학비평 분야에서는, T. S. 엘리엇의 선언

에서 바롯된, 덱스트가 저자와 상관없는 독립된 삶을 사는 것이라는 가정이 받아들여졌던 모양이다. 물론 엘리엇의 선언에 대한 논박이 프로이디언, 맑시스트, 신비평주의자, 구조주의자들에 의해서 전개되 었다고 한다 .75) 아무튼 최근에 와서 다시 저자의 의도를 알아야 한 다는 주장이 대두되는 것 역시 홍미롭다. 슐라이에르마허 이론의 정 당성을 다시 인정하려고 하는 추세 그래서 그의 이론의 신빙성을 재 확인하려는 추세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신빙성 있는 의 미를 파악했다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어떤 형태로든 작가의 의도를 알아야 한다는 주장이 Hi rs ch 같은 학자에 의해서 나왔다 .16' Vality in Int er p re ta t i on ( 1967) 에서 그의 주장은 피력된다. 해석이 전적으로 주 관적이며 그래서 임의적이 되지 않으려면 덱스트의 정확한 의미를 결정하는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한디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의미가 아닌, 어떤 결정적 의미가 텍스트로부터 발견되 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허쉬에 의하면 그 기준이 저자의 의도라 는 것이다. 이 주장은 모든 애호가들에게는 환영받는 이론임에는 툴 림이 없으나, 대부분의 해석학적 이론들은 의미의 규준을 저자의 의 도로 잡는 것에 회의를 품는다.

75) Van Harvey , Hermeneut ics , Enc yclo p edi a of Relig ion, Vol. 6, p.2 81 . 76) E. Hi rsc h, Jr. Validi ty in Inte r p re ta t i on (New Haven : Yale Un ive rsity Pr es.s, 1967), pp.46-68 .

음악비평의 관심에서도 작곡가의 의도 문제가 언제나 논의된다. 작곡가의 의도만 있으면 연주가나 감상가의 수용방식은 어떻게 되 는가, 그것은 없는 것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여러가지 논의가 있을 수있다. 해석학은 문화과학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러한 해석학은 결국 음악학을 낳는 근거가 된다. 문화과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연과

학만이 과학은 아니라는 입장을 취한다. 문화과학도 과학이라고 주 장한다. 문화과학의 근거가 해석학이라고 주장한다. 자연과학이 아 닌 문화과학의 개념을 설정했다는 말은 하나의 과학이 아니라 두 개 의 과학을 인정했다는 것이고 그것을 인정했다는 말은 해석에 그 속 성이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문학적 해석, 예술적 해석, 철학적 해석, 법적 해석, 종교적 해석 등의 속성은 서 로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의 해석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음악 적 해석이라는 개념도 허용된다. 해석의 〈종류〉를 인정했다는 것은 각 해석을 위해서 객관성과 타당성이 있는 해석방법과 규범적 규칙 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객관성 • 타당성 있는 해석법과 규범의 인정 은 그것이 존재할 때에 가능하고 그것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말은 결 국 보편적 타당성아 있는 해석학이 가능하다는 뜻이 된다. 딜타이가 중요한 인물로 여기에서 등장한다. 딜타이는 슐라이에르 마허에 영향을 많이 받았고, 그의 전기까지 쓰긴 했지만 결국에는 슐라이에르마허의 가정을 거부한다. 그 가정이란 무엇인가. 작품은 저자 마음 속에 은연중에 암시적으로 내포되어 있는 어떤 원리의 부 산물 • 결과이다라는 것이 슐라이에르마허의 가정이다. 작품은 저자 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가정은 마음이 역사적으로 형성되 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꼴이 된다, 즉 모든 것이 역사적 산물이라 는 생각을 무시하게 된다, 특정 작곡가의 작품을 그의 마음의 소산 으로 보는 입장과 역사적 산물로 보는 입장은 많이 다론 입장이 아 닐 수 없다. 이 다론 입장이 무엇이라는 것을 옳게 인식하면 슐라이 에르마허와 딜타이의 생각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품 은 작가 마음 안에 있는 요인만이 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는 상관이 없는 의부적 여건에 의해서도 만들어진다는 것이 딜타이 의 생각이다. 저자의 마음이 원인이 된다는 말과 그 마음이 성장되 어 간 역사가 있다는 말의 의미 모두를 이해하면, 작품 탄생의 원인

울 저자의 마음에만 두는 것에는 무리가 있음을 알게 된다. 딜타이는 보편성 있는 해석학을 성립시키기 위해서 〈표현 이론〉 을 들고 나왔다. 언어 • 예술 • 제도 • 법률 등은 모두가 인간이 만든 〈표현물〉이라고 한다. 인간이 자기 표현을 하는 방식과 표현 결과는 다양하다. 이것에의 이해 이론을 딜타이는 폈다. 그의 이론 중에서 나에게 가장 홍미가 있는 것은 재료 개념이다. 표현 결과들이 타문 화권에서 이루어전 경우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는데, 그 이유는 표현물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의 생리를 모르기 때문이라 고 한다. 이것은 내가 음악의 이해 조건으로 언제나 강조하고 있는 점이다. 재료가 무엇인지 알기만 하면 인간이 만든 것을 인간이 모 를 리가 없다. 표현물을 알려면 재료를 알아야 하고 재료는 그것이 탄생된 문화적 • 역사적 맥락이 찾아질 때 이해된다. 그래서 표현물 울 알려고 시작한 인간의 물음이 결국 역사를 하게 하고, 음악학의 경우 역사적 음악학을 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음악학의 태 동이 음악사를 과학적으로 하자는 것과 상관이 있는 이유가 바로 여 기에 있다. 바로 이 지점이 음악학의 발생을 해석학과 관계 맺게 한 다.

제 3 장 음악학의 방법 3.1 옳게 산다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가 속 시원하게 흐르는 말, 비비 꼬이지 않는 말을 인간은 좋아한다. 출근 길의 버스 안에서 술술 읽히는 글을 좋아한다. 그러나 때로는 그것이 쉽지 않다. 사는 것이 속 시원하지 않고, 하는 일마다 비비 꼬이듯이, 옳은 삶을 위한 옳은 생각을 이어나가려면 속 시원하기는 커녕 말이 꼬일 대로 꼬인다. 꼬인 말만을 상대해야 할 때가 있다. 음악학자는 이런 꼬인 말 다루기의 명수이어야 한다. 꼬인 말은 문 제의 핵심을 놓고 누가 옳고 그론가를 따지려고 할 때 나타난다. 음 악학자는 말을 꼴 수 있는 데까지 꼬아 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옳게 산다는 것이 왜 이렇게도 어려운가.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 이 왜 이렇게 비비 꼬이기만 하는가. 비비 꼬임에 아기는 길은 그것 과 싸우는 길뿐이다. 싸움은 꼬는 연습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가장 중요한 연습이 〈지식과 신념〉의 차이가 가져다 주는 〈꼬인 말 다루

기 연습〉이다. 3.2 지식과 신념 : 지식 얻는 길에는 좁은 문밖에 없는가 실재세계와 준실재세계가 있다. 변하지 않는 영원한 형상의 세계 와 결국에는 변하고마는 감각적 경험세계가 있다. 풀라톤 이래 오늘 날까지 이 두 세계는 우리둘에게 많은 꼬인 문제를 제공한다.77)

77) 음악학연구회 제주도 세미나에서 「지식과 신념」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후, (음 악방》에 실었던 글을 가필한 것이 이 부분의 글이다. Anth o ny Quint on 의 Knowledg e and Beli ef , The Encyc l ope d ia of Phil o soph y , Vol. 4, pp.3 42-52 를 참 조해서 쓴 글이다.

실재세계를 믿느냐, 준실재세계를 믿느냐에 따라서 인간의 사는 방식은 달라진다• 어느 쪽을 믿느냐, 혹은 믿어야 하는냐의 문제는 어느 믿음이 더 옳으냐라는 것에 대한 〈앎〉과 상관된다. 인간이 어 떤 것에 대해서 확실히 알게 되는 경우는 지식을 얻는 격이 되고, 어떤 것에 대해서 확실히 알지 못하지만 그것이 그럴 것 같다는 생 각에 굳게 묶여 있는 경우는 신념을 얻는 격이 된다. 인간의 삶에 있 어서 지식과 신념은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음악학예 있어서는 지식 이 더 중요하다. 신념을 지식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음악가가 가지는 가령 하나의 억측 같은 것이 지식으로 취급되는 사회 현실 에 직면하게 되면 옳은 의미에 있어서의 음악학자는 당황하지 않을 수없다. 억측이나 신념 같은 것을 지식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유 에서, 그리고 음악 지식에 대한 결론을 너무 쉽게 얻지 말아야 한다 는 이유에서, 그리고 그래야만 음악학적 작업이 옳게 행해질 수 있 다는 의미에서, 지식의 정의에 관여하고 있는 세 개의 어휘를 점검

하기로한다. 철학자들은 지식을 〈정당화된 참 믿음〉으로 정의한다. 〈앎〉과 〈믿 음〉의 성격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해놓고, 지식의 정의 속에 믿음이 라는 어휘를 삽입시킨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위의 정의 속에는, 그냥 〈믿음〉이 아닌, 〈참 믿음〉, 그것도 〈정당화된〉이라는 조건이 달려 있다. 〈참 믿음〉이라는 어휘 가 포함되어 있음으로, 헛된 정의로만 취급해 버릴 수 없다. 어차피 〈인간은 완전한 앎은 얻을 수 없다〉고 하는, 금언격에 해당하는 말 이 있다고 해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지식을 〈정당화된 참 믿음〉 으로 철학자들이 정의하는 이유가 생각하는 것만큼 간단한 것은 아 니라는 이유에서 헛된 정의로만 취급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식이 특정 종류의 믿음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 가. 지식의 대상과 믿음의 대상이 동일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데에 그 이유가 있다고 일군의 철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연구실에 그 책 을 놓고 왔다〉는 사건을 참인 것으로 삼십분 전에는 〈믿었는데〉, 그 것을(즉 책을 연구실에 놓고 왔다는 사실을) 지금은 〈안다〉라는 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어떤 것이 참인 것으로 믿어지기만 하는 사건인데, 어떤 사람에게는 그 동일한 사건이 참안 것으로 알게 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전에는 믿었던 것인데, 지 금은 그것을 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고 할 때, 전의 믿 음에 대한 확신의 신빙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일반적으로 참인 것만이 지식과 연관된다는 사실울 부정할 사람은 없다. 만일 내가 참이지 않은 판단을 내렸다면 나는 그 판단의 대상에 대해서 몰랐다는 사실 역시 받아들여야 한다. 비록 그것에 대해서 알았다고 생각했던가 또 알았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어도 말이다. 믿었던 사실 이 어쩌다 보니 참이 되어버린 경우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 믿음이 지식으로 취급받을 수는 없는 것이니까, 결국 어쩌다 보니

참이 되는 성격의 것이 아닌, 반드시 정당화되어야 하는 성격의 것 이 지식이 된다고·할 수 있다. 참 결론에 도달했다고 해서, 정당화 될 수 없는 전세로부터 그 결론을 끌어낸 , 그러니까 부적절한 수단 에 의한 결론이어도 된다는 말은 성립될 수가 없다. 내가 믿고 있는 어떤 것이 설사 결과적으로 참이라고 해도, 그 믿음이 잘못 기억된 근거에 의해서 생겨진 것일 경우에는, 그것을 안다고는 말할 수 없 는것이다. 〈‘정당화된' ‘참' 믿음’〉이라는, 지식의 정의에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정당화된〉의 개념에도, 〈참〉의 개념에도, 〈믿음〉의 개념에 도, 각각 문제가 있는 것으로 철학자들은 생각해 오고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지식 취득이라든가 취득된 지식의 체계화라는 문제가 그다지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고, 결국 음악 지식에 대한 음악학자의 태도가 참으로 철저하게 엄격해야겠 다는 것을 다짐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에 지식이 〈참〉과 상관되어야 한다는 사고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 주장이 있다면, 그 주장의 속성은 무엇인가. 안다는 것이 참이 어야 한다는 요구는 지나치게 엄중한 요구라는 것이 그 속성이다. 〈완전한, 전체적 참〉을 알았다고 말할 사람은 역사상에 한 사람도 없었다. 이 사실이 참과 앎울 연관시키려는 사고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근거가 된다. 전체적 앎이 아닌, 부분적 앎은, 결국 완전한 앎이 아니지 않느냐라는 논리가 성립된다. 참은 곧 완전한 참이어야 함이 당연하고, 〈완전〉은 〈전체〉 개념을 수반하는 것이어야 하는 것 이지 〈부분〉 개념을 수반해서는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그리고 부분적 참은 얻었을지 모르나 역사상 아직도 전체 관련적 〈완전 참〉을 얻은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사실이고 보면, 지식이 반 드시 참이어야 한다는 조건하에서는 인간은 결국 참을 얻을 수 없 디는 말을 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앎이 반드시 참, 완전한 참이어

야 한다는 조전에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부분적 앎이 전체적 앎울 위한 단계적 역할을 하느냐, 하지 않느 냐의 문제도 검토되어야 하겠지만, 인간은 전체적 앎울 위하여, 그리 고 그런 앎울 얻게 하는 것에 대한 장애를 극복하기 위하여 부분적 으로나마 알려고 끊임없이 노력해 왔고, 또 알아낸 업적도 많이 가 지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어차피 〈완전한, 전체의 참〉을 알 수 없 기 때문에, 앎과 참을 연결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 자체에도 무 리는 따른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어차피 〈완전한, 전체의 참〉을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고 해서 알고 싶어하는 인간에게 〈앎의 땅〉에 설 자리조차 주지 말아야 한다고 말해 버릴 수도 없지 않느 냐는 것이다. 설사 〈완전한, 전체적 참〉을 모른다고 해도, 그것을 알 기 위한 〈최선을 다함〉 바로 그것 자체가 진실로 참이라고 생각되 어지게 하는, 신빙성 있는 근거를 얻게 한다는 것이고, 이 근거에서, 어떤 것이 참이라고 생각되어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받 야들여질 수 있다. 충분한 근거에서 어떤 것이 참이라고 확실히 생 각되어질 때에 우리는 그 어떤 것을 안다고 말해도 틀린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충분하다고 생각되어졌던, 그 충분이라는 근 거가 충분한 것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안다고 했던 것이 틀릴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는 내가 〈잘못을 저지른 것〉이 된다. 여기서의 〈잘못〉은, 참이라고 생각되는 근거 (정당화될) 없이, 어떤 것 울 그냥 참이다라고 해버린 경우의 잘못과 동일한 잘못은 아니다. 문제는 진실로 충분한 근거에서 참이라고 말했느냐 안했느냐에 있 으므로 〈완전한, 전체적 참〉을 애초부터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 는 이유에서, 앎과 참의 관계를 무조건 없는 것으로 간주해 버릴 수 만은 없다는 것이고,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앎이 참과 상관되어야 한 다는 주장의 옳은 점과 옳지 않은 점, 양쪽을 모두 알 때, 〈정당화 된 참 믿음〉이러는 정의 속에 있는 〈참〉의 의미를 옳게 알게 된다

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식이 〈정당화된 참 믿음〉이라고 할 때의 〈믿음〉이라 는 것은 지식과의 관계에서 어떠한 질문을 제기할 수 있는가. 즉 지 식의 정의 속에 〈믿음 개념〉을 삽입시키는 것에 어떤 문제가 있게 되는가. 내가 어떤 것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하는 경우, 만일 내가 그것에 대해서 믿는다고 말했다고 하면, 실제로는 알고 있는 대상예 대해서 모른다고 말한 격이 된다. 그러니까 내가 어떤 것을 알고 있을 때 누 가 나에게 〈너는 그것을 믿느냐〉라고 물으면, 나는 〈아니오〉라고 대 답해야 한다• 〈아니오〉라고 대답해야 하는 이유는, 〈아니오, 나는 그 것을 아오〉라고 대답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 〈아니오〉라는 말이 〈그 렇소〉로 둔감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즉 〈그렇소, 나는 그것을 믿소〉 라고는 대답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가 여기서 끝나지 않 는다는 사실 때문에 지식의 정의 문제가 어려워진다. 즉, 알고 있을 때라고 해도, 반드시 〈아니오〉라는 대답만이 행해지라는 법이 없는 예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위의 논증방식(즉 그렇소 대신 에 아니오로 대답해야 한다는 식 )은 앎이 믿음일 수 없디는- 근거로는 약 한 근거가 된다. 가령 〈아내의 개념〉을 놓고 이야기할 때, 〈저 여자 는 나의 아내이다〉와 〈저 여자는 나와 같이 사는 여자이다〉라는, 저 여자에 대한 설명 방식이 둘 있을 수 있겠는데, 누가 만일 나에게 〈저 여자는 당신과 같이 사는 여자요〉라고 물었을 때, 〈그렇소〉라고 대답할 수도 있고,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저 여 자는 당신과 같이 사는 여자요〉라고 물었을 때 〈아니오, 저 여자는 내 아내요〉라고 대답했다고 해서, 앎과 믿음 관련적 설명 양식에서, 〈그렇소, 저 여자는 나와 같이 사는 여자요〉라고 대답한, 그 대답과 차이점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참 믿음이든 정당화된 참 믿음이든간에, 지식을 일종의 믿음으로

취급하는, 그런 지식의 정의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또 이런 식의 말을 하기도 한다. 지식이 일종의 믿음이라고 할 수 있으 려면, 우리가 어떤 것을 알 경우에는 그것을 믿어야 하는데, 알고도 그것을 믿지 않으려는 경우가 있는 것이 사람일 수 있다는 문제를 들고 나온다. 어떤 것을 〈믿고 있을 경우〉에는 그것을 안다고 말할 수 없을지 모르나, 〈알고 있는 경우〉에는 그것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어야만, 〈앎은 일종의 믿음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터인데, 그렇 게 말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인간일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가령 교 통사고가 나서 자식이 죽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면서, 그것을 절대 로 믿지 않는 부모의 경우가 그 예일 수 있다. 믿는 것이 틀려 있고, 알고 있는 것이 옳은 줄 알면서도, 아는 것을 믿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앎을 일종의 믿음으로 보아버릴 수만은 없다는 논지이다. 〈확실한 근거를 가진다는 것〉과 〈근거들이 확실하다는 것 을 안다는 것〉은 서로 다르다. 그리고 안다는 문제에서, 〈아는 정도〉를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경우가 있다는 데에도 문제가 있다. 알면, 아는 것이지 〈어느 정도〉 안다라는 말은 있을 수가 없다라는 말이 가능한가. 〈어느 정도 안 다〉는 말은 결국 〈알기도 하지만 모르기도 한다〉라는 말이 되니까, 그것이 앎의 정의와 상관되는 것일까• 우리는 〈무엇무엇을 안다〉라 는 말도 하지만, 〈무엇무엇을 할 줄 안다〉라고도 말한다. 가령 〈피 아노 칠 줄 안다〉라는 식의 말도 한다. 〈칠 줄 안다〉도 분명히 앎의 범주에 들어간다. 우리는 〈피아노를 어느 정도 칠 줄 안다〉라고도 말한다.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도 우리는 안다. 이렇게 말. 하고 보면 〈어느 정도〉의 앎울 인정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인가. 〈어 느 정도〉의 앎도 앎의 본성 취급에 하자가 없을 수 있다는 것인가. 〈정당화된〉 개념과 지식을 연결시키는 경우에는 어떤 문제가 생 길까. 〈운 좋은 추측〉(일종의 믿음)이 참이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지

식으로 취급받지 못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 상식이 〈정당화〉의 필 요성을 대두시키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이야기가 왜 필요한가. 지식을 〈정당화된 참 믿음〉으로 정의 할 수밖에 없고, 또 그 정의에는 상당한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오늘 날까지 받아들여지는 지식의 정의로 그것이 통용되고 있다는 사실 은 앞에서 이미 언급했다. 그러나 이런 정의에서 사용된, 〈정당화된〉 〈참〉 〈믿음〉이라는 어휘들이 마련하는 문제점들 때문에 그 정의에 반기를 들고 있는 입장에도 역시 타당성이 발견되었고, 그래서 그 타당성에 대한 점검을 해오고 있고, 〈정당화된〉 운운이 가지는 문제 점을 여기서 검토하고 있으며, 이런 검토를 통해서 지식의 본래 모 습을 찾아보자는 데에 지금의 언급 목적이 있다. 음악 지식의 참 모 습을 찾고자 할 때 음악학자들이 가져야 할 엄격성이 참으로 대단 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믿음의 정당화란 말은 무슨 뜻인가. 하나의 믿음이 어떠한 경우에 정당화됐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나의 믿음은 다론 하나의 믿음에 의해서 정당화되는가, 혹은 다른 하나의 앎에 의해서 정당화되는가. 만일, 하나의 믿음이 앎에 의해서 정당화된다면 문제논 어떻게 되는 가. 앎울 정의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앎의 정체를 모르기 때문에 앎 울 믿음이라는 맥락 속에서 풀어보자는 것이었는데, 믿음의 정당화 를 위해서 이미 디론 어떤 앎 운운을 할 수 있다면, 그 앎에 대해서 알았다는 말의 근거인, 앎에의 앎 운운을 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서 나왔는가라는 문제가 생기므로, 여기서 이미 하나의 모순을 안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믿음을 다른 어떤 믿음 으로 정당화하겠다고 나서면 문제해결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정당화 를 위해서 동원된 〈다른 믿음〉이 또 정당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갑〉이라는 믿음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을〉이라는 믿음을 동원해 놓 고 보니, 〈을〉의 정당화 문제가 생기게 되고, 그래서 〈을〉을 위한

〈병〉이라는 믿음을 동원해야 하고, 〈병〉을 위해서는 〈정〉을 동원해 야 한다는 식이 되고 만다. 정당화를 위한 최초의 정당한 믿음으로 끝없이 거슬러 울라가야 한다는 문제가 생긴다. 그러니까 거슬러 올라감이 어디에서 중단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 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추론 관련적 지식과 비추론 관련적 지식 죽 직관적 지식의 구별이 필요하다. 추론을 위한 최초의 전제 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전제의 전위는 추론에 의해 서 정해지지 않고, 직관적으로 그- 전제를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그런 전제를 인정함으로 해서, 정당화를 위해서 더 이상 거슬러 올 라갈 필요를 없게 하는, 비추론적 지식을 추론적 지식과 구별할 필 요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결국 철학자들은 비추론적 지식에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주장하 기에 이른다. 자명하고 필연적인 참의 경우와 경험 관련적 보고에 의해서 즉각적으로 정당화되는 사실의 경우가 그것이다. 전자의 예 로는 〈가 + 나〉는 〈나 + 가〉와 합산적 결과에서 같다라는 사실이 있다. 후자의 예에는 〈졸린다〉라는 경험 관련적 보고 같은 것이 있 울 수 있다. 〈졸린다〉라는 보고를 해놓고 설사 잠을 자지 않는다고 해도, 어떤 사람이 정말 졸려서 졸린다라고 말하면 그것을 참으로 받아들이 지 않을 수 없다. 아무튼 지식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대한 옳은 답을 얻기는 정말 로 쉽지 않다. 〈무엇무엇을 안다〉, 혹은 〈무엇무엇을 할 줄 안다〉라 는 것과 상관되는 앎 이의에도, 〈나는 철수를 안다〉라든가 〈나는 동 경을 안다〉라는 말을 우리가 한다. 여기서도 분명히 〈안다〉라는 말 이 정확하게 쓰이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언급된 앎의 생리와는 다른 차원의 앎울 우리는 또 고려 사항에 넣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내가 철수를 안다〉라는 말은, 가령 〈나는 영호를 모른다〉라는 말

에서와는 달리, 철수를 만난 일이 있기 때문에 그를 다시 만나면 그 가 철수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뜻아 된다. 외국어를 안다 라든가 음악을 안다는 말을 할 때도 있는데, 이 때의 앎 역시 사람 을 안다고 할 때의 의미와 비슷할지 모른다. 그 사람에 대해서 〈알 만큼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를 안다〉라고 말을 할 수 있을 경 우가 있듯이, 〈음악을 안다〉라는 말의 의미가 음악에 대해서 알 만 큼 안다, 그러니까 충분히 안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지 식의 의미는 폭이 넓고도 깊다. 이 때문에 지식을 정의하려는 의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지식의 의미 폭이 넓고 깊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 인간에게 〈안다〉라는 사실은 중요하다.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안다는 것이 여 전히 중요하다. 인간은 어떻게 아는가, 알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앎의 최초의 근거는 무엇인가라는 것들에 대해서 안다는 것도 중요 하다. 위와 같은 문제들어 L 대해서 〈이렇게〉 알 때와 〈저렇게〉 알 때는, 그런 식의 앎의 덕분으로 인간의 삶은 서로 달라전다. 가장 옳은 삶을 살고 싶어하는 인간은 이 때문에 가장 옳은 앎을 얻고 싶어한다. 가장 옳은 앎의 근원적 출처를 밝히는 일을 중요시 한다• 그래서 앎에 대한 합리론적 입장과 경험론적 입장이 맞서고 있기도 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합리론적 입장은 앎의 근원 적 출처를 타고날 때부터 인간에게 있는 인식 능력에서 찾으려고 한 다. 경험론적 입장은 감각 작용과 그것에 의하여 주어지는 경험 내 용에서 그것을 찾으려고 한다• 감각 작용이 앎의 근원적 출처라고 한다면, 알게 되는 근거가 눈 이나 귀 등의 작용에 의존적이라는 말이 된다. 다시 말해서, 본다, 듣는다는 등의 감각 작용이 우리에게 알게 하는 근거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본다〉 혹은 〈듣는다〉라는 작용이 앎의 근원이라는

생각에는 상식적 사고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문제점들이 내포되고 있 다. 물론 이 문제점을 극복하려는 여러 이론에도 한계점이 드러난다. 상식이 판단기준 역할을 할 경우, 그 상식 출처가 옳게 검토되지 않 으면 모래 위에 집짓기에 바유되는 일이 벌어질 것은 너무나 뻔하 다. 음악학이 모래 위에 집짓기 작업일 수는 없다. 음악가나 음악학자나간에 음악적 소질의 근원지에 대한 지식 내 지 신념을 피력한다. 이 피력이 반드시 음악학적 쟁점이라고 고집할 생각은 없다. 다만 모래 위에 집짓기식의, 어떤 것에 대한 언급을 하 지 않으려면, 상식적 판단에 의해서 어떤 것이 언급되지 말아야 한 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음악학적 쟁점에 접근하기에 앞서 가령 음악적 소질이 선천적 속성을 띤 것이냐 후천적 속성을 띤 것이냐 에 대한 검토를 해봄으로써 어떤 것에 대한 신념과 지식의 엄청난 차이를 점검해 보기로 한다. 3.3 음악적 소질은 왜 타고나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음악적 소질은 타고나는 것으로 믿는다. 아는 것이 아니 라 그것이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인간에게 보는 능력이나 듣는 능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보는 혹은 듣는 능력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귀에 무엇이 들려지게 되는 것이 바로 곧 듣게 되는 것이라면, 그 둘려지게 되는 근본 이유가 감각 때문임은 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들려지게 되는 것을 그냥 들려지게만 내버려 둔다면 들려지는 대상에 의미 발생이 생길까라는 질문이 생긴다. 그냥 들려진 대상을 〈흩어져 있는 대상〉 이라고 하고, 의미 발생이 되는 대상을 〈묶여쳐 있는 대상〉이라고 한다면, 이 묶는 능력의 속성이 무엇인지 검토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봄〉 혹은 〈둘음〉의 참 속성을 알 수 있게 되고 음악적 소질의 본 성도 알 수 있게 된다. 보았기 때문에 혹은 들었기 때문에 인간이 어떤 것을 아느냐, 본 것 혹은 들은 것을 〈묶을 수 있기 때문〉에 아느냐라는 질문을 놓고 우리는 비비 꼬인 생각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묶는 능력의 원천을 감각으로 보면 여러가지 어려운 문제가 생긴 다. 묶는 재료를 감각이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나, 생재료가 요리일 수는 없다. 〈봄〉 혹은 〈들음〉은 생재료를 요리화한 상태에 비유된다. 문제는 요리 능력의 원천지가 감각이냐, 아니면 다른 어떤 인간의 본유적 능력이냐러는 것에 있다. 묶는 능력은 요리하는 능력이지 생 재료 수집 능력이 아니다. 여기서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 는 어디 있는가. 그것이 아닐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말 하는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가. 정확한 검토가 필요하다. 묶는 능력 혹은 묶는 방식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벙어리가 될 신체적 조건을 타고나지 않는 한,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면 누 구나 어떠한 말을 하게 된다• 이 말할 수 있는 능력이 묶는 능력이 다. 즉 말이 된다는 말은, 인간의 입이 소리를 발하되, 그 소리가 하 나의 소통사항을 가지게끔, 그 소리를 특정 방식으로 묶는다는 뜻이 다. 묶는 능력이 인간에게 원래 없다면, 묶을 재료가 아무리 공급된 다고 해도, 그 공급만으로서는 묶을 수 없다. 묶는 능력은 특정 방식으로 행사된다. 이 말의 의미가 풀려져야 한다. 인간은 말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났다. 즉 묶는 능력을 타고 났다. 그런데 이 능력에 두 가지의 성질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 야 한다. 능력 행사 문제가 이 두 가지 성질을 갈라놓는다. 능력은 그것이 행사될 때가 있고 행사되지 않을 때가 있다. 행사되지 않을 때는 능력 행사 〈전〉의 개념과 상관된다. 그리고 행사될 때는 능력

행사 〈후〉의 개념과 상관된다. 여기서 전과 후의 개념이 기막히게 중요하다. 말할 수 있는 능력에도 전과 후의 개념이 작용된다. 전과 후의 개 념과 상관시키지 않은, 그냥 능력의 개념은 〈말을 낳을 수 있는 능 력〉에 비유할 수 있다. 〈낳음〉의 문제를 여자가 아이를 낳는 것에 비유한 후 우리는 이런 말을 할 수 있다. 여자는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 고 있다. 그런데 이 능력이 곧 아이 낳음은 아니다. 아이 낳음은 반 드시 특정 아이의 낳음과 상관된다• 보편 아이의 낳음이리는· 문제와 는상관이 없다. 인간에게 원래 있는, 말할 수 있는 능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보 편 언어가 아닌 특정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언어 능 력이다. 물론 이 특정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의 원천이 인간의 〈말할 수 있는 능력〉에서 찾아지는 것이긴 하지만, 특정 아이를 낳 지 않은 여자가 어머니일 수 없듯이, 특정 언어를 구사할 수 없는 인 간을 두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우리는 일컫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원래 있는 묶는 능력 역시 특정 묶음의 방식으로 나타날 때, 그것이 능력이 된다. 〈전〉의 능력 때문 에 〈후〉의 능력이 생기긴 했지만, 〈후〉의 능력이 생기지 않으면 〈전〉 의 능력은 능력 구실을 하지 않는 꼴이 되어, 결국 능력이라고 일컬 어질 수 없다. 우리가 능력이라고 하는 것은 그러니까 〈후〉의 능력 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묶는 방식의 종류가 여러가지로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기 때 문에 능력의 종류가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이 사실이다. 말하자면 말 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났다는 점에 있어서는 인간 모두가 동일하 나, 어떤 인간은 영어를 하고, 어떤 인간은 독일어를 자기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

하고 있는 한국인도 있고, 한국인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같은 한국말 을 사용하지 않고, 어떤 이는 경상도 사투리로서의 한국말, 어떤 이 는 서울 표준말, 어떤 이는 생활언어, 어떤 이는 시언어를 사용하기 도 한다. 불가사의한 인간이 아닐 수 없다. 음악언어 사용의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누구나 음을 묶을 수 있는 능력을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다. 다만 원래의 그 능력이 특정 방식으로 움을 묶을 수 있는 능력으로 대치될 수 있 는 기회를 가지지 못한 인간이 음악의 세계에서는 많이 있을 뿐이 다. 그래서 음악할 수 있는 소질(죽 보편 소질)을 인간이면 누구나 모 두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소질이 특정 소질화되지 않고 있 기 때문에, 소질 있는 사람과 소질 없는 사람으로 음악의 세계는 그 소질의 성격을 구별해 놓은 것이다. 말의 경우는 인간이면 누구나 특정 방식의 언어 구사 능력을 행 사할 수 있는데, 음악의 경우는 왜 누구나 특정 방식의 음언어 구사 능력을 행사할 수 없는가. 음악세계의 경우는- 특정 소질만 있는 것 이지 보편 소질이라는 것은 없는 것이 아닌가. 누구에게나 있다고 하는 음 묶는 능력(물론 이 능력은 특정 방식으로 묶는 능력이 아님을 주 목해야 함)이라는· 것은, 음악의 세계에서는 없는 것이 아닌가. 이런 질 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특정 능력에는 반드시 그 능력의 출처 가 있게 마련이라는 것을 기억하면 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된다. 말 할 수 있는, 인간이 가지는 보편 능력이 특정 언어 구사 능력을 가 지게 되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출처를 기억하면 되는 것이다. 특정 음악 능력도 보편 능력 죽 〈전〉 개념 관련 능력 때문에 생긴 것이 고, 이 보편 능력은, 여자가 아이를 낳는 능력을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듯이,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능력이라는 사실을 알아두면 된다는 것이다. 소질은 특정 문화권의 음악적 감수성을 지칭하는- 것 이다. 이런 감수성은 그러니까 〈후〉 개념 관련 능력이다. 천상의 능

력이 아니라 지상의 능력인 것이다. 그러니까 특정 음악 능력(〈후〉 개념 관련 능력, 즉 지상에서 일컫는 이른바 〈소질〉)을 행사시키고 싶은 경우에는 보편 음악 능력의 소지자인 인간을 〈결혼〉시켜서 아이를 낳게 하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언어 구사력의 경우는, 예의없 이 인간 모두가 언어 관련적 결혼을 한 것에 비유될 수 있는데 음 언어 구사력의 경우는 인간이라고 해서 누구나 모두 음 관련적 결 혼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말언어이든 음언 어이든, 보편 능력을 인간이면 모두 가지고 있는데, 말언어의 경우와 는 달리 음언어 세계의 경우는 인간 모두가 결혼할 기회를 가지지 못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전〉의 능력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데 〈후〉의 능력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여기서의 〈결혼〉은 〈특정 낳음〉을 가능케 하는 〈원인〉으로 해석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모방의 개념을 소개해야 한다. 인 간에게는 모방 능력이 원래에 있는데, 모방 능력이 특정 모방의 낳 음을 가능케 하려면 모방 대상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해야 한다. 모 방 대상의 있음이 〈결혼〉을 가능케 한다라는 말을 하고 싶고, 말언 어의 경우는 인간 모두에게 모방 대상이 제공되나, 음언어의 경우는­ 모방 대상이 모든 인간에게 제공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함으로 써 문제 해결에 접근해 보고 싶은 것이다. 말언어의 경우 모방 대상은 변하지 않는 불변성, 그리고 신분성이 고정되어 있고 다른 것과 분리될 수 있는 성질, 죽 고정성과 분리성 울 가지고 있으나, 음언어의 경우 모방 대상은 그렇지가 않다. 가령 〈엄마〉라는 말언어롤 한국에서 태어난 어린 아이가 배운다고 하는 경우,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는 〈말할 수 있는 능력〉(죽 말 배울 수 있 는 능력) 덕분으로 〈엄마〉라는 말울 한국 어린이 전부가 예의없이 배 울 수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 이유는, 한국 언어문화권내에서는 어 린이가 어딜 가나 〈엄마〉라는 불변적 • 고정적 • 분리적 속성을 띤 모

방 대상에 접근하게 된다는 데에 있다. 그런데 음언어의 모방 대상 은 그렇지가 않다. 엄청나게 그 속성이 다르다. 〈아버지〉라는 말의 경우, 경상도 어린이들이 〈아부지〉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경 상도 어린이에게 주어지는 모방 대상이, 같은 한국어이지만, 서울 어 린이들과는 다르게 주어지기 때문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언어 구사의 재료인 개별 단어라든가 그 단어를 묶는 방식을 배 워나가는 한국 어린이에게는 한국 언어문화권이 마련하는 언어의 신 분성이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제공된다. 그렇기 때문에 동일한 묶 는 방식인 모국어 개념을 성립시킨다. 그러나 음언어 구사 재료의 경우는 어린이마다 달리 제공된다. 한국의 가정 모두에 〈엄마〉라는 언어 재료가 제공되는 것과 같이, 가령 〈피아노〉라는 악기가 모든 어린이에게 태어날 때부터 제공되지는 않는다. 피아노라는 악기는 음색적 재료나 음계적 재료를 제공한다는 의미 이의에, 서양음악양 식언어의 성립을 위한, 많은 재료를 붙이고 다닌다. 그러므로 모든 어린이에게 동일한 모방 대상을 제공하게 되는 결과의 초래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음을 묶는 방식이 동일하게 형성될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음악세계의 경우 이 문제는 한국이나 서양이나 모두 마찬가지로 야기된다. 서양이라고 해서 모방 대상이 모든 어린이에게 동일하게 제공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결국 이런 말이 가능하다. 인간에게 보편 능력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이 능력은 특정 방식의 능력 으로 대치될 때 능력 구실을 .한다• 인간의 삶에 실제적으로 사용되 . 는 능력은 특정 능력이지 보편 능력이 아니다. 특정 능력은 모방 대 상의 제공에서부터 비롯된다. 음악 관련적 모방 대상이 모든 인간에 게 불변적 • 고정적 • 분리적 속성을 띠며 제공될 때라야 언어 구사 력에 있어서의 특정 능력을 온 사회구성원이 동일하게 가지듯이, 특 정 음악 소질(죽 음울 특정 방식으로 묶는 능력)을 온 사회구성원이 동

일하게 가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음언어의 경우는, 모방 대상이 전 체의 사회구성원에게 동일하게 제공되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 니다. 모든 인간이 음악 소질을 보편적으로는 가지고 있으나 특정 소질을 가질 여건을 갖추지 못하기 때문에, 음악의 경우는 소질이 있고 없고의 개념이 구별되는 것이다. 이 점을 감안하면, 불변적이고 도 고정성 • 분리성이 있는 모방 대상의 제공이 곧 음악 소질 형성 의 원인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이 사실을 〈안다〉는 것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그것과는 다르게 〈믿고〉 있는 상태와는 하늘과 땅 차 이룰 낳는다. 결국 음악학에 있어서의 지식과 신념의 차이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에 비유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비비 꼬인, 장황스러운 〈따짐〉은 바로 저자가 갖고 있 는 〈학〉이라는 것 즉 〈음악학〉이라는 것이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믿 음이 정당하고 참인 것이냐를 따져 보는 하나의 출발이었다. 3.4 음악과 철학 음악과 철학 사이에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음악 함〉에 〈철학 함〉 이 어떤 식으로 관여가 되는가. 음악을 그냥 〈하는〉 음악가가 아닌, 음악을 학문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일군의 사람에게는 음악과 철학 의 관계를 〈내 모르는 사정〉으로 내동댕이칠 수가 없다. 음악의 의 미가 〈해석〉의 대상이 되는 것은 확실하고 해석을 옳게 한다는 문 제는 음악적 질문과 상관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분명히 철학적 질 문과도 상관되기 때문이다 .78)

78) 《철학과 현실》 (서웅 : 철학과 현실사, 1989 .3)에 실렸던 글을 가필한 것이다.

음악을 하는 사람은 질문을 던전다. 철학을 하는 사람 역시 질문

울 던진다. 질문을 던진다는 차원에서 음악과 철학은 마찬가지 작업 울 한다. 그런데 여기서 벌써 하나의 문제가 생긴다. 〈마찬가지 작 업을 한다〉라고 한 말이 문제이다. 음악과 철학에 종사하는 사람이 다같이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 고 해서 그들이 서로 동일한 작업을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실상에 있어서는 다른 작업을 하고 있 는데, 만일 같은 작업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면 어떠한 문제 가 생길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음악적 질문과 철학적 질문이 동일한 것인가, 상이한 것인가. 이 질문은 그 질문의 속성으로 보아 옳은 대답 하나만을 요구하는 질 문인가, 옳은 대답을 여럿 요구하는 질문인가라고 우리는 물을 수 있다. 대답하는 방식이 질문의 속성에 따라 달라지는가, 동일한 것인 가라고도 물을 수 있다. 이러한 물음이 음악하는 사람에게 중요해지 는 이유는 가령 베토벤 「열정」 피아노 소나타의 가장 옳은 연주는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이 주어진다고 할 때, 그 대답이 〈하나〉인가 〈여럿〉인가라고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라면 모든 사람의 대 답아 같아야 한다는 이야기이고, 〈여럿〉이라면 사람마다 대답이 다 를수 있다는 이야기다. 특정 악곡의 연주는 그 악곡의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연주가의 대답이다. 연주를 〈악곡의 해석〉이라고 일컫는 이유도 여 기에 있다. 그렇다면 연주하는 사람마다. 서로 다른 연주를 한다는 말은 대답이 여럿이라는 말과 같다. 그리고 서로 다른 대가의 연주 가 모두 옳은 연주라면 옳은 대답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러는­ 말을하는것과같다. 질문은 하나인데 옳은 대답이 여럿일 수 있는 경우는 〈맛〉의 경 우에 그렇다. 〈약〉과 관련되는 질문은 대답을 〈여럿〉 가질 수 없다. 그러나 〈맛〉과 관련되는 질문은 대답을 〈여럿〉 가질 수 있다. 그래

서 질문의 속성으로 보아 옳은 대답이 〈하나〉인가 〈여럿〉인가라는 질문이 음악안에게 중요해지는 것이다. 음악적 질문과 철학적 질문 의 속성이 동일한 것이 아니라면 대답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하는가, 달라질 필요가 없는가라는 물음울 우리는 이 때문에 던진다. 역사적 설명 방석이 역사철학에서 문제되고 있다. 음악적 설명 방 식에서도 이 문제는 거론될 수 있다. 자연을 설명하는 방식과 인간 울 설명하는 방식은 같지 않다러는- 주장이 있는데, 이 주장이 과연 옳은 것안가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이 문제에 접근해 보자. 기와가 지붕 위에서 떨어졌다. 이 사건은 음악작품이 작곡되었다 라는 사건과는 그 성질이 다르다. 물건이 떨어지는 사건은 인간적 사건이 아니다. 자연적 사건이다. 이 자연적 사건이 발생한 이유는 어떻게 설명이 되는가. 기와가 떨어지는 사건에 대한 옳은 설명은 어떠해야 하는가. 그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만류인력법칙과 기와가 떨어지는 원인에 의해서 설명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설명은 사적인 설명이 아니라 항시 공적으로 반복될 수 있는, 그러니까 실증될 수 있는 설명이다• 만류인력이라는 일반법칙과 기와가 지붕에 붙어 있 지 않았다는 원인으로 기와는 땅에 떨어졌다는 설명 방식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와가 지붕에 붙어 있지 않은 이유는 집이 낡았기 때문이다. 지붕과 기와를- 밀착시기키는 시멘트가 자기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하나의 원인이라는 말이다. 말하자면 원인이 될 수 있는 모든 조건과 일반법칙으로, 일어난 사건이 설명되는 것이 자연 울 설명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위에서도 말했듯이 말 그대로 과 학적인 방식이다. 기와가 떨어지는 이유는 나의 집 기와 혹은 너의 집 기와와는 상관이 없다. 헴펠의 입장에서 주장되어지는 것과 같이, 어느 집의 기와이든간에 일반법칙과 적절한 원인이 있으면 기와는 떨어지게 되어 있고, 그러한 사건은 현장 검증식으로 언제나 공적으 로 반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79)

79) Carl Hemp eL wEx pla nati on in Scie n ce and in Hi st o r y , Phil o soph ic a l Analys i s a 뼈 Hi st o r y (e d. by W. Dray , New York : Ha rper & Row, Publi she rs, 1966), pp.9 5-126.

그렇다면 인간을 설명하는 방식도 이와 같은 성격의 것인가. 자연 이 아닌, 인간이 개입된 음악적 현상의 설명 방식도 이와 같은 성격 의 것인가. 이런 질문에 대해서 그 성격이 같은 것일 수 없다고 주 장히는 관념론 계열 역사철학자들의 입장에도 상당한 설득력이 있 다. 〈말이면 다 말이냐〉라는 말이 있다. 이러한 말과는 상관 없이, 사 람들은 말이 되든, 되지 않든간에, 음악전문가든 전문가가 아니든간 에, 음악에 대한 언급을 한다. 〈언급〉이라는 어휘 뒤에 〈학〉이라는 글자가 붙어서 〈언급학〉이라는 어휘가 생긴 이유는 말이면 다 말로 취급하는 것이 옳은지, 말 같은 말이어야 옳은 말로 취급해야 옳은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하는 데에 있다. 한때 옳은 말이라고 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난 후 틀린 말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그냥 말〉 죽 옳은지 옳지 않은지 모르는 채로 사람이기 때문에 〈그 냥 한 말〉이 더 옳은 경우도 있다. 그래서 〈말이면 다 말이다〉라고 생각해야 하는지, 말 같아야 옳은 말이라고 생각해야 하는지의 문제 가 쟁점이 될 수 있다. 특히 음악에 대한 말의 경우가 그렇다. 옳은 말의 표준은 철학자가 정한다. 그 표준이 실제로 그러한지 어떠한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음악을 전공하는 자로서 철학에서 삶의 근거를 찾고자 하는 사람은 〈옮음〉의 근거는 철학만이 제공해 주리라는 생각을 가진다. 그런데 음악에 대한 옳은 말은 음악이 무 엇인지 알아야 가능하다. 음악을 아는 철학자이면 몰라도 음악을 모 르는 철학자인 경우는 어떻게 되는가. 철학자가 옳은 말의 표준을 정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철학자가 하는 말이면 모두가 옳은 말이 되

는 것은 아니다. 철학자의 수준이 문제되어서 그렇다기보다, 음악을 모르는 철학자와 음악을 아는 철학자 중에서 어느 쪽이 음악에 대 한 옳은 말을 하는지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안다는 말은 경우에 따라서는 경험적 오류를 범한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음악을 안다 라고 말해 놓고 실상에 있어서는 특정 부류의 음악에 대한 경험 능 력을 가전 자의 푸념이 〈아는 것〉이 되고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 다. 그러므로 음악을 아는 사람이라는 말 자체를 조심스럽게 사용해 야한다. 〈옳은 말〉이라는 것은 〈무엇에 대한〉 말이다. 아무 것도 아닌, 그 러니까 〈없는 대상〉을 두고 그것이 〈옳다〉라는 말은 할 수 없다. 음 악이 대상이 될 때가 있고 음악 아닌 것이 대상이 될 때가 있다. 음 악에 대한 옳은 말과 음악 아닌 것에 대한 옳은 말은 그 옳음의 속 성이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왜 이러한 질문이 중요한 것이 되 는가 하면 〈음악 아닌 것에 대한 옳은 말〉의 속성과 〈음악에 대한 옳은 말〉의 속성이 같은 것일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 설명 방식 울 두고 실증주의자와 관념주의자가 대립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음 악적 설명 방식의 경우도 실증주의자와 관념주의자가 대립할 수 있 울 것 같다. 음악을 일반법칙과 관련시켜서 설명해야 한다는· 주장이 옳 때가 있고, 음악은 개별성이 인정될 때 음악이지 일반법칙과 상관시키는 순간 음악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옳을 때가 있기 때문이 다. 위에서 〈음악 아닌 것에 대한 옳은 말〉과 〈음악에 대한 옳은 말〉 의 속성이 같은 것일 수 없다고 한 말은 따지고 보면 관념론 계열 역사철학자들의 〈역사〉에 대한 입장을 지지하는 꼴이 된다. 물론 저 자는 실증론자의 입장이 옳다는 생각이 둘 때가 많다. 모짜르트 같 은 최상급의 작곡가는, 겉으로 보기에는 서로 다른 것 같은 음악 작 품들이더라도 그 숨은 구조를 분석해 보면 모든 조성음악의 구조를

일반법칙에 상관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죽 모든 조성음악이 일 반법칙 관련적 음악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다시 말해서 수준이 낮은 작곡가는 그것을 모를지 모르나 최상급 수준의 작곡가 는 작품 생성의 과정을 법칙적 차원에서 소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작곡〈법〉이라는 말까지 가능하게 한다. 이 법칙에의 이해가 모짜르트로 하여금 그렇게도 쉽게 음악을 만들게 했던 것이다. 물론 모짜르트의 법칙은 자연법칙과 같은 성격의 것이 아니라 〈개별적 일 반론에 해당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누가 옳은 가의 문제를 놓고 음악학자는 꼬리의 끝이 보이지 않는 논쟁을 계 속하고 있다. 모짜르트의 사정은 그러할지 모르지만 모짜르트 음악을 감상하는 사람의 사정으로 보면 보편적 일반 자연법칙의 역할을 담당하는 〈개 별적 일반론〉보다 각 작품의 〈개별성〉이 더 중요하게 된다. 말하자 면 〈일반성〉보다 〈개별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개별 작품은 일 반화된 어떤 틀에 절대로 들어갈 수 없고, 이론바 〈유일 가능 세계〉 를 창조하고 있는 유니크한, 작품 내적 역사성만을 인정하자는 것이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증론자들의 주장에 여전히 설득력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앎의 속성과 상관되는 것이지 앎을 위해서 있는 대상의 속성과 상관될 수 없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실증론자들의 입지 조건이 튼튼해지는 것이 다. 그러나 이 말이 옳다고 해서 그리고 옳은 말이 무엇인지 아는 사 람이라고 해서 음악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음악에 대한 옳은 말 울 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문제가 자꾸만 어려워진다. 옳은 대답을 하기 위해서, 이 글의 서두에서 끄집어냈던 문제와 상관되는 질문을 다시 상기해 보자• 음악가들은 악곡의 훌륭한 연주 에 대한 관심을 가진다. 음악가들은 어떠한 연주가 훌륭한 연주인가

의 문제를 놓고 〈말〉로 따지지 않는다. 말로 따지지 않아도 음악을 아는 사람이면 어떠한 연주가 훌륭한 연주인지 〈말과 상관없이〉 안 다. 음악을 아는 사람들끼리 모인 공동체에서 훌륭함의 개념은 관습 적으로 묵인된다. 이 묵인은 철학으로부터 음악을 해방시킨다. 철학 을 모르는 사람이 〈그렇게도 좋은 음악〉을 세상의 여기저기서 수없 이 많이 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철학으로부터 해방된 이러한 관습 적 묵인의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 관습의 세계에서는 〈악보대로 연주해야 하는 것〉이 훌륭한 연 주가 된다. 그런데 이 〈악보대로 연주한다〉는 말의 의마는 그 뜻이 간단한 것 갇아도 그렇지가 않다. 악보대로러는- 말은 악보는 〈하나〉 이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베토벤의 〈열정〉 소나타의 경우, 열 정의 악보는 분명히 하나다. 이 〈하나〉의 악보를 연주가는 연주한다. 그러니까 악보대로 연주한다는· 말은 악보 그대로 연주해야 한다는 뜻이니까 모든 연주가 〈하나〉이어야 한다는 뜻이 된다. 문제는 모든 연주가 동일한 연주인가에 있다. 실제의 연주는 모두가 서로 다르다. 악보를 소리로 재구성할 때 재구성자의 주관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악보의 소리화는 음악의 재구성아다. 그러니까 재구성자가 바로 연 주가인 것이다. 재구성자의 주관이 개입된다는 말은 악보에서 주어 지고 있는 음악적 사실의 재구성이 순수히 객관적일 수 없다는 뜻 울 의미한다. 악보가 제공하는 사실적 차원에 연주자의 가치관이 개 입된다는 것이다. 악보의 재구성과 역사의 재구성 운운은 그 성질이 비슷하다. 작품이 과거에 있었던 사건이라면, 그것을 재구성해 내어 야 하는 연주가는 과거를 재구성하는 역사가에 비유될 수 있기 때 문이다. 역사라는 어휘가 두 가지의 의미로 해석된다. 〈과거에 일어난 사 건〉과 관련되는 의미와 〈역사가가 하는 일〉과 관련되는 의미가 그 것이다. 음악이라는 어휘 역시 두 가지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과

거에 일어난 사건에 해당되는 〈작품〉과 관련되는 의미가 있을 수 있 고, 작품이 소리로 재구성될 때에만 음악이라는 의마에서 〈연주〉와 관련되는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후자는 〈음악가가 하는 일〉과 음악 이라는 어휘가 관계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과거 작품의 재구성의 정체가 무엇이냐라 는 것에 있다. 다시 말해서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옳은 〈재구성〉은 하나냐, 여럿이냐라는 질문에서 문제가 생긴다. 역사의 재구성은 역 사가가 제멋대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일 수는 절대로 없다. 〈있는 그대로〉 재구성해 내어야 한다. 그런데 음악의 경우, 해석가의 해석 과 무관한, 〈작품〉으로서의 과거 죽 〈있었던 그대로의〉 역사는 절대 로 〈그대로〉 재구성될 수 없다. 따지보 보면 역사의 경우도 마찬가 지이다. 〈역사〉보다 〈기록〉 즉 수사 h i s t or i o g ra p h y의 검토를 더 중 요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판적 역사철학이 대두된 이유도 이 문제와 무관할 수 없다 .80)

80) W. Dray , Ph ilos oph y of Hi st o r y , The Enc yclo pe d ia of Phil o soph y ( e d. by P. Edwards, New York : The Macm illan Co. & The Free Press, 1978), Vol 6, pp.2 47-54.

바판적 음악학지들은· 이 때문에 질문 하나를 끝까지 물고 늘어전 다. 옳은 연주가 하나냐, 여럿이냐라는 질문은 음악적 질문인가, 철 학적 질문인가리는- 것이 그것이다• 음악과 철학의 관계는 이 지점에 서 필연적으로 생긴다. 그 질문이 음악적 질문이라면 질문의 성격을 〈음악〉에 초점을 맞춘다는 이야기이고, 철학적 질문이라면 질문의 성격을 〈질문〉에 초점을 맞춘다는 이야기다. 질문에 맞춘다는 말은 옳은 연주는 여럿이 아니고 하나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벌써 하고 있 는 셈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음악〉은 여러 대답, 〈철학〉은 대답 하나만을 추구하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하나〉냐 〈여럿〉이

냐라는 질문 자체가 음악적 질문일 수도, 철학적 질문일 수도 있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관념론 계열과 실증론 계열 역사철학자 운운 이 벌써 위의 질문은 철학의 문제가 된다는 이야기이고 철학으로부 터 해방된 음악학자들도 이 문제를 자기네식으로 다루고자 하고 있 기 때문에 그것이 음악적 질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라는 식의 말에는 문제가 있다. 즉 옳다 라는 어휘가 적용되려면 그 말이 적용되는 대상이 있을 것임에 틀 림없고, 그 대상들이 만일 서로 다른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양쪽 모 두를 옳다고 한다면 그것은 논리적으로 옳을 수가 없다. 다시 말해 서 실증론자 성향 음악학자들은 옳은 연주는 〈하나〉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옳은 연주가 하나라고 한다면 그 말은 이미 이 세상에는 연주가가 필요 없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개성이 서로 다른 연주자 운운을 할 수 없게 됨은 말할 것도 없고 개별 작 품이 생성되어 가고 있는 작품 내적 역사 운운도 할 수 없게 된다. 작품 내적 역사성의 독특한 전전 과정 같은 것은 애초에 언급할 수 도 없게 된다. 연주가는 작품의 해석자라고 한다. 옳은 연주는 〈하나〉다라고 주 장하는 설중론자 계열의 음악학자가 있다면 그들은 작곡가의 의도 를 존중할 때 연주가 옳게 된다는 주장을 할 것임에 틀림없다. 음악 하는 사람 쳐놓고 작품을 만든 당사자인 작곡가의 의도를 무시하려 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까 문제는 〈작곡가의 의도대로〉라는 말이 실 제로 가능한가라는 데에 있다. 해석 주체는 해석자이고 해석 대상은 작곡가의 의도다. 작곡가의 의도대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 옳은 해석 이라면 해석 주체인 가령 연주가의 의도는 어떻게 되는가. 작곡가의 의도만 있는 것이고 해석자의 의도는 있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면, 해석자는 작곡가의 꼭두각시가 되고 만다. 해석자가 만일 참으로 꼭 두각시라면 그에게 우리는 해석가라는 단어를 적용시키지도 않을 것

이다. 해석자라는 말의 사용을 허락하고 있다는· 말은 우리가 이미 연주에 있어서 해석자의 의도 개입을 인정한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서로 다른 모든 연주를 과거 작품을 재구성한 작품으로 인정하고 있 는 것이다. 가령 〈열정〉 소타나 연주인 경우, 〈열정〉을 연주한다는 의미에서는 같은 연주, 그러나 해석자가 개입된디는- 의미에서는 다 른 연주, 이렇게 〈갇으면서도 다론〉 연주를 우리는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허용이 바로 연주 개념의 인정이다. 그리고 그러한 〈연 주〉 개념의 허용은 벌써 그 개념과 상관되는 하부 개념의 논리성이 합법화된다는 뜻이다. 이 말은 〈감으면서도 다론〉이라는 말이 옳은 말이 된다는 뜻이다. 같은 노래를 다른 사람이 부르면, 그 부른 결 과는 〈감으면서도 다르게〉 된다. 노래라는 것은 원래 그런 것이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의도와 노래를 만든 사람의 의도가 결합되어 지는 것이 해석의 결과라는 것이고, 이 해석의 결과라는 것을 인정 하는 것이 〈노래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역사의 개념도 〈과거에 있었던 일들 그대로〉의 개념과 그것을 해 석하는 죽 그것을 노래 부르는 해석자의 개념이 결합될 때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음악은 약이 아니고 맛이다. 역사 역시 약이 아니고 맛이다. 약의 효과는 모두가 같아야 하겠지 만, 맛의 효과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약은 자연과학의 대상이고 맛은 문화과학의 대상이다. 연주는 문화과학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이 하나냐, 여럿이냐라는 질문을 이 글의 서 두에서 끄집어냈다. 여기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보자. 대답은 간단하다. 약 관련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나이어야 하겠지만, 맛 관 련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럿인 것이 옳다. 음악을 약으로 취급해야 한다는 사고 방식은 자연과학적 대답과 문화과학적 대답을 동일한 것으로 보려는 마음이다. 그러한 방법론적 통일성을 주장하는 마음 은 옳음에 도달하려는 마음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좋은 마음아다• 그

러한 마음의 좋은 점은 옳은 대답은 어디까지나 옳은 대답이어야 한 다는 생각을 안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 하나만으 로는 옳음에 도달할 수 없다. 자연에 대한 대담과 인간에 대한 대답 은 그 대답을 어떻게 해낼 때 옳게 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옳은 대 답 없이는 불가능하다. 역사가 맛과 약의 결합체이었으면 싶었듯이 음악도 맛과 약의 혼합체일 때 옳은, 즉 같으나 다른 음악을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역사적 해석 방법의 문제를 놓고 비판적 역사철학자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는 쟁점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일반성을 인정하는 대답이 옳은 대답인가, 개별성을 인정하는· 대답이 옳은 대답인가라 는 식으로 질문을 이어갈 수 있는데, 음악적 문제를 놓고 이 질문에 대답을 해보자. 〈열정〉 피아노 소나타의 연주에 있어서 무엇이 일반 성이며, 무엇이 개별성인가라고 물어보면 된다. 해석자가 개입되지 않은 대상은 일반성, 해석자의 가치관이 개입되는 대상은 개별성이 된다. 개입되지 않는 상태 즉 〈사실〉로서의 〈열정〉과 개입된 상태 즉 〈가치〉로서의 〈열정〉은 그 성질이 같을 수 없다. 앞에서 암시되 었듯이, 우리가 연주의 의미를 운운할 수 있다면 그것은 벌써 약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맛을 대상으로 한다. 전혀 그 성질이 다 론 것을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연주 결과는 〈약〉과 〈맛〉의 혼합이라는 점을 우리가 인식 해야 한다. 〈같으면서도 다르게〉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 보면서 역 사나 음악은 맛과 약을 섞어 놓은, 인간이 만든 〈표현물〉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언급된 모든 내용은 음악의 문제인가, 철학의 문제인가. 음악에 대한 언급이니까 분명히 음악의 문제이다. 그러나 음악에 대 한 〈언급〉을 하는 문제이니까 〈언급〉의 옳음성이 문제되고, 언급의 옳음성 문제는 철학의 문제다. 다시 말해서 연주는 객관적인가 주관

적인가라는 질문은 음악적 질문인가, 철학적 질문안가라고 물을 수 있다는 것인데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철학적인 것이어야 하는가, 음 악적인 것이어야 하는가의 문제이기 때문에 〈음악과 철학〉은, 음악 을 〈그냥 하는〉 연주가이면 모르되, 음악을 〈언급 대상으로 보는〉 음악학자의 입장이 되는 순간,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라는 결론을 낼 수밖에 없다. 음악적 훈련만을 주로 받은 사람이 〈음악 언급학〉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음악 적 질문에 대한 옳은 대답을 하기 위해서 철학을 빌어 올 필요가 〈없 다〉고 주장하는 음악학자가 생길 법도 하다. 철학에 대항하여 역사 의 자율성을 강조한 랑캐 같은 학자가 음악학계서 나타날 법도 하 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철학으로부터 독립된 음악학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주장, 음악적 질문인 경우에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철학 으로부터 독립시키자고자 하는 주장, 그것이 음악학적 쟁점이 되어 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법도 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쟁 점 자체가 벌써 철학의 문제이지 음악의 문제가 아닐 것 같다는 생 각 때문에 또 다시 음악언급학은 철학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 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철학도, 음악도 제대로 하지 않는 인격체임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자기의 관심사가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면 그러한 사람의 설 땅은 인간 앞에 없는 것인가• 철학보다 음악보다 더 귀중한 관심은 이 세상에 없는 것일까. 철학에 한쪽의 눈, 음악에 또 한쪽의 눈을 돌리고 있는 음악 언급학을 원하고 있는 자의 설 땅은 없는 것일까. 만일 그러한 사람이 설 땅이 전정 이 세상에 없는 것이라면 〈음악 과 철학〉의 관계 운운 자체가 허위의식일 수밖에 없다. 되지 않을 것을 되는 것으로 생각한디는· 것, 관계가 없는 것을 관계 있는 것으 로 생각한디는 것, 그리고 관계가 있는 것이라고 한다고 해도 관계 지우는 자의 힘이 그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 관계를

주장하는 그러한 주장에도 문제가 있다. 이런 모든 것을 생각하면 음악도 아닌 것, 철학도 아닌 것, 그러나 음악과 철학을 끝까지 의 면하지 않고 사랑하는, 음악학적 관심이야말로 〈음악과 철학〉의 관 계성을 영원히 그리워하는 귀중한 인간 관심 분야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음악과 철학, 사변과 비판, 관념과 실증, 형상과 과정, 인간과 자연, 가변과 불변, 이러한 대립 구조의 문제 모두가 철학의 문제도 되고 음악의 문제도 된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러한 문제를 두고 생 각의 연습을 많이 할 때 옳은 음악학적 방법론이 터득되지 않을까 싶다. 3.5 음악에 접근하는 다섯 가지 방식 정상적인 청각은 새소리와 물소리를 구별한다. 정상적인 청각이라 고 해서 〈음악 감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상적인 청각은 사람이 타고나는 것이지만 〈음악 감각〉은 개발되어전다. 그래서 인간 누구 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8 1)

81 ) 〈낭만음악》(서울 : 낭만음악사, 1988 년 겨울) 창간호에 발표된 글을 가필한 것 Ol 다.

〈음악 감각〉은 일반 시간과 음악 시간을 구별하고 음악과 음악 아 닌 것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음악 감각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 이 음악에 접근할 때가 있다. 음악이 둘리는 장소의 분위기를 좋아 하는 사람이다. 분위기는 음악과는 상관이 없다. 음악을 들어야 하는 장소는 언제나 조용하다. 조용하니까 음악이 조용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조용한 분위기를 감상하는것이다.

음악 해설을 통한 음악에의 접근은 일종의 분위기 접근이다. 음악 에 접근하는 가장 유치한 방식아다.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음 악에 〈대한〉 것을 듣게 된다. 선율이 음악의적 주장을 할 때가 있다• 특정 선율이 나타나면, 그동안 전개되어 오던 음악내적 의미와는 상 관없이, 그 선율만이 지칭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 특정 상황과 연결 시켜야 하는, 특정 상황과 연결하는 것을 청자에게 강요하는, 그런 선율이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특정 상황이라는 것은 음악의적 의미 와 상관된다. 가령 소설의 주인공 등장 같은 것이 그것이다. 그동안 전개되어 오던 음악내적 의미와는 상관없이 특정 선율이 나타나면 주인공이 등장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특정 선율 이 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지 않는 선율이 있다. 선 율 형성 과정과 상관되는, 음들의 음악내적 관계성 관련 기능만을 중요시하고 그 기능을 음악 감각이 감지하기만 원하는 선율이 있다. 이런 선율은 콩선율은 콩음악을 낳고 팔선율은 팥음악을 낳는다는 논리를 안고 있다. 이 논리는 음악내적 논리다. 음악〈울〉 듣는 것과 상관되는 논리다. 음악에 〈대한〉 둘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대 부분의 음악 해설은 음악에 〈대한〉 것과 상관된다. 그러므로 음악에 의 피상적 접근일 뿐이다. 물론 음악과 담을 쌓는 것보다 피상적으 로라도 음악에 접하는 것이 삶에 보탬이 된다. 음악 해설을 사람들 이 듣는다든가 읽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내적 논리를 말 로 설명하는 수준 높은 〈음악 언급〉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언급은 해 설이라기보다 심도 있는 음악분석이라고 일컫는 것이 좋다. 곡목 안내서라는 것을 통해서 음악에 접근하는 방식이 있다. 한 차원 높은 방식이다. 여행 안내서는 여행 그것과는 다르지만 여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안내서가 여행 그것일 수는 없지만 무턱대고 여 행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여행 안내서를 읽으면 도움이 된다. 여 행에 도움이 된다는 말을 음악에 비유하면 어떻게 되는가. 음악의

이해는 음악 안내서를 읽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음악〈울〉 아는 데에 곡목 안내서가 도움이 되기는 한다. 곡목 안내서는 음악〈을〉 분석해야 만들어진다. 여기서 분석이라는 것은 음악에 〈대한〉 언급과는 상관이 없다. 이런 의미에서 곡목 안 내서는 음악에 접근하는 방식에 있어서 해설보다 한 차원 높다. 곡 목 안내서는 초보적이기는 하나 음악〈울〉 분석한다고 했는데 그것 은 〈번호 부르기 도표 call char t〉를 보면 알 수 있다. 번호 부르기 도표 번호 음악적 특징 서주부, 첼레스타소리가지배적 :화성적 기법이 배경에 깔립.주 화음의 분산화음이 급속히 상행 . 2 인성 선율이 나타남 : 분산화음 상행은 계속됨 : 기타 선율이 첨 가됨. 3 여성 선율이 나타나고 남성 선율이 첨가됨 : 합시코드 음색이 등 장함. 4 첼로 선율이 등장함. 주화음 선율에서 속화음 선율로 바뀜. 5 합창이 등장함. 음악을 들으면서 도표에 서술된 특칭이 들리는 순간 그것에 상응 하는 번호를 불러야 한다는 것이 이 도표가 바라고 있다. 음악에 〈대 한〉 것을 듣는 것이 아니라 음악〈울〉 듣게 하는 교육용 재료로 미 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 이런 종류의 도표다• 물론 음악적 특징 서술의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분석력의 차이가 서술 수준을 천차만 별로 만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이런 서술은 음악 의 특칭을 서술하는 것이지 음악에 〈대한〉 서술이 아니라는 것이다. 도표 작성에 분석이 관여된다는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음악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번호 부르기 도표〉를 이용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번호 부르기 도표〉에도 여전히 문제가 있다. 번호를 옳게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이 반드시 음악의 내재적 관계성을 파악 한다는 사실과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것에서 생기는 문제다. 번호 l 을 부른 후 번호 2 를 부를 수 있는 능력이 l 과 2 의 음악내적 관계 성을 감지하는 능력과 동일한 것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요소 분석〉이 이것을 극복한다. 어떤 것이 있고, 그것의 정체를 알려면 그것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느냐라는 질문은 이루 어져 있는 요소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고려 속에 넣어야 한 다는 것을 중요시한다. 이루고 있는 요소가 그보다 더 작은 요소로 분해되고 있지 않은 경우는 없는가라는 생각을 중요시한다. 더 부숴 질 수 있는 요소인데 그것이 더 이상 부숴지지 않는 요소로 착각하 면 요소 아닌 것을 요소로 취급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 된다. 음악의 정체를 알고 싶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최소 단위가 무엇인 가를 이 때문에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최소 단위가 어떠한 방식으 로 최대의 효과를 누리느냐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부숴전 조각 죽 단위들이 얼마나 되며,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붙어 있는 것인지를 알면, 즉 붙어감으로써 형상이 동적으로 태동되는 과정을 알면 음악 의 정체를 알 수 있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이런 생각에 서 요소 분석의 아이디어가 탄생된다. 요소 분석이 성공하면 전체를 이루는 부분들의 정체가 밝혀진다. 언제나 우리 앞에 전체로 존재하 는 음악, 그 음악으로 접근하는 좋은 길을 요소 분석이 마련한다. 곡 목 안내서보다는 한 차원 더 높은 음악에로의 접근법이 요소 분석 이다. 물론 요소 분석에도 한계점이 있다. 이 한계점은 이른바 쇤커 에 의해서 극복된다. 쇤커 이론에 대한 설명에 앞서 분석이 야기하 는 몇 가지의 문제점을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음악에 접근하

는 길 중 분석적 길의 의미가 대단한 것이라는 의미에서이다. 분석이라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 태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다. 수준이 낮은 연주가들은 대부분 분석하면 싫어한다. 분석에서 얻어 진 지식들은 필요 없는 지식으로 생각할 뿐만 아니라 연석적 지식 은 죽은 지식이라고 믿는다. 분석 대상의 속성이 생체격 음악이 아 니라 시체격 음악이라는 생각에서 부정적 태도가 발생되기도 한다. 알고 싶은 대상은 생체인데 그것을 알고 싶어서 대상을 분석하면 생 체는 분해되고 결국 시체격이 되고 만다. 알고 싶은 대상의 속성은 생체격이어야 하는데 분석은 결국 시체격의 음악을 상대하는 도리 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분석은 죽은 지식만을 낳는, 필요 없는 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분석에 대한 부정적 태도는 그것에 대한 합리적 형오감 때문에 생 기기도 한다. 여기서 합리적 협오감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것은 어리석기는 하나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질문의 성격과 상관 된다. 이 질문은 수준이 낮은 연주가가 분석가를 〈너〉라고 부르면서 태연하게 던지는 질문이다. 〈그래 좋다, 분석을 통해서 너가 언급하 고 있는 것이 옳다고 치자, 그러나 그 언급을 작곡가도 생각하고 있 는가〉라는 식의 질문이 그것이다. 아도르노의 글 「분석의 제문제」에 서도 이러한 논의가 나온다. 아도로노의 글은 분석 일반에 관한 아 주 훌륭한 글임을 여기서 밝혀 둔다. 또 이 소단원의 글은 아도르노 의 글을 읽고 쓰여졌음을 밝힌다 .82)

82) T. Adorno, On the Problem of Music a l Analys i s , intro duced and tra nslate d by Max Padd iso n , Music Analys is(e d. by Jo hath a n Dunsby , Ox for d : Ba sil Blackwell Publi sh er, 1982), Vol. I, No. 2, pp.1 69-87.

분석 대상인 음악 자체를 만든 당사자는 작곡가이다. 그러므로 그 곡에 대한 언급 자격으로 따진다면 작곡가를 능가할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작곡가의 의도와 분석가의 언급이 동일하지 않으면 분석 가의 설 땅은 없어진다. 이런 식으로 분석가의 설 땅이 없어전다고 믿는 사람이 던지는 질문 때문에 분석에 대한 형오감은 합리성을 띠 게 된다. 그러나 과연 분석가가 설 땅이 정말 없는 것일까. 절대로 그렇지가 않다. 설 땅은 있어도 아주 많이 있다. 〈갑〉이라는 사람이 내뱉은 말이 있다고 하자. 이 말은 〈갑〉에 의 해서 만들어진 것이니까 〈갑〉의 작품에 비유된다• 말하자면 〈갑〉에 의해서 내뱉어전 말은 내뱉은 자의 말이다. 〈갑〉이 만든 음악이 〈갑〉 의 작품인 것과 같다. 그러나 말을 내뱉은 자는 말을 내뱉었을 뿐 그 것을 왜 내뱉었는지에 대해서 모를 수 있다. 내뱉은 말은 내뱉는 자 의 성격 때문에 생긴 말일 수 있다. 그런데 자기 성격을 자기가 모 몰 수 있다. 오히려 남이 그것을 더 잘 알 때가 있다. 작곡가는 자 기 음악세계 관련적 성격이 어떠한 것인지 모를 수 있다. 분석가가 오히려 그것을 더 잘 알 수 있다. 작곡가는 말하자면 말을 내뱉은 자 에 비유될 수 있다. 내뱉기는 했어도 말이 말로 성립하는 이유 같은 것은 모를 수 있다. 분석가가 그것을 더 잘 알 수 있다. 무엇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그것이 이루어지는 이유를 설명하는 작업과 그것을 〈그냥 이루어가는〉 작업은 성격이 다를 수 있다. 〈그 냥 이룸〉의 가능은 그것을 가능케 한 당사자이다. 그런데 그것을 이 룬 당사자라고 해서 그것이 이루어지는 이유를 스스로 설명을 할 수 없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제삼자가 그것 에 대한 설명을 오히려 더 잘할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말울 한다. 그렇다고 해서 말하는 이유를 일일이 알고 인간이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말한 이유를- 분석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전문가에게 가서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지요〉라고 물을 수가 얼마든지 있다. 작 곡가가 특정 의도를 가지고 특정 작품을 만들었다고 해도 그 작품 의 속성에 대해서 분석가가 더 잘 알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루어지고 있는 과정에서 작용되는 구조적 요인들의 기능은 분석 가에 의해서 더 잘 밝혀질 수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보다 분석가가 작곡가 못지않게 혹은 더 옳게 작 품을 볼 수 있는 근거는 또 있다. 지금부터의 논의를 조심스럽게 검 토해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작품을 쓰려고 할 때 작곡가는 의도 를 가진다. 의도는 의식적으로도 가질 수 있고 무의식적으로도- 가질 수 있다. 의도는 하나의 의식이다. 이 의식이 작곡가의 마음에 나타 나는 방식과 그 방식 때문에 만들어전 작품의 속성은 같은 것이 아 니다. 다시 말해서 의식 상태가 나타나는 방식과 작품이 재료를 통 해서 얽히는 방식은 같은 것이 아니다. 의도가 원인 구실을 하는 것 은 사실이다. 그리고 결과가 원인과 닮울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러나 원인의 생김새와 결과의 생김새가 동일한 것이라고 생긱히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생각이다. 분석가는 원인을 분석 대 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결과를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 이 점을 보 통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 이 점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 때문에 분석가의 언급은 작곡가가 그것을 알고 있건 없건 상관이 없 다. 작품을 쓴 사람이 자기 작품에 대해서 아는 것보다 분석가가 그 작품에 대해서 더 잘 알 수 있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이유가 여 기에 있다. 결과로서의 작품 속에서 작동되고 있는 어떤 실체는 작 곡가의 마음에 작곡 관련적 의식이 나타나는 방식과 성격이 같지 않 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작곡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안다는 것과 작품 속에서 실제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느냐를 안다는 것은 시작부터가 다르다. 그러니까 분석가의 설 땅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오히려 분석에 대한 합리적 협오감이 설 땅이 없어전다고 해야 옳은 것이 다. 분석에 대한 형오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그들이 음악가라면, 알고 보면 누구나 분석 작업을 하고 있다. 이 말은 중요한 말이다.

분석은 누구나 하고 있는데 스스로 그것을 하고 있음을 모르그 l 있 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각자가 겪는 음악적 경험의 본성을 살펴 보면 그 뜻을 알 수 있다. 음악적 경험을 한다는 말은 음악을 분석한다는 말이다. 음악적 경 험이라는 것은 일반적 개념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라는 경험 자가 언제나 개입된다. 그러니까 음악적 경험은 구체적 경험이다. 나 의 경험 혹은 너의 경험으로 나타나는 것이 음악적 경험이다. 〈구체 적 사례와는상관이 없는, 일반적인 경험이라는것〉으로나타나는것 이 아니다. 구체적 개별 인간과 상관없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각자의 음악적 경험이라는 말만이 가능·하다. 이 말은 각자가 모두 특정 방식으로 음악을 경험한다는 뜻이다. 자기는 무의식적인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특정 방식에는 이미 선택이 관여된다• 여 기서의 선택의 속성이 무엇인가가 논의의 핵이다. 선택은 의식 • 무 의식적으로 분석 행위의 결과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서 분석적 속 성과 선택 작업의 속성은 같은 것이다. 연주가의 경험을 두고 이야기해 보면 이것은 더욱 명확해진다. 연 주가는 음악을 해석하는 해석가다. 그렇다면 해석의 본질은 무엇인 갸 두말 할 필요도 없다. 해석 행위는 곧 분석 행위이다. 그러니까 연주가의 경험이리는 것은 해석의 과정이 관여되는 것이고 연주가 의 경험(죽 음악적 경험)은 곧 분석인 것이다• 대상의 정체를 확실히 알지 못하면 해석은 불가능하다. 확실히 안다는 말의 의미는 분석을 한다라는 말의 의미와 동일하다. 분석 작업 없이 대상을 확실히 알 수 없다. 작품을 이루고 있는 구조적 요인의 내적 관계성을 알아야 작품을 확실히 안다는 말이 성립되겠는데 그것을 안다는 것은 벌써 분석을 한다는 것과 동의어인 것이다. 작품 안에 포함되고 있는 중 요한 속성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가를 밝혀내야 작품을 확실히 안 다는 말이 되므로 그것의 밝힘이 곧 분석이다. 분석을 한다라는 일

종의 현학적 말은 사용하고 있지 않을지 모르나 인간은 누구나 알 기 위해서 대상을 분석한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 다. 음악 해설을 통한, 곡목 안내서를 통한, 요소 분석을 통한 음악에 의 접근에 모두 한계점이 있다는 말을 이미 했다• 쇤커가 이 한계점 울 극복했다는 말도 위에서 했다. 그렇다면 쇤커의 분석 이론이 무 엇이며 그 이론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검토해 봄으로써 음악에 접근 하는 방식의 새 차원을 검토해 보자후

83) Felix Salzer, Str u ctu ral Hearin g : Tonal Coherencein Mu sic( New York : Dover Publi ca ti on s, Inc., 1962), Vol I 을 참조.

쇤커 이론을 한마디로 규정짓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그것을 항목 화하여 서술하지 못하라는 법도 없다• 논의의 명확성을 위해서 쇤커 이론을 항목화하여 서술하기로 한다. l 음악의 본질은 구조이며, 우리가 보통 음악이라고 하는 것은 구 조에 부과된 우연한 음현상이지 음악의 〈본질〉이 아니다 ; 여기서 본 질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을 〈무엇인가〉로 규정할 수 있는 척도 로서의 사물의 특질을 말한다. 2 음악에는 근경충 중경충 원경충이 있다. 근경충을 원경충으로 축 약하는 과정을 중요시한다. 3 원경충 차원에서의 이른바 Ursa t z 와 Urli nie 개념이 중요하다 ; Ursa t z 는 상성 부인 Url ini e 과 하성 부인 Arpe g giati on of the bass 로 축약된, 두 성 부 관련적 대 위 법적 진행 구조를 뜻한다. Urli nie-i:-근 경충 선율의 심층구조를 뜻하는 것으로서 3 음, 5 음, 8 음으로부터 주 음으로 순차 하행전행하는 현상을 뜻한다. 4 Urlin i e i: 직선이며, 상식적으로 일컬어지는 선율은 곡선이다. 곡 선은 우연적인 것으로, 직선에 부과된, 음악적으로 비본질적인 것으

로 간주한다. 5 지향성 없는 음악은 음악이 아니다. 어디로든 〈향해서〉 움직여 야 음악이 살게 된다. 직선은 지향성을 낳는 동인이다. 그러나 지향 하는 목적지에 〈바로〉 도착하는 것보다 〈둘러서〉 도착하는 것이 효 과적이댜 여기에 곡선의 기능이 있다. 6 작품의 본질을 추상성 • 일반성 • 공통성에서 찾으려고 한다 : 개 별적 작품이 생성되어 가고 있는 순간순간은 비본질적인 것이라고 본다. 7 구체적 음재료를 통해서 음악이 작품화 • 물질화되어 가는 개별 적 순간을 우연적인 것, 비본질적인 것으로 보는 이론이다. 쇤커 이론이 대상을 분석하는 예를 들어보면 위에서 언급된 이론 의 성격이 더 명확해전다. 분석 대상에 가령 ‘bi ga on da go ha na nollo ga gi ro han da’ 라는 소리 집결체가 있다고 해보자. 여가서 g a 가 두 번 나온다는 사실은 분석 과정에서 확인된다. g a 는 동일한 요소이다. g a 라는 물리적 소리는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러한 분석 결과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정보에 문제가 있다. 요소 분 석의 약점이 갖는 심각한 문제다. 쇤커 이론은 이러한 약점을 극복 한다. 위에 영어로 표기된 소리의 연속체는 〈비 가 온 다 고 하 나 놀 러 가 기 로 한 다〉라는 한국어다. 의국인이 한국어를 배울 때 사용 할 수 있는 표기법일 수 있다. 미국인이 이런 표기를 보면 그 뜻을 알 리가 없다. 꼭 같은 소리를 영어로 표기한 것의 의미 역시 알 도 리가없다. 여기서 두 번 나오는 ga 즉 〈가〉의 의미는 전혀 다르다• 그러함에 도 불구하고 요소 분석적 차원에서는 그것을 동일한 것으로 취급한 다. 이러한 약점을 쇤커가 지적했던 것이다. 음악의 경우, 요소 분석 울 한 결과 〈속화음〉이 서로 다른 장소에서 두 번 나타났다고 해서

동일한 음악적 의미를 가전 것으로 생각하면 큰일난다. 〈악보 l 〉에 서 나타나는 각 〈속화음〉의 의미는 동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을 동 일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고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음악적 의미는 소리 요소의 물리적 속성만을 대상으로 삼으면 절대 로 되지 않는다. 쇤커 분석법은 요소 분석의 약점을 다음과 같이 극복하고 있다. 위의 〈가〉에 해당되는 소리를 두 가지 방식으로 취급해야 한다는 이 론을 발전시켰다. 즉 물리적 소리로서의 요소와 음악적 의미를 발생 시키는 소리로서의 요소를 구별해야 한다고 했다. 처음의 g a 와 두번 째의 g a 가 물리적으로는 동일한 소리이나 의미상으로는 두 개의 〈가〉 가 전혀 다르다. 〈비‘가' 온다……〉라는 맥락에서의 〈가〉와 〈……놀 러 ‘가'기로·… ••〉 라는 맥락에서의 〈가〉는 그 뜻이 전혀 다르다• 음 악에서도 물리적 속화음으로서의 화음들이 서로 같다고 해도 음악 적 의미로 보아서 전혀 다른 〈속화음〉일 수가 있다는 것을 쇤커가 지적해 냈다는 것이다. 요소 분석이 전혀 쓸모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두 개의 g a 라는 것 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어야 그것들의 의미가 서로 다른 것이라는· 것 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런 것이 확인되기 전에는 그것들이 서로 다 르다는 운운을 우선 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여행 그것은 아니나, 여행 안내서가 필요하듯이, 요소 분석이 음악 그것을 이해시키는 것 은 아니라고는 하나, 음악적 의미에 접근하기 위해서 필요로 한 것 은 사실이다. 악보를 보고 〈속화음〉이라는 것을 읽어 내지 못한다면 서로 다른 의미의 〈속화음〉 운운 자체를 할 수 없다는 것과 같다. 〈비가 온다고 하나 놀러 가기로 한다〉라는 소리를 녹음기에 넣었을 때, 그것을 영자로 표기할 수 있어야 일단 의국인에게 그것을 설명 할 수 있는 전제가 성립된다는 것과 같다. 음악 분석이라는 말은 그러니까 요소 분석이 아니라 음들의 구조

악보 1

BACH Prelude No. 2l(Well-Tem per ed clavie r BK I) \\\門:更느一戶··三門 -v- 戶 ~ 떠 IV· - 16 IY \f v' v7 Backgr o und • ( -7.1. _r 1 'V Mi dd leg ro und b v l

적 기능 분석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쇤커는 음들의 구조적 기능 분 석을 중요시한 이론가라는 점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이론은 많 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과학은 일반화 작업을 하고 예술은 개별화 작업을 한다는 말이 있다. 일반화 작업은 구조를 찾고 개별화 작업 은 구조의 육화 과정을 발견한다. 쇤커는 구조의 일반화를 위한 이 론을 펴냈다. 분석은 먼저 과학이길 원하고 그 다음에 예술이길 원한다. 쇤커 이론은 과학이 되길 원했다는 점에서 좋다. 물론 예술이 되지 못했 다는 이유에서 완전한 분석의 방법론이 되지 못하긴 했지만 말이다. 인간은 또 요약하기를 좋아한다. 요약한 결과가 옳고 옳지 않고의 문제가 있긴 하겠지만 인간은 어떻든 요약 행위를 한다. 요약은 인 간 삶에 편리하고 유용하다. 그래서 요약 능력을 중요시한다. 쇤커 이론은 음악을 비록 자기식이긴 하지만 멋들어지게 요약한다. 쇤커 이론은 베토벤 음악의 설명법에 특히 유효하다. 이 말의 이 해는 쇤커 이론의 장점을 이해하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 죽홍 연주의 본질을 여기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보통 사람들은 죽홍 연주를 연주자가 〈자기 마음대로〉 연주하는 것으로 안다. 그러 나 실상에는 그렇지가 않다. 죽홍 연주는 〈마음대로〉 연주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대로〉 연주할 수 없는 요인이 죽홍 연주에 언제나 작 용된다. 〈마음대로〉 즉 〈제멋대로〉 연주할 수 있는 부분을 비법칙적 부분이라고 하면, 죽홍 연주에 있어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죽 〈제 멋대로〉 연주해서는 되지 않는 부분을 법칙적 부분이라고 한다. 법 칙적 부분은 그러니까 연주자가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이다. 〈마음 대로〉 연주해서는 되지 않는 부분이다. 예를 둘어 보자. Bb, D, F 라는 세 음이 주어졌다고 하자. 두말 할 것 없이 이 세 음은 만 장조의 주화음이다. 여기서 주어진 것은 〈주 화음〉 하나이다. 주어진 단위가 가장 단순한 것이다. 주어전 단위가

화음 하나에서 그치지 않고 화음들이 연결되고 있는 화성 형식도 있 고 조성 형식도 있다. 아무튼 우선 주어전 화성 하나에서부터 논의 를 시작해 보자. 이 논의라는 것은 이 주어전 주화음을 〈선율화〉한 다는 가정에서 출발된다. 주화음의 선율화라는 말은 주화음의 즉흥 연주라는 말과 동일하 다. 그러니까 여기서 주어진 〈주화음〉이 법칙적 부분에 해당되고 〈선 율화〉 과정이 비법칙적 부분에 해당된다. 왜냐하면 주화음은- 고정되 어 있는 요인이지만 주화음의 선율화는 사람마다 서로 달리, 그러니 까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흥 연주는 〈주어전 것〉 즉 화성의 선율화를 뜻한다. 〈악보 2 〉를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선율 화 과정에 비화성의 사용이 허락되면 즉흥 연주의 결과는· 더 다양 해질 수 있다.

주화음의 즉흥 연주에 숙달한 사람은 〈속화음〉의 즉흥 연주에도 숙달할 수 있다. 그리고는 주화음 다음 속화음이 연결되는, 연속된 두 개의 화음의 죽홍 연주에도 숙달할 수 있다. 이 말은 즉흥 연주 에 관련되는 법칙적 요인이 복잡하더라도, 단순한 것에 숙달된 사람 은 즉흥 연주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의 화음이 아니라 몇 개의 화음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 주어져도 그것들을 근거로 즉 홍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일하게 주어진 것 즉 〈주화음 - 속화음〉이라는 화성 형식을 근거로 즉흥 연주한 결과는 얼마든지 달 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악보 3 〉에서 볼 수 있다. 바로크 시대의 휘겨드 베이스의 실현화는 바로 이런 의미로서의 죽홍 연주다. 고정된 화성 전행을 법칙적으로 담당하는 베이스가 있 고 그 베이스를 즉흥적으로 실현화해야만 했던 것이 이른바 휘겨드 베이스의 실현화였던 것이다. 즉흥 연주는 할 때마다 달라질 수 있 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는 마음에 들고 어떤 경우에는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다• 즉흥 연주는 연주하고 나면 음악이 사 라져 버린다. 그런데 만일에 잘된 죽홍 연주, 그러니까 그것을 꼭 기 록해 두고 싶은 죽홍 연주의 사례가 생길 수 있다. 그러한 경우에는 그것을 기보해 둘 수 있다. 이 〈기보해 둘 수 있다〉라는 아이디어로 베토벤 음악이 설명될 수 있다. 베토벤의 음악은 아주 마음에 드는 조성 형식의 즉흥 연주를 기 보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베토벤 음악은 조성 형식이라는 선택권 안에서 즉 일반 개념 관련적 선택권 안에서 그것을 구체적으로 개 별화한 결과라는 것인데 이 개별화가 베토벤이라는 숙달된 즉흥 연 주가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죽홍 연주를 낳는 근거인 조성 형식을 음악의 본질로 보느냐, 조 성 형식을 근거로 해서 이루어전 죽홍 연주의 성공적인 한 사례를 음악의 본질로 보느냐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쇤커는 베토벤 음악이

탄생된 맥락을 고려에 넣고 조성을 음악의 본질로 보려고 했다. 상 당히 통찰력 있는 생각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쇤커에게도 역시 한계점이 발견되고 만다. 이 한계접이 무 엇인지 안다는 것이 바로 음악의 본질을 옳게 안다는 것과 중요한 관계를 가진다• 구조적 기능 분석을 하기 위해서 화음 이름과 화음 의미를 구별해야 하고, 연장 pro long at i on 개념을 도입해서 음악의 구조를 설명하긴 했으나, 쇤커의 이론에도 한계점이 드러나고 마는 데, 이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Url i n i e 는 직선이고 우리가 보통 일컫는 선율은 곡선이다• 그러니 까 곡선과 직선은 같은 것일 수 없다• 그런데 그것을 같은 것으로 취 급하는 것이 쇤커 이론인 셈이다. 이것이 그의 이론이 가지는 약점 이다. 약점은 또 있다. 쌍동이를 구별할 수 있는 결정적 요인은 관 상이다. 꼭 닮기는 해도 관상은 다른 것이다. 관상 관련적 요인은 참 으로 조그마한 차이에서 발견된다. 모든 곡선이 직선화될 수 있음이 사실이라고 하나 직선화되어 가는 과정의 생리에서 조그마한 차이 가 발견되고 그 차이가 개별적 음악의 음악 관상을 낳는 요인인데, 쇤커는 이 관상을 무시했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또 요약함의 가 치가 인정되긴 하나, 요약이라는 것은 〈이것은 결국 저것 이상의 것 이 아니다〉라는 말을 하는 격이 된다는 약정을 안고 있다. 〈이것尺든 결국 〈저것〉이 된다고 해도 그 둘은 본질적으로 서로 같은 것이 아 니다• 그런데 그것을 같다라고 말해 버리는 오류를 범했다. 곡선은 결국 직선이다라는 말은 가능하지 않다. 결국 직선이다라는 말에 설 사 설득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직선으로부터 곡선이 구성 • 조칙되어 가는 방식의 상이성이 낳는 음악 관상은 서로 같을 수 없다. 그리고 음악 관상이 낳는 개별적 순간의 중요성이 인정되지 않으면 음악을 경험하는 순간의 중요성도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쇤커 이론에는 많은 장접이 있긴

하지만 또한 여러가지의 근본적 약점이 있다. 분석이 일반적 구조 찾음에서 끝이 나면 안되는데 쇤커는 거기에서 끝을 내고 만 것이 다. 개별적 양상의 생성 순간의 속성을 밝히지 못했고 개별적 양상 에 대한 관심을 주변적 관심으로 돌렸다는 약점이 가장 큰 약점이 다. 음악에 접근하는 방식으로서 쇤커 이론은 극복되어야 한다. 아도 르노가 논의한 음악 분석의 참 의미를 검토해 보자. 쇤커는 모든 작 품의 구조를 〈같음〉의 개념으로 묶었다. 아도르노는 모든 작품의 구 조는 그러한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편다. 〈같음〉으로 묶일 수도 있지만 각각 개별적 존재로서 〈다름〉으로 분산됨을 믿었다. 그 래서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를 밝혀내는 것이 분석이 해야 하는 일 이라는 주장을 폈다. 다시 말해서 분석한다는 말은 개별적 작품을 탄생시키는 음악적 씨앗의 성격과 성장력의 속성을 밝히고 그 성장 력 덕분으로 만들어전 유일무이한 생명체와 친숙한 사이가 되는 것 울 뜻한다고 했다. 알려지지 않은 상태의 것을 알려지는 상태로 만 드는 작업이 이 때문에 필요해진다. 모르는 어떤 것을 이미 알고 있 는 어떤 것으로 번역시키는 작업의 필요성이 있어진다. 새로운 것을 헌 것으로 만드는 작업이라고나 할까. 바록 작품은 영원히 새로운 것으로 남아 있길 원한다고 해도 분석가는 그것을 헌 것으로 만들 고 말겠디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분석은 작품이 원하지 않는 상태로 끌고가는 작업이기 때문에 작품을 배반하는 일을 한다. 작품 전체의 형성 과정에 작용되는 개별적 요소들의 관계성을 밝히면 악곡은 헌 것이 된다. 개별적 요소들의 관계성은 악곡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그 러므로 모든 악곡들을 〈다름〉으로 볼 수 있는 근거가 찾아질 때 새 것이 옳은 의미에 있어서의 헌 것이 된다. 역설적이게도 작품은 영원히 알려지지 않게 되길 원함과 동시에 알려지길 원하고도 있기 때문에 배반당하기를 원하기도 한다. 영원

히 새 것이기를 원하면서도 언젠가는 누구에 의해서 헌 것이 되어 지길 원하는 것이 작품의 생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아이러니 때문에 새로운 쟁점이 생긴다. 이 쟁점에의 이해가 음악에 접근하는 핵을 이룬다. 어떻게 하면 분석이 작품이 안고 있는 어려움(영원히 새 것 으로 남아 있고 싶어함)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시키면서 즉 작품을 배반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작품의 속성을 알게 할 수 있는가라는 쟁점 이 그것이다. 분석이 양다리 걸치기 작전에 성공하면 이 문제가 풀린다. 이 말 은 무슨 뜻인가. 우리가 음악을 이해한다라는 말은 음악의 전체를 이해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전체 개념이 중요하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만큼 이 전체 개념이 중요하지 않게 될 때 가 있간 하지만 음악에 있어서 전체 개념은 여전히 중요하다. 우리 가 음악을 밝히기 위해서 분석을 한다는 말도 따지고 보면 전체의 모양을 볼 수 있게 하자는 뜻이다. 그래서 그 전체의 부분이 어떤 것 인지를 알아야 하고 그것을 앎으로써 전체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한 다. 그래서 부분을 위한 전체의 분해 • 분석을 한다. 그런데 양다리 걷치기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전체를 얻으려면 부 분을 잃고 부분을 얻으려면 전체를 잃는다는 사실에의 인식이 이 양 다리 작전을 유발시킨다. 전체는 연결될 때 생긴다. 부분은 분리될 때 생긴다. 음악은 살고 싶기도 하고, 죽고 싶기도 한 속성을 지니 고 있다. 살고 싶다는 말은 알려지지 않고 싶다는 말 죽 새 것으로 영원히 살아남아 있고 싶다는 것과 상관되고 죽고 싶다는 말은 알 려짐으로써 헌 것이 된 후 죽어버리고 싶다는 것과 상관된다. 살고 싶은 마음은 삶의 순간이 연결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전체를 원하는 마음이다. 죽고 싶은 마음은 삶의 순간이 연결되어지지 않음을 원하 는 마음이다. 즉 모든 순간이 분해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부분에 집 착하는 마음이다. 연결되면 전체가 생기고 분해되면 부분이 생긴다.

분석이 양다리 걸친다는 말은 옳은 분석을 위해서는 죽는 편도 둘 지 말아야 하고 사는 편도 들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과 상관된다. 죽 지도 살지도 못하는 인간의 속성을, 살고 싶은 마음과 죽고 싶은 마 음울 동시에 작동시킴으로써 밝혀내어야 한다는 것이 양다리 걸치 기 작전이다. 양다리 작전은 분석이 분해 작업임과 동시에 작곡 작 업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분해하는 순간 악곡이 종합되어짐을 감 지하는 순간이 분석의 순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음악적 경험은 〈있는 것〉이 아니라 〈있어지는 것〉이다. 분석 역시 〈있는 것〉이 아니라 〈있어지는 것〉이다. 특정 주제가 악곡 속에 〈있 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있어지는 것〉으로 만들 때 옳은 분석이 이 루어진다. 물론 음악에의 분석적 접근이 특정 방식의 닫힌 개념으로 고려되어질 수 없다. 살지도 죽지도 못하면서 살아야 하는 인간이 닫힌 개념으로 규정될 수 없듯이 말이다. 규명된 인간 더하기 알파 가 붙어 있는 것이 인간이듯이, 분석 역시 그 자체가 언제나 살아 있 는 인간 감은 것이기 때문에, 또 분석 대상의 속성이 달라지면 분석 방법도 바뀌어지기 때문에, 그리고 분석가가 입고 있는 철학적 옷이 다르면 다른 방법론이 고용될 수 있기 때문에, 분석은 언제나 열려 있는 개념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음악이 우리에게 영원히 열 려 있는 개념으로 접해 오듯이, 분석도 영원히 열려 있어야 한다. 그 렇게 될 때 기계적 분석의 허점에서 해방된, 참으로 열려 있는 분석 적 안목으로 음악에 옳게 접근하게 되는 길이 찾아질 것이다. 음악 의 참 가치를 감지하게 될 것이다. 해설, 곡목 안내서, 요소 분석, 쇤커식 분석, 아도르노의 분석관 더 하기 저자의 음악관, 이렇게 음악에 접근하는 다섯 가지의 방식에 대한 언급을 했다. 나는 이 모든 것의 있음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 모든 것의 있음을 필요로 하지 않음도 인정한다. 이런 방 식의 있음 전부를 전혀 몰라도 인간은 얼마든지 훌륭하게 살 수 있

고 진실되게 옳게 그리고 착하게 살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여기서 음 악에 접근하는 다섯 가지 방식에 대한 언급이 구태여 필요한가. 그 것은 지극히 단순한 이유에서다. 음악이 좋고 음악학이 좋고 또 그 것을 좋아하는 인간이 좋아서다. 이 좋음을 나누고 싶어서다. 3.6 음악학에 있어서 지식의 단계 현실적 대상이든 가상적 대상이든간에 인간 의식에 주어지는 모 든 대상을 관념이라고 한다면 인간의 삶은 관념 없이는 영위될 수 가 없다. 음악가의 삶 역시 음악 관념 없이는 영위될 수가 없다. 관 념 형성에는 그것을 형성하게끔 하는 데에 작용하는 재료가 작용되 게 마련이다. 음악 관념 형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음악세계에 있어 서는 여러가지 음악적 현상이 일어나고, 이 현상은 음악 관련적 관 념, 재료 등 여러 어휘들과 관계된다 .84)

84) 「음악학에 있어서 지식의 단계묘근 예술원에서 발간하는 『예술논문집』(서울 : 대 한민국예술원, 1986), 제 25 집에 발표된 글을 가필한 것임. 이 글을 위해서 B. Bloom(ed .), Taxonomy of Educatio n al Obje c tiv e s : Cogn it i v e Domain ( New York : Davi d MaKay Co., Inc., 1956) 을 많이 참조했음.

인간은 어떤 관념이나 재료나 현상을 기억하는 기억 행위를 한다. 기억 행위를 할 때 그 인간은 기억 대상 관련적 지식을 가지고 있 다고들 말한다. 관념 혹은 재료 혹은 현상의 속성이 어떠하냐에 따 라서 기억 행위의 성격 자체의 속성도 많이 다를 수 있다. 그래서 기 억 행위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지식을 가전 사람이다라고 일컬을 경 우 지식인의 속성도 많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니까 지식 행위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관념, 재료, 현상과 관계되는 정보를 필요시 기억을 해낼 수 있다는 것과 관계가 된다.

교육학자들은 지식을 그 속성에 따라 분류한다. 음악 지식도 그 속성에 따라 분류가 될 수 있다. 이 분류법에 있어서 작용되는 하나 의 생각이 있는데 그것은 구체적인 행위와 관련되는 지식과 추상적 인 행위와 관련되는 지식으로 나눌 수 있다. 구체적인 것은 비교적 단순하고 추상적인 것은 복잡한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음 악 지식도 단순한 지식과 복잡한 지식 즉 구체적인 지식과 추상적 지식이 있다. 그러나 음악 지식에는 청각적 지식과 시각적 지식이 나누어지고 청각적 지식도 구체적인 것에서부터 추상적인 것, 시각 적 지식도 구체적인 것으로부터 추상적인 것으로 발전되어 간다• 그 러니까 구체적인 지식이라는 것은 하나의 개별적 지식이 다른 어떤 지식과 앞뒤의 상황 관계를 고려해야만 그 지식의 유용도가 있어지 는 그런 지식이 아니다. 그냥 격리된, 독립적으로 그것 자체만 기억 해도 지식 구실을 할 수 있는 그런 지식을 말한다. 그러나 추상적인 지식이라는 것은 그 지식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다른 지식 과의 앞뒤 관계가 얽혀져 있는 맥락 속에서 존재할 때만 그 의미의 존재 가치가 있어지는 그런 지식을 말한다. 그러니까 구체적인 지식 은 격리된 정보로서도 유용한 정보가 되고 추상적인 지식은 특정 정 보가 어떤 구조 속의 조직 요인으로 들어감으로써, 정보의 기능이 이루어질 때 그 존재 의미가 있어진다. 음악 지식의 경우도 마찬가 지이다. 베토벤 교향곡이 몇 개 있느냐고 물었을 때 9 개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식의 대답은 구체적 지식과 관련된다• 그런데 이런 것 을 지식이라고 하면 좀 이상한 말이 될지 모르겠다• 하나의 상식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라는, 그러니까 인식을 한다는 의미에서의 지식 이 아니지 않느냐라는 식의 생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가 어떤 것에 대한 하나의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경우를 두고 이 대 목에서 구체적인 지식이라고 이름 붙여 보겠다는 것이다. 화성법보 다 대위법이 먼저 발달했다는 사실을 암기함으로써 얻어지는 정보

는 음악학적 차원에서 일종의 구체적 지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의 미에서다. 음악학은 지식의 발견과 그 발견된 지식의 체계화에 관련이 되어 있다고들 한다 .85) _L래서 지식이라는 말이 어떤 식으로 사용되고 있

85) F. Harri son , M. Hood , C. Pa lisca,.M usico logy (E ng le wood Cli ffs, New Jer sey : Prenti ce Hall, Inc., 1963), p.1 01 .

어야 하는가를 일단 편리한 대로 정의해 놓고 시작해 보는 것이 나 을 듯싶다. 참된 것을 알자는 문제와 관계되는 인식의 문제에까지 이 지식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어질 수도 있겠지만 상식적인 의미에 서의 지식이라는 것은 앞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관념이나 재료나 현상을 기억해 낼 수 있는 기억 행위를 할 수 있는 사람과도 관련 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런 사람을 지식을 가전 사람 이다라고 말해 두자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러한 차원에서부터 접근 하여 차츰 인식의 수준을 높이는 방법을 음악학에 적용시킬 수도 있 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단순한 상식도 하나의 지식으로 보 자는 것인데 그렇게 하다 보면, 기억 대상으로서의 관념이나 재료나 현상의 속성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서 상식의 선에 머무는 지식도 있 고 인식의 선으로 울라가는 지식도 있게 될 수 있기 때문에 큰 문 제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상식선의 지식과 인식선의 지 식이라는 어휘를 편의상 사용하면, 음악학 공부는 상식선에 있는 지 식의 수준에서부터 출발되어야 하겠고 그 다음부터 서서히 인식적 차원에서의 지식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까지 찾아가야 할 것이 아 니겠냐는 말이댜 상식선의 지식이라는 것은 단순히 기억만 하면 되 기 때문에 기억 작용이 상당히 중요하지만 상식선이 아니고 지식의 수준이 인식의 차원으로 서서히 올라가면, 관계 개념이라든가, 판정 개념이라든가, 아니면 기존의 습득된 관념의 재조정 내지 재구성, 이

런 문제들과 관계되는 복잡한 사고 과정이 필요해진다. 이 사고 과 정에 사용되어질 암기된 정보 역시 격리된 지식 즉 정보라고 말할 수 있다. 구체적이면서도 격리되어 있는 정보에 유용도가 있음은 말 할 나위가 없다. 유용도의 정도에는 물론 차이가 있다. 구체적이면서 격리되어 있는 정보라 해도 우리가 필요할 때 상기해 낼 수 있는 정 보는 지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이런 성격의 지식이 지식의 차 원에서는 가장 초보단계의 지식이 된다는 것뿐이다. 앞에서 말했듯 이 베토벤은 교향곡을 9 개 썼다라는 사실은 구체적이면서도 그것 자 체로 격리되어질 수 있는 정보이다. 이 정보의 유용도는 물론 사람 에 따라 다르다. 직업, 신분, 상황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음악학도에 게 있어서는 그 정보가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있을지 모르나 모든 음 악학도에게 그것이 전부 다 유용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러한 구 체적이고 격리된 정보가 필요없는 경우도 있고 필요해질 경우도 있 다. 그러나 여기서는 구체적이고 격리된 정보라는 말의 의미를 규정 했을 뿐이고 격리되어 있고 구체적인 정보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 고 그러한 정보의 유용성에는 차이가 있다는 사실만 일단 지적해 둔 다. 그러니까 음악학에 있어서도 그러한 구체적이고 격리된 정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냥 단순히 기억을 해두면 되는 성 격의 것들이다. 그런데 옳은 음악학을 위해서는 기억해야 할 항목을 정확히 나열 할 필요가 있는데 그 나열의 기준이 문제가 된다. 음악학자의 음악 관련적 인식의 능력 문제라든가 얼마만큼 포괄적으로 음악 내지 음 악학의 본질을 아느냐의 문제 등이 격리되고 구체적인 정보의 나열 선택 기준의 우열을 결정한다. 구체적이고 격리된 정보는 해당 분야에서 꼭 알아 두어야 할 사 실과 관련된다. 가령 작곡 분야에 있어서 악전 지식과 같은 것이 그 예가 된다. 물론 악전 관련적 어휘 내지 정보는 이론이라기보다 써

먹어야 될 실제적 재료이다 .86) 장 3 도가 어떻게 생겼느냐를 안다는 것 은 이론적 지식이 아니라 실제적 지식이고,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 이며 격리된 정보라는 것이다. 자기의 영역에서 지식을 체계적으로 조직한다든가, 심도 있는 지식 관련적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든가, 의 사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사전 조건으로서 유용 성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정보는 해석의 여지가 있는 그런 성격의 정보가 아니고, 누구나 동일하게 그 의미를 해석하고 있는 성격의 정보이다. 그러니까 해당 영역에서 지식을 획득하려면 획득하기 전에 알아 두어야 할 어떤 요인이라는 것이 있고, 이 요인 이 바로 이른바 기본적으로 의어 두어야 할 사실 관련적 정보이다.

86) G. Hay do n , Intr o ductio n to Musico logy , p.1 56.

음악학적 지식에 접근하는 첫째 단계로서의, 구체적이고 격리되어 질 수 있는 정보와 관련되는 지식은 결국 어휘 지식과 관련된다• 그 러한 어휘부터 나열해 보면 어휘 지식, 구체적 사실 지식, 구체적 사 실 취급 지식, 관습 관련적 지식, 시간 관련적 역사 지식, 체계 관련 적 범주 지식 혹은 분류 지식, 평가의 표준 관련적 지식, 방법론 지 식,보편/추상관련적 지식,원리/일반화관련적 지식,이론/구조 관련적 지식 등이 있게 된다.87) 지식의 단계는 구체적인 사실에서부

87) B. Bloom , Taxonomy of Educatio nal Obje c tiv es : Cogn i ti v e Domain, pp.6 2-88.

터 추상적이고 일반 이론적인 지식, 인식적 단계까지의 지식으로 울 라가는데 이러한 단계와 관련되는 그 단계 관련적 어휘의 의미를 우 선 암기해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휘 지식〉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지금까지 설명되어전 것과 같다.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정보를 안고 있는 어휘의 기억이라는 문제와 관련된다. 음악 어휘 지식과 관련되 는 어휘의 예에 선율, 화성, 리듬, 형식 등이 있다. 〈꼭 기억해 두어 야 할 어휘 백선〉식의 어휘 선정 작업은 뒤로 미루기로 한다. 어휘

지식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기여하고 중요 어휘의 의미를 가령 100 개 정도 기억하는 것이 음악학적 지식의 제 1 단계라고 가정해 볼 수 있다는 것만을 지적하고 음악학적 지식의 제 2 단계로 넘어가 보자는 것인데 이 제 2 단계가 바로 〈구체적 사실 지식〉이라는 어휘와 관계 된다. 〈구체적 사실 지식〉이라는 것은 연대기, 사건, 사람, 장소, 정보의 출처 등과 관계되는 지식을 말한다. 예를 들면 어떤 현상의 정확한 양상 내지 그 크기라든가 사건의 정확한 날짜 등과 관계되는 정보 이다. 가장 간단한 예를 들어 보면, 베토벤이 1770 년에 태어났다라는 사실과 같은 것이다. 이 사실은 해석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이 사 실 역시 그것 자체로서 구체적이고 격리된 정보의 성격을 띤다. 어 떤 더 넓은 맥락 속에 그 정보가 수용될 때 그 의미가 밝혀지는 그 런 성격의 정보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음악학에도 이런 류의 구체 적인 사건 관련적 정보가 많이 있다. 그리고 그런 정보에 유용성이 있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어떤 분야에서나 연대기, 사건, 인명, 장소, 해석의 여지가 없는 연구 결과 등은 있게 마련이다. 가령 Mate r ia l s and Str u ctu r e of Mus i c88) 이라는 책에서 서술되고 있는 어휘 지식이라든가 해석의 여지가 없는 화성법, 대위법 등을 포함한 악리 관련적 정보 등이 이에 해당될 수 있다. 물론 서양 공통관습시대와 관련되는 지식이라는 약점이 있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 시대의 음악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 Mate r i al s and Str u ctu r e of Mus i c 이 라는 책 에 나오는 모든 정 보는 흡수 해 두는 것이 좋다. 음악학을 위한 초보적인 지식일 수 있다는 점에

88) W. Chris t, R. DeLone, V. Kl iew er, L. Rowell, W. Thomson , Mate r ia l s and Str u ctur e of Music ( 2nd ed., Eng le wood Cli ffs, New Jer sey : Prenti ce -Ha ll, 1973), Vol. I & 2.

서 말이 다. 그리 고 그라우트 Grou t의 A Hi st o r y of Weste r n Mus i c89) 에 서 나오는 양식사 관련적 지식의 많은 부분 역시 이와 같은 류의 지 식이다. 그러므로 분석 용어 지식이나 역사 용어 지식 같은 것이 제 2 단계인 구체적 사실 관련적 지식의 차원에 들어간다. 그러니까 이 런 분석 용어 관련적 지식과 역사 용어 관련적 지식을 암기할 수 있 는 상태에 놓여 있지 않은 사람은 전문가끼리의 대화에 끼어둘기가 어렵게 된다.

89) D. Grout, A His t o r y of Wester n Musi c( 4th ed., New York : W. W. Nort on & Co., 1989).

제 2 단계의 지식에 포함되어야 할 항목에 음악 문헌이라는 것이 있 다. 해당 영역에 필요한 책들이나 논문, 정보 출처, 중요 경향, 사조 등에 대한 정보 제공과 관련되는 지식이다. 있을 수 있는, 우리가 해 아릴 수 있는 모든 정보가 여기서 수용되어져야 한다. 정보의 출처 그 자체와 관련되는 지식 역시 그것대로 중요하다. 사전류도 중요하 고 문헌의 문헌 같은 것도 중요하다 .90) 제 2 단계의 지식은 서지학이 제공해 주기도 한다. 과거의 연구 결과나 현재의 연구 결과, 자국의 연구 결과나 타국의 연구 결과에 관련되는 지식도 이 단계에 속한 다. 작품 관련적 정보, 연주 관련적 정보, 학술 관련적 정보도 여기 포함된다. 물론 많은 정보 속에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 다는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우선 순위로 그 정보를 배열해야 한다.

90) V. Duck ies , Music Refe re nce and Research Mate r i al s(rev ised ed., New York : Sch irme r, 1974) 와 같은 책이 그 예다.

여기서 배열자의 인생관, 사회관, 학문관, 역사관이 좌우된다. 정보의 이해를 위한 난해도도 정보 배열의 순서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음악 학을 전공하겠다는 학생이 있을 때, 그 학생이 배워야 할 정보의 양 도 한정을 해주는 것이 좋다. 1 학년 때 흡수해야 할 양과 2 학년 때 흡수해야 할 양, 대학원에 울라가서 흡수해야 할 양 등도.결정해 주

어야 한다. 학생에게 필요한 것이 학생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그 양을 정해 주는 문제에 있어서 열린 양과 닫힌 양, 양쪽 모두를 고 려하는 것이 좋다. 1 학년 때는 무엇을 꼭 배워야 된다라는, 그 꼭의 항목을 주제 위주와 학생 위주로 병행시키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다 .91) 닫힌 체계와 열린 체계의 변증법적 공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리고 제도 교육 시간에 취급되어야 할 항목과 독습할 때 취급되어 야 할 항목도 구별해 두는 것이 좋다. 독습의 중요성은 언제나 대단 하다. 그러니까 독습을 하려고 해도 무엇을 해야 될지 모르는 학생 에게 독습을 할 수 있는 길잡이격 지침을 위해서도 지침서는 마련 되어야 한다. 제 2 단계에서 구체적 사실 관련적 독습 대상을 열린 구 조와 닫힌 구조 모두에서 고려하도록 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 다. 경우에 따라서는 물론 열린 구조보다 닫힌 구조가 더 좋을 때가 있댜

91) A. Tellstr o m , Music in Americ a n Educatio n : Past and Present( N ew York : Holt, Ri neh ard & W inston , Inc., 1971) , pp.103 -28.

제도 교육은 어차피 닫혀진 성격을 띠게 된다. 열린 제도 교육의 시도도 있지만 말이다. 닫힌 제도 교육의 예로는, 일주일에 30 분씩 선생이 학생을 만나는 것으로 되어 있는 제도 교육제가 있다. 이 30 분 동안 학생을 지도해야 한다는 대원칙 밑에서는 차라리 닫힌 구 조 관련적 지도법이 더 효과적일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주제 위 주적 정보 제공을·선생이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제공한 후 그것에 익 숙하도록 강요한다는 식의 접근법이 좋고, 말하자면 30 분 동안에 다 룰 수 있는 지도 내용을 사전에 선생이 확정하고, 그것에의 평가 방 식도 사전에 확정해서, 학생들에게 저급 단계의 지식만을 일단 흡수 하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닫힘 일변 도는 닫힘과 열림이 마련하는 호흡을 저지하는 위험성을 안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그러니까 닫힘과 열림의 변증법적 작동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미 언급한 것이지만 이론 관련적 구체적 사실의 습득 이 제 2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물론 사실이다. 새로운 이론 정립이든 지 이론의 이론이라는 것이 아니고, 기존 지식을 습득하는, 실제적 이론의 습득이 여기서 필요한 것이다. 제 2 단계를 음악학과 관련시키면 구체적으로 어떤 사항이 명시되 어야 하는가. 음악학의 정의, 학문적 방법으로서의 음악학, 지식 영 역으로서의 음악학, 역사적 /체계적 음악학, 통시적 /공시적 접근 등 과 관계되는 정보가 여기서 고려될 수 있을지 모른다 .92)

92) The New Grove's Di ct i on ary of Music and Mus i c ia ns 의 Musico log y 부분을 참조.

제 3 단계의 지식은 〈구체적 사실 취급 지식〉이러는· 어휘와 관계된 다. 이 어휘와 관계되는 지식은 음악 관념 혹은 어떤 음악 현상이 있 을 때, 음악 관련적 관념 내지 음악 관련적 현상을 취급하는 방식에 대한 지식이다. 음악학 분야에서 중요한 단계이며, 그 필요성이 지대 한 지식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지식을 획득하려면 어떠한 학습활동 을 학생들이 해야 하느냐 이것이 문제이다. 그것을 위한 체계적 정 보의 항목화가 필요하다. 이른바 교육과정을 단계적으로 체계적으로 만들어야 한댜 연구 방법론, 연구 시기, 기간 등과 관계되는 순서의 문제, 판정의 기준 문제, 구성 내지 조직의 모형 문제, 하나의 학문 이 완성되려면 그것의 부분들이 총괄적으로 빠짐없이 항목화되었는 지의 문제, 앞에 언급된 것들의 앞뒤 순서가 잘 배열되었는지의 문 제 등, 다루어야 할 문제가 많다. 격리 가능한, 구체적 개별 사항이 독립적으로 정보 역할을 하는 경우의 지식과 지금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지식의 성격은 많이 다르다. 구체적 개별들을 〈취급〉하는 문제 와 관련되기 때문에 구체적 개별둘을 취급한다는 그 자체가 이미 여 러 개별들의 상호 관계를 취급하는 방법의 문제와 관계된다는 것이

고, 그것이 곧 추상적안 차원으로 옮아간다는 뜻이다. 각 분야마다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전문적인 기술, 기준, 분류, 특히 그 개별둘이 얽혀지는 구성 방식 혹은 형식, 형성감, 이런 것들이 취급 방식에 결 국 중요하게 작용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발견해야 된다는 문제와 도 관련되지만, 발견해야 할 개별도 여기서 문제가 된다. 취급한다는 말은 개별을 따로따로 떼어 놓은 상태로 그냥 산재시켜 놓는다는 뜻 이 아니고, 이것들을 하나의 형식 속으로 묶어 준다는 것을 뜻한다. 결국 구조적 요인이 합목적성을 띠면서 기능할 수 있게끔 하는 작 동 관련적 힘이 취급 방식을 낳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형석 감에 대한 민감성의 개발아 여기서 중요한 것이 된다. 어떻게 하면 이런 형식감이 개발되느냐, 그 개발을 위한 책에는 어떤 것이 있느냐라는 질문이 이 대목에서 필요하다. 시거의 음악 언급 방식과 상관되는 개념들의 이해가 여기서 중요해질 것 같다 .93)

93) C. See g er 의 Stu die s in Mus ic olog y가 중요한 책임.

제임슨 J ameson 의 Hi st o r ic a l Tro p e94) 라는 글이나 아도르노 Ador- no 의 On the Problem of Music a l Analy si s 같은 글의 철저한 이 해도 이 대목에서 중요할 것 같다• 개별들을 취급하는 방식에 대한 지식은 제 3 단계 차원의 지식에서만 끝나는 성격의 것이 아니고 그 다음 차원까지 계속해서 문제가 되는 지식이다. 이해의 차원, 분석 • 종합 • 평가의 차원 그러니까 불룸 Bloom95) 의 인지영역에서의 능력 개발과 관계되는 모든 차원에 전부 적용될 성격의 지식일 수도 있 다. 그러니까 계속 언급되어져야 할 성격의 지식이다.

94) F. Jam eson , Marxi sm and Fonn : Twentie t h - Centu ry Di al ecti ca l Theorie s of Lit er atu r e ( Pr inc eto n , New Jer sey : Pr inc eto n Un ive rsit y Press, 1971) , pp.3-5 9. 95) B. Bloom , Taxonomy of Educatio n al Obje c tiv es.

누차 하는 이야기이지만 개별들에 대한 지식과 그 개별들을 취급 하는 방식에 대한 지식은 그 성격이 서로 다르다. 개별에 대한 지식

은 결과 관련적 지식이고, 개별들을 취급하는 방식에 대한 지식은 과정 관련적 지식이다. 그러니까 개별은 그것이 위계 구조적 차원에 서 그 기능이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그 자체를 하나의 〈존재〉 관련 개념으로 보고, 그것을 취급하는 방식은 〈존재의 수용·과정〉 관련 개념으로 보면 어떻겠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연구 작동의 결과라 기보다 작동 과정 그 자체라는 것이다. 해당 분야와 관계되는 문제 해결을 위한 사고의 결과라기보다는, 문제에 접근하고, 문제를 두고 생각궁P 것과 관계되는 어떤 성찰과 관계된다. 그런데 개별적인 문제를 〈취급〉하는 방법에의 지식 역시 구체적 이고 개별, 격리적인 정보 관련적 지식의 성격과 크게 다를 바가 없 다고도 생각할 수 있는 이유를 여기서 생각해 둘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면 구체적 개별적 사실에의 지식보다 그것들의 취급 지식이 추 상성을 더 띠고 있다는 차이 이의에는 결국 양쪽 모두가 지식이라 는 이름 하나로 묶여질 수 있지 않느냐는 주장에 논리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추상성과 관계되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완전 한 자기의 지식화가 된 후는 결국 그 지식의 성격이 구체적이고 격 리된 정보를 기억하는 성격의 지식과 같아전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칸트 이론의 경우, 지나친 추상성 때문에 이해하기가 힘들지만 칸트 이론을 완전히 배운 사람에게는 그것이 칸트 관련적 구체적 격리 / 독립된 정보일 수가 있다는 것이다• 취급 지식의 추상성 때문에 제 3 단계가 어려운 단계이긴 하지만,이 단계가 더 어려운 단계가 되는 이유는 구체적 개별을 〈취급〉하는 방법에 관한 지식 자체가 상대적 으로 상당히 임의적이며 인위적인 형식과 관계되기 때문이기도 하 다. 임의적이고 인위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 가치를 아는 전문가들에 게만 의미가 있고 보통 사람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성격의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제 3 단계의 지식 획득을 위 한 구체적 음악학 관련적 교육과정은 어떤 것이어야 하느냐가 문제

로 남는다. 이미 소개된 시거의 『음악학』 제 2 장이 이 목적에 좋을 것으로 믿는다 .96)

96) C. Seege r , Stu die s in Musico log y,p p, 31-44.

제 4 단계에서는 〈관습 관련적 지식〉의 문제가 대두된다. 관념이라 든가 현상들을 어떤 식으로 〈제시〉하느냐 하는 방식과 관계되는 지 식의 문제이다• 특정 영역에서 사용하면 편해지는 관례, 관습, 양식 같은 것과 관계되는 지식이다. 관례, 관습, 양식 관련적 지식이 없으 면 그 특정 분야에서 생기는 문제를 옳게 취급, 제시할 수가 없기 때 문에 그것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가령 사회 행위와 관계되는 어떤 규범이라든가 아니면 지도를 만들 때 사용하는 특정 관습적 심볼이라든가 하는 것들 역시 그런 것과 상종되는 분야에 있 는 사람들은 반드시 알아 두어야 된다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학자 들의 세계에 있어서도 관례, 관습, 양식 등이 있는데 그런 것을 모 르면 관습 관련적 지식이 없는 것으로 되니까 곤란해전다는 것이다. 관습 관련적 지식이 음악학에서는 어떤 성격을 띠게 되는지롤 알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중복되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여기서 관례, 관습, 양식 관련적 음악학의 지식은 학문적, 과학적 연구 방식 울 써야 한디는 식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97) 음악학의 분과학일 수 있는 화성법 이론, 대위법 이론 등에는 많은 관습이나 법규 관련적 정보가 있다뽀 이런 정보들울 모르면 음악 관련적 현상을 설명하는 데 관련되는 어휘 사용이 불가능해지고 그래서 음악학을 할 수 없 게 된다. 영역에 따라서 관습 관련적 지식의 항목의 수는 많고 적을 수가 있다. 관습 관련적 지식은 나이가 들어서보다 어릴 때 훨씬 더

97) G. Hay d on, Intr o ductio n to Musico logy , pp,1 14-15. 98) W. Mi tch ell, Elementar y Ha1771yo(n3 r d ed., Eng le wood Cli ffs, New Je rsey : Prenti ce -Ha ll, Inc., 1965), 갇은 출판사에서 1972 년에 출간된 K. Kennan , Counttrp o in t ; W. Berry, Fo17 7! in Music 등이 좋은 책이다.

쉽게 습득된다. 그러므로 음악학 공부도 일찍 시작하는 것이 좋다. 음악학에 있어서의 관습 관련적 지식 획득을- 위해서는 대표적 악곡 유형의 속성과 관계되는 다양한 음악 양식의 특성을 공부해야 한다. 논문 작성 연구라든가 음악학에의 방향 감각에의 연구도 필요하다 .99) 제 4 단계를 위한 교육과정이나 도서목록 작성이 중요한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99) C. Seege r , Stu d ie s in Mus i colog y가 특히 좋다.

제 5 단계에서는 〈시간 관련적 역사 지식〉의 문제로서 사조의 지식 이라든가 인과적 연쇄 관련적 지식이 문제가 된다. 이것은 결국 공 시적인 문제와 관련되는 지식이라기보다는 통시적인 시야에서 나타 나는 지식과 관계된다. 어떤 현상의 운동성이나 방향이나 과정이 통 시적인 측면에서 적용될 때에 생기게 되는 지식이라는 뜻이다. 그러 니까 말하자면 역사적 음악학 분야와 관련된다고 하면 되겠다. 양식 사, 수용사, 작품사, 악기 발달사 등 모든 쟁점의 통시적 시각에서 나타나는 향방과 관련되는 지식이 음악학자에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간적으로 서로 떨어전 여러 종류의 개별 사건들 사이의 상호 관 계와 관련시켜서 생각되어질 수 있는 사조라든가 그 개별적 사건들 의 연쇄들이 어떠한 인과관계를 가지느냐의 문제를 통시적인 입장 에서 해석하는 문제들이 여기서 중요하게 된다. 개별적 사건의 수가 무한정으로 많기 때문에 어떤 것들이 사조를 이루고 어떤 것들이 인 과적 연쇄관계를 이루느냐 하는 것의 선택 문제도 중요해진다 .100) 그 래서 선택 관련적 지식도 중요한 것이다. 제 5 단계에서는 결국 음악 현상 관련적 운동, 지표, 방향, 발달 과정에 대한 지식이 중요한 관 심사가 되고, 음악양식사, 음악사상사, 음악수사학 등이 역시 중요한

100) C. Dahlhaus(t r. by J. Robin son ), Foundatio ns of Music His tor y (L ondon : Cambr idg e Un ive rsity Press, 1983), pp.33-4 3.

관심사가 된다. 제 6 단계에서는 〈체계 관련적 범주 지식과 분류 지식〉이 중요하게 된다. 음악의 유형, 군, 분류, 배열 등에의 지식 등이 이 분야에 속 한다. 잡다한 현상이 체계화되어진다든가 구조 속에 들어가서 자리 룰 잡는다든가 하면 그 현상을 이해하는 데에 상당히 도움되는 것 이기 때문에 가령 분류나 범주를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는 중요한 것 이 된다는 말이다. 어떤 문제가 머리 속에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성 숙되기 전에는 분류라든가 범주 개념을 그 현상에 적용시킬 수는 없 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이 분류 내지 범주 관련적 지식을 얻을 수 있느냐의 문제가 심각한 문제가 되기 때문에 이 문제와 관련되는 지 식은 그 지식의 성격이 지식의 고차원적 접근 방향으로 전환됨을 뜻 한다. 사실 분류라든가 범주를 만든다는 것은 학생들에게나 애호가 들에게는 상당히 인위적인 것이고 임의적인 것이라 생각되어져서 거 부 반응을 일으킬지 모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자기네들의 일에 그 것이 근본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다. 초보적 음악학 도들 역시 분류와 범주의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빨리 배워야 되고, 또 어떤 경우에 그것이 적합하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이 문 제를 옳게 안다는 것은 그 원리를 어떻게 응용하느냐라는 문제와도 관계가 되기 때문에 여기서는 이 정도의 언급에서 그치기로 한다. 아무튼 이 부분을 음악학과 관련시켜서 이야기한다면 시거의 Toward a Un ita ry Fi el d Theory for Mus ic olo gy의 철저한 이 해 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할 것 같다 .10 1) 같음으로서의 음악과 다름으로 서의 음악이라든가, 들리는 대로의 음악 (descr ipti ve) 과 들어야 하는 대로의 음악 (norma ti ve) 을 분류하는 이유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02)

101) C. Seege r, Stu d ie s in Musico logy , pp.102 -38. 102) 위의 책.

분과학이어야 하느냐 통합학이어야 하느냐의 문제도 여기서 고려되 어야 할 것 같다. 분과학일 경우, 분과의 종류도 여기서 고려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역사적 음악학이나 체계적 음악학이라는 상두적 어휘와 상관시키지만 말고, 음악 인식론, 음악 형이상학론, 음악 분 석론, 음악 합리론, 음악 경험론, 한국 음악론 등에 해당되는 영역이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제 6 단계 자체를 위한 교육과정과 도서목록 작성도 말할 필요가 없이 중요한 것이 된다. 제 7 단계는 〈평가의 표준 관련적 지식〉과 관계된다. 그러니까 사실, 원리, 의견, 행위 등이 판정되어지고 평가되어질 수 있는 표준에 대 한 지식을 두고 말한다. 여기서는 일단 체계화의 문제가 상당히 중 요하게 된다. 음악학을 옳게 공부하려는 사람들은 이 기준을 사용하 는 문제에 있어서 불룸이 언급하고 있는 평가의 차원과 관계되는 모 든 사항을 세밀히 점검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튼 이 표준이라는 것 은 분야에 따라서 많이 달라질 수가 있다. 음악학을 처음 접하게 되 는 사람들에게는 이 표준이라는 것이 굉장히 추상적이고 복잡한 것 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항에 적용시키고 관련되어져야만 그 의미 가 명확해지기가 일쑤이다. 여기서 결국 가치 기준 문제 관련적 지 식이 필요하게 된디는 것이니까 음악미학의 중요 쟁점이 다루어져 야 할 것 갑고, 가치로서의 음악과 사실로서의 음악 문제가 다루어 져야 할 것 같다 .103) 윤리학적인 문제리든·가, 작품이 좋고 나쁘고 하 는 기준, 그러니까 비평의 문제도 여기에서 취급되어져야 할 것 같 다 .1 야)

103) C. Dahlhaus(t r. by W. Austin ), Esth e tic s of Music ( London : Cambri dg e Un ive rsity Press, 1982). 104) Karl Asch~nbrenner, Music Criti ci s m : Practi ce and Malpr a cti ce , On Cr iticizin g Music( ed. by K. Pr ice , Baltim ore, Ma ryla nd : The Jo hns Hop kins Un ive rsity Press, 1981), pp.9 9-117.

제 8 단계는 〈방법론 지식〉을 문제로 삼는다. 특정 문제나 현상의 연 구에서 사용되어질 수 있는 질문법이나 데크닉 그러니까 연구하는 방법론에 관한 지식이 문제시된다는 것이다. 인식론적 접근, 존재론 적 접근, 과학적 접근 등의 어휘가 중요한 어휘가 된다. 여기서 지 식의 차원이 점차적으로 철학적인 차원으로 가게 된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가 고용하는 방법론과 남이 고용하는 방법론 울 비교해야 한다는 정신 상태가 중요하게 된다는 것을 인식할 필 요가 있다. 음악학에서 어떤 방법론을 사용하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 해진다는 이야기다. 헤이든의 과학적 • 예술적 방법이라든가 분석철 학에 언급되고 있는 이해, 설명 방식 문제도 여기서 점검될 수 있다. 제 9 단계의 지식은 〈보편, 추상 관련적 지식〉이다. 지식의 제 1 단계 는 분명히 구체적이고 개별 관련적 지식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단계 에서는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지식의 문제를 다루게 됐다. 구체적이 고 개별적인 것에 반해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것이 관심의 대상이 된 다는 것이다. 음악학 분야에서의 훈련 과정에서 이 9 단계를 너무 중 요시한 나머지 초보자에게 요구될 제 9 단계 이전의 단계 중 어느 하 나도 필요없는 것이라고 할 수 없음을 여기서 강조해 두고 싶다. 다 시 말해서 그냥 무조건 암기해 두어야 할 정보도 있고 그러한 정보 의 수용 단계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고의 재료로 그 암기 항목이 필요해질 때가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쓰일 재료라는- 말은 중요한 말이다• 개별적으로 암기된 정보는 어디까지나 재료일 뿐이지 그것 자체가 음악학의 궁극적 목적은 아니라는 의미에서이다. 9 단계에서의 지식은 상충 구조 관련적 이론 내지 일반화와 관련 된다. 하부 구조라든가 표피 구조에서 나타나는 구체적 감각 관련적 현상들은 어디까지나 이론화 • 일반화시키는 데 필요한 재료 역할을 하는 것에서 끝이 날 뿐이다. 고차원적 추상성 내지 복잡성을 안고 있는 일종의 고차원적 단순성에도 비유될 수 있는 이 9 단계의 지식

은 여러가지 구체적인 사건 내지 사실과 상관되는 〈형상과 과정〉 관 련적 역동성을 스스로 내포하고 있다. 이 역동성은 여기서 중요하게 될 것 같다. 제 10 단계에서는 〈원리, 일반화 관련적 지식〉이 상관된다. 이 단계 의 지식은 현상을 관찰한 결과 그 현상을 요약한 후 하나의 정의된 생각을 끌어냄으로 해서 특정 추상화를 가능케 하는 것과 관련된다. 특정 추상화의 문제는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고려되어져야 한다. 설 명 가능 관련적, 서술 가능 관련적, 예측 가능 관련적 가치가 있고, 특정 행위 방식에 있어서 그 방향성과 행위 그 자체의 적합성을 결 정하는 데 대한 가장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의미에서의 가치가 있다. 그러니까 원리 혹은 일반화 관련적 지식을 음악학도들이 많이 익혀야 한다는 것인데 음악학에서는 어떤 원리 혹은 일반화 관련적 지식이 있고 그런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어떤 교육과정을 짜야 하느냐는 것이 중요하다. 오히려 이 문제는 인지 영역 전체의 다음 차원인 이해 ·응용·분석 ·종합• 평가, 이런 차원 중에서 응용 차원 에서 다시 재론되어야 할 성격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원리 혹은 일반화 관련적 지식을 뒤의 응용 관련적 목적을 위해서라도 최소한 도 암기는 해두어야 한다는· 것을 여기에서 다시 한번 더 강조하고 싶다. 음악학 관련적 일반 원리와 상관되는 명제는 체계적으로 쉬운 것부터 어려운 데까지 암기의 대상으로 우선 서술되어야 한다. 제 11 단계에서는 〈이론, 구조 관련적 지식〉과 상관된다. 〈인지 영 역〉에서의 지식 차원에서 최고로 높은 단계의 지식이다. 최상급 상 충 구조의 명제 성립의 문제와 관련된다• 인간의 삶과 음악의 문제 와 더불은 여러가지 현상의 문제가 체계적으로 어떻게 얽혀지느냐 라는 것을 대답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추상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런 데 이 추상화 자체가 구체적 혹은 개별적 추상화라고 한다면, 그 개 별적 혹은 구체적 추상화 자체를 종합 통일하는 원리가 필요해질 것

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총체적으로 묶여전 몸체로서의 지식이 바로 이 이론/구조 관련적 지식이다. 음악의 본질에 대한 설명이 옳 게 될 수 있는 음악의 구조 내지 이론에 대한 본질적 지식을 뜻한 다. 지금까지 지식의 차원을 제 1 단계에서 11 단계까지 언급했다. 음악 학도가 이러한 지식을 가지고 있느냐의 여부를 어떤 식으로 평가할 수있을까. 평가는 결국 음악학도가 주어진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게 지석 관련적 정보를 기억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와 관계가 된다. 그 러니까 앞에서도 강조했듯이 어떤 형태의 것이라도 지식의 차원은 결국 기억의 문제와 관계가 된다. 기억에는 겨우 기억되는 것과 쉽 게 기억되는 것이 있다. 그러니까 기억 역시 결국 기술과 관계가 된 다. 쉽게 기억될 수 있게끔 능숙하게 암기를 해두어야 한다는 것이 다. 인간의 인지 능력은, 이해가 된 것도 능숙히 기억되어 있는 상 태가 아니면 작동되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의 언급은 인지 영역의 지식 관련적 차원에 관한 것이었 다. 인지 영역의 두번째 차원은 이해의 차원이다• 이해라는 것은 인 간이 의사 소통을 해야 하는 경우 소통 사항 속에서 어떤 것들이 소 통이 되고 있나의 문제와 그 소통 사항을 이루고 있는 재료 내지 관 념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과 관계가 된다. 소통 사항은 글로, 말로 혹은 심볼 등으로 되어 있다. 예를 들면 의사가 지어준 약 처방을 보 고 보통 사람은 그것과의 소통을 성립시키지 못한다. 건축가가 그려 놓은 설계도는 보통 사람이 그 뜻을 읽을 수가 없다. 그러나 약제사 나 건축전문가들은 그것을 보았을 때 소통이 된다. 음악이 들릴 경 우, 음악적 문외한에겐 음악적 의미가 소통이 되지 않는다• 음악학자 의 경우는 어떤가. 학자가 써 놓은 문장의 의미가 누구에게나 소통 되는갸 어휘의 의미를 암기츄;다고 그 의미가 이해된 것으로 볼 수

가 있는가. 외국어를 해석할 줄 아는 사람은 의국어를 이해한다는 이야기가 되고 외국어로 소통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해라는 것은 글 울 읽고 그 글의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에서 끝을 내는 경우에 해당 되는 경우도 있지만, 글의 뒤에 숨어 있는 의미 내지 목적이라든가 그 글과 관계되는 인간 행위라든가 그 글을 읽고 나타나는 반응, 이 런 것들과도 연결이 되는 것이 이해의 범주에 들어간다. 이해 능력에는 첫째 〈번역 능력〉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이 어떤 내용을 다른 언어로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이라든가, 음악의 의미를 말로 번역을 하는 것 도 결국 일종의 번역 능력이다. 음악학 관련적 능력도 일종의 번역 능력일 수 있다. 둘째, 이해 능력에는 〈해석 능력〉이라는 것이 있다. 관념의 양상을 우리가 이해했을 때, 예를 들면, 칸트의 이론이 가지 고 있는 어떤 관념이 소통되었을 때, 그 경우에는 번역 능력이라기 보다는 해석 능력이 발휘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죽 칸트 의 이론이 포괄하는 모든 관념의 양상이 이해되었다라는 말은 칸트 의 독일어책이 한국어로 번역이 되어진다라기보다는 칸트 관련적 관 념 양상의 내용이 자기 죽 이해자의 것으로 재구성되어지는 상태로 바뀌어진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해의 정도에 따라서 관념 양상의 구 성 인자들이 나름대로의 수준에서 재구성 내지 재배치된다는 뜻이 다. 그것은 관념 양상을 옳게 해석할 수 있을 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다. 옳게 해석한다는 이야기는, 곧 옳게 이해했다는 뜻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해 행위는 단순한 번역보다 번역 대상의 내용을 옳게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의 관념 속에 존재하고 있는 하위 관념의 중요성이 재배치된다는 이야기도 된다. 관념 양상 의 의미가 옳게 해석되었을 때에 하위 관념의 재구성 관련적 일반 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석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어떻게 길러지느냐라는 질문 을 던질 수 있다. 해석 관련적 교육과정과 독서목록의 역할이 이 대 목에서 중요해진다. 해석 행위는 추리 행위, 일반화 행위, 요약 행위 등과도 연결이 된다. 해석이라는 것은 분석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해석을 추리, 일반화, 요약 관련적 행위라고 하면, 분석은 형식, 구 성, 효과, 소통의 논리 관련적 행위로 보면 된다. 해석은 응용이라는 개념과도 다르다. 세번째의 이해 능력에는 〈외삽법 관련적 능력〉이라는 것이 있다. 이 능력은.소통의 세계에서 서술되고 있는 소통 조건, 경향, 사조 등 의 이해롤 근거로 하여 무엇을 추가한다든가, 예견한다든가, 소통 사 항의 가치 관련적 견적을 만둘 수 있는 것과 관계된다. 이 능력은 응 용 능력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주어전 상황에서 작동되는 능력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응용 능력은 다른 상황에 적용되어질 수 있는 능력과 관련되는 것이다. 의삽법 관련적 능력은 판정도 할 수 있다. 하나의 소통이 보편적인 어떤 것의 예가 될 경우는 그것을 그 런 것이다라고 판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삽법도 의삽법의 한 유 형으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언급된 이해의 차원에서는 번역력 /해 석력 /내삽법 관련적 능력이 있는데, 각각에 대한 세부적 언급을 간 략히 해보기로 한다. 암기 관련적 지식의 범주로 분류되어지는 행위를 행위 관련적 평 가 • 응용 • 종합 • 분석 • 의삽 행위로 연결시켜 주는 연결 관련적 위 치를 점령하고 있는 것이 번역력과 관계된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그 위치의 속성에 차이가 있을 수는 있다. 〈부분의 총합은 전체와 다르다〉는 사실을 암기할 수 있는 암기 관련적 지식 행위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것의 의미를 옳게 해석할 수 없을 경우는 위에서 언급된 연결 관련적 위치를 점령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고 그럼으로 해서 형태심리학의 원리를 번역했다고 말할 수 없다. 암기

할 수 있는 차원의 지식을 해석하려고 하면 그 지식을 일단 번역할 수 있어야 되는데 암기 지식이라는 범주와 이해의 일종인 번역 행 위 사이를 이어주는 무엇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번역의 능력은 번역을 위한 사전 지식, 번역과 관계되는 필요 적절한 암기 지식에 의존적이다라는 것이다. 〈부분의 총합은 전체와는 다르다〉라 는 말의 의미를 자기 말로 풀어 보라고 했을 때 그것이 풀려지면 책 에 있는 말을 자기의 말로 번역한다는 식의 말이 가능하듯이 여기 서의 번역이라는 것은 물론 자기 말의 있음이라는 이야기와 관련된 다. 자기 말이 있다는 것은 벌써 자기 말을 가질 수 있는 지식이 있 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개념 어휘를 일상 어휘로 번역할 수 있 어야 하며 일상 어휘를 개념 어휘로 집약시킬 수 있는 능력도 물론 번역 능력이다. 개념 어휘를 일상 용어로 번역할 수 있는 능력이라 든가 일상 용어를 개념 어휘로 번역할 수 있는 능력 없이는 복잡하 고 더 고차원적인 의사 소통 사항은 이루어질 수가 없게 된다. 그러 니까 장황스러운 한 부분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는 것도 일종의 번역 이고 한마디로 되어 있는 것을 장황스럽게 푼다는 것도 일종의 번 역이다. 번역의 의미를 이런 식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분석, 종합, 응용 등도 일종의 번역 행위일 수 있는 것이다• 번역이 라는 개 념 자체가 다차원적 일 수 있다는 것이다. ‘an t hro p olo gy’라는 어휘를 〈인류학〉으로 번역하는 것도 번역이지만 그 어휘가 섞인 개 념적 문장을 해석하는 것도 번역인 것이다. 이러한 다차원적 의미를 가전 용어로서의 번역의 의미를 음악학 에 적용시켜서 그 능력을 개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음악학 의 중요한 문제이다. 생활 용어로 쓰여져 있는 수필을 한두 마디의 추상적 용어로 집약할 수 있는 능력도 번역 능력이고, 추상 개념울 구체 개념으로 번역할 수 있는 것도 번역 능력이다. 일반 원리의 설 명을 위해서 실제적인 좋은 예를 찾아서 설명해 주는 것도 번역의

능력이다. 상징적 형식으로 번역하는 것도 번역 능력이다. 시각적 기 호를 언어적 내용으로 번역하는 것도 번역 능력이다. 악보를 읽는 것도 번역 능력의 하나이고 설계도를 읽는 능력도 번역 능력의 하 나이다. 비유, 상징, 아이러니라든가 과장된 형편 등을 일상 생활의 보통 말로 번역할 수 있는 것도 번역 능력이다. 이러한 모든 능력을 음악학적 능력으로 번역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음악학 관련 적 과제이다. 이 과제를 위한 교육과정의 개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되어도 그 도가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해석력의 속성은 어떤 7}. 의사 소통 사항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그 의사 소통 사항을 이루 고 있는 부분들을 일단 번역할 수 있는 것이 첫째 조건이다. 여기에 서는 개별 어휘나 개별 문장을 번역할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음 악의 경우에는 악보와 갇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심볼을 번역할 수도 있어야 한다. 이러한 능력이 전제 조건으로 있어야 의사 소통 사항을 안고 있는 대상을 해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직 역의 차원에서 의역의 차원으로 번역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여기서 해석이라는 것은 의역의 차원과 자기 자신의 경험이나 관념을 연결 시킨다는 것과 관계된다. 의역의 차원에서의 번역이라는 것은 같음 으로서의 대상이고 자기의 경험이라는 것은 다름의 차원에서의 대 상인데 이 두 가지가 서로 만나면 해석 작업이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있다. 해석이라는 것은 기본적인 것과 비기본적인 것(혹은 덜 기본적인 것)과 관련되는 소통 사항의 정보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과도 관계 된다. 기본적인 부분을 우리가 알아낸다는 것은 장황스러운 모든 의 사 소통 사항에서 〈이것은 결국 이 뜻이다〉라고 요약한다는 말과 같 은 것이 되는데 이 말은 결국 그런 식으로 해석한다는 것과 관계되 기 때문이다. 해석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로는 분석과 동의어가 될

수도 있고 또 평가와 그 성질이 같을 수도 있다. 위계구조적 차원에 서 작품의 전체적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도 해석적 능력이라 고도 볼 수 있다. 여러가지 악보를 깊이의 차원을 증가시키면서 해 석하고 이해하는 이런 능력도 해석적 능력이다. 서로 상치되는 결론 에 도달하는 것을 두고 어느 것이 좋고 어느 것이 나쁘다라고 판단 할 수 있는 능력도 해석 관련적 능력이다. 다음에는 의삽법 관련적 능력의 문제에 대한 언급을 해야 할 차 례이다. 번역을 잘하는 사람은 원문에 있는 것을 삭제할 줄도 알고 첨가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제일 중요한 대상의 이해 관련적 작업에 해당된다. 번역에 서툰 사람은 덱스트를 그대로 직역하려 하 고 덱스트에서 문장이 끊어지면 번역된 문장도 끊으려고 하는 사고 방식을 가지는데 그것은 바람직한 사고가 되지 못한다. 원문인 텍스 트에서 문장이 끊어지지 않더라도 번역문은 끊어질 수 있다. 죽, 삭 제 혹은 첨가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작업은 인지 영역의 이 해의 차원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작업을 음악학적 목적을 위해서 번역하면 어떤 의미가 되는 것이고 그것을 밝혀내고 밝혀낸 후에 그러한 능력을 기르려면 어떤 교육과정이 필요하느냐 는 것도 여기서 생각되어져야 한다. 개별을 통해서 보편을 설명하기 도 하고, 보편을 설명하기 위해 개별적 예를 들고 나오는 것들도 의 삽법 문제와 관련된다. 말하자면 결론을 끌어내는 능력, 예언을 할 수 있는 능력, 정확성과 비정확성 관련적 결과를 구별해 낼 수 있는 능력, 이런 능력들이 첨가 문제와 삭제 문제와 관련되어 있는 이해 관련적 사항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음악학을 위해서 번역하면 어떻게 되느냐 하는 문제가 여기에서 고려되어야겠다. 인지 영역의 세번째 언급 대상인 〈응용〉의 차원에서 우리는 어떠 한 사항을 고려해야 하는가. 인지 영역을 분류해 놓고 보니 그 차원 이 점점 어렵고 복잡해지는 방향으로 올라가고 있는 것은 사실인데,

즉 지식 차원보다는 이해 차원이 높고, 이해 차원보다는 응용 차원 이 더 높다는 식으로 올라가고 있는 것은 사실인데, 그렇다면 응용 의 차원은 어떤 속성을 지니는가. 응용할 수 있으려면 어떤 대상을 일단 이해하여야 한다. 방법에 대한 이해, 이론에 대한 이해, 원리에 대한 이해, 추상 관련적 원리 에 대한 이해 등, 이런 이해롤 응용하려면 응용 대상에의 이해가 전 제되어야 한다. 가령 누가 〈너 그것을 진짜로 이해했다면 그 원리를 응용할 수 있을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 가정은 이해와 응용의 범주를 구별하기 위한 다음의 두 가지 사고방식을 서 술할 수 있게 한다. 첫째, 만일 칸트의 미적 판단 기준을 설명하라 는 식의 시험 문제가 나왔다고 했을 때, 그 문제에 옳게 대답했을 경 우라고 하면 칸트의 기준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응용 이라는 것은 원리상으로는 똑같은 칸트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나, 전 혀 다른 상황에서 다론 말을 쓰면서 똑같은 원리를 설명해도 사람 들이 그 이론에 설득을 당하게 되는 능력과 관계가 된다. 이해와 응 용의 개념을 구별하는 두번째 방식은 다음과 같다.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아동에게 제시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 문제가 아동의 개인 적 능력에 따라서 지각되는 단계가 있겠는데 이 단계는 다음과 같 은 현상으로 구별될 수 있다. 어떤 학생에게는 그것이 처음에는 낯 익지 않은 것으로 지각된다. 그래서 아동들은 낯익을 수 있는 요인 을 찾으려고 한다. 이것이 제 1 단계의 한쪽 단계이다. 또 다른 한쪽 단계에서는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제시되면 제시되는 죽시 그 문제 에 꽤 낯익은 국면이 있는 것으로 지각되어짐으로써 그것과 상대해 서 어떤 행위를 해야겠다라는, 행위 관련적 안내가 즉시 나타나는 상태와 관련된다. 달리 말해서 해결되어져야 할 문제가 나타났을 때 전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방책을 강구할 수 있는 상태로 나누어진다는 것이다.이런 식으

로 나누어지는 단계가 제 1 단계라는 것이다. 제 2 단계는 해결되어야 항 문제가 제시되었을 때, 제 1 단계에서 그것이 어찌되어야 할지 모 르는 단계에 있는 것을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그 해결되어야 할 대 상에 낯익은 요인을 사용함으로써 자기가 해결할 수 있는 낯익은 내 용 속으로 재구성시켜 잡아넣는 것과 관계된다. 이해되지 않는 것을 그러니까 이해할 수 있는 맥락 속으로 재구성시켜 정리해 넣는다는 것이다. 이 재구성이 아무렇게나 쉽게 되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낯 익은 요인이 추가되어질 때 가능해진다. 제 2 단계 중의 또 하나는 제 1 단계에서 행위 관련적 안내가 즉시 나타나는 경우와 이어지는 것 으로서 제 1 단계에서 낯익어짐으로써 얻어전 익숙해진 어떤 모형을 더욱 완전하게 만들기 위한 재구성 작업이 행해지는 단계와 관련된 다. 하나의 문제가 제시되었을 경우, 그 문제에 낯억지 않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태와, 행위 관련적 안내가 즉시 나타나는 상태로 나 누어진 제 1 단계를 거치면, 제 1 단계에서의 서로 다른 두 가지 상태는 각각 위에서 이미 설명한 제 2 단계를 거친다. 그리고 이 제 2 단계를 거치고 나면 제 3 단계가 나타나는데 이 제 3 단계는 서로 다론 두 가 지 상태를 하나로 통일시키는 단계다. 다시 말해서 완전히 낯익은 유형으로 대상을 분류하는 단계가 된디는· 것이다. 해결되어야 할 문 제의 성격이 지각자에게 낯익은 어떤 형태로 확실하게 분류되어진 다는 것이다. 분류가 되어전 후에는 제 4 단계로 넘어가는데 이 제 4 단 계에서는 해결되어야 할 유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알맞은 착 상, 방법, 이론, 원리를 선택하는 단계이다. 제 5 단계에서는 제 4 단계에 서 선택된 추상적 개념을 문제 해결을 위해 사용한다. 제 6 단계는 물 론 사용한 덕분으로 문제가 해결되어지는 단계이다. 그러니까 해결 되어야 할 문제가 제시되고 그것이 해결해야 하는 사람에게 지각되 어짐으로써 생겨지는 해결되어지기까지의 단계에 여섯 가지의 단계 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응용의 단계에 있어서는 위에서 말

한 여섯 가지의 단계가 모두 관여된다는 것이다. 응용 능력을 기르 기 위해서는 어떠한 교육과정이 필요한가 하는 물음을 여기서 가져 볼수있다. 인지 영역 관련적 능력의 개발 문제에서 네번째로 언급되어야 할 사항은 분석의 차원이다. 이해 기술이라든가 응용 기술보다는 한 차 원 높은 것이 바로 분석의 차원과 관계된다. 이해에서는 이해 대상 인 재료의 의도와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강조된다. 응용에서는 주어 진 재료를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되살아나게끔 해냄으로 해서 모든 상황에 적용시키는 것이 강조된다. 그러나 그 분석은 이해 대상이나 응용 대상 그 자체를 분해해 버리는 것에 강조점을 둔다. 분해할 수 있을 때까지 분해해야 한다. 그러니까 분석은 분해된 구성 부분들의, 전체를 만드는 관계성을 알아야 하고 또 그것이 어떤 식으로 전체 를 이루게끔 조직되느냐 하는 것을 알려는 것과 관계된다. 의사 소 통 상황을 성립시킨다거나, 하나의 결론을 성립시킨다든가, 혹은 그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분석이라는 것이 도구로 사용되어지는 경 우는 얼마든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분석 결과가 어떻게 되 었다는 식의 말울 자주 하게 된다. 분석은 그 자체가 목적일 수도 있 다. 왜냐하면 분석 대상의 속성을 밝혀 보는 그 자체가 홍미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석은 이해되어야 하는 재료의 완벽한 이해 를 위한 도구 기능을 주로 한다. 분석도 연습을 해야 그 기능이 숙 달된다. 그러므로 분석은 어떤 영역에서도 연습하기를 강요한다. 음 악학에서도 음악학 관련적 개념 어휘의 분석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분석은 구조적 인자와 비구조적 인자의 속성을 구별하고 결국 그것들의 관계성을 밝혀내는 것을 가장 중요한 관심사로 삼는다. 분 석과 이해의 개념이 어떻게 다르냐라고 분명히 이야기하기는 힘들 고 또 분석과 평가가 어떻게 다르냐 하는 것을 분명히 말하기도 물 론 힘들다. 다만 이해는 이해의 대상 관련적 재료의 내용과 상관되

고, 분석은 그 내용과 형식 모두가 상관되어진다고 보면 된다. 형식 을 분석한다는 말이 이 때문에 나온다. 분석이 평가의 의미도 지닌 다는 말이 가능한 것은 비판적 분석이라는 말이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비판적 분석이란 말은 벌써 평가와 관계가 되는 것이다. 분석은 세 가지 차원 내지 유형으로 구별될 수 있다. 첫째는, 이 해 대상을 그것의 구성 인자로 해부하고 해부된 요소의 신분성을 밝 힌다든가 분류하는 일과 관계된다. 둘째는, 구성 인자만 분해해 내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의 관계성을 명확히 하고 그것이 어 떤 식으로 서로 상호작용하고 어떻게 연결된다는 것을 확정 짓는 일 과 관계된다. 세째는, 부분들의 관계성만 아는 것이 아니라 전체가 어떻게 구성, 조직되느냐 하는, 구성 원리를 이해하는 것과 관계되고 그 구조를 생기게끔 하는 요소를 어떻게 배열하느냐의 문제와 관련 되는 형식의 본질을 파헤치는 것과 상관된다. 의사 소통 사항으로서 의 전체성을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문제와 관련되기도 한다. 소통 사항을 담고 있는 문장을 분석해 보면 어떤 요소는 사실과 관련되 는 것이고 어떤 요소는 가치와 관련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때 도 있다. 어떤 요소는 사실이나 가치와는 상관없이 어떤 의도와 관 계되는 요소일 수도 있다. 물론 사실, 가치, 의도와 관련되는 요소가 아닌, 여러가지의 다른 요소가 의사 소통 사항을 담고 있는 문장 속 에서 분석되어 판명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명확히 명시되어 있지는 않으나 의사 소통 사항 속에 내포되어 있는 어떤 의미를 찾아내는 능력이 분석 능력인 것이다. 사실과 가설의 차이점을 구별해 내는 능력도 분석 능력일 수 있다. 사실적 명제와 규범적 명제를 구별하 는 것도 분석 능력일 수 있댜 분석 관련적 지식의 항목을 세분해서, 인지 영역의 첫 차원인 지식의 II 개 단계를 분석지식을 위한 단계 로 설정하여 분석지식 획득의 훈련 지침으로 삼을 수도 있다. 인지 영역에서의 다섯번째 차원은 종합이다. 종합이라는 것은 말

할 것도 없이 전체의 형성을 위해 분석에 의해서 발견된 부분들을 하나의 형태로 얽는 일과 관계된다. 그러니까 종합은 요소와 더불어 전체를 만들어 가는 작업 과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나타나지 않던 어떤 구조나 패턴 혹은 형상이 그 과정을 거치면 생기게끔 된다는 것이다. 기존의 경험과 새로운 재료들을 재 결합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니까 종합이라~ 것은 인지 영역에 서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고 창조적 행위를 할 수 있게끔 하는 부 분이 된다. 이해나 응용 혹은 분석 개념들도 결국 여기서 말하는 종 합의 개념을 위해서 존재한다. 이해 • 응용 • 분석 관련적 종합은 상 대적으로 국부적인 문제와 상종하고 마는 데 반해, 지금 언급되고 있는 의미로서의 종합은 한 차원 높은 의미를 지닌다. 분과학내에서 의 종합과 통합학에서의 종합의 성격이 다른 것에 비유될 수 있다. 응결의 개념이 종합에서는 중요해진다. 여기서 한번 더 시거의 Toward a Un itar y Fie l d Theory for Mus i colo gy”를 검토할 것을 강조하고 싶다. Unit ar y Fie l d Theory 운운을 옳게 할 수 있게끔 하 려면 그 Unit ar y Fie l d Theor y의 내용에 서 나타나는 모든 개 념 들을 하나하나 확대시킨 후, 지식, 이해, 응용, 분석 차원의 재료로. 환원 시킬 필요가 있다. 기존 지식이라든지 기존관 같은 것에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태도로서는 종합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종합은 오로지 종 합자가 창조적으로 새롭게 종합을 할 때 가능해진다. 저자가 이 책 의 전반부에서 그랬던 것처럼 시거의 기존 창조물을 모델로 놓고 분 석, 검토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음악학의 창조 역시 일. 종의 종합 작업이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종합은 지식, 이해, 응용, 분 석의 차원을 거친 종합의 차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지 영역 개발의 마지막 언급 대상은 평가의 차원이다. 평가는 가치 판정의 문제와 관련된다. 착상, 목적, 방법, 해결책, 재료, 작품 등, 판정 대상의 종류는· 많다. 그러니까 판정이 얼마만큼 정확하냐,

효과적이냐, 경제적이냐, 만족도를 주느냐 하는 문제를 측정하기 위 한 가치 판단의 기준이 필요하게 되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기준 이 질적인 것이냐, 양적인 것이냐에 따라서 판정의 성격이 많이 달 라질 수 있다는 것도 여기서 감안해야 한다. 평가를 인지 능력 개발 의 언급에서 제일 마지막에서 디루급 l 있긴 하지만 이것을 마지막에 다룬다고 해서 모든 일이 쉽게 끝나는 것은 아니다. 지식, 이해, 웅 용, 분석, 종합은 인지 영역일지 몰라도 마지막 차원인 가치 관련적 평가는 정의적 영역과도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고도 볼 수 있기 때 문이다. 가치라는 것은 좋음과 싫음의 문제라든가, 쾌, 불쾌의 문제 와 관계된다. 물론 지금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가치 운운은 정의적 영역 쪽으로 기울어지는 가치 판정이라기보다는 인지 영역과 상대 하는 가치 판정을 운운하는 것이간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 평가 를 제일 마지막 차원에 놓는다고 치더라도 평가 그 자체는 인지 영 역의 첫 차원인 지식의 전제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두어야 한 다. 새로운 지식을 얻으려면 그 전에 이미 하나의 가치 판단이 서 있 어질 때 가능해지는 경우도 많고, 하나의 가치 판단이 전제될 때 새 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순환성 개념을 여기서도 적용시킬 수 있을지 모론다. 지식 • 이해 • 응용 • 분 석 • 종합의 차원을 거치지 않은 사람들도 평가 행위를 얼마든지 하 고 있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유용한 것은 무조건 가 치 있는 것으로 판정하고 자기에게 유용하지 않은 것은 그 반대로 판정하기 쉬운 것이 인간이기도 하기 때문에 유용성의 문제가 가치 판정에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아무튼 음악학에 있어서의 평가 문제는 결국 음악 비평의 문제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음악학은 궁극적으로 오늘의 상황에 어 떤 음악이 수용되어야 하느냐라는 것을 판정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고볼수있다.

지금까지 언급된 것을 종합해 보면 결국 음악비평을 옳게 하기 위 한 음악학이 필요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식 • 이해 • 응용 • 분석 • 종 합 • 평가의 차원에 의해서 인지 영역이 구분된다는 사실에의 인식 이 이런 의미에서 중요하고, 또 각 영역 관련적 지식 획득은 오늘날 한국에 있어서의 음악학 정립을 위해서 필요한 것임이 틀림없다. 이 런 의미로 각 영역 관련적 지식의 단계를 점검하기 위한 근거 마련 을 위한 노력은 절대로 필요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언급된 음악학에 접근하는 방법 이의에도 음악학의 방 법론은 있다. 통합학을 위해서는 분과학이 방법론이다. 분과학은 음 악학을 하나로 만들려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다음 장에서 언급되는 모든 것들이 또한 음악학의 방법론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음악 해석학적 방법론이나 음악수사학적 방법론은 통합음악학을 위한 방 법론인 것이다. 음악해석학이나 음악수사학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 은 통합음악학에 접근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다음- 장은 음악학 의 영역에 대한 언급임과 동시에 방법론아다.

제 4 장 음악학의 영역 4.1 지식의 지도 체계적 음악학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는 체계적 음악학을 정의함 으로써 대답하는 방식이 있기도 하겠지만, 체계적 음악학을 〈전체〉 로 보고 그것들의 부분 들을 밝힘으로써 대답하는· 방식도 있을 수 있 다. 음악을 하나의 체계로 보고 음악의 구성인자들을 밝힘으로써 음 악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하는 것과 같다. 〈체계적 음악학의 체 계〉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대답도 마찬가지이다. 체계적 음악학의 〈분과학〉 구실을 하는 분야에 어떤 것이 있는지를 묻고 답할 수 있 디는 것이다. 음악학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느냐라고 물을 때 사람들이 체계 적 음악학과 역사적 음악학이 있다는 식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 기도 하는데 이것 역시 전체에 대한 부분 찾기 문제와 상관된다. 음 악학이라는 체계는 그 자체가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지식을 얻고 싶다고 할 때 전체 지식 운운을 할 수 있으려면 그 전체를 이루는 부분의 찾기 문제는 중요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가령 〈지식 지도〉라는 것을 그리려고 한다면 그 지도 속에 포함될 모든 지역들을 찾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체계적 음악학을 전체로 보고 그것의 부분, 역사적 음악학을 전체로 보고 그것의 부분, 혹은 더 크케 보아 음악학을 전체로 보고 그것의 부분이 무엇인가라고 물 을 수 있다. 더 적게 보아 부분을 하나의 단위로 놓고 죽 전체로 놓 고 그것의 부분이 무엇인가라고 물을 수 있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 댜 음악학이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는 것은 결국 음악과 관련되는 지 식의 지도 그리기를 하는 작업과 상관된다. 어떤 영역이 그 지도 속 에 포함되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학문의 대상이 될 때, 우리는 영 역 찾기로서의 음악학 운운을 할 수 있고 또 찾았을 경우 그〈것〉 을알수있는방법이 무엇인가라는문제가학문의 대상이 될 때,우 리는 방법 찾기로서의 음악학 운운을 할 수 있다. 전자를 영역으로 서의 음악학, 후지를- 방법으로서의 음악학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105) 뒤에서도언급이나오겠지만물론이둘은서로상호보완적 관계를이 룬다. 둘은 따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고려되어야 한다.

105) V. Duckles, Music o log y~, The New Grove Di ct io nary of Music and Musici an s (Ed . by S. Sad ie, London : Macm illan Publi she rs Lim ited , 1980), Vol. 12, pp.8 36-46. 이 글은 이강숙에 의해서 번역되어 있음. 『음악과 지식』, pp.1 1-33 참조.

많은 음악학자들이 영역이나 방법의 문제에 대한 연구를 했다. 그 래서 자기 나름대로의 학설을 만들었다• 따지고 보면 체계적 음악학 과 역사적 음악학이라는 영역이 있다는 것 역시 영역 관련 학설이 다. 음악을 물리적, 심리적, 문화적 현상으로 취급하는 음악관은, 연 구 영역의 범위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과, 영역 자체를 달리

정할 것은 뻔한 일이다. 음악을 〈예술〉로 정의하는 사람과〈문화〉라 고 정의하는 사람 역시 영역 설정 자체를 달리할 것이다 .106) 그래서 〈지식 지도 그리기〉 자체가 음악학의 연구 대상이 되는 것이다.

106) 전통적 음악학자는 음악을 〈예술〉로, 종족음악학자들은 음악을 〈문화〉로 정의 하고있다.

대상 영역 운운에서, 그것이 문화이든 예술이든, 〈음악〉을 연구 대 상 영역으로 생각하는 사고 반경과 음악을 하는 〈사람〉을 연구 대 상 영역으로 생각하는 사고 반경은 또 서로 다른 음악학 영역을 낳 울 것이다. 영역 설정 자체를 연구하는 대문자 음악학의 할 일은 참 으로 재미있는 분야가 아닐 수 없다. 그릇으로서의 음악학은 연구 결과가 나오자마자 소문자 음악학이 되어버리는 숙명을 안고 있지 만 음악학이라는 그릇이 어떻게 생겼느냐를 연구한다는- 것은 채워 지기 위해서 있는 그릇일 뿐 영원히 채워질 수 없는 그릇을 대상으 로 하기 때문이다. 채워지기 위해서 있는 것이 식욕이지만 식욕이라 는 것은 영원히 채워질 수 없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것〉에의 정의 내리기 작업과 정의 내리기 위한 준비 작업은 성 질이 다르다• 정의를 내리려면 정의 내리기 대상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 이 앎을 위해서는 대상의 구성 인자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 구성 인자의 항목화 작업은 정의 내리기 작업과는 성질 이 다르다. 그래서 정의 내리기 작업과 정의 내리기 위한 준비 작업 의 성질이 다르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어떤 〈것〉이 있다고 할 때 그〈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을 때, 대답하는 방식이 둘 있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것〉을 정의하는 방식이 있고 디론- 하나는 그〈것〉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느냐라는 질문에 답을 하는방식이 있다. 후자가 〈것〉의 영역을 규정짓는 일이라고 편의상 말해 두기로 한다. 음악학의 영역

운운이 음악학의 정의 문제와 그 성질이 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역은 왜 찾나라는 물음을 다시 던져 보면 이렇게 된다. 구성 인 자를 안디는 것과 그 구성 인자에 의해서 이루어져 있는 〈결과적 모 습〉을 말로 그린다는 것은 그 뜻이 다르다• 말로 모습을 그릴 때에 는 〈것〉에 대한 정의를 내린 꼴이 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정의를 내렸다고 해서 그〈것〉의 구성 인자를 완벽히 알았다고 말할 수 없 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것〉을 알고 싶을 때 그〈것〉의 영역을 규 정 지으려고 한다. 〈것〉을 전체로 보면 그〈것〉의 부분에 어떤 것이 있으며 몇 개가 있는가라는 것을 알고 싶어한다. 어떤 것을 알려고 할 때 우리는 그 〈것〉을 어설프게 아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알아야 한다. 음악학을 옳 게 하려는 경우에도 우리는 그것을 완전히 알려는 태도에서 출발해 야 한다. 대충대충 알려고 하는 태도는 〈학〉의 태도가 아니다. 〈것〉의 구성 인자를 알려고 하면 우리는 전체와 부분쾨의 관계 개 념에 눈을 떠야한다• 전체 관련 명칭을 제시하고 그것을 사용한다고 하면서 실상에는 그것을 부분의 명칭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고 부 분 관련 명칭을 제시하고 그것을 사용한다고 하면서 실상에는 전체 의 명칭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인간은 일부로서 전체를 나타내 는 표현법을 사용한다. 그런데 우리가 그러한 표현법을 사용하고 있 다는 것을 알고 사용하면 그것은 좋다. 그러나 가령 부분(특수)으로 서 전체 (일반)를 나타내는 표현법을 사용하고 있으면서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면 그것은 곤란하다. 〈학〉을 할 때 에는 특히 그렇다• 음악학이라는 명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음악학이라는 명칭은 전체를 위한 명칭인가 부분을 위한 명칭인가에 대한 명확한 생각을 해야 한다. 음악학이 무엇이냐라고 물을 때에는 〈전체〉를 묻는 물음 인 것 갇다. 그런데 대답을 내리는 순간 그 대답은 전체라기보다 부

분으로 변해 버린다. 대답이 옳은 대답이라고 해亡. 말이다. 〈음악학〉 은 〈음악〉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 개념이 열려 있는 것이기 때문 에 더욱 그렇다. 대문자 음악학과 소문자 음악학의 관계를 여기서도 따져 보아야 한다. 대문자와 소문자 개념을 모르고 그것을 사용하는 것과 알고 사용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 차이에의 인식을 위해서도 전체와 부분과의 관계에 대한 옳은 인식이 필요하 다. 앎의 대상이 어떠한 것이든간에 그것을 알려고 하는 경우에 우리 는 그〈것〉을 〈시간〉과 〈공간〉 속에 풀어 놓고 그〈것〉의 정체를 밝 히려고 한다. 〈공간〉에 그〈것〉을 풀면 그〈것〉의 체계적 관심, 〈시 간〉 속에 풀면 역사적 관심을 갖는 것이 된다. 공시적 개념과 통시 적 개념은 상호보완적 개념이다. 어떤 〈것〉이 있고 그〈것〉을 알고 싶을 때, 우리는 그〈것〉의 구조 체계를 특정 시기에 국한하여 관찰 할 때가 있다. 여기서 특정 시기라고 하는 것은 선 개념으로서의 시 기, 시간의 연속되는 〈흐름〉을 고려 속에 넣은 시기가 아니다. 선이 아닌, 점 개념으로서의 시기이다. 이러한 특정 시기에 국한하여 어떤 〈것〉의 구조 체계를 관찰하는 것을 공시적 관찰이라고 한다. 통시적 관찰은 그 뜻을 달리하여 시간의 경과 개념을 관여시킨다. 어떤 〈것〉 을 점이 아닌, 선 위에 놓고 본다는 뜻이다. 어떤 〈것〉의 구조가 아 니라 기능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하여 왔는가를 관찰한다. 그것이 가능해지려면 물론 특정 시기의 구조롤 관찰한 후라야 한다. 공시적 관찰 없이는 통시적 관찰이 불가능해진다는 말이 이 때문에 나온다. 상호보완적 관계라는 말도 이 때문에 나온다. 정지되어 있는 공간 속에 어떤 것을 고정시킨 후 그것을 상대할 때에는 그것의 체계, 흐 르는 시간 속에 풀어 놓고 그것을 상대할 때에는 그것의 역사를 취 급하는 격이 되는데, 전자는 공시적, 후자는 통시적 접근을 취한다고 한다. 정지되어 있는 공간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도 시간

속에서 언제나 흐르고 있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많은 정지된 공 간적 존재의 순간들이 있기 때문에 이들은 상호보완적 관계에 놓여 있다. 특정 체계를 가전 어떤 대상울 알려고 할 때 그 체계를 알려 면 그 체계의 구조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그 체계 형성의 역 사를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체계의 역사〉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 고 〈체계로서의 역사〉라는 말도 사용할 수 있다. 역사를 연구하는 역사학도 하나의 체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학이 무엇이냐라고 물었을 때 우리는 그〈것〉의 역사를- 묻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무 엇이냐라고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그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을 때 우리는 체계와 상종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학이 무엇이냐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역사학이 어떻게 그리고 왜 생겼느냐라고 물을 수도 있는데, 그렇게 물을 때에는 역사학의 역사를 묻고 있는 것이다. 역사 연구와 관련되는 많은 연구 업적이 실상에는 역사적 음악학의 소산이라기보다 체계적 음악학의 소산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존의 지식 지도 죽 지식의 영역은 여러 문헌에서 갖가지 종류 로 소개되고 있다. 『그로브 음악 사전』의 「이론의 역사」나 「음악학」 부분을 보면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태고적의 것으로 오늘날 보아도 재미있는 지도가 아리스티데스의 것이다. Encyc lope dia Br it ann i ca 에 서도 지도는 그려지고 있다• 음악학의 영역을, I 현재 음악, 2 과거 음악 ,3 연주·음악양식·이론·악보·작곡가·연주가·악기제작자 의 생애 • 지역 생활에 있어서의 음악의 위치 등의 역사 등으로 정 한다. 근대에 와서 그린 지도에는 Frammery , Forkel 등의 것이 있 다. 그 다음 세대에는 G. Adler 라든가 C. Seege r 등이 있다. Mant le Hood 는 Music , the Unknown10n 에서 음악학은 세 개의 영역 연구

107) M. Hood, Music , the Unknownn, Music o logy (E ng le wood Cli ffs, New Je rsey , Prenti ce -H all, 1963), pp.217 -326.

를 목적으로 한다고 했다. I 음악의 기능 연구 죽 자기 사회에서 행 하는 인간 행위로서의 음악, 이 음악의 역할을 연구하는 것이 음악 학의 한 영역이다, 2 음악이 탄생된 문화적 맥락 안에서 특징지어질 수 있는 음악양식 연구와 음악의 사회적 관계 연구가 또 하나의 영 역이다, 3 음악세계라는 총체성과의 관계내에서의 개별적 음악작품 의 고유 가치 연구가 또 하나의 영역이다라고 했다. 음악학의 기본 목적이 이 세 영역의 연구라는 것이다. Frank Harr i son 은 음악학의 목적은 하나뿐이라고 했다. 사회 속의 인간 연구가 그 목적이라는 것이다. 음악학의 영역은 〈인간〉 하나라는 것이다 .108) 물론 음악하는 인간이겠다. J. Kerman 역시 음악학의 목적은 하나뿐이라고 했다. 〈비평〉 하나뿐이라고 했다• 109)

108) F. Harris o n, America n Music o logy and the Europ ea n Trad ition , Mu sico olg y, pp.3-85 . 109) Jo umal of the Americ a n _Muicso l ogic a l Socie t y ( 1965), vol. 18, no. 2 참조. Edward Lo wins k y가 위의 잡지의 Characte r and Purp o ses of Americ a n Music o logy : A Repl y to Jo seph Kennan 이라는 글에서 Kennan 을 비판한다.

어떤 사람은 체계 영역과 역사 영역뿐만 아니라 분석 영역과 종 합 영역이 있다고도 주장한다. 아무튼 영역과 관계되는 주장 역시 음악학자의 수효만큼이나 많다. 여기서는 더 이상의 언급을 피하기 로 한다. 다만 한 가지만 언급하기로 한다• 저자는 시거의 영역 설 정이 마음에 든다• 시거의 음악학 영역은 우선 일반적 시각과 음악 적 시각으로 크게 나뉘어진다. 그리고 그 각각을 체계적 접근과 역 사적 접근으로 구별한다. 그리고는 또 그 각각을 과학적 그리고 비 판적 접근으로 나눈다. 그래서 여덟 갈래의 사고의 틀을 제공한다. 앞 장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 이미 언급한 것으로 한다. 영역은 음악학의 분과학이 무엇이냐를 찾는 작업이다. 그것을 왜 찾는가. 이미 여러 차례 언급한 것이지만, 음악학의 전체를 찾고 싶

어서다. 통합학의 구성 요인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말이고, 결국 통합학의 정체를 알고 싶다는 말이다. 어떠한 일에서도 그렇겠지만 언제나 이상이 있고 현실이 있다. 현 단계에서 음악학의 이상은 아직 찾지 못했다. 음악지학(知學), 음악 행학(行學), 음악덕학(德學)이 이상이었으면 싶다는 생각만을 나는 하 고있다. 본장에서는 이상보다 현실 쪽을 택하기로 했다. 음악수사학과 음 악해석학만을 소개하기로 하겠다. 수사학은 역사 체계, 해석학은 음 악 체계에 대한 언급을 할 것이다. 이것들의 합이 우리가 바라는 음 악학이 되지 않겠느냐라는 생각에서다. 물론 음악학의 영역에는 음악역사학, 음악분석학, 음악재료학(화성 법, 대위법 등, 여기서는 기존의 화성법과 자기의 화성학설 관련학아 나뉘어 질 수 있다), 횡적 재료학, 종적 재료학, 악기학, 음악양식사, 악보사, 음악바평학, 음악문헌학, 음악심리학, 음악얽음학 죽 형식학, 음악사 회학, 음악인식학, 음악실천학, 음악미학, 음악판단학, 음악윤리학, 음 악인류학, 음악교육학, 음악방법학, 음악영 역학, 음악체계학, 음악가 치학, 음악사실학, 음악언급학 등을 거론할 수 있다. 각각을 전체로 놓고 그것의 분과를 점검하는 연구도 필요할 것 갇다. 모두 옳댜 책상, 걸상식의 단어는 인간이 만들었다. 인간이 만든 단어는 인간이 생각한 것이다. 인간의 분신이다• 그러므로 어느 것은 있고 어느 것은 없다리든키검 어느 것은 옳고, 어느 것은 옳지 않다,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없다. 모두가 옳고, 모두가 〈있는 것〉이다. 철학자들의 음악관도 마찬가지다. 책상이라는 단어에 해당되는 헤 겔이나 걸상이리는- 단어에 해당되는 니체나간에 모두 옳다.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의 분신으로 나타나는 주장들을 그들이 만든 것 이니까 각 단어의 있음이 옳듯이 그들의 주장의 있음 역시 옳다. 물 론 새로운 어휘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듯이 새로운 분신이 나타나

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새로 나타나는 분신이라고 해서 전의 분신 보다 더 옳다, 혹은 그것만이 있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없다. 인체 에 수만 가지의 근육이 있다고 하듯이 인간 관련 사고 내지 음악 관 련 사고에도 근육의 수효는 많다. 각 철인들은 이 근육 하나씩, 모 두가 인간의 한부분인, 더 옳고 덜 옳은 것이 없는 부분인, 이 근육 하나씩을 뽑아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는 그러나 음악해석학과 음 악수사학이라는 근육만을 구경하기로 한다. 4.2 음악해석학 오늘날 한국음악계에는 서양음악관이 위세를 떨치고 있다 .110) 이 음 악관은 구체적, 역사적, 음악언어적 이해의 지평을 갖고 있다. 이 지 평은 한국 음악인들에게 사전에 주어진 것이고, 대부분의 한국 음악 인들이 이것 때문에 자의적 음악해석을 하지 못하게 하는 선이해 Ill) 를 제공하고 있다.

llO) 「음악해석학표본 민음사 간행지 계간 〈세계의 문학) 87 년 여름호에 발표된 글 을 가필한 것임. 111) 신귀현 역 (E. Core t h) 의 『해석학』(서울 : 종로서적, 1985), pp. 5-50.

음악이 만일 인간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라면 성악뿐만 아니 라 기악 112) 이라는 음악 유형도 중요하다. 기악의 존재이유는 성악의 그것 못지않게 변호될 수 있다. 여기서 성악, 기악을 운운하는 이유 는 음악적 의미의 출처가 어디일 때 가장 옳은 음악언급을 할 수 있 느냐 하는 문제와 상관된다. 음악적 의미의 출처가 음악내적인 위치

ll2) C. Dahlhaus(W. Austin 역 )의 Esth etic s of Music( Cambri d g e : Cambri dg e Un ive rsity Press, 1982) 의 제 4 장에서, 기악이 정식 음악으로 대접받지 못했 고, 의미 없는 텅반 소리라고 불리던 시대가 있었다는 것이 설명되어지고 있 다.

에 있느냐, 음악의적인 위치에 있느냐라는 문제는 음악의 본질과 존 재 가치의 규명에 있어 역사적으로 언제나 중요한 것으로 취급되어 왔다. 출처가 의적인 위치에 있을 때는 〈개념〉과 관계되는 〈내용〉이 음악적 의미와 상관되고, 내적인 위치에 있을 때는 〈상상〉 내지 〈구 상〉(막연한 느낌과는 다른, 그러나 개념과는 상관없는)과 관계되는 〈형 식〉이 음악적 의미와 상관된다. 음악의 존재 이유를 전자와 결부시 켜 정당화시키는 경우가 있고, 후자와 결부시켜 정당화시키는 경우 가 있다. 기악 존재의 이유가 변호되는 근거는 후자의 가치 인정에 있다. 음악에서의 기악의 위치 및 성립시기 내지 과정과 기악에의 의미 부여 문제에 대한 선이해의 역할이 비판됨 없이는 한국 음악문화와 음악학문화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이 글의 전제이다. 보 편적 인간 행위로서의 해석 행위에 대한 비판과학적 반성의 필요성 은 기악 가치에 대한 비판부터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을 정당화시킨 다. 기악 자체에 죄가 있어서라기보다, 현실적 삶과 유리된 제도예술 적 113) 기능을 기악이 행사하고 있다는 이유에서 기악은 고발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을 자연언어라고 한다면, 기 악을 있게 하는 음인어 lang ua ge of t ones 는 순수한 음향

113) 최성만 역 (Pe t er Bur g er) 의 r 전위예술의 새로운 이해 Theorie der Avan tg ade 』 (서울 : 심설당, 1986) 에서 제도예술의 개념이 찰 설명되고 있다. 가령 제도화 성법은 음악을 위한 화성법이 아니라 특정 교육제도에 있는 교과과정을 위한 화성법일 수밖에 없으나 그 교육기관에 속해 있는 구성원은 그것에 묶여 있 고, 그 묶임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의 삶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문제를 낳는다. 물론 제도이론이 없어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음악과 유리되지 않는 이론이 있는데도 제도이론이 없어서 문제일 때가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 학교 음악대학에 이론전공이라는 것이 생기기 전에는 제도이론이 없는 형편이 었다. 이론전공이 생김으로써, 죽 제도이론을 낳을 위험성을 내포한, 새로운 전 공이 생김으로써, 좁게는 음악이론뿐만 아니라 넓게는 한국음악문화에 기여하 고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

현상으로만 이루어전 인공언어이다. 그러니까 기악언어는 보통 사람 들에게 자연언어 구실을 하지 못한다. 물론 서양예술음악 관련적 세 계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는 이 음언어의 개념이 불편 없이 받 아들여진다. 자연언어 구실을 하지 못한다고 해석 역사상 한때에 기 악의 가치가 인정되지 않았기도 했지만 말이다. 기악해방의 수난사 를 아는 사람이면 지금 언급되고 있는 내용의 의미를 더 명확히 알 리라고 믿는다. 음악의 의미를 언어화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인간은 옛날부터 가 져왔다. 의미의 언어화는 의미해석의 결과를 옳게 가질 때에 가능해 진다. 기악해방이 이루어지기 전까지의 음악적 의미 찾기 운동은 가 사의 의미에 의존적이었다. 물론 음으로 이루어진 노래의 선율이 주 는 불가사의한 감동의 의미가, 노래 가사와는 상관없이, 음 안에 있 는 것인지, 노래 가사와 상관이 있을 수 있는, 그러니까 음 밖에 있 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계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것이긴 하지만 말 01 다. 기악의 해방이 이루어전 후에도 여전히 음악적 의미의 소재는 분 명 하게 드러 나지 않는다. 음악을 〈소리나는 감정 soundin g emoti on > 으로 보느냐, 〈소리나는 수학 soundin g ma t hema ti cs 〉 114) 으로 보느냐 에 따라 그 소재지가 바뀌기 때문이다. 음악이 감정표현의 수단이 되는 경우에는 음악적 의미는 음향 의적 사항과 연결되면서 해석되 어야 하고, 음악이 음향 관계의 내적 논리형식 추구를 목적으로 하 는 경우에는 음향 내적 사항과 관계되는 해석법이 대두되어야 한다. 음악의 의미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해석되어 왔는가를 점검해 보면 대부분의 경우 음향 의적인 사항과 연결시켜 그 의미를 찾았음이 밝 혀진다. 음악해석학이러는- 학문이 처음으로 탄생되었을 때에도 음악

114) C. Dahlhaus 의 Esih e tic s of Music, pp,1 6 -23 .

의 의미를 음향 의적 사항과 연결시켜 해석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했 다. 이른바 음악에 있어서의 감정미학과 맥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 초기 음악해석학의 입장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음악의 의미가 반드 시 음향 외적 사항과 연결되어야 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순수음 악, 절대음악의 가치를 인정하는, 형식미학과 맥을 같이하는 음악해 석학도 가능하다는 주장의 대두와 더불어 기악음악의 형성논리가 변 호되는, 이른바 화용론으로서의 음악해석학이 빛을 보게 되었다 .115)

115) C. Dahlhaus 편의 Beitr a ge zur Musik a lisc hen Hermeneutik ( Reg en berg : Gust av Bosse Verlag , 1975) 을 참조.

이 글은 새로운 한국음악학의 지평을 열어 보고 싶다는 소망에서, 음악적 의미 해석과 관련되는 여러 문제를 1) 음악해석학의 성립배 경 규명, 2) 음악의 감정 및 표제적 의미를 옳게 해석해 보려는 노 력의 일환인, 전통적 음악해석학의 성격 규명, 3) 기악의 소통논리가 변호되는 화용론으로서의 음악해석학의 성격 규명, 이러한 세 가지 차원에서 검토해 본 후, 어쩌면 기악을 고발하기까지 할지 모르는, 한국의 현실에 필요한 한국음악론으로서의 음악해석학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해 문제에 있어서 순환성의 속성 이해를 응용함으로써, 그리고 〈지금/여기〉 116) 를 한국음악학 관련적 선이해의 장소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함으로 해서, 새로운 선이해 조건 성립을 위한 신음악문화환경의 창조에 기여해 보려는 시도를 해보고 싶은 것이다.

116) 김대웅 역 (G. Par kins on 편)의 Georg Lukacs:The man, his work and his i de as ¾ 번역한 『변증법적 미학이론』(서울 : 문예출판사, 1989) 중 「루카치 미학의 중 십 범주」 참조.

4.2.1 해석학의 성립배경 지적 행위에 해석행위가 관여되지 않은 것은 없다• 인간의 삶 자

체가 대상의 의미 해석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말까지 있 다. 해석의 의미에는 I) 말한다, 2) 설명한다, 3) 번역한다는 것들이 있다고 한다 .ll7) 세례요한의 〈말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미 해석한 것에 비유될 수 있고, 해석이 된 내용에 대한 논증적 언급은 벌써 〈설명〉이 아닐 수 없고, 영어를 해석한다는 것은 그것을 〈번역〉한다 는 뜻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117) R. Palmer 의 Henneneutic s (Evanst on : North w este r n Un ive rsity Pres s, 1969), pp.14-32 .

성서 해석을 직업으로 삼는 신학자에게 있어서의 덱스트는 성서 이다. 성서의 판 vers i on 이 하나가 아니고 여럿이 있는 경우, 어느 판 이 가장 믿음직한 판이냐라는 문제가 있을 수 있겠는데, 그것은 벌 써 해석 대상인 텍스트의 선정 문제와 관련된다. 선정의 기준이 해 석의 결과에 의해서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른 텍스트 전부를, 그 같은 점과 다른 점에 입각하여, 분석,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옳은 텍스트 하나가 선정되었다고 해도 그 덱스트의 의미를 해석하는 방 식은 하나일 수만은 없다. 텍스트에 쓰여전 말 그대로 텍스트의 의 미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해석관, 도덕적 삶의 지침으로 성경이라는 텍스트의 의미를 해석하고자 하는 이른바 도덕적 해석관, 노아의 방 주를 하나님의 교회 유형으로 바유하겠다는 이른바 비유적 해석관, 성경을 과거 관련적 사실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세 계에 대한 예언기능을 한다고 믿는 것이 옳은 해석법이라고 주장하 는 예언적 해석관 등이 있다고 한다. 하나님의 가장 옳은 〈말씀〉을 두고도 이렇게 서로 다른 해석법이 있는 것을 보면, 인간이 만든 예 술작품으로서의 텍스트 해석방식이 다양하다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 이 못된다. 성서의 의미 해석이 문제시된 역사를 안고 있는 서양의 지성사는

19 세기 중엽, 베토벤과 동시대를 살았고 거의 동년배였었던 슐라이 에르마허 (1 768-1834) 에 의한 해석학의 탄생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딜타이 (1833-1911) 에 의해서 그것이 더 심화된다. 앞장에서 이미 어 느 정도 언급한 바가 있으나 이 문제에 대해서 다시 간략히 알아본 다는 것은 이 대목의 글을 쓰는 이유와 상관이 되지 않을 수 없다• 1543 년경에 출판된 한 권의 책은 구라파의 사상계, 그러니까 결국 인간들의 사고를 뒤흔들어 놓았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가능케 했던 De .Devolutio n ib u s Orbiu m Celes ti wn 이 그것이다. 지구는 움 직이지 않고 그 주변의 세계가 지구를 중심으로 해서 돌아다닌다라 는 생각을 당연한 생각으로 받아들여오던 사람이, 돌고 있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태양 주변울 도는,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바로 그 것이다라고 누가 말했다면 그 말을 믿을 리가 없을 것은 너무나 당 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믿기 싫어한 전통적 사고의 힘이 버 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코페르니쿠스의 단 한 권의 책은, 믿을 수 없는 것을 믿게 하고야 말았다. 그래서 수많은 학자들이 산앙이나 권위가 아닌, 〈관찰〉에 근거한 앎울 더 중요시하게 되었고 이른바 근대적 의미의 과학이 탄생하게 되는 근거를 마련한다• 태고적부터 있어 왔던 과학적 사고의 근대적 부활을 가져오게 했던 것이다. 갈 릴레오는 실험 방법의 창시와 더불어 관찰에 의한 새 원리 발견에 박차를 가하게 하였고, 1687 년에 출판된 뉴톤의 P ri n cipi a 는, 일상의 물리현상 발생 이유를, 이해로서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설명하기에 이른다. 뉴톤 법칙의 발견이 인간 사고의 틀에 준 영향 또한 한두 줄 의 글에는 담을 수가 없다. 과학적 법칙의 발견에 대한 관심은 1700 년대에 이르러서도 계속된다. 새 원소의 발견이라든가 생물의 사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원리의 발견도 하게 된다. 1800 년대에는 물리학, 화학뿐만이 아니라 여러가지의 새 과학이 학문으로 대두되기 시작한다. 미생물학이라든가 유전학 등이 그것이

다 .ll8) 그런데 지금까지 언급된 과학은, 〈확실히 알게 된다〉는 이점을 안고 있어서 인간이 진심으로 환영하는 학문 분야이긴 하나, 어디까 지나 자연과학에 국한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관찰에 의해 서 실증됨으로써 어떤 것에 대해서 〈확실히 알게 된다〉는 사실을 자 연이 아닌, 인간 정신에 적용시킬 수는 없느냐라는 생각이 대두되었 던 것이고 결국에는 브람스와 감은 해에 태어나서 브람스보다 14 년 더 살다 간 딜타이에 의해서 인간 정신과 과학적 관심이 연결된, 이른바 정신과학의 성립이 이루어지게 된다.

118) The World Book Encyc l ope d ia ( New York : Fie l d Ente r p rises Educat ion al Corp o rati on , 1968), Vol. 17, pp.168 -73.

그러나 통합학에 해당될 수 있다고도 생각되어질 수 있을지 모를 정신과학은 결국 분과학으로 분열되고 만다. 오늘날 인문대학이나 사회대학에서 전공 영역으로 존재하고 있는 예술사학, 인류학, 경제 학, 역사학, 정치학, 심리학 등이 그 분과학의 예이다. 이런 분과학 이 탄생된 원래의 이유는 인간의 정신활동을 과학적으로 세분하여 연구해 보자는 의미에서였고, 정신과학의 방법론을 세부적으로 찾아 보자는 의미에서였다. 모든 분과학의 존재 이유는 통합학이 제기하 는 문제의 해결을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분과학의 존재 이유는 어디 까지나 수단적 역할에 있었지 그것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는 말 도 된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인간 정신활동의 의미를 과학적으로 이 해해 보자는 해석학의 원래의 이유는 망각되고, 방법론 그 자체가 목적화되고, 더 성행하고 있는 실정에 있다. 각 전공 영역은 서로 〈다른〉 관심, 규범적 기준을 가진다. 그러니까 각 분야의 방법론이 즉 〈다름〉이 〈같음〉의 개념에서 출발한 해석학에 근거하여 출발한 정신과학을 역으로 지배해 버린 격이 되어버렸디는· 것이다. 주객이 뒤바뀐 격이 되었으니,수단 • 방법의 강화도 중요하겠지만, 해석학자

의 입장에서 보면, 목적의식의 회복이 시급히 요청되고 있는 시대가 지금이 아닐 수 없다. 최근에 와서 〈다름〉들을 〈같음〉으로 묶으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분과학의 연구 결과로 나타나 는 다름은 의견상의 〈다름〉일 뿐이지 모든 인간행위는 계급 이익의 반영이라는 것으로서 해석되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같음〉으로 묶 일 수 있다는 관점의 대두 같은 것이 그 하나의 예이다. 그러나 〈같 음〉에로의 묶임은 어디까지나 꿈으로 존재할 뿐이라는 비관론이 대 두하기도 한다. 해석기호나 방법론이 심지어는 동일한 전공 영역내 에서도 수많은 〈다름〉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는 이유에 서이다. 가령 심리학이라는 하나의 분과학내에서만 해도, 행동심리 학적, 인지심리학적, 정신분석학적, 형태심리학적 방법론 등이 각기 서로 다른 규범적 기준을 가전 채로 존재한다는 것이고, 사회과학 분야에서만 해도, 기능주의적, 구조주의적, 유물사관적 방법론 등이 서로 다른 해석기호를 들고 나온다는 것이다 .ll9) 인간의식은 역사라 는 밭에서 피는 꽃이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상이한 해석기호 모 두가 나름대로의 역사라는 밭울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119) Van Harvey , Hermenetuics , p.2 08.

딜타이에 의하면 이해는 인식의 한 방식이며 ,120) 해석학에 근거하 여 확립된 정신과학의 방법은 설명법이 아니고 이해법과 상관된다. 인간의 정신활동 결과는 추체험 Nacherleben 에 의해서 이해될 수 있 다는 것이다. 어떤 체험을 제것으로 체험함으로써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120) 임석진 감수, 『철학사전』(서울 : 이삭, 1983), p.30 4.

딜타이에서부터 성숙된 해석학은 결국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 는데, 이 질문은 음악학에서도 동일하게 던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시사점이 많다. 음악을 하는 인간이나 음악작품 역시 그 의미가 해 석되어야 할 덱스트라는 점에서 말이다. 크게는 인간이해(음악적 인 간 포함)의 조건이 무엇이냐, 적게는 텍스트小(연주가의 경우는 연주될 곡 목, 작곡가의 경우는 경험을 낳게 하는 의계, 감상가의 경우는· 연주, 바평가 의 경우는 곡목, 외계연주, 음악적 인간 등)를 이해한다는- 뜻이 무엇이며 또 이해의 조건은 무엇이며, 그리고 해석의 임무는 무엇이냐라는 질 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12 1) 텍스트 해석에서 생기는 문제 제기가 처음

121) Van Harvey, Henneneutics , p.2 81 .

으로 슐라이에르마허에 의해서 행해졌다는 의미에서도 그는 해석학 의 창시자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가 주장한 이해 이론의 핵 심은 텍스트를 만든 사람의 〈의도 파악〉과 관련된다. 〈작가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텍스트 이해의 바론 길이라는 것이다. 음악연주 문제 에서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의견과 관계된다. 연주를 옳게 하려 면(죽 연주를 통한 음악해석을 옳게 하려면) 작곡-가의 의도를 알아야 한 다고 연주가들은 상식적으로 생각한다. 슐라이에르마허의 주장을 보 면, 작가가 살고 있었던, 그리고 작가의 생각을 통제했던 언어문화권 의 속성을 우선 이해해야 하고, 그리고는 그 문화가 허락했던 표현 방식 및 언어형식과 관련되는 문법적 이해를 해야만 작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지극히 주관적이고 창의적인 작가의 개성과 관련되는 기법적, 심리적 맥락을 이해해야만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이 말은 곧 이해라는 것은(죽 덱스 트의 이해는) 작가가 살았던 시대에서 텍스트기· 어떻게 탄생되었는가 하는, 그 탄생의 문화적 • 역사적 맥락을 알아야 한다는 의미이고, 작 가의 독특한 주관성을 파악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연주가들이 너무 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연주관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슐라이에 르마허의 이해이론은 도전을 받고 만다. 슐라이에르마허의 이론에서

주장되는 이해 죽 앎은 점천 행위의 결과에 해당된다는 비난을 받 게 되었다. 해석자가 작가의 마음 속에 들어가 볼 수가 없기 때문에, 해석자는 작가의 의식 속에서 상상적으로 다시 살아 보는 길밖에 없 다는 것인데, 이것이 점침의 성격과 다룰 바 없다는 논박이 제기되 었다. 딜타이도 슐라이에르마허의 가정을 거부하는 설득력 있는 근거를 내놓았다• 그는 슐라이에르마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모든 작품은 작가의 마음에 내재된 원리로부터 자라나온 것〉이라고 하는 슐라이에르마허의 가정을 결국 거부하고 만다. 그 이유는 슐라이에 르마허의 가정이 반역사적 사고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작품 이 작가의 마음에 내재되고 있는 원리에서 〈자란 것〉이 사실일지는 모르나, 모든 〈자람〉은 역사적으로 〈자람〉의 조건을 안고 있는 것이 라고 딜타이는 주장한다• 작가의 마음에 내재되고 있는 원리가 작가 의 마음 속에 태어날 때부터 있던 것이 아니고, 작가 심신의 성장 과정을 통해서 자란 것이 틀림이 없을 터인데 모든 자람이 그러하 듯이, 그 원리의 자람도 자람이고 보면 자람 관련적 이력서 같은, 하 나의 역사적 조건을 안고 자랐을 것이라는 점에 딜타이가 주목을 했 다는 것이다. 작품 생성원인의 하나인 작가의 마음 형성의 마음의적 영향울 슐라이에르마허는 고려 속에 넣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는 이야기이다. 딜타이가 제창한, 자연과학과 다른, 정신과학이 표방하는 이해법 은 이 책의 앞부분에서 이미 언급된 것과 감이, 〈어떤 체험을 제것 으로 체험함〉에 그 근거를 둔다. 어떤 체험을 제것으로 체험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인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인간이다라는 말은 ‘men’ 의 개념이 아니라 ‘human be i r g'의 개념과 상관된다 .122) ‘men' 속에는 〈나〉라는 사람이 포함되지 않을 수 있을지

122) M. Beardsley , Aest:1 etic frrn . Classic a l Greece to the Present : A Short Hi st o r y

(Alabama : Un ive rsity of Alabama Press, 1966), pp.2 10-25.

모르나, ‘human bein g ' 속에는 모든 〈나〉가 전부 포함된다. 그러므 로 ‘men’ 의 체 험 은 제것으로 체 험 될 수 없을지 모르나, ‘human be i n g'의 체험은 제것으로 체험될 수 있는 근거가 생긴다. 어떤 인 간이 특정 방식으로 그러니까 관습적으로 〈의도 • 목적 • 희망 • 개 성 • 성격〉 관련적 행위를 하면,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인간 human be i n g이니까, 그런 어떤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현상 은 인간 〈밖〉에 있고, 인간 행위의 근거는 인간 〈안〉의 측면과 상 관되고, 모든 인간은 이 〈안〉을 본유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데에서, 칸트의 판단근거와 같은 성격의, 해석학의 근거가 있게 된다고 한다. 일체의 인간정신의 산물을 표현으로 보고, 그 체험의 표현 결과는 개성적 (〈다름〉에 해당)이지만, 인간의 체험에는 그 근본에 있어서 공 통적인 측면(〈같음〉에 해당)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표현 결 과를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123) 그러니까 이해는 너 속에서의 나의 발견이라는 것이고, 이 발견이 가능한 이유는 인간성에 보편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딜타이 에 의하면, 이 보편성(〈같음〉)이 개별적 경험 때문에 개별성(〈다름〉) 으로 나타나는데, 이 개별이 나타나게 되는 역사, 문화, 교육적 배경 울 알면, 그 〈개별〉은 〈보편〉개념으로 번역 죽 이해될 수 있다는 것 이다. 즉 관습(다름) 성립 과정의 앎 즉 개별 성립의 역사를 알면 그 앎이 이해를 낳는다는 것이다. 모든 해석에서 그러니까 〈역사〉가 해 석약호가 된다는 것이다. 역사를 알면, 대상에의 이해가 가능해진다 는, 이상과 같은 주장에 많은 설득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역사 죽 객체를 안다는 것은 결국 역사가(家) 죽 주체의 주관성을 벗어나지 못 한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또 도전을 받게 된다. 이 도

123) 대학사전』(서울 : 이삭, 1983), p.409 .

전에 대한 언급은 이 글의 결론에서 자세히 검토하는 것이 더 옳을 듯하디는 생각에서 뒤로 미루기로 한다. 4.2.2 음악해석학과 내용미학 종교집단이라는 것은 교감적.1 24) 집단 이의의 아무 것도 아니다. 교 감적 집단이란 그 구성원들이 동일한 해석관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댜 그러니까 종교집단은 동일 해석집단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124) R. J akobson 의 소통이론에서 나오는 용어로서 P. G ui saud 의 Semio lo gy (Routl e dge & Kega n Paul , 1975) 에서 설명되고 있음. M alin ows ki에 의 해서 이 말이 사용되었는데, 어떤 집단의 유대가 단지 말을 교환하는 것만으로써 형성되는 것을 교감적 소통이라고 했다. '

해석집단체에.대한 연구를 하는· 해석의 해석이라는 형식을 취할 수 밖에 없다. 총교에 대한 종교학자의 해석과 보통 신자의 신앙적 해 석은 그 근거가 다르다. 그래서 종교학자의 영구적 논쟁은 학자와 일반 신자의 종교 해석 사이에 거리를 두느냐 두지 않느냐의 문제 와 관계된다. 이 문제는 음악해석학 영역에서도 대두된다. 음악학자 의 음악해석관과 그냥 음악을 믿는, 이른바 음악신자의 음악해석관 중 어느 해석관이 더 옳은 것이냐라는 문제가 언제나 음악학적 관심 이었다는 것이다. 지금 여기서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최근의 음악 학자를 제의한, 음악과 상관되는 모든 사람들은 거의 전부 음악에는 음향의적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았다는 것이고, 이 음향의적 의미를 옳게 해석해 보겠다고 나선 일군의 학자들이 최초로 음악해석학자 로 불리던 사람이었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음악해석학의 창시자는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사람은 한스릭 Hansl i ck 과 반대되는 음악관을 표방했던 크랫츠슈마르 H. Kret zs chmar(1848- 1924) 이다.!25) 18 세기의 특정감정표상법을 부활시키려는 노력의 일환

125) The New Grove Di ct i on ary of Music a 뼈 Music ia n s, Vol. 8, p.51 I .

으로 음악학에서 해석학이란 용어가 그에 의해서 1902 년에 처음 쓰 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음악이라는 것은 그 속성이 그냥 듣고 말아 버리는 것이냐, 아니 면 둘은 후 그 둘음의 내용을 남에게 말을 해야 하는 것이냐, 이 질 문은 태고적부터 내려온 질문이다. 듣고 말아 버리는 것일 수도 있 고 말을 해야 하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 음악이다. 그러나 말을 해 야 하는 경우, 그 말이 무엇에 대한 말이어야 하는가가 언제나 문제 시되어 왔다. 음악을 〈소리나는 수학〉으로 보는 사람과 〈소리나는 감 정〉으로 보는 사람은 말함의 내용이 달라진다. 전자는 음악 이성을 작용시킬지 모르고 후자는 음악 감성을 작용시킬지 모른다. 전자는 음악감상 행위를 음악형식 관련적 청취법에 구속되는 작업으로 볼 지 모르고, 후자는 보통 신자의 종교관과 비슷한, 음악에 대한 그냥 경험(슬프면 슬프고, 기쁘면 기쁘다는 식의 경험)울 중요시했을지 모른 다. 전자가 음악이라는 객체의 속성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 다면, 후자는 음악 수용자의 경험 내용을 감지해야 한다는 것을 중 요한 것으로 주장했을지 모른다. 물론 크랫츠슈마르는 음악에 형식 만 내재해 있다는 것을 거부한 대신에 감정이 내재되고 있다는 것 울 주장했다. 이 말은 그가 음악을 〈소리나는 감정〉으로 보는 부류 의 사람이었고, 또 감정의 소재지가 주체가 아니라 객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는 것이 틀림이 없으니까, 객체의 속성을 고려에 넣지 않은 주체 관련적 경험만을 언급의 대상으로 삼으려고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증명된다. 그러나 객체 위주적 경험이든 주체 위주적 경험이든, 초기의 음악해석학은 음악의 의미를 형식과 결부시키지 않고 감정 내지 표제성과 연결시킨 것만은 사실이었다. 감정 내지 표제성의 객 관적 언어화의 성공을 곧 음악해석학적 작업의 성공도로 간주한 것

만은 사실이었으니까, 음악해석학 발전의 초기 단계는 감정미학의 지지자 쪽에 서 있는 일군의 학자들의 공로가 그 ·분야의 업적으로 남게 된 것이다. 음악해석학의 해석 목표가 작가 의도를 발견하는 것이어야 한다 고 믿는 입장이 1920 년대까지 유지되었다고 하는 것은 아무튼 놀라 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1920 년 후부터는 덱스트가 작가 의도와는 상관없는 삶을 가진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작가 의도와 텍스트의 해 석과는 무관하다는 이론이 결국 정립되기에 이르렀다. 물론 허쉬 Hir sc h 같은 학자에 의해서 최근에 다시 작가 의도의 중요성이 대 두되간 한다 .126) 해석자가 제멋대로 해석할 수 없는 최소한도의 기준 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 기준이 바로 〈작가가 뜻한 바〉라 고 허쉬는 자기의 이론을 펼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허쉬의 입장은 대부분의 보통 사람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입장과 닮기만 했을 뿐, 전문바평가 • 해석학자들에겐 설득력 행사룰 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 려지고 있다•

126) E. D. Hir sc h , Jr. , Validit y in Inte r p re ta t i on , pp.46- 47, p. 68.

슐라이에르마허나 딜타이의 해석학적 이론이 음악적인 의미 해석 에 작용된 성과의 검토를 〈한국음악론으로서의 음악해석학〉을 위한 전초전으로 펼치려고 하는 이유는 1) 음악학이리는- 정신과학의 분 과학이 성립하는 시기의 시대정신을 이해한다는 것이 일단 우리의 입장에서도 필요하다는 것과 2) 감정미학 내지 내용미학적 입장이, 본유개념적 차원에서는, 인간을- 위해서 보편적으로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믿을 뿐만 아니라, 우리 현실을 위한 번안을 마련할 수 있디는­ 것도 믿기 때문이다. 먼저 음악학에 있어서의 역사주의와 음악해석학이 19 세기에 어떻 게 대립되고 있었는가에 대한 검토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역사

주의의 개념은 여러가지 방식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인간생활의 사상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등의 현상은 본질적으로 역사적 산물이라고 보는 입장과 통한다. 음악 이해의 길도 역사의 앎에서 비롯된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으므로 결국 음악 관련적 역 사주의가 주장될 수 있다. 다른 한편 역사주의의 약점을 극복하겠다 고 나선 음악해석학의 입장도 19 세기에 동시에 대두되었었는데, 이 두 조류가 동시에 발생하여 상호보완적 관계를 가진 것도 우연이 아 닌 것으로 알려진다. 역사주의적 관심과 음악해석학적 관심이 서 있 는 입지조건의 공통점은 직접적 이해가 불가능·한 역사적 텍스트를 해석자가 직면하고 있다는 것을 서로가 인정한다는 데에 있다. 역사 학자에게는 과거가 덱스트이고 음악해석학자에게는 구조 전개적 역 사를 내재하는 음악이 텍스트가 된다. 특정 텍스트의 탄생 맥락을 찾음으로 해서 그 텍스트의 의미를 찾 겠다고 나선 의도는 두 종류의 역사주의를 낳고 만다. 어느 쪽이든, 하나의 역사주의에 오리엔데이션이 된 사람은 그 쪽과 관계되는 해 석관을 가지게 된다는 중요한 사실을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한다. 가 치중립적 역사주의는 가치지향적 역사주의의 입장과 다르다. 모든 대상은 역사적 조건이라는 원인 때문에 생긴 것이니까, 결과로서의 대상이 가지는 상이점에 어떤 탓울 추궁할 수 없다. 모든 〈다름〉이 〈같음〉에 해당될 수도 있다는 해석관과 통한다. 가치지향적 역사주의는 보편적 진리가 무엇이라는 것을 정해 놓 고, 그 정함의 눈금에 맞게 역사를 풀이하려는 입장이다. 진리관 자 체가 역사적 산물이라는 것을 인정히는· 것이 역사주의니까, 보편적 진리를 얻는 수단으로서 역사적 요인들의 우월성 (사적 확실성이 있는 재료의 가치를 인정함으로……생기는)의 기치를 인정하고, 그가치를운 반하는 재료들의 확보를 통해서 보편적 전리가 무엇인지 알 수 있 게 된다는 점에서, 보편적 전리의 정함은 좋다. 그러나 그것이 좋다

라는 사실과 다음의 사실을 혼동하면 되지 않는다. 가치를 인정받을 만한 재료가 없을 경우(영원히 없을 수 있음)에 직면한 역사가에게 주 어지는 벽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가 있다면, 위의 보편적 진리 운운은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수 없다 는것이다. 가치중립적 역사주의는 물론 보편적 진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 는다• 시공간이 다론 지역의 상황적 전리(진리의 속성이 서로 다물 수 있는 전리)를 모두 인정한다. 가치중립적 역사주의자는 모든 남을 이 해하는 입장이니까, 모든 남의 현재 (과거 기준적 현재이든 현재 기준적 현재이든)를 서술하겠다는 입장이고 서술된 결과의 가치 문제를 따지 지 않는 입장이다. 그런데 모든 남을 이해하는 입장이 언제나 가능 한가의 문제가 미해결 사항으로 남아 있다. 이익의 상충으로부터 해 방될 수 있는 것이 인간일 수 있을지 모르나 이익의 상충이 가치중 립적 역사주의를 용납하지 못한 정치 • 경제적 사례는 역사에서 얼 마든지 찾을 수 있다. 니체의 자기 민족 우월주의 같은 것도, 이런 사고의 범주에 속할지 모른다. 아무튼 가치지향적 역사주의는 보편 적 진리관과 〈상관〉이 되지만 이익의 상충관의 문제와도 〈상관〉이 되며, 이러한 〈상관〉들이 낳은 실제의 역사적 사건 또한 여러가지 양태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역사주의는, 이렇든 저렇든간에, 객체 • 대상 • 역사 등이 사고의 전 개 과정에서 주인이 된다. 다시 말해서 역사주의는 주체 내지 주관 울 지워 버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근거로 〈역사적 맥 락의 관점에서 ……보 면〉이라는 말을 〈나라는 인간의 맥락에서 …… 보면〉이라는 말보다 더 중요시하는 입장을 내세운다. 그래서 음악 이 해의 경우도, 역사주의적 입장에 선 사람은 작품 탄생의 역사적 맥 락을더 중요시한다. 그러나 음악해석학의 입장은 해석자의 해석관이 토대가 된다는 의

미에서 객체 • 역사 관련적 맥락보다 주체 • 해석 관련적 맥락을 더 중요시한다. 이 말은 인간 생존에서 유발되는 잡다한 역사적 관계성 이 경험되어지는 근거가 바로 해석 당사자인 인간의 생존 그것이라 는 뜻이다. 모든 의미 발생의 근거라든가 이해가 가능하게 되는 원 천적 이유가 이해자의 생존에 의존적이라는 뜻이다. 생존자는 마음이 작동하는 이치에 순응한다. 마음이 어떤 것을 이 해했다라고 말해지려면 그 어떤 것의 구조와 유사한 마음의 구조가 형성되어 있고, 또 그 마음과 그 어떤 것이 만났을 때 가능해진다. 그런데 이 만남의 내용은 소통 사항을 운반하는 기호로 표시될 수 있다. 이 기호가 자연언어 관련적일 수도 있고 인공언어 관련적일 수도 있는데, 음악해석학자들은 전자의 기호가 관여될 때에만 음악 적 소통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크랫츠슈마르는 인공언어로 이루어 진 음악의 형식들을 표현의 수단으로 보았기 때문에, 형식주의자와 는 달리, 형식을 정신적 내용의 포장에 불과하다고 빈정대고 있을 정도이다. 딜타이는 자연언어 관련적 기호로 환원될 수 있는 인간감 정의 유형을 대별한 후 음악이 그러한 유형들의 감정과 연관될 수 있다는 해석적 가능성을 펴기도 했다 .127) 인간감정을 희노애락으로 유 형화시킨다는 것을 하잘것없는 감정의 분류법이라고 말해 버릴 수 없듯이, 딜타이의 유형학적 관찰법도 경솔히 무의미한 것으로 취급 할 수만은 없다. 오히려 유형이 해석학적인 툴 역할을 한다고 하는 편이 더 옳을지 모른다. 음악과 이 유형 사이를 원할하게 접목시키 려는 시도라든가, 그러한 시도의 결과를 덱스트로 삼고 그 덱스트의 의미를 풀어 보려고 시도한 모든 노력은 음악해석학이 탄생하기 훨 씬 전부터도 있어 왔다 .128) 단지 음악해석학이 태동된 후로는 그 집

127) C. Dahlhaus(ed.), Beitr a ge zur Musik a /i ~ chen Hermeneutik , p.14-16 . 128) E. L ipp man 의 The Problem of Mu sica l Hermeneutic s : A Prote s t and Analy sis,Ar t and Phil o soph y : A Sym p os iu m , ed. by Hook , 1966.

목을, 그냥 신자의 자격이 아닌, 종교학자의 자격에서 시도해 보려고 했던 것뿐이다. 그래서 음악의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해 석소 129) 를, 음향내적 상황성에서 찾는 화용론적 음악해석학과는· 달리, 음향의적 사항으로부터 찾으려고 했던 초기 음악해석학이 발생됐다 는 것이고, 슐라이에르마허의 경우는 작가 의도, 딜타이의 경우는 역 사 내지 종교 ,130) 쉐링 Scher i n g의 경우는 문학 13” 을 해석소로 삼아 보 려는 시도들이 행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노력들은 음악 울 음악으로 두지 않고 음악 아닌 것으로 둔갑시키는 약점을 안고 있다는 이유에서 도전을 받게 되는 것이다.

129) 의미를 부여하는 계기. R. Scholes 의 Semio t i cs and Inte r p re ta t i o n(New Haven : Yale Un ive rsity Press, 1982), p.143 . 130) C. Dahlhaus(ed .), Be itra ge zur Musika l isc hen Hermeneutik , pp.11- 14. 131 ) C. Dahlhaus(e d.), Be itra ge zur Musik a lisc hen Hermeneutik , pp.2 3-26.

4.2.3 화용론적 음악해석학 음악을 그냥 음악으로 둔다는 말은 음악을 음악 아닌 것의 수단 취급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음악을 가장 음악답게 대접한다는 뜻 이 된다. 나의 삶을 나의 삶으로 둔다는 것과 남의 삶에 대한 수단 으로 둔다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음악의 의미를 음악 그것에서 찾자는 입장과 음악 아닌 다른 어 떤 곳에서 찾자는 입장 사이에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 다른 어떤 곳 의 위치는 역사적으로 변해 왔다. 노래의 가사 • 종교적 의식 • 표현 관련적 감정 등과 연결시켜서 음악의 의미를 찾자는 입장도 있어 왔 는데, 그것은 음악을 다론 어떤 것의 수단으로 보자는 입장이다. 특 히 기악이 벙어리냐, 말을 하느냐라는 물음에 접했을 때, 자연언어 구실을 못하는 기악언어는 벙어리 취급을 많이 받아 왔다. 그런데

벙어리가 드디어 말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음악을 음악으 로 두어도 되게끔 하는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음악이 감정표현 수 단이 되지 않으려면 벙어리가 되어서도 되지 않고, 벙어리가 된다손 치더라도, 벙어리말로써라도 말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무언으로 행하는 동작언어도 분명히 말을 한다. 그런데 동작이 언 어가 될 수 있으려면 조건이 필요해전다 .132) 동작의 전후 관련적 〈상 황〉과 동작언어의 형성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상황〉이 해석소를 만 들기 때문에 동작이 의미 발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해석하는 위 계구조적 차원에서 그 기능을 발휘하기 때문에 동작언어의 표현력 이 다양해전다. 정체가 영원히 규명되지 않고 말아 버릴지도 모를 〈인간〉을 동작언어에 담을 수 있는 이유도 이 위계구조적 차원에서 의 동작이 마련하는 해석소의 복잡미묘한 상황구조적 기능 때문이 다.

132) C. Dahlhaus(ed.), Beitr a ge zur Musika lisc hen Hermenetuik , pp.1 48-58.

동작은 기호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해된 기호는 그 기호의 해석자 의 마음에 다른 기호를 생기게끔 할 경우가 있는데 〈뒤의 기호〉가 〈앞의 기호〉의 해석소가 된다 .133) 주인과 하인의 관계가 있다고 하고 둘이서 어떤 방에 들어왔다고 했을 때의 상황을 가정해 보자. 주인 이 방에 들어선 후, 〈아, 이 방이 왜 이렇게 덥나〉라고 말했다고 하 는 경우, 위의 말은 동작에 비유된다. 앞뒤의 상황 설정이 성립되지 않으면 그 동작은 물론 해석소를 만들지 못한다. 그러니까 〈뒤의 기 호〉 발생은 있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주인과 하인의 관계라는 어떤 특정 상황의 설정 때문에, 〈아, 이 방이 왜 그렇게 덥나〉라는 〈앞의 기호〉(동작기호)는 〈더우니, 너는 창문을 열어라〉라는` 〈뒤의 기호〉가 생기게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상황이 전제되어야 하고, 〈앞의 기

133) R. Scholes 의 Semio t ic s and Inte r p re ta tio n 참조.

호〉를 이해한 해석자의 마음이 전제될 때의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죽 해석소 발생 운운은 이런 상황이 전제될 때의 이야기이다• 모든 생체는 생성 논리를 가진다. 하나의 〈상황〉을 생체에 비유하 면, 〈상황〉도 생성 논리에 입각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상황〉의 삶 이라고나 할까. 이 삶은 〈생체로서의 상황〉이 적절한 삶 관련적 기능 울 행할 때 유지된다. 여기서 우리는 〈상황 기능〉이라는 어휘를 추출 해 낼 수 있다. 상황에는 전언이 발신되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 가 령 발신자와 수신자의 거리가 멀면 소통을 위한 상황 기능이 적절 하지 않게 된다. 해석소 생성에 문제가 되는 경우에 비유될 수 있다• 설사 거리가 가깝다고 하더라도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에 심한 소음 이 가로놓여 있는 경우 역시 소통을 위한 상황 기능이 적절하지 않 게 된다. 상황 기능을 고려 속에 놓고 기호 사용자가 기호의 의미 해석에 접근하는 법을 화용론적 접근법이라고 말할 수 있고, 음악기호의 의 미 해석을 그러한 접근법을 통해서 하는 것을 화용론적 음악해석학 과 관계된다고 말할 수 있다판 상황의 생성 논리가 문제가 된다는 이야기인데, 상황의 생성은 〈형상 생성〉과 〈과정 생성〉의 단계가 위 계구조적 차원에서 작용함으로써 이루어진다. 형상 생성은 객체에서 도 이루어지고 주체에서도 이루어진다. 과정 생성의 경우도 마찬가지 이다. 객체를 〈너〉(죽 덱스트), 주체를 〈나〉(죽 해석자)라는 어휘에 비 유해 본다. 그리고는 디음과 같은 문장의 서술을 통해서 〈너〉와 〈나〉 의 관계를 음미해 보기로 한다.

134) C. Dahlhaus(e d.), Beitr a ge zur Musik a lisc hen Henneneuti k, pp.1 48-58.

〈나〉는 〈너〉를 알고, 〈너〉는 〈나〉를 알게 하고, 라는 식 의 소통 상황이 있게 되는 경우, 〈너〉는 자율적 가해성을 위계구조적 차원 안에서 가전 대상에 해당되고, 〈나〉는 그 대상의 분리성 • 고정성 관

련적 기표 • 기의를 동일한 구조적 차원에서 아는 주체에 해당된다. 이러한 〈나〉와 〈너〉가 있을 경우, 〈나〉를 이루는 요소의 합침과 〈너〉 를 이루는 요소의 합침은 전달 현상을 낳는다고 말할 수 있다. 전달 현상이 이루어지고 있을 때, 〈너〉는 덱스트 • 객체 • 구조 • 형상, 〈나〉 는 해석자 • 주체 • 역사 • 과정 등에 해당된다. 과정이란 어휘에는 설 명이 붙어야 한다• 〈나〉에 해당되는 〈과정〉은 덱스트의 수용 과정을 뜻하고, 텍스트의 구조가 형성되는 과정도 있음으로, 너에 해당되는 과정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미 형성된 덱스트가 있 고 그 텍스트의 의미 수용 과정으로서의 과정과 텍스트 구조의 형 성 과정으로서의 과정이 있다는 것이니까, 너의 과정과 나의 과정이 있다는 것이다. 이해는 나의 형성 과정 성립과 연결되고, 설명은 너 의 형성 과정에 대한 앎과 상관될지 모른다. 너의 형성은 개별요소 의 관계가 전체구조와 연관 짓기 위해 관련된 관습(통시적 요인)과 그 관습의 체계(공시적 요인)가 있을 때 가능해진다. 이 관습과 체계 가 화용론 운운시에 나타나는 구조의 양상을 이룬다. 이 〈구조〉의 양상은, 그 발생과 해석의 문제에 있어서, 〈역사〉적 차원과 독립적 으로 생각될 수 없다. 여기서 〈역사적〉이란 말은 의적 의미와 내적 의미를 동시에 가진다. 덱스트 형성에 관여되는 기표 • 기의의 탄생 • 성립 그 자체가 역사적 산물일 뿐만 아니라 텍스트 자체도 역사적 산물의 구조물이라는 의미에서 작품의적 역사를 가전다는 것이고, 텍스트는 기표의 언어 논리적 연결로 생성되는데, 이 연결의 선상에 서의 전후관계가 역사적 관계를 이룬다는 의미에서 작품내적 역사 를 가진다는 것이다 .135) 그러니까 화용론적 음악해석학은 〈너〉와 〈나〉 사이의 소통 문제를 의적, 내적 역사가 상관되는 특정 상황 설정 밀

135) 내적 역사의 생리에 대한 설명은 Adorno 의 On the Problemo f Mu sica l Anaylsi s 에서 잘 설명되고 있다.

에서 이루어지는 〈너〉와 〈나〉의 관계를 디루는근 입장이다. 그러니까 보통말을 할 수는 없고, 음악말(보통말을 못한다는 의마에서 벙어리말 혹은 동작언어에 비유되는)만을 할 수 있는, 그런 음악(여기서는 특히 기 악을 지칭함)에서의 의마가 의미로서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가라는 질 문을 더 구체적으로 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음악의 의미가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그 대답은 역사적으로 변 해 왔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가사 • 종교적 의식 • 표현된 인간감정 등이 의미의 출처라느니 기악의 절대미가 의미의 출처라느니, 의견 이 분분했다. 의미 출처관에서도 이렇게 많은 변천 과정을 겪었지만, 특정 공간 관련적 체계로서의 의미 구조를 가전 텍스트 자체내에서 도 의미변천 과정을 겪는다는 것을 안다는 사실은, 앞에서도 언급한 것과 같이 시간적 역사(의적 변화)와 공간적 역사(내적 변화)가 있다 는 사실에 대한 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하자는 뜻이고 이 강조는 공 간적 역사 형성의 과정을 밝힘으로써 화용론적 음악해석학의 근거 를 밝히자는뜻도 된다. 공간적 역사의 형성은 해명된 의미 개념 (죽 주체에게 이해된, 연주 된, 〈됨〉이 아니라 〈되어감〉으로서의 의미 개념)괴- 해명 전의 의미와 상 관되는 작품개념 사이의 관계 문제가 옳게 검토될 때에 가능해진다. 이 문제는 객체 관련적(자율적 가해성 형성 관련적) 〈형상과 과정〉 136)

136) 졸저 『음악의 이해』(서울 : 민음사, 1985), p.2 9.

이 주체에게 어떻게 파악(주체내에서도 〈형상과 과정尺븐 작동됨)되느냐 의 문제와도 상관이 있다. 네가 내가 되는 순간을, 복음의 육화에 비 유될 수 있을지도 모를, 구체화되는 순간이라고 한다면 이 구체화의 순간이 음악적 의미 이해의 핵심적 순간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 구체화는 표피층과 심층층에서 역동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때문에 심층층의 구체화 속에서의 개별요소들의 위치 변화를 안다는 것이

중요하게 된다. 그러니까 작품의 의미 이해에는 시간적 역사(음악관 변화 관련적 배경 ) 관련적 해석소와 공간적 역사(구조적 기능, 측면에서 의 형상과 과정으로서의 배경) 관련적 해석소가 모두 작용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시대상으로서의 구조 관련적 해석소와 개별작품 관련 적 해석소 모두가 화용론적 음악해석법에 작용된다는· 것이다. 물론 해석소의 출처를 디옴코卜 같이 생각할 수도 있다. 기능음악이라고 생 각되어지는 음악의 의미 해석에 작용되는 해석소(사회적 요소 작용), 절대음악이라고 생각되어지는 음악의 의미 해석에 작용되는 해석소 (심미적 요소 작용), 소통음악으로 생각되어지는 음악의 의미 해석에 작용되는 해석소(언어적 요소 작용) 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상이한 해석소가 있다는 말은 음악의 이해방식을 위한 상 이한 답변이 나울 수 있다는 이야기이고, 각각의 답변과 상관되는 음악적 시대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것둘의 인정은 그 시대 속에서 탄생됐던 개별 작가의 의도나 작품과 상관 시키지 않은, 어떤 시대적 구조를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는 뜻이 된 다. 그러니까 음악에 있어서의 의미 개념은 상황에 따라 달리 작용 되고 위계구조적 차원에서 작용하는 여러 해석소들과의 관계상황과 연관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단 하나의 보편적 해석소는 없다는 것 이다 .13 7) 음악해석소라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상황 설정만 되어 있으 떤 그 상황 속에서 생기게 된다는 뜻이고, 사회적 • 심미적 요소의 작용보다 언어적 요소의 작용이 해석소 역할을 할 때, 음악을 음악 으로 둔 채의 음악적 의미가 가장 옳게 풀리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 니까 음악에 어떤 의미가 있으니, 그 의미를 해석하자는 식의 생각 이 작용된 해석학은 틀린 것이라는· 이야기가 성립될 수가 있다. 음 악언어 형성의 상황적 맥락을 이해시키자는 식의 생각이 작용된 해

137) C. Dahlhaus(ed.), Beitr a ge zur Musika /isc h en Hermeneutik , pp.121 -58.

석학이 옳은 음악해석학이라는 것이다. 헤겔식의 〈내용〉이 있는 의 미 현상만을 낳는 기호의 앞뒤 연관만이 연관이 아니라, 베베른식의 〈형식〉에 의미가 있다고 봄으로써 생기는 기호의 앞뒤 연관도 중요 연관 사항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미적 • 사회적 요소의 작 용아 언어적 요소의 작용에 첨가되어지는 이유는, 그래서 절대음악 에 표현성이 있어지는 이유와 절대음악으로부터 음악 의미론적 차 원에서의 의미를 찾으려는 이유는, 음악 이전의 것으로 존재히는· 재 료로서의 음색 • 음질 스스로가 표현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베베른식의 〈형식〉에 의미가 있다고 봄으로써 생기는 , 기호의 앞 뒤 연관에 대한 유형별 연구가 시거에 의해서 행해진 일이 있는데, 그것을 요약해 본다는 것은 화용론적 음악해석학이 음악에 구체적 으로 응용된 예를 본디는- 의미에서 의의가 있으리라고 본다. 시거는 특정 상황에서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음악기호의 목록을 마음 속에 그린다. 생체이면 어느 것이나 원시적 성질 • 구조를 가지고 있 듯이 그 구조가 음악의 경우에도 적용된다는 의미에서, 음악의 원태 pro to m orph 격 에 비유되는 음활동을―, 음악의 중생식물 mesomorp h 격에 비유되는 음활동을 I 로 우선 표시한다. 그리고는 완전재생 holomor p h 격에 해당되는 다섯 유형의 자생적 음악형식이 있다고 주 장한다. 」 r 」 1- 노 E- 」 11 」 1 广 가 그것이다. 이 다 섯 개의 유형은 2 부 형식 혹은 3 부 형식적 성격을 띠고 있다. 시거 는 이 다섯 개의 음악 유형울 제 1 차원적 유형으로 본다. 제 2 차원적 유형은 이 제 1 차원적 유형의 변형 방식에서 나올 수 있다고 한다. 음조적 • 운율적 다양화 • 분리화 • 생략화 등의 기법을 고용하면서 제 1 차원 유형을 확장 • 연장시킨다는 뜻이다. 제 3 차원에 대한 언급도 시거는 한다. 2 부 형식과 3 부 형식이 상대적 의존성 내지 독립성을 가지면서 4 부, 5 부, 6 부식으로, 음악형식이 확대되어 갈 수 있는 차 원을 두고 제 3 차원적 유형이라고 한다.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음악

의 유형은 결국 이 제 1, 제 2, 제 3 차원적 음악 유형에 속한다는 결론 을 시거는 그의 논문 On the Moods of a Music Lo gi c 에서 얻어 낸다 .138) 화용론이라는 어휘는 사용하고 있지 않았지만, 시거는 화용 론적 음악해석학을 마음에 그리고 있었던 것 같다.

138) Seege r , Stu die s in Musico lgoy , pp.6 4- 10 1.

화용론으로서 음악해석학적 입장에서 기악언어(벙어리 언어)가 언 어구실울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벙어리가 말울 한다고 해 서, 그 말의 논리가 성립된다고 해서, 또 그 말이 무척이나 아름답 다고 해서, 그 말의 존재 가치가 무조건 용납될 수는 없다. 이 말은 한국이 벙어리의 아름다운 말놀이에 놀아날 수는 없다는 의미와도 통한다. 예술작품을 〈너〉라고 한다면, 작품 수용자는 〈나〉에 해당된다는 말은 이미 했다• 작품은 〈존재 be i n g〉하고 있고, 수용은 〈형성되어져 가는 것 becom i n g〉이다. 그리고 존재는 완전에 , 〈형 성되 어 감〉은 〈된 것〉이 아니라는 점으로도, 비완전에 비유될 수 있다. 그런데 예술 존 재의 원래 이유는 〈너〉와 〈내〉가 하나가 될 때 있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139) 너는 너대로 있고 나는 나대로 있는 한, 너와 나는 무관한 사이일 수밖에 없다. 감상되지 않은 작품이나 연 주되지 않은 작품의 존재 가치가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감상이 나 연주는 결국 너와 나의 하나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너와 내 가 하나가 된디는· 말은, 형상 • 완전(신격)과 형상 과정 : 비완전(인간 격 )이 하나가 된디는 말과도 연결이 된다. 비완전이 완전과 동일하게 되어야 한다는 아이러니가 예술 존재의 원래 이유와 결부되어 있다 는것이다.

139) 김대웅 역 (Par kins on 편)의 『변증법적 미학이론』(서울 : 문예출판사, 1986), p. 171.

때문에 선입견은 언제나 전통이 제공한다. 그러니까 이해는 전통의 권위에 순종하는 일, 그런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구전통과 신전 통이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면 해석관도 역시 다른 차원에서 다 시 매개, 변경될 수 있음을 뜻한다. 하바마스는 가다머의 옳은 점은 옳은 점대로 인정하나, 구전통에 대한 복종 관련적 해석관보다 신전 통을 수립할 수 있는 것에 기여할 수 있는 매개물 제공의 의미를 강 조하면서 가다머를 공격한다. 특정 전통은 모든 전통이 통일된 상태 를 대표될 수 없다. 선입견이 전통에 복종하고, 그 복종에 의해서 인 간의 경험형식이 형성된다는 사실이 아무리 보편성을 지닌다고 하 더라도 말이다. 지배자의 선입견과 피지배자의 선입견이 역사상 한 번도 같아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인간에게 주어지는 〈현재〉라는 것은 언제나 우리에게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선입견이 맞부딪치는 장 소를 제공한다. 맞부딪침이 〈하나〉가 되지 않은 상태의 현재를 〈하 나〉로 보아 버리자는 역사관을 가다머가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에서 하바마스의 공격을 받는다. 역사적 현재를,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측 면에서 조명하느냐, 능동적으로 창조하는 측면에서 조명하느냐에 따 라서 그 의미는 매우 달라진다. 한국음악론으로서의 음악해석학적 입장은 현재를 능동적으로 창 조하지는 의지와 맥을 같이한다. 창조는 매개물 자체의 창조 및 제 공에서부터 비롯된다. 구체적 매개물도 중요한 기능을 하겠지만, 추 상적 매개물의 제공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할 때도 있다. 한국음악계 의 시대적 요청은 구체적 매개물과 추상적 매개물의 역학적 제공이 라고 나는 믿는다. 이 글도 그러한 매개물의 하나가 되고 싶다. 해 석 주체의 초역사적 관념을 비판하는, 〈지금 여기〉를 문제시하는 비 판적 해석학의 성립 가능성 모색 의지 바로 그것이 하나의 매개물 구실을 하지 않을까 하는 믿음에서 이러한 바램을 가져 본다. 문학 적 텍스트의 정치적 해석을 시도한 제임슨 J ameson 의 업적 142) 에 비

4.2.4 한국음악론으로서 의 음악해석 학 이 글을 위한 나의 전제적 가정은 〈나〉를 〈우리 모두〉로 대치시 켜야 하고, 우리 모두가 지금 여기서 생체를 유지시키고 있는 한국 인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음악과 한국인 모두가 하나가 되는 지점 의 발견을 희망하면서, 기존의 서양음악 • 국악 • 고급음악 • 대중음 악 • 동서양의 민속음악 • 제 3 세계 음악 등이 우리에게 하나됨을 허 락하는지에 대한 반성을 출발점으로 한다. 한국음악론으로서의 음악 해석학이 가능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중요한 물음으로 생각한다는 것 0] 다. 현대 해석학자 중의 어떤 이는 인간은 누구나 반성 이전적 이해 권에서 이미 살고 있다고 한다. 직접적 이해와 매개적 이해라는 말 이 있다고 하면, 어떠한 때에 직접적 혹은 매개적 이해를 했다고 말 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검토해야만 반성 이전적 이해권에서의 삶이 라는 말의 의미가 풀린다.베베른음악과관계되는잉여성 redumdan­ cy 개념에 눈 떠 있지 않은 사람은 베베른 음악류의 직접적 이해 는 불가능하다. 가령 조성적 기법에 의해서 작곡된 신작이 발표되었 울 때, 그 신작을 처음 듣고 직접적 이해를 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 을 경우, 그 직접적 이해는 실상 사전의 매개적 이해에 근거하고 있 음이 사실이다. 달걀과 닭의 관계와 같이, 직접적 이해와 매개적 이 해는 순환성 속에 있다• 최초의 인간 경험을 직접적 이해와 연결시 켜 설명하려는 사람이 있을지 모론다. 갓난 아이의 감관은 매개 이 전의 것이니까, 갓난 아이의 감관적 경험은 직접적인 것이라고 말하 면서 말이다. 감관은 의계 관련적 매개재료를 경험하는 것이지, 그 매개재료에 의한 매개 없이, 그러니까 무대상적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물론 구체적 매개와 추상적 매개를 구별할 수 있 다. 인간 성장은 구체적 매개에서 추상적 매개의 세계로 돌입하는

것이기도 하가 때문이다. 의미 발생은 매개된, 이해 관련적 경험 형식이 전제될 때에 가능 하다. 이 말은 경험 형식이 변하면 동일한 물리적 • 사회적 • 문화적 대상의 의미도 변한다는 뜻이다. 서로 다른 선이해 관련적 세계는 서로 다른 이해의 세계를 낳는다는 말이다. 세계에 대한 이해방식을 달리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앎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좋은 정치문화의 창조를 원하는 이유도 정치 관련적 선이해의 틀을 바람 직하게 가져야만 우리의 삶이 바람직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 다. 가다머 Gadamer 역시 경험은 매개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 실을 전리로 입증한 것 같다 .140) 해석학의 중요 개념으로 〈선입견〉과

140) H. Gadamer, Truth arn i Meth od(Crossroad, 1975) 참조.

〈응용〉개념을 분석한 후, 가다머는 낯선 텍스트의 이해 과정에서 작 용되는 선입견의 역할을 설명했다. 해석자는 덱스트가 시키는 대로 그 의미를 그냥 받아들이는 격에 비유되는 수동적 수용자가 아니라 는 것이다. 해석관은 매개된 결과이기 때문에 덱스트를 해석하는 과 정에서 필연적으로 작용되는 기존 관념을 해석지는· 운반하고 있고, 그 운반에 의해서 해석은 조건지어진다는 것이고, 〈응용〉이라는 것 은 개별적 해석 행위 바로 그것이라고 가다머는 말하고 있다. 그리 고 해석 행위는 현재적 관심 (연주 행위가 언제나 현재적 관심의 소산이 며 해석 행위이듯이)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하바마스는 여기까지의 가 다머 견해는 옳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결국 가다머를 비판하고 나 선다 .141) 해석관이 매개된 것이라는 말은 매개의 선후와 강도 여하에 따라 그 관이 변할 수 있다는 말과 동의어일 수 있다. 매개의 효과 관련적 강도의 문제에 있어서 〈전통〉만큼 그 효과가 센 것이 없기

141) 최성만 역 (P. Bur g er) 의 『전위예술의 새로운 이해』(서울 : 심설당, 1986), pp. 9-10.

142) F. Ja meson, The Politi c al Unconcsiou s(Meth u en, 1981) , p.1 7.

견할 만한 음악 덱스트와 관련되는 음악해석학적 업적이라도 나울 날이 있으리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4.3 음악수사학(音樂修史學) 역사와 수사(修史)는 다르다 .143) 수사는 기록이요 기록함이다. 기록 행위의 결과요 행위 그 자체이다. 어떠한 기록이 참되고 옳고 좋 으냐, 어떠한 기록 행위가 참되고 옳고 좋으냐. 우리는 이런 질문에 옳은 대답을 해야 한다. 수사학을 하는 이유도 이런 문제의 중요성 에 있다.

143) 음악수사학은 「동합음악학의 분과학으로서의 음악수사학」이라는 제목으로 r 音 • 樂 • 學 l 』(서울 : 민음사, 1988) 발표한 글을 가필한 것임.

〈내가 나냐, 나에 대한 기록이 나냐〉라고 물었을 때, 내가 나이지 나에 대한 기록이 나일 수 없다. 역사에서도 이러한 주장을 할 수 있 다. 〈실재했던 역사가 역사냐, 기록이 역사냐〉라고 물을 수 있다. 원 하든 원하지 않든간에 우리는 실재했던 역사보다 그것에 대한 기록 울 역사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말의 의미가 정확히 이해되어야 한 다. 인간은 누구나 이력서를 가전다. 이력서는 일종의 기록이다. 베토 벤이 누구냐라고 물었을 때, 〈베토벤이 베토벤이다〉가 아니라 베토 벤의 이력서가 베토벤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실재했던 베토벤을 알 수 없다. 베토벤의 이력서밖에 알 수 없다. 베토벤과 같이 살아 본 일도 없고, 설사 베토벤이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그를 백 퍼센트 그대로 알 수 없다. 그의 이력서를 안다는 말은 그의 이력서에서 볼

수 있는 연보 같은 것과 그 연보 속에 있는 작품, 그 작품을 있게 한 인간으로서의 베토벤으로 일컬어지는 기록된 전기, 이런 것들을 통 해서 베토벤을 안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실재했던 베토벤보다 〈베토 벤 작품〉(이것 역시 일종의 기록입 스스로를 기록한 결과임 )이 그의 이 력서를 만드는 핵심적 요인이 되고, 오늘날 베토벤이 〈우리〉와 〈역 사〉에게 중요한 것은 그의 작품 때문이지, 우리가 모르는, 또 알 수 도 없는, 〈베토벤이 베토벤〉이라고 하는 그러한 베토벤은 아니다. 〈베토벤이 베토벤〉이라고 하는 그러한 〈베토벤〉에 대한 앎이 중요 한 것은 사실이나,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없다. 그를 알려면 그의 부 분일 수밖에 없는,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그의 전부일지도 모를, 그 에 대한 정확한 기록을 통하는 길밖에 없다. H i s t or y는 실재 했던 역 사, h i s t or i o gr a p h y는 기 록으로서의 역 사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H i s t or y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h i s t or i o gr a p h y밖에 알 수 없다. 이렇게 말한다는 것은 〈역사가 역사 다〉가 아니라 〈기록이 역사다〉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함의 의미가 생각하기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역사 가(歷史家)라기보다 수사가(修史家) 죽 기록자에 의해서 역사가 만둘 어진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수사가의 기록관이 역사를 만든다는 말이 되니까, 좋은 역사를 만드는 데에 필요한 좋 은 기록관이 소중해진다는 뜻이다. 역사의 만듦이 신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서 된다는 믿음이 뒷받침되고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역사의 만듦이라는 말은 인간 행위롤 특정 방식으로 통제하는 방 법을 만든다는 뜻이다. 만들어전 역사와 관련되는 전통이 수립되고 그 전통은 인간 행위 방식을 통제한다. 그러므로 역사의 만듦이라는 말의 의미는 중요하다. 국사 교과서 왜곡 사건으로 한일간이 맞서고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한국 자손들의 마음은 〈침략〉 개념, 일본

자손들의 마음은 〈전출〉 개념을 전통적 사고로 운반시키겠다는 것 이 아니었던가. 역사의 만듦은 인간의 삶을 좋게 간섭할 수도 있고 나쁘게 간섭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도 수사가의 기록관은 그 역할이 중요하다. 우리가 수사학적 훈련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Hi s t or y는 애초부터 인간이 알 수 없는 대상이고 h i s t or i o gr a p h y만을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후자만을 알 고 말자, 그것에의 앎울 얻는 차원에서 안주하고 말자는 식으로, 인 간이 앎의 문제를 놓고 쉽게 타협하지는 않는다. 수사학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전자와 후자 사이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서 있는 것이 다. 후자를 통해서 전자를 알 수 있게 하는 그러한 후자이기만 하면 우리는 H i s t or y를 알 수 있지 않느냐는 바램에서 후자를 통해서 전 자를 알 수 있는 방법의 연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후자(죽 기록)를 열심히 연구하면 상당히 많은 부분의 전자를 알아낼 수 있다. 음악 을 대하는 태도가 시공간에 따라서 역사적으로 다르고 또 변해 왔 다는 사실에의 앎은 기록만이 제공한다. 기록의 덕택으로 우리가 확 실히 알게 되는 사항이 있게 됨이 증명되는 것이다. 두 가지 서로 다른 그러나 상관 관계가 있는, 역사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역사철학이라고 한다. 기록으로서의 역사를 믿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따지기 위해서 〈기록 결과〉와 〈기록 행 위〉에 대한 논리적 • 개념적 • 인식론적 특성을 밝혀 내는 일을 하는 비판적 역사철학과 역사라는 총체 개념이 있는 것으로 믿고, 그것의 패턴이나 진행 과정이 있는 것으로 믿고, 그것에서 어떤 중요한 의 미를 발견하여, 현재의 삶을 위한 좋은 방안을 찾고 싶어하는 사변 적 역사철학이 있다 .144) 바람직한 수사가가 되려면 역사철학에 대한

144) W. Dray , Ph ilos op h y of Hi so ty , The Enc yclop e d ia of Phil os og y,V ol 6, pp. 247-54.

기본 소양을 갖추어야 한다. 여기서 역사철학의 기본 개념을 점검해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장 옳은 수사를 하기 위해서 기록보다 실재 관련적 역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려는 역사철학적 입장이 있다면, 또 다른 한편엔 역사를 옳게 알려면 수사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하고 수사를 통해서 만 역사에의 앎이 가능한 것을 믿고 그것에의 비판을 더 중요시하 는 역사철학적 입장이 있을 수 있다. 역사를 알고 싶어서 노력하는 학문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양쪽 입장이 마찬가지다. 앎에 접근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전체를 먼저 보려는 입장과 부분이라도 좋으니, 보이는 것부터 보자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전체가 보이기까지 기 다리자는 노력을 하겠다는 입장과 보이는 것부터 그 속성을 분석 • 비판해 보겠다는 그러니까 일을 하나부터 시작하겠다는 입장아 있 을 수 있다. 무엇이 가장 가치 있는 것이냐롤 찾으려는 입장과 사실 하나씩을 밝혀 나가자는 입장이 있을 수 있듯이 말이다. 신의 섭리에 의해서 역사가 전전된디는· 역사관과 인간의 힘에 의 해서 역사가 진전된다는 역사관이 있다. 각 역사관의 정당성이 이론 적으로 증명되는 세련도와 깊이 내지 폭에는 차이가 있을지 모르나, 역사철학의 본질적 쟁점이 역사를 신이 주도하느냐 인간이 주도하 . 느냐의 문제 주변에서 맴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신의 섭리 에 의해서 역사가 전전된다는 역사관을 피력한 최초의 인물 중 영 향력을 막강하게 발휘한 사람이 성 오거스틴이다. 오거스틴은 역사 를 두 지역 사이의 갈등으로 보았다• 하늘의 도시(교회)와 땅의 도 시(국가)리는 두 지역 사이의 갈등이 그것이다. 갈등은 괴로운 것이 다. 그러나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가 있다. 역사관이 의미 부 여에 작용을 한다. 갈등 뒤에는 반드시 하늘의 도시가 승리하는 〈역 사〉가 창조되리라는 확신이 작용된다. 이 확신은 계시에 의해서 얻 어진다. 그러므로 오거스틴의 이론은 인간의 힘에 의해서 역사가 전

보된다는 입장과는 다르다.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인간 사회가 진보 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역사가 진전되어 간 다고 믿는다• 역사의 목적이 세속적 사건의 연쇄와 그것의 인과관계 의 결과에 의해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구원에 의 해서 성취되는 것으로 믿는다. 그래서 역사의 최후는 역사의 밖에 있다라는 말까지 나오게 된다. 〈신의 도시〉를 믿는 것을 허구로 보는 학자둘이 많다는 것은 알 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허구로 믿기 전에 그 믿음의 확실성 을 위해서도 오거스틴 사상의 현대성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그 러기 위해서는 〈예견감〉 개념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인간은 누구나 예견감을 가전다. 앞으로 일어날 사건에 대한 예견 을 한다. 예견대로 되고 되지 않고의 문제 때문에 예견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예견감이 발동되지 않는 사람은 살아 있는 사람이 아 니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이 말이 과장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음악 의 문제와 연결시켜서 설명해 보자. 예견감을 가진다는 말은 예견하 는 것이 언제나 맞아야 된다는 말과는 상관이 없는 개념이다• 예견 감은 그것이 발동되는 것으로 존재 가치가 있다. 예견 내용의 옳고 그릇됨 혹은 맞고 맞지 않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특정 인간이 특정 예견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 인간의 미래적 삶을 결 정하는 요인이 된다. 이 말의 의미를 풀어 보자. A(ant ec edent ph rase 격)라는 음악적 사건이 벌어졌다고 하자. 그 사건 다음에 예견되는 음악적 사건을 C(conseq u ent p hrase 격)라는 사 건이라 하자. 그런데 이 C 라는 사전의 성격은 하나로 고정되어 있 는 것이 아니다. 고정되어 있는 것이 C 라면, 예견이고 무엇이고의 문 제가 야기 될 수 없다. C 라는 사건이 예견된다는 말은 C1, C2, C3 …… Cn 중 어느 하나를 예견한다는 뜻이다. A 라는 음악적 사건을 예 1 이 라고 하고, C1 을 예 2, C2룰 예 3 이라고 가정하자. A 를 들은 사람 중

에는 C1 류를 예전하는 사람, C2 류를 예견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기 에 그 예견감의 속성은 같은 것이 아니다.

예 1

예 2 예 3 검卜卜 따;JJ

한 사람의 음악적 생애는 〈예술음악〉, 다른 한 사람의 생애는 〈대 중음악〉과 상관된다. 모짜르트의 예견감은 모짜르트가 예견하는 C 중의 어느 하나가 될 것이다. 이 말은 모짜르트의 예견감이 모짜르 트의 음악적 삶을 낳게 된다는 말이다. 음악적 사건을 듣고 예견감이 전혀 작동되지 않는 사람은 음악의 세계에서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예견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음악의 세계에서 자기 음악을 있게 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하고 있는 사람이다. 좋은 음악적 삶을 살 것이냐 그렇지 않을 것이냐의 문제는 좋은 예견감을 가지고 있 느냐 가지고 있지 않느냐로 판가름이 난다. 가령 정치적 삶의 경우 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예견감이 작동되지 않는 사람은 정치가가 될 수없다. 인간 마음의 경우는 어떤가. 마음이 살아 있고 없고의 문제 역시 언제나 어떤 예견감과 상관이 있어진다. 예견감이 없는 마음은 마음

이 작동되고 있지 않는 죽은 마음이다. 이번에는 C1 을 〈기도함〉, C2 를 〈도모함〉에 비유해 보자. A 라는 사건이 해결되는 방식의 문제에 있어서 C1 을 기대하는 사람과 요를 기대하는 사람은 각각 다론 삶 울 살 수밖에 없다. 이 말은 역사 발전에 서로 달리 기여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C1 의 경우는 계속 기도만 하고 살 것이며, C 은 경 우는 자기 나름의 〈도모〉를 하면서 살 것이다. 이 〈도모〉가 또 하나 의 A 를 낳을 것인지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지는 모를 일 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C1 • C. ;7} 서로 다론 음악을 낳듯이, 여기서는 〈기도하는 마음〉과 〈도모하는 마음〉이 서로 다른 역사를 낳는다는 사실만 확실히해 두면 된다. 〈기도하는 마음〉은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라는 마음, 〈도모하는 마음〉은 〈내 뜻대로 하겠다〉는 마음과 상관된다. 이러한 마음은 성 오 거스틴이 살던 시대에서뿐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도 발 견된다. 오거스틴 사상의 현대성 운운을 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여 기에 있다. 자기의 이익 • 관심 추구가 목적이 되는 목적적 마음과 인간 전부 의 이익라든가 어떤 일이 그 일이 이루어져야 할 순리대로 이루어 져야 한다는 것이 목적이 되는 마음이 있다. 그러니까 무목적적 마 음이 있다. 〈도모하는 마음〉은 목적적 마음, 〈기도하는 마음〉은 무 목적적 마음이댜 물론 자기를 위해서 기도를 한다든가, 인간 전부의 이익을 위해서 도모하는 경우는 그 성격이 틀릴 수 있다. 그러나 여 기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C1 관련적 예견감과 C2 관련적 예 견감이 각각 서로 다른 역사를 낳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해 두자는 것이다. 오거스틴 류의 예견감과 그 성격을 달리하 는 예견감 조성의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되면 될수록 기도 관련적 예 견감의 현존성에 대한 대비에 철저를 기해야 한다. 인간 행위의 결 과의 하나인 역사 관련적 기록 역시 특정 예견감과 무관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오거스틴의 역사관과는 판이하게 다른 역사관이 계몽주의 시대에 와서 대두된다• 세속에서의 인간 활동의 연쇄 관계의 결과를 역사로 보아야 한다는 사상이 그것이다• 역사의 중요성을 인정하게끔 하는 일에 공헌을 한 철학자들이 18 세기경에 이르러 서서히 등장하였다. 비코, 홈, 볼테르, 헤르더 같은 현자들이 그들이다• 칸트 역시 역사 는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입장을 취한다. 그리고 역사는 인간 에 의해서 진보된다고 믿었고 그 전보의 근거를 인간 속성에서 찾 았다. 인간은 능력을 가진다. 인간에게 원래부터 있는 능력과 태어난 후 습득에 의해서 생긴 능력이 있다. 전자는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는 능력이고, 후자는 특정 인간만이 가지는 능력이다• 선천적 능력과 후 천적 능력이라는 말로 대치될 수 있는 개념이다. 〈인간이 가지는, 말 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선천적 능력인가, 후천적 능력인가. 그리고 인간이 음악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선천적 능력인가, 후천적 능력인 가. 여기서 능력의 개념이 정확히 이해되어야 한다. 〈인간이 말을 할 수 있는 능력〉 운운에서 〈능력〉이리는· 말의 의미 에는 두 가지가 있다. 〈말을 배울 수 있는 능력〉이라는 뜻과 〈특정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뜻이 그것이다. 동물은 말을 할 수 없으나 인간은 누구나 말을 할 수 있다라는 의미에서의 말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 누구에게나 선천적으로 있는 능력이다. 특정 언어 를 구사하는 능력과는 별개의 능력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나 능 력 개념에 대한 이해는 생각하기보다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그 이 유는 우리가 특정 언어를 하나도 구사할 줄 모르는 인간을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간이라고 일컫지 않는다는 데 있다. 말할 수 있 는 능력은 반드시 특정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능력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특정 언어 구사력은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는 능력이

아니다. 특정 인간군만이 특정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을 가진다. 말을 배울 수 있는, 인간에게 원래 있는 능력 덕분으로 특정 언어를 구사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을 때, 우리는 〈그는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가 졌다〉라고 말한다. 음악적 능력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이다. 음악을 배울 수 있는 능 력은 인간 누구나 원래 가지고 있는 능력이지만, 그 능력의 작동으로 해서 특정 음악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습득하지 못했을 경 우에는 우리는 〈그는 음악적 소질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하지 않는 다. 선천적 능력은 누구나 타고났지만 그 능력이 후천적 능력화될 기회를 가지지 못했을 경우의 인간은 〈능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되고 만다 .145) 그러나 인간에게 특정 능력이 생기게 되는 원천은 인 간에게 원래 있는 능력이리는., 〈선천적 능력〉 개념과 상관되는 능력 이 있기 때문에 생간디는· 문제가 논의의 핵심을 이룬다. 역사가 인 간에 의해서 진보되어 간다고 믿을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이 〈선천 적 능력〉 개념과 관계된다.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있는 선천적 능력 개념이 진보 개념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145) 앞 장에서 논의된 음악적 소질 문제를 상기하라.

인간에게는 〈밥울 먹지 않으면 배고파질 능력〉이 원래 주어졌다. 그래서 인간이면 누구나 배우지 않고도 배고파할 줄 안다. 배고프면 밥을 찾고 배가 부르면 밥을 잊는 능력이 행사됨으로 해서 여러가 지의 희비쌍곡선이 연출된다. 인간에겐 〈형편이 나빠지는 것보다 나 아지는 것을 원하는 능력〉이 원래 있다. 이 능력이 전보를 낳는 근거 다. 갑이 나아전 형편으로 고려되는 것인지 울이 나아전 형편으로 고려되는 것인지의 문제와 상관되는 판단력은 선천적 능력과 상관 이 없다. 그것은 후천적 능력과 상관된다. 특정 언어를 구사할 수 있 는 능력 즉 영어 혹은 일어를 구사하는 능력의 속성이 다르듯이, 갑

울 낫다고 판단하는 판단의 속성과 을을 낫다고 판단하는 속성은 후 천적으로 습득된 기준에 의한다. 그러나 나아지는 것을 원하는 능력 을 선천적으로 타고난 덕분으로 후천적 능력이 생기는, 그러한 나아 짐을 추구하는 인간 능력 때문에 역사는 전보할 수밖에 없다. 배고 파할 줄 아는 원래의 능력이 있다고 해서 밥 찾는 능력이 자동적으 로 습득되는 것이 아니듯이, 나아짐을 원하는 능력이 있다고 해서 〈나아짐〉을 자동적으로 얻게 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리고 배가 부르면 밥을 찾지 않을 때도 있고, 인간의 밥 찾는 시간이 시공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듯이, 인간의 사정에 따라 〈나아짐〉을 찾지 않을 때도 있고, 찾으려고 할 경우라고 해도 잘 찾아지지 않을 때도 있 고, 찾는 시간이 시공간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고, 나아짐의 내용이 문화권이나 계층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각각 서로 다른 〈나 아짐〉을 찾을 때가 있다. 그래서 역사의 〈나아짐〉이 순탄하게 일직 선으로, 그리고 쉽고 빨리 전행되는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나아짐 울 원하는 인간의 속성 때문에 역사는 마침내 인간이 원하는 나아 침을 얻게 할 것임은 확실하다. 헤겔 역시 역사의 전보를 믿었던 사변적 역사철학의 거봉이었다. 그는 정신이 스스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역사로 보았다. 정신 성 장의 최후에는 철대 정신이 생기는 것으로 보았고, 역사의 목적과 주제를 〈절대〉가 시간 속에서 실현화되는 것으로 보았다. 여기서 언 급되고 있는 〈정신〉의 개념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러려 면 헤겔의 출발점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는 헤르더에 대한 언급이 있 어 0 l=겠다. 헤르더는 문화를 하나의 조직적 통일체로 보았다. 그리고 문화는 그 문화를 소유하는 시대의 정신에 의해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정신이 문화를 낳고 문화가 인간의 삶의 방식을 낳는다는 말이 된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조직적 통일체라는 어휘의 뜻

울 이해하면 그 의미가 풀릴 것이고, 그 의미가 풀리게 되면 그 풀 림의 맥락 안에서 시대의 정신이라는 말의 의미가 이해되리라고 본 다. 음악작품을 음이 관여되는 조직적 통일체라고 일컫는다. 이 말은 음 건축물에 형식이 있다는 뜻이고, 여기서 형식이라는 말은 부분을­ 붙여서 〈하나〉로 만들어 그것에 생명감을 불어넣는 힘이라는 뜻을 나타낸다. 음악을 이루는 데에 사용되는 음들은 이 힘에 의해서 통 제된다. 문화가 조직적 통일체라는 말은 문화에 형식이 있다는 뜻이 고, 여기서도 음악의 경우에 일어난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힘 즉 부분을 붙여서 〈하나〉로 만드는 데에 작용되는 힘이 있다는 뜻이 된 다. 힘은 무엇을 낳는 근거 역할은 한다. 시대 정신이 문화를 낳는 근거 역할을 한다면 그것 역시 벌써 하나의 힘이다. 손오공이 아무 리 재주를 부려도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밖에 놀 수 없게 되는, 그 렇게밖에 놀 수 없게 하는 힘에 비유될 수 있으므로 이 힘은 하나 의 〈손바닥〉 개 념 을 낳는다. 몇 사람이 놀 수밖에 없는 작은 〈손바 닥〉이 있겠고, 많은 사람이 놀 수 있는 큰 〈손바닥〉이 있겠다. 손바 닥에 신념이 있다면 인간은 그 신념 안에 갇혀서 살아야 하는- 운명 울 안고 있다. 시골 • 도시 • 국가 • 세계는 모두가 나름대로의 손바닥 울 가지고 있고,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손바닥과 불안하게 하는 손 바닥 같은 것이 있을 수 있다. 좋은 손바닥과 나쁜 손바닥도 있을 수 있겠는데, 헤겔에 의하면 손바닥의 성격은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바 뀔 수 있다고 한다. 손바닥이 바뀌게 되려면 사회 조직 • 제도를 바 꾸어야 한다고 했다. 손바닥의 성장 즉 정신의 성장은 역사적 인간 둘의 업적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했다. 절대정신에 도달한다는 말 은 인간이 원하는 가장 이상적인 손바닥을 얻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손바닥의 본질은 인간에게 〈자유〉를 제공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나의 눈에 비치는 헤겔을 통해서 보면 이상적 손바닥을 얻는 길

에 세 가지가 있다. 예술 • 종교 • 철학을 통하는 길이 그것이다. 음 악인의 관심사는 예술이다. 그리고 예술은 아름다움의 문제와 상관 된다. 헤겔도 아름다움의 문제를 놓고 많은 고심을 했다. 아름다움은 그것을 있게 하는 객체와 그것을 아름답다고 경험하는 주체가 있어 야 운운된다. 객체는 감각적 대상, 주체는 인간의 이성이라고 헤겔은 말하였다. 그리고 객체와 주체의 하나됨이 아름다움이라고 했다. 말 하자면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일 수 있도록 번역되어 있는 상태가 아 름다움이라는 것이다. 보이지 않음으로써의 내용이 겉으로 나타나야 만이 아름디움을 인간이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 나타남은 감각 관련적 경험 형식 안에 존재한다. 헤겔은 나타남의 방식에 세 가지가 있다고 했다. 주체와 하나가 되지 않고 있는 상태의 객체, 주체와 하나가 되고 있는 상태의 객체, 이렇게 객체의 성격이 먼저 크게 둘로 나뉘어진다. 객체와 그 객체 가 의미하는 바가 하나가 아닌 상태, 객체와 그 객체가 의미하는 바 가 하나인 상태, 이렇게 주체와 하나가 되지 않고 있는 상태의 객체 는 다시 둘로 나누어진다. 주체와 하나가 되고 있는 객체는 그것 자 체만으로 나타남의 방식 하나를 감당한다. 결국 이렇게 해서 나타남 의 방식이 셋이 된다. 그 셋이 상징예술, 고전예술, 낭만예술이라는 이름을 가진다. 그러니까 상칭예술과 고전예술은 주체와 하나가 되 지 않고 있는 상태의 객체를 용납하는 예술이고, 낭만예술이 주체와 하나가 되고 있는 객체만을 용납하는 예술이 된다. 말하자면 고전음 악은 객체적 〈미〉만을 중요시한디는· 뜻이다. 〈내〉가 그 미와 하나가 되고 되지 않고의 문제보다 그 미와 남으로 남아 있는 채 그 미를 아름다운 대상으로 구경만을 하고 있는 〈나〉의 형편을 용납하는 예 술이 고전예술이 된다. 그러나 낭만예술은 주체의 자유의 가치룰 소 중히 여긴다. 자유는 객체와 주체가 하나되는 지점에서만 얻어진다 는 의미에서 헤겔은 낭만음악의 가치를 고전음악의 그것보다 더 상

위에 올려 놓고 있다. 기록을 두고 비판적으로 그 전위를 검토해 보자는 경향의 발생은 약 백여년 전부터의 일이다. 19 세기 이전에는 역사를 학문으로 심각 하게 생각한 철학자의 수효 자체가 얼마되지 않았다. 기껏해야 지나 가는 길에 잠깐씩 언급해 본다는 식 이상의 것은 아니었다. 이런 식 의 언급은 그 기본 발상에 있어서 역사를 우습게 생각한다는 것과 상관된다. 실상에 있어서는 아리스토텔레스도 역사를 우습게 생각했 다. 역사는 지식을 시만큼도 운반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데카르트 역시 역사를 우습게 본 사람이다. 과거를 있는 그대로 그려낼 수는 도저히 없기에 역사의 값어치는 별 것이 아니라고 했다. 19 세기에 와서야 역사는 과학과 접목이 된다. 비판적 역사철학이 서서히 그 정체를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다. 역사의 개념보다 수사의 개념이 중요시되기 시작한다. 인간 사회는 모두가 신학적 • 형이상학적 • 과학적 단계를 거친다고 주장하는 콩트는 학문적 방법 론의 통일성을 쟁점으로 내걸었다. 자연이나 인간이나간에 그것이 만일 연구의 대상으로 등장하는 경우에는 그 방법론은 하나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주장을 위해서 동원되는 어휘의 수 효나 어휘 사용자의 사고의 심도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제 외하고는, 오늘날까지 계속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146) 자연과 학이건 사회과학이전간에 과학이고 싶으면 과학이어야 한다는 것이 다.

146) 실증주의와 관념주의의 대결, 사변과 비판의 대결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이해 할 필요가 있다.

과학은 〈일반화〉 작업 이상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역사적 작업이 〈일반화〉의 자격에 도달하지 못하라는 법이 없다는- 주장을 콩 트는 한다. 스펜서의 역사 이론이 과학적아라고 인정받는 이유도 결

국 역사 발전은 〈확실하지 않는 상태 • 비한정적인 상태 • 동질의 것 이 조리가 닿지 않게 마구잡이로 얽혀 있는 상태〉로부터 〈확실한 상 태 • 한정적인 상태 • 이질적인 것이 조화롭게 얽혀 있는 상태〉로 움 직인다는 일반론의 설득력 덕분이다. 맑스의 힘이 막강한 이유 역시 그의 사고의 과학성 때문이다. 헤겔의 관념성과 관련되는 인간 자유 의 문제를 착취로부터의 자유로 인식하고 그 자유의 성취 방법을 과 학적으로 해명함에 있어서의 성공이 무서운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일반화 작업은 인간의 섬리 작용의 결과라고 보는 입장의 설득력 때문에 일반화와 과학의 개념을 동일시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나타난 다. 아 주장에 맞서는 주장이 없었던들 역사가 학문으로서 그 면모 를 오늘날과 같이 갖추지는 못했을 것이다. 자연과 정신의 본성은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에서부터 역사의 권위는 실추 의 위기를 모면한다. 빈델반트 같은 철학자는 역사는 특정 사실의 〈묘사 • 서술〉과 상관되는 것이라고 했다. 역사는 일반법칙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 〈경우〉를 상대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래서 그 개별적 〈경우〉의 정확한 서술만이 중요한 것으로 취급되었 다. 결국 보편적 일반화와 개별적 일반화가 개념적으로 구별될 수 있다는 주장이 성립된다. 자연과학과는 달리, 역사는 〈사실〉 서술 관 련적 학문이라기보다 〈가치〉 판단 관련적 학문이라는 주장의 대두를 보게 된 것이다. 결국 딜타이가 등장하고 만다. 그는 19 세기의 가장 중요한 비판적 역사철학자다. 인간정신의 의화의 의미를 해석하는 문제와 상관되는 역사, 그래서 그 의화 현상을 이해하려고 하는 역사, 이 역사에 있 어서 가장 적철한 이해 방식이 있다고 딜타이는 주장한다. 〈너〉(역 사도 〈너〉의 하나)와 무관한 〈나〉로서의 그러한 〈나〉가 아니라, 〈너〉 가 된 〈나〉로서의 〈나〉가 정확히 설정되기만 하면, 우리는 〈너〉 죽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고 히는- 이른바 이해 방식 관련적 이론을

개전한다. 역사를 하는 목적은 〈너〉 즉 〈과거〉를 이해하기 위한 것만이 아 니다. 〈너〉를 바판하기 위한 기능도 있다. 〈너〉에의 비판은 역사 의 식의 소유자만이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역사 의식이란 무엇인가. 역 사 의식은 교회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부터 발생된다. 16 세기경 에 그러한 관심이 생겼다. 교회의 유지 • 발전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 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는 입장을 비판하자는 목적에서 〈역사 의 식〉은 싹튼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계시를 믿는 전통적 의식 구조를 바판하지는 것이었다. 교회가 하나님 때문에 만들어전 것인지는 모 르나, 교회의 발전 내지 변혁은 인간의 관여에 의해서 이루어전다는 생각이 역사 의식을 낳는다. 옛 교회와 지금의 교회는 다르다. 이 다 름을 있게 한 당사자는 〈계시〉가 아니라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이 인간의 관여 때문에 교회의 모양은 변했고 이 변함이 교회 역사를 낳는 것으로 본 것이다. 교회 역사가 이렇게 낳아전 것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곧 역사 의식이다. 그러니까 역사 의식은 과거를 더 정 확히 이해하는 일을 도울 뿐만 아니라 전통 바판 기능까지 함으로 해서 더 바람직한 미래사회를 위한 새 전통 수립에도 한몫을 하게 된다. 과거 이해의 문제와 관련이 있는 역사 죽 수사(기록)의 기능 에 두 가지가 있게 되는 것도 이 때문에 당연한 사실이 아닐 수 없 다. 기록아 과거 이해의 수단이 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 비판 역할을 동시에 하게 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는 말이다. 수사가 과거 이해를 위해서 존재함과 동시에 전통 비판과 더불어 바람직한 새 전통의 수립을 위해서 있는 것이 되려면 역사 의식만 을 가전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만드는 수사가의 예견감에 주체성이 있어야 한다. 예견감에 주체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의 의미 가 무엇인가. 이 말의 의미를 풀기 위해서 경험적 귀 • 비경험적 귀 • 비경험적 경험의 귀 등, 몇 개의 개념 어휘를 소개할 필요가 있다.

음악수사에 종사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음악을 알아야 한다. 그렇 다면 음악을 안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특정 음악을 둘을 때 그 음악을 음악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의 있음을 뜻한다. 음악적으 로 어떤 것을 경험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경험을 하는 〈나〉라는 인간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음악을 경험하는 것이지 어느 누구도 〈내〉 경험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런데 〈내〉가 음악을 경험 한다라고 말할 때의 그 〈내〉가 누구냐가 문제다. 〈내가 내가 아니 다〉라는 말을 우리는 가끔한다. 정신이 너무 없어서 일을 급히 처리 해 버리고 난 후, 일을 그렇게 처리한 것을 후회할 때 〈내가 정신이 나갔던 모양이지, 그때엔 분명히 내가 나 아니었던 모양이지〉 식의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여기서 〈내가 나 아님〉이라는 말은 주체의 상실을 뜻한다. 자기의 뜻대로 어떤 일을 처리한 것이 아니라 자기 아닌 어떤 힘이 자기에게 그러한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게 만들어 버 렸디는 뜻이다. 비록 자기가 행한 짓이긴 하지만 옳은 의미에서 보 면 자기가 행한 짓이 아니라 어떤 다른 힘(죽 남에 해당)이 시키는 대로 일을 처리해 버린 꼴이 된다는 뜻이다. 자기는 남의 꼭두각시 에 불과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경험의 귀를 가전 자는 경험의 노 예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자기 멋대로 음악을 〈하지〉 못하고 그러 한 음악을 〈하려면〉 지켜야 할 전통에 복종만을 하고 있는 자가 되 고 만다는 뜻이다. 음악을 듣는다는 말은 〈특정 방식〉으로 음악을 둘어야 한다는 뜻인데, 이 방식이라는 것은 사전에 정해전 불변적 조건에 반응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사전에 정해전〉 이라는 요인 때문에 〈특정 방식〉은 〈내〉가 자의적으로 작용하게 된 다기보다 〈남〉(죽 기존 조건)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야만 한다는 성격 에 묶인다. 물론 음악을 〈하려면〉 무작정 자기 멋대로만 하면 된다는 말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비경험적 귀로 음악을 얻마든지 〈할 수〉 있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 지금 여기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경험적 귀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경험을 하지 않는 혹은 할 수 없는 귀라는 뜻이 아니다. 특정 관습에 닫혀 있는 귀가 아니라 모든 관습에 열려 있는 귀라는 뜻이다. 하나의 특정 전통이 나 관습에 복종만 하는, 관습의 노예격인 귀가 아니라, 음악적 자유 인이 가지고 있는 귀이다. 종족음악학자들이 일컫고 있는 〈복수 음악 성 bi- m usic a lit y>1 47) 역시 일종의 비경험적 귀의 세계로 가는 길목에 서 만나게 되는 음악성이다. 모든 종족의 음악에 가치중립적 판단을 작용시킬 수 있는 귀이다. 홈이 일찍이 Of the Sta n dard of the Tas t e” 라는 글에서 이와 비슷한 개념에 대해서 언급한 바가 있다• 음악을 둘을 때 혹은 음악에 대한 사고를 할 때 관습개념과 본유개 념 양쪽 모두를 상호 교차적으로 작용시킬 수 있는 귀가 비경험적 귀이다. 말하자면 포괄적 음악성을 가전 자의 귀이다.

147) 이강숙 편, 『종족음악과 문화』(서울 : 민음사, 1982), pp.1 72-80 . 이석원은 bi- mus i c ality를 〈이중음악성〉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물론 바경험적 귀에 문제점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음악의 가치를 동일시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비경험적 귀의 존재 이유가 정당화되려면, 그러한 귀로 음악을 경험해야 한다. 경험적 귀로 음악 울 경험할 때에 생길 수 있는 취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비경험적 귀의 역할을 중요시하긴 했으나, 비경험적 귀 역시 특정 음악을 경 험할 때 그 존재 이유가 있게 된다. 경험적 귀이든 비경험적 귀이든 간에 귀는 〈들음〉과 연결되지 않을 때에는 귀의 존재 이유가 없어 진다. 듣지 않는 귀가 어찌 귀이겠는가. 듣지 않는 귀는 자기와 자 기를 이간시키는 일을 하고 있음에 비유될 수밖에 없다. 귀는 들음과 상관이 없어질 때에는 주체를 상실하고 만다. 그러므 로 비경험적 귀 역시 경험을 할 때 귀 구실을 한다. 이 때문에 〈비 경험적 경험의 귀〉 개념이 성립된다. 다시 말해서 〈비경험적 경험의

귀〉야말로 상실된 경험의 주체를 되찾는 계기를 마련한다. 전통이나 기존 조건이 시키는 대로 들으려고 하는 귀가 아니라, 모든 전통과 모든 기존 관습의 강요를 뿌리치고, 그것으로부터 해방된 귀로 음악 을 들으려고 하는 주체가 생긴다. 그러나 비경험적 경험의 귀가 경험 대상을 선택하지 않고 있을 때 와 선택을 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는 그 성질이 많이 달라진다. 경험 대상을 스스로 선택하지 않고 있을 때의 귀는 음악을 들을 자세만 관념적으로 갖추고 있는 귀일 뿐이다. 귀 구실을 구체적으로 하는 귀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 때문에 비경험적 경험의 귀는 자발적으 로 들음의 대상을 선택할 때 비로소 주체 구실을 할 수 있게 된다. 남이 선택해 주는 입장을 허락하는 귀는 벌써 주체적 귀일 수가 없 다. 그러니까 비경험적 경험의 귀는 선택을 하는 귀이다. 귀가 음악 을 하늘에서만 듣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땅에서도 음악이 이루지게 구체적 음악을 듣게 한다. 문제는 선택 대상이 어떤 것일 때 주체적 선택이 되느냐에 있다. 선택을 옳게 해야만 수사 대상도 옳게 선택 된다는 이야기이고, 그래야만 옳은 기록을 남길 수 있고, 결국 바람 직한 새 역사 창조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경험적 선택이 아 니라 비경험적 선택이라는 점이 선택자를- 기쁘게 만들고 선택자의 주변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기쁘게 만들 것이다. 우리에게 남은 문제는 가장 참되고 옳은 선택이 무엇이냐를 아는 일에 있다. 나는 〈역사성을 낳는 어떤 것〉의 선택이 가장 바람직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성은 인간의 삶에 주는 영향의 문제와 상 관된다. 영향을 주지 못하는 사건도 있고 영향을 주는 사건도 있다. 영향이 남아 있지 않는 경우도 있고 남는 경우도 있다. 영향이 남으 면 역사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남음은 있음과 연결된다. 있음은 자율적 생존성을 가진다. 남이나 권위 등으로 인해 있는 것이 아니 라, 스스로 살고 있기 때문에 〈있음〉이 남는다. 실제로 〈있음〉하고

있는 것을 〈있음〉으로 알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경우 는 〈알고 보면〉 살아 있음이 밝혀진다. 자율적 생존성은 〈알고 보 면〉 살아 있음의 상태를 항시 자족적으로 간직하고 있음을 뜻한다. 잘못된 전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계기 마련이 역사성을 낳을 때가 많 다. 기존 전통과 현실적 삶이 맞지 않는데, 그냥 그것의 노예로 남 아 있는 삶은 새로운 전통과 역사는 창조하지 못한다. 자기 없음(경 험적 귀)에서 자기 있음(비경험적 경험의 귀가 선택에 관여되는 귀)의 상 태로 가게 되는 길이 역사성을 낳기도 한다. 어떠한 역사가 가장 좋은 역사인가. 우리에게 좋은 기록이 좋은 역사이다. 우리에게 좋은 기록은 그 기록의 기능이 〈참 자기〉와 〈참 한국〉이 하나 되게 할 때에 생긴다. 음악적 참 자기는 비경험적 경 험의 귀에서 발견된다. 참 한국은 참 한국인이 살고 있는 곳이다. 몸 이 한국인이라고 해서 참 한국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한국인 의 삶을 좀먹게 하는 타국의 첩보원격의 한국인은 참 한국인일 수 없다. 모든 한국인의 삶을 좀먹게 하는 잘못된 정치인도 결국 참 한 국인일 수는 없다. 참 자기와 참 한국이 하나가 되게 하는 음악이 있다면 그러한 음 악은 어떠한 것일까. 그러한 음악을 기록 선택 대상으로 삼는 예견 감을 가진 자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수사가이다. 음악적 모국어에 바탕을 둔 참 한국 노래의 창조와 관련되는 예견감의 창조가 이 때 문에 시급한 것 같다. 개인의 삶 그리고 〈실존〉의 가치, 그 개인이 예술을 통해 감동함으로써 〈너〉와 〈나〉가 하나가 되는 순간의 가치 를 중요시하는, 음악의 조전 • 인간의 조건 • 사회의 조건 • 수사의 조 건을 주체적으로 인정하는· 자의 열린 귀와 눈을 중요시하는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음악의 창조가 시급하다. 그러한 음악의 출현을 예 견하는 예견감만이 그러한 음악을 낳게 하는 근거가 될 것이고 또 옳은 수사학을 가능케 하는 근거가 되리라고 믿는다.

인간은 예외 없이 전통 안에서 산다. 예의가 없다는 사실에 대한 정 확한 인식의 중요성을 우리는 무시할 수 없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 는 전통 안에서 살 때의 인간은 전통에 의해서 행위의 구속을- 받는 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넘어가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기 때문이 다. 그리고 이러한 앎에서 출발하는- 사고 행위의 습관을 가지자라고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구속 요인으로 작용될 때의 전통은 인간을 모두 〈같은〉 사람으로 만든다. 모든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행위할 수 없게끔 한다. 한국 언 어 전통권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예의 없이 한국어 문법의 구속 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과 같다. 문법의 구속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예의 없이 〈한국어〉를 사용하면서 살아야 한다. 한국어를 사용하면서 산다는 차원에서는 모든 인간이 〈같음〉의 범 주에 속한다. 인간은 〈같음〉의 범주에 속하기도 하지만, 〈다름〉의 범주에 속하 기도 한다. 〈같음〉의 범주에 속해 있다는 말은 인간 누구나 동일한 행위를 해야 하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행위함으로써 생길 수 있 는 서로 다른 행위 결과를 낳을 수 없게 됨을 뜻한다. 〈다름〉의 범 주에 속할 수도 있다는 말은 〈한국어〉를 사용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동일할지 모르나 한국어 구사 내용을 각기 달리 가질 수 있음을 뜻 한다. 인간은 자기 마음대로 느끼고 생각한다• 느끼고 생각한 것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말을 하며 살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이러한 차 원에서의 인간은 〈다름〉의 범주에 속한다. 모두가 서로 디른` 말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라는 뜻이다. 〈다름〉의 범주와 관련되는 인간의 삶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 세계에 있어서 〈다름〉으로서의 인간은 더욱 더 중요시된다. 개성이라든가 독창성 등의 문제는 모두 〈다름〉의 범주 에 속하는 성격의 것들이다. 그러나 이 〈다름〉을 있게 하는 근거 없

이는 〈다름〉이라는 것이 애초부터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름〉을 있게 하는 근거와 그 근거의 중요성에 주목해야 한다. 〈같 음〉이라는 전제의 성립 없이는 〈다름〉이 있을 수 없다. 인간이 전통 을 중요시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문제는 특정 전통의 가치에 있다. 좋은 전통이 있고 나쁜 전통이 있다면, 우리는 좋은 전통을 가져야 한다. 기존 전통을 정확히 이해 하고 전통 발전 • 진전의 패턴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 전 통을 적절히 바판함으로써 새로운 전통 수립에 대한 관심 가짐도 게 울리하지 말아야 한다. 이 관심은 최후에는 기록으로 남게 된다. 인 간은 얼마든지 서로 〈다르게〉 살아도 된다. 다르게 산다는 것에 문 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같게〉 살아야 하는 범위의 설정이 중 요하다는 것뿐이다. 이 중요성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하며, 이 범위 의 설정이 바로 음악수사학이 해야 할 일이다. 이런 의미로 한국 음 악수사학이 옳게 되고 되지 않고에 우리 삶 전체의 운명이 걸려 있 다는말이 가능하다. 과거는 있었던 그대로 절대로 재구성될 수 없다 •148) 그래서 역사의 개념을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하기로 한다. 있었던 그대로의 역사와 누구에 의해서 재구성된 역사가 그것이다• 있었던 그대로의 역사룰 대문자 역사 H i s t or y, 누구에 의해서 재구성된 역사를 소문자 역사 h i s t or y라고 일컫기로 한다. 대문자와 소문자 개념은 음악에도 적용 되고 음악역사에서도 적용된다•

148) 이 글은 계간 〈세계의 문학》 89 년 여름호(제 52 권)에 「음악수사학」이라는 재 목으로 발표한 글을 가필한 것이다. 이 글 역시 W. Dray , Ph ilos oph y of His tor y , The En 아 clop ed i a ~f Philo s ophy , Vol. 6, pp .247-54 를 공부한 결과로 쓰여진 것이다. 그리고 대문자 소문자에 대한 언급은 앞장에서도 했다. 다만 여기서 그것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앞의 〈음악해석학〉에서처럼 베토벤의 〈열정〉 소나타를 다시 논의

대상으로 삼아보자. 과거에 생긴 이 작품을 오늘날의 연주가들- 즉 작품의 해석가들이 재현시킨다. 재현시킨다는 말은 〈열정〉의 재구성 이 가능하다는 말갈이 들린다. 그러나 대문자 〈열정〉과 소문자 〈열 정〉이 있디는 사실을 인식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대문자 〈열정〉은 악보 속에 적혀 있는 〈열정〉이다. 소문자 〈열정〉은 연주가가 행한 연주 결과로서의 〈열정〉이다. 그런데 이 두 〈열정〉은 동일하지 않다. 이 세상의 어느 〈열정〉 연주도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동일하지 않다는 말은 〈있었던 그대로〉의 〈열정〉이 재구성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연주가에 의한 재현이 가능하니 재구성이 가 능한 것이 아닌가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재구성이 라는 말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문제다. 과거는 있었던 그 대로 재구성될 수 없다라는 말은 베토벤의 〈열정〉은 〈하나〉이고, 그 〈하나〉와 동일한 〈열정〉이 재구성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미 언급했 듯이 〈열정〉의 연주는 어느 것도 동일하지 않다. 유사한 것일 수는 있다. 유사한 재구성이라는밀은〈 있었던 그대로의 재구성이라는 말 과 그 뜻이 같을 수 없다 .149)

149) 이 문제에 대해서도 이미 「음악과 철학」 부분에서 설명된 바가 있다.

우리는 있었던 그대로의 과거가 무엇인지 모른다. 우리는 있었던 그대로의 과거 〈전체〉를 알고 싶어한다. 대문자 역사는 우리가 알고 싶은 대상이다• 소문자 역사는 특정 인간에 의해서, 〈있었던 그대로 의 과거〉로 〈생각되어진 것〉의 기록이다. 대문자 역사는 〈하나〉이지 만 소문자 역사는 〈여럿〉이다. 대문자 국사는 〈하나〉이지만 소문자 국사는 역사가의 수효만큼 많다 .• 대문자 음악은 하나이지만 소문자 음악은 음악가의 수효만큼이나 된다. 대문자와 소문자의 개념을 더 확실히하기 위해서 하나님이라는· 말 에 그것을 적용시켜 본다. 대문자 하나님은 누구인지 알고 싶은 대

상으로서의 하나님이다. 소문자 하나님은 특정 인간이 설명한 내용 으로서의 하나님이다. 대문자 하나님과 소문자 하나님은 절대로 동 일할 수 없다. 대문자 역사와 소문자 역사 역시 절대로 동일할 수 없 다. 과거가 있었던 〈그대로〉는 절대로 재구성될 수 없다는 말이 이 때문에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문자와 소문자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 우리는 역사학을 세련시킨다. 세련시킨다는 말은 역 사(대문자 역사)와 수사(소문자 역사)의 개념을 구별함으로써, 역사학 으로서는 서로간의 거리를 좁힐 수 없는 문제를 수사학이 해결하 려고 그것을 하나의 학문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대문자 역사는 그 속성이 밝혀짐으로써 우리에 의해서 기록될, 기 록의 대상이요, 소문자 역사는 기록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수사학은 소문자 역사를 옳게 함으로써 대문자 역사의 정체를 밝혀 보려는 노 력이다. 물론 이런 노력이 하나의 꿈일 수 있다. 역사 이성 비판의 저술이 나오기까지는 영영 꿈인지 모른다 .150) 본체와 현상이라는 말 울 빈다면 대문자 역사는 본체로서의 역사이고 소문자 역사는 현상 으로서의 역사일지 모른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현상뿐 151) 이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수사학적 노력 역시 꿈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 간은 허망한 꿈을 꾼다. 이 꿈이 인간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한다.

150) D ilt he y는 칸트가 『순수이성 비판』을 썼듯이 〈역사이성 비판〉을 쓰려고 했었 다. 그러나 그것을 결국 완성하지 못했다. 151) I. Kant( tr . by N. Kemp Sm ith ), Cr itiqu e of Pure Reason(London : Macm illan & Co LTD, 1963), pp.2 57-75.

안의 나와 밖의 나라는 개념을 구별한다면 안의 나는 전체요 밖 의 나는 부분이다. 안의 나는 사적 나요, 밖의 나는 공적 나다. 남들 은 공적 나만을 안다. 다시 말해서 남들이 나의 안은 절대로 알 수 없다. 알 수 없다기보다 안의 나라는 것이 처음부터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남들이 알 수 있는 것이 나의 밖뿐이라고

한다면 나의 안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있는 것〉이 아닐는지도 모론 다 .152)

152) 앞의 「음악수사학」에서 언급된 〈이력서〉 개념이 〈밖〉의 개념과 상동한다.

음악 역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역사의 안은 절대로 알 수 없다. 역사의 밖만을 안다. 밖은 안의 부분에 불과하다. 우리는 부분만 알 수 있고, 부분을 전체로 착각하면서 살고 있다. 역사학은 부분을 전체 구실을 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학문이다 .153) 그렇기 때문 에 수사학이 그것을 극복해 보려고 한다.

153) Seege r , Stu die s in Music o lgoy , p.2 .

한국에 양악이 수입된 지 백년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양악 백년 사〉 등이 나오고 있다. 여기서도 물론 대문자 양악 백년사와 소문자 양 악 백년사가 있다. 전자는 우리가 알고 싶은 대상이요 후자는 특정 음악역사학자에게 〈그렇게 생각되어전〉 양악 백년사다• 전자와 후자 가 동일하지 않다. 잘된 후자이면 전자의 부분이 될 수 있을 것이요, 잘못된 후자이면 전자를 잘못 〈그렇게 생각한〉 것이 될 것이다. 잘 된 후자라는 말은 믿을 수 있는 〈역사책〉을 뜻한다. 한국에 있어서 의 양악사는 아직 발달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문자 역사는 고사하고, 또 〈잘되고 못 되고〉의 문제는 고사하고, 소문자 역사의 수효 자체가 말이 되지 않을 정도로 적다 .154) 소문자 역사의 수효가 이렇게 적어가지고서는 대문자 역사를 알게 될 날이 올 때까지, 비록 비슷하게 알게 되는 날이 올 때까지라고 해도 우리 는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 소문자 역사의 수효가 적은 것이 현 실이라고 해서 대문자 역사에 대한 정확한 접근 의식의 소중함을 무 시하고, 아무렇게나 소문자 역사를 써내자라는 식의 사고는 더 위험 하다. 소문자 역사가 적으면 적을수록 우리는 수사학의 할 일과 그

154) 이유선, 『한국양악 백년사』(서울 : 음악춘추사, 1985) 등이 있을 뿐이다.

어려움을 더 깊이 인식해야 한다. 과거에 일어난 일 전체가 백 가지라면, 이 백 가지가 과연 전체냐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백 가지라고 한 말은 누가 한 말이냐, 〈역사〉가 한 말이냐, 〈역사가〉가 한 말이냐라는 질문을 던지면 이러 한 질문의 의미는 풀린다. 백 가지라는 것이, 〈백 가지〉라고, 어떤 역사가가 추려 놓은 것이 되고 만다면, 그 백 가지가 역사의 전체라 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추려진 백 가지는 그것이 아무리 잘 추려 졌다고 해도 대문자 역사는 될 수 없다. 대문자 역사의 한부분이거 나 대문자 역사와는 상관이 없는 이른바 꾸민 〈소설〉일 수밖에 없 다. 물론 추림의 기능이 소중할 수 있다. 잘된 소문자 역사의 가치 를 우리는 이 때문에 귀중히 여긴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알 수 있 는 것은 소문자 역사뿐이라는 사실도 새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소문자 역사를 통해서 대문자 역사를 알 수밖에 없다는 사실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대문자 역사를 알기 위해서 수많은 소문자 역사를 끝없이 만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체라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전체 그것〉은 다르다• 우리는 전체를 알고 싶은 것이지, 어떤 사람이 생각해 낸, 전체라고 생각되 어지는 것을 알고 싶은 것이 아니다• 추려 놓은 것은 수사다 .155) 추 린 것은 전체로 볼 수 없다. 어차피 전부를 언급할 수는 없으니까 부 분이라도 정확하게 언급할 필요는 있다. 그래서 과거는 요약되어질 수밖에 없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기억해야 한다. 역사 공부를 한다고 할 때, 우리는 그 말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 는가라는 질문의 의미를 한번 더 되새겨야 한다. 역사 공부는 누가 추려 놓은 것을 공부한다는 뜻일 수 없다. 하나님 공부는 하나님 공

155) H. Eg geb recht, His t o r i og r a ph y , The New Grove Di ct io nary of Music and Musicia n , Vol. 8, p.592 .

부이어야 한다. 누가 추려 놓은 하나님 공부가 옳은 하나님 공부일 수 없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대문자 하나님은, 알 수 없는 대상이 고 동시에 우리가 그것을 알고 싶어하는, 전체로서의 하나님이다. 소 문자 하나님은,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 내게 생각된 하나님, 혹은 다 론 사람에게 생각된 하나님, 하나님의 중요한 속성을 추려 놓은 하 나님이다. 대문자 하나님과 소문자 하나님이 동일한 것이 되길 우리 는 바랄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동일한 것인가가 문제다. 대문 자 역사(있었던 전체)와 소문자 역사(추려진 것)가 동일한 것인가가 문제라는 말도 이런 의미에서 하게 된다• 물론 초심자들은 추린 결 과를 공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초심자의 수준을 훨씬 넘은 조예 깊은 사람도 소문자 역사를 통해서 대문자 역사를 알 수밖에 없다 는 것을 결국 인식하게 된다. 광복 40 년 음악사를 쓴다고 할 때, 역사가가 잘 추려 놓은 40 년과 실제의 40 년은 동일한 것이 아니다. 대문자 40 년과 소문자 40 년은 동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을 동일하게 만들려고 하는 노력이 수사학 이다 .156) 대문자를 알기 위해서, 소문자를· 낳고, 소문자가 낳아지니 까, 그것을 통해서 대문자의 윤곽에 접하게 되고, 하는 것이 역사가 의 작업과 상관되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대문자 개념과 소문자 개념을 구별하는 수사가의 안목을 먼저 가져야 한다.

156) 이강숙, 「광복 40 년 음악사」, 《대한민국사〉(서울 : 대한민국사 편집위원회, 1985), pp,6 42-62.

역사 공부를 한다고 했을 때, 옳은 의미로는, 과거에 일어난 일을 공부해야 하는데 우리는 실상 〈책〉을 공부한다. 기록울 공부한다. 기 록을 낳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낳아전 기록을 공부한다. 대문자 공부 가 역사 공부일텐데, 소문자 공부를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역사 공 부를 한다고 할 때, 우리가 그 말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는가에 대

한 철저한 반성을 필요로 한다. 역사 공부라는 말은 우선 〈과거에 일어난 일〉을 공부한다는 의미로 받여들여야 한다. 여기서 과거에 일 어난 일이라는 말은 일어난 일 전체를 뜻할 수도 있고 부분을 뜻할 수도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과거에 일어난 일은 대문자 역사 를 일컫는 말일테고 그것을 안 결과가 소문자 역사일텐데 그리고 그 둘은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말을 이미 했으니, 소문자 역사는 필경 대문자 역사의 어떤 부분일 수밖에 없다. 부분이 아니면 대문자 역 사를 왜곡한 어떤 기록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과거에 일어난 일 을 공부한다는 말이 〈전체〉를 공부한다는 뜻인지 〈부분〉을 공부한 다는 뜻인지에 대한 물음을 던질 필요가 있다. 대문자 역사 공부인 지 소문자 역사 공부인지를 묻고, 역사 공부라는 것은 어느 쪽의 공 부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가령 음악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음 악사 공부를 한다고 할 때 그들이 하는 일은 〈과거에 일어난 음악 의 일〉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사책 공부를- 하고 있는데 이것 이 과연 음악의 역사 공부냐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고, 이 질문이 중요한 질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 일어난 일에 대한 공 부와 그것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되어졌음을 기록해 둔 책을 공부하 는 것은 동일한 것이 아니다. 개념적 혼동은 사고의 불철저성을 용 납한다. 역사와 수사의 개념적 차이에 대한 인식이 이 때문에 수사 학의 출발이 되는 것이다. 수사학은 수사에 대한 철학적 분석 작업과 상관된다. 수사는 물론 역사가가 〈하는 일〉이요 그 일의 결과다. 그 결과는 물론 기록이다. 책도 일종의 기록이요 사료 작성도 기록이다. 그러므로 수사학에의 접근으로 중요한 것은 〈역사〉와 역사가가 〈하는 일〉의 개념적 차이 에 대한 인식이다. 이 인식은 서로 다른 두 가지 질문의 의미에 대 한 성찰에서 비롯될 수 있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던지는 질문은 여러가지일 수 있다.

〈역사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은 상식적으로 던져지는 질문이다. 상식 적으로 던져지는 질문이라고 해도 꽤 심각한 질문이요 중요한 질문 이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역사가가 ‘하 는 일’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역사가 무엇이냐〉라고 묻 는 사람의 의식 구조와 〈역사가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라고 묻는 사 람의 의식 구조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역사가 무엇이냐라는 질문보 다 역사가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증 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계속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역사는 역사가가 하는 일 없이 〈있는 것〉이냐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대답은 분명히 〈있다〉이다. 그러나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그것은 역사는 역 사가가 하는 일 없이는 〈보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있는 것〉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음악이 음악 하는 사람과 독 립해서 존재할 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만 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다. 역사 공부를 하는 사람이 던지는 질문으로서 어느 질문이 더 옳 은 질문인갸 역사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중요한가, 역사가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중요한가. 대부분의 사람은 앞의 질문을 더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상 앞의 질문도 지극히 중요한 질문이다.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앞의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답을 해보려고 일생을 바친 역사학자들의 수효가 엄청나게 많은 것만 보 아도 그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역사가 무엇인가라 는 식의 질문은 아마추어의 질문이 되고 만다. 〈역사는 역사가가 하 는 일과 별개의 것으로 존재할 수 없다〉라는 말의 의미를 되씹어 보 면 그것을 알 수 있다. 이 말은 대문자 역사는 소문자 역사룰 떠나 서 생각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역사는 무엇인가라는, 누구나 던질 수 있는 질문보다 역사가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리고 그 질문의 의미를 중요시해야 한다 .15 7) 역사가가 하는 일과 역사철학자가 하는 일의 성격 역시 다르다.

157) 이강숙, 『음악선생님을· 위하여』(서울 : 낭만음악사, 1990), pp.2 65-67.

〈하는 일〉의 중요성도 중요성이지만, 역사가가 〈하는 일〉과 역사철 학자가 〈하는 일〉의 성격을 구별해야 한다. 수사학은 역사가가 하는 일이라기보다 역사철학자가 하는 일과 더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다시 말해서 수사가가 하는 일은 역사가가 하는 일의 철학적 분석과 상 관된다 .158) 그러니까 이른바 비판적 역사철학자들이 하는 일과 상관 된다. 수사가들은 역사가들이 하는 일의 내용을 정의하기 위해서, 역 사가들이 하는 일의 방법을 밝히기 위해서, 그리고 역사가들이 하는 일이 지식을 운반하는가를 알아 보기 위해서, 역사가들이 하는 일을 철학적으로 분석한다. 소설식 역사를 배격하기 위해서, 지식을 운반 하지 못하는 역사를 배격하기 위해서, 과학이 얻는 신빙성을 역사로 부터 얻기 위해서 수사가들은 수사 자체의 속성을 분석한다. 역사의 발전단계를 신학적 • 형이상학적 • 과학적 단계로 본 꽁트의 입장이 설사 영구불변의 전리를 표방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과학이 중요 하고 과학적 사고가 중요한 것만큼은 사실이다.

158) W. Dray , Ph ilos op h y of Hist o r y , The Enc yclo p edi a of Phil o soph y 참조.

분석을 하게 되는 이유는 비판적 역사철학의 발생을 점검해 보면 더 잘 알게 된다. 한 마디로 비판적 역사철학은 19 세기에 생긴다. 비 판적 역사철학의 발생은 역사를 과학과 연결시키자는 생각과 연결 된다. 과학과 연결시킬 때 비로소 어떤 것을 허황되게 믿지 않아도 되는, 어떤 확실한 대상이 생긴다는 의미에서다. 그래야 우리가 역사 를 통해서 무엇을 알 수 있게 된다는 생각에서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역사(수사가 아닌 개념)가 인식 기능을 하지 못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기적 관련 이야기를 믿을 수 없다는 것에 대 한 논의 즉 기적의 미신성에 대한 논의가 홈의 〈인간 오성에 관한 탐구〉에서 행해지고 있다. 이 논의는 기적 관련적 논의는 과학일 수

가 없다는 주장에서 비롯된다. 역사 관련 언급이 기적 관련 언급과 그 성질이 비슷하다면 곤란하디는· 점을 시사하는 논의다. 즉 역사도 과학이어야 한다는 점을 시사했다• 과학으로서의 역사가 되기만 하 면 역사도 인석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했다는 점에서 흉 의 생각은 중요하다. 옳은 이해는 인식일 수 있다. 과학적 이해가 아니라 역사적 이해 라고 해도 그것이 정녕 옳은 이해라면 인식일 수 있다, 이러한 생각 울 유발시킨 사람이 비코였다 .159) 다시 말해서 〈역사적 이해〉의 가능

159) F. Cop le sto n , A His tor y of Philo s oph y , Vol 6(The Newman Press, 1961), pp. 150-63 .

성을 시사함으로써 역사학 발생데 중요한 역할을 비코가 했고 과학 으로서의 역사학 개념에 대한 관심을 야기시켰다는鼻 점에서 그의 업 적은 중요하다. 그의 이론을 요약하면 이렇게 된다. 인간은 신이 창 조한 것을 알 수 없다, 자연과학이 신의 창조물인 자연을 안다고 해 도 그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참으로 옳게 모두를 알 수 있 는 것은 인간이 창조한 것 이의에는 없다,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이 만든 것이지 신이 만든 것이 아니다라는 명제의 과학성에 그 의 이론은 의존한다. 옳은 의존인 것 같다. 이 의존이 만일 〈내가의 심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수 없다〉라는 명제에 비유될 만큼 확 실한 생각이 된다면 비코는 역사학울 위한 제 1 철학을 마련한 셈이 다. 왜냐하면,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이 만든 것이다라는 말 이 참으로 옳은 말이라면, 그 말을 근거로 해서 다음과 같은 역사 관 련적 말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시민 사회는 인간이 만든 것 이다, 그것이 비록 과거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도, 죽 역사적 과제 라고 해도, 인간이 만든 것은 인간이 알 수 있기 때문에, 시민 사회 는 알려면 알 수 있다, 신이 만든 자연의 연구에서 얻는 결론보다 인

간이 만든 시민 사회의 연구 결과가 인간에게 훨씬 더 많은 것을 약 속할 것이다라는 식의 말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은 인간에 의해서 과거에 만들어진 시민 사회를 알 수 있게 된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고, 여기서 〈할 수 있게 된다는 뜻〉 운운은 과거에 인간이 만든 일에 대한 언급을 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니까, 역사학의 가능성을 시사했다고 볼 수가 있다• 이러한 비코의 이론이 18 세기 초엽에 나왔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 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 당시 비코는 무시되었다. 그 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없었다. 역사학이라는 것이 발달되기 전에는 〈역사적 사고〉라는 것의 자율성을 인정하지도 않았고 역사 적 사고에 대한 철저하고 체계적인 분석도 하지 않았다. 〈역사적 사 고〉의 자율성이라는 말이 나왔으므로 〈음악적 사고〉의 자율성이라 는 어휘에 대한 설명을 지나가는 길에 덧붙이기로 한다. 인간은 다 섯 가지의 감각 즉 오관을 가지고 있다. 음악은 청각과 상관이 있다. 그런데 이 청각이라는 것은 신체적 감각이 아니다. 물리적 소리를 둘을 수 있는 능력으로서의 청각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아 니다. 음악적 의미를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음악에서 필요한 감각 이다. 가사의 의미와는 상관이 없는, 순수한 음향 현상이 발하는 기 악의 의미를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음악과 상종되는 〈감각〉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누구나 오관을 가지고 있지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감각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 않다. 또 하나의 새로운 감각 즉 여섯번째의 감각은 개발된 감각이요, 역사적으로 보아 근세 에 와서 비로소 그 감각의 있음이 인정된 그런 감각이다. 음악가들 끼리는 이것을 〈육관〉이라고 부른다. 절대음악이라는 이름과 상관 되는 기악의 탄생 근거로서의 감각이 〈육관〉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육관〉은 순수한 음악적 목적과 상종하는 감각이다. 음악을 어떤 것

으로부터도 해방시킬 수 있는 근거를 이 〈육관〉이 마련했던 것이다. 〈음악적 사고〉의 자율성이 인정받게 되는 근거로서의 육관이 탄생 됨으로써 〈음악적 사고〉의 가치는 지고한 것이 되기 시작했다 .160) 〈역 사적 사고〉의 자율성 운운도 이런 뜻에서 의미가 크다. 〈육관〉이 발 달되기 전에는 〈음악적 사고〉의 자율성이 인정되지 않았듯이 〈역사 학〉이 정식으로 발달되기 전에는 〈역사적 사고〉의 자율성이 인정되 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고〉에 대한 철저하고 체계적인 분 석도 되지 않았다.

160) 자율성 개념은 Dahlhaus 의 The Idea of Absolute Mus i c 에서 심도 있게 언급되 고있다.

역사학의 성립이라는 말은, 인정된 역사학적 접근 방식과 표준의 성립을 보았다는 뜻이 된다. 역사 문제를 놓고 인식적 문제를 거론 할 수 있을 정도로, 논의 재료를 비미신적으로 다룬 업적이 나타났 다. 역사의 인식적 기능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한 〈비판적〉 역사가 들의 업적이 그것이다. 비판적 역사가는 이전까지 있어 왔던 역사적 탐구 방식 자체를 비판했다. 역사에 대한 전통적 사고는 우리에게 아무런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는 소설 같은 것이라고 공격했다. 시보 다도 못한 지식을 운반하는 것이 역사라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 이 떠오르는 지적이다 .16 1)

161) Aristot l e( e d. by D. Ross), De Poeti ca ,The Works of Ari st o t l e (Ox for d : Clarendon Press, 1966), Vol 11, p.145 1 lb.

그러니까 비판적 역사가들은 역사를 철학적으로 생각하게 했다는 것이댜 즉 철학가들이 역사 문제를 자기의 토픽으로 삼았다고 말해 도 되는 격의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애초에 철학자들이 역사를 자 기네들의 토픽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과 비교하면 획기적인 사건 이 아닐 수 없다. 비판적 역사가들과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역사 문 제를 철학의 토픽으로 생각하게 한 사건도 있다. 실증주의 철학자들

의 방법론 관련 저술이 그것이다. 〈사회 물리학〉의 이론적 근거 확 립을 시도한 그들의 저술이다. 사회과학적 방법론과 자연과학적 방 법론은 하나다라고 주장한, 이 주장이 역사 문제를 철학의 토픽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꽁트와 존 스튜어트 밀은 역사적 작업의 과학성을 언급했다. 사회과학에서 추출해 낸 일반론을 과거에 있었던 특정 • 개별 상황에 적용시킨 경우는 그 적용 내용과 결과를 믿을 수 있다, 역사적 작업이 그러한 성격을 띤 것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역사적 작업 결과도 믿을 수 있다, 이런 주장을 꽁트와 밀은 했다. 역사는 과학과 성질이 다르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 역사적 연구의 자율성을 믿는 사람이다. 이상하게도, 자율성을 거부한 그러니까 비 판적 역사 개념이 창시된 나라인 독일에서 오히려 자율성을 인정하 는 근거가 될 수 있는, 자연과 정신 개념의 이원화가 추구되었다. 그 래서 결국 역사는 자연과학과 다르다는 이론이 쏟아져 나왔다. 19 세기 학자로서 이 문제와 관련되는 이론을 편 사람에 빈델반트 Wi lh elm W ind elbend, 리케르트 Hein r ic h Ri ck ert, 딜타이 W ilhe ln Di lt h e y 같은 사람이 있다. 빈델반트는 일반론을 추출해 내는 것이 역사가 아니라, 특정 사실을 묘사하는 것이 역사라고 주장하면서 자 연과학과 역사는 그 성질이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했다 .162) 리케 르트는 역사는 자연과학과 달리 가치판단이 개입된다고 주장했다 .163) 딜타이는 역사 이해는 감정이입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164)

162) H. Whit e, W ilhe lm W ind elband, The Enc yclop e d ia of Phil o soph y , Vol 8, p. 321 . 163) R. Anchor, Hein rich Ri ck ert , The Enc yclop e d ia of Phil o soph y , Vol 7, p.193 . 164) H. P. Ri ck man, W ilhe lm Di lth ey , The Enc yclop e d ia of Phil o sop hyV, ol 2, pp. 403-6.

20 세기에 접어들면서 역사에 대한 철학적 언급은 더욱 세련되어 간다. 크로체 Benedett o Croce 는 역사적 재구성 개념을 들고 나왔다.

〈수사의 이론과 역사〉에서 그는 역사가의 마음 안에 과거 경험(죽 과거)을 재창조하는 것이 역사적 재구성이라는 이론을 폈다• 그의 이 론은 음악가들이 특히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음악가들은 연주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연주라는 것은 작품을 낳은 작곡가의 마음을 연주가의 마음 안에 재창조하는 것이다. 이 재창조가 가능한 것과 같이 역사가들은- 과거의 사건을 자기네들 마 음 안에 재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 재창조가 역사의 재구성이 라는 것이다. 그러나 작곡가의 마음과 연주가의 마음이 대문자와 소 문자의 관계에 놓인다는 사실 때문에 크로체의 이론에는 문제가 있 다. 콜링우드 RC. Collin gw ood 역시 크로체와 비슷한 이론을 편다. 역 사적 탐구는 기본적으로 다음과 감은 전제를 깔고 있다고 콜링우드 는 주장한다. 역사적 과거는 특정 시공간에 위치한다, 그것의 있음은 지금 현재 남아 있는 증거로 알 수 있다, 있음을 알 수 있다라기보 다 있었음의 세부 사항들이 현존하는 중거들에 의해서 추론될 수 있 다, 세부 사항이라는 것은 사건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 행위로 이루어진다, 인간 행위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지만, 드러나 지 않는 마음 〈안〉에서의 〈생각의 차원〉을 수반한다, 그 생각이 역 사가에 의해서 다시 생각되어질 수 있다, 이래서 역사적 탐구는 가 능하다고 콜링우드는 주장한다. 콜링우드의 이론은 결국 연주가가 과거의 작품을 재구성할 수 있듯이 역사가가 과거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생각과 맥을 같이한다. 영미 분석철학자들이 보낸 비판적 역사철학에 대한 관심은 역사 적 사고의 개념적 구조에 대한 주의 깊은 분석을 한다. 수사학적 사 고의 세련성 개발에 많은 공헌을 한 사람이 일반법칙론을 주장한 헴 펠 Hem p el 이다. 수사는 서술이기도 하지만, 설명이기도 하다. 수사를 옳게 하려면

설명이 옳게 되어야 한다. 그래서 수사학은 무엇보다 옳은 설명의 논리적 구조에 관심을 가진다. 역사를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이해하 려고 하는가라는 질문도 좋지만, 설명의 논리적 구조의 해명을 중요 시한다. 설명의 논리적 구조는, 설명에 관여되는 모든 설명 내용이 일반법칙에 포함되는 것인가의 문제와 상관된다. 그러니까 일어난 사건에 대한 설명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간에 선행 조건으로부터 예 견할 수 있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일반법칙과 상 관시켜서, 선행 조건과 상관시켜서, 이치적으로 그 사건의 일어남이 예견 • 확신 가능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 설명의 목적이라는 것이 다. 베토벤이 〈열정〉을 쓴 사건이 설명되려는 경우도 마찬가지가 된 다. 베토벤이라는 인간의 성장에서 그가 그러한 사람이 될 원인의 발견이 설명 요인으로서 중요하다는 것인데 다만 우리가 그것을 모 르므로 옳은 설명을 하지 못한다는 식이다. 설명 요인이 발견되면, 베토벤의 사건을 설명 • 이해할 수 있지만, 그 요인이 발견되지 않으 면, 미스데리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일반법칙 이론이 옳 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펴는 주장이다• 그들은 설명에는 논리적 구조가 있다는 것이고 이 구조에 어긋나 는 설명은 설명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여기서의 구조는 일반법칙적 성격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헴펠의 이론을 차하순은 다음과 같이 요 약하고 있다. 〈……「역사에 있어서의 일반법칙의 기능」이란 논문에 서 그는 말하기를 어떤 특정 사건 (E) 이 일정한 시 • 공간에서 일어 난 데 대한 설명은 보통 E 의 원인(결정요인 C1, C2, C3… … 'Cn) 들을 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고 지적하고 Ci, C2, C3 …… Cn 이 E 를 일 으키게 하였다고 말하는 것은 ‘어떠한 일반법칙에 의해서’ E 에는 cI, c2, C3 …… Cn 이 ‘규칙적으로’ 수반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16 5)

165) 차하순 편, 『사관이란 무엇인가』(서울 : 청람문화사, 1988), p.2 4.

일반법칙 이론에 반대하는 입장은 다양하다. 역사적 사전은 자연 적 사건과 그 속성이 처음부터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하면서 일반 법칙 이론에 반대한다. 역사적 사건은 한 번 있고 마는 것이고 자연 의 사건같이 반복되는 성격의 것이 아니어서, 연구 대상 자체가 자 연과 달리 유니크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 관련적 일반법칙의 적용 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법칙은 사건이 어떤 부류의 일원일 때만 적용된다. 역사적 사건은 어떤 부류의 일원이 아니라, 오직 〈하나〉 있는 〈그것〉이다. 〈혁명〉의 발발 원인을 설명하려고 할 때, 〈혁명 일 반〉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즉 혁명이라는 부류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혁명을 설명하는· 것이 역사다. 일반 혁명이 부류냐 일 원이냐, 특정 혁명이 부류냐 일원이냐, 〈혁명〉을 같음으로 보느냐, 다 름으로 보느냐, 이런 질문들은 참으로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 가령 4 • 19 혁명과 불란서 혁명은 같음이냐, 다름이냐, 그것을 어 떻게 보느냐가 문제라는 것이다• 혁명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같음일 지 모르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다름인 것이다. 역사적으로 본다는 말 자체가 벌써 같음으로 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름으로 봄이 중요하다는 말이 된다. 역사의 존재는 서로 다른 역사 운운을 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지, 불란서 혁명의 역사나 4 • 19 혁명의 역사가 모 두 같은 것이라면, 벌써 역사 운운을 할 필요가 없게 된다• 다시 말 해서 역사 운운은 벌써 다름을 운운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같음을 운운하려면, 이마 역사는 알 필요가 없게 된다. 〈운명〉 교향곡과 〈전 원〉 교향곡이 교향곡이라는 점에서 같은 것이라고 해서 〈운명〉과 〈전원〉의 음악내적 역사 전개 과정에 대한 설명이 동일해질 수는 없 다. 〈운명〉의 전개 과정은 〈운명〉의 전개 과정으로서의 역사, 〈전원〉 의 전개 과정은 〈전원〉의 전개 과정으로서의 역사가 있고, 역사라는 말은 이런 이유 때문에 있다. 일반법칙 이론가들에게도 할 말이 있다. 4 • 19 역사이든, 불란서

역사이든, 그것이 다르더라도 좋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언급을 한다 는 것은 그것에 대한 설명을 한다는 말이고, 설명을 한다는 말은 역 사가가 그 사전을 어떤 식으로 본다는 뜻이고, 본 것이 정확히 전달 되어야 서술이 서술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보는 것도 언어를 통해서 보고, 서술도 언어를 통해서 서술하는 것이 사실이라고.하면서, 일 반법칙 이론가들은, 언어는 그것이 역사 관련 언어이든, 자연 관련 언어이든, 언어가 될 때, 즉 언어 구실을 할 때, 언어가 된다고 주장 한다. 그리고 언어는 역사 언어라고 해도 그 언어는 벌써 지칭하는 부류의 일원을 가진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한다. 책상이라는 언어에는 벌써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책상 그것을 지칭하는 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유니크〉 운운도 그렇다. 역사적 사건은 복잡하다. 사 건 발생 원인을 규명하기가 복잡해서 어렵다. 그러하기 때문에 그 사건이 〈유니크〉한 것인지의 여부를- 알 수 없다. 〈유니크〉하다라고 말할 수 있다는 말은 그것이 유니크하다는 것을 안다는 뜻이 아닌 가. 그런데 역사적 사전은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래서 유니크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죽 역사가들이 역 사는 유니크하다는 것을 안다고 말하는 것 자체에 벌써 문제가 있 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몰라서 그렇지, 알고 보면 유니크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 일반법칙 이론가들의 주장이다. 모든 것이 일 반법칙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유니크하다고 말해 버린다면 그것에는 논리적으로 벌써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운명〉 과 〈전원〉 교향곡의 음악내적 역사가 다르다고 하는 말은 옳다고 해 도 좋다. 다만 그것이 아무리 서로 다르다고 해도 결국 소타나라는 동일한 악식이 마련하는 전개 과정을 거치는 것이 사실이고 그 교 향곡들의 음악내적 역사의 전개는·소나타 악식이라는 〈같음〉의 굴 레 안에서 머물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166) 일반법칙 이론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할 말은 또 있다. 유니크하다

166) 악식이나 형식이 모두 음악의 본질과 상관되듯이, 갇음이나 다름 모두가 본질 이다.

는 의미에서 일반법칙 이론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하는 이유 는 다른 데 있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사건은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 진다. 이 때의 인간은 〈이유 있어서〉 그 사건의 만듦에 관여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아는〉 혹은 〈모르는〉의 문제와는 상관이 없다. 〈이유 있어서〉 어떤 사건을 만들었다면 그 〈이유 있어서〉가 이유라 는 것이다. 〈이유 있어서〉라는 것이 없으면 사건이라는 것은 만들어 지지 않는다. 사건 발생은 반드시, 인간의 고의와 결심이의식 • 무의 식적으로 관여된다고 본다. 이것이 일반법칙 이론을 반대하는 입장 이다. 일반법칙이고 뭐고간에 이성적 행위를 하는 인간 행위는 법칙 관여 없이도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때의 이해는 곧 설명이 다. 이성적으로 어떤 행위를 행했다는 것을 이성적 인간들은 안다는 것이니까, 알면 그것이 곧 설명이리는- 것이다. 고의로 결심을 할 수 있는, 이성적 인간의 행위가 역사가의 주제가 된다. 일반법칙에 대한 지식 없이도 안간이 왜 그런 행위를 한 것인가에 대한 이유를 발견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인간 행위는 설명될 수 있게 된다. 결론적으 로 말하면 행위자의 행위는 이성에 의해서 이유 있게 행해졌으므로 그 행위 이유에 대한 지식을 일반법칙과 상관시키지 않고서도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일반법칙 이론을 반대하는 논리가 성립된다. 이에 대해서 일반 법칙 이론가들은 또 할 말이 있다. 지식이 설명 되는 데에는 조건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유〉와 〈행위〉가 연결되고 있다는 보증이 바로 그 조건이라는 것이다. 연결된다는 보증 없이는 설명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일반법칙 이론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또 이렇게 말한다. 그럴 듯한, 좋은 이유가 된다고 〈생각되는〉 그러한 생각은, 왜 그 인간이 그런

행위를 한 것인지의 이해를 제공한다. 반드시 실증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생각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 이 된다는 것은 그렇게 이해가 된다는 말이 될 수가 있다. 인간은 이 성적으로 행위한다는 사실 하나만의 가정으로도, 그렇게 〈생각되 는〉을 근거로 해서 인간 행위의 이유를 알 수 있다. 동일한 이유 밀 에서도 그 이유와 연결되는 행위를 선택할 수도 안 선택할 수도 있 는 인간 자유의지를 믿는 〈자유주의자〉들의 입장에서도, 좋은 행위 이유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에의 이유, 즉 왜 그 인간이 그런 행위 를 한 것인지의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언급된 것 이 외에도 일반법칙 이론을 반대하는 입장은 얼마든지 있다. 역사적 설명의 문제 이의에도 수사학의 쟁접에 〈역사적 개별〉이 라는 것이 있다. 역사를 만들어 가는 당사자가 누구냐라는 질문과 〈역사적 개별〉 개념은 연결된다. 이 쟁점은 역사롤 움직이는 힘이 어디로부터 나오는가라는 질문 주변에서 생긴다. 개인 행위는 이성 적인 행위 이유에서 설명될 수 있을지 모르나, 역사가의 관심은 개 인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서 역사적 개별이리는- 쟁점이 부 각된다. 역사가들은 〈사회적 사건〉 내지 〈조건〉에 ·관심을 가지는 것 이지 개안 행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역사의 동인 이 개인아냐 사회냐라는 질문이 중요해진다. 사회적 사건의 예에는 〈정복〉 〈경제 공황〉 〈황제의 경력〉(황제의 경력은 개별의 경력이 아니라 이미 나라(죽 전체)의 경력임) 〈의회〉 〈계 급〉 등이 있다• 이 예들은 〈사회적 개별〉들이다. 역사가의 관심은 사 회적 개별에 있다는 것이고 개인적 개별과 사회적 개별, 어느 쪽이 역사적 개별이 되느냐라는 질문을 던지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개인 적〉 개별와 〈사회적〉 개별의 행위 선택 이유가 갇지 않다는 데에 있 고, 이 선택 이유가 같지 않다는 이유에서 역사를 만드는 〈역사적〉 개별이 사회적 개별이냐 개인적 개별이냐라고 묻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쪽과 연결시켜서 설명을 해야 옳은 설명이냐라는 문제 때문에 〈역사적〉 개별 운운이 나오게 된다. 개인적 개별의 활동은 〈이성〉이 뒷받침할지 모르나, 사회적 개별 의 활동은 사회적 법칙에 의해서 행해전다. 그 법칙의 근원지가 개인 적 활동이 아니라 사회적 조건이라는, 어떤 기존 조전이라는 것이다• 작곡가가 작곡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재료가 작곡하는 것이라는 입 장아 있는데 이 입장이 이 대목의 이해를 도울 것아다 .1•6 7)

167) 이전용, 「음악과 앎J, 〈낭만음악》(서울 : 낭만음악사, 1989, 봄호), 제 1 권 제 2 호, pp,1 41-179.

작곡가는 기존 재료의 구속성이 어떤 것인지 아는 사람이다. 그리 고 그러한 기존 재료를 사용하는 사람이다. 기존 재료는 사용 대상 이고, 작곡가는 사용자인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점은 기존 재료의 사용법에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 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의 사용법을 모르면 작곡은 불가능 하게 된다. 이 말은 역사룰 움직이는 힘이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답 얻기가 불가능해전다는 말과 같다• 재료의 생리에 복종하면서 사용 하는 방법이 그 하나요, 재료를 복종시키면서 사용하는 방법이 그 다른 하나다. 전자는, 재료의 생리에 복종하는 능력이 곧 작곡하는 능력이라는 의미에서 뜻이 깊은 말이다. 즉 복종할 줄 알아야 음의 생리를 다스리는 능력이 행사됨으로써 작곡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이다. 후자는, 복종시킬 수 있는 고도의 능력이 인간에게 개발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개인이 고도로 발달된 역사적 능력만 있으면 기존 사회가 역사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사회에 복종만 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전통을 계승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능력 이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사회적 법칙은 사회를 움직이는 기존 재료의 생리가 낳는다라는

주장에 대한 찬반이 결국 전체주의자와 개별주의자를 갈라놓는다. 〈작곡〉을 누가 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 갈라놓는다. 작곡 은 작곡가가 한다, 아니다, 기존 문화 내지 재료의 생리가 그렇게 작 곡을 하도록 시킨다는 식으로 대답이 갈라진다 .168)

168) J. Mueller, Music and Educat ion : A Socio l og ical Ap pro ac h, Ba sic Concep tsion Music Educatio n (Nati on al Soc iety for the Stu d y of Educati on , 1958), pp.8 8-122.

개인적 개별의 행위 하나하나가 모여서 역사를 낳는다, 음악작품 속의 주제활동 하나하나가 음악을 낳는다러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개별주의자이고, 그 하나하나는 기존 양식 • 재료가 낳는다라는 생 각을 하는 사람은 전체주의자다. 음악사를 쓰려고 할 때, 개별주의자 적 시각을 가전 역사가는 작곡가 위주적 음악사를 쓸 것이요, 전체 주의자적 시각을 가전 역사가는 사회사 위주적 음악사를 쓸 것이 다. 개별주의자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사회적 집단은 개인적 개별 인 간 활동으로 인해 존재하며, 따라서 사회적 집단에 대한 설명은 개 인 활동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다. 개인과 독립된 사회는 있을 수 없 다. 어떤 것이든 구성 인자 없이 그것이 존재할 수 없듯이 구성 인 자 없는 구성물은 존재할 수 없다• 작곡가 없이 작품이 탄생할 수는 없지 않을까. 전체론자들의 입장은 다르다. 존재론적으로 독립적인 존재가 가능 하다는 것이 자기네둘 주장의 전제가 아니라고 한다. 집단(사회)은 개인에 의해서 존재하나,개인의 총화가집단은아니라고한다.개인 행위만이 집단 사건의 원인이라면, 역사가가 보통 관심을 갖고 주장 하는 사회적 행위는 없는 것으로 취급하는 셈이 되고, 경험적 법칙 울 발견하려는 노력 자체를 의심하는 격이 된다. 개인이 홀로 행위

할 때와 사회 구성원으로서 행위할 때는 그 행위의 성질이 달라진 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경험적 법칙 발견을 하려 는 노력 자체를 의심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사회적 법칙이 발견될 지 어떨지 모르는 마당에서 경험적 법칙 발견의 의의 자체를 무시 할 수 없다. 개인 관련으로서이든, 사회 관련으로서이든, 경험적 법 칙이 발견되지 말라는 법이 없는데, 이 발견의 가치 자체를 의심한 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것이다. 그 점에서 개별론자들은, 가장 옳게 알려면, 사회 현상이 그것의 구성 요인안 인간 행동으로 환원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음악의 생 성은 이미 전체 개념으로 존재하고 있는 악식이 가능케 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 주제들의 활동이 가능케 하는 것과 같다. 음악적 현 상이나 사회적 현상이 무엇인지 알려면 그 현상의 구조적 요인을 알 아야 한다, 즉 개별적 주제의 음악적 행위를 알아야 음악의 구조적 요인을 알게 되고 개인 인간의 행위를 알아야 사회의 구조적 요인 을 알게 된다는것이다.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 누구냐라는 질문은 결국 이미 있는 것이 움 직이느냐, 새로 생긴 것이 움직이느냐라는 질문과 상관된다. 이미 있 는 것은 〈나〉 죽 〈개인〉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기존하는 것〉이 다. 사회적 조건 내지 여건 같은 것이 그것이다. 우리 앞에 있는 세 상이 그것이다. 인간은 이러한 〈이미 있는 것〉에 적응해 가야 한다. 한국말을 사용하면서 살아야 하는 〈이미 있는 세상〉에서 태어나면 원하건 원치 않전간에 한국말을 배워야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인간 은 필연적으로 사회화되어 간다는 말은 사회의 힘에 끌려 가야 한 다는 인간의 숙명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그러니까 인간을 움직이는 힘은 〈이미 있는 것〉으로 부터 생긴다는 말에 설득력이 있다. 그렇다면 〈새로 생긴 것〉의 할 일은 없디는· 것인가. 이미 있는 세

상에 새로 태어난 〈나〉라는 인간에 해당되는 〈개인〉의 할 일은 없 다는 말인가. 나의 삶에 이미 있는 것이 불편 내지 방해가 되는 경 우는 그것을 고치려고 하는 것이 인간이다. 이 〈고치려고 하는 인 간〉의 속성이 역사를 움직이는 힘일 수도 있다는 점을 우리는 기여 해야 한다. 기존의 음제도의 생리에 복종해야만 작곡을 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기존의 음악 유형에 불만인 경우에는 인간은 그것을 고치게 마련이다. 그래서 그 고침이 새로운 음악을 낳음으로 써 변천하는 음악사를 이루어가는 것이다. 역사적 설명 문제에서는 실증론자와 관념론자가 대결했었고, 역사 적 개별 문제에서는 전체론자와 개별론자가 대결했다. 역사적 객관 성 문제에서는 상대론자와 객관론자가 대결한다. 역사가들은 결과적으로 혹은 의도적으로 결론을 낸다. 이 결론에 객관성이 있느냐, 즉 결론을 믿을 수 있느냐의 문제가 수사가를 괴 롭힌다. 자연과학의 결과를 믿을 수 있듯이, 역사적 탐구의 결과를 믿고 싶다• 그러나 여러가지 이유로 그렇게 되지 못한다. 그래서 역 사적 객관성의 문제가 수사학에서 문제가 된다. 객관성이 없다라고 주장되는 것이 보통안데, 그 이유는 역사가는 필연적으로 가치판단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연과학의 결 론은 결론을 내리는 자의 심미관이나 도덕관과 상관이 없다. 그러나 역사적 결론은 역사가의, 무엇이 아름다우냐 무엇이 좋음이냐에 대 한, 생각과 직결된다. 즉 심미관과 도덕관에 직결된다. 하나의 관은 주관적인 것이지 객관적일 수 없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객관성을 부정하는 입장이 상대론자다. 역사적 판단은 가치 기준에 상대적이 고 문화적 맥락 관련적 상대성을 지닌다는 주장이다. 가치판단이 개입되는 방식에는 세 가지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69) 역사적 설명에 포함되는 항목(정보)의 선택에서 가치판단이 개입된다. 과거 기록의 나열이 역사를 낳는 것이 아니라, 기록의 선

169) W. Dray , Ph ilos oph y of Hi st o r y , The Ency clo pe d ia of Phil os ophy , Vol. 6, p. 250.

택이 역사를 낳는다는 것이다. 선택이 관여된다고 해서 가치판단이 개입되는 것은 아니라는 주 장도 있다. 선택은 자연과학에도 있다. 그러나 연구 주제의 선택과 연구 방법의 선택은 그 성격이 다르다. 슈만 곡을 분석곡으로 선택 하는 사람과 판소리를 분석곡으로 선택하는 사람의 음악 가치관이 다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분석곡 선택에서 작용되는 가치관은 그 런 대로 좋다. 하지만 분석 방법이 해설식, 요소 분석식으로 다르게 고용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170) 객관적 • 바객관적 운운 자체가 필 요없다고 주장하면서 선택에 개입되는 가치관 운운으로 객관성이 없 다는 말을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왜냐하면, 모든 탐구는 전부 선택이 관여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노래운동사를 연 구 대상으로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벌써 다른 대상을 무시 내지 삭 제했다는 부작용을 운반한다는 것이다. 고전시대, 낭만시대식으로 시대 유형을 정한다, 즉 선택한다는 것 자체가 그 속에 무엇을 넣는 다는 것을 미리 정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시대 유형을 정한다, 선택한디는 것이 벌써 어떤 다른 것을 무시 내지 삭제하는 부작용 을 낳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주제의 선택 역시 많은 문제를 안고 있 는 것은 사실이다. 논문 제목 정하는 일에서부터 순수파와 참여파가 이미 갈라전다는 것을 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다.

170) 본서 중 「음악에 접근하는 다섯 가지 방식」 부분 참조.

객관론자들은 의견이 다르다. 역사적 중요성은 사건 발생의 인과 성을 설명하는 것이고 그 인과성 설명에는 객관적 기준이 있어야 한 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들에게 있어 사실 서술이란 〈체계〉(어떤 것 의 구조)의 속성 설명의 문제와 상관되며, 사실 서술이 아니라 사실

생성 원인을 인과적으로 풀어야 하는 것이 역사라는 것이다. 인과는 객관적일 수밖에 없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니까 객관론자는 앞뒤 의 인과를 따져야 한다는 것이니까 결국 〈역사〉를 상종하자는 것이 고, 상대론자는 역사를 탐구한다고 하면서도 〈체계〉를 상종하자는 입장을 취한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어떤 것이 있다고 할 때 그 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과 그것이 왜 생겼느냐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면, 전자는 상대론자의 관심 대상이고 후자는 객관론자의 관심 대상이 된다는 이야기다. 상대론자들에게 있어 역사 공부는 〈체계〉 분석이고 〈체계〉의 구조적 인자의 발견, 하나도 빼지 않는 발견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 고전시대가 왜 생겼는가를 인과적으로 아는 것 만이 역사가 아니라, 그 고전시대 속에 무엇이 있는가, 무엇이 포함 될 수 있는가, 그 시대의 구조적 요인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도 그 시 대를 아는 것이고 그러니까 역사를 하는 입장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 판단에 가치판단이 개입하는 또 다른 장소로는 인과적 설 명 작업을 둘 수 있다. 그것은 인과 관련적 설명이라고 해서 객관적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문제에서 비롯된다. 인과 관련적 설명에 는 원인의 발견이 중요한데, 이 발견이리는· 것은 단순히 필요 조건 혹은 충분 조건의 발견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주목할 점 이다. 필요 조건 혹은 충분 조건의 발견(즉 자료 수집 과정에 해당) 과 정은 가치중립적이지만, 자료를 수집한 후 죽 조건의 발견 후에는, 사건 발생과 관련시켜 그 자료를 중요한 자료와 중요하지 않는 자 료로 구분하고 적합 조건을 두고 원인 조건과 비원인 조건으로 구 별하게 되는데, 이 구별이 가치판단의 개입이라는 것이다. 가치 개입의 세번째 장소는 역사가의 개인적 행동에 있다. 인간의 개인 행동은 벌써 가치 관련적이라는 것이다. 역사에서의 〈사실〉(가 치가 아닌)이라는 것은 〈살인〉 〈승리〉 〈억압〉 〈개혁〉 등과 상관되는데, 이런 어휘둘 자체는 쓰이는 순간 이미 가치중립적일 수가 없다.

역사적 객관성 운운의 뜻을 곡해하지 말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 역사는 원래 시작부터 가치관련적인 학문임으로 역사적 객관 성 운운은 역사가 가치 관련적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 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편견이 있느냐, 없느냐를 알아 보려 고 하는 것이 역사적 객관성을 문제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말 이다. 객관성 운운은 편견이 없으면 가능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역사 가 객관적이냐라고 물을 때, 역사가 가치판단을 하지 않느냐라고 묻 는 것이 아니러는 것이다. 역사가 편견에 의해서 쓰여졌느냐라고 묻 는 것이라는 것이다. 가치 개입은 얼마든지 좋다는 것이다. 음악이 음악가가 하는 일과 독립되어서 존재할 수 없듯이, 역사 가가 하는 일을 떠나서 역사는 존재할 수 없다. 역사 공부와 역사가 가 해놓은 일의 일부의 공부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글의 서두에서는 책 공부 는 역사 공부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이젠 책 공부야말로 역사 공부 가 아닐 수 없다는 말이 가능해전다. 역사가가 하는 일은 소문자 역 사를 읽고 새로운 소문자 역사를 낳는 일이다. 소문자 〈역사의 역 사〉 공부 또한 유익한 공부다. 수사가가 하는 일은 소문자 역사의 위치를 지식의 지도 위에 찾아 주는 일이다. 지식의 지도 위에 옳은 위치를 찾기 위해서 역사적 설명 • 역사적 개별 • 역사적 객관성 개념 에 대한 투철한 이해가 이 때문에 필요하다• 누차 언급한 대로 소문 자 역사를 떠나서는 어떠한 역사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역사는 역사가의 일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는 말의 의미를 옳게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 소문자 역사만이 대문자 역사를 향하는 길을 낳는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역사가가 하는 일의 특성 울 철학적으로 분석하는 작업만이 수사학을 옳게 할 수 있게 한다 는 사실 역시 인식할 수 있다. 우리는 조국의 미래를 위해서 옳은 수사 행위를 해야 한다. 수사

는 전통을 낳을 수 있다. 전통숫곤 삶을 통재하는 힘을 가진다. 좋은 전통은 좋은 삶을 낳는다. 이런 의미로 우리는 좋은 수사 행위를 해 야 한다. 음악은 삶을 간섭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음악수사는 음악 전통을 낳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좋은 음악수사는 음악의 생리와 삶 의 생리 양쪽 모두를 의면하지 않을 때 가능하다. 옳은 수사는 과거 의 재구성이 아니다. 미래의 인간 행위의 조건지음과 상관된다. 그 러므로 역사는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다. 행위로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수사를 통해서 만드는 것 이 역사라는 말이다. 한국의 음악역사는 음악인의 음악활동으로 이 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사가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음악수사학의 학문적 성숙을 우리 모 두가 바라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제 5 장 음악학의 기능 5.1 누구를 위한 음악학인가 음악학은 진공에서 태어나지도 않고, 진공에서 살지도 않는다. 음 악이 그렇듯이 음악학 역시 문화적 • 역사적 맥락 속에서 태어나고 그 속에서 산다. 그래서 의도적이든 결과적이든간에 인간의 삶을 간 섭한다. 우리는 삶을 옳게 간섭하는 음악학을 해야 한다. 사회적 관 계 개선에 기여하는· 음악학을 해야 하고, 또 삶을 옳게 간섭하는 역 사를 창조하는 데에 기여하는 음악학을 해야 한다. 역사 창조에서의 수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은 앞장에서 이미 언급됐다. 여기서는 해방 이후 오늘날까지의 한국 양악사를 어떻게 서술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예로 들어 서술함으로써 음악학이 구 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의 성격을 일면이나마 밝히고, 새로운 전통 과 역사 창조를 위해서 음악학이 할 일을 〈한국음악〉 창조와 관련 시켜 언급해 보기로 한다. 우리 민족음악 문화의 진로를 위해서 음

악학이 할 일의 성격을 일면이나마 밝혀 보고 싶은 것이다. 해방 이후 오늘날까지의 음악은 과연 어떻게 변천해 왔는가.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서술 결과가· 달라질 것은 분명하다. 다음과 같 은 서술이 가능할 것 같고 그것의 옳고 그릇됨은 다른 사람이 평가 해 줄 것으로 믿는다. 음악이 정치 풍토를 고치는 데에 특정 역할을 한다고 보는 시각 은 정차와 음악이 무관하지 않디는- 뜻에서 유관관이다 .171) 그러나 정 치와 음악이 무관하다고 보는 무관관도 있다. 광복 40 년 음악사를 저자는 정치유관련 시대, 정치무관련 시대, 정치유무관련 시대로 구 분해서 사용하기로 한다.

171) 「광복 40 년 음악사타는 제목푸 대한민국사 편집위원회가 펴낸 『대한민국 사』에 수록한 글을 가필했다.

음악이 정치와 관련된다는 뜻은 음악가가 〈음언어〉만 구사하겠다 는 입장으로부터 벗어나서 음악가도 인간인 이상 〈말언어〉를 자유 롭게 구사할 수 있는 정치사회 형성에 적극적 발언을 해야 한다는 문제와상관된다. 정치유관련 시대는 해방이 되던 해부터 3 년간, 정치무관련 서대는 정부 수립 후부터 약 30 여년, 정치유무관련 시대는 80 년대부터 시작 된다고 본다. 3 년과 30 여년은 물리적 시간의 측년에서는 엄청난 차 아가 있다. 그러나 저자는 3 년과 30 여년을 음악사 시대구분의 성격 적 차원에서 그 비중을 견주어 보기로 했다. 말언어와 음언어의 생리는 다르다. 말 언어는 정치성을 띠게 되기 쉬우나 음언어는 정치성을 띠지 않는 경우가 보통이다. 음악가가 음 언어의 가치만 수호하면서 음언어 구사에만 자기의 온 정력을 쏟으 면 정치적으로 아무런 불안 없는 삶을 살 수 있다. 음악가가 말언어 를 잘못 구사하면, 음악가가 할 일을 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을 우 려도 있거니와 자칫 잘못하면 정치적으로 고난을 겪는 삶을 영위하

게 된다. 그러므로 음악가는 음언어의 가치 밑에 숨어서 일신을 평 안하게 살려면 얼마든지 그렇게 살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생긴다. 이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 장소는 음악가도 음악가이기 이전에 인 간이라는 데에 있다. 인간은 누구나 정치적으로 자유롭게 살 수 있 는 사회를 원한다. 정치적으로 자유롭게 살게 하는 사회 성립에 음 악이 어떠한 기여를 해야 하느냐의 문제를 놓고 음악가가 말언어를 통해서 의사발표를 해야 한다는 문제가 중요한 문제로 등장될 수 있 다는 지점이 문제 발생의 원천지라는 말이다. 해방후 3 년 동안은 독 립국가 형성을 위해서 음악가이든 비음악가이든간에 누구나 그것을 위한 가장 좋은 방식에 대한 말언어를 통한 발언을 했다. 발언을 하 는 것이 인간답다고 생각할 수 있는 시기였다. 그래서 정치 관련 발 언의 차원에서 전실이 노출되는 시기였다. 음악과 정치가 무관할 수 없다는 발언이 얼마든지 나울 수 있었고 또 그 발언이 옳기도 했다. 역사에 남을 만한 작품이라든가 음악적 활동이나 연주 같은 것은 상 대적으로 많이 나오지 않았을는지는 모르나, 음악이 우리 인간을 위 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쟁점으로 해서 정직한 말언어 언급이 무수히 나왔다. 그리고 그 말언어에 부응하는 음언어 관련 활동도 나왔다• 그래서 정치유관련의 3 년이 사적으로 주요한 시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들어서고부터는 말언어를 함부로 하면 정치권력에 의해서 불이익을 받게 될 우려가 생기게 될 수 있으니 까 음악가들은 자기 본분인 음언어 찾기에만 급급했다. 우리의 복된 삶 문제와 직결되는 정치 사회는 어떻게 되어 가든 상관 않고, 음언 어 구사를 지상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음악의 사회적 효과성이나 기 능성은 의면하면서, 음악이 인간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의 문제보다, 아름다운 음악의 가치를 우선적으로 인정하는 음악관에만 탐닉되면서, 음언어 구사력 배양에만 전력을 기울였다. 30 여년 동안 에 일어난 모든 음악 활동은 결국 음언어 구사의 가치만을 인정한

시기였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로 보아서 3 년과 30 여년은 전혀 다른 역사적 시기였다. 그러나 80 년대에 들어서면서 음언어가 낳는 심미 성뿐만 아니라 음악이 인간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서양문 화가 우리 민족문화 형성을 위해서 어떠한 역할을 하는가의 문제가 음악계 일각에서 대두되면서, 심미성과 음악의 윤리성을 동시에 문 제시하자는, 그리고 왜 인간 사회에는 특정 음악이 있고 특정 사회 에는 왜 특정 음악이 필요한가의 문제를 대두시키면서, 정치유무관 련 시대를 펼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40 년사를 세 개 의 시대로 구분한 것이다. 5.1. 1 정치유관련 시대 인간의 삶 주변에는 언제나 정치적 세력이 있다. 이 세력은 무섭 다. 사람을 위험 지경에 빠뜨릴 수도 있고, 빠뜨린다고 협박할 수도 있다. 이 협박은 고문만큼이나 무섭다. 인간의 특정 속성은 이 세력 에 순응한다. 역사상 많은 현명한 사람이 이 세력에 순응하며 생을 영위했다. 여기까지는 좋다. 순응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으 니까 말이다. 비극은 순응하는 자가 자기 정당화를 하기 시작할 때부터 생긴다. 자기 정당화의 형태는 여러가지다. 그 중에서 가장 비겁하고 무서운 것이 순응하지 않는 자를 모략하는 행위다. 모략 행위에도 종류는 있다. 공개적으로 모략하는 경우가 있고, 세상 모르게 모략하는 경 우가 있다. 죄없는 많은 사람이 정치적 모략에 휘말려 목숨을· 잃은 예는 역사에서 얼마든지 발견될 수 있다. 정치 세력은 순응자만을 낳지는 않는다. 안간형에는 순응형도 있 지만 다론 형도 있다. 모략형, 투사형, 정의형, 아부형, 핑계형, 타협 형 등 수많은 형의 존재가 이 세상을 이룬다.

필자는 인간형을 크게 둘로 나눈다. 순수형과 비순수형이 그것이 다. 비순수형을 참여형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순수형과 참여형 의 구분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은 그 두 형의 조화를- 꾀하려고 〈변증법형〉을 내세우기도 한다. 물론 순수를 가장한 참여형이 있고, 역사 안에 있는 자라고 일컬어질 수 있을지 모를 참여하는 순수형 과 역사 밖에 있는 자라고 일컬어질 수 있을지 모를 방관하는 순수 형이 있간 하겠지만, 순수와 비순수가 인간 세상에 있는 것만은 사 실이다. 좌파라고 일컬어지는 인간군이 무조건 참여형은 아니다. 우 파라고 지칭되는 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파 중에 순수를 가장 한 참여형은 얼마든지 있다. 광복 40 년 음악사는 순수를 가장한 참여 형, 참여하는 순수형, 방관하는· 순수형 등에 의해서 엮어지기 시작한 다. 해방이 되던 날, 한국인은 어느 쪽의 인간형에도 속하지 않았다. 모두가 하나이었다. 해방의 기쁨으로, 동포는 오직 〈하나〉이었다. 그 런데 이 하나가 순식간에 둘로 분열됐다. 해방의 기쁨이 채 식기도 전이었다. 음악가들은 각자가 살아온 지난날을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살아온 역사가 달랐으니 정당화의 과정과 결과는 여러가지 형태를 띠며 나타났다. 한마디로 일제에 순응했느냐, 순응을 하지 않았느냐 가 정당화의 갈림길이었다. 해방 이튿날인 8 월 16 일은 광복 40 년 음악사의 중요한 첫 장을 마 련한다. 일제에 항거하면서 지하음악서클을 전개해 오던 김순남 강 장일 등은 해방 이튿날, 음악가 대회를 소집하여 음악건설본부라는 조직체를 결성하고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와 손을 잡았다. 이 사실 은 1947 년의 《예술연감》에 박영근이 쓴 「음악계」라는 글과 1948 년 의 《민성》에 박용구가 쓴 「해방 후의 음악계 3 」이라는 글에서 언급 되고 있다. 이 두 글은 해방 칙후의 한국음악 상황을 알리는 귀중한 자료다.

음악전설본부는 〈누구를 위하여 어떻게 음악하여야 하느냐〉라는 쟁점을 들고 나왔다 .172) 해방의 기쁨에 들떠서 〈독립행진곡〉이나 〈아 첨해 고울시고〉식의 노래만 부르고 있을 것이 아니라 〈해방의 노래〉 룰 불러야 한다고 했다. <… ... 8 • 15 를 맞이하자 음악계는 무엇보다 도 먼저 노래를 잃었던 민족에게 새 노래를 주어야 했다……〉라고 박용구는 쓰고 있고, 〈……‘해방의 노래’는 처음으로 ‘누구를 위하여 어떻게 음악하여야 하느냐'에 대한 구체적 기록이었다……〉라고도 쓰고 있다. 이것만 보아도 그 당시의 시대적 요청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러나 〈해방의 노래〉는 오래 불리지 못하고마는 운명에 놓인 다. 처음에는 해방의 감동 등에 의해서 단결과 동원이 잘 되었으나 음악건설본부는 점차적 분열 상태를 맞게 된다. 박영근이 사용한 어 휘인 〈객관적 정세의 변천〉 때문이었다 .173) 음악건설본부의 해체는 음악가의 단결이 이렇게도 어려운가를 배우게 했다. 그리고 실천 방 안적 차원에서의 묘안 없는 음악운동은· 언제나 실패하고 만디는· 교 훈을 남긴다. 이 교훈을 안고 출발한 새 조직체가, 해방되던 그 해 10 월 22 일에 다시 결성된, 당시 악단의 통합된 결속을 상칭한 조선 음악가협회였다 .174) 음악건설본부가 해체되고 조선음악가협회가 조직 되기 전, 그러니까 그 해 9 월 10 일에는 조선음악가동맹이 먼저 결성 된다 .175) 음악건설본부의 해체를 맞자 전보적 음악가들- 몇몇이 모여 근로대중을 상대로 음악운동을 전개할 목적으로 푸로음악동맹을 결 성했다가 실패한 후 그 푸로음악동맹을 개편한 것이 조선음악가동 맹이다. 이 음악동맹 역시 조선음악가협회에 동참했으니 조선음악가 협회야말로 당시 음악가 단체의 총본산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거기

172) 박용구, 「해방 후의 음악계 3 년」, 《민성〉(서울 : 고려문화사, 1948). p.48. 173) 박영근, 「음악계」, 《예술연감》(1 947). 174) 위의 책, p.32. 175) 위의 책, p.32.

서 또 분열은 생긴다. 조선음악가협회 내부에서 협회의 일원인, 음악 동맹의 이념에 반기를 들고 나선, 이른바 보수파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보수파는 해방 이듬해 그러니까 1946 년 봄, 나중에 전국음악문화 협회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는 대한연주가협회라는 조직체를 결 성하여 음악동맹과 대립관계를 이룬다 .176) 해방 직후 군정이 베푼 박 애주의 아닌 박애주의는 친일파까지도 중용한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미국의 박애주의와 대한연주가협회 발기인격인 보수파들은 손을 잡 고, 보수파의 되세 만회책을 강구했던 것이 결국 연주가협회로 나타 났다는 당시의 기록을 보면 순수형과 비순수형의 인간상이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176) 위의 책, p.32.

광복 40 년 음악사 서술에 있어서 첫째로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 은 현제명의 음악사적 위치 규명에 있는 것 같다. 현제명이 한국 양 악사에 끼찬 실적을 오늘날 부정할 사람은 없으리라고 본다. 그의 이력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는 언제나 악단의 리더격인 인물이 었다. 잘 알려진 노래를 많이 남겼을 뿐만 아니라, 서울대학교 음악 대학을 실질적으로 창설한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고, 초대 학장직까 지 맡으면서 양악 관련 대학교육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 같은 것 이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평가 기준이 바뀌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고, 특히 민족음악 발전 쟁점과 상관되는 해방 전후사 의 기록으로 미루어 본다면 다른 해석이 나울 수 있다. 조선총독부 의 총독 阿部達一이 회장으로 되어 있던 조선음악협회(해방 후 만들 어진 조선음악협회와는 다름)의 한국·인 이사직을 맡았고, 일본 관련 어 용악단으로 평가되는 후생악단의 대표였던 사람이 현제명이라고 박 영근은 기록하고 있다 .1 77) 이 기록이 만일 사실이라면 현제명은 〈누 구를 위하여 어떻게 음악하여야 하느냐〉라는 쟁점의 긍정적 측면을

177) 위의 책, p,30 .

의면한 셈이 되므로 그의 평가는 다른 시각에서 행해질 수 있다. 해 방 후 현제명의 활동을 보아도 그는 순수의 입장에서 음악 정치인 형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 해방이 되자마자 고려교향악단의 창단을 서둘렀고 1946 년에 다시 일어선 그는 전년에 시작한 고려교 향악단의 발전을 위해서 그의 악단 정치력을 발휘했다. 1946 년에 나타난 대한연주가협회 그리고 현제명과 더불어 전전하 던 고려교향악단 등이 행한 음악 활동에 역사적 의의가 있다면 그 의의의 출처는 보수파의 결속에서 발견될 수 없디는- 박용구의 해석 은 설득력이 있다. 박용구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1946 년에 나타난 음악계의 공전의 활황은 보수전의 결속에서 온 것이라고 봄 은 옳지 않다. 그것은 1940 년대를 경계로 하고 과거의 양행음악가들 의 만능선수적 음악소년기를 지양시킨 일본서 나온 우수한 신예들 이 제 2 차 대전으로 더욱 강화된 일제의 문화강압 밑에서 아카데미 즘이라는 최저 저항선 뒤에서 축적한 기술을 1946 년에 이르러 결실 시켰던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예의없는 특 색은 초당파성과 순수의 냄새였으니 이 해에 가장 주목을 끌었던 ‘음 악가의 집'울 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178) 그 당시의 일본은, 요사이 식으로 말하면, 실기 천재교육 내지 조기교육을 그 자체로서는 부정 하면서 도리어 한층 고차원적 단계에서 살리는 정책을 편 것으로 알 려진다. 그러한 일본에서 공부한 한국의 젊은 음악도들의 귀국은 이 땅에 무엇을 가져다 주었겠는가. 2 차대전 발발 후에 증가되는 문화 탄압 정책하에서 말이다. 전공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에는 죄가 있을 수 없지 않느냐는 태도의 견지가 그들에게 유일하게 주어전 일 제에 대한 저항 방식이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음악이나 열심히하자 라는 쟁점을 걸고 〈음악가의 집〉 주변에 모여들었었는지 모를 일이

178) 박용구, 「해방 후의 음악계 3 년」, 《민성》, p.48 .

다. 그래서 결국 기억될 만한 음악 활동이 역사에 남게 되기도 한다. 김순남, 이건우, 박은용, 이경팔, 윤기선, 이인형, 문학준 등의 분야별 활동이 그것이다 .179) 그러나 음악만 열심히하면 된다는 사고는 결국 문화주의의 함정을 낳고 말았다. 미소공위의 결렬이라든가 조국분단 이라는 현실은 〈누구를 위하여 어떻게 음악하여야 하느냐〉의 문제 성을 더 심각하게 만들었다. 문화주의의 함정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심각성과는 무관한 의식구조를 낳는 것과 맥이 닿는다.

179) 위의 책, p.48.

문화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나려는 운동은 창작계에서 벌어진다. 가 곡집 『자장가』와 『산유화』를 낸 김순남과 『금잔디 』와 『산길』을 낸 이건우가 대표적 인물이었다. 그 당시 새로 창간된 잡지 《백제》 (1946 년 10 월 창간) 의 2 권 1 호(1 947 년 2 월 발간)에 김순남은 「악단 회고기」 를 쓰고 있는데, 음이 아닌 말로써 김순남은 자기가 생각하는 음악 이 할 일을 토로한다. 물론 지금까지 언급되지 않은 사람들 중에도 글을 통해서 자기의 음악관을 피력한 사람은 해방 직후에 많았다. 지금이나 옛날이나간에 인간은 어디서나 글을 통해서 자기 시대를 성실하게 살아가기도 하는 모양이다. 박용구와 박영근 이의에도 눈 에 띄는 필자는 많다. 노광욱(「민족주의의 두 가지 조류」 〈민성〉 ),180) 박 은용(「시와 음악의 교류」 〈신천지》 )18 1), 정종길(「근로대중의 음악」 〈인민 예술》 )182) 등, 그 수효는 상당히 된다 .183) 한국음악사 서술을 위한 유용 한 자료를 제공한 사람들이라 아닐 수 없다.

180) 노광욱, 「민족음악의 두 가지 조류」, 《민성》(서울, 고려문화사, 1949). 181) 박은용, 「시와 음악의 교류」, 〈신천 A i〉(서울, 을유문화사, 1948). 182) 정종길, 「근로 대중의 음악」, 〈인민예술》(경성, 연문사, 1945, 창간호). 183) 민경찬은 이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제공하고 있다. 본 원고 집필 역시 민경찬 소장 자료에 힘입은 바가 컸다. 남북 월북 음악인 명단, 활동상황, 작품목록, 음악사적 위치 등에 대한 언급은 〈객석》(서울 : 주식회사 예음, 1987) 에 민경 찬에 의해서 요약되고 있다.

〈누구를 위하여 어떻게 음악하여야 하느냐〉라는 쟁점에 대해서 상 대적으로 무관심을 표현한 음악가들이 남겨 놓은 음악사적 행적은 음악계 내적 헤게모니 쟁탈전의 양상을 띠며 나타났다• 다같이 합쳐 도 제대로의 교향악단 하나가 이루어질까 말까했던 그 시절에 〈고 려교향악단〉과 〈서울관현악단〉이라는 이름으로 교향악단은 둘로 쪼 개지고 말았다. 그 당시의 상황을 두고 박용구는 음악시평 〈‘고려'와 ‘서울'〉을 통해서 이렇게 쓰고 있다. 〈……‘고려'나 ‘서울'이나 할 것 없이 그들은 진실로 조선음악문화의 건설을 위한 정도와는- 동떨어 전 걷음을 걷고 있음에는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들은 지이드가 말한 ‘여유 있는 사람들’과 운명을 같이하는 길을 택하고 있으며 이 땅의 음악문화 건설의 가장 귀중한 역군인 창작진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昭) 박용구의 눈은 이때부터 벌써 예리했음을 알 수 있다. 음악과 정치성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입장을 고

184) 박용구, 「고려와 서울 방송 음악」, 〈민성〉(서울, 고려문화사, 1948).

수해 왔던 채동선마저 음악이념 확립의 중요성을 강조한 적이 있는 것으로 보면 〈누구를 위하여 어떻게 음악하여야 하느냐〉라는 쟁점 이 그 당시 무조건 무시되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음악문화 건설에 대하야라는 글에서 채동선은 이렇게 쓰고 있다. <…… 비록 예술 지 상주의라고 하더라도 한 인간이요 조선민족의 일원이니만큼 국가민 족과 예술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기본 이념이 없이 다만 상아탑에 만 들어앉아 직공적 음악생활만을 하여서는 도저히 건전한 음악문 화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국민된 책임감에 민족자결정 신을 신봉 아니할 수 없고 예술적 기본 이념에 있어서는 모든 데카 당적 악마주의를 배격하고 정통적 순수음악 수립울 기본 이념으로 아니 삼을 수 없다.〉 185) 채동선은 여기서 민족자결정신의 중요성을 음

185) 채동선, 「음악문화 건설에 대하여」, 〈예술 조선》(서울 : 선문사 1948 년 2 월호).

악의 정통적 순수성만큼이나 중요시했을 뿐만 아니라 데카당적 악 마주의를 배격했다. 이 배격은 곧 〈누구를 위하여 어떻게 음악하여 야 하는냐〉라는 문제를 무조건 외면할 수만은 없다는 사고의 반영 이 아닐 수 없다• 박영근은 채동선의 이러한 일종의 전향을 음악계 에만 있는 특수 현상이라고 풀이했다. 음악인이든 정치인이든 그 당 시의 한국인이면 누구나 의면할 수 없었던 것, 음악보다 더 중요했 던 것이 바로 남북분단을 막아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남북통일을 갈 망하는 젊은이의 단체였다고 하는 음악건설동맹과 병존한 고려음악 협회의 있음을 해괴한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말하는· 안목도 있었던 것을 보면, 그리고 그러한 안목이 오늘의 보통 사람들에게는 망각되 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 전실은 언제나 역사 속에 파묻혀 버리고만 마는가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것은 옳 은 것일 수 없다. 1948 년 이인형과 윤기선이 각각 차이코프스키 피 아노 협주곡을 연주했던 사실이 보통 사람들에게는 숨겨져 있는 사 실이지만 역사는 그것을 기록하고 있지 않은가• 이 말은 보통 사람 은 역사 기록의 무서움을 모르고 있을 뿐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역사의 무서움을 몰라도 되는 보통 사람과 그 무서움을 아는 보통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로 역사 기록의 중요성을 얼버무릴 수만은 없 는것이다. 해방 3 년 후, 박은용은 「주제 없는 환상곡」이라는 글을 썼다. 1948 년 12 월 28 일 《서울신문》 문화 1 년 회고를 위한 글이었다• 음악에 있는 형식 개념을 빈 글이었다. 형식이 일정치 않고 주제가 분명치 않은 하나의 악곡형식을 환상곡이라고 정의한 후, 1948 년의 문화계 를 환상곡의 성격으로 요약한다. 문화가 정치에 종속적 성격을 띠는 것으로 보고, 국가가 뚜렷한 세계관을 가질 형편이 못 됨을 지적하 면서, 국가가 확실한 방향감각을 가지지 못할 때이면 문화 쪽에서 오히려 세계관을 수립하여 정치를 이끌어 갈 필요가 있다는 요지의

글을 썼다. 그러나 문화인의 이러한 각성과는 상관없이 1948 년 8 월 15 일을 기해서 새 정부는 이미 들어서고 있었고, 음악인들의 활동상 황은 이 정부가 지향하는 바대로 자기 정당화 작업만을 해야 하는 운명을 지니게 된다. 1948 년 9 월 22 일, 23 일 양일간에 걸쳐 당시의 시공간에서 정부수느 립 기념음악회가 개최된다. 이유선과 아상만의 글에서 이에 관한 언 급이 있고 이들의 한국 양악사 관련 정보 제공은 값지다 .186) 이러한 정보에는 요리되지 않은 정보도 있고 사관에 의해서 요리된 정보도 있다. 물론 저자에겐 요리되지 않은 정보가 더 값지다. 요리되고 혹 은 요리되지 않고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요리를 위한 자료 자체가 없 으면 애초부터 역사 연구는 할 수가 없다. 이런 의미에서 이유선과 이상만이 차지하는 역사 관련 연구 분야의 위치는 과소 평가될 수 없다. 그들이 제공한 정보를 기초로 해서 한국음악사 서술이 정확화 되고 세련화될 날이 하루빨리 와야 한다.

186) 이유선, 『한국양약 100 년사』(서울 : 음악춘추사, 1985).

5.1.2 정치무관련 시대 1948 년 8 월 15 일 정부가 들어선 후의 한국음악사는 두 가지 종류 의 의식 과정이 소리 없이 상호 역동작용을 하는 시기로 해석된다. 순수형이 역사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져 가는 과정과 역사 관리의 실 무 생리를 알고 역사 집행의 대리인격 위치를 스스로 받아들이기로 하고 나선 타협형이 그 정체를 드러내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선과 악의 생리의 다름을 한탄하고 악과 관련되는 모든 역사 전행과의 싸 움을 포기하고 스스로의 역부족을 느끼면서 역사를 의면하기로 결 심한 자, 죽 역사의 방관자로서 혼자 의로움을 달래면서 자기의 싱

체를 영원히 지상에서 소각시키기로 작정한 일군의 안간들을 가정 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너나할것없이 인간에게는 선적 그리고 악적 요소가 어차피 공존하도록 되어 있다는 사실의 〈참됨성〉을 받 아들이고, 방관하면 역사는 더욱 빗나갈지 모르니 악과 최소한의 타 협선을 긋고 역사를 그래도 올바르게 끌고가야 한다는 소신에서 역 사에 참여하기로 작정한 일군의 인간들을 가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6 • 25 가 발발할 사이, 그러니까 만 2 년도 채 되지 못하던 나날둘은 타협형이 역사 집행에서 자기식의 역할 분 담을 준비하기에 바쁜 시기로 해석될 수 있다. 눈에 필 만한 음악 활 동이 보이지 않는 이유도 준비기라는 시대적 속성 때문이 아닌가 싶 다. 이 시기의 음악사적 해석을 달리 내려지게 할 사료의 발견이나 역사 해석관의 재정립이 요청될 날이 올 것으로 믿는다. 물론 이 시 기에 음악 활동이 전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이미 언급한 대로 1948 년 9 월에 정부수립 기념공연이 있었고 그 이듬해 9 월 10-13 일 사이에는 서울교향악단의 창단 1 주년 기념공연, 음악지 〈필하모니》 창간, 현제명을 회장으로 하는 대한음악협회의 조직, 북한으로 이주 하는 음악인들의 출현 등의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6 • 25 의 발발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말았다. 동란기는 해군정훈음악대(대장 김생려)의 활동기로 보면 된다. 물 론 이 시기의 역사적 해석 역시 따로 연구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6 • 25 가 발발하던 그 해에는 해군정훈음악대, 그 이듬해는 공군정훈음 악대(대장 김성태)가 창설되었고, 또 그 이듬해인 1952 년에는 해군정 훈음악대의 연주가 김성태 지휘로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지만, 이 시기의 음악사적 해석은 더 철저히 행해져야 한다. 1952 년은 두 가지 의미에서 한국음악사의 전기가 된다. 두 가지의 샘으로부터 아른바 현대음악에의 눈뜸울 위한 계기가 마련된다는 점 이다. 한국 양악사에서 서양현대음악 수용의 의미분석은 민족음악

창달을 위해서 반드시 다른 시각에서 행해져야 한다. 이 시기부터 임원식의 역할은 그 누구보다도 중요하게 나타난다. 그는 1952 년에 〈실험악회〉를 주재한다. 비록 오래 계속되지는 않았지만 몇 년 후의 창악회 발족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리라는 의미에서 임원식의 역할은 창작사적으로도 무시될 수 없다. 그 다음에는 이상만이 언급한 대로 한국에서 처음으로 나운영에 의해서 〈현대〉라는 어휘가 소개되어진 다는 점이다. 여기서부터 한국은 무조음악이라는 망령에 본격적으로 사로잡혀 버리고 만다. 이상만은 이렇게 쓰고 있다. 〈 1952 년 나운영 (1922- )은 가곡 ‘아흔 아홉 양'을 발표했는데 한국 현대음악회가 주관 이 되었다. 여기서 처음 현대라는 말을 사용했으며 이 작품은 후기 낭만의 영역에서 머뭇거리던 기법에서 탈피해서 비조성적인 작품을 보여주었다.〉 작곡가라는 이름으로 이 시기에 거론되던 사람은 현제 명, 김성태, 이홍렬, 김세형, 박태준, 금수현, 김동진, 나운영 이의에 도 많다• 윤이상, 이상근, 정회갑, 이성재, 정윤주, 김순애, 윤용하, 김 대현, 김달성(무순) 등이 그들이다. 음악을 음악舞 음악行, 음악作의 차원에서 언급할 수 있다면, 음 악사의 언급도 마찬가지이다. 〈지〉는 학문적 차원, 〈행〉은 연주적 차 원, 〈작〉은 창작적 차원을 지칭한다. 학문적 차원에는 음악이론학, 음 악실제학, 음악역사학, 음악교육학, 음악해석학, 음악수사학, 음악철 학, 음악심리학, 음악인류학 등 여러가지의 분과학이 있울 수 있다• 그러나 이 〈학〉의 차원의 역사는 70 년대 후반과 80 년대에 들어와서 언급될 수밖에 없는 성격의 것이다. 물론 1959 년 서울대학교에 국악 과가 신설되는 것을 비롯하여, 이해구, 장사훈 교수의 학문적 업적이 국악계에 빛나고 있다. 그리고 한만영, 황병기, 송방송, 김용전, 권오 성, 한명희, 최종민, 이성천, 백대웅, 박범훈 등 보다 젊은 충의 연구 가들이 국악계에서 배출되었다. 그러나 양악계에는 학문적 관심이 그만큼 뒤늦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연주계 발전의 모태는 임원식의 의해서 50 년대에 설 립된 〈예고〉에서 생성되고, 예고 주변이 마련한 음악의식 내지 연주 문화에서 비롯된다. 오늘날 한국 연주가의 대부분은 예고 출신이다. 문교부 교육정책이 이유가 되어서 조기교육 내지 영재교육관이 백 퍼센트 시행되지는 않았지만, 예고의 기본적 교육이념은 조기교육 이념에 바탕을 둔 연주가 양성기관과 관계되었다. 예고 주변이 마련 했던 음악적 기후는 내한 연주가들의 출현, 김영욱, 정경화 같은 문 자 그대로의 세계적 연주가 배출 등을 가능케 했다. 연주 분야에 한 에서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까지도 예고 관련적 음악이념이 없으 면 존재할 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예고가 음악교육 전반 을 모두 감당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연주 교육이 곧 음악교육 이라는 개념을 한국 음악풍토에 심었디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음악교육이 지 • 작 • 행 분야에서 모두 행해져야 하는 것이라 는 통념이 앞으로 생겨나야 할 악단의 지상목표와 관련되는 사항임 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50 년대 60 년대 70 년대 음악사적 특성을 서로 다르게 규명 짓고 싶 지 않은 입장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입장은 해방 뒤 정부수립 후의 30 여년을 정치무관련 시대로 특징 짓고 싶어한다. 집권자가 가지는, 사람을 강제로 복종시키는 힘, 그리고 돈 가전 자가 남의 행위력을 통제할 수 있는 힘, 이런 힘에 타협하면, 음악 행사 지원이 쉽게 된 다든지 예산 집행도 많이 받을 수 있게 된다든지, 음악문화 발전을 위한 제도적 개혁도 가능해진다든지 하는 식으로, 지난날들은 언제 나 이 힘의 능력을 믿고, 그 힘에 순종만 하던 시대였다는 해석 방 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문화 정책 집행자의 음악관이 잘못되 어 있는 경우, 그것에 순종하면서까지 음악 활동을 전개해 나간다기 보다 차라리 문화 정책 집행자의 음악관을 개혁시키기 위해서는, 순 종보다 반항 내지 저항이 필요할 만한 데도 말이다.

이상만과 이유선이 제공한 한국음악사 서술을 위한 자료는 이미 공개되어 있으므로 여기서 재언급할 필요는 없다. 예술원에서 발간 한 한국 예술사 총서 3 권인 『한국음악사』에서 광복 40 년 음악사 정 보가 이상만과 이유선에 의해서 제공되고 있고, 이유선의 『한국 양 악 백년사』에서도 여러가지의 정보가 제공되고 있다. 1966 년에 발간 된 『음악연감』에도 음악 70 년사가 서술되고 있고, 『음협 40 년사』도 발간되 었다. 『음협 40 년사』에 정 회갑이 「양악 창작 40 년사戶i 쓰고 있다. 그리고 1976 년 문예진홍원에서 『문예총감』도 발간했다. 이런 모든 공개된 인쇄물에는 몇 년, 몇 월, 몇 일, 어디서 누가 어떤 음 악 활동을 했디는 기록이 소개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그것에 대한 재언급은 하지 않고 다만 이러한 자료들이 어떻게 해 석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만을 문제 삼기로 한다. 음악이 정치풍토를 바꿀 수 있다는 사고방식과, 없다는· 사고방식 이 있다면 후자가 음악인들의 삶을 통제했던 것이고, 모든 음악인들 의 활동은 그 통제력하에서 행해졌다는 해석 방식을 택하는 것이 중 요할 것 같다. 이런 해석이 옳다는 전제가 받아들여진 후라면, 이 30 여년 간의 음악사적 특칭은 그런 대로 디음괴소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연주가에게 있어서의 일은 연주다. 그러므로 일을 하려면 연주복 을 입어야 한다. 그런데 연주복이 일종의 예복이냐, 작업복이냐의 문 제는 심각한 쟁점을 낳는다. 연주를 몇 년 만에 어쩌다가 하는· 경우 이면, 연주복울 작업복이라기보다 예복이라고 일컬을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로 50 년대의 연주복은 예복이었다. 그런데 70 년대로 들어 서면서, 그것이 점차적으로 작업복의 성격을 띠게 되었고, 80 년대에 들어서서는 완전히 작업복화되었디는· 것이, 연주회수의 급증 현상과 더불어, 하나의 역사적 변화라고 말할 수 있다. 의국에 거주하고 있 는 한국인 연주가둘을 제의하고서라도, 한국의 연주가들은 오늘날 이 땅에 많다. 정전우, 백낙호, 김정규, 김형배, 김귀현, 이경숙, 이혜

경, 김용배, 김형규, 박은희, 이연화, 서계령, 산명원, 손국임, 김금봉, 윤미경, 김용윤, 김남윤, 김민, 이종숙, 최민재, 최한원, 이동우, 김봉, 박병훈, 백청심, 윤영숙, 이종일, 채일회, 고순자, 김현곤, 신홍균, 김 대원, 성필관, 이강일, 윤상원, 유전식, 이영준, 이태주, 안형일, 이인 영, 이경숙, 김혜경, 유태열, 이명학, 최승용, 정은숙, 박노경, 이규도, 오현명, 박성원, 이성균, 이정희, 현해온, 박인수, 김성길 등이다. 교 향악단인 경우는 아직도 비음악인이 운영의 책임을 맡고 있다는 비 합리성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동안 정명훈, 금난새, 곽승 등을 지휘자로 길러냈고, 임원식, 홍연택, 원경수, 정재동, 이남 수, 임헌정, 김만복, 김선주, 금노상 등 몇몇 지휘자 이름이 거론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교향악단사이다. 실내악의 경우가 차라리 낫다. 재정적 뒷받침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긴 하지만, 운영 관련 실무 집행자가 모두 음악인이라는 점이 긍정적으로 보여지는 처지이다. 바로크 앙상블의 김민, 서울 챔버의 김용윤, 페스티발 앙상블의 박은 희 둥은 모두가 음악의 생리를 아는 운영자들이다. 오페라는 언제나 여유 있는 자들끼리의 즐거움이라는 부작용과 음 악양식 자체의 취약점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무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말(성악)과 음(기악)을 합치는 오페라 운동이 중요 한 것은 사실이다. 자연언어와 인공언어(음악언어)의 하나됨을 추구 하는 오페라 운동은 참으로 중요하다. 최근에 한국음악극연구소가 내거는 쟁점에서 출구가 찾아지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해보기도 한 다. 서울 오페라단과 김자경 오페라단 활동에 대한 본격적 평가 역 시 하루빨리 행해져야 마땅하다. 〈작〉 쪽의 역사는 어떻게 집약될 수 있을까. 작 쪽의 역사에 대한 언급의 준비를 위해 음악본질의 일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것같다. 음악은 음이 특정 방식으로 묶여진 결과이다. 묶음에는 원리가 있 고 또 재료가 있다. 원리의 본유적 개념은 시공간을 초월해서 동일

하다고 볼 수 있으나 원리의 관습적 개념은 시공간울 통해서 변한 다. 음악을 묶는 재료 역시 시공간에 따라 달리 존재해 왔고 또 변해 왔다. 음악적 정보의 출처는 묶음의 원리적 차원과 재료 고용적 차 원에서 찾아진다. 묶는 원리에 위배되는 음들의 묶음은 많은 정보를 낳지 못한다. 그리고 재료의 고용문제와 관련되는, 하나의 악곡이 담 고 있는 정보량은 재료의 〈낡음성〉이나 〈성성함〉이 결정한다. 음악 양식이라는 용어를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데, 이 양식이라는 말의 의미를 옳게 이해한다는 것은 음악사 이해를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그 중에서 특히 양식은 언제나 그 양식 속에서 사용될 특정 재료적 속성을 한정 짓고 있기 때문에, 구양식은 낡은 재료, 신양식은 새로 운 재료가 운반된다는 뜻을 내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18,9 세 기의 서양음악을 낳던 재료는 20 세기 음악을 낳는 재료보다 낡은 재 료라고 생각할 수 있다• 더 많은 음악적 정보를 담고 있는 음악을 만 들고 싶은 창작가들은 그래서 재료 자체의 고용 문제를, 묶는 원리 의 정확한 적용만큼이나 중요시한다. 20 세기의 기법을 고용해야 한 다는 말의 뜻은 음악에는 되도록 더 많은 정보가 담겨져야 한다는 뜻 이상의 것이 아니다. 만일 묶는 원리의 새로움이나 훌륭함 때문 에 낡은 재료를 사용해도 그 속에 충분한 정보가 담겨진다면 성성 한 재료든 낡은 재료든 상관할 필요가 없다. 재료의 고용은 정보 배 출의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근대 한국 작곡사에서 문제가 되는 이른바 제 2 세대 작곡가들의 출현이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제 2 세대는 제 1 세대 가 사용하던, 음을 묶는 재료를 낡은 재료로 취급했다. 서양의 18,9 세기 음악을 낳던 재료라는 이유에서이다. 그래서 제 2 세대는 이른 바 현대기법이라는 서양의 20 세기 음악을 낳는, 음 묶는 재료에 대 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창작가는 남의 흉내를 내면 되 지 않고, 언제나 독창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정말로 옳은 것이라

면, 재료의 차원에서도, 그것이 낡고 상성하고간에, 남의 재료를 빌 어 와서는 되지 않는다. 일군의 작곡가는 19 세기 서양음악 어법을 빌어 왔으니까 구태의연한 작가정신을 가졌고, 일군의 작곡가는 20 세기 서양음악 어법을 빌어 왔으니까 독창적이다라고 말하는 논리 는 틀린 논의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것을 빌어 왔든간에 빌어 온 아이디어임에는 마찬가지이다라는 측면이 고려되어야 한다. 재료 의 빌어옴은 용서가 되고 묶음의 원리적 차원에서만 남의 아이디어 를 빌어 오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제 2 세대들은 묶는 원리도 서양음악을 낳는 원리로부터 빌 어 온다. 빌어음은 일종의 흉내냉이다. 물론 흉내냄이 무조건 나쁘 다는 것은 아니다. 예술은 어차피 흉내냄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이 론에 설득력이 있다고 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전정한 의미에서 완전한 독창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18 7) 문제는 빌어온 아이디어 를 사용하면서 독창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허위의식 구조에서 생 긴다. 구태의연한 묶는 방식이나 묶는 재료의 〈사용〉을 욕하는 자는, 그 〈사용〉이 목적인가 수단인가를- 착각하든가 아니면 자기 편의대 로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런 사고의 맥락에서 보면 1958 년 창악회의 발족에 역사적 의의가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제 2 세 대의 형성과 발전기가 바로 이 창악회의 발족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제 2 세대에 대한 언급은 제 1 세대라는 용어가 설명되면 더욱 분명해 지리라고 생각한다.

187) Charles Rosen , Inf lue nce : Plag iarism and Insp irat i on , On Cri ticizin g Musi c, pp,1 6-37. 표절이냐, 영감이냐의 문제를 이 글이 잘 다루고 있다.

제 1 세대는 한마디로 서양음악이 한국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대두 된 작곡가 세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제 1 세대라는 어휘의 의미 는 그들이 한국 작곡계에서 제일 처음의 세대라는 뜻 이의에도, 그

들이 사용하고 있는 작곡 과정에 작용되는 작곡 재료의 속성과도 연 결된다. 다시 말해서 이른바 조성 관련 재료라는 것으로서, 서양의 18,9 세기 음악을 낳게 한, 직곡- 이전의 작곡조전 고용이리는- 개념과 제 1 세대는 맥이 닿고 있다. 멀리는 홍난파에서부터 이 세대는 시작 된다. 김순남 같은 작곡가가 무조음악을 시도했다는 홍미로운 기록 에 대한 재해석이 내려져야 하겠지만 그것은 다른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홍난파 다음에는 현제명, 김성태, 김동전, 이홍렬 등이 제 1 세대 와 맥을 잇는다. 그들은 대부분 노래 작곡가들이다. 물론 기악곡도 작곡했지만 그들의 알려침은 주로 장단음계로 이루어진 한국에서 소 위 가곡이라고 일컬어지는 노래들을 통해서이다. 필자는 이런 노래 를 한국의 전통 가곡인 〈만년장환지곡〉 같은 노래와 개념상으로 구 분한다는 의미에서 〈준 한국〉 가곡이라는 어휘를 만든 적이 있다. 전통 가곡을 〈전 한국〉 가곡이라고 명명하면서 말이다 .188)

188) 이강숙, 「한국 가곡, 그 진과 준」, 『열린 음악의 세계』(서울 : 현음사, 1987), pp.2 71-76.

그러니까 제 2 세대는 우선 제 1 세대가 고용하던 작곡기법을 거부했 다는 것이고, 조성음악만 음악이다라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했다는 것 이니까, 양식적으로 그리고 상대적으로 전보적 입장에 서 있는 작곡 가군이다. 음악양식을 역사의 산물임을 인정하고, 양식은 시대에 따 라서 변함을 인정하고, 현대인은 현대인의 호흡에 맞는 현대기법을 고용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대부분의 음악 수용자들이 가지고 있는 통념을 거부하면서, 과감히 현대 작곡기법을 고용한 세대가 제 2 세대이다. 그러니까 제 2 세대는 연령층과 관련되는 개념이 아니다. 현대기법을 작곡의 사전 조전으로 수용하는 한국의 모든 작곡가는· 모두 제 2 세대에 속한다. 현재 작품활동이 가장 활발한 중견 작곡가 들 대부분이 여기에 속한다. 백병동, 강석희, 김용전, 김정길, 박재열,

윤해중, 최인찬, 나인용, 김청묵, 박준상, 최동선, 공석준, 이만방, 임 우상, 이종구 등이 그들이다. 물론 황병기, 이성천, 김용전, 백대웅, 박범훈, 장일남 등은 작곡가적 속성이 다르다. 그러나 제 2 세대 음악 관이 음악역사 철학적 시각에서 재분석 검토될 날은 반드시 와야 한 다. 제 2 세대에 반기를 들고 나온 작곡가군이 80 년대에 그 모습을 드 러낸다. 제 3 세대가 바로 그것이다. 제 3 세대는 재료의 고용은 어디까 지나 수단으로 본다. 그리고 해방 전후의 쟁점 중의 하나였던 〈누구 를 위하여 어떻게 음악하여야 하느냐〉의 문제를, 어투는 다르지만, 다시 돌고 나온다. 양석성과 음악의 윤리성을 접목시키려는 의도가 쟁점으로 부각된다. 이전용, 유병은, 진규영, 황성호, 강준일, 정태봉, 허영한들이 중심이 된 작곡가군이다. 이들이 내거는 쟁점은 역사적 으로 중요하다. 그들이 말언어로 하는 언급보다 음언어로 하는 언급 이 쟁점에 덜 부합된다는 약점을 안고 있간 하지만, 민족음악문화 창달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는 의미와 출구를 제공했다는 뜻에 서 역사적 중요성이 인정되지 않을 수 없다. 〈지〉 분야에서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동안 국악계에서만 일 울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악계에서는 70 년대 후반부터 기 미를 보이기 시작하다가 81 년 서울대학교·음악대학에서, 이강숙, 서 우석, 이전용을 중심으로, 이론전공이 서울대학교 40 년사에서 처음 으로 생기고부터 그 역사적 사명기를 맞게 된다. 음악이론의 의미를 협의와 광의로 해석하고(이강숙의 「음악이론의 의미와 역할」 《예술과 비 평》, 2 호), 『음악과 이론』(서우석 편)이라든가 『음악과 지식.!I(이강숙 편) 이라는 음악이론서를 출간해 내기도 하면서, 음악을 학문의 대상으 로 삼으려는 노력이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집단적 차원에서 이루어 지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한국음악문화적 기후의 창조가 이루어지 고 있는 것이다. 음악학 학술 계간지 《낭만음악》(낭만음악사 발행)이

이강숙에 의해서 창간되기에 이른다. 문자 그대로 음악의 실제와 이 론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적합한 기후 속에서, 민족음악과 세계음악 의 조화 관련적 창조문제를 위한 이론적 툴을 찾고 있는 중이다. 해 의에서 음악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근년에 귀국한 홍정수, 조선우, 성경희, 이여전, 김춘미, 노영해, 박미경, 이석원, 허영한, 박재성 등 의 연구활동도 주목해야 할 대상이며 국내파인 노동은 역시 이미 우 수한 연구업적을 내고 있다• 이강숙, 송방송, 아전용, 김춘미, 조선우, 홍정수, 박종문, 박미경, 성경희, 조영주, 노영해를 구성원으로 하는 〈음악학 연구회〉의 활동도 주목된다. 80 년대에 들어서면 또 하나의 역사적 특칭이 드러난다. 이론 분야에서 한꺼번에 여러 사람의 신인 들이 출현한다는 점이다. 전지호, 민경찬, 박선희, 이장직, 주성혜, 김 방현, 주동률, 조영주, 이영미, 전회숙, 임현경, 이인원, 김학민, 전정 임, 문옥배, 노주희, 박은경, 홍승찬, 강혜정 등이 그들이다. 5.1. 3 정치유무관련 시대 80 년대는 〈누구를 위하여 어떻게 음악하여야 하느냐〉의 문제가 해 방 직후의 쟁점적 성격과는 다른 형식을 띠면서 중요 문제로 다시 등장한다. 음악의 정치 관련적 기능성만을 문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심미적 양식성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방향 모색을 한다는· 의미 에서 정치유무관련 시대를 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강숙이 「무조 관련적 음악의 한국적 수용」, 「음악 해방론」, 「음악의 민주화」, 「작 곡가 자유론」, 「음악해석학 연구」 등의 논문을 통해서 자기의 음악 관을 펴고 있고, 이건용 역시 그의 저서 『민족음악의 지평』과 『한국 음악의 논리와 윤리』를 통해서 정치유무관련 시대를 맞이하여 자기 가 취할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 노동은 역시 많은 글을 통해서 중요 한 쟁점을 거론하고 있다. 김창남과 이영미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이른바 노래운동이 음악전문가들과의 대화를 벌임으로 해서 더 바람직한 출구를 찾게 될 수 있다면 정치유무관련 시대의 앞은 밝 으리라는 생각이다. 〈누구를 위하여 어떻게 음악하여야 하느냐〉의 문제를 놓고, 우리는 그것을 중요 쟁점으로 삼고 깊은 논의를 해야 한다. 그러한 논의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틀린 것이라면, 그것이 왜 틀린 것인지에 대한 학문적 논의가 철저히 행해져야 한다. 〈누구를­ 위하여 어떻게 음악하여야 하느냐〉라는 쟁점을 들고 나온다는 것 자 체를 불순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야말로 옳은 것이 무엇인가를 참되 게 따져 보기도 전에 자기석의 옳음을 정해 놓고 모든 일을 그야 말로 불순하게 다스리려는 사람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음악사 서술을 위해서는 우선 자료 수집이 중요하다. 그러나 자료 수집의 중요성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누구를 위하여 어떻게 역사를 써야 하느냐〉의 문제 해결책을 강구 할 역사철학 관련 체계의 확립이 아닐 수 없다• 이 개념 체계의 확 립은 기존 이론을 통해서도 찾아지겠지만, 그것보다도 성실하고 정 직한, 불순하지 않게 〈지금 여기〉를 의식하는 사고를 통해서 그것이 찾아질 때 우리의 삶이 가장 복되게 되리라고 믿는다. 5.2 음악학의 역할 지금부터는 사회 관계 개선과 음악의 역할에 대해서 논의함으로 써 음악학이 해야 할 또 다른 하나의 일에 대한 성격 규명을 해보 기로한다. 이 시대는 민족음악이 요청되는 시대다. 이 말의 의미를 풀고 그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쓴다 .189)

189) 《예술과 비평》(서울 : 서울신문사, 1988) 복간기념회에 「사회관계의 정립과 음 악의 역할」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글을 가필한 것임.

시대가 바뀌면 예술이 바뀐다고 한다. 해방 후 공화국이 여러 번 바뀌었는데도 음악의 성격은 거의 바뀌지 않고 있다. 음악 분야에서 는 〈예술이 시대를 반영한다〉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시 대 개념에 대한 생각을 한국 음악인들은 달리하고 있는 것이기 때 문에 그런 것인가. 시대 개념에 대한 생각을 달리 가진다는 말이 가 능한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생각하는 시대관과 다스림을 받는 자의 시대관이 같으라는 법이 없는 예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다스리 는 자는 다스리는 자의 위치에 그냥 눌러 앉아 있어야 이 시대의 민 족사가 옳게 간다고 믿고 있을 수 있겠고, 다스림을 받는 자는 다스 리는 자가 누구냐가 문제가 아니라 민주화를 실천하는 자가 이 시 대가 요청하는 지도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 소설가가 생각하는 시대 와 작곡가가 생각하는 시대 사이에도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소 설가가 광주사태를 주제로 작품을 써야 한다는 의식으로 고민하는 시대상을 가진다면 작곡가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그러한 고민을 하 지 않는다. 〈현대〉라는 어휘를 두고 생각하는 생각의 내용에서도 차 이가 있다. 작곡가들이 현대리는· 말을 쓰고 있는데, 이때의 현대라 는 용어는 우리가 지금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 시대를 지칭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말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여 기〉와 상관되는 것이 아니라 서양의 창작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 건과 깊은 관계를 가진다. 말하자면 상대적인 이야기가 되긴 하겠지 만 우리 쪽보다 서양인들에게 주어지는 시대를 관심의 대상으로 삼 는다는 것이다. 이 땅의 올바론 음악문화 창달을 위해서 이러한 현 상은 깊이 반성되어야 한다. 민주화가 요청되는 이 시대에서 음악인들은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중요한 질문이다. 〈생각하는 방식〉이 음악을 낳 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방식이 음악을 낳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봇을 왜곡하여 기존의 정치 • 경제적 세력의 시녀 역할로 봇을 놀리

는 작가는 그 책임을 자기의 봇에 돌릴 수 없다. 그 봇을 놀리는 근 거가 되는 자기의 생각에 책임을 돌려야 한다. 허용해서는 되지 않 는다고 속으로는 생각하면서도 타협을 용납하는 의식구조가 책임을 져야 한다. 작곡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작곡가가 만일 시대상을 반 영하는 작품 쓰기를 의면한다면 그 책임을 음이라는 매체에 돌릴 것 이 아니라 작곡가가 현실을 의면하고 심미성이라는 튼튼한 울타리 안에서 안주하고 말겠다는 의식구조에 책임을 돌려야 한다. 모든 것 은 매체를 다루는 작가의 생각하는 방식이 결정하는 것이다. 여기에 두 사람의 작곡가가 있다고 하자• 〈갑〉이라는 작곡가는 구라파에서 지금 현재 어떠한 음악이 생성되고 있는가에 대한 정보를 중요시한 댜 다시 말해서 서양현대음악의 추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고 를 하고 있다. 그러니까 자기가 살고 있는 한국 사회의 정치적 상황 과 음악을 연결시켜야 한다는 문제는 〈음악적 문제〉가 아니라고 생 각하는 사람이다. 〈을〉이라는 작곡가는 〈갑〉과 디론·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서양의 음악양식적 • 기법적 추세도 중요하다고 생각 하겠지만 그것보다 정치범이 고문당하는 것이라든가 민주화를 저해 하는 요인을 더 슬퍼하고 있다. 이러한 슬픔을 음악에 담아 보고 싶 어한다. 서양인들이 사는 세상에서의 음악 상황을 아는 것도 좋지만 현재 한국의 이 땅과 이 세상을 더 중요시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음 악함을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방식의 하나로 생각하고, 인간의 삶은 정치적 상황이 마련하는 굴레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 굴레에는 좋은 굴레와 나쁜 굴레가 있다. 나쁜 굴레 안에서 음악 을 하고 있기보다는 음악을 버리고 좋은 굴레를 만드는 데 기여하 는 삶을 살고 싶어한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지만 그는 음악하는 재주밖에 가지고 있지 않음울 자각한다. 이 자각이 그를 슬프게 만들기도 하지만 다른 차원에서의 용기를 불러일으켜 주기 도 한다. 그래서 음악을 동해서 인간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좋은 굴

레를 만들고 싶어한다. 〈갑〉과 〈을〉의 생각이 이렇게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 생각이 낳는 음악이 달라질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생각 하는 방식이 다르면 그 다른 방식 때문에 음악이 다르게 태어날 것 은 뻔한 일이다. 민족음악은 그 탄생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태 어난다. 그런 사람의 생각이 낳는 음악이 민족음악이다. 그러나 무엇 을 민족음악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낳아지는 음악의 속성이 달 라진다. 그러므로 민족음악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옳은 대답을 제 공할 수 있는 생각이 규명되어야 한다. 음대에 재직하고 있는 많은 〈교수 작곡가〉둘은 민족음악이 창조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기보 다 어떤 음악이든 좋으니 그것이 예술음악이고 또 양식적 개성을 지 닌 유익한 작품을 만들어 내면 된다고 생각한다. 〈구조적으로 좋은〉 작품의 만듦만이 중요하디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음악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양식적 재료의 새로움을 중요시하는 생각은 가지고 있으면 서 양식적 재료가 발휘할 사회적 효과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 러나 〈한국음악〉 논의라든가 제 3 세대 혹은 노래운동에 관심이 있는 소수의 음악인들이 보내는 민족음악에 대한 관심은 그 성격이 많이 다르다. 필지는 이 서로 다른 생각이 〈하나〉로 묶여질 수 없는가라 는 생각을 해본다. 왜냐하면 〈하나〉로 묶여짐만이 현단계에서의 민 족음악 창출을 위해서 중요한 계기를 만들 것이라는 생각이 둘기 때 문이다.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이론이 정립되고 그 정립된 이론의 실천이 이루어질 때 민족음악의 씨앗이 뿌려지리라는 믿음을 가진 다. 생각하는 방식이 음악을 낳는다면 우리는 어떠한 〈생각하는 방식〉 울 가져야 하는가. 옳은 〈생각하는 방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너 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문제는 옳은 생각을 가지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있다. 저자의 생각으로는 우선 생각하는 방식의 종류

와 그 생리를 알아야 할 것 같다. 〈하나〉가 되는 길은 그 〈하나〉를 이룰 구성 요인의 속성이 명확히 밝혀져야 할 것이고, 생각하는 방 식은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간에 사회적 • 역사적 이유로 마련되는 것 이지 저절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래서 역 사적으로 여러가지 서로 다른 생각하는 방식이 존재했었다는 사실 을 알아야 하겠다는 것이다. 생각하는 방식은 〈먹고 사는〉 수단을 취득하는 방식에 의존적이 다. 생각하는 방식이 〈먹고 사는〉 수단을 취득하는 방식에 의존적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말해야만 자기가 먹고 사는 수단 울 더 쉽고 편리하게 취득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고 기득권 같은 것 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수단 취득 방식은 생각하는 방식 울 낳고 생각하는 방식은 그 방식이 낳을 행위 결과의 원인 구실을 한다. 원인이 잘못되면 결과도 잘못된다. 방식에 잘못이 있으면, 그 잘못의 여파로 태어난 예술에도 잘못이 있게 된다. 그러니까 먹고 사는 수단의 취득 방식이 좋아야 한다. 그래야 생각하는 방식이 옳 아지고 그것이 원인이 된 결과가 옳아진다. 먹고 사는 수단의 취득 방식이 틀려져 있는 사회가 있다고 할 때 그것에 대한 불만만을 표 시하고마는 것은 그 사회를 개조하는 길로 들어설 수 없다. 그러한 틀림을 낳게 되는 요인을 사회적 관계의 차원에서 분석하고 색출해 내어 치열한 바판을 가해야 한다. 생각하는 방식에는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방식이 있고 자기 더하기 우리 모두의 이익을 자기 이익같이 생각하는 방식이 있다. 그리고 개인적 행복만을 추구하는 방식이 있고, 집단 모두의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이 있다. 몸의 안전을 추구하는 방식이 있고 마음의 안정을 추구하는 방식이 있다. 어느 쪽이 좋고 나쁘다는 것에 대한 생각은 역사적으로 또 상황적으로 일정치가 않다. 다양한 생각의 방식을 필자는 이상적 방식과 현실적 방식으로 나

눈다. 각 방식의 생리를 설명한다는 것은 우리 시대가 과연 어떤 생 각의 방식을 가져야 하는가의 문제에 해답을 주는 역할을 할 것으 로 믿는다. 이상적 방식은 그 생각의 근원이 플라톤으로 거슬러 올 라간댜 풀라톤은 지식의 대상 영역을 둘로 나눈다. 〈변하는 영역〉 과 〈변하지 않는 영역〉으로 나눈다. 가변세계와 불변세계로 나눈다 고나 할까. 감각대상은 오관으로 지각되는 것이기 때문에 불확실하 고 부정확하다. 다시 말해서 언제나 똑같은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변하는 영역이 된다. 오관의 대상은 헤라클리투 스의 〈강〉처럼 계속적 흐름 안에 있음으로 변하는 영역이 된다. 이 와는 달리 초시간적 형상의 세계는 변하는 세계가 아니다. 개별적 고양이들은 태어나고 성장하고 늙고 그래서 죽고 함으로써 언제나 변하는 형태로 존재하지만 〈고양이다움〉으로서의, 고양이의 형상은 하나로 고정되어 있고 불변한다. 고양이디움의 추상적 형상은 불변 의 세계를 낳는다. 아무튼 지식의 대상이 둘로 나누어전다는 생각은 역사적으로 찬반의 시비가 계속되는 와중에서 오랫동안 심지어는 지 금 이 순간에도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변하는 영역과 상관되는 감각대상은 실물격 대상과 허상격 대상 으로 나누어진다. 실물격 대상이러는· 것은 자연물을 의미하고 허상 격 대상이라는 것은 자연물의 그림자나 실상격 대상과 닮은 상을 의 미한다. 변하지 않는 영역과 상관되는 형상의 영역은 수학적 형상의 세계와 윤리적 형상의 세계로 나눈다. 여기가 바로 인간이 옳게 사 는 방식과 상관되는 이상적 사고방식에 대한 논의가 전개되는 장소 이다. 윤리적 형상 운운은 가장 옳게 사는 방식을 이상적으로 논의 하는 문제와 상관된다는 말이다. 플라돈의 형상을 〈좋음〉의 형상이라고 했다. 어떤 것에는 반드시 그것의 가장 좋은 형편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가 장 좋음의 〈형상〉을 마음에 그릴 수 있다. 인간이 취득할 수 있는 지

식의 옳고 그릇됨의 측도 역할을 이 〈좋음〉의 형상이 한다. 모든 지 식은 이 〈좋음〉의 형상에 의해서 정의된다. 그러므로 〈가장 좋음〉이 지식의 최고의 단계가 된다. 이 〈좋음〉이 바로 인간이 가장 옳게 사 는 방식의 측도가 된다. 생각하기에 따라 〈가장 좋음〉의 개념이 비 판 대상이 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얻어질 수 없는 가장 좋음이라는 신데렐라격의 꿈을 설정해 놓고 그것을 얻을 수 있을 때까지 현실 적 불만을 참고 기다리는 식으로, 고생하는 사람을 기만할 수 있는 여지가 이 〈가장 좋음〉의 개념이 마련하는 함정일 수 있기 때문이 댜 〈가장 좋음〉까지 갈 필요가 어디 있는가, 그냥 좋음도 좋으니 지 금보다는 약간아라도 좋으니, 일단 더 좋음을 얻자라는 생각은 〈가 장 좋음〉이라는 개념에 의해서 거부당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좋 음〉을 고집하는 것이 속임수일 수가 있다. 그러나 가장 좋음이 현재 의 덜 좋음의 측도가 되고 현재의 덜 좋음을 그 측도에 비추어 봄 으로 해서 더 완전한 좋음으로 나아가게 하는 역할을 하게 한다면 그 의미는 달라질 수 있다. 지금까지 언급된 논의는 비록 〈좋음〉의 얻음이 현실적으로 어렵 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목적은 그러한 〈좋음〉이 있다 는 것을 알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생 각의 중요성을 인식시키자는 것이다. 플라톤에 의하면 〈좋음〉은 〈참 있음〉이라고 한다. 이 〈참 있음〉은 언제나 인식 대상이 될 수 있는 형성을 띠며 나타난다. 감각적 지각의 문제와 상관되는 것들이나 신 체적 즐거움의 문제는 이 〈참 있음〉과 상관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풀라톤의 이론에 따르면 〈좋음〉은 감각세계나 신체적 세계와 떨어 질 때 얻어질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이상주의적 사고라기보다 진리 와 착함만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고 그것의 얻음은 신체 적 • 감각적 • 지상적 즐거움과 무관한 것이라는 사고의 중요성을 강 조한다는 의미로 제공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민족음악을 제창하는 사람들은 이상주의자라기보다 현실주의자일 지도 모른다. 이 현실주의자는 옳은 세상을 얻는 데에 필요한 음악 을 추구한다. 그래서 그것의 얻음을 위해서 신체적 • 감각적 • 지상적 쾌락과 의면할 각오를 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현실주의자가 추 구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주의자가 추구하는 것과 성질이 비슷하게 된다. 현실주의자들이 추구하는 것이 참으로 옳은 세상을 얻기 위함 이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현실을 개조해야 한다는 것을 〈참 좋음〉 으로 믿는다면, 그것을 믿는 현실주의자는 또 다른 의미에서 이상주 의자가 되는 것이다. 현실주의자가 자기네들 스스로의 입장에서 보 면, 자기들이야말로 〈참 좋음〉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 역시 〈참 좋음〉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이상주의자가 된다. 현단계에서 한국에서 일고 있는 몇몇 문화운동은 이상주의자적 사 고라기보다 현실주의자적 사고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보는 편이 옳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들이야말로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좋 음을 향해서 끝없이 전전해 나가는 진실주의자일지 모른다. 여기서 현실주의의 뿌리 역할을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적 사고를 더 검 토해 보는 것이 우리들의 논의를 위해서 좋을 듯하다. 신체적 즐거 움으로부터 떨어져 나와야 〈참 좋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풀라 돈의 사고와 그것이 어떻게 디론기-의 문제를 더 검토해 보는 것이 좋을듯싶다. 플라톤이 종교적 • 이상적 윤리관의 시조라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자 연주의적 전통의 시조다. 종교는 초자연적 감각이 작용된다. 아리스 토텔레스는 초자연적 감각의 기능보다 상식적 인간 감각의 기능의 중요성을 더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했을 뿐 아니라 자연적 감각이 가장 인간다운, 그리고 옳은 인간 감각이라는 입장을 취했다. 순수이 성이나 신을 믿어야 한다는 생각의 뿌리가 풀라돈이라고 편의상 이 야기한다면 신이나 순수이성보다 보통의 인간 감각이라든가 인간이

가지는 보통 속성을 윤리적 판단의 보통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사 고를 아리스토텔레스가 만들었다. 초자연적 성격의 어떤 것보다 보 통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기본 욕구·필요·성향·능력이 기준이 되 어야 한다는 사고를 낳았다는 것이다. 풀라톤이 수학자라면 아리스 토텔레스는 생물학자라고 볼 수 있다. 수학은 불변의 형상을 다루는· 것일지 모르나 생물학은 성장을 다룬다. 성장은 거짓으로 될 수 없 다. 성장의 생리는 참이다. 이 말은 변화의 연속인 성장 과정 역시 참이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변화도 참이라고 생각할 수 있 게 된다. 생물학자의 속성을 발휘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관찰과 분 류에 관심을 가졌고, 관찰과 분류는 감각이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이 감각이 한 일이 인간에게 지식을 제공한다고 믿게 했다. 이 믿음이 인간의 삶의 방식 선택 문제에 주는 영향력은 정말로 막 강했다. 오늘날도 여전히 막강하다• 무엇이 지식이냐라는 물음에 대 한 답을 풀라돈은 수학자답게 불변과 상관시켰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학자의 입장에서 가변과 상관시킨 것이 결국은 서로 다른 사고 패턴을 낳게 되었고, 그것이 인간의 삶에 여러 형태로 영향을 끼쳤 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없는, 관념적 사항에 불 과한 이상적 청사전에 인간 행위를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한 플라돈 과는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옳은 인간 행위는 인간의 〈필요〉에 응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낳았다. 이 얼마나 그 속성이 서로 다른 생각 인갸 물론 필요에 응하는 문제에 있어서 순위 문제를 고려해야 한 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주장했다. 이 주장은 최고의 필요성을 인정 한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도 결국 최고의 좋음을 인정했다는 이 야기가 된다. 그러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에는 여전히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플라돈은 모든 좋음이 귀속하게 되는 최상의 좋음 하나가 있다고 보았으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음은 하나가 아

니라 여럿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여럿의 좋음은 각각 그것의 기준이 있고 그 기준에 맞으면 어떤 것이라도 좋음이 된디는- 사고의 뿌리 를 내렸던 것이다. 실용적 예술이라든가, 경제학 • 의학들에서의 좋 음은 그 성격이 각각 디론· 것이고 그 다름은 각각 좋음이 될 수 있 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물론 여기서도 각각의 좋음은 중요성으로 보 아 순서가 정해전다고 했다. 가장 잘 일반화된 실용과학의 목적이 최고의 좋음이 된다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최고의 좋음을 개인적 차원의 것과 사회적 차 원의 것으로 구별했다. 이 점이 이 글의 쟁점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개인적 차원에서의 가장 일반화된 실용과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윤 리학이고, 사회적 차원에서는 그의 정치학이 된다. 그의 윤리학의 목 적은 개인적 행복에 있다. 여기서 개인적 행복은 신체적 행복도 포 함되는 것으로 보았다. 신체적 안정은 인간이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사항이라는 것이다. 신체적 요구사항과 떨어질 때 비로소 좋음에 도 달하게 된디는 플라톤의 생각과는 많이 달라진다. 물론 아리스토텔 레스는 정치학의 목적을 윤리학의 목적보다 더 중요시한다. 윤리학 의 목적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윤리학의 가치를 무시해 야 하는 경우는 예의적 상황이 생겼을 때만이라고 했다. 정치학의 목 적은 일반적 복지라고 했고, 전체의 좋음이 부분의 좋음보다 상위에 있는 것이므로 개인적 윤리(개인의 행복)는 정치학(전체의 행복)에 종 속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개인의 행복이 먼저가 되어서는 되지 않 고, 전체의 행복이 먼저가 되어야 한다는 이론을 편 것이다. 위에서 도 언급했지만, 이것은 개인적 관심 • 이익이 사회 때문에 희생되어 야 한디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랫 사람들은 개인적 행복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비상시에는 물론 개인적 행복만을 추구해서는 되 지 않는다. 비상시라고 하는 것은 개인이 살고 있는 사호1 가 전정을 하게 되 는 경우를 의미했다). 아랫 사람이 아닌, 웃사람들의 사정은 사뭇 다르

다. 위정자인 웃사람들은 아랫 사람들의 삶을 책임지고 있는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이므로 개인적 행복 추구보다 전체의 행복을 한시도 잊어서는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정치가라고 일컬어지지 않는 가. 위정자는 개인이 아니다. 개인으로 생각하는· 순간 위정자의 자격 은 소실된다• 위정자들의 행위는 많은 개인들의 삶을 행복하게도 하 고 불행하게도 한다. 그러므로 위정자에게는 평상시도 언제나 비상 시가 된다. 그래서 웃사람 노릇이 힘드는 것이다. 여기서 확실히 못 박아 두고 싶은 것은 민족음악은 아랫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있어 야 하겠지만 동시에 웃사람들의 직무유기를 고발하기 위해서 있어 야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최상의 좋음을 행복이라고 했다. 인간이 가전 자연적 기능 • 속성이 덕의 속성에 맞도록 연습하는 것이 행복과 상 관된다고 했다. 때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인간의 기관이 행하는 연습이 행복과 상관된다고 했다. 무엇을 위한 연습인가. 덕과 일치하 도록 하는 연습이다. 그렇다면 덕이 무엇이냐가 밝혀져야 한다. 인간 의 특정 기관이 행사하는 특정 기능에 알맞은 기술을 덕이라고 했 다. 이 말은 의미심장한 말이다. 인간에게는 지적 기능과 도덕적 기 능이 있다• 그 기능에 적절한 기술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는 두 가지 종류의 덕이 있다는 이론을 폈다. 지적 기능과 상관되는 기술 의 덕분으로 예술·과학·직관·논리적 사고·실용적 지혜가 생기 고, 도덕적 기능과 상관되는 기술에는 〈용기〉 〈절제〉 〈정의〉 등과 관련되는 것이 생긴다고 했다. 그래서용기 있는 자는덕이 있는 자 라고 했다. 감정의 극단이라든가 특정 행위를 하려는 경향이 극단으 로 가려고 한다든가 하는 것으로부터 탈피한, 중간적 성격을 지닐 때, 덕의 개념이 생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용기를 하나의 덕이라고 했는데, 공포 감정이 결핍된 사람은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용기를 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때의 용기는 용기가 아니고 덕이 되지 못한다고 했다. 다른 한편 공포 감정이 과다해서 행동을 하나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역시 용기라는 덕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절제도 하나의 덕인데 그것은 먹고 마시는 것을, 적지도 많지도 않은 상태에 유지시키는 일과 상관된다고 했다. 그리 고 정의라는 덕은 상과 벌의 배분을 적절히 하는 것과 상관된다고 했으며 좋은 삶 즉 행복은 덕에 맞는 행위라고 했고, 용기 있게, 절 제하면서, 정의롭게 살아가는 것이 마음과 몸이 모두 행복해지는 길 이라고 했다. 인간의 참 모습으로서의 자연적 성향은 많아도 적어도 곤란하게 되는 것이라는 이론이다. 정치가의 권력남용은 그러니까 덕이 아니고, 치부 역시 덕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권력을 남용 한 자들이 결코 행복한 삶을 영위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 의 참 모습 • 참 성향에 맞게 사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이 된다는 이 야기다. 먹고 사는 수단의 취득 방식이 좋으면 인간은 참 모습대로 살게 된다• 그것이 잘못되어 있는 사회가 전제되어 있는 한 그 사회 속의 어떤 예술도 참 예술일 수 없다. 잘못의 전제를 인정하는 예술 행위 가 어떻게 잘못되지 않겠는가. 가장 잘못된 사회가 먹고 사는 수단 의 취득 방식이 찰못되어 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 므로 먹고 사는 수단의 취득 방식이 찰되어 있는 사회에서 행해지 는 음악 행위가 낳는 음악이 민족음악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참 모 습으로 사는 인간이 만든 음악일테니까 말이다. 참 모습으로 사는 인간은 자유의 나무에서 열리는 과일만을 먹고 사는 사람이다. 이것은 민족음악은 자유의 나무에서만 피게 되는 꽃 이라는 말이다. 자유의 가치를 우위에 놓지 않는 어떠한 심미관도 모두 허위의식일 수밖에 없다. 자유의 나무 뿌리를 썩게 하는 허위 의식일 뿐이다. 만들어전 이야기를 통해서 그것이 허위의식이라는

것은 쉽게 폭로될 수 있다. 〈갑〉은 〈을〉의 작품에 심미적 가치가 있 다고 주장하고 있다. 〈을〉의 인간됨과 상관없이 〈을〉의 작품이 가지 는 속성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갑〉은 자유의 가 치보다 심미성의 가치를 우위에 놓고 있다. 먹고 사는 수단의 취득 문제보다 심미성을 더 가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해 오던 예술 지상 주의적 사고를 하고 있는 작곡가다. 그러한 작곡가인 〈갑〉은 먹고 살기 위해서 직장을 가진다. 〈울〉도 〈갑〉과 같은 직장에서 일하며 먹고 살고 있다. 〈갑〉과 〈울〉의 이익이 상충되지 않을 때에는 〈울〉 에 대한 〈갑〉의 태도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만일 〈갑〉과 〈을〉 사이 에 이익의 상충 관계가 일어나게 되면 그것이 비록 음악적 이익과 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경우라고 해도 〈갑〉이 〈울〉을 평가하는 방 식이 바뀐다. 심미성이 중요한 사람에게는 음악의적 이익의 상충 관 계가 중요해질 이유가 없다. 그러나 심미성을 일상성보다 우위에 놓 아야 한다고 주장해 오던 작곡가들도 그러한 상충 관계 때문에 하 루아침에 〈갑〉이 평소에 〈을〉을 평가하던 방식을 변경한다. 이익을 얻고 얻지 않고의 문제가 〈갑〉과 〈울〉의 작품의 심미적 우수성에 달 린 경우가 되면 말이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심미성보다 일상적 삶과 관계되는 권익을 더 중요시하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심미성이 자기의 삶 전체를 통제하는 것같이 말하는 허위의식을 지적해 보기 위해서다. 물론 심미성의 가치를 우위에 놓는 입장이 없다는 이야기 는 아니다. 또 우위에 놓는 것에 무슨 잘못이 있다는 것도 아니다. 잘못이 있다기보다 옳은 의미에서 전실되게 심미성을 우위에 놓는 태도는 오히려 값진 것일 수 있다. 심미성은 언제나 자유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표현의 자유 • 경험의 자유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또 심미성은 한치의 타협을 용서하지 않음과 깊은 관계를 가진다. 불의 에 타협하기도 하고 저항하기도 한다는 식으로, 불의와의 관계를 자 기 편의대로 설정해 버리는 심성은 옳은 의미에서 심미성과 상종하

지 않는다. 옳은 의미에 있어서의 심마적 자유, 그리고 그것에의 탐 색은 일상적 삶의, 길이 넓은 곳에서는 가능하지 않는 것이다. 전실 과 착함과 아름다움의 선택 문제로 심한 보통을 겪게 되는 좁은 문 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냐 죽음이냐, 어느 쪽을 선택하느 냐의 문제로 고통을 하고 있기가 일쑤라는 것이다. 그러한 고통의 연속에서 옳은 의미에서의 심미성 있는 작품이 탄생되기 때문이다. 베토벤이 일생 동안 심미성 있는 작품을 얻기 위해서 많은 고생을 한 것만 보아도 심미성 얻는 길이 얼마나 좁은 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도 인간이 자유를 취득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으며 그러한 자유를 얻는 과정에서 작용되는 먹 고 사는 수단의 취득 과정에서의 자유의 가치는 더욱 소중해지는 것 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참 모습은 공허한 개념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에서 먹고 사는 수단의 취득을 옳게 만들려는 사람 이 안고 있는 개념이다. 이러한 사람이 하는 일은 웃사람의 행위를 간섭하는 일이다. 웃사람에게 비상시임을 인식시키고 웃사람이 공인 임을 망각하고 개인적 행복만을 추구하고 있을 때 그것을 호되게 비 판하는 일이다. 이러한 사람은 스스로 정치인이 아님을 자각하고 있 다. 다시 말해서 자기는 어디까지나 음악인임을 자각하고 있다. 그래 서 음악을 통해서 자기네들의 일을 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연주를 통해서도 일을 해야겠지만 새로운 음악을 창조함으로써도 자기의 일 울 해나간다. 이 새로운 음악이 민족음악이다. 민족음악은 시적인 것에 호소한다기보다 음악을 통해서 인간의 존 엄성을 지키려고 한다. 존엄성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극복하는 데에 기여하려고 한다. 인간의 존엄성은 어느 누구도 공식화시킬 수 없다. 인간의 존엄성에는 뼈와 살이 있다. 뼈에 살이 붙는 방식대로 붙임 으로써 존엄성이 하나의 생명체로 유지되게 해야 한다. 민족음악은

그러한 생명체의 유지를 위해서 있고 싶어한다. 음악보다 옳은 삶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옳은 삶이 낳는 음악일 때 그것이 민족음 악이다. 옳은 삶이 붕괴된 후의 음악은 음악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어떤 다른 것을 위한 수단이 되고 만다. 삶 그 자체가 음악이 되지 않고, 삶 아닌 다른 어떤 것의 내용을 음으로 모방해 내는 것이 음 악이다라는 식의 음악관을 들고 나와서, 옳은 삶을 잃은 자기를 변 호하려고 하는 것이다. 나의 삶이 나의 음악을 낳아야 한다. 그런데 태어난 음악이 나의 전실과 닮지 않을 때 과연 나의 삶이 나의 음 악을 낳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무엇이 옳은 삶인지 물을 필요가 있다. 쉽게 생각하면 쉽게 그 답 이 나온다. 자기의 음악적 양심을 편리한 대로 사용하는 삶은 이미 옳은 삶이 아니다. 양심을 속이고 싶을 때에는 속이고 속이지 말아 야 스스로에게 용서를 받겠다고 생각되어질 때에는 속이지 않는다 는 식의 삶을 연속시킨다면 그것은 옳은 삶일 수 없다. 인간은·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싶어한다. 인간의 숙명은 원하는 것 울 더 가질 수 없다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독립적으로 존재하기를 원하는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으로 독립적으로 삶을 영위해 나 가지 못한다. 인간은 다른 인간과 결합되어야 삶을 영위해 나갈 수 밖에 없다. 이 말의 의미가 저자에겐 심상치 않게 전달된다. 왜냐하 면 이 결합 개념이야말로 음악가들이 내거는 심미성의 가치보다 그 것을 낳게 한 사회관계의 인간 삶 관련적 기능성의 가치를 더 높게 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 결합은 인간의 삶을 위해 서 사회관계를 형성시킨다는 것이다. 심미성은 이러한 사회관계의 산물일 뿐이다. 사회관계가 성립되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심미성 개 념이 탄생된 것이지, 심미성이 먼저 탄생되고 그 심미성 때문에 사 회관계가 탄생된 것은 아니다. 여기서 심미성이라는 말을 느닷없이 끄집어내는 이유는 우리나라 음악인들의 고질적 사고를 비판해 보

기 위해서다. 그들의 실제적 삶은 사회관계 때문에 이루어지고 있는 데, 사회관계를 중요시하는 발언보다 언제나 심마성에 관한 발언만 한다는고질말이다. 사회관계는 적대관계를 낳게 마련이다. 인간들은 서로 반감을 가 지기도 하면서 동시에 서로 매력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소 음을 일으킨다. 햇빛은 그냥 있지 않고 반드시 그늘에 침투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데, 인간이 바로 햇빛 같은 것이다. 인 간은 언제나 빛과 그늘의 싸움이 만들어 내는 소음의 세계 안에서 산다. 우리는 인간 삶의 속성이 실상에 있어서 이러하다는· 것을 인 식해야 한다. 인간의 존재 이유는 독립적으로 존재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다른 인간과 결합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이 말은 벌써 인간 은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삶을 영위하는 곳 과 그곳의 성격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말이 된다. 그러한 숙명에 놓 인 것이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숙명을 안고 있는 인간은 그래 서 독립적으로 움직이지를 못한다. 그러나 독립적으로 움직이기를 끝없이 원하는 것이 또한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은 자유와 구속이라 는 두 개의 상치되는 속성을 안고 있는, 스스로 내재적 모순을 안고 있는존재이다. 이러한 속성을 안고 있는 인간, 그러나 자유에 몸을 실을 수 있게 스스로를 단련한 인간에 의해서 창조되는 것으로 보여지는 민족음 악은 결국 특정 방식의 음 구조물로 나타난다. 즉 결과물이다. 그런 데 그 결과물의 속성은 어떠한 것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윤리적 가 치와 음악적 사실이 별개의 것으로 나타나 있는 개념이 아닌, 하나 로 결합되어 있는 개념으로 그것은 나타난다. 지금 있는 것과 앞으 로 있어야 할 것을 따로 떼놓아서는 안되는 개념이다. 그러니까 지 금 있는 것이 결코 민족음악은 아니라는 것은 알아야 하고, 그것은 민족음악을 낳게 될 조건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윤리적 가

치는 자유의 가치를 인정하는 내용과 관련되는 개념이요, 음악적 사 실은 심미적 형식과 관련되는 개념이다. 여기서 심미적 내용이라는 것은 먹고 사는 방식의 취득 수단과 별개로 생각하는 그런 개념이 아니다. 넓은 문을 통하는 편안한 삶과 관계되는 허위의식 관련적 심미성이 아니라 좁은 문을 통할 수밖에 없는, 거짓 아름다움과는 다른 참 심미성과 상관되는 것이다. 그 결과물을 있게 하는 원인이 자유의 나무요, 그 나무에서 열매 맺게 할 능숙한 기술이 심미성을 낳는다. 잠시 정리하자면, 참 모습으로 사는 인간의 생각이 심미성을 낳는 것이고 이 생각이 음에 반영되면 그것이 민족음악이 된다는 이야기 다. 음에 반영되는 결과가 낳아진다는 말인데, 결과물이 되는 데에는 조건이 있다. 그 조건이란 것이 바로 어떤 것이 그것이 되게 하는 형 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고, 윤리적 가치와 음악적 사실을 하나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 어떤 것이라는 것이다. 이 시대가 민족음 악이 요청되는 시대라는 말은 심마성보다 그 심미성이 탄생되는 사 회관계를 음악을 통해서 올바르게 정립시켜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 해야 한다. 그러한 사회관계의 정립에 도움을 주는 음악의 중요한 역할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짓 심미성이 아닌, 참 심미성은 옳은 사회관계 안에서만 태어난다. 이미 언급했지만 심미성이 먼저 있고 그것을 위한 사회관계가 뒤에 유지되는 그러한 사회는 거짓 심 미성의 세계와 상종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오늘날 우리 악단이 관 심을 보내는 심미성은 대부분 물화된 성격을 띠고 있다. 그래서 그 러한 심미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삶을 위한 사회 관계가 옳게 된다는 전제가 먼저 성립된 후의 음악이 우리가 바라 는 민족음악이어야 한다. 민족음악은 물건이 아니다. 하나의 개념이 다. 행위의 근거가 되는 개념이다. 지향성이 내재된 행위의 개념이 다. 이런 행위의 소산이 민족음악인 것이다.

5.3 한국음악학의 정립을 위하여 이 지점에서 다시 한번 더 민족음악이란 무엇인가라고 묻고 또 다 른 시각에서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시도해 보기로 한다. 따지고 보면 민족음악이 무엇인지 참으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 알 수도 없다는 생각이다 .190) 민족음악을 〈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무엇인 지도 모르면서 그것이 〈하고〉 싶은 가슴이 있을 뿐이다. 민족음악이 아닌, 그냥 음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음악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그 것이 좋아서 마냥 하고 싶은 가~f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음악을 〈한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마음의 있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리고 하고 싶은 마음만 있고 실제로 하지 않으면 그 마음은 있으나 마나 한 것이 된다. 어떠한 음악의 경우도 그렇지만 민족음악의 경 우도 결국 〈마음 있음〉과 그 마음이 실제로 그 음악을 〈함〉으로써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진다. 그러니까 민족음악의 문제는 〈마음〉과 〈함〉의 문제로 귀착된다.

190) 음악학 연구회가 펴낸 『音 • 樂 • 學 2 』에 「민족음악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 으로 발표된 바가 있는 글임.

마음에는 재료 마음, 형식 마음, 내용 마음이 있다. 음악에서 고저 와 장단이 따로 놀아날 수 없듯이 민족음악에서 이 세 마음은 따로 놀아날 수 없다. 언제나 같이 가는 마음이다. 어느 한쪽이 없어지면 민족음악의 세상은 무너지고 만다. 〈마음〉에 대한 언급은 뒤로 미루기로 하고 〈함〉에 대한 언급부터 하기로 하자. 〈함〉은 방법론적 순환성과 상관이 있다. 인간이 살아 가는 방법을 살기 전에 미리 알 수 없다. 살다 보면 사는 법을 알게 된다. 살다 보니 알게 된, 사는 법을 사용하다 보면 또 더 좋은 법 을 알게 된다. 인간은 대부분의 경우 알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모르

면서 산다. 그러니까 사는 법을 알려면 그냥 사는 것이 중요하다. 물 론 열심히 살아야 한다. 민족음악의 경우도 그것이 하고 싶어야 한다. 그리고 해야 한다. 살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민족음악을 해야 한다. 그래야 하는 법을 알게 된다. 위에서도 이미 언급한 것이지만 민족음악이 무엇인 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하고 싶은 마음이 먼저 있고, 하면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뿐이다. 물론 열심히해야 한 다. 열심히 생각하면서 해야 한다• 〈현상학적 탐험〉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탐험의 길은 시작이 있 고 끝이 있는 한정된 직선 같은 길이 아니다. 시작도 끝도 없는, 그 러니까 둥근 원 위에 그 길이 있다. 원 위에 길이 있다는 말은 원의 모든 지점에 길의 출발점이 있디는· 뜻이다. 논리적 탐구에서도 이런 원이 있댜 현상학적 탐험에서 나타나는 원과 논리적 탐구에서 나타 나는 원은 그 형식이 같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논리적 탐구가 얻고자 하는 추리 규칙은 얻어지기 전에 논리적 탐 구 과정에서 그것을 사용해야 한다. 얻기 전이니까 없는 것을 사용 해야 한다는 말이다. 알려고 논리적 탐구를 하는데, 모르는 것을 어 떻게 사용하나라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대답은 여전히 〈사용해야 한다〉이다. 〈사용해야〉 〈안다〉이다. 〈알아야 사용하지〉라고 누가 말 해도, 여전히 〈사용해야 안다〉가 답이다. 사용한 결과는, 죽 논리규 칙은 규칙을 규칙에 적용(사용)한 산물이라는 말이다. 규칙을 찾기 위해서 작업을 하는데, 찾기 전에 그것을 사용하라는 말이 어떻게 가능한가. 갓난 아이가 말을 배우려고 한다. 이런 경우 말하는 법을 먼저 배 우지 않고 그냥 말을 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말을 찰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말 같지도 않은 말을 처음부터 시작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하나씩 둘씩 배우게 되고 또 배운 것을 다시 말

함에 적용하다 보면 또 배우게 된다. 그러니까 〈말을 배우려면 말을 하라〉라는 말이 성립된다. 말의 경우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세상만 사가 그렇다. 〈지휘를 배우려고 하면, 지휘를 하라〉 19 1) 〈현상학을 배 우려면, 현상학을 하라〉 〈작곡을 하려면, 작곡을 하라〉 〈민족음악을 만들고 싶으면, 만들어라〉라는 말이 성립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배우고 싶으면, 배워라〉라는 말의 의미를 알아 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배우고 싶은데, 배우지는 않고, 배우는 법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가령 수영을 배우고 싶으면, 수 영을 하라라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수영하는 법을 배우려는 사람 이다. 수영을 배우려고 하는 것이 목적인지 수영법을 배우려고 하는 것이 목적인지 분간을 못하는 사람이다. 수영법을 배우는 이유는 결 국 수영을 하기 위해서라고 그 사람은 말할 것이다. 목적은 수영하 는 행위이지 수영법을 익히는 행위가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수영이 목적이고 수영법은 수단임에 틀립이 없다. 당신은 무엇을 배 우려고 하는가라고 물었을 때 목적을 배우려 한다고 대답하는 사고 구조와 수단을 배우려 한다고라고 대답하는 사고 구조는 근본적으 로다르다.

191) 오르먼디와의 대담(《중앙일보》, 서울 : 중앙일보사, 1978. 5. 27 일자)에서 이러 한 언급이 나왔다.

목적 행위와 수단 행위 중 어느 행위를 먼저 해야 하는가. 수영을 해야 수영법을 배우게 되는가, 수영법을 배워야 수영을 하게 되는가. 인간은 배우는 법을 알아야 배우는가, 배우는 법을 꾸 근 7 두 배우는 가. 배우는 법은 배워 본 후에야 알게 된다. 아니 그렇게 말하는 것 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좋다. 배우는 법은 모두 배웠는데 정작 배 우려고 한 것은 아직 전혀 배우지 못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수영 을 배우고싶으면, 수영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영법은

배웠는데 수영을 하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우스운 일이 아니겠는가. 수영법은 배우지 않았는데 벌써 수영을 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의 배 움은 무엇으로 설명하겠는가. 화성법과 대위법 그리고 작곡법을 배 웠음에도 불구하고 작품 감은 작품을 단 한 편도 쓰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작곡을 하고 싶으면 작곡법을 배울 것이 아니라 작 곡이라는 세계가 안고 있는 둥근 원의 어느 지점에서 작곡을 시작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 개념이 논리 분야에 있다고 해서, 논리학이 불가능한 것이 아 니듯이 〈원〉 개념이 현상학 분야에 있다고 해서, 현상학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민족음악을 함에도 이러한 〈원〉이 있음 알아야 한다. 〈원〉 관련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출발점이 어디인지 모르게 하는 원이 있다고 해서 민족음악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아야 한다. 오히려 원의 있음을 의심하는 자가 민족음악이 아닌, 민 족음악을 하기 위한 준바 작업(이 준비 작업은 민족음악 그것은 아님) 만 하다가 말게 될 위험을 안게 된다. 방법론적 순환성은 비단 민족 음악뿐만이 아니라 인간이 무엇을 배우려고 할 때나 무엇을 만들려 고 할 때나간에 어디에나 적용되는 개념임을 알아야 한다. 민족음악은 개념이지 조리법이 아니다. 어머니의 된장 솜씨는 조 리법에 의해서만 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된장의 개념을 터득한 마음 이 만든다• 요리법책에 나오는 요리 만드는 법이 있다고 해서, 그 법 을 그대로 따른다고 해서, 바라는 대로의 음식이 만둘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을 만드는 조리법 같은 것은 없다. 민족음악을 만드는 조리법 역시 없다. 인간 개념 규정이 그만큼 어렵고 민족음악 개념 규정 역시 그만큼 어렵다. 개념 규정이 그만큼 어렵다고 하나 한 가 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민족음악 개념은 닫힌 개념이 아 니라 열린 개념이라는 사실이다. 언제나 〈지금 여기〉에서의 삶, 그 러니까 언제나 변하는 삶과 상관되는 개념이지, 사전에 정의되어 있

는 개념이 아니다. 예술이나 그 예술의 근거 역할을 하는 이론은 언 제나 사회가 변하면 변한다. 영원한 법칙은 없고 비역사적 법칙은 없다. 〈음악〉은 객관적인 것일지 모르나 그것의 감상은 어떤 〈귀 가 림〉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다르다. 그러므로 음악은 〈귀 가림〉 싸움 과 관련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튼 사람들은 민족음악 운운하면 〈조리법〉을 내놓으리라는 주 장을 한다. 민족음악을 만드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내놓으라고 야단 들이다. 조리법 없이도 음식을 잘 만들고 있는 인간들이 조리법을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조리법이 필요해서라기보다, 조리법 없 이도 인간이 무엇을 만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리법이 있어야만 무엇을 만둘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인간이기 때 문에 인간은 조리법을 원하는 경우가 있다. 무엇을 만드는 데에 조 리법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만드는 데에 조리법이 필요하다 는 생각을 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기 때문에 조리법을 원할 때가 있는 것이다. 무엇을 정말로 만들고 싶으면 인간은 조리법 갇은 것 울 모르고서도 그것을 만둘 수 있다. 무엇을 직접 만들고 싶은 욕망 이 샘솟지 않을 때, 죽 무엇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자생적으로 마음 안에서 일어나지 않을 때 조리법이 없어서 못 만든다라고 말한다. 조리법 없이도 인간은 무엇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은 결국 민족음 악 역시 조리법 없이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들고 싶은 〈마음 있음〉이 이 때문에 중요하고, 그 마음이 만드는 일에 관여하 는 실천 죽 〈행함〉이 또한 이 때문에 중요하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하는 다음과 감은 말에는 큰 의미가 없다. 〈네가 말하는 ‘민족음악', 좋다, 그런데 그 놈의 ‘민족음악'이라는 것을 만들려면, 구체적으로 재료는 무엇이며, 얽는 방법은 무엇이냐, 그런 것들파 상관되는 ‘요 리법’ 같은 것을 제시하라, 그렇지 않고서야 어느 세월에 구체적 내 용물로서의 ‘음악’이 만들어지겠느냐.〉 얼핏 보기에 설득력이 있는

것같이 보이는 이 말에는 큰 의미가 없다. 민족음악은 〈법〉에 의해 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려고 마음 먹는 자의 마음에 뿌리 를 내리고 있는 만듦 관련적 개념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물론 재료 에 대해서는 더 많은 언급이 필요하다. 〈개념〉이라는 것의 생김새는 어떻게 생겨 먹은 것이냐라고 묻는 사람이 있을 줄로 안다. 만드는 자의 마음에 개념의 뿌리가 어떻게 내려지느냐라고 물을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한 답 역시 위에서 이미 언급한 〈방법론적 순환성〉과 상관이 있다. 어떤 사람이 수영을 하고 싶다는 문제를 놓고 다시 한번 더 논의해 보자. 수영하 는 법을 알아야 수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수영법책 공부를 먼 저 해야 하는가, 아니면 무조건 수영장에 뛰어들어야 하는가라는 논 의를 해보자. 간단한 말 같으나 수영법책을 찾는 사람과 수영장을 찾는 사람의 마음의 구조는 엄 청나게 다르다. 민족음악을 찾는 사람 의 마음의 구조 역시 옳고 그릇된 것이 있음이 분명하다. 사람 마음 의 구조가 어떠냐가 이 때문에 중요하다. 무엇을 〈하려고〉 할 때, 〈하는 법〉을 먼저 알고 그 일을 하려는 사람이 있고, 해보지도 않고 〈하는 법〉을 어떻게 알겠는가라고 생각 하고 그 일을 먼저 〈해보는〉 사람이 있다. 〈하는 법〉은 〈하다 보면〉 〈하는 도중에〉 발견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후자에 속하는 사람 이다. 다시 말해서 방법론적 순환성을 인정히는· 사람이다. 민족음악 울 위한, 요리법에 해당되는 어떤 법을 미리 제시하라고 요구하는 사람은 전자에 해당되는 사람이다. 수영을 하고 싶은 마음이 수영장 울 찾은 후 수영법을 모르는 상태에서 수영을 하다 보니 〈하는 도 중〉에 수영법을 터득할 수 있듯이, 민족음악을 하고 싶은 마음이 우 선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이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다. 〈민족음악하는 법〉 같은 것을 F 근,,두 〈민족음악을 하면〉 〈하는도중〉에 법이 발 견된다고 믿는 사람이 후자다. 그러니까 후자는 방법론적 순환성에

자기가 하는 모든 일을 의존시키는 사람이다. 그리고 민족음악을 찾 는 옳은 방법을 아는 사람이다. 법은 법을 사용하는 도중에 발견되 는 것이지 사용하기 전에 먼저 있어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사 실을 인식하는 사람이 방법론적 순환성의 의미를 옳게 인식하는 사 람인 것이다. 그러니까 〈마음〉과 〈함〉이 민족음악론의 개념과 깊이 상관된다. 그렇다면 어떤 마음이 민족음악을 하는 마음인가. 첫째가 재료 마음 이댜 한국말이 세계의 어느 나라 말과도 같지 않듯이, 민족음악언어 의 경우도 세계의 어느 나라의 음악언어와도 같지 않아야 한다는 마 음이다. 민족음악도 일단은 음악이다. 그러므로 한국 민족과 상관되 는 음악 구조적 신분성에 분리성과 고정성이 있어야 우리 민족의 음 약기라는 명칭을 합법적으로 붙일 수 있다• 그러니까 〈민족〉 〈음악〉 중 음악의 속성을 의면할 수 없디는· 의미에서 미국이나 독일 혹은 일본이 아닌, 〈한국〉 〈음악〉이라는 이름에 값하는 〈음악말〉을 찾고 싶어하는 마음이 민족음악을 하는 마음이다. 말하자면 음악적 모국 어를 찾고 싶어하는 마음이라는 말이다. 민족음악을 낳게 하는 〈민 족 재료〉를 찾고 싶어하는 마음과 통한다. 〈재료 마음〉의 중요성은 음악의 본질 이해와도 상관이 있다. 인간 은 음악에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 이 능력 없이 음악은 할 수 없다. 음악하고 싶은 마음 역시 이 반응 능력이 있기 때문에 생 긴다. 음악에 대한 반응 능력이 없는데 어찌 음악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이 능력이 먼저냐, 이런 능력을 있게 하 는 음악의 재료가 먼저냐라고 묻고 그것에 대한 옳은 대답을 해야 민족음악이든 어떤 음악이든 일단 〈음악〉의 본질을 옳게 알 수 있 게 되고, 그것을 알고 있을 때라야 민족음악이든 무슨 음악이든간에 〈음악〉에 대한 논의를 하게 된다. 음악에 대한 논의를 한다고 하면 서 음악 아닌 것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으면 그 논의는 음악적 논

의가 아니다. 음악의 본질과 상관없는 언급을 하고 있으면, 음악 아 닌 것을 두고 음악으로 착각하면서 〈음악 논의〉를 진전시키는 것과 갇다. 위에서 어느 것이 먼저냐 운운을 한 이유를 이 대목에서 확실 히해 둘 필요가 있다. 이 말은 사람들이 음악적 마음이 재료를 지배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데, 실상에는 재료가 음악적 마음을 지배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고, 민족음악 관련 마음도, 마음 이 먼저 있는 것이 아니라, 민족 재료가 먼저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인 식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인식이 민족음악 이론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재료 마음은 중요하다. 음악적 능력은 귀 가림에서 비롯된다. 낯 가림을 하지 못하는 어 린이는 자기 앞에 사람이 있어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 말하 자면 아직 눈이 눈 구실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귀 가림이리는· 말은 귀가 음악적 귀 구실을 하고, 못하고의 문제와 상관되는 개념이다. 장음계나 단음계를 듣고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직 귀 가림을 하지 못하고 있다. 낯 가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귀 가림 역시 귀 가림의 대상이 먼저 있어야 가능하다. 대상은 특정 음악이 라기보다 그 특정 음악을 있게 하는 재료의 불변성과 분리성이 상 관된다. 재료에는 종류가 많다. 민족 재료는 다른 어떤 재료와도 성 질이 같은 것일 수 없다. 민족 언어가 있듯이 민족 음언어 즉 음악 적 모국어가 곧 민족 재료다. 어떤 재료이든 쓰임새만 좋으면 된다 는 식의 사고는 음악의 사회적 기능만을 중요시하는 마음이다. 이 글에서 언급될 〈내용 마음〉만을 중요시하는 마음이다. 〈내용 마음〉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장단 없이 고저만으로 음악이 있을 수 없듯 이, 음악 없이 민족만으로 민족음악은 있을 수 없다. 그러니까 〈민 족 내용〉도 좋지만 〈민족 형식〉과 〈민족 재료〉도 만족음악의 구비 조건으로 필요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재료는 사회적 관계 개선에 이바지하는 재료이어야 한다. 양악 재

료보다 민족 재료가, 즉 외국어보다 모국어가 말하기에 편할 뿐만 아니라, 신분성도 있다. 사회적 관계 개선에 외국어보다 모국어에 쓰 임새가 더 있다. 그러니까 재료의 구조와 기능 역시 장단과 고저가 따로 놀지 않는 것과 갇다. 그들은 언제나 붙어다니는 어떤 실체이 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에게는 음악적 모국어가 아직 없다. 그러니까 이것을 찾아야 한다. 찾지 못하면 만들어야 한다. 찾으려는 마음 먹 음이 중요하고 그 마음 먹음을 마음 먹음 구실을 할 수 있게 〈함〉 이 중요하다. 여기서도 방법론적 순환성에 의존해야 함은 말할 필요 가없다. 이런 의미로 민족음악론은 음악 재료론일 수 있다. 음악 재료론에 대한 언급 없는 민족음악론은 반쪽 이론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 기에 있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 민족의 생리만 부각하고 음악의 생 리를 무시해 버릴 위험을 낳는 이론은-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는 뜻 이다. 그리고 음악의 구조와 그것의 역사적 발전은 귀에게 제공되는 물질적 조건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 가 있다는 뜻이다. 음악적 생각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음악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귀 가림 이전에는 음악이 있는 것일 수 없디는- 말 이 옳다. 귀 가림의 근거가 재료라고 했으니까 음악의 있음은- 재료 의 있음을 선행적 조건으로 삼아야 한다. 민족음악의 있음 역시 민 족 재료의 있음을 전제로 한다• 모국어를 찾자는 마음도 마음이지만, 재료를 찾자는 마음은 민족 보다 음악의 생리를 일단 중시하자는 마음과도 통한다. 민족이기 이 전에 음악이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마음과 통한다. 물론 이 말이 민족을 인정하지 않고 음악만 인정하자는 뜻은 아니다. 〈내용 마음〉에서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이 다시 된다. 조훈현은 민족인인가, 바둑인인가 • 정명훈은 민족인인가, 음악인 인가. 조훈현이 바둑만 잘 두면 민족인이 되는가. 조훈현이 우리 민

족의 문제를 자기의 문제로 삼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는 어떻게 되 는가. 바둑이면 바둑이지 〈민족 바둑〉이라는 것도 있는가. 바둑 두 는 사람이 바둑의 문제믈 자기 문제로 해야 하는가, 민족의 문제를 자기 문제로 해야 하는가. 바둑만 두면 되는 것이 바둑 두는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해서 바둑 둠의 문제가 사회적 여건 문제와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바둑 두는 사람은 바둑만 두 면 된다는 사고가 설사 옳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옳아지는 사회적 여 건 형성에 의존적이라는 것을 바둑 두는 사람은 알아야 한다. 음악 인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바둑의 조건과 삶의 조건이 같지 않듯이 음악의 조건과 삶의 조 건은 같지 않다. 바둑만 두면 된다라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바둑과 더불어 살기만 하면 된다는 말일 수 있다. 그래서 바둑 둠의 조건과 삶의 조건은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가능할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의 생리는 서로 다르다. 삶의 조건을 중요시하면 바둑은 삶을 위한 쓰 임새만 중요시된다. 바둑의 조건을 중요시하면 바둑 돌의 조화로운 움직임이 더 중요해전다. 바둑이 돌로만 성립되는 것은 아니지요, 기 획 등, 바둑의적 관계가 중요한 것으로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지요라 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옳다. 그러나 바둑을 둘 때, 잘 두는 바둑의 구조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 구조 세계를 발견하지 못한 사람은 기획이나 바둑의적 관계가 어떠하든간에 기사가 될 수 없는 것만은 분명하다. 아무튼 바둑 아닌 것을 바둑으로 간주할 수 없다는 것이 고 〈재료 마음〉은 이러한 것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이라는 사 실만을 지적해 두고 싶다. 〈재료〉는 음악의 재료이지 음악 아닌 것 의 재료가 아니다. 물론 민족음악을 하는 재료 마음은 그냥 재료가 아니라 민족음악 재료에 대한 관심이므로 단순한 기사 생활 관련적 논의와 그 성격이 다르다. 민족음악을 하는 마음은 또 있다. 〈형식 마음〉이 그것이다. 죽 얽

혀진 결과물에서 무목적적 합목적성을 발견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말하자면 재료들의 얽힘 문제와 상관되는 것으로서, 참으로 잘 그리 고 조화롭게 얽힌 〈음 구조물〉만을 허용하려는 마음이다. 문자 그대 로 〈좋은 음악〉만을 허락하려는, 음악내적 구조성을 중요시하는 마 음이고 음악의 조건을 중시하는 마음이다. 음악이라는 허울만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진짜〉 음악만을 허용하려는 마음이다. 그러니까 구조적으로 완전 • 완벽하게 구성된 작품만을 허용하려는 마음이다. 그러한 〈음악〉이 아닐 경우에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없다. 민족음악은 말하자면 〈진짜〉 개념과 통한다는· 것이다.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이어야 사람이지. 이런 말이 있듯이, 음악이면 다 음 악이냐, 음악이라야 음악이지라는 말도 있을 수 있다. 여기서 〈사람 이라야〉 혹은 〈음악이라야〉라는 말은 사람 허울만 쓰고 있는 사람, 음악 허울만 쓰고 있는 음악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 사람이 나 〈진짜〉 음악을 뜻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짜〉냐가 중요한 물음 으로남는다. 민족음악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진짜〉 역시 열린 개념이지 그것 의 내용이 분해되어 우리 앞에 제공되는 조리법 같은 성격의 것이 아니다. 〈진짜〉를 만들기 위한 항목이 조리법에 적힌 항목처럼 분해 되어 서술되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 글은 〈진짜〉 개념 울 분해하기 위해서 쓰여진다기보다 가능한 한 더 가까이 〈진짜〉 개 념에 접근해 보기 위해서 쓰여진다고 보는 것이 좋다. 옳은 신자의 경우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 기도하는 마음을 매일 가지 는 것에 비유된다. 민족음악에 접근하기 위해서 그것과 상관되는 마 음가짐을 가지는 것에 비유된다고나 할까. 된장을 만들 수 있는 어 머니의 마음으로 가는 길목을 밝히는 것에 비유된다고나 할까. 민족 음악을 하는 사람은 그것을 하기 위해서 자기의 삶을 영위하는 것 이라고말할수 있다.

〈진짜〉를 한마디로 잘라서 정의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옳은 목적과 옳은 수단의 일치가 〈진짜〉의 낳음과 상관된다. 이 말은 무 슨 뜻인가. 수단만이 옳다고 해서 진짜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 다. 수단도 수단이지만 목적이 옳아야 한다는 뜻이다. 음악에 있어서 〈재료〉는 수단이고 〈얽힌 결과물〉은 목적일 수 있다. 〈재료〉를 아무 것이나 사용해도 좋고 얽힌 결과물만 훌륭하다면 그만이라는 생각 은 목적보다 수단만 좋으면 좋다는 위험한 사고를 낳는다. 우리 악 단은 이러한 위험한 사고에 대해서 둔감하다. 옳은 목적 의식을 중 요시하지 않는 악단 풍토 때문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수단과 목적의 의미를 달리 이해할 수도 있다. 얽힌 결과물을 있 게 한, 얽힘 관련 요인들의 구조적 합목적성은 얽힌 결과물의 내용 울 표출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차원에서 수단과 목적을 생각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형식성이 수단이 되고 내용성이 목적이 될 수 있다. 민족음악에서의 〈진짜〉는 그러니까 형식성이 확보된다고 해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옳은 목적성이 관여되지 않으면 〈진짜〉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민족음악을 하는 마음의 하나인 〈형식 마음〉은 스스로 옳은 목적성을 운반하는 숙명 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민족음악을 하는 마음은 그러니까 목적과 수단이 따로 놀아나는 마음이 아니다. 언제나 같이 붙어다니는, 공존 해야만 하는 마음이다. 그것이 그렇지 못하면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 는마음이다. 이런 의미에서 음악이 물품이 되면 〈가짜〉가 된다는 말이 가능해 진다. 작품은 만들어진 것이니까, 인간에게 수용되기 이전에는 물품 일 수밖에 없다. 물품에 해당되는, 수용되기 이전의 작품은 가짜가 된다. 그것이 진짜가 되려면 수용자와 작품이 소의 관계에 놓여 있 지 않고 수용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음악이 물품이 되면 〈가짜〉가 된다는 말은 물품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물화시키는

사회적 조건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물품과 물화는 서로 다른 성격 임을 알아야 한다. 음악이 물품이 된다는 말은 소의나 물화라는 어휘의 의미가 옳게 이해될 때 그 뜻이 깊어진다. 소의는 행위 혹은 행위의 결과이다. 행 위 혹은 행위의 결과 때문에 어떤 것 혹은 어떤 사람이 어떤 다른 것 혹은 다른 사람과 서먹서먹해지는 사이가 될 때 소의 현상이 일 어난다고 한다. 스스로와의 소의, 사회와의 소의, 자연과의 소의, 사 람들과의 소의, 음악과의 소의 ·…•\ • 소의를 물화와 동일시하는 사회학자나 철학자가 많으나 그렇지 않 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물화 역시 행위 혹은 행위의 결과이다• 인 간적 속성 • 인간적 관계 • 인간적 행위 등을 생명 없는 물건 • 사물 의 속성이나 행위로 변질시키는 행위이다. 위에서 생명 없는 물건 • 사물이란 인간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아닌, 따로 독립적으로 놀아나 는, 그러나 인간의 삶을 다스리는 역할을 하는 괴물 같은 것을 의미 한다. 물화란 이러한 괴물로 변질시키는 행위다. 음악이 〈나〉라는 인 간과는 상관없이 언제나 우리 앞에 괴물 같은 것으로 존재하는 음 악 풍토가 있다면 그러한 풍토는 많은 사람들을 음악과 소의시키기 고 말 것이다. 물품에는 가짜 물품과 진짜 물품이 있다• 음악이 물품이 되면 가 짜가 된다고 했으나, 진짜 물품이 가짜가 된다는 뜻이 아니라 진짜 작품을 물화시키는 사회적 조건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음악을 물 품으로 만들지 않도록 사회적 조건에 대한 비판을 해야 하는 이유 가 여기에 있다. 어떠한 경우에 진짜 물품이 가짜가 되는가. 물품의 수용 방식이 이미 정의된 기존 방식에 의해서 수용되면 물품은 예술품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물건 같은 것이 된다• 〈책상〉을 수용하는 방식은 수 용할 때마다 갇음의 개념과 상관된다. 그러나 〈베토벤의 월광 소나

타〉는 수용할 때마다 새로운 〈월광〉이 탄생된다. 〈월광〉은 물전이 아 니기 때문이다. 같음 관련적 수용에는 감동이 수반되지 않는다. 물화 되지 않는 상태의 〈월광〉의 수용은 언제나 감동이 수반된다. 그 감 동에 자기 인생 전부를 걸 수 있는 그러한 감동이다. 음악가가 된 사 람이 어렸을 때 음악으로부터 받은 감동의 강도가 음악가가 된 후 에 받는 감동의 강도보다 더 큰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가 된 후 음 악가는 음악을 물건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어릴 때에 비해서 더 많 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그렇게도 쉽게 감동을 받던 음악으로부터 어른이 된 후는 별 감동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감성이 둔화되면 감 동을 받지 못한다. 전문가라는 말은 어른이 된 후에 바로소 음악에 옳게 감동받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그런데 우리 주 변의 음악 전문가들은 그 반대다. 음악 전문가들은 대부분 음악에 감동을 받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감동받지 않는 형편에 놓인 것 이 마치 전문가의 전유물이나 되는 것처럼 오히려 그것을 자랑스럽 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참된 감동은 언제나 유일무이한 감동이다. 모든 감동은 서로 같지가 않다. 실오리 같은 섬세성으로부터 무한한 감동을 받는댜 언제나 새로운 감동은 〈같은〉 감동이 아니고 서로가 모두 다르다. 또 감동은 순간이 찰라적으로 마련한다. 시간적으로는 얼마되지 않지만 인생을 지배해 버린다. 이른바 문화 관리자들이라 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작품을 〈같게〉, 동일하게 취급하고 작품의 의미를 도매금으로 넘긴다. 그 순간 음악은 없어지고 물건만 남는다. 진짜 물건을 물화시키는 사회적 조건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형성 되는가. 인간은 태고적이나 오늘날에 있어서나 변치 않고 하는 것이 있다. 밥을 먹고, 참을 자고, 살기 위해서 여러가지 일을 한다. 일의 종류는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 중에서 〈만드는 일〉도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간이라고 해서 누구나 가진 것이 아닌, 〈전 짜〉 물건을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진 인간이 있다. 만드는 데에 필요

한 도구 • 기술 • 능력 등이 이 힘을 이룬다. 작곡가의 작곡 능력도 이런 힘의 하나다. 이 힘은 말할 것도 없이 일종의 생산력이다. 작 곡가의 생산력은 그의 삶에 필요한 수단을 만든다. 만들어전 작품이 그의 삶의 수단이 된다. 자기 실현을 이루게 되니 마음이 살고 작품 이 팔린다든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능력 덕분으로 사회가 마련하 는 경제적 대가로 몸이 산다. 이런 의미에서 작품은 삶의 수단이다• 그런데 우리가 조심스럽게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만들어진 것은, 그것이 진짜이든 가짜이든간에, 만들어진 것들끼리의 관계를 이룬 다. 어떤 물건과 다른 어떤 물건의 질적 차이는 그 질적 차이 문제 때문에 특정의 관계를 이룬다. 그러니까 가치 관계를 이루기도 한다. 물건들의 관계라는 말은 물건을 만든 사람들끼리의 관계를 뜻하기 도 한다. 이런 관계의 성질이 어떤 식으로 고정되면 삶은 그 성질에 의해서 통제된다• 새로 무엇을 만들려고 할 때에도 그 만듦의 성질 이 통제당하기도 한다• 관계의 성질이 정해지면 그것을 정해 놓고 그 정함의 테두리 안에서 더 잘, 더 많이 만드는 법이나 제도 등을 만들기도 한다. 또 그 정해 놓음울 정당화하기 위해서 이른바 이데 올로기 같은 것도 만든다. 이렇게 되면, 만드는 〈일 값〉을 얻게 되 는 일도 하게 되고 일 값을 얻지 못하면서도 일하게 되는 경우도 있 다. 만듦은 물질의 인간화이며 그래서 인간의 자기 실현일 수 있다. 그러나 만듦에 관여된 일 값이 제대로 치러지지 않으면 자기가 만 든 것으로부터 인간은 소의되기도 한다. 이 소의가 바로 진짜 물건 울 물화시키는 사회적 조건이 된다. 민족음악을 하는 사람은 그러니 까 탈소의 작업에 자기네둘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현대인은 직장을 가진다. 음악가 역시 예의가 아니다. 그 들은 위에서 언급된, 만들어진 것들의 관계성, 만드는 자들의 관계성 의 테두리 안에서 일하고 작품도 그 관계성 안에서 쓴다. 물건은 사 고 팔린다. 만듦의 관계라고 하는 것은 결국 인간은 누구나 경제 구

조에 속박된다는 것을 뜻한다. 생산력과 만든 물건의 관계 구조, 삶 의 물질적 조건을 통제하는 힘인 경제 구조는 당연히 음악가의 삶 을 통제하기 마련이다. 특정 음각가가 가지고 있는 생산력과 그 음악가가 생산해 낸 음 악이 있다. 또 다른 음악가들이 가지는 생산력과 생산된 음악이 있 다. 이것들의 관계는 궁극적으로 음악가들 삶의 물질적 조건을 통제 한다. 만들어전 것들의 관계가 특정 방식으로 고정되면, 옳고 그름, 그것을 다스리는 기준 등이 모두 그에 따라 정해진다. 음악가 역시 이러한 것에 예외일 수 없다. 음악가의 마음 역시 이 〈관계〉에 구속 되고있다. 악단에서는 무엇이 생산력에 해당되는가. 두말 할 것이 없이 악단 에 자기라는 인간을 만들어 내놓는 힘이다. 즉 훌륭한 자기를 생산 해 내는 힘이다. 이 힘은 자기가 일할 자리, 연주할 자리, 굴 쓸 자 리, 돈 생기게 하는 자리, 작품 발표할 수 있는 자리 등을 만든다. 이 힘 때문에 자기의 삶이 영위된다. 이 힘은 결국 만들어전 것들끼리 의 관계성 안에서 행사되고 궁극적으로는 음악가의 경제적 삶을 결 정짓는다. 여기서 상품에 해당되는 것이 전임 교수, 시간 강사, 1 급 연주가, 대단치 않는 작곡가라는 식으로, 일종의 상품들의 관계성을 지칭하는 명칭들로 나타난다. 만들어진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일종 의 상품이다. 학사 학위나 석 • 박사 학위도 일종의 상품이며 작곡가 도 현대 사회에서는 상품이다. 〈만들어전 것只본 그것이 어떠한 것이 든 〈만들어진 것들의 관계〉라는 것이 마련하는 일종의 유통 구조 문 제와 관계가 된다. 잡지를 만들었으면 그것은 팔려야 한다, 총판이 필요하고 서점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총판 업자와 서점 주인의 도움 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각 업자들은 업자들 나름대로의 유통 구조적 사정이 있다. 이 문제는 사회의 하층 구조적 관계와 상관될 때도 있 고 상충 구조적 관계와 상관될 때도 있다. 상충 구조적 차원으로 올

라가면 갈수록 그것은 결국 정치적 혹은 입법 관련적 구조가 된다. 여기서는 그것을 있게 하는 요인이 있고 그 요인의 구조적 기능이 또한 있다. 이 기능에 음악가들의 개인적 삶이 의존되고 있는 것이 다. 이 사실에의 인식과 민족음악 개념은 깊은 연관이 있다. 민족음악을 하는 세번째 마음은 〈내용 마음〉이다. 이 마음은 음악 의 사회적 기능에 관한 마음이다. 수단보다 목적, 결과물보다 의도를 중요시하는 마음이다. 얽힌 결과물의 사회적 기능에 목적성이 있어 야 한다는 마음이다. 음악의 있음이 우리의 삶에 해로운 기능을 하 는 것이면 그 있음울 거부하려는 목적을 지닌 마음이다. 이러한 마 음이 〈민족음악을 하면〉 〈하는 도중〉에 민족음악을 만드는 법을 발 견하게 된다. 이런 의미로 민족음악은 개념이지 요리법이 아니라는 말이 또 다시 성립된다. 이미 여러 차례 언급한 것이지만, 재료 마 음 • 형식 마음 • 내용 마음은 따로 놀아나는 마음이 아니다. 어느 한 쪽이 빠져도 민족음악은 잉태될 수 없다. 방법론적 순환성을 적용시 킬 수조차 없다. 형식 마음은 조화의 보편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마음이고, 재료 마 음은 옳은 재료의 고용으로 민족음악을 해야 한디는- 마음이다. 내용 마음은 재료 마음이나 형식 마음은 결국 민족음악의 수단에 불과하 다고 생각하는 마음이다. 형식 마음에서 언급한 수단도 중요하지만 수단 논의의 끝부분에서 언급한 옳은 목적을 결국 중요시하는 마음 이다. 여기서 옳은 목적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사고를 하며 산다. 이 사고에 〈참〉성과 〈옳음〉성이 운반됨 울 추구하는 것이 목적일 때 그것이 옳은 목적이 된다. 인간이 하는 사고 중에 〈나〉라는 인간은 나를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 남을 위해 서 살아야 하는가라는 것이 있다. 어느 쪽이 참된 생각인가라고 인 간은 묻는다. 인간이 남을 위해서 산다면 그것은 위선이 아닌가라고 묻기도 한다. 이러한 물음들이 나의 삶을 간섭한다. 민족음악을 하는

삶을 간섭한다. 민족음악은 〈나〉보다 〈나〉까지 포함한 〈남〉둘, 그러니까 〈우리〉 모두를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사고와 연결된다. 그런데 만일 인간이 자기를 위해서 사는가, 남을 위해서 사는가라고 묻고 그것에 대한 거짓 없는 대답을 했을 때 인간은 결국 자기를 위해서 산다는 생각 에 옳음성과 참성이 있다면 민족의 설 땅은 어떻게 되는가. 이런 생 각과 민족음악 관련적 행위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위에서 목적과 수단 운운했고 또 옳은 목적 운운도 했다. 민족음악의 목적은 분명 히 〈나〉보다 우리 〈민족〉의 복됨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그렇다면 〈나〉와 〈민족〉은 서로 다른 〈둘〉인가 〈하나〉인가라고 묻고 싶어진 다. 그리고 〈하나〉라고 대답하는 경우 그것이 진실인가 허위인가라 고도 묻고 싶어전다. 〈민족〉의 설 땅을 찾으려는 마음에 참성과 옳 음성이 운반된다고 진정으로 말할 수 있는가라고 묻고 싶어진다. 민족음악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나는 〈내가 왜 사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된다. 〈나의 삶〉과 무관한 민족음악이 있을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의 확실성 때문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내가 왜 사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나는 스스로에게, 목숨이 붙어 있으니 그냥 사는가, 아니면 목숨과는 상관없이, 인간이 어떤 특정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서 사는가라고 묻기도 한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라고도 묻는다. 옳은 것이 문제인가, 옳 음보다 〈내 마음〉의 평안함이 중요한가, 아니면 〈내 몸〉의 평안함이 중요한가라고도 묻는다. 나를 취하느냐, 나를 버 리느냐, 나를 버린다 는 것이 전실이냐 허위냐라고도 묻는다. 얻으려는 자는 잃고 버리는 자는 얻으리라라는 성현의 말이 참이냐 거짓이냐라고도 묻는다. 이 런 물음과 민족음악이 아무런 상관이 없다면, 나의 삶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민족음악 때문에 내가 사는 것이 된다. 민족음악이 나 와 소의된 상태에 있지 않고 내 삶과 밀집한 상관이 있어야 하는 것

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나의 삶을 간섭하는 위의 물음과 민족음악은 중요한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수단이 아무리 좋더라도 이러한 질문과 상관되게 마련인 목적이 좋지 않으면 나에게 있어서의 민족 음악은 큰 의미가 없다. 이 때문에 정직하게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민족음악의 논의가 불가 능하다. 설사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위장된 논의에 불과하다. 무엇부터 논의해야 정직한 논의가 되는가. 단도 직입적으로 이야기 를 하면, 민족음악이고 무엇이고간에,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 다. 민족음악을 낳게 하는 근거가 중요하다. 그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필요로 하는 것이다. 건강과 경제력이 그것이다. 마음의 건강도 중요 하지만 여기서의 건강은 물질로 이루어전 몸의 건강을 뜻한다. 그리 고 경제력이라는'말은 속된 말로 〈돈〉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돈〉하 면 더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은 예의 없이 이 더러운 것을 필요로 하고 또 좋아한다. 그것 없이는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 〈돈〉을 다스리는 자가 인간을 다스리고 민족음악을 다스린다고 해 도 과언이 아니다. 참으로 그런가. 만일 참으로 그것이 그러하다면 오히려 인간사는 지금보다는 더 단순했을지 모른다. 〈나의 건강〉 〈나 의 돈〉이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 이 인간에게는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민족음악은 〈나의 건강〉 〈나의 돈〉만을 문제로 삼지 않는다. 그래 서 인간이 예의 없이 필요로 하고 좋아하는 것에 무관해야만 하는 성격이 있다. 민족음악은 〈나의 건강〉 〈나의 돈〉보다 〈우리의 건강〉 〈우리의 돈〉을 필요로 하고 좋아한다. 이 〈우리〉 속에 포함된 〈나〉 를 중요시하는 사람이 〈하는 음악〉이 민족음악이다. 정직하게 이야 기해서, 건강과 돈이 민족음악을 낳는다는 것이 사실이지만 〈나〉까 지 포함한 〈우리〉의 건강과 돈이 민족음악을 낳는 것이라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의미로 민족음악은 나를 취하는 개념이라기

보다 나를 버리는 개념과 상관된다. 자칫 잘못하면 허위의식의 소산 이 민족음악 논의와 상관지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으로서 자기를 버린다는 것은 허위임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를 버리는 인간도 역사상에 많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허위적 삶을 살지 않았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경험적 인간과 비경험적 인간이 이 때문에 개념적으로 구별된다. 민족음악은 경험적 인간과 비경험적 인간을 하나로 만드는 음악 일 때 가장 좋은 형편에 있게 된다. 물론 그런 형편에 도달하기란 쉬 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형편에의 도달을 위해서 노력 울 해야 한다. 그래서 민족음악을 하려는 사람들은 자기를 버리는 연습을 해야 하는 것이다. 말로만 버리는 것이 아니라 버림을 실천 에 옮기는 연습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비경험적 인간이 되는 연 습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이라야 사 람이지라는 말도 따지고 보면 〈자기〉만 알고 〈남〉은 모르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 〈남〉 그것도 특정 지역의 〈남〉뿐만이 아 니라 모든 〈남〉을 자기의 생각 속에 넣고 〈자기 몸같이〉 생각하는 인간이 바로 경험적 인간이 아닌, 비경험적 인간이라고 나는 생각한 다. 음악을 상종하는 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의 귀만을 고집하는 사람은 결국 경험적 인간의 범주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자기의 귀 가 양악을 상종하는 귀라고 해서 세계의 곳곳에 있는 여러 종류의 종족음악과 상종하는 귀의 있음울 인정하지 않는다면 자기의 경험 방식만을 고집하는 음악적 〈범부〉에 지나지 않는다. 남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의 귀 역시 〈타자〉의 귀일 수밖에 없다는 간단한 논리도 모르는 〈범부〉에 지나지 않는다. 〈범부〉들은 〈나〉만을 생각하지만, 〈현자〉둘은 〈나〉도 〈나〉이지만 언제나 〈너〉를 생각한다. 전자는 경 험적, 후자는 비경험적 사고를 한다고 볼 수 있다. 민족음악은 이 때

문에 경험적이면서도 비경험적 귀에, 그리고 비경험적이면서도 경험 적 귀에 그 이론적 근거를 두어야 한다. 경험적 인간에겐 〈자기〉가 중요하고 비경험적 인간은 〈모두 자기〉 롤 중요시한다. 전자는 개체, 후자는 전체를 상종의 대상으로 한다. 음악은 음악을 하는 당사자인 개인의 활동이 근거가 되고, 민족은 이러한 모든 개인들이 구성원으로 이루어지는 공동체 개념이 작용 된다. 그래서 어느 특정 개인의 관심사만을 문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은 비경험적 인격체격에 해당되는 〈모든 자기〉를 문제시한다. 〈민족〉 〈음악〉은 경험적이면서도 비경험적인 인간과 비경험적이면 서도 경험적인 인간 모두를 수용하는 〈음 현상〉일 수밖에 없다. 그 러한 〈음 현상〉만을 민족음악으로 인정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 마음 은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 만듦 관련 행위를 한다. 방법론적 순환성 에 대한 언급을 할 때 이야기된 것처럼, 행하면 행하는 도중에 민족 음악이 찾아진다. 여기서도 〈마음〉과 〈함〉이 중요하게 된다. 다시 말 해서 개체와 전체가 〈하나〉됨으로써 생겨지는 〈음 현상〉이 민족음 악이라 하겠다. 민족음악은 결국 음악적 모국어로 된 좋은 음악으로 서, 우리 현실의 사회적 관계 개선에 기여하는 기능을 가진 음악이 어야 한다. 음악학 역시 결국 이러한 음악을 창조하는 일에 기여하 는 것이어야 한디는· 것이다. 그래서 그냥 음악학이 아니라 〈한국음 악학〉이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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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강석희 312 강장일 297 강준일 313 강혜정 313 고순자 309 공석준 313 곽 승 309 권오성 306 금난새 309 금노상 309 금수현 306 김 민 309 김 봉 309 김귀현 308 김금봉 309 김남윤 309 김달성 306 김대웅 220, 241 김대원 309 김대현 306 김동전 306, 312 김만복 309 김방현 314 김생려 305 김선주 309 김성길 309 김성태 305, 30 , 312 김세형 306 김순남 297, 301, 312 김순애 306

김영욱 307 김용배 309 김용운· 309 김용전 306, 312, 313 김정규 309 김정길 312 김창남 314 김청묵 313 김춘미 314 김학민 314 김현곤 309 김형규 309 김형배 308 김혜경 309 L 나운영 306 나인용 313 노광욱 301 노동은 314 노영해 314 노주회 314 口 문옥배 314 문학준 304 민경찬 301, 314 t:I 박노경 304 박미경 314

박범훈 306, 313 박병훈 309 박선회 314 박성원 309 박영근 297, 298, 299, 303 박용구 297, 298, 300, 302 박은경 314 박은용 301, 303 박은희 309 박인수 309 박재성 314 박재열 3·12 박종문 314 박준상 314 박태준 306 백낙호 308 백대웅 306, 313 백병동 312 백청심 309 人 서계령 309 서우석 313 성경희 314 성필관 309 손국임 309 송방송 306, 314 신귀현 217 신명원 309 신홍균 309

。 안형일 309 오현명 309 원경수 309 유병은 313 유전식 309 유태열 309 윤기선 301, 윤미경 309 윤상원 309 윤영숙 309 윤용하 306 윤이상 306 윤해중 313 이강숙 27, 31, 34, 37, 45, 86, 210, 260, 270, 272, 312, 313, 314 이강일 307 이전용 31, 33, 36, 283, 311, 314 이건우 301 이경숙 308, 309 이경팔 301 이규도 309 이남수 309 이동우 309 이만방 313 이명학 309 이상근 306 이상만 304, 306, 308 이석원 260, 314 이성균 309 이성재 306

이성천 306, 313 이여진 314 이영미 314 이연화 309 이영준 309 이유선 268, 304, 308 이인영 308, 309 이인원 314 이인형 301, 303 이장직 314 이정희 309 이종구 313 이종숙 309 이종일 309 이택주 309 이혜경 308 이혜구 306 이홍렬 306, 312 임석전 19, 224 임우상 313 임원식 306, 307, 309 임헌정 309 임현경 314 六 장사훈 306 장일남 313 전정임 314 전지호 314 정경화 307 정명훈 305, 340

정윤주 306 정은숙 309 정재동 309 정종길 301 정진우 308 정태봉 313 정회갑 306 조선우 314 조영주 314 조훈현 340 주동률 314 주성혜 314 진규영 313 전회숙 314 차*하 순 279 채동선 302, 303 채일희 309 최동선 313 최민재 309 최성만 218 최승용 309 최인찬 313 최종민 306 최한원 309 궁 한만영 306 한명회 306 허영한 313, 314

현제명 299, 300, 305, 306, 312 현해은 309 홍난파 312 홍승찬 314

홍연택 309 홍정수 314 황병기 306, 313 황성호 313

-, 가변 세계 34 가치 29, 36, 56, 58, 59, 60, 64, 65, 67, 68, 70, 78, 79, 80, 82 가치 판단 287, 289 가치관 14, 15, 23, 27, 28, 29, 30, 49, 55 간접 관련 가치 79 감각 관련 어휘 29 감수성 115, 119, 121, 122 같게 34 같으면서도 다른 156, 157 같음 17, 36, 41, 82, 83 같음으로서의 음악 192 개별론자 21, 285, 286 개조론 113 객관론자 286 객관적 현실 44 경험론 89, 93, 96, 97, 100, 101, 140 경험의 조건 41, 45 경험적 귀 44, 259, 261, 262 경험적 봄 42 계몽주의 85, 102-107,1 10-112,1 14 곡목 안내서 160, 161, 162, 167, 178 공간 21, 38, 39, 46, 47 공시적 46, 47, 186, 213, 237 공동관습시대 184 과정 생성 236 관계지음 66, 78 관련발생적 의미 19 관습 관련적 지식 183, 189, 190

관습개념 37 관습 관련적 학문 94 관습 능력 55 관심 대상 14, 15, 23, 27, 28, 29, 30, 49, 55 구조주의 120, 127 구체적 사실 지석 183, 184 구체적 사실 취급 지식 183, 186 귀 가림 43 규범 관련적 이론 95 규칙선행 관련적 이론 95 기능주의 120 기의 61, 62 기의 가치 79 기존 정의 14, 22, 24 기표 61 기표 가치 79 L 남의 재료 37 낯 가림 42, 43, 44, 46 내용 마음 332, 340, 348 내재적 관계성 36 내적 시각 31, 38, 39 내포 관련적 개인 68 내포 관련적 문화 68 내포 관련적 언급 66 내포 관련적 의계 69 내포 관련적 음악 68 노래 운동 313, 318 논증지 88

E: 다르게 34 다름 35, 36, 37, 41, 70, 71, 82 다름으로서의 음악 192 닫힌 체계 185 대문자 개념 22, 213, 206 대문자 역사 265-270, 272, 290 대문자 음악 23, 38, 39, 50 대문자 음악학 49, 52, 54, 21 I, 213 대문자 의미 23 대문자 전체 38 대문자 질서 41 대상의 문제 54 듣는음악학 IO 들리는 대로의 음악 192 들어야 하는 대로의 음악 192 □ 말언급 15 매개변수 35, 73, 8_1 ,8 2 모국어 I14, 338 묶는 능력 141, 142 묶여져 있는 대상 141 문화과학 117, 125, 127, 156 물화 331, 343, 344, 345 민족음악 293, 299, 305, 314, 315, 318, -322, 325, 326, 328, 329, 330, 331, 332-352 민족 재료 338, 339, 340

t::t 밖과 안의 봄 64 밖의 음악학 72 방법 12, 24, 50, 52, 53, 54 방법론 22, 53, 71, 73 방법론 지식 183, 193 방법론적 순환성 332, 335, 337, 338, 340, 348, 352 방법으로서의 음악학 50, 52, 53, 186, 210 방법의 문제 54, 210 번호부르기 도표 161 법칙적 34 보편 소질 144 보편 /추상 관련적 지식 183, 193 복수 음악성 261 본유 개념 37, 107 본유관념 89, 90, 91, 92 본유 능력 55 봄 41 부분 9, 10, 11, 12, 38, 39, 48, 50, 51, 134, 135, 162, 177, 187, 198, 203, 204, 209, 210, 212, 213, 246, 248, 254, 255, 267, 268, 269, 270, 322 분과학 24, 48, 50, 118, 119, 120 분류 지식 183, 191 분석 대상의 원인과 결과 165 분석의 양다리 걸치기 177 불변적 요인 33 비경험적 경험의 귀 259, 261, 262

비경험적 귀 44, 259, 261 비경험적 봄 42 비법칙적 34 비상식적 상식 63 비상식적 접근 62 비음악가의 입장 61 바조성음악 43 비추론적 지식 139 人 사실 29, 36, 56, 59, 64, 65, 69, 70, 78, 79, 80, 81, 82 상식적 접근 62 상황 기능 236 서술적 이론 94, 95 선이해 217, 218, 220, 243 선입견 42, 43, 44, 45, 48, 49, 50, 51, 52, 243, 244 선천적 능력 252, 253 세계관 59, 64, 65 소리 나는 감정 36, 38 소리 나는 수학 36, 38 소문자 개념 22, 2I3, 265, 266 소문자 역사 265-71, 290 소문자 음악 23, 38, 39 소문자 음악학 24, 49, 52, 54, 21I , 213 소문자 의미 23 소문자 전체 38 소문자 질서 41 소질 141, 144, 145, 146 손바닥 81, 255

쇤커식 분석 162, 167-175,1 76, 178 곡선 167, 168, 175 근경충 167 심층 구조 167 원경충 167 직선 167, 168, 175 직선화 175 수사(修史) 154, 245, 248, 257, 259, 263, 266, 269, 271, 277, 278, 290 수사학(修史學) 216, 245, 247, 263, 266, 267, 268, 270, 271, 272, 278, 287, 290 시각적 지식 180 시간 21, 38, 39, 41, 46, 47 시간 관련적 역사지식 183, 190 신에 대한 관념 89, 92 신학자와 신자 121-122 쓰는음악학 10 。 안의 봄 64 안의 음악학 72 어휘 지식 183, 184 언급 12, 14, 15, 22, 26, 27, 55-64,6 5, 66, 67, 68, 69, 70, 72, 73, 74, 79, 80, 81, 82 언급 관십 대상 15 언급구성 과정 15 언급 기의 61, 62 언급 지식 15, 22, 67 언급 체계 14, 15

얽힘의 생리 33 역사 10, 18, 19, 20, 21, 41, 46, 47, 50, 52, 54, 74, 75, 76, 108, 119, 122, 123, 149, 150, 151, 153,. 154, 156, 157, 209, 213, 214, 224, 226, 227, 231, 234, 237, 238, 244, 245- 290 역사적 개별 283, 286, 290 역사적 객관성 286, 287, 289, 290 역사적 설명 283, 286,2 90 역사적 음악학 18, 45, 47, 51, 186, 209, 210 역사주의 53, 74, 230, 231, 232 연장 pro long at i on 175 열린 체계 185 영역 12, 26, 27, 47, 50 -54 , 70, 77, 210, 211, 212, 214, 215, 216 영역으로서의 음악학 50, 51, 186, 210 예견감 249, 250, 251, 259, 263 의래 관념 89, 98 의적 시각 31, 38, 39 의화 34, 36 요소 분석 162, 167, 168, 170, 178 우리 재료 37 우상 97-99, 102 원리 /일반화 관련적 지식 183, 194 음과말 15 음악가치 79 음악 감각 159 음악구성 과정 15 음악 기의 61, 62

음악 덕학 216 음악 물질 31 음악 사실 79 음악 시간 74, 75, 159 음악 재료 37 음악 정신 31 음악 지학 216 음악 해석학 216, 217, 219, 220, 223, 228, 230, 231, 232, 233, 234, 240, 242, 244 음악 행학 216 음악가의 입장 61 음악 관심 대상 15 음악수사학(修史學) 20, 22, 191, 207, 216, 217, 245, 265, 290 음악적 모국어 263, 338, 339, 352 음악적 시각 69, 70, 215 음악학의 구조적 우주 65 가치 우주 78, 80 개인 가치 우주 80 개인 우주 65, 66 구조적 우주 65 문화가치 우주 80 문화 우주 65, 66 언급가치 우주 80 의계 우주 65, 66, 69 언급 우주 65 음악가치 우주 80 음악 우주 38, 65 음악학의 정의 13, 14, 22, 25, 26, 48, 65, 66, 69, 70, 71

음악학적 교차로 16, 57, 61 의도 126, 127, 155, 156, 163, 164, 165, 203, 205,2 25,2 27, 230, 234, 239 이론/구조 관련적 지식 183, 195 이성 (理性) 105-109 이치적 사고 85, 86 이해 114, 115, 116, 119, 125, 126, 127 이해 능력 197 번역 능력 196, 198, 199 의삽법 관련적 능력 197, 200 해석 능력 196, 200 인공언어 126 인위관념 89, 98 인지 영역의 분석 차원 203 인지 영역의 응용 차원 201 인지 영역의 이해 차원 195 인지 영역의 지식 차원 195 음악학적 지식의 제 1 단계 183 음악학적 지식의 제疾}계 184-186 음악학적 지식의 제浜拉계 186-189 음악학적 지식의 제 4단 계 190 음악학적 지식의 제 5 단계 191 음악학적 지식의 제硏}계 192 음악학적 지식의 제四}계 193 음악학적 지식의 제浜}계 194 음악학적 지식의 제供}계 194 음악학적 지식의 제 1~ 계 195 음악학적 지식의 제 11 단계 195 인지 영역의 종합 차원 205 인지 영역의 평가 차원 206

일반 법칙론 278,279,2 80-281,2 82 일반 시간 74, 75, 159 일반 언급 지식 22 일반적 시각 66, 69, 70, 71, 215 잉여성 45 7 자연 105, 106, 109-111 자유사상가 103, 105, 106, 107, 109 자체 발생적 의미 19 작품 선행론적 이론 95 재료 31-37, 40, 41, 56 재료 마음 332, 338, 339, 341, 348 재료 생리 32 전문적 시각 66, 69 전체 9, 10, 11, 19, 25, 26, 27, 37-4 1 , 50, 51, 54, 71, 209, 211, 212, 213, 215, 216, 248, 266, 267 전체론자 21, 284, 285, 286 정당화된 참 믿음 133 정신과학 223, 224, 226, 230 조성음악 43, 45 종교 해석 120-125 종족음악학 27, 32, 74, 77 지식 지도 51, 209, 210, 211, 214, 290 지식과 신념 132-141 지칭명 67 지평 217, 220 직접 관련 가치 79 진보 105, 112

云 청각적 지식 180 체계 18, 19, 21, 22, 46, 47, 48, 50, 51, 52, 54, 74, 75, 76, 213, 214, 237, 288 체계 관련적 범주 지식 183, 191 체계의 구조 47 체계의 역사 47, 75, 214 체계적 음악학 10, 18, 45, 47, 50, 51, 74, 186, 209, 210, 214 추론적 지식 139 추체험 224 E 타블라 라사 107 동시적 46, 47, 186 통합음악학 64, 70, 72, 74, 76, 77, 78 통합학 81, 118, 120, 216 특수 언급 지식 22 특정 언어 구사능력 55 포 편견 58, 59, 60, 289 평가의 표준 관련적 지식 183, 192 표현 126 표현 이론 129 표현물 129 피지칭물 67 능 한국 음악론 192, 220, 230, 242, 244

합리론 85, 87, 94, 95, 97, IOI, 140 해석소 234, 235, 236, 239 해석의 의미 221 해석의 해석 121 해석학 114-129, 216, 220, 222, 224, 225, 227, 239, 243 현실 43 형상 생성 236 형식 마음 333, 341, 343, 348 형식과 악식 36, 281, 285 화용론적 음악 해석학 220, 234 -24 1 화음 의미 chord sig nifica nce 19, 175 화음 이름 chord gram mar 19, 175 회의주의 60 흩어져 있는 대상 141

A Adler, G. 26, 214 Adorno, T. 33, 36, 163, 176, 178, 237 Anchor, R. 277 Ap e l, W. 14, 24, 28 Arist i d e s, Q. 214 Aristotl e. 100, 256, 276, 322, 323, 324, 325 Aschenbrenner, K. 193 Austin , W. 193, 212 B Bach, J.S . 86 Bacon, F. 85, 97, 98, 102 Bamberge r , J.S . 10 Beardsley, M. 73, 226 Beeth o ven, L. van. 10, 23, 149, 153, 171, 174, 180, 182, 184, 222, 245, 246, 265, 266, 279, 344 Berkley, G. 104 Berry, W. 32, 35 Blom, E. 24 Bloom, B. 179, 183, 188 Blume, F. 24 Brahms, J. 223 Brin to n, C. 103 Brofs k y , H. 10 Burge r , P. 218, 243 C Carte r, R. 35 Chopi n, F. I 0 C 뇨i s t, W. 184

Chrys a nder, F. 14 Collin gwo od, R.G. 278 Comte , A. 53, 257, 276 Cope r n icu s, N. 222 Copl e sto n , F. 273 Coreth , E. 217 Croce, B. 277, 278 D Dahlhaus, C. 20, 191, 193, 217, 219, 220, 233, 234, 235, 236, 239, 275 Darw in, C. 105 Davis o n, A. 28 DeLone, R. I 84 Descartes , R. 60, 85, 86, 87, 88, 89, 92, 93, 96, 102, 256 Dide rot, D. 103 Dilth e y, W. 53, 117, 119, 128, 129, 222, 223, 224, 226, 230, 233, 234, 258, 267, 277_ Dray, W. 21, 53, 150, 154, 247, 265, 272, 287 Duckles, V. 185, 210 Dunsby, J. 33, 163 E Edwards, P. 21, 103, 154 Eg geb recht, H. H. 269 Ein stein, A. 105 Eli ad e, M. 117 Eli ot , T.S. 126 F Forke~ J.N . 214

Framery 214 Freud, S. 118 G Gadamer, H. 44, 243, 244 Ga lileo , G. 222 Gombric h , E. 49 Grout, D.J. 184 Gu isa nd, P. 228 H Hansli ck , E. 228 Harbermas, J. 243, 244 Ha rriso n , F. 180, 215 Harvey , va n. 117, 119, 127, 224, 225 Hay do n , G. 25, 26, 182, 190, 193 Hege ~ G.W.F. 53, 254, 255, 256, 257 Hemp e~ C.G. 149, 278, 279 Heraclit u s. 320 Herder, J.G . van. 251, 254 Hirs ch. 127, 230 Hobbes, H. 104 Hood , M. 27, 180, 214 Hook 233 Hume, D. 31, 50, 104, 251, 261 J Jak obson , R. 228 Jam eson , F. 188, 245 Jos qu in Dep re z. 31 K Kant, I. 104, 189, 196, 201, 227,

251, 267 Karp , T. 25 Kennan, K. 190 Kerma n, J. 215 Kin ke ldey , 0. 25 Kl iew er, V. 184 Kretz s chmar, H. 228, 229, 233 L Lip pm a n, E. 233 Locke, J. 85, 97, 102, 104, 107, 112 Low insk y, E. 215 Lukasc, G. 220 M Mali no wski , B.K. 228 Marx, K. 118, 257 May , E. 28 Mey er , L. 34, 45 Mi ll, J.S . 276 Mi tch ell , W. 190 Moza rt, W .A. 151, 152 Mueller, J. 284 N Nett le , B. 27 New ton , I. 104, 105, 222 Ni et z s che, F. 103, 216, 232 。 Oh l, J. 28 Onnandy , E. 332

P Paddis o n , M. 33, I63 Palis c a, C. 180 Palmer, R. 114, 221 Parki nso n , G. 241 Parris h , C. 28 Pesta l ozzi, J.H. 112 Pis k , A.P. 25 Plato 8 I , 320, 322, 323, 324 Pratt , W.S. 25 Pri ce , K. 73, I 93 Q Quinton . A. 132 R Rameau, J.P . 94 Ranke, L. von. 158 Ric k enna n, H.P. 277 Ri ck ert, H. 277 Robin s on , J.B . 20, 191 Rosen, C. 309 Ross, D. 276 Rousseau, J.J. 104, 111, 112 Rowell, L. 99, 184 Russell, B. A.W . 81 s Sadi e, S. 24, 210 Salzer, F. 19, 167 Scheler, M. 81 Schenker, H. 81; 162, 167, 168, 170, 171, 174, 175, 176, 178 Scheri ng . A. 234 Schleie n nacher, F. 117, 124, 125,

126, 127, 128, 222, 225, 226, 230, 234 Schoenberg , A. 32, 35, 36 Scholes, R. 234, 235 Schwna nn, R. 287 Seege r , C. 14, 16, 21, 22, 26, 37, 56, 57, 63, 65, 68, 71, 74, 75, 76, 77,78, 81, 187, 188, 189, 190, 192, 205, 206, 214, 215, 240, 267 Sib l ey , F. 30 Sm ith, K.N. 267 Sp e ncer, H. 257 St. Aug usti n e . 248, 249, 251 Ste in, L. 33 Ste v ens, D. 25 Str a nd , G. 32 T Tellstr o m , A. 185 Thomp so n , 0. 25 Thomson , W. 184 Toch , E. 32 V Vic o , G. 251, 273, 274 Vin ton , J. 24 Volta ire, F.M.A. 103, 106, 251 w Webern , A. 240, 242 Wellesz, E. 26 White, H. 277 Wi nd elband , W. 258, 277

이강숙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기악과 졸업 미국 휴스턴 대학교 음악문헌학 석사 마시건 주립대학교 음악박사 버지니아 커먼웰스 대학 조교수 역임 현재 서울대학교 교수 저서 『열린 음악의 세계』, r 음악의 방법』· 『음악적 모국어를 위하여』, 『음악의 이해』 한국음악학 대우학술총서 • 인문사회과학 43 찍은날一― 1990 년 10 월 10 일 펴• 낸날- 1990 년 10 월 20 일 지은이-李康淑 펴낸이-朴孟浩 펴• 낸곳~民音社 출판등록 1966. 5. 19 제 1-142 호 우편대체번호 010041-31-0523282 은행 지 로번호 3007783 135-120서 울 강남구 신사동 506 515-2000~2 (영업) 515-2003~5 (편집) 515-2007( 팩시밀리) Pri nt e d in Seoul, Korea • 값 7,000 원 © 李康淑 • 1990 인문사회 과학 • 음악학 KDC/671

대우학술총서 (인문사회과학) I 輯國語의 系統 錢漠 /5. (l(X)원 342 人商文間學周의史社 會輝尹學乃 삼E , 김I黃 i i禎 6련奎. //知값 원값 3 , 7印. ':윈f:i) 원 65 中日 本國古의 代萬文葉學集史 金 思金燁學/t값/값 5, 印3, 8원(!) 윈 7 現代意昧論 효煥/값 5, 6(D원 8 베 트남史 워仁善/값 5, 却원 9 印度哲學史 吉熙星/값 5, 却원 10 輯國의 風水思想 崔呂祚/ il 6 , (l(X)원 I I 社會科學과 數學 李承勳 9l/ 값 2, ':f:i)원 12 重商主義 金光洙/ ~ 2, 효원 13 方言學 霜망/값 5. (l(X)원 14 構造主義 H 斗 7k/ 값 4, (l(X)원 15 外交制度史 金洪喆 I 값 2, 90J원 16 兒童心理學 崔敬淑/i ll, (l(X)원 17 언어심리학 趙明翰/값 5 /X)J원 18 法 사회 학 梁 建/ 값 6, (1(X)원 19 海洋法 相륨;炳華/값 4, 知원 20 한국의 정 원 獻皇許/값 6, 00J원 21 현대도시론 姜大基/값 4,00) 원 22 이슬람사상사 김정위/값 3,6ro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