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昌 祚

저자는 서울대 문리대 지리학과와 同대학원을졸업했다. 서울대, 경북대, 전남대 둥에서 강의를 맡았으며, 국토개발연구원 주임연구원을 역입했 현재는 전북대 사대 지리교육 재직중이다• 이미 風水 • 圖謙 10 여편 발표한 바 있다.

韓國의 風水思想

崔昌祚 民音社

머리말 風水思想울 언제 접하게 되었는지의 기억은 뚜렷하지 못하다. 越 南民이라 어릴 때는 看 山 省 墓 의 기회조차 없었다. 그러나 山所를 찾 은 적은 많았다. 大 學 다닐 때는수시로 망우리, 금곡 等地, 서울 근교의 왕릉이나 공동묘지를 찾아다녔지만 그것은 死者를 보며 위 안을 얻고자 했 던 小心性의 發 露 였을 분 다른 의도는 없었다. 어두운 共同 墓 地에서는 간혹 도깨비불을 볼 수 있었는데 그것을 보며 죽음이 완전한 終 末만은 아닐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해 본 져온 있다. 領禮 해 간, 파헤쳐진 墓 穴올- 보며 이사간 뒷자리가 지 처분하기도 하다고 두덜거린 저도 있다. 그러면서 만나 본 몇몇 승려나 地官들에게서 땅의 氣脈에 대한두 철한 믿음을 실감하며 충격을 받기도 했다. 손에 닿는 대로 文 獻 資料를 모으고 여가 있는 대로 踏山울 하다 보니 들은 風月에 縣漫함이 생겨 몇 집의 尋 山占穴에 끼어든 적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後海莫及이다. 먼저 風 7k 의 理論整理부터 하고 보자 마음먹고 작업을 시작했을 무렵 마침 大宇財團으로부터 硏究 費 가 나와 고무받은 바 컸으나 일

은 마음대로 되지를 않았다. 漢籍 讀解, 風水論理展開의 整理, 各 分野의 解釋, 形局의 分類, 明堂 • 吉地의 模型設定 等 자신있게 일 울 끝마천 부분이 없다. 理論은 理論대로 머리 속에서만 맴돌고 山 川온 캄캄한 채 말이 없으니 답답한 십사에 몸만 축날 분이다. 오늘의 地理學이 옛 術家의 巨視 • 大局的 觀點을 잃어 가는 대 신 西歐的 合理性과 分析力울 키위 가고 있음은반드시 바람칙한현 . 상이라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羅末麗初, 麗末鮮初 국가 경영 에 나섰던 當代의 風水思想家들의 國土를 槪觀하던 안목을 오늘에 다시 떠올려 보는 것은 비단 懷古的 입장에서문만 아니라 地理學의 韓國的 理論 定立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 본다. 땅은 땅 나름대로의 논리를 갖는 법이고 風水思想은 우리 民族이 갖고있는땅의 論理중가장현처한것이니만큼, 아직은뚜렷한方 向율 제시할 수는 없으나 반드시 現代地理學에 기여를할것으로믿 논다. 奇人으로 棄人이 되어 버란 수많은 風水術家들에게 땅의 生氣가 충만하기를 빈다. 1984 년 3 월 崔昌祚

韓國의 風水思想/차례

머리말 15

제 1 장 序言

1 硏究目的 11

2 硏究方法 15

제 2 장 風水說의 槪要 및 歷史

1 風水槪要 21

2 風 歷史 41

3 主要用語 53

제 3 장 風水說의 原理

1 風水原則과 陰陽五行說 71

2 看龍法 77

3 藏風法 9

4 得水法 114

5 定穴法 I25

6 坐向論 153

7 形局論 179

제 4 장 國都風水解釋

1 國都風水解釋 의 意義 191

2 都論議의 展開濁程 193

3 開京의 立地 197

4 開京의 風水的 立地解釋 204

5 漢陽 ·母岳의 立地 2I4

6 漢陽 • 母岳의 風水的 立地解釋 22I

7 錫龍山 都邑地의 立地와 風水的 解釋 241

제 5 장 陽基風와 陽宅風水

1 陽基와 陽宅 251

2 陽基와 陰宅 253

3 都邑의 風水的 解釋 258

제 6 장 圖設類上의 風水思想

1 固識硏究의 地理學的 意義 301

2 圖識書類에 나타난 土地觀 305

3 避亂·保身의 土地觀 314

4 要約 및 結論 327

제 7 장 風水的 理想의 땅 : 明堂•吉地論

참고문헌 339

색인 350

제 1 장 序言

1 硏究目的 한 나라의 思 想 底流를 一以 貫 之하는 基層 體 系불 밝힌다는 것 은 어느 의미에서 불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오랜 세월 무수한 地域, 무수한 사람들에 의하여 形成된 복합적 思想 體 系를 한 두 가지로 요약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의문에 대한 궁금증을 포기할 수는 없다. 民族의 根源 이 바로 基層 的 思想 體系 밑에 숨어 있을 것이고 根 源 울 알아야 나 자신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니만큼 자신을 알기 위 해서도 思想의 底 流를 이해해야만 한다. 風水地理 說 은 우리 民族의 基層 的 思想 體系 를 이루어 온 수많은 思想들 중의 하나로, 그 내용의 聖俗이나 眞 假를 막론하고 新 羅 以 後의 歷史上 우리 民族에 깊은 영향을 미찬 觀 念임을 부인할 수는· '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본격적인 硏究 書 가 지금까지 없었 다는 것은 기이한 느낌을 준다. 물론 硏究가 全 無 한 상태는 아니었 지만 風水地理說을 그 자체로써 理論 內容울 정리하고 그것을 分析 • 解 釋 하는 작업이 없었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地理 學 , 歷史 學 , 哲學, 建築 學 , 文化人類學, 民俗 學 , 環 境學 혹은· 韓 國 學 等의 諸分 멤f에서 각각 요령있는 내용 정리와 해석을 깊이있게 시도한 論文이 적 지 않으나, 그것 이 대 부분 接近方法과 風水地理說의 構 成 파악에 있어서의 一面性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감이 있고, 무엇보다도 방 제 1 장 序 言 11

대한 風水地理說울 다루기에는 量的으로 미전한 것이었음을 부인할 수없다. 거기에 비한다면 術 書類 로 刊行된 風水 書 논 의의로 많은 편이다. 筆者가 짧은 기간 동안에 수집한 漢籍만도 篇數로는 數百에 이르고 우리글로 쓰여전 風水 書 도 十數種에 이르는 형편이다. 여기에 웬 만한 집에서 소장하고 있는 筆寫 本까지 합한다면 그 수는 대단할 것이라 여겨진다. 이 많은 術書類 의 대 부분이 자신의 正統性과 他類의 邪道 임 을 고 집하고 있어 무엇을 基本 分析資料로 삼을 것인가도 쉬운 일이 아 니다. 다만 그들의 주장이 크게 동떨어전 내용을 가지고 그런다기 보다는 風水說의 構 成內容 中 特定의 일부분, 예컨대 坐向이라든가 得水부분을가장重視하는데서 빚어지고있는일이니 만큼風水構成 의 一般化가 불가능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坐向이 風 7k 의 要諦라돈 가 看龍이 風水의 要諦라돈가 하는 논의는 術家의 觀點의 차이일 분이지 그것이 風水構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本考의 첫째 목적은 上記한 몇 가지 문제접을 勘案하여 무엇보다 먼처 風水地理說의 內容과 論理構造를 整理하는 데 두었다. 이를 위하여 風水에서 사용되는 특이한 用語의 槪念定義를 내리고 風水 說의 歷史的인 展 開 過程울 槪略的으로 살피며 그의 根本이 되는 理 念의 背景울 考察키로 한다. 本考의 두번째 目的온 風水地理說이 실제로 韓半島라는 地表空間 에 어떻게 投影되었는가를 밝히는 일이다. 後述할 바와 같이 風水 는 陽基와 陰宅風水로 二大分되며 오늘날 老問에 알려진 것은 墓 地 相占울 目的으로 하는 陰宅風水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風水가 시작 되고 발전된 高麗時代와 朝鮮朝 初期까지는 오히려 都邑의 立地믈 占定하는 陽宅風水가 本領이었다. 또 하나 陰宅의 地理學的 解釋은 親子感應의 俗信이 장벽을 이루기 때문에 分析 對象으로는 너무 난 해하여 여기서는 주로 國都와 都邑의 基地 選定 및 空間配置에 나 타난 陽基風水를 主로 하여 考察하고 陰宅風水의 空間分析은 初步 的인 몇 가지만 서술하였을 분 부득이 제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계번째로 風水說과 不可分의 관계를 맺고 있는 圖識書로 알려진

鄭鑑錄 鑑缺과 各種 秘記類에 담긴 우리 民族의 土地觀 내지는 地 理觀울 추출해보고자 하며, 그것이 결국은 風水地理說로부터 연원 된 것임을 밝혀 보고자 한다. 네째로. 風 7J (地理說에 內包된 땅에 관한 理論이 現代地理學의 理 論울 구축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지의 여부를 가려보는 데도 하 나의 目的을 두었다. 現代地理學이 우리나라 大 學 에서 學 問으로서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은 1945 年 이후이고 그것도 처음에는 敎師養成울 目的으로 하 는 師範大學의 地理專攻에 불과하였다 . 文理科大 學 에 地理 學 科로서 자리를 잡게 된 것은 1958 年에 비롯하니 學問으로서의 地理學이 大 學社會 에서 認定울 받게 된 것은 20 餘年에 불과하다. 이처럼 짧은 시간이었으나 歐美諸國 의 先進 地理 學 知 識 을 습득하여 그들의 理 論 도입은 물론 國土空間에의 適用 이라는 어려운 작업까지를 수행 하여 왔음은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1960 年代에 美國地理學界에 一大 革命 的 변환을 가져온 計 景 的 空間分析은 地理 學 의 여러 系統分野에 고루 영향을 미쳐 지금까지도 상당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1)

1) 李燦 外, 1976, 「地理 學 30 年(1 945~1975) 의 回顧와 展望」, 《 地理 ~ » , 第 13 號 , 大 韓 地理學會

이 와 같은 歐美 地理學 理論의 貢獻에 도 불구하고 國土空間에 의 理 論 적용이라는 측면에서는 一採의 不安아 없지 않았다. 地理學의 最初 最終 의 대상이 땅이고 地理 學 의 理論 역시 땅을 바탕으로 마 련되고 발전되고 응용되는 것일전대, 땅이 다른 곳에서 만들어진 理 論의 적용만으로는 韓半島 라는 特異한 空間의 땅의 性格울 올바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歐美의 地理學理論이 論理展開의 明哲性을 유지하기 위해서 땅을 單純한 것 으로 看敬 하여 同質地域 homog e neous reg ion 을 假定하고 理 論울 定立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런 경향은 演擇 的 方法의 당연한 歸結이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땅의 다름에서 빚어전 것인지도 모른다. 분만 아니 라 땅을 포함한 自 然울 보는 西 敷 人과 東洋人의 태 도의

차이도 現代地理學에 있어서 韓半島的인 空間理 論 이 필요한 이유가 될 수있다. 西歐人이 自然울 종속적인 것으로 보는 데 대하여 東洋人은 자신 울 自然의 한 部分으로 여기는 것이 兩者의 가장 큰 차이접이다. 그 러나 東洋의 自然景觀이 원래 주어전 상대 그대로의 것은 아니다• 西歐 以上의 人工이 가해전 것이 우리와 中國윤 포함한 東洋의 自 然이다. 같이 人工울 가한 景競이면서도 그것을 보고 構 成하는 兩 者의 입장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Yi -F u Tuan 이 유럽과 中國의 庭園울 비교하여 前者는 일정 視點에서 탁월한 전망을 갖는 것임에 반하여 後者는 연속되어 흐르는 듯한 桃望의 것이라 지적한 바 있 다 .2)

2)B Yehi -aFv u i oTr :u aEnx,a m19p 6le8 ,s frDomi s c rEeupr aon pc e i eas ndB eCthw ien ea n• , ECnavniar od niam n e nGtae ol g Ar atp tih teu rd ,e Vaonl.d 12, pp.1 76~91.

서로 다른 自然環境과 서로 다른 그것을 보는 態度, 서로 다른 空 間構成의 慣習, 傳統울 가진 歐美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의 空間 論理를 西歐的인 理論으로만 解釋한다는 것은 확실히 불안한 일일 수밖에 없다. 그들의 長點울 취하고 그것으로 未 盡 한 접은 東洋人 의 地理觀으로 보완하는 노력 이 필요하며 , 그렇 게 함으로써 地域性 究明, 空間의 本質的 理解라는 地理學의 目的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으리라고 본다. 끝으로 明堂, 眞穴의 땅을 模型化시킵으로써 우리 民族이 長久 한 세월 동안 꿇임없이 살아서 또는 죽어서까지 거기에 있기를 원했 던 곳의 環境, 風土가 어떠한 것이었나를 밝히고자 한다. 明堂, 眞 穴이 地形, 地勢에 따라 다른 것이기 때문에 模型을 제시하기는 매 우 어려운 일이 분명하지만 그곳의 環境知 覺 的인 屬性에는 共通點 이 있을 것이며 그 屬性을 종합함으로써 우리 民族이 가장 원하던 땅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낼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2 硏究方法 風水地理說의 內容 整 理는 文 獻調 査에 전적으로. 의존하였다. 실 제 陰 宅 相占에 종사하는 術 士, 소위 地官의 面接 調 査 및 踏山, 占 穴의 過 程이 포함되어야 하겠지만 그들의 水 準 정도를 가늠할 方法 이 없어 주장하는 바를 처리하는 데 문제가 있고, 어떤 한 類 派의 편벅된 論義 만 을 고집할 우려가 있으며, 무엇보다도 오늘날 地官의 대부분이 山所자리 잡는 일만을 本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風水의 원초적이고 基盤 的인 내용 정리에는 오히려 至曲된 영향을 미칠 가 농성이 크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에 오직 文 獻 에만 의촌하였다. 一說에는 術士部類의 땅을 보는 정도를 凡眼, 法眼,道眼, 神眼의 네 단계로 구분하고 있는데 어떤 地官이 어떤 단계에 속하는 것인 지를 판단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고, 또 대부분의 風水 書 가 차이 가 있기는 하지만 基本 構造 나 論理 體 系에 있어서만은 대체로 一 貫 性을 유지하고 있는 듯하여 文 獻調査 에 의한 風水說의 內容整理가 타당성을 잃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서 凡眼이란 혹은 俗眼이라고도 하는 것으로 山水의 形勢를 매우 상식적으로 理解하는 단계이다. 法眼이란 太祖 中祖 小祖 等 을 五行九星에 맞추어 판단하며, 龍身의 伏起屈曲의 勢와 그 方位 를 山 書 法에 맞추고 前後左右의 峯密 의 形局과 方位를 계 량하며 나 아가서는 365 繩 度에 배정하여 그 전체를 판단하는 정도를 말한다. 道眼이란 말하자면 開眼으로 正法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 얼핏 山

峯을 보면 大勢를 침작하고 大勢를 보면 眞龍울 발견하고, 龍身울 • 브떤 氣留止處를 占하고 氣留止處에 이 르면 穴形이 苑然히 눈앞에 들어오며 따라서 前後左右 四勢八方의 기운이 종합 통일적으로 그 龍身穴形과 배합 비교되어질 것이며, 砂水得破의 好不好가 一目膜 然하게 드러나게 된다. 그런 것들을 正法에 대조해 볼 때 조금도 法에 위배됨이 없을 때 비로소 道眼이라 일컫는다. 다음 神眼이란 山睦나 耳報 같은 邪 靈 의 힘으로 귀신의 눈을 갖고 본다는 것이라 신기하기는 하지만 大地에 이르면 山慈논 山의 正 氣 에 여눌려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단계이다 .3)

3) 波宗筑, 1969, 「風水地理略說」, 《人文科殿)), 第二十二輯, 延世大 人文科學硏究所, pp.1 47~8.

따라서 本考의 文獻 爲主의 硏究는 굳이 분류하자면 原理的인 異 法을 分類 整理하는 정도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경우 사용한 資料와 그 出典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직접 引用한 文 獻은 물론 脚社로 처리되겠으나 보다 넓게 整理에 영향을 미찬 資 料와 筆者가 菓集한 風水關係書籍은 本章에서 篇別로 出典울 밝히 고자한다. (a) 塚玉芹 (景仁文化社編 韓國風水地理鼓書, 1969 年刊) • 密頭歌括, 陰陽歌, 尋龍歌, 點穴歌, 擬砂歌, 鑑水歌, 理氣定議, 推 原, 審龍, 審穴, 立向, 砂法吉凶, 水法吉凶, 羅經軟式, 造葬作法, 古今圖法, 陰陽妙用 (b) 明山論 (上同) (c) 地理新法胡舜申 (上同) (d) 興吹妙誤 (上同) (e) 精校 地理正宗 ( 臺酒 , 瑞成書局, 1968 年刊) 靑襄經, 葬 書 , 德龍經, 疑龍經, 歸厚錄, 從厚錄, 天玉經, 都天寶照 經, 天元五歌, 靑紫序, 靑酒奧語, 天元八宅序,天元烏兎經, 天元九 略, 天元羅經表,題無極子圖, 精義篇, 水龍經, 玄機賊, 入式歌, 山 龍語類, 平沙玉尺辨僞, 平沙玉尺辨僞歌 (f) 雪心賊辯瞬正解 ( 臺灣 竹林 書 局, 1975 年刊) 辯論, 雪心賊正解

(g) 地理 靑裵經 ( 臺問 , 文 林 出版 社 , 1975 年刊) 固式, 斷,論, 龍水陰陽八神卦賊, 埃星賊, 玄空試, 天玉經外編心印 r 古本龍水經 , 靑紫奧語 (h) 入地眼全 書 ( 藝潟, 竹林 習 局 , 1976 年刊) (i) 地理大全二十三種 (上海, 中原 書局 , 1929 年刊) 地理 陽 宅大全, 金彈子白 裝 心法, 金彈子天星心法, 金彈子選擇心法, 玉 彈子 元槪 眞經 , 鉛彈子地學正義, 鐵彈 子 靈城精義 , 地理大全入門~ 誤, 七星龍穴 經 , 高山龍穴大全, 平 龍陽 穴大全, 平洋 龍 穴法, 水鉛穴 法大全, 向水 眞誤 大全, 砂水方位吉凶法大全, 龍經, 疑龍經, 風水義, 被肝 露腦經 , 德龍經, 葬經, 靑商經 , 天玉經, 水法出入神熟論, 發微 ­ 論, 眞龍 名 篠經 , 打\砂經, 玉尺經, 雪心斌,赤露經, 葉項精微 (j) 校正 地理四 彈 子 (上海, 校經山房, 刊行年代未詳) 鐵彈 子, 鉛彈子,金彈子, 玉彈子 (k) 地理陽宅大全 (台 潟 , 集文書局 , 1975 年刊) 地理陽宅大全五集, 金光斗臨經 (1) 地理大成 山法全 書 十九卷(上海, 九 經書 局, 刊行年代未詳 ) (m) 地理大成 平陽全 書 十五卷 (上同) (n) 地理六經注解 (上同) 葬書, 倒杖, 靈城精義 , {崔官, 天玉經, 靑礎經 (o) 羅經機霧集 三卷(上同) (p) 理 氣 四誤 (上同) 向法永禎映, 水法無 事誤 , 作法通氣缺, 頓公換砂誤 (q) 山水圖 ( 筆寫本 ) 等이 그것인데, 이의에도 題目울 알 수 없는­ 및 권의 筆寫本이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筆寫本들은 上記한 책들­ 중의 어떤 부분을 拔후하여 備 忘錄형식을 취한 것으로 크게 참고하 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근래에 出版된 風水 書 는 다음과 같다 .4) 陰宅要誤 (金榮昭), 明堂全 書 (韓松溪), 地理學全 書 (東谷), 明堂學 講論 (辛仇柱), 陽宅三要缺 (高 麗 風水地理學會編), 韓國地理總覽 (池 4) 여기서는 固諏활인 鄭鑑錄類의 資料논 省略하였옵.

昌龍), 風水地理學槪要 (黃 日淳), 八十八向眞映 (金明濟), 方位學入 門 (全泰樹), 家相學入門 (全泰樹), 韓國地理總論 (金成俊) 等이 :i. 것이다 .5)

5) 術 書 만 포합시키고 風水硏究 書 및 調査報告 書 는 제의하였음.

漢籍의 解讀은 筆者가 獨學으로 漢文울 익혔을 분 아니라 아직 文理를 깨우치지 못하여 모두 原文울 括孤에 제시함으로써 後日울 기했다. 風水地理說의 解釋은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주로 都邑과 國都에서 의 適用例롤 中心으로 하여 가능한 한 現地踏査를 실시하였고 그렇 지 못한 곳은 I : 25, 000 내 지 I : 50, 000 의 大縮尺地形圖오1- I : 250, 000 의 中縮尺地勢固를 이 용하였 다. 韓半島 全體의 山脈勢判斷 은 現代地固분 아니라 오히려 大東輿地圖로부터 받은 가르침이 더 큰 경우도 있었다.

제 2 장 風水說의 槪要 및 歷史

1 風水槪要 風水地理說이란 무엇인가타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결코 간결히 해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많은 風水書 들이 地理說의 要諦를 한마디로 표현하려는 노력을 그치지 않았다. 球玉%에서는 〈 수많은 地理 書 가 있으나 그 뜻을 묶으면 陰陽이라 는 두 개념 사이에 머무는 것이니, 陰陽의 奇妙함을 꿰뚫어 알 때 사람 사이에 地仙으로 행세하여도 부끄러움이 없을 것 (古傳地理千 百卷 義括陰陽兩字間 識透陰陽奇妙處 無捷人間行地仙)〉 l) 이 라 하여 그 要諦롤 陰陽이라 파악하였고, 葬書에서는 〈風水의 法術은 得水 가 으뜸아 요 藏風이 그 다음이 라(風水之法 得水爲上 藏風次之)〉 2) 고 하여 風水하는 方法으로는 平洋의 地勢에서 得水의 땅이 제일이고 山 끓 인 경우의 藏風되는 땅이 그 다음이라 지적(風水法中 上者平洋 得水之地 次者山龍 藏 風之地)하였다. 雪心賊는 〈地理의 理法에서는 坐向 方位에 대한 것이 論理를 제 우는 처음(方位之說立始以地理之理)〉”이타 하여 方位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靑 蒸經 에서는 다시 陰陽울 내세우고 있으며 (人得陰陽 玄妙理 知其裵旺生與死 )4) 金彈子에서는 〈地理에서 땅을 보는 일은 모두 다 龍이 主이고 穴이 다음이며 砂城과 水가 또 그 다음이라고 1) 『地理塚玉芹』, 「陰 陽歌 」, (年代未 詳 , 上 海 , 台 文 堂얌局印 ) 2) 『地理正宗』, 卷二, 「 葬합 」, (19 68, 臺떄 , 瑞成합局) 3) 『雪心斌辯瞬正解』, 辯論 30 . 입 「地理 辯 」 (19 75, ?1!;쩐 竹林密局) 4) r 地理正宗 』 , 卷 5, 「 靑賣 序」

말한다(言地理咸曰看地以龍爲主穴次之而砂水又次之)〉 5) 고 하여 龍, 穴, 砂, 水의 네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山法全 書 에 서 더욱 분명하게, 〈風水說을 요약해서 말하면 龍, 穴, 砂, 7k 의 四 法(塔與之說衆而言之 不過龍穴砂水四法而已)〉 6) 이라 표현하고 있을 정도이다. 이것은 옛 地理 書 의 공통적인 구조로 龍穴t杓k 를 같이 다루어 온 것 은 전통이 었 던 듯하다. 倒杖에 서 도 〈古之著地理書者 皆龍穴砂水而合言之 未有分言之者〉”라고 하였 는데 , 이 의 에 도 여 러 風水 書 에서 이와 유사한 지적을 엿볼 수 있다• 이와같은추세는 唐 의 楊鎔松이 倒杖이라는 穴에 대한 책을 씀으로써 四法울 분리 서 술하는 경 향(分言之則 自 楊公始 而倒杖法則其言穴之 書 也 손 一―地理大 成, 卷之二)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그러나 風水 基本書에서는 여시 이 方法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예컨대 風水 書 中 최근에 발 간된 地理大全 8) 에서도 책의 편제를 龍,穴, 砂, 水法울 卷四까지 기본으로 하고 陽宅, 五行, 羅經을 또다론 三卷에 편입시키는 방법 을 취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타에서 근래에 발간된 風水書도 上記한 中國版本의 內容과 비슷하여, 八十八向 眞誤 9) 에서는方位를 風水의 골격으로 생 각하고 있고, 陰宅要誤 10) 에서는 五行과 陰陽울 地理의 妙機로 파 악하였으며 , 地理學全 書 11) 는 易을 風水의 根源으로 삼고 있 다. 易 과 陰陽 그리고 五行율 風水論理의 基本으로 이해하기는 明堂全 書 12) 와 陽宅三要誤 13) 그리 고 韓國地理總覽 14) 에 있 어 서 도 마찬가지 이 다. 明堂學講論 15) 에 서 는 風水의 大宗을 陰陽論과 아울러 吉地의 5) 『金彈子地理元珠經』, 「密頭心法」, (年代未 詳 , 上 海 , 校經山房) 6) 『地理大成山法全합.l, 卷之首上, 「 龍 穴砂水釋名 組說 」, (年代未詳, 上海, 九經 書 局) 7) 『地理大成地理六經社』, 卷之二, 「倒杖」, (年代未詳, 上海, 九經 합 局) 8) 『地理大全入門要扶J, (19 29, 上海, 中原 찹 局) 9) 金明濟, 1971, 『八十八向眞扶(山함)』, 三信 홈籍 , pp. 6~7. 10) 金榮圈 1975, 『陰宅要扶J, 明文堂, p. 9. 11) 東谷, 1979, 『地理學全書』, 東洋흡籍, p. 22. 12) 韓松溪, 1975, 『 明堂全 書』, 明文堂, 序. 13) 柳泰佑, 1981, 『陽宅三要映』, 陰陽脈軫出版社, p. 139. 1154)) 池辛係昌柱 龍,, 11998822,, 『『明韓堂國卑地諸理論總』,覽 』,上 卷明,文 堂韓,國 學pp校.1 名14鑑~編31纂. 委員會, p.2 0.

外樣形勢만을 중시 하는 形勢論으로 二大分하기 도 한다. 이에 대하여 學者둘의 硏究論文에 나타나는 風水說의 정의는 ® 墓 相과 家相으로 吉凶禍福을 卜하는 迷信 ,16) @土地에 대하여 일~ 의 形而上學的인 神秘 靈 妙한 實在를 인정하여 都邑,宮宅, 陵墓의 땅을 卜相하고 人間에 미치는 吉凶禍福의 영향을 논하는 일종의 觀 相 學 , 이때 그 實在란 天地 萬 物울 生成하는 原理르서의 陰陽의 氣 임 ,17) ®風水의 基本 構成要素는 山, 水, 方位의 세 가지이며, 그­ 本質 은 天地의 生 氣 를 地脈울 매개로 享受함으로써 인생의 행복을­ 구하는 것 ,18) @地形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으로 전통과학의 가장 중요한 부분 ,19) @ 대 ·소 우주론, 음양오행설, 十二支干說 等율 기초이론으로, 山龍, 得水, 藏風울 택지 선정의 기준 요소로 하는, 通時的 Sy n chroniq u e 분석 이 共時性 D i achron iq ue 에 앞서 는 우리 나라 의 신앙, 20) @ 陰陽說울 기 초로 하고 羅經 울 될수물로, 實 地에 서 는 龍 穴砂水믈 구체적인 문제로 삼는 難 知의 韓 國人의 思 考 ,21) ®地 形 에 따라 山水가 逆하기도 하고 順하기도 해서 그 順逆의 이치를­ 잘 알아서 복리를 누리고 재앙을 피해야 된다는 說 ,22) ®地勢를 배경으로 靑 龍, 白虎, 朱 雀 , 玄武의 四相울, 다음에 水口,野勢, 山形, 土色, 水理, 朝山朝水의 차례로 마을의 地理를 살펴보는 傳 統建築思想, 23) @ 땅의 氣運울 연어 人生의 幸福울 누리 고자 하는­ 思想에 서 形成된 方術의 하나, 24) ® 土地에 대 하여 神秘하고 靈妙 한 어떤 實在를 인정하고, 이것에 形態 이상의 形而上學的 理論울 결부시키는 것으로서, 그 土地利用에 연관된 現 質 世界의 吉凶禍福울 16) 柳正 基 , 1965, Ii'東洋 思 想 事 典 』 , 右文堂, 「風水說」條 . 17) 李丙 ~ . 1980, 『高麗時代의 硏究 .!l , 亞細亞文化史, p. 21. 18) 李熙 德 , 1976, 「風水地理」, 『韓國 思想의 源泉』, 博英文 忠 80, p.1 97 및 p. 216. 19) 朴星來, 1982, 『韓國科 終 史 』 , 韓國 放送 휴業 團, p. 106. 20) 許文康, 1981, 「풍수설考J, 《 정 신문화 》 , 1981, 겨 울호, 한국정 신문화연구원, pp. 115~6 및 p. 119. 21) 裵宗鎬, 1969, 「風水地理略說」, 《人文科洋 )) , 第三十二輯, 延世大 人文科學硏 究所, p. 139 및 pp. 149~50. 22) 정 인국, 1975, 『한국의 건축J, 세 종대 왕기 념 사업 회 , p.1 59. 23) 金鴻植, 1975, 「마을 空問椿成 方法에 대 한 한국 傳統建築思想硏究」, 《 大韓建 築學會誌 》 , 19 卷 64 號, p. 45 및 p. 47. 24) 朴沈植, 1977, 「湖南秘決考究」, 《圓光大論文菜》, 第 11 輯, p.1 29.

論하는 것 , 25) ® 土地에 일종의 神秘力울 認定하고 그 힘 의 人間에 미치는 吉凶禍福울 說明하는 것 ,26) @)天地의 生 氣를 받아들여 人 生의 幸福울 追求하는데 本質울 두고 있는 韓國傳統建築 에 깊은 영 향을 미찬 思想 ,2 7) ®穴과 明堂이 그 全體系의 核 心울 이루며 높 온 位 置 를 갖는 空間要 素 의 中心槪念울 抽出해 볼 수 있는 韓國的 思惟, 28) (M} 素朴한 建築計劃 各論의 一種으로 先驗的이 고 演線的인 一面을 갖고 있으며 自然과 調和 를 이룹으로써 人 間 의 本質的인 面 울 찾으려 고 하는 民間信仰, 29) Q2) 地形이 나 方位의 길흉을 판단하 여 죽은 사람을 매장하는데 적당한 장소를 접쳐서 구하는 이론으로 陰陽五行思想에 어버이의 유해를 평안히 모시려는 孝道의 사상이 합쳐서 된 것, 30) ® 局에서 主山이 갖는 中心軸的인 역 할이 M. 엘 리아데의 小宇宙와 空間의 垂直的 構造 上 類似性을 띠고 있는 空間 要素의 一體系 ,3 1) ® 得水와 藏風 울 기본원칙으로 하는 原始信 仰 ,32) 等 무수한 例가 제시되어 있다. 결국 陰陽五行論과 周易的 思 考를 論理의 기반으로- 한 일종의 方術로, 그 기본 구성요소는 山, 水, 方位이며 실체로서는 龍穴砂水가 중심적 역할을 하는 韓國的 思惟體系인 것으로 風 7k 를 理解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西洋人들이 인식한 風水說은 상당히 초보적인 수준 이거나 아니면 誤解한 部分이 많이 나타난다. 그들이 風 7k 를 번역 합에 있 어 서 도 이 런 접 이 드러 나는데 , 風水의 中 國發音 인 Feng -S ui 25) 張聖浚, 1978, 「風水地理局面이 갖는 建築的 想像 力에 관한 考察 」, 《大韓建築學 會誌》, 22 卷, 85 號 , p. 15. 26) 崔柄憲, 1975 , 「道院의 生珪와 羅末麗初 의 風水地理說」, 《韓國史硏究》 , 第 11 號 , p.1 02. '2:l) 兪在賢, 1979, 「民宅三要 문 동하여 본 韓國傳統 住宅의 配置計劃論」, 《울 산공대 연구논문집 >, 제 10 권, 계 2 호, p. 81~2. 28) 兪在賢, 1979, 「穴과 明堂과의 關係문 롱하여 본 韓國傳統建築空間의 中心槪念 에 關한 硏究」, ({운산공대 연구논문집 )) , 제 10 권, 제 2 호, p.1 04. 29) 玄斗鎔, 1978, 「 韓國建築 의 區 宅 論 에 관한 考察」, 《大韓建築學會誌〉〉 , 22 卷, 80 號, p.4 4 및 p.4 7. 30) 김 중수 編 , 1981, 『禮儀生活』, 似知閣, p. 205. 31) 林忠伸, 1981, 「母空間의 原型 : 물과 向天的 흐름」, 〈( 大 韓建築學會誌》 25 卷, 103 號, p.1 7. 32) 金慶英, 1981, 「 韓國 人의 景觀認識에 關 한 硏究」, 《環境硏究)) , 第 2 卷, 서 울大, p.1 98 .

로 表記하는 것은 論外이지만 g eomanc y로 번역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Male fijt는 超越者의 메시지를 전달받는 예언을 크게 네 가지 로 분류하여 各各울 다시 세분하고 있는데, 占 卜術 aug u ry, 占星術 ast r o log y, 人 體觀 相 術 somato m ancy, 解 夢術 dream i n t er p re t a ti on 이 그것 이 고 g eomanc y는 이 중 au gu ry에 포함시 키 고 있 다. au g ur y에 는 鳥 占 ornit ho mancy, 건조한 진 흙 판 위에 나타나는 군 열로 占울 치는 ge omancy , 불꽃으로 하는 pyro mancy, 岩石에 의 한 lit ho mancy , 水流나 波狀울 대상으로 하는 hy d romancy 等이 있 다고 33) 하여 결 국 g eomanc y와 風 7k 는 相 異 한 개 념 임 을 알게 해 준나 따라서 筆 者의 견해로는 g eomanc y보다는 M. E li ade 의 fun e- rary g eo g ra ph y가 보다 적 철한 用語인 것 처 럼 생 각된다 . 그러 나 그도 역시 개념은 風 7k 에 크게 미치지 못한 범위에서 이해를 한 듯 하다. 그는 fun erary g eo g ra p h y를 죽음의 神話에서처럼, 샤만들 shamans 의 엑스타시적인 경험의 결과로 인식할 분이다 .34) Max Web e r 의 인식 은 이 보다는 전전되 어 中 國家 族制度가 土地에 미치는 영향을 설 명하면서 〈 새로운 집, 특히 새로운 무덤이 조성되 논 경우 기존 무덤의 先祖의 혼령분만이 아니라, 岩石, 水, 山의 정령에게까지 해를 끼칠 수 있으며, 이것을 판단하는 사람이 風水 fen g shui 죽 g eomancer 〉 3” 라고 하였다. Creel 은 中 國人 의 참을성 과 寬 容울 宗 敎 의 혼합화로 설명 하면서, 〈中 國 의 神格인 天이 불교의 철에서도 공경을 받으며 孝道는 특히 강조되고, 절은 風水로 알려진 五行思想 等 奇術的 아이디어 體 系 예 의하여 축조된다 〉 3 6) 고 하여 五行思想과 風水를 연결시켰다. 그 역 시 g eomanc y가 아닌 fen g shu 뉵 表記하고 있 다. 33) Annemarie de Waal Malefi jt, 1968, Reli gion and Cult ur e, The Macmi llan 34C) oM. ,i rcp epa. 2E1l6i ~ad7 e., 1964, Shamanis m : Archaic Techniq u es of Ecsta s y (Tran. from the French by Wi llar d R. Trask), Prin c eto n Univ . Press, pp. 509~ 10. 35) Max Weber, 1951, The 2e li gion of Chi n a (Tran. and ed. by Hans H. Gert h) , The Free Press, pp. 88~9, p. 276. 36) Herrlee G. Creel, 1953, Chin e se Thoug h t fro m Conf uc i us to Mao Tse· t1m g , Univ . of Chic a g o Press, p. 199.

우리 나라의 宗 敎 를 英文으로 집 필한 C. A. Clark 는 보다 자세 한 風水解 釋 울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民間의 風水 觀 念이 어떠한 것인 지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資 料가 될 듯하다. 그는 Poong s oo (Chin e se Fung su i) , ch i kwan( 地官) 그리 고 Geomanc y라는 用語를 혼 용하면서 상당히 구체 적 인 선명 을 가하고 있 다. 그가 인용한 Ross 에 의 하면 g eomanc y는 中 國 의 유명 한 B. C. 2000 年경 의 임 금인 堯 의 臣下인 Hu 와 Ho 에 기 원을 두고 있 다고 한다. 3n Geomanc y에 밀접된 사람이 精 益 인 Kw i s i n( 鬼 神 )의 철저한 추종자가 된다. 또 Mar ti n 은 g eomanc y를 道敎 中에서 타락한 低 質 의 곁가지라 하였 다 . 38 ) Gale 박사는 A.D. 1022 年 Han Cho 가 中 國 으로부터 Chig a Su( 地 家 書 )라는 風 水 書 를 도입 했 다고 쓰고 있다 .39) 中 國 에서는 Fung Sui, 韓國 에서는 Poon g soo 라 불리우는 이 科學 S ci enc e{는 바 람과 물의 科學 th e Sci en ce of Wi nd and Wa t er 으로서 , 住居와 住宅 특히 墓 地의 立地 물 상서로운 자리에 선 정 하는 일이다. 地官은 고 도의 교육을 받아야 하며 최 근에 가장 찰 알려 진 風 7J ( 書 는 Chun Keui Ta y o( 天 機 大 要 )이다. 地官이 山에 오 폴 때는 나침반, 쌍안경, 지팡이 와 자를 휴 대 한다. 그들은 善惡 울 가할지도 모르는 영 향력 이 北쪽 國境 의 Everwhit e Moun tai ns( 白頭山)로부터 시작하여 접차 낮아지며 南쪽으로 내려 오는데 山所는 이것을 피하여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곳에 자리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 Blue Dra g on( 靑龍 ), Yellow T ig er( 白 虎) 等의 山 줄기 가 갖추어 져 야 하며 Sp ying Peak( 康峯 )가 있어서는 안된다. 이런 것을 찰못 건드려 재앙이 닥치면 Moota ng (巫堂)이 나타나는 경 우도 있 다. 그 뒤 日帝의 支配이후 共同 墓 地制度의 확립으로 地官의 역할은 대 폭 축소되 었다 40) 고 하여 , 크게 Shaman i sm 의 범 주에 서 理 解 한 듯 하나 비교적 상재한 내용을 파악하고 있다. :rl) Ross, Corea, He r Hi st o r y, Custo m s and Manners, p. 358 . 38) Martin , Lore of Cath a y, p. 252 . 39) Gale, 1900, Roy a l Asia t i c S ocie t y Records, p.1 0. 40) Charles, Allen Clark, 1961, Reli gion s of old Korea, The Chris t i an Lit er atu r e Socie t y of Korea, pp. 188~90.

中國系의 설명 은 물론 本質에 접 근한다. 예 컨대 , C. K. Yan g은 惡運울 피하고 좋은 運울 얻기 위해 山所를 잡는 일이 fe ng -shu i라 하면서, 그 運은 天으로부터 人間에 부여되며 思想의 기반은 陰陽 , 五行說이 라 지적 하고 있 다 . 未知의 世界에 접 한 人間이 ge omancy 에 의촌하여 그 이론이 지적하는 위치와 方向에 住居와 陰宅의 자 ­ 리를 잡았을 때, 의십과 공포로부터 해방되고, 보이지 않는 기회의 요소를 管理할 수 있다는 思想울 낳게 되었다는 것이다 .4 1) 風 7k 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東洋人둘의 風水的 觀念울 이해 하는 데는 地理學者 Yi- F u Tuan 의 견해가 參考가 된다. 그의 Geo pi e ty에 관한 論文 42 ) 은 風水 소개 가 아니 라 風水的 論 理의 本質 에 접근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시사를· 주고 있으며, 따라 서 現代地理學에서 어떠한 方法으로. 風水에 接近할 수 있는가 하는­ 아이디어를 제공할 분만 아니타 地理 學 方法論 자체로서도 매우 중 요한 의미를 갖는다. 원래 g eo pi e ty槪念은 Joh n K. Wr ig h t로부터 나온 것으로 人間과 自 然 사이의 복잡한 목수 관계를 대변한 用語였다 .43> Yi -F u Tuan 이 말하는 g eo pi e ty는 이 오快근 좀 다른 개 념 이 다. Tuan 에 의 하면 人 間과 그들의 母鄕인 땅과의 감정적인 유대감을 표현하는 말이라 한 다. 그러한 감정의 본질은 연민, 혹은 존경십으르 관련지울수있으 ­ 며 로마人이 말하는 Pie t a s , 中國人둘의 孝 가 바로 그것이라는 것 이다. 古代 로마나 中國人에게 있어서 父의 힘이란 철대적인 것이 었다. 그러나 父母는 나이가 들면서 약해지게 되고 도움이 필요하 · 게 된다. 결국 孝논 촌겅십분만이 아니라 연민의 情이 큰 역할을 - 맡는다. 自 然 울 주관하는 精靈도 人間에게 대한 강력한 힘을 가지고는 있 으나 역 시 인간의 奉納 이 라는 도움이 필요하다. 땅은 人間울 부양 41) C. K. Yang, 1961 , Relig ion in Chi ne se Socie t y , Univ . of Califo r nia Press, p. 38, p. 248 및 pp. 263~5. 42) Yi- F u Tuan, 1975, Geop iet y : A Theme in Man's At tac hment to Natu r e- and to Place• , Geog r ap hi e s of the Mi n d, (ed. by D. Lowenth a l), Oxfo rd Univ . Press, pp. 11~39. 43) J. K. Wrig h t, 1966, Human Natu r e in Geog r aph y, Harvard Univ . Press> pp.2 50~85.

하지만 동시에 人間의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信心 pi e ty이란 人間들 사이의 관계일 분만이 아니라 人間과 自然, 人間 과 神의 關係이기도 한 것이다• 실제로는 人間과 自然과 神이 밀접 하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孝란 父母분만이 아니라 神에 대한 의무이기도 하다 .44) 地孝糖念 g eo pi e ty에 대 한 가장 중요한 테 마는 하늘과 땅, 죽 天 父 Sky Fa t her 와 地母 Earth Mo t her 에 의 경 배 이 다. 그러 나 오늘날 自然은 너무나 세속화되어 神이 山에 居住한다고는 생각지 않을 분 아니라 하늘에도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地孝觀念的인 느낌은 땅에 대한 집착, 고향에 대한 사랑, 愛國心 等에 깊이 남아 있다고 본다. 天온 포괄적이지만 地는 局地的이다. 天과 地의 의미함이 같을 수 없는 것이다. 天온 규칙성, 지배, 숭배의 대상이지만 地는 生命을 붑지시키고 사랑을 받기를 바란다. 農民이든 軍 人이돈 땅에 결부된 수호신에의 믿음은 대단했다. 이것은 中國人들만이 아니라 그리이 스·로마人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리이스의 軍 人둘은 회생의 제물을 바치고서야 江울 전녔고, 로마의 농부들은 나무, 생, 土地 에 대 한 信心 P i e t as 을 바쳤 다고 한다. 45) 中國의 경 우는 社稷神에 대한 태도가 例가 된다. 죽은 者의 魂 靈 또한 힘을 갖는다. 특히 영웅과 聖者의 매장지는 聖所이다. 숲은 中國에서 女神에게 귀속되고, 山은 神의 居住地이 며 어떤 곳은 영웅의 육신이 매장되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신성시 된다. 보통 사람들의 매장지도 격은 떨어지지만 역시 모종의 힘을 갖는 다. 이것이 中國的 ge omancy (fen g shu i)의 原理가 되는데, 사람이 알 맞은 자리를 골라 매장이 되면 후손이 찰 되며, 주택, 도시, 지 역의 자리잡기가 모두 이와 같은 論理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다는 44) pi e ty으1 번역 용어는 本考에서는 편의상 信 心으로 하고, g eo pi e ty는 의역하여 地孝 ltl!.念 으로 하였으나, 이것올 가장 적철한 번역어로는 보지 않는다. 今後, 보다 져철한 用 i듭 가 마련되면 고쳐져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45p) .1M 0.a rtin P.Ni lsso n, 1940, Greek Pop u lar Reli gion , Columbia Univ . Press,

생 각이 風水이 다. 46) 以上의 東西洋 風水 定義는 대단히 雜多한 느낌을 준다. 西洋人 들이 받아들이는 風水는 그 內容의 길이오H 근 관계 없이 기본적으로 風水를 迷信이나 샤마니즘 정도의 것으로 인식하는 듯하다. 그러나 복잡하기는 하지만 共通的인 내용을 정리할 수 있는데, 風水說의 槪念울 定義내리기 전에, 옛날 노인들이 줄줄 의어가며 求山할 때 參考했었 다고 하는 47) 歌辭體의 風水 書 를 먼처 소개 하고자 한다. 48) 風水說울 體系的으로 分析하기 전에 風水的 思考觀念에 대한 直觀 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錦裵諸 49 ) 世降末(谷숭야 風水法이 일어 나니 山論眞假를 兒女大都 議論중 니 英雄萩傑은 岳活(山川)의 益氣오 富責榮華 는 山JI I 의 發應이 라 來龍淸?책을 그 뉘라서 分別슝며 群砂의 吉凶法울 그 뉘라서 取捨홀고 嵐尙 山 大幹龍온 黃河水俠流숭고 白頭山 中祖峯은 鴨綠江니 相應이오 泰白山 王玉山온 鹿尙 의 枝孫이오 磁石山 鳳凰城은 湯龍의 餘氣로다• 朝鮮國 八道山울 歷歷키 돌아보니 咸鏡道咸關嶺은 聖代山의 來脈이 오 江原道 大關嶺은 泰白山〔太白山〕의 胎息이 오 平安道 子母山은 大同江이 配合중고 京畿道 三角山〔北漢山〕은 漢 江水 回朝로다. 忠淸道 鷄龍山온 白馬江이 둘너 잇 고 46) Andrew L. March, 1968, •An Ap pr eci at i on of Chin e se Geomancy •, J01 1rnal of Asia n Stu d ie s 27, p. 253. 47) 裵宗鎬,前描함, p, 140. 48) 여기 소개하는 歌辭는 上掃 합 에서는 踏山歌라 하였으나, 筆者는 金成俊 編 , 『韓 國地理殿論』 (1982, 育志社刊 ) 影印本윤 出典으르 하였음, 여기에는 錦資歌라 되 49어) 上있j 다g ., 『펄韓요國地한理 곳菜論의』 ,풀 이p는p. 2(4 3~)7로. 처리하였음.

慶尙道 캡 陰山은 洛東江이 遠 店J l로다. 全 羅 道 月 出山은 乾 知山이 相應하네 黃海道 九月 山온 首 陽 山이 胎息니 라 左旋龍의 右旋水요 右旋龍의 左旋水라 東風水五行地理 穴三合하도할샤. 爲親求 )II 卞논날애(하는 날에) 先念 富貴 성각卞고 證 魂安寧이것거든 殘風斜陽求홉손가 速發速 福 슝려 중고 上取風 露 裁穴슝늬 完 福 'C.1- 미 더 쓴이 下取空迅 따히 로다. 朝山울 食 츈다가 芝穴울 일허 쓴다 得水울 食순다가 殺 水(黃 泉殺 〕울 몰라보늬 次 乾蓋 坤免風온 男殘女 霧 따히 로다. 寅卯脈乙 辰 破은 速 發 速 破 따히 로다. (앞의 破는 得水法중 得, 破의 것 이 고, 뒤의 것은 글자 그대로의 의미 임) 南 獄 水 刑 獄 水은 後孫의 災殊이 오 @l 부분은 분명 치가 않아 筆 者가 집 어 넣은 句節임) 異辛 震乾 戌風온 色魂의 秋 殊 이타〔色은 亡과 同字입〕 斜 協雄 辰戌 灘 온 骨肉殘 傷 悟酷 t다 乾 O 方 形印砂은 짬 目砂인줄 귀뉘알고 어와 可笑로다 近代地理可笑로다 菌 山水火 廉 貞 를 神 眼으로 맛치 오며 新山 尋龍 裁穴은 그대도록 辻『』훌샤 功名 富貴 多子孫울 手 掌 의 봇쳐 잇고 龍眞穴的吉凶殺은 아라보리전혜업다(알아 볼 이 전혀 없다) 尋龍의 홀말업고 裁穴의 눈이머러(멀어) 賊 患 牛馬어 인일고 子方斜路거 아인가 乾方襄山 借頭石온 大風 遼通 섭 새 올샤 缺菩 露 齒허형이 논 震 方次路破落砂오 酒妄 急 死춧미 치 몬 興峯高壓陰 岩이 라 批持放脚案村마소 男女好色浮發습니. 白虎案의 안건 峯 아 主 妻 問夫츠즐세고 免水寅方 長流t니 新婦洋走즈줄세고 惡疾潤疾어립증은· 坤 震 開湖越見일다

胸腹痛바 알키 논〔배 알이 ] 庚方陰岩타시 로다 震方長岩구버보니 一目失目통장이오 辰水連於興水슝면 口純語訥버어리라 敦 8 眉山於五盛슝나 直目雀目휼게눈이 高者뗄者어 인 일 고 膜之案對마로더 야 退山玉 O 너논어이 內砂荊苗피굴려온 巫女博士너털기노 主後窟山側視인가 背曲腹曲꼽새 동은 玄武曲尺八首牛形 頭風中風 닌 통 증은 案村臥石溫流로다 早歲 O 齒볼옥기 논 離首立石숟펴보소 寅良 땐 行술펴보소 埃榮方이더욱누지 泳浴方獄fWli')I야 浮亂風情 7 이 업 다. 祿胎方이 居破강니 援 1 保子息 키 올손가 冠帶方의 水破卞니 長男子,息 다죽거 다 丑寅方荊苗砂야 苦勞올손 底疾風殘 寅申巳亥交首슝니 溫疾絶祀t려 슝너. 乾亥方의 裁山이 야 亂臣賊子破家로다 子午窟山 너 논어이 賊患三形 어이 홀고 卯酉窟山 너 논어 이 不久貧寒官突로다 坤申文章案아 爭松是非 그지업다 離方次方 잇 논旋旗 胡奪人財쑨이 . 로다 八曜方結頂li')I야 獻法諒말셀 엉 닉 黃泉方臥石砂야 少年橫死말려 온다 龜頭琴却 죠혼砂야 앗가운샤〔아까울사) 丑未坤申 木甄朽鉢 너 논어 이 僧尼巧乞謀避卞랴 荀菊層面案對마소 子孫邪曲어 이 홀 고 洋正不思人廢卞니 案前田野品字로다 이바번임늬야(벗님네야) 富貴壇山 술퍼듯소 乾良峰이 高靈古면 萬種祿운 일위 내 고 興辛峰이 供全卞면 文章士울 도와내고 坤母峰이 起拜卞떤 雜科만성 부디 卞고 丙丁烽이 高秀卞면 壯元及第 어려올가 良丙方 倉庫砂야 大豪富貴多事로다

興方의 峨 溫 砂야 女色 傾 城애근논다〔애 꿇 는다〕 乙辰方의 交首숭면 假 酷홉손 惡韻 이야 內肥橫琴 반겨마소 次次長成 淮 亂t닉 南方의 猫 立高 峰 回 祿 秋은 므슨일고 申秀 興 於兩 時 슝니 一腹 雙 生 쑨이로다 生水旺方 도라간미 子孫聽明 겨 아인가 租 善積 德 積惡으로 富 貴 貧 賤의예셰라 富貴 도 내命이오 貧 賤도 내命이다 그러도 至極情誠古떤 天地도 感動 슝논아라. 이 굴에서 나타난 追吉避凶의 親 念은 卷間에 가장 넓게 퍼져 있는 風水的 觀念일 것이다. 물론 이것이 風水의 전부는 - 아니라 하더라 도 이 글에서는 상당량의 風水用語가 등장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相 地方法까지 제시하고 있어 風水의 대개를 침작하는 데는 좋은 資料 임이 분명하다. 上述한 내 용을 기 본으로, 筆 者는 風 7k 의 槪 念과 論 理 構造 를 다음 ­ 과 같이 정리하였다. 즉 風水地理說이란 陰 陽論 과 五行說울 基 盤 으 로 周易의 體 系를 주요한 論 理 構造 로 삼는 中 國 과 우리나라의 전동 적 인 地理科學으로, 追吉避凶울 目 的으로 삼는 相地技 術學 이 다. 이 것이 후에 孝의 觀念이나 샤머니즘과 結 合되어 利己的인 俗 信으로 ­ 전전되기도 하였으나 기본적으로는 일종의 土地 競 의 表 出이라할 수 있다. 風水說의 構 成온 山, 水, 方位, 사람 等 四者의 組合으로. 成立되 며, 구체적으로는 看 龍法, 藏 風法, 得水法,定穴法, 坐向 論 , 形局 論 等의 形式論理를 갖는다. 風水 書 에 따라서 以上 여 섯 가지 形式 ’ 춥理 中 어느 한 두 가지를 강조, 중시하여 그것을 重點 的으로 風水 內容으로서 취급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風水 全 體 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섯 가지 모두에 대한 分析이 필요하다. 各 各 에 대한 解 釋은 本 書 의 해당 章 節에서 자세히 언급할 것이지만 우선 개략적인 이해를 위하여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看雜法 風水에 내포되어 있는 모돈 原理가 可視的 實 體 로서 표출되는 孛 象 이 山, 죽 風水用語로 龍이며, 그 龍脈의 흐름의 좋고 냐뽑을 祖 山으로부터 穴 場 까지 살피는 일을 看 龍法이타 한다. 龍 속에는 감 추어진 山의 精 氣 즉, 地 氣 가 流行하는 脈이 있어 看龍 에서는 龍 울 體 로, 脈울 用으로 하여 그것을 찾는다. 龍 과 脈은 따라서 의면상 으로는 한가지인 것이니 龍울 살펴 脈의 善 惡울 알 수 있어도 脈울 보아 龍의 吉凶울 알기는 어렵다. 龍은 形 體 가 현처한 것이고 脈 은 籠 의 속에 숨어 있는 氣 運의 隱微 한 것이기 때문이다. 고로 龍이 있 어야만 脈이 있고 脈이 없으면 尻體와 같은 龍이다 .60) 脈이란 사람의 몸에서도 血의 理致가 나누어 겉으로 몸에 行하는 것을 말함이니 (脈 者 以血理之分 表 行 體 者而言也 )5 1) 風 7k 의 脈도 역 시 地中의 龍 의 生 氣 가 그 이치를 나누어 地表面 부근에 行하는· 것 으로 보면 되고, 사람의 脈을 보아 건강 정도를 전단하는 것처럼 龍 脈도 그 형세로써 吉凶을 판단케 되는 것이다.

50) 東 谷, 1979, 『 地 理學 全 간』 , 서 울, 易 참 普 及 社 , pp. 39~40. 51 ) 楊뾰洲 I, Ii' 針炎大成 1 , 卷一, 「 難經 」, 이 책 은 漢醫 方의 집 대 성 입 .

龍 은 祖山이라 불리우는 名山으로부터 시작된 그 山의 본줄기와 곁가지가 연면히 이어져 내려온 것인데, 風水에서 말하는 - 祖山은 모두 中國에서 발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크게 셋으로 나뉘어, 南 龍 은 眠 山으로부터 일어난 長江과 南海 사이에 끼인 것이고, 中幹은 西 嶺 에서 일어난 黃 河와 長江 사이에 끼인 것이며, 北 龍 은 麗 짧으로부터 출발하여 鴨綠 과 黃 河 사이에 끼여 이어져 白頭山에서 宗울 일으킨 韓國風 7J (의 祖宗이 되는 龍脈 이다. 그래서 山 嵐 福之子孫이라고도 한다 .52) 그러나, 실제 龍 율 相占할 때에는 麗 畜 , 白頭로부터의 山脈 勢 를 順次的으로 모두 고려하는 것은 아니다. 상칭적으로 大龍임을 거기 에 비견시킬 분, 地師의 실제 看龍 時에는 主山 뒤에 연결된 來龍 의 적당한 범위 內에서만 龍의 吉凶율 판단케 된다. 看 龍의 방법은 매우 복잡한 편인데, 대체로 正龍과 傍龍, 浜龍 과

52) 『塚 玉芹 』 , 卷之一, 尋龍 歌 및 첨 부 地 圈

假 龍 , 貴龍 과 賤 龍 , 賓 龍과 主 龍 , 奴 龍 과 從 龍 , 老 龍 과 t相龍 , 長龍 과 短 龍 等 으로 구분하고 그 의 龍 의 行止, 分 勢 , 背面, 餘氣 둥을 살핀다. 術 書 에 따라서는 龍의 生,死, 强 , 결 ~' J I 低 逆, 進 , 退, 福 , 病 , 却, 殺 等 龍 勢十二格으로 吉 凶 울 판단하기도 한다. 예컨대 〈太 祖 山온 山이 高 大하고 石骨은 굽이지고 후미지며 諸 山이 雄 長하여 멀리서 보면 우뚝 솟아 페어나 참으로 볼 만한 모양( 太 祖山 乃 龍 初 起 發脈之山 猶 人之有始祖 其山 高 大 石 骨隣均 爲諸 山 雄長 遠 望 盛秀 可 觀 可愛)〉이 타야 하고, 〈 少祖山은 다시 변화의 모양을 추구하여 뾰족하고 둥글고 각이 지기를 요구함으로써 형상이 수려할 분 아니 라 요컨대 살아 움직이는 듯 정신이 충만할 것( 少 祖山 太祖發 脈之 後 再起之星 峰 也一名 應 星 形與水祖不 同 或尖或圓或 方 精神 充 滿 形 象 秀 麗 ) 〉 을 바란다. 53)

53) r 袁菴 氏 輯J , 「山 龍語類 」, 十六 條 , 皆籠身 之 辨 , 『 地 理 正 宗 』, 卷十一 ( 臺;}11 , 端 成 畵 局 1969 年刊, 『精 校地理正宗 』 이 出 典 입 )

결국 調 和, 均 衡 속에서도 쫓 化, 生 氣 를 아울러 갖춘 모양의 山 이 吉한 龍 으로 간주되는 듯하다. 2) ir: 風法 明堂에 자리잡은 穴 場 울 잡는 것 이 목적인 風水 에 있어서 明 堂 , 주위의 地形, 地 勢 를 어떻게 認識 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風 水의 이해에 매우 중요한 대목이 된다. 明堂주변의 地 勢 에 관한 風 水理 論울 통칭하여 藏風法 이라고 하며 , 결국 藏風法 울 통하여 定穴도 이루어지는 것인 만큼 실제로 都 邑이나 陰 宅 혹 은 住宅울 相 地 함에 있어서는 藏 風法이 바로 요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葬書 에 의하면 〈 葬者 는 生 氣 에 의지해야 한다( 葬 者 乘 生 氣 )〉하였 는데, 또 〈陰 陽 의 氣 는 내뿜으면 바람이 되고 오르면 구름이 되고 분노하면 우뢰가 되며 떨어지면 비가 되고 땅속을 흘러 다닐 때는 生 氣 가 된다(夫陰陽之 氣 憶而爲風 升而 爲雲 奪 而爲 雷 降而 爲 雨行 平地中 而 爲 生 氣 )〉하여 風이 나 生 氣 를 모두 陰陽 二 氣 로부터 생 겨 난 同 質異體 의 것으로. 보고 있다.

陰陽二氣라는 것도 同 書 에 의하면 〈원래 하나의 氣 가 오르내림에 따라 陰陽이란 이름을 가전 것일 분으로 陽이란 陰의 體요 陰은 陽 의 用(太初之始 本是一陽之氣 一升一降 分而爲二 二有陰 陽之 名 然 陽爲陰之體 陰爲陽之 用)〉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氣 가 바람울 타면 흩어져 버리고 물에 닿으면 머문다는 것이다. 따라서 葬者가 生 氣 를 얻을 수 있도록 하 는 法術울 바람과 물 죽 風水라 일컫게 되었다( 經 曰 氣乘風則散 界 水則止 故謂之風水)〉는 것이 葬書의 주장이다 .54) 그러니까 〈風水의 法術은 물을 얻고 바람을 막는 방법을 얻는 데 (風水之法得水 爲 上 藏風 次之)〉 55) 에 중접을 두게 된다. 바람은 地中에서 발생하는 生氣몰 흩어버리므로 c, 生氣룰 포용하 고 陰陽 의 元氣를 지닌 바람을 잡아 모을 수 있다면 風水가 노리는 목적에 供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藏風 의 必要性이 생 간다. 이것은 바람을 막는 것〔防風〕이 아니고 불어서 홑어지고 사 라져가는 바람을 잘 끌어들여 간수하자는〔 藏風 ] 의미로 보아야겠지 만 실제 相地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노 여겨진다. 죽 穴 場 주위를 山이 둘러싸고 그 中央의 回地에 陰陽 二 氣 의 結合과 生 氣의 활동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56) 이것을 葬書 에서는 〈古人緊 之使不散 行之使有止〉라 표현하였 다. 藏風 은 靑龍, 白虎, 朱雀, 玄武의 四神砂에서 大宗울 이루고 그 의 五星, 九曜, 砂星의 官,鬼, 翔 等 術法上으로는 매우 복잡하다. 이 때 砂란 穴 주위의 前後左右에 있는 山(砂者穴之前後左右山也 )5 7) 울 일컫는 말이다. 道說이 異人으로부터 風水說울 전수받을 때 모 래로 山川형세를 설명받음에 기인한 것이라 하지만, 山川의 형세를 모래(li'J i )로써 표시하는 方法은 종이에 그리는 지도가 나타나기 이 전에 원시적인 방법으로. 널리 사용되었던 것이다 .58) 따라서, 藏風法 은 砂의 吉凶판단법으로 대치되는데 예컨대 〈看砂 54) 郭溪, 「 葬땅 」, 『地理正宗』, 卷二 55) 郭漢, 「葬 書 」 56) 李熙德, 前掃魯, p.2 01. 5587)) 崔『山柄水憲固,J ,前 掃「홉砂法,」 條p,, 1 1推6. 里居住 鄭茶氏로부터 입 수한 筆寫 本

에는 總在眼界間 이니 古怪統峨하떤 未善이요, 崎 1 뿐峻險 하면 未良이 며 倒側至斜하면 非吉兆요, 祖雄突亢온 總頭凶이 다• 破粹稷層은 却 殺 이요, 斜飛走去하면 凶殊이다. 尖圓方正이 三吉이요, 秀麗淸奇가 好子이 다. 明淨하면 照福德하고 端圓하면 降禎祥 이 다. 圓은 壅種할 것이요, 尖은 思縱岩 이다. 砂가 吉方에 있으면 多不吉이요, 秀가 凶位에 있으면 福享昌 이다. 生t)는 柔軟하야 如弓角이요, 死砂는 硬直하야 似刀 稙 이다. 貴砂 는 尖利圭多꿔 E 이요, 富砂 는 圓正庫周倉 이 니 緊米辨錢하야 富 한다〉 5” 는 等이 그것 인데 , 대 부분의 吉凶判斷 法이 環境知礎的인 영상을 人 事 에 類推 시킨 비교적 연결성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들임을 알 수 있다.

59) 金榮昭, 1975, 『陰 宅要扶 J , 서 울, 明文 堂 , 「砂格」 篇 , 砂鉛論.

3) 得水法 風水에서 물〔 7j (J의 역할이나 그 중요성은 및 가지로 나누어 생각 할 수 있는데 그 중 가장 타당한 것이 陰陽論的 解釋 方 法 이 아닌가 한다. 〈易에 이르기를 一陰一陽울 道라 일컫는다고 하였다. 陽이나 陰 홀로는 生成하지 못하고 陰陽이 相配되어야 造 化룰 이룰 수 있다. 形勢를 論함에 있어서 山은 陰이요, 水는 陽 이다. 무릇 山 7k 가 相 配해야 陰陽이 있는 것이 된다. 山과 水는 모두 靜하면 陰이고 動 하면 陽이 되기 때문에 결국 山水논 각각 陰陽 이 있는 것이다. 陰 來하면 陽受해야 하고 陽來 하면 陰受해야 하니 龍穴도 相配해야 陰 陽 이 있게 되는 까닭이다(易曰一陰一陽之謂 道 蓋孤陽不生 獨陰不成 陰陽相配 乃成造化 故以形勢之論 山居 陰 水居陽 是山水相配有陰陽 山靜陰而動陽 水動陽而靜陰 是山水各有陰陽 陰來陽受陽來陰受 ~ 龍穴相配有陰陽)〉 60) 죽, 得水는 陰陽의 和合에 필요불가결한 존재로 그 중요성이 인 식된다. 葬書에서도 風水之法 得水爲上 藏風次之라 함은 앞서 밝힌 바와같다.

60) 『雪心試』, 辯論爲 淨陰淨 湯辯 ( 臺灣 竹林 書局 , 1976 年刊, 『地理正解雪心試』 7} 出典임)

陰陽 二 氣 에 의한 山水 설명은 明山 論 에 잘 지적되어 있는데,

水의 吉凶判斷法 역시 매우 복잡한데 그 원칙은 〈山으로 보아 吉 한 方位에 서 와서 凶方向으로 흐르는 것 (吉方來 凶方去)〉 64) 을 좋다 고 한다. 좋은 것을 갖고 와서 찌꺼기를 가져간다는 생각인 것이지 만 구체적인 것은 추후 다른 章에 상술코자 한다. 4) 定穴法 穴이란 風水 에서 要諦가 되는 장소이다. 穴은 陰宅의 경우 兒身 이 칙접 땅에 접하여 그 生氣를 얻을 수 있는 곳이며, 陽基 의 경우 居住者가 실제 삶의 대부분을 얹혀 살게 되는 곳이다. 朱子는 그의 山 陵議狀 에서 〈 소위 定穴의 法이란 針炎에 비유할 수 있는 것으로 스스로 일정한 穴의 위치를 갖는 것이기 때문에 터 럭 끝만큼의 차이도 있어서는 안된다(所謂定穴之法 뽕如針炎自有 一定之穴 而不可有 豪惡 之 差 )〉고 하여 風水의 穴이 人體의 經穴에 비유할 수 있는 것임을 말하였다. 經穴이란 經絡 에 촌재하는 孔穴이란 뜻으로, 經脈 의 出, 注, 過, 行, 入한 곳의 모든 접을 孔穴이라 일컫는데 氣血 의 榮衛현상 이 반 응하는 經絡의 노선 중에서도 특정한 우1 치에 生理的 또는 病理的 反應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곳울 말한다. 65)

64) 『地理新法 胡舜申J, 「水 論 」. 65) 『 71 초침구법J, 杏林出版社 편집부면, 1982, 서울, pp.2 9~33. 66) 金斗鎭 1982, r 東洋醫學 의 世界』, 한국방송사업 단, pp. 54~63.

鐵炎는 모두 이 孔穴의 부위에서 실시하게 되므로 孔穴의 부위를 찰 알아 臘際 와 신체의 각 부위에서 일어나는 病源과 經脈 孔穴과의 銀炎관계를 자세히 밝히도록 하는 것이 침뜸술의 要덟t이 되며 66) 風 水에서 穴을 정하는 定穴法의 중요성 및 어려움도 이로 미루어 보 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定穴온 寫,鉛,乳, 突의 穴形四格과 그의 變格 , 九星과의 결합 등 대단히 복잡한 편이고, 구체적 定穴방법으로 朝案, 明堂, 分水 合水, 天心十道, 水勢, 樂山, 鬼山, 龍虎 , 繩護 , 向背, 燁翼, 脣縣 當版 太極, 兩儀, 三勢,三停, 藏神, 伏殺法 및 思穴, 怪穴, 巧穴 論 등 부지기수이나 本節에서는 생략한다.

5) 形局論 이는 최 후의 단계로서 주로 地 勢 의 外 競 에 의하여 그 感應 여부를 판단하는 法이다. 때로 物形規局'용 이라고도 하며 그 穴의 形 體 와 力 量 과 氣勢 룰 어떠한 물체의 형상에 擬制 표현한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風 7k 의 本質 理 論 과는 괴리된 내용임이 분명하다• 中 國 地 家 書 에 서 는 총처럼 찾아볼 수 없으며 주로 山 水圓 , 明山 論 , 異 吹 妙 誤 等 風水 實 用 書 에 많이 나타나는 내용으로 예컨대 飛 龍 昇天, 蓮 花 浮水 , 回龍顯 祖, 金鷄 抱亂 玉女 開 花, 九 龍 爭 珠 , 推熊殿試 , 草蛇吐 舌, 猛虎 出林 等 外形으로 地 勢를 直競 할 수 있는 내용들이 대부분 r 이다. 우 주 만물 만상은 有 理, 有 氣 하며 有 像 한 고로, 外形物 體 에는 그 形象 에 相應 한 氣象 과 氣運 이 內在해 있다고 본다. 따라서 風水說 에 있어 保局形勢 와 山穴 形體 에 따라 이에 所 應 되는 精氣 가 그땅에 疑衆 하는 것 으로 보는 것 이 形局 論 의 原理이 다. 67)

67) 辛仇柱, 1982, 『 明 堂學講論』 , 中 卷 , pp. 195~210. 『 哀次 妙 缺 및 明山 論 』( 韓國風 水地 理菜 홈 ), 山水 固 ( 前述 ), 前 掃 『陰 宅要誤 』 , pp. 335 ~61. 前掃 『 地理 學 全 書 』, pp. 58~9. pp. 81~2. pp. 285~97. pp. 298~301. pp. 302~ 16. 『明堂全 書 』 (徐氏兄弟 著 , 韓 松 溪譯 , 1975, 서울, 明文 堂 ),pp, 20~2. p.6 2, p.6 4, p.1 16. p.1 18. p. 136 等 『八十八向眞映 』 (金明 濟著 , 1971, 서울, 三 信찹籍 ), p.7 1 參 照.

6) 坐向論 山, 水 , 方位, 사람의 네 가지 風水構成要素 中 坐向論은 方位에 관계된 術法 이다. 원래 坐向은 穴에서의 위치로 본 方位죽 穴의 뒤쪽 둥전 方位를 坐로, 그리고 穴의 正面울 向으로 하여, 例컨대 北쪽에 來龍 울 둥처고 南쪽에 案 山을 바라보는 穴 處 의 坐向은 子 더tJ坐 午(南]向이타 부르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穴處에서의 坐向 분만이 아니라 山과 水의 흐름 방향 等 方位 문제 전반이 관련이 된다. 坐向온 方向의 槪念과는 다르다. 한 地 點 이 나 場 所는 무수한 方 向을 가질 수 있으나 選好性에 의해 결정되는 坐向온 단 하나문이

다. 하나의 건축 환경이 특정한 坐向울 갖기까지 겁토되는 向온 時 間 性과 상상적 의미가 내포되는 絶對 向과, 地 勢 • 視界 • 實 存性울 가 지는 相 對 向으로 나눌 수 있는데 ,68) 風水 說 에서의 坐向 論 은 복합적 인 형태를 취한다. 風水說율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은 陰陽說 이다. 陰陽說 의 哲 學 的 인 것은 道 信 의 形而上 學 에 속하는 것이며, 그 形 而下 學 的인 것은 春秋戰國時代로부터 내려온 이른바 陰陽家 , 術數家 의 연구 결과요 또 그 目的으로서 말하자면 일종의 自 然科學 이라 하겠다. 결국 天 文 地理를 연구하는데는 羅經 이 필수품이며 ,69) 그의 근본되는 것이 坐向論인 만큼 坐向 論 은 風水 의 本質論 에 가장 접근된 분야로 보아 도 과장은 아닐 것아다.

68) 張 聖 塗 前 撮 書 , pp. 20~21. 69) 裵 宗 鎬 , 前 揚 書 , pp. 149~50.

2 風水說의 歷史 人文的 景觀이나 環境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현재의 地表面이란 過去에 뿌리를 둔 것이기 때문에 地理學에서는 歷史的인 지각현상 을 중시 하는 경 향이 있 다. 70) 人間이 地表룬 占有하여 生活울 영 위 해 온 이 래 地理學 geo g ra p h y 이 라고까지 는 할 수 없어 도 地理學的 思考 geo g ra p h ic a l t h i nk i n g를 하지 않고 살아온 종족은 없을 것이 다. 71 ) 時間과 空間의 문제는 人類出現 혹은 人間의 出生과 함께 피 할 수 없이 직면하는 과제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居住地域의 風土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나름대로의 地理的 思考룰 성 숙 • 발전시켜 어떤 형태를 갖춘 論理로 구성하여 갔을 것이다. 다 라서 그 論理는 風土가 어떠한가에 따라서 매우 다양한 地域的差 異를 보이게 된다. 風水說 역시 그와 같은 地理的 思考의 성숙 ·발전된 특이한 論理 體系 中 하나이다. 中國에서 發生하여 그곳에서 理論의 確立울 본뒤 우리나라에 도입된 風水說은 다른 地域의 地理的 思考오H 드 매우 다 론 本質的 要素들을 내포하고 있으며, 특히 그것이 살아 있는 사람 둘의 住居選定이나 緊落立地의 方法분만이 아니라 죽은 者의 永眠 70) Cole Harris, 1978, •The His t o r i ca l Mi nd and the Practi ce of Geog ra p h y , Humanis t i c Geog r ap hy ; Prosp ec ts and Problems (ed. by David Ley and M. S. Samuels), Maaroufa Press, Chic a g o , p. 123. 71 ) Arild Holt-J e nsen, 1980, Geog r ap h y; Its H i st o r y and Concep ts, Harpe r & Row, p.9 .

의 場 所룰 찾는 일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접에서는 거의 獨創 的안 文化現 象 이 라고 할 만하다. 이것이 독득한 東洋人의 死生 觀 이나 靈魂觀 이 작용한 까닭일 것 이 며 風水說 자체 에 서 보자면 陽基風 7k 가 먼저 인가 아니 면 陰 宅 風 7k 가 먼처인가 하는 매우 어려운 질문을 띠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 다. 사람은 氣 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魂 魄 이며 이것들은 氣 가 다할 때까지 存 緖 하다가 다하게 되면 魂온 腸 이니 하늘로 돌아가고 魄은 陰 이니 땅으로 돌아가는 것을 죽는다고 하는 것이다. 사 람 이 나서 처음 愛 化하는 것을 魄 이라고 하고 이미 魄 이 생겨서 陽 하~ 것을 魂 이라고 한다 .72) 이때 魂은 天, 魄은 地로 돌아간다는 것이 니 天은 風 , 地논 水로 對 比하여 魂 魄 , 天地, 風 7k 의 關係 률 상정 례 볼 수도 있다. 왜 그들이 죽은 뒤의 居所 位 置 에까지 크게 신경 울 썼을까 하는 것은 本 考 의 범위 밖의 일이 되 겠 지만 여하돈 兒 身 의 처리 풍습과 風 水發生 사이에는 상당한 관련성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사실인 듯하다.

72) 柳 仁 熙 , 1980, 『 東洋 人의 靈 魂 觀』 , 韓國思想娑 홉 , '\Ill, 翰國 思 想 硏究 會 , pp. 218 ~21.

初期 人 類 가 죽은 자를 어떻게 취급하였는가는 대단히 중요한 의 미를 갖는다. 볼테르의 말처럼 모돈 생물 중에서 인간만이 죽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것을 경험에 의해서 실감한다. 자기의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보는 경우이거나 혹은 주변사람들의 죽음을 체험하는 경우이거나, 죽음의 체험처럼 강렬하게 인간의 마 음을 뒤혼드는 것은 없다. 이리하여 인간의 마음 속에는 어떻게도 할 수 없는 공포가 깃들게 된다. 동물들도 체험으로부터 얻은 기여 이 남아 있는 한에 있어서는, 위험한 상태를 회피하고자 한다. 그러 나 죽음이 다가온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면 은밀한 장소에서 굳어버 린다 [verende 따. 결코 죽을 수 있는 [s t erbe 띠 것이 아니다. 동물원에서 어미 원숭이가 죽은 자신의 새끼 원숭이를 며칠 동안 이나 손을 끌고 다니고 손을 비벼주기도 하며 얼굴을 씻어주기도 하지만, 새끼의 시체가 썩기 시작하고 그 모습이 형태를 잃어감에

따라서 급격히 어미로서의 본능은 사라져 간다. 어미는 새끼를 뉘 어둔 채 이제 거기에 대해서는 마음도 쓰지 않는다. 이 접은 동물도 자신의 住居 環境 은 매우 가려서 선택하는 일과 대조가 된다. 그러나 인간은 삶의 거처분만 아니라 炅身의 처리에 있어서도 상칭적 의미를 부여한 의석을 치루는 것이 상례이다. 현재 알려져 있는 최초의 확실한 매장은 최후의 間氷期 에 행해진 것이다. 여기서 원시인들은 지극히 인간적으로 그 죽은자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마음을 썼 다는 사신이 밝혀졌다. 中央아시아 우즈베크 공화국에 있 는 Teshik - Tash 동굴에 서 발견 된 어 린이 시 체 의 매 장 지에서도, 원시인들은 자연의 본능으로만은 설명할 수 없는 인간답 게 고려된 행동을 보여주었다. 그의 여러가지 考 古 學 的 발굴 예에 서 원시인들이 죽은 자에 대해서 인간다운 배려와 형식으로 死者를 보살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後 代에 갈수록 그 의식과 절차, 부장 물들은 그 복잡성을 더하고 있다 .73) 中石 器 時代인 네 안데 르탈 Neander th als 人의 프랑스 라 페 라치 La Ferrassie 발굴 결과는 명 백 히 어 떤 장례 의 식 fun eral pra cti ce s 을 갑 지케 할 정도이다. 두 명의 成人과 네 명의 어린이가 좁은 무덤 속 에 매장되어 있었는데 시체의 안치 방향에 어떤 법칙성을 며고 있 논 혼적이 있다 .74) 이러한 행위가 무엇을 상칭코자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둘이 죽음의 처라에 대하여 어떤 구체적인 方法이나 의례, 그리고 觀 念울 가지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中國 上流 階層 의 商, 周代 무덤의 발굴 결과를 보면 그들의 祖上 崇拜思想과 來 世의 삶에 대한 깊은 믿음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初期 狗 葬 이나 그 뒤의 人形 매장 유물에서 침작할 수 있는 일이 다. 75) 73) Georg Sie g m und, De r Glaube des Urmenschen( 『 原 始人의 信 仰』, 金 泰寬

譯 , 1972 분도出版社, pp.1 02~10) 74) Orio l Pi- S uny e r & Zdenek Salzmann, 1978, Humanit y and Cultu r e, Houg h to n Mi fflin Co. , Bosto n , pp. 70~71. 75Y) aKlew aUnngi -v c eh ri.h PCrheasns,g , pp19. 3775, 8~T9h. e Archaeolog y of Anc ien t Chi n a, (3rd, ed),

우리냐라의 경우도 方 法 은 다양 했 지만 기본적으로는 埋葬 이 주된 관습이었다. 로마 교의 도로변에서 발굴된 초기 이교도들의 火 葬 造 骨 이 발견 76) 되는 것에서 알 수 있 는 바와 같이 古代에도 火 葬 等 의 관습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떤 宗敎 나 信 仰的 競念 에 이입되 기 아전 단계에서는 대부분 埋葬 으로 死 體를 처리하였던 듯하다. 시체의 埋葬 은 결국 肉 體 의 軟部를 썩히고 뼈를 보촌한다는 기본 정신으로 죽은 사람에 대한 애착 , 존경 혹은 영 혼 에 대한 崇 仰 等 정신적 입장의 결과이며 이것이 더 발달하면 肉 身 전부를 보촌하려 논 인공 미이라로 발전되기도 한다 . 77 ) 따라서 시체의 머리를 어느 방향으로 두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 요한 의미를 띠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沈向은 東 沈과 南沈아 기 본이었으나 東 沈이 압도적이었으며 이것은 해가 뜨는 方向과 햇빛 이 뜨겁게 비쳐주는 방향이 다시 생명을 부 활 시킨다는 思 考 의 반영 인 듯하다. 그 뒤 漢 나라에서 시작되는 北沈 풍습의 방향을 받아 고구려 • 백제에서부터 北沈으로 차차 바뀌어 그것으로 정착되지만 백제 영산강지방 옹관묘에서는 西沈이 압도적으로 발견되기도한다. 三 國 時代를 거쳐 新 羅末期 까지의 古 壇 出土에서 밝혀진 바와 같 이, 이에는 엄격한 形 式이 있었고, 死者에 대한 뚜 렷 한 의도와 어 떤 종류의 希 求 가 깔려 있는 듯하다. 특히 高 句 麗 古 壇 벽화가 4 세 기 후반 이래로 발달, 처음에는 生活 圖 , 風 俗 圖 위주이다가 6 세기 로 들어가면 四神圖가 차차 유행하게 되는데 ,78) 이는 風 水의 도입 이라 볼 수는 없어도 風水的 思考의 基 本觀念은 마련되고 있었다는 증거로 생각한다. 그러나 風水的 思考 競 念은 住居立地의 경우 中 緯 度 北半球에서는 일반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 이것이 구체적인 理 論體系 를 갖게 된 것이 언제 누구에 의해서인지는 확실치 않다. 대체로 戰 國時代末期 에 와서 風水的 觀念이 처 음으로 발생 하였 다 79) 고 보는데 , B. C. 4~5 76) 金國道 , 1979, 『墓園管理論』 , 韓國法 人問 題 硏 究 所, pp. 3~4 및 權 允 遠 , 1974, 『 羅 代 表 • 葬 風에 關 하여 J, 《 湖 西史 學》 , 第 3 輯 , 忠南大, p. 43. 77) 김 원통, 1974, i'한국의 고분 J , 교양국사 총 서 2, p. 39. 78) 金元 龍 , 「三國의 古 壇 , 그 系 譜 」, 《朝鮮 日 報)) 1983 年 2 月 9 日 字. 79) 李熙 德 , 前掃 書 , p.1 82.

제기 경의 이 시대에는 접성가, 마법사, 문인, 재사등이 왕실의 쿵 정을 메우는 형편이었다. 이들은 개인의 운명은 물론 國運울 좌우 하는 大事件이나 戰爭에 대한 칭조감은 것들을 天體의 運行과 관련 지어 설명하였다. 이와같은 思考와 관련하여 漢代에 이르러서는 특 히 陰陽說이 도입되어 완전한 風水 原理를 정돈하게 되며, 그리하 여 風 7J (의 經典인 靑烏經이 편찬되 어 진다. 靑烏經 이후로 東晋의 郭漢(景純〕과 張子微가 유명한 바 郭環은 晋나라 尙書라는 높은 벼술까지 지낸 사람으로 靑烏子, 郭漢, 張子 微룬 일컬어 風水 三師라 한다. 득히 郭漢은 葬書를 지었는데 이 책은 唐玄宗이 錦腐에 두고 아꼈다 하여 錦商經이라는 異名으로 더 찰 알려졌으며 ,80) 一說에는 유명한 山海經 역시 그가 지었다는 얘 기가 있다 .8 1) 南北朝時代에 이르러서는 風水思想이 한충 발전하여 이 방면의 대가를 많이 내었는데, 그 중 梁의 術僧 寶誌, 術士 陶弘景, 隋의 蘇吉과 같은 사람은 가장 저명하였다. 득히 蘇吉은 隋書 同人傳에 의하면 宅經 8 권, 葬經 6 권의 처술이 있었다. 여기의 宅經은 물론 宮宅에 관한 것이며 宮宅에 대하여 陰宅의 이론을 붙이기는 南北朝 時代부터 였으리 라고 생 각된다. 82) 따라서 風水說은 • 住居와 緊落을 주로 다루는 陽基風 7J (가 먼처이고 그 뒤에 陰宅風水라는 墓地相占 의 方法이 덧붙여전 것으로 보인다. 또 이 시기에 陶士衡의 提肺賊 와 李淳風의 地理 書 가 전개되었다.

80) 村山智順, 前掃합, p. 306. 81 ) 束谷, 前掃합, p. 24. 82) 李丙熹, 前掃홈, p. 28.

唐代에도 여러 風水師가 나오는데, 雪心斌를 지은 卜應天, 圖經 三卷十章을 進上한 亞父丘公, 風水說의 中始祖로 알려져 있으며 靑 裵經을 지은 救貧先生 楊笛松, 楊救貧으로부터 金函秘書를 얻어 傳 法하여 龍穴沙水之心鏡율 시작한 曾文迪, 그의 제자로 靑裵經補注 를 지은 陳希夷 역시 曾文迪에게서 배운 頓文俊, 우리나라 道院에 게 風水를 가르쳤다고 俗說이 전하는 一行禪師 等이 유명하다. 이중 陳希夷(博)는 宋代 사람이고, 이때에 朱子나 蔡牧堂 같은

사람이 있으나 그들은 風水說울 매우 좋아는 하였지만 敎外別傳한 분들로서 더 말할 것이 없다. 元 • 明代에 이르러서는 劉伯溫, 劉秉 忠, 劉基 等이 찰 알려진 術士들인데 이의에도 실로 수를 해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名師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다. 中國의 風水思想이 언제부터 우리 나라에 전래 되 었는지 역 시 분명 치는 않다. 우리나라는 원래 山岳 國 으로 到處 有明堂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風水條件에 적합한 곳이 실로 無數하여 결국 이러한 자연 적 환경이 後來 風水思想의 성행과 퍼]해를 誘致한 중요한 이유가 되었거니와, 三國時代에는 아직 그러한 術法과 思想울 받아들인 듯· 한 형적은 없다. 물론 陰陽 五行思想이라든지 四神獸 신앙과 같은 것은 三 國時代에 유행하여, 高句麗 • 百 濟 의 壇墓壁畵上에 四神의 圖가 그려 있고, 周書 異域傳 百濟條에도 〈解陰陽五行 亦解醫藥 卜渡占相之 術〉 이라 하였으나 실제 그 시대의 壤墓 • 宮宅의 制를 보면 아직 風水說의 영향은 받지 아니한 것 같다. 따라서 風水思想의 전래는 新羅 統一 이후 唐과의 文化的 交流가 빈번하던 때에 비로소 이루어전 것으로 보아야 할 듯하다. 83)

83) 李丙熹, 前撮書, p. 28.

韓國 風기(思想의 전설적인 元祖는 玉龍子 道院 (827~898 A.D) 을 꼽고 있지만 이미 그 이전에 우리나라에 風水說이 도입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道說은 新羅 下代에 새로 導 入되어 당시의 佛敎界에 新 氣風울 일으키고 있던 禪宗系統 의 승려로서 禪門 九山派 가운데 하 나인 桐裏山派의 開祖 惠哲 의 印可를 받아 全南 光陽의 玉 龍寺 에 서 독자적인 禪門울 개설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道院이 上撮 中國의 승려 一行으로부터 직접 風水說을 전수받았 다는 것은 낭설이며 그가 唐에 갔던 경험은 없었던 듯하다. 道說이 禪을 傳授받은 것이 惠哲이었던 것과 같이 風水說의 습득도 신비화 되어 異人이라고 칭하여전 新羅人이었던 것은 확실하다고 본다. 그 리고 道院이 風水說울 전수받은 곳도 全南 求禮縣에 인접한 南海岸 地方이었다는 것을 보아 이 地方에는 이미 그 전에 風水說이 流布 되어 있어 道說이 그것을 습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道院碑文에

異人이 道統에게 〈風水地理說도 역시 大菩薩이 세상을 구제하고 인 간을 제도하는 법입니다〉라고 한 바와 같이 佛敎와 風水說온 아무 모순없이 이해되고 있었으며 나아가 당시의 禪僧들에 있어서 風水 地理說은 一般大衆 敎化上의 한 方便으로 이 용되 고 있 었 던 모양이 었다. 그러나 道統에 관하여 운위될 때 一行이 계속 거론되는 것을 보 떤 이때 이 지방에 알려진 風水說이 대체로 一行流의 것이 아니었 는가 침 작된다. 風水師의 授業過程은 먼처 風水에 관한 書籍 울 수 종 배우고 이어서 先輩 風水師에게 實地의 지도를 받게 되는 것이 기 때문에 누구에게서 傳授되었는가의 法統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 를 떠게 된다. 一行은 密敎 系統의 僧但로서 張說과 함께 曆象陰陽五行說에도 精通하였 던 사람으로 唐 開元 16 年 (728 A. D) 玄宗의 勅命으로 燕國 公 張說 및 僧 部師와 함께 郭漢의 葬經울 注釋할 때에 形勢說明에 있어서 실증법을 사용함으로써 風水論理의 획기적인 전환접을 마 련했던 사람이다. 특히 一行은 開元 12 年에 역 시 勅命으로 南은 交새로부터 北온 鐵勒에 이 르기 까지 各地의 緯 度를 沮幡t하여 舊唐書 律曆志에 編入 된 大衍曆울 著述하였으며, 또한 新唐書 天文志를 보면 唐나라 전 체를 地勢에 따라 貨殖之地 用文之地 用武之地 等 初 l 로 나누어 自 然環境을 관찰하였던 극히 과학적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東 洋 古代科學의 한 특성인 神秘的인 요소만 제거하면 天文學이나 人 文地理學 等 훌륭한 科學으로 볼 수 있는 성격이다 .84)

84) 崔柄憲, 1975, 「道說의 生産와 羅末襄初의 風水地理說」, 《韓國史硏究》, 第 11 號 p.1 15.

이러한 전통이 바탕이 되어 결국 新羅末에 地方울 무대로 세력을 부식하던 豪 族둘로 하여금 慶캐 中心에서 韓半島 中部地方으로 中 核地 core area 를 옮기 고자 하는 國土再編成의 眼 目 울 風水地理說이 길러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따라서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 되었던 風水說은 그 뒤 政治的으로 利用되고 俗信과 부합되는 과정 에서 陰宅風水 위주로 크게 변질되어 소위 風水圖諏的인 思考觀念

으로 나타나는 것과는 달리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高麗時代의 경 우는 佛敎와 風水說 그리 고 圖諏思想이 社會를 아 끈 주도적 思想傾向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다룬다는 것은 그 時代史 全體를 기술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기 때문에 省略 85) 하기로 하고 큰 사건만 時代順으로 배열하면 다음과 같다.

85) 이에 대해서는 李丙熹, 「 高麗時 代의 硏究」가 그 副題인 〈特히 圖讓思想의 發展 울 中心으로〉라는 표현에 나타나는 것 처 럼 크게 참고가 된다.

우선 高麗史 高麗世系에 나타나는 王建家系의 성장과정을 보면 그 단계 단계마다 風水說이 끼어 있어 시초부터 깊이 風水說에 관 · 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득히 太祖는 그의 訓要十條에서 여러 군데 風水 的 思考 觀念울 表出시키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第 2, 第 5, 第 8 訓이다. 第 2 訓은 〈其二曰 諸寺院 皆道 院推 占山水順逆而 開g l j 道統云 吾 所占定外妄加創 造則損薄 地 德 祚業不永 股念後世國 王公侯戶妃 朝 臣 各稱願堂 或增創造 則大可受也 新羅之末 競造浮屠 哀損之德 以 底於亡 可不戒哉 〉 第 5 訓은 〈其五曰 股頓三 韓 山川陰佑以成大 業 西京水德順調 爲我國 地脈之根本 大 業萬代 之地 宜當四仲巡駐留過百 日 以致安寧〉 第 8 訓은 〈其八曰 車峴 以南 公 '}l l 江外 山形地 勢 並超背逆 人心亦 然 彼下 1 t 1 郡人參與朝庭 與王侯國威婚姬 得秉國政 則或變亂國家 或 卿統合之怨 犯輝生亂 旦其會屬宮寺奴牌 津驛雜尺 或役勢移免 或附­ 王侯宮院鉉巧言語 弄權亂政 以致災 變者 必有之矣 難其良民 不宜使 在位用事〉라 하였다· 크게 보아 國域 全 體 에 互한 太祖의 風水的 觀念울 엿볼 수 있는 대목으로 그의 政治的 혹은 心理的 의도가 나 타나 있다. 第 2 訓온 寺院의 基地는 道院이 山水의 順逆울 보아 推 占한 것이니 함부로 다른 곳에 창건치 말라는 것으로 地 德울 운위 한 것으로 보아 風水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第 5 訓은 자신의 開國이 山川의 陰佑를 받아 이룩된 것이고 西京의 水 德을 예찬한 것이니 역시 風水說의 내용이다. 第 8 訓은 錦江 以南 온 山形地勢를 並超背逆으로 본 것이니 역시 風水의 영향임을 알 수있다.

그러 나 이 當 時의 風水 說 이 一行流의 다분히 人文地理 學 的인 性 格 울 가졌던 것이고 王 建 역시 一 國 울 세울 정도의 위인이었던 만 큼 여기에는 風 水 이의에 상당한 政 治 的 의도가 내포되어 있는 듯 하다. 우선 寺院 의 淮建 울 경계한 것은, 道說 의 推 占에 빙자하여 位 臨 가 분명히 확 인되고 그 動 向을 살필 수 있는 기존 사찰 이의의 寺 刺 건립을 방지함으로써, 또 다른 地方 豪族 의 勢 力 基 盤울 원칙 적으로 없이하고자 하는 의도였 을 것이며, 西 京 예찬은 그의 北方 經 略과 高 句 麗 古土 회복에의 의지 표현인 것으로 여겨지며, 錦 江 以南 人物에 대한 형오감의 노출은 後 百 濟 人둘의 仇怨에 대한 경계 였던 것으로 보인다. 第 8 訓의 錦 江以南 山形地 勢 에 대한 訓要는 이후 우리나라 社 會 心理와 地 域 的 偏見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죽 車峴以南 公사 1 江外인 지금의 錦 江以南 대체로 全 羅道 와 忠南一部地 域 온 地理的

形 勢 가 背逆되어 그 방면의 人心도 역시 그러할 것인죽 그 지방 사 람이 혹 朝庭에 참여하여 王侯 國威 과 혼인하고 國政을 맡게 되는 때는 或은 國家 를 變亂 하고 或은 前日 供合에 대한 怨恨울 품고 있 으므로 설령 良民일지타도 벼술자리에 用 事 케 말라는 것이다. 이것 이 王 建 의 政治的 판단에 의한 李强附會 이었음은 앞서 밝힌 바 있 거니와 문제는 이와 같은 發 想의 근거가 무엇이고 그 해석이 어떠 한가에 있다고 본다. 訓 要第 8 訓의 〈山形地 勢 並 超背 逆〉을 李 深 은 〈公 '} Il 江이 란 錦江 울 이름인데 이 江온 湖南 德裕 山으로부터 홀러나와 逆流하여 公 it I 와 北쪽을 휘감아 錦 江으로 들어간다. 新都 鷄 龍山도 역시 德裕 山과의 一脈으로 任 實 馬耳山을 거쳐 來龍이 머리를 들려 祖山을­ 바라보는 公字모양을 이 룬다고 한다. 그래서 塔輿家는 錦江울 소위 反弓水라 일컫는다(公캐江則 錦 江也 自湖南 德裕 山來 逆流而出公'.J H 之 北 入於 錦 江也 新都 鷄 龍山 亦 德裕 之脈 歷 任 實 之馬耳山 回龍顧祖 作 公字樣云 然則錦江塔輿家所謂反弓水)〉고 설명하였고 ,86) 그에 이어 서 〈 全羅道의 水勢는 無等山 以東의 河川은 모두 東쪽으로 흘러 入 海하고, 그 以西의 물은 모두 南쪽으로 흘러 入海하며 , 全캐 以西 86) 『 星 湖 但 說 L 卷一, 「天地 篇 」 下, 新 都漢 都條

의 河川은 모두 西쪽으로 홀러 入 海 하고, 德裕 山 以北의 河川은 모 두 北쪽으로 홀러가 錦 江에 合 流 하니 마치 散髮 四下의 形 勢 가 되어 局面울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이 고장에는 才 德 이 찰 나타나지 못 하고 風俗이 거칠고 교활하다(全 羅道 之水 其無等 以 東之水皆東 入 海 以西之水皆南入海 全사 1 以西之水皆西入海 其 德裕 以北之水 皆北 流 合 於 錦 江 比如散 髮 四下 不成 局 面 此所以 才德 卒出 人 風城校 ) 〉 고 부연 하였다. 여기서 핵십이 되는 표현은 反弓水와 散髮 四下이다. 反 弓水문제 는 主 賤 를 開京 等地의 中部地方으로 보는 경우 분명히 활 시위 를 당겨 화살이 그쪽을 향하는 水 勢 가 되겠지만 그 以 南 울 主體 로 보 는 경우 後術 할 鷄龍 新都 논의에서 거론될 바와 같이 水 太 極의 吉 勢 로 되어 버리는 만큼 中部地方 위주의 견강부회임 을 부인할 수 없다. 다음 散 髮 四下, 죽 수류가 머리를 홀드려 풀어 네 군데로 헤 쳐 버 런 듯하다는 표현도 결국은 地 勢 의 大 觀 울 보는 眼 目의 차이일 분 韓 半島 南部地方에서는 어디에서고 피할 수 없는 水 勢 이다. 이것은 물론 雪 心賊가 제시한 〈 衆 山止 處是眞 穴 衆 水 衆處是 明 堂〉 87) 에는 부합 되지 않기 때문에 결코 風水上 좋다고 할 수는 없으나, 風水에서 地 勢 를 觀相할 때 그런 巨視規 模 macro-s c ale 로 할 수 없는 것 이 기 때문에 이 역시 의도적인 地 勢 해석이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같은 南部地方의 湖南과 嶺 南이라 하더라도 地 質構造 上에 는 Archaeozoic 인 小白 山脈울 경 계 로 영 남은 주로 Up pe r Ju rassic and Creta c eous Granit e 의 岩石으로 차이 가 있 는 만큼, 88) 흔히 嶺 湖南의 山勢가 다르다는 말은 어떤 면에서 근거 있는 얘기로, 地 質 構 造와 地形과 文化 景觀 을 종합한 地誌的 硏究가 比 軟 分析의 方法 으로 이루어진다면 보다 적철한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후 西京 巡住와 造 宮 및 遷都 문제, 여러 離宮 의 설치와 경영문 제, 南京 및 東京의 재건문제, 말영의 漢陽 遷 都문제 等 이 風水오} 87) 『 雪 心 賊 正 解』 , 卷 一, 「 論 地 理要略 」 88) C. J. N. Fletc h , 1975, Str u ctu res in Folded Rocks, iL by st. from R. O. Korea, 영국지질과학연구소, 해외부

깊은 관련을 맺으면서 대두된다. 朝鮮朝에 이르러서는 初期 興都 및 主山 決定 문제로 世宗朝까지 분분한 風水論 議 가 있었으나 이에 대해서는 다음 章 에서 상술할 것 이다. 여하튼 風水說의 유행은 조금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던 듯한 데 世宗 때 主山문계로 禮曹參判 權距와 世宗 FB1 의 다음과 갇온 風水 論議는 그. 시 대 의 風 7J 여유의 영 향력 을 이 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權話 가 主山을 옮겨야 된다는 논의에 강력히 반대하여 周公, 孔 子, 司馬溫公, 朱文公 等 大賢울 거론하며 그들도 地理에 대하여 말한 바 없고, 司 馬溫公 은 擇葬之說의 그릇됨을 極論한 바 있는데 그와 같은 誕妄 • 不信의 說로써 國事를 論함은 부당하다고 長言을 올려 간하니 이에 世宗온 그가 그의 아비인 權近울 葬할 때에도 과 연 地理法울 쓰지 않겠는가 하는 지극히 부정 적 인 반응을 보인다. 89) 그러나 이츠음부터 일부 僧臣들 사이에 강력한 風水排床論이 등 장하고 風水說은 民間信仰化하여 일반 민간에서 葬墓에 치중하는 術法으로 전락되고 말았다. 明堂 • 名穴 • 吉地를 찾아 父母믈 묻어 富貴榮達의 길을 찾는 利己 89 인 方法이 팽배한 만큼 墓地룰 둘러싼 페단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발생되었다. 丁茶山은 牧民心 書 에서 지금 風水에 현혹되어 山의 空穴이 없으. 떤 平地에서 別格으로 穴울 지어 良田沃土가 페하여 墓地가 되니 王土논 날로 줄어든다고 지적하였다. 록히 惑宗때 風水墓의 核字區 域울 공인한 이후는 有藍士人으로부터 庶人의 系列에 있었던 階層 까지도 墓貴山울 冒 占하기에 이르렀다 .90)

89) 李丙熹 前擇합, pp. 417~8. 90) 權免遠, 19ao, r 韓國社 會風俗 硏究』, 景仁文化社, p. 239.

그 의 남의 所有地에 몰래 父祖의 兒體를 묻는 暗葬, 他人의 山 野 墓地를 교활하게 침탈하는 倫葬, 권제를 둥지고 강제로 맷는 勒葬, 副葬品 도둑, 시체모독 等은 물론이고 移葬의 성행으로 인한 경제 적 부당도 막중한 것이 되었다. 이에 實學者의 風水否定論은 자못 날카롭게 핵십을 찔러, 上記 丁茶山분만 아니라 楚亭 朴濟家는 北 學議에서 風水說 자체의 허망함과 근거없음을 설과하기도 하였다. 近代 개화기 계몽과들의 風水說 비난은 더욱 혹독하여 독립협회

의 독립신문은 山理의 허무함과 페단 낭바를 수차 역설하고 그 관 습의 페지를 주장하기까지 하였다 .91) 오늘날 시체 일구당 50 만원 의 장례 비 용을 계 산하여 도 年間 1500 t접 원 상당액 의 葬禮費가 소 요 92) 되는 것을 감안할 때 당시의 사회 관습이냐 경제규모로서 風水 慣習 이 얼마냐 큰 부담이었을까 하는 것은 의십의 여지조차 없다.

91 ) 愼銅廈 1973, 『獨立協숲의 社會思想硏究J, 韓國文化硏究所 , pp. 169~73. 92) 金國道, 前掃 書 , pp.1 07~11.

그러나 上述한 否定論의 대부분이 風水論理 體系 그 자체에 대한 본질적인비난이 아니타그로인한관습·제도에 집중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現代 諸關聯科學의 風水思想에 대한 연구 경향 울 보면 첫째 迷信으로 규정지어전 術法的 입장에서의 追孝 • 發藍 울 주된 目的으로 한 術師部類의 接近, 둘째 歷史學에서 주로 羅末 麗初와 高麗時代 및 麗末 鮮初의 정치 ·사회상을 그로써 解釋하고 자 하는 接近, 세째, 東洋哲學 내지는 思想史分野에서 易울 근본으 로 陰陽五行, 理氣, 干支 等을 분석하여 風水說의 本質울 이해하고 자 하는 接近, 네째 建築學 및 環境學 분야에서 空間構成의 形態的, 傳統建築思想的, 景觀認識的 측면에서 그의 合理性을 도출코자 하 는 接近, 다섯째 民俗學 • 國文學 분야에서 風水 • 固識, 샤마니즘, 新興宗敎 等이 未分化된 상대에서 현황조사와 그 해석을 시도한 接 近, 그리고 끝으로 地理學에서 그의 合理性이나 立地論的 采當性 여부를 분석한 接近等이 있다.

3 主要用語 1. 山 地形 學 에서의 山地 moun t a i n land 란 급경사 부분의 떤적이 頂上部 와 谷底원 평탄한 부분에 비하여 두드러지게 넓은 起伏의 크기를· 가전 지 역 을 말한다. 93) 옥스포드 영 어 사전 Oxfo r d Eng lish Dict i on a ry 에 는 山 a mounta i n 이 란 주변 지표면으로부터 다소 급격 하게 솟아 오른 自 然 起伏 na t ural eleva ti on 의 지형이라 했고, 브리타니카 백과 ­ 사전 Ency c lop e dia Brit an ic a 은 언덕 hil l 보다 높은 高度의 것 을 山이 라 하였다. 과거에는 언덕과 山을 같은 개념으로 취급하기도 하였 으나 오늘날은 高度의 限界를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경향이다. 예컨 대 英國의 경 우는 700m 以上의 相對的 起伏 relati ve reli ef 울 가전 地形울 山으로 한다 .94) 山地에는 용암의 분출과 관계가 깊은 火山, 지층이 변화된 潛曲山地, 단층운동에 의한 地魂山地 둥이 있다. 현재의 地形은 浚融作用에 의하여 原地形으로부터 많이 변화되어 있다. 높이에 의하여 형식적인 山地分類룰 할 때 1,O OOm 以下를 低山性山地, 3,000m 以下를 中山性 山地, 3,OOOm 를 넘는 것을 高 山性 山地로 취급하기도 한다. 93) 鄭璋鎬, 1979, 『地理學辭典』, 景仁文化社, p. 220. 94) The Encyc l op ed ia of Geomorph olog y, 1968, edit ed by Rhodes W. Fair - brid g e , Dowden, Hutc h in s on & Ross, Inc. , p. 737.

風水에 있어서 山은 絶對的인 조건으로 山과 연결되지 않은 地形 은 砂, 得 따위의 자연환경이 아무리 좋아도 明 堂 이나 穴울 맺지 아니한다 . 그러나 風 7k 에서의 山은 地形 學 에서의 山의 개념과 本 質 的 差異를 갖게 되는데, 風水 術 法에 따론 山의 기준은 경우에 따라 서는 平地의 경우 一尺만 높아도 山아요, 一尺만 낮아도 水로 보게 되기도 한다. 平地에 穴이 있는 경우도 땅속으로 山의 氣 脈이 通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95) 2. 龍 山율 말한다. 죽 山의 頂上으로부터 四方으로 뻗어간 줄기를 말 하는데, 徐 善繼 善 述 형재가 지은 人子 須 知에는 〈山의 윷 態 가 千 形萬象으로 높고 낮고, 크고 작고, 일어나고 엎드리고, 급하고 완 만하고, 순하고 거 스르며 , 혹은 굽고 곧아서 支 堀 의 體段 아 一定치 않아 지쳐간이라도 옮김에 따라 판이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형대는 龍이 꿈틀거리는 것과 비슷하다 해서 山을 龍 이라 이름짓고 術法 上 의 用語로 사용한다. 즉 그 형태가 참 겼 다, 보였다, 낮았다, 뛰었 다 하여 변화무궁함을 취해 얻어전 것이다(地理 家 以山 名龍 何也 山 之 變 態千形 萬象 或大 或 小 或 起或 逆 或 II 頂 或 隱 或 顯 支 塘 之 體段不常 惡 尺之 轉 移 顔 異 驗 之千 物 惟 龍爲然 故以名之 取其 潛 見 躍飛 變 化 莫 測云 爾)〉 96) 하였고, 入地眼全 書 에도 이와 유사한 지적을 찾아볼 수 있 다 .97) 하늘에는 복국성이 있고 인간세상에는 황제가 다스리고 있듯 地上에는 山이 있고 그 山에는 龍 이 살고 있는 것으로. 믿어 山울 龍 이라 한다는 說도 있으나 ,98) 山울 龍 의 몸뚱이로 상칭하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風水에서 말하는 龍 의 개념과는 차이가 있지만 龍이란 東 洋思想 을 알아보는 데 매우 홍미있는 動物 의 하나이다. 許 愼 의 說文에 의 95) 東谷, 1979, 『地理 誤 全 간 J , 易 합普 及 社 , pp.3 7~9. 96) 韓 松 溪詞 1975, 『明 堂 全 흡 .! , 明文 堂 , p. 18. 97) 『入地 眼 全 흡 』 (1 976 , 臺 灣 竹林 書 局刊), 卷二, 「 龍 法」, 「 龍說 」 98) 許 文 忠 1981, 「풍수설考」, 《 정 신문화 》 , 1981 년 겨 울호, 한국정 신문화연구원, p.1 16.

하면 龍 이 란 〈隣蟲之長 能幽能明能細能巨 能短能長 春 分而登天 秋 分而 潘淵〉하 는 신령스런 동물이다. 易에 나오는 飛龍, 潛龍 , 見龍 J 等 의 龍 은 王者의 象徵 으로. 동장하고 있다. 이것은 中國에 있어서의 龍 의 槪念이고 印 度 에 있어서의 경우는­ 좀 다르다. 梵語로는 龍을 Na g a 〔那伽〕라 하며 그의 頭 目 은 龍王 또 는 龍神 이 라고 하는데 小部 衆 의 하나로 물 속에 살며 呼雲作雨하는 蛇形 의 鬼類다 .99)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龍 온 新羅 의 建國神話 에 나오는 開英妃를 낳 은 魏龍 1 00) 과 高句麗始祖 朱蒙을 낳은 龍女 柳花 101) 에 서 보듯이 創業産神格 으로 등장하고 있다. 뿡童 의 出生說話에 나오는 龍도 그 런 유형의 在來土俗産神의 一 種 으로 보여진다. 龍 의 純粹國語 名稱 온 미르 혹은 미리라고 文獻上에 나타나 있는데, 訓蒙子會, 上, 20, 의 〈龍 미 르롱 〉 , 雅言礎非의 〈話龍爲豫 미 리 龍〉 等이 그것 이 다. 102) 3. 脈 服F 이란 龍 속에 감추어진 山의 精氣를 뜻한다. 사람에게 腕이 있 어, 氣 와 血이 脈울 좇아 진행하는 것과 같이, 龍은 手足 等울 형 성한 骨肉 이요 伯t은 血管과같은 것이다 .103) 中國思想에서는우주가· 생길 때 太極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것이 陰陽으로. 분리되고 陰陽二 元이 교차되어 五行을 만들었고 五行이 여러가지로 짜여져서 만물 이 되 었 다고 하였 다. 즉 陰陽二元은 天氣와 地氣이 며 , 天地가 교차­ 되어 人間이 된 것이며 그때 天氣는 神을 십장에, 地氣는 精울 신 장에 간직한 것으로 되어 있다. 神은 정신기능아 근본적으로 번화 파생되어 氣가 되었고 精온 생활력, 생명력, 자손번식의 근본으로 역시 변화 파생되어 血이 되었다고 한다. 氣 와 血울 흐르게 하는 人體의 服卞은 다시 經과 絡으로 나뉘는데, 經온 大幹線으로 12 個의 . 99) 李圭 景 , 「五洲衍文長肇散稿」, r ii辨證說』 100) r 三國遺事J, 卷一, 「新羅始祖赫居世王」 101) 『三國造 事 』, 卷一, 「高句麗」 및 「東國李相 國菜 」, 卷三, r 束明王篇」 110023)) 柳韓在 松泳溪, 1前9掃82書, ,『 傳p.來1 9地. 名의 硏究』, 圓光大出版部, p.1 90.

주되는 經 脈과 8 個 의 奇 經 八 H 永 으로 되어 있고, 絡 은 經 울 연결시키 는 15 個의 종류로 구성되어 있다 .104) fl i}: 이 란 결국 血의 理 致 가 나누 어 겉으로 몸에 行하는 것을 말함이니 (fl永 者 以血理之分 表 行 競者而言 也 )105) 風水의 諒 도 地中의 龍 의 生 氣 가 그 理 致 룰 나누어 地 表 面 부근에 行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漢 方에서 사람의 氣 血이 잘 통 하면 건강하고, 氣 血아 不通이 면 死亡하며 따라서 의 원이 사람의 脈울 보아 건강의 좋고 나쁜 것을 알아내는 것처럼 風 水地 師 는 山 龍 의 肺울 보아 吉凶울 알 수 있다. 龍 과 脈온 따라서 外面上으로는 한 가지안 것이니 龍 을 살펴 腕 의 善 惡울 알 수 있어도 脈울 보아 龍 의 吉凶울 알기는 어 렵 다. 龍 은 形 體 가 현저한 것이고 脈은 龍 의 속에 숨어 있는 氣蓮 의 陀徵, 한 것이기 때문이다. 故로 龍이 있어야만 ! 永 이 있고 脈 이 없으면 尸 體 와 같은 龍 이다 .106) 또 龍 服k 이 一起一伏左折右曲할 때 생기는 대나 무의 마디 와 같은 地 勢 를 節이 라고도 한다. 107 )

104) 『 71 초침 구법 』( 重 版), 1982, 杏林 出版 社 , pp. 26~9. 105) 楊繼 洲, r 針炎大成』, 卷 一, 「 難經 」 106) 東谷, 前提 書 , pp. 39~40. 1m) 村山智 順 , 1931, 『朝鮮 11) 風水』 , p.1 4.

4. 穴 穴이 란 龍 脈 中 陰 陽 이 合局되고 山水의 精氣 가 疑結 된 곳을 말한 다. 靑烏 經 에서는 〈穴울 둘러싸는 山 勢 가 없는 不菩 之穴은 腐 骨 의 위험이 있고, 穴前의 諸砂를 갖추지 못한 不及之穴은 生人絶滅이 되며, 空缺이 있어 生 氣 가 備菩 되지 못한 騰漏 之穴은 稽 構 이 뒤집 히고 썩울 우려가 있다. 또한 幽 陰 하여 갇혀 있는 듯한 형상의 背囚 之穴은 寒 7k 가 떨어져 씻길 영려가 있으니 이런 穴온 써서 안될 것 (不菩之穴是謂腐骨 不及之穴生人絶 滅 騰 漏 之穴 翻 稽敗 郡 背囚之穴 寒 水摘 漏 其爲可長可不 愼 哉)〉이라 하였는데 죽 穴이란 穴울 옹위하는 山勢를 거느려야 하고 朝山, 案 山울 갖추고 空 缺 이 없고 幽陰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山의 穴도 사람의 몸에 있는 穴과 같은 것으로. 사람의 경우는 經 穴이라 한다. 經 穴은 氣 의 門으로 經絡 에 존재하고 孔穴이라는 - 뜻 인데 氣 血의 영위 현상이 반응하는 經絡의 노선 중에도 특 정한 위 치에 生 理的 또는 病 理的인 반응이 현저하게 나타나~ 곳이다. 그러므로 臘開 나 經 絡 또는 기타 전신의 어떤 곳에서 질병이 발 생하였을 때는 반드시 질병 발생처와 유기적인 관계성이 있는 해당 經絡 에 반응하되 해당 經 絡에 주로 반응이 현저하게 출현하는 고로 질병의 反 應經絡 에서 해당 經 穴울 찾아 針 炎를 시술케 되는데, 사 람 몸의 經 穴의 수는 책 에 따라 365 穴, 혹은 354 穴로 기 록되 어 있 다. 108) 이 러 한 經 穴 處 에 鐵炎 의 처 방울 가함으로써 五 臘 六開 및 全 身 의 器管 이 자극을 받아 氣 血이 활발해지고 건강을 되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山 龍 에도 要所에 穴이 있어 山 )II 의 眞氣 가 融緊된다고 본다.

그러나 이 穴 處 는 漢 方의 銅 人 圖 와 같이 정해전 혈 구멍이 있어 털끝만큼의 들립도 없어야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龍을 보아 眞 假 률 찾 기는 쉬워도 眞 穴울 찾기는 어렵기 때문에 風水 術 法의 어려 움이 바로 穴을 찾 는 어려움에 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 다 . 1 09) 이와 같이 生 氣 가 모여들어 穴을 이룬 것을 結穴이타 하고 이러한 山의 形勢 를 局을 이루었다〔成局〕고 한다 .110)

108) 『 7] 초침 구법 』, pp. 32~3. 109) 東 谷, 前掃합 , pp. 40~41. 110) 李熙 德 , 1976, 「風 水 地 理 」, 『 韓國 思想의 源泉 』, 樓 英社, p. 200.

5. 砂 穴 場 을 中心으로 한 주위 二十四方울 둘러 싼 大小의 峯뿐 울 포합 해서 岩石,樹木, 江, 바다, 湖水,건물, 평 야, 砂地, 구룡, 도로. 等 穴 주위의 形 勢 를 砂라 한다. 이것은 옛사람이 相地 術 울 說明, 혹은 傳 授할 때 모래와 흙으로 形 勢 의 모형을 만들어 가르찬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체로 砂는 局穴의 주위를 둘러싸고 生 氣 률 끌어모아 醉 化作用울

일으키게 하는 山이나 丘陵의 총칭으로 주로 쓰인다. 砂의 종류 중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 1) 祖山파 主山 龍을 찾는 요령은 먼처 그 龍이 어디서부터 이어져 나왔는가 根 源올 살펴야 한다• 사람의 系 譜 에 始祖와 中始祖(派祖), 그리고 祖, 父母가 있듯이 龍 에도 그 根本이 되는 太祖山과 小祖山 그리고 主 山이 있다. 祖宗이 훌륭하여야 龍 도 力 蓋 이 크고, 祖宗이 빈약하면 龍도 力 量 이 短 薄 하다고 본다. 사람의 根本이 없으면 惡人이 나오 고 山에 根源이 없으면 나쁘다(人無祖惡出 山 無 祖 惡 來 )111) 는 지적도 같은 의미로 해석된다.

祖山은 穴 場 으로부터의 거리와 山의 규모에 의하여 다시 몇 가지 로 나누어진다. 太祖山은 穴이 되는 곳에서 멀리 떨어전 山으로 高 大하고 雄偉 하 여 큰 것은 백여 리를 뻗어나가 및 고을의 으뜸이 되고 작은 것은 한 地方의 으뜸이요 더 작은 것은 한 마을의 으뜸이 되는 가장 기 본이 되는 山이다. 太祖山에서 行 龍 을 떠나 사방으로 굽이쳐 뻗어나가다가 크고 작 온 支山울 이루면서 穴이 되려는 곳을 얼마 못 미쳐, 죽 穴 場 뒤에 두어 節 정도 떨어쳐 솟은 高大한 山울 少祖山 또는 主山이라 한 다. 112) 太祖山과 主山의 連脈 사이 에 中始祖와 같은, 높이 솟온 山 이 있을 때, 이는 中祖山 혹은 宗山이라 일컫기도 한다 . 혹은 〈太 祖를 祖, 少祖를 宗이라(太祖曰祖少祖曰宗)〉 113) 하기도 한다. 主山온 穴場이 있는 明堂의 뒤에 위치하기 때문에 後山이라 하기 도 하고, 그를 鎭護 한다 하여 鎭 山이타 부를 때도 있다. 만약 穴 場 뒤에 高大한 山이 있다 하더라도 그 山의 갈라전 줄기 가 많아 穴場과 상당한 거리가 떨어졌으면 主山이라 할 수 없으며, 이런 山은 駐 躍山이타 부른다. lll) n 효芹 』 , 卷 之一, 「 尋龍歌 補 義 」 112) 東谷, 前播 書 , pp. 44~5. 113) 『玉 彈 子 地理元樞J, 「 審龍 」, 二. 祖宗 C fll 行年代未 詳 , 上 海 , 校經山 房 )

눈으로 보아 主山이 없는 경우에도 穴을 定하는 例가 있는데, 이. 러한 경우는 平岡龍과 平地龍에서 볼 수 있다. 平岡龍이란 평평안 둥성이로 내려온 龍 으로, 그 줄기가 비실비실하고 구불구불하게 내 ’ 려오면서 끊기돗 이어지고 찰룩잘록하게 束氣 된 혼적을 남기면서 服卞이 穴 場 까지 이어지면 主山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취급된다. 平地龍 도 束氣 됨을 요하며 脈 이 내려오는 중간에 약간 높이 分水 된 곳이 있으면 더욱 吉하다. 그리고 穴 場 뒤에 妹絲, 馬跡, 草蛇, 龜背 , 牛背 둥과 같은 형체가 있으면 이는 束氣되어 生氣가 모인 증거로 취급된다. 2) 玄武頂, 入首, 頭腦 穴과 가깝게 바로 穴 場 부근에서 主山으로부t. 내려오는 來龍이 우뚝 솟은 곳을 玄武頂이라 하며 四方守 護神 관념에서 나온 用語이

祖 山

朱雀 그림 2-1 四神砂槪念圖

다. 다시 玄武頂으로부터 도도록한 능선을 이 루어 穴로 들어 가기 까지 의 부분을 入首라 하는데, 이는 'U 의 머리가 穴울 向하여 디밀고 나아간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때 入首와 穴과의 接合地 點 울 용의 언굴 부분에 상당한다 하여 頭腦로 부른다(그림 2-1 ). 3) 父母, 胎,息, !lz., 育 少祖山에서 내려온 龍 肺이 起伏울 이루면서 玄武頂까지 내려오다 가 玄武頂 바로 못 미 쳐 도도록하게 일어 난 星辰을 父母라 하고, 그 父母 아래 落曲料된 곳을 胎라 하며 , 胎 아래 束 氣 된 찰룩목울 息이 라 하는데 마치 부모가 자식을 잉태하여 기르는 과정과 같다.

\

J { 그립 2-2 父母, 胎, 息, 푸, 育

그리고 이 息 에서 다시 星辰 울 일으킨 곳이 玄武頂이니 이 것을· 가리켜 쭈이라 하는 것으 로 胎兒가 머리와 형체를 이룸 과 같음이며 푸 아래 穴處를 育이라 해서 이는 자식이 胎中 에서 나온 것과 같은 형상이다 (그림 2-2). 따라서 크게 보면 父母, 胎, 息,푸, 育이 모두 入首의 법 주에 드는 것들이다. 山法全 書 에서 〈主星, 죽 主山에서 내려 온 한 봉우리를 胎, 胎 아래 찰룩한 곳이 息, 主星의 頂上 울 뭔 成穴處를 育이라 하는 데 葬法에 긴밀히 관련되는 것 으로, 이것으로 陰陽울 판별하 고 生氣를 살필 수 있다. (主星 後一頂曰胎 胎下束昞曰息 主星 頂曰푸 成穴處曰育 此四者及葬

法之緊開 于此辨陰陽察生氣之所也)〉고 하였 다. 114)

114) 『地理大成 山法全 훔 J, 卷之首上, 「胎息푸育」(刊行年代未詳, 上海, 九經 합 局)

4) 靑龍, 白虎, 案山, 朝山 앞에 언급한 玄武와 靑 龍, 白虎를 알기 위해서는 四方守護神에 관한 理解가 필요하다. 四神은 죽 穴前울 바라보며(대체로 南向하 게 됨) 左 靑盟 , 右白 虎 , 前朱雀, 後玄武 둥 주위의 四山울 말합식 니, 錦껍덜經 에 〈 무릇 葬禮 를 함에 左는 靑 龍, 右는 白虎, 앞으로는 朱 雀 , 뒤로는 玄武이어야 한다(夫葬以左 爲靑龍 右爲白虎前爲朱雀 後爲玄武)〉라 한 것이 그것이다. 모두 穴울 둘러싸고 있는 山의 風 水的 명칭으로- 사용된 것이다. 玄it는 北쪽 方位의 水 기 운을 맡은 太陰神울 상칭 한 거 북 모양의 상상적 침승으로 穴의 北쪽 山, 죽 主山과 玄武頂이 이에 해당한다. 靑龍 은 東쪽 方位의 木 기운을 맡은 太歲神울 상칭한 침승인데, 主山에서 갈라쳐 나간 왼쪽 산줄기, 대체로 穴의 東쪽을 둘러싸고 있는 山을 말하며 二重인 경우 안쪽을 內靑龍, 바깥쪽을 外靑龍이

朝山 그림 2~3 風水槪念圖

타한다. 白虎는 西쪽 方位의 金 기운을 말은 접승인데, 靑龍의 맞은편, 죽 穴의 西쪽을 둘러싸고 있는 山으로 역시 內外白虎가 있다(그림 2-3 ). 穴 場 의 前面, 즉 火의 南方인 朱雀에 해 당하는 山으로는 案山과 朝 山이 있다. 穴 바로 앞에 있는 나즈막한 山으로 主山과 그에 대한 客山이 마 주하고 앉은 사이의 책상이타는 의미로 案山이라는 것이 있고, 朝 山온 朝對山이라고도 하며 穴 앞에 있는 高大한 山으로, 주안에 대 한 손님, 임금에 대한 신하의 비유로 主山에 대칭된 개념으로 사용 된다. 術書에 따라서는 오히려 〈案山울 主山의 賓으로 보아 案 이 朝보 다 主山과 긴밀한 관계를 갖는 것으로(朝案二者 以案爲緊 朝 次之 案者 主山之賓也)〉 115) 보기 도 한다. 그런데 上述한 錦萊經 에는 四神의 山勢룰 〈玄武垂頭 朱雀翔舞 靑 龍腕誕 白虎踏距〉라 表現하였는데 116) 아때 垂頭는 占形의 陰來를 뜻 하고 翔舞는 回形의 陽受률 뜻하게 된다. 風水上 玄武 와 朱雀온 陰 陽의 結合狀울 要하며, 이에 山울 陽, 陰울 水라 하면 陽來陰 7k 로 朱雀의 경 우는 山분만이 아니 타 水로서 도 可能하다는 說이 성 립 될 수 있다 .117)

115) 『山法全활』, 卷之首上, 「前 案遠朝 」 116) 李丙 熹 , 1980, 『高麗 時代의 硏究』, 亞細亞文化社, p. 25. 117) 李熙德, 前擇 書 , p. 203.

6. 明堂 靑龍과 白虎 等 砂에 둘러싸인 穴前의 땅을 明 堂 이라 한다. 이때 穴 바로 앞의 平坦한 땅, 죽 山所의 경우 墓板, 住居地의 경우 主 建造物의 앞뜰울 內明堂이라 하고, 이보다 더 앞쪽으로 內明堂에 비하여 비교적 넓은 平地를 外明堂으로 부른다. 혹은 〈金魚水가 합 치는 平垣이 있는 小明堂, 龍虎內의 內明堂(內陽이 라 함), 案山 안

쪽의 中明堂(中陽), 案山 바깥쪽의 外明堂(外陽) 等 4 개 (明堂有四 曰小內中外明堂 小明堂者金魚水合處略有平垣是也 龍虎內曰內明堂曰 內陽 案內曰中明堂曰中陽 案外曰外明堂曰外陽)〉 118) 로 나누기도 한 다. 원래 明堂이 란 皇帝가 臣下의 拜賀를 받는 땅을 일컫는 用語로 穴에 參拜하는 곳이란 의미로 明堂이라 칭한 듯하다 .119) 穴과 明 堂 은 風水의 全體系에서 가장 中心이 되는 요소로 位階上 首位믈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關係를 전통 건축에 적용하여 보면 建築空間槪念 중 核心이 되는 本建物과 그에 부속된 前庭의 관계로 대응시킬 수있다. 죽 宮殿에서는 勤政殿울 穴로 볼 때 品階石이 도열되어 있는 앞 뜰은 萬朝百官이 拜賀하고 議政울 하는 明堂이라 할 수 있고, 寺利 에서는 本尊佛율 奉安하고 있는 大雄殿울 穴로 볼 때 塔이 서 있는 中庭은 신도듈이 모여 부처님께 拜禮하는 明堂으로 볼 수 있다. 또 書 院에서는 넓은 大廳이 있는 本建物울 穴로 보면 그 앞뜰은 書生 둘이 모여 공부하고 스승께 경의를 표하는 明堂으로 볼 수 있고, 일반주택의 경우 大廳울 中心으로 하는 本建物울 穴로, 안마당을 明堂으로 대응시킬 수 있다(그림 2-4).

118) 『山法全書』, 卷之首上, 「明堂三陽三分三合」 119) 村山智順, 前掃書, pp. 16~17.

山朝 明堂外 山案 堂內明 穴 텝 頭 武玄

그립 2-4 穴과 明堂과의 關係

이 관계를 建築學에서는 다음과 같이 해석하기도 한다. 즉 韓國 의 傳統建築은 명확한 中心槪念 Ima g e of Cen t er 을 가지고 있으며 그 中心 (Cente r of th e World; 穴)에 垂直的 要素인 本建物(本殿, 本堂 본채)이 놓여져 있는데, 이것은 M. E li ade 의 소위 宇宙木 cosmi c tre e, cosmi c pillar 을 상칭 하고 있 고 聖 Sacred 의 中心이 된다 고본다. 다음, 그 中心 建物 , 즉 穴 앞에 반드시 넓은 中庭(明堂)을 가지 고 있는데 이 것 은 聖 sacred 과 俗 pro fa n e 이 만나는 곳으로 俗의 中 心이 된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120) 7. 得, 破 穴, 四神, 또는 內明堂의 양측으로부터 흘러내리는 水流의 發源 處를 得이라 한다. 得이 靑龍과 白虎가 洪抱하는 죽 明堂의 바깥쪽 으로 빠져나가는 곳은 破 또는 水口라 한다. 得과 破에도 역시 內 • 外龍虎의 존재에 따라 內 • 外得과 內 • 外水口가 있게 된다. 혹은 穴에서 그 흐름이 보이는 水流를 得, 보이지 않는 것을 破 라 하는 경우도 있다 .121)

120) 兪在賢, 1979, 「穴과 明堂의 關係문 롱하여 본 韓國傳統 建築空r.l1의 中心槪念 에 關한 硏究」, 《울산공대 연구논문집》, 제 10 권 제 2 호, pp.1 03~21. 121 ) 村山智順, 前擇書, p.1 7.

8. 坐向 穴의 中心, 죽 住居의 경우 主建物이 선 자리, 陰宅의 경우 稽 이 묻힌 城中울 坐로 하여, 坐에서 正面울 바라보는 方位를 向이라 한다. 따라서 坐向온 일직선상에 놓이게 된다. 代表的인 例가 子坐 午向으로 二十四方位로 正北이 子, 正南이 午가 되니, 이는 入首가 正南向으로 경사전 경우가 된다.

9. 五星, 九曜 風水에서는 山의 모양을 나타낼 때 星 또는 曜 라는 用語를 쓰는 경우가 있다. 이는 하늘에 있는 星曜가 地上에서 形相울 나타낸 것 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 星體는 五星과 九曜가 기본이 되고 이것이 또 變格 되어 다양한 形相울 나타내게 된다. 五星이란 金星, 木星, 水星, 火星, 土星의 다섯 가지 星辰으로. 곧 五行울 말한다. 人子須知에 〈都子가 말하기를 太極이 나뉘어 陰陽이 되고 陰腸이 五行울 生하고 五行이 만물을 生한다. 고로 五行의 精온 하늘에 매 이고 五星의 形은 땅에 있어 五材가 되었으며 기운은 歲에 거느려 五辰이 되고 사람에 있어서는 五 職 이 되고, 물건에 있어서는 五色 (靑, 黃, 赤, 白, 黑), 五音(宮, 商,角, 徵, 羽), 五味(酸, 賊, 辛, 甘, 苦)가 되며 行에 있어서는 五常(父子, 君臣, 夫婦, 長幼, 朋友)이 되는지타, 고로 임금이 五運을 타 官職울 두고 五禮를 나 누고 五刑울 베풀어 만방울 다스리고 백성이 모두 和順한 뒤에 이 로 인하여 得失울 살피고, 비오고, 개고, 차고, 더운 것과 눈과 바 람 等 식물 동물과 및 吉凶禍福의 잦 化롤 보인 것이니, 地理法도 마찬가지로 山의 形勢로 五星울 분별하여 사람의 吉凶禍福을 경험 하는 이치가 당연하므로 五星에 대한 이치믈 밝히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122)

122) 韓松溪 前損 협 , pp. 228~9.

五星의 구분은 穴形에 의하여 정하여지는데 金星은 圓, 木星은 直, 水星온 曲, 火星온 說, 土星온 方을 그 正體로 하고, 또 각각 다른 이름을 갖고 있기도 한데 金星은 太白星이요, 木星은 歲星, 水星은 辰星, 火星은 榮惑星, 土星은 鎭星 等이 그것 이 다. 五星에 의한 山形의 판단은 매우 까다로운 편으로 그 正體에 의하여 推論 할 수밖에 없으며, 術師들의 그에 대한 해석도 무척 구구한 편이 다. 예 컨대 袁金精은 金으로 文星, 木으로 將星울 삼고, 張子微는 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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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土星 水星 / 그립 2-5 五星의 모양

으로 武星, 木으로 將星(역시 武星)을 삼고, 楊答松온 土로 尊星울 삼고, 子微, 金精, 두 사람은 土로 財星울 삼는 식 이 다(그림 2-5). 이 五星의 斐 格으로. 이루어전 食狼星, 巨文星, 祿存星, 文曲星, 廉貞星, 武曲星,破軍星,左輔星, 右弼星 等이 九星 혹은· 九曜가 된다. 10. 官, 鬼, 14' 曜 〈官이란 穴前, 즉 案山 너머에 있는 山울 말하고 鬼란 穴後, 죽 主山의 背後에 있는 山을 말한다(前曰官 後曰鬼).〉 〈鬼는 죽은 듯 해야 하고 官은 살아야 하는데, 官아 죽으면 氣가 흐려지고 鬼가 살면 氣가 홀어 전다. 官鬼논 따라서 高低長短을 論하지 않고 美만 을 본다(鬼宜死 官宜生 官死則氣微 鬼生則氣散 不在高低不在長短 只須得宜官鬼之美) . >12 3) 官星온 案山보다 높고 크면 不可하고 案山을 뒤에서 받쳐주는 정 123) 『玉彈子 地理元福』, 「審砂」, 四. 官鬼 (刊行年代未詳, 上海, 校細山房)

도가 되어야 하며, 이것이 없으면 貴가 없다고도 한다. 또한 鬼星 은 主山보다 높은 것은 무관하지만 길면 안되고, 이것이 없으면 富 가 없다고 주장하는 術 魯 도 있 다. 124) 〈商온 水口處에 있는 조그만 山이나 바위를 말하고 曜는 靑龍, 白虎, 양변의 背後面에 있는 小山 岩石울 일컫는 말이다. 翁은 貴 를 曜는 顯울 장악한다(水口芳生者齒也 龍虎兩邊槪者曜也 曜氣宜 揚腐星宜異腐異則貴曜揚則顯). >12 5) 위 四星의 形勢는 〈官은 秀麗, 鬼논 抱身, 曜는 長行, 袁은 小圓 激울 要하는데, 알기 매우 어렵다. (此四星 官宜秀麗亦思直去太長 鬼要抱身最惡一去不轉 齒星者乃小圓敬 惟曜星,急長急奇急行急妙 人 不易識者)〉 126) 124) 辛係柱, 1982, 『明堂學講論』, 上卷, p. 289. 112256)) 『『山玉法彈子全 書地 』理, 元卷樞之』首,上 ,「 審砂「J官,鬼 食五•曜 」食(上曜海 , 九經 書 局)

제 3 장 風水說의 原理

1 風水原則과 陰陽五行說 1. 陰陽五行說 風水의 發生 初期에는 陰陽 五行 說 과 결부된 혼적을 확실히 찾을 수 없으나 이것이 하나의 地理思 想 으로 확립된 이후에는 陰陽五行 說이 가장 큰 思想的 基礎를 이루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風水 術法에 쓰이는 用語들이 이를 찰 말해준다. 陰 陽 五行說은 古代 中國人들이 몇 가지 대원칙에 따라 論理的으로 宇宙萬 象 울 보아온 애니미스틱 An i m i s ti c 한 世界觀으로 陰陽온 말 하자면 中國的인 辨證法이며 五行은 곧 일상생활에서의 素 材論으로 일반의 동설과 같이 易에서 유래된 것만은 아니다. 陰陽家 중에는 戰國時代 齊나라 鄒衍 (B.C.305~240) 이 유명하지만 思想이 정비된 것은 대체로 戰 國 時代 末期의 相反과 應合의 論理가 나타났을 때로 보아야 한다. 相反온 곧 플러 스(+)와 마이 너 스(-)의 대립이고, 應合이란 그 相反이 단지 反機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며 언제나 相互依存關係에 있고, 相互依存에 의하여 비로소 차례차례 전개된다는 것으로 陰과 陽온 두 개의 極이나 이 極의 相互依存에 따라 작용과 전개가 있다는 說이다. 陰陽 이전에도 이미 剛柔의 論理가 있어 易의 十 翼 으로부터 또는 老子를 지나 書經의 洪範에까지, B.C.780 年까지 소급되는 것으로 미루어 이는 古代 中國人둘의 事 物울 보는 기본적인 시각이었던 듯

하다.1) 陰陽은 결국 時空上의 상반되는 구체적 양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陰은 추위, 구름, 비, 여성, 內面性, 그늘진 곳을 암시한다면 陽은 빛, 열, 봄, 여름, 남성들의 성격을 가리키고 있다. 易經에 의하면 이 兩者 중 한 原理가 지배하면 나머지 하나는 피지배격이 된다. 萬 物온 天地 또는 陰陽의 調和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그것을 分類하 는 原理로서 도 陰腸은 사용된다. 陰陽은 서로 한 요소를 보강하기도 하고 약화시키기도 하며 그들 의 週期的 變化와 相互보완작용에 의하여 세상은 변하기도하고 세 계의 질서가 성립되기도 한다고 본다. 陰陽의 주기적 변화와 상호보완 작용은 유기적인 波動의 존재로 인식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모든 현상은 기계적인 因果律의 작용 보다는 感應으로 적절히 설명할 수 있다. 이 思考에 입각할 때 秩 序는 유기적인 상관관계 속에서 對應으로 유지되는 거대한 우주변 화가 만든 패턴의 일부분이다. 근대과학의 기초를 만든 갈릴레오도 바닷물의 간만현상을 설명하는 데 실패했으나 中國人온 B.C.2 世紀 에 이미 그 원인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變化의 패턴을 感應으로 받아둘이는 그들은 하늘에 달이 있다는 사실에서 그것에 대응하는 현상을 연상할 수 있었다 .2) 漢代에 있어서의 陰陽家로는 董仲舒가 가장 유명한데, 그는 相反 應合의 이론은 물론 天地와 自然에 관한 지식을 陰陽說에 의하여 術로써 이를 설명하였다. 그의 天人相關說에 의하면 모든 것은 異質 的인 것을 피하고 서로 同類 속에서 상대를 덱한다고 한다. 先行하 는 것이 없이 생기는 것이 없고, 先行하는 것에 따라 응답하는 것 온 같은 카테고리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예를 들어 위대한 군주가 나오면 吉兆가 나라나고 군주가 망하게 되면 凶兆가 나타나게 된다 는 것이다 .3) 1) Fung Yu-Lan, 1953, A Hi st o ry of Chin ese Pll ilos op hy (tran s. by Derk Bodde), George Allen & Unwi n Lt d. , pp. 31~3. 23)) 金『容韓雲國史,大 1事9典76』, ,『 1文97化8 , 속韓의英 出數版學』社., 玄p岩.1 社0,23 . pp.1 46~9.

이것은 陰陽의 二氣에서만이 아니라 인간의 運, 不運 둥 모든 운명의 기원도 그렇다는 것으로, 이와 같은 陰陽思想이 運命信仰이 랄 수 있는 風水說의 基本的인 思考觀念이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 라할수있다. 五行說의 기초는 剛柔와 같이 書 經의 洪範 중에 있는데 洪範 九 爾 의 차례는 水,火, 木, 金, 土로 되어 있다. 五行의 性格에는 여 러 해석이 있으나 民用五材타 하여 古代人의 생활 素 材를 들어 五 行이라 했다는 說이 가장 유력하다. 따라서 五材의 배열도 사람의 생명의 지속에 가장 직접적인 水, 火로 시작하여 다음에 生活資材 로서의 木, 金에 이르고, 최후로 일체의 素材의 기본이 되는 土가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 생활소재로서의 民用五材도 접차로 추상화 되어 드디어 일종의 원리적인 처지를 차지하게 된다• 원래 五를 근본으로 하는 사상은 다만 五行분 아니라 五色, 五 味, 五聲, 五音 等 事 物울 생각하는 여러 방면에 이용되고 있었고, 이 原理化된 五行組 織 울 구체 적 으로 나타낸 것 이 禮記의 月 令이 라 할수있다. 月令은 陰陽 家 의 직능으로, 결국은 天文, 曆의 學 術과 밀접한 관

五行 1:1:1:1표: 3-11 :五1行:의 1分~ 類1體 :系 1:1~ 季數日

木 |東 1:1 春 1:1:1 서 :1 기 ::I 七?二 火 1 기 :1 미 :1:1 미 :1 赤 1: 午已未 l 七十夏日 二 土 1:1:1:1:1:1 宮「니미 :1:1 七中{= 金 |기 :I 秋 1:1:| 기 :I 白 1:111 七?二 水 1 北 1:1 冬 1: 〔니니壬니기 :\1 七:二

련을 갖는다. 이런 경로에 의하여 陰陽과 五行온 하나로 결부되 고, 四時, 四方의 관념에 따라서 相生과 相克의 形勢도 취하게 된 다(표 3- 1 ). 여기에 十干, 十二支로부터 占星術까지를 포함해서 미신, 금기의 번다한 음양오행실을 形成하게 되었다. 오히려 陰陽과 五行의 융합 의 형태는 陰陽의 밀에 五行이 포섭되고, 후에 太極思想이 홉수되 었으며, 이에 이르러 이른바 1~2~5 의 전개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득히 五行의 相生, 相克原理는 龍脈의 形睦에 결부되 어 風水說의 매우 중요한 原理를 갖고 있는 것으로, 이는 후에 詳述할 것이다. 2. 風水說의 基本原理 前章에서 밝힌 바와 같이 風水의 目的은 땅속에 흘러다니는 生氣 에 感應받음으로써 避凶發福할 수 있는 眞穴울 찾는 데 있다. 風水 說의 基本原理논 이와 같은 傾 穴울 찾아내는 過程과 方法을 추구함 으로써 알 수 있는데, 그 內在된 原理는 前述한 陰 陽 五行說과 河 圖, 洛 書 , 方圓의 이치에 易의 八卦 等이 혼합되어 들어 있으며 表 出된 땅의 선택은 內在原理를 바탕으로 山川을 目力 裁 定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들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역시 陰陽論이라 할 것이 다. 대부분의 山 書 가 이 접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으로 예컨대 山法 全書에는 〈地理家의 核心은 陰陽으로. 이것을 이해하면 어려운 일이 없다. 地理의 道란 결국 陰 中에서 陽을 구하고 陽 中에서 陰울 찾 는 일에 불과하다(陰陽者地理家之神骨懿 了得此二字 則觸目使通 無難事矣 蓋地理之道 不過陰中求陽陽中堯陰而已〉 4) 라고까지 하였 다. 땅속의 生氣가 가장 충만한 곳이 眞穴이 되고 이 眞穴을 찾는 것 이 風 7k 의 目 的이 므로. 生氣가 머 문 곳을· 찾는 原理가 風水原理라는· 논리가 성립된다. 4) 『地理大成 山法全 합 』, 卷之首上, 「陰陽」(刊行年代未詳, 上海, 九縱 書 局)

郭漢의 葬 書 에는 〈生 氣 는 바람에 실리어 홀어지고 물에 닿으면 머무는 것인 까닭에 바람과 물, 죽 風水라 하는 것이다. 따라서 風 7k 의 方法은 물을 얻음이 첫째요 바람을 막음이 그 다음이라(經曰 氣 乘風則散 界水則止 故謂之風水 風水之法 得水 爲 上 藏 風次之).〉하 였다 .5) 〈 生 氣 란 地理의 主로, 葬 事 란 결국 生氣를 타는 것에 지나지 않 는다. 生 氣 는 陰陽 의 交婚로 水火經 濟 , 죽 完成의 결과로 나타난 다. 한쪽에 偏柏하면 生氣는 곧 흩어지는데, 치우칠수루 그만큼 더 흩 어진다. 이것이 극단에 치우치면 四種의 惡 氣 가 되며, 純 陰 純火 이 떤 尖利한 殺氣 , 純 陽 純水이 면 散 漫 한 死 氣 , 純陰純水이 면 壅種 한 病 氣 , 純 陽 純火이면 말라 흩어지는 敗氣가 되는데 이것은 모두 범해서는 안되는 것들이다(生氣者地理之主 葬不過乘生氣而已 生氣 者從陰陽 交 講 水火經 濟 中出者也 一有偏柏生火便索 急偏 急 索 偏生 純 陰 純火則成尖利之 殺氣 偏至純 腸 純水則成散 漫 之死氣 純陰純水則爲 壅種 之 病 氣 純 陽 純火則爲柏索之敗 氣 四 種 惡 氣 供不可犯. )>6 ) 그러나 生氣는 말로 전할 수 있는 쉬운 개념이 아니다. 山法全 書 에서는 生氣를 찾는 일을 〈 禪 (生氣一門 猶釋 氏之有 禪 單刀直入便得佛 頂三昧)〉에 비유하여 單 刀直入으로. 문득 佛頂三昧룰 연음과 같다고 하였다. 龍法에는 〈龍 울 찾으려면 먼저 그 祖山과 宗山울 찾아야 한다(尋 龍先 尋 祖與宗) 〉 고 하여 穴處가 있는 明堂 주변의 山川 형세분만이 아니라 龍 자체의 선택도 중요함을 보여준다 .7) 따라서 生 氣 가 衆 注한 眞 穴율 찾기 위해서는 먼저 眞 龍을 찾아야 하는데, 眞龍 의 출발은 鹿 福山으로 이 山은 天地믈 진호하는 距物 이며 이에서 흘 러나온 龍脈은 마치 사람의 목뼈―등뼈―다리뼈로 이어지는 중십뼈대와 같아서 그에 연결될 것을 요구하며 이것이 연 떤히 이어져 穴場까지 닿게 된다 .8) 이 龍脈의 흐름을 찾는 方法울 5) 『地理正宗 』 , 卷 二, 頂 탉g 」( 臺灣 , 端成 書 局, 1969 年구J) 6) 『山法全 합 』, 卷 之首上, 「生 氣 」 7) 『入地眼全 맙.!I , 卷二 「 龍 法」, (1 976 年, 臺灣 , 竹林 書 局刊) 8) 『地理正宗』, 卷三, 「德 問經 」, 統 論篇 ( 混 짧山 是 天地骨中 鎭 天地爲距 物 如人背育與 項梁)

看龍法이라 한다. 龍은 穴處에 오게 되면 砂城이란 이름으로 穴의 주위를 둘러싸 藏風울 하는 形局울 이루게 되는데 이를 藏風法이라 하고, 역시 生 氣의 衆止를 묵적으로 하는 河川을 요구케 되는데 이는 得水法이라 하여 중시한다. 砂城에 둘러싸인 明堂울 구했다 하더라도 穴處를 찾기는 매우 어 려운 일이다. 한치의 차이로 穴의 眞 假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를 定穴法 혹은 占穴法, 占定이라 칭한다. 그리고 陽宅의 경우 主建物이 놓이는 위치, 陰宅의 경우 尸身을 눕히는 方向울 決定하는 方法울 坐向論이라 한다. 결국 風水說의 原理는 看龍法 , 藏風法,得水法, 定穴法, 坐向論 等으로 구분이 되며 各方法울 추구하여 해석하면 風水의 本質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砂城의 형세를 人身이나 腐獸의 모양에 類感시켜 發福의 종류를 결정케 되는데, 이를 形局論이라 하여, 世間에 알려진 風水 는 여기에 집착된 것이 비교적 많다.

2 看龍法 1. 龍의 發源 風水에 內包되어 있는 모든 原理가 1 次的으로. 可視的 實體 로서 表出되는 事象 이 山, 죽 風水用語로 龍이며 그 龍脈의 흐름의 좋고 나쁨을 祖山으로부터 穴場까지 살피는 일을 看龍法 이라 한다. 風水에서 〈山이 좋으면 우수한 인재가 나고 山이 나쁘떤 우매한 人間이 난다(山淸人秀 山濁人愚 自 然之理)〉”는 말은 그.의 屬性과 같 이 여겨질 정도로 山은 중요하다.

9) 『山法全書』, 卷之七, 「九星穴法」, 九星總論

祖山으로부터 氣 脈울 일으키어 開場, 察心, 過峽, 刻換, 機悼, 枝脚, 結昞, 束氣 等의 여러 형태를 만들며 결국 穴處에서 龍이 머 리를 들어 生氣몰 뿜어내는 形勢이기 때문에 이를 혼히 來龍 또 는 龍의 之玄이 라 부른다. 이 러 한 현상온 漢醫學 針炎術에 서 人體 를 흘러 잇는 經絡과 갇은 발상으로 역시 陰陽五行이 基本思想이 다. 經絡온 中魚 죽 胃에서 생간 榮血과 下無 죽 大小 臘 에서 생간 氣 가 통하는 관으로서 각기 담당한 방광 조칙 기관 동에 영양, 신전 대사, 生長 둥 모든 생활현상을 보상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經 이 란 문자 그대 로 縱行으로 흐르는 大幹線으로 經絡은 12711 의 주되

논 經脈과 8 개 의 奇經八脈으로 되 어 있 고 15 *섬 은 12 개 의 經脈울 연 결하기 위해서 12 個의 經脈에서 각 기의 한 絡씩 l2 t산 개다 帶脈과 任脈, 督脈에 서 한 絡씩 을 합쳐 15 絡이 라 한다. 목히 주요한 12 個 의 經脈은 각기 하나씩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環으로 되 어 있어서 전신으로. 순환되고 있기 때문에 氣血 은 그 經脈으로 쉴 새없이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10) 人體의 經絡과 땅의 龍脈은 그런 접에서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실제로 吉格의 龍울 살피는 方法은 매우 복잡하고 諸說이 분분한 편인데 이것도 역시 針炎術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죽 針炎方宜論에 〈黃帝가 묻기 를 醫者가 病울 다스리 는데 똑같은 病울 다스리 는 方 法은모두같지 않은데도병은어찌하여 모두낫는것인가고물으니 岐伯이 대답하기를 땅의 形勢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黃帝問曰醫 之治病也一病而治各不同 皆急何也岐伯對曰 地勢使然也).〉하여 地 勢와 病울 직접 연결시키고 있다 .1 1) 龍은 祖山으로부터 시작되므로 看龍法 은 당연히 祖山으로부터 설 명되어쳐야 한다. 朱文公이 踏山賊에서 山 鹿福 之子孫 水東海之朝 臣이라 밝힌 바와 같이 모든 龍은 名山으로부터 시작한 그 산의 본 줄기와 곁가지 等으로 모두 연면히 이어진 것으로서 인식된다 .12) 히 말라야山脈과 티벳고원 北쪽의 鹿尙山은 확실히 東北아시아의 祖山 역할을 할 만한 名山이지만 엄밀히는 北龍이 뻗어나온 것으로 모든 山의 祖山이 되는 것은 아니다. 龍은 크게 셋으로 나뉘어 南겁을은 眠山으로부터 일어난 長江과 南 海의 사이에 끼인 것이고 中幹은 西嶺에서 일어난 黃河와 長江 사· 이에 끼인 것이며 北龍이 바로 鹿짧으로부터 출발하여 鴨綠과 黃河 사이에 끼인 것이 된다 .13) 우리나라에 뻗어 온 龍脈은 이 北龍의 줄기로 취급할 수 있기 때 문에 山鹿福之子孫에 합당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德龍紙에는 嵐 10) 『기 초침 구법 』, p. 29. 11) 『針炎大成』, 卷一, 「針炎直指」, 針炎方宜論 12) 村山智顯, 前擇書, p. 33 13) 『塚玉芹.l, 卷六一, 「 尋麗歌 」 (1969 年, 景仁文化社, 韓國風水地理菜書 가 出典입 )

짧이 땅의 가운데 있어 모든 山의 始祖라고 한 대목(襄描居地之中 爲 天下諸山始祖 在中國西北 )14) 도 있어 龍의 根本으로 鬼協山울 지 목함에는 별 무리가 없을 듯하다.

14) 『地理正宗』, 卷三, 「懿 麗 懿」, 統論 篇

그러나 山의 根本울 鹿審 에 잡고 있음은 아시아대륙의 中央部에 위치한 상칭적 의미 이외의 實用的 가치는 거의 부여하지 않는다. 따라서 韓國 風水의 경우는 白頭山울 다시 祖山으로 삼는 경우도있 다. 이것도 실제 看龍時 白頭山으로부터의 山脈勢를 順次的으로 모 두 고려하는 것이 아닌 만큼 역시 상칭 以外의 의미를 줄 수는 없다 고본다. 따라서 鹿腐 白頭로부터의 起龍說은 生氣의 發源處가 영묘한 곳 에 있음을 附會하여 龍脈의 가치를 높이는 의도와 사람의 經絡처럼 龍脈의 연결성을: 강조하기 위한 방편으로 나온 것이타 보아야 할것 이다. 그 렇 기 때문에 地官들의 相地時에는 祖宗山, 太祖山의 의미가 탈라지게 되어 鹿腐 白頭와의 연결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또한 風水의 龍이 山울 가리킵은 분명하지만 그 山의 형태는 일 반적 으로 말하는 山과는 다름을 알아야 한다. 만약 보통의 山을 龍 脈이라 한다면 鹿福 小脈의 直系連峯이 아닌 곳의 山들은 脈이 끊간 꼴이 되어 사실상 風水의 存在 근거가 없어지는 셉이 되기 때문 이다. 風水에서는 一寸이라도 높으면 山이라 할 수 있고 一寸이라도 낮 으면 水라 일컬을 수 있기 때문에 비록 평탄한 平野地域이라 하더 라도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일률적으로 脈이 꿇겼다고 할수는 없는 것이다. 平地에 穴이 있는 경우도 땅 속으로 山의 氣脈이 동한 것 으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論理에 의하여 風水說온 韓 半島全域에서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相地術로 되었다고 볼 수 있다. 2. 龍의 種類 1) 正龍파 傍龍

正龍이란 곧고 올바르게 뻗은 줄기로서 正 氣롤 받아 나가고 그곁 으로 무리의 山이 朝恭하고 포위하는 것으로 대개 龍이 中央에 위 치하여 安定 調和感울 주는 過峽이 조밀한 山을 말한다. 過峽의 곳에서는 반드시 여러 山이 막아 보호해서 風과 7k 의 공 격을 받지 않아야 한다. 양 결의 山勢는 처음부터 龍의 本身을 에 워싸서 떠나지 않고 穴場까지 이르러야 좋다. 山勢는 전반적으로 활동적이고 生氣에 차 있어야 하고 上部는 특 히 단엄 수려하며 그 가지가 광채나고 둥글고 맑아야 한다. 正龍에서 忠臣烈士, 高官大爵 , 緊人君子, 仁人孝子가 나오는 穴 이 있다고 본다. 正龍온 幹龍, 元龍이라는 用語와 同一하계 보아도 좋다. 幹龍 이 란 주된 龍脈의 모든 氣運울 받아 山의 中心部를 뻗어 내려온 山울 말하기 때문이다. 傍 龍 은 正龍의 조건에 부합되지 않은, 脈이 편벼되게 기울어진 山 으로 山勢가 사양하여 돌아앉듯 머리를 숙이고 겸손하는 象과 奴僕 이 무릎으로 주인을 돌아보는 모양을 하여 꺼리논 龍身이다. 이와같이 傍龍은 正龍에 대하여 종속적인 자세를 갖게 되므로 이 를 혹은 支龍이 라고도 한다. 죽 幹龍에 대 한 補助龍의 여 할을 맡게 되므로 定穴은 不可하다. 後述할 四神砂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뿐이다 .15) 2) 眞龍파 假龍 雪心狀에 龍은 勢로서 보고 穴은 形으로 살핀다(觀龍以勢 察穴 以形 )16) 는 말이 있 다. 龍勢의 참과 거 짓을 分別하여 龍의 眞, 假롤 아는 것은 風水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假龍이면 그 후의 脈勢와 形局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生氣가 들어 있지 않은 빈껍질이 되기 때문이다. 15) 辛係柱, 前撮합, pp. 61~2 . 韓松溪, 前掃찬, pp. 67~9. 東谷, 前擇書, pp. 62~3. 16) 『雪 心試』, 「辨 論篇 」, 形勢辯 ( 죠灣 , 竹林꿉局, 1976 年刊)

眞龍이란 우선 朝宗山이 수려 장엄하고 龍身이 生動하며 龍勢의 뻗어 내 림 (行度J이 장막을 펄찬 듯(開帳J, 그 中心울 뚫고(察心〕' 星峯이 수려하고 枝脚과 桃悼가 있고 起伏, 刻換, 過峽이 있어 변 화가 많으며 벌려 퍼지고 드날리고 굴곡하고 달리고 뒤는 等의 아 름다운 형세와 入首目에 穴場이 분명하고 明堂이 平正하고 案山이 朝 貢 하고 물이 有情하여 法에 맞는 山을 말한다. 假龍을 밝히기 어려운 접은 이것도 또한 祖宗 開帳 等 眞龍이 갖 추고 있는 모돈 것을 두루 갖추고 있다는 것인데 다만 그 모든 것 이 格에 맞지 않아서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 이 차이 접 이 다. 따라서 보통의 안목으로는 龍의 眞, 假를 혼동하기 쉽다. 이것을 제대로파 악하기 위해서는 後述할 龍의 形勢에 대한 인식이 되어 있어야 한 다. 假란 본래 眞과 흡사하면서도 眞이 아니기 때문이다. 假龍은 祖宗이 있으나 出脈이 아름답지 못하고 장막을 열었어도 脈이 中心으로 뻗어나가지 않고 혹 容心이 되었어도 보내고 맞는것 이 없고 枝脚아 있으나 兩邊이 고르-지 못하고 過峽온 있어도 막아 보호하는 山이 없고 星辰이 있으나 추악하여 殺氣를 며고, 穴場이 있으나 모호하여 분명치 않고 靑龍 白虎가 있으나 뒤집히거나 달아 나 無情하고 朝應하는 山이 있으나 거슬리어 추악하고 透造함이 없 고 단단하고 울퉁불퉁하고 起伏이 있으나 지나는 脈의 線이 없고 게으르고 변화 없고 물이 快하고 바람이 닿고 굴이 패이고 절벽이 있 고 부스럼 같고 砂格이 아름답지 못하고 龍勢가 허 약하고 살이 없 이 뼈만 앙상하며 脈이 뚱뚱하기만 하여 찰목전 목이 없는 것 둥이 다. 假龍온 당연히 假穴울 맺어 不吉하다. 蔡西山이 말하기를 〈假龍이 사람을 그르침이 많은 것은 그 페포 한 정신이 사람의 안목을 현혹하여 眞龍과 다름없는 듯하나 그를下 手하는 바가 많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돗이 假龍의 판단은· 오랜 경험이 쌓여야 터득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1 7) 17) 韓松溪, 前掃항, pp. 71~4. 東谷, 前撮합, pp. 63~4. 村山智順, 前撮합, pp. 29~32.

3) 貴籠과 賤龍 옛사람은 祖上이나 부모가 훌륭하면 그 子孫도 대개 훌륭하다고 생각하였는데 컬처한 身分制度下에서는 오히려 당연한 결과라 할수 있다. 龍의 貴賤도 祖宗山과 父母가 되는 山이 특이하고 그에서 나 온 脈이 中央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변화무쌍하면서도 龍의 本 身울 잃지 않은 것을 貴 하다 하고 그렇지 못한 것은 賤하다고 한다. 이것도 역시 龍 의 眞假를 판별하는 일처럼 보는 사람의 主觀이 깊이 게재될 소지를 안고 있는 부분이다. 調和, 均衡울 이루면 責 龍 그렇지 못하면 賤龍이지만 이 경우 服힛勢의 흐름에 變化 가 없으 면 안되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經에서도 貴龍울 일컫기를 〈十山九水가 비록 함께 모여도 眞龍이 中央에 있어야 이상적이며 入穴할 무렵에 앞에서 맞이하고 뒤에서 옹호하고 좌우에서 시위하고 혹은 물이 明堂으로 향하여 들어오고 기이한 峯密온 하늘 높이 벌려 서있고, 혹 거북, 뱀, 印 章 , 칼, 旗, 복 등이 벌려 있는 바 소위 三千分 臺 와 八百蓮花가 있는 모습과 같 은 것〉이라 하였다 .18) 이때 龍의 최초의 發脈之山인 太祖山온 龍의 貴賤울 결정짓는 중 요한 요소가 된다. 山 龍語類 에는 太祖山울 〈山이 高大 하고 石骨은 굽이지고 후미지며 諸山이 雄長하므로 멀리서 보면 우뚝 솟아 빼어 나 참으로 볼 만한 모양(太祖山 乃龍初起發昧之山 猶人之有始祖 其 山高大 石骨隣駒 爲諸山雄長 遠望釜秀可觀可愛)〉이라야 한다고 하 였다 .19) 그러나 少祖山의 경우는 다시 變化의 모양을 추구하여 뾰족하고 둥글고 각이 지기를 요구함으로써 결국 형상이 수려할 분 아니라 요 컨대 살아웅칙이는 듯 정신이 충만할 것(少祖山 乃太祖發脈之後再 起之星峯也 一名應星 形與水祖不同 或尖或圓或方 精神充滿 形象秀 麗)을 바란다 .20) 18) 韓松溪, 前揚畵 pp. 74~6. 東谷, 前揚書, pp. 64~5. 19) 『地理正宗』, 卷十一, 「山 麗語類」 , 十六條 皆龍身之辨 20) 『地理正宗』, 卷十一, 「山 問語鎖」 ( 雲菴氏輯 )

결국 調和, 均衡 속에서도 契 化, 生 氣 를 아울러 갖춘 모양의 山 이 貴 龍이 되는 셈이다. 4) 龍의 賓 主, 奴從, 老澈, 長短 穴울 맺는 龍 울 主 'U 이타 하고 主 龍 이의의 모든 龍 울 賓 龍 또는 客龍이타 한다. 賓龍 이 主 龍 올 보호하고 영입하고 侍 衛 하는 것을龍 의 奴從이라 한다. 죽 奴從이란 送,托, 造 , 樂, 朝,案, 應, 對, 署 , 迎, 侍衛, 來 輔하는 모든 山울 가리키는 말이니 穴 場 뒤에 있는 山울 送,托, 蓬, 樂이라 하고 穴 場 앞에 있는 山울 朝, 案, 應 , 對 라 하고 둘러 포옹하여 앞을 지나는 것을 耀 이라 하고, 달려 읍하는 것을 迎이라 하며 左右에 모시는 것을 侍 衛 또는 來輔라 한다(그림 3-1) .

從그 슬_U:74S `립電 衍 3h`2-1 龍 의 勞急}~ )여 러 모`.? .양 !

主人과 賓의 관계는 반드시 손님이 主人울 감싸안돗 공손한 형세

믈 취 할 것 을 바란다. 蔡牧堂은 〈地理는 人 事 와 비 슷하니 나를 向 하는 이는 반드시 주선하여 서로 더불어 사귀는 뜻이 있고 나를 둥 지는 자는 반드시 싫어하여 돌아보지 않는 형상이 될 것이다. 따라 서 상세하게 賓主를 살피되 그것이 분명치 않으면 葬事 할 수 없고, 賓 主가 陰陽이 밝지 않으면 다두는 꼴이 되어 좋지 않다. 大地의 웅 결한 곳에는 山과 물이 모두 有情한 것으로 正穴이 정해지떤 서로 朝應하는 기색이 역력한 것이라 〉 하였다. 따라서 賓 이란 山분이 아 니타 물도 可함을 알 수 있다. 또 〈대개 땅찾는 大法온 한 고을 한 동리 한 나라 안에 당도하면 먼저 물의 형제가 어디로 돌아가며, 그 水城이 水勢로 더불어 서로 모이는 곳을 살피떤 가히 땅울 찾을 것이나 水城이 둥저(背J 水勢 로 더불어 反 背 되면 착안할 것이 없다〉고 하였다. 물이 賓 이 되는 경우는 得水法에서 상술코자 한다. 결국 正 龍, 眞龍 , 貴龍 인 主龍울 朝應, 迎途, 護從 하는 형세의 賓 龍이 있으면 좋다고 본다. 21 ) 長龍은 3,4 百里 내지 千里룰 이어 穴을 만드는 간 龍脈 이고 短

龍은 30 里 以內의 짧은 龍勢를 말하는데 사 1 郡의 都邑地로는 물론 長龍울 바람직한 것으로 치고, 일 개인의 陰 穴로는 短龍도 무방하다 고본다. 또 龍脈이 거칠고 크며 서로 잇달아 있는 것을 老龍, 巧少退却形 울 徽龍이 라고 부른다. 22) 5) 龍의 行止, 分裏 背面, 餘氣 山이 이어져 나아가는 곳은 浜龍 이 作穴하는 곳으로 보지 않는다. 葬書에 〈따라서 먼처 龍의 나아감을 살펴야 한다. 行龍하다가 氣가 머무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쓸 만하다. 만일 氣가 ' 머무는 곳이 없다 떤 空亡한, 脈이 없는 龍일 분이다 (然要先須察其行龍行 龍 於此而有 21 ) 韓松溪 前揚ill, pp. SO~82. 束谷, 前jij 합 , pp. 65~7. 22) 村山智 l 傾 , 前撮간, pp. 35~6. 李熙德, 前損af, p.1 97.

止氣 則可用 若無止氣 則是空亡無脈之龍)〉하여 行龍中 머무는 곳이 止氣된다고 보았다. 23) 대개 龍은 그 일어나던 곳을 살펴 그치는 것을 타는 것으로 龍의 그치는 곳을 찾아 비로소 穴율 구하게 된다(故觀形之止 郞識氣之緊 原其起 淨店其氣之 所從生乘其止 用其氣之所從結). 24) 雪心賊에도 衆山止處是眞穴 衆水衆處是明堂이라 하여 역시 龍의 行止에 止處를 眞穴이 맺는 곳으로 간주하였다 .25)

23) 郭茨 「葬홉」(『地理正宗』, 卷二) %)上撮합 25) 雪心默正解, 卷一, 「論五星」

地形上 龍의 止處란 바로 山의 連峯이 그 흐름을 다하는 곳이 되 기 때문에 바로 山地와 平野部의 접촉지접이 될 수 있어 解釋上 매 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죽 眞穴, 明堂이란 山脈이 한창 세력을 펼치는 行龍中에 있는 것 이 아니라 山勢가 다하여 그치는 곳, 바로 平野에 접하는 부분에 있 다는 것으로 緊落의 立地 중 긍정적 측면에 둘 수 있는 用例이다. 分勢이란 龍이 가지를 나누고 脈울 나누는 것을 말하는데 龍은氣 의 모임을 받아야 吉한 것이기 때문에 나뉘어 나간 分脈이 너무 많 으면 氣가 흩어져 힘이 가볍고 기운이 약하여 結穴치 못하는 것으 로본다. 나눈 가지가 짧고 적은 것은 鬼라 하고, 길고 많은 것은 快이라 하는데 무릇 鬼와 法울 가전 龍은 氣가 漏淮되고 힘이 쇠약하여 吉 穴울 맺지 못하니 다만 道觀 僧堂과 祠堂 둥의 자리가 될 분이다. 그러 나 分勢된 龍이 다시 돌아와[回龍], 主龍올 보호하여 龍身이 되면 매우 좋게 여기는데 楊公은 〈法이 있어야 福이 있고 鬼가 없 으면 벼슬이 없다〉고 할 정도이다. 背面이란 龍의 有情 無情으로 구벌된다. 面이 되는 곳은 광채가 나고 정돈되어 있고 수려하여 보기도 좋은 것이니 面에서 穴울 찾 아야한다. 背가 되는 곳은 낭떠러지로 되어 높고 형준하고 부스러지고 추하 여 枝脚도 없고 路하고 여위어 無情하게 보이는 곳이다.

죽 面이 되는 곳은 龍身이 넓고 평평하고 지각이 사귀어 보호하 고 內堂과 外堂이 關服하고 물이 環 하여 포옹되는 곳이다. 張子微가 〈山이 고리 모양[環抱]이 되 고 물아 모인 곳이 龍의 面 이 된다〉고 하였는데 핵십율 제시한 표현이다• 간혹 主龍의 氣運이 盛하여 이미 穴을 맺은 뒤에도 남은 기운이 있어 수십 리에 걸쳐 작은 穴울 웅결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龍 의 餘氣라 한다. 龍의 餘氣는 大龍의 경우보다 小i법의 경우가 있을 가능성이 더 많다. 張子微의 지적대로 〈大龍온 아무리 長遠하게 뻘 어나가도 氣脈을 모두 穴에 끌어들이기〉 때문에 餘氣가 있기 힘든 것이다. 26)

26) 韓松溪 前掃 書 , pp. 76~9, 82~4 東谷, 前掃書, pp. 67~8 .

6) 龍勢 +二格 池天機에 이르기를 〈龍에는 十二格이 있으니 죽 生龍, 死龍, 强 龍, 弱龍, )I 頂龍, 逆龍,進龍, 退龍,福龍, 病龍,勅龍, 殺龍이 그 것이다. 이들 중 生龍, 强龍, 進龍,順龍, 福龍의 五格은吉하고 死 龍, 弱龍, 退龍, 逆龍, 病龍,勅龍, 殺龍의 七格은 凶하다〉고 하여 龍勢에 의한 열두 가지 格울 제시하고 있다. (a) 生龍 生龍은 星辰峯이 森落하고 枝脚이 살아 있으며 行度가 四方으로. 활짝 벌려 이꿀어 나간 형상의 龍이다. 寶鑑에 이르기를 〈祖山으로부터 出脈한 이래 크게 혹은 적게 起 伏울 이루어 生蛇가 물을 건너는 것같고 勢률 내려 몸을 내밀되(出 身) 左右에 다리가 있고 穴場이 단정하고 應하는 山과 案山이 분명 한 것이 生龍이니 이 龍이 가장 吉하여 주로 富貴登名 하고 人丁이 旺盛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모든 保局이 順應한 형세를 일컬은 것이라 볼수 있다. (b) 死龍 死龍이 란 峯뿐이 모호하고 手足이 방불하여 本體가 곧고 딱딱해 서 마치 찰라놓은 나무토막 같은 것이다.

山의 變 化가 극히 미약한 것인데 마치 가지없는 나무나 죽은 미 꾸라지같이 腕種 스런 모습을 띠어 生 氣 가 없는 것이 특칭이다. 氣 의 웅결이 이루어질 수 없는 最 大 凶格으로 貧窮 下賤은 물론 絶孫 의 惡 地로 여 겨 진다. (c) 强龍 이것은 氣勢 變 化가 크고 힘이 있으며 정연하여 龍 勢 가 웅장한형 태 를 취한다. 맹호가 出林하는 형세로 매우 강성한 힘을 내며 大吉 格 으로 꼽힌다. (d) 弱龍 星峯 이 빈약하고 변화가 없으며 枝脚이 짧고 龍 身本 體 가 축 늘어 진 無髮 無力 한 龍 울 弱 龍 이 라 한다. 祖 山에서 出 脈 한 뒤 나부끼어 흩 어져 온전하게 거두어들인 것이 없이 험고하고, 힘줄이 뜨고, 배가 드러나고, 뾰족하고, 작고, 게을 러 늘어지고, 빗기고, 의지하는 듯하고, F 街하고, 깎이어 충실치 못 하며 , 虛 하고 윤덱함이 없어 시돈 풀잎, 오리목, 오리나무 , 굵주린 말이 馬板 에 엎드린 듯, 물고기가 물이 건조한 바닥에 힘없이 늘어 진 돗 보이는 龍 으로 잘못 定穴하면 貧 孤와 病弱短命하게 된다. (e) 順 龍 이 龍 은 星峯 이 順히 나오고 枝脚도 順히 펼치고 行度가 둥글게 모인 것이다. 이 龍 이 祖山을 떠난 뒤로 高低의 순서가 있고 보내고 좇아 앞을 追 眼 하여 나가고 上下가 같이 照應하고 左右가 環抱되고 무리 별이 北極을 朝 貢 함과 같고 무리 물이 東으로 모여 나가는 길이 된 것 이다. 富貴綿 綿, 孝順和睦, 多福多 壽 의 吉格으로. 친다. (f) 逆 龍 逆龍이란 星 峯 이 기울어지고, 枝脚이 거슬리어 믿어 나가고 行度 가 괴이하며 어긋난 龍 울 말한다. 順 龍 과 배치되는 龍勢믈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되며 마치 새가 거 구로 나는 듯한 거부감을 주는 것으로 逆臣, 伴逆無道의 凶格으로 본다.

혹 일변이 順, 일년이 逆으로 나온 賜은 反哉이라 하여 逆龍과 同一한 것으로 본다. (g) 進龍 星辰이 가지런하게 싸이고 枝脚이 고르며 行度의 次序가 있는 龍울 進龍이라 한다. 高低 起伏에도 순서가 있고 마치 봉황이 두 날개를 려고 차차 날아오르는 듯한 형상으로 富貸雙全의 大吉格으로 찬다. (h) 退龍 退龍은 星辰이 尖하고 枝脚이 차례가 없고 行度가 뒤로 물러가는~ 龍이다• 처음은 낮고 작으며 나중에 커서 龍의 높음이 마치 사람이 디털방아를 밟는 것 같고, 배가 여울로 거슬러 올라가는 듯, 높고 낮음이 차례를 잃은 것으로 精氣가 없어 大凶格이다. (i) 福龍 福龍이란 祖宗山이 수려 장엄하고 좇아 호위하는 山이 많은 것을 말한다. 設從이 稷密하고 前後가 相應하여 마치 유복한 사람이 위로 祖上 의 음덕을 입고 아래로 奴僕의 힘을 얻어 안락한 생활을 누립과 같 다. 富貸悠遠, 壽 福康寧, 傳之子孫의 吉格이 다. (j) 病龍 龍昧이 祖山울 떠난 뒤로 氣가 駿雜하여 아름다운 가운데 순수치 않으며 出身 行度가 起伏과 頓缺과 활발히 달리는 것이 비록 可하 나 枝脚의 변이 고르지 못하거나 한 변은 아름답고 한 변은 추하며 일철은 可하나 일절은 不可하며, 四山의 보내고 護從함이 주밀치 못 한 것 等이 病龍이다. 죽 龍의 大勢불 두루 갖추었다 할지라도 그 중 어느 곳에 병동 이 있거나 또는 병통이 없어도 龍의 本身이 상하거나 穴場 및 기타 중요한 곳이 끊기거나 패이거나 험상스럽거나 결함이 생긴 龍으로. 惡疾敗亡의 凶格으로 본다. 예컨대 혹 흙과 돌을· 파고 굴을 과내 고, 우물도 파고, 혹은 當穴된 곳에 行路가 있고, 혹은 山頂에 祠堂이 있어 星辰의 머리를 傷하고, 혹은 그릇 陽宅울 作하려 고 파낸 등등이 모두 氣諒울 상한 것 이 다.

(k) 幼龍 勅龍이란 龍身이 나뉘어 쪼개전 것이 많은 龍이다. 龍이 祖山울 떠난 이래 옳은 가지가 없어 東으로 向해 이끌고 西로 向해 이끌리 며 左右에 나누고 쪼개어 摘庶가 不明하고 傍脈인지 正脈인지를 가 릴 수 없고, 龍脈이 모이지 않아 온전하게 수습됨이 없는 것이다. 明山論에 의하면 〈가지를 나누고, 脈울 쪼겐 것이 多大하고 혹反 對되고, 혹 달아나고, 혹 꺾어지고, 떠나고 기울어지고 뾰족하고 마 르고, 약한 것이 모두 鬼勅으로 무릇 龍이 나뉘고 쪼갬이 많은 者가 勅이며, 적은 것이 鬼라 이른다(內外相背 始末相遠 故其山以分支男 諒 反走尖射 皆名鬼助也 二者又以分駿 多者爲助 小者爲鬼.)〉하였고 官 事 에 재액이 많고 疾病에 유의하라는 해석이 따른다 .2 7)

27) 『明山論』, 第十一, 「鬼助」 (r( 仁文化社, 韓國 風水地理菜 말 )

(1) 殺龍 殺龍이란 龍身이 殺울 떤 채로 벗어버립이 없는 것이다. 이 龍은 바위로 뭉쳐지고 철벽이 되어(線巖, 참암], 위험하고, 추 악, 조잡하고 뼈가 드러나고, 돌〔石]을 띠었고, 枝脚이 뾰족하고, 날카롭고, 부서 지고, 무너 지고, 기 울어 지고 부스럼 〔腕種] 같고, 단 단하고, 곧고, 혹은 온전히 미끄러진 데와 過峽이 없고, 혹은 벗었 으나 惡한 형대를 바꾸지 못하고 毛骨이 棟然할 만큼 무서운 형모 는 모두 殺龍이다. 가장 흉악한 龍으로 간주된다. 3. 五星論 1) 原理 前章에서 선명한 바와 같이 龍은 나아감에 있어 곳곳에 結節을만 들게 되는데 이는 諒勢가 隆出되어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 죽 우뚝 솟은 산봉우리를 하늘에 있는 星體가 地上에서 형상을 나타낸 것으 로 보아 여기에 五行思想울 可視的 實體로서 덧붙여 五星을 일컫게 된다. 따라서 五星論의 理解는 五行思想에 서 시 작되 어 야 한다. 〈經에 이르기를 하늘에는 五星이 있고 땅에는 五行이 있다. 하늘

은 별자리물 나누고 땅은 山川을 가론다. 氣는 땅속을 흐르는 것이 지만 그 形은 하늘에 걸려 있는 고로 形울 마루어 그 氣를 볼 수 있는 것 (經曰 天有五星 地有五行 天分星宿 地列山川 氣行於地形麗 於天 因形察氣)〉 28) 이 라는 靑蒸經 대 목에 서 도 五星論은 五行說에 맥 울 두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28) 『地理잡 蔡 艦』(1 975 年, 죠 灣 , 華成 홉 局)

여기서 말하는 五行思想은 鄒衍 (B.C.305~240) 의 陰陽說로부터 파 생된 五行說에 易經, 天文, 占星, 地理, 歷史 等의 諸術이 가미된 것이기 때문에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전통적 인 五行說은 金, 木, 7k, 火, 土의 相生과 相荊의 관계 로. 설명될 수 있는데 相生은 제목 자체가 의미하는 바와 같이 서로 다 론 원소를 생산한다는 사고이다. 나무는 불에 타니 불을 생산하며 [木生火J 불은 탄 재 가 흙이 되 니 흙원소를 만들며 [火生土J, 土層 가운데 광물질이 이루어치니 금속을 만들어 내고[土生金J, 금속· 자 체는 고열에 녹아 수분을 지니게 되니 물을 만든다[金生 7k J. 마지 막으로 물은 柏木의 수분을 형성하니 나무를 생산하여[水生木J, 결국 木一火--+土一金一水一木의 순서로 相生의 순환을 그리게 된다 는것이다. 五元素(五行)는 제각기 先行하는 원소를 相勝하고 있다. 이 相勉 관계의 설명은 나무로부터 시작되는데 나무는 쟁기를 만들어 땅을 경 작하니 흙을 정 복하고[木웬土J, 쇠 로 된 칼로 나무를 조각할 수 있기 때문에 쇠는 나무를 극복하며[金勉木J, 쇠가 불에 녹으니 불 은 금속을 이기고[火웬金J, 불을 끄려면 물을 가져야 하니 물이 불 울 이기며[水웬火J, 저수하는 제방은 흙으로 되었으니 흙은물을이 간다[土刻水J는 것 이 다. 그러나 실제 風水에 應用되는 五行 關係의 論理는 매우복잡한편 인데 陰宅要誤 序에 〈太極온 無極이니 太極이 비로소 判定됨에 陰 陽이 始分하여 陰中에 太陰少陰이 生하고 陽中에 太陽少陽이 生하 고 金木水火土 五氣가 流行하므로 八卦가 成하고, 重하고 倍하여 八八이 六十四卦가 되고 卦中에 三百八十四交가 되고, 父中에 二十 四山이 應하고 山中에 六十甲子가 定해지고 甲子中에 二十四節候 7 1-

配하며 節候中에 六十亡命이 付하고 亡命中에 相핸이 있으니 웬中 一萬八千殺은 分金으로 除하나니 學書는 必히 天地와 度數를 知得 해 야 山理의 吉凶 而顔룹 을 알지라〉하여 모든 원리 의 상호관련성을 제 시해 주고 있다. 流行되는 風水家가 사용하는 五行의 종류도 많아, 正五行, 洪範 五行, 走馬六壬, 斐 山五行, 四大局, 眞 五行, 四局五行, 消息法, 淨 陰陽 八卦法, 九宮法, 九宮 變 父黃金法, 獸名法, 룝廣目尾 等 이 1 것 이 다. 29) 이 에 따른 方位에 약간의 차이 가 있는데 표 3 一災十 같다.

29) 金榮昭, 1'5 /5, 『陰宅要缺』, 明文堂, pp. 3~5.

표 3-2 二十四方位의 各 五行gIj 배 속표 二广:\니니기니良 寅 1 기니니미미已 正五行 7k 7k 7k 土 土 木 木 木 木 土木 火 洪範五行 火 7k 土 土木 水 水 木 火 7k 7k 木 走馬五行 木 火 金 7]( 木 火 金 7K 木火 金 7k 棋雙四 山五五 行局行 火7水k 7火7Jk( 金金7k 金金7k 金火水 火金木 木木 木木 木7k 木7k 木金 ;金 1 四 大 7k 7k 木 木 火 火 木 木 火 火 金 金 金 7J( 7k 7k 二 1 기니기니坤 申 1 기미辛 戌 1 미기 正五行 火 火火 土 土 金 金 金 金 土 金 水 ! 洪範五行 火 火 金 土土 7k 土 金 水 7k 金 金 走馬五行 木 火 金 7k 木 火 金 7k 木 火 金 水 雙 山五行 火火 木 木 7k 7k 金金 火火 木木 四 大火 火 金 金 水 7k 金 金 7k 7k 木 木 四 局 水 7J< 木 木 木 木 木 木 火 火火 火 眞 五行 火火 火 火 火 金 金 金金 金 金 水

2) 五星의 體와 勢 金星은 둥근모양울 한 것 이 다. 뾰족하지 않고 고요하여 動하지 않 는다. 高山의 金星은 鍾 혹은 가마(釜J와 같고, 머리가 둥글며 광채나고 살찌고 윤덱하고 기울지 않아야 吉格으로 친다. 平岡의 金星온 삿갓〔笠.J같고 거꾸러진 말〔斗J 같고 둥글고 구슬 이 달린 듯한 것이 吉 格 이다(그림 2-5 참조). 平地의 金星은 둥글고 실이 찌고 弦稷이 있는 것이라야 吉格이다. 그러나 너무 살찌떤 베부른 것이니 凶하고, 너무 여위면 마른 것이 니 凶하다. 木星은 곧고 모나지 않으며 直容 한 것이다, 성질이 순하고 힘은 번창한다. 高山의 木星은 정연하게 우뚝하고 높이 솟아 기울어지지 않아야 吉格이요, 平岡의 木 星 은 가지가 완전하여 向하고 안고 之玄字 같 으면 吉格이고, 平地의 木星은 우아하고 아름답고 윤택하여야 吉格 이 다(그림 2-5 참조). 木이 너무 살찌떤 닭 같으니 凶하고 너무 여우1 면 마른 것이니 凶 하다. 木星은 구불구불하게 물이 흐르듯 큰 굴곡없이 위에서 아래로 부 드럽게 뻗어간 형태로 沈 潛 의 성질을 갖는다. 高山의 水星은 거품(泡〕 같고, 굽고, 펼쳐진 것이 吉格이요, 平 岡의 水논 평평하게 透造하여 굽은 듯한 것이 吉格이 되고, 平地의 7k 는 자리를 편 돗 물결천 것이 界水를 둥그렇게 두르고 약간의 起 伏이 있는 것이 吉格이다. 물이 너무 살찌면 蕩 한 것이니 凶하고 너무 여위떤 역시 마른 것 이니 凶하다. 山의 모양이 火炎, 魚票i砂 , 消峻 , 죽 불꽃같이 뾰족뾰족하고 날카 롭게 생간 것을 火 星 이라 한다. 高山의 火는 수려 하고 뾰족하계 솟고 하늘을 불사르는 듯 朝山을 炎炎히 이룸이 吉格, 平岡의 火는 몸을 늘여 뻗치고 종횡으로 불꽃이 생긴 가운데 水星울 얻어 서로 連한 것이 吉格, 平地의 火는 날고

뛰어 밭 가운데 曜가 생기고 물 속에 突이 있으면 吉格이다. 火가 너무 살찌면 滅하는 것이니 凶하고 너무 여위면 操 한 것이 니 凶하다. 土 星 의 형은 모가 나고 어리어 반듯한 것으로 중후한 인상을 풍 간다. 高 山의 土는 창고, 병풍같이 중후, 웅장, 단정하고 모가지고〔方〕 평평한 것이 吉 格, 平岡 의 土는 퀘나 구슬같이 중후하고살이 껴 기 울어지지 않은 것이 吉格, 平地의 土는 깎는 듯하고 모가나고 두텁 고 평평하고 가지런한 것을 吉格으로 찬다. 土가 너무 살찌떤 막히는 것이니 凶하고, 너무 여위면 降한 것이 니 흉 하다. 대체로 山의 생간 모양이 五行中 어느 것에 分明히 흡사하고 수 려, 장중하며 陽 明하고 균형을 이루어 調和된 것을 좋은 것으로 여 기는 경향이다. 3) 五星의 質파 用 五 星 의 淸 , 濁 , 凶, 三格에 의 하여 그 吉凶울 論하는 바, 淸이 란

표 3-3 五 星 의. 三格別 用 五\星| 金西 星方 j1 木東星方 11 水北星方 11 南火星方 11 土中星央 淸 〔:星 ··文正 意貞 顯達 文文 星章· 貴顯 秀貴文 星早人 ·度 量 魏權勢 .大 貴 尊五王 福侯星 具卿相全 濁凶 威武天腦 死 星星名·· 敗權滅勢· 軍 賊 刑才問才 星星罰松能 ···技殺不術 具傷 柔蕩小음간柔身星星 弱사人病란 ·••· 不총방빈振궁 명탕 !殺살盜 i 벌星賊 ·相•·· 反조참死天 급혹滅折 재혼海富유자 손 암星산약星 풍•· 번우不부성둔 辰

星辰이 수려하고 광채가 나는 것이요, 濁이란 星辰이 살찌고 두텁 고 단정하고 무거운 것이며, 凶이란 星辰이 추악하고 거칠고 殺울 떤 것을 말한다. 各 星辰別 用은 앞의 表와 같다(표 3 一 3). 4) 五星의 格 五星의 格에는 五星衆講格, 五星 火 連珠格, 五星 歸垣格 等 세 가지가 있다. 土 金 五星衆 講格 이 란 金木水火土 五星 t ·`· ? 마이 치둥 글賢게人 듈모이인 모형여상 앉을아 말 도하덕는을 바 강, 론하는 형상과 같다 하여 붙여전 이 름으로 지극히 貴하 게 여기는 格이 水 다(그림 3-2). 이 경우수근 五行의 相 生과 相刻을 論 하지 않는다. 그립 3-2 水五 星衆講格 I 로 五그星사連이珠를格 온두 지五 星않 이는 것串이連다 하.여 서앞 의 衆講格은 生荊울 論하지 않으나 木 連珠格은 生荊을 論하여 吉凶을 定 金 土 한다. 第一格 은 五星이 各各 正位 置 에 있는 上 等 의 資格, 第 二格은 南 水, 東木, 北火, 西土, 中金으로 連 珠相生하는 至高至貴한 格, 第三格 火 」 은火土金水木후 1 南에서 相生되고 第四格은木火土金水로北에서 相生 그림 3-3 五星連굽끊i 되니 모두 貴格 이다(그림 3-3 ). 그러 나 第五 第六格온 모두 五星相戰格으로 大凶格임 을 면치 못 한다고본다. 五星歸垣格온 五氣朝垣, 五星升殿또는 五星覇元이라 하는 것으

로 吉格의 五星이 五行方位를 찾아제대로자리잡은경우를 말한다. 즉水星은 北쪽 吹方에 장막을 치고, 木星은 東쪽 震 方에 直立하고, 火 星은 南쪽 離方에 솟고, 金星은 西 쪽 免方에 벌리며 土星은 中央에 居하여 五星의 세력이 비등한 가운데 모든 星辰이 단정하고 아름다우며 高低 가 엇비슷한 가운데 浜穴올 융결하면 天下의 明地大穴이 되며 君 王이 나온다는 格이 다(그림 3-4).

水 서 ; A.、. 후金 二土 笠 | 싫炤¢ . 火 느――- - 그립 3-4 五星歸垣格

4. 九曜論 五星의 형체가 뚜렷하지 못한 것을 그 덫格 울 만들어 일컬을 때 九星 혹은 九 曜 라 한다. 五星은 正格이고 九星은 그의 곁가지인 變 格이기 때문에 術士에 따라서는 九曜를 무시하는 경우도 있다. 물 론 五星보다 九星울 더 많이 이용하는 術士도 없지 않은 듯하다. 九星에는 두 가지, 즉 楊公九星과 鹿公九星이 있는데 이 중 흔히 쓰이는 것은 楊公九星 한 가지분이다. 楊公九星은 食狼星, 巨文星, 祿存星, 文曲星, 廉貞星, 武曲星, 破軍星, 左輔星, 右弼星으로 水의 去來를 論한 고로 天盤이라 在天 九星이 고, 壓 公九星온 太陽, 太陰, 金水, 紫氣, 天財, 天문, 孤曜, 操火, 掃蕩으로 砂의 貴賤울 論한 고로 人盤이라 在地九星이라 한 다. 30) 이 중에 〈楊公의 九星이 더 욱 極妙한데 , 龍을 論하여 穴울 알 고 穴울 論하여 星울 알며 星온 穴法 中에서 나오고 穴은 星辰 안에 그 뿌리를 둔 까닭에 전실로 萬世에 변치 않을 法이다. 따라서 論 星에 는 의 당 楊公의 法울 따른다. (惟楊公尤極其妙 論龍而知穴 論穴 而識星 星出于穴法之中 穴根于星辰之內 識萬世不易之法 故論星當以 30) 金榮昭, 前掃 畵 p.2 97.

楊公爲的)〉 3l) 德龍 經 에 의 하면 〈九星이 란 食,巨, 祿, 文, 廉, 武, 破, 輔, 弼이 다. 食, 巨, 祿,文,廉,武, 破논 北斗七星이 고 尊 帝二星이 北斗률 左右에서 輔 弼하여 元氣믈 幹旋함으로 九星이 된다(九星者 食 巨祿 文廉武破輔弼 自食至破 爲北斗七星 而尊帝二星 又化爲輔弼 左右北 斗 幹旋元氣 是曰九星)〉하여 北斗七星과 그를 보필하는 두 개의 별 자리에 對比하기도 한다 .32) 北斗七星은 道敎와 연결되는 말로서 星 家의 말에 따르면 중요한 별은 七政과 四曜, 十一 曜 , 南北斗라 하는 데 襄 宇雜記에 보면 七政이란 日, 月, 木,火, 土, 金, 水星이요, 四曜는 羅 候, 計都,紫氣, 月 孛 星인데 七政과 합하여 十一 曜 라 한 다. 南斗六星은 天府,天相,天同,天梁, 天樞, 天機星이고 北斗七 星은 食狼, 巨門,祿存, 文曲, 廉 貞 , 武曲, 破 軍 의 일곱 별이 다. 33) 五星 論 과 마찬가지로 九 曜 의 적용도 매우 어려운데 특히 密 敎 34) 에 서 말하는 本命元辰 35) 의 경 우처 럼 子年에 난 사람은 貧 狼星, 丑 年, 亥年에 난 사람은 巨門星, 寅年, 戌年에 난 사람은 祿存星, 卯 年, 酉年에 난 사람은 文曲星, 午年에 난 사람은 破 軍 星 等으로 분 류하기에 이르면 生年과 相 墓 의 관계를 살펴야 하는 것인 만큼 더 욱 복잡해진다. 그 體 물 보면 食狼은 食 狼木으로 크게 木星의 범 주에 들며 一尖 하여 直長한 形 勢 롤 취한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九 曜 는 五 星 을 正體로 하는 만큼 巨視的으로는 五星에의 연결이 불가피하다고 볼 수도 있다. 入地眼全 書 에도 〈穴 f요 는 五星이 正 體 로 으뜸이요, 九 曜 는 變體 로 그 다음이 다(穴 體 以五星 體爲 上 九 曜 之 變體 次之) . 〉라고 지 적하고 있다. 죽 食 狼온 木星의 범 주에 들어 죽순이 돋아나돗 뾰족하고 가지 런 하게 생간 山 體 를 말한다 .36) 31) 『山法全 書』 , 卷之七, 「九 星 穴法」, 上 海 , 九 經困 局 32) 『地 理 正 宗』 , 卷三, 「 愍龍經 」, 垣 局篇 ( 孫灣 , 端 成 합 局) 33) 『朝鮮道敎 史 』 , 「 道佛 行 事 思 想雜柱 」, 其 四, 第二十六 효 , 七 星 34) 佛敎 의 眞言 宗 을 말합 35) 法 을 닦는 재만이나 道場을 만 둘 어 놓고 .:z. 사람의 本 命星 에게 제 믈 지내어 재 앙이 없고 수명이 길어지기 을 비는 것 36) 『格麗經』 , 「垣局 篇 」, 貧 狼頓起笑生 峰

巨門은 雙腦 가 모두 回平한 巨門土의 土星이고, 祿 存은 金頭에 水 脚 이 면서 역 시 祿 存土이 기 때 문에 絶體 로 病 龍 이 된다. 37 ) 文曲은 비단 한 폭을 비스듬히 펄찬 38) 듯한 모양의 文曲水이며 廉 貞 은 불 꽃 이 솟아오르는 형국의 廉貞火이고 武曲은 三 腦 가 金箱 갇 은 武 曲 , 破 軍 은 金 頭 에 火 脚 인 역시 破 軍 金, 그리고 左 輔 는 高 圓 하여 鍾 과 釜 를 稷 한 듯한 左輔土, 右弼은 低圓하여 扇形인 右弼金 이 된다 .39) 九星의 用울 보면 그 形局으로 보아 食 狼, 巨門, 武曲星이 가장 吉하고 左 輔 右弼 星 이 다음으로 吉하여 소위 五吉이 라 부르며 , 祿 存, 文曲, 廉貞, 破 軍 의 나머지 四星은 凶星으로 본다 4D)( 그림 3-5 ).

37) 『 地 理 新 法 , 胡 舜 申 .!I , 卷 上, 第 十一 「 祿 存 論 」 38) 金 榮 昭, 前 採홈 , p. 297. 斜布 R 一 幅 39) 『 地理正 宗』 , 卷 三, 惡龍經 40) 『路 開經』 , 「垣局 篇 」, 〈 其形局 貧巨武 爲 上吉 輔弼爲 次吉 所 謂 五吉 祿 文 廉 破四 凶星也〉 .

右 弼星

그립 3-5 九 昭 의 山모양

그러나 楊公九星은 名義가 적당치 못함이 결접인데 예컨대 食狼 온 굶주린 이리가 먹이를 탐하는 꼴인데 吉하다 하고 廉貞은 청령 하고 곧다는 의미이면서도 凶하다는 것이 그것이고, 墓 公九星 역시 天文誌에도 없는 이름을 굳이 꿀어 쓴 접이 결접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五星法에 비하여 九曜法온 術法的 性格이 지나치게 가미 되고, 전문성을 띠고 있어 術家에 많이 쓰이고는 있으나 風水의 原 理面이나 學理上의 추구에는 五星의 해석만으로도- 충분하리라 생각 된다.

3 藏風法 1. 藏風의 原理 明堂에 자리잡은 穴 場을 잡는 것이 目的인 風水에 있어서, 明堂 주위의 地形, 地勢를 어떻게 認識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風水의 理解에 매우 중요한 대목이라 생각된다. 明堂 주변의 地勢에 관한 風水理論을 통칭하여 藏風法이라고 하며, 결국 藏風法을 동하여 定 穴도 이루어지는 것인 만큼 실제로 都邑이나 住宅 혹은 陰宅울 相 地함에 있어서는 藏風法이 바로 요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 다. 葬書 에 의하면 〈葬者는 生氣에 의지해야 한다(葬者 乘生氣 也)〉 하 였는데, 이 〈陰陽의 氣는 내뿜우면 바람이 되고 오르면 구름이 되고 분노하면 우뢰가 되며, 떨어지면 비가 되고 땅속을 흘러다닐 때 는 生氣가 된다〉 41) 하여 , 風이 나, 生氣를 모두 陰腸二氣로부터 생 겨난 同質異體의 것으츠 L 보고 있다. 陰陽二氣라는 것도 同 書 에 의하면 원래 하나의 氣가 오르내림에 따라 陰陽이란 이름을 가진 것일 분으로 陽이란 陰의 體요, 陰온 陽의 用(太初之始 本是一陽之氣 一升一降 分而爲二 二有陰陽之名 然腸爲陰之體 陰爲陽之用)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氣마 바람울 타면 홀어져 버리고물에 닿으 41 ) 夫陰陽之氣 憶而爲風升而爲었 奪而爲雷 降而爲雨 行平地中 而爲生氣

면 머문다는 것이다. 따라서 葬者가 生氣롤 얻을 수 있도록 하는· 法術을 바람과 문, 죽 風水라 일컫게 되었다는 것이 葬 書 의 주장이 다(經曰 氣乘風則散 界水則止 故謂之風水 ).42) 그러니까 風水의 法術은 물을- 얻고 바람을 막는 方法을 얻는 데 (風水之法 得水爲上 藏風次之) 중접을 두게 된다. 바람은 地中에서 발생 하는 生氣를 홀어 버 리 므로, 生氣를 포용하고 陰陽의 元氣를 지 닌 바람을 잡아 모을 수 있다면 風水가 노리는 目的에 供할 가능성 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藏風의 필요성이 생간다. 이것은 바람을 막는 것〔防風〕이 아니고 불어서 흩어지고 사라져가는 바람을 잘 꿀 어들여 간수하자는;〔 藏風 〕 의미로 보아야겠지만 실제 相地에 있어서 는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죽 穴場 주위를 山이 둘러싸 고 그 中央의 四地에 陰陽二氣의 結合과 生氣의 활동이 넘치게 하 려는 것이다 .43) 이 것 을 葬 書 에 서 는 古人緊之使不散 行之使有止라 表現하였 다. 혹은 藏風法울 이렇게 설명할 수도 있다. 죽 陰來陽受라는 원칙 에 의하여 占形으로 이어내린 來龍울 回形의 地勢로 받아들여 그. 四形 地勢의 中央에 穴울 定하는 것이 陰腸調和에 맞으므로 그것을 찾는 方法이 藏風法이라는 견해이다. 占形 陰來의 來龍과 四形 陽 受의 中央盆地가 마주치 는 곳에 生氣가 넘 쳐 흐르리 라는 판단일 것 이다. 44) 이때 穴 주위의 山勢를 風水에서는 砂라 칭한다. 山水圖에 의하 떤 〈砂란 穴의 前後左右에 있는 山(砂者穴之前後左右山也)〉이라 하 였다. 45) 2. 四神砂 四神觀念은 전설적 짐승인 靑龍, 白虎, 朱雀, 玄武가 東西南北 혹 온 前後左右 方向울 수호해준다는 데서 나온 것으로 본래는 守護星 42) 『地理正宗』, 卷二, 「葬 書 」 43) 李熙德, 前掃 書 , p. 201. 44) 村山智 順 , 前抵합, pp. 49~51. 45) 『山水圖』, 「砂法」( 筑寫 本입 )

辰의 이 름으로 呂 氏春秋, 淮南子, 天文訓, 史記(天官 書 ), 기 타 緯書 等에 기록이 보인다. 따라서 이는 古代 中國人의 天文思想의 영향 인 것으로, 후에 風水의 穴處 四方의 山勢에 恐依된 것으로 보여 진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四神獸 신앙은 이미 風水 전래 이전인 三國 時代부터 있어온 것이며 高句麗, 百濟의 壇 墓 壁盡上의 四神圖가 이 를 증명한다. 葬 書 에 의하면 四神砂의 위치가 〈左靑龍 右白虎 前朱雀 後玄武 (夫葬以 左爲靑龍 右爲白虎 前爲朱雀 後爲玄武)〉라 하여 穴이 南向 죽 子坐午向울 한 경우 東쪽이 靑龍, 西쪽이 白虎, 南쪽이 朱雀, 北쪽이 玄武가 되는 셈이다. 이에 대해서 雪心賊는 〈靑龍白虎 朱雀玄武는 古人이 四獸로 四方 을 나누던 것 이 다. 靑龍은 木에 속하여 東方, 白虎는 金에 속하여 西方, 朱雀온 火에 속하여 南方, 玄武는 水에 속하여 北方이 된다 (靑龍白虎 朱雀玄武乃古人借四獸以別四方者也 蓋靑龍屬木 故列於 東方 白虎屬金 故列於西方 朱雀屬火 故列於南方 玄武屬水 故列於北 方) 〉고 하였 다. 46)

46) 『雪心默.!, 「辯 論 篇」, 龍虎辯(豪灣 竹林 흄 局)

葬 書 에 언급된 四神tb 의 대체적인 形勢는 〈현무는 머리를 드리운 듯, 주작은 날아갈 듯 춤을 추는 모양, 청 룡은 꿈틀꿈불하고 백호 는 길들어 머리를 숙이는 듯(玄武垂碩 朱雀翔舞 靑龍腕誕 白虎訓 類)〉하여야 되는 것이다. 〈만약 그러한 形勢를 취하지 못하면 시체 를 묻어 원망하고 주인을 마위하며, 시신을 거역하고 달려가 버려 一族破滅이란 재액을 입게 된다(形勢反此法當被死 故虎路謂之卿尻 龍距謂之病主 玄武不垂頭者謂之担展 朱雀不翔舞者騰去).〉 3. 玄武, 朱雀 먼처 玄武砂의 경우를 보면, 여기에 해당하는 穴 뒷쪽(南向인 경 우 穴의 北쪽)의 山으로는 太祖山으로부터 脈勢를 일으킨 龍이 中

祖山울 거쳐 穴 바로 뒤의 小祖山(後山, 혹은 主山이타고도 이르고 마을의 경우 鎭山이라 하기도 함)에 이르기까지를 말한다. 太祖山 等은 看龍法에서 설명되었으므로 여기서는 主로 主山에 관한 것과 그와 긴밀한 관련성을 갖는 穴의 앞쪽(南向인 경우 穴의 南쪽) 朱 雀砂에 관하여만 생각해 보기로 한다. 玄武와 朱雀의 關係논 주인과 손님, 남편과 아내, 임금과 신하의 사이처럼 인식된다. 이것은 陰來 陽受의 原理에 따른 것으로, 玄武 가 머리물 들어밀 듯 陰來로 다가오는 것을 손바닥을 오므린 듯한 陽受의 朱雀이 새가 날개를펴고 날아가는 것처럼 받아들이면 된다. 前述한 玄武垂頭 朱雀翔舞의 형 세 가 바로 이 것 이 다(그림 3-5 ).

그림 3-6 朱雀, 玄武를 받아들입

그런데 玄武 朱雀의 관계가 陰陽의 調和로 生氣를 얻는 데 있는 것인 만큼 朱雀이 山이 아니라, 水의 경우도 可能할 수 있음이 特記할 만한 사실이다. 水朱益 죽 陽來陰受논 得水法에서 다루게 된다. 이럴 때는 山인

玄武가 陽이 되고 水인 朱 雀 이 陰 이 되어 陽 來陰受의 原理가 적용 된다. 따라서 四神砂 中에서도 生 氣 와 직접 관련되는 玄武 朱雀이, 生氣에 간접적으로 관련되어 그를 보호하는 역할을 맡은 靑龍 , 白 虎보다 重 視되는 경향이 있다. 朱 雀 에는 主山에 대응하는 朝山과 案山의 두 가지가 있다. 朝山 온 主山에 대하여 손님, 신하, 남편에 대한 아내,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관계이므로 공손히 절하는 형태를 취해야 한다. 특히 端正 淸秀 해 야 좋다 하고 그렇 지 않으면 不吉하다고 본다. 그러나 主山에 비하여 朝山이 지나치게 얕거나, 山 體 가 작으면 宰相이 되거나 萬 石巨 富 가 되어도 항상 부족감, 불만감을 갖게 된 다고 하여 역시 군형이나 조화를 잃지 않도록 설득한다. 반대로 朝 山이나 案 山이 主山보다 지나치게 높거나 크면, 오히려 主山과 穴 場 울 눌러 無勢無 力하게 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朝山의 用은 다음과 같다. 山 形 이 尖秀한 文 筆峯 이면 文 章顯 世의 선바가, 둥글떤 巨 富 가 나오고, 器 1]]J.에 놓인 과일이나 떠오르는 보 름달 같으면 富貴多 男한다고 하며, 일반적으로 土星 體 를 제일, 金 星 木星울 다음으로 찬다. 水星이 나 火 星 은 다른 星 體 와 결합하여 帳形 혹은 貴人形울 이 루어 야 좋다. 朝山은 穴 場 으로부터의 거리에 따라 近朝, 遠 朝, 暗洪으로 나눈 다. 가까운 近朝는 그 높이 가 玄武가 入首하는 頭 腦 보다 높으면 不吉하지만 遠 朝나 暗棋같이 멀리 떨어전 朝山은 하늘 높이 치솟아 도 무방하다. 이때 어디까지를 朝 山, 즉 主山의 세력범위로 보아야 하는가는 오직 來 龍 의 규모에 따르게 되논데, 來 龍 百里떤 朝山百里, 千里來 龍 이면 千里朝山이란 원칙에 따르면 된다. 그러나 術書 에 따라서는 近朝만을 중시하는 경우도 많다. 예컨대 卜公온 먼 外山의 千 重 山이 가까운 一個 案 山만 못하다 하였고, 먼 데 있는 山이 아무리 수려장업하여도 穴 場 가까이 있는 조그마한 獨峯에 미치지 못한다고도 하였다. 이 는 요컨대 山勝를 微視的으로 보느냐 아니 면 巨視的으로 보느 냐 하는 안목의 차이일 분으로 兩者 모두 균형과 조화의 山勢를 추 구하고 있 음은 마찬가지 인 듯하다.

穴前에 일반적으로 朝 山보다 낮고 작은, 또 하나의 朱雀이 案山이 다. 案山은 이름 그대로 主山의 책상, 혹은 안석[ 凡案〕 과 같은 역 할을 말고 있기 때문에 그 형상은 玉凡, 橫琴 , 眼弓, 玉帶, 執 w, 接劍, 席亂 峨眉, 三台, 官 re , 天馬, 鹿節, 書臺 , 金 15 , 玉印, 筆 架, 書尙 等과 같으떤 좋다고 한다. 朝山의 발치 기슭에 위치함이 보통인데, 端正圓巧, 秀嬪光彩, 平 正齊 愍 回抱有情하면 吉砂가 되고, 형상이 좋다 하더라도 물에 훌 러 날아가버리듯, 穴울 向하여 찌르듯 하면 좋지 않다. 또한 腕種 租大, 破粹說嚴, 酸惡走甄 하고 穴에 대 하여 反背無情하면 凶砂이 다. 穴 場 으로부터의 거리는 그 名義에 비추어 案山이 가까이에 朝山 이 멀리 있음이 원칙이다. 入地眼全 書 에서도 〈 穴前이 朱雀으로 陽 明의 이름을 취하는 고로, 穴前 明堂이 內 陽 , 案 山이 中 陽 , 그리고 朝山이 外 陽 (穴前以朱 雀 名取其 陽 明之 義 故穴前以明堂爲內陽 案 山 爲 中陽 朝山爲外陽)〉이라 하여 案 山, 朝山의 穴前으로부터의 위치를 명시하고 있다 .4 7) 그렇기 때문에 術法 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는 朝山보다 가까이 있 는 案山울 더 중시한다. 朝山은 없어도 結局이 가능하지만 案 山은 반드시 필요한 것도 이 까닭이다. 어떤 山 書 에는 아예 案 山과 朝山 울 그 山形에 있어서 同一視하는 경우까지 있는 형편이다 .48) 일반 적으로는 위엄이나 격식이 필요한 國都 , 邑城, 帝陵, 王 墓 에는 朝 山이 필요하고 보통의 陰宅, 陽基에는 朝山보다 案 山이 절대 팔요 하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47) 『入地眼 全 書』 , 「砂法」 卷五, 「朱 雀元武砂 」( 臺灣 , 竹材 않局 ) 48) 『山水圖』, 「案山 論 」 朝山同 C !i里에 서 입 수한 筑寫本 )

그러나 역시 중요한 것은 主 體 가 되는 玄武의 형세이다. 언제나 垂頭하여 有情하여 야 하며 곳못이 치 솟은 無情의 형 태 는 嫌思 의 대 상이 된다 . 昴 然 하여 위압감을 주는 山勢보다 수그러들듯 온화한 기품의 山勢가 吉格이라 생각한 듯하다. 玄武는 그 大小如何도 매우 중요한데 力 量 이 큰 龍이 커다란 龍 穴올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玄武는 穴 뒤의 모든 山에 대한 총칭으로서 크게 廣義의 來龍과 陝義의 來龍으로 區分된다. 廣義 는 太祖山으로부터 主山울 거쳐 穴 場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山이 포함되며 陝義의 玄武란 主山으로부 터 穴 場 까지의 山 勢를 말하는 것이다. 玄武砂는 來龍에 서 언급한 바와 같이 之 玄 字 모양으로 구불구불 하고 分脈울 치며 내려오는 것이 좋고 孤直한 형세는 좋지 않은 것 으로 여간다. 陝義 의 玄武는 入首와 頭腦 가 중요 부분이다. 入首란 龍 의 머리 가 穴에 들어간다는 뜻으로 來龍의 末節이 낮게 頭腦로 넘어가는 곳이다. 頭腦란 穴 바로 뒤의 높이 솟은 부분으로 穴울 바로 주위에서 둘 러싸고 있는 砂 城 의 뒷가운데 가장 높은 부분을 말한다. 예컨대 王 陵 으로 볼 때 曲 踏 의 中央제일 높은 곳이다. 峨眉는 頭腦에서 봉분에 이르는, 도도록하게 솟아나온 부분을 말 하며 八字眉形, 月眉形의 二格이 있는데 어느 것이나 좋다. 入首 전체적으로는 眞 機 曲, 飛, 三 替 의 五格이 있다. 玄武를 龍의 머리로 간주하는 만큼 뿔[角〕, 귀〔耳〕, 눈[目〕, 코 [ 鼻〕 , 이마〔類〕, 수영 〔 嚴 ], 입 〔口〕 等이 있는 것은 물론이며 部位 에 따른 吉凶法도 있다. 예를 들면 코나 이마는 좋고 뿔과 눈은 좋 지 않다는 둥( 鼻顔吉昌 角目滅亡 耳 致侯 王 뽑死兵 傷 )이 그것이다. 4. 靑龍, 白虎 龍, 虎, 雀, 龜의 四神獸 가운데 左右의 龍虎는 風水의 成局으로. 볼 때 불가결의 요건으로서 그 임무는 藏風에 있으므로 穴울 두루 감싸고 보호하고 있어야 한다. 山水圖에서도 특히 穴 주위를 조밀하게 호위하고 生氣를 融衆하 는 것이 龍虎라 하였다 .49) 靑龍온 主山에서 案山울 향해 왼쪽으로 내려온 산줄기를 말하며 49) 『山水圖』, 「 靑繼 白虎」, 〈往 日 麗虎 所以衛穴周密生 氣 融緊者也〉

白虎는 오른쪽으로 내려온 산줄기를 말한냐 靑龍, 白虎가 모두 來 龍과 연결된 本身으로부터 發出한 것일 수도 있고, 둘 다 他山에서 나와 둘러싸고 있는 경우도 있으며 혹은, 하나는 本身, 다른 하나 는 他山에 서 이 어 져 나올 수도 있 다(龍虎二砂 有本身發出者 有他山 來抱者 有一 .邊 是本身生出一邊是他山來設者 ). 50)

50) 『入地眼全탄J, 「砂法」 卷五, 맙ii 白虎砂

이때 둘 다 本身에 이어전 것을 本身龍虎, 다른 山에서 온 것을 外山龍底 혼합된 것을 淡合龍虎 라 부르기도 하며 本身龍虎가 가장 좋고 外山龍 虎 와 淡合龍虎도 凶局으로는 보지 않는다. 龍虎는 二重, 三重으로 호위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안쪽 것을 內靑龍, 內白虎라 하고 그 바깥쪽 것은 外龍虎라 한다. 成局과 합치되었다면 王侯룰 배출할 수 있는 吉勢로 찬다. 龍虎의 體는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靑龍筑舞 , 白虎順類로서 서로 和合의 형세로 有情하게 감싸면 좋다 • 더우기 主山에 대하여는 伏附, 降服의 형세를 취하는 龍虎라야 좋다는 사실을누누히 설명하는 術 뿜 가 많다. 雪心賊에 〈白虎는 伏하 고 靑龍은 降해 야만 한다. 그래 야 穴場의 존귀 한 精神이 스스로 百 倍하여 靑't을 부를 수 있고 그에 응하여 大將이 登臺하여 前後의 士卒울 스스로 莫千의 氣象으로 威嚴할 수 있는 것이다(右必伏左 必降 精神百倍前者呼 後者應氣象萬千) 이어서 그 正解는· 〈右白虎 山也 左靑龍山也 伏倍伏也 降降服也 夫左右二山爲穴之侍衛 前後諸 山爲穴之迎送 穴場匠責則右而白虎必活軟附伏 左而靑龍必興順降服 如貴人之坐堂而左右侍衛從 敏聲下氣則尊貴之精神自加百倍 至前後迎 送之山 層層雅護重重槪列如前者呼而後者郞應 若大將之登台而前後士 卒唯唯聽命則威嚴之氣象 自有萬千如此 左右前後周全無缺則爲局勢之 至美者山〉 61) 하여 玄武에 대한 龍虎의 主從關係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렇지 않고 龍虎가 後山울 질두하는 듯 돌아앉거나 龍虎가 서로 물어뜯을 듯 대치하거나 혹은 그 모양이 尖射,破粹,反逆, 走京, 斜飛, 直長, 高壓低路, 複弱, . 露筋 , 斷誕 折腐,晶頭, 捕面, 租

51 ) 『雪 아武正解』, 卷一, 「論地理要略」

惡, 短縮, 迫陝, 强硬, 俺落, 順水飛走, 如刀,如鎔, 如退한 것은 모두 凶惡한 것으로 간주한다 52) (그림 3 구).

52) 『山水面』, r 靑龍白虎」

그림 3-7 背逆의 靑龍, 白虎

조화되고 균형을 이루면서 온화한 山勢를 吉한 것으로, 흩어침, 부조화, 불군형 , 갖추지 못함, 포악, 흉포, 혹은 부러 지 거 나 홍기 처럼 생긴 山勢는 凶한 것으로 본 듯하다. 龍虎의 用은, 龍온 王者의 표정 , 財貨에 관련, 虎논 武力, 용기 와 자손번성을 맡고 있다는 說이 있고, 혹은 靑龍온 子孫과 官貴를 주재하고 白虎는 妻妄, 女息, 子婦와 財産을 주재한다는 說도 있 다. 대체로 靑龍은 해가 뜨는東쪽으로帝王, 出世, 官貴, 男子를. 白 虎논 해가 지는 결실의 西쪽으로 女子와 財産에 類推하는 듯하다. 물론 龍虎가 아무리 이상적 형세를 이루었다 하더라도 來龍이 眞 龍이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결국 龍虎는 風水 구성상 종속적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護衛와 藏風울 조성하는 것이 ::::z.. 주요 임무인 것이다. 따라서 龍虎 中 하나 가 결여된 경우타도 만약 물이 陰陽의 醉化를 충분히 할 수 있으면

괜찮다. 이렇게 되면 藏風局이 아니라 得水局이 됨은 물론이다. 龍虎가 玄武에 비해서 중요성이 몹시 떨어침에도 불구하고 항간 에는 〈소위 左靑龍 右白虎하는 風水〉라 하여 龍虎가 더욱 많이 입 에 오르내리는 까닭은 古來로 風從虎 53) 라든가 龍은 구름과 비를 부 른다는 祈雨觀念에 서 부터 구니 된 소이 인 듯하다.

53) 『易經』, 「文言傳」

또한 龍虎논 主人格인 主山 來龍보다 형세가 장대하지 않고 잦 化 도 다양함이 없이 가지런하며, 陽明하고 수려하며 背逆하지 않아야 한다. 龍虎가 自己의 입장과 본분을 잊고 기세있게 변화하면 自體에 吉 局의 穴도 맺지 못할 분만 아니라 오히려 來龍의 生氣만 盜氣할 분 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龍虎의 예리한 가지가 主山의 穴場·울 沖射하 여 殺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5. 吉砂와 凶砂 基本이 되는 砂는 四神砂이지만 이의에 穴울 둘러싸고 있는 山水 가 모두 砂가 되는 만큼 그 종류는 대단히 많다. 그 중 得破 즉 水 口砂에 관한 것은 得水法에서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砂의 吉凶格 에 관한 것만을 整理하기로 한다. 砂의 吉凶온 方位에 크게 좌우되 는 것이지만 이는 다시 坐向論에서 언급케 되므로 여시 제외시 켰다. 砂格의 吉凶의 복잡함과 異說의 분분함은 대단한데, 어떤 사람은 山의 형체를 보고 尖圓方正한 砂를, 즉 진귀한 器物의 형상을 吉하 다고 하며 , 至斜하고 破粹하여 흉악한 器物의 것 은 凶하다고 한다. 또 或者는 二十四方位 아무데나간에 貴 砂가 있으면 吉하다고 한다. 또는 震, 庚, 典 辛, 丁, 良, 丙, 免方에 있으면 吉하고 寅, 甲, 坤, 申, 辰, 戌,丑, 未方에 있으면 凶하다고 하여 吉 ~I 을 운운하 기도 한다. 或者는 五星論에 맞는 砂를 論하고 或者는 茶龍에서 茶 方이나 茶形의 砂가 있어야 하며 茶向에는 茶砂가 吉砂라고 하며

貴人例에 그 方位를 결정한 일도 있어 吉凶의 관계가 얼마나 복잡 다단한가를 침 작게 한다. 54) 陰宅要誤 에 의한 砂의 吉凶은 다음과 같다. 〈看砂에 는 紹在眼 界 間이 니 吉怪銃 義 하면 未善이 요, 崎 1 .f 峻 逸 하면 未良 이 며 倒側至斜 하 면 非吉兆요, 担雄突亢은 總碩凶 이다• 破碑陵層은 却殺이요. 斜飛 走去하면 凶殊이 다. 尖圓方正이 三吉이 요. 秀麗淸奇가 好子이 다. 明淨하면 照福德하고 端圓하면 降禎祥 이다. 圓은 壅種할 것이요, 尖은 思議岩이다. 破가 吉方에 있으면 多不吉이요, 秀가 凶位에 있 으면 福享昌 이다. 生砂는 柔軟 하야 如弓角이요, 死砂는 硬直하야 似刀槍이다. 貴砂 는 尖利圭勿筆이요, 富砂 는 圓正庫閉倉이니 緊米 辨錢 하야 富 한다. >55 )

54) 金明濟, 1971,· 『 八十八向眞誤』, 三 信촙籍 , p.1 58. 55) 金榮昭, 前損안, 「砂格篇」, 砂鉛 論

대체로 山 勢가 둥글고, 단정하고, 밝고, 맑고, 유연하고, 중첩하고, 아름답고, 有情하면 吉格이요, 그렇지 못하면 凶格 이 되는 것이지 만 例外가 많이 있어 반드시 그 렇 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그림 3-8 ). 항간에 많이 나도는 吉凶砂 판별 방법 가운데 坐向論에서 언급할 부분을 제의하고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白虎에 평평한 돌이 있으면 郡守 가 나온다. 。 白虎 木星이 雙胎 로 案前에 대하여 大明堂과 相通하고 大明堂 이 廣活 하면 大將으로 성공한다. 。 白 虎 에 旗織砂가 重重 하거나 수려한 三 峯 이 솟아 있으면 將軍 과 名士가 나온다. 。 靑龍 이 가늘게 雙 으로 둘러져 있으면 이를 榮簡砂라 하고 子孫 이 榮貴한다. 。 雙靑龍 內에 쌍우물이 있거나 水澤이 있으면 富貴를 天下에 떨 천다. 0 白虎 案對가 열리고 靑龍 과 對 立하여 大水가 入來하떤 子孫이 昌盛한다. 。 靑龍이 有氣하고 끝에 큰 岩石이 있으면 큰 人才가 나온다.

I-4

4_ \ 그립 3-8凶 山吉 圖凶 山 l11

•案前에 照籍이 있으면 용모가 아름다운 賢 婦가 나온다. 0 旗, 鼓砂가 중첩한 가운데 劍砂가 있고 穴前에 軍隊形이 있으 떤 大將이 나온다. 。文 筆峯 이 竹第처럼 생기거나 혹 尖曲되어 있으면 畵 工이 나오 는데 아득한 곳에 있어 수려하게 솟으면 名 畵 가 나온다. 。 主山 뒤의 측면에 엿보는 듯한 翔峯 이 있으면 巫女 또는 바람 둥이가 나온다. 。 明 堂 주변에 老 姬 모양으로 된 伏峯 이 있거나 穴 前 에 老 姬 모 양인 伏岩이 있으면 이는 老人用客砂라 喪 敗가 빈번하다. 0 甄 木砂(두레 박) 및 僧鉢砂(僧의 밥그릇)가 있으면 乞僧, 乞人 이 나온다. 。 龍虎 內에 兩頭가 있으면 狂疾과 風病이 발생한다• 。 白虎가 細 殘 하면 子孫 中에 机死者가 나온다. 。 白虎方에 掛木砂가 있으면 목매어 自 殺 한다. 。 靑 龍 이 멈 추지 않으면 이 사를 자주한다. 。 白虎方에 兩足砂가 있으면 한 이불 속에 두 간부가 있는 格이 다. 。 白虎 끝이 갈라지면 斬首刑을 당하는 子孫이 생긴다. 0 穴前에 試淡砂가 있으면 子孫듈이 天死한다. 。 白虎 끝이 두 가지로 갈라지면 惡針 砂라 하여 蛇 校 가 있다. 。 白虎의 遠峯이 明 堂 울 沖射하고 그 끝이 한 무더기의 언덕 모 양으로 되면 과부가 생기고 無後 한다. 。 白虎方의 翔 峯 이 內堂에 보이 면 도적 이 나온다. 。 白虎方으로 흘러가는 水口에 靑龍 이 활같이 휘어쳐 水口와 같 이 하면 자식 이 빈곤하여 女家에 몸을 의 탁한다. 0 靑 龍 끝이 끊어지고 靑龍上에 尖 峯 이 일어나면 子孫이 客死한 다. 0 靑 龍 이 굽고 건 가운데 白虎가 穴頭를 누르면 女强砂라 하는데 間夫가 殺人한다. 0 案山에 立石이 칼끝처 럼 날카로우면 殺 傷 의 變 이 있 다. 。 白虎 峯 이 凡와 같으면 五六次 喪 配한다.

。 主山 뒤에 璟峯이 보이면 少年白髮이 생긴다. 0 龍虎가 서로 바라보고 있으면 兄弟가 不睦한다. 아龍虎峯이 철단되면 다리가 끊기는 子孫이 생간다. 0 龍虎의 허리가 풍어지면 刑伏死한다. 。 龍虎峯이 飛走하면 子孫이 拜走하다. 。 案이 穴을 返迫하면 子孫이 眼盲한다. 。水口에 있는 山이 달걀 모양이떤 女子가 음탕하다. 무수히 많은 판벌법 中에 方位와 水勢에 관련되는 것을 모두 제 외시키고 유사한 것을 합쳐 간략하게 제시한 것인데, 거의 대부분 의 판별 법 이 環境知礎 envir o nmenta l pe rcep tion 的인 영 상을 人事에 類推시킨 비교적 연결성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들임을 알 수 있다.

4 得水法 1. 得水의 原理 風水에서 물[水〕의 역할이나 그 중요성은 및 가지로 나누어 생각 할 수 있는데, 그 중 가장 타당한 것이 陰陽論的 해석 방법이다. 〈易에 이르거를 一陰一陽울 道라 일컫는다고 하였다. 陽이나 陰 홀로는 生成하지 못하고 陰陽이 相配되어야 造化를 이물 수 있다. 形勢를 論함에 있어서 山온 陰이요, 水는 陽이다. 무릇 山水가 相 配해야 陰陽이 있는 것이 된다. 山과 水는 모두 靜하면 陰이고 動 하면 陽이 되기 때문에 결국 山水논 各各 陰陽이 있는 것이다. 陰 來하면 陽受해야 하고 陽來하면 陰受해야 하니 龍穴도 相配해야 陰 陽이 있게 되는 까닭이다. (易曰 一陰一陽之謂道 蓋孤陽不生 獨陰不 成 陰陽相配 乃成造化 故以形勢論之山屬陰 水屬陽 是山水相配有陰 陽 山靜陰而動陽 水動陽而靜陰 是山水各有陰陽 陰來陽受 陽來陰受 是龍穴相配有陰陽)〉 56) 죽 得水는 陰陽의 和合에 필요불가결한 存在로 그 중요성 이 인식 된다. 葬書에서도 〈風水의 術法은 得水함이 으뜸이요, 藏風이 다음 이라(風水之法 得水爲上 藏風 次之)〉 함은 앞서 밝힌 바 있다. 陰陽 二氣에 의한 山水 설명은 明山論에 찰 지적되어 있는데 〈무 릇 二氣 7 l- 融結해야 山이 되고 물이 되는 것이니 山 7k 를 陰陽이라 56) 『雪心試』, 「辯論 篇 」, 淨陰淨陽辯

일 7J 는다. 山水가 相 補 해야 陰陽 이 和 하고, 和 해야 沖 氣 된다• 山水 가 衆 集 해야 陰陽 이 會 하고, 會 해야 生氣가 있게 되니, 죽 吉하다 고한다. 이때 山大하고 水小하면 獨 陽 , 山小하고 水大하면 獨陰 , 山에 起 伏 이 없으면 孤 陰 , 水에 沈 寂 이 없으면 孤 陽 이라 한다.(夫二氣融結 爲 山 爲 水 山水 者陰陽 之 謂 也 山水相 補 則爲 陰陽 和 和則 爲沖氣 山水緊 集 則 爲陰陽會 會 則 爲 生 氣 所 謂 吉也 其山大水小 爲獨陽 山小水大爲獨陰 山 無起 伏者 爲孤陰 水不沈 寂者爲 孤 陽〉 하였고 또 〈陰陽 이 和하고 會 하지 못하면 소위 凶한 것이냐 地理로 山水를 봄에 있어서 山은 千里의 源울, 水논 千里의 委 를 보아야 한다. 山은 높은 것 이 좋고 7k 는 건 것이 좋다• 山이 어렵지 않게 솟으면 그 氣 가 緊 하고 水가 어렵지 않게 潟 曲하면 그 氣 가 止한다. 山水가 날줄 씨줄처럽 정 교하게 짜이면 天셈 伊 의 보람을 얻는다 ( 陰陽 不和 會 所 謂 凶也 地理者 山水 而 已山 看 千里之 源 水 看 千里之 委 山 欲得高 水欲 得深 山不難起 起 則其氣衆 水 不難潟 潟 則其氣 止 山水 交構 如 經 如 緯 致之而天 縣驗 之). > 고도 하였다 .57) 山 7k 가 相 補 해야 함을 역시 陰陽論 의 입장에서 설명한 글이다. 이러한 지적은 대부분의 術 書 에서 많이 찾을수있는데, 例컨대 〈蓋 聞天 開 地關 山時川流 二 氣 妙 運 於其問〉 58) 같은 것 이 그. 대 표적 인 것 이다.

57) 『 明山 論』 , 第 二, 「二 氣 」( 景 仁文化社, 韓國風 水地 理菜 합 ) 58) 『 雪 心試正解 』 , 卷一, 「 論 山川理 氣 」

水몰 陰陽論 에서 벗어나 약간 다르게 해석한 경우도 있다 . 물론 山水 해석을 陰陽 에서 본다는 本質的 원칙을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地理 新 法 胡舜申에 山水를 體 와 用, 혹은 形 體 와 血昧으로 對 比시 킵 재미있는 대목이 있다. 風 7k 에서의 山水의 역할을 陰 陽 이라는 原理 論 보다 훨씬 간단하게 알아볼 수 있는 부분으로, 胡舜申, 第四 水論에 〈山은 靜物로 陰에 속하고 水는 動物로 陽에 속한다. 그런데 陰온 體 常울 道로 하고 陽온 變 化를 主로 하기 때문에 吉凶 禍 福은 水에 더 찰 나타난다. (山 靜物而 屬 陰 水動物而 屬陽 陰道 體 常陽主 變 化 故吉凶 禍 福見於水者尤

基)〉는 대목이 있고 이어서 〈대개 山은 사람의 形體와 같고 7k 는 사 람의 血脈과 같은 것으로, 사람에 있어 形體의 生長柏榮은 모두 血 肺으로 비롯된 것이다. 血服卞이 사람의 몸 속을 흘러다님에 있어서 그 度數가 순조로우면 그 사람은 반드시 건강하고 튼튼할 것 이 요, 그렇지 않고 失節케 되면 그 사람은 병들어 망함이 자연의 이치인 것 이 라(蓋山如人之形陸 水如人之血 n 永 人有形體生長柏榮一資於血 l 永 血肺周流於一身之間阪有度數順而不差則其人必康旦强 逆而失節則其 人必病旦亡矣此 自 然之理)〉하여 山을 사람의 몸체 , 水는 血昧에 비 유 하고 있다 .59) 즉 人體의 건강 여부가 血曲招에 의존하는데, 이 血[永이 정상적으 로 순환하고 순조로우면 건강하고 반대로 불규칙적이면 반드시 질 병에 걸리는 것처럼, 山水도 이와 같이 水와 山이 합쳐지지 않으면 山의 吉함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風 7k 에 있어서 7k 의 중요 성이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山에 대한 7j (의 吉凶은 山으로 보아 吉方向에 서 와서 凶方으로 흐르는 것이 좋은 것이다 .60) 좋은 것을 갖고 와서 찌꺼기를 가져간다는 생각일 것이지만, 보 다 구체적인 것은 坐向論에서 다시 언급하기로 한다. 陰宅要缺은 山水의 관계를 男女관계로 더욱 재미있고 알기쉽게 풀이하기도 한다. 죽 〈무릇 水는 來龍의 血服路氣內에 限하야 外淮하 는 것이니 其法온 대개 山온 陰이고 水는 陽이니 어떠한고, 山온 本靜이라 用事를 못하니 婦道와 같고 水는 本動하야 出入用事를 하 니 夫道와 같다. 婦가 美好해도 夫性이 凶惡하면서 어찌 和合하며 生成의 理가 있으며 婦가 或 模母라도 夫性이 仁善하면 愛護를 不 窓하야 마침내 子孫이 振振하고 綿綿의 富貴롤 볼 것이니 이렇게 추구하면 山家의 吉凶禍福은 전혀 水法에 있으니 어찌 찰 詳察치 않 겠는가. 經曰 千山의 吉함이 能히 一 7k 의 害를 救치 못하고 一水의 害가 能히 百子의 殊이 라 하니 참된 말이 로다〉고 표현하고 있 다. 61 ) 59) 『地理新法 胡舜申.n, 第四, 「水論」 60) 역 시 胡舜申의 水論에 서 〈吉方來 凶方去〉 61 ) 『陰宅要缺J, 「得破篇」, 收水論

모든 水에 관한 설명에서 공통적인 것은 水가 山보다 그 用에 있 어서 보다 능동적이고 직접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접이다. 그런데 물은 원래 流動울 本性으로 하지만 그 本性대로 유동해 버 리 면 아무리 好勢의 山과 會 合한다 할지 라도 生 氣 의 醉 化를 이 룰 수 가 없고, 오히려 山의 生氣까지도 씻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拜流하 는 물은 凶 7k 로 보고 꺼리는 것이다. 따라서 朱雀온 그 翔舞를 요 하는 것인데 이는 山朱雀의 경우이고 물로써 朱雀울 형성할 때에는 결코 약동해서는 아니된다• 왜냐하면 물이 천천히 흐르처 않으면 빨리 흘러서 成局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2. 得破 ·陰陽論 得이란 穴場으로 오는 水〔來水]를 말하는 것이고 破란 가는 水 〔去水]를 말한다. 山울 生命 體 인 小宇宙로 볼 때 입 (口)이 있어 먹 어야 하고 )II FT 이 있어 排池해야 그 生命율 유지, 보전할 수 있는 것과 같이, 得은 龍穴의 입이 되고 破는 그의 )II門으로서 得에서 얻은 물과 바람의 精隨〔風水之精〕를 龍 穴에서 흡수하고 찌꺼기를 破로 排淮하는 것이다. 입과 항문이 得破의 本質은 아니지만 得破의 機能이나 위치를 이 해하는 데는 매우 적철한 비유타 생각된다. 得은 龍穴이 生命素를 받는 입이기 때문에 正位置에 있어야 함은 물몬 튼튼해야 한다. 得에는 內得水와 外得水가 있다. 內得水에는 靑龍서 白虎사이, 內明堂에서의始見水處를內得水라하는說과主 龍과 穴場의 變化 屈曲作用에서 생기는 自生水處를 內得 7k 라 하는 說이 있다. 外得 7k 는 龍虎 밖에서 龍穴울 향해 유입하는 外水의 始見之處를 基點으로한다. 破는 穴地明堂의 大門處이다. 破에도 內破口와 外破口가 있는데, 內破口란 中明堂, 內水의 落水處를 말하는 것이며 外破口란 大明堂 內 外水의 終見處를 말하는 것 이 다. 破는 모든 格에 합당해야 하고 虛缺함이 없이 견실해야 하며 直

流直 腐 함이 없이 重욥回流해야 한다 .62) 또 得온 見, 破는 不見이라 부르기도 한다. 得은 물을 얻는다는 의미이고 破논 물을 보낸다 혹은 버린다는 뜻이므로, 得을 見이라 하는 것은 來水를 처음으로 본다는 뜻이 되고 破를 不見이라 함은 去 7. k 가 보이지 않게 흘러 나가는 것을 말함이다. 易의 〈열린 것을 하늘, 닫힌 것을 땅이타( 關者 之 乾謂 凶者之坤謂 ) 하고, 한 번 열리고 한 번 닫히어 萬物이 生成한다(一 關 一 蘭萬物生 成)〉는 대목에서 關이 得이 되고 閩이 破가 된다. 즉 得破란 開閉, 始終, 陰陽울 의 미 한다. 地理抄妙에서는 得破를 男女관계에 비기어 見, 不見을 설명하기 도 한다• 죽 〈見者得也 不見者破也 見者夫婦相見之初 不見者天明相 樂之處相見之初人所相見 相樂之處人所不相見 故始見之爲得 不相 見之爲破〉라 하여 종 노골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이해에 도움을 준다. 63)

62) 辛仇柱, 前損합, pp. 259~64. 63) 村山智 胤 前描書, p. 82.

男女가 처음 만남에는 見이 당연하지만 相樂온 不見이어야 당연 한 일이니, 風水에서 直流水를 嫌思함도 그런 까닭이다. 直流하면 不見, 즉破를이물수없으니 그를기대할수없다. • 得울 天門, 破를 地戶라 부르는 경우도 있다. 이때 破는 局內의 明堂 7k 가 합쳐 밖으로 흘러나가는 곳이 되기 때문에 水口라고도 한다• 水口의 명칭은 몇 가지 얘기가 있는데 예컨대 靑龍과 白虎가 서로 입을 맞추고 있다 하여 水口라는 說과 來龍의 入首가 龍洗間에 입을 내밀고 있어 水口라 한다는 說 等이 그것이다. 혹은 靑龍울 陽, 白虎를 陰으로 보아 靑龍의 陽 7k 를 白虎가, 白 虎의 陰水를 靑龍이 서로 입을 대고 마십으로써 陰陽沖氣하여 生氣 活動한다고 보는 경 우도 있 다. 水口는 일반적으로 제 가지로 나뉘는데, 첫째로 靑龍이 짧고 白 虎가 길어 白虎가 靑龍울 안은 듯한 水口를 陰水口, 둘째로 白虎가 짧고 靑龍이 길어 靑龍이 白虎를 둘러싼 듯한 水口룹 陽水口타 하

고, 끝으로 龍虎의 길이가 같아서 서로 마주 대한 듯한 水口를 陰 陽合水口타 한다. 水의 陰陽 판별은 앞서 제시한 靑龍 陽水, 白虎 陰水 外에도 方 位에 의한 方法이 있다. 二十四方位 中 甲, 丙, 庚, 壬은 陽干으로 여기에서 흘러오는 물은 陽水, 乙, 丁, 辛, 矣는 陰干으로 이것은 陰水로 취급한다. 또 한 가지 左發右行온 陽水, 右發左行은 陰水로 간주하는 方法도 있다• 水룰 陰陽으로 구분하는 것도 역시 陰陽論의 기본적 성격에 따르 기 위함으로 陽來陰受 또는 陰來陽受의 왼칙에 부합하는 水의 成局 이 필요하다. 죽 陽水가 오면 陰水가 그를 받아야 하고 陰水가 오 떤 陽水가 그를 받아야 한다. 당연히 陽水는 男子에 관계되고 陰 7k 는 女子롤 맡는데, 陰水가 勝하면 子孫에 女子가 많고 陽水가 勝하면 男子가 많다고 한다. 또 水가 凶方에서 오거나 혹은 濁吳가 나면 浩水타 하여 淮拜한 男女 가 나타나는 것 으로 안다. 3. 諸法, 吉凶論 得水法은 藏 風이나 看龍法에 비하면 가지수도 많고 복잡한 편이 다. 水勢의 대강은 屈曲이 有情하여 沖來, 直去,返橫, 急斜하지 않 고, 之玄으로 曲折하며 淸水가 모여 있으면 좋다고 한다 .64)

64) 『陰宅要缺 ./l , 「待破篇」, 水法條

胡舜申에 의 하면 山울 二十四方位, 죽 子, 矣, 丑, 良, 寅, 甲, 卯,乙,辰, 興, 巳, 丙,午, T, 未, 坤, 申, 庚, 酉, 辛, 戌, 乾 亥, 壬에 配하여 二十四山울 만들고 이를 다시 五行에 配하되, 申, 庚, 酉,辛, 乾울 金山, 寅, 甲, 卯,乙, 興울 木山, 丑, 良,辰, 未, 戌, 坤울 土山, 亥, 壬, 子, 矣를 水山, 巳, 丙,午, 丁을 火山 으로 한다. 各 山別로 吉凶方位를 정한 뒤 吉來凶去에 의하여 다음

과 같은 法則이 성립된다. 金山온 水가 已方(남남동쪽)으로부터 와서 寅(동복동쪽), 甲(동 복동쪽), 卯(동쪽)方으로 가면 吉, 木山은 亥方水來하여 申, 庚, 酉方으로 水去하면 吉, 水, 土山은 申方水來하여 已, 丙, 午方으로노 水去하면 吉, 火山은 寅方에 서 水來하여 亥,壬, 子方으로 水去하 떤 吉하다 .65)

65) 村山智凰 前掃書, pp. 88~91.

이는 五行의 相生關係로 설명이 가능하며 坐向論울 알아야 잘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또 九星法은 救貧先生으로 알려진 楊答松의 吉凶 판별법으로 穴 坐를 基點으로 하여 得破의 吉凶 위치를 보게 된다. 이때 九星 中 食狼, 巨門, 武曲星울 上格 吉星이라 하고, 祿存, 文曲, 伏哈星을· 中格星이라 하며 破軍, 廉貞星은 凶格星이라 한다. 판별은 得破九 星表에 의 하는데 예컨대 坤이 나 乙坐의 穴에 서 良方, 또는 丙方에 得 또는 破가 있으면 破軍이 되는데 破軍은 凶星이므로 不吉하다고 본다. 다른 것도 위와 같은 방법에 의하여 판별하면 된다(표 3-4). 九星法과 유사한 것 으로 胞胎法이 있는데 胞胎法이 란 胞, 胎, 養, 生, 溶,帶, 冠, 旺, 表, 病,死, 藏 의 十二神星울 말한다. 이 중 生, 旺, 冠, 帶의 四吉星은 富貴星 이며, 기타 胞,胎, 養 , 溶, 裵, 病, 死, 藏 의 八凶星은 貧賤星이 다. 胞胎法온 得破水胞胎法과 四大局胞胎法의 두 가지가 있는데 모두 表에 의하여 판벌한다. 得破水 胞胎法의 경우, 가령 乾甲丁亥卯未 木局坐에 得이 申方이 떤 胞, 죽 凶星이 되어 不吉하고 破가 丑方이 되면 帶 즉 吉星이 되어 吉하다(표 3-5). 四大局 胞胎法의 경 우도 가령 乙, 辰, 興, 已, 丙, 午方에 破 口 가 된 穴에 있어서 穴坐가 申坐이면 生星으로 吉하고 龍脈이 午方 이면 胎星이 되어 不吉하며 得이 亥方에 있으면 冠星이니 吉하다고 본다(표 3-6). 또 明山論에는 다음과 같이 水의 종류 및 그 吉凶이 설명되어 있

穴坐得;星 I 破軍 1 祿存 표l 巨3-門4 得l 破食九 1 良星 法1 文 曲 | m~ I 武曲 | 硏 坤 乙 坐 1 良丙 尸薛 益 I 乾甲 1 嬰問 H 旦; 1 孟를 | 坤乙 孟 결 坐 1 興辛 1 良丙 1 乾甲 I 鬪 酉巳丑丁 I 亥卯未庚 I 坤乙 I 子申矣辰 乾甲坐 醫|贊|蠶 I 坤乙 I 興辛 1 良丙 I 益 I 乾甲 잘良 嬰丙 坐坐 I1 坤益乙 |\ 諺乾甲 |1 蠶良丙 II 異힙辛~ 1I 坤益乙 II 蠶乾甲 I\ 訂興辛 I1 麟良丙 寅午戌壬 坐 蠶 I 탑 I 坤乙 子申矣辰 I 良丙 興辛 乾甲 I 寅午戌壬 興 辛坐 1 :홀 1 坤乙 l 를 I I 麟 1 乾甲 1 :훑 良丙 1 興辛 멸 孟 坐 乾甲 1 福』 興辛 1 良丙 l 訂니 坤乙 頃 I 핥

표 3-5 得破水 胞胎法 穴:::, 胞 胎 養 1 生 니니王~~1藏 讐麟터寅 l 卯| 辰|巳 |午| 未| 申 I 酉[급 ~I~ 〔 二미미키티負門「辰|已「| 訂鬱柔鬪畵기子 亥已 | 午子 巨巨니니 寅 미| 卯 미| 辰미 | 巳미 I 午키 | 티未 |미 申 |미 酉 辰| 戌

;十:二·神穴星· 니니胎 養표 1 3生-6 浴四大 1 局帶 胞I 胎冠法 旺 皇麟|寅 1 급丁교丁디 걸급,贊辰畵嬰웁뿔걸 已申 || 午酉 || 戌未 || 亥申 |I 酉子 || 戌丑 || 亥寅 |[ 卯子 홉尸홋焉젊 亥 | 子 | 丑 | 寅 | 卯 | 辰 | 已 | 午

다. 즉 〈進龍水란 龍口에 水가 拜入하여 壇에 割到한 것으로노 入口의 進益에 應하여 左割進이면 男, 右割進이면 女에 관계된다(如進龍水 者 龍口有水拜入 乃割到壇者是也 其水進益入口之應 左割進男 右割 進女). 乘龍水란 穴의 左右에 있는 물이 壤에 공손히 절을 올리듯 합류 한 것인데 六畜과 血財에 관계되며 壇울 지나 三吉의 방향으로 둘 아오지 않으면 좋지 않다(如乘龍水者穴左右有水 操狀亦思過壤而不 歸三吉之方也 ). 隨'影k 는 서 로 좇아 龍 이 成局한 곳까지 이 르러 그를 싸안아 공 손히 대함이 분명한 것을 말하며 富貴兩全의 所應울 하는 것으 로본다(隨龍水者相逐而來至成龍之露抱掛分明是也 其水則富 貴 兩全之 應). 朝龍水는 朱雀으로부터 二重, 혹은 三, 四, 五重으로 三陽之內로 흘러 드는 물로서 富貴隆盛하여 나타와 더 불어 좋아하는 所應울 보 인다(朝龍水者 自朱雀而來或至三陽之內 或二或三及四五重者是也 其 水則富貴隆盛與國同體之應). 燒龍水는 龍이 局을 이룬 곳에서 二重 혹은 三, 四, 五重으로 穴 울 逃抱하고 있는 것으로 富貴綿遠의 所應울 받는다고 한다(鏡龍 水者 於成龍之智有水 逸抱或兩重三重及四五重者是也 其水富貴綿遠 之應).

護龍 7k 는 地戶之方으로부터 逆流하여 成穴된 곳 앞에서 二 堂 혹 은 三, 四, 五 重 으로 朝한 것이며 富貴가 나라에 필적할 만하고 忠 孝兩全한 所應이다(護 龍 水者則自地戶之方 逆流以朝于成穴之 霜 或二 或三及四五 重者是 也 其7J'(則 富貴敵 國 忠孝兩全之應). . 玄武一水는 二十四方位룰 난간처럼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서 子孫 長遠 百福 朝集 의 應 이다(玄武一 7] ( 則圈腦二十四神者 是 也 其水則子孫 長 遠 百福 朝集 之 應 )〉고 되 어 있 다. 明山 論 에 의하면 以上의 水!永에 일치하지 않으면 五行供順하고 卦 父 相 得 하여 도 吉祥의 報應울 받지 못한다고 하였다. 66)

66) 『 明山 論』 , 「水脚」, 第八

山 水岡 에는 또 다른 水의 종류가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朝進 7J c 는 朝 向에서 洋洋하게 穴前을 向하다가 그를 감싸고 나가 논 水로 發財와 致 貴 한다. 衛 身 7k 는 龍 脈이 미묘하고 기이하게 이어져 문득 湖水 가운데에 突起 하여 激 阜 위에 結穴한다. 蓮 花出水의 類를 가장 吉한 것으로 여기며 富貴 와 卿相의 應 이다. 緊 面水는 뭇물이 穴前에 모여드는 형태로 水法 中 上格으로 富 貴 所 應 이다. 盜 胸水는 水 勢 가 穴前을 씻어나가는 모양인데 生 氣 가 흩어져 凶 하다. 洪 背水논 玄武에 서 발원하여 悠長하게 흐르면 發 福 한다. 融湘 水는 穴前에 깊은 물이 모여 흐르지도 오고감도 없는 것이며 吉하다. 腹帶 水는 허리며처럼 싸안는 형세이며 金域 7J (가 가장 吉하다. 倉 板水논 田 源 之 7k 로 吉하다. 廻流水논 밖에서 흘러 들어 外堂윤 廻流하여 다시 빠쳐나가는 형 태로 極吉하다. 入口水도 이와 유사하다. 九曲 7k 는 물의 굴곡이 之玄字처럼 되어 아홉 번 회전하면 宰相울 배 출 한다. 濕 面水는 穴星이 低小하고 水 勢 가 雄壯하면 不吉하다. 衝心水는 直流로 穴前에 뛰어드는 형태니 水破天心이라 하여 極

凶이다. 射耆 7k 는 性流 7k 가 穴의 左右를 들이 치 는 형 태 니 極凶이 다. 容管水는 穴의 左右를 뚫고 흐르는 물로 左논 容龍普 右는 察虎

쁠라 하고 凶局이다. 港頭水는 穴上에 肺이 없고 물방울이 墓 頭에 떨어지는 형제로 凶 局이다. 斜探水는 明堂에 들지 않고 비스듬히 빗겨가는 형세이며 無情하 다. 卜氏논 退官失職한다고 하였다. 反身水논 穴前에 도발하듯 스쳐가는 水로 破家의 凶格이다. 비슷한 것에 反挑 7k 가 있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水는 穴場과 明堂울 부드럽게 감싸돌면서 曲 折하며 흐르면 吉하고 直流하며 穴을 향하여 沖射하면 凶하다고 한 다. 그러나 水의 吉凶은 역시 그 向에 따름이 대부분임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다. 67 ) 기타 吉凶에 관계된 水法도 모두 方位와 깊은 관련성을 맺고 있 기 때문에 坐向論에서 再論코자 한다. 67) 『山水 圖 』, 「 諸 水吉凶名」

5 定穴法 1. 穴의 重要性 穴이란 風 7k 에서 要諦가 되는 장소이다. 穴은 陰宅의 경우 展身 이 직접 땅에 접하여 그 生氣를 얻을 수 있는 곳이며, 陽 基의 경우 居住者가 실제 삶의 대부분을 얹혀 살게 되는 곳이다. 用 語 설명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穴이란 사람 몸의 經穴과 마찬가지인 기능과 역할을 하게 된다. 朱子는 그의 山陵 議 狀에서 〈소위 定穴의 法이란 針炎에 비유할 수 있는 것으로 스스로 一定한 穴의 위치를 갖는 것이기 때문에 터럭 끝만큼의 차이도 있어서는 안된다(所 謂 定穴之法 뿜 如針炎 自有一定之穴 而不可有 産藍 之差)〉고 하여 역시 風 7k 의 穴이 人 體 의 經 穴에 비유할 수 있는 것입울 말하 였다. 銀炎에서 말하는 經穴온 정확히 말해서 經絡과 孔穴이라 해야 할 것이다. 經穴은 經絡에 촌재하는 孔穴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經絡 온 氣 또는 榮衛가 전신윤 循行하는 경로를 가리키는 말이니, 風水 에서 龍 服t이 그에 해당하는 말이라 생각하면 된다. 經絡은 다시 經諒과 絡脈으로 나뉘는데 經昧온 氣血 통로의 주요 간선을 이루는 것을 가리킨 것이며 絡昧온 經昧울 연결 상통케 하 는 것으로 風水上 正 'E 과 傍龍의 개념에 對比시키면 될 듯하다. 이 때 經昧의 出한 곳, 注한 곳, 過한 곳, 行한 곳, 入한 곳의 모

든 접을 孔穴이타 일컫는데 氣 血의 榮 衛 현상이 반응하는 경락의 노 선 중에도 독정한 위치에 生理的 • 病理的 반응이 현저하게 나타난 다. 68) 銀 炎는 모두 이 孔穴의 부위에서 실시하게 되므로 孔穴의 부위를 잘 알아 服腕 와 신체의 각 부위에서 일어나는 病源 과 經 l 永 孔穴과의 錄 炎관계를 자세히 밝히도록 하는 것이 銀 炎 術 의 要缺 이 되며 風水 에서 穴울 定하는 定穴法의 중요성도 이로 미루어 보면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69) 眞 穴이 되기 위해서는 看龍 上 眞龍 , 生 龍 이어야 하고 藏風 , 得 水 가 모두 法 에 맞아야 함은 물론이 다 . 定穴이 란 畵龍點 晴의 순간인 것이다. 卜氏는 말하기를 〈 生 盛 하는 龍 은 반드시 生 盛 하는 穴이 있는 것 이므로 무릇 龍 穴이 이미 融結 되었으면 龍虎 , 明 堂, 砂星, 對案 , 羅星 , 水 口 等 이 자연 件件마다 合法 이 되는데 그것은 무슨 이유일 까. 대개 龍 은 비유하면 입금이요, 穴은 臣下로, 砂格, 星辰과 물 은 天下 百姓이다. 임금이 어질고 臣下가 현명하면 萬냥 l 이 다 귀화 하고 四 夷 가 賓 服하여 雲 從 龍 風從虎 하는 것과 같아 각각 그 類 로 서 응하는 것이니, 만일 龍 이 眞 이 아니면 穴과 砂水의 아름다움이 있어도 벌 수가 없는 것이다. 故로 자세히 아는 法 은 먼처 龍 울 살 피는 것이 우선 급한 것이다〉 하였다 .70)

68) 『기 초침 구법 』 pp. 29~33 . 69) 金斗 鍵 1982, 『東 洋 醫學 의 世界』, 한국방송사업 단, pp. 54 ~ 63. 70) 韓 松 溪 , 前掃 書 , p.1 08.

따라서 眞龍 이 아닌 곳에 있는 좋 은 穴은 虛 花에 불과할 분이다. 그러나 龍 은 있는데 穴이 없으면 이 또한 不可한 일이다. 楊 公이 말하기를 〈龍 울 살피기는 쉬우나 占穴하기는 어려우니 손 가락 하나만큼만 들려도 萬重 山이 막힌 것과 같다〉 하였고, 蓋德 彰 은말하기를 〈下穴時에 찰 살펴서 上下左右에 약간만 룰리게 하 떤 吉穴이라도 禍 가 있다〉 하였으며, 葬經 에 이르기를 〈穴울 파는· 데도 반드시 적당히 하는 것인 바 얕게 팔 곳에 깊이 파면 眞氣 가 위로 지나고, 깊이 팔 곳에 얄게 파면 眞 氣가 아래로 지나게 되는

것이니, 털끝만큼이라도 불리면 禍福이 천양지판의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穴의 上下룰 정하되, 一尺만 높아도 龍이 상하고 一尺만 아래로 내려도 步t을 벗어나는 것이며 左右도 또한 들림없어야 하는 것이니, 穴法울 定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라〉 하였다 .7 1)

71) 上掃 書 , pp. 109~10.

穴울 제대로 잡지 못하면 生氣의 所應을 받을 수 없게 되어 生龍 은 死't이 되고 吉局은 凶局이 되니 결국 破滅에 이르게 된다. 볼록렌즈나 오목거울에서 빛을 一點에 모으는 無點 에 穴울 비유 할 수도 있다. 2. 穴形四大格 穴形은 천태만상으로 그 모양이 매우 다양한 것이 사실이지만 實 相울 類型化하여 本質에 접근시켜 보면 陰陽說에서 말하는 太極, 兩儀, 四 gi 의 觀念 으로 좁힐 수 있다. 太極이란 葬者乘 生 氣 에서 말하는 生氣이고, 兩儀는 陰來陽受, 陽 來陰受에서의 陰陽을 말하는 것인데, 그 形院는 四占과 같은 것 이다. 그런데 陰中에 陽 이 있고 陽中에 陰이 있는 고로 太陽, 少陽, 太 陰, 少陰의 四象이 생기게 되는데, 그 형체가 穴形에서는 窟, 鉛, 乳, 突의 四格이 된다. 이것이 다시 三十六形, 八十二邊, 三百六十五體, 三百八十九 象 等의 變態 를 파생하게 되지만 결국 四大格에 기본을 두고 있는 것 인 만큼 腐 鏞 乳, 突의 이해만으로도 穴形은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穴形온 地形의 臼占에 의하여 陰陽울 구분하는 바 龍服t이 도돔하 게 占形으로 뒤어 나온, 손바닥을 엎은 모양[ 覆掌 形〕울 陰이라 하 고 오목하게 四形으로 들어 간, 손바닥을 오므린 모양[仰掌形〕울 陽 이라한다. 四格 중 窓와 鉛은 그 訓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감춘다, 혹은

목사슬 等의 四形이므로 陽穴이 되고, 乳와 突은 占形이 되어 陰穴 이 된다. 따라서 陰脈이 오는 아래 에 腐, 鉛의 陽 穴이 있 어 야 하고 陽服卞이 오는 아래에 乳, 突의 陰穴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다시 말해서 둥성이〔背背〕진 곳이 陰이 되고 평탄하거나 오목한 곳이 陽인 바 穴의 後面이 일어나거나〔起], 둥성이로 드러난 맥( 露 服卞〕 아태에 腐穴이나 鉛穴이 생기는 것이니, 이는 陰來陽受에 의 함이고, 穴의 後面이 평탄하게 혹은 약간 오목지게 내려온 肺 아레 에 乳穴 또는 突穴이 생기는 것이니, 이는 陽來陰受하는 이치이다. 1) 寫形穴 이 穴은 오목하게 들어가 제비집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그립 3-9). 그래서 腐形穴은 鷄腐 [닭의 둥지〕, 掌 心〔오므린 손바닥J 혹 은 金盆形이라 불리기도 한다. 山龍語類에도 窓穴은 그 모양이 〈다 물린 구슬, 닭둥우리, 제비집, 동찬, 回字, 손바닥, 金쟁반, 노구 솔 소라 같다(形如拘珠 如鷄腐 燕菓 打蓋四字 掌 心 金盆 鎬底 旋

螺 ) 〉고 하였 다. 72) 이는 平地와 高山에서 모두 있 는데 높은 山에 더욱 많은 바 高 山은 四한 곳으로 眞穴울 삼고 平地는 突, 죽 占한 곳으로 眞 穴 울 삼기 때문이다. 蔡牧堂도 〈開口를 腐라 하는데 平地와 高山에 모두 있으며 高山 에 더 많다. 그생김새는鷄案, 鎬 底, 掌心 , 旋螺, 金盆, 荷葉 等과 같다(開口曰腐 平地高山 皆有之 • 高山爲多 有鷄棄 鎬底 掌 心 旋螺 金盆 荷葉等形)〉고 하였다 .73)

72) 『地理正宗』, 卷十一, 「山 龍語類 」, 龍 穴. 73) 『山法全 書 』, 卷之十一, 「穴情試」(上海, 九經 홈 局).

그림 3-9 腐形穴

窓 穴에는 二體가 있는데 입을 오므린 듯한 藏 口窓體와 입을 벌란 듯한 張 口窓 體 가 그것이다. 彦氏 는 말하기를 〈 무릇 張口穴은 영광이 그 가운데에 모이고 나 머 지 기 운은 밖에 行하여 雄雄이 서 로 돌아보고 穴脈이 交通한다. 그러나 藏口穴온 양국이 고리〔環〕를 이룬 곳에 활처럼 분명하게 굽 은 것이 입 가운데가 둥글고 깨끗하며 오목한 가운데 웅결한 것이 좋고, 떨어전 말구유 같은 것, 穴場이 움푹 패이고 경사져 구부러 진 듯한 것은 나쁘다. 또는 너무 평범하거나 한 편이 텅 빈 것 같 고 무너져 움푹 파인 듯한 것은 假腐 혹은 藍窓라 하는 것으로 大 凶하니 조십해야 한다〉고 하였다 .14) 또 腐形 에는 四格이 있으니 深腐, 茂萬,陝腐, 副腐가 그것이다. 이 四格은 左右가 군일한 것이 正格이고 그렇지 못한 것은 姜格 이 다(有四格 深淡腦陝是也 並以左右均句爲正 左右不同爲 裝 ). 75)

74) 韓松溪, 前撮합, pp. 113~4. 75) 『山法全困』, 卷之十一, 「四大穴情」.

四格은 다시 굽어보는 모양과 쳐다보는 모양의 두 가지로 나뉘는 데 굽어보는 腐中에 미미하지만 유방 같은 穴(乳穴]이 있으면 거기 에 定穴해야 하고 쳐다보는 腐中에 突穴이 있으면 역시 그 곳에 定 穴해야 吉하다. 이것도 陰陽調和, 回占結合의 發想으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腐形四格 中 深腐는 입을 열어 깊이 감춘 형태를 말한다. 그러나 너무 깊어 빠질(!씁〕 정도가 되면 좋지 않지만 혹 그런 深 腐 중에 미미한 乳나 突이 있으면 꺼리지 않는 바, 이는 陽中에 陰 이 있어야 하는 이치이다. 腐 가운데 둥글고 맑으며 큰 陵이 명 백 하고 兩抱이 활같이 안아 드는 형태(弦陵]이면 좋으나 만일 腐가 너무 깊으면서도 乳突이 없 고 弦稷이 둥글지 않고 左右가 기 울면 虛窟라 한다. 浚窓란 窓가 얕은 것을 말한다. 그러나 너무 °같아서 평평하면 無 情하다 하여 不吉하다. 연잎 같은것이 吉하고, 弦稷이 명백하고 兩 拘이 활같이 안는 형태이면 좋다. 蘭腐는 窓形이 넓은 것을 말한다. 역시 너무 넓으면 공허하여 좋

지 않다고 본다• 腐中에 미미한 乳突이 있어야 좋고 左右의 兩拘이 군등해야 합격이다. 陝窓논 腐形이 좁은 것이다. 그러나 너무 좁거나 腐中이 둥글지 않고, 弦稷이 밝지 않으며 左右 불균형 이 면 占穴이 不可하다. 둥귤 고 깨끗하며, 弦稷온 明白하고 兩拘아 떡抱 되어야 좋다. 以上이 腐形穴의 基本形이고 兩拘의 均一 여부에 따라 正格 五體 와 變 格 二十이 있는데 均一한 것이 正格, 고르지 못한 것이 裵 格 이다. 그 외 曜를 떤 八格도 있다. 2) 鎖形穴 鉛이란 刑具의 일종인 項鎖를 뜻한다. 그러나 鉛形 은 오히려 〈삼 태 기 모양〉이 라 생 각하면 좋을 듯하다. 窟金精 은 이 朗形穴울 開脚 穴이 라 하여 다리 를 벌 린 듯하다고 표현 하였 다(그립 3-10). 腐穴과 더 불어 回形穴에 속한다. 따라서 欽鏞 虎口, 合曲, 來穴, 仙宮, 單提 , 雙壁 , 單股 , 弓脚

等은 모두 穴 星 이 두 다리 를 벌 린 꼴이므로 鉛穴의 벌명으로 보 떤 된다 .76) 이 穴은 高 山이나 平地 모두에 있는데, 五格의 正格과 八格의 變 格이 있다. 直鉛, 曲鉛, 長鉛 , 短鏞 雙鉛 의 다섯이 正格인 五 格이 고 變닳 變 曲, 仙宮, 變長 , 變 短, 單提, 堤雙 , 溪 枝 等 여덟 가지가 變 格이다. 直鏞은 좌우 兩脚이 모두 곧은 穴인데 , 다리 가 길면서 단단하면 不可하고 반드시 아름답고 短少

76) 東谷, 前揚書, p. 91. 韓松溪, 前掃 書 , pp.1 18~9 .

그림 3-10 鉛形穴

한 것이 吉하며 앞에 가까운 右편 案山이 橫으로 둘러 있으면 더욱 아름답다. 죽 直鏞은 이마가 둥글고 단정하며 鉛中이 꼭 껴안아 싸여 몸에 가깝게 內堂의 氣가 밖으로 기울지 않아야 眞 穴울 웅결한다. 曲鉛穴은 좌우 두 다리가 구부러져 內堂울 안은 듯한 것인데 역시 이마가 단정하고 굽어든 소의 뿔 모양으로 穴 場 을 싸 안되 左右가 사귀어야 좋다. 이때 界水가 머리를 쏘떤 眞 結이 아니다. 長鉛 온 좌우 두 다리가 모두 긴 것인데 곧고 단단하고 너무 건 것은 좋지 않다. 그러나 길어도 案 山이 橫 으로 싸 안으면 內氣가 흩 어지지 않아서 꺼리지 않는다. 短鏞 은 두 다리가 모두 짧은 것인데 너무 짧으면 穴울 보호하지 못하여 不可하니 적당히 짧으면서 다른 보호의 星辰이 있으면 좋다. 雙 鉛 은 두 다리가 모두 二 혹은 三•四枝를 갖는 穴인데 서로 조 화 되 어 아름다와야 吉하고 사점 이 혼잡하면 좋지 않다. 이 때 枝들 이 뾰족하여 서로 찌르는 듯하면 不吉하다고 본다. 어떤 鉛穴이건 鉛中과 鉛脚이 유연하고 맑아야 하며 또한 지나치 거나 못미침이 있어서도 안된다. 득히 鏞 가운데 乳가 있거나 혹은 突 이 있어야 眞 이라 하거니와 역시 調和, 陰陽 的 思考의 發想인 듯 하다. 3) 乳形穴 乳穴은 穴形이 마치 성 숙한 女人의 유방과 같다 하여 불여 진 이 름이며 垂乳, 乳頭穴이 모두 같은 것으로 두 팔이 있고 그 사이에 乳穴이 있는 형태를 취한다(그립 3-11). 寒 氏에 의 하면 〈 惡 乳穴은 生 氣 가 모인 것 이 기 때 문에 양 팔[兩脣〕 이 있고 한 乳가 正中에 있으면 吉하다. 그렇지 못하고 左右가 결 함되거나 바람이 닿고 물이 찌르면 不吉하다〉고 하였다. 乳穴은 반드시 두 팔이 에위싸 안은듯해야 眞 穴울이루는데 乳上 은 둥글어야 좋다. 이그러지고 드러나며 四方으로 꺾어진 것은 思 한다. 乳穴에는 長乳, 短乳, 大乳, 小乳의 正格인 四格과 雙 垂乳, 三垂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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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11 乳形穴 및 突 形穴

等의 變 格이 있다(皆有異名有六格 長短大小爲正 雙 乳三乳 爲變 ).77) 長乳란 乳形이 간 것을 말하는데 이 경우도 너무 길면 不可하다 고 본다. 두 다리가 정중하게 안으로 싸이고 단정해야 吉 格 이며 단 단하고 거칠고 준급하고 지나치게 솟거나 부스럼같이 보이면 凶格 이다. 短乳란 두 팔 또는 두 다리 중간에 매달린 乳가 짧은 것이니 역 시 너무 짧으면 氣弱하여 좋지 않다고 본다• 左右는 環 抱하여야 하 며 다른 것은 長乳와 같다. 大乳, 小乳는 乳의 크기를 말하는데 이 경우도 마찬가지로 너무 크거나 너무 작은 것은 기피한다. 특히 양 다리가 너무 웅장하여 乳를 내리누르는 듯하면 더욱 不可하다. 雙 垂乳는 乳가 둘, 三垂乳는 乳가 셋인 穴인데, 乳의 크기와 형 세가 비슷하고 左右가 環 抱해야 좋다. 크기에 차이가 있을 때는 물론 最 吉格은 되지 못하지만 그 중 아 름답고 有 情 한 쪽에 定穴하면 좋다. 77) 『 山法全 書 』 , 卷 之十一, 「四大穴 情 」.

4) 突形穴 突穴온 말 그대 로 穴이 우뚝하게 솟은 것 을 말한다 . 穴이란 본래 바람이 닿는 것을 가장 꺼리는 고로 山谷의 突은 左 右가 環抱하여 바람을 감추어야[藏風〕 吉하고, 외롭게 드러나거나 하지 말아야 하며 平地의 突은 주위가 평탄해도 해가 없으나, 다만 界水가 분명 하고 水 勢 가 穴前에 모이 든가 穴前울 環抱함이 吉하다. 平地에서는 바람이 地面울 좇아 지나기 때문에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까닭이다. 突 形穴에는 四格이 있는데 大突과 小突은 正格이고 雙 突, 三突은 變 格이다. 大突과 小突은 穴形의 大小에 의한 구분이다. 大突은 너무 크면 거칠고 완만하게 되기 때문에 적당히 커서 突 面이 빛나고 둥글고 형체가 분명해야만 吉하다. 小 突 역시 지나치게 작아 高低를 분별 못할 정도이면 不可하고 突面이 빛나고 살찌어 부드러우면 좋다. 특히 界水가 광활하거나 물이 갈라지는 것은 매우 좋지 못하다. 雙 突, 三突形은 突이 두 개 혹은 세 개가 나란히 솟은 경우인데 乳穴에서와 마찬가지로 大小, 高低 等이 고르고 단정해야 좋은 것 으로친다. 모양이 다른 경 우는 그 중 가장 좋은 곳을 定穴處로 한다. 5) 穴形四格의 奇形 上述한 窓,鉛, 乳, 突에 는 奇形과 怪穴이 있 다. 78) 평평한 언덕과 죽은 덩어리를 가리키는 邊 腐, 並腐, 기울어지고 경사전 山脚울 말하는 閃乳, 側乳, 界水가 漏 櫓 됨을 일컫는 分 m, 合gIt, 넓고 완만하고 단단한 곳을 지칭하는 鶴 突, 並突 等이 그것 이다. 形勢는 모두 다르지만 吉凶 판단의 地勢의 대략은 비슷한데, 吉 格이 되려면 단정, 有情 環抱, 秀 麗 , 融 氣 , 水口 關鎖 하여야 하고, 78) 韓 松 溪 , 前 掃홉 , pp. 128~j/ .

그렇 지 못하고 거 칠고 단단하고, 찌 르고, 둘 러 싸지 않고, 無情 하고 무너지고, 過하면 凶格이 됨은 다론 경우와 마찬가지다. 3. 穴星의 體 와 氣 脈 穴形四格은 穴 場 자체의 형세에 대한 것이지만 來 龍 이 入首하는 形局에 관한 것도 吉凶에 관계가 된다. 이때 入首하는 來 'E 이 穴 場 울 일으키는 것을 穴 星 이라 한다. 風 水에서는 山이 땅과 일체 를 이 루어 만드는 어떤 모양을 星 이라 일컫기 때문이다. 죽 入首된 山이 무슨 形 格 인가 를 알아 보는 穴 星 의 體 는 그것 이 좋아야 眞氣 롤 融結할 수 있기 때문에 중시된다. 〈星睦 가 吉해야 吉 穴을 이룬다(星 體 吉時成吉穴) 〉 79) 는 말은 穴 星 에도 해당되는 지적 이다.

79) 『 地理正 宗 』, 卷七, 「天元九 略 」, 右形 局章 第 一.

穴 星 에는 五行에 따라 당연히 金星,木星, 水星, 火 星 , 土 星 의 五 星 이 있으며 正 體 , 側 腦 , 平面의 穴 星 三大格이 있다. 正 體 는 星辰의 頭 와 面이 단정 하고 규모가 尊重 한 것 이 다. 正 體 의 穴 星 은 五行의 精氣를 모아 星辰 의 正 象 울 융 결 한 것이므로 그 . 結 作된 星體 가 청수한 것을 極品의 貸 를 누리는 上格으로 하고, 星 體 가 살찌고 탁하더라도〔 龍濁 J 正格온 아니지만 小 貴 는 바랄 수 있 다. 側 腦 는 星辰의 頭腦 가 기울어 形體 도 기운 것을 말한다. 원칙적 으로 定穴이 不可하지만 星體 가 淸秀 하면 貴 히 여기는 경우도 있다. 平面이란 星辰이 平地에 넘어져 형체가 평탄한 것이다. 역시 淸 秀하면 上格이 되고 龍濁 하면 떨어진다. 이 三格온 다시 五星과 결합하여 예컨대 正 體 金星穴法, 側 腦 金星 穴法, 平面金星穴法, 正 體 木星穴法, 側腦木星穴法, 平面木星穴法, 正 體 水星穴法, 側腦水星穴法, 平 面水星穴法, 正 體 土星穴法, 側腦土 星穴法, 平面土星穴法 等 12 個 穴法울 이 루게 되는 바, 穴星에 아 三大格이 있어도 正 結 이라 하지는 못한다. 반드시 이 穴星 사이에

는 腐鏞 乳, 突 이 있어야 正 穴 이 되는 것이다. 穴形四 大 格이 없 이 正 體 , 側 腦 , 平面만의 三格 J::에만 定穴하려면 그 법위가 넓어 뚜렷한 핵십을 찾울 수 없는 꼴이 된다. 그런데 金,木, 水, 土 星 에는 三格別 穴法이 있으나 火星은 원래 穴은 맺지 않기 때문에 火 星 穴法온 존재하지 않는다. 郭漢 의 葬經 에서도 乘 金, 相 水 , 穴土, 印木은 나오지만 火에는 언급이 없다. 대개는 金, 土 二 星의 경우가 제일 많고 木星, 水星 이 그 다음이다. 火 星 의 穴은 하나도 없는데, 이것은 火星의 속성 이 速 成速敗하고 火 災 도 빈번하기 때 문인 듯하다. 80) 대체로 山 形 이 五行의 星 體 로 합한 것이 표준이니, 요는 山 勢 의 웅장하고 유약함과 山形의 아름답고 악한 것과 또는 星辰이 五星中 에 어떠한 것의 形인가를 살피고 穴 場 의 窟,鏞, 乳, 突 四 象 울 밝 혀 그 穴 體 의 合格 여부와 迎送, 흄護 , 朝 案, 水口 등을 상세히 살 펴 定穴하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이다. 여기에 十 樣氣脈 이 주가 되는데 强, 弱 , 順, 逆 , 緩 , 急, 生,死, 陰, 陽 이 그것이다. 〈 九升은 이르기를 氣脈 의 强 弱 이란 高 低를 뜻 하는데 高塘 하여 일어선 것을 强 , 低坦하고 평평한 것을 弱 이타 한 다. 緩 急은 曲直울 말하는 것이고, 順逆은 長 短을 일컬으며, 生死 는 動龍 陰陽 은 仰 掌 • 覆掌 울 뜻하는 것이다. (九升曰 氣 脈之强弱 以 高 低言 强者高 洞 而起弱 者 低坦而平也 緩 急以曲直 言 緩 者曲屈而來 急者直硬而至也 順逆以 長 短 言 脈 緩 而短則宜順下曰 佛 腦也 脈急而長 則宜逆受曰 佛 耳也 生死以 動靜言 脈小而活曰生 脈 器 而 靜 曰死 陰陽 以 仰 掌覆掌 言 稷掌 起捷曰陰 仰 掌 平坦曰 陽 )〉 8 1) 4. 구체적인 定穴의 方法 穴星과 穴形울 알았다 하더라도 실제로 穴율 찾아내기 위해서는 局울 이루고 있는 穴이라 생각되는 지접 주변의 前後左右 山勢와 80) 韓 松溪, 前 掃書 , pp. 137~49. 81 ) 村『山山法智全 順 書 , 』 前, 揚卷 之書十 , 二p,p. 1 1「 論2~ 十7. 樣 氣 脈」.

水局을 살펴야 眞 穴 여부를 알아낸 수 있다. 일반적으로 眞穴은 앞에 아름다운 朝 山, 案 山이 있고, 明 堂 이 바르 고, 水局이 모여들 듯 흐르고, 뒤에는 樂 山이 솟아 鬼星울 버티고, 左右의 靑 龍, 白虎가 有情 하고, 選護 가 얼싸안고, 주변 山 勢 는 十 道眞 結 法에 맞게 조화 를 이루며, 界水가 그 分合울 분명히 하고 있 는 곳에 있다 .82) 혹은 穴前 案山이 秀 麗 拜應하고 案山의 거리와 크기가 主山과 相 比되어 적당하고, 明 堂 은 평평하고 넓지만 空缺함이 없이 원만 陽 明하고, 水 勢 는 悠 長 弓抱하면서도 無情 直 流 나 反 背 逆流함이 없고, 靑龍 白虎논 陽 明 有 情 하게 穴 場 을 감싸주고, 繼護 는 重重 하고, 脣 鹿이 찢기거나 부서집 없이 豊厚 하고 界水가 분명하여 물의 分合이 확실하며 天心十道가 穴 場 울 중십으로 四方位에 正十字로 되어 있 으면 眞 穴이 라고도 한다. 83)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갖추어졌다 하더라도 사람이 나쁘떤 얻을 수 없는 것이 또한 眞 穴이다. 雪 心 賊 에서도 〈眞 穴울 구함에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그 하나가 積德 인데 德 울 쌓음이 求 地의 근본이 기 때문이다. 卜氏가 말하기를 吉地는 神의 맡은 바인데 善 人은 반 드시 하늘의 능함을 보게 된다. 그를 봄에 積德 한 善 人인 줄을 알 기 때문이냐 따라서 租德 이 없으면 吉地를 얻지 못한다. 또 한 가 지는 地師의 선택인데 地師를 찰 얻으면 眞 穴울 얻음과 같다. 대저 山川은 말이 없이 그 情 울 스스로 내보일 분이기 때문이다(至求 地之要有二 一在租 德 蓋積德 爲求地之本 卜氏云 吉地 爲 神之所 司 未 有 不得吉地者也 一在擇師 得師則得地矣 蓋 山川不 言 其 情 自見) 〉 84) 하여 眞穴의 얻고 뭇얻음이 결국 사람의 善 惡과 관계되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사람 心性의 중요함은 定穴에서 再 言 의 여지가 없으나 定穴方法 에는 구체적으로. 관련이 없기 때문에 더 이상의 언급은 생략한다. 82) 村山 智順 , 前 掃홉 , p. 118. 83) 辛係柱, 前 撮書 , pp.1 72~3. 84) 『雪 心試 辯鴻 正 解』 , 「 辯論編 」, 求地 辯

1) 朝案定穴法 아무리 뛰어난 地師라 하더라도 風水 總論 에 해당되는 尋龍 은 쉬 울지 모르나 各 論 인 穴을 찾기는 어려운 법이다. 德 龍 經 에도 〈 비록 龍울 찾기는 쉬우나 穴울 헤아리기는 어렵다( 尋龍 難易裁穴 難 )〉고 하였다 .8 5 )

85) 『地理正宗 』 , 卷 三, r ~龍經 」, 變 穴 篇 .

眞 穴울 찾기 어려움은 대부분의 地 家 書 에서도 지적되는 바이거니 와 실제 踏 山에 나셨을 때에 느끼는 定穴의 막연함과 당황됨은 실 로 대단할 정도이다. 그러나 穴 場 도 결국 風水의 대원칙인 天地理致에 순응하는 것인 바, 眞 穴이 됨에는 그만한 이유와 증거가 있는 것이고, 그 증거에 의하여 穴울 찾으면 어느 정도 쉬울 수 있다고 한다. 鑑 龍經 에 이르기를 〈眞 龍에 穴이 있으나 찾기 어려우니, 오직 朝 山울 살피되 朝山이 높으면 높은 곳에 정하고 낮으면 낮은 곳에 定 하라 〉 하였다. 元 氣歌 에서는 〈 수려한 山이 左에 있으면 穴도 左에 있고 右에 있 으면 穴도 右에 있다〉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朝山을 따라 穴율 定 하는 방법이다. 마찬가지로 朝山이 가까와 누르는 듯하면 穴온 반드시 높은 곳을 잡고, 朝山이 멀어 기운이 흩어지기 쉬우면 穴울 낮은 곳에서 구해 야한다 . 穴處의 高 低는 雪 心賊의 穴 總 三停에 의 하여 天穴,地穴, 人穴로 나뉘는데, 그 正 解 에 의하면 〈穴이란 生氣가 머무는 곳으로 사람 이 針炎하는 血脈과 같이 氣가 모인 곳이다. 停이란 머무는 것이며 三停은 上停, 中停, 下停, 죽 天地人 三才穴울 말함이 라(穴者生氣 止緊之 處 如人身針炎之血肺 氣 所 鍾 也停者 氣 之 停 止也 三停上 停 中停 下停郞天地人三才穴也)〉 하였는데 86) 天穴은 上停, 죽 氣가 위에 서 모이 는 穴로 高穴을 뜻하고 地穴은 下停, 죽 아래쪽의 低穴울 말하 며, 人穴온 中停, 죽 그 중간에 위치한 穴울 가리킨다.

86) 『 雪 心試正解 』 , 卷一, 「 論 地理 淡略 」.

이때 朝山 혹은 案山은 멀리 떨어진 것보다 가까이 있는 것을 위 주로 하여 정하면 된다. 卜氏가 아르기를 〈 멀리 있는 外山의 千 重 山이 가까운 1 個 案山만 못하다〉 했고 〈堂內穴中의 葬事 는 生 氣를 위주로 함이 可하다 〉 고 했다. 즉 朝 應 하는 山은 반드시 수려 하고 아름다와야만 朝山울 좇아 穴 을 찾는 것이지 朝山이 있더라도 추악하거나 朝山이 수려하더라도 너무 멀떤 不可하다는 것이다. 朝 案證 穴에서는 이를 요약하여 〈 秀 應 在左穴居左 秀 應 在右 向右 奇 朝近穴高 朝 遠 穴低 〉 라 표현하였 다. 87)

87) 『山法全 홉J , 卷之十一, 「 朝 案 證 穴」.

2) 明堂定穴法 明 堂 은 前述한 바와 같이 穴 앞에 위치하는 廣庭 울 말하는데, 크 게 둘 혹은 세 가지로 區分하여 사용되고 있다. 위치에 따라 大 • 中 • 小로 나누는 바, 小明 堂 이란 穴 바로 아태 內 龍 虎 사이에 있는 공간이고, 中明堂이란 靑龍, 白虎 사이의 넓은 공간으로 緊氣 水合 處이며 大明堂은 穴前에 보이는 시야 전체의 坂局을 말한다. 明堂온 넓고 평탄하며 원만해야 하며 空缺虛 處 가 없어야 吉格이 다. 반대로 좁고 경사지고 비뚤어져 空缺이 많으면 좋지 않다고 본 다. 이러한 明堂울 보아 定穴하는 方法은 明堂이 반듯해야 穴이 된다 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우선 평탄·원만해야 한다. 明 堂 이 제대로 되어야 穴도 융결된다는 뜻으로 雪 心賊에는 〈入山하여 水口를 찾고 登穴하면 明堂울 본다(入山 尋 7J ( 口 登穴 看 明堂)〉하여 BB) 역 시 穴과 明堂의 不可分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우선 大明堂온 衆水衆合하므로 江도 있고 平野와 山도 있으므로 案山 안에 融結하여 모인 곳에 穴울 정하면 되고, 中明堂은 靑龍, 白虎 內에 서로 사귀어 모인 곳에 穴을 정하며, 小明堂은 平正하여 사람이 橫으로 누울 만한 곳이 있으면 眞穴이니 上下左右를 들리지

88) 『 雪 心試正解』, 卷一, 「 論 地理要略」.

않도록 하면 된다. 이때 〈明堂이 바르면 穴울 가운데, 左右이면 各 左右로 穴을 둔 다. 이것은 위치를 말함이고 明堂의 기울어침을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明 堂 은 穴을 輔 弼하는 것으로 쟁반에 잔을 담돗 자리를 깔 아 발을 넣 듯 조금도 기 울어 지 면 안된다 (堂之 輔 穴 如 盤盛 否 如朋 籍 足 斷無 一偏之 堂 堂正則穴中 堂左則穴左 堂右則穴右) . >89 ) 3) 分水, 合水定穴法 龍脈 을 살펴보면 〈 J\〉字 모양으로 分水되었다가 그 아태에서 다 시 合 水 된 곳이 있는데 이는 陰 陽의 度數를 사귀는 곳이므로 生氣 가 모여 眞 穴이 웅결된다. 이때 위에서 分水만 되고 아래에 合水되 지 않으면 陰陽 이 度 數 를 사귀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穴을 이루지 못한다 (그립 3-1 2) . 이때 위에서 分水가 없이 龍 虎水가 穴울 左右에서 감싸안듯이 하 며 합쳐지는 경우도 可하다.

89) 『山法全 書 』, 卷之十一, 「明堂 證 穴」.

4) 天心+道定穴法 天心十道란 穴울 중십으 로 하여 前後左右에 應하 는 山이 〈 十〉字 모양으로 된 것을 말한다. 이때 穴 뒤를 蓋 山, 앞 울 照山, 양 옆을 左右 來 山이라 하여 이 네 개의 山 이 정확히 서로 十字를 이 루며 應해야 吉穴이 되기 때문에 四應이라 하며 그 한가운데 作穴하면 된다. 반드시 四應하는 山의 中 心과 中心이 연결되어야

그립 3-12. 分水 • 合水의 原 理

蓋山

右來 더 亨 그림 3-13 天心十道定穴法

天心十道가 되는 것 으로 조금이라도 치 우치거나 빗나가면 안된다. 또한 十道를 이루 는 四應만 정확하면 다론 山둘의 존재 여 부는문제삼지 않는 다. 그림에서 來龍 이 左下에서 右上쪽 으로 흘러 結局되었 는데, 이때 來龍의 山에 관계없이 四應 이 天心十道를 이루 고 있다. 대단한 吉

地로꼽힌 穴이다. 5) 水勢定穴法 水의 중요성은 거의 대부분의 風水 書 에서 강조되고 있는데, 葬書 의 〈風水之法 得水爲上 藏風次之〉가 가장 대표적인 구철이 될 듯 하다. 雪心賊에는 〈山이 비록 緊集된 곳이라 하여도 물이 혹 傾斜지면 좋지 않다(山緊處水或傾斜 謂之不善)〉 90) 하고 〈뭇山이 머문 곳에 眞 穴이 있고 뭇물이 모인 곳에 明堂이 있다(衆山止處是眞穴 衆水衆處 是明堂)〉 하였으며 ,9 1) 특히 〈山의 좋고 나뽑은 물의 어떠한가에 의 한다(論山可也 於 7J c 何如)〉하여 92) 山울 보기 전에 먼처 水를 말하라 할 정도로 중요성을 지적하였다. 이 水勢를 살펴 穴울 定하는 方法은 壅氏가 말한 〈穴이 숨어 있 . 90) 『雪心試正解J, 卷一, 「 論 五星」. 9921 )) 上上掃同 書 , 卷一, 「論水法」•

으면 찾기가 어렵다. 眞穴이란 뭇물[衆水〕이 모이거나 혹은 멀리서 穴을 감싸안거나 혹은 穴에 朝入하거나 한 곳에 반드시 었다〉란 93) 구철에서 알 수 있듯이 물의 追眼하는 곳을 살피면 穴의 소재를 찾 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水勢가 明堂 左편에 모이거나, 水城이 左편을 활처럼 포위 하면 穴이 左에 있는 것이고 반대로 明堂의 右편으로 모여 돌아가 거나, 右편을 활같이 싸안으면 穴은 右편에 있게 된다. 만일 水流가 明堂 한복판으로 향하여 들어오거나 正中央으로 훌 러 들어와 水城이 穴場을 둥글게 안으면 穴이 正中에 있게 된다. 또 물이 멀리서 와 明堂이 너그러우면 天穴울 쓰고, 水流가 길면 서 局勢가 순하면 낮은 곳에 穴울 쓴다. 水向이 來龍의 脈勢를 따르는 順勢이면 穴울 아래에 잡고 逆勢이 면 높은 곳에 잡는다. 94) 6) 樂山定穴法 樂山이란 玄武頂이나 小祖山이 아닌 穴 뒤에 솟아 있는 山으로 遠近울 막론하고 穴上 또는 明堂 가운데서 뒷부분으로 솟아 바타보 이는 山을 말한다. 樂山온 來龍에 붙었거나 客山 혹은 護從 山이거나 간에 또 그 모 양이 어떠하돈 간에 穴上에서 바라보이는 것이 가장 좋고 明堂에서 보이는 것이 그 다음이다. 특히 橫龍이나 側腦에 定穴하는 데는 樂 山으로 베개를 삼아야 하 논 바, 따라서 樂山이 아니면 眞 穴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 術書에 따라서는 〈橫龍出穴 必要樂〉이라고도 한다• 대체로 樂山이 左에 있으면 穴은 穴 場 의 左편에 있고, 右에 있으 떤 右편에 있으며, 가운데 있으떤 穴도 가운데 있게 된다(樂在中穴 居中 樂在左穴亦左 樂在右穴亦右) .. 95) 樂山이 左右에 雙으로 있으면 左右 雙穴울 맺거나 혹은 中央에 93) 韓松溪, 前掃합, p.1 54. 94) 村山智 順 , 前掃 합 , p. 121. 95) 『山法全촙J, 卷之十一, 「樂山證穴」.

一穴울 맺는다. 또 樂山이 가까운 것과 먼 것이 아울러 있으면 가 가운 山으로. 樂山울 삼고, 길고 짧은 것이 있으면 간 것을 취하며, 많고 적 은 것이 있으면 많은 곳으로 의지하여 穴울 정해야 한다. 樂 山이 四方에 있으면 中央에 정 한다. 이에 樂 山은 되도록 穴 가까이에 와서 星辰워 體 를 이룬 것을 아 름답다 하고, 특히 병풍, 日 企 , 옥베개, 발, 장막의 모양을 하고 있으면 지극히 귀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樂山이 너무 高大, 雄 壯, 峻巖 하면 穴울 능믿하고 억압하 는 것이 되어 不吉하기 때문에 이것을 피하여 穴을 세우되, 左山이 穴을 누르면 右편에 定穴하고 右山 이 穴 울 누르면 左편에 定穴하며 뒷山이 穴울 누르면 穴을 앞으로 빼 내어 定穴해야 한다. 7) 鬼山定穴法 鬼山은 흔히 鬼 星 이라 하는데 樂山과 유사하나 樂 山괴는근 달리 직 접 穴 뒤에 당겨 붙여전 山으로. 비록 主山의 氣 가 盛 해도 鬼 星 으로­ 인하여 發浪 되는 수가 있다(鬼 者抱 干穴 後 誰 曰主山 氣 盛 而發 浪 之 爲 鬼 ).96)

96) 『塚玉芹』, 卷之三下, 「 論 鬼山」.

鬼星으로 穴울 定하는 것은 오직 빗겨 떨어지고 편벅되게 기 울 어 전 穴에 限하는 것인데 물론 穴 뒤에 鬼星이 있어야만 한다. 다만 星辰이 穴 場 뒤를 등지듯이 밀어 나온 경우[ 摘背 〕에는 鬼 가 없어도 무방하다. 독히 橫龍 의 穴에 鬼星이 필요한데, 떨어지고 편벽된 穴은 뒤에 鬼星이 없으면 虛하여 기운이 모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鬼星이 穴울 맺는 要件은 穴 場 이 鬼星울 끊어 鬼氣를 거두어 둔 이키는 것인데, 만일 穴이 약간 기울어지면 鬼가 穴의 氣 를 빼 앗으 므로 穴울 잃게 된다. 따라서 鬼星이 높으면 穴도 높고, 鬼가 낮으 떤 穴도 낮게 定하며, 鬼가 左에 있으면 穴도 左로 하고, 右에 있 으면 右에 定穴한다. 그러나 鬼星온 너무 건 것은 좋지 못한 것이 니 너무 길면 穴의 기운을 빼 앗아 가는 것이다.

8) 龍虎定穴法 靑龍 과 白虎의 형태를 살펴 定穴하는 方法이다. 원태 龍 虎는 穴 場 울 衛區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定穴에 있어서 龍 虎의 大小力 裁 은 매우 중요하다. 范 越鳳 이 말한 〈龍 이 强 하면 龍 을 좇고, 虎가 강하면 虎를 좇으 라 〉 는 말이 龍虎 定穴 法 의 원칙이 되는데, 이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이 董德彰 이다. 그는 〈龍 虎의 멈춘 곳을 보아 穴의 虛實 을 정하고 龍虎 의 先 後 를 보아 穴의 左右를 정한다. 靑龍 이 有力하면 穴울 左 편에 의지하고 白 虎 가 有 力하면 穴울 右편에 의지하여 龍虎가 낮으 떤 바람을 피하여 明 堂 으로 나아가 낮은 곳에 穴(地穴J울 정하고, 龍虎 가 높으면 누르는 것을 피하여 明堂울 놓아두고 높은 곳에 穴 〔天穴J울 찾아야 한다 〉 고 하였 다. 97)

97) 韓 松 溪, 前 掃靈 , p. 158.

龍虎 가 높지도 낮지도 않으면서 有 情 하면 穴울 중간에(人穴〕 잡 으면 된다. 또 龍 이 좌측으로 굽어나가면〔左 單 提〕 왼쪽에 定穴하고 우 측 으로 굽어 나가면 〔右 單 提〕 오른쪽에 穴울 정 하면 된다. 이때 龍 이 없고 虎만 있으면 定穴이 불가능하지만 龍 이 있어야 할 左측에 水 勢 가 호위하듯 흐르면 可하고, 반대로 虎山이 없는 경 우는 水 勢 가 右측을 감싸안듯 흐르면 좋다. 결국 龍虎의 勢 를 좇아 穴을 정하면 되는데, 어느 경우나 龍 虎가 穴 場 을 찌르듯 하거나 속이면 그것을 반드시 피하여 정해야 한다. 穴온 있는 것을 의지하고, 없는 것을 의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9) 綴護 定穴法 耀護 란 둘러 보호한다는 의미로 마치 奴 僕 아 主人을 호위함과 갈 은 것이다. 노복은 주인 곁을 멀리 떠나지도 못하고 너무 가까이 하지도 못하여 적당한 위치를 지켜야 하는 것과 같이 윔護 하는 山 도 穴울 떠나지도 못하고 둥지지도 못한다. 經護 는 主 龍 이나 穴 場 울 外山, 外 峯 으로 둘러싸는 것이니 送山이 짧으면 穴이 안에 있고 길면 送山이 盡 한 곳에 穴이 있음이 원칙

이다. 10) 向背定穴法 向背는 術者의 主觀과 관계있는 것으로- 山川의 有情, 無情함을 가리킨다. 風水의 法 術 은 人 事 와 마찬가지인데, 나를 向하여 즉 穴 울 向하여 모여드는 勢는 有情하게 사귀는 것으로 보고 나를 죽 穴 을 둥지는〔背〕 者는 싫어 하여 無情하다고 본다. 主山은 穴 場 과 明堂을 내려다보듯 向하고 龍虎 는 감싸안듯 穴場 울 抱固하여 다론 곳을 돌아다보지 않으며 朝案은 主人울 바라보듯 머리숙여 穴場울 向하면 生氣가 融結된 吉穴이 마련된다. 이때 주위 砂城의 向한 시접이 한 곳에 일치될 경우 그 곳에 定穴 하면 된다. 11) 螺買定 穴法 선이(매미 날개)이란 穴坂의 뚜껑울 말한다. 入首에서 두· 팔을 벌려 穴坂의 좌우- 양측을 감싸는 형태인데 글 뜻 그대로 매마 날개와 같아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구체적으로 輝翼 은 入首에서 흘러 들어간 氣 가 위로 날아가지 못 하도록 하는 여할을 하는데 이것이 좋으면 龍 虎가 없어도 괜찮다고 할정도이다. 꽃받침 위에 꽃이 피듯이 燁翼 위에 穴이 융결된다는 비유를 생 각해 보떤 쉽게 이해될 것이다 .98)

98) 辛係柱, 前 掃書 , p.1 33 및 pp.1 44~5.

12) 脣藍定 穴法 순전이란 穴 아래 남은 기운이 드러난 것으로 墓庭 의 下端部를 말한다. 큰 것을 f:£, 작은 것을 脣 이라 區分하기도 한다. 四龍 이 穴울 맺는 곳에는 반드시 그 남은 기운을 밸아 입술 C 脣 ) 이 나 요〔椿 즉 f;'€ )가 되 기 때 문에 脣抵 울 찾으면 穴을 정 하기 쉽 다. 穴場의 입장에서 보면 穴 處 의 精氣를 위에서는 鄕翼 의 증발을 막 고 아래에서는 脣能 이 漏浪 을 막는 격이다.

그립 3-14. 脣能 定穴法

그립에 나타난 바 와 같이 선익은 上 八이라 하여 分水 處 가 되고 순전은 下 八이라 하여 合水 處 가 되니, 이는 合 水 分水定穴 法 과도 일 치된다(그립 3 一 14). 따라서 순전은 견 고며 穴무결 場 하각 고 부원분만하과 |g內 형 평 을 이루어야 좋 다. 순전이 지나치 게 크거나 높거나 길면 凶格이다. 지나 치 게 크면 穴 心에 있 어 야 할 精

氣 가 아래에 뭉쳐 穴坂, 穴心이 공허하게 되고 지나치게 높거나 길 떤 合 7k 가 不可能하게 되어 兩破가 되고 결국 법도에 맞지 않거 1 된다. 13) 當坂定穴法 當 坂이란 當處 穴坂에서 나온 말로 穴 場 울 일컫는 말이다. 穴 場 에 부수된 入首, 脣fl€ , 燁翼 等을 맨 穴 場 의 중십부분이 바 로 當 坂이 된다 . 이 곳은 緊氣處 이기 때문에 땅속에서 빼 어난 氣가 생동하면 當坂

은 은은한 서기가 감돌고 淸秀한 기상이 서릴 것이며 凶氣가 준동 하면 無氣 虛象 이 떠오르게 된다고 본다. 따라서 地中生 氣 는 外 象 淸秀로 감지하고 地中凶氣는 外 象 酸租로 판별한다. 보다 可視的 현상으로 말한다면 當 坂온 기울지 않음이 으뜸으로 方正衡平울 중요시한다. 다음으로 주위 局 勢 가 格에 맞아

야 하고 過操나 過濕해서도 안된다. 목하 주변에 沖이나 殺이 있는 것은 금기다. 14) 太極定穴法 太極이란 理氣의 本源으로 매우 미묘한것인데 멀리 보면 있는 듯 하고, 가까이 보면 없고, 곁에서 보면 나타나고, 다가가서 보면 模 湖하다. 太桓穴은 千穴 場 中에 돌아다보면 둥그스름한 무리 [圓社〕가 미 묘 하면서도 망연 은은하게 비치며 그러면서도 기실 현처한 것이 있 다. 蔡文正公도 〈대개 天地의 조화를 감춘 것은 올바론 형체로 나 타나지 않아서 사람 눈에 찰 띄지 않기 때문에 보통 地師로서는 알 기 어렵다〉고 하였다. 太極定穴에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찰 살펴야 한다. (a) 稷削 喪논 여위고 마른 것, 削은 깎인 것으로 度削 이란 當穴된 곳의 山形이 원만 윤덱하지 않고 약하여 여위고 박하며 깎여전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血 氣 가 裵敗한 것과 같은 것으로 山形이 格에 맞 아도 定穴하지 못하고 다만 祠堂을 지울 수 있을 분이다. (b) 突露 當穴處가 솟고 드러나 바람을 받게 되는 것을 突露穴 이라 부르는 데 대체로 고독한 龍이 내려온 경우가 많다. 龍이 孤單하면 生氣가 없고 穴이 드러나면 生氣가 乘風則散하는 것이기 때문에 突 露 穴은 금기다. 아무리 수려하더라도 一 峯 이 單獨 으로 빼어난 것은 무의미한 것으로 星峯온 장막 가운데서 나와야 한다. 楊綺松도 〈貴龍온 거듭된 장막에서 나오고 賤龍은 장막이 없이 부질없게 웅장하기만 하다. 貴人은 반드시 발과 포장 안에만 들어 있음과 같은 것이다. 또 穴이 외롭게 밖으로 드러나떤 보호받지 못 하여 위태롭다〉고 하였다. (c) 破面 破面이란 穴星의 머리나 面이 움푹 패이거나 부서쳐 穴星이 온전

치 못한 것이다. 穴 場 온 완전하고 튼튼해야 貴 한 것인 만큼 破面은 凶하다. 이것은 人工的으로 破面된 것도 해당되는데 龍 脈울 파헤치거나 깊고 넓게 파면 脈이 상하고 穴이 흩어쳐 凶하다고 본다. 破 面은 즉 太 極 의 毋 울 부숴뜨린 꼴이다. (d) 擇頭 홀두란 머리가 헌다는 뜻으로 모래와 돌이 섞여 나무가 자라지 못하고 오직 거찬 풀과 가시 관목만 우거전, 마치 머리에 頭療 이 생긴 사람과 같은 형상의 穴 場 이다. 물론 凶하다. 주로 자갈이 많이 섞 인 山이 草 木이 盛치 못하여 抱 頭가 된다. (e) 散 漫 산만이란 게으론 듯이 늘어지고 평탄하며 넓은 것을 말한다. 穴 이란 본래 結 穴이라 하여 거두어들이고 묶어 모이는 것이 귀한데, 산만하면 凶하다. (f) 幽冷 차고 깊어 음한한 것을 유냉이라 한다. 이곳에서는 尸身이 썩지 몰 않으며, 이런 곳은 眞 脈 正穴이 없다. 張子 微 는 이런 곳의 地 勢 를 〈 四方의 山이 매우 높고, 形 場 이 雄 大하고, 吉木이 솟아 있으며 龍 虎가 사귀어 폭 싸여서 內堂이 深順 한 곳은 正穴이 아니다. 이런 곳은 幽 冷한데 冷 氣 가 침범하여 시체 가 腐 化되지 않으면 鬼 害 가 不結하다〉고 하였다. 穴에서 氣 를 얻는 것은 冷 氣 가 아니라 地脈의 沖化한 生 氣 이다. 生 氣를 얻으면 따뜻하고, 따뜻하면 피부는 腐化하나 核骨은 長久하 여 尸身이 편안한 것이니, 유냉은 凶할 수밖에 없다. (g) 尖細 當 穴處가 날카롭고 미세하면 첨세이다. 董德彩 에 의하면 尖畑한 곳은 生氣가 보이지 않아 凶하다고 한다. 다만 大龍이 평평한 언덕 으로 내려와 기운이 뾰족한 곳에 모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반 드시 突이 일어서서 다시 鉛口가 있어 포옹하여야 좋다. (h) 蕩 軟 當穴處가 넓으면서 牛皮처럽 연하고 판판한 것으로 入穴한 곳이

묶여 모이 면 生氣가 있 어 좋고 그렇 지 못하면 不吉하다. (i) 頭硬 山勢가 급하고 단단하고 억제어 형체가 죽은 꼴로 入穴된 것을 완경이타 하며 不吉하다. 높고 곧은 山율 말함이 아니라 山이 급하 여 달음박질치듯 하는 곳이며 원래 이런 곳은 웅결됨이 없어 裁穴 이 不可하다. (j) ~巖 참암이란 入穴處에 돌이 솟고 높이가 아득하여 무서운 형상인 것 울 말한다. 石山不葬은 모돈 風水 書 에서 지적하는 바이다. 결국 太極定穴이란 太極의 圓 社 을 살펴 穴울 취하는 것이니, 原 理나 原則에 어굿나지 않는 穴處를 찾으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15) 兩儀定穴法 兩儀란 곧 陰陽이다. 땅의 陰陽은 山水로 하는데, 그 各各의 陰 陽中에 또 陰陽이 있는 것이니, 龍은 龍의 陰陽이 있고 穴은 穴의 陰陽이 있다. 소위 陰陽은 그 太極 圓 景 사이에 살찌고 일어나는 것은 陽이 되 고 여우]고. 路한 것은 陰이 되니, 이것이 穴法의 兩儀이다. 이의 원 칙 은 陰龍이 면 陽穴울 陽龍이 면 陰穴울 구함이 다. 龍穴歌에 〈陽龍 에 陽穴울 지으면 生離死別하고 陽龍에 陰穴울 作하면 자손이 벼 슬 하며 陰龍에 陰穴울 지으면 女子가 松事많고 陰龍에 陽穴울 作하면 부귀한다〉고 하였다. 혹 살찌고 마르고 일어나고 降함이 上下와 左右가 다를 경우수근 二氣가 交感한 것으로 燒減法울 써야 한다. 腕減이 란 부족한 者를 보태 고 過한 者를 減하여 定穴하는 法으로 陰陽을 調和시 키 고자 하는 의 도이 다. 100) 예컨게 靑龍이 먼저 이르면 龍울 減하고 虎를 넉넉하게 하여 그 穴을 左편으로 당겨 세우고, 白虎가 먼처 이르면 虎룰 減하고 龍울 넉넉하게 하여 穴울 右편에 당겨 세운다. 이것 역시 不調和, 不均衡의 勢일 경우 인위적으로 穴處를 잡 100) 東谷, 前掃 합 , p.1 57.

아 山形의 不調和, 不均衡울 바로 잡아 보자는 의 도로 볼 수 있 다. 16) 三定穴法 立勢坐횟 眠 勢 , 죽 天地人 三等穴法이 三勢이 다. 立勢, 죽 서있는 勢란 龍身이 솟아 氣가 위로뜬것으로높은 穴, 곧 天穴에 可하고, 坐勢, 즉 앉은 勢는 몸을 굴려 기운이 가운데로 감춘 것이니, 산 의 중턱인 人穴이 可하며, 眠勢 죽 조는 듯한 勢는 龍身이 엎드려서 아래로 떨어진 것이니 얕은 穴, 곧 地穴에 해당된다고 본다. 貴 地는 높고 밝은 곳에 많고, 富地는 침침하고 어두운 곳에 많 으므로 天穴온 貴 , 地穴은 富, 그리고 人穴은 富貴를 겸비한다고 본다. 결국 三勢란 來龍의 형세가 立勢면 天穴에, 坐勢떤 人穴에, 그리 고 眠勢떤 地穴에 定穴할 것 을 요하는 법 술이 다. 101) 17) 三停定穴法 三勢가 來龍의 山勢로 定穴하는 방법 이 라면 三停은 來龍이 아닌 穴의 주위의 砂城 山勢로 天地人 三才의 穴法을 論하는 것이다. 龍虎와 朝案이 모두 낮으면 地穴울 定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 天이나 人穴 等 높은 곳에 穴울 잡게 되면 유독 穴만이 높직하고 의 롭게 드러 나 바람 ·울 맞게 되므로 生氣가 날아간다. 102) 반대로 左右 龍虎와 朝山 • 案山이 高大하면 天穴울 취해야 한다. 이런 경우 낮은 곳에 穴을 취하면 앞이 막히고 답답하여 오히려 富 貴 가 닫아난다고 여 긴다. 그 중간이면, 죽 높지도 낮지도 않으면 人穴울 잡으면 된다. 101 ) 『山法全홉』, 卷之八, 「點穴認勢歌」, 三勢. 102) 氣乘風則散의 의 미 입 •

18) 藏神伏殺法 山의 형체가 뾰족하고 날카롭고 준급하고 곧고 단단하고 억센 것 等울 殺이라 한다. 明堂內에 부서지고 이지러진 山과 흉악한 물은 모두 神殺이니 立 穴 때에 이를 피하여 明堂울 맑게 해야 吉하다. 이것이 바로 吉을 따르고 凶을 피한다는 超吉避凶法인데, 蔡牧堂 의 〈 山川의 및態 가 한결같지 않아 혹 낮게 보아서 추한 것이 높이 보면 좋고, 혹 左에 서 보아 不美한 것이 右에서 보아 좋은 것이 있다〉는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이 方法은 來龍과 주위 砂城의 調和된 규국을 강조하는 風水原則 에는 어긋난 듯하지만, 穴 場 의 조건이 當局 그 자체만의 形勢로 판 단한다는 면에서는 이해할 만하다. 요컨대, 穴 주위의 山形地 勢 가 아름다운가에 초접을 맞춘 定穴法 이라 볼 수 있다. 以外에 도 古倒 影說 , 三十六穴法, 五星穴法, 九星穴法 等 103) 이 있 는데 너 무 복잡하여 省略한다. 5. 思穴, 怪穴論 1) 思穴論 思穴은 非穴亡地 혹은 賤穴이타고도 하는 것으로 生氣가 웅결치 못하는 곳으로 葬亭를 지낼 수 없는 곳을 말한다. 思穴의 종류는 대단히 많은 편인데 대표적인 것들은 대체로 다음 과같다. 陽明, 淸秀하지 못하고 거칠며 험악한 것을 魏 AN , 아름답지 못하 고 돌이 많고 봉우리가 지나치게 크며 추악한 것을 租惡, 穴주위 에 보호하는 山이 없이 외로운 것을 孤寒 혹은 單寒, 종기처럼 租 惡險相한 것을 腕種, 경사가 급하여 山急水急하며 山勢 역시 거칠 103) 『穴,地 理奇大穴成에 山관法한全 발것』이 , 卷포之합六되어全 體있음가. 上記 穴法에 관한 내용임. 여기에는 怪

고 험한 것을 峻急 龍氣 가 허약하여 개미, 뱀, 여우, 쥐 둥이 헤 집고 다녀 地 氣 가 漏浪 된 것을 虛f,€ , 이와 바슷하게 土色이 윤기가 없고 푸석푸석한 眞氣 없는 땅을 虛 土, 穴處가 치밀하지 못하고 움 푹 패여 이지러진 것을 四缺 혹은 空缺이라 하여 모두 꺼란다. 사람의 觀 相울 보는 것과 유사하며 思穴 論 역시 調 和, 均衡의 思 考 에 연원을 두고 있다. 2) 巧穴, 怪穴論 窮 則 通 의 周易 的 思 考 가 적용되는 전형적인 例가 바로 이 怪穴論 이다. 怪穴이란 기괴하고 이상한 곳에 맺는 穴울 말하는 것으로 穴의 형 태 를 분간키 어려워 아직 이치에 밝지 못한 庸 師는 찾을 수 없다. 대개 眞龍 이 웅결된 곳은 복록이 비상하기 때문에 天地가 보호하 고 神 이 지키어 造化 隱 居하고 있어 아무나 찾을 수 없다는 것이 다. 積善 仁 德 울 쌓은 사람에게만 그 모양올 드러낸다고 한다. 따라서 지금까지 설명한 看龍 , 藏風 , 得 水, 定穴이 모두 원칙에 맞는다 하더라도 眞 穴은 맞는 사람에게만 보인다는 것이니, 穴울 찾 음의 어렵고도 쉽고, 쉽고도 어려움을 나타낸 표현이탈 수 있다. 만일 薄德 한 사람에게 이러한 怪穴울 占穴하면 地師가 화를 입는 다고 한다. 怪穴 論 에 이르면 좋은 듯한 것이 나쁘고 나쁜 듯한 것 이 좋아져 理 論 과 實 際, 體 와 用이 혼합되어 매우 복잡한 양상을 나타내게 된다. 例컨대, 깊은 山속의 매우 낮은 곳은 원칙적으로 不吉하다. 그러 나 이 경우 穴의 平窓하고 龍 昧의 끝으로 보일 듯 말 돗 石骨로 된 둥마루가 이어져 있으면 沒泥穴이라 하여 怪穴로 간주하고 귀하게 여간다. 이의에도 穴이 軟하고 의롭게 노출되어 八風이 닿아도 穴에 오르 떤 따뜻한 天風穴, 연못이나 호수 等 물 가운데 있을 수 있는 穴, 단단한 돌[頭石〕 가운데 坡 中울 팔 만한 듬이 있 는 穴, 우물 속에 結 穴한 龍漏 穴, 기운이 남아 맺는 騎龍穴, 坡 中울 파지 않고 땅 위에 尸身울 안치한 뒤 客土를 모아 봉분을 쌓는 培土 葬 의 穴, 行 龍 의 氣

勝울 베 어 끊고 作穴하는 絶龍脈의 斬關穴 等이 怪穴이 다. 죽 葬書에는 〈邊山에 葬事하지 못한다〉 함이 正論이나 怪穴에는 騎龍과 斬關法이 있고 〈石山에 葬事하지 못한다〉 함이 正論아나 怪 穴온 돌 사이 에 安葬한다는 說이 있고, 〈獨山不葬〉이 正說이 나 怪 穴에는포장없는 法이 있고, 雪心賊에 〈生氣는 界水하면 머문다〉했 으나, 龍은 石脈울 따라 물을 건널 수 있고, 〈穴 뒤의 仰腐 있음을 꺼리는 것〉이 正論이나怪穴에는仰腐法이 있고, 〈악한 것은 진흙물 가에 있 다〉 하였으나 怪穴에 는 沒泥法이 있고, 洞林賊에 〈龍이 업 추 논 곳을 要하고 吐氣하는 곳을 要하지 않는다〉 하였으나 怪穴은 긴 가지 중간 허리에 占穴하는 法이 있고 黑篠經에 〈抱雅함이 있어야 穴이 破가 없다〉함이 正論이나怪穴은 龍虎가없는 법이 있고, 審金 精은 〈첫째로 물 가는 땅에 占하지 말라〉 하였으나, 怪穴은 眞流法 이 있고, 董德彰의 〈창머리나 취꼬리를 취하지 말라〉함이 正論이나 怪穴에는 打槍法이 있는 等風水의 諸原則에서 어긋나는 例外的 怪 穴法온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6 坐向論 1. 坐向의 意義 坐向이란 동전 方位에서 正面으로 바라보이는方向이란사전적 의 미를갖는말이다. 風水構成의 基本要素를 山, 水, 方位, 사람의 네 가지로 축약시킬 때 坐向論은 당연히 方位에 관계된 術法이 된다. 원래 坐向은 穴에서의 위치로 본 方位 죽 穴의 뒤쪽 둥전 方位를 坐로 그리고 穴의 正面울 向으로 하여, 예컨대 北쪽에 來龍을 둥지 고 南쪽에 案山울 - 바라보는 穴處의 坐向은 子디tJ坐 午〔南〕向이 라 부르는 것이지만, 本考에서는 穴處에서의 坐向분만 아니라 山과 水 의 흐름 方向 等 方位문제 전반에 관하여 고찰코자 한다. 坐向은 方向의 개념과는 다르다. 한 地點이나 場所는 무수한 方 向울 가질 수 있으나 選好性에 의해 결정되는 坐向은 단 하나 분 이다. 어떤 地點이 특정의 坐向울 갖기까지 검토되는 向은 편의상 絶對 向과 相對向으로 區分해 볼 수 있는데, 絶對向이란 天體의 움직임, 特히 人間生活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太陽의 운행에 의해 결정지 어지는 向으로서 時間性을 내포한다. 太陽의 南中方位는 일정하여 이에서 東西南北의 方位가 절정된다. 絶對向의 各方位에는 物理的 特徵과 이에 관련된 想像的 의미가 부여된다. 物理的 特徵이란 局 地氣候的 現象이며 이는 太陽의 運行에 의한 日照, 日射效果, 地域

에 따른 季節風 等의 氣候 여건에 의하여 결정된다. 따라서 北半球 中緯度地方의 住居로서는 東南向 내지 南向 사이가 理想的인 絶對 坐向이 된다. 다음 想像的 의미는 主로 物理的 여건의 관념화된 상, 태로 간주할 수 있으며 周易의 先天方位, 後天方位 等이 좋은 例로 서 묵정 社會의 宗敎設等에 存在하는 보편적 方位 개념도 이에 포 함된다. 이러한 絶對向온 場所 에 구애받지 않는 絶對的인 것이며 世 俗的이 아닌 宗敎的 次元에 속한다. 相對向이란 絶對向 이외의 條件으로 成立되는 向인데 이는 大地 에서 出發하며 社會性울 반영한다• 예컨대 地勢向으로서 地形上視 界가 열리는 곳으로의 向, 그리고 實存的인 向으로서 物理的 空間 이 實存的 의미를 부여받기 위해 필요한 求心的인 向(서낭당을 中 心으로 한 마울 배치), 遠心的인 向, 對立的인 向(피라미드와 나일 강), 向天的인 向(明堂에서 山으로), 向底的인 向(明堂에서 水로) 等이 여 기 에 포함된다. 104) 風水說에서의 坐向온 어느한가지에 귀속시킬 수 없는 대단히 복 합적인 형대를 취한다. 風水說울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은 陰陽說이다. 陰陽說의 철학적 인 것은 春秋戰國時代로부터 내려온 이른바 陰陽家 術數家의 硏究 結果요, 또 그 目的으로서 말하자면 일종의 自然科學이라 하겠다. 결국 天文地理를 硏究하는 데 는 羅經이 필수품이 며 106) 그의 근본되 는 것이 坐向論인 만큼 坐向論은 風水의 本質論에 가장 접근된 분 야로 보아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2. 坐向方位의 構造 1) 易파 方位 東洋哲學은 易의 原理에 기초한다. 易은 變化의 哲學이다. 易學 104) 張聖溪 1978, 「風水地理局面이 갖는 建築的 想像力에 판한 考察」, 《大韓建築 學台誌》, 22 卷, 85~, pp. 20~1 . 105) 裵宗鎬, 1969, 「風水地理略說」, 《人文科學》, 第二十二輯, 延世大 人文科學硏 究所, p.1 39.

은 變易하는世界에 不易하는眞理를體系的으로 表象한 것이다. 宇 宙와 人生의 根本 質在가 無極, 太極, 兩儀 . 로 하나의 體系를 지어 生成된 것 으로 보며 , 太極이 無極에 서 兩儀는 太極에 서 나타났다고 한다. 太極은 陰陽 兩儀로 形成되었는데, 陰陽 그 자체는 氣이지만 그 전체의 太極은 理인 것이다. 氣 가 비록 千윷萬化몰 한다고 해도 그것은· 모두가 理의 일정한 궤도를 벗어나지는 않는 것이다 .106) 太極, 兩儀로부터 四 象 , 八卦의 生成은 다음 表 3 구과 같고 이 八 卦룹 두 개씩 겹쳐서 六父의 卦를 만드니 八의 자승이기 때문에 전 부가 六十四個의 다른 결합이 생간다. 이것이 周易에 있어서의 최 종적 인 易卦이 다. 107)

106) 柳正基, 1974, 「易의 原理와 實 用」, 《東洋 文化 》 , 第十四, 十五 輯 , 嶺南大 東 洋文化硏究所, pp.1 56~8. 107) 盧台俊, 1974, 『周易.!, 서 운, 弘信文化社, pp.1 6~7.

표 3-7 太極生兩儀 四象八卦固 坤良吹興擬 離 免 乾八七 六 五 四 一 一陰加老王陰上 一陽上加陰H老- 陰陽加一小上 陽陽一小加上 加一陰上陰小 一陰加上小陽 一陰上陽加老 陽老上陽加一l= I =I= =l =L J= 老 陰 小 陽 小 陰 老 陽 陰 l 儀 陽 l 儀 而太 極下 上 自

易의 風水와 연관지어지는 대목은 繁辭下傳에서 찾아볼 수 있는

데 第二章 108) 에서 가장 찰 드러나는 것으로 생각된다. 예컨대 〈 옛 날 包 羲 氏 109) 가 王으로 天下를 다스릴 때 에 우러 러 하늘의 象 울 보 고굽어 땅의 法올보며, 새, 침승의 무늬와땅의적당함을보고가 까이는 사람으로부터 멀리는 諸物에 이르기까지 보아 그로써 八卦 를 처 음 만들었 다(古者包 羲 氏之王天下也 仰則 觀象於 天 何f 則 競法 於地 觀鳥獸之文 興地之宜 近取諸身 遠取諸物 於 是 始作八 卦 ) 〉 라든가, 〈 上 古에는 사람들이 穴居하며 들에서 살았다. 그 뒤에 聖人 이 사람 사 는 곳을 棟宇, 죽 집채로 만들어 風雨에 대비케 하니 大壯 110) 의 卦 에서 취한 것이다(上古 穴居而野 處 後 世 聖 人 易 之以宮室 上 棟 下宇 以待風雨 蓋取諸大壯)〉 혹은 〈 옛날 葬 者는 나뭇가지를 두둠히 덮어 둘 가운데 葬하여 封土도 墓樹 도 喪 期도 없 었 다. 이 를 聖人 이 稽郡 으로 바꾸니 大過 111) 의 卦이다(古之 葬 者 厚 衣之以 新 葬 之中 野 不封

不樹 喪期 無數 後 世聖人 易之以稽 郡 蓋取 諸 大過) 〉 하는 等 이 그것이 다. 물론 風水說에 직접 연결되는 구철은 아니지만 地法, 棟 宇, 稽 都을 만돈 원리가 易이라고 한 것이니 만큼 근거로서는 충분하다 고본다. 易의 方位 해석은 그야말로 무궁무전하여 종잡을 수 없는 것으 로 本章에서는 先天, 後天方位와 河 圖 , 洛 書 만을 다루고자 한다. 그러나 河圖 洛 書 와 先後天方位 圖 는 同質의 것으로 방위 해석상의 큰 차이는 없다. 河圖는 黃河에서 龍馬가 둥에 자고 나온 까닭에 붙여전 이름으로 河出圖 112) 라고도 하며 이 것을 보고 三皇 中의 하나인 伏 羲 氏가 전리 를 깨 달아 八卦를 그어 伏 羲 八卦方位라 한다. 洛 書 는 夏의 禹임금이 洪水룰 다스릴 때 洛水에서 나온 神 龜 의 ~ 에 씌어 있었다는 글로, 周文王이 作 圖 했기 때문에 文王八卦方位가 되고 伏 羲 의 뒤이기 때문에 後天方位라고도 한다. 108) 幸 의 분류는 明文 堂 刊 『周易.!l 에 따른 것 입 . 109) 包 羲 氏는 伏 羲 氏 를 말합. 110) 大壯온 乾 下 震 上의 卦象 입 . 111) 大 過 는 興下免上 112) 陳 正 社 「中 國 0 地名」, 《 地理 )) 1982 年 7 月 號 에 의 하면 古代 中 國 에 서 河란 黃 河를 稱하는 것이라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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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河 圖 , 伏 羲 八卦方位, 先天方位가 同類가 되고 洛書, 文 王八卦方位, 後天方位가 同類가 된다. 河圖, 洛書는 다시 數象論的 해석을 가하여 河圖 (그립 3-15) 는 北一에 南二, 東三, 西四, 그리 고 五는 中央에 배 속시 켜 生數라 하고 五에 各方位數를 合算하여 다 시 배 속하니 北六에 南七, 東八에 西九 그리 고 中央에 十이 들어 가 이것을 成數라 한다. 이에 의한 伏羲의 先天方位는 伏羲八卦次序(그립 3-16) 에 의하 여 乾, 免, 離, 辰, 興, 吹, 良, 坤이 一二三四五六七八이 되 어 一 에서 四까지는 南에서 東北으로 배열하고 五에서 八까지는 西南에 서 北으로 배열하면 그림 3-17 과 같이 된다. 그런데 周易 說卦傳 第三章에서 天地(乾坤)定位, 山澤(良先)通氣, 雷風(震興)相蕩, 水 火(次離)不相射하여야 八卦가 서로 섞인 것〔相鑄〕이 된다 하였으 니 예컨대 南北이 乾坤으로. 東西가 離次으로 된 것처럼 서로 相對 하여 定位, 通氣, 相 蕩 , 不相射의 조화, 균형 을 이 룬 샘 이 다. 洛 書 (그림 3-18) 는 北에 一, 東에 三, 中央에 五는 河 圖 와 마찬가 진데, 이는 北은 北極星, 東온 日出方位, 中央은 安定의 數로 변화 의 여지가 없기 때문인 듯하다. 여기에 四正方의 陽數는 三倍를 해

싹/% 于二. 、`令왕 타마 1 宣 E:l} 〉卜 沖 陽 윤令s \: '::,성令 太 極 軒 그립 3-16 伏羲八卦次序 그림 3-17 伏 羲 八卦方位圖 ‘·· 。 0 •。 。 •。 。 ‘。O l._。 'o 。 _.。/·01 010 •._o_oIO IO · •,

___ O'~0·。 __ 。 >• •••••• 。'0 ••i• 그림 3-18 洛書 ~ ::' 윷1 哀夕/ ―離_爾i `내\`、:` % 沖 그립 3-19 文王八卦方位固 상` `'` 스조多생

서 左旋하고 四隅方의 陰數는 二倍를해서 右旋하니, 죽 北一을 3 배 한三은 겨t에 , 三을 3 배한九는 南에, 九를 3 배한二十七에서 二十울 뺀 七은 西에 배치하고, 西南의 二를 2 배한 四는 東南에, 四를 2 배 한 八은 束北에 八울 2 배한 十六에서 六은 西北에 배치하고 있다. 그림 3 - 18 에 서 보는 바와 같이 洛 젊 는 가로, 세 로, 대 각선의 合 이 어 떤 것 이 나 十五가 되 어 결 국 魔 方 陣 Mag ic Sq u are 이 되 었 다. 113) 이것은 周易 說 卦傳 第五章 〈 帝는 出平 旋 하여 齊平興 하고 相見平 離 하고 致役平坤하고 說平免하고 戰 平乾하고 勞平吹하고 成言平良 하니 라 〉 라는 귀 절을 따라 東 에 서 右旋하여 그립 3-19 와 같은 文王 의 後天方位圖롤 이 루게 된다 . 筆 者는 伏羲와 文王의 八卦方位圖의 根本이 된 河回와 洛 書 를 원 시적인 地圖의 일종이 아니었을까 의십해 본다. 물론 易이 확립된 이후에 있어서의 八卦方位는 對待法, 配合法, 數象論 等 십오한 東 洋 哲 學 의 진수가 가미된 것을, 스스로 理解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깊이 인정하는 바이지만, 最初의 河 四 , 洛 쳅 는 단순한 居 住 地의 地 勢, 風土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가정해 보는 것이다. 河圖가 伏羲 때라 하지만 전설시대이니 신빙성이 없어, 대체~ 新石器末의 黑陶文化가 이루어졌던 殷王朝 후반기의 수도인 殷猿 가 있던 오늘의 河東省 安陽울 그곳으로 추정하고, 洛 書 는 洛水가 黃河의 支流로 洛陽의 西쪽 溫 關에서 合流하니 대체로 그. 부근으로­ 추정 하여 보면 다음과 같은 해석 이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114)

113) 柳正基, 前撮촙 p .176 . 11팔4), 地거勢시判켜斷인은 안19목69윤 年 版갖기 B에ri t a쳐n 철ic 할a A수t l도a s 있I 다: .3, 000, 000 에 의 하였 는데 오히 려 개

우선 河圖와 洛 書 에서 공통적인 것은 위를 南, 아래를 北으로 했 다는 접이다. 당시의 居住 場 所가 日照와 日射가 좋은 南쪽 斜面이 었을 것이니 圖 書 의 기록자는 南向울 하였을 것이며 따라서 바라보 논 南쪽이 위로, 둥지고 있는 北쪽이 아래로 내려오게 된다. 또 南 쪽은 斜面이 낮아지는 쪽으로 넓게 하늘이 트이니 乾이 되고 北쪽 온 山에 막혀 坤 죽 땅으로 인식된다. 河圖의 경우 北西쪽은 太行山脈이 가로막으니 良 죽 山이고, 南

東은 黃河의 低濕地로 免 즉 澤이 되며, 東쪽은 黃河 유역의 광활 한 평야로 찬란히 日出울 맞받아 離 즉 火이고, 西쪽은 太行山脈으 로부터의 溪 流가 黃河로 몰려드는 곳이니 次 죽 水가 된다. 南西一 北東間은 黃河의 河口쪽 流向과 일치되어 南西쪽의 谷風으로. 인하 여 받은 興 죽 風이 되고, 北東은 바다로 나가는 河口로 천둥, 번 개가 그 方向에서 많이 보여 器 즉 雷 가 되어 결국 그림 3 - 17 과 같 은 伏羲八卦方位가 이루어전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地域온 西部아시 아의 The Fert ile Crescent 地域과 비 슷한 위 도로 신석기시대에 있어서 이곳의 年平均氣溫은오늘날 보다 2°c 정 도 높았고 1 月 平均氣溫은 3~5°C 정도 높은 아열대기후에 매우 가 까왔다고 한다 .116) 또한 中國의 地形이 山과 언덕으로 지배되고 있 지만 원시시대에는 보다 밀집된 나무와 아열대성 밀림으로 덮여 生 活의 대부분이 江流域에 제한되어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116) 위의 해 석은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洛書의 경우에도. 이와 같은 발상으로 해석이 가능하지만 實地形 울 본 적이 없고 大縮尺地圖조차 보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생략 한다. 筆者 의 의도는 上記한 解釋이 그대로 맞다는데 있는 것이 아 니라, 河圖와 洛 書 를 초보적인 地勢, 風土說明固로볼수도 있지 않 겠는가 하는 데 있다. 이 접 은 古代人의 Ideolog ie 形成이 東西洋울 막론하고 모두 原始 自然觀에서 비롯되었다는 哲學쪽의 분석도 참고가된다. 죽古代 西 洋人의 思考樣式의 한 特性으로서 이른바 ph y s i k( 自然)를 있는 그 대로의 總體的 實體로서 보려는 況神論的 自然神觀이 社會의 進化 發展과 人間性의 發揚에 따라 접차 唯一支配的인 一元化의 完全包 括性을 지니려 하였다고 했으며, 이는 東洋古代人의 自然觀에서도 그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는 지적은 117) 總體的 實體로서의 河圖, 洛 書 와 完全包括性의 先, 後天八卦方位圖에 비견할 수 있지 않을까 115) 尹乃鉉, 1982, 『中國의 原始時代』, 檀大出版部, p. 156. 116) 尹乃鉉, 上掃 합 , p. 21 117) 李敦寧, 宋恒Ill!, 1972, 「中 國 型 Ideo!o gie 의 淵 源 的 形成과 道家思想」, 《東洋學>. 第二輯, 檀大 東洋學硏究所, pp. 205~8 .

도 여겨진다. 2. 羅經 과 二十四方位 易 이 方位의 기본이 됩온 向의 명칭과 상칭져 의미에서 그렇게 되 는 것 이거니와 坐向이 있게 되는 근본은 羅經 혹은個 鐵 이라 일컫는 나 참 반에서 찾지 않을 수 없다. 2 千 年 前 中 國 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118) 羅經 온 風水說 정복의 최 대 무기라할정도로風水 關 係의 필수물이다. 鹿 金 精 에 의하면 天의 方 位 인 土 圭 와 地의 方位인 指南 車 의 差 를 계 산하여 方位를 젤 때 午方 中 心이 아니라 丙午間方으로 해야 한다고 했는데 119) 土圭는 眞 北, 指南車 는 磁 北, 그리고 그 差 를 磁偏角 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 다. 磁針 의 方向과 北 極星 의 方向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偏角의 존재는 일찍 이해하고 있었던 듯하다.

118) 朴 星來 , 前 掃합 , p.1 20. 119) 迎宗鎬 前 損암 , p. 150.

羅經 의 方位 명칭은 上述한 바와 같이 易이 중십인 것은 분명하 지만 그 구체적인 것은 대단히 복잡한 편이다. 죽 天盤,地盤, 人 盤 으로 구별하고 다시 六十四父, 六十甲子를 붙이고 二十八宿를 배 열하여 天 度數 를 거기에 배당시킵으로써 복잡한 分度를 마련한 것 이다. 市中에 돌아다니는 羅經 中에는 동십원이 무려 36 개인 것도 있다 고하나 흔히 쓰이는것은 여섯 내지 일곱개의 동십원을 갖고 있다. 各 동십원은 坐向 論 의 복잡다기함이 그대로 羅 經에 반영되어 있다 고 보면 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實 用할 수는 없기 때문에 주로 二十四方位 圖룹 사용하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다. 二十四方位는基本方位의 역 할을 할 분이고 坐向의 吉凶判 斷 에는 나머지 모두가 관여됨은 물론 이다. 各 方位 간격이 15° 인 二十四方位는 西洋에서 일반적으로 쓰 이는 22.5° 간격의 16 方位에 l20) 비해서 훨씬 상제한 편인데 이는 西

120) 측 량, 항 해 , 군사에서 사용하는 度 分秒나 Grad 단위도 있지만 목 수용도의 겅

洋의 Com p ass 가 中國 것을 도입한 것이고 실제 사용기 목 은 13C.: 항해용이 최초이기 때문에 121) 당연한 귀결인지 모른다.

우는 束洋 도 度, 分, 秒 들 사용했음. 121) 玄炳九, 1973, 「지자기」, 『原色科 學 大 事典 ®』, p.5 2.

上記한 바와 같이 二十四方位는 각 지점에서의 全方位를 24 等 分 함으로써 各 方位 간격 15° 씩, 一 陽 始生處인 正方位를 子方으로 左旋 하여 矣方, 丑方,寅方, 甲方, 卯方(正 東 ), 乙方, 辰方, 興 方, 已 方, 丙方, 午方(正南), 丁方, 未方, 坤方, 申方, 庚 方, 酉方(正西) 辛方, 戌方,乾方, 亥 方, 壬方을 거쳐 子方(正北)으로 돌아오는 형 태이다(그림 3-20).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二十四方位에는 陰陽 , 五行, 八卦, 十 干, 十二支가 모두 들어 있다. 方位名 자체에만은 八卦,十干, 十 二支만 들어 있다. 二十四方位를 포함한 대표적인 羅經 의 輪圖 版은 다음 그립 3-21 과 같다. 우선 八卦의 方位 배치를 보면 前述한 文王 後 天八卦方 位圖를 그 대로 이용한다. 죽 四正方에는 正 東 에 震 , 正 西 에 免, 正南에 離 , 正北에 吹울 배치하고 四 隅 方에는 南東에 興 , 南西에 坤, 北西에 乾, 北東에 良을 배 치 하여 八方을 삼았다. 다음 十干은 이것을 五行에 배분, 甲乙온 木 , 丙 T 은 火, 戊己는 土, 庚辛온 金, 壬矣는 水로 하여 方位에 배치하였다. 그런데 五行 은 東에는 水, 西에 金, 南에 火, 北에 水, 그리고 土를 中央에 두 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甲乙은 東 쪽 부근, 丙丁은 南쪽 부근, 戊己 는 中央, 庚辛온 西쪽 부근, 壬矣는 北쪽 부근에 배치된다. 中央은 方位가 아니므로 제외하고 나머지를 구체적으로 배분하면 甲은 방 각으로 N75°E( 방위각 75°), 乙은 S75°E(l05°), 丙은 S15°E(165°) 丁온 Sl5°W(l95°), 庚 온 S75°W(255°), 辛은 N75°W(285°), 壬 은 Nl5°W(345°) ~는 N15°E(l5°) 에 배치된다(그림 3- 2 0). 다음 十二支는 子를 正北에 두고 시계방향으로 30° 간격 배치하면 l 꺼 이 므로 360° 를 채 우게 된다. 즉 正北울 子로 하여 , 丑은 N30°E (30°), 寅은 N60°E(60°), 卯는 正東쪽, 辰은 S60°E(120°), 巳는 S30°E(l50°), 午는 正南쪽, 未는 s30°wc210°) 申은 S60°W(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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酉는 正西쪽, 戌은 N60°W(300°), 亥논 N30°W(330°) 에 배치된다 (그림 3-2 0 ). 그러나, 이렇게 하면 겹치는 부분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탈락되 는것이 생기는데 우선十干中戊와己는中央이라제외하고, 八卦 中 四正方온 十二支 中 子,午, 卯, 酉를 우선하여 4 개만 남기며, 十二支는 모두 사용하면 二十四方位圖가 완성된다. 3. 陰陽 • 五行 • 干支 및 節氣와 二十四方位 陰陽과 五行온 宇宙萬 象 과 십지어 醫 方의 形而上學的 설명에 고 루 쓰인 東 洋의 전통적 사고방식이다. 風水說에서도 地理的 立地의 超自然的 관련성을 人 事 에 결부시켜 다룰 때 그 吉凶 판단은 陰陽 과 五行에 의 하여 說明한다. 122) 風水 坐向論에서 各 方位에 대한 陰陽五行의 配分은 일정하지 않 고 說이 매우구구한편이다• 극단적으로어떤 說에서 陰 혹은 水라 했던 方位가 또 다른 說에서는 陽 혹은 金으로 되는 경우도 있다. 方位의 陰陽五行이 철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선 陰陽은 基本이 되는 것으로 〈수많은 地理 書 중에서 그 의미 함을 개괄하면 陰陽으로 요약된다(古 傳 地理千百卷 義 括陰 陽 兩字間 識 透陰陽奇妙處 無情人間行地仙)〉 12” 는말에서도 알수있는 바와같이 風水 全般울 陰陽說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중요성을 갖는다. 그러나, 山과 7k 에 각각 陰陽이 있는 것처럼 方位에서도 일률적 으로 陰陽울 결정짓는 方法은 나와 있지 않다 .124) 경우에 따라 달 리 陰腸이 결정되며, 예컨대 二十四方位 中 子, 壬,亥, 乾, 戌, 庚, 申, 午, 丙,己, 辰, 甲, 寅, 良方 等 14 개는 陽 , 나머지 辛, 酉,. 坤,未,丁, 興, 乙, 卯,丑, 矣 等 10 개는 陰에 배속시키는 式 122) Yang , C. K. , 1961, Reli gion in Chi n es e Soc iety , Univ . of Cali f. Press, pp.2 63~5. 123) 『塚玉芹 J , 卷之-, 「 陰陽歌 」 124) 山은 本住이 탑이라 陰, 水는 動이라 陽 하지만 실제는 山에도 水에도 경우에 따라 각각 陰限 이 있다

이 다. 125) 또 淨陰淨陽法에 의하면, 壬,子, 矣, 寅, 甲, 乙,辰,午, 坤, ­ 申, 戌, 乾方等은 十二陽方, 丑, 良, 卯, 興, 已, 丙,丁,未, 庚, 酉, 辛, 亥方 等온 十二陰方으로 나뉘기 도 한다. 金, 木, 7k, 火, 土로 이루어지는 五行온 그 종류가 우선 많다. 예컨대 正五行, 洪範五行, 雙山五行, 眞五行, 三合五行, 舊墓五行, . 淨陰淨陽五行, 納音五行 等이 모두 달라서 같은 戌方이 火도 되고 土도 되는 식이다. 이 중가장많이 쓰이는 正五行, 洪範五行, 雙山 五行, 眞五行의 二十四方位 배 속은 다음 표 3 一 8 과 같다. 126) 이 중 4 個의 五行 배속이 모두 일치하는 것은 子,卯, 午, 酉方, 죽 東, 西, 南,北, 四正方분이고 나머지는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四 正方의 五行 배속은 不變의 것임을 알 수 있다•

125) 村山智順, 前撮합, pp.1 85~6, 그러 나 이 태 에 서 五行의 區分온 三合五行吐 율 제시한 것이기 때문에 일반성이 결여되어 있옵. 126) 東谷, 前掃 홈 , pp. 177~8. 辛係柱, 前揚 촙 , p.1 5 8.

五行 一十方四位 l 子 I矣 표 나3-8 미五行지의 甲二十 四1 方기位 배기 분 미미니丙 正五行 7k 7k 土 土 木木 木 木 土 木 火 火 洪範五行 7k 土土 木 7k 7k 木 火 7k 水 木 火 雙山五行 7k 金 金 火 火 木 木 7k 水 金 金 火 眞五行 水 水 7k 水 木木木 木 木 7k 火 火 「洪眞行 範五五二五行:行問 I 午火火 I火火T I 기火土 기火土 金金니金金기 미金金 니金金 이土金 미金金 기水7k 壬 7水k 火 金土土 水 土金 水 水 金 金 火 雙山五行 火 木木 7k 7k 金 金 火火 木 木 7k

이것은 文王八卦方位의 기본 이념을 답습한 결과로, 蓋方 즉 東 쪽은 木, 免(西)方온 金, 離(南)方은 火, :i*(北)方은 水를 상징하 기 때문이다. 各 五行은용도에 따라 달리 이용되는데, 예컨대 正五行으로는 論 來麗하고 洪範五行으로는 論山運한다는 식이지만 127) 이것 역시 原 則일 분 일정한 것은 아니다.

127) 金榮昭, 1975, 『陰宅要缺』, 明文堂, 編菜者跋.

다음 干온 幹이 라고도 쓰는데 陽으로 보고 태 양의 神에 비 유하고 支논 枝라고도 쓰며 달의 요이라고 비유한다. 十干과 十二支는 결 합하여 앞에 干, 뒤 에 支를 붙여 사용하며 전체 조합은 12C1 X 10C1= 120 이 되어 120 가지가 되지만 실제로는 十干에 순서대로 十二支를 붙이기 때문에 10 과 12 의 최소공배수인 60 개의 干支 죽 六十干支 혹 은 六甲이 형성된다. 60 干支는 坐向論에서 裁穴, 分金法에 이용되 며 그림 3-21 의 중십에서 다섯번째 동십원상에 표시되어 있다. 干支에 의한 坐向 方位 표시 방법은 曆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 으며 東洋曆의 俗信은 모두 干支에서 나온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혼히 年의 干支롤 歲次, 月의 干支를 月建, 日의 干支를 日辰이라고 말한다. 歲次란 史記天官 書 索慈에 기 록된 대 로 歲星인 木星이 十二年 P. J:에 하늘을 一周(歲行一次謂之歲星 則十二歲一周天也)함에 十二支를 맞 추고 여기에 十干울 삽입시킨 것으로 坐向과 직접적 관련은 없다. 月建은 干支를 음력으로 每月에 배당한 것으로 특히 1 年이 12 個 月이고 地支도 12 개이므로 1 支 1 月로 고정해서 쓴다. 죽 1 月이 寅 月, 2 卯, 3 辰, 4 已, 5 午, 6 未, 7 申, 8 酉, 9 戌, 10 亥, 11 子, 12 丑이 다. 이때 閩月에는 支를 배당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128) 이것은다시 太陽의 黃經과결부되어 24 節氣를 이루고 各月에 2 개 씩이 배당되며 二十四向과는 밀접한 관계를갖는다. 태양黃經이 00 인 春分이 기준접이 되어 그 다음은 시계방향으로 15° 간격으로 배 ,

128) 李殷晟, 1978, 『韓國의 冊曆』 C 上), 電波科誤社, pp. 155~63.

열되는데 이는 二十四向과 일치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그림 3- 20 ). 이로써 미루어 보전대 二十四坐向온 대양의 움직임, 따라서 季節 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으며 二十四節氣와는 l 對 1 의 對應關係입을 알 수 있다. 坐向論에 대한 氣候, 風土的 해석이 가능하다고 보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4. 坐向의 吉凶判斷과 그 解釋 1) 坐向吉凶解釋의 基本原理 風水 坐向論에 있어서는 二十四方位의 각각에 고정된 吉凶이 배 속되어 있지 않다. 경우에 따라 方位別로 原則的 吉凶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는 事例 에 따라 方位上 吉凶이 變轉함을 보이 고있다. 坐向은 그 목적이 吉凶울 알아냄으로써 超吉避凶하자는 것인 만 큼 風水相地術뿐만 아니라 四柱, 占星, 占 卜術 등 동양의 運命術 일반에 널리 쓰이는 術法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에나 항상 통용 될 수 있는 坐向 吉凶의 틀이 마련된 것이 없이 복잡하고 어려운 속성을 지니게 되었다. 이 접은 學이 아닌 術의 성격상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없다. 명 쾌한 논리로 不 變 의 原理가 마련되어 있다면 神秘的 解釋울 본령으 로 하는 術이 설 자리가 없게 될 것아기 때문이다. 坐向方位論은 크게 靜方坐向과 動方方位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衆落, 家屋, 墓所 등 風水와관계된 坐向吉凶온 그것이 고정된 것이 기 때문에 靜方에 해당되고, 인간의 出入 行止와 用兵에 관계된 奇 門運甲術은 움직임의 方位률 따지는 것이기 때문에 動方이라 볼 수 있다 .129) 奇門道甲術온 六甲을 運하여 方位의 利를 얻자는 用兵設 陣 法에서 나온 것으로 전설에 의하면 中國 軒輯黃帝의 撰機經울 기원으로 하 여 130) 太公과 張子房을 거 쳐 諸葛亮 時代에 완성되 었다고 한다. 움 129) 全泰樹 編譯 , 1978, 『方位學入門』, 明文堂, pp.1 1~7. 130) 李靖(姜 舞鶴 , 1977 年, 集文堂刊), 『李衛公兵書』, 同對上, 諸葛亮兵陣

칙이는 사람이나 물체는 수시로 方向울 바꾼다. 변전무쌍한 方位의 吉凶울 판단해야 하는 奇門運甲術온 方位術의 핵십이라 131) 볼 수 있 지만 本考에서는 생략하고 靜方인 風水坐向論만 언급하기로 한다. 坐向으로부터 感應받을 수 있는 原理는 風水 本質에 속하는 문제 이며 筆者의 다른 論文에 게재되었으므로 132) 구체적 언급은 피하고 요약전대 同氣感 應 과 陰陽調和, 五行相生으로부터 나온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죽 모든 方位에는 이미 陰陽五行이 주어져 있으므로 그 方位에서는 그 方位에 따른 陰 陽과 五行의 氣가 흘러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前述한 바와 같이 二十四方位는 그 吉凶이 절대적인 것 이 아니라 穴 주위 山에 따라 吉凶이 달리 나타날 수 있는 상대적 이란 접이 어려운 것이고 그의 해석을 까다롭게 만드는 이유이다. 죽 어떤 山에서는 좋은 方向이 또 다른 山의 입장에서는 凶方일 수 도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五行의 종류가 많아 문제를 더욱 까다롭 게 하고 있다. 실제 感應 여부에서 많이 쓰이는 方法은 九星, 133) 十 二宮의 方法일 것이다. 九星과 十二宮온 사람이 죽어서 還生하고 그 후 生旺死 絶 하는 進 環의 과정을 묘사한 것으로 十二宮 중에서 셋을 겹쳐 九星으로 만 들었다. 따라서 九星과 十二宮온 동일한 것으로 보아도 좋다. 九星 의 變化가 무궁하여 全般의 해석 은 생 략하거 니 와 134) 十二宮온 養 , 生 (혹은 長生), 休(혹은 泳浴), 冠(혹은 冠帶), 官(혹은 臨官), 旺(혹은 帝旺), 襄 病, 死, 墓(혹은 葬), 絶(혹은 胞), 胎이고 九 曜는 食狼, 文曲, 武曲, 巨門, 廉貞,破軍, 祿存, 左輔, 右弼이나, 左輔와 右弼은 사용하지 않거나 巨門에 붙여 쓴다. 이것을 五行長生法으로 정리하면 표 3-9 와 같다. 이것은 十干 方位에 배속한 것으로, 甲乙온 東, 丙丁은 南, 戊己논 中央이라 제 131 ) 李奇 穆 , 1976, 『 奇 卑精說』 , 明文 堂 , pp. I~7. 132) 崔昌祚, 朴英 模 , 1978, 「 風 水에 대한 地 理底 的 解 釋 」, 《 地理學 )} , 第 17 號 , pp. 21~39. 133) 원태 九星온 tt 의 低룹 볼 때 五 星 의 裵格 이 지 만, 本考에 서 는 坐向만을 보기 대문에 五 星論 上의 九 星 은 생 략합. 134) 이에 대해서는 地理 靑襄經 , 1975, ?;f 中市 華 成 因 局刊이 가장 상세합.

의하고 庚辛온 西, 壬榮는 北이 되어 이중 甲, 丙, 庚, 壬은 陽局, 乙, T, 辛, 矣는 陰局으로 한 것이다.

표 3-9 五行長生方位 五行 陽局(順) 陰局(逆) I 區分 甲木 1 丙火 1 표|壬水 乙木 1 丁火 1 辛金尸吳水 長 生 亥 寅 已 申 午 酉 子 卯 泳 溶 子 卯 午 酉 已 申 亥 寅 冠 帶 丑 辰 未 戌辰 未 戌丑 臨 官 寅 已 申 亥 卯 午 酉 子 帝 旺 卯 午 酉 子 寅 巳 申 亥 表 辰 未 戌 丑 丑 辰 未 戌 病 已 申 亥 寅 子卯 午 酉 死 午 酉 子 卯 亥 寅 已 申 墓 未 戌 丑辰 戌 丑辰 未 絶 申 亥 寅 已 酉 子卯 午 胎 酉 子 卯 午 申 亥 寅 巳 養 戌 丑 辰 未 未 戌 丑 辰

표 3-10 胞胎十二神方位 區 分 |胞 1 胎口미미터미미티미미티葬 已酉丑金局 寅 卯 辰 巳 午 未 申 酉頃 亥 子丑 亥卯未木局 申 酉戌 亥 子 丑 寅 卯 辰 已 午 未 申子辰水 土局 巳 午未 申 酉 戌 亥 子 丑 寅 卯 辰 寅午戌火局 亥 子丑 寅 卯 辰 已 午 未 申 酉 戌

또 十二宮 죽 胞胎十二神 定局으로 하면 表 3-10 와 같다. 이 것 이 주로 得破 135) 의 吉凶 판단에 이용되는 것이지만 坐向論 전반에서도 135) 明堂 양축으로부터 휼러내리는 水流의 發源處를得, 바깥국으로마쳐나가는곳 올 破 또는 水口라 한다

가장 찰 알려진 것이다. 이때 十二宮의 吉凶율 靑礎經 13 6 ) 에 의해 대 폭 간소화시키면 다음과 같다. 죽 養 과 生은 九星이 食狼 으로 吉, 泳과 冠온 文曲으로 凶, 官과 旺은 武曲으로 吉, 裵 논 巨 r, 으로 吉, 病과 死는 廉 貞으로 凶, 墓 는 破 軍 으로 凶, 絶 과 胎는 祿 存으로 凶 이지만 경우에 따라 吉凶은 상반되며 이 접은 다음 節에서 언급될 것이다. 이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十二宮의 경우는 사람의 일생에 비유하여 胞, 胎는 吉凶不明의 단계이고, 養 生은 出生의 축 복을 받는 吉이며, 泳冠은 아직 미지수의 단계로 확실치 않으므로 凶하고, 官, 旺, 表 는 人生의 절정기로 吉하며, 이후 病, 死, 葬 은 凶할 수 밖에 없는 의미를 갖게 되므로 十二宮의 吉凶 解 釋 은 아주 간단한 편이다 . 이 十二宮이 九星에 두영되어 人生의 吉凶 禍福 울 결정케 된다. 〈貧狼星은 九星의 우두머리 神으로 예로부터 生 氣 와 生 龍 이라 일컬 어졌다. 聽 明과 文 筆 과 人口와 官 職 에 관한 일을 주재하며 또한 財 富와 孝와 義 와 養 生의 일으킵울 관장하기에 十 二神의 으뜸으로 있 게 된 것이다. 따라서 그 吉함을 가히 알 수 있다( 食狼 爲九星 能 神 古 謂 之生 氣 又 謂 之生 龍 主 聽 明文 筆 人口官 職 之 事 亦主財 富 孝 義養 生者物 之始生故 食狼 居之以十二神將 則吉可知)〉 137) 하였으니 크게 보아 吉 하다. 〈文曲星온 水星으로 그 氣가 인간에 내려오면 遊魂이 되며 (文曲水 星氣降人間爲遊魂)〉 138) 〈五行의 性은 直이 고, 泳과 冠에 붙이 며 水 流가 그쪽으로 나가면 吉하나, 來朝하면 器 悠 울 이 루어 不吉하다 (五行直泳浴冠水流去則吉來朝浮 悠 不吉)〉 139) 하였으니 크게 보아 凶하 다. 이때 나가면 吉하다는 것은 得水法에서 去水는 凶方이라야 좋 136) 『 地理 靑蔡經』 , 卷 之二, 「吉凶」의 구체적 내용은 『地理新法 胡 舜 申 』 , 卷..I:: 第五 부터 第 十一 論 까지 참조 1~) 『地理 新 法 胡 舜 申』, 卷 上, 「 貧 狼 論 」, 第 五. 138) 『入地 眼 全 타 』(1 976 年 臺灣 竹林 書 局刊), 「 龍 法」, 卷 二. 139) r 地理 陽 宅大全』, 卷之四, 「九 星 水法吉凶 斷 例」 •

다는 원칙에 부합되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 〈武曲星은 富를 주재하여 旺氣와 盛함을 얻는다. 武曲은 본래 庫 藏의 별이기 때문에 세상에서는福德, 福龍, 寶曜, 騰雲等으로본다 (武曲主富以得旺氣而盛也 故武曲本庫藏之星世目爲福德福龍目爲寶曜 目 爲騰雲)〉 MO) 하였 으니 크게 보아 吉하다. 〈巨門星은 天醫帝主의 이름을 가전 宮으로 左輔星과 右弼星의 도 움을 받으며 哀에 居한다(巨門居表 巨門者名天醫帝主之宮也 輔弼則 左右之佐也)〉하였다. 그런데 사람의 喪논 얼핏 凶하게 여겨질지 모 르나 깊이 생각하면 〈사람이 裵할 때 몸은 비록 殘朽할지 모르지만 家道가 이루어지고 子孫이 자립하여 드더어 不窮의 실마리를 전케 되 는 (人之裵身難殘朽然家道道成而子孫立遂傳緖於不窮)〉 141) 때 이 니 크 게 보아 吉하다. 〈廉貞星온 五鬼, 獨火, 혹은 任龍이 라고 불리 며 刑殺과 凶毒한 일 울 관장한다. 따라서 五行의 病, 死에 居한다(廉貞號五鬼又號獨火 又號柱龍主刑殺凶 毒 之 事 故居五行之病死)〉 l42) 하였으니 크게 보아 凶 하다. 〈破軍星온 絶命,死龍, 殺曜 等으로 불리 우며 刑却과 惡疾울 관장 한다(破軍者一名絶命一名死龍一名殺曜主刑却惡疾故居於墓)〉 143) 하 었으니 크게 보아 凶하다. 〈祿存星온 絶體이 며 病龍으로 病疾울 주관하니 五行의 胎, 絶에 居한다(祿存爲絶禮爲病龍主疾病故居五行之胎絶)〉 144) 하였으니 크게 보아 凶하다. 이것이 山, 水, 方位의 變化에 따라 수웅 변화하여 정해진 方向 에 배치되면 그로써 上述의 이유로 吉凶울 판단케 되는 것이다. 靜 方吉凶이지만 山勢와 水流에 따라 方位를 바꾸게 되니 매우 動態的 인 판단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 복잡한 것은 方位의 吉凶判斷이 方位를 잡는 사람의 生年月 140) 『胡舜申J, 「武曲論」, 第七. 141 ) 『胡舜申J, 「右弼巨門左輔論」, 第八 142) 『胡舜申J, 「廉貞論」, 第九 143) ™舜申J, 「破軍論」, 第十 144) 떠舜申』, 「祿存論」, 第十一

日時 즉 四柱에도 관계된다는 점이다. 혼히 四柱냐宮合울볼때 사 용하는 六十干支의 納音五行이 그러 하고 本命元辰에 의 한 道敎의 七 星 신앙이 그러하다. 丙午, 丁未年生은 天河水, 丙辰, 丁已年生은 沙中土하는 것 이 納 音五行이고 本命元辰이란 사람의 生年에 해당하는 十二支에 本命星 울 배당하는 방법으로 子年生온 食狼星 , 丑年, 亥年生온 巨門星, 寅年, 戌年生온 祿存星, 卯年, 酉年生은 文曲星, 午年生은 破軍星 하는 것이 바로 그러하다. 그 사람의 吉凶 禍福 은 일체 本命星의 지 배하에 있다고 생각한다 .145) 결국 坐向吉凶解釋은 사람과 山과 묻 과 方位가 陰陽五行的 思考에 의하여 調和,均衡, 相生의 관계에 있 을 때 좋다는 周易的 관념이 基本原理를이루고있다고볼 수 있다.

145) 李能和, 1981, 『朝鮮道敎史』, (李 種殷 譯 ), 普成 文化社刊, pp. 300~1.

2) 山水方位으 I 吉凶解釋 山水方位란 주로 山 勢 의 走向과 水流의 方向울 말한다. 이 분야 역시 術法답게 諸說이 분분하여 일률적 해석은 불가능하다. 本考에 서는 많이 사용되고 비교적 간단한몇 가지를 標出 하여 해석해 보고 자한다. (a) +五度數法 이 法은 靑烏經에서 나왔다고 하며 河圖로 體를 , 그리고 洛 書 로 用울 삼았다고 하는데 , 先天之 氣 는 靜하고 後天之氣는 動하는 바 動 함에 法이 있는지라 주로 洛 書 의 後天八卦 즉 文王八卦方位를 이용 한 것이다 .146) 前述한 바와 같이 文王八卦方位에서 가로, 세로, 대각선의 수자 의 合은 어느 것이나 十五가 되어 魔 方陣이라 하고 十五數를 맞추 떤 吉하다고 본다. 이때 대각선은 中央울 지나야 하는데 中央에는 方位가 없으므로 제의시키면 가로 2, 세로 2, 4 개의 十五度數가 만 들어 진다. 첫 째 , 次一, 乾六, 良八하여 十五, 둘째 , 離九, 坤二, 興四하여 十五, 제째, 震 三, 良八, 興四하여 十五, 네째, 免七, 坤

146) 東谷, 前撮합, pp, 120~28.

二, 乾六하여 十五가 된다. 二十四 方位에서는 洛書의 次이 子, 離 가 午, 震이 卯, 免가 酉가 되니 이것을 二十四方位에 의하여 표시 하면 첫 째 , 子―乾―昆 둘째 , 午―坤―興, 세 째 , 卯―良―興, 네 째, 酉一乾一坤이 되고 山의 走向을 일반 방위로 고쳐쓰면 첫째, 南北走向―北東南西走向―北西南東走向, 둘째, 南北走向―北西南東 走向一北東南西走向, 세째, 東西走向―北東西走向―北西南東走向, 네째, 東西走向―北西南東走向―北東南西走向이 되어, 결국 기준방 위를 中心으로 左右 各 45° 方向에서 새로운 山勢가 潮入되면 좋은 것으로 취급하였다. 이것으로 판단컨대 山勢의 흐름은 變化가 있으면서도 철도를 잃 지 않으며 지나찬 逆勢가 아니고 또 일률화된 順勢도 아닌 調和, 均衡된 상대를 吉勢로 占定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十五度數法은 융통성이 있어 형세가 위와 유사하면 方位가 정확 하게 十五度數가 아니더라도 인정한다. 중요한 것은 山勢走向의 可 視的 調和이 기 때 문인 듯하다. (b) 向向發徵 147)

147) 八十八向眞缺(山 찰 )에 의 합.

이것은 山勢와 水流의 關係를 보인 것인데 전체의 언급은 생략하 고 壬山丙向과 子山午向의 경우, 즉 北에서 南쪽을 향한 龍勢가 水 向이 어떻게 되었을 때 吉凶울 판단하는가만을 해석고자 한다. 그 의 吉凶 판단을 대 폭 요약하면 左水가 倒右하여 辛戌方으로 出하면 吉, 右水가 倒左하여 甲方으로 去하면 吉, 興已方에 水口떤 凶, 乙 辰方으로 消水하면 凶, 矣丑方으로 出水하면 凶, 壬子方얘 水口떤 凶, 乾亥기(에 水口면 吉凶相反, 庚酉方에 水口면 凶, 坤申方에 水 口떤 凶, 良寅水에 水口떤 凶, 丙午方으로 水去하면 吉凶相反이 된 다. 이것은 물론 水流의 吉凶을 南北走向의 山勢에만 비견시킨 것이 기 때문에 일반화시키기에는 문제가 있으나 다론 走向의 山勢에 있 어서도 相對方인 山水의 위치는 크게 바뀌지 않기 때문에 해석이 가능하다고본다. 得 7k 의 기 본원리 가 吉方에 서 入하여 凶方으로 去해 야, 죽 得은 吉

方에 破논 凶方에 있어야 吉한 것임은前述한바있는데, 이것은 깨 끗하고 좋은 것을 가쳐와 나쁘고 더러운 것을 가쳐간다는 발상으로 생각해볼수있다. 向向發微에서 몇 가지 原理를 추출해 보면 첫째 물이 들어오는 것 은 보이나 나가는 것은 보이지 않음이 좋다고 보는 접, 둘째 水가 山울 直射하듯 들어오는 것은 크게 기피한다는 접, 세째 山水가 直 交함을 꺼린다는 접, 네째 水가 山의 走向 方向으로 같이 나갈 때는· 몹시 조십 하여 不見隱去하지 않는 한 凶하다고 보는 접 , 다섯 째 山 과 水는 順勢보다 逆勢가 됨을 더욱 즐긴다는 點, 그리고 비록 水 流가 山의 走向에 逆勢라 할지라도 山을 沖射할 정도로 마주치는 것 울 꺼린다는 點 等을 읽을 수 있다. . 위에 도출된原理를살펴볼때, 山勢자체의 흐름에서와는 달리 山 水關係는 相補하면서도 變化가 있어야 좋고, 그러나 지나치면 안된 다는 의도를 알아볼수있다. 이 접은또들어오는 물이 바라보여 浚 7k 를 일찍 알고, 나가는 물이 숨듯 꼬리를감추어 더러움을보지 않 을 수 있으며 直射하여 穴場이 澄勉을 당함을 방지하고, 역시 直交 되어 山의 허리가 허물어침을 보호하면서도 山勢와 水流가 같은 方 向울취함에 있어서는〈午字를 犯하고丙字上으로不見隱去해야지 만 · 약 直去하면 蕩然直去家資惡〉 이 니 〈大富大貴하고 人 T 이 興旺하~ 간혹 壽 短하고 幼年霧婦를 難免〉한다 하여 吉凶울 엇갈리게 함으­ 로써 原理에는 어굿나지만 規局이 광활해집을 버리지 못하는 현실 적인 타당성을 드러내어 상당한 合理性울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 게 한다 .148)

148) 여 기서 의 合理住이 란 後孫發福의 陰宅感應이 그렇 다는 것 은 물론 아니 고 주년 환겅의 사랍 사는 조건에 비추어 보아 그러하다는 말이다.

(c) 坐向吉凶判斷의 根操 위에서 두 가지 경우를들어 기초적인 吉凶 해석을 시도하여 보았 으나 이것은 坐向吉凶의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무수한 坐 向吉凶判斷法울 정리하는 것도 本考의 분량 밖이거니와 그의 해석 은 筆者의 능력 밖이다. 다만 筆者가 소장하고 있는 諸地家書 中의 方位關係 吉凶判斷法 가운데, 感龍九星圖(德龍經, 地理正宗, 卷三) ’

歸厚 錄 (卷四), 天元五 歌 (卷六), 天元九略(卷七), 大元空固(地理靑 商經 ), 小元空回(上撮 書 ), 五行論 및 圖式(胡舜申), 向法(入地眼全 書 , 卷八), 陰 宅回向法(上撮 書 , 卷九), 山媒法, 反配定穴法, 反配角 法, 天 德龍法 , 四正 龍 法(以上 地理 學 全 書 ), 淨 陰 淨 陽 , 先天山法,後 天山 法 , 坐 向 l1.命 法, 隔 八相生法, 四大局 論 (以上 明堂全 書 ), 廉 看 法, 透 地八 卦 六十 龍 (以上 陰 宅 要 誤), 胞胎法(明堂 學講論 ), 八十八 向法(八十八向 眞誤 ), 裁 穴, 分金, 黃泉 無 , 八 曜 水, 元辰 熟 等을 살 퍼 坐向吉凶의 개략을 요약하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坐向吉凶의 해석에 있어서도 看 龍, 定穴 等 風水의 다론 法術과 마찬가지로 陰陽 五行, 八卦, 十干, 十二支를 원용하고 있음은 같 다. 다만 方位의 경우는 九星과 十二宮울 배정하고 있음이 다른 접 이나 九星은 藏風 法에서 山의 形 醫 롤 논할 때 五星의 變 體로 이미 등장되 어 있 기 때 문에 十二宮만이 독특한 판단 方法으로 남은 셉 이 다. 方位는 八卦, 十干, 十二支의 조합에 의하여 二十四山이 결정이 되었고 陰腸 과 五行도 종류는 많지만 各 方位에 배정되어 있기 때 문에 二十四 各 方位의 個別的 吉凶울 알면 쉬울 듯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에 문제논 있다. 風 7k 에서의 坐向은 혼히 말하는 方位와 다 르기 때문에 그러하다. 한 地點, 예컨대 穴處에서의 方位는 무수히 존재할 수 있다. 360° 의 各 方向이 모두 그 地點의 方位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選 好性 또는 風水原理에 의하여 配定되는 坐向方 位는 단 하나밖에 촌재하지 않는다. 이때 坐向方位를 어디로 잡을 것인가가 문제가 되며 坐向울 칭했 다 하더라도 주변 山의 모양, 形 勢 , 來龍 關 係, 水의 得, 破方位, 水 流, 水 勢 에 따라서 十二宮과 九星온 달리 배정되기 때문에 좀 과장 하자면 어 떤 地點도 方位의 吉凶이 同一하게 나타날 수 없는 결과 를빚는다. 죽, 二十四 基本方位에 변함은 없다고 하더라도, 明堂 주변의 상 당한 범위 내의 山과 水가 事 例마다 十二宮과 九星이 달리 정해지 기 때문에, 方位의 吉凶울 알기 어렵게 만든다. 여기에 穴處를 쓰 게 될 사람의 個人的인 四柱, 죽 年, 月, 日, 時의 六十干支가 納

音 五行 等의 方法으로. 관계를 짓게 되니 더욱 복잡해침을 면할 수 없다. 한마디 로 山, 水, 方位, 人이 혼연일체 가 되 어 超吉避凶의 形勢 를취해야좋다는결론이 나온다. 또그분만이 아니라山과水는各 各 그 자체로서 走向이나 流向이 정해 놓은 法度에 맞아야 함은 물 론 看龍法, 藏風法, 得水法에서 운위된 모든 原則을 따라야 하기 때 문에 이것을 하나하나 좇아 들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분만 아 니라 섣혹 한두 가지의 術法에 通했다 하더라도 거기에서 헤어 ~ 올 수 없게 되고 만다. 當代의 名師인 一耳僧이 그가 칭찬한 李師 가 占定한 자리를 磯評한 일 149) 이나, 李淳이 郭漢의 自 卜 壽藏 에서 탄식 한 것 150) 等이 모두 吉凶判斷의 어 려 움을 단적 으로 나타내 준 예 라 할 수 있다.

149) 裵宗鎬, 前擇 書 , pp. 140~41. 150) 裵宗鎬, 前掃 書 , pp. 148~9.

누구 流派의 法術울 따르기로 결정하고 거기에 山, 水, 方位吉凶 울 배속했다 하여도 실제 踏山을 하면서 山의 走向과 水의 流向울 ­ 잡아내기란 至難 事 라 아니할 수 없다. 어떤 것을 주된 走流向으~ 하여야 할 것인지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확한 解釋을 가하기 위해서는 各 流派의 吉凶判斷方法 에 대한 정리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그 判斷의 근거가 되 는 原理만은 동일하기 때문에 개략적 해석은 가능해진다. 陰陽은 相配되어야 하고 五行은 相生關係를 이루어야 함은 물~ 이고 八卦는 卦의 풀이를 근거로 善惡吉凶울 판단하며 十干은 五行 에 배속되므로 五行에 준하여 판단하고 十二支는 支名의 意義에 ~ 아 그들의 조합으로 최종적 吉凶 판단이 가해지게 된다. 十二宮은 人生의 一生過程에 비견하고 九星온 天宮의 배치를 比 定하여 고정된 吉凶判斷울 하기 때문에 일단 坐向이 결정되었다면 그 다음의 판단은 어떤 면에서 기계적이타 볼 수도 있다. 결국 坐向의 吉凶判斷온 可視的 形勢로 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다 음의 과제로 미루고 그 原理面만을 살펴보면, 調和, 均衡의 地理觀 이 주종을 이룬다고 생각된다. 옛사람이 그들의 주위 환경을 生死

몰 불문하고 인간의 居所라는 實在로서 吉한가 凶한가를 판별하여 야 _ 하였고 그러한 自然論에 힘입어 보다 포괄적이고 一元的인 自然之 道를 人間性 發揚과 함께 風水 坐向論으로정착시켰을것이라본다. 따라서 坐向吉凶의 根本은 주위 환경 특히 山, 水, 方位라는 風水 가어떠한가, 다시 말해서 太陽의 위치, 바람의 方向, 山川形勢가그 壘 들에 맞는 것인가 해로운 것인가를 알아내는 方法에 있었다. 相補, 相生, 生氣, 變化, 環抱, 有情, l1 頂勢, 緊講 等 조화 군형 의 이미지를 주는 곳이 吉하고 相克, 散髮, 窮盡, 跋斷, 無情, 沖射, 逆勢, 待逆의 분위기를 일으키면 凶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면서도. 수많은 例外를 곳곳에 분산하여 凶한 곳에도 吉함이 있을 수 있다 는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 坐向吉凶은 이와 같아 自然秩序를 調和와 均衡으로 파악한 옛사람 들의 自然觀이 形而上學的인 原理를 조성 혹은 외부로부터 도입하 여 相地術에 적용함으로써 成立되고 그 原理의 해석에 대한 구구한 異見과 山川울 보는 안목의 서로 다름으로 기인한 諸說이 혼합되 어 風水地理說 坐向論으로 정착된 것이타 여겨진다. 4. 坐向論 評價 風水地理說의 評價를 두고 입장에 따라 그리고 접근방법에 따라· 서 여러 가지 논접이 주어지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歷史學, 民 俗學, 哲學, 國文學, 科學, 史學, 建築學, 環境學 분야에서의 공헌 은 風水의 이해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당시의 상황으로는 타당했다든가, 生活空間의 해석방법으로는 合理性이 있 다는 둥 긍정적 평가가 주어지고 있다. 地理學쪽에 서 는 風水說울 1960 年代에 背山臨水, 南斜面, 龍虎砂 城에 의한 規局의 環抱性 等 주로 緊落立地 혹은 風土說明 정도로. 하여 그쳐 왔음을부인할수 없다. 그러나그것은風水的 思考方式일 분 風水說 그 자체는 아니다. 北半球 中緯度地方의 衆落立地로서 옛 사람들은 東西를 불문하고 風水的 觀念울 가지고 있었을 것이며 그 중에서도 風水地理說이란 복잡미묘하고 변화무쌍한 形而上的 術法

을 만들어 地表上에 두영한 것은우리의 특칭적인 현상일 것이기 때 문에 지리학에서의 접근은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현상을 坐向論이란 風水術法의 특수분야에서 시도하여 조 화, 均衡의 自然觀이라는 결론을 추출하여 보았다· 보다 구체적인 坐向 해석은 易과 陰陽五行율 自然之道로서 여하히 地表현상과 연 결시키느냐에 주어처야 하며, 또 하나 地表현상이라는 可視的 質體 를 어떻게 吉凶面에서 판단할 것인가에 주어져야 할 것이다. 調和와 均衡의 自然觀울 부연 설명하면 온화, 유순하고 부드러우 며 결함이 없어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주위 환경이라 생각할 수 있 다. 角이 지지 않는 方位와 유장한 山의 흐름과 찌르듯 달려들지 않는 물길에 둘러싸인 規局, 그러면서도 단조롭지 않도록 山水 배열 에 變化의 원리를 적용시킨 風水 坐向論온 건국 옛사람들이 삶의 거 처로서든 永眠의 자리로서든 길이 있고 싶어했던 곳을 일반화시킨 논 리일 것이다. 均衡된 自然과 調和된 心性이 결부되면 그곳에 居住

하는 사람이나 그곳에 祖先의 昆身울 모시고 자주 찾는 사람에게도 모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며 이것이 易術과 결부되어 吉 凶判斷法으로 정착된 것이라 판단된다.

7 形局論 1. 形局의 設定 形局論 은 地勢를 전반적으로 개관할 수 있는 術 法이기 때문에 術 師 部類 가 가장 많이 들먹이는 내용이고 風 水를 찰 모르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임은 사실이다. 그러나 地 勢 의 槪觀 이란 것이 耳 惡鈴鼻惡鈴 式으로 보는 입장에 따라 달리 인석될 수 있는 것이니,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明確한 術法온 아니다. 雪 心 試 가 〈 物 은 人物 食獸 의 類 로 미루어 헤아릴 수 있고 穴은 形 으로 말미 암아 取한다(物以 類 推 穴由形取)〉 151) 고 喝 破한 바와 같 이 실제 踏 山하며 吉地를 相占하는과정에 있어서는눈으로 직접 吉 凶울 판별할 수 있는 어떤 類 型分 類 의 필요성이 생간다. 山에 들어 가 보면 風 水 理 論 은 理 論 대로 머리속에서 맵돌고 山川온 山川대로 存在하여 理 論 을 實 地 勢 에 對 比하여 보기 곤란한, 소위 〈山 自 山 書 自 書 〉의 현상이 벌어지는 일이 비일비재이다. 이럴 때 애매모호한 山川形 勢 를 人物 廊獸 의 形 象 에 類推하여 판단하면 비교적 쉽게 地 勢大觀과 그 吉凶울 떠올릴 수 있다. 形局論은 宇宙 萬 物 萬象 이 有理有 氣 하며 有形有 像 하기 때문에 外 形物 體 에는 그 形 象 에 상응한 氣象 과 氣運이 內在해 있다고 보는 151 ) 『 尊 心默正解』, 卷四, 「 論 穴形 異 同及沙水凶形 應驗 J

理念울 原理로 삼는다. 그러 나 앞서 밝힌 바와 같이 物形 으로 類推 한다 하여도 術士 의 主觀이 작용될 소지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形 局論은 風水說의 本質的안 體系構造 에는 잘 나타나지 않고, 대부분 風水 應 用 密 나 備忘記 정도에 나타날 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체적인 윤곽만으로 단정해서는 안되는 것이 역 시 形局論이다. 雪 c..,~에서도 이를 경계하여 〈 호랑이는 사자와 비 슷하고 기러기는 봉황과 다르지 않게 보이치만 만일 조그만 차이 가 있어도 指鹿爲馬의 우를 범하는 꾼이다. 모두 한 덩어리로 되어 구벌이 없으면 지렁이를 뱀으로. 안다(虎與 獅視相似 雅與鳳凰不殊 一或少差 指鹿爲馬潭然無別 認朗爲蛇)〉 152) 고 지적하고 있다.

152) 『雪心試正解』, 卷四, 「 論 穴形 異同及沙水凶形應驗 」

物勢形狀이 사람의 吉凶에 영향을 미찬다는 생각은 原始時代부터 類物信仰으로서 촌재했었다. 원래 風水說 成立 初期에는 이것이 개 입되어 있지 못했던 듯하다. 發達過程에서 類物信仰的인 觀念이 이 입되었는데, 이것은 風水論理가 陰陽五行說에 깊이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萬物에 차이가 나는 것은 그것이 지니고 있는 氣 의 차이 때문인 것이고 이 氣의 象이 形으로 나타나는 만큼 形으로 物의 元氣를 알 아낼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결국 形局論으로 발전된 것이라 본다. 예컨대 나무가 우뚝 솟은 듯이 山形울 갖춘 山온 木氣가 흘러 木 山으로, 불꽃처럼 타오르는듯한 山勢는 火山으로 보는 것이 그것이 다. 혹은 多産과 결부하여 女性의 生殖器에 유추하거나, 吉한 침승 에 형상을 비견하는 것 等이 모두 그와 같은 觀念의 소산이다. 2. 形局의 種類 山川이 融結하면 그 外觀上 많은 象과 物形의 모습을 띠 게 된다 r 이 物形과 象은 각각 그에 상응한 理 氣 와 象運이 內在되어 있는 것 으로 본다. 따라서 風水說에 있어서는 保局形勢와 山穴形 體 에 따리­ 이에 상응한 精氣가 그 땅에 疑緊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 에 穴處 주변의 局面이 어떠한 形局을 갖는가 하는 것은 吉凶判斷

에 중요한 지표로 이용될 수 있는 것이다. 원래 山形判斷에는 五 星法 이 있다. 〈經 에 이르기를 하늘에는 五 星이 있고 땅에는 五行이 있다고 한다. 하늘의 五星은 별자리로 나 뉘고 땅의 五行온 山川으로 벌리어, 氣는 땅으로 흐르고 形은 하 늘에 걸려 있다. 따라서 形으로 氣를 보아 人魚 B 를 세운다(經曰 天 有五星 地有五行天分星宿 地列山川 氣行於地形麗於天 因形察氣 以立人紀)〉 153) 고 하였 다. 이 것 이 山形울 五星에 비 기 어 보는 근거 이다.

lM) 『地理正宗』, 卷一, 「 靑蔡經 」, 中卷

五星은 五行說에 기 초하며 , 五行說의 근본은 剛柔와 같이 書經 의 洪範 中에 있는데 洪範 九 期 의 차례는 水,火, 木,金, 土로 되어 있다. 五行의 性格에는 여러 해석이 있으나 民用五材라 하여 古代 人의 生活素材를 들어 五行이라 했다는 說이 가장 유력하다. 따라서 五材의 배열도 사람의 生命持 綾 에 가장 직접적인 水, 火 로 시작하여 다음에 生活素材로서의 木, 金에 이르고 최후로 일체 소재의 기본이 되는 土가 제시되었다. 이 生活 素材 로서의 民用五材 가 접차로 추상화되어 일종의 原理的인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이 原理化된 五行組織울 구체적으로 나타낸 것이 禮記로서 그의 月令이타 할 수 있다. 月令은 天文, 曆法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며 相生, 相쉔의 形勢를 취하기도 한다. 이 相生 • 相헨原理가 山川 形 局에, 특히 山의 모양에 결부되어 五星法을 낳게 되는 것이다. 五 星 의 생김새는 둥근 모양을 한 것이 金星, 곧고 모나지 않으며 直盜한 것이 木星, 물이 흐르듯 큰 굴곡없이 위에서 아래로 부드령 게 뻗어간 것이 水星, 불꽃같이 뾰족하고 날카롭게 생간 것이 火星, 반듯하고 옆으로 뻗어 중후한 인상을 풍기는 것이 土星이다. 五星온 淸, 濁, 凶 三格으로 그 吉凶울 논하는 바, 淸이 란 星辰 이 수려하고 광채가 나는 것이오, 濁이란 星辰이 살찌고 두텁고 단 정하고 무거운 것이며, 凶이란 星辰이 추악하고 거칠고 照을 떤 것 울말한다. 山의 形勢률 미루어 類型울 분류하고 그로써 形局울 論하려면 먼

처 五星에 의하여 大觀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또 局面울 이루 고 있는 주위의 各 山들과 결부되어 이루 해아릴 수 없이 많은 種 類의 類型울 낳게 된다. 村山智順의 조사에 나타난 것 만도 수백 가 지이며 154)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무궁무전한 가지 수를 파생시킬 수 도 있는 개념이 된다. 그러나 五星이 죽 形局인 것은 아니다. 形局은 術士에 따라 類推 하는 方法과 결론이 상이할 가능성이 매우 큰 것이기 때문에 形局 율 크게 分類할 때 基本思考體系로 이 용될 분이 다. 形局은 五星에 의하여 人, 物 , 食, 獸로 大分되는데, 雪 心試正解 에 의하면 〈木星과 火星온 주로 사람의 모양에, 金星은 날침승 노 양에, 土星온 길짐승 모양에, 그리고 水星은 龍과 뱀무리의 모양에 많이 대비시킨다. 穴을 取함에 있어서는 사람은 심장과배꼽과 음부 에, 날침승은 날개와둥우리와벗에, 길침승은 여러 침승의 모양에, 그리고 龍蛇類는 코와 이마와 귀와 배와 머리와 꼬리에 빗대 어 행 하게 된다(如木火二星多 結 人形 其 穴取心 廣陰 金星多結歲形其穴取翼 腐冠星 土星多結獸形 水星多結龍蛇形 其穴取鼻顔耳腹頭尾之類)〉 155) 고 하였다(表 3-11). 아에 근거하여 무수한 形局이 나타나게 된다.

154) 村山智 顔 , 前掛한 , pp. 229~46. 155) 『 雪 心賊正解』, 卷四, 「 論 穴形異同及 沙水凶形應驗 」.

표 3-11 五 星과 形局의 關係 木 星 I| 正直 狀體 || 形人 形局 |I 心, 瞬取 , 陰穴 部 分 火 星| 光 狀|人 形 | 心, 廣 , 陰 金土 星星|| 橫圓 狀狀 || 窟獸 形形 |1 翼 , 窓 , 冠 水 星 | 曲 狀 1 龍 蛇 形 I 鼻 , 顔 , 耳, 腹, 頭, 尾

이 章에서 는 主山, 龍虎 , 朝案 等 의 砂城 및 明堂, 方位에 의한

細分된 形局論은 생략하고 156) 穴 주위몰 종합져으로 판단할 수 았 는 일반적인 形局論만을 취급하고자 한다 .157) 편의상 물고기와 벌 레 무리는 獸形에 귀속시켰다.

156) 風水用語 說明온 이미 前節에서 소개한 바 있기 때문에 생 략합. 細分된 形局 給온 村山智 廊 『朝鮮 0 風水』(1 971 年 圓光大 民俗후硏究所刊 影 印本), pp. 205~ 46 參照. 157) 여기에 사용한 책은 『抵玉芹』• 『山水 圓』 , 『興次妙決』, 『地理學全書』· 『陰宅要 映』· 『明堂學 器論 』· 『八十八向眞缺』, 『明堂全 촙 』 等이며 이후 傾雜울 피하기 위 , 하여 上記한 諸 術흡類는 引用表示문 생략하였음.

먼저 人形에 속하는 것으로는 玉女端粧形, 玉女丹粧形, 玉女洗足 形, 玉女散髮形, 玉女欽容形, 玉女彈琴形, 玉女 蝶鼓形 , 玉女 鄧 後形, 玉女織錦形, 玉女 舞柚形 , 玉女開花形, 玉女騰空形, 美女跋足形, 美 女默花形, 天女登天形, 三女同坐形, 峨眉明秀形, 傾婦察足形, 將軍 大坐形, 將軍大座形, 將軍端坐形, 將軍出陣形, 將軍展旗形, 將軍轉 馬形 , 將軍擊鼓形, 將軍擊鼓杜敵形, 將軍舞劍形, 眞 武俠劍形, 將相 뎅 弓形, 仙人 殿 書 形, 仙人擊鼓形, 仙人大坐形, 仙人踏空形, 仙人 舞 柚形, 仙人仰 掌形 , 仙人坦腹形, 仙人踏 鶴形 , 仙人腕足形, 仙人獻掌 雲 中仙坐形, 舞仙形, 二仙對基形, 雙 仙望月形, 三仙 · 凍 丹形, 五仙園 形, 仙人踏馬形, 基形 , 胡僧拜佛形, 遊僧禮拜形, 漁翁徹網形, 漁父 設網形 , 漁翁垂釣形 等이 있고, 獸形에 속하는 것으로는 遊魚弄波形, 伏 徽形 , 蝶松形, 猛虎下山 形, 臥牛形, 行牛耕田形, 金龜飮水形, 老 龜텃尾形 , 露龜下山形, 玉 馬形, 伏獅形, 金龜入海形, 眠犬形, 浮海金龜形, 胡馬飮水形, 躍馬 卦敵形, 眠牛形, 獅子形, 兩虎相交形, 天馬 맵訴風形 , 呼龜形, 蝶撲梨 花形, 傍器吐洙形, 寒虎卿尾形, 猛虎下田形, 眠 象 形, 盛龜 成尾形, 老鼠下田形, 紫氣 藏龜 形, 白象埋牙形, 金魚形, 伏虎形, 老虎下山形, 湯虎飮水形, 睦虎形, 金龜下田形, 飛峨形, 雄牛뽑雄牛形, 龜甲胃形, 略陀載寶形, 猛虎出林形, 翻天馬踊形, 伏狗形, 黃口甘食形, 卿妹張 · 綱形, 金龜沒泥形, 金龜入首形, 蝶螺下水形, 金盤入首形, 湯馬飮水 形, 産狗形, 龜尾形, 湯鹿飮水形, 玉兎望月形, 飛峨附壁形, 蠶 頭形 等이 있으며, 途形에는 飛鳳別翼形, 飛鳳歸菓形, 飛 鳳 抱卵形, 金 鷄抱 卵形, 鳳

菓抱卵形, 五鳳爭菓形, 節菓 抱卵形, 篤筋朝 井形, 飛賊形 , 暖木烏飛 空形, 鍊翊展趙形, 編螺形 , 丹鳳傳書形, 丹 鳳御書形 , 團鳳形, 翔鳳 形, 鶴漆形 , 飛鶴騰空形, 伸 鶴頭形 , 仙 鶴 下田形, 金朗浴水形, 飛鳥 塚木形, 金鷄欽跡形, 五 鳳爭珠形 , 飛確度복形, 金鷄宿瓜形, 鳩尾形 , 燕菓形 , 飛鴨形, 靑鶴 抱卵形, 平沙下雅形, 死維 掛壁形 , 飛鳳形, 飛 J 몄歸災形 等이 있다. 龍蛇形 에는 混龍尋水形, 飛龍含珠形 , 飛龍隱山形, 龍馬洗 足形, 飛龍望水形, 湯龍考水形, 老龍歐珠形, 生蛇形, 臥 龍形 , 九 龍爭珠形 , 生 龍截 水形, 潛龍 入首形, 長蛇形, 婚龍 吐珠形, 回 龍隱幽形 , 回 龍顧 祖格, 龍馬飮水形,盤龍獻珠形, 倉龍 出河形, 橫龍形, 金龍[尉尾形 , 戱草婚 蛇形, 蛇形, 黃蛇聽始形, 幡龍 玩月形, 蝶松龍格, 直龍入首格 , 描龍入首格, 飛龍 入首格, 潛龍 入首格, 回龍入首格, 壓龍弄珠形, 黃 蛇出水形, 生蛇聽給形, 龜龍形 , 回 龍隱 山形, 草蛇吐舌形, 湯龍飮水 形, 飛龍上天形, 黃龍渡 江形, 飛龍入海形 , 長蛇逐桂形, 雙龍弄珠形 , 已頭形 等이 있고, 上記한 人, 處,獸, 龍蛇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 것으로는 葛 葉形, 金盤玉 壅 格, 金盤形, 荀藥半開形(혹은 飛鳳歸菓形으~ 보기 도 한다 함), 行舟形, 菊菊形 , 蓮花出水形, 半月形, 牧丹形, 伏鐘 形, 新月形,初月形, 牧丹半開形, 橫琴形, 浮樣形, 園軍形, 對鐘皆 花形, 靑薄浮水形, 砂中玉笠形, 丹 遠型 火形, 火 埋金 丹形, 金欽形, 照天 嫌獨 形, 鈴金一呢形, 玉帶 緖膜形 , 掛壁金欽形, 金圭玉稿形, 官 舍停 驛 形, 寶劍 出唐形, 雲連初 月形, 摘背形, 推蕭殿試 格, 抱飾殿試 格, 珍珠形, 描地珍珠形, 玉飛肝水形, 玉笛形, 蓮花浮水形, 梅花落 地形, 蓮華浮水形, 桃花落地形, 風吹羅帶形, 也字形, 金欽 絶脚落地 形, 洗紗明月形 等이 있다. 이들의 어휘 구조는 대체로 人, 物, 象 等의 表現主體와 그들의 形姿 說明율 덧붙이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例外的으로 形姿의 표 현없이 主體안 人, 物象만으로 形局율 나타내는 경우도 있고 主 證 없이 形姿만을 내세운 경우도 없지는 않으나 대부분 主體에 形姿믈 덧붙이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편이다.

3. 形局의 解 釋 人 形 에 속하는 主 體 는 女人, 將軍 , 仙 人 , { 曾 , 漁翁 의 다섯 가지 로 大分 된다. 女人은 보다 구체 적 으로 玉女, 美 女, 天女,三女, 桐 婦 等 으로 細分 되고 將軍 은 眞 武, 將相 等 으로도 나타나며 仙人은 舞 仙, 二仙, 三仙 , 五仙 等 이 있고 僧은 胡僧 과 遊僧 等 으로 느 표찾 된다 . 그 의 에는 類型分類 가 어려울 정도로 잡다한 物象 이 나타나는데 獸形 의 主 體 로는 물고기, 게, 지네, 호랑이, 소, 거북, 말, 사자, 개, 나비, 코 끼 리, 쥐, 누에나방, 이, 낙타, 거미, 소라, 가재, 사 슴, 누에 等 이 등장하고 袁 形의 主 體 로는 봉 황 새, 닭, 학, 거위, 기러기, 비둘기, 제비, 갈가마귀, 꿩 等 이 나타난다 . 龍蛇 形은 물 론 용과 뱀이 主體 이며, 그의에는 꽃 종류, 나무 종류, 배, 달, 거 문고, 퉁소, 촛불 , 병 , 전주, 비 녀 等아 많이 등장하는 편이 다. 그러나 主 體 는 그에 알맞은 對案 의 山川 形勢 를 제대로 구비해야 吉格 이 된다. 이것도 너무나 종류가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인데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널리 알려지고 이해하기 쉬운 道院 踏 山 歌 158) 에 수록된 것은 다음과 같다.

158) 『道院踏 山 歌 』, 「 形局論 」(金成俊 編 , 韓國 地 理菜論 , 1982 年, 育 志 社 , 影 印本이 出典임).

伏虎形―眠犬 案 〔호랑이 앞에 조는 개 , 먹 이 ],玉 女形― 橫 琴 案 〔거 문고물 빗 겨 안은 여 인〕, 半月 形―三台 案 〔반달 아래 삼인의 貴 人〕' 天 歲形 ―七 星案 〔北斗七星온 인간의 죽음을 7 맡아 다스림 ],飛 龍 形­ 獻珠案 (구술을 희롱하는 비룡], 飛 玄 形- 草 虫 案 (날아가는 새 앞의 풀벌레 , 먹 이 ], 臥牛形― 積 草 案 (소 앞의 폴더 미 ], 燕 菓 形― 橫 梁 案 대비집에 대들보〕, 蝶 松形―近 葛 頃託지네 앞의 지렁이], 織女天 樣 形一金俊案〔베틀과 베틀복〕, 仙人舞抽形―玉筋案(춤추는 선인에 옥 피리〕, 飛 龍 仰天形一 狼璃案 (비룡이 하늘을 우러르는데 강아지가 흉 모하듯 쳐다봄〕, 天馬出 軍 形―玉勒案〔천마 출군에 욱굴레를 씌운 격 ],行 蛇形―逐珪案〔뱀 가는 길에 개 구리 가 달려 들다. 먹 이 ],風

그림 3-22 玉女 丹 粧 形 의 山 勢

그림 3-23 玉女丹粧 形

그림 3-24 金 鷄 抱卵形의 山 勢

그립 3-25 金 鷄抱 卵形

그립 3-26 猛虎出林形의 山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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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 3-27 猛虎出林形

그림 3-28 金鑑入首泥?의 山 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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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그림 3-29 金急入首形

그립 3-30 將軍大座形의 山勢

徐 令

徐^ ^A~^ 소企 그립 3-3 1 將軍大座形

그립 3-32 꽃봉오리에 비유한 서운의 경복궁

吹羅帶形―個玉案, 將軍大坐形―三軍案(장군이 삼군을 거느림〕, 圓 軍形―七星案, 伏虎形―虎頭案, 仙人仰堂形―橫琴案, 龍馬形 -8념 休 案〔용마와 사나운 침승], 左仙形一紅旗案, 金欽形―美女案, 半月形 _七星案, 玉女欽容形―眞人案, 滋地形―延朗案, 回龍!걷山形―顧尾 案, 仙人舞抽形―車旗案, 黃地出草形―金龜案, 金盤形―玉氐案, 活 龍形-大江案, 老鼠形―淮禾案, 遊僧禮拜形―鉢孟案, 雲 龍初月形― 星案 仙人緊會形―連珠案, 龜蛇衆會形―靑珪案 等이 그것 인데 , 대 체로 主體의 格울맞추어 주는대상물로 짝을 이루었을 때가 吉地의 形局이 되는 것으로 본다. 이에 대한 吉凶 판단 역시 그 형상을 따라 類推하면 되는데, 예컨 대 金鷄抱卵形이면 닭이 한 번 알을 품어 십수 마리의 병아리를 까 듯이 여러 사람을 이끌어 갈 영걸을 낳을 땅이라 보든가 혹은 자손 의 번식 을 유추하기 도 하는 식 이 다. 興共妙誤 159) 에 나타난 形局울 몇 가지 골라 山形울 형상화시켜 그 感應울 대조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楊사 1 東面 소재 玉女端粧形―掛鏡案, 開穴後 五六年 科甲爭出 七 八代 卿相之地 : 그림 3-22 및 그립 3-23 金浦 白石山 소재 金鷄抱卵形, 十三代將相之地 : 그림 3-24 및 그림 3-25 淸캐 동쪽 소재 猛虎下山形, 失穴이 면 葬後 十五年에 狂人이 나 오지 만 正穴이 면 元帥가 나옴 : 그립 3-26 및 그림 3-27 沃川 동쪽 10 리소재 金龜飮水形, 葬後十年 先富後貴之地 : 그림 3-28 및 그림 3-29 부여 鴻山面 소재 將軍大坐形, 葬後十年 文武連出 卿相之地 : 그립 3-30 및 그림 3-31 서 울 慶福宮의 꽃에 비 유한 形局 160) : 그림 3-32 159) 韓國風水地理菜합 0969, :Ji(仁文化社)가 出典입 . 160) 장용득, 1983, 「풍수지리설의 실계」, 《정신문화》, 몽권 계 16 호, p.1 67.

제 4 장 國都風水解釋

1 國都風水解釋의 意義 風水說의 內容全般울 總體的으로 하나의 論文에 分析 • 整理한다 는 것은 不可能한 작업이다. 그러나 韓半島라는 固有의 地表上에 表出된 風水的 空間現象울 上記한 前段作業 없이 수행한다는 것도 불편한 일임에 불림없다 . 本章에서는 이와 같은 問題의 한 解決策 으로 始源的이고 高次的인 風水空間現象울 集中分析함으로써 內容 의 整理 없이 風水 本質에 接近해 보고자 한다. 周知하는 바와 같이 風水的인 思考觀念온 古代로부터 있어 왔으 며 그것이 一定의 術 혹은 說로서 정착된 것은 中國 漢代에 이르러 서이다. 우리나라 역시 北半球 中緯度 大陸의 東端에 위치한 農本 의 國家였던 관계로 南面山麗, 背山臨河, 山河樣帶라는 基本的인 風水的 思考觀念은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本格的인 中 國의 風水說이 도입된 것은 新羅末이며, 그 전설적인 韓國風 7k 의 原祖는 玉龍子 道院으로 알려 져 있 다. 1) 道院온 新羅末의 禪僧으로 그의 風水地理的인 知識이 門人들에 의하여 간접적으로 王建에게 전달되어 주로 出師置劑 地利天時의 法, 望秩山川과 感通하고 保 祐하는 이치를 가르쳐 주었다는 것이다.” 風水地理說은 圖諏思想과 결부되어 高麗時代를 風 諦 하고 3) 드디어 麗末에 이르러 國都의 莫定 1) 裵宗鎬, 1969, 「風水地理略說」, 《人文科후》, , 第二十二輯, 延世大 人文 科學硏究 所, p.1 45. 2) 崔柄憲, 1975, 「道統의 生珪와 羅末麗初의 風水地理說」, 《韓國史硏究》, 第 11 號, 서울대, p.1 45. 3) 李丙熹, 1980, 『高麗時代의 硏究-特히 固讓思想 의 發展윤 中心으로J, 亞細亞 文化社.

이 라는 息 lh9 인 空間現 象 올 드러 내 는 것 이 다. 本 章 에서는 上記한 證 末 詳 初의 國 家 首府 災都過程 에서 벌어전 王과 諸臣 ra1 의 論 議 률 청 리 하고 거 기 에 內包된 風水地理的인 :創點 올 抽出하여 가장 중시된 4 個 地 域 죽 開京, 漢陽 , 母 岳, 災망龍 山의 구체적인 地理 學 的 立地를 分析 比 紋 함으로써, 風 水 의 本質論 으로 접 근함과 동시 에 風 水地理 說 의 空間現 象 h9 인 現 實適應 力이 어 느 정 도인지를 밝히는 데 主目的울 두었다. 이를 위하여 風水理 論 部分은 風水 書 , 歷史 關係論 文 等 文 獻資料 룰 군 이용하였고 4 個 地域의 自 然 , 人文的 立地要因分析온 現地 踏査 와· 1 : 50, 000 및 1 : 25, 000 地 形圖 그리 고 1 : 250, 000 地 勢圖 몰 주로 의지하였으며 朝鮮時代에 간행된 邑地圖, 大 東輿 地圖 等 울 參 考 하였다.

2 莫都論議의 展開過程 高麗 는 이미 元의 侵入 으로 國運이 기울기 시작한 이래 恭愍王代 에 8 年(1 359 年)과 10 年(1 361 年)의 2 次에 걸쳐 紅市賊의 侵奪 로 한때 開京 이 접령되고 恭愍王온 安 東까지 피난을 가지 않으면 안되는 곤 경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인 침략에 불과하였다. 오 히려 전국적이고 간 세월에 걸쳐 麗朝를 괴롭힌 것은 日本의 海賊 인 倭鹿로, 그들로 인하여 農民둘이 內陸으로 이주하였기 때문에 海岸地帶의 기름진 農土는 無人之境이 되었고, 江華島에 습격 開京 울 소란스럽게 만들었을 분 아니타 潛運을 不可能하게 하였다. 이 倭窓의 격되과정에서 崔澄, 李成桂 等의 武將세력이 등·장하게 된다. 遼東 征伐에 出戰한 李成桂는 以小逆大, 夏月發 兵, 倭乘其虛, 時方暑雨 等의 이유를 들어 威化島에서 回軍하여 정권을 잡은 뒤 드디어 恭讓王 4 年 (1392 年) 士大夫官僚들의 추대를 받아 새로운 王 朝의 건설에 성 공하였 다. 4)

4) 李基탸 1'5' /3, 『韓國史新論』, 一潮閣, pp.1 90~95.

새로운 王朝의 전선은 國號改稱과 國都遷與울 필수적으로 수반케 된다. 당연히 나라 이름부터 고치고 그후에 首府를 새로이 마련함이 常例이지만, 太祖 李成桂는 오히려 國都의 遷與에만 관십을 두었던 듯하다. 國號롤 朝鮮이라 고친 것이 太祖 2 年 2 月이었음에 반하여 遷都 의 敎를 내리기는 즉위 후 1 개월도 지나지 않아서의 일이었음이 이

를 찰 말해주고 있다. 太祖가 죽위한 것은 高麗의 마지막 王인 恭讓 王 4 年(1 392 年) 壬申 秋 7 月 17 日이었는데 그해 八月 壬戌(1 3 日)(保 太祖實錄에 〈敎都評議使移都 漢陽〉 이라 되어 있고 또 同月 甲子 (15 日)條에 〈遣三司右僕射李活于 漢陽 府 修芸宮室〉이라고 하였음으로써 분명하다. 따라서 최초의 遷都 候補地는 漢陽 죽 지금의 서울이었 던 것을 알 수 있다 .5) 그러나 高麗朝의 南京 離宮이었던 漢陽의 궁궐수리가 寒 候로 인 하여 중지되고 있던 중, 이때 王命으로王室安胎地를 찾아 楊廣, 全 羅, 慶尙道롤 巡歷하던 政堂文 學 權仲和가 太祖 2 年 正月에 全羅道 珍同縣(지금의 錦山郡 西部)의 山水 形勢圖와 楊廣道 의 總龍山都 邑固를 獄上하였 다. 6)

5) 李丙r.$., 前掛망, pp. 361~3, 以下 炎 都 論議 의 내 용은 李丙 ml , 『高岡時代의 硏 究.!, pp. 348~411. 서 울特別市史 編 笑委員 會 , Ii'서 울通史』, 上 卷 , pp. 55~109 및 國 史 槪論홈문 해당 분야벌로 참고하였으며, 구체적인 引用表示는 省略합. 6) 太祖 實緣 二年 春 正月條, 〈上 言全羅道珍同끊안目 {5 吉地 乃 獻 山水形 勢固兼獻楊廣道 鷄觀 山都邑 111, .

太祖는 여기에 큰 관십을 보여 우선 鷄龍 山울 실지 답사키로 하 고 同年 19 日 群臣을 거느리고 開京울 출발하여 도중 楊 캐 檜 岩寺 에 들러 王師 無學 울 同伴하고 2 月 8 日 鷄龍 山에 도착 5 日間 머물 면서 山水 形勢와 교통의 便 否, 道路 의 險易 , 성곽의 형세 等 울 審 視 하였다. 太祖는 이곳에 都邑할 결십을 하고 金淡, 朴永忠, 崔七 夕 等 에게 新都 경영의 감독을 命하여 1393 年 3 月부터 工 事 를 착수 12 月까지 10 個月間 이끌었으나 役事는 그다지 진척되지 못한 듯하 며, 단지 地域의 整 理, 材木, 石材의 採伐 運微에 지나지 못하였던 것 같다• 그러 다가 同年 12 月 1 日 鷄龍 山 新都工事는 돌연 停龍 의 명 령 을 받게 되었다.” 이것은 당시 京畿道 都觀察使 河蓋의 반대에 의한 것으로써 鷄龍山의 위치가 南方에 치우쳐 東西北 三面과 서로 뗄어 쳐 道里의 균형을 얻지 못하고, 분만 아니라 風水上으로 보더라도 鷄龍 山의 위치가 山은 乾方으로부터 오고 물은 興方으로 흘러가니 기는 宋나라 風水家인 胡舜申의 소위 水破長生 裵敗立至의 땅이 되

7) 太祖 實錄 二年 十二月條, 〈壬申 (1 日) 遣大將軍沈孝生 如 鷄1l1! 山 龍新都 之役〉

기 때문에 建都는 不可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太祖質 錄 二年 十 二月條. 〈京畿左右道 都觀察使河福上言 都邑宜在國中 鷄龍山地偏於 南與東西北面相祖 旦臣 常葬 臣父 租閔風水諸 콴 今聞鷄龍之地 山自乾 來水流興去 是宋朝胡舜申 所謂 水破長生 表 敗立至之地 不宜建都〉). 그리하여 太祖는 胡氏說의 合否를 시험하기 위하여 權 仲和, 鄭道 傳, 南在 等 諸臣 으로 하여금 河福과 함께 高麗朝 때 諸 山 陵 의 山水 形勢률 胡氏說과 대조하여 조사하게 하였던 바 과연 吉凶이 거의 契合하 여 드디어 鷄龍建都 停龍 의 命令울 내리게 된 것이다. 太祖 는 河짧을 불러 前朝以來의 書雲觀 에 소장된 秘錄울 參看하 여 새로운 候補地를 선정하도록명령하였던 바 河器온 母岳山(敎山) 남쪽(오늘날 新村, 延禧洞 一帶)를 지목하여 上奏함으로써 母岳은 세번째 新都 후보지가 되었다. 그러나 太祖 3 年 2 月 權仲和, 趙浚 等을 現地에 보내 답사케 하니 그들의 復命은 그 땅이 협착하여 不 可하다는 결론이었다 .8) 그럼에도 불구하고 太祖의 뜻은 母岳南地에 기울었으나 書雲觀 員 인 劉早雨, 李陽達 等 은 의 연히 不可함을 주장하여 太祖는 이 2 人 으로 하여금 다시 吉地를 구하게 하니 鎭姑”를제의하였다. 이곳은 즉시 不可하다는 評 이 나왔으며 이에 都評議使司에서도 또한 遷都 候補地률 開城 東쪽 의 佛日寺 域內에 相하였으나 역시 부적당하다 고 결론지어졌다.

8) 太祖宜錄 三年 二月 못已日條, 〈領三司事權仲和 左侍中趙浚 等 回自母岳 啓曰母 岳南地俠 不可遷都〉 9) 鉉姑 가 오늘날 어디인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당시의 國域 으로 보나 高麗의 前朝 인 新 羅의 위치 로 보나, 혹은 善谷 (榮州, 禮 安, 安束), 딴 山, 善州 , 鑄銀 (尙州 化 寧縣 ) 等 의 地名이 모두 慶北 內인 것 으로 미 루어 보아 洛束江 上流 慶 北內의 넓 은 盆 地域이었윤 것으로 추측된다.

太祖는 同年 7 月 12 日 陰陽劃定都監 이타는· 임시 관청을 두어 諸 名臣울 총동원하여 相地를 命하는 한편, 8 月 8 日 開京울 출발 직접 母岳相察울 하게 되었다. 11 日 母岳에 도착 이를 둘러 보고 다음 날 諸 臣의 의견을 물으니 河짧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母岳遷 都를 不可하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太祖는 母岳울 포기하고 車篤를 돌려 歸京中 南京인 漢腸에

둘러 8 月 13 日 北岳山 南쪽 高麗時代 南京離宮이 있었던 곳을 ·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피고 衆議를 물어 漢陽울 다시 新都의 후보지로 결 정하게 되었다. 漢陽으로부터 開京으로 돌아오는 도중 積城 廣宜院의 東地, 長器 의 都羅山, 臨津縣의 新京(長淵郡 白鶴山) 等地도 歷觀하였으나 어 느 것이나 모두 不可하다는 評울 받고 말았다. 이런 尊都論議中에 서도 菩都인 開京울 그대로 이용하자는 說이 강력했음은 물론이다. 漢陽葉都를 결정한 太祖는 同 3 年 9 月 1 日 新都宮閑造成都監을­ 설치하고 同年 10 月 25 日 일거에 新都工 事 에 착수하기도 전에 漢陽 으로의 천도를 결행하였다. 이후 定宗 元年 正月七日 松都인 開京으로. 移御하였다가 太宗五 年 還都한 일이 있으나, 以上이 대체적인 漢陽與都의 過程이라 볼 수 있다. 이 論議中에 대두된 地域은 開京, 鷄 龍, 母岳, 漢 陽 , 鉛 姑, 佛日寺, 積城, 長淵 等인데 前四者를 제의하고는 일시적으로 거론 되었던 곳이며 기록도 미비하고 중요하지도 않은 곳이기 때문 에 여기에서는 開京, 鷄龍, 母岳, 漢陽의 四個處만을 分析하고자 한다.

3 開京의 立地 우리 나라가 대 략 오늘날과 같은 位置를 占하게 된 것은 朝鮮初에 이르러서이다. 현재 極北은 咸北 隱城郡 柔浦面 柔浦鎭 北端 (43°0' 39N), 極南은 濟사 1 道 南濟캐郡 大靜邑 馬羅島 南端 (33°6140 N), 極. 東은 慶北 鬱陵郡 南面 獨島 東端 (131°52'42E), 그리고 極西는 平 北 龍 川郡 新島面 馬毅島 西端 (124°ll'OOE) 으로 10) 대체로 北緯 33°~43° 와 東經 124°~132° 사이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數理的 인 經緯度上의 中間位置는 37°N, 128°E 부근이라 할 수 있다. 그­ 러나 이것은 獨島, 濟 1 t l 島를 포함한 바다 부분이 포함되어 있기 때 문에, 朝鮮朝의 統治領域으로서의 中心位 置 는 오히려 그것율 제의 하고 半島部만을 상정하는 것이 더 타당하리라고 본다. 이렇게 하 · 면 數理的 中間位 置는 37°30'N, 127°30'E 부근이 된다. 여기에 東高 西低의 傾動地形인 것을 감안한다면 開京은 韓半島의 中心位置라 하여도 큰 착오는 아닌 地域이 될 수 있을 것이다. 開京이 朝鮮朝 莫都過程에서 論議의 대상이 된 것은 이곳이 前朝 . 의 舊都로 太祖 以外의 臣民의 懷舊의 情이 간철한 곳이었다는 접 과 역시 松岳의 地氣를 제일의 吉地로 보던 당시의 風水地理說, 그 ­ 리고 開國으로 말미암아 山積된 일의 처리로 분망하기 때문이라는 · 遷都尙早論 11) 等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110D) 鄭李尹丙鎬急, 11998318,, 『「新李篇朝韓初國期地의理 』建,郁 問祐題成」文, 化社《震,檀 學p報. 2》. , 第九卷, pp. 30~8 5.

開京이 一 國 의 首府로 등장한 것은 高麗 太祖 王 建 에 의해서이다. 羅 末 證 初의 형편은 政治 • 社會 89 인 轉 換 期 였을 뿐만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精 神界의 築 化도 활발히 전개되는 시기였다. 佛 敎 界에 있 어서 禪 宗의 대두와 道敎 의 神仙思想이나 老莊思想의 流行, 儒學 思 想에 대한 理 解 의 增加 等 이 그것인데, 당시의 禪僧 둘은 대개 佛敎 에 있어서 華嚴宗 의 限界를 극복하는· 思想 體系 로서 禪宗 울 받아들 이고 있었을 뿐 아니라 老莊思 想 까지 複 合하여 이해하고 있었으며 信學 者를 비 롯한 一 般 文人 學 者들도 儒敎 이 의 에 佛敎 나 老莊思想 둥 울 아무 모순 없이 복합적으로 아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 이 儒佛 道 三 敎 가 상호 연관성을 띠며 추진되고 복합 화 되는 思 想 傾向 은 바로 이 時代思想 運 動의 한 득칭이었다. 그의에 빼 놓을수없는 것이 風 水地理說이다• 中國 에서 風水 地 理 說이 陰陽 五行 說 의 採用으로 理 論 化되기 시작한 것은 漢 代부터이지 만 그것이 광범위하게 유포되게 된 것은 唐 代에 와서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菓 大成된 것은 道統 에 의해서이고 道說 온 王 建에게 卷晶1 에 알려진 것처럼 직접적은 아니지만, 간 접 적으로 깊 은 영향을 미쳤던 것만은 분명하다. 道院碑文에 의하면 道 說 온 20 세부터 4 年 間 桐 裏 山 太安寺 에 머물 다가 23 세 때에 察道寺에서 具足戒를 받은 후 全國各處 률 過歷 하면 서 禪 울 수행하는 한편 그에 앞서 배운 風水地 理說 의 理 論 과 實際 를 대조하면서 익혔다고 한다. 그리하여 全 國 山川의 形 勢 를 유기 적으로 파악하게 되었던 것이며 그러한 風水地理 說 과 당시에 時代 相에 대한 認 識 이 결부되어 地 氣喪 旺說이나 碑補寺塔說 이 나오게 된 것이다. 여기서 그는 당시 中央地 域 인 慶 jt I 中心의 地 域意識描造 를 탈피, 地方에서 새로운 氣 風의 전실한 文化가 싹트고 있다는 일 종의 國土再計 劃 案的인 性格의 地 理思想울 내놓게 되며, 이것을 王 建이 홉수한 것이라 여겨진다. 新 羅 의 一個 村主 勢 力의 基盤 울 가지고 있던 王氏 勢 力이 드디어 新羅中央政府와의 종속관계를 꿇고 獨 立的인 地方 勢 力으로 성장하 게 된 것은 대개 王建太祖의 祖父代인 作帝 建 때부터였던 것으로보 인다. 그들의 세력판도는 開 '} H( 開城), 貞j II( 昇 天府), 監jt I( 延安),

白 '} H( 白)|I), 江 華 , 喬洞 , 河 陰 等 오늘날의 開城울 中心으로 한 黃 海道 一 部 와 江 華島 , 漢 江 下流 流 域一 帶 였고 그 후 王 建 이 後三國 을 統一하여 高麗를 建國 함으로써 開 京은 首府의 歷 史에 떠 오르게 된다 .1 2) 王建太祖 天 授 2 年에 松岳山 아래 지금 滿月 蓋 룬 中心으로 도읍 한 開京 은 원래 松岳 , 開城兩郡 의 合侍으로 松岳郡은 고구려 의 扶 蘇押 이고 開城郡 은 冬 比 忽 13 ) 인데 新 羅 時代에는 松岳郡으로 속하였 으며 弓 商 시대에는 일시 그의 都 邑地인 적도 있었다.

12) 崔柄 急 1975, 「 道院 의 生 珪 와 羅末麗初의 風水 地 理說 」, 《 韓國史 硏 究》 , 第 11 院 , pp.1 01~46. 13) 權 相老 1960, 『韓國地 名沿 革考.! , 「 開城 府 條 」.

開京 은 後述할 漢陽 과 함께 韓 半 島 의 中 央部를 차지한 地域으~ 서 禮成 江과 臨津 江 사이에 위치하며 南쪽으로는 漢 江과 臨 津 江이 合流 한 江 華 北 岸 과 연 접 하여 있다. 地形 學 的이 아닌 可視的인 이곳 ­ 의 山 勢 는 白 頭 山의 盛氣 가 間白山, 北胞胎山, 南 胞 胎山 等 摩 天 嶺 山 脈울 거쳐 頭流 山에서 咸鏡 山 脈 을 만나고 狼 林山脈울 지나 元山 西쪽 馬息嶺 山 脈 에 서 南西 向하여 臨津 江 上 流 에까지 연결되는 형태 이다. 그러나, 開京 부근에 이르러서는 山 勢 의 험준함은 없는 편이 고 대 체 로 低山 性 의 丘 陵地를 이루고 있는 것이 특 칭이다. 低山性 이기는 하치만 주위가 거의 모두 山地로 되어 盆地 狀울 이루고 있 기 때문에 規局 은 넓지 못한 편이다. 王宮의 소재지인 滿月 臺를 중십으로 北쪽 五里에 開京의 鎭山인 扶蘇 또는 鷄嶺 이라 하는 松岳山 (588m), 그 北쪽으로 天 磨 山, 聖居 山 그리고 國師 峰 (764m) 이 있는데 천마산과 국사봉이 對 時한 溪間 에는 副城 으로서 大 興 山城이 축 조되어 있다. 東쪽 으로.는 日出 峰 , 男 山, 西 쪽 으로는 月 出 峰 , 鳳鳴 山, 南 쪽으로는 外城 터 인 龍 柚山, 進 鳳 山, 光 德 山, 軍藏 山 等 海岸 地 帶 로서는相 對 的으로험준하다고분 수 있는 山 勢 가 둘러싸고 있어 五冠山의 精氣 를 축 적할 수 있는 風 水의 전형 적 인 藏 風局울(그림 4-1) 이 루고 있 다. 그러나 用水에 있어서는 불충분한 편으로 松岳山 南覽의 斷崔下 의 澳泉帶와 松岳山에서 발원하는 白 )II 과 蝶 松山의 西端에서 발원

廣 卍明寺 龜山卍 寺 탯寺

土 f f 驛 東大 r 'i 男山 崇仁 門 5 古南門 그립 4-1 開城固

하는 烏川이 用水의 一部로 고려되지만 南쪽 지구에는 飮料水源으 로서 上水道 施設이 되기 以前까지는 우물을 이용할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中京誌에는 柴水, 죽 新炭과 用水의 대책으로 開 京주위의 山을 禁山으로 정하고 삼림을 보호 육성시켜 水源울 함 양했다는 기록이 있다 .14) 14) 姜錫 午, 1971, 『新韓國地理』 ' 새 글사 pp. 574~6. 新增 東國輿地勝覽 , 卷 之四, 開城府上, 卷之五, 開城府下 l : 250, 000 地勢固(1 976 年 修 正 編集 ), 서 울 및 南JII 店도업.

黃海 沿岸의 여 러 지 방과 中國과는 開京 西方 12km 의 禮成江 河 港인 碧蘭渡에 의존하여 交通하였고, 東部에도 臨津江과 砂J II 과의 合流腐 約 5km 의 東江里에도 고려 때 번성한 河港이 있었다고 전 해지고 있다. 이렇게 東西左右에 흐르는 두 개 可航川은 평시에는 좋은 交通路로 이용되고 一朝有事時에는 유력한 방어선으로 큰 역 할을 하였다 .15) 靑華山人은 〈山形은 모름지기 수려한 바위로 作峰하여야 山이 수 려하고 물이 맑은 법이라 하면서 반드시 江과 바다가 서로 만나는 곳에 위치하여야커다란 力量이 있는 것(凡山形必秀石作峰 山方秀而 水亦淸又必結作於江海交會之處斯爲大力量)〉으로. 파악하였다. 16) 여 기에 적합한 山으로 그는 開城五冠, 漢陽三角, 鎭혹鷄龍, 文化九月 山의 네 개를 뽑았다. 그 중에서도 開城의 五冠山율 제일 먼저 거론 하여 〈五冠山은 道統이 말한 水母木幹의 勢로 山勢가 극히 길고 십 원하며 大斷하여 松岳이 되었는데 風水家에서 말하는 淡天의 土星 이 바로 그것이다. 氣勢가 雄健 博大하고 意思가 包畜 潭厚하다. 東에 麻田江, 西에 後西江이 있으며 昇天浦가 앞에서 朝한다. 喬洞· 江華 두 大島가 바다 가운데 있으며 一字로 가로 뻗어 南海롤 가로 막았고 北으로 漢江의 물을 가두어 온연중 下流는 앞산의 바깥율 둘러싸서 깊고 넓으며 굉장히 크다. 董越이 風氣가 平壤에 比하여 더욱 짜입새 있고 견고한 곳이라 한 데가 바로 이곳이다. 五冠의 左右에는 많은 洞府가 있는데 西에 朴淵, 東에 花潭이고 셈과 폭포 가 모두 아름답기 그지없다. 漢陽의 三角山이 興方(南東方向)으로. 百里 밖에 있는데 靑天에 수려히 솟았으며 앞쪽은 평탄하고 北西 쪽은 높게 가로 막혔으며 南東쪽은 멀리 되었으니 이에 하늘이 내 린 고울로 이름난 터가 되었다. 다만 千里에 이르는 沃野가 없다는 접이 부족할 분이다. (五冠則 道院謂水母木幹 勢極長遠而又大斷爲 松岳 則塔輿家所謂浚天土也 氣勢雄健博大意思包畜潭厚 東有麻田江 西有後西江而昇天浦爲前朝 喬洞江華二大島海中橫豆如一字障南海 而 北肝漢江下流暗棋于前山之外而深雅浩大 董越所謂風氣比平壤 尤固密 1156)) 李姜重錫煥午,, 前r 擇掃里합志,』 (p. 或57云6 . 八域志), 卜居總論, 山水條.

云者是也 五冠左右多洞府朴淵在西花潭在東而拜泉 캠絶勝 漢陽三角 爲興山在百里外秀入靑天而平善 西北高 障東南版遠 炫爲天府名塘 但 所之者沃野千里耳〉고 하였 다. 17) 위에 거론된 天府名坡는 閔演의 編年에 〈太祖의 나이 17 세에 道 統이 다시 와서 뵙기를 청하고 말하기를 足下가 百六의 운수에 옹 하여 天府名城에 태어났으니 三季의 蒼生이 그대의 넓은· 구제를 기 다린다고 하면서 出師, 置陣, 地利, 天時의 法과 望秩하여 感通保 祐하는 이치를 가르쳐 주었다〉 18) 하는 데서 나온 말이다.

17) 『擇里志』, 卜居 總論, 山水條 및 朝鮮八道秘密地誌(大正十二年, 成進文化社), 第 十 窟國都槪論 . 18) 『新增東國輿地勝覽.I, 卷之四, 「開城府上」, 形勝條

이것을 보다 확실히 하기 위하여 開京 및 부근의 山 勢를 敷衍說 明하면 다음과 같다. 松岳은 그. 地形이 마치 웅장한 병 풍을 편 것 같아 塔輿家에 소위 溪天土(方正形)의 모양을 이룬다는 형세이고 서복에 鎭座 하여 東西 向으로 局울 열고 있다. 그 左右支脈은 松岳의 일지로서 西에 있는· 것은 訥里門地로부터 동남까지 灣 弓과 같이 滿月퓰의 前面울 안으 면서 朱雀峴에 이르러 內案山울 이루고, 또 一支로서 東에 있는 것 은 北小門, 進言門 부근에서 堀伏하여 그 앞에 이르러 子男山을 일으 키고 있다(그림 4- 1 ). 그 右뿔(右支脈)는 風水家의 소위 內白虎, 左普(左支脈)는 內靑龍이오, 중앙 滿月臺와… 부근 일대의 땅은 소위 馬頭明堂, 扶蘇明堂 혹은 松岳明堂이라 일컬어지는 것이다. 이 明 堂을 두른 山脈은 마치 滿月의 모양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그곳을 후에 滿月臺라고 하게 된 것이다. 다시 밖으로 西는 이 內城과 外城( 羅城 )과의 분기접인 誤松山~ 로부터 南方 外案山인 龍柚山에 이르는 길게 辻回한 外城의 一脈 으로써 소위 外白虎의 형제를 이루며, 東方은 또한 內城과 外城과­ 의 분기접(北小門 부근)으로부터 炭峴門, 崇仁門을 거쳐 德岩에 이 르는 역시 外城의 一脈으로써 소위 外靑龍의 형제를 일으키고 있다. 남은 龍抽, 進鳳 德積의 세 山이 좀비슷하게 세겹으로 案山, 朝 山의 형세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局內의 水流는 滿月臺 방면의 좌 `

우 양측에서 흐르는 것과 立岩洞 방면을 통하여 오는 것이 興國寺 址 부근에서 첫번째 Y 字型의 合傑를 이루고 다시 南으로 흘러서 訓練院址의 西北隅에 서 開城驛 방면으로부터 의 水流를 합쳐 좀 東 流하다가 院址의 東北隅에서 다시 善竹橋 방면으로부터 흘러오~ 물과 두번째 큰 Y 字形의 合流를 이루고, 다시 東南流하여 開國寺 址와 羅城의 水口「 1 址를 貫流하고 거기서 外靑龍의 일단과 교차하 여 소위 水 口 믈 關鎖하고 다시 城外의 衆 7k 를 합하여 長淵에 이 르 러 臨津江에 들어간다. 臨津江은 開城 및 그 부근의 땅을 蔡帶한 소위 外水, 또는 客水 로서 그 源流는 멀리 東北方 馬息嶺으로부터 伊川, 朔寧, 珪川 및 長淵 等을 거쳐서 西쪽으로 흘러 坡州 南에 이르러 漢江의 下流와­ 합하고 다시 西北流하여 京畿,黃海, 兩道의 地境울 이 문 禮成江과 합하여 西海로 들어 간다. 이 下流를 橫擦한 江華 • 喬桐의 二島논 역시 開城 방면에 대하여 大保障울 이루고 있다 .19) 崔滋는 三都斌 중에서 開京 羅城內의 地理를 논하여 〈위로 明堂울 열고, 北으로 臥牛形의 山이 높으며 南으로는 역 시 龍이 날아 갇 듯 山이 높으니 左右가 懷抱되었다. 案花가 相當하고 八頭三尾는 펼쳐졌으며 東에 재, 西에 山, 숨는 듯 튀어나올 듯 屈伏하기도 하여 東쪽은 팔, 西 쪽은 주먹인 듯하다. 精이 오르고 神이 내려 氣를 내뿜고 상서로움 울 만든다. 北山 諸谷에 서 흐르는 五 )II 은 靈派를 이 루어 根源이 넓 고 펀판하다. (上開明堂 北峻臥牛南時龍翔 右懷左抱 案花相當 八 頭三尾 東峴西岡 熙隣屈伏 管角拳商騰精降神 吐氣産祥五川靈派 源于森뿐)〉 20) 고 하였는데, 여기서 明堂온 滿月臺, 案花는 案山 朝 山의 메 어 난 모양, 八頭는 松岳의 連峯, 三尾는 外靑龍 쪽의 梨峴, 金峴, 慮輩臺, 角은 東, 商은 西를 의 미 한다. 八頭三尾는 伏羲八卦 方位圖上에 서 八이 坤으로 北, 三이 離로 東울 가리 키 는 것 21) 이 가 때문에 松岳이 北에, 外靑龍이 東에 있는 것과 對比되어질 수도 있다. 19) 李丙ffi1., 前掃합, pp. 90~92. 20) 李丙魚, 前掃합, p. 92 에 서 轉載 21 ) 崔昌祚, 1982, 「風水說 坐向論上의 吉凶判斯에 판한 緯學的 解釋」, (地理學》, 第 26 號, 大韓地理學會, p. 97.

4 開京의 風水的 立地解釋 上述한 開京의 立地 條 件 및 地 勢 槪觀 中에서 本 章 에서는 祖宗山問 題, 主山問 題 , 龍 脈 勢 問 題 , 그리고 其他 風水的인 몇 가지 用 語 上의 문제접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 擇里志에 지적된 開京 精氣 의 震 源인 五冠山은 오늘날의 地形圖 上에는 表示가 없으나 대체로 開城 北方 開 豊 郡 嶺 北面 一帶로, 長 溫의 鎭 山인 望海山, 臨 江 縣 의 華 藏 山과 연결되어 결국 開京 의 鎭 山인 松岳山으로 이어지는데 I : 250,000 地 勢圖 上의 國 師 峰 (764m) 이 그 主 峰 인 듯하다. 그렇게 보면 西에 朴淵 • 東에 花潭이 있다는· 구절에도 부합한다. 山頂에 작은 봉우리 다섯 개가 冠처럼 둥그렇게 모여 있기 때문에 五冠山이란 山名을 얻었다고도 한다 .22) 五冠山이 開京에 대하여 精氣를 융결시켜 주는 風水的 機能울 가 지고 있음은 擇里志에도 명백하게 지적된 바이지만 구체적으로 그 것이 風水上 어떠한 위치에 있는가 하는 접은 논란의 여지가 있 다. 왜냐하면 主山과 鎭山울 區分하여 사용하는 경우 五冠山을 祖 宗山의 어디에 귀결시킬 것인가가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거리로 보아서는 鎭 山 23 써] 해당될 수도 있지만 開京의 鎭 山온 松嶽이 명 22) 『新增 東國輿 地 勝覽 J, 卷之十二, 「 長淵都護 府」, 山川條. 23) 限基風水에서 는 鎭 山이 란 말을 쓰지 만 陰 宅風水에 서 는 .:z. 말을 쓰지 않고 主山 혹은 後山이 란 말을 사용한다.

백하기 때문에 24) 五冠山의 風水的 設定이 곤혹스럽다는 뜻이다. 원래 龍勢를 살피려면 먼처 龍의 祖山울 보아야 하는데, 祖의 最 高 最遠處를 太祖라 하며 이것이 바로 祖이다. 太祖에서 맥을 언어 나뉘어 立派된 것을 少祖라 하며 이것이 즉 宗이다(欲觀龍勢先觀 龍祖 祖之 最高最遠處 是太祖也則謂之祖 太祖之下分枝立派處是少祖也 則謂之宗 ).25) 그런데 太祖山은 크게 셋으로 나뉘어, 南龍은 眠山으 로부터 일어나서 長江과 南海 사이에 끼인 것이고 中幹은 西嶺에서 일어난 黃河와 長江 사이에 끼인 것이며, 北龍은 鹿짧으로노부터 출 발하여 鴨綠과 黃河 사이에 끼어 이어져 白頭山으로 뻗찬 韓國 風 水의 祖宗아 되는 龍脈이다. 그래서 山鹿福之子孫 26) 이라고도. 한 다. 27) 그러나 用語의 定義가 같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玉彈子 以 外의 祖宗에 대한 몇 가지 說明例를 보면 太祖가 鹿福이라는- 명백한 사실 28) 이의에는 상당한 혼란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죽 鹿畜 山온 龍의 가장 근본이 되는 太祖山으로 인정함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고 그로부터 뻗어 나온 脈勢가 精氣를 융결한 節울 이룰 때 이것 울 中祖山, 少祖山으로 다시 말해서 太祖, 中祖, 少祖의 형태를 취 하는 경우도 있으며 祖山 宗山이라는 형식을 취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五冠山을 이 중 어느 개념으로 파악해야 할 것인가가 문제 인데 상식적인 판단으로는 少祖山에 준하면 될 것 같기도 하지만, 이것도. 혼란의 여지가 있다. 少祖란 太祖가 分落되어 나간 뒤 다시 大山울 일으킨 것으로 이곳에서 이어쳐 나간 幹枝들의 祖山 구실을 하는 역 할을 하는데 (少祖者 自 太祖分落之後再起大山 作此方諸幹枝 之祖是也 )29), 이로 미루어 보면 少祖山이 될 돗도 하지만, 少祖山울 24) 『新增束國輿地勝覽』, 卷之四, 「開城府上」, 山川條. 25) 『玉彈子地理元樞』, 「審 麗 」, 二. 祖宗條, 刊行年代未詳, 上海, 校經山房. 26) 『朱子踏山歌』(韓國地理菜 論 , 1982 年, 育志社刊 , pp. 236~9 가 出典임 . ) 27) 『塚玉芹J, 卷之二, 「尋 麗歌 」 및 添附地 圖 ( 慕 仁文化社, 1969 年刊 影印本 韓國 風 水地理業 합 가 出典임 . ) 28) 「路龍經」에도 〈嵐福山是天地骨〉이라 하였고 「天元五歌」에는 〈 R 器高頂九 霜 中此 是中天大帝宮〉이라 하였다(『精校地理正宗』, 1968 년. 豪灣 瑞成꿉局刊이 出典입). 29) 『地理大成 山法全 홉 』, 卷之首, 「釋名部」, 太祖少祖祖宗父母(上海, 九經 書 局刊. )

主山으로 인식 30) 하는 術書도 있기 때문에 그것도 如意치 못하다. 또 錦裵歌에는 〈鹿福山大幹龍온 黃河水俠중고 白頭山 中祖峰은 鴨 綠江니 相應이오〉 하여 白頭山울 中祖로 보기도 한다 .31) 이와 같은 槪念 定義上의 혼돈을 피하기 위하여 筆者 는 다음과 같 온 定 義를 제시하고자 한다. 죽 太祖山울 鹿尙으로 삼는 것은 風水 의 大宗이므로 그대로 인정하고, 그의 風水的 脈勢가 連綿히 이어 져 왔다고 보는 白頭山울 韓半島 風水 龍脈의 祖山으로 잡는다. 엄 밀히 따지면 白頭山울 少祖山으로 보아야 할 수밖에 없는 術法 도 있지만 32) 中國에서 벗어나 색다른 地勢를 展開하게 되는 韓半島 의 始源的 性格울 가진 山이기 때문에 太, 中, 少의 개념이 아난 새로 ° 운 祖山으로 보는 것 이 타당하다고 생 각한다. 이와같이 白頭山울祖山으로잡으면그로부터 뻗어내린韓半島內 의 名山은 宗山 혹은 穴場으로부터의 거기에 따라 近祖山, 中祖山 의 명칭을 부여할 수 있으리라 보며, 이런 觀點에서 五冠山은 韓半 島라는 國域 全體로 볼 때는 宗山 혹은 近祖山 33) 에 해 당이 된다. 宗山, 近祖山, 中祖山 等울 일컬어 列祖山이란 用語률 사용한 경~ 도 있다. 예컨대 山龍語類가 그런 것인데 〈少祖山이 行龍울 이어 나간 뒤 다시 高峰울 일으킨 것 (列祖者總綠先人之稱 繼 自少祖行 龍 之後 再起高峰)〉 34) 들을 列祖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五冠山은 列 祖 中 宗 혹은 近祖에 해당한다고 보는 견해는 타당하다. 五冠山울 近祖로 한 開京一帶가 白頭山의 脈울 잇고 있음은 여러 野史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編 年通錄 35) 에 실린 다음 얘기도 그. 중 하나이다. 高麗王室의 始祖라는 虎景(星骨將軍)이 白頭山으로부터 遊歷해 와서 扶蘇山 左谷에 이르러 山神이 되었고 아들을 낳아 康 30) 束谷, 1979, 『地理誤全 꿈J , 束洋꿉籍, p. 46. 31 ) 『錦蔡歌』(金成俊編, 韓國地理菜합 , 育志社 , 1982 年刊이 出典입 . ) 32) 이에 대해서는 『山法全 잔 J, 卷之首上, 太祖少祖祖宗父母의 〈祖宗父母者自巳­ 龍之山也祖宗者從少祖分落之後再起一휴星〉이 란 구절을 근거 로 하였 다. 이 것은· 太 祖에 서 少祖가 나오고 少祖가 또다시 尊星운 일으킨 것 이 祖山과 宗山이 라 보기 때문이다. 33) 近祖라는 用語의 출처는 이훈종, r 국학도감』 (1 980, 一 潮閣 ), p.7 6 34) N 也理正宗』, 卷十一, r 山 龍語類 」( 흉灣 , 1963 년, 瑞成욥局) 35) 高麗 般宗朝人 金寬毅 지 옵.

忠이라 했는데, 그가 西江 永安村 富者 의 딸을 취하여 五冠山 摩 詞 評에 살았다는 것이 그것이다 .36) 이 五冠山의 地 氣 가 開 京의 主山이자 鎭 山인 松岳으로 流入된다 고 보는 것인 바, 이 렇 게 龍脈 의 흐름을 祖, 宗, 父母라는 식으로 중시하는 이유는 天地人合一思想에 연원한다. 塚玉%에 〈사람에게 根 本 이 없으면 惡 人이 나오고 山에 根 源 이 없으면 나쁘다(人無祖 惡 出 山 無祖惡來 )〉 3 7 ) 하였 고 雪 心 賊 에 는 〈사람에 體 를 줄 때 百 孩 九 敬 가 있고 땅에 形 율 부여할 때 萬 水千山이 있는 것으로 스스로 - 根 本 이 있 다( 體賊於 人 者 有 百 孩 九 敬 形著 於地 者 有 萬 水千山 自 本 自 根)〉 38) 는 대목이 있는데, 이것이 모든 風 水에서 祖 宗 의 중요함을 나타내 는 대목들이다. 五 冠 山은 智異 山, 三 角 山 等 五岳에 버금가는 名山으로 山의 모 양이 孟秀 • 雄 壯하고 골이 깊으며 철벽이 높다. 다섯 봉우리가 차례 대로 높고 낮으니 冠 쓴 형제가 늘어서 있는 듯하다고 한다 .39) 山 의 모양으 로 도 한 고을의 列祖에 들어 조금도 손색이 없는 山이다. 이것이 松岳에 이어져 開 京의 陽基 몰 열게 되는데 上記한 編 年 通錄 에는 扶孫 또는 胡嶺 이라고도 불리우는 松岳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귀철이 있다. 죽 作帝 建 의 아들로 太祖王 建 의 父인 世祖龍 建 이 松 岳의 남쪽에 새 집울 창건하려고 하였을 때, 道院이 世祖에게 영집되어 鷄嶺 에 올라 山水의 脈을 두루 살피고 위로 天文을 아태 로 時數 롤 살피면서 〈이곳의 地脈온 壬方인 白頭山으로부터 水母木 幹 으로. 하여 來 落馬頭의 明 堂 울 일으킨 곳이 니 당신은 水命울 따라 水의 大 數 인 六의 제곱수 三十六區의 집을 지으면 天地의 大數를 符 應 받아 明年에는 반드시 聖子를 낳을 것이니 마땅히 王建이라 지 으라(此地脈自壬方白頭山 水母木幹 來落馬頭明堂 君又水命役水之大 數 作宇六六 爲 三十六區 則符 應 地之大 數 明年必生聖子 宜名王建)〉 40) 고 하였다는 것이다. 36) 村山 智順 , 『朝 鮮 (T_)風水』, p. 714(1971 年, 圓光大 影 印本) . 37) 『塚玉芹J, 卷之一, 「 尋龍歌 補 義 」 38) 『 雪 心 試 正 解 J, 卷一, 「 論 山 )II 理 氣 」(1 975 年, 菱范 , 竹林 만 局刊) 39) 『新 增束國輿 地 勝覽 』, 卷之十二, 「 長 器 都護 府」, 山川條. 40) 李丙 魚 , 前賜!!1 , p. 86 에 서 轉載 .

이 구철을 李丙照博士는 〈水母木幹을 北方(壬矣方) 7k 를 母(根) 로 하고 東方(甲乙方) 木울 體(幹)로〉 해석하고, 〈來落馬頭明堂은 東方 木體로부터 午(馬) 正方인 明堂에 와서 떨어전 것〉으로 보았 다 .41) 죽 松岳山脈은 멀리 白頭山에서 발기하여 北을 母로 東을 體 로 하여 正午方의 明堂에 轉來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白頭를 祖로 하고 五冠울 宗으로 하는 開京의 鎭山인 松岳은 따라서 風水 看 龍 法으로 볼 때 腕弱點을 지닌 곳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水母木幹울 구체적으로 어떻게 볼 것인가가 문제인데 原則 的인 面에서 7k 를 北에 그리고 木울 東으로 보는 입장에는 異議가 없다. 第 3 章 「坐向論」에서 밝힌 바와 같이 五行온 東에 木, 西에 金, 南에 火, 北에 水, 中央에 土룰 배속시키고 있기 때문에 十 T 方位로는 東에 甲, 乙方인 木, 그리고 北에 壬, 笑方인 7. J(가 배분 되 며 , 二十四方位로 보면 7k 에 壬,子, 矣方이 그리 고 木에 甲, 卯 乙方이 들게 된다. 따라서 五冠山, 松岳 等 開京의 來脈은 北方에 서 發源하여 東쪽에 音梁을 두고 이 어 전 脈勢라는 것 이 水母木幹의 의미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이 접은 그 뒤 恭愍王 6 年 戊申에 司天 少監 于必興이 秘記를 인용하여 우리 나라의 方位的 土性울 〈我國의 地脈은 白頭山에서 시작하여 智異山에서 끝났으니 그 形勢는 水根 木幹의 地〉 42) 라고 설명 한 대 목과도 부합된다. 北쪽 白頭山에서 발원하여 東쪽을 둥마루로 하고 있다는 것을 水 根木幹으로 표현한 것인데, 이것은 北高南低, 東高西低의 韓半島 地體構造를 地院上으로는 파악하고 있었다는 증명이 된다. 韓半島 를 포함한 東亞地形은 傾動地魂로 43) 대체로 元山_서울을 연결하는 徹哥嶺地溝帶를 경 계로 하여 南北韓은 그 地質과 地體構造 및 地形 에 있어 상당한 차이가 있다. 地形만을 고려하여 보면 일반적으~ 北韓은 高度가 높고 山勢가 험준한 데 반하여 南韓은 高度가 낮고 山勢도 비교적 低夷한 편이다. 背梁山脈으로 볼 수 있는 狼林山脈 과 太白山脈울 기준으로 하여 韓半島를 東西로 구분하여 보면 東高 41 ) 上揚 畫 p. 90. 42) 李丙熹, 前掃 書 , pp. 305~6. 43) 姜錫牛, 1971, 『新韓國地理』, 새 글사, pp.1 8~9.

西低의 지형져 톡칭이 현처하게 나타난다. 北東 내지 北北東方向으 로 뻗어 있는 山脈둘은 先캠브리아系와 이를 貫入한 中生代 花 閔 岩 ­ 類로 구성되며 稽曲과 斷層作用울 십히 받은 후 깊이 浚他 되어 이 루어전 山脈들로 그 山脈둘의 中間部는 東t매 에서 높은 장 地를 西側 에서는 平野를 이루고 있다 •44) 그러니까 水母木幹, 혹은 水根木幹이란 술어는 開京 來龍의 脈勢 에 대 한 說明일 분만이 아니 라 韓半島 全體에 互한 地 體構造 플 理 . 解한 술어로 보아도 될 돗 하다. 水, 木율 포함한 五行은 陰陽說과 함께 風水의 基本原理로 그에 대한 解釋은 실로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上記한 坐向論的인 설명 이의에 五行은 風水에서 혼히 五星으로 표현되어 山水地勢의 善惡, 吉凶判斷에 요제가 되기도 한다. 〈五星은 죽 五行으로 하늘 에서 象 울 이루고. 땅에서는 形울 이문다. 玉尺經에 이르기를 하늘­ 온 星材로, 땅은 山川으로 나뉜다 하였으며 이것이 하늘의 五星, 땅의 五材, 시 간에 五辰, 사람에 五 瞬, 그 의 物質, 制度 等의 五色, 五音, 五味, 五常,五運, 五官, 五 禮 , 五刑, 五 事 로 나타난다. (夫 五星郞五行也 在天成象在地成形 玉尺 經 云 天分星宿 地列山川 召臼子 云 精係於天爲五星 形效於地爲五村 氣統 於歲爲五辰 在人之身爲五臘 : 在物爲五色五音五味 施行於五常人君乘五運 置 五官 分五禮 設五刑 萬方以治民 後以五事)〉 45) 이 에 해 당하는 山의 모양온 水는 曲動, 木 은 直 接 (凡山形 直接者木 尖說者火 方正者土 光圓者金 曲動者水 )46) 이라 하였지만 水根木幹에 덧붙여 취급할 수 없는 내용인 듯하다. 或 北쪽의 來脈이 曲動울 일으키며 내려오고 東쪽의 山勢가 直뽕의 형세를 취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하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이것 온 너무 초보적이다. 實 地形율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분명히 말하기 는 어려운 문제이다. 어떤 면에서는 水와 木울 訓 讀 대로, 水와 木 죽 물과 나무를 母 44) 金玉準, 1982, 「韓國의 地質과 鑛物資源 」, 金玉 準 敎授 停年退任記念, 延世大學 校 地質學科 同門습, pp. 4~5. 4465)) 上『地掃理 書大 , 典論자五땝狂星夫之』形, 卷一, 「龍法」, 論總言五星, (1 929 年 上海, 中原 書 局刊)

幹혹은 根幹처럽 중시하라는 칸句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前節에 서 지적한 바와 같이 開京은 모든 條件이 완비되어 있다고 하지만 물의 不足은 숨길 수 없는 사설이고 물의 함양과 멜감을 위하여 소 나무를 십고 가꾸라는 術 書 의 지적이 결국 水와 木의 重 視, 죽 水 母木幹으로 표현된 것 이 아닐까 하는 생 각이 다. 當 時의 風水地理說 온 도입 초기였기 때문에 아칙 크게 術法에 치우치지는 않았던 때 인 듯하고 다라서 땅에 대한 基本的인 認識이 크게 作用하였을 것 이고 또 國土를 組織的으로보고자하는合理性이 깊이 內在되어 있 던 때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판단을 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合 理性이 가장 찰 나타나는 것이 國土空間의 中心的 位 置 몰 偏向된 慶 1H 로부터 中部地方으로 옮기고자 생각했던 新 羅 末의 禪 僧둘이 었다. 前述한 바와 같이 그들은 風水說울 中國으로부터 도입 하여 당시 의 혼란된 政治 • 社합的 風土불 그로서 정 리 해보고자 하는 노력 47) 울 기울였던 만큼 客競性이나 合理性울 保持하고 있었으리라는· 접 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開京은 風水理論上 가장 대표적인 藏 風局의 형태믈 갖고 있는 것 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살피기 위해서는 靑龍, 白虎, 朱雀, 玄 武 等 四神砂의 配證 形勢가 어떠한지를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다. 郭藥의 葬 書 에 〈經曰 氣乘風則散 界水則止 故 謂 之風水 風水之法 得水爲 _ I:: 藏 風次之〉이 란 句節 48) 이 있고 同 盡 에 〈古人衆之使不散 行 之使有止〉라고도 하였다. 여기서 之는 生氣로, 결국 生氣믈 얻을 수 있는 藏風이 필요한 근거를 제시한 말이라 볼 수 있다 .49) 乘風치 않고 藏風하는 地勢란 결국 山에 園 燒 된 盆地狀 地形의 곳을 가리키는 것으로 開京온 대체로 그에 속하는 地勢이다. 盆地 Basin 는 종류가 매 우 다양한 개 념 으로 F. J. Monkhouse 에 의 하면 여덟 가지로나뉘는데, 海洋盆地, 流域盆地, 構 造盆地, 石炭盆 地, 단순한 형 태 상의 盆地, 圈谷, 石灰岩溶融盆地, dock sy st e m 50> 47) 崔丙 急 前 撮 書 , pp. 101~46. 48) 『地理正宗』, 卷二, r 葬 書 」, 1968, 台中市, 瑞成 맙 局刊. 49) 이에 대해서는 第 3 宣 參照. 50) Monkhouse, F. J. 1965, A Di ct i on ary of Geog r aph y , p. 33 및 Monkhouse, ;

F. J. & J. Small, 1978, A Di ction ary of the Natu ral Envir on ment, p. 30.

等아 그것으로 이와 같은 盆地狀地勢는 득히 寒冷季節에 風速이 강 한 地域에서의 住居條件으로는 매우 바람직한 것이다. 偏西風地帶 인 西部 유럽 의 London 이 나 Paris 를 비 롯하여 中國이 나 우리 나라 의 오랜 都市들의 立地가 대체로 冬季의 寒冷한 季節風울 막을 수 있’는〔防風J 盆地 혹은 盆地와 홍사한 盆地狀地帶 위에 건설된 사실 이 그것을 증명해 준다. 術法上으로 砂 의 機能 온生 氣뭍 흩어지지 않게 모으고」龍身과區穴 율 縱衛 하며 局勢를 펼치는 데 있다(夫砂者 所以護龍身衛區穴布 尻勢者也 龍無砂護則孤單 穴無砂護則親散 局若無砂則 將 何物作布置 耶). 51 ) 護衛타 는 측면에 서 砂는 軍事 地理的인 采當性도 갖는다. 前 振 葬 書 에는 四神')의 形勢룰 〈玄 武垂頭 朱雀翔舞 靑龍魂誕 白虎 助 l 類 〉 이라 하였고 地理大全에는 砂 죽 山의 모양이 厚, 淸 , 歸, 長, 明 , 順(寶鑑云山厚人 肥 山 稷 人 策 山淸人貴 山砂人悲 山 歸 人衆 山走 人離 山長人勇山縮人低 山明人達 山暗人迷山順人孝 山逆人數 )52) 하여야 된다고 하였는데 이는 주위의 山脈이 穴場과 明堂울 向하여 집중하고 호위하는 듯한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이것 은 風水理論 上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山河 傑帶 , 山水回抱, 風氣密 集 이 모두 이에 해당하는 말이다. 山河 標帶 等 上記 條件은 風水地理說에서문 아니라 실상 古來로 政治軍事의 中樞인 都邑選定의 중요한 地理的 條 件이 되어 왔었다. 예를 들면 漢 의 高祖 가 처음 洛陽에 都邑울 정하려 하였을 때, 婁 敬은 地理의 形勢를 논하여 〈夫 秦 地 被山帶河 四塞以爲固云云〉이 라 하여 關中莫都물 권한 것이라돈지, 漢 元帝 때에 翼奉 이 洛陽遷都를 권하여 〈願陸下徒都於成周 (洛陽) 左 操 成 阜 右 祖龜 池 前鄕(向) 綴高 後介大河云云〉이라 한 것이 그것이며, 더욱 淮南子 兵略訓에는 〈所 謂地 利者 後生(高) 而前死(低)左杜(丘陵) 而右 生t (溪谷) 云云〉이 라 하였는데, 이는 孫子兵書의 〈左右背高 前死後生〉에서 나온 말로써 거의 軍事地理上의 상식적인 조건이었다 .63) 록히 曲射火器가 없던

51 ) 『地理大成 山法全합』, 卷之首上, 「釋名部」, 上下砂. 52) 『地理大全 入門要缺』, 卷之三, 「砂法總 論 」, 1929 年 上海, 中原 書 局刊 . .53 ) 李丙 急 前擇書, p. 25.

近代 以前의 戰爭에 있어서는 藏風地의 軍事的 有利點이 더욱 두드 러진다. 孫子의 〈知彼知己 勝乃不始知天知地 勝乃可全〉의 단계 로 敵과 我가 비등한 병력으로 戰術的 대치를 하는 상태라면 확실히 有利하도 지만 戰略的인 측면에서는 再考의 여지가 있다. 盆地狀 地勢上에서 는 槪動性의 低下는 물론, 孫子가 말한 散地, 輕地, 爭地, 交地, 循地,重地, 坦地, 園地, 死地 等 九地 中에서 園地에 해당되어 敵 이 소수의 병력으로 게릴라적인 消託戰을 획책하든가 혹은 大規模 의 월등한 兵力으로 侵攻하는 경우는 불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園地란 〈所由入者陰所從歸者辻〉로써 〈彼冥可以擊吾之衆者爲園地〉 54) 이기 때문에, 결국 藏風局은 戰術的 有利點과 戰略的 不利點울 共 有하고 있는 地域이라 할 수 있다.

54) 『孫子兵法』, 「九地篇」, 1969 年 答瓊圖합出版社刊.

開京은 前述한 바와 같이 . 松岳울 玄武 죽 鎭山으로 內城 • 外城울 內外 靑龍, 白虎, 朱雀峴, 龍軸山울 朱雀으로 완벽 한 四神砂를 갖 춘 都邑이지만 國難에 임해서는 開京死守를 할 수 없는 戰略的 腕 弱性을 드러냈던 곳이기도 하다. 또 한 가지 開京의 風水的 立地狀況에 서 特記할 만한 사실온 그곳 이 右旋局이 란 접 이 다. 左旋局 • 右旋局은 龍의 最終的 變化현상을 일컫는 用語로 開京附近圖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來龍의 나아가는 方向울 기준으로 明堂, 穴場의 局面을 환포하는 山勢가 대부분 右 方에서 휘돌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 右旋局이다. 松岳은 金山에 속하는 北西方 乾山으로 金은 胡舜申의 說에 의하 면 卯로부터 絶(胞)胎를 시작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水流의 出口인 風水上의 破가 巳方으로~ 나가는 것은 水破長生의 凶格은 면한 셈이 다 .66) 이것올 보다 쉽게 설명하면 前章 坐向論에서 설명한 五行長生 方位에 의하여 右旋局온 逆으로 陰局이 되고 여기에 金은 卯가 絶. 寅이 胎, 丑이 養, 子가 長生, 亥가 泳溶, 戌이 冠帶, 酉가 臨官, 申이 帝il:f, 未가 裵, 午가 病, 已가 死, 辰이 墓가 되어진다. 그런

55) 李丙熹, 前撮書, pp. 3~95.

데 以上 十二宮의 吉凶울 靑껍쥰經 에 56) 의 하여 대 폭 간소화시 키 면 養 과 長生은 九星이 食狼으로 吉, 休浴과 冠帶는 文曲으로 凶, 臨官 과 帝旺은 武曲으로 吉, 哀 는 巨門으로 吉, 病과 死는 廉貞으로- 凶, 廷 는 破軍 으로 凶이 된다. 따라서 幹山에 金인 開京은 逆인 陰局으 로서 그의 五行長生이 十二地支方位로 하여 子, 丑, 酉, 申方이 吉 이고, 나머지는 凶方에 해당된다 .57) 水는 吉方에서 나와 凶方으로晶 가야 되는 만큼 開京의 水破가 已方으로 凶方이 되기 때문에 水局온 術法上 좋은 편이 다. 子方은 北方, 丑方온 北北東方, 酉方은 西方, 申方은 西南西方이 되어 水口인 破가 그 方向으로 形成되게 되면 主 山울 찌르는 形局으로 侵融 의 위험이 있고 申方을 제의하면 겨울 철의 寒 風을 막을 수 없는 短點이 있기 때문에 風水術法上의 水破 理論온 開京의 경 우 타당하다고 생 각된다.

56) 『地理靑蔡經』, 卷之二, 「 論水法 」(1 975, 臺中市, 華成간局 刊) 및 『胡舜申 地理 新法』, 卷上, 第五부터 第十一論까지 參照. 57) 崔昌社 1982, 「風水說 坐向論上의 吉쇠判斯에 관한 f요學的 解釋J, 《 地理 學》 , 第 26 就 大韓地理學a-. pp. 102~4.

그러나 藏風에 따라 開京 주변의 山勢가 너무도 周密하여 局面이 寬廣치 못하고 또 北山 諸谷에서 흘러 나오는 溪 水는 모두 중앙에 모이기 때문에 夏季 降雨期에는 水勢가 거칠고 拜流가 급격하여 순 조읍지 못한 결접이 있다. 이와 같은 逆勢의 水德울 전압하고 地德 울 碑補함 에는 道說의 山水順逆法 내지 寺塔碑補說울 應用하여, 廣 明寺와 日月寺는 이상 諸水의 合流點에, 開國寺 는 開京의 內水口 위치에 건설하여 이 寺院으로써 水勢룹 전압코자 하였다. 이는 매우 合理的인 판단으로 河川의 ·i 巳進이 우려되는 취약지접 과 合流點에 寺院울 전설함으로써 人工建造物에 의 한 河川의 側方 侵他울 여제하고 僧但들로 하여금 河川울 감시하게 하는 동시에 有 事時 노동력으로 대처할 수 있는 좋은 方案이라 여겨진다. 이런 겅 우 風水上 寺塔碑補說온 采當性울 갖는다. 右旋局온 역시 白虎勢의 우월을 나타내게 되는데, 俗說에는 靑龍 은해가드는東쪽으로帝王, 出世, 官貴, 男子를, 白虎는 해가지는 결실의 西쪽으로 女子와 財産에 類推하여 開城女人, 開城商人울 云 謂하기도 한다.

5 漢陽·母岳의 立地 朝鮮初 食都 過程에서 漢陽과 母岳이 兩者擇一的으로 거론되었기 때문에 같이 다루는 것은 아니다. 漢陽 과 母岳은 論議 과정에서 比 紋 되어전 적은 있으나 別個의 立地로써 다루어져 왔던 만큼 달리 취급함이 원칙이겠지만 오늘날 兩地域이 모두서울 特別市 域內로 分 離 分析에 어려움이 많아 편의상 함께 취급하기로 한 것이다. 漢陽은 오늘날 서울 市內 中心街를 형성하고 있는 四大門內와 그 隣近을 지칭하는 地名이고 母岳은현재 서울의 西江 • 新村 일대를일 컬은 것인데 母岳은 간혹 毋岳이라 기재된 곳도 있다. 예컨대 서울 通史 68) 에는 주로 母岳울 사용하였고, 서 울六百年史 59) 는 母岳과 毋 岳울 混用하고 있으며 韓國地名要覽 60) 에는 毋岳峴 설명에는 毋岳 울 사용했다가 毋岳洞에서는 母岳峴이라 기재하는 식의 혼동을 빚고 있다. 이것은 新增東 國輿地勝覽 에서도 마찬가지로 卷之三 山川條와 烽遂條에서는 毋岳이라 하고 東國輿地備考 卷之二 山 )II 條 에서는 母 岳이라 明記하고 있다. 芝峰 李粹光이 〈負兒岩이 집을 나가는 형상이 있기 때문에 민간 58) 『 서 울通史 』 , 1972, 서 울特別 市史 福慕委員會 . 59) 『서 울六百年史 』 , 1977, 서 울特別 市史 編纂委員會 . 60) 『韓國地名要覽』, 1982, 建設部, 國 立地理 院 .

에서 이 山을 이르기를 母岳이라 이름하였다 〉 61) 는 설명을 하고 있는 · 데, 이로 미루어 보면 母岳이 맞고 毋 岳은 無學 에 비유시킨 音 轉 이 아니었을까 여겨진다. 실제로 1 : 25,000 地形 固 62) 와 韓國 地名 要 몄 63) 에 는 무학재 ( 無學 峴)라는 表 記 몰 하고 있 음이 이 물 증명 한다. 따라서 本 考 에서는 이후 母岳으로 통일하여 사용하기로 한다. 서울市 域 온 현재 (1 977 年) 東 端 127°12'E, 37°33'N, 西端 126°47'E, 37°34'N, 南 端 127°E, 37°26'N, 北 端 127°E, 37°42'N 으로) 毋岳 과 漢陽 은 모두 市 域 內이 며 따라서 沿 革 은 兩者를 같이 취 급하고 風 水 上 立地만을 分 離 說 明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서울地 域 은 屈峰 , 岩寺洞에서 발견된 先史住居址가 말해 주듯 오렌 옛날부터의 集團 住居地였다. 그후 三 國 時代 初 期 에 百 濟 가 대체로 이 부근을 中心으로 나라를 세웠던 듯하나 이 접에 대해 서는 異 見도 있다. 三 國 의 爭 覇 地로서 일찌기 戰略 的 중요성이 인 식되었던 곳으로 新 羅 統一 以 後 에는 9'} t I 中의 하나인 漢 셰 소속 漠 陽 郡에 속하였 다. 高麗 初期에 는 楊 1 t l, 成宗 때 는 左神 策軍 이 라 이 롭­ 하여 海 사 I 와 함께 關 內道에 들어갔고 그 후 楊廣 道, 南京, 漢 陽府 等에 속하였다가 朝 鮮 太祖 三年 國都가 되면서 漢城 府라 이름하였 다 .65) 그 후 일시 開京으로 옮긴 적은 있으나 1910 年 國恥까지 五百 餘年 間 首都의 역 할을 하였 으며 日 政下에 서 京城府로 고쳐 부르다가 ­ 光 復 과 함께 서울이란 호칭으로 66)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61) Ii'국역 신중동국여지승랍 』 , 1978, 민족문화추진회, p.3 82. 62) 1977 年 수정 편집 , 國立地理院刊. 63) 『 韓國 地名要 梵 .!, p.5 4. 64) 『서 울六百年史』, p. 42. 6665)) 『『 서新 울增六東百國年 輿史 地』,勝 覽p 』p,. 3卷4之~8三. ,漢城府, 建置 沿革條

서울은 대체로 開京과 함께 韓 半島의 중앙적 위치를 차지할 문 아니라 漢 江 臨津江等울 이용하여 內陸地方 깊숙이 들어갈 수도 있고, 또 이들울 타고 黃海로 나갈 수도 있는 交通의 要地를 차지 한다. 太白山脈의 鐵 嶺 부근에서 갈라쳐 서울부근까지 이르는 廣f H 山脈온 추가령지구대를 가운데 두고 馬息 嶺 山脈과 호응하며 명지산 (1267m), 국망봉 (1176m), 광석산 (1046m), 楊平郡의 龍門山 (1157m ),

둥의 높은 山울 일으키고 있지만 花岡片麻岩과 花桐岩으로 構成 된 地質이 십히 삭박되어 山脈으로 인정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그 높이 는 東北部의 加平, 抱川 一帶는 1000m 以上으로 상당히 높으나 西部로 향하여 감에 따라 접접 낮아져 서울 부근의 北漢山 (836m), 道峰山 (710m), 仁旺山 (338m), 冠岳山 (629m) 等 500m 內外의 殘 丘 性山地가 발달되어 있다. 花固岩山地는 節理와 風化作用으로 白 雲 臺, 仁 忠 峰과같이 尖角峰울이룬것도있고, 또劍 離作用으 로 Dome 狀의 圓頂峰울 이룬 것도있다• 漢江울 건너서는 100m 以下의 丘陵 地로 되고 나중에 는 平野로 移行한다. 67)

• 67) 姜錫牛, 前揚書, p. 130.

서울은北漢山울最高點으로하는 高陽, 楊 '}II 丘陵과 京畿平野와의 접촉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주위에 상당히 높은 山岳丘陵으로 둘러 싸인 盆地狀地帶로써 東쪽이 약간 열려 淸溪川이 東流하 고 또 南西의 南大門 부근의 分水界 (36.6m) 가 심히 낮아 龍山 方面울 향하여 열려 져 있으나 그 東南 에 漢江이 自 然淡 와 같이 흐르고 있어 防 禦 上 이 상적인 地形일 분더러 北西의 仁旺山 (338m) 에서부터 北方의 北岳 山울 지나 壓峯에 이르고, 東의 整駐山 (125m), 南의 南山 (265m) 等 의 諸峰울 연결한 山地丘陵은 自然城壁으로 되어 있으므로 이것을 이용하여 堅固한 築城울 할 수 있고, 또 城壁의 外方에는 北에 北 漢山 (836m), 南에 南 漢 山 (495m), 冠岳山 (829m) 이 솟아 外廊울 이루 어 三重의 防衛壁으로 되는 天然의 要塞地였다. 또 淸溪川이 東流 하여 排水가 찰 . 되어 土地 高操하고 周緣울 흐르는 漢 江은 西海와 연결하여 各地의 物資가 集中되는 위치이기도 하다. 漠江울 경계로 北쪽만이 과거의 漢陽으로 北岳山 (342.4m) 을 主峰 으로 仁旺山 略山 南山이 둘러싼 盆地狀을 이루었다. 北岳山의 主 脈을 이루는 北 E흡 山은北에 道峰山, 南쪽으로 南將臺와 碑峰을 거느 리고 그 外廊으로 서쪽의 鷹峰 , 동쪽의 龍馬山울 두른 二重의 山系 를 이루고 있다. 內外山勢의 사이를 동쪽에 中浪川이, 西쪽에 砂川 과 佛光川이 南流하면서 漢江으로 流入한다. 서울盆地의 排水 역할 울 하는 淸溪川이 東流하다가 中浪川으로 流入되며 ,68) 漢江온 느린

68) 『韓國地名要賢』, p.1 2.

曲流를 하면서 서울을 南에서 환포한다. 서울 東쪽 楊平郡 楊西面 兩水里에서 南漢江과 北漢江을 合流한 漢江은 廣壯洞 부근에서 南쪽으로, 다시 갔室 부근에서 西쪽으로 回流한 뒤 서울 南쪽을 감싸안듯 돌아 西江에서 北西로 거의 直進 하여 金浦半島, 江華島로 나가면서 臨津江, 禮 成江울 합하여 西海 로 들어간다 .69) 地形的으로는 白岳山, 路陀山, 南山, 仁旺山울 內四山, 北漢山 (836m), 幸,}f l 의 德陽山(1 25m), 冠岳山, 東쪽의 龍馬山 (348m) 을 外四 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70) 주위 山地丘陵의 地質은 주로 淡紅色의 花岡岩과 花橋片麻岩으로. 되어 있다. 그. 分布는 대체로 뚝섬, 한남동 南山西部, 西小門, 北 阿峴洞울 경계로 西南部는 花固片麻岩地이고 東北部와 南쪽 冠岳山 一 뿜 는 花固岩地로 되어 있으며 兩者가뚜렷하게 2 個 地域으로 갈라 져 있다. 특히 花廊岩은 租粒質이며 다른 岩石과 달리 節理와 刻離 가 쉽게 되므로 花尙岩地인 道峰山, 白雲臺, 仁 壽 峰, 國望峰 等은 節理와 風化作用울 십히 받아 峨峨한 奇峰울 이루고 있다 71) (그림 4-2). 母岳은 漢陽 西쪽 仁旺山울 격하여 바로 붙어 있는 곳으로 그 立 地形勢는 漢陽에 준하여 보면 된다. 微視的 地勢는 北漢山의 正脈 이 碑峰까지 이어오다가 南進하여 北岳울 이루는 데 대하여 또 한 支脈이 지금의 대조동, 녹번동을 지나 白蓮山 (215.5m) 으로 이어지 고 이것이 線山 (295.9m) 으로 突起하여 그 南쪽에 新村, 西江 一帶의 母岳을 펄찬 形勢이 다. 母岳 西쪽으로는 砂川과 佛光川이 南進하여 漢江에 合流하고, 그 南쪽으로는 漢江에 인접 하여 老姑山 (10 4. 5m) 臥牛山 (l01.8m) 이 있고 漢江 건너 對岸에 汝矣島가 있다 .72) 원태의 母岳이란 바로 毅山울 지칭하는 말이다 .73) 69) 崔昌祚, 1978, 「風水에 대한 地理學的 解釋-陽基風水룬 中心으로」, 《地理學》, 第 17 號, 大韓地理學會, p. 33. 70) 『서 울六百年史』, p. 49, l'ir7 7 , 서 운特別市史 編纂委員台. 71 ) 姜錫牛, 前掃한, pp.1 49~50. 72) 國立地理院, 1977 年 수정 편집 , 1 : 25, 000 地形圖문 기 준한 것 입 . 73) 『국역 신증동국여지승랍.!, I.p.3 82.

그립 4-2 서울 부근의 지형도

擇里志에는 이곳의 脈勢를 〈 함경도 안변 鐵嶺 의 一支脈이 南쪽으. 로 五, 六百里를 달려 楊 '}}1 에 와서는 작은 山으로 되고 다시 東쪽 으로 비 스듬하게 돌아들면서 갑자기 솟아나와 道峰 山 萬丈tt이 되 었다. 여기서 東南 向하여 약간 끊어전 듯 하다가 다시 우뚝 솟아 三角山 ,74) 白 雲豪 를 이루고, 또 南쪽으로 내려가 萬景豪가 되었는 데 여 기 서 한 가지는 西南쪽으로 갔고 75) 다론 한 가지가 南向하여 白 岳山 76) 이 되 었 다. 形家의 이 르는 하늘을 꿰 뚫는 木星의 形局이 며 宮城의 主山이라(咸鏡道安返府 鐵嶺 一脈南行五六百里 到楊캐殘山自 民方斜返以入 忽起爲道峯山萬丈石峯 自此向坤方行 小斷而又特起爲 三 角 山白 雲臺 自此南下 爲萬景臺 -枝西南去 一枝南爲白岳 形家言 衝天木星 爲宮城 之主)〉 7 7) 하였 는데 廣캐 山脈의 흐름을 찰 설명 해 준 셈이다.

74) 三角山온 北漢山입. 75) 이 支脈이 母岳에 연결됩 76) 白岳온 北岳山입 . 77) 『擇里志』, 「八道 總論 」, 京畿道條

同 書 에서는 漢陽의 三角山울 開京 의 五冠山과 함께 山秀水淸의 四山 中 하나로 〈三角山은 道峰山과 연달아 얽힌 山勢이다. 石峰이 대단히 맑고 수려하여 萬 火가 하늘에 오르는 것 같고 特히 이상한 기운이 있어서 그림으로 나타내기 어렵다. 다만 기세를 도와주는· 輔弼 의 山이 없고 고을이 적다. 전에는 重興 寺 계곡이 있었으나 北 漢 山城울 쌓을 때 모두 깎여서 평평하여졌다. 城 안에 있는 白岳과 仁旺온 石勢가 사람을 두렵게 하여 殺氣 를 벗은 松岳山보다 못하다. 의지할 바는 다만 南山 한 가닥이 江울 거슬러서 局울 만들고 있는 접이다. 水口가 낮고 虛하여 앞쪽에는 冠岳山이 江울 사이에 두고 있으나 또한 너무 가깝다. 비록 火星이 앞을 받치고 있어서 風水家 에서는 언제나 南向하는 것은 不吉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局內가 명랑하고 숲이 수려하여 흙이 깨끗하고 길에 떨어진 밥알을 주위먹 울 수 있을 정도이다. 따라서 漢陽 에 人士가 막히지 않고 밝은 접 은 좋으나 雄氣가 없음이 恨이 라. (三角則道峯三角連行爲勢, 石峰極 意淸秀 如萬火朝天 別有異氣 畵 亦難狀但山無輔弼 而亦少洞府耳 舊

有重興寺泉石 而至築北漢山城 皆횟j平 城內白岳仁旺 石勢使人可長 不 及松岳之脫殺 所侍者 只南山一枝 逆江作局耳 內水口低虛 前面冠岳 難隔江 亦太近 難火星朝棋 塔輿家 每以午地方位爲不吉 然局內明郞 森肅 土色淨潔堅白 難整飯於道 似可捨食 故漢陽人士多通陳明顔 而 恨無雄氣)〉 78) 고 설명하고 있다. 東國輿地勝覽에는 〈古朝鮮은 馬韓의 땅이다. 京都는 華 山 79) 을 北 쪽의 鎭山으로 하여 龍이 도사리고 호랑이가 걸터앉은 形勢이다 (古朝鮮馬韓之域 北鎭華山 有龍盤虎距之勢)〉 80) 고 하였고, 同書의 다 론 곳 81) 에서도 華山 죽 三角山울 漢城府의 鎭 山으로 하고 있을 분 아니라 東國輿地備考에도 華山으로 鎭山울 잡고 있다. . 78) 『擇里志』, 「 卜居總論」, 山水條. 79) 華山은 三角山 죽 北漢山임 • 80) 『新增東國輿地勝覽J, 卷之一, 「京都上」. 81 ) 上掃 홈 , 卷之三, 「漢城府」, 山川條.

6 漢陽 • 母岳의 風水的 立地解釋 國域風水上 漢陽의 立地解釋은 韓半島의 中心的 위치로 開京~ 유사하다. 그러 나 그 來龍의 脈勢는 地形上 開京이 馬息嶺山脈으로 이어지는 데 대하여 漢陽과 母岳은 추가령지구대를 沿하여 그 對岸 의 廣 1II 山脈勢이기 때문에 白頭祖山은 같이 하지만, 支脈은 다른 系統울 취하고 있다. 실제로 開京과 漢陽온 巨視的인 안목에서 보자면 매우 비슷할 수 도 있지만 大縮尺地圖上에서 國域으로서의 입장으로 보자면 상당한 차이가 있다. 開京은 京畿 潟 의 北岸에 위치하여 西海岸一帶 및 韓 半島 北西部몰 관장하기 쉬 운 데 대 하여 한양온 潟 의 東岸으로 開 京에 서 65km 東南方에 위치 하여 西海岸과 南部地方을 통할하기 쉬 울 분 아니라, 추가령지구대를 이용하여 東北面과의 交通울 쉽게 가질 수 있는 長點이 있다. 바다로부터의 거리는 開京에 비하여 먼 편이지만 漢江이라는 可航河川에 臨하여 있기 때문에 水運도 開京 에 비하여 不利하지 않은 편이다. 漢陽의 來脈은 白頭山을 祖山으로 하여 三角山인 北漢山에 이르 기까지 이어져 三角山에서 宗울 일으키는 形局으로 來龍의 脈勢에 홈을 잡을 곳은 없다. 다만 擇里志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三角山이 輔弼의 山을 갖추고 있지 않은 U旦 山無輔弼) 단점은 있다. 원래 輔 弼은 五星, 九曜論에 나오는 左輔, 右弼울 지칭하는 것이지만 여기

서는 단순한 護衛의 山이 없음을 지적한 말이라고 여겨진다. 〈 龍 經에 이르기를 眞龍은 設 衛하는 많은 山둘이 龍 身울 둘러싸야 하는데 山이 정답게 와서 洪損하는 듯해야 한다( 龍經 云 眞龍身 上多 護 衛山山有 情 來洪損) 〉 82) 하였고, 〈客山과 더불어 本 龍身 에 來 應' 하 논 山을 두루 칭하여 護龍 이라 하는데 祖 宗 山을 같이 하는 山아기 때문에 本 龍 의 兄弟와 같은 山(與 客 山 來應 槪稱爲護龍 龍其質設而 稱龍 者 必 是 有 結 之沙 如同祖 共 宗分出 而 爲本龍之 兄 弟者 ) 〉 8 3 ) 이 라 하 ­ 여 脈勢에 設衛 의 山이 없음은 7 風水에서 꺼리는 바이다. 이 것 은 龍 의 開帳 과 察心의 관념 으츠모됴 설명 이 가능한데 , 開帳 이 란 장막을 편다는 뜻으로 龍 脈의 펼쳐나간 모양이 마치 거대한 장 막을 펄찬 것 같고 혹 은 새가 날개를 편 것 같으면 吉格 이지만 開 帳 이 없이 단조롭거나 조화가 없어 보이면 生 氣 가 없는 것으로. 본 ­ 다. 察心이 란 祖 宗 山 또는 主山의 龍 脈이 中心을 뚫고 穴 場 까지 나 간 것을 말한다 84) (그림 4-3 ). 北 漢 山은 廣 사 1 山脈 末端 部 의 丘 陵性 殘 丘이기 때문에 容 心온 분명하지만 開帳 이 없어 이런 면에서도 홈 이 간다. 특 히 前 掃 한 地理大 全 에 의 하면 三 重 , 五 重 으로 繩設 된 것을 더욱 중히 여김을 알 수 있는데, 術 法上으로는 藏風 의 효과를 얻는 形 勢 가 되며 都邑 風 水上으로는 防衛, 住居 條 件과 결부된 長 點 울 지니는 地 勢 가 된다.

82) 『 地理大全入門要缺 .! , 卷 之一, 「 論龍護 送」. 83) r 地理正 宗』 , 卷十一, 「山 龍語類 」, 護麗辨 . 84) 東谷, 1979, 『地理 學 全 書』 , 易 활普 及社, pp. 49~50.

그러나 우리나라 中部 平野地 域 에서는 이와 같은 多 重護衛 , 開帳 의 땅이 地形的 이유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漢陽 과 母岳이 相 對 的으로 다른 곳에 비하여 열등 한 條 件에 처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 면에서는 開京이 漢陽 에 바하여 우월함을 부인할 수는 없다. 開 京은 五冠山에서 일단 開帳, 經護 를 이루었다가 松岳으로노 容心되 는 형대를 취하기 때문이다. 漢陽의 風水的 立地解 釋 에서 먼저 제기되는 문제는 國都의 主山 문제이다. 主山은 藏 風의 입장에서는 四神砂 中 玄武에 해당된다. 來龍 脈節 中에서 穴의 뒤쪽에 높이 솟은 山으로 陽 基의 경우는· 마

그림 4-3 開帳과 察心

을을 鎭護 한다는뜻에서 鎭山이라고도하고, 단순히穴뒤의 山이타 하여 後山이라고도 한다 .85) 이런 論理는 그 후 여러 論文에서 그대 로 답습되어 왔는데 이는 아마도 村山의 『朝鮮(l)風水』가 끼친 영향 일 것이다. 新增東國輿地勝覽과 擇里志 그리고 東國輿地備政 等에서는 모두 漢陽의 鎭山율 三角山으로 잡고 있다. 그러나 다른 資料에는 主山 울 白岳 죽 오늘의 北岳山으로 제시하여 혼란의 여지가 있다. 判 門下府 事 權仲和가 亥山 죽 北岳을 主山으로 삼아 壬坐丙向울 취 하라는 글을 울린 일이 있고 ,86) 白岳울 玄武, 主山으로 설명한 대 목이 있으며 87) 世宗 때 國都 主山 問題의 論議에서도 漢陽의 主山 85) 村山智順, 1931, 『朝鮮0 風水』, pp. 14~5. 86) 李丙熹, 前掃 書 , pp. 382~3 . 87) 李丙熹,前掃書, p. 407.

은 白岳으로 88) 되어 있음 을 볼 수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鎖 山은 반드시 三角山, 主山은 반드시 白岳이란 것을 고수하고 있다 는 접이다. 그러나 村山의 해석대로 鎭 山이 즉 主山이라 한다면 漢 腸 의 後 山問 題 는 혼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기 록에 따라서 `t· 鎭 山과 主山울 명 백 히 區分하여 〈 三角山온 서 울 北方에 높이 솟아 서울의 鎭 山, 白岳山은 三 角 山의 中心脈으로 서 울 北方에 둘러싸인 峻峰 으로 서울의 主山 〉 89) 으로 明 記 하기도 하 였다. 風水 書 에서는 主山, 혹 은: 鎭 山이라는 用 語 를 사용하는 例 가 벌로 없다. 最 近에 우리글로 發刊된 風水 書 에는 主山이란 用 語 를 대부분 · 사용하고 있지만 漢籍 에서의 用例는 거의 없는 듯하고 특히 鎭 山이 란 말은 風 水 術 士들 중에서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것은 鎭 山이란 用 語 가 風 水 術語 라기보다 일반적 의미로 쓰여전 말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主山이 쓰여전 用例 를 굳이 들자면 入地眼全 書 에 〈元武郁 是 穴 後 之主 〉 90) 라 하여 元 武 죽 北쪽 玄 武 砂 가 主山이라 설명하고 있는 정도이다.

88) 李丙 熹 , 前 掃합 , pp. 412~27. 89) 池 昌龍 , 1982, 『 韓國 地 理總覽』 , 明文 堂 , pp.4 3~4. . 90) 『入地眼全 합』 , 卷五, 「砂法」, 朱 雀 元武砂, l976· 臺灣 , 竹林 書 局.

이것은 漢陽 의 山 勢 中 玄武砂가허약하기 때문에 나온 일종의 方 便이 아니었을까 여겨진다. 開 京은 宗山인 五冠山으로부터 大斷 하 여 松岳山으로 束 氣 되면서 松岳으로 開 京 의 主山율 이룬 형국이며, 이때의 松岳山은 해발 588m 로 그 南쪽, 죽 朝案砂 에 해당하는 諸 山울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위용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主山이 곧 鎭山이 되어도 無 理가 없지만, 漢陽 온 北岳山이 342m 에 지나지 않 아 朝山, 案山에 해당되는 南山 (265m), 冠岳山 (629m), 南漢山 (429 m) 等에 오히려 여눌리는 형태가 되므로 위치로 보아 北岳山이 主 山인 것은 분명하지만 鎭 山으로서 成立될 수 없는 형세가 되는 것 이다. 上記한 理由 때문에 漢 陽온 例外的으로 主山과 鎭 山의 개념을 區 分하여 사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開 京이 五冠山에서 大 斷 하여 松岳

에 이르렀다고 하지만 松岳의 山 勢 가 크기 대문에 鎭山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데 반하여, 三角山은 위치상 穴後之主는 아니나 北 岳울 대신하여 漢陽울 鎭護 하는 銀山의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그 렇 다고 하더라도 엄밀한 의미에서 漢陽 의 玄武는 北岳일 수밖에 없다. 또 風水上 으로는 三角山온 開 京의 五冠山과 같이 漢陽 의 近 祖山 혹은 宗 山으로 인식하면 혼동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卷說 로는 主山이 그 前方의 朝山에 대 하여 臣下에 대 한 君主 , 아내에 대한 남편, 자식에 대한 父母 等 의 상칭을 띠는 것 9l) 이기 때문에 주인이며 남편이며 임금인 主山 北岳山이 손님이며 아 내 이 며 신하인 朝 山과 冠岳山보다 낮아 術法上으로는 손님 즉 外勢 의 간섭, 臣下의 謀 反, 下렘上 事 件을 잉태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하 기도 한다 .9 2 ) 三角山과 北岳山의 鎭 山, 主山문제 이외에도 漢陽 의 경우 主山 울 어디로 잡을 것인가는 食都當 時와 世宗代에 몇 번 더 거론되고 있다• 먼처 災都當時 의 主山決定 및 國都의 坐向論議는 鄭道傳 과 無學 사이에 펼쳐진 것인데 正史의 기록이 아니기 때문에 그 신빙성 은 의십스럽지만 內容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無學 의 의견은 仁旺 山울 鎭 山, 죽 玄武로 하고 南山과 北岳울 白虎와 靑龍으로 하여 都邑울 東向, 죽 酉坐卯向으로 하자는 것인데 대하여, 鄭道傳 온 예로부터 君主논 南쪽을 바라보며 政事몰 펼쳐야 하는 만큼 궁궐을 南向, 죽 壬坐丙向으로 하여 白岳玄武, 仁旺白虎, 愍山靑龍울 주장 하였다는 것이다 .93) 이에 대해서는 車天絡의 五山 說林 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그. 내 용은 〈無學이 漢陽 의 勢를 보며 仁旺山으로 鎭 山울 삼고 白岳과 南山으로 左右의 靑龍, 白虎를 삼으라고 하니 , 鄭道傳 이 자고로 帝 王은 南面하여 다스리는 것이지 東向울 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하며 난색을 표했다. 이에 無學은 내 말을 따르지 않으면 二百年이 91 ) 村山智 順 , 前撮참, p.1 8. 92) 최창조, 1983 年 1 月, 「정감록의 힘과 꿈, 그 과학적 해부」, 《마당》, 1983 年 1 月 號 , p.7 0. 93) 村山智萬 前描합, pp.6 97~9, 池昌 龍, 前撮 書, p.2 74.

겨나내 말을생각하리라 하였다. 山水秘記에 의하면 都 邑울 택할때 僧信의 말을 들으면 점차 延存의 바람이 있을 것이지만 , 鄭 氏姓을 가진 사람이 是 非를 하면 150 年이 지나기 전에 冥奪 의 禍 가 일어날 것이오, 겨우 二百年 內外에 板 蕩 의 亂 함에 이를 것이니 찰 생각하 라고 나와 있다. 山水秘記는 新 羅僧 義湘 大師의 所 著 로 八百年후 의 일을 맞추었으니 어찌 聖僧 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秘 記 에 서 소위 僧低란 無 學 울 이름이오, 鄭 氏姓 가진 사람이란 鄭道傳 을 일컬음이다(無 學 乃 卜 漢陽 曰 仁王山作 鎭 白岳 南 山 爲 左右 龍 虎 鄭 道 傳 難 之曰 自古帝王皆南面而治 未 聞東 向也 無學 曰 不 從 吾 言 垂二百 年 當思吾 言 接山水秘記云 擇都者若 信聽僧 言 則 稽有延存 之望 若 鄭 氏姓人出而是非 則傳不五世 其奪 之 禍 生 歲線 二百 板 蕩 亂至 愼之 愼 之 山水秘記 乃新 羅 僧 義 湘大師之所 著 豫 知八百年後之 事 若合符 契 登非聖 僧 耶 以 今觀 之 秘記 所 謂僧 言 者 乃 謂無學 也 所 謂鄭姓 人 者 乃 謂 鄭 道 傳 也) 〉 고 되어 있다. 無學 이 義湘 大師의 山水 秘記 에 의하여 그와같은 坐向을 내세웠다 고 하나 믿기 어려운 기록이라 생각된다. 宜錄 에 남아 있는 無學 의 言行은 매우 現 實 的이었던 듯한데, 例를 둘떤 太 祖 가 漢陽 의 地 勢 를 물었을 때도 〈 此地는 四面이 높고 中央이 平 垣하여 城 邑에 適 合 하다고 생 각되 나 衆義 에 좇아서 決 定하소서 〉한 접 둥으로노 미 루어 , 그런 그가 鄭道傳 과 論爭 울 벌이며 山水秘記를 引用했으리라 생각 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여겨진다. 그러나 漢 陽의 坐向이 無學 의 주장대로 仁旺山을 主山으로. 하여 東쪽을 바라보는 形 勢 롤 취했다면 現在의 서울과는 큰 差異률 나타 냈으리 라는 접 은 분명 하다. 環境 知 梵 的 envir o nmenta l pe rcep tion 側 面에서도 百姓들에 미찬 영향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都市 中心의 核心的 建物인 王宮의 方向이 都市의 街路 網 , 發展方向 等에 미치 는 영향은 매우 큰 것이기 때문이다 .94) 都邑의 城內에서 南門方向의 發 展이 가장 두드러진 것은 서울문 7 아니라 우리나라의 傳統的인 都邑 緊落 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 94) 崔 昌祚 外, 1978, 「風水에 대한 地 理學 的 解澤 」, 《 地 理學» , 第 17 號 , 大 韓 地理 學會 , pp.3 3~4.

상인데, 이때 南門이란 朱雀方向이 되며, 서울이 東向울 하여 東 쪽 으로 南門機能이 配定되었다면 우리나라 內陸地方으로 發展方向이 유도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政治 權力의 核心部의 坐向方位가 東 向이 되기 때문이다. 主山 配定上의 또 다른 문제는 世宗 때 風水學人 崔揚善 에 의한 문제 제기이다. 그는 〈景福宮 의 北쪽 山은 主山이 못된다. 木 覽 山 ( 南 山)에 울라보면 鄕校洞 (오늘날 雲 泥洞)의 連脈인 지금의 承 文 院 基地 가 바론 主山이 됨을 알 수 있다. 定都를 할 때 왜 이곳이 아닌 白岳 아래에 宮腦울 造營했 는지 알 수가 없다. 地理 書 에 이르 기를 主山의 穴에 人家가 있으면 子孫이 哀微한 다고 했으니, 만약 昌德宮울 承 文院 터로 옮긴다면 萬世의 利를 얻을 것이다. ( 景 福宮

北山 非主 山 登木覽 而見之 鄕校洞連脈今承文院基地 實是 主山定都 之時 何不當宮競於此 而乃於白岳之下平 地理 書 曰 人家居主山之穴 則子孫裵微 若移昌德宮于承文院之基 則 萬 世之利也)〉 95) 라고 啓請하 였다. 그가 主山으로 제시한 承文院基地는 오늘날 城北洞 北西쪽 北岳스카이웨이 아태의 328m 高地인 것으로 추측되며 96) 이후 이 문제에 대한 贊反兩論 이 분분하다. 梵成論 의 言說 은 다음과 같다. 〈三角山온 뻗어서 普賢峰에 이르 고 普賢峰 은 蓋落 하여 岡龍山開울 이루며 左右二峽에 나뉘어 左峽 온 起伏이 造長 하고 關楠 을 이 루어 安庵地(安岩洞)에 이 르며 右峽 은 달리기 半里에 白岳의 星峰울 이루고 또 半里를 달리어 仁旺山 의 岡龍울 이루고 仁旺山을 달리어 南으로 回 轉 하여 主山울 朝操하 니 이것이 가위 朝對의 바른 것이라 할 수 있으며, 中央에는 正脈 이 있어 東南으로 入道하여 달리어 二里에 이르러 龍丘를 이르니 곧 主山이 이것이오, 主山의 落脈 은 惡絲 와 같되 蜂膜 斷續의 異狀 을 再起하여 所 謂 玄武垂頭의 格울 이루니 左 普 는 쩍環 하여 穴前에 이르고 右 普 는 활과 같은 형상으로 明堂에 操하고 있다. 또 三重의 枝 葉 은 左右로 穴을 抱雅하여 山水 서로 有情하며 중앙의 明堂은 스스로 正히 尊貴하 고 局中의 諸水流는 天心에 合하여 可 謂 氣緊 의 9965)) l世 :宗 2實5,錄 0,00 지矣 형丑 도 ,7 月 서甲 운寅 條城(束李 도丙엽 熹 에 , 서前 攝그안리, 고p . 현41지3 에 답 서사 에轉 서誠 )판. 단된 추론입 •

地가 되니 經에 兩水來處是明堂 枝葉周回中者是란 말에 부합된 다. >97 ) 이에 대한 反對論의 의견은 아태와 같다. 〈白岳온 三角山으로부터 내려와 普賢峰울 이루고 또 普賢峰에서 내려와平岡울이루어 數里 에 이르면서 尖峰울 일으키니 이것이 곧 白岳이다. 그 밑에 基局과 같은 明堂을 만들어 萬兵울 세울 만하니 이야말로 前後正中의 正明 堂이라 할 수 있다. 主山의 北은 外峽이 三角山의 西南에서 돌아 大

一枝를 이루고 羅岩寺 南極에 環至하고그한갈래가 또한 西南行하 여 母岳(지금의 萩山) 西幹에 이 르니 明堂의 西北岡이 오 衆水回還의 대개이다. 또 主山의 東北은 그 一大枝는 淸凉洞源處의 동복에서 동· 남으로 周回하여 大野에 이르러 멈추고 다른 一枝는 淸凉洞源의 동 남에서 壁瓦客로 回至하여 大鄕에 내려오고또한가지는 沙閑洞 동 남에서 回周하여 그치고또한가지는沙閑洞源의 남에서 동으로돌아 東大門에 이르러 그치니 이는 곧 明堂의 東南岡이오 衆水의 대개이 다. 그리고 白岳 明堂의 左右로 말하면 右覽는 主山西呼에서 나와서 서남으로크게 回周하여 동으로東大門水口에 이르고그左盤는동남 으로 周回하여 또한 東大門 水口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主山 明堂위 前後左右는 均齊方正하여 평탄치 아니함이 없고 또 祖上正龍의 大 脈은 남방으로 직행하여 그 기운이 峨盛하기 때문에 白岳, 仁旺, 母岳, 南山이 모두 突起하여 峰울 이루었다. 그런데 지금 說者의 소위 來脈이란 것은 그 기운이 적은 까닭에 단지 淨業院의 뒷면 鷹 峰울 일으켜 宗廟의 穴를 이룰 분이요 다른 穴은 이루지 못하였으 며 이 峰 外에는 다시 盛氣가 없으므로 宗廟로 들어간 穴도 또한 다 시 峰울 일으키지 못한 것이 아닌가. 芳起脈, 正起脈의 둘로 말한 다면 宗廟의 地는 이 곧 芳起脈의 正脈이라 할 수 있고 또 지금 說 者들의 말하는 곳은 芳起脈의 芳脈이라 할 수 있다. 古人은 혼히 山脈의 大小盛表를 草木 枝幹의 大小, 榮柏에 비 하여 말한다. 98) 이와 같은 論議는 〈新明堂의 地논 첫째 普賢峰 來脈의 芳支요 正 脈이 아니며, 둘째 四神砂가 不備하여 玄武는 低軟, 龍虎는 不收, ' 9987)) 李李丙丙廉熹,, 前前掃揚書書,, ppp. .4 4116.5 ~6.

朱雀은 過高하며, 세째 水流가 直去 無情하고, 네째 明堂이 陝小함 에 대하여 白岳主山의 景福宮坐地는 첫째 普賢峰의 正脈이오 過峽. 이 아니 며 , 둘째 玄武가 特秀하고 白虎가 路居하여 形勢에 합하며 , 세째 明堂이 寬平하고, 네째 古秘記에 부합하는 접이 많으므로 현 재 그대로가 옳다〉는 黃喜 等의 주장에 의하여 일단락되었다. 이것은 우선 三角山의 脈勢가 漢陽으로 入首되기까지의 正龍과 傍龍이 어떤 것인가 하는 風水的 문제접이 지적될 수 있다• 前章에 서 언급한 바와 같이 正龍이란 幹龍 혹은 元龍이라 하는 것으로 主 山온 반드시 正龍의 脈勢룰 받아야 하며 傍龍은 支龍이 라고도 하는 데 左右補助龍의 역할밖에논 할 수 없다. 이 경우 碑峰으로부터 거의 南向하여 局울 이룬 北岳山을 正龍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안목일 것이지만, 이 접 術法이기 때문에 단정을 할 수는 없다. 다 만 結果만을 놓고 말할 때 그림 4-4 에 서 보는 바와 같이 北岳은 北 西方에 偏在되 어 있는 데 반하여 328 高地는 正中央에 위치 한 長點 이 있다. 그런데 이것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 中國온 모든 建 物의 配置가 정확한 對稱으로 운영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正確한 대칭을 기피하는 경향 99) 을 보이고 있는 접에서는 역시 단정 적으로 長點이라 보기 어려운 면도 있다.

99) 崔秉璃 1973, 「韓國古都邑의 空間構造에 關한 硏究」, 서 울大 行政大學院 碩士 學位論文, p.63.

현실적으로 主山울 바꾸면 移宮이나 新宮의 造營이 뒤따르는 만 큼 財政문제와결부되어 복잡한 결과를 얻을 수도 있고, 또 凡眼의 안목으로는 北岳이 正脈인 것으로 침작되어 有耶無耶로 끝난 것아 아닐까 생각된다. 이 事件에서분만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에 風水 的 論議는 明分울 위한 방편으로서 거론이 되고 그 결론은 항상 風 水理論을 위배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현실적, 합리적으로 내리고 있는 경향을 보여 준다. 主山울 328 高地로 옮겼을 경우를 가상할 때, 서울의 市街地는 오 늘날 鍾路三街 부근을 都心 civ i c cente r 으로 都城의 법 위 가 숭인 동, 신설동, 청 량리 방면까지 擬張되고, 그 후의 都市發展 方向도 그에 따라 달라졌을 것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따라서 主山울 東

서 울 城 廊 圖 禪 1977 年親在)

阜(景福宮 5h 政殿) [ \댐\덤 f젖 \ 洙'r 뇨햏`&`敦 \義`` 門溫 酒知大 r1, ' g7 [ 댑졌 愛꾼 \`5 ,'o J fi```、 `` 4`5 .,' 그립 4-4 서울 城廊回

向移動코자 啓請했던 風水學人 崔揚 善 의 의견은 및 가지 접에서 타 당성을 갖는다 . 또 이곳이 白岳下보다는 山勢 環 抱가 깊어 住居立地 上 越冬의 편의가 나을 것이란 접도 생각해 볼 수 있다. 山울 보는 眼目온 術師에 따라 크게 차이가 있어 예컨대 朝鮮朝 砂格論의 第 一人者로 추앙받는 李師의 加佐島에 있는 속칭 帝王之 穴이라는 親 山울 역시 風水達人인 一耳僧이 보고 개탄하여 말하기 를 〈以李師 之才로 何爲邊葬耶아 無他라 其時에 應有俺眼之兆矣라〉 · 고 畿評했 다 100) 는 것 이 다. 當代의 一級 術人 둘 사이 에 서 도 看龍의 의견이 이렇듯 달랐다. 여기에 高麗때 金謂碑의 五德丘에 관한 해석도 만일 그의 의견이 정확한 것이라면 漢陽 은 風水上 지극한 吉地라 아니할 수 없게 된 다. 五 德 丘는 三 角 山 남쪽, 서울을 中心으로 한 五方의 五行山이란 뜻이다. 中央에 面岳(죽 白岳)이 모양이 圓하여 土德에 속하고, 北 에 維岳(積城)이 曲하여 水德에 속하고, 南에 冠岳이 尖銃하여 火 德 에 속하고, 東에 南行山(楊 1H) 이 直하여 木 德 에 속하고, 西에 北 岳(富平)이 方하여 金德에 속한 것 이 라 한다. 101 ) 金謂禪의 결론은· 이 五 德丘 의 中央인 土德, 죽 白丘의 터에 南京울 建腹하고 때를 따라서 巡駐 하는 것은 國家 社稷을 위하여 커다란 관계가 있는 것 이라고 한다 .102)

100) 裵宗鎬, 前描망, p. 140. 110012 )) 五李星丙 은熹 , 第前三掃章합 ,參 照p.p. 1 66~8.

이것은 風水上 五星歸垣, 혹은· 五氣朝垣, 또는 五星升殿이타는­ 至貴의 格에 해 당된다. 7k 星은 北에 장막을 치 고, 火星은 南에 솟 고, 木星온 東에 벌리고, 金星은 西에 솟고, 土星은 結穴되어 中央 에 居한 것이니 (前章 그림 3-4 참조), 局에 올라보면 四面이 서로. 비등하고 각각 그 地位를 언으니 이는 天地가 五氣의 精을 만들어 보인 것인 바 萬靈의 모임과 精氣의 綜한 바로 위에는 星辰이 應 하고, 아래는 方位가 맞이하여 至尊至 貴 하므로 만에 하나도 얻기 어려운 格이다. 다만 星辰이 眞正하여야지, ’ 기울어지거나 破碑되고 凶殺을 떠며, 혹은 遠近이 맞지 않고, 大小 高低가 마땅치 않으면

歸垣格율 이루었다고 볼 수는 없다 .103) 너무나 貴하고 또 찾기 어 려워 한 나라를 통불어도 있을까 말까한 格이기 때문에 術家에서도 五星歸垣格을 찾논 일을 망령 이 라고까지 말한다. 大龍이 結作되려면 萬山이 데를 지어 옹호해야 하는데 그러한 局 勢를 垣象이라하고, 이때 四正方의 山峰이 垣星이 된다(大龍結作萬 山族雅局勢構成垣象 四維山峰則爲垣星 ).104) 이 垣星이 다시 제 方 位를 찾아 빙 둘러싸인 모양 죽 歸垣이 되었으니 그 좋음은 勿論이 라할수있다.

103) 『明堂全 書 』 (韓松溪 譯 , 1975, 明文堂), pp. 243~4, 東谷, 前掃한, pp.1 14~6 . 104) 『地理正宗』, 卷十一, 「山龍語類」, 龍沙條 (19 68, 臺灣, 端成書局).

金謂碑가 말한 五德丘가 과연 五星歸垣의 局勢를 이룬 것인지의 여부는 역시 術家에 따라 榮否가 있을 수 있다. 요컨대 漢 陽울 매 우 요간하고 중요한 땅으로, 國家를 다시 한 번 홍륭케 할 수 있는 땅으로,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 주목될 만한 사실이다. 山의 모양을 보아 五星에 比定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앞서도 제시한 바와 같이 〈五星의 形體논 古人이 설명한 바, 條達 에서 象울 취하니 直한 것을 木, 炎炤에서 상을 취하니 尖한 것이 火, 厚重에서 상을 취하니 方한 것이 土, 周堅에서 상을 취하니 圓 한 것이 金, 流動에서 상을 취하니 曲한 것이 水이다. 따라서 山形 온 直釜한 것이 木, 尖說한 것이 火, 方正한 것이 土, 光圓한 것이 金, 曲動한 것이 水가 된다. 그러나 五星에서 形이 不純한 것이 變 格九星이 되는데, 그러므로九星온五星以外의 다른것이 아니다. (夫五星形體 古人演之 以條達取象於直爲木 以炎炤取象於尖爲火 以 厚重取象於方爲土 以周堅取 象圓爲金 以流動取象於曲爲水 凡山形直 釜者木 尖說者火方正者土光圓者金 曲動者水 但五星形不純者謂之 變格九星 其實九星不能外五星耳)〉 105) 비목 이렇게 설명이 되어 있다 하더라도 실제 山울 보면 直 혹은 圓 혹은 尖 혹은 方 혹은 曲 하듯이 단순하게 생기지 않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直하면서도 圓하고 尖하면서도 直하며 혹은 어느 것 에 비겨야 할지 알 수 없는 山形도 많은 것이다.

105) 『地理大全入門要缺J, 卷之一, 「論五星之形」(1 929, 上海, 中原書局) .

筆者 의 생 각으로는 金謂碑가 전실로 歸垣올 보고 五 德 丘를 주장 했을 것 같지는 않고 다만 중요성의 강조를 그와 같은 垣局에 比定 시킨 것이 아니었을까 여겨진다. 大縮尺 地形固上에서의 判斷도 말 그대로의 垣局 正格울 이룬 것 같지는 않다. 이와 관련하여 白岳울 木星으로 본 擇里志의 지적은 106) 그러나 타당한 듯하다. 白岳의 생김새는一見하여 直盜의 勢이기 때문이다. 漢陽 의 龍虎 인 愍 山과 仁旺山은 風水法에 크게 벗 어 나는 곳은 없 으나 몇 가지 문제접으로 지적되는 곳은 있다. 예컨대 朝鮮初에 尹 莘 達 이 〈 우리 나라에 서 松京이 가장 좋고 漢陽이 그 다음이 타〉하면 서 〈 단지 유감되 는 것 은 乾方인 北西쪽이 低下하고 明堂水가 柏洞 함 〉을 지적한 것이 그것이다. 景福宮 에서 보았을 때 오늘날의 北岳 山과 仁旺山 사이인 청운동, 자하문, 부암동 쪽이 乾方이 되면, 그 곳이 北岳山 (342. 4m) 과 仁旺山 (338. 2m) 사이 에 끼 어 100m 以下인 곳이기 때문에 尹莘達의 지적은 적철하다. 北岳울 主山으로 壬坐丙向의 南向으로 景福宮 正 護 , 죽 穴場의 坐向울 결정한 漢陽에서 乾方의 함물은 바로 黃泉殺이 되어 버리는 매우 思하는 地勢가 되는 결과를 빚는다. 穴場에 黃泉殺이 끼는 데 도 누구 하나 이것을 지적하지 않고 넘어 갔다는 것은 매우 기이한 일이다. 유독 尹莘達만이 乾方의 低下를 탓하고 있지만 그 역시 黃 泉殺울 지적하고 있지는 않다. 術家 에서는 黃泉殺이 들면 人亡 財敗와 官松 刑獄과 精神疾惡者 가 나오는 것 107) 으로 보기 도 하고 殺人 • 退財의 凶尼이 일어 나는 것 108) 으로 보기 도 하며 , 諸惡 中 最凶으로 109) 여 기 기 도 한다. 이 것 윤 보는 方法은 〈庚坐, 丁坐에 坤方이 虛缺하면 黃泉殺, 坤方에 서 庚, T 方 역시 不可, 興坐에 乙 • 丙方이 最嫌, 乙 • 丙方에 興方의 水破 不可, 甲 ?笑坐에 良向下可, 良坐에 甲 • 矣坐 不可, 乾坐에 辛, 壬向 不得, 辛, 壬坐에 乾向 不可, 卯辰己午는 異宮울 기피, 106) 『擇里志』 , 「八道 總論 」, 京畿道條, 〈白岳 形家言 衝 天木星 爲宮城之主 〉 . lfY l) 辛係柱, 1982, 『明堂學器論』, 中卷, p. 234 . 108) 東谷, 前掃書, p. 249. 109) 金榮昭, 1975, 『陰宅要缺』, p. '1:16 .

午未申酉논 坤方울 기피, 酉戌亥子는 乾 方이 그렇고, 子丑寅卯는· 良宮이 凶(庚丁坤上是 黃泉 坤見庚丁不可言 興向最嫌居乙丙 乙丙須 防興水先 甲矣向中休見良 良向須知甲矣顔 乾向辛壬行不得 辛壬水路 伯當乾 卯辰已午泊興宮 午未申酉坤莫 逢 酉戌亥子乾上立 子丑寅卯良 宮凶)〉 no) 이 다. 여 기 서 壬坐丙向의 穴온 乾方이 虛 하면 黃泉殺이 된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 수 있다. 漢陽 穴處에 黃泉殺이 들어 殺人, 財敗가 됨은 俗信 이니 알 바 아니지만 우리나타 겨울철의 寒冷 한 北西季節風이 虛缺된 乾方~ 통하여 몰아닥찬 것은 팔지의 사실이므로 이는 분명히 漢陽 의 風 水的, 現實的 立地上 취약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접은 서울 의 wi nd rose 에서도 명 백하다(그림 4-5). 따라서 地師 尹莘達의 지 적은 正統울 찌른 것이다.

110) 『地理大全入 F 뎅狂夫 』 , 卷之四, 「 論黃泉殺水 反 復 地支 總歌 」, (上 海 , 中原 랴 局, 1929), 第 3 章 坐向 論의 羅証 輪固版 두번째 IIll 參照 .

그립 4-5 서 울 겨 울철의 Wi nd -Rose

그러나 이 문제 역시 보는 입장의 差異나 看 龍上의 의견을 달리 하는 術家의 경우는 黃泉殺울 水口에 관련시켜 볼 수도 있는 것이 키 때문에 否定的인 견해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白岳, 仁旺, 略山, 南山에 의한 漢陽 四神砂의 결정은 都城의 築 造에도 그대로 이용이 된다. 城은 前記 그림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北은 白岳, 東온 路蛇, 西는 仁旺, 南山을 其 四至로 하여 高險한 , 곳은 石城 그렇 지 않은 곳은 土城으로 쌓아 全長 59, 500 尺에 달 하였다. 漢陽의 水流를 大觀하면 우선 明堂水의 경우, 四神砂로 부터 明 堂內로 流入되는 물은 開川 즉 지금의 淸溪川으로 흘러드는데, 과 거 지형이 도시전설로 인하여 크게 파괴되어 정확히 말할 수는 없 지만, 대체로 東流하여 都城울 지나 三水口로 나와 中浪浦로 流入 되는 형세이다(開川 白岳仁旺木堯諸谷之水 合而東流橫貫都城中出 三水口而入中浪浦 ).111) 현재 地形圖上에서의 판단으로는 水流의 發 源處인 得은 北岳山과 仁旺山 산록이 될 듯하고 이 것 이 北岳과 南 山 줄기의 山脚을 철개하면 거의 正東으로 오늘의 淸溪路를 따라, 흘러 上往十里洞에서 安岩川, 馬場洞에서 貞陵川울 合流하여 漢陽大 東편에서 中浪川과 合水된 뒤, 이 中浪川이 金湖洞과 聖水洞 사이 에 서 漢江에 流入이 된다. 죽 漢 陽의 明堂水인 淸溪川은 東大門쪽 의 丘陵地 때문에 직접 南進하여 漢江 방면으로느 흐르지 못하고 東 流를 하게 된 것이다. 漢江은 漢陽의 客水로. 北漢江, 南漢江의 二大줄기 가 楊平 兩水里 龍津에서 서로 합쳐 三角山 골짜기의 물을 받아들이면서 漢陽울 둘 러 싸듯 하며 北西進 入海한다. 따라서 漢陽의 水局은 明堂水와 客水 라는 두 가지 떤울 모두 살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得水 法을 알아야만 한다. 112) 水法의 개략을 살펴보면 〈水法에 있어서 來水 죽 得은 반드시 生 旺方位여 야 하고, 去水 즉 破는 死絶方向이 어 야 한다(諸書論水法者 有謂來宜生旺方 去水宜死絶方). >그 런데 〈寅, 午, 戌, 申, 子, 辰 111) 『新增束國輿地勝登J, 卷三, 「漢城府」, 形勝條. 112) 得水法온 第 3'¥ 에 서 詳說함.

의 여 섯 방위는 武曲星, 榮, 良, 甲, 辛의 네 방위는 廉貞星 , 興, 丁, 坤, 庚, 壬의 다섯 방위는 破軍星의 管局인데 이것들은 모두 右水左倒해야 吉하다. 已, 酉, 丑, 亥, 卯, 未의 여섯 방위는 巨門 星, 乾, 丙, 두 개 방위논 貧狼星, 그리고 乙向온 祿存星의 管局인 데 이것들은 左水倒右해야 길하다. 그렇지 않고 거꾸로이면 凶하다 고 본다. 이때 食狼武曲星의 水는 오는 것은 괜찮으나 홀러가는 것 은 不可하고, 文曲, 廉貞, 祿存星은 去는 可하나 來는 不可하며 , 巨門, 左輔, 右弼星온 來와 去가 모두 可하고 破軍星은 來와 去가 모두 不可하다. (有謂寅午戌申子辰六向 武曲星管局 矣良甲辛四向 廉貞星管局 興丁坤庚壬五向 破軍星管局 供宜右水倒左吉 已酉丑亥卯 未六向 巨門星管局 乾丙二向 貧狼星管局 乙向 祿存星管局 供宜左水 倒右吉 反此爲凶者 有謂食武水宜來不宜去 文廉祿水宜去不宜來 巨輔 弼水來去皆可 破軍水來去皆不可者)〉 ll3) 이것을 向上의 일어난 방위에 대비하여 漢陽의 明堂水와 客水롤 보면 (그림 4-6) 明堂水는 대 체 로 乾, 亥 方位에 서 와서 [來〕, 卯,

113) 『雪心試』, 辯論三十福, *法方位辯.

* 子

武 lrulll! l ]lJ1농 土 酒士 그림 4-6 水法方位圖

乙 방향으로 흘러 가고[去〕, 客水는 卯方에 서 와서 酉方으로 흘러 가는 것으로 보았을 가능성이 많다. 大緖尺地圖가 없는 상황에서는 정확한 方位 판단이 水勢의 굴곡까지 염두에 두고 내려지기가 거의 不可能했을 것이고, 또 보는 위치 (이 경우는 물론 景福宮 勤政殿 을 穴로 하여 보았을 것이지만 )114) 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 자신의 理論에 맞추는 방향으로 판단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114) 兪在賢, 1979, 「穴과 明堂의 關係문 롱하여 본 韓國傳統空r,ll의 中心槪念에 關 한 硏究」, 《울산공대 논문집》, 제 10 권, 재 2 호, pp.1 08~10.

이 렇 게 하여 보휴면 漢陽의 水法方位논 雪心賊에 서 의 理論에 그대 로 부합됨을 알 수 있다. 죽 明堂水가 來하는 乾方은 食狼星, 亥方 은 巨門星, 卯方 역시 巨門星이 되어 來함이 吉한 方位이고 去하는 卯方온 巨門星, 乙方은 祿存星으로 역시 去함이 吉한 方位가 된다. 그런데 이와 같은 水法方位法은 二十四方位로 나뉜 15° 간격의 차 이에서 吉凶울判別해야하는 術法인 만큼, 緯學的 해석은 가능할지 모르나 地形的인 合理性이나 采當性울 찾아보기란불가능한일이라 여겨진다. 漢陽 의 水勢에서 地勢的 合理性울 찾아볼 수 있는 것은 대체로 다음의 두 가지 경우가 아닐까 한다. 하나는 擇里志의 지적대로 水 口가 낮고 畿하다는 문제인데 客水인 漢江의 水口가 京畿道北西쪽 의 低平한 지대를 관류하기 때문에 적철한 지적이라 여겨지며, 이 것은 역시 冬季의 寒冷한 季節風의 直射를 의미하게 되어 緊落立地 上不利한 條件일 수밖에 없다. 또 하나는 소위 右旋局에 의한 內外水流逆勢혹은 山水逆勢의 局 面이 다. 漢陽은 白虎인 右枝가 길고 左枝인 靑龍이 짧아 右旋局이 라 할 수 있으며 따라서 西쪽으로 入海하는 漢江과는 서로 逆하여 있게 된다. 水流만을 보더라도 明堂水인 淸溪川이 東으로 都城內를 貫流하여 漢江으로 流入되는데 漢江온 西進하기 때문에 明堂水와 客水는 완연히 逆勢의 局面울 갖게 된다. 좀더 부연하면 漢江온 서 울 부근에서 漢陽울 北으로 감싸듯 돌며〔環抱〕, 서울 남쪽을 지나 北西進하는 大規模의 曲流河川 형태를 취한다. 이때 현재의 관악구 일대가 曲流河川의 攻擊面이 되고 용산구쪽이 p o i n t -bar 面울 이루기

대문에 漢江이 범 람하는 경우에도 po in t - b ar 쪽인 都城內는 비교적 안전하다고 볼 수 있다. 그에 겹쳐 明堂水가 客水오R 드 反對方向울 취하여 심한 범람이 일어나는 경우라 할지라도 急速度로 都城內가 侵게水다되는가 청것을계 천방은지 해po i주n t 고 -b a있r 다쪽.인 뚝섬에서 漢 江에 合流하기 때문­ 에 洪水發生時 都城內의 下水와 地表 7J (를 쉽게 排水할 수 있는 利 點을 갖는다. 즉 공격사면쪽에서 流入되는 支流가겁f流의 水壓 때 문에 排水不能이 되는 경우일지라도 po in t - b ar 쪽은 … 本流의 水壓이 훨씬 낮기 때문에 支流의 排水가 공격사면쪽보다는 훨씬 유리한 것 이 다 .115) 이러한 自然地形온 風水의 山水環抱, 水口關鎔, 山水逆 勢 와 일치 되는 것으로 風水理論이 現代의 衆落立地的 觀點에서 보더라도 타 당성이 있다는 좋은 근거가 되는 實例 이다. 결국 漢陽 은 雪心賊의 〈山衆處水或傾斜 謂之不善 水曲處山或散亂 謂之無情〉 116) 이란 語句에서와 같이 山 緊水 曲의 最善 , 有情의 땅이 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이에 대해서 母岳은 實錄에 나타난 바와 같이 河衛이 거의 독단 적으로 주장했던 땅으로 사실상 漢陽 에 비할 만한 곳이 되지 못한 다. 河福은 母岳明堂說을 내세우나큰 理由로 몇 가지를 提示하였다. 죽 母岳이 얼마쯤 좁은 것 같지만 開城의 康安殿이나 平壤의 長樂 宮에 비하면 다소 넓울 분 아니라 風水上의 條件이 前朝 秘錄이나­ 中國 地理法에 符合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諸臣의 주요 의견은­ 다음과 같다 .11 7) 鄭道傳온 母岳이 一國의 中央에 있어 交通도 편하고 利點이 있으­ 나, 불행히 한 洞內에 위치하여 宮 霧 과 朝市宗社를 넓게 잡을 수 없으니 王者의 居重御 輕 할 곳은 아니타 하였고, 成石璃도 山水의 遇會와 遺運의 편리함이 있어 좋다고 할 수 있지만, 明堂(坐處)이 傾空하고 後山이 低微하여 規局이 王者의 都邑에는 맞지 않다고 했 115) 權赫 在, 1980. 『地形 學』 , 法文社, pp. 89~92. 111167)) 李『雪丙熹心,試 正前解』擇, 합 ,卷 一pp,. 얽「 論7~ 地9.理 要略」

으며, 鄭德 역시 明堂이 基俠하고 主山 路漏하고 水口가 關鎖하지 못함윤 지적하였다. 거듭된 災都問題 논의에서 나타난 當時 重臣 및 地師들의 견해를 살펴보면 風 7k 가 新都選擇의 決定的인 요소로서 使用된 것이 아니 라 自身의 의견을 合理化시키기 위한 방편으로서 利用한 것이 아닌 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母岳遷都說에 대한 諸臣의 意見온 그 理論的 근거를 風水的 秘錄에서 끌어오기는 했으나 위에 引用한 바 와 갇이 現實的, 人文地理 學的 觀點에서 養否를 判斷했던 것이 아 닌가 생각해 볼 수 있을 정도로 合理的인 것이었다. 河器이 i鬪龍 山 位置가 國土의 南方에 偏在되어 道里의 不均衡이 일어날 것을\근십했던 것은 首都의 政治地理學的 위치를 의식한 판 단으로서 首都의 偏心的 位置가 中央的 位置에 비 하여 統治上, 國家 經濟 上 不利하다는 것 은 오늘날의 政治地理學에 있 어 서 는 찰 알려 진 사실이 다. 118) 많은 國家들이 結節性 noda lity을 갖는 都市를 發展기 반으로 가지며, 그 중에서도 가장 세력이 크고 영향력이 넓은 中心 的 位置의 都市가 首都로 發展이 된다. D. Wh itt lese y의 지저 처 럼 首都가 國家의 核心位置 core area 를 차지해 야 有利함은 주지의 사 실인 것이다 .119) 그럼에도 불구하고 河蓋의 이 주장은 설득력을 갖 지 못한다. 왜냐하면 國土의 中央的 位 置 인 것은 母岳만이 아니라 漢陽과 開京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111189)) 權B!寧i j植, 外H,ar m1 9J7.6 , de『, 國1防96地7理, 』S y, s博t e 英m 社at,i c pP .o 1l3i 0t.i ca l Geog r aph y , Joh n Wi ley & Sons, Inc. , p. 407.

母岳의 明堂이 좁고 後山이 낮다는 點도 首都의 立地條件으로는 不利한 것으로 認識되고 있다. 明堂이란 國都風 7]( 에 있어서는 都城 內를 의미하는 것으로 그것이 좁으면 궁궐의 조영은 물론이고 백성 이 살아가기에도 불편하며 朝市開設에도 難點이 있을 것임은 상식 적으로도 판단할 수 있는 문제이다. 여기서 後山 죽 主山이 낮다는 것은 都市立地論的 입장에서 어떤 단접이 될 수 있는가를 알아 볼 필요가 있다. 이에는 두 가지 측면 울 생각할 수 있는데 그 하나는 四神砂 中 北쪽玄武에 해당하는 主

山이 낮을 경우 겨울철에 불어오는 한냉한 北西季節風율 막아 주치 못하기 때문에 衆落立地로서 적합치 못하다는 접이고, 또 하나는 크 國防地理的 입장에서 都城 방위를 위한 天 然 의 地形이 미약하면 國 防에 취약접을 드러내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현재 漢 陽 과 母岳은 다같이 서울 特 別市域 안에 포함되어 있지만 ­ 母岳인 新村 일대와 漢 陽인 鍾 路, 中區 일대를 바교해보면 확실히 신촌의 明堂 넓 이 가 서 울의 buil t-u p area 인 漢陽 에 미 치 지 못함을 알 수 있다. 當時의 實 地形이 都市 建設 에 의하여 많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정확한 분석을 하기는 어렵지만 母岳이 漢陽 보다 그 主山이 낮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漢陽 이 廣 셰山脈의 一脈인 道峰 , 北 漢 山系 및 白岳에 의하여 거의 완벽하게 北面이 둘러싸여 있는 데 대하여 母岳온 그 위치가 漢陽 의 西쪽으로서 漢 江이 서울의 南쪽을 ~ 돌아 김포반도쪽으로 北西進하는 연변이기 때문에, 오늘에 있어서 도 西海와 강화도 앞바다를 통하여 北 西季節風 의 맞바람을 받는, 바교적 漢陽 에 비하여 겨울철 보내기가 불편한 지역이다. 上述한 바와 같은 매우 合理的인 理由에 의하여 결국 漢陽 으로 ^ 決定되고 말았으나, 그 논거를 삼았던 理 論 이 風水였음은 주의해야 : 할 사실이다. 이것은 저어도 國都나 都邑風水의 경우에 있어서는 現 實 地形의 立地的 諸條件울 참작하여 風水理論율 적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 측을 가능케 해주기 때문이다 .120) 이것은 筆者의 경험으로도- 風水理 論이란 것이 너무도 混雜하고 諸說이 분분하여 실제 相地에서는 ~ 惡鈴 鼻 惡鈴式이 될 소지가 큰 것으로 판단되는 만큼, 風水思想위 理解에 중요한 요소가 될 것으로 본다. 120) 崔昌 祚 1978, 前掃 畵 pp.3 1~2

7 錫龍山 都邑地의 立地와 風水的解釋 朝鮮朝 建都過程에서 鷄龍 山이 둥장한 것은 太祖二年 正月의 일 로, 當時政堂文學인 權仲和가 筋龍山 都邑圖를 獻上함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는 高麗朝 때부터의 相地官으로 醫藥地理 卜施縣有不 通 121) 으로 기 록된 風水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었다.

121 ) 太宗實錄 八年 十一月 , 同人史傳(李丙熹, 前掃 書 , p. 365 에 서 再引用).

그러나 鷄龍山온 諸臣의 反對論에서 명백히 제시된 바와 같이 위 치가 南方에 치우쳐 東, 西, 北 三面과 떨어쳐 道里의 균형을 얻지 못한 곳이고, 가까운 곳은 大河가 없어 還運과 用水가 불편하며, 海岸으로부터의 거리가 멀어 그에 따른 不便함이 상당함은 물론,. 둘레가 지금 國立公園으로 지정된 鷄龍山連脈에 의하여 깊게 둘러 싸인 일종의 좁은 山谷 盆地狀地勢이기 때문에 國都로서 漢陽 開京 이나 母岳에 비할 바가 못되는 國都로서의 立地를 운위할 장소가 되지 못하는 곳임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은 오히려 風水理論上의 논란과 圖謙的인 說 話가 횡 행 하는 곳이 기 도 하다· 크계 보면 漢陽과 같은 得水局과는 ­ 거리가 멀고, 開京과 유사한 藏風局으로 해석될 수 있는 곳이다. 筆者가 開京의 實地勢를 보지 못하여 확신할 수는 없으나 大縮尺地 形圖上에서의 판단만으로 보면 規局의 흡사함을 엿볼 수 있다.

예컨대 近祖와 主山의 구벌이 不可하다는 點, 明堂 이 陝陰 하고 砂城 이 극히 稷密하게 局面울 環 抱하고 있다는 點 , 水 勢 가 약하여 得水上의 문제를 안고 있다는 點 , 그리고 風 水上의 諸 理 論 이 부합 된다는 點 等 때문이다. 아마도 이와 같은 開京 과의 地 勢 的 類 似性 이 여러 不利點울 극복하고 國 都로까지 相地되었던 이유가 아니었 을까 여겨지기도 한다. 구체적인 相地 點 은 오늘날의 論山郡 豆 磨 面 夫南里 , 石 溪 里 일대 의 속칭 新都內(신도안)인데, 실제의 明堂 면적은 開京 과 큰 차이 가 없는 듯하지만 주변 山勢의 영향으로 오히려 넓게 보이는 知登 0 9 인 鎖 視를 일으키는 곳이다. 무슨 뜻인가 하면 公,川郡 鷄龍面 敬 天里의 불당 마을에 전하는 이야기에 李成桂가 산신령에게 〈 개성 땅은 좁아 앞이 내다 보이지 않는 고을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내 다보이는 여기를 선댁했읍니다 〉 1 2 2) 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즉 開 京은 588m 의 松岳山울 主 峰 으로 좌우에 170~200m 급의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인 데 대하여 新 都 內는 827.Sm 의 鷄龍 山울 主 峰 으 로 650m 치개봉, 575m 향적산 等 이 主 峰 과 연계되어 둘러싼 분 지이기 때문에 같은 盆地底面 積 일 경우 新都內가 훨 싼 더 넓게 보 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人間의 知 覺 은 감각기관에서 포착한 대 로의 모습이 아니고, 어떤 질서를 가지고 완성된 세계 123) 인 까 닭에, 밑면과 높이오P } 관계가 錄 視를 일으킬 가능성은 충분한 것 이다. 鷄龍山 新都內에 관련된 風水 및 圖識 的 解 釋 온 실로 무궁무전하 여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기에 本節에서는 當 時에 거몬되었 던 風水論理와 立地解 釋 上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만을 간추 려 검토해 보고자 한다. 鷄龍 山울 운위할 때 가장 두드러지게 자주 표현되는 말이 〈山太 極 水太極〉과 回 龍頓 祖라는 것인데, 이는 모두 鷄龍 山과 그 주위 山 )1l 의 形 勢 를 가지고 말하는 일종의 形局論的 術 語이다. 이 두 가 지 用語는 性格上 같이 해석이 가능하다. 山太 極 과 回 廊顧 祖란 결 112232)) 宮『 公 )l서| 英 1 의二 ,山 r河 建 』 ,策 1 的9 8空1, 間公 』 ,州 (郡1 9, 8p2 ., 1文19 錫. 昌譯 ), p. 32.

국 같은 形勢에 대한 二 重 表現으로, 진안의 마이산 덕유산의 脈이 무주―영동―-대전 東쪽―회덕을 거쳐 公j 1l 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 시 南쪽으로 方向울 바꾸어 公사 1 郡 鷄龍面과 反浦面의 경계를 따라 이어져 결국 逆 C 字形(그립 4 구)을 이룬다는, 즉 太極 혹은 龍勢가 머 리 를 돌려 근원을 돌아보는 顧祖의 形勢타는 것 이 다.

그림 4-7 懿龍山 山太極 水太極圖

水流 역 시 錦江의 줄기 가 장수―진안―무주―영 동-_대 전 東쪽-」} 강―공주 부여―강경을 거쳐 장항과 군산 사이로 빠지는 동시에, 용추골 용동리의 明堂水가 靑龍의 뒤를 돌아 크게 우회하여 錦江에 합류하는 巨大한 太極의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水太極이 된다 논것이다. 이때 水勢가 太極울 이루고 있다는 것은 의십의 여지가 없으나 山勢가 과연 마이산 덕유산으로부터 그렇게 길게 이어진 것일까 하 는 것은 의십의 여지가 많다. 地勢圖上의 판단으로는 마이 덕유산

으로부터의 連脈說울 감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術法上 으로는 察田峽처럼 밭을 뚫고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고 石脈온 界 水則止라는 風水原理를 어 겨 가면서 까지 連脈울 주칭·하고 있 기 때 문에 12 4> 凡眼으로 絶脈임을 단정할 수는 없다. 이것은 앞서의 그립 4-7 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錦江의 흐름에 따른 그 안쪽의 山의 存在를 水流에 맞추어 하나의 連脈으로 간주 한 결과인 듯하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地勢의 吉凶이 어떨 것인지가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 혼히 생각하는 바와 같이 山太極 水太極, 回龍顧祖의 鷄龍山이 最大 吉地이냐 하는 데는 異論의 여지가 있다. 먼처 太極說이 란 古代 中國人의 宇宙親으로, 宇宙의 進化過程으. 로는 宇宙源流에서 物質面으로 流來하는 無形(無極)에서 有形(太極) 으로 形成된 千態萬象의 生成原理法則울 論함이 다. 〈經에 이 르기 를 無極而太極이 라. 理는 氣에 붙어 살고 氣는 形에 둘러쳐 있다. 日月星辰은 剛氣가 올라가 이루어진 것이고 山川草木 온 柔氣가 아래로 모인 것이다. (經曰 無極而太極也理寫於氣 氣園 於形 日月星辰剛氣上騰 山川草木柔氣下疑)〉 125) 이는 즉 山 )11 의 근원 이 太極임을 밝힌 것이니, 形勢가 太極의 모양을떠고 있다 함은 ::L 곳의 山川이 根源的 吉格울 떠고 있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 이다. 다음 回龍顧祖란 龍身이 몸을 돌려 祖山울 돌아보듯 結穴된 것으­ 로, 苑轉한 回龍은 거 의 갈쿠리 〔掛釣〕와 같아 作穴되 지 않으므로 먼처 朝山울 作하는 것이니, 十里 二十里를 구애하지 않는다 126)( 그 립 4-8 ). 結局이 되기 위해서는 更精해야 하는데, 그 方法에 順結, 閃結, 橫結 逆結이 있고. 顧祖란 穴울 맺기 위해 逆結이 되는한형대에 지 나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 塚玉芹에 〈第二結局更精玄欲求穴的明分合 何謂結局直來而摘背者名順結者也 順來而斜出者名閃結者也 正來而側 落者名橫結者也 或者身而顧祖或轉面以當潮極之 或如倒騎之類供逆結 124) 束谷, 前描 書 , p. 54. 112265)) 韓『松地理溪正,宗 』前,損 書卷,一 ,p p「.1 靑0裏l經~」2., 下卷.

째:/

`왜 그림 4-8 回龍頭祖脈圖

者也 此可知四落之中有四結矣〉 127) 라는 귀 철에 이 런 내 용이 담겨 있 으며 결국 回龍顧祖도 結局하기 위한 하나의 좋은 方法일 분 極上 으로 취급되고 있지 않음은 分明하다고 본다. 게다가 〈鷄龍山은 웅장하기가 五冠山에 미치지 못하고 수려함도 三角山에 못미칠분아니라, 前面에는朝水가적고다만錦江한줄 기가 山을 둘러 돌았을 뿐이다. 무릇 回龍顧祖의 땅은 본래 力量이 적온 곳이기 때문에 中國의 金陵울 보더라도 128) 언제나 한 쪽의 覇 者 노릇만 하는 고장이 되었을 분이다. 그러므로 明의 太祖가 金陵 에서 비록 天下를 統-하였으나 세대가 바뀌자 도읍을 옮기는 일을 떤치 못하였다. 따라서 鷄龍山 南쪽 마을은 漢陽과 開京에 바교하 면 기세가 크게 떨어전다. (鷄龍則雄不及五冠 秀不及三角 前面又少 朝水 只錦江一帶廻龍身而已 凡回龍顧祖之地本少力甄 誰以金陵觀之 127) 『塚玉芹』, 卷之二上, 點穴歌. 128) 金陵온 回龍顧祖形의 땅입 .

每爲偏覇之邦 明太祖 雜 一 統易世之後 未免遷都 故 災 9 龍南洞 比 漢陽 開城 氣勢 選遜又局中平地少而 東南又 不 敵害 谷)〉 129) 고 하여 오히 려 都城立 地로서는 문제가 있음을 지적할 정도이다. 또 한 가지 鷄籠 의 결정 적 홈으로 지적된 것이, 소위 胡舜申의 〈水破長生 喪 敗立至 〉 의 땅 이란 것이다. 胡舜申의 說을 위시한 이에 관련된 諸說온 前章得水 坐向節에서 詳論하였으므로 여기서는 이와 직접 관련된 부분만 개 략 소개하겠다. 우선 水法의 大原則이 〈오는 곳 죽 得온 吉方, 나가는 곳 죽 破 는 凶方으로 되어야(大 率欲 水 各 自其吉方來凶方去)〉 130) 한다는 것인 데 鷄龍山온 山自乾來로 乾 온 金山이 되며 左旋局에서 辰興已方이 食狼星으로. 吉方이 되고, 申庚酉方이 武曲星으로 역시 吉方이 되며 따라서 新都內의 明堂水가 辰興已申庚酉方으로 흘러가면 吉方位가 되어 소위 裵敗立至가 되어 버란다.

129) 『擇里志』, 「 卜居 總論 」, 山水條. 130) 『地理新法 胡舜申.!, 卷上, 第四 「水 論 」.

우선 山이 乾方으로부터 왔는가가 문제인데, 현재 신도내의 圓 佛敎堂 부근을 穴로 하여 계룡산 정 상의 方位를 보면 亥 方으로 많 이 치우치기는 했으나 거의 乾 方 (N45°E 를 中心으로 좌우 各 7.5° 주변 방위)이라 할 수 있어 金山에 比定시킨 것은 오류가 없다고 하겠다. 또 去方 죽 破 역시 穴에서의 方位가 興 혹은 已方位가 툴 림없기 때문에 이곳은 누가 보아도 得 7k 의 原理를 어기고 있는 곳 이라 판정이 될 것이다. 특히 上記한 바와 같은 河 蓋 의 지적에 대하여, 太祖가 그 合否를 증명하기 위한 조사를 高麗朝 諸 山陵의 山水來去 형세와 관련시켜 보니, 역시 吉凶이 거의 맞는 듯하여 鷄龍 山은 食都 후보지에서 탈 락되었다. 현실저으로도 明堂 주위 山둘의 最高峰과 水口인 破方이 乾方과 興方 식으로 180° 의 정반대되는 局勢률 취하는 경우, 明堂 울 번쩍 들어 破方으로 쏟아 붓는 듯한 환경지각적 양태를 떨 수 있기 때문에, 참깐 보아서는 느낄 수 없지만 장기간 居住하면서 이 미지를 인식함에 이르러서는 地勢的 不安感율 야기시킬 수도 있다. 부연하면 鷄龍山울 頂點으로 치개봉, 민목재 쪽의 靑龍山勢와 멘

재, 香萩山 쪽의 白虎山勢가 合하여, 즉 四神砂 中 玄武, 靑龍, 白 虎勢가 그 계곡의 물을 모두 明堂울 휩쓸어 봉보 협곡쪽으로 몰라 게 하는 듯한 기분을 갖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결접을 갖고 있는 鷄龍 山이 어떻게 해서 相地의 물망에 올랐고, 그것이 수포로 돌아간 뒤에도 오늘날까지 계속 吉 地의 대명사처럼 꼽히고 있는 까닭이 무엇인가는 홍미있는 문제이 다. 이것은 風水보다는 오히려 圖識的인 解釋이 가해쳐야 될 듯하 다. 本考의 법위 밖으로노, 논리가 매우 회박한 筆者 의 主觀的인 생 각으로는, 우선 相地된 까닭이 當時 유행하던 秘記類에 이곳이 끼 어 있었을 수 있고, 무엇보다 開京에 유사한 地 勢 로 그에 이끌렀을 가능성이 크며, 山 勢景觀 의 수려함에서였을 가능성과 그 후 開京과 의 유사성이 오히려 新王朝에 불리함이나 불쾌감으로 변질되어 이 곳을 포기한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風水論理는 그에 따라 얼마돈 지 신축성 있게 조철할수 있는 일이고, 실제 莫都論議 過程울 보면 그런 例가 많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아다. 이것이 그 후 前王朝에 대한 懷古 , 悼問의 情과 결부되어 새로운 圖識的思考 로이어져 내린 것이 아닌가하는·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그 뒤에 流行된 鄭鑑錄類 에서 李氏가 아닌 새로운 王朝의 도래를 이곳에 고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風水說과 圖諒說의 결합은 물론 高麗 때부터 있어온 것인데, 風水 理論이 自然科 學 的 性格울띠고 있다면 圖識은 政治 • 社會學的 경향 성을 며고 있어, 이것이 오히려 風水說의 발전을· 처해하여 온 요인 이 아니었을까 여겨지기도 한다. 어떤 理由이든간에 鷄龍山온 風 水 • 固識說의 結合過程울 눈여겨 볼 수 있는 좋은 硏究對象地域이 기도하다. ' 한 가지 부연할 수 있는 것은, 上述한 地勢的 不安感울 야기시킬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 鷄龍山 新都內인 까닭에 末世論的鄭鑑錄 信仰의 이 곳으로의 集中을 돋우지 않았을까 하는 의 십 이 돈다는 접 이다. 환경상의 不安感 造成이란 風土가 末世論과 결부될 수도 있 기 때문이다. 이는 宗敎發生과 發達의 風土論的 說明이 되기 때문에 단정할 수는 없으나, 앞으로의 연구 과제로 삼을 만하다고 본다.

제 5 장 陽基風水와 陽宅風水

1 陽基와 陽宅 風水가 二大分되어 生者의 居所를 취급하는 陽 的인 風水와 死者 의 居所를 다루는 陰 的인 風水로 나뉠은 前述한 바와 같다 . 이때 陰 的인 風水를 陰 宅風水로 부르는 데는 이의가 없으나 陽 的인 風水 호칭에는 陽 基와 陽 宅이 混用되어 분명한 개념의 정의가 필요하다. 村山智 ) I 頂온 陽 宅이란 用語를 부정하고 陽基가 맞는 말임을 주장 하면서 그 이유로 宅과 基가 모두 사람의 住居에 관계되는 용어이 기는 하지만 宅이 주로 用語의 慣 習上 사람이 들어가서 사는 것을 ­ 가리키는 말인 데 대하여 基는 그 宅울 포용하는 袋地를 칭하는 말 이기 때문에, 陰宅의 경우는 死者를 땅속에 파묻는 까닭에 宅과 ~ 의 區別이 없어 결국 住居의 의미로 陰宅이 맞는다는 것이다. 그러 나 生者의 住宅, 즉 보통의 家屋은 益地와 建築物이 二分되 며 이 때 生 氣 에 감응받는 것은 建築物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지지하는­ 袋地, 죽 땅의 生氣에 영향을 받는 것인 만큼 陽基가 맞다고 보 았다 .l) 袋地가 중요한 것이지 그 위에 조성된 건축물의 大小壯兩가 문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陽基를 주장한 듯한데, 이는 風水 典 籍上에 나타나는 用語의 用例를 살펴볼 때 찰못된 판단임을 알 수 있다. 우선 建物의 造營樣式이 중요치 않다고 하였으나 陽宅風水에 있 1) 村山智順, 1931, 『朝鮮 0 風水』, pp. 637~8.

어서는 基地選定 못지않게 건물의 方位와 配 置 가 至大한 영향을 居 住人에 미찬다는 일반적인 風水 論 理가 認 定되는 만큼, 이 접은 논 리 구성에 있어서 찰못된 인식출발이라 할 수밖에 없다. 또 하나 陽基와 陽宅이라는 用 語 는 漢字의 뜻풀이에 의하여 兩 者 擇 一할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접이다. 찰 알려진 風 水 書 에 의하떤 陽基 와 陽 宅은 엄격히 구분되어 사용되고 있는 것을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都邑이나 郡縣 둥 衆落 風 水에 있어서는 陽 基률 사용했고, 個人의 住宅에 있어서는 陽 宅이란 용어 를 사용하였 다. 論理的으로도 衆落 의 基地에 는 陽基 를, 그리 고 住宅의 경 우에 는 陽 宅울 쓰는 것 이 타당하다. 그에 대 한 몇 가지 代表的인 例롤 들면 全五 集 으로 구성 된 地理 陽 宅大全 2) 과 全四卷으로 구성된 陽 宅三要缺 3), 그리고 民宅三要 4) 가 모두 堡地가 아닌 건축물의 배치와 방위에 내용을 집중시키고 있는 접과 上掃 地理陽宅大全 卷之五에는 별도로 陽 基論을 제시하여 畿 1ii), 省城, 郡, HI 邑, 市井鄕村의 基址를 잡는 方法울 제 시 하고 있 다는 접 , 入地眼全 書 의 卷十 陽 宅편에 서 도 5) 역 시 건축물에 내 용을 집중하고 있으며 歸厚錄 陽基 章 에서는 6) 京師,郡邑, 村落市 鎭 울 말 하고 있다는 접 等에서 分明히 陽 宅風水는 住居 建造 物, 陽基 風 7k 는 衆落立地를 지칭하는 用語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 『地理 陽 宅大全』, 1975, 臺灣 , 集文 합 局 3) 『 陽 宅三要缺』(高 麗 風水地理 學會編 ), 1981, 陰 陽 脈 軫 出版社• 4) 民宅三要는 筆者가 소장하고 있지 못한 책 이 다 . 兪在 賢 , 〈民宅三要 문 몽해 본 韓 國傳統住宅의 配置計 劃論 〉, 《운산공대연구논문집)), 제 10 권, 제 2 호, pp.8 1~102 에 그 內容이 제시되어 있음. 5) 『入地眼全 합J , 1976, 臺潤 , 竹 林합 局. 6) 『 챔 校地理正 宗 』, 1968, 깡灣 端 成 말 局, 卷 四 및 『 地理大成 平 陽 全 촙 J, 年代未 詳 , 上 海 , 九 經합 局, 卷六.

2 陽基와 陰宅 陽基 • 陽宅과 陰宮은 風水術法이 같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는 경 향이 있다. 십지어 風水 方法論上 反對인 것으로 오인하는 경우마 처 있으나 이것은 전혀 그렇지 않다. 雪心賊에 〈陽宅이 陰宮과 다 론 접은 그 地 勢 가 넓어야 한다는 點이다. 局面이 좁으면 안된다. (若 言陽宅何異陰宮 最要地勢寬平 不宜堂局運空)〉는 구철이 있는데 이 의 解義에 서 陽基와 陰宮의 法術이 다르지 않음을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밝히고 있다• 죽 〈陽宅은 사람 사는 곳이고, 陰宮은 壇墓이 다. 陽宅 이 든 陰宮이 돈 그 祖山, 來龍, 過,峽, 起, 頂과 靑龍, 白 虎, 朝山,案山, 羅城, 水口 等이 두루 같은 것이지 다른 것은 거 의 없다. 다만 다론 접은 陽宅 의 경우는· 그 穴場이 넓어야 하고 陰 宅의 경우는 穴場이 곽 짜이게 좁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소위 陽地는 面이요, 陰地는 線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陽宅은 반드시 그 地勢가 寬平하고 明堂의 규국이 넓어야지, 그렇지 못하고 가깝게 붙고, 좁아서 답답하면 뭇사람의 집을 포용하기 힘든 것이다. (陽 宅居址也 陰宮壇墓也 言陰陽二宅 其祖山來龍過峽起頂與夫龍虎朝案 羅城水口件件供同所 不同者陽宅穴場關大陰宅穴場空小 所謂陽地一片 陰地一線者是也 故陽宅則要地勢寬平堂局關大而不宜運近空峽難容衆 居也)〉 7) 따라서 陽基를 보는 경우 모든 것을 陰宅 보는 方法에 준하여 8) 7) 『雪心賊正解』, 卷四, 「 論溫 宅」 8) 第 3 章 參照.

생각하면 될 것이고 다만 規局이 衆居를 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넓 은지 여부에만 신경을 더 쏟으면 된다. 이에 대해서는 陽宅大全에서 더욱 분명히 하여 〈陽基의 모든 法 이 陰地의 龍格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夫觀腸基之龍 其起祖出身 行 度過峽 枝脚桃悼 容落傳 變 入首等法 與陰地 龍 格無異)〉 9) 고 언명 하~ 있다. 그러 나 山水緊合의 규모가 큰가 작은가 하는 데 따라서 陽 基의 종류는 탈라져야 하는 것이니 〈제일 넓은 곳에는 畿 每이나 省城이, 그 다음 규모에는 郡이, 그보다 작으면 쎄邑이, 그리고 아주 작은 곳에는 市井이 나 鄕村이 들어 선다〉 10) 고 보았다. 塚 玉芹에 서 는 이 것 울 달리 표현하여 〈龍이 수천 리에 이르면 京 都 를, 수백 리면 省 郡 울, 백여 리면 쌔邑울 이루는데 市 鎭 과 鄕村이라도 반드시 수십 리 는 되어야 한다. 이것보다 짧으면 力 量 이 重 히 볼 것이 없다. ( 陽 基之龍 京都則 數 千里 省 郡 則 數 百里 캐邑則百 餘 里 則市 鎭 向村 亦必、 數 1 병里 下此則力 量 必不 重 也)〉 11) 고 하였다. 人口扶 養 力이나 食水 및 生活用 7k 의 공급 그로]고 袋地의 확보라 는 측면에서 이와 같은 陽基 風水 論 理는 대단히 合理的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陽基가 平野인가 山谷인가에 따라서는 근본적인 차이가 발생한다. 平野인 경우는 得水가 중요하고 山谷인 경우는 藏 風이 우선된다. (却有平支 山谷之不同 平支得水 爲 美 山谷 藏 風爲佳)〉 12) 平野地帶인 경우 寬平의 욕구는 만족시키지만 대체로 大江 연변 에 立地하는 관계로. 그것이 水害이돈 早害이돈 江의 피해에 대한 대 책이 제일 먼저 마련되어야 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明堂 水流 에 관계되는 得이라돈가 破, 水口, 그리고 水 勢 坐向 等 得水法에 관한 風水術올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山谷의 경우는 水害가 크게 문제시되는 立地가 아니기 때둔 9) 『 陽 宅大全 入門要 缺 J, 卷 之五, 「 論陽 基 龍 穴砂水大 槪 J. 10) 『陽 宅大全 J , 卷之五, 「 陽 基 總論 」. 11) 『 塚玉1'f, j , 卷之十二, 「 論陽 基」. 12) 『陽 宅大全 』 , 卷之五, 「 腸 基 總論 上

에 得水에 대한 術 法을 우선시킬 필요는 없다. 이때는 오히려 回風 의 두려 움 13) 等 局 地 氣 候的인 영 향력 의 중요성 때 문에 얼마나 安떤 한가 하는, 다시 말해서 주년 山 勢 의 環 抱性을 영두에 두어 藏風 法 術에 치중할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어떤 경우이돈 陽基 는 한 번 결정되어 定地가 되어버리면 옮겨가 기가 매우 어렵거나 不可能한 속성을 지닌다. 그러나 地 氣 의 哀 運 을 방치할 수단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碑補說이 등장할 수 있는 소지가 마련된다. 그러나 風水 書 에는 대부분의 경우 碑補에 대한 소개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우리나타의 경우 高 麗 時代 이태 佛力 等 신비한 힘에 의지하여 地 德 울 碑補하는 일이 많았던 것으 로 보아 이는 韓國 風 7k 의 독특한 性格이 아니었을까 여겨진다. 이때에도 陽基 를 碑補 하는 方法은 상당한 타당성을 지닌다. 예컨 대 高麗 時代 碑 補 寺 塔 의 경우 前 章 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부분이 중요한 衆落 을 貫 流하는 大河 )II 支流의 合流點 부근이나 水口에 자 리잡은 것인데, 寺쭙 U 에 저장된 人力과 財力으로 災害룔 감시 대바 코자 하는 의도로 해석할 수도 있다. 또 하나 陽 基에서 자주 거론되는 것에 李 重煥 의 擇里志 中 해당 부분이 있다. 그러나 擇 里志는 여러 학자들에 의하여 科學的 體 系化를 이 룩한 人文地理 學 14) , 地理的 環境 論 15), 地理 學 으로서 의 理 論的 構 成울 지닌 近代地理 學 16) 等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에서 안 수 있는 바와 같이 風水說 그자체로서 받아들일 수는 없는 책이다. 李 重 煥은 人間과 自然과의 관련성을 기반으로 緊落의 最適 場 所 op - tima l s it es 를 발견코자 하는 目的으로 歷史的, 記述的, 地域的, 系 統的 접 근방법 을 사용하여 相 對 的 立地와 環境知 覺 envir on menta l pe rcep tion 울 중시 하였 던 매 우 회 귀 한 實學 派의 지 리 학자였 다. 17 ) 그는 住居의 立地條件으로 地理, 生利,人心, 山水 네 가지를 제 13) 回風에 대해서는 第 衍 P 「十 勝 地」 부분에서 詳 述합. 14) 徐樹仁, 1963, 「擇里志硏究序說」, 《 地理 學》 , 第一 號 , 大 韓 地理 學會 , pp. 83~90. 15) 盧 道臨 1963, 「八域志, 可居地 解說 」, 《 地理 學》 , 號 一 號 , pp. 91~6 . 1167)) 洪Ho以n g燮 -K , e1y9 4Y9,o o『n 朝, 鮮19 科71 學, 史T』a,e k正ri -音 ]i 社;, A pKp.o 2r5e0a~n 51S.e tt lem ent Geog r aph y , Bri• gh am Young Univ . Press, Ut ah .

시하였는 바, 그 중에서도 地理 條 件 울 가장 중시하여 이것울 다시 여섯 가지로 세분, 제시하고 있다. 첫째, 水口는 慕 5 鍊 空 腦 하지 않 고 반드시 關 鎭이 있고 안으로 평야가 전개되는 곳이 좋은데 關 鎭 은 이것이 서로 겹칠수록 大吉의 地 勢 라 하였다. 둘 째 , 野勢 는 무 릇 사람이 陽 基를 받아야 하므로 天光을 많이 받을 수 있는 膜野 가 더욱 吉地라 상정하였다. 세째, 山形은 주위의 山이 너무 高壓 하여 해가 늦게 뜨고 일찍 빠지며 밤에는 혹간 北 斗星 도 보이지 않는 곳 울 가장 꺼리는데 이런 곳은 陰 冷하여 안개와 盛氣 와 雜鬼 가 침입 해서 사람을 병들게 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큰 들판에 낮은­ 산에 둘린 것은 山이라 하지 아니하고 모두 들이타 한다 . 그것은 하늘빛이 막히지 않고 水 氣 도 멀리 통하기 때문이다. 祖宗되는 山의 山 勢 는 樓閣飛揚 의 形勢 에 主山은 秀麗 , 端 正, 淸 明, 軟 鬪 한 것을 上으로 삼고, 來龍 이 斷 脈, 綠酒 , 頭純 하고 生 氣 가 없는 山形은 꺼란다. 네째, 土色온 砂土로서 굳고 촘촘 하면 우­ 물물이 맑고 차서 살만한 곳이 된다. 만약 赤 帖 土, 黑課 土, 黃細 土 (누런 진흙)이면 死土로 우물물에 旅氣 가 있어 몸에 좋지 않고 人 材가 배출되지 않는다. 다섯째, 水理는 山水가 相配해야 조화의 묘 를 다하는 것 인 만큼 물이 없는 곳은 사람이 살 곳이 못 된다. 득 히 陽基는 陰宅과 달라서 물은 財 祿 울 主 管 하는 것 이 기 때 문에 積 7k 의 濱에 富厚의 집과 名村 盛 坡 가 많다고 하였다. 또 비록 山中이라도 시냇물과 洞水가 모이는 곳이라야 여러 代를 이어가며 오 랫 동안 살 수 있는 터가 된다. 여섯째, 朝山 朝水의 문제인데 朝 山으로는 山 이 멀떤 淸秀하고 가까우면 明淨하여 一見 사람을 歡喜 케 하고 僧 惡하는 모습이 없으면 吉相이다. 朝水는 小川小 溪 는 逆 潮 함이 吉相 인데 大川大江에 있어서는逆으로흘러드는 곳이 결코 좋지 못하다. 무릇 大 7k 를 逆하는 땅에 定한 陽 基나 陰 宅은 처음에는 興旺하지만 오래되면 敗 滅 하게 마련이다. 물이 홀러오면 반드시 龍 과 向合하여 그 陰陽울 合하고 또 꾸불꾸불 흘러 서 천천히 가야 하며 直射하듯 흐 르는곳은좋지 못하다. , 다음 生利논 財利를 경영하여 넓힐 수 있는 人的, 物的 資源이 집 중하여 交換이 이 루어 지는 結節地點 죽 sit e 와 sit ua ti on 이 모두 유

리한 장소를 꼽았고, 人心은 자신과 자녀의 교육을 위하여 地方의 風俗이 薛厚한 곳을 말했으며 山水는 정신을 즐겁게 하고 감정을 화창하게 하는 곳을 제시하였다. 특히 山水에서는 장황하게 八道의 名山大川울 설명하여 風 7k 의 實用的인 해석에 도움을 주고 있는데, 역시 實學者답게 山水가 좋은 곳은 生利가 박한 곳이 많음을 주의 주고있다. 그래서 그는 그 代案으로 기름진 땅과 넓은 들에 地勢가 아름다 운 곳을 골라 집을 짓고 살면좋다고했다. 그리고 十里밖 혹은 반 나질 걷쯤 되는 거리에 경치가 아름다운 山 7k 가 있어 매양 생각이 낱 때마다 그곳에 가서 시름을 풀고 혹은 유숙한 다음 돌아올 수 있는 별장 같은 것을 장만해 둘 것을 권하기도 했다 .18) 18) 『擇里志』, r 卜居總論」.

3 都邑의 風水的解釋 1. 風水的 思考의 導 入 府,牧, 郡, 縣 이돈 自 然 部 落 이돈 우리나라의 傳統 的인 緊落 중 에서 그 立地가 風水的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고을은 없는 듯하다. 그 영향이 긍정적이돈 부정적이돈, 그 결과가 合理的인 것 이돈 非合理的인 것이든 衆落 立地와 風 7k 가 깊은 관련성을 맺고 있 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보는 입장에 따라서 상당히 차 이가 나논 평가가 나올 수 있겠지만, 風 7k 가 衆落 立地에 깊은 영향 울 미찬 것이 분명한 이상, 地 域 性울 밝히고자 하는 地理 學 에서 이 에 대한 硏究가 필요한 것은 재언의 여지조차 없다. 그러나 本 書 에 서는 주로 風水說의 原理구명에 치중하고 있는 만큼 본격적인 解 釋 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다만 지금까지의 硏究例와 문제접을 제시하 는 정도에 머물 수밖에 없다. 人間住居地로서의 風水的 思考의 도입은 北半球 中 緯 度 地域의 경우 일반화된 현상일 수밖에 없다는 論 理는 前 章 의 해당 부분에 서 누차 언급한 바 있다. 그것이 風水說로서 정착된 것은 상당히 後代라 하더라도 人間의 상식으로 선택할 수 있는 住居의 立地란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극히 난삽한 論理이기 논 하지만 오늘날의 캠프사이트 cam p sit e 선정이 어떤 기준에 의하 여 결정되는가 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캠프 場 適地採 點 表 l9) 19) 國 際觀 光公社, 197s, r 國 民 觀 光開發理 論 및 外 國 의 開發事例.!, p, 181.

에서 가장 理想的이라고 하는 場 所 중 自然的 條件만을 간추리면 〈山林地에서 全方向 排水가 가능하고 表土는 흙이고 그 아래는 모 태이며 찬디가 깔란 原始林으로 뗄감이 많이 있거나 樹脂가 많은 切 木이 있는 곳, 緩 傾斜地로 청결하고 맑은 물이 근거리에 있는 장소〉 가된다. 原 始 策落 의 경우는 여기에 食料 문제가 결부되어야 하는 만큼 보 다 복잡한 立地 양태를 보일 것이지만 사이트로서의 조건은 위 기 숟 내용에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본다. 다만 原始 緊 落의 경우는 飮料 와 食 料 채취의 편이 때문에 海岸이나 河岸에 立地하였다는 증 거 2 0) 가 있는 만큼, 우선 물과 立地오P ] 관계는 정립이 된 셉이다. 그 후 접차 內 陸 쪽으로 옮겨가는 현상을 보이는데 그린과정에서 山 이 이입되었을 것이며 결국 山水相 補 라는 基本的인 風水 觀 念이 마 련되었으리라 본다. 아 접은 古壤의 입지 추이에서도 나타나는데, 초기의 北方式 支石 墓 는 강변에 면한 구릉사면, 평야 等에 群울 형 성하고 산악지대에는 거의 볼 수 없으나 A.D.2~3 세기경부터는 강 번 평지에 묻던 무덤이 산기슭이나 중턱으로. 옮겨가고 둘 역시 냇 돌이 아닌 산돌을 쓰는 경향을 볼 수 있다 .2l)

20) 高承 潤 1979, 『 韓國 村 落 社 슝 史硏究J, 一志社, pp. 9~53. 21 ) 김 원통, 1974, r 한국의 고분J, 세 종대 왕기 념 사업 회 , p. 57 및 p. 87.

風 水的 思 考觀 念온 먼저 물과 결부되고 그 후에 山이 이입되는 과 정이며, 이것아 후에 風水說로 정착됨에 있어서도 역시 山水 중 水 믈 더 중시하는 경향으로 발전되었다. 예컨대 郭漢의 葬 書 에 〈風水 之法 得水 爲 上 藏 風次之〉나 德龍經 의 〈諸水 票 則 諸山洪矣〉 그리고 胡 舜 申의 地理新法에 〈山如人之形 體 水如人之血脈〉이라~ 귀철과 雪心賊의 〈衆山止處是 眞 穴 衆水 緊處 是明堂〉等이 모두 水가 山에 先하는 것을 표현한 대목들이다. 이렇게 하여 山水相 補 와 衆落立地가 不可分의 관계를 맺게 되며 이의 모식적인 현상은 第 4 章 國都風水解 釋 에서 기술되었으므로 여 기서는 주로 朝 鮮 朝 邑衆落의 및 가지 경우만을 골라 기술코자 한 다.

2. 邑緊落의 槪念과 地域選定 여기에서 使用한 邑 緊 落의 槪念은 朝鮮 朝의 地方制度에 연원을 두 고 있다. 現在 人口 2 萬 以上으로 규정되어 있는 邑과는 別個의 개 념임은 물론이다. 2 萬人 以上의 人口를 가지고 都市形 態 를 취하고 있는 곳을 邑, 5 萬 人 以上의 人口를 가지고 都市形 態 를 취하고 있 는 곳을 市로 규정하여 22) 이 兩者를 都市的 범주에 집어 넣는 行政 槪念과는 일개이지만 朝鮮 朝의 邑 緊落 도 都市的 槪 念 에 귀속시키고 있는 접은 같다 . 여기서 朝 鮮 王朝의 地方制度를 설명할 필요성은 느끼지 않으나 邑衆落의 槪念울 명백히 하기 위하여 그와 관계되는 부분만을 略述 하면 다음과 같다. 朝 鮮 朝의 地方行政재도 2” 는 대 체 로 1413 年( 太宗 13 年)의 개혁이 있은 뒤에는 큰 변동이 없었고 法規는 經國 大 典 의 기록이 요강을 이루는데, 全國을 八道로 나누고 그 밑에 4 府, 4 大 都護府, 20 牧, 43 都 護 府, 82 郡, 175 縣울 둔 형 태 였 다. 京畿, 忠淸, 全 羅 , 慶尙,江原, 黃海, 咸 鏡 , 平安 等 八道 2 4) 에 는· 漢城, 公 1H, 全 1 t I, 大邱, 原 1H, 海 1H, 咸興, 平 壤 에 監 營 을 두고 各道 觀察使를 배 치 하였 다. 26) 觀察使는 方伯이 타고도 하여 그 밀 의 府尹, 府使, 牧使, 郡守, 縣令, 縣監 等의 守令을 동할하고 감시 하 였다. 府,牧, 郡, 縣의 階 層 은 國家와 王室의 중요성 , 土地의 廣俠, 戶口와 田結의 多少로 區分하였으나 例外도 많은 편이다. 이들은 모두 道金下에 있는 並列의 단위로서 통례적인 명칭을 고울[邑〕이 라 하였기 때문에 府, 牧, 郡, 縣의 廳 舍所在地를 邑衆落 혹은· 邑 內라 일컫게 된 것이다. 朝鮮王朝는 강력한 中央 集 權的官僚國家로서 前朝에는 鄕吏가 統 22) 姜 大玄, 1981, 『都市地理 學』 , 敎 學社 , pp. 2~3. 23) 韓 國史關係文 獻 운 다수 창조하였음. 異說 이 없는 부분인 듯하므로 出典은 생 략합. 24) 道名은 변천이 있 었으나 생 략함. 25) 監營의 위치도 변겅이 있었으나 本考와 칙접 관련이 없어 생략하였음 •

治하던 屬郡,屬縣, 鄕, 所, 部曲 等 各 任內를 모두 페지하고 地 方울 中央의 派遣官이 직접 관장하도록 하였다. 따라서 邑緊落의 게 념은 上記한 바와 같이 府, 牧, 郡, 縣의 鹿舍所在地로 정의하여도 좋고 혹은 中央官僚의 地方統治抵點으로 보아도 무방하리 라 생 각 한다. 이와같은 邑緊落의 수는 기록과 時代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는따 앞서 제 시 한 經國大典에 는 328 個이 고, 太宗朝 改革 後의 초기 에 는 약 360 個였던 것이 접차 줄어들어 世祖朝에는 334 個였고 대체로. 330 個 전후를 유지하였다. 이 章에서는 이 중에서 몇가지 條件울 基 準으로 3 個의 邑緊落울 選定하여 分析고자 하였다. 그 基準온, 첫째 邑緊落의 地理的 代表性울 가진 것, 둘째 筆者 가 實地勢롤 現地踏査할 수 있는 것일 것, 세째 觀察使의 任地였던 곳이나 任地였던 적이 있는 곳, 네째 首都는 제의함, 끝으로 現在 에도 잘 알려져 있으며 가급적 傳統性울 가전 곳일 것 等이 그 條 件이다. 以上의 基準에 부합되는 邑緊落은 우선 咸鏡, 平安, 黃海, 江原 等 北韓地域과 山間地方이 서울과 함께 제의되어 忠淸의 忠i H, 公사 I, 全羅道의 全사 I, 慶尙道의 尙if l, 度사 I, 安東, 達城, 星i H, 大 邱만이 남게 되었다. 이 중 忠if I 는 地理的 代表性이 미약하고 慶it l 는 新羅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며, 達城, 星it I, 大邱 等地는 너무 소규모이거나 혹은 그 반대이기 때문에 基準에 합치되지 않아 제외 하면 全if 1, 公사 I, 尙,)사, 安東이 남게 된다. 이 중 安東은 같은 道內 에 尙사 1 가 설정 되 어 있 어 公 1H, 全i Il, 尙'}f I 를 調査地域으로 하게 된 것이다. 公 1 t I, 全 1 t 1, 尙 1H 는 中部以北울 제 의 한 忠淸, 全羅, 慶尙의 가장 代表的인 邑緊落이라 할 수 있는 곳이며 長期間 觀察使의 在任地였 던 곳이기 때문에 調査의 의미는 충분하다고 본다. 또한 세 地域 . 모두가 〈it I 〉字를 가전 곳인데 이 는 從二品인 府尹의 任地인 府와 正 三品 牧使의 任地인 牧 이외의 고을에는 〈사 1 〉字를 사용치 못하게 한 太宗 13 年의 결정 26) 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朝鮮王朝 邑緊落 의 代表性울 지닌 곳으로 손색이 없는 地域이라 여겨진다. 26) 孫禎睦, 1977, 『朝鮮時代都市社會硏究J, 一志社, p. 50.

3. 邑緊落의 立地構造 1) 自然條件 人 口 分布의 양상이 地表上 自 然環境 earth 's ph y s ic a l fe atu res 의 유 형과 깊은 연관성을 띠고 있는현상은 地理 學 에서 周知의 사실이다. 衆落은 人間의 集團 住居인 까닭에 여시 그.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技術과 科學 발달 이후 환경의 중요성이 많이 되색된 것은 확실하지 만 오늘날도 緊落의 立地構 造 에 미치는 환경의 영향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 다. 27) 더 구나 近代 이 전인 朝鮮朝 衆落立地分析울 함에 있 어 자연환경조건의 중요성은 再言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衆落의 自然的 立地 條 件으로는 地形, 地勢, 氣候, 土 壤 等 이 중 요하다. 土 壤 은 土地의 비옥도와 결부되어 經濟的 條件 에 흡 수되므 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氣候條(牛은 우리나라 氣候 의 特色 인 南 北性 과 東西性이란 측면에서 볼 때 2 8) 南北性은 公사 I, 全 '}II, 尙 '}II 의 세 지역 위도가 모두 유사하여 문제될 것이 없고 東西性은 세 지역이 모두 太白山脈 以西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어 여시 생략한다.

27) McGaug h , Mauric e E. , 1970, A Geog r ap hy of Pop u lati on and Sett le ment 28W) 車. M鍾. 煥C. , B19ro74w, n 『C韓o.國 의P ub氣. 候, I와ow 植a,生 』p p, . 2瑞9文~堂30,. pp. 50~52 .

公 1H 는 忠 淸南道 의 中央南西部에 위치 하여 尙 1I| 오H 즌 거 의 同緯度 이다. 忠南은 北 東 에서 南西로 달리고 있는 車嶺山脈 에 의하여 크 게 두 개의 地形區로 나뉘어진다. 北西 地形區에는 才祖劇 II, 曲橋川 流域의 禮唐平野 와 그 주변의 伽倻山脈, 泰 安半 島 , 牙山丘陵地帶, 等이 전개되며 南東地形區에는 주로 錦江流域 인 內浦平野와 錦 山盆 地 等이 펼쳐 져 있 다. 公 1H 는 後者에 屬한다. 公 1H 北쪽 山陵線의 발달방향은 거의 南北에서 東 또는 西 방향 으로 약간씩의 변동을 보이며 발달하고 있어 크게 보면 마치 字를 南北으로. 길게 늘여놓은 것과 같은 양상이다. 죽 千方山―極 頂峰―長 鶴 山―國師 峯 울 잇 는 300~460m 의 능선으로 禮 山, 靑陽 경계를 이루며 그 東쪽으로 金怨山―法華山一玉女峯―廣德山을 잇

는 220~570m 의 능선, 九節山―明 德峯 능선, 鐵總 山—八 峯 山_ 墨 方 山 능선, 國士 峯 ―武 盛 山―葛美峯― 藥 山 능선 , 國士峯― 國司峯 一天 台山 능선 等 의 連峯 이 비슷한 모양으로 뻗어 있다. 河 )II 은 弓 形 으로 西流하는 錦江과 이에 合流되는 大小支 流 群이 主이며 이밖에 南部에서 南西流하여 魯城 )II 을 거쳐 江 景 부근에서 錦江 下 流 로 合流되는 支 流 와 南 東 部에서 北 東 流하여 錦 江上流로 流 入되는 것을 들 수 있다 .29)

29) 公州郡認 1979, pp. 212~3.

邑을 中心으로 한 대체적 地 勢 는 北쪽에 錦 江이 弓形 혹은 字 형대로 지나고, 그 한 支 流 가 邑울 관통하여 北流하면서 北쪽을 제의한 나머지 方向은 山에 둘러싸여 盆地狀을 나타내고 있다. 全 '}ll 의 경우, 全캐 東 쪽의 가장 높은 곳은 小白山脈을 이루는 大 起 伏 山地이고 2~3 段은 蘆嶺 山脈이 통과하는 中起伏山地이며, 西쭉 은 넓 은 湖 南 平 野가 펼쳐진다. 따라서 東半 部는 山岳地 帶 , 西半 部 는 平野地 帶 로 兩分된다. 주변 山地는 대부분 低山性인 亞嶺 山脈의 支脈이나 地魂山地들이 平野部와의 境 界를 이루는 곳에 위치하~ 있기 때문에 岩質에 따라서는 특유의 山形을 이루기도 한다• 西쪽 울 제의하면 역지 山에 둘러싸인 형태이기 때문에 地形 學 上의 盆地 는 아니지만 盆地狀 地 勢 라 볼 수는 있다. 南쪽의 南固山, 完山七 峯 , 北西쪽의 多佳山, 油 然臺 , 北쪽의 僧 岩山, 棋麟 峯 乾 止山, 可連山 等이 邑울 바로 의곽에서 둘러싸고 있는 山 勢 이고, 全i l J Il, 高 山川, 所 陽 川, 三川川 等이 邑 혹은 邑 주위를 감싸며 合流하여 萬 頃江에 合 流 하는 水 勢 를 보인다. 全 '}H JII 과 三川川온 邑의 北西쪽에서 合流하며 그 후에는 激川이라 불리 운다 .30) 尙 '} H 는 洛 東 江의 支流인 南 )II 과 北川 사이에 위치한다. 洛東江流 域은 혼히 洛東盆地로 알려 진 곳으로 地 脫構造 의 영 향을 받아 南北 走向으로 알려쳐 있다. 高度點平面(切 峯 面)에 의한 地形區는 北部 盆地, 南部盆地, 中間盆地로 三大分되며 특히 尙i H 가 포합된 北部 盆地는 北部大盆地와 北部小盆地로 細分된다. 北部大盆地는 安東,

30) 『 韓國 地名要 覽 』, 1982, 建 設 部 「全州市條」.

義 城이 그 중심이며 英 陽 , 靑 松, 軍威, 尙.}t l 일대를 포함하는 전 형 적이고 제일 큰 분지이다 .31)

31) 金又 寬 , 1979, 「洛 東盆 地 地形의 高 度 酷 分布分析J, 《 地 理효》 , 第 19 號 , 大 韓 地 理 學슝 , pp. I~10.

邑 주위 地勢논 盆地內에 비교적 넓은 平野部롤 중십으로 하여 南 쪽 일부의 平野 연결부와 北川이 洛 東 江 本流에 合流하는 東 쪽 일 부를 제의하면 전형적인 盆地狀地形울 나타내고 있다. 2) 人文社會的 條件 緊落立地論에서 人文社 會 的 條 件은 매우 광범위하여 제 한 울 가하 치 않으면 혼란의 우려가 있다. 歷 史, 文化,政治, 經濟 , 社 會 , 風 俗 等 자연환경 以外에 人間이 이룩한 모든 條 件울 여기서 언급해 야 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그와 같이 넓은 범위에서 立地 構造 를 언급한다는 것은 不可能하기 대문에 여기서는 세 지역의 沿 革 ( 歷 史的 側面), 邑 構造 , 주변지 역 과의 관계 ( 交通 面) 정 도만을 살펴 보 고자한다. 人間의 生活이 自 然 이란 風土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人文社會 的 條件이라 하더라도 독립되어 촌재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 경우 李 重 煥이 그의 擇里志 卜居 總論 에서 밝힌, 사람이 살만한 네 가 지 條件, 죽 地理爲上, 生利次之, 次則人心, 次則山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朝 鮮 朝 後 期의 實學 者였던 만큼 邑 衆落 의 構造 를 分析 함에는 매우 有用한 지표라 생각되어 參考 하였다. 公1- H 는 본래 百 濟 의 熊 川으로 文周王 때 北 漢 山 城 에서 이곳으로 도읍을 옮겼다. 百 濟 의 멸망 후 熊津 都 督 府 롤 두어 軍 兵울 주둔시 킨 바 있고 神文王 때 熊J ll'.HI, 景德 王 때 다시 熊 사 1 로 고찬 바 있 다. 高 麗 太祖 23 年 (940 年) 公캐로 개칭하여 牧으로 내려오나 경우 에 따라 강격되는 경우도 있었다 .32) 朝鮮朝에도 역시 公사 1 牧으로 仁祖, 顯 宗, 肅 宗, 正祖代에 일시적 으로 縣으로 강등된 적이 있지만 忠 淸 監 營 의 觀 察使 所在地로서 꾸 준히 邑衆落의 전통을 이 어 왔다.

32) 『 新 增東國奧 地 筋覽J , 卷 之十七, 「公州牧」, 建置 沿 革 條 .

邑緊 落內 의 주요 公共 建築物 은 他 邑衆落과 대 동소이 하다. 다만 邑 바로 北쪽에 邑內에 연접하여 公山城이 위치한 접이 특이하다고 볼 수 있다. 公山城은 百濟의 옛 城으로 嬰樹 山城이라 일컬으며 둘 레 4850 尺, 높이 10 尺이며 朝鮮朝에서도 수축하여 軍用要地로 사용 하였다. 監營온 대체로 현재의 鳳凰洞이고, 校洞에 鄕校, 監營 부 근에 訓練場이 있었다. 이곳의 交通은 서울―天安―金荒 驛 ―德坪― 車嶺―廣程倉―毛老院―公'}t I 를 거쳐 公'}t I 一敬天驛―魯城―草浦橋— 全 '} t I 一統營으로 參禮道와 연결되는 驛路 와 역시 公사 1 ―敬天 驛을 거 쳐 ―連山—珍山―茂朱驛路, 公 1 t I ―利仁 驛 을거쳐 扶餘, 韓 山, 舒川 으로 이어지는 驛路 가 있어 中央과 연결되는 중요 간선도로변이었 음을 알 수 있다. 全 1 t I 는 본래 百 濟 의 完山이며 比斯伐 혹은 比自火 33) 라고도 한다. 神文王 때 完山,}t I 를 두었다가 景德 王 때에 全 '} t 1 라 하였으나 孝恭王 때에 甄萱이 여기에 建都하고 後百濟라 하였다. 高麗 太祖 14 年 後 百 濟 의 神劍울 討平하여 安南都護府라 하였다가 23 年 다시 全캐라 하였다. 成宗 12 年 笑已에는 承化節度安撫使라 칭하다가 同 14 年 乙未에 13'}tI 節度使를 둘 때 에 順義軍이 라 칭 하여 江南道에 붙였 고 이후 恭愍 王 4 年 元使룰 가두었다 하여 일시 部曲으로 강등된 의에 는 대도읍의 자리를 지켰다. 朝鮮 太祖는 御鄕이라 하여 完山留守 府로 승격하였으나 太宗 3 年 乙酉에 全 1 t I 로 고쳐서 府尹이 되고 世 祖時에 鎭 울 두었 다. 34) 全사 1 府城은 오늘날 없어졌으나 그 윤곽은 대체로 현재의 중앙동 우체국울 중심으로 반경 약 500m 의 圓形에 근사한 것으로 조사되 었다 .35) 東門은 현재의 동문사거리이며 이곳에서 慶基殿을 안쪽으 로 끼고 성곽이 축조, 現存하는 幾南 門에서 南門울 이루었다. 다시 남문시장도로를 따라 성곽이 이어져 현 다가동 파출소 앞에서 西門 울 일으키며 코리아극장 앞 도로를 따라 성곽이 세워졌고 현 오거 33) 이에 대해서는 異說이 있음, 『全州市史』(1 974), pp.1 40~42 參照. 34) 『新增束國與地勝 m, 卷之三十三, 全州府條 및 權相老, 『韓國地名沿革考J, 「全 州條」. 35) 전복신문사, 전주시립박물관, 기타 관계 인사와의 면접조사 걷과이며 조사원은 全北大 地理敎育科 학생 들입 •

리 복문탕(아리 랑당) 옆에 서 北門울 일으킨 뒤 全北大病院 시 체 안 치실 부근을 지나 東門에 다시 연결되는 형대였다. 全'.J H 는 특히 觀察使營과 府尹廳舍가 따로 되어 있는데 현 도청자 리가 觀察使營으르 南門울 마주 대하며 府尹廳舍는 현 시청자리였 던 듯하다. 후에는 觀察使 가 府尹울 겸임하게 되었다. 客舍 는 中央 洞에 현존하나 원형은 흩어진 편이고 史庫, 梅度廟 等 특이한 公共 건축물이 위치한다. 가까운 山城으로는 동서학동에 南固山城 이 있 다. 全세는 명실공히 湖南의 首府로서 주변지역과 關係 역시 원활하 다. 西로 平野部를 관장하고 東으로 山間地方울 통할하며 南北으로 는 中央과 南海岸울 잇는 驛路 요충의 立地로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곳이다• 尙 1II 는 본래 沙伐國인데 新羅 初에 귀 속되 어 法興王이 上 '}Il 로 고. 쳐 軍主를 두었고 眞興王 이 上落郡으로 하였다가 景德王 때 尙 1II 가 되었으나 惠恭 王이 다시 沙伐 111 로 만들었다. 高麗 太祖 23 年 庚子에 다시 尙 11 i로, 후에 安東都督府로 하였다가 成宗 2 年 尙사 1 牧으로 고 치고 뒤에 節度使를 두어 歸德軍 이라 칭하여 嶺南道 에 예속시켰다. 顯宗 때 安東大都 護 府, 뒤에 尙캐安撫使로 하였다가 同王 9 年 戊午 에 8 牧의 하나로 하였 다. 朝鮮 太祖 元年 觀察營울 두었다가 太宗 8 年 都觀察使, 이후 宣 祖 29 年 丙申에 大邱로 觀察營울 옮길 때까지 嶺南의 首府 기능을 수행하였다 .36) 客舍는 현 南城洞 1 區로 농참학교 옆, 東軒온 원래 央山 밑 正南 向에 있었으나 화재로 옮겨 현재 서성동 군청사 자리 , 鎭營은 制勝 營으로 현 낙양동 북쪽, 鄕校는 신봉리 203 번지에 있 다. 37) 尙캐 역시 오늘날 관접에는 交通이 불편한 곳일 수 있지만 도. 보위주의 朝鮮朝라는 시대 배경에서 보자면 그렇지도 않다. 洛東江 沿岸으로 江流域일대를 지배하고 物産울 수집할 수 있는 매우 유· 리한 位置였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곳이다. 36) 『新增東國輿地勝覽』, 卷之二十八, 「尙州牧 條」 및 『韓國地名沿革考』, 「尙州郡條」. 37) 『尙州의 얼J 1981, 尙州郡, pp.1 59~88 및 현지조사에 의합.

4. 邑緊落의 立地類型 立地類型이 라 함은 邑緊落 立地構造를 바탕으로 綜合的인 指標를 사용하여 그의 分類를 행함을 말한다. 여기서 문제가티는 것은 類 型分類의 指標로 어떤 條件들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緊 落의 分布 자체를 해석하기도 복잡한 일이거니와 그의 類型울 分類 하는 작업은 더욱 어려운 일이 분명하다. 전통적으로 地理學에 있어서는 分類의 基準울 크게 自然的 條件 과 人文的 條件으로 나누어 왔다. 自然的 條件은 傾斜度, 高度, 地 形上 및 地勢上 位置, 예컨대 沿海인가 谷口인가 河岸인가 盆地인 가 臺 地인가의 여부, 用水供給 및 下水處理를 위한 土地基盤, 土埃 의 비옥도, 帖性의 强度, 日照를 위한 向, 降水量, 氣溫,風向, 風 速, 卓越風,季節風, 無霜日數, 降雪關係 等이고 人文的 條件은· 政: 治, 行政,文化, 慣習, 住民의 意識構造 및 價値觀, 交通接近性, 市場과의 거리, 經濟的 問題, 社會制度 等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 도이다. 緊落온 작은 마을이건 수백만 人口의 大都市이건 간에 人間行爲 와 生活方式의 總體的 結集現象 tot a l way of lif e 을 표현 반영 한다. 따라서 衆落은 그 時代를 풍미하는 住民의 態度와 社會的 價値觀울` 반영해 준다. 사실 時間은 社會構造의 變 化와 함께 일반적인 緊落 類型을 복잡하게 하고 특히 個別的인 緊落形態를 결정하는- 데 기여 한다. 과거에는 衆落立地의 決定要因으로 自然環境의 역할이 유독 강조 되어 왔다. 自然條件 以外의 要因은 거의 무시될 정도로. 자연환경 이 중시된 것이다. 예를 들면 村落의 基地 s it e 로서 물을 얻을 수 있 는 곳에 늘어 선 村落類型 spr i n g line vil lag e pat t er ns 이 나타난다 거나 都市가 立地하는 곳으로 谷部가 중요시된 사실, 방어를 목적 으로 한 경우 구릉이 중시된 접, 渡河地點에 많은 衆落이 몰린 사 실 等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例는 地理學 특히 地誌 분야에서는 무수히 들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러한 많은 증거들이 발견되었으나 自然的 條件만 으로는 立地를 설명할 수 없는 例들이 너무나 많다. 自然環境이 同一한 경우일지 라도 衆落立地如否 why here and not th ere 는 다른 경 우가 너 무도 많기 때문이다. 결국 衆落立地要因으로서의 自然的 條件이란 住民의 知礎水準에 따라 제약 받는 정도가 다른 것이며, 人間의 기술과 지혜가 발달할 수록 그 중요성은 줄어드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38) 筆者 는 지금까지 실시해 온 忠淸, 全羅 慶尙道 地方 邑衆落에 대 한 數回의 踏査결과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傳統緊落의 立地類型율 分類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地勢條件 및 歷史性에 입각하여 크게 다 섯 가지로 衆?용의 類型울 분류하였다. 內陸盆地狀 地勢의 梁落 , 沿 海衆落 平野의 衆落, 漁村 , 山村이 그것이다. 1) 內陸盆地狀地勢의 架落 盆地 Bas i n 란 주위가 山地에 의하여 둘러싸인 平地를 말한다. 斷 層盆 地, 稽曲盆地, 谷(혹은 浚勉盆地 39 )) 等이 있는데 우리 나타의 경 우 四方이 완벽하게 山으로 環抱되어 完全 四地를 이룬 곳은 속칭 펀치보울로 알려진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萬袋里 , 縣里 일대와 합 천군 초계 면, 적 중면 일대 , 그리 고 石灰岩地帶의 Dolin e 를 제 의 하 떤 辭典的 의미의 盆地는 없다. 따라서 盆地狀地勢로 표현한 것 이다. 우리나라 河川의 中 • 上流地方예는 다수의 漫勉盆地 가 형성되어 예로부터 그 地方의 중요한 생활무대로 이용되어 地方都市를 발달 시 켜 왔다. 40) 압록강의 江界, 청 천강의 寧邊 , 熙川, 泰川, 대 동강의 成川, 谷山, 임진강의 鐵原, 伊川, 浦川, 한강의 春川, 洪川, 原 쎄 忠'.J H, 堤川, 금강의 淸 1H, 沃川, 公 1 t I, 만경 강의 全사 I, 영 산강 의 光사 I, 섭 진강의 南原, 谷城, 낙동강의 榮새, 安東, 酸泉, 尙.}t l, 38) Tid s well, Vi nc ent, l!:1 7 6, Patt er n and Process in Human Geog r ap h y , Un· iv. Tuto r ia l Press, London, pp. 170~71 . 4390)) 鄭鄭璋璋鎬鎬,, 11998770,, 『『地新理篇學韓辭國典地』理,』 .係 祐仁成文化文社化,社 ,p . p1.9 267. •

金泉, 居昌, 晋 '} II, 大邱, 두만강의 會寧 , 隱 城 等 朝 鮮 朝 邑梁落의 多數가 여 기 에 속한다. 따라서 本 考 의 대 상지 역 인 公사 I, 全 '} II, 尙 ,J H 가 모두 이 類 型에 속함은 물론이 고, 전반적 인 邑 緊落 의 自 然 的 立地 條 件으로서도 浚融 盆地狀地 勢 는 중요한 위치를 접하고 있다. 이 범 주에 속하는 衆落 의 特 性은 첫 째 페 쇠 1 공간 closed spa ce 을 이 룬다는 접 이 냐 盆地狀이 라는 地形 因 子가 梁落 의 立地 構造 에 그대 로 반영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都邑 風 水라는 風水地理說의 理 論 도입 을 용이하게 해주고 있다. 둘째 傳 統的 立地 類 型을 취하고 있다. 이들은 官 營衆落 으로서의 形 式울 크게 촌중하는 한편 地 勢 와 관련 하여 統治 , 軍 事 라는 二大 機能 울 수행하기에 편리한 위치를 마련한 나 이 경우도 理論 上으로는 風水說울 취하고 따라서 전형적 風水 衆落울 이루고 있음이 득칭이다. 세째 市 街 地 構 成은 官衛中心的으 로 官 主導 的 性 向을 유지한다• 客舍 , 東軒 等 官의 廳 舍가 邑內 어 디에서도 보일 수 있도록 中心的 위치를 차지함은 물론 高度制限 으 로 sky li n e 上에 서 도 돋보이 게 하고 있으며 廳舍 앞으로는 布政 門 等 넓 은 廣場 울 배설하여 더욱 權威 主 義 的 空間配 置 가 되도록 하여 놓았 다. 本考의 범위 밖이간 하지만 이러한 傳 統은 오늘날 市, 郡 底 의 배치에서도 일부 남아 있는 듯하다. 네째 街路 網 은 전형적인 格子 網 gri d - ir o n pa tt er n 을 취 한다. 이 것 은 地 勢 條件이 盆地狀이 기 때문에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일 수도 있으나 北門과 南 門, 東門 과 西門을 연결하는 十字 形 道 路 中心에 관청을 배설하는 경우 역 시 官울 돌 출 시키는 배려를 할 수도 있다. 十字道路의 左右에 側道 를 마련하면 格子狀 가로망이 형성된다. 다섯째 政治, 行政, 每濟 中心 地 의 기능을 수행한다. 朝鮮 朝 邑 緊落 의 기능이 兩班울 扶持하 기 위한 행 정 적 보조기 관 4 1) 에 지 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牧民官으로써 의 住民통할, 軍 事 的 기능, 物産 集 散地로서의 역할수행을 위한 기 본적 條件은 만족시켜 주고 있다. 이때 行政 經濟 기능과 地理的 中 心地_背後地 centr a l pla ce-hin t e r land 로서 의 기 능은 매 우 원 활 한 편 이지만 軍 事機 能은 매우 미약하여 邑 城 의 경우 성곽은 . 방어하기에 는 너무도 초라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주위에 山 城 울 동반한 邑城 41 ) 李基白, 1973, 『 韓國 史新 論』 , 一 潮 間 p. 206.

이 대부분이란 점도 特記할 만한 사실이며 邑城의 魚土化와 山城에 서의 決死抗戰이란 軍事戰略이 이와같은 邑緊落의 立地描造에서 파嗣 생된 것이 아닐까 여겨지기도 한다. 여섯째 따라서 그들의 環境心 理 envir o nmenta l ps y c holog y 는 보수, 페 쇄 적 인 경 향이 농후하였 을 것이라 여겨진다. 環境心理는 生活環境의 영향에 의하여 事 物울 분 ­ 별 판단, 知登하는 과정의 문제로 事物과의 복합적인 相互作用의 양 상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42) 일곱째, 그들은 傳統的 인 匠成信仰울 고수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鄕校,鄕廳, 社稷壇, 文 廟 等이 邑內 혹은 邑城 바로 주위에 배치되어 있고 주로 婦女子를­ 상대로 한 寺利은 城外에 멀리 떨어져 위치하는 것으로알수있다• 끝으로 邑內 住民構成上消費經濟緊落을 이루고 있다는 접이다. 주 로 兩班, 中人 等 支配階層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手工 業 에 종사하 는 사람이 賤民으로 邑內 居住가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당연한 결고1- 타 할 수 있다.

42) Proshansky , Harold M. (ed. ), 1976, Envir o menta l Psyc holog y, Hol4 Ri ne hart and Wi ns to n Inc. , New York, p. 101 .

2) 沿海菜落 沿海衆落의 개념 정의는정확을요한다. 이들은 海岸立地이기는 굴l­ 지만 後述할 漁村이 바닷가에 바로 면하여 衆落을 형성하는 것과는 ­ 달리 바닷가로부터 5~10 里 정도 격하여 立地하는 特性울 갖는다. 筆者의 調査로는 西海, 南海岸 쪽에는 鎭緊落 以外에는 거의 없고. 주로 東海岸쪽에서 발견이 되며, 蔚珍, 平海, 盆德, 淸河, 寧海, 興海 等이 例라 할 수 있다. 이 類型에 속하는 衆落의 特性은 첫 째 準開放空間 semi -o p e n sp a ce 이타는 點이다. 沿海이기 때문에 太白山脈으로 內陸과 隔絶하면서 도 東쪽이 트인 地勢의 득칭 때문에 그러하다. 둘째 準傳統的 立地 類型율 취 한다• 이 들은 官營衆落으로서 의 傳統性과 海岸地勢上의 進就性아라는 兩面性울 지녀 그것이 立地 構 造에 나타나고 있음을 알아볼 수 있다. 대체로 진취성이 억압되고 傳統性을 指向함으로써 沿海이떤서도 海岸立地를 회피하여 衆落 자체가 無性格的이라는 단·

접을 띠지 않 을 수 없게 하고 있다. 蔚珍은 바닷가까지의 거리가 9 里, 平海 7 里, 盆 德 13 里, 淸 河 7 里, 寧 海 7 里 相距함으로써 43) 傳 統的인 邑 緊落構造 를 따르기 위한 立地上의 無 理가 노출된 것이다. 즉 海岸 에 立 地 하는 것이 보다 機 能空間 유지에 적합했을 것을, 倭 統的인 邑衆落 立地 類型 추구 때문에 內 陸 쪽으로 유인되어 立地上 의 무리를 드러내었다고 보는 것이다. 세째 官街의 背山立地는 內 陸盆地狀 취락과 동일하다. 다만 左, 右 環 抱가 매우 미약하고 前 面이 完 全 開放 되어 있다는 접이 다르다. 李 重 煥도 이 지역을 경치 가 실로 나라 안에서 으뜸이라 하면서도 한때 유람하면서 줄기기는 좋으나 영구히 살 곳은 못된다 44 )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沿海 취락 이 발달되지 못한 이유였을 가능성도 있다. 네째 街 路網 은 〈 I 〉字 形 혹 은 二 重構造 이 다, 海岸平 坦 部 가 海岸線 울 따라 帶 狀으로 좁게 펼 쳐 진 관계로 道 路 역시 〈 一 〉 字 를 취함이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여 지로 格 子狀울 취하다 보니 〈二 〉字 形의 직선도로에 그를 관통하는 도로 를 합쳐 〈 I 〉 字 형태를 취하게 된 것이다. 다섯째 機 能온 대부 분 단순한 統 治, 行政 관할 중십 이 다. 興海와 같은 物資集 散地的 性格울 떤 곳도 없지는 않으나 그것은 例外일 뿐이다. 여섯째 環境 心理는 擇 里 志 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傳統 性울 두루 갖추 지 못했 다는 지역적 열등감과 沿海이면서도 海岸立地가 아니기 때문에 기 인한 生産的 落後 性 때문에 無性格的이었던 듯하다. 일곱째 信 仰은 융화, 혼재적이다. 죽 鄕 校 等 전통신앙과 土俗的 神堂이 共 存하~즌 형태이다. 끝으로 經濟 는 生 業 從 事 民의 邑內居住로 인하여 準 消 費 經 濟緊落 형태 를 취한다. 대체로 沿海취락은 前述한 盆地上의 傳 統 취락과 後 述할 漁村 사이에서 접이적인 구조, 기능, 형태를 갖고 있 는 것으로 여겨진다. 3) 平野의 栗落 平野는 湖南平野와 金海平野 의에는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特 性 있는 平野의 衆落온 모두 이곳에 집중되어 있다. 이곳은 農 業 生 43) 『新增東 國輿 地 勝覽 』, 該當 條에 서 발 제 • ) 『 擇 理志 』 , 「八 道總論 」, 江原道條.

産力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곳으로 전형적인 農村生産衆落이 안 찌기 형성된 곳이다. 이곳은 地勢上 開放空間性울 보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中央渠權的인 朝鮮朝의 統治下에서는 大都邑으로 발달도 되 지 못하면서 關心의 밖으로 밀려나지도 못한 접이적 성격을 며면서 開放空間의 특성을 살리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역시 支配層의 수탈대상 중에서는 가장 범위와 규모가 컸던 곳으를 로 住民의 환경십리는 페쇄성을 면치 못했다. 따라서 都邑의 발달 온 매우 미약했던 편이다. 地勢上 開放空間과 환경십리상의 페쇄성 온 平野緊落의 가장 큰 특징으로 生産衆落이라는 近代에 있어서 매 우 좋은 立地條件울 갖고 있으면서도 大都邑으로의 발달이 차단된 것도 이와 같은 자체 내의 모순이 큰 작용을 하였던 것인지도 모 른다. 이것은 社會制度와 統治體制가 緊落의 立地構造에 결정적인 영향 율 미칠 수도 있다는 중요한 예증이 된다. 自然的 條件의 모든 長

點에도 불구하고 大邑衆落의 立地選好, 죽 山울 둥지고 山에 環抱 되지 못했다는 人文社會的 條件 때문에 깊은 영향을 받고 있던 곳 이 平野의 緊落이기 때문이다. 4) 漁村 및 山村 이들은 모두 邑緊落이 아니기 때문에 本考의 범위 밖이며 따라서 特性만을 약술하면 다음과 같다. 漁村은 바닷가에 서 漁業이 란 特殊機能울 수행 하기 때 문에 開放空 間이며 機能空間울 유지한다. 海岸을 따라 난 한 가닥 도로에 취락 이 집중되어 기능 연결성이 강한 路村울 形成하며 經濟는 生産 취 락이면서 진취적인 환경십리를 나타낸다. 그러나 朝鮮朝에서의 漁 民온 常民 내지는 賤民으로 收奪對象이었기 때문에 취락의 발달은 미미하다. 山村은 農業 위주의 우리나라에서는 발달의 소지가 별로 없는 취 락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대부분의 山村온 火田村落的 性格이 강한 것으로 보면 되고 46) 결국 山村의 衆落立地構造는 社會史的 입장에 45) 林昌圭, 1973, 『火田吳業硏究』, 서울大 敎育大學院, 碩士學位論文, pp.2 0~27.

서의 접근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본다. 5. 邑衆落의 立地와 風水 앞서 제시한 公사 I, 全'}f l, 尙'새가 立地類型 中 內陸盆地狀 地勢의 衆落에 속하는 것 임 은 물론이 며 , 前述한 바와 같이 朝鮮朝 衆落은­ 前近代的 産業方式이 위주였던 만큼 立地基盤의 기초는 自然的 條 件에서 찾지 않을 수 없다. 그 중에서 氣候條件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는 없으나 해당지역의 小氣候學的인 親測이 되어 있지 않은 상황 이므로 이를 제의하면 地勢條件이 가장 큰 因子일 수밖에 없다. 바다에서 육지쪽으로 보아 漁村, 沿海衆落, 平野의 緊落, 內陸~ 地狀 地勢의 緊落, 山村 l| 頂으로 배열이 되며 이때 地勢條件이 衆落 立地의 類型분만이 아니 라 立地構造와 機能, 그리 고 特性까지 영 향 을 미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地勢가 決定的 因子가 되지 못함은 平野의 緊落이 크게 발달되지 못한 것에서도 알 수 있었다. 自然條件이 立地에 큰 영향을 미쳤음은 분명하지만 보다 더 중요하 고도 決定的 영향을 미쳤던 것은 當時의 地理的 價値觀이었던 듯하 다. 內陸盆地狀 衆落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외의 衆落의 경 우도 立地的인 無理를 해가면서까지 地理的 價値觀 에 부합되도록` 애를 쓴 혼적이 역연한다. 특히 風水說의 영향이 가장 강력했던 것으로 판단되는데 그에 대 한 이유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朝 鮮朝 의 대표적 官撰地~ 志인 新增東國輿地勝費에서는 모든 邑衆落 山川條에서 반드시 鎭山 을 명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3 章에서 詳述한 바와 같이 鎭山은 衆 落의 後面 46) 에 위치하여 그 취락을 鎭護, 表象하는 상칭성을 내포 하는 것으로 멀리서도 취락을 代表할 수 있는 수려장엄한 山 勢 의 山으로 이루어진다. 鎭山의 의미성은 그것이 방어나 계절풍과의 관 계에 의한 合理的 이유 이의에도 상칭성을 띠고 있다는 접에서 緊

落立地에 대한 특이한 風水思考의 表出 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46) 대체로 坐向이 南ilii이기 때문에 鎭山온 취락의 北목에 위치합. 그러나 예의도 많이 있음.

그의에도 鎭山은 步行人이나衆落外部人듄에게 마을의 위치를알 려주는 標識 Land Mark 의 역할 47) 을 수행하고, 상칭성에 있어서도 매 우 복잡한 체 계 를 갖게 된다 . 즉, M. Elia d e 의 中心槪念에 서 山 은 수직 적 요소 48) 가 되 며 , 이 것 을 부연 하면 聖 Sacred 과 俗 Profa n e, 그리고 中心 Cen t er 의 개념으로 對稱 설명이 가능하다. 聖所 Sacred Place 는 空間이 단철되 어 있 고 Op e nin g 을 통해 그것 을 상징 시 키 고 있으며 天上과의 대화는 軸 Cosmi c Ax i s 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그 中 心이 바로 이 세 상의 中心 Cente r of th e World 이 라고 할 수 있 다는 것이다 . 이것을 風水說에 대응시키면 四神砂로 상칭되는 경계를 동 하여 外部와 內部를 단절시키며, 大門 中門으로 상칭되는 Op e nin g 을 동하여 進入이 되고 그 속에 穴이 있어 局의 中心을 이문다고 본다 . 49) 鎭山의 해석이 어떠하돈간에 그것이 官撰地理 書 에서 중시되었다 는 것은 결국 都邑立地가 일차적으로 風水說에 입각했다는 반증이 된다. 參考로 朝鮮朝 邑衆落의 鎭山을 新增東國輿地勝覽의 게재순 서대로 열거하면 , 다음 表와 같다.

47) 崔秉璃 1973, 「韓國古部邑의 空間構造에 關한 硏究」, 서 울大 行政大學院, 碩士 浮位論文, p. 96 . 48) 林忠伸, 1971, r 母空 rd1 의 原型 : 山;;,)- 天」, 《울산공대 연구논문집》 , 제 8 권, 제 2 호, p.3 3. 49) 兪在賢, 1979(a), r 穴과 明堂과의 關係몰 몽하여 본 韓國傳統空 rdl 의 中心槪念 에 판한 硏究」, (울산공대 논문집》, 재 10 권, 제 2 호, pp.1 5~6.

〈邑緊落과 銀山〉 漢城邑 府 名 華鎭山 山 II 오늘位 날 北漢山, 楊置 1 t l 의 地境에 있음 開城府 松岳 北쪽 5 리 廣,J H 牧 船丹山 東쪽 7 리 園쌔牧 北城山 西쪽 7 리 利 )I| 都護府 雪峯山 西쪽 5 리 楊根郡 기록없음 祗平縣 기록 없음

陽陰竹 山智竹 縣縣縣 기宋기 록록水 없山없 움음 北쪽 2 리 ’I 果 川 縣 冠 岳山 西쪽 5 리 水 原都護 府 鉢站 山 南쪽 2 리 富平都護 府 桂楊 山 北쪽 2 리 南陽都護 府 飛鳳 山 東쪽 7 리 仁 )1| 都護 府 蘇來 山 東 쪽 24 리 安 山 郡 기록없음 安城郡 飛鳳 山 北쪽 2 리 振威縣 釜 山 東 쪽 2 리 陽 川 縣 城 山 北쪽 1 리 龍 仁 縣 기록없음 金 浦縣 北 城 山 北쪽 2 리 裕川 縣 三聖山 東 쪽 10 리 陽城縣 天 德 山 西쪽 2 리 通津縣 北兒山 北쪽 6 리 楊 캐牧 佛 谷山 北쪽 3 리 坡캐牧 城 山 西쪽 2 리 高陽 郡 기록없음 永平 縣 기록없음 抱川 縣 기록없음 積城縣 기록없음 交河 縣 기록없음 加平 縣 기록없음 長 淵都 護 府 望海 山 北쪽 4 리 江華都 護 府 高麗 山 西쭉 5 리 豊德 郡 기록없음 朔 寧 郡 기록없음 麻 田郡 기록없음 雜JII 縣 기록없음 喬桐 縣 기록없음

忠캐牧 大林山 南쪽 10 리 淸風郡 因地山 南쪽 1 리 丹陽郡 기록 없음 機山郡 錦山 西쪽 2 리 延 豊 縣 기록없음 陰城縣 迪葉山 北쭉 8 리 永春縣 城山 南쪽 3 리 堤川縣 龍頭山 北쪽 12 리 淸캐牧 唐疾山 東쪽 1 리 天安郡 王字山 東北쪽 12 리 沃川郡 馬城山 北쪽 2 리 文義縣 기록없음 稷山縣 蛇山 西쪽 3 리 木川縣 腸城山 東쪽 5 리 懷仁縣 何磨山 西쭉 2 리 淸安縣 기록없음 鎭川縣 기록없음 報恩縣 기록없음 永同縣 城陸山 北쪽 1 리 黃潤縣 기록없음 靑山縣 已城山 西쪽 8 리 公jt I 牧 公山 北쪽 2 리 林川郡 聖興山 北쪽 2 리 韓山郡 乾至 山 西쪽 1 리 全義縣 曾互山 西北쪽 5 리 定山縣 大朴谷山 北쪽 7 리 恩津縣 摩耶山 南쪽 24 리 懷德縣 鷄足山 東쪽 3 리 鎭촉縣 産長山 西쭉 5 리 連山縣 기록없음 尼山縣 魯山 北쪽 5 리 扶餘縣 扶蘇山 北쭉 3 리

石城縣 기록 없음 燕岐縣 城山 東쪽 1 리 洪州牧 月山 西쪽 3 리 舒川郡 烏山 城內 瑞山郡 기록 없음 泰安郡 기록없음 汚川郡 기록없음 溫陽郡 燕山 北쪽 2 리 平 澤縣 기록없음 鴻 山縣 飛鴻山 西쪽 2 리 德 山縣 기록 없음 靑陽縣 牛山 北쪽 1 리 大興 縣 鳳首山 西쪽 2 리 底仁縣 기록 없음 藍浦縣 九龍山 西쪽 15 리 結城縣 評山 北쪽 7 리 保寧縣 唐山 東北쪽 4 리 牙山郡 기록없음 新昌縣 城山 西쪽 1 리 禮山縣 金烏山 北쪽 2 리 海美縣 기록없음 唐津縣 기록없음 慶사 1 府 狼山 東쪽 9 리 蔚山郡 無里龍山 東쪽 24 리 梁山郡 城陸山 東北쪽 5 리 永川郡 母子山 北쪽 90 리 興海郡 稿陰 山 西쪽 5 리 義城縣 기록없음 孟德縣 無范山 北쪽 2 리 奉化縣 金輪峯 北쪽 2 리 眞寶縣 기록없음

軍威縣 馬井山 東南쪽 5 리

北安縣 城陵山 北쪽 1 리 禮安縣 城龍山 北쪽 龍宮縣 笠山 北쭉 大丘都護府 連龜山 南쪽 3 리 密陽都護府 華岳山 北쪽 19 리 東萊縣 輪 山 北쪽 8 리 淸河縣 呼鶴山 西쪽 9 리 迎日縣 雲椎 山 南쪽 12 리 長磐縣 巨山 西쪽 2 리 機長縣 炭山 西쪽 2 리 彦陽縣 高線山 北쪽 10 리 安東大都護府 기록없음 寧海都護府 기록없음 靑松都護府 放光山 北쪽 2 리 證泉郡 德逢山 西쪽 3 리 榮川郡 鐵香山 北쪽 1 리 豊基郡 기록없음 淸道郡 蒸 山 南쪽 2 리 慶山縣 馬岩山 南쪽 21 리 河陽縣 無落山 西쪽 12 리 仁同縣 流岳山 東쪽 IO 리 玄風縣 기록없음 義興縣 龍頭山 東쪽 1 리 新寧縣 花山 北쪽 3 리 靈 山縣 盤鷲 山 東北쭉 7 리 昌寧縣 火王山 東쪽 4 리 尙캐牧 天峯山 北쪽 7 리 星캐牧 印縣山 北쪽 9 리 善山都護府 飛鳳山 北쪽 10 리 金山郡 五波山 東쪽 1 리 開寧縣 甘文山 北쪽 2 리 知 禮縣 龜山 南쪽 2 리 .....` · ··

高磁縣 耳山 西쪽 2 리 聞慶縣 主訖山 北쪽 咸昌縣 宰岳 山 西쪽 13 리 晋 사 1 牧 飛鳳 山 北쪽 1 리 陝 川 郡 北山 北쪽 1 리 草溪郡 淸溪 山 北쪽 1 리 咸陽郡 白岩山 北쭉 5 리 昆陽郡 銅谷 山 北쪽 3 리 南海縣 望雲 山 西쪽 2 리 居昌郡 乾興 山 北쪽 8 리 酒川縣 豆音伐山 東쪽 6 리 三 嘉縣 기록 없음 宜 寧縣 德 山 北쪽 2 리 河東縣 陽慶 山 北쪽 3 리 山 陰縣 東山東쪽 3 리 安 陰縣 城山 西쪽 3 리 丹城縣 來山 北쪽 1 리 金海都縱府 盆山 北쪽 3 리 昌原都護府 擔山 北쪽 1 리 咸安郡 餘航山 西南쪽 10 리 巨濟縣 鷄龍 山 南쪽 5 리 固城縣 無益山 西쪽 10 리 漆原縣 靑龍山 東쪽 7 리 熊 )II 縣 熊山 北쪽 5 리 全캐府 乾止山 北쪽 6 리 益山郡 乾子山 北쪽 1 리 金堤郡 기록없음 古阜郡 기록없음 錦山郡 所山 北쪽 2 리 珍山郡 大范山 西쪽 10 리 藏山郡 壅山 東쪽 5 리 萬頃縣 기록없음

臨破縣 肉山 北쪽 4 리 金滿縣 鳳頭山 東쪽 2 리 井邑縣 기록 없음 興德縣 기록없음 扶安縣 기록 없음 沃溝縣 鉢伊山 北쪽 3 리 龍安縣 母山 北쪽 1 리 咸稅縣 咸羅山 西쪽 2 리 高山縣 기록없음 泰仁縣 竹寺山 北쪽 2 리 羅캐牧 錦城山 北쪽 5 리 光山縣 無等山 東쪽 10 리 靈岩郡 기록없음 靈光郡 箕山 西쪽 25 리 咸平縣 君尼山 北쪽 30 리 高敏縣 半登山 東쪽 5 리 長城縣 金鷲山 北쪽 1 리 珍原縣 佛台山 北쪽 5 리 茂長縣 기록없음 南平縣 기록없음 務安縣 僧達山 南쪽 20 리 長興都設府 修因山 北쪽 10 리 珍島郡 기록없음 康津縣 寶恩山 東쪽 7 리 海南縣 金剛山 東쪽 10 리 濟캐牧 漢怒:山 南쪽 20 리 菌義縣 기록없음 大靜縣 漢銀山 東北쭉 40 리 南原都護府 기록없음 潭陽都護府 秋月山 東北쪽 20 리 淳昌郡 追山 北쪽 3 리 龍潭縣 龍岡山 北쭉 3 리

昌平縣高山 東쪽 5 리 任實縣 龍燒山 北쭉 5 리 茂朱縣坡山 北쪽 1 리 谷城縣 動樂山 西北쪽 4 리 鎭安縣 富貴 山 北쪽 5 리 玉果縣 雪山 西北쪽 13 리 雲 峯縣 기록없음 順長水天縣都 護府 瞬靈登踊 山山 南東족쪽 14 리0 리 樂安郡 金錢山 北쪽 1 리 寶城郡 德山 北쪽 5 리 綾城縣 雲山 南쭉 1 리 光陽縣 白鷄山 北쪽 20 리 求禮縣 智異山 東쪽 8 리 興陽縣 所伊山 北쪽 3 리 同福縣 母后山 東쪽 10 리 和順縣 羅漢山北쪽 6 리 瑞平黃 興山1 t I 都都牧 護護府府 碧大滅峴花惡山山山 北西東쪽쪽쪽 647 0리리 리 鳳 山郡 祿科山 西쪽 5 리 安岳郡 楊山 北쪽 5 리 載寧郡 長壽山 北쪽 5 리 遂安郡 遼東山 東北쪽 4 리 谷山郡 南山 南쪽 8 리 信川郡 花山 北쪽 6 리 新溪縣 九峯山 北쪽 1 리 牛峯縣 기록없음 文化縣 乾止山 北쪽 4 리 兎山縣 兎山 北쪽 2 리 長連縣 鳳凰山 北쭉 5 리 海캐牧 龍首山 北쪽 2 리

延安都 談 府 應勢 山 北 쪽 3 리 豊 川都 護 府 瑞 麟峯 北 쪽城 內 白川郡 維 岳山 北쪽 1 리 翁津郡 花山 東쪽 2 리 松花 縣 墨 山 北 쪽 15 리 股栗縣 기록 없음 江 陰縣 天神山 西쪽 9 리 康翔縣 屈凰 山 北 쪽 10 리 長淵縣 기록 없음 江 陵 大都 護 府 기록없음 三陸都 護 府 葛夜 山 北 쪽 1 리 襄陽 都 護 府 雪 岳 西北 50 리 平海 郡 釜 谷山 西쭉 1 리 朽城郡 麻耆羅 山 西쪽 30 리 高城 郡 金城 山 西쪽 9 리 通 川郡 登 禾山 北쭉 1 리 蔚 珍 縣 安 逸 王山 西쪽 41 리 飮 谷 縣 朴山 ~t 쪽 原 캐牧 維 岳山 東쪽 25 리 春 )II 都 護 府 鳳 山 北 쪽 1 리 族 善 郡 飛鳳 山 才t 쪽 寧越 郡 鉢 山 北쪽 5 리 平昌郡 魯 山 北쪽 1 리 麟 諦 縣 伏 龍 山 北쪽 2 리 洪 )II 縣 石花山 才t쪽 橫 城 縣 馬 山 北쪽 2 리 淮 陽 都 護 府 義箱嶺 北쪽 1 리 鐵 原都 護 府 , 高 岩山 北쪽 40 리 金城 縣 慶 抱山 北쪽 2 리 楊 口 縣 飛鳳 山 北쪽 2 리 狼川 縣 桂山 西쪽 1 리 伊 )II 縣 城山 北쪽 2 리

平康縣 기록 없음 金 化 縣 五 申 山 北쪽 13 리 安峽縣 萬景 山 北쪽 2 리 咸興府 城串 山 北쪽 2 리 永興大都設府 聖歷 山 西쪽 2 리 定平都 護 府 鼻白山 北쪽 4 리 高原郡 假山 北쪽 10 리 安湯都設府 鶴城 山 東쪽 5 리 德源都護府 기록없음 文 川 郡 盤龍 山 西南쪽 25 리 北 靑都護府 連德 山 西쪽 2 리 端 川郡 道德 山 西쪽 23 리 利城縣 鎭 山 西족 22 리 洪原縣 기록없음 甲山都護府 天鳳山 東쪽 8 리 三水郡 기록없음 鏡城都護 府 祖白山 西쪽 5 리 吉城縣 기록없음 明 川 縣 永平山 南쪽 32 리 慶源都護 府 기록 없음 會寧都護 府 鷲 山 西北쪽 5 리 鏡城都護 府 小白山 南쪽 45 리 糖城都護 府 기록없음 慶興都護 府 기록없음 富寧都謨 府 기록없음 平壤府 錦縮山 北쪽 5 리 中和郡 淸 凉山 北쪽 罪] 銀山縣 國靈山 北쭉 18 리 順安縣 기록없음 江西縣 舞鶴山 北쪽 1 리 安 1H 牧 加頭山 東쪽 3 리 定i II 牧 馬山 北쪽 5 리

I 永肅 柔)II 縣都 護府 唐米豆山山 東北쪽쪽 44 리리 ’l 嘉山郡 鳳頭山 北쪽 1 리 l’

義사 1 牧 松山 東쪽 30 리 鐵山郡 熊骨山 東쪽 10 리 龍川郡 龍骨 山 東쪽 8 리 昌城都設府 기록 없음 朔캐都設府 기록 없음 龜城都護府 甫十山 西北쪽 10 리 宣川郡 所山 北쪽 65 리 郭山郡 凌漢山 東北쪽 7 리 寧邊大都護府 藥 山 西쪽 8 리 雲 山郡 白碧山 西쪽 熙川郡 기록없음 博川郡 臥龍山 東쪽 3 리 泰川縣 기록없음 成 )11 都護府 初鶴山 東쪽 8 리 德川郡 長 安山 南쪽 25 리 竹)||郡 林大山 北쪽 4 리 慈山郡 기록없음 順川郡 刀山 北쪽 4 리 祥原郡 盤龍山 西쪽 3 리 三登縣 鳳頭山 東北쪽 1 리 陽德縣 隱干山 北쪽 25 리 孟山縣 豆無山 東北쪽 60 리 江東縣 大朴山 北쪽 4 리 殷山縣 鎭江山 北쭉 5 리 江界都護府 기록없음 淸原郡 北山 北쪽 4 리 理山郡 崇積山 東쪽 125 리 碧溫郡 九峯山 南쪽 3 리 ' 永遠郡 快山 西쪽 5 리

鎭山은 대부분 北쪽 10 里 以內에 위치하여 風水的 思考룰 만족시 켜 주고 있으며 간혹 銀 山다운 山이 北쪽 10 里 以內 혹은 東, 西 10 里以內에 없는 경우에는 南쪽 100 里 바깥쪽의 山운 鎭 山으로 삼는 경우까지 있었다. 죽 鎭 山의 실질적인 樣能분 만이 아니라, 都邑이 떤 모름지기 鎭 山이 있어야 된다는 風水 的 思考가 그와같은 無理를 하면서까지 鎭 山의 개념을 도입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鎭 山분만이 아니 라 都邑의 內 部構造 도 風水思考의 영 향에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風水說이 都邑의 內部 楠造 에 미찬 영 향은 매우 다양한 편인데 우선 局面이란 측면에서는 다음과 같은 해석이 가능해진다. 風水의 基本 構成要素 인 山과 7k 는 그 . 자체로서는 生成을 이루지 못하며 마치 天과 地가 합하여 人울 生成하듯이 山과 水가 합하여 야 氣 가 성립하며 局面이 생성되는 것이라 본다. 원초적인 天地人 의 象 이 山水 氣 의 象 으로. 변환을 이루고 이 山水 氣 가 山―水―局面 이 라는 形으로 나타난다. 이 와 같은 相反된 兩極의 結合 Coin c i de nti a opp o sit ion , 즉 兩極율 제 3 의 조건으로 변형 시 키 는 차원높은 合成에 대 한 ~ 原型的 心 象울 칼 웅은 統合象徵 Unif ying sy m bol 이 라 한다• 山과 7k 의 변증법적 변환 또는 統合象徵에 의한 局面의 형성온 古代 東洋에서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古代 이집트에서는 이 변증 법적인 局面形成을 위해 나일강변에 피라미드를 전설했는데, 피라 미드는 山이 많은 나일강 상류에는 없고 山이 없는 나일강 하류에 만 있는 바 이것은 피라미드가 山이라는 전축적 상상력을 갖게 하 기 위함이었다. 또 中美의 古代都市 Teo ti huacan 에서의 피라미드 와 운하, 멕시코 마야文明의 chic h en lt za 에서의 피라미드와 그에 대칭되는 깊은 못에 의한 山과 水의 對 比가 그 例이며 그 山과 水 사이에 都邑과 神殿과 墓룰 형성하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都邑風 7k 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山-水―局面을 형성하면서 四神 砂에 의한 限界믈 아루어 地理的 全 體性 울 이루어 주며, 이것은 無 秩序한 혼돈 가운데에서의 질서있는 체계를 잡아주는 구실을 한다. 이때 아 局面에 담겨지는 諸機能도 나름대로의 位階를 가접으로써 더 욱 확고한 秩序를 空 r바 에 부여 케 된다. 그런데 各 地域의 社會的

位階는 地形의 位階와 합치되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본다 . 風水局面에서 가장 높은 位階또는 中心이 되는 것은 穴이다 . 아 곳은 局面의 中核 이며 가장 內但 l 에 위치한 것인 동시에 모든 주위 가 이를 위해 촌재한다. 이와 같은 中心울 갖는다는 접에서 일반적 인 地形과는 근본적 인 차이 를 갖는다. 60) 國都의 경우 穴울 비못한 風水槪念과 宮閑 및 寺즘IJ, 書 院, 一般 住宅의 對應關係는 表 5 - 1 과 같다. 61)

50) 張聖浚, 1978, 「風水地理局面이 갖는 建築的 想像力에 관한 考察」, 《大韓廷築學 會誌》, 22 卷 85 號, pp.1 7~9. 51) 兪在賢, 前掃書 (a), p. 7 및 p.1 3.

표 5-1 風水槪念으로 對應시 킨 傳統建築配 證 要 素 I 局 宮 殿|寺 利 書 院匡 宅 玄 武 北 門 後 山 後 園 後園植樹 頭 穴 )l'넵 勤中 政殿宮 大講 雄 堂殿 文本 廟·祠 堂堂 본祠 堂 · 別堂;in 內明堂 內 庭 內 庭 內 庭 。土 마 %1- 外明堂 f,jl .j 庭 f’jl ’j 庭 前 庭 행랑마당 靑 龍 左 樓 左殿·閣·舍 左齋·舍•庫 左사랑 • 안채 白 虎 右 樓 右殿•閣•舍 右齋 · 舍·庫 右사랑·안채 案 山 勤政門 金 剛 門 中 門中 門 朝 山 南 門 柱 門 大 門 大 門·行 廊

이의 목칭은 이른바 潮高形式이다. 이것은 中心과 주변의 관접으. 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人間의 空間은 主體를 軸으로 하여 中心 化되어 있다. 모든 事物은 이 中心의 상칭성, 즉 엘리아데의 地軸 Axis mundi 에 참여 함으로써 實在的인 것 으로 된다. 中心온 다시 聖 의 中心과 俗의 中心으로 二分되어 聖온 穴에, 俗은 局面의 平面幾 何學的 中心에 자리 한다 . 그러 므로 風水說에 의 하여 선덱 된 하나의 自然的 地形온 이미 단순한 의미의 世俗的 空間이 아니다 . 原型的 回歸를 위한 조건 이 갖추어진 聖스러운 空間 이 된다 . 따라서 이곳 온 어떤 外部的인 힘을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의 容器로서 나타난

다 .52) 따라서 엘리아데的인 해석에서 都邑風水는 世界模型 im ag e mundi 을 모방하여 小宇宙 mrio c osm 를 창조하려 는 의 도의 결과가 되며, 都邑의 建設은 바로 宇宙創造의 再現이라는 엄숙한 儀式이라 고 본다 .53) 都邑의 建設者듈이 上記한 것과 같은 思考觀念울 가지고 都邑울 꾸몄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지만 風水的인 空闇配置關係를 中心槪 念으로 파악한 建築學의 발상온 매우 홍미있는 일이다. 이것을 서 울의 경 우에 서 보면 淸溪J II 을 基底로 하여 北으로는 北岳, 南으로­ 논 南山으로 연결되는 한 쌍의 向天的 흐름을 설정할 수 있으며 또 外明堂쪽으로는 三角山, 冠岳山으로 연결되는 한 쌍의 向天的 흐름 Heli otr o p ic flow of spa c e 을 설정 할 수 있는데 向天的 흐름은 人類 의 보편적인 天地交通 욕구의 空間的 表現이라고 할 수 있다)

52) 張聖浚, 前揚 密 , p. 21 . 53) 兪在賢, 前掃 書 (a), p.1 20. 54) 林忠伸, 1981, 「母空 r, U의 原型 : 물과 向天的 호롭」, (大韓建築學會誌》, 25 卷, 103 號, p. 20 및 p. 21.

(그립 5-1) .

악관한`\h h… ] 산.. 강

그립 5-1 서 울 內外明堂의 向天的 性格

비단 都邑분만이 아니라 自然部落의 경우도 風水思考의 영향은 있었다. 물론 이 경우 보다 좋은 곳은 都邑이 차지하기 때문에 마

을은 그 規局이 떨어지는 편이기는 하지만 鎭山문제 55) 라돈가, 마울 景競 의 스카이타인 문제 56) 에 있어서는 특히 신경을 많이 쓴 혼적이 있다. 道路와 住宅配置關係에 있어서도 風水說이라 단정지울 수는 없겠 지만 地勢를 有機體로 知梵한 좋은 例가 있다. 忠北 機山郡 靑安 面 雲谷一里 機質마을의 硏究에 서 보면 一見하여 매 우 불규칙 하고 무 원칙하게 보이던 道路와 住居의 配置가 이 마을에서 많이 보이는 감나무의 가지와 잎에(그림 5-2) 대입시켜 놓고 보면, 질서를 갖고 動的 構成으로 배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57) 風水說 의 發生背景과도 관계있는 일인 듯하다.

55) 曺 成基, 1979, 「農村 自然部 落 의 祭落形態에 관한 硏究」, 《大韓建築學會誌》, 23 卷, 88~, pp. 46~7. 66) 金鴻植, 1975, 「마을空間櫓成方法에 대 한 한국 傳統建築思想硏究」, 《大韓建築浮 會誌》, 19 卷, 64 號, p. 48. 67) 金鴻植, 上掃 書, p. 50 .

그립 5-2 감나무 줄기에 비유된 마을 길과 집

5. 陽宅의 三要誤 陽基와 陽宅울 업격히 區分 使用하기로 하였기 때문에 陽宅風水

의 경우수근 주로 住宅의 配置關係가 문제가 된다. 그러나 本 書 의 주 된 目的이 風 7J (와 地理風土와의 관련성을 추구하는데 두고 있기 때문에 住宅의 配置 문제는 그리 큰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게 다가 前述한 바와 같이 陰宅, 陽基가 本質에 있어서 차이가 없는 것인 만큼 대부분의 내용이 前章과 중복되는 경우가 많으며 思想史 的으로도 風水思想의 大宗이 陽宅이 아닌 만큼 여기서는 陽宅風水 에 서 가장 많이 쓰이 는 三要誤만을 간단히 소개 하고자 한다. 58) 三要란 門, 主, 社를 일컬음인데 門온 말 그대로 大門, 主는 主 가 되는 居處죽房, 그리고辻는 同房으로 부업을 뜻한다. 由之路, 居之所, 食之方은 현대적인 住宅計 劃 l 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 ` 임 을 생 각할 때 陽宅 三要缺이 바로 이 住宅計劃J의 核心的인 三要素 의 配置方式을 論한 것은 매우 타당한 일이다 .59) 이 중에서도 特히 大門율 중시하는데 雪 心賊 辯論篇에서 그 이유 를 張宗道의 말을 引用하여, 大門온 氣의 出入口이며 氣口는 사람 의 입과 같기 때문이라 하였다 . 입이 바르면 呼吸飮食이 편하고 門 이 바르면 堂氣를 받아들이고 人物이 出入하는 데 편한 까닭이라고 . 부연하고 있다. (陽宅首重大門者 以大門爲氣口也 張宗道云 大門者 氣口也 氣口如人之口 人之口正 便於呼吸飮食 人之門正 便於順納~ 氣人物 出入 )60) 이 때 집 의 坐向울 八卦方位에 의 하여 61 ) 二大分하~랸사 乾坤良免를­ 하나로 하여 西四宅, 次離 震 興울 다른 하나로 하여 東四宅하니 이 것이 소위 陽宅의 東西八宅論이다(그림 5-3). 이 論理논 周易 說卦 傳의 天地定位 山 澤通氣 를 西四로, 雷風 相 薄 水火不相射률 東四로 함에서 비롯된다. 이때 天地가 乾坤, 山澤이 良免가 되니 乾坤良免 가 西四가 되고 雷風 이 震興 , 水火가 吹離가 되니 震興吹離 가 東四 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서로 卦意가 다른 것이기 때문에 看法할 때에 이것을 混同하여서는 아니된다. 58) 『陽宅三要映』(1 981 年, 高麗風 水地理 母會組 )윤 주로 參考하 였음. 59) 兪在쨌, 1979(b), 「民宅三要윤 롱하여 본 四國傳統 住宅의 配底計劃論」, 《운산공 대 연구논문집 》 , 제 10 권, 제 2 호, p.8 4. 6610 )) 『八雪卦心方賊』位,에 辯대論해鬪서 는陽 宅第 門3 章向의辯 「坐向 論 」 參照

...

次- 그림 5-3 東西八宅分別圖

표 5-2 陽宅九星論 貧狼星 | 生 氣 1 吉 武 曲 星 1 延 年 1 吉 巨 門 星 | 天 乙| 吉 廉 貞 星 | 五 鬼| 凶 文 曲 星 | 六 殺| 凶 祿破左 軍存輔 星星星 ,|1| 禍絶伏 害位命|]| 比 凶凶 和 右 弼 星 | 伏 位|比 和

八卦의 各 方位논 九星에 귀속되는데 62) 이것을 정리하면 表 5 - 2 와 같고, 배 속은 表 5 집와 같다. 62) 九星論 역 시 第 3 章에 詳述하였음.

표 5-3 八卦方位 九 星 配周圖 方主 1 乾 I :!A: I 良 1 溪 I ~ I 離 l 니 免 乾 1 輔 l 六 天 1 五 l 禍 絶 1 延 1 生 니디輔 1 五 1 天 生 延 絶 1 禍 니天|기미니니기生 I~ 震興 11 니禍 1 니生 六l 絶 I1 미니니미니니'니니絶六 離尸니니f니니天 1 輔 1 기五 坤 1 延 絶 1 生 禍 니기미天 免|生尸니니絶 1 기니니 輔

여 기 서 生氣는 貴節, 延年은 孫節, 天乙은 食節, 五鬼는 百病, 六 殺은 官松과 口舌, 禍害는 破産, 絶命은 傷審 의 應氣이니 吉凶온 自 明한 샘이다. 輔 弼온 主吉亦吉 主凶亦凶으로 자체로서의 吉凶울 따 지지 않는다. 이 것 을 보다 간략하게 圖式화하면 (그림 5-4) 과 같다• 看法의 순서는 먼처 門올 보고 다음에 主를 보기 때문에 門八卦 方位에 主八卦方位가 배속되면 定門定主 六十四型이 이루어지고 이 六十四型 각각에 辻의 八卦方位를 따로 論하는 식이다. 이는 六十 四卦辭 풀이를 그대로 引用한 샘이 되며 아것을 요약하면 (表 5-4) 및 (表 5-5) 와 같다. 63) (표는 pp. 292 - 5 에 있 음) 63) 兪在賢 前掃 흡 , pp. 100~101 에 서 轉哉 합.

方仕吉I 良坤免• 免坤 坤良免· 免良坤 免•乾良 良免乾 乾良免 坤乾良免 吉主 家 財 堂 塔表明意卦說主 明說 吉久發年次·嗣則芝富初 蕩則家久亡産初年財發 男女義丁仁而貴富旦有壽而 最其·禍凶大速 女亡婚死財·發則間久有 散居財·壽霧短 責昌榮富吉·大夫配正婦 姿次妄則·久吉壽有年發福初 運乾·良發年補初·益田進産 • •母人男亡則久天법持2福發 榮踏和昌富費夫·壽高女婦男 短産居退·痛·霧田壽落腹心 子孫萬六旺·益興進産畜·田 黃胃·丁牌種病傷財損 z嗣敗·家壽·亡短人産男 •• 男內壽亂不家天人J7女·婦 4-5三十二1三二四西十F宅 표 名 |名||主卦|卦宅意·|命 婦天傷乾純陽女伏重位宅主乾乾 浮門落天高狂水宅松水:天殺 共六主乾 : 乾家上貴富臨山避山天天天宅乙乾良主 入子雷門鬼長傷天妄雷元主震乾五鬼宅 落提心亡興産乾害風天宅訴興乾主禍 火居霧疾途 헵同人天眼生宅離主命絶乾 地主宅地天年華榮否主到門天乾坤延 天澤履旺主宅允財氣澤天亂乾浮生 :掌冥宅位園家地坤伏重孤地重主坤坤 澤嗣臨絶地財進澤地後天免乙宅主坤 天地昌年宅泰延富門天起地貴乾主坤 水絶地存命宅師命男主吹中坤吹坤不 홍産足山地重土山地田謙生主良坤氣宅 亡雷母地位龍臨人産復宅禍主震坤害宅 死宅老五戶地理鬼人母升風地主興坤 多宅主火離殺母腐六坤見門人明火地夷 門門 門門門 門 門 門門 門 門門 門 門門 門 門 1 J 꿉 西 四

乾 良 坤 ·坤免·良乾坤良 免良乾坤 良·乾 良乾免坤 乾坤•免 乾良 吉 子次吉 傷小次退 亂 初財發則久·年不陽妻純化웬 家不道黃財之寧散種嗣疾牌 亂兒養·小義母牌疾病風霧子 ·男人弱留婦道不悼作家亂和 ·道家興隆·顯達功名次吉 金宅·之殿登星四西宅吉一第 一發·善好家財發次貴吉· 官散舌敗詞口家亡弟和·不兄 ·財年初發·男壽人單人丁稀·益産進田冥·人旺多興丁··敗退業産久敗小亡後天婦絶 男家·秀女聽道科連順甲和綿 ·嗣絶居冥·家産和田不道敗 웬人·T傷天敗 絶財 夫奪妻男·壽權單主•作怖鬼 興道家女先·隆小男多凶後吉 伏位宅 六殺宅 命宅絶 禍害宅 宅氣生 年宅延 乙天宅 鬼五宅 宅位伏 宅氣生 害宅禍 年宅延 命宅絶 六殺宅鬼宅五 乙宅天 子 山妻子傷經性重 相雷兒見山小死 臨地山絶婦戶冥 鬼臨地戶婦剛女 田地山産益進多 旺澤人山家富貴 不陽純化傷勉妻鬼洋遇落傷水 權婦家少重澤掌 母冥天澤掌源財 江傷畜投虎六白 福增山小澤榮房 腐龍入勞虎堡狂 地限逢亦虎陰陽 蒸災火少虎女亡 隆財地異澤姓居 重良山 雷山頭 風盛山 賀火山 山地刺 損澤山 山大天畜 蒙山水 免重澤 央天澤 水困澤 山咸澤 澤雷隨 澤過風大 澤火革 年澤地 良良主 主良震 :良良興主 門 良離主良 良坤主 先良主 乾良主 共良主 ;免免主 乾免主 共免主 免良主 震免主之 免興宅主 免離主 免坤主 門 門 門 門 門 門 門 門 門 門 門 門 門 門 門 門 宅

吉仕I方 興吹離 離吹·興 興震離 離震興 吹震· 興震·離 次離震·興 震次. 卦意十明二十1F主二表三說 | |宅名說明 位伏宅發子 웬久年宅則大妻初 鬼五宅利諸多病敗産,不安亡事疾家 達大名·孤年顯·丁旺霧久人功宅天乙 • 富子五全一貴科雙吉宅第登生宅氣 밴則久年延産,興 田妻旺富宅,貴 霧女出宅絶痛男命腹天·衍·亡婦疾 破要重禍•財宅害天家妄婦散亡妻女 天財狂浮殺六宅出嗣水散落·門之 宅·人旺居位伏財則發不年丁初霧久 宅殺六··壽家旺持婦不短丁人男人人 宅五鬼z·壽妻荊天財嗣散 宅命絶氣·•男z火嗣上小升多財女散 宅 年•延子吉堂全壽次滿祿孫福 ·腕妻害禍·權調富經發夫不有宅間奪 宅氣生壯郞秀·去貴大元出富大才 • 初子發全雙義大家貴掌富年宅乙天 四三束宅 意 逢子亂妻 芝嗣須웬福絶嗣久 女秀華發 吉富大濟 男젬死中浪女亡小 絶氣敗浮 重女兒無 冥絶間婦 光女少傷 主公不久 富配費局 不經調 婦福女良 家稀好喜 5 5- 卦重苦山遇發雷榮木經火土相遇水浪乾炤重 到人免火乾老 正陽 婦山 雷發風丁표1 水水水 水水水澤水火火離離陰火火 火主|.卦名 次重吹主水 塞 主水山良 主屯雷水震 主興水井風 水火紙濟主離 水坤比主地 水澤主節免 乾水主天需 廊重火主貧 火晋地主坤 火際澤主先 火大有天乾主 共火未濟主水 良火主旅山 火峻噴雷震主 興火主風鼎 命門|門吹 門吹: 共吹門 門吹 홍 故門 吹門宅 共門 門吹 門離 門離 E岡離門 昌 離門 命離門 출 離門 離門 門離 I 룹 東 四

興離 興吹震 離次箕震 興 챠&: 離.興.震吹 I離'震: :;,;. 舌 口 初年• 富發婦人短壽丁人不旺 甲科·最利發大富貴·功達顯名 五•科子登 夫婦家講和道昌榮 黃種牌胃·財丁全兩不 丁財不兩膜全·腹心隨痛 損公,老壽短,家死幽官命人詞 年大初傷·吉子웬妻·女男善好 絶女敗男·亡天牌疾風胃 初年·發財多女男久芝小則嗣 發福·質發女婦俊·秀男人壽短 最發禍官,速詞舌口霧掌家母 不女婦筋,和骨痛落子承義宗 短女婦産,壽月亡,疾腦脈心腹 子五,科登女男秀俊,第宅一吉 三出小傷罪過兒繼子雜 名功發速出才秀去元壯歸 位伏宅 延年宅 生氣宅 宅禍害 宅命絶 鬼五宅 乙宅天 六殺宅 伏宅位 天宅乙 宅鬼五 六殺宅 害禍宅 氣宅生 命宅絶 延年宅 妻木子相웬重震相風雷福配速發 雷明火光富貴昌 龍門久入老母傷 虎爭龍長鬪傷愛 龍上天飛公殊老 水雷芝行嗣多善 龍中山卦小兒郞 亂限女兒風重是 富嗣貴之風當火 到地門先人母亡 見中地虎長傷婦 落天風痛長婦殺 五科登子有風水 風母霧山芝嗣多 風如名功雷火個 重雷震 風雷恒 火雷豊 地豫雷 雷歸妹澤 天雷大壯 水解雷 山雷小過 風重興 風家人火 風地觀 風中平澤 風小天畜 風水漁 風山潮 風雷益 震震主 !震興主 震離主 震坤主 震免主 震乾主 震吹主 震良主 興主興 興主離 :問興主坤 興免主 興乾主출 興吹主 興主良 興袁主 門 門 門 門 門 門 門 門 門 門 門 門 門門 門門 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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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免 震 天 免 震 推 推 吹 iK 延允 震 免 震 淮 淮 그립 5-5 西四宅門主相 關關係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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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 天 그립 5-6 東四宅門主 相關關係圖

이 表에서 吉宅의 유형을 . 圖式化시키면 그림 5 - 5 및 그림 5-6 와같 다, 이때 社의 배치 방위 역시 八卦의 原意에 좇으떤 되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하였다, 例를 들면 원의 中心울 宅의 中心으로 잡았을 때 中心에 서 乾方 에 門이 있는 乾門의 경우 대체로 良, 允, 乾方에 主房이 있으면 좋고 坤方에 主房이 있으면 大吉이타는 式이다.

제 6 장 圖識類上의 風水思想

1 圖諏硏究의 地理學的 意義 오늘날 人文地理 學 은 各系統分野에 있어서 대단한 專門化와· 발전 을 지속해 온 것이 사실이지만, 전반적인 현상을 綜合的으로 다문 關 係 論 文은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에 처해 있다. 系 統的 硏究에 있 어서도 그 主題논 대부분 人間과 文化에 대한 記述 및 說明이라는· 文化地理學分野에 집중된 경향을 보인다. 本質的으로 人文地理學 혹은 文化地理 學 은 인간과 그들의 업적, 그리고 位 置 狀況과 特定時間에 관한 연구를 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무수한 因子둘의 空間分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함은 물론, 過 去로부터 이어진 現在라는 時間因子에 특히 관십을 가쳐야만 ~ 다.l) 文化 景 觀온 항상 변화하고 있으며 그 變 化 속의 現在狀況울 파악 해야만 올바론 理解를 할 수 있다는 것은 文化地理學의 發達 初期 부터 지적되어 온 사살이다 .2) 筆 者는 地域의 空間秩序의 成立이 그 地域에 居住하는` 사람들의 포괄적 의미의 文化와 自然環境이 相互作用울 하는 과정에서 이루 어진다는 전제하에, 韓民族이 지니고 있는 가장오래고根源的 土地 觀인 風水思想울 우선 文化의 한 要素로 간주하여 그것이 어떻게 韓 1) Dic k en, Samuel N. & Forrest R. Pit ts, 1'57 0 , Intr o ducti on to Cult ur al Geog r ap h y, Xerox College Publish in g Mass. , p. 29. 2) Sauer, Carl 0. , 1925, The Morph olog y of Landscap e •, U. C. , Berkeley , Publi cat i on in Geog r ap hy , vol. 2, No. 2, p. 53.

半島 地表 景觀 에 두영되어 있는가를 試驗的으로 시도한 바 있었다 .3) 時間的 要素 라는 過程과 綜 合的 觀 點 이라는 地 理學 의 理想的인 接近方法울 同時에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時 間要素 한 가지를 集 中 的으로 分析함으로써 現在 地 表 空 間 의 性格울 어느 정도 밝힐 수는 있을 것이다. 時間要 素 中에서 分析의 便宜上 가장 널리 사용되는 종류는 그 地 域에 居住하는 인간의 文化傳統일 것이며, 그의 可視的 實睦 인 歷 史資料가 硏究에 利用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地理 學 의 立 場 에서 살 펴볼 수 있는 文化傳統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지만 本 稿 에서는 그 중에서도 큰 영향을 地表空間에 미쳤을 것으로 추측되는 民 俗 信仰 율 매체로 하여 特定地域의 地 域 秩序를 究明코자 한다. 民俗信仰율 宗敎로 볼 수 있는가의 문제는 次 置 하고, 하여튼 그. 것이 住民의 生活 樣 式에 至大한 影響 을 미쳤을 것이 分明하고 나아 가 地表空間에 두영되었을 것임도 否 효정 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本稿의 展開에 있어서 宗敎 學 的인 논의는 일단 도의시하여도 무방 하다고 본다 .4) 宗 敎 혹은 信仰이 社 會 에 미찬 영향이 매우 크다는· 것은 社 會學 혹은 宗敎 學 에 있어서 周知의 事實 이며 5) 결국 地理 學 에 있어서도 그와 같은 論理를 定理로서 취급하여도 무리는 없다고 생각된다. 3) 崔 昌祚 , 朴 英漢 , 1978, 「風水에 대한 地 理學 的 解釋 , 陽基 風水몰 中心으로」, 《 地 理 學》 , 第 17 號 , 大 韓 地 理學會 , pp. 21~39. 崔昌 祚 , 1978, 「 陰 宅風水에 對한 地理學 的 解 釋 」, 第 5 號 , 서울大 社 會 大 地理 學 科, pp.9 1~9. 崔昌 祚 1980, 「 固識흄 類上의 土地 觀 에 대한 地理 學 的 解 釋 」, 《 地理 學論器 》, 第 7 號 , 이 章 온 이 論 文을 거의 그대로 轉載 한 것입. 崔 昌 鹿 1982, 「風水 說 坐向 論 上의 吉凶判 斷 에 관한 緯學 的 解釋 」, 《 地理 學》 , 第 6 號 , pp.9 0~109 . .:z. 의 月刊誌에 風水와 정갑목에 대한 글을 게재한 바 있음. 1983 「정갑록의 힘과 꿈, 그 과학쳐 해부.」, 《마당 》 , 1 월호• 1983 「風水地理 說 의 현대 적 해석 」, 《 政經文化》, 2 월호. 4) 宗敎에 관한 개 념 온 M. E li ade 業 李恩 奉譯 , 『宗敎形態 論』 에 힘 입 온 바 크다. E li ade 의 論述 이 宗敎 學 上 어떤 위치문 차지하는지는 알수 없지만 비록 少 數 說이 타 하더라도 本考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內的 信仰아라는 宗敎의 本質 과는 直 接的 關 係가 없는 論 文아기 때문이다. 5) Broek, J. O. M. & Joh n W. Webb, 1978, A Geog r ap h y of Manki n d, 3rd, ed, McGraw-Hi ll, Inc; pp. 121~2 .

韓民族의 一部가 상당 기간 신봉해 왔고 現在까지도 약간수의 신 봉자가 있는 것으로 보고되는 6) 십여 군데의 避亂地인 소위 十勝之地 는 鄭鑑錄이 있기 이전부터 항간에 유포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그곳에 移入되어 特異한 景觀울 이루어 居住하고 있음은, 上記한 問題意識에 비추어 매우 중요한 文化地理 學 의 硏究對象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十勝之地는 그것이 可 視 的 信仰의 표현일 분 아니라 믿음과 環境 의 결부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회귀한 資料로서 그와 같은 場所둘 의 環境的 共通性온 무엇이며, 一般的 模型의 設定은 가능한 것인 지, 또한 韓民族이 保有하고 있는 歷史와 傳統文化 속에서 如何히 十勝之地가 선택될 것인가를 밝혀내는 것은, 價値있는 作 業 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十勝之地에 관한 기 록은 鄭鑑錄 鑑誤 以外에 그와 유사한 여 러 圖識 書 들에서 散見된다, 즉, 鄭鑑錄 異書 內容 中의 徵秘錄, 運奇龜 策, 秘知論, 遊山錄, 十勝地, 南敬岩山水十勝保吉之地 等 8) 이 그것 이다. 中國의 소위 孔子閉房記니 推背圖니 하는 것과 高麗朝의 道說秘 記, 朝鮮朝의 鄭鑑錄둥의 圖識書類는 識者 無識者 階層울 막론하고 오랫동안 民心울 迷惑케 하여 각종 幣害믈 끼쳤으며 이런 까닭에 혹은 圖識排后의 소리와 令이 내려졌지만 워낙 그 信仰 및 思想의 뿌리가 人間心理에 깊이 박혀있는 만치 ,9) 十勝之地를 비단 術師의 장난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民衆의 土地觀의 일단으로. 보아도 튤립은 없다고 본다. 上記한 圖識書類에 나타나고 있는 十勝之地로는 豊基車岩金鷄村, 6) 吳世昌, 1979, 「造基邑의 鄭鑑錄村形成과 移 植産業 에 關한 硏究」, 《地理學 과 地 理敎育)), 第九輯, pp.1 66~85. 7) Sop h er, D. E. , 1967, Geog r aph y of Reli gion s, Prenti ce -Hall Inc. , N. J. , pp.l ~2. 8) 金水山, 1972, 『原本鄭鑑錄』, 明文堂, 서 울, pp. 54~65. 9) 李丙熹, 1939, r 固讓 에 對한 一二의 考察(一)」, 《震檀學報》, 第十卷, 震檀學會 , 서울, pp.l ~2.

陝JII伽倻山南側萬壽洞, 公 1H 維鳩麻谷間, 隨泉金堂洞東北側, 寧越東 側上流, 茂朱茂豊方洞, 扶安登岩下, 南原 雲峰智異 山下銅店村, 安東 花山 召來, 報恩俗離山難甄項連地, 丹陽永春 等이 있 다. 10)

10) 地名온 攝相老, 1960, i'韓國地名沿革考』와 孫成祐, 1974, 『韓國地名辭典』, (采 仁文化社, 서 울) 그리 고 한글학회 가 지 은 『한국지 명 총람J, 「충남편」(1 974) , 「충북 펀」 (l 어 0) 等울 參考하였으나 發見되지 않은 것도 많이 있음.

十勝之地는 避亂 • 保身이라는 圖識的 民俗信仰울 思考의 기저로. 하여 나타난 그들 신봉자의 土地觀이기 때문에 共通된 地理的 特色 윤 갖고 있을 것입은 쉽게 추측할 수 있는 사실이다. 本章에서는 우선 上記한 岡識書類上에 나타나 있는 全般的인 신봉 자들 의 土地觀울 추출하고, 다음으로 十勝之地 의 地勢的 득칭 에 엿 보 이는 共通分母를 찾아내어 그의 一般 模型 設定울 시도하여, 그와 같은 목칭들이 어떻게 避亂 • 保身地로서 선덱될 수 있었는가의 關 係를 밝혀보고자 한다. 地勢判斷은 주로 1 : 50, 000 및 1 : 25, 000 地形 圖 , 1 : 250, 000 地勢 圖 및 大東輿地圖 等 古地固에 의하고 因果關係分析온 자세한 現地 調査를 다음의 과제로 남기고 歷史, 民俗, 地理學 等 諸關聯分野 의 文獻에 의거하였다.

2 圖識書類에 나타난 土地觀 1. 圖識의 意義 圖識의 圖논 所有土地를 整하는데서 출발한 字라 할 수 있다. 죽 圖象의 뜻이요, 換言하면 河圖, 錄圖, 圖書 等의 符瑞 徵驗의 圖는 人爲的 • 計劃的 • 謀策的 出現울 標接한다는 것보다도 될수록 神意 的 • 自然的 • 天然的 出現울 標接하는 것으로서, 諏과 같이 미래에 일어날 사실의 비밀한 象徵 sym bol, 標徵 to ken, 標候 sym p tom s, 前 兆 omen, 暗示 sug ge sti on 로서 의 意義를 가진 것 이 다. 장래 에 어 떠 한 사실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그 事象의 標徵으로서 어떠한 형식 의 圖가 나타난다는 것 이 죽 河圖 錄圖의 所以다. 識은 識言, 識書 , 識記, 識錄의 謂인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주 로 神託, 天啓, 夢鄕 瑞異, 占言, 藍運, 符命 및 其他의 豫言, 秘 記 等울 가리키는 말이다. 해서 圖識은 그 內容 形式의 眞僞와 現 出의 神秘 여부를 막론하고 장태의 사실, 특히 인간생활의 吉凶禍 福 盛裵得失에 대한 豫言 혹은 徵兆를 지칭하는 用語라고 할수있 다 .11) 現在까지 전해오는 圖識書類는 그 종류가 대우 다양한 편인대, 12) 11) 李i1ill, 1939, 前撮합, pp. 5'15. 柳正基, 196 5, ~洋思想事典』, 右文堂, 大田, pp. 413~5 . l2) 村山智順, 1933, 『朝鮮 O 占 卜 上豫 言』 , pp.5 <; fl~ 617.

가장 찰 알려져 있고 內容울 포괄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 廣意의 鄭 鑑錄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는 듯하다. 圖鐵의 原意를 字句대로 해석한다떤 그 內容 中에서 土地競울 추 출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鄭鑑錄 自體가 筆者나 起源 이 不分明한 諸固識 書 類의 統合이라 여겨지고, 識緯地理說의 전설 져 주창자인 高道寧, 道說, 無學, 南師古, 鄭勘, 鄭北窓, 李土亭, 李西溪 13) 等 諸術師의 思想과 民衆의 地理觀이 융화되 어 이 룩된 著 述이라 판단되어 그러한 맥락에서 土地觀을 찾아보는 작업은 可能 하다고본다. 위의 諸術師가 風水地理家로서도 알려진 人物둘이기 때문에 결국 鄭鑑錄의 內容온 原則的諏 緯 의 부분을 제의한다면 風土的 입장에 서 씌어진 것이라 볼 수도 있다 .l4) 鄭鑑錄에 관한 대부분의 硏究例가 著作年代를 대체로 朝鮮朝中後 期로 잡고 있기는 하지만 15) 그 內容 中에는 이미 高麗朝에서 利用된 바 있던 陰陽說,風水說, 圖識說 等이 끼어 있는 것으로 보아 16) 民 衆의 土地觀이 介在되어 있다고 보는 견해가 크게 常道를 벗어난 것은 아닐 것이다.

13) 村山智順, 1933, 前損 書 , pp. 573~8 8. 村山智鳳 1931, 『朝鮮 O 風水』, pp. 348 ~5 0. 14) 今西亂 1974, 「鄭鑑錄解題」, 『高岡及李朝史硏究J, 東京, pp. 384~7뺄 lS) 金水山, 前掃 書 , pp. 65 ~7 L 16) 李丙熹 1980, 『高麗時代의 圖 讓 思想』, 韓國思想婁書 V , PP. 없 ~5L

固諏 書 類에 나타난 土地觀은 地氣 哀 旺의 思想, 王 都 回 歸 의 思想, 風水地理思想, 避亂 • 保身의 思想 等으로- 四大別되며 이들· 諸思想 이 同時代에 起源하여 民衆에 전승됨으로써 鄭鑑錄 等에 기재된 것 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적어도 朝鮮朝後期에는 卷rl'J1 에 널리 유포되 었던 것으츠i 생각된다. 2. 地氣表旺의 思想 鄭鑑錄울 비롯한 固諏 書 類는 주로 國運이 哀하고 國政이 불안할 때마다 머리를 들고 民衆의 마음속에 위기의식의 씨를 뿌리곤 했던

것으로 부패한 현실을 부정하는 민간의 末世的 感 情 의 정신적 기반 구실을 해왔다. 民 衆 은 이런 怪 書 에 假托하여 숨막히는 폭정과 암 흑 의 현실의 彼 岸 에 구세주의 도래를 약속하는 메시아니즘을 갈구 하였고 17) 당연한 결과로 집권계충의 居住地인 現王道의 地 氣 는 裵 하고 다론 곳에 氣脈 이 새로이 흥 왕하고 있는 것이라 믿었다. 이것 은 王朝 가 바뀔 때에 新 王 朝 에 의한 民心 수습의 견강부회적 방법 으로 이용되었 을 가능 성 도 없지 않으나 易姓革 命이란 것이 결국은 民心의 동요를 처 변 에 깔고 있는 것 이라 여겨지는 만큼 메시아니즘 적인 地 氣表 旺의 土 地 觀 은 설득력을 잃 지 않는다고 본다. 朝鮮 의 太 祖가 漢陽 으로의 遷與 울 國號改 稱에 우선하여 조급하게 처리한 것은 國號 률 정식으로 고치어 朝鮮 이라 한 것이 太祖郞位 二 年 二月이었음에 대하여 遷都 의 下 敎 는 불과 郞位 後 一個月內에 이루어전 것으로 알 수 있거니와 이를 단순히 王朝更送에 따르는 遷郡 죽 政治人心 기타 外 觀 울 일신하려고 하는 천도로만 생각해 서는 안된다. 太祖의 眞 意논 이러한 사정보다도 차라리 어떠한 神 秘的 思想, 다시 말하면 開京이 타고 하는· 地 德表 敗의 地, 亡國의 基 地를 하루라도 속히 피하려고 하는 風水的 思想에 拘泥된 所以였 다 .18) 不安期에 圖 識 的 思考가 횡행했음은 朝鮮 末의 혼란기와 극히 최 근의 6·25 當時의 世 態 롤 보더라도 明白한데 ,19) 그러나 高腐 朝에 있어서는 全 盛期 라고 할 수 있는 第 11 代 文宗으로부터 第 16 代 廢 宗 에 이 르기 까지 (죽 1047~1122 年)의 期間에 도 松都 氣哀 說과 延 基 思想, 즉 松都의 地 氣 는 도읍이 오렌만큼 접접 哀 해가므로 王 業 을 연장키 위하여는 새로 吉地를 덱하여 離 宮 • 離 京의 建 設, 王의 巡住 등이 필요하다는 思 考 가 대두되고 있었음이 特記할 만한다. 高麗 의 松都 氣哀 說, 移御巡住說 및 延 基觀 念은 마치 漢 代의 歷運 中 哀 說, 再 壽 命, 改元易號의 思想과 유사한데 이는 字 義 와 같이 歷 運, 죽 王朝의 歷數가 中間에 裵 한다는 것으로 松都氣 哀 說과 비교 17) 申 禎庵 , 1973, 『 鄭鑑錄 의 思 想 的 影響』 , 韓國 思 想獲함 11[ , pp. 512~2 2. 18) 李 丙 熹 , 1938, 「 李朝 初期의 建都 問 題 」, 《효檀學報》 , 第 九 卷 , pp. 30~35. 19) 申 禎庵 , 前掃 합 , pp. 512~3 .

되는 것이니 漢召帝年間 (86~74 B.C. )에 睦弘이란 자가 사람을 시켜 帝에게 권하기를 賢 人울 구하여 참시 帝位를 禪讓 하라고 하다가 大 逆不道의 罪로 伏 珠 된 일이 있었다 .20) 이것이 죽 再受 命 說이니, 高 麗의 巡住移御에 의 한 延基說과 유사한 것 이 라 하겠 다. 21 ) 아울러 孟子 睦文公下에 나오는 〈一治一亂 〉 이 라는 統治의 變 化思想, 죽 인 간과 정치의 역사는 순환적인 변혀 과정을 밟는다는 正 統儒家 의 思 想도 一助를 하였을 것이라 본다. 결국 地 氣裵 旺의 思想은 特定時期에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꾸준 히 지속되어 온 土地 觀 이란 사실이 증명된 샘이다• 이 思想의 원천 온 물론 圖識 說이며 儒 • 佛 • 道敎 等 의 中 國 思 想 과 마찬가지로 이 땅에 전래된 이래 土 着 化된 것으로 추정된다. 土 着 化의 原因究明온 至難한 작업이라 여겨지며 앞으로 계속 추구해야 할 과제이지만 여 기서 몇가지 피상적인 土 着 化의 原因울 제시한다면 우선 韓 民 族 의 전동적 사고 관념 인 〈한 〉 思想에 서 유래 된 〈調 和 〉 의 觀念 이 22) 地 氣 裵 旺思想과 결부되어 土 着 化된 것이 아닐까 하는 개연성이다. 地 域 的 調 和가 地 氣表 旺思 想 에 의한 國 都의 이전에 의해서 이루 어질 수 있음은 目的 如何에 불구하고 결론적으로 가능할 것이기 때 문이 다. 地域計 劃 의 한 수단인 成 長振點 gro wt h po le 理 論울 代 入 시키는 일은 지나찬 경우가 될지 모르나 참고는 될 수 있다고 본다. 이것은 또한 道敎的 思惟와도 연결되는데 識緯 說 자체가 道敎 의 黃老信仰 및 神仙方 術 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으로 23)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圖識 혹은 風水說이 道敎의 正統이 아니라 〈 변 조된 곁 가지 debased off sh oot of a deg e nerate Tao i sm 〉 2 4 ) 임 은 확실하지 만, 絶對의 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天地가 尙久치 않다고 하 논 一 種 의 地 氣裵 旺의 일단은 道德經 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죽 道 德 經 第二十三 章 에는 〈希 言 은 自 然 이다 . 그러므로 甄 風~ 20) 漢 맙 睦弘 傳 . 21) 李 丙 熹 , 1980, 前 担 맙 22) 白世明, 1973, 『한국사상의 由 來 와 將 來 』 , 韓國思想菜참 I , pp. 38~63. 23) 車 柱 環 1971, 『道敎 와 韓國社會』 , 韓國 民 族思想 史大 系 I , pp.1 50~51. 24) Clark, Charles Allen, 1961, Relig ion s of Old Korea, The Chris U an Lit er atu re Soc iet y of Korea, Seoul, p. 188.

終朝하지 않고 蝶雨는 終日하지 않으니 이것은 누가 하는 것일까? 天地가 하는 것이다. 天地도 尙久하지 않은데 하물며 人 rs1 일까〉라 논 귀철이 있다. 表運 이 지국하면 盛運이 온다는 極貝 n .iffl.의 周易的 運命親과 상동하는 귀철이라 여겨진다. 周易의 兩儀인 陰陽的 思考도 上記한 설명에 맥락을 같이 한다. 萬物의 生成이 陰陽의 兩儀를 떠나서 된 것이 없으나 그런 중에도 消長屈伸이 있어 陽이 長하면 陰이 消하고 陽이 屈하면 陰이 伸하 지만 太恒 이란 全體의 蓋 은 일정하기 때문에 그의 消長屈伸온 서로 反比例한다는 것 이 25) 調和를 바탕으로 한 地 氣裵 旺思想의 源泉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25) 柳正基, 前揚탄, pp.1 5~6.

그러니까 地氣 表 旺思想의 기초는 中國傳來의 無爲自然的 道家思 想과 周易의 術法的 性格, 그리고 韓民族의 調和的 心性이 복합적 으로 合一되어 圖識이란 方法으로 土着化된 것이라 생각되지만 앞 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이는 피상적인 것에 지나지 않고 보다 깊 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3. 王都回歸의 思想 鄭鑑錄 鑑缺에 〈鹿福山으로부터 온 脈이 白頭山에 이르고 元氣가 平壤에 이르렀으나 평양은 이미 千年의 운수가 지나고 松岳으로노 옮 겨져서 五百年 도읍할 땅이 되나 요마한 중과 宮女가 난을 꾸미고 땅 기운이 哀敗하고 하늘 운수가 否塞하여지면 運온 漢陽으로 옮길 것이다.〉 〈來脈의 운수가 金剛山으로 옮기어 太白山, 小白山에 이 르러 山 )II 이 기운을 뭉치어 鷄龍 山으로 들어갔으니 鄭氏의 八百年 도읍할 땅이요, 元脈은 伽倻山으로 들어갔으니 趙氏의 千年도읍할 땅이요, 全jt I 는 范氏의 六百年 도읍할 땅이요, 松岳에 되돌아와서 王氏가 다시 일어나는 땅인데, 나머지는 자세하지 않아서 상고할 수 없다.〉 26) 하였고, 三韓山林秘記에는 〈國都로는 錦江이 제일이

26) 金水山, 前損l'!,f, pp. 124~6 .

요,- 松岳이 다음이 요, 漢山 이 또 그 다움이 다 〉 27) 라는 句節 이 있 다. 위의 引用文에서 王都의 遷與울 순서대로 열거하면, 평양一송악 --+한양一계 룡산一가야산一전주一송악으로 되 며 古都인 평 양을 제 외 하면 송악에서 시작하여 예의 없이 38°N 以南의 京 畿 一忠 淸 一慶尙 一全 羅 를 거쳐 다시 송악으로 되돌아오는 형태이다. 이의 바탕이 地氣裵旺思想에서 비롯되었을 것은 分明하며 따라서 그 原因究明도 그에 準하면 될 것이지만 王 都가 南 韓 에 局限되 어 있고 松岳에서 시작하여 다시 松岳 으로 되돌아올 것 이란 路과 江原 울 제외한 各 道 가 한 번씩 포함되 어 있음이 特色 이타 여겨진다. 王都가 南韓에 集中分 布한 理由를 說明 할 수 있는 결정적 근거는 없는 듯하다. 다만 農業社會에서 農業生産 力이 우월한 南 部地 方에 대한 選 好와 北方族의 侵 入에 대한 不安感, 圖 證書 의 著者로 알려 전 術師 들의 出生地가 대부분 南韓地方 이란 點 等 이 운위될 수 있 을듯하다• 南韓 各道에 고루 分布되어 있는 것은 前章 에서 지적한 調 和思想 으로 유추할 수 있을 것이지만 재마있는 사실은 王都가 다시 松岳 으로 回 歸 한다고 하는 競念 이 다. 松岳은 漢陽 과 함께 國 土 의 中央 的 位 置를 차지하고 있는 곳으로 首都 혹은 core area 의 立地로서 논 理想的인 곳이 다. 28) 그러나 合理的인 國都 의 立地로서는 松岳에 비하여 오히려 漢陽 이 낫다는 평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29) 王都의 回歸를 그러한 觀點 에서만 보는 것은 問題가 있다. 朝鮮初 漢陽莫都 과정에서도 논란된 바와 같이 風水的 立場에서 松岳이 漢陽 을 능가한다는 것은 術師 사이에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사실이었고 십지어 開城울 風水之都 라 일컫는 것으로 보아도 術法 的으로는 松岳이 우위인 정을 알 수 있다 .30) 'l:l) 上掃 탑 , p.1 54 . 28) Pounds, Norman J. G. , 1963, Polit ical Geog r aph y, McGraw-Hi ll Book Co. , Inc. , pp. l7l~2. 29) 崔昌社 朴英漢, 前揚 한 , pp.3 1~4. 30) 村山 智顯 , 1931, 前掛 효 , pp. 712~4 .

대체로 松岳은 藏風局 이고 漢陽은 得水局이라 31) 人口扶義力의 面 에서는 漢陽 이 유리하지만, 韓民族의 自 然 主 義 思想 죽 生活 태도가 자연순응적이며 自 然 의 理法을 깨닫고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것 만이 그들의 생 활을 안전하게 하는 방편이 리는- 생 각 32) 에 비 한다면 松岳이 낫다고 보여진다. 다만 松岳의 경우~ 그地氣가 表 하였다는 것이 단접이지만 언젠가는 地氣가 다시 盛케 된다는· 것이다. 그러 므로 王都回 歸 의 思想온 地氣 裵 旺思想의 발달 형태로, 後述할 風水 }갱念울 理論의 근거로 한 調和의 土地競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圖識 書 에 나타난 王都回 歸 의 思想온 地 氣哀 旺의 思想과 함께 地 理學的 解釋과는 거리가 있을지 모르나, 中 國 의 象數之學에 깊은 영향을 받은 듯한 혼적이 있다. 象戱 之 學 온 易에 대한 漢 代의 緯書 에서 시작되어 뒤에 周敦頭 (1017~1073), 召~$(10ll~1077) 等이 宋 學 에서 宗敎的인 道家思想을 混入하여 가며 발전되었는데 이는 결 코 個家 의 正統으로서 인정되진 않았으나 때로는 많은 지도적 철학 자 • 정치가에 있어서조차 그들의 사상 깊숙이 간직되어 傳統 時代의 全期「曰1 을 몽하여 떤떤히 내려온 흐름이었다 .33) 郡雍(康節)의 主著 인 皇極經 世 書 속에 포함된 皇 • 帝 • 王 • 覇 의 歷史 政治論的 圖式 은 人間世의 統治形態의 변천을 春 • 夏 • 秋 • 冬과 같은 循環序列 속 에서 파악한 것이고 나아가서 萬物이 처음 생기고 마침내 없어지는 全時期의 변천까지도 하나의 법 칙 으로써 동관하여 파악 34) 한 것 이 며 宇宙論的 圖 式인 元 會運 世論온 위 4 個 基本單 位의 相互作用과 累積 으로서 구성되어 있다. 그것은 모든 空間宇宙 및 人間世界를 포괄 하며 , 時間上으로는 2 時間의 小 單 位로부터 永遠으로까지 벨고 있 다. 元은 129, 600 년으로 12 個로 區分되 어 10, 800 年의 會 가 되 며 會 는 30 個의 運이 되고 E 햄은 360 年이 되 며 運 온 다시 12 個의 世로 細分되 니 한 世는 30 年이 된다. 35) 31 ) 上 撮 m , p. 49. 32) 李恒寧, 1973, 『韓國의 風土와 思想』, 悼國思想菜안 I , p. 65. 33) 商柄翊 , 1970, 「黃宗 淡 의 新時代 待望論」, 《束洋史學硏 究》, 第四輯, 東洋史學 슘 , p.1 7. 34) 許 在旭, 1974, 『中國文化菜說』, 新志社, pp. 286~7. 15) 高柄翊, 前損합, p.1 3.

召關瑾i의 유파인 胡翰과 黃宗羲는 이를 歷史發展論으로 전개하여 B. C. 477 年에 서 A. D. 1683 年에 이 르는 2, 160 年 F바 1 은 亂世로 보고, 黃이 明夷待訪錄 序文울 쓴 1663 年에 서 부터 20 年 後에 도래 할 孟子 의 소위 一治에 대한 기대를 나타내고 있는데 36) 이는 鄭鑑錄에 나 타난 菜年間式의 서술법과 유사함을 엿볼 수 있어 홍미롭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나라 圖誠 習 의 유래에 대한 한 提案일 수는 있는 것이지만, 土地競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는 筆 者의 현재 능력 으로는 不足하여 本考에 서 밝히 지 못하고 다음의 課題로 미 문 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黃宗羲가 기대하던 待윌은 실현되지 않았 고, 고령에 이르러 접점 道家의 超自然的 경향으로. 빠져들어 그가 待望했던 것의 타당성을 의십하였다는 歷史的 事 質이 모든 圖識 書 類에 대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접이다. 또한 漢陽遷都過程에서 判三司 事 鄭道傳이 中國의 歷代王都의 변 천과정을 제시한 〈陰陽術數의 說온 알지 못하나, 中國과 같은 大歷 代의 帝都로도 關中(西都), 洛陽(東都), 金陵(南京), 燕京(北京) 等 四處에 더 지나지 않고 舊都를 初襲하는 例가 많았으며 또 帝王의 都會를 반드시 術數로써만 計할 수 없는 것〉이란 史實도 王都回歸 의 思想에 는 중요한 典例가 되 었을 듯하다. 37)

36) 胡翰의 十二運 論 에 의한 曆 敷 계산 방식은 高柄ffl, 前撮 홀 , pp .5~18 올 參考하 였옵. 幻) 李丙熹, 1938, 前撮 합 , pp. 48~9 .

4. 風水地理思想 鄭鑑錄울 비롯한 諸圖識書類의 思想的 基本이 風水地理說이란 것 온 의십의 여지가 없으며 前述한 地氣哀旺, 王都回歸의 思想과 後 記할 避亂 • 保身의 思想도 결국은 風水地理說에 大分될 수 있는 것 임은 分明한 사설이다. 이 경우의 風水地理說은 크게 보아 陽基風水이고 細分하면 國域 風水, 國都風水, 都邑風水, 住居風水의 범주에 속하순: 것들이다. 序論에서 언급한 圖識 書 中의 風水關聯部分은 너무나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운 정도로, 및 가지 유사한 부분을 종합하여 例를 들 떤 다음과 같다. 첫 째 로 鑑缺에 〈天地는 陰陽이 먼저 주장이 되는도다. 〉 38) 라는 대 목으로, 이는 風水地理說의 요체가 陰陽五行에 있어 혼히 陰陽地理 說이타 불리는 것으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鑑誤이 風水地理思 想에 기초하고 있음을 밝힌 대목으로 평가된다. 둘째 로 國域風 7k 의 來脈 에 관한 대 목들이 散見된다. 대 체 로 鑑誤 의 경우 祖山은 鹿福 山, 宗山울 白頭山으로 하여 太白山脈과 小白 山脈을 근간으로 車嶺山脈이 등장하는 정도이다. 특히 太白山脈에 서 小白山脈이 분리하는 소위 兩白間이 크게 주목을 받고 있음이 독칭이다 .39) 三韓山林秘記에도 來脈의 내용은 거의 같으나, 車峴以 南이 背逆의 勢라는 점이 추가되어 있을 분이다 .40) 세째로 國都風水에 대한 지적으로는 우선 鑑誤에 漢陽 의 風水之

勢가 기재되어 있고 4 1) 三韓山林秘記에는 國都 의 우선순위를 錦江, 松岳, 漢山, 平壤, 慶 1Il, 原'.J H, 全사 I, 伽倻山, 摩 泥山 等으로 열거 하고 있다 .42) 道院秘缺에는 鷄龍 山이 운위되었는데 이는 錦江의 同 類인 듯하다 .43) 끝으로 都邑 • 住居風水는 가장 많은 墓울 차지하고 있으며 모든 固識書上에 예의없이 등장되는데 ,44) 大宗온 역시 後記할 避亂 • 保 身t 9 인 十勝之地에 관한 것 들이 다. 風水思想 部分온 앞에서도 제시한 바와 같이 筆者 가 다론 硏究例 에서 이미 몇 가지 제안한 바 있고 ,45) 이미 前章에서 언급되었기 때 문에 주로 十勝地에 관한 都邑 • 住居風水 부분만을 취급하고자 한 다. 38) 金水山, 前掃합, pp. 124~5. 39) 上撮완, p.1 24. 40) 上掃 합 , pp. 149~50. 41) 上損합, p. 126. 42) 上撮 합, p.1 54. 43) 上掃 합, p. 188. 44) 上掃합, pp. 127~34, pp. 149~57, pp, 195~7, pp. 205~7, pp. 214~5 , p.1 87 및 p. 190. 45) 崔昌祚, 注 3) 參照

3 避亂 ·保身의 土地觀 1. 避亂·保身의 思想 固識書類의 基本은 陽基風水思想임이 분명하고 ::::z. 현실적 代案온 의십의 여지없이 兵火와 凶年이 없는 避亂 • 保身의 땅, 죽 十勝之 地를 밝히는 것이 主目的이다. 國都風水에 대한 思考가 支配階級의 意識이었다면 避亂 • 保身의 思想은 오랜 동안 兵火와 凶年에 시달려온 民衆의 土地觀이었다고 볼 수 있다. 兵亂과 凶年울 벗어나 보자는 생각은 대부분의 민중이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方案울 제시한 固識이 유행되었을 것은 현실적으로 가장 적합한 避亂 • 保身思想의 원인이었울 것이지만 또다른 思想的 뿌리가있지 않았을까 하는 접 이 이 章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바이다. 그 思想的 뿌리 중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道家 혹은 道敎 인 듯하다. 道敎는 古代中國의 An i m i sm 에서 出發하였으며 現世의 幸福과 不老長生 等의 현세져 욕구와 민간의 잡다한 신앙을 기초로 한다. 神仙說울 中心으로 하여 黃老思想과 道家 , 그리 고 易, 陰陽 五行, 天文, 占星, 巫祝, 方術에다 儒家思想의 일부와 佛敎의 체제 를 모방하여 종교의석을 갖추었다. 한마디로 東洋思想의 總和的 民 衆思想인 것이다. 韓民族의 道家的 思想의 바탕은 檀君으로부터 시작되어 연면히 내

려온 것으로 新羅의 義湘, 道院이 다 仙家 부류에 속하고 高麗에는 陰陽五行說이 성행하였는데 이는 다 術數에 부회하여 생겨난 것이 나, 이도 또한 처음에는 道敎의 산물이 아닌 것도 아니다. 朝鮮의 昭格殿, 昭格署가 高麗의 道觀의 傳統울 이 어 받은 것 으로 이 도 또 만 마찬가지 이 다. 46) 朝鮮末 에는 다가오는 大災亂과 피난처가 어디라는 것을 예언하여 兩班 • 土豪들의 폭압과 珠求에 지찬 民衆은 새나라의 理想世界를 갈망하게 되었다. 이러한 社會相울 반영하여 자연발생적으로 생겨 난 것이 當時의 類似宗敎의 族生이다 .47) 이들의 거의대부분이 직접 간접으로 道家 혹은 道敎, 神仙系에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崔濟遇 에 의하여 제창된 東學도 예언사상인 秘記와 圖識說이 혼 란한 世情울 자극함에 연원된 것이었고, 土俗的인 샤아머니즘과 道 敎도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48) 東學 울 필두로 하여 天道敎系, 上帝敎系, 甄山敎系 , 梵世道系 等 이 모두 道家에 연결되어 陰陽五行說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避亂· 保身과 함께 後天開關의 思想을 提示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이는 民衆의 연면한 土地 觀 이었음이 분명하다 .49) 예컨대 東學의 경우는 運度循環 의 易理에 의하여 後天開關울 믿 · 고 있다. 이 運度는 先天時代의 運數 가 지나고 後天時代의 運數 가 돌아왔기 때문에 이 交易時期에 있어서는 怪疾運數와 같은 災亂도 겹치게 되지만 이 運數 에 철박한 蒼 生들을 救濟하여 後天의 地上天 國울 開關할 使命이 天命으로써 東學에 주어졌다고 보는 것이다. 各類派둘은 주로 鷄龍 山울 지칭하여 구체적인 장소까지를 제시하고 있다 .SO) 이와같이避亂·保身의 思想은연원을道敎에두고있다. 民衆에 확산된 것은 朝鮮末 및 日帝下의 혼란기이지만 鮮初 의 鷄龍與都論 46) 李能和, 『朝鮮道敎史』, 「 總說 m 」(李 鍾 殷 譯 , 1977, 普 成文化社), pp. 5~28. 47) 金得視, 1978, 『韓國宗敎史』 (7 版), 白岩社, pp. 34~6. 48) 黃元九, 1976, 『束亞細亞史硏究J, 一 潮閣 , pp. 238~9. 49) 李康五, 1977, 「新興宗 敎 」, 《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간)) ( 慶北篇 ), 文公部, pp. 끄 7 ~324. 50) 上掃 흡 p. 22 8, pp. 239~40, p. 254, p. 256, p. 258, p. 284.

議에서도 등장한 바와 같이 土地觀 自體는 오랜 역사를 끊임없이 이어온 것이타 판단된다. 2. 十勝之地의 位置 鑑缺에는 〈保身之地가 有十處하니〉 하여 ® 豊基酸泉 (一云 頭流) ® 安東華谷, ® 開寧龍宮, @ 伽倻, ® 丹春(一云 公사 1 定山), @) 公,J H 定山深 麻 谷, ® 鎭木, ®奉化, ® 雲峰頭流 山(一云 證泉 ), ® 太白(豊基大小白)을 꼽았고, 同 書 後尾 에는 ® 豊基車岩金鷄東峽 小 白山兩水之間, ® 花山召嶺古基在 靑陽縣越入奉化東村, ® 報恩俗離 山四甄項延地, @ 雲峰 杏村, ® 酸泉金塘室, @ 公'}t I 鷄龍 山維 鳩'麻 谷兩水之間, @ 寧越正東上流, ® 茂朱舞鳳山北銅傍相洞, @ 扶安 壅岩下, ® 陝川伽倻山萬 壽洞 이라 하여 그 범위를 좁혀 놓고 있 다 .51) 三韓山林秘記, 道說秘缺, 南師古秘誤, 南格庵山水十勝保吉之地, 土亭家 藏缺 , 西溪李先生家藏誤 等의 避亂 • 保身地도 이 와 매 우 유사 하게 지적하고 있는데, 現地調査를 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파생될지 도 모르는 十勝之地의 不正確한 場所選定울 피하기 위하여 關係地 圖 및 文獻資料에 의하여 그 위치가 분명하고 모든 固誠 및 風水地 理書에서 最大의 吉地로 꼽히는 大小白間 62) 의 寧越上東, 丹陽카(春, 榮,J H 豊基 等 세 곳만을 分析의 대상으로 하고자 한다. 우선 個別地域의 sit e 를 찾고 地理的 특칭 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갇 다. 첫째, 寧越은 영월 정동쪽 상류라고만 表記되어 있는데, 正東이 란 方向과 正東 上流로 유추되는 上東이 란 地名이 그에 부합하고 大東輿地圖 53) 上의 脈勢가 當合하여 (그림 6-1) 오늘날의 영 월군 상 동읍 연하리 일대를 취하였다(그립 6-2). 51) 金水山, 前掃 書 , pp. 136~9. 62) 太白山脈에서 小白山 脈 이 分枝하는 곳은 영월, 영주, 봉화, 단양으로 太白山 (15 46.5m), 小白山(1 420. Sm) 이 있어 大小白間 혹은 兩白問이라 하며 避兵, 保 身, 活人의 吉地로 알려진 곳이 다. 63) 慶熙 大 韓國傳統 文化硏究所에 서 2/ 3 로 축도하여 1977 年 刊行한 것 을 사용합.

그림 6-1 영월 동축 상류의 脈勢(무늬 부분이 十勝地)

그립 6-2 상동읍 연하리의 地勢

또한 擇里志에 〈 황지 위쪽 작약봉 아래 覺化寺와 弘 濟 庵이 있으 며 가끔 佛法이 높은 중과 이상한 무리가 그 사이에 살기도 한다. 옛부터 三災가 들지 않으므로 국가에서 여기에도 史庫 를 설치하였 다〉 54) 는 굳과 〈 奉化縣의 史庫가 梵華寺 55) 에 있다 56) 〉 는 기록의 일치 가 상동읍 연하리 일대의 方向과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그곳이 를 림없는 듯하다. 둘째 로, 丹 陽 永 春 은 大 東與 地圖上의 來脈(그림 6 - 3) 으로 보아 선덱의 여지가 없이 오늘날의 단양군 영춘떤 남천리 부근인데(그림 6-4 ) , 新 增 東 國輿 地勝 魂 卷之十四 永 春 縣 57) 에 그를 뒷받침하는 기 록을 찾아볼 수 있다. 죽 〈현의 남쪽 3 리 의 城山이 마을의 鎭山으로 그 山에 높이 10 척

54) 李 重煥 , r 擇里志』 , 「 卜 居總論 」, 山 水條. 55) 覺 化寺와 覺華寺 는 同 地 異語 의 갈은 철인 듯합. 56) 『국역 신증동국여 지 승람 J 퍄 p. 517. 57) 上 掃합 II , pp. 472~4.

그립 6-3 단양 영 춘 의 脈 勢

그림 6-4 영 춘 면 남천리의 地勢

• 넓이 10 척쯤 되고 길이가 끝이 없는 석굴이 있고 또 주위가 1 천 523 척이고 높이가 11 척인 古城이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十勝地의 性 格 을 반영한 것으로 현재 남천리 입구의 남굴과 온달성을 지칭한 듯하고 古老의 증언이 과거 마을 위치가 현재보다 뒷쪽이었는데 漢 江이 半月形으로 마치 부채 모양이라 火 氣 를 누르기 위해 江쪽으로 내려왔다는 것으로 미루어 영춘떤 남천리가 들림없음을 시사해 준 다. 58) 58) 金 榮 擬 1977, 「 風 水」, {(韓國 民俗 綜合報 告 항)} (忠北 t;l ), 文公 部 , p. 203.

세 째 로, 豊基는 大東輿地岡上에 서 (그림 6-5) 明白함은 물론 이 미 기존의 硏究결과로 59) 오늘날의 영주군 풍기읍 금계동, 욱금동, 삼 가동(그림 6-6) 이 분명하다, 上記 세 地域의 地勢的 목칭은 첫째로 그림 6-1, 그림 6-3), 그 림 6-5 에서 보는 바와 같이 明白한 峽谷 go rge -or can y on 이다. 急斜面으로 둘러싸여 있고 V 字型의 地形으로 峽谷內 一部에는 小 規模의 推積平坦面이 나타나기도 한다. 둘째로 이 地域들은 大山脈의 中央部에 위치하여 他地域과의 交 通이 매우 불편하며 戰略地點을 연결하는 幹線道路오 R 근 戰略的 價値 를 도의시해도 될 정도의 위치에 있다. 세째로 반드시 한쪽 面온 좀 더 넓은 都邑地에 연결되어 있으나 연결된 峽谷의 폭은 bo ttl e-neck 과 같이 좁다. 네 째 로 나머 지 方向은 그림 6-2 , 그림 6-4, 그림 6-6 에 서 보는 바와 같이 急傾중바의 山斜面으로 차단되어 있다. 다섯째로 峽谷內에는 반드시 河川이 存在하는데 峽 谷의 成因이 河

59) 吳世昌, 前提 간 , pp.1 72~3.

그림 6-5 영주 풍기의 脈勢

그림 6-6 풍기 읍 금계 동, 욱금동, 삼가동의 地勢

)II作用에 의 한 것 일 것 아 므로 .60) 河川의 存在는 地形學上 당연한 것 이라할수있다. 여섯째로 峽谷內의 河 )II 은 峽谷入口인 bo tt le-neck 를 지나면 곧 大河川에 流入토록 되어 있다. 끝으로 이 地域울 지나는 山脈은 相異한 두 개가 지나는 것이 하 나만이 지나는 것보다 좋은 것으로 취급된다. 以上의 일곱 가지의 地 勢 的 條件온 十勝之地의 一般的 模型으로. 간주되 어 도 무방할 듯하다. 60) Str a hler, Arth u r N. , 1977, Geog r ap hy a 따 Man's Envir on ment, Joh n Wi ley & Sons, Inc. , New York, pp. 394~5.

3. 十勝之地의 立地解釋 위와 갇온 地勢的 特徵울 갖는 地域의 衆落立地가 風水的 立場과 의 관련하에서 어떻게 解釋될 수 있는가는 사실상 本考의 核心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우선 避亂地로서의 上記 三個地域 立地는 論 理的으로나 現實的으로 最上의 위치임이 분명한데, 東西南北 모든 方面으로부터의 침입에 초연할 수 있는 자리를 잡고 있음에 유의 할 팔요가 있다. 朝鮮朝의 中央幹線路인 嶺南路가 용인, 죽산, 충주, 문경 을 거 쳐 상주로 통과하는데 대하여 三個地域은 그에 멀리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 라 6 1) 政治的 • 經濟的으로나 戰略 • 戰術上에 서 敵울 유인할 何 等의 條件도 갖추고 있지 않으며, 어떤 戰術的 理由로 이곳을· 공격 할 필요가 생겼다 하더라도 峽谷이기 때문에 두입될 인원, 시간, 장 비에 비하여 얻을 것은 사실상 거의 없을 것이므로 避亂保身의 땅 으로.는 最上이라 할 수 있을 것아다. 壬辰倭亂 62) 과 6·25 當時 63) 의 初期 敵侵經路에서 이 地域이 제외되고 있음이 위의 論理를 合理化 시켜 주고 있다. 더구나 曲射火器가 없던 近代以前의 戰爭에 있어서의 이러한 地 域의 방어상 유리접은 상식에 속하는· 얘기일 것이다. 결국 十勝地 中 적 어 도 上記 三個地域이 避亂 • 保身의 땅으로., 다시 말해 서 방어 상 最適立地임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러나 그러한 地勢이기 때문 에 李重煥이 말한 生利에는 매우 어긋나는 것아며 陽基風水의 一般 原理에도 어떤 점은 배치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三個 地域온 李重煥이 生利의 條件으로 꼽은 64) 땅이 기 름진 곳도 아니 고 배와 수레와 사람과 물자가 모여들어 가지고 있는 것과 갖지 못한 것을 서로 바꿀 수 있는 그런 곳도 아니다. 물론 峽谷入口를 빠져 61) 崔永俊, 1975, 「朝鮮時代의 嶺南路硏究」, 《地理學》, 12 號, pp. 53~6. 62) 李弘植, 1968, 『國史大事典』, 知文閣, pp.1 281~3 . 63) 육군계 3 사관학교, 1974, r 종합전쟁사』, pp.1 84~9 9. 64) 李重煥, 『擇里志』, 「 卜居總論」, 生f Y.

나오면 交易은 어느 정도 可能하긴 하다. 또한 山地의 경우 文明의 發 達 段階도 平野에 비하면 後進的이고 住民의 性品도 섬세하지 못한 傾向울 보인다 66) 는 것은 環 境論 的일 치는 모르지만, 前近代의 生活樣態로 미루어 보면 一考의 여지가 없지 않다고 본다. 風水 原理 에 비추어 보더라도 이런 地域의 長短處는 엇갈리는데 대체로 短 點 으로 지적되는 경향이 높다 .66) 먼처 긍정적 부분을 살펴보면 純 術 法的 입장에서 雪心賊에 〈龍將 到 頭 跋斷束氣 再 氣星體 落 昧結穴 此正理也〉 6 7) 하여 산이 그 머 리 에 닿 음으로써 끊기어 멈추며 氣 를 묶어 星 體 를 다시 일으키고 昧 이 다하여 穴을 結 하니 이것이 正理라는 - 것이다. 太白 • 小白 兩山脈의 머리를 太白山과 小白山으로 했을 때 두 산 맥의 머리( 龍頭 )가 이르니 束 氣 되어 生 氣 가 충일한 것으로. 三個地 域 이 해석된다. 하나도 아닌 巨大한 두 개의 龍이 솟구쳐 머리를 들어 落 脈 結 穴하니, 吉地임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 雪 心賊正解에도 유사한 대목이 있는데 〈衆山止處是 眞 穴 衆水票處 是 明堂 〉 68) 이 그것 이 다. 衆山 • 衆水가 衆止한 條件온 上記三個地域 이 해당되지만 7k 衆 는 약간 미흡한 편이다. 물을 매우 중히 여기는 風水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취약접이 될 수도 있다. 예컨대 胡舜申에 〈山如人之形 體 水如人之血服卞〉 69) 하여 사람에 있 어 血諒이 중요한 것을 지적함으로써 水의 重 視를 제시하였고, 明 山論에도 山水를 陰 陽에 비겨 〈山水相補則爲陰 陽 和 和則爲沖氣 山 水衆 集 則爲陰 陽會 會 則 爲 生 氣 所 謂 吉也〉 70) 하여 반드시 陰 腸論에 맞 추려면 山水相補해야 함을 지적하였으며, 風水 書 의 古典인 · 郭漢의 葬 書 에도 〈經曰 氣 乘風則散 界水則止 故 謂 之風水 風水之法 得水 65) Hunti ng ton , Ellsworth , 1951, Prin cip le s of Human Geog r aph y (a revis i o n by Earl B. Shaw), Jo hn W iley & Sons Inc. , pp. 240~5 . 66) 術한 自 體 가 非論 理的이기 때문에 客 觀 住온 항상 문계가 된다. 67) 『雪 心試』, 「 辯論儒 」, 束 氣辯 . 68) 『雪 心試正解 J , 卷 一, 「 論 五 星 」 69) 『地理新法 胡 舜 申 J , 卷 上, 「水 論 」, 第四. 70) 『明山 論 』, 「二 氣 」, 第 二多

第上 藏風次之〉 71) 라 하여 衆氣하기 위한 山水의 필요성 및 水의 중 요성을 지적하였다. 또 하나의 古典인 靑漢經에도 이와 유사한 귀 절이 있다. 72) 山水相補의 風水的 必要性은 위에서도 참깐 언급되었는데 雪 心 賊의 〈易曰 一陰一陽之謂道 蓋孤陽不生 獨陰不成陰陽相配 乃成造 化 故以形勢論之山屬陰 水屬陽 是山水相配 有陰陽〉 73) 이란 귀절에서 그 전거가 陰陽思想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吉地選定時 水가 山에 先하는 근거는 藏書의 〈得水爲上藏風次之〉 에도 나타나지만 德龍經에서 〈諸水緊則 諸山洪矣〉 74) 란 句節을 음미 하면 알 수 있는데 물이 모이는 곳에 山이 棋한다는 것은 결국 盆 地狀 혹은 峽谷狀地形울 유추해 보면 쉽사리 알 수 있는 바로서 術 法으로서는 山이 形體, 7k 가 血昧이니 7]( 가 重視되는 것이며 山의 肺勢를 目力裁定하는 것보다는 水流의 흐름을 유추하여 山川의 形 勢를 파악함이 현실적으로 쉽기 때문에 그러한 方法울 취한 것으로 생각된다. 上記 三個地域은 역시 衆水와 洪山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山 岳投影法이란 地形表示法울 사용하여 分水嶺과 河川流域을 뚜렷하 게 파악할 수 있 는 大東輿地固 75) 그립 6-1, 그림 6-3, 그림 6-5 에 서 보면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 문제는 위에 提示한 風水原理가 주로 葬地選定울 目的으로 한 陰 宅風水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에 陽基에도 과연 부합될 것인가 하는 접이다. 물론 天元五歌에서 밝힌 것처럼 〈陽居釋之 水龍同 不用前篇 議論 勳하여 前篇에 다룬 陰宅과 陽居의 水龍論은 同-하다고 했지만 이 어 서 〈但此陽基宜關大〉 76) 란 단서 를 붙임 으로써 本質에 차이 는 없 으나 상위접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71 ) 『地理끄* .’, 卷 二, 「葬 합 」 72) 『地理正宗』, 卷一, 「靑 妻經 」, 下卷 73) 『雪心試』, 「辯 論篇 」, 淨陰淨 潟辯 . 74) 『地理正宗』, 卷三, 대 E ii經 」, 中卷 75) 李燦, l

一般的으로 陽基는 局面이 넓을 것을 요구하여 分析對象인 三個地 域이 모두 그 原則에 어긋난다는 것은 주목할 사실이다. 예컨대 雪 心賊는 陰宅에 비하여 陽基가 다른 접 중에 가장 두드러진 것이 陽 基의 地勢가 寬平해야 하고 明堂의 規局이 返空해서는 부적당하다 는 〈若言陽宅何異陰宮 最要地勢寬平 不宜堂局遜空〉 77) 이 란 句節과 塚玉%의 〈語曰 陰地求一線 陽地求一片 云云〉 및 〈陽基之局 喜其寬 泰 陰地之局 喜其衆密〉 78) 이 모두 그러한 지적이다• 規局이 좁은 것 울 가장 두려 워 함이 陽基라고까지 同書는 지적 하고 있 다. 79) 물론 그 規局은 同 書 에 표현된 바와 같이 機能에 따라 달라진다. 죽 〈陽基之龍 京都則數千里 省都則數百里 쌔邑則百餘里 郞市鎭鄕村 亦必數十里〉 80) 가 그것으로 결국 山谷도 陽基로 不可能한 것은 아니 라는 論理이다. 그러나 山谷이라 할지라도 寬關울 要求하며 중요한 것은 回風울 가장 두려워하라는· 〈若居山谷最泊回風 若在平洋 先須得水〉 Bl) 의 句 節이다. 四風은 그 解義에 의하면 〈四風者 山兩頭高 中 ,際 低 路如四字一樣 其風來最急也〉로써 山谷의 低地를 向해 내리부는 바람을 뜻한다. 이는 小氣候에서의 冷氣湖 cold lake 를 연상하면 最泊回風의 合理性 울쉽게 이해할수있다. 죽 斜面의 溫暖帶에 반하여 斜面下部인 谷底나 盆地底는 찬 공기 의 되 적 으로 冷氣湖를 형 성 한다는 것 인데 , W. Schmi dt 가 1930 年 조사한 中部유럽에 있는 어떤 盆地의 夜間氣溫空間分布를 보면 谷 底가 ― 28.8°C 인 데 대하여 50m 上部斜面온 복복동이 一 3.7°C, 서 남서가 -1. 1°c 이고 lOOm 정도의 上部斜面에서는 各各 -1.9° 一 +2.3°C 로 급격한 기온의 상승이 나타나고 있다 .82) 上記 三個地域의 局地的 氣溫資料가 없기 때문에 정확한 것을 알 77) 『雪心賊正解』, 卷四, 「 論陽 宅」. 78) 『塚玉芹.!, 卷之十二上, 「造葬作法」, 論陽基 . 79) 『塚玉芹』, 卷之十二上, 「造葬作法」, 論 山谷賜基. 80) 『塚玉芹』, 卷之十二上, 「造葬作法」, 論腸基. 8812 )) 金『 雪蓮心玉,試 正1解9J8,0, 卷i四',氣 候學「槪論論陽』宅,」 .正 益社, p. 314.

수는 없으나 地形條(牛으로 보아 冷氣湖現象이 있을 것이며 따라서 이 지역들은 風水禁思를 어겼을 분 아니라 衆落地理學的 입장에서 도 매우 불편한 立地임을 알 수 있다. 本考의 연구범위는 아니지만 以上 三個地域과 관련하여 鄭鑑錄上 의 〈蓋人世避身 不利於山 不利於水 最好兩弓〉의 兩弓은 弓弓으로 그간 이를 音訓借的 表現法으로 해석하여 廣關이라 하였으나 文脈 上 무리가 있으므로 오히려 활을두개 펼쳐 놓은 상태, 곧 盆地 혹 은 山谷으로 봄이 타당할 듯하다. 결국 上記 三個 十勝地는 방어상 혹은 피난지로서의 유리성을 전 적으로 인정할 수 있고 術法的 風水原則에 부합하는 바도 약간은 있으나, 陽基風水原理에는 대체로 어긋나 있고 最泊回風의 風水禁 思를 범하고 있으며 合理性 있는 衆落立地로서도 매우 不利한 곳으 로 解釋이 된다.

4 要約및 結論 以上의 分析에서 鄭鑑錄을 위시한 圖識 書 類에 나타난 土地觀온 다음의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로 地氣表旺의 思想은 중국 전태의 無爲自然的 道家思想과 周易의 術法的 性格 그리고 韓民族의 調和的 心性이 복합적으로. 合 一되어 圖諏이란 方法으로 土着化되어 나타난 것으로 본다. 둘째로 王都回歸의 思想은 國都의 南韓 集 中, 各 道別 均衡分布, 松岳回歸의 內容울 가지며, 農業 生産力이 우월한 南部選好, 異民 族侵入에 대한 不安感의 반영, 自然順應的 心性, 中國象數之學의 영 향, 中國歷代帝都의 舊都初襲의 例等이 그 原因으로. 생 각된다. 세 째 로 風水地理의 思想온 圖識 書 類 自 體 가 陰陽說에 근거 한 것 입을 표방한 것으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理論的 근거를 陽基 및 陰宅風水說에 대부분 의촌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큰 영향을미쳤던부분이다. 이에는 國域風水, 國都風水, 都邑風水, 住居風水의 내용들이 포함된다. 끝으로 避亂 • 保身의 思想은 圖識 書 類의 내 용 중 가장 많은 부분 을 접하고 있는 것으로, 風水說울 理論근거로 한 圖謙 書 의 現 實 的 代案이 兵火와 凶年이 없는 땅, 죽 十勝之地를 찾는데 主目的이 있 음을 침작하게 해주는 부분이며 本考에서 分析의 核心울 둔 곳이기 도하다. 大小白間의 三個地域울 對象으로 한 分析에서 十勝之地의 一般的

模型은 〈大山脈系가 하나 혹은 가급적 두 개가 인근에 接해 있는, 三面이 急斜面에 둘러 싸이 고 나머 지 한 면은 bo ttl e-neck 의 좁은 通 路로 都邑地에 연결되어 있으며, 河川을 保有한, 戰略的 價値가 회 , 소한 峽谷內의 地域〉으로 정리되었다. 이러한 地域은 방어상 혹은 피난지로서의 有利性울 전적으로 인 정할 수 있고 術法的 風水原則에 부합하는· 바도 약간은 있으나, 陽 基風水原理에는 대체로 어긋나 있고, 〈最伯四風〉의 風水禁思를 법 하고 있으며 合理性 있는 緊落立地로서도 매우 不利한 곳으로 해석 되었다. 圖識 書 上의 土地競온 대체로 人爲的 • 計劃的 • 謀策的 • 能動的이 라기 보다 神意的 • 自 然的 • 天然的 • 消極的으로, 바람직 하다는 評 價를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것이 民衆의 土地觀인지 또 는 一部 圖識 신봉자들의 전유물인지에 대해서는 따로 硏究가 이루 어쳐야 할 것이다. 또한 召鬪康節의 象數之學, 周易의 術法的 內容 및 道家思想이 圖 諏 및 風水思想, 나아가서는 民衆의 土地觀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課題로 남는다.

제 7 장 風水的 理想의 땅 : 明堂 • 吉地論

明堂 • 吉地에 대한 思考를 보다 明白히 하기 위하여 西洋의 理想 鄕을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西洋的 理想鄕에서 언급할 수 있는 것은 유토피아思想 u t o pi an i sm 과 千年王國思想 M ill enar i sm 이 아닌가 한다. 유토피아의 개념은 그 러나 매우 폭이 넓기 때문에 정밀한 것은 아니다. 일상적으로는 바 람직할 수는 있지만 비현실적인 아이디어나 제안에 사용이 되며 엄 격히 理性에 입각하여 얘기할 때는 망상이나 환영으로, 혹은 현실 과는 엄격히 유리된 것으로 인식되는 개념이다. 學術的으로는 〈 좋은 삶 Good Lif e 에 관한 도덕 철학〉 〈기 본적 인 政治原理나 本質的인 政府形態에 관한 政治理論〉 〈소설, 이 야기 , 시 들에 나타나는 상상적 社會〉 혹은 〈완전한 사회 Perfe c t Soc iet y > 에 대한 비전이나 관념 等으로 정의된다 .1) 유토피아의 개념이 모호하기는 하지만 전통적으로 완전사회에 대 한 갈망인 것 은 분명 하다고 보는데 , 이 때 완전함 Perf ec ti on 이 무엇 인지는 역시 분명치 않다. 모돈 유토피아의 공통된 사고가 완벼지 향 road to pe rfe c ti on 및 神의 은총으로의 회 귀 retu r n to gra ce 라고 볼 때 2) 완전함의 인식은 차이를 빛을 수밖에 없다. 1) George Kate b , 1974, -Utop ias and Ut op ian is m , • Inte r nati on al Encyc l op e dia of the Socia l Scie n ces, The Macmi llan Co. & the Free Press, p. 2fi l. 2) Phil ip W. Porte r & Fred E. Luckermann, 1'5 15 , The Geog r ~hy of Ut op i a , Geog r aph i e of the Mi nd , Oxfo r d Univ . Press, p. 198.

時代와 地域에 따라 그들이 추구하는 완전함은 다를 수밖에 없 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完全함은 調和된 상태를 뜻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調和의 의미 역시 매우 모호하기는 하지만 대체 로 永久的인 平和, 人間欲望에 대한 완벽한 만족, 행복한 마음으로 행할 수 있는 勞動과 풍부한 餘暖 만족스러운 平等, 그리고 무조 건적인 권위의 不在 等이 이루어졌을 때를 調和믈 이룬 완전한 社 會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3) 完全社會에 대한 인식은 두 가지로 나타나는 듯하다. 인간이 에 덴동산에서 추방당함으로써 깊은 상실감을 지닌 채 항상 鄕愍 Nosta l gi a 에 젖 어 그곳으로의 복귀 를 회 구한다는 에 덴적 유토피 아가 그 하나이 고, 天國의 都市 the Celesti al Cit y 創造를 바라며 , 그러 한 궁극적 목적을 향한 歷程이 상실과 향수의 감정울 대치하는, 完全 社 會 에 의 꿈이 다른 하나이 다. 유토피 아를 창세 기 에 덴동산 the Garden of Eden of Genesis 과 요 한계 시 록 신예 루살렘 the New Jer usalem of Revelati on 사이 의 어 단 가에 위치한다고 보는 聖 書 的 해석 4) 도 이와 유사한관접이다. 에밴 동산은 동산 gar den, 녹색 gre en, 희 열 p leasan t로 표현되 는 생 물학적 인 유토피아인 데 대하여 신예루살렘은 그 성곽의 기초석이 벅욱, 남보석, 옥수, 녹보석, 홍마노, 홍보석, 황옥, 녹욱, 담황옥, 비취 옥, 청옥, 자수정으로 이루어져 있는 6) 것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건조 dr y하며 광물적 m i neralo gi cal 이 다. 산예 루살램 건설은 千 年王 國 思想 M ill enar i sm 으로 되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理想 i deal 을 추구하고 있다는 접에서는 유토피아적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기독교적 유토피아는 神과의 일체감을 이룩함으로써 그리고 보다 세속적인 유토피아는 맛난 음식, 화려한 궁전, 오락, 섹스를 비롯한 俗人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을 제안함으로써 理想鄕울 펼 쳐 보이 고 있 지 만, 西洋的 유토피 아는 본질적 으로 記述 descr ipti on 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 be li e fs 의 문제인 것을 느낄 수 있다• 3) G. Kate b , 前掃 書 , p. 267. 4) P. Porte r & F. Luckermann, 前掃 건 , pp. 199~200. 5) 요한계 시 우, 21 : 19, 20.

모든 유토피 아가 〈좋은 땅 goo d p lace 〉을 언급하면서 도 땅의 구체 적 인 묘사가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까닭이 믿음의 문제로 유토 피아를 인식했기 때문이 아닐까 여겨지기도 한다. 또 한 가지는 루 이 스의 지적 대 로 인간이 至善 absolute goo dness 에 대 한 두려 움이 있 는 까닭에 묘사의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닐까 하는 접이다. 루이스 가 달과 火星에 서 外界人 Extr a te r restr i a l bein g s 과 대 회를: 나누고 돌 아온 렌섭을 만나러 가는 도중, 랜섬 집앞의 펼쳐진 황야에서 급격 히 어두워지는 햇빛을 바라보며 위축되는 자신을 발견하고 첫번째 공포를 느낀다. 랜섭의 황페한 오두막집에서 루이스는 랜섭이 外界 (地球外的) 知性的 存在라는 접에서 또다른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나는 生命은 善한 그 무엇이라 확신해 왔다. 그러나 이제 나는 내 가 생각해 왔던 것처럼 善함g oo dness 울 좋아하고 있는지는 확신이 없다. 이것은 참으로 두려운 경험이었다. 우리가 어떤 악한 것에 대하여 두려움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언첸가 善 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는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싸움의 대상이 善함 이 고 그것이 두려운 것임을 알았다고 생각해 보라. 그렇게 되면 가능 한 구원이란 없게 되고 만다. 마지막 카드까지 써 버리고 만 것이 다. >6)

6)TLCu •c.k Se.r mLaenwni, s , p.1 290453 에, 서Pe r재e l인an용d)ra , Bodley Head, London, p.1 9. (Porte r &

매우 희박하기는 하지만 유토피아의 땅에 대한 묘사를 간추려 보 면 대체로 孤立性, 自然性, 調和 性으로 요약될 듯하다. 먼처 孤立性은 많은 유토피아가 섬으로 묘사되는 것에서도 알 수 있 는 바와 같이 地理的 孤立性울 띠 고 있 다. Sir Thomas More 의 Ut op ia (1516 年) 에 는 브라질과 인도 사이 의 어 떤 곳, Camp a nella 의 Cit y of the Sun (l 602 年) 에 는 Tapr obane, 즉 오늘날의 Sr i Lanka 로, Andreae 의 Ch ri s ti ano p o li s(l619 年)에는 이디오피아海의 Cap h ar Salama 라는 섬 으로, 또 Franc is Bacon 의 New At lan ti s (1627 年)에는 South Seas 等 엄격히 고립된 성격으로 표현하였다. 게 다가 傳統이 나 歷史로부터 도 孤立되 어 時空上의 단절울 중시 하고 있는데 아것은 유토피아의 均衡 유지와 평형상태를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보여전나 여기에 時空上의 孤 立 은 再生 , 更生 의 상칭성을 부여하기 쉬운 장접도 아울러 갖추고 있다 .7) 自 然 性과 調 和性은 에덴적인 유토피아에는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自 給 自 足的이 며 農 村 0 9 인 생 활양식 으로 표 현 된다. 分散 的 인 취락 형태와 정치 체계, 소규모의 마을, 기계주의 및 산업혁명적 방법에 대한 불신, 자연에 대한 사랑 들 도 자주 나타나는 표 현들 이다. Samuel Bu tt ler 가 E re whon 에 서 묘사한 〈 뉴질랜드 南알프스 山地 의 광대 한 氷河谷과 암벽 능선〉 8>, Austi n Tapp a n Wr ig h t의 Islandia 에서 표현하고 있는 〈비오는 날 조용한 海 岸의 田 園 울 말울 타고 달 리 는 情 景〉 9 ) 等 도 대 표적 인 例이 고, 〈 떠 오르는 태 양, 흰모래 , 환상 같은섭, 푸른야자수, 사과이어색의 바다, 핑크빛 살결을 드러내고 해변을 걷는 사람들, 시원한 공기, 야자나무 밑의 찬디밭, 그 사이 사이 에 홀어 져 있는 농촌적 오두막집 〉 으로 묘사된 Tah iti的 유토피 아도 自 然 과의 調 和를 찰 표현하고 있 다. Lorenzo di Med ici에 게 있 어 서 의 과라다이 스는 〈 줄거 운 사물, 나 무, 사과, 꽃, 흐르는 시냇물 , 새소리 〉 等 기쁨이 충만한 땅으로 나 타나고 있으며 10) 都 市的 유토피아인 모어의 유토피아에서도 그 수 도인 Amauro t e 는 오늘날 New Town 개 념 에 흡사한 〈 테 라스가 넓 게 길거리에 면한 집 ter race houses, 길을 따라 길게 설계된 정원, 시골 풍경에 의한 명백한 경계, 그리고 公共 건축물의 集 束化 〉 가 이 룩된 곳이 고, Garden C ity의 개 념 을 주장한 Ebenzer Howard 의 유토피아 개념도 〈소규모, 內部의 開 放空間 體 制, 外部는 田園, 牧歌 7)B. F. Skin n er, 1974, The Desig n of Exp e rim e nta l Communit ie s •, Int. Ency. of Soc. Sci. , p. 271. 8) Samuel Butt le r, 1873, Erew hon or Ove r th e Rang e 및 1927, Erew hon, Revis i t ed Twe nt y Ye ar s Late r , Random House, New York (Porte r & Luckermann, p. 209 에 서 재 인용) 9) Austi n Tapp a n Wrig h t, 1942, Islandia , Rin e hart, N. Y. (Porte r & Luckermann, pp, 209~10 에 서 전재 ) 10U) nJoivh .n PRr.e sGs,o ldp,, 11197.8 0, An Intr o ducti on to Behavio r al Geog ra p h y, Oxfo r d

的 농촌 경 관으로 차단 〉 되 어 있음 11) 을 말하여 역 시 自 然 調 和的임 을 알수있다. 이 접은 東洋의 武 陵 桃 源 思想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바, 時 調 와 歌辭는 江湖와 山林을 이상향으로 선정하여, 隱 士의 상칭으로 漁夫 를, 이상향의 상칭으로 복사꽃을 제시하는 식이다 .12) 東 洋 畵 의 경 우도 景 觀構成物의 출현반도가 山 91%, 水 73%, 소나무 53%, 잣 나무 29%, 버 드나무 17%, 대 나무 15%, 복숭아나무 4%, 기 타 활 엽 수 29% 이 며 , 人工 構造 物은 주거 지 37%, 정 자나 누각 25%, 배 21%, 철 11%, 탑 5%, 다리 11% 이고 없는 것도 35% 나 되어 역 시 自 然調 和的 思考方式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3)

11 ) Frederic J. Osborn & Arnold Whit tik, 1963, The New Towns, McGraw -Hi ll, p. 9 및 p. 53. 1123)) 金金慶錫英夏,, 11998713,, 「『 韓韓 國國人文의 學 의禁 觀樂認園識思 에 想 硏關究 한 J, 硏究日 」新, 社 《, 環p境p. 硏1 究75》~,7 .第 二 卷 , p. 214.

西洋의 유토피아를 孤立性, 自 然 性, 調 和性으로 요약했지만, 땅 이나 景觀 자체에 대한 설명은 대단히 미미한 편이고 그 내용도 유 치한 편이다. 이것은 西洋의 유토피아가 理 想 의 땅을 그린 것이 아 니라, 理想鄕 죽 理想的인 社 會 를 꿈꾼 것이기 때문에 그의 묘사가 주로 人間과 人間 關 係, 人間과 神과의 관계 等 超自 然 的인 내용을 본질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해서 東洋的인 理想의 땅, 風水 圖 識的인 明堂 吉地는 說이 구구하고 표현이 난해, 산만하기는 하지만 매우 구체적인 景 觀 묘사를 하고 있음이 특칭이다. 이것을 하나의 地域으로 가정하 고 그 地域을 묘사한다는 것은 물론 불가능한 일이다. 너무도 吉地 에 대한 의견이 많기 때문이다• 西洋의 유토피아가 일종의 환상이라면 東洋의 風水的 吉地는 그 것이 구체적 實體 로서 이 地上에 存在함을 믿어 의십치 않는 접이 가장 큰 차이접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調和, 均衡울 중시했음은 兩者가 모두 일치하며 특히 孤 立性의 경우도 吉地가 山水에 環 抱되기를 요구함으로써 서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本 書 의 內容 全般이 결국은 吉地의 模型을 도출해 보고자 한 것 인 만큼 또다른 吉地의 설명은 重言復言에 지나지 않을는지도 모론 다. 구태여 그 內容을 요약하자면 山水相補한 調和, 均衡의 땅에 사 람의 마음을 知覺上 포근히 감싸줄 수 있 는 有情한 곳, 그러 나 (谷 된 氣가 흐르지 않는 聖所로 정리되는 듯하다. 매우 어려운 일이기 는 하지만 本 書 의 結論울 대신하여 風水的 吉地롤 보다 구체적으로 묘사해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첫째, 來龍의 脈勢는 北龍의 始祖인 鬼福山으로부터 수려 • 장엄하 고 광채나고 둥글며 맑은 生氣에 찬 山으로 연면히 이어져 吉地 뒤 쪽의 主山에까지 뻗어내려야 한다. 이 連脈은 주위 山둘의 호위를 받아야 함은 물론 生動, 變 化하면서도 調 和, 安定感울 잃어서는 안 된다. 둘째, 局面율構成하고있는, 穴울 中心으로 하는 吉地 주변의 山 勢는 四神砂의 원칙 , 죽 玄武垂頭, 朱雀翔舞靑龍腕誕 白虎凱 I i損의 형제를 갖추어야 한다. 풀이하면 主山온 主人답게 임금답게 위엄을 갖추어야 하나 험악하거나 지나치게 위압적이면 좋지 않고, 案山, 朝山은 신하답게 아내답게, 결코 主山울 압도해서는 아니되며, 左 右의 靑龍, 白虎는 局面울 감싸안 듯해야 함은 물론 거역의 자세를 취해서는 안되고그렇다고 너무핍착하여 답답한 감울 주어서도 안 된다. 山의 모양은 둥글고, 단정하고, 밝고, 맑고, 유연하고, 중첩 하고, 아름답고, 有情하여 야 한다. 세째, 물은 반드시 吉한 方位로부터 홀러들어와 凶한 方位로 나 아가야 한다. 물에서 濁奧가 나거나 흐리면 안되고, 穴前에 공손히 철을 올리듯 悠長하게 지나야 한다. 直急流하며 穴울 향하여 沖射 하면 뭇쓴다. 이때 山온 山대로, 물은 물대로 따로 있는 것처럼 • 보이면 不吉한 것이니, 男女相配하고 陰陽相補하는 天理에 따라 山 水가 相生해야 한다. 네째, 穴자리는 陰陽의 調和가 集中的으로 표출된 곳이기 때문에 陰來이 면 陽受하고 陽來이 면 陰受하는 生氣 衆注한 곳을· 정 확히 잡 아야 한다. 俗의 地에 聖의 所를 定한다는 것으로, 결국 局面의 至

高至善의 자리를 뜻하며 景競認識 上 中心의 장소가 되니, 이곳이 吉地 中의 吉所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山勢가 높으면 穴도 높은 곳 에 있고, 낮으면 穴 역시 낮은 곳에 있게 되는 만큼 局面構成이란 면에서는 역시 調和 가 바탕이 된다. 다섯째, 坐向은 山 7k 로 대표되는 局面 全般이 일정한 形局 으로 坐定되었을 때 前開後閑 죽 穴의 앞쪽으로 트이고 穴의 뒤쪽으로 기댈 수 있는 選好性 方位를 선덱하면 된다. 끝으로 全體的 局勢는 相克, 散髮, 窮盡, 跋斷 , 無情 , 沖射, 逆 勢, 侍逆 의 분위기 를 일으키지 않고 相 補 , 相生, 生 氣 , 變 化, 環 抱, 有情, 順勢, 衆講 等 調和 와 均衡의 이미지 를 주어야 한다. 온화 유순하고 부드러우며 결함이 없어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주 위환경, 角이 지지 않는 方位와 유장한 山의 흐름, 찌르듯 달려들 지 않는 물길, 그러나 변화무쌍하여 결코 단조롭지 않은 山水의 排 列, 이러한 調和믈 이룬 自 然 에 積德 한 사람둘의 永遠한 居所, 이 것이 風水的 理想의 땅, 吉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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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인

., 가든시 티 Garden Ci ty 334 假 龍 81 看龍 12, 33-4, 77-98 幹 龍 80 干支 166 鑑 誤 13 路 龍經 96 强龍 87 開京 197-213 開眼 15-6 客 龍 83 客水 235 巨文星 66, 97, 171 勅龍 89 鉛形穴 130-31 經絡 38,55-6,77-8,125-6 ,•. ,· 經穴 38, 125 鷄龍山 194, 241-7 麗福 33, 78-9 洪背水 123 共時性 23 公州 262-3, 265 郭漢 45,135 官 66 怪穴 151-2 巧穴 151 九曲水 123 九星 65-6 九星法 123

九曜 65-6,95-8 弓弓 326 權仲和 194,241 鬼 66 貸 龍 82,84 鬼山定穴法 142 短峯 26 ~ 67 錦演 歌 29-32 錦 森經 45 金星 65-6,92 金彈子 21 騎 龍穴 151 奇門週甲 術 167-8 思穴 150-51 吉凶砂 108-9, 112-3 金謂禪 231-3 노 나가 Nag a 55 羅經 161 樂山定穴法 141~2 洛 書 150-60 南斗六星 96 南龍 33,78 納音五行 172 內明堂 62-3 內陽 62 內外水流逆勢 237 老龍 84 奴從 83

祿存星 66,171 徽龍 84 勒葬 51 C 다이 아크로니 크 Diac hroniq u e 23 短龍 84 當坂定穴法 145-6 大東與地圖 18 道敎 308 陶士衡 45 道洗 35, 46-9, 191 道眼 15-6 倒杖 22 圖諏思想 48, 247, 305-6 圖識 書 12 陶弘景: 45 突露 146 突形穴 133 東國與地勝覽 274 洞林賊 152 東西八 宅 論 289 蓋仲舒 72 同質地域 13 頭腦 60, 105 드립 인터 프리 해 이 션 Dream Inte r · pre ta t i on 25 得 64, 117 得水 21, 36-8, 114-24 三 덴드마크 Land Mark 274

虐金精 65, 130, 161 리 소멘 시 Li tho mancy 25 E> 魔方陣 159 매 칙 스퀘 어 Mag ic Sq u are 159 阮(혹은 脈) 55-6 明堂 14,62-4 明堂水 235 明堂定穴法 138-9 明山論 115, 122-3 母岳 214-40 廢 公九星 95,98 木星 65-6,92 武曲星 66, 97, 171 沒泥法 152 巫堂 26 武陵桃源 335 武星 66 母岳 214-5 文曲星 66, 97, 170 文星 65 文王八卦方位 157-60, 166 미르 55 미리 55 닌 反挑水 124 反身水 124 傍龍 78 背面 85-6

培土葬 151 白頭山 33 白虎 26, 61, 105-8 況神論 160 凡眼 15 베 버 Weber, M. 25 病龍 88 寶誌 45 福龍 88 卜應天 45,126 伏羲八卦方位 157-6 0 本命元辰 172 父母 60 北斗七星 96 北龍 33,78 分金 175 分~ 85 分水合水定穴法 139 碑補寺塔說 198 賓龍 83 人 砂 22, 57 四局五行 91 四大局 91 死龍 86-7 砂城 21 死生Ill. 42 四神圖 , 46, 100 -1 社稷神 28 射깥水 124

山 53-4 散漫 147 山慈 16 散髮四下 50 山水固 123 山水背逆 48-50 山水秘記 226 山水相補 37, 115 山太極水太極 242-44 山河傑帶 211 殺龍 89 三勢定穴法 149 三停定穴法 149 相對向 154 象數之學 311 尙州 263-4, 266 샤마니 즘 Shamanis m 26 生氣 100 生龍 86,126 禪翼定穴法 144 仙人形 183 禪 宗 46-7,198 先天方位 157 雪心試 21,114-5,179-80 蘇吉 45 소마토멘 시 Somato m ancy 2, 小明堂 62 小祖山 58,205 俗眼 15 孫子兵 書 212 水口 64,118-9

隨龍水 122 水母木幹 207-10 度肖tl 146 水星 65-6,92 水勢定穴法 140-41 水破長生 194, 246 順龍 87 脣熊定穴法 144 濕面水 123 乘龍水 122 息 60 新都內 242 神仙思想 198 神眼 16 신예루살램 332 신크로니 크 Sy nc hroniq u e 23 十勝地 303-4, 316-26 十五度數法 172-3 十二神方位 169 。 峨眉 105 亞父丘公 4, 案山 61,104 弱龍 87 楊公九星 95,98 楊鎔松 45,66 陽基 12,241-7 陽基風水 12,254 陽水口 118 兩儀定穴法 148-9

陽宅風水 12, 251-2, 288-97 어 스트롤로지 Astr o log y 2, 에덴동산 332 엘 리 아데 Eli ad e, M. 24, 64 餘氣 86 易 22,24,118,154-60,309 逆龍 87 廉貞星 66, 97, 171 迎 83 盛魂退 42 五冠山 204 오규리 Aug u ry 2, 五氣朝垣 94 오니 소멘시 Ornit ho mancy 2, 五德丘 231-3 五星 65-6,89-95,181-2 五星歸垣格 94-5, 231-3 五星三格 93 五星相戰格 94 五星升殿 94 五星連珠格 94 五星覇元 94 五行 65,90 玉女形 183 玉龍子 46

窟形穴 128-30 頭硬 148 王建 199 王都回歸思想 309-12 外明堂 63 曜 67

膜帶水 123 緩龍水 122 四風 325 요한계시록 332 龍 22,54-5 龍漏 穴 151 龍勢 十二格 86-9 龍 虎定穴法 143 右 旋 局 213,237 宇宙木 64 右 弼星 66,97 元 龍 80 元辰 熟 175 衛身水 123 劉 基 46 幽冷 147 劉伯 溫 46 劉 秉 忠 46 유토피 아 Ut op ia 331-4 乳形穴 131-2 育 60 融 稀 水 123 洋水 119 陰水口 118 陰陽 21-4, 36-7, 55, 71-3, 114 -9 陰陽五行說 71-4 陰宅 12 陰宅風水 12,253 邑票落 260 -61 理想鄕 332 李淳風 4,

二十四方位 161-4 移葬 51 이티 E.T. 333 이 푸루 안 Yi- F u Tuan 14, 27-8 人 體觀相術 25 一耳 僧 176 一行 禪 師 45,47 游 頭 水 124 入首 60,105 푸 1 60 그 藏 口 窓體 129 張 口 窟體 129 將軍形 183 葬 禮 儀 式 43 長龍 84 長 生方位 169 葬 書 21, 34-5, 45, 75, 99 -10 0, 152 將星 65 藏神 定穴法 150 張 子 微 45, 6 5,86 藏風 21, 34-6, 99-113, 210 財星 66 裁穴 175 耀 83 全州 263, 265-6 첼護 定穴法 143

絶對向 153-4 占 卜術 2, 占星術 2,

鄭鑑錄 13, 306-7, 309 鄭道傳 312 正 龍 80,84 正五行 91,165 淨陰淨陽法 165 正體 134 定穴 38 朝龍水 122 祖山 58, 205 朝山 61, 103-4 朝案定穴法 137 島 占 25 朝進水 123 尊星 .66 宗山 58, 205 左輔星 66,97 坐向 12, 21, 39-40, 64, 153-78 主龍 83 走馬六任 91,165 主山 58, 222-9, 239 朱子 38 朱雀 62, 102-4 駐輝山 58 中幹 33,78 中明堂 63 中祖山 58 曾之迪 45 地氣 哀 旺說 198, 306-9 支龍 80 地母 28 지오멘시 Geomancy 25-6

지 오파이 어 터 Geop iet y 27-8 地戶 118 地孝觀念 27-8 眞龍 80-81, 84, 126 進龍 88 進龍水 122 鎭山 58, 204, 220, 222-S, 273-85 眞五行 91,165 眞穴 14 * 斬關穴 152 峨巖 148 倉板水 123 蔡牧堂 45, 81, 84, 128 千年王國思想 331 賤龍 82 天門 118 天父 28 察脣水 124 天心十道定穴法 139-40 殘窟 129 天風穴 151 尖細 147 靑蔡經 21 靑龍 26,61,105-8 靑烏經 45 靑烏子 45 衝心水 123 緊面水 123 側腦 134

親子感應 .12 杖向 = 코스믹 엑 시 스 Cosmi c Axis 274 코인시 밴샤 오포지 션 Coin c ide nti a Op po sit ion 285 콜드 레 이 크 Cold Lake 325 E: 塚玉1f 21,164 食狼星 66, 96, 170 蕩軟 147-8 盟胸水 123 胎 60 太極定穴法 146-8 太祖山 58,205 擇里志 201-2,219,255-7 士星 65-6,93 通時性 23 退龍 88 倫葬 51 포 破 64,117-8 破軍星 66, 97, 171 破面 146-7 파이 로멘시 Py r omancy 2S 八十八向 22 八曜水 175 偏鐵 161

팽 수이 Feng -s ui 24-6 平岡龍 59 平面 134 平地龍 59 胞胎法 120-21 風水항 12 風水歷史 41-52 퓨너 러 리 지 오그라피 Funerary Geog r ap h y 25 -Io 河圖 156-60 河福 194-5, 239 하이드로멘시 Hy d romancy 25 漢陽 214-40 漢陽與都 193-6 解夢術 25 行止 85 向背定穴法 144 向天性 287 向向發微 173-4 虛窟 129 現代地理學 13-4 玄武 61,101-2,104-5 玄武一水 123 玄武頂 59 穴 22,56-7,125 血脈 37 來輔 83 形局 39, 179-88 形勢論 23

호모지 니 어 스 리 전 Homog e neous Reg ion 13 胡舜申 115, 194 護龍 水 123 魂 魄 42 路 t DJi: 14 7 洪範 五行 91,165 火 星 65-6, 92-3 環境 知 覺 14, 113, 226

潤腐 129 黃泉熟 175, 233-5 淮南子 211 回 龍顧 祖 244-5 廻流水 123 後山 58 後天方位 157 訓要十條 48-SO

崔昌祚 서울대 문리대 지리학과 및 同대학원 졸 업 경북대, 서울대, 전남대 등 講師 국토개발연구원 주임연구원 역임 전북대학교 사범대학 및 청주 사범대학 지리교육학과 교수 역입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지리교육학과 교수 역입 논문 : 풍수 • 도참관계 IO 여 편 韓國의 風水思想 1984 년 3 월 30 일 초판 1 쇄 I992 년 5 월 IO 일 초판 9 쇄 지은이 崔昌祚 펴낸이 朴孟浩 펴낸곳 (주) 民音社 우편대 체 번 호 OIO04I-3I-0 5 23282 I35-I20 서울 강남구 신사동 506 번지 강남출판문화센터 515-2000~2( 영 업 부) • 515-2003~5( 편집 부) 515-2007, 2101 (3!lj시 밀리) 출판등록 r99r. 12. 20 제 16-490 호 Prin t e d in Seoul, Korea ISBN 89 -37 4-3010 -X 94990 값 8,500 원

대우학술총서 (인문사 회과학)

1 한국어의 계통 김방한 2 문학사회학 김현 3 商周史 윤내현 4 인간의 지능 황정규 5 中國古代文學史 김학주 6 日本의 萬葉集 김사엽 7 現代意味論 이익환 8 베트남史 유인선 9 印度哲學史 길회성 10 韓國으 「 風水思想 최창조 11 사회과학과 수학 이승훈 外 12 重商主義 김광수 13 方言學 이익섭 14 構造主義 소두영 15 외교제도사 김홍철 16 아동심리학 최경숙 17 언어심리학 조명한 18 法社會學 양건 19 海洋法 박준호·유병화 20 韓國의 庭園 정동오 21 현대도시론 강대기 22 이슬람 사상사 김정위 23 동북아시아의 岩刻畵 황용훈 :11겨연법자장 재죤경 25 洪大喜 評傳 깁테준 26 역사주의 이민호 27 인구어 비교언어학 김윤한 28 층국고대 음운학 문선규 29 한국의 주거민속지 김광언 30 한국의 고문서 허홍식 31 역사비교언어학 김방한 32 墨子김학주 33 영국혁명의 水平派운동 임희완 34 性嶋김경의 35 중국의 考i!i. 최무장 36 역사의 방법 양 37 朝舊時代 地方行政史 이수건 38 한국女盤史김용숙 39 한국農畢史 이춘령 40 한국의 蒙族과 宗族 이광규 41 계꼬 ml 십상필 42 코란의 이혜 김용선 43 시베라아 개발사 아철 44 스뻬인 문학사 김현창 45 영어사김석산

46 어원론 김방한 47 조선 의 서학사 강재언 48 한국음악학 이강숙 49 中國言語學 문선규 50 스포츠 십리학 류정무·이강헌 51 原始儒敎 김승혜 52 전쟁론 김홍철 53 삼국시대의 漢字音 유창균 54 베르그송의 철학 김형효 55 아날학파 김옹종 56 자유주의의 원리와 역사 노명식 57 국민투표 구병삭 外 58 한국서지학 천혜봉 59 조선통신사 이원식 60 明末淸初思想 배영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