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思燁
日本의 萬葉集
머 리 말 日本文學史에서는지대 구분을크게 上代·中古·中世·近世·近 代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며, 오늘날 일본문학의 영역의 여러 學 會는 각기 〈上代文學會〉〈中古文學會〉 〈中世文學會〉 〈近世文學會〉 〈近代文學會〉라고들 부르고 있고, 각 대학에 있어서 시대벌 교과과 정에서도 대개 이 上代에서 近代에 이르는 다섯 시대 구분을따르고 있다. 그런데 역사는그때 그때의 정치와 밀접 불가분하며, 문학의 역사 또한 당시의 정치와 無緣이 아니라는 점에서, 大和時代,奈良時代, 平安時代, 鎌倉時代, 南北朝時代, 室町時代, 江戶時代 그리 고 明治 時代라 부르고 있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시대의 변천을 인석함에 있어서 편리하며, 많은 文學年表 둥에서도 이 시대 구분을 따르고 있다. 이와는 달리 그 시대를 상칭하는 문학적 명칭으로서 시대 구 분을 해야 한다는 견지에서, 가령 〈平安時代〉를 〈王朝文學時代〉라 부르는 측도 있는데, 그들은 딴 시대에 관해서는 별반 의견율 표시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라면 〈大和 • 奈良時代〉를 〈記 紀萬葉時代〉라 고쳐 불러야 마땅하며, 기타 시대에 대해서도 거기 에 적합한 명칭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또 문학에 나타난 국민의 마음의 생활, 국민의 사상울 중십으로 하여 , 〈貴族文學時代〉(上代~中古), 〈武士文學時代〉(中世~近世初期), 〈平民文學時代〉(近世中期~明治初期)로 구분하는 견해도 있다. 이것이
라 할지라도 최대공약수적인 구분법일 분 異見도 없지 않다. 현재 로는 정치적 구분과 문학적 구분이 混在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래 서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로는 和歌라돈가物語(모노가다리)라든가하 는 특 정의 文學史의 경우는 별문제이지마는 總合的이며 全 體 的인 文 學 史로서 의 <日 本文 學 의 歷 史 〉 의 시 대 구분으로서 는, 上記한 바 와같이 上代·中古·中世·近世·近代의 구분이 무난타당한구분 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제 『 萬葉集 』이란 일본의 고전문학은 上代文學史를 독접하는 〈萬葉時 代 〉 를 수립한 것이며, 이로써 일본문학의 영역을 확립한 것 이 다. 이 〈萬葉 時代 〉 이 전의 『古 事 記』 『 日 本 書 紀』에 수록된 190 여 首의 노래는 아직 문학으로서의 양석이 불완전한, 말하자면 고대인 의 행위와 소리( 聲 )를 진솔하게 表向한것이나, 문자화했을때는불 완전한 것 이 어 서 , 이 〈 記紀時代 〉 는 〈聲〉 과 C 간畢 〉 의 중간에 위 치 한 시대였다• 현존하는 最 古의 和歌集인 『萬葉 集 』은 上代文學史를 장식하는 금 자탑이다. 수록된 노래가 4 천 5 백여首의 방대한 양에 내용 • 형식 • 표기문자 등의 측면에서 독특하고 독이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 『 萬葉集 』을 연원으로 하여 일본문학의 本流를 이루고 있거니와, 『 萬葉集 』의 노래를 통틀어 처네들은 〈 和歌〉(와가)라고 부르고 있는 데, 이 명칭은 〈 漢 詩〉를 의식한 부름이니, 신라인이 고유 가요를 漢 詩나 梵唄와 구별짓기 위해 〈鄕歌〉라 부르던 것과 等類이다• 이 『萬葉 集 』의 和歌논 記紀時代의 혼돈한 가요가 더욱 정제되어 長 歌 를 낳았는데, 長歌는 『萬葉集』에 있어서 중요한 和歌였다. 이 長歌가 뒤 에 가서 〈短歌〉로 순화되 고, 다시 나아가 일충 단순화하여 〈俳句〉(하이꾸)가 된다. 즉 歌諾에서 長歌로, 長歌에서 短歌->俳句 라는 道程을 걸어가는 것이다. 三音, 四音 또는 六音 동을 함축한 혼돈한 가요가 5·7 울 기조로 하는長歌가되고, 5·7 을 마지막 結 句(鄕 歌 의 落句에 해당)에 오는 5 • 7 • 7 과 결합시켜 독립된 다론 하 나의 歌 體 인 短歌 (5 • 7, 5 • 7 • 7) 를 형성하며, 이 歌 體 를 더욱 축소 시켜 俳句 (5 • 7 • 5) 를 낳게 되었다. 『 萬葉集 』은 일본문학울 대표하는 最高 古典文學 作品이거니와,
이것은 우리나라 國語文學, 民俗學, 動植物學 등 고대인의 생활을 탐구하는데 가장중요한참고문헌임을 알아야 하겠다. 우리나라 上 代 • 古代률 탐지함에 있어서 學界의 큰 지장은 문헌적 자료의 빈곤 이라기보다 그 零星함에 있다. 이것에 많은 보램을 줄 것이 확실한 것은 바로 이 『萬葉菜』이 다. 국문학사의 上古文學의 공백을 채워 줄 분 아니라 중요한 숙제의 하나인 長 • 短歌(歌詞 • 時調)形式의 起源論을 추구하는 데 있 어 서 『萬 葉集』의 각 형석은 큰 시사를 줄 것이고, 『萬葉集』에 사용된 표기 법 (萬葉假名라 함)은 鄕札의 用字,字音, 構造, 表記法上의 慣用體系 등을 考究하는 데 막중한 참고자료를 제 공해 주는 것 이 다. 이 밖에 『萬葉集』은 많은 動植物이 詩材로서 동장하고 있을 분 아 니라, 그들의 신앙습속둥이 적나라하게 약동하고 있으니, 이 속에 서 잊혀진 우리의 옛 모습을 찾을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수백명이 넘는 歌人둘 속에는 그 出自가 명백히 韓人인 사람이 많음도 이 歌 集이 우리에게 귀중한 학문적 대상임을 말해 준다고 하겠다. 팔자는 지난날 城大에서 韓國語文學科에 在籍하여 소정 학접(單位) 율 이수하였을 때 대학의 학칙이 한국어문학을 전공함에 있어서 상 당 학점을 일본어문학 강좌를 이수해야 하도록 마련되어 있어서 부 득이(?) 싫어도 들어야만 했는데, 이것이 도움이 되었다고할까 필 자가 일본 정부의 초청으로 일본에 건너가 20 여년간 두 대학에서 강 의를 하는 동안, 해방 후 저 나라에서 접차 고조되어 가고 있는 한 일 양국의 古代 이래 關係史를 각 분야마다 學的 硏究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어문학 방면에 참여하여 많은 십포지움을 가졌고 이에 관련된 抽著도 몇 권 펴 내었다. 작년 3 월 귀국하여 渡日 전에 籍울 둔 적이 있는 동국대학교에서 부설 〈日本學硏究所〉에 몸을 담아 溝日間의 경험을 살려 일을 하게 되었는데, 사업의 하나로 일본의 고전 중 우리나라 학문과 관련이 있논 문헌의 韓譯울괴하여, 그첫 째로 『萬葉集』 (20 卷 • 4 冊)울 대 상으로 덱 하여 지 금 추전중에 있다. 그러하던 중에 대우 재단 학술부의 지정 연구 과제의 하나로 〈日本 의 萬葉集〉이 끼어 있어 『萬葉集』의 韓譯 도중에 抽著의 집필을 개 시한 것이다. 난해한 『萬葉集』의 번역이 公刊되기 전에 이 문학작
품의 전반에 걷찬 해설을 먼저 내 어 놓으면 뒷 날 번역 『 萬葉菜』 을 읽 올 독자에게 그 이해와 감상을 보다 편하게 해 줄 것이란 팔자의 속셈에서였다. 才幽著에서는 될 수 있는 대로 필자의 개인적 견해를 크게 드러내기불 상가하고, 일본 학자의 여러 견해를폭넓게 소개하 여 이 작품 전반에 관한 총괄적인 인석을 독자에게 전달코자 주력 하였다. 끝으로 이 抽著의 집팔과 公刊에 철대적인助 成 울다해 주신 대우 재단의 李用熙 理 事 長님, 그리고 전문위원인 金大植님의 조력과 알 선에 팔자의 드거운 감사를 울리는 바이다. I983 년 새봄 金 思 燁
日本의 萬葉集 차례
머리말 2序說I. 일본 古代의 노래1. 일본 노래의 개념 • 범위 132. 노래의 종류 • 특징a) 노래의 싹틈 14/b) 記紀의 歌 16c) 歌垣(우다가끼) 16/d) 宮廷歌 193. 藝 24a) 호까히( 力 )인의 歌 25/b) 遊女의 노래 27II. 문학으로서 의 古代歌降1. 놀이와 呪 332. 원시가요 형식의 기원과 발달 39(1) 古代歌 의 詞形과 구조 41(2) 5ㆍ7調와 7ㆍ5調 45(3) 詞形과 曲形 46(4) 歌諦形式의 기원 483. 說話歌諾의 서정성 49本論I. 『萬葉集』의 특질1. 書名·名義 592. 成立과 纂 613. 구성과 각 권의 특이성 654. 萬葉時代의 구분(1) 시대구분 84(2) 萌茅期 85(3) 제1기(初期萬葉) 85(4) 제 2 기 (白鳳萬葉) 86
(5) 제 3 기 (平城萬葉) 88(6) 제 4 기 (天平萬葉) 895. 萬葉의 歌人들(1) 額田王a) 최초의 代作家 91/b) 額田王의 生年 92c) 額田王의 出自 93/d) 額田王의 文學 95(2) 本人磨a) 經歷 100/b) 現神思想의 성립 101/c) 人磨의 名作 105(3) 山部赤人a) 從 歌의 서경적 요소 110/b) 不盡山의 歌 112c) 耿美歌의 先 113(4) 山上臣憶良a) 憶良의 出自와 經歷 115/b) 憶良의 學問과 思想 116c) 憶良의 文學 118(5) 大伴旅人 • 大伴家持a) 大伴旅人 124/b) 大伴家持 1296. 諸本·연구사·연구서(1) 諸本 140(2) 연구사 • 연구서 143II. 『萬葉集』의 表記1. 萬葉假名의 형성(1) 漢字의 수입 과 토착 146(2) 문장표기상의 토착화 1492. 萬葉假名의 조직(1) 用字 방법 154(2) 用字上의 規範意識 1553. 각 권 用字의 특색(1) 變字法 157(2) 각 권의 用字 1594. 音韻
(1) 上代特殊 假名遣一甲類 • 乙類 160(2) 字音假名의 변천 163(3) 字類의 變移 166(4) 奈良時代의 음절과 萬葉假名 170III. 萬葉歌降의 形式1. 三大 歌諾形式의 특성(1) 上代歌諾의 몇가지 歌體 175(2) 三大 歌形의 성립 1792. 長歌 형식과 우리의 歌體(1) 우리 歌體의 실태 180(2) 日本長歌와 우리 歌體와의 대비a) 3句 6名體의 長歌 183/b) 時調(短歌)體의 長歌 185c) 5ㆍ7과 3ㆍ3의 대비 1863. 短歌 형식과 土田杏村의 가설(1) 短歌 형식의 성립 187(2) 土田杏村의 향가형식론 188IV. 내용면의 특질1. 분류와 그 기준(1) 내용에 의한 분류 192(2) 『萬葉集』의 생태 1932. 萬葉歌의 성격(1) 宮廷儀禮歌 206(2) 相聞歌의 성격 207(3) 歌의 성격 210(4) 案歌의 성격 2123. 修辭法上의 특색(1) 詞 216(2) 序詞 228(3) 그 밖의 修辭法
v. 萬葉人의 信仰 • 習俗1. 諸神과 祭祀(1) 고대인의 神의 개념 236(2) 神의 種別 238a) 日月神 239/b) 山神―神木 • 神岩 240/c) 神에 관한 용어 243d) 家神과 神柳一基主(터주)와 刀自 244/e) 鬼神― • 串 2462. 幣用과 禁籍(注連楊 • 시매나파)(1) 膜(미소기)와 幣用a) 〈 〉의 意義 250/b) 幣用( )의 語義 251(2) 禁繩과 主連繩a) 〈시메나파〉의 材料와 結法 254/b) 〈시메나파〉를 치는 장소 257/c) 〈시메나파〉의 語義 257結論맺음글 : 농후한 한국적 요소 263(I) 鄕札과 萬葉假名 264(2) 韓國의 歌形과 동일한 萬葉의 歌形 266(3) 『萬葉集』에 담겨진 韓國語a) 〈神〉에 관련된 語類 269/b) 藝能 • 誤樂 관계의 語類 272附錄1. 『萬葉集』 연구 문헌 목록L 本文 277/2. 注釋(全注) 278/3. 講座 • 業書 278/4. 辭書 • 索引 279/5. 鑑賞 • 批評 280/6. 美學 • 文藝學的 硏究 281/7. 歷史 • 社會學的 硏究 282/8. 民俗學的 硏究 283/9. 比穀文쭈的 硏究 짜 2/10. 地理 • 風土 284/11. 特殊硏究 286/ 12. 論考·(作家 • 作品硏究) 286/13. 日本語學的 硏究 2902. 皇室系圓 • 大伴氏系圖 2923. 明日香付近圖 294 4. 색인L 件名 295/2. 人名 305/3. 書名 310
序 說
L 일본 古代의 노래 1. 일본 노래 의 개 념 • 범 위 오늘날 일본의 노 래 라고 하면, 전통적인 短 歌 와 俳句, 또는 現代 詩 등 읽는 노래와, 민요나 동요 또는 유행가 등 부르는 노태의 두 종 류를 생각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문학으로서 읽히는 노태, 음 악 적인 요소를 중십으로 해서 불 리우는 노태의 둘이 있는 샘이다. 이 노래의 두 종별은 멀리 上代로부터 있었던 것이다. 前者에 속하 는 것은 和 歌 라 부르는 것이요, 後者에 속하는 것은 歌諾라 부르는 일련의 노태를 말한다. 和歌(와가)-和 歌 라는 것은 〈和答하는 노래〉라는 뜻이나, 뒤에 가서는 〈일본의 노래〉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 이에는 長歌 • 短 歌 • 旋頭歌 동을 내포하고 있으며, 모두 읊논 노태를 가리킨다. 歌 諾-~민중이 부르기 위해서 지은 노태, 죽 민요나 직업적인 전문가에 의해서 지어져 부르게 된, 예능상 부르게 된 노래를 말한 다. 和歌논 읊는 것이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부르논 것, 불리우던 것인데, 음악적 요소가 중십임이 특칭이다. 歌降와 和歌논 어느 것 이 먼저 나타났는가. 두말할 것 없이 그것은 歌諾이다. 上代 가요 로서 현촌하는 것은, 『古 事 記』 『日本書紀』 『風土記』 『法王帝說』 『琴 歌譜 』 『佛足石歌碑』 『 日 本 靈 異記』 등에 기 재된 것으로, 모두 약 300 首에 달한다. 이러한 노태는 입에서 귀로 전하였던, 소위 口踊時代
의 노래가 문자가 제정된 뒤 기록한 것으로, 이것은 실제 불리우던 노래 중의 몇 분의 일도 못되는 것일 터이다. 약 300 首 중에도 『古事記』에 있는 것이 114 首, 『日本 書 紀』에 있 는 것이 129 首이나, 그 가운데 중복된 것이 약 50 首이니, 그것을 제하면 記紀에는 약 190 首의 歌降가 들어 있는 셈이다. 그것을 記 紀歌語라 부른다. 일본의 상대가요라 하면 이 記紀歌諾에 의해 대 표되는 것이다. 古代歌諾는 고대문헌에 〈歌〉란 문자로 표현되며, 表音假名로써 표기하 여 韻律이 있는 歌詞를 歌喆라 인정하지마는, 그러한 것이 과연 금일의 歌諾의 개 념 과 일치 하는가 어 떠 한가논 문제 이 다. 古代歌諾의 음악적 측면 의 연구는 자료가 없어서 거의 손울 대지 못하나, 神樂歌와 같이 不均拍 리듬이었다면 均拍 리듬과 선울올 가전 〈歌諾〉와는 많이 취향을 달리한 것으로, 그것은· 오히려 辭說 노래에 가까운 것이라하겠다. 문헌상으로는 〈歌〉의 문자를 쓰고, 音假名(가나)를 사용한 접으로 보아, 사설 노태 나 呪詞와는 구별짓고 있으므로, 不均拍이어도 〈歌諾〉임에는돌림없으니, 오 늘날의 歌話의 개념과는 일치하지 않음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歌諾는 불리 우는 노태 라는 정 에서 , 문자문학으로서 의 和歌와는 구별되 지마는, 그것은 한갓 음악적 가치의 有無란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불리 운다는 것은, 거기에 반드시 듣는 이가 있고, 또, 부르는 이와 듣는이를 포함한 어떠한 구체적인 마당(場)이 있음을 말하며, 그러한 접에서도 작 자의 서재 안에서 독자를 의식하거나 의식하지 않고서 지온 和歌와는 다 른 것이며, 이것이 歌諾와 和歌의 문학적 성격의 相違를 초래한다. 분만 아니타 같은 歌諾일지라도, 노래하는사람과듣는이의 관계, 노래의 마당 의 성격에 의해서, 집단적인 민요와 전문적 ·칙업적인 藝喆와의 사이에, 노래의 성격의 相違를 낳게 하였다. 民諾와 藝諾를 구벌하는 것은 이 때 문이다.I) 2. 노래의 종류 • 특칭 a) 노태의 싹듬 1) 『古代歌諾 0 世界』 「古代歌諾Q)槪念&範園」, p.1 1, 土橋寬(埼書房).
노래는 지극히 단순한 감동적인 외침과 같은 것에서 싹터 나왔다 함은 일반적인 견해이다. 狩臘, 農耕, 祭神 등의 생활 속에서 어떠 한 감동을 느꼈을 때, 의미 없는 탄성이 한걸음나아가 말이 되고, 이어 그 말이 이어져서 노래가 된 것으로 믿어진다. 일본의 옛 노태 에 이것을 찾아 보면; 『古事記』에 실려 있는 선화 가운데, 가령 伊 邪那岐命 2) 가 자기 妻인 伊邪那美命”에게 「尤t£t乙손 L 之宅&心」라 고 부르니 그 妻가 「尤t£':손 L 之宅& 乙宅」라 和答했다는 것 4) 이 보이는데, 이러한 唱和의 노래는 가장 원초적인 형태라 보여진다. 이러한 단계에서 『日本書紀』어 1 실려 있는 神武天皇의 병사가 전승 했을 때 불렀다는 다음과 같은 노래에로 전개되면서 차츰 본격적인 노래로 발전해 나간다. 皇軍, 大총 V 다知 0넛 :, 天在仰봉f疾소。 因 b t歌간f曰fi <, *L·< 근 hb 今 I iJ:, 今fiJ:。 志志 L 손宅。 今ttt乙心, 吾子J:。 L 깁 2 : 今``tf. :l'드t. 吾子i。 5)
2) 伊邪那岐命 (L 、창t.r:.왕(!)3,.t. c); 日本神話의 男神. 그의 妻와 더불어 日本國土經 營 天照大神 • 月 讀神 • 素왓 I 없효의 父. 3) 日 本神話의 女神, 남편과 함께 國土萬物울 生成했으나, 火神올 나아 燒死했다고 한다. (『古 事記』 上) 4) 志t£t:::.는 아아, 참으로. 感歡詞. 之宅&t는 之 ➔ 사랑스러운, 宅&드 ➔ 男, 참으 로 사랑스러운 사나이. 5) 『日本書紀』 神武前紀戌午年條. 神武天皇 大和平定의 노태 여辻目歌· 모두 九首中 의 一首).
〔 譯〕 지금은 벌써(최다 敵울 무찔러 버렸도다) 예―이, 바보.놈들, 이래도 덤빌 터인가 웅 네놈들. (注J 今|ii-지금은완전히 져올쳐부쉬 버렸다, 의 뜻, ~~L 춘在_._ 〈尤志〉는 감탄사, 여기서는 웃음의 표현. 〈 L~ 〉논 조소, 매도하는 말. 今t.:.t::.\)-이렇게 완전히 쳐부순 지금이라도, 의 뜻. 吾子J:――부·하 둘을 부르는 천애의 호칭. 자네들.
b) 記紀의 歌諾 神代의 설화로부터 天智天皇의 歷史時代의 기록에 이르는 동안 記紀에 수록된 歌諾를 말한다. 이 노래들에는 거의 전부 작자가 명 기되어 있다. 그러나 작자명은 선화의 주인공이지마는 그것은 모두 가 史上에 실재한 實作者라 인정할 수는 없다. 記紀의 歌諾논 궁정에서 가무를 맡은 雅樂察에서 교습시킨 것이 대부분이다. 그것은 歌諾마다 노래 끝에 곡목명이 붙어 있는 때문 이다. 가요명 중에 久米歌 6) • 國柄部”는 이 노래를 전승한 부족의 명 칭 을 취 한 것 이 요, 夷振 8) . 宮人振 9) 동은 歌詞의 이 름을, 擧 歌 10) • 宇吉歌 11) 는 曲節의 이름을 각각 취한 것이다. 이같은 쿵정 雅樂察 의 歌諾논, 원래 각 지방 서민의 민요를 채용해서 舞와 曲이 만들 어지고, 나아가서 일부는 극적인 성격을 띠어 유행하기에 이른 것 이었다. 그러므로 記紀歌諸논 궁중에 볼리었을 분 아니라 널리 고 대인의 생활속에서자란것도들어 있다. 고대인의 생활속에서 자 란 것이라 하더라도, 후세의 노래처럼 개개인의 창작이 아니고, 집 단적인 노래, 죽 集團文 學 의 성격을 떤 것이다 .12) c) 歌垣(우다가끼) 上代의 歌諾가 불리우던 장소는 궁정이 主였지마는, 서민도 또한 노래하는 마당을 가지고 있었다. 歌垣란 것은, 봄과 가을에 남녀가 특정한 산 위에서나 길 네거리에 모여서 행하던 행사 13) 로, 먼저 남 자가 여자에게 노래를 걸면, 여자가 이에 화답하는 것인데, 이것은· 6) 久米歌( <~ , t-:) : 久米部(上代, 久米氏에 속하였 던 武士로 宮中의 쨩護를 말아 보았음)가 부르던 古代의 노태. 7) 國柄( 산드寸)歌 : 國柄는 <《 f〉라고 하며 , 上代 吉野川上流地方의 土 着 民인데, 奈良, 平安時代에 國柄人들이 元 日 • 白 馬 節會나 踏歌節會 때 에 宮中의 承明門 밖 에서 부르던 風俗歌 8) 夷振(0-ts:. ~V) :上古의 曲의 一種. 歌曲의 節奏에 따라 이름 붙인 것. 9) 8 과 같음. 10) 擧 歌(~1-f ? t-:) : 上代歌話로서 , 소리 를 질 러 높은 詞子로 부르는 노태 . 11) 宇吉歌( ' 총 , t) : 勸酒歌의 -種. 12) 『萬葉菓』 「時代上作品」, 木侯 修. 13句) 麗其)民. 喜 歌 舞 , 國中邑落, 若 夜男女群梁, 相就歌 戱 (『三國志』 魏 합 三, 束夷傳 • 高
구혼을 위한 것이었다. 그 노래는 단순한 민요이다. 東 國 14) 에서는 이것을 가가이(力 、 b:\, 、 . 躍歌余)라 불렀다. 그런데 원래는 구혼의 노 래가 주가 아니었고, 풍작을 신에게 기원한다든지 또는 생산울 감 사하려는 행사였다. 『風土記』 등을 보면 이 행사는 전국적으로 성행 했음을 알 수 있다. 記紀歌降 중에는 歌垣 때에 볼리우던 노래라 추정되는 노래도 없지 않다. 歌垣 때의 노래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남녀 사이에 화답하 는 노래는 거의가 이성을 유인할 의도의 노래이나, 그 의도를 칙접 적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겠지마는, 때로는 간접적으로 농담조나 익 살의 노래 형식의 것도 있다 .15) 男女愛情의 노래 잰!. 石 참 전따 \, 、 h渡t c 8 寸迫,t 門I! 石\•L 川 ••h 片 ••t:. 淵s ,.~ 片目 淵石 寄t 乙 L尤網 入t 乙張| 2 寄b 渡L 寄L b 來七 石川片淵 16) 「u夷t 曲'」
14) 尤于主 O 산드. 옛날에는 逢坂 (*5 혼力` . 滋賀 縣 大津市의 南에 있는 재)의 關 所 에서 東方의 여 러 地方운 이름. 15) 『古代歌諾(J)世界』, 「歌垣(J)歌」, 土橋寬. 16) 『 日 本 합 紀』 所載 下照援의 노태 •
〔譯〕 시골 처녀가 냇물 건너는 세도(陝門)의 물개천 깊은 못, 그 못에 그 물을 벌려 치니, (그물을 당기면) 그물눈이 다가오네. (그처럼 처녀들 아) 가까이 오령, 가까아 오령. 〔注〕 天離石―一〈夷〉의 株詞. 夷?女 __ kT 는 시골. `; ;논 連 體 形의 助 詞. I,、渡 B 寸迫門 __- 4 는 接題語. 七는 좁다는 뜻, 卜는 강이나 바다 의 兩岸이 가까와져서 좁게 된 곳. 시골 처녀들이 강 건너 처쪽을 가는 데, 언제나 건너는 강폭이 좁아전 곳. 石川片淵 -@5l|l 〉은 강델에 돌 이 많은 시내. 〈片淵〉는 강의 한 쪽이 못이 되어 물이 깊은 곳. 目石寄 나드一一,/.는 그물의 눈. P 는 명사 밑에 불은 接尾語. 감동의 뜻을나 타냄. 子石, 家石, 嶺石 등. 寄 L 는 四段活用動詞 〈寄久〉의 連用形. 그
물눈이 가까이 오네. 이 노태는 歌垣의 誘引의 노태였던 것을 다소 손을 대어 아래와 같은 說話에 결부시 킨 모양이 다. 乙(1)歌 V i天稚彦(1)葬구 LO 時, 參余 L t.::味祀高彦根神(1)容統力:天稚彦t乙似 f L 、t.::(1)균, 人수力;間違之t.::。 군드군 ` 味相高彦根神 v i怒 ?T 天t乙飛간去? f行〈時, 下照姬力:歌?t.::歌&低之石。 춘 5L 、 5 場合(1)歌& LTAhVf , 〈目石寄 L t드, 寄 L 寄 b 來七〉(1)句 b;, 目宅寄산fJ:
17) 『古代歌諾 0 世界』, 「歌垣 0 歌」, 土橋寬
弄談의 노래 誘引의 노래는 위에 돈 것과 같이 직접적으로 부를 분 아니라 간 접적으로 부르는 것도 있다. 그것은 딴 물건에 의탁해서 비유적으 로 부르는데 , (1) 草木에 의 탁한 것 , (2) 第三者에 의 탁한 것 , (3) 노 래부르는 사람에 의탁하는 동의 방법을 취하고 있다. 가사의 표면 만을 보면 그것은 한갓 꽃이나 풀이요, 제삼자나 자기 자신의 일을 노래하고 있는 듯하나, 실상온 그것이 목적이 아니고, 수단 내지 발상법 으로 부른 것 아 니 , (1)은 寄物的 發想, (2) 는 三人稱 發想, (3) 은 一人稱 發想이 라 하겠다. 向?峰t드 立f乙夫 B 力; t>~• t::. -I< F柔:手 T 乙춘 我力;手宅取 e 心 誰力념裂手 裂手꾼t쓴 我力녀手取 e 寸心훈 18) 근 e 군 〔譯〕 저 앞의 山(의 歌垣)에 서 있는 처 이의 부드러운 손이라면, 내 손 울 잡아도 좋지마는, 대체 누가 터진 손으로 내 손을 잡는단 말이오(난, 싫어). [注) 向?峰t:=. 立t石夫 e 力;-처 앞 봉우리에 서 있는 님. 夫(산)는 男
18) 『 日 本맙紀』, 「山背大兄王 0 滅亡」 (皇極三年六月 條).
性을 정 답게 부르는 말. 5 는 완곡한 표현의 接尾 i E. 복수가 아님 . 柔 手 __- 부드러운 손. 노동하지 않는 사람의 손. 誰力:裂手 __- 裂手는 터 져 금이 나간 손. 노동하는 사람의 손. 裂手꾼t쓴_、j.는 强勢, 壬는 諒欽, 十는 疑問의 助詞. 이 노래 는 三輪山의 「원숭이 노래 」라 전한다. 동요의 일종이 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歌垣의 노래로 처녀들이 거절하는 뜻을 내고자 한것이다. d) 宮廷歌諦 본시 儀禮 儀式이라는 것은 주술적인 의의를 띠는 것이니, 집단 또는 개인의 미래의 번영과 행복이 오기를 豫祝하는 행사임은 매일 반이다. 민간의 연중행사나 임시적인 행사는 모두가 그러한 豫祝的 意 義 를 떤 것이며, 연중행사가 새해 처음에 집중되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며, 가울의 收稷祭라할지라도그해의수확물을神에게 謝供 함과 동시에, 내년의 豊稷율 祈顔하는 데 중접을 두고 있다. 일본 古代歌諾에는 궁중에서 행하는 잡다한 연중행사와 특벌대제 요 추수감사제라고 할 新常會 둥에 관해서 많은 歌諾가 있어 하나 의 특색을 이루고 있다. 宮廷歌諸의 종류 이에는 儀禮의 목적에 밀착한 儀式歌와, 자유로운雜歌의 두종류 가 있다. 古代의 宮廷歌諾는 民降的, 藝諾的인 명칭과 함께 宮廷歌 話 獨自의 명칭도 있다. 記紀에 실려 있는 歌諾마다 注記한 歌諾名 의 대부분은 거의 『古事記』에 나오는것이다. 다음에 그것을분류해 서 싣는다 .19) (1)歌(1)場(儀구 L) t~J: J.i名弥 「酒染之歌」 (記 39 • 40) 「宇岐歌」(記 103) (2) 歌唱者(保承者)t~ J: J.,名弥 19) 『古代歌諾(I)世界』, 土橋寬 「宮廷歌諾(I)種類」. pp. 126~7.
「天語歌」(記 100·101·102) 「米 目 歌」(紀 7~14) (3) 歌IJ)內容t乙.t 乙名稀 「神語」(記 2~5) 「思固歌」(記 30·31, 紀 21~23) 「統歌」 (記 89~90) (4) 唱話法itd 차曲節t乙 .t 石 t IJ) 「片歌」(記 33) 「志都歌」 (記 92~95 • 104) 「志都歌之歌返」(記 57~63 •74) 「志良宜歌」 (記 78) 「洋歌」(紀 5·6) (5) 歌詞t드.t 石名祐 「夷振」(夷曲)(記 6, 紀 2) 「宮人振」(記 82) (6)(3「)天 c田 (振4)」 t(J記J複 8合3 L•8 f4g•8名5弥) (7) (5「) 本c岐 C歌4) 之tJJ 片複歌合」 L ( f記: 志7 3IJ)) 「夷振之上歌」 (記 80) 「夷振之片下」 (記 86) 위 (1) 은 酒案의 儀式歌. (2) 는 姓氏의 이름을 가요명으로 한것. 이런 따위는고대분이며, 또민간에도없다. 이것은그노래에 명기한姓氏의 인물이 宮廷儀禮 에서 연주하였다. 그것도 天皇 앞에서 연주한 것이었다. 죽, 「來目 歌」 「天語歌」는 來目氏 天語部가전승된 노래를부론 명칭이 아니고, 그 姓氏의 인물이 宮廷儀禮 때 天皇에게 연주한 노래의 호칭이다. 위의 노태 의에, 같은 성질의 노래에 「國柄의 歌」(記 48, 紀 39), 「蘇 我氏의 노래」(紀 102) 「大伴氏의 노태」(天平勝寶元年宣命) 등이 있으 나, 이 후자의 노태 는 전자보다는 새 롭고, 儀禮의 場도 大常會가 아 니다. (3) 의 「神語」는 天語部가 전승한 八千牙神에 관한 설화에 수반한
노래며, 儀禮 와는 직접 관계가 없고 일종의 雜歌 이다. 「思 國歌 」는 國見(높은 곳에 서 나라의 地 勢 나 백 성의 생 활 상태 등을 살 핌) 의 노태와 歌 垣의 노래를 倭 建 命의 설화에 결부시켜서 望鄕 歌 를 지어 설화화한 것으로, 위의 一首를 「思國歌」라 부른 것은說話 歌 로서의 명칭인 것 같다. 「 讀歌 」에 관해서는 諸說이 있으나, 語 義 논 祝 歌 이다. ( 4 ) 는 歌臨 의 음악적 면에서의 명칭이다. (5) 는 歌 語의 첫 머리의 어구를 따서 명칭으로 한 것이며, 이는 가 요명이라기보다는 곡명이며, 그것은 가사의 곡철을 나타낸다. 그러 므로 딴 가사일지라도 같은곡으로부르게 되면 그 명칭으로부른다. (6 ) 「本 岐歌 之片 歌 」의 「本岐 歌 」는, 명칭으로 보아 壽 案 歌 祝 歌 의 뜻이나, 『古 事 記』에 실려 있는 노태의 의의논, 독립된 壽 案 歌 的인 성격의 노래는 아니고, 설화의 내용상에서 지어전 명칭이다. 「片 歌 」란 것은, 근대 이후에 와서 5.7.7 의 歌 形의 명칭으로노 불리우고 있으나 , 그 전까지는 5·7·5, (5 ) 7·7( 短歌 ), 또는 5·7·7, 5.7.7( 旋 頭 歌) 둥 의 윗 구나 아랫 구만을 부르는 것 을 가리 켰다. 『古 事 記』에 있 어서는 歌 形의 명칭이라기보다는 5.7.7 의 노래를 單獨이 부르는 것 을 「 片 歌」 라 한 것 같다. 宮廷의 연중행사와 歌臨 궁정의 연중행사는 민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豫祝行 事 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壽 祝의 대상이 天皇이요, 壽 辭 를 上 奏 하는 자가 天皇에 복속하고 있는 중앙 및 지방의 씨족의 추 장이나 그 대리자라는 것이다• 정월에 행사가 가장 합은데 이는 중 국으로부터 天文曆(太陰曆)이 들어온 뒤부터이다 .20) 大 寶 令에 의하 면 연중행사로 정월 1 일, 7 일, 16 일, 3 월 3 일, 5 월 5 일, 7 월 7 일, 11 월 大 常 祭의 7 일이 七節日로 정해 있다 한다 .2 1) 그러나궁정의 연 중행 사논 자세하지 않은데 , 봄의 國見(구니 미)와 가을의 新 常 祭가 대 20) 『 日 本한 紀.!I에 의 하면 天文 曆 의 輸 入온, 欽明天皇 15 年 (554) 에 天文 博 士의 渡來 後 이고, 推古天 皇 10 年 (602), 百濟僧안 觀 勒이 曆 文 • 天文地理 합 률 가지고 온 뒤 다 . 『政事 要略 .!l 에 의하면, 推古天 皇 12 年 甲子年正月湖부터 비로소 曆 日을公用하 였다함. 21) 『四時祭式.!l에 의 하면, 奉 幣神온 三百四座, 百九十八社라 합.
표적이었고, 고대가요에도 이 둘이 가장 많다. 新當會와 歡諾 新 常會 라고 하는 것은 오늘날의 추수감사철과 等 類 의 행사이다• 일본에 있어서는 이를 t乙\,、tg沈之(니이나메에)라고 하는데 그 語義 는 〈 新 穀 울 神에 게 드리 다 〉 란 것 이 다. 22) 원래 는 민간의 연중행 사로 그 해의 新 穀 율 神에게 올려 감사하고, 아울러 오는 해의 풍작을 빌었던 것이었다. 고대에 있어서 新常 의 모습은 『常陸風土記』의 筑 波郡條에 보이 는 〈 祖神巡行〉 說話, 그리 고 『 萬葉集 』 속의 「 東歌 」 (卷 十四, 三三八六·三四六 O) 에 의해서 알수있다. 그 행사의 모습을보 떤, 新 常 의 밤에, 집 주인은 마울 전체가 행하는 村祭에 참가하고 주인의 처는 집안에서 身心의 더러움을 깨끗이 해서 神울 섭기는 데, 이를 〈 齋 (1,、?)入乙을 心 9 〉라 한다. 이는 祭 지내는 神이 개개인 의 집의 祖 靈 이 아니라, 마울 전체의 祖神임을 알게 된다• 서민 사 회에서 家長이 집의 제사를 지내게 된 것은, 봉건 사회에 이르러서 부터이다 .23)
22) 〈新常〉은 〈 =^T^ 〉(『神代紀』, 上顯宗前紀), <=1 :: Tk 〉(『神代紀』, 上私 記 ), <=^.I7 1::〉(仁 德 紀四十年), 〈.:.1::-j-^〉(天語歌), <=1 :: TA 〉(名義抄) 등이라 입 I f 讀 하고 있다. 이는 新穀(=^ • =*)을 神에게 要應한다는 듯. 23) 「固有信仰 0 展開&佛敎」(『史林』 37•2), 高取正男.
민간 행사인 新 當 이 궁정에서 행하게 되자, 그것온천황이 新穀 울 신에게 향응함과 동시에, 백성으로부터 공헌한 新 穀 울 천황이 먹 고, 일방에 있어서는 군신에게도 내려 주는 행사였는데, 그 본질은 오히려 新穀을 천황이 먹는 데 있었다. 어떠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곧 그 음식을 領有한다는 것을 의 미하는데, 이러한 현상은 미개사회에서 많이 볼 수 있다. 記紀의 신화에서도 4 于 T : / S 그 卜논 黃 泉國의 음석을 먹은 탓으로, 현 세에 돌아올 수 없다고 되어 있다. 농경사회의 식물-수확한 곡물이나 채집한 과실――은 인간의 생 명 력 의 근원이 다. 특히 初稷의 곡물이 나 과실은 가장 mana( 生命 力 • 呪力)가 많은 것이라 믿고 있어서, 반드시 神이나 지배자에게 바치지 않으면 안된다. 日本에 있어서 mana 를 子(血) • 7力 尹(力)라
일컬으며, 租稅도 千力 弓라고 함은, 새로운 수확물에 대한 呪力親 念을 나타낸 것이다. Mala y s i a 에서는 新穀에 祖 露 이 것들이고 있다 는 신앙이 있는데 24) 이는 新穀에 대한 呪力觀念과 祖磁崇拜가 결합 한 신앙이다. 記紀나 『風土記』에 는 지 방의 복속자가 천황에 게 향응하는 기 사가 많이 보인다. 이 또한 그 지방으로부터 貢進한 석물을 먹음으로써, 그 지방을 領治하는 것을 의미한다. 매년 수확된 新穀을 천황에게 공헌하고, 천황이 이를 먹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가 진 의례이니, 그러므로 천황이 지배하는 것을 〈수::r `} ?추〉 25) 라 하 며, 지배하에 있는 나타를 〈?추夕.::.〉라 함은 그와 같은 관념과 의 례에 기인함이다 .26) 新 常 會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賤祚大常會이니, 새로 즉위 한 천황에 대한 충성을 서약하는 의례이다. 이에는 각 지방으로부 터 御食(入남) • 御酒(~총)의 貢獻, 壽 歌 • 壽 詞 • 歌舞의 進上이 중 심이다. 또 다른 하나는, 大化 以前의 造風이라볼수 있는 平安朝의 행사 인데, 그것은 卯日의 儀式과 辰 • 已 • 午日의 節會이다• 卯日의 儀 式은 궁내에서 비밀히 행하는 의석이라 자세한 것은 알 수 없게 되 어 있는데, 일반의 추측은 이러하다. 즉 殿內에 神座와 御座가 있 고, 食膳도 神膳과 御膳이 있어, 거기에는 선과 천황이 함께 자시 는 모습을 볼 수 있겠으나, 신의 모습이란 매우 희박하고, 오히려 천황이 신이며, 또는 신이 되는 의석이라 보여지는 것이다 .2 7) 이에 대해서 辰日 以下의 節會논, 새로 즉위한 천황에게 중앙 씨 족, 지 방 족장, 雅樂察로부터 壽 詞 • 歌舞의 進上과 裝案이 의 례 의 중십이 된다. 이 때의 가무의 중요한 것을 들면, 種種의 國風(國柄, 悠紀, 主基), 和舞, 田舞, 律人(하야도)의 歌舞, 中臣의 壽 詞, 각 지 24) li'~ J 1 .Y 7 0)農耕儀禮.!], 宇野円空. 25) 'f ::r y 7 久는, 「聞드 L 食十」이 니 , 이 말은 〈다스리 다〉, 〈먹 다〉, 〈마시 다〉의 敬語 로쓰임. 26) 「大化前代0)服屬儀禮&新常」(『日本史硏究』 第 60,61 號), 岡田精司 . 27) 「新常祭神膳 0 르 타 :?b 、-c」(『新常0)硏究』 第一輯), JII 出淸彦.
방에 있는 語部 2 8 ) 의 古詞, 伴 • 佐伯 二 氏의 久米'J!;{, , 安 倍 氏의 吉志 舞, 雅樂療의 奏樂, 大歌와 五節 舞 둥이 다. 記 紀에 실려 있는 卑人 의 歌舞, 國柄의 歌, 久米歌, 天語 歌 둥은 모두 이 에 속하는 가요 중에서 전승된 것들이다•
28) 力士t나)入(語部) : 文字가 아칙 없었을 때, 史 事 를 記憶, 해서 傳承하는 것을 칙업 으로 하던 部族.
3. 藝 諦 일본 古代歌諾에는 또 하나의 종별로 藝 諾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 다. 藝 諾라고 함은 전문적인 歌人에 의해서 불리우며 듣는 이의 오 락을 목적으로 하는 歌諾를 말한다. 民諾에 비하면 보다서정적 • 감 상적이며, 개인의 창작가에 견주면, 보다 일반적 • 비개성적이라 하 겠다. 이 藝 諾는다른가요보다는발전율 제대로 못하였는데 , 그 까 닭은 전문적 예능인과 민중과의 접촉이 충분하지 못했던 점에 있는 듯하다. 그들의 활약을 지탱할 여건이 아칙까지 갖추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궁정 사회에 있어서는 多大 明 및 推古朝로부터 음악 • 예능의 직업인 양성을 시작하여 雅樂療의 설치에 따라 그 완성을 보았는 데, 그러한 것은 대륙계의 器樂 • 藝 能이었다. 그러나 이 의태적이 요 고도로 발달한 예눙은, 재래의 궁정 가요나 민간의 가요에 새로 운 활력소를 불어넣어 보다 높게 藝 諾化하기까지에는 이르지 못하 였다. 예능이란그출발이 呪術的·종교적인 의식에서였다. 오늘날 民俗 藝能이란 것은 그것을 오락으로서 구경하는 도시인 측에서는 하나 의 예능이요, 또 그것을 연출하는 연출자도 도시인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놀린다는 의미에서는 또한 예능이지마는 원래는 五 穀農稷 울 기원하고, 邪 靈 울 跋除하기 위한 주술적 • 종교적 인 목적을 가전 행 동 의례였다. 그래서 마울 전체의 행사로서 매년 되풀이되었고 유 지되어 온것이었다. 예능·가무가그본연의 의례적인 의미를상 실하고, 순수한 오락이 되었을 때, 〈예능〉이 되고, 오락성을 강화 하기 위해 전문화가 생겨난다.
민중 문화로서의 예능을 태어나게 하는 적극적인 조건을 갖춘 것 은 도시 사회다. 도시의 시민은 개인적 경제기반 위에서 생활하고, 또 여가가 있는 대문에, 독립한 오락에 대해서 관십이 크다. 문제 는 그들의 요구에 응할 수 있는 예능인과 예능의 마당(場)이다. 고 대 문헌에 보이는 전문적 예능인은, 『萬葉集』에 동장하는 乞食者와 遊行女婦(遊女)와 平安朝의 歌諦에 활약하는 佛偶子이 다• 乞食者의 노래와 遊女의 노래에 대해서는 다음 절에서 보겠으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양자가 다같이 질적으론 아직까지 藝降的인 特 長율 갖춤에 이 르지 못했다. 乞食者의 노래 는 『萬葉集』에 2 首가 전 하는데, 이는 애초에 腦祝儀禮에서 기원하였다. 궁전 사회나 씨족 사회의 예속자가 복속의 의례로써 사슴(鹿)이나 게(盤)의 中力 七노. 래를 藝諦化한 것이며, 遊女의 노래는 원래 酒案의 접대역을 하던 여성이 부르던 勸酒歌 • 龍燕曲 따위로, 奈良朝까지는 그뒤 平安朝에 가서 있었던 遊女 • 白拍子와 같은 가무를 전문으로 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a) 호까히 (中力 臣)인의 歌降 乞食者를 中力 七 七 卜(호까히히도)라 하며, 그들은 길가에 앉아 밥 울 비는데, 그들은 쌀이나 밥을 비는 수단으로써 中力 k 를 연출하 었던 최하급의 藝人이었다 .29) 乞食者의 노태는 『萬葉集』에 「乞食者諒」, 『日本 書 紀』에 顯宗天皇 이 형 인 億計王과 함께 播磨國에 망명 하여 縮見의 屯倉首의 집 에서 소를 먹이고 있을 때, 그 집의 新築案에 연주한 室 壽 의 壽 詞에,〈志 L 간총(J), 乙(J)傍山(J), 杜鹿(J)角, 擧담 T 吾力潭 F\ tf〉(이 片山 〈산모 퉁이〉의 암사슴 불을 머리에 쓰고 나는 춤추다)란 句가 있는데, 이는 下 29) 『萬깁팡t.!l 卷十六 「乞食者泳二首」 0 「乞食者」ti, 從來*力 k k가 · c i!l l| 主 h -cI,、石 -/J•, 『和名抄』 ,드心 「乞兒, 楊氏漢語紗云, 乞索兒, 保加比 A 止, 今案乞索兒郞乞兒 是也, 和多井」 &尤 b, 『日本盛異記』 上 「聖德太子示表緣第四」 t乙t 「乞쩝.::.合力 夕수又云保甘比止」 &尤乙力毛 6, 드(/)訓ti動力야:I,、 0 *力 k k가 · cl.、’語ti, 祝言宅 述~::, 卜*두宅寸石藝能人宅意味 L, 力夕수ii片居균, 道傍t드坐?-C食宅乞 5 物賀I,、 在意味寸石 b: , 萬葉(/)*力 :人力; 「乞食者」 (/)文字균杏총表七훈ii,-CI,、石(/)|i, 彼 5 力;米食宅乞 ; 手段上 L -C*力 k 在演f石最下級(/)藝人균尤?t.:.드 &宅示 L -cI,、石。 『古代歌話 0 世界』, 土橋寬.
人이 사슴의 가면을 쓰고 가장에게 壽 詞를 바치논 습속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또 『古 事 記』에 應神天皇과 矢河枝姬와의 결혼 이 야기 속에, 〈乙 0 靈훈 \,、겅〈 (J)盤〉(이 게야, 어디 메 게인고)의 노래에서는, 角鹿의 게가 멀리 大和에 나타나는 詞 章 이 보이거니와, 이는 萬葉 의 乞人의 게노태와 유사함을 알게 된다. 그러면 이 乞人노래에 둥 장하는 사슴과 게는 무엇을 나타내고자 한 것일까. 鹿 • 徽의 藝能의 의미에 대해서는 이미 몇가지 설이 있다. ®식 량으로서 그같은 동물의 豊狼울 비는 呪術的 儀禮라는 설, 30) ®鹿 이나 盤가 복종을 맹세하는 農耕 儀禮라는 설 ,31) ®鹿 • 擬를 영적 동물로 다루고 있는 신앙에 의한 것이라는 섣 32) 둥이다. 문헌에 보이는 *力 k 인의 作品으로는 『古 事 記』에 和펴氏(矢河枝 姬의 出身氏族)의 *力 k 인의 노태와, 『萬葉集』 卷十六에 실려 있는 「乞食者諒」이 있다. 전자는 應神天皇이 近江에 가는 도중, 木幡의 길에서 아름다운 처녀를 만났는데, 그녀는 和耳日觸臣의 딸인 矢河 枝比賣다. 歸途에 그녀집에 들르니, 日觸臣온 큰향연을 베풀고, 그 딸로 하여금 술찬을 바치게 했다. 그러자 천황이 노래를불렀는데, 그 노래 가 『萬葉集』에 나오는 「乞食者諒」과 유사하여 여뜻의 등장과 기행문적 표현형식), 이를 *力 k 인의 藝降로 보는데 ,33) 그러나 노래 전체의 文意로 보아 독립된 藝諾詞章으로 볼 수 없고, 노래 처음에 土力 k 인의 가사를 삽입해서 지온 話話歌라 봄이 타당한 것 같다. 『萬葉集』의 「乞食者諒」은, 飛鳥 • 藤原時代의 노래로 추정하는데 이 노래 성격에 대해서는 몇가지 견해가 있다. 죽 그 하나는, 임금을 위해서 죽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사상을 노래한 듯 보이나, 이 것은 표면적인 것이고, 眞意는 죽음을 당한 동물의 슬픔, 또는 怨 鹿를 토로한 풍자라 보며, 다론 하나는 문자 그대로 짐승도 임금을 위해 즐겨 몸을 바치는 國風울 노래한 것이라 보고 있다. 30) 『日本神話 O 硏究』 第四篇, 松村武雄· 『中世藝能史 O 硏究.!], 林屈辰三郞• 31) 「國文學(l)發生」, 折口信夫. 3323)) 『「 드古 (代7)文靈.!學fl O, , 硏'?究 <』,( 7 )戶盤」 (口 『高古明.事 記大成』 2), 田邊幸雄.
b) 遊女의 노래 遊女의 起源 遊女의 기원에 대해서 몇가지 설이 있다. 巫女가 영 락한 것 34) 이 란 설에 대 하여 浦川 政次郞은 이 와 달리 『萬葉祭』에 등장하는 〈遊 行女婦〉나 平安朝의 遊女는 魄偶 IT 의 자손이타 주장하고 있다. 이 설에 대하여 土橋寬 35) 은 〈偶偶子가 大陸系의 標泊民族인 白丁族이 다〉라는 浦川氏의 설은 매우 설득력 있는 것이나, 遊女의 기원도 魄偶子에 있 다는 접 은, 論證 부족을 면치 못한다고 하여 부정 적 이 다. 그리고서 土橋氏는 말하기를 〈遊女의 起源은 巫女나 白丁族에 서 구하기보다는 차라리 祝案에 있어서 여성의 접대역의 전문화에 구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라고 하였다.
34) 『柳田國男全菜』(卷四) 「 4夕 力及 8+ •. /力」, 柳田國男. 同上 第九卷 「巫女考」. 『賈笑三千年史』, 中山太郞. 35) 「遊女 0 歌」(『古代歌諾 0 世界』), 土橋寬.
대체로 賓客의 招案에 여성이 시중올 드는데, 술을 권하고 노래 하며 충도 추고 沈席에도 모시는 습속은 퍽 그 기원이 오태다. 그 빈객은 공동체의 首長級일 수도 있고, 밀접한 관계를 가전 딴 공동 체의 首長일 경우도 있고, 또 來臨하는 神일 수도 있었다. 그러한 案席의 접대역은, 원래는 그 집의 딸이 말았는데, 접대역으로서는 姿色이나 才藝가 뛰어남을 요구한 까닭에, 또는 타처로부터의 빈객 의 내방에는 案席율 베풀어 접대를 해야 하므로, 이럴 때는 그 집 딸 대신에, 일반의 마울 말네 중에서 적임자를 골라 접대의 소임을 맡기게 된다. 異域과의 교섭이 빈번해지자, 차츰 전문화의 방향으 로 나아가게 되었다. 新室 0 壁草 XU b t:I,겹: L 給ii七 草 0 如依 b 志소娘子|i公성主 K 主t乙 (『萬葉集』 卷十一, 2351 ) 새로 짓는 집의 壁풀앤홉 바르는 데 섞어 넣는 풀) 베러 오소서. 풀처럼 흐늘흐늘 감겨 자는 娘子란 당신 마음대 로이 구려 • 이 노래의 〈벽풀 벤다〉는 것은 일종의 구실에 지나지 않고, 실상
은 모두가 공동으로 완성한 신가옥의 축연에 오기를 선하는 것이 며, 오게 되면 어란 풀과 같은 당자는 원하는 대로라는 뜻이다. 이 곳의 낭자란 것은 祝案에서 歌舞하는 접대역의 딸이다 . 允恭天皇 7 년 12 월, 新室의 祝冥이 베풀어졌을 때, 천황이 琴울 타고 황후는 일어나서 춤추었는데, 충이 끝났을 때 禮法대로 하지 않고 앉아버렸다. 〈當時風俗, 於冥會個者舞終, 則自對座長 曰奉娘 子也〉라 書 紀에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天皇은 예법대로 하기를 요 구하였으므로, 皇后논 하는 수 없이 일어 나 한번 춤추고, 끝나자 〈낭자를 받자오리다〉라고 인사하였다. 그 당자란 누구냐고 물으니, 皇后의 妹인 衣通姬였으므로, 歡喜한 천황은 곧 사자를 시 켜 서 衣 通姬를 데리고 오게 했다는 것이다. 이 경우의 주객은 물론 천황이 며, 황후는 접대역으로서 舞人의 소임을 했거니와 무인이 당자를 바치는 예법은, 농촌에 있었던 祝冥의 예법을 귀족사회가 받아서 변형시킨 것이다. 본래는 舞人자신이 주빈의 沈席에도 모시는 법이 었으나, 접대역의 전문화에 따라 반전문화인 遊女의 집단이 생기고 거기에는 지도자 내지 관리자로서 〈長者〉적인 것이 생겼는데, 皇后 는 장자의 입장에 있었으므로, 〈낭자를 받자오리다〉라고 인사를 하 지 않으면 안되었다. 遊女의 기원이 이러한 것이었다면, 뛰어난 자색과 가무의 기예에 의하여 뽑힌 처녀는, 최초의 遊女였고, 性의 제공은 뽑힌 여자의 자랑이 될지언정 불명예스럽다는 관념은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전 문적 遊女의 출현은, 그것을 직업으로 하는 직업적 遊女를 낳게 된 다. 遊女에 대한 수요는, 딴 지역사회와의 정치적인 교섭이 질어접 에 따라 증대하여, 지방의 주요한 읍락에는 직업적인 遊女가 모여 들게 된다. 萬葉의 遊女 『萬葉集』에 보이 는 遊女는 〈遊行女婦〉, 〈何何娘子〉타 불리 우는 여자들이다. 遊女에 대한 종래의 견해는 源泊하는 遊女라 보고 있 다. 柳田國男는 〈국 !.I `J. v 36) 곧 遊行女婦〉라 보고 37) , 扇畑忠雄는 36) 菴美大島에는 일찌기 7 9 `/v, 수 9 `/V 의 二種의 遊女가 있었다(『婚姬 O 歷史』,
柳田國男). 前者는 一年中 몇 번이고 季節을 정하여 마을과 마을을· 다니는 것, 後 者는 태어난 土地에 살고 있는 遊女다.
〈遊行女婦란 그 이름이 뜻하듯 住所不定의 女性이다 〉 38) 라 보고 있 다. 이 遊女를 潔 泊 族 으로 보는 견해는 〈 遊行 〉 이란 어구의 해석에 있 다. 그러 나 〈 遊行 〉 은 標 泊이 란 뜻이 아니 고 〈 出遊〉와 같이 집 을 나와 거닐다는 뜻도 있다. 『和名抄』에 〈 遊女 〉 를 보면, 遊女 핥 皮 楊 氏 漢語紗 云, 遊行女兒 챔홍貴쁨텁女 一云, 査 遊行 謂 之遊 女, 待 夜而 發 其 淮拜 者 謂 夜發 2 嬰 問룹 云 夜 保知.
37) Ii'婚姬의 歷史』, 柳田國男. 38) 「遊行女 婦 上娘子群」(『萬葉 菓 大成』 10), 扇 畑忠雄.
이라 說明하고 있다• 여기서의 〈遊 行〉은 源 泊이 아니라, 집에서 나 다니다의 뜻이다. 보통 처녀는 집에 있는 데 대하여 부르면 어디돈 지 가는 여자가 〈 遊行女 婦〉 이다. 〈 遊行女婦〉의 日訓 力V 女 〉 의 力力 /I.,논 집 에서 나다니 다의 뜻이 된다 . 그래 서 遊行女婦가 定 着遊 女임은 萬葉 에 나타나는 여성의 행동에서 알 수 있다. 「兒島」(卷十 八), 「 蒲 生 娘 子 」(卷 十九 ) . 「無名氏」(卷八, 一四九二)등에서 보게 된다. 『萬葉集 』 에 보이는 遊女노래 遊女가 酒案에 있어서 접대역의 전문화 • 칙업화에 따라 성립되어 갔지마는 소위 萬葉 時代에는 아직 그다지 활발화하지 못하였다. 그 녀들의 노래나 장소의 대부분은 집단적 案席이며, 그 노래의 본령 온 권주가 • 만류가인 創作 歌 , 訓酷 歌 등이 다. 『 萬葉集 』에 있는 遊女 의 노래는 案席의 노래가 대부분인데, 거기에는두종류가있다. 곧 祝案의 賀歌와 지방관리의 選任에 있어서 베푸는· 주연 및 遣 新羅 使 一行이 기항지에서 베푸는 주연에 부르는 송별가 등이다. 〈 祝案에서의 賀歌〉 時t乙雪宅 積 入t, 重巖 0 起 T 石在影* b 成l,, 奇f:巧.(*' 乙草樹 0 花宅`採 · 스E b 發?( 石 此드/1. V 다?屈 총t豫久米朝臣廣,.,,繩,9 0 作乙歌一首 4231 石,‘,,竹 l,花 드i i秋疾 <心 0 宅君力;家 0 雪 0L ,巖I t tI 크 드吹남 b 낡石力며志
때에 눈을 쌓아서 바위가 겹쳐 있는 모양을 만들어 교묘하게 패랭이꽃 같은 것을 물들여서 만들다. 이에 대해서 採久米朝臣인 廣繩 39) 이 지온 노래 한수
39) 歌人인 大伴家持가 越中(地名)守의 벼슬에 있었을 때, 越前(地名)採에 轉한 任 大伴池主의 後任으로서 來任했음.
4231 패랭이꽃이란 가을에 피는 것을, 그대 집 눈바위엔 이제사 피어 있군 요(놀랐소이다). 4232 雪 遊0' 行島•• 巖女ni 婦디lb 蒲直••~途生 ..t. 娘: 子乙石 0竹 歌花|一i首千 世t디矣力넋i力、君力;t꿉••頭~It. 乙 遊行女婦인 蒲生娘子의 노래 한 수 4232 눈섬의 바위에 십어 놓은 패랭이꽃은 千年이나피지 않으련가. 우리님 머리에 꽂율 꽃으로저. 드 다다者人酒師t乙 L f, 夜更낡鷄鳴 <。 此t다접 b T 主人內藏伊美吉繩 `b0 스 tJ남t I1 & , t, :h 磨(1)作石歌一首 4233 ? t,12羽 도振 총鷄上,t i鳴 <& 心 力、
이 지은 노래로, 눈으로 바위를 만들고 여러 가지 꽃을 만들어 놓은 꽃에 寄托해서 주인의 萬 壽 를 빈 것. 二首는 遊行女婦인 蒲生이 지 은 것. 이 또한 만들어 놓은 물건에 寄托해서 주인의 萬 壽 를 祝願 한 것. 祝賀의 노태로서는 이 노래가 전형적인 것이다. 이 두 노래 는 모두 將進酒歌의 성격을 띠고 있다. 第三首논 술이 滿醉하고 夜深하여 닭이 울 무렵, 죽 酒冥이 마지 막에 달하였을 때의 龍燕曲의 일종이다. 눈이 많이 내려 가기 어려 우니 천천히 놀다가 가라는 뜻이 담겨 있다. 第四首는 主客인 家持 의 和答歌로서, 닭은 몇번이나 울고 당신은 매우 환대해 주시므로 이처럼 늦도록 있소이다라는 뜻이다. 이 노래들을 동하여 遊女의 案席에 있어서의 위치 • 역할 등을 推知할 수 있다. 다음은 遊女의 노태로서, 지방 관원의 遷任때 베푸는 酒案 및 遣 新羅使 일행이 寄港하는 곳에서 베푸는 酒案에서 부르는 송별의 노 래이다. 筑`紫 娘子 40), 行旅 V 다b贈f ~石* `歌 一.t首 . 娘子, 字在兒島&\,*、t 소 381 家思소& 乙 드 石進trt~風守 刃 好
肥前國 42) (J)松浦郡 43) (J)拍島(J)亭'디船泊t L 夜, 造力`'더每(J)波宅望~. 2? 5 :2L2 &2, .I,.,, 11 各各旅 0 心宅楊E t入: f{午조 歌 3682 天地(J)神宅祈 3? ?吾2h待 t-:tr早來 主 산君待t의f苦 L 心 肥前國에 있는 松浦郡의 泊島 亭子에 배가 머물렀을 때, 멀리 바다 물결을 바라보고서 각기 나그네의 마음이 슬퍼쳐 지은 노태 3682 天地神明께 빌면서 기다리오리다. 빨리 곧 돌아오소서. 너무나기다린 다면 이 몸은 괴롭사의다. 어느 노래고 酒案歌란 明記논 없고 〈贈〉이란 글자가 쓰여져 있으 나, 遊女둘이 萬葉假名로 노래를 써서 〈贈〉했다고는 볼 수 없다. 口踊했다면 그것은 또한 酒寒의 席上이었을 것이다. 노래는 모두가 戀歌 的이라서 연정관계를 생각할 수 있지마는, 현실적으로는 연애 관계가 아니라도 송벌의 노래란 거의 이같이 짓는 것이었다. 記紀 중에도 遊女의 노래가 있다고 藤田德太郞은 지적하고 있 다 .44) 그 노래는,
42) 東半部는 佐賀縣 西半部는 長崎縣에 속합. 43) 『古亭記』에는 末羅 和名抄에는 萬豆良라 져혀 있음. 現在는 東 • 西 • 南 • 北의 마쑤우타 (7 `y ? 7) 郡이 있고, 東 • 西는 佐賀縣, 南 • 北온 長崎縣. 44) 『 日 本歌諾(1)硏究』, 藤田德太郞.
倭方t乙 西風吹왕上답-c 구 2&^ - t.. 乃 雲離I!,' h 군중居* b &心 吾忘 h 砂훈 (『古事記』 下卷 • 仁 德天皇 ) 야마도에 西風이 불어서, 구름이 떠가듯그대가 물러간들 내 잊을손가. 이 노래는 『古事記』에, 仁德天皇이 吉備에 있는 黑比賣를 찾아가 서울로 돌아오려고 할 때, 黑比賣가 임금께 바친 노래라 전한다. 그런데 『丹後國風土記』에도 浦島(우리시마)說話에 나오는 神女가 浦 島子(漁父)에게 준 노태의 下句에 〈退총居 b & l) .l:' 吾宅忘 8 寸t£〉 라 있어, 두 노래는 다 같이 독립된 歌諾에 유래된 것으로 보여전 다. 따라서 민요는 아니 고 遊女의 藝諾라 봄이 타당하다 하겠 다.
II . 문학으로서 의 古代歌降 1. 놀이와 呪祝 Grause 는 인간의 활동을, 실제 적 활동과 美的 활동으로 분류하 고, 양자의 중간에 다가 遊戱(늘이 )를 두면서 , 〈遊戱는, 그것 이 실제 적 활동처럼, 외부적 목적을 항상 추구하는 접에서 예술과 구별된 다. 그리고 예술에 있어서와 같이 쾌락적 가치가, 무의미한 의부적 대상에는 촌재하지 않고 반대로 활동 그 자체에 존재한다는 접에서 실제적 활동과도 구별된다〉라고 하였다 .I) 이것은 말( 言語 )의 세계 에서도 마찬가지이니, 일상 언어와 시적 언어의 중간에 유회로서의 말이 있고, 전형적인 늘이의 말이 곧 동요이며, 민요 또한 바로 그 곁에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늘이로서의 말 내지 가요가, 원시적 인 限界藝術 2) 의 영역을 형성하고 있다. 1) Ii'~術 0 始源』, 安藤弘 譯. 2) 〈대체로 藝術은, 美的 價値룹 직접적인 목적으로 해서 생산되어, 그 자체로서 완 걷된 제계를 이루는 것이나, 설령 딴 목져올 가지고 생산된 비완걷저인 제작물이 라 할지라도, 美的 經驗울 주는 것은, 또한 藝術로 분 수 있는 것이며, 前者를 純 粹藝術, 後者를 麟界麟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명칭은 藝術的 價値에 있어 서, 後者가 前者보다 낮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나, 종교저인 목져올가지고 생산된 限界藝術인 佛像이, 美的價値그것을 목적으로 해서 재작된 조각보다높은 美的 偵値를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있을 수 있다. >『 古代歌諾 0 世界』 p. 382, 土橋 寬.
원시 예술에 있어서의 놀이와 呪術 모든 예술의 원시 상태는 주술적 성격을 떠고 있음은 주지의 사 실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원시 예술은 한계 예술이라 하지 않으면 안된다. 동시에 그 속에는 미적 가치가 있음도 사실이며, 그 때문 에 한계 예술이라 볼리우는 까닭이지마는, 그렇다면 도대체 원시 예술에 있어서의 주술적 실용성과 미적 가치(감정적 가치)는 어떠한 관계로 존재하는 것일까. 예술의 기원의 본질적인 문제논 실로 여 기에 있는 것이며, 시의 기원 문제도 이 접을 제의하고서는 참된 기 원론이 못 되는 것이다. 주술은 현실적 효과를 목적으로 한 의식적 행위이며 실제적 행위 에 속한다• 가령 아메리카 인디언의 呪術的 舞踏의 경우, 그것은 처음부터 주술적 의석을 수반한 것이 아니고, 심리적인 긴장을 완 화하기 위한 무의식적인 행위(先呪術的 행위라 부름)가 반복됨으로써 사회화되고, 거기에 따라 일정한 형석이 갖추어침에 이르러 참된 주술”이 된 거라 보고 있다. 이렇다면 주술은이미 先呪術的 단계에 서부터 미적 가치를 내재했던 것이다. 舞踏은 정신적 간장의 완화 에서 일어나는 감정적 가치에 의하여, 적어도 舞踏者들에게는 미적 가치를 지녔을 것이고, 이 감정적 가치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자기 중십적 또는 融則的으로, 욕구를 표현하는 力有 E 이라 믿어침에 이르 러 주술적 가치로 전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회화, 舞踏, 언어 동의 표현적 • 상칭직 행위 이의의 비표 현적 행위 가령 〈보다〉 , 〈웃다〉와 같은 행위에 있어서의 주술적 관 념의 성립에 있어서도 매일반이다. 〈푸른 잎〉(靑葉)이나 꽃, 또는 재나 물고기를 보는 것에서 다마시츠메 4) 의 呪能이 있다고 믿어전 것은, 그러한 것들을 보는 행위에서 일어나는 감정적 가치가 객관 화되어 생명의 번영 • 안정을 가쳐오는 능력이 있는 걸로 이해한 때 문이며, 민간에서 행하는 꽃늘이(花見) • 國見(높은 곳에 올라가서 나 라의 지세나 'CJJ.정을 살피는 일), 궁정에서 베푸는 白馬의 節會는, 그. 러한 것이 의례화한 것이다. 또 書紀에 의하면, 國柄(〈t드寸. <-r. 3) Har tl and 의 『原始民族 0 宗敎上呪術』, 中井龍瑞 譯. 4) 魂鎭心。 육체불 떠난 영혼이 방황하지 않도록 지내는 神事.
前出)가 가무를 연주할 때, 來目部(<6?-'', 前出)가 來目편k 를 부를 때, 의례적인 〈웃음〉을 웃거니와, 이 또한 〈웃음〉의 감정적인 가치 가객관화하여 실재화한것으로, 이는 웃음의 주술적 신앙이 이루어 전 결과이다. 전자는 번영을 초래하는 주술적인 웃음으로서, 후자 는 승리를 가져오키 위한 주술적인 웃음으로서 웃는 것이다. 〈笑 門 萬福來〉란 격언은 전자의 주술적 관념을 나타낸 것임은 두말할 나 위도 없다• 말에 의한 놀이와 呪術 말이란 본시 실제적 활동이다. 그것은 간갓 말하는 이의 의사나 감정을 표현하고 전달할 분 아니타 상대가 행동으로써 이에 대응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본적으로는 명령 • 금지의 자세 를 가지는 것이니, 말은 그러한 구실로써 타인에 대해서, 또는 자 연물에 대해서 소리를 지른다. 전자는 日常的 言語이고, 후자는 呪 術的 言語이거니와, 다같이 실제적 활동임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듣는 이가 반드시 말하는 이의 기대대로 대응한다고논 할 수 없다. 하지만 말은 그것을 찰 알고 있으면서, 죽 말이 목적하는 실제적인 껍j用에 관계없이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 때의 말이란 늘이(遊 戱) 인 것이다• 늘이로서의 말은, 그 내용 • 형식에 있어서는 실제적 활동인 말과 아무런 다름이 없으나, 듣는 이와의 현실적인 관계는 상실되고 만다. 따라서 기본적으로는 말하는 이를 위한 말 이라 할 수 있고 듣는 이에 대한 기능도 일상적인 말과 달라, 說述 이라기보다는 暎情에 있다. 古代의 呪詞에 보이는 象徵方法 이에는 주술적인 언어와 呪的 事物에 의한 것이 혼합되어 발달한 형식이다. 동요에 있어서는, 부르는 노래(참자리노태 같은 것)는 물 론, 呪的 內容의 노래 등은 미발달한 呪詞일 분, 의사나 명령 또는 금지를 직접적으로 표현한, 단순한 일상적 언어가 대부분이다. 이에 서 우리는 呪詞의 원시적인 형태를 본다. 가령 옷에 걸린 가시에게 〈떨어져 ! 〉라고 소리지른다든가, 배나무에게 열매가 맺으라고 명령
하는 따위는, 한갓 意思 • 願望 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원망은 말 에 의해서 자기 중십적으로 실재화되고, 글로 인하여 感情온 補償 된다. 그 가장 뚜럿한 예가, 벌집을 뜯으러 갔다가, 쏘이게 되었을 때, 벌집울 어지럽힌 것은 자기가 아니고 남이라는 것”은, 災難울 피하기 위한 속임수가 아니면 픽션이다. 뱀이나 개구리를 죽였을 때도 〈나를 탓하지마, 뒷놈의 탓이야〉 6) (東京)라 부르거니와 〈나를 탓하지마〉란 명령적 표현과 〈내탓이 아니야〉라는 실재적 표현은 자 기를 그 원안으로 하고 싶지 않다는 원망의 표현이니, 주관적으로 는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늘이와 예술은 그 본질이 같다고 할 수 있으며, 주술도 늘이에 있어서의 감정적 가치가 의식화된 것이다. 말에 의한 상칭화가 주 술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은, 幼兒의 경우와 같이 상칭으로서의 말과 실재와의 質念論的인 혼동에 의한 것이다. 분만 아니라 상칭 화에 따른 감정적 만족, 정신적 안정이 법십론적으로 말의 呪的 효 력의 관념을 낳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고대의 言 靈 信仰의 원인에는여러 가지 요소를 생각할 수있겠거 니와, 그 가장 기본적인 것은 말에 의한 상칭화가 가져온 감정적 보상의 힘일 것이다• ' 요고도(크::i ` 卜 )8) ( 壽 詞) • 도고히(卜::i ' I:: )9) • 가지 리(力:./ !1 )10) 등의 呪詞는, 그 발달한 주술적 형석을 제의하면, 기본 적으로는 동요와 마찬가지로 명령 • 금지의 형식을 가전 욕구의 직 접적 표현이다. 〈古代呪詞의 呪術的 形式〉 고대의 呪詞는 명령 • 금지의 내용을 담은 단순한 주관의 표현을 핵으로 해서 성립되어 있는 접에서 동요와 다름없으나, 주술적 효 력을 강화하기 위한 몇가지 형식이 있다. 우선 用例를 보면, 5) 蜂 k, %?tt力냐가 2 之t, 寺凡坊主力;力며 E, t.:&(東京地方童諸)(벌아 벌아 내가지 지론 것이 아니고, 질 중이 저질렀지). 6) 〈俺 0 상나;::_ti:.7.>ti:., 後 0 者 0 살 L 、J:〉. 7) 고대 일본의 신앙이니 , 언어에는 신령이 깃둘여 있다고 믿음. 고도다마(드 &t j:). 8), 9), 10) 天皇의 長久 • 繁榮올 祝願하는 말.
(가) 드(J)竹(J)靑t.s · -11;如, 此(J)fI O 姿中乙力넋 n, 靑入姿之 J:。 又此 0 藍(J)盆t 乾石성如, 盆七乾J:。 又此(J)石(J)沈t力값 n, 沈入臥산。 (『古事記』 中卷 秋山 0 下Lf ; 氷 壯t&夫: &春山 0·霞, . 『壯*t夫 k:) (나) 築-, 종-立to ?石稚hb室•I J 葛,,?根f‘ b, 築총立? 乙柱ti, 此 0 t家…長 4{' * !)'御^드心二,{, !)L鎭? 主 b t£ D。 長取 0b 畢御,,心 〈{ .! 石)O棟齊h梁,f?iI조1i 9b , t £ 此b{ 。! )取家 長b 0置 남御心石{筋!)a 林Et i£i ,b 此。 0取 家b 長證 남0石 御祿心{僚':!^i8)i 平,力` t此£ 0石t 家£ &&,, i ?’ ’1' b 。 取吉수^ 乙繩葛kIi:,ti , 此 0 家長{!)A御t 礎` ,, f ,0 堅b·I총; t£ b 。 取 b 莊J,.남 石草葉0·t 구i . 此 0 家長 0 御,. 富t;,. 0 ,餘,f b t£ b 。 (『 日 本 합 紀』, 顯宗天皇郞位前) (가) 이 댓잎이 푸른 것과 같아, 이 댓잎이 시드는 것과 같이, 푸르러서 는 시들거라. 또 이 소금이 가득 차기도 하고 줄기도 하듯이 차고줄어 들거라. 또 이 돌이 가라앉듯이 가라앉아 엎어지거라.11) (나) 지어 제운 새 집의 덩굴, 지어 세운 기둥은, 이 집 주인의 마음씨 가 혼들리지 않고 가라앉을 조짐이요, 집 위에 얹은 용마루와대들보는 이 집 주인 마음씨가 번영할 조짐이요, 가로 놓은 서까래는 이 집 주인 마음씨가 혼들지 않고 반돗할 조침이요, 가로놓은 지붕밀의 덜판은 이 집 주인의 마음씨가 평평하게 다스릴 조침이요, 단단히 묶은 새끼는 이 집 주인의 목숨이 굳울 조짐이요, 지붕을 이온 새는 아 집 주인의 재물 이 넘치고 납을 조침이로다 .12) 古代呪詞의 特長 第- 寄物陳思的 表現이다. 이것은 사물에 의한 主觀의 상칭적 표현이 다. (가)에 서 는 呪術에 사용한 竹葉, 鹽, 石둥에 기 탁해 서 呪唄의 대상인 秋山下氷壯子에게 병이 들게 함을 명령적인 형식으로- 펴고 있다. (나)에서는 柱 • 棟梁둥의 家屋의 각 부분에 기탁해서 家長의 11) 이 것 은 神女 OJ . 伊豆志袁登렸몰 형 인 秋山의 下氷壯士와 동생 인 春山의 霞壯士가 서로 구혼을 하고갖i맣서웁너 내기륭 한 결과, 동생이 성공하자 형이 이를 시기 하여 내기 를 이 행하지 아니 하므로, 母가 霞壯士에 가르찬 祖詞입 . 伊豆志JI\의 대 나무를 베어다가 거친 바구니를 만들어, 또 그 넷불의 돌을 주워 와서 소금과 섞 어, 그것을 댓잎에 싸서 솔뚜껑 위에 얹어 두라는 行動呪術. 12) 顯宗天皇이 郞位前에, 播磨國에 亡命하여 縮見首의 집에서 소먹이로 있윤 때 新 室宜의 席上에서 부론 室席의 祝歌.
번영에 대한 願望을 편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각 사물이 의사나 원망을 融郞的으로 상칭화한 呪物이므로, 거기에 붙여서 意思나 원 망을 편 것은, 말의 呪的 交力果를 보다 강력하게 한다고 믿고 있었 기 때문이다. 古代呪詞의 特長 第二 원망의 실재적 표현이니 이것은 주관의 실재화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天皇聖射不豫(1)時, 大后(1)奉石御歌一首 kI.e 근e 147 天(1)原振 b 放2 남見 h tf大君 0 *御,., .壽,.., ti長
第四의 特長 列擧形式 및 詳述形式울 둘 수 있다. 앞에서 돈 (가)에서는 呪物 의 竹 • 鹽 • 石울 하나 하나 열거함과 동시에, 呪言도 〈 푸르다가 시 들거라 〉(靑入姿;z_ .t), 〈 가득 차다가 마르거라〉(盆七乾.t), 〈빠져서 눕 거라 〉(沈入臥 산)식으로 詳述하는 棄式이다. 이 第四의 特長은 第三 의 特長과 함께 言靈信仰에 기인한 것이니 말의 呪力온 한 낱말 속 에도 있거니와, 呪力을 축적하면 할수록 강력해전다는 신앙에 의해 서, 이같은 나열적 형식이 성립되어 발달해 간 것이다. 2. 원시가요 형석의 기원과 발달 일본 古代歌諾에 있어서 중요한 한 측면이 형식이다. 그 기원과 발달, 득장동에 관한문제는 일본 고대가요를 이해 감상하는 데 있 어서 필요한 선행조건이기도 하다. 대체로 詩란 말에 의한 주관의 표현일 분 아니라, 리듬 (rh yth m) 있는 말에 의한 주관의 표현이다. 詩의 起源 문제논 歌降로서의 리듬의 기원 문제와의 관계를 도의시 하고서는 생각할 수 없다. 詩의 起源論에는 종래에 두가지 통론이 있으니 그 하나는 民降舞踊起源說이요, 또 하나는 勞動起源說이다. 죽 詩 • 音樂 • 舞踏 7} 삼위일체가 되어 발생했다고 주장함에 대해서 勞動에 의한 신채운동과, 詩 및 音樂의 일치에서 그 발생을 보려고 하는 견해이다. 고대가요의 리듬에는, 말의 리듬과 음악으로서 리듬의 두 측면이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古代歌諾의 起源 問題도 이 양자의 통일적 기원이 문제로서 대상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古代歌諾의 말의 리듬은, 5 음과 7 음에 의한 音律數이다. <5 ·7, 5.7.7 〉의 短歌 形式, <5 •7•7, 5.7.7 〉의 旋頭歌形式, 〈 5.7.7 〉의 片歌形式, <5 ·7, 5.7. … ··5·7·7 〉의 長歌形式이 고대가요의 형식이거니와, 이러한 것 울 詞形이라 부른다면, 이에 대한 음악적 리듬이 어떠한 것이었던 가에 대해서는찰알수없다. 일반적으로음악의 리듬은서양음악 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일본 민요는 均拍리듬이다. 그러나 고대가
요의 리듬은, 神樂歌(力`〈 ·85 t으 )14) 가 그러하듯 不均拍이다. 그것이 均拍리 듬으로 불리 우게 된 것 은 歌諦의 가사를 唐樂이 나 拍樂(三國音 樂)의 악곡으로서 부르게 된 것으로서 備馬樂 15) 이 처음이 다. 推古 朝 이후 궁정에 베푼 樂府, 雅樂察에서는, 大陸音樂과 함께 고유 음 악도 관장하고 있었으므로, 대륙 음악과 고유 가요의 융합도 있었 으리타 믿어지거니와, 따라서 備馬樂이 최초가 아닐지 모르나, 고 유 가요가 不均拍리듬인 것은 의십할 여지가 없는 것이니, 平安朝 의 『琴歌譜』조차도 3~4 聲의 좁은 음역 의 不均拍의 노태 였다 한다. 16) 이같이 고대가요의 음악적 리듬이 不均拍이라고 한다면, 歌話의 民諦舞踊起源說이나 勞動起源說이 일본의 고대가요에는 적용될 수 없으며 이 사실은 歌詞의 文學性(또는 意味性)이 音樂性보다는 우선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鼻 다시 말하면 말의 리듬을 주로 한 음악적 리듬이라 할 수 있다. 일본 古代歌諾를 위시해서 今樣 17) , 중세 근세의 歌諾, 和歌 • 俳 句에서 新體詩에 이르기까지 리듬의 단위가 5 음과 7 음인 것은, 일 본어 의 음철수가 명 사 • 동사의 대부분이 2~3 음철, 조사가 1~2 음 절임과 관계가 있다. 또 강약의 악센트가 없고 고처 악센트가 보편 적인 사실로서 음수가 리듬을 형성하는 유일의 요소인 것이다. 이 歌詞의 음수 리듬이 음악적으로는 不均拍의 리듬을 성립시킨 것이 다. 이것은 歌諾나 詩뿐만이 아니라, 唱言 但諺 동도 5 음 • 7 음울 중 십으로 한 일종의 리듬이 있다. 尤t£t::::.순 L, 愛男宅(아이구 ! 좋은사나이) (『古 革記 』 上卷 • 神代) 內ii E8Ee, 外ii十£寸죠(入口논작어도속은넓어) (『古事記』 上卷 • 神代) 14) 神座( 力 : , 7 )의 音樂이 란 뜻. 太古로부터 傳해 온 神事에 奏하는 音樂에 맞추 어 부르는 노래. 內容 • 形式모두 單純하며 證嚴합. 15) 나 r 4 /: 7 . 日 本古代樂曲의 하나 . 奈良 • 平安時代의 民衆의 音衆윤 唐樂의 樂譜 에 맞추어 雅樂에 編入시켜 上流階級에서 遊樂이나 儀式 때 演奏한 것. 16) 「琴歌諾 0 音樂的解釋」(『東洋音樂硏究』 第十八號), 林謙三. 17) 1,、'i.t ?· 今樣歌의 略語 中古歌諾의 하나· 보통 7.5 調의 4 句로서 형성됨. 平 安朝時代에 和證을 基盤으로 해서 생긴 것.
登 召t, 應삶 宅 避〈 澤 ) ( 굳은 바위도 술취한 사람 을 만나면 달아난다) ( 『 古 康記』 中 卷 • 應神天皇) 海人t.r.;h,훈, 己-/J너졌갸파?, 泣 <( 諺 ) ( 漁夫이 므로 자기 물건 때 문에 운 乃 2 bf ‘ 다) ( 『 古 惠記』 中 卷 • 應神 天皇) 고대가요의 리듬은 이러한 것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고대가요의 가사적 측면이 음악적 측면보다 우위에 있음 온, 가사의 의미적 구조가 음악적 구조까지 규정하고 있는 사실을 인 정할 수 있다. 가사 는 · 旋頭歌 短歌 를 포함하여, 上句와 下句의 二部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양자의 의미적 관계는 問과 答, 주제의 제시와 그 설 명의 관계에 있다. 上句 下句에 할여된 선율은 같은 선율이다• 결 국 古代 歌稀 의 起 源問題 는, 上句와 下句의 問答的 關 係의 起源은 무 엇 인가라는 문제에 귀착된다. 歌諾 에 있어서의 問答관계는 일상 생 활 의 문답과는 달라 答울 도출하기 위한 것이니, 소위 집단적 의 례의 장에 있어서 지휘자와 피지휘자와의 의례적 문답을 기본으로 한것이라볼수있다. (1) 古代歌諸의 詞形파 구조 고대가요의 여러 가지 詞形은 〈 5· 7)을 단위로 해서, 이 단위를 몇 번이고 되풀이하거나, 또는 최후에 가서 하나의 7 읍구를 첨미하는 이 두 원칙에 의해서 성립되어 있다. A. 5·7, 5•7 ( 混本歌 ) B. 5·7, 5·7, 7 G 豆 歌 ) C. 5•7, 5·7, 7•7 (佛足石歌) DE.. 55•·77,, 55•·77,, ………… 718) (( 長長 歌歌 ,, 偶奇數數式式)) F. 5·7·7 (片 歌 ) G. 5·7·7, 5•7·719' (旋 頭歌 ) 18) 力`t..::..::. 旋頭 歌몰 本末로 나누어 5.7.7 의 十九字로 노래한 것. 19) 片 歌 二首가 연결되어 形成된 것으로 二人이 唱和하는 問 答 形式이 많다. 머리를 빙빙 돌린다는 뜻에서 그 이 름 이 불었옵.
上記 諸形式 중에 A 의 詞形온 고대가요에서는 용례가 보이지 않 지마는, 詞形의 원칙과 다음에 펄 歌誰의 구조로 보아, 短歌形式이 생겨나기 이전에 촌재했으리라고 논리적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고대가요는 詞形面에서 상기와 같은 2 대원칙을 인정하거니와, 구 조면에도 원칙이 존재함울 보게 된다. 그것은 短歌 • 旋頭歌의 경우, 〈 5.7 〉과 〈 5.7.7 〉의 前句 後句로서 이루어지는 二部形式 構造 이다. 前後句는 원태 두 구가 서로 꿇어지는 독립된 구인 동시에, 양자의 관계는 問과 答, 또는 주제의 제시부 또는 설명부란 관계에 있으며 이 양자를 잇는 방법에는 脚韻式, 尻取式 20) 의 두가지가 되풀이되고 있다. 이것을 각 형식에서 보기로 한다. 우선 短歌의 경우는,
20) 尻取式 (L D & b l.,왕) . 句의 末尾문 다음 句에 가져다가 다시 잇는 形式, 『古代 歌諾 0 世界』, 「第三章, 古代 0 藝諾」, 土橋寬.
八수 雲
런데 3 首째의 노래는 다소 다르다. 죽 後句는 前句에서 제시한 〈 嚴 白稽力;本〉를 尻取式으로 그냥 되풀이하여, 이것을 〈思 kL 총力먀)〉 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 〈思 AL 총力며t〉에서 〈白持原娘子〉(巫女)로 전환한 수법은 일본 古代歌降의 修辭上 특색의 하나인 〈序詞〉의 가 장 오랜 형이다• 그런데 〈되풀이〉의 수사적 형석에 있어서 上記와 같은 脚韻式 되 풀이나 尻取式 되풀이 외에, 완성된 詞形의 종말구를 되풀이하는 〈終末되풀이〉란 것이 있다. 이는 노래의 의미와는 관계가 없고, 한 갓 형식적인 것이다• 大八수 君節노 結 C02 御 *b 子드t結 .. 20 b 柴 心垣죠 & |iL 截e h t柴垣 燒낡t柴垣(『古事記』 下卷 • 歌垣) 왕자님이 만든 柴垣온, 마디두성이로 단단히 매고 있으나, (장차) 끊어 질 柴垣이 로다. 불타버 릴 柴垣이 로소이 다. 이것은 短歌形式의 종말을 되풀이한 것으로 말을 다소 변경한 되 풀이다. 片歌形式 F. 片歌의 형식은 5·7 다음에 종말되풀이가추가되어 성립한 詞形 이라 추정된다. 고대가요 중에는 5·7 의 실례는 없으나, 大宮(J) 홍?恩子 쩐뗀『 b (『古事記』 下卷 • 歌垣) 宮殿 저쪽 끝은 구석이 기울어쳐 있도다• I蓬 i스 사I f 5 乙 言: I: 춘聞E 乙中石 島 0 販구原' (『日 本書紀』 • 皇極三年六月 條) 아득히 멀리서 지껄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성의 덤불벌에서. 歌諾로서 독립된 片歌形式온 없었던 모양이나, 이 형식이 겹침으 로써 旋頭歌를 형성하였고, 또 5.7 과 짝을 지어 短歌形式을 이루 며, 또는 短歌 • 長歌 다음에 뒷 反歌처럼 첨미함으로써 존재하였
다. 〈Jt歌〉란 명칭은 이 미 『古 事 記』에 보이 거 니와, 21) 명칭 그 자체 가 이 詞形의 비독립성을 나타내고 있다.
21) 『古걱 뀜8 .!I의 歌諾 32 號 • 73 號‘ 3732.. ~汝,'-' 1/I.J.*;, 남御~수 子 L수 -b我遂:,~r:, 家K ~ 知0I.. • 方•Bt:J. t: &雲< 誰 居•·|소 ~立 i t卵 t産~l 來:(<,t/ l .,. . .
旋頭歌 片歌形式 二句로서 이루어진 것으로, 前句와 後句가 問과 答, 또 는 主題의 提示와 說明의 관계에 있음은 短歌와 같다. 따라서 脚韻 式 되풀이 尻取式 되풀이가 있음도 동일하다. 다음 용례에서 이 사 실을 볼수 있다. 事須須無許 酒理吹力酒:t 드顔• · 入七 hL 御醉酒 Dt i乙다 寸七 b h 醉 D t다수 b (『古 事 記』 中卷 • 應神天皇) f£ <1? 쇼 CL 須須 許 理가 빚은 술에 나는 醉했도다. 平和한 술·즐거운 술에 나는 醉 했도다 1288 水門{/)蓋(1)末葉宅誰力뎌手折 b L *t & ,5 1: t: t 七力:背子力;振石手宅見t&七九춘手折 b L (『萬葉 渠 』) 물 드나드는 입구의 갈대 끄트머리 잎을 누가 꺾었읍니까. 내 님의 혼 드는손을 보려고 내가 끊었소이다. 長歌 이 詞形은 混本歌, 短歌, 片歌, 旋頭歌 등이 복합되어 이루어전 것이다. 그리고 이에는 偶數式 奇數式의 두 종류가 있다. 이것은 또한 混本歌와 短歌의 간 것이라고도 할수 있으니, 왜냐하면 5.7 의 단위몰 3 회 이상 되풀이한 것이라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구조가 또한 주제의 제시와 그설명의 2 단구성을 기본으로 상고 있는 때문 이다. A? 入?l... 久米 0 子 B 力: 릅告t며 횡[一杏
춘h 力너本 춘七茅.. 繁-,‘왕 f 擊t>--C L 止主社 (『古事記』 中卷 • 神武天皇) 威勢가 堂堂한 구메 (久米) 사람들의 조(栗)발엔 냄 새 고약한 마늘이 한 그루 나 있네. 그 뿌리 밑뭉치에 그 싹@문)을 붙여서 때려부술 터이야. 品陀 0 日 0 御子 척I'U ?E : t大雀 個力냐 E5 大刀 本`&?劍bS末T 上쇼 中 冬木 0 寸力분》力:下木 O 혼쓴혼수 (『古事記』 中卷 • 應神天皇) LI; 天子님의 해 아들이로다. 오호사자기(大雀)님, 오호사자기님이 차신 칼 은 밀은 날카롭고 칼날 끝엔 弓 U 이 있어, 겨울나무 마른 나무 아래처럼, 살 랑살랑 소리가 나네. 앞 노래는 來目歌 22) 의 하나로, 〈吳蓮一本〉까지가 일단이며, 주제 의 제시부. 그 이하가 이단이니 〈吳華一本〉을 〈其 h 力:本〉라 잇는데, 말하자면 尻取式이다. 後者는 〈個力、산石大刀〉까지가 一段으로 주제 의 제시, 이하논 그 설명으로 第二段이다. 이 노래는 大雀命(尊)의 칼을 기린 노래이다. 요컨대 長歌에 있어서의 一段과 二段의 관계 도 短歌에 있어서의 前句와 後句의 관계와 같다. 長歌와 短歌의 성립에 대한 전후는 長歌形式의 종말 <5 ·7,5 .7.7> 이 독립되어 短歌形式이 성립되었다논 설이 있으나, 그것은· 다만 詞形만을 보고서 이론 것인데, 上述한 바와 같이 短歌에 있어서의 對立的 二部構造논 결코 長歌의 終句에서는 파생될 수 없다. (2) 5·7 調와 7·5 調 歌諾나 和歌의 리듬에 대해서 혼히 5·7 조 또는 7•5 조라고 하는 것은, 歌詞의 의미상의 단락을 기준으로 한 말의 리듬을 이르는 것 이다. 위에서 예시한 고대가요는 모두 第二句에서 끊는 5·7 調이나, 古代歌降에 있어서도 이미 第三句에서 꿇는 7·5 調의 예가 보이며, 『萬葉集』에 이르면 차츰 증가되고 있다. 그런데 詩歌에 있어서도, 歌詞의 의미상의 단락과는 다르게 낭독 22) <~5t. ::. 來目(久米)氏또는久米部가宮廷儀컴의 마당에서 부르는노태의 總稱
할 때의 숨을 돌림에 따른 단락이 있다. 이것은 의미상의 단락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의마상으로는 5.7 調의 노래일지타도, 朗踊할 때는 7·5 調로 하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 五十嵐篤好 2” 는 和歌의 경우 의미상의 리듬과 음성상의 리듬을 구별해서, 前者를 〈詞의 가 락(調)〉, 後者를 〈소리 (聲)의 가락(調)〉이 라 부르고 있 다. 이 것 은 歌諦에 있어서 더욱 명백하여, 단락은 한갓 숨이 끊기는 자리일 분 아니라, 종지음이나 닌J:종지음에 의한 선율의 풍기는 자리가 되어 있는 것이다.
23) 五十崎篤好, 『湯津 m 摘』·
이같이 詩의 리듬에는 詞의 리듬과 소리(聲)의 리듬의 두가지가 있거니와 소박한 定型詩나 自由律의 詩에서는, 이 둘의 리듬이 일 치하고 있음에 대해서, 短歌와 같은 오랜 전통을 가전 定型詩에는 <5 ·7·5, 7.7 〉과 같은 소리 (聲)의 定型 리듬과 각 노래의 詞의 리듬 이 반드시 일치한다고논 할 수 없고, 오히려 양자의 배합에 의해 서, 여러 가지 변화가 많은 리듬을 낳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가요 의 경우도 마찬가지니, 音樂으로서의 리듬과 歌詞의 리듬의 배합의 방법에 따라 單調로운 것도 되고 변화에 찬 것도 되는 까닭이다. 歌諾史的으로 보면, 詞의 리듬과 聲의 리듬과는 본시 일치하였던 것이다. 前者가 後者를 성립시킨 요인이 되었음과 동시에 일단 5·7 조 리듬이 성립되자, 後者가 前者를 규정하게 된다. 죽 5.7 調의 겅 우, 5·7, 5·7, 7 이타는 聲(소리)의 리듬을 전제로 해서 지어지므로, 歌詞도 그와 같은 리듬이 된다. 따라서 5·7·7, 7.7 의 7.5 調는 第三 句에서 단락짓는 리듬에 의해서 성립된 것일 것이다. 죽 歌諾에 있 어서의 5.7 調가 7.5 調로 변화한 것은, 작사자의 감정문제로서가 아 니라 唱降法의 변화에 의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3) 詞形과 曲形 歌諾의 음악성은 리듬과 선율, 和聲의 제가지에 의해서 성립되어 있거니와, 문학적 측면에서 歌詞와의 관계가 깊은 것은 리듬과 선 울이며, 가요의 기원을 밝힐 경우 중요한 문제접도 여기에 있다. 여러 가지 詞形의 기본이 되어 있는 短歌形式과 旋頭歌形式에 있어
서, 앞에서 말한 前句와 後 句 ( 5·7 겁성 의 경우는 <5 ·7,5·7·7) , 7.5 調 면 <5 ·7·5, 7.7 〉 )의 대립관계 내지 2 부 구조는, 음악적 측면으로서 의 리듬 및 선울과 어떠한 관계에 있는가. 이 문제를 제의하고는 古代 歌諦 의 起源울 밝힐 수는 없다. 詩 로서의 短 歌 는 한갓 〈 5.7.5.7.7 〉 이 아니고, 최소한 <5 ·7,5.7. 7> 또는 <5 ·7·5, 7·7 〉 의 구조를 하고 있는 것과 같이, 음악으로서 의 短歌 에도 소위 樂式 에 해당한 곡으로서의 구조가 있는 것이니, 전자를 詞 形, 후자를 曲形이라 부른다 .24 ) 短 歌 의 唱 談法 이 냐 曲形울 알 수 있는 자료는 神樂 , 25) 備馬樂 26) 및 오늘날의 민요가 있다. 이들을 비교해 보면, 가사에 있어서 上 句와 下句의 二部形式에 대응하는 것으로, 唱諾法에 있어서는 上句 와 下句를 〈 本 〉 과 〈 末 〉 로 나누어 서 로 주고 받아 노래 하거 나, 그렇 지 않으면 〈 一段 〉〈 二段 〉 으로 나누어 노래 하는데 , 本과 末, 一段과 二段은 同曲임을 발견한다. 그 전형적인 예를 돈다.
24) 『古代歌諾 0 世界』 「 歌 諾形式 0 起 源 」 • 土橋寬 . 25) 神 樂 (力` <·t;,): 神座의 音樂이 란 뜻. 太古로부터 전해 온, 神 事 때 奏하는 音樂. 26) i崔 馬 樂(혼나t:t;,) : 中古대부터 시작된 日本 古代樂曲의 하나. 奈良 • 平安時代의 民 衆 의 노태를, 唐樂의 樂 뿜 에 맞추어서 雅樂에 編入시 켜 , 上流階級이 遊樂또는 儀式에서 演奏하였음.
(本) 擦t 乙 衣|i染砂t 雨쇼 hE (末)雨소 hE 移石깐力났: L 深〈染沈-c v f (神樂 歌 38) (一段) 靑 柳在片糸 t 乙J: b f 수 *남훈 鷲 0 %남수 (二段) 低 0 綠 소 &L 、소笠it *남수 梅 0 花笠수 (備馬樂 9) (甲)玉村IJ) 八幡樣!i 4 十-/ 何균 芸 〈 (乙)何균 蒼 〈 3& 木&혼|i 8 4 十_/ 乙낡 B 芸 총 (群馬縣佐波郡玉村町 • 田植歌) 이같이 短歌를上·下句로 나누어 本·末, 甲·乙로서로주고 받아 노래하거나, 주고받지 않으면 一段 • 二段으로 나누면서 本 (또는 一段)에서는 第三句까지 부르고, 末(또는 二段)에서는 第三句 를 尻取式으로 되풀이하여 (5·7·5-(5)7·7) 부르는 것이 보편적이며,
平安朝 이래 今日까지 이것이 短歌의 唱諦法의 기본이 되어 있다. 記紀歌諦의 短歌를詞의 리듬을표준으로해서 보면, 『古事記』에는 5·7 조가 29 수, 7.5 조 8 수, 『日本 書 紀』에는 5.7 조가 37 수, 7.5 조가 23 수이다. 이에서 보면 7.5 조가 어느 정도 이 시기에 나타나 있음을 알 게 되는데, 이것은 唱臨法 또는 소리(聲)의 리듬에 의한 것이라 보 여진다. 그러나 이보다 오렌 5·7 조의 唱諦法이나 曲形은 어떠한 것 이었던가. 가요문헌이 존재하는 平安朝에는 이미 7.5 조가 지배적이 었으므로, 이 문제를 자료에 의해서 추구하기에는 극히 곤란하다. (4) 歌諾形式의 기원 고대가요의 詞形이 上句 下句에 의한 二部構造를 기본으로 하고, 음악적으로도 이에 대응하는 二部形式울 갖추고 있으며, 曲形은 AA2” 를 기본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은, 고대가요의 기원이 집단적 인 儀禮에 있어서의 唱和形式에서 나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죽 지휘자와 일반성원과의 問答 • 唱和의 형식 에서, 歌諦의 二部構
造가 형성된 것이라 보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불리우고 있는 田 植歌(모십기노래)의 경우, 寸lj'(主唱者)와 早乙女(모십논 처녀), 盆踊 . b 歌(봉오도리우다 )28) 에 있어서 音頭 29) 와 춤추는 아이와의 問答 • p昌 和의 형석이 民諾의 二部構造를 낳게 된 것이다. 집단적 의례로서는 歌垣 • 農作에 따른 여러 가지 행사등을想定할 수 있으며, 씨족사회나 궁정사회의 의례에도 이 형식은 계승되어 온 것이다. 이러한 관접의 歌降起源說은 당연히 집단적인 場울 想 定하는데, 이 접에서 民諦舞踊起源說이나 勞動起源說과 일맥 동한 다고 할 수 있지마는 그러나 歌臨形式에는 均拍的인 신체 리듬과의 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 일본 歌綿는 그 리듬이 음악적인 均拍리듬 과는 다른 말의 음수리듬임을 고려할 때, 歌諾의 起源울 무용이나 27) 上記 短歌의 一段과 二段이 다 갈이 同曲 (AA) 임을 말함. 28) 孟聞盆 때 , 歌諾에 맞추어 추는 충을 盆踊 b 라 함. 이 歌舞는 原始的 oJ . 것을 佛 敎가 둘어온 뒤 , 儀式과 結付하여 室町時代부터 는 民衆棋樂으로 發達하여 今日도 地方에서는 行事의 하나로 行해지고 있음. 29) (온도) : 여러 사람이 樂器룹 演奏하거나 노래문 부를 때, 한 사람이 앞장서서 音이나 소리를 내어 가락을 잠논 것.노동의 신채운동과 관련짓는 것보다는, 집단적 의례로부터 歌 臨로 독립되어 나타난 것이라 봄이 타당하며 그것이 때로는 충의 신채운 동과도 결부된 것이라 하겠다. 3. 說話歌臨의 서정성 민요나 궁정가요는 주술적 • 사회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접에서 限界文 藝 的이며 그것은 현실적 세계 안에 있다. 托情詩는 자기표현 을 목적해서 촌재하며 현실의 생활 밖에 독립한 자기완걷적인 세계 타는 의미에서 純粹文 藝 라 부를 수 있는 것으로, 현실적 세계와는 인연을 꿇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민요를 낳게 한 사회논 공동체적 사회이다. 유아를 둘러싼 가정과 같은 완전한 보호적 사회는 아니지마는, 공동체 성원의 한 사람 한 사람은, 自給 經濟 를 기반으로 한 連帶的 관계에 의해서 보호받고 있다는 의미에서 일종의 보호적 환경 속에 있다고할 수 있다. 그러 므로 공동체 이의의 인간은, 이방인이라 위험시당하는 것이다. 개 개의 인간끼리의 연대라든가, 계급적인 橫의 연대관계의 논리는 그 들에게는 통용되지 않는다. 그러하므로 민요는 그와 같은 공동체적 연대관계를 전제로 하여 주술적 • 사회적 기능을 다하는 것이며, 자 아의식을 전제로 하는 개인적인 서정은 거기서는 有害한 것밖에 안 된다. 고대에 있어서 托情詩의 성립은, 인간이 사회적인 연대관계 를 잃고, 개인이 사회적으로 벌거숭이임을 자각했을 시기임과 동시 에, 노래가 집단적 의례와는 절연했울 시기에 구해야 하는데, 구체 적으로는 『萬葉 集 』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舒明~齊明朝의 궁정사회 에서이다. 실제로는 그것보다 앞서 서정시는 說話歌諾라는 형태로 성립되어 있다. 記紀의 설화는기원설화를중십으로한역사설화이며 인간을그림 울 목적으로 하는 순수문예는 아니다. 황실의 起源과 歷史, 황실과 중앙 및 지방의 씨족과의 婚姬關係의 起源과 歷史, 그 지방의 支配 起源 祭神의 起源 등을 말하는 설화가 주요한 내용이다. 이 가운데 논 공적인 성격을 벗어난 문학적인 설화도 적지 않다. 그리고 그 문
학적 방법이 叔김태 9 이 아니고 說話歌를 삽입한 서정적 방법을 쓰고 있다. 이것들은 주로 사랑의 이야기와 싸움의 이야기이니, 따라서 사랑( 戀 )과 싸움(戰)이 記紀文學의 주요한 데마가 되어 있다. 記紀가 기본적으로는 공적인 역사설화인 이상, 사랑과 싸움의 이 야기도 그와 같은 역사의 한토막으로서 서술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랑의 이야기는 인간으로서 한쌍의 남녀의 연정 이야기가 아니라, 공적인 역사설화의 正系인 천황과후비의 혼인당 바꾸어 말하면 천 황가와 중앙 • 지방 호족과의 혼인관계를 이야기하는 역사 설화로서 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싸움의 이야기도 인간으로서의 영웅 이야 기라기보다는, 역대 천황 또는 황족의 지방 정복담이니, 황실의 지 방 지배의 기원을 이야기하논 공적 성격의 설화인 것이다. 이같은 공적인 설화에 문학성을 지닌 것이 說話歌이거니와, 그같은 說話 歌가 공적인 성격에 얽매여 진정한 서정시가 될 수 없는 경우가 많 음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戀歌 는 천황이나 황자가 후비를 얻었 을 때, 또는 그 뒤의 사랑의 기쁨의 노래이거나 사교적인 노래이며 戰歌는 천황이나 황족의 장군이 異族 정벌에 있어서 우제함을 노태 한 것이어서, 사랑의 성취나 전승울 방해할 조건이란 있을 수 없어 전정한 서정시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일방에 있어서 說話歌는, 설화의 正系의 입장에 있는 천 황의 편에서가 아니라, 천황에 의해서 쫓기는 입장에 있는 傍系者 · 對立者의 편에 집중되어 있으므로 전정한 서정시가 된 것이다. 이 리하여 공적인 설화는 문학적인 설화로 전환하며, 傍系者가 주인공 의 지 위 를 차지 하게 된다. 말하자면 說話歌는 記紀의 설화 가운데 등장하는 인물을 노래하고 있는 것만이 아니고, 역사의 정계적 인 물인 천황과 대립하는 방계적인 인물을 노래하고 있는 접에서 서정 시인 것아다. 和辻氏가 『歌道小見』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記紀의 가요에는 감 정을 표현한 것은 지극히 드물고, 의적 사상(事象)이나 행위를그대 로 서술했을 분이니, 이를 바꾸어 말하면, 감정 표현으1 방법이 객 관적 • 서사적이다. 그래서 이같은 목장을 지닌 記紀의 노태를 客競 的 拍情詩, 또는 敍事的 托情詩라 할 수 있다.
I桃i L 立t: f 0 倉<5 1橋:L山 宅 險근 ., LA& 岩惡•· 총力寸 2 f 吾 力;手取 8 寸心 (『古 事記』 下 卷 ) 사다리를 세운 듯한 倉綺山이 협하여, 바위에 손을 못잡아 내 손을 집 으시네. '臣 k 0 子ii t梧^ 0 '接 갑宅 七 重 ~L. 1庭:1 1 V 드立ts f . :L --c 足I, :結v, 撫 1, f S 寸心 (『 日 本탄 紀 』 • 雄 略前紀) 宮臣(圓大臣)은 흰 닥(梧)으로 지 은 바지 를 몇 겁 이 나 입 으시 고, 뜰에 서서 대님을 어루만지고 계시옵네 . 枚方中 .笛.. 之 吹노 총上石 近力 ... 江,, 0 순 毛H 野f‘ !l) 若b0 · 子<1 ,、 笛吹총上OH石 (『 日 本 書 紀』 • 繼 體二十四年) 枚方으로부터 피 리 를 불면서 올라오도다. (저 것 은) 毛野도령 님 이 피 리 불면 서 올라오는 것 이 로다. 第一首눔 『肥前風土記逸文』에 있는 노래로, 許島岳에서 행하던 歌垣노래를 개작한 것이다. 患麗픕와 홍흙王이 仁德天皇의 軍士에 게 쫓기어 倉 椎山에 올라갔을 때 부론 노래를 설화화한 것인데, 가 사에는 당자가 가없다든가, 낭자와 더불어 산에 오몸이 좋다든가 슬프다든가 하는 주관적인 말은 하나도 없어 그만큼 詩心의 해석에 는 폭이 있는 샘이 된다. 그것은 표현의 대상이 감정보다는 행위에 둔 까닭이니, 거기에 표현되어 있는 것은 위기의 상황 속에서 행동 으로서의 사랑이며 감정면은 애처로움도 술품도 스스로 그 속에 포 함되어 있을 분이다. 第 二首는, 坂곤 b· 合尤 U 黑彦皇子와 眉之i 輪h 王이 葛 城圓大臣 집에 피해 오자, 雄略天皇의 군사가 圓大臣집을포위하였다• 이 대 두사람을위해 圓 大臣이 軍門에 나아가고자 할 때 그의 妻가 부론 노래이거니와, 만 일 前文에 〈b槍·1 ' L tr:: .傷드,., 懷? 도 h'( 歌 L -C曰 〈〉란 말이 없었더라면, 이 노태 는 남편의 勇姿를 기린 노래라고도볼수 있다. 여기서도 妻는 雄略 天皇軍士의 손에 걸려서 남편이 죽게 될지도 모르논술폰십정은부 르지 않고, 軍門 앞에 선 모습의 씩씩항만을 서술하고 있어, 이로 말
미암아 비애의 감정은 도리어 강하게 느껴지는효과를거두고있다. 第三首는, 毛野가 繼體 21 년 6 월에 병 력 6 만을 이 끌고 任那로 가 서, 신라에게 빼앗간 南加羅 • n 原己春을 회복코자 하였으나 실패했 을 분 아니타, 도리어 선라군에게 공박당하여 임나의 4 村울 잃고 소 환되어 돌아오는 도중 對馬에서 병사했다. 그 유해를 難波에서 배 에 실어 山城川울 올라갈 때, 그 妻가 이 노래를 부론 것이라 전한 다. 이 노태에서도 슬픔을 나타내는 말은 전혀 없고, 〈 笛吹총上石〉 라는 객관적 서술을 했을 분인데, 거기에 도리어 한갓 술품만이 아 닌 감정 전부가내포되어, 자유로운 享受의 여지가 독자에게 주어져 있다. 〈사랑노래의 서정성〉 公的 설화에 있어서의 戀歌 나 戰歌의 감정이 더없이 밝은 것이 또 하나의 목칭이다. 감정의 명암은, 의계가 자기에게 미치는 영향 에 의하여 쾌와 불쾌, 만족과 실망이란 형태로서 촌재하며, 또한 의계에 대한 자아의 자세에 의해서도 자신과 불안, 격정과 체념이 라는 형태로서 촌재한다. 공적 설화에서 正系的 인물에 의하여 쫓 김을 당하는 傍系的 인물의 說話歌논 비극적인 설화를 배경으로 한 만큼 노래의 밝음에는 비국성을떠고있고, 거기에는 일종의 생명력 의 충실감이 솟아나는 것이다. 위에 예시한 卑別王과 女鳥王과의 설화에서도 이 사실을 보게 되는 것이다. 애초에 女鳥王은, 仁德天皇의 구혼의 중매자로서 온 年別王에 대 해서, 황후의 질투를 두려워하며, 또 八田若郞女를 어중간한 처지 에 놓아둔 채 그냥 있는, 미지근한 천황에게 시집가는 것은 싫고, 당신의 마누라가 되고 싶다 하면서 거철하고 드디어 두사람은 情通 하게 되었다. 이에 천황은 군사를놓아 잡고자하니, 두사람은 손을 잡고 伊勢에 도망가거니와, 그 도중 倉樣山울 넘을 때에 年別王이 부론노태, 樣立 0 倉椎山在險 L 入&, 岩惡총力나 a f我力;手取 8 寸§ (『古事記』 下卷) 〔前出)
椎立-cIT)倉樣山ii 險 L 낡 E, 妹&登 h tf 險 L <心 尤 8 f (同上) 사다리 세 운 듯한 倉椎山은 험 할지 타도, 내 마누라와 함께 오르면 험하 다 안 여기네• 이 노래에서는 쫓기는 자의 공포라든가, 장차 살해당할지 모르는 불안 동은 나타나 있지 않고 담간 감정은 의의로 밝다. 後首에는 妻 와 함께 산에 오르는 것이 오히려 즐거운 듯이 부르고 있다. 이 감 정의 명랑성온, 사랑을 페쇄적인 십정의 세계로 보지 않고, 산율 넘어 도망한다는 행동을 향하여 열린 자아의 자제를 수반한 사랑인 때문이며, 설화의 비극성온 노래의 명랑성에 의해서 劇的이 되며, 노래의 명랑성온 배경을 이룬 비극성에 의해 생명의 충실감을 드높 이고 있는 것이다. 志 L 간총 O 山田在?〈 b, 山高入 下種C 宅七 L 산, 下婦&. O t乙 吾b 力넷& l. 소妹 塗 下泣힌乙 吾力速[ <妻 宅, 詐느 夜< 르 춘|i 安수 <1 1/l觸 k (『古事記』下卷, 木梨 0 輕 0 太子) 山발을 만들어, 山이 높아서 땅 속에 홈통을 놓아, 그처럼 남몰래 찾아 오는 내 마누라를, 남몰래 우는 내 마누라를, 오늘밤이 사 마음껏 살을 맞 대있도다. 世근근 葉1, K 5? 쓴霞(1), t.::L..t.:U ::.. 率b 發t ft後|i 人ti•離. 中& t (同上) 조릿대 잎에 싸락눈 소리를 내네. 그처럼 곽 껴안고 함께 찰 수 있다 떤, 비록 그대가 헤어쳐 갈지라도. ' 하i L& 혼廢 L 폰喪깁f, 재鷹(I) 亂 h tf亂 h, 혼察l..,혼發-Ctf(同上) :` 귀여움에 겨워서 함께 찰 수 있다면, 베어버린 鷹草처럼 두 사람 사이 가 뿔뿔이 되어도 상관없다오. 자고 나서는 아무래도 좋아. 이 노태 논 輕太子의 노태 다. 允恭天皇이 죽은 뒤 에 , 輕太子가 同 腹妹인 輕大郞女와의 불문의 사랑에 빠쳐, 두 사람은 百官올 위시
해 천하의 사람들로부터 배반당하여 새로 선 安康天皇에 의해서 伊 豫에 유배되어 마침내 자살하기에 이르거니와, 사랑하던 처음에 읊 온 위의 노태는, 비극적인 연애의 결말과는 상관없이 읊어진 것이 아니고, 그것을 예상하면서 사랑의 기쁨을 노래한 것이 第一首, 사 랑에 몸을 던지려고 하는 자세를 부론 것이 第二, 三의 노래이다. 記紀의 연가는 한갓 연애 감정만을 부른 것이 아니고, 자기 생활 전체 또는 운명과 맞물린 사랑을 노래한 데에 特長이 있다. 〈戰歌〉 彼~t,方b,f : 0 志 ee 1松?1原!'., 松原t드 渡 b 行ii> 총t -機,(矢 中 t* 乙 主 b 矢구 宅副t^ C , 費,2人0&i i 쌌 人c.·-t,~ •親•c友 i i心 親友c.·-t,,• \,、창1岡, tit£t我,i,i. i。 t.:'i.총 |i石 ,內t. 0 朝1, 臣,1力, ; 1腹1<., m內t t, i L小 년: 石:: 志 h 순, \,,~·u* 체 'it£我 I t. (『日本 書 紀』 • 神功元年, 忍熊王 0 謀板) 처 멀리 성 건 솔발, 그 솔밭에 나아가서 機弓에 鎬矢를 겨 누어 , 貴人온 貴人들끼 리 , 親友는 親友들끼 리 모여 서 , 자아 敵과 싸우자꾸나 우리 들. 武 內宿彌 뱃속에 자갈이 곽 차 있지는 않을 거야 (그 자의 뱃대지에 화살을 뭇 쏠 것은 없지 않나). 자아 싸우자꾸나 우리들. 이 노래논 忍熊王 30) 이 武內宿彌의 군대를 宇治에서 요격했을 때, *L< 去 0* 드 왕의 선봉장인 熊<: t 之C') 擬도 b 가 부론 노래이다. 이 노래를 來目歌 31) 와 비 교해 보면, 표현이 보다 서사적이며 보다 精細하다. 다같이 전무적 의욕을 노래하고 있으나, 행동적인 의지의 표현이나 서사적 서정이 란 점에서, 궁정가요인 來目歌와 매우 비슷하다. 忍熊王온 이 싸움에서 武內宿彌의 속임수의 공격을 받아 混햄湖 까지 달아났으나, 드디어 궁지에 빠져 源田川에 몸을 던졌다. 그때 30) 仲哀天皇의 皇子. 神功皇后가 新羅征伐後 群臣을 거 느리고 海路로 歸京하고자 할 때, 새로운 皇子(뒤의 應神天皇)의 郞位에 反對하여 證坂(力오년존力、 XE 과 함께 販亂율 일으킵. 31) 來目歌 GG 米歌)(『古事記』 上卷, 神武天皇) 忍坂(l) 大室屋t드, 人多'드 來入 引 居 Q. 人多E入 b 居 b 上 § , 入?入 ?L 久米 O ~11 子力;, 민뿡\편뿡 8 t 擊七 TL 수학 3. 조작섯 ?L 久米(l)子 e 力:, 頭椎1,、 石椎 L 、tt 今擊td t善 5 .L . 32) 이 노래에 登場하는 忍熊王 • 五十狼茅宿禪 • 熊之擬 등은 모두 韓國系의 人物.
의 노래, \,홍만건 쿈텍뿡뿡핸 •32) t다:총'표 면{/)햇쁜力: 민應{/) 텐뚱흰iifii 쎈農{/) 뿡왕산ts:. (同上) 자아 그대 五十陝茅宿福여 , 武內宿彌의 頭椎劍에 맞아 상처 를 입 을 바 에 야(~鳥〈농병 아리 〉처 럼 ) 물 속에 참겨 버 리 자꾸나. 이 노래는 자살 직전에 부론 辭世의 노래이나 감정은 역시 밝다. 이 밝음의 근원은 忍熊王의 자살이 생명에 대한 절망에서 온 것이 아니고 적의 손에서 자기를 방어하려는 방법으로서 적극적으로 선 택한 길에 있는 것이며, 자살함으로써 頭椎級율 쥐고 있는 武內宿 彌의 의표를 찌르고자 한 것이다. 과연 武內宿彌는 忍熊王둘의 死 核를 찾지 못하고 원동함에 발을 굴렀던 것이다. 고대가요에 있어서의 자아의식은 이처럼 명랑하여 고독감과 결부 한 후대의 자의식과는 다른 것이니, 이것은 첫째 고대의 생명주의 적인 세계관에 의한 것이며 또 하나는 사회적 연대감에 의한 것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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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 『萬葉集』의 특질 1. 書名 • 名義 歌臨集인 『萬葉集』은 오늘날 ?`./크 ?y::,...?라 읽고 있다. 이 책 이 되던 당시의 발음은 오늘날과 같지 않으므로 필시 -:t=- • =7 • -1/ 7 에 가까운 음이 었으리 라 추정 된다. 『萬葉集』을 지 난 江戶時代에 논 국、./二 크 力、Z 그?라 읽은 적이 있다. 이것은 〈萬〉 (man) 의 n 음이 다음의 〈葉〉에 加音되 어 man-n- y o 와 같이 발음하는 것 이 니 , 가령 天皇(t en-o-> t en-no), 觀音 (kan-on->kan-non) 등에 서 도 볼 수 있어 , 일 본어로서는 부자연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고대에 치올라가 이 歌諾 集이 이 루어 지 던 奈良朝時代에 는 〈萬〉이 man 으로 閉音節發音이 었 던가는 의문이다. 오히려 모음으로 끝나는 開音節發音이 행해지던 그 당시에는 위와 같은 加昔現象은 없었다고 여겨진다. 다음 〈萬葉集〉이란 書 名의 名義에 대해서는 說이 구구하다. 그 가운데서 가장 지지물 많이 받고 있는 (1) 說온 〈많은(=萬) 詩華(= 葉)를 모은(=集) 것〉이라는 해석이다 .1) 이와 대립하는 說은 (2) 〈많 은 시대에 걸찬 集〉이라는 것으로, (1) 說의 근거는, 중국의 경우를 보면, 詩歌集에 林 • 苑 • 花동 식물에 寄托해서 詩歌를 나타내는 害 名의 유형이 있다. 『文苑英華』등이 그것이며, 일본에서도 동시대의 1) 中西進, 『萬葉集』全譯社 • 原文付.
淡詩菓으로 『衍悲操』 『懷風溪』둥이 있 고, 신라의 문호 崔致遠의 문 집 또한 『桂苑筆耕』인 것이다. (2) 의 근거는, 〈葉〉에 代 • 世의 뜻 이 있으니까 〈萬葉〉이라 이름함으로써 萬代의 後까지 빛나는 歌集 이라는 축복의 뜻이 스며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 說울 부 정 하는 학자가 많다. 가령 一例를 둘면, 2)
2) 中西造 『萬葉集』(解說, p. 12) (講談社刊)
그러 나 〈萬代〉의 菓이 란 의 도를 第一義로서 命名했다고는 생 각지 않는 다. 나는 이 命名이 平安朝의 초기가 아닌가 여기거니와, 당시의 서책, 가령 『紹日本紀』를 지어서 天皇에게 獻上했을 때의 문장 속에서도, 이 책 이 〈菓葉에 傳하여 거울(釜)이 되다〉라는 祈願이 펴 있다. 고래로 많은 학자들은 고대 의 문헌에 서 〈萬葉〉이 란 말을 찾아내 어 , 그것 이 萬代의 뜻 이라는 것울 고증해 왔으나, 그러한 用例가 많이 보이는 것은 平安初期 다. 그러므로 그들이 〈萬葉〉이라고 했을 때, 萬代란 의미를 칙각적으로 취했을 것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소양이 깊은· 당시의 학자들이 책이름으 로서의 자연스런 典型에 대해서 무관십했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유감 스럽 지 마는, 책 명 으로서 〈萬代〉를 쓰는 것 은, 가령 『千載集』처 럼 훨 씬 뒤로 내려가지 않으면 안된다. 반대로 勅撰集울 예로보더라도, 『金葉集』 『詞花集』이 라고 하는 유형 아 위 의 것보다는 빠르다. 平安初期의 漢詩集도 『文華秀麗渠』이 라 한다. 최 초의 勅撰集인 『古今集』이 , 『萬葉集』의 卷十 一.十二에 보이는 〈古今〉을답습한데 대하여, 『萬葉集』은 훨씬본격적인 命名울 한 것 이 다. 萬代를 의 미 하는 〈菓葉〉이 란 말을 아무리 많은 문현으 로부터 찾을 수 있다 하더 라도, 書名으로서 의 類型을 考慮하지 않는 考 察온 無意味하다. (3) 의 說로, 〈紙數가 많은 集〉이타 解하는 것도 있으나 3)' 이것은 試案에 그치는 정도이고, (1) 과 (2) 에 관해서 몇가지 論考가 있는 중에, 주목을 끄는 것은, 鎌倉時代의 學僧, 仙覺이 〈많은 말의 잎 (葉)을 모은 것〉이 라 하였 다. 또 萬葉의 두자로 〈다수의 노래 (歌)를 비유적으로 가리킨다〉는 說(岡田正之)이 있는가 하면, (3) 으로서는 〈葉〉을 〈世〉로 보는 것 頃湘 I 의 說)둥이 있다.
3) 『萬葉菜』(岩波文庫刊, 日本古典文學大系) 1•2•3•4 가운데 第一冊의 解說 • 名義.
이 두 갈래의 說 가운데서 (2) 의 說이 山田孝雄博士에 의해서 유 력하게 지지되기도 하였으나 4) , 근년에 와서는 (1) 의 〈많은 노래의 梨〉이란 說 5) 로 기울어지고 있다. 2. 成立과 編纂 『萬葉集』이 언제 엮어졌는가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다. 대체로 『萬葉集』은 하나의 정리된 歌菓으로서 어느 한 시기에 編菓된 것이 아니다. 긴 세월에 걸쳐 증감을 가하면서 현재의 꼴에 이르론 것이 다. 그러므로 성립이타기보다는 형성되었다고 함이 타당할지 모론 다. 오래 전에는 이 歌梨울 勅撰이라 여겨왔다. 그러나 契沖의 私撰 說이 나오고는이것이 유력하게 되었다. 그러나卷一·二에 대해서 는 근년에 다시 勅撰이라는 說이 나왔다 .6) 편찬의 시기에 대하여는 奈良朝 또는 平安朝初라는 여러 說이 있었으나, 山田孝雄는 그의 논문 「萬葉集의 편찬은 寶龜二年 (771) 이후인 것의 증명」”에서 연대 추정을 하였다. 이 근거는 東歌에 나오는 지명 武藏의 행정적 편입 년대를 바탕으로 한 것인데, 이와는 달리 좀 더 한걸음 다가선 고 증도 있으니, 德田淨이 발표한 논문 「萬葉集 撰定 시대의 연구」에 서 소상한 편찬시기를 논하고 있다. 즉 歌人인 大伴家持가 사용한 力*I:t수 9·` t 卑敬稱法울 중십으로 국사의 편찬과 懷風漢의 성립등을 참조해서, 卷一·二의 대부분이 慶雲 (704~707) • 和銅 (708~714) . 義老 (717~723) 년간에 순차적으로 성립되었고, 卷一~十六이 天平 18 년 (746) 으로부 터 天平勝寶 5 년 (753) 사이 에 성 립 (『萬葉菓』第一回撰), 卷十七 이 하가 天平寶字 3 년 (759) 6 월에서 8 년 (764) 정월까지에 성립, 동시에 舊十 六卷에 손울 대 어 (第二回撰), 전 20 권을 寶龜 8 년 (777) 1 월부터 9 년 1 월에 걸쳐 손을 대는여g三回撰) 순으로 성립했다는 것이다. 4) 「萬葉築考證」(『國語上國文學』, 大正十四年二月號). 5) 「萬葉菜간名 0 意義」(『萬葉』, 昭和二十六年十月號) 鈴木虎雄, 「萬葉菓名義 論 考」 (『國語上國文學』, 昭和二十七年一月號) 星川淸孝. 6) 「萬葉渠兩卷說」(『萬葉學論菜』) 品田太吉. 7) 「心 0 花」(Ii'萬葉染考證』 大正十三年十二月 號).
이 사이 경위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 萬葉染 』 全二十卷 가운데 卷十七이후의 四卷은 大伴家持의 身滋雜諒이 時日을 따라 기록되어 있는데 대하여 그 앞의 十六卷은 天平 16 년 (744) 까지의 노래다. 그 렇다면 天平 7 년을 경계로 하여 卷一로부터 十六卷까지는 이 이전 에 성립되었고, 卷十七 이후의 四卷온 그 뒤의 성립임을 생각할 수 있다. 이같은 추정은 진작 행해지고 있었던 바이나, 그렇다고 해서 卷 一에서 十六까지가 天平 17 년에 모두 성립되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 다. 가령 卷一은 최초에 柚本人磨까지의 여러 노래가 모여지고, 다 b t C) t &0D& 츠 5 음에 동시대의 것이 追補되었으며, 또 그 다음 시대의 노래가 다시 追補되는 둥의 경과를 거찬 것이다. 이리하여 최종의 작업의 마지 막은 寶龜年間 (770~780) 인 것 같다. 이는 t長,h ;皇, : ,*子 드 의 아들인 文』 & 室X ’0大** 市..., 들과 大伴家持의 作業 8) 이었다 . 위의 柚本人磨는 초기 萬정불에 있어서 하나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 다. 卷二에서도 人磨까지의 노래가 최초의 원자료로서 사용되어 있 고, 거기다가 奈良朝에 들어와서 이루어전 노래를 중보하여 卷二가 성립되었다. 卷三의 基本性格도 〈人磨 이후〉의 것이라 할 수 있~ 니 , 相聞과 換歌의 一群에 다가 새 로이 뿜 n 兪歌의 一群울 삽입 해 서 성립시킨 것이 卷三이다. 이 〈人磨 이후〉의 성격은, 작자 미상의 諸卷, 죽 卷七과 卷十에서 十二까지에서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또한 『萬葉集』의 하나의 골격 이 된다. 持統朝까지의 人磨圈의 노래에 대한 존중도 이에 유래하 는 것이며, 독수한 몇 권을 제의하고는, 그 존중과 계승의 의도가 諸卷의 編菓에 보인다. 이 점에 관해서 가장 관심이 큰 것은 大伴家持이다. 卷一의 追 • 補에 그치지 않고, 그 밖의 각 권에서도 증보 • 완성을 해나간 것이 다. 卷四같은 것은그러한것의 하나이거니와, 다시 새로운 의도로 서 한 권을 編集한 것이 卷八이다. 이 卷八의 첫머리를 꾸민 노래는 志L 貴뇽 0皇 * 子:: 의 1 首이니, 皇子의 노 래 1 首로서 卷頭로 삼은 것은, 그가 光仁天皇의 父인 까닭이다. 이 8) 武田祐吉, 『萬葉菓全証釋』 • 「總說」.
때 문에 이 卷울 光仁天皇에 게 바찬 것 이 라는 說(吉永登氏)은 타당한 견해라 할 수 있다. 때는 寶龜年「버이니 앞서 卷-의 증보 완성을 한 것이 寶龜었다는 것과 부합한다. 그리고 또 卷八의 최후가 志貴 皇子의 換歌로서 끝장을 낸 것도 매우 적절하다 하겠다. 光仁天皇 의 費龜年間이란 것은, 奈良朝의 긴 정치적 항쟁이 낙착되어 평온함 을 되돌린 시대며, 『歌經標式Jl이라는 노래의 학습서도 나타난 시대 며, 또한 家持도 간 불우시대를 겨우 빠져 나와 햇빛을 보게 된 시 기였다. 이 때에 『萬葉集』의 정비를한것은참으로 의의가 있는 일 이다. 그리하여 당시의 유력자인 4文k室 수,.智, t 勢p, 大市는 父인 長皇子系 의 자료를 가지고 編集에 가담하여, 때의 天皇의 父인 志貴皇子를 尊崇해 서 『萬葉集』의 전반의 각 권을 형 성 시 켜 나갔다. 『萬葉集』의 노래 가운데 명확하게 연대를 알 수 있는 것 중에 최 후의 노래는 卷末에 실려 있는 1 首이다. 그 시기는 天平寶字 3 年 (759) 이니, 따라서 『萬葉集』의 성립이 이 해보다 치올라 갈 수는 없 다. 이 연대를 기준으로 해서 어디까지 내려갈 것인지는 위와 같이 불명이나, 卷十六 중에는 天平神護 年間 (765~766) 의 것이라 여겨지 는 노래도 있다. 이같이 『萬葉集』은 全奈良朝를 통하여 유동적인 양상을 나타내고 있을 분 아니라, 이러한 것을 〈萬葉集〉이라 불렀던가도 확실치 않 다. 〈萬葉集〉이란 이름이 나타나는 최초는 寬平 5 년 (893) 에 썼다고 하는 『新撰萬葉集』의 序文이 니 , 이 때 에 는 〈萬葉集〉이 란 이 름으로 先代의 歌集이 불려지고 있었음은 확실하다. 그리고 『古今集』 속에 도 「萬葉集」의 이름이 보이고, 貞觀 年中 (859~876) 에 『萬葉集』 성 립에 관해서 화제가 되어 있었으니, 奈良朝의 歌集울 〈萬葉集〉이라 부르게 된 것은 平安朝 초기였는지도 모른다. 위 에 서 언급한 바와 같이 大伴家持가 손을 덴 요소는 많다. 그러 나 大伴 이후의 사람들의 손이 또한 가해졌으리라고 지적(武田祐吉) 한 바와 같이, *i半의 노래를 중십으로 해서 모은 卷十七 이하의 四卷에도 그것을인정할수있다. 諸兄 ·智勢·大市들과 함께 坂上 근 b.,., ,之,, 郞女의 寬集作業 등 편찬에 손을 덴 것은 확인되고 있다. ``b..,b 이상 『萬葉集』이란 歌集은 처음부터 二十卷이 집성된 것이 아니
라 奈良朝 초기에 原 萬葉 의 수정이 시작되어 費젭 5 까지 계속되어 갔 고, 그 이후는 11 세기까지 어둠 속에 참겨 있었던 것이다. 『 萬 葉集 』은 현존하는 歌菓 으로서 는 最 古의 것 이 나, 이 것 이 二十 卷으로 형성되기 전에 성립되었던 歌業 도 몇 종류가 있었고, 『 萬葉 集』의 編者는 『古 事 記』 • 『 日 本 書 紀』와 함께 그러 한 歌集類 를 참고 로 해서 편찬에 임하였다. 그것은 아래의 六 集 이다• (1) 『古 歌菜』 이 가운데 더 러 古 菜 이 라 나오는데 그 또한 이 集 인지 는 미상. 編 者 불명. 卷二.七·九·十·十一에 나타나며, 연대를 알 수 있는 것은 持統 • 文武 朝 의 노래이다. (2) 『 hh 本 朝 臣人 磨歌集 』 人 磨 노태 의 에 타인의 노래 도 수 록 되 어 있 었 다. 많은 노래가 『萬 葉渠 加사 채 록되어 卷 二 • 三 • 七 • 九~十四에 실 려 있 다. 책 에 따라 조사 子 = 7 ,, 내화를 극단히 생 략한 것 도 있 어 서 , 표기법의 차이로 보아이 菓 온二 部 이상있었으리라고한다. 성립 연 대에는 문제가 있다. 集 中에 「 庚辰 之作之」란 것 이 있 어, 이 庚辰 年 울 680 년이 라 보는가, 또는 740 년으로 보는가에 따라 收集歌 의 연대 도 달라진다. 『 萬葉集 』의 旋頭 歌 의 과반이 이 集 에 서 나온 것 이 다. (3) 『類衆歌林』 山上 憶 良 編 · 노래 를 분류해 서 모았는데 , 작자 및 作 歌 에 대한 경위등을 注記한 듯하다. 鎌 倉時代까지는 있었으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 洪짦 탐 I U 에서는 이 속의 노태를 다만 卷一 • 二 • 九 의 注記에서만 인용하였다. 그 져온 예로서 보면, 第 二期까지의 노 태가 수목되어 있었고, 憶 良가 『日本 書 紀』(또는 그 원자료)를보았 음을알수있다. (4) 『笠朝臣金村 歌集 』 金村 자신의 노태 를 모은 듯하나, 그 속에 〈右 作者未審, 但笠朝臣金村之歌中出也〉라던가, 〈右笠朝臣金村之 歌 中出 也, 或云, 車持 朝 臣千年作之也〉라고 하는 등의 注가 붙은 노래 도 있다. 〈歌中出〉이 란 〈歌 集 出〉의 뜻인듯 하다. 萬 葉 의 卷二 • 三 • 六 • 九에 실려 있고, 그러한 노래는 盆 龜元年 (715) , 神 龜 5 년 (728), 天平元年 (729) 의 作이 다. (5) 『高橋連虫磨歌集』 虫磨 자신의 歌 集 . 혼히 〈歌 集 中出〉 〈 歌 中出〉이 란 말이 불어 있고, 이것이 없는 노태는 天平 4 년 (732) 의 長歌와 그 反歌(각 한 首)분이며, 卷三 • A 에 산발적으로 〈歌中出〉이라 한 의 는 卷九에 〈歌集中出〉이 라 하여 雜歌 • 相聞 나免歌의 각 부에 집 중
적으로 나와 있다. ·(6 ) 『田邊福磨歌架』 福磨 자신의 歌集. 그의 노태 는 歌渠 이 외 것 은 短 歌 분이고, 그것도 越中에 있었던 家持에게 찾아갔을 때의 作이며 首數도 歌集보다는 적 다. 『萬葉集』에 는 卷六(모두 雜歌)의 끝과 卷 九의 換歌部에 집중적으로 실려 있다. 3. 구성과 각 권의 특이성 분류 『萬葉集』의 분류 방법 을 보면, 雜歌 • 相 Im • 晩歌의 3 대 부문이 根 幹으로 되어 있다. 이 부문 명칭은 중국의 고전인 『文選』에서 따온 것일 것이다. 換歌에는 사람의 죽음에 관계된 노태를 수록한 것이 고, 다음 相聞에는 인간 사이의 情的 交流의 노래로서 父子 • 兄弟· 友人 • 知人 • 夫婦 • 戀人 • 君臣둥 여러 가지가 내포되어 있으며, 교 류라 해도 반드시 노래가 상대편에 도달하지 않더라도 생각하는 마 음이 어떠한 사람에게 향하여 읊은 노태도 있다. 다음 雜歌란 것은 위의 두 부문에 들지 않는 여러 가지 노래를 말함이니, 行幸 • 旅行· 公私의 案會 기타의 경우의 노래이다. 따라서 가장 멋떳한 노래가 내포되어 있고, 순서도 위의 두 부문에 앞서 놓여쳐 있어, 가장 중 시된 것이다. 相聞온 다시 正述心緖 • 寄物陳思 • 뽑'兪歌(이 에 는 相聞의 細分으로서 가 아니라, 雜歌의 部의 題詞로 쓰여전 예도 두 군데 있음)로` 세분처} 것 도있다. 이상으1 분류 의에 소항목으로 問答 • 悲別 • 諾旅發思 둥이 있고, 지방적 특성을 다룬 것에 東歌가 있다. 그런데 3 대 부문의 분류는 全卷에 걸쳐 순서정연하게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卷에 따라 서는 분류를 하지 않은 것도 있다. 배열은 연대순으로 하려는 의식 이 강하고 연대 불명의 것은 읊어전 토지 • 사물에 의해서 類衆하여 있다• 또 원자료에 있는 순서를 그대로 쫓은 것도 있다. 構成 『萬葉集』 二十卷은 내용상으로 3 대 부문의 분류가 있음과 함께 구
성상으로도 三部分할 수 있다. 죽 第一部논 卷一~卷七까지, 策二 部는 卷八~卷十六까지, 그리고 第三部는 卷十七 이하이다. 第一部는 純正한 『萬葉染』이니, 雜歌 • 相聞 • 晩歌로 분류되어 있 다. 卷一온 雜歌, 卷二는 相聞 • 換歌, 卷三은 양자를 합한 체재다. 卷三은 相屈1 을 뿡 n 兪歌 라 하였으나 이것은 相聞의 노래를 표현 방법 에 의해서 이름한 것이다. 卷四는 全卷이 相聞이니, 만일 위의 뽕 ’兪歌를 제의한다면, 저철로 卷三과 卷四로써 전체가 이루어지는 구 조이다. 다음 卷五는, 大宰府의 노래를 중십으로 해서 모은 노트 적인 한 卷이니, 山上憶良가 중심작가이다. 이 卷은 부록적인 卷이 수主 05之0北< 5 나, 卷六은 卷一과 같이 雜歌로서 편성되어 있으되, 奈良朝의 노래 를 싣고 있어서 卷一과 비견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이상이 모두 有名作인데 대하여 卷七은 全卷이 작자미상의 노래로 구성되 어 있다. 그러나 체재는 卷三과 같은 雜歌 • 뽑 n 兪歌 • 換歌의 분류를 하였고, 편성의 의석은 앞의 諸卷과 同列의 것이다• 같은 의식에 의해서 편성한 작자마상의 한 卷을 최후에다 보텐 것이 第 一部의 七卷이다. 第二部는 대도를 달리해서 출발한다. 筑述한 바와 같이 卷八온 志貴皇子(당대의 천황인 光仁의 父였으므로 太上天皇에 淮하고, 春日宮天 皇이라 추존하였음)의 「上石權:간 (J)御歌」(기쁨의 御製歌)를 최초로 하여 雜 歌 • 相聞의 二部로 된 노래를 四季에 걸쳐 분류하였다. 이것은 작 자미상의 노래로서 구성된 卷十七과도 공동된다. 그러나 대체로 第二部는 구성상의 혼란이 있다. 卷九는 우선 雜
歌 • 相聞 • 換歌의 형식을 취하고는 있으나, 未整理인 채 개인 歌集 울 끊어다가 이온 듯한 느낌을 주며, 모처럼 卷頭룰 卷一에 견주어 雄略天皇歌로 시작하였으나, 일관한 편집 의석이 희박하다. 그리고 第一部에서는 부록적이었던 失名歌群이 여기서는 第二의 중십을 차 지하고 있다. 이는 卷十四까지 계속된다. 그 중에 卷十온 지극히 『古今集』에 접 근한 새 로운 노래 들이 고, 앞서 말한 바와 같이 平安朝 초기의 編集인 듯한 느낌을 자아 낸다. 이하 卷十一 • 十二도 古와 新의 두 歌群으로서 編集되어 있다 . 여기서 〈古〉라고 하는 것은 柚 本人磨歌集울 말함이요, 이것울 전반에 두고, 후반은 〈新〉노래를놓았다. 다만 卷十一은 卷十二보다 시대가 오래라서 兩卷은 동시에 성립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같이 古今의 相聞을 수록하여 末期 萬葉의 양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第 二部 가운데 특색 있 는 卷은 宮廷詞 章 울 담은 卷十三, 東歌 를 실 은 卷十四이다. 게다가 그 당시 화제를 일으킨 歌群울 둘다 供載한 卷十五와, 일상생활적인 냄새가 질은 卷十六도 하나의 특색을 나타 내고 있다. 이상 第二部논 有名歌의 卷八·九에 이어, 卷十以下 卷十二까지 의 失名歌의 諸卷울 합한데다가 각각 목수한 四卷울 가한 구성을 하고 있다. 이 有名歌의 卷에다가 失名歌의 卷을 가한 구성은 第一 部와 마찬가지이며, 二十卷 撰集의 구성상으로 볼 때는 당연한 일 이라 하겠다. 第三部의 四卷은 第一 • 二部와는 異質的이다. 그것은 아무런 분 류없이 年次를 따라, 더우기 家持의 노래를 주축으로 하여 기재되 어 있는 때문이다. 그래서 자고로 〈家持의 노래 日記〉라는 호칭을 들어온것이다. 그러나그러한견해는피상적일분, 四卷은각권마 다 筆錄者 를 달리하고 家持 및 그의 주변의 노래를 기록해 놓은 것 이 다. 卷十七온: !大<*&伴손 O池L , 남主O,L 卷十J자은 久<米 心 0廣0 繩스ta ,, 모두 越中時代의 t緣J:' n官4』 9) 이 냐 다음 卷十九는 家持 자신의 筆錄이 오, 卷二十은 후반이 大** 原今城의 筆錄 일 것이다. 이들 筆錄者의 교체에 의하여 각 권은 서 로'i 5O L특, 초군이 성을 지니고 있다.
9) 四等官으로 國司의 第三位.
各卷의 特色 〈卷一〉 卷一과 卷二는, 과연 『萬葉集』의 卷頭몰 차지 함에 적 합하여 , 정 선된 노래들이 격조높고 기품이 넘쳐 있다. 卷一은 雄略天皇 시대 (457~ )로부터 舒明 • 齊明 • 天智 • 天武 • 持統 • 文武 • 元明時代(~ 715) 에 걷찬 사이의 行幸 • 遊案 • 旅行동의 노래가 담겨져 있다. 노 래 형식의 종벌로는 長歌 16 首 短歌 68 首인데, 각 천황마다 標目울 세워서 배열하였고, 노래에는 혼히 『日本書紀』 • 『類衆歌林』등을 인
용해서 注를 붙여 용의주도한 編輯율 하였다• 이 卷의 시대는 정치적으로 보아 大化改新 전후로부터 飛鳥 • 藤 原朝를 지나 平城京의 초기에 이르는 고대 국가 전설기요, 미술사 적으로는 飛鳥時代 • 白鳳時代에 해당한다. 作歌人을 책 에 나오는 }1 頂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雄略天皇·舒明天皇·中皇命·軍王·額田王·天智天皇•井戶王. 天武天皇 • 吹茨(黃)刀 自 • 麻紹王 • 持統天皇 • 柚本人廣 • 高市古(照) 人 • 川島皇子 • 元明天皇 • 當麻磨妻 • 石上鷹 • 藤原宮役民·志 貴 皇子· 坂門人足 • 調淡海 • 春日老 • 長奧磨(意吉磨 • 興 磨 ) . 卷謝女王 • 長皇 子 • 舍人娘子 • 山上憶良 • 證始東人 • 高安大島 • 身人部王 • 淸 江娘 子·忍坂部乙磨·藤原宇合·長屋王·御名部皇女·長田王 이 밖에 注記에 의하면 齊明天皇, 또는 中皇命은 倭大后 • 間人皇 子 • 齊明天皇의 어느 사람으로 解하는가에 따라 다시 작가가 늘어 난다. 거 의 전부가 有名歌이 나, 79, 80 의 노래 는 작자미 상이 라는 注 가 붙어 있다. 〈卷二〉 조칙 • 노태의 시대등은 卷一과 거의 동일하다. 卷一의 雜歌와 이 卷의 相聞 • 晩歌로서 一團을 이룬다. 노래의 首數는 相llf l 이 長歌 3 首, 短歌 53 首, 換歌가 長歌 16 首, 短歌 78 首, 합계하면 長歌 19 首, 短歌 131 首로, 卷一보다 많으며, 특히 長編이 있어서 양적으로는 一卷울 능가하고 있다. 標目은 相聞部가, 灘波高津宮御宇天皇代 • 近江大津宮御宇天皇代· 明日香淸御原宮御宇天皇代 • 藤原宮御宇(高天原廣野姬)天皇代, 換歌 部는 後岡本宮御宇天皇代·近江大津宮御宇天皇代.明日香淸御原宮 御宇天皇代 • 藤原宮御宇天皇代 • 寧樂宮으로 되어 있다. 仁德天皇代 (313~ )로부터 元明天皇代 (~715) 까지의 노태를 싣고 있는데, 仁德 天皇代의 것이 最古의 노래이나, 歌風으로 · 보아 그다지 오랜 것은 아니 다. 작자는 다음과 같다• 磐姬皇后(傳說的作者 『古歌集』) • 衣通王(『古事記』의 노래)·天智天皇· 鏡王女 • 藤原鎌足 • 久米禪師 • 石川郞女(二人) • 大伴安磨 • 巨勢郞女· 藤原夫人 • 大伯(來)皇女 • 大津皇子 • 日並皇子尊 • 弓削皇子·額田王·
但馬皇女·舍人皇子·舍人娘子·三方沙彌·園生羽女·大伴田主.長 皇子 • 柚本人鷹 • 依羅娘子 • 有間皇子 • 長意吉磨 • 山上憶良 • (人盟歌 ~) • 倭大后 • 天智天皇近侍의 婦人 • 舍人吉年 • 石 ]11 夫人·高市皇子· 持統天皇 • 日 並皇子宮舍人等 • 糖積皇子 • 盤始東人 • 丹比眞人 ••河 邊 宮人·笠金村. 이 밖에 『類緊歌林』에 의 하면 檜限女王이 들어 간다. 〈卷三〉 이卷이후는天皇代의標記가없다. 이卷은雜歌.뿐兪歌.換 歌의 3 부로서 구성되어 있어서, 卷一 • 二를 합친 것 같은 체재이다. 따라서 이 한卷은완성된歌集이라할수있다. 卷三은卷一.二와 같은 중량감은 없으나, 第二期의 人磨 • 黑人, 第三期의 旅人 • 赤 人, 第四期의 湯原王둥의 名歌를 많이 수록하였고, 많은 首數의 家 持의 노래, 비통한 大津皇子의 稅歌도 설려 있다. 歌數는, 雜歌部에 長歌 14 首, 短歌 114 首, 뽑 II 兪歌部에 는 短歌 25 首, 抗歌部에 는 長歌 9 首, 短歌 60 首, 모두 합하면 長歌 23 首, 短 歌 229 首이 다. 작자는 다음과 같다. 持統天皇(의 문시 되 고 있음) . 志斐婚 • 長意吉磨 • 柚本人磨 • 弓削皇 子.春日王.(人磨歌集).長田王·石川大夫·鴨足人·刑部垂磨 • 志 貴皇子 • 長屋王 • 阿部女郞 • 高市黑人 • 石川少郞(吉美侯 • 君子) • 高 市黑人妻 • 春日老(辨基) • 丹比笠磨 • 石上卿 • 糖積老 • 間人大浦 • 小 田事•角唐·田口益人·大伴旅人·安倍廣庭·安貴王·博通法師·門 部王 • 核作益人 • 藤原宇合 • 土理宜令 • 波多小足 • 山部赤人 • (高橋 虫磨歌菓) • 小野老 • 大伴四綱 • 滿普 • 山上憶良 • 若湯座王 • 通觀 • 日 置少老 • 生石眞人 • 上古磨 • 笠金村 • 石上乙磨 • (金村歌集) • 湯原王· 大伴坂上郞女·筑紫娘子兒島·丹比國人·若宮年魚磨·紀皇女·大伴 百年 • 餘(金)明軍 • 笠女郞 • 藤原八束(眞權) • 大伴駿河磨 • 大伴家持· 佐伯赤磨·市原王·大網人主·聖德太子·大津皇子·手持女王·丹生 王 • 山前王 • 河邊宮人 • 倉橋部女王 • 大伴三中 • 大伴書持 • 高橋朝 臣, 이 밖에 失名娘子 2 인이 있다• 〈卷四〉 이 卷은 家持의 노래가 많고, 家持 이의의 것이라도 大伴家를 중
십으로 한 것이 많은 것으로 보아 家持의 손에 들어 온 오래된 相 聞歌에다가, 旅人 및 坂上郞女들의 수중에 있었던 노래, 그리고 家 持 자신아 수집한 노래들을 합해서 家持가 한 卷울 엮은 것 같다. 全卷이 相聞이다. 그러면서 奈良朝風의 새로운 노래가 대부분을 차 지하고 있다. 각 작품의 내용으로 보아 家持가 越中에 부임하기 전, 天平 16 년경 (746) 의 노래인듯 하며, 대체로 연대순 배열을 하 였으나, 더러는 전후된 것도 있다. 중량감의 접으로 보아서는 卷三 보다는 부족하나, 그래도 가운데의 秀作-人磨의 相聞歌, 笠女郞 의 才幹과 情感이 넘쳐흐르는 相聞歌群둥은 격조가 높은 것들이다. 首數는 長歌 7 首, 旋頭歌 1 首, 短歌 3 백 1 首인데 卷三보다 首數논 많으나 長歌가 적은 탓으로 전체의 양은 부족하다. 작자는 다음과 같다. 難波天皇妹, 協本天皇(齊明 또는 舒明) • 額田王 • 鏡王女 • 吹茨(黃) 刀 自 • 田部探子 • 舍人吉年 • 柚本人磨 • 基檀越妻 • 柚本人磨妻 • 安 (阿)倍女郞 • 駿河采女 • 三方沙彌 • 丹比笠磨 • 當麻磨妻(卷一과의 重 出) • 草娘 • 志貴皇子 • 中臣東人 • 大伴安磨 • 石川郞女(邑婆) • 大伴女 郞 • 常陸娘子 • 藤原磨 • 大伴坂上郞女 • 聖武天皇 • 海上(女)王 • 大伴 宿奈磨•安貴王·門部王·高田女王·笠金村·大伴三依·丹生女王. 賀茂女王·上師水道.大伴百代·山口若磨.門部石足·麻田陽春·大 伴四綱 • 滿普 • 葛井大成 • 餘(金)明軍 • 大伴坂上大娘 • 大伴稱公 • 笠 女郞·大伴家持.山口女王·大神女郞·佐伯東人妻·佐伯東人·池邊 王·聖武天皇·高安王•八代女王•佐伯赤磨·湯原王·紀女郞·大伴 駿河磨·市原王·安都年足·大伴像見·安倍虫磨·厚見王.春日王. 中臣女郞·大伴千室·廣河女王·石川廣成·河內百枝娘子·巫部麻蘇 娘子 • 栗田(女)娘子 • 大宅女 • 安都願娘子 • 丹波大女娘子 • 大伴田村 大娘.藤原郞女·藤原久須磨. 이 밖에 娘子또는童女라한것이 三 人쯤있다. 〈卷五〉 雜歌라 表題를 하고 있으나 換歌와 相聞에 해당하는 노래도 싣고 있다. 〈雜歌〉란 표제가 없는 紀州本 • 細井本이 원형이라는 견해도 있다. 卷- • 三 • 六둥의 雜歌와는 달라서 이 卷에는 궁정적인 것은
전혀 없고, 황족의 작품도 三島王의 노래 가 1 首 있울 문이 며 , 旅 人 • 憶良를 중십으로 한 지석인들의 風流 • 述懷 • 贈答등을 모은 듯 한 성격의 歌集이다. 노래 의에 한문의 序, 書簡 , 文 章 , 漢詩등을 상당수 싣고 있는 점, 매우 목이한 편집을 한 歌築이다. 卷末의 노 래外 二, 三울 제의하면, 제작년월은 거의 판명되어 있어서(神 龜 五 年〈 728 〉六月二十三日~天平五年〈 733 〉六月三日), 거기에 따라 배열해 놓 았다. 그 중 短歌 1 首논 神龜 2 년 (725) f¥이다. 首數는 長歌 10 首, 短歌 104 首, 漢 詩 2 首, 序文 10, 書簡 5, 文 章 1. 작자는 다음과 같다. 大伴旅人·山上憶良·藤原房前·紀卿·小野老·栗田大夫·大伴大 夫·葛井大成·笠沙彌.大伴百代·阿氏奧島·土師百村•史氏大原. 山口若 磨 • 丹(舟)氏 磨 • 張氏福子 • 佐氏子首 • 板氏安磨 • 荒氏稱布 • 野氏宿奈鷹·田氏肥人·高氏義通·儀氏法磨·志紀大道•榎氏鉢鷹. 田氏眞上·村氏彼方·高氏老·高氏海人·土師水道·小野國堅·門部 石足 • 小野淡理 • 三島王 • 麻田陽春. 〈卷六〉 全卷이 雜歌로서 이루어져 있다. 卷一의 雜歌를 이어받아 宮廷和 歌의 전통을 保持하고 있다. 이 점은 卷五와 성격을 완전히 달리하 는 것이다. 卷三이 卷一 • 二에 대한 紹撰의 관계에 있으면서 노태 의 작자나 제작년대는 卷一 • 二에 중복되는 것이 많아 捨遺的 성질 울 띠고 있는데 반하여, 卷六은 가장 일찌기 된 노래라 할지라도 羲老 7 년 (723) 의 것 이 어 서 , 卷一의 가장 새 로운 노래 (和銅五年〈 712 〉) 와는 11 년의 간격이 있으니, 문자 그대로 紹編의 위치에 서 있는 것이다. 노태의 제작년대는 卷頭의 907 이 養老 7 년 (723) 5 월이고, 이하 天 平 16 년 (744) 정월 11 일의 1043 에 이르기까지 年月울 따라 배열하였 고, 제작시기가 명백하지 않은 것은 가능한 한 추정하여 끼워쳐 있 다. 요컨데 卷六의 노태 는 養老 7 년부터 天平 16, 7 년까지 의 노래 를 모은 것이다. 내용상으로 보면, 行幸 • 旅行 • 遊案 • 新京의 讚碩 • 古京에 대한 悲傷등이 주제 이 다. 笠金村 • 車持千年 • 山部赤人둥 작가의 從篤의
노래는 유명한 秀作들이고, 그 가운데서도 赤人의 작품은 명작이라 일컫는다. 遊案의 노래로는 市原王의 작품이 뛰어나 있다• 首數논 長歌 27 首, 旋頭歌 l 首, 短歌 132 首로 전체 160 首에 이 론 다. 작가는 다음과 같다. 笠金村 • 車持千年 • 山部赤人 • 膳王 • 石川足人 • 大伴旅人 • 小野 老 • 宇勢男人 • 葛井廣成 • 大伴坂上郞女 • 兒島 • 高橋虫磨 • 聖武天 皇·安倍廣庭·神社老磨·山上憶良·安倍虫磨·大宅·湯原王·藤原 八束·市原王·紀鹿人·大伴家持·海犬 器岡磨 ·船王·守部王·安倍 幾繼 • 核作益人 • 思部黑鷹 • 橘奈良磨 • 門部王(大原門部) • 橘文成 • 榎井王 • 元興寺의 僧 • 石上乙磨 • 橘諸兄 • 巨曾部對 馬 • 惡島采女(或 本에서는 三方沙彌) • 円比屋主 • 大伴東人 • 高丘(樂浪)河內 • 田邊福磨 〈卷七〉 雜歌 • 뽑 l 兪歌 • 換歌의 3 부 구성이니, 이 접은 卷三과 감으나 큰 상이접도 있다. 그것은 첫째 전부가 작자불명의 노래인 것, 雜歌部 의 4 분의 1 이 諒物歌이 며 , 또 뿜'兪歌部 에 旋頭歌 1 首를 제 의 한 나 머지 전부는 寄物의 題目울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長歌가 없다 논 접둥이다. 雜歌에는 諒物外에 旅行 • 問答 • 隨時作이 있고, 또 旋頭歌 24 首 의 집단이 있다. 卷十一의 卷頭에 실려 있는 17 首(이 중에 12 首는 人 磨歌集 에서 轉載)의 집단보다 더욱 많으며, 따론 卷에서는 볼 수 없 다. 이 중 23 首논 人磨歌集에서 가져온 것이다. 쁩兪歌部 는, 마지 막에 있는 旋頭歌 외 는 〈寄友〉 • 〈寄山〉 따위 의 題가 있고, 이러한 제목은 辭書의 분류와 바슷하나 배열은 반드시 정 연한 것 이 아니 다. 換歌部의 최 후에 器旅歌 1 首(1 417) 가 실려 있 거니와 이것은 雜歌部에 들어갈 것이 漏落되어 卷末에다 補入된 것 임이 확실하다. 작자는 거 의 전부가 불명 한데 , 다만 1195 歌의 左注에 〈右 7 首는 藤原卿作〉이라 보이는 것이 예의이다. 藤原卿이 누구인가는 미상이 다. 이 卷에 는 人磨歌集에 서 가쳐 온 것 이 많으나, 전부가 人磨의 노래는 아니라 할지라도 그의 작품이 대부분임은 명백하다. 首數논, 雜歌部에 旋頭歌가 25 首, 短歌 203 首, 뺨 l 兪歌 部에 는 旋
頭歌 1 首, 短歌 107 首, 換歌部에 는 短歌 14 首, 합계 하면 旋頭歌 26 首, 短歌 324 首이 다. 編集에 있어서 人磨歌集 의에 古渠 • 古 集歌 둥이 이용되었는데, 人 磨歌菓 으로부터 는 56 首, 古 集 • 古歌集으로부터 는 54 首를 傳載해 온 것이다. 〈卷八〉 노래 를 四季로 나누어 각 季마다 다시 雜歌와 相聞으로 분류하였 다. 이것은 새로운 분류법으로, 平安朝 이후의 歌集 에 四季가 분류 상 가장 중요시되던 관습의 先額울 지은 것이다. 『萬葉集』에는 이와 같은 분류를한것이 卷十이다. 卷十에서는 諒物 • 寄物에 의해서 노 래를 배열하고, 作家 • 作歌 사정 • 연월 둥의 기재가 극히 소량인데 비하여, 이 卷에서는 작자를 보아고, 때때로 作歌 사정 및 作歌 연 월일을 기록하여 놓았다. 首數논, 春 의 雜歌에 長歌 2 首, 短歌 28 首, 春의 相聞에 長歌 1 首, 短歌 16 首, 夏 의 雜歌에 短歌 33 首, 夏의 相聞에 長歌 1 首, 短 歌 12 首, 秋의 雜歌에 長歌 l 首, 旋頭歌 3 首, 短歌 91 首, 秋의 相 聞에 長歌 1 首, 旋頭歌 1 首, 短歌 28 首, 冬의 雜歌에 短歌 19 首, 冬의 相聞에 短歌 9 首이 니 , 이 상 長歌 6 首, 旋頭歌 4 首, 短歌 236 首이다. 다음에 작자를 보이면 아래와 같다. 志貴皇子·鏡王女·駿河采女·尾張連·阿倍廣庭·山部赤人·大伴 坂上郞女·大伴三林·厚見王·大伴村上·大伴駿河磨·中臣武良自. 河邊東人 • 大伴家持 • 丹比屋主 • 丹比乙磨 • 高田女王 • 大伴田村大 娘 • 笠女郞 • 紀(小鹿)女郞 • 笠金村 • 藤原廣嗣 • 久米女郞 • 藤原夫人 (大原大刀自) • 弓削皇子 • 廣湘王 • 刀理宣令 • 石上堅魚 • 大伴旅人 • 小治田廣耳·大伴 書 持·大伴淸繩·菴諸立·高橋虫磨·大伴四繩·紀 農河 • 高安 • 大神女郞 •• 岡本天皇 • 大津皇子 • 稙積皇子 • 但馬皇女 • 山部王·長屋王·山上憶良·石川老夫·藤原宇合·緣達·聖武天皇. 三原王·湯原王·市原王·藤原八束·紀鹿人·大伴稱公·安貴王·료 部黑磨·丹比國人·巫部麻蘇娘子·日置長枝娘子·大伴利上·巨曾部 津島 • 阿倍虫磨 • 文馬養 • 橘奈良磨 • 久米女王 • 長思寸의 娘·縣犬~ 吉男·縣犬 養 持男·三手代人名·奏許過磨·大伴池主·大伴像見·石
川廣成 • 大原今城 • 額田王 • 鏡王女 • 丹比眞人 • 丹生女王·笠縱女王· 石川賀係女郞 • 賀茂女王 . 1 京橋部女王 • 樓井王 • 山口女王 • 大 ‘ (半坂上 大娘·安倍女郞·舍人娘子·元正天皇.角廣辨·安倍奧道.若樓部君 足 • 三野石守 • 巨勢宿奈磨 • 小治田束磨 • 他田廣津婚子 • 縣犬義娘 子 • 三國人足 • 藤(藤原)皇后(二光明皇后). 〈卷九〉 이 卷 편찬의 독색 은 『萬葉集』 이 전의 歌集인 『人磨歌集』 • 『虫唐 歌渠』 • 『古集』 • 『金村歌集』 • 『福磨歌菜』 동에서 채 록했을 분 아니 타 注記에는 『類衆歌林』까지 이용한 데 있다. 卷의 구성은 卷一 • 二를 합병한 듯한 체제로 雜歌 • 相 Im • 換歌의 3 부로 되어 있다. 이같이 3 부를 구비하면서 딴 부류는 없는 체제는 이 권의에는 찾아볼 수 없다. 雜歌는, 雄略御製라 전하는 것과 岡本天皇 시대의 노래로 시작하 여, 藤原房前집에서 베푼 「七夕의 노래」로 끝을 맺고 있다 . 相聞部 에는 振田向과 拔氣大首의 노래며 田邊福磨歌集의 노래를 내포해 있고, 換歌部에는 人鷹歌集에서 시작하여 虫磨歌菓의 노래로 끝을 맺고 있다. 首數는, 雜歌에 長歌 12 首, 旋頭歌 1 首, 短歌 89 首, 相聞에 는 長 歌 5 首, 短歌 24 首, 換歌에는 長歌 5 首, 短歌 12 首가 실려 있어, 모두 長歌 22 首, 旋頭歌 1 首, 短歌 125 首이 다. 작자는 다음과 같다. 雄略天皇 • (長意吉磨) • (坂上人長) • 間人宿彌 • (柚本人磨歌菓) • 棟 本 • 山上(憶良) • (河 島皇子) • 春日(老?) . 高市(黑人 ?) . 小辯 • 元仁· 綱 • 島足 • 磨(人磨 ?) • 丹比眞人 • 石河卿 • 藤原宇合 • 基師·伊保磨 • 大和 • 川原 • (高橋虫磨歌集) • (柚本人磨) . 沙彌女王 • 振田 向 • 拔氣大 首 • (古集) • 阿倍大夫 • 藤井連 • (笠金村歌菓) • (田逃福磨歌集). 이 밖 에 娘子와 遣唐使의 母가 있다. 〈卷十〉 노래를 四季로 나누되 각 季를 다시 雜歌와 相聞으로 분류하였 다. 이같은 분류는 『萬葉集』에 있어서 색다른 것이어니와, 平安朝 이후에 나온 歌集에서 四季로 배열하는 것이 중요한관례가되던 것 의 선구를 이룬 것이다. 『萬葉集』에서 이미 卷八에서 이 수법이 시
도되고 있거니와, 거기서는 작자를 명기하고, 作歌의 사정이나 제 작년월동이 불충분하나마 기재되어 있고 배열도 연대순으로 하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였는데, 卷十에서는 대체로 諒物(四季雜歌) • 寄物 (四季相聞)에 의하여 배열하였다. 작자는 거의 불명하며, 2315 전次 의 左注에 三方沙彌作이란 기록이 보이는 의에는 柚本人磨歌集과 古歌 集의 이름이 보일 분이다. 作歌 사정도 부족하고 筑波山에서의 作이 니 (1838), 問答이 니 (18 41 ), 和答이 니 (1 927·2308) 등의 左注가 보일 분 이며, 제작년대에 대해서는 庚辰年作 (2033) 이란 한자리가 있을분이 다• 諒物 • 寄物에 의한 배열은, 이미 卷七의 雜歌 • 뽕兪歌에 보이 며, 辭書類의 天象 • 地理둥의 분류의 영향이 엿보였던 것인데, 이 卷에서도 마찬가지로 배열순이 辭 書 에서와 같고자 한 듯해도 그러 나 정연치는 못하다. 諒物 • 寄物에 의한 분류 • 배열은 全卷에 걷쳐 철저하지는 않다. 春의 雜歌 • 相聞, 夏의 雜歌, 秋의 相聞에는 이 의의 제목도 들어 있다. 그 중에 春 • 夏의 雜歌部에 각각 1 首의 啓'兪歌가 있다. 그리 고 問答이 春의 相聞 • 夏의 雜歌 • 秋의 相聞에, 旋頭훈k 가 春의 雜 歌 • 秋의 相聞에 각각 제목으로서 끼어 있음이 異色이다. 『古歌祭』으로부터 長歌와 反歌가 各 1 首, 『人磨歌集』으로부터 는 短歌 68 首가 각각 채록되어 있다. 首數믈 분류벌로 보면 春의 雜歌 에 旋頭歌 2 首, 短歌 76 首, 春의 相聞에 短歌 47 首, 夏의 雜歌에 長 歌 l 首, 短歌 41 首, 夏의 相聞에 短歌 17 首, 秋의 雜歌에 長歌 2 首, 短歌 241 首, 秋의 相聞에 旋頭歌 2 首, 短歌 71 首, 冬의 雜歌에 短歌 21 首, 冬의 相聞에 短歌 18 首이다. 통털어 長歌 3 首, 旋頭歌 4 首, 短歌 532 首, 총 539 首로 『萬葉集』 각 卷 중에 가장 首數가 많다. 계 철 벌로 보면 春 125 首, 夏 59 首, 秋 316 首, 冬 39 首이 다. 〈卷十一·十二〉 이 兩卷은 목록에 〈古今相聞往來歌類之上〉, 〈同下〉라 있으니 , 목 록 편성에 있어서 한 짝을 짓고자 한 것임을 알수있다. 그러나 兩 卷의 분류를 보면 각 卷이 서로 같아서 그 접은 卷一과 二가 합하 여 雜歌 • 相聞 • 換歌의 3 부로서 구비되는 것과는 다르다. 卷十一은 旋頭歌 • 正述心緖 • 寄物陳思 • 問答 • 正述心緖 • 寄物陳
思 • I 법答 • 普 II 兪라 部類를 세웠고, 卷十二는 正述心*lli • 寄物陳思 • 正述心*t5i • 寄物陳思 • 問答歌 • 腦旅發思 • 悲別歌 • 問答歌라 部類를 세웠는데, 공동된 部가 넷이나 있다. 한편 旋頭歌 • 뿡 II 兪歌는 卷十 一분이고, 腦旅發思 • 悲別歌는 卷十二분이다. 이 사실온 兩卷이 동 시에 上 • 下로서 편찬한 것이 아니고, 조 卷十二가 먼저 편 卷十一 을 맹목적으로 추종한 것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다. 正述心緖 • 寄物陳思가 두 번씩 중복해서 나온 것은, 人) 魯歌染 에 서 채록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하기 때문이며, 問答도 두번 씩 나오거니와, 卷十一의 것은 人磨歌菓과 그렇지 않은 것의 구벌 이며, 卷十二의 것은 여행의 이벌에 관계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의 구벌이다. 분류명 가운데 正述心係者 • 寄物陳思논 딴 卷에는 없 다. 전체로는 相聞이니까 이것은 그 가운데 드는 소분류가 된다. 武田祐吉博士 10) 는, 正述心緖 • 寄物陳思 • rr rj答歌 • 旋碩歌둥의 분류 명은 人磨歌 集 에서 나온것이라하였다. 그 까닭은 卷十一의 寄物陳 思歌가 人磨歌集所出 것 과 出所不明의 것 과의 배 열 법 이 다르니 , 그 러므로 이같은 분류법은 이미 人磨歌集에 있었다는 것이다.
10) 『 萬葉菜全莊釋』
兩卷에 나오는 寄物陳思歌의 寄物에 取題된 物名울 보면 아래오卜 같다. 卷十一 (人磨歌다 £ 所出) 神 • 天地 • 山 • 川 • 海 • 沼 • 地 • 岩 • 白玉 • 雲 • 霧 • 雨 • 霜 • 風 • 月 • 草 • 茅 • 百合 • 知草 • 山高 • 菩 • 菅 • Lt t 草(下草) • 牌 • 山菅 • 小竹 • 혼 h 葛(남오미자) . 老師 • 大野 C t뿡) • 玉 溪 • 松 • ts 0 (1)木 • 橘 • 鶴 • 盤;® • 鳩鳥 • LL( 猪鹿) • 船 • 蠶 • 肥 人 • 卑人 • f.R刀 • 黃楊柳 • 眞澄鏡 • 黃楊沈 • 衣 • 粹弓 • 占, (出所不明) 衣.紙·帶.沈·眞澄鏡·線刀·弓.賊·燈·廷.橋·柚·返子.東 細布 • 墨繩 • 紋火 • -t2!板(小板) • 華火(屋) • 馬 • 道 • 神(社) • 月 • 雲 • 風 • 霧 • 雨 • 露 • 霜 • 地 • 山 • 潟 • 源 • 淵 • 川 • 沼 • 川 • 淵 • JII (波) • 沼 • 池 • 井堤 • 笠 • 埋木 • 木積 • 海(浦) • 波 • 細砂 • 海人 • 舟· 橘.松·合歡木·久木·小竹.茅·鴨頭草.菅•夢.惠具.菅·似兒 草 • 草 • 鷹 • 橘 • 白菅 • 夏草 • 柴 • 菅 • 竹 • 小竹 • 葛 • 草 • 芝草 • 森 • 繩苦 • 溪 • 花 • 幹藍 • 花 • 山吹 • 玉(l)緖 • 岩 • 貝 • 蜀 • 鷄 • 猪
鳥 • 山鳥 • t오-/.J,.-S::(황조어) • 鶴 • 鴨 • 千鳥. 卷十二 (人磨歌媒所出) 衣(紙) • 道 • 社 • 日 • 風 • JII • 松 • 菅. (出所 不明) 衣 • 下紙 • 帶 • 紙(下 m) • 與澄鏡 • 紙 • 劍 • 粹弓 • 絡埃 • 蠶 • 擇·殺.鷹·木綿.橋·船.田·夕日.月·眞土山.JII.池 . 沼 .rl b 江 • 垂水 • 波 • 海(浦) • 袁 • 煙 • 霧 • 霞 • 露 • 霜 • 雨 • 松 • 探柴 • 樓麻·茅.菅·草.茅·鴨頭草·不忘草·目躍草.菅·葛.唐棟草. 藤 • 莫告溪 • 玉 溪 • 繩苦 • 玉之緖 • 忘貝 • 朝影 • 桑子여잡) • 千鳥 • 鳥 • 鴨 • 菅 鳥 • 鷄 • 賜 • 馬 • 鹿 • 眞鳥. 분류별 首數는 아래와 같다. 卷十一旋頭歌 17 首(1 2 首는 人 磨歌菓 , 5 首는 古歌集), 正述心緖(人磨 歌菜 ) 47 首, 寄物陳思(人 應歌W:) 94 首, 問答(人曆歌集) 9 首, 正述心緖 104 首, 寄物陳思 193 首, 問答 20 首, 뽑I@< 13 首, 正述心緖 151 首, 寄物陳思 287 首, 問答 29 首, 이 상 총 497 首• 卷十二 正述어者(人 磨歌菓) 10 首, 寄物陳思(人磨歌 菜 ) 14 首, 問答 젼~ 26 首, 器旅發思 53 首(人 磨歌菓 4 首), 悲別歌 31 首, 問答歌 10 首, 正述나者 llO 首, 寄物陳思 153 首, 問答歌 36 首, 이 상 총 383 首. 이와 같이 卷十一 • 十二는 모두 奈良時代 초기의 노래들이다. 歌 風으로보면 明日香.藤原에서 奈良前期까지 것이다. 〈卷十三〉 雜歌 • 相聞 • 問答 • 管 I 兪歌 • 換歌의 5 부로서 구성되어 있다. 『萬葉 集』의 基幹的 구성에다가 問答과 뽑 '兪歌라는 準基幹的 부문을 첨가 한 것이니, 卷十.十一.十二에 비하면 가장 정비되어 있다. 首數로는 雜歌에 長歌 16 首, 旋頭歌 1 首, 短歌 10 首, 相聞에 長 歌 29 首, 短歌 28 首, 問答에 長歌 7 首, 短歌 ll 首, 番兪 歌에 長歌 1 首, 挑歌에 長歌 13 首, 短歌 ll 首, 이 상 총 합계하면 長歌 66 首, 短歌 60 首, 旋頭歌 l 首이다. 長歌에는 反歌가 수반하지 않는 것이 있는 일방, 短歌 • 旋頭歌는 모두가 反歌 11) 이다. 그것은 이 卷이 長 歌集인 까닭이다. 旋頭歌가 反歌로 되어 있는 것은 (3233 歌) 『洪葉 操』 중에 오직 이 한 例분이다• ll) ^ y 力, 또는 /J•:tl., ? t-:라고도 함. 短歌의 一種. 長歌가 끝난 귀에 添 hn 하는 데, 앞 長歌의 大갔를 縮約하거나, 또는 反復하기도 하고 대로는 補足합 .
이 卷에서 주목을 :n.는 것은 反歌에 대한 문제이다. 이 卷만큼 長歌와 反歌의 관계가 부자연한 것은 없다. 그것은 원래 反歌가 없 던 長歌에다가 누리하게 꿰어맞추었기 때문이다. 제작년대의 明記가 없다. 賀茂眞淵는 允恭天皇 시대로부터 奈良 朝 초기까지의 作이며, 卷一.二에 다음가는오래된卷이라하였다. 〈卷十四〉 卷頭에 東歌라 題하고서 5 首물 기재하고, 다음에 相 OO 이라 하여 노래를 들고 있다. 東歌라는 것은 이 卷 전체의 표제이다. 그러니 까 東歌라 쓴 다음에 雜歌라 小題롤 쓰고서 5 首의 노래 가 와야 명 확한 것이다. 그러니까 卷十四는, 雜歌 • 相聞 • 뿡'兪歌 • 雜歌 • 相 聞 • 防人歌 • 뽑'兪歌 • 晩歌라는 분류가 된다• 같은 部名이 重出하는 것은, 처음 3 부는 국명이 판명된 노래, 다음 5 부명은 국명이 불분 명한 것을 따로 묶어서 기재한 까닭이다. 雜歌논 上總 • 下總 • 常陸 • 信淡, 相聞은 遠江 • 駿河 • 伊豆 • 相 模·武藏·上總·下總·常陸.信誤·上野 • 下野 • 陸奧, 뽑 哈歌는 遠江 • 駿河 • 相模 • 上野 • 陸奧의 各國의 노래들이다. 지역에 의하 여 노래를배열한 것은 다른 卷에서도 부분적으로 있기는하였으나, 東 (a-du-ma) 이란 지역명으로써 총괄하고, 또 국명의 明, 不明으로써 나눈 다음에 각국별로 노래를 보인 예는 딴 卷에서는 볼 수 없다. 首數는 國名 判明部의 雜歌에 5 首, 相聞 81 首, 管'兪歌 9 首, 未判 明部의 雜歌에 17 首, 相聞 115 首, 防人歌 5 首, 뿡 FL 兪歌 5 首, 換歌 1 首로, 합계 238 首인데 모두 短歌이 다. 작자나 作歌 연대가 미상인데, 이는 원래 口踊의 노래인 까닭이 다. 〈卷十五〉 이 卷은 部의 분류가 없다. 이 접, 지금까지의 卷과는 다르며, 卷十七이하의 四卷과 같다. 그러나 그 네 卷처럼 諒作한 연월일의 기사는 없다. 全卷이 오칙 하나의 歌群으로서 구성되어 있으나 내 용상이 歌群은성격을 달리하는 두 素材를 내포하고있으니, 그 하 나는 天平 8 년 (736), 신라에 파견되었다가 이듬해 귀국한 사철 일행 이 왕복 도상에서 지은 노래 (신라에서의 작품은 없고, 歸路時의 作도
적음)와, 출발시 및 행선지에서 踊諒한 古歌로서 구성되어 있는 것, 또 다른 하나는, 中臣宅守가 天平 11 년(1 740) 경 越前에 유배되었을 때 , 陝野弟上娘子와의 사이 에 贈答한 것 들이 다. 이 卷의 또 하나 다른 독색은 목록이 상세하다는 것이다. 딴 卷 의 경우, 목록이 메로는 본문의 題詞 • 左注와 서로 모순되는 수가 있었지마는, 이 卷은 그러한 점이 없을 분 아니라, 본문보다 더 상 세한 경우도 있고, 신라에 파견되던 연월이라던가, 宅守流配에 대 한 사실도 목록에 의해서 비로소 알게 된다. 제작년대에 대하여 보면, 傳踊古歌는 제의하고, 遣新羅使節관계 의 노래가 天平 8 년 후반에서 同 9 년 봄까지의 것임은 旅程으로서 명백하다 . 宅守와 娘子와의 相聞歌群은 유배에 대한 추정 年次로 보아 天平 10 년대 전반이 타 보아진다. 造新羅使節 의 노래에는 사명감에 의해 고무된 듯한 내용은 담겨 져 있지 않다. 이 접에 대해서, 高木市之助 12) 는 〈조정의 意志에 감 정적, 소극적으로 반발하는 萬葉人의 민족적 의지가, 그들의 노래를 過劍하게 寂察우울하게 만들었다〉고 하였으며, 또 〈그 당시의 和歌 의 通性이란 개개인의 십정을 담는 具이며, 이 歌群울 성립시킨 大 伴三中의 자기 처에 대한 맹서가 歌群울 궤뚫고 있으므로 相聞性이 主題가 되 어 있다〉(迫徹郞說)고도 보고, 또 탈리 〈그 당시 신라의 정 세나 일본과의 의교관계 및 일본 국내에 있어서의 律令체재의 동요 동을 아울러 생각해 볼 때 이 遣新羅使節이 처음부터 민족의지에 것 어 있었거나 의기가 솟아나거나 하는 따위는 없었다〉(武者小路實說) 고 보고 있다. 宅守의 相聞歌群에 대해서는, 娘子의 작품이 뛰어나 다는 것이 정평이다. 굳샘과 섭제함의 양면을 구비하고 표현력이 풍부한 접으로 보아 『萬葉集』에 나오는 有數歌人의 한 사람이라 할 수있다. 首數는 長歌 5 首, 旋頭歌 3 首, 短歌 200 首, 총 208 首이 며 이 가운 데 短歌 63 首가 宅守에 관한 것 이 다. 作者는 아래 와 같다. 秦間滿(田磨 ? ) . 柚本人磨 • 壬生宇太磨 • 大石芸磨 • 丹比大夫 • 田 邊秋庭 • 羽栗 • 雪宅磨 • 阿倍繼磨 ·大使의 二男 • 土師稱足·娘子. 12) 『萬葉菜』 四 (『 日 本古典文學全染大系』 解說. )
葛井子老 • 六緖 • 大伴三中 • 大藏磨 • 玉機 • 中臣宅守·~野弟上娘子. 〈卷十六〉 이 卷에 보이는 부류 명칭에 〈有由緣祥雜歌〉라 있는데, 목록에는 〈有由緣雜歌〉라 있어, 이의 해석을 놓고 몇가지 견해가 있다. 즉 有由緣歌 • 雜歌의 뜻으로 解하는가 하면, 쓰인 그대로 〈有由緣雜歌〉 로 보는 견해도 있다. 전자로 본다면 처음에 〈有由緣歌〉라 하고, 卷 도중 어던가에 〈雜歌〉란 標目이 나타나야 하는데 그러한 것이 없다. 그러나 걷국 卷十六 전부가 〈有由緣雜歌〉 즉 〈由緣이 있는 雜歌〉로 보아야 할 것 같으나, 다만 〈並〉字가 이 견해를 불허한다. 요는 〈有由緣〉을 무슨 까닭이 있다는 뜻으로 보고, 〈雜歌〉란 것도 卷一 • 三 • 六과 같은 궁정적인 노래라는 성격과 卷八 • 十의 도회적 인 風雅둥과는 다른, 勅撰染의 雜部란 뜻으로 解할 수밖에 없다. 이 卷에는 題詞 • 左注에서 상세하게 作歌 사정을 기술한 것이 많 아, 뒤에 가서 나타나는 설화의 鑑觸이 되어 있으며, 唯笑歌 • 戱笑 歌類논 俳諸歌나 狂歌에, 諒數種物歌논 物名歌 13) 에, 無心所著는 連 歌에로 맥락이 이어간 것이니, 소위 名歌는 없으나 문학사적으로는 홍미있는 卷이다.
13꾼) 亂7· h) 남/ 조4 〉力 . 和歌나 俳諸(말이나 뜻에 滑稽味 있는 和歌) 속에 그 노.태.나.. 句 의 意 味와논 관계없이 物名울 나타내는 것. 例, 空禪 (17-;/ 七 紅)를〈浪 0 打?源見 hl f玉
노래의 제작 연대는 명기되어 있지 않지마는, 불리운 지명이나 작자의 생촌 연대로서 明日香 • 藤原時代까지 치올라 가는 노래도 있다. 下限은 天平 16 년 (744) 說이 유력하다. 首數는 長歌 8 首, 旋頭歌 3 首, 佛足石歌體歌 1 首, 短歌 92 首, 합 계 104 首로, 卷一 다음으로 적 다. 작자는 아래 와 같다. 陸奧國의 前의 采女 • 車持氏의 娘子 • 稙積親王 • 兒部女王 • 椎野長 年 • 長意吉磨 • 思部首 • 境部王 • 消奈行文 • 右兵衛(姓名未詳) • 安倍 子祖父 • 池田朝臣 • 大神奧守 • 平群朝臣 • 糖積朝臣 • 土師水道(志碑 窟) • 巨勢豊人(正月磨) • 檀越 • 法師 • 思部黑磨 • 大伴家持 • 高宮王 • 佐爲王의 近習의 牌 • 志賀의 白水郞의 妻子(或云, 山上憶良) • 豊前國 의 白水郞 • 豊後國의 白水郞. 〈卷十七〉
이 卷 이하 四卷은 家 持의 歌諸 日記라 일컫는 것으로, 卷十六의 遣 新 羅 使節의 歌 群 울 기행문학이라 하는데 대하여 이 四 卷 은 일기 문학의 溫 觸 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일기라 해도 月 日이 계속하여 있는 것이 아니고, 결여된 것도 꽤 많은 것이다. 일기라 불리우는 만큼 노래의 배열은 연월에 따른 것이며, 四卷은 모두 部를 세운 분류를 하지 않고 있다. 全卷에 걸쳐 家 持의 歌文 및 漢 詩를 주로 실었다. 그가 남에게 준 노래, 傳 聞한 노래, 연회둥에서 그와 동석한 사람들의 作 歌 와 口 踊 한 노래들을 때에 따라 기재했으며, 그 뒤에 가서 손을 대기도 하고 팔사한 듯하다. 이 사이 사정에 관한 諸說이 있다. 四卷울 통하여 家 持가 越 中(지금의 富 山縣)에 부임한 뒤의 歌人으 로서 성장해 나간 자취며, 그와 그의 주위 여러 사람들의 작품 및 제작의 場 에 의하여 『 萬葉集 』 第四期의 목색등을 더듬을수 있는것 이다. 卷十七은 天平 2 년 (730) 11 월부터 天平 20 년 (748) 봄까지 의 작품 을 수록하였다. 日附의 최후는 天平 20 년 정월 29 일이거니와, 그 다음에는 出 擧 時의 노태, 鷺 의 노태, 造酒歌동이 실려 있고, 다음 卷十八의 처음이 3 월 23 일의 노래가 있음으로 해서 20 년 봄이 卷十 七의 마지 막임 을 알 수 있다. 家持가 越中에 부임 (天平 18 년 7 월) 이 전의 여러 사람의 노래는前前卷의 補遺로 卷頭에다가 실은 듯하며, 대 부분은 越 中시 대 의 것 이 다. 특히 주목을 ::n.는 것은, 家持와 池主 와의 사이에 贈答한 修飾이 넘치는 한문( 書 簡)을 붙인 노래와詩다. 이러한 것들은 문학적 가치는 그다지 높다고는 할 수 없으나, 창작 의 욕이 드높음을 나타내 고 있다. 天平 19 년 (747) 2 월 29 일 • 3 월 2 일 ~5 일 • 4 월 24 일 • 同月 26 일 ~28 일 • 同月 30 일 • 5 월 2 일 (11 일간)이 란 짧은 시일동안에, 家持가 文 章 3, 長歌 4, 短歌 11, 漢詩 1 을 지었 고, 池主는 文 章 3, 長歌 4, 短歌 9, 漢詩 1 의 업청난 양의 詩歌를 보내 고 있다. 이 와 같은 왕성 한 의 욕으로써 放逸한 鷹 의 노래 (4011, 105 句), 기 타의 長歌와 反歌를 많이 창작한 것 이 다. 작자는, 三野石守·大伴家持·大伴 書 持·境部老磨·田口馬長·山 部明人·橘諸兄·紀淸人·紀男 W· 葛井諸會·大伴坂上郞女·平群女
郞 • 大伴池主 • 秦 八千 島 • 大原 高 安 • 土師道良 • 內藏繩廢 • 石 )|I 水 通 • 高市黑人둥이며, 傳踊者에 玄勝 • 大伴池主 • 三國 五百 國 이 있다. 首數논 長歌 14 首, 旋頭歌 1 首, 短歌 127 首, 합계 142 首. 이 밖 에 漢詩 2 首, 習 簡 및 詩序 등 6 이 있 다. 〈卷十八 〉 天平 20 년 (748) 3 월 23 일에서 天平勝寶 2 년 (750 ) 2 월 28 일까지 것 울 수록하고 있나 이 기간 중에 노래가 나타나지 않는 시기가 보 인다. 죽 4072 노래는 天平 20 년 (748) 4 월 作이고, 4073 노래는 登年 (749) 3 월 15 일 作이니, 거의 1 년간의 공백이 있다. 작자는, 田邊福磨 • 大伴家持 • 土師 • 久米廣繩 • 橘諸兒 • 元正天 皇 • 河內女王 • 栗田女王 • 山上臣(或云, 憶良의 子) • 能 登 乙 美 • 大伴 池主 • 大伴坂上郞女 • 內藏繩磨 등이고, 傳踊者에 田邊福 唐 가 있다. 首數는, 長歌 10 首, 短歌 97 首, 합계 107 首로, 卷一 • 十六에 다 음 가는 적은 분량의 卷이다. 〈卷十九〉 天平勝寶 2 년 (750) 3 월 1 일로부터 天平勝費 5 년 (753) 2 월 25 일까 지 것을 수록하고 있다. 卷十七 • 十八에도 古歌의 傳踊이 있었거니 와, 이 卷에서는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가장 오래된 것은 壬 의申 의노 래亂 (죽41후39의— 41것5 0 (,4 24602 9노0래-4)2이92 ) 있는다, . 贈卷與頭나와 案 卷席末에에 서 실흥려을 있돕는기 家위 持한 따위의 노래가 아니고, 獨居한 가운데의 십경을 섬세하게 부론 노 4똑다태1.똑안9 8하데•이4 게1밖6그 3에의·나4 1 세타6최6 난상-고4의 1 것6 작8 (무·44품12상이6544함며—-4 ,을421 5 66 5노·)4萬,래2 갭6 둘한6代의— 作 4것2노歌 6( 47래와1),6에 0豫 — 助新作41詞境歌6 2 地 )(생, 4 롤1략憶6 9의良-터 4의1놓7것 0은 (·영44 11향것6947이이 ―— 4165 左注) 등, 모두 家持 작품 중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들이다. 독히 代作의 노래는 자주 作歌 태도의 타락이 지적되어 왔거니와, 확실히 第一義의 노래라고는 할 수 없으되, 자기의 처를 위한 代作
이고 보면 그다지 탓할 바가 못될지도 모론다. 또 豫(~·預)作歌는 卷十八에 5 首 (4098 ― 4100, 4120-4122), 卷二十에 l 首 (4494) 가 있는데 모두 家持의 작품이다.卷末에 작자명을 명시하지 않은 노래들은 大伴 家 持가 지은 것이 라는 注가 있고, 또 全卷의 체재, 용법등을 아울러 고려해 불 때, 卷十七 이하 四卷중에서 이 卷이 가장 家持의 手記다운 면모를 갖 춘 것이라 할 수 있다. 작자는, 大伴家持•內藏繩磨·久米廣繩·久米繼磨·惠行·大伴坂 上郞女 • 光明皇后 • 三形沙彌 • 蒲生娘子 • 縣犬義橘三千代 • 藤原淸 河·藤原仲磨·多治土作·阿倍老人·大伴御行·多治比底主·孝謙天 皇 • 聖武天皇 • 橘諸兄 • 藤原八束 • 巨勢奈료磨 • 石川年足 • 文室智 奴 • 藤原永手 • 船王 • 大伴黑磨 • 石上宅嗣 • 茨田王 • 道祖王 둥인데, 傳踊者에는 河邊東人·笠子君·久米廣繩·蒲生·高安種磨·船王. 中臣淸磨 • 大伴村上 • 大伴淸繼 등이다. 首數는, 長歌 23 首, 短歌 131 首, 합계 154 首인데 , 이 중에 家持 는 長歌 17 首, 短歌 86 首를 차지 하고 있 다. 〈卷二十〉 天平勝寶 5 년 (75~) 5 월에서 天平寶字 3 년 (759) 정월 1 일까지를 수 록하고 있다. 末尾에는 家持의 작품으로 『萬葉集』에서 가장뒤의 作 이다. 傳踊古歌 중에는 天平元年 (729) {伸이라 명기한 것이 있다 (4455 -4456). 이 卷의 특색 은 防人歌 다수와 家持의 노래 가 서 로 대 조를 이루고 있다는 접이다. 防人歌는, 長歌 1 首, 短歌 83 首를 天平勝寶 7 년 (755) 2 월에 部領 使룰 거쳐 兵部少輔인 家持에게 進達된 것과, 短歌 8 首를(이것은 옛 날 지어전 것) 磐餘諸君이 家持에게 준 것, 그리고 「昔年相替한 防人 歌」란 1 首 둥이 있다. 『萬葉集』에 실려 있는 防人歌는, 卷十四에 短 歌 5 葛 卷十三에 長歌 1 首, 短歌 1 首가 있을 분인데 비하면, 卷二 十의 防人歌에 관한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卷十三 • 十四에 있는 노래와 卷二十의 「昔年의 防人歌」는 작자불명이나, 天平勝寶 7 歲의 것은· 작자명이 기재되어 있다. 노래의 작자로서 서민의 이름 이 이처럼 많이 남아 있는 것은 다른데에 그예가 없다. 또 徵集되 어 防衛를 위하여 나아갈 때의 노래는, 간 和歌史에 있어서 근대 이 외는 벌반 없다. 이같은 귀중한 노래들을 기록한 것만으로도 이 卷 온 귀중한 것이다.
작자는, 元正(一說 元明)天皇 • 舍人親王 • 大伴池主 • 中臣淸腐 • 大伴家持 • 大伴千室 • 大伴村上 • 置始長谷 • 防人(八十一名, 姓名略) • 安倍沙彌磨·薛妙觀.石川邑婆.上總國의郡司의妻·大原今城.丹比 國人·橘諸兄·船王·安宿王·馬國人·安宿奈村磨·山背王·圓方女 王 • 大原樓井 • 藤原夫人(氷上大刀自) • 藤原執弓 • 淳仁天皇 • 藤原仲 磨 • 三形王 • 甘南備伊香 • 石川女郞 • 市原王둥이며, 傳踊者에는 山 田土磨 • 安宿王 • 大原今城 • 大伴池主둥이 있다. 首數는, 長歌 6 首, 短歌 218 首, 합계 224 首인데 , 長歌는 5 首가 家持의 작품이다. 4. 萬葉時代의 구분 (1) 시대구분 『萬葉集』속에 포함된시대는매우길다. 노태 중에는제작년대가 불분명한 것이 상당히 많으나, 시대가 명기된 것울 중십으로 해서 보면, 卷二의 初頭에 나오는 仁德天皇時代 (313~399) 의 L`磐b0姬DD皇0*后# 혼의근 r 노태라 전하는 것이 가장 오래고, 卷二十의 卷末에 있는 家持의 天 平寶字 3 년 (759) 정월 1 일 作이 가장 새로운 것이 된다. 그 사이 약 450 년아란 간 기간이 萬葉時代라 할수 있으나, 실상 仁德天皇에서 推古天皇 (352~628) 까지의 노래는 지극히 적고, 게다가 그들 작자에 관해서도 의십스러운 접이 많아, 전정한 의미의 萬葉時代는 舒明天 皇 (629~641) 으로부터 淳仁天皇의 天平寶字 3 년에 이 르는 약 130 년 간으로 보는 것이고, 정치적으로는 大化改新의 직전에서 奈身時代 의 중기까지이니, 이것이 거의 학계의 정선이 되어 있다. 이상과 같은 건 기간 동안에 걷찬 『萬葉集』의 노래는도처히 일괄 해서 볼 수는 없음으로 해서 몇 시기로 구분하여 봄이 편리하고 또 타당하다. 그 구분이란 몇 가지 규준이 있겠으나, 대체로 유력한 歌人이 활동하던 시기, 歌風이나 작품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정치 적 • 사회적 정세등을 규준으로 삼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러한 것을 규준으로 삼을 때, 먼처 奈良에 천도하던 시기(和銅 3 년, 710) 를 경계로 하여 전기 • 후기로 나눈다. 그리고 전기는 다시 推古天
皇 시 대 까지 를 萌茅(先塀)期로 보고, 舒明天皇(元年은 628 年)에 서 壬 申의 亂 (672) 까지 를 第一期, 그 뒤 奈良遷都까지 를 第二期로 한다. 후기는 奈良時代의 중기까지이나, 그것을 天平元年 (731) 까지를 第三 期, 그 후 天平寶字 3 년 (759) 까지를 第四期로 한다. 이 러 한 四期의 구분을 世代 (30 年)로 나누면서 기 간의 호칭 을 初期 萬葉 • 白鳳萬葉 • 平城萬葉 • 天平萬葉이라 부르는 견해도 있다 .U)
14) 中西造 『萬葉菜』全 譯 注 • 原文付, 「時代」(p . 27)
(2) 萌茅期 이 기 간의 마지 막은 『古 事 記』의 끝과 일치 하며 , 노래 로는 歌臨時 代요, 시간적으로는 간 동안이지마는 노래의 首數도 적고, 전해지 논 作者도 많지 않다. 磐姬皇后 」뿐太子 • 輕大郞女 • 雄略天皇 • 聖 德太子, 그밖에 異說이 있기는 하나 難波天皇妹둥이 있다. 모두 다 記紀歌語의 작자로서 이름이 보일 분 아니라, 輕太子 • 輕大郞女 • 聖 德太子의 노래 는, 記紀歌降의 인용 또는 異傳이 며 , 磐姬皇后의 것 은 후대의 附會임이 밝혀쳐 있는 것이다. 모두가 전설에 따르는 傳 踊歌諦라 봄이 옳으며, 내용온 두드러지게 人 事 的이다• 이리하여 작품과 작자의 관계는 매우 신뢰성이 없다. 그가운데서도聖德太子 만은 시간적으로 보아 第一期에 가장 근접하며, 推古時代의 문화적 분위기로 보아 특히 舒明時代와는 끊어버릴 수 없는데다가 이 시기 로서는 오직 이 작품만이 남아 있을 분이다. (3) 제 1 기 (初期萬葉) 이 第一期는 壬申의 亂 (672) 으로서 다음 期와구벌되지마는, 이 期 의 출발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서정시는 推古朝에 들어서부터 차츰 정리되어 가서, 舒明 • 皇極 • 孝德 • 齊明朝에 들어와서는 완전히 開 花한다. 그래서 큰 정치적 변동인 大化改新(大化元年 ·645) 부터를 이 기간의 출발점으로 본다면 27 년간이 初期萬葉의 시기가 된다. 이 시기는 고대 씨족제의 사회에서 차츰 天皇權울 중십으로 하는 제도의 정비를 위하여 달려가는 시대로 격렬한 변동을 품고 있다. 大化改新은 호족인 蘇我氏의 힘을 遜塞시킨 정변이었고, 이어서 야
기된 羅 • 濟戰에 말려든 일본은 白村江에서 대패를 맛본다. 때는 天 智 2 년 (663) 이었다. 앞서 齊 明天皇은 九州로 내려가 그곳에서 沒한 다. 다음 天智帝는 도읍을 近江에 옮기 니 , 白村江 敗戰後 4 년째 되 던 해 다. 이 사이 에 左有 9 間i0 皇* 子: 를 죽음에 이 르게 한 사건( 齊明四年 ·658) 이 있었고, 또 近江의 도읍도 壬申의 戰火로 말미암아 소실 (672), 이 해로써 第一期는 막을 내란다. 이같은 정치 정황을 배경으로 한 和歌논 변동을 내포하여 안정된 歌風울 나타내지 못한다. 죽 집단적 • 의례적인 記紀歌降의 요소를 농후하게 담아 있어, 혼돈한 托情이 이 期에 보인다. 다시 말하면 이 期는 曺紀歌諦 의 마지막 부분과 겹쳐져 있다. 書紀 에 실린 齊 明 御製가 바야흐로 歌諦 의 域을 벗어나서 創作和歌에로轉生코자하는 것과 상응하려는 듯이, 『萬 葉集 』에서도 和 歌 으1 탄생을 맞는다• 갓 태어난 和 歌 는 밋밋한 향기가 淸例」 • 農潤 하며 힘찬 가락 속에 넘쳐 흘러 있어, 人 廣 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고대적인 아름다움 을 발휘 하고 있던 시기이니, 가요의 수법을 다분히 이용하고 있으나, 그것 이 가요와 같은 대범한 맛이 아닌, 간밀하고 집중적인 효과를 자아 내고 있다. 또 한가지 특색은, 長歌의 말미가 5·3·7, 5·7·7·7, 6· 5·7, 5.7.5.5 동으로 불안정하며, 다음 第 二期에 가서야 비로소 5· 7.7 로 정착된다. 이 期의 主要歌人온, 舒 明天皇 • 天智天皇 ?•£ bC中 거 t皇t 5*命: & • 수玄倭 &大0 *后* 혼 근 •논 초有’ 間主,, 皇스 子: • 額0b.田t3 D王**둥e4의 황족이 다. (4) 제 2 기(白鳳萬葉) 初期萬 葉 의 변동상에 대하여 第二期의 白 鳳萬葉 이라 일컫는 이 시대는 안정의 시기다. 壬申의 亂에 시작하는 이 期는 持統天皇이 崩하는 大寶 2 年 (702) 으로써 막을 내 리 거 니 와, 그 사이 가 30 년으로 天武 • 持統 • 文武의 治世이다. 持統天皇의 기본적 자세는 夫君인 天武의 遺志 계승에 있었으니, 藤原宮의 造營이란 새로운 행동도 실은 그 가운데의 하나이었다. 그 밖에 律令의 제정, 創寺의 완성 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天武와 인연 있는 吉野의 땅에 30 회의 行 幸도, 壬申의 亂에 유서깊은 東國에의 出遊도 다 같은 취지의 행동
이었고, 손자인 文武가 즉위하여도 (697) 실질적으로 군림한 것은持 統이었다. 先帝인 天智가 직면한 국제적 위기는 멀리 사라지고, 대내적으로 국력의 충실에 힘쓴 이 시대는, 천황을 神으로 믿게 하는 사상으로 통일되고, 그 사상을 · 마음껏 노래한 시인이 肺本人磨이다. 그는 沈 詞 • 序詞 • 對句 • 되풀이동 종래로부터 있었던 기법을 종횡으로 구 사하여 현란한 수사로서 노래를 수식하였다. 가벼움에 흐르지 않고 땅 속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중후한 울림이 萬사람의 가슴을 두드 리는 것이다. 또 그는 자연이나 人墓률 막론하고, 대상과 자기와의 경계를 없애버리고서 혼연일체의 경지에 도달한 노래를 부르고 있 는 것이다. 그의 십정은 원시인의 심성에 바탕한 듯하다. 원시의 마음과 개화의 기법이 미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만인의 마음을 두드 려, 참으로 법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숭고 정묘한 경지는 그로써 마지막이다. 이 시기의 특색의 하나는,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천황을 現人神이타 관념하여 이불 노래에다 부른 것이 많다. 이것은 大伴 左 bU&h ; * 御行의 노래를 비롯하여 人磨의 여러 가지 황실의 讚歌나 挑歌에서 볼 수 있다. 자연에 대한 諒歌도 전기보다는 한겁 전전했음을 보여 준댜 持統天皇의 香具山御製, 高市黑人의 제작동은 赤人의 명작에 육박하는 것이며, 특히 黑人은 叔景歌人의 비조라 일컫는다. 長歌는 人磨에 의해서 완성형에 도달하여, 전기에는 상당히 있었 던 不整音句는 대폭 감소되고, 5.7.7 末尾가 정착되었으며, 짧은 노래에 여러 단락이 있었던 것도 없어지고, 한 首가 연면히 이어가 는 形이 이루어져, 句數도늘어나서, 『萬葉集』 最長의 노래도 이 期 에 )\.磨에 의해서 불리워졌다. 또하나 주목할 것은 長意吉磨의 講 誰歌이다. 이것은 和歌에 있어서 웃음을 담는 노태의 근원이 된 것 이다. 작자로서는 위에 든 인사 의에 大津皇子 • ”大*<伯0皇 心 A女: • 志l. 貴흔 皇* 子드 • 稙積皇子·但馬皇女·高市皇子·弓削皇子·長皇子·藤原夫人·石川 郞女 • 日並皇子의 舍人 • 志斐婚 • 春日老 둥이 있다•
(5) 제 3 기 (平城萬葉) 710 년(和銅 3 年)에 奈良朝廷은 도읍을 平城에 옮김을 피크로 하여 聖武天皇의 天平元年 (729) 까지, 27 년간을 平城萬잡 둘 의 시기로 본다. 이 期는 한말로 일러 文明開化의 시기다. 造唐使논 大寶 2 년 (702), 持統이 崩하던 해 에 비 롯하여 殺老元年과 2 년 (717·8) 에 왕복하게 된 는다.歸 처朝음하 여大 使조논정 에允栗 b 田 f:배眞 i 人알O, I할: 때뒤 의唐 服大使을는입 었多f=다 治c한 比uo다縣 尤 b守.: f= 인t b 데그,처 럼 이唐 風縣文守 化가 급격히 침두하던 시대가 平城萬葉時代이다. 慶雲 • 和銅 • 露 龜 • 益老 둥 祥瑞에 찬 연호를 쓴 것도 그러한 것의 하나이며, 平城 의 都城建營온 가장 두드러 진 例다. 이 기 간에 『古 事記 』『 日 本 書 紀』 가 撰進되 었고, 『 羲 老 律令 』이 撰修되 어 국가적 인 대 사업 이 착실하 케 추전되어 나갔다. 貨幣鑄造 란 새로운 유동 개혁과 함께 군사면 에서도 嚴夷 • 年人의 정벌을 감행하는 등 국가 체제논 더욱 더 정 비완성의 域에 이르게 된다. 和歌는 一路 소박한 것에서 세련된 것으로 다듬어져 나간다. 歌 風은 성세한 것으로 이행하거니와, 그러나 아직 類敗的인 경향을 나타내기에는 이르지 않고, 간장된 힘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단행된 大化改新은 개개인의 자각을 촉진시킨 역활을 하였 거니와, 이 시기에 들어와서는 그같은 작용이 넓은 계층에까지 침 윤되어 가서 歌人들에게도 개성적인 노래를 부르는 機緣울 가져 왔다. 순수히 객관적으로 자연을 노래하여 澄明한 叔景歌를 달성시킨 山部赤人, 유교적인 교양을 지니고, 소위 병고와 빈곤에서 사회의 모순을 동감한 나머지 사회성에 눈떠서 빈부의 현격, 株求의 양상 을 노래한 山上憶良, 인생의 비애에 침잠하여 풍류에 늘면서 風流 歌를 읊은 大伴旅人, 전설 • 설화를 세밀히 서술하여 說話歌를 개척 한 高橋蟲磨 둥, 모두 개성이 빛나는 뛰어난 歌人이다 . 이 기간중의 또 하나의 특색은, 지금까지의 歌塚이 수도 중십, 궁정 중십이었던 것이, 이 期에 들어와서는 궁정 의의 지방에도 넓 혀졌다는사실이다. 人 磨이래의전동에입각하여 山部赤人, 笠金村 등은 宮廷歌人으로 활약하고 있었으나, 大伴旅人이나 山上憶良 등
은 멀리 筑紫의 大宰 府에 머 물 면서 筑紫歌iit - 울 형성해서 기영을 토 하였다. 작자로서는 위에 돈 歌人 의에, 元正天皇 • 長 田王 • 門部王 • 藤 原 宇合 • 石上乙 磨 • 間人宿 稱 • 小野老 • 沙彌滿 晋 • 車 持百年 • 大伴百 代 • 餘 ( 金 )明 軍 둥이 있다. 第 一 • 二期에 비해서 皇室 歌 人은 질적 양 적 으로 감퇴하여 이 렇 다 할 활 동이 없었다. (6) 제 4 기 ( 天平萬葉) 이 기 간은 奈良時 代의 중기 에 해 당한다. 天平이 란 연호는 20 년간 이어나가거니와, 그 뒤로 天平 感寶 • 天平勝 寶 • 天平 寶 字 • 天平神 設 라 불러 38 년이나 계속된다. 이것을 통털어 天平時代라는 것이오, 『萬葉集 』의 年代判明 歌 의 최 후 의 노래도 天平 寶 字 3 년 (759) 이니, 이 시기 를 일명 天 平萬葉 이라는 所以 然 이다. 이 사이의 정치적인 움직임을 보면, 天平元年 (729) 에 長屋王 l” 이 自 害 하여 정치의 동향이 크게 전환한다. 이 시대에 군림한 천자는 주로 聖 武이 다. 聖武는 다음 해 인 天平勝 寶 元年 (749) 에 벼 슬을 딸인 孝訓t 에 물려주거니와, 그 뒤에도 8 년이나 存命하여 勝寶 8 년 (756) 에 崩한다. 원태 女 帝 란 정규의 천황이 못된다. 孝謙의 즉위를 제일보 로하여 이때부터 정국은혼란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여, 聖武·諸 兄(左大臣 橘諸 兄)의 죽음을 계 기 로 동란이 일어 난다. 奈良 磨 의 變이 그것이고, 奈良 磨 등을 掃 討하고서 새로이 실권을 쥔 것은 藤原仲磨 였다. 그는 淳 仁天皇울 세웠으나(天平 寶 字二年 ·758), 얼마 안가서 廢 帝가 되고, 그뒤 10 여년 동안 혼란 상태가 계속된다. 寶 龜元年 (770) 에 光仁이 즉위할 때까지 그 상태가 지속되는데, 이 사이에 天平 萬葉 의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다. 天平이란 연호는 光仁 즉위전 까지다. 天平神 護 • 神 護崇雲 이란 연대를 거쳐, 寶龜 타는 구태를 일 신한 연호를 光仁온 세웠다. 天平의 盛時의 쇠퇴와 함께 萬葉의 노 래도 끝을 내는 것이니 天平 萬葉 은 그 가장 좋은 盛代의 개화라 할 15) t.r.iJ작'l1)**총入 : 左大臣인 그는 天平元年 自 害뮬 强要당할 때까지 台 llll 第一 의 座름 차지하고 있었다. 王온 天武의 孫인데, 高 市 皇 子(天武 皇 子)와 御名部皇女 (天智 皇 女) 사이에 태어났으며, 草壁 의 딸인 吉 備 內親王을 妃로 맞았다 . 아 王의 自害로 말미 암아 藤原 氏는 政治의 表 面에 나선다 .
수있다. 天平의 문화는 찬란하게 빛나서, 東大寺의 造 營 , 大佛의 開眼 등 융성을 다한 감이 있었으나, 오랜 太平의 앙금은 인십의 해이를 초 래하였다. 상부충의 정권쟁탈의 십각화에다가 국가 재정의 기초가 동요되어, 이 혼란은 光仁의 즉위대까지 지속된다. 이와 같은 시대의 풍조 속에 歌人둘은 어떻게 살아나갔으며 어떠 한 歌風을 세웠던 것일까• 두말할 나위도 없이 그들은 현란한 天平 文化의 입김을 전신에 받았을 것이지마는, 그러한 爆熟 뒤에 스며 드는 되페의 그림자를 재빠르게 또한 민감히 엿보았음에 틀림 없다. 그리하여 그들의 노래는 感傷性을 띠고 섭세한 것이 되어, 일찌기 보였던 힘찬 박력과 간장미는 차츰 그림자를 감추고 말게 된다• 이 러한 사실은 이 期를 대표하는 歌人인 大伴家持의 노래에서 똑똑히 엿볼 수 있다. 그의 노래에는 더없이 농후한 색채미를 가전 것이 있지마는, 그것은 그의 힘찬 생명력, 생활력에서 태어난 것이라기 보다는 도회에 살고 있는 사람의 날카롭게 다듬어전 감각이나 신경 에 의하여 이루진 것이라 하겠다. 그의 노태는 섬세우미하며 감상 미를 담고 있는 것에 特長이 있다 하겠으나, 人磨에서 본 힘찬 박 력을 고대적인 미의 전형이라 한다면, 이 家持가 세운 섬세하고도 온화한 미는 근대적인 것과 같은 일면이 보이며, 일종의 類唐的 詩 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家持롤 대표로 하여 第四期의 類唐的인 경향을 종착접으로 삼 거니와, 和歌논 이 期로서 공백의 시대를 맞이한다. 바다 처쪽의 漢文學이 장차 융성의 길을 향하여 나아가자, 和歌는 그 중압 속에 매 몰하고 만다. 약 100 년을 지 나 平安朝 중기 에 이 르러 『古今和歌 集』의 시대를 맞이할 때까지는 거의 소석을 끊고 만 것이다. 天平萬갬둘의 초두를 장식 하는 歌人은 大伴旅人, 山上憶良, 山部赤 人, 笠金村둥이고, 다음은 위에서 보아온 大伴家持를 위시하여 坂 上郞女, 田邊福磨등이 최후를 꾸미고 있다. 이들은 白鳳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각자 개성적이며 『萬葉集』을 참된문학으로드높인공로 자들이다. 이를 뒷받침한 것은 聖武에 의한 天平文化이며, 唐風울 배우고 불교를 수용하면서 국가적 정비를 추전시킨 시대정신이었
다. 그러나 이 시대의 노래도 家持의 費字 3 년 노래로써 끝장을 내 고, 그뒤는 명확한 연대를 알 길이 없다. 이리하여 大化改新 (645) 으 로부터 115 년의 세월을 萬葉時代라는 것 이 다. 5. 萬葉의 歌人둘 (1) 1額0~• 田tc 王'>lo 士순 4 a) 최초의 代作家 額田王은 萬葉第一期의 대표적 宮廷歌人이다. 그녀의 작품 중, 近江朝 16) 이 전의 노래 4 首에 관해 서 전작 異傳이 있다. 그것은 「秋 0 野」(卷一. 7), 「熟田津」(卷一. 8) 가 左注에 齊明天皇御製라 하였 고, 「味酒三輪 0 山」(卷一 ·17·18) 는 天智天皇御製로 되어 있는데, 그 출전은 山上憶良의 『類緊歌林』에서다. 작자에 관한 異傳이 생기게 된 이유는 세가지!” 있거니와, 額田王의 노태에 관한 異傳은 천황 의 노래를 代作한데서 생간 것이니, 齊明天皇이나 天智天皇에 대신 해서 額田王이 지은 때문에, 형식상의 작자인 천황과, 실제상의 작 자인 額田王과 兩方이 작자로서 전해전 것이다. 憶良의 『類衆歌林』 이 4 首를 모두 천황作이라 한데 반하여, 『萬葉集』의 본문은 다같이 額田王이라 하였다. 전자가 형식상의 작자를 들고 있는데 대하여, 후자는 실질상의 작자를 들고 있는때문이며, 『萬葉集』의 본문이 額 田王쪽을 채택한 것은, 額田王 축의 자료에 의거한 것이라 믿어전 다. 『類衆歌林』쪽은 작자명 분만이 아니 고, 노래 의 제 작 사정 까지 기록한 데 대하여, 본문쪽은 단지 〈額田王歌〉라고만적혀 있는 것 16) 天智天皇 7 年 (667) 에 都邑을 近江(지금의 滋賀縣)의 大津에 遷都한 以後의 朝廷. 17) 作者의 異傳 : 〈異傳이 생기는 主된 原因온 셋이 있다. 그 하나는 自作의 노래둔 踊諒하는 대 신에 , 古歌룬 踊諒하여 心緖를 퍼는 경우가 있는데, 踊諒者를 作者로 믿어 傳하는 경우다. 그 다음은 노태를 代作하는 경우다. 이것은 本人이 지어야 할 것을 專門的인 歌人이 代身해서 짓는 경우와, 他者에 대한 同tR 이나 共感에서 歌人이 그 사람의 心t담을 침작하여 代辨하는 경우이다. 꿀의 하나는, 作者 있는 노래가 歌詞만 傳踊되어 가서 새로이 노태의 作者를 求하여 노태의 說話가지어지 논 경우인데, 이 러한 것은 歌諾傳踊時代에 많이 보는 現象이 다. >土 橋寬 • 『萬葉開 眼』 • 「萬葉序說」 p. 31 .
은 額田王 측의 자료가 노트 정도의 간단한 것이었으리라 여겨지는 것이냐 記紀의 설화 속의 주인공의 노래는, 설화의 述作者가 주인 공의 십정을 대신해서 부른 것이니까 일종의 代作이지마는 『萬葉 染』 속의 천황作에는 代作者가 거의 숨은 宮廷歌人이며, 代作者가 이름을 나타내어 등장하게 되는것은 川原史滿이 최초가 된다. 그러 나川原의 代作歌는궁정 안의 私的인장소에서바찬것이며, 天皇· 諸王 • 諸臣들이 모인 공적인 장소에서 代作者가 자기 이롭을 밝히면 서 등장한 것은 額田王이 최초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額田王은 宮 廷歌人으로서의 지위를 공적으로 인정받은 처음이라 할 수 있다. 天智天皇의 崩御 때의 晩歌(卷二 ·149~154) 는, 倭姬皇后 • 石川夫 人 • 無名夫人 • 舍人吉年과 함께 額田王도 짓고 있거니와, 이런 것 은 私 89 인 換歌이다. 이에 대해서 「山科御陵i b 退散산 L 時」의 額 田王의 長歌는(卷二 ·155), 大宮人들의 슬픔을 宮廷歌人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불렀으며, 이것은 柚本人磨의 日並皇子에 대한 殖宮換 歌(卷二 ·167), 輕皇子의 安騎野遊時, 從 篤 作(卷 _.46) 등과 같은 입 장이니, 공인된 宮廷歌人의 계보는 額田王에서 人磨에 이어 갔음울 알수있다. b) 額田王의 生年 大伴氏를 제의하고 萬葉歌人의 대부분은 그- 경력이 명백치 않거 니와, 額田王 또한 찰 알 수 없다. 『日本書紀』의 天武紀 2 년 (674) 2 월條에, 皇妃와 皇子女를 기록한 가운데 天皇, 처 음에 鏡王의 女, 額田姬王을 要하여 十市皇女를 生하다. 라고 한 기사분이니, 이것을 줄잡아 추증하는 의는 도리가 없다. 額田王이 鏡王의 딸이요, 또 大海人皇子(天武帝)와의 사이에 十市皇 女를 낳았다는 것인데, 이에 대한 첫 실마리가 되는 것은, 十市皇 女가 大友皇子(天智帝의 四男)의 妃가 되 어 낳은 葛野王의 경 력 이 다. 葛野王은 慶雲 2 년 (705) 12월 , 正四位上으로서 卒했거 니 와, 『懷風 漢』에 의하면, 高市皇子(天武帝의 四男)가 魂한 (696) 뒤, 持統天皇이
누구를 황태자로 삼았으면 可할까를 衆議를 물었을 때, 葛野王은 父子相鎖 18) (구체적으로는 輕皇子=文武帝)의 원칙을 따르는 것이 좋다 고 주장하여 일은 걸착지어졌었다. 天皇은 이를 賞하여 〈正四位를 除授하고 式部卿에 拜하니 매에 나이 三十七〉이었다 한다. 輕皇子 의 立太子논 그 익년 (697) 에 실현되었으니 그 해에 正四位에 제수되 었고, 그 때의 나이가 37 세라 해석되나, 『懷風漢』에 작자의 年齡을 기재하는 것은 모두 殘年이니, 葛野王은 慶雲 2 년에 股했다고도 解 할수있다. 이제 후자의 견해에 따르면, 葛野王이 태어난 것은 669 年, 그때 母의 十市皇女를 16 歲라 가정한다면, 그녀의 生年은 白維 5 년 (654), 그 때의 額田王도 16 세였다고 하면, 額田王의 生年온 舒 明天皇 11 년 (639) 이라는 계산이 된다. c) 額田王의 出自 額田王의 父인 鏡王은 어떠한 인물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그 를 百濟系王族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19) 그렇게 추증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대체로 고대 일본 조정에서 〈王〉 또는 〈姬王〉이라 호칭하는 것은 二世(天皇의 孫)로부터 五世까지 의 왕족에 쓰이 는 호칭 이 다; 그런데 天武紀 2 년 기사를 보면 불가해한 접이 있다. 죽 거기에 있는 天武 天皇의 皇后妃의 기술 순서를 보면, 皇后 • 妃 • 夫人의 순인데, 皇 后는 皇族(天智天皇의 皇女), 妃 3 인도 皇族, 夫人은 2 인이 藤原鎌足 의 말, 1 인은 蘇我赤兄의 딸이며, 그 다음에 額田王, 다음에 지방 18) 1 -4 1 持統天皇 ― 43 元明天皇 —施貴皇子 _49 光仁天皇 皇一 |-39 大友皇子 -_4O間 天這武天女 皇 ― I —_舍草人壁親皇王子 _ 4l_744 淳 元仁年天 _大津皇子 ― 42 文武天 ―一高市皇子―長屋王 —忍壁皇子 19) 土橋寬, 『萬葉開眼』 • r 額田王」. 靑木和夫, 『上代文學論殿』 • 「軍王,J'~」.
호족인 胸形君, 穴人臣 출신의 첩이 기재되어 있다. 額田姬王이 왕 족이라면 妃와 夫人사이에 서열될 것을, 중앙 씨족과 지방 호족 사 이에 위치시킨 것은 어찌된 까닭일까• 이에 대한 추종을 내린 土橋 寬의 견해를 보면, 〈鏡王〉에 대 해 서 는, 〈丹波道主王〉처 럼 왕족으로서 지 방 호족이 된 자의 자손이라 본다면 우선 설명이 되지마는, 그렇다면 額田王의 서열의 설명 이 안된다. 이 窮地를 타개 하는 하나의 방법 으로서 鏡王울 백 제 로부터 도 래한 왕족이라 생각한다면 어떨까. 雄略紀 5 년 7 월條에, 백제의 蓋蘭王의 弟인 〈昆支君〉이 來朝한 것을 〈軍君〉이라 표기하였는데, 同 23 년 4 월條에 는 〈昆支王〉, 그 차남을 〈末多王〉이 라 기 록하였 다. = 、:,, 4'-,: :,,20) 는 大王울 의미하는 韓語이며, 〈軍君〉은 그 말의 音 • 訓表記라 보여지며, 『萬葉菓』 卷一의 〈軍王〉은 그의 자손일 가농성 이 있 다. 이 〈軍王〉에 서 유추하여 〈鏡 王〉을 近江의 鏡里에 거주하고 있던 백제계 왕족이타 생각하는 것이다.
20) 큰 기 치 (大吉次), 즉 大君의 昔g .S.
天智天皇과의 贈答歌가 있으며, 뒤에 藤原鎌足의 妻가 된 鏡女王 (鏡王女 • 鏡姬王이 라고도 씀)와의 관계 는 本居宣長가 『玉力f?間』에 서 鏡女王은 額田王의 實姉며 다같이 鏡王의 딸일 것 이 라고 추측하였 다. 그러나 鏡女王의 묘가 舒明天皇의 押坂陵의 역내에 있음이(延喜 式) 지적되어 女王은 舒明天皇의 近親者라는 설이 현재로는 유력하 여 額田王과의 자매관계는 부정되었다. 額田王은 일명 額田部姬王이며(『藥師寺緣起』), 이논 의가의 氏名 아니면 양육자의 氏名일 것이다. 그리고 그 명명은 그 곳의 지명이 라고 보는데, 이것은 大和國平群郡額田鄕(和名抄), 현재의 大和郡市 額田部의 地률 상정하는 說이 유력하다. 額田王이 16 세에 十市皇女를 낳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위에서 逆 算한 白維 5 년 (654), 大海人皇子(天武天皇)는 24 세였다. 이것은孝德 天皇이 도읍을 難波의 長柄農崎宮에 옮간 지 3 년째며, 額田王이 大 海人皇子의 사랑을 받은 것은 그로부터 1,2 년 앞이 되는 셈이다. 孝德天皇은 白維 5 년 10 월에 崩하고, 그 이 듬해 정 월에 齊明女帝가
後飛鳥岡本宮에서 즉위하는데, 額田王은 이 齊明天皇에 出仕하여 宮廷歌人으로서의 활약이 시작된다. d) 額田王의 文學 『萬葉集』에 나타난 額田王의 노태는, 長歌가 3 首, 短歌 8 首가 실 려 있다. 卷-에 있는近江朝 이전의 노래 4 首는, 上述한 바와 같이 천황의 代作이냐 그녀의 노태로서 인구에 회자되어 온 노래를 보 면 아래와 같다. 8 熟田津t더船乘 b 산t&月待fif潮心力寸tg O 요今|ii曹봉出균t.c. ,二 t f: ? ... f‘ 0 LI, 8 熟田津(니기다쓰)에서 배 타려고 달 뜨기를 기다리니, 바닷물도 알맞 도다. 이젠 배 처어 떠나자꾸나. 그 당시 한반도에서는 백제와 신라와의 사이에 벌어전 항쟁이 마 지막 단계에 들어, 齊明天皇의 6 년 (660) 9 월 백제의 사신이 와서, 선라가 당나라와 연합해서 백제를 치고자 하는 것을 호소하며 원군 을 요청해 왔다. 7 년 정월 6 일, 天皇온 難波의 항구로부터 군선을 이끌고 西로 향하여, 8 일에 小豆島 북방울 지나, 14 일에 伊豫의 熟 田津에 정박하였다. 윗 노태는 이 때의 作이다. 이 노래를 『類衆歌林』에는 齊明帝의 御製라고 하었으나, 額田王 의 代作歌이다. 熟田津은 舊松山市의 西北鄕에 있는 三津濱港(지금 의 松山港)이 라고도 하고, 또는 北鄕의 和氣 • 堀江附近의 港이 라고 도 한다. 歌意는 〈熟田津에서 배를 타려고(出航코자) 月出울 기다리 고 있으니, 마침 달도 떠 오르고 潮水도 滿潮가 되었다. 자아 저어 가자꾸나〉하는 것 아 다. 이 노래 해석에는 異說도 있으나, 그것은 船遊로 解하는 것인데, 그렇게 본다면 월출울 기다리는 것만으로족하지, 구태어 滿潮를기 다릴 필요는 없다. 또 船遊의 노래로 보는 說의 또 하나의 근거는 정월 14 일에 熟田津에 도착, 3 월 25 일 〈御船還 b T t姬,,大 津tr.至石〉라 논 書紀의 기사를, 만 2 개월이나 熟田津 근방의 石湯行宮에서 체제
했다고 解하는데, 熟田津 정박에서 펩多港 도착까지 두달이나 길란 것은, 石湯에 체재한 것이 아니타, 중국 방면에서 병사를 모으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異說은 熟田津 출항에 다다라 크게 神革믈 메풀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항해의 안전과 전승을 기원하는 것은 難波 출항에 앞서, 住吉三神(現大阪市住吉區에 있음)에 대하여 행해지는 것이니, 정박지에서 거듭 神 事 룔 행할 필요는 없고, 노래에도 그같은 祈願 의 詞意는 없다. 노래의 場은 다만 酒案이라 봄이 타당한 것이다. 額田王, 近江國 V드 下 D L 時作 h 石 歌 17 味H1酒>t 三.;.輪 n( 1)山 志在t乙J: L 奈良 0·山 0 ·山 (1)-:際t V 드 I,、 ·怨·- ·조 • 主-균 ·道- 0 ·隅d I,、 積石主균t乙 ?|f B t乙心 見??行力屯 r 宅 L tf L ii·心 見放근 남밥山在 情:t드.,r.:,. < 雲 0 b范,< 폰소 ~L 손 反歌 18 三 輪 山宅 L 力나 急 寸力멤 雲 ta ::::. t:情:,,~ G t.r:.t~ 홍 폰소
다. 天皇의 일행은 飛鳥의 後岡本宮울 출발해서 三輪山울 오른쪽에 바라보면서 북상하여 〈奈良山〉에 도착하였다. 이 일행 중에는 大海 人皇子며 額田王도 끼어 있었다. 〈奈良山〉은 平城宮址의 북방에 동 서로 가로 있는 낮은 산으로, 이 곳이 大和와 山城의 국경이 된다. 노래는 大和를 떠남에 다다라 三輪山에 이별을 아끼는 십정을 을은 것이다. 長歌는 〈三輪 山이 奈良山에 숨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걷 의 모퉁이가 겹쳐져 멀리 사라질 때까지 찰 보고 싶전마는, 멀리 몇 번이나 바라보고 싶은 三輪山을, 구름이 얄밉게 가려버린다면 될 말인가〉하고 불렀다. 反歌는 그것을 요약한 노래이다. 天智天皇의 近江遷都는 정치적인 필요에서 결단한 것이며, 사적 인 십정으로서는, 大和는 천황에 있어서 떠나기 어려운 것이었을 터이다. 額田王의 노태는 그라한 천황의 사적인 십정을 대변한 것 이다. 다음 노래들은 近江에 천도한 뒤의 額田王의 노래이다. 天皇, 內大臣藤原朝臣 V 다*:留I:, L,, -c, 春山(J)萬花(JE)i M院 L` &秋山(J)千葉(`J·5 )E彩, &宅 16 冬競드8 燒.,2|t i b L 春沈t촌으 b主 來소時h, i f 額鳴田力王훈, ` .b歌 L宅 以鳥§tt來:判鳴I:b乙총 요歌 疾力훈 ;.b L 花§疾남 hE 山宅茂(~入 入 bT 心取 5 于 草深入 取 b f§見于 秋山(J)木(J)葉宅見 깁i 黃葉在if 取 b -c춘 L0 소 靑총宅if 置총f군欽〈 춘드 L 恨沈 L 秋 `*t 山七九ti 天皇이 內大臣인 藤原朝臣에 게 命하여 , 春山萬花의 고음과 秋山千葉 의 빛깔과 어느 것이 더 아름다운가를 다두게 하셨을 때, 額田王이 노래로써 변별한 노태 16 봄이 오면야 울잖던 새도 날아와 울고, 피잖던 꽃도 피어나지만, 나무 가 무성해서 들어가 가질 수 없고, 풀이 질어서 손에 취어볼 수도 없 지. 가을 뫼의 나무들을 볼 때는, 누른 잎은 따서 보고, 푸른 것은그 냥두고 느끼지. 그것이야 한스러워도 가율 되가 나는 좋아. 궁중에서의 酒案이란 作歌의 場이기도 하니, 말하자면 일종 문학 의 살롱이라 할 수 있다. 作歌에다 중접을 둔 진정한 문학 살롱은
近江朝의 궁정에서 성립되었다. 그것을 입증해 주는 것이 위의 노 태 다. 이 노래 는 天智天皇이 藤原鎌足에 게 명 하여 「春山滿花之塾」 과 「秋山千葉之彩」와를 다두는 雅會를 베풀게 했을 때의 額田王이 지은 것이다. 이제 이 노래의 歌意몰 음미해 보면, 논리상 파탄을 짓고 있어 『萬葉菜』 연구가로 하여금 십히 당황케 한다. 이 노래의 구조를 알기 쉽게 표시해 보면 아래와 같다. 理致에 닿지 않는 想 의 전개를 알 수 있다. A. 冬느.”春혼 b 來 h| f 鳴험 b훈 홍 . Db LL 鳥花心:來:집鳴 총h&요.} 長點 草山深宅짜茂取入 入b fb 心f見t于取 5 f }短點 B. 秋山(I)木(I)葉宅見fii 黃葉宅tf取 b f꾼l,(l).b-―長點 靑총在tf置총f꾼敷 < __· 短點 c. ®춘드 L 恨沈 L_ 션 k 〉의 否定 ®秋山:b.htt ―一 @k 〉의 肯定 이 노래는 형식상은 詩歌이나, 내용은 십정의 표현이라기보다는 春과 秋의 우열에 관한 知的 판단 또는 주관적 평가를 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결론에 도달한 작가의 논리적 전개를 추적해 보 떤, A 에서는 春의 장 • 단접을 들었고, B 에서는 秋의 장 • 단접을 들고 있어서 이 단계에서는 春秋가 서로 비등하다. 그런데 C 단계 에서는 ®〈춘乙 L 恨砂 L 〉로 〈秋〉短點에 대한 부정적 판단을 내려 흡사 가을이 못한 양 여기게 하더니, 一轉해서 ®에서는 〈秋〉의 긍 정적 판단에 도달하였다. 이러고서야 독자는 망서리게 되고 만다. 이 일견 牙循의 긍정, 부조리의 타당화는 유머러스한 言語의 遊戱 라고도 볼 수 있고, 또 雅會가 베풀어전 때의 계절이 가율이었다는 접에서도 이 노태 내용의 괴리는 이해가 된다• 즉 이 노래의 春秋 우열의 판정은 일상의 논리가 아니라 〈놀음〉의 論理에 의해서 지어 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0 ~天詞皇효, 寸蒲0·:戀l生 노野 円,,t 5댜 쳉遊4t 쩡.離, 行L 터t으랑主합소|時,i 見額宁田헌王君 0力 作:乙柚歌振 乙 皇太子 0 答^主 LL 御歌 21 t紫 b 野근 e ,O, t다굿^石`•妹I, 宅r愼-( <志 5 tf人妻中及i乙七 h戀 0 心훈총 天皇이 蒲生野에 遊臘하실 때, 額田王이 지은 노래 20 꼭두서니 자란 발 인줄천 밭을, 이리처리 서성대어 발지기는 안 볼까, 그렇게 그대가 소매를 혼들어. 皇太子가 和答하신 노태 21 꼭두서니인 양 아릿다운 임자가 미울라치면, 이미 남의 마누라인데도 어찌 내 사랑하리오. 이 노래의 左注에 있듯이, 天智 7 년 (668) 5 月 5 日, 藥臘 때의 노 래 이 다• 藥臘은 推古天皇代로부터 비 롯한 궁정 행 사이 다. 백 궁의 남녀들이 盛裝차림으로 참가하는 화려한 들놀이인데, 남자들은 말 울 타고서 사슴을 좇아, 어린 뿔을 취하여 藥으로 하고, 여자둘은 藥草를 캔다. 이 약렵에는 天智天皇과 함께 황태자인 大海人皇子 와 그 妃인 戱, 野c 황녀(뒤의 持統女帝), 額田王등이 참가했을 것이다. 노래에 〈苦혼寸〉는 〈검붉은 빛을 떠다〉라는 뜻으로 〈紫〉에 걸리 는 沈詞, 〈紫野〉는 紫草를 재배하고 있는 들. 거기는 궁정 소유지 로서 표를세워 사람들의 출입을금하고 있으므로〈標野〉라한것이 다. 〈野守〉는 파수인이거니와, 이 곳에서 궁정 인의 감시의 눈을 풍 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君〉은 大海人皇子, 〈柚振石〉는 원래 相對 人의 魂울 불러들이는 주술적 행위인데, 여기서는 다만 애정율 표 시하는 행위를 말한다. 첫 首의 뜻은, 紫野를 오가면서 〈君〉(임)이 소매를 혼들고 있음 울 野守가 보고 있지 않소이까? 하며 탓하는 어조다. 죽 第一 • 二 三句에서 결구에의 흐름은 긍정적이오, 第四句는 강한 부정이 삽입 된 것이나, 이 부정은 오히려 嬪態的인 정감을 자아내고 있다. 〈소매 를 혼들다〉를 否定한 大海人皇子의 反歌는, 상대 의 〈紫野〉 를 받아 〈紫野t다또^石妹〉라고 읊어 額田王에의 사랑을 表白하면
서, 왕이 그 사랑을 부정한 이유인 〈人妻〉(남의 妻)를 무시하며 부 정하는 형석이니, 사랑의 열렬한 자세를 나타내고 있다. 上二句의 긍정적 표현은 下三句의 부정적 조건(人妻)의 부정에 잇고, 額田王 이 人妻인 때문에 適巡하는 여성적 자세(실상온 鉛態)를 전면적으로 否定하는 남성적 자세에 의하여, 그 사랑의 표현은 한갓 긍정적 표 현보다 강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2) 柚本人磨 a) 經歷 이 름柚D· 논이,本, 6 朝&正念臣군史 *U人L에:!'磨. 는스는 전持연統 나• 타天나武지朝 에않 는활다약.한 〈宮柚廷本歌朝臣人〉이이 거 란 니 와姓,氏 논,그 의5 세기에서 6 세키 전반에 걸쳐 번영한 和펴臣의 支族이 었던 柚本臣이 天武 13 년에 朝臣이란 성을 하사받은 것이지마는, 이 氏를 가전 사 람으로서 人磨가 생존해 있었다고 믿어지는시기에 이름을나타내는 것은, 柚本臣(朝臣)援(佐留로도 씀)로 天武 10 년 (682) 에 小錦下의 官位 근O 에 나아갔다가, 和銅元年 (708) 5 월, 從四位下로서 沒하였다. 이 밖 에 神龜 4 년 (727) 정월에 從五位下에 오른 柚本朝臣建石, 天平 9 년 (737) 9 월, 外從五位에 올라, 이 듬해 4 월, 備前守에 임 명 된 柚本朝 臣濱名, 天平 20 년 (748) 2 월, 從五位下에 올라 勝寶 6 년 (754) 윤 5 월 에 丹後守에 임명된 柚本朝臣市守둥의 이름이 『紹日本紀』에 보이지 마는, 그들과 人磨와의 관계는 모두 불명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人磨를 알 수 있는자료는 『萬葉集』분인 셈인데, 거기에 의하면, 作歌 연대를 알 수 있는 노래는, 持統 3 년 (689) 4 월 에, 草壁皇子(『萬葉祭』에는 日並皇子라 있음)가 堯했을 때의 換歌가 최 초이 고, 文武 4 년 (700) 4 월, 明 日 香皇女가 鹿한 때 의 換歌를 최 후로 하여 , 그 사이 10 년간에 , 持統天皇의 行幸에 從篤했던 때 의 讚歌 5 首, 天武天皇의 皇子 • 皇女가 苑했을 때의 挑歌 14 首, 皇子의 遊臘 에 從篤했을 때의 讚歌 8 首, 皇子宮에의 奉仕를 노래한 현가 2 首 등, 궁정관계의 공적인 노태 약 30 首가 지어졌다. 人窟가 그 노래에서 취급한 皇子女, 또는 노태를 헌정한 皇子女 논, 草壁皇太子, 輕皇子, 高市皇子등정치상중요한 지위를 차지한
皇 子분이 아니고, 長 皇 子, 新 田 部皇 子, 泊 湘部皇 女, 忍坂 部皇 子, 明日 香皇 女둥다방면에 걸쳐 있다. 천황의 行 幸 에 從 忽 하여 鼓歌 를 받자옵는 것은 人 曆 이후에도 山 部 赤人 • 笠金村 • 大伴家持등에 있 어서도 볼 수 있거니와, 위와 같이 많은 皇子女에 관해서 의례적인 노래 를 지온 것은, 人 磨 이의는 없고, 이 접에서 持統朝의 궁정에 있어서 人 磨 의 목이한 지위가 추정되는 것이다• 近江朝의 궁정에 문학 살롱이라 할 만한 雅 會 가 베풀어진 것은, 額田王의 「春秋判定 歌 」에서 보여준 바와 같으며, 天智天皇이 崩御랬 울 때, 後宮의 여성들에 의해서 지어전 5 首 의 換 歌 도, 자기 스스로 의 술폼을 노래한 것이라기보다는, 궁정인들의 술품을 대변했다는 접으로 보아, 後 宮 이 문학 살롱의 場 에서 발표했으리라고 본다. 天 武 天 皇 代에도 戱 野 皇 后룬 중십으로 한 後 宮에 문학 살롱이 있어, 人 磨 는 거기서 歌' 人,, 으로 육성되었고, 황후가 즉위해서 持統天皇이 되면서부터 宮廷 歌 人으로서 활약하기에 이르렀다고 본다. b) 現神思想의 성립 천황을 〈天?神 〉( 하느님) 또는 태양신의 자손이라는 사상은, 천황 울 대왕이라 부르던 6 세기 이전부터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일본 분만이 아니고 딴 민족의 왕의 경우에도 볼 수 있는 보편적인 고대 신앙이 다. 또 왕을 天?神(하느님)의 명 령으츠 L 하늘로부터 강림한 神 의 자손이란 · 신앙도 위와 같이 타민족에 그 예가 있어서, 역시 오래된 신앙이니, 物部氏논 祖神 =푸,,,.、十 k / : = F 가 天?神의 命에 의하여 이나라의 지배자가 되기 위해 天降했다는 신화를 傳하 고 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인간인 천황이 곧神이다라는 사상온壬申亂이 후 에 나타나 天武 • 持統朝를 지나 文武朝에 확립하였다. 그 가장 일찍 나타난 예는, 壬申{/)年 0 舌 L (l)平定l.,요石以後 0 歌 二首 4260 大君|i神 仁 L 坐~산 |f赤駒 0 節It~畑 I소! 田井le宅 都o &t~l.,-? 右一首, 大將 軍 贈右大臣大伴 卿 作 hb
4261 大君ti神t乙 L 坐, 산|i·水鳥I!+) 多,: 菓 <*水 O沼2 宅都& t£ L? 作者未詳 壬申年의 亂이 平定된 以後의 노래 二首 4260 天皇은 검님이시메 붉은 말이 엎드려다니는 밭을랑 都邑地로 만드셨네. 윗 노래 一首는 大將軍贈右大臣인 大伴 nP 이 지 었음. 4261 天皇은 검님이시메 물새들 모여서 떠드는 밭을랑 都邑地로 만드셨네. 앞 首의 작자 〈大伴卿〉은 大伴御行이다. 이 〈大君|i神t乙 L 主산 'f〉라는 표현은, 위의 예 이외는 모두 人磨의 노래에만 있고, 천황 을 〈神tg%〉라 찬미한 것도 人磨가 최초다. 〈現神〉(明神이라고도 씀) 璃世에 살고 있는 神)란 語句도 같은 사상을 갑?[설 말이거니와, 이 것은 文武天皇의 축위의 宣命울 최초로 하여, 이후 관용어로서 정 착한다. 이와 바슷한 말에 〈現人神〉이 있는데, 이것은 이 세상에 .t,<:,0-1::~,,,. 존재하지 않는 신이 때에 따라 이 세상에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났 다 함을 이른 것이고, 現神은 그와는 전연 다른 천황을 이 세상의 신이라는 새로운 사상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 現神思想의 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이 사상아 성립된 것은 天 武·持統朝이다. 壬申亂이라는 앞뒤에 例가 없는 대규모의 내란을 싸워서 이겨낸 天武天皇은, 군사조직과 율령체제를 기반으로 하는 강력한 전제적 왕권을 수립하였는데, 그 전제적 왕권을 신화로서 정당화하고 게다가 天神地祗의 제사권을 장악하였다. 天武朝의 제 도인 淨御原令은 없어졌지마는, 그것을 완성시킨 것이라고 전하는 大寶令에서는, 중앙정부의 정치기구의 최고위에다 神祗官울 두고, 太政官은 그 다음에 두었거니와, 神祗官은 황실관계의 諸神만이 아 니고, 각국의 유력한 天神地祗의 제사권도 정부의 손에 넣어 神祗 官의 官人 또는 勅使는 천황의 命에 의하여 직접 또는 간접으로 祭 지내는 기관이다. 그리고 그러한 諸神에게 기원하는 詞인 祝詞를 보면, 이 〈華原Q)中?國〉(日本의 美稱) 은 天?神(하느님)가 皇孫에게 그 지배를 기탁하여 天降시켰다는 신화에 의거하여, 諸神의 가호와 협력을 바란다고 퍼는 것이 일종의 두식이 되어 있는데, 이것은 어 조가 더없이 정중함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天?神의 권위를
방패삼은 强要라고도 할 수 있다. 천황은 天?神의 자손으로서, 각 국의 首長들이 祭지내고 있는 神祗를 종교적으로 지배하는 촌재가 된 것이니, 천황이 天?神의 자손일 분 아니라, 천황 스스로가 神이 다라는 사상이 태어나는 하나의 근거가 여기에 있다. 〈皇孫(l)命〉 (皇孫님)이 란 말은 天에서 하강한 =-= -푸/ : ::z 卜 21) 와 천황TD에 i드게 공 통으로 쓰이는데, 이같은 사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人磨가 吉野讚歌에 있어서, 산신과 하천신이 천황에게 봉사하고 있음을 노래한 것은, 神祗官울 통하여 國神의 지배자가 된 現神의 사상이, 천황의 國
仙〉이란 뜻이 된다. 이것은 천황의 사후에 지어진 이름아거니와 천 황을 선선으로 높인 이름이다. 인간이 죽으면 지 하의 황천국으로 간다는 것 이 記紀神話의 사상 이었고, 『萬葉集』에서는 산중에 숨다 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천황 • 황자의 죽음을, 天武朝부터 〈神上 b 〉(卷二, 167), 〈天知 8 寸〉 (하늘을 다스리 다) (卷二, 200), 〈雲隱 乙 > (구름 속에 숨다) (卷三, 416, 441) 라는 말로써 표현하고 있어, 사후에 천상에 올라가천상계의 지 배자가 된다는 사상을 나타내고 있다. 持統天皇 3 년 (689) 4 월, 천황이 즉위를 切望하고 있던 草壁太子가 38 세란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人磨는 다음과 같은 抗歌률 지었다. 167 1天,地'6(?~! ) 初111( : 心! )時 O 혼力넋t. .::0 »天*( !)•河. ,原t' 乙 八수百 1,萬 J:神石 5( !) 神b.u 菓?&· 0 菜간座크 LT 糖神I2( '分!`) b國 宅分 天b地L 時0t 乙寄 天9 照合 08 0寸근 極 11日* ‘ 女 知心( !8) *L尊:& 心 天寸宅 !神f 0知* 命드 8&& L 1天砂,:t 寸<雲t & (!) 八蓋초구 L原重I^(1 力5! 、) 총*瑞別4 총t 0神·u< 下 f : L ,座`2난 主 ?b L 高照 5 寸 日(!)소皇 子드 |i 飛& .鳥.... ( !) l淨!J: 스0 宮 t 드 神tJ: 症> 쵸愍 :L f 천}(!) 敷宅主江國上 天(!)原 탄&,宅開총 챕尤力巧 志力; b 座 L 요… ••• (以下略)……(卷二) 天地始初때 한벌 (大原)에 서 八百萬 千萬神의 검 님 들이 한데 모여 서 로 둘 相談할 제 , 하늘을 비 치 논 太陽의 검 님 은(天照大神온) 하늘나라 다 스리고 (그대신) 새벌의 밋밋한 나라를(日本울) 하늘 . 따 맞닿은 먼 데 까지 다스릴 검님을 天 雲 까지 헤치고 내려 보내셨도다. 높이 바치는햇 님 아둔(日並皇子)은 淸御原 의 궁전에서 검님으로 업업하게 나라를 다 스리기에는 (어머님 • 持統)天皇이 다스릴 나라라고 여기시어 한벌의 들 문 열고 돌아가시고야 말았도다.…… 여기서는 天孫降臨의 신화에 시작하여 草壁皇子의 죽음을 노태하 였거니와, 文意논 반드시 명료한 것도 아니다. 記紀의 「神代條」나 『古語捨遺』에서는, 天照大神(一名, 夕力 ; A 久 k / 5 :::i 卜)의 命에 의 하여 ==-=¥/ ~ ::r r71- 天에서 하강하거니와, 이 換歌에서는 8 백만 의 諸神둘이 합의 하여 天照大神은 高天原울 다스리 게 하고, 皇孫온
華原水糖國울 다스리도록 天降시켰다는것이다. 이것은매우독이한 傳承인데, 이는참시 두고, 〈天雲 0 八 重 描총別총 神下 L 座산主 ?b L 高照 8 寸 日 0 皇子 〉( 天 雲을 해치고 내려 보내신 높이 비치는 햇님 아 들)은 신화의 .::..::.푸/ : ::z 卜일 터이나, 그 〈日 0 皇子〉는 〈飛鳥 0 淨 0 宮t乙 神t.r:.力 :B 太敷총主 LT 〉(飛 J. 5 의 淸御原宮 에 神으로서 嚴嚴 하 게 나라를 다스려)라고 한 접으로 보떤 이는 天武天皇일 수밖에 없 다. 죽 천상에서 강림한 천손과 淨御原宮에 궁정을 마련한 天武天 皇과가 〈 神下 座奉之〉의 句에 서 중첩 된 돗한데 , 신화적 과거 의 =- .::.푸/ 5 그 卜와 현실의 天武天皇과를 중첩시킨 것은 합리적 사고로 서는 불가능하며, 그것은 시간을 초월한 신화적 사고이다. 신화는 과거사일분 아니라 현재의 규범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므로, 때로는 시간을 초월한 표현도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人磨의 경우, 天武天 皇은 이 세상의 인간인 동시에 高天原에서 〈神下 L 座산主 ?b L> 〈神 0 命〉(검님)으로서, .::..::.푸/ 5 ::z 卜와 일체가 되는 신화적 존재 이니, 그러므로 壬申亂때 천황이 不破山울 넘어 和射見原에 진출하 였음을 〈느高 :I麗:-: ,3劍 상 和b 射굳見 A力 밴原 0 行3:宮 't 乙* 天降 b 主 LT 〉(와자미벌의 行宮 에 下降하셔서)(卷二, 199) 라 노래한 것이다. 이러한 표천어는 한갓 수사나 과장이 아니고, 人磨의 사상의 표백이며, 그에게 있어서의 天武天皇은 高天原과 이 세 상을 자유로 왕래 하는, 시 간과 공간을 초월한 신인 것이다. 그러므로 천황이나 皇子의 죽음은, 人磨로 서 〈天Q)原 磐門在開총 神上 b 上 b 座寸〉가 되며, .::..::.푸/ 5 ::z 卜 kIt & 가 〈久方0 天 0 門開총 高千糖 0 岳t乙天降 b L 〉와 반대의 코오스를: 오갈 분이 며 , 〈 天 0 原〉는 〈天皇 0 敷총 主寸國〉였다. 人磨의 이 換歌 에는 신화적 사고와 신선사상이 복합한, 우주에 살고 있는 現神으 로서의 천황의 이미지가 참으로 잘도 결정되어 있다고 보겠다. c) 人磨의 名作 人磨의 작품 가운데 대표작이요 명작이라 일컫는 것은, 近江의 荒都를 지 나면서 울은 노태 (卷一, 29~31), 그리 고 吉野에 持統天皇 이 行幸함에 從 篤 해 서 獻몹한 讚歌둥이 중량감 풍기 는 작품으로 널 리 회자되고 있다.
近江(J)荒 h t:乙都宅過 〈.7.,時, 柚本朝臣人磨(J)作石歌 29 t玉 2 浮t+ 폰 敵9h火 ( J)山(J) •郡• L原I1(bJ ) 日0 E知, 0 御* 代i 中 生» h 主 LL 祈 1(/)~ :& 乙.& 穆?o I 0 木(J) L 、훈?풍?풍t乙 天소心 0 下 知 8L 砂LL 宅 天t乙;z,..? 大f 2和& 宅證총t 志 宅'드J: L 奈良山宅越之 L, -/.J년g는t乙 思ti L 心산力、 天離조 夷t:::.1:tib nc· »*r3· Uk 石走石 淡海(J)國 O 樂浪(J) 大津(J)宮t:::. 天(J)下 知 BL心 L 남t 天皇(J) `.,a1L 2J ,.* 군‘* *1i ? 乃.., +止石 E 神(J)*尊:(&J ) 大宮|i 此: 處: &聞남 c· t 大'殿ii i 此處之言 ^c· t 春草(J) 繁f〈 生 硏으丕 霞立七 春日(J)연九石 円啓(J) 大宮&t.石 見;h,tf悲 L t (卷一) 反歌 30 혼 합£ A (J)志賀 0 흙릅홉 ”衍냐갑홉쇼(J)船待t-/.J中요? 31 혼 촌 t.r:;z,.. (J)志賀 (J)大 b t.:,ti· 定t t t 昔(J) 人t:::. i t.: \) 逢七沈 近江의 荒廢한 都邑울 지 날 때 , 柚本朝臣人磨가 지 은 노태 29 우네비피(敵火山) 가시와라(樞原)에서 오르신(登極) 天皇(神武)때부터 태 어 나신 天皇 모두가 잇 달아 다스리 시 던 야마도(大和)를 그냥 두고, 나 타괴(奈良山)를 어찌타 여기셨든지, 시골이건 하지만 近江國 大津宮에 서 天下몰 다스렸다는 天智天皇 大宮은, 여기라 들었건만, 大殿은여기 라 하건마는, 지금은 봄 풀 질고 아지랑이 봄날이 흐리네, 大宮옛터를 보니 슬프기도 한저이고. 反歌 30 시 가(志賀)의 가라사끼 (辛崎)는 옛 날과 다르찮아도, 노닐 었 던 宮中人의 배 다시는 볼 수 · 없네. 31 시가(志賀)의 큰 바다 굽이에 물이 막혀 있전마는(사람을 기다리건만), 옛사람을 다시야 만날 수 있으랴. 近江의 大津宮온지금의 滋賀縣大津市에 있었는데, 天智 6 年 (667), 大和로부터 천도하여 天智 • 弘文 2 대의 도읍지. 壬申亂 (672) 후 다 시 大和로 옮겨 황페되고 말은 것이다. 이 노래가 언제 지은 것인가는 명백치 않으나, 『萬葉集』에 있어 서의 이 노래 위치로 보아 天武天皇 崩後 1,2 년경의 것으로 추측된 다. 長歌의 전반에는, 그 옛날 樞原宮에서 천하를 다스리던 神武天 皇 이래 역대의 천황이 도읍으로 정한 大和를 두고서, 奈良山을 넘 어 북쪽 시 골땅인 近江의 大津宮으로 옮아온 天智天皇울 읊고 있 다. 그 가운데서 近江 천도를 〈 L 、力훈主 K 思t군 L 力、〉(어찌 생각하셨을
지)라고 하였으나, 이 詩句는 人磨가 採歌에서 자주 쓰고 있다. 그 는 天智天皇이 近江에 천도한 것을 天智朝의 멸망을 의미하는 걸로 여겨 애상을 깃들인 詩句였다. 노래에는 近江朝의 멸망에 관해서 일언반구도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마는 이 말이 곧 그것을 나타내고 있다. 후반에서는 大津宮의 페허에 서서 감개를 노래하고 있다. 이 長歌에서 人磨는 近江 조정이나 天武天皇 어느쪽의 입장에서 가 아닌, 한 사람의 인간의 입장에서 近江朝의 폐허를 바라보고 있 는 것이며, 이 노래가 지닌 비애감의 깊이는 거기에 유래한다. 가 치 唐詩人 杜甫의 〈나라가 무너졌으나 山河는 있고, 城은 봄이라 草木이 깊도다〉와 근사하다. 이 近江荒者 B 의 노태 는 杜甫詩보다 60 여년 앞서 지어진 것이다. 2 首의 反歌는, 人磨의 사물에 대 한 관찰의 방향을 잘 보여 주는 노래이다. 그의 작품에는 자연의 번영과 인간의 쇠망을 〈 E 〉와 <& §〉(···하지만)를 첨미해서 서로 대비하는 방법을 잘 쓴다. 자연과 인간의 운명과를 融郞的으로 파악하여 양자의 번영을 연계시켜 노 래하는 것이 呪歌나 讚歌의 수법임에 대하여, 자연의 번영과 대비 해서 인간의 쇠망을 노래하는 人磨의 방법은, 주술적인 세계관이 붕괴한 곳에 성립되는 晩歌的 發想이라 할 수 있다. 이 反歌에서는 〈촌 촌 t£ A0 志賀 0 辛崎幸 <志 h E> , 〈촌 촌tg及 0 志賀 0 大b t..:i定打 & 出〉는, 大津宮에 가까운 志賀의 辛崎나 호수의 수면만은 大津宮 이 화려했을 때와 변함이 없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고 노래한 것 이나, 일찌기 거기서 뱃놀이를 하였던 大宮人들은 이제는 없어지 고, 따라서 志賀 辛崎의 번영도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 反歌의 사상이다. 자연의 번영과 인간의 쇠망과를 대비시키는 수법 에서 한 걸음 나아가, 인간의 멸망에 의하여 생명을 잃은 자연의 形核분인 번영을 노래한 데에 이 노태의 비국적인 감동이 있다. 吉野fl)宮t드幸 LL 時, 柚本朝臣人磨fl)作石歌 38 손寸入 LL 七乙·大君 神6•t!, .r.力% 6神•! , 혼 합산寸& 吉野川 r激-t? 河6內,£.tt, 乙 高殿갇 高知 b 主 L f 登 b 立t 國見在산산tf 1:性.fJt성L 〈 2靑*0垣·E 山론 2 수山i神?f*l ) 奉i,石 御X晶 갸1 & 春치i 花力훈. L 持t 秋立fif 黃4,~葉t, 力훈장 b 造o!> 총-副 ' 소 川f- l)••神 心- r大.ti 御* 食납
K 仕',/i,^ 奉1·-乙, &- 上••. ,. O湘 卽' •• 1Il1 a-立f L下 t o t뭡t乙 小~ 網1' 폰 L 渡寸 山川心 依 f H: 소石 神 0 御代力내) (卷一) 反歌 39 山 )11 心依 D f仕소石神tJ:.-IJ ,G t.:왕 0河....內. ,, v;:: 船出산寸力먀心 38 우리 임금 검님이신 채 검님으로 處身코자 요시노가람(吉野川) 물결 세 찬 소(沼)가에 드높은 집 제우시고 운라가 내려보니 겹검이 둘러 싸여 푸른 담의 괴와 되는 山神靈 구실(稅役)로, 봄철은 꽃을 꽂고 가을엔 단풍 꽂네, 뫼따라 흐르는 가람의 검님도 임금 진지 뫼실려고 웃물엔 사다새 놓고 아랫물엔 작은 그물 치바 山川도 서로 받드는 검님의 時 代여. 反歌 39 山川도 서로 받드는 겁님이신 입금은 물결 세차게 흐르는 요시노가람 (吉野川) 깊은 소(沼)에 배 놀이 하읍시 리 . 人磨는 持統天皇이 吉野에 行幸함에 從 1성 하여 위와 같은 讚歌 를 지었거니와 여기서는 〈柚本朝臣人磨(J)作 h 石歌〉라 하여 그의 이름 이 표면에 나타나 있다. 천황의 行幸에 다달아 그 지 방민이 祝 壽 歌 나 風俗歌舞를 연주하고 費幣(禮物)를 貢進하는 습속은 옛부터 있었 는데, 이는 천황에 대하여 복속을 다침하는 의미를 지닌 것이며, 천황의 行幸에 있어서 宮廷歌人이 讚歌를 올리는 것은 持統朝에 미 못한 것이다. 奈良朝에 이르면, 聖武天皇의 吉野 • 難波 • 紀伊 • 播: 磨 등지에 從篤한 山部赤人 • 笠金村 • 車持千年들이 讚歌를 짓게 되 고, 大伴旅人이나 家持도 應認에 대비해서 讚쩝k 를 지었다. 윗 長歌는, 처음에 持統天皇이 吉野離宮의 높은 궁전에 올라서서 國見(〈t/::.~)하는 것을 노래하고 있거니와, 國見이란 것은천황이 그 가 지배하고 있는 국토를 바라다보는 初春의 의례이다. 노태 다음 에는 吉野國 주위에 연한 諸山의 봉꽃 • 가을의 紅葉울, 山神이 머 리에 꽂고서 천황에게 봉사하는 모습을 의인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꽂이〉는 의식때에 大宮人둘이 관에 꽂는 꽃이나 푸른 잎을 이름 함인데, 산신을 大宮人과 동동하게 천황에게 봉사하는 걸로 노래하 였다. 나아가 離宮의 주변을 흐르는 시내도 한갓 자연의 시내가 아
니 라, 姑(銀魚)과 같은 고기 를 산출시 켜 천황의 食 F용 에 봉사하는 시 내, 또는 川神은 천황에게 봉사하는 모습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反歌는 長歌의 끝 3 구를 따와서 되 풀이 하는 식 (尻取式)으로 부르 떤서, 大宮人도 모두가 기쁘게 천황에게 봉사한다 함을 노래하고 있다. 人磨논 持統天皇의 國見울 〈 神ts:力 ;G 神혼간난寸&〉 22) 라 부르고, 천황을 山川神 위에 군립하는 〈神〉인양 노래했다. 〈神ts:力 :8 〉란 語 句는 孝德紀大化 3 년 4 월의 認에 나오는 〈惟神〉의 訓에 도 보이 거 니 와, 그것은 天?神(하느님)의 행위라는 뜻으로, 천황에다 이 語句을 쓴 것은 人磨가 최초이다.
22) 神t.:.-/J,~-神인 .:z.대로. 神혼학산寸&-神흔 U 는 神으로 行動합. 七久는 十 寸 IL( 하시다)의 듯. 動詞久(爲)의 未然形에 尊敬올 나타내는 久가 接續한 꼴. 卜 는 卜'r(··할려고, 하다고 해서).
(3) 山部赤人 ..'. i ^0 尤 b ` 0& 奈良朝 전 71( 第三期), 즉 초기에서 중기에 걸쳐 作歌 활동을 하였 고, 叔 景 歌의 완성자로서 이름을 날려, 柚本人磨와 함께 名歌人이 라 일컬어 온 歌人이 山部宿彌赤人이다. 宮廷歌人의 한사람으로從 수之 ^0 寸〈 b 尤 b`D& 獨 歌가 많으며 , 특히 短歌에 능동하다. 大伴家持와 山上憶良가 筑紫에 있으떤서 作歌 활동을 계속하고 있을 시기는, 歌坦이 도읍에서 멀리 시골로옮아간듯한느낌이었으 나, 그러나 奈良의 수도에서 활동한歌人도적지 않았는데, 그 중에 서 가장 큰 촌재가 山部赤人이다. 赤人 또한 『萬葉集』 외에는 그의 傳記를 알아내는 자료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작품 중에 제작시기를 알 수 있는 것의 上限은 神龜元年 (724) 이다. 이해 겨울, 聖武天皇의 紀伊行幸의 노래 (917~918 노태)가 보인다. 또 下限온 天平 8 년 (736) 이니 이 해 여름, 芳野離宮에 行幸했을 때의 노래 (1005~1006 노태)가 있다. 이 사실로 말미암아 적어도 天平 8 년까지는 살아 있었음이 明白하다. 말하자면 聖武朝의 歌人인 샘이다. 赤人의 작품 중에 從篤歌가 가장 많다는 것은 그가 궁정에서 낮 온 벼슬을 살던 관리였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또 연령은 旅人이나
憶良보다 젊었었음도 추정할 수 있다. 姓이 山部라는 것으로 산림 에 관한 직업의 가문이었던가 하는 추측도 할 수 있지마는 또한 상 상의 域을 벗어날 수 없는 일이다. 『萬葉集』에 는 長歌 13 首, 短歌 37 首가 보이 거 니 와, 그 중 3 首의 晩歌(卷三, 431~433) 를 제 외 한 나머 지 는 전부가 雜歌이 며 相聞歌는 1 首도 없다. 그 長歌는 20 句 전후의 짧은 것 으로, 그 가운데 는 秀作 이 없지도 않으나, 모두 유형적 • 모방적이다. 그가 得意로 하는 것 은 短歌이며, 그것도 자연을 대상으로 한 叔景歌이다. 사상이냐 생 활동을 노래한 것은 전무하므로, 작품을 동해서 그의 생활을 엿보 거나 전기를 세우는 둥의 작업은 불가능하다. 다만 그의 여행에 관 한 노래로서 국내 여로의 발자취만은 捕提할 수 있다. 즉 東은 下 總, 23) 西로는 伊豫 24) 에 발을 뻗친 것 이 다. a) 從篤附:의 서경적 요소 赤人의 從篤歌몰 보기로 한다. 먼저 神繼元年 (724) 10 월 5 일, 紀 伊國(지 금의 和歌山縣)에 行幸함에 從篤하여 부른 노래 가 다음의 長 歌와 反歌이다. 917 ~沖然 i춘0尊~島 총 L淸 L총玉 猪,津n‘'’. a島:乙 : 山大風君 2(吹6)l 남)| i常&·: 宮*T白上 波 駿仕풍^ 主潮?干 h h 石 i f 雜근玉 賀漢.;- J野,.,. I25J) 中b ? 背七?向 •t; u;神 :代:._見t中 石b ~•• l.:...t 反歌 918 沖?島荒I>, 磯-t: 0 玉溪潮O .t,干 O 滿tt隱石 D 中硏f,思t또之t-/J내心 919 若 0 浦 K 潮滿t來 h ii.,;潟 宅無入초蓋 L 邊^ 在혼 LT 뿡鳴총渡石 917 우리 大君의 永遠한 御殿이라고 우리들이 섬기고 있는 雜賀野의 宮殿 으로부터, 後方에 보이는 오끼쓰섬(沖島)의 맑은 둔치엔, 바람불면 흰 23) l,t1,,훈 東海道의 一國 지금의 千葉縣北펍i와 茨城縣의 南部· 上總(力久.-IJ-)를 南總이 라 합에 대하여 北總이 라고도 합. 24) 南海道의 一國, 豫)서. 지금의 愛援絲 25) 和歌山市雜賀崎近邊의 듄. 26) 海中에 山처럼 보이므로 山이라고 한 것. 現在는 陸上에 있는데, 莫供山이타부 르며, 和歌山市和歌浦의 玉津島 뒤에 있음 .
물결 설레고, 썰물멘 고운 海草 네고 버尸민서, 神代로부터 이처럼 尊貸 한玉津島뫼여. 反歌 918 오끼 쓰섭 (沖 O 島)의 바위 海岸의 고운 海草가, 썰물의 여 울에 바닷문 · 이 가득차 보이지 않게 되면, 그리위서 애타게 될런지. 919 와까의 개 (若浦)에 바닷물이 가득 차면 마론 개 펄이 사라지 므로, 海岸. • 의 갈대 자란 근처를 바라보고 두루미는 울면서 날아 가네. 長歌를 보면, 이 노래는 聖武天皇 즉위한 해의 行幸時 작품이타 응당 정열적이며 감격적인홍취가풍겨 있어야 마땅한데, 그렇지 못 하고, 그처 완곡하계 형식적으로 두식에 따라 술술하게 노래했을 분이다. 人廣의 이와 같은 종류의 노태와 비교해 보면, 人磨의 純 一的으로 쏟는 정열과는 먼 거리에 있음이 명백하다. 人磨는 천황 울 톱雙 ~l 라 믿고 있거니와, 赤人에게는 그러한 것이 없다. 그 대 신 〈i背-~ 向:u-t 乙見中石沖?島淸총猪 K 風吹남~i〉와 같은 서 경적 요소가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평탄하게 아름답게 노래하고자 함을 이상 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서경적 요소는 反歌에 있어서 더욱 강화되어 있다. 人磨 의 경우, 反歌에서는 선행한 長歌에서 부론 정신을 어더까지나 집 약해서 高唱한 것과는 달리 赤人는 앞 노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전 연 長歌와는 분리시켜, 독립된 短歌 2 首로서 감상이 가능한 내용을 담아 있다. 여기서 長歌논 이미 쇠망에 기울어져 가고 있고, 短歌 가 새로이 생채를 발하게 됨을 엿보게 된다. 神龜 2 년 (725) . 5 월, 吉野 27) 에 있는 離宮에 行幸했을 때의 從篤歐 (長歌와 反歌)는 널리 알려 진 노태 이 다. 특히 反歌 2 首논 명 작이 라 일컬어 인구에 회자되어 왔다. 992254 ~:llj t.:吉t野. 0:i 象e Q근) 山...夜 t 2Z98) )Q0) 際t 更 0남 木中: 末m남t i드f|i久드木 드生t 30t) 소心 乙혼淸七총 <川鳥 原 0t 聲乙力千나鳥) L ii鳴 < 上 ... O 곤 E 27) 지 금의 奈良縣吉野郡의 都市. 史跡이 많고 古來로 벚 꽃의 名所. 28) 奈良縣吉野郡吉野町에 있는 山. 29) 沈詞 30) 一名 「尤力、lib-/J •L 처 T= 예 더 나무」.
924 요시노( 吉野 ) 象 山 속 의 나무 끝에는 아아 뭇새가 지저귀고 있도마. 925 밥이 깊어가면 예덕나무 자라 있는 맑은 시내 벌 판 에 물 때새(千 鳥 )가 자꾸만 울고 있네. 이 노래에서는 작가가 모든 잡념을 버리고서 오로지 자연 속에 몰입하여 넋울 잃고 뭇새소리를 듣고 있는 청순한 경지가 눈에 보이 는 듯하다. 자연을 적확히 捕徒하려는 대도가 역력히 보이지마는, 다만 그 표현은 人 磨 에 비하면 평면적이고 깊이가 얕은 불만이 있 다. 行幸에 뒤따라가 강가에서 묵고 있던 밥, 숙사에서 맑게 둘려 오는 물떼새 소리가 세찬 강물소리에 사라져 버리는 일 없이 똑똑 히 들려오는 것을 듣고 있는 경지다. 자연의 정밀 속에 고요히 귀 기울이고 있는 맑은 이 1 首는, 赤人의 대표작의 하나로 꼽히는 것 이다 . 近代의 歌 人인 島木赤 彦 논 이 2 首를 赤人의 최고작이라 評 品 하고있다. b) 不 盡 山의 諒 歌 赤人의 노래 가운데서 길이 후세에 불리우고 있는 것은 富 士山울 두고 울은 「不上 盡E 0 수山 2 宅望*근 <石 歌 」 1 首와 그 反 歌 이 다. 317 ,天,,,地., .(, ,I, ) ;分,;,, h L 時中 •神•I J 혼간 T 高 <賀• •총 ·駿t< i 河•' 3 t)tJ: o 布_.. 士~ 0 高b,,嶺 ·t, 在- 天i> t 0 原 振... b 放~ 남見 h if 渡石日(I) •影•, , 心 •隱·< 8D 照石月(I) 光心見之于 I白., 스 雲 心 I,、行총|iif力내 時 E 〈꾼 雪t i降 9 남石 語 b 繼 풍 言 D 繼 풍行力屯tr 不 盡 (I) 高嶺 |i 反歌 318 田f소 兒` 32) (I)浦中 5 t出균t見 h| f眞2 白I.,b t 드군不 盡 (I) 高嶺 t乙 雪| i 降 b 남石 317 하늘과 땅이 둘로 갈라져 나뉘 었을 때 부터 神 靈 하고 高貴 한 수루가(駿 河)의 후지 뫼 ( 富 士 高嶺 )를 天空울 우러 러 바라다보니 , 하늘을 지 나가는 햇빛도 숨고, 비치는 달빛도 보이지 않고, 흰구들도산에 막히어 오가기 31) 束海道의 一國 지금의 靜 岡 縣 중앙에 있음. 32) 現在는 靜 岡 縣富 士郡( 富 士 )II 의 東岸)을 이름이나, .:::z. 당시는 庵 原 郡( 富 士川의 西岸) 興津川에서 東쪽의 蒲原 • 由比의 두 고을이었다.
가 어려우며, 때 아닌 계철에 눈은 항상 내리고 있나니, 입으로써 전하 고 말로 전해가자꾸나, 후지의 높은 되를. 反歌 318 다고(田兒)의 개 (浦)로부터 조망좋은 곳으로 나와, (멀리) 바라다보니, 새 하얗게 후지 (富士)의 높은 뫼 엔 눈은 쌓여 있도다. 赤人가 어떠한 기회에 東國에 가서 이 富士山울 우러러 보았을 까. 그가 下總國葛飾郡의 眞間에 살고 있었던 낭자인 手f 兒:: 奈f£ 를 그 리워해 부론 노래(卷三 ·431~433) 가 있는 것으로 보아, 그 下總國에 國司 33) 로서 부임한 일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지며, 그렇다면 오가는 길에 富士를 보았을 터이다. 그 당시에 사람들은 富士山울 높고 아름다운 산, 죽 미적 동경으로 본 것이 아니고, 일종의 신앙 적 대상으로서 尊崇하였다. 赤人 또한 그러한 십정에서 富士山울 보아, 〈神혼간 T 〉(신령스럽고), 〈高 <貴 춤〉란 신념에서 울었다. 어 더까지나 신성하고 숭고한 산이기에, 해와 달, 또는 구름이나 눈도 이 산에는 굴복하고 있는 양으로 노래하고 있어, 사실적인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러므로 이 노래의 매력은 寫生의 정치따위에 있 는 것이 아니고, 작자의 숭고한 것에 대한 순일무구한, 全心을 쏟 는 신앙에 가까운 태도에 있다고 하겠다.
33) ::, !I -;,, • !I .::. / `y 力 -tr. 六十六國 • 二島에 設置했 던 地方官.
그러나 反歌는 리 얼한 면이 나타나 있다. 〈田子(J)浦〉논 현재의 靜岡縣富士郡(富士川東岸)이 거 니 와, 당시 논 富土川의 서 안인, 興津 JII에서 東편의 蒲原 • 由比의 두 지방인듯 하다는 견해다. 〈田子Q) 浦中〉는 그 당시 〈田子(J)浦〉타 불리우던 지역을 지나, 시야가 넓게 펼쳐진 지겁에 섰을 때의 실제의 감동을 노래한 것이다. 죽 赤人의 歌風의 特長인 객관적인 諒風울 지닌 노래이다. 요컨데 이 反歌논 枚枚不迫한 정조에 넘찬, 밝고 인상이 선명한 노래라 할 수 있다. c) 耿美歌의 先縣 赤人의 노래에는 객관적인 寫實이 두드러지게 特長짓고 있거니 와, 그 밖에 織細優美한 정감이 넘쳐 흐르는 노래도 적지 않다.
1431 百< 濟f:,, 野 34) (J)萩(... JO )i 古枝t乙春待?上*居 IJ L ,管 鳴총'다寸t力、心 百濟 들판의 싸리나무 엣가지에 봄울 기다리노라. 앉아 있던 꾀꼬리 하 마 벌써 울었을까. 겨울철 百濟野에서 싸리나무 엣가지에 앉아 있던 괴꼬리를 보았는 데, 봄이 되자 그 새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제는 울고 있겠지 하고 상상한다. 자연을 노래하는 歌人이 둘새에게 마음을 기울이는 다정 함이 노래에 담겨져 있다. 1424 春 0 野,t,i :::.i ~h 採? 入t乙 上 來드 L 七 h 준野~tJ:?iJ냐다D入& 一J:夜 渡 V 다남7.:, (卷/\) 1427 明i 日T i 冠春b9菜· t ,採 主반티票 35) l_,野t드맵면 心?면 心雪|i降 b?? (卷八)
34) 지금의 奈良縣北葛城郡廣陵町百濟근처의 들판. 百濟人둘이 菓團해서 살던 곳. 35) ~ /. 는, 場所를 限定하거 나 境界몰 나타내기 위 한 標示. 나무나 줄로서 표시 문 합 . 또는 制限운 해서 出入을 禁함. 금줄의 뜻으로도 씀.
1424 봄들에 제비꽃 캐노라 왔던 나는 이 들판이 그리워 하루방울 묵었다네. 1427 내일부터 봄나물 캐리라고 標示해 둔 들판에 어제도 오늘도 눈은 줄곧 내리네. 제비꽃 봄나물 등을 캐는 것은 모두 식용에 供하고자 함이나, 거 기에는 갇혀 있던 겨울에서 뛰어나와 봄날 하루를 들판에서 자유로 이 遊樂울 즐기고자 하는 해방의 기쁨을 노태에 담고 있고 겨울과 봄의 갈림길에 서서 봄을 갈망하여 애타는 십정도 나타나 있다. 그 리하여 실생활적 단면의 소재이면서 탐미적 인 냄새를 자아내고 있 으니 , 『萬葉集』에 서 는 가장 새 로운 시 풍으로서 , 다음의 平安朝期歌 風에 접근하고 있다. 赤人의 자연관의 사실마는 平安朝의 歌諾集인 『古今和歌集』에는 계승되지 못하였다. 따라서 장구한 和歌史의 전통에 살리지 못했었 는데, 근대에 이르러 寫生派의 歌人들에 의해서 부활된 것이었다.
(4) 山上臣憶良 수 2 ' i 0 # A* < b a) 憶良의 出自와 經 歷 『萬 葉集 』의 三大作家 36) 의 한 사람인 山上憶良는 第 三期의 歌 人으. 로서 등장한다. 人 磨 • 赤人의 경 력 을 상고할 자료가 부족한데 바 하 여, 憶良는 비교적 풍부한 편이다. 天平 5 年 ( 733), 憶 良의 문장인 「t沈k 尤病 自E 力哀 L ` 0 文」 ( 卷五) 가운데 〈 是 時七十有四 〉 라 보여, 이것을 逆 算 하면 그의 생년은 齊 明天皇의 6 년 (660 ) 이 된다. 이 생 년의 추정 이 옳다고 한다면, 人 磨 의 경 우, 그 의 추정 생년과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人 磨 가 歌壇 에서 왕성한 作 歌 활 동을 하고 있을 시기에, 憶 良는 등장하지 않는다. 아마 그 시기에 憶 良는 관리로서 근무하고 있었거나, 또는 학문울 하느라고 歌人으로서 의 창작생 활은 하지 못했 다고 보게 된다. 『 萬葉集 』에 보 이는 것은 모두 40 세 중간부터이며, 史 書 에 처음으로 이름이 나타 나는 것은, 大 寶 元年 (701) 정월, 造唐 少錄에 임명된 사실이고, 이때 그는 42 세였는데 아직 無位였다. 아마 그의 學 藝 에 의해서 遣唐使 의 錄事 ( 書 記)에 일원으로서 끼게 된 돗하다. 栗田 眞 人을 執節使로 삼아 遣 唐使 일행은 이듬해 6 월에 難波 津 (지금의 大阪港)을출항했는 데 , 五姜의 배 는 무사히 중국에 도착하여 10 월에 는 장안서 울에 둘 어가고, 이듬해에 拜 賀 하였다. 그러나 귀로에는 海難을 만나 일행 은 서 로 흩 어 지 고, 栗田眞人은 慶雲 元年 (704) 7 월에 귀 국했으나, 憶 良의 귀국은 언제였던가 확실치 않다. 그가 從五位下에 敍賜된 것은 渡唐으로부터 13 년되던 和銅 7 년 (714) 정월이며, 元正天皇의 靈 龜 2 년 (716) 에는 伯耆守 3” 에 임명되 고, 養 老 5 년 (721) 정월에, 認命에 의하여 〈退朝後, 東宮에 侍〉하 였다. 죽 東宮(뒤의 聖武天皇)의 侍講(敎育 擔當 )이 된 것이다. 그러다 가 神龜 3 년 (726) 경 에 筑前守 38) 가 되 어 부임 , 天平 3 년 (731) 의 후반 또는 同 4 년 초에 退官해서 歸京, 登 5 년 6 월, 큰 병에 걸려서 卒했 댜 官位는 從五位下 그대로였던가는 불명이다 . 筑前守였을 때 그 36) 人 廢 • 赤 人 • 憶 良 37) 伯 耆 (,t; '7 ¥). 山陰道의 一國 지 금의 鳥 取 縣 西部. 38) 筑前(~ <-lflv ), 西海道의 一國. 지 금의 福 岡 縣 의 北西部.
의 상관인 芬홍땐는 大伴旅人였다. 그의 경 력 상 주목할 점은 그의 출자에 관해서 다. 그의 구〈之山 09上 之臣 0*〉* (神護景 雲 2 年〈 768 〉 6 月 , 山上臣船主가 〈朝臣〉의 姓울 下賜)이 란 氏姓은, 『新撰姓氏錄』 右京皇別에, 栗田朝臣의 동족이며 大春日朝臣과 同祖, 天足彦國忍命의 자손이라 하였다. 그리고 〈憶良〉이란 이름은 그 당 시 일반적인 일본명 같지는 않다 .39) 그래서 한반도로부터의 渡來人 이란 說이 나오게 되었다. 이 渡來人說울 주장한 가운데 가장 설득 력 이 있는 주장울 한 학자는 中西進敎授요, 그의 논문 「山上憶良」 에서 입증하고 있다· 요지를 보면, 天智 2 년 (663) 8 월, 白村江의 패전에서 백제가 멸망했을 때, 일본의 군함을 타고 망명해 온 〈憶緯 福留〉, 그리 고 天武天皇의 朱鳥元年 (681) 5 월, 勤大老位를 제 수한 〈侍醫 百濟人憶仁〉등의 類似로 보아 憶人을 憶仁의 子가 아닌가 추정하고, 나아가 近江國甲賀郡 40) 의 山直鄕에 憶仁 • 憶良이 거주한 때문에 山上臣이라 칭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上記의 〈朝臣〉姓을 하 사받은 〈山上臣船主〉는 陰陽療의 관인이었고, 寶龜 8 년 (777), 高麗 의 大使가 來朝했을 때 , 通事(譯官)舍人에 〈山於野上〉이 란 인물이 있었다(文德實錄, 嘉祥三年五月의 太皇太后橘嘉智子崩傳)는 등의 사실도 또 추정 을 도우는 유력 한 자료라 하겠다. 또 한가지 憶良의 한반도 인 출자의 歌人이란 說울 뒷받침하는 일례는, 일본에서는 酒冥歌諾 를 〈立歌〉라 호칭하고 있는 관례에 대하여, 憶良논 한국의 관습 그 대로 그의 酒案歌諾에서 〈龍冥(燕)曲〉이라 쓰고(卷三, 337) 있음도 간과못할 사실이라 하겠다 .41) b) 憶良의 學問과 思想 憶良논 歌人인 동시에 위대한 학자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에는 중국의 詩文, 儒敎, 佛敎, 老莊의 典籍에 유태하는 語句가 자유자 재로 구사되어 있다. 그러한 학문과 지식이 문학작품에 반영되어 있음으로 해서 한갓 외국문학의 영향을 받은 것만을 중시하기보다 39) 土橋寬, 『萬葉集開眼』(下), 「憶良 0 經歷&思想」, p. 46. 40) 近江國(% ; 入 산::.). 東山道의 一國, 지금의 滋賀縣. 41) 土橋寬 『古代歌諾全注釋』(『日本書紀』 組).
는, 그의 사상적 측면을 간과해서는 그의 문학관은 물론 문학 작품 울 일관하고 있는 품성을 정당하게 파악할 수는 없다. 중국의 봉건 사회의 도덕사상을구현하는유교와, 개인의 해탈·자유를퍼는불 교 • 노장과의 모순되는 사상으로부터, 다같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 다면, 憶良는 자기 스스로의 사상을 지니지 않는, 한갓 지식인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되고 만다. 사상이란 지식이나 학문이 아니고, 인간의 행동을 律하는 원리인 까닭이다. 학문은 사상을 형성하는 하나의 요소에 지나지 않으며, 보다 중요한 요소는 인생에 있어서 의 직접적인 체험이다. 憶良는 지식인으로서의 측면과 사상가로서의 측면이 있거니와, 그가 歌人으로서의 독자성을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후자에 의해서 이다. 憶良가 遣唐少錄에 뽑히고, 또 귀국 후에 東宮侍講에 被命된 것은 그의 학문·지식에 기인한 것이거니와, 憶良가 사상적인 작가 로서 동장한 것은 筑前守 시대 이후이며, 그러한 지식 인으로부터 사상가로서의 변신을 촉구한 것은 伯耆守 시대 이후의 國司로서의 체험이었다. 지석 인인 憶良가 國司로서 지방 농민의 생활실태에 접 하므로써 사상가가된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사상표현의 계기를 준 것은, 大宰府에서 大伴旅人과의 상종에서 비롯하였다. 憶良의 사상적 토대는 불교나 노장의 사상이 아니고 유교사상이 었다. 嘉摩 郡三部作 42) 은 그것의 산물인데 거기에는 부모처자를 버 리고 출가하여 私度僧이 되고자 하는 풍조를 훈계하는 國司의 입장 울 세운 것이다. 이같은 지배자적 사상에서 한걸음 나아가 유교의 덕치주의를 피지배층인 민중의 측에서 요구한 것이 「貧窮問答歌」 43) 이다. 이 노래에서는 두 사람의 가난한 사나이가 등장하여 각자의 가난울 서로 이야기하는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면 憶良가 〈貧 窮〉을 取題한 의도는 무엇일까. 어떤 학자는 陶淵明의 「諒貧士」나 「飮酒」 둥의 語句와 유사함을 지 적 하여 , 이 는 六朝詩人에 공감함으 로써 생간 것이라 주장하고, 또 어떤 학자는 佛典 중의 유사한 語 42) 憶良이 筑前守가 된 뒤 最初의 作. (1)令反惑情歌一首井序(卷五, 800~801 ), (2) 43思) 子天等平歌 一4 年首 (井73序2)({信 同· ,民 8衆0의2~ 8가03난).함 (과3) 哀슬世픔間을難 住노歌래합一.首 井(序卷(五,同 ,89 28, 048~938)0. 5).
句를 탐색해서, 빈궁을 諸 苦의 하나로 헤아리는 불교사상에의 傾倒 를 노래한 것이타 解하고 있다. 憶良의 작품에 漢 籍과 佛典의 인용 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반드시 사상적 공명이나 경도를 의 미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의 사상을 펴기 위해서 이용한 것일 분 이다. 이 「貧窮問答歌」야말로 憶良의 사상가로서의 진면목이 잘 엿 보인다. 그의 작품에 儒典에 유래하는 語句가 佛典에 유래하는 것 보다 저지마는 그것은 그가 사상적으로 불교적이었다 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儒敎敎典은 지배자의 논리에 의해서 쓰여져 있는 때 문이다. 그 유교사상을 지배당하고 있는 민중의 편에서 뒤엎어 새 로운 인권사상을 노래한 것이 이 노래이며, 官命에 종사해서 불행 한 죽음을 당한 態擬 44) 과, 志賀의 白水郞을 읊은 노래 45) 도 그러한 사상적 입장과 관계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憶良의 새로운 사상도 유교사상의 테두리 안의 것이니까 한계가 있는 것이었다. 憶良가 짊어전 한계를 오늘날의 눈으로 볼 때는 불철처하다고 비판하기는 쉬우나, 중국에 있어서도 그 당시 아직 杜甫나 白樂天과 같은 민중 시 인이 출현하지 않은 시대에 민중을 위해서 인간의 권리를 주장하 는 사상적 작품을 지온 憶良논 萬葉의 대표적 歌人일 분 아니라, 일 본문학사상 稀有의 시인으로서 높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44) 天平 2 年 (730) 12 月 , 大伴旅人이 大納言에 任命되 어 歸京한 뒤 , 憶良는 麻田 陽春의 「大伴君態疑의 노태 二首」에 和答하여 六首의 長歌와 反歌(卷五, 886~ 891) 문 지었다. 이것은 天平 3 年 6 月 17 日, 相撲使의 從者로서 肥國으로부터 서 울을 向한 態疑이 道中에 病에 걸려 安藝國에서 死亡한 것을 哀傷한 것이다. 45) 卷十六에 있는 「筑前國志賀 0 白水郞(if>i • 漁父)(I)歌十首」 (3860~3869) .
c) 憶良의 文學 憶良가 뛰어난 歌人으로서 지위를확립한것은九州時代였다. 『萬 葉集』에 는 長歌 11 首, 短歌 52 首, 旋頭歌 l 首, 그 밖에 漢 詩 • 漢 文 이 실려 있다. 卷十六의 「筑前園志賀 0 白力 水郞(主 J)歌」 10 首 (3860~3869) 도 그의 作이 라 한다. 『類衆歌林』이 란 歌集이 있은 듯하나 오늘날 전하지 않는다. 憶良는 短歌보다 오히려 長歌에 능통하다. 내용면으로 보면, 자 연을 노래한 것은 불과 3 首분이고, 그 밖에는 모두 人事에 관한 것
이다. 그러나 相閩의 노래는 한 首도 없고, 자석에 대한 깊은 애정 을 노래한 것이 두드러진다. 또 병약 • 빈궁 • 노사등의 암혹면을노 래하고 인생과 사회문제에 깊숙히 관여한 데에 그의 특색이 있다. 이 같은 방향의 시인은 『萬葉渠』에 그유례가없다. 대충 말해서 憶 良의 노래논 산문적 • 해설적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그의 학문적 교양에서 오는 정의감이라던가 사색의 십도는 情舞的인 것이 약간 결여된 것을 보충하고도 남음이 있다. 자식에의 애정을 노래한 것 子等宅思소歌一首 序宅井산t.: b 釋迎 如來回 金口 46) t다正t다만합.::主i R, 等 L 〈衆生宅思소乙&, 阜壓 羅,, 47) (IJ如 L &0 t:主^ b 。 又說총t으主|i <, 愛ti子t乙過풍t: D &I,、소드 & 無 L&0 t으主 ^b 。 至極 0 大聖寸 e m尙2 L 子宅,愛?( L 쏘石心志 b 。 k況I: t순世i,,,間·•· 0 1蒼, ~ 0 生1:< 근 (IJ, 誰力、|i子宅,?愛< LU 于尤 B 砂쓴。 802 瓜食I:沈 if 子 c· i思沿中 栗食Ii 沈 l f 主 L --cI,,德° ,ti中 `何5處 <. t b 來et b L§ (IJ군 眼交t乙 心 & tg惡 b f 安眼 L 渡훈요 文 ,‘9·U b·0· 합 ,. ,' 反歌 803 銀 心金心玉心何산tt다勝 h 石寶子t乙及力여心쓴主 I,,b 0·h
위의 漢 文序에 인용되어 있는 불교의 가르침과, 長 歌 • 反 歌 에서 憶良이 말하고자 하는 것과는 사상적으로 서로 모순된다. 釋 造如來 의 설교로서 인용한 〈等 思 衆 生, 如 羅 I 侯羅〉 는 『大 般埋築經 』 卷 第 一, 壽 命品에 보이는 것으로 ,48) 여래께서 중생을 사랑함은 여래의 독자 인 羅瞬羅 률 사랑함과 다름없이 평동하다 함을 말한 것이다. 불교 에서는 이성에 대한 사랑이나 육찬에의 사랑은 바론 인식을 그르치 게 하는 사랑이며, 애착 • 애집이라, 그같은 妄 執을 해탈해서 자유 로이 되는 것을 깨달음(悟)이라 한다. 그러므로 佛 • 菩薩 의 사랑은 그러한 특정자에 대한 사랑이 아니고, 모든 중생에게 골고루 쏟는 평등하고 절대적인 사랑이니, 이것을 慈 悲 慈愛 란 말로 나타낸다. 위의 佛說도 그와 같은 慈悲 의 사상울 말한 것 인데, 憶 良가 長歌 와 反 歌 에서 노태하고 있는 것은, 내 자석에 대한 사랑이며 불교가 부 정하는 애착이다. 그래서 전설과 자기의 주장과의 모순을 조화하기 위하여, 憶 良는 논리적 인 t r i ck 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又說 , 愛無過子〉이하의 句로, 이 句논 典猿 가 분명치 않다고 하는데, 물 론 佛典에 이같은 妄執의 사랑을 말한 語句가 있을 리가 없고, 팔 시 憶良의 한 t r i ck 일 것이다. 다음의 〈 至 極 大 聖 , 尙有 愛 子之心 〉 은 『大般埋藥經』의 佛說로부터 끌어 낼 수도 있지 만, 그것 은 센 鬪 운의 전 칭 긍정에서 특수 긍정으로 살짝 바꿈으로써 비로소 가능한 논리적 t r i ck 이며, 佛典의 정신을 왜곡한 我田引기예 5 인용이라 아니할 수 없다.
48) 井上哲男 : 「 憶 良 & 虫 麻 呂」
長歌와 反歌는 지금까지 憶 良 자신의 자식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것이타 이해되어 왔고, 憶 良는 지나치게 자석을 漏愛 하는 걸로 되 어 있다. 그러한 이해로써 본다면, 漢 文序는 자식에의 사랑을 번뇌 타고 한 불교사상과의 모순에 괴로워한 憶 良가 자기변호를 위하여 佛典의 말을 굽혀 이용한 것이라 할 수 있고, 〈世間 蒼 生 〉 은 구체적 으로는 憶 良 자신울 말한 것이라 할 수 있으나, 대체 憶良는 무엇 때문에 자식에의 사랑을 부정하는 佛典을 논리적 t r i ck 을 써서까지 인용해 야 하는가. 〈世間 蒼 生〉이 란 말은 천하의 인민을 이 르는 말이 니 官人인 憶良 자신을 이론 말은 아니다. 자식을 버리고 출가하던
당시의 인민, 죽 私度僧들에 대하여 철대적인 자비를 교설한 석가 여래께서도 자석을 사랑했으니, 그런 大聖이 아닌 보통사람에 지나 지 않는 너희들은 자식을 사랑함이 마땅하다는 논법이니, 그들을 (1 曾〉도 〈凡夫〉도 아니 고, 어 디 까지 나 현실사회 의 인민으로서 취 급 한 것이 〈世間蒼生〉이란 말이며, 훈계의 典操를 儒典이 아니고 佛 典에다 구한 것은 그 대상이 인만이면서 출가를 지향하는 私度僧입 므로서이다. 「瓜食砂if 子 E 心思t和中」의 長歌는, 자식을 사랑하는 어버이의 간절한 십정을 노래한 것이나, 그것은 이 노래가 憶良 자신의 자식 에 대 한 사랑에 국한해 서 부른 것 이 아니 고, 〈世間蒼生〉의 마음을 일인칭적으로 발상한 일종의 代作歌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표현을 가능케 한것은憶良자신의 체험이거니와, 그는그것을자기표현을 위해서가 아니고, 〈世間蒼生〉의 본연의 자세를 보이기 위하여 형상 화한 것이다. 이 長歌에 비하면 反歌는 관념적 • 훈계적이며, 憶良 자신의 자기표현이 아님을 일충 잘 나타내고 있다. 貧窮問答歌 「貧窮問答歌」에 는 〈筑前守〉라는 職街이 없이 그저 〈山上憶良頓首 諦上〉이라 쓴 自署로 보아 筑前守를 해임하고 歸京해서 지은 것으 로 일반이 말하듯 天平 4 년 (732) 겨울의 作인듯 하다. 이 노래에 불리우고 있는 것은, 민중의 가난, 가난의 슬픔이며, 유교적 덕치 주의와는 상반되는 현실의 모습이다. 貧窮問答 0 歌一首#t:::.短歌 892 風雜t~^ 雨降乙夜(.tJ ) 雨雜t~^ 雪降石夜.it i -術t-t
天地|i 廣 Le\, 、^&· 吾.,-, /J;t,爲,,i i 俠근 〈훈ts:加Q心 日I} 月-:,if! i .明,,.. L&\,''c· 吾.t, 力;爲ii 照 9 손給 l i心 人皆力、 吾가 h( J)入쓴然 石 七 <8 ift乙 人 t ii志 조 宅 人Uk 並寧따t 乙 E吾서책 心 惡-作:,남<石 宅씬 擊綿心 無麟(총J )n布內 야周·if衣 4드aQ 2 應)表 t海*드 松L 한0 무如<& 총j敷?총七남t혼 力父:母九i沿i 艦沈b·樓 00·( ... J 갤) K汝 妻子&겨싸i 足(J)方t乙 園入居t 꽃 ^n 今 0 而t乙|i 火氣소총立f寸 區t乙ii b 드 2& 0·< 소 근 I: Ii 남 나 E 卿<味 t Q)災0惡· 왕f 飯`야欽 ·L〈 事心忘九f 鎌D 九島 &( ' 9J ) 0陣L' 哈i 0 居* 丕 K \,、 &0 층f 短 헝鉉 I端nl, 截 e 石& 云^乙力涼如〈 l,통뿐石 뽑흙-/J埋記 뿡屋尸主균麥立t豆 t었깐요 斯선f力、 b 十術~ 無총心 0 力、 世i0 間 tlh· 0 道 893 世間순꾹 L& 순폰 Le 思^ c· t飛간立七力中已섀杯t乙 L 尤 e 七ii. (卷五) i0 t '9· ' 山上憶良頓首諦入f上石 貧窮問答歌一首 아울러 短歌 892 (貧者의 물음) 바람 섞어 비 오는 밤의 바 섞어 눈 오는 방은, 부질없이 추위서 덩어리 소금 뜯어 내어 조금씩 감아 먹고 찌꺼기술 마시면서 연 거푸 기침하며 코를 노상 씰룩씰룩 엉성한 수영을 쓰다듬으면서 나를 제쳐놓고는 사람다운 사람없다 뽐내어 보건마는, 너무나 추워서 삼이불 뒤집어 쓰고 송없는 布眉衣를 있는 대로 다 입어도, 이처럼 추운 방인 데 나보다도 가난한 사람들의 부모는 배고파 떨고 있겠지. 妻子둘은힘 없이 흐느끼며 울고 있겠지. 이러할 때 그대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窮者의 대답) 天地논 넓다 해도 나를 위해서는 좁아지고 말았던가. 日 月이 밝다해도 나를 위해서는 바쳐주시질 많단 말인가. 누구나가 그러 한가 나만이 그러한가. 좀처럼 태어나기 어려운 人間이 되어 남처럼 나 도 耕作하고 있는데 , 송도 없는 布眉衣를 청 각채 모양으로 조각조각 찢 어져 축처진 누더기를 어깨에다 걸치고, 여눌려 부서진돗 삐뚤어진 오 막속 봉당에 짚을 깥고, 어버이는 베개머리에, 妻子둘은 발치에서 나를 에워싸고 탄식하며 슬퍼하며 부업에는 연기 안 나 시루 안에 거미줄 쳐 밥짓기도 잊어버리고 가냥프게 힘없는 소리를 지르는데, 다시 없이 짧 온 것을 끄트머리마처 자른다는 속담과 같이, 매를 쥔 洞長의 督徒하 논 소리가 침실문까지 와서 버티어 서서 나를 마구 불러대네. 이처럼 도 할 수 없는가 世上의 道理란 것이. 893 이 世上이란 괴롭고 살을 깎돗 불안한데, 어던가에 날아갈 수도 없지. 새가 아닌 바에야.
이 노래는 갑 • 울 두 貧窮者가 서로 문답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 다. 이것은 중국의 문답형석의 詩賊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하여, 혼히 陶淵明의 「形影神井序」와 비교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문답형 식이지만 그 구조가 다르다. 陶淵明의 경우, 〈形(肉體)〉이 〈자연은 枚久不裵하나 인간은 無常하여 슬프다. 그림자(影)여 술을 걸러 근 십을 잊자 ! 〉라고 하여 찰나주의적 인 의견을 퍼니, 〈그림자여多)〉는 〈인간의 無常이탄 피할 길이 없다• 그러나 善行울 쌓으면 餘惠가 남는다고 하니까, 힘껏 노력함이 마땅하니, 술따위란 하찮다〉라고 반론한다. 마지막에 〈神(精神)〉은 〈인간은 貴賤賢愚에 불구하고 모 두 멸망한다. 술은 근십을 잊게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생명을 단축 시키는 것이다. 선행을 쌓으면 남이 기뻐하지마는 아무도 칭송하지 는 않는다. 變轉하여 마지않는 이 세상에서는 변화에 몸을 맡겨 하 나하나의 현상에 기뻐하거나 두려워 말지어다〉라고 老莊的인 해결 책을 제시하고 있다. 죽 形象神問答의 구조는 正 • 反 • 合의 변증법 적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貧窮問答歌」에서는 問者(甲)와 答者(乙)는 正 • 反의 대립관계는 아니고, 둘이 다같이 반궁의 쓰라림을 호소하고 있으 며, 더구나 전자에 비하여 후자는 빈궁의 정도가 일충 십각하며, 감정의 표출이 보다 격렬하다. 甲은 〈추위〉(寒훈)를 노래하고 있는 데, 〈貧〉에 대해서는 한말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가 貧 者임은 〈我J: b §貧 L 총人|i〉라고 한 데서 알 수 있다. 따라서 貧窮問答歌의 중십은 당연히 후반의 답에 있다. 이 대목 은 班田農民을 묘사하였는데, 전반은 憶良 자신의 빈궁을 노래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으나, 그것은 찰못이니, 憶良는 筑前守를 그만 두어도 從五位의 位田八lBJ을 종신토록 받는 신분이다. 位田은 熟田 울 충당케 한 것인데, 그 표준 수여온 쌀로서 200 f!i~이 되고, 그 밖 에 位祿으로 縮四屯, 綿四屯, 布二十九端, 庸布百八十常이 지급된 다. 겨울방 精湯酒를 마시고 麻衣나 布眉衣물 입을 팔요는 없다. 노래에 그려진 두 貧者에 비하면 훨씬 높은 생활수준인 것이다.
(5) 大伴旅人 • 大伴家持 『萬쟁핍 E 』의 작자로서 大伴氏 일족이 菜 중에서 접거하논 위치는 매우 중요하여 딴 씨족의 그것과는 비교가 아니된댜 일족 중에서 作歌가 渠 중에 수록되어 소위 萬葉歌人이라 불리우는 사람들은 槪 算해서 30 인을 넘고, 더우기 작자는 아닐지라도 渠 중에 그 이름이 보이 는 사람은 훨씬 불어 나서 그들이 作歌한 것 은 累計 760 여 首를 헤 아리 며 , 대 충 줄잡아 『萬葉染』所收全歌數 4, 500 여 首의 거 의 17% 에 달하는 것이다. 이 중에서도 특출한 歌人은 旅人 • 家持이다. 大伴氏의 계보는 멀 리 신화시대에까지 치올라 가서, 天孫降臨때 수행한 天忍日命울 祖 로 하고, 그 3 세의 孫인 道臣命온 神武天皇이 束征하였을 때 많은 武勅을 세운 바 있고, 氏에 관한 기술은 記紀에 많이 보인다. 大伴 氏는 이러한 傳承울 둥지고 명문거족으로서 황실의 신뢰을 받아온 것은 사실이며, 일족은 이같은 사실울 자랑으로 여겨 대대로 황실 에 충성을 바찬 것도 의십 없는 사실일 것이다. 紀에 의하면 欽明 이후, 蘇我·物部兩氏의 출현에 다다라차츰.大伴氏 왕년의 세력은 줄어들어, 정권상 第一線으로부터 멀어졌으나, 壬申之亂이 일어나 자 大伴氏는 天武天皇편에 서서 武勅울 세웠으므로, 亂後는 御行 • 安磨둥을 棟梁으로 한 일족은 거의 이전의 권세와 번영을 되찾은듯 하였는데, 일방 大化改新 이래 대두한 신홍의 藤原氏의 권세 앞에 서는 굴복하고 말았다. a) 大伴旅人 大伴旅人은 天智天皇 4 년 (665) 에 태어나서, 天平 3 년 (731) 67 세로 서 세상을 떠났다. 大伴家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신화시대 이래의 무사집 안의 명 문으로, 그 父는 大納言贈從二位의 직 함을 가전 安磨 이 다. 奈良遷都(和銅三年 ·710) 는 그가 46 세 되 던 해 이 다. 이 해 에 그 논 左將軍이 되고, 養老 2 년 (718) 엔 從四位上納言, 同 4 년 3 월에 征 集人持節大將軍이 되고 군공을 세워 神龜 3 년 (724) 에 正三位가 되 었다. 神龜 3.4 년경에 大宰帥가 되어 九州로 내려가, 天平 2 년 (730) 10 월, 大納言에 올랐논데 , 同 12 월에 상경 , 登 3 년 정 월에 從二位,
그 해 7 월에 卒했다. 『萬 葉集 』에는 長歌 1 首, 短쩐:11( 76 首(혹은 56 首)가 실려 있거니와, 그 대부분은 大宰府에 재임중의 作이다. 그가 大宰府 재임중에 筑前守로 있던 山上憶良과의 교류가 山上 의 作歌 의욕올 드높였던 것이다. 聖武天皇의 神龜 • 天平時代에, 뛰어난 歌人이었고, 중앙에 있어서 문화인이었던두사람이, 변두리 인 北九州의 땅에서 우연히 서로 만나 大宰府歌 壇 울 형성한 것은 和歌史상 독기할 盛 事 타 하겠다. 旅人은 좋은 가문에 태어난데다가 인품이 원만하고 부하의 촌겅 을 받았으며 가족에게도 자애로운 가장이었다. 다음에 그의 작품을 보면, 가장 일찍 지어전 노래는 「 暮春 0 月, 芳野 (l) 離宮t乙幸 LL 時, 中納言大伴卿, 勅在奉 bL 作石歌」 (卷三· 소 L O L 며자 : 9H f: C 玄? 315) 이다. 315 ~吉野(J) 芳野 0 宮 V i 山柄 L 貴 力 굿 乙 8 L J II 柄 L 淸남力、Q G L 天地上 구 2 •• b f노&& 근룻 長 <久 L < 萬i 5代 다it 乙 裝 8 f志 8 t `行· T幸 i ( L J)宮 反歌 316 昔見 L 象논2 0 小* 河·:I2宅 今見 h if“나 :L 、J:근구淸 낡
듯하나 淸水克彦氏 51) 는 주목할 만한 세가지 접을 들고 있다. 그 하 나는 〈川〉을 〈水〉로 표기한 접인데, 이것은 논어의 〈智者 는 樂水하 고 仁者는 樂山한다〉에 의거한 것. 둘째는 〈 天地與 長 久 〉 도 漢詩 文 의 用字에 의거한 것. 세째는 〈萬代尔不改將有 〉 은, 聖武天皇 즉위 i소궁J; I:. D 이i e i'尤 b t 의 宣命에 의거했다는 것이다. 大伴郞女의 축음 :1<1 ,1: I,,,``, , ?.,., 旅人의 처인 大伴郞女가 남편을 그리워해서 멀리 筑紫에 내려온 것 은 神龜 5 年 (728). 筑紫野에 는 棟의 꽃 52) 필 무렵 이 었 는데 , 두 사 람의 즐거운 생활도 오래지 않아 그 꽃이 질 때에는 허무하게 세상 을 떠나고 말았다. 歌友인 憶良은 슬퍼하는 旅人의 십정을 애절히 여겨, 旅人울 위한 代作 「日本換歌一首」(卷五 ,794) 를 지었다. 〈日本 換歌〉라는 것은 한문 아닌 일어로 지은 換歌란 뜻이거니와, 憶良 온 마치 자기 처가 죽은 때와 같은 슬픔을 담아 노래한 것이었다. 旅 人은 이와 같은 동정의 조문에 대해서 793 世1!)中~iu空,, L 총 ti!)&知조時 L I,、J: J: 主寸主寸悲 L 力 `b 남 b 793 세상이 허무함을 참으로 느낄 때에 더더욱 슬픔을 새로이 하도다. 라고 옹답하였다. 『萬葉集』에는 불교의 諸行無常에 바탕한 말로서 〈無常〉을 쓴 예가 13 회나 있거니와, 세상을 〈허무하다〉(空 L) 라고 하 논 표현은, 이 노래 의에 또 한 首 작자미상의 노래가 있을(卷三, 442) 분이다. 〈空 L 〉는 佛典의 〈一切空〉의 譯語일 것이다. 旅人이 〈無 常〉(常t£총§(J))이라 하지 않고 〈世(J)中ii空l.,총t(J)〉라는 표현을 쓴 것은 三論宗 53) 의 〈空〉의 교리에 바탕한 것이지마는, 만일 그렇다면. 세상이 空임을 인식함으로써 〈 L 、ii主寸主寸悲 L 力내남 b 〉라 노래 51) 「旅人(l)宮廷儀 禮歌 」, 『萬葉』 第三七號. 52) :to 5 i;,. 驛, 멀구술나무. 백 단향의 딴 이 름. 53) 推古三十三年 (625) 正月 . 高句麗僧 인 惠湘에 의 해 將來한 것 으로, .::z.. 血脈은 福 亮•智藏·道慈·智光·租光에 전해졌거니와 , 福亮온 齊明 4 年, 中臣鎌足의 請 에 의하여 山階道原의 집에서 維摩經울 講 하였고, 이것이 興福寺 維摩會 의 起源이 되 었음.
한 것은, 번뇌 해탈을 敎說한 불교사상에 대한 반발이라고도 볼 수 있다. 〈空 L 총心 0 〉를 그다지 깊은 뜻으로 쓴 것이 아니라면, 지극 히 상식적 인 佛敎入門의 노래가 되어 버리지마는, 〈知石時t〉라 强 勢助詞를 쓴 것으로 보아, 그러한 상식적인 불교사상을 노래했다고 논볼수없다. 妻나知己의 死를서러워한다는것은迷惑이다라는 〈空〉의 사상에 대 하여 오히 려 이 에 저 항하는 心思의 나타남이 라고 봄이 타당하지 않을까. 神龜 5 년 이후의 旅人의 노래는, 亡妻를 생각하는 노래와 奈良의 서울에 대한 望鄕의 情을 노래한 것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거니 와, 旅人에게 있어서는 妻가 없는 서울은 고향으로서의 의미가 없 어진 듯하다. 444309 *京9還수t·^:.石 r .
大宰帥大伴卿, 酒宅 讚I. t歌 13 首 340〈 其古三
온 「 書 殿(旅人 K 효 의 I 亂뱌 館 )v:::. l..,-c, 賤酒산l.., 日 0 倭歌四首」(卷五, ...: ,,./:;.,, ,:t,, 더‘t남 구 2/; 스 876~881) 라는 題詞로서 실려 있다. 876 天飛쏘쓴鳥t乙心力;t순都主균送 b 申L t飛 0頂 掃石 t(1) 2 七 876 하늘나는 새이고져 서울까지 모셔드려고서 날아 돌아올 것을 이때 憶良는 벌써 노년, 게다가 병에 시달리고 있었으므로, 旅人 과 해어짐이란 여간 쓸쓸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자기도 빨리 서 울에 가고 싶은 마음 둘 데 없었다. 旅人이 筑紫롤 떠나감을 애석하게 여간 사람은 憶良분만 아니었 다. 太宰府의 많은 官人들로부터도 人情長官인 旅人과의 헤어짐을 섣워하였다. 旅人의 妹인 坂上郞女는 旅人의 妻인 大伴郞女가 죽은 뒤에 旅人에게 와 있었다. 그녀는 다감한 女流歌人으로서 『 萬 葉集』 에 長 歌 6 首, 短歌 77 首, 旋頭歌 1 首가 실려 있다. 額田王과 함께 萬 葉 女流歌人의 대표이다. 歸 京한 이듬해 7 월, 旅人은 제상을 떠났다. 쓸쓸한 만년이었으 나, 담담하게 고요히 命終울 맞이한 것이다. b) 大伴家持 大伴家持논 旅人의 長男, 坂上郞女의 明이다. 大伴 일가의 棟梁 으로 그의 경 력 은 『紹 日 本紀』며 『公卿補任』 등에 보여 비 교적 소상 하다 할수있으나, 상호전후에 모순이 있기도 하여 반드시 확정적 이라 할 수 없어서, 때로논 『萬葉集』 중의 題詞나 左注에 의하여 補
正을 요한다. 家持의 作歌는 首數에 있어 서 長歌 46 首, 短歌 431 首(反歌를 포함), 따로 連歌 1 首, 旋頭歌 1 首, 합계 479 首에 달하여 , 大伴 일족의 作 歌 약 760 여 首의 六割强울 차지 하며 , 『萬葉集』 중의 주요작가에 비 겨 赤人의 10 借 憶良의 6 倍, 그리 고 人磨의 경 우, 가령 『人磨歌集』 의 노태 전부를 人磨作이라손치더라도 오히려 이를 능가한다. 물론 이 사실온 반드시 家持의 作歌의 우수성 을 증명 하지 는 못하지 마논,그러나 그의 作歌의 이러한 압도적인 수량은 좋든 나쁘돈 간에 『萬 葉集』 그 자체의 성겨울 그만큼 크게 규제함에는 틀림없다• 家持의 70 년의 생애 54) 를 연구자에 따라 三期 또는 五期로 나누고 있다. 이제 久松潛一의 구분을 들면 아래와 같다. 第一期少年時代 迷老 元年 (717) ―天平 4 년 (732) 탄생 一 16 세 第二期 靑春時代天平 5 년 (733) ―天平 18 년 (746) 17 세 ― 30 세 第三期 越中守時代 天平 18 년 (746) ―天平勝費 3 년 (75 1) 30 세― 35 세 第四期 兵部省時代 天平勝費 3 년 (751) 一天平땄字 3 년 (759) 35 세 ― 43 세 第五期 晩年時代 天平寶字 3 년 (759) _延曆 4 년 (785) 43 세_사망 55)
54) 尾山篤二郞 『大伴家持 O 硏究』 中의 「大伴家持年譜」. 55) 『萬葉菜』, 岩波 캄 店刊, 四冊中의 其四, p. 7.
家持의 生年 그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명문 大伴氏의 氏上旅人의 장남으. 로 대어났댜 旅人의 摘妻인 大伴郞女에게는 자식이 없었던 듯하 며, 旅人이 50 세를 넘어 첩에서 낳은 아들이며, 同腹弟에 書 持와· 妹인 留女가 있었다. 家持의 生年은 『公卿補任』에 天應元年 (78 1){底에 64 세라 있고, 延 曆 4 년 (785) 8 월에 사망한 享年울 「大伴系圖」에 68 세라 한 것을 逆 算하면, 養老 2 년 (718) 에 난 것이 된다. 이 해에 旅人온 中納言에 임명되었고 나이는 54 세였다. 그런데 『萬葉集』 卷八에 「橘朝臣奈良 麻呂, 集案在結六石歌十一首」 속에 家持의 노래 1591 짠홉(!)過풍主 이虹入思 kc· 'b遊쏘今夜|i明납于心志 8 心力> 1591 단풍잎 지는 것을 애석굴다 여겨서 서로 사랑하는 동무끼리 노니논이 밥 새 지 말아 줄 수 없는가. 이 노태의 左注에 〈右一首, 因습人大伴宿祐家持〉라 있고, 11 首 전체 의 左注에 〈以前, 冬十月 十七 日 , 右大臣橘卿(諸兄 )O 짧 宅 V 乙集 主 b f案飮寸〉라 있다. 이 11 首는 天平 18 년 8 월 20 일의 노태와 天平
11 년 秋 9 월의 노래 사이에 끼어 있으니, 天平 11 년fF 이 되며, 이 때에 家持논 內舍人이었다. 만일 家持가 義老 2 년생이라면, 天平 10 년에는 21 세, 令制로서는 內舍人이 五位 이상의 자손으로 21 세 이 상의 자를 선임하는 규정이니, 『萬葉集』의 기술은 그것과 모순되지 않지마는 家持가 從五位下에 임명된 것은 天平 17 년 정월이므로, 內舍人의 기간은 6 년이 되며, 거기에 의문이 생긴다. 內舍人의 기 간은 大箕令에서는 6 년이나, 度雲 3 년 (706) 의 格에서는 4 년으로 개 정 된 때문이다. 이 사실은 山本健吉氏가 지적한 바와 같이 天平 10 년 10 월의 노래 左注에 있는 〈內倉人大伴宿祐家持〉는 정 식 의 內舍 人이 아니라, 內舍人 견습이라 불 수밖에 없다. 筑紫에서의 家持 家持는 庶子이지만 장남이며 大伴家의 뒤를 이어야 할 처지에 있 었으므로 佐保에 있었던 旅人의 집에 데려다가 摘妻인 大伴郞女의 손에 양육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神龜 4 년 (727) 에 旅人이 大宰帥에 임명되어 筑紫에 내려갔을 때에, 大伴郞女도 열살이 된 家持를 데 리고 筑紫에 간 듯하며, 天平 2 년 (730) 6 월, 旅人이 蕭脚에 걸려 병이 중하게 되자, 위문의 칙사로서 파견된 大伴稱公·大伴胡磨의 歸京울 家持는 大宰府의 관인들과 더 불어 전송하였다(卷四, 567 의 左 注). 旅人의 抵脚온 다행히 나아서 그해 12 월에 大納言에 임명되어 歸京, 家持도 함께 서울로 올라갔거니와, 在府 3 년간, 旅人과 憶良 울 중심으로 한 筑紫歌壇의 공기에 접촉하게 된 그는, 少年歌人으 로 성장함에 있어서 큰 자극이 되었을 것이다. 天平 2 년 정월의 梅 花宜의 인상온 길이 家持의 기여에 남은 듯하여, 20 년 후인 天平 勝寶 2 년에 그 당시의 매화노래에 追和한 노태를 지을 정도였다(卷 十九, 4174). 이 사실과 함께 또 하나 家持가 歌人으로서 성장함에 있어서 큰 영향을 끼찬 것은, 叔母인 坂上郞女이다. 어린 家持를 기르고 筑紫 에도 함께 내려간 大伴郞女논 神龜 5 년의 初夏에 타계하고 말았다. 이때 旅人이며 憶良이 그녀의 죽음을 애상한 換歌를 지었거니와, 이때 家持는 11 세었다. 旅人이 異母妹인 大伴坂上郞女물 筑紫에 부
론 것은, 아마 大伴郞女에 대신해서 家持의 양육을 맡아보게 함이 었을 것아다. 坂上郞女논 萬葉女流歌人 중에서 가장 많은 노래를 남겨놓았거니 와, 그너 는 처 음에 糖積皇子에 게 출가하였 더 니 , 靈龜 元年 (715) 에 皇子가 卒한 뒤에 藤原麻呂 56) 가 청혼한 적도 있어 두 사람 사이의 相聞歌가 있다(卷四, 522~528). 그러나 그 뒤에 가서 旅人의 異母弟 (坂上郞女의 異母兄)인 大伴宿奈麻呂의 妻가 되어 坂上大f.Af • 坂上二 娘울 낳았다. 旅人이 坂上郞女를 筑紫에 부를 수 있었던 것은, 宿 奈麻呂가 神龜元年 (724) 2 월에 從四位下에 除授된 뒤 오래지 않아 病股한 까닭이었다. 坂上郞女가 筑紫에 下向한 데 대하여, 旅人의 후처가 되었다는 說이 있는가 하면, 大伴一族의 제사를 받들고 冥 席울 주재하는 主婦의 座물 大伴郞女로부터 · 인계시키기 위해서라는 說이 있다. 前說온 다분히 홍미본위의 說일 분 後說을 取하는 측이 유력 하다. 그러 나 旅人은 亡妻를 사모하는 많은 노래 며 , 郞女의 大 宰大監의 職에 있 던 大伴百代와의 贈答歌(卷四, 559~564), 歸京때 의 作歌(卷六, 963) 등은 後妻說의 반증이 된다. 또 後說은 郞女가 奈良의 서울에 있어서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니 筑紫에 부론 이유는 되지 못한다. 그래서 이 兩說을 모두 부정하는說도있는것이다 .57) 그것은 旅人이 장래 大伴氏의 氏上이 될 家持의 교육 때문에 배려 된 조치라 보는 것이다. 坂上郞女에게 主婦(家刀自)的 지위를 준 것 도 그러한 이유에서 취해전 것이라 한다.
56) 藤原不比等의 四男. 57) 土相寬, 『萬葉開眼J F, 「大伴家持」 p. 200.
歸以後 奈良에 돌아온 家持는 한달 뒤늦게 귀경한 父인 旅人과 함께 佐 保의 邸宅에 서 天平 3 년의 정 월을 맞는다. 그런데 旅人이 病死하니 이때 家持는 1~] 였다. 坂上郞女는 그냥 그대로 佐保의 邸宅에 머 물고 있었던 모양이니, 〈天平 4 년 3 월 1 일 佐保宅에서 짓다〉라는 左 注붙은 노래가 있어서(卷四, 1447) 그것을 나타내고 있다. 坂上郞女의 딸인 坂上大娘과의 접 촉은 天平 4 년 (732) 봄부터 시
작되었다. 大伴宿稱家持 0 春鷄 0 歌一自 . I:o tI!'L 1446 春 0 野t乙志혼 石矢EE射L 0 ?妻2戀=t 더己k0力 넋첫. b 宅人}학知 h?? 大伴宿彌家持 0 坂上家 01; 大 `'娘b ?t,, 디贈乙歌一首 1448 b tJ~屋外t다侍총 L 器麥 L 、? L 力너) 花t긴吳총 tg겨比^??見t 수 E f£ TL: f‘군 1446 봉들에 모이를 찾고 있는 꿩이, 짝 그리워 울어서 제 있는 곳이 사람 에게 알려지도다. 1448 내 집 뚤 앞에 뿌려 놓은 패랭이씨 언제쯤 꽃이 필까, 고운 님에다견 주어서 바라다 볼 것을. 前者는 卷八의 「春雜歌」의 최 후. 〈天平 4 년 3 월 1 일 佐保(I)宅t:--c 作石〉와 左注가 있는 坂上郞女의 노태 앞에 실려 있고, 後者는 「春 相聞」의 최초에 놓여 있으며, 그뒤에 笠金村의 노래가 있음으로 해 서, 두 노래가 다 天平 4 년 (732) 봄의 작품인듯 하다. 後者는 우선 求愛의 노래로 볼 수 있냐 家持와 坂上大娘과는 從男妹 사이로 어 릴적부터 사귀어 온 터이다. 구1 경후 坂上郞女는 大娘이 있는 坂上 의 집과 家持가 있는 佐保의 집을 서로 왕래한 듯하다. 이 노래를 보낸 天平 4 년은 家持 15 세 , 大娘은 아직 11~12 세 였다. 두사람이 정식으로 결혼한 것은 天平 11 년 (739) 말 또는 12 년초인듯 하며 그 사이 수년의 공백이 있다. 이 때로부터 內舍人時代까지는 家持의 청춘시대이며, 이 동안의 노래 대부분은 相聞歌인데 그 대상이 된 여성은 笠女郞, . 紀女郞, 山口女王등 열손가락을 꼽아도 남음이 있으나, 坂上大娘과 함께 중 요한 여 성 은, 天平 11 년에 유아를 남겨 놓고 타계 한 〈亡妻〉이 다(後 述). 그 당시는 일부다처가 귀족사회의 관습이었으므로 〈妄〉이라 해도 摘妻가 아니타는 것뿐이며 소위 숨어 사는 존재는 결코 아니 었으니 이 여성이야말로 家持에게 있어서는 최초의 여성이 아니었 던가한다.
內舍人時代 天平 10 년 (738) 10 월 17 일, 橘諸兄의 아들, 奈良麻呂는 諸兄의 舊宅에서 集案을 베풀었는데, 家持는 동생인 書持, 동족인 池主와 더불어 이에 列席했다. 때에 나이 20 세로, 이해 정월에 內舍人이 된 것이다. 前年인 天平 9 년에는 藤原不比等의 네 아들 武智麻呂 • 房前 • 宇合 • 麻呂 등이 서울에 유행한 천연두로 모두 사망하였으며, 이해 정월에 橘諸兄이 右大臣에 올라 이후 20 년 가까이 諸兄時代가 계속한다. 諸兄온 본시 葛城王이라 일컬었고, 栗隅王(敏達天皇의 皇 子인 難波皇子의 아들 또는 孫이 라고도 함)의 孫인 美勢王의 아들인데 , 그같은 지위에 오르게 된 것은, 생모인 犬着宿稱三千代가 不比等의 처가 된 때문이며, 天平 8 년에 橘宿彌의 성을 받은 것도 三千代가 和銅 3 년 (710) 에 받은 그 성을 이은 것이었다. 諸兄父子는 뒤에 藤原仲麻呂(武智麻呂의 次男)과 대립하게 되거니 와, 聖武天皇온 諸兄울 중히 대 우한 때 문에 천황의 在世 중에 는 평 화로운 諸兄時代가 계속되어 舊族의 大伴氏의 摘孫인 家持도 그 비 호를 받아 행복한 청춘시대를 보낼 수 있었다. 그가 內舍人으로서 出仕한 이듬해 6 월, 젊은 첩이 타계하니, 家持는 다음과 같은 挑歌 를지었다. 十一年己卯夏六月, 大伴宿彌家持, 亡 bL 妄在悲傷杯t作乙歌一首 462 今J: b| i秋風寒〈吹총t£t宅I,、力`t드*力玄 b游, 만)*長*'총£上따 夜 宅bt宿·a' , Lt (卷三) 469 妹iJ;見 L 屋10 前11' 乙花疾총時ti經~ 요七力:泣 <派 I,、主tE F t£
中 58) 은 天平 13 년 12 月에 能登國 59) 을 병합한 족후라, 大國과 다름 없는 지방이니 家持로서는 불만이 없었을 것이다. 7 월에 平城京을 뒤로 하고 勇躍 임지로 내려갔다. 叔母인 坂上郞女는 2 首의 노태를 선사하였고(卷十七, 3927~3928), 동생 書 持논 木津川의 나루터까지 와서 전송하였 다(卷十七, 3957).
58) 北陸道의 _國. 지 금의 富 山 縣. 59) 北陸道의 一國 지금의 石川 縣 의 能登半島地方.
越 中의 國廳位置논 富 山 縣 의 高岡 市伏木古 國 府의 높은 盛 위, 勝 ... 石 드 ... 興寺附近의 일대로國守의 館은勝興寺 문전에 있었다 한다 . 배후에 는 二上山울 바라보고, 전면에는 射水川이 둘러있고, 복에는 富 山 潟의 奈吳 바다를 내려다보며, 동은 멀리 立山連峰을 바라다보는 勝 景 의 땅이었다. 家持의 노래 경력 중에도 越中守時代의 5 년간은 질과 양 모두 가 장 충실했던 시기다. 이제 노래의 首數만 보더라도 越中 이전(1 3 년 간)은, 長歌 5 首, 短歌 153 首, 계 158 首, 이에 대해서 越中時代 (5 년간)는 長歌 35 首, 短歌 187 首, 旋頭歌 l 首, 계 223 首가 된다• 越 中守 이 후 (8 년간)는 長歌 6 首, 短歌 86 首, 계 92 首다. 수자에 는 다 소의 전폭이 있을지 물라도, 이상으로 개략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분만 아니라 이 시기의 노래는 격조 높은 秀作이 적지 않다. 그 까 닭은 첫째, 恭仁京時代의 불안한 사회정세, 藤原仲磨와의 권력싸움 의 와중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운 천지의 주인공이 된 접을 듈 수 있 다. 家持도 仲麻呂의 세력 확대에 대하여 쾌히 여기지 않았을 것이 나, 大伴家의 군사적 伴造로서의 전통으로 보아도, 실력주의의 奈 良 麻 呂에 동조코자 하는 마음은 없었을 것이며, 家持의 성격으로 보아서도 奈良麻呂와 같은 행동파는 아니다. 12 년 후의 天平 寶 字元 年 (757) 에 일어 난 奈良麻呂의 變때, 유사 ’1 을 받은 佐伯全成의 자백 에 의하면, 天平 17 年에 聖武天皇이 難波宮에서 병으로 쓰러졌을 때, 奈良麻呂는 〈만일 임금이 돌아가시는 사태에 이르르면, 皇嗣가 定해지지 않은 때문에 亂이 일어나리라(阿部內親玉이 이미 皇太子에 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이를무시한 것이다). 그쾌서 黃文王을· 세워 인 민의요망에응하고자하는데, 만일大伴·佐伯의 일족이협력해
준다면 성공함은 룰림없다〉고 하고 권유한데 대하여, 全成온 천황 에게 충성을 다함을 본분으로 삼는 佐伯氏는 전통을저바릴수없다 하여 이를 거절하였다 한다 . 奈良麻呂논 家持에 대해서도 같은 취지 의 권유를 괴했을 것이나 家持도 이에 응하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家持의 越中 부임은 한편으로는 서울을 떠나는 적적함을 부정할 수 없는 일이나 또 한편으로는 정치적인 번거로움에서 해방되는 의 의가 있었다. 越中時代의 노래에는, 특히 초기의 노래에는 서울에 두고 온 坂上大娘울 그리워하고, 橘 • 『嚴 公 鳥 등 도시적 풍물에 대한 향수를 노래한 것도 있으나, 그 반면에 눈을 이고 있는 立山 連峰 의 雄姿, 射水川 위를 노처으면서 노래하는 舟人의 노래, 大和나 難波 에서는 보지 못했던 〈?主支 〉 60) 등, 새로운 경험에 가슴 설레고 있 음을 엿볼 수 있다.
60) -?ii, 海邊에 나는 植物名. 未詳. 『萬葉集』 卷十九, 4159, 都萬麻.
또 하나의 이유로서, 越中에는 內 藏 繩麻呂, 大伴池主, 秦 八千島 등이 在任하고, 그 밖에 遊行女婦의 土師 • 蒲生娘子둥이 있어서 文 雅의 모임이 홍성한 환경에 처해 있음을 들 수 있다. 특히 大伴池 主와의 관계는 일찌기 大宰府에 있어서의 旅人과 憶良와의 관계 이 상의 찬밀함이 있었고, 池主가 越前國의 緣에 전출한 뒤에도 자주 노래를 贈答하였나 중앙 정부와의 관계, 地方歌壇의 상황으로 보 아, 家持의 越中時代는 旅人의 大宰府時代와 비슷한 데가 있었고, 家持의 노래가 越中時代에 최고조에 달한 것도 旅人의 노래가 大宰 府에서 開花한 것과 상통한다. 忠誠誓約의 노래 天平 21 년 (749) 2 월, 陸奧國守인 百濟景福은 部內의 小田郡에서 産出한 황금을 조정에 貢進하였다. 일본에 있어서 황금의 貢進온 처음 있는 일로 聖武天皇온 계획하고 있던 盧舍那佛의 造立이 이로 말미암아 완성의 전망이 트이었다. 천황은 畿內 7 道의 諸社에 奉幣 하여 이 를 告함과 동시 에 , 4 월 1 일 東大寺의 盧舍那센 h 에 北面하여 서고, 백관에 대해서 敍位울 행하며, 14 일에 元號를 〈天平感寶〉라 고쳤다. 家持도 一階를 올라 從五位上이 되었거니와, 득히 그로 하
여금 감격커] 한 것은, 그때 백관에게 내린 宣命 가운데, 大伴氏의 충 성 서 약의 노래 〈海行力섞 V f水禎 <尻 , 山行力접 if草tr-t.lIB, 大君(J)^t드 으 춘死t.r.lst), 長閑t乙 v i死t£ E 〉를 끌어 다가 大伴 • 佐伯氏의 祖上 이 래 의
4094 ...... 그것을 더없이 貸하다 여기고 기쁘게 생각하여 大伴氏의 먼 祖上이 그 이름을 大來目이라부르며 임금을성기던 소중한 구실은 〈바다로 가 떤 물에 참기 는 송장이 山에 오르면 풀돋는 송장이 된다고 하더 라도 임 금님 곁에서만 죽겠노라 뒤돌아보지는 않겠도다〉라고 이같이 맹세하고 大丈夫로서 맑은 그 이름울 예로부터 지금까지 전해 내려온그러한 조 상의 子孫이 도다. 大伴氏와 佐伯氏는 조상이 제우신 맹세 〈子孫된 者 조상의 이름을 꿇어버리논 일 없이 임금을 섬기는 법이다〉라는 전해 내려온말씀의 중요한직책으로서 가래나무활을 손에다 쥐고 큰칼을랑 허리에 차고 아침의 지킵 처녁의 지킵인 궁궐 대문을 지키는 所任은 우 리를제쳐 놓고서야뉘가있으랴고 더더욱 마음을 굳게 먹도다 , 임금님 말씀의 빛 나십 을 들으메 그 尊責함에 서 . (卷十八) 反歌三首 4095 大丈夫의 굳게 먹은 그 마음씨를 전정 알겠도다, 임금님 말씀의 빛나 십을 들으메 그 尊費함에서 . 4096 大伴 먼 祖上의 奧津城 땅에다가 똑똑하게 標를 세워라. 사람들이 그 것인 줄 알게끔• 4097 우리 임금님 聖代가 번영할 것아라고 동쪽 陸奧山에서 황금꽃이 피어 나네• 윗 노태는 宣命의 취지에 보답코자 하는 心志로서 〈內兵〉이라 자 처하는 大伴家의 전동과 그것을 계승해 나가고자 하는 정신을 노태 한 것이다. 反歌 첫 首의 〈大夫 0 心思t인핫〉는 대장부의 마음이 용솟 읍찬다는 뜻. 大君의 말씀의 은혜로움을 들으니 한없이 존귀하여 대장부의 마음이 용솟음찬다는 것이다. 둘째 首는, 大伴家의 궁지 를 中外에 과시토록 조상의 무덩어 1 표를 세우라는 것인데, 大伴氏 일문에게 호소한 것이냐 三首째는, 꽃이 피는 것은 五穀豊觀의 전 조라는 통념과 이번 황금의 산출은 聖代가 번영할 전조라는 경축의 십정을 겹쳐서 앤 R 金花疾〈〉라 표현한 것이며, 家持는 〈內兵〉이라 논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 감격하고 있다. 萬葉t).後의 家持―晩年 家持의 前半生은 연애생활이나 정치생활에 있어서 다채로운 양상
올 보이면서도 극적인 전개란 없었다. 이는 결국 그의 온화한 성품 소치일 것이다. 그러나 因幡守가 된 뒤의 후반생은 정치적 격동에 휘말려 들어 前半生처럼 안온할 수는 없었다. 이하 그 개요불 보기 로한다. 天平寶字 6 년 (762) 정월, 家持는 信部大輔에 임명되어 歸京하였 으나, 그즈음 藤原宿奈麻呂(良繼 宇合의 차남)는 仲磨 일가의 권력 집 중에 반발하여 佐伯今毛人, 石上宅嗣, 家持를 유인하여 仲磨 타 도를 괴 하였다. 그런데 大舍人 OJ . 弓削男廣이 이 를 알고 밀고하였 다. 그래서 4 인은 체포되어 誤問을 당하였는데, 宿奈麻呂논 자기 혼자의 계획이며 나머지 3 인은모르는바라고辨한바람에 3 인은방 면되었다. 家持의 일이라 적극적으로 음모에 참모했다고는 믿을 수 없으나, 仲麻呂의 미움을 사게 된 것은 사실이어서 寶字 8 년 (746) 정월, 宅嗣논 大宰少 貝t 에, 今毛人온 營城監에, 그리고 家持는 薩座 守에 옮겨진 것은 그 일 때문이었다. 看病禪師인 道鏡의 출현에 의하여 孝謙太上天皇의 총애를 잃게 된 仲麻呂는 家持가 薩摩로 내려간 뒤의 9 월, 모반을 괴하다가 멸하게 되고, 仲麻呂에 의해 옹립되어 즉위한淳仁天皇도페위되어 淡路島에 유배되었다. 그뒤 孝謙太上天皇이 다시 죽위하여 稱德天皇이라칭하 고, 太政大臣禪師道鏡과의 밀월시 대 가 계속되 거 니 와, 寶龜元年 (770) 8 월 천황의 崩御에 의하여 光仁天皇이 즉위, 道鏡온 下野國에 추방 되었다. 이 시대에 중앙 정부의 樞軸이 된 것은 藤原氏式家의 宿奈 麻呂, 그 동생 인 百川 및 北家의 魚名들이 었고, 大中臣淸麻呂, 文 屋大市, 石川豊成, 石上宅嗣등 諸名門出身의 人士가이에 參但했다. 家持는 薩摩守에서 大宰少戴로 옮겨졌고, 7 년간 九州에 재임한 뒤, 民部少輔에 임명되어 서울에 돌아오게 된 것은 寶龜元年 6 월이 었다. 그리고 稱德天皇 崩御 후의 9 월에 左中辨兼中務大輔에 임명 되어, 光仁天皇 즉위 해 10 월 53 세로 겨우 正五位下가 되었다. 從五 位上이 된 것은 勝寶元年 (749) 이니까, 21 년간이나 제자리에 머물러 있은 샘이니, 旅人이 5 4A-1 l 에 從四位上, 中納言이 된 것에 비하면 매 우 늦은 것이라 하겠다. 仲麻呂時代에는 反仲麻呂派로 지목되었고, 仲麻呂謀坂時논 九州에 있어서 토벌의 군공을 세울 기회를 놓찬 동
의 불운이 이유로서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마는, 나름대로 햇빛 쪼이는 곳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宿奈麻呂의 조력에 의해서였다. 이후는 순조로와 이듬해에는 從四位下에 진급하여 相模守, 上總守, 伊勢守 등을 역임하고, 齊龜 9 년 正四位下에 진급, 同 11 년 (780) 2 월, 參 謀兼大辨이 되었다. 이때 나이 63 세였다. 그로부터 5 년 후인 桓武朝의 延曆 4 년 (785) 8 월, 68 세때 從三位· 中納言으로서 卒했는데 그의 崩傳에 의하면, 延曆元年 氷上川繼(新 田部皇子의 孫, 鹽燒王의 子)의 모반에 연좌하여 京外에 옮겨진 일이 있었고 또 家持 夜後 20 여일, 大伴繼人 • 竹良이 藤原種繼를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家持가 이에 관계했다해서 官位가 삭제되고 그의 아들 永主등은 유형에 처했다. 大同元年 (806) 3 월, 桓武天皇 의 병이 위중했을 때 용서되어 家持와 永主둥은 本位에 되돌아갔는 데, 장년기의 家持의 행동으로 보아서는 그러한 정치적 모략에 1 가 參劃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6. 諸本 • 연구사 • 연구서 (1) 諸本 『菓葉集』은 소위 萬葉假名라는 독독한 漢字表記를 한 까닭에, 平 安朝에 들어와서는 차츰 해독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궁정의 梨 ~64) 에서 天曆年間 (947~957) 5 인의 歌人, 죽 源順 • 淸原元輔 • 紀時 文 • 大中臣能宜 • 坂上望城등이 『萬葉集』을 平假名로 훈독을 첨가했 다. 이 것 을 古點이 라 부른다. 그 뒤 로는 古點本이 『萬葉集』의 대 표 적인 것이 되고, 漢字만으로 기록된 『萬葉染』은 없어지고 말았다. 古點本온 많은 사람에 의해 書寫되어 전해졌고, 古點에 훈독을 하 지 않았던 노래에도 차츰 훈독이 가해졌는데, 長歌에는 갭 Il 이 없는 것 이 많았다. 이 期의 寫本울 次點本이 라 한다. 古點本의 원본은· 없어져 전하지 않지마는, 次點本은 현재 數種이 전하고 있다. 平安 64) -y-;,,.;;;f.. 宮中五舍의 하나. 뚤앞에 배나무를 십었다. 一名, 昭陽舍. 女官(때로 논 東宮) 在所 天曆 5 年 (951), 이곳에서 勅命에 의하여 『萬葉菜』을 訓釋하였다.
期期의 書寫本 5 종, 鎌倉期의 書寫本 이 6 종인데, 室町期以降이 괴 떤 많은 것이 남아 있다. 最古의 平安朝期의 寫本에 는 a. 桂本, b. 金澤本, c. 藍紙本, d. 天治本, e. 元曆校本 둥이 있으나 어느 것도 完本은 없다. a • 桂本萬葉菓 ___ 卷四의 대 부분. 본시 桂宮所藏, 현재 는 御物. 平安朝 中期를 내 려 가지 않는 最古 寫本. 草 • 白 • 紫 • 藍 • 黃 • 茶 • 薄赤의 七色綴紙에 다가 金泥 • 銀泥로서 초목화조를 그리 고 거 기 에 後美한 書體 로 原文과 訓試文울 써놓았다. b . 金澤本萬葉菓_一卷二의 대 부분과 卷三 • 四 • 六의 일부분이 전한다. 본시 金澤의 前田家에 있었던 것이 현재는 御物. 藤原定信의 筆이 라고 향 色紙에 金銀切笛砂子를 뿌린 위에 書寫 한 美麗本. c . 藍紙本萬葉菓 _卷九의 대 부분과 卷十 • 十八의 斷簡. 藤原伊房의 筆 이라고 함. 薄藍色의 料紙에 쓰여전 때문에 이 이름이 있다. d. 天治本萬葉渠 ___ 卷十三 전부, 卷二 • 十 • 十四 • 十五의 斷簡. 卷十三 에 天治元年(1 124) 6 월 25 일, 맙寫를 끝내다라는 단서가 있어서 天 治本이라 함. e. 元曆校本萬葉染 __- 卷一.二· 四 ·六·七·九•十·十一 • 十二 • 十 三 • 十四 • 十七 • • 十八 • 十九 • 二十의 15 卷. 卷十에 G t曆元年 (il84 ) 6 월 9 일에 校合울 끝내다〉라는 追記가 있어서 이 책명이 불 은것이다. 鎌倉期의 寫本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傳壬生隆祐筆本萬葉集-卷九의 일부분. 鎌倉時代 중기의 寫本. 嘉曆傳承本萬葉集-卷十一의 대 부분. 鎌倉 초기 의 寫本. 藤原定家의 假 名遣 65) 에 쫓아 훈독의 부분을 쓰고 있다. 尼崎本萬葉集_―卷十六의 首尾가 갖추어져 있다. 院政期의 寫本. 類衆古集-『萬葉集』을 歌體에 의 하여 분류하고, 또 四季 • 天地등에 의 해 서 세 분한 類緊웁 20 책 중에 16 책 현존. 平安 말기 또는 鎌倉 초기 의 寫本' 찬존부분이 많음으로 해서 『萬葉集』의 원형 을 추정 하는더] 중 65) 'IJ•t.:궁力、\, 、. 假名률 써 서 日 語몰 表記하는 方法 , ~6) 平安末期應德三年 (1086) 에 白河上皇이 시 각하여 鎌倉幕府의 創設까지 계속.
요한구실을 하고 있다. 古葉略類衆紗 -12 책 중에 5 책 현존. 建長 2 년 (1 250) 에 많寫 • 類衆古染 의 본문과 일치한 데가 많다. 이상에 열거한 諸本은 書寫 年代가 오래고 『萬葉集』의 원형을 추정 함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들이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유포되어 있는 본문은, 鎌倉時代의 중기, 僧仙覺이 校訂한 본문의 계통을 이온 것 이고, 仙覺의 손이 닿지 않은 이들 次點本온, 仙覺의 校訂울 비판 하는데 있어서 첫 손 꼽는 자료이다. 그리고 佐佐木信綱博士, 그밖 의 노력에 의하여 그 대부분이 복제되어 원문 그대로 볼 수 있게 된 것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鎌倉時代의 중기, 仙覺온 그 당시 볼 수 있었던 십수본을 校合해 서 一本을 校訂하고, 그때까지 많은 平假名로서 別行에 쓴 訓도, 漢字 바로 곁에 片假名로 쓰되, 한 首도 남기지 않고 訓울 붙였다. 이 책을 新點本이라 한다. 仙覺의 新點本이 나타난 뒤로는 次點本 은 縣逐되었다. 新點本의 寫本은 많이 있으나, 대표적인 것은, 西 願寺本·木矢本·京都大學本·溫故堂本·紀州本.神宮文 庫本 ·細井 本둥이 있다. 西願寺本온 仙覺本 중에서 最古 寫本이며 完本이다. 그뒤 것으로는 室町時代에 書寫 한 책 이 전한다. 刊本이 처음으로 세상에 나타난 것은 江戶時代다. 그 가장 오랜 것은 20 권의 活字無訓本이다. 木版活字로 印刊되어 訓이 없다. 다 음은 活字附訓本 20 권 역시 목판활자로 訓點이 있다. 이 두 種은 인쇄부수도 적고 따라서 세상에 유포되지 않았다. 寬永 20 년(1 643) 에 이르러 活字附訓本을 그대로 整版한 木版本이 간행되었다• 이 책은 널리 유포되어 流布本 또는 整版本 • 通行本 • 寬永本이라 불리 운다. 江戶時代에 『萬葉集』硏究가 長足의 전보를 한 것은 이 책의 출판에 힘입은 것이었다. 그뒤의 刊本에 관해서는 다 열거할 수 없으나, 明治以降의 復刻 本에는 『日本歌學全 書 』 三冊, 『國歌大觀』 등이 있다. 후자는 歌集 에 색인을 달고 각 노래마다 번호를 붙였다. 이 번호는 그뒤 널리 유행하여 오늘날도 그 番號울 답습하고 있다.
昭和에 들어 와 『校本萬葉集』 25 책 이 , 佐佐木信綱 • 橋本進吉 • 千 田憲 • 武田祐吉 • 久松潛一共編으로 간행되었다. 이것은 『萬葉集』의 諸本의 校異를 들고, 게다가 『萬葉集』의 証釋 書 에 있는 본문 비평 및 訓에 관한 諸說을 들고 있다. 최근에는 日本古典文學大系本의 『萬葉菜』이 高木市之助 • 五味智英 • 大野晋校許로서 上刊되었다. 본 문을 假名로 표기한 책이 많이 나와 누구나 손쉽게 본문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2) 연구사 • 연구서 『萬葉菓』의 노래가 『古今集』 6” 이나 『古今六帖』 68) 에 인용된 것으로. 보아 漢字로만 표기되어 있는 『萬葉集』을 해독코자 하는 노력은 梨 壅의 加點 이전에도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조직적으로 『萬葉集』 전부를 해 독코자 한 것은 天曆年間 (947~957) 에 소위 古點울 가한 것 이 최초이다. 그뒤 平安時代 말기에 이르러 歌學이 성행하게 되었 올 때 , 典操로서 『萬葉菜』이 인용됨 이 많아졌고, 『萬葉集』의 書寫 와 類衆가 행해지게 되었다•
67) 『古今和歌渠』. 勅撰和歌集, 二十卷 紀友則 • 紀貫之등이 撰. 延喜 5 年 (905) 撰 68進) 『 古後今世和에歌 六和帖歌』의. 規歌集範,이 六된卷 .것 .平 安中期, 編者未詳.
鎌倉時代에 십수본을 校合해서 하나의 定本을 만들어 이후 萬葉 學에 대해서 큰 영향을 준 仙覺은, 자신도 노래를 뽑아 『萬葉集注 釋』을 썼다. 이 가운데는오늘날逸書가 된 서책도 적지않게 인용되 어 있다• 江戶時代에 들어와서는, 『古事記』 • 『日本書記』 • 『萬葉集』둥을 연 구하여 고대 일본을 알고자 하는 학문이 유행하였다. 貞享 3 년 (1 686) 에 北村季哈의 『萬葉捨糖抄』 7} 간행 되 니 , 이 것 이 최 초의 全注 요 그때까지의 古注를 집대성하였다. 다음 學僧인 契沖가 『萬葉集 大匠記』를 펴 냈 다. 水戶光園가 『大 日 本史』를 엮 기 위 하여 『萬葉集』 전체의 훈독과 노래의 해석을 하도록 下田邊長流에게 명했던 것이, 長流가 病沒한 때문에 契沖이 대신 쓴 것이다. 그는 用例를 오로지 奈良時代의 문헌에서 구하여 語義를 결정하고, 漢籍佛典의 깊은 造
脂에 의하여 집 II 釋올 바르게 하고, 假名造에 주의하여 同語 • 別語를 구벌하는 둥, 견실한 문헌학적 태도로서 『萬葉集』을 注釋한 최초의 과학적 연구이다. 오늘날도 참고함에 족한 탁월한 저작으로 初稿本 精撰本이 있다. 賀茂眞淵가 이에 이어 『萬葉考』를 이룩했다. 德川 8 대 장군인 吉宗의 차남, 田安宗武는 학문을 좋아해서 眞淵를 불러 함께 萬葉 연구를 했다. 眞淵는 『萬葉菜』에서도 오렌 노래를 존중 하여 卷一 • 二 • 十一 • 十二 • 十三 • 十四의 각 권의 연구에 主點울 두었다. 그리고 다시 『冠辭考』라는 沈詞의 연구도 펴냈다. 이것은 『萬葉菜』의 沈詞 326 어 를 들어 7 4 力 =順으로 나누고 출전을 보이 면서 해석하였다. 眞淵의 門人인 本居宣長는 『萬葉集玉 0 小琴』을 퍼 냈다. 眞淵의 가르침을 받은 加藤千藍온 『萬葉集略解』를 써서 『萬葉 集』의 全歌에 걸쳐 간단한 注釋울 붙였는데, 世人으로 하여금 읽기 쉽게 했다. 나아가 土佐의 학자인 鹿持雅澄은 『萬葉集古義』를 썼다. 全歌에 상밀한 注釋을 단 책으로 그때까지의 주석본 중에서 가장 양이 많다. 明治 이후의 전부의 주석으로서는 井上通泰의 『萬葉集新考』가 있 다. 탁견도 적지 않으나, 많은 誤字說울 세우고 있어서 오늘날에 와 서는 문제가 되고 있다. 昭和에 들어와 『萬葉集』 연구는 대단히 전 전하고 있는데 이에는 제가지 기반이 있다. 하나는 『校本萬葉集』의 刊行이다. 아것은 『萬葉集』 연구에 문헌학적 기초률제공하여, 지금 까지 窓意的인 誤字說의 횡행을 배제하고 확실한 근거에 바탕한 발 언을 중시하는 풍조를 낳았다. 둘째는, 正京敦夫의 『萬葉集總索引』 의 간행이다. 『萬葉集』의 모든어휘 ·문자를그用例와함께 검출할 수 있는 총색인의 출판에 의하여 지금까지 한정된 人士에 의해 찾 아낼 수 있었던 것을 간단히 빠짐없이 알 수 있어서, 이 결과 『萬 葉集』의 語釋 • 문법 기타의 연구는 두드러지게 전보하게 된 것이다. 그 다음 세째는, 萬葉調歌風의 유행이다. 명치시대에 正岡子規 • 伊 藤左千夫 둥의 根岸派에 의 하여 넓 혀 진 萬葉調의 노래 는, 齋藤茂 吉등의 7 尹尹푸派의 활동에 의하여 크게 성행하였고, 島木赤彦의 「萬葉集(1)鑑賞及간其批評」(前編)은 큰 영향을 각 방면에 끼쳤다. 昭和에 들어와 『校本萬葉集』의 성 과를 이 용한 『新訓萬葉集』(佐佐
木信綱)이 나타나 誤字說을 배제한 『萬葉集』訓禎의 範을 보였다. 그 리 고 『定本萬깁깡尉』(佐佐木信綱 • 武田祐吉)에 의 하여 吉寫本의 문자와 訓에 관한 면밀한 고증이 이루어졌다. 아 시기의 全注를 들면 다음 과같다. 萬葉集全釋 鴻災盛廣 昭和 5 년 _10 년 刊 萬葉集總釋 昭和 10 년 _11 년 刊 萬葉集全注擇 武田祐吉 昭和 23 년一 26 년 刊 萬葉集評釋 窟田空糖 昭和 18 년― 27 년 刊 評釋萬葉菓 佐佐木信綱 昭和 23 년― 29 년 刊 萬葉集私注 土屋文明 昭和 24 년― 31 년 刊 이밖에 山田孝雄의 『萬葉 集講義 』는 卷三까지 간행되지 않았으나 語學的 証가 탁월하다. 橋本進吉의 上代特殊假名遣의 발견은 上代 語의 어법 • 語義의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나아가 『萬葉集』 연구의 각 분야별로 조직적으로 집성한 『萬葉集講座』(六卷 • 昭和 8 년)가 있고, 『萬葉集大成』(二十二卷 • 昭和 28 년 ~31 년)이 있다. 그리 고 昭和 6 년에서 14 년까지의 사이에 매년 『萬葉集硏究年報』가 발간 되어 그 해의 『萬葉染』 연구를 죄다 빠침없이 기록하였다. 또 『萬 葉集』의 단어, 寫本 기타를 해설한 것으로 『萬葉集事典』이 있다.
II . 『萬葉集』의 表記 L 萬葉假名의 형성 (1) 漢字의 수입과 토착화 萬葉時代에는 假名가 없었으므로 모두 漢字로써 표기치 않으면 안되었다. 『萬葉集』에는 〈詞 書 〉라 하여 노래 앞에다 作歌의 機緣울 설명한 말이 있고, 또 노래의 뒤에 쓰는 해설의 말을 左注라고 하 는데, 이것은 다 漢文으로 씌어져 있으며, 노래의 본문은 漢字를 쓰고 있다. 매우 복잡한 用字法에 의하여 표기한 것아다. 漢字로써 일본어 노래를표기한다는것은지극히 곤란한사업이었을것이나, 上代人둘은 그 곤란을 극복하여 노래의 표기를 자유자재로 구사하 기에 이르렀다. 『萬葉集』의 성립에는 漢字를 表音的, 또는 表意的 으로 이용하여 성공하였거니와, 그 중에도 표의적 용법은 『萬葉集』 에 많이 표기되고 있어서 이를 〈萬葉假名〉라 부르고 있다. 이제 일본에 漢字가 들어와 사용되던 중에 일본적으로 토착화하 고 나아가 일본어 표기에까지 이르게 된 경로를 아래에 개관코자 한다 .I) 일본에 漢字가 처음으로 들어온 것은 古記錄에 의하면 應神天皇 때 (285 年 2 月), 백제인 阿直岐 • 王仁 동이 漢籍울 가지고 가서 가르 침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古代史의 編年은 고의로 二 1) 金思선f, 『鄕歌의 文學的 硏究』, 「鄕札과 萬葉假名와의 比校」 pp. 93~100.
紀年 앞당간 것임이 판명되었으므로, 위의 應神天皇代란 것도 잘못 이며, 실상은 백제와 일본이 정치 • 문화적으로 교섭이 빈번했던 近 肖古王代 (346~375) 로 보아야 하며 , 이 때 일본은 仁德天皇代에 해 당 한다• 使者 阿直岐, 博士 王仁 등이 前後해서 百濟에시 건너가 漢學其 他를傳 한 것 도 近肖古王~阿華王 年 r버 의 깁 HT 로 볼 것 이 다. 以上 諸事質온 한국 古典에는 보이지 않고 오칙 日本古史 習 (『古事記』및 『日本맙紀』)에만 전 하는 바이지마는 거기에 의하여 阿應岐·王仁 以來의 百濟文物의 東流를 자세 히 말하려 한다. 日 本 『古 事記』 에 는 阿直岐를 阿知吉師, 王仁울 和還 吉師로 書 하였 거 니 와, 阿知니 和還니 하는 이 름으로 보아 百濟人임 에 묻 림 없 다. 어 떻 든 百濟의 近肖古王때 (『古事記』에 는 百濟國王昭古主 云云이 라 하여 近肖古王때 를 말함인데 , 『 日 本 書紀 』에 는 阿花王 〈죽 阿華王〉末年 頃으로 되어 있다)에 使者 阿直岐를 倭國에 보냈던 바 그가 經典에 通한 · 다 하여 應神의 太子 蒸道稚郞子가 그를 스승으로 삼아 漢學울 배웠다고 한다. 그후 阿直岐는 자기 보다 學 FR1 이 나은 本國의 博士 王仁을 추천하여 초빙하게 되었다. 이때 王仁은 論語十卷과 千字文一卷울 가지고건너가서 稚郞子의 스승노릇을 하고, 또 天皇의 命令에 의 하여 群臣에게 經史를 가 르치었다 한다 .2)
2) 李丙兎t, 『韓國史』(古代編), 「三國文化」.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古文獻에 보이는 固有名詞의 표기는 Ol크 본어의 音型을 그대로 轉寫하고 있다. 宇, 麻T/志 阿7 斯夕 詞* 備E比k,古 於* 母千 陀!I' 流,,, 神*' 桐7 岐+ 豆7 斯, 麻T( 靖鈴島) 阿7 須 節*我 서播 ^ (飛鳥 )11) 이 것 들은 완전한 音借字 표기 이 니 , 마치 신라의 官等 〈角干〉을 〈舒弗郡〉이라 표기한 것과 같은 용법이다. 그런데 고유명사가 모두 이와 같은 昔借字 표기만은 아니다.
.天뾰,,. ~• 雲之, I .. 野常,I= 鼻 神立• ,,I 神•I 戱令更, ' 郞荒’ I ' 野郡,I 수I ’ 십邑. , 이것들은 완전한 訓借字만으로만 표기한 예이니 한국의 경우, 地 名인 〈 水域 〉 을 . 〈買 忽〉로 표기한 것과 감은 것이다. 0 0 石4, 7士.,. 昆k =古, 神 速^ ..須 0츠 佐키0. 之, 男,, 神,,' 0 표는 音 借 字, 표 없는 것은 訓借 字 建’,. 比C 良, 鳥, 9 , 神 이 예에서는 音 , 訓울 交用하고 있다. 이는 신라의 第 一 官等 울 〈角子〉 또는 〈使罰干〉이라 표기한 것과 마찬가지 예이다. 이와 같이 고유명사를 音借 또는 訓借 표기 를 하는가 하면, 때로 는 音 과 訓울 섞어 쓰기도 하여 자유스러우며 결코 한 가지 방법에 만 구속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한국이나 일본에 있어서 이러한 音訓借用表記法은 자기 나라 고 유어의 음운체계에 적응한 토착화가 전제로 된다. 일본에 있어서의 토착화는 한자가 들어온 직후에 형성된 것이 아닌가 추정하는 바이 다. 왜냐하면, 王仁이 千字文이나 論語를 가지고 가서 교육시켰다 는 사실을 상기하면, 필연코 백제에서 시행되고 있던 교육방법을 그대로 실시했으리라 본다. 그렇다면 백제에 있어서 千字文이 字마 다 訓과 音이 달려 있어 이 두가지를 아울러 익히게 한다 . 죽 初學 者는 漢 字의 글자마다 訓과 音울 한꺼번에 익히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漢 字가 수입되자 먼저 音과 訓 의 토착화 과정 울 거쳐 단계적으로 誓 記 體 一吏 讀 一鄕札로 발전해 간 것이다. 일본 에도 우리나라와 같은 誓 記 體 式의 構 文法, 吏 讀 와 같은 宣命이나 祝 詞 , 鄕札과 같은 萬 葉 假名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상호간의 발달단계를 찾아넬 수가 없다. 게다가 고유명사의 표기법 같은 것 온 그 가운데에 포함되어 있어서, 고유명사의 표기법이 최초에 발 생했다는 혼적을 찾아낸 수가 없다. 이러한 접 등으로 보아 일본에
있어서의 토착화된 표기법은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사람들(日人둘이 渡來人이라 부른다)에 의해서 이미 우리나라에서 아용되고 있는 여 러 가지 方法이 동시에 쓰여전 것으로 본다. (2) 문장표기상의 토착화 山田孝雄著 『奈良朝文法史』에는 奈良朝의 문법을 연구하는 데 필 요한 문헌을 아래와 같이 열거하고 있다. 金石文―佛像光背銘, 碑磁 등 古文 書 -正倉院에 保藏되어 있는 古文 書 類 書 籍 ―古事記 (712), 日本 書 紀 (720), 紹日本紀(이 가운데 宣命 歌諾), 延喜式(祝詞) (927), 各種의 風土記(常陸風土記 <71 8> • 出雲風土 記〈 733 〉 • 播磨風土記〈 713 〉 • 肥前風土記〈 ? > • 豊後風土記〈 ? >), 萬葉 菜 (773), 上宮聖德寺皇帝說, 各種寺孫|j 緣 起(元興寺 • 法隆寺 • 大安寺), 歌諾(古語捨造 • 熱田緣起 • 皇大神宮儀式帳 • 聖 德 太子傳 曆등에 收錄), 本朝月 令, 朝野群載(以上 兩 書 에 收錄된 歌臨 • 祝 詞·氏文등) 위의 諸文獻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을 들어 그 표기를 보기로 한다. 藥師像光背銘(法隆寺의 金堂에 安置 )(607) 池邊大宮治天下 天皇大御身勞賜時 歲次丙午年 召於大王天皇與太子 而콴 願賜 我大御病太平欲坐故將造寺藥師像作仕奉認 然 當 時崩賜造不塔者 小治 田大宮治天下 大王天皇及東宮聖王大命受賜而歲次丁卯仕奉 이 글은전체적으로는漢文의 구문법울 중십으로 하면서 부분적으 로는 일본어적인 조어법을 삽입하고 있다. 가령 u大a * 御2身 L 이勞 :?賜E f; 時20…L I: …E 而,남0誓- hO願I V- t=賜t<,>l -< 我,, Uk大I2御*T 病之 0太t 0平bE2欲 혼 坐2< ‘HL2十 • I 이것은 日本語的 造語法이고,
藥(寸'師 L 像,,*作t:仕*?(奉 '?…bi … 崩賜•4…R` …,f;大文 D,命:*I受. ,,賜드七 …'남f:….:1 丁11? 卯.,,仕.~奉:I., , 이것은 造語法만이 아니고 構文도 일본어와 같은 어순이라서 마 치 우리 나라 뽑記體의 초기 단계 를 보여 주는 듯하다. 우리 의 쨩記 文울 이 굴과 비겨 보면 위에 인용한 대목은 너무나 정연한 체재를 갖추어 있다. 이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땝記文은 처음 부터 완전히 한국화한 겨석을 갖춘 것이 아니고, 초기에는 역시 이 藥師像光背銘에서 보는 바와 같이 漢文的인 構造를 바탕으로 하면서 부분적으로 한국어적인 特徵素를, 부득이할 경우에 한해서 삽입한 것이라 본다. 그러한 시행과정을 되풀이해 가는 사이에 차츰차츰 정연한 형식이 갖추어져 간 것이 아닐까. 이러한 관접에서 보면 이 藥師像光背銘온 그러한 발달 과정의 초기적 단계를 보여 주는 것이 라 하겠다. 특히 그러한 예를 金石文에서 보게 되는 것은 홍미 있 는 것이다. 윗 글 가운데 일본어적 造語논우리나라에 초기 金石文에 나타나는 吏讀의 편린이 또한 보인다. 일본의 古孫 U 인 法隆寺는 우리나라로부 터 건너 간 기술자 • 화가들이 지은 것으로 알려쳐 있는데, 그렇다면 불상의 造像者는 물론 銘文 또한 그러 한 소위 渡來人의 手記일 것 이며, 따라서 글의 표현 양식이 한국적인 요소가 내포되어 있음은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가령 같은 法隆寺의 金堂에 안치되어 있는 釋迪如來佛像의 光背銘 가운데 보이는 〈若是定業以背世者〉는 우리 의 吏讀에서 쓰논 字로, 우리 경우와 같은 뜻을 나타내고 있다. 죽 〈以〉와 〈者〉는 우리 金石文에도 똑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 다. 다음에 宣命의 例를 본다. 和氣王宅罪 L 給^石宣命(天平神護元年 `<7 6 5> 八 月一日) 챔今흉和 5 氣然仁後敦 E久 逆先心爾 r奈&良쫑麻朝呂庭我던謀油反傾乃몬事츤전起兵天f在훑I之.. 뿐時.. .뿡 仁IC時 t方It 和仲氣麻뿐』呂?깐t.忠.臣홍在문 츤此 턴터官位子昇賜治룡룡.可久견 5 형先단仲麻呂,和氣毛後 E 겹猶逆心 8 홍 在乃,家 납利 (’ 以下略).
이 一文은 우리의 普 記盟吏設文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다. 글 가운데 小字로 표기 한 것 은 뺨 記體吏없에 있어 서 〈吐〉에 해 당하는 것이며, 고유명사를 제의한 大字는 漢 文의 字義를 그대로 이용한 것이다. 일본어의 구문법에 따라 배열하고 그 사이사이에 토를 보 충하였 다. 그러 나 〈 可久方阿禮止毛〉(力 夕 ^7 v F~) 와 같은 표기 는 완전한 音 借로 일본어의 語 形을 그대로 표기하고 있는데, 吏 語에서 도 한정어나 수식어, 때에 따라서는 명사까지 이러한 표기법을 취 한 것이 있어서 이 또한 兩者는 같은 경향을 보여 주고 있다. 내체 宣 命@묘표? ?)라는 것은 宣讀하는 勅命이란 뜻으로 천황의 勅울 전하는 문서의 일종이다. 元旦의 朝賀, 郞位,改元, 立后 둥 국가의 중대사가 있을 때 쓰인다. 이 구문법은 純全한 토착어의 表 音 的인 표기법과는 다르며 어디까지나 위엄을 나타내며 정중한 詞 氣 를 풍기고자 함에서 이용한 문체이다. 신라에는 普 記 體 吏讀와 대립되는 訓吐式吏 讀 가 있는 것과 마찬가 지로, 일본에는 佛經이나 漢 典의 訓讀에 있어서 같은 방법을 쓰고 있다. 이것을 〈送引假名〉라고 한다. 우리의 토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 送引假名〉는 訓吐式吏 讀 의 발전한 형태라할수있다. 우리나라에 있어서 訓吐式吏讀는 漢 字를 토착화시켜서 읽는데 한정 한 것인데, 일본에서는 讀 法에만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나아가 표 현의 한 양석 에 까지 발전시 킨 혼적 이 있다. 그것은 『古事記』의 문 체에서 찰 볼 수 있다. 『古 事 記』에서 이러한 문체를 채택한 이유를 처자인 太安萬呂는 아래와 같이 언급하고 있다. 上古之時 言 意並朴 敷文構句 於字郞難 已因訓述者 詞不速心全以音連者 事 越更長 是以今或一句之中 交用音訓 或一事之內 全以訓連 郞辭理匠見 以 注明 意 況易解 更非注 亦於姓日 下 謂攻沙詞於名帶字 謂多羅斯 如此之類 隨本不改 이 序文 중에 주목을 끄는 대 목은 〈已因訓述者 詞不速心 全以音 連者 事 越更長〉이라 한 것이다. 이 굳대로 하면 당시 세간에는 〈訓
述 〉 과 〈音連 〉 의 두가지 표기 법 이 있었던 모양인데, 만일 〈 訓述 〉 로 만 표기 해 버 리 면 〈詞不速心〉 (말이 핵 심 에 닿지 못한다)하고, 또 〈 音 連 〉 으로 한다면 〈事 越更長 〉 (사실의 취지가 더욱 길어지다)하기 때문에 모두 단접이 있어서 어느 한쪽에만 치우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 에 〈 訓述 〉 이라고 한 것은 한문석 표기를 말한 것이고, 〈 音 連 〉 은 音 借表記를 말함인데, 일본어의 轉 寫 를 가리킨 것이다. 이 두 방법은 太安 萬 呂 이전에 벌써 행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가 채택한 문체는 재래의 두가지 방법을 철충한 音訓交用의 문체를 이 용하였다고 그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古 事 記』에서 보는 문체는 결코 太安 萬 呂가 처음으로 창안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고 종래에 있어 온 여러 가지 방법을 비교 검토해서 각자가 지니고 있는 장점을 취하여 편리하다고 인정한 방법을 따른 것 같다. 다음에 그 가 이용한 문체의 실례를 보기로 한다. 故是以其速須佐之男命 宮可造作之地 求出 雲 國 爾到 坐賀( 此二字以 音 , 下 勅 比)地而認之 吾來此地 我御心須 賀 須斯而 其 地作宮坐 故 其 地 者於今 云須 賀 也 炫大神 初作須賀宮之時 自 其 地 雲 立 騰( 上 卷) (·中故:是: 순以t t T 其(IJ速須佐之男(IJ命, *宮~ 造 ? 作< 乙 것 총地宅出 雲 0 國t 乙 求 왕t.:.-s: D 총. 爾 t: :-:t: .•須1 賀 0 地t학동 IJ 9 坐 LT 認 9 t으主 0L < 「.t,h吾 此cc地 t ::::. 來 -c, 我.t, 力洛 御 心, 須-t賀,:須f賀 ,:斯L 」 &0b t으主 D t,• 其-I:地 tC: :::.宮在作 9 坐1 L 총. O故•h, 其地在tf今 t ::::. 須 賀&云.b. 塾 0 大神, 初沈f須賀(IJ宮在作 9 t으主 0L 時, 其 地J: b 雲 立七 C騰'f b 총.) 이 一文올 보면 전체적으로는 한문의 구조를 따르면서 군데군데 비한문적인 요소가 들어 있음을 보게 된다. 가령 〈求出 雲 國 〉 은 〈求 於出 雲 國〉으로 표기해야 한문루에 맞는 것이며, 〈爾到坐 ... 〉 ( 이에 이 르러서)는 일본식 訓 讀 울 바탕으로 한 것이며, 〈我御心須 賀 須賀斯〉 (내 마음에 快하도다)는 완전한 일본어 형 의 轄寫다. 한편 歌 諾의 표기에 있어서는 音借를 이용한 일본어적 표현을 하 고 있다. 夜久毛多都 伊豆毛夜幣賀岐 都麻基微爾 夜幣賀岐都久流 曾能夜幣賀岐袁
(『古事記』 上) (八 雲立 ? 出雲八重垣 妻籠入t 乙八 重垣作검 군 O/\ 重垣 ~) 이 가요가 『日本書紀』에서도 音借表記로 인용되어 있는데, 用字 에 차이가 있다. 夜句茂多莫 伊綺毛夜覇峨岐 蒸磨語昧爾 夜覇峨相蒸供盧 贈適夜覇夜覇峨 岐廻 (卷第一) 두 노래 표기법을 비교해 보면, 用字가 전연 다르지만 다같이 一 字一音의 엄격한 表昔에만 의거하고 있다. 이러한 표기법은 신라의 향찰과 비교해 보면 상당한 차이가 있다. 죽 철두철미 音借만한예 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萬葉集』을 보면 사정은 다르다. 신라에 있어서는 誓 記體 ->吏닳!->鄕札로 표기 법 이 발전해 간 것 과 마찬가지 로 일본에 있어 서 도 위에서 본 『古事記』와 같은 訓吐式吏讀, 옌 I 命〉에서 본 誓 記體 吏語 文을 거 쳐 『 萬葉集』 의 가요 표기 법 은 향찰과 마찬가지 로 한자의 音과 訓울 빌어 일본어를 표기하였는데, 이것이 『萬葉集』에서 처음 보이므로 이러한 일본에서의 표기법을 萬葉假名라 부르는 것이다. 물론 『萬葉集』 全二十卷 중에서도 여섯권(卷五•十四 ·十五·十七. 十八 • 二十)만은 『古 事記 』 • 『 日 本 書 紀』 가운데 수록된 가요와 마찬 가지로 純音借表記믈 하였고, 그 나머지는 訓·音交用으로 일본어를 완전히 표기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일본에 있어서의 한자를 빌어 일본어를 표기하는 방 법은, 우리나라에서 고안한 방법을 우리나라로부터 건너간 지식인 둘이 이용한 것인데, 그 방법이 사용되어 가는 도중에 일본어적으 로 토착화된 것이다.
2. 萬葉假名의 조직 (1) 用字 방법 『萬葉集』에 사용되어 있는 漢字를 그 용법에 따라 분류하는 작업 은 일찌기 仙覺(1 203~?) 이 손을 대기 시작하여 근대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학자에 의해서 시험되어 왔다. 그 一例 ” 를 다음에 보인다. (一 )lE 用(漢字의 意義에 의한 것) (I) 音울 取하는 것 (.峨; 鬼 e, 五: 位소, 드香') (2) 訓울 取하는 것 (a) 正訓백 {!』, 應熙 (b) 願 II( 윤 呼 釋 (c) 連想訓(b春·+b 1日 , 九飛十鳥 b • ) t (二)假用( 漢 字의 읽기에 의한 것) (1) 音을 取하는 것 (a) 一字一音 (E! , 左근, 麻之 〈全音〉, 吉t 泊I1〈 略音〉) (b) 一字二音(金, Im) 드t 근 U {2) 訓을 取하는 것 (a) 一字一訓(千t 羽I2 日O 〈幸〉) (b) 一字二訓(待〈松〉, 夏座〈懷 L 〉) *? tL ?b·L (c) 二字一訓(五I十• 羽11 日V- 〈齋〉, 馬I• 聲烽.S:. 音it石 花卿(妹 ,t 胡L ',粉 IC 〈知 Q t:::.>) 戱 書 (山上1· 復有T山 〈出〉, 重L 二〈四〉, 八( 十八(, 十L 六L, 二&五 t) . 이러한 것은 결과적으로는 假用과 비슷하나, 그 결과에 도달하는 過程 에 意義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純粹한 假用과는 區分되는 것이다. 『萬葉集』 전체에 사용되어 있는 漢字의 종류는 異字體를 합하면 약 2, 560 자요, 그 중에 一字一音節의 假名로써 사용된 것 은 441 자 이다. 그런데 萬葉도 말기에 이르면, 일정한音에는 일정한 字를쓰 논, 말하자면 오늘날의 假名의 원형이 형성되어 가고 있고, 또 위 에서 돈 正訓字도 차츰 고정되어 가서 漢字混用文이라는 오늘날의 표기법에 가까와지는 현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3) 橋本進吉, 『上代語Q)硏究』
(2) 用字上의 規範意識 『萬葉集』의 표기에는 위와 같은 用字法울 이용하면서도 역시 노래 를 기술한다는 일종의 문학적 의식 내지 미의석이 底流하고 있음을 보는 것이다. 일본의 假名發達史를 더듬어 볼 때, 推古時代로부터 奈良時代를 거쳐 平安時代의 片假名에 이르기까지 줄곧 사용하여 온 假名에 止, 川라논 문자가 있는데, 이것이 『萬葉集』에는한자도 쓰여져 있지 않다(물론 소수의 예는 있으나, 그것은후세에 와서 개찬된, 찰못 들어간 것임). 이것은 무언가 世「버에 몽용되고 있는 문자를 펴 한 선덱의 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또 同一의 음철이 연속해서 나타날 경우, 그 음철을 다른 문자로 쓰는 사례, 가령 조사 .;; .;; 를 都追 • 追都 동으로 쓰되, 都 A 라쓰는 것은 한정된 소수의 卷분이다. 『萬葉 集』 보다 오렌 『古 事記』 조차도 동일음철의 연속에 대해서 아무런 고려 없이 동일 문자를 거듭 사용 하고 있으며, 그러한 用字法이 표음문자로서는 전보한 것이타 여겨 짐에도 불구하고 『 萬葉集 』의 많은 卷에서는 동음 연속의 경우 동일 문자를 겁쳐서 쓰지 않은 것은 중국의 漢詩 에 있어서 동일 문자의 연속을 피하려는 작법에 영향 받아, 노래를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하려는 用字法 의석이 작용한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례 에서 알 수 있는 것은, 『萬깁팡 紀] 의 표기에 일종의 규범의식이 있어, 假名의 사용법이 간단하게 음운의 直寫가 아님을 알게 된다. 그러 므로 그들은 用字 선택에 있어서도, 가령 〈크 `Z 〉를 표기함에 있어서 〈淑 .良·吉·好·芳 〉 등의 문자를한首중에 구분해서 쓰고 있어 서, 결코 뜻만 알면 족한 것으로 의식하지 않았다. 表音이면서 천 황의 美稱인 〈十久 : y?〉는 〈八隅知之〉, 〈安見知之〉로 〈 7 님、巧〉(사 나이 답다)는 〈雄男志〉로 써 서 뜻을 아울러 가지 게 한 것 이 다. 우리 향가에는 몇가지 규준을 선정할 수 있다 •4) 그 규준을 가처 고 『萬葉集』 표기에 견주어 보면, 거의 어긋남이 없이 적응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대체로 향가의 향찰체 표기를 보면, 語節울 단위로 하고, 각 어철 은 語素와 文法素로 구성되어 있다. 語素는 訓借하는 것이 원칙인 4) 金思燁 著 『鄕歌의 文學的 硏究』, 「鄕札과 萬葉假名」, pp. 86~92.
데 대로는 예의도 없지 않지만, 그 의도는 의미를 직관적으로 파악 시키려 함에 있다. 文法 素 는 音 (옵'하는 것이 원칙인데, 그러나 예 외도 있다. 이제 이 규칙을 『萬맑팡島!의 短歌에 적용시켜 보기로 한다. O o o O O O O Oo 10 君之齒母 吾代毛所知哉 磐代乃 岡之草根平 去來結手名 (君力먀代心 七力가代心知石손 磐代(1) 岡(1)草根宅 L 、청結rJ-Ct.r:.) O O 000 ••1 01 \.,, 소A 81 山邊乃 御井平見我르利 神風乃 伊勢處女等 相見鶴鴨 (山 0 邊(1) 御井宅見力 R: b 伊勢少女t.·t 相見?石力며心) 0 표는 昔借를, ^표는 訓借를 나타냄 . 위의 短歌 2 首롤 향가 표기체의 규준을 가지고 견주어 보면 거의 일치한다. 한 말로 일러 향찰에서 설정한 표기법의 규준은 그대로 萬葉의 표기에도 적응되어 兩者는 거의 일치하는 구조임을 단언할 수 있다. 그런데 일본의 短歌의 경우, 한 어절 안의 文法素가 후기 에 이르면, 音 • 訓借를 막론하고 다분히 생 략 또는 한문적 표기를 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가령 萬葉 작가중 가장 후기에 속하는大伴 家持의 표기에서 이 경향을 잘 볼 수 있다. 4226 此雪之 消造時余 去來歸奈 山橘之 實光毛將見 (드(J)雪(J) 消H 殘,,石: 時'乙 I,、창行tJ•tJ: 山橘(J) 質(J)照石心見tr) 이 노래의 원문과 解讀과를 서로 견주어 보면 文法素에 있어서 십한 생략이 있음을 알게 되며, 전체적인 표기가 漢 文的이요 漢詩 的입을 쉽사리 발견한다. 〈消造時余〉(消殘石時tc:.), a:r光毛將見〉(ft (l)照石心見t)등의 표기는, 萬葉 초·중기의 표현에 비기면 너무나 文法素의 처리가 소홀함을 알게 되는 동시에, 이는 간 가요 발달과 정이 지속되는 사이 歌人들의 노래의 들이 잡히고 詩語가 정착되어 정확한 音借表記를 일일이 하지 않더라도 제대로 전달이 가능하게 되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리하여 향찰이 물밀려 오는 한문 세력에 눌려 그 생명이 소멀해 버린 사실과 마찬가지로, 萬葉
假名도 한문에 억 눌려 자취 를 감추는 대 신에 平安時代 (794~1192) 에 들어와서는 片假名의 탄생을 보게 되는 것이다. 3. 각 권 用字의 특색 (1) 變字法 漢字의 字音울 빌어 쓰는 萬葉假名의 표기는, 그 읽는 法이 명료 하여 노태의 기록에는 가장 적합한 것이었다. 그래서 『古事記』 이 하 많은 문헌에 一字一音의 표기가채용되어 있다. 그러나 奈良朝의 모든 문헌이 똑같은 用字法울한것은아니고, 각 문헌에 따라 一字 -音의 사용법에 득칭이 있다. 『古 事記』 는 대 체 로 三國六朝 경 의 남방의 字音, 죽 吳音系의 字昔 에 의거하여 있고, 사용하는 문자를 극도로 제한해서 -音을 一字 로써 쓰려는 원칙을 지키려 하고 있다. 물론 한자의 읽기를 注記한 부분 등은 가요의 부분과는 다론 字種울 쓰고 있어 완전한 一音一字 의 조직을 관철하고 있지 않으나, 노태의 부분은 이 원칙을 지키고 있다. 가령 〈^〉에는 〈波〉, 〈 A 〉에는 〈婆〉를 쓰되 다론 글자는 쓰 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萬葉假名 전체는 170 여종이다. 『日本 書紀 』의 경우에는, 그러한 使用假名으] 간소화보다는, 복잡 하게 많은萬葉假名몰쓰고자하고있다. 그字昔은새로들어온北 方音으로 인해서 假名의 종류는 520 여에 달하며, 보통 쓰지 않는 桐 • 陝 • 妖 • 쨩 .1m • 詞 • 根 • 展 • 宮 등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同字를 되풀이할 때, 그 字를 중복해서 쓰지 않고, 別字를 쓰려는 경향까지 있다. 『萬葉集』온 전체의 분량이 많고시대도길며, 取題된 지방도 넓은 데다가십히 많은사람들이쓴것을집성한것이므로字音假名의 종 류는 약 500 에 달한다. 字音온 대체로 『古事記』와 같은 계몽의 吳 音에 가까우나, 시대가 새로운 시대까지 미쳐 있으므로, 새로 수입 되어 유포되고 있던 漢音系의 字音, 죽 『日本 書 紀』에 쓰인 자음도 섞여 있다. 그 밖에, 『萬葉集』의 一字一音으로 표기한 卷에는 用字上의 득칭
이 두드러진 것도 있다. 그 하나가 卷十四에 보이는 嬰字用法 이다. 裝字法이란, 가령 ::z 그 口(心)란 말을 一 字 一音으로 쓴다면, 許己呂· 己許呂 • 許許呂 • 己己呂 둥의 서법이 있겠는데, 許許 또는 己己 와 같이 같은 음절이 되풀이될 경우, 같은 字를 중첩하지 않고 許己 또는 己許처럼 둘째번 음철을 윗 자와 다론 자로 바꾸어 씀을 말한다. 또 一例로 〈^^〉(母)란 말을 씀에도 〈波波〉 로 쓰지 않고 〈波伴〉 또는 〈波播〉와 같이 쓴다. 이것은 한 단어의 내부에 있어서 만이 아니고, 〈汝空中〈雲〉(하늘울 가는 구름)의 경우, 〈그夕夕壬〉에 〈夕 夕〉처럼 같은음절이 연속되는데, 그러한 경우에도 〈美盛良由久君 母〉라 써 서 〈久久〉라고는 안 쓰는 것 이 다. 〈古草 V 乙新草交 D〉 의 경 우에도 〈布流久佐余仁比久佐麻自利〉라 쓴다. 이것은 卷十四에 있어 서 가장 현처하여, 같은음절이 연속될 경우, 동일 문자를 되풀이하 는 예는 卷十四 전체에 걸쳐 10 종에 미달한다. 왜 이러한 표기법을 취했는가 하면, 아마 중국의 作詩法에 있어서 동일 문자(중국어로는 같은 말이란 뜻이 된다)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규준 같은 것이 있 는데, 언어구조가 다른 일본어의 노래 표기에 적용한 것이라 보여 진다. 卷十四는 一字一音의 字音假名로 기록되어 있거니와, 그러연서 그 가운데는 표의문자가 混入되어 있어 주목을 끌며 더우기 이 混 入의 양상에 하나의 특색 을 이 룬다. 沖'.)猪t:.->於使都猪余(卷十四, 3348) 玉(1)緖if力` b 一多麻乃緖婆可利(卷十四, 3358) 妹力:名呼守 T 一伊毛我名欲姚료(卷十四, 3362) 目 드군離石 e 心一旦許曾可流良米(卷十四, 3367) 出성石湯 0 一伊豆流湯能(卷十四, 3368) 武藏野(1)一牟射志野乃(卷十四, 3376) 背向t댜度 L <一 曾我比余窟思久(卷十四, 3577) 이처럼 一音節의 명사나 動詞 둥을 表意的으로 기록한 것이 卷 十四 전부에 결쳐 보인다. 이것은 卷十四가 한 사람의 의도로 통일
적 인 표기를 했음을 나타내는데, 이같은 형석의 표의문자의 혼용은 他卷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특색이다. (2) 각 권의 用字 『 萬葉集 』 20 권의 각 권이 다 다른 用字를 하였거니와, 아태에 卷 마다의 用字의 실상을 보기로 한다. 卷一一表意文字와 表音文字를 쓰고 있는데, 독히 訓假名가 많다• 卷二一表意 • 表音文字를 混用. 상당히 複雜한 用法이 보인다. 卷三一表意文字를 主로 하면서 字音假名를 섞고 있다. 卷四一卷三과 같음. 卷五一一字一音의 假名가 大部分이면서 더러는 表意文字도 使用하고 있 댜 그리고 萬葉假名는 『古事記』에서 쓰는字를 많이 쓰고 있는데, 가령 阿7 •* 意 • 迎. .내. \c • 斯, .• ,那. •= 造 7• 限 • 羅 등의 字가 그것 이 다. 또 하나 『古事記』에 서 만 보이 는 〈毛〉(壬 • 甲類) • 〈母〉(壬 • 乙類)를 區 別해서 쓴 例가 『萬葉集』 卷五에도 이 區分을지어서 쓰고 있으니, 한 말로 일러 이 卷의 筆錄者는 옛 用字을 固守한 年老者임을 推定 케한다. 卷六一表意 • 表音文字 混用. 卷七一表意文字를 主로 하면서 表音文字를 混用· 『人磨歌集』에서 轉載한 것에는 子= 7 ,,나운 省略한 書 法의 것이 있다. 卷八一表意 • 表音文字 俳用. 卷九一表意 • 表音文字 付用. 卷十一表意文字를 主로 하면서 表音文字가 섞 여 있고, 戱書도 보인다. 卷十一 • 十二一表意 • 表音文字를 混用하였고, 戱書도 많다. 『人磨歌集』에 는 子 .:. } ,,、를 省略한 表記가 보인다. 卷十三一表意·表音文字를 混用• 戱書가 많은 것으로 注目되고 있다. 卷十四一一字一音의 表音文字를 主로 하면서 , 소수의 表意文字를 섞 었다. 卷十五一表音文字가 압도적 으로 많고, 表意文字도 多少 쓰여 져 있다. 卷十六一表音文字와 表意文字가 쓰여 져 있는데 , 두드러 진 것은 漢語 • 佛 經語句 등의 外來語가 그대 로 使用되 어 있고, 戱書의 例가 적 으며 童話 〈竹取 b 翁〉의 노래 의 用字에 特殊性이 認定되 는 등이 다. 卷十七一表音文字가 大部分이 며 , 表意文字도 多少 섞 여 있다.
卷十八-+卷十七과 같음. 卷十九-+表音文字와 表意文字률 사용하였고, 表意文字가 두드러 지 게 많은 것은 卷十七以下의 四卷中에 이卷만의 特色이다. 卷二十-+表音文字를 主로 하였고, 表意文字도 混用하고 있다. 4. 音韻 (1) 上代特殊假名遺 5) ――甲類 • 乙類
5) 力 T .; / 力,f. 假名를 써서 日語몰 表記하는 方法· 또는, 실제로 어떻게 쓰여지고 있는가를 말합.
江戶時代의 國學者둘은 萬葉假名불 연구한 끝에, 奈良時代音은, 夕 文 y(樂l,), ?' 文 (角), : =? 文 (三吉野) 동 오늘날 〈/〉音 은 〈又〉 였다고 인식하였다. 그 까닭은, 野I • 角y I • 樂,I L • 慕*I 소 등의 말을 萬葉 假名로 표기한 것을 보니, /의 音에 〈怒〉며 〈勢〉란 굳자는 있으나, 〈能〉이나 〈乃〉는 원칙적으로 쓰고 있지 않다. 국학자들은 〈怒〉 나 〈勢〉의 字音은 〈幻〉인 줄 알고 있었으므로, 그래서 위의 말들은 野· 角언? ' .어篠는,,' · 현樂’대’ L와.는 慕' ' 다소른라 읽것음이이라 는옳 의다식고이생 각그하러였한다 .생 각을그 리고지 지하고대였의던 것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연구의 결과, 奈良時代의 〈又〉라고 생각하여 왔던 內部가 다시 二分되는것임을 알게 되었다. 〈又〉音울 나타내는 萬葉 假名에는 〈奴 • 農 • 怒 • 勢 • 綺〉 둥 많은 字가 있어, 사용함에 구텔 이 없는 줄 알고 있었는데, 실은 그것이 두 그룹으로 명백히 갈라 지며 결코 혼합되지 않음을 발견하였다. A. 『古 事記 』 • 『萬葉集』에 서 는, 다움 말에 만 〈奴 • 農 • 派〉 字를 쓴다. 요(助動詞), 탕 갱총, 뽕총, 應患, 똔\,i 慕, 0판 !01: l: '.t.:£' 륭 요之 <혼 , `犬'n, 衣eo, L5 요 D, t七,0日 ·,, 塗2 o , 綴0 k , 油,, o, 兼!Q. B. 『古事記』 • 『萬葉渠』에서는 다음 말에서만 〈怒 • 綺〉字를 쓴다. 합, 탑 갭, 患 퐁 k, 험•, 恩 L, 냐자드. 죽 A 에 소속하는 萬葉假名는 A 의 어휘에만 쓰이고, B 에 소속
하는 萬葉假名는 B 의 어휘에만 쓰인다. A 의 假名이 B 의 어휘를 쓰는데 사용하지 않고, B 의 假名 7} A 의 어휘를 쓰는데 사용하는 일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제 『古 事記』 • 『萬갱팝 Ll 에서 〈/〉의 假名라 여겨지고 있는 것을 C 라고 하면, 아태와 같이 된다. C. (『1古)事(助記詞』) •롭 『h萬 • 葉드集(』1에) 서냐 (는魚 名다)음 • 恩말에 • 서息 만• 證〈 能• 홍• 乙乃〉 •字 홉를 o 쓴•다 i. o ·思t (1)入(助詞). 이상의 사례로 오늘날 又와 J의 假名에 해당하는 萬葉假名에는 A, B, C 의 세가지가 있어, A, B, C 는 서로 혼합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죽 江戶時代의 학자들은 A 와 B 를 합해서 文의 假名로 보 았고, C 만을 후세의 J에 해당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A. 奴類\\ B. 怒類/ 丈 c. 能類一一 0 그런데 근대에 와서 橋本進吉博士를 위시하여 많은 학자들이 萬 葉假名의 音價를 연구한 결과, 江戶時代의 國學者에 의해 주목된 음운 문제에 새로운 연구결과가 발표됨으로써 모든 난제가 크게 해 결되었다. 앞에서 본 文오} /의 문제에 있어서 A, B, C 三種音의 구벌이 있었는데, 이물 음운학상으로 보면, 奈良時代또는조금 앞선 시기, 죽 6,7 세기경의 중국의 한자음이, A 는 nu, B 는 no, C 는 no 音울 나타내고 있음을 알았다. n6 音은 平安時代에 와서는 no 音과 합류해 버려 없어지고 만다. 그래서 奈良時代와 平安時代의 音의 변이를 도시하면 다음과 같다. A. 奴類 nu— ->nu ~
cB. . 能怒類類 nno&'---/. no II) 이 일련의 사실을 발견한 橋本進吉捕士는 이에 대하여 아태와 갇 이 명명하였다. 能奴類類 nnoo(( // 甲乙類類) )\/\2 平安朝 以後의 / (no) 平安時代 이후는 합일해 버리지마는, 奈良時代에는 둘로 나누어전 音을 갑류 • 울류에 의하여 구벌하게 되었다. 이같이 奈良時代에 갑 류 을류의 구벌 이 있는 것 은 / 분 아니 고, 수 1:::. 5 夕 ^ y 그 、J 卜 / 든 크 P 의 13, 및 그 濁音 푸\:::.万~,::z·:;· I-, 합계 20 의 음절이다. 아 같은 구벌을 〈上代特殊假名遣〉라 부른다. 거 기 에 사용된 萬葉假名 의 字音을 조사해서, 그 결과를 간단한 로마字로 보이면 다음과 같다. 갑류 ki Fi mi ke Fe me ko tso to no mo yo ro gi bi ge be go dzo do 울류 ki Fi mi ki! Fe mi! ko tso to no mo yo ro gi bi gi! be go dzo do 이러한 사실이 해명되자, 종래에는 같은 말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별개의 말임이 밝혀져 구별하게 되었다. 가령 上(力 :)의 、 논 갑류이다. 그래서 이 말은 kam i로 표기된다. 神(力 5) 의 :논 을류이다. 그래서 이 말은 kam i로 표기된다. 그러므로 奈良時代에 는 上(力 : )과 神(力 5 )는 別昔이 었음을 안다. 그 결과, 神은 〈t,上I 에 계십으로써 이름했다〉논 어원설은믿을 수없게 된 것이다. 또 四段 활용의 동사의 已然形과 명령형, 가령 行夕 F 와 行夕는 同形이라 믿 어 왔으나, 奈良時代의 萬葉假名에서는, 已然形온 을류, 명령형은· 갑류의 字률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已然形온 ike , 명령형은 i ke 니. 전연 서로 다른 別形의 말이었음이 밝혀졌다.
〈上代特殊假名遣〉의 발견은 上代語의 어원 연구나 단어의 의미의 변벌, 문법상의 사례의 설명에, 또는 古寫本의 문자의 선택의 경우 둥에, 넓고 깊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上代特殊假名遣는 이제 학계에서 확인되어 정설이 된 것이다. 이상과 같이 문자표기와 음운의 관계에 대해서 처음으로 着目한 것은 本居宣長인데, 이후 그의 제자인 石塚龍磨가 學的으로 문제삼 아 「假名遣奧山路」에 발표하였다. 그러나 정리가 잘 안되고 일반의 이해를 얻지 못했다. 明治時代에 이르러 橋本進吉博士가 石塚龍 磨와는 별개의 입장에서 같은 사실을 발견하고, 나아가 上代特殊假 名遣는 奈良時代의 발음을 반영하는 것임을 확인하였다. 그런데 이 현상이 왜 촌재했으며, 다음 平安時代에 급속히 소멀 해 간것은무슨 까닭일까, 하는 접은 밝혀져 있지 않다. 가령 쳉澤 語에서는 갑 • 울류는 많이 혼동되고 있고, 매김말(後欽)에서는 무시 되어 있다. 日의 k 는 갑, 火의 k 는 을이지만, 이것은 일종의 여恥 로서의 구벨이며, 완전한 털개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최근에 와서 논 갑 을이란 음운상의 相違가 아니고 발음의 相違에 불과하다는 설이 나타났다. (2) 字音假名의 변천 漢字를 빌어서 일본어를 표기하는 문자, 곧 假名에는 訓借한 것 인가 音借한 것 인가에 따라서 字訓假名 또는 字音假名로 나눈다. 字訓假名는 그 용법상 비교나 변천을 더듬기가 불가능하며 그다지 중요한 의의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다음에 字音假名만에 한정해 서 고찰하려 한다. 大野透 6) 에 의하면, 假名의 변천을 세 단계로 나누고 있다. 죽 古層 • 中間層 • 新層으로 구분한다. 古層온, 推古朝 (593~628) 이전에 발생한 假名를 말하고, 新層온 8 세기에 長安音을 기반으로 해서 발 생한 假名이며, 中間層온 古層과 新層울 제의한, 즉奈良時代 (710~ 784) 의 假名를 말한다. 이 奈良朝의 假名온 『萬葉集』의 표기 를 기 준 으로 한다. 아래의 大野透가 작성한 표에 의해서 用字가 변천해 간 6) 『萬葉假名1l)硏究』·
추이를 보기로 하거니와, 아울러 鄕札의 用字도 대비시켜서 俳記 한다.
字類 年代 II 6A20 I 7B00 I 옵。 I 1~0 ii ( )속鄕은札 地用名字 用字 7(a) 阿 阿 阿安 阿安 阿安惡 1 (i) 伊 伊伊伊 以,伊,逸'PJ\,因(耳) 17 (u) :If 宇 宇宇 a. 于友 b. 屋烏 ::r..(!!) (衣) 衣依 衣依愛 衣依愛 衣矣煙 才 (o) 意 意於意於 意於 於應焉音乙隱 力 (ka) 加 加 加可賀 加可賀 可(加)(伽)(河) jj(ga ) 宜 宜我賀 我賀 =f (ki) 支岐 支岐使 支岐使 支岐使 只 =¥(gi) 支岐 支岐使 支岐使支岐使 支紙 o\'-( ki) 歸 歸責紀 貸紀奇 貸紀奇 期希 =¥(gi) (魏) 疑 疑 疑宜 皆 夕 (ku) 久 久 久 久 苦口九(仇)@}) 夕. . (gu ) (吾) 吾具 具具 J;-( ke) (jjij3) 郵家 郡家計 那家計 孩 lr(ge ) (那) 部下那下那下 下 -r (ki!) 居 居氣 居氣 氣 戒(居)(巨) 1/(gl!) 義 義 義宣 義宜 ::z (ko) 古 古 古故 古故 古故昆好 더`(g o) 胡 胡吳 胡吳 悟遣 ::z (k6 ) 己 己許 己許已許 去脫恨(虛)(許) ::i·(gb ) ( 其) 其期 其期 其期 根語 -lf(tsa ) 沙佐 沙佐 沙佐沙佐 沙 *(dza) 斯 斯射 之志 斯射之 志 之射志 次察(J li)自呢慈四(時死)事賜史之士 -;; (si) 1/ (zi) 自 自 自士 自士 ?-(tsu ) (須) 須 須 須 須主薇(首) 天、 (dzu) 受 受 受受 (主)(朱) 七 (se) 西 西世 世勢 世勢 省世西 七: (ze) ( 是) 是是 是 是 、'/ (tso ) ~) 蘇 蘇 蘇 所召 '.l··( dzo)
'/ (ts o ) ‘思 . 曾 1유 曾 、.I' ' ( d zo) 曾奴 曾奴 曾奴 !J (ta ) 多 多太 多太 多太多大 !J'(d a ) ’假 俺太 !低太 施太 陀達 r(ti) 至知智 知智 知智 知智 知次 手 ( d i) 迎 週治 迎治迎治 切 `;; (tu) 都 都 都都 都(都) `;;``( du ) 豆頭 豆頭 豆頭 ( 豆) 子(t e ) 氐 氏提氐提天氏提天 丁 弟底提 于 ( de ) 提 提 提泥 齋 卜 (to ) 刀 刀 斗 刀斗 刀斗 刀冬頓 r( do ) (度 ) 度 度 度 土( 道 ) 卜 (to) 止等 止 等登 止等登 止等登 等存得 !-'(d o ) 才予 朽照 才予許 -J-( na ) 那奈 那奈那奈 那奈 奈難 =-( n i) 爾 爾爾 爾 爾仁 it (nu) 奴奴勢勢勢 奴怒 奴內 ;t-(n e) 尼尼 彌 尼 彌 彌 尼念 / (no ) (勢) 勢 勢淡 勢談 ^/ (( Fno a) ) 乃波 波乃 能 婆乃 能 波乃 能 II ~ 터 ,,:(b a) (婆 ) 婆 婆 婆 k (Fi) 比 比 比 比 II 必 (比) t'( b i ) 比 比毗比毗 比毗批 ~ (Fi) 非 非斐 非斐 非斐 II 非悲 E`( b I ) 備 備 備 7( F u) 布 布 布不 布不 布弗 7,,(b u) ( 夫 ) 夫 夫夫夫部 ~(Fe) 仰 伴醉幣 幣幣 幣幣敵 反 ~( be) (碑) 牌郭幣 幣幣辨 郭幣辨 --..(F e ) 閉閉 閉倍閉倍 (b! !) ( 倍 ) 倍 倍 倍 :t-(F o) 菩 莘E II 寶 ( 甫 ) ;f-(b o) 菩 菩 士 (F o ) 富富 II 北( 夫 )( 富 ) ,ts( bo ) II
'7 (ma) 麻 麻 麻未菓 麻未菓소 菓-馬 ~ (mi ) 彌 彌美 彌美 彌美 彌民(彌) ~ (mi ) 未 未味未味 未味 未 A(mu) 牟 牟武牟武 牟武 元無(武) ;( (me) 賈 賣洋賣洋賣洋 @t) /. (ml !) 米 米 米 米 米迷 -=t:-( mo) (毛) 毛 毛物 t° (mo) 母 母 -\' (ya ) 移 移夜 夜也 夜也 也耶邪(倻) =i. (yu ) 由 由 由 由 唯 ;,:.(ye ) 睿延要 睿延要 크 (yo ) (Jfl) 用 用欲 用欲 크 (yii) 已與 與余與余 與余 7 (ra) 羅良 羅良 羅良羅良羅良 V (ri) 利 利理 利理里 利理里 利理理尸 1v(ru) 留 留流留流 留流 留 v(re) 禮 禮禮例 禮例 禮(禮) i:i (ro) (路) 路漏 路漏 路漏 (老) P (ro) 里 里呂 呂 呂 呂里陵 'l (wa) 和和和和 倭 4-(w i ) 韋 韋爲 爲 爲 ::r..( we) (惠) 惠 惠 惠 J (wo) 平 平 平袁遠 平袁遠 平烏 ※ 鄕札의 用字 가운데 ( )안의 字는 地名表記에 쓰인 字.
(3) 字類의 變移 위의 圖示에서 본 바와 같이 萬葉假名에 있어서 A-B-C-D 에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用字의 종류가 바뀌어 가는 홍미있는 현 상을 보여 주고 있는데, 이것은 字音 자체의 변화와 일본어의 음운 변화에 따른 것이라 여겨진다. 다음에 그것을 보기로 한다. 才 Co) 類 〈意一於〉의 교체 는 字音의 변화에 말미 암은 것 이 다. 〈意〉가 才 (5) 音의 . 표기에 이용한 것은 上古音올 바탕으로 한 것이다. 大野透씨
는 〈才列의 古層의 假名에는 대개 〈之 〉 韻의 字가 쓰이고 있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일본어의 〈才〉는 현대어의 〔 o ]와는 다론 〔a ]가 아니면, 〔 r] 와 같은 非圓룝母音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 意〉가 日本假名에서는 a-i 와 같이 변화하여 갔으므로 그 대신에 [a] 에 가까운 앤令〉字를 대 치 한 것 같다. :t- (k i)類와 :¥(gi)類 〈 支 〉 가 k i•gi의 轉寫 에 이용된 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이 字는 향찰에서도 빈번히 쓰여지고 있는데, 향가 해독에 있어서는 각 학자가 Ci, 8 로 읽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찰못이다. 마땅히 gi 로 읽을 것이다. 이 정에 있어서 萬 葉假名에서 k i 音 으로 읽고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다. 향찰에서는 k i音으로서 〈只〉, gi는 〈 支〉字로 轉寫 한 것 이 다. 〈支〉는 上古 音 에 서 中古音으로 넘 어 오면서 구개음화한다. 그래서 萬葉 假名에서는 〈支〉를 그대로 ki의 轉寫 에 쓸 수 없게 되어 대신 구개음화하지 않는 〈岐 • 使〉를 쓰게 된 것이다. -Jf(g a) 類 宜一我 • 賀의 교체는 주목할 일이다. 섭 E 〉 7} A 期에 있어서 [ga ] 音의 轉寫 에 쓰인 것은 上古音에 의한 것이다. 〈宜〉가 上古音에서 中古音으로 변이하자 벌써 〔g a] 音의 表音에는 적합치 않게 되었으 므로 그 대신에 〈 我 • 賀〉字를 쓰게 된 것이다. k i類와 gi類 萬葉 假名의 ki 類의 모음은 아마 ·Y 거나 -w 와 같은 圓菩化音이었 다 본다. 여기에 비원순화가 일어남으로써 갑류와 울류가 통합된 것이라 생각한다. ki(乙 )M • 貴 一紀 • 奇一수(甲)(統合) gi(乙)魏一疑 • 宜一두(甲)(統合)
午(k 5) 類 馮一氣〉의 字音 교체 현상이 보인다. 〈居〉가 ke 의 轉寫에 아용 된 것은 上古音의 반영이다. 일본에 있어서 ke 는 후세의 ke 에 통 합된 것이 아니고, 字音의 변이로 보아서는 푸(k I) 類에 통합된 것 으로 보여진다. 'r(g e) 類 〈義〉 7 1- g e 에 사용된 것은 上古音의 반영 이다. 中古音으로는 gi類 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 (Ko) 類 다음과 같은 字類의 교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ko 類 己一許 g 5 類 其一期 〈己 • 其 )7 1-
`J(t sb) 類 思一曾과 같은 字類의 교체현상이 보이며, 〈思〉가 `I (ts b) 의 轉寫 에 이용된 것은 上古 音 의 반영이다. 卜(t o) 類 刀-+斗와 같은 字類의 교체 현상이 나타나 있 다. 〈刀 )7 1- 卜 (t o) 에 이용된 것은 上古 音 의 반영이다. 卜 ( t o) 類 止 • 等一登과 같은 字類의 교체현상이 나타나 있다. 〈止 • 等〉이 t o 의 轉寫에 이용된 것은 上古音의 반영이다. *Cne) 類 尼一 彌 와 갇은 字類의 교체현상이 보인다. q巳〉가 *(ne) 類에 이 용된 것은 上古 音 의 반영 이다. /(no ) 類 乃一能의 字類의 교체현상이 보인다. 〈乃〉가 /(no) 類의 표기에 이용된 것은 上古音의 반영이다. 7 (F u) 類 布一不 위와 같음. -(Fe) • '(b e) 類 伴一興·幣·散 위와 같음. -v(y a) 類 移一夜 • 也와 같은 字類의 교체는 특히 중요한 현상이다. 〈移〉가 ~(y a) 類에 이용된 것은 上古音의 반영 이며 , 中古音은 <4 〉 로 변화 함으로써 자연 〈移〉 대신에 〈夜 • 也〉를 이용하게 된 것이다.
크(y o) 類 〈已〉가 크 (yo) 에 이용된 것은 上古音의 反 影 이다. 口 (ro) 類 里一呂 위와 같음. '9 (wo) 類 平一袁와 같은 字類의 교체현상이 나타나 있다. 〈 平 〉 가 〈 WO 〉의 轉寫에 이용된 것은단순한上古音의 반영이라고는볼수없다. 〈 平 〉 는 座母에 속하므로 萬葉假名의 체계로는 이것은 당연히 〈 그 〉 로 나 타나야 할 것 이다. 그것 이 〈크〉로 쓰이지 않고 〈 7 〉 로 쓰였다는 것 은, 鄕札字音의 영향이라 하겠다. 향찰에서는 호 (ho ) 가 아니고 오 ['o] 로 나타난다. 이 향찰의 오['이가 萬葉 假名에 서 J (wo) 로 쓰 안 것과 대비된다. 이상과같이 A 시기의 萬 葉假名에서는 上古音의 반영아 강하게 머물러 있으며, 이것은 일본이 직접적으로 한자음을 中國으로부터 수입해 온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던 上古音으1 일부가 일본에 들어가 推古朝 이전의 假名로 토착화하고, 그 뒤에 中古音 에 접하게 됨에 따라 새로운 新層의 假名體系를 형성한 것이라 보 아야 하겠다. 우리나라에 있어서 향찰이나 지명의 표기, 用字등에 관한 연구가 아직도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지금에 萬葉假名 에 나타난 이러한 古層의 假名字音온 역으로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한자음의 성격을 구명하는 데도 매우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리라 본 다. (4) 奈良時代의 음절과 萬葉假名 記 • 紀 • 萬葉에는 973 의 萬葉假名가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에 이같은 많은 音이 구별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동일어의 동일 부분을 표기하여 있다고 인정되는 문자는, 동일음을 표현하고 있는 걸로 생 각하여 , 그 973 을 類別해 보면, 87 의 類를 얻는다. 죽 오늘
날 -音이 되어 있는 音이 奈良時代에는 二音으로 나누어쳐 있었던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그 相違는 모음에 있고, 당시는 모음이 8 이었다. 이같은 연구 견과를 바탕으로 해서 奈良時代의 음절과 萬葉假名 를 一覽表 7) 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古事記』 • 『萬葉祭』의 • 아래의 字는 訓假名를 나타낸 것입) 音 節 1 推古미 『古庫記』 • 『萬葉集』 1 『日本密紀』 if> a 阿 阿安·足 阿炯陝 \, 、 i 伊夷 伊夷以異已移·射 伊以異易治 ? u 汗宇有 于魂得汗宇有烏羽雲 • 卯兎 于汗宇舒羽禹 之 e 亞衣依愛·榎程 愛哀埃 *b 意 意憶於應隱 意憶於游妖乙毅 '/J• ka 加 加汗架節迎閑何賀·嘉 紋可哥鹿河詞甲 詞阿阿介簡 '/J, ga 奇宜 我峨何河賀 我供峨峨塾 총 k i(甲) 支岐吉 來支使 杓岐技吉相棄企 • 寸 岐吉相棄企耆祗那 풍 gi(甲) 使祗藝岐 使儀蝶藝哈 총 k i(乙) 歸 奇寄綺思紀貸幾·木城 奇己紀氣幾機基規匠 퐁 g(乙) 疑宜義 疑擬 < ku 久 來久 攻九鳩君群口苦丘 • 屈久 政徹區苦句勿約供短婁 <• gu 具遇隅求 具遇愚處 남 ke( 甲) 兼家計 險監笑緊•6 異鷄來鷄雜價那結 家計鷄雜啓稽 답 g e( 甲) 下牙雅夏 露 남 k~( 乙) 氣居擧 氣匠 •毛消個(介) 氣居戒開階世凱槪槪該 汗 g e( 乙) 義 氣宜擬·削 早贈恨 t. ko( 甲) 古 古粉故柏姑祐高庫侯孤 • 古固故姑胡孤顧 ;:: g o( 甲) 吾吳胡後處•籠兒 吾悟吳埃誤 드 k5( 乙) 己 其己期탐基巨擬去 居許虛興·木 語去居御取宮 許渠操虛擧 I 드. g 5( 乙) 7) 『萬葉菜』 一, 日 本古典文學大系(岩波합店). pp. 32~35.
혼 tsa I 佐作沙 I 積左 佐. 作秋 硏沙紗革散者柴 左佐作沙娑舍差琉藍 L창. sdiz a I 斯 | 之斯僧事石詞芝子師磯 四色次式使足志此時爲思紫水旨倻寺新 指進侍死信詩.司 言社裝 裝嗣子迫資 藏堅旨 志指辭師斯思炫時 詩益始尸 tt:. ztsi u |自 I 須自溶士祚仕周 司州洲時酒尺珠福數慈寸 • 柄 須自周士主耳酒耳秀펴 6素 月 裂兒輸咸殊爾 f dzu 受授殊緊·策 受儒店 -It se 世湘西勢齊施 • 背背迫陝 世西梧齊劑細是制勢 선 ze 是 .1 溫 筑磯 춘 t s o( 甲) 楚激 蘇素宗祖·十俗 蘇素祈 꾼 dzo( 甲) 俗 -f: ts o( 乙) 曾僧增僧則所 · 衣苑背 曾層贈所則諸賊 꾼 dzo( 乙) 序敍賊存 序敍苑勤鉛 t..: ta 多移 多他丹默當 ·田立 多略大默抱胞熟 t..: da 陀 太陀大 太葉債婦 'b ti 知智至 知智地陳·千市血茅乳 知智致接池答迎勅 i;; di 迎 運治地恥 尼泥旋謀賊 ? tu 都 都川追通·津管 都屠親突商徒途豆頭圖 겁 du 豆頭 豆頭斑怒 -C te 르 료直氐底天提帝 • 手而價 료氏底提題帝諦 균c dt oe( 甲) 代 代刀斗田 邑• 泥r,鑑;庭速(殿土·祗)而戶 利 泥刀堅斗混杜提塗弟拓嗣都 親屠徒度 渡圖 ct· do( 甲) 土度渡 奴怒 & t b( 乙) 等止 等跡登(止澄) 得騰 ·十 鳥常述 等登凱鄧苦騰脈 E d5( 乙) 打行特藤騰等脈 返兩 t.r:. na 奈那 奈菜那쌉南難窓男 • 七名魚 奈那婦乃難難 K. ni |尔 |尔·迎丹荷二燕仁人 似日熊 尼耳而 柔 尔休造而펴尼 nt IQ nu 奴弱 奴農濃·沼宿探 奴怒怒農談 :tl ne 尼 尼泥念年#f\ • 根宿· 尼泥塗迫弥 qJ no( 甲) 怒勞鷲 奴勢怒鷲
~Q:'lJ. Fnoa( 乙) I 乃波 I 乃波泊齒能破房 八薄· 半 笑盤篠伴倍( 方野· 芳)早 播羽幡葉幡速 I 波能 破近 婆液浮伴 巴 播幡幡 i:l:'. ba 伐婆 I 座緊磨魔 간 F i (甲) 比 比 必卑賓嬪뿜 ·日 氷負 比 毗必卑避뿡馨 飯檜 ~ b i (甲 ) 批毗碑鼻 明 弥探鼻 V-F i(乙) 非 非悲斐肥飛 ·火 稙 悲彼被秘妃 tf b i (乙 ) 備肥飛 · 乾 備眉嬪緊 ~ Fu 1n 布歷不經否負部粉敷賊 ·生 布甫輔 府 符浮卦敷試 ~ bu 夫 夫扶府 I 夫文牙將步部 Fe( 甲 ) 伴 徹契問平걸 反 返返邊陸 幣幣薇陸覇碑蓋 覇 · 部 ~ be( 甲) 弁便別 쌉 t • 部 誌 ^ F e ( 乙) 倍暗問材· l 拜 • 經砲戶 倍暗 俳油杯 背閑親 -' (b e) (乙) 倍 每 ~ Fo 富 凡 菩 富百 凡机本 太秘品朋保倍 抱 寶 • 報富 朋 保襄倍 暗 費哀抱譜 ~ bo 須菩番蕃 須 ~ ma 麻明 麻間末鬼滿萬磨馬1Jf . 眞前 麻 末 拜座座磨魔馬 .:Z,.. m i( 甲) 弥 弥民美 ·三見 御 弥種美明探漏 ~ m i(乙) 未 未味尾微 · 身箕 未 微 ts mu 牟 · 牟謀武郞 六 元模謨無務傷 牟 武 務夢茂霧 ~ me( 甲) 賣 賣呼馬 面·女 賣 洋 迷誕綿 ~ me( 乙) 米 米迷昧梅洗· 目眼 迷妹昧每 梅 t mo( 甲) 毛( 記) 表母J目!II忘 敵毛袋 豊蒙 物望· 漢方門 文突問 母閑 毛芬 茂望梅謀謨暮慕墓 i mo( 乙) 母 母 ( 記 ) -\b ya 夜 移 夜移 也 野 耶 楊 •八矢屋 夜 移 野耶 鄒 揮耶 ~ yu 由 由遊!@I . 湯 由 兪急諭諭 央庚 r-:. (ye ) 良柄 延 淑要造 • 兄江吉枝 良延 飯 J: y o( 甲) 用 容欲 · 夜 用 庸造 J: y o( 乙) 余 누已 余餘 누 豫 ·代世吉四 余 餘 누 魯 預 豫 t) ra 良 羅 良 浪郞羅樂溫 · 等 羅彌運運損樂
Q ri 利 利梨里理隣·入熊 利削梨里理藍 ::i ru 留 留流琉類 留瑠流婁樓屈菌盧漏 :h re 禮 禮列例烈連 禮例黎吳 ~ ro( 甲) 路漏盧樓 露漏盧樓魯 7-:, ro( 乙) 里 里呂{呂 呂慮盧稷 :t? wa 禾n 和•丸輪 和苑泥倭禍 ?., wi 韋 韋位爲謂·井猪藍 韋偉位爲委姿威謂 ~ we 惠廻·疾盡惠廻衛限微 慧 ~ W O 平 平雄呼袁遠越 • 少 nl j男緖 平弘烏鳴堀怖
m. 萬葉歌降의 形式 1. 三大 歌諾形式의 특성 (1) 上代歌降의 몇가지 歌體 일본 上代의 가요에 관해서는 이미 序說에서 보아 왔거니와 여러 가지 미숙 • 치졸한 소재를 담아 불안한 歌形 속에서 자라나 차츰 고도의 가요로 발전해 가서 그 개화와 결실온 萬葉歌諾에 이르러 서야 보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다소 중복이 되지마는 上代의 歌形 울 돌이켜보아, 그 실태와 전전의 자취를 살펴보기로 한다. 萬葉歌諾에서는 노래 한 句의 昔數가 5 音 • 7 音으로 정착되거니 와, 이에 도달하기까지에는 여러 가지 형태를 거찬다. 짧은 것은 2 音, 간 것은 9 音까지 사이를 振幅했던 것이다. 歌體面에서 보면, 句의 音數는 일정하지 않으나, 대체로 片歌· 四句體歌·旋頭歌·佛 足石歌體 • 短歌 • 長歌 둥이 있다. 片歌 이는 5.7.7 의 3 구형식의 노태다. 이것은 2 首로서 한묶음하여 부 르는 것인데, 그 한 짝의 노래라 해서 이러한 이름이 지어진 것이 다. 따라서 片歌논 문답의 어느 한 편인 경우가 많고 그것만으로서 논 독립 성 이 약하다. 『古事記』 안에 있는 倭建命의 東夷征伐 때, 甲 斐의 튠맵홉 ~l 서 倭建命과 雙各홉의 노인과의 문답에서 이를본다.
應펩 讐풍-c, 幾夜力맹 F 法石(『古事記』 中卷 )I) 〈倭建命〉 常陸의 新治 2) 와 筑波”를 지 나 몇 밤이 나 찼던고. 日 日並------c, 夜t드 I i九夜, 日t乙ii十日宅 〈老人〉 •· •· -ti • ,.,' EI‘ 날수를 거둡하여 밥은 아홉밥 날은 열홀이의다. 四句體歌 5·7-5 -7 , 또는 7.5.7.5 형식의 노래 이니, 片歌와 함께 『萬葉集』에 서는 찾아 볼 수 없는 歌形이다. 역시 『古 事記』 안에(下卷), 仁德 天皇이 庶妹인 b女&.鳥',,王 A: :.에 게 노래로서 물었던 바 女鳥王 또한 노래로 서 답하였다. 이 두 사람이 주고받은 노래가 각각 四句體歌를 이룬 다. .女.,&鳥. (' I) 吾力;*王a(eI*) 織 石寸機'1,t; 誰力;t料h 石力먀心 사랑하는 女鳥女王이 짜고 계시 는 織物온 뉘 옷감이 오니 까 . 高行 @ 쳅뽑뽑 4)O 入%寸 0力沈 l( 女王歌) 大空울 높이 나는 速總別王의 옷감이 로소이 다. 旋頭歌 片歌 2 首가 연결되어 1 首룰 형성한 歌體이다. 머리를 들린다는 뜻에서 이 이름이 생긴 것이다. 旋頭歌 또한 두 사람이 唱和하는 문답식의 형식이 많으나 혼자서 부른 것도 있다. 다음에 보이는 노 1) 吾妻의 땅에서 甲斐로 나와 酒折屯f에 갔을 때의 노태. 다음 答歌논, .:z. 때 불율 때고 있던 한 老人이 부론 것 . 이 노래를 둘은 倭建命온 老人을 기리어 吾妻國의 造(~~t.. 長官)에 任命하였다. 2) 茨城條西茨城郡의 南部와 眞壁郡의 北西部. 3) 茨城縣筑波郡筑波町. 4) 仁德天王의 弟 仁德이 이 동생에게 女鳥王과 걷혼되도록 부탁했는데 女王온 .:z. 를 마다하고 이 동생과 짝이 되었다.
래가 旋頭歌形이거니와, 이는 雄略天皇이 목공인 猪,. 名,‘ ~部 ,, 偵2 根n 울 처 형하니 동료의 목공이 애란해서 불렀다는 것이다. e 墨墓 繩(紅『日홍 本 書猪b 紀 名』,‘ 部~• 雄0 略 工t十(匠*三 年惡••) 남. L 릎應 꾸力맹衍 h tf 患力떻封 U i 多t으 아까운 猪名部의 木手가천 먹줄, 그. 木手가 없어지면 누가 칠꼬 아까 운먹줄 5·7·7, 5.7.7 의 旋頭歌形式이니, 前句는 주제 인 〈墨繩〉의 제시. 後句는 墨繩의 설명 내지 서정이니, 脚韻式 되풀이를 갖추고 있다. 佛足石歌體 奈良의 藥 師寺의 佛足石歌碑에 있는 노래로, ::::z.. 형식은 5·7, 5.7. 7.7 이다. 佛足石은 天平勝寶四年 (752) 에, 찼톱뿐쇼첼쫑 7 l- 그 母의 명복을 빌고자 건립한 것인데, 아 歌碑에는 佛足石禮讚의 노래 21 首가 萬葉假名로 상하 2 단에 새겨져 있다. 이 歌形은· 短歌形式의 말미 에 7 음구가 1 구, 되 풀이 로서 첨 가된 것 이 다. 『古事記』의 淸寧 天皇(下卷)條에, 歌垣”로서 홍息命와 志農匠의 問答歌로 나오는 다음 노래가 바로 이 歌形이다. 大f君it(*/ ) 王수: 0 紫垣9·,E 八...節.. 結t* IJ 6) 結LZ b t &t 王 L 切九반柴垣 燒납t柴垣 王子님이 만든 싶담장은, 마디두성이로 매어서 둘러 있으나, 끊어질 싶 담장이 로다. 불타 버 릴 싶 담장이 로다. 短歌 5·7, 5.7.7 의 형식의 노래이다. 후세만큼 성하지 않으나 가요 시 대에 이미 나타나고 있다. 『古事記』에 보이는 須佐之男命”가 불렀 5) 男女가 모여 서로 노태를 주고받고 하는 行事. 夕夕力'4'-. 6) 져온 간격윤 두고 매어, 둘러가며 매어 있거니와 . 7) 尹혼 0*? 本: & 日本神話에 登場하는 神. 伊排諾尊(-1-tf)-=¥/ ~ ::J 卜)의 子, 天照大神의 弟 性質이 强暴하며 八頭의 大蛇둘 退治하여 그 배 속으로부터 天最 雲劍율 얻었다 합.
다는 다음 노래가 이 歌形을 갖춘 최초의 노래다. 八구' 雲 立? 出雲八重垣 .妻.,2 籠~入 V 乙 八重垣作乙 군 O/\ 祖垣在(上卷) 구름이 뭉개뭉개 피어오르는 이두모(出 雲 )나라의 宮殿, 마누라와 함께 살고자 宮殿울 짓도다. 그 宮殿아여. 長歌 5.7 이 두번 이상 되풀이되며, 마지막에 가서 5.7.7 을 첨가하는 형식이다. 歌諾時代에는 이 歌形은 정착하지 못하고 多種多樣한 형 식이 나타나 있다• 긴 것은 419 구로 형성되는 長歌도 보인다. 역시 『古事記』에 神武天皇東征의 설화 속에 나오는 다음 노래 가 최 초이 다. 石 宇前陀드 (,妻,1A) 9) 力t高;0 ·城菜e,L 8乞)~: :1.0 ) i嶋Li 안훈網 b if‘ 張f 石,立; t 孤我七b 力校K : 11待)O? 수質 (岡1g)f'i無 2차남 수 璋 <~宅 f 乙I ,총、 十L산iOl .途.,h 後鼓
전할 수 있었던 환희의 노래로서 東征說話 속에 삽입된 것이다. (2) 三大 歌形의 성립 『萬葉集』의 歌體는 長歌, 短歌가 주축이 되 며 , 旋頭歌가 이 에 잇 고, 극히 소수의 佛足石歌體의 노래와 連歌形式이 있다. 또 양적으 로 보면, 短歌는 長歌에 添尾된 反歌를 포함해 서 4, 200 여 首, 長歌 는 260 여 首, 旋頭歌는 60 여 首, 합계 4, 500 여 首에 이 르른다. 短歌와 같은 短詩形이 4, 000 首라는 量이 고 보면, 個個作品의 평 가는 참시 제쳐놓고서라도, 短歌라는 세계의 폭을 충분히 자질할 수 있다. 이에 비하면 300 首 미만의 長歌에 있어서는, 양적으로 충 분하다고논 할 수 없어도, 이 長歌 안에는 100 句가 넘는 스케일이 큰 詩型도 포함되어 있고 해서, 長歌의 세계도 충분히 感得할 수가 있는 것이다• 旋頭歌의 경우, 양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마는, 『萬葉渠』에서는 三者가 반드시 분화 독립한 세계를 형성해 있는 것 이 아니고, 공동된 창작의식 하에서, 작가의 사정에 따라, 또는 작 가의 기호에 따라 적당히 어느 한 歌體를 자유로이 취하여 作歌한 것이니, 오늘날 歌壇에서 여러 가지 詩社會를 형성해 있는 것과는 전연 취향이 다른 것이다. 長歌의 定形은 第二期 이후에 와서 5·7… .. . 5.7.7 로 정착되었거니 와, 그 전까지는 결말에 첨미되는 5.7.7 이 십히 불안정하여 전폭이 있었다. a. 5•7, 5•7… .. . 5.7 b. 5·7, 5.7 .. …·5 ·5 c. 5·7, 5.7 ... …7· 7 d. 5·7, 5•7… … 5·3·7 第二期 이후에 定型이 형성됨과 동시에 反歌가 붙는 것도 정칙이 되었고 이 反歌는 예외적으로 旋頭歌가 한 首 있논 外에는 모두 短歌다. 長歌의 句數는 7 句에서부터 149 句까지 있다. 記紀歌諾에도 長形式은 많으나, 문학적으로 완성한 것은 『萬葉集』에 있어서이고,
그 뒤논 쇠퇴해 버렸다. 뛰어난 長歌를 다수 가지고 있는 것은 『萬 葉菓料 特長의 하나이다. 旋頭歌논 앞서 본 바와 같이 片歌를 重愚한 형석이니, 곧 5·7·7, 5.7.7 이다. 원래 전반과 후반이 問 • 答의 구성이 되어 불리운 듯한 데, 민요적 색채가 농후하다. ,3 紀歌語에도 다소 있고, 萬葉의 有 名 歌人도 소수이지마는 試作하고 있으나 끝내 발전하지 못하고 말 았다. 그러나 60 여首탄 수집은 딴곳에서는 그 例를 찾을 수 없고, 민요적 풍미는 그 나름대로 촌재적 가치를 충분히 인정함 직하다. 短歌形式의 5·7, 5.7.7 은 記紀歌諾에 많이 보이며, 옛부터 유력 한 歌體로서 長歌나 旋頭歌와는 달리 萬葉 이후에도 성행하여, 和 歌라고 하면 短歌를 지 목하게 되 고, 현재 에 와서 도 歌壇에 두각의 자리를 점령하고 있거니와, 그 간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萬葉의 短 歌는 찬연히 빛나고 있는 것이다. 佛足石歌體는 『萬葉集』에 한 首가 있다. 連體歌라고 하는 것은, 5.7.5 와 7.7 의 두 首를 두 사람이 각각 지온 것 인데, 이것도 한 首 분이다. 2. 長歌 형식과 우리의 歌體 (1) 우리 歌體의 실태 우리 歌諾史에 있어서, 근간이 되는 歌體논, 鄕歌體 • 時調體 • 歌辭(가소)體이다. 이 각 體의 定型과그 발생시기 등의 문제에 관해 서는 아직도 논의의 여지가 없지 않으나, 우선 팔자가 세운 가설 13) 을 토대로 하여 각 歌體의 형식을 보면 아태와 같은 것이 된다고 본다. 鄕歌의 두 形式 鄕歌의 형식에는 두 종류가 있다. 그 하나는 우리 가요의 원시형 을 그대로 답습한 형식이요, 또 하나는 〈 3 句 6 名體〉이다. 원시형이 란 것은 『三國遺事』 卷二에 보이는 「鷲洛國記」에 수록된 「龜旨歌」 13) 『鄕歌의 文學的 硏究』 • 「鄕歌의 形式」, p.1 1 5~p .1 48.
(구시p 노·태 )이6니 • 6그 定型은 아래와 같다. 辭 이 형식은 문헌상에 나타난最古歌降에서 귀납하여 얻은 原始歌形 이 라 추정 한다. 다른 하나의 향가형 식 은, 『均如傳』의 序文(崔行歸가 씀) 중의 한 구절, 〈詩構唐辭 磨塚於五言七字 歌排鄕言 切礎於三句 六名〉에서 향가의 대표적 형식 이 〈3 句 6 名〉임을 알 수 있는데, 〈3 句 6 名〉의 〈名〉은 〈字〉의 義로 보아, 이 것 을 바탕으로 해 서 定型율 귀 납하면 아래와 같은 歌形을 얻게 된다. 이 歌形은 향가 14 首 중의 10 首와, 均如의 「보현가」 11 首가 이에 해당한다. 三句六名의 定型 (前句) {一二句句 66 •• 66 66 •• 66 短最•短長· 長 稽稽短短··長長 (後句) 三句 2~3 6 • 6 最晶·長·長 (鹿辭) (鹿 (a • b C • d) 이 歌形의 특칭을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는다. 기. 一句의 a 소절이 가장 짧다. 三句의 a 소절은 鹿辭라서 또한 가장 짧다. 그리고 一句 二句에 있어서 a 와 b. C 와 d 의 대 비에 있어서 앞 소절 (a•c) 이 다음 소절 (b·d) 보다 대체로 짧은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죽 a
時調의 形式 오늘날 시조라는 호칭은 근세에 와서 비롯한 것이고, 보다 오렌 호칭은 〈短歌〉였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쳐 있는 바이다• 시조라 부 르게 된 것은, 이조 영조 때 음악가였던 李世春이 短歌를 노래부르 기 위한 새로운 곡조를 지어 크게 유행함에 따라 종래 短歌라 불러 온 歌體名울 시조라 부르게 된 것이니, 비교적 그 유래가 짧다. 그러면 시조(短歌)의 형식은 어떠한가? 지금까지 여러 학자에 의 해 대동소이한 歌形이 발표되었다(李秉岐·趙潤濟·李殷相). 이제 발 표된 각 형식을 바탕으로 해서 귀납한 定型은 아래와 같다• 조o;초중< .1o장장- 63a5 9~ 8~ 5 6~b699 ~ 9~ 7 ~c二二9 U二d 이 定型의 특칭은, 短歌는 원칙적으로 초 • 중 • 종의 3 章 구성을 하며, 종장의 첫 소절만은 반드시 3 字라야 하며, 그 의의 다른 小 節은 획일적인 자수의 제한이 없는 점 동이다. 그리고 향가의 3 句 6 名體와短歌定型과대비해 보면, 윗표에서보는바와같이, 一,二 句의 C 와 d 의 소철이 短歌에서는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죽 3 句 6 名體의 1,2 句를 각각 반씩 줄이고, 三句는 그대로 둔 것이 곧 短歌형식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종장의 첫 소철이 반드시 3 字라야 한다는 규약은, 3 句 6 名體에 있어서는 鹿辭가 와야 함을 말함이다. 사실 短歌의 절대 다수가 陸辭인 사실을 보아 이를 수긍케 하며, 후대에 내려갈수록 鹿辭 아닌 말이 쓰여져 있으나, 그런 경우라도 반드시 3 字만은 墨守되 어 왔다. 歌辭 (7~ ❖) 體 이 歌體는 보통 〈가소〉라 부르면서 한자 표기 일 경우 歌詞 • 歌辭 라 쓰고 있다. 그러나 오렌 호칭은 문헌적 기록상에는 〈長歌〉라 쓰 여 있고 또 그렇게 불러 왔음을 알 수 있다.
長歌(歌辭)의 형식은 아래와 같다. 4 • 4 4 • 4… … (落句 )3 • 5~7 • 7~8 이 歌形울 보면, 短歌(時調)의 초 • 중장을 얼마든지 뻗어나가되 마지 막에 가서 는 短歌의 종장(長歌에 서 는 득히 落句라 부름)을 가져 와 서 완결시키는 歌體이다. 歌形上으로 보아, 초 • 중장의 제한을 받 는 短歌에 대해서 그 초•중장의 제한을 없애 버리고, 작자의 기호 에 따라 얼마든지 길게 늘어나갈 수 있도록 했으므로 長歌라 부론 것이다. 落句(短歌의 종장)를 제의한 부분은 4.4.4.4 가 그대로 이어나간 듯하나, 歌意上으로 보면 대체로 4·4, 4·4 로 단락을 지어, 마치 短 歌으1 초 • 중장이 詩想上 단락을 짓되, 초 • 중장의 관계는, 때로는 起句와 承句의 구실을 하고, 때로는 rll, • 答 또는 대구적인 수사를 하고 있는데, 長歌에서도 마찬가지다• 4·4 의 句는, 松江歌辭의 예 를 보면, 關東別曲은 291 句, 思美人曲은 124 句, 紹美人曲은 94 句, 星山別曲온 168 句로 매우 窓意的인데, 그러면서도 내용상에는 다채 로운 수사적 기교가 무늬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2) 日 本長歌와 우리 歌體와의 대 비 a) 3 句 6 名體의 長歌 『萬葉集』에 長歌라고 目 하는 가요 260 여 首를 보면, 5.7 音의 句數 로 적은 것은 7 句가 있는가 하면, 제일 건 것은 149 句가 있다. 그 러므로 업밀한 의미의 長歌라는 호칭이 실제와는 맞지 않는 감이 있다. 短歌와 旋頭歌의 두 歌形 이의의 歌形울 통틀어 長歌라 한듯 한 느낌 이 없지 않다. 그런데 『萬葉集』에 서 長歌라 다룬 260 首를 자 세 히 검 토해 보면, 우리 의 3 句 6 名體의 향가 형 식 과 短歌(時調)體가 그 안에 들어 있음을 보게 되니, 만일 양국의 歌形이 서로 밀정한 상관관계에 있다고 전제한다면, 다음과 같이 범칭 長歌라고만 目하 지 않고 구분이 지어져야 마땅할 줄 안다.
長歌(『萬麟』) {::C 『二 r:: 歌詞體長歌 그러면 다음에 일본의 長歌에서 우리의 歌體와 동질의 것을 보기 로한다. 3 句 6 名體의 長歌와 작자 『萬葉集』에는 3 句 6 名體의 長歌가 17 편이 보인다. (數字는 『萬葉 祭』에 收錄된 노래 의 順番) 山部宿彌赤人 (6 首 )_317•318·372·923·1005 笠朝臣金村 (4 首)― -546 •9 07 • 928 • 935 大伴上郞女(1首 )_379 無 名 氏 作 (6 首 )_1747·1751·1757•1759•3239·3875 『萬葉集』보다 앞선 『古 事 記』 중에도 이 歌形이 보인다. 立此흄<日드근 方~下息•..·. f此若部-:면< • •. 方 O1 日.9.!.> 7 下0.此i댜 ~部 方葉山.I山.王!. 廣r00F 作,0 , 熊<峽•• t山(tt> 白 4•드上·5 樓7 l,~ 479) 〈『古 事記 』 下卷〉 55更福〉5`6一三二4,句句句5'`5 5 ,7‘ .末本I,,.t*、^: :<:i.Aii i 竹tI,. 여:I,L、 入入<竹竹fA4 H'生生 차 DD度 于 巴福
317後 t...駿, 天,,.: I.歌.‘(.t),L 地 ?t. `.入山.< &. 0.部竹入 7宿 .b分度, ,t,彌.. th布 노:赤 LL士L 人군t 時0,드 0 tt中高 思•i•b 不嶺 h 率 Dh盡宅宿 4妻f 山2志 在ti望 h〈 조歌 5·7·5巴顔炳問® 75 ®`75一® ,7 句4® 神혼rf-C 高〈貨총 天急 2 0 原 振노 b 放훈 남見 h t'!渡照語L白b石石 雲(b月t 心 (繼日J 풍()JL) 、言·影光行여t 心D총! 見•m繼완,(, 풍之8 f行于D力力 내 屯 r 不盡 0 高嶺ii 5· 7 · 7( 55i麟更円5 `5三,3句‘ 二句時 E 〈군 雪|i降 9 남乙 이같이 『萬葉築』에서는 그저 長歌라고 目하는 가요에 우리의 향가 체 중에서 대표적인 3 句 6 名!l'}와 같은 형식이 내포되어 있다는 사 실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그 출자가 한반도라는 赤人의 작품에 長 歌 (3 句 6 名體)의 作歌가 비교적 많은 것도 홍미있는 일이니, 萬葉 假名의 방석이 우리의 향찰식을 받아들여서 만들었다는 사실과 아 울러 고려할 때, 이 長歌體 또한 우리 歌體를 받아들인 것은 틀림 없는 일이타 하겠다. b) 時調(短歌)體의 長歌 『萬葉集』의 長歌에 鄕歌의 3 句 6 名體와 같은 歌形이 있는가 하면, 우리 時調(短歌)體와 같은 것도 있다. 中大兄(天智天皇)(/)三山 0 歌 13 香h·具 <山· +|2 i 敵, h 火a 雄* A* L & *`神耳古'`*, 代: '梨昔L‘?.L^心上 t산 入b相然iL心 du t·志斯 • 2· 산婦-8色 a 후宅 군九乞 드O尤石 군풍 5 8 군L소 5L ;5·[3•l7ll \終: :章 O新O0田 f: 部^皇 *子 ;:t. 댜I:,:狀2 ..石, 歌 〈柚本人磨〉 261 t혼高a• • 輝七,: e k 寸L L日 탸0 皇갑子좁 鬪:; }初章 榮간혼之力 主`t寸. : .O大 殿天允* ?傳0t 간 } 來^t石乙 55•·78((66)) } 中莘 白? 雪e E t 0 往총力`J: 3?? I,、수常世主균 5•7•7 終章
c) 5·7 과 3·3 의 대비 이 상에 보아온 바와 같이 『菓것팡足!의 長歌에 는 한 말로 長歌라 하 지마는 자세히 검토해 보면, 우리의 3 句 6 名體와 時調體가 포함되 어 있고, 이 두 歌體 의논 일단 우리의 가사체와 같은 것이 존재함 을 알게 되어, 『萬葉渠』의 長歌體는 우리의 기본되는 가요체의 영 향을 크게 받은 것임을 입증한다. 다음 한가지 문제는 일본 가요에 서는 기본 음수가 5 音과 7 音인데 대하여 우리는 3 音 내지 4 音이니, 이 양국 가요의 기본 음수논 어떠한 상호 관계에 있는가를 살펴볼 팔요가 있다. 일본 가요의 기본 음수인 5·7 과 우리 가요의 기본 음수인 6=3 (短 )·3( 長)을 대비해 볼 때, 두 나라의 기본 음수는 서로 동질성에 서 있다고 가정하면, 그것이 성립된다는 증거로 다음 접을 들 수 있다. 첫째 두 나라의 언어 구조상, 우리의 기본 음수 6 은 3·3 으로 구분되거니와, 이 3·3 은 노래에 있어서 앞 3 은 다음 3 보다 항상 짧 은 음수를 나타낸다. 일본의 기 본음수 5 .7 은, 5 音 7 音울 우리 의 3 音과 대 비에 앞서, 우선 일본 가요의 경우도 우리와 같이 短 • 長의 경향을 나타내며, 이 접에서 우선 서로 같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다음 언어 구조상, 현재의 우리 말은 開音節과 閉音節의 구조를 갖 고 있고, 일본어논, 약간의 예외는 있다 하더라도 대체로는 開音節 구조인 것이다. 그것이 上古語의 경우는 모두 開音節 구조이다. 우 리 말도 현재의 閉音節로 된 것이라든지 유기음이 中世語에서는 開音節 및 無氣音이었음을 많이 보는 바이다. 대체로 末子音, 죽 종성의 발달 과정은 아래와 같은 진행을 밟은 것이다. (A) (B) cs) 一 CV — .. CV ― ➔ C (母音올 가접) (不完全外破) (內破) 가령 〈鷄〉의 형태소는 〈닭〉이나, 서울서는 〈닥〉, 경상도 방언은 〈달〉이다. 그러나 15 세기에는 〈닭〉으로 표현하고 있는 때문에, 소 리대로 〈동〉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연원적으로 보면, t ark 은 *tar +k 이었다고 본다. t ar 은 日語의 t or i와 대웅되며, -k 는 명사를·
짓는 접 미사인 -k i * 에서 -i가 탈락되어 형성된 것이다. 이 -k 가 -k i의 축약형임은 〈 비두루기-->비들기 〉 에서도 볼 수 있다. 이같이 上古의 韓語 의 음절은 거의 開 音節 이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리하여 일본 가요에서의 5 내지 7 음 수가 한국 가요의 3(m ) • 3( 長 )음수와 대비가 가능함은 충분히 인정된다고 보는 것이다. 3. 短歌 형석과 土田 杏村 의 가설 (1) 短歌 형식의 성립 우리 나라의 短 歌 ( 時調) 形은 향가의 3 句 6 名 體 의 一·二句를 短 縮 시 켜서 形成시켰고, 일본의 短 歌 形은 長歌 의 기본형인 5.7 音 하나만 으로서 형성된 것이니, 兩 者가 같은 방법에 의하여 새로운 歌 形울 이룩한 셉이 된다. 短 歌 {::~.7 f當;섣 麻2 ,, 眞2 0人& u磨 石 2(15) 妻 0 作石 歌 43 :b'/J 뷰『 5子 ii 何L`1 處( 行〈7 5U 奧( ?心(51 ) 1隱,' ( 17) 山宅 今日力윤g7中 5 tr 이 短歌形이 정착되기까지에는 5·7 이 둘, 또는 셋을 선행하는 과 정을 밟은 끝에 도달한 것임울 『古 事 記』의 가요에서 보는 바이다. O 5.7 을 중복한 예 入?入?1.... 久米 0 子 5 力; 5•6 栗尤 I 生i노t 乙ii 吳0· *蓮._, 一 莖`& 5·7 其七七力;本 其七 和茅D 繁?I‘솽 f 整’ tf L 수主t 5·7·7 〈『古 事 記』 中卷〉 o 5.7 이 세번 先行하는 例 1權:, : 並 t: 沈f 伊L那` 佐t:! 2I )山!I) 5•7 樹 or벼 J:\) \,、行총主t 8D 5·7
戰^tf 吾ii훈(ii l¥i 5·6 hh 島?,鳥 船終力唄徒 今助납t乙來~ 5·6·7 ' •· le(. ·t (2) 土田杏村의 향가형식론 1929 年(昭和 ¥p) 6 月에, 土田杏村氏는 『國文學 0 哲學的硏究』시리 즈 第三卷 『上代(l)歌諾』에 서 , 종래 의 고석 적 인 일본 문학의 학풍에 일대 파문을 던졌다. 그것은 일본 고대 문학은 한국의 문학의 영향 을 받았다는 것인데, 특히 가요에 있어서 신라향가를 받아 가요 속 에는 3 句 6 名體의 歌形이 촌재한다면서 이의 증명을 시도하였다. 이 책자가 公刊되던 그 당시의 우리 나라 국문학계는 아직 초창 기로 이렇다 할 과학적 연구가 궤도에 오르지 못한 형편이었다. 斯 界의 유일한 학부인 京城帝國大學 法文學部 안에 朝鮮語文學科가 1925 年에 비로소 창설되었고, 학부의 정식 강좌는 1927 年에 개시되 어 겨우출발한참이었다. 국문학은 高橋亨敎授, 국어학은 小倉進平 敎授가 각각 담당하였다. 土田씨의 上記 저서가 발표되던 석달전에 小倉敎授의 획기적인 역처 『鄕歌及간吏讀 0 硏究』가 간행된 것이다. 아뭏돈 고대문학을 연구하는 데 필요한 도서라든가 학적 인 논문 또는 개설서 등이 전연 없었던 그 당시에, 土田씨는 많은한국 관계 문헌을 섭렵해서 전인미답의 경지를 개척한 것이었다. 해방된 오늘 날도 일본의 국어문학계는 다분히 쇄국적인 학풍이 변함없이 농후 한데, 그 당시는 더더우기 江戶時代의 국학자 및 국쇄주의자의 영 향력이 뿌리깊게 참재하고 있었는데, 그러한 분위기 속에 대담무 쌍한 발언을 하면서, 그러한 固陸性 閉鎖性에 대하여 경종을 울렀 다. 다음 一文은 上記 처서에 실려 있는 그의 주장 一端이다. 日 本人이 다만 日本文學의 內面에 沈潛하여 日 本文學의 特質을 禮讚하고 있어 그것의 內面性이며 特質이며 外國文學의 그것과 公平한 비교를 하 지 않았을 경 우, 그 見解논 스스로 만만치 않은 하나의 獨斷, 하나의 誘張 에 빠짐이 없었던가? 나는 그러한 例를 德 )II 時代의 國學者 가운데 몇 사 람인가를 보아 왔다. (本居) 宣長는 〈皇國의 言語에 比하면 唐나타 言語 는 매우 거친 것〉(『玉勝間』)이라 판단하고, 그 例로서 〈卒言〉이라는 漢語를 들고 있다. 그에 의 하면, 日 語로는 〈간혹 말한다〉와 〈지 껄입 이 드물다〉라는
것은 그 뜻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宜長 은 또 〈다른 말도 이런 따위가 많다〉. 〈모든 것 이 다 이 와 같다〉라고 하여 中國文化를 一掃하려 하였 거 니와, 적어도 그가 例로 돈 〈平 言 〉만 하더라도 이 말의 解는 漢 文울 日本 式으로 訓韻함에 서 온 그의 鉛썼이 며 , 中國語法이 아무리 거 칠다 하더 라 도 〈간혹 말한다〉와 〈지 껄임 이 드물다〉의 뜻의 差를 표기 못하는 것 은 아 니 다(中略). 眞淵(人名)의 생 각도 偏扶치 않다고는 할 수 없 다. 日 本文學 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 먼 淵流를 上古에 까지 치 운타가면 거 기 에 存在 하는 것을 日本 固有, 日本 本來의 要素인 것처럼 믿어 의십치 않았다. 그리 고 그 上代 • 古代라 믿는 時代의 文化의 特性을 宜揚 하면 그것 이 日 本 固有의 文化를 宣揚 하는 길이라 믿어 의십치 않았다. 그러나 우리들 社會生活은 아무리 오랜 옛날로 치올라가더라도 그 固 體 以外의 社會團體와 아무런 교섭 이 없고 완전히 獨立된 生活이 가능했 을까? 그리고 또 아무리 孤立된 人類의 集團이 있었다손치더라도, 적어 도 人間인 이상온 어떠한 本源에서 分岐해 온 것이라 생각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러한 경우, 孤立된 菓團 온 그것들의 原母集團의 特性과 전연 관 계 없이 스스로의 特性을 創造합아 가능할까 ? 發生的 으로 日 本民族의 生 活이 아무리 옛 날로 소급한들, 外國文化와의 관계에 서 완전히 絶緣된 日 本民族의 特性을 發見할 수 없다. 또 멀리 소급한 어 느 한 時代의 生活울 잡아, 이것이야말로 日本 固有의 生活이라고 斷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生活온 流動이 다. 推移다. 그것의 一斷面온 그 流動의 一時代에 나타난 相일 분이다. 文化의 特性온 그 流動의 속을 꿰뚫어서 찾아야 하며, 그 流動의 決定된 一相에 서 찾아서 는 안된다. (下略) (『 國文學 (1)哲學的硏究』 • 第三卷 • 第一草 序論) 이같은 견해에 서서 그는 향가의 형식을 모색하려 했고, 모색한 끝에 얻은 定型울 가지고 일본 고대가요 가운데서 그 定型을 갖춘 노래를 찾아낸 것이다. 그러면 그가 찾아낸 定型이란 어떤 것이며, 그 근거는 무엇인가를 다음에 보기로 한다. 그는 향가의 원문을 토대로 한 형식, 龍飛御天歌와 민요 등에 공 통으로 보이는 基本調를 참작한 끝에 아래와 같은 평균치를 얻었 다. 아직 小倉進平敎授가 시도한 향가의 해독문은 보지 못했던 시 접이었다.
4·5 9 • 4 岐短·長 9 • 0 9 • 4 稽 長 · 長 (阿耶) 7 • 0 9 • 0 短·長 이것을 바탕으로 해서 다음과 같은 定型의 設定이 가능하다고 했 다. BBB8BBB1,_ B 88 J1, 三二一|句句句 J 그리고 기본 음수인 6·8 은 일본 가요의 기본 음수인 5.7 과 대응 한다고 보고 있다. 위의 定型에 알맞는 일본의 고대 가요의 예로서 「志良宜歌」를 들면서 , 〈志良宜〉는 다름아닌 〈新羅〉 (L 8 왕)를 나타 낸 것이며, 志良宜歌논 곧 新羅歌 의 音借表記 라 주장하였다. 14) 木梨 0 輕 0 太子作 (『古 事記 』 • 『 日 本간紀』) 志 LD 총 0 山田宅作I) 5·7 山 高入 下Lf :稙U 15)~ ;bL,..g- 5·7 下婦 D i드 吾 16) j;'懷소妹~ 5·7 &• 下泣총 t~ 吾 17) jf泣〈妻~ 5·7 (阿耶) 今: 夜군乙 군|i 수安 〈Jl1L觸 h 5·7 〈阿耶〉는 原歌에는 없으나 옹당 있었을 것이라 추정하여 삽입하 였다. 위의 노래의 형식 이 그대로 향가의 3 句 6 名體의 歌形과 서로 맞 14) 沈詞 15) 地下에 나무로 물이 훈러 내 려 가는 흥을 만듬 . 以上온 將兪 에 의한 序詞. 16) 납 모르게 숨어 서 찾아가는 내 妻. 17) 마음 속으로 울고 있는 내 妻.
지 않음은 일견해서 알 수 있다. 앞에서 필자가 설정한 향가 및 短歌(時調), 長歌(가소)의 각 정 형 과 견주어 보면, 上記 가요의 형 석은 오히려 短歌形과는 대비될지언정 3 句 6 名體는 아니다. 土田씨의 꾸준한 노력과 예리한 과학자의 메스를 가지고서도, 향 찰로 記寫되어 있는 原歌만울 대상으로 하여 그 字數 분석에서 참 된 향가 형석을 유도하려고 한 데에는 무리가 있고 정답을 얻을 수 없는 것 이 다. 小倉敎授의 『鄕歌及간吏禎 0 硏究』는 1929 年 3 月 에 간 행되었고, 土田씨의 『上代歌臨』는 같은 해의 6 月에 公刊되었으니, 그가 향가의 定型울 모색해서 집필하던 때는 小倉敎授의 解語과 형 석에 관한 견해는 참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돌이켜 볼 때, 설령 土田씨가 小倉敎授의 처서를 참고하였어도, 그의 가설 을 크게 수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小倉敎授의 解讀이나 형식에 관한 견해가 그대로 학계에서 인정받을 수는 없는 대문이 다. 한 가지 애석한 것은, 만일 土田씨가 좀 더 오태 생촌하여서 그 뒤에 발표된 한국 학자의 解讀과 형식론에 접할 수 있었다면, 그가 처음 발표한 형식론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고, 따라서 일본 고대 문 학에 한국적 영향과 요소가 상상 이상으로 지대했음을 입증했으리 라 믿어진다. 그러나 그가 일본인이란 입장에서 우리 고대 가요에 착안하여 최초로 본격적인 兩國 가요의 상관성을 믿어 이를 과학적 으로 다룬 그의 성의에 대하여는 높게 평가해야 마땅하리라 본다.
N. 내용면의 특질 1. 분류와 그 기준 (1) 내용에 의한 분류 『萬葉菜』의 분류는 雜歌 • 相聞 • 換 歌 를 근간으로 상고 있으며 , 이 러 한 명 목은 『文選』에 서 따온 것 이 다• 그런데 『古今集』에 서 는 春歌 , 夏歌 秋歌, 冬歌, 賀歌, 離別歌, 暖旅歌, 物名, 戀歌 , 哀傷歌, 雜 歌, 雜體, 大歌所御歌로 나뉘어 있는데, 분류가 세분되어 있을 분 아니라 분류의 規準이 달라쳐 있다. 그것은 「相聞 歌 」와 「 戀歌 」, 「換 歌」와 「哀傷歌」와를 서 로 비 교해 보면 알 수 있거 니 와 『古今 集 』은 노래의 내용울 기준으로한 분류인데, 『萬葉 集 』은노태의 생태 또는 場울 기준으로 한 분류다. 후세의 勅撰集 그 밖의 歌集에서는 春 • 夏 • 秋 • 冬의 四季가분류의 기준이 되어 있지마는, 『萬葉集』에서는 아직 四季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 않다• 노래의 배열상 주 목을 끄는 또 한가지는, 될 수 있는 한 연대순으로 나열코자 한 접 이다. 年代不明한 것은 불리운 지방이라든가 사물 등을 표준상으려 하고있다. 相聞歌는 말의 뜻으로나 분류된 노래로 보아서나 모두 贈答의 노 래이며, 노태의 내용으로는 戀 歌를 주로 하면서 일상적인 音信도 포함되어 있다. 이것이 『古今集』에서는 전자를 戀歌 , 후자는 雜歌 로 다루었다. 그러나 『萬葉集』의 경우는, 가장 많은 것이 연애를 하
거나 결혼하는 사람끼리 주고받는, 소위 戀歌 가 9 할 이상을 차지 하고 있다. 相聞歌 에는 다시 입正3 E述 占 心UL t緖'歌도 9 t; •t '寄나산物'C 陳%U 思tt·歌도 ’ f 소• 먄0 마,1 ' 混 9歌· 로 세분한 경우도 있다. 이것은 표현법에 의한 분류이다. 正述心 緖 歌 는 자기 십정 그대로 를 노래한 것이며, 寄物陳思歌 는 무엇인가 물 전에 기 탁 해서 자기 십사 를 노래한것을이 품 이고, 뺨 II 兪歌는무엇인 가에 비유해서 연정을 내면에다가 의탁한 것이니, 완곡히 아름답게 노래하고자 이용하는 수법이다. 換歌는 , 語義 로 볼 때 運柄하면서 부르는 노래 라는 뜻이 나, 萬葉 에서는 사람의 죽음에 다다라 지은 노래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 다. 노래의 내용에서는 哀傷歌가 대부분이나, 그렇지 않은 것도 포 함되어 있다. 天智天皇 崩御 직전에 大后가 부론 노래는, 換歌 속 에 들어 있지마는 내용상온 賀歌이다. 내용상으로는 비록 哀傷歌나 賀歌 일지라도 죽음에 다다라 지은 노태니까 換歌에 넣은 것이다. 이 부류가 뒤의 勅撰集時代에 이르면 哀 傷歌 란 명목으로 변한다. 雜歌 는 相 聞歌 · 挑歌 이의의 노래, 죽 宮廷儀禮, 酒宜 동의 공적 인 場 에서의 노래로부터 개인의 일상생활의 場 에서의 노래에 이르 기까지를 포함하고 있는데, 『古今 集 』 같으면 四季 歌 , 賀歌, 離別歌, 腦旅歌 , 雜歌 등으로 분류되는 노래를 모두 이 속에 포함하고 있다. 이상의 相聞 • 換歌 • 雜歌란 명목이 중국의 『文選』에서 따온 것이 라고 위에서 언급하였지마는, 『文選』에서는 詩 文의 분류에 쓰인 말 은 아니고, 『萬葉集』의 編者가 노래의 분류를 함에 있어서, 그 생 태를 나타내는 말이라 여겨 채용한 것이다. 이상의 분류 의에 소항목으로서 問答 • 悲別 • 羅旅發 思동이 있 고, 지방성을 표시하려는 名目에 東歌란 것이 있다. 그리고 雜歌 • 相聞 • 晩歌 둥의 분류가 全卷에 걸쳐 순서정연하게 나누어져 있는 것은 아니고, 더러는 전혀 분류를 하지 않은 卷도 있다(卷十五· 十七·二十) . (2) 『萬葉集』의 생 태 民諸와 創作敗와의 사이 『萬 葉集 』 二十卷은 순수문예적 인 創作歌가 開花하여 많온 個性的
歌人이 다양한 작품을 이룩한 7 세기 中半부터 8 세기 中半까지 약 백 년간의 歌 渠이거니와, 그러한 선전적인 創作歌의 배후에는, 歌 人으 로서는 이렇다할 업적이 없는 多數의 官人둘의 創作歌의 세계가 펄 쳐 있고, 또농민들의 민요라 여겨지는 노래도 있다. 『萬 葉集 』의 특 칭으로서 작자의 면에서는 위로 천황에서 아태로는 농민까지, 노래 의면에서는순수문예적 성격이 뚜렷한創作 歌 와限界文 藝 的성격이 명백한 民降와를 양극으로 해서 이 중간에는 藝諦 , 民諦적인 創作 歌, 創作 歌 B9 인 民臨가 개재하여, 創作歌와 民 諾 는 복잡하게 뒤얽 혀 있다. 이같은 현상은 〈노래 〉 란 것이 인간생활 속에서 어떠한 역 할을 하는가를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귀중한 『 萬葉菓 』의 독 칭이며 가치있는 대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 萬葉集 』을 감상하는 데는, 자기의 가치기준 또는 기호에 따라, 菓 葉 秀 歌 만을 가려서(또논 뽑아서) 즐긴다돈가 創 作 歌 나 民諾룰 모두 순수문예처럼 여겨서 읽거나 즐길 수 있다. 그러한 감상 끝에 萬葉 의 노래가 전부순수문예인 양 착각을 일으켜서는 안됨은 물론이다. 전정하게 『 萬葉祭 』에 대한 관념을 세우기 위해서는, 대체로 萬葉 歌 의 세계 전체논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 걷까, 소위 萬葉秀歌 란 것은 전체 속에 어떠한 우1 치를 차지하고 있는가, 그것이 이룩된 역사적 • 문학적인 팔연성은 무엇인가 동등을 모색하기 위해 입체적으로 읽 고 파악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 萬葉集 』 노태의 본연의 자세와 생 태, 노래의 성격이 중요한 시접으로 상아야 할 것이다. 萬葉歌 의 생태는, 일면에서는 純文 藝 的인 동시에, 他面에 있어서 는 限界文 藝 的(民 諾 )이라 할 수 있다 . 古 歌 의 踊諒 , 歌 詞의 異 傳 , 作者不明의 노래, 類 歌 , 說話 노래에의 지향 둥의 현상온, 그같은 노태가 민요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萬葉創 作 歌 의 민요적인 것 을 나타내는 것 이며, 代作 歌 논 限界文 藝 로서의 민요 • 궁정 가요에서 순수문예로서의 創 作 歌 에 轉進을 괴하는 專門 歌 人의 작업으로서 위 치할 수 있는 것이다. 古歌의 題詞와 歌詞의 異傳 萬葉의 官人둘은 案席이나 기타의 장소에서 자기의 십정율 노래
로 나타내는 관습이 있었다• 그것은 踊諒이라는 형태로서 발표되거 니와, 그때의 노래는 자기의 新作만이 아니라 古歌(오래된 創作歌) 룰 踊諒하는 수도 있었다. 例를들면, 卷十五에 天平 8 년 (736) 遣新 羅使人의 노래가 실려 있거니와, 그 가운데는 「所t乙當 bT 踊諒산조 古歌」 10 首(이 중의 6 首논 人麻呂의 노래)가 포함되어 있고, 그 밖에 天平 10 년 (738) 8 월 20 일 橘諸t소兄 之 宅의 案歌(卷六, 1024~1027), 天平 20 년 (748) 3 월 23 일, 橘諸兄의 십부름으로 越中!)에 내려간 田邊福 麻呂를 맞이하는 冥歌(卷十八, 4032~4035) 등도 마찬가지다. 이 가 운데서 상황을 상세하게 알 수 있는 것은 天平 10 년 橘諸兄宅의 冥 歌인데, 4 首 중의 第 1 首는 長門守巨曾倍朝臣對島의 新作이며 주인 인 諸兄을 祝 壽 한 노래. 第 2 首는 諸兄이 이에 대하여 和答한 新 作. 그 다음의 노래 2 首는 다음과 같다. l026 i L 총(J)죠홉쇼 2) ~i今日 心力、却假在無入上里t흐나去 力여凌茂沈 r( 卷六) 1027 橘fJ)本t댜道履t 3) 八荷t乙心fJ)宅꾼思소人t모知 B 之f(卷六) t& ~ ~t,ttc 1026 大宮人온 오늘도 겨를이 없어서, 마을에 물러가들 못하시겠지. 1027 (굴나무 街路樹 엇갈린 길과도 같이) 생각은 뒤숭뒤숭 어지러워지도 다. 그리운 님에게 이 내 心思 알리지 못한 채. 앞노래 의 左注에 〈右一首, 右大臣傳^--C云|i <, 故豊島采女(1)歌 t£ b &L 、 ^b 〉라 있으니, 이 노래는 采女의 作이다. 또 뒷 노래의 左注에 는 〈右一首, 右大辨高橋安麻呂卿語 b --C云|i <, 故豊島采女 0 作t£ b &L 、 ^b. 但 L 或本t乙云ti〈, 三方沙彌, 妻苑臣宅戀v---c作;h. 乙歌t£ b &L 、 ^b. 然 B| i.則t豊島采女, 時t c 當 b --c, 此(1)歌宅,口 哈to ^조力、〉라 있다. 이로써 보면 뒷노태의 작자에 관해서는 두가지 說 이 있는 셈이다. 그런데 다음 노래를 보면, 1) ;:r. ')I 7' -'7 . 北陸道의 一國. 지 금의 寫山縣 2) 대궐에서 근무하는 官人. 3) 橘(1)本'드道履t――八荷에 걸리는 序詞. 橘는 街路街로서 십어져 있음. 八需논 러 갈래로 나뉘어 있는 길. 갈피를 잡지 못합에 비유한 것.
125 f그橘t I g 0£ b談·f 履... 心路入f2 OI< \1 f, 征:t iI; ' 디衍순군思소妹`t't 드 逢iift 三方沙彌 4)
4) 傳未詳 持統紀에, 山田史御形이 일찌기 沙 r, 이었으므로 이 인물이라 추정. 이에 대하여 三方온 名이 아니고 氏이므로 山田史御形율 否定(山田孝雄說).
이 三方의 노래로 보아 豊島采女作이 아니고 三方沙彌의 作歌를 采 女가 踊諒한 것이라고 추정한 編者의 판단이 옳다고 보아야 한다. 三方의 노태는 戀歌 이나 그것을 이 案席에서 노래한 것은, 原歌의 〈橘〉을 橘諸兄에다 견주었고, 〈八荷 V 드心 0 꾼思소〉를 諸兄에 대한 思 慕의 표현으로 한 것이다. 즉 그 場 에 적합한 古歌가 있으면, 그것 으로써 자기 심정을 표현함을 인정한 것이니, 古歌이냐 新作歌이냐 논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비록 작자명이 쓰여져 있 더라도 반드시 그 작자의 新作이라야만 하는 법은 없고, 古歌일지 도歌t 乙모似-르-c는' 경未t우.!가.詳 e있 어力서寸신,〉 f編〉者(卷인十 九家,持 4는27 4그) 라러든한가 ,것 에〈 古대今하未여 t .!.〈詳 B古 -/J,t.c i?f〉(卷二十, 4298, 4301) 라고 쓴 注記롤 한 것 이 다. 〈當時當所〉 라고 하는 것은 그 장소의 사정어] 적합한 노래를 踊諒한다는 말이 니, 그것은 古 歌 돈 新作이돈 상관없이 오늘날과같은〈作者〉란의식 이나 〈創筋〉이란 관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豊島采女가 부론 上記 노래는 古哥: 그대로가 아니고 다소 변경해서 불렀다. 古歌의 〈橘 0 藍쇼t道〉를 그대로 부르게 되면 諸兄에 대하여 실례가 되니 까, 〈橘 0 本i다路소入〉로 고찬 것 이 며 , 결구의 〈妹t乙會|i于t〉를 〈人 t다知 8 之干〉로 바꾼 것이다 .5)
5) 土橋寬 『萬葉開眼』 上. p.2 9 ~30.
〈當時當所〉에 古歌를 『龍永한 다는 것은 민요적 인 노래 의 관념 에 바탕한 것이다. 민요의 세계에서는, 작자는 문제시하지 않으며, 옛 날 노래를 매년 행사때나 노동할 때 부르며, 딴 지방의 노태일지라 도 자기들 노래처럼 부론다. 그리고 原歌의 歌詞도 자기들 노래에 맞도록 고쳐서 부른다. 이러한 것은 〈노태〉란 개인의 소유물이 아 니고 공동체의 공유물이라는 관념에서다. 민요의 전승은 옛부터의 전동을 한갓 固有해 나가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들 것이라 여겨 소유하고 기능시킨다. 萬葉의 案席에 모인 귀족들은 공동체의 성원 과는 달라, 독립된 인격을 가진 인간의 집합이거니와, 古歌踊諒의
관습이 깃든 것은 노래의 場과 기능, 따라서 작자의 생각이 민요적 인 까닭이며 歌詞의 異傳이나 類歌는 기억의 잘못이나 推敵에 의한 것 의에, 위의 예가 보여 주듯이, 古歌룰 자기 노래로서 이용하기 위하여 어구를 改裝한 것도 많다. 作者의 異傳 『萬葉集』에는 작자에 관한 異傳이 적지 않거니와, 異傳이 생긴 원인에는 세가지가 있다. 첫째는 自作의 노래를 부르는 대산에 古歌 를 踊諒해 서 〈心緖률 펴〉는 경우인데, 이매 踊諒한 者를 作者로 오 인하여 전승되는 수가 있다. 둘째는 노래를 代作하는 경우이니, 이 경우에는 남이 지울 노태를 전문적 歌人이 대신 짓는 경우와 남에 대한 동정 또는 공감에서 歌 人이 그 사람의 십정을 대변하는 경우 의 두 가지가 있다. 세째는 작자 있는 노태가 歌詞만이 傳踊되어 간 결과, 새로이 노래의 작자를 구해서 說話歌가 지어지는 경우인 데, 이것은 歌降傳踊時代에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古歌의 踊諒에 의하여 踊諒者를 작자로 오인한 예로서 앞에 언급 한 「橘(J)本t디路踏 A 」 (1 027) 의 작자를, 幾島采女로 보는 說과 三方沙 彌로 보는 說이 있으나, 이 밖에 도 허 다하다. 『萬葉集』의 編者인 大 伴家持논 作歌와 古歌踊諒울 구벌하려고 해서 후자의 경우에는 그 사실을 注記하는 방침을세우고 있지마는, 더러는 作歌와 古歌踊諒울 함께 並記하거나(가령 卷十八, 4035), 題詞에서 「作歌」로 되어 있는 歌群 속에 踊諒한 古歌가 섞여 있는 수도 있다(가령 卷十八, 4041). 家持가 칙접 관계한 案歌의 기록조차 이러하니, 하물며 오랜 시대의 기록에는 踊諒한 古歌를 作歌라 기록한 예도 있을 것이다. 가령 卷 一의 〈和銅五年壬子夏四月, 長田王宅伊勢 0 齋宮t댜遣 LL 時, 山邊(J) 御井t c --c0作 h0 石0 歌〉 (81~83) 에는, 編者도 의문을 품어 左注에 〈右二 首, 今案于조t더御井t :T 作 b L 所t乙似f. 若 L 疑쇼 B 산i, 時t c 當 b T 踊산石古歌敷〉라고 注記하였다. 일반적으로元明天皇의 作歌라생 각하고 있는 「飛鳥 0明 日香 0 里宅」(卷一, 78) 의 노래도 題詞에는 元 明天皇이라는 說과 持統天皇이라는 說이 쓰여져 있다. 이것은 藤原 遷都 때 持統天皇의 作歌를 平城遷都 때 元明天皇이 踊諒한 것을
오인한 결과 혼동이 생긴 것이다. 作者不明의 노래와 類歌 『萬葉集』에는 작자불명의 노태만을 모은 卷七·十.十一.十二. 十三 • 十四가 있고 이 밖의 卷에도 작자불명의 노래는 적지 않다. 이것은혼히 민요또는민요적인노래라고하지마는, 어떠한이유로 그렇게 말하는지는 명백하지 않다. 작자불명이란 접, 類歌가 많다 는 접을 그 주된 이유로 들고 있는데, 확실히 민요는 작자가 불명 하며 類歌가 많지 마는, 그렇 다고 해 서 작자불명 의 노래 나 類歌가 많은 것은 민요만이 아니다. 卷七, 十, 十一, 十二의 노래는 노태 의 내 용으로 보아 奈良朝貴族들의 創作歌 같온 느낌 이 들어 다만 작 자불명일 따름이며, 類歌가 많은 것도 평범한 歌人의 創作歌가 많 다는 것분이다. 작자불명의 노래가 촌재한다는 것은 작자가 있어도 이를 享受하 여 傳踊하는 사람축에서 작자를 문제시하지 않고 歌詞만을 문제삼 는다는 것이니, 이는 노래를 작자 개인 것이라 여기지 않고 자기들 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라 생각해서 소유하며 이용한 데서 일어 난 것이다. 만요가 정히 그것이거니와, 萬葉時代의 귀족들도 자기 의 노태(案歌나 相聞歌)로서 이용될 수 있다면 작자를 문제삼음 없이 歌詞만을 노트나 歌集 안에 기록하였으며, 따라서 작자에 관해서 십대한 관십을 가지고 있던 萬葉의 編者도 작자불명 인 그대로 歌詞 만을 기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萬葉의 作者不名歌가 많은 것은, 노래 그 자체는 사회적 기능울 가전 민요가 아니고, 자기 표현을 목적으로 한 서정시이지마는, 노래에 대한 인식이 민요적이며, 따 라서 類歌가 많은 것이다. 說話歌에의 志向 작자를 문제시하지 않고 歌詞만을 자기들의 필요를충족시켜 주는 것이라 하여 전승하고 기록하는 것은 古代歌諾時代로부터 萬葉時代 에 이르는 동안, 하나의 득칭이거니와, 이것은 歌詞의 자유로운 해 석을 허용하고 새로운 작자와 설화의 선정을 가능커] 한다. 記紀에
太있어子서 등 의國<1 見:4경 나우 ,歌9 t3 垣자b :t 기 와 표같현은으 기로능서적 인그들 민의요 가설 화倭 建속命에, 삽雄입略되天는皇, 수 가輕 많고, 또 「天語歌」나 「久米歌」 둥의 宮廷儀禮歌도, 三重의 采女냐 神武天皇의 作歌로 改裝하여 說話化되 어 있다. 이 러 한 것은 『萬葉集』 에서도 마찬가지다. 가령 오래된 예로서는 『古事記』에 보이는 輕大 郞女(衣通王)의 다음 노래 가 『萬葉集』에 서 또한 改裝되 어 서 나타난다. 君力;行총 日長
6) 沈詞. 7) 感暎助詞. 8) 允恭天皇의 王子인 木梨輕太子가 同腹妹인 輕大郞女와 非戀에 마진 哀話가 실 려 있고, 이 노래는 輕大郞女가 그리 움을 참지 못해 王太子가 流配 당한 伊豫國을 찾아와서 부론 노태. 9) 磐姬皇后. 葛城襲津彦의 딸. 仁德二年立后 天皇이 八田皇女문 사랑합을 怒하여 三U十 i ,.年,o» ,九.,月“* 근 e山 城의 尙城을 머 나 行幸이 있어 도 만나지 않고, 三十五年 六月 同所 에 沒하였다 합.
85 君力:行총 日 長
던 작자불명 노래의 緣起 및 설화에의 지향을 보이는 예로는 『萬葉 集』 卷十六의 「由緣有石歌」이다. 그 가운데는 竹取翁의 이야기처럼 bi iL 所傳이나 노래도 없지 않으나, 대부분은 기존의 傳踊歌를 바탕으로 해서 설화를 만든 것이다. 一例를 둘면, 3806 事 10) l, i1!) 타f,*J1、'?泊 七湘 山 II) (J`)t石 城 12) t乙 心 [연 타i·共~:::.t.;:思 0 七力:背
10) :, 卜는 사강 무슨 일이 일어나거든. 11) J는 接頭詞 大和의 泊湖山(奈良縣磯城郡初源町). 12) 돌로 만든 稽.
일이 난다면 오하쓰세뫼(小泊 淵 山) 무덤엔둘 숨겠나이다. 영려마소 서 님이여• 이 노래의 左注에 의하면, 어떤 여자가 부모 몰래 한 남자(壯子) 와 通하였는데, 남자는 어버이의 질책이 두려워 주처하는 빛을 보 이자 여자가 이 노래를 보내어 격려했다는 緣起가 기술되어 있다. 이 노래는 『常陸風土記』에도 「俗(l)歌」라고 해서 기록되어 있으니까
13) 力夕 V· 文字가 없었던 시대에, 史實울 기여해서 입으로 전하는 것을 專業으 로하던部族
십한 나머지 죽었을 때, 野中 )II 原史滿가 皇子의 술품을 대신 부론 O f‘ b·O I, 이 ! ',').1,, 0 -1: !<> 2 首의 晩歌가 있거니와, 이것은 史꿨’이 아니고 川原史氏가 虛構한 설화로 여겨지며, 만일 그렇다면 이것도 일종의 說話歌라 할 수 있 다. 萬葉時代의 代作歌논, 舒明天皇이 內野에 遊臘하였을 때, 中皇命 이 間人連老로 하여 금 바치 게 한 노래 (卷一, 3~4) 가 가장 오랜 것 아고, 이를 제의하면 額田王, 다음은 柚本人麻呂가 대표적인 代作 歌人이며, 거기에서 宮廷歌人의 실태를 볼 수 있다. 額田王 초기의 作歌에, 齊明天皇 또는 天智天皇의 作이타 일컫는 異傳이 많은 것은, 그런 天皇의 노래를 代作한 때문에 생긴 것이타 여겨지며, 天皇은 형식상의 작자요 額田王온 실질상의 작자로 보는 것 이다. 人麻呂의 경우는 題詞에 〈石田王卒 b L 時, 山前王 0 哀傷入 L 作九石歌〉(卷三, 423) 이라 쓴 노래의 左*注2b에` 〈或t亡云|i 〈〉라3 · f하;l, 면 서 人麻呂 作이란 說울 들고 있다. 또 左注에 人麻呂의 이름은 맡 하지 않았으되 실질상의 작자는 人麻呂이리라 여겨지는 것도 있다. 「藤原宮 0 役民(J)作九石歌」(卷一, 50), 「(日並)皇子(J)尊 0 宮(J)舍人等, 'Dll.lt4l /L J傷 AT 作h 石歌二十三首」(卷二, 171~193)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 한가지 주목할 것은, 「人麻呂作歌」라 題詞에 있는 것 가 운데 人麻呂가 상대의 십정을 헤아려 일인칭으로 發想한 代作歌가 있다는 사실이다. 河島皇子가 葬했을 때, 皇子의 妃인 泊源部皇女 와 忍坂部皇子(皇女의 兄)에 게 바찬 晩歌(卷二, 194 • 195) 가 그것 이 다. 이 長歌는 忍坂部皇子와 泊漏部皇女가 서로 문답하는 문체 인데 전반은 忍坂部皇子가 皇女에게 묻는 言辭요, 후반은 泊源部皇女가 이에 답하는 형식이며, 反歌는 皇女의 입장에선 일인칭 發想의 노 태다. 長歌의 중접은 물론 泊源部皇女의 托情部에 있거니와, 忍坂 部皇子의 서정율 도입부로 한 문답형식의 代作歌란 접이 흥미를 ::rz. 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문답형석의 代作歌는 憶良의 「貧窮問答歌」에 서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山上憶良에게는 특히 代作歌가 많다. 분만 아니라 額田王이나 人 麻呂는 天皇 또는 皇子 皇女를 위하여 代作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대개는 이름도 없는 서민을 위하여 代作한 때문에, 작자며 노태의
내용에 대해서 학자의 견해가 엇갈리는 것이 많다. 「日本晩歌」 ( 卷五, 794~799) 는 처 를 여 원 旅人의 슬픔을 대 산 읊은 代作晩歌이 며 (旅人 의 作이라 하는 說과 憶良가 자기 처의 죽음을노래했다는 說 등이 있다.). 「七夕 0 歌」(卷 A, 1520~1529) 는, 李牛星이 織女를, 또는 織女가 彦 星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일인칭으로 읊은 戀 歌이며, 「筑前國 0 志 賀 0 白水郞歌十首」(卷十六, 3860~3869) 도, 실제의 작자는 左注에 있 尤 之 듯이 憶良이며, 白水郞妻子의 술품을 대변한 것이다. 「敬 o<', 뿡 0 t그 b t쵸其 0 志在述됴石歌t乙和소心歌」(卷五, 886~891) 는, 憶良가 熊 擬의 죽음을 哀傷한 換歌이거니와, 熊疑의 입장에다가 몸을 두고 일인칭으로서 발상한 代作換歌이므로, 歌詞만을 보면 熊疑의 辭世 라 볼 수도 있고, 또는 憶良의 辭世로도 볼 수 있다. 憶良의 경우는 작자에 관한 異傳이 없지도 않지마는, 노래의 내 용이 일인칭 발상의 代作歌인 때문에, 憶良가 자기를 부론 것이라 는 說이 많이 나오는 것이다. 「日本換歌」는 憶良가 자기 처의 죽음 울 슬퍼한 換歌라는 說이 있고, 「男子名|i古日在 戀 소乙歌三首」 (卷五, 904~906) 의 古日울 일반은 憶良 자신의 아둘이라 여기고 있 고, 더 우기 「貧窮問答」 (卷五, 892~893) 조차도 그 前半은 憶良 자신 울 노래한 것이라는 說이 나온 것은 그 때문이다. 代作이라는 노래 는, 一方에서는 작자의 異傳울 낳게 하며, 他方에서는 작자 자신을 노래한 것이라는 해석을 가능케 하지마는 위에 든 예는 憶良의 代 作歌로 보아야 하며, 그 밖에도 代作歌라 보여지는 것이 있다. 嘉 摩郡三部作의 第二編 「子等在思쇼歌一首#t다序」 (卷五, 802~803), 第 三編 「世間 0 住主 b 難총宅哀 L t歌一首#t다序」(同, 804~805) 는 종래 에 憶良 자신을 노래한 것이라 보아 왔으나, 실은 이것도 代作的인 것이며, 第一編의 「惑^乙情在反촌 L t조歌#t다인가 總論인 데 대 하여, 이 二編은 各論이라 여겨진다. 숨은 代作歌人 額田王이나 人麻呂와 같은 天皇 • 皇子女를 위하여 代作歌를 지은 宮廷歌人, 憶良와 같은 서민을 위하여 代作한 民衆歌人 외에, 최를 지어 流罪에 처한 貴人울 위하여 代作한 覆面의 代作歌도 있다.
麻t 紹*王'2 1t4) * ( 1)伊勢國 0 伊`` 良b ~:1: 5) (J)t b t:::.流츤 石 乙時, 人, 哀 LO밖 昆*-C作乙 歌 23 打麻t닮麻王 16,) 宅 麻댜鎖王輝海]人t중,,. -r2 :C;感n,傷~ L伊L` 良 -b炭 C(드’ 和 J)소島하(歌J) 玉漢 X IJ b 主寸 24 , ?산 A (J)17) 命在借 L 入浪t댜Q;n,:伊f:良 炭(J)島 0 玉溪 X IJ b 宅寸 L` b :: 23 麻縱王은 漁夫오니까(漁夫가 아니신데). 이라고(伊良處)성에서 고은海 草 뜯고 계시네. 24 이 세상 목숨 아까워 물결에 것으면서 이라고섭의 고은 海草 뜯어서 먹 나이다. 麻續王은 天武 4 년 (676) 4 월에 최를 지어 因幡 18) 에 유배되고, 두 `.f£ If 아둘은 値嘉島에 유배 된 記事가 『 日 本書紀』에 보인다• 윗 노래 의 題 詞에는 그 당시의 사람안騎}이 哀傷해서 지은 노래라고 막연한 설 명을 하고 있거니와, 이것은 『日本書紀』에 많이 보이는 「時人 0 歌」와 等類의 계보를 이온 것이다. 가령 山背大兄王에게 편을 들어 蘇我 嚴夷에게 멸망당한 境部臣階理勢의 아들, 毛津가 敵傍山에 들어가 i 9 七 낡 ? 자살했을 때, 〈뿐쇼}이 불렀다는 다음 노래〈舒明前紀〉와 같은 것이 그것이다.
14) 傳未詳. 15) 愛知縣溫美郡伊良浙ljl(溫美町) . 溫美半島의 先端. 16) 두드린 삼(麻). 麻續王에 걸리 는 沈詞. 17) 〈現世의 >, 命에 걸리 는 杭詞. 18) 山陰道의 一 國 지금의 鳥取係束部 因州.
敵, 傍t:10:山 木~ 立to 1,薄 '十남 E 類入力먀心 毛납 津? 0 若b<子 I::J ) 籠:` 5 산 b 남 U 우네비괴는 나무숲이 드문드문 성기지마는 (그래도) 그것을 믿고서 게 쓰(毛津)의 도령님은· 그 속에 숨으신 개지. 모두 박명한 주인공을 동정한 노태다. 앞의 麻續王에 대한 時人 의 노래는 代作歌라고논 할 수 없되, 이에 和答한 麻縱王의 노래 는 같은 작자에 의한 代作歌라 보여지며, 따라서 結句는 〈玉溪 X IJ b
前食* 寸歌〉논라 時자人칭의 경입어장로에 읽서음서이 부마론땅 하상다인.칭 죽발 상時이人며의, 노後래歌라 는할 지麻라續도王 의 立揚에 서 서 부론 일 인칭 발상의 代作歌이 니 , 2 首로서 問答歌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卷六에, 天平 11 년 (739) 3 월 石上乙麻呂가 土佐國에 流罪에 처했 을 때의 작자불명의 노래 3 首가 있다. 이것도 위의 노래와 마찬가 지로 時人의 노래의 일종이라 하겠다. 乙麻呂는 久米若賣와 통했다 는 이유로 土佐에 유배되고 若翼는 下總에 귀양보냈다. 그것은 若 賣가 藤原宇合의 처였던 때문인데, 宇合은 2 년 전인 9 년 8 월에 이 미 죽었으니, 이 流罪에는 정치적인 모략이 얽매어 있었던 것으로. 침작되며, 그래서 時人의 노래가 생간 것이다. 1019 2•t•1-) t (石`石 J나() :上J弓 ••)乙 .*上矢어 磨 布뿡留卿入( 1J9 T))* 1 尊냐l大i )君i上( Jt佐)國겨b '干弱혼 다b女U 配뽑 •0’ 훈꿍 惑x _°t 1 디?.,2依05 ) 時b뿡 l f乙l ) 馬歌慕三 E塗首 短心i歌 O님宅 1麟繩f: 取산23 t:b 변으 附 졌b남 조鹿I.. 月猪I.. 0E 山 24) 中 遠 b 來心力`t 갭뀝 25) 大君(J) 命恐入 혼 L. f뿐도 土佐(J)國t乙 出균主寸수 :.!갤엠f산( J) 君在 惡•• 납主 <心 中中 L 恐L, 26) 住吉 0 現人神 27) 船(J)月由 I乙 領총給 0 着총給tit 島(J) 十*"i ,, b0&· 나 ... f‘ ^ ' I..I1 崎곤곤f崎 E 寄 b 賜iit磯(J)崎崎荒총波 風t댜遇,, ii산于 慈?? ,無나‘〈 病T 3志3 8 산于 十 U急 《» 낡 < 遠 Ll易 ii七 本(J)國邊i乙 1022 父tty君A I 乙 七 h| i愛 子:t: &꾼 母I<1IE1刀 ^&自 iE 乙 七h ii愛子꾼 參”上'f乙 八수十 七氏 人)S(UJt ) 手t소 (向J납 寸乙 •恐• I(..J: )坂 28)V;:_ 천흥 b 七h ii꾼톰石 遠총土佐導宅 反歌一首 1023 大崎(J)神(J)'r小 lt濱: l 29)11 살狼 낡&\百‘ ‘ 船... f‘U人 & 30) 心過 〈 .&l i\,、|it£
1019 임금의 명령이 두려워서 먼 시골로 귀양가도다. 국경의 마쓰지되 (又 打 山) .:.:z.. 곳으로부터 되 돌아올 수는 없단 말인가. 갭뀜 임금 명령 두려워서 土佐나라에 가시는 님을 입에 담기조차 황송한 住吉의 現人神이 뱃머리에 앉 아 계셔 닿는 섭 山부리마다 들르는 海邊 마다 거친 바람 만나찮고 지장없이 병없이 본 땅으로 빨리 돌려주읍 시기를. 1022 이 몸은 아버님의 사랑하는 아들일세. 어머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옵네. (그럼에도 나는 시골로 귀양가는 몸아 되어) 서울로 올라가는 많은 사 람들이 공물을 바치는 두령재에 幣崩드리고 먼 土佐로 내려가도다. 反歌 1023 오오사끼의 검님해변은 비 록 좁지마는 많은 뱃사람이 O i光울 즐기노 타) 지나치지 아니하고 들 렀다 간다는데 (나는 그냥 곧장 土佐로 귀양 가도다). 題詞에 「石上乙麻呂卿, 上佐國 K 配산 8hL 時 0 歌三首井短歌」라 있 는데, 第 一首는 時人이 자기 입장에서 乙 麻 呂를 노래한 3 인칭 발상 의 노래. 작자에 관해서 諸說 이 있으나, 〈이 노래는 그 표현이 유 치하고 노골적인 접으로 보아 乙 麻 呂에 동정한 당시의 서민계급의 사람이 지은 것〉( 『廊읽정 k 』評擇) 이라는 견해가 가장 타당한 것 같다. 第 二首는 乙麻呂를 〈fi L총 훈 L 吾力;背 0 君〉라 표현한 접으로 보아 作者는 乙麻呂의 처 같기도 하나, 역시 覆面의 時人에 의한 代作일 것이다. 第三首의 長歌와 反fk 는, 乙麻呂 자신의 作같이 보이는 l 인칭 발상의 노래이나, 역시 時人에 의한 代作아다. 麻縱王의 노래 와 더불어 時人의 노래란 어떠한 형태로 지어지는가를 잘 알 수 있 는예이다. 이러한 覆面의 代作歌人이, 『日本 書 紀』의 〈時人〉과관련이 있음은 명백하여, 『日本 書紀 』의 〈時人〉의 정체는 그- 述作者 자신이라 여겨 지거니와, 『萬葉集』의 경우는 어떠하냐 하면, 第一首의 〈石(J)上 布 留 0 尊~i手弱女(J) 惑 O t乙J: b t〉라돈가 〈馬 E 心 0 繩取 b t幻낡 鹿 E 心(J) 弓矢園 A t〉 등에서 보는 〈표현아 유치하고 노골적인 접〉은 寫겠’ 性에서 오는 것이며, 구체적 사실을 애매하게 표현하는 官人貴 族의 노래와는 취향이 다르며, 혹은 질인배가 거리에 서서 부론 것
인지도 모른다. 권력으로부터 소의 당한 인간을 위한 代作이란 접 에서는 憶良와 일백 통하는 바가 있지마는, 憶良가 대상과 하나가 되어 영단적으로 부르고 있는 것과는 달리 객관적인 거리를 두고서 부르고 있는 것은 권력의 편도 피소의자 편도 아니다• 차라리 민중 속의 專門歌人的 존재를 상상케 함이 있는 것이다. 2. 萬葉歌의 성격 (1) 宮廷儀禮歌 『萬葉榮』 안에 作者名이 있는 노태는 우선 創作歌로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가운데는 반드시 순수문예적이라 할 수 없는 것도 있다. 萬葉 노래의 해석이나 평가에 있어서 근본적인 견해가 달라 지는 것은 대개의 경우 이 점에 관계되는 것이다. 長谷川如是閑이 1933 년(昭和八年) 1 월의 『改造』에 발표한 「自然詩 人& L t0 柚本人麻呂」, 이어 同年 3 월의 『短歌硏究』에 발표한 「御 用詩人柚本人麻呂」에서, 人麻呂의 「吉野行幸從篤 0 作」(卷一, 36~37, 38~39) 을 내용이 空疏한데다가 한문적 과장이 넘치는 졸렬한 기교 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雷岳御遊 0 歌」(卷三, 235) 에 대해서도 〈雷山이라는 山 이름을 연상한 감각적 유희〉일 분이라고 혹평을 하였다. 이것은 「御用詩人」이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詩라는 것은 작자 의 내적 요구에서 지어지는 것이어늘, 궁정 의례를 위해 지온 타율 적인 노래이므로, 기교만의 노래라는 이해와 평가를 한 것이다. 額 田王의 노래따위도 그것이 代作歌임을 알았다면 또한 같은 비평을 했을지 모른다. 如是閑이 그 시접에서 人麻呂 비판울 한 것은, 1931 년(昭和六年) 9 월의 소위 만주사변 이후에스컬레이트해 가는국가주 의에 의하여 『萬葉集』이 이용될 것을 견제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 논지 모르나 평론 그 자체는 純粹文藝의 입장에서 내린 비평이었다. 이에 대하여 齊藤茂吉(歌人)은, 비록 御用詩人의 作이라할지라도 〈전실되고 훌륭한 문장〉일 것 같으면 좋다고 하면서, 吉野讚歌를 寫生과 聲調의 면에서 人麻呂의 역량이 가장 찰 나타난 걸작이라고
반론하였다. 31 ) 茂吉의 비 평 은 표현에 국한해 서 精 細하게 작품을 분 석한 것인데, 〈寫 生 〉 이라돈가 부분적인 修 辭에 대한 稱 揚 울 하고 있으면서 그러한 것을 지탱하고 있는 人 麻 呂의 사상에 대한 검토는 전혀 손 을 대고 있지 않다. 茂吉도 같은 純 粹 文 藝 의 입장에 서서, 如 是閑 이 空 疏 한 기교라고 비평한 人 麻 呂의 修辭 를 全力的인 聲調 라 稱 揚 하고 있는데, 이러한 論 陣은 한갖 결말이 나지 않는 입씨름 일 분이다. 如 是閑 을 참말로 반박하려면, 그것이 人 麻 呂의 내적 생 명 의 〈寫生〉 임 을 논증하지 않으면 안된다•
31) Ii'柚本人 麻 呂』, p.44 1 .
人 麻 呂의 宮 廷 讚歌 는 고대의 宮廷 壽 歌 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그 점에서는 그는 틀 림없는 御用 詩 人이며, 그의 작품은 天皇 讚美 라 는 정치적 인 목적 을 가진 限界文 藝 이다. 그러나 문제논 그 뒤에 놓여 있다. 그의 노래는 정치적 목적에 봉사하는 限界文 藝 이면서 더우기 限界文 藝 의 룰을 벗어나서 純 粹 文 藝 를 형성하였는가 만일 그 렇 다면 그것을 가능케 한 人 麻 呂의 내적 팔연성은 무엇인가, 둥 이 문제가 된다. 宮廷 歌 人인 人麻呂가 萬葉 의 代表 歌 人인가 아닌가 의 문제는, 그의 宮廷 讚歌 나 換 歌 에 있어서 限界文 藝 的 성격과 純 粹文 藝 的 성격과의 관계를 어떻게 파악하고 어떻게 평가하는가의 문제를 제의해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2) 相聞歌의 성격 贈 答歌 를 의미하는 相聞 歌 논, 노래의 양으로나 또는 질로나 戀 人
들 사이에 贈答 하던 것이 중십이 되며, 그것은 限界文 藝 로서의 歌't 울g垣 의 형 성주한고 받것는이 다노.래 의求 婚 전• 통婚約을의 이행어사받인으 면歌서 垣,의 純민粹요文는, 藝 的당인연 히성 격誘 引과 그것에 응답하는 실용적 기능을 가지고 있거니와, 그것은 집 단적인 행사이므로, 젊은 남녀 사이에 주고받는 것이며, 소재는 전체에 공동하는 것이어야 하며, 노태의 場의 분위기를 홍겹게 하 논 재미있는 노래이어야만 한다는 것을 요구한다 . 재미있게 한다는 것은, 〈매김〉과 〈 받음〉과의 응수가 다이나믹하게 전개되는 즐거움 이니, 〈1尻-, I取: ' 〉와 〈形式的 否定〉에 의한 기능의 활약이 내용을 형성하여야 하는데, 이같은 社交性도 민요의 실용적 기능의 주요한 일 떤이다. 萬葉의 相聞歌에 있어서는, 歌垣의 성격을 가장 잘 계승한 것이 求婚 때의 노래이며, 다음은 結婚이 성립되어 안정된 상태에 있는 남녀 사이의 贈答歌가 특색을 짓고 있다. 求婚때의 노래의 예 藤原鎌足가 鏡王女를 찾아갔을 때의 贈答歌(卷二) 93 34) 玉內,.,大 ,,<臣kIL 藤2* 原답^?g覆e~*쇼 p 3在2),安 入鏡王 0H女 남~tft行liJ力IZ ~ 33 t3f) 時君,力 덕鏡 5!王 i女尤( hJ&)宅 內)大力녀臣 5' L대 借曾 乙L 歌心一 首 *R i 內大臣藤原卿, 鏡王女t다몫^贈石歌一首 드f: 94 玉
32) 藤原鎌足. 大中臣美氣祐의 長男. 天智天皇과 도모하여 蘇我氏를 滅하고 孝德天 皇율 즉위 케 하였으며 , 內臣에 임 명되 어 大化改新을 추진케 하였다. 33) 求婚합. 34) 沈詞. 35) 神율 모신 山. 여기서는 三輪山.
93 날이 밝은 뒤 가옵신다면 소문이 날 것이니, 그대의 이름은 어떻든간에 내 이름이 애석하옵네. 94 님과 함께 아니 자고는 마침내 나는 뭇 견디겠지요. 久米禪師가 石川郞女를 찾아갔을 때의 노래(卷二). (95~100). ~6 ~服:t XU 乙L信f& 淡,, 0 眞弓七力;引力뱌if貴人혼,2t0f&- -C\,、t.r:.&言iit力내〉 禪師 '97 入服 XU 石信混(/)眞弓引力겁 1LT 弦|i <조 行b 事, 宅知조 &言|it£
이러한 노래는 修辭上 尻取와 形式的 否定울 사용한 機썸恨]인 노 례이거니와, 歌垣의 노래와 다를 바가 없다. 男女 r버 의 贈答歌 天武天皇과 腦原夫人 사이의 노래(卷二). 103 七力;里 V 드大 雪 降h b 大原 36) Q).古.. b t드 L 里'다落... B 主 <| i,,後t (天皇) 104 b tJ潭] O *而0· 3*7 ) t:言 O f落t 5 L 心 L 雪 0 描 ~L,v-총 0山 0L 장
36) 奈良縣 高市郡 明 日香村 小原 鎌足의 生地. 藤原夫人(鎌足의 말)의 居所. 37) 龍蛇의 神. 38) 天武의 皇子. 返逆윤 괴하다가 發覺되어 賜死 (686). 二十四歲. 39) 傳未詳. 40) 沈詞
107 님을 만나고자 기다리고 있다 하니 山이슬에 나는야 온통 것고 말았네. 108 처를 기다리노라 님이 것으신 그 山이슬 내가 되었더라면 좋았을것을. 이 노래에 있어서의 위기는, 기다리고 있었던 石川郞女가 오지 않았다는 것뿐이나, 大津皇子는 기다리기에 지찬 불만을 〈吾立t潘 h 心山(J)平t 2 〉라 표현한 데 대하여, 石川郞女는 변명도 없이 皇子 의 불만의 표식인 〈山 0 零〉를, 皇子에 대한 사랑의 표식에다 가치 전환을 시켜 놓았다. 그 방법은 역시 尻取와 形式的 否定이지마 는,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지 않았다는 두사람 사이의 위기의 체험
울 소재로 한 까닭에, 機智는 사랑의 嬪態的 표현으로저 기능하고 있다. 이 郞女의 노래는 일견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보이면서 매우 coq u ett ish 한 것 이 다. 그러나 중대한 위기에 다다르면, 이러한 유회적인 여유란 있을 수 없고, 상대에게 호소하기보다는 자기 표현에 중접을 두게 된다. 相聞歌가獨諒的인 戀 歌가되는까닭이여기 있으며, 그러므로상대 에게 주는것을 예상하지 않는 戀 歌도지어지며, 그것을贈答하게 되 는 수도 있다. 가령 다음과 같은 노래는 완전한 순수문예 인 것 이다. t但6 馬20皇, ,女 드 41) , t高 市0皇 *子 (드 J)宮t:,在.2 寸時, U窟+ · t· 乙 E糖5 積* 皇* 子드 4 마 다 姿左 0--C, 事 寸균 t더形t입'1,-c作 b 主 L L 御歌一首 尤 8 116 0人& 言: ::& 宅繁入言드t痛 t 入已,力,0 ;世 t 乙未t..:渡 8 心朝川渡石 116 구설찾고 귀찮아 난생 처음으로 새벽내를 건너도다. (3) 抱歌의 성격 換歌에는 宮廷儀 禮歌 나 相聞歌와는 달라서 限界文 藝 的인 전통은 없다. 그것은 중국의 換歌의 영향을 받아서 짓게 된 것이어서, 처 음부터 자기 표현을 목적으로 한 순수문예로서 출발한 때문이다. 記紀說話 안에 있는 換歌로는,』만랑;”이 타계했을 때 野中i .IIl 恩 노史 U&滿 文 454 ) 의 換歌,
41) 天武의 皇 女. 母는 鎌足의 말. 42) 天武의 五皇子 . 43) 中大兄 皇 子의 妃 . 右大臣 蘇 我倉山田 麻 呂의 딸. 造 援은 父의 죽음을 슬퍼해서 傷 心한 나머지 죽었다함. ) 野中온 地名, JII原史는 舊 姓이 川原綜<人,0.&
皇太子, 造援祖蓮心&聞총-c, 槍 然 傷 恒汝t:主 D f, 哀泣在t으主쇼乙 之, b.f& L 極沈t莊ti L. 是t디野中川原史滿, 進入t歌宅 奉 Q. 歌 OT 曰ii<. 山川t드 뢴 홉급?居t 션난: < 偶t,C ^ 乙妹```宅 誰力 딱소軍 t다수t 113 산천에 원앙 두마리 의좋게 짝지어 있듯이 짝진 내 님을 누가 데리고 갔는가. 천 F 드 花|i疾남탸
何之 心力내心 愛 L 妹力: 主t과옷총出來心 〈『日 本占t紀』 • 大化五年三月條〉 1‘E ,?( T : 114 나무마다 꽃은 피어 있건만 어찌타 아쉬운 님 다시 안 나타날까. 建王이 魂했을 때 齊明天皇의 換歌, f4 남 3”*::. 雲今城 tta J c::. tQ 著小t山 U<力h :L 上 立,^tt. 드: ff 何力뱅t力屯 r L& t:. rd1’ 115 이마끼의 작은 되 위에 구름이나마 똑똑히 떠오르면 무얼 한탄하리. 이것은· 모두 작자의 술품을 표백한 순수문예적 성격의 노래이며, 萬葉 초기의 挑歌도 물론 같은 것이다. 卷十四의 東歌의 編者가 모 처 럼 〈雜歌〉 〈相聞〉 〈換歌〉 등 『萬葉 集 』의 표준적 인 분류를 하였음 에 도 불구하고, 換歌는 一首만을 수록하지 않은 데 다가, 그 一首도 卷七에 보이는 京人의 換歌를 (1412) 다소 고찬 것이니, 이 사실온 일본에서는 고유한 換歌의 전통이란 없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 이다. 人麻呂의 宮廷換歌에 限界文 藝的 성격을 인정할 수 있을지 모르나, 이것은 宮廷讚歌와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기능인 것이지 換 歌 그 자체의 기능은 아니다. 그런데 換歌의 역사가 시작된지 얼마 안되어, 換歌의 限界文藝的 전봉을 말해 주는 돗한 예가 나타난다. 天智天皇이 崩御하기 직전, 倭姬皇后가 부론 노래 가 바로 그것 이 다. 天皇聖射不豫 45) (1)時, 죠톱 :6) (1)奉조御歌一首 147 天力 2( 1)原振 b 放근납 見.h. l i'.大君(1*`).御,,壽t ii長 <乃天 i 足f: 8 Lt .: b (卷二) 147 하늘을 우러 러 보니 임 금님 御壽는 하늘 가득 充滿하도다. 이 노래는 殘宮 때의 노태도 아니고 葬送의 노태도 아니며, 천황 의 병이 위독했을 때의 노래로, 일반의 晩歌처럼 죽음의 슬픔율 표 현한 것이 아니다. 천황의 목숨이 이렇게 되어지소서 하는 영원을 말로써 표현함으로써 실현코자 한 것이다. 이 노래야말로 呪歌( 壽 歌)의 전형적 인 모습을 갖춘 노태다. 殖宮에서 불리우는 노래도 원 45) 天智紀十年 「九年, 天皇發病不予, 或本, 八月 天皇疾病」. 46) 倭姬玉 天智七年 皇后가 됨 . 天智의 異母兄인 古人大兄皇子의 말.
래는 이같은 呪歌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殖宮은 아직 死者롤 死者 라 인정하지 않고, 假死의 상태에 있는걸로 생각하여 소생시키기 위한 呪術的 儀禮률 행하며, 大后의 노태는 그와 같은 t玉c :振 t _I.. ) 47) 儀禮 의 일부로서 부르는 데 적합한 노래인 까닭이다.
47 ) 玉振 b 振1J. 玉으로 꾸민 物件으로어댜업杉), 魔몰 물리치기 위해서 年始에 室內 에 꾸며 둠.
이칼이 하여 재생의 수단을 다하여도 드디어 재생하지 않았을 때 에, 비로소 〈死者〉로서 〈葬〉하게 되며, 그 시접부터 술품의 노태가 불리우게 된다• 그런데 天智天皇 崩御時의 殖宮의 노래는, 額田王, 舍人吉年, 大后, 石川夫人 동 4 인의 作이 모두悲傷의 노태여서, 벌 써 再生儀禮로서의 殖宮의 실질은 상실되어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으 며, 그이후의 殘宮換歌는물론술품을표현한서정적안 創作歌이다. 혼히 주술과 종교는 異質이며 주술의 실패에서 종교가 탄생한다 고 말하는데, 呪歌와 換歌와의 관계도 마찬가지 로, 再生을 위 한 鎭 魂呪歌에서 殘宮換歌가 進化하는 것이 아니라, 呪歌의 무효가 확인 되었울 때 挑歌가 비롯한 것이다. 옛날 殖宮이 再生儀 禮 로서 행해 졌을 단계에서 倭姬皇后의 노태와 같은 鎭魂呪歌가 불리웠을 가능 성은 다분히 생각할 수 있고, 倭姬皇后의 노래는 그와 같은 전동을 밟은 創作鎭魂歌로 보아야 할 것이다. (4) ~歌의 성격 萬葉의 案席歌는 고대의 酒案歌諾의 형식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 다. 죽 처음에 주인(또는 촌귀한 賓客)을 壽 賀하는 客人의 祝歌와 이 에 답하는 주인의 노래가 불리우고, 이어 참석자 전원에 의한 자유 로운 雜歌가 피력된다. 그리고 최후에 주인측이 錢送歌(우리나라의 龍案歌에 해 당됨 )를, 客人축이 立歌(酒席에 서 일어 서 서 부르는 노태 )를· tt’t.: 부르고 나서 물러간다. 『萬葉集』에서는案歌 전체의 양태를 보여 주 논 예는 없고, 그 일부의 노태가 채록되어 있을 분이나, 그러한 것 을 종합해 보면 위와 같은 案歌 전체의 양태가 떠오르는 것이다. 고대의 酒案歌諾의 경우는 어떠한 酒案에도 통용되는 일반적인 歌詞였었는데, 萬葉의 案歌논 한 모임에서 부르는 한번분인 創作歌
가 대부분이다. 사교적 성격을 지닌 이 創作冥歌의 특칭으로서 〈 郞 境〉性이 중요시 되 며 이 때 酒宜의 場에 펼쳐 진 景物을 對象으로 해 서 읊는 것이 유행하였다. 萬葉의 案歌 중에서 몇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橘諸兄宅에서의 冥歌(卷十八, 4056~4060) 太上皇 48) (I)難波(I)宮t:::.御在 LL 時(I)歌七首, 左大臣橘宿稱 49) (I)歌一首 a t十止 5*:& f&1 : Ii 力 B2L2 4056 堀江t:::.,또玉敷力홍 L 宅大君宅御船潛力;t & 力寸 a f知 b 난tf *I2 倉* 御製 SO) (I)歌一首 4057 玉敷力려于君力재료I, 、'(I, 、소堀江t;::_|i玉敷총滿ff繼풍f通iit 御製 51) (I)歌一首 4058 橘(I) &在(I) 52) 橘彌 53)? 代t乙心吾ii忘 hE 도 (I)橘宅 T 河內女王 54) (I)歌一首 b· 노 t *i2e * 4059 橘(I)下照石庭t댜殿建ff酒 55) 入정총1,정려가?力;大君力며t Lt T &,, 근•· 栗田女王 56) (I)歌一首 4060 月待七f家t드ti行力반 rb -b;ia迎굿浚)力、 8 橘影t드見之?? 흔 이상은 橘(K)을 읊어서 諸兄을 기리는 뜻을 풍자한 것이다. 主人에 게 人事률 울림 (卷十八, 4086~4088) 同 E 月九日 57), 諸 ~58), 少目 59) 秦Itf ,伊,``美 .; 吉t 石,.,竹석러才 6 0)(/) 館'드?會& D t飮案-r. 時 48) 元正天皇 (715~723). 天皇온 이 노태를 傳踊한 때부터 한달이 옷 된 四月 二十一 日 崩御 49) 橘諸兄 大伴家持와는 관계가 깊었다. 50) 元正上皇. 51) 元正天皇 52) 가지가 휘어질 만한. 53) 더욱 오렌 세월 54) i\'.li市皇子의 딸. 55) 술에 빠쳐서. 56) 父祖논 不明. 菜 중에 이 노태 1 首분입 . 57) 天平感몄 元年 (749). 58) 越中國司의 관리 둘 59) 國府의 大 目 다음에 가는 官位. 60) 官人의 한 사람.
tr., 主人 6 1), 百合 0 花裂三枚宅造I), 豆器 62) tr_산社자전총f, 與客 K 棒 .> 9 11 f고 ·5b ub 4 t 0· 근 답贈Q. 各各此(l)菜在賊 LT 作石三首
61) 秦伊美吉石竹을 이 름. 62) 음식 물을 담는 나무그릇.
4086 iv~~火(l)光t乙見中石七力냉효中百 合, 0 花 0 笑主|i L 총力내》 右一首ti守大伴宿彌家持(l)t£ b 4087 燈&`火Lrl ' 0 光t乙見中石 촌百中 合, 花Kf 後心 逢|it&思 0 군沈 T 총 4088 혼百合花後心逢tit&思^드군今 0 主 혼力따) ' 石ti L 入寸;/1, 中, 주인이 손님에게 백합꽃으로 장식한 가발울 주니까, 손들은 그 백합을 序詞로 하여 인사를 이처럼 노태로써 바찬 것이다. 만일 이 러할 때 눈이 오면 그 눈에 寄託해서 인사를 하는 것이다(卷十七, 3960). 大伴家持는 이러한 경우, 반드시 〈此 0 殺在賊 L 乙作조〉(卷十 八, 4085 左注), 〈情宅二 00 桐 E( 雪과 漁船)t亡寄난乙耶防유所心在裁寸〉(卷 十七, 3961 左注), 〈此(撫子꽃 )V 드屬남 T 作h 조歌〉(卷十九, 4231 題詞) 등의 설명을 붙여서 그것이 郞境的인 修辭임을 독자에게 알리도록 배려하고 있다. 『萬葉菓』의 案歌논 주연이 벌어질 처음과 마지막에 彼露하는 儀 式歌(A事의 노래)라도, 個人化하는 동시에 그 場에 알맞는 作歌를 하므로, 가사만을 보아서는 雜歌와 구일짓기가 곤란하다. 卷十九에 논 天平勝寶 3 년 (751) 正月 2 일, 越中守인 大伴家持의 館에 集案했 을 때, 주인의 祝歌 1 首 (4229) 다음에, 正月 3 일 越中介인 肉뿡률 寸t 繩t,1 1麻 i 呂<> 의 館에서 案樂했을 때의 노래 5 首 (4230~4234) 가 기록되어 있거니와, 최후의 2 首논 다음과 같다. 是t다諸人‘石酒 C페&t ;t:H _f LlI .i ..-c' 夜更.... 납鷄 鳴,, <. 此디 ht 댜•접 • b t~主-·人 內< ,; 藏,, 伊`. 美* 吉令 繩fd i 麻2 呂스 (1)作石歌一首 4233 打t羽振乙鷄|i鳴 <& 心力、〈 'i·力、引降切敷〈雪t;:_君 L 、主촌沈수t 11 .... &, 4233 홰치며 닭은 울어도 이같이 쌓인 눈속을 그대 설마 돌아갈손가. 守大伴宿彌家持C7• )~t:和 소乙歌一首
4234 鳴 섭팹ii彌 L 총 鳴남 E 降 石 雪0)千重t乙積沈 드 군七 h 立七力며:七 ’`수 4234 홰를 치는 닭은 자꾸만 새벽을 알려도오는 눈 千겹 쌓이므로 차마 나 는 떠나지 못합네. 주인인 繩麻呂의 노래는 〈닭이 홰를 치며 울고 있는데(새벽이 가 깝다는 뜻), 이처럼 눈이 쌓여 있으니까 어찌 돌아가시겠읍니까〉하 고 만류하는 것아며, 이에 대해서 客人인 家持는 〈닭이 자꾸만 울 고 있읍니다만, 눈이 천검이나 쌓여 있으므로, 떠나지 못하고 있읍 니다 〉 라 답한 것이다. 이 唱和는 일시적인 座興인데, 이 때의 상황 은 날이 새도록 案席이 베풀어졌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酒案 마지 막에 주인이 만류하는 노래를 부르면, 객인은 立歌룰 부른 다음 席 을 떠나는 것이 酒案의 관습이니, 기능적으로는 送歌인 것이다. 繩 麻呂의 노래는 送歌, 家持의 것은 그에 답한 立歌이니, 客人들은 이 노래를 신호로席울일어난다. 즉위의 2 首논 창작된 送歌와 立歌이 며, 則境的景物인 눈을 만류하는 구실로 한데에 이 노래의 묘미가 있거니와, 그 대신 어느 酒案에나 사용할 수는 없다• 繩麻呂나 家 持도 이 酒案에 국한한 送歌 • 立歌이니, 정확히 말하자면 限界文藝 로서의 送歌 • 立歌가 아니라 限界文藝的 성격을 가전 創作歌라 하 겠다. 언제 어디서나 쓸 수 있는 참된 실용적인 立歌는, 소재 및 내용 이 일반적인 것이어야 한다. 가령, 水\,主훈·훈立t타>tfs: tr& 鷲〈* 商꾼L d 혼0·' )鴨5 鳥t 이와 같은 노래라면 보편적인 立歌의 조건을 갖추었지마는 그 대 신 재미있는 노래는 아니다. 이것은 『綾小路俊量卿記』에 보이는 立 歌며, 藤原定家의 『明月記』에도 이 노태로 부르고서 退出한 記事가 보인다. 山上憶良臣, 冥宅龍 5 歌一首 337 憶良 8 ti今|i龍' t5:. t 子.泣 <8 t군宅負소母出吾,, 宅待 ?8 t군
337 나 같은 건 그만 물러가자꾸나, 지금쯤 아이놈은 울고 있겠고 .::z. 애 업 은 어미도 나를 기다리겠지. 이 노태도 家持와 같이 창작한 立歌이다. 이 노래는 종래에 酒案 도중에 자석을 생각하여 먼처 실례합니다 하고 退出했을 때의 노래 로 解하고 있으나, 大宰帥인 大伴旅人을 비롯하여 太宰大武이며 少 戴가 아직 자리에 그냥 있는데 하급인 筑前守 憶良가 酒案 도중에 退席하는 무례를 허용할 리는 만무하며, 더우기나 자석이 보챌 터 이니 하는 따위의 구실온 더없이 상관을 깔본 연행이라 아니할 수 없다. 〈今t처麗 8 t〉논 立歌의 郞境的 主題이며, 그 밖의 이유는 家 持 立歌의 〈雪〉과 마찬가지로 현실적인 의미를 가지지 않는 일종의 〈붙임句〉인 것이다. 그러므로 70 세에 가까운 憶良이기에 〈子泣〈 5 t> 〈군(J)母心吾宅待 ?8 t군〉가 격에 맞는 것이다. 3. 修辭法上의 특색 (1) tt詞 萬葉의 노래에는 各樣의 수사법이 구사되어 있다. 각 樣態의 修 辭상의 용법을 이해하지 않고는 정확한 감상을 할 수 없다. 여러 수사법 중에 서 도 특이 한 것 이 〈마꾸라고도바〉(沈詞 • 沈 言 葉)이 다. 이 沈詞는 이 미 記紀歌諾에 간혹 보이 거 니 와, 『萬葉集』에 는 약 3 백 종 이 등장하며, 흡사 비단의 무늬처럼 노래에 아롱져 生彩를 발휘하 고 있어, 萬葉 노래의 커다란 특칭이 되고 있다. 沈詞의 구실온 독정의 어구 위에 위치해서 그 어구를 수식하 며, 또는 句調를 고르는 것이다. 보통 五音이 主가 되지마는 간혹 六 • 四 • 三音의 語句도 있다. 특정어구를 수식할 경우 沈詞가 지닌 語義를 몇 겁이고 연역시켜 쓰는 것도 많다. 가령 예를 들면 草杭(< 손:t <€ ,) 415 家仁尤 타f妹力;手主 力屯 r 草O沈O旅At 다:臥수 산石 乙 0 t旅U 人&志 ti h( 卷三)
415 집 에 있었더라면 님의 손이 베개일 것을. 나그네길 (풀베개)엎드려 누· 워 있는 아아, 길손이여. 沈詞 〈草株〉 란 말은 旅鹿할 때 풀을 묶어서 野宿하였으므로 이 론 말인데, 노래 가운데 〈旅〉(旅行)란 말이 노래에 볼리울 경우, 이 〈旅〉 의 앞에다 〈草沈〉을 冠하는 수법이다 . 노래를 풀이할 때는 〈草 沈 〉 이란 株詞논 제의하여도 뜻이 통하며, 실상 일반적으로 노래를 해석할 때는 무시해 버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沈詞의 구실의 대부분이 沈詞 다음에 오는 특정어구의 의미와 상관되는 말이 쓰여 지지마는, 더러는 뜻과 상관없이 音울 유도하기 위한 경우도 있고 또는 草沈의 경우, 다음에 이을 〈旅〉 분만 아니라 때로는 〈旅〉( t그간) 와 同音 또는 類音 의 지명, 가령 〈 t-::~.〉에서도 冠하는 것이다. 독정어구의 ® 意味, ® 音을 위한 沈詞의 구실이 대부분을 차지 하고 있지마는 예의의 경우도 있다. 죽 특정어구의 수식 의에, 沈 詞 다음 구절 전체를 꾸미는 예로 3186 f0i l 0.) 夜0 (J0 )tt:-, . =ct:,.· 총소 心스 知스 5소 心스 山越之f往主寸君宅'i·何’時` &? 力섞待t격打 (卷十二) 3186 山 속이 어떠한지도 모르고 가시는 님을 언제까지 기다리오리까. 〈墓 b 夜(l)〉가 沈詞, 그러 나 수식 할 특정 어 구는 없다. 〈 藝 9 夜〉 (구름낀 밥)은· 사방의 모습이 잘 안보이므로, 다음 句 〈t.:&총t知 8 요〉(모습 또는 情狀울 찰 모르는)의 구철 전체를 수식하고 있다. 이 같은 용례는 십히 드문 예아다. 이 沈詞는 원래 비유의 사용에서 전화한 것이다. 〈요|ft으主(l)黑 총御衣…〉(『古 事記 』上卷)의 예를 보면 〈心|ft으主〉 63) (법부채의 열매)는 沈詞로서 〈夜〉를 수식하면서, 夜와 관련 있는 〈暗 • 月 • 夢 • 發 • 今 背〉 등에도 쓰이는데, 上記의 용례에서 〈와 같은〉(如왕)을 삽입시켜 보면 찰 알 수 있으니, 〈요tft으主+「如왕」+黑총衣 0 ……〉처럼 비 유의 어구가 문중에서 생략되면서, 上句는 下句를 수식하지마는 그 63) 빛이 겁다.
의미는 약화 또는 무시해 버리는 수법으로 발전하여, 이에 독특한 하나의 수사법이 형성된 것이다. 이 沈詞는 노래의 리듬울 고르게 하는 데 유익한 까닭에 序詞 • 緣語 둥의 수법이 없어진 오늘날에도 現代短歌에서는 사용되고 있으니, 이는 언어의 음악성과 고대인의 유머가 합쳐서 이룩된 많은 표현어적 수사법 중에서도 특히 일본 고대가요에 보이는 득이한 기법인 것이다. 『萬葉菜』에서 短歌에는 一語, 長歌에는 數語가 등장하여 근 300 종의 沈詞가 종횡무전으로 사용되고 있다. 『萬葉集』에 나타나는 杭詞 0 順序논 『萬葉祭』 卷一에 서 卷二十까지 에 나타난 順이 다• 0 ( J 속은 沈詞가 修飾하는 特定語句. 0 ( ) 안의 數字논 萬葉歌의 番號 군 5 入?(空見?)〔大和(~i c)JO •B94•3236) 尤눈? L 主 (秋津島 • 靖岭島)(훈主 &](2 ·3250•3333·4254) 수寸入 LL( 八隅知之 • 安見知l.,) 〔七力넋大君 • 七드냐하王총;;..J (3·36·38·45· 50·52·152·155•159·162·938·3234) 十으主 총|i石 (魂極乙 • 玉范春)(1,,(J)~ • ? ~ • 世 • 5 ??](4 ·897·904·4003) 합 8 왕志 (J)(村肝 • 群肝)(心 ](5·720·2092) !tlx. r. i· IJ (璃子鳥 • 奴要子鳥)〔裏敷( ? l::> t.삭f) • (J) &갑: ~J (5·196·892· 1997) 〈心之(J)〉와 같음. T드 主ts 寸총(玉擇 • 玉手次)[惡남J (5·29•543·2898·3286) 遠(& E) ?神(大君(*沿 왕 ;;..)](5) 草沈(〈 혼 主05) (旅 • t.:t::..(地名)〕 (5·45•69•142·194·415·3403) 士ts ?A (J)여津見乃)(深 L • 분t.](1 5) 冬드.t b (春](1 6•1824·322 1) 런현(J)(神 • iJ• • ;;.. • 三輪 • 둔慕山](1 7•712·2512·3256) ~尤味’*酒a力2순-中(t l 덕力( (•g靑t 丹•r 赤 •• 根靑神)土 •혼) iJ寸良•上 ( •L 日;;(.. 奈•• 良査三〕 輪•( 照 記• 石三下 室•• 君 ]1(7·3·2紫269J6• 3)( 2280··719679·•3129396·)9 16•2901·3270· 絲 5)
〈「尤力中호 니도 같음〉 打麻( ? t>-t)宅〔a-:7-;.. )(23·379 1) ' ?산入(現臣 • 空舞 )O[ 命 • 世 • 人 • 身 )(24·150·165·482·597·l785·3292) 白持(L. 0 t.:~)(l) 〔乙石心 • 셉 I • t.:~나: • t.:-t~ • %rf • V-ib • V-.n • It~ • • 田上(t.:tJ:iJ;:J-;..) • i • tJ:풍 • 力…꾹)〕 (50·1706·1753·3168· 3276) 衣手在[在 b • ; ? • tg b 、 . 志1..,남)(589) 眞木割 <[ 檜(V-)) (記下 • 50) %2 (J倉 )근( l)소(武士 • 武夫 • 物部)(J) [五十(1,、) • 八十氏(~~ ? ~) • ? ~.]( 50· 玉1:i 溪 `i9 4 8L· 1〔2讚64岐·(14혼7心0·왕32)3〕7 )( 220) 玉器tJ:-t〔浮죠 • 寄 o • 聯(tJ:rf) <) (50) *百天```知 足 石 8수 干〔[日八 十)((52수)군 ) • 五十(1,、) • 쓴〕(仁德紀 • 50·427·3276) 高知石쓴〔天 )(52) 尤초b b 七i L[對 馬 )(62) 흉 F?[ if.J G .n)(65) 64) 大和의 國 泊源(奈良縣 機井市).
飛쇼頂汶)〔念寸力、(明 日 香)〕 (78• 167 • 194·3791) 玉祥(鈴 )O( ..7,,.'b • 혼 上 )(79•543·1738·2380·2871·3276·4116) ,t= 神• · (風J O (니 t.J )〔伊勢 • 五十鈴 HI • ..7,,.ti':tJII • 伊勢神宮에 관련 있는 語〕 (81·162· 163·3301) D 혼/J•t.:(久方 • 久堅)。〔天 • 雨 • 都 • 光) (82·167·168·292·379·651·3252· !J;i4,f4f4t3.) :i(射干玉 )65) 。〔黑 • 夜 • ~?-' • al, . 月)(1 94·302·573·1798) 山t.:성(J) 〔迎(tJ/J,)'-) (90· 971) t玉2 楠
孤..,刀0 섬t(.:t,劍 太刀)〔身 것} • 心 • & <.](19 4·616·1741·2499·3326) 玉요之垂( h朗0)(鳥 宅 6(6) 緖CJ): :•) 〔宅襄七敷((' 越B智 t)£남 •) 宅<才•( 1小1)策c )·J〕: (-1 • 9 4片• 1惡9 5]·(12 59546·•129366·48)9 2·1997) 御A 食h 向t(총b쇼 •0 :(>음-식)0의:> 宮 여• 러淡가路지 0 島재 •료 味인原 (반;v찬 C의 . b이)l름l)에宮 서• 南 각淵 山地 名(에入t &길g림七)쓴 [主城) 上〕 (196·946) 尤탄(味 )~I i( 澤 )소頂 • J:o . 査 • 育 • 妹J(1 96·1804·2555•2934) 朝鳥筑朝立t, • 鳴 <• 通.b](1 96·1785) 껍伊)〔tp? • 硏子총力、〈行총 ](196) 高: 麗2..웠,b 삼 I ](七( 輪 ) • 心](1 99·2983) 高麗錦 〔。 心 (統)〕 (2406 • 3465) IC~/! 鷄 紅烏 <〔 尤정主( 東 )〕(1 99·382·4131) 龜占근 t 旦誌 • 紀人 • 紀이 |I • 城上@ll)^)〕 (55•199·543·1209) 오天츤 2飛 七&g力 슨f(%雅(@眞,根I葛J))〔 尤• (輕合 ()力.%)b〕 • ( 12107)t•,8~7::6.;·v3.b67 •6 )< o · 혼t.. ](207) 玉限石(玉鄒令)(日 • 夕 • R ll)力、 • 뿡暑틴 (45·207·210·1526·1816·2311· ••I f 3085·3250) 沖沖?t? 薛鳥。〔t〔 有t함홍((t尤. Er )n: :내.) o O (· t J/%,\ ()t).Jr l(19 )2 8<) ] (207) 沈정(付) <( 堀屋(?主순)〕 (210·795•4155) 大 鳥 ll)〔fi'/Jtl, 、@羽 E )〕 (210) 秋山ll)〔l,.t-::.b • 色t.r-?il •L 』 (217 냉 234) 持f;繩(fl£1il )〔長t 力; • t,V-6 ](217·902) 七춘力 5文(. 空 心 •( 天若)抵.數* •소 弱〔嚴 l) i在 v( :t':J/ (J2,1 91)J ](239) 主춘力>力;入(眞澄鏡 • 眞十鏡)〔淸총 • 照 o · 見 o · 敏馬 (~IQ.lib) • ,bf,: • 掛
嶋。〔筑紫 ](336·433 1) 緩春‘日 °降 在 (b- 〔/鹿J島려(寸-力/、J(、春L日-)i)〕 (•3 杓72島) (총 L 主) • &R( 遠)〕 (385·1174·2729·4370) 尤 bh ... 居待t月〔明-/),l., • 明石J (388) 春스 없@려一寸돈 성(春日) • 立~ • 居 • %Vi0( 407·1256·1813) 11U : 수,. 志 LD 총。〔山 • 峰(在)〕 (414·926) 百傳소〔渡7-> • 津 • !Q-C • 五十(1,、) • 八十(슨군)〕(記下 • 416·1399·1711) `‘?t 山 0 際中(出雲J (429) 크 八 雲 흔(刺)寸〔出 雲 (1,,--:;it)J (430) 〈「八雲tS 기와 같음〉 수 (t 入?入? L 〔久米J(記上 • 435) t으主力f%(玉葛)〔延(ti)^ • 長 <• ~7-> • 絶中 • 1;t t£ 8 요木〕 (443·920·20 78·2994·3067·3204) t라〉七七예움乳根 )O( 母 • 親J (443·1774·2991·3258) 押押* LL 照照石乙(難손波며(t佳.r波: ]t(~9:7b7))〕 (619·928) t으主성흔(玉粹 • 玉 章 ) 。 〔使V, • 妹(1,、t)J (445·2111•2945·2946·3258• 3957) 持t< 繩4,.。, 〔 LB • L 石J(記上 • 460) 打’ 七日(°3射 5근0十 5)〔 宮 • 都 ](460·886·2365•3058·3234·4473) 〈打t日 촌?도 같음〉 打七麻t,.,, 선髮 • 草 • 春J (87·260·475•948·1422·1754·4360) 玉 0 면。 〔長 L • 短L. • 絶19' • 繼 <•• ii.)V,t-:a'置力겁f • <<寄 i • 思 O 亂h 石 • 思 D 中t책~ • 借 L 왕혼力 `b • ,?L 心 • L 主心〕 (481·1280•1936· 2365·3211) 죠뺑 0 (t.:中t나 • 行 <• 別Q • .1:-t • :t-o <-/J•i知 G f • t. :c· 총 心知 G fJ (546•1804) 燒赤,大, .伴.총 。B〔 太引t高2 師刀 t선 ( :t0.日(: 利-• /心月J 、c•c L ·朝.):. 0 •t 慮濱.o ]•)( 6入•1? 9^·〕?2 3力(86나93)>· 5〕6 3()6 41·4479) R&‘ • 燒총太刀在〔磯波 Cc tJ:.7J.)J (4085) k夏-:,葛< + 0 〔絶之요〕 (649) 石• · 은, .,• 上•, .( 降石 • 舊(소)7-> • 古(소)7->J (664·3013) 眞2 玉t2 付 <[ a'](6 74·1341•2853)
麟*f£ 顯b力f , 濕黑 나 (804 • 1277 • 3295 • 3649) 遠뱌? 人먀〔 i'? • '/J이 (857·871·3089) 『으葬냐\i?:觀」 t..:효읽 L (J)/ (887) 志t力`宅 L= 尤t力、宅냐智可(t,'/J,)(J)崎 ](894) 폰총 <혼 (三枝)(J)〔-'}.'? • ts:.'/J,J( 904) 짠룡(J)(舊(소)Q • 짜t. :G J (928·1804·3272) 5 入宅 어璋) ts:.-t[t.t.'/J;(長)〕 (928·3243) 沖?島(味經(尤업소)〕(J)原 • 鴨J (928·3866) 韓b• ',衣 ~,( ,b 着石 • 裁'? • U-{i • i-t](9 52•2619·3482) 刺근 T竹 f」 남 0( 君 • 大宮 • 皇子 • 舍人J (955·3758·3791) 水莖(J)〔岡 • 기(城(入성총) • 流:h, • 行方(中 <^ )](9 68·2208·3068) *3< E L 、v t-?ts:.(石綱)(J)〔力…之)〕 (10 46) 力용왕石간(J)〔春 • 燃~ • /-i(J)'/J、 • D& 沈 (人目) • 夕혼 9 <:h,ii•• 岩〕 (1047· 1804) 招~t又打(i'?t,) • ? t,-j-C人J (1090·1019·2626) 兒等성手宅〔主 총t <山 ](1 093•1268·1815) 드 b 入心 石(三諸 • 御諸)? <( 鹿背(力`산)山 • 三輪山J(1 059·1095) 척:斌三笠印 (1102 • 1554) 힛i쓴人〔宇治] (1139 • 2428) 夏f山&?麻 越七 引之0 UT<& [〔 5遠 ]t ( 다1 1(8181)7 6·3255·3348) 息I長, 鳥tL(b 11. •. , >t.t. • ~~tJ(ll4 0·1189·1738) 天»at 乙尤石(天上 • 日 (U-)](1 277·2361) 樣立((J)〔倉 • 남|i L • 熊來( <主 총) 〈地名〉J (記下 • 仁德紀 • 1282·3878• ':L f: 3879) 志宅入성 5( 靑角髮)〔J: 혼 -'}.](1287) 챕삼 < 日 (向 k](l294) -眞庭常'2th ?.砲A rV鳥.持£ G〔tt ~力〔서(弓 남人削](((鷄1中) 3답J45()) 記〕上 (1 •3 18451) 3) 露立?〔力려강> • 春J (1437·3324) 射, . 目., 立 TT( 跡見(&入)〈地名〉](1 549)
妹力 ; 目 宅〔見石〕 (1560) •妹·t 力 넋 着t 조〔入力훈 ] ( 987) 妹 力 :h h ( 主 <] (2187) 妹力녀手宅〔上 r.,]( 2166) 我소妹力성폰 遺 手性t:‘ 託 折〔*中三 (b 童結 답 )(격소入}〕之(()主1 답〈 地1石1名意5〉)) ]] ((1173 750)4 ) 樞級Lt : 照0( 質石。@〔寸一-디:(>1 • 7 4V2-)c IJJ(17 42) ••1.. z=;栗< , 。 [t.ctJ,J( 記中 • 1745) 手t:j 綱 ,,. 0 濱 O 답:성七( 尋 )〕 (17 46) 白 雲 。〔立? • 立田山 • 絶~](1 747•3517) 松特::.& 返牛 'l 0,b ( [L 屯,V 倉- 〕J((1l 7788 03)· 4014) 크L.. ,.풍' ^ L 主 (磯城 島 • 敷 島) O 〔~i cJ( 1 787·3248·3326·4466) `妹著`向 5노 성〔 b 弟 ( 許(: )t(o&I),〕、(1主 8총0(4今) 來 )〕(1 795 ) 加스근 ..,露 수 庫남) • %
行 <船 fl) 〔過 풍J (19 98) 解( & ) 풍衣삼 ,,。 〔 ; L Q J (2092•2504· 2620) 橘,,., , t, , f l )〔三依(.:Z,..;t_ IJ )fl)里 • t.::'bj(4 341) 橘 宅〔守部(t IJ ')fl)里 ](2251) 石 橋 fl) [主 (間)) (2288) 苑 狼소〔跡見山(& ;z,..수主)〕 (2346) ,0 ·h I ':, 海 小 船 〔ti?〕 (23c4 7) 紙力” 2‘ b鄒 t, . 나...' 能h 登香(fl) /J•) Ill] (2424) 想山力秋 5 菅柏b : tL〔I ~0 , '’/ J〔 •;-Qz- ,:J:.>.G(t 2t•4石 7葛•8 城준) (성力 Df .% ~왕£)]山(5 ]6(48·4204·27445 냉3) 0 55 정 204) 수之 T H 鳩,.,2鳥 ,. , 0 @ f 5 〈 • ii•-? • t.r:.성흔 k • 息長河 (%총t.r:.성力자i) • 並守居J (2492· 3627) 吳,,< 山。〔主 총앤 U 木)J (2519·2616·3467) 力 홍 ?li ( V f)t.::(杜若 • 燕 子花)〔tr. --::>Gk • 혼~IQ • 혼충혼ti(疾 澤 )〕 (19 86 하 3·?2582 1소 )〔 君 나、心 • 宅&lib • 紅 葉 ci;z, ..r,) • 色 • V-~J (420•509·1053• 1911 •2523·3811) 俳f; t御소 1 2 〔, 往 箕 (中 총;z,..) fl)里〕 (2541) 荒垣。〔J::군 0 卜 )](2562) 花之I':, 3〈 ’ E접 ; L 〔 華 〕 (25 65) 夕中. .月.~ <夜 J〔; 志力 、 & 왕쓴入 • 志力 O 총순入 • 宅 <·8 L• *庄?力士:디 (2664) 君力: 着 石 〔三笠〕 (26 75) 山 鳥 핵 D& b 發 • 宅 OO) 〕 (2694) 텐뿜壓三 津 ] (2725) 尤t·力홉fl) R 水 邊 의 地名에 걸립 )(2747) 甘,2 L 物〔志^t.::학tt..r:.〕 (2750) 2朝 근 柏D· l〔. I2 ' 하t力접 ;)(2754) 紅
t으主力f저:(玉勝 r비 • 玉籠)〔 ~b --~ .,. ..._ • Li ] (2916·3152·3193) 紙 0 緖 0[ 心}乙入 b • \,、?力갑기 (2977·4106) 같 天雲。〔t.:ipt. :b • 行〈 • 別7., • J:-t • %〈力、心知 G f • t. :c· 풍心知~fJ i2 C` (18 04·3031) 木綿姓답괴:.rvt • t.:t.r:]( 3070·3151 ) >!>_..tor ! ;,. 木나’ 綿..._ 꽃r 2*〔 白 ](3073) 眞菅 67) J: L 〔춘力:〈地名〉 ](3087) 志2 十 bH 七 力넋t.: [er,!J J( 3161 ) 윷霜nt公 tb·鳥t 夜〔- t 。&'〔f다〕음 (에31 65오) 는 句에 걸림 ](3186·3324) t.:t.:t£궁(姓付) <[ 靑垣 ](3187) 짠홉 0[ 統 • er,q:)]( 3192•3447) 時?風〔소남 D 0|i 主 ](3 201 ) 幣*-c用¢ b 宅 〔奈良] (3230) 鳥& 網,,*張 石 〔坂 ](3230) 心心 총七(百岐年)〔美濃(.7;.q))J (3242) 松荒»’磯力 波군 게〔,,e E入 r), 〔 待!-JJ:>( 3•2 5絶3i)p 7-> t. c ti:
?봉七소(山城 )(3314) l., ts: (階)亡立. ?〔筑摩〕 (3323) 刺我`3~` 力 LL述 楊-1,〉,'( t,(f!七 筑i紫f (• 根총張 )J :0i);! (-3;.3)(2342)8 9•3333·3627) 百小竹(1) 〔三野(;!-;.(1))) (3327) m it.::성入〔流乙 • 川 )(3339) 盛ts:i(묘(1)力`〕 (3344) 杖?天*(足.1t )8原 于〔〔富八士 尺• (쇼수 b혼 혼力남 `) )O( 3軟17풍• 3)3(5353)4 4) 尤5 2 남 e 力;花〔色t;::_出궁 )(3376) 혼日衣 <((151)t )暮 h〔V t-乙t( 5• 十:i' )D(2 (8維6氷6·)3〕3 9(344) 02) L e & (白碩)沿소(小新田山(:t,;t;::_1,、t. ::~£))(3436) 鈴力;音(ii中 主 (早馬)〕 (3439) 潮LR船 (1) [% <• ts: G~ ) (3450 • 3556) 風 0 音(1)〔遠왕 )(3453) & 庭'느立?〔志 훈 (麻)〕 (3454) 志혼力 ;R( 朝院 • 朝顔)[秀(fl)t다차矣총出'i=i. • 年혼^ ~:::::c J C2275.3502) 깐|i촘t[여t薄 tLt〔 e稽) ] ((3 5獅0 69 •• 3 3556857 )• 3800) 翼野 0( 白 • 出균來 )(3519) 濱IU州 -t 島c?〔 ~ts:~(足腦)t〕 (3533) *L t否&〔I,、九(稱)〕 (3550) 志t·力내:(1)〔潟 • 力서남(可家)〕 (355 1) 릅향(1)〔 ~l 'l: )(3633) I, 、l iV-島〔I,、ii 0( 齋)〕 (3636) 査岐 0 島(行力`〕 (3696) 꼬t(1)[ L 幻 (3708) 志 9 왕요(1)〔志 b • 폰途 • 혼l.> • t.::iJ•G • ;1-;.^(三祖)〕 (3741·3791) 這I2소 葛(<寸1 )[絶x.f • I,、쓴&t印t£力; • t.::성요 • L t드 • 中〈 • 引 <)(3834·4509) 鷹드 ‘f恐tf〔:*^ . ^ <.b ](3 843) 盛麗(^tS C • ^) (記中) 琴酒宅〔*l.,t.:::h小野 )(3875) 드&연남
天照(光)조쓴頂 (V-)] (3886) »2 T 喇근 石U -손:l ('IJ•~J (3886) 玉|i손寸〔武庫(心 도)〕 (3895) 天傳소〔日 • 入日 ](1178•3895) 초 1 -:lt 椎並沈f [\,、 . 泉 X 記中 • 3908) ttt, 혼 창 h 波묘r.-::>] (3993) 雲居tb c.-t〔心J (4003) 立?霧。 〔過 〈정감汀 (4003) 力L 용tc數.혼力소、: 〔o二 r@ntc..::.) L〕 )(4J0C 0 s69)6 9•4on) i나? 小百合花〔19> !J J(1 503·4113) 곤 中 9 Ift , 島?鳥〔鷄 C ; )J( 4011•4156) 乳 0 實。〔t七(父 )](4408·4164) 祚ltl H葉 I!。 〔母] (4408•4164) 沖?波(顔(l,) <• 競v- • 挑(t.::b)tr • 高 l, • 立-::>J C4220) V-tc . <.i !J ( ? TD] (4407) 春鳥。〔혼 £ J:k J (4 408) (2) 序詞 萬葉의 노래에 있어서 沈詞에 이어 또 하나 특이한 수사법은 序 詞이 다. 序 또는
를 비유한 것이라 하였고, 後著에서는 〈금강산의 절등한 명승〉에 비유한 것이라 解하고 있다. 풀이의 차는 있을 망정, 뚫氣樓 또는 勝景을 유도하기 위한 간 수식구를 前行시킨 것은, 萬葉의 노태에 있어서의 序詞의 직능과 마찬가지다. 원래 序詞란 뒤에 오는 어먼 音이나 語句를 유도하기 위해서 앞 에다 놓는 語句이며, 이는 창의를 요구하는 대문에, 記紀歌諾에서 는 발달하지 못하고 따라서 그 예 도 드물다. . . 大君(!) 御*帶*U( !)l.,倭 ?文I2服t 結안垂t h 誰tc/1 쓴 . l.,人心 相思|it£
러 워 낯울 마주 대 할 수 없어 서 〉의 뜻. 〈릅t乙力》〉는 〈숨어 서 인가〉의 뜻. 이것은 三 重 縣 名張市라는 지명의 〈tgf b 〉는 〈숨다〉의 동사 f‘ 'fb 〈 f隱&l f 石〉가 同音이므로, 이 지명을 유도하기 위해 〈 暮 t다출 3 f……無 入 隱 〉의 序詞를 가져온 것이다. 이것은 노태의 내용과는 직접적 인 관련은 없는 것이다. 3695 昔J: b 言 0 남乙 言:& 0 韓•` b 民(E 0 ·辛t,〈 志此: 處: t다別 h 寸石力`心 3695 (가슴이) 쓰라리지만 여기서 이별하자꾸나. 여기서는 〈쓰라리지만〉의 〈f>辛· b〈 心〉를 유도하기 위해서, 〈D辛t , 〉와 同音인 〈韓〉울 가져온 것인데, 이 韓으로서 뜻있는 語句를 노래의 音數에 맞주오 . 어서 前行시켰다. 〈昔J: b 言 0 남石言 0 韓 國〉는 〈 옛부터 입으로 전해 내려온 말인 韓國〉이란 뜻이단. 이 또한 노태의 內容 上으로는 상관이 없는 序詞의 구실분이다. 意味의 誘導 1817 今朝行총 f明 日 |i來ti:.tJ c 言 D L 子力t尤朝곤 ?妻2 구山 2 V 더 霞 t3 tg下 < 1817 朝妻山에 아침 늘 가로 길게 믿치 도다. 朝妻山은 奈良縣御所市 朝妻에 있는 산. 이 노래에서는 序詞가 〈今朝行총--C明日|t來t倉 s:tr&言 DL 子〉(오늘 아침에 떠나가면서 내일 오 겠노라고 말하던 님)까지의 건 어절이다. 이 경우에는 序詞의 내용상 다음에 오는 〈朝妻〉(아침 에 돌아가는 마누라〈님〉)를 유도시 킨 것 이 다. 이상과 같이 萬葉의 노태에는 다채로운 沈詞의 구사로써 독특한 詩歌의 수사법을 개척하여 生彩를 북돋우어 놓은 동시에 序詞 또한 다양하게 이용하여 修辭의 폭을 넓혀 놓았다. 유명 • 무명작가를 막 론하고 자유자재로 이용하여 하나의 奎式울 확립시킨 접은 주목할 만하다.
(3) 그 밖의 修辭法 比兪 沈詞 • 序詞와 함께 口踊歌諾의 단조로움에 묘미를 첨가하는 효과 와, 作詞상의 홍미를 북돋우기 위해서 생간 것이 비유법이며, 이 기법은 이미 記紀歌諾에서 많이 이용되어 있다. 記紀의 例. :入:상; ?:L다 久米: 0: 子•輝' l 諺 t& b ?f‘ 擊七드 L 손主t. 〈『古事記』 中卷 •. 神 武天皇〉 威勢堂堂한 久米사람들의 조밭에는 냄새 고약한 마늘이 자라 있다. 그 뿌리에 그 싹(茅)을 붙여서 때려 부실려 1 야! 1 首의 구성은 머리만 너무 커서 밸런스를 잃고 있다. 이것이 萬 葉에 이르면, 가령 人麻呂의 경우, 201 歷홉 69) Q)池 0 堤 0 隱沼 70) Q)行方宅知I:;,t :=_71) 舍人 72)| i主 &소 ..,..,*:`'D &h!! 201 (高市皇子의) 궁궐터 하니야스의 못 언덕의 숨은 늪 물줄기 흐르는 곳 모르듯이 舍人네 들 갇 바 몰라 망연자실하도다. 이 노래에서는 어느 정도 後句를 돕기 위한 前句의 비유가 밸런 스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柚本人麻呂時代 이후의 작자에 비하면, 길고 多用항이 두드러진다. 이것은 人麻呂가 아직 충분히 口踊歌諾 69) 香具山의 西競에 있음. 70) 풀에 가리어 찰 안보이는 늪. 71) 모르므로. 72) 天皇이 나 皇子 가까이 모시 는 잡여 부.
의 찬재를 씻어 버러지 못한 證左이다. 원래 比 n兪 논 어떤 것을 설명함에 있어서, 직접적으로 목져물을 설명하지 않고 딴 것을 가져와서, 그것을 언급함으로써 목적물을 남에게 알리는 기법인데, 이에는 三態가 있다. O 明兪(直 n 兪)의 例 沙彌滿뽑 0 歌一首 351 世',間,0宅· 何t간t&音 ^t朝杯 B 총淸풍去t乙 L 船 0 跡t.i:퐁力t: & 351 世上事를 무엇에다 비하랴, 닿은 배 아침이면 떠 가고 아무런 뒷자취 남음이란 없음과 갇지. 대체로 바유법에는 明’兪(直1@1) • 暗兪(隱1@1) • 誤'兪 • 活’兪(萬1@1) 동 의 수사적 기법이 있거니와, 첫째 明 11 兪(直晩)법은 노골적으로 한사 물을 딴 사물에다 견주는 것이니, 위의 노래는 이에 해당한다. O 暗兪(隱兪)의 例 125 tc橘t . 11t t ,7 1)>• 1藍1 ...履 t*路t 7 3) 17수)t八 2 衛t 74) t다物在군思소妹t`;나 , ::逢|i于f 125 굴나무 그립자 밟아 가는 길이, 四方八方으로 갈라져 있듯 생각은 뉘 숭숭하구나 님 을랑 만나지 못해서 . 사물을 실명함에 있어서 〈같다〉, 〈비슷하다〉 등의 말을 쓰지 않 고, 직접적으로. 그 물전임을 단정케 하는 비유법이 曜兪 또는 隱兪 이거니와, 이 노태에서는 어지러운 굴 가로수의 그립자와 八循로서 님을 못만나 뒤숭숭한 불안감을 暗兪하고 있다. O 寫唯(活麻 또는 誕兪)의 例 73) 橘(굴나무)을 그 당시는 가로수로서 십었었다. 굴이 나무그립자를 이무고 있었 옵. 74) 길이 갈라지는 곳. 길이 여러 갈태로 나뉘어 있어서 갈피를 못잡음에 비유한 것
395 託? < 馬:I 野,, 75) t:. 生소石(:紫b 곤草七 7t6 O) 衣t다如L沈 \,홍t.:.E着 于 L f色t디出균 77)K 남 b 395 쑤꾸마들에 자란 紫草를 옷감에 물들여 채 입 기 도 전에 남에 게 알려 지 고 말았네(사랑이 채 이루어지기 전에 벌써 내 마음운 남이 알고야 말 았네). 무생물에다 생명을 넣어 활동케 하고 또는 동식물을 인격화해서 言 動 케 하는 수법이 活兪이거니와, 이 노태는 그러한 活' 兪 라기보다 는 노래 전체가 일종의 誤 n 兪 로 이루어져 있다. 『 萬葉集 』에는 部類의 하나로 센料兪歌〉 가 있는데, 이것은 寫兪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는 그렇지 않은 노래도 혼입되 어 있고, 또 뚜릿한 뽑'兪歌 인데도 불구하고 딴 부류에 삽입된 것도 있어서 선별이 업밀하지 못하다. 對句法 이 수사법은 口踊歌話의 경우, 같은 句의 되풀이에서 발생한 기 법이다. 對句몰 사용함으로써 리듬을 고르고, 서술코자 하는 것의 내용울 대비시켜 인상을 깊게 하고 노태의 스케일을돋보이게 하며, 내용을 부드럽게 진행시키는 둥의 이접이 있으며, 특히 長歌에서 즐겨 사용되고 있다. 153 綜魚取 ~ 78) 淡海 0 海宅 沖放낡f 潛몽來石船 邊附총f 潛풍來乙船 沖? `·근 1‘ I: 權 I, 、tg t다發七춘 邊?權 I, 、t-:.
天智天皇의 황후인 倭大后의 노래 이 거 니 와 1 首의 句數에 차지 한 對句 사용 句數의 비율이 매우 높다. 萬葉 작가 중에서 柚本人麻呂 논 對句 多用 작가의 第一人者이며, 그의 作歌 중에서도 다음 노래 논 對句 多用으로서 유명하거니와 比兪의 妙와 함께 秀作으로 일컫 는다. 柚本朝臣人磨, 石見國 81) J: I) 妻t乙別 h f上 b 來乙時 0 歌 131 石見 0 海 角 0 浦廻 82) 在 浦t£L 上 人드군見 8 心 潟t£ L& 人乙춘見 e 心 너t* ,b A h·1 : 댜多;相 L 浦|i無 <나 J: L 途쓴 L 潟ii無 <& 心 慧應座 I) 83) 뿡뿡宅 指 LT 和多律 0 荒磯 0 上}乙 力淸卞沿 玉羅沖?薛 朝羽振조 風乙춘寄 5 i::t t:. -:l '' -t t:.:! ~ 1,근 ... 沈 夕수 ...羽 ,i 振... 乙 浪드분來寄산 浪 0 (共Jf: 力봅한)力、〈寄乙 玉器ts:.-t寄 b 渡 L ,妹.t 在t· 露I,霜、손 0t遠-61t¼4 乙) 里置t총i 근T放•• Lb 來요 hI ,if、 손乙高 t0乙 道 山 0心 越八수十 之<隅 來<每2心t:t 乙 夏 i草萬스t성 o 8그5간) 思力간…냐姿l,1)& 之 入f寸 h億l,,, .bG t r 妹力:門見tr 磨납乙 0 山 1£U
81) 島根縣 西部. 人磨는 官員으로서 이 곳에 가 있 었 다. 82) 角온 島根縣 江律市 野津町. 浦廻는 浦의 灣曲한 곳. 83), 84), 85) 沈詞.
131 이와미 (石見) 바다의 쓰노(角)의 바다모롱이에 경치 좋은 개도 개펄도 없노라 남은 말하겠지. 비록 개나 개펄이 없다고 한들, 니기다쓰(和多 津) 거치른 바다 바위가에는 고운 海草 난바다풀에 아침 저넉 불어대 논 風浪이 물아 와서, 아아 그 물리논 海草마냥 서로 감겨 함께 참찬 그리 운 마누라몰 두고서 왔으니 , 골목길 굽이 마다 뒤 돌아보아도 더 더 욱 마을은 저멀리 멀어만 가고, 높은 山울 넘고 말았네. 나를 그리는 마누라집 門 다시금 보고싶구나, 엎드려다오 이 山아 ! 노래 전체에 수없는 對句가 리듬을 높게 하면서 詞意의 고조에도 효용을 거두고 있다. 이 對句的 수사법이 三期 • 四期에 이르르면, 對句의 사용이 차차 줄어드는 경향을 나타낸다. 이것은 작자의 역 량에 기인함이 아니라 노태의 기술성이 강해진 때문이다. 되풀이하는 修辭法 이에는 (a) 同句의 되풀이, (b) 同語의 되풀이, (c) 同音의 되풀
이 등이 있다. 이러한 것은 원래 口踊의 운울미를 조장하기 위한 필요성에서 고안된 것이다. 同句의 되풀이 예로는 佛足石歌體가 있 다. 노래 말미의 되풀이 예는 다음과 같다 86)•
86) 武田祐吉, 『萬葉全社釋』, 總說, p.4 49~457.
3253·3335•3336·3791·3885·3886 短歌의 第二句와 第五句를 되풀이하는 예는 55·95·107·271·281• 799 • 820 • 1767 • 2081 • 2168 • 3384 둥이 다. 이 기법은· 시대가 내려감에 따라 쇠퇴한다. 同音을 되풀이하는 例는 다음과 같다. 0 磁原(J)淸見(J)崎(J):::::保 0 浦(J)寬남풍見??t(J)思 D 心t£ L (三卷 • 296) 0 .7,i.吉野 0 象山 0 際 0 木末 V 乙i:l:드 乙t:心縣〈鳥(J)聲力냐》 (六卷 • 924) 이것은 운율미분만이 아니고, 景色 • 場面에 국한시켜 그것을 無 點化 • 集中化하는 데 효과적 이다. 이 밖에 同音을 의식적으로 중첩 시키듯 多用한 방법도 이용되었다. 0 호호(1)葉|i入山心호위냐쓴답&我ii妹思소別 h 來요 h| f (二卷 .133) 0 吉野t.r:.石夏實 0 力접|i(1)力접頃맑댜)`心쑨鳴
v. 萬葉人의 信仰 • 習俗 萬葉時代몰 살던 萬葉人둘의 생활-信仰 • 宗敎 • 法俗 둥이 폭 넓게 그리고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는 문헌은 또한 『萬葉集』을 재 쳐놓고서는 달리 구할 수가 없다. 萬葉人둘이 어떠한 생활도구를 가지고, 어떠한 주거에서 무엇을 먹고, 또 어떠한 옷을 입고, 그들 이 만든 사회의 구조 속에 어떻게 살아갔으며, 그들 지역의 풍토, 동식물, 기후, 曆法 등등은 어떠하며, 그 속에서의 실천상황은 어 떠했던가를 모두 이 歌集에서 엿볼 수 있다. 萬葉人과 밀접불가분 의 관계에 있던 우리나라 三國과는 그 양상이 역시 동질성을 며고 있을 터인데, 앞으로 이러한 면의 과제를 천명해 나가는 작업은 문 헌적 자료가 빈약한 우리 학계에 큰 보냅이 될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제 이 章에서는 고대인의 생활에 중십이었던 . 신앙 • 습속 등의 실태를 더듬어 보고 아울러 내포된 한국적 요소를 밝히고자 한다. 1. 諸神과 祭祀 (1) 고대인의 神의 개념 고대의 東夷諸族온 〈日〉여얘陽)을 전통적으로 신성시하여 崇奉해 왔다. 부여나 고구려의 시조선화는 다 같이 〈日의 아들〉, 〈日의 빛〉 1) 이 바쳐서 아기를 배었다고 하였다. 테양, 죽 〈日〉을 우리 고
유어로는 〈책 -~1 〉라고 하고, 일본어로는 〈比〉 (F i), 만주나 몽고어 로는 〈효〉이니, 모두 공동된 말이다. 이 〈현一균]〉는 〈기〉로 音轉하며 (〈解慕激〉의 〈解〉), 이에 /m/ 이 末子音으로서 첨가되면 명사화하여 〈밉〉이 되어, 〈神〉의 訓인 〈꿈〉 울 형성한다. 여〉(神)은 어원이 〈日一幽玄一玄 • 黑〉이오, 이의 表 記字로 고문헌에는 〈解慕 • 蓋馬 • 乾馬 • 金馬 • 儉 • 錦며갭~) • 今〉, 訓借字로는 〈熊〉(곰)이 쓰이고 있다. 2) 이 〈김 • 꿉〉의 類音에서 檀 君 의 熊女誕生說話가 나온 것 이 다.
1) 「天帝가 訖升骨城에 五龍車 몹 타고 내려와서, 郡올 定하고서 王이라 일컫고, 國 號를 北夫餘라 하였고, 스스로 解갑 상 激라 이름하였으며 解를 氏로 하였다」 (『三國 造 康 』 卷一, 北夫餘) 「그 俗에 埋祠가 많다. 었星 ~1 11. 日神···운 섭기다」(『舊唐합』 • 東夷傳 • 高句麗) 2) 梁柱束著 『古歌硏究』 「序說」.
〈밉 • 험이 다시 음운변동을 일으켜 서 /k/ 자음이 탈락되 면, k..Am -Am 이 되며, 이 Am(~) 은 〈母 먀 k • 茅 • 牙 • Wt〉의 語義를파생한 다. 이로써 보면 〈神〉의 語 〈김 • 言〉은 원래 〈女神〉을 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신화에 여신을 주인공으로 한 神母傳說이 가장 많다. 나는 仙桃山(慶州의 西岳)의 神母이 다 (『三國追事』 卷五) 神廟가 둘 있다. 하나를 夫餘神이 라 하며 , 나무에 다 婦人像울 影刻하였다 (『周 書』 卷四十九 • 高 麗) 夫人이 思慕하기에 견디지 못하여 세 딸을 데리고 華述嶺에 올라가 드디 어 頭述의 神母가 되 었 다 (同上卷上) 〈홉〉이 여신인데 대하여 男神은 〈수눕〉이다. 이 〈수꿈〉(雄神 • 男神) 의 〈수〉를고대의i史 習 둥에서는 澤홍神〉(三國志), 〈編神〉(『後漢書』), 〈神隱〉 (『깝唐 밥 』) 둥의 표기 로 나타난다. 그 나라의 東에 大穴이 있어 墓穴이라 부론다. 十月에 나라 안이 크게 모
여 隱神을 모셔다가 나타의 東쪽 위에 가져가서 祭지낸다. 木擊를神坐에 둔다 (『三國志』 • 魏합 • 東夷傳 • 高句麗) 〈꿉〉(女神)은 〈수꿈〉보다 先在하였으나 〈수言〉 또한 〈꿈〉에 믿지 지 않게 숭배의 대상이 되어 왔다. 삼한시대 그리고 倭에도 있었던 〈蘇塗〉는 〈수홉〉을 모시는 성역이었으며, 고대에서 고려시대까지 지 속되 었으니 , 〈三蘇〉(北蘇 • 左右蘇)라는 祭所가 그 유적 이 며 , 일본에 서는 오늘날도 〈木隱〉(陽根)를 祭지내는 풍습이 곳곳에 남아 있다. 〈神 〉(; )은 〈수꿈〉에 대한 신앙이 차차 사라지면서부터 〈男女神〉 의 총칭으로 전이하였다. 〈수言〉은 〈흡〉과 함께 고대의 인명이나 지명에 많이 쓰여지고 있 다. 臣蘇 塗國 ……瑟山 塗卑離國 ••• … 隣離國 (『三國志』 • 東夷傳 • 韓) 和川縣 本高句麗數生川縣 新羅改爲販川 (『三國史記』卷三十六, 地理三) 首知縣 一云新知 (同上 • 地理二) 일본에도 이와 同系의 지명은 많다. 金澤庄三郞著 『日鮮同祖論』 에는 지명 가운데서 苑과 園, 陝田, 族長田, 阿 蘇 , 伊勢, 宇佐등 은 모두 이 계열임을 말하고 있다. 일본에 있어서의 〈神〉에 대한 개념은 한국과 다름없다. 〈홉〉이 일본어로는 〈伽微〉 (ka-m i)이니 서로 一致한다• 게다가 〈꿉〉의 音轉 形인 <& • 업〉의 語義가 日語에서도 〈母〉 一於母 (a-mo), 雄 • 女一 賣 (me), 茅一米 (m!!), 臣一 0·m i 로 나타나고 있 다.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소위 〈萬 神 〉 이란 형용어처럼 무수한 신을 고대인은 想定한 샘이나, 그것을 대벌하면 自然神과 人間神의 두 가지가 된다. 自然神에는 山 • 石.木· 虎 • 蛇 동 여러 가지가있 다. 人間神에는 死者의 盛 이 主가되거니와, 거기에는祖上 • 英雄 • 將 軍 • 軍雄 ( 戰 死한 勇 士) 등이 있는가 하면, 비명횡사한 사람의 영혼 이나 怨鬼(未婚女, 酒 死者 둥), 그 밖에도 무수히 있다. 일본에 있어서의 신의 대상온 〈八百 萬 神〉이라고 하여, 우리나라 같이 여러가지 자연의 靈, 인간의 靈 울 포괄하고 있다. 自然神의 하나로 山神울 〈 손主정入 〉 (야마두미), 범(虎)을 〈力孔」:총神 〉 (가시꼬 끼 神 ), 火神울 〈t 요t寸장 〉 (호무수비), 뱀(rt;)을 〈宅乃t〉(오로디), 稱 의 靈 울 〈豊 宇 氣〉 (도요우께)라 하여 祭지내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경우는 조상이나 영웅 둥 실로 多 靈 多神하다. 이같이 多神 崇 拜 가운데 自然神의 숭배는 우리나라의 민간신앙 및 행사의 주류를 차지하는 것이며 , 또한 그 연원이 上代에까지 차 올라가는 것이니, 고문헌에서 발견할 수 있는 天神 • 日月精 • 靈 星.山岳·河 海 등의 숭배와, 神樹·烏思·祭虎 등의 풍습을 낳은 것이다. 이러한 것울 중십으로 하여 韓 日양국의 祭神形態를 『古 事 記』 • 『 日 本書 紀』 • 『 萬葉集 』 둥에 서 찾아내 어 비 교하고자 한다. a) 日月神 日(太 陽 )과 月에 대하여 이를 日月神이란人格神으로 상정해서 日 月兩界의 主神으로 보고 있다. 이 兩神온 또한 다같이 男神이라 觀 念 한다. 그리고 日神의 妻 를 〈히아가시〉(日阿只氏), 月神의 妻 를 〈둘아가시 〉 (月阿只氏)라 부르고, 그. 配下에 日月聖大監울 두고 있 다. 이와는 달리 민간의 설화에서는 〈日〉은 女神, 〈 月〉은 男神으로. 등장한다. 巫의 행사에 神 鏡 이라 일컫는 거울을 다는 것은, 日月을 상칭한 것이며, 그것을 日月明圖라 한다. 거울의 모양을 보면 표면 은닦아갈은 占面의 圓形 鏡 鏡이고, 이면에는 日.月•北斗七星울 유출한 것이 많고, 또 〈日月大明圖〉라는 문자를 새긴 것도 있다. 일본에 있어서의 日神은 〈天照大神〉이라 부르는데 女神으로 되어 있다. 月神은 〈月 讀 命〉(두꾸요미노미꼬도)라 부르며 男神이다.
•…··乙 0 時, 伊邪那岐命, 大 c~, t..:)〈歡喜(.t-0.:.)안-c……御頭珠(~〈챤 t-:i)(J)玉宅天照大御神t디賜 0 f認 b t으主 0L 〈, 『汝 c~ 、主 L) 命,i, 高天 (t그力며主)力깁原宅知 e 산』之事依(드 & .t)폰 LT 賜깐총. 次 K 月記命|다沼 I) t-: 主 DL <, 『汝命 I i, 夜 0 食國(在寸〈~;:_ • 夜 0 世界)在知 8 산』&康依 L 총 (『古事記』 上) …. .. 이때, 伊邪那岐命(이자나기의미꼬도), 크게 기뻐하셔서……목에 걸고 계신 목거리의 구술을 철렁철링 혼들어서 하늘을 빛나게 하는 大神에게 주시면서 『그대논 하늘을 다스릴지어다.』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다움에 月 讀님에게 『그대는 밤의 世界름 다스릴지어다.』라고 말씀하셨읍니다. 伊邪那岐命은 日神인 天照大神의 父君이거니와 이 天照大神의 남 동생인 須佐之男命은성질이 강폭하여 장난이 십해서 天照大神이 바 위 굴(天 0 岩戶) 속에 숨어 버 린다논 설화가 『古事記』에 보이 는데 , 이 天照大神울 바위굴 속으로부터 불러내는 샤만적 행사가 벌어지는 장 면의 묘사에서 사까끼나무(賢木) 가치에 걸었다고 하는· 八尺鏡은 바로 우리나라 무당이 쓰는 日月明鏡圖의 神鏡과 같은 것임에 툴림없다. b) 山神―神木 • 神岩 우리나라의 산신신앙은 매우 오래전부터 민십에 밀착되어 온 것 인데, 그것은 또한 읍락의 신이기도 하였다. 오늘날 여러 장소에서 신을 祭지내고 있거니와, 그 가운데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산에서 산신을 모시는 현상이다. 이같이 산신을 섭기는 신앙은 민십에 굳 게 젖어 있어 조상의 묘소도 산에 짓는 것이 통례이다. 그래서 우 티 말에 墓와 山所는 같은 말로 쓰고 있다. 山岳울 靈魂이 영 생 하는 聖地라는 관념 아래 墓를 〈山〉 또는 〈피 >. 〈山所〉라는 용어를 낳은 것이다. 人家롤 멀리 떠나 天空에 訖立한 山岳의 모습이야말로 과연 神의 住處로서 적합한 것이며, 더우기 천상에서 하강하는 神의 着地로서는 가장 안성마충이타 하겠다. 檀 君神話나 鷲洛國의 建國神話가 모두 산이 降神의 場이 되어 있다. 그리고 山上에 내려온 신은 神木에 머문다고 믿어 산신을 祭지내는 데는 自生한 한 그루의 나무를 골라 그것을 산신이 깃든 神木이라
해서 祭지낸다. 또 왕왕이 산의 岩石에도 신이 것들어 있다고 믿는 경우도 많다. 재(岭 ) 神에 대한 신앙 또한 이 신앙에 유래한 것이다. 산을 내려가다가 마을 경계 근처에도 흔히 岭神울 모신 것을 보게 되는데, 이것이 城陸이다. 거기에는 城陳木이라는 神木이 있고, 그 神木에 城陵神, 곧 재神이 것들어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 가 에 찬돌무더기가 쌓여 있어 神域울 이루고 있다. 『三國遺事』에 의 하면, 신라에 서 는 〈五嶽三山神〉을 믿 어 국가적 으 로 제사지냄을볼수 있다. 한편 三山神(慶州의 狼 山 ·永川의 金剛 山. 淸道 의 島 山)을 設國神 으로 崇奉 하였다. 이러한 山神이 때로는 여성 의 몸으로 나타나고서 궁지에 빠진 사람을 도와주기도 하고(卷_ • 金庚信), 또는 산신이 왕 앞에 나타나 춤추면서 국가의 전도를 예 언 하며 (卷 二. 處容郞) , 東夫餘에 서는 山神에게 빌어 자식을 낳아 주기 를 비는 이야기도 전한다. 일본의 신앙에도 산은 神의 住居라 믿고 있다. 神武帝(初代天皇)가 皇祖 인 天神을 祭지낸 것은 鳥 見이라는 산이다. 靈 時(제사지낼 때) 에 鳥見 山에 서서 祭지내는 광경이 記紀에 실려 있다. 또 意富美 和 之大神 (%沿入七 0 大神)이 계 시 는 곳을 御諸山(入§ 石손主)라고 하는 데, 이 〈入心 1_:,수主 〉 의 어의는 〈御室〉이니, 죽 〈神이 계시는 山〉이 란 뜻이다. 그리고 이러한 곳에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나무가 있다. 神山의 樹木온 함부로 베지 아니하므로 자연히 森林울 이룬 다. 따라서 〈室〉(心 石)는 〈森〉 (心 b) 와 공통어가되며, 〈神社〉를 〈心 b 〉(모리)라 『 萬葉集 』에서 읽고 있음도 이 신앙을 나타낸 것으로, 神山 • 神木에 대한 고대인의 신앙이 이러한 말에 반영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재(坂 • 岭)를 祭지내는 신앙의 모습을 『日本 書 紀』에서는 여러가지로 그 모습을 전해 주고 있다. 九年(J) 春 三月 V 드, 天皇 0 夢t덕神人念 b -c, 海(:tol-)'--c曰|i <, 『赤循八枚, 赤牙八等宅以-c, 墨坂神 (寸入혼力류神)在祠(£'?).ti. £t.:.黑眉八枚, 黑牙 八等宅以-c, 大坂神在祠.n.』&(J)t.:.£~ (卷五 • 崇神帝) 〈九年春三月 , 天皇의 꿈에 神人이 있어 가리 켜 이 르기 를 『赤權 八枚와 赤 牙 여덟대를 가지고 먹재神을 祭지내라. 또 黑眉 八枚와 黑牙 여덟대를
가지고 큰 재神울 祭지내라』라고 말씀하였다.〉 七年(1)秋七月 , 天皇, 少子部連螺鼠t다炤 L- C 曰ti <, 『脫(b ;h,), 三諸岳(1) 神(1)形宅見t & 欲(* 心 )소』. 或I, 中t云ii <, 此(1) 山 (1)神在if大物主神 & I, 、 소타,~. 或I,、tt云|i <, 『英田 (5 t: )O 磁坂神t.i: I')』上I,、소. (卷十四 ·雄略帝) 〈七年秋七月 에 天皇이 少子部連螺鼠에 게 말씀하시 기 를 『罪人이 三諸岳의 神올 보고자 하도다』라고. 혹은 이 르기 를, 이 山의 神울 大物主神이 라 한 다고. 또는 이 르기 를 訂硏 E 의 墨坂神이 다』라고. > 여기에 언급한 三諸岳이란 지금 奈良縣 樓井市에 있는三輪山이 며, 위와 같이 무기를 바쳐서 제사지내는 사례는 記紀에 많이 보인 다. 아같은 山神 坂神온 대개 女神이니 신라의 경우와 마찬가지다. 認 L -C曰|i〈, 『춘 0 山 0 峰抽(入七〈총)重股 b -c, 旦美麗 L 총드&基ts: D. 若 L 神군 0 山t乙有 (主) L 主寸力`』 &0 t으主소. 時t乙水沼縣主猿大海(혼石% 任 A), 奏 L f言(主 5) 혼 <,『 女神有L-i-t. 名在八女津援(-it?lib?V- lsb) 上 曰-t. 常t드山 0中 t 다콤(主) L 主寸』 & 主 ? 寸 (卷七 • 景行天皇十八年) 〈말씀하시기를, 『그 山의 峰抽가 겹겹이 쌓여 있고, 게다가 매우 아름답도. 다. 혹시 神이 그 山에 계시는지』라 하셨다. 이때 水沼縣主인 猿大海가 여 쭙기 를 『女神이 계 시 오이 다. 이 름을 /\女津援이 라 하옵니 다. 항상 산중 에 있사오이 다』라 하였 다. > 산신이 때로는 〈白鹿〉으로 化하기도 하고 〈大蛇〉이기도 한다. 山Q)神, 王在苦( <石 L) 안 L 砂t& Lt , 白 총鹿t乙化(t.r:) '? -c王Q)前t乙立 '?. 王, 異(志산 L) rft.:i'O--C, 一簡喆 (0&?oo 石)宅以f白총鹿t댜彈 (ti E 총力아)남?. 寸tg겼 5 眼t댜中 b f殺 L?, ……是J: b 先t::., 信淡坂宅度 (h t.:)石者 多(~\t)t더神 0 氣宅得t腐之臥산I:). 白총鹿在殺 L 十으主 DL J: b 後t::., 是 0 山宅諭中石者|i, 薛宅噴入t人及만牛馬t댜塗Q. 自성力毛 B t드 神 0 氣t:中 5 f (卷七 • 景行天皇四十年) 〈山神이 王울 괴몹히려고 흰 사슴으로 변하여 王앞에 섰다. 王이 이상히
여겨 마늘 한개를 가지고 흰 사슴을 향하여 뒤겼다. 곧 눈을 맞추어 죽였 다. …. .. 이보다 앞서 信淡재를 지나가는 사람둘이 神氣에 들려 앓아 눕게 되었다. 흰 사슴을 죽인 뒤로부터는, 이 山울 넘는 사람은 마늘을 씹어 사람과 牛馬에게 발랐다. 처철로 神氣에 걸리지 않았다.〉 우리나라 說話에도 위의 예처럼 山神이 장난하는 이야기가 있다. c) 神에 관한 용어 신을 제 사지 내 는 숲을 〈神奈備〉 (力반 r tJ:r.f • 감나비 )라 한다. 0神·U名 f‘ 火U 3) (1) 山下啓& i 入 行 <水 t댜o河,I t 3嚴 鳴 4)
3) 神社가 있는 곳. 4) 力夕力. 기생개구리.
이 〈力반 r t.c u 〉 (ka-mu-na-b i)의 語意에 대해서 鈴木重胤는 〈神並안〉 라 보아 〈神이 한 줄로 서 있다〉의 뜻으로 解하고 있다. 한편 金澤 庄三郞은, 〈神木〉의 뜻의 韓語인 〈言나무〉라 하였 다. 후자의 해석 온 언어상으로 보아 양국어가 대응할 분 아니라 〈神木〉신앙의 관접 에서 보아도 이 해석이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神籠〉(V-t 0 'ti • 比拜呂岐 • F i -mo-ro- gi)라는 낱말이 있다. 신령 이 것들이고 있다고 믿어지는 老木 • 森 • 山 등의 주위에 상반목을 십 거나. 또는 울타리를 둘러서 神座로 정한 곳울 일컫는 말이다. 이 말은 〈神o • 室t5 • 木혼 〉의 복합어 라 解한다. 또한 〈神木〉울 말한 것 이 다. 神社의 원시형인 〈 D 心石왕〉의 유형을 우리 나라에서도 각처에서 볼 수 있다. 마을에는 일정한 神城이 있는데, 거기에는 老大한 神 樹와 神石, 그리고 築石이 갖추어져 있다. 이것을 堂山 또는 洞內 堂이 타 부른다. 堂宇는 없고, 한편에 다 長方形의 낮은 土壇을 만든 데다가 주위에는 돌을 쌓아 놓는다. 그 中央에는 村神이 것들은
老大한 堂山木이 우거져 있는데, 곁에는 堂山石이라 부르는 立石이 있다. 마을 제사(村祭)는 매년 正月三日 밤에 이 神城에서 행해진다. 미리 마을사람 가운데서 淨人을 골라 祭官울 정해 놓고, 神酒를 정 성드려 빚고, 또 堂山木에는 검줄을 치며, 神城에 황토를 뿌리고, 향을 피워 獻酒한다. 脈의 회생과 그 밖의 祭物을 차리고 脈首는 堂山石 밑에 묻은 다음 呪文울 읽는 것이다. 이 마윤 제사의 場, 즉 堂山에 놓는 立石에 해당하는 것이 일본 에 서 는 〈흡뿡〉라고 일컫는 神岩이 다. 神의 住處, 곧 〈神 0 御座〉가 〈I,、|i <8 〉(韓國의 堂山石)인 것이다. 高皇産磁尊, 因 b T 勅 Lf曰|i <, 『吾|i天津神鐘及간天津磐境宅起 L 樹f t-'c0 ·, * 當Z다 근”t 心*드:吾I:孫 0스 t간하乙``齋I1 강奉 e t (神代紀下2)2 ?`5E , . ,1 근•· t, 이것은 高皇産靈尊이 天孫降臨할 때 내란 칙어다. 나는 神鐘와 磐境을 세워 天孫울 위해서 祭지낸 터이니, 天兒屋根命과 太玉命~ 華原中原(日本)에 내려가 또한 天孫을 위해서 祭지내라고 命令한 것 이다. 〈나i〈 8 〉는 〈磐座〉로 漢譯해서 訓울 〈以筋短羅〉로 읽고 있 다. 아뭏든 日本의 原始神道에서는 神木 • 神岩이 중요시되던 것을 알 수 있고, 이것이 뒤에 가서 社殿과 鳥居(도리이)로 변모되는 것 이다. d) 家神과 神桐-基主(터주)와 刀自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오태전부터 〈집신〉(家神 • 家宅神)에 대한 신 앙이 있다. 이것은主婦를중십으로」한것임도그.특색의 하나이다. 家神의 성겨온 막연한 것이어서 그저 神이라고만 믿고 있다. 祖 靈의 성질이 있는가 하면 農耕의 神, 授兒의 神이기도 하다. 지방 에 따라서는 몸채의 壁에 종이봉지를 달아놓고서 그 안에 錢穀울 채우고, 위에 삼각형의 종이로 만든 僧幅를 씌운 것도 있으나, 대 개는 神壅에 곡물을 넣어서, 고방 구석이나 또는 넓은 마루 한구석 에 놓아두는데 , 이를 帝釋壅, 世尊壅, 天主壅등으로 불리우고 있 다. 또 이것과 거의 같은 神壅로 祖上壅라 일컫는 것이 있는데, 이
것은 祖露울 모신 것이다. 북한지방에는 帝釋壅를 問房과 외양간 사이에 길며 이것을 〈성주〉偏滋 E) 라 하는데 成造란 家宅神울 말한 다. 秋葉隆博士는 한국의 家神祭는 일본의 민가에 있는 〈神楠〉 5) @A t포 c) 에 해당하는 것이타 하고, 이것은 만주 旗人둘 집에서 보 논 〈神板子〉 (shen pan tz u) 의 姬法 (ma fa)와 비슷하나, 무슨 신인지는 명 백지 않고, 그처 신이라고만 믿고 있다고 기술하였다 .6)
5) 屋內 淸淨한 곳에 만듄어 놓고, 神符 등을 奉安하여 神울 모시는 桐(食室). 6) 「滿州 薩 滿敎 0 家祭」
이같은 옥내에서 모시는 원시적 家神과 함께 일본의 家屋神과도 근사한 우리나라의 宅地神인 〈基主〉(터주)의 신앙도 오랜 것이다. 이것은 뒤안 구석, 칭독대 근처에 곡물을 넣은 神壅을 놓아 두는데 이것을 짚봉지로 덮어둔다. 일명, 「터주가리」라 한다. 이것과 나란 히 하여 여러개의 짚봉지를 놓는데, 그 안에 업徵온) 또는 〈업주〉 여主), 죽 財福의 神壅를 넣어두는 집도 있다. 〈업〉頃g)이란 뱀 • 족제 비 같은 動物神울 말한다. 아뭏든 神울 모시 는 그릇이 〈신단지〉 (神盛)임이 득칭이다. 夢t호天神尤 b T 訓k l,^ 主 ?b f曰ii <,• ;『b:天tO香 b•山<·(~ J :t )社(J)中(J)土在取I)-C, 天平 企八十枚宅造 b , 志七산f`嚴r 2 企^ 在造 b f, l,天%- :>神b•; , .地{ic .紙-':,t,.在 * 祭 h …···力、 <산 iiM廢s %(J)정力훈 8 平t 총L伏f 3) 0t t£心』&(J)t-::i k. ……是t已天皇其Et^드 근 .l:石드안t으主 0 f, 此(IJ1I):?t植 在以f八十平先, »心天 0手t 扶E ,八 十枚, 嚴企在造? 作< b f, 丹E生 (노 J) }|l 上i디O涉 /f b T, 用f天神地祗宅祭 b t으主소 (神武帝紀) 〈꿈에 天神이 가르쳐 말씀하시 기 를 『天香山에 있는 사당 안의 흙을 取하 여 天平先 - 울 八十장 만들고, 아울러 嚴企을 만들어서 天神地祗를 祭지 내 어라. ……이렇게 하면 저이 스스로 平伏할 것아로다』고 하셨다. ……이 에 天皇이 매우 기뻐하셔서 이 黃赤色의 찰흙울가지고 八十장의 天平先, 天手扶 八十장, 嚴企를 만들어 가지 고, 丹生의 내 위 에 올라가서 天神地 紙를 祭祀지냈다.〉 平益@t드I,、 ·물동이) • 手扶(土器) 등 단지를 祭器로 쓰는 것은 兩 國이 매일반이다.
우리나라에서 家神이나 基主를 祭지내는 것은 매년 7 월 7 일에 主 婦가 司祭者가 되어 지내거니와 때로는 유식한 老女를 불러서 행하 기도 한다. 또 5 년에 한 회, 祖上祭라는 大祭름 지낸다. 그런 경우 巫女를 불러, 牛 또는 脈을 희생으로 바쳐서 巫歌巫舞를 벌려 대규 모의 제사를 올린다. 이때에 쓰는 牛와 脈은 이 제사에 쓸 목적으 로 사육한 것인데, 이를 祖上供牛, 祖上供脈이라 부르며 소중히 기 론 것이다. 또 가족 중에 병자가 생겨 점을 찬 결과에 행하게 되는 巫祭는 〈간지푸리〉라 하며, 주부를 중십으로 해서 여성 친족이 모 여 무당을 불러 공물을 마련해서 祭를 올린다. 이러한 主婦 중십의 家神祭나 基主祭는 일본에서 主婦믈 〈刀自〉 (&E) 라 부르는 습속에 서 한국과 유사함을 발견한다. 〈刀自〉라는 말은 主婦, 또는 老女의 존칭으로 지금도 쓰고 있다. 眞木柱讚心f造九조殿{!)如\,、主문母刀自面嬰 b 산f (『萬葉集』卷二十 ·4342) 2 HI:Lb12 <& EI: & L ,X Mi 〈훌륭한 木材기 둥 모두가 기 리 는 궁전과도 같이 길이 무사히 살아계 시 소 서 어머님이시여 ! 조금도 변모함 없이〉 이 〈刀自〉를 일본학자들은 〈戶 0 主〉의 縮語로 보고 여三婦〉의 意 & pL, 로 解하고 있으나 이 말은 우리말 〈터주〉와 同源語인 것이다. 〈터〉 는 敷地, 堡地요, 〈주〉는 @戈造〉의 〈조 • 주〉와 같이 〈神〉의 뜻이 다. 敷地神의 名號로서 主婦의 대명사로 쓴 것은 主婦의 일가에 있 어서의 위치나 비중이 막중함을 엿보게 한다. 主婦가 곧 宅神과 다 름없어 가정과 가덱의 중십이었음을 이로써 알 수 있다. e) 鬼神-柳· 串 〈鬼神〉을 일본측의 기록에 의하면 『日本書紀』의 神代上에 〈心 O (l)남〉라 훈독하고 있는데, 이것은 O 虹庫〉의 原訓이 아니라 일종의 설명어일 분이다. 그리고 O 虹庫〉의 관념은 〈死者의 靈〉이라 인지하 고 있논 듯하다. 우리 축의 古記錄온 『三國遺事』 卷一에 실려 있는 〈桃花女 • 鼻荊郞〉의 설화이다. 그 일부를 아태에 譯載한다.
(新羅) 二十五代, 舍輪王의 盆易f는 眞智大王이 며 姓은 金氏, 妃는 起烏 公의 말, 知刀夫人이 다. 大建八年 (576) 에 郞位하였 다. 나라몰 다스리 기 四年에 政治가 매우 어지러워져서 나라사람들이 王울 廢位시켰다• 이보다 앞서 沙梁部에 한 百姓의 여자가 姿色이 곱고 아름다워 그대의 사람들은 그녀를 桃花娘子라 불렀다. 王이 듣고 宮中에 불러들여 犯하고 자하니, 그녀가 이르기를, 『여자가 지킬 일은두지어비를섭기지 않는 일 이옵니냐 지어바가 있으면서 남에게 몸을 맡기게 하는 것은 비목 萬乘의 임금의 威嚴울 가지고서도 되는 일이 아니의다』. 王이 『어버이가 없다면 괜찮으냐?』고 하니, 『그러하면 무방하오이다』라고 대답하니 王은허락하 여 돌려보냈다. 그 해에 王은 廢位되고 이어 世上울 떠났다. 그뒤 三年 지나 그녀의 남편도 죽었다. 남편이 죽은지 열흘 지난 날 밥중에 王이 生時와 다름없이 홀연히 여자 방에 나타나 『그대가 지난날 승낙한대로 지금 남편이 없어졌으니까 나와 함께 자도 좋겠지 ?』라고 하는 것이었다. 여자는 가벼이 대답할 수 없어 서 그 일을어버이에게 물어보니, 『임금님 말씀울 어찌 거역하겠느냐? 』고 하면서 말을 그 방에 들여보냈다. 七日동안 임금의 시중을 드는데, 항상 五色구름이 지붕을 덮고 香氣가 방안에 가득하였다. 七日이 지나자 갑자 기 임금은 사라지고 그날부터 여자는 잉태하였다. 달이 차서 아이를 낳으 려하니 天地가 袁動하 고 오래지 않아 사내아이가 대어났다. 이름을〈고가 시〉( 鼻刑 )라 지었다. 眞平王이 이 이상한 소문을 듣고 宮中에 데려다가 길렀다. 열다섯살이 되었을 때, 執事 7) 에 任命하였다. 매일밥 멀리 달아나서는 늘고 있으므로 이를 oJ: 王온 勇士 五十名울 시켜 그를 지켜보게 하였더니, 노는 터는 月 城(首都의 城)을 뛰어넘어, 西편 荒川 언덕 위에서 鬼神의 무리들과 노는 것 이 었다. 勇士둘이 숲속에 숨어 서 그 光 景 올 바라보니 , 鬼神둘은 四方의 철에서 새벽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흩어져 가버리고 〈고가시〉도돌아 오는 것이었다. 勇士들이 일의 전말을 王에게 告하니 王은 〈고가시〉를 불 러 『 너는 鬼神둘을 데리고 논다는데 그것이 참말아냐?』라고 물으니, 〈고 가시 〉는 『그러 하오이 다』라 대 답하였 다. 그래 서 王이 『그러 면 너 는 鬼神들 을 부리어 神元寺 北쪽에 있는 철에 다리를 놓아라』고 하였다. 〈고가시〉 논 王命을 받자 鬼神둘을 부리어 돌을 깎고 다듬어 하루밥 사이에 큰 다 리률 完成하니, 그 다리를 鬼橋라 이름지었다. 王이 또 『鬼神들 가운데 7) 國家의 機密事務를 담당하는 官廳인 執事省의 한 官戰.
人間몸이 되어 政康름 도울만한 자는 없는가』 하고 물으니, 〈고가시〉가 『吉達이 란 자가 있사온데 그는 政惠름 도울 수 있사오이 다』라 答하니 , 王 은 데리고 오라고 하였다. 다음날 〈고가시〉가 그를 데리고 와서 王에게 뵈였다. 그래서 執김 I 의 職울 내리니, 忠質하기 짝이 없을만하였다. 이때 角干林宗은 아들이 없었는데 王이 吉達을 그의 筑子로 삼게 하였다. 林宗 은 吉達로 하여금 興輪寺 南쪽에 門樓를 짓게 해서 매일밥 그 門樓에 자 게 했는데, 그 門을 吉達 F1 이타 불렀다. 어떤날吉達은 여우로 변하여 달 아나고 말았다. 〈고가시 〉가 鬼神울 시 켜 잡아다가 죽였다. 그로부터 는 鬼 神둘은 〈고가시〉의 이름만 들어도 무서워 달아나는 것이었다. 그 당시 사 람이 이런 詩를 지었다. 〈聖帝의 魂이 낳으신 아들, 고가시 의 집 이 여 기 로다. 달아나는 雜鬼들 이여, 여기 머물지 말라〉 이 詩를 써서 붙여 鬼神을 쫓는 것이 나라의 風習이 되었다 .8)
8) 『完譯三國遺事』(金思燁)
이 설화에서는 귀신은 혼령의 화선이오, 그것은 쉽사리 인간이나 만 동물로 화신할 수 있고. 또 초인간적 능력의 소유자며, 귀신에 논 선과 악의 두 종류가 있으며 그들의 활동시간은 암흑의 밤임을 알게 된다. 왕의 靈이 화신해서 桃花女와 동하여 낳은 아들의 이름 〈鼻荊郞〉의 名義는 무엇일가. 이는 필시 신라고유어를한자의 音借 혹은 訓借表記임에 들림없다. 〈鼻〉의 訓은 〈고〉, 〈非 l 〉의 訓은 〈가 시〉이니 곧 〈고가시〉일 것이다. 〈고〉는 〈大〉의 訓. 〈가시〉는 〈鬼〉 의 訓이다. 중세기에는 OE 〉가 〈귓〉으로 나타나 있는데 이는 〈구이〉 C 〈구시〉로 볼 수 있다. 〈가시 • 구시〉가 OU 〉란 推證을 뒷받침해 주는 일례를 『三國遺事』 卷二, 「篤洛國記」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가운데 鷲洛의 시조가 강림하는 山峰名 〈龜旨〉가 보이거니와 이 〈龜旨〉 또한 0 t〉의 訓 〈구시 • 가시〉와 대응한다고 본다. ……三月의 腹浴하는 날에,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北쪽에 있는 龜旨에 서 여러 사람을 부르는 이상한 소리가 들렀다. 마을사람들 二, 三百명이 모여 그곳에 가니, 사람 소리논 들리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소리 는, Ii'이곳에 사람이 있느냐?』라고 묻는다. 九干 등이 Ii'저희들이 있사읍
니다.I]하니, Ii'이곳은 어단고?』, 『龜旨운시다.I]라고 答하니, 소리는 또 『皇 天이 나에게 분부하셔서 이곳에 오게 하여 나타를 새로 제우고 나를이곳 君主가 되라 하셔서 이제 이곳에 내려왔노타. 너희들은 峰꼭대기 흙을과 면서 다움과 같이 노래 하라. 〈 구시하 구시하 머리를 내어라 내지 않으면 구위서 먹겠다.〉 이같이 노래하면서 춤추면, 그것이 大王울 맞아 기뻐 뒤는 것이 되도다 . .JJ 그래서 九干둘은 시키는대로 줄거이 노래하며 춤추었다. 여기의 〈龜旨〉 는 〈荊〉과 마찬가지로 O t〉의 訓이면서 그 語義는 〈神聖, 神 露 , 不可思議, 威力〉의 뜻을 내포한다. 오늘날 무당이 벌 이는 행사물 〈굿一구시〉라 하는 것도 또한 이 말에 유래한다. 일본 의 전국신화인 〈天孫降臨〉의 설화에 천손이 산정에 하강하는데 그 峰名은 〈筑紫0 日向 0 高千糖(J)
2. 幣串과 禁繩(注連繩 • 시메나파) (1) 稷(미소기)와 幣用 a) 〈膜〉의 意義 신의 제사지내는 사람이 몸을 깨끗이 하는 〈入군왕〉(미소기)의 風 習은 매우 오래전부터이다. 『三國追事』에 보이는 「篤洛國記」에는, 3 월에 膜浴日이 있어 그날에는 목욕하고서 會飮하는, 말하자면 일 종의 屈막이 의 풍습이 있 었음을 전해 주고 있으며 , 『高麗史』에 는 6 월 15 일을 流頭日이라 하여 膜浴하는 낱임을 기록하고 있다. 六月의 丙寅에 侍御史 두사람이 室官과 더불어 廣眞寺에서 만나 流頭飮울 하였다. 나라의 風俗에, 이달 十五日 東쪽 냇가에서 泳浴하고 머리를 빗 어 더러움을 털어버린 다음 會飮(모여서 술 마십)한다. 이것을 流頭飮이 라 한다. (『高麗史』 卷二十 • 明宗十五年) 이처럼 膜浴의 풍습은 매우 옛날부터 있었거니와, 특히 祭主 @官)가 제사를 지낼 때는 목욕재계, 청결한 흰 옷을 입고 지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해산 또는 사망 둥 더럽혀진 집 사람이 祭主가 될 수 없다. 한국인이 白衣를 즐겨 입는 것은 古來로의 풍습이며, 중 국측의 고문헌에도 〈衣服潔淸〉이타 하였다. 아래의 기록은 『日本書 紀』에 전하는 允恭天皇이 鹿去했을 때 신타국으로부터의 조문객들 이 모두 〈素服〉했음을 말하고 있다. 四十二年(1)春正月 , 天皇崩 b 主 L 요. 是'다新羅(1)王, 天皇寸균t더負 b 主 L 心 9·U 乃 b: &聞왕-c, 驚총慈^-c, 調(1)船八十般及守種~(l)樂人八十宅貢 o. 是, 對 소?E 馬'다泊 b T 大총t다晃 <. 筑紫(博多)t학뀜j b 乙 主ts 大총t댜突 <. 難波津(難波 港)t닥泊 b T 寸tg?t皆, 素服총 o. ……(紀卷十三 • 允恭天皇四十二年) 일본에 있어서의 膜浴의 풍습, 죽 〈 A 군왕〉는 또한 그 유태가 오 태다. 上記한 바와 같이 (e. 鬼神條) 伊邪那岐命이 黃泉國에 있는 妻 를 만나고 되돌아와서 죽음의 더럽힘을 씻기 위해 筑紫의 日向(지
명)에 있는 냇물에서 몸을 씻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伊邪那岐命, 寸균t댜닳 b T (黃泉國J: 9), it.i: l :J:.t,追 L, f梅 L 、f曰i:J:.〈. 「吾, 前근et 댜t汚f; 祿1& 총處'학到Q. b故.,h 吾 b 냉 r /납J o: )F, 1濁1L機 t 宅V>淮 il> 0', f去~ ft」&0 t:主 O -C, it.i: l :J:.t,往총f筑紫rJ)D日 (向J•·r J)小戶(/r.).터橘ifL I J乃) 1樣'原Ibt 乙至 9 iL,-C, *破七 촌,除 >^ t오 主소」 (『神代紀』 上) 제 사에 흰 옷을 입 는 것 도 오래 니 , 〈是t乙, 大賜態尊(仁德天皇), 素引 〉服(t仁. .德:T紀 主 •? 卷b十 T一,) 란發 ‘哀 기I.. 만사t에으 主그간 T일,단 죠突을 h L볼 t .수.: 主있丘乙다 .&| it£|it의冊T총 t..: 이같이 고대에 제사대 흰 齋服을 입던 습속이 平安時代에 이르 린 더욱 확대되어 간다. 産婦, 切腹하는 최인의 복색, 神社에서 神樂울 연주하는 무녀, 혼례 때의 신부까지 白衣를 입게 되었는데, 이는 모두 不淨에 물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다음 〈入군왕〉의 語義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일어사전 등에서 는 〈語義未詳 • 졌뿐. 로 解함은 찰못〉아라고 적혀 있다. 이것은 우리 말로 解해 보면, 〈 A 〉 는 〈물〉(水), 〈춘풍〉는 다음 용례에서 보듯 〈淸〉 의 訓 〈식〉이다. 〈물로 맑게 하다〉의 뜻이 된다. 식 글 청 (淸) (石峰千字文 12) • 식 다(淸了) (同文類解) 君|乙i b 言:& 0 繁총在노古 b 鄕곤스 0 明乃 日-r香 ~b. JIi•t 댜*潔七살身 L t行〈 (『萬葉集』 卷四 ·626) b) 幣用(요훈)의 語義 신에게 바치는 예물의 비단동속을 幣串이라 한다. 이것을 神前에 공물로 하는 의의는, 幣用이
척고, 거기다 깨끗한 조선종이를 달아매는 것, 또는 재 위에 있는 神才:에 糸 • 麻 • 木綿 • 網 • 紙 등을 매다는 것 둥이 그것이다. 다음 尼막이로 쓰는 幣串은, 때묻은 옷의 동정 등을 神木 가지에 매기도 하고, 마울 제사의 神等에 尼막이 재료로서 현웃 한 벌을 매달기도 한다. 이것을 야 T 막이〉 야羽粉라고 한다. 幣用에 종이나 실을 쓰기도 하지마는 정석으로는 비단이어야 한 다. 고대인은 그러므로 비단을 신성시하고 왕왕히 신의 대역으로서 祭지내는 풍습이 있다. 『三國遺 事 』에 실린 「 鷲 洛國記」에는 시조인 首 露 王의 夫人, 許皇后가 阿距胞國(印度)으로부터 바다를 건너 篤 洛에 도착하자, 먼처 높은 괴에 올라가서 입고 있던 비단 바지를 벗어서 그것은 幣串으로노 삼아 山 磁 에게 바치는 의식을 보여 준다. 또 卷一의 「延烏郞 • 細烏女」條에는 延烏夫 婦 가 함께 일본에 건너가 니 신라에는 해와 달이 빛을 잃게 되었다. 그래서 使者를 부부에게 보내어 들아오도록 告하니, 부부가 이르기를 자기들이 日本에 온 것은 천명이라 들아갈 수 없다 하면서 그 대신 마누라가 짠 細 縮 를 두 사람의 代役이라면서 使者에게 주었다. 使者가 그것을 가지고 돌아와서 祭지내니, 일월의 광명이 다시 돌아왔으므로, 그로부터 는 그 비단을 국보로 여겨 소중히 간직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논 延烏(日)와 細烏 O) 의 분신, 즉 日月의 精 으로서 바단을 다루고 있다. 일방, 일본측 기록으로 『日本 書 紀』 卷六, 垂仁帝二年條에, 任那로 부터의 使者, 縣那易 n 七智가 귀국할 즈음에, 赤 綱 일백필을 주었다. 귀국한 뒤 그 赤網을 창고에 갈마두었더니, 신라가 그 소문을 듣고 군사를 이끌고 와서 빼앗아 갔다고 하는 기사가 실려 있다. 이 경 우에도 赤網온 한갓 옷감이 아니라 靈 威의 상칭물로서 신성시하였 음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의 幣用에 대한 신앙과 그 습속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 였다. 즉 幣串온 神의 御衣라 하여 神前에 바친다. 記紀의 神代記 錄을 보면, 天照大神이 天岩굴 속에 숨어버리자 부하 사람들이 大 神울 굴 밖으로 나오도록 하려고 샤만적인 행사를 대대적으로 벌이 는데, 그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죽 天香山의 眞賢木울 세우고.
아랫가지에는 백색의 和幣와 청색의 和幣(이것들은 木웁법과 麻의 幣t B 울 이름)을 뎌루어 놓고 祭지내고 있다. 다음 노래에는 幣用으로 쓰 인 것이 어떠한 것이었던가를 찰 보여 준다. 大伴坂上郞女, 神宅祭石歌 竹....玉..在 奧山繁L(t J t)乙 賢貫木총(垂J )b枝 …t乙. . . 自(『쨩淡갬?붙남菜』 杰卷챙三& • 3b7 付9) 낡f 면혼宅 齋`.,: D| i b 寸多 頂困―상여)이나 닥나무(格)를 찰게 쪼개어 白 娑처럼 만둘어서 神出 에 쓰는 것. 竹玉一가는 대를 짧게 끊어 노끈으로 렌 玉. 또한 神事에 씀. 木綿_神事에 쓰는 삼이 나 닥나무의 織維. ] 〈깊은 山 常綠樹가지에 白香걸고 木綿걷어 齋免놓고 竹玉울 홈뻑 드리우 고……〉 이 노래에는 이어 〈鹿猪 E 心 O j漆折 b 伏산 T 手弱女 0 %寸 0 取 b 惡낡 力`
tii손g石神(J)스御 군坂,. K m幣 근:奉t’ ,) `齋.,’소 命|i母*‘父tt力 엠爲 (『萬葉菜』 卷二十 • 4402) 〈무서운 검님재에 幣用받들어 목숨의 無事합을 밀고 있는 까닭은 父母님 위해서로세.〉 이 노래에서 보는 것과 같은 재(坂)神(城陳神)에게 幣用 바쳐서 長 生을 비는 광경은 두 나라가 다 같은 습속을 가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2) 禁繩과 注連繩 a) 〈시 메 나파〉의 材料와 縮法 우리 나라의 습속의 하나인 〈금줄〉(겅 구출 • 인줄)을 일본에 서 는 〈注 連繩〉(l., lsb t.r:.~i • 시메나파)라 한다. 이 풍습은 두나라가 다 같이 전 국적인 것이 아니고 일부 지역에 국한되어 있었다. 故秋葉隆博士는 해방전 경성 제대에 재직시, 우리나라 각지를 두루 실지 답사하여 상세한 보고서를 발표하였는데, 거기에 의하면 이 습속이 행해지고 있던 지역을, 경상남·복도, 전라남·복도, 충청남·복도에 보편적으 로 보급되고 있되, 경기도와 강원도는 반 정도의 밀도를 나타내고 있고, 북한에 치올라갈수록 거의 볼 수 없다 한다. 일본은 九)·i ·I 와 西南部地域에 국한되어, 이 풍습이 행해지던 지역이 하나의 圈울 형성하고 있음을 안다. 그리고 이 풍습은 몽고 • 만주에 있는 것과 논그재료나구조가전연 별개의 것이며, 따라서 南部朝鮮·九州· 西南部地域 일원의 풍습은 남방계의 습속이라고 보고하고 있는 것 이다. 다음은 검줄의 재료와 이것을 꼬는 법(織法)에 관하여 보기로 한 다. 일본에서는겁줄을만드는데는새짚울꼬아만든다. 매우크고 굵은 것도 있으나, 보통은 두가닥을 꼰 것이다. 꼬는 법은 보통의 새끼오R 즌 반대로 외로 꼰·(左梅)다. 게다가 새끼 앞과 끝을 꼬아 남 간 채 꿇어버리지 않고그냥 드리운다. 우리나라 검줄도 기본적으로 논 같은 모양이다. 재료는 새 나락짚율 두가닥으로 의로 꼬아 새까 끝을 드리우지마는 드리우지 않는 것도 있다. 그러면 이 줄이 반드시 왼새끼여야 하는 의의가 무엇인가에 관해
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우리나타에서는 의로 꼰 새끼는 잡귀가 무서워 싫 어한다고 믿고 있다. 日 本 의 경우 秋 葉隆 博士는 아래와 같이 각종 예 를 들면서 「左」를 숭상하는 사상의 나타남이 라 하 였다. 일본의 시메나파의 의로 꼬는 것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해석이 있으나. 日 本紀神 代 紀合解 에는 〈繩 은 直 也. 左는 陽德 也. 淸 明의 義 也 〉 라 있어, 이는 天道 의 左旋 울 나타낸 것이타논 설이 있다. 즉 남 을 향하여 태양의 걷 올 바라보면 左 로부터 나와 右로 간다. 왼새끼의 시메나파는 그天 道 의 左 旋울 나타내는 것이타는 설이 있다. 이에는 중국으로부터 전해온 음양 사 상 이 영향을 끼찬 것 인데, 左가 청명한 것이란 신앙은· 고대로부터 우리 조상들이 지녔었다고 여겨진다. 왜냐하면, 일본에는 옛날부터 右보다 左 가 높다 (尊) 는 사상이 있은 듯하니 , 가령 神代의 記 1托 에 , 伊邪那 岐 • 伊 邪 那美 二 柱 의 神이, 하늘 기둥을 둘렀다는 신화가 있는데, 그때 여신이 왼 쪽 으로부터 돌고, 남신은 바른쪽으로 들고서 결혼했다. 그래서 낳은 아 이는 煙子(거머리같은 아이)였는데 보통아이와는 달라 병신아이였으므로 짚으로 만든 배에 실어 바다로 띄워보냈다. 이것은 女神이 기둥을 左로부 터 돈 때문이리타 하여 이번에는 남신이 左로부터 돌고 여신은 右로부 터 돌아 의식을 다시 했더니 비로소 훌륭한 아이를 낳았다는 신화가 있다. 이것은 左를 尊 崇하 는 사상의 나타남이타 생각한다. 또 궁중에서는 고래 로 左大臣이 右大臣보다 위에 있었으므로 左大臣을 一之上이라 하였다. 또 武班이 성해지자 源 • 平時代에는 烏 帳 를 접는 풍습이 있었다. 左折하 는 것과 右折하는 것이 있는데, 源氏는左折, 平家논 右折이었고, 諾曲 10 》 의 「烏幅子折」에 서 보거 니 와, 左折은 상충인이 쓰고 右折온 五位 以下의 사람이 썼다. 또 결혼식의 경우, 신랑은 왼쪽에 앉고 신부는 바론쪽에 앉 는다든가, 아이가 태어나서 産衣를 입힐 때도, 사내아이는 왼소매로부터 손을 넣고, 계집아이는 오론 소매로부터 손을 넣어 입히듯이, 여러가지 민속 가운데 左를 높이 는 풍습이 매 우 풍부하게 존재 한다. ……西洋에서 는대개 右方이 바른 것, 훌륭한 것으로 여기는데 대하여, 左논 굽(曲)은 것, 그릇된 것이란 사상온 언어상에서 증명된다 ....... 일본에서는 반대로 左가 直, 右가 曲이다. 그것은 故白 鳥 庫吉博士의 說이거니와
(左)의 〈 D f..:〉는 〈 O f..:t왕〉(專念)라던가
굿남. 左 0 方一東쪽. 이같이 〈左〉에는 〈誤 • 非〉란 관념의 요소가 내포되어 있다.
天照大神이 들어간 岩穴의 문을 여는 장면의 기사에 다음과 같이 검줄을 〈시리구메나파〉라 하였음. 思部神, 十tgi七L端, 出(心之t£繩 1(1 注, 繩, 主t료云ti〈, 左't繩,1t 0 I端1l ,出L, 寸tt &I,、 k. 此 宅ifL 斯, 利<供 b梅 難t, 波Ii & 云소) O界 tb 寸 t (『神代紀』上) 布刀玉命, 尻L9 久< 米o 繩t,12 在 其 0 御* 後L9方 ^t 다空 왕b度t LT …… (『古事記』上) 이 〈시리구메나파〉의 語義에 대하여 일반적인 일본의 고어사전 등에서는,
이 없다고 하는데 그대는어찌 주저하고만 있느냐고 호소한 노태다. 아뭏돈 上記두 노래에서는 記紀에서 〈 L 沈〈 b tgi〉라는 것을 〈 L 沈tgi〉로 訓記하고 있음울 보게 되는데, 이 호칭은 〈 L 沈〈 b t.r:~i.〉보다 새로운 것임을 알거니와, 이 語義에 관해서도 몇가지 다 론 해석 이 있다. 本居宣長 12) 는 다만
結 論
맺음글 : 농후한 한국적 요소 『萬葉集』은 질, 양 모두 타민족의 문화유산에 비 겨 볼 때 조금도 손색 이 없는, 일본의 운문문학의 寶庫라 할 수 있다. 『萬葉集』 所收 의 노래 총 4, 530 여 首僚積 k 4, 200 여 首, 長歌 260 여 首, 旋頭歌 60 여 首) 란 방대한 수량도 타민족에 그 유례가 드물거니와, 그 문학사적 위치 며 문학성 또한 만만찮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고대의 집단적 口 踊時代를 지나 이 萬葉時 代에 들어와서는 접차 집단성과 口 踊 性을 捨象하고, 개성적인 창작가요의 탄생을 보기에 이르렀다. 『萬葉集』 에서 확립된 短歌는 그 뒤 和歌라는 명칭으로 바뀌었으나, 그 형식 과 창작정신은 그대로 하나의 전통이 되어, 일본민족의 韻文學의 柱礎가 된 것이다. 『萬葉集 』에 수록된 노래는 대체로 5 세기 전반의 것에서 8 세기 전 반의 작품을 망라하였고, 歌集 편찬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770 년 전후로 보고 있다. 이 『萬葉集』의 노래는우리나라 향가와대비되는 것인데, 오늘날 향가는 삼국유사와 군여전에 전함은 주지의 사실이 나 均如의 향가는 960 년 전후, 죽 10 세기 중엽에 이룩되었고, 삼국 유사는 이보다 2 세기나 뒤늦게 편찬된 것이다. 그런데 眞聖女王 2 년 (888) 2 월에 왕의 명령으로 魏弘과 大短란 중이 향가집 『三代目』 울 편찬하였다고 전하나 오늘날은 없어져서 볼 수 없다. 三國遺事 와 均如傳에 실려 있는 향가는 모두 25 首분이니 이 수량은 『萬葉 集』의 4, 500 여 首에 비 하면 그야말로 九牛一毛격 이 니 한십 하기 짝이
없다. 자료의 이같은 빈곤은 우리의 고대문학을 천명하는 데 큰 지 장이 되고 있다. 그러나 『萬침팝 & l 을 우리가 깊이 검토하면 할수록 그것이 지닌 여러가지 요소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곧 韓國的 要素임을 발견하게 되고, 따라서 他國의 문학작품이지마는 이것은 우리나라 고대의 문학 • 언어 • 민속 기타를 탐구하는 데 귀중 한 자료가 되며, 우리나라에서 자료 부족으로 말미암아 연구가 두 절되다시피 된 현황울 타개하는 열쇠가 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本論에서 규명한 여러 문제에 대한 해답을 여기서 묶어 보되, 목 히 韓國的 要素에 초접을 맞추어 결론을 보면 아래와 같다. (1) 鄕札파 萬葉假名 향가나 萬葉의 노래는 다 같이 漢 字를 빌어서 각자의 고유어를 표기한 접이 주목을 끌게 된다. 우리나라의 표기법을 鄕札이라 부 르는데 대하여 일본측 표기법을萬葉假名라 부르거니와, 이 양자의 구조와 발달과정을 살펴보면, 양자는 결코 우연이라고 할 수 없는 동질성을 발견하게 되며, 나아가 萬 葉 假名논 이미 우리나라에서 고 안하여 오랜 시일 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완성시킨 표기법을 처 나타에 건너간 우리나라 지식인들이 전과하여, 일본어음에 알맞 도록 개조한 것임을 알게 된다. 일본의 경우, 漢字의 토착화 과정을 더듬어 보면, 한국처럼 한문 이 수입되기 이전에 고유문자를 소유하였다는 흔적은 보이지 않는 댜 한문이 들어온 시기라든지 경로는 한국의 경우보다 명백할 분 아니라 자료면에 있어서도 풍부한 양을 구비하고 있다. 이러한 접 에서 고대 일본에 있어서의 漢字 추이를 이해하는 것은, 한국의 부 족한 자료몰 보충해 준다는 의미에서 중요한 일이다. 일본에 漢字가 처음으로 들어간 것은 『日本 書 紀』 기타의 기록에 의하단 백제의 近肖古王~阿華王, 죽 4 세기 후반경 백제의 使者 阿直練 博士 王仁등이 전한 것으로 되어 있다. 漢文이 일본의 지도 충에 보급됨과 동시에 신라의 鄕札도 도입되어 일본 고유어 표기에 이용되었다. 고유명사의 표기는 일본어의 音型울 그대로 轉寫하고 있다. 그러
할 때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音 • 訓울 交用하고 있다. 한국이나 일본에 있어서 音 借 • 겁 II 借의 표기법은 어디까지나 그 나라 고유어 의 음운체계에 적응한 토착화가전제로되어 있거니와, 일본에 있어 서의 토착화는 漢 字가 들어온 직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까닭은 처음 백제로부터 일본에 將來했다는 漢 典 천자문아나 논어 를 일본인에게 敎 授 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팔연코 백제에서 시행 하고 있던 교육법 그대로 실시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백제에 있어서 천자문이란 것은 初學者에게 멘처음으로 가르치는 교과서아 며, 그 책 에는 漢 字마다 겁 Il 과 音이 달려 있어, 이 두 가지를 아울 러 익히게 한다. 죽 初 學 者는 漢 字의 글자마다 訓과 音울 한꺼 번에 익히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漢 字가 수입되자 인저 音과 訓의 토착화 과정을 거 쳐, 단계적으로 誓 記 體 一 吏讀 一 鄕 札로 발전해 갔는데, 일본에서도 한국과 같은 替 記 體 式의 구문법, 吏 讀 와 같은 宣命이나 祝詞, 鄕 札 과 같은 萬葉假 名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상호간의 발달단계를 찾아 내기가 곤란하다. 게다가 고유명사의 표기법 같은 것은 그 . 가 운데 포함되어 있어서, 고유명사의 표기법이 최초에 발생했다는 혼 적을 찾아낼 수가 없다. 그러한 접등으로 보아 일본에 있어서의 토 착화된 표기법은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지식인들에 의하여 이미 우 리나타에서 아용되고 있던 여러가지 방법이 동시에 쓰여전 것으로. 보여진다. 문장 표기법을 보면, 신라에서는 誓 記 體 吏 讀 에 대립되는 訓吐式 吏讀 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에는 佛經이나 漢 典의 訓 讀 에 있어서 같은 방법을 쓰고 있다. 이것이 소위 G 용 b 假名〉인데, 우리 의 吐에 해당한다. 물론 이것은 訓吐式 吏 讀 를 본따서 발전시킨 형 태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의 訓吐式 吏 讀 는 漢 字를 토착화시켜서 읽는데 한정시킨 것인데, 일본서는 讀 法에만그치지 않고, 한걸음 나아가 표현의 한 양식에까지 발전시킨 흔적이 있다. 가령 일본의 古史 書 『古 事 記』의 문체가 그 대표격이거니와, 이러 한 문체는 일본식 讀 法울 기준으로 한 것이며, 이같이 문장의 표현 까지 미찬 것은 신라에 비하여 전일보한 것이라 하겠다.
가요의 표기법을 보면, 『 古事記』나 『日本書紀』 에 서는 어디까지나 一字一 音 의 엄격한 표음에만 의거하고 있다. 이러한 표기법은 신라 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것이 『萬葉渠』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신라에 있어 서 는 뽑記體 -> 吏說,i ->鄕札로 표기 법 이 발전해 간 것 과 마찬가지로, 일본에 있어서도 『古事記』와 같은 訓吐式 吏 ru 'i , 宣命 에서 보는 뽑記體吏話文이 『萬葉梨』의 가요표기에는향찰과 마찬가 지로 일본어를 漢字 의 音 과 訓을 빌어서 표기하였다. -溪葉假 名라는 것이다. 『萬葉染』 全二十卷 중에 여섯 卷(五 • 十四 • 十五 • 十七 • 十八 . 二十)은 순 음차표기 를 하여 예 의 이 나, 아무튼 『萬葉菜』에 서 萬葉假名논 확립된 것이며, 그 構 文法은 향찰과 다를 바가 없는 동 질적 表記法인 것이다. 다음 양국의 用字의 성격과 字音을 검토해 보아도 그 동질성을 명백히 인정할 수가 있다. 대체로 日本假名의 변천을 학자들은· 대 충 제 단계로 나누고 있다• 죽 古 府 • 中 間層 • 新層 으로 구분하는 데, 古 層 은 推古朝(A. D. 593~628) 이전에 발생한 假名를 말하고, 新 層은 8 세키에 長安昔울 기반으로 해서 발생한 假名 이며, 중간총은 古 層 과 新層울 제외 한, 즉 奈良朝時代 (A.D. 710~784 ) 의 假名를 말 한다• 이것은 따로 萬葉假名라 부론나 다시 이것을 세분하면 A 期 (620) • B 期 (700) • C 期 (720) • D 期 (760) 로 나눌 수 있다. 이 기 간에 사용되어 있는 양국의 字類를 바교해 보면, A 時期의 假名는 上古 音의 반영이 강하며, 이것은 일본이 직접적으로 중국으로부터 수입 해 온 것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사용하던 上古 音 의 일부가 일본에 들어와 推古朝 이전의 假名로 토착화했으며, 그 뒤 中古 音 에 접하 게 됨으로써 새로운 新屈 의 假名體系를 형성한 것으로 보아진다. 우리나라의 향찰이나 지명표기의 用字에 관한 연구가 아직도 불충 분한 현황에 비추어, 萬葉假名에 나타난 이같은 古層의 假名字 音 을 역으로 고대 한국에 있어서의 漢字音 의 성격을구명하는데 매우 중 요한 참고자료가 됨온 물론이다. (2) 韓國의 歌形과 동일한 萬葉의 歌形 『萬葉集』에 는 歌形으로서 長歌 • 短歌(反歌包含) . 旋頭歌의 세 歌形
이 柱礎가 되어 있고, 이 중 에 서 도 短歌 形만은 일본 운문의 근간이 되어 오늘날까지 그 생명력을 잃지 않고 전승되어 온 것이다• 이 三大 歌 形 중에서도 長歌 형식은 우리나라 歌 辭(가 k) 형석과 꼭 같 은 것인데, 이 형식은 한 말로 長 歌 라고 부르지마는, 자세히 검토 해 보면 .:z.. 명칭이 매우 모호함을 발견한다. 즉 長 歌 라 규정지은 歌降 중에는 지극히 短 小한 것, 죽 7 句 또는 그보다 다소 긴 것이 있는가 하면, 문자 그대로 간 것은 149 句의 것도 있는 대문이다. 이 長歌 라 目하는 歌 形이 우리 歌 形과 동질의 것이라면, 우리 가요 의 諸형식을 고려에 넣는다면 단순히 長 歌 일색으로 물아칠 것이 아니라, 좀더 세분해야 마땅함을 이해하게 된다. I ―時 調體 (短 歌 ) (日本의 長歌 )_-3 句 6 名 體(鄕歌體 ) ― 歌詞體 ( 長歌 ) 사실상 『 萬葉菓 』에는 長 歌 라 이르는 가요 중에는 上記 분류와 같 이 시조체나 3 句 6 名 體 와 꼭같은 歌 形도, 그리고 歌 詞 體 와 동일한 형 석도 포함되어 있음을 쉽사리 발견할 수 있다. 旋頭 歌 形온 5.7.7 을 중첩한 형석으로- 이 歌 形은 우리 가요에서는 고려 가요 중에서와 민요(도라지 • 아리 랑)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으 로, 이 또한 일본 특유의 歌 形은 아닌 것이다. 『 萬葉集』 에 있는 歌 形이 표현법과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것을모 방 이용한 데 대하여는 몇가지 素 因울 생각할 수 있다. 신라는 7 세기 중기에 이르러 숙적이던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 고 삼국을 통일하여 한반도 전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統三後 神文· 孝 昭 두 王代에 걸쳐 문물이 가장 창성하였다. 漢 詩며 향가도 크게 유행한다. 이 시대에 일본은 天武 • 持統의 두 천황이 동치하였는 데, 의교정책으로 신라와의 우호를 돈독히 한 까닭에 양국간의 왕 래는 찾아 신라 僧의 도일, 문화적 천선사철의 왕래도 빈번하여 찬 밀의 도를 더해 갔다. 원효대사를 위시한 신라 고승들의 佛經注疏 등은 처작됨과 동시에 일본에 전해졌고, 『 懷 風漢』(日本 最古의 漢 詩
菓 一卷 天智天皇에 서 奈 良朝까지 의 淡i유를 모은 것 . 作者 64 人, 詩 120 編收 錄 )에는 〈於長王宅 案新 羅 客 〉 이란 題下의 漢 詩가 여러 首 보일 분 아니라 일본의 正史에도 〈新 羅 客울 冥하다〉라는 기사가 연달아 나타나며, 신라로부터의 渡來人의 기사도 동장한다. 이 天武 • 持統帝 시대논 문학이 매우 융성하여 漢 詩며 和 歌 의 歌 培 에는 뛰어난 많은 시인 가객이 배출되었다. 『 懷 風漢』 가운데 있 는 「案新羅客」의 漢詩는 그 詩想이 『 萬葉i잎 의 노래와 유사한 것도 많고, 일방 신라객이 화답한 시에는 향가의 歌意를 연상케 하는 것 도 있다. 그러면 이같은 시 인 가객들의 교류와 접촉을 동하여 향찰 이나 향가도 전해졌을 것은 물론이요, 또 일본 조정에는 신라출신 자, 또는 그 二 • 三世도 많았으며, 本論 歌人紹介에도 언급한 바와 같이 그 出自가 한반도임이 명백한 歌 人도 있다 . 額田王은 萬葉 第 一期의 대표적인 宮廷 歌 人이거니와 그의 父인 鏡 王은 백제로부터 渡來한 왕족이란 說이 유력하고, 山上憶良 또한 백제인이란 것이 거의 定說이 되어 있다. 사실 萬 葉 의 노래 형식 분만 아니타 詩想· 取題, 動植物, 民間信仰, 習俗등에 있어서 한국적 인 것, 한국적 색 채가 농후한 것이 너무나 많다. 『洪葉集』에는 「東歌」여遷回 노래)란 목이한노래가 따로收 錄 되어 있는데, 그 歌風이 민요저인 정조를 담고 있다. 여기서 東園 이란 것은 지금의 關東地方울 지칭함인데, 이 곳은 天武 • 持統의 兩朝 사이에 일본으로 이주해 온 백제와 신라인둘을 정책적으로 이주 정 착케 한 곳이다. 따라서 이 지역에 사는 백성의 노래( 東歌 )에는 득 이한 정서와 생활이 토로되어 있음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5 · 6 세기경까지 일본에 이주해온 韓 人둘은 九州 • 近 畿 지역을 중십 으로 정착했었는데, 7 세기 이후는 위와 같이 東部지역이 그들의 정 주지가 된 것이다. 이와 같이 고대에 있어서 많은 韓 人둘이 끊임없 이 일본 땅에 건너가서 정권에 참여하고 문화창조에 중십적 역할을 다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일본의 고대가요에 있어서도 한국적 영향 이 철대적이었음온 두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다.
(3) 『萬葉集』에 담겨진 韓國語 韓· 日 양국어는 서로 찬족관계에 놓여 있을 분 아니라 고대에 있어서는 문화적으로 우위에 처해 있던 우리나라로부터 인적 물적 양면에 걷쳐 일본에 일방적으로 이입되었고, 이에 수반한 언어도 함께 들어왔음을 이미 他紙 1) 에서 발표한 바 있거니와, 奈良朝 언어 로 기록된 萬葉의 노래에는 우리나라 삼국의 언어 및 형태와 동질 적인 요소가 풍부하게 담겨져 있어, 이 방면 또한 자료의 빈곤으로 고대어 해명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우리 학계에서, 이를 타개하는 길의 하나로 『萬葉集』을 언어학적 면에서 연구대상으로 상아야 합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萬葉集』의 많은 주해서에는 일본학자들이 한 국어를 참고하지 않은 때문에 未詳의 個處가 너무나 많음을 보게 되며, 해석된 걸로 처리한 어구라 할지라도, 한국어와의 관련성을 염두에 두고 재검토를 가한다면, 해석을 달리해야 하고 수정을 해 야할 어구도 허다한 것이다. 최근에 발간된 日本古典文學大系 중의 『萬葉集』(四冊)(岩波 書 店)에서는 注解에 한국어를 많이 참작하고 있 는데,.이 시도는 종래에 없던것이지마는인용된한국어가古語아닌 것도 있고, 注解者의 한국어 지식 이 얕아서 미흡한 결과를 빛어 놓았 다. 앞으로 『萬葉集』의 감상에 는 韓國語學울 바탕으로 해 야만 정 당 한 해득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하에 이러한 관접으로 새로운 注 解가 필요함을 입증하기 위하여, 몇가지 실례를들어 보기로한다 .2l a) 〈神〉에 관련된 語類 〈神〉의 日語는 〈力 합이나 萬葉假名는 〈迎微〉이며 발음은 ka-mi , 이 말은 우리 말 「점」 (kAm) 과 대 웅한다. *kA·mI \/CUA·-mmI 巨 一朱都慕蒙( •百 祗濟味의( 新始羅祖六)代 王) 1) 『古代朝鮮語上 日本語』(講談社) 『記紀萬葉 0 朝鮮語』(六興出版) 2) 『記紀萬葉 0 朝鮮語』,p .64~ p . 111. 여기서는 12 項目에 결쳐 韓日兩國語의 對應關 係여 를例 示提示코하자였합다.. 이 中에서 며庫」 K 主? h 石語類, 藝能 • 埃樂關係 0 語類를 引用하
言 ....... 음의 音 l 맹 으로 〈 음 〉 은 〈母 • i雄 • 茅 • 牙 • 抵 〉 의 語義 를 낳게 되어, 이 〈 꿈 〉 은 원래 〈 女神 〉 임울 말해 주다가 뒤에 가서 〈 神 〉 의 凡稱으로 轉義 한 것임을 안다. 日 語 의 〈母〉 는 〈 治心〉이며 萬葉 假名 로는 〈 於母 〉 , 발음은 <6· m6> 이 니 , <음 〉과 대 응한다. 근 b( 空) • ;bt.:?dJ. 〈춘 5 〉 는 〈空中 • 空間 • 天 〉 이란 語 義 의에 〈 思 5 空 • 數 〈空 〉 (『 萬 葉 渠 』/i\ ·1520) 등의 의미로도 쓰이는데, 〈 心 情 ·心思 〉 란 말과 같다. 이 처럼 일어에는 추상적 의미도 내포되고 있다. 우리말에 〈峰 • 上 〉 의 訓이 〈 수리〉인데, 이 말의 原 義 는 〈수( 雄神 ) • 리 ( 住 處 ) 〉 이다. 〈雄〉 의 訓이 〈 수〉임은 고대지명에 많이 보이며, 「 東夷 傳」( 『 三 國 志 』) 의 韓 條 에 나타나는 〈 蘇塗〉 의 선保〉 도 〈蘇〉 ( 雄 • 男)神울 모시는 聖域。 의 뜻 이다. 上忽一云車忽(『三國史記』 卷 三十七 • 地理四) 廷〉이 곧 〈車 〉(수리)입을 알거니와, 이 말이 일어 〈蘇 良〉(t so-ra) 와 대응된다. 〈~?t..:?dj. 〉 는 『 萬葉集 』에서 〈 海〉 를 수식하는 沈詞로 많이 쓰이고 있거니와, 이 말의 語義 물 일본학자들은 〈 b t..:〉는 〈海〉, 〈?〉는 〈之 〉 (QJ), 〈 A 〉는 〈力 냐 入〉( 神 )의 縮音 으로 보고 있다. 〈 b t..:--::>dj.〉는 萬葉 假名로는 〈和多 津美 〉니, 발음은 wa- t a- t u-m i다. wa- t a 는 바률 • 바다 와 대응하고, t U·m i는 上記 t u-m i(都 慕 )와 대웅하는 것으로, 결코 > (tu) • 〈 A 〉 (m i)로 나뉘어지는 것이 아니다• 51 t V( 宇氣比 • u-ke-Fi, 祈誓) 이 말은 記紀 및 『 萬葉集 』에 많이 나타난다. 이 말의 어의에 대 해서 여러가지 해석이 있지마는, 어느 것도 어원적인 설명이 결여 되어 있다. 예를 들면, 祈J.i, 神 t ;::祈?t未知(J)乙 &在知石 5 &-tJ.i, 契約-tJ.i, ,!:I,、 ' J: ? t~
譯語 力;누之 8h -cI,t力;, ~t-;.少 L 于? 誤 ?-cI,f). 力 夕 k &ti, 多 5 力 · 神E 意心 甲宅 '• 乙力、 力0: 드, (&!宅) 定力I;i;原; 義( :군}.志;\ ,石、 -(c,岩 波 書甲力 店;刊現, n 萬J.i-葉/J,,媒 卷乙三力: 現• 九補乙注力)七.t 드.t ?f 이것 또한 꼭 그렇다는 확정의 예시가 없는 추론일 분이다. 〈 力 片 k 〉는 한국어 「우홈」 (u-h i m-u-h i -m i), 현대어로는 〈움큼〉 과 대응한다. 原義 는 〈拘〉 이다. 〉棒 • 棋〈의 뜻도 있다. 神佛 앞에 서 기원할 때의 자세인 〈棋 手 〉 가 움켜쥐는 形容과 공통한다. 히i心 /5 꾸` 조 ( 千磐破 • 知破夜夫流 • ti-F a-ya -bu-ru) 이 말은 株詞로 〈神 • 社 • 人〉에 걷린다. 이 말의 語義를 〈千의 磐石울 깨다 〉 로 解하며, 靈 力의 경이적임을 나타내는 말이라 한다. <'b ( ti)〉는 한국어 〈 千〉의 訓 〈 즈므〉와 대 응, 磐 (Fa- y a) 는 〈바회 • 바 외 〉(岩) 와, 〈g 丕 〉 ( bu-ru) 는 〈破〉 의 訓 〈닌 언〉와 각각 대웅하니 일 본측의 해석은 정당한 것이다. L (T) /5 璋草 ……力서성:
음으로 보아 굿의 행사와 관련 있는 말이 와야 해석하는 데 유리할 것임을 침착케 한다. 굿에 〈지노귀〉 3) (지노귀^서남)란 것이 있다. 銀 魂 • 除魔의 행 사이 다. 지 노귀 (ci- n o-kuj) 굿(k us) 은
3) 鎭魂의 行事 죽은 사람의 혼이 좋은 곳으로 가도록 하는 굿.
b) 藝 能 • 娘樂 관계 의 語類 右 천(業 和射 • wa-d z a) 이 말과 대응되는 韓語는 〈와치〉니, 語義는 〈匠〉 이다. 新羅時代에 는 〈良心〉 (아지 ), 중세 어 는 〈바치 〉로 나타난다. 〈七 청宅 풍 (wa-dza-wo-ki) (배 우)〉 이 말의 해석을 〈%心 L 石共力、 L 〈歌?t. .:b 舞?t으 b L- -c, 神쓴人 Q)心宅慰砂石乙&, 主t..:|i춘(l)人〉라고 하였다. 이 또한 상황적인 설명일 분 語義의 해석은 아니다. 〈:l?~·〉는韓語 〈회즈〉와 대응되는 데 이 말은 생비 • 戱〉의 訓 I 이 다. 〈宅 <> ( 遠岐 • wo-k i)는 〈招 <>( 부르 다). 巫의 행사 중에 〈오구〉굿이란 것이 있다. 巫行事 12 종 가운데 第八아 〈오구굿〉이니, 이것은 〈招魂巫 검員魂巫〉인 것이다. 〈在 <> 〈招)와 韓語 〈오구〉가 또한 대응하는 것이다. 배우라 漢譯울 하였 지마는 이것은 今日的인 語義를 나타낸 것은 아니다. 櫓蒲.:m木四 우리나라 윷놀이가 奈良朝 시대 일본의 귀족사회에서 크게 유행 하였고, 기법이나 유회용어도 우리나라와 꼭같았음을 『萬葉集』 속 의 노래에서 발견하게 된다. 죽 도(Ji:) • 개 (},;:) • 결( 象 ) • 윷(牛) • 모 (馬)등의 윷말의 용어가 萬葉 노래의 표기에 戱書되어 있음은, 奈良 朝시대에 우리나라와 관계가 얼마나 가깝고, 생활 습속면에서도 얼 마나 近似했던가를 이 한가지 예로서 충분히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春霞t3 tg守〈今日 0 夕»노月?《夜 l(; 原文, 暮三0 伏0 一0 向0夜 ) 淸〈照乙 5 tr 高松 0 野 K( 卷十 • 1874)
봅안개 길게 낀 오늘밤 처닉 달빛 지금쯤 다까마스 들판에 맑게 비치고 있겠지. 노래 가운데 〈月〉(都久 , t u-ku) 의 표기에 있어서 윷의 〈도〉 OO 를 그 던져진 形狀울 〈三伏一向〉이라 쓰면서 이것으로 戱 書 한 것이다. 三伏一向=도 C 돋律f)〔t o, t o t->to-ti. I 과 t는 서로 대웅〕. 粹弓 末Q)中乙~ 石•( .原 .文 . ,. 末. 一伏• 三. 起-)- 不. i.通-1心: b. L- 君. .t 다차·출-간 요 暎--총 - i i.息• 沈t(卷十二 • 2988) 중순쯤 발을 동고 오시지 않았던 그대, 다시금 뵙게 되었나이다. 이첸 다시는 설위하지 않겠나이다. 노래 가운데 〈乙石〉(頃)(許呂 • ko-ro) 의 표기에 萬葉假名로 〈許呂〉 라 쓰는 대 신에 윷말 〈길〉로서 戱書하였다. 죽 〈길〉(象)은 윷울 던 쳐 땅에 년린 形狀이 〈一伏三起(向)〉이니까 그 당시 윷이 대유행하 던 때라 이렇게 〈一伏三起〉라 써놓으면 이를 읽는 사람은 죽각 윷 의 @i〉을 상기 하여 〈걷+-거 르〉로 읽 으면서 〈頃〉의 訓의 戱書임 을 알았던 것이다. 四年丁卯春正月 , 諸王諸臣等t댜勅1.,.-C, 4) 授刀察t드 5) 散禁산 L t石時t다作石 歌 •••••• 6)\) Q)Q)~Q)른八 +十 伴& ‘0 男* 1l |i 誰 0 音 0 來繼〈•;:_Q)頃(原文, 折木四突之 來繼皆石) 力>〈繼솽t常t댜 8b 산|f 友並t 沈f 遊iit心 0 宅 馬並t 沈f 行力、 主 L 里a'·… •• (卷六 • 948) ……궁궐에 일하는 많은 사나이돌 기러기 잇달아 머가는 이즈음, 언제나 이 같을지 면 동무들 모여서 늘았을 것 을. 말을 나란히 하여 마을을 찾아갔 을것을…… 4) 칼을 차고 天皇의 親衛를 말은 舍人을 관리 하는 관청 . 5) 감금합. 6) 沈詞 7) 宮廷에 奉仕하는 많은 男子.
이 노래는 아칙 正解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그 까닭은 원문 중에 〈.折木.四.突 之〉, 〈來眼皆互〉이 타 표기 한 대 목의 훈독이 난해 함으로써 이다. 일본 학자들의 주해를 보면, 〈折木四〉의 훈을 『和名抄』나 美 夫君志別記에 〈樓蒲〉(윷)을 〈力내 5 七〉라 읽고 있다고 해서 〈力나)〉 죽 〈誰〉로 보았다. 다음 〈皆石〉의 訓에 대해서는 〈皆ti比日 0 誤, 「石」i비「如 」 O 誤〉(本居宣長說)라 해서 「…근少壤 沿;繼퐁 ' --C •• 기로 읽고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윷눈이〉를 모르므로 억지의 주해를 한것이다. 〈折木四〉는윷가치 네개믈 말한것이며, 곧 싱t〉울 말함 인데 〈윷〉의 語義는 〈소〉(牛)이 다. 〈皆石〉은 윷말, 윷말은 작은 돌 로 대용하므로 〈皆石〉이타 한 것인데, 이는 곧 말(馬)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읽 음이 옳다. ……八十伴(J)男ii 牛0 0 突 0 來繼 〈•O馬 力、 <繼 풍-C·… •• 皆|i比日 0 誤, 「石」i치「如」 0 誤균~Q. ;:_ ;訓 lv t.:際, 春tg m 乙, 誰力; 來繼〈 .O ti%力孔 /L 、 &L, ' ;:. ctJ !~Q. L ti •L 「來」 &L 、 虹助詞ii., 行 <& L 、 意味 0 場合力넋志石, 乙드 t춘九균, 紹 L 、f行
附 錄
1. 『萬葉集』 연구문헌 목록 l. 本 文 國歌大觀(歌集 • 索引) 松下大三郞 • 渡邊文雄 明 36 大日本圖書(再版 昭 36 角川書店)*各 노태마다 번호를 붙여서 이것이 오늘까지 통 용되고 있음. 校本萬葉集 佐佐木信綱他編 大 13~14 校本萬葉集刊行會(增訂版 昭 6~7 岩波書店 增補改定版 昭 54~ 同店) 新訓萬葉集 佐佐木信綱 昭 2 岩波文庫 (新訂 昭 30) 白文萬葉集 佐佐木信綱 昭 5 岩波文庫 萬葉集(作者類別年代順) 澤潟久孝 • 森本治吉 昭 7 新潮社 (新潮文庫 所收 昭 12, 再版 昭 51 藝林舍) 新校萬葉集 澤潟久孝 • 佐伯梅友 昭 10 樂浪書院 (改訂版 昭 24 創元 社) 定本萬葉集 佐佐木信綱 • 武田祐吉 昭 15~ 昭 23 岩波書店 萬葉集( 日 本古典全書) 佐伯梅友他編 昭 22~30 朝 日 新聞社 萬葉集( 日 本古典文學大系) 高木市之助 • 五味智英 • 大野晋 昭 32~37 岩波書店 萬葉集(日本古典文學全集) 佐竹昭廣 • 木下正俊 • 小島憲之 昭 46~50 小學館 萬葉集(新潮日本古典集成) 靑木生子 • 井手至 • 伊藤博 • 淸水克彦 • 橋本四郞 昭 51~ 新潮社 萬葉集 中西進 昭 53~ 講談社文庫
萬葉菓(校注古典菜 書 ) 稱岡耕二 昭 54~ 明治白院 2. 注釋(全注) 口 譯萬葉渠 折 口 信夫 大 5~6 文會堂 (『全集』 5 • 6 所收 昭 30 中央公 論社) 萬葉集講義(卷三까지) 山田孝雄 昭 3~12 寶文鎔 萬葉集新考 井上通泰 昭 3~4 國民固 書 萬葉集全釋 鴻菓盛廣 昭 5~10 廣文堂 萬葉集總釋 武田祐吉他 昭 10~11 樂浪 書 院 萬葉集評釋 金子元臣 昭 10~20 明治 書 院 萬葉集評釋 窟田空糖 昭 18~27 東京堂(『全集』所收 13~19 昭 41~42 角川書店) 萬葉集全社釋 武田祐吉 昭 23~26 改造社(增訂版 昭 31~32 角川 書 店) 評釋萬葉集 佐佐木信綱 昭 23~27 六興出版社 (『全集』 1~7 所收 昭 29) 萬葉集私注 土屋文明 昭 24~31 筑摩 書 房(新訂版 昭 44~45) 萬葉集注釋 澤洞久孝 昭 32~43 中央公論社 3. 講座 내農書 萬葉集講座(全八卷) 佐佐木信綱 • 藤村作 • 吉澤義則監修 昭 8 春腸堂 萬葉集講座(全四卷) 久松潛一 • 森本治吉 • 木侯修監修 昭 27~29 創 元社 萬葉集大成(全二十二卷) 澤洞久孝他編 昭 28~31 平凡社 講座 日 本文學 (2) 一上代篇 2- 全國大學國語國文學會監修 昭 43 三省堂 和歌文學講座(全十二卷) (4) 萬葉集上勅撰和歌集, (5) 萬葉(J)歌人 和 歌文學會編 昭 44 樓楓社 日本文學硏究資料嚴書萬葉集 1~m 日本文學硏究資料刊行會編 昭 44 • 45 • 52 有精堂 萬葉集講座(全七卷) 久松潛一監修 昭 47~48 有精堂
萬葉樂在學今` 一~八 括岡耕二 • 伊藤博編 昭 52~54 有斐閣 4. 辭書 • 索引 萬葉集書目提要 木村正辭 明 21 大八州學 會 大日本地名辭 書 吉田東任 明 40 富 山房( 增補再版 昭 44~46) 萬葉集辭典 折口信夫 大 8 文會堂書店(『全集』 6 所收 昭 31 中央公論社) 萬葉集總索 引 正宗敦夫編 昭 4~6 白水社 萬葉閣( 『 萬葉集 大成』 12~19 所收 昭 28~30 平凡社 單語篇 • 漢字篇 覆刻 昭 49 平凡社) 萬葉築年表 土 匠文明 昭 7 岩波書店 萬葉辭典 佐佐木 信綱 昭 16 中央公論社 萬葉集語萊索 引 鴻梨盛廣 昭 16 廣文堂書店 萬葉集歌句索 引 篠田隆治編 昭 18 樂浪書院 杭詞辭典 大塚龍夫 昭 19 風間書房 萬葉年表大成 佐佐木信綱 昭 22 養德 社 萬葉集辭典 佐佐木信綱 昭 31 平凡社 國語國文學硏究史大成 1 • 2 萬葉集 (上 • 下) 武田祐吉 • 森本治吉 • 久松潛一編 昭 36~38 三省堂(增補版 昭 52) 和 歌 文 學 大辭典 窟田章一郞 • 高崎正秀 • 五味智英編 昭 37 明治 書 院 古文 獻所 收 萬葉 和 歌索 引 造谷虎雄 昭 38 文敎 書 院 萬葉集各句索 引 佐竹昭 廣 • 木下正俊 • 小島憲之 昭 41 塔書院 時代別國語大辭典―上代篇一上代語辭典編修委員會編 昭 42 三省堂 上代語辭典 丸山林平 昭 42 三省堂 萬葉集 必勝 五味智英編 昭 42 學燈社 萬葉集年表 松田好夫 昭 43 樓楓社 上代假名遣辭典 五十嵐仁一 昭 44 小學箱 日本古代人名辭典 1~7 昭 49~52 竹內理三編 吉 )|I 弘文館 萬葉集辭典(萬葉集講座別卷) 伊藤博 • 中西進 • 橋本達雄 • 三谷榮一· 渡源昌忠編 昭 50 有精堂 必擔萬 葉集要覽 樓井滿編 昭 51 樓楓社
5. 鑑賞 • 批評 歌道小見 島木赤彦 大 13 岩波書店(『全集』 3 所收 昭 4 再版 昭 44 講 談社學術文庫所收 昭 53) 萬葉集名歌評釋 土屋文明 昭 9 非凡閣(改版『萬葉集小經』 昭 16 三學 書房 ) 萬葉訥本 佐佐木信綱 昭 10 日 本評論社 萬葉菓百話 佐佐木信綱 昭 12 明治 書 院 萬葉 戀 愛歌語本 北原白秋 • 折口信夫編 昭 12 學藝社 萬葉秀歌 齋藤茂吉 昭 13 岩波新 書 萬葉集硏究 齋藤茂吉 昭 15 岩波 書 店 萬葉精粹 0 鑑賞 森本治吉 昭 17 • 18 講談社 萬葉集 0 精神一춘 0 成立之大伴家持一 保田與 重 郞 昭 17 筑摩 書 房(『選 萬葉集』° 3’ 所t. .收: 森昭本 4治6 吉講 談昭社 )18 講談社 萬葉秀歌鑑賞美夫君志會編 昭 17 正文館 書 店 萬葉托情歌 0 鑑賞 今井福次郞 昭 22 愛育社 萬葉秀歌解釋及鑑賞 久松潛一 昭 23 天明社 評証萬葉名歌選 佐佐木信綱 昭 23 有朋堂 評釋萬葉入門 今井邦子 昭 24 中部文學社 萬葉集名歌―現代語譯之鑑賞― 上村脫子 昭 28 拓文社 現代語譯 日本古典文學全集 萬葉集 久松潛一 • 田邊幸雄 • 犬養孝 昭 31 河出書房 日本秀歌 1 • 2 萬葉秀歌 窟田空糖 昭 31 春秋社 萬葉名歌(現代敎養文庫) 土屋文明 昭 31 社會思想社 萬葉集 一作品&批評一 土橋寬 昭 31 創元社 萬葉集 0 心 佐佐木信綱 昭 31 明治書院 萬葉集物語 田邊幸雄 昭 32 弘文堂 日本古典鑑賞講座 3 萬葉集 高木市之助 • 田邊幸雄編 昭 33 角川書店 萬葉百歌 山本健吉 • 池田彌三郞 昭 38 中公新 書 萬葉 0 秀歌松尾聽 昭 40 武藏野書院
萬葉染-時代之作品― 木侯修 昭 41 NHK7 '-:1 夕久 萬葉集百首歌 山 口 正編 昭 42 笠間 書 院 萬葉秀歌私紗 津之地直一 昭 42 北斗工房(改題 「萬葉秀歌(l)鑑賞」 昭 50 敎育出版七 、/ 夕 -) 秀歌鑑賞 I (和歌文學講座 10) 和歌文學會編 昭 44 樓楓社 萬葉 0 戀歌 堀內民一 昭 46 創元社 萬葉 0 詩&詩人 中西進 昭 47 彌生書房 萬葉 0 5 t..::—秀歌鑑賞- 高安國世 昭 47 創元新書 萬葉戀歌 永井路子 昭 47 光文社力`y,, ~7·-;; 夕久(角川文庫所收 昭 54) 萬葉 0 心 中西進 昭 47 每 日 新聞社 萬葉集 0 世界 中西進 昭 48 中公新書 萬葉集 0 戀歌 新藤和義 昭 50 高文堂 萬葉秀歌 l~5 久松潛一 昭 51 講談社學術文庫
鑑賞 日 本古典文學 3 • 萬葉集 中西進編 昭 51 角川書店 詩 0 自覺 0 歷史 山本健吉 昭 53 筑摩書房 萬葉開眼 土橋寬 昭 53 NHK7.-:1 夕久 6. 美學 • 文藝學的 硏究 日本文藝學 岡崎義惠 昭 10 岩波書店(『著作集』 1 所收 昭 35 寶文倍) 日 本文學 0 環境 高木市之助 昭 13 河出書房(『全集』 7 所收 昭 52 講談 社) 日本文藝 0 樣式 岡崎義惠 昭 14 岩波書店(『著作集』 7 所收 昭 37 寶文 ffi) 萬葉 0 世界(敎養文庫) 北住敏夫 昭 15 弘文堂書房(增補版 昭 25 角川 書店) 美(1)傳統 岡崎義惠 昭 15 弘文堂書房(『著作集』 4 所收 昭 35 寶文箱) 吉野(1)結一記紀萬葉雜致― 高木市之助 昭 16 岩波書店 (『全集』 1 所 收 昭 51 講談社) 萬葉集(1)藝術性 森本治吉 昭 16 東京修文箱 萬葉 0 諸相 北住敏夫 昭 17 小山書店古代 日 本 0 文藝 岡崎義惠 昭 18 弘文堂書房 菓•葉集 0 自然感情 大西克禮 昭 18 岩波 書 店 自然感情(l)類型 大西克禮 昭 23 要書房 萬葉美 0 展開 森本治吉 昭 24 淸流社 日本詩歌(l)象徵精神一古代篇- 岡崎義惠 昭 25 羽田 書 店 古文藝 0 論 高木市之助 昭 27 岩波 書 店(『全集』 6 所收 昭 51 講談社) 古代文藝t乙%남乙愛-준 0 本質&展開一 靑木生子 昭 32 弘文堂 日 本托情詩論一記紀萬葉(l)世界- 靑木生子 昭 32 弘文堂 萬葉風(l)探求 岡崎義惠 昭 35 寶文鎔 日 本古代文藝t乙治납乙戀愛 靑木生子 昭 36 弘文堂 古代日本文藝思潮論 N 古代詩歌 0 考察 大田善磨 昭 41 樓楓社 雜草萬葉 高木市之助 昭 43 中央公論社(『全集』 4 所收 昭 52 講談社) 古代和歌 0 諸相 北住敏夫 昭 46 明治 書 院 萬葉 0 美意識 森脇一夫 昭 49 樓楓社 萬葉集(l)美&心 靑木生子 昭 54 講談社學術文庫 7. 歷史 • 社會學的 硏究 文學t乙現|t h t으 乙我力:國民思想 O 硏究―貴族文學 0 時代― 津田左右 吉大 5 洛陽堂 日本古代國家 藤間生大 昭 21 伊藤 書 店 貴族文學 & L T (1)萬葉集 西鄕信綱 昭 21 丹波 書林 萬葉集上庶民性 竹野長次 昭 22 早稱田大學出版部 日 本古代文學一古代(1)超克一 西鄕信綱 昭 23 中央公論社 日 本古代文學史 西鄕信綱 昭 26 岩波全 書 (改稿版 昭 38) 記紀萬葉 0 世界 川崎庸之 昭 27 .t-<>茶(1)水 書 房 天武天皇 川崎庸之 昭 27 岩波新 書 萬葉 0 世紀 北山茂夫 昭 28 東大出版部 萬葉(1)時代 北山茂夫 昭 29 岩波新 書 日本古代(1)政治上文學 吉永登 • 北山茂夫編 昭 31 靑木書店 初期萬葉 0 世界 田邊幸雄 昭 32 埼書房
萬葉私記 西鄕信綱 昭 33 • 34 東大出版會(合冊再刊 昭 45 未來社) 白鳳文學論 德光久世 昭 34 法大出版部 萬葉0)創造的精神 北山茂夫 昭 35 靑木書店 持統天皇 直木孝次郞 昭 35 吉 )II 弘文鎔 萬葉 8 & 0 世界( 日 本文學©歷史 2) 高木市之助 • 竹內理三編 昭 42 角 JII 書 店 萬葉一文學&歷史 0 志 L, tt一 吉永登 昭 42 創元社 大伴家持 北山茂夫 昭 48 岩波新書 萬葉集一人間 • 歷史 • 風土― 上代文 學會編 昭 48 笠間選 書· 柚本人 麻 呂 北山茂夫 昭 48 岩波新書 萬葉集 0 時代之文化 上代文學 會編 昭 49 笠間新書 萬葉律 令考 浦川政次郞 昭 49 東京堂出版 紹萬葉 0 世紀北山茂夫 昭 50 東大出版會 古代史宅彩丕萬葉 0 人 k 上代文學 會編 昭 50 笠間 書 院 日本古代 0 政治之人物 靑木 和夫 昭 52 吉川弘文館 8. 民俗學的 硏究 神之神宅祭丕者 &0 文學 武田祐吉 大 13 古今 書 院(『著作集』 1 所收 昭 48 角川 書 店) 民俗學J: b 見仁石東歌之防人歌 松岡靜雄 昭 3 大岡山 書 店 古代硏究 國文學篇 折口 信夫 昭 4 大岡山 書 店 (『全集』 1 所收 昭 29 中央公論社) 萬葉集嚴政 高崎正秀 昭 11 人文 書 院 日本文學(J)發生序說 折口信夫 昭 22 齋藤書店(『全集』 1 所收 昭 29 中 央公論社) 日 本文學發想史編 石上堅 昭 28 拓文社 折口信夫全集 折口信夫 昭 29~34 中央公論社 日 本文學史 / - 卜 2 一萬葉集成立一 折口信夫 昭 32 中央公論社 文學以前 高崎正秀 昭 33 樓楓社 古代歌諾論 土橋寬 35 三一書房
日本文學 0 民俗的硏究 三谷榮一 昭 35 有精堂 古代藝術&民俗 和歌森太郞他編 昭 35 弘文堂 萬葉集 0 民俗學的硏究 中山太郞 昭 37 校倉書房 古代文學(7)源流 大久問喜一郞 昭 40 樓楓社 古代祭祀 k 文 學 西角井正慶 昭 41 中央公論社 萬葉 ~c( 꺼童恨一民俗&文藝(7)論理- 樓井滿 昭 41 樓楓社 歌垣 0 民俗學的硏究 渡邊昭五 昭 42 白帝社 上代 0 呪的信仰―上代文學理解 O t乙砂一 金子武雄 昭 43 新塔社 折口信夫全集/- 卜編 折口博士記念古代硏究所編 昭 46~ 中央公論社 9. 比軟文學的 硏究 文學序說土居光知 大 11 岩波書店(『著作集』 5 所收 昭 52 岩波 書 店) 古代傳說&文學 土居光知 昭 35 岩波 書 店(『著作集』 2 所收 昭 52 岩波 書店) 萬葉集 0 比軟文學的硏究 中西進 昭 38 樓楓社 上代日本文學&中國文學(中) 小島憲之 昭 39 埼書房 漢詩文引用 J: b 見t감萬葉集 0 硏究 古澤未知男 昭 39 樓楓社 古代社會&浦島傳說(上 • 下) 水野祐 昭 50 雄山閣 10. 地理 • 風土 大和雜記 辰巳利文 昭 5 紅玉堂 書 店 大和萬葉古蹟巡禮 辰已利文 昭 5 紅玉堂書店 九州萬葉地理考 三松莊一 昭 4 福岡金文堂 萬葉地理考 豊田八十代 昭 7 大岡山書店 北陸萬葉集古蹟硏究 鴻菓盛廣 昭 9 宇都宮 書 店 萬葉大和志考奧野健治 昭 9 同人會 萬葉集攝河泉歌沈考 大井重二郞 昭 14 立命館出版部 萬葉集大和地誌 北島西江 昭 16 關西急行(新訂版 昭 31 筑摩書房) 萬葉紀行 土屋文明 昭 18 改造社(再版昭 44 白玉書房)
萬葉大和風土記 堀內民一 昭 18 天理時報社(定本 昭 37 人文書院) 萬葉集上野國歌私注 土屋文明 昭 19 煥平堂(再版 昭 54) 縮萬葉紀行 土屋文明 昭 21 改造社(再版 昭 44 白玉書房) 萬葉三國志考 奧野健治 靖文社 東國萬葉紀行 今井福次郞 昭 22 有精堂 萬葉(J)風土 犬養孝 昭 31 :I:尙書房 萬葉武藏紀行 谷馨 昭 34 刀江書院 大和山河抄 山本健吉 昭 37 人文書院 九州萬葉散步 筑紫豊 昭 37 角川書店 萬葉(J)소石촌之 高田昇 昭 38 保育社 萬葉 0 旅 犬養孝 昭 39 社會思想社 東海 0 萬葉地理―尾張篇一 松田好夫 昭 39 名鐵株式會社 房總萬葉地理(J)硏究 今井福治郞 昭 39 春秋社 太宰府圈 0 歌一萬葉 0 國筑紫― 源古確 昭 39 樓楓社 萬葉東國紀行 谷馨 昭 39 樓楓社 大和萬葉旅行 堀內民一 昭 39 角川書店 萬葉集入門一人間&風土― 久松潛一 昭 40 講談社現代新書 九州 0 萬葉―소石혼 &0 文學&t. ::U ― 福田良輔編 昭 42 樓楓社 滅안中 <萬 葉大和路 中西進 • 石川忠行 昭 43 角川書店 大阪(J)萬葉 栗林章 昭 44 樓楓社 大和古寺&萬葉학& 和歌森太郞 • 山本藤枝 昭 44 集英社 萬葉上 九州 中村行利 昭 44 日 本講談社 大和萬葉―춘(J)歌&風土― 堀內民一 昭 44 創元社 萬葉集駿遠豆 南信一 昭 44 風間書房 . 萬葉遠足 橋本哲二 昭 46 新潮社 越中 0 萬葉 越中萬葉顯揚(J)會編 昭 46 北 日 本新聞社 萬葉旅情 若浜?夕子 昭 46 愛育出版 萬葉 0 風土(續) 犬養孝 昭 47 培書房 明 日 香風一萬葉風土- 犬養孝 昭 47 社會思想社 (現代敎養文庫所收 昭 52) 飛鳥路 田中日佐夫 昭 47 平凡社
萬葉大和Q)旅 宮格二 • 中山禮治 昭 49 保育社力 尹 _ 7\y 夕 久 萬葉&춘(J)風土 森淳司 昭 50 榎楓社 萬葉渠 0 風土文藝論 新垣幸得 昭 51 樓楓社 東海®萬葉 松田好夫編 昭 51 榎楓社 萬葉染(J)風土 稷井滿 昭 52 講談社現代新캅 갑寫也 E0 歷史地理的硏究 夏 目 隆文 昭 52 費藏館 西都太宰府 繼井明德 • 藤井功 昭 52 NHK7'o / 夕久 萬葉 0 쇼乙혼&―力 삿 弓紀行― 稱垣富夫 昭 53 右文書院 明 日 香風紹―萬葉風土― 犬迷孝 昭 53 社會思想社 現代敎義文庫 11. 特殊硏究 萬葉動物考(正 • 紹) 東光治 昭 10 • 18 人物書院 萬葉染色 0 硏究 上村六郞 昭 18 受文社 萬葉(J)花 松田修 昭 32 藝卿堂 上代文學 V 댜現 h t프조色名 • 色彩並t;:_染色 0 硏究 上村六郞 昭 32 綜藝社 萬葉植物全解 若浜沙子 昭 34 潤光社 色彩之文學_古典和歌在 LB^ f一 伊原昭 昭 34 樓楓社 志 0 花乙Q)花―萬葉植物硏究&植物隨想― 松田修 牧 書 店 萬葉 0 色相 伊原昭 昭 39 埼選書 萬葉植物原色固譜 若浜?夕子 昭 40 高陽書院 萬葉(J)植物 松田修 昭 41 保育社力 7 -7· -:, 夕 久 原色萬葉植物圖鑑 松田好夫 • 小村昭雲 昭 43 樓楓社 增訂萬葉植物新考 松田修 昭 45 社會思想社 萬葉(J)草 • 木 • 花 小淸水卓二 昭 45 朝 日 新聞社 萬葉(J)花 松田修 昭 42 藝卿堂 萬葉(J)花 中西進 昭 52 保育社力 尹 _ 7* y 夕 久 12. 論考(作家 • 作品硏究) 上代國文學 0 硏究 武田祐吉 大 10 博文館 (昭 5 改訂增補『上代日本文
學 史 』) 國歌 0 胎 生及 간 發達 五十 嵐 力 大 13 早大出版部 萬葉集 0 新 硏究 久松潛 一大 14 至 文 堂 上萬 代葉 集n 傳本 說文 學歌 考0 硏川究村 脫久 磨松 潛昭 一 2 昭甲 3子 社至 文書 堂房( 『 著 作 菓』 所收 昭 44 至文 堂) 萬葉媒 0 文化史的硏究 西村 眞次 昭 3 東京堂 書 房 文 學 0 發 生 土田 杏 村 昭 3 第 一 書 房 萬葉集雜 政 井上通 泰 昭 7 明治 書 院 萬葉集論 究 松 岡 靜雄 昭 9 章華社 國 文 學 硏究 萬葉集 編 武田祐吉 昭 9 大岡山 書 店(『著作 集 』 5 所收 昭 48 角川 書 店 ) 上代民 族 文 學 上춘(J) 學 史 久松 潛 一 昭 9 大明堂 書 店 古代 歌語 (J)硏究 藤 田 德太 郞昭 9 金星堂 古代 詩歌 K 於남石神 0 槪念 久 松潛 一 • 志田延 義 昭 9 國 民精神文化硏 究所 柚 本 人 磨 齋藤 茂吉 昭 9~12 岩波 書 店 萬葉集考 說 久 松潛 一 昭 10 栗田 書 店 大伴 家 持 0 硏究 源吉確 昭 10 靑靑縮 作者別 萬葉集 評釋 武田祐吉他 昭 10~11 非凡閣 萬 葉 集鼓 政 高 崎 正秀 昭 11 人文 書 院 萬 葉 集 t댜現 h t으 石 日 本 精 神 久松 潛 一 昭 12 至文堂 國文 學 硏究― 歌 道 篇 ― 武田祐吉 昭 12 大岡山 書 店 萬 葉(J) 精 神 中河與一 昭 12 千倉 書 房 萬葉集 撰定時代 0 硏究 德 田淨 昭 12 目黑 書 店 戴冠詩人(J)御一人者 保田누 重 郞 昭 13 東京堂(『選集』 1 所收 昭 46 講 談社) 柚本人麻呂 武田祐吉 昭 13 厚生閣 山上 憶 良 • 山部赤人 谷 馨 • 森本治吉 昭 13 厚生閣 大和魂 &萬 葉 歌人 吉 澤義 則 昭 14 平凡社 大伴旅人 • 大伴家持 佐佐木信 綱 昭 14 厚生閣
文學 0 發生 風卷 景 次郞 昭 15 子文 書 房(『全 集 』 3 所收 昭 44 擬楓社) 萬葉 0 傳統 小田切秀雄 昭 16 光 曺 房 萬葉(1)作品之時代 澤 潟 久孝 昭 16 岩波 書 店 萬葉古經澤潟久孝 昭 16 弘文堂 書 房(中公文庫所收 昭 54) 萬葉集新見 森本治吉 昭 16 人文 書 院 萬葉集評說 次田眞幸 昭 16 明治 書 院 旅人 上 憶良 土屋文明 昭 17 創元選 書 萬葉集(1)硏究 佐佐木信網 昭 17 岩波 書 店 柚本人磨 窟田空稙 昭 17 新聲閣 萬葉皇室歌人 森本健吉 昭 17 靑相堂 高橋虫麻呂 森本治吉 昭 17 靑 梧堂 萬葉集(1)精神 保田누 重 郞 昭 17 筑 摩書 房 萬葉集作家(1)系列 五味保 義 昭 17 弘文堂 書 房 山部赤人 武田祐吉 昭 18 靑梧堂(『著作 集 』 5 所收 昭 48 角川 書 店) 防人歌 0 基礎構造 吉野裕 昭 18 伊 藤書 店 日本 0 短詩型文學 長谷川如是閑 昭 18 新 聲 閣 萬葉集傳說歌諾 0 硏究 西村眞次 昭 18 第一 書 房 萬葉集私見 土屋文明 昭 18 岩波 書 店 國文學硏究―萬葉篇二 柚本人麻呂政― 武田祐吉 昭 18 大岡山 書 店 (『著作集』 7 所收 昭 18 角川 書 店) 萬葉(1)地盤 田邊幸雄 昭 18 育英 書 院 人磨(1)世界 ―춘(1)皇室觀世界觀 0 新硏究一 森本治吉 昭 18 昭森社 萬葉集照說 美夫君志會編 昭 18 正文館 防人文學 0 硏究 相磯貞三 昭 18 厚生閣 笠金村 • 高市黑人 犬養孝 • 田邊幸雄 昭 19 靑 梧堂 古典考究 萬葉篇 石井庄司 昭 19 八 雲書 店 萬葉時代 0 社會&思想 阿部二郞 昭 20 生活社 上世歌學(1)硏究 中島光風 昭 20 筑 摩書 房 萬葉自然 武田祐吉 昭 21 弘文社 日本詩歌(1)暖 森本治吉 昭 22 三省堂 文學(1)發生&傳統 森本治吉 昭 22 文化書院
大伴家持 0 硏究 尾山篤二郞 昭 23 大八州出版 萬葉苑柏葉 新村出 昭 23 生活社 萬葉片 k 春 日 政治 昭 23 丁子屋 書 店 萬葉集 0 硏究 第三 • 萬葉集類歌類句政 佐佐木信網 昭 23 岩波힘店 萬葉集校定 0 硏究 武田祐吉 昭 24 明治 書 院(『著作祭』 6 所收 昭 48 角 J II 書 店) 萬葉歌 人 0 思想&藝術 小 澤 正夫 昭 24 新泉書房 萬葉渠新說 美夫君志會編 昭 26 中部日本新聞社 古代和 歌 五味智英 昭 26 至文堂 日 本文學史 0 周邊 風卷景次郞 昭 28 ;l:71ii 書 房 萬葉_춘 0 異傳發生宅沈 〈一 TC_ 吉永登 昭 30 萬葉學會 日 本文學史一上代― 久松潛一編 昭 30 至文堂(增補新版 昭 52) 萬葉集考縱 山田孝雄 昭 30 寶文箱 萬葉歌 人 0 誕生 澤混久孝 昭 31 平凡社 萬葉集 之 日本文 藝 ―生총f총t.:萬葉集― 山田孝雄 昭 31 中央公論社 萬葉集 —古典&춘 0 時代― 吉永登 昭 32 三一 書 房 萬葉 0 傳統 大久保正 昭 32 培書房 萬葉集 之춘 0 前後 久松潛一 昭 33 刀江書院 萬葉集 0 成立過程 伊丹末雄 昭 33 私刊 萬葉論序說 淸水克彦 昭 35 靑木書店 山部赤人 0 硏究 尾崎暢殊 昭 35 明治書院(昭 52 增訂版) 額田王 谷馨 昭 35 早大出版部 古代知識階級 0 形成 昭 35 龜井勝一郞 古代歌諾論 土橋寬 昭 35 三一 書 房 日本文學史 上 風卷景次郞 昭 36 角川書店 萬葉集 0 成立 伊丹末雄 昭 36 • 39 私刊 上代國文學 緖方惟 草 昭 36 評論社 人磨歌集&준 0 成立 後藤利雄 昭 36 至文堂 萬葉集 0 踊諒歌 久米常民 昭 36 培書房 上古 0 歌人―日本歌人講座― 1 久松潛- • 實方淸編 弘文堂 萬葉集十三人 都筑省吾 昭 37 河出書房新社
柚本人麻呂 山本健吉 昭 37 新潮社 萬葉染一作家&風土― 佐野正巳 昭 38 樓楓社
萬葉集東歌 田邊幸雄 昭 38 埼選書 萬葉集東歌及쟌、防人歌 水島義治 昭 38 天使女子短大 (增補改訂版 拓 49 笠間書院) 古今六帖 0 萬 葉歌 中西進 昭 39 武藏野書院 萬葉集新論 市村宏 昭 39 樓楓社 萬葉修辭(J)硏究 山 口 正 昭 39 武藏野書院 萬葉集新論―萬葉情意語(J)探求― 賀古明 昭 40 風間書房 人麻呂歌集上人麻呂傳 神田秀夫 昭 40 埼選書 萬葉異國風物誌 藤井淸 昭 41 文理 書 院 萬葉史 0 硏究 中西進 昭 43 樣楓社 萬葉集長歌考說 岡部政裕 昭 45 風間書房 萬葉歌人(J)硏究一文藝 0 創造 &춘 0 表現― 山崎良幸 昭 47 風間 ;lt 房 水底(J)歌―柚本人磨論一 梅原猛 昭 48 新潮社 貧窮問答歌(J)論 高木市之助 昭 49 岩波書店 萬葉表記論 稱岡耕二 昭 51 t尙書房 萬葉時代 0 生活 辻野勘治 昭 52 短歌新聞社 萬葉集物語 伊藤博 • 橋本達雄編 昭 52 有斐閣 萬葉訓解論 浜田佐賀衛 昭 52 國書刊行會 萬葉集硏究 7 五味智英 • 小島憲之編 昭 53 培書房 -삼葉(J)美的世界 貸方淸 昭 54 樓楓社 13. 日本語學的 硏究 奈良朝文法史 山田孝雄 大 2 寶文箱 上古 0 國語 佐伯梅友 昭 8 明治書院 國語史—上古篇― 佐伯梅友 昭 11 刀江書院 萬葉語硏究 佐伯梅友 昭 13 文學社(再版 昭 38 有朋堂) 音韻論有坂秀世 昭 15 三省堂 古代國語 0 音韻t;::-?I,、 L 橋本進吉 昭 17 朋世堂書店國語音韻史 0 硏究 有坂秀世 昭 19 朋世堂 醫 店 國語音韻(l)硏究 橋本進吉 昭 25 岩波 書 店 奈良時代 0 國語 佐伯梅友 昭 25 三省堂 上代語(I)硏究 橋本進吉 昭 26 岩波 書 店 萬葉假名 O 硏究 大野透 昭 37 明治 書 院(昭 52 新訂版 高山本店) 古代語文/ _ 卜 福田良輔 昭 39 樓楓社 奈良時代東國方言 0 硏究 福田良輔 昭 40 樓楓社 上代東國方言(I)硏究 北糸忠雄 昭 41 日本學術振興會 語構成 0 硏究 阪倉篤義 昭 41 角川 書 店 日本文 章 史 0 硏究―上古篇― 西尾光雄 昭 42 培 書 房 上代特殊假名遣硏究史 江湖山恒明 昭 53 明治書院 言語本質觀 O 硏究 福田眞久 昭 43 小林印別出版部 上代 0 乙 &| f 馬淵和夫 昭 43 至文堂 古典對照語\,、表 宮島達夫 昭 44 笠間 書 院 助詞 0 歷史的硏究 石垣謙二 昭 45 岩波 書 店 日本上代 0 文 章 之表記 西宮一民 昭 45 風間書房 上代國語音韻 O 硏究 森山隆 昭 46 樓楓社 萬葉集語法 O 硏究 木下正俊 昭 47 埼 書 房 日本文法探求(上 • 下) 桑田明 昭 47 • 53 風間書房 國語助動詞 O 硏究 此島正年 昭 48 樓楓社 上代語助動詞 0 史的硏究吉田金彦 昭 48 明治 書 院 人麻呂用字考 竹尾正子 昭 49 樓楓社 萬葉集 0 國語學的硏究 津之地直一 昭 50 樓楓社
形容詞 O 硏究 慶野正次 昭 51 笠間 書 院 萬葉表記論 稱岡耕二 昭 51 培 書 房 續萬葉假名 0 硏究 大野透 昭 52 高山本店 國語意味史序說 吉田金彦 昭 52 明治 書 院 日本語 0 朔源的硏究 大野透 昭 53 高山本店 國語助詞 0 硏究 此島正年 昭 54 樓楓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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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力 , 71;\, 、(躍歌會 ) I7 盤洛 248 熟洛國記 248, 250 盤洛國 의 建國神話 240 짜 ( g a ) 類 I67 嘉座君三部 作 ·I I 7, 202 力• trt.r. U 243 力 ~ 269 伽微 238,269 歌辭 267 歌詞體 (長 歌 ) 267 歌辭體 I8o, I82 家神 과 神桐 244 家神祭 245-6 家屋神 245 歌話 I3 歌降傳踊 時代 I97 歌垣 199, 207-8 家持 의 生 年 130 角干 147-8 각 권의 用字 I59 각 권의 特色 67 <;> 237, 269 컵一음 269 盟原 宮 Io6 〈기〉 237 I/ (ke) 類 I68 'r(g e) 類 I68 蓋馬 237 〈김〉 237 擧歌 14,20
乾馬 237 결( 象 ) 273 걷 C 거르 29 乞食 者 25 乞食者 諒 25-6 儉 237 迫唐 少 錄 II3, II5 造新羅使 29 族 (미소기) 250 膜 浴 248,250 高岡 市伏木古 國府 l35 乙乃( 頃 ) 273 ::1 (ko) 類 l68 古 點本 140 尻取 I) 207, 210 古 事記 @l 用 歌 ) ©L U-층(!) 53 ©t.r:.t~-' f'l, 40 海人t£九수 4I 宇陀 0 高城 l78 ' 하iL. c 53 大君(!) 43, 177 大宮(!) 43 日 日並六f l76 君力:行총 l99 日下部 0 l84 故是以 其 速須佐之男命 l52 드 0 竹 0 靑 t力 : 如 < 37 드 0 時, 伊邪那岐命 240 世 葉t ~ 53 須須 許 里 44 高 行〈훈 l76 楠並心f l87
新治 I76 樣立f 0 5I 布刀玉命 258 品陀Q) 45 御諸 42 ~-?~-? ~ 44, 187, 229 女鳥 O I76 八 雲 立? 42, I78 夜久毛多都 I52 倭方t댜西風吹총上H'-C 32 曲形 46 串 246 關東別曲 I83 廣眞寺 250 魄偏子 25,27 久米歌 16, 199 久米舞 24 龜旨 248 國見 21, 34, 199 國柄 23,34 國柄部 I6 國風 23 宮內少輔 134 宮人振 16,20 宮廷歌諾 I9, I99 宮廷歌人 100-1, 268 宮廷儀禮歌 199, 206 勸酒歌 25 귀신 246 鬼의 訓 248-9 橘諸兄宅의 案歌 195 近江國甲賀郡 II6 近江朝 107 今 237
錦애탑節 237 金馬 237 禁繩 254 記紀歌話 I4 4'- (k i)類와 ¥(gi)類 I67 k i類와 gi類 I67 寄物陳思歌 I93 誕旅歌 I93 基主 244 基主祭 246 吉野 I II, 125 吉野國 Io8 吉野讚歌 206 吉野行幸從篤{l)作 206 吉志舞 24 L. 奈良山 97 奈良時代音 160 奈良時代의 음철과 萬葉假名 170 奈良朝時代 266 奈良遷都 124 難波 52, 95 難波宮 135 難波津 II5 南加羅 52 男神-+左旋(陽) 256 女神-+右旋(陰) 256 ;/'-(ne) 類 169 노태의 代作 200 怒類 162 奴類 161 / (no) 類 169
能登國 I35 能類 I62 c 短歌 13, l75, 266 短歌形式 39 短歌形式의 성립 187 檀君神話 자 0 丹後國風土記 32 돌 아가시 (月 阿只氏) 239 堂 山木 244 堂山石 244 對句法 233 大納言 l24, I28 大宰府 89, I25, I29 大宰府歌壇 l25 大宰帥 ll6, Bl 大宰少~ 139 大 津宮 Io6 大學察 IO3 大化改新 84-5, 91 卜 (t o) 類 169 卜 (t o) 類 I69 刀自 244, 246 桃花女·鼻荊郞 246 讀歌 20-2I 東歌 268 東國 I7, II3 洞祭 257 되풀이하는 修辭法 235 頭椎飯 55 進甲 103 藤原宮 86
己 落句 183 來繼皆石 274 來目歌 20 來目部 35 旅人의 晩年 128 勞動起源說 39,48 p (ro) 類 170 雷 岳御遊 0 歌 206 類田川 54 流頭日 250 立歌 212,215 EI mana( 生命力) 22 ~ I} 、J \ V 28 換歌 65 萬神 239 萬葉假名 264 萬葉假名의 用字방법 l54 萬葉假名의 조직 l54 萬葉假名의 형성 l46 萬葉의 遊女 28 萬葉以後의 家持晩年 l38 萬葉人 236 萬葉集(引用의 노래) ( )안은 노태番號 (8) 95 (10) 156 (13) 185 (16) 97 (17, 18) 96 (20, 21) 99
(23, 24) 203 (29, 30, 31) 106 (38) 107 (39) 108 (43) 187 (60) 229 (81) 156 (85) `I9 9 (93, 94, 96, 97) 208 (103, 104, 107, 108) 209 (II3, II6 ) 210 (I25) I96, 232 (131) 234 (133) 235 (147) 38, 2II ·(l 5I) 258 (153) 233 {167) 104 (201) 231 (261) 185 (296 ) 235 (315, 316 ) 125 (317) 112, 184 (318) II2 (340,341,349) 128 '(3 5I) 232 (375) 235 (379) 253 (381) 31 (395) 233 (415) 216 (439) 127 (440) 1:2 7 (443) 253
(4 요, 469) 134 (52I) 3I (626 ) 251 (793) 126 (802, 803) ll9 (876 ) 129 (892) 121 (893) 122 (917, 918, 919) IIO (924) II1, 235 (925) III (948) 271, 273 (1019, 1020, 1021, 1022, 1023) 204 (1026, 1027) 195 (1288) 44 (I424, I427,I43I) II4 (1446, 1448) 133 (1591) 130 (1817) 230 (1874) 29 (2309) 258 (2351) 27 (2628) 229 (2988) 273 (3186 ) 217 (3682) 32 (3695) 230 (3806 ) 200 (4o56, 4°57, 4o58, 4059, 4060) 213 (4086, 4087, 4088, 4233) 214 (4094,4o95,4096,4097) 137 (4226 ) 156 (4231) 29 (4232, 4233) 30
(4234) 30, 215 (4260) 92 (4261) 102 (4342) 246 (4402) 254 (卷三, 補注) 271 (卷二, 補注) 274 萬葉集에 나타난 沈詞 2I8 菓葉集의 생태 193 買忽 148 萌茅期 85 明l1IKi 232 木隱(陽根) 238 木津川 135 文武天皇則位宣命 103 文選 65 추군청 251 民部少輔 139 民諾舞踊起源說 39, 48 ki 博多港 96 장白樂 40 磐座 244 芳野離宮 IO9 方文 IO3 伯耆守 II5 白馬의 節會 34 白檔原讓子 43 白丁族 27 白村江 85 法隆寺 I50 變字法 I57
嬰字用法 158 本岐歌之片歌 20, 21 本技歌 21 蓬萊 IO3 夫餘神 237 盆踊 b 歌 48 不盡山의 諒歌 II2 佛足石歌 41 佛足石歌體 175, 177, 179, 180,235 比 (F i) 237 比!'mi 241 뿜兪歌 121 飛鳥, 藤原時代 26 混登湖 54 貧窮問答 202 貧窮問答歌 Il7_8 人 四季歌 193 四句體歌 175-6 思國歌 20-21 私度僧 I17 思美人曲 183 寫生派의 歌人 II4 射水 )II 135 詞形 41,46 山背大兄王 0 滅亡 18 山城川 52 산신 240,243 山直卿 116 三句六名의定型 181 3 句 6 名體(鄕歌體) 267 3 句 6 名體의 長歌 183
三輪山 97 三輪山의 원숭이노태 I9 三山神 24I 三 蘇 238 三神 257 三諸岳 242 薩摩守 139 上(力 ~ ) 162 上代特殊假名遣 160 相間 65, 192 相聞歌 132-3, 192 相聞歌의 성격 207 相撲守 140 上忽 270 上總守 140 誓 記體 148,265 팝 記體吏讀 151, 265 舒弗郡 147 序詞 228 仙桃山 237 旋頭歌 13, 41, 44, 175-6, 266 旋頭歌形式 39 宜命 148, 265 筑紫 89, 109, 129, 131, 250 筑紫歌 壇 89, l3I 筑紫에서의 家持 I3I 筑紫野 126 筑前守 Il5, II7, I23.2I6 說話歌~ 49 星歌 228 星山別曲 183 城陳 241 城隱神 254 世尊壅 244
蘇 塗 238,270 춘 e( 空) 270 1/ (ts o) 類 I69 積美人曲 183 送歌 215 松浦 /11 127 수~ 237 壽 辭 21 壽 詞 36 麟 237 提神 237 水域 148 獻 237 熟田 津 95-6 숨은 代作歌人 202 勝興寺付近 I35 L (J)됴草 271 ~(si)類 168 시리구메나파 258 시메 나파 254, 257 l.,ls bt .r.tt 258 時調의 形式 I82 時 調體 180,267 時 調 (短歌) 體 의 長歌 I85 式部卿 93 神(力 紅) I62 神 鏡 239 신단지 245 神樂 47 神樂歌 4°,47 神籍 243 神母傳說 237 信部大輔 I39 神柳 245
神險 237 神樹 239 臣照塗國 238 神語 20 神의 種別 238 新點本 142 神板子 245 神盛 244 궁 新常會 22 新常祭 21 沈}祠自哀 (l)文 115 。 阿耶 190 雅樂療 16, 23-4, 40 阿蘇 238 阿諭施國(印度) 252 兒鳥 29 暗l@l 232 額田王歌 91 額田王의 文學 95 훈(y a) 類 169 藥師像光背銘 149-50 於母 238 語部 24,200 御室 241 御用詩人 206 言靈信 仰 36,39 Am( 움) 237 업 ~) 245 업주@紀主) 245 冥歌의 성격 212 連歌形式 I79
冥新羅客 268 諒貧士 117 營城監 I39 漏洲 103 藝f/6'i 24 宅〈 272 오구굿 272 烏思 239 *(b) 類 166 :t,;i 270 烏頓 255 五 根 三山神 24I 吳音系의 字音 157 5, 7 調 45 5. 7 과 3. 3 대 바 I 86 玉串 249 玉振 b 2l2 士ts ?A 270 七혼〈業 • 和射 • wa-dza) 272 七창宅풍 (wa-dza-wo-k i) (배우) 272 諾曲 255 크 (y6) 類 170 用字上의 規範意識 I55 龍飛御天歌 189 5 남 D (宇氣比 • u-ke-Fi 祈 :ff ) 270 '7 'r I:: 271 宇岐歌 19 宇吉歌 16 :J (wo) 類 170 寫~ 233 宇佐 238 宇治 54 우홍 27I 云車忽 270
越中國守 134 越中時代 134 蓋原水糖國 105 遊女 27 由比 II3 遊行婦女 25 陸奧國守 136 t怨IIJKi 232 音頭 48 陰陽察 103, II6 音訓借用表記法 148 夷曲 17, 20 吏~ 148,265 伊罰干 148 離別歌 193 伊勢 238 伊勢守 140 伊豫 95, IIO 夷振 16,20 夷振之上歌 20 夷振之片下 20 人間神 239 人磨의 名作 105 人色의 姓 103 因幡守 139 日本琴 127 日本換歌 202 日本換歌一首 126 日本 書 紀(引用노래) 朝霜(/) 꾸 志 LD 총(/) 190 志t. ::5L 총 177 "、참吾君 55 大君(/) 229
臣(J)子ti 5I 今城tJ;Q 211 彼方(J) 54 筑총立'0Q 37 造사;:: 43 枚方19) 51 本每t乙 2II 夜句茂多菓 153 敵傍山 203 日本 書紀 (引用記 專 ) 景 行天 皇 〔卷七J • 242 崇神帝〔卷五〕 24I 神代紀上 251, 258 神代紀下 244 神武帝紀 245 雄略帝〔卷十四〕 242 允恭天皇〔卷十三〕 250 日本의 長歌 267 日月大明圖 239 日月聖大監 239 日月明 鏡圖 240 一之上 255 壬申亂 103, 106, 124 x 字類의 變移 166 自然神 239 字音假名 157-8, 163 作者不明의 노태 와 類歌 198 作者의 異傳 197 雜歌 65, 192-3 長歌 13, 44, 175, 2_6 6 長歌形式 39
將進酒歌 31 採蒲, 折木四 272 田偶 23 田植歌 47 田子의 浦 113 折木四突之 274 正述心緖歌 193 帝釋盛 244-5 祭虎 239 鳥居 244 祖上蓋 244 祖神巡行 22 朝妻山 230 從怒歌 Ill 左陶 254 佐保 131 左將軍 124 左中辨兼中務大輔 139 呪歌(壽歌) 211 酒樂之歌 19 注連繩 254, 258 年人 23,88 楠串 246 지 노귀 (8n0·kuj) 굿 (kus) 272 志都歌 20 志都歌之歌返 20 志良宣歌 20 志賀의 白水郞 118 直l1IKi 232 眞間 113 眞賢木 252
* 次點本 140 讚酒歌十三道 127 倉樣山 51-2 天文 103 天文曆 21 天語歌 20, 199 天田振 20 賤祚大썹會 23 天平感質 89 군 36 天平文化 90 天平萬葉 89 天平寶字 89 天平勝寶 89 天平神設 89 天香山 252 個馬樂 4°,47 推古朝 266 祝詞 148,265 春雜歌 133 子(血) 22 子力 7(力) 22-3 핫i수죠乙 (千磐破 • 知破夜夫流 • ti. Fa-ya - bu-ru) 271 頭述嶺 237 勅撰集時代 I93 7. 5 調 45 沈詞 38,216 드 太宰大武 2I6
宅地神 245 土田杏村의 향가형식론 I88 土佐國 204 通事舍人 n6 포 播磨國 25 八百萬神 239 龍案歌 212 龍燕曲 25, 31, II6 片歌 20, 175 片假名 157 片歌形式 43 平城京 135 平城萬葉 88 平城遷都 197 幣用(요혼) 251, 253 浦島說話 32 蒲生娘子 29 蒲原 ll3 標繩 258 讓l@l 233 -Io 굴g 237 賀歌 I93 下野國 I39 嚴夷 88 下總 IIO 下總國葛筋郡 Il3 何何娘子 28 限界藝術 33
漢音系의字音 157 解慕 237 -(Fe), 入(b e) 類 169 히 아가시 ( 日 阿只氏) 239 鄕歌의 두 形式 180 鄕歌體 180 香具山御製 87 鄕札 148, 264-5 嬪法 245 現神 Ill 現神思想의 成立 IOI 現人神 87 狼長田 238 썽~ EB 238 士力 l::. 25 議國神 241 混本歌 41 和歌 13 和氣王在罪 L 給^石宣命 150 和舞 23 貨幣鑄造 88 棟觸峰 249 黃泉國 250 橫川 103 7(Fu) 類 169 後飛鳥岡本宮 95, 97 訓吐式吏證 151, 265 祿己香 52 간t b f! • 比拜呂岐 Fi- m o-ro-g i 243
색인 2 2. 人名
-, 加藤千慕 l44 間人宿彌 89 間人連老 20I 葛城圓大臣 5I 葛野王 92-3 岡田正之 60 蓋齒王 94 巨曾倍朝臣對島 I95 建王 2II 犬義宿彌三千代 I34 輕大郞女 53, 85, 199 境部臣摩理勢 203 鏡王 93 鏡王女 208 輕太子 53,85 輕皇子 100 契沖 60, 143 高橋蟲窟 88 高橋亨 .1 88 高木市之助 I43 高市皇子 87,92, 100,210 高市黑人 87 高皇産盆尊 244 昆支君 94 昆支王 94 光明皇太后 I37 光仁天皇 63, 139 橋本進吉 I43, I45, I6I, I63 久米廣繩 67 久米若賣 204 久松潛 l43
弓削男廣 139 弓削皇子 87 橘宿fit! 134 橘諸兄 89, 134 Grause 33 近肖古王 264 金澤庄三郞 238 紀女郞 l33 紀時文 140 吉永登 63 L 奈良麻呂 134, 135, 136 難波天皇妹 85 內藏思寸繩麻呂 214 內藏繩麻呂 136 內藏伊美吉繩磨 30 鹿持雅澄 144 幽野 99, 101 浦川政次郞 25 C: 但馬皇女 87,210 大短 263 大伴家持 30, 62, 90, 101, 109, 124, 129 大伴繼人 140 大伴郞女 126, 129 大伴百代 89, 132 大伴上郞女 184 大伴宿奈麻呂 132 大伴御行 102 大伴旅人 88, 90, 116, 12 4, 216
大伴池主 30, 67, 136 大伯皇女 87 大市 63 大野晋 I43 大野透 I63 大友皇子 92 大中臣能宣 140 大中臣淸麻呂 I39 大津皇子 87 大裝輯尊 251 大海人皇子 92, 94, 99 德川吉宗 I44 道臣命 I24 陶淵明 II7, 123 桃花女 248 杜甫 II8 藤原鎌足 93-4, 98, 208 藤原麻呂 I32 藤原夫人 87,209 藤原宿奈麻呂 I39 藤原宇合 31,89,204 藤原種繼 140 藤原仲磨 89 藤原仲麻呂 I34 藤田德太郞 32 口 麻呂 134 麻續王 203,204 毛津 203 武內宿禍 54 武田祐吉 63, 143, 145 武智麻呂 I34
門部王 89 文室大市 62 文室智勢 63 文屋大市 139 文屋眞人智勢 177 物部氏 IOI 美勢王 134 未多王 94 眉輪王 51 1::1 泊源部皇女 IOI, 20I 磐之姬皇后 84, 85, 199 房前 I34 白樂天 II8 百濟景福 I36 白鳥庫吉 255 本居宣長 94, 144, 163, 259 鼻荊郞 248 氷上川繼 I40 人 沙福滿:f9 89, 232 舍人吉年 92 山口女王 I33 三方沙彌 I96 山部宿彌赤人 I84 山部赤人 88,90, 101, 108, 109 山上臣憶良 II5 山上憶良 66,88,90, 109,228 山於野上 Il6 山田孝雄 6I, I45, I49
山幸彦 38 舒明天皇 84, 86, 93, 201 石山宅嗣 I39 石上乙磨 89 石上乙麻呂 204 石上宅嗣 139 石川郞女 87,209 石 )1| 夫人 92 石川豊成 I39 石塚龍磨 I63 仙覺 60 扇畑忠雄 28 聖德太子 85 聖武天皇 III, 125, 134, 136, 199 細烏女 252 蘇那易 n t智 252 蘇我 85 小野老 89 小倉進平 I88, I89 栗隅王 134 栗田眞人 88 手兒奈 Il3 糖積皇子 87, 132, 210 須佐之男命 I77 水戶光l2il 143 宿奈麻呂 I39 淳仁天皇 89 僧仙ft 142 矢河枝比賣 26 矢河枝姬 26 新田部皇子 IOI 十市皇女 93-4
。 阿直岐 146,264 阿華王 264 安康天皇 54 安藤弘 33 額田王 86, 91, 201, 212, 268 野中川原史滿 201, 210 御火熱 I75 餘(金)明軍 89 女鳥王 5I-2 延烏郞 252 五味智英 143 五十嵐篤好 46 窟田空糖 145 阮籍 128 王仁 146,264 宇合 134 雄略天皇 51,66,85, 177,200 熊擬 202 熊之擬 54 元明天皇 197 源順 l40 元正天皇 89 月讀命 239 倭建命 21, 175 倭大后 86,234 魏弘 263 倭姬皇后 92,211 有間皇子 86 柳田國男 28 夫人臣 94 允恭天皇 28,53
應神天皇 26, 146 意富美和之大神 24I 衣通姬 28 李秉岐 I82 伊邪那岐命 15, 240, 249-50, 255 伊邪那美命 15, 249, 255 李世春 I82 李殷相 I82 仁德天皇 32, 51-2, 84, 199 忍熊王 54-5 忍坂部皇子 IOI, 20I . 日並皇子 87 笠金村 88, 90, 101, 108, 133 笠女郞 69,70, 133 笠朝臣金村 184 x: 自然詩人& L'( (J)柚本人麻呂 206 長谷川如是閑 206 長田王 89 長皇子 62-3,87,IOI 猪名部眞根 177 田邊福磨 90 田安宗武 144 正京敦夫 I44 井上通泰 I44 齊藤茂吉 206 齊明天皇 86, 91, 95-6, n5, 211 諸兄 63 造援 210 趙潤濟 182 佐伯今毛人 139 佐佐木信綱 142-3, 145
年別王 5I-2 中大兄皇子 200 中西進 60, II6 中井龍瑞 34 中皇命 86,201 志貴皇子 62, 66, 87 智勞 63 志斐姬 87 持統天皇 86-7, 92, IOO, IO5, Io8-9 I97 秦八千島 I36 云: 車持百年 89 車持千年 108 天武天皇 102-3, 209 天兒屋根命 244 川原史滿 92 天忍日命 I24 千田憲 143 天照大神 104,239-40,252,258 天智天皇 16, 86, 91-2, 96-9, 101, 106, 193, 201, 2II1 234 淸水克彦 I26 淸原元輔 I40 草壁皇太子 100, 104 崔致遠 60 崔行歸 I8r 推古天皇 84 秋葉隆 245,254,259 筑紫娘子 3r 春日宮天皇 66 春日老 87
稱德天皇 I39 드 太安萬呂 I5·I 太玉命 244 太政大臣 禪 師道 鏡 I39 土橋寬 14, 18, 27, 33, 94 土屋文明 I45 土田杏村 I87 .lI 坂上郞女 63,90, 129, 131,. 132-3, 135 坂上大娘 132-3, 136 坂上望城 140 坂上二娘 132 坂合黑彦皇子 5I 八田若郞女 52 柚本人 磨 62,87, 109,201 柚本朝臣建石 IOO
柚本朝臣濱名 100 柚本朝臣市守 100 柚本朝臣人磨 100 굴 河島皇子 20I 賀茂眞淵 I44 下田邊長流 I43 Hartla nd 34 許皇后 252 鴻菓盛廣 I45 和펴臣 IOO 和珉 26 和耳日觸臣 26 桓武天皇 I40 孝謙太上天皇 139 孝德天皇 94 胸形君 94 黑比賣 32
색인 3 3. 書 名
-, 歌經標式 63 歌道小見 50 照洛國記 252 嘉曆傳承本萬葉集 I4I 假名遣奧山路 I63 京都大學本 I42 桂本萬葉渠 l4I 桂苑筆耕 60 校本萬葉集 I44 高橋連虫磨歌集 야 古今渠 63-4, 192 古今和歌集 II4 古代歌諾集 14, 18, 33 古代歌諾 0 世界 14, 18, 33 古語捨迫 IO4 古葉略類衆紗 I42 公卿補任 I29, I30 冠辭考 I44 國歌大觀 I 꾸 國文學 0 哲學的硏究 I88 均如傳 181,263 琴歌譜 13,40 金葉集 60 金澤本萬葉集 l4l 紀 1I1 本 l 꾸 L. 奈良朝文法史 I49 藍紙本萬葉集 I4I 論語 I48
綾小路俊요卿記 :z1 5 E: 大般埋築經 I20 大日本史 I43 東夷傳 257,270 El 萬葉捨糖抄 143 萬葉略解 144 萬葉集〈中西進 譯 注〉 60 萬葉集(/)鑑賞及간其批評 144 萬葉渠講義 145 萬葉集講座 145 萬葉集古義 144 萬葉集大成 145 萬葉集大匠記 143 萬葉集事典 145 萬葉集私注 145 萬葉集新考 144 萬葉集硏究年報 145 萬葉集玉(JJ小琴 144 萬葉集全釋 145 萬葉集金注釋 145 萬葉集注釋 143 萬葉集總索引 144 萬葉集總釋 145 萬葉集評釋 145 文選 65,192-3 文苑英華 59 文華秀麗集 60 美夫君志別記 274
닙 法王帝說 I3 佛足石歌碑 I3 肥前風土記逸文 5I 人 詞花集 60 三國造事 241, 252 三國志 238,270 三代目 263 上代 0 歌~ 188, 191 常陸風土記 22 西願寺本 142 石峰千字文 251 細井本 142 縱 日 本紀 60, 100, 129 松江歌辭 183 柚本人磨歌集 66 柚本朝臣人磨歌集 64 神宮文庫本 142 新撰萬葉集 63 新訓萬葉集 144 。 藥師寺緣起 94 養老律令 88 藝術(J)始源 33 玉力f게, 94 溫故堂本 I42 元曆校本萬葉集 I41
原始民族l1)宗敎&呪術 34 魏志 257,270 類緊歌林 64, 91, 95-6, n8 類衆古集 I4I 尼崎本萬葉集 I4I 人磨歌集 I29 日本歌學全書 I42 日 本紀神代紀合解 255 日本盆異記 I3 日鮮同祖論 238 笠朝臣金村歌集 64 x: 田邊福磨歌集 65 傳壬生隆祐筆本萬葉集 I4I 周書 237 * 千字文 l48 天治本萬葉集 l4l .n 評釋萬葉集 145 風土記 13, 17 줍 街悲漢 60 鄕歌及亦吏讀 O 硏究 188, 219 和名抄 29,94 懷風~ 60,93,267-8
金思 燁 京城大學 文學部 卒業, 文學博士 서울大學校 • 東國大學校 敎授, 慶北大學校 大學院長 마 국 Harvard 大學校 招賜敎授 日本 大阪 外國語大學 客員敎授 外國人으로서 日本文學硏究學者에계주는 山片婚桃賞 받음(大阪府知事) 日本文化硏究 업적이 두드러짐으로 日本政府의 勳章 (勳四等 • 旭 日小緩章) 받음. 主要著書 「朝鮮 0 드드石」(講談社) 「韓國 0 人間國寶」(< b 力아 1v 社) 「記紀萬葉 0 朝鮮語」(六興出版) 「朝鮮文學史」(金澤文庫) 등 主要譯書 「韓國古代史」 上 • 下(六興出版) 「三國遺事」 全(朝 日新聞社) 「三國史記」 上 • 下(六興出版) 現在 東國大學校 附設 日本學硏究所長 日本의 萬葉集 r983 년 r r 월 I5 일 初版 1990 년 8 월 I0 일 4 版 K—2 、- -_,•. . - `::. 著 者 金 ‘思 燁 發行人 朴 孟 浩 發行處 民 音 社 . -__ . . _ .一 -·_ _ 一 우편번호 135-120 서울 강남구 신사동 506 515-2000~5 출판등록 1966. 5. 19 1-142 호 값 5, 500 원 파본은 교환뻬 드립 니 다.
대우학술총서 ( 인 문 사회과학 ) I 韓國語의 系統 金芳澄 / 5 .CXll 원 2 文學社會륭 김 련/값 3,500 원 L商 周史 尹乃鉉/값 6,500 원 4 人間의 節能 黃iii奎/ 값 7 , 500 원 65 中日 國本의古 代萬文葉壓集史 金 思金燁툰/主값/ 값5 , 53,0 80( 원() 원 7 現代意昧論 李益倭/값 5,500 원 8 베 트남史 T I{ ::총/값 5,500 원 9 印度哲學史 吉熙星/값 5,500 원 10 韓國의風水思想 崔細 / ~)6 忠)원 H 社會科學과 數學 李承勳 外/값 2,500 원 l2 重商主義 金光洙/ iJ 2 , 500 원 l3 方言學 李翊 빛/ 값 5, CXll 원 l4 構造主義 蘇 斗*/값 4,CXll 원 15 外交制度史 金洪 喆 /값 2. 았)원 l6 兒童心理學 뜹敬 淑/값 7 ,CXll 원 l7 언어심리학 趙明 翰 /값 5 /:/J)원 18 法 사회학 梁 達/ ~J 6,CXll 원 19 海洋法 相§;昞 董 /값 4,500 원 20 한국의 정 원 鄭籠許/값 6 , CXll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