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에르 프랑카스텔 Pie r re Francaste l 프랑스의 미술사가. 미술사회 학자. 소르본 대학과 고등연구 실습학 교 E . P.H.E 에서 문과를 수학한 뒤 미술사 고문서를 연구했다. 1925 년에서 1930 년 사이 베르사유의 건축부에서 일하는 동안 베 르 사유 조각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으며 (1930). 바르샤바 프랑스 연구 원 교수로 임명되자 폴란드에서 5 년을 머물렀다. 1948 년 뤼시앙 페 브르 Luc i enFebvre 는 프랑카스텔을 위해 고등연구 실습학교에 미술 사회학 강의를 개설하였다. 1960 년에는 국제학술회의 〈 폴란드 도시 의 기원 〉 과 〈 앙리 4 세와 루이 13 세 시대의 파리 도시계획 〉 을 제안 하고 개최하였다. 저서 목록은 중세 건축에서 1940 년대의 에콜 드 파리에 걸치는 서 양미술사 전체를 포괄하고 있다. 『 베르사유 조각 b Sculpt ur e de V e r sa i lles 』 『 인 상주의 L ' i m p re ss i on i sme 』『 황제 시 대 양식 Le sty le Em pi r e 』『 로 마의 인본주의 L'human i sm e 』 『 새 로운 소묘. 새로운 회 화 Nouveux dessin s , nouvelles p e i n t ures 』 『 프랑스 회 화사 Hi st o i r e de la p e i n t ure fr anra i se 』 『 19 세기 20 세기의 미술과 기술 Arte tt ech niq u e aux X/Xe et XXe s i ecles 』『 형 태 적 현실 . 미 술사회 학의 구조적 요소 la Re ali te f igu rati ve , element str u ctu ral de socio l o g ie de /' ar t 』『 형 태 와 장소. 15 세기 미술에서 시각적 질서 la Fig u re et le lie u , /'ordre vis u el au q ua tt ro ce n t o 』 (1967) 등 다수의 저술이 있다.

사미술 회과 e tP seion ct iu e rt ee

Pein t u re et Socie t e

by Pie rre Francaste l Cop yrigh t © Edit ion s Denoel, 1977 All righ t s reserved. Korean Translati on Cop yrigh t © 1998 by Mi nu msa Publi sh in g Co., Ltd. Korean tra nslati on edit ion is pu bli sh ed by arrang e ment wi th Edit ion s Denoel th roug h Jm p rim a Korea Ag e ncy . 이 책 의 한국어 판 저 작권은 lmp rim a Korea A g enc y 를 통해 Edit ion s Denoel 와 독점 계 약한 (주) 면념야에 있습니 다.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 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무단복제 를 금합니다.

미술과사회

피에르 프랑카스텔 지음 안-바롱 옥성 옮김 딘욥^t

이 책을 읽기 전에 1950 년 12 월 31 일, 『미술과 사회 Pein t u r e et so ci e t e 』를 탈고 했을 때, 피에르 프랑카스텔은 50 세였다. 이때는 이미 그가 로마 네스크 건축, 고딕 건축 , 베르사이유 조각, 인상주의 둥에 관한 여러 권의 박식한 저서를 출판한 뒤였다. ® 이 저서들 가운데 『 새 로운 소묘, 새 로운 회 화 Dessin nouveau, nouvelle p e i n tu re 』 ※ 본문에서 저자의 주는 1), 2), 3) ……으로, 역자의 주는 CD, ®, ®, ……으로 구분하여 표기하였다 . ® 로마네스크는 유럽에서 1050 년 경부터 시작해서 11 세기 말과 12 세기 사 이에 발전한 서양의 기독교적 미술양식이다. 1819 년 영국인 윌리암 건 Wi lliam W. Gunn 이 로마네스크 romanes q ue 란 말을 사용했는데, 그는 이 말을 〈잘 형성된〉이라는 의미로 썼다. 고딕이란 기원을 고트족g o th s 에 두는데 , 역사상 가장 허구적인 지칭의 하나로 르네상스기의 이탈리아인들이 중세미술을 야만적이라고 생각한 데 서 유래한다 . 1950 년 이전에 간행된 그의 저술로는, 『 베르사이유 조각 la Sculpt ure de Versa i lles 』 (1930) , 『 인상주의 l'Im p ress i onn is me 』 (1937), 『 황제시대 양 식 le Sty le Emp i re 』 (1 939) , 『 로마 인문주의 l'Hu manis m e roman 』 (1942) , 『 새 로운 소묘 , 새 로운 회 화 Nouveawc dessin s , nouvelles p e i n tur es 』 (1942) 둥이 있다 .

는 현대로의 〈추이〉를 다룬 작품으로서, 어떤 점에서는 『 미술과 사회 』 의 저술 목적과 이 저술에서 사용한 방법을 미리 보여주고 있댜 그러나 『미술과 사회』에 이르러, 프랑카스텔은 보다 완전 한 성숙의 단계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의 저술역정( 歷程 ) 면에서 볼 때, 더욱 개방되고 완벽한 시기인 제 2 의 시기를 시작한다. 6 권으로 이루어진 그의 『전집 Oeuvres 』은 바로 이 제이기 동안에 쓰여진 프랑카스텔의 저술들이며, 『미술과 사회 』 는 이 전집 가 운데 제 1 권이다. 피에르 프랑카스텔 이론의 독창성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위 해서 그가 살았던 시기로 돌아가 보자. 그 시대의 미술사 연구 는 그 분야의 중요한 학문적 업적이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술이 마치 사회의 전체적 생활과는 실제적 관련이 없는 고립 된 분야인 것처럼, 미술사를 따로 떼어서 다루고 있다. 다른 한 편, 미술사에서 미술 작품과는 관계없이 주로 미학 자체에 관한 어림짐작이나 사고들만을 다루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미술과 사회』는 그 방법이나 내용에 있어서 개혁적인 저작이었다. 왜냐

하면 여기서 프랑카스텔은 회화의 기능이 한 사회 집단의 문화 적 기능을 이해하는 데 필요불가결한 요소 가운데 하나라는 사 실을 입증하였고, 나아가서 미술 작품도 평가하거나 해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 읽을 수〉 있다는 엄청난 확신을 제공하기 때 문이댜 이 새로운 접근 방법은 위에 언급한 6 권의 저술을 서로 연결 하는 역할을 한다. 『미술과 사회』의 중심 주제는 르네상스에서 입체파에 이르기까지의 조형공간의 발전과 파괴이다. 『 전집 』 가 운데 또 다른 저술 『 구상적 현실 La, Reali te f igu ra ti ve 』은, 여 러 세기의 다양한 미술적 지각 가운데 존재하는 사회적 매개를 밝 히는 연구로서 그의 전문분야에서 다소 벗어난 연구이다. 『 형태 와 장소La, Fig ure et le li eu 』는, 자율적 시각질서의 창조로서 15 세기 미술이라는 하나의 구체적인 역사적 사례 연구이다. 『 미 술과 기술 Ar t et t echn iq ue 』은, 현대건축과 현대건축이 태어나 게 된 원천인 순수한 상상적 형태들의 총람과의 관계를 정립하 고 있다 . 결국 마지 막 두 권은 프랑카스텔의 여 러 연구들의 집

대성이며, 또한 고등연구 대학원I' Ecole pra ti qu e des haute s etu- des 의 제 4 부에서 여러 해 동안 진행된 그의 강의도 포함하고 있 는데, 이 강의들을 통해서 그의 이론의 최종적 쇄신이 준비되고 있었다. 1970 년 프랑카스텔의 사후에, 그는 날이 갈수록 더욱더 불가 피한 인물로, 또 많은 사람들의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는 인물 로 인정받고 있다. ® 따라서 그의 주요저술들을 모아보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긴급한 일이었으며, 이것은 그 과제를 위 한 첫 시도이다. 출판자 ® 1974 년 프랑카스텔 센터 국제 학회 Collog u e intern atio n al du Centr e Pier re Francas te l 가 열렸는데 그 때 발표된 논문들이 < 예술 학회지 la Revue colloq u ia arte s> 에 실리게 된다.

차례

이 책을 읽기 전에 5

그림 목록 10

서문 13

1 공간의 탄생 : 15세기 미술의 신화와 기하학 23

2 조형 공간의 파괴 : 낭만주의에서 인상주의로 197

3 새로운 공간으로 : 입체파와 20세기 미술의 신화 309

옮긴이 해제 405

부록 419

찾아보기 423

그림 목록

1. 리에즈 미술, 「단검으로 찔린 커튼 사이로 피에르 부제(副祭)가 본 그레고리우스 성인(聖人)의 법열(法悅)」 • 148

2. 프라 안젤리코, 「성스런 대화」 • 150

3. 지오토, 「성 엘리자베드의 탄생」 • 152

4.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 「최후의 만찬」 • 154

5. 파울로 우첼로, 「성체의 기적」 • 156

6. 파울로 우첼로, 「노아의 이야기 • 홍수」 • 156

7. 파울로 우첼로 화파, 「로마인들과 고올인들의 전투」 • 158

8. 젠틸레 디 파브리아노, 「성 니콜라가 난파선을 구조함」 • 160

9. 보티첼리,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환영(幻影)」 • 160

10. 마솔리노, 「성 베드로가 타비타를 부활시키고 한 중풍들린 자를 고침」 • 162

11.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화파, 「희극 무대」 • 164

12. 마솔리노, 「헤롯의 향연 성 요한의 머리를 받고 있는 살로메. 성 요한의 매장」 • 166

13. 파울로 우첼로, 「산-에지디오의 전투」 • 168

14.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우르비노의 공작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 개선(凱旋)」 • 170

15. 기를란다요, 「성모 마리아의 성 엘리자베드 방문」 • 172

16. 오토만 미술, 「동방박사의 경배」 • 174

17.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수태고지」 • 174

18. 오타비아노 넬리, 「할례」 • 176

19. 자코포 벨리니, 「자헌 첨례」 • 178

20. 피에로 디 코시모(?),「라 시모네타」 • 180

21. 브라크, 「여인의 얼굴」 • 181

22. 베니스 화파, 「율법학자들과 대화하는 어린 그리스도」 • 182

23. 만테냐, 「성 세바스챤」 • 184

24. 랭부르 형제, 「로마 지도(地圖)」 • 186

25. 만테냐, 「로마의 발견」 • 186

26. 마솔리노, 「로마 풍경」 • 188

27. 마사치오, 「낙원에서 추방당한 아담과 이브」 • 190

28.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시바여왕의 수행원」 • 190

29.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 192

30. 모네, 「카퓌시느 가(街)」 • 276

31. 쇠라, 「그랑드 자트에 여름 어느 일요일」 • 278

32. 드가, 「오페라의 무대 뒤. 뤼도빅 할레비와 블랑제 카베」 • 280

33. 드가, 「루브르 박물관의 마리 카사트」 • 281

34. 드가, 「층계를 올라가는 무용수들」 • 282

35. 마티스, 「강가의 소녀들」 • 282

36. 세잔, 「세잔 부인 초상」 • 284

37. 반 고흐, 「의자와 파이브」 • 285

38. 르누아르, 「피걀 광장」 • 286

39. 마네, 「고양이들」 • 288

40. 반 고흐, 「수레 국화를 입에 문 젊은이」 • 290

41. 세잔, 「검은 성」 • 292

42. 마네, 「폴리-베르제르 극장의 바」 • 294

43. 고갱, 「순결의 상실, 또는 봄의 깨어남」 • 296

44. 드가, 「목욕. 등을 보이는 여인」 • 298

45. 피카소, 「화가」 • 298

46. 고갱, 「노란 그리스도가 있는 고갱 추상화」 • 300

47. 드가, 「첫 주제. 발끝으로 추는 무용가」 • 302

48. 르누아르, 「여인 반신상」 • 304

49. 듀피, 「일요일」 • 374

50. 푸케, 「생 드니 대성당에 들어가는 샤를르 4세 황제」 • 374

51. 마티스, 「춤」 • 376

52. 피카소, 「발을 닦는 여인」 • 378

53. 반 고흐, 「구두」 • 380

54. 레제, 「오브제의 구성」 • 380

55. 피카소, 「자는 사람과 구부린 여인」 • 382

56. 피카소, 「나체 습작」 • 382

51. 피카소, 「아틀리에」 • 384

58. 레제, 「아담과 이브」 • 386

59. 세잔, 「한 마을길」 • 388

60. 세잔, 「생 빅트아르 산」 • 388

61. 레제, 「파리의 지붕들」 • 390

62. 에스테브, 「나는 사람들」 • 391

63. 레제, 「자명종」 • 392

64. 기시아, 「곡예사」 • 393

65. 피카소, 「테블」 • 394

66. 브라크, 「아테네 신전」 • 395

67. 들로네, 「< 붉은 탑>이라 불리는 에펠탑」 • 396

68. 들로네, 「율동」 • 398

69. 에스테브, 「나무 세 그루가 있는 언덕」 • 400

70. 기시아, 「레다와 학」 • 401

71. 피뇽, 「올리브 나무 밑의 농부」 • 402

서문 이 책은 〈미술과 사회의 관계〉라는 광범위한 분야의 한 특수 한 측면을 연구의 대상으로 한다. 이 책에서는 15 세기 이탈리아 회화 를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는데, 원근법에 의거한 공간구성 une figu rati on pe rs p ec ti ve 을 객 관적 이 고 영 속적 인 가치 로서 주 장하는 한, 우리는 15 세기 이탈리아 회화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선형 원근법 la per spe ctive line a ire 이란 15 세기 이탈리아 예술에 의해서만 알려진 유일한 방식은 아니며, 또한 인간 정신구조에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욱 적합하 거나 합리적인 체계도 아니댜 ® 또한 이차원의 고정된 조형화면 위에, 외적 세계를 보다 적합하게 표현해 보겠다는 일관된 목적 ® 선형 원근법은 원근법의 하나로서 직선 원근 화법이라고도 한다. 지평선 상의 한 소실점에 수렴하는 수학적인 방법이 사용되며, 이는 화면에 대해 직각으로 만나는 평행선에 바탕을 두었다. 이 투시는 완전한 부동 상태에 서 시선의 방향을 정면의 소실점으로 향하며 이 소실점은 주위공간을 흡 수한다. 이 투시개념은 15 세기 이탈리아의 알베르티 또는 피에로 델라 프 란체스카에서 분명히 나타나며, 이들에 의해 최초로 시각적 각도가 개방 되도록 구상되었다. 이 투시에 의해 한 풍경이나 한 장면이 한번에 보아 서 포착될 수 있다. 원근법에 관한 최근에 나온 중요한 저술로는 대미시 H. D ami sch 의 『 원 근법 의 기 원 L'Or igine de la p ersp e cti ve 』 (19 93) 이 있다 .

에서 보았을 때, 이 선형 원근법은 인류가 다다른 절대적 진보 는 되지 못한댜 결국 이 선형 원근법은 어떤 시점에서 테크닉 이나 학문 또는 사회적 질서가 도달한 상태에 기초를 둔 합의된 표현방법의 한 측면인 것이다. 나는 우선 그 기원을 밝혀보려 하였댜 그리고 더 나아가 외적 세계나 행위에 대해서 어떤 집 단적 견해가 내린 실재적, 철학적 결론을 인간활동 전체로 확장 시켜 나가는 한편,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모든 다른 가능성들은 점차적으로 제거해 나가면서 한 체계가 천천히 완성되어가는 것 올 보여주려 하였다 . 공간 투시나 공간 표현을 특정한 문화적 단계의 구체적 표현 으로 간주함에 따라, 나는 15 세기 미술이 발전시킨 조형체계의 운명이, 인간활동의 어떤 물질적 , 지적 형태의 몰락 및 출현과도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자문해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 한 문화단계의 출현 및 몰락〉과 연결된 〈 조형공간의 탄생과 몰락 〉 의 두 부분으로 논증해보려 하였다. 그리고 보다 이전의 감수성 울 대변하는 표현형식을 그 다음 단계의 체계가 몰아내고 마찬 가지로, 이번에는 이 체계가 다시 새로운 체계에 의해 모색 되 는 가운데 점진적으로 대체되어 가는 현상들을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엿볼 수 있는가를 살펴보면서 결론을 맺고자 하였다. 〈르네상스시대〉와 〈산업문화의 발전과 연관된 새로운 역사의 시대〉라는 이중적 가설을 채용한 나의 견해에 대해서 틀림없이 반박이 있으리라. ® 그러나 가설이란 것을 실체를 파악할 수 없 는 〈아이온〉으로 간주하지 않는 한, 인문과학도 가설을 세울 권 리가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 무엇 ® 〈산업문화의 발전과 연관된 새로운 역사의 시대〉란 인상파시대와 입체파 시대를 의미한다 . 르네상스공간은 인상파시대에 파괴되며 입체파시대에 다시 새로운 공간이 출현한다고 보았다 .

보다 나는 문화사에 대한 지식의 불완전성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댜 따라서 나는 학문적 주장이라는 엄격한 틀을 주장하 지 않았으며, 이 책을 통해 단지 방법이나 결론에 대한 토론을 제기해 보고자 했다 . 내가 보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회화 작품을 기호체계 un sys te m e de sig nes 로서 연구할 필요성을 인정하는 일이며 , 또한 이를 위해서 많은 다른 학문에 진보를 가져다 주었던 엄격한 해 석방법을 적용해야 한다 . 따라서 한 그림 속에서 일화적 주제 un suje t anecdo tiq ue 를 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며, 그림을 읽 을 수 있고 효력있게 만든 개인적, 사회적 메커니즘을 탐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한 예술작품이란 감정과 사고의 표현방법이자 의사소통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기호 심리학 la ps y - cholog ie du s ig ne 이 모든 분야에서 전개되고 있다. 한편 문화인 류학도 그 이름에 어울리는 조형표현 법칙에 대한 학문적 지식 올 제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연구는 진정한 학문 의 형태를 지녀야 할 것이다. 예술작품은 순수한 상징이 아니며, 여러 사회집단들이 생활해 나가는 데 필요한 실제적 대상이다. 우리는 작품들을 통해서 , 현재 및 과거에 있었던 정신구조나 사 유의 증거를 찾아야 한다. 이때 손쉬운 이론적 구축이나 이데올 로기의 유혹에 조심해야 하며, 다만 실증적 분석작업에 충실해 야한다 . 뒤르켐 Durkheim 이후, 다방면에서 심화되어온 〈사회적 공간〉 이라는 개념 또는 사회내 인간의 근본적 기능 가운데에서 시각 의 중요성을 내가 발견했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쁘 그렇지 ® 그노시스파(특수한 영적 직관을 중요시한 초기 기독교의 한 교파)가 주 장한 아이온은 지상 존재에서 나오는 영구불변의 힘을 의미하며 , 지상존 재는 이 힘으로 세계를 다스린다 .

만 공간의 회화적 형상화를 위한 위대한 전통적 체계 가운데 하 나에 대한 정밀한 연구가 결여되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시각 적 기능을 다른 지적 기능과 구별하는 뵐플린 Wol ffli n 과는 반대 로, 나는 특정시기의 인간의 전체적 활동과 관련해서 공간을 연 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만일 미술사를 하나의 폐쇄된 분야로 @ 뒤르켐 Emi le Durk11eim ( l858-1917), 프랑스 사회학자, 1887 년 보르도에 서 교육학과 사회학 교수를 지냈으며, 1902 년에는 소르본에서 사회학 학 술잡지 <사회학 연도/''.A nnee so ci olo gi,q ue ~ (1 896) 의 창시자가 되었다 윤리학 정립에 필요한 확실한 기초를 규정하는 법칙과 사회에 대한 연구 를 하면서, 프랑스 사회학 학교 !'Ecole Fran<;ai se de Soc i olo gi e 에서 활약 하였다. 꽁트 A Com t e 의 실증주의 계통에 속하며 사회학을 그 나름대로 의 고유한 목적과 방법론을 가진 학문으로 만들려 노력했다. 또 그는 유기 적이고 심리적인 현상과 대비하여 사회적 사실의 특징을 주장하는데, 이 사회적 사실은 〈개인의 의부에 존재하는 행동하고 사고하며 느끼는 방식 으로서, 일종의 강제권을 갖는데, 바로 이 강제권에 의해 필요불가결한 것 으로 된다.〉 이러한 규정은 사회학에 자연주의적, 기계적 성격을 부여하는 것 같지만, 뒤르켐은 이 견해에 뉘앙스를 두어 그의 저술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집단적 표현체계 le sy st e r ne des rep re senta t i on s collec ti ves 〉에 부여한다. 주요 저술로는 기계적 연대성과 유기적 연대성 내부에 있는 상 반성을 발전시킨 『노동의 사회적 분업 La Di vi s i o n du trav ail so cia l 』 (1 893) 에서 시작하여, 『자살론 Le Suic ide .!I( 1897), 민족학적 관심을 보인 『종교생활의 기본적 형태 : 오스트레일리아의 토템체계 Les for mes ele- menta ire s de la vie relig i,eu se : le sys te m e tot e m i qu e en Austr al ie .! I (19 12) 둥이 있다. ® 뵐플린 Hein rich Wolffl in( l864-1945), 스위스의 미술사가이자 미학자 , 부 르크하르트 Burckhard t의 제자. 그는 예술이란 점진적으로 테크닉이 진보 해 나가는 〈자연의 모방〉, 또는 창작자의 심리적 의도와 인간성의 표현이 라고 주장한다. 또한 모든 예술적 비전은 〈시각적 원근법〉과 연결된다고 본다. 더불어 자연에 대한 시각적 이해 방법, 감정, 인간성 둥이 표현되는 양식을 강조한다. 그는 바로크의 명 예를 회복시켰는데, 예술가의 이름이 명시되는 근본적 미술사를 지지하면서 르네상스와 바로크 두 시대를 구별 하였다. 그에 의하면 이 두 시대는 보편적 범주를 반영하는 시대로, 서로 상반되는(평면과 깊이, 형태의 열림과 닫힘, 명료함과 불명료함, 부동성과 운동성 둥) 형식적 구성요소로 특징지어진다. 『르네상스와 바로크.!I(1 888),

『 미술사의 근본원리 Princ ip e s fon damenta w c de l'his t o i r e de /'art 』 (1915, 불어로 1952 년 번역됨) 둥의 저서가 있다.

만 제한시킨다면 종국에 가서는 미술사의 장래가 완전히 위태롭 게 될 것이댜 따라서 방법이나 가설 면에서 다른 진보된 분야 들과 관련을 가짐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장점들을 보여주고자 노력한 것이다. 여기서 다른 분야들이란 문학사나 철학에 대한 현대지식은 말할 것도 없고, 인식론 • 수학 • 인류학 • 민족지학 등의 분야까지도 포함한다. 물론 그렇게 광범위한 분야를 탐색 한다고 해도 결론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여기선 단지 방법을 제시하는 것과 다양한 견해들 올 대면시켜보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이 책을 통해서 심리학자 나 철학자들이 조형 언어 les lang a g e s p las tiq ues 를 좀 더 잘 알 아야 할 필요성을 느낄 수 있게 된다면 이 책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 이 책은 현대미술사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 이 책을 쓰면서 우리 시대 미술의 〈진정한〉 역사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확실하게 묘사할 의도는 애초에 없었다. 한편 지금까지 우리가 인정해온 미술사의 구조를 부정하고 나의 체계를 주장하고자 의 도하지도 않았다. 나는 다만 오늘날 문화의 큰 사조들을 구획하 려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시기상조임을 경계시키려 하였다. 르네 상스나 바로크의 존재는, 시간적으로 거리를 두고 볼 때 겨우 그 파악이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현대의 지배적인 흐름을 항상 서둘러 규정하려는 시도는 얼마나 자의적인 것인지 모른다. 진 정한 현대미술사란 몇몇의 개관적인 사고들에 대해 지극히 주관 적이고도 간략한 정의를 내린다고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오 히려 여러 인간집단의 다양성에 대한 폭넓은 서술이나 테크닉예

대한 깊이 있는 연구에서 비롯된다. 이 인간집단들이란 극히 분 화되어 있고, 끊임없이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는 것으로, 그들이 사용하는 물건들을 포함한 모든 미학적 대상을 생산하고 해석하 는 데 참여하는 집단들을 말한다. 유행하는 사회학 용어를 빌려, 나는 무엇보다도 미세사회 측정법 mi crosoc i ome tri e 을 실행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댜 ® 사실 이 측정법을 실행하는 과정 자체도 마찬가지로 과거에 대한 최대의 지식을 끌어내고자 할 때 유효 하댜 그러므로, 이 글에서 어떤 특정한 예술가들을 다룬 부분에 대해서 독자들이 의아해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하나의 체계적 인 관점에서 선택한 견해만은 잃지 않기를 당부하고자 한다. 나 는 현재를 통해서만 과거를 이해할 수 있으며, 또 그 반대도 마 찬가지라고 생각하였다. 이 책의 목적은 15 세기 이탈리아 미술, 인상주의 그리고 입체주의의 사화집(詞華集)을 세워 보려는 것 이 아니었댜 뿐만 아니라, 이 책의 목적이 인간정신사를 구성하 는 일정 단계의 전형적이며 상대적인, 동시에 일관된 성격을 갖 는 형 상화의 체 계 le sys t e n ie de fig ura ti on 룰 기 술하는 것 이 었 기 때문에, 그후 4 세기 동안 겪어온 우여곡절의 역사를 서술하는 것은 제외되었다. 독자들은 현대미술을 통해서 내가 포착하려 했던 것이 르네상스임을 언제나 기억해주기 바란다. 현대미술은 진행되어 나가고 있는 조형사고 발전의 한 본보기를 우리에게 보여준댜 그리고 점진적으로 해체되어 가고 있는 명백한 법칙 ® 미 시 사회 학 mi crosoc i olo gi e 은 소집 단들 내부의 사회 성 soc i ab ilit e 의 형 태 룰 연구하는 학문으로, 소사회 그룹조직의 형태와 내적 관계를 연구한다. 사회학자이며, 정신과의사였던 모레노J.L. Moreno 가 1934 년 그의 대표적 저술인 『 누가 생존할 것인가? 』 (불어판 제목은 『사회측정법 기초 』 )를 출판 한 것이 기원이 된 사회측정법 soc i ome tri e 은 사회적 존재에 측정을 적용 하려는 사고로서, 수학을 통해 집단들 내부에 짜여지는 심리적 연관을 연 구하는 것이 목적이다.

들이 한때 지녔던 영향력을 확인할 때, 우리가 현재 총체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이 〈형상화 체계〉의 진정한 기초들을 분석할 수 있을 것이댜 그러므로 15 세기부터 20 세기까지, 일정한 인간집단 이 행위를 지배하는 일정한 정도의 인식과 실제적 법칙에 바탕 울 두고 자연을 심리적, 사회적으로 해석하면서, 회화적 표현 방 법을 확립했다는 것이 이 책의 근본적 가설이다 . 따라서, 이 책에서는 공간의 크기나 의미에 관한 지적인 가설 들이, 일정한 기간 동안 서양문화에 의해서 받아들여전 것이라는 점과 또 우리가 정신의 한 범주가 아니라 미학적 〈조립 mon­ t a g e 〉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을 논증하는 데서 그치고자 한다. 이 러한 논증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논 증을 통해서 제기하는 문제들을 남김없이 규명하지는 못한다. 이 책에서 지지한 의견들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불가결한 논의 와 연구주제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어 나 가면서 특히 주석에서 지적한 문제들에서 수많은 연구주제들을 발견할 것이댜 앞으로 나오게 될 15 세기 유럽의 정치사회적 신 화를 다루게 될 저술에서, 아마 이 책의 여러 부분이 보완될 것 이댜 그림을 도해하는데 있어서 다소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 보았 다 . 각각의 도해는 그 전의 그림과 연결되어 있고, 본문 속에서 언어적인 논증의 대상이 되는 명제와 동일한 명제를 시각적으로 논증하는 형식으로 각각의 도해가 제시된다. 각 도해의 의미는 각각에 해당하는 설명적 해설들이 밝히고 있다. 혼한 방식에 의 하면 도해를 다시 묘사하지만 여기선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 한다. 그러나 이미 이미지를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역시 도해롤 선택한 이유와 또 왜 그런 순서로 배열했는가를 밝 히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게다가 이 도해의 비교에 있어서 다

른 명중들이 자연스럽게 포함되었기를 바라며, 그에 대한 독자 들의 비평을 기다리겠다. 내가 예를 선정함에 있어서, 15 세기 미술에서 이탈리아 미술 을, 현대는 프랑스 미술을 택한 것은 도해에서나 본문에서도 의 도적인 것이었다. 국제적으로 현대의 엄청난 작품들을 모두 포 괄할 수는 없었고 또한 그것들의 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여러 나라들의 상호적 역할을 밝히는 연구가 선행되어야 했기 때문이 댜 한편 한 조형언어의 형성과 몰락이라는 현상을 전체적인 관 점에서 고찰하면서, 이 두 중요한 단계에 있었던 모든 시도 가 운데 의의있는 본보기를 제공한 나라만을 고려에 넣음으로써 그 문제를 잘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참고문헌은 체계적 분류방식으로 삽입하였고, 주석 속에 분산 되어 있댜 왜냐하면 본문에 표기되어 그 제목들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알려진 출판물들의 긴 목록을 맨 끝에 가서 또 한번 반 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대신에 나는 새로운 분야의 홍미있는 저술들, 미술사 서적 속에 잘 올라 있지 않은 연구들을 강조하였다. 이 책을 쓰도록, 또 새로운 연구에 착수하도록 도움을 준 모 든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고등교육원 원장, 파리대학 학장, 스트 라스부르대학 학장과 동료들, 그리고 특별히 소르본의 고동연구 대학원 제 4 부의 회장 그리고 사무국장 뤼시앙 페브르 Luc i en Fevre 씨, 브로델 F. Braudel 씨에게 감사한다. 같이 이 책을 만든 고등연구 대학원의 내 제자들에게도 많은 고마움을 표한다. 파리 , 1950 년 12 월 31 일

1 공간의탄Au o 마술의 세계는, 여러 세대들이 품어 왔던 그칠 줄 모르는 연속 된 기대, 그들의 강인한 환상, 여러 방법으로 구현된 그들의 희 망 들 로 가득차 있다. 이 세계의 근저에는 오로지 이것들밖에는 없지만, 바로 이점이 마술의 세계에 높은 객관성을 부여하고 있 댜 이러한 마술세계의 객관성은 만일 마술의 세계가 허위적인 개인적 생각 들 로 짜여진 옷감에 지나지 않는다거나, 또는 원시 적이면서도 상규를 벗어난 학문일 때 지닐 수 있는 객관성보다 도 훨 씬 고원한 것이댜 모스 M. Mauss® ® 모스 Marcel MaussOITT2-1950) : 프랑스 사회학자 , 민족학자. 리베 P. Rive t 와 더불어 민족학 협회 Insti tut d'e thn olo gi e 의 창시자, 뒤르켐의 제자 . < 사회 학 연도 > 의 두번째 시리즈를 간행했다 . 파리대학의 민족학 협회를 지휘했 으며, 종교사회학의 첫 연구결과를 위베르H. Hube rt와 같이 출판했다.

15 세기 미술의 신화와 기하학 예술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는 견해의 차이가 있다 할지라 도 , 15 세기 초 이탈리아, 특히 피렌체에서 독창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여러 세기 동안 실수를 거듭한 끝에 인간문화의 높은 발전단계에 속하는 하나의 조형표현 방식을 창시했다고 하는 사 실은 복음의 진실처럼 보편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조화와 숫자 라는 큰 비 밀을 간직 하고 있는 고대 유물 vesti ge s de l'An ti quite 울 주의 깊게 관찰한 결과인 동시에, 유클리드 ® 수학으로부터 ® 유클리드 Euc li de : 기원전 3 세기 경의 그리스 프톨레미 1 세 시대 수학자. 그의 < 기하학 원본 » 은 19 세기까지 기하학의 유일한 표준적 체계로 쓰였 다. 그는 알렉산드리아 수학파의 창시자로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모이는 기관이었던 박물관 Musee 에서 강의하였다 . 광범위한 그의 저술은 그 일부 만 남아 전하는데, 그의 최초의 저술 『 기본요소 Les Elemen t s 』 는 기본수 학 분야에서 19 세기까지 권위 를 유지했다 . 우선 앞 부분에는 정의, 5 개의 질문(이 가운데 유명한 유클리드의 공리가 포함되어 있다), 공통개념에서 출발하여 평면 기하학(피타고라스의 정리, 다각형, 원형)을 다룬다 . 또 관 계, 비율, 평면 기하학의 응용(탈레스의 정리라 불리는 삼각형의 상사(相 似)가 하나의 예)과 같은 추상적 연구가 포함되어 있다 . 그 뒤의 정수론 부분은 수에 관한 이론으로서 가장 오래된 논문이며, 숫자의 성격에 관한 이론적 연구이다. 가장 간단한 대수학적 • 비합리적 숫자와 공간 기하학을 다루고 있다 .

이 끌어 낸 원근법 적 구성 figu rati on p ers p e cti ve 이 라 는 사실 적 방 법을 사용함으로써, 피렌체 사람 들 이 르네상스 를 구축했다는 신 념은 미술사와 현대문화의 일반적 해석에 기초가 되고 있다. 이 러한 논의에서 전자나 혹은 후자의 중요성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조차도 후자에는 찬동하고 있다. 예를 들어 르네상스가 12 세기 또는 13 세기부터 싹트고 있었다는 식으로 르네상스 출현 시기에 대해서는 견해가 다양하다 하더라도, 르네상스라고 하는 현상의 특성에 대해서는 이론( 異 論)을 제기하지 않는다. 인류를 필연적으로 황금기로 이끌어 간 르네상스, 〈 영원한 진 실〉이라는 법칙에 복귀하는 것을 기초로 하고 있는 돌연히 나타 난 이 르네상스사상은 연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연구의 필요 성은 16 세기 피렌체의 민족적 자부심에 자극받은 바자리 Va- s ari ® 에 의해서 최초로 표명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 필요성이 나타난 시기가 반(反)개혁주의 시대, 다시 말하면, 모든 분야에 서 로마제국주의 방식이 뚜렷한 모습을 갖추게 된 시기와 일치 한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된다 . 르네상스는 두 개의 로마를 화합 시킨다는 주장 가운데 하나로서, 이 주장은 오늘날까지도 로마 문예를 직접 다루지 않는 많은 역사가들의 이념까지도 지배하고 있댜 또 르네상스는 19 세기에 와서, 미쉴레 Mi chele t에 의해 현 대화되었는데, 미쉴레는 르네상스를 신교적인 이념과 융합하였으 며, 이후 텐느 T ai ne 와 부르크하르트 Burckhard t에 의해서 세속화 @ 바자리 Gio r gi o Vasar i05 11-1574) : 이 탈리 아의 화가, 건축가 , 저 술가. 메 디치가의 우정과 후원을 풍요롭게 받을 수 있었던 피 렌체에서 연구 활동 함. 안드레아 델 사르토 그룹에서 그림 공부를 했으며 미켈란젤로의 열렬 한 신봉자였다. 중세미술을 고대와 르네상스를 구분짓는 어두운 세기로 간주했다 . 예술의 부활이 토스카나의 지오토로부터 다시 시작되어 미켈란 젤로에서 절정을 맞이한다고 보았다.

되었댜 @ 르네상스는 미술사를 지배할 뿐만 아니라 사상사를 지 배하며, 모든 역사가들에게 친숙한 하나의 시대구분의 기점을 시사해 준다. 우리는 이 시대구분을 거부하기보다는 오히려 화 합될 수 없는 것을 화합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탈리아 전쟁 발발시기가 아니라 콘스탄티노폴 점령기 (1453) 를 중세의 종말기 로 잡지 않는다면, 역설적이라고 할 정도로 페트라르카나 보카 @ 미쉴레 Ju les Mi chele t(l 798-1 얽 4) : 프랑스의 역사가, 저술가 . 젊은 시절 에 아버지의 인쇄소에서 일하면서 동시에 학업을 훌륭히 마쳤다. 고등사 범학교 Ecole Normale Su peri eure 에서 고대사 강의를 하면서 역사철학에 열중했다 자유주의자로 1840 년 콜레즈 드 프랑스의 교수가 되었고 이 해 부터 정부의 적이 되어 두번이나 정직당하고(1 848, 1849), 1 8.5 1 년에는 강 좌직에서 파면당한다 . 그의 역사저술은 학자의 책이자 예술가의 책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사상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깊은 감수성으로, 프랑스 를 한 인간이자 사랑받는 한 여인으로 상상한다는 점이다. 죽 학문의 통일 에 대한 신념처럼 한 개의 혼을 가진 인간의 깊은 통일을 그는 믿는다. 그 의 세계관의 특징은 지식과 실제를 항상 총체적으로 조망하려는 집념이 댜 그의 저술에서 그는 프랑스 민족의 혼과 초자연적인 에너지를 부활시 키고 있다 이것은 표면적 차원이 아니라 유기체의 깊은 차원에서 탐구되 는 총체적 생의 부활로 바로 이 점이 미쉴레의 독자성이다. 역사를 총체적 생명의 부활이라고 보는 그는 사건에만 기초하기보다 지리적 토대 및 과 거 생활의 모든 면에 기초해서 자료를 분석한다 . 그의 주요 저술은 !I'프랑 스 역사 H i s t o i re de France 』 (1 833-1846), 『프랑스 혁명사H i s t o i re de la Revoluti on fra n 언i se 』 (1847-1 懿)이며 그의 문학작품들 『여인 』/ '바다』등 온 서 정주의 색채가 짙다. 텐느Hippo l yt e Ta ine (1828-1893) : 프랑스 문학 비평가, 철학가, 역사가 . 엄격하고 체계적인 연구방법에 의해 통일성과 일관성 있는 저술을 했다. 그는 종족, 지리사회적 집단, 역사적 발전시기둥을 연구함으로써, 문학적 창조, 정신적 기능의 발달, 역사적 사실들을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부르크하르트J akob Burckhardt( l 818-18

치오가 활약한 14 세기를 르네상스 발단시점으로 간주하기도 한 댜 어쨌든 이탈리아 예술운동의 우월성을 하나의 사실로서, 또 인류가 지식의 영원한 원천으로 서둘러 복귀한 결과로서 보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 ”

1) 르네상스 문제에 관해 그간의 연구에 대한 완벽한 참고문헌을 여기에 실 을 수가 없는데, 콰트로첸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 여기에 싣는 주석 들을 통해서 독자들은 내가 제기했던 근본적 문제들에 접근할 수 있을 것 이며, 또 나의 입장에 대한 비판적인 지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체적 참고문헌에 관해서는 피에르 라브당 P i erre Lavedan 의 저술로 파리 클리 오 출판사에서 1944 년에 나온 『 미술사 Il, 중세와 현대 』 와 , 1949 년 밀라노 에서 나온 모밀리아노A. Mo mig l i ano 의 『 문학사의 일반문제 』 속에 실린 가랭 E. G ari n 의 수정판 r 인본주의와 르네상스」 를 참조하기 바랄 뿐이다. 여기서 중세와 르네상스의 상반성에 관한 이론적 토론을 반복하자는 것 이 아니라, 반대로 15 세기 예술의 열쇠가 되는 문제에 대한 객관적 분석 에의 길을 찾자는 것이 나의 의도이다. 16 세기 연구는 특별히 뤼시앙 페 브르의 작업에 힘입어 상당히 새롭게 진전되었다 . 그의 『 라블레 Rabel ai s 』 는 16 세기 역사에 관심갖는 사람에게는 획기적인 저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또 한번 미술사가들에게 너무도 알려져 있지 않은 이 탈리 아 문학사 저술들, 특히 로시 V. Ross i와 토파닌 G. To ffani n 의 두 책으로서 밀라노에서 1934 년 재판되고 1950 년에 4 번째로 간행된 『 이탈리 아 문학사 』 3 권과 4 권, 『 15 세기 16 세기 .!I (광범위한 참고문헌이 포함되어 있다)와 1940 년 베로나에서 출간된 플로라 F. Flora 의 『 이탈리아 문학사 』 1 권이 그것이다. 여기에 칼카테라 M.C. Calca t erra 의 수정판이면서 모밀 리아니 문집 가운데 하나인 『바로크의 문제 g 를 추가해야겠다.

여기서 르네상스란 문제를 상세하게 제기하기보다는 더욱 간 단하고 구체적으로 15 세기 이탈리아 회화에서 공간의 표현체계 가 어떻게 제기되고 발전되었는가를 연구해 보고자 하며, 이 문 제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차차 논의를 진행해 나가면서 보여 주고자 한댜 사실 내가 제기하는 이 문제는 핵심적인 것이며 전혀 우연히 선택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야심찬 종합적 검토를 시도하기보다는 공간 표현의 문제를 보다 깊이 파헤쳐 보려 하

였는데, 왜냐하면 좁은 범위일지라도 확고한 결론을 내리는 것 이 더욱더 타당성이 있으며, 이를 통해 다른 연구로의 길이 열 릴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조사대상을 이탈리아에 국한하였는데, 그 이유는 이탈리아에 전통적 교조주의가 기초하 고, 또한 다른나라들과 비교하여 당시 이탈리아 문화가 차지하 는 진정한 위치에 대한 연구는 여러 다른 조사를 필요로 할 것 이고, 그 다론 조사의 가능성과 의미는 이 책을 읽고난 뒤에 자 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그리고 나는 이 책에서 14, 15 세기의 사상으로부터 출발해서 4 세기 반 동안 나 타난 모든 작품을 통해서 공간의 조형적 표현에 대한 일정한 형 태를 완벽하게 이야기하려고 의도하지 않았다. 또한 궁극적으로 아카데믹한 방식이나 또는 영감의 유일한 원천을 이탈리아에 둔 테크닉이 어느 정도까지 한 국가적 문화의 결실이었는가도 연구 하려 하지 않았댜 어쨌든 15 세기 예술운동에서, 지식의 원천과 파급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탈리아가 그 당시의 지식 울 집대성했다는 것을 나는 기정사실로 보았으며, 또한 15 세기 예술운동 속에 표현되지 않은 조형체험이란 별로 없다고 보았 댜 따라서 4 세기 동안 서구문화의 모든 표현적 요구를 충족시 켰던 장본인으로서의 〈공간의 조형적 표현〉의 토대를 15 세기 이 탈리아 회화운동을 통하여 연구함이 타당할 것이다 . 바자리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 르네상스 〈창시자들〉을 나 란히 모아 놓은 우첼로 Uccello @ 의 유명한 성단그림의 아랫부분 ® 우첼로 Uccello, Paolo di Dono(1400 년경 -1475):15 세기 피렌체 화가. 일 생 동안 투시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며, 수학적 구축을 통해 구성하면서 원 근법을 나타내려 노력했다 . 자연 그대로 새와 식물을 그린 최초의 화가. 그의 대표작은 메디치 궁전 산 로마노의 세 전투 장면으로 오늘날 루브르,

내셔날 갤러리, 우피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보여주고 있는 당대인들이 내세운 르네상스의 전통적 학설을 우리가 믿는다면, 15 세기 초의 예술운동은 세 명의 피렌체인의 공동작업이다. 죽, 브루넬레스키 Brunellesch i, 도나텔로 Dona t ello 그리고 우첼로 자신으로, 이들은 수학자이자 회상록 작가인 마 네티 Mane tti와 그들의 선구자인 지오토 G i o tt o 의 뒤를 이은 사람 들이댜 젝 물론 현대미술의 근거가 되는 몇몇 전형적인 작품을

2) 우첼로란 이름으로 오늘날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판넬 작품 을 말한다. 작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었는데, 어쨌든 이 작품은 여러 차례에 걸쳐 다시 그려졌다. 이 작품이 혹 시 성단 그림의 아랫부분에 해당되는지 아니면 카소네의 판넬 그림인지 의문이 많다. 여하튼 동일한 인물 그룹 을 담고 있으면서, 산 갈로의 줄리아노 Giu l i an o 소장품에 속한, 그리고 바자 리 Vas ari가 언급한 적이 있는 판넬 그림과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 브루넬레스키 Brunellesch i, Fil ip po(l37 7-1446) :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 의 피렌체 건축가. 1420 년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을 완성하는 책임 을 맡았다 또 피 렌체에서 산 로렌초의 의식용구실(儀式用 具室 )을 짓고 파치 성당을 건립했다 . 삼각홍예 pe ndenti fs 위에 둥근 천장을 세우는 기 술을 재발견했다 . 그가 세운 두 개의 대성당 산 로렌초와 산토 스피리토는 비율의 조화가 뛰어나다. 그의 가장 중요한 비종교적 작품은 아동 병원의 유명한 문이다(1 421) . 그의 중심투시 pe rspe cti ve cen tr ale 는 르네상스 화 가들에게 상당히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도나텔로 Dona t ello(l 386-1466) : 조각가, 건축가, 금은세공가 . 인체에 대 한 연구와 우아한 감각으로 15 세기 피렌체 예술을 구현했다 . 기베르티에 게서 청동기술을 배우고 피렌체의 돔아틀리에에서 조각을 공부했다. 1416 년 피렌체 종탑의 조각을 착수했으며 힘찬 사실주의 기법으로 표현했다 . 1430-1433 년 로마에 체류하고, 후기작에서는 고대의 장식적 레퍼토리를 도입했으며 나체를 연구했다 . 파도바에 초대되어 10 년을 머물면서 1443 년에는 고대 이 래 가장 거대한 주물 기마상을 제작했다. 마네티 Manett i, Anto n io( l42 3-1497) : 이탈리아 건축가, 수학자 . 브루넬 레스키의 전기를 최초로 저술했다 (1485 년경). 지오토 Gio t t o, Ambrog io di Bondone(1266-1337) : 유명한 이탈리아 화 가이자 건축가로 그의 생애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치마부에의 제자이 며, 단테의 친구였다 단테는 그의 완전무결한 희극에서 지오토의 재주를

찬탄했고, 지오토는 단테의 초상화를 그렸다. 아시시에서 제작했으며, 그 곳 성 프란체스코 성당의 유명한 벽화를 그렸는데, 28 폭의 그림 가운데 20 폭이 그의 작품이다. 비잔틴 화파와 당시 로마인 카발리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 또한 그가 관계를 가졌던 프랑스 화가들로부터 다양한 경향 을 홉수하여 운동감, 감정 이 풍부한 표현, 생명 감을 도입하고 있다. 비잔 틴 형태의 딱딱함을 사실적이고 실제적 인체로 대신하였다. 파도바 벽화 에서 그리스도 , 성모마리아, 성인들의 단순성, 깊이, 인간미, 정신적 앙양 들을 표현하는 데 성공하였다.

보다 더 구체적으로 지적하는 것도 또한 가능한 일일 것이다. 15 세기 초에 피렌체에서 하나의 대작이 완성되는데 이것은 대 성당 la ca t hedrale 의 완성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둥근 천장 une voute , 더 정확히는 둥근 지붕 une coup ole 을 상당히 거 대한 공간 위에 올려 놓는 일이다. 문제를 제기했던 사람이 브 루넬레스키 자신은 아니며, 오히려 실제로는 전세대들이 물려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의 생애의 대사업들이 바쳐졌다는 것 울 나는 관찰하였다 아르간 M.G.C. Ar g an ® 은 최근에 쓴 그의 훌륭한 논문에서, 둥근 지붕의 미학적 의미와 공간적 의미를 밝 힌 반면, 폴 프랑클 M. Paul Frankl 은 밀라노의 대성 당 건축에 대한 기사 속에서, 외관상으로 보아 보다 전통적인 이 작품 속 에서 중세에 사용된 〈이성 r ai sons 〉과는 전적으로 다른 도표작성 방법, 계산방법, 비율처리 방식 등의 새로운 역할을 밝혔다. 아 르간이 명확히 보여준 점은, 어떻게 브루넬레스키가 피렌체 대 성당의 궁륭( 窟 昭) 천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내부 작업대가 없이 천장을 세우는 것을 가능케 해준 실천을 통해 얻어지는 능

® 아르간 G i u li o Carlo Arga n{1 9 09-1992) : 이탈리아 역사가, 비평가. 리오넬 로 벤투리 Lio n ello Ven turi의 제자. 팔레르모와 로마대학에서 강의했다. 그는 창작에 있어서 사상적 사회학적 상황 및 도시적 환경을 중시하면서, 미술작품을 종합적이고 구체적으로 분석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 월터 그 로피우스와 바우하우스 』 0951), 『 브루넬레스키 』 (195.5), 『 보티첼리 .!I (1 956) 가 있다 .

숙함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재료조립의 기술적 문제에 대한 경 험적 해결을 가능케 해준 공간에 대한 새로운 미학적 개념을 제 공하였는가라는 점이다 . 브루넬레스키에 있어서 공간이란 둥근 천장이 바람벽 내부 사이에 둘러싸고 있는 공기의 입방체가 아 니댜 공간은 균동한 가치를 지니고, 또한 그것은 어디에도 존재 하는 것이며, 포함하는 것이자 포함되는 것이고, 둘러싸기도 하 며 둘러싸이기도 하는 것이다 . 산타 마리아 디 프라리 성당의 둥근 천장은 하나의 내부 형태를 규정해 주는 면이나 표면의 폐 쇄적 체계로서 구상된 것이 아니며, 그것은 전 우주와 연관을 갖고 있는 것이다. 즉 둥근 천장의 표면은 대기 속에서 연장되 는 면들의 교차점들이다. 또한 둥근 천장은 자기가 위치한 중심 에서 신비스런 지점들과 자기를 연결시켜주는 모든 상상적 선들 이 있는 기하학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이 공간은 도나텔로의 r 다비드상 le Da vi d 」처 럼 빛으로 가득차 있는데, 이 조각도 역시 하나의 덩어리로서 구상된 것이 아니며, 운동의 축이 되는 기하 학적 면들의 교차점으로서 구상된 것이다. 이 산타 마리아 디 프라리 성당의 천장은, 상상적 관계를 조직하는 거대한 체계의 중심으로, 여기에서 기하학이 그 체계의 열쇠이다. 이 둥근 천장 은 돌덩어리들을 다루는 것이거나, 석공의 기술이 아니라 , 면들 이 만나서 형성되는 선들의 바례에 기초를 둔 건축이다. 고딕건 축에 있어서, 중심을 싸고 있는 공간이 규정하는 건축물의 균형 을 잡는 일은 건축감독의 과제였다. 한편 유리공은 이 공간에다 천장 면에 그려진 채색화가 줄 수 있는 것과는 또 다른 독자적 인 훌륭한 매력을 부여하였다. 브루넬레스키에 의해 또 다른 체 계가 구상되기 시작한다. 이 새로운 체계의 절반은 순수한 발명 에 기초를 둔 반면, 다른 절반은 고대작품에 대한 고찰에 기초 를 둔다. 중세가 건물을 하나의 밀폐된 봉투로서 보았던 반면,

르네상스는 건물을 면과 선을 가지고 둘러싸기도 하고 둘러싸이 기도 하는 개방적 체계의 구체화라고 간주하였다. 중세가 채색 된 빛 la lum ier e coloree 으로 이상적 공간을 창조하였다면, 르네 상스는 투명 한 빛 la lum ier e di a p hane 으로 이 상적 공간을 창조 하였댜 이 분석을 더 깊이 해보지 않아도, 브루넬레스키시대에 건축의 공간 개념에 새로운 사고가 나타나고 있음은 분명하다 . 31 아직도 생생한 전통의 메아리이가도 하며, 또 바자리가 다시 다루었던 마네티수학을 증거라도 하듯이, 15 세기 초에 바로 그 브루넬레스키 역시 회화 문제에 접근하는 신기한 시각장치 ap pre il 3) 이 부분을 밝히기 위해서는, 최근에 나온 주요한 두 논문을 참고할 수 있다. 아르간이 쓴 , 1946 년 런던 바르부르그신문과 커톨드 협회에서 출간 한 「브루넬레스키와 15 세기 투시이론의 기원」과 1942 년 예술지에 실린 , 프랑클이 저술한 r 중세 석수의 비밀, 파노프스키의 스토나콜로 공식 설 명」이 그것이다. 이 연구의 첫부분은 이탈리아인들의 둥근 천장 건축에 대한 깊은 분석에 기초하고 있다. 특히 1941 년 로마 고고학 미술사 왕립 협회에서 출간한 !i' 미술전집 』 제 11 권으로 산파올레시 San p aoles i가 쓴 了산 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의 둥근 천장, 구상과 건축 』 이라는 책의 둥근 천장 건축역사에 관한 분석이 중요하다. 그 연구의 두번째 부분은 1392 년 밀라노의 돔 건축 완성에 관계된 알려지지 않았던 자료를 언급하고 있는 데, 이 자료는 내가 보기에 극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건축과 설계도의 기 하학적 형상화 방법으로부터 기하학적 계산법보다 수치계산법에 의한 방 법에로의 전이와, 한 논증방법에서 다른 논증으로의 전이를 우리가 날카 롭게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15 세기 미술은 기하학을 건축에 적용하는 것을 발견한 것도 아니며 유클리드를 발견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수학의 영구적 자료를 새롭게 해석하고 새롭게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이로 인해 그 이후로 수학이란 학문 자체의 새로운 진보를 보았다. 또 이점은 1947 년 파리에서 출간된 『수학적 철학의 단계』에서 부룬쉬비크가 기계주의에서 수학주의에의 전이라고 부른 바로 그것이다. 단지 내 생각으로는 그가 이 러한 전이의 출현을 17 세기로 보는 것은 너무 시대적으로 늦게 잡고 있 는 것 같다. 이는 앞서 2 세기 동안 있었던 예술적 발전 내지 기술적 발전 을 충분히 고려해 넣지 않고 있기 때문으로 그가 어느 연구에 기초를 두 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o ptiq ue 를 만들어 내었댜 ® 피렌체인들이 모두 잘 알고 있는 건 축물인 대성당의 중심 문에서 본 세례당 Ba pti s t e ri um 과 시의회 Sig n ori a 등이 묘사된 두 개의 작은 판이 바로 이 장치이다 . 거기 에 묘사된 건물들은 그 주위에 뒤로 물러서면서 배치된 경( 景 )으 로 풍경을 만들어 주는 길과 광장을 배경으루 하고 있다 . 4) 특기 할 만한 것은, 이제부터 화가들은 원근화법적인 방식으로 숙고 하게 된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왜냐하면 브루넬레스키의 조망을 보기 위해서는 판 중심에 뚫린 작은 구멍에 눈을 대면 되기 때 ® 〈 1415 년경, 브루넬레스키는 최초로 피 렌체의 산 지오반니 San Gio v ann i 광장을 구체적으로 체험했다 .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의 우아 함 이나 바로 맞은편에 있는 산 지오반니 예배당의 초 록 색과 흰색의 대리석이 피 렌체인들의 주의를 끌지 못했다. 이 광장의 성당 정문 쪽에 사람 들 이 홍 분에 들떠 브루넬레스키 주위에 몰려 들 었다 . 자그마한 판 위에 예배당의 겉모습을 완벽하게 그렸을 뿐만 아니라 , 여기에 그려진 모 델 인 그 건물 자 체와 이 그림이 일치하도록 하는 장치 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그림과 모델이 서로 합쳐지도록 하고, 또 첫번 것 을 보면서 두번 째 것이 비쳐보이도록 하려면 한 번에 한 사람만이 체험 할 수 있을 정도 로 정확한 한 지접에 관람자가 자리잡아야 한다 . 이미지와 대상이 겹쳐지 고 이 모두가 유일하게 하나인 것으로 시선에 들어오게 하려면 정확한 자 리에 서기 전에 한바퀴 돌아봐야 한다. 이 특별한 자리에 서서, 관람자는 두 눈으로 예배당을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눈을 나무판 위에 뚫어놓은 녹두알 만한 구멍에 대고서 예 배당을 보아야 한다 . 그리고는 한 손에 거울을 들 어 구멍 맞은편에 세운 다. 이때 건물의 직접적 모습은 가려지지만 거울에 비친 모습은 바로 화판 뒷면에 그려진 이미지를 나타낸다 . 바로 여기에 기적적인 일이! 관람자는 현실 자체를 보고 있다고 믿게 된다.〉 필립 코마르 P . Comar 의 『 문제의 투시 La pers pe ctive en j eu .!I (갈리마르, 1922 년) 32, 33 쪽 참조. 이 책 부록 의 도해 〈브루넬레스키의 시각기구〉 참조. 4) 마네티의 글은 1 祀 7 년 베를린에서 프라이 C. Fre y의 『현대무명작가가 쓴 필립포 브루넬레스키의 생애』라는 책에 실렸고 , 또 19 刃년 피렌체에서 엘레나 베르티-토에스카 Elena Be rti -Toesca 에 의해 『마네티와 브루넬레 스키의 생애 』 란 책으로 나온 적이 있다.

문이댜 즉 두 개의 조망 중에 첫번째인 세례당을 보려면 대성당 문의 입구에 해당된 지점에 서면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조망이 잡히고 정렬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판은 하늘을 반사하는 매 끈한 철판 위에 세워졌다. 그림을 그린 판에 대해서, 그 철판의 반대쪽 지점에 수직으로 거울을 세웠고 거기에 구성이 반사되었 댜 그러므로, 그림이 그려진 판에 뚫린 그 작은 구멍을 통해서, 광선과 반사로 이루어진 한 상상의 세계가 고도의 시각작용에 의해 우리들 시선에 포착된다. 이 두 시각적 조망이 갖는 실험적 성격, 둥근 천장 건립에 있어서 브루넬레스키에게 길잡이가 되 었던 사고들과 이러한 실험적 성격과의 관련은 아주 분명하다. 다수의 군중 앞에 내놓기 위한 작품이 문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는 한 실험도구, 한 기구 앞에 있는 것이다. 당시의 사고를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들도 있다는 것을 여기 에서 언급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기 베르티 G hi be rti의 시각에 대 한 저 술은 좀 무질서 해 보이 는데 ,5 ) 특히 알 하젠 Al Hazen 같은 아람 물리학자의 저술을 읽으면서 기록한 지엽적인 기록에 불과 5) 기베르티의 글은 1912 년 베를린에서 슐로서 J. von Schlosser 가 7 기베르 티의 업적 .!J 이라는 책으로 출판했다. 여기서 나는, 여러 세대 동안 일종의 영감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온 이 고대 그리스의 방식에 대한 유명한 한 저술에서, 푸생은 16 세기 말의 한 박식한 글을 과장해가며 설명한 데 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하려 한다. 이 점에 관해서는 1933 년 프랑 스 미술지에 실린 알파사 P. Al fa ssa 의 『최근작으로 본 제작방법에 대한 푸생 서간문의 기원」을 참고로 하자. 1910 년 케임브리지에서 나온 블런 트 A Blun t의 『회화이론에 대한 푸생의 공헌』이 중요시 된다. 르네상스 에 있어 기베르티의 진정한 위치에 대해서는, 1947 년 < 미술지>에 실린 크라우타이머의 「기베르티와 대가 거스민」을, 또 1937 년 벌링톤지의 ”l 베르티」를 참조로 하자. 기술상의 해결책이나, 경험적 관점에 따라서 문 제에 접근하는 기베르티는, 프랑클 M. Frankl 이 그의 논문에서 밀라노 돔 건축에 관해 건축의 실제적 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던 것과 같은 의미 에서 중세기 말의 인물이다 .

하댜 ® 기베르티는 조금 뒤에 등장한 푸생 Pouss i n ® 처럼 그 과 학에 매혹되었으나, 그 과학에 대해서 명확히 논술하지는 못하 고 있다. 그는 빛을 하나의 발산물로 보는 전통적 사고와, 둘러 싸는 사물들과는 무관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실재하는 동질의 세계로서 빛이 존재한다는 새로운 사고 사이에서 주저한다. 브 루넬레스키와 마찬가지로 기베르티 역시 그의 방법을 늘 새로운 사고에 적응시키지 못합은 분명하다. 기베르티에 있어서는 브루 넬레스키보다 더, 빛과 공간에 대한 사고가 다소 이론적인 학문 이며, 또 그의 저술들에서 따르고 있는 수공적 전통 및 실제와 도 구별되는 분야이다. 어쨌든 그도 도나텔로의 「다바드 상」과 ® 기베르티 Gh ibe rt i, Lorenzo(1378- 1 455) : 피렌체 출 생의 조각가, 금은세공 가, 화가, 건축가. 그리스 로마문화를 잘 알고 있었으나 중세문화에 내내 충실했다. 1403 년 안드레아 피사노의 조각과 비교되는 피렌체 세례당의 두번째 청동문 제작의 책임을 맡았고 1424 년에 완성 했다 . 이 문은 그리스 도의 생애, 복음서의 저자, 성경의 학자들을 나타내는 28 개의 칸으로 나뉘 어져 있다 . 1425 년에는 미켈란젤로가 후에 천국문이라고 이름붙인 세번째 문의 제작을 맡았으며, 구약을 10 폭으로 나타냈고 1452 년에 완성했다. 두 번째 문은 고딕양식에 충실하며 안드레아 피사노가 조각한 문에서 영향을 받았다 세번째 문에서는 완전히 독창적 양식을 채용하고 회화적인 깊이 를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청동을 미묘하게 사용한다. 그의 생애의 마 지막 저술은 피렌체 미술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알 하잔 lbn al-Hayt ha m AI-Hazan(965-1039) : 아랍의 수학자 , 물리 학 자, 철학자. 다수의 학술 논문을 저술했다 . 이 가운데 r 광학 논문』에서 눈 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했고, 대기굴절 현상을 분석했다. 특히 기하학분야 에서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냈다. ® 푸생 Nic o las Poussin 0 594-1665), 프랑스 화가 1624 년 이 탈리 아로 감. 프랑스에서 잠깐 두번 체류한 것 외에 죽을 때까지 로마에서 살았다 . 생 애의 대부분을 이탈리아에서 살았으나 이탈리아 바로크회화의 영향은 거 의 받지 않았으며 대신 라파엘의 숭배자로서 고전주의 회화의 대가가 되 었다. 그의 구성은 단순미와 분명성이 그 특징이며 차거움은 외면적인 면 에 불과하다. 신화를 다룬 많은 작품을 남겼다.

유사한 천국문을 부조( 浮 影)할 때 부분들간의 빛의 연결을 좀더 강조함으로써, 사고와 예술을 연관시키는 길을 개척하고 있다. 15 세기 초에, 다양한 방향에서 연구가 전개되고 있었다는 것 은 명백하다. 건물의 평면도와 입면도의 관계, 또는 빛의 회화적 이고 조소적인 처리와의 관계가 확실히 중요했다. 나는 여기서 실제로 건축물을 한 덩어리로 간주하는 중세 체계로부터 르네상 스 체계로 갑자기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 같 은 시대에 브루넬레스키는 특히 「십자가 책형 Cruc ifix」과 같은 조각에서 문자 그대로 훨씬 전통적이고 〈사실적 re ali s t e 〉인 양식 을 채용하고 있다. 어쨌든 15 세기 초에 급작스런 단절이 있었다 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그 당시 사람들의 독창적 기여를 부정하 는 것만큼이나 잘못된 일이다. 르네상스를 갑작스레 나타난 기 적으로 보는 것은 착각이지만, 그러나 무엇인가 중요한 것이 15 세 기 초에 일어났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도나텔로, 우첼로, 특히 브루넬레스키 등이 개인적으로 쌓은 연구 업적들이 지대한 영향력이 있었다는 것은 반대할 수 없다. 그들 작품이 보급된 덕분에, 특히 브루넬레스키 덕분에, 소수그 룹인 피렌체 석학들의 새로운 사고에 대한 취향이 일반적인 호 기심의 분야로 확산된 것을 목격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물질이 지만 예술가가 측정할 수도 조정할 수도 있는 빛의 특성에 관한 발견같은 근본적인 발견이, 새로운 건축적 기능주의 사고를 자극 하였을 뿐만 아니라, 공간의 회화적 표현을 치밀히 구상하는 새 로운 방법에도 영감을 주었다. 브루넬레스키는 일종의 상상적 모 델을 재현해줄 뿐 아니라 공간의 모든 부분들이 서로 교통되도 록 해주는 체계 내에서, 공간을 여러 칸으로 나누는 필요성을 발 견해냄으로써, 돌을 자르는 기술과, 덩어리를 자르는 것과 조립 하는 것, 그리고 폐쇄된 빛의 처리 둥에 기초를 둔 중세의 조형

적 분명성을 대체했댜 이제부터는 비율과 숫자가 덩어리 를 대 신하게 된댜 다시 말하면 돌의 볼륨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가에게 그 작업을 보여줄 수 있도록 선으로 표시되는 캔버 스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르네상스 건축은, 고대에 대한 숭배와 더불어, 브루넬레스키의 연구 속에서 최대의 힘을 발휘하고 있 댜 게다가, 겉으로 보기에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보이며 또 이 상해 보이는 대상들 사이에 존재하는 구체적이고 측정할 수 있 는 관계에 부여되는 중요성과, 그리고 선들은 계속되는 표면의 한계만을 규정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의 발견, 또 면의 교차점들 은 빈 공간 속에서 형태를 만들면서 연장되고 또 투사된다는 사 실의 발견 등, 이 모든 것들이 분명히 화가들에게 더없이 귀중한 교훈을 제공했다. 브루넬레스키 자신은 어디로 보나 화가는 아 니댜 예를 들면, 이미 설명한 작은 두 개의 판은 엄격히 말해서 회화작품은 아니다. 이 작품의 제작목표는 하나의 표본이 되는 작품을 만드는 데 있기보다는, 오히려 빛의 작용에 대한 실제적 인 연구를 도와준다는 데 있다. 어쨌든 새로운 공간형성에 있어 서 브루넬레스키가 한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생각 되었다. 왜냐하면 그가 틀림없이 개혁자들 가운데 가장 대담하 고, 하나의 법칙에 따른 결과들을 구체화한 최초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이야말로, 예술적 테크닉의 발전과 사고의 전체적 흐름 사이에 있는 연관을 보여준다. 또 브루넬레스키의 작품은 지식을 시각화하는 분야에 있어서 진정한 변화가 갖는 돌연스러운 특징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야말로 르네상스의 창시 자 중의 한 사람이다 . 덧붙이자면, 브루넬레스키의 사고가 새로 운 예술의 가능성을 강하게 제시하고는 있지만 그의 특수한 작 품들이 현대적인 건축작품과 회화작품 전부를 구체적이고 결정 적인 방법으로는 포함하지 못했던 것도 또한 사실이다.

15 세기 초 회화에서 새로운 조형공간의 탄생을 이해하려면, 발명의 영역에 존재하는 철저히 다른 두 요소를 동시에 이해해 야 한댜 첫째는 어떤 대상 또는 알려지지 않은 어떤 실체의 발 견이거나, 또는 이미 알려진 사실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나 조 직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떤 원칙의 발견이다. 발견과 적용, 이 둘은 일반적으로 상호 유도하기 마련이지만, 순수한 발명이 란 이론의 여지없이 바로 위에 지적한 단계이다. 이 단계는 오 랜 연구기간이 걸렸다 하더라도 대개 돌연스레 나타나는 것으로 서, 발명 그 자체로는 작품을 생산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 발명 은 적 용 les a ppli ca ti ons 이 실현됨 에 따라서 만 그의 가능성 이 발 전된댜 15 세기 초 공간의 조형적 표현에 있어서 새로운 방법이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연구하려 할 때, 방금 설명한 법칙을 다시 환기하게 된다. 그 바탕에는 브루넬레스키와 또한 틀림없이 도 나텔로에 힘입은 〈 투명한 빛의 지속적인 성격과 이 빛의 조정이 가능하다는 점〉의 발견이 있었는데, 사실 이러한 발견은 여러 세기 이래 추구되어온 오랜 경험에 기초하는데 , 6) 또한 브루넬레 6) 한 세대 전부터 학문의 역사라는 분야에 사람들이 새로운 관심을 보이 고 있다. 그렇지만 이 문제 들 이 차지하는 위치를 전체적으로 파악하기 위 해 우리가 갖고 있는 책은 아직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 최근 파리에서 열 린 제 9 회 역사학 학술대회에서 코넬대학의 학문사 교수인 게르락 MH. Guerlac 이 이 문제에 대한 글을 발표했댜 이 훌륭한 연구와 여기에 대한 토론은, 이 연구가 시작 상태라는 것과, 중대한 자료들이 산만하게 퍼져 있고 거의 손에 닿기 힘든 상태임을 잘 지적해 주었다. 이제 새로 조직되 는 학문이 문제시된다. 이 새로운 분야가 대상에 대해 너무 편협한 개념 울 만들지 않기를 바라며, 단지 전문적 분야로서의 이 학문이 축소된 연 구를 하지 않고, 인간적 복잡성 내부에서 여러 시대를 총괄적으로 포착하 기 바란다. 예술의 발전 내부에서 학문의 역사를 알기 위해 배워야 할 것 이 많음은 확실하며, 우리가 한 지정된 시대에 있어 기술의 발전 상태가 무엇이었는가를 잘 알 때에 비로소 수많은 미술사의 문제들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대상이 없이 기원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를 빈다.

이 학회에서 프라이부르크대학의 리터 Ritter 교수가 학문의 특 수화와 분 할을 변호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고, 또 그는 특수한 것만이 진정한 학문 이며 문화사의 종합적 견해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다행히 도 시대에 뒤진 견해이다. 또 크라코비의 코트 Ko t 교수는 문화사의 진정 한 대상은 사고의 역사라고 주장했는데, 그의 생각으로는 분명히 종교적 이념이 문제시되었다. 정말 다행스럽게 오늘날 대다수의 역사가들은 반 대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 1932 년 파리에서 출간된, 수많은 예견이 실려 있는 포시옹 Foc ill on 의 r 로마네스크 조각예술」에서, 12 세기에 그리스 수학과 물리학이 서양에 급속히 보급된 사실과 중세미술과의 관계에 대한 개관이 일찌감치 세워 진 것을 볼 수 있다. 서양에서의 유클리드의 풍요로움에 대해 쓰여진 근 본적 저술은 아직 없다 . 15 세기 초 예술적 기술 분야에서 특히 발전되고 있었던 것이기도 한 이 세계에 대한 시각을 다소 의식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r 요소들 Elemen ts』을 우리들이 익숙한 부류에 분류한 것은 17 세기 에 와서였다는 점을 잊지 말도록 하자. 이 주제에 관해서는 부룬쉬비크가 r 수학적 철학의 단계」의 84 쪽에서 인용한 라이프니츠 Le i b ni z 를 참고로 하자. 〈표현력은 표시된 형태와는 관계가 없으며, 이 형태란 우리가 말하 려고 하는 것의 지적 성격을 좀더 수월하게 해주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 고, 주의를 끌기 위한 것일 뿐이다.〉 이것은 조형적 형상화의 형태를 취 하거나 조형적 건축의 형태를 취할 때조차도, 모든 기하학 내부에는 이 세계에 대한 구체적 체험과 논리가 존재한다.

스키가 전세대들로부터 받은 수학지식에도 의존하고 있다. 그러 나 분명히 급작스런 변이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 브루넬레스키 와 우첼로 이전에도, 거리에 의해서 혹은 원근법에 의해서 멀어 지는 소실선(消失線)을 수단으로 삼아서 크기를 축소할 수 있다 는 법칙을 알고 있었으나, 거기에서 미학적 원칙을 끌어내지는 못했댜 기하학적이고 수학적인 관계가 자연 속에 서로 떨어져 위치하는 사물들 사이에 하나의 다리를 놓아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빛이 다른 실체들과 같은 의미에서 측정할 수 있는 실재 real it e 라는 점도 몰랐다. 여기에서 바로 새로운 학문 의 그 어떤 부분이 그 이전에 실현된 결과에 의존하고 있다든가,

새로운 예술의 어떤 요소가 14 세기나 12 세기의 연구를 이용하고 있다든가 하는 점들을 증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그 모두를 동일한 문제로 취급하려는 시도는 잘못된 것이다. 순수한 발명의 중요성을 생각할 때, 발명의 과정이 아주 느리 게 결실을 맺는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된다. 잠재적인 사실의 역 사란 존재하지 않으며, 있었던 사실의 역사만이 존재하는 법이 댜 한 원칙을 발견했다고 해서 죽시 세계가 변하는 것은 아니 댜 예를 들면, 어느날 증기기차를 발명했으나 기계문명이 자리 잡기에는 1 세기 이상이나 걸려야 했다. 발명이 근본적일수록, 또 국민 생활의 기본적인 요소에 관계될수록, 그 결과로서 전체는 느리게 발전하는 것이다. 15 세기에 일부의 예술가들과 중세기 사고를 연구하던 학자들이 발견한 것은, 사물뿐 아니라 비어 있 는 것도 잴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공간과 사물에 대한 물질적 이 아닌 합리적인 정체성의 발견은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결과 를 가져왔다. 칸으로 구획하기와 중세적 사실주의에 종말을 고 한 것은 바로 이 발견이다. 거기서 나타난 것은 새로운 건축이 나 새로운 희화만이 아니고 하나의 새로운 사회, 구체적으로 말 해서 하나의 새로운 세계였다. 물리적 세계의 구체적이고 미묘 한 부분들의 통합, 숫자의 마술에 대한 믿음 등은, 국가간의 균 형에 기초를 둔 새로운 법해석으로서의 신대륙의 발견을 가져오 기에 이르렀다.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준비되고 있었다는 데에 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새로운 세계가 하루 사이에 태 어난다고 믿는 것도 확실히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브루넬레스 키가 피렌체에 둥근 지붕울 세우는 방법을 발견했다고 해서 그 다음 날로 인간이 변한 것은 아니다. 여러 세대를 거쳐 많은 사 람들이 계속해서 과거처럼 믿고 생활하였다. 새로운 문명이 갖 는 모든 요소들의 뿌리를 찾고자 하는 것이 위험한 만큼(이것이

® 마사치 오 Masacci o, Tommaso di Gio v ann i Gu idi(1 401-1428) : 이 탈리 아 화가. 처음에는 기베르티와 도나텔로 지도 하에서 조각을 공부했다. 그림 에 있어서는 마솔리노의 제자로 그와 함께 성당 장식화를 제작했다. 대표 작으로는 r 죄짓고 낙원으로부터 추방됨」과 ”세금」이 있다. 투시만이 아니 라 모들레(회화와 데생에서 색채의 변화나 명암의 사용에 의해 입체효과 룰 나타내는 것)에 있어서 1 세기 전부터 발견된 성과들을 모두 사용했으 며, 공간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그의 구성에서 그룹으로 모여 있는 인물들 은 조각적이며 인간적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에는 장식이 거의 없으 며 르네상스의 조형적 인문주의적 이상을 설정한 최초의 화가이다.

바로 발명을 파괴하는 것인데), 인정된 순수한 발명의 싹에서 출 발해서 갑작스레 새로운 세계상을 제시한다는 것도 역시 그릇된 일이댜 르네상스는 최초에 몇몇 개인의 작품이었다 . 나는 회화 에 있어서, 매혹적인 작품을 포함해서 15 세기의 모든 작품이 개 혁적인 만큼 그와 동시에 보수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 다. 이 매력적인 주제와 관련하여 우리는 그간 너무 자주 미와 새로움을 혼동하여 왔다. 말하자면 르네상스가 세계를 개혁하고 자 하는 계획을 체계적으로 적용한 것처럼 흔히들 생각하였다. 15 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르네상스는 아직 단지 잠재적인 현상 에 불과했다. 새로운 회화공간의 진보가 얼마나 많은 망설임과 수정을 겪었는가, 또 장엄한 과거의 증인인 동시에 미래에 대한 예고인 한 시대를 거치면서, 독창적인 발견이 천천히 어떻게 그 길을 열어 나갔는지를 우선 보여주려 한다. 새로운 미학 원칙의 훌륭한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15 세 기 초의 회화작품 중에는 브루넬레스키의 둥근 지붕에 비교될 만한 회화작품이 없다. 이 문제를 좀더 구체적으로 검토해 볼 때, 우리가 화가들의 작업만을 고려한다면 바자리의 그 유명한 논문조차 유난히 빈약하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지, 한 영웅을 찾으려고 노력한 끝에, 마

사치오 Masacc i o ® 를 대상으로 하게 되었다 ? 마사치오는 젊어서 죽음을 맞은 피렌체 출신으로서, 성인( 聖人 )에 대한 연구를 완벽 하게 해낸 사람이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보면, 그 성과는 별로 만족스럽지 못하다. 보통 마사치오가 카르미네 Santa Ma ria del Carm ine 성당의 유명한 벽화에서 현대적인 미술을 창조했다고 섣불리 지적하고 있다. 고백컨대 나는 개인적으로 이 견해에 대 해서 몹시 회의적이다. 현재 혼적밖에 남아 있지 않은, 이 작품 들이 지닌 원래 갖고 있던 특성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 는다 눈에 띄게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는 아레초 Arezzo 의 피에 로 델라 프란체스카Pi ero della Francesca 의 작품이 폐허화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고, 파도바 Podova 의 원희장(圓戱場)의 그림 들 역시 페허가 되어버렸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혹은 드물게 망가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부분에서 보이는 놀 7) 마사치오에 관해서는 1927 년 라에에서 나온 메스닐 J. Mes ni l 의 r 마사치 오와 르네상스 초기』나, 1948 년 밀라노에서 재판된 살미 M. S almi의 「마 사치오」와 이것을 1938 년 파리에서 번역하여 출간한 것을 참조로 하자. 살미가 서문을 쓴 좋은 화집 『마사치오, 브란카치 성당, 폴로렌스의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이 밀라노에서 최근 발간되었다. 저자가 마사치 오 작으로 보는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암묵적으로 마솔리노 작으로 여겨진 r 타바타의 부활』이란 벽화는 소개하지 않고 있다. 사실 마솔리노 _ 마사치오의 문제는 충분히 논의할 여지가 있다 . 여기에 관해서는 클리 오에 서 나온 라브당의 매뉴얼 282 쪽의 아주 객관적 인 시각을 참조하자 . 바로 그 이유로 나는 타비타의 경우를 그 자체로서 조사할 결심을 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이 여하튼 중요한 역사적 고리의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론의 여지가 없이 마사치오의 작품으로 간주되는 작품들의 성격 을 강조하면서, 마사치오에 대한 특수한 문제를 결국은 제기하였다. 예를 들면 r 아담과 이브」, 브란카치 성당의 『세금』,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의 『성삼위일체』 둥으로서, 마사치오에 대한 연구를 좀 더 깊이있게 하는 경우에는 여기에다가 나폴리의 r 십자가책형J o] 라고 하는 지나치게 잊혀 져 있는 판넬그림을 추가해야 할 것이다. 이 작품은 다른 데서 언급한 바 와 같이 무언극의 관점에서 보아 중요하다.

라운 아름다움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

® 아레초 Arezzo : 1384 년 이후 피 렌체 공화국에 속해 있었던 토스카나 지 방의 도시. 이 책 부록의 도해 〈 1460 년경 이탈리아 북부 〉 참조.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 ero della Francesca(l406-1492) : 이탈리아 화가. 움브리아 화파의 지도자로 간주되며, 회화사에서 그가 중요시된 것 은 최근에 와서의 일이다 . 당시의 모든 회화적 문제들을 해결했다 . 베니스 의 회화적 시각과 피렌체의 조형적 감각을 종합했다. 조명이 있는 밤풍경 을 성공적으로 그린 최초의 화가이다. 투시와 조화의 과학적 연구에 몰입 하여 두 권의 책을 남겼다. 마사치오로부터 기념비적이고 장대한 화풍을 이어받아 자신의 인물에 조각적 형태 및 거의 비인간적인 장중감을 부여 했다. 파도바 Padova : 1337 년에서 1405 년 사이에 카라라의 통치하에 있었던 베네치아 지방의 도시. 이 책 부록의 도해 〈 1460 년경 이탈리아 북부 〉 참 조 .

순수하게 미학적인 가치의 문제는 제쳐놓기로 하자 . 카르미네 성당 벽화의 혁신적인 부분은 어디에 있는가? 타비타 Tab hit a ® 의 부활이 묘사된 「성(聖) 베드로의 기적」이란 잘 알려진 벽화 가 있다. 광장에서 걸어다니고 있는 젊은이들의 무리가 마사치 오나 마솔리노 Masol i no @ 의 가장 빼어난 부분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에 나는 동의하지만, 그러나 거기에 혁명적인 주제가 있다 는 사실에 대해서는 참으로 동의하기가 어렵다. 14 세기의 회화 는, 회화 속에 표현된 기적은 바라보지 않은 채 그 부근에서 서 성이고 있는 당시 사람들의 무리를 많이 묘사하고 있다. 기증자 (寄贈者)를 다루는 주제를 발명했다고 해서 그 화가를 위대한

® 타비타 Tab hita:그리스도 시대의 팔레스타인 지방 도시였던 욥바에 살 던 여제자로 베드로가 죽은 그녀를 다시 살려 내었다(사도행전 9 장 36-42 절 참조). 타비타는 영양을 의미하며 그리스어로 도루가임. @ 마솔리노 Maso lin o, da Pa nica le(l383-1447) : 피 렌체 • 헝가리 • 북이탈리 아 • 로마 등지에서 활약했다 . 기베르티의 조수였으며 마사치오의 스승. 주 요작으로는 『성모마리아』, 『성 로랑」, 『성 에틴엔느의 생활」을 그린 카스 틸리오네 오로나 성당 벽화와, r 십자가 책형」과 r 성녀 카타리나의 생애』 를 그린 로마의 성 클레멘토 성당 벽화가 있다.

선구자로 볼 수는 없다. 내가 부언하고자 하는 것은, 그 이전의 대부분의 작품들과 비교해 볼 때 종교적 장면과 관련되지 않는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점, 그 결과로 이 벽화 내에서 단일한 공 간을 말하기는 아주 어렵다는 점이다. 하지만 바로 이 공간의 단일성은 고전적 표현이 목적으로 했던 것이 사실이다. 만일 공 간이 정신적으로 단일하지 않은데, 조형적으로는 단일하다고 말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구성 속에 완전히 인위적으로 삽입한 당 시 인물들과 전설적 장면의 영웅들 사이에 공통의 기준은 없다. 배경에 활기를 주는 작은 성직자들도, 크기의 갑작스런 차이로 인해, 공통된 인물은 없댜 건축적 배경에 대해서는, 이 천재적 개혁자의 희화작품이 , 당시 돌연히 강한 모습으로 나타난 르네 상스의 피렌체를, 죽 당시의 피렌체를 조형적으로 옮겨 놓았다 는 가설을 중심으로 수많은 글이 쓰여졌으나, 불행하게도, 그 중 어느 논문도 탄탄하지가 못하다 . 전경(前 景 )에 묘사된 길이나, 화폭의 여기저기에, 또 아래층의 방 주위나, 열려진 건물벽 옆에 서, 두 가지의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고 할 때, 그 구성방법을 화 가의 개인적인 양식화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케르노들 M.Kemodle 은 고전극의 역사에 관한 그의 저술에서, 15 세기 회화가 고대와 중세의 연극무대의 전통적 장식에서 빌려 왔음을 여 러 면에서 보여 주고 있다 .8) 브란카치 Brancacci 벽 화에 나오는 광장의 구성이, 피렌체의 거리에서 일상적으로 볼 수 있 8) 1944 년 시카고에서 나온 케르노들 G .R. Kernodle 의 『 미술에서 연극으로, 르네상스에서 형태와 전통 』 참조. 이 책은 아직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 지 않지만 매우 주목할 만한 책으로서 , 우리 문제에 대해 많은 시사를 던 져주고 있다. 바위나 옥좌, 신전, 저택 둥의 장식물들이 갖는 고정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문제에 관해서는 특히 그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내가 여기서 사용한 대로의 〈시각〉화라는 말의 의미롤 이해하는 데 독자들은 그의 저서를 참조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는 광경보다는 희극 무대장식에 더 가깝다는 것은 특히 명백하 다. 두세 군데가 열려진 작은 사원은 14 세기 극장에서 자주 보 는 모티브이댜 프라 안젤리코 Fra An g el i co ® 의 천개( 天蓋 ) 밑에 앉아 있는 성모 마리아 뒤에 있는 배경벽에서처럼 「타비타 Tab i­ th a 」의 전경 건축물 뒤에서, 고대 무대벽의 마지막 발전을 확인 하게 되고, 이 전통은 직접 지오토로 이어진다 .” 적어도 이러한 ® 프라 안젤리코 Fra Ang el ic o , Gu ido di Pie t r o ( l38 7-1455) : 중세 도해된 성경의 신선한 색채감을 모든 작품에서 보이고 있으나 나중에 가서야 고 딕주의에서 벗어났다. 우첼로와 함께 투시 를 창조해 냈고 모 들 레 를 완성 했으며 또한 새로운 구성법칙을 발전시켰다 . 그의 작품 r 성스런 대화」에 서 성모마리아 주위에 반원형으로 성인들을 배치한 구성은 신비주의로 가 득하댜 도미니크파의 신부로 평화스런 생애 를 보내었으며, 피에솔레 Fie s ole 수도원에 수태고지 를 그렸고(오늘날 마드리드에 소장되 있음), 성 모마리아 내관식 두 작품(파리, 피렌체)과 산마르코 수도원에 벽화 를 남겼다 . 9) 나로서는 좀 보류를 하거나, 아니면 오히려 출 판 후에 이어지고 있는 듯 이 보이는 연구들을 지적했으면 한다. 우선 케르노 들 이 르네상스 연극의 발전단계들을 충분히 구별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 15 세기의 분위기는 16 세기나 17 세기의 어느 것과도 다르다. 여기에서, 연극 발전이 점차적으 로 전개되었다거나, 미술이나 사회의 발전과 동시적으로 연극발전이 이 루어져 나갔다는 사실을 은폐하는 임의적안 단순화가 거기에서 생긴다 . 케르노들의 책을 읽으면, 르네상스는 단번에 나타난 하나의 현상이며 그 결과가 느리게 진행되어 나갔다고 믿게 된다 .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 다. 르네상스는 느리게 구축되어 간 것으로, 르네상스라는 공동작을 만들 어낸 세대들이 쌓아갔던 여러 지적인 구축이 예견했던 바와 동일하게 나 타나지도 않았다. 두번째로 삼가야 할 점은 케르노들이 미술사 이론에 맹 목적인 신빙성을 부여한다는 사실이다. 이 분야가 비전문가들에게 미치 는 독특한 영향력에 대해 이미 지적하였다. 예를 들면 뵐플린이 바로크에 관해 쓴 논문보다 선형 원근법 발전에 관한 이론들이 더 확립된 진실온 아니다. 연구는 편견없이 시적 언어나 연극 언어, 또는 조형 언어 둥 다 양한 차원의 언어에서 동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결국 내 생각에는, 케르노들이, 〈신성한 표현〉에서부터 조합인들의 다양한 행렬에 이르는 여러 다른 형태의 팬터마임 표현이나 무언극 동을 무시하고, 16 세기의 현 상이었던 살아 있는 그림의 중요성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고

대연극의 장면과 고전시대의 장면 사이의 전이가 계속적인 모습으로 이 루어진 정도 를 확실히 밝히는 편이 타당할 것이라 생각되며, 이것은 여기 서 표명된 보류들 가운데 첫번째 것과 같은 종류의 비평이다. 나는 15 세 기에 적어도 , 배우와 관계된 방법과 그리고 배경과 관계된 방법, 이 두 방법이 대치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관점에서 볼 때, 「타비타」는 완전히 전통적인 작품이다. r 타비 타」는 이웃한 벽화인 「세금 T ri bu t」처럼, 중심이 넓게 비어 있는 구성을 보여주는데 이것 또한 연극 체험에서 유래한 한 형태이 고, 지오토도 그의 여러 작품들(예를 들면 3 프란체스카의 죽음 la Mort de sai nt Fran c; o i s 」)에서 그것을 잘 알고 있었음이 확인 된댜 이 작품의 기막힌 사실주의적 전환을 구성하는 것이 과연 배경 건축이라고 말할 수 있을가? 그러나 배경을 차지하는 집들 은 우선 예를 들면 시에나의 로렌제티 Lorenzett i® 작품에 나오 는 집에 비해 더 특징적인 것은 아니다. 어쨌든 이것들은 엄밀 히 중세적이며, 60 년 쯤 뒤에 세워질 메디치가(家)의 새로운 피 렌체가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 미리 보여주는 바가 전혀 없다 . 새로운 피렌체가 하루 사이에 몇몇 미학 발명가들의 두뇌에서 나왔다고 상상한다면 잘못된 생각이다. 이것은 마치, 400 년 뒤 에, 피카소 예술이 완전히 철근 콘크리트로 세운 도시에서만 상 상할 수 있는 것이라고 원칙을 세우는 것이나 비슷하다. 1 세기 동안, 르네상스는 몇몇 개인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다.

® 로렌제티 Lorenzett i, P i e tr o(1280 년과 1 沈 5 년 사이에 나서 1348 년 죽음) : 시에나 화가로 암브로지오 Ambro gi o 의 형 . 그의 최초작은 아레초에 있는 피에브 디 산타 마리아 성당의 큰 제단으로 1320 년작이다. 강렬한 색채는 두치오 Duc ci o 를 연상케 하며, 힘찬 태생은 시모네 마티니를 연상시킨다. 특히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카 성당의 벽화로 알려져 있다. 그의 『십자가 처형』은 극적인 놀라운 긴장감을 보여준다 . 시에나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에 1328 년 그린 제단화와 시에나의 r 성모 탄생』은 그가 아시시와 피렌체의 지오토 작품을 잘 알고 있었음을 중명한다 .

「낙원에서 추방당한 아담과 이브」(이후 r 아담과 이브」)라는 유 명한 인물 그림이 남아 있는데, 여기서 마사치오는 최초로 나체 를 그려 미술사에 큰 기여를 하였고, 공간 속에서 무게를 가진 인체들을 부조 형태로 나타냈다는 업적을 남겼다 . 이 점에 관해 서는 벨라브르의 성 요한 성당과 아시시 Ass i s i의 대성당 이랫층 에 있는 카발리 니 Cavall ini ® 의 몇 몇 그림 들과, 산타 마리 아 마지 오레 Santa Ma ria Mag gior e(1275) 성당에 있는 같은 시대의 작품 들을 참고하는 수밖에 없겠다. 사실 15 세기 이탈리아 미술은 인 체의 조형 표현에 있어서 세 가지 방법을 과거로부터 전승한다 . 하나는 선(線)과 아라베스크 ® 로 형태가 드러나도록 하는 것인데, 지오토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를 예로 들 수 있겠다. 또 다 른 방법은 봇의 터치 t ache 와 모형 modele @ 에 의해서 형태를 나 타내는 것이댜 그러나 마사치오가 이런 방법의 창시자란 것은 ® 카발리니 Cavallini , Pie t r o0 250~1330) : 로마 화가이자 모자이크 예술가 . 1308 년부터 나폴리 왕궁에서 제작 . 로마에 있는 산타 마리아 디 트란스테 베레 Transte v ere 성당에서 1291 년 제작한 모자이크와, 로마의 산타 체칠 리아 디 트란스테베레 성당의 최후의 심판에서 이 화가는 어둠과 빛의 조 화를 통해 등장인물들을 특수한 부조로 만들고 있다. 그에 게 영향을 끼 친 지오토에게 다시 또 그 자신이 영향을 주었다. 그는 이탈리아 회화 를 비 잔틴적 영향에서 벗어나게 했다. ® 아라베스크: 비구상적 선을 미묘하고 감미롭게 배치하여 얻는 구성 . 아랍 이란 말에서 기원했는데 왜냐하면 이 분야의 예술에 특히 아랍인들이 뛰 어났기 때문이다. @ 모들레 : 원래의 의미는 밀랍으로 모델을 만드는 것 . 또는 조형적으로 단 단한 물질을 형태로 만드는 일로 조각예술의 한 부분이다 . 회화에서는 삼 차원의 형태를 그립자나 빛의 작용을 빌려 이미지에 의해 이차원의 작품 으로 표현하는 것을 의 미 한다. 따라서 모들레는 한 표면만 있는 곳에 볼 륨감이 생기도록 하는 원근법과 공통점이 있다. 원근법이 선의 방향을 사 용하고 대상이 멀리 있을 때 작게 표현하며 그림자는 사용하지 않는데 반 해 모들레는 여러 다른 명암도에 의해 대상을 표현하는 점이 다르다.

증명되지 않았고, 마솔리노나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 Andrea del Cas t a g n 혼 에 있어서 이 방법이 차지하는 의미에 대해선 나중에 다 시 언급할 것이다.

®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 Andrea del Casta gn o( l42 3-1457) : 피렌체와 베니 스에서 활약한 화가 . 우첼로의 제자. 대부분의 작품이 벽화로 마사치오의 발견을 잘 사용하고 있으며 모들레와 투시에 전념했다 . 열렬한 사실주의 자로 판돌피니 저택을 장식했고 피렌체의 성 아폴로니아 성당의 식당 벽 화를 제작했으며, 그 인물들은 강한 추미(魏 美 )를 보인다 . 그의 양식은 고 풍스럽고 때로는 격렬한 편이기도 한데, 조형적 힘과 기념비적 웅장함으 로 당시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브루넬레스키의 연구로부터 영감을 얻은 것으로 보이는 마사 치오의 유일한 작품은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누오바 San t a Ma- ria Nuova 성당에 있는 「성 삼위일체 T rinit e 」이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r 십자가 책형」이, 중립적 성격을 가진 공간에서 드러나 는 것이 아니라, 깊이룰 환영적으로 암시하는 건축구성 앞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카르미네 성당에서도 마찬가지로, r 타바타」 나 「아담과 이브』보다 그의 개성을 더 분명하게 보여주는 인물 들을 「세금」 ® 과 영 베드로의 기적」에서 다루었을 때 마사치오 는 분명히 새로운 사고를 모르고 있지 않았다. 또 그는 구성을 단순화할 필요를 뚜렷이 의식하고 있었으며, 도상적인 의도를 보여주기 위해서, 칸으로 구획된 작은 건물들을 전체 화면구성 의 가장자리로 밀어낸 것이 그것을 말해 준다 . 그는 또 인물들 의 프로필을 잘라낸 듯이 표현하거나, 조소적인 인물들을 부조 같이 표현하는 대신, 오로지 빛과 명암에 의해서만 인체를 덩어 리로서 나타낼 필요를 느낀다 .10) 반면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공

® 세금: 패배자가 굴복의 표시로 지불하는 공물의 일부. 히브리 사람들에게 는 신에게 한한 것이었다. 10) 이미 시사한 바 있는 생장 뒤 벨라브르 S aint-J ean du Velabre 의 그립 들은 벤투리의 책 『이탈리아 미술사 』 152 쪽에 실려 있다 . 산타 마리아 마

간을 통합적으로 구성하는 문제나 원경들을 결합하는 문제는 제 쳐놓고 있댜 마사치오가 미술의 큰 흐름에 기여를 했다는 것에 는 반박의 여지는 없지만, 브루넬레스키에 비교될 만큼 천재성 을 지닌, 공간의 조형적 표현의 방향을 바꾸어 놓은 사람으로는 볼 수가 없을 것이다 그가 병행하여 행한 시도 가운데, 새로운 회화에 진정으로 그를 연결시켜주는 요소와, 전통적인 방법의 노련한 채용에 불과한 요소를 분간하기란 쉽지 않다. 마사치오 옆에 마솔리노라고 하는 신성시 되는 인물이 그 두 각을 나타낸다. 바자리의 절대적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면, 구태여 사람들이 왜 계속해서 마사치오를 더 좋아하는지 알 수 지오레 성당의 것은 128 쪽과 129 쪽에 실려 있으며, 아시시의 하부 성당 그림은 성 프란체스코 인물과 더불어 71 쪽에 있다. 이 첫번째 그림들과 브란카치 성당의 『세금」의 인물들 사이에 특별히 밀접한 연관이 있어 보 인다. 이것들과 성 아폴로니아 수도원에 있는 앙드레아 델 카스타뇨의 인 물들 특히 r 접쟁이」, 『보카치오」, r 단테」 등을 비교해볼 수 있다. 왜냐하 면 그밖에도 같은 수도원에서 내가 제안한 도해 27 과 같은 여러 다른 작 품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들은 마사치오처 럼 마솔리노 그 자신이 동 시에 그렀던 뤼미니즘 계열의 작품들과도 유사하다 . 가장 큰 실수는 마사 치오를 간단한 공식으로 정의하려는 것이며, 그를 특히 마솔리노 같은 그 의 동대인들과 대립시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둠에 머물러 있는 동 안 한두 사람의 특혜받은 예술가들이 르네상스라는 것을 발명해낸 것은 아니다. 구성으로 보아 마사치오가 공간의 단일한 배치에서 벗어난다고 말할때 나는 『세금』을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성 베드로가 세번 등장하는데, 두번은 물고기 입에서 은화를 끄집어내는 성 베드로, 그리고 한번은 사도들 사이에 서서 봉헌을 바치는 베드로를 볼 수 있다. 수학적 법칙에 의해 표현되는 공간의 발견과, 하나의 실제의 원천에서 발 사하는 빛의 통일, 그리고 피렌체 자연주의 동 마사치오 미술과 살미 미 술에 부여하는 이 정의가 15 세기 미술 공간의 형식적 개념에 기초를 두 고 있다고 확신한다. 마사치오나 우첼로가 그린 인물들의 장대한 비인격 성도, 그들의 사실주의도 나는 믿지 않는다. 메스닐은 마사치오 공간의 구상적 성격에 대해 강조했으나 사실 그는 자기 인물들의 〈사실주의〉를 믿었었다.

가 없댜 사실 마솔리노 작품이 더 많이 남아 있고, 또 보존 상 태도 더 낫댜 나로서는 마솔리노 작품들이 마사치오의 것보다 대담성에서 결코 뒤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피에타pi e 댜 ~) 를 다 룬 그림들에서, 그의 성모 마리아는 매혹적이며, 또한 외르텔 Oe rt el 의 주목할 만한 연구에서도 15 세기 초 회화 발전사에서 차지하는 그의 중요한 위치가 이미 언급되고 있다 . Ill 마솔리노는 마사치오와 공동으로 카르미네 성당의 벽화를 주문받았는데, 마 솔리노의 기여가 더 결정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몫이 왜 마사치오보다 열등한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마솔리노에게 는 그밖에도 카스틸리오네 오로나 성당의 뛰어난 작품들이 있으 며, 또 로마의 산 클레멘테 성당의 벽화들이 있다. 내 의견으로 는, 카스틸리오네 오로나 성당의 세례당 장식은 르네상스의 진 정한 최초의 걸작 중의 하나이며, 세례 요한의 죽음을 그린 큰 패널화는 특히 중요하다. 물론, 이 그림의 구성에 대해서는 피렌 체의 마사치오 작품에 대해서 지적한 바와 동일한 것을 말할 수 있겠다 . 죽 열린 작은 건물들과 마분지로 된 상자 모양의 산과 ® 피에타 P i e ta: 이탈리아어로 연민과 경건을 뜻함. 프랑스어 piti e 와 같은 의미 . 라틴어로는pi e t as .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그리스도를 무 릎 위에 안고 비탄에 빠져 있는 모습을 나타낸 수많은 그림과 조각에 붙 여진 이름이다. 회화에서는 독일에서 1300 년경에 처음으로 나타나 이어 전유럽으로 퍼졌으며, 이탈리아보다 프랑스에서 더욱 자주 다루어졌다. 예 를 들면 r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아비뇽의 피에타J, 보들레르의 글 가운 데 〈장엄한 고통의 여왕이 그의 무릎 위에 죽은 아이의 몸을 받쳐 안고 있는 이 피에타〉 둥이 있다. 11) 마솔리노에 관해서는, 1908 년 베르가모 Berg amo 에서 나온 토에스카의 전집 『 마솔리노 』 가 있다 . 나중에 나온 문헌으로는 라브당의 책 282 쪽 참 조 중요한 논문으로는 내가 그 결론에 동의하지는 않는 책이지만, 1933 년 마르버거 쟈르부크 피르 쿤스투릿센샤프트가 간행하고 외르텔R. Oertel 이 지은 『 마사치오의 초기작 ./1 이 있다.

같은 여러 가지 요소들은 14 세기의 전통적 어휘 들 에서 빌려온 것이지만 r 타비타」나 「세금」에서보다 더 심하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댜 「로마 풍경」을 그린 부분들은 마사치오가 그린 유명한 「아담과 이브」에서 나타나는 양식과 매우 유사한 희화적 양식으 로 다루어지고 있다. 또 「헤롯왕의 향연」과 같은 부분들은 「타 비타」에 나오는 피렌체의 젊은 사람들과 동일한 영감에서 나온 것이댜 살로메는 하나의 아라베스크이지만 피에로 델라 프란체 스카와 보티첼리 Bo tti ce lli ® 가 아라베스크를 포기할 것이라고 누 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또 궁륭형의 회랑(回 廊 )에 그린 뛰어난 작품이 있는데, 이 그림은, 마사치오가 건축물 표현에 사 용한 소실선과 같은 방식보다 더욱 독창적인, 멀리 사라지는 투 시로 표현되었다 . 산 클레멘테에 있는 성 카타리나의 생애를 그 린 장면들과, 나폴리에 있는 이면화 le diptyq ue 에서 설( 雪 )의 기 적이 그려진 아랫 부분은, 윗 부분이 짤린 시각 피라밋에 대한 알베르티의 주장에 합치하는 단일 소실선과 단안관찰법에 따라 서 조직된 구성의 완벽한 예들이다. 결국 마솔리노 작품을 종합 해 보면 마사치오보다 훨씬 풍요하다는 점을 알게 된다 @ 마솔 ® 보티첼리 Bott ice l! i(l44 5-1510) : 이탈리아 화가 , 데생가, 판화가 . 그의 회 화 양식에 영향을 끼칠 필립포 리피, 폴라이우올로, 베로키오 등을 공부하 기 전에는 금속공예를 공부했다 . 1475 년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아 『동방박 사의 경배』를 그렀다. 그가 피렌체의 엘리트들과 가졌던 정치적 • 종교적 • 신플라토닉학파(알렉산드리아에서 3 ― 6 세기에 생겨난 신비주의와 플라톤 철학을 결합한 학파)적인 관계는 그의 회화 주제에 영향을 주었다 . 선의 대가였던 그는 데생에서 선을, 보이는 것과 명료한 것 사이의 경계로 사용 하며, r 신곡』에서 빛과 재료와 운동을 결합하고 분리하는 미묘한 표현을 한다. 그의 작품은 용적 없는 인물들이 있는 공간이라기보다는 배경으로 쓰이는 건축과 풍경이 있는 구성의 무수한 중심들이 율동감있게 흐르는 듯이 서로 얽히면서 연속된다. @ 알베르티 Albert i, Leone Batt ist a ( l404-1472) : 르네상스의 가장 뛰어난

미 술 이 론 가, 인문주의자이자 건 축 회화 조각 감정가 . 피렌체에서 추방당 한 가 족 의 후 예로 파두아와 볼 로냐에서 수학했다 . 절 충 적 상태 를 선택한 그 는 인문주의자나 성당의 대표 적 인물들과 교류 를 가졌으며 알베르가티 추 기 경 의 여행 동 반자이자 비서였다. 1432 년부터 로마 교 황 청의 교서 기 초 자였댜 그는 활 발한 사고력을 가진 인물로서 이탈리아 인문주의의 여 러 중 심지 들 이었던 페라라 • 피렌체 • 만두아 • 리미니 • 로마 • 우르비노 등 과 계속적 관계 를 유지해 나갔다 . 그의 수많은 문학작품 및 수학과 철학 서 가운데, 대화체의 문학작품 『델라 파밀리아 Della Fa migliaJ ( 1437- 1441) 를 비롯한 회화 • 건축 • 조각에 관한 논문들은 지대한 중요성을 지닌 댜 알베르티는 r 델라 파밀리아」에서 그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균형과 척 도의 이상을 인간 적 진실에 바추어서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한편 역사화 를 가장 중요한 회화의 장르로 보았으며 벽화는 중요시 하 지 않았다. 왜냐하면 회화 를 고상한 예술이자 학문이라고 주장했던 그의 이상적 관념과 어울리지 않는 작업이 벽화작업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벽화 작업이란 먼지투성이의 작업대에 올라가 손이 다 망가지고 전신이 더러워지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이 벽화를 저급하게 보는 또 다른 이유 는 사실적 회화로 벽을 뒤덮는 이 벽화가 건축의 순수한 개념과는 상반된 다는 점이다 . 즉 건축에 대한 그의 논문 『 건축론 De re aed ifi따t o ri a .; (1452) 에 따르면 그가 추천하는 벽을 장식하는 방법은, 벽화의 고대적 테 크닉과 모델에 따라서 견고한 재료인 대리석이나 또는 다른 상감으로 장 식하는 것이다. 한편 회 화에 관한 그의 법 칙 은 중심 원근법 la pers pe ctive cen tr ale 이 다. 이 원근법과 고정된 단안 조망법이 벽화 제작에 일반적으로 적용된 것은 알베르티에 이르러서이다 . 그 이전에는 기베르티의 사고가 지배적이었는 데, 죽 눈이 단번에 포착하는 사물들 전부에 단안법을 적용하는 것은 그릇 된 것이며, 오히려 시각영역에 들어온 오브제 각각의 원근법에 의해 포착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1386 년 건립된 브란카치 성당(1 365 년에 완공된 피 렌체의 갈멜수도회 성당인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의 남쪽 외진에 건립되었다)의 벽화(마사치오 • 마솔리노가 제작)가 기베르티의 방법을 추 종하는 이유는 알베르티의 논문 『 회화론 Della P ittu ra 』 이 아직 작성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이다.

리노가 비록 요 절 하지 않고, 장수했다는 점이 그에 관한 사실들 이나 그의 공적과는 사실 아무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그는 마 사치오와 동일한 시기에 적극적인 활동을 했으며, 게다가 마사

치오는 1428 년에 죽었지만, 그보다 20 세 연상인 마 솔 리노는, 마 사치오 사후에도 12 년쯤 더 살았으나 , 1435 년경에 그는 오로나 성당의 마지막 벽화를 완성한다. 마솔리노는 프라 안젤리코와 더불어 15 세기 화가들의 첫 세대를 형성한다 . 나로서는 , 그들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그리고 보통 마솔리노에 대해 갖는 사람들의 의견이 부당한 것처럼, 프라 안젤리코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 안젤리코의 작품이 그 경향이나 질에 있어서 그다지 고르지 못하다는 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미술사에 있어서 안젤리 코를 향한 감상적인 이유로 인한 일종의 숭배는 성도전( 聖徒傳 ) 에 가까운데, 이것은 이 예술가의 명성에 대해서 오히려 피해 를 입혔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의 작품 모두를 비판적인 안목으로 다시 보는 것은 아주 홍미로운 일일 것이다 .1 2) 그의 작품은 우수 함과 취 약함을 동시 에 갖고 있다. 산 마르코 수도원 독방들의 그 림들에서는 가장 뛰어난 질을 보이는 부분과 동시에 안이한 해 결책으로 끝나버린 부분들이 서로 인접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12) 안젤리코에 관해서는 , 최근 전집으로 , 1941 년 파리에서 나온 바쟁 G. Baz in의 『 안젤리코 』 가 있는데, 이 작품은 예술가의 연구 를 진부한 공식 에 끼워 맞추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그러나 내 개인적으 로는, 그의 천재성의 살아 있는 원천인 기독교적 인문주의에 대해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이 기념비적인 장식가를 객관적으로 연 구하려는 시도는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 그밖에도 우리는 아직 15 세 기 예술의 여러 운동이나 여러 정신적 경향에 관한 전체적 연구가 없다. 기베르티와 안젤리코를 비교하는 것이 정당한가? 어떻게 보면 안젤리코 는 브루넬레스키에 더 가깝다. 그러나 이것도 작품 나름이다. 어쨌든 긴 급한 것은, 각 인물별로 하는 연구방법에서 벗어나, 같은 예술가라고 해 도 각각의 제작단계에서 서로 구별될 수도 있는 예술가들에게 공통적으 로 적용될 만한 문제에 대한 연구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이점에 대해서 는 1945 년 피렌체에서 나온 살미의 책 『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와 우루 비노의 공작저택 』 에서의 홍미있는 지적들을 참조하라.

한 예술가가 다량생산의 성격을 띠는 작업에 질리고 지쳐 있다 는 것을 느낄 수 있댜 이런 관찰과, 이 작은 신부(神父) frat e ll o 화가에 대해서 알고 있는 비난의 성격을 가진 점들과 비교해보 면, 이 뛰어난 예술가의 작품 가운데, 기술적인 것으로 된 부분 과 타고난 천재적 재질에 의해 이루어진 부분을 가려내는 일은 어렵지 않댜 천재적인 면은 게다가 전혀 다른 분야에서도 나타 난다. 예를 들면 가장 뛰어난 세밀화인 r 별이 있는 성모 la Ma- done a l' e t o i le 」가 있는데, 영광스러운 성모를 그린 이전의 어떤 작품들에서도 볼 수 없었던 가장 천진난만하고 우아한 모습을 보이고 있댜 또한 「순교자 성 베드로 le Sa int Pie r re rn artyr e 」도 역시 천재적 작품이다 안젤리코는 감정을 조형적으로 표현하는 데 놀라운 천재성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형태의 진실된 창조자였다. 우리는 홍미롭게도 그가 사용한 방법들 가운데에는, 역시 브루넬레 스키의 사고와 연관되는 것들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루브르 박 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성모 마리아의 r 대관식 le Couronnernen t」 올 그린, 성단 그림의 아랫부분에 그려진 성 프란체스카의 모습 이 바로 그것을 증명한다. 또 건축물을 네모진 타일 형태로 표현 하는 방법이 또 하나의 가능한 새로운 방식이라는 점을 이 그림 은 보여준다. 안젤리코나 마사치오, 마솔리노를 비롯하여 당시 누구도 이제부터 낡은 제작 방식을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사실, 공간을 네모지게 나누는 처리 방법, 특히 실내 공 간을 그렇게 하는 것은 이미 전 세대의 화가들이 사용했던 방식 이댜 13) 13) 여기서는 단지 예로서, 1342 년작 시에나 성당에 소장되어 있는 피에트로 로렌제티 Pie t r o Lorenze tti의 『성모 마리아의 탄생J만을 인용하겠다. 반 마를레 Van Marle 의 『이탈리아 화파의 발전 』 II 권 %5 쪽과, 같은 저자의 책으로 시에나 아카데미에서 낸 『천사 』 349 쪽, 또 암브로지오 로렌제티

이 모든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우선 사람들은 브루넬레스키의 관점이, 하나의 새로운 표현 가능성을 마련해 주었다는 점과, 또 세계를 총체적이며 새롭게 시각적으로 이해하는 방법의 토대를 만들어 주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나중에 다시 다루겠지만, 애초에 새로운 투시방법은 건축물의 표현방식 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 법칙이 확립되기까지, 나아가서 이 방법 이 사고의 측면에서 진실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위대한 예술가들 이 의식하기까지 1 세기나 걸렸다. 초기 단계에는, 당시를 대표하 는 천재인 마솔리노나 안젤리코는 적어도 마사치오가 했던 정도 로는, 공간의 수학적 형상화를 단지 사물을 해석하는 또 다른 방법들과 결합하거나 병행해서 도입하고 있어, 그들이 공간의 수학적 형상화라는 문제의 중대성을 크게 느낀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댜 브루넬레스키의 발견은 우선 건축의 분야에 한정되어 혁명을 가져 왔다. 예술가들의 영역 속에 스쳐간 기적의 계시를 본 최초의 예술가 Ambrog io Lorenze tti저 시에나 아카데미가 1344 년 출간한 『수태고지』 II 권 421 쪽과 그리고 1342 년 우피치에서 낸 『성전 봉헌 』 II 권의 417 쪽을 참조하라 또 1392 년에서 1399 년에 브로에 데르람 Broederlam 이 제작하고 디종박물관 소장인 유명한 『수태고지」와 반 마를레가 그의 책 7 권 363 쪽 에 실은 14 세기의 롬바르디아 세밀화를 참조할 수 있다. 나는 최근에 브뤼셀에서 열린 베를린 박물관 명품전에서 내 논문과 크 게 관련되는 한 판넬그림을 보았다 . 그리스도의 통곡을 표현한 1425 년경 오스트리아의 한 무명작가의 작품이다. 작자는 여기서 아직도 바위나 도 시 같은 지오토적인 사물들을 사용하지만 당시의 문제도 알고 있다. 건축 으로 그림의 소실선을 표현하고 있고, 그 구성의 한복판에 창으로 삼각형 모양의 사다리를, 미로의 것이라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그런 기법으로 세워놓았다 . 이것은 바로, 예술이 기술의 발견에 의해 발전되는 것이 아 니며, 그 기술들 가운데 어떤 것들을 체계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발전된다 는 것을 보여주는 완전한 증거 이다.

는 우첼로이댜 이 점에 대해선 투시의 신비로운 비밀을 꿰뚫어 보려고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 일어났던 이 노인에 대한 유명한 일화를 상기해 보면 된댜 1 4 } 또한, 실현은 생각지 않고 사변만을 좇았던 그를 도나텔로가 개탄했다는 점도 환기해 보아야 한다. 우첼로의 평가는 극히 어려운데, 왜냐하면 세월의 경과에 따라 그의 작품들이 보수할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되었기 때문이다. 피 렌체의 키오스트로 베르데의 손실은 미술사의 재난이자 나아가 서는 정신사의 재앙이기도 하다. 인류의 가장 위대한 작품들을 카톨릭 성당이 어떤 모습으로 보관하여 왔고 또 현재도 보관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때, 아름다운 것에 대해 카톨릭 성당이 각별한 경애심을 가지고 있다고 계속 찬양되는 것이 무슨 착오인지 모르 겠댜 물론 다른 사회기관에 비해 못할 것도 없지만 나울 것도 없 다. 그들이 소위 초자연적 덕행이라고 하는 것에도 불구하고, 그 리고 몇몇 신부들의 거친 성시 낭송에도 불구하고, 아레초의 피 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작품이 우리 세대에 살아남게 되었다 . 화면에는 사라져가는 어렴풋한 모습밖에는 안보이지만, 그래도 우첼로가 시도했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보존된 부분들 가운 데에는 주름있는 옷을 입은 인물들이 「아담의 죽음 la Mort d'Adam 」 에서처럼 훌륭하게 부조적으로 처리된 경우도 있고, 또는 「방주 의 축조 la Constr uc ti on de l' Arche 」 에 서 같이 뛰 어 나게 볼륨감있 게 표현된 예도 볼 수 있다. 산타폴로니아 San t 'A po llo ni a 의 안드 14) 우첼로에 대한 가장 좋은 책은 1934 년 로마에서 나온 살미저 『 우첼로, 카스타뇨, 베네치아노』로 1939 년 파리에서 불역판이 나왔다. 더 최근에는 잘 도해가 된 소마르 E. Somare 가 지은 『우첼로 』 가 1946 년 밀라노에서 출간되었다 . 투시에 도취해 있었고 도나텔로가 비난했던 우첼로에 대한 에피소드들은 바자리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결국은 이러한 에피소드들은 그의 전설 아니면 전기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이 일화들은 그의 작품과 상반되지 않는다.

레아 델 카스타뇨가 그린 주름있는 옷을 입은 보카치오나 단테와 비교해 볼 때, 이 후자의 인물을 통해서, 나체 또는 옷을 입은 한 인물을 공간 속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배치하는 문제가 왜 중요 한가를 알 수 있다. 마사치오의 유명한 인물들도 역시 같은 계열 의 하나이다. 피렌체 대성당의 우첼로작 「존 헉쿠드J ohn Hawkwoocl 」 기마상과 우피치 미술관 소묘실에 있는 같은 작가의 크로키를 비 교해 보면, 그 세대들이 고대의 저부조(低浮影)를 발견함으로써 이끌어 낸 사고들과 위의 작품들의 시도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 는가를 이해하게 된댜 몇년 뒤 아레초에서 피에로 ® 가 그리게 될 인물을 예시해주고 있는 우첼로의 「아담의 죽음」에 등장하는 인물을 관찰해보면, 공간의 유클리드적 시각 la vis i o n euclid ien ne 에 의해 규정된 공간의 입방체 내에서 어떻게 내부적 선의 조직 을 나타내려 했는가를, 또한 인체의 볼륨을 단색으로 해석하면서 어떻게 몸의 동작들을 생생하게 연결시키려 했는가 이해할 수 있 댜 이 연구의 마지막 부분에, 폴라이우올로 Poll ai uolo ® 의 인물 들과, 특히 움직이는 인체들이 공간감을 주는 판에 새긴 뛰어난 그림을 독자들은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미켈란젤로를 향 한 길이 열린다. 또 다른 놀라운 사고들이 우첼로의 그림들에서 나타난다. 노 아가 두 방주 사이에 서 있는 r 방주(方舟)의 축조」를 지적하고 자 한댜 작가는 대칭을 얻기 위해서 수평선으로 향하면서 뒤로 멀어지는 이중의 소실선을 필요로 한 것이 분명하며, 또 연속해 ® 피에로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줄인 말. ® 폴라이 우올로 Pollai uo lo( l42 9-1498) : 이 탈리 아 조각가, 화가, 판화가, 금 속공예가. 인체연구에 관십이 많았으며, 신화적 장면들 속에서 인체를 운 동감 있게 표현했다. 이 취향은 그의 조각이나 판화에도 나타난다. 판화는 4 작품만 남아 있다. 인노센트 8 세가 그를 로마에 초대하여 성 베드로 성 당에 식스투스 4 세, 인노센트 8 세의 청동묘지를 건립케 했다 .

서 일어나는 장면을 나란히 옆으로 배치하는 오래된 지적 관습 을 새로운 기하학적 자료에 대한 사고와 훌륭하게 화합시키고 있댜 새로운 학문의 개척자 중 한 사람인 우첼로에게는, 어떻게 보면 새로운 입장이 제시하는 논리적 결론이 아직 절대적인 것 으로 인식되지 않고 있다. 그에게는 새로운 수학적 사고가 아직 은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변화시켜주는 것으로서 뚜렷이 등장하 고 있지 않댜 우선 거기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하나의 새 로운 테크닉상의 방법일 뿐이며, 새로운 시각적 이해 방법은 아 니댜 첫 세대가 가졌던 공간에 대한 사고는 아틀리에적 방법의 수준을 넘어서지는 못하였다. 이점에서 우첼로의 잘 알려진 작품 「전투 Ba tai lles 」도 그것을 증명해 준다 런던에 소장된 이 작품을 보면, 화가가 화폭의 부 분들에 따라서 여러 가지 다른 투시법을 사용하고 있음을 확안 하게 되는데, 전경에는 소실적인 투시법을, 그리고 배경은 중세 식으로 칸으로 구획하는 투시법을 쓰고 있다. 화면은 아직도 부 분들 가운데 또 다른 부분들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여러 단편들 로 이루어져 있다. 화가는 결국, 광활한 평원을 가로 질러 두 기 마대 전선(戰線)이 화면의 틀과는 직각이 되게 서로 마주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려 했는데 이러한 화가의 의도는 우리가 상당 한 노력을 들여야 알아볼 수 있다. 우첼로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카소네에 있는 또 다른 작품과 이 r 전투」를 비교해 보면, 〈기마 ® 기마적 공간, 기마적 투시(승마적 투시, 평행투시, 둥각(等角) 투영도, 군 사 투시)를 사용한 공간 . 기마적 투시란 요새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는 투시로 그림으로부터 관찰자의 시선이 무한히 멀어지는 것을 전제로 한 다 . 이 평행투시는 중심투시 옹호자들은 높이 평가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교묘한 기하학적 구축을 싫어하는 이들을 위한 대용물 정도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공간 espa ce cav ali er 〉 ® 이 나 〈복수 공간 espa ce p lural 〉을 다루는 데 있어서 그가 얼마나 자유자재로 그려 나갔는가를 알게 된다 .1 5l 우첼로는 1475 년에 죽었으므로 1450 년경에는 아직도 활동중이었 댜 시기적으로는 15 세기의 절반이 경과한 후이다. 만일 이탈리 아 여러 도시에 큰 재변이 일어나 문명의 발전이 중단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공간에 대한 아직 알려지지 않은 조형표현 의 전체계에 대한 안목을 당시 실제로 갖고 있었던 사람이 단지 브루넬레스키와 도나텔로뿐이라고 하자. 즉 평범한 인상을 수학 적 엄격함을 가지고 기록하는 동시에, 인간과 환경사이의 새로 운 관계를 발견하도록 하는 방법으로서 조형표현체계를 이 두 사람만이 알고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아직도 고대의 정신으로 부터 영감을 얻어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들이 남아 있을지도 모 른댜

15) 내가 시사한 바 있고 또 도해도 했던 카소네는, 1923 년 라이프치히에서 나온 슈브링 Schub ri n g의 책 『 카소네』에 다양하게 실린 유사한 일련의 작품들에 결부되어야 한다 . 카소네 작품들은 실제 제작에 있어 전통적 공 식과 성상학적이고 조형적인 수많은 공식이 15 세기 가장 많은 예술가들 에 의해 사용되었으며 또 살아 있었다는 것을 층명해 준다. 알베르티의 창문과 동일한 선형 원근법이 최초에 건축물의 표현에서만 승리를 거두 었다는 사실을 내 자신이 아마도 충분히 강조하지 않은 것 같다. 벽화용 도 동의 사용목적에 따른 어떤 기술상의 방법에 관련되는 여러 가지의 특수성을 끌어내는 데에는 아직도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며, 또 산발적 으로 취해진 부분들을 어떤 이념적 프로그램이나 어떤 형태의 문예옹호 자와 결합시키는 관계를 규정하기 위해서도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15 세기 전반기에, 공간에 대한 다소 모순된 체험이 상당히 늘 어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으며, 또 위대한 예술가들이 과거의 체험을 발전시키려는 연구와 소수이긴 해도 미래를 준바하려는 연구를 동일하게 중요시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새로운 조형 공간, 즉 현대적 공간의 발견이 창시자들에게 절대적 발명처럼

보였다고 믿는다면 이것은 큰 착각이다. 기술적인 면에서 그들 은 아직도 정보를 계속 수집하거나 실험하고 있었다. 첫 세대에 는 누구도 결정적인 공식을 포착했다고 느끼지 않았다. 15 세기 초 에, 미리 고안된 계획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적 필요에 의해서 창조가 이루어 졌 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류급이긴 해도 우수한 화가로 꼽히는 , 비치 디 로렌초 B i cc i di Lorenzo(1373-1452), 사세 타 Sassett a( 1392- 1 451), 도메 니 코 디 바르톨로 Domen ico di B art olo(1400-1447 년 경 ) 등의 작품으로 잠 시 눈을 돌리면, 그들의 작업에서, 새로운 탐구들이 옛 방법의 사용과 결합되어 있음울 보게 된댜 ® 그들이 새로운 시도를 몰 랐던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이 새로운 연구가 그 근원에 있어 서 옛 방식의 사용을 거부하는 하나의 혁명을 내포하고 있다고 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예를 들면, 도메니코 디 바르톨로의 1440-44 년 사이 에 건 립 된 시 에 나 병 원 장식 (1445 년), 건축적 구 조를 보여주는 시에나 S i ena 의 r 성모 마리아」(개인소장, 뉴욕), 커 다란 세밀화인 1438 년작 r 에딘버러의 성 게오르그 S aint George s d'E din bour g」, 그의에 카소니의 양식을 연상시키는 비엔나의 픽 도르 F ig dor 소장인 같은 시기에 상자에 그린 그림 등이 있다. ® 비치 디 로렌초 B i cc i di Lorenzo(1373-1452) : 피렌체 화가이며 조각가. 상당히 활발했던 한 아틀리에 소유자인 로렌초 디 비치의 아들. 사세타 Sassett a, Ste f a n o di Gio v an ni(13 92-1451) : 시에나 태생으로 죠 반니 디 파올로와 함께 시에나에서 국제양식을 대표하는 화가 . 종교적 감 성 면에서는 중세기적이지만 르네상스 원칙을 사용했다. 그의 종교화나 고딕건축물 그림온 여전히 중세적이지만 마사치오의 영향으로 인체는 조 형적으로 길게 늘여 표현했다. 도메니코 디 바르톨로 Dome ni co di Ba rtol o(1 4 00-1445) : 시에나 화가이 며 조각가 . 타데오 디 바르톨로에서 출발하여 시에나 회화에 피 렌체적 개 념을 일찍이 도입했다. ® 베렌손 Berenson, Bemhard(1 8 65-1959) : 미국의 미술 아마추어이며 비평

베렌손 Berenson ® 씨가 사세타란 이름으로 소장한 작품 둘 은 전 부가 사세타의 작품인지는 불확실하지만, 이 작품들은, 그 당시 대개의 평범한 예술가들에게 있어서는 건축물 묘사에 선형 원근 법을 적용하는 것이, 화가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표현방법들 가 운데 하나로 밖에는 간주되지 않았음을 증명해준다 .I t ;) 좀 더 부연한다면, 아카데미즘 속으로 경직되어 있는 시기로 잘못 간주되어온 14 세기 말에 나타난 다른 여러 체계들보다, 이 새로운 체계는 보다 더 제한된 채 적용되었다. 왜냐하면 그러한 발견, 또는 그러한 체계는, 관점을 단안(單眼)적 시각으로 축소 해 버리거나, 화면의 배경에 위치한 단일한 소실점의 선택에서, 가. 이탈리아 르네상스미술 전공 . 미국의 중요 수장가들과 박물관의 작품 구입선택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많은 역사책 • 이론서 • 미학서 • 회고록을 저술했다. 그의 방법이나 선험적 미학이 반박을 많이 받지만, 그러나 뛰어 난 직관을 보여주었고, 미국에서 15 세기 이탈리아미술 보급에 중요한 역 할을 했댜 16) 사세타(스테파노 디 죠반니)에 관해 중요한 토론이 있었다. 1948 년 파리 에서 불어로 재판된 베렌손 M . B. Berenson 의 저술인 『 사세타, 프란체스 카파의 전설이 있는 시에나 화가 』 는 그를 제일급의 화가로 만들었다. 그 러나 불행하게도 많은 작자 추정이 무리가 있으며, 베렌손 책의 표지에 실린 작품을 포함한 베렌손이 사세타 작이라고 지정한 작품의 2/3 가량 이 사세타 작이 아니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이 위험스런 토론은 여기서 다루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고자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세타 작이든 아니든 간에 베렌손이 모아놓은 작품들은 15 세기 초기의 것이라는 점과, 또 상당히 홍미있는 작품들로서, 이 작품들 덕분에 우리는 그 시대에 있 었던 많은 사상적 탐구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특별히 바티칸에 소장되 어 있는 r 십자가 앞의 성 토마스 아퀴나스』를 예로 들고자 한다. 그밖에 반 마를레의 저술, 제 9 권 317 쪽;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 예일, 뉴 헤이 본, 319 쪽 汀아시아노의 탄생」, 도면 6 ; 「지옥에로의 추락」 포그 미술 박 물관, 케임브리지, 330 쪽 ; 「동방박사의 여행』 메이트랜드 그리그 소장, 뉴 욕, 341 쪽; 『성 프란체스코의 신비스런 결혼」, 샹티이, 355 쪽 둥올 또 지 적할 수 있겠댜 이미 지적한 도메니코 디 바르톨로의 중요작들은 반 마 를레 책 제 9 권 541-549 쪽에 실려 있다.

그리고 새로운 테크닉의 발견이 과연 새로운 이상을 보여주는 정신의 법칙을 전제로 하는지 않는지 그 체계를 사용하는 사람 이 알려고 애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14 세기 초부터, 다시 말해 지오토부터, 조형적 사고는 이탈리아나 또는 다른 곳에서 한순 간도 속도를 늦추지 않고 진행되었다 . 이 14 세기는 놀랄 만큼 풍요로운 발명의 세기이다. 왜냐하면 이 시기는 지오토주의를 낳았기 때문이다. 지오토주의란 다시 말해 비잔틴 회화나 로마 네스크―고딕 희화와는 아주 근본적으로 다른 회화로서, 중세나 고대의 연극무대의 모티브롤 많이 사용하였고 15 세기 중기까지 영향을 끼치게 될 법칙으로서 인물 그룹들을 둘러싸듯이 배치하 는 법칙을 구축했다. 다른 한편 14 세기는, 프랑스와 플랑드르 세 밀화가라든가, 시에나 미술, 아비뇽 미술 같은 혁신적인 화파들 에게도 자양분을 공급해 주었다. 르네상스는 조형적 수면기(睦 眠期)에 나타난 것이 아니다. 처음에 르네상스는 공간적인 사고 라는 광대한 영역에서 단지 하나의 기술을 더 발명한 것으로서 등장했댜 여기서 두 가지 예를 들어 보자. 하나는 베를린에 소장되어 있는 로렌초 모나코 Lorenzo Monaco 의 뛰어난 데생인 r 수태고 지 (受胎 告 知)와 동방박사의 여 행 l'An noncia t i on et le Voy a g e des Rois Ma g es 」이고 다른 하나는 비치 디 로렌초의 성단 그림 들이댜 17 )@ 전자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수평선을 높이 배 17) 로렌초 모나코가 그린 두 폭의 데생 역시 반 마를레의 책 , 제 9 권, 146 쪽 과 147 쪽에 실려 있다. 비치 디 로렌초의 성단 그림의 아랫부분도 반 마 를레의 저술에 나오며, 1433 년작 『성 니콜라우스의 기적』을 주제로 그린 세폭 중, 두개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에, 다른 하나는 옥스포드의 아스몰 리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고, 제 9 권 17, 19, 21 쪽에 실려 있다. 팔레르모 에 있는 『마돈나」는 도면 1 에, 피 렌체에 있는 1435 년작 생장-데-슈발리 에의 「예수탄생』은 22 쪽에 실려 있다.

치하려는 놀라운 시도와, 알베르티가 1435 년경에 가장 정통이라 고 규정 했던 낮은 사영 시 각(射影視登) la vis i o n pro je c ti ve basse 과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서 단일하면서도 내려다보는 공간의 법 칙을 세우려는 시도이댜 후자에서는 15 세기 후반 이후 유럽 미 술에서 유행했던 것과는 다른 투시관계를 규정해 보려는 시도, 죽 자연의 법칙대로가 아니라 미학적 • 사회적 기준에 의한 의식 적인 선택에 따라서 정하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아울러, 스타르 니나 S tami na 또는 카소니 Casso ni의 뛰어난 작품들에서 발견되 는 〈기마적 조망 vue cav ali ere 〉의 대유행 등에서 18 ) 우리는 르네 상스적 투시, 다시 말하면 알베르티의 방식을 따르는 선형 원근 ® 로렌초 모나코 Lorenzo Monaco(l370-1425) : 이탈리아의 화가이며 세밀 화가. 카말돌리회의 수도사 . 시에나에서 수학하고 1391 년부터는 피렌체에 서 제작 성단p redelle: 카톨릭교회에서 미사 때 사용하는 탁자처럼 생긴 단(제단 au t el) 의 기부에 있는 것으로 제단화 re ta ble( 제단의 장식이 된 뒷부분, 미 사대에 수직으로 세워진 부분으로 그림이나 부조로 장식됨)의 주제와 연 관된 작은 장면들이 장식되어 있다. 여러 주제를 나타내는 작은 판들로 나뉘어져 있다. 18) 여기서 나는 우피치 박물관에 있는 스타르니나의 r 테바이드의 은둔자 들』을 상상해 본다 . 슈브링 책 속에서도 동일한 주제를 다룬 도해 6, 36, 37 에서 승마적 투시의 예를 볼 수 있는데 , 이 작품들은 로렌초 모나코와 피에트로 로렌제티 화실의 작품들이다 . 고전기가 선적 투시법이라든가, 더 정확히는 열린 창문이라는 규약과 알베르티의 상부가 잘린 피라미드 에 해당하는 하나의 단안적 관점이라는 규약의 이중적 규약을 절대적으 로 채용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접을 덧붙여 말해야 겠다 . 그리고 여기 서는 아르간이 했듯이 나도 르네상스의 소위 사실적 투시법이 아니라, 평 면도에 따라서 또한 건축물 부분들의 묘사를 위해 완전히 규약된 방법으 로 표현되었던 고전기의 수많은 건축의 예를, 인용하는 것으로 그치겠다. 전체적이면서도 사실적인 입면도적 시각이란, 현대 관학파들의 상상에서 만 존재할 뿐인데도 불행히도 많은 비전문가들은 이들 관학파의 그럴듯 한 겉모습에 현혹되어 이들의 견해를 추종하고 있다. 그러나 제도화된 기 관의 위력을 경시해서는 안된다.

법은 15 세기 초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 며, 세계의 일반적 모습을 가장 잘 전해주는 것도 아니었음을 쉽게 확인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다음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하면 15 세기 후반에 흔히 선 형 원근법이라고 불리는 이 이론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잘 이해하게 된댜 우선, 유명한 둥근 지붕 건축문제에 부딪쳤던 브 루넬레스키의 사고와 같은 15 세기 초 몇몇 조형사고는, 공간의 완전히 새롭고 구체적인 취급방법의 발견을 낳았음을 우리들이 확인하였댜 다음으로는, 열다섯 세대에 걸치면서 천천히 전개된 작업을 추적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그 영향을 잴 수 있는 이 새로운 발견에 대해서 당시 화가들이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며 단지 그 발견이 진정으로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채지 못했던 것 이댜 왜냐하면 그들은 이 발견을 수많은 개혁적 예술가들이 1 세 기 전부터 제시해온 세계의 투시적 표현에 대한 여러 경험들 가 운데 하나로 밖에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5 세기 최초의 예술가 세대는 1450 년경 대체로 그들의 전 작 업들을 마치게 된댜 마솔리노와 마사치오는 이미 죽었고, 안젤 리코는 1455 년에,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는 1457 년에 죽는다. 우 첼로는 1475 년에 야 죽지 만 쓸쓸히 늙어 갔으며 그의 제작은 1450 년 이전에 대체로 끝난댜 브루넬레스키는 1446 년에, 기베르티는 1455 년에 죽는다. 재능이 많았던 도나텔로만 홀로 남아 1466 년 까지 창작을 계속하지만, 어쨌든 그의 제작은 「가타멜라타 le Ga tt amela tta혼룰 포함해서 1453 년에는 대략 끝난다. 이제 15 세 ® 가타멜라타: 〈얼룩 고양이〉라는 애칭의 용병대장. 1443 년 파두아에 도나 텔로가 초대되어 10 년 동안 머물면서 주조한 고대 이래 최초의 거대한 기 마상의 주제가 되었다 .

기 중엽에 이르러 새로운 세대의 출현, 즉 같은 세기에 태어났 지만 그들 이전에 이미 새로운 방식으로 제작된 초기 걸작들을 모델로 취하는 화가들의 출현을 언급할 수 있게 되었다. 죽 1420 년경 출생한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1420 년에 출생한 고촐리 Gozzoli, 1406 년의 필립포 리피 F ilipp o Lip pi, 1427 년의 발도비네 티 Baldov ine tt i, 1428 년의 지 오반니 벨리 니 Gi ov ann i Bellin i, 1430 년경의 안토넬로 다 메시나 An t onello da Messin a , 1430 년생 만 테냐 Man t e g na 등으로, 그들의 제작활동은 1450 년에서 1480 년 사이에 이루어진다. @ ’ 그들에 뒤이어서 기를란다요 G hir landa j o, 시 뇨 렐 리 Sig n orelli, 페 루지 노 Perug ino , 베 로키 오 Verrocch io, 폴 라이우올로 Poll ai uolo, 카르파치오 C arp acc i o 등의 15 세기 미술의 제 3 세대가 이어지는데, 이들이 미술운동에 적지 않게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의 관심 대상인 공간 형상화의 법칙들이 이미 구체적으로 . 확립된 이후이댜 @ ® 고촐리 Gozzoli, Benozzo di Lese(l420-1497) : 피 렌체 화가 . 기 베르티와 프라 안젤리코의 제자로, 프라 안젤리코와 바티칸의 니콜라 5 세 예배당을 장식했다. 리피 Lip pi, Fra Fili ppo(l40 6-1469) : 피렌체 갈멜 수도원에서 자라 1421 년 수도사가 됨. 마사치오가 이 수도원에서 제작하는 것을 보았으며 , 초기에 여기서 일했다. 성모 마리아의 삶을 주로 그렸다 . 그의 구성의 매력은 구 성의 질서에 있지 않고, 색채의 광선적 표현 및 인체나 제스처의 감정표현 에 있다. 발도비네티 Baldovin e tt i, Alessio ( l425-1499) : 피 렌체 화가이자 모자이 크 전문가. 도메니코 베네치아노와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의 아틀리에에서 제작. @ 페루지노 Peru gi no(1481-1536) : 이탈리아 화가, 건축가 . 시에나에서 핀투 리키오의 조수를 하고 1503 년 로마에 정주했다. 1508 년부터는 주로 건축 에 전념했다 신경질적인 선과 주름진 옷을 입은 여인의 춤추는 자세는 때로는 리피의 제자 보티첼리를 예고해 준다. 카르파치오 C arp acc i o, Vit tore (l455-1526) : 베니스 화가로 젠틸레 벨리

니의 제자.

만일 1450 년 세대의 화가들이 알베르티나 건축가들과 동시대 인이란 사실을 잊어 버린다면, 우리는 그들의 작품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1404 년에 나서 1472 년에 죽은 알베르티는 1446 년에 그의 첫 건축작품인 r 루첼라이 궁전 Palazzo Ruccell ai」을 착수하 고, 1451 년경에는 1485 년에 출판될 그의 유명한 『 건축론 De re Aed ifi ca t or i a 』 을 저술한댜 고촐리가 그렇게도 화려하게 장식한 메디치 리카르디 궁전은 1444 년에서 1460 년 사이에 미켈로초 Mi chelozzo @ 에 의해서 건축되었으며, 베네데토 다 마자노 Benede tt o da Maja n o<1 4 22-1497) 작인 스트로치 궁전은 1489 년 이 후에 야 건립되었댜 15 세기를 통해서 이루어진 양상이 어떻든간에, 세 유형의 세대, 다시 말하면 절충적인 예술가들, 새로운 양식의 이 론가들, 새로운 방법의 훌륭한 지휘자들이 늘 발견될 것이다 .19 1 15

@ 미 켈로초 Mich elozzo, di Ba rtol omeo(1 3 96-1472) : 피 렌체 의 건축가, 조각 가. 기베르티 및 도나텔로와 공동으로 몇몇 조각작품을 제작했다. 메디치 가의 총애를 받은 그는 피 렌체 • 베니스 • 밀라노에서 메디치가를 위해 일 했댜 명성을 크게 얻어 많은 다른 주문을 받았다. 19) 이 견해의 중요성을 과장해서는 안 되겠다 . 1480 년 이후로 질서는 예술 에서 지배적 요소가 아니다 . 시뇨렐리 • 베로키오 • 페루지노 등이 고전주 의 문제에 관해 상당히 다양한 해결책을 제공하고 있다. 르네상스는 절대 적으로 고정된 적이 없었다 . 일부는 어떤 특징들을 강조하거나 착각법으 로 깊이에 대한 환상을 추구하며, 다른 이들은 아라베스크 운동감과 리듬 으로 공간을 나타내려 하는가 하면, 또 다론 이들은 반대로 양식적 표현 이 터무니 없이 정지되어 있는 상태에서 여러 관점들의 부동성 내지는 화합을 목표로 한다. 이 저술에서 투시의 역사적 발전이라는 문제는 다루지 않았다. 이 주 제는 거의 별 의미가 없다. 투시주의자들은 학교에서 여러 세대의 화가 예술가들을 길러냈을 뿐만 아니라, 그들 저술이 보인 연구는 일정한 어 떤 시대에 있어서 세계를 표현하는 데 기본이 되었던 것을 오늘날 우리 가 재구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 . 이 표현의 근본은 끊임없이 제기되는 문 제이다. 유클리드적 표현 및 체험의 화합과 같은 몇몇의 원칙은 절대적

세기 미술에서 발견되는 선형 원근법의 형성은 곧 하나의 스타일 이 형성되는 역사로서, 이 역사에서 우리는 모든 법칙을 찾아보 게 된댜 이 법칙이란 우선 잠재상태로 몇몇 작품에서만 나타나 고, 그 뒤에는 전체적 적용에 적합한 하나의 체계로서 확실해지 고, 그리고는 구속적 방법의 양상을 띠는 과정을 일컫는다. 그러 므로, 새로운 방법을 구성하는 최초의 근본적 요소들이 다른 것 들 사이에서 갑작스레 출현하는 현상과 그 양식발전의 느린 속도 사이에 화합이 이루어진다. 좀 더 자세히 이 사실들을 조사해 보아야 할 것이다. 15 세기 중엽에 화가돌과 그들의 이론가인 알베르티가 거쳐간 단계란 정 확히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선형 원근법에 의해서 사 물의 〈진실된 vrai e> 표현방법을 채용한 단계라는 잘 알려진 고 전적 대답이 있다. 인류의 〈정상적인 normale 〉 수학적 시각법칙 을 법전화한 유클리드 법칙에 대해 숙고한 지식을 기초로 하는 방법에 따르면, 이제부터는 한쪽이 열린 입방체 내부에서와 같 이 알베르티의 창문 내부에 이미지들이 기록된다. 일종의 우주 이라고 간주되었다. 그러나 각각의 인간집단은 거기에서 그들의 기술이 나 그들의 특별한 지적 구조와 조화되는 결과를 끌어내었다. 그러므로 〈투시주의자들〉의 작업은 각별한 연구를 해볼 만하다. 특히 유클리드적 표현과 체험을 문제시하지 말고, 객관적이고 변함없는 현실을 보여주는 자연을 기록하는 재능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이 세계에 대한 인간의 변 하는 견해가 드러나 보이는 전통적 학문의 단계들을 다시 더듬어 본다면 이 투시주의자들의 연구는 풍요한 것이 될 것이다 . 위트코워 MR Wittko wer 저 r 인문주의 시대에 있어서의 원근법 이론」은 특별히 풍요한 방향을 취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또 그 시대의 팔라디오의 건축과 음악적 개념은 우주질서의 조화있는 수학적 개념을 닮았다고 보고 이 둘 사이의 자세한 관계를 이미 보여 주었다. 〈투시주의자〉들에 관한 하나의 전집을 기대해 야 겠다. 그 책을 통해, 라파엘이나 틴토레토, 다비드와 앵그르, 그 누구 에 있어서도 같은 용어가 같은 대상을 의미하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

의 축소인 이 입방체 내에서는 우리 세계의 물리학과 광학의 법 칙이 지배한다 . 모든 부분은 하나의 동일한 잣대로 잴 수 있고, 기하학적 지점들과 오브제들도, 땅에서 lm 가량 떨어진 정해진 장소에서 잡은 단안( 單 眼)시각 ® 과 사물들간의 실제적인 거리가 어떻든간에, 수평과 수직을 동시에 견지하는 법칙에 의해 규정 된 기하학적 좌표가 합치하는 지점에 있게 된다 .

@ 단안시각 : 사물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이 공간은 무한하고 연속된 그리 고 통일된 것이라는 원칙과, 우리는 하나의 부동의 눈으로 사물들을 볼 때 처럼 사물을 총체적으로 본다는 원칙에서 르네상스 미술은 출발했다. 바 로 이 이상적 눈은 화면을 일종의 창문으로 변형시켜주며, 유리창 뒤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기 위해 시선이 창문을 통해 들어가게 된다. 이 유리창 문은 비전이 투사되는 평면으로, 이 비전에서 사물을 나타내는 수직적 선 이나 또는 사선들이 하나의 점, 죽 소실점으로 수렴된다 . 이 소실점은 피 라미드의 정상으로 그 밀부분은 화면의 표면이다. 이 점을 통과하는 수평 선은 작품의 수평선(지평선)이 되며, 작품 앞에 면하고 있는 감상자의 눈 높이에 해당된다. 이 투시는 〈인위적 투시〉라고 불린다.

이러한 법칙이, 리카르디 궁전의 「동방박사들의 행렬 le Cort eg e des Rois Ma g es 」 같은 작품에서는 아주 불완전하게 적용되었음 을 금방 관찰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칙을 당시 모든 연구의 이상적 귀착점으로 볼 수 있다. 알베르티에 의해 엄 격하게 성립된 이 법칙은, 15 세기 말에 가서는 이차원의 캔버스 위에 공간을 표현하는 일종의 황금률이 되었다 . 특별히 예로 제 시한 많은 그림들이 이 정의에 정확하게 들어맞지는 않지만 그 작품들 모두가 다소간 여기에 연관되어 있음은 확실하다. 현대적 투시를 전통적으로 정의하는 용어, 즉 크기의 통일 또 는 표현척도의 통일에 대해서 말할 때 더욱 조심스러워진다. 표 준의 통일이 말하자면 현대적 투시 발전의 마지막 시기에 가서 는 실현되지가 않았음을 확인하려면 라파엘의 「마리아와 요셉의 약혼 le S p os ali z i o 」이나 「그리스도의 놀라운 변모 la Transfig u-

ra ti on 」 q} 같은 고전적 작품을 보면 된다. 우리는 단지, 그 패널 그림이 멀리 있는 물체의 크기를 축소하는 법칙과 단안의 관점 에 따르는 일정한 수의 모티브들로 구성되었다는 점을 말할 수 있을 뿐이댜 그밖에 원근법의 두 가지 의미, 죽 예술가로 하여금 눈에 의 해 포착된 사물의 크기의 관계를 고정시켜주는 것과, 캔버스 위 에 유일한 하나의 중심점으로부터 출발해서 투사하는 법칙을 적 용하게 해주는 것인데, 이 두 의미를 몇년이 지나서 레오나르도 Leonardo da V i nc i가 구별하게 된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비 록 오늘날에는 이 새로운 방법이, 이차원의 조형막 위에 외적 세계를 조형적으로 표현하는 문제를 통일적이면서도 사실적으 로 해결해주는 열쇠라고 간주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게 인식되 지 않았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댜 20) 이러한 단순한 생각은, 그 @ 현성용 또는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변모 : 복음서가 언급하는 예수의 변 신. 신과의 만남의 장소인 높은 변화산에 세 명의 특혜입은 증인, 베드로 와 야고보와 요한의 눈 앞에서 변형되어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져 나타난 예수의 모습(마태복음 17 장 1-8 절). 20) 1942 년 피 렌체에서 나온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책 『 화가의 원근법 』 의 앞부분 31 쪽에 니코 파솔라가 쓴 서문에서 다빈치의 글을 볼 수 있다. 또 1922 년 고고학지에 실린 메스닐 J. Mesn il 의 떠]오나르도 다빈치에 있 어서의 선형 원근법」를 참조하라. 원근법이라는 하나의 용어를 완전히 다 른 의미에서 또 특히 부정확하게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 원근법이란 협약 된 형상화 체계지만, 반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근법이 객관적 기록이 라고 생각한다 . 또 공간 • 넓이 • 깊이 둥의 서로 다론 개념들을 해석할 때 도 혼동을 초래한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1948 년 파리에서 나온 철학 연 구소 정기 간행물 < 깊이와 리듬La, pr of on deur et le ryt hme ~ 에 실린 라피크 Ch. La pi c q ue 의 논문 『회화 공간과 자연 공간」 참조 . 이 논문에서 는 원근법은 이 세계에서 우리가 처한 특수한 상황을 표현한다고 주장한 다. 이는 여전히 우리가 극장무대에서 다니듯이 순회하는 이 변함없는 세 계에 대한 본체론적 onto l og iqu e 믿음이다 . 이 개념이 르네상스에서 나온 미학 문화의 결과임을 이미 보여준 것 같다. 역시 라피크도 자연공간이라

는 용어 를 쓰고 있으며, 공간(상상의)과 넓이(행위의 장소)는 서로 화합 될 수 없고, 세계의 공간과 회화공간은 절대로 다른 것이라고 주장한다. 죽 회화공 간 이 존재하며 또 하나의 순수공간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 그래서 회화적 꿈은 육체적 • 시간적 • 사회적 메커니즘을 전혀 동요시키 지 못한다는 것이다 . 전문적이거나 무관심한 다수의 대중을 다소 의식한 입장 들 을 요약해 보았댜 이상한 것은, 지금 여기서 과학이나 예술이 문 제가 되는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아칙도 우리는 다분히 루소적인, 신비주 의적 자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시대가 불확실 한 연기를 사라지게 하도록 돕는 일이 현대미술의 사명이다 . 마지막으로 라피크는 그의 저술 ? 공간 , 육체, 시간 그리고 회화 』 (되칼리용 제 3 권 , 라 바코니에르 출 판 , 173-201 쪽 참조)에서 자신의 견해 를 약간 완화하고 있 지만, 그러나 여전히 지각없이 공간을 표현하는 회화가 가능하며, 나아가 서 반몽상적, 비가시적 체험 전체를 추구하는 미학적 시각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데 나는 이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가 없다 . 나는 공간이 상징적 전환이 아니라 체험이며, 표현이 아니라 지식이라고 본다 .

새로운 양식이 독창성이 없는 평범한 것으로 되었을 때, 즉 여 러 세대가 지난 뒤에야 아카데미에서 나타났다 . 그 새로운 양식 이 처음에는 불행히도 세련되지 못한 형태로, 너무나 단순한 모 습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 온갖 종류의 위( 伯 )역사적 체계를 세워 놓았고, 그리고 또 오늘날에도 이 망상에 가까운 사고의 명목으로, 조형언어에 별로 재주가 없는 사람들은, 희화 의 몇몇 뉴튼에 의해 15 세기 어느날 갑자기 세계의 객관적 사실 적 표현이 발견되었다고 믿으며, 또 이 표현으로 미술과 동시에 시각의 정신생리학적 조건을 평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작품이나 역사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가져오는 생각의 근저에 는, 15 세기의 체계가, 일반적인 인류의 시각에 비하여 보다 실증 적이고 과학적인 가치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다. 르네상스가 외 부세계의 〈 진실된 vr ai e 〉 표현이라는 목표에 있어 결정적 접근방 법을 찾아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미술사와 문화사의 일관된 생 각이었댜 여러 문명들이, 자연 그대로의 인간에 어울리는 공간

자체나 일종의 이상적 공간을 위해 비교적 조화된 방법을 만들 어 냈다고 대다수의 평론가돌은 암암리에 생각하였다. 공간은 칸트적 사색의 범주로 머물러 있었다. 투시란 인간 정신의 영원 한 법칙이 아니고 공간에 대한 사상사의 한 순간이라고 아르간 이 기술했을 때조차도, 공간에 있어 변하는 것은 공간을 기록하 는 방법이기 때문에, 공간은 전인류에게 영원성을 지니고 있다 고 생각하는 것 같댜 2 1) 오늘날 이러한 견해는 더이상 받아들여 21) 아르간의 전게 논문(앞의 주 3 번) 참조. 아르간도 나와 같이 공간이 그 자체로 혼자 존재하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나도 물론 이 책에서 깊이 생각해서 분석하려는 의지보다는 일상적 어휘에 끌린 주장들을 그냥 내 버려 둔 적이 있다. 그러나 아르간이 옳다고 보는 사실이 수많은 다른 이 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인간이 세계에 대한 논리적인 방식의 표 현을 점진적으로 획득해 왔다는 생각은 최근 곰브리치의 저술 『 미술의 역사 Hi s t o i re de !'a r t』 (미술사 The Sto r y of A rt, 런던, 1950) 에서 지배 적인 견해이다. 인간은 인간 자체일 뿐이며, 인간의 신경중추는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하지 않으며 그 발달단계는 늘 변함없이 동일하다고 한다 . 그렇다면 사회적 관련은 언제 어느 순간에 나타나는 것일까? 인간은 갓 태어났을 때부터 장난감 딸랑이룰 손에 쥐지 않는가? 오로지 인간 자체 란 그 홀로 공간이 나 자연처 럼 포착될 수 없다. 만일 인간이 순수 사고의 영역 내에 존재하더라도, 우리가 연구하는 것은 그런 인간이 아니며, 예 술가나 장인도 물론 그런 인간에 속하지 않는다. 곰브리치가 1948 년 제 9 바르부르그 컷톨드 연구회 신문에 훌륭한 논문 을 출판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죽 그 논문은 『상징적 우상:신플 라토닉사고에서 시각적 이미지」로서, 그의 세속화된 또 다른 책에 지배 적안 개념과는 다른 유형의 사고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다(이 책의 서평 을 나는 1951 년 <사회학 연도 > 에 낸 적이 있다). 그는 조형적 상징취미 에 대한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과장하는 것 같다. 신플라톤주의가 15 세 기 말부터 미술발전이나, 또는 다른 류의 사고방식, 표현방식 둥에 중대 한 영향을 끼쳤음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 신플라톤주의가 고전주의 시대 의 상징적 형상화를 이해하는 유일한 열쇠라고는 생각지 않으며, 또 유 사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형태의 상징주의가 이미지에 기호가치를 부여하 는 유일한 것이라고도 생각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여기서 조형적 기호 가치의 여러 특징에 대한 완벽한 논문을 쓰려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의 목

적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며, 일련의 단순한 주장으로 끝내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가 확인하는 바는, 내가 보기에 조형기호의 변치 않는 특 징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는 것에 대한 일시적 특징만을 포착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조차 이 문제는 제기된다는 점이다. 이제, 내가 알고 있는 이들이기도 하지만, 고전적 선형 원근법의 객관 성을 위해 사진의 증언을 원하는 이들에게 홍미있는 한 권의 책을 권하 고 싶다. 이 책은 1 8.5 1 년 런던에서 열렸던 첫 세계 산업박람회를 기회로 라보르드 공작이 1856 년 작성한 보고서에서 차용됐었다. 그것을 제 2 장의 주 25 번에서 인용했다. 당시 사람들은 우리가 오늘날 마티스나 브라크 또 피카소를 읽는 것만큼 쉽게, 우첼로,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롤 읽지 못했다고 나는 확신한다. 개인적이건 집단적이건 이 세계에 대한 똑같은 두 개의 시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류의 전형적 예술이란 존재하지 않 는다.

질 수 없게 되었다. 만일 우리들의 비평이 석학들이나 현대 예 술가들의 작업 수준에 비교되는 수준이 되기 위해서는, 근본적 으로 관점을 달리 해야 한다. 르네상스가 세계에 대한 보다 사 실적인 해석과 보다 나은 지식을 얻어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단 계를 기록했다고 단순하게 인정한다면, 그것은 세계를 우리가 다소의 직관과 학문만 가지고 분석하는 그 주어진 세계라고 인 정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중세가 〈신〉의 사고에 부여했던 영원 이라는 특권을 반 신격화된 자연에 단지 이전시킴으로써, 예술 이 근거로 하는 중대한 가정을 확고히 보수하게 된다. 공간이란 시대에 따라 그에 대한 표현만이 변하는 실재 그 자 체는 아니다. 공간은 인간의 체험 그 자체이다. 유클리드적 투시 가 실재에 대한 완전한 환상을 즉각적으로 우리에게 제공한다고 보면, 이것은 여러 세기에 걸친 전통적인 협약에 의해, 우리들의 수학적 재능이나 시각적 재능을 동시에 발달시키기 위해 교육이 사용했던 표현기호들에 단지 우리들이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증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외적 세계란 어떤 시대나 어

떤 나라의 인간이든 그들이 직면하는 한 대상으 로 인정하는 셈 이댜 그것은 또한, 르네상스시대가 어떤 구조 를 분석하고 표현 함으로써 말하자면 세계의 비밀을 보여주는 하나의 열쇠 를 발견 했음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 이 르네상스가 분석한 구조들 은 특히 운이 좋아서, 그것 자체가, 기독교적인 계시의 뒤를 이 으면서도 기독교적인 계시와 완벽하게 화합된 새로운 자연적인 계시가 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현대의 연구는, 그것이 인간정신의 분석을 출발점으로 하는 연구이든, 또는 특혜받은 일군의 사람 들만을 우월하게 평가하는 문화사 지식에 기초를 둔 연구이든, 조형언어 및 말로 된 언어롤 배운 사람들이 즉각 읽을 수 있는 동시에 만족스런 여러 가지 형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을 증명해준댜 르네상스 예술이란 하나의 기술과 신앙으로 된 문 명 일체의 가설들에 입문한 사람들에게만 유효한 협약된 기호체 계이댜 이 예술은 입문하지 못한 사람들이 알기 쉽지 않으며, 또한 가장 새로운 문명 체험이 이 예술과 일치하지 않는 순간이 오게 마련이댜 한 인간집단이, 세계와 인간에 대한 광대한 연구 조사를 살찌게 하는 아주 풍요한 일련의 가설로부터 출발하여, 이 세계의 구조에 대해 느끼는 우리들의 친근성을 넓혀주는 데 에 도달하고, 확고한 물적 최상권을 확보하는 데 성공할 때까지 르네상스 예술은 오래 지속되었다. 인간과 자연의 물질적 상징 적 관계라는 근본적 문제가 제기되는 이 시점에서, 또 예술가들 이 연구의 제일선에, 아니면 예술에서는 적어도 틀림없이 퇴보 의 표시인 확신의 제일선에 서 있는 이 시각에, 맹목적인 숭배 는 삼가는 것이 좋겠다. 현대 심리학자들의 연구는 다음과 같은 사고를 분명히 밝혀 주었댜 이 사고는 예술가들 편에서 말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오래 전부터 명백한 방법으로 체험해 온 것으로서, 말하자면 그 들 의 소묘는 모델보다 그리는 사람의 활동을 더욱 잘 표현한다 는 생각이다. 특별히 최근에 아동정신을 전문으로 하는 심리학 자들의 이 론은, 주체 su j e t의 활동의 중요성 , 즉 우리 가 외 부세 계 를 지배하는 데 기초가 되는 공간이나 운동, 그리고 시간과 같 은 개념들의 형성에 있어서 이 주체의 활동이 중요함을 보여 주 었다 't 2) 또 다른 한편으로는, 피아제 P i a g e t와 왈롱 Wallon ~ 의 훌 륭한 연구가 있은 이후, 어린 아이의 공간 지각은 갑자기 획득 되는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이루어질 뿐 아니라, 이해력의 발 달 및 개인행동의 구체적 방법과 관련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22) 1949 년 < 미학잡지 > 에 실린 나의 논문 r 발생적 공간, 조형적 공간」 참 조. 이 논 문에 그해의 문헌목록을 실었다. 그 이후에도, 피아제의 여러 책 들이 출판되었다. 죽 1949 년 파리에서 나온, 『 논리 이론 , 논리계산 수필 』 과 『 발생적 인식론 입문 』 으로 이 후자의 제 1 권은 『 수학적 사고 J , 제 2 권은 『 물리적 사고 』 , 제 3 권은 『 심리학적 사회학적 사고 J 의 세 권으로 파리에서 1950 년에 출간되었다 ® 왈롱 Henr i Wallon(l 얽 9-1962) : 프랑스 심 리 학자이 며 정 치 가. 프랑스 신 교육단체 창시자, 유아심리 전문가. 정신발전에 있어서 사회적 생물학적 요소 들 의 상호의존을 강조했다. 피아제와 대조적으로 여 러 단계의 불연속 적인 단계가 이어지면서 정신발전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넘어가는 것은 〈단순한 풍요화〉가 아니라 〈재조정〉이며, 이 전 행위와 새로운 유형의 행위 사이에 투쟁과 선택을 전제로 하는 급작스 런 변화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저서로는 『 유아정신 발전 .!I (1 934), 『 행위에 서 사고에로 』 (1942), 『 유아에 있어 사고의 기원 』 (1 945).

맨 처음에, 어린 아이는 세계에 대한 어렴풋한 상을 지니게 되며, 일시적 감각의 배경 위에 최초에 반복한 것 및 최초에 가 졌던 관계가 두드러지게 떠오르게 된다 . 하나의 공간을 구축하 는 기능은 인간에게 즉각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틀림없지만, 이 기능은 개인에게서와 마찬가지로 사회에서도 획득된 진보나 지

식의 전체에 따라서 공간이 달라지는 이러한 공간의 특수성을 규정하지는 못한다 . 고정된 형태가 없는 세계, 하물며 잴 수도 없는, 다시 말하면 대상이 없어서 자연히 투시도 없는 세계, 기 하학화된 형태의 논리적 등급이 없는 세계가 우리의 관심을 끄 는 최초의 세계이다 . 이 세계는 그 이후의 우리의 모든 활동의 출발점이 되며, 또 그의 삶의 이론적 방법을 증명해주는 놀라운 사실이 되어, 이 세계는 규정된 성격을 지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래에 성인이 되었을 때의 공간세계가 덜 풍요하게 되는 것은 아니댜 모든 관찰에 의하면, 이 세계가 지니는 특질은, 유클리 드적 공간 시각보다 더 광범위한 수준의 중요한 기하학적 직관 에 해당한다고 수학자들의 최근 연구가 규정한 세계와 유사하 댜 인간의 최초의 세계는 위상학(位相 學 )적이며 , 변형시킬 수 있고, 모든 형식적인 도표나 정해진 척도와는 관계없이, 이웃하 고 있다든가, 떨어져 있다든가, 또는 연속된다든가 둘러싼다든 가, 감싼다든가 계속된다든가 하는 개념들에 기초를 두고 있다. 수학자들만이 이와 같이 유클리드 법칙에서 벗어난 세계를 생각 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증명해주는 유일한 사람들은 아니며, 원 시시대 또는 현대의 수많은 예술작품들이 역시 이 방법을 증거 해주고 있다 .Zl) 23) 아동의 심리적 발달 단계 및 최근에 미술과 수학의 발전과정에서 나타 난 유사성을 세워 보았지만, 이 유사접에 대해서 상당히 신중해야 함을 나는 강조하고 싶다 . 위상학적 공간(수학과의 약간 성급한 비교는 삼가야 한다), 투사적 공간, 투시 적 공간, 이 세 가지 공간의 정복에 이르는 아동 의 지적 발달 단계가 모든 문화에서 발견된다고는 확신하지 않는다. 원시 족들의 심리학에 대한 린하르트의 연구나, 고대사회의 전설적인 발명과 정에 대한 뒤메질의 연구 둥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피아제 같은 학자 는 자신의 주위환경의 조형적 시각화가 불변의 법칙에 따라 이루어진다 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예술가는 환상을 씨뿌리는 자들로서, 학문분야 나 사회에서 이들의 역할이 상당히 미소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조차

그들의 행위는 커다란 위력을 지닌다. 이러한 지적은 흔히 이미지롤 지나 치게 경시하는 문헌학자들에게도 역시 해당된다 . 또 다른 큰 위험성은, 인간형성에 있어 생리학적 시기를 겪은 정신구 조의 고정된 성격에서 나온 듯이 보이는 환상에서 기인한다. 피아제와 왈 롱, 휴버트, 또 그 경쟁자들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미분심리학보다는 발 생심리학 분야에서 훨씬 더 진보하고 있다 . 미분심리학은 1948 년 파리에 서 나온 마이어손M.I. Me y erson 의 저술 『 심리적 기능과 그 작업 』 에 의 해 겨우 알려졌다 . 역시 정상심리학과 병리심리학 신문에 실린 같은 저자 의 논문 r 불연속성 과 특수성 」 이 있다 . 이 신문은 바로 그가 지 휘 하였고, 거기에는 많은 독창적 글이 실려 있다. 나는 인도 유럽과 특히 로마의 신 화학에 대한 뒤메질의 연구를 방금 인용했으며 , 역시 슐의 상상에 관한 연구도 생각난다. 우리 시대는 예술가와 학자들이 서로 협조하는 형태적 위상학의 시대일 것인가? 1949 년 사회학 국제 간행물에 실린 포아이에의 훌륭한 논문 『망상과 사고」에 삽입되어 있는 여러 심리학 분야에 관한 개념을 참조하라.

만일 인간이 이 단순한 감각의 세계, 잘 못 구분되었거나 아니 면 구별되지 않는 감각의 세계에서만 움직인다고 한다면, 그의 운명은 보잘것없는 시시한 것 이 될 것이다. 여기서 단지 지적하 고자 하는 점은 이 단순한 감각의 세계에는 지금까지 너무도 알 려지지 않은 가치가 있다는 것과, 또한 우리가 개인적으로 또는 집단적으로 이룩한 표현과 조사의 정련된 체계를 수립하는 데 있어, 분명히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가치가 있다는 점이다. 첫 단계, 즉 세계에 대한 시각적 이해 방법이 위상적인 단계에 서는, 우리들이 어떤 종류의 추상작품에 민감하다는 것, 또한 특 수한 문화에 의해서 형성되고 변형된 개인들의 일반적 체험과 다른 외관을 한 어떤 형태들에 우리가 민감하다는 것을 설명해 준다. 원시적이라고 불리는 문화권의 많은 작품들, 그리고 한 80 년 전부터 진행되어온 감각의 원시적 소여 분석에 대한 많은 연 구들은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얘기해 주는데, 왜냐하면 이 작품 과 연구들은 어떤 위상적 가치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데 인류가 행한 가장 큰 기술상의 시도들에 의해 형성된 중요한 문명들이 걸어온 길이, 최선의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어느 정도 까지 유일한 방법일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르네상스 시대가 이룩한 이론의 여지가 없는 지적 • 물적인 모든 발전과 관련해서 볼 때, 이 르네상스는 틀림없이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대의 하나였다. 그 시대 사람들은 자기들의 학문적 지식을 완 벽하게 했으며 유성(流 星 )에 대한 지식을 확장시켰고, 여러 문화 들의 통일을 가능하게 했으며, 인간에 대한 학문과 응용 학문을 전례없이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여기서 현대의 것을 과소 평가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 시대 역시 유난히도 풍성하게 기 술적 • 지적 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중이란 것을 이해해야 하며, 이러한 발전의 결과 이제 미술과 문학에 있어서 르네상스의 진 실이 더 이상 우리들의 진실이 될 수 없으며 물리적인 또는 수 학적인 전통적 표현방법과 같은 조형표현 방법도 역시 우리들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 어린 아이에게 공간표현의 제 2 단계는, 아직은 측정할 수 있을 만큼 견고한 추상적 척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상당히 분 명해진 세계를 지각하는 단계이다. 초기의 유연하고 변형할 수 있는 총체적 이미지는, 분류와 재현에 적합한 형태를 갖춘 독립 적이고 고정된 사물들로 바뀐다. 이 단계는 말하자면 공간의 투 사적인 시각에 해당한다. 제 3 단계는, 눈앞에 있지 않은 대상들 간의 고정적인 크기의 관계에 대한 개념이 생기는 단계로서, 대 상들의 고립된 요소들간의 관계에 대한 개념, 다시 말하면 순수 히 논리적인 관계 내지는 비대칭적인 관계를 발견하는 단계로, 요약컨대 여러 세대 전부터 서양에서 상상이나 감정 생활과 과 학의 기초인 숫자로 표시하는 체계, 유클리드 공리에 기초를 두 는 숫자체계의 단계이다 .24) 이 체계는 상당히 놀라운 체계인데,

24) 개인의 발생적 발달을 사회의 역사적 발전과 비교하는 것은 철저히 배 제해야 한다 . 우리는 예술의 형태와 생활양식 및 사고방식과의 관계를 설 정해 나가면서, 순환적인 것보다는 미분적으로 연구를 해야 한다. 영원한 복귀에 대한 니체의 이론은 뵐플린에서 외제니오 도르스에 이르는 미학 자들에게 지나치게 영향을 주었다. 그의 이론은 미술사나 문학사를 연구 하는 집단들에게 혼쾌히 받아들여졌으나 분석에 있어서 일관성은 없다. 신화의 운명에 대해 아주 홍미로운 연구는 바로크 신화이다 . 파리에서 1950 년 9 월에 열린 최근의 문학사학회에서는 비평에 종사하는 사람들 사 이에 이 〈아이온〉이 누리고 있는 놀라운 특권을 보여 주었으나 문장보다 이미지가 문제되었을 때에 이것은 한없이 고지식하다. 바로크적 사고는 일반 역사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이 주제에 관해서는 1951 년 3 월 피 렌체 에서 있었던 현대문학 국제학회 제 5 회에서 내가 발표한 글을 참조하라. 이글은 이 학회지에 출판될 예정이다.

인간의 기본적 충동과도 합치하며, 인간의 정신 구조와 세계의 구조를 합일시키는 데에 기초하고 있음은 명백하다. 르네상스를, 소위 선(線)적인 발전의 도상에서 필요한 하나의 단순한 단계로 본다면, 르네상스시대의 서양문명을 축소시키는 격이 될 것이다. 르네상스 문명은 훌륭한 건축이다. 모든 탄탄한 건물이 그렇듯 이 가능한 것 일체를 고려한다. 그러나 고정된 예술이나 언어의 형태가 르네상스에 있었다고 믿는 것은, 고딕건축 또는 고전건 축만이 몸체의 균형에 대한 하나의 유일한 법칙이며, 구체적으 로 실현 가능한 것이라고 믿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것이다. 르 네상스가 보여주는 조형적 형상화의 방법이, 인류의 학문적 • 사 회적 발전의 어떤 한 상태에 완전히 적합하다는 사실 자체는, 이 조형 형상화 방법이 하나의 보편적 언어가 될 수 있는 가능 성 및 인간의 원초적 기능을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외하는 것이댜 선형 원근법의 사실주의를 믿는다는 것은, 한 가지의 언 어가 인류의 모든 의미론적 필요를 표현해줄 수 있다고 믿는 것 만큼이나 불합리하다.

물론 인류의 역사가 각 개인의 운명을 되풀이한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 여기서 내가 제안했던 바, 현대 심리학의 교 훈과 하나의 미학적 형태에 관한 역사 연구 사이의 바교는, 인 간발달의 단계를 문명의 주기가 본따고 있다고 하는 유명한 주 제를 다시 되살리고 싶어서 강조했던 건 아니다. 오히려 르네상 스 회화를 인간의 자연적 시각을 구체화해 주었다고 간주한다는 것이 이제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단지 정당화하고자 한 것뿐이다. 여기서 사실주의를 말한다는 것은 오류이다. 곧 그 에 대한 다른 증거들을 보여주고자 하며, 이에 덧붙여, 19 세기 사진의 발견이 르네상스 공간시각의 절대적 사실주의에 대한 호 의적인 논증이 아니라는 것울 말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이 점을 강조하지는 않겠는데, 왜냐하면 학식있는 사람들 가 운데에는 놀랍게도 이 점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시각적 이해방법과 거의 비슷한 조건 속에서 하나의 이미지를 기계적으로 기록하는 수단인 사진은, 전통적 시각의 실증적 성 격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체계적 성격을 나타내 주었다. 오늘날에도 사진은, 렌즈를 제조하는 조건이나 단일한 대물렌즈 의 사용이 허락하는 한, 고전적이고 예술적인 시각에 의해서 찍 혀진다. 카메라가 제공하는 것은 두 눈으로 보는 인간의 시각이 아니라 의눈박이 거인 키클로프스 K yk lo p혼의 시각이댜 또한 실제적인 시각이 아니라 예술적이면서 평범한 시각과 일치하지 않는 모든 기록은 우리가 조직적으로 제의한다는 것을 알고 있 다. 예를 들면, 가까이에서 보는 건물은 찍으려고 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이런 경우 기록이 전통적인 올바론 측정법에 해당되지 ® 키클로프스ky klo p s: 신통계보학의 신화에 의하면 가이아의 세 아들은 이마 가운데 눈이 하나 있었다고 함. 여기서는 단안시각을 의미 .

않기 때문이다. 한번 고딕성당의 익랑( 翼廊 )과 신랑( 身廊 )이 십 자형으로 맞물리는 교차점 중심에 광각 렌즈를 설치하고 눈에 들어오는 놀라운 자료를 보도록 하자. 그러면 우리가 보통 〈정 상적인 〉 시각이라고 부르는 것이 단지 선정된 시각이라는 것과, 우리의 세계는 우리가 믿어온 것보다 그 모습이 훨씬 풍요하다 는 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르네상스가 이룬 단호한 선택 체 계에 우리는 대단히 감탄하지만 동시에 거기에 임의적인 성격이 있음을 확인하게 되며, 또한 거기에서 아름답고도 암시적인 모 든 조형적 표현에 관계된 파악하기 어려운 표준은 거부하게 된 댜 존재하지도 않는 절대적 미를 척도로 하여 작품을 평가하는 방법 대신, 이제는 과거에 있었던 가치 전체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체계가 갖는 역사적 • 지적 기초와 방법에 대한 탐구를 해 야 할 때이다. 르네상스 공간은, 어떤 부동의 가치 또는 유일한 부동의 시각적 가치룰 표현하는 숙련된 방법은 못된다. 그것은 어떤 특정한 지식의 총체에만 완벽하게 적합한 체계이다. 이에 따라 우리는 르네상스를 그 시대의 사회적 • 경제적 • 학문적 • 정 치적 습관과 관련해서, 또는 당시의 풍습에 비추어서만 이해할 수 있다. 그 밖에, 역사와 관계된 여러 학문들이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 는 것과 15 세기 회화 내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확실한 증 거를 바교하는 것으로 끝내지 말도록 해야겠다 .25 ) 회화란, 세계 25) 1947 년 런던에서 발간된 안탈 F. An tal이 지은 책 『 피렌체 회화와 그의 사회적 배경, 메디치가의 코지모가 권력에 나가기 전의 공화국적인 부르 주아와 15 세기 초』를 말하려 한다 . 이 책에 대한 비평적 서평을 1950 년 사회학 연간지에 실었다. 저자는 우선 간접자료들을 기초로 해서 사회를 도표식으로 작성했으며, 이 철저히 임의적인 사회도표와 책들을 비교한 다. 1942 년 파리에서 나온 오트쾨르 M . L. Hau t ecoeur 의 『 17, 18 세기 프랑 스문학과 회화 』 역시 미학적 분석 이전에 철학적 • 문학적 배경을 선험적

으로 채용하는 데 기초하고 있다 . 이 저술은 안탈의 책과는 달리 뉘앙스 가 있고 풍요하지만, 그러나 마찬가지로 제한된 조건에 빠지고 있다. 1948 년 런던에서 나온 에반스J. Evans 의 책 『 중세 프랑스 미술, 9 얽 -1498 』 을 보 면 분명히 미술이 각 시대마다 여러 사회계급과 갖는 접촉을 식별하는 홍 미있는 관접을 도입하고 있으나 , 다른 위의 두 저술처럼, 그도 역사의 체 계적 견해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제작의 기술적 부분은 거기에 종속시키 고 있다 . 예를 들면 15 세기 미술에 관해서 미술작품에 대한 자유로운 연 구는 사회계급구조에 대한 정보 및 미술작품과 사회와의 관계에 대한 새 로운 정보를 제공해 줌으로써, 결국 그 시대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단지 확고히 하는 동시에 보다 풍요롭게 해줄 것이다 . 늘 범하게 되는 실수는 미술이 하나의 사회적 기능을 형성해 줌에도 불구하고 이 미술을 일종의 부대현상으로 보는 데 있다.

의 진실된 이미지를 전달하는 화가들이 그 들 능력에 따라 결정 적으로 받아들인 시각적 방법이나 또는 다른 방법으로 제조한 단순히 솜씨좋은 작품이 아닌 것처럼, 화가가 미리 받아들여 형 성한 사고를 지적으로 제작해낸 것 또한 아니다. 만일 우리가 미술작품을 읽을 줄 안다면, 이 작품이 제작된 시대에 관한 새 로운 것들을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배우게 될 것이다. 한 시대 의 작품들과 그 시대의 역사를 비교하는 것으로 그친다면, 이것 은 우리가 갖고 있는 다른 자료들을 갖고도 그 비교가 가능하므 로, 별 가치가 없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러한 비교근 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이란 한 시대의 활동과 그 시대가 믿었던 것을 상당히 정확하게 기록한 목록서라고 볼 수 있으므 로, 작품을 토대로 한 연구는 우리의 체험을 단지 확인하는 것 으로 끝나기보다, 우리의 체험을 틀림없이 보다 더 풍성하게 할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오늘날은 고전이 되어버린 15 세기 미술작 품이 어떠했는가에 대한 도상해석에 만족해서는 안된다. 르네상 스 공간에 관한 연구는, 그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당시 상

황이 어떠했는지에 관한 견해와, 또 역사상 연속되어 이어진 중 요한 시대들 속에서 르네상스에 부여해야 할 위치에 대한 견해 들을 점검해야 한다. 그러므로 15 세기 미술의 공간표현이, 인간적 척도로 형상화하 는 비밀을 다루는 데 기초한다는 생각을 우리는 이제 버리게 되 었댜 게다가 르네상스 및 서양 고전시대의 체계가 발전해 나갈 때 그 근본이 되었던 가치들이, 다른 공간에 대한 수많은 사고 들 가운데서 어떻게 갑작스레 나타났는가도 보여주었다. 마지막 으로 기본적 사고와 체계의 확립 사이에 있었던 반세기 가까운 세기적 차이도 지적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그 방법이 얼마나 대단하게 풍요로웠으면, 15 세기 미술가들의 생활 및 일상적 사 고에 끼쳤던 영향력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오늘날의 사람들에 게까지도 상상을 제공해주는지를 진술하는 것이다. 우선 15 세기 중엽의 이론가들에게 물어보도록 하자. 하지만 이미 우리가 보았듯이 이들은 전형적인 시각화를 하나의 정당한 방식으로써 제시해주지 못하며, 단지 하나의 경험적 기도(企圖) 에 대한 추상적 견해만 줄 뿐이라는 한계를 염두에 두어야 한 댜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회화란 점 점 줄어들거나 늘어나는 물체의 표면을 그 물체의 한계 내에서 나타내 주는 것일 뿐이다.〉 또 마네티와 브루넬레스키는 〈회화 는 물체를 표현하며 또 이 물체들과 주위의 관계를 나타내 준 다〉라고 말한다. 알베르티는 〈희화의 목적은, 일정한 면적을 차 지하며, 일정한 거리에 위치하고, 지정된 위치에 있는 중심 광선 에 따라 존재하는 전물체를, 모든 것이 부조와 같이 표현되고 또 보이는 대상과 아주 닮게 나타나도록, 선과 색으로 한정지어 그리는 것이다〉라고 한다한 얼핏 보면 이러한 주장들이 동일한 내용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모순과 난점으로 가득

26) 앞의 주 20 번에서 이미 언급한 『화가의 원근법 』 의 니코 파솔라 N i cco Fasolad 의 서 문 참조. 알베르티의 글은, 1930 년 파리에서 나온 『 15 세기 인간의 이상, 알베르티 의 사고 』 403 쪽에서 미셸 P.H . Mi chel 이 인용하고 있다.

하댜 알베르티에게 있어 회화의 목적은 특별히 가시적 세계를 형상화하는 것이다 이점에 있어서 그가 어느 정도로 진실로 브 루넬레스키의 교훈을 따랐는지 자문해볼 수 있다. 이 건축가가 둥근 지붕 건립의 바탕이 되었던 계산으로 보여주고 증명한 것 은, 하나의 실증적인 그러나 만져서 느껴지지 않는 요소인 바로 이 빛, 또 서로 떨어져 있는 사물들을 연결시켜 주기도 하는 이 빛을 테크닉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알베르티가 회화의 유일한 목표는 대상을 그리고 물체의 표면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면, 그는 브루넬레스키에 비해 크게 후퇴하고 있는 것 이 아니겠는가? 알베르티가 브루넬레스키나 마네티의 교훈을 추종했다면, 그에게도 표면이란 이제부터 공간 속에서 면들이 만나는 지점이 아니겠는가. 알베르티는 이 모든 점에도 불구하 고, 이른바 통일적인 표현을 위해 취해진 각도에서, 가시적이 아 닌 모든 것을 회화에서 제의해버렸기 때문에, 자기가 주장하는 바의 중요성을 대단히 감소시키고 있다. 이점에 대한 가장 좋은 증거로는, 모든 화가들이 전원일치로 알베르티를 추종하지 않았 다는 사실이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는 표면의 기하학적이고 투사적인 구축에 상당한 중요성을 부여하지만, 그의 천재성의 핵심은 알베르티가 권장한 견고한 그물망에 포착되어 굳게 고정 된 물체 외부의 표면 밑에 숨은 무게 있는 현실과 볼륨들을 민 감하게 둔갑시키는 바로 그 방법에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이점을 좀더 깊이 다루고자 한다. 알베르티가 엄격한 시 각을 갖고 제기한 투쟁이 15 세기 미술사에 너무도 강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2 세기가 지난 뒤에도 그 시각은 생생히 살아 있 었고 또 그 강렬함을 계속 발휘하는 것을 우리는 거듭 발견하게 된댜 수학자 드자르그 Desarg ues 에게 자극받아 아브라함 보스 Abraham Bosse 가 아카데미와 더불어 벌인 토론은, 투시의 목적 이 사물을 표현하되 〈눈이 사물을 보는 대로, 또 본다고 믿는 대 로가 아니라, 투시법이 우리의 이성에 사물을 과하는 대로〉 표 현하는 것이라고 보스가 주장한 사실에 관해서였다. 7:1 1@ 우리 시 27) 이 본문은 1963 년 파리에서 나온 보스 A Bosse 의 책 『 실제 주어진 또 는 배치된 대상을 투시에 집어넣는 객관적 방법 .!I 에서 발췌했다. 또 1963 년 파리에서 발간된 보스의 책 『 굴대를 배치하고 시간과 다른 대상들을 해 시계에 놓 기 위한 드자르그의 객관적 방식 쳐 끝 참조하라. 겨우 17 세기에 와서야 투시 그자체가 형태적 진실의 한 원천이 되었다 . 메스닐은 15 세기 에 반다이크가 유일한 관점을 항상 준수하지 않는다는 점, 또 화폭표면의 수직 적 경 들 에 탈주점 들 이 일치하지 않음을 플랑드르 화가들이 받아들이 고 있음도 잘 관 찰 하였다. 그는 추가해서 르네상스의 목적은 자연을 모방 하는 것이 아니라 미 를 구축하는 것임을, 또 감각에 대한 환상이 아니라 정신에 대한 환상이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메스닐은 15 세기 회화 의 상상적이고 자유스런 성격을 좀 과장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양식을 정 하는 것은 예술가의 개인적 상상이 아니라 한 시대의 집단적 상상, 또 는 더 정 확 히 말해 몇몇 인간집단의 공동의 상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 를 집단적으로 구축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 투시에 대한 사고 는 , 매일의 생활이나 행위와 동떨어진 하나의 이상뿐 아니라 직업과 기술 에도 관계가 있다 . 운동의 시대에는 드가와 인상주의자들이 운동에 대한 연구에 의해 전통적 틀이 전복되고 , 마치 세계는 빛이 새어들어오는 틀이 구획된 한계 속에 있는 일종의 연극무대처럼, 다시 말하면 이 세계는 영 속적이며 구체적 방법으로 배치된 대상들로 되어 있다는 생각을 부수어 버리게 된다 . 고전무대의 발전과 선형 원근법의 발전이 점진적인 또 서로 불가분의 현상임을 나는 반복해서 강조한다 . @ 드자르그 Desar gu es (1 593-1662) : 프랑스 엔지니어, 수학자, 순수 기하학 연구가. 투시의 근본 역할을 최초로 이해한 사람이다. 아폴로니우스 다음 으로 원추 투사기하학의 기초를 형성했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모든 원 추형은 원의 투사로 볼 수 있다는 생각이다. 보스 Bosse(1602-1676) : 프랑스 데생전문가 • 판화가 • 화가 • 이론가 . 투

르에서 동판화를 전공 . 파리로 와서 1628 년에 칼로J. Callo t 를 만남. 칼로 는 드자르그에게 딱딱한 니스 를 사용한 동판화를 가르쳐주었다. 아카데미 창립시(1 648) 투시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 그의 가장 큰 기여는 17 세기 전 반의 프랑스 풍습의 세세한 부분에 대한 다양하고 풍부한 자료 를 제공했 다는 점이다.

대, 특히 입체파시대에 와서 다시 재발한 이 끈 질 긴 난제는 , 알 베르티가 그 당시 수학자들과 브루넬레스키의 연구로부터 이끌 어낸 방법이 지녔던 제한된 성격에서 기인한다 . 이에 관련하여 알베르티가 문제를 편협하게 이해했음을 강조 해야겠다 . 최초에 브루넬레스키가 독점했던 근본사고는 결국은 두 가지의 생각을 내포하고 있었다 . 첫째로 구체적인 사물과 보 이지 않는 공간을 다룰 때 하나의 동일한 측정단위를 적용할 수 있으며, 또한 서로 떨어져 있는 사물들을 하나로 묶는 체계 속 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모든 형체는 공간 속에 서 연장되며 표면이 결코 폐쇄된 것이 아니므로 결과적으로 기 하학은 〈교차에 관한 학문 la scie n ce des i n t erse cti ons 〉 에 속한 다는 것이다 현 그런데 알베르티는 〈 단안 vue monocul ai re 적 시 각만을 기초로 측정단위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원칙으 로 삼음으로써 첫번째 가정에 제한을 두었으며, 〈 볼륨과 평면의 융합에 관한 학문〉을 〈표면에 관한 학문 〉 으로 환원시킴으로써 두번째 가정을 축소시켰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와 폴라이우 올로 같은 이들은 축이나 운동감에 대해서 알베르티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사고를 진행시켜 나간다. 그러나 그들의 연구 역시, 물 체의 이동에 있어서 외적 결과만 볼 뿐, 시각 파노라마 전체에 연결된 평면의 율동감은 전혀 보지 않는 재능이 부족한 후계자

28)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논문 6 쪽의 니코 파솔라의 서문 참조 . 브루넬 레스키에서 알베르티에 이르기까지는 , 총체적 시각과 특수한 경우에 한 정된 표현적 시각을 구분해주는 여러 종류의 차이가 있다.

들 에 의해서 곧 굳어져 버린다. 브루넬레스키와 알베르티의 차 이점이란, 한 사람은 둥근 지붕을 도시의 모든 빛이 모이는 장 소로 보며, 다른 사람은 그림을 단일한 조명에 따르는 한 소재 의 투사로서 본다는 사실에 있다. 이 조명 l'ecl ai ra g e 의 문제는, 르네상스가 무엇을 원했는지, 또 무엇을 실현했는지를 올바로 평가하기 위해 필요한 상당히 중요 한 또다른 관찰의 전제가 될 수 있다. 그림이란 선들의 체계일 뿐 아니 라, 색 점 tac hes colorees 들의 체 계 이 기 도 하다. 그리 하여 우리는 이후, 구성을 이루고 있는 부분들이, 여러 장소를 점하고 있는 색조들을 지탱해주는 받침처럼 사용된 여러 다른 오브제들 올 나타내는 표면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더불어 알 베르티의 이론을 따른다 하더라도, 가시적 세계를 조형막 위에 옮기는 일이, 선이나 마찬가지로 하나의 조명각도하에서 한정적 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빛도 역시 형태와 동 일한 자격으로 다룰 수 있는 실재이므로, 사물의 〈선적인 시각 la vis i o n li ne ai re 〉과 〈색 채 적 인 시 각 la vis i o n coloree 〉을 화합시 키 는 것이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라고 보는 브루넬레스키의 이 론은 알베르티를 매개로 하여 벨리니 Be llini와 다빈치에게로 이 어져 나간다. 이러한 난점은 벌써 우첼로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 그의 작 품 「전투」에서 〈그림자〉는 항상 〈형태〉와 일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특히 그의 그림에서 잘 실현되고 있지 못한 〈조명의 통 일〉과도 합치되지 않는다. 어떤 말들은 몸의 여러 부분에 기하 학적인 형태가 두드러지게 표현되어 있는가 하면, 동시에 반대 쪽에서 나오는 빛으로 인해 도발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그림자도 묘사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작가는 볼륨을 단색으로 조립해 가 면서, 형태를 도표적으로 구축하는 데 그침으로써 그림자 표현

을 불완전하게 처리하는데, 이 문제는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 나였던 듯싶다. 더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화가가 이젤을 놓고 선형 원근 법의 엄격한 법칙에 따라 대상을 화폭에 옮기려 할 때에 그가 보는 것의 정확한 이미지롤 결코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머리는 움직이지 않은 채 눈만이 주제와 화면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데, 이것은 매번 같은 거리에서 보는 것도 아니며 같은 각 도에서 보는 것도 아니다. 알베르티의 상부가 횡으로 절단된 피 라미드는 정신의 한 조망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오로지 브루넬 레스키가 고안한 기구만이 그 거울이 반사하는 빛의 작용에 의 해서 우리가 찾는 그 환상을 제공해주는데 , 왜냐하면 이는 이 기구가 관찰자의 눈을 한 지점에 고정시켜줌에 따라서 이 지점 으로부터 사물들의 모습이 일 정 한 〈 투시 의 각도 ang le de vue> 에서 포착되기 때문이댜 ® 그렇지 않은 다른 모든 경우에 있어 서는, 화가는 모델을 쳐다본 후 다시 화폭을 보게 되는데 이렇 게 옮기는 동안에 다른 〈지각의 각도 un ang le de p erce pti on 〉 가 도입되기 마련이다. 어쨌든 조명이 단일하다 할지라도 이 조명 이 진짜처럼 보이려면, 물체를 실재로 볼 때의 조명보다는, 그것 이 선적 체계로서 옮겨져야 한다. 현실에 절대적으로 충실한 즉 각적 표현이라고 하는 이상은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며, 기하학 적 적응과 빛의 표현을 엄격하게 일치시킨다는 것은 하나의 신 화인 것이다. 소위 알베르티의 객관성이란 제한적인 데 불과하 며, 엄밀한 것은 아니다. 조명의 문제로 다시 돌아가면, 15 세기 중엽에, 브루넬레스키의 이론과 알베르티의 법칙을 동시에 존중하며 그리려 했던 화가들 ® 앞의 역자 주 ®번 참조 .

이 큰 난관에 부딪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 빛을 어떻게 통일시킬 수 있을까? 명암으로 사물을 형상화하는 방법과 알베르티의 방 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데서 오는 〈 선적 도식 le schema lin e ai re > 은 당연히 합치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 화가는 다른 두 방법에 의존하게 되었다. 우선 어떤 사람들은 선적 투시를 두드러지게 사용한다 . 〈소실선 la lign e de fuit e 〉과 〈단안시 각 la vis io n mo 一 nocul ai re 〉 을 가지 고 선투시 법 칙 을 따라 구축해 감으로써 , 공간 의 선적인 삼각화에 따라 엄격히 규정된 각 표면들을 그들의 선 구자들처럼 채색하는 데서 그치고 만다. 한편 다른 사람들은 정 반대로, 명암에 더욱 집착하면서, 눈에 기분 좋은, 특히 상상에 쾌적한 〈 효과 〉 를 내는 것을 목표로, 어려운 문제를 없애기 위해 타협책을 도입한다. 선에 의한 표현과 조명에 의한 표현을 조화 시키려는 필요에 의해서 그 유명한 〈명암법 cl air一 obscur 〉이 생겨났 다. 이것은 교묘한 아틀리에적인 발명으로서, 15 세기 중엽에 물 체를 희화적으로 투사하는 문제에 대해서 이론가들이 내린 해석 이 편협한 데서 비롯한 극복하기 어려운 난점을 무마하려는 시 도이다. 이후 이 문제는 오랜 기간 동안 서양미술 발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론가들이 하나의 경이로운 발견에 대해서 내렸 던 해석이, 첫 체험이 있은 뒤 채 반세기도 못되어, 여러 화파 속 에서 그 논리적 난점의 결말을 보이게 되는데, 17 세기에 와서 카 르파치오 C arp acc i o 추종자들과 렘브란트 Rembrand t가 했던 모 험을 바로 그러한 결말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 15 세기 중엽의 이론가들이 세운 가설이 점진적으로 확고해지는 것을 보게 되는데, 애초에 이 이론가들 은 이 가설에 의해서, 브루넬레스키의 경험적이고 과학적인 사 고가 열어놓은 이론적 방법을 명확히 규정하는 동시에, 빗나가 게 하기도 하고, 더 정확히 말하면 축소시키기도 했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브루넬레스키만이 15 세기 역사의 유일한 대 사상가는 아니란 점이다! 브루넬레스키는 완벽한 천재이며 그가 발견한 새로운 세계의 무한성을 놀랍게도 잘 의식한 사람인 반 면 알베르티는 냉철한 교육가이자 , 현학자와 관학파의 아버지라 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브루넬레스키는 그의 발견이 실제로 내포하고 있었던 가능성들을 그 자신이 확실히 의식하지 못했는 데, 「그리스도의 십자가 책형 Cruc ifi x 」이 조각되어 있는 시각 기 구를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그것을 증명해 준다. 반면 알베르 티가 천재성이 전적으로 결핍된 사람은 아니었다. 그밖에도, 경 탄할 만한 발견의 장본인이라고 꼽을 수 있는 사람이 브루넬레 스키 한 사람만은 아니였다. 브루넬레스키를 그 당시의 과학적 인 사고에로 인도해간 것이 마네티이거나 또는 어떤 다른 사람 이든 간에, 그의 작품과 그의 사고들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는 그대로 의문으로 남아 있다. 우리는 과학의 역사, 더더욱 수학의 역사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예를 들면 1870 년 이후 현대미술 의 급속한 발전이 당시 과학적 사고의 일반적 움직임과 관계가 있듯이, 15 세기 유럽 미술의 비약적 발전이 당시 과학정신의 전 체적 발전과 연관되어 있음은 확실하다. 이와같이 하나의 사실 이 다른 사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데, 이것은 일종의 법 칙이라고 할 수가 있다. 미술이나 과학과 같은 인간활동의 중요 한 분야에서 이룩한 진보는 외부세계에 대한 인간의 전체적 입 장에 반향을 끼치는 법이다. 예술이란 한 시대의 취향과 사고에 있어서의 아주 미세한 움직임까지도 끊임없이 사진으로 촬영하 는 활동분야이다. 물론 예술은 커다란 움직임도 우리들에게 가 르쳐 준댜 여기서 오로지 기술적이고 이론적인 설명만이 가치 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문명이란 하나이면서 전체이기도 하여, 사 람들의 견해에 실질적인 변화가 생기면 이 변화는 죽각 당시의

모든 활동에 반사되는 것이다. 특히 예술과 같이 다른 언어와 동일한 자격으로 여러 세대의 집단적 사고를 상징적으로 표현해 주는 활동분야인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 새로운 조형 표현체계의 형성에 관계되는 또 다른 법칙이 있 다. 우리가 지금 연구하고 있는 조형표현이 풍요로움을 지니게 29) 여기서 미술과 기술과의 관계에 대한 역사 연구가 근본적으로 중요함을 지적해야겠다 앞에서 밝힌 대로(특히 앞의 주 3 번의 프랑클의 논문 참 조), 브루넬레스키 시기에 와서 드디어 건축에 있어 경험적 전문성으로부 터 수학적 사유의 단계로 들어가게 된다. 르네상스 건설자는 지성인이었 던 반면, 중세기 총 작업 감독자는 직업인 • 숙련인 • 수완가였다. 그러나 이것은 앞으로도 강조되어야 할 발전단계의 한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 . 모 든 분야에서 지적 작업을 높이 평가한 것은 15 세기부터이며 이때부터 예 술 제작역사가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며 교수법의 전복이 일어났 댜 지적 사유를 가치있다고 보는 것은, 이 세계를 주어진 불변의 완전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게 됨으로써 생겨난 수많은 결과 가운데 하나이다. 1950 년 10 월 사회학 연구회가 주최한 아주 홍미있는 〈토론〉이 있었을 때, 슐은 특별히 고대에 있어서 작업과 기술의 관계라는 문제에 관해 여러 훌륭한 발표를 했다 . 그 의에도 바르부르그 연구회의 출판물 가운데 극히 암시적 지적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예를 돌면 1948 년 런던에서 나온 예 이츠 F. Ya t es 저술 『 16 세기 프랑스 아카데미 』 , 또 1950 년 런던에서 나온 위트코워 R. w 迫 kower 저 『인문주의 시대의 건축 법칙 』 등이다. 더 나아 가서는 비구술적인 언어들의 다양한 형태들에 대한 연구들도 있다. 마지 막으로 1945 년 파리에서 나온 앙드레 르콰 구르앙 M .A. Leroi- G ourhan 의 연구 『사회와 기술』이 극히 홍미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특히 어떤 조건 아래서 한 사회적 • 역사적 집단에 의해 발명이 병합되는가에 대한 그의 이론 전개를 비롯하여 차용과 발명과의 관계에 대한 그의 이론은 극히 홍미롭다. 오늘날의 예술사회학 연구의 일반적 추세는 미술과 역사 를 설명하는 정도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접에 관해서 나는, 1950 년 파 리에서 장 카수J ean Cassou 가 발표한 훌륭한 논문 『현대미술의 상황』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는다. 예술작품의 독특한 초시간적 가치룰 무시하고 예술과 사회를 대립시킴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예술은 항상 하나의 사회적 기능이면서, 동시에 여러 세대를 통한 가치의 전달이라는 형이상학적이라기보다 역사적 성격을 지닌 현상이다. 내가 다시 언급하 겠으나 카수는 이에 대한 술한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된 것은 관학주의라는 암흑기의 끝에서 갑작스럽게 된 것이 아 니다. 중세사회가 꿈틀거리기 시작하면서, 당시의 사상과 사회 균형을 지배하고 있었던 세속적 틀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것은, 15 세기 초가 아니라 예술과 더불어 경제적 • 사회적 혁명이 시작 된 14 세기 초기부터이다 . 14 세기는 아직 연구가 충분히 되어 있 지 않은 거대한 영역이다 . 15 세기 미술이 타협적인 해결방법을 만들어냈고, 또 그 해결책이 뒷세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사 실을 근거로 하여, 체계가 정의된 시기로써 시대구분을 하는 식 의 피상적인 결론을 보통 내리는데, 이것은 큰 오류가 아닐 수 없댜 15 세기 예술을 가능케 한 것은 14 세기의 찬란한 연구들이 며, 뿐만 아니라 세대들간에 중단이나 절대적 단절이란 결코 있 을 수가 없는 법이댜 14 세기 말경에 겪은 수많은 체험들 가운데 하나 정도는 특별한 행운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 비록 둥근 지 붕의 건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수학공식을 사용한 브루넬레 스키의 체험이 한 양식의 출발점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브 루넬레스키가 천재라서 다른 사람들이 생각지 못한 더욱 교묘한 방법을 발견했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정신의 점 진적 해방에 의해서 이루어진 현대적 학문의 발전을 용이하게 해준 총체적 사유방식을 예술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사용한 첫 사람이 바로 브루넬레스키였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곧 기적 la Ren ai ssance- mir acle 〉이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 이것이 실 제로 착오라 하더라도 〈새로운 시각 la nouvelle v i s i on 〉이 지닌 놀라운 특수성은 믿어야 한다. 그러나 외부세계를 직접적으로 관 찰하는 방법이 보다 더 정확성을 갖게 됨에 따라, 이 새로운 시 각은 견고해짐과 동시에 빈약해졌다. 브루넬레스키가 그의 후계 자들이 이룩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관찰했다고 말한다면 이것 은 잘못된 것이지만, 바깥 세계를 표현하는 일반적 방법에 〈수학

적인 이성〉을 끌어들임으로써 그 이후의 세기들이 이룬 것보다 더욱 풍요한 가능성이 생겨나게 됐다고는 말할 수 있다. 순수한 지적 발견이 가져다 주는 논리적 결과를 〈사실fait s 〉로 만드는 능력은 인간의 힘을 넘는 일이다. 순수한 〈 사유의 영역〉에서 발 견된 것을 〈 적용의 영역〉으로 옮기는 데는 수많은 타협이 따른 댜 따라서 발명이 본래대로의 형태로는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 오늘날, 우리들의 일상적안 여러 활동 형태들이 학문적 발견과 모순된다는 점을 우리들이 모르는 바가 아니지 않는가? 여러 사 실들을 통합해주는 일반 법칙을 현대인들에게 행위의 원칙으로 강요할 수는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또한 잘 아는 바이다. 그래서 사상가들이나 예술가들이 그 법칙을 적용의 단계로 옮길 때, 가 장 심하게 길을 잃는 부류는, 옛날식으로 말해 가장 박식한 학자 들이나 특출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15 세기의 경우도 이와 동일했었댜 따라서, 열다섯 세대에 걸친 사람들에게, 순수한 잠 재 능력을 가지고 영감의 원천을 제공해준 알베르티, 그의 동료 들 또 다른 많은 사람들에 대해서 너무 가혹하지는 말도록 하자. 그러므로 14 세기의 여러 사고들의 범람 속에서 그 모습을 나 타낸 몇몇 원칙들이, 당시 교양계층의 지적 능력에 맞는 선택을 거치면서, 16 세기 중엽에 와서야 체계화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댜 이제 살펴봐야 할 것은, 다양한 사고나 형태들이 미학적이 아닌 사회적 법칙 중에 어떤 법칙을 따라서 선정되었나를 연구 하기에 앞서, 대담한 창의적인 생각과 전통간의 타협이 기술면 에서 어떻게 준비되고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조형공간의 변혁을 가져오는 조형혁명이, 평면기하학의 방법 울 사용하는 대신에 공간기하학의 방법을 사회 속에 개입시킨 결과였다는 사실을 이미 밝힌 바 있다. 이러한 개혁은 사실 이

세계에는 신의 세계에 속하지 않는 보이지 않는 부분 들 이, 또는 적어도 인간의 지적 능력으로 포착 가능한 것 들 이 있다는 사실 의 발견을 전제로 한다 여기서 붕괴되는 것은 초자연에 대한 신앙이 아니라, 단지 지적으로 포착 가능한 이 세계의 본질이나 현실에 대한 신념인 것이다 이미지가 지적 상징을 형성하는 한 에 있어 그 이미지를 받아들였던 플로티노스 Plo ti nus @ 적인 사 고에 추종하여, 깊이를 거부하면서 하나의 경위에 내용이 되는 모든 세부를 나타내 왔으나, 이제는 자연관찰에 바탕을 둔 미학 이 나타난댜 30) 사물의 외관이 승리를 거두고 분석정신이 지배하 게 된다 이런 현상이 사고나 상징의 측면에서 어떤 결과를 가 져오게 되었는가는 나중에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서술적인 세 계 un univ e rs desc riptif〉로부터 〈숫자로 계산되어 표시되는 세 계 un unive rs c hiffr e 〉에로의 전이가 그 당시 사람들에게 많은 난점을 안겨주었으며, 또 그들이 가졌던 윤리적 필요라는 개념 대신에 새로 등장한 사물의 가시적이며 본질적인 특질에 대한 연구가, 많은 어려움과 지연을 가져다주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15 세기 중엽 무렵에 제작된 작품들의 평균을 내볼 때, 〈대기 공간I' es p ace ae ri en 〉 ® 을 관습적으로, 또는 다소 규칙적으로 표 현하는 일이 채택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 플로티노스 (205-270) : 그리스 신플라톤주의 철학자. 10 여 년간 암모니오 스 사카스의 제자였으며, 그르디안 황제를 쫓아 페르시아와 인도철학을 알기 위해 페르시아와의 투쟁에 참가한 뒤에 로마에 정주했다. 그리스 철 학의 합리성을 신비적 동경과 조화시키면서 보유하려 노력했다. 30) 인간의 눈 앞에 전개되는 일관성 있는 연극장면으로 간주되는 자연을 말한다. 그러므로 인간-자연이라는 쌍이 출현하여 발전되어 나가며, 나아 가서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미술과 문학의 발달을 지배한다. 중세기의 조형적 사고와 철학적 사고의 관계에 관해서는 그라바르A. Grabar 의 뛰 어난 논문 『플로텡 Plo ti n 과 중세미학의 기원』(고고학 연구지)의 고대 말 기 및 중세, 파리, 1, 1945) 참조.

당시의 어떤 예술가의 작품이든 잠시만 들 여다 보아도 , 나중 에 유명하게 된 〈 선적 사실적 원근법 la per spe c ti ve line a ire et real i s t e 〉 으로 정 착하게 되 는 이 방법 이 규칙 적 으로 사용되 고 있 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열린 창문〉을 화면에 삽입하는 방 법이 때때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대개는 다른 해결책들을 사용하 고 있다 예를 들면,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작 「십자가의 발견 la Decouvert e de la Cro i x 』 같은 아레초의 유명한 구성들은 지 적으로나 기술상으로 단일하지 않은 방법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댜 피에로 델라 프라체스카는 여러 개의 연속적인 에 피소드들을 하나의 틀 속에 결합하는 중세기적 방식에 충실하 댜 그 밖에도, 「시바의 여왕 la Rein e de Saba 」이나 기를란다요 G hi rlandaj o 의 영모 마리아의 성 엘리자베드 방문 la V i s itati on 」 에서처럼, 네모진 부분으로 구획하는 방법의 숙련된 사용은 에 ® 대 기 적 공간 : <대 기 투시 ]a pers pe cti ve aeri en ne, la pe rspe ctive atm o - s phe riq ue 〉로 구성된 공간. 대기 투시의 원칙은 알베르티의 사고에서 찾 울 수 있다. 관람자의 눈으로부터의 거리에 따라 인물의 크기가 변경되며, 그뿐만 아니라 그 인물들의 특징이나 구체성, 표정, 색채 등도 상황에 따 라 변화하는데, 결국 인물들과 관람자 사이의 거리에 따라서 변할 것이라 고 알베르티 자신은 예감했었다 . 바로 이 점은, 인물들이 멀리 있을수록 희 미해지고 색채의 농도는 약해진다는 것을 설명해준다 . 알베르티는 회화에 대한 그의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원 인은 태양광선이 두꺼운 대기를 통과하면서 밝은 빛과 색채를 약간 상실 한다는 사실에 있다 . 이 사실에서 다음과 같은 법칙을 빼낼수 있다 . 죽 거 리가 멀어질수록 우리가 관찰하는 대상의 표면은 색채도 빛도 약해진다는 원칙이다.〉 바로 이 대기 투시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실행에 옮기 게 되며, 15 세기와 16 세기 사이의 과도기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이 투시 롤 가장 박식하게 해석하게 된다. 이 대기 투시는 인위 투시의 도움을 받 아가면서 현실을 새로운 눈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르네상스 미술에 제공하 여 주였다. 『 세계 미술사Hi s to i re Univ e rselle de /'A rt 』 , 제 6 권 〈 15 세기, 르네상 스〉, 라루스, 28-32 쪽 참조.

피소드들을 칸속에 집어넣는 오래 지속되어온 취향과 알베르티 가 권고한 단일한 삼각형을 사용하는 방법을 결합하고 있다. 그 렇다면 마사치오가 그린 「타비타 la Tab hit a 」에서 보듯이 화면에 여러 개로 나뉘어진 칸들 사이에 연결을 지어주는 것은 소재 자 체가 된다. 초상화의 경우, 현대적인 해결방법은 아니지만 중립 적이며 성격이 없는 배경을 사용하거나, 또는 커틴의 열린 한쪽 틈을 삽입하면서, 인물과 배경을 제대로 결합하지 않고, 인물을 잘라낸 듯한 옆모습처럼 그리는 것은 수월한 일이다 . 여기서 우 리는, 화가들이 많은 방법들 가운데 이 새로운 방법을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지만 아직 이 방법만 특별히 애용하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댜 15 세기 말에조차, 화가들이 모두 하나의 유일한 방법, 특별히 알베르티가 주창한 방법을 사용한다고 증명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예를 들면 페루지노 Peru gi no 파와 필립포 리 피 Fil ippino L ippi파의 작품들은 여 전 히 여 러 방법 들을 동원 하 고 있다. 이 가운데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la Na iss ance de Venus 』은 알베르티의 완벽한 입방체보다는 이동 사진사들의 입 방체를 생각케 해주는 배경막t o i le de fo nd ® 의 예를 제공해 준 댜 또 넣 Pri n t em p s 』 은 인물들과 배 경 을 같은 각도에 서 보지 않는 상징적 공간 내에, 통일성도 없고, 실재적이지도 않은 그런 공간 속에 여러 에피소드들을 결합시키는 한 예이다. 여기서 우 리는, 브루넬레스키의 개방적이며 통일된 공간보다는, 고대―중 세적인 장면을 지오토식으로 해석하여 끌어낸 다수의 입방체적 공간이 지배적인 경향이라고 확인할 수 있다. 15 세기 예술가들이 조형표현을 위해 한 가지 방법만 채용했다 ® 배경막:무대 맨뒤 부분에 수직으로 설치되는 헝깊으로, 무대장식에서 마 지막 경(景)을 나타내준다.

는 것은 상상에서만 있는, 말하자면 이론가들의 상상에서나 가 능하다는 사실을 굳이 강조할 필요는 없겠다. 오히 려 그보다는 15 세기 중엽에 사용되었던 몇몇 중요한 방법의 분류를 통해서 그 당시 예술가들에게 친숙했던 체험이나 〈기질 t ern 函 ramen t s 〉 의 전체적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31 )

31) 음악에서의 평균율을 말한다. 7 개의 음표는, 더 정확히 말해 건반악기에 서 보는 것 같은 현대 음계의 12 음정은 음악의 여러 음조에서 사용되는 실제의 음 전부를 의미하지 못한다는 점은 누구나 다 안다. 음악의 등급 과 청각의 등급은 엄격히 말하자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가 연주하 는 것은 한 곡의 전체적 음조이며, 이 전체적 음조는 무한히 작은 간격에 의해 떨어져 있는 청각동급의 두 높이 사이에서 귀가 선택하도록 강요하 며, 또 한 개의 건반으로 두 개의 다론 음을 내도록 해준다. 이와 마찬가 지로, 회화에 있어서 눈은, 선이나 윤곽에 의해서 형 태를 주는 것과 색채 에 의해서 형태를 주는 것 간의 미소한 차이를 무마시킨다. 명암은, 명암 농담이 맞닿는 자리에서 경계지역을 감추어줌으로써 수월하게 각색하도 록 해준다. 『건축원칙』에서 다시 채용되고 있는 위트코워의 논문 『팔라디 오의 건축원리』 참조 . 이 논문에서 르네상스의 조화있는 관계의 발전과 팔라디오 건물들의 비율과의 정확한 비교를 위한 요소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르네상스는 세계적 질서와 인간적 질서의 총체적 시각에 기초를 둔 새로운 파이데이아pai de i a 였음을 이제야 겨우 우리들은 알기 시작했 댜 위트코워는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체험은 예술을 창조한다〉 (형이 상학 981a) 라는 바로 이 말을 환기시켜주고 있다.

당시 화가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던 방법 가운데 하나는 〈입 방체적 공간 un espa c e cub iq ue 〉의 표현이었다. 이 해결책은 당 연히 당시 기하학 연구에서 나왔다. 이 방법은 원래 공간의 수 직적 세로 좌표를 평평한 표면에 선적으로 투사하는 방법의 논 리적 결과로부터 나왔다. 그러나 이 방법은 예술가들이 1 세기 전부터 이미 연극 무대 공간을 다루면서 얻게 된 〈깊이의 효과〉 를 화면구성에 도입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더욱 큰 성 공을 두었다. 케르노들은 지오토 작 「성 프란체스카의 죽음 la

Mort de sai nt Fran<;o i s 」 이 어 떻 게 그 그림 의 배 경 에 서 〈고 대 무 대벽 le mur de la scene an tiq ue 〉 의 가장자리를 접듯이 하였는 가를 보여주었다. 이렇게 했을 때 고대 무대벽은 구성의 중심에 넓은 빈 장소를 열어주어 여기에 주가 되는 장면이 배치된다. 때로는 정반대로, 프라 안젤리코 작 「성모 마리아 la V i er g e 」에 서처럼, 공간의 직선적인 폐쇄가, 주제를 양쪽에서 둘러싸는 부 분이 없이, 인물 위에 배치된 천개같이 앞으로 돌출한 중심 모 티브와 결합되어 화면구성의 중심을 차지하며, 주제의 초감각적 인 권위를 강조해 준다 .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연극에서의 〈상 상적인 공간〉과 벽화에서의 〈표면적인 공간 〉 을 동시적으로 조 직하려는 시도 그리고 이 두 종류의 공간을 결합하려는 노력을 목격한다. 전통적 형태를 유연하게 만들려는 이 과정은, 공간을 다루면서 기하학을 부활시키려는 사고에서 직접 연역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이론가들과 연극 연출가들은 서로의 출발점이 경험이나 이론에서 서로 다르지만, 어느 순간에 이르러 그들의 결론이 서로 접근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완벽한 공간적 입방체 룰수학적 이성에 의해서 구축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과학적 사 유가 보여준 이래로, 14 세기의 다소 혼란스러웠던 원근화법적인 체험을 이제는 경험에 의해서만 계속하지는 않게 되었다. 그렇 다고 해서 이 원근화법적인 체험들이 더 이상 그 기능을 발휘하 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입방체적 공간은 15 세기 미술에서 찬란하고 매력적인 작품들 울 낳았는데 프라 안젤리코의 r 수태고지 I' Annonc i a ti on 」, 아치 아 노에 있는 사세타의 r 성모 마리아의 삶 la Vi e de la V i er g e 」, 기 를란다요의 세례요한의 탄생 la Na iss ance de sai nt Jea n- Bap ti s te」 둥이 그 예이다. 사실, 전시대가 이루어 놓은 연구를 바탕으로 전이룰 가능하게 해준 이 단순한 형태, 죽 입방체적

공간을 가장 강한 의지 를 가지고 실현한 것은 제 1 세대였다. 얼 마간 기간이 경과한 뒤, 이 문제는 중복에 의해서 복잡해져 갔 댜 마솔리노의 「성녀 카타리나의 삶 la Vie de sai nt e Ca t he ri ne 」 처럼, 우첼로의 「성체의 기적 le Mirac le de l' hos ti e 」에서도 우리 는 하나의 축선의 양쪽에 두 개의 입방체를 병치하는 교묘한 방 식을 관찰할 수 있다. 입방체는 화가들에게 별로 만족을 주지 못한 것 같댜 그들에게 혐오감을 일으키는 〈단일성〉, 〈우상학적 집중 〉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우첼로의 작품에서는 , 서 로 다른 소실선을 가진 각 입방체에 두 개의 주제가 기록되는데, 구성의 중앙에는 이 두 주제가 공유하는 하나의 중심선이 선다. 실상 「성체의 기적」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r 시바의 여왕」 이나 기를란다요의 「성모 마리아의 성 엘리자베드 방문」 같은 대구성을 요약한 형태로서, 그들간에 차이가 있다면, 후자의 두 작품에서는 벽화의 여러 칸으로 구획된 공간들을 연결하는 신화 적인 제 3 의 공간에 인물들이 배치되었다는 점이다. 다른 경우에서는 또 다른 방식의 해결이 나타난다. 예로, 피에 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수태고지」를 도해하였다. 공간의 입방체 적 • 전통적 표현방법에서 빌려온 뼈대에 의해서 네 부분으로 나 뉘어진 이 화면에서, 조형적 의미를 담기에 너무 빈약한 기하학 적으로 구획된 두 개가 아닌 네 개의 칸을, 말하자면 화면 전체 를 덮고 있는 신화적 표현이 결합하고 있다. 네 칸 중의 한 칸이 여기서도 기하학적인 투시법과 좌표법에서 벗어난 천상적인 공 간으로 형성되고 있다. 그 외에도, 피에로의 r 그리스도의 태형 la Fla g ella ti on 」에서도 우첼로의 r 성체」에서 화판을 나누었던 기둥 이 여전히 있으나, 서로 구별되는 두 개의 공간이 오른쪽과 왼 쪽에 끼워져 있댜 결국 피에로 작 내셔날 갤러리에 있는 r 세례 le Ba pt eme 」는 기둥이 나무로 대치된 것을 보여주며, 이 나무는

거의 상징적인 방법으로 입방체 를 연상시켜준다. 드 디어 입방체 적 공간이 참고적으로 표현되는 시대에 다다른 것이다. 그밖에 도 이 나무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재현하기 때문에 신화적인 가 치를 지닌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떤

32) 이 모든 작품의 상징적 해석이 본 저술의 틀에서 벗어나므로 이 해석은 제 2 권의 소재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r 그리 스도의 태형과 세례』는, 살미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와 우르비노 공작 저택에 관해 쓴 책에서 중요한 비평의 대상이 되었음을 단지 지적하고자 한다.

입방체의 발전된 또다른 형태는, 열린 장면의 중심에, 꽉 차 있거나 또는 비어 있는 한 채의 건물을 배치하여 하나의 폐쇄된 공간을 표현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입방체는 조형적 질서를 주 는 물적 요소로서, 연극을 위한 부속물인 천개, 옥좌, 신전, 집 등과 같은 구체적 재료와 혼합된다 . 331 어쨌든간에, 공간을 입방 체로 형상화하는 것은 화가들에게 절대적 해결책도 아니었으며, 완전한 만족을 준 훌륭한 해결방법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화가들은 근본적으로 암시적이고 복수적인 성격을 지니는 공간 을 만들어 나가면서, 수많은 다른 것들과 이 입방체를 통합하여 나갔댜 알베르티의 냉엄한 법칙에서 나온 이 입방체적 공간이 15 세기 미술에 창조적 노력을 충분히 제공할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 시대의 중요한 탐구주제 가운데 하나였던 〈넓 이 I' e t endue 〉가 이 〈입방체적 공간〉과 충돌한다는 점이다. 단일한 조망으로 환 원되는 기하학적인 좌표방법을 기초로, 평평한 표면 위에 공간 을 선적으로 투사하면, 개방된 공간을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하고 또 믿게 된 것은 지나친 왜곡에 의해서였다. 이 방법뿐 아니라,

33) 15 세기 미술의 〈근본적 레퍼토리〉, 죽 옥좌 • 성당 • 저택 • 바위 • 산 • 정 원 등에 관해서는 케르노들의 책 『예술에서 연극으로 』 참조.

고대 一 중세적인 장면에 대한 회상이 지배적인 지오토적인 방법 도, 무한한 공간을 형상화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사실, 브루넬레 스키의 경험은 이점에서 보아 상당히 모순된 것이었다. 그가 한 편으로는 둥근 지붕의 표면과 평면을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미 세하지만 구체적인 요소들의 연장으로 간주한 반면, 다른 한편 으로는 푸생의 유명한 상자를 예고하는, 협소하고 폐쇄된 세계 를 보여주는 작은 기구를 만들어 내었다. 거기에는 무한한 공간 을 구성하면서 다른 것으로 환원될 수 없는 단위라는 개념이 있 는 반면, 세계를 축소할 수도 2 배로 늘일 수도 있다는 개념이 또한 있다. 15 세기 초의 수학적 사고에 있어서, 닫힌 입방체적인 공간개념과 , 가까운 사물들과 먼 사물들을 하나의 동일한 평면 위에 결합하는, 그러나 척도를 줄이거나 원경을 제거해서 동일 한 재생은 하지 않는 개방적 공간개념 사이에 무의식적인 마찰 이 있었댜 15 세기 희화에 있어서, 이 두 경향에 접근이 있었다 고 말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이러한 타협은 사람들이 발견하 지도 않았고 또 구하지 않았으며, 전자, 즉 폐쇄된 입방체적 공 간개념이 우세했다. 이 사실만 보아도 벌써, 예술가들이 결정적 으로 변함없이 사용할 수 있는 한 방식이 있다고 하는 놀라운 통일과 환상적인 사실성을 주장하는 유명한 이론이 무너진 것을 볼수 있댜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는 15 세기 예술이 엄밀성을 결하고 있 다고 한탄하려는 것이 아니며, 이 미술이 풍요했기 때문에 개혁 성에서 뒤떨어진다고는 생각하지도 않는다. 15 세기 예술은 단지 더 복잡했고 더 인간적이었으며, 메커니즘보다 탐구의 모습을 띠 었고, 상상적인 세계에 대해 당시의 사고에 더욱 연관되어 있었 댜 이 세계의 깊이와 넓이를 나타내려는 욕망과 전통적 입방체 의 한계 내에 삽입된 선적 좌표라는 편협한 방법을 조화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 화가 자신들의 개인적 체험과 전세대들이 익숙한 방법들과 여러 부분에서 충돌이 있었다 . 〈 대기적 공간 〉 에 대한 연구와, 그리고 개혁적인 것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세계의 형태에 대한 폐쇄적 개념의 숭배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 14 세기 의 원근화법의 발명과 15 세기의 가상적 작품을 동일시 한다면 잘못이다 발전이란 두 단계에 걸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니댜 더구나 그 사이의 중개적인 방법들도 역시 마 지막까지 남기 마련이다. 앵그르 In g res 는 알베르티의 적자이기 도 했지만 지오토를 계승하기도 했다. 나는 도대체 사람들이 무 슨 착오로, 15 세기 내내 〈 승마적 투시 la pe rspe cti ve caval i ere 〉 가 자주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지 알 수 없다. @ 이 투시는 14 세기 말 스타르니나 S tami na 가 그린 『테바이드의 은자 (隱者 ) 들 les Er mites de la Theb ai de 」 에 서 도 보이 지 만, 카소니 의 열폭 가까이 되는 작품들에서도 나타나며, 또 몬테펠트로 Mon t e f el tr o 의 페트라르카 Pe tr arca 의 연작시에서 소재를 빌려온 승리를 상징하 는 마차 뒤에서 발다르노 풍경에 대한 매혹적인 회상을 보여주 는 경탄할 만한 유명한 풍경화들에서도 보인다. ® @ 승마적 투시, 역자 주 ®번 참조. ® 몬테펠트로 Mon t e f el tr o, Frederi co da(l 42 2-1482) : 15 세기 이탈리아 왕 자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 . 1444 년 이후로 우르비노 공국 통치자였던 그는 지혜로움과 훌륭한 인간성으로 가장 이상적 지배자로 꼽 혔 다 . 교황 에 소속된 신중한 군사 지도자로서, 친우 들 뿐만 아니라 적으로부터도 높 은 평가를 받았다 . 높은 교양을 지닌 자로서 학문과 예술의 너그러운 후 원자였댜 우르비노는 기술과학과 수학의 특별한 중심지 역할을 했다. 우 르비노 공국은 1508 년 델라 로베르에게 넘어간다 . 페트라르카적인 , 14 세기 이탈리아 시인 페트라르카 를 모방하는, 플라토 닉한 사랑에 머무는, 이상화된 사랑의 테마에 대해 정성을 쏟는 것 둥을 의미한댜 페트라르카 Pe tr arca (l 304-1374) : 이탈리아 시인 , 인본주의자. 키케로,

세네카, 버어질의 숭배자로 그의 세계는 고대에 대한 진정한 매혹으로 가 득하다. 당대인들에게는 그가 라틴문학의 부활자로서 중요하며, 현대인에 게는 그의 작품이 이탈리아어로 된 시집이라는 데 커다란 가치가 있다.

15 세기 미술이 원경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했던 여러 방법들을 분류하면 결국 지배적인 두 가지 방법으로 요약된다 . 첫째 화가 들은 몇몇 경( 景 ) ® 울 선정하고 능숙하게 배치하여 요약해서 표 현한 풍경에 투시를 완전히 임의적이고 비사실적으로 처리하여 광대한 넓이를 주었다. 둘째, 한두 개의 주 모티브를 별도로 취 급하거나, 이 모티브를 풍경 멀리 떨어진 부분들의 단편적인 모 습들처럼, 전경의 부분들 사이에 끼워넣었다. 따라서 감상자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크기나 넓이의 공통된 표준을 상정하지 않은 채 하나의 지적인 통일을 이루어야 했다.

@ 경( 景 ) : 회화와 연극에 있어서 표현된, 또는 거리에 의해서 관람자에게 규정된 〈한 작품이 제기하는 세계 di e g ese 〉의 부분 . 경들은 깊이를 조직하 고 암시한다. 전경은 보는 사람의 관점에 비해 제일 앞에 있는 것이며 다 른 것들은 뒤로 가면서 차차 배치된다 .

첫 번 째 방법 은 <경 의 분리 법 le sys te m e de la seg re g a ti on des p lans 〉 으로 15 세 기 미 술에 서 대단히 중요한 역 할을 한다. 이 가 설을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상상 속에 무수한 예가 떠오를 것이 다. 만데냐의 「골고다 언덕 le Calv air e 」에서 너무나도 〈사실주의 적 〉 인 멋진 풍경이 감상자의 눈에 명료하고 친숙하게 보인다면 이것은 말하자면, 정확한 선적 투시를 통해서 각 세부들을, 모든 아카데미에서 지금도 얘기하는 식으로, 〈제 자리〉에 배치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조형막 위에 그의 관심과 매력 에 따라서 선택된 소수의 요소들만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각각의 부분들은 똑같이 명료하게 표현되었다 . 이점이 바로 완전히 비현실적인 것인데, 그것은 시야의 법칙에 반대되기 때 문이다. 솔직히 말해, 거기에 환상이 있다면 그것은 화폭이나 벽

화를 시간 속에서 해독할 수 있기 때문이며, 자연에 면했을 때 와 유사한 시각적인 조절이, 감상자로 하여금 연속적인 특징을 포착하게 하고, 또 이 특징들을 내적이고 상상적인 시각 속에 통합하도록 한댜 이 내적 시각이야말로 그림에 힘입어 정신 속 에서 눈이 뜨는 진실되고 통일된 이미지이다. 우리들은 한번의 조망을 통해, 예술작품에서보다 자연에서 보 다 더 많은 것을 보지 못한다. 이 점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통일성 !'u nit e 〉은 영화의 움직이는 영사막보다 고정된 조형막 위에 훨씬 더 있는 것이 아니며, 이 통일성은 오히려 우리들의 정신 내부에 있다. 한 작품의 해독이란 소극적이기보다 적극적 인 작업이댜 세계의 전체적이고 정확한 모습을 인간에게 제공 해주는 고정된 또는 움직이는 조형적 해결방법이란 있지도 않고 또 있을 수도 없댜 한 미술작품은 현실의 복사가 아니며, 〈하나 의 기호 un sig ne 〉이댜 한편에 무수한 장면으로 이루어진 세계 가 있으며, 다른 한편 이 세계 앞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인간 이 있댜 이 장면으로부터 어떤 특징있는 요소들을 뽑아낼 수 있으며, 표현적이 아닌 암시적 이미지 속에 이것을 통합시킬 수 있댜 조형막 위에 표현된 것은 〈실재 le reel 〉도 〈사유된 것 le pe nse 〉도 아닌 하나의 기호이며, 다시 말하면 〈눈속임〉을 가능 하게 하는, 그리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세계의 장면의 한 점에 감상자의 주의를 끄는 중개적인 선과 붓터치에 의한 점 t aches 의 체계인 것이다. 미술작품이란 실증적이지만 자연 속이나 공간 속에 있는 것의 단순한 기록에 그치지 않는다. 작품 속에는 세 계가, 죽 화가가 체험하고 살았던 이미지가 있다. 또한 각 작가 에게 있어서나 감상자에게 있어서나 〈정신적 실재 une rea lite spi ritue lle> 자체 인 지 각된 이 미 지 가 있으며 , 알아볼 수 있 게 해 주는 기호인 기록된 이미지, 저자의 사고를 감상자에게 전달하

게 해주는 잠재력을 가진 이미지가 있다. ~ \ ) 일단 이 미학적이며 심리학적인 진실을 인정할 때, 더이상 르네상스의 사실주의를 말한다거나, 르네상스 이전과 이후 그리고 르네상스를 떼어서 말하지 않게 될 것이다.

34) 허상의 개념에 관해서는 영화학 국제잡지 제 2 권 제 5 호에 내가 출판한 『공 간과 환상』과 그리고 같은 잡지 제 1 권 제 3, 4 호에 올드필드가 실은 논문 경화 이미지에 있어서 시각적 지각』 참조. 오늘날 이미지의 〈동급 d 액 res 〉 이라는 개념은 이제 겨우 언급하는 정도에 머물러 있다. 이 개념은 영화와 는 아주 다른 형태의 예술인 15 세기 회화를 비교하는 데 소용된다.

〈경의 분리〉란 15 세기 미술이 채용했던 가장 놀라운 체계인 데, 15 세기 미술은 이 체계를 통해서, 인간 정신에 접근하고 침 투하는 실재가 되어버린 이 세계의 깊이와 무한한 공간을 표현 하였댜 흔히 사용된 또 다른 방법 〈전망법 la vedu t a 〉 ® 은 〈경의 분리법〉과 모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전망법을 실현하기 위해 〈경의 분리법〉이 적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전망법〉이 이탈리아 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인정하지만, 현대미술의 기원으로서는 쉽게 인정하지 않고 있다. 15 세기 예술가들은 공간의 입방체적인 폐쇄적 표현이 갖는 불충 분성을 수정하려고 속히 이 전망법을 동원하였다. 화면의 한 부 분에, 도려내듯이 하나의 창문을 만들어, 거기에 자연으로 향해 열린 〈하나의 전망 une vue 〉을 배치하는 방법이다. 여기서는 아 직, 크기의 통일성이나, 보는 각도의 동일성 등은 문제가 되지 않는댜 〈전망법〉은 정확히 말하자면, 폐쇄적으로 표현된 공간에 결핍되어 있는 〈넓이 1'e t endue 〉를 추가하려고 사용되었다. 그 밖 에, 이 전망법은 바람벽 위에 열린 창문처럼 등장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말의 다리 사이에 삽입되기도 하며, 성 세바스챤

® 전망법 : 화면의 한 부분에 도려내듯이 하나의 창문을 만들어, 거기에 자 연으로 향해 열린 하나의 풍경을 배치하는 방법.

의 다리 사이에, 또는 단순히 한 그림의 두 모티브 사이에 끼워 지기도 한댜 〈공간분리법 ]a seg re g a ti on des es p aces 〉은 여러 부분들의 구성에 관여할 뿐, 엄밀하게 말하자면 공간의 형상화 체계에는 관계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망법〉과 다르다. 나는 〈전망법〉을 보여주는 예들을 도해하였고, 15 세기 미술의 구성에 있어서 이 방법이 어떤 식으로 관여하는지 그 예도 도해하였다. 〈공간분리법〉이 〈전망법〉이나 마찬가지로 직접적은 아니더라 도, 적어도 원근화법에서 나왔다는 것을 확인함은 재미있는 일 이댜 어쨌든 〈경의 분리〉는 〈전망법〉보다 더 나중에 나왔다. 사 실 헬레니즘시대부터 회화적 환영주의가 고대 연극무대의 딱딱 한 벽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댜 35) 그러나 여기에서 정말 새로운 측면은, 원경을 형상화하 기 위해서, 한 에피소드로 된 유일한 배경처럼 이 〈전망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내 생각에 르네상스의 찬탄할 만한 본질이 자 연의 즉각적인 해석 (15 세기의 화가는 화실을 떠나 자연 앞에 이젤 35) 케르노들 책의 26 쪽 및 그 이하, 또 45 쪽 참조. 이미 지적한 대로 고대 연극과 르네상스 원근법과의 연속성을 다소 간단히 설정한 듯한 케르노 들 논문에 대해서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 문제는 연속이라기보다는 오히 려 복귀이다 . 중세 연극은 관람자의 의식 속에 건축적 벽의 개념을 해체 시키기에 이르렀으며, 어쨌든 공간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었다. 케르노들 은 르네상스 연극이 3 개의 원칙, 죽 눈을 한 지정된 지점에 고정시키기, 공간의 깊이를 축소시키며 두배로 확대하기, 공간의 완벽성이란 개념의 발견이나 체계적인 사용 둥에 기초한다고 표명하였다. 이 가설 중 두번째 것의 가치에 관해서 1947 년 나온 정상심리학과 병리심리학 신문에 실린 슐의 논문 r 갈리버 테마와 라플라스의 공리J 참조. 우첼로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를 필두로 하여 어떻게 르네상스 미술이 새로운 사회적 상징 의 높이에까지 끌어 올려진 친숙하고도 대중적인 대상들을 재료로 하여 전개되고 있었는가를, 나아가서는 화가들이 시작한 방법들이 구체적으로 형상화됨에 따라 어떻게 현대 연극이 출현하게 되었는가를 다른 책에서 보여주겠다.

을 세운 적이 없다)에 있지 않고, 〈전망법〉의 해석에 있다고 본 댜 14 세기의 낮게 만든 측랑(側廊)은 전후로 열을 지은 무대장 치의 지주(支柱)란 개념에로, 그리고 다시 원근화법적인 경의 분 리에로 나아갔으며, 이렇게 해서 한쪽 지주에 열린 벽이 배경포 를 낳았고 자연을 다르게 표현한 조각들을 만들었다. 하나의 양 식은 세계의 조망에서 나오지 않고, 감각과 테크닉의 점진적 발 전에서 나온다는 것은 분명한 규칙이다. 르네상스가, 충실하게 (?) 해석한 자연의 경관에서 나왔다고 오늘날 생각하는 사람들 은 예술적 • 역사적으로 크나큰 오해를 하고 있는 셈이다. 우첼 로나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는 물감상자를 짊어지고 전원으로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당시에 익숙했던 장면을 표현하려고, 아틀리에에서 새로운 기하학과 회화의 전통적인 방법을 화합시 켰댜 축제나 연극은 공간표현의 기원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중 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15 세기 예술은 연구실의 예술도 야외의 예술도 아니며, 중정(中庭)과 도시의 예술이다. 자연의 낭만적인 풍경은 무엇보다 연극애호가들의 것이었다. 우리는 바로 위와 같은 견해를 쫓아서, 공간의 전체적 구축에, 그들의 예술 제작과정을 완전하게 설명해주는 일련의 요소들에 그들이 부여한 위치를 잘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 중 건 축물들과, 구성을 풍요롭게 해주는 수많은 부속물들인 바위, 옥 좌, 아치, 기둥, 별장들을 예시하고자 한다. 15 세기 미술에서 보이는 건축물 풍경에 관한 최근의 연구들 은, 이 화면들이 현실의 단편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논증하였다 .36) 도회지의 광경이 아니라 비극이나 희극 또 36) 최근 나온 일련의 홍미있는 논문으로, 시각 조망 또는 〈건축〉이라는 이 름으로 지금까지 알려져 왔던 몇몇 판넬그립의 기원과 진정한 의미를 이 해하게 되었다. 1948 년 미술신문에 실린 크라우타이머 R. Krau theirn er 의

논문 「르네상스의 비극과 희극 무대, 볼티모어와 우르바노의 판넬그림」 참조. 같은 해 이 주제에 대한 참고문헌이 이 논문에 실렸다 . 그 외에도, 이미 여러번 인용한 살미의 책 『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와 우르비노 공작 저택 』 은 르네상스 초기에 대한 풍요한 보고이다. 피에로 로라나의 건축광 경과 접견실의 목조상감이 된 문들은 나란히 옆에 놓고 보면 볼티모어나 베를린 그리고 우르비노의 판넬그림이 어떤 목적에 서 제작됐는지 알수 있다. 여기에 목조 모자이크 제작기술에 대해 살미가 지적한 중요성을 추 가해야 겠댜 상감세공은 르네상스와 16 세기 중엽까지 가장 중요한 예술 활동분야의 하나였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퐁텐블로궁전을 기억하거나 바 자리의 서문을 읽어보면 곧 알 수 있다. 우르비노의 목조상감i n t ars i a tu ra 기술과 내가 서술한 바와 같이 회화에서의 전망 vedu t a 의 발전 사이에 긴 밀한 관련이 있음을 추가하고 싶다. 15 세기 연극과 회화양식 간의 밀접한 관계에 관해서는 리틀의 두 논문 r 원근법」과 「원근법과 무대장식 그림」 (1 936 년, 1937 년, 미술 보고서)을 참조하라. 또 15 세기 이탈리아 회화는 하나의 형태적이면서 연극적인 〈몽타주〉로 통합된 대상들이 〈소재〉로 되 어 있다. 우선 이 몽타주는 무대장치의 모델로 쓰여지고 동시에 새로운 인간의 연극적 시각을 위한 상상의 틀로도 쓰여진다. 이 새로운 인간이란 자기 사회에서의 생활편력에 만족하지 못하고 육체와 정신을 커다란 모 험, 죽 세계와 마음의 지평선을 발견하는데 투신하는 인간이다.

는 풍자극의 장면들인 고전극의 유형들이 문제가 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충분히 강조되지 않았던 이 고전극들은 물론 현대적으 로 변형되어 있으며, 화가의 노력은 바로 이 변형에 집중된다. 세계에 대한 사변적이며 또는 순전히 상상적인 관점을 표현하는 것은 문제 밖의 일이다. 다시 한번 르네상스 예술에 관해서 말 할 때 혼히 심각한 오해가 일어나는데, 죽 예술가들이 세계를 그 모습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관심의 대상이었다고 보는 입장 이댜 불행하게도, 관학파들은 400 년 동안이나 좋지 못한 회화를 그려나가면서 그들이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우리들에 게 믿게 하였다. 건축은 15 세기 미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 데, 이는 선적인 체계에 균형을 주는 새로운 방법을 적용하는 데 적합했기 때문이다 . 새로운 기하학을 사용하기 위해서 우선

건축에서 출발한 다음, 작품의 여러 부분들에 질서를 주려 하였 댜 가공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감각의 내적 세계를 모델로 삼으려는 생각은 없었다. 이것은 특히 이탈리아에서 두드러진 경향이었으며, 오히려 연극의 고전적 유형을 찾아내고, 거기서 몇몇 건축의 모델을 빼내려 하였다. 그러므로 고대건축이 때로 는 세심하게 계산된 기둥이나 아치 같은 구성요소로 사용되기도 하였고, 어떤 때는 성격을 규정짓거나 특징을 드러내는 틀로서 사용되기도 하였다 .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화파나 로라나 Laurana 화파의 건축풍경들만이 아니라 15 세기의 모든 건축물 들 은 이와 같은 개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 과연 성 세바스챤 이 고대의 석주에 묶여져 있는 것일까? 그는 로마에, 더 정확히 는 로마세계의 중심에 있다. 이 구성의 의미는 그리스도교가 이 교도문화를 성스럽고 풍요롭게 만들었다는 것이며, 결국에 가서 는 이교도문화가 화합되었다는 것이다. 보충적으로 다른 증거를 들어보자. 화면의 귀퉁이에 사용된 〈전망법〉은 로마를 나타낸다. 그렇다면 기를란다이오의 r 성모 마리아의 성 엘리자베드 방문」 은 어떠한가? 왜 여기에 가로지르는 벽이 있을까? 이것은 그림 을 칸으로 구획하는 동시에 구상적 입방체의 이론적 존재를 환 기시키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이곳 야외에서 전개 되는 장면은 전설에 따라 금문 앞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 문의 재료를 알 수 있다 . 일단 예술가에게는 돌이 있으면 충분 하며, 곧 자기 작품을 건축하기 위한 자유로운 구성요소로 그것 을 사용한다. 우리들은 자의적인 상상으로부터 떨어져 있듯이 사실주의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 로라나 Laurana(1420-1479) : 달마트의 건축가 . 대표작은 몬테펠트로를 위해 지은 우르바노 공작 저텍

게다가 특기할 만한 것은, 15 세기 예술가들이 르네상스의 건 축물들을 모델로 삼는 데 장애가 있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이 러한 건축물이 서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관해서는 모든 역사적 의미에 대한 사색은 물론 다른 많은 사색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는 15 세기 초에 이탈리아에서 마 술처럼 갑자기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았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시대구분에 관해서는 앞에서 언급하였다. 최초로 피렌체에 궁전을 세운 것은 그 세기의 말엽, 희화작품들 의 3/4 이 이미 제작된 이후의 일이다. 따라서 15 세기 회화가 새 로운 건축환경을 반영한다는 생각은 철저히 공상적인 것이다. 르네상스 건축은 건축되기에 앞서 그림으로 그려졌다. 바로 여 기에서 르네상스 작품들의 놀랄 만한 관심의 초점은, 건축적 풍 경을 그린 것인지 여부에 달려 있다. 또 이 건축적 풍경은 16 세 기에 와서야 석공들이 서서히 키워가는 심미안에 대하여 이미 앞서 교육받은 소묘가들과 화가들의 꿈이다. 그리고 이 화가들 의 꿈은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으며, 이에 대해서는 국제적인 차 원에서 르네상스 역사를 저술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다른 곳에 서 언급하도록 하겠다. 연극의 부속물에 관해서는, 케르노들의 책을 참고하라고 할 수밖에 없겠댜 거기에서 우리는 14 세기 연극부속물들이 15 세기 룰 통해서 어떻게 그 성격이 변화했는가를 읽게 될 것이다. 마 차, 나무, 바위, 천개, 교회 성채, 분수, 울타리, 탑, 옥좌, 산, 선 박 둥의 모든 부속물들을, 현실의 세계가 아니라 연극의 세계에 속한 다고 보아야 한다. 세대들 사이에 단절이 없다는 법칙은 그 세대들이 서로 닮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세대들 간의 단절이 없다고 하지만, 다시 말해 각 세대들이 매번 자기들의 모델을 발견해내지는 않지만 각 세대들은 사물의 의미를 변화시키면서

발전해 나간댜 적용의 과정이라고 해서 발견보다 근본적인 결 과를 덜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물로부터 끌어내 는 수단이지 사물 그 자체가 아니다 . 새로운 오브제란 인간의 천재성이 낳는 결과이지 그 원인은 아니다. 기술적으로 말해서, 결국 15 세기 미술의 근본적인 발견은, 알 벤르티가 생각했던 제한되고 보편적인 의미에서의 선형 원근법 의 사용이 아니라, 전통적 공간을 깊이있게 배치하는 원칙에 있 댜 그 외에도 의적 세계를 있는 그대로 나타내려 할 때, 확실하 고 단순하면서도 실제적이라고 생각되는 소수의 방법들을 사용 하는데에 화가들이 모두 따르지는 않았다. 화가의 목적은 사물 에 담겨져 있는 고유성을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표현방 법을 창조해 내는 것이다. 이 표현에, 총체적이라기보다 단편적 인 사실주의를 구성하는 회화적 요소와 지적 요소가 동시에 결 합된댜 숫자에 대한 숭배가 유일하게 르네상스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원천은 아니였다. 감동적이며, 감상적인 요소도 영감 의 원천이었음을 고려해 넣어야 한다 . 객관적인 만큼 도덕적인 (가치부여적인) 표현전체를 〈시각화〉해보아야 한다. 새로운 체계 란 수학적인만큼 상징적이기도 하고 신화적이기도 하며, 오브제 의 발견은 수학적이기보다는 사회적 실제적 의미에 따라 더 많 이 좌우된다. 공간이 인간 밖에 존재하는 영원한 실재 자체가 아니란 점을 인정한다면, 세계에 대한 명상적이거나 적극적인 체험을 함에 있어서 인간은 실증적인 가치와 더불어 상상적인 가치를 도입한다는 것을 잘 이해해야 한다. 르네상스 공간은 단 지 기하학적이고 이상적인 선들로 짜여진 망에 의해서 규정된 일종의 빈 틀이 아니며, 오브제와 이미지가 존재함을 전제로 한 다. 우리가 이미 보아온 바이지만, 이 〈관계를 규정하는 공간

I'es p ace-rela ti ons 〉 과 〈 상징 물로서 의 공간 J'es pa ce-att ribu ts > 이 라 는 이중적 측면은, 알베르티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로부터 보스 Bosse 에 이르는 여러 세대에 걸쳐 순수하게 수학적인 사고 에까지 영향을 미치었댜 우리는 공간과 숫자를 동일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하학은 이론적 현실을 추상적으로 이해하는 방 법은 제공하지 못하지만 대신에, 상상적인 새로운 재료를 구획 정리하는 방법을 제공하여 준다. 르네상스 공간은, 그들의 행동 에 관여하는 실제적 판단과 이 세계에 대한 상징적 판단을 구체 화하기 위해서 예술가가 상상했던 모든 부속물들로 가득차 있 다. 르네상스의 새로운 조형공간은 단지 〈하나의 형태 une form e> 가 아니라, 테크닉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변형된 그들 생활의 실 증적 조건에서 화가들이 끌어낸 표현과 감각에 해당하는 〈 하나 의 질료 une ma ti ere 〉인 것이댜 르네상스 개척자들은 자연과 인 간정신에 공통되는 하나의 견고한 법칙을 발견한 것도, 사용한 것도 아니다 . 다만 그들 시대의 수학적 지식이 도달한 단계에 그들의 예술을 적응시킨 것이다. 세계의 시각적 관계에 대한 새 로운 사유방법이 회화 발전에서 커다란 역할을 했다 하더라도, 사회가 움직이는 새로운 공간, 이 공간을 구성하는 물질을 창조 하지는 않았다. 예술로서는 다소 충실하게 옮기는 것으로 끝나 는 〈불변의 자연공간〉이라는 개념은, 우리들이 지각구조나 사고 구조에 대해서 알고 있는 모든 것에 상반되며, 또 예술작품에 대한 비평적 연구가 보여주는 모든 것에도 반대된다. 인간을 세 계 자체와 대립시키는 것은 오늘날에 있어서도 스콜라학파적 사 고의 마지막 도피처의 하나이다. 순수히 물리적인 의미에서 르 네상스 공간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각 시대나 각 인간은 주어진 영원불멸의 세계를 지각하기보다는, 어떤 시기에, 개인들이 모여 성장한 집단에 공통된 그들의 행위와 인간지식의

제한된 총람에 기초한 체계를 세울 뿐이다. 어떤 공간이든 개인 적이고 사회적인 의미를 지니기 마련인데,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 공간은 소통 불가능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또한 이 공간은 형태와 상징적 관계의 조직인 동시에 임시 목록서이기도 하다. 따라서 15 세기 예술가들이, 선구자들보다 모든 공간을 좀더 능 숙하게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 자신의 공간을 발명했다 는 사실을 인정할 때, 우리는 그들의 노력이, 한 지정된 사회집 단 내에서, 관찰뿐 아니라 상상이라는 지속적인 기능과 결합되 어 있었다는 점을 연구해야만 한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들은 정신 기능의 역사와 관련된 모든 것 에 대해서 아주 무지하다. 예술심리학, 예술사회학은 아직도 철 저하게 유아기에 머물러 있다. 역사를 전적으로 제쳐두는 정신 분석적 또는 형이상학적 개념에 자극받은 출판물은 극히 드물 댜 15 세기 미술에 있어서 공간에 대한 새로운 체험이 어떻게 발전해 나갔는지를 알려고 할 때, 또 이 발전이 어떤 점에서 탁 월한 진가를 지니는지롤 이해하고자 할 때, 〈여러 다른 예술에 대한 객관적 연구〉야말로 최상의 근거가 될 것이다. 다양한 예 술분야들은, 현대인들이 감각을 서로 소통하는 데 근거가 되는 실증적인 동시에 일화적인 요소와 상상적 체계들로 된 명세서를 우리들에게 제공해 준다. 약 10 여년 전에, 미국의 음악사가인 에드워드 E. 로윈스키 Ed- ward E.Low i ns ky는 르네상스시대의 물리학적 공간과 음악적 공간 사이에 성립되는 관계를 다룬 탁월한 책을 출판했다.'i,/) 그 37) 로윈스키의 『르네상스시대의 물리적 음악적 공간 개념, 예비 연구 』 (1 941 년 미국음악 협회) 참조. 단지 유감스런 점은, 로윈스키가 적절하게 서술한 그 르네상스 발전 초기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하고 16 세기 중기에 완성 된 하나의 기정 사실로 간주한다는 점이다. 다비드에서 피카소에 이르기

까지 그 시대적 거리는 1 세기밖에 안된다 . 그러나 그 격차란 엄청나다. 우리가 다소 단순하게 〈하나의 더미〉로서의 특징을 부여하는 역사적 시 대들을 동질적인 하나의 덩어리처럼 시선으로 포착하고자 하는 유혹은 삼가도록 하자.

는 이 저술에서, 1500 년경에, 새로운 개념, 더 정확히는 공간에 대한 새로운 경험이 사회 내에서 발전됨으로써 음악에도 결정적 인 변화가 일어났다고 지적하였다 . 중세인들은 세계의 중심에 부동( 不 動)의 지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위성들과 태양이 동심의 궤도 속에서 지구의 주위를 돌며, 각 위성 궤도의 최대 의 거리는 그 다음의 위성 궤도의 최소한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전연 빈 곳이 없는 이 세계는 칸으로 구획된 닫힌 공간들의 체계로서, 정원과 주거로부터 천체가 순환하는 범위에 이르기까지 펼쳐져 있는 것이었다. 르네상스 천문학자들 이야말로 세계의 〈빈공간들〉을 발견해냈으나, 코페루니쿠스나 갈릴레이보다도 훨씬 앞서서 , 건축가나 화가들은, 기하학의 도움 으로 구축하거나 측정할 수 있었던 반투명 공간의 넓이를 감지 하고 다룰 수 있었다 . 그들에게 최초로 열린 공간은 회화( 繪畵 ) 공간이었다 피렌체에서 둥근 지붕을 건립하는 작업과 벽화에 원경을 삽입하는 작업이 공간에 대한 친숙한 체험을 준비했고, 이러한 공간에 대한 친밀한 경험은 대서양 횡단로를 발견하는 데 기여했으며, 새로운 음악의 출현을 가져왔고, 이어서 코페루 니쿠스 이론을 세우는 데 공헌하였다. 르네상스는 척도에 대한 감각만큼이나 〈무한〉에 대한 감각도 지니고 있었다. 또 르네상 스는 그때까지 단어에 지나지 않았던 것들에 체험적 내용을 부 여하였다 . 이 확장된 공간에 대한 체험은 근본적 변혁에 힘입어 회화에서처럼 음악으로도 표출되었다. 예를 들면 음계적 공간의 확장은 악기제조의 혁명으로도 나타났다. 알토와 테너의 두 부

분으로 형성되고 각 부분이 세 종류의 악기로 되어 있었던 옛 방식 대신에, 이제부터는 각 부분이 네 악기로 편성된, 베이스 부분을 하나 더 추가하여 세 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진 새 방식이 나타났다 이와 동시에 음악 공간은 반음이 삽입됨으로써 확장 되기에 이르렀고, 이로 말미암아 음정의 수가 두드러지게 중가 하였댜 얼마 안가서 4 분의 1 음까지 나타나게 되었다. 음악 공 간의 확대란 이론적인 것만이 아니라 조형적인 것이기도 하다. 즉 오래 전부터 내려오던 종교음악인 평가(平歌) @ 는, 모든 음악 적 구성을 독창적 수준의 상상적 표현에로 기울게 하였으며, 이 기능은 희화작품 내에서 고대 연극무대에서 유래하는 배경벽 le mur de fo nd 이 했던 기능과 약간 유사한 데가 있었댜 이제부 터는 음성이 중첩되며, 용적과 볼륨이 더욱 풍요해짐과 동시에 구체적으로 확대된다. 음악 표기법과 한 시대가 이 음악 표기법 에 관해서 겪는 체험 사이에, 이론의 여지없이 어떤 정신생리학 적인 합의가 존재한다. 평가 악보와 심포니 악보 사이에 음악 공간이 실제적으로 확장되어 나타났음은 확실하다.

® 평가(平歌) pla in - chant : 카톨릭 교회의 전통 성악. 동반 없이 한 음성만 있는 노래로, 전음계 음악. 리듬이 자유롭고 라틴 가사로 작곡되었다. 보 통 그레고리아 성악 음악을 의미한다. 이 평가는 초기 교회시대에 나타났 으며 레퍼토리는 성 암브로지에(암브로지에 성악, 4 세기)와 성 대 그레고 리아 (9 세기의 그레고리아라 불린 로마 성악)시대에 확립되었다. <•… •• 평 가는 박자 단위가 구분되지 않으며(오늘날 한박자, 반박자, 이중 반박자 둥으로 나누는 박자단위와는 아주 다른), 음계에서 소수의 음정으로 된 멜 로디를 말한다. 그러므로 고요하고 평정한 느낌을 받는다. 이 음악은 악기 를 동반하지 않았다……〉 코르뱅 S. Corbin , 『음악의 역사 』 제 1 권.

로윈스키는 르네상스에 있어서 음악과 물리적 공간 사이의 관 계란 문제를 상당히 신중하게 연구하였는데, 16 세기 음악이론과 음악체험 내부에 물리적 개념의 발전과 뚜렷한 관계가 나타나고

있다는 객관적인 관찰을 하였다. 16 세기 전 음악 교육은 음악법 칙과 새로운 물리학 지식 사이에 존재하는 형식상의 유사에 기 반을 두게 되었댜 사성(四 聲 )은 네 원소와 비교되고, 여덟 개의 톤으로 된 옥타브는 천체에서의 아홉 개의 구( 球 )를 대변하는 것 으로 되었댜 톤의 공간은 높이와 더불어 깊이도 고려되면서 구 성되었다 . 오늘날까지도 음계 • 음정 • 높이 • 평행템포 mouvemen t s pa ralleles • 대 립 템포 mouvements contr aries 등과 같은 일 반적 음악용어들은, 바로 이 음악체험의 공간적 특성을 강조해준다. 최근에, 프랑스의 16 세기 아카데미에 관한 연구는, 청년들의 지 적 형성에 있어서 음악이 하는 중요한 기능을 강조하였다. 예이 츠 Ya t es 는 그의 책에서 조형미술에 극히 미소한 위치를 부여하 고 있는데, 그 큰 이유는 틀림없이 16 세기가 음악의 세기였다는 데에 있댜 38) 이는 17 세기가 물리학의 시대였고, 15 세기가 희화의 시대였던 것과도 통한다. 그러므로 공간에 대해서 사람들이 새 롭게 느낀 감각이 그들의 다양한 활동 분야에 나타나는 데에는 3 세기나 필요로 했다. 르네상스는 갑작스러운 발견이 아니며 여러 세대를 걸친 작업을 통해서 구체화된 것이다. 그러나 어떤 한 시 점에 이르러, 어떤 경험질서를 받아들이는 것을 저지해 왔던 사 상적 질곡으로부터 해방된 사람들이, 행위에 대한 어떤 가능성을 38) 예이츠의 책 『 17 세기 프랑스 아카데미 』 (1 947 년, 런던) 참조. 내가 알기 에 예이츠는 지금 이탈리아 아카데미에 관한 두번째 책을 준비중이다. 그 의 연구는 가장 높은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 밖에도 조형적 사실 들에 그가 부여하는 상당히 미소한 중요성은, 16 세기 중엽 프랑스의 문학 이나 음악에 비해 데생기술이 열동했다는 사실로 설명된다. 이탈리아에 서도 동일한 현상이 일어났는지 알아보는 것도 홍미 있는 일이 겠다. 그러 나 나는 16 세기 프랑스에서의 조형예술과 음악과의 깊은 관계가 이 책에 서는 너무 과소평가되었다고 확신한다. 어쨌든 이 점에 대한 분명한 수정 이 요구된다.

의식하게 되자, 새로운 인간적 입장이 가능해진 것은 분명하다. 르네상스는 외부 세계에 대한 인간의 정신적인 입장의 변화라고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르네상스가 여러 세대를 거친 바평을 통해서 준비되었고, 또 시간이 걸리면서, 여러 세대의 집단적 노 력에 의해서 비로소 실현되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여기서 우리는 15 세기 예술운동에 있어서 희화사가 막대하게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기술적이고 사변적인 새로운 가능성에 맞추어 세계를 구축하려는 최초의 노력이 나타난 것은 회화에서 이댜 좀 더 자유롭고 또 더 폭넓은 생활에 대한 필요성에 합치 하는 새로운 세계를 세우기 이전에 그들이 이룩한 것은, 전세대 들의 공간보다 무한히 열려진 공간의 형태와 특징을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형상화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 공간에는 그들 생활의 장면들과 신화적인 언어에 대한 관심이 기록되어 있다. 그들이 발견한 새로운 즐거움, 새로운 필요성은 물론이고 또한 새로운 초자연적인 감각에 따라서 세계를 재조직하려는 그들의 욕망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의 연구단계로서는 15 세기 회화가 갖는 신화적이고 사회 적인 이중의 의미를 끌어내기는 어렵다. 이에 관해 필자가 결정 적인 설명을 제시했노라는 불손하고 어리석은 생각은 없다. 필자 가 원하는 바는 겸허하게 이 문제를 제기하고 그리고 이 문제를 좀 더 깊이 연구하기 위한 어떤 근거를 시사해 보는 것뿐이다. 미술의 사회적 성격을 연구하려 할 때, 우리들은 혼히 이중의 오류를 범해 왔는데, 그 첫번째 실수는 우리가 사회의 실제적인 구조를 알고 있다고 항상 생각해 왔다는 점이다. 예술을 사회 구조에 의해서 설명한다고 믿어 왔으나 사실 사회의 움직임을 설명해주는 것이 예술이다. 우리는 예술을 근본적 기능으로서 질문해보거나 분석하기보다는 하나의 장식품 내지는 사회의 상

부 구조물로 항상 간주해 왔댜 둘째는 근대 사회를 연구함에 있어서, 예술은 이 세계의 중요한 해석자의 하나인데, 이 세계를 설명해주는 체계가 지니는 신화적 측면을 상당히 소홀히 해 왔 다는 점이댜 15 세기 미술에서 공간 개념의 발전을 좀더 깊이 연구하려면, 오히려 반대로 그 당시 예술이 무엇보다도 신화적이었다는, 또 원시적 primitif이었다는 사고를 반드시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고 나는 믿는댜 물론 러스킨 Rus ki n 이나 번 존스 Burne- J ones 가 의미하는 원 시주의가 아니댜 다시 말해서 15 세기 예술이 좀더 완벽한 것에 대한 윤곽이며 이 윤곽에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순진함이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또 원시성의 이론을 미술 비평에 적 용하는 즉 모리 스 드니 Mau rice De ni s 식 의 의 미 도 아니 댜 15 세 기 예술의 원시주의가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심리분석 가와 인종학자들이 최근에 한 연구를 참고해야 할 것이다. 피 아제 P i a g e t®는 유아 의 식 발달의 여 러 단계 를 고찰하면서 다음과 같은 사실에 대해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도록 한다. 유아 ® 피아제(1 896-1980) : 스위스 심리분석가, 인식론자, 유아심리 전문가. 처음 에는 생물학 특히 해물학에 관심이 있었으며 15 세 때부터 과학에 관한 논 문을 발표했다.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 ]'evolu ti on crea tri ce 에 반하는 철 학으로 향했다. 생물심리발달 le developp em ent ps yc hobio l og iqu e 분야와 규범구조문제 le pro bleme de str uc tu res nonnati ve s 분야와의 중간 분야 인 관계논리 la Jog i qu e des rela ti ons 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뇌샤텔과 제 네바에서 강의했다. 제네바 대학의 이과대학에서 가르치면서 소르본의 메 를로-퐁티 Merleau-Pon ty를 계승했다. 제네바에서 생성 인식론 국제 센 터를 창립하고 죽을 때까지 이 센터를 지도했다. 피아제는 〈지성〉의 기원과 형성단계를 재구성하려 노력했다. 왈롱과는 반대로 지성의 발전은 개인적 사고의 점진적 사회화의 방향에서 지속적 방법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처음에는 사회적 적옹이 기피적이며 점

차로 주위 어른들의 영향을 받아간다. 유아의 사고는 그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다섯 단계를 거친다. 첫째는 지속적 대상에 대한 개념을 얻는 단계 (2 세 까지), 둘째는 자기 중심적 아니미즘적 단계 (4 세까지), 셋째는 감각, 운동 의 면에서 역전성, 보유의 개념이 나타나는 직관적 단계 (7 세), 넷째는 대 상에 대한 복잡하고 구체적인 작용의 단계 (11 세), 마지막은 논리적 • 형식 적 작용이 일어나는 최종적 균형의 단계 (11-14 세)이다. 저술로는 II'유아의 언어와 사고 』 (1923), 『 유아의 세계표현 』 (1 926), 『 지성 의 출현 』 (1 936), 『성장의 형성 JJ (l 946), 'l' 생성 인식론 입문 』 (1950), 『 인식구 조의 균형』 (1975) 둥이 있다.

의식 발달과정에서 한 단계에서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에 이 미 획득되었고 또 익숙해진 지각체계가 전부 사라지는 것이 아니 댜 예를 들면 공간의 위상학적(位相學的) 표상 les repr e senta tion s t o p olo giq ues 은 우리들 정신 내부에 영구히 남아 있는 것이고, 그 위 에 중 첩 되 는 사영 (射 影 ) 적 투시 적 표상 les repr e senta tion s pr o- jec ti ve s et p ers p ec ti ves 이 위상학적 표상을 몰아내지 못한다. 확 실히, 심리학자나 수학자들이 성찰에 의해서 현재의 문화층에서 그 위상학적 표상을 재 포착할 때에만 비로소 우리는 그것들이 우리 정신 내부에 살아 있음을 의식하게 된다. 그러나 그 표상들 을 절대적으로 제거하는 상반된 법칙은 분명히 존재하지 않는다. 그 밖에도 피아제에 의하면, 유아나 성인이 한 단계의 표상에 서 다음 단계로 옮아갈 때, 그 즉시로 새로운 체험의 풍요로움 과 상상이 풍부한 자발성을 그 전 단계에서처럼 온전히 얻지는 못한다. 제로에서 시작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발견하는 테크닉 속에서, 초보자로서의 실수를 하기 마 련이며, 그가 먼저의 체계(이 체계를 버리기보다는 이제부터는 자 동화하게 된다)를 다룰 때에 얻을 수 있었던 능력에 비교되는 기 술적 능력을 그의 새로운 체험이 제공해줄 때까지 이 실수는 계 속된댜 한 인간 집단이 움직이고 행동을 취하게 될 때 새로운

기술의 재료에 따라 하게 되는데, 이 새로운 기술을 그들이 발 견할 때에도 동일한 현상이 일어난다. 이러한 관찰은 15 세기 예술을 이해하는 데 있어 극도로 우리 의 관심을 끈댜 우선 이 관찰은 그때 있었던 사건들이 갖는 두 개의 모순된 측면을 조정하여 준다. 무엇보다 아르 누보의 몇몇 형태를 잘 고찰해 보면, 서투름과 모호함을 목격하게 되는데, 이 것은 예술가가 외부 세계나 감정을 나타내는 새로운 방법을 정 확히 세우려 할 때 어쩔수 없이 서투름을 보이게 되는 것과 관 련된댜 지오토는, 그의 일부의 작품에서는, 우첼로보다도 아니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보다 더욱 교묘한 솜씨를 보인다. 15 세 기 초의 모든 예술가들은 그들 제작에 있어서 공간을 표현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동시에 사용했다는 사실은 앞서 지적하였다. 새로운 개념이 마치 이미 형성된 언어처럼 그들에게 과해지는 것이 아니라, 한 방법의 발전이 문제시 된다. 결과적으로, 정확 성이 결여되어 있다든가 옛 방법과의 혼성이 나타나는 것은 당 연하댜 또 옛 방식의 능란한 조종과 새로운 것을 사용하는 데 에 있어 주저함과의 대조도 물론 있게 마련이다. 이와 마찬가지 로 우첼로도 두 개의 방주 사이에 노아를 배치하였으며, 더군다 나 각각의 노아는 선형 원근법의 새로운 법칙에 따라 훌륭히 표 현되었댜 또한 만데냐도 전통적인 목록 가운데의 하나인 바위 를, 어떤 때는 속세적인 풍경에 끼워넣고, 또 어떤 때는 종교적 구성 속에 끼워넣기도 하며, 그리고 때로는 라파엘이 혼인잔치 의 화폭에서 한 것처럼, 알베르티 이론이 엄격히 주장한 공간 통일의 법칙에서 그 바위를 떼어놓기도 한다. 그러므로 여러 부분들의 불협화음은 15 세기 예술 스타일 sty le 의 근본적 요소의 하나이며, 그 중요한 매력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것은 또한 예술가들이 공간과 사물을 조형적으로 표현하기 위

해 새로운 체계의 원리 를 찾아내려 노력했다는 사실과도 관계가 깊댜 이 점이 바로 그 들 작품에 어떤 특징이랄까, 서툴다는 특 징, 더 정확히는 르네상스 초기의 원시주의에서 나타나는 모호 성이라는 특징을 새겨주었다 .39)

39) 이 문제에 관해서는 피아제의 『 어린아이에 있어서의 실재의 구축 .J (1937 년, 뇌샤텔, 파리)의 365 쪽, 367 쪽 참조. 〈실제로 새로운 문제가 있을 때 마다 동일한 원시적 적응과정이 반복해서 나타난다……〉 그리고 〈사회 집단에 비해 개인의 동화와 적응은, 언어 수용 초기에 있어 감각 운동기 능 분야보다 덜 균형을 보인다. 정신이 집단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이 기 능은 생애의 초기 몇달 동안은 같은 질서 속에서, 동일한 단계를 거쳐야 한다.〉

한 집단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쪽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두 체계인 , 새로운 기호 체계와 행동체계를 만들어 내려고 할 때는, 언제나 모색하는 경험자의 상황에 부딪친다. 처음으로 화 학 반응을 만들어 내는 학자는 전통 학문의 선두에 선다고 해도, 어떻게 확실하게 해석해야 될지 모르는 새로운 세험의 결과들 앞에 처하게 된다 . 이 학자의 경우처럼 발명자의 입장인 르네상 스 직전의 예술이라는 상황 속에서도 마찬가지이다 . 우선은 예 술가 자신이나 주위 사람들이 친숙해 있는 체계들에서 따온 연 속된 추리에 의존해서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되고 또 이 발견을 설명하는 등의 복잡한 역정을 통해서만 궁극적 목표에 다다룰 수가 있댜 인간 사회에서 한 원칙이 새로운 언어처럼 새롭고 균일한 조직체계의 출발점이 되려면, 시간의 경과에 의해서만 가능하댜 사회에 그것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암시적인 요소로 된 통상적인 표현 방법을 빌려오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원시라는 말이 서투름이나 관례주의적 개념을 나타낸다고 보는 것은 오류이다. 최근에 영화나 항공에 대해서 말할 때 원시주의 자란 말을 많이 사용했다. 당시의 미술에도 그 나름의 진실된

그리고 허위적인 원시주의자들이 있었다. 르네상스 미술은 여러 세대에 걸쳐서 탐색하며 조사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것은 원시 적 사고와의 특수한 타협과 관련되어 있다. 이 원시적 사고란 용어는 발달이 늦은 인간단체의 사고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연 장이라든가, 갓 발견된 그리고 우리가 거기에 동화하는 사유까 지도 포함한댜 여기서 연장이라 함은 도구인 방편이나 언어를 의미한댜 르네상스는 과거의 형태적 방법과 새로운 형태적 방 법을 이 세계에 대한 미지의 직관을 표현하는 데에 적응시키려 했으므로 하나의 원시시대라 볼 수 있다. 18 세기에, 책장의 문들 을 가짜 책장정 모습으로 장식하는 유행이 있었는데, 이는 서재 롤 연속된 책장 모습으로 둘러싼 듯이 보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 가짜 서적들의 타이틀을 〈미지세계로의 여행〉 등으로 붙였 댜 때로는 사람들이 이러한 문을 열어 알려지지 않은 땅을 탐 험하는 길에 나서기도 한다. 그들은 미국과 성층권을 발견한다. 구체적 공간을 확장시켜가면서 새로운 발견 목록을 그의 과거의 경험 명세서에 첨부한다.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을 축적하는 것 만이 아니고, 가장 인접해 있는 세계 전체에 대한 조망을 재조 정하기도 한다. 원시주의자들이란 발달이 뒤늦은 자이기만 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자이기도 하다. 바로 이 점에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는데, 이 난점은 적응과 정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사회가 행위나 지식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때 신학문의 가르침을 옛것에 추가하는 데 그친 다고 믿은 것은 잘못이었다. 예를 들면 하나의 차원을 수학적 공간에 추가할 때, 과거의 공간에 더해진 창조된 공간이 아니라, 그 속에서 모든 차원이 가치를 바꾸는 새로운 공간이란 점을 지 적하면서 이 잘못된 판단에서 오는 오류를 다른 곳에서 엄밀히 지적한 바 있다 .40)

40) 브륀스바크가 『단계…… 』 의 111 쪽에서 인용한 데카르트의 논문 『규칙 14, 16 」은 다음과 같다. 〈공간적 크기의 구성요소는 길이이다 . 길이로부터 출발하여 삼차원을 가진 무수한 공간적 실재를 재구성할 수 있다…… 길 이와 유사한 모든 요소는 하나의 크기(차원)로 간주될 수 있으며, 하나의 문제에 원하는 수만큼의 크기를 도입할 수가 있다. 길이와 넓이만이 아니 라 깊이도 크기이지만, 그 외에도 무게도 크기로, 이것에 의해 사물들의 무게가 달라진다. 속도는 운동의 차원이며 이와 같이 유사한 차원들이 무 한히 있댜 같은 몫으로 나누는 방법도 이것이 실제이든, 지적이든 간에 기수법 이 이루어지는 하나의 차원이다 . 〉

위와 같은 이유에서, 어린아이가 투사적 형태의 세계에 들어 가기 위해서 가장 단순한 위상학적 표상을 버릴 때나, 또는 투 시적 형태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이 투사적 표상을 버릴 때에 야 비로소, 과거 체계에 대한 직접 체험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된 댜 순수히 지적 노력에 의한 경우를 제의하고는, 자기의 새로운 지식의 요소들이 아닌 것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된다. 창조 의 시기, 즉 르네상스 같은 원시주의적 시대에, 사람들은 두 개 의 모순된 경향에 따르기 마련이다 . 한편으로는 전통을 보여주 는 세계는 더 이상 만족스러운 세계가 될 수 없으며, 다른 한편 으로는 수많은 당대인들이 새로운 경험을 아직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상태, 그들 자신은 그 체험들을 아직 체계화할 수 없는 그 런 상황에서, 그들을 매혹시키는 섬세하고 지적인 새로운 경험 들에 기초한 완벽하고 일관성 있는 해석체계를 옛것의 대안으로 내놓기에는 아직 이르다. 발명의 시대, 그리고 이른바 원시주의 적 적응의 시대에, 그 의향과 방법의 이중성이 조형표현에 있어 서 나타남은 필연적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15 세기 예술의 원 시주의를 말할 수 있다고 본다. 이 원시주의의 해석이, 곧 15 세기 예술이 형태상의 방법에 있 어서 지니는 모호성을 설명해 주기도 하고 또 전제로 하기도 한

댜 그 밖에 , 당시 미술에서의 신화의 역 할 을 이해하 는 데도 도 움이 된다. 이렇게 볼때, 현대 인종학은 중요한 구제자 로 서 우리 에게 등장한다. 바로 이 학문 덕분에, 〈 원시적-지체적 사고 〉 라고 하는 복합된 사고를 〈원시적 - 탐구적 방식 〉 으로 대체하도록 해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에서 각별히 반 데르 리유 Van der Leeuw 의 훌륭한 저술인 『 원시 적 인간과 종교 』 , 린하르트 Leen- hard 혼 의 『 도 카모 . 멜라네시아 세계에서 인간과 신화 』 에 의거 하고자 한댜 4 l 1 쟁 린하르트 Leenhard t, Mauri ce 0878- 19 54) : 청교도 선교사 , 프랑스 민 족 학 자 . 20 년 가까이 로얄티 섬과 누벨 칼 레도니아에서 체 류 하면서 카나크사 람 들 의 생활 언어, 풍습, 의상, 신화, 신앙 동에 대한 중 요 한 자료를 수 집 했다 . 린하르트는 멜라네시아 사람 들 의 원시적 정 신상태 를 분석 해 현 대문 화와의 접촉에 의해 변화 를 보이면서 신화적 사고와 합 리적 사고가 공 존 함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미개 민 족 과 문명화된 민족 간의 상반성 을 뛰어 넘음. 중요 저서로는 『 신 칼레도니아 자료 』 (1 932), 『 오스트리아_멜라네시 아 언어와 지방어 .!I (1946), 『 대지의 사람 들』 (1 937), 『 도 카모 』 (1 947) 등이 있댜 41) 반 데르 리유의 『 원시적 인간과 종교 』 (파리, 1940) 와 린하르트의 『 도 카 모. 멜라네시아 세계에서 인간과 신화 .!I (파리, 1947) 는, 15 세기 미술의 〈 신 화적〉 가치를 해석하는 방법을 토 론 하는 데 참고가 되는 두 개의 중요한 자료이다. 그 밖에도 내가 이 문제 를 다론 책에서 다시 다 룰 것이다. 모 스의 『 인류학과 사회학 』 (파리 , 1950) 에 쓴 레비-스트로스의 훌 륭한 서문 과 물론 모스 자신의 연구, 특히 마술에 관한 연구 참조 . 예술과 마 술 에 대한 이론은 원시적 형태이거나 예술의 기원으로 추정되는 것만이 아니 라, 최근의 보다 복합적인 역사적 사실도 고려해서 다루어져야 한다. 또 이미 인용한 르콰-구루앙의 『 사회와 기술 』 참조. 멋진 무용이나 글씨체 둥은 언어와 마찬가지로 간주되는 다양한 표현 방식으로부터 비교심리학 을 연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늘 문제는 사고의 객관적 고정화이다. 서 체에 행위가 있으며 말에도 행위가 있다 . 우리는 이제 겨우 여러 다른 표 현그룹의 전문가들을 더 이상 대립시키지 않고 오히려 서로 접근시키는 노력을 시작하고 있다. 다비드의 홍미로운 논문 r 서체와 사고』(1 944 년, 철학 잡지)참조.

제일 먼 저 밝혀야 할 점 은, 신화는 단지 하나의 역사이거나 다 소 공상적인 역사 를 모아 놓은 것이 아니며 , 대중적이고 종교 적인 전통의 총체나, 여러 나라 지혜의 공통 자원도 아니란 점 이댜 신화란 합리적 사고와 동일한 자격을 가진 사고의 형태이 댜 모색의 초창기에, 사회 • 역사 내에서 중첩과 교차에 관한 바 로 위에 진술된 사항 들 을 고려할 때, 이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포착하게 된댜 과연 문제의 핵심은, 15 세기 예술가들이 그 들 이 표 현하고자 하는 새로운 감각에 의해서 어떠한 일화적 신 화 를 사용하고 발전시켰는가를 알아보는 일이 아니고, 그들이 새 로 운 합리적 • 수학 적 사고와 함께 신화적 사고를 동시에 어느 정 도 사용했는가를 아는 일이다 . 바로 여기에서 그들 공간의 발 명과 의미란 문제의 근 본에 우리는 다다른다 . 15 세기 예술가들 의 〈 시각화 v i sual i sa ti on 〉가 어느 정도로 이론적 사고의 산물인 지 , 체험된 사고의 산물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문제이다 . 그러므 로 우리는, 좀 더 일반적 차원에서, 사회 내부에서 상상 기능의 근본적 성격이란 문제와, 예술가나 대중을 위한 지식의 사실주 의란 문제에 접하게 된다. 신화가 어떻게 사고의 한 형태인가를 이해하려면, 린하르토의 저술을 읽는 것이 최상이다 . 세계속에 모든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 근본적 진실이었던 한 고대 사회를 그는 묘사하고 있다. 신화란 인간 집단의 자연스런 표현방법이며, 그들에게는 세계의 여러 부분들간에 어떤 대립도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이나 공간 어느 것도 생물과 사물들 간에 근본적 대립을 도입하는 자로서 간주되지 않을 때, 신화는 지식의 대변자이자 존재방식인 것이 다. 신화적 사고로 보면, 생명은 존재들간에 통과주기를 세워주 면서 우주 속에서 영원히 순환한다. 신화적 사유는 동일성 원칙 에 대한 절대적 신앙을 전제로 한다. 또 그 위에 인간의 발생론

적인 생명이 갖는 근본적 중요성에 대한 믿음, 이 인간의 발생 론적 생명과 세계의 생명과의 일치에 대한 신앙을 포함한다 . 이 러한 형태의 사고에 있어, 공간은 별로 구별되지 않는다 . 그것은 토템을 위한 힘일 수도 있고, 정서적 가치룰 가진 지역들 전체 일 수도, 또는 그 통일성이 육체적 존재에 의해 증명되는 장소 들의 혼합된 전체일 수도 있다. 그것은 질에 관여하는 것이며 연속적인 것이 아니다. 풍요함이나 협소함이 차례로 연속될 수 도 있고 동시적일 수도 있다. 개인이나 단체의 정서적 필요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요소들이 무리없이 자연에 따라서 나란히 위치하며, 모든 행위와 지식의 유일한 원천인 〈생명의 연속적 진행〉에 대한 믿음을 구성하는 요소들도 병렬된 다. 그 밖에도 자연 현상과 개인적 • 사회적 생활 현상은 서로 통합된다는 확실성과, 이 모든 현상들은, 유일한 현실에 대해, 생명력 자체라고 하는 기호 가치만 지닌다는 확실성에 의거한 댜 이 체계에서, 시간도 역시 용해된다 각 개개인은 생명의 한 순간이기 때문에 시간은 그 시원이 없고, 그 시간의 표현은 인 간 생활과 사회의 어떤 행위를 공간 속에 통합시켜주는 의식과 관계가 깊다. 공간과 시간의 연결은, 역사나 대상 밖에서, 사회 적 • 감정적 구축에 따라 이루어진다. 린하르트는 인간도 사회도 닮지 않은 그러나 우주를 닮은 세 계를 묘사하였다 . 그 세계에서는 사고와 언어, 감정과 동작 둥이 구별되지 않는다. 무용에서는 동작과 태도, 시에서는 언어, 그림 속에서는 이미지가, 자연을 분석하고 묘사하기보다는, 존재의 복 합적 정서를 환기시켜준다. 주목해야 할 것은 희미한 사고가 아 니고 감성의 차원에서 움직이는 구체적 사고이다. 신화적 언어 는 인간으로 하여금 그들의 애정과 힘이 표현되는 행위를 연출 하도록, 그 가치를 발휘하도록 도와준다. 모든 형상화 체계가 형

성된댜 인간 사고의 가장 발달된 형태하에서 이 형상화의 체계 가 존속한다는 점은 강조할 필요가 없겠다. 예를 들면 남자와 나무, 여인과 물, 결합과 침넝쿨 사이에 근본적인 동일화가 성립 되는데, 이 동일화에 대한 증거는 우리 시대에까지도 촌속되고 있댜 이 신화적인 세계에서, 공간이, 지식의 위상학적 형태에서 처럼, 주체의 개인적이고 적극적인 경험에로 항상 귀결된다. 사 냥꾼이나 전투자 또는 농부로서의 활동에 훈련된 인간은, 사물 들 사이에서 자기의 위치를 찾을 수밖에 없지만, 그 모든 것들 올 자신에게로 끌어들인다. 그의 몸과 지각을 갖고 세계의 중심 을 만들며, 사물들을 표현하는 일과 그것들에게 이름을 붙이면 서 질서를 주는 작업에 만족해 한다. 그럼으로써 그것들의 총괄 성과 모든 공간들을 이해한다. 이러한 단계의 사유에조차, 공간은 하나의 주어진 자료가 아 니라 하나의 창조란 점, 자연에 직면한 한 인간 집단의 경험과 필요의 투사란 점을 짧은 시간 동안에도 관찰하게 된다. 이 투 사는 개인 생활이나 단체 생활에 필요한 가치를 규정해 주는데, 또 여러 다른 형태의 사고들이 무엇보다 다양성을 찾는 그 공간 속에서 통일을 발견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 밖에도 점진적으 로 신화적 인간은 신화적 장소라는 존재를 인정하기에 이르고, 이 신화적 장소는 자신과 그가 속한 부족의 분신인 토템이 사는 곳이며, 이 마술적 장소에는 신과 불길한 신이 인간들 가운데에 영속적으로 거주하고 있다. 신화적 사고의 틀 속에 나타나는 최 초의 균열은 그 장소의 복수성(複數性)에 대한 신앙에서 온다. 언젠가는 거기에다가 인간 외부에 존재하는 장소와 사물의 물질 적 현실에 대한 신앙을 추가하는 날이 올 것이다. 이와 같은 정 복은 신화적 사고의 지속과는 반대되는 것인데, 이것은 왜냐하 면 고대신화로부터의 도피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또한 경험

이 발전함에 따라 합리성이 점점 커지는 외에도, 신화적 사고란 사물을 구별하는 의식이 발달함에 따라 붕괴하기 마련이기도 한 이유에서이댜 감성적인 두 세계가 서로 분리되고 , 서로 뗄 수 없는, 그러면서도 구별되는 두 언어가 가능해지고, 역사는 이 두 신화 사이에서 나타나고 전개된댜 여러 행위에 의한 체험을 고 정시켜주는 다양한 문자들은 점차적으로 주술적 언어를 대신하 고, 사고의 객관적 형상화를 가능하게 해주고, 개인과 사회의 정 신 세계를 영구히 새롭게 만들어 준다. 신화적 사고의 가치를 과소평가하거나, 특히 이 신화적 사고 가 우리의 정신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잘못이댜 이것은 잠재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 신화적 사고에 연결되어 있는 공간에 대한 위상학적 표현이 기하학에 대한 가 장 발달된 우리의 체험의 저변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신화 적 사고는 인간으로 하여금 어떤 분야에 접근하는 것을 확실히 저해한댜 변증법적 발명 체계를 사용함에 의해서 우리 활동의 장(場)이 상당히 확대되었다는 것을 절대로 부인할 수 없다 . 그 러나 이 신화적 사고가 다소 분명하게 늘 우리들에게 제공하여 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면 잘못이다. 어쨌든 이 신화적 사 고는, 역사적으로 다양한 시대에 속한 인간의 수많은 작품들을 분명하게 밝혀주며, 이 작품들은 신화적 사실들에 비추어 해석 됨으로써 모든 인간적 의미를 다시 찾게 해준다. 신화적 방법에 의해서 사고를 하면, 많은 인간관계를 알 수는 없지만, 그 가운 데 일부는 알 수 있댜 42 ) 42) 여기서 나는 벨페고르의 격노를 샀다! 우리가 진정으로 합리적일 수 있 으며, 또 논리적 표현의 우월성을 아무리 확신한다고 해도 수많은 사람들 이 서로 다른 방법에 따라 사고하고 표현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 다. 로마신화에 대한 뒤메질의 뛰어난 연구인 류주피터, 마르스, 키리누스,

호레이스, 그리고 큐리아스, 또 세르비우스, la Fo rtu ne 』 는 T it e-L i ve 의 첫서적들에 대한 해석으로 엄격한 언어에 기초하고 있다. 법의 어머니였 던 로마는 로마의 제도에 신화적 가치를 부여했다. 유사한 연구에 의해, 15 세기 회화가 과학과 지리 분야에서의 발견과 동시에 그 시대의 사회적 큰 격변에 관계된 〈의식〉이었음이 증명되리라고 확신한다.

다른 사회적 • 이론적 형태의 사고의 영구한 토대와 같은 이 신화적 사고의 법칙에 대한 지식이, 15 세기 예술에 있어서의 공 간 표현의 문제를 이해하도록 해준다는 점은 강조할 필요조차도 없겠댜 앞에서 이미 밝힌 바와 같이, 만일 현실에 충실한 표현을 위 한 기계적 방법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통해서, 15 세기 초 조형공 간 표현이 이룩한 진보를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인정한다 면, 또한 15 세기 예술이 예술가가 살았던 자연환경, 사회적 환경 을 해석해 줄 수 있는 장소나 인간 또는 대상을 발명함으로써 기술적 공간만이 아니고 실제로 구상적 공간을 창조해 냈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신화적 사고의 특성에 대한 좀 더 정밀한 지 식이 얼마나 귀중한가를 우리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은 사실들에 비추어 볼 때, 사물들에 대한 좀 더 명확한 견해를 갖게 되리라 생각한다. 15 세기 예술에 있어서 신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한 것이 댜 때로는 그 시대의 예술가들이 전통적 주제의 일부를 다시 채용하거나 변경하는 것에 그친 경우도 있다. 그들 예술에 있어 서 기독교 신화가 한 역할은 강조할 필요도 없겠다. 이 신화가, 세계에 대한 영원한 신화적 체험이 갖는 몹시 깊은 측면들과, 어느 정도로 연관이 되어 있는지를 연구하는 일은 여기서 하려 는 작업이 아니다. 언젠가는 이 점에 관해 가장 신기한 관찰을 해볼 수 있으리라 특히 죽은 신, 추종자들에 의해 완벽해진 신,

또는 남성적 생명(인간의 아들의 승리로 대변되는)과 여성적 생명 (外婚制의 현대적 기념인 성모 마리아의 예찬으로 대변되는)이라는 이중적 사조로 구성된 전설을 관찰할 수 있겠다. 항상 자연과 직면하여 신화적 이해의 측면을 간직한 정신의 가장 원초적일 뿐만 아니라 가장 심원한 구조층에 이 기독교적 신화들이 속하 기 때문에, 이 기독교적 신화들이 새로운 대담한 사고에 자연스 런 지주로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환기하기 위해서만 앞의 내용들을 언급하겠댜 당연히 이 신화, 이 전설들은 상당히 정 련 된 모습을 띠게 되는데, 이는 새로 나타난 현대적 정신, 즉 이론 적 정신 및 합리와 분석이라는 정신의 출현에 의하여 회화 속에 도입된 요소, 세계에 대한 친숙한 체험 및 새로운 질서의 탐구 세계를 표현해주는 요소보다도 더욱 진보된 양상을 띤다. 그러 나 그렇다고 해서 이 신화가 발명의 전통적 부분과 덜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이미 보아온 바와 같이, 연극 전통에서 빌려온 15 세기 예술이 사용했던 상징적 부속물들의 전 목록도 역시 틀림없이, 인간 정신에 내재하는 신화적 사고의 영역에 속한다. 확실히 이 재료의 사용은, 그 내용을 요점적으로 정리하고 좀더 새롭게 하 려는 느린 속도로 진행되었던 노력의 대상이었다 . 여러 대상에 수많은 의미의 변천이 있었다. 예를 들면 로마 폐허를 도입하였 는데, 이 대상은 신화적인 동시에 실증적 가치를 지닌다. 이미 보았지만, 기둥이 있는 광경, 폐허가 있는 풍경은 기독교적 세계 속에, 이교도적인 그리스 로마 고대세계 전부를 들어오게 하였 댜 작품은 마치도 불가사의한 의미를 잔뜩 담은 구상적 판들의 조립처럼 구상되었다. 여기에서 각각의 판은 전체의 의미에 하 나의 요소를 추가하였다. 이 점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강조할 필요가 없겠다. 왜냐하면 이교도적 세계의 기호와 기독교적 세

계의 기호 사이에 일어난 상호침투에 대해서는 그동안 너무 강 조하여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기호들이 근본적으로, 같은 범 주의 사고 혹은 같은 시대에 속하는 만큼, 그 기호들이 서로 용 이하게 융합될 수 있었다는 점은 좀 소 홀 히 되어 왔다. 15 세기 작품에서, 다양한 대상이나 구상적 부속물들의 사용이, 공간표현 의 합리적 발명과 어울리는 부속물들을 조직하는 법칙을 도입하 지는 않았다는 점을 말할 필요는 없겠다. 이 우의적이며, 이교도 적 • 기독교적 표상의 혼합은, 칸으로 구획하는 표현 체계 속에 서 통합된댜 이 표현 체계 속에서는 기호나 대상의 분류가, 전 통적 • 윤리적 가치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공간 속에서 대상에 부여된 상호적인 새로운 위치나, 인간 행위의 새로운 가 능성에 비해서 인정된 그것들의 실제적 유용성에 따라서 기호나 대상이 분류되지는 않는다 . 르네상스의 신화적 공간은 어떤 체 험도 행위 속으로 들여놓지 못했던 인물과 대상들을 조립하여 나 갔 댜 이 신화적 공간은, 물리적인 연속성이 아니라 심리학적 인 연속성의 법칙이 지배하는 전체적 공간의 신화적 개념에 충 실하였다 그렇지만 15 세기 공간표현에 있어서 신화적 사고가 차지하는 비중을 과장해서는 안된다. 확실히 인류학자들은 그것의 범위를 한정함으로써, 그 시대의 진정한 독창적 기여가 무엇인가를 잘 파악하도록 해주었다. 우선 그 사회의 독특한 구조를 보여주는 행위들에 대해 그들 이 지녔던 각별한 관심에 의해 그 시대가 창조해 낸 엄청난 수 의 상상적인 장소들이 있다. 조형공간은 실제로 틀뿐만 아니라 개인적이며 집단적인 장소를 창안해 낸다는 것을 전제로 함을 잊어서는 안된다. 간단한 예로, 15 세기 예술에서 최초로 나타난 구상적 주제의 하나인 우첼로의 r 전투」를 들어 보자. 고대나 중

세 회화에서도 전투를 다룬 것은 물론이지만, 우첼로의 작품에 서 여태까지 없었던 새로운 공식이 등장한다. 우선 화가는 단일 한 전투 장소를 나타내려 하고, 하나의 중심에 따라 배치된 구 성 내부에, 전투의 다양한 유기적 일화들을 조립하려 한다 . 화가 가 그 의도에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그러나 거기에 의도가 있었 다는 점은 이미 설명하였다. 그 밖에도 작가는 기사들이 들고 있는 창( 槍 )에 중요한 회화적 역할을 부여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창은 그 시대의 군대생활에 있어 중대한 임무를 하게 되었다 . 이제는 기마시합에서는 더 이상 창을 사용하지 않게 되었으며, 또는 무장한 군대가 단 한번 사용하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창을 중심으로 모든 전략이 짜여지게 되고, 곧 보병들이 모두 이것을 사용하게 되었다. 언젠가 벨라스케스는, 그 도시 명칭만으로도 많은 정치적 문제와 역사를 말해주는 한 어떤 도청소재지인 도 시의 항복을 찬양하면서, 이 창을 다시 주제로 다루었다. 그가 프티 베르나르 le Peti t Bernard 라는 판화가의 그림을 중개로 영 감을 얻을 수 있었음은 이미 언급하였다 . 43) 확실한 것은 우첼로 에서부터 분명한 상징적이며 공간적인 가치를 지닌 회화적인 테 마가 출현하는 것을 보게 된다는 점이다. 또한 에스테 Es t e 가(家) 왕자들을 그린 두 폭 초상화의 뒷면을 예로 들을 수 있겠댜 리미니 R imini ® 의 부조 작품에 다시 나타 43) 쟈모의 『셰익스피어와 벨라스케스』(미술지 , 1934) 참조 . 쟈모가 지적한 판화는 , 작은 베르나르라고 불리는 리용의 베르나르 살로몽이 , 1553 년 리 용에서 간행된 클로드 파라댕의 『 성경의 역사적 4 행시 』 속에 실었다. 여 기서 연대착오를 주의하자. 우첼로의 r 전투」는 기오스트르와, 또 기마시 합에 연결되어 있으며, 16 세기의 전투대와 상관이 없다 . 테마의 발전을 한 발전의 기원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 우첼로가 출발점을 보여준 반면 벨 라스케스는 그 발전의 마지막 도달접을 보여주었다. 한세기 동안에 기사 의 사회적 지위가 실추됨을 본다.

나는 이 마차는, 이 판넬 그림의 뒷면에 그려진 인물들의 인간 적 및 초인간적 영광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왕가에서 있었던 축제의 실제적 회상을 환기시켜 준다. 15 세기 사람들이 열렬한 연극 애호가였다는 점은 이미 언급한 바 있다 . 44) 그 밖에도 이 그림의 배경은 화가와 모델들의 심정에 어울리는 풍경을 종합적 으로 보여준다. 바로 여기에 15 세기 작품들에서 우리가 흔히 대 하게 되는, 공간적이면서 구체적이지만 사실적이지는 않은 의미 의 한 예가 있다. 당시 예술가들이 창조해낸 새로운 신화적 공 ® 리미니 : 15 세기 말라테스타가의 저택 . 44) 몬테펠트로의 승리의 마차는, 우첼로의 「전투」처럼 실제의 테마로, 여기 에 나오는 대상 들 은 결코 상상적인 부속물들이 아니라 그 당시 생활에 친 숙한 것 들 이다 . 만투아의 후작부인인 에스트가의 이자벨에게 받친 저술 로, 밀라노의 셀란 백작부인의 결혼얘기를 말해주는 반델로의 저술 『 뉴 스 』 에 나오는 이 백작부인이 마을에 들어오는 묘사를 참조하라. 미래 남 편될 사람의 형인 프랑소아 비스콘티는 이 백작부인에게 금이 박히고 휘 장으로 덮인, 네 마리의 장식된 말이 끄는 마차를 선물한다 .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그린 구 초상화의 뒷면에 그려진 두 대의 마차가 몬테펠트 로와 그의 부인이 결혼할 때, 페사로에 들어가면서 탔던 실제의 두 마차 임에 틀림없다 . 안쪽으로 접는 두 그림도 역시 상징적이며 실증적 가치가 있다. 죽 결혼의 회상이자 토지소유의 상징이기도 하다. 비유적 가치는 당 시의 사실들과, 그 당시 사람들에게 친숙한 풍습에 근거를 두고 있다 . 우 리가 과거의 미술작품을 볼 때 이중의 해석을 내려야 함을 잊어서는 안되 며 , 흔히 제일 어려운 것은 예술가의 상상을 뒷받침해줄 구체적인 중거를 다시 찾아내는 일이다. 프레데릭과 바티스타 스포르자의 결혼은 페사로에 서 1460 년 2 월 10 일 호화찬란하게 거행되었다. 그러므로 왕자의 결혼식에 쓰인 마차는, 그들이 살았던 지방풍경을 상징적일 뿐만 아니라 실증적으 로도 보여주는 배경과 나란히 배치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그들 통치 영 토의 범위를 보여준다. 전형적인 동시에 지속적인 지방풍경과 일시적 축 제의 부속물들을 결합시켜서 작품의 구성에서 여러 다른 시대와 지역으 로부터 빌려온 요소들을 통합시킨다. 안코나의 책 『 이탈리아 연극의 기 원』(투리노, 1891) 은 15 세기 예술가들이 사용한 재료의 목록서를 세우는 데 있어 아직 개발되지 않은 풍요한 보고이다. 참고문헌을 제공하고 있는 바르톨로메오와 아폴로니오가 그린 최근작들을 거기에 추가해야 한다.

간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의미에서 이댜 현대적 작품들, 말하자면, 공간의 신화적 형상화에 속하는 표 현과 확고하게 전통적 계열에 속한 작품들의 표현과의 차이점은 테마의 차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존재한 적이 없는 사실주의 방식에 따라서가 아니라, 정확한 조직 법칙에 의해서, 그 당시 세계의 실제적 측면들을 표현하는 구체적인 무엇인가가, 이 새 로운 형상화의 질서 속에 있는 것이다. 반 데르 리유와 린 하르트의 저술 덕분에, 우리들은 상당히 중 요한 하나의 개념에 친숙해졌다. 그것은 바로 정신적 거리 dis- tan ce p s y c hiq ue 라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일련의 작품이나 구상 적 기호들 내부에서, 한 구성들 속에 모아져 있는 대상들 사이 에, 또는 그림 속에 표현된 인물이나 대상들과 감상자 사이에 존 재하는 고정된 관계를 지칭한다 . 신화적 사고만을 사용하는 사람 들에게는 이 정신적 거리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거기에는 오로 지 위상학적인 자기중심주의만이 절대적으로 군림할 따름이기 때문이댜 미발달 지역의 사람들은 대포와 대포를 전도(傳導)하 는 전류의 힘을 구별하지 못하며, 또 그들의 정신과 이 정신이 깃드는 토템의 정신을 구별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세계는 절대적으로 연속되는 직물의 조직으로 되어 있다. 자아에 대한 지식이 더욱더 구체화됨에 따라 인간은 사물들간의 구별을 더욱 더 잘 할 수 있게 된다. 피아제의 연구는 유아에게 있어서 발견 되는 이러한 진보를 확인하여 주었다. 물론 정신의 식별력에 어 울리는 지식의 수준을 말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다. 중세 는 이 세계를 투사적으로 자기 중심적으로 이해한 것에 불과하 다. 즉 그들은 이 세계를 물질적 깊이를 고려함이 없이 신에 대 한 구체화로서 지각하였다. 사물들이 차지하는 위치나 크기 등의

상호 관계는 관심 밖이었다 . 그들이 창조한 공간은, 논리적으로 말해서, 또 피아제의 용어에 따른다면 , 별로 중요하지 않은 조형 공간 내지는 투사적 공간이었다. 중세적 형상화의 법칙의 대개는 별로 개별화되지 않은 인간정신 속에 머물러 있다 . 르네상스가 가치나 개념에 있어서가 아니라 형태에 있어서의 세계를 객관화 하기 시작했을 때, 세계의 공간적 표현이라는 분야에 있어서 거 대한 하나의 단계를 넘어선 셈이다. 왜냐하면 〈정신적 거리〉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확인되 는 점은, 대다수의 15 세기 작품이 위상학적이며 의미적인 표현 법칙올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기하학적이고 개별적인 지각 법 칙은 부분적으로만 적용이 되고, 전체는 근접한 것에 따르는 법 칙에 의존하고 있거나 또는 정반대로, 전체는 통일되어 있으나 부분들은 공간적 가치 지각에 따라 처리되고 있다. 크게 보아 15 세기 예술은, 두개의 체계, 즉 정상에 이른 체계와 아직 초기 단 계에 머물러 있는 체계를 융합한 것이다. 이것은, 15 세기의 대부분의 중요한 신화에 나오는 사물들에 따른 위치설정이 아니라, 정신에 따라 가치를 부여하면서 공간 적 위치룰 결정하는 입장이다 . 현대정신의 주인공은 흔히 신화 시대에서 영감을 받은 자들이었다. 당시 대가들을 지배했던 두 종류의 감정, 죽 〈위 력 la pui ssance 〉과 〈부유 la ri chesse 〉라는 감 정에서 우러나온 두 가지 예를 여기서 들어 보겠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이미 한 논평의 광장을 만들어 냈댜 따라서 나의 지적은 거기에 하나를 더 추가할 수 있을까 할 정도이다. 그렇지만 내 생각에는 보티첼리의 이 작품이 어느 점에서 보더라도 하나의 문제를 요약해서 보여 주고 있어, 이 작품을 예로 드는 것이 정당하다고 본다. 우선 이 인물 오른편 에서 바람이 교묘하게 받쳐주고 있는 주름 많은 옷의 가치를 더

접근해서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케르노들 연구에 따르 면, 이 옷은 암시된 공간의 미묘한 넓이룰 나타내 주고 있다는 것이댜 이것은 왜냐하면 내부의 한 장면이라는 생각을 보여 주 기 때문이다. 나의 견해로는 가장 중요한 것은 조개껍질이다. 이 작품의 우의(萬意)적이고 공간적인 가치를 미묘하게 전환시킬 필요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조개이다. 나는 메테 M. P.Me tai s 가 프랑스 사회학 연구소에서 1950 년 1 월에 발표한 아 주 홍미있는 논문에 의거하겠다 .45) 그는 2 년 전부터 이미 이루어 진 진보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고대 사회에서의 동전의 상징적 측면과 가치에 대한 연구가 그 하나이고, 또 다른 하나는 1948 년 심리학 신문에 실린 제르네 M.Geme t의 학술 논문인 「그리스에 서 가치의 신화적 개념」이 그것이다. 어떤 지역에서는 오늘날에 도 아직 조개가 화폐 단위로 쓰인다. 옛날에 제르네가 연구한 황금 양털과 같이 우주에 대한 신화적 비전으로 그것을 보고 있 다. 그러나 금과 진주가 르네상스시대나 오늘날에나 부의 중요 한 요소임을 어느 누구도 곧 알아볼 것이다. 메테는 두 편의 중 요한 논문으로 요약하였다. 그 첫 논문은 조개동전의 장식적 기 원을 밝히고 있는데, 이것은 귀중품의 외관, 즉 진주가 보여주는 순백색, 평화로움, 조용함, 평정함, 금의 섬광적인 특징등이 불러 일으키는 감동을 가치화하는 데 기초하고 있다. 원래는 화폐의 미학적 가치나 기억적 가치 또는 마술적 • 경제적 가치 사이에 구별이 없었을 것이다. 두번째 논문은 고대의 사고가 성의 구별 45) 메테는, 프랑스 사회학 연구소에서 1950 년 9 월 28 일, r 고대 사회에 있어 동전의 다양한 특징들』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나는 이 발표의 요약문 올 참고로 했는데 이 연구가 곧 출판되기를 희망한다. 그 밖에도 제르네 L고.서 G,e m19e4 t8의) 참얼조.리 스의 가치에 대한 신화적 개념』(정상심리, 병리심리 보

에 부여하는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조개는 그 형태로 보아서 나 구멍과 그것이 주로 있는 장소로 보아서 여성의 은밀한 영역 울 암시해 준다. 생명의 원천에 대한 상징적 이미지도 되고 또 이 생명과의 총체성을 이루어 준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어 떤 사회에서는 혈족관계를 보장해주는 여성의 상징적 • 신화적 대치품인 이 조개는, 생명의 원천을 예시해주고, 그것의 도착을 준비하며, 이미 맺어진 맹서를 확인해 주고, 종교적 성격을 갖는 믿음이나 우정을 주는 자와 받는 자 사이를 연결시켜준다. 이러 한 연구들이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 대한 해석을 풍요롭 게 해주고 그 공간 표현의 구체적 가치를 포착하도록 해줌은 거 듭 강조할 필요도 없겠다 . 우리가 이 연구들에 의해서, 메디치가 에서처럼 신플라톤주의자들이 분명히 원했던 바인, 비너스와 기 독교 성모 마리아 주제와의 혼성을 이해할 수 있음은 물론이려 니와, 15 세기의 예술가들이, 어떻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 이 상으로, 브루넬레스키와 알베르티가 꿈꾸었던 기하학적인 장소 만큼이나 추상적이고 신화적인 장소를 창조해 내려고 했는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5 세기 동안에 공간의 신화적 창조가 기하학적 장소의 창조보 다도 더욱 지배적이 아니었다고 나는 확신할 수 없다. 당시 대 은행가들을 고객으로 했던 예술가들의 모든 작품들은 그 귀족의 사회적 • 경제적 기증정책에 받쳐지고 있다. 부를 유통하게 해주 고, 유력한 왕가의 귀족들로부터 소박한 장인들에 이르는 사회 의 여러 그룹들을 연결시키는 기증이다. 길의 전 시민을 모이게 해주는 축제의 일화나 승리의 마차를 나타내는 비유를 표현함으 로써, 나아가서는 신심회(信心會)의 의류에서 그 특성들을 빌려 옴으로써 ,46) 중세의 신화적 공간과 새로운 사회의 공간을 계속 연결시킴으로써, 15 세기의 화가들은 실제로 세계를 이끌어 나가

46) 수도회에서 사용하던 의복, 용품 등의 연구는 틀림없이 15 세기 예술가들 이 아틀리에에서 썼던 재료에 대한 풍부한 참고자료를 제공할 것이다 . 수 도회 연구를 위한 출발점은, 안코니아의 책 외에도, 주 1 번에서 인용한 로시의 『 15 세기 16 세기 g 에서 찾을 수 있다. 우첼로의 r 성체의 기적』은 파 리의 한 기적을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서, 우르비노의 도미니크 수도회가 화가에게 주문했던 것이다. 이 주제에 대해 나는 1951 년 2 월에 골동상인 국가협회에서 발표한 적이 있으며 다른 곳에서 출판될 예정이다. 쥐스트 드 강의 제단 뒤 장식벽을 위해 특별히 우첼로에게 주문했던 미사대 그 림의 아랫부분은 조합축제의 구체적 회상을 담기 위한 것이 아니었음은 확실하다. 이 구성의 부속물들은 이론의 여지없이 연극자료라는 성격을 지닌다. 우첼로 작 J 게오르크」에 대해서나, 또 r 동방박사의 경배』에서 의 구유, r 현성용』에서의 바위 같은 15 세기 회화의 사실주의적 또는 환상 적인 다른 많은 요소들도 마찬가지이다. 기증에 관한 이론은 주 41 번에 언급된 문집에 다시 출판된 모스의 고전 연구 참조 .

는 힘의 흐름들을 움직이게 하였다고 믿었고, 그럼으로써, 그들 의 작업은 그들 눈에, 적어도 당시 사람들의 눈에, 분명히 어떤 의미 그리고 긍정적 가치를 갖게 되었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하나의 정책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 그림 값을 지불한 메디치가와 그것을 제작한 화가는, 여러 가치를 재는 척도를 공 간적으로 구체화함으로써, 인간사(人間 事 )를 인도하는 데에 효과 적으로 기여한다고 믿었다. 그들이 잘못했다고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메디치가 못지 않게 현실적인 다른 정책들도 역시 공간의 구 상적 이미지가 지니는 힘을 믿었다. 베네치아 공화국을 위해 일 한 카르파치오와 벨리니를 나는 상상해 본다. 도시국가의 신화 창조에 관해 좋은 저술이 있어야 되겠다. 누구나 베니스에 가보 면, 오늘날에도 훌륭한 풍경이 이 수상 도시의 진정한 위대함과 더욱 커다란 꿈을 어떻게 이야기하는지를 느낄 것이다. 그림들 이 최초 건축물의 건립을 선행하지 않은 경우에는, 이 그림들이 건축물들의 건립을 동행했음을 관찰해볼 때, 당시 화가들이 그

들 도시국가의 위대함을 동국인들에게 주입시키고 싶어하는 십 인(十人)의원회에 어떠한 지지를 하였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카르파치오와 벨리니 그룹의 화가들은 한 도시의 초상만을 그린 것이 아니며, 이 화가들은 구아르디 Guard i나 카날레토 Canale tt o 파보다도 더욱 풍요하고, 또 장대함에로 향한 의지로 가득차 있 댜 일상생활의 물질적 배경과, 지배자들이 영웅적인 운명을 최 상으로 보장받으려 했던 전설과의 구체적인 연결을, 이 화가들 은 세워주고 있다. 그 작품의 질서가 선이나 빛으로 가득찬 명 암을 다루는 노련한 솜씨만으로 된 한 상상 공간의 비전을 이 화가들이 창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시 시대가 바로 실증적 가치를 부여하는 이상적 공간을 구현하고 있다. 고로 이미지에 대한 신앙을 가졌던 15 세기가, 신화적 기능을 거부하지 않고 새 롭게 한다는 생각에 기초한 일련의 공간 형상들을 창조해 냈음 은 당연한 일이다 . 그 다음으로 다루어야 할 것은, 15 세기의 셋째 그룹의 작품들 이 공간의 지적 • 감성적 • 조형적 표현의 또 다른 수준을 이론의 여지 없이 보여준다는 것이다 . 과학의 진보와 특히 당대인의 내 적 성찰에 의해 제기된 문제의 아주 새로운 입장에서 나온 작품 들을 언급하고자 한다 . 지금까지 지적한 것들은, 15 세기 예술의 어떤 연구가 대담한 지, 또 독창성을 보여주는지를 밝혀 주었다. 내 생각으로는, 바 둑판 무늬 모습으로 구획짓는 방법을 실제로 발견한 것이 새로 운 시대를 알리는 것이 아님은 확실하다. 브루넬레스키나 마네 티, 또 우첼로,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둥의 시대에 발견된, 단 일조망법에 기초한 기하학적인 투시방법이, 단지 한 거대한 정 신의 변형 증상에 지나지 않음은 분명하다. 테크닉 하나만으로 는 새로운 양식의 출현을 설명하기에 불충분하다. 왜냐하면 새

로운 조형양식이란 세계에 대한 인간의 새로운 태도의 출현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또한 15 세기 사람들은 전체적 가치평가 가 변하는 것을 목격하였기 때문에, 이와 관련해서 세계 내에서 대상들이 차지하는 위치의 구상적 표현을 변형시키는 데에 이르 게 되었다. 진정한 지적 • 조형적 혁명은, 세계에 대한 인간상황이 세속적 원칙에 의해서 절대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예술가 들이 발견할 때에 비로소 가능하다 . 15 세기 초에 시작된 것은, 세계에 대한 연구와 인간에 대한 연구가 동시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두 연구는 결코 서로 분리되어 이루어 질 수 없다. 인간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현상들에 대해 자신 의 표현에 관계해서만 스스로를 알고 이해한다 . 자신을 연구하 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행위의 순간순간마다 자기와 반대되는 힘과 요소들을 표현해야 한다. 각별히 공간 표현은 , 지구 위에 서 있으며 또 흐르는 공기 속에 잠겨 있는 인간의 위치에 대한 끊임없는 분석을 필요로 한다 . 결론은, 이 세계는 신의 사고의 구체적 표현이라는 생각으로부터 떠나서, 이제 이 세계는 그 자 체가 하나의 현실이며, 반은 신성한 자연이기도 하고, 영원이라 는 속성을 갖고 있는 자연이라는 생각에로의 전이가 르네상스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전 인류에 대한 탐색에는 더 이상 관심이 없어지고, 오히려 각 개인이나 특히 각각의 영혼의 탐색 에 주의를 기울였다. 이 세계에 대한 인간들의 전체적 연합을 구상하였고, 바로 여기서부터 이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이중의 조 사에 착수하였다. 인간이 이제부터는 더 이상 신의 사고의 단순 한 반영 이 아니 었다 .47) 47)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 문제에 대해 여기서는 겨우 건드린 정도

에 불 과하다 . 그러나 이 문제는 이 연구와는 다른 차원에서 그 자체 를 위 해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진정한 문제는 르네상스가, 또는 15 세기 사람 들 의 활동이 어느 정도로 이전 세대의 입장과는 다른 근본적인 정신적 입장을 제공하였는지 를 알아보는 일이다 . 세대가 바뀌면서 생활방식과 표현형태에 오류와 진보가 항상 있게 마련이다 . 그러나 어떤 시기에서는 다소 의식적으로 인간의 체험을 통합하고 이것을 행위와 작품으로 표현 하는 새로운 방식이 나타난다. 한편으로는 15 세기 초 몇몇 사람들에 의해 새롭고 근본적인 여러 입장 중 하나가 발견되었으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 입장에서 나온 방법들 중의 일부가 명확한 법칙이 되기 위해서는 다시 여러 세기가 필요했다. 그런데 개혁적 원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심 각한 변형 및 제한 둥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 또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15 세기 미술이 노동의 성격에 대한 이전의 평가를 근본적으로 변경 시켰다는 점이다. 작업과 가치에 대해 바친 여러 세대에 걸친 연구는 우 리 시대에 깊이 분석해야 할 주제이다 . 정상, 병리 심리학 학보의 귀중한 1948 년 특집호, < 작업과 기술 > 을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이것은 툴르즈 에서 1941 년 개최되었던 〈연구의 날〉의 보고서이다. 이것은 입문서로서 의 가치가 있다 . 또 슐의 우수한 책 Ii' 기계와 철학 』 (제 2 판, 파리, 1947) 과 더불어 1948 년 < 비평지 > 에 나온 r 철학과 기계』를 코이레가 결정적 입 장에서 쓴 비평적 서평도 참조하라. 몽돌호의 논문 「수공업적 일과 지적 일」 (1950, 밀라노, < 사회 비평 > )은 상당한 관심을 갖고 읽을 수 있다. 15 세기가 육체 노동과 지적 노동과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도입한 것은 확실하댜 이점에 관해서 르네상스 교육학에 관해 최근에 나온 책들 의 결론과 특별히 주 38 번에 인용한 예이츠의 책 참조. 올 겨울 사회과학 연구 센터에서 슐이 주최한 토론에서 생트-파르-가르노는 이 분야에 있 어서 세계에 대한 종교적 시각의 중요성을 환기하였다. 특히 이집트에 관 한 프랑크포루의 연구에 근거를 두는 그는, 조물주가 최고의 것으로서 이 세계를 창조했다는 사상을 받아들이는 문화에서는, 부동주의가 기술분야 에 있어서나 사변적 사고의 분야에 있어 너무 적극적인 연구는 배제하는 하나의 정신의 법칙임을 환기하였다. 정반대로 15 세기는 기술적 • 철학적 연구의 시대이지만 단지 가장 진보된 집단들에게만 해당되며, 15 세기에 서 18 세기 사이에는 연구되어야 할 많은 시대적 격차가 있다.

15 세기 작품들 속에서, 화폭의 틀 내부에 위치한 사물들간의 계산된 관계를 강조해 주는 어떤 요소를 발견할 때마다, 또 비 유적인 의미를 제외한 물리적 특징을 규정하려는 의도를 확인할

때마다 , 우리들은 현대적 정신의 특징에 직면하게 된다 . 바로 이 러한 이유에서, 새로운 시대의 발명에 대한 역사가 그렇게도 큰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진실이라고 간주되는 신화적 사건은 시대를 초월하며, 항상 현재인 것으로서, 우주적 생명의 매 순간마다 끊임없이 일어나 는 중대한 사건들을 나타내 준다. 언젠가 일어났던 일은 반복되 는 것으로, 단지 신화적 진실만이 진정한 가치를 지니며, 이 진 실은 영구적인 것과 중요하지 않은 사건을 대조시켜 준다. 의식 (儀式)이나 신화적 사실의 표현은 사건이 계속되기 위해서 그리 고, 진실을 계속적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서 필요하다. 이런 이유 에서, 지나간 세대들이 인류 역사 가운데 몇몇 큰 의미있는 일 화들에 대한 기억을 그칠 줄 모르고 반복하여 왔다. 신화를 안 다는 것은 인생을 아는 것과 같다. 어떤 독특한 사건도 인류 역 사의 전형적인 사건에 비하면 가치가 없다. 사건의 급변이 아니 라 사건이 내포하는 것만이 관찰되고 기록될 가치가 있다. 결과 적으로, 의식은, 신의 사고가 나타난 소수의 일화들이 확실하게 밝혀주는 진실, 이 변함없는 진실의 생생한 이미지를 인간의 의 식(意識) 속에 계속 존재하게 해준다. 그러므로, 그림이나 축제, 그리고 의식과 예술은, 근본적으로 신화적 사고의 시대였던 중 세기 내내, 달성해야 했던 확고한 하나의 사회적 목적을 소지했 었댜 인간사나 그 자세한 것에는 관여함이 없이, 이 세계에 대 한 총체적 이해가 생겨나는 근본적 계기를 표현하거나 재현하는 일이 항상 문제였다. 이미지들은 그 말의 논리적 의미에서 구문 론에 맞지 않게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수학이나 수사학에서 연 역된 모든 논리는, 원인에 대한 모든 직관을 배제하며 통일된 사고방식을 구체화하는 그런 체계로부터 제외된다. 신화적 • 원 시적 사고의 시대였던 중세는, 모든 것이 힘이고 생명인 비물질

적인 세계를 묘사하는 것에 바쳐졌다. 그래서 우리는, 사상이나 형태의 역사 내지는 단순화된 애니미즘의 영향을 받은 현대의 철 학적인 종합에서까지, 자연에 대립되는 생명의 신화, 다시 말 하면 신화적 사고의 마지막 대화신(大化身)인 중세와 유사한 지 적인 견해가, 재출현하는 것을 자주 목격하였다. 옛 신화에로의 도피, 경험주의, 합리성, 추론적 사고의 기적적 인 장점들을 보여주 는 문헌학을 통해서 포착된 고대 그리스 로 마의 종교, 당대의 일화나 역사에 대한 사랑 , 미리 세워진 신적 질서의 구체화가 아니라 힘의 균형의 결과라고 생각되는 인간적 사실들 , 육체와 인간과의 구별, 상징적 표현과 사회적 구축의 연 결, 사고의 순전히 지적 구조와 실제 사이의 기하학적이고 미묘 한 관계, 이 모든 것 들 은 가장 발달된 인간들이 의식하기 시작 한 하나의 대립적인 체계 를 형성해 주었다. 세계의 지평선의 발 견이라기보다, 감각보다 지성이 적극적인 상황을 발견함으로써, 15 세기인들은 그리스 라틴의 〈인본주의 l' hum ani sme 〉라는 잃어 버렸던 전통을 재발견한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기독교적 사고 와 변증법적 사고를 근본적으로 동일시하는 이론을 지지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 신화적 사고 법칙에 따라 감지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지닌 막대한 장점 때문에 이것을 대담하게 찬 양하는 반면, 그 시대의 그 많은 극적인 사건들이 기초를 두고 있는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은 더 이상 옹호하지 않는다. 신화적 사고로 인하여, 이 사고가 없이는 결코 뚫고 들어갈 수 없는 분 야들이 인간에게 열렸다는· 사실을 나는 반복하여 지적한다. 그 러나 이 방법과 이성적 방법을 동일시 하려 함은 정당하지 못하 댜 공상적 사고를 믿거나 쫓는 사람들은 정말 일종의 열등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로 인해 그들의 입장과 합리주의자들의 입 장을 동일시하려고 한다. 원시주의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

지 않고, 이 두 커다란 사고의 체계에 의해서, 인간은 이 세계를 의식하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인정하자. 15 세기의 중대한 노력은 〈구별di s ti nc ti on 〉 작업이었다. 한 사 물의 물질적 • 정신적인 것이나, 사물들간의 관계에 있어서의 물 질적 • 정신적인 것, 일상 생활의 장면으로부터 따온 일화적이고 뜻깊은 사건의 물질적 • 정신적인 것 등을 고정시켜주는 관찰을 화가들이 구체적으로 할 때마다 화가들은 이 〈구별〉이라는 노력 에 크게 기여한 셈이다. 폴라이우올로, 우첼로, 피사넬로 P i sanello ® 나 보티첼리 둥이 당시의 실루엣을 보여주면서 미의 이상을 나 타내주는 여인의 옆 모습을 표현했을 때, 우첼로가 선적 투시법 칙을 좀더 심오하게 하려고 애썼을 때만큼이나 새로운 정신을 찾아내려 노력했다. 이 두 시도 사이의 큰 차이는, 하나는 기호 의 영구적 가치를 확실히 해주며, 다른 방법은 특히 사회적이고 일시적인 성격을 단호히 드러내준다. 외부 세계의 특성에 관한 조사가 끝나면, 언제가는 인간에 대한 조사를 하게 될 것이다. 세계에 대한 새로운 행동 방법과 조화되는 새로운 지혜가 나타 날 것이댜 자신의 재능만을 전적으로 사용하는 일에 일생을 거 는 사람은 고대의 경험에 기초하는 마술적 인간과는 대립된다. 결과적으로, 합리적 인간의 노력은 애초부터 마술적 인간의 노력보다 훨씬 분산적이다. 르네상스란, 어떤 한 순간에 잘 정돈 된 조직과 표현방법을 적용한 것이라고 보는 것보다 더욱 그릇 된 것은 없다. 새로운 정신에서 나온 작품이란, 신화적 사고의 표현 형태를 더욱 신선하게 해주고, 또 공간을 합리적으로 표현 하게 해주는 새로운 일관성있는 체계를 서서히 세워나가는 사 @ 피사넬로 P i sanello, Anto n i o Pis a no(1 3 95-1455) : 화가로 그리고 메달주 조가로 유명했던 그는 이탈리아 북부에서 남부까지 모든 이탈리아 궁정에 서 활동했다. 궁정 스타일 미술의 중요한 대표자이자 마지막 사람이다.

조, 그러나 어느 정도는 모순된 이 사조 한가운데에서 혼자 고 립되어 있는 표시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점은 이미 지적했다고 생각된댜 어느 한 순간에 갑자기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 는 것은 아니며, 르네상스는 서서히 이루어졌다. 어떤 의미에서, 르네상스가 비로소 완성된 순간에 가서야 자신의 방법을 의식하 게 됐다고 말할 수 있겠다. 새로운 조형 공간은 발견될 수가 없 댜 왜냐하면 이 공간은 세계의 사실적 표현에 있는 것이 아니 며, 실증적인 현상을 보여주기보다는, 세계에 대한 안간 정신의 입장을 구체화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과거를 잘 돌아봄으로써 현재가 추구하는 것을 단편적으로 알려주는 어떤 이미지의 출현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을 잘 이해하는 일이다. 여기에서 이 이미지들이 이미 르네상 스에 속한다고 결론내리는 것은 큰 오류이다. 공간의 새로운 표 현은 회화적 사실주의와 우주의 비밀을 풀어주는 과학과의 만남 에 기초하지 않는다. 15 세기 조형공간의 창조자들이 15 세기 중 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처음으로 체계적 표현을 세우게 되었다 는 점을 이미 지적했다 . 이 시기는 여러 면에서 볼 때 하나의 전 환점이 된다. 예술가들이 그들의 의도를 어느 정도 의식하는 감 상자를 발견하기 시작하는 것이 바로 이 시기이다. 최초에, 르네상스는 소수의 예술가와 몇몇 학자, 곧 이어서 소 수의 교수들이 합세하여 이룩한 작업의 결과였다 .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그리스인들의 출현과 관계했던 집단이다 . 48 ) 콘 48) 15 세기에 새로운 정신이 출현할 때, 교수들과 그리스인들이 한 역할에 대해서는 앞에서 언급한 로시의 『 15 세기 16 세기 』 에 귀중한 지적들이 담 겨 있다 . 경시하지 말아야 할 접은 토파닌 To ffanin의 대전집 『 인본주의 의 역사, 13 세기에서 16 세기까지 』 (나폴리, 1934) 이다. 물론 여기서 인본주 의의 개념을 좀더 확장해야 하고, 사변적 의미에서 너무 문학적이거나 형

이상학적인, 또는 종교적인 해석에서 벗어날 필요는 있다.

스탄티노플에서 크리솔로라스를 계승하고 페라라 Ferrara 에서 에스테가의 교육을 맡았던 구아리노 데이 구아리니 Gua rino dei Gu ari n 전 가 바로 그 가운데 한 사람이댜 또 만투아의 공자그가 와 우루비노의 몬테펠트로가의 교육자였던 비토리노 다 펠트로 Vi ttor i no da Fel tr e @ 가 있댜 앞에 거론한 사람들보다는 좀 덜 알려져 있으나, 세 과목 T ri v i um 에 기초한 고대적 교육 대신 산 술 • 기하 • 천문학 • 음악 네 과목Q ua dri v i um 에 기초를 둔 새로 운 교육을 채용했던, 피 렌체 • 베네치아 • 파두아 • 밀라노 • 나폴 리 • 팔레르모 등에서 활약했던 스승들을 지적할 수 있다 .491 이 새로운 교육은 감상자 세대가 진정으로 개혁적인 예술가들에 대 해 준비하도록 해주었다. 한 지적 풍조에서 다른 풍조로의 급작 스런 전환을 믿는다거나, 15 세기 최초의 예술가나 사상가들의 노력에 실증적인 것이 전연 없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그 릇된 것은 없다 .

@ 구아리노 베로네제 Gua nino Veronese(Guari no Gua rini ) (1374- 14 60) : 인 문주의자이며, 당시의 가장 높은 평가 를 받았던 교육자 . 볼로냐와 베니스 에서 가르쳤으며, 거기서 유명한 후계자 비토리노 다 펠트로 를 길러 냈다. 그의 박식과 강한 인간적 온정은 50 년 동안에 걸쳐쓴 그의 서간문에 잘 나타나 있다 900 개의 서간문이 전해 내려온다. ® 바토리노 다 펠트로 (1378-1446) : 파두아 • 베니스 • 만투아에서 활동한 철 학자이자 교육가. 그의 스승 구아리노 베로네제 다음으로 당대의 가장 중 요한 교육가 . 만투아의 유명한 체육학교 〈라 지오코사〉의 창설자이며 22 년 동안 충실한 교장 생활을 했다. 이 학교는 사회의 모든 계급의 학생 들 을 모두 길러낸 최초의 인문주의 기숙학교이다. 49) 이점에 관해 예이츠의 『 16 세기 프랑스 아카데미 』 와 주 29, 31, 38 번에서 인용한 아르간과 위트코위의 논문 참조 .

그 시대부터 이루어진, 구상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의 느린 성 장의 중요한 줄거리를 찾으려면, 장기적인 많은 노력이 필요하

댜 15 세기의 우리는 아직도 몽테뉴나, 유럽의 16 세기, 프랑스의 18 세기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실은 이 시대들에 와서야, 새로운 분야에서 새로운 방법으로 이루어진 행위의 새롭고 상징 적인 의미로부터 양분을 얻은 예술과 문학이 성행하게 되었다. 실제로 감정과 정열, 지각에 따라 움직이는, 또 육체의 본질에 그 근본을 두는 고정된 기능에 합치해서 움직이는, 〈감정적 구 조〉로서 인간을 지각하고 표현하는 데에는 여러 세기를 필요로 하였댜 15 세기 회화는, 변화 많은 운명의 작용이 규정되는 풍속 이나 풍습의 배경에 관한 목록서를 작성하기 시작하였다. 인간의 광기와 인자함의 장면이 전개되는 친숙한 환경을 준비하였다. 새로운 르네상스 공간은, 세계를 충실하게 표현하는 방법의 발견에 기초한다고 우리는 믿었다 . 이 새로운 공간은, 앞선 세대 들의 신화적 공간처럼, 인간정신의 한 입장의 산물이며, 적어도 실증적 기술을 새롭게 한 것만큼이나 상상적 재료를 새롭게 한 것이다. 실제의 공간이 아니라 허구적 공간의 정복이 문제시 된 다는 점, 또 이 공간은 낡은 사고의 형태가 끊임없이 잔존함으 로 인해 방해를 받아가면서, 15 세대에 걸친 끈질긴 노력의 배경 으로서 사용되었다는 점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 면, 이것은 운행하는 공간의 기계적인 전환과는 명확히 다른 것 을 제공하였기 때문이다 . 15 세기 공간 표현의 근저에는, 인간은 이 세계라는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효과적인 배우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인간은, 자신의 자율성을 의식하고, 자신의 분별능력 울 뽐내면서, 이 지구에서 생명의 조화 있는 발전에 필요한 인 물이라고 느끼면서, 5 세기에 걸쳐, 새로운 공간 속에서 움직이게 되었고, 시대나 사회에 따라서 전설적인 또는 경험적인 세계의 친숙한 어떤 면들을 추가하거나 생략해 가면서, 이 세계의 연극 을 끊임없이 환기시켜주게 된다 .

인간이 지상에서 특권받은 위치에 있다고 믿지 않게 되는 날 이 언젠가는 오게 될 것이다 또 우선은 완전치 못한 문화의 소 지자라고 불리는 새로운 사회계급에게 오래된 전설들이 잊혀지 게 될 날이 오리라 인간의 가치 전체가 다시 한번 변경될 것이 며, 인간들은 자연을 해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의지를 지지하기 위한 다른 방법들을 갖게 될 것이다. 생존의 리듬이나, 장대함, 거리, 영원한 것, 우발적인 것에 대한 평가가 변경될 것 이댜 우주의 순간적인 측면들을 기계적으로 재생산하고, 물질의 전체를 포괄하기보다는 그 세부들을 연구하리라. 그렇게 되는 날에는, 인간사회는 그들의 공간이 협소하다고 느낄 것이다. 이 공간은 그 속에서 현대사회가 자유롭게 움직였고, 몇몇 세부 관 계에 대한 체계를 발견했다고 용기를 얻어, 세계의 정확한 이미 지를 찾았다고 믿었던 그런 공간이다. 그 때에는 이미 죽은 문 화의 장인이 된 전통적 예술가와, 길을 잃은 대중과, 개혁가들 사이에, 새로운 진실의 부분적이고 서툰 시각을 소유했던 르네 상스 초기에서처럼, 투쟁이 전개될 것이다. 19 세기는, 르네상스 가 물려준 반(半)유클리드적이고, 반( 半 )분석적인, 또한 반(半)은 상상적인 배경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새로운 평가척도 그리고 새로운 가치척도와 관련된 이 새로운 세계에서는 새로운 공간이 필요하게 된댜 그러나, 15 세기인들이 새로운 세계의 존재에 대 한 강렬하지만 혼란된 의식으로부터, 최초에 크게 열렸었던 가 능성들과 동경을 규정해주고 분명하게 해주는 법칙을 고정시키 는 데까지는 1 세기 이상이나 필요로 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새로운 조형 형태와 사고의 준비기인 15 세기와 그 발전기인 16 세기에, 각 나라들이 맡았던 역할을 여기에서 연구하려는 생 각은 없었다. 새로운 구상적 체계가 어떻게 자연에 면한 인간의

근본적 개념을 변경시켰는지, 운명과 생명과 죽음, 사랑과 권력 과 영광의 커다란 신비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변경시켰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 연구는 다론 저술에 서 하기로 하였고, 거기에서 축이 되는 사고와 그것을 구현한 사회적 • 역사적 집단에 정당한 위치를 부여하도록 하겠다. 여기 서는 한 공간의 탄생을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를 규정해보려고 만하였댜 CREDITS George Braqu e, Tete de fem me, © ADAGP, Pa ris- IKA, Seoul, 19< 57 Ath e nee, © ADAGP, Pa ris- IKA, Seo 따 1997 Este v e, Les hommes volant, © ADAGP, Pa ris- IKA, Seoul, 19< 57 La coll ine aux troi s arbres, © ADAGP, Pa ris- IKA, Seoul, 1997 Gis c hia , Le jon g le ur, © ADAGP, Pa ris- IKA, Seoul, 1 향 냐 da et le cyg n e, © ADAGP, Pa ris- IKA, Seoul, 1':1 17 Pig n on, Pays an aux oliv ier s, © ADAGP, Pa ris- IKA, Seoul, 1 函 Pica sso, Le Pei nt re (1 930), © Successio n Pablo Pica sso, Pa ris- IK A, Seoul l':1 17 Femme se ]avant les pied s(1944), © Successio n Pablo Pica sso, Pa ris- IKA, Seoul 19< 57 Dormeur et fem mes accroupi e( 1947), © Successio n Pablo Pica sso, Pa ris- IK A, Seoul l':1 17 Etu d e de nu(1941), © Successio n Pablo Pica sso, Pa ris- IK A, Seoul 1':1 17 L'Ate lier (1 9 35), © Successi on Pablo Pica sso, Pa ris- IK A, Seoul 1 函 La Table(1921), © Successio n Pablo Pica sso, Pa ris- IKA, Seoul 1 函

1. 리에즈 미술, r 단검으로 찔린 커튼 사이로 피에르 부제(副祭)가 본 그레고리 우스 성인(聖人)의 법열(法稅)J (12 세기), 브뤼셀, 왕립도서관 .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한 장면에 대한 고정된 해석이다. 왜냐하면 또다른 한 소품이 이 장면을 거의 동일하게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로 트레비소 Trev i so 의 대주교였던 에크베르트 Ecbe rt를 위해 983 년에 그린 한 횡폭 그림 중의 한장으로서, 1949 년 베른에서 열린 〈독일 중세미술 전시회〉에 출품되었던 작품이다. 어쨌든 이 소품 이후에 제작된 본 작품에서 피에르 부제(副祭)는 성당 낭하(廊下)에 서, 성인과 자기 사이에 실제로 걸려 있는 헝깊을 단검으로 찌르고 있으며, 구성 속 에 나타나는 이 펄럭이는 커튼은 여기서 특별한 공간적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죽 실내에서 이 장면이 일어나고 있음을 우리에게 밝혀준다 . 이것은 결국 구체적이고 구상(具象)적으로 표현된 부속물들 앞에 우리가 있음을 말해주는 증거인 것이다. 반 원형의 아치들과 기둥들로 인해서 우리는 성당 내의 낭하 속에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중경(中兼)에는 이 성당의 외부(지봉과 탑)가 그 특징만 표시된 채로 보이고 있다. 배경은 추상적인 반면 주교의 좌석이나 부제의 강단(講壇)은 의복과 더불어 사실적 인데, 이러한 표현은 복음서 저자들을 그릴 때 일반적으로 쓰이던 사용법을 따르고 있다. 실외와 실내를 동시에 표현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도해 18 과 19 를 참조하라. 여 기서 중요한 질문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기호 목록 속에서 따온 요소들을 화면의 성격에 따라서 양식화한 것인지, 아니면 이에 덧붙여 표현된 장면을 직접 회상해본 것인지를 알아 보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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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프라 안첼리코, 『성스런 대화』 (1440 년경), 피렌체, 산 마르코 박물관. 앞의 그림의 구성에서는, 연극과의 관계를 정확히 포착하기 어려운 반면, 여기에 서는 장면이 고대연극의 무대장면에서처럼 건물벽을 따라 엄격히 측정된 공간 속에 서 전개되고 있다. 고대식으로 장식된 천개(天蓋)는 성당 후진(後陣)을 나타내며, 그 외에도 아주 일반적인 상징언어로 성모 마리아의 최상의 권위를 보여준다. 좌우에 계단 모습으로 배치된 인물들은, 그후에 고전 연극 장면과 관련하여 나타날 구성들 을 예고하고 있다 . 죽 가운데는 비어 있고 양 옆은 계단식으로 설계된 날개 모습이 화면의 양 옆을 닫는 구성이다. 다음과 같은 반대되는 구성을 참고해 보자. 그 말의 현대적 의미에서 연극 장면에 대한 개념이 아직 확실치 않던 시대에는, 관심의 초점 이 한 두드러진 모티브에 집중되어 있는 구성들이 일반적이었다(도해 11 참조) .

3. 지오토 , r 성 엘리자베드의 탄생」 (1317-1325 년경), 피렌체 , 산타 크로체 성당 e • 페루치 Peruzzi 소성당 .

@ 산타 크로체 성당 : 프란체스코파의 성당 . 13 세기 후반 아르놀포 디 캄 비오가 세우기 시작했다. 측랑이 세 개, 좌우의 익부( 翼 部)가 짧고 동쪽 에 예배실 두 개가 있음. 측랑이 좁아서 천장이 궁륭형이 아니다. 지오토의 벽화 r 성모 마리아 대관식』이 있으며,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많은 묘가 있다 .

고대의 축이 있는 원근화법 개념과는 반대되는, 또 중세 연극이 14 세기 미 술 에 끼친 영향을 보여주는 예가 여기 있다. 지오토는 어떤 〈 장소 〉를 다 른 장소 속 에 끼 워넣음으로써, 특 히 건 축 장식의 일부(긴 띠장식) 를 갖 고 그 장소 들을 통 합해줌으로 써 연극 무대의 역 참 ( 驛 站) ® 울 표현하고 있다. 그의 공간은, 고대식으로 주 름 있는 옷을 입은 군상 들 로 된 규격적 요소 들을 조립한 것이다. 배경은 그 나 름 대로의 독자

적 성격을 갖고 있지 않다. 죽 모든 공간이 등장하는 사물들과 관련되어 있다. 한편 지오토는 실내 천장이나 바닥을 네모지게 구획하는 처리법을 알고는 있으나, 서로 다른 장면들이 전개되는 칸으로 구획된 입방체의 공간 내에서만 이러한 처리법을 사용할 뿐, 일반적인 공간의 크기를 재는 데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타일처럼 생긴 것 들이 여러 부분의 공간에서 하는 역할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가고 있다는 통과 또는 한 곳과 다른 곳이 계속되고 있다는 공간의 연속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따라서 아직은 부분적 공간들이 세계를 둘러싸는 총체적 공간을 축소한 소우주로서 는 구상되지 않는다. ® 역참 mans i on : 라틴어 mans i o 는 거주한다는 뜻 고대에 공식 연락소. 중세문학에서는 연극무대에서 틀로 사용되는 장식의 각각의 부분.

4.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 r 최후의 만찬』 (1449-1457), 피렌체, 성 아폴로니아 수 도원 식당 . G

® 성 아폴로니아 San t' A po llo ni a 수도원은 1339 년에 건립되었다. 이 수도 원의 식당은 1447 년에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가 그린 벽화로 장식되어 있으며, 『최후의 만찬』, 『십자가 책형』, r 그리스도의 매장』, r 그리스도 의 부활』 둥이 그 주제이다 .

한 개의 입방체가 다수의 입방체 를 대신하고 있다. 죽 하나의 유일한 〈장소〉가 지성과 자연의 모든 질서를 집결하고 있다. 또한 표현방식은 세계와의 자연주의적 접촉에 의해서가 아니라, 양식화된 표현방법을 선정하는 데 따라 잔개되고 있다 . 화 가가 그림물감 상자 를 갖고 대상 앞으로 나가게 되는 것은, 코로 Coro t에 와서야 비

로소 가능하게 되는데, 이때 가서는 르네상스 공간은 더 이상 유지되지 않게 될 것 이다 . 하지만 당분간은 세계 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담는 것 le con te nan t〉과 〈담아 지는 것 le con t enu 〉 을 동시에 기록하여 그리는 것이 요구된다. 이것은 연속성이란 문제의 미학적 측면 이다. 행위가 진행되고 있는 장소의 한쪽만 열린 벽을 통하여, 우 리는 자연을 포착하는 대신, 원근법으로 된 입방체 를 보게 된다. 이것은 나중에 푸생 Poussin 자신이 실험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만 들 어 보게 되는 그 입방체이다. 브루 넬레스키 그 자신은 후진(後進)의 문제와 감상자가 밖에 있다는 문제 를 없애주는 시 각기구@를 고안하였다 . 시야의 깊이룰 좀더 고려하지 않는 이 시각적 이해방법에서 〈실 재 reel 〉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전연 없다. 기하학과 유클리드는 폐쇄된 공간내부 에 관례적 오브제 들을 배치하기 위해서만 사용되었다 . @ 시각기구 : 역자 주 ®번 참조.

5. 파 울 로 우첼로 , r 성체의 기적」 (1468 ), 우르비노, 공작 저택 , 미사대 그림의 아 랫부분 ,8 여기서의 방법 은 전의 것으로의 후퇴이다. 우첼로는 계 속 해서 장면 을 조각으로 나누고 있댜 단지 지오토보다는 기하학적인 면에서 좀 더 합리성있게 향방에 다양 성 을 주고 있다. 그렇지만 근본적 가치 는 신화적이다. 여기서 기둥은, 생명 및 남성 적 힘의 상징인 나무 를 대신한다(런던에 있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 그리스도 의 세례」 참조). 우르바노의 도미니크 종교단체를 위해 특별 히 제작된 이 미사대 그 림 이 , 대( 對 ) 비신자 십자군 교황 피우스 2 세의 호위병아었던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 로의 정치적 목적 을 보여주는 파리적인 신비 를 여러 장면으로 표현하고 있다 는 사 실은, 이 그림 이 연극에서 받은 영향 을 증명해 준 다 °

® 미사대 그림의 아랫부분 : 역자 주 ®번 참조. @ 도미니크 수도회 : 툴루즈에서 성 도미니크가 1206 년에서 1216 년 사이에 창건한 탁발 수도회.

6. 파울로 우첼로, 「노아의 이야기 • 홍수J, 피렌체 , 산타 마리아 노 벨 라 성당 ® 의 키오스트로 베르데 . 르네상스 양식의 발명자들에게 있어서, 이 세계의 실중적 시각이 얼마나 명백성 을 결하고 있었는가 를 강조하기 위해서, 서로 다른 표현체계 를 사용하면서 그러나 어느 것도 절대적으로 단일하지 않은 우첼로의 세 개의 작품을 같이 놓 아 보았다. 「성체의 기적』은 하나의 극적인 표현 속에 여러 일화들을 열거하고 있는 반면, 여기 서는 반대로 하나의 통합된 구성이 나타나고, 거기에는 한 행위를 구성하는 두 개의 연속적 순간이 병렬해서 표현되어 있다 . 하지만, 이 통합된 구성에서 조형적 질서는 단 하나일 뿐이다. 두 노아와 두 개의 방주, 그러나 첫번째 노아는 자신 을 두번째 속 에서 바쳐보고 있다 . 조형적 일관성이 상징적 통일을 선행하였다. 가장 놀라운 발명 은 화면의 가장 중앙에 상상의 창문이 열려 있다는 점이다 . 감성 세계를 표현하는 철대적 체계를 논리적이고 필수적으로 사용함 을 전제로 하는, 세계의 일관된 시각적 이해방법이 등장하리라는 이론을 그 누구가 아직도 지지할 수 있겠는가?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 역자 주 @번 참조. ®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도미니크파의 중요한 성당. 시스토와 리스토로 형제에 의해 l 'Z7 8 년 시작되어 1360 년에 완공되었다 . 세 개의 측량이 있고 좌우 익부가 짧고 예배당들은 직사각형이었다. 알베르티의 계획을 따라서 정면은 대리석으로 상감되어 있고 1450-1470 년에 완성되었다 . 큰 문도 같 은 시대의 것이다. 내부에는 마사치오의 벽화 『십자가와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와 성 세레요한』 , 리피와 기를란다요의 벽화, 지오토의 『십자가 처 형」, 브르넬레스키의 목각 「십자가 처형』 둥이 있다.

7. 파울로 우첼로 화파 , 『로마인들과 고율인들의 전투」 (1440) , 카소네 , 토리노 , 회화관 왼쪽에 치우시 - 피렌체와 파부리시우스 장군의 살인, 중앙에 알리아의 전투, 오른 쪽에 로마로 향하는 로마인들의 탈주. 아주 잘 알려진 이 작품은 많은 다른 작품들 의 내용을 요약해 주고 있으며, 15 세기 미술운동이 〈평행투시도 la per spe ctive cav- ali ere 〉 ® 에 아주 가까웠음을 보여준다 화가들은 여러 해결책 사이에서 망설이고 있 었다(도해 12 참조). 실재하는 세계의 시각적 이해는 중요하지 않고, 미학적 • 전통적 체계 를 발전시키려는 것이 문제이다. 그 세기에는 단일한 공간의 감성보다는 〈기마 적 공간 !'es p ace caval i er 〉이 주는 감성에 더욱 자연스러움을 느꼈다 .

@ 평행 투시:역자주®번 참조.

8.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 r 성 니콜라가 난파선을 구조함 ,(1425), 로마. 바티칸 의 화랑(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성모 쿠아라테시 미사대 그림 부분 : 다른 두 그림은 우피치와 바티칸에 있음) .@

@ 성 니콜라우스 (4 세기경):소아시아 아나톨리의 해양도시 미르의 주교. 역 사보다 전설에 속한 대중적 성인 가운데 한 사람. 그리스 교회에서 생겨난 이 숭배는 동양에서 중요했고, l O'ol년 바리에 그 성유골이 안치되자 서양 에서도 퍼졌다. 12 세기부터 이탈리아와 프랑스 동부 로렌 지방 그리고 독 일 레난 지방에서 특별히 큰 발전을 보였다. 이 성인과 관계된 기적들은 주로 바다와 관계되어 일찍부터 어부와 항해자의 보호신으로 알려져 있다. 미사대 그림부분 : 역자 주 ®번 참조.

여기서는 14 세기 내내 지속된 조형연구가 갖는 극단적 중요성 을 보여 주려 하였 다 . 왜냐하면 바로 이 연구가 , 15 세기 예술운동이 사용한 대부분의 방법 들을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감성적 공간과 표현적 공간의 미묘한 혼합. 첸틸레의 시도는 14 세 기 중엽에서 15 세기 말엽 사이에 활동한 많은 화가들의 것과 유사하다 . 그 시기에는 공간에 대한 여러 가정들을 축약한 것인, 〈단안(單眼)적 원근화법 la scenog r ap hie monocul aire〉이 승리하던 시대였다. 앞에서 언급한, 비치 디 로렌초, 로렌초 모나코, 사세타 둥이 이루어 놓은 당시 연구의 중요성을 참조하라. 9. 보티첼리,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환영(幻影)』 (1484), 피렌체, 고대 현대 화랑 (성 베르나베 제단 뒤 미사대의 4 폭 중 하나). 이 구성을 앞의 것과 비교해 보면, 표현에 있어서 폐쇄적 방식을 사용하는 데서 오는 풍요해짐과 빈곤해집의 양면이 동시에 잘 드러난다. 젠틸레 작품에서 보일까 말까 했던 수평선이 여기서는 공간 구성을 위한 기초로서 의식적으로 채택되었다. 그러나 인물들의 상과 그 주위환경과는 정말로 합치되지 않는다 . 여기에서조차, 그 리고 이 시대에 와서도, 사물들의 형체화와 화면구성과의 사이에 이중적 착상이 계 속되고 있다. 테크닉의 통일성이 전설적 통일성에 대한 추구 를 대신하는 현상은 아 주 느린 속도로 진행되어 간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두 필요성이 아주 현대에 이르 기까지 끊임없이 서로 충돌하여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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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마솔리노 , r 성 베드로가 타비타를 부활시키고 한 중풍들린 자 를 고침」 (1422-1426), 피렌체, 카르미네 성당의 브란카치 소성당 @

® 타비타: 역자 주 ®번 참조. 산타 마리 아 델 카르미 네 Santa ma ria de! Ca rmine 성 당의 브란카치 Brancacci 소성 당, 이 소성 당 벽 화는 1423-1428 년과 1481-1 48.5년 사이 에 마솔리노, 마사치오, 필립포 리피에 의해 제작되었다. r 성 베드로의 생 애」, 『원죄」, 『낙원에서 추방당한 아담과 이브」 동이 벽화의 주제이다.

15 세기 초기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의 하나인 이 그립은, 처음부터 벌써 예술가 들 이 어떻게 여러 체계 를 융합하려는 길로 향했는가 를 보여준다 . 체계적 통일 과 아카 데미즘의 시대가 바로 16 세기인 반면, 15 세기는 실험의 시대이다. 전경에 지오토풍의 작은 교회들이 보인다. 그러나 이 건물들은 우 첼 로 작품인 『 노 아의 홍수」와 같은 체 계 를 따르고 있다(도해 3 과 6). 거기에서 노아가 둘이 있는 것처럼 여기서는 성 베드

로가 둘 이 있다 . 그럼에도 불 구하고, 원경 중앙에 통로가 있는 대신에, 원근법으로 멀어지 는 선이 여기서 건 물들 이 만 들 어 주는 통행을 막는 선과 마주치고 있다 . 『타 비타」 는 아마도 〈 배경포 ( 1' f娘 布 )une toi l e de fo nd 〉 산 가 있는 첫 예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 단일 한 원근법 적 입방체 조직에 있어서 연극을 상당히 선행한 그림이다. 고 대의 무대 뒤의 벽은 여기서 물 러나고 없다. 멀리에 있는 인물 들 은 걸려 있는 헝깊 위에 그려 져 있다 . 따라서 그 인 물 들은 전경에서 인물 들 이 담겨 있는 그 공간 속에 있지 않다. 통 일성은 시각적으로가 아니고 형체적으로 이 루 어져 있다 . 중십의 부르주 아 들을 볼 때, 서로 다 른 〈장소 들 〉(도해 3) 이 아니라, 각도와 척도 를 달리하는 하나 의 조립 속에 적어도 세 개의 공간이 들 어가 있다 .

@ 배경포 : 배경막. 역자 주 @번 참조.

11.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화파 , r 희극 무대」 , (1460 년경), 우르비노 , 공작의 저택 . 이와 유사한 구성을 가진 작품 들 이, 베 를 린과 볼티모어와 피렌체에 있다 . 그것들 의 의미는 크라우타이머가 밝힌 바 있는데 , 그에 의하면, 이런 작품 들 은 새로운 회국 의 배경으로 쓰게 될 대중적 광장을 전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1460 년, 이탈리아 도 시들은 현대화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현대적 도시나 무대 를 재현한 것이 회화 작품이 아니라, 반대로, 현대적 도시 를 시각화해보는 일이 화가와 문학가의 일이었다. 우선 르네상스는 상상의 배경을 창조해 내었다 . 우르비노에서 이런 판 위에 그린 그림들 온, 보통 궁전의 문에서 보는 풍경화와 유사한 희한한 상감세공으로 된 풍경 vedute d' i n tarsi a tura울 만들 때에 모델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 이런 접들을 볼 때, 그 당시 에 상상에서 나온 작품들이, 직업이나 생활과 가졌던 관련을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해 할 수 있다. 중심의 신전 모티브(도해 2) 는 나중에 라파엘의 〈혼인〉과 연결된다 .

12. 마솔리노, r 헤롯의 향연. 성 요한의 머리를 받고 있는 살로메. 성 요한의 매 장』 (1421-1428), 카스틸리오네 오로나 성당의 세례당®

® 살로메 : 유태인 공주, 72 년경 죽음. 헤로데스의 딸(마태 14 장 6 절, 마가 6 장 22 절) . 그의 삼촌 헤로데 안티파스 앞에서 어머니의 충고로 춤을 추었으나 축출되었다. 그 보수로 큰 쟁반 위에 세례요한의 머리를 요청했다. 많은 음 악가 문학가에게 주제를 제공해 주었다. 카스틸리오네 오로나 성당의 세례당: 이 세례당의 벽화는 1435 년 마솔리 노가 제작했으며, 『세례 요한의 생애」, r 네 복음서의 저자』, r 교회의 네 박사』, r 두 예언자』 둥이 벽화의 주제이다 .

r 타비타』에서 지오토적인 교회가 실재의 공간이 아닌 조형공간을 투시적으로 조 칙하는 체계를 따르고 있음을 보았다. 이 작품은 15 세기 초의 가장 완성된 작품의 하 나로서, 여기서 고대식으로 옷을 입히는 현상을 볼 수 있다. 도나텔로도 산타 크로체 성당의 r 수태고지』에서 고딕식 벽감(壁益)에 같은 옷을 그려넣었다. 그리고 안젤리 코(도해 2) 의 경우도 동일하다. 원경에 뚫린 통로는 우첼로(도해 6) 의 두 방주의 표현 양식과 유사하다. 그러나 배경이 〈배경포〉로 막혀진 『타비타」의 표현 방법과의 투쟁 이 보인다. 여기서는 새로운 양식의 출발이 주로 건축 모티브에 의존한다는 점이 아 주 중요한 사실이며, 마솔리노가 그린 건물들은 브루넬레스키의 파치 소성당이나 성 체실(聖體室)들과 같은 시대의 것들로서, 새로운 기하학이 건물의 설계도와 관련된 다. 입방체들을 배열하는 방식의 기원이 여기서도 발견되는데, 이 방식은 조금 뒤에 우르비노의 판그림에서처럼, 후진하는 경(景)들로 된 구성을 낳게 된다. 르네상스의 근저에는 기능주의 정신과 웅장한 장식 풍조에 있어서 커다란 변혁이 있다 . 세계를 축소한 이미지인 단일한 입방체(立方體)로 공간을 조직하려는 노력은 절대적으로 중 요하다. 그리고 닫혀진 구상적 입방체가 주는 통일성을 발전시키려 했던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도해 4) 의 노력과는 반대로, 마솔리노의 해결 방법은 열려진 공간에 대한 사고가 오래된 것임을 말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는 전통적 〈오브제〉의 구상적 자료들을 여전히 버리지 않고 있다. 즉 바위, 옥좌, 묘지 , 옷주름 등으로 이것 들은 장소를 나타내거나 또는 구체적 상징물을 표현하기 위한 오브제들이다 (43 면 참조).

13. 파울로 우첼로, r 산-에지디오의 전투』 (1455), 런던 , 내셔널 갤러리(메디치가 의 저택에서 나온 그림 : 두폭의 다른 그림은 피렌체와 파리에 있음). 오늘날 가장 유명한 15 세기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세 개의 표현 체계가 서로 혼 ` 동됨이 없이 잘 혼성되어 있다 . 전경에서 전투장은,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 작 r 최후 의 만찬』의 테크닉을 따라, 부러진 창들이 칸으로 구획을 만들어 줌으로써 그 크기 가 조절되어 있다. 초록색 수목들이 길게 수평적으로 만들어 주는 하나의 선이, 두 군대(반대로 창의 주제가 나타나는 도해 7 참조)가 서로 정면으로 맞서 나가면서 가 로지르고 있는 무대 같은 평원인 이 전경의 공간을, 배경에 그려진 공간과 분리시켜 주고 있다 . 이 원경의 공간은, 띠 모양의 이 녹색 지대 뒤에, 수직적이면서 또한 직 각으로 절단되듯 배치되고 있다. 결국 선과 빛이 만들어 주는 전경의 공간을 표현하 는 이 두 개의 〈망(網)〉은 서로 일치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어떤 그립자들은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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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안 되어 있고, 다른 그림자들은 단순히 잿빛으로 표시만 되어 있다. 죽 빛의 원 천을 표시하는 데 있어서 아무런 통일성도 없다. 게다가 여기 그려진 대부분의 말들 이 목마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참 대범한 자들일 것이다(피 렌체의 r 전투』에서는 이 사실이 훨씬 더 현저하다). 특별히 당시의 향연이나 연극 공연(도해 5) 에서 빌려온 의미있는 부속물들을 결합하고 있다. 나중에는 사람들이 익숙하게 되는 자연의 어떤 측면의 발견이 15 세기 예술운동의 근본은 아니라 할지 지라도, 체험된 예술이 문제시 되는 것이지, 상상 속에서만 실재하는 추상세계로부 터의 합리적 발전은 중요하지가 않다. 말하자면, 추상세계를 토대로 한 합리적 발전 은 19, 20 세기의 관학(官學)주의자들의 것이다.

14.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우르비노의 공작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 개선 (凱旋)」, 피렌체, 우피치 박물관(왕자의 초상은 판 뒤에 있다 : 공작 부인의 개 선과 그의 초상이 위의 것과 짝이 되고 있다). 구성면에서 감미로운 이 작품은, 무엇보다도 앞의 작품처럼 행렬이 주제이다 . 이 그립도 역시 당시 축제 때 흔히 볼 수 있는 환상적 풍경을 기초로 하고 있다 . 마차 가 돌로 된 축대 위를 지나고 있다. 아마도 왕자 부부의 결혼 축제의 일화를 재현한 것일 수도 있고, 또는 적어도 당시의 풍습에 기초한 묘사일 수도 있다. 풍경은 마치 무대의 배경막처럼 땅바닥과 직각으로 짤린다. 그러나 구성은 도해 2 에서 본 날개도 없고 안정되게 둘러싸주는 틀도 없다. 조립은 우선 회화적(繪晶的)이다. 주제는 무대 장면이라기보다 행렬이다(또한 만테냐 작 r 시이저의 개선」 참조). 화면의 배경도 앞 의 작품과 반대로 수평선을 쓰고 있다(도해 9). 그 외에도 이 풍경은 도해 7 과 아주 유사함을 볼 수 있다. 아주 페트라르카적인 이 개선(凱旋)에 있어서, 사진처럼 사실 적인 현실이 문제가 아니라, 가치를 질서있게 표현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이 작품은 내가 〈경(原)의 분리 la seg reg a tio n des p lans 〉라고 부른 것의 좋은 예이다. 죽 자연 앞에서 일어나는 것과는 반대로, 경과 경 사이의 전이(轉移)를 표시하지 않으면서, 정확히 표현된 소수의 시각영역을 선택하였다. 이 작품은 연극적은 아니라 할지라 도, 적어도 사회의 전통적 의식(儀式)에 연관된 대상을 사용하는 것에 구체적 근거 를 둔 한 〈몽타주〉이다 .

15. 기를란다요, 『성모 마리아의 성 엘리자베드 방문」 (1485-1490),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이 작품은 15 세기 이탈리아 예술이 사용한 자료와 체계 를 집성한 목 록 서의 하나 이다. 연극의 대상이자 중세적 상징의 대상이기도 한 바위나 마을 입구의 문이, 고대 식 옷차림을 한 인물 들 그리고 풍속화적 장면들과 결 합되어 있다 . 화면에 깊이 룰 더 해 주고 있는 가로놓인 건물 벽은, 지오토식의 건물이 만들어 낸 입방체적 공간에 대한 회상과, 새로운 체계, 죽 인물들이 행렬하는 장면이 전개되는 평원을 배경과 분 리시키는 새로운 방법을 결합하고 있다. 여기에서 인물 들 은 고대식으로 옷을 입은 인형둘 같기도 하며, 한편 현대적 초상화의 묘사와도 섞여 있다 . 아주 홍미있는 한 변형이 주목할 만하다. 죽 전경 뒤에 공간이 급격히 뒤로 숨어 버리면서 가라앉고 있어서, 인물들은 배경에서 짤린 듯이 보인다. 거기에는 방법이 도치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전경과 배경이 칙각으로 마주치고 있어서 앞에서 본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 카나 우첼로가 채용한 방식의 정반대이다 . 이 구성을 만테냐의 유명한 『골고다 언

덕』 및 다 른 많은 작품 들 과 비교할 수 있다 . 여기에서는 결국 일련의 인물들이 마치 틀 에서 떼어진 듯이 구성되었다(우피치 박물관의 리피작 『아기예수 를 경배하는 성 모 마리아」 참조) . ( 景 들의 분리는 알베르티의 틀 을 만드는 방법과 결합되어 있어서 이런 결과 를 낳게 되었고, 이 결과는 다시 앵그르가 『리비에르양의 초상』에서 채용 하고 있다 . ) 우리는 서로 차이가 나는 다른 공간들을 조직하는 체계 속에 들어온 셈 이다. 〈대기 원근법 la per spe ctive ae ri enne 〉 ® 올 다루게 되는 것은 바로크 시대에 와서이다. 주제면에서는, 피렌체와 로마, 이 두 도시의 모습을 중심으로 한 고대적 세계와 기독교적 세계(도해 24, 25) 가 화합되어 있다 . 15 세기 말에, 아직 사실주의는 아니지만, 벌써 절충주의와 아카데미즘이 나타난다. 몽타주가 무거위지면서 과장되 고, 또 뛰어난 솜씨가 드러나게 된다 .

® 대기 원근법(대기 투시) : 역자 주 ®번 참조.

16. 오토만 미술, 「동방박사의 경배」 (11 세기) , 파리, 국립 도서관, 트레비소의 성 막시미아누스 미사 성가집(라틴어 수사본 18.0 0 5). 누구 나 얼핏 보아도 이 작품의 구성 이 다음 작품과 동일함을 금방 알 수 있다. 15 세 기 중엽, 르 네상스의 새로운 공간 〈창조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캔버스 를 페이지 단 위 로 조판하는 매우 오래된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서 고대가 중세적 주제 에 겉모습을 제공해 준다 . 그리고 카 롤 링거 시대 @ 의 세밀화가 비 잔틴과 분명한 관계 를 가졌던 것 같 이, 몇몇 문명의 저변을 형성하는 하나의 공통된 배 경 이라 는 개념이 나 타나 는 것을 볼 수 있다. 나 는 15 세기 미 술 내지는 중세 미 술 에 있어서까지 동 양적 원천 을 중 요하지 않게 보 는 주장에 찬성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 양식 을 분석할 때, 일반적으로 조형막의 근본적 조직에 관 여하 는 구성 성분 들 과, 또 반대로 고유한 가 치 를 지닌 요소들을 구별해 볼 필요성을 더욱 강조하고자 한다. 그 외에도, 이 세계 률 실축적 으로 이해하 는 시각 방법을 전제로 하는 작품 들 의 배경이 되는 〈기하학적 구축g eo m e tri sa ti on 〉 이란 문재 를 식별해야 한다 . 결국 이런 점 에서 , 전통적 인 것과 특 수한 것 이 얽힌다는 것을 밝혀주는 〈성(星)-신(神)〉이라고 하 는 상징적 등가물의 역 할을 간략히 언급하고자 한다.

@ 카롤링거 왕조 : 프랑스의 두번째 왕조로 메로빙거 왕조를 계승했다. 751 년 에 페펭 르 브레프와 더불어 시작되어 독일에서는 911 년까지, 프랑스에서 는 %7 년까지 다스렸다.

17.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수태고지』 (1452 기 460), 아레초, 성 프란체스코 성당. 원경을 사용하지 않고 교회 건물들의 조립방법(도해 3 과 4) 을 발전시킨 예이다 . 무대의 구성요소들은 아주 소수의 원칙을 따르면서, 양식적 • 상징적 변신의 주기로 들어간다 . 수태고지 장면을 나타내는 그룹도, 역시 별도로 떨어져 있는 듯이 보이는 웅장하지 않은 공간 속에서 전개된다 . 수태고지라는 전통적 재현의 한 일화가 예배 의식의 각본과 그 배경 속에서 표현되었다.

18. 오타비아노 넬리, r 할례』 ® (1415 년경), 로마, 바터칸 회화관.

® 할례 : 종교의례적 수술. 의과적 수술로 음경의 표피를 자르는 것. 유태교 와 회교의 의식. 카톨릭 성당에서는 예수의 할례롤 1 월 1 일에 기념한다.

바로 여기, 양식이 변화 를 격으면서도 문제는 영원히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강 조해 주는, 14 세기 말의 미술과 15 세기 미술 사이의 한 발전의 표본이 있다 . 오타비 아노 넬리의 작품은, 이제는 더 이상 지오토적 자료를 갖고 전부 제작되지는 않는다. 한 단일한 건물의 외부와 내부 를 동시에 보여주되, 거기에는 미묘한 특 수성이 있다. 축 내부가 후진(後進)한 곳에 의부가 계속 거기에 자리잡고 있어, 보통 습관적인 인 상과는 반대의 순서로 되어 있다(도해 1). 아직도 상대적 크기는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으나, 전통적으로 사슬처럼 연속적으로 배열하는 표현(도해 3) 에 비해서는 〈진보〉 가 있다. 표현된 건물은, 원근법적 또는 구상적 오브제의 보편성을 이제는 떠나 있 다. 이 건물은 특수화되어 있고, 그 밖에도, 알베르티가 보여줄 이론에 따라서, 감상 자의 공간과 일종의 지속성을 세워주는 구성의 틀과 연결되어 있다(반대의 경우로 도해 7 참조). 15 세기 미술의 문제들이 갑자기 발견된 것이 아님은 명백하며, 예술가 들의 손에 우연히 들어온 한 〈비밀〉을 포착하게 된 것이라고는 확실히 말할 수 없 다. 우리는 찾는 것만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

19. 자코포 벨리니, 『자헌 첨례 Presenta tion au t em p le 」 (1450 년경), 파리, 루브 르 박물관 소묘 진열실. 한 건물의 밖과 안을 표현하는 순서가 정반대이다. 그 방법은 감상자가 접근해야 하는 것이지, 표현된 것들이 우리에게 자기를 노출하려고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 중 심의 건물은 한 전통적 자료의 변형을 보여주며, 이제부터 는 외부 세계 를 발견하고 개척하는 새로운 방법을 구체화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지식으로부터 출발하는 것 이 아니라 이제는 감성으로부터 출발한다. 시각의 다양성과 동장하는 부속적 물건들 의 복수성을 인정하지만, 그것들을 다 른 모습으로 배치한다. 한 사고 를 결정하는 것 들을 이제는 고정하지 않으며, 감상자의 공간과 구별되는 공간을, 그러나 같은 법칙 에 따라 창조해 나간다. 여기에는 방법의 변화가 있는 것이지, 직접 관찰한 것을 송 두리째 따르는 것이 전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사영(射影)적 원근법 la persp e ctive pro je c ti ve >® 방법(도해 8) 과는 반대로, 〈조망 la veduta > 처리법에 의하거나, 축소를 가정해봄으로써, 또는 한 동일한 공간을 가능한 한 두 배로 확대하는 방법에 의해서, 〈연속적인 것〉과 〈둘러싸는 환경〉을 도입하고 있다 . 이들의 특 성은, 이제는 정신이 작용하는 법 칙 에 따라 규정 되지 않는다(도해 14 참조) . ® 사영적 투시 :공간에서 지각된 대상을 이차원의 평면에 표현하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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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피에로 디 코시모(?), r 라 시모네타」, 상티이 Chanti lly, 콩데 박물관 Musee Conde. 르네상스 작품과 현대 작품 하나를 비교해 봄이, 옛 작품들과 바교하는 편보다 낫겠다. 하나의 주어진 시점에서, 과거와 미래 를 하나의 시선으로 고찰해 본다면, 공 동의 토대는 동일하지가 않을 것이다 . 명암도의 유동성도 또 그 고정성도 어느 것에 도 너무 집착해서는 안된다. 이 역시 위험하긴 해도, 유행보다는 원천을 믿어야 하는 데, 그림에서 받는 감동이 보다 암시적이기 때문이다. 경의 분리라는 도식 위에서 구 성된 이 그립 r 라 시모네타』는, 구성에 있어서, 앞에서 본 작품의 일종의 유사품이 다. 죽 배경과 뚝 떨어져 있는 신격화된 인물은, 일종의 신성한 오브제의 가치를 지 니며, 한편 여인은 시인들에게 있어서도 역시 미와 사랑의 신전(神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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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 브라크, 『여인의 얼굴』 (1942). 여러 세기가 요술사처럼 〈세심하게 정성들여 그리는 것〉과 놀라운 솜씨를 보인 뒤에, 우리의 시대는 양식화의 법칙을 파기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단지 조금씩, 그리 고 세부에 의해서 거기에 도달할 뿐이다. 벨리니와 리에즈 세밀화를 보고 난 뒤에 우리 현대인을 경멸하는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아야 한다. 동결된 형태의 일종의 왜 곡으로부터, 생명의 순간적인 모습을 시각화하는 새로운 방법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되는 이 가능성을 누가 감히 부인할 수 있겠는가? 이 책 전부는, 르네상스의 조형양 식 창조라는 현상이 시각적이 아닌 미학적 • 사회적 사실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서 쓰여졌다. 그리고 또 5 세기 동안이나, 어떤 한 일반적 문화와 연결되어 있던 시 각, 또 한정된 행위의 범위에 관계되어 있던 이 인습적 시각이, 그 테크닉상의 가치 와 사회적인 가치가 변하고 있는 우리 시대에 와서야, 자명해 보이는 모든 가능성을 잃어가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 주려 하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직은 과거에 더 가까운 세계를 탐험하고 이해하려는 한 새로운 시대의 출발점에, 죽 마솔리노나 우첼로가 활동했던 그 시대와 비교될 만한 그런 시접에 우리는 와 있다.

22. 베니스 화파, r 율법학자들과 대화하는 어린 그리스도J (15 세기 전반), 파리, 루브르 박물관. 지오토에서 본 독립적 입방체 자체를 틀에 연결하기 위해서 사용한 해결책 중에 하나로(도해 3, 5 그리고 15, 19 참조), 구상적(具象的) 입방체와 알베르티식의 열린 창문을 결합하고 있다. 더욱이 양 옆의 건물벽에서 그 벽의 일부 를 잘라냄으로써 진 정한 〈풍경 vedu te〉을 삽입할 수 있게 되었다. 리틀 M. Littl e 에 의하면(〈미술 보고서 Art Bulleti n> , 1936 과 19'r1 ), 이 테크닉은 헬레니즘 시대 연극을 양식화한 표현 방 식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다음 그림에서는 〈두 개의 조망 deux vedu te〉 ® 이, 닫힌 입 방체의 바람벽에서 잘려 있지 않고, 하나의 구성요소 자체가 되고 있다 . 화가들은 〈아틀리에적 표현방식 form ules d'a teli er 〉의 의미와 사용방법을 변화시킴으로써 발 명해 나간다. 이 방식들은 전통적인 것과 다른 것이자 또한 동일한 것이기도 하다 . 이제부터 회화는, 구성요소들을 연이어서 배치하거나, 한 개 옆에 다른 것을 붙여서 나타내지는 않는다. 죽 인간은 전체의 복잡성에 대해서 더욱 민감해졌다 . 현대로 오 면서 점접 더 세부에로까지 이 민감성이 미치게 된다.

® 두 개의 조망:역자 주 ®번 참조.

23. 만테냐, r 성 세바스챤」 (1472 년경), 파리, 루브르 박물관. 여기서 〈인간(人間)-영웅(英雄)〉과 기둥과의 결합(초록빛이 나무와의 동일성을 강조해 준다)은 생명의 현대적 표현방법을 규정하려는 사고의 귀결점이 되고 있다. 잘린 아치와 원주 머리의 대륜( 臺輪 )은 입방체의 근본적 가정을 환기시켜 준다(도해 12 기를란다요의 벽 참조). 이 입방체는 그 시대의 어떤 조형 구성에서든지 필요로 했던 부속물이다 . 도해 19 에서 유일한 하나의 〈풍경 vedu ta〉이 중심 모티브를 둘러 싸고 있는 반면, 여기서는 오른쪽과 왼쪽에 〈두 개의 풍경 deux vedu te〉이 삽입되어 있다. 어떻게 예술가들이 아틀리에적 표현방식을 끼워넣음으로써 새롭게 발명하고 있는가를 찰 엿볼 수 있다. 여기에서 〈전개되는 광경 vedu ta〉은, 사형수에 의해 구현 되는 나쁜 사람들의 위협과 잔인성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거두는 생명의 형상화이 다. 주제는 영원한 로마, 생명의 승리이며, r 성체의 기적』, 『성모 마리아의 성 엘리자 베드 방문』(도해 5 와 15) 에서와도 같다. 이는 기독교적 주제이자 고대적 • 원시적 주 제이기도 하다. 르네상스는 자기 문화와 자기 체험의 새로운 〈오브제〉를 통해서 그 것을 표현한다. 여기서는 인체와 폐허(廢塘)들을 통해서이다.

24. 랭부르 형제, 「로마 지도(地圖)J (1408-1416), 상티이 , 콩데 박물관, 베리공작 의 전성기. 순례여행을 위한 안내서이다. 이 지도는 보아야 할 것들과 그것 들 간의 상대적 위 치를 표시하고 있으며, 지도가 천문적 원형(圓形) 속에 기록되어 있다 . 또한 지구를 가정한 형태 위에 복사해낸 것처럼 전체가 표현되어 있는데다가, 축소의 현상이 있 으나 이차원 속에서만 작용한다. 로마를 마주 대하고 있을 때의 전경과 여기서의 지 도적 표현과를 비교해 보면, 형체화에 있어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강한 비 약을 예민하게 포착할 수가 있다. 우리가 브라크나 피카소 앞에서 느끼는 것과 아주 유사한 놀라움을 그 당시 사람들이 느꼈으리란 것을 상상해 보자. 25. 만테냐, 『로마의 발견」 (1472 년경), 에그페르스의 성 세바스찬의 일부 , 루브 르 박물관(도해 23). 화폭 귀등이에 자리한 아주 매혹적인 풍경화. 푸생 Poussin 작품식의 전통적 표 현을 따른 〈조립된 풍경화〉로서 처음에 제작된 작품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 풍경화 는 회화적이면서도 또 의미를 갖고 있는 요소들로 되어 있고 , 이 요소들은 완전히 상상해서 조립한 화폭속에 들어가 있다. 세부들은 실재하는 것들이며, 구성방식은 임의적이다. 귀족의 권력을 나타내는 영주(領主)의 성 밀에, 농가의 집과 그 곡식 창 고가 사람들의 매일 매일의 노동이 영속됨을 환기시켜 준다 . 이 모든 것이 로마 유 적지와 생생한 과거를 상징하는 구성의 상부에 배치되어 있으며, 하부에 그려진 이 로마 유적들은 덩어리 전체로서 표현되지 않고 옆 모습으로 되어 있다. 무수한 작품 속에 옮겨진 이 로마의 전경(全 景 ) 테마는 상당히 빨리 일종의 오브제, 또는 단순한 표현 기호가 되어 버린다 .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15 세기 미술은 표의문자(表意文 字)를 창조해 내었다.

26. 마솔리노, 『로마 풍경』 (142 1-1 428), 카스틸리오네 오로나의 세례 당 한 벽의 일부(도해 12 참조). 〈인상주의적〉인 뛰어난 시각이 이 작품에서 주목된다. 이 작품은 앞의 것과 비교 해 불 때, 어떻게 랭부르 형제가 동일한 관찰 대상들로부터 선택된 구성을 제시해 주는가를, 또 어떻게 다양한 조형표현들이 하나의 공통된 문명의 바탕에 속하는가를 보여준다. 희화가 단순히 현실의 복사일 수 있다는 생각을, 현대 아카데미즘이 나올 때까지는, 어느 누구도 감히 해보지 못했다. 이 화폭은 놀라울 만한 홍미를 불러일켜 준다. 작품을 감각의 직접적인 번역으로 간주할 때 상상할 수 있는 시각적 이해 방 법과는 아주 다른 〈시각〉을 15 세기 화가들이 갖고 있었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 리고 그들은 관찰 면에서 우리와 상당히 유사했던 것도 확실하다. 그들의 미술은, 임

의의 기호 체계가 아닌 규약적 기호체계 를 창조하였다. 모든 양식에 대해서도 마찬 가지이다 . 이렇게 볼 때, 무엇이 르네상스 미술이었는지, 또 오늘날의 미술의 향방이 무엇인지를 잘 이해할 수 있다. 15 세기 예술가들의 이 세계에 대한 사색온, 그 이전 시대의 공식들로부터 해방된 그리고 대단히 날카로운 관찰에서 출발하였다. 영원한 인상주의란, 시간 속에서 어떤 주기성을 갖고 계속 나타나는 양식이라기보다는, 모 든 양식화의 바탕이 되는 우주에 대한 〈자연적 시각〉의 표명이라고 생각된다 . 이 시 각적 이해방법이 명확하게 기록될 때에야 비로소, 이 세계에 대한 예술적 분석을 변 경하려는 시대에 우리는 직면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19 세기 말의 경우이자 15 세기 의 경우이기도 하다.

27. 마사치오 , r 낙원에서 추방당 한 아담과 이브」 ( 1422 - 1426 ), 피렌체 , 카르미네 성당 , 브란카치 소성당(세부). 공간 에서 나체의 볼륨을 표 현한 첫 작품 이며 , 로 네상 스 〈 사 실주의 ( t m 主· 義 ) 〉 의 도정 에서 첫 시도라 는 점 이 이 작품의 특 징이라 고 이미 지 적 하 였 다 . 이 세부 그 립이, 그 문 제 의 크 나 큰 복합성 을 얼마나 잘 중 명해 주고 있 는 가 는, 길 게 설 명 하지 않더라 도 분 명 하 다고 본다 이 작품의 〈 표현 주 의 〉 적안 면은, 지오 토 와 유사하다 . 15 세기 초 는 , 절중주 의적 측 면과 특 징주의적 측 면 을 아 울 러 보여 준 다. 마사치오 는 라파엔의 선융 예시해 주었 을 뿐 아니라, 다빈치와 안 드 레아 델 사 르토 Andrea de ! S art o 의 〈 명암 〉 의 선구자이기도 하다(성 아 폴 리니아의 식당에 있 는 안 드 레아 델 카스타 뇨 의 r 골 고다의 언덕』의 인물 들을 갖 고 같은 논증들을 하게 될 것 이다 ) , 그 러나 마사치오 륭 르네상스 사실주의 양식화의 예언자로 보 는 것 은 위 험 하다. 그는 마 솔 리 노 나 다 론 동대 화가 들 과 더불어, 아주 짧았던 한 시기의 대변자이다 . 이 시기에 화가 들 은 아 주 오래된 조형언어 를 멀 리하고 , 자연과 다시 접 촉 하면서, 영원 한 시 각문 재 를 탐 색 하였다 이 탐색은 자연 을 재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 로 운 체 계률 세 우 려 고 했 기 때문에, 낡은 조형언어로부터 멀어 졌 다 는 사실에서 역 사 적 의마 를 찾을 수 있다 , 그 들 중에 어느 누구도 그 근 본 바탕 을 의식적으로 버리지 않았다. 여러 세대가 지 난 후에서야 , 공간의 시각적 이해방법과 관례적 형상화 사이에 자연 스 런 조화가 이 루어졌다 현재에 와서 양식과 시각 을, 과거보다 더욱 혼 동하지 는 말도록 하자.

28.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r 시바여왕의 수행원」 (1452 - 1460), 아레초, 성프란 체스코 성당(세부) .® 볼 륨으로 경들을 분리하는 전형적 예이다 . 인물 들 은 균일한 공간 속 에 병치된 것 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배치된 독립된 오브제처럼 구상되었다. 공간과 사물을 같은 자 를 갖고 잴 수가 있게 되었다 . 화가는, 알베르티의 순수한 주장에 따라 , 오브제의 보이는 표면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 근본적인 법칙을 지킴으로써, 축 소시키거나 배 가시키기도 쉬운 삼차원 공간을 표시하기 위해서도, 아 표면 들 을 사용한다. 형태의 질서는 공간구조의 시각적 평가에 기초한다. 반대로, 도해 30 에서 39 까지는, 복잡한 보수적 관례와, 또 마사치오에서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에 이르기까지 세워진 근본 적 신념들이 점진적으로 파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 성 프란체스코 San Francesco 성당 : 토스카나 지방 아레초시에 있으며, 벽화는 1447-1451(?) 년 사이에 비치 디 로렌초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가 제작하였다. 십자가의 참된 전설, 교회의 박사들, 프란체스코의 성인들 이 그 주제이다.

29. 보티첼리 , r 비너스의 탄생」 (1480 년경), 피렌체 , 우피치 박물관 . 본문 속에서 이 그림에 대해서 새로운 관접을 갖고 언급한 적이 있다 . 이 작품 속 의 모든 요소들은 여러 다양한 의미 를 지닌 암시이자 대체(代 替 )이다 . 여인의 미는 성모 마리아 를 대신하였고 , 생명의 상징적 승리이며, 조개껍질의 비유는 작품의 가 치부여이자 동시에 그 주제의 가치부여이다. 그 외에도 폴리치아노 Po li z i ano @ 의 시 룰 아주 가까이 따르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으며, 또 운동감 표현에 있어서, 알베르티가 표현했던 형식미의 표준과, 뜻을 명확히 나타내는 처리법을 따르고 있다 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점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독창성을 결한 모방 적 작품과는 얼마나 판이한가! 15 세기 말엽, 형태적 기호체계가 상당히 발전함에 따

라, 시인들은 당연히 감각적 가치, 지성적 • 철학적 • 방법적 • 시적 가치 를 논하고, 그 것들이 그 당시 사람들에게 평가의 척도로 사용되었다. 〈자연을 대하고만 있을 때〉 에 인간의 언어란 있을 수가 없고, 〈사회 속에서의 인간일 때〉에만 언어가 존재할 수 있다 . 그리고 항상 언어의 바탕에는 신화가 있기 마련이다 . @ 폴리 치 아노 Poli zia n o(l454-1494) : 이 탈리 아 시 인 , 인문주의 자 . 메 디 치 가의 로렌초의 보호 를 받았고 대신 폴리치아노에게 아이 교육을 맡겼다 . 석학으로 r 일리 아드」 를 라틴시로 옮겼다. 자신의 주석과 수필을 라틴어로 옮겼다.

2 조혀o 공간의파괴

18 세가 되기 전에 배운 것은 경험에서 나왔다고 사람들은 믿는 다. 그 이후에 귀에 돌리는 것 모두는 이론이나 사유라고 간주 한다. 아인슈타인 Ein s te in

낭만주의에서 인상주의로 19 세기 말 일체의 개성있는 화가들은 르네상스 파괴를 목표로 했다고 흔히들 말해 왔다. 르네상스 조형공간이, 어떤 시기에 이 르러, 화가들에게 무슨 이유로 더이상 만족을 줄 수 없게 되었 는지 그 이유를 찾아보는 일은 홍미롭다고 생각된다. 이미 밝힌 바이지만, 르네상스 조형공간이, 인간체험 가운데 변하지 않는 소여(所與)에 합치하는 표현체계를 다룬다고는 볼 수 없댜 자연을 특수하게 형상화하는 방식에 의지적으로 접근 하는 것을 15 세기 미술이 추구했던 바라고 보는 것 역시 하나의 착각이댜 공간의 투시적 표현을 발견한 자들은, 현실의 철저한 모방자들이기보다 환영의 창조자들이다. 새로운 공간이란, 기술 적 지식이 개인이나 집단의 신앙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어지는 세계, 즉 상징적 형상화와 기하학이 혼합된 세계이다. 오늘날에도 르네상스의 환영적 체계가 정신에 편리한 어떤 지 적 습관에 만족을 준다는 점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누구에게든 지 틀림없이 인도(人道)의 두 선이 점점 멀어지다가 지평선에 이르러서는 서로 마주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착각을 의식 함으로써 우리들이 사물의 거리나 위치를 측정하는 데 편리하다 고 볼 수 있으나 중요한 것은, 다시 말하면 기하학적인 지적인

틀 내에서 선정된 감각의 투사, 즉 이미 획득된 일정한 지식을 전제로 하는 투사가 문제된다는 점이다. 그 밖에도, 일정한 사회 구조나 개인의 구조에 그들의 감각을 통합시키는 또 다른 체계 에 따라서, 예를 들어 〈기마적 투시〉나, 더 나아가서 이집트식으 로 겹쳐지거나 병치된 이미지들까지도 마치 실재하는 명백한 것 으로 누구에게나 보인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도 중요하다. 르 네상스 조형공간의 탄생을 연구하면서, 문화의 일정한 기술적 • 지적 • 사회적 수준에 따른 하나의 완벽한 표현 방법을 구축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명백히 밝혀보려 하였다. 그렇다고 해 서 이러한 시도가 르네상스 예술과 문화가 이룩한 공헌을 격하 시켰다고는 추호도 생각지 않는다 . 특히 중요한 사실은 그리스 시대 이후 처음으로 세계에 대한 합리적 시각에 토대를 둔 하나 의 체계가 발전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체계는 특히 사물을 본질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한 일체의 사 고는 도외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르네상스 조형 공간이란, 한 특정한 인간 집단을 위해서 세계의 모습을 완전히 조화 있게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술적 또는 이론적 지식의 큰 변혁이 일어남에 따라 한 사회의 신앙이나 행위의 동기가 변하게 되는데, 이러한 변화 에 따라서 공간의 표현방식도 변형될 수 있다고 쉽게 상상해 볼 수 있댜 만일 조형 공간이 한 사회의 전체적 운행이나 수학적 • 물리적 • 지리적 사고를 반영한다고 볼 때, 일정 기간 동안 세계 를 투명하게 보여준 일체의 지적 • 심리적 명백성이 전복될 만큼 한 사회가 변혁을 겪을 때, 조형공간의 표현 방식이 변해야 할 필요마저 있는 것이다. 사회가 특정한 지리적 • 과학적 공간 내 에서 물질적으로 확립되는 것처럼, 이 사회가 조형공간을 바꾼 다고 가정해 볼 수 있다. 오늘날 바로 우리의 눈앞에서 진행되

고 있는 것은, 새로운 기술적 • 지적 자료를 갖춘 사회가, 르네상 스 이래로 사람들이 편리하게 살아온 공간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모험이다. 지금까지 전개시켜온 이론을 볼 때,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은 그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공간, 즉 그들간의 소통과 표현수단으로 쓰일 수 있는 공간으로 손쉽게 진입하여 들어갔다 면, 반면에 그 다음 세대들은, 새로운 개안적 또는 사회적 행동 체험의 원칙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만큼 강인한 정신을 가진 몇 몇 사람들이 오랜 준비기간 뒤에 등장하자, 급작스럽게 이 르네 상스 공간으로부터 빠져나오게 되었다. 한편, 르네상스의 가장 중요한 사고는 우주를 구성하는 투명 한 요소들에 대한 계산된 평가에 기초를 두었을 뿐만 아니라, 또 이 사고는 사물들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평가하는 데에도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인간이나 신과 구별되는 하나의 실증적 세계, 즉 자연이라고 불리는 이 외적 세계에 대한 탐색을 르네상스는 내포하고 있었댜 50 년이 지나자, 이 완전히 색다른 연구 그러나 일정한 수의 제한된 가설로 한정된 연구에 사람들은 만족했다. 새로운 공간이 입방체의 모습임을 인정하였다. 또 일체의 소실 선들은 화면 내부에 위치한 유일한 하나의 점으로 수렴되며, 이 점은 바로 인간의 눈의 유일한 관점에 해당한다고도 생각하였 다. 여러 명도를 가진 색채들로 대상을 표현하는 방식은, 보잘것 없는 수단인 명암과 같은 간계를 쓰는 것이긴 해도, 선에 의한 표현 방식과 일치한다고 생각했다. 선과 색채 간의 타협이나 조 정은, 빛이 유일원이라는 것과(완전히 비현실적), 단안적 투시로 시각을 축소시키는 것(역시 비현실적인)이라는 이중의 독단적 규 약을 어렵게 다루는 것에 따르는데, 이 점은 자주 잊혀지고 있 댜 르네상스 조형체계는, 새로운 난점들에 부딪쳐가며, 매번 시

각을 원시적 풍요로부터 벗어나게 했던 간략한 단순화 une sim - pli fi ca ti on somm ai re 라는 수단에 의해서, 점진적으로 발전해 나 갔다는 사실도 역시, 또 다른 관찰들에 의해서 밝혀질 것이다. 그에 대한 한 증거만 들어보자. 시각의 깊이나 넓이, 자연이나 화면에서 대상을 볼 때의 각도 등 이 모든 것이 다르다 하더라 도, 우리가 복사하려는 사물을 발견할 때의 관점과, 화면에 동시 에 그리는 사물의 형태를 발견하게 될 때의 관점 사이에 존재하 는 차이는 수학자들이 흔히 하듯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댜 다음과 같은 사실은, 그러한 가설들이 보여준 역할에 대한 가 장 좋은 증거가 되고 있다. 즉 우리가 연구하고 있는 시대, 죽 르 네상스 말기에, 콘스타불 ® 이나 코로 등 관찰력이 있는 예술가들 이 자기들이 보고 느끼는 대로의 자연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 과, 감상자들이 알아보기 쉬운 죽 관례적인 표현을 하고자 하는 욕망 사이에 처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르네상스 공간 표현은 결 국에 가서 〈완성된 작품 le fini〉이라는 문제와 초벌그림 l'es qu iss e 이란 문제에 봉착하고 만다 리오넬로 벤투리 Lio n ello Ventu ri(2) 가 관찰했던 바와 같이, 이 문제를 확실히 하기 위하여 코로의 초 벌그림과 완성된 작품과를 같이 대비해보면 알 수 있다.” ® 콘스타불 Cons ta ble, Joh n(!776-1837) : 영국화가, 수채화가, 소묘가. 왕립 아 카데미에서 수학 17 세기 홀란드 풍경화와 로렝 Claude Lorr ai n 의 찬미자 . 로렝 과 루벤스 P.P. Rubens 를 수없이 복사하였다. 게 인스보로 Gai nsborou g h 와 거 어틴의 영향을 받았으며 영국 전원풍경을 즐겨 그렸다. 1824 년 파리에서 r 건초더미 마차」라는 작품을 출품해 그의 존재를 발견하게 해준 하나의 계 기가 되었으며, 그후 영국보다 프랑스에서 더 좋은 평을 받았다. 날카로운 자연 관찰자로서 빛의 변화 공기효과에 관심을 가졌다. 들라크루아는 그롤 〈프랑스 풍경화의 아버지〉로 본다. ® 벤투리 Ventu ri, Lio n ello(188 .5- 1961) : 이탈리아 미술사가, 미술비평가. 미 술사가 아돌포 벤투리(1 856-1941) 의 아들이자 제자로 특히 미술 사상사에 전념했으며, 미술작품이 이 작품을 인정하는 평가를 통해서 어떻게 존재

하는가를 그의 여러 저술, 『 평론과 다빈치의 예술La. Cr itiqu e et l'A rt de Leonard de Vi n ci.』 (1919), 『 원시주의 미술에 대한 취향 Le Goat des Prim i tifs.ll( 1926), 『 미술평론사 H i s t o i re de la critiqu e d 'a rt 』 (1936), 『 오늘 날의 예술 비평 Art Cr iticism Now 』 (1 941) 둥을 통해서 보여주었다. 1915 년 에서 1931 년까지 토리노에서 미술사 교수로 재직했으며, 1939 년부터는 미 국 여 러 대학에서 강의 했다. 전후 다시 이 탈리 아로 돌아와 1945-1960 년까 지 로마대학에서 가르쳤다 . 주요 저서로는 베네치아 회화에 관한 『 죠르죠 네와 죠르죠네주의 Gio r gi on e et le G i org i on i sme 』 (1913) , 현대 미술에 관 한 『세잔과 그의 미술, 그의 작품 Cezanne, son art et son oeuvre 』 (19 36), 『 미술평론 역사』(1 936), 『 인상주의 고문서 』 (1939) , 『 카라바지오 』 (1953) 둥이 있다. 1) 벤투리 Ven turi의 『현대회화의 이해를 위해, 지오토에서 샤갈까지 .ll , 파 리, 1950, 129 쪽 참조.

결국 15 세기 전반기에, 세계에 대한 새로운 지식이 확장된 것 이 아니라 그 당시의 철학적 • 사회적 사상에 입각한 하나의 체 계가 완성되어 가는 것을 우리는 목격하였다. 선에 의한 표현과 색채에 의한 표현이라는 이중의 구조가 형성되었다. 이상적 표 현인 입방체의 내부에 이중의 기호망이 짜여졌으며, 이것에 사 람들은 상당히 익숙해져 , 점차 이것을 선적 • 색채적 표현의 틀 로서 선정하게 되었다. 또 총체적 시각의 이중망이 형성되어 나 중에는 이것이야말로 세계의 〈진실된 vr ai e 〉 모습이라고 믿게 되 었댜 탐구정신이 권위정신과 대체될 때, 그 체계의 토대를 형성 해 준 것은 서로 교차되는 상상의 선들이었다. 이 상상의 선들 은 이상적 음악의 보표를 상당히 닮았으며, 또 교육받음에 따라 이 방향을 취했던 사람들이 미터와 데시미터, 입방미터와의 관 계에 민감하도록 해준 교과서에 나오는 선들과 보다 더 유사하 였댜 유일원으로부터 바롯된 빛의 작용을 체계화함으로써 또 다른 요소가 제공된댜 아카데믹한 주장과는 반대로, 자연의 빛 에는 전연 개의치 않고, 아틀리에에 어울리는, 또 아틀리에에서

사용하기 위한 황금률을 설정하게 된다. 16 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유클리드적이기보다는 훨씬 원근화 법적인 개념, 특히 공간의 사실주의적 개념에 도달하게 되며, 연 극적 사고의 발전이 시각적 환경에 의해서 널리 형성됨에 따라 서, 이 원근화법적 개념과 사실주의적인 개념을 더욱 더 집중적 으로 교육하게 된댜 어느 것도 고정된 채로 있는 것은 없게 된 댜 가끔 틴토레토 작품이나 그레코, 렘브란토, 벨라스케스 작품 이 그들 세대의 꿈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게 된다. 세계의 입 방체적 구조라는 이 견고한 법칙과 선과 색채의 기호로 된 단일 한 망의 조화라는 이 법칙이, 4 백년 동안이나 미술뿐 아니라 인 간의 사고를 지배한 것은 사실이지만, 수많은 다른 요소들이 점 진적으로 거기에 결합되어 갔고, 또 이 요소들을 통해서 다양한 감정과 발명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르네상스가 여러 세대에 걸쳐 느리게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르네상스 이후의 서양미술에 엄청난 단일성을 부여하려는 것은 아니다. 르네상스를 어떤 거대한 비밀의 발견이나 재생에 기인 하는 기적적인 것으로서 생각한다면 이는 잘못이지만, 반면에 15 세기 초에 미술사와 사상사에 비할 데 없이 풍요롭고 새로운 법칙이 나타났다는 견해에는 동의해야 한다. 또 대중의 형편없 는 몰이해로 말미암아, 그 법칙의 적용이 급속히 제한되었음도 인정해야 한다. 또한 모든 시대에 걸친 사람들이 이 세계의 사 실주의적 시각을 표현할 수 있는 영원히 가치 있는 구성 방법을 정복함에 따라 얻게 된 세계의 이해 및 형상화의 방법이 아니라, 세계에 직면하고 사회 내에 처해 있는 인간 정신의 한 견해에서 나온 세계의 이해 및 형상화의 한 방법이 갖는 잠재적 가능성이 여러 세대에 의해 심화되어 갔다는 사실도 받아 들여야 한다. 그러므로, 여러 세대에 걸쳐, 끊임없이 부수적인 새로운 요소

들을 도입해 감으로써, 공간에 대한 총체적 형상화에 만족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공간의 형상화는 여 러 세대들이 매번 실제로 이룩한 것보다 더 광대한 것이었으며, 그들 연구에 여지를 남겨주곤 하였다. 언제나, 그 근본을 전복시 키지 않으면서도, 그 체계의 어떤 것들을 추가하거나 삭제할 수 있었다 다비드 작품이 라파엘 작품과 유사한 언어를 가지고 현 대적 사고를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로제티 Rossett i 작품이나 앵그르 작품을 보아도, 고전주의 미술의 최후의 형태 가 라파엘의 선구였다는 사실은 그릇되지 않다. 오랜 기간 동안, 예술가들은 몇몇 근본 법칙에 따르는 조형적 • 역사적 • 지리적 • 상상적 공간에 머물러 있었다. 그들은 전설을 변경할 수 있었으 며, 기술이나 전통의 그 어떤 부분들을 강조하기도 하였고, 유클 리드 기하학의 한계점 내지는 사회 • 경제적 구조의 안정성이 그 들의 합리성 발전을 위해 과했던 법칙들도 받아들였다. 행위와 사고의 균형에 기초한 이 체계가 어떤 시점에 가서 단절되었음 은 확실하나 예술가들은 사회의 나머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낡은 조형공간으로부터 벗어났다. 이 예술가들이, 새로운 실증적 토대 및 상상적인 토대를 미래 예술에 제기함에 있어서, 어떤 단계를 거쳤는지, 또 얼마만큼이나 성공했는가를, 여기서 연구해 보고자한댜 19 세기 초에 와서, 르네상스 이래 최대로 이미지를 재조정하 게 되었다. 이 주제에 관해서는 이미 언급하였으므로, 혁명의 결 과라든가 낭만주의의 문학적 측면에 관해 더 길게 설명할 필요 는 없겠댜 동양이나 의국문학이 고대의 부활과 더불어 새로운 주제를 제공해 준다. 이로부터, 미술의 신화적 공간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에 대한 상당한 재조정이 있게 되었다.

나폴레옹 서사시의 영웅들은 오시안의 낙원에 접근한다. 다비 드 작 호라티우스와 사형 집행인은 언제, 어디선가는 피에로 델 라 프란체스카의 시바의 여왕을 만날 것이며, 지로데 G i rode t의 오시안 Oss i an 을 결코 보지 못하게 되리라. 들라크루아 작 단테 와 버질은 불길의 강(江)에서 미켈란젤로의 지옥에 떨어진 사람 들을 만나겠지만, 메두사의 펫목은 보티첼리의 비너스를 바닷가 로 밀어낸 그 바다 위를 흘러가지는 결코 않으리라 . ®

® 오시안 Oss i an : 3 세기 스코틀랜드의 전설적 서정 시인 1760 년 맥 퍼슨 Mac Pherson 이 이 고대시를 번역 출판했으며 이 시의 주제는 낭만주의자 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지로데 Gir od et( 1 767-1824) : 프랑스의 역사 화가. 일찍 고아가 되어 군 의 과의 트루아오종의 보호를 받았다. 17 8.5년 18 살에 다비 드 아 툴 리 에 에 들어가 총애받는 제자가 되었다. 1789 년 〈로마상〉을 받고 이탈리아로 떠 나 5 년간 체류한댜 1792 년 〈살롱전〉에 r 앙디미옹의 잠』을 출품하여 대성 공을 거두는데 여기서 이미 낭만주의적 경향을 보인다. 1801 년 나폴레옹 이 그의 저택 말메종을 꾸미기 위해 지로데에게 작품을 주문하는데, 그 주 제는 〈오뎅 궁전에서 승리의 신의 인도를 받는 프랑스 전사들의 장면들 〉 로 오시안의 시에서 따온 것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낭만주의와 고전주의 작품을 들어 접근하거나 대조하 고 있다. 예를 들어 저자는 지로데가 그린 나폴레옹의 영웅들을 낭만주의 자들의 영감의 원천이었던 오시안의 시에 접근시키고 있으며, 고전주의자 들인 다비드나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는 낭만주의자였던 지로데와는 만 날 수 없다고 지적 한다. 또 낭만주의풍의 들라크루아의 작품을 낭만주의 풍의 미렐란젤로의 작품에 접근시키고 있으며, 메뒤츠의 펫목을 그린 낭 만주의자 들라크루아를 비너스의 탄생을 그린 고전주의자 보티첼리와 대 조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단절을 너무 과장해서는 안된다. 들라크루아는 자 신이 고전주의자이기를 원했고, 바로 그는 위대한 르네상스 화가 들 가운데 마지막을 장식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 낭만주의는 라파 엘과의 관계를 끊지 않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바로크 화파, 베 니스 화파, 또 플랑드르파에 접근한댜 ® 낭만주의는 전통을 전적

® 바쟁 Bazin , Genna in 저 『 양식의 언어 Le lang a g e des s ty les 』 (스모기사, 1976) 참조. 바로크화파: 바로크란 말은 양식으로서는 역사적 내지는 형태학적 의미 룰 지닌다 가장 넓은 역사적 의미로는 유럽에서 17, 18 세기에 지배적이었 던 양식이다. 이 용어는 18 세기 말 신고전주의 미학자들이 경멸적 의미로 채용한 말이다. 이탈리아에서 탄생한 마니에리즘으로 로마와 볼로냐에서 1580 년에서 1600 년 사이에 성립되었다. 건축에서는 구상적 형태와 장식이 많은 장대하고 덩어리적인 형태의 경향을 보인다. 형태학적으로는 바로크 양식이 뵐플린 H.Wol ffli n 에 의해 발굴되어 처음에는 르네상스에 반대되 는 것으로서 이후로는 고전주의에 정반대되는 것이었다 . 바로크에 대한 토론은 양차대전 때 활기를 띠었고, 스페인 미학가 외제니오 도르스 Eug en i o d'Ors 는 상당히 넓은 의미를 부여 하였다. 스위스 미술사가 왈드 마르 데오나 Waldemar Deonna, 프랑스 미술사가 엘리 포르 E li e Faure 나 앙리 포시옹 He mi Focil lon 둥은 바로크를 모든 양식발전의 최종단계로 본다. 베니스 화파: 피렌체 미술과 달리 베니스 미술은 진보적이 아니며 조화 적이다 . 그 발전이 피렌체 미술처럼 선적이 아니라 오히려 중심으로부터 파도가 퍼져나가는 것을 연상케 한다.

으로 거부하기보다는, 여러 전통들 가운데에서 자신이 선택한 것 의 폭을 넓히거나 분명하게 규정하기도 한다 . 또 낭만주의자들은 틀의 선정, 여러 경( 景 )의 선택, 다시 말하면 구성 계획을 세심하 게 세운댜 대기의 동요를 극적으로 강조할 때에는 바로크 공간 의 발견에 기초를 둔다. 공기와 빛을 선적인 형태나 사물의 몸 자체에 보다 더 긴밀하게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고전주의자들의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었는데, 이 시도는, 틴토레토 T i n t ore tt o 와 루벤스 Rubens 의 작품에서 넘쳐 흐르는 바로 그 모습으로, 15 세 기 초 미술이 이미 내포하고 있었다. 이것은 르네상스 초기부터 채우는 것을 표방하는 화가와 빈 채로 남겨두는 것을 주장하는 화가 사이에 있었던 투쟁의 역사 가운데 하나로, 이러한 갈등이 나중에 세잔 작품에 잠재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십자군의 예루살렘 입성」에서 원경 표현은, 기를란다요가 그의 유명한 「성

모마리아의 성 엘리자베드 방문」에서 사용했던 방법을 따르면 서, 중개적 경( 景 )들의 깊이를 나타내는 것을 도외시하지 않는다. 어쨌든 공기란, 원근화법적 입방체의 대상이 그려져 있지 않은 여러 부분들을 채워주는 〈분명한 실재〉이거나, 나아가서는 하나 의 〈배경〉일 뿐이댜 이 공기는 항상 명암의 작용에 의해 표현되 거나, 지평선 같은 서정주의에 의해 표현된다 . 2)

2) 들라크루아의 테크닉과 인상주의자들의 테크닉과의 관계에 대해서, 시 냑 P. S ig nac 의 『 둘라크루아에서 신인상주의까지 .!l (제 4 판 , 파리 , 1939) 를 참조함이 유익할 것이다. 벤투리는 이 비평들을, 바이스바흐의 저술에서 풍기는 것 같은 영원한 인상주의라고 하는 다소 모호한 개념의 보다 실 중적인 특징인 〈완성된 것 fini〉이라는 좀더 넓은 개념에 통합시키는 데 기여했다.

낭만주의가 낳은 가장 커다란 새로움은 〈고전적 전개〉 대신 변용 la v ari a ti on 을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고전적 전개란, 그림 전체의 선적인 효과, 나아가서 색채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 서 구성의 모든 부분들을 조정하거나, 또는 연속해서 일어난 일 련의 일화적 행위들을 병치하는 방식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고 전주의 시대는 역사를 구성하는 여러 일화들의 대표적 부분들을 표현하려 했으나, 그 각각의 일화들을 획일적인 양식으로 다룬 반면에, 낭만주의는 반대로 일화의 감성적 특징에 양식을 맞추 는 데 관심을 갖는다. 그리하여 파우스트적 작품들, 햄릿적인 작 품들 또 정열로 가득한 감동적 특징을 보이는 발라드식 작품들 이 나오게 된댜 이제부터 이성보다는, 한 인물의 보다 더 근본 적 요소로 간주되는 강한 정열을 다양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한 댜 떡우스트」 심리학이 들라크루아를 낳았듯이 『시나 Ci nna 』® 의 심리학은 다비드를 낳기에 이론다. 주제의 정체성을 외양의

® 『 시나 』 : 코르네이유의 비극(1 641) . 주제는 세네카에서 옴 . 코르네이유는 바로크와 고전주의 사이에 위치하는 극작가이며 그의 영옹주의는 개인적

관심보다는 윤리적 장대함(충성 • 관대 • 정직)이나 또는 국가의 홍성(애국 주의)에 있다. 영옹이란 이상을 위해서는 죽는 위험까지도 감수하며 그 대 가는 영광이다 . 그의 비극 가운데 한 작품이 『시나 』 이다.

형식적 풍요로움과 다양한 변화 속에서 재발견하게 하는 이 변 이는 현대 미학의 원칙이 된다. 이 원칙은 예술의 모든 분야를 휩쓸게 되어, 예를 들면 들라크루아의 미술, 쇼팽과 리스트의 음 악, 슈만과 베를리오즈의 음악 , 또 무용과 나아가서는 회화 분야 에까지 미치게 된다 . 파니 엘슬러 Fanny E i sler 는 무용가들이 회 전을 할 수 있도록 발끝 부분이 단단한 무용신발을 발명하였는 데, 당시 사람들은 이것에 열광하게 된다. 지젤 G i sele 의 미학이 지배하게 되었댜 3) 그러나 새로운 발레는 전통적 연극무대 배경 과 상당히 훌륭하게 어울려, 가르니에는 오페라 극장을 위해 루 이 극장의 설계도를 재사용한다. 가르니에야말로 고전 연극무대 와 상연실 건축역사에 종결점을 찍은 사람이다? 낭만주의적 예

3) 이 모든 문제는 예술의 특수성, 여러 형태의 활동의 특수성, 규정되지 않은 것의 특수성 둥 여러 특수성이 갖는 일반적 문제에서 기인한다. 예 술적 • 문학적 양식이나 표현 방식을 비교하는 것에 대한 반박을 내가 모 르는 바 아니지만, 그 테크닉이 어떤 모순점을 가지든간에, 그 테크닉은 작품의 외적 특징일 뿐이란 점, 또한 형태를 배경과 분리시킴은 임의적이 라는 점, 그리고 표현해야 할 필요성은 어떤 중재를 선택하든 동일한 정 신적 영역에 속한다는 점 둥을 잊지 말아야 한다 . 4) 연극사는 이제 그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최근 르클레르크 H. Leclerc 는 단행본 『 현대 연극 건축의 이탈리아적 기원, 르네상스에서 17 세기 말 까지 이탈리아에서 형태의 발전』(파리, 1946) 을 출판했는데, 이 분야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얼마나 빈약한가를 잘 드러내주었다는 점에서 기여 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의 저술은 당시 상황을 고려해볼 때 상당히 피상적이다. 이 책은 하나의 실중적 연구라기보다 제기될 수 있는 문제들의 목록처럼 보인다. 긍정적인 부분은 저자가 연극극장의 발 전과 무대의 발전이라는 문제를 구별하고 있다는 점과, 이 발전의 사회적 결과를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사회적 입장에서의 문제는 분명히 제기되지 못했다. 이 주제에 관해서는 1950 년 <사회학 연도>에 실린 보 노 M. R. Bonno t의 서평과, 프라이 M. D. Fre y의 『 예술에 적용된 학문적

지식의 배경 J (비엔나, 1946) 참조. 이 후자는 기념바적이고 문학적이며 사회학적인 의미에서 연극의 형태적 가치가 갖는 보다 더 정당한 의미를 증명하고 있다 . 나 자신은 예술의 형태적 체계의 발전과 한 사회에 있어 서 정신적인 환경이자 건축물로서의 연극 극장의 발전을 비교 할 것을 강 조한 바 있다. 15 세기에 회화가 도시 건축으로서의 극장보다 선행되었다 는 사실을 강조해야 한다. 단일하면서 중앙집중적 인 상징 적 형 태 를 창조 하는 방법을 보여준 것은 우첼로 화파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화파였 댜 중세 연극의 전통적 전개와는 정반대로 르네상스에 있어서의 하나의 무대로 한정된 극장은 그 이후 2 세기 동안의 그들 제작에 대한 느리고 주저많은 해석으로부터 생겨났다 . 마찬가지로, 형태와 배경에 있어서 오 늘날 극장의 발전은 현대의 형태적 혁명이 갖는 아직은 무질서한 여러 특징 중 하나이다. 코로에 대해서는 그가 오페라를 끊임없이 드나 들 었다 는 사실 , 거기 오페라의 〈낙원〉에서 보여진 무용가들의 옆모습을 포착하 여 나중에 이것을 자연을 따라 그린 습작, 더 정확히 말해서 벤투리가 관 찰했듯이 자연을 따라 상상해낸 습작들에 끼워넣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자 한다. 여기에는 세 단계가 있다 . 죽 자연에 따라 시각적 인상을 직접 기록하는 것(전원이나 극장에서), 시적 • 문학적 몽상, 그리고 있는 그대 로 관찰한 것의 조직에 감상적인 요소들을 끼워넣음으로써 화실에서 재 해석하는 것 둥이다. 우리 세대는 이미 우리 선조들과는 정반대되는 이유 로 그를 또한 높이 평가하고 있다.

술과 삶이라고 하여, 옛 공간을 거부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코로는 수련이 있는 풍경을 그리려 했을 때 극 장 맨꼭대 기 좌석에 올라갔었고, 화실로 돌아와 이 풍경들을 다시 손 보 는데, 명암으로 된 이미지와 선으로 된 이미지 사이의 조정을 조심스럽게 유지하는 동시에, 소수의 분명한 경( 景 ) 들 을 입방체 적이며 칸으로 나누는 시각방식에 의한 전통적 조직으로 풍경을 구성한다. 낭만주의는 사물에 대한 전통적 표현과 지각과의 관계를 중요 시하기보다는, 감성과 상상의 영역을 풍요롭게 하면서 전개되어 나갔다 1855 년, 대규모의 현대미술 회고전이 있었을 때, 폴 드 생 빅토르 ® 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 〈 신들이 현대회화로부터

® 폴 드 생 빅토르 Paul de Sa int - V i ctor (l8'Z 7- 1881) : 프랑스 수필가, 비평 가. 테 오필 고티 에 T. Gau ti er 나 아르센 후세 A. Houssay e 와 출판했다. 낭 만주의에 충실했고 연극에 대해 중요한 연구를 했다. 저서로는 『 회화의 신들과 반신들 』 (1864), 『 두개의 마스크』(1 880-1883), 『 현대 연극 .1! (1889) 둥 이 있다 .

물러나고 있댜 신 들 그리고 영웅들이…… 기독교 미술의 위대 한 전형인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 성( 聖 )가족 등은 4 세기에 걸 친 회화적 배합 끝에 이제는 완전히 그 기운울 다 잃어버린 것 같댜 르네상스에 의해 부활된 그리스 신화는 그 새로운 생명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 위대한 범신(洪神)은 죽었다! 프랑스 혁명 과 동시에 18 세기 과학분야의 여러 발견에 힘입은 기술 산업 혁 명을 겪은 현대사회가 전복시킨 최초의 것은 사실 조형어휘였다 . 5) 여러 세대 동안 우리가 동의해온 상징적 기호는 이제 그 명확 성을 잃게 되었고,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교육이 형성된다. 사회 발전 및 기술의 발전으로 생겨난 최초의 균열은 회화 분야에서 나타난다. 즉 아직은 구상적 표현 방식을 문제 삼지 않지만, 대 신 주제의 급변에 따른 변혁이 시작된다.

5) 타바랑A. Tabaran t은 그의 책 『보들레르 시대의 예술적 생활 』 (파리, 1942, 'Z7 7 쪽)에서 폴 드 생 빅토르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

이 시대에 화가들이 개인적으로 겪었던 투쟁에 대한 회고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19 세기 초 미술사를 작성할 때 영향을 미치 고 있댜 학설의 형식적 상반성을 과대평가하도록 하고, 세대간 의 진정한 분계선을 무시하도록 해준 낭만주의와 사실주의 같은 사고의 산물이 창조되었다. 플로베르파와 쿠르베파 같은 문학과 미술에 있어서 사실주의를 대변하는 영웅들은, 어느 면에서 보 나 낭만주의를 거부하기보다는 그것을 연장하고 있다. 1855 년 쿠르베가 세운 계획을 언급하면서, 그가 자신의 고유한 견해로 써 당시의 사상이나 상황을 해석하려 했기 때문에 혁명적이었다

고 말하려면, 존 르월드 ® 식의 확고한 순진성이 필요하댜 6) 모든 표현예술, 모든 살아 숨쉬는 예술은 언제나 예술이 속한 시대의 사고 및 상황의 모델이고자 하는 방식으로써 표현되어 왔다 . 이 여러 예술들 간의 차이는 기술적 방법과 뜻을 나타내는 방법의 분야에서 나타난다.

® 존 르월드 Rewald, Joh n : 독일 베를린, 함부르크 대학, 프랑크푸르트 대 학,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수학 . 저서로는 『 세잔과 졸라 .!) (1936, 1939), 『 고 갱 .!) (1 938), 『 조르주 쇠라 』 (1 943), 『 인상주의 역사 ~ (1 946) , 『 세잔의 서간문 .!) (19 41), 『고갱이 볼라르와 퐁테나에게 보낸 서간문 J (l943), 『 피사로가 그의 아들 뤼시앵에게 보낸 편지』 (1943) 둥이 있다. 6) 쿠르베의 이 구절은, 1855 년에 열렸던 그의 개인전 도록의 앞부분에서 예 술가 자신이 표명한 것에서 뽑았다. 확실히 이 구절은 쿠르베의 〈 주의 〉를 잘 보여주지만, 특히 홍미있다고 생각되는 점은 과연 변하는 것이 얼마만 큼이나 말 • 원칙 • 시각에 관한 선언인지를 알아보는 일이다 . 혁명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제도의 질서를 바꾸는 것과, 제도 자체 를 변경시키는 것이 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혁명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자신이 이미 혁명가인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원칙의 선언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 라, 사실들과 결과들이 결정한다. 쿠르베의 〈시각 〉 이 코로의 시각보다 더 현대적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쿠르베 역시 고전적 시각화의 기준 에 따라 아틀리에에서 재구성했다. 19 세기 예술가들이 그들의 개성을 긍 정함으로써 조형적 혁명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현상학적인 통합 질서를 발전시킴에 의해서였다 . 쿠르베는 새로운 질서를 목표로 했다기 보다 이미 확립된 질서에 대해 반대하고 나섰다 . 푸루동 Proudhon 의 예 술가들의 사고에 관한 연구를 다시 살펴보는 것은 홍미있을 것이다. 그의 연구는 대부분이 쿠르베와의 대담을 재현하고 있다. l 얽 1 년 쿠르베는 행 위에 있어서는 푸루동보다 더 멀리 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역시 예술 분야에서 진정한 대담성은 구상과 주제 분야뿐이라고 믿었다. 진정 한 조형 혁명은 그들 밖에서 이루어졌으며, 예술가의 자유화에 대한 호소 에 도움을 받았으나 다른 차원에서 혁명이 이루어졌다 . 푸루동, 쿠르베, 드 생 빅토르는 주제의 문제를 강조하는 데 서로 동의한다. 1 얽 0 년경 조 형 형태의 세계를 새롭게 해준 것은 시각이었다.

낭만주의 말기에, 예술가들은 두 진영으로 갈라진다 . 즉 과학 과 심사숙고에 의해서 영원한 절대미의 존재에 접근할 수 있다

고 믿기 때문에, 최대의 비인간성에 의존하여 미술의 비밀을 추 구하려는 쿠튀르와 같은 〈이상주의자〉 그룹과, 플로베르의 언어 룰 빌리자면 〈감상의 지평〉과 정열의 비약의 표현에 천재의 원 천이 있다고 믿는 〈낭만주의자〉 그룹이다. 실은 18 세기 중엽부터 시작되었던 이 분쟁이 갖는 중요성은 충분히 강조되어야겠다. 당시에 왕립 건설부는, 폴 드 생 빅토르 가 1 세기 후에 겨우 확인하게 될 그 난국을 이미 인식하고, 〈역 사적 주제〉를 다룬 작품을 화가들에게 주문하기로 결정한다 .71 『앙리아드』 ® 나 고전 비극의 몰락을 낳은 그 난국의 일화는 바로 그 당시의 일이다. 얼마간의 지적 언어들이 상실되어 갔다. 다시 말하면 지난 2 세기 동안 인문주의 교육에 의해서 발전되고 해석 되었던 신화를 통해, 그들의 감정과 판단을 쉽게 전달할 수 있 울만큼, 오비드 ® 의 언어와 비극의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일 이 이제 폭이 넓어진 대중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어서 나 타난 신고전주의도 위기에 빠져, 모든 새로워지고자 하는 시도 가 그렇듯이, 몰락하여 갈 뿐이었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박식 7) 로캥 L. Loc qui n 의 『 1747 - 17 8.5년의 프랑스 역사화 』 (파리, 1913) 참조. @ li' Od '리 아드』 : 1728 년 볼테르가 앙리 4 세를 위 해 쓴 작품으로 국가적 장대 함을 찬양하기 위한 서사시이다. 바스티유에 있었던 시대부터 시작된 이 작품은 1723 년 『연맹시집 Poemes de la L igu e 』 이란 이름으로 아홉 개의 노래로 된 초판이 나온다. 영국에 가서 1728 년 수정, 추가하여 10 편의 노 래를 『 앙리아드 La Hen ria de 』란 이름으로 다시 낸다. 이 시는 종교전쟁을 얘기하고 성 바르톨레미, 앙리 4 세의 출현을 노래한다. ® 오비드 O vi de, Publin s Ov idius Naso( 기원전 43- 기원후 17) : 라틴 시인. 시인이라기보다는 지성인으로서 모든 애가조의 시를 다루었다. 귀족사회 의 총애를 받았고, 세심한 돌봄 속에서 교육받았다. 그리스를 오래 여행했 으며 명예직을 버리고 시작(詩作)에 전념했다. 로마 세속사회에서 가장 절 찬받는 작가가 되었는데, 그의 도덕성이 지탄을 받아 아우구스티누스로부 터 추방을 당한다 . 로마에는 내내 돌아오지 못한 채 유형지에서 죽었다.

한 표현방식이 정신의 유희로 되었고 더 이상 지탱되지 못했다. 다비드식의 노력은 더 이상 지지되지 못했고, 「대관식」은 어떤 의미에서 19 세기에 그려진 최초의 〈실재 우의화〉이다. 쿠르베가 나중에 그의 작품 r 아틀리에」에 특징을 부여하기 위해 위의 작 품의 표현법을 재사용한다. 그리고 이어서 낭만적 비유를 만들 어내는 화가들과, 현실을 중시하는 화가들, 또 이상을 키우는 화 가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는데, 이 분쟁은 여전히 오랜 기간에 걸쳐 지속되게 된다.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약점 때문에 거창한 주제를 다루기를 거부했다고 하는 마네의 작품에서나, 기이 Guy 를 실생활을 그린 화가라고 찬양했던 보들레르의 예술비평에서 도, 주제가 차지하는 비중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얼마 후에, 생 동감있는 예술운동을 따르는 데 무력했던 휘슬러파의 한 화가는 소묘로부터 자신이 멀어지게 된 결점, 자연과 주제를 혼동하게 된 결점을 색채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가 하면, 인상주의 화가 들도 이 문제에 부딪쳐 오랫동안 주저하게 되었다 . 8)

8) 르월드의 『인상주의의 역사』(뉴욕, 1946) 와 I/'회화, 색채, 역사, 현대 회화 사』(스키라 출판사, 제네바, 총 3 권, 1949-1950) 참조.

1870 년 이전에 있었던 작업들 가운데 그 최초의 부분을 보면, 전부가 이 문제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 점을 확실히 알려면, 이 시기에 모네파나 르누아르파 또 바지이으파들이 그린 작품을 보 면 된다. 그 밖에도, 바지이으가 살롱전에서 너무 자주 낙선된 데서 오는 절망감과, 또 주제선택 문제를 이유로 거절당한 뒤의 절망감을 부모에게 미리 알려주려고 쓴 그의 서간문을 읽어보면 된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개최한 최초의 전시회에서조차 주제를 다룬 방법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저속한 주제의 선택에 대해서 도 비평가들은 심각하게 질책하고 있다. 실제로 1880 년경에 와

서야, 인상주의 화가들은, 그들의 매혹적인 작품들에 의해서 그 시대의 연대기 기록자 내지는 도해가가 되고 있으며, 당시의 공 중 앞에서 아니면 적어도 후대들 앞에서, 주제에 대한 당시의 논란을 결정적 승리로 이끌게 된다. 그리하여 1880 년경, 예술가 는 주제의 가치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에 의 해서 존재한다고 세잔이 주장함으로써 회화사의 새로운 장이 열 리게 된댜 그에 앞서 세잔의 동시대인들은 1 세기 전부터 시작 된 투쟁에 결국은 승리하게 된다. 그들은 사실적이며 동시에 시 적인 회화의 길을 창조해 내었고, 그들의 최초의 지도자인 쿠르 베가 부분적으로만 성취했던 것을 다른 형태로 완성했으며, 현 실에 가까울 뿐만 아니라 시적인 전환도 구성해주는 회화 양식 이 필요로 하는 조건들을 규정하였다. 이것은 왜냐하면, 쿠튀르 나 뮈세 같은 관학주의자가 꿈꾸었던 차고 헐벗은 미(美)를 추 가한다거나, 단순히 주제의 선택에 의해서라기보다, 드디어 새롭 게 된 상상 공간을 상징화하는 체계에서 표현방법을 찾을 줄 알 았기 때문이다. 예술의 형태론은 변경하지 않은 채 주제를 현대화함으로써 회 화를 젊어지게 하려고 했던 예술가들을 완전한 표현의 위기로 서서히 이끌어간 모든 논쟁을 여기서 상세하게 분석하려는 것이 나의 목적은 아니다. 다만 그 앞 세대의 것을 능가하거나 부정 하기 위한 시도들이 끊임없이 진행되는 상태에서, 하나의 보기 드문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돗 보이는 그 시점을 포착해 보려고 한 것뿐이다 주제에 관한 논쟁이 증명하는 바는, 사실 토대는 문제시되지 않았다는 점, 죽 예술가들은 여전히 전통적 조형언 어의 일반적 조건을 가치 있다고 보았다는 점이다. 낭만주의는 이미지에 있어서나, 새로운 아이디어에 있어서 커다란 기여를 하였으며, 동시에 공간의 조형적 표현을 위한 안정된 틀을 문제

삼지 않도록 조심하였다. 사실주의 화가 들 도 어 느 정도는 주제 의 논쟁이 다른 모든 논쟁보다 중요하다고 믿었다 . 사실주의의 제 2 세대 를 형성했다고 생각되는 화가들, 확실히 쿠르베의 계획 을 승리로 이끌어간 이 화가들은, 화가와 자연 사이의 관계, 그 리고 화가와 감상자 사이의 관계에 새로움을 도입하였고, 여기 서 급격히 근본적 변혁이 오게 되었다. 또한 이 새로움은 상당 히 혁명적인 기술상의 발명을 동반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류 조 형언어의 역사에 하나의 새로운 페이지를 넘겼다고 말할 수 있 을 정도이다. 그 역사의 단계와 방법들을 보여주고자 한다 . 낡은 조형공간의 몰락이란 문제를 진지하게 제기한 이들이 인 상주의자들이라고 볼 때, 다음 사실을 분명히 이해해야 할 것이 댜 인상주의자들이 갑자기 어느 한 순간에 다른 어떤 것도 아 닌 바로 개혁자가 되었다고 하는 불합리한 생각은 전적으로 지 지할 수 없다 . 오히려 반대로 그들은 한 발자국 한 발자국씩, 때 로는 후회해가며, 때로는 헛된 길을 밟아가며, 고통스럽게 나아 갔던 것이댜 전체적으로 보아 그들은 성취자들이라기보다는 선 구자들이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좀 더 강조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왜냐하 면 최근에 그릇된 견해를 갖고 인상주의 운동의 역사룰 진술하 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부수로 찍혀 나오는 이 책들 은 그 저자들이 누구인가를 알지 못하면 자칫 그럴듯하게 느껴 질 수도 있는 그러한 견해나, 반박의 여지가 있는 단순하기 그 지없는 그런 견해들을 유포하고 있다. 르월드가 지은 『인상주의 역사 !'H is t o i re de !'i mp ress i onn i sme 』나 스키라의 『현대회화의 역 사 !'His t o i r e de la pe in t u r e modeme 』 중에 서 어 느 것 이 중요 한 저술인가는 그 내용을 잠시 검토하면 쉽게 드러날 것이다 .9)

9) 스키라의 책은 자료수집, 정보, 제작에 있어 상당한 노력을 보여준다. 그 러나 전체적으로 높이 평가하기는 어렵다 . 개인적으로는, 몇몇 불균형이 거슬렀댜 이 책을 대충 읽으면서, 현대의 대화가들의 작품에 대한 어떤 정확한 견해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작품 전체에 대해서도 마찬가 지 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각각의 세대의 집단적 작품에 대한 일반 적 개 념 을 가질 수 있 을 까? 한 예술가의 작품들을 복사하여 수집 • 보관 한다는 방책은 거기에 반대된다 . 예 를 들면 1890 년경의 아방가르드를 보 여 주는 보나르의 작품 들 과, 1935 년에 이미 젊은 화가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고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 그의 작품 들을 함께 모아서 보는 경우이다 . 한편, 나의 판단으로는 그룹이나 〈경향〉에 지나치게 중요한 의미를 부여 하는 것도 유감이라 생각하며, 나로서는 이러한 견해는 급속히 지나가 버 릴 것이라고 생각된댜 최근 50 년 동안의 예술을 진지하게 자료 조사하여 객관적 도표를 작성한다는 것은 오늘날 사실 불가능하다. 자료가 부족하 며, 그래서 대중화된 작품에 대해서도 그간 우리가 기대할 수 없었던 것 인 비평이 요구된댜 연구 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보급을 위한 도구인 이 책에 대해 내가 아마도 너무 요구 를 많이 하는지도 모른다. 이 책이 새로 운 집단의 사람들에게 현대회화를 좋아하도록 만든다면 그 목적은 성취 한 셈이다. 물론 커다란 단점이 있다면, 전문성을 단호하게 선택하지 않 았다는 점이다. 죽 교육적인 것을 표방하면서 지나치게 요약한 것도 비판 되어야 할 부분이다 . 책 모습에서 인쇄상의 엄격함과 정보의 억측적이고 피상적인 성격 사이에 있는 근본적 불화합이 보인다.

르월드의 저술은 특히 의심스럽다고 여겨진다. 그가 비평정신 없이 단지 몇몇 귀절로써 바지이으에 대해 진술한 경우만 인용 해 보겠댜 그는 바지이으의 작품의 특징을 밝히기 위해, 유감스 럽게도 잘못 알려진 도표에 의존하고 있다 .IO ) 그는 자신이 사용

10) 이 책은, 형태에 있어 훨씬 더 야심적이며 내용적으로 간략한 르월드의 책과 비교할 수 없다 . 그러나 인상주의 같은 하나의 운동이 역사상의 모 든 에피소드와 관계없이 고립된 하나의 현상이라고 간주하면서, 한 시점 에서 손에 잡히는 자료만 갖고 한 시대의 역사를 연구할 수는 없다. 예술 온 사회적 현실과 동떨어진 하나의 자율적 현상이 아니다. 그 책에서 취 하는 매우 시대에 뒤진 그런 입장에 우리는 당황하게 된다 . 르월드의 자 료분석은 여러 곳에서 이론의 여지를 남긴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르월 드는 그의 책 205 쪽에 r 공원의 여 인J 이 라는 작품을 싣는데, 그 작가를 바 지이으라고 할 뿐만 아니라 이 작품에서야말로 화가가 높은 수준에 이르

고 있다고 서술한다. 그런데 이 작품은 바지이으의 작이 아니다. 파리에 서 1950 년 〈예술〉이 주최한 바지이으 전시회에 나오지 않았다. 인상주의 회화 전문가라면 어느 누구도 그것이 바지이으의 작품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

하는 자료를 대부분의 경우, 정확성이 없이 부당하게 요약하는 데 그치고 있댜 가장 심각한 점은, 그의 책 전체를 지배하는 일 반적 사고이댜 즉 인상주의는 그 당시 문학운동과 관계를 가졌 던 모임, 심지어는 카페에서 소수의 화가와 문학가들이 저녁에 가졌던 모임하고만 관계된 미술운동의 역사라고 그는 보고 있 댜 또 인상주의자들이 어떤 한 시점에 이르러 세계를 표현하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했고, 이어서 이 방법이 국제적으로 파급되 었다는 것이다. 마치도 자연 속에서 아직 알려지지 않은 채로 있는 하나의 자연물이 발견되듯이, 인상주의를 발견되기를 기다 리고 있던 하나의 비밀인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르월드가 인상 주의를 이해하는 바에 따르면, 모든 인상주의 역사는 요컨대 비 슷한 시기에 파리에서 창작하던 몇몇 젊은이들이 만난 이야기에 불과하며, 그들이 하나의 기술적 방식을 점차적으로 다듬어 수 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 바로 여기에서 지난날 르네 상스 기원에 관한 명제들에 지배적이었던, 시각의 오류를 재차 발견하게 된댜 죽 자연이나 인간의 두뇌 속에 완전한 방식이 이미 존재하며 이것을 밝히기만 하면 된다는 착각이다. 저자가 인상주의 기원에 관해 상당히 강조하는 것은 이해가 간다. 왜냐 하면 유행하는 토론의 주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로부터 인 상주의자들이 밀레, 부뎅, 그리고 융킨트J un gki nd 와 맺었던 관 계에 의해, 인상주의자들의 발견이 준비되고 있었다고까지 설명 하고 있댜 이 견해를 따른다면, 당시 젊은 모네가 풍자화를 그 리고 있었던 반면, 부댕은 자기를 옳은 길로 인도하게 될 그 비

결, 즉 자연 자체, 나아가서 자연을 모방한다는 비결을 모네에게 전수하여 주었다는 것이다 . 유럽을 잘 알고 있는 사람치고는 이상할 정도로, 최초의 『인 상주의 역사 』 를 저술했다고 자처하는 어떤 현학적 모습도 보이 지 않고 있다는 사실, 또한 그가 『 후기 인상주의 역사 』 (!)를 예 고하지 않았다는 사실 등을 특별히 강조하지는 않겠다. 이런 식 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 르월드는 인상주의 역 사를 쓴 것이 아니라 인상주의 화가들의 생활에 대한 일화들을 수집했을 뿐이댜 그는 양식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을 뿐 아니 라 , 인상주의 화가들의 위대성이란 그들이 평생동안 모색을 계 속했다는 데 있다는 사실 , 인상주의 창시자들의 운동이 어떤 한 가지 방법의 마지막 어휘를 발견했다고 해서 그 방법을 하루 아 침에 완성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 마찬가지로 인상주의 창시자 의 후계자들은 역사의 보관실에 이미 보관되어 있는 또다른 방 식을 찾는 단계로 이미 나아가고 있었다는 사실들을 모르고 있 었다 . 현대미술의 발전을 무한히 조각조각 나누는 일에 힘쓰며, 그 속에서 어떤 사조들, 반대되는 사조들, 화가 그룹들, 또 다시 그 밑의 소규모 그룹들을 밝혀보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이러한 경향은 르월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현대적인 경향으 로서, 이것은 내가 보기에 완전히 반역사적이다. 이것은 역사보 다는 연대기 서술작업에 가까우며, 예술작품을 화가그룹들을 서 로 대립하여 만들어 낸 이론의 산물로 주장하는 것과 같다. 르네상스 초창기에서처럼 인상주의 같은 미술운동예 있어서 이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의견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어 떤 점에서는, 나로서는 르월드보다도 듀랑티나 에드몬트 매트르 가 했던 역할에 보다 큰 중요성을 부여하고자 한다. 이점에 관해 서는 좀 더 발견해야 될 많은 점들이 남아 있다. 제프로이 Ge ffr o y가

1880 년경에 그의 저술에서 표명한 인상주의 사상은, 작품 자체의 해석에 있어서나 회화운동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중요하며, 특히 고려되어야 할 변수인 감상자와 관계를 지어 해석하는 데에도 중요하다. 모네와 같은 화가에 대한 연구가 일종의 일탈을 한 것 온 바로 위와 같은 사실에서 기인하며, 알베르티의 이론이 르네 상스의 범위를 명확히 밝히기도 했지만 축소시키기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술가들이 행한 발견의 범위를 한정시키는 오해들 도 거기에서 비롯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론에서 창조 의 원천을 찾으려는 이들, 예술의 발전이 이루어지는 관심의 초 점을 이론에서 찾으려는 이들과는 철저하게 견해를 달리한다. 그 리고 예술이론이나 작품들은 모두 가치가 있으며,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다소 철저하고 공정한 가치판단을 위해서는 동일한 차원 에 두고 보아야 한다고 믿는 이들과도 나는 의견을 달리한다. 지 나치게 확립되어 버린 경향들 사이의 평균치인 미술의 파노라마, 이 파노라마를 나타나게 하는 수많은 가치있는 회화 운동들을, 어떤 한 시대가 생산해낼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예술 을 정의한다면 그것은 완강한 고집 자체이며, 진정으로 긍정적 인 해결책의 수는 당연히 한정되어 있기 마련이다. 위의 방법들과 정반대의 입장에 있는 리오넬 벤투리의 책을 얼마 전에 읽어 보았다.11) 이 책은 주목할 만한 소책자인데, 저자 11) 이미 주 1 번에서 벤투리의 책 『 현대회화의 이해를 위해, 지오토에서 샤 갈까지 』 을 인용한 바 있다. 그의 어떤 견해들에 대해 내가 비록 동의할 수 없다고 해도 이런 것 때문에 그 책에 대한 찬탄이나 세잔의 전기작가 이자 인상주의 고문서(파리, 1939) 편집자라는 데서 오는 높은 평가가 훼 손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벤투리는 철저히 나와는 다른 예술작품에 대 한 지적 견해를 보인다. 작품 이해 면에서 내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 이라면 그는 보다 감성적이며 직접적인 감동을 통해서 이해한다. 객관적 인 비평보다 주관적 비평이나, 역사적 비평 같은 서로 다른 견해들이 있

어서 표명되는 것이 좋다고 본다 .

는 방 금 내가 비평한 방법 들 과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에게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작품들을 통해서 발견되는 인간 자체이댜 벤투리는 한 시대에 있어서 다양한 예술가들이 보이 는 여러 경향들간의 화합을 강조하지 않고, 피카소의 경우와 같 이 한 화가의 작품 내부에서의 여러 방식들간의 화합을 찬양한 댜 벤투리의 저술은 말하자면 다른 책들보다 훨 씬 더 위험하다. 왜냐하면, 우선 그것은 놀라울 만큼 지적인 책이며, 예술작품들 에 대한 구체적이고 뛰어난 분석, 미묘한 분석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댜 여기에서 자료카드를 분류하는 일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고, 대신에 작품과 인간이 존재한다. 저자의 목적은 독자 들 로 하여금 미술에 대해 숙고하도록 하는 일이며 이 목적을 거 기서 달성하고 있다 . 그는 예술작품을 숙고해야 할 필요성을 모 르는 사람들에게 예술작품은 보아야 할 가치가 있다고 알려줌으 로써 많은 기여를 하게 된다. 단지 여기에서도 염려되는 것은, 어떤 교의적인 입장이 역사가에게 피해를 입히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 미술비평 분야의 대이론가인 벤투리는 미술이라는 학문을 믿 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는 미학에 관해서는 베네데토 크 로체 Benedett o Croce 의 사고를 근거로 하면서, 유일하게 안정된 가치는 예술가의 변하는 인간성이라고 주장한다 . 그렇다면 서서 히 바자리의 영웅들이나 장 크리스토프류의 위대한 인간들에게 로 다시 관심을 돌려야 할 것인가? 나에게 있어서는 라파엘이나 지오토의 아름다운 영혼보다는 그들이 만들어 낸 몇 폭의 그림 이 더 중요하다. 이 작품들은 여러 세기가 지난 후에도 신기할 만큼 기분좋은 〈대상〉으로, 무한히 풍요로운 해결책들을 담은

〈대상〉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해결책들을 화가가 모두 의 식적으로 이해했던 것은 물론 아니다. 한 세대에 활기를 주는 〈운동〉, 다소 균형잡힌 평균을 설정하는 데 도움을 주는 소위 〈운동〉이라고 불리는 것에 관한 연구(바로 여기에서 오늘날 참기 어렵고 위태로운 절충주의적 경향이 생겨나고 있다)를 기초로 하 는 미술사가 유효하다고 믿지도 않지만, 각 개인의 정신적 특성 을 높이 평가하는 일(이것을 미학이라고 명명한다 하더라도)이 보 다 더 합리적이라고 믿지도 않는다. 피카소나 마네가 우리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그들이 당시의 다론 어떤 화가들보다 더 섬세하고 예민한 정신을 소유하고 있 었기 때문은 아니다. 이 점에 관해서는 그들의 잠재성을 고려해 볼 수도 있겠는데, 피카소와 마랭의 예찬자인 벤투리가 바로 이 경우이댜 12) 그는 흔히 어떤 예술가들이 다른 화가들보다 앞서며 12) 마랭 Joh n M ari n 의 경우에 나는 다소 당황하게 된댜 울 여름 베니스에 서의 비엔날레에서, 이 화가의 작품들이 미국관에 선택된 기준이 나를 점 점 더 놀라게 한다. 사실 지금까지 인상주의적 시각을 충실히 따랐던 보 나르의 동대인이 한 사람 있는 셈이다 . 1875 년에 새로웠던 이 시각이 1950 년은커녕 이미 1920 년부터 진부한 것이 된다. 마랭이 그의 테크닉에 입체주의로의 나아감을 느끼게 하는 보다 현대적 방식을 도입했음을 나 는 잘 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볼 때 시각이 그 형태를 끌어냈다는 느 낌이 들지 않는다. 이 작품이 현대 미술의 한 상황을 보여준다고 생각하 지 않는다 피사로에 대해서도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피사로는 틀림없이 중요한 발견의 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맡았는데, 마랭과는 달리 진실된 길 에 대해 전연 의심하지 않고, 운명이 결정하는 것에 대해 일찍이 의식했 던 사람들 그룹에 속한다. 반대로 나는 그가 실행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의 빛은 회색이며, 그림들은 어둡다. 화가라는 점에서 는 제한된 감이 있으나 그러나 창조적이었던 시슬레와 비교할 수 없다. 1860 년에서 1900 년 사이에 양식 발전을 보인 시슬레보다 더 풍요하고 더 일관성있는 강연을 피사로에 대해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시술레는 인상주 의 양식이 하나의 교리가 아니라 미적 사실로 인정받도록 하는 데 보다 더 많은 기여를 했다 .

이들에게 가르침을 주었다는 사실이나 , 감상자에게 일어나는 영 혼의 동요는 곧 화가의 인간성을 대신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래도 역시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영혼의 동요란 그 예 술가가 살았던 환경에 대해서 전연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여러 세대에 걸쳐서 자신을 강하게 내세울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외적 인 방법으로 표현되는 한에 있어서만 중요성을 갖는다는 사실이 댜 나는 크레타의 여신상에 직접적으로 감동을 받은 적이 있는 데, 그 때는 솔직히 그 작가가 영감을 받은 원천이 되는 미학 적 • 정신적 가치에 대해 전연 아무 것도 상상할 수 없는 상태에 서였댜 인간성의 숭배에 기초를 두는 미술비평온 내 견해로는 너무도 허약해 보인다. 이러한 비평은 결국 우리들의 취향과 감 정에 따른 주관적인 표준을 연구하게 한다. 그러나 미술작품에 는 무엇인가 보다 객관적인 것, 학문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무엇 인가가 있다고 생각된다 . 인간의 역사란 실제 일어났던 일들의 역사이지 의도했던 것들의 역사는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 술사는 작품들의 역사이지 인간들의 역사는 아니다. 이루어야 할 진정한 목표는, 한 시대에 제작된 수많은 작품들 가운데서, 인간 자신을 표현하고 이해하게 해주는 방법을 인간에게 제공해 줄 수 있는 표현원칙을 내포하고 있는 작품을 발견해내는 일이 댜 보즐라는 세련된 인물이었다거나 보왈로는 염세적 인물이었 다고 말하면서, 언어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운 동에 관한 연구나 또는 작품을 만들어 낸 인물에 관한 연구를 통해서 미술비평의 정체성을 규명하려 한다면, 이는 우리 시대 가 낳은 작품이 될 것이 틀림없는 〈문화 인류학〉의 발전에 불가 피한 요소들 중의 하나로서 우리들의 미술비평 연구가 자리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다시 한번 제거해버리는 것이다 .13) 인상주의자들이 불러일으킨 공간 형상화의 변혁이라는 특수

13) 1949 년 < 사회학 연도 > 가 출판한 논문 r 예술과 사회」에서, 현대 인류학 의 발전과 독창적 미술비평 간의 관계의 중요성을 표명한 바 있다 . 또한 1949 년 < 사회학 국제 학술지 > 에 학술 기사 r 미술과 테크닉』을 출판했 고, 1950 년 8 월 파리에서 제 6 회 국제 역사학 학회에서 발표했던 현대 문 화사에 대한 r 보고』에서 상기 학술기사의 몇몇 아이디어 를 재차 언급하 였다. 파리에서 1950 년 나온 모스의 책 『 인류학과 사회학 g 에 레비-스트 로스가 쓴 서문을 나는 올 여름 상당히 기쁘게 읽었다. 저자는 현대사회 내부에서 예술의 문제를 칙접 다루지는 않지만 인류학이 오늘날 계획하 고 있는 것들을 전부 언급하고 있어, 결국은 중세 초기로부터 매우 발전 해온 서구 사회에서 에술작품에 대한 사회적 • 역사적 해석을 출발점으로 해서 오늘날 제기되었으면 하는 문제들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있다 . 그 위에 또 마이어손 M. I. Me y erson 이 그의 인간 비교심리학 연구에서 취한 방향 역시 내가 최대로 관심두는 바와 깊이 합치되고 있다 . 제 1 장의 주 23 번에서 지적한 그의 개인적 연구는 물론이고, 마이어손은 < 정상, 병리 심리학 잡지>에 언어의 형태나 인간표현의 다양한 기술에 관한 일련의 특집호를 출판하기 시작했으며, 이 논문들은 미술사를 비롯한 여러 분야 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이 특집호 가운데 제 1 호 『 문법과 심리 학 』 은 1951 년에 출간되었다 .

한 문제에 관한 한, 인상주의자들이 그들의 작품에서 시각언어 를 상당히 발전시킴으로써, 세속적 규약에 매여 있던 화가들과 대중들을 해방시켰고, 지금도 계속 추구되고 있는 연구를 개시 하였다는 사실을 논증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 공간 형상화의 변혁이 끼친 영향력은, 15 세기에 조형막 위에 기록된 기호와 상 상적 표현이 일관성있는 체계로서 발전케 한 변혁과 비견될 만 하다. 하나의 새로운 언어에 불가피한 요소들은 바로 이러한 변 혁속에 존재한다. 게다가 그러한 전환기를 나타내 주는 자세한 시점과 작품을 지적할 수 있다고 상상할 정도였다! 어떤 발견이 미치는 영향력 은, 그 발견이 가져오는 결과에 의해서만 확실히 알 수가 있다. 사회는 연장을 소유했다고 진보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을 어떻 게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진보한다 . 증기기관을 미개인들에게 주

어봤자 기차를 생산하지는 못할 것이다. 르콰-구르앙 M.Lero i­ Gourhan ® 은, 여러 인간 집단의 기술적 • 지적 진보와 더불어, 발 명과 채용이 갖는 영속적인 관계를 규정해 주는 법칙을 훌륭하 게 이끌어 내었댜 1 4) ® 르로}-구르앙 M. Leroi- G o urhan0911-1986) : 프랑스 민족학자, 원시 역사 가. 고고학적 연구방법 론을 새 롭게 제 시 하면서 발굴장소에 대 한 총체 적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원시인간의 사고, 생활방식에 대한 지식을 발 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민족학적 비교의 위험을 보여주면서 공업 기술적 해석 방법을 제시하려 노력했다. 성적 상징언어로 선사미술 해석 을 제안했다. 저서로는 『사회 와 기술』, 『 사회집단과 기술』, 『 제스처 말 』 , 『 유사 이전 서양미술 』 등이 있으며,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를 역임했다 (19 69- 19 82). 14) 제 1 장의 주 29 번에 인용한 르콰_구르앙의 『 사회와 기술』의 374 쪽과 그 다음쪽들 참조. 그의 책 마지막 페이지에서 르콰 ~구 르앙은 인종학에서 분명히 벗어나 일반적 사고의 차원에 들어간다. 그의 지적들은, 보다 진 보한 사회에서의 기원과 차용의 문제를 좀더 깊이 분석하는 데 유용한 출발점을 제공하고 있는 것 같다. 세련되지 못한 문화에 대한 연구가 제 공하는 교훈을 가장 높은 문화 형태의 분야에 도치시키거나 적용하는 것 으로 끝나지 않고, 여러 인간 사회의 다양한 역사적 발전 정도와 조형표 현이라는 현상의 고유한 특성을 비교하는 연구를 나는 기대하는 바이다 . 제 1 장 마지막 부분에서 신화에 관한 린하르트가 한 연구에 대한 나의 언 급 참조 〈새로운〉 인간 출현을 보여주고자 했던 사회학자들의 오만함에 대해 어떤 건방진 사람이 내 앞에서 지난 여름 비웃은 적이 있다 . 마치 우리가 중세기 프랑스에 다시 온 것처 럼, 갑자기 밤중에 숲 한가운데 있 다고 할 때, 또는 배 를 타고 물 위에 떠 있었다고 할 때, 우리는 슬픈 얼 굴을 하리라는 것을 그 불행한 사람은 이해하지 못했다. 인간에게 차이 심리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함은, 인간 본성이나 우리의 신경체계 발 전의 지속적 특징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사회적 인 것에 점령되며 집단에 우리를 합치시킨다. 왜냐하면 인간은 근본적으 로 적응하는 존재로서 내 견해로는 자동인형보다 약간 나은 존재이기 때 문이다. 이 주제에 관해서는 샤토 M. J. Cha t eau 의 『어린이 놀이에 있어 실재와 상상 』 (파리, 1946) 과 『세살 이후의 어린이 놀이, 그 성격과 훈련 (교육학 입문) 』( 파리, 1946) 참조 . 이 교육학 분야의 창시자는 휴버트 M.R. Hube rt이다 . 특히 그의 논문 r 교육학 논문』(파리, 1949) 참조.

현대미술의 기원을 알기 위해서, 1870 년에서 1880 년 경까지 의 인상주의자들의 작업을 연구한다고 해도, 화가 들 가운데 누가 어떤 한 시점에서 더 진보하고 있었는가를 설정하기란 어려울 것이며 더 나아가 어떤 작가의 작품이 그 사람의 손으로 제작되 었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그 작품을 특징이 있다고 계속 간주 할 수도 없을 것이댜 한 개인에게, 역사상의 한 위치, 하나의 고정된 역할을 통째로 부여하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다. 한 작가 의 작품에는 좋은 것도 있고 좋지 않은 것도 있기 마련이다 . 미 술사는 각 화가에 대한 책들과 작품들을 총망라한 도록들로 가 득하기 그지없다. 한 시대의 미술과 동시에 지적 생활의 진정한 표적이 될 수 있는 전형적 작품들을 우리는 아직 충분히 찾아 보지 않았다. 작품에 들라크루아나 앵그르, 또는 모네 등의 서명 이 있다고 해서 그 작품이 틀림없이 훌륭하거나 의의가 있으리 라는 법은 없다. 그러므로 각각의 화가에게 엄밀한 역할을 부여하는 데에 신중 을 기하면서, 사회를 대변하는 영속적인 언어의 하나로 간주되 는 조형예술의 발전에 진실한 표적이 된 작품들을 발견하는 일 이 참된 문제이댜 르네상스의 가장 저명한 작품들 가운데, 작품 의 작자를 추정하려 할 때 봉착하는 어려움을 상상해 보라. 상티이에 있는 콩데 박물관 소장품 r 시모네타 La S im one tta」 가 폴라이우올로 작인지 피에로 디 코시모 작인지 모른다고 해 서 이 그림이 덜 아름답다거나 덜 의의가 있다고 하겠는가? 로 마네스크 벽화나 카롤링거 왕조 시대의 세밀화를 연구할 때, 예 술가의 이름을 전혀 알지 못한다고 해서 불편을 느끼는가? 사실 가장 훌륭한 발견을 내포하고 있으면서 또한 가장 커다란 영향 력을 끼친 작품들이, 항상 가장 완벽하지는 않다는 사실, 아니면 적어도 가장 균형이 잡혀 있는, 다시 말해서 가장 매혹적인 작

품은 아니라는 사실을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만일 한 시 대의 걸작들을 모아 화랑을 만들어보려 할 때 선택되는 작품들 이, 특정 연구분야와 관련하여 일련의 중요한 작품들을 발견하 려 할 때 선택되는 작품과는 같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는 바이 댜 결정적으로 찾아야 할 미술사란 존재하지 않으며, 이점이 바 로 그 유명한 예술운동을 연구할 때 생각하게 되는 점이다. 현재 우리 시대에 전개되고 있는 한 새로운 조형언어의 발전 이라는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작업이, 인상주의, 더 정확히 말하 면, 인상주의 미술의 어떤 측면들로부터 벗어나고 있다고 나는 절대적으로 확신한다. 이 작업은 점차적으로 다른 구상적 공간 체계들을 대신한다. 이는 기본요소의 합리적 정밀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음 세대들이 초기의 방식을 사용하거나 변경시킨 실 증적인 경험들에 따라서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3 세대들이 기울 였던 기술적이고 감성적인 관심을 잘 보여준 몇몇 작품들에 화 가나 대중이 할애한 의의를 볼 때, 르네상스 시대의 변혁만큼이 나 심오한 변혁이 확실히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 증거를 제시하여야 하며, 여기에서 역시 르네상스가 어떠했는가를 좀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선은 인상주의자들이 그 후계자들에게 남겨준 실증적 교훈 이, 인상주의자들이 행한 뛰어난 발견에 있지 않음을 확인해야 한다 인상주의에 있어서 빛의 작용에 대한 분석이 가졌던 역할 은 충분히 논의되었다. 인상주의 운동에 대해서 얼마 안되는 호 의적인 비평둘이 민감하게 포착했던 것이 바로 이 첫번째 측면 이었댜 그러나 염려되는 것은, 그 다음에 그들이 의도했던 문학 적인 면을 너무 강조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공기의 떨림이 라든가, 대기 중에서 흐르듯 움직이는 미세한 기운 둥, 한마디로 말해서, 인상주의에 호의를 가진 감상자들이 처음에 포착한 것

은 바로 이 서정적 측면이었다. 말하자면 이 사실은 필수적이었다. 이 독창적 미술의 표현 가 치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 가능성이 아직 증명되지 않 은 새로운 테크닉과는 거의 필연적으로 무관한 영역으로부터, 몇몇 표준을 이끌어내야 했다. 번역에 의하지 않고서는 익숙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넘어갈 수 없다 . 그러나 단지 노력의 진 지성을 이해하는 것만이 중요한 그런 시대는 오늘날에 와서는 이미 지나간 것 같댜 우리는 인상주의 미술을, 과거에 논쟁을 벌였던 사람들이나, 연구를 통해 밝혀진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한 이들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 핵심이 되는 문제는, 빛으로 인해 일어난 감각을 기록하는 일 이, 공간표현 방식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알아보는 일이댜 어떻게 보면 그것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간주해 버 리고 싶기도 하다. 사실 가까이 접근하여 잘 관찰해 보면, 인상 주의 대부분의 그림들이 보여주는 구성의 골격은, 고전주의 그 림과 철저히 유사하다는 점을 곧 알아볼 수 있다. 19 세기 (1867) 최초로 진정하게 광선을 다룬 작품들 가운데 하나안 모네 작의 유명한 「늪지 Greno uill ere 」를 예로 들어 보자. 빛의 혼들림을 재 현하는 무수히 채색된 붓터치 밑에서, 구성의 받침점은 희미해 지고 있지만, 그림은 여전히 전체적 선들로 환원되어 그 유명한 르네상스의 입방체적 공간을 암시하며, 감상자는 여전히 누구나 다 잘 아는 알베르티의 열려진 창문을 통해 대상을 파악하는 피 라미드 원근법의 시각으로 작품을 보게 된다. 르네상스가 발전시킨 전통적 방식에 맞추어, 작품의 주제를 나타내는 전체적 선들을 배치하는 방법은, 다수의 인상주의 작 품을 낳았고, 이 작품들은 대개 가장 뛰어난 작품들이다. 모네의 가장 암시적이며 제일 희미하고 몽롱한 작품인 r 짚가리 Meules 」,

「 루 앙 대 성 당 Ca t hedrales 」 , r 런 던 다리 Ponts de Londres 」 를 보 면 , 틀 을 설정하거나, 깊이에 따라 경( 景 )들을 분리하는 데 있어 서, 구성의 전체적 골격은, 아직도 철저히 전통적임을 확인하게 된다. 가장 모호한 인상주의 풍경화를 그래도 알아볼 수 있는 것 은, 바로 이들이 공간 형상화에 있어 그 전시대의 체계를 지 키고 있기 때문이다 . 이미 이 현상을 인상주의적 〈 망grill e 〉이라 고 지칭할 것을 제안한 적이 있다 . 15) 이와같이 구성된 그림들은, 일정한 수의 표준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여러 차례의 기록을 인 화형(印 畵型 )을 가지고 중첩시켜가는 색채 사진의 방식을 따르 면서, 몇몇 점들에 의해 일치하는 두 개의 이미지를 겹쳐서 만 든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세계를 색채로 표현하는 방법이, 르네 상 스 의 공간 표현에서 가져온 소수의 선적 요소들로 된 캔버스 와 서로 겹쳐지고 있는 것이다.

15) 이 점에 관해서는 인상주의에 관해 출판한 나의 두 권의 책인 『 인상주 의 』 (파리, 1937), 특히 l

그 밖에도, 인상주의자들이 초록색과 푸른색으로 그림자를 칠 함으로써, 대상의 고전적 윤곽선 대신에 의미를 지닌 기호들로 된 분명한 조직망울 만들어 냈다고, 그간 반복적으로 얘기되어 왔댜 그렇지만 그들이, 행위와 장소를 알아보는 데 불가피한 깊 이와 거리의 실제적 관계나 특징을 나타내는 색채로 된 터치를, 인물이나 사물 주위에 삽입할 필요를 느낀 최초의 화가들은 아 니댜 르네상스 화가들은, 인물들 주위에 공간을 파헤쳐나가는 볼륨과 명암도의 체계를 세우기 위하여, 나체 인물 밑이나 사물 주위에 주름진 헝깊울 그려 넣었다. 그들 역시 윤곽을 보충해 주는 채색된 표면을 가지고 화폭을 여러 칸으로 나누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16)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오로지 데생으로만 화

16) 로트 M. A. Lho t e 는 그의 저술 『 회화에 대해 말하자 』 (파리 , 1936) 와 『 우 선 회화를 』 (파리, 1942) 에서 날카롭고 암시적인 견해 를 보여준다. 특 히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에게 화면을 칸으로 나누는 문제와 명암의 분배문 제를 잘 느끼도록 해주는 마방진과 카팻 예술에 대해 쓴 부분을 나는 상 기해 본다.

폭의 칸을 구획한 것으로 흔히들 생각한다. 15 세기부터 형태표 현을 색으로 할 것인지 선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갈등이 있었 고, 그 중 가장 치열했던 논쟁을 우리는 보았다 . 즉 유일한 빛의 원천으로부터 공급된 채광에 의존하는 방법은, 채색된 이미지와 선으로 된 이미지를 반드시 일치시켜 주지는 못하였다. 결정적 인 균형을 제공하는 명암이란 것도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한 댜 성문화를 좋아하여 협정된 가치기준을 설정한 것은 볼로냐 의 관학주의자들인 절충주의자들이었다. 그 기준에 의하면, 파 랑, 빨강, 초록, 노랑색 등이 상징적 의미와 동시에 일정한 공간 적 의미를 지닌댜 1 7) 예를 들면 초록색은 먼 곳을 표시하는데, 또 한 풍경이나 헝깊에 의해서도 먼 곳을 표현하게 된다. 또 파랑 색은 휴식을 나타내고, 빨강색은 운동감을 나타내 준다. 색채에 의해서 공간과 특징을 함께 표현하는 전체계가 존재한다. 결국 인상주의자들이 색채로 공간과 대상을 직접 표현하는 법칙을 도 입했지만, 이것은 그들 이전의 세대들이 그들에게 전달해준 교 훈 속에 포함되어 있던 체계를 다시 사용한 것에 불과하다 .

17) 이 점에 대해서는 < 회화 조각에 대한 왕립 아카데미 강연 > (파리, 1 88.3)의 여러 부분 참조 . 고전주의자들은 색채의 공간적 가치에 대해 우 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게 의식하고 있었다. 이 주제에 대해서 는 < 정상, 병리 심리학 잡지 > 에 실린 라피크M. Ch . La pi c q ue 의 학술 논문참조.

「정원의 여인들」에서 모네는 인물들 사이사이에 채색이 있는 붓터치를 하고 있으나 인물 그리기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명암 으로 그린 밑그림과 선으로 그린 밑그림과의 관계는 변형되어

있기보다는 오히려 전 복되어 있다. 한 교묘한 수단을 다른 수단 으로 대신한 것 으로서 , 공간 감각이나 공간 표현 감각이 근 본적 으로 변화된 것 은 아니다. 대상의 기하학적 표현과 광선적 표현 과의 부조화 문제 를 명암이라 는 타협을 통해서 해결하도록 해 주었댜 타협이란, 선과 색채에 의한 두 종류의 공간 형상화 사 이에 선의 분명성을 희생시키면서 균형울 유지시키는 그림자 부 분의 창조이다. 인상주의자들은 이 문제의 소여를 전복하지 않 으며 , 양보하는 쪽은 형태이다. 채색된 터치로 된 윤곽은 대상의 기하학 적 윤곽을 물리치고 형태 를 지배한다. 예전에는 어슴푸레 한 빛으로 희미하게 윤곽의 주변을 다름으로써 색채가 윤곽에 종 속 되었댜 이제부터는 윤곽이, 당당한 색채 터치에 감추어져 겨우 암시된 혼 적에 불과하지만, 그렇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마네는 라파엘에서 얻어온 인물 그룹을 참고로 하여 그 주제 에 모 든 노력을 기울여가며 「풀밭 위의 점심식사」에서 그 대담 성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에, 모네는 고전적 시각에는 관여함이 없이 , 선과 색 사이의 관계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하고 있다. 거기에는 시각이 아니라 기법의 전복이 있다 . 이 초창기의 인상 주의는 공간을 새롭게 보는 방법이 아니라, 공간을 새롭게 형상 화하는 방법을 제공하고 있다 . 이 초창기의 인상주의는 감성적 공간을 구성하는 새로운 요소들의 통합을 가능하게 하고 있으 나,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새로운 언어의 출현에 필요한 조건인 정신적 거리 및 구상적 체계는 뒤엎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아직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개념들, 인간의 상상 속에 너무나도 깊이 뿌리박혀 있는 개념에 대해서 인상주의가 얼마나 충실했는지 증명하더라도, 인상주의의 의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댜 그 밖에도 인상주의는 공간 형상화를 위한 여러 기법들 사이의 관계를 변경시킴으로써 새로운 문제들을 발견하

게 해주었댜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에서의 운동, 즉 몇몇 원칙 들을 추종하는 새로운 멤버들이 계속해서 가담함으로써, 점진적 으로 발전해 나가는 고립된 운동이 아니었기 때문에, 인상주의 는 역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인상주의자들은, 주제의 문제, 야외의 문제, 빛이 선적 형태들과 갖는 관계를 구별해서 표현하는 문제 등에서 출발하여, 독창적이고 진실된 해결책은 전연 다른 차원에 있다고 하는 사실을 발견했다. 실제로 문자 그대로 그러한 해결책을 발견했다기보다 직접 보여준 셈이다. 전에 리오넬로 벤투리는, 1880 년 이후 인상주의자들이 회화의 방법이나 목적에 있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라서, 인상주의란 일시적 이상과의 만남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린 적 이 있다 18) 르월드는 이 입장을 과장하면서, 그의 책 『인상주의 역사』 이후에 는, 1886 년부터 세 잔이 사망한 해 인 1906 년까지 에 걸치는 후기 인상주의 역사를 쓰겠다는 그의 의사를 오늘날 예 고하고 있다. 앞질러가던 스키라는 1906 년 이후에는 야수주의와 표현주의가 이어지며, 20 년 뒤에는 입체주의와 초현실주의가 등 장할 것이라고 이미 예고했었다. 이런 생각이야말로, 20 년마다 조형언어를 새롭게 하는, 죽 세계의 차원과 가치에 대한 조형어 휘, 다시 말하면 평가를 새롭게 하는 인간의 능력에 대한 놀라 18) 벤투리가 1935 년 < 예술 > 에 실은 논문 r 인상주의』 참조 . 이 견해를 나 의 저술 『 새로운 소묘, 새로운 데생 』 의 33 쪽과, 『모네 , 시슬레, 피사로 』 화집의 서문(파리, 1939) 에서 논의했다. 이것은 용어의 문제만은 아니다 . 명암법 • 분할법 • 점묘법 둥의 순수한 테크닉상의 방법에 대한 분석은, 화가들이 그 방법들을 시도해 보도록 시사해준 사조와 연결해서 볼 때에 만 가치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예를 들어 르누아르 같은 화가들이 몇몇 시기에 분명한 방식으로 제작한 작품들을 조각들로 나누어 버릴 위험이 있다. 한 화가 개인이나 화가 그룹이 그들이 본 것을 복사하려는 충동이 아니라, 우리들이 부여하는 의미와 연관된 가치를 기호를 통해 표현하고 자 하는 깊은 충동을 탐구해야 한다.

운 확신이자, 각 부류의 화파들이 지니는 영향력에 대한 경이로 운 확신에서 나온다 . 나는 정반대로, 인상주의자들의 몇몇 시도 는 진정한 개혁운동으로서의 최초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그 개혁운동의 진실된 목적과 결정적인 방법을 의식하려면 아직 멀 었다고 생각한다 브루넬레스키에서 라파엘로 넘어가는 데는 1 세 기나 필요로 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되며, 브루넬레스키는 다 소 무질서했으나 몹시 풍요했던 1 세기나 걸린 깊은 사고에 의해 서 준비되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나의 견해로는, 19 세기 후 반은 16 세기 보다는 차라리 14 세기에 어울리며, 우리는 여전히 피에로와 알베르티를 기다리는 중이다. 나는 인상주의를 짧은 기간 지속됐던 하나의 〈운동〉으로 보기보다는 오히려 유행이라 는 변덕스런 유희와 전통과의 타협을 통해서 지금도 우리의 눈 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어떤 한 탐구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독립된 미술운동의 발전에서 관념론의 쇄신이 행한 역할의 문 제는 일단 제쳐놓고, 공간에 대한 사유의 발전과 관계되는 부분 만 다루자. 여기서 인상주의의 발전이라는 애매한 말보다는 독 립된 미술운동이란 표현을 택했다. 그런데 19 세기 마지막 30 년 동안에 제작된 작품들을 참고로 한다면, 현대미술 발전의 바탕 을 이룬 실제적 성공에는 세 가지 부류가 있는 것 같다. 어떤 이 들은 공간의 삼각형화(化)란 문제를 제기하였고, 다른 이들은 상 상적 공간의 문제를, 또 다른 이들은 가까이 있는 공간의 문제 와, 깊이에 대한 친숙한 체험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인상주의자 들 가운데 누구도 이 발견 가운데 어느 한 가지에서만 성공하지 는 않았댜 유일한 예는 드가로, 그는 자신의 의도가 갖는 실험 적 가치에 대해 충분히 의식하면서 진보해 나갔다. 19 세기 말 회화에서 공간의 삼각형화가 행한 역할은 이미 오 래 전에 알려졌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초기 단계에 있어서, 사실

아직 이 분야에서 시각과 표현의 전통적 도식과 단 절 하지 않은 채 단편적인 개혁을 도입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드가가 그의 유 명한 작품인 「화병과 여인」을 구성했을 때 그가 보인 대담성은, 마네가 r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 모네가 「정원의 여인들」을 구 성했을 때와 동일하다. 매우 잘 알려진 r 화병과 여인」은, 입방체 라는 사고 자체의 보존을 전제로 하되, 알베르티의 입방체 를 여 러가지로 분해한 전형적인 작품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파괴보다는 화면 구성의 불규칙성이다. 이점에서 우리는 학교식 의 연습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홍미있는 것은, 아직도 완전히 학교식의 연습, 아틀리에적인 대담한 도전에 지나지 않는 이 연습으로부터, 어떻게 지금까지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던 문제가 드러나는가를 실감해보는 일이 댜 우선 「오페라 무대 뒤의 뤼도빅 할레비」를 보더라도 벌써 새로운 것이 나타난댜 말하자면 화면 전체의 절반이 비어 있는 것으로, 전경의 실루엣 뒤는 바어 있기는 하지만, 반대로 어떤 모습으로 채워져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중요한 공간이 있다. 드 가는 이 경우에, 하나의 새로운 확정된 방법이 갖는 원칙들을 설정해 내지는 못하지만, 그 자신의 추구가 갖는 중요성을 그가 예감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체험을, 우리는 계속 발 견하게 된댜 확실히 「무용실」의 예를 보면, 여기에서는 앞서 크 로키에서 간략하게 포함되어 있는 원칙을 활용하면서, 드가는 두 공간, 죽 매우 다른 넓이와 특질을 가진 두 공간을 연결하고 있다. 드가는 r 꽃병과 여인」의 삼각형화에서 보이는 정도의 대 담성은 능가하지 못하지만, 변형이 있는 입방체적 공간의 고전 적 질서를 단위 공간에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공간들을 대 조에 의해서 단일한 하나의 구성 속에 통합시키고 있으며, 이 공간들을 서로 일치시키지는 않고 서로 이웃해 있도록 하고 있

댜 이러한 체험의 마지막에 가서는 놀라운 구성을 보려주는 「카페-콩세르」 같은 작품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입방체적 공간 의 삼각형화가, 윤곽이 없는 공간, 나아가서는 그 깊이를 윤곽짓 거나 잴 수도 없는 그런 공간에 대한 사고의 출발점이 되고 있 댜 뿐만 아니라 여기에서 드가는 모네의 연구와 유사성을 보인 댜 죽 모네는 「수련」이나 「일본식 구름다리」와 같은 그의 마지 막 작품들에서, 드가와는 반대로 선적 골격의 역할을 줄이고 줄 인 나머지, 한계도 크기도 없는 공간, 친근감을 주는 장식적 공 간을 암시하는 데로 나아가고 있어, 이러한 모네의 추구와 드가 는 합치되고 있다. 나는 이미 드가의 이 감성적 공간이, 예를 들면 에스테브와 같 은 현대화가의 시도를 어떻게 낳았는지 비교를 통해서 보여 주 었댜 그러나 동시에 공간에 관한 드가의 시도는 다른 명제들을 제시한댜 「마리 카사트」는, 화면의 채워진 곳과 빈 곳을 아무런 선도 사용하지 않고 격렬하게 나눔으로써, 가장 단순한 명암 대 조에 의해서 깊이를 암시하는 데 어떻게 성공하고 있는가를 보 여준댜 19) 이 시도의 마지막 단계에 레제가 위치하는데 그 중간 에 드가가 있다. 드가는 노년기의 훌륭한 나체화에서, 조형적 직 사각형의 확장을 위해 화면을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대기 중에 19) 채워진 것과 비어 있는 것의 사용법에서 앵그르가 얻어내는 체계적 부 분들에 관해서는, 드니 M. De ni s 의 『이론 』 (파리, 1912) 의 37 쪽 참조. 로토 의 마술적 사각형과 색채에 대해 제기된 이론과 구성면에서의 전환이다. 앞의 주 16 번 참조. 흔히 현대회화는 르네상스가 구상했던 방식들을 다시 채용한다는 점을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 물론 르네상스 방식을 전복하 지만, 한편으로는 계속하거나 더 개량하고, 나아가서는 그 폭을 넓힌다.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한 가지만은 부정할 수 없는데, 이 견해는, 르네상 스가 하나의 덩어리였으며, 한 시대에 발견되고 적용된 영원히 실중적 방 식이었다는 원칙에서 항상 출발한다.

서 무게를 가진 볼륨을 규정하기 위해서 인물들의 형태를 묘사 하고 있댜 이것은 바로 르네상스 예술의 집념이었던 동시에 새 로운 회화인 인상주의 희화가 추구한 것의 일부이기도 하다. 여 기서 확인되는 것은, 세잔 그도 역시, 몇몇 풍경화를 연구 할 때, 처음에는 르네상스의 입방체적 공간을 대담하게 표현하는 길을 택했고, 그리고 실제로는, 4 세기 전부터 완전히 소홀히 취급되어 온 열려진 감성적 공간의 체험을 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네는 「피리부는 사람」이나 그의 몇몇 작품에서, 화폭 밑에 일종의 모퉁이를 암시하는 요소를 삽입함으로써, 개방적이고 자 유로워진 공간이 아니라, 화폭에 담긴 한 인물의 균형 있는 덩어 리가 암시할 수 있는 그런 공간에 대한 감각을 가진 최초의 인 물의 하나였다는 사실을 추가함이, 정당하고 또 필요할 것이다 . 20)

20) 나의 책 『 새로운 소묘 , 새로운 데생 』 의 37 쪽에 r 피리부는 사람」에 대한 분석 참조.

따라서, 역사에 필요불가결한 요소인 시간과 인물의 한계를 넘 어서서, 구체적이 아닌 더듬어 찾아나가는 체험, 때로는 서로 모 순되기도 하는 체험을 통해서, 어떻게 공간의 지각과 형상화를 상호연대적으로 새롭게 하는 문제가 드러나는가를 보게 된다 . 게다가 이 시도들이, 예술가들의 고립된 상상이나 사고와는 다른 요소들에 의거하고 있었다는 점을 내가 모르는 바는 아니 댜 19 세기 말 〈일본식 취향〉이 미술에 끼친 영향은 충분히 연 구되었다. 전형적 학습서인 르월드의 책에 대해서 어떻게 전적 인 동의를 표할 수가 있겠는가? 바지이으 모조품을 중요하게 취 급하는 것만큼이나 우려스러운 확언, 즉, 세잔은 극동아시아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았다는 확언이 그 책에 나온다 . 2 1) 최근 런던

21) 르월드의 『 인상주의사……』 176 쪽 참조. 이 판단을 , 「공원의 여인』을 바 지이으 Baz ill e 작으로 보는 것에 대해서보다 더 동의하지 않는다 . 앞의

주 10 번 참조 .

의 대영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후지야마를 그린 호쿠사이의 판 화를 다수 수집해 놓은 것을 보았다. 에스키스적인 두드러진 죽 흥적 대담성을 갖고 종이에 쏟아놓은 천재적 구성은, 이론의 여 지없이 세잔의 마지막 작품 r 생트 빅토아르」의 영감의 원천이 되었댜 이것은 몬드리안의 r 큰 소나무」가 마네와 드가를 혼합 한 공간의 변형인 것과도 같댜 22) 〈일본식 취향〉은 갑작스럽게 현대 회화의 밀접한 원천이 되고 있다. 또한 이것은, 예전에 일 본보다 좀더 가까운 동양, 죽 비잔틴의 모델이 그 선구예술가들 의 상상을 자극했던 것같이, 이제는 이 일본적인 취향이 서구 예술가들의 상상을 자극한 이국예술의 하나로 되었다. 그러나 일본적인 것을 우리가 지금 연구하고 있는 예술발전의 원인으로 보는 것은, 로마 미술의 기원을 비잔틴이나 알마니아 미술이라 고 보는 것만큼이나 잘못이댜 23 ) 역시 중요한 것은, 요소 자체가

22) 내가 상기하는 호쿠사이의 판화는 『미시모 가시우의 나무』, r 후시 풍 경」, 「긴타이 기오」, 「수워 지방의 사슈 다리」, 특히 『작은 만의 배들」과 「구름 위의 산정』 동이다. 23) 한 형태의 예술이 다른 형태의 예술에 미치는 영향의 성격에 관한 문제 는 일본적인 취향j a p o ni sme 의 문제를 벗어난다. 또한 이 문제는 현대 미 술에서 이국적 예술을 말할 때에도 제기되며, 로마미술에서 동양미술을 말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한 시대나 한 양식은, 발견한 작품에 영향을 끼 친 정신상태에 접근하려는 관심을 갖고 조형적 원천을 결코 사용하지는 않는다 . 홀란드에서 일본판화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던 모네는 극동의 미술이나 문화에 대한 이론을 발전시켜보려는 생각, 또는 이 예술을 체계 적으로 연구한다거나 더더군다나 그것을 모작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 기회에 주어진 교훈을 자신의 개인적 추구에 혼합했다. 모네나 세잔이 보여주는 일본은 별로 일본적이 아니어서 오늘날에조차 르월드는 그것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이다. 일본적인 것과 일본미술 또 원시미술과 원시주 의를 혼동해서는 안되므로, 현대 미술의 이국적 〈원천〉에 대한 홍미있는 일련의 연구가 있기를 기대한다. 물론 이 책의 범위에서는 불가능한 연구 이다.

아니라 통합해가는 과정인 것이다. 현대 미술이 본질 적인 면에 서 볼 때 일본미술이나 흑인미술을 모델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 울 알기 위해 문제를 하나 제기해 보자. 인상주의자 들 이 일본적 인 것에서 취한 것은, 그들이 직접 관찰한 것의 일부 를 확인한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예술가는 결국 자연에 대면한 인간 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세계에서 전개되는 광경에 직면하 여 어떤 근본적 충동을 재발견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 때로 인접 국가들이, 시대와 장소에 따라 그토록 다른 체계를 만들어낸다 는 것은 물론 놀라운 일이다.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그 시대에 사진의 발견이 수행한 역할이다. 이 분야에 있어서도 근본적인 비교가 훌륭한 방법으로 시도되었댜 있 ) 이 비교는, 특히 드가 같 은 인상주의자들이 카메라의 일반적 사용법이 제공해 준 교훈의 사용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 그러나 나는 이러한 비교가 때로 오해의 원인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 어떤 이들은, 인상 주의 그림과 사진을 비교한 책을 잠깐 본 뒤에, 이 세계에 대한 자연 그대로의 시각을 카메라로 기록하는 작업이 객관적 현실에 대한 지식을 넓혀주는 새로운 방법을 화가들에게 제공했기 때문 에, 화가들이 사진촬영의 영향을 받았다고 상상한다. 이는 르네 상스에 관한 근본적 오류에다가, 카메라가 기록하는 이미지의 실증적 가치에 관한 오류를 추가하는 셈이다. 최초의 사진가들 이 그림을 환기시키는 방법으로 대상을 배치한 것은 사실이다. 24) 특히 1931 년 『 미술에 대한 사랑 』 에 실린 바쟁 G. Baz i n 의 논문 r 드가와 렌츠」 참조 . 미학적 견지에서 보면 사진의 역사는 아직도 저술되어야 할 것이 많다. 영화사를 무엇보다 먼저 써야 한다. 또한 다행히도 르월드가 시도한 세잔의 작품과 그 작품에 영향을 준 장소와의 비교 를 참고로 할 수 있으며, 그 중 한 예는 1938 년의 『 미술에 대한 사랑 』 에 실려 있다. 그 의 뛰어난 책 『 세잔과 졸라 』 (파리, 1936) 에 다시 다룬 자료로는 사진 46, 48, 53, 5.5, 57, 63, 68, 73, 81, 87, 89 가 있다.

그런데 이들은 자연의 조건이 아닌, 르네상스의 법칙에 따라서 채광과 그림자의 법칙을 설정하였다. 카메라는 무엇이든 전부 기록하기 마련이댜 사진을 찍는 사람은, 자신의 취미나 그 시대 의 취향에 맞추어서, 촬영에 의해 자신이 기대하는 것을 두드러 지게 함으로써, 어떤 기록이 좋은지 안 좋은지,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롤 표명해야 한다 25) 어떤 대상을 선택하는가의 문제가, 얻어진 이미지의 성격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굳이 강 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진의 이미지는 선정된 이미지 일 뿐, 자연 그대로는 아니다 . 미술의 이미지와 카메라의 이미지 사이에 방향교환이 과거에 있었으며, 지금도 있음은 분명하다. 예를 들면, 눈이 시야의 범위를 선정할 수 있다는 것을 화가에 게 보여주면서, 사진이 화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 것은 사 실이댜 그러나 절대적 오류는, 카메라야말로 예술가에게 시각의 객관적이고 영원한 조건을 가르쳤다고 믿거나, 카메라가 자연 25) 이 점에 관해서 나는 라보르드 백작의 예기치 않았던 명성을 방패로 삼 겠다. 그는 1851 년 런던 국제전시회에 대한 유명한 보고서의 609 쪽과 750 쪽 에서 1856 년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예술의 입장에서 보면, 사물은 이 사물을 보는 것을 배운 사람에 한해서 존재한다. 이 점은 사진이 우리 에게 자세히 가르쳐 준 바 있다. 우리들의 가장 소중한 친구의 초상화, 우리들의 고향 풍경, 우리가 좋아하는 산책로, 우리들의 집 둥의 사진은 이것들 가운데 그 어느 것도 우리가 제대로 쳐다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었는데, 왜냐하면 그것들을 실은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사진 에서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은판사진술이 세상에 나오자 세부의 완벽성은 전체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사실, 이 세부 모 두는 동일하게 중요성을 지니며 , 같은 정성을 필요로 하고 같은 완벽성을 요구하며, 상대적인 색조의 강도가 구성에 있어 중심인물에 중요성 전체 를 부여할 때에도 그렇다는 사실을 중명해 주었다. 이러한 중명은 플랑드 르인과, 홀란드인에 의해서 또한 최초의 표현을 한 라 베르즈에 대해 일 어났던 반옹에 의해서 그리고 능숙한 해석가안 메소니에와, 예기치 않았 던 제작자인 스트라토니스에서의 앵그르 동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대로의 감각을 순수하고 단순하게 기록하도록 예술가를 이끌 었다고 믿는 것이댜 15 세기에 이미 푸케는 구부러진 공간과 시 야의 깊이에 대해서 사색하였다. 인상주의 발전에 있어 원시적 감각 소여의 기록이 한 역할에 대해서 나는 누구보다도 동의하 지만, 반면에 시각을 기계에 의해 기록하는 가능성의 발견이, 화 가들이 그림의 양식에 관한 생각을 발전시키는 데로만 유도했다 고 확신한댜 26)

26) 1945 년 < 스트라스부르 대학 논문집 > 에 『베르그송과 피 카소에 대 한 단 평J% 실었다. 내가 지적한 바 있는, 감각의 원시적 소여에 관한 베르그 송의 견해와 현대 미술의 모든 경향을 대변하는 피카소의 견해 사이의 유사성에 대해 나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 오늘날 미술의 심원한 발전을 일반적인 베르그송의 사고에 접근시키려는 의도가 없음을 명시하고자 한 다. 서로 합치되는 것은 출발점이며, 이 입장은 베르그송적이기보다는 오 히려 19 세기 말의 경험론적인 사변이나 과학주의의 유산에 더 접근한다. 이로부터 베르그송은 지속성과 내가 잘 모르는 신비한 운명의 힘에의 완 전한 종속에 관한 모든 철학을 발전시켰는 데 반해, 예술가들은 창조적 발전 내부에서보다는 행위 내부에서 더 잘 알 수 있는 감성의 새로운 질 서의 원리와 충동을 찾아나가면서, 의부 세계에 대해 적극적이고 창의적 인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인간을 생명이나 자연의 숨겨진 막연한 힘의 도구로 만드는 철학에 입체주의를 접근시킵은 무엇보다 커다란 오류이디 :. 그러나 이점은 현대미술의 진정한 종합평가가 나오게 될 그 시점에 가서 야 토론될 수 있으며, 또한 그 때에 가서야 입체주의와 표현주의 사이에 흔히 세우는 단순한 상반성도 저절로 해소될 것이다.

미술 시각 그리고 더 나아가 미술 대상에 부여된 전통적인 권 위가 의심받기에 이르렀으며,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그 자체를 오려내어서 화가들에게 제공했다는 인상을 사진이 제공했다기 보다는, 새로운 대상, 다시 말하면 감각을 가능한 한 새롭게 수 집하려고 했던 이들의 노력이 정당하다는 것을 사진은 확증하였 댜 사진은, 윤곽을 새롭게 도식화하는 드가의 시도와, 형태를 해 체해 나가는 모네의 시도도 확인하여 주었다고 생각했다 . 그 외

에도 , 사진은 자료가 되는 이미지들을 재생산 또는 무한히 복제 시켜주는 편리한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회화를 구속적 노예상태 로부터 해방시키는 데 이바지하였으며, 세계에 대해 주관적이 아 닌 심리학적 • 분석적 해석으로 회화가 지향하도록 기여하였다. 얼마 후, 움직이는 이미지의 발견은 〈 몽타주 덴 로 인해 가능해 진 방법들을 강조함으로써, 이러한 발전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 였댜 바로 이 몽타주로부터 고갱은 놀라운 구상을 끌어냈다. 이제 단순한 재생산 방법을 벗어난 이 새로운 희화는 점점 더 지각방법의 분석에 관심을 돌렸다 . 그러므로 사진의 이미지와 미술 작품을 비교하지도 않은 채, 객관적 시각 조건을 이전보다 더 잘 숙지한 화가들이, 감각의 객관화를 위한 결정적 가치를 지니는 방법을, 이 시각의 객관적 조건으로부터 끌어내게 되었 다고 결론짓는다면 오류이다. 우리가 어떤 관점을 취하든간에, 세계(이 세계란, 트렌트식의 관학주의자이자 인문주의자였던 푸생 에게서 한 이미지를 끌어낸다면 , 인간 삶을 발레로 표현하는 영원 한 극장이다.)의 변함없는 구조를 탐험하는 화가들이 지니고 있 는 폭넓은 능력을 강조하기 위해 현대미술사를 하는 것이 아니 라, 오히려 새로운 양식을 이루는 조건들을 추구하는 예술가들 의 소질을 부각시키기 위해 현대 미술사를 한다는 결론에 항상 도달하게 된댜

@ 몽타주 : 서로 떨어져 있는 부분들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 모으는 일 또는 방법. 어떤 분야에 있어서나 몽타주는 하나의 미학적 행위인데, 왜냐하면 작품 총체를 제작하기 때문이다 . 일부가 다론 일부와 관계되면서 여러 요 소들로 구성된 특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발터 벤야민 W.Benj amin이 한 15 년 전에 예지있게 밝힌 바대 로, 사진의 발견은 미를 중심으로 하여 오랫동안 지켜온 의식을 파괴하고 말았지만,인) 이에 덧붙여 말할 수 있는 것은, 미의 의식

27) 벤야민 Walte r Be njami n 의 어계화 산업시대의 예술작품』{ < 사회 연구 잡지 > , l936) 참조. 현대사회에서 미에 대한 의식의 발전을 다룬 훌륭한 논문이댜 저자는, 새로 획득된 기술이 확실해지자 곧 〈 인간 개인의 근본 적인 절박한 요구인 사랑과 죽음이 새로운 힘을 가지고 필요불가결해진 다〉고 잘 언급하고 있다. 새로운 환상을 낳는 모체로서의 영화의 가치에 대해서는 다음의 제 3 장 주 11 번 참조. 파노프스키 Pano f sk y의 주목할 만 한 논문 r 움직이는 회화에 있어서 양식과 재료」(트란지션, 1937) 참조. 영 화학은 이전의 가치있는 선구자들을 잊어서는 안된다. 어쨌든 사진과 영 화에 대한 연구는 현대예술에 관한 모든 진지한 연구를 위해서 필요불가 결한 요소이다. 환상의 고전적 개념, 더 정확히는 낭만적 개념을 뒤엎은 〈매체 m edi um 〉에 대해 새롭게 획득된 개념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는 것이 각별히 중요하다. 인상주의(나의 저술 『새로운 소묘 , …… 』 , 12, 110 쪽 참조)는 대체로 바로 〈교감〉이라는 개념에 기초를 두는데, 단지 수정되었 을 뿐인 옛 재료를 매개로 새로운 감각과 이미지를 암시하려 한다. 현대 예술은 재료의 성격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기계적으로 차용했다. 바로 여기에서 미술사에 대한 호기심, 이국적 미술이나 옛 미술에 대한, 또 모든 테크닉에 대한 호기심이 발생하게 되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전 통으로부터 벗어나며, 현대미술은 새로운 탐구의 길로 나아간다.

이 실재란 것으로 대치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사진과 현대 미 술은, 함께 연합해서 새로운 주술을 발전시키는 길, 고정된 이미 지와 활기를 불어넣은 이미지, 즉 이제는 기계적인 재생산과 미 학적 양식화가 공유하는 새로운 의식을 발전시키는 길을 열어 주고 있댜 미술의 영역이 좁아졌다고는 말할 수 없으며, 단지 미래의 목표를 바꾼 것이다. 사진은 새로운 언어의 출현에 필요 한 객관적 조건들을 준비하는 데에 기여하였고, 또 지금도 기여 하는 분야 중의 하나이다 이 새로운 언어란 사실들을 기계적으 로 기록하기보다 새로운 가치 척도를 발전시키는 언어를 말한다. 자연상태 그대로의 감각의 소여를 연구하는 중요성이야 어떻 든간에, 이 연구가 인상주의 이래의 현대 회화가 지니는 심원한 독창성을 은폐해서는 안되며, 지각과 이해를 연결시키는 구조에 대한 추구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현대의 시도들과 모네나 드가의 시도를 하나로 결합하는 깊은 관련성을 분명히 이해하게 된다. 바로 이 관련성에 힘입어, 나는 우리가 인상주의와 더불어 하나의 새로운 조형언어의 발전기를 통과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15 세기와 16 세기에 발전해 나간 조형공간은, 수에 관련된 학 문의 새로운 자료들과, 또 자연의 장면들에 대해 진행했던 목록 조사에 의존함과 동시에, 모든 철학의 영향도 받았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주기의 조화가 아니라, 천공의 조화가 존재하며, 이 조화는 수학적인 이치로 표현된다고 믿었다. 그들은 또한 천체 의 구성과 조형공간의 구조 사이에 어떤 동일성이 있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들은, 카롤링거 왕조 시대의 성직자들과 같이 문 화의 비밀을 독점한 소수 사회 집단에 의해 지배되는 경제구조 내부에서 도덕 체계를 규정하고, 젊은 세대의 교육 훈련 전개에 따라서, 끊임없이 그 조형 공간구조의 좌표를 수정했다. 그들은 세계를 기하학적 형태로 볼 수 있다고 믿었고, 자연은, 행위를 위해 존재하는 연극 무대나 폐쇄된 광장처럼, 인간에게 부여된 영원한 현실이라고 믿었다. 19 세기 말부터는 과학이 좀 더 복잡한 세계의 구조의 발견을 뒷받침하여서, 사회는 그 폭이 이전보다 넓어지고 분방해져서, 전통적 공간표현의 쇄신으로 나아간다. 우선 낭만주의와 더불어 새로운 영웅, 새로운 상상 환경을 창조하였고, 이어서 사실주의 와 더불어 일상생활에 강한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보다 넓어진 사회는, 소수의 특수한 환경에 더이상 만족할 수 없었다. 마사치 오와 피에로에서부터 앵그르와 들라크루아에 이르기까지, 신들 의 세계와 역사의 세계는 크게 바뀐 것이 없다. 갑자기 넓게 열 려진 세계가, 여러 세기가 진행됨에 따라 다시 폐쇄되고 만다. 근본적인 발견, 다시 말해 진정한 단절을 말해 준 발견은, 15 세

기 미술에서처럼 예술가들이 세계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 회화적 풍경을 새롭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세계의 친숙한 구조를 심원화 함으로써라는 점을 예술가들이 알게 된 순간에 비로소 가능했다. 미술의 주된 관심이, 표현되어야 할 규약된 인간사회의 행동 과 장소들의 레퍼토리 제작 단계에서 , 이제는 삶의 비밀을 캐내 는 새로운 단계로 이행했다고 말할 수 있다. 가장 신비스런 것 은 가장 가까이에 있으며, 가장 광대한 공간은 인간의 정신 또 는 인체와 정신의 관계라고 지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다시 새로이, 여러 문화들을 구별짓는 〈 정신적 거리 〉 @ 가 변하게 되었 댜 가장 큰 관심거리는, 외적 모습이나 광경이 아니라 기계론 이었댜 인간은 그들이 소지한 모든 장난감들을 해체하기를 원 했다. 믿어 의심치 않던 자신의 눈이, 질주하는 말의 사지의 위 치를 규명할 수 없음을 곧 깨닫게 되었다. 그러자 곧 커다란 자 연의 신비들이, 전체적이고 먼 곳에서, 세부와 가장 가까운 곳으 로 되어 갔다 . 결국에는 감각의 대상이 중요한 것 이 아니라, 말 하자면 지각기관의 내부에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 포착된 감각 자체가 중요해졌다.

@ 정신적 거리 : 본문 132 면 참조.

서로 매우 다른 르누아르와 드가는, 이 부분에 대해 공동관심 을 가지고 협력하게 되었다. 한 사람은 , 선과 덩어리의 위치이동 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통해서 드러나는 변형을 발견하려 애썼 고, 또 한 사람은, 복합적인 감각 , 다시 말하면, 곧 유행하기 시 작한 새 용어로 표현한다면, 〈복합적이며 다각적인 감각 sensa­ tion s comp le xes, p ol y senso ri elles 〉에 보다 더 민감했댜 이 두 화 가 모두에게 중요했던 것은, 세계에 대한 근접적 시각, 다시 말 하면 총체적 감각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탐색적 시각이다 . 르

네상스의 입방체 적 시각은 무엇보다도 이 세계로부터 멀리 떨어 진 시각이었댜 현대적 시각이란 하나의 비밀을 세부적인 데까 지 발견하려는 시각이다. 어떤 대상의 실루엣을 다론 대상의 실 루엣에 관련하여 배치하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으며 , 하나 의 세부와 방사하는 충만한 감각 사이에 직접적인 반사관계를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 이러한 입장은 원칙적으로 추상적 배경 이나 커다란 경에 잘 어울린다. 또 이 입장은, 원근법적으로 멀 리서 포착하는 르네상스인들의 가득하게 메우는 시각 대신, 다 각적이고 잴 수 없는 공간을 택한다. 화가는 군림하는 지구상의 한 일부의 풍경을 더이상 예술 애호가들에게 제공하지는 않는 댜 현대 화가들의 세계는 의심스런 비밀들로 가득찬 세계이며, 가치나 크기의 낡은 척도에서 벗어난 세계이다. 결국 르누아르가 「목욕하는 여인들」을 또 드가가 r 춤추는 사 람들」을 화면에 배치할 때, 그 인물들 뒤에 무관해 보이는 배경 울 배치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화가는, 단편적으로 기록된 부분 주위의 공간을 구성하는 내향적 성찰로 향한다. 르누아르 나 드가에 있어서 접촉 감각은 근본적으로 동일한 입장에서 출 발한댜 독창적 화가의 이렇게 신선한 입장이 당시 과학이나 철 학의 발전과 무관하다고 그 누구가 감히 얘기할 수 있겠는가? 진실로 반박의 여지가 없는 이 사실에 관해 더 이상 강조할 필 요는 없을 것이다 . 실제로 부딪치는 난관은 그 시대 사람들이 보여준 다양한 표현방식 사이의 관련을 밝히기 위해 어떤 방법 을 사용하는가 하는 점에 있다. 일치되는 점의 확인으로 그친다 면, 조형언어라는 새로운 학문을 회복시킬 수 없을 만큼 더럽히 고 위태롭게 하는 격이 될 것이다. 모호한 사고의 영역에서는 의견의 일치가 쉽지만, 분석을 진행할수록 어려움이 커지기 마 련이댜 이러한 일치의 이유를 영감이라든가, 공통된 감동 또는

심리적 • 사회적 환경으로 결론내리는 해설로 끝나서는 안된다. 서정주의가 문제가 아니라 심리학이 문제이다. 신비주의, 나아가 서 감각의 문제가 아니라 테크닉의 문제이다. 심정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언어의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말해야 한다. 사 회란 실증적 조건에서 발전하기 때문에, 그들의 신화도 합리적 연구의 대상이 될 수가 있다. 현대 미술의 진보는 감정적 동경 에 의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인간의 지적 메커니즘에 의해 설명 된다. 중세는 모든 것에 신이 있다고 믿었다. 사물들은 한 정수인 신의 표현이기 때문에 사물들 간에 거리는 없다고 믿었다. 정신 적 의미의 속성이라고 볼 수 있는 종교적 가치에 의해서 공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일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르네상스 는 신과 세계와의 갈등을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르네상스 는 무엇보다 이원론적이기 때문이다. 즉 세계를 구상적 공간으 로 표현했으며, 이 공간에서는 인간과 사물들이 신의 시선 밑에 서 신과 섬세한 미묘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정해진 법칙에 따라 서 움직인댜 르네상스 공간표현의 근본, 그것은 외적 세계에 대 한 법칙이 실재한다는 신앙에 있다. 앞선 세대들이 설정한 원칙이 불변의 것이라고 믿지 않는 현 대는, 당연히 전통적 공간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고전 학문 의 일반적 법칙을 의심하는 새로운 법칙을 매일매일 발견함으로 써 물질적 세계에 변혁이 오고, 정신의 메커니즘을 보다 더 철 저하게 분석함으로써 그들의 철학적 신념에 변혁이 일어나며, 또 사유의 새로운 변증법을 설정하며, 나아가서는 사회적 거리 에 대한 개념뿐 아니라 일상적인 인간행위의 조건을 또한 변경 시킴으로써, 현대사회는, 르네상스 시대의 물리학적 지식이나 그 계급적 구조에 일치하는 공간으로부터 실제로 이탈하여 나왔다

는 사실은 결정적이다. 그렇지만 화가들이 이제 가까운 장래에 새로운 인간사회를 지 배하게 될 새로운 관계를 하루 아침에 발견한다는 것은 불가능 한 일이었다 . 서구 사회의 역사가 몇몇의 돌발적 재난으로 인해, 1480 년경 갑자기 중단되었다고 한다면, 오늘날 우리가 르네상스 조형공간을 수월하게 해독하는 데 사용되는 모든 가치들은 전연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과 사회가 진취성과 사회적 저항 울 동시에 고려하는 위치에 확고히 자리잡기까지 여러 세기를 거쳐야 했다. 인간이란 물리적이고 사회적인 자연에 대면하고 있는 하나의 기관이나 눈은 아니다. 렌즈가 무심하게 모든 것을 기록하면서 어떤 양식이나 또는 어떤 언어의 근본적 구성요소를 창조할 수가 없으므로 이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 르네상스는 애 초부터 선구자들의 최초의 연구에서 예시되지 않았었다. 그것은 단지 가능할 뿐이었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이점은 동일하다. 인 간이 하나의 체계를 세우는 데에는 수많은 시간을 요한다. 이 체계는 항상 하나의 조정과 여러 타협들을 내포하기 마련이며, 이 체계가 더 이상 풍요해질 수 없기 때문에 더 이상 가치없는 것으로 전락하는 순간이 결국은 실제로 완벽한 것이다 . 19 세기 말의 예술을 평가하는 일은 상당히 어렵다. 아직 우리 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860 년에서 1880 년 사이에 에콜 드 파리에 속한 소수의 예술가들이 당시에 계속되 고 있었던 세계를 표현하는 전통적인 방법을 완전히 파괴하고 나섰다는 사실은 분명하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계속 진보해 나가게 될 분석의 원칙과 새로운 형상화의 원칙을 세웠는데 이 원칙들은 오랫동안 사회적 힘의 근거가 되는 비밀을 독점해온 특권층에 반대하고 나선 인간집단의 체험에 따르는 것이었다.

새로운 화파는 빛의 분석과 옥외에서의 창작을 기초로 하면서, 경을 선택하고 사물 전체를 단안적 시각으로 보는 원근화법적 공간이라는 전통을 곧 파괴하였다. 이러한 전통 대신에 특징있 는 세부 표현에 의한 공간표현과 과학적 분석을 전제로 하며 , 더 나아가서는 매일의 삶은 별로 중요시하지 않는 것을 조건으 로 하는 표현을 선택하였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빛의 특질에 대 한 과학적 분석을 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르네상스의 거대 한 주제들과 물질적인 부속물들의 목록을 버렸기 때문에, 공간 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갖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인상주의자들 은 사회적 테두리와 세계의 이론적 표현에 해당하는 범주들을 부수어 버렸다 . 28)

28) 이 견해는, 인상주의자들의 전시회 스캔들이 단지 테크닉상의 스캔들이 아니라고 보았던 할레비에 의해 이미 표명된 바 있다 . 19 세기 예술가들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처했던 상황의 문제, 나아가서 사회에서 화가 들이 한 역할에 대한 문제는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 . 이것은 현대 미술이 갖는 기능주의의 상당히 중대한 특징으로 , 이에 대한 연구는 1830 년과 1880 년 또 1905 년에 각각 달랐던 〈현대사회〉 내부에서의 예술과 대중의 관계에 대한 판단을 변경시킬 것이 틀림없다. 장 카수 M. Jea n Cassou 는 이 주제에 관해 매우 훌륭한 책 『 현대미술의 상황 』 (파리, 1950) 을 최근에 출판했다.

1880 년경 새로운 조형언어 출현에 필요한 조건들이 또한 새로 운 것에 호기심을 갖는 대중들을 상대했던 몇몇 예술가들의 작 품 속에 어떻게 결합되어 나타나는가는 이미 지적하였다. 또 그 예술가들은, 모든 개혁자들의 운명이 그러하듯이, 새로운 조건들 을 감상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대중을 형성하 는 데 기여했음도 지적했다. 그러나 15 세기 초에 독창적 생각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이, 가설에 의하면 다시 태어나게 되어 있었 던 세계, 이 세계를 표현하는 완벽한 방법을 발명하지 않은 채

자연의 발견에 열중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인상주의자들 역시, 현대세계의 결정적 측면들을 그들 화폭에 매일매일 표현하기보 다는, 오히려 공간 문제에 관해 더욱 새로운 입장을 제시하였다. 여기에서 우리들은 방향을 잡기 위해, 피아제의 상당히 홍미 로운 생각을 다시 찾아보게 된다. 그에 의하면, 개인이나 한 사 희 집단은 새로운 표현체계나 새로운 테크닉에 접할 때 최초의 언어를 시도하는 어린이나 원시인의 상태와 아주 유사한 입장에 처한다는 것이다. 분석이나 형상화의 옛 방법에 대해 진보인 새 로운 방법을 발견하고 나면, 이 새로운 분야에서 먼저와 동일한 솜씨를 보이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자연히 여기에서 기계적 동 작과 발견이라는 두 개의 서로 모순된 힘이 상반적으로 대립되 는 것을 보게 된다 . 이 두 상반된 힘은, 모험을 겪을 때마다, 작 은 사회를 포함한 모든 사회를 끊임없이 추진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억제하기도 한다. 발명에 의해서만 발견이 가능한 것이 나, 사고를 도구화함에 의해서만 그것을 전달할 수 있다. 그 결과 인상주의 화가들이 한 발견은, 분명히 그 혁명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 성격 때문에 발전했었고 그리고 지 금도 한창 발전하고 있는 감상자들에 대해 그들이 가졌던 생각 의 역시 혁명적 성격 때문에, 일시적 평범한 그림으로 속히 고 정되어 버리는 데로 나아가게 되었음은 정상이다. 이러한 현상 은 모든 새로운 언어 발전에 있어 필요한 단계이기도 하다. 사실 인상주의의 새로운 점이 무엇이든간에, 이 회화사의 단 계에서 전통적 조형공간과 그 표현의 절대적 파괴가 있었다고 오늘날에도 말할 수는 없다. 에콜 드 파리에 속한 최초의 개혁 적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체적으로 볼 때, 그들의 대담성이란 단 편적 성격을 지녔을 뿐이다. 미래에 상당한 영향력이 증명될 쇄 신이 분명히 보일 때조차도, 이 개혁은 고전적 형상화의 체계와

여전히 결합된댜 이 점은 마네에게나 또는 모네 , 드 가, 르누아 르 나아가서 바지이으에 이 르 기까지 해당되 는 진실이다. 모네와 시슬레는 채색된 반점 들 의 조직망 밑에서 그 윤곽 을 해체하지 만 , 선정된 경들로 구성된 입방체적 공간 내부에서 사물 들 을 서 로의 관계에 따라 배치하는 전통적 조직망을 계속하고 있다. 드 가는, 낮은 위치에서 단안적으로 포착하는 시각은 포기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적 장면에 대한 회고 를 계속 환기시키는 데 가초를 둔 미묘한 타협에 의해서 신기하게 결합된, 원근화법 적인 공간 내지는 〈기마적 공간〉의 단편들을 대담한 각도에서 오랫동안 투사하고 있다. 이것은 유감스런 일이 아니다. 하나의 새로운 사고가 전달되 기 위해서는, 옛 언어의 용어들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완전히 독창적인 사고는 고독한 것으로 , 원래 전달될 수 없는 법이다. 개혁자들의 커다란 고뇌는, 언제나 새로운 관점에 따라서 현상 의 전체적 해석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수단을 발견하는 일이다. 진보를 위해 여러 단계가 필요함은 절대적 법칙이다. 예술가는 저술가와 마찬가지로 교육자이다 . 인간집단 내에서, 단체의 기억 을 형성하는 법칙에 의해서 그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 29) 우리 는 아는 것만을 표현하며 해독하기 마련이다. 세계에 대한 새로 운 시각의 아주 작은 일부만이 다른 사람에게 즉각 전달될 수 29) 이 점에 관해서는, 〈진보의 단계〉라는 이론을 피력한 , 나의 책 『 새로운 소묘…… 』 의 69 쪽과 97 쪽을 참조하라. 또한 할프박스 M . Halbwachs 의 우수한 사후 논문인, 1947 년 < 사회학 국제 논문집 > 에 실린 『집단의 기 억과 시간』이나 1949 년 < 사회학 연도 > 에 실린 『기억과 사회」 를 보는 것이 유익하겠다. 한 사회의 집단적 기억의 표현으로서의 예술작품의 개 념은 깊이 연구되어야 한다. 이미 언급한 논문 「예술과 사회』에서 나의 지적들을 참조 . 이 문제들은 르콰 - 구르앙이 원시문화에 대해 제기한 것 들과 서로 통한다 제 1 장의 주 29 번과 이 장의 주 14 번 참조 .

있는 법이다. 인상주의가 온전히 과거에 속한 하나의 폐쇄된 현상이 아니라 는 점은 충분히 강조되어야 한다. 이것은 14, 15 세기의 경험주의 적 사고와 이론적 사고 또는 16 세기 아카데미즘의 형성이 각기 독립적으로 전개된 것처럼 간주하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나의 목적은, 어떻게 개혁자들이, 과도기를 거치지 않고, 1870 년에서 1880 년 사이에 있었던 최초의 독창적 시도와 합치하는 방향에서 계속 노력하여 나갔는지, 또 지금도 계속 노력하고 있는지를 보 여주는 일이다. 모네의 작품과 마티스나 피카소의 작품 사이에 는, 우첼로와 페루지노 사이에서 보이는 단절보다 더 절대적 단 절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당시 사회에서 새로운 공간의 명 확한 발전이 어떻게 추구되었는지를 밝히기에 앞서, 인상주의자 들의 나이와 다소 비슷하지만 그들보다 뒤늦게 또 짧은 기간에 걸쳐 성숙한 창조에 이르렀던 한 그룹의 화가들이, 공통된 활동 에 의해서 어떻게 옛것을 완전히 파괴하게 되었는가를 밝히고자 한댜 나이로 보아 세잔은 동시대인으로, 다시 말하면 그 그룹 가운 데 가장 연장자의 한 사람인데, 처음부터 그 그룹에 속했었다. 1880 년경 그가 죽었을 때, 어느 누구도 오늘날 그가 차지하게 된 위치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세잔은 경쟁자들과 같은 재능을 갖 지 못한 채, 오랫동안 왼손잡이로 마비되어 있었다. 르누아르나 바지이으와의 비교는 좀 다르겠지만 적어도 드가나 모네의 작품 과 1870 년 이전의 세잔의 작품을 비교해 볼 때, 우리는 그의 습 작들이 졸렬하다는 것을 발견한다기보다도 오히려 그가 미술의 참된 목표에 대해 얼마나 주저했는가를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 어 1867 년에 제작된 나체화들을 한번 나란히 모아본다면 상당히 홍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르누아르가 쿠르베에서 영향받아 그

린 r 사냥하는 다이아나 여신」과 「그리펑에서 목욕하는 여인」, 바지이으의 「욕녀」, 세잔의 초벌 그림으로 「수욕조」와 들 라쿠루 아에서 영향받은 r 살인」 , r 기상」 등을 들어 보자. 팡탱 라투르를 포함한 개혁적 예술가들이 최초에 어디에 기초를 두고 있었는가 룰 보여주기 위해서는 , 위의 화가들 외에도 모네의 r 카미유」와 바지이으의 「풍경 속의 인물들」을 추가할 수 있다. 그리고 바지 이으의 바그너풍의 판화들과 세잔의 변하기 쉬운 몽상 사이에 홍미로운 비교를 할 수 있겠댜 3()) 1870 년 이전의 위대한 개혁적 화가들의 성격을 보여주는 아직 잘 규정되지 않은 그 집단에 대 한 문제를 여기서 다루려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세잔 스 스로가 독창적인 입장을 늦게야 표명했다는 이 점만이 확인되는 바이다. 그 의에 세잔이 자신의 입장을 확실히 다져갈 때, 우리는 두 개의 근본적 문제, 즉 그의 작품의 통일성 문제와 이 작품의 안 정된 특성 또는 고전적 특성이라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는 사 실을 강조하고자 한다 . 30) 이 구절은 인상주의의 사회집단에 대한 연 구를 제기한다 . 이에 대한 관 • 심은 올여 름 바지이으 전시회 때 강조되었는데, 나는 이에 대해서는 이미 시사한바 있다. 젊어서 죽은 바지이으가 인상주의 창시자의 한 사람이었 는지 여부에 대해 『 인상주의 』 에서 전에 자문해 본 적이 있다. 이 전시 를 보고 나는 바지이으의 문제는 다른 데 있다고 생각되었다 . 이 화가에 있 어서는 아마추어적이고 애호가적인 면이 보이며, 바로 이점때문에 이 화 가의 재능의 문제만이 아니라 각각 화가 개인 들 의 형성 및 현대 회화운 동의 발전에 있어서 사회의 역할까지도 문제시 하게 된다 . 바쟁은 그의 책 『 인상주의 시대 .!I (파리, 1947) 에서 인상주의자들의 정복이라고 우리가 부 를 수 있는 것의 구체적 조건에 대해 현재 우리들이 갖고 있는 지식의 정도 를 놀랍게 잘 요약하고 있다. 새로운 토론, 죽 이 모험에 어떤 사회 적 의의를 부여해야 할 것인지 , 그리고 예술가들은 어디에서 대담성과 제 한성을 얻어오고 있는지, 바지 이으는 수치스런 인상주의자였었는지 둥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져야 할 시기가 왔다 . 이 점에 관해서는 게리프J. Gue rif의 훌 륭한 단평( < 르 몽드 > 지, 1950 년 6 월) 참조.

세잔 작품의 통일성 문제에 관해서는, 그 자신이 표명한 말을 참고로 함이 상책이다. 그가 한 선언은 상당히 많은데, 우수한 비평가들 덕분에 우리는 그것을 꽤 잘 알고 있다. 세잔과 19 세 기 말기 미술 전부를 특별히 잘 알려지게 한 모리스 드니에게 각별한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이다 . 3 1 ) 개인적으로 나에게 인상 깊 은 점은, 이 선언들이, 그것을 정당화해주는 투쟁, 또 세찬의 천 재성이 뒤늦게 형성된 사실이나 그가 종국에 가서 도달한 놀라 운 결과를 정확하게 나타내지 못하는 것처럼 보안다는 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글이나 그의 발언에서, 고갱에 대해 언급 하면서, 고갱은 자신의 〈빈약한 감각〉을 갖고 세계를 두루 돌아 다녔노라고 비난하는 구절이나 , 고갱에 대해서 언짢은 기분을 표명한 그 유명한 구절과 다소 관계되는 일련의 선언들을 발견 하게 된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형태를 〈추〉와 〈구〉로서 환원 시키려는 그의 목표를 굳히는 것을 보여주는 역시 잘 알려진 구 절을 포함하고 있는 글들도 있다.

31) 드니의 책, 『 이론 』 (파리, 1912) 과 『새 이론 』 (파리, 1922) 등은 단순히 풍 요한 자료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인상주의자들, 특히 세잔의 예술을 평가 하는 데 있어 한 단계를 이루고 있다. 파리 미술의 승리가, 두 단계, 죽 1914 년 세계대전 무렵에 완성된 인상주의 정복이라는 단계와, 1930 년과 1940 년사이에 세잔, 고갱 반 고흐의 작품을 발견하고 위치를 정했던 단계 에 의해 가능했음을 잊지 말자. 내가 인용한 작품들은 벤투리의 비평 카 탈로그인 『세잔』(파리, 1936) 이나 또는 도리발 M.B. Do ri val 의 『 세잔 』 (파 리, 1948) 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 세잔에 관한 르월드의 두 권의 책 , 『 세 잔과 에밀 졸라』(파리, 1936), 『 예술가의 교감 』 (파리, 1937) 은 근본적으로 중요한 저술들이다 .

세잔은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의 방법을 따르는 외에도, 그의 제작 전체에서 베르그송 ® 적인 의미에서의 〈감각의 순수한 소 여〉와 〈의식의 순수한 소여〉를 가능한 한 직접적으로 포착하는 데 전념한댜 그럼으로써, 모네 같은 화가, 말라르메나 상징주의

@ 베르그송 Ber g son(1 8.5 9-1941) : 프랑스 철학자. 그는 1888 년부터 그의 논 문 「의식의 직접적 소여에 관한 논문」에서 〈사고에 언어와 동일한 단위가 적용될 수 없다〉라고 주장한다. 어떤 말이 어떤 한 가지를 지적할 수 있는 동시에 다른 어떤 것을 지적할 수도 있다는 이 유동성에도 불구하고, 각 개인의 내부에 살아 있는, 다른 것으로 환원할 수 없는 것들을 표현하기에 는 너무 사회화되어 있고 너무 획일화되어 있다. 베르그송은 바로 이 유동 성에 집중함으로써 그의 저술에서 철학적으로 독특한 양식을 구체화하고 정립하였다. 이 양식이 문학적 차원에 이르고 있다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개념상의 부동적 고정성을 무시하면서, 〈불변의 비유 cons t an t s me tap hores 〉를 사용하여 말을 그 습관적 의미에서 해방시키고 하나의 말 이 다른 말에 의거하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나타내도록 했다.

시인들 같은 문학가들, 드뷔시 같은 음악가 등을 하나로 묶어주 는 현대적 사고의 광대한 조류와 관계한다 . 우리들의 친숙한 체 험의 발전을 목표로 하는 이 사조는, 19 세기 초부터 노발리스 Noval i s 나 횔덜린 Holderlin 같은 독일 낭만주의자들로부터 시 작 하여, 보들레르와 바그너를 거치면서, 생명의 정신적 조건을 분 명하게·분석함으로써 이 세계에 대한 우리들의 지식을 좀 더 새 롭게 하려는 과학의 비평적 노력에까지 이른다. 그러나 이 밖에 도, 회화를 순수한 감각의 숭배에서 벗어나도록 하가 위해서, 이 세계의 일시적인 개개의 측면들을, 안정된 형태 내지는 총체적 규약체계로 귀결시키려는 관심이 세잔에게 또한 있었다 . 이 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한다. 그러나 의견의 차이가 생 겨나는 곳은, 지각된 대상을 기하학적 형태구조나, 구와 원추로 서 환원하려고 했던 세잔이, 그가 갖고 있던 다른 야심들의 범 위도 축소시키지 않았다는 점을 조사하려 할 때이다. 세잔이 그 의 작품을 통해서 인상주의의 감각적 체험과 전통 사이에 세운 조화를 우리는 높이 평가하게 된다. 세잔이 그의 몇몇 작품들에 서 유클리드적 구조를 도입하려 할 때, 물론 그는 아카데믹한 예술과 현대의 시도 사이에 다리를 놓고 있다. 그러나 내 개인

으로서는, 그의 작품의 살아 있는 부분이 바로 거기에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으며, 더군다나 그것이 빛에 대한 그의 광학적 체험 울 생기있게 만든 유일한 수단이었다고도 믿지 않는다. 세잔의 진정한 면모는, 그가 사람들에게 안심을 주는 것을 추구하는 인 물이 아니란 점이다. 때로는 그의 대작인 r 수욕조」 들 같은 작품 에서, 아카데믹한 전통과 아주 가까운 형태구조를 도입하고 있 다는 점에는 동감이다 . 그의 어떤 작품들의 경우에, 바로 그러한 독창성 외에 다른 독창적인 것은 전연 없는지를 알아보아야 할 것이댜 어떤 의미로는 「카 드놀이 하는 사람들」이 전통적이며 입방체적 공간을 전제로 하고 있고, 또 「수욕조」가 피라미드식 의 구성과 푸생의 대칭적 형태 균형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댜 그러나 r 카드놀이」에는 다른 것이 있다 . 즉 볼륨의 구 축, 배경과 인물이 화면의 아랫부분에 동일하게 배치되어, 동일 한 관심의 수준에 위치하고 있고, 감상자와 동일한 정신적 거리 를 유지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r 수욕조」에서도 나무 그룹들이 보이는 규칙성이나 원경에 소실점을 암시한 것이 심원한 사유의 독창성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인물들이 자연으로 된 배경의 중 심에서 인간적 표준으로서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데 그 독창성이 있다 따라서 이 인물들은, 인위적으로 선정된 선명한 시각 영역 의 뒤얽힘 속에서 끌어낸 몇개의 분리된 경을 이제는 더 이상 추종하지 않고 포착된 공간, 사회적 • 전설적 생활의 법칙에 관 계하여 표현된 행위를 이제는 완전히 떠나서 조직된 하나의 균 일한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구성가치나 표현가치는, 모 네의 「정원의 여인들」에서 보이는 형태와 색채의 관계에서보다 도 훨씬 전복되어 있다. 그러므로 세잔이 전통과 새로움을 조화 시켰다고 해서 그를 찬양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더 그릇된 일 로 여겨진댜 카라치 Carracc i@의 법칙을 미학적 평가의 신성한

® 카라치 Carracci(1 55 .5- 1619) : 이탈리아 화가, 장식 미술가. 1585 년 〈자연 아카데미 Academ ia de! Na tur ale 〉를 창설함으로써 볼로냐 화파의 창시자 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 자연 아카데미 교육은 자연을 직접 연구하는 것 을 기초로 하는 상당히 조직적인 교육으로서 후기 마니에리즘의 기술적 묘기나 세련에 대한 반동으로 좀 더 단순한 것을 지향하는데 16 세기 이탈 리아 거장들이 세운 위대한 전통에 그 근거를 둔다. 이 교육은 17 세기에 창설된 유럽 아카데미의 모델이 되었다. 카라치 화파는 아카데믹한 회화 운동으로서, 그리고 또한 뒤이어 일어난 절충주의 운동의 책임자로 평가 된다 카라치의 철저한 탐구는 마니에리즘을 단절시키는 데 공헌한 바 크 다. 또한 수많은 연구를 통해 후계자들에게 현대적 성격을 강조함으로써 17 세기 회화를 구성하는 요소를 발전시키는 데에도 기여하였다.

법칙으로 하도록 하자. 때때로 화합이란 것이 존재한다 할지라 도 이는 위대한 지성인들을 압박하는 질곡인 것이다. 나는 세잔이 현대미술 발전에 진실로 긍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확신한댜 세잔이 자기를 괴롭혔던 몇몇 문제의 해결을 보지 못 했다 할지라도, 적어도 그 후계자들로 하여금, 실제의 제작에 오 늘날에도 아직 잘 동화되지 못한 채로 있는 특수한 해결방안들 로 향하도록 이끌어 주었다. 세잔이 오늘날의 화가들에게 기호 들의 완벽한 어휘를 물려주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모든 감각 을 섬세하게 분석함으로써 세계를 탐험하려는 인상주의자들이 남겨놓은 그 차원으로부터, 견고한 관계에 의해 구성된 새로운 공간체계로 옛것을 대신하려는, 죽 지금 그가 위치하고 있는 차 원에로 그 문제를 이전시켜 놓았음은 확실하다. 흔히들 범하는 오류는, 세잔이 개혁자인 동시에 전통을 재생 시켰다고 찬양하는 바로 그점이다. 세잔은 최초에는 인상주의자 였고, 자신의 소박한 감각을 키워나가, 그가 젊었을 때 세운 이 상에 어느 정도는 끝까지 충실했다. 그가 측정 기준 치수를 만 들었다거나, 초기의 인상주의자들이 규정했던 의미대로 점차적 으로 엷게 칠하는 색의 명도로 대상을 기록하는 데서 이러한 사

실을 확인할 수 있댜 요컨대 낡은 공간 개념에 따라 규정된 하 나의 풍경이나 대상을 그가 제작의 출발점으로 삼는다거나, 관 습적 실제의 행위를 장면 단위로 오려내듯이 구분하는 방식에 따라 기록하는 감각 표현을 변경하는 데서도, 그가 젊은 시절에 세운 이상에 충실했다. 그러나 정반대로, 자연의 변하는 형상들 을 고전적인 조각으로 나누어 규정된 집단이나 또는 개인의 행 위를 표현하는 대상으로 삼기를 거부하는 점에서, 그는 개혁자 였다 다시 말하면, 그는 관례나 전설의 사용을 제거하면서 체험 으로 지각된 부분들 사이에 새로운 연관을 세워나갔다. 그의 진 정한 독창성은 이미 알려진 요소들을 다르게 기록하거나, 날카 로운 감각을 앞선 방식의 구조에 맞추는 데에도 있지 않다. 그 보다는 오히려 시각체험의 새로운 부분들에 관심을 기울인 데에 그의 독창성이 있다. 세잔은 그의 선구자들이 기록했던 것과 같 은 자연의 환각적 감각으로부터 출발하여, 까다로운 선택을 통 해, 가치를 동급지어 분류하지 않으면서 소수의 의미있는 조각 둘을 고립시켜내는 데 성공하고 있댜 그는 피란델로 P ir andello ® 적이고도 베르그송 Berg son 적인 개별적 진실이 갖는 확실성을 자기 작품의 법칙으로 삼으면서, 단순한 의도에 따라, 하나의 단 편적이면서도 유기적인 세계를 창조해 내고 있다. ® 피란델로 L uigi Pir a ndello(1867-1936) : 이탈리아 저술가. 본 대학에서 박 사학위를 받았고, 로마에서 이탈리아 문학 교수를 지 냈다. 소설을 출판하 여 일찍이 그의 저술가로서의 직업을 시작했는데 후기에 연극에서 성공했 으나 그의 생애 내내 문학에 충실했다 . 『 1 년을 위한 소설들군]란 제목으 로 출판된 15 권의 기념비적 저술은 피란델로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확고한 미학적 성과를 집약하고 있다. 또 여기에서 모든 자연주의의 기원이 인간 에 대한 연민과 애정, 초라한 농부, 시실리아의 소부르주아 둥과 서로 만 나고 있다. 그는 자신의 극작품들에서 참다운 자아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 가능하다는 비극적 사실을 다루고 있다. 그에 의하면 세심한 엄격성을 가 지고 풍자적으로 묘사한 이 인간을 작은 조각들로 분열시키는 것으로부터

의 유일한 피신은 조롱, 광기, 죽음밖에 없으며 거기에서 불안이 생겨난다 는 점이다. 프랑스에서 될랭 Charles Dullin , 피토에프 Geor g es P it oe ff에 의해 알려진 그의 연극은 아누이 Je an Anou ilh, 사르트르J ean-Paul Sar- tre, 주네 Jea n Genet 같은 작가들에 게 영 향을 주었다. 1934 년 노벨상을 받았다.

일종의 기하학적 배치를 그가 분명히 도입하고 있지만, 1905 년 작 「성 빅토아르」의 세계가 푸생의 세계와 유사하다고 생각 하려면 전통적 가치를 잘 견지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실은 거 리에 대한 평가도, 여러 중개적 경에 대한 계산도 서로 동일하 지 않댜 「검은 성」은 약간 입방체적이지만, 고전적 그림에서 보 는 물러나면서 나란히 배치된 집들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푸생 이나다비드적인 의미에서 보면 그것은 집이라고 할 수도 없다. 선적 투시로 만든 고전적 틀에 들어가 있는 도시의 길들을 표현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도시의 길들을, 문과 대 학에서 오비드나 호머를 읽은 사람들이나 겨우 그 의미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상상적인 행위를 위한 톨로 간주할 필요가 이제 는 더 이상 없어졌다. 이 r 검은 성」은 틀림없이 한 시골 별장이 지만 세잔으로서는 어떻게 거기에 갈 수 있는지라든가 가까이에 서 보면 어떤 모습이라든가를 잘 아는 건물이다. 또 이것은 우 리가 좋아하며 갈망하는 집이지만 획득할 수는 없는 집이다. 거 기에 나타난 아주 미세한 표시마저도 그것을 의미하고 있다. 신 기한 것은, 우리 모두가 이 집을 보았다는 사실과, 이 「검은 성」 이 우리의 상상 내부에서 어떤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구체적인 공간이면서 동시에 상상의 공간에 그 집이 자리잡도록 한댜 그러나 이 성은 우리의 어떤 욕망, 나아가서는 우리들의 자부심의 대상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세잔은 어떤 문화와 관련해서 규정된 하나의 대상을

창조하였댜 한 반투인에게나 또는 로렌초 데 메디치 Lorenzo de M e di c i시대 사람에게 「검은 성」에 대해 얘기를 건네 보자. 그것 울 〈 너무 서툴게 그렸다 〉 고 분노하는 사람들이 이번엔 또 어느 정도 유심히 그것을 보고는 너무 형편없이 다루었다고 불평한 댜 이 불평하는 이들도 찬양자들 못지않게 세잔의 연기에 참여 하고 있댜 다시 한번 여기서 인간적 체험과 더불어 기술상의 경험에 의해 하나의 기호가 창조되고 있다 . 결 국 주제가 생략된 것이 아니라 전이되었다. 사과와 양파들, 「성 빅토와르산」 , r 빨간 조끼」 등은 일체의 전통적 일화와는 관 계없는 의미를 지닌 구성요소들로 되어 있다. 주제의 쇄신이 실 재와의 직 접 적 접촉이란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쿠르베 이후의 인상주의자들이 그 당시 인물들의 행위나 제스처를 형태가 아닌 명암으로 표현한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였으며, 철저하게 근본 적 인 새로운 식별 요소가 새로운 언어의 바탕으로서 설정되어야 만 했댜 현대 조형언어에로의 길이 강력히 요구된 것은, 당시의 과학과 새로운 인과성과의 연관에서 비롯되었으며, 또한 새로운 감상자들의 요구에서도 생겨난 것이다. 바지이으가 감탄할 만한 작품인 메릭의 「테라스』를 그렸을 때, 과거의 지적 교양의 낡은 조건들 내지는 인간적 가치의 전 통적 평가와 합치하는 개념, 삶과 인간관계의 부르주아적 개념 을 구체화하고 있다 . 1870 년의 전쟁, 그리고 공화정 사회구조 내 부에서 일어난 깊은 변화는 예술가들로 하여금 그들의 상징을 완전히 새롭게 하도록 강력히 요구하였다. 「돌깨는 사람들』의 그 인물들은, 사회적 제권리의 요구에서 볼 때 계급화된 사회 내에서 불리한 위치에 처해 있었다. 쿠르베의 r 아틀리에」는, 일 상적 행위의 근거가 되는 요소들 사이에 연관을 맺어주기 위해 서, 〈현실적 비유〉를 도입하고 있다. 「카드놀이하는 사람들」은,

대중들 중의 몇사람이 아니라, 다소 날카롭고 정열적인 요구를 하는 증인들로서, 그들 자체가 예술의 명백한 구성요소로서 간 주된댜 그리하여 그 유명한 사회적인 계급구조와 관련된 이 주 제에 대한 유명한 토론은, 결정적으로 변형되어 사라지고 만다. 세잔 이래 희화의 목적은, 세계에 대한 화가의 관심이 표현되 는 자연의 단편들을 발견하는 일이다. 예술가의 사회적 위치는 더이상 문제시 되지 않고, 세계 내부에서 그가 차지하는 개인으 로서의 위치가 중요시된다. 가치를 우리 환경의 어떤 일정한 측 면에만 부여하는 이 새로움은, 현실적이면서도 상상적인 새로운 대상을 규정하는 데로 나아갔다. 화가 덕분에 사과는 손으로 잡 울 수 없게 되었으나, 오히려 산은 만질 수 있는 부드러운 것이 되었댜 르네상스 초기에는, 자연 내부에서 하나의 부류로 간주 되는 인간과, 안정된 현실로 간주되는 이 자연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시 되었다. 이것은 세잔이 벗어나고 자 하는 지리적 세계일 뿐만 아니라, 생물과 사물의 상호적 기 능이 고정된 정신적 세계이기도 하다. 예술은 일화나 역사를 버 리고 경험주의와 범신론이 되어, 사과나, 정과 그릇 또는 산 같 은 사물의 역사를 쓰게 된다. 인간들의 일상적인 감정생활의 조 직 내에서 그 사물들이 의미하는 것의 이야기를 쓰게 되는데, 이 인간들은 물질에 접근하는 방법과 물질의 변형방법을 끊임없 이 변화시킨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예술은 사회적 성격보다 객 관적 성격을 지닌다. 이것은 사회보다도 뒤에 처져 머물러 있는 인간 자신의 발전을 더 가까이에서 포착하면서, 자연의 위력을 기계화하는 새로운 시대의 예술이다. 르네상스 공간의 파괴는 세잔과 더불어 하나의 커다란 발자국 을 내디렸댜 비평하는 단계에서 행위를 실증하는 단계로 넘어

왔다 파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낡은 공간 대신 새로운 공 간으로 대체하기 시작했으며, 이것은 바로 사물들의 본성과 맞 아떨어진댜 조형공간의 일시적 소멸이란 생각할 수도 없는 일 이어서, 그러한 과정의 종결점은 사고와 표현이 부재하는 공허 자체일 것이댜 한 사회란, 일정한 물리적 • 지리적 공간이나 기 계적 • 기하학적 공간과 마찬가지로, 어떤 다른 공간으로 옮아가 정착하기 위해서만 상상의 공간이나, 나아가서 표현의 공간을 떠난다 세잔이 차지하는 위치는, 현재까지 사람들이 그에 대해 무엇인가를 세우기보다는 비평해왔다는 사실에 그 특징이 있다. 이번에는 일련의 다른 경험에 자양을 주기에 매우 풍요로운 대 체요소들이 등장한다. 낡은 체계를 다시 손질하기보다는 다른 새로운 체계를 계획한다. 체험이 우리의 눈앞에서 어떻게 지속 되어 나갔는가를 검토하기에 앞서, 나는 우선, 의미가 지닐수 있 는 직접적 가치를 〈새로운 대상들〉에 부여하기 위한 두 개의 서 로 다른 평행된 시도를, 세잔의 교훈이 어떻게 내포하고 있었는 가를 보여주고자 한다. 공간에 대한 사고는, 반 고호에 이르러, 그가 지녔던 병으로 인하여 특수한 성격을 지니게 된다. 그의 전 작품은 그의 광기가 지배한댜 건강한 것과 병적인 것 사이에 정도의 차이만 있는 것 인지, 또는 정반대로 본질적으로 다른 것인지를 자문해 보게 된 다. 어떤 불균형한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전형화된 감각을 변형 시킬 뿐인지, 아니면 더 나아가서 크기의 법칙을 준수하면서, 결 과적으로는 오래된 모든 표현체계를 변형시키는 하나의 철저히 이질적인 요소를 그가 제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 고호의 세계는 어느 정도까지 특수한 것인가? 그 병은 언제 이 가난한 예술가의 지적 체계나 조형언어에 그 파괴적 요소를 도입하는 것일까? 우리는 조형적 창조의 모든 순간에 영향을 주는 질병의

어떤 싹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정반대로, 병자 의 감각을 표현하는 작품의 단편들과, 천재적 인간의 감각을 표 현하는 작품의 단편들 사이에 식별이 가능한 것일까? 이런 문제 들을 나는 단호하게 잘라 말할 수가 없다. 미학자와 의사가 함 께 지은 책이 한권 필요하리라. 그러므로 나로서는 또 다른 하 나의 관점을 갖게 된댜 반 고흐 작품이 어떤 방법으로 이해되 었는지, 또 현대 예술가들이 반 고흐 작품을 어떤 방법으로 사 용했는지에 관해서만 연구하겠으며, 이 점이 어떤 이들의 마음 에는 안 들지 모르지만, 반 고흐 작품을 이해하고 사용한 이들 모두가 미친 사람도 신비주의자들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관점으로 보아, 현대미술의 형성에 있어 반 고흐의 기여 는 두 개의 근본적 요소로 집약될 수 있다 . 첫번째는 드가가 이 미 예견했던 점인 즉 투시체계의 결합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었 던 방법들을 그가 보여주었다는 사실이며, 두번째로는 특별히, 공간에 대한 즉각적 감각 내에서 순수색채에 의해 표현된 명암 의 지각이 하는 역할을 감지했다는 점이다. 그 첫번째 방법이 두드러지게 보이는 「빨래하는 여자들」이란 데생은 다른 곳에서 이미 분석하였다 . 32) 우리가 이미 본 바와 같 이, 드가 역시 단일한 하나의 구성 내에서 여러 가지의 투시 방 법들을 결합하고 있다. 그런데 반 고흐와 더불어 결합의 단계에 서 감각의 단계로 넘어간다 . 배치를 꾸며나가는 것이 아니라, 세 계에 대한 유클리드적이 아닌 단일한 접촉에 의해 조망을 직접 포착하는 것이 문제시 된다. 이것은 드가가 구식 학교에서 교육 을 받았던 반면, 반 고흐는 인상주의자들의 제자였다는 사실로 볼때 당연한 결과이다.

32) 『 새로운 소묘·… .. 』 의 104 쪽과 도해 19 참조.

하나의 양식이 출 현하자마자 이미 창시자들의 체험은 그 이후 에 오는 사람들에 의해 하나의 확실한 지식으로 간주된다. 언어 가 시작되는 것은 바로 이런 방식에 의해서이다. 다양한 체계들 로써 공간을 조각내는 경향은 드가에서보다 반 고흐에게서 더 두 드 러진다 나는 이 특수한 시각에 속하는 몇몇 작품들을 말하 려는 것 이다. 유명한 ”생트 마리의 배」가 그에 속한 예로, 배의 돛온, 풍경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이 나타내주는 공간보다 더 큰 공간에 준해서 취급되었고, 보트나 해안과는 다른 각도에서 그 옆 모습이 처리되었다. 르네상스적 의미에서의 경들의 분리 는 더 이상 문제시 되지 않는다. 계속해서 몇개의 경을 선정하 지만, 척도를 변경해 가면서 그것들을 조합하지는 않는다 . 대신 〈경사진 축〉이라고 말할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한다 . 바로 이 단 순한 방식이 r 의자」란 작품을 낳고, 좀더 복잡한 단계에 이르러 는 세잔이 그린 자기 부인의 「초상화」가 있다. 그리고 이 발전 의 최상의 단계에 속하는 「배」를 들 수 있다. 이제 그 체계가 조직적으로 되어 전달되기에 이른다 . 거기에는 시각만이 아니라 언어도 존재한다. 그의 작품에서 이 부분의 독창성이 어떻든간에 나의 견해로 는, 순수한 색채들이 갖는 관계나 특성 내지는 높이에 의해서만 주로 공간을 표현하는 고흐의 독창성에 비해, 이 앞에서 언급한 독창성은 반 고흐의 전적인 특징이 못 된다고 본다. 바로 이점 에서 고흐는 공동 제작의 한 참가자 그 이상이며, 우리 시대의 천재적 창시자의 한 사람이자, 나아가서는 공간의 현대적 시각 올 고취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 1886 년, 그가 남불(南佛)에 도착한 후 에밀 베르나르에게 보낸 최초의 서간문들 가운데서, 자신의 색채에 대한 감각을 놀라울 정도로 분명하게 분석하고 있다 . 33) 중요한 것은 명암에 의해서

33) 테라스 C. Terrasse 저 『 반 고흐 .!I (파리 , 1935) 의 68 쪽과 그 다음 쪽 들 에 실 린 본문 참조. 들 라 파이유J. B. de la Fa i lle 가 설명을 붙인 카탈로그 Ii' 반 고흐 작품 』 (파리-브뤼셀, 1927) 에서, 내가 지적 했 던 작품 들 의 참고 를 독자 들은 쉽게 찾을 수 있겠다. 인상주의에 관한 나의 첫 저술에서 , 반 고흐 를 한 회화운동에 관한 연구와는 분리하였다. 이 회화운동에 대해서는 반 고 흐를 하나의 〈양식 man ier e>, 죽 초기 그룹전을 승리로 이끈 이 방식에 연 결시키는 엄밀한 개념을 나는 받아들였었다 . 르월드가 그의 책 『 인상주의 사 』 에서 취한 입장이나, 벤투리가 1935 년 < 예술 > 에 실은 그의 논문 「인 상주의」(앞의 주 18 번 참조)에서 취한 입장도 바로 이것이다. 오늘날 인상 주의를 하나의 양식에 밀접하게 연결시킨다면, 이는 위대한 작품들에 대 한 연구를 한계짓는 것이라 생각되며, 그 시대의 지성적 • 감성적 • 사회적 생활의 표현인 이 미술 운동을 조각조각으로 세분해 버리고 말게 될 것이 다. 사실 용어 문제가 중요시 되며, 인상주의라는 용어의 사용을 1875 년에 있었던 양식으로 한정시킬 수도 있고, 또는 1860 년에서 1905 년 사이에 그 들이 겪은 체험의 전체로 확장시킬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무엇인 지를 제기하는 일이며, 역사의 두 측면, 죽 유행 la mode 에 관계되는 면과 양식 le s ty le 에 관계되는 면이 있다는 사실에 주의하는 것이다.

특성을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감성적으로 즉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반 고흐가 남불의 빛과 접촉함으 로써 발견한 것은, 형태나 모든 상징을 명시하는 일체의 것을 완전히 떠나, 깊이를 나타내는 새로운 가능성이었다 . 좀 더 정확 히 말한다면, 색조의 단계적 표현이나 색상의 혼합을 떠나며, 또 한 조형적 통합을 위한 모든 방법 내지는 관계를 넘어서서, 단 지 순수한 색채만을 사용해서 거리를 표현하는 것이다. 여기에 서 바로 절대적 명도를 측정하는 고정된 척도를 설정할 수 있게 되며, 또한 하나의 새로운 언어를 형성하는 잠재적 구성요소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거기에 기원을 두고 있는 것이다 . 반 고호 의 발견, 즉 색채가 순수한 상태에서 갖는 독립적이고 공간적인 특질, 바로 여기에서 오늘날 레제 미술의 중요한 부분이 생겨났 댜 이 점은 나중에 다시 보도록 하겠댜

반 고흐의 선구자인 루벤스는, 붉은색 자체가 구성 전체를 조 직하는 채색체계의 중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플로망탱이 『 옛날의 대가들 』 이라는 저술에서 보여준 「순교자 생 리에뱅」에 대한 유명한 분석이 이를 증명한다 . 34) 그 당시에는 순수한 색조 하나로서 그렇게 철저하게 가까운 곳이나 먼 곳이라는 개념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 이것은 왜냐하면 색조가 지각의 과학적 원리와 합치되며, 여러 다른 색깔들 사이 에 친근성 또는 부조화가 존재하며, 나아가서는 차가운 색 그룹 과 뜨거운 색 그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 반 고흐가 발견한 것 은 하나의 실증적 법칙이었다. 세잔은 색채와 형태를 결합하여 처리함으로써 기호 역할을 하는 사물을 창조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주었으며, 반 고흐는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표 현방법을 새로운 언어에 추가하여 주었다 .

34) 플로망탱의 『 옛날의 대가들 』 (파리, 1 얽 6) 참조. 이 저자는 잘 알려져 있 지 않은데, 언젠가는 인상주의의 선구자들 가운데서 그가 차지하는 위치 를 알려야 할 것이다 . 부댕이나 종카인드와 더불어 그는 1860 년경 중개적 역할을 했던 세대에서 일어났던 경향의 중인이다 . 이 화가들을 개혁자들 과 분리시키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바로 이들이야말로 감성의 단 계에서 의식적으로 해석하려는 의지의 단계로의 전이에 해당한다 . 오히 려 역설적으로 인상주의는 화가들이 인상의 차원을 떠나 양식의 차원으 로 넘어가는 그 시점에서 출현했다고 말할 수 있다. 바로 앞의 주에서 문 제됐던 것 같은 오해는 바로 여기서 생겨난다.

이제부터는 색채가 오래 전부터 지켜오던 상호보완이라는 법 칙에 따라서 처리될 뿐만 아니라, 색 자체로서 절대적 공간을 의미하는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처리되어야 함을 알게 되었다 . 푸른색은 먼 느낌을 주고 노란색은 가까운 느낌을 준다. 이러한 발견이 기법전체를 전복시켜 버렸다. 이 발견은 데 생과 색채 사이의 전통적 관계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색채는 더

이상 선으로 구획짓거나 선으로 보충받아 완성될 필요가 없게 되었고, 색 그 자체로 완전한 공간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색 채의 붓터치를 겹쳐가는 것만으로 하나의 완전한 공간을 구축할 수 있게 되었댜 겨우 윤곽이 그려진 선적인 캔버스를 작은 붓 터치로 뒤덮을 필요가 이제 없게 되었다. 인상주의는 이미 지나 갔댜 우리가 도달한 이 관점에 서서, 현대예술 발견에 있어 고갱이 차지하는 위치를 새롭게 규정해보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그의 작품에 대해 오로지 문학적 해석만 해온 것은 오류이다. 30 년 전만 해도 오늘날 우리들에게 놀랍게 여겨지는 사실들이 여전히 감추어진 채로 있었다 . 증인인 모리스 드니는 세잔, 반고 흐, 고갱울 앵그르의 제자들이며, 또 〈변형주의자들〉이라고 보았 댜 왜냐하면 모리스 드니는 사물을 공간적으로 표현하는 체계 내지는 그 차원이 실로 변화되었음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 댜 그러나 그에 대해 좀 관대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 좋겠다. 우 리는 르네상스를 완전히 파괴하게 된 단계에 있던 사람들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알베르티나 첸니니 Cen nini ® 의 동시대인들이 15 세기의 초기 개혁자들과 비교하여 처해 있던 상황과 비슷한 처 지에 있댜 그들이 우리들에게 새로운 사고의 영역, 표현의 영 역을 열어주었음을 점진적으로 발견하게 되지만, 우리가 그들의 자료를 조합하면서 만들고 있는 공간과 세계의 결정적 형태가 ® 첸니니 Cenn ino Cennin i(1 370-1 440 , 피렌체) : 가디 Ag n ola Gad di의 제자 로 그의 작품은 대부분이 소실되었으나 화가 지망생들을 위해 쓴 저술 『 예술의 자유 L i bro dell'Ar t e 』 만 남아 있댜 이 책은 15 세기 이탈리아 화 가들이 사용한 기법에 대한 중요정보를 담고 있다. 안료 를 갈아 만들기, 물감을 녹이기, 화폭 만드는 준비작업, 명암을 나타내는 법, 얼굴, 옷, 바 위, 나무를 그리는 법 둥을 설명하고 있다.

무엇이 될지는 아직 모르고 있다. 반 고흐나 고갱의 경우는, 1832 년 젊어서 죽으면서 몇몇 노트만 남긴 천재 수학자 갈루아 Galo i 혼 의 경우와 유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세기도 넘는 동안, 가장 위대한 사상가들은 이 암시적 숙고 속에 내포되어 있는 전격적인 원칙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다른 이들이 그 가 설을 다시 취급하여 살리려고 하지 않았다면, 반 고흐의 시각은 오로지 비정형의 꿈에 도달하였을 것이다. 이것은 지적 형성을 위한 교육이나, 모든 언어 교육의 법칙이자, 입문의 법칙, 진보 의 법칙이기도 하다.

@ 갈루아 Eva rist e Galois ( 1 8 11-1832) : 프랑스 수학자. 1830 년 고등 사범 학 교에 들어가서 그 이듬해 추방당했는데 그의 공화주의적 사고에 기초해서 교장의 반동적 정신을 알린 논문을 썼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의 저술 의de 정res수ol는ub i『l it근 e 에 d e의s 한eq u방 at정i o식n s p해a결r 의ra d조i ca건u에x 』 (1관83하1)여 라 는Su r논 !문es이 며co,n di이t i on논 s 문에서 대입집합이론을 세우고 있다. 21 세에 한 동료와 심하게 다툰 끝에 죽었는데, 관심을 갖고 있었던 한 주제에 관한 논문을 죽기 전날 작성했으 며, 이 천재 수학자의 중십 사고는 수학에서 근본이 된 집합 개념이다.

고갱이 어떤 과정에 의해 색채라는 테마를 당대인들이 알아볼 수 있는 체계로 통합시켰는가를 자세히 알아보는 일은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그 방법은 간단하다. 고갱은 색채만으로 모든 가치 나 특징, 특히 공간의 특징을 표현하려고는 감히 생각지 않는다. 색채를 다른 것과 결합시키는데, 즉 색채는 데생과 타협한다 . 일 종의 공동 분배가 이루어지지만, 그가 색채를 윤곽 내부에 펼쳐 서 칠하는 데 사용했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피상적 견해이다. 에밀 베르나르와 나눈 유명한 논쟁은 불필요하게 보이는데, 왜 냐하면 이 논쟁이 정확히 말해, 그의 한 모색기에 있었던, 그의 작품의 가장 일시적이며 반면에 가장 독창성이 없는 면을 다루 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서는 선이나 윤곽이 전통적 사물의 명

35) 고갱의 「노아 노아」(파리, 1897, ~흰 잡지 >, 모리스 Ch. Mo ri ce 와 공동 저술)와 『이전과 이후』(파리, 1902) 참조. 1949 년 100 주년 기념전시 떄 국 립박물관이 출간한 도록에 실린 여러 시리즈의 참고문헌이 있는 〈 서간 문〉을 거기에 추가해야겠다. 또한 사세 Ch. Chasse 의 홍미있는 책 『 고갱 과 퐁타방』(파리, 1921) 참조. 1949 년 전시도록 15-16 쪽에 에밀 베르나르 룰 다룬 문제의 참고문헌이 실려 있다. 또다른 국립박물관 전시회인 상징 주의 전시회가 있었을 때(오랑주리 데 튈르리, 1949), 고갱에게 그 유명한 『설교 이후의 환시 또는 천사와 싸우는 야곱」을 암시해 준 베르나르의 유명한 작품 r 초원의 브르타뉴 여인들』을 볼 수 있었다. 여전히 차용의 문제가 제기된댜 철저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당시 베르나르의 그립 과 고갱의 브르타뉴 시대의 그림을 병치해 보아야 할 뿐 아니라, 그의 생 애의 후기에 〈개척자〉로서 제작한 작품과도 바교해 보아야 한다. 그럼으 로써 하나의 양식이 손으로 하는 작업에서 우연히 진보한 단순한 방식에 서 나타나는 것이 아님을 엄밀히 알게 된다 . 양식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작품은 테크닉이 아니라 〈행동〉에서 나오며, 베르나르의 경우 불가능했 던 진보와 새롭게 발전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

확성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되지는 않았다. 색채는 전통적 대상 의 가치표현이 아니라, 화면의 가치표현이자 또한 현실에서 선 정된 예기치 않았던 요소들의 가치표현이다. 선과 색채는 현실 에서 떼어낸 어떤 조각들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표현하는 데 동 시에 기여한다. 나는 이점에 대해서, 고갱의 비밀이, 회화보다는 주술이라는 수단에· 힘입어 몽상가와 같이 현대정신의 신바스런 불안을 표현 한 데에 있다고 믿는 비평가들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 . 고 갱 자신의 글에서 끌어낼 수 있는 모든 부분을 나는 잘 알고 있 다 .35) 내 개인으로는, 그의 작품의 형이상학적 불안의 측면, 아니 면 적어도 그가 던져주고 사람들에게 전달된 미지, 나아가서는 상상에의 경이로운 호소에 민감하지만, 그의 예술에 위대함을 주고 그의 비밀을 형성해 주는 것이 단지 감성적 위력 하나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불안처럼 흐르면서 굽이치는 몽상예술은 카리에르 C arri ere ® 가 행한 예술이었는데 이제는 열광자들을 속일 수가 없게 되었 댜 서정적 사고를 드러내고 의의있게 만들어 준 양식이 고갱의 예술과 더불어 출현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면 실로 과장된 말이 댜 우리 시대를 특징짓는 것이, 표현할 수 없는 것의 추구나, 표현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신비스런 명상이라고도 생각하지 않 는댜 정반대로 우리는 동사의 효율성을 거의 위험할 정도로 믿 는 시대 , 나아가서 우리 시대가 사용하는 여러 언어를 상당한 호전성을 가지고 다루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세계에는 항상 형이상학적 불안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 밖에 내가 믿는 것은 고갱이 그 불안을 느낀 형태로 보아, 현대인 가운데 최초의 사 람이 아니라 낭만주의자들 가운데 마지막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그의 문체가 그것을 증명해준다고 생각된다. 플로라 트리스탕 F. T ri s t an ® 의 손자가 과거 에 집 착하는 것은 감상에서 이 며, 표현으 로 보아 그는 우리에 가깝다. 교감의 이론이 출발된 것을, 위그 ® 카리 에 르 Eug e ne Ca rrier e(1849-1906) : 프랑스 화가 . 카바넬 Cabanel 의 제자로 로댕의 친구가 되었으며 많은 저술가들, 베를렌느, 말라르메, 도데, 아나톨 프랑스 둥과 친분관계를 갖고 그들의 초상화를 그렸다 . 사회주의 사고 를 옹호하였으며, 종교화를 그렸다 . 파리 시청 및 소르본 대학의 장식 을 위한 종교화, 어두운 우의화를 그렸다. 특히 초상화나 모자상에서 갈색 과 회색을 주로 하면서 단색조로 된 명암에 의해 그의 감성을 표현하려 하였댜 형 태는 모호하여 잘 나타나지 않게 하는 반면, 손과 얼굴은 두드 러지게 하였다. ® 플로라 트리스탕 Flora Tr ist a n (1 8 03-1844), 프랑스의 성문제 정치가. 페 루 귀족과 프랑스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판화가 사잘 Andre Chazal 의 부인이자, 고갱의 할머니이다 . 프랑스 여성운동 창시자의 한 사람으로 이혼과 자유로운 사랑을 주창하였다 . ® 위 그 Rene Hug h e(1906-) : 프랑스 미술사가 . 루브르 박물관에서 박물관 지의 새로운 원칙을 도입하면서 행정직을 맡은 뒤, 1950 년 콜레즈 드 프 랑스에서 조형미술 심리학과 교수직을 맡았다. 그의 주요 저술로는, 『 세

잔 .!l (l 936), 『현대화가.!l (1939), 『 19 세기 프랑스 데생 』 (1 948), 『폴 고갱의 노 을 』 (1 952), 『 보이는 것과의 대화 』 (1955), 『 예술과 영혼 .!l (1 961), 『들 라크루 아 또는 고독한 투쟁 』 (1 964), 'l 이미지의 위력 』 (1965), 『 예술의 의미와 운 명 』 (1967), 『 현실의 교대 』 (l974) 둥이 있으며, 예술적 비전은 사회 • 종교 • 철학적 사고 및 생활양식에 근거를 둔다는 접을 밝히려 했다. 1960 년에는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고, 1967 년에는 에라스무스 상을 받았다.

R. Hu g he a] 처럼 들라크루아에 돌릴 수는 없으며(그런데 어떤 이 들은 독일 시인 들 의 정신적 경향에 비교하기도 하지만 이 는 잘못이 다), 이런 관점에서 보아 고갱을 인상주의자 들 또는 상징주의자 들 이후에 나타난 한 선구자라고도 주장할 수 없다 프

36) 이 점에 대해서는 백주년 기념 전시도록에 위그가 쓴 서문 참조. 또 내 가 『 새로운 소묘…… 』 의 52 쪽에서 독일 낭만주의 경향과 상징주의 사이 에 내가 구별한 차이점을 참조. 결국 이것은 벤투리와의 토론과 같은 내 용이다(앞의 주 11 번 참조). 예술가의 정신생활의 원동력, 죽 영감이나 행 동, 또는 높은 능력을 가진 인간을 통한 표현, 개인적 ·사회적 인간의 정 복 동에 관한 근본적 이해에는 차이가 있다. 훌륭한 대화가 아직도 좀 더 길게 전개되기를 기대한다. 서로들 형이상학을 삼가면서, 많은 증거들을 연이어 내세우도록 노력하자.

고갱을 정의할 수 없는 화가, 무의식의 화가로 보는 것은 정 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댜 정 반대로, 그의 일생의 전 드라마는 그가 주위에서 모은 혼란스런 도전을 놀라운 정확성을 갖고 구 체화하며 고정시키려는 필요성 그 자체였다. 정신과 친숙해진 육체, 만남과 우정으로 어느 정도 침착해진 육체를 정신에 부여 함으로써, 형태적 구체화의 작업에서 최대한으로 멀리까지 나아 간다 그의 불안은 망령을 구체화함으로써만 사라진댜 그렇다고 고갱이 예술의 영역에서 공간을 몰아냈다거나, 시간 이 사고를 표현하기 때문에 공간은 물질의 영역에서 식별될 수 있다는 사실 등은 진실이 못된다. 전에 이미 교감에 대한 이론 올 전개한 바와 같이, 교감에 대해서 분명히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댜 그러나 손대지 않은 천연 그대로의 자연이 베푸는 호의

에 대해서는 믿지 않으며, 또 색채가 넓이를 나타낼 수 있다고 도 믿지 않는댜 그렇다면 반 고흐의 교훈은 어디에 있는 것일 까? 믿음 자체가 작품을 생산한 적은 결코 없으며, 공간 내부에 파묻힌 선이 정신을 구체화하는 특권을 색채에게나 꿈에게 물려 준 적도 없다. 모든 동기는 하나의 암시적 진실을 내포한다. 상 상의 세계에서 가장 정상적으로 움직이려는 사람들인 수학자들 은 장소를 규정하는 방법에 대해서 기꺼이 언급한다 . 완전히 추 상적이라고 해서, 이 체계들이 덜 실증적이거나 정신적 가능성 을 덜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영혼, 더 정확히 말해 정 신이란 것과 혼란을 동일시하지 않는다. 고갱이 전해주는 메시지는 엄연히 존재한다고 나는 철저히 확 신한댜 그의 말을 빌려서 재료가 예술가의 손에 의해 풍성해짐 에 따라 그 메시지를 발견하게 된다고 말하고 싶다. '5/ ) 고갱이 윤 곽으로 한계지어진 부분들을 채색하는 것으로 그쳤다고 생각한 다면 이것은 잘못이다. 눈부신 색채의 덩어리들은 그의 작품에 서 엄청난 역할을 하며,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이 렇게 볼 때 고갱은 자주 세잔의 교훈과 반 고흐의 교훈을 화합 하고 있다. 어쨌든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내 견해로는, 가장 커 다란 새로움은 공간의 영역에 있다고 본다.

37) 바로 이것이 고갱이 『네버모아 Nevermore 』 의 도판 67 에 대해 다니엘 드 몽프레드에게 보낸 서간문에서 발췌한 구절의 전부이다. 〈단순한 나체만 으로 옛날의 야만적 풍요로움을 암시하려 했다. 이 전부는 일부러 선택한 어둡고 슬픈 색채 속에 젖어 있다. 여기서 풍요로움을 주는 것은 실크나 우단 또는 흰 삼베나 금이 아니며, 예술가의 손에 의해 풍요로워진 순수한 재료 자체이다.〉 여기서 내가 도해하지 않고 언급한 작품들을 알아보는 데 유용한 대부분의 참고자료는 1949 년 『 도록 』 에 위그가 싣고 있다.

고갱이 현대의 모든 이국 취미의 창시자였다거나, 그리스_라 틴적인 전설로 한정된 범위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해주었다거

나, 서구주의에 의해 지나치게 채워진 극동아시아적인 것으로 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해주었다는 사실만을 언급하지는 않겠다. 현대 미술이 야만적이거나 이국적인 양식과의 잦은 접촉에서 얻 어낸 실증적 가르침을 찬양하면서도, 그것을 고갱에게 감사하지 않는 모순이 있댜 사물이 우리의 정신에 너무나도 친숙해져서, 고갱이 그 시대에 가져온 미지에로의 경이로운 도약울 잊어버리 는 경향이 있다. 그의 생애가 그런 방향으로 향했던 것은, 고갱 이 풍경화가였던 세잔처럼 명상과 숙고에 의해서 문제를 깊이 연구하여 파헤쳐나가는 것에서 그칠 수 없었다는 데에 기인한 댜 그는 자신의 천재성을 위한 양식을 자국에서 찾을 수 없었 기 때문에, 지구의 반대쪽을 여행하였다. 아마도 한계야 있었겠 지만 그러나 고갱이 있은 뒤에, 우리들이, 혹인 예술, 콜럼바아 이전의 예술, 멕시코 예술, 켈트 예술, 야만족들의 예술에서 정 신주의의 교훈만을 찾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으랴? 우리는 재료 의 경계를 뚜렷이 정하기 위해 매우 세심한 방법도 그 예술들에 물어 왔다. 고갱이야말로 우리 감성의 지평선만이 아니라 형태 의 지평선의 폭을 넓혀준 최초의 예술가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고갱은 현대 공간의 변혁의 역사에 있어 독보적 위치를 차 지한댜 그는 여러 다른 문화들을 서로 접근시킨 영웅이다. 그러 므로 그는 무엇보다 낡은 공간의 틀을 실제로 부수어 버렸다. 오늘날 우리가 새로운 인본주의에 기초한 하나의 문화를 꿈꿀 수 있다면, 이것은 분명히 헛된 향수의 회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그의 운명의 영원한 조건을 보다 더 잘 포착하려는 구체 적 노력에 의해서이다. 우리는 구상적 작품을 통해서 여러 사회집단의 풍속이나 행위 를 규정하는 수단이나 실제적 상징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되었 고 또 박식하게 되었다.

그밖에도, 고갱이 남양군도의 버려진 카나카인의 감상적 공간 울 표현하려 했을 때나, 시각적 관계가 우리가 아는 바와는 다 른 그런 자연의 마술을, 멀리 떨어진 곳의 하늘 밑에서만 있을 수 있는 신기루가 보여주는 마술, 사람들이 그들의 의상이나 신 앙으로 인해서 처하게 되는 다른 상황이 보여주는 마술을 우리 가 엿볼 수 있도록 했을 때, 그는 자신의 인상을 르네상스의 비 유 양식으로 옮기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제임스 티소가 아니다! 새로운 시각화 체계가 발전된다. 이번에는 공간의 특징 이, 선형 원근법과 빛의 유일원으로 된 온건한 두 개의 망을 결 합해주는 풍경의 다양한 척도에 기초를 두지 않고, 대신 순수한 색채의 독자적 가치와는 상반되는 화폭의 새로운 공간적 모호성 에 기초를 둔 칸으로 구획하는 것에서 구체화된다. 장식적 표면 이 삼차원에서 나아가서는 상상의 차원에서 색채와 주제에 의해 넓게 펼쳐진다. 고갱 작품을 보는 누구나가 느끼는 확실한 암시는, 그의 작품 이 감성의 기적에서 나온 산물이 아니라 예술의 기적에서 나온 산물이란 점이다. 고갱올 화가이게 하는 것은, 그의 감정이 아니 라 조형적으로 질서가 잡힌 확실한 세부들을 표현하는, 다시 말 하면 명시하고 구체화하는 그의 능력이다. 고갱의 잠재의식을 찬양하는 현대인은 모리스 드니@를 망각하고, 그리고 작품이라 고 불릴 만한 그런 작품의 조형적 특질 죽 공간적 특질에 대한 그의 유명한 구절을 망각한 것처럼 보인다. 이에 대해 말할 수 ® 드니 Mau rice Den is( l870-1943) : 프랑스 화가, 장식가, 소설가, 판화가, 저술가 . 1888 년 줄리앙 아카데미에서 세뤼지에 Serus i er 를 만났으며, 고갱 의 종합주의 s ynth e ti sme 를 찬양하는 세뤼지에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드 니는 상징주의에 합세하고 나비스파의 이론가가 되었다. 그의 작품은 당 시 유행했던 일본적 취향을 보여주며, 이탈리아에 두번 여행하여 14, 15 세

기의 벽화와 초기 기독교 벽화에서 영향을 받고 종교화로 기울어진다. 현 대적 기법을 사용하면서 원시미술에로 회귀하여 종교화를 개혁하려 하였 다. 샹젤리제 극장의 천장화 같은 대규모의 벽장식을 했으나 현대적 이론 에 일치하는 조형방법은 찾지 못했다.

있는 것은, 고갱의 작품이 단지 화면을 칸으로 구획하는 선의 체계만은 아니란 점이며, 거기에는 앞으로 내디딘 한 발자국이 있는데, 고갱 이후에 장식의 효력을 믿었던 이들이 바로 이점을 잘 의식했다. 그러므로 고갱의 공간 체계는, 조형막 표면, 또는 화면을 조각 들로 나누는 것에도 기초하지만, 실루엣을 잘라주고 밀도를 기 록해주는 선의 내재적 특성에도 기초하고 있으며(이 점에서 고갱 은 드가의 교훈을 따르고 있고, 쇠라와도 합치한다.), 완벽한 공간 체계를 병행해서 창조해 나가는 색채의 사용에도 근거를 두고 있댜 고갱은 분명히 상상에로의 넓은 길을 열어 주었지만, 이러 한 상상이 공간적 특질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확실히 말할 수 없댜 오히려 정반대로 고갱이 이 세계의 무한한 풍요로움에 대 한 직관과 이것을 목록으로 작성하는 실제적 방법을 현대에 제 공해 주었다고 확신한다. 일화를 형상화하는 것과는 달리, 그는 우리들에게 광대한 세계를 대담하게 가로지르는 여행을 어떻게 부동의 조형막 위에 시각화할 수 있는지의 전체적 체계를 새롭 게 하는 방법을 제공하여 주었다. 고갱의 세계에는 감각을 공간 화하는 도전과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은 세부에 있어 수많은 기 법의 차용으로 구성되었으나, 다른 누구도 아닌 고갱만이 회화 적인 것이 추가된 차원 내지는 감상적 가치와 깊이를 부여하는 색채의 차원을, 이차원 공간의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삼각 형화와 결합시킬 줄 알았다. 그 예로, 『네버모아』 같은 그의 몇 몇 작품들에 대한 그의 서술을 참고로 하자. 반 고흐 역시 색채

를 삼차원을 표현하기 위해서나 기쁨이나 슬픔 같은 순수한 감 각의 환기자로서 사용했던 반면, 고갱 그는 좀 더 상상적 공간 을 확대하기 위해 색채를 사용한다. 이 두 예술가의 두 가지 시 도로부터 공간의 차원에 대한 모든 현대적 사고가 탄생했다 . 르 네상스의 기하학과 지리학이 제기한 낡은 한계성을 의식적 • 체 계적으로 뛰어 넘은 최초의 예술가는 틀림없이 고갱이다. 沈i

38) 『 네버모아 』 에 대한 좀더 깊이있는 묘사는 몽프레드와의 서간문 232-233 쪽 참조. 작품을 특징짓는 것, 또 엄격히 말해서 존재하게 하는 것이 의지라 고는 보지 않는댜 철학적 의지와 동시에 테크닉상의 의지도 같이 연구해 야 하지만, 그렇게 해도 작품의 실제로 의미있는 가치만이 아니라 창조적 행위도 포착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작품은 의지 이상이며 테크닉 이상 의 것이기 때문이며, 그 외에도 그 작품을 수용, 거부 또는 그것을 가치 있게 하거나 소멸시키는 사회집단도 고려해야 한다.

어떤 한 시기에 이르러 르네상스 공간이 여러 나라들의 지식 이나 관습에 만족을 주지 못하게 됨으로써 더 이상 존재하지 않 게 된 데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를 나는 밝힌 것 같다. 어 쨌든 공간의 순수하고 단순한 파괴란 생각할 수 없었고, 단지 새로운 공간이 낡은 공간을 느린 속도로 대체해 나갔다는 사실 이 중요함을 보았다. 그러므로 19 세기 말경 에콜 드 파리 화가 들의 천재적 발견에 힘입어 생각할 수 있게 된 이 새로움이 당 시 사회의 필요에 상응하는 한 조형 언어의 실제적 출발점이 될 수 있었는가를 연구함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왜냐하면 15 세기초 학자와 예술가들이 발견한 원칙들이 반드시 르네상스 예술을 결정지어 주었는가를 알 수 없는 것 같이, 세잔, 반 고 흐, 고갱의 발명이 새로운 예술의 바탕이 되었는가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사실다운 가설을 세워보건대, 16 세기에 새 로운 지평의 추구보다는 그들이 발견한 것의 활용에 보다 중점

을 두었던 문화가 경직됨에 따라서 아카데미 내부에 고정되었던 이 언어만큼이나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하나의 또다 른 조형 언어에, 우리는 이제 몇 세대가 지나면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 러기 위해서는 기술적 가치 또는 사회적 가치 들 이 서로의 관계 에 따라서 새롭게 사회 전체에 절실히 요구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이러한 단계와는 먼 거리에 있으며, 이점을 고려 할 때 우리는 우리 시대의 예술을 평가하는 데 있어 겸손해질 수밖에 없게 된댜 그러나 이러한 사고는 역시 우리시대 예술 평가의 커다란 중요성을 강조한다 . 이 문제는 다른 저술에서 다 루어지므로 여기서 길게 전개할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이 저술 이, 지금 이 시점의 공간의 문제를 해석하지 않고서는, 공간의 파괴과정의 이해를 위해서나 르네상스 공간의 창조과정의 이해 를 위해서도 불완전하다고 생각되었다.

30. 모네, 멱牌 | 시느 가(街)」 (1873) 이 작품은 엄밀한 인상주의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여 기 서 모 네 는 〈색 채의 붓터치 la tou che coloree 〉를 선을 죽여가면서 빛의 환상적 표현을 위해 사용하고 있 는데, 이것은 벌써 언 급했듯 이 르네상스 이 후로 시작되어 오래 지속되어온 갈등의 연속 또는 에피소드이다 . 그리고 르네상스는 명암 을 이용하여 실제로 이 갈등의 해 결을 보았다 . 우리는 경험을 희생시켜 가면서 〈감각 의 기 록〉 으로 다시 돌 아오며, 형 태 를 세워주는 두 개의 큰 체계인 선과 색이 분리되는 것을 보게 된다(도해 8, 9 참 조). 요약하면 그 말의 음악적 의미에서 새로운 〈평 균율 〉 의 필요를 느끼게 되지만, 우선 당분간은 비타협적 해결책을 강화한다 . 어쨌든 모네 그립이 결국 판독하기 쉬 운 까닭은 색터치의 뿌려진 듯한 모습이 무질서하지 않기 때문이다 . 터치들은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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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具 象 )적 질서 속에 자리잡고 있다 . 볼륨이나 , 오브제, 또 공간 속에서 그 들 의 상호 적 위치, 이 모든 것과 일치되는 형태 들 을 배치하는 질서는 전통적 두시와 분명히 합치된다 . 바로 이런 의미에서 · 나는 인상주의적 〈망( 網 )grill e 〉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 것이다 . 그러므로 15 세기 미술의 순수한 이론에 따라 배치된 대상 들 이 만 들 어낸 한 공간의 통일된 구성과 완전히 합치하는 조직도표에 새 롭 게 옷입히는 일만이 남 게 된다. 거기에는 〈 망〉이 존재한다. 그것은 꼭 서로 갇다고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관 찰 체계와 표현체계가 중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상주의는 르네상스 를 파괴하기 이전에, 그 지각의 근본적 바탕을 분석하려 한다. 무엇보다도 그 문제 들 을 생략하기 보다는 우선 새롭게 하려 한다.

31. 쇠라, 『그랑드 자트에 여름 어느 일요일』 (1885), 시카고예술연구소. 쇠라의 양식도, 약간 다른 방법으로, 역시 르네상스의 시각적 이해방법을 따르고 있다. 그는 광선을 분석하는 기계적 방법을 감각의 민감한 기록으로 대체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분석은, 결국 이 세계에 대한 전통적 이해방법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 죽 아직 시각이 변형된 것은 아니고, 다만 그 〈표시법 Ia no tati on 〉이 변했을 뿐이다. 인상주의 화가들처럼 쇠라도 선을 죽여가며 명암을 강조하고 있다 . 그 밖에도 그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처럼 볼륨에 기초하는 시각에로 되돌아오고 있다. 어쨌든 알 베르티의 분명한 표면들이나,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나 마사치오의 공간속에서의 볼륨과 같은, 15 세기 예술가들의 교착언어 속에 우리는 여전히 머물고 있다. 그러므

로 쇠라가 주장한 이 신인상주의(또는 분할주의) 이론은. 아 틀 리에식 재작법의 수준 을 넘지 못한다 . 다시 말해서 살아 있는 한 공식으로서 등장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시각보다는 표현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형체화의 들 이 여전히 남아 있고, 이 것은 항상 인상주의적 〈망〉이며, 이것이 악화됨으로써 민감한 기록이 아닌 추상이 문제가 된다 . 그 외에도 쇠라는, 르네상스에서의 네모난 타일 모양으로 덮는 방법, 특히 황금분할을 강조한다. 그가 중요시된다면 그것은 이 위(假)고전주의의 덕분이 아니라, 그 뒷세대들로 하여금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를 발견하도록, 그리고 볼륨 의 문제를 발견하도록 해주었다는 사실에 의해서이다. 게다가 그가 받았던 계시는 르누아르나 드가 같은 사람둘 덕분이었다.

32. 드가, r 오페라의 무대 뒤, 뤼도빅 할레비와 블랑제 카베」 (1 880- 1882), 파스텔 과 데트람프, 할레비 구장(舊藏). 광선주의에 대한 연구만큼이나, 선적 도식화의 붕괴에 관한 연구도 시각( [見 fi)을 해방시켜 주었다. 소심한 드가는 양식화된 방식을 믿고 있는 쇠라보다 훨씬 앞서고 있다. 이미 l 'i:f7 2 년 『꽃병과 여인』이란 작품에서, 벌써 드가는 대칭을 버림으로써, 더 정확히는 15 세기에 있었지만 얼마 안 가서 버려지게 되었던 방식들에로 복귀함으로 써, 화면의 고정된 틀을 파괴하였다. 드가의 화면구성은, 결국 만테냐 작 『성 세바스 챤거나 지오토의 J 엘리자베드의 탄생』같이, 작품이 의미하는 바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드가 작품의 구성은, 상기한 작품들 가운데 어느 것도 목적 없는 문 제를 제기한 적이 없다는 점과, 또한 19 세기는 지나간 세기들이 조형적 시각을 세웠 던 그 바탕으로 되돌아 오고 있다는 접, 그 바탕들을 파괴하기 전에 그것들을 조사 하기 위하여 되돌아 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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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드가 , r 루브르 박물관의 마리 카사트」 (1875-1876), 바르톨레메 구장. 이것은 한걸음 더 나아간 구성을 위한 습작으로서, 이런 습작에 때로는 사선으로 벤치가 그려져 화면의 방향 을 규정짓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는, 14 세기의 원근법적 입방체의 영향 밑에서, 여전히 화폭을 칸으로 구획함으로써 얻어지는 사물들의 균형 과, 고전적으로 네모난 타일 모양으로 덮는 방법 둥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다 . 여기에 서 인체의 볼륨과, 공간의 조형적인 고유한 특징이 동시에 시사되고 있다. 이번에도 르네상스가 실제로 문제가 되고 있으며, 르네상스가 공간과 사물을 측정하게 해 주 는 단위에 대한 신념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그것은 근본적으로 세계에 대한 시각적 해석이며, 베렌손 ® 에게는 실례되겠지만, 촉각적 가치에는 별로 민감하 지 않은 해석이다. 공간의 자율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조형 특질을 인정하는 가운데, 우리는 르네상스의 토대와 한계에 접하게 된다. 바로 이 작품에 진정한 단절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순수한 깊이 를 지닌, 무게있는 공간을 평가하고 분석하는 데로 향한다

@ 베렌손: 제 1 장의 역자 주 @번 참조.

34. 드가 , r 충계 를 올라가는 무용수들」 (1880 년경), 파리, 루브르 박물관. 이 구성은 앞의 두 크로키 중 첫번째 작품이 규정한 방식을 방전시키고 있다. 이 재 표기법(表 , 교法) 이 란 문재로부 터 방법의 문재로 이 동하게 된다. 척도 나 방향이 시 로 다 르지 만, 또 한편으로는 동질적이면서 결합되지는 않은 채 단순하게 끼위 넣 어진 기하학적 두 공간 이 배치되고 있다 . 마지막 변형 주기에서, 우리는 근 본적 원칙을 재 방견하게 되고 , 한 동일한 문화의 여러 상태 를 대변해주 는 일련의 형태 들을 한 덩어 리로 간주할 수 있댜 35. 마티스, r 강가의 소녀들」 (1916 - 1917) , 시카고예술연구소 , 워체스터 소장(所 藏) . 앞의 작품과 비교 할 때, 이 작품은 시간 적 으 로는 보다 앞의 작품에 가까우나, 반 대 로 공간 개념에 있어서는 근본적 차이 를 보여 준다 . 인 물들을 연결해 주는 요소들 은 완전히 새롭다. 이제 수평선은 인물을 위한 가치가 있을 뿐, 풍경을 위한 가치 는 없다. 표현적 아라베스크로 그린 평평한 오브제 들 사이에 끼워서 세워놓은 대상 들 의 모습 속에는, 새로운 오브제의 창조가 있는 동시에 표현 단위는 포기되고 있다 . 게다 가 색채는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색채 혼자서 명암의 다양성을 주는 것이다. 사실상 인상주의에서처럼 〈망〉이 있지만, 그 망은, 종합적이면서 칸으로 나누는 평 평한 시각과, 색채에 의해서 만 들 어진 여러 경이 있는 시각, 또 고전적 시각에 보다 충실한 볼륨이 있는 시각 사이에 있다. 또 거기에는 전체적 시각과 세부의 연속적 시각 사이의 관계가 변형되어 있다 . 시각이 변화할 때마다 형태의 종류도 변한다. 여 기서 르네상스의 근본 명제 중 하나가 왜 시각적 측정 방법에 있어서의 보편성이었 는지를 이해할 수가 있다 .

36. 세잔 , r 세잔 부인 초상』 (1887). 여러 세기에 걸쳐 이어져온 모든 형태의 예술에 있어서 , 다양한 취향의 변화 를 겪으면서 하나의 통일을 유지해온 정신적 체계 를 , 지적으로 또 테크닉상으로 볼 때, 어떤 체험을 통해서 버리게 되었는가 를 밝혀 보려 한다. 그 최초의 시도 가운데 하 나는, 드가의 방식과 직접 연결된 것인데, 여기서 그 시도가 아주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죽 수칙적인 것의 보유와 축의 안정성이란 원칙을 이중으로 성취하는 것이다. 이미지는 기본틀 속에 자리잡고 있으며, 이 이미지는 〈사실인것 같음〉이라는 실제적 법칙에서 떠난 시각을 불러일으켜 준다 . 그것은 정신적 이미지의 투사이지 한 광경 의 투사가 아니다. 거기서 지배적인 것은 행위의 조정이 아니라, 꿈을 위한 상상의 축과 장면 포착을 위한 축이다.

37. 반 고흐, 『의자와 파이프』 (1888), 런던 , 내셔널 갤러리. 이 두 작품의 비교는, 환상이 문제가 아니라 한 체계의 완성이 중요시 되고 있음 을 보여준다 . 안정된 공간의 삼각형으로부터, 동작을 칙 접 관련시키지 않고도 움직 이는 눈으로 감지할 수 있는 삼각형으로 이동해 왔다 . 연극에 대한 체험은 이 새로 운 시각이 나타나는 데 많이 기여하였다. 극장의 맨 꼭대기에 앉은 관람객의 시각이, 맨 밑에 자리한 관람자의 시각을 대신하게 된다 . 상상력을 자극하는 경사진 광경을 편애하는 영화의 방식으로 향한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이런 시각을 제공한 것은 카 메라가 아니다. 반대로 영화 필름 시각이 조형시각을 따른 것이다. 이것은 옛날에 고 전극장에서의 원근화법적 시각이 15 세기 화가들의 사고 를 따랐던 것과 동일하다 .

38. 르누아르, r 피걀 광장』 (1880), 런던, RA. 버틀러 부인 소장. 이 르누아르 작품은, 감각의 시각적 분석을 통해 어떻게 르누아르가 새로운 공간 을 발견하게 되었는지롤 분명히 밝혀준다. 르누아르가 자신의 우아함과 파리의 신선 함을 듬뿜 담은 이 매력적 작품은 〈시야의 깊이〉라는 개념에 근거하고 있다. 나는 본문에서, 르네상스의 조형공간 구조에 있어서 경들의 분리가 중요함을 강조했다. 여기에서 전경만이 분명하며, 물론 용해된 듯한 표현일망정 다론 경들도 모두 존재 한다 . 하지만 15 세기 미술에서 보는 소수의 세부적인 것들을 분명하게 배치하지는 않고 있다. 한 순간의 시각이, 있는 모습 그대로 기록되어 있으며 재구성된 것이 아 니다. 르네상스는, 현대의 영화시각처럽, 단순히 다른 명확성, 다른 정신생리학적 사 고에 기초한 하나의 몽타주였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 수 있다 . 르네상스 시각은 하 나씩 하나씩 차례로 볼 때만 명확히 볼 수 있는 세부들을 임의로 조립하고 있다. 이 그립은, 인상주의와 동시에 15 세기 미술을, 환상이라고 하는 광대한 분야에 자리잡 게 해준다 . 이 그립은 회화에 있어서의 현실과 경이(熟異)라는 개념에 대한 주석이다.

39. 마네, 「고양이들」, 동판화. 나는 비교를 위해서, 공간에 대한 아주 현대적 이해에 기초하는 동시에, 앞서 르 누아르의 작품보다 고전적 방법을 더욱 존중하는, 마네의 이 작품을 예로 들었다. 결 국 나의 목적은, 공간의 조형적 형체화의 발전이란 이 세계의 변하는 형체 를 새롭게 하려는 내적 필요에서 온 것임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 이 내적 필요는 숙명적으로 체 험적 형태를 풍요하게 해주기 마련이다. 여기서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보였던 풍경화식의 경(섰)이 약간 강조된 채 나타남을 발견한다. 즉 분명하고도 선댁된 경 들의 분리를 보게 되며 또한 중경에서는 공간의 추락을 보게 된다(도해 15). 그러나 이렇게 함으로써, 시각은 르누아르나 드가의 시각만큼이나 새롭다 . 물론 구상적 연 속을 단절하는 데에 마티스처럽 도달한 것은 20 세기에 이르러서였지만(도해 35), 이 런 류의 모든 체험이 결국 그 바탕이 되었었다 〈일본(日本)취미 le j a p on i sme 〉 야 의 지원을 받는 동시에, 특징을 풍자적으로 강조하는 취향에 자극 받아(세잔에게 자극 을 준 도미에의 역할은 표현주의의 창시자로서 강조해야 할 것이다), 마네는 이 놀 라운 작품에서, 색칠이 되었거나 또는 단순히 빛을 발하는 경들의 대조에 토대 를 두 는 공간 표현으로의 길을 열어 준댜 그는 레제에 연결되고 또 기시아 상 로 나아간다 (도해 61 과 70). 다시 말해서 색채가 없이 명암의 역할만 갖고서 , 반 고호나 야수파 들이 만든 현대 미술의 근본적 탐구의 길과 유사한 길을 열어준다 . ® 일본 취미, 일본에서 17 - 19 세기에 풍경화 • 초상화 • 풍속화가 부활했으며 풍속화 양식의 색채를 사용하는 판화가 유행했다. 후지산을 36 폭으로 그린 호쿠사이, 배우 초상화로 유명했던 샤라쿠 , 기생화와 풍속화로 유명한 하루 노부 동을 19 세기 유럽 화가들이 발견하였으며, 특히 호쿠사이의 판화는 인상주의 화가들을 매혹하였다. 그리고 정확하면서도 흐르는 듯한 선은 아르 누보에 영향을 주었으며, 기이한 초상화는 표현주의에 영향을 주었다 . ® 기시아 Leon Gis c h ia( l903-) : 화가, 도해가, 연극장식가, 저술가. 문인, 석 학으로서 인문분야, 미술사, 고고학 연구 를 깊이 했고 그림은 1923 년에 시 작했다. 프리츠 O t hon F ri esz 와 레제 Le g er 의 제자이다. 그러나 1927 년 마 국으로 가서 여러 해 머물면서 그림을 중단했으나 1936 년 다시 시작한다. 현대 프랑스 회화의 특징을 찾아보려고 할 때 항상 주의를 끌어온 인물이 댜 그의 예술은 데카르트적이며, 지혜의 예술로 분명성과 이성으로 충만하 다. 그의 저술 『 로댕 이후의 프랑스 조각 』 이나 『 프랑스 원시미술 』 에서는 깊 은 영감의 기원을 명철하게 보여준다 . 그는 너무나 분명한 의식의 희생자라 고 보통 평가되고 있으며, 지나친 정신적 사려 때문에 제어를 받았다고도 평가된다. 그의 예술은 지드의 경우와 같이, 신적인 것과 육체적이고 본능 적인 것, 영감적인 것을 모두 포용하는 데 그렇다고 해서 그의 미술이 갖는 건조성이 그의 독특한 원근법에 유익하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다. 1937 년 레제, 르 코르뷔지에와 같이 〈새로운 시대의 집 Le Pavil lon des Temp s Nouveaux 〉을 장식했다. 엘리오트의 『성당에서의 살인』과 셰익스피어의 『불사조와 거북이』의 무대장식은 빌라르J ean V il ar 의 주의를 끌었다. 회화 에 있어서는 1948 년부터 외적 현실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에서 벗어나 직 선이나 곡선을 율동감 있게 서로 교차시키고 강렬한 색채로 된 작은 네모 진 칸들을 구획짓는 데로 나갔다. 이 표현의 잠재적 가능성은 마티스와 레 제의 색조와 관계된다.

40. 반 고흐, 『수레 국호념} 입에 문 젊은이』 (1890 ?). 색채 를 사용해서 공간을 즉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작품을 흑 백으로 도해한다는 것은 본래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그런 모습대로 이 자료는, 반 고흐 미술에 있어서 순수 색채의 실제적 역할에 대해서 내가 본문에서 언급한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 을 줄 것으로 생각된다 . 앞 그림과 비교하면, 이 그림은, 고흐가 채색된 공간감각을 어 떤 테크닉을 통해서 직접 기록하는가 를 뚜렷이 보여준다 . 여기서 는 시각과 표현이 동시에 문제가 된다. 보다 전통적 채색주의자인 마네는 명암표현에 의해서 공간을 죽각적이고도 혁신적으로 표현한다. 반 고흐는 순수 색채에 의해 공간의 전체 표현 이 가능함을 보여준 최초의 계시자이다. 19 세기 말 화가 들 이 공간에 대해서 한 체험 온 질적인 것이며 또 구축적인 것이었다 . 어느 시대에서나처럼, 여기서도, 우리는 현 대화가의 욕망의 척도 를 순수 상태에서 제공해 주는 전격적인 작품들을 우선 발견 한다. 15 세기 초에 마사치오, 마솔리노, 우첼로,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둥도 역시 미 래에 대한 강한 시선을 던져주었다 . 어떤 점에서 전 르네상스가 그 모순과 더불어 이들 작품 속에 잘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시각(祝 覺 )에서 양식( 樣 式)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여러 세대가 필요했다. 르네상스의 조형공간에서 현대적 세계의 감각과 사 상을 표현하는 새로운 공간으로 넘어가는 데에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41. 세잔, 『검은 성』 (1904 년경). 공간을 구상적으로 표현하는 오래된 전통은 , 허물어져 가는 체계가 기초로 했던 모든 명제 를 가치있게 만든 후에야, 외적 세계의 차원이나 그 특 질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부터, 천천히 해체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뚜렷이 하기 위해서, 나는 개척자 -파괴자들의 수많은 시도 를 보여주는 19 세기 말의 작품 들 을 선택했다. 본문에서 설 명한 대로, 세잔은 빛의 채색된 일시적 시각과, 형태를 안정되게 기하학적으로 구축 하려는 의지 사이의 투쟁에서 출 발하였다. 이 『검은 성』은 그 근저에 있어서 무엇보 다 이 세계의 민감한 순간적 시각이라고 하는 인상주의가 최종적으로 도달한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 게다가 이 작품은 도해 30 의 설명에서 규정한 〈망〉의 방법을 아 직도 적용한다. 그러나 이 구성에서 감성적 가치가 하는 역할을 나는 본문 속에서 설명했다. 예술가는 겨우 윤곽이 그려진 , 그러나 오브제란 말이 내포하는 전통적 조 건에 따라 재구성할 수 있는 그런 몇 개의 오브제로 조각나 있는 자연 앞에서, 아직 도 그의 감동을 전달하고 싶어한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는, 직접적 • 죽각적 시각과 환상적 시각이 놀랍게도 혼합되어 있다 . 그로부터 작품의 시적( 詩 的) 의미와 모티브 기록과의 일종의 불일치가 생겨난다. 세잔의 위대함은 르네상스를 완성했다는 것과 동시에 현대적 감성을 흔들어 놓았다는 점이다 .

42. 마네, r 풀리-베르제르 극장의 바」 (1882), 런던 , 커토울드 소장. 현대적 공간의 발전에 있어서 상상의 역할을 강조하는 동시에, 고전적 공간 속에 현대적 꿈을 삽입함으로써 생겨나는 다양한 문제 들을 명백하게 해주는 유명한 두 작품을 『검은 성』과 비교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된다. 이 현대적 꿈의 삽입은, 일상적 오브제에 대한 구체적 시각과 관계된 분리된 경들의 구성 방법을 파괴하는 데 있어 · 서 특별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 이 작품은 폴 자모가 전에 아주 잘 평한 바가 있다. 이 평에서 그는 주요 인물의 깊은 감성과 대비되는 것으로서, 흥청거리는 방안의 모 습을 비춰주는 그 거울 속의 반사가 차지하는 위치 를 밝혔다. 〈술 카운터〉라는 주제 는 모파상이나 공쿠르 ° 식의 십리적 분석 테마이다 . 19 세기 말에 공간이 파괴되어 갈 때 유행한 이 공간표현은, 15 세기에 공간이 발전되어 갈 때와 마찬가지로 상징적 • 사회적 형체화 없이는 이해될 수 없다 . ® 공쿠르 형 제 Goncou rt, Edmond(1 8 22-1896), J ules (1 830-1 얽 0) : 프랑스 의 저술가. 아카데미 문학상이 그들의 이름으로 유명해졌다. 이 형제는 본

격 적 성 공 은 얻지 못했음에도 불 구하고 전례없는 명성을 얻었다. 그 들 이 름 은 사실주의 투 쟁, 자연주의의 출 현과 관계된다 . 그들 작품을 읽는 독자는 적었 으나 당시 미학적 관심의 중십이 되었다 . 그 들 의 일기는 신랄함과 부정적 신 앙을 보인다고 알려 졌 었지만 당시 문학 • 미술생활을 알려주는 보고이다 . 공쿠 르 형제는 현장에 직접 가서 관 찰 하거나 인생, 대화 , 일화 들 같은 구체적 현실 의 단편 들을 수집한다 우선은 자신 들 의 주위에 관심을 갖지만 또한 그 들 에게 낯선 세계 를 발견하기도 한다. 죽 대중적 무도회 를 자주 드나 든 다거나 요새가 있 는 곳을 산 책 하기도 한다 . 〈소 설 은 연구와 과학적 탐구 를 반드시 해야 한 다〉고 형인 에드몬드 는 말하면서 자기 직업에 진지성을 부여하고자 했다 . 실 상 이것은 한 측면에 불과하고, 죽 둥장하는 인물 들 이 대부분 병적인 경우 들

이었다 . 생트 뵈브 S ai n t e Beuve 는 그 들 의 과학적이고 질병분류학적인 묘사에 의해 도덕적 작품이 침범당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 두 형제는 신경 역사 가라고 자칭하며, 자신 들 의 재질은 이상하고 독 특 한 요소 들 의 복합이라고 설 명하면서, 바로 이 점이 그 들 을 생리학자이자 시인으로 만 들 었다고 말하고 있다.

43. 고갱, r 순결의 상실, 또는 봄의 깨어남」 (189 1) . 나 는 고갱의 이 작품을 마네에 접근시켜 보았다 . 이 작품은, 현대인이 그의 육체 로부터 그리고 특 히 그의 정신으로부터 끌어내는 새 로운 친 숙한 체험이, 이 르네상 스 공간을 무너뜨린 깊은 원인 중의 하나임을 잘 증명해준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 카에서와 같이, 수평선, 전경의 평원 위의 인 물, 배경 등 결국 어느 것도 새로운 것 은 없으며, 이 괴상한 방탕의 야만적 시( ~寺 ) 속에서 , 공간을 구획한 것, 형태와 경을 단순화한 것에 이르기까지도 그러하다 . 관습적인 배열가치 를 파기하는 것은, 공간의 여러 부분 들 이 하는 역할을, 즉 〈 심리적 거리〉 $를 평가하는 데서 비 롯 된다 . 그렇지 않으면, 아주 중세적인 상징적 동물이 탐내고 있는 잠든 소녀와, 바라는 결혼에의 환

상 둥, 그림 속의 여러 부분이 표현하는 바는 절대적으로 고전적이라고 말할 수 있 으리라(도해 18). 또한 중경에서 공간이 추락하는 것과, 우첼로의 『전투J 를 떠오르게 하는 나뭇잎들로 둘러친 것은, 어떤 신화의 연속적인 불가분의 측면 들 을 서로 고립 시켜 주기 위한 전통적 방법이란 것을 말할 수 있으리라. 보는 바와 같이, 우리는 한 시대 내내, 조형적으로보다는 정신적으로 옛 공간으로부터 더욱 더 벗어나 있다.

® 심리적 거리(정신적 거리):본문 132 면 참조.

44. 드가 , r 목욕 . 등을 보이 는 여인』 (1891 년경) , 파리, 루브르 박물관. 우리 시대의 우리 육체에 대한 새로운 체험을 방금 얘기했다. 모든 새로운 감성 은 이 뛰어난 습작 속에서 이미 표현되었다 . 가까이 있는 만질 수 있는 시각, 회화적 지세학적(地勢學的) 공간, 다시 말하면 관찰자에 비해서 오브제의 위치 를 , 여러 다 른 부분똘 내에서, 비유 클리드적으로 측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감각의 원초 적 소여〉를 몹시 날카롭게 분석하기에 이르렀다 . 그 이 후로 철학자 나 소설가 들 이 다각적 감성 에 대해서 그렇게 발전시킨 연구가, 가장 진보된 문학가 들 과 동시에 화가들 에 의해서도 착수되었다. 그 위에 또 드가는, 르 네상 스가 단호하게 피했으며, 부조(浮卜形)와는 다 른 이 〈촉감적 시각〉을 죽각적으로 번역할 수 있는 기호(i E 號) 를 발견했다 . 45. 피카소, 『화가』 (1930). 앞의 것과 비교해서, 이 그림온 우리 를 어리둥절하게 하는 난데없는 현 시대의 사고와, 전 세대의 〈사실주의적〉 분석과의 연결을 보여준다. 또한 드가의 가차없는 분석이 아직도 형식적 표현의 틀 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반대로 피카 소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분석보다는 발명이란 사실을 보여준다 . 아라베스크는 그의 선구자들의 시각적 분석으로부터 발전하였고, 이제부터는 구성의 자연스러운 바탕으 로 취급된다. 드디어 새로운 조형언어인 순수한 기호의 창조가 진실로 나타난다. 르 네상스가, 감각적 공간에 대한 세밀한 조사만큼, 가치 상징을 위해 인위적으로 선정 한 오브제들이 갖는 정신적 • 사회적 특성의 평가법칙을 명중함을 전제로 했음은 분 명하다.

46. 고갱, r 노란 그리스도가 있는 고갱 초상화』 (1890) . 기본감각으로의 복귀, 조형막을 조직하는 새로운 체계의 연구, 객관적 요소들의 지속성을 문제시하는 것 둥이 바로 19 세기 후반 공간에 대한 사고의 일반적 방향이 다. 나는 여러 다양한 연구의 근본적 중요성을 보여주는 증거 를 수집하기보다는, 특 수한 체험을 보여주는 몇 가지 예 를 선택해서, 고전예술과 현대예술을 크게 대조시 켜주는 〈휘어진 공간에 대한 경험〉이나 〈오브제와 빛에 대한 체험〉 등을 뽑아 보았 다. 이 작품의 소장자였던 모리스 드니는, 이 그림이 이탈리아 장식가의 방법을 따라 구성되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러나 과장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이 작품에는 공기

도 없고, 중간적 공간이나 에워싸는 대기도 없기 때문이다. 단지 한 폭의 그립이 배 경으로 사용되어 공간을 암시해 주고 있다 . 여기서 느껴지는 침울한 매력은, 이 작품 이 도해 32 가 사용한 방식의 다른 변형임 을 말해주며, 전경에 묘사된 고갱의 머리는 중경의 담배 그릇과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 결국 세 개의 큰 덩어리로 구성된 이 그 림은, 표출을 목적으로 하며 정확히 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조형적 가치와 상상적 가치 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 예술가란 재료 를 조합하는 사람이다. 노란색의 그리스도, 담배 그릇, 고갱 , 이렇게 세 개의 측면으로 한 개의 현실이 표현되었지만, 조형적 대담성을 보여주는 유일한 요소는, 커다란 경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47. 드가, 떳 주재 발끝으로 추는 무용가」 (1878 년경), 데트랑프와 파스텔, 왈츠 만 부인 소장, 미국 . 통일된 효과로 인해 풍요한 뉘앙스가 잘 드러나지 않는 작품으로, 그 구성은 절 묘한 정련성을 보여준다 우리는 축을 왼쪽으로 기 울 게 한 배치 를 이미 보았으나 여 기서 다시 접하게 되는데 , 이번에 는 순수한 운동감의 표현이 갖추어져 있다. 게다가 이 운동감은 이 작품의 중심 테마 롭 지니면서 분산되어 있는 수많은 구성요소들에 의하여 암시되고 있다. 그 요소 들 이란 , 다리 동작의 강조, 무용복의 경쾌함, 팔동작, 단절된 균형, 화면 부분 들의 구성, 완전히 왼쪽으로 치우치게 배치된 치마폭, 있지만 잘 보이지 않으면서 그리고 사라져 가는 듯 이 표현된 주변환경 속에 배치된 중심인 물 등 이다 운동감은 결국에 가서, 하나의 단순한 감각의 여러 다른 표기법으로부터 우리가 머릿속에 만든 복합적 이미지에 의해 암시되고 있다. 겉으로 보기와 달리, 박 진감 있는 모습이 전체적으로 정확하게 포착되었지만 우리에게 감명을 주지는 못하

는데, 이것은 운동감이 해체되어 있고, 사진처럼 찍혀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마레나 마이브리지의 카메라 앞에서 사람이 달리는 것이나 말이 달리는 것을 기록했을 때 어떠할지 상상해 보자! 이것이야말로 아무런 사실주의가 없는 종합적 운동에 불과하 다. 구성의 이러한 성격은, 전체적 감각을 동강내가며 , 공간적 요소들로 된 그 배경 을, 뚜렷한 역할 없이 채우는 솜 덩어리 모양 속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여기에서 드가는 가장 현대적 사고에의 길을 열어준다(도해 66 참조). 같은 시대에 르누아르 는 『목욕하는 여인 슈킨』 같은 작품에서 중립적이고 동시에 명확한 배경을 만들기 에 이른다. 이것은 공간에 대한 확실한 개념이 , 현대 미술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 가를 중명해준다 . 순전히 시각적 개념인 , 공간의 합리화된 단순화는, 르네상스 시각 의 근본 바탕의 일부를 형성하였다. 이제부터는 아주 풍요할 뿐만 아니라, 단일한 특징 이나 척도를 떠난, 다면적이고 체계적인 여러 표현방식이 가능한 그런 공간, 그러나 표 현할 수 있는 전체 의미를 결코 다 표현할 수는 없는 그런 공간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48. 르누아르, 「여인 반신상』, 나체 습작. 이 작품은 역시 그 배경이 규정되지 않았지만 반면에 밀도가 있다. 여기서 공간 은 여인의 살과 동일한 재료로 되어 있다. 이 도해로는 물론 구름 같은 형태들과 중 심 인물이 채색된 명암으로 처리된 것을 알아볼 수는 없지만, 사실은 바로 이 채색 된 명암이 그 가치를 말해준다 . 이제 르네상스인 들 의 집념, 죽 형태 를 나타내 주는 도표도, 선과 색채를 부합시키려는 집념도 사라졌다 . 게다가 이 르누아르 작품은 팔 꿈치, 어깨, 가슴, 입 둥을 점으로 된 빛으로 묘사하고 이 빛을 중심으로 하여 햇살 같이 공간을 구성하는 재미있는 방식을 만들어 주고 있다 . 이제는 더 이상 체계 를 단일한 시각에 맞추어 조정할 필요는 없으며, 정확하게 자로 재는 투사법도 더 이상 가치가 없다. 공간의 시각을 더욱 잘 이해하려면, 화면의 깊이 룰 말하자면 방사(放 射)하는 감각을 갖고 느껴야 하고 , 또 고전 기하학의 표준적 볼륨이나 선( 線 )적 도식 화에는 무관심해야 한다. 반대로 여기서 보존되고 있는 것은 부조 같은 감각이다. 즉 형태의 시각은 조각적인데, 이 시각은 조각의 장르에 회화적 가치 를 도입한 로댕의 사고와 아주 유사하다. 공간은 화면의 공간, 세계의 공간이라기보다, 더욱더 내부적 인 색채 공간이다. 우리의 시대는, 여러 분류된 감각에 해당하는 기호들의 새로운 정 확한 체계를 발전시키는 데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지만, 그 새로운 것들을 느끼고 가 능한 충실히 기록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새로운 공간의 조형적 감각은 양식이 성립 되기 훨씬 이전에 나타나는 법이다. 새로운 공간의 조형적 감각에 의해서 우리는 15 세 기 미술이 시도한 것의 범위를 정확히 규정할 수 있다.

3 새로운공간으로 화폭에서, 명암이 없는 색채만이 그림의 생명 그 자체를 형성해 준다 이 색채란 반파괴적인 것이며 또한 분석적이기도 하다. 또한 색채는 공간기능 그 자체이다 . 로베르 들로네 Robert Delauna y (r 달리는 사람들』 뒤에 적힌 글에서)

입체파와 20 세기 미술의 신화 시대적으로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 것을 판단하기는 대단히 어 렵댜 그러나 수많은 미술사가나 문학사가들이 〈현대〉를 연구하 려 하지 않는 것은, 내가 보기에 좀 지나치게 삼가는 경향인 것 같댜 외교사 연구가나 경제학자들의 경우 그렇게까지 제한을 두지 않는데, 이 모든 것은 방법의 문제이다. 과거의 현상을 이 해하기 위해서 때로는 오늘날의 사건들을 연구하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 현대 미술을 연구하는 데 진실로 곤란한 점은 잘 분류된 자료 가 부족한 데서 온다. 마티스 작품집보다는 피에로 델라 프란체 스카의 작품집을 들여다보는 편이 보다 수월하다. 질문 전체를 총괄하는 하나의 견해를 포착하려 할 때 무엇보다 산만하게 홑 어져 있는 자료들에 봉착하게 된다. 1905 년에서 1914 년 사이에 파리의 사조가 어떠했는지 정확히 알아본다는 것은 현 시점에서 는 불가능하다. 아방가르드 0 계통의 잡지들을 수집하는 것은 힘 든 일이며, 우리들이 갖고 있는 방대한 문헌들은 현대미술의 원 ® 아방가르드 : 군대 전체의 열 가운데 선두에서 걷는 한 군대의 일부를 가 르킵 선구적 역할을 하는 운동이나 그룹에 대해 쓰이는 말 본래는 전통 이나 규약, 기존의 화파나 운동과 단절하려는 의지 를 보여주는 작품이나

예술가를 의미한다 . 조형예술가는 이미 받아들여진 형태와 반대되는 혁명 적 정신을 새로운 형태로 세우려 한다. 전시와 살롱전이 대중과 비평가 사 이에서 아방 가르드 옹호자로서의 역할을 했다. 1914 년 전의 앵데팡당전 과 1946 년 이후의 레알리테 누벨이 바로 그 역할을 하였다 .

천이 어디에 있는가를 이제 겨우 발견하기 시작하고 있을 따름 이다 개설적인 서적들이 이미 출판되었으나 그 모두가 전기나 일화에 치우치고 있댜 어떤 문헌도 이 수준에서 벗어난 진정한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간신문이나 잡지에서 따온 소수의 안이 한 의견을 비평없이 채택했다. 무엇보다 논쟁이나 선전의 가치 를 가질 뿐 역사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그런 생각들을 보급시키 는 데 주력하고 있다. 〈초현실주의 선언〉이나 아폴리네르의 입 체주의에 관한 예언적 저술들은 분명히 소홀히 넘겨버릴 사건들 은 아니댜 ® 그러나 그 글들이 작가의 심오한 사고를 어느 정도 보여주는가를 우리는 연구해야 하며, 또한 심오하거나 혹은 피

® 초현실주의 선언 : 두 차례에 걸쳐 프랑스 저술가 앙드레 브르통 (1896-1966) 이 한 선언 일차는 1924 년 이성의 영역에 반대하는 것으로 상상의 지식 위에 초현실주의를 구축하려는 주장이었으며, 이차는 1930 년 일차 선언의 탈선과 방향전환을 비난하면서 하나의 정신, 죽 생과 사, 현실과 상상, 과 거와 미래, 전달될 수 있는 것과 전달될 수 없는 것, 높은 곳과 낮은 곳 등 이 모순적으로 지각되지 않는 정신의 영역을 지정한 선언이다. 아폴리네르 G ui llaume Ap ollina ire( 1880— 19 18) : 프랑스 0 시인 20 세기 초 기술과 심리분석의 놀라운 발달로 시인들은 새로운 영감의 원천을 탐구하 게 되었는데, 아폴리네르는 과거와 결별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한 최초의 시인이다. 형식상으로도 커다란 자유로움을 보이는 그의 시는 당시 싹트고 있었던 현대성의 모든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피카소 • 드랭 • 불라맹크 • 두아니에 루소와 친구가 되어 새로운 예술을 찬양했다. 현대 미술에 대해 깊 이 사고해 감에 따라 『 입 체 파 화가들, 미 학적 명 성 Les pe in t r es cub- istes , medit ation s es t h 函q ues 』을 저술하였다. 그의 가장 우수한 시집 『알 콜 A/cools 』을 출판했는데, 이 시집은 진정으로 프랑스 시를 개혁 했다고 평가받는다.

상적인 이 사고들이 화가들의 의도와 얼마만큼 일치하는가 조사 하고, 나아가서 이 예술가들의 의도가 그들의 작품과 어느 정도 합치하는가 알아보아야 한다. 마치 다양한 예술가들이 잘 정리 된 큰 상점의 선반에 신의 섭리에 따라 마련된 사고들을 구체화 한 것이라도 되는 듯이, 또 새로 등장하는 예술가들이 다른 사 람들을 따라서 그 선반 위의 사고에서 영감을 받아가며 그 사고 들을 사용하면 될 것처럼 현대미술사룰 쓰는 경향이 너무 농후 하댜 새로운 비평의 주된 야심은, 그들이 채택하는 운동으로부 터 그 원천을 찾아내거나, 혹은 정반대로 잘 알려지지 않은 운 동이나 경향을 발명해내는 일이다. 예술가들 각자가 그의 동료 들과 아무런 접촉 없이 오로지 자신의 천재성에 의해서 작품을 창조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않는 한 얼마 안가서 예술가의 수 보다 예술운동의 숫자가 더 많아지게 될 것이다. 비평이나 정보분야에 있어서의 결함을 몇 페이지의 경멸적인 말로 메꾸려는 불손한 의도는 물론 없다. 진정한 20 세기 미술사 를 언젠가 정립시키기 위해 기초가 될 수 있는 자료를 모으는 작업에 기울여야 할 공동의 노력에 대해 나는 잘 알고 있다. 영 구적인 것과 일시적인 것을 단번에 분별하려는 야망은 전연 없 댜 오히려 나의 구상은 훨씬 제한된 것으로, 즉 내가 제기했던 문제, 르네상스가 세웠던 회화공간, 그리고 19 세기 마지막 30 년 동안에 개혁적인 예술가들의 작업으로 인해 완전히 무너진 회화 공간이라는 문제를 염두에 두면서, 내가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옛 공간이 복귀의 희망은 전혀 없는 채로 결정적으로 사라져 버 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공간의 기본을 반박하기 위한 비평 적 사고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체계를 가진 이미 진보 된 발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나는 이 문제에 대한 관습적 입장

과는 반대로, 조형언어사의 한 순간을 보여주는 행운을 가 졌 던 몇몇 화가들, 다시 말해 르네상스 이후 취해진 견해 들을 완전히 버릴 수 있었던 예술가들, 이 예술가들을 구별해주는 요소가 아 니라 결합시키는 요소들을 찾아내보려 한다. 나의 선택이 분명히 무질서해 보일지도 모른다. 왜 루오나 샤 갈은 다루지 않았으며, 모딜리아니와 보나르 또 비용은 왜 안 다루었을까? 유트릴로는 왜 빠져 있을까? 미리 밝혀두지만 여기 서 현대 미술의 역사 전부를 쓰려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주기 바 란댜 이미 주의를 환기시킨 바대로, 새로움의 척도란 특히 공간 표현의 분야에서는 작품의 질이나 매력과 절대로 일치하지 않는 다는 사실이댜 과거에 있어서도 매한가지로, 일군의 조형작품 가운데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나 가장 대표적 작품은 독 창적 표현체계가 발견된 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나타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면 루오가 그 당시 감동적 상황을 대 변하는 훌륭한 작품을 만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시각화 작업에 있어 독창적 체계를 도입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예를 들어 근간에 새로 등장하는 화가들이 루오의 어떤 방식 을 따온다거나 그리고 거기서 보편적 표현요소를 만들어 내는 한에 있어서는 내가 틀렸다는 것을 물론 인정하는 바이다. 현재 로서는 루오의 테크닉은 아주 개성적이며 상당한 부분을 색유리 에서 따오고 있댜 색채의 독립적 가치에 관해서는 반 고흐의 발견을 확실히 많이 사용했고, 감정의 고결한 특성을 표현한 것 도 사실이다. 그러나 조형언어의 문제란 감동의 문제만은 아니 라고 생각한다 . 루오에 있어 중요한 것은 그가 장인이라기보다 는 인간이라는 점이다. 인간성 추구에 근본을 두는 미술비평을 옹호하는 벤투리가 그에게 아주 각별한 위치를 부여함은 당연하 다. 또 같은 경우인 샤갈도 높이 평가한댜

그러므로 루오와 샤갈은 정성들여 연구할 가치가 있으며, 특 히 지나간 반세기 동안에 전개된 감성의 파노라마를 차례대로 더듬어보려 할 때 확실히 그렇다. 그러나 그들이 차지하는 위치 를 잘 이해하려면 예를 들어 15 세기 초에 일어났던 일들을 환기 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초기 마사치오나 마솔리노보다 시대적으로 뒤에 오는 마티니나 안젤리코의 작품이 가치가 없다 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현대성이란 결코 한 집단으로서의 성격을 갖지 않는다. 단지 점점 더 그 수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는 수많은 작품들이 그 현대성을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여 기서 내가 추구하려는 바는, 일반적으로 기존의 언어를 사용하 는 평범한 정신상태를 지닌 인물들이 아니며 또한 가장 완성된 작품들 또한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인류는 중요 한 역사의 한 단계를 통과하고 있고, 또 각각의 개인들이 서로 의 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여러 언어들의 근본적 조건을 일부 변 형시키고 있다고 생각된다. 루오와 샤갈은 상당히 풍미 있는 언 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이미 증명된 체계에 기초를 둔 언어이다. 다른 예로 인상주의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는 유트릴로, 또 창 조자라기보다는 변혁자인 모딜리아니, 시각의 새로운 해석방법 보다는 기존의 것을 정리하는 데 더 끌리고 호기심을 가졌던 자 크 비용 등이 있다.” 내 생각에 시간이 흐른 후에 그 화가들의 1) 올 여름(1 951 년), 제 25 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자크 비용 전시실을 볼 기회가 있었고, 파리에 올 겨울에는 현대미술박물관에서 기다렸던 대규 모의 회고전이 있었다 . 두 차례에 걸쳐 자크 비용은 개혁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첫번째는 1910 년경 입체파를 황금분할과 수학적 사고 로 방향을 돌리게 했을 때이고, 두번째는 1944 년경 전후 세대의 젊은 화 가들의 대부 역을 했을 때이다. 이 점에서 그의 역할은 분명하다. 낭만주 의 같은 과거의 몇몇 양식들에 대한 신중한 해석과 연관을 취하면서, 또 한 황금분할 및 이국예술을 계승하면서, 입체파를 오늘날의 예술에 통합

시키려는 추구에 확신을 제공한 사람은 바로 그였다. 이러한 원 칙 적 입장 . 의 중요성은 강조되어야 한다. 예술가의 개인적 사변에 있어서 황금분할 및 레오나르도에 부여한 자리에 대해 내 개인으로서는 별로 동의하지 않 는다. 나는 이 중요성이 예술이 풍요롭게 새로워지는 데 오히려 해롭지 않을까 걱정된댜 그러나 나는 이 입체파 예술이 보여주는 감성적 • 감동 적 특징에 민감하며, 이 예술을 통해 이미 오늘날 가장 매력적인 인물의 하나가 등장하고 있다. 여기 본문에서 루오나 샤갈에 부여한 위치가 오늘 날 혼히 내리는 평가와 모순됨은 당연하다 . 그러나 이 문제 를 세심하게 검토해주기 바란다. 매그화랑에서 최근 열렸던 샤갈전시회는 나의 의견 을 바꾸어 놓았다. 그런데 리오넬로 벤투리는 특별히 그의 책 『지오토에 서 샤갈까지의 회화를 이해하기 위하여 』 에서 그들 예술의 〈감각적〉 특징 을 강조한다. 나는 여기서 테크닉과 〈시각화〉의 관점을 중시하고자 한다. 나는 이점에서 루오와 샤갈이 예술의 진정한 개척자가 아니라고 확신한 다. 여기서 모딜리아니의 위치는 미묘한 자리매김을 요하는 것처럼 보인 다. 곧 이 화가의 회고전이 있기를 기대해 보자. 유트릴로는 인상주의의 마지막 화가로 그렇다고 그를 소홀히 여길 수는 없지만 우리의 연구에서 는 제외하였다 .

위치는 커지지만 이들은 이미 지나간 세대의 구상적 방법에 더 욱 전념하게 된댜 그들의 작업이 필요한 것이긴 하다. 인간적 감성에 뿌리를 둔 그리고 감성의 분석적이고 시적인 표기 테크 닉에 기초를 둔 예술이 완벽하기 위해서 그들은 필요불가결의 예술가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같은 시대의 다른 예술가들은 다 른 역할을 했다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현대의 감성이나 ` 감각을 표현하는 방법을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이 세계를 형체 화하는 새로운 전달수단을 치밀하게 구상하는 방법도 발견했는 데 결국 이 체계는 학자나 기술자, 철학가들, 모든 소박한 행동 인들이 그들의 의지나 정서보다 더 높은 필요성에 이끌려, 물질 에 대한 행위나 지성의 연마가 변형시킨 우리의 능력에 따라서 구축해 낸 그 방법에 아주 가깝기 때문이다. 확신하는 바는 오늘날의 화가들은 14 세기의 화가들처럼 과거

보다는 미래로 향하고 있는 첫 사회 집단 가운데 하나라는 점이 댜 이것에 대한 증거를 보여주고자 하는데, 한편으로는 한 언어 에 동화될 수 있는 형태체계라고 간주되는 작품에 대한 분석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민속학이나 인류학, 사회학 같은 다양한 분 야에서 발견되고 있는 집단적 표현 현상, 소통 현상이 사회 발 전에서 맡았던 근본적 역할을 연구함으로써 그 증거를 보여주고 자 한댜 나는 또한 고고학이 인간에 대한 새로운 학문들 가운 데에서 정당한 자신의 자리를 찾기를 원하며, 이 분야는 우리 시대가 이룬 가장 커다란 작업이 될 것이지만 아직은 〈이미지一 언어 〉 의 역할이 충분히 알려져 있지 못하다. 20 세기에 와서 최초로 새로운 공간표현을 공동으로 시도한 것 은 입체파 운동이다. 여기서 입체파란 1914 년 이전의 반( 半) 이론 적이며 반( 半) 경험적인 원래 형태로서의 입체파를 말한다. 입체 주의의 정수가 무엇인가에 관해서는 수많은 모순된 견해들이 있 다 한쪽에서는 입체파가 세상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세잔의 교 훈에서 영향을 받아 완전히 인위적인 대상을 구축하려 했다고 주장한댜 그들은 또한 입체파가 인상주의나 야수파의 혼적을 따르거나 우주적 서정주의가 약속한 땅에 접근하는 사조보다는 덜 진보적이라고 보는 반면, 두아니에 같은 〈환상적 예술가들〉 이 새로운 사실주의에 접근하고 있다고 본다. 다른 사람들의 경 우는 정반대로, 입체파가 환상적 시각을 갖고 가시적 세계라는 현실을 재창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처 시적 현실을 창조해 낼 생각은 하지 못한 채 보이는 것의 재현에만 그쳤던 인상주의 가 남겨준 전통에 충실히 따르는 동시에, 순수하게 장식적인 풍 경을 재현하는 예술의 창시자 고갱과는 정반대의 입장에 서는 이 입체파는, 그러므로 세잔의 예술에 대한 성찰에서 벗어나 공

간의 표현이 아니라 사람의 눈이 포착할 수 있는 그대로의 볼륨 의 표현을 목적으로 했을 것이다. 입체파는 어떤 기하학에도 그 근거를 두고 있지 않다고까지 서술하게 된다. 왜냐하면 직선적 인 것이나 곡선적인 것은 인간 시각의 선험적 사실에서 유래하 며, 사물의 부분적 모방에 대한 관심이 없어질 때 모든 조형 미 술 작품에서 발견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또 어떤 이들 의 경우는 입체파가 르네상스의 기하학적 정신을 버림과 동시에 율동을 발견했고, 그점에서 신사실주의에 기초하고 있다고 주장 한댜 2)

2) 이 예술가들과 입체파의 참고문헌은 작성하기가 어렵다. 먼저 시대의 경 우처럼 비평적 참고문헌을 집대성해주는 종합적 단행본이 없다. 이런 류 의 참고문헌을 제공하는 일은 우리 작업의 범위 밖의 일이다. 여기서 근 본적 문제는 입체파의 이론을 그 작품들과 대비시키는 일이란 점 을 단지 상기하고자 한다. 인상주의 전시가 있었던 1875 년경이나 사실주의가 난 국에 처했던 1855 년경처럼 , 집단들간의 상호적 영향이 무엇인지 분명히 말하기는 불가능하지만 , 예술적 사변과 문학적 • 학문적 • 철학적 사고 사 이에 확실한 상관성이 있음은 분명하다. 참고문헌의 핵심은 도리발 B . Do ri val 의 책 『 현대 프랑스 회화의 여러 단계 2, 야수파와 입체파 』 (파리, 1944) 에 실려 있다 그 시대의 추세에 대해서 나는 완전히 동의하지 않지 만 그의 책은 본문의 박식하고 양심적인 검토에 근거를 둔다 . 또한 위그 의 책 『 현대 화가들 』 (제 2 판, 파리, 1946) 을 참조하라 . 이 책은 1933 년과 1934 년에 예술에 대한 사랑 시리즈에서 출판한 『현대 예술사 』 에서 다시 다루어지고 있다.

이 다양한 이론들이 그들의 진술을 통해서 내세우고 있는 증 거들을 내가 모르는 바는 아니다. 특히 두번째 입장을 옹호하면 서 입체파를 연구하는 진지한 사가( 史家 )들은 , 사실 이제 그 마 지막 증인이 곧 사라지게 되는 한 집단의 입장을 미래를 위해 유용하게 부활시켜나가는 동시에 그 당시의 예술가들에 충실한 주석가들이기도 하다. 이론에서가 아니라 작품에서 표현된 대로, 입체주의가 제기한 문제는 이 여러 해석들을 초월하고 있다.

원래 입체파는 절반은 체계적이고 절반은 경험적인 모습을 띠 고 있었댜 아폴리네르가 어느 정도로 자신의 친구들의 작품을 정확하게 해석하고 있는가를 말해보는 일은, 인상주의와 관련해 서 듀랑티 Duran ty ® 와 대가(大家)들이 가졌던 상호 관계를 밝히 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이 입체파 운동에 있어서 그들의 성찰이나 의향을 너무 낮게 보아서도 또 너무 과대 평가해서도 안된다. 사실 입체파는 진보된 공식의 하나이거나 발견해야 할 하나의 새로운 공식도 아니며, 이 회화운동은 사실주의인 동시 에 이 세계에 대해 임의로 만든 형태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구 체적 방법이 아니라, 흔히는 모순된 시도들로 분리되어 버린 조 형 사고가 취하는 전반적 방향이다. 그러므로 입체파의 적절한 정의를 찾을 수도 없고, 특히 완전한 정의는 알 수도 없다. 이 회화운동은 대기가 없는 회화를 만들려 했던 동시에 빛의 표현 조건을 변화시키려 했기 때문에 오로지 색채나 형태만으로 가시 적인 또는 비가시적인 현실에 이르려 했으며 때로는 물체가 갖 고 있는 고유한 색채를 다시 쓰기도 했으며 기하학주의, 아라베 스크를 시도하기도 했다.

® 듀랑티 Louis Edmond Duranty (l 833-1880) : 프랑스 저술가. 샹플레리 Cham pfl eu ry와 더불어 사실주의 운동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묘사에 있어 객관성과 진실성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소설을 썼다. 심리적 분석에서 재 주를 보인 『앙리에트 제라르의 불행 ,1 (1 860), 『아름다운 기욤의 주장 』 (18 62) 둥은 졸라가 찬양한 시도를 명확히 보여준다. 쿠르베 • 마네 • 드가 의 친구로서 인상주의 를 최 초로 옹호한 사람 중의 하나이 다 . l'o7 6 1d 미 술 비평지 !J'라 가제트 데 보자르 』 에 인상주의를 옹호하는 기사 『새로운 회 화』를 썼으나 냉소의 대상이 되었다.

입체파의 가장 큰 관심사의 하나는 공간의 차원에 관한 것이 었댜 때로는 사물의 어떤 부분들의 위치를 서로 이동시켜 가면 서, 운동에 의해 그 유명한 4 차원을 도입하거나, 어떤 때는 공간

자체를 전통적 공간은 배제하고 휘어진 형태로 만들어 버리려고 도 하였댜 입체파를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왜냐하면 그들 이 시작해 놓은 체험들이 사실 아직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우리는 분산적인 조사 연구의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이 세계에 대해서 표준이 될 만한 시각적 해석을 가능하게 해주는 완전한 총체적 법칙이나, 이 세계를 전형적으로 형상화하는 체 계를 확정시켜주는 법칙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 내 개인의 의견 으로는, 하나의 새로운 아카데미즘이 나올 때라야 비로소 입체 주의가 정의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시도되었던 수많은 공 식들 가운데서, 총체적 해결책의 최초의 윤곽이 무엇이었는가 정도밖에는 말할 수가 없겠다. 또 우선 두드러지게 눈에 뜨이는 것은 입체파 체험이 보여주 는 개방적 성격이다. 자동적으로 발견된 하나의 숫자를 적용하 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를 시도해 본다. 최초의 입체파 가운데 , 하나의 주창 이념에,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주창 이념이 없었으 므로, 1910 년에서 1914 년 사이에 있었던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인 체험들 가운데 어떤 하나에만 충실했던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가 분류작업에서 부딪치는 난관은, 하나의 새로운 형상화 체계가 발전하는 역사적 과정에서 흔히 보이는 일반적인 원인에 서 오는 것 같다. 연구가 항상 하나의 방법을 발견하는 것이라 보면 문제는 간단하지만, 서서히 방법을 창조해 내기 위해서는, 의미가 갖는 가치나 표현된 가치의 규약된 안정성을 도입함에 따라 경험적이고 모색하는 사고에서 우리는 출발하게 된다. 사 실상 사전에 분류된 가치 평가에 따라 표현된 요소들을 선택해 서는 안된다. 개인의 체질에 따른 손재주가 관찰되거나 표현된 대상이 갖는 사회적 의미에 대한 집단적 평가와 혼합되면서, 개 개인들의 일상의 행위가 축적되는 체험을 작품화하는 것이 문제

이지, 언어에 대한 이론을 작품화하는 것은 문제시 되지 않는다. 입체파를 간단히 설명하는 방법이 있긴 하다 . 죽 입체파를 하 나의 유행으로 보거나, 혹은 1910 년경에 활동한 브라크, 레제, 피카소, 아폴리네르, 쥬앙 그리, 들로네, 글레이즈 메칭거 등을 중심으로 모였던 화가들의 작품을 입체파로 간주하는 것인데, 특히 이론이 반드시 작품과 일치한다고 미리 인정해 놓는다면, 문제는 간단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할 때, 레제는 입체파 에서 〈 탈퇴〉했다고 말하거나 생각하게 되며, 또 1910 년의 프랑 스 입체파는 전후에 외국인들에 의해 〈변화〉를 겪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댜 그 밖에도, 여름철에 시골집을 갔다가 거기서 떠나오듯이 피카소가 한때 입체파에 들어갔다가 다시 거기서 나 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 이는 마치 르누아르가 인상주의에 속 했다가 다시 나왔다고 말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는 것과도 같은 데, 이런 식으로 전개해 나가면 결국에는 그 미술 운동을 영예 롭게 만든 화가들의 개성의 일관성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를 초 래하고 만다. 여기서 우리는 확실히 커다란 어려움에 부딪치게 된다 . 사실 이것은 어느 시대에나 있기 마련인 유행 les modes 과 양식 le sty le 사이의 문제로서, 나는 이 두 현상 사이에 단지 정도의 차 이만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 하나의 양식이란 좀 더 오래 지 속되는 유행인 것은 아니며, 축적된 요소들로부터 점진적으로 선택되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유행이란 변하는 것에 대한 사람 들의 취미에 답하는 것이며, 또 이 유행은 죽각적이고 일시적인 목적을 위해 구체적이고 회화적인 요소들을 사용하게 된다. 양 식은 불변이라는 필요성에 답하며, 감각을 해석하고 표현하는데 상당히 지속적인 방법을 채용한다. 양식은 단편적인 체험의 총 체가 아니라, 오히려 단번에 형성되는 것은 아니나 일단 기정

사실이 되면 하나의 견고한 덩어리가 되어 일시적인 것을 받아 들이지 못하는 하나의 정신상태에 따라서, 수많은 유행의 체험 들에 방향을 제시하는 하나의 틀이다. 한번 양식이 변하려면 백 번 정도의 실패가 있은 후에야 가능하다. 여러 유행은 항상 있 기 마련이지만, 양식은 새롭게 변화되는 일이 아주 드물다. 유행 은 새로운 양식이 생활 내부에 통합되는 느린 단계를 보여준다. 20 세기에 있었던 유행을 봄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조형양식의 발달사에 못지 않게 새로운 예술에 대한 저항의 역사도 알 수 있다. 현대 과학문명의 방향에서 전개되는 모든 사고들은, 우리 가 주의를 기울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상관없이 점차적으로 이 역사들을 확인해가고 있다. 그러므로 현대에 있어서의 유행과 양식의 역사를 병행해 가면 서 혼동하지 않고 연구하는 일이 대단히 중요하다 . 오직 그렇게 하면서, 예술가들이 그 당시에 형태로 표현하는 것에 대한 필요 성을 어떤 단계를 거치면서 의식하게 되었는지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살아 있는 전통의 활력과 발명의 활력을 혼합해 주는 끊임없는 유행의 밀물과 썰물에 그 예술가들이 참여했음을 보여주는 모든 중거들과 위의 단계들을 구별해 볼 때 이러한 발 견이 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시점에 와서는, 유행에 따라 혹인미술에서 영 감을 받기도 하고, 또는 러시아 발레, 혹은 로마미술에서 영감을 받기도 한다. 바로 여기에 아주 중대한 현상, 죽 예술가들을 그 들 시대와 밀접하게 연결짓는 현상들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오 늘날 회화의 방향을 만들어낸 것이 흑인미술의 체험이나 발레, 로마미술에 대한 지식이었다고 인정할 수는 없다. 화가들은, 어 느 정도는 모방적이 아닌 창조적 집념에 따라, 또한 어느 정도 는 그들이 가진 회화적이고 독창적인 요소들에 따라 이 양식들

을 해석하였댜 이 작품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작품들이 보여주는 일정한 해석 속에서 그들이 추구했던 것에 대한 확인 을 발견해감에 따라, 얼마만큼은 그들이 받아들였으며, 또 한편 으로는 강요받기도 한 이 유행들을 그들은 사용하여 갔다. 툴루 즈 로트렉식의 테마와 전에 없던 새로운 형상화를 독특하게 결 합한 r 아비뇽의 처녀들」을 제작했을 때, 피카소에게 영감을 준 것은 이국적 미술이 아니었다. 여기서의 핵심은, 우리 시대의 예 술가와 대중들의 경멸 섞인 해석으로부터 나온 이 현대적 형상 화가 기초를 두고 있는 대상물 제작자들의 이해가, 현대 예술가 들의 흑인예술이나 원시미술, 로마미술에 대한 이해와 어느 정 도 일치하는가를 알아보는 일이다. 하나의 새로운 지적 견해란, 자연 현상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한 문화를 구성하는 대상물에 대해서도 철저히 새로운 총체적 해석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피 카소 양식에 방향을 제시한 것은 흑인미술이 아니라, 이 세계에 대한 피카소 자신의 분석적인 시각해석 방법이다. 이 시각적 해 석 방법은 감각과 지성의 합치에 근거를 둘 뿐 아니라 조형문자 에 대한 재능을 사용하는 방식에도 기초를 두는데 바로 이것이 피카소로 하여금 이 이국예술을 특별히 개척하도록 했던 것이다 .3) 3) 그 문제에 대한 이런 입장이 중요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흔히 흑인예술 이나 로마네스크 미술이 현대미술에 끼친 영향에 대해 언급한다. 동일한 방식이 완전히 다른 감각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음은 말하지 않고 피 상적 유사성만을 흔히 들추어 말한다. r 아비뇽의 처녀들』의 감정, 말하자 면 의도와, 아프리카의 그런 의식적 마스크가 만들어지게 된 감정 사이에 는 어떤 공통점도 없다. 현대미술과 이국 취미와의 관계의 문제에 대해 일반적 유사성보다는 각 예술의 의미, 표현방법, 특수한 의도 둥을 고려 하는 연구가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안에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주제가 새롭게 드러날 것이며, 역시 수많은 작품에 대한 이해가 새로워질 것이 다. 차이 심리학의 연구에 의해서만 그것을 성취할 수 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이미 지적한 린하르트의 연구와 마이어손의 논문(제 1 장의 주

그러므로 계속 이어져 나간 유행들을 피상적으로 분석한 뒤 그에 의거해서 지난 반세기 동안의 미술사를 구획짓는 일이 얼 마나 소용없는 일인지를 알 수 있다. 계속 추가되어 가면서 한 시대가 가진 취향의 평균치를 보여주는 여러 다양한 사조들을 인정한다고 해서, 우리 시대의 회화가 만들어 낸 특수한 형태들 올 설명할 수는 없다. 나는 각별히 유행의 역사와 현대 취향의 역사에 관심이 쏠리며, 이에 대해 객관적 연구를 하는 것이 불 가피하다고 본댜 그러나 나의 견해로는, 수집된 현상들이 축적 됨으로써 미술사 발달의 도표를 제공해 주게 될텐데, 이 수집된 현상들을 묘사하는 일이 이루어야 할 목적은 아니라고 본다. 15 세기 이탈리아에서 유행했던 것들의 역사에서 오늘날 남은 것은 무엇일까? 어떤 해에는 여자들이 어떤 화장에 미쳐 있었다거나, 머리카락이나 정원을 가꾸고 표현하는 도구나 방법을 발견했다 거나, 어떤 이국적 문화형태를 발견했다고 우리에게 환기시켜주 는 학자들이 가끔 나타난다. 지나간 세기들의 취향이나, 열광, 유행의 역사를 세워보는 일은 확실히 홍미진진한 일이다. 그렇지만 한 시대가 발견한 모든 것이 양식 발전에 사용되지는 않는다. 한 집단의 인물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서, 자신을 표현 하고 살아남게 되는 것은 오로지 독창적 작품에 의해서만 가능하 댜 결국 20 세기 초 유행의 역사, 취향의 역사와 관련된 연구가 발전되어 나가기를 바라면서 이 연구의 범위를 잘 구분해 보는 일이 불가피하다고 생각된다. 이 연구는 사회사와 더불어 현대미 술 발전사에 자료를 제공해 줄 것이며, 또 지속적 표현방법이 전 개되어 나간 방식이나 조건을 다시 서술하게 해줄 것이다. 하나의 양식이란 우리가 주의를 하든 하지 않든 간에, 아방가

23, 41 번) 참조.

르드 화가나 조각가들 작품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하나의 엄연 한 사실로서 전세계의 건축분야에서 인정되고 있다 . 4) 그 양식이 고정되었다거나, 또는 이 양식이 모든 가능성을 발전시켰다거나, 그 표준을 이미 확립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모든 예술에 공통된 하나의 경향이 촌재하며, 우리 세대는 앞선 세대 4) 이 책에서 나는 회화만 다루었다 . 다루어진 부분 들 은 임의적이지만, 나 는 전문적인 책 을 쓰려 했으며 완벽한 책을 쓰려 한 것이 아니다. 한 시 대의 회화나 조각 또는 건 축 이 사용한 방법들을 비교한다면, 이 책은 거 창 한 규모가 될 것이다. 다 른 기회에 이 문제들을 다 룰 수 있기 를 바란 댜 모든 분야의 예술에 공 통 된 한 어떤 경향이 여러 다 른 테크닉과 관련 되어 다른 형태 들 로 표현된다는 주장은 많은 제약을 받게 될 것이다. 이 것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 1948 년 제네바 국제회담이 있었을 때 나온 책 『현 대예술 토 론』 (파리, 1949) 을 읽으면 된다 . 예외없이 모든 참가자들이 이 회 의에서 대중 또 는 사회와 아방가르드 예술가 들 간의 상반성에 대해 언 급 한 것을 보게 되다 . 오로지 안세르메만이 음악에 관해 개방적인 생각 을 가 지 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오늘날 대중과 테크닉이 마치 역사의 안정 되고 구체적인 요소인 것처럼, 이 대중과 테크닉을 진정으로 신성시하고 있다 . 프리트만 M.G . F ri edmann 은 그의 훌륭한 책 『 산업 기계주의에 있 어서 인간의 문제 』 (파리, 1946) 의 서문에서, 기술화된 문화, 인간과 대량 생산과의 관계의 견지에서 훌 륭하게 서술된 문화가 전개되고 있는 사회 집단에 관한 연구 를 계속할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 또한 멈포드L. M umf ord 의 책 , 『 기술과 문화 』 (뉴욕, 1934) 와 『 대도시 문화 』 (뉴욕, 1938), 기디옹의 책 『 기계화가 명령한다 』 (옥스포드, 미국 , 1948) 에서도 연구자료 를 찾 을 수 있다 . 바로 이 기디옹의 책에서, 입체파 미술과 질브레드의 회 화운동 기록에 대한 실험적 연구와의 관계를 처음으로 볼 수 있다. 나 로서는, 수많은 현대 기구 들 의 공기역학적 형태와 로랑스나 아담의 작품 같은 현대 조각의 발전 사이에 심리학적 밀접한 유사성이 존재한다고 확 신한다. 또 이런 현대 조각 들 과 기하학자들의 위상학적 시각 사이나, 물 리학의 현대적 개념과 생물학의 현대적 개념 사이에도 있다고 본다 . 지나 간 세대들의 미술은 일련의 자율적이고 병치된 대상들로 된 세계에 대한 시각적 이해에 토대 를 두었었다. 이제 예술은 현대 기술처럼 접촉에 의한 지각이 엄청난 역할을 하는 총체적이고 지속적인 비전으로 향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술심리학의 쇄신이 필요하다.

가 시작해 놓은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하게 하는 그런 경향 이 존재한다고 말하고자 한다. 하나의 새로운 양식에의 접근은 특히 회화 공간의 개념과 형상화의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물 론 앞으로 높은 문화를 소지한 나라들이 인정하게 될 공식을 이 미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지 아닌지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직 아니며, 한 언어가 고착화되기 이전에 있는 개방된 경험의 단계 에 우리가 겨우 머물러 있는지도 말할 수 없는 상태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피에로_알베르티의 단계에 접근하고 있는지, 혹 은 아직도 우첼로-브루넬레스키의 단계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입체주의나 야수주의,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 추상 미술 등이 어떤 모양으로 등장하는가, 또 어떤 표현가치를 갖는 가에 대한 다양한 토론은 옆에다 제쳐놓도록 하자. 현대의 예술 적 생활이 보여준 여러 측면에 대한 일련의 방법론적인 자료상 의 연구는 다음 기회에 하도록 하겠다. 그러나 바로 지금부터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현대의 양식을 해석하는 데 열쇠가 되는 공간의 회화적 표현에 있어서 현재의 상황이 어떠한가 지 적해 보는 일이다. 그런 이유에서 지난 반세기를 하나의 덩어리로 간주하고, 이 미 말한 바대로 어떤 예술가는 지속적으로 어떤 한 미술운동과 동일시된다는 것을 말해주거나, 또는 어떤 이론적 연구가 새로 운 양식의 핵심을 보여주는 것을 말하는 모든 개인을 단위로 하 는 연구나 가정은 제의하겠다. 이 연구의 가장 큰 난제의 하나는, 가장 대담한 작품 내부에 불가피하게 전통에 속하는 부분들이 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예를 들면 우첼로나 마사치오, 마솔리노의 작품에는 그들보다 앞 선 세대의 테크닉에 속하지만 매력으로 충만한 부분들이 있는

것처럼, 세잔이나, 반 고흐, 고갱의 수많은 작품들은 인상주의적 이상에 속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우리는 아직도 양 식이 고정된 단계에 이르렀다고는 말할 수 없다. 특히 견고한 기 하학의 대폭적인 형상화이거나 아라베스크에 속하는 것들은 모 두 세잔이나 고갱의 교훈에 더 첨부하는 것이 없이 이 교훈들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세속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찬가지로 화 면의 깊이룰 직접적으로 형상화하는 수단으로서 순수 색채의 자 율적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모두 반고호에서 나온 것이며, 시각 피라미드나 황금률에 대한 사고는 모두 쇠라의 전통에 속한다. 현대 미술의 이러한 측면은 분명히 경멸할 것은 아닌데, 그것 은 19 세기 말에 있었던 체험들 가운데 일부의 근본적인 부분이 회화의 일반적 테크닉이 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단계를 넘어섰고, 그 교훈을 받지 못한 사람들까지도 그 교 훈을 얻을 수 있도록 이 기법상의 수단이 실험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댜 현대미술을 중상하는 사람 가운데 보나르 애호가가 있 는데, 보나르는 바로 과도기 인물의 한 사람으로, 바로 이 화가 덕분에 수가 늘어난 아마추어 서클이 어느 정도 의식적으로 은 밀하게 동의함으로써 여러 양식들이 정립된다. 보나르 덕분에 우리 현대인들은 선적인 구조 없이도 작품을 읽을 수 있게 되었 댜 피카소의 청색 시대 덕분에 데포르마시옹 la de fo rma ti on ® 에 어떤 표현 가치를 부여하게 되었으며, 마터스 덕으로 타원형의 ® 데포르마시옹: 에티엔느 수리오 E ti enne So uri au 의 『 미학 용어 Vo

있으나 대부분은 주관적 표현이라는 필요성에 답하기 위한 것이거나, 철 저히 조형적 언어를 전개시키고자 하는 예술가의 자유에의 욕구에서 온 다. 데포름을 나비스파의 경우에서와 같이, 〈 주관적이고 표현적 데포름 〉 과, 〈객관적이고 체계적 데포름 〉 의 두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입체파의 데포름은 두번째 카테고리에 속하며 완전히 체계적이고 철 저히 지성적이 다 . 형태는 여러 요소들을 회화적으로 지각할 필요에 의해 변형된다. 선의 붕괴, 경의 분리적 구성 동은 보통 복수적 조망이라는 법칙 , 개념적 현실 올 환영적 현실로 대체하려는 동시성의 법칙에 기인한다. 데포름은 서투름이나 무질서의 효과라기보다는 반대로 창조의 중십이 되는 법칙이다 . 조형작가의 양도할 수 없는 자유를 표현한다. 데포름은 조 형예술에만 국한되지 않고 영화나 사진에서도 사용한다 . 죽 거울과 렌즈 의 작용으로 예기치 않았던 엉뚱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

공간을 알게 되었다. 마티스의 두 「식기대」를 볼 때, 오 늘 날 얼 마나 많은 사람들이 황홀해 하는지 모른다. 인상주의 원칙을 따 라 제작된 이 작품은 이제는 그들에게 안심을 주는 듯하며, 고 갱에서 따온 아라베스크가 대상과 배경 사이에 통일을 세워주 고, 전통적 투시 형태와의 단절을 잊게 해준다 . 이에 대해 우리 는 감사의 표시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 하나의 새로운 언어란 어디서나 받아들여지는 체계에서 빌려온 표현에 의해서만 전달 이 가능하다. 1890 년에서 1905 년 사이에 잘 이해받지 못했던 개 혁자들이 취했던 입장을 다음 반세기가 상당한 정도로 확실시 해준 것은 사실이다. 야수파나 포스터 없이는 반 고흐도 고갱도 이해되지 못했을 것이다 . 어쨌든 생략법이나 아라베스크법, 또 순수한 톤이나 평범하고 기복이 없는 색조의 사용도 우리 시대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데 있어서, 기하학적 투시가 강조되는 경들을 도입한 입체파들의 초기 방법을 능가하지 못하는 것 같다. 몽크나 칸딘스키류의 감 상주의가 과거의 체험 전개 이상이라고 나는 생각지 않으며 이 를 반복해 말할 필요는 없겠다 . 5)

5) 내가 말하려는 마티스의 두 작품 r 식기대J는, 예술에 대한 사랑 시리즈 는 1933 년에 위그의 가장 중요한 저술 『 현대미술사 』 의 101, 102 쪽에 실 은 적이 있으며, 이것은 오늘날까지도 그 시대에 대한 우리들의 연구에 토대가 되고 있댜 표현주의에 관해서는 스키라의 책이 입체파에 부여하 는 지위와 대등한 지위 를 부여하려 했다. 이 점에 관해서는 수많은 저술 이 나올것이라고 생각한다 . 그렇다고 여기서 추상미술의 문제를 해결했 다고 자랑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주제에 대해 최근에 출간된 책 들이 완전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있겠다. 그 예로 특별히 7 추상미 술, 기원과 초기 대가들 』 (파리, 매그, 1950) 과 에스티엔느 C . Es ti enne 의 『 칸딘스키 』 (파리, 1950) 를 들고자 한다. 현재의 참고문헌은 스키라의 제 3 권 에 실려 있다 추상미술이 현대미술의 새로운 세력의 하나를 형성한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이 우리시대의 발견이라고 본다든가(이 미술은 오히려 미술의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경향의 하나이기 때문에 그렇게 볼 수 없 다), 또는 추상미술을 우주의 감추어진 힘과의 신비스럽고 반(半)의식적 인 몰입에 기초를 둔 것으로 보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정의되지 않는 예술, 잠재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 천사가 일러주는 대로 책을 저술하지 않는 것같이 미술도 영혼이 말하는 것을 따라 그리는 것이 아니다. 추상 미술의 영감의 특징을 옹호하는 자들은 새로운 복음서의 마가와 누가이 다. 게다가 이 옹호자들은 어떻게 여러 세기 동안 성모 마리아를 조각한 까만 돌이나 〈사실적〉 초상화를 숭배해 왔는가를 이해하게 해준다. 우리 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 시대는 신화의 풍요로운 창조자가 되고 있다. 그 리고 바로 이점은, 우리 시대를 정의내리는 근본적 변혁에 대한 나의 논 문을 증명해 준다.

여기에서 위치를 정확히 규정짓기 어려운 화가의 영향력에 대 해서는 별도로 자리를 마련해야 할 것이며, 그런 면에서 내가 그 간 여러 차례 합당한 자리를 마련하지 못했던 쇠라가 그 예이다. 그의 작품의 진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의 작품들 은 상당히 매혹적인데 r 서커스』 같은 별로 독창적이지 않은 경 우까지도 그러하다. 쇠라가 분위기의 창조자였음은 의심의 여지 가 없으며, 그림에 민감한 사람이면 누구든간에 그의 재주를 인 정하게 된댜 이것은 그가 황금률을 잘 사용한 데서 기인한다고 나는 전연 생각지 않으며, 게다가 〈미( 美 )_공식 la beaute - fo r mu-

le 〉이란 것도 믿지 않는다 공식이란 설명이지 영감의 원천은 결 코 아니댜 살아 있는 작품이란 계산이 아닌 나름대로의 독자적 법칙을 갖고 있는 상상에서 나오며, 좀 더 정확히는, 한 예술작 품을 수학적 특질로 표현함은 합법적이나, 예술과 수학과의 관 계를 세워가면서 우리가 진정한 〈이해〉에 이를 수 있다는 환상 을 우리에게 줄 수는 없다. 각자가 개인의 언어로 그림을 해석할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이 해석을 명확한 설명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한 작품의 가치 및 영향력은 그 작품이 받게 되는 해석의 양에 따라 설명되긴 하지만, 이 각각의 설명 때문에 결국은 전체 적 의미가 축소되어 버릴 수 있으므로 이 각각의 설명들을 그 예술가를 정당화시키는 것으로서 간주해서는 안된다. (i I 6) 예술과 수학과의 관계에 대한 사고는 이제 겨우 초기단계이 지 만 오히려 훌 륭한 장래가 앞에 놓여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 앞서 기디옹의 책 『 기계 화가 명령한다 』 의 몇 구절을 앞의 주 4 번에서 지적했다 . 기하학의 근본적 공식을 구체화하는 수학자들의 사고가 상당히 홍미있음 을 강조해야 한다. 르 리오네 F. Le L i onn ai s 와 생트 라그 A. S ai n t e-La g ue 의 책 참조 르 리 오네는 기하학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공식의 공간적 의의 를 구체화하는 모형을 실제로 만들었다. 그의 지도하에 출간된 < 카이에 뒤 쉬드 > 특별 호 참조. 『 내일의 과학적 인본주의 』 , 『 수학적 사고의 커다란 사조 』 , 특히 〈수학의 미〉에 대한 그의 논문(파리, 1948) 의 436 쪽과 그 이하 참조. 생트 -라그는 우리가 잘 알고 숙고해봐야 할 책인 『 형태의 세계 』 (파리, 1948) 를 저술했다 . 학자들과 예술가들의 공동의 노력에 의해, 점진적으로 이 세계에 대한 새로운 조형 시각과 체험이 대중들 속에 뿌리 를 내리고 있 다. 가장 특기할 만한 사실은 여러 분야의 연구가 계획된 작업이 아님에 도 불구하고 각자가 동시적으로 유사한 결과에 도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 우리 시대에 있어 현대 인간과 물질과의 접촉을 닮은 예술작품들이 지니 는 의미깊은 가치의 놀라운 증명이 바로 그것이다. 한 시대의 이 모든 특 수한 표출들을 배경으로 세계와 사회에 대한 공동의 시각이 있으며, 이 시각은 자기 주위환경에 대한 인간 행위의 방식에 달려 있다. 또 이 시각 에서 사건들의 물리적 • 사회적 인과성에 대한 해석이 나오게 된다 . 예술 가는 근거없는 상징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기호〉, 대상, 동

일한 차원에서의 작품과 예술을 창조한다.

바로 쇠라의 경우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의 양식에는 인위라고 여겨지는 의도적인 무엇인가가 있다. 톤의 분할이나 빛의 구성 등에 대한 그의 모든 이론이 추상적 성격을 띠고 있다 따라서 결국 거기에서 한 문자만이 남지 않을까 걱 정된다 빛을 표현하는 데 있어 먼저 있었던 것과는 좀 다른 기 법에 기초를 둔 인상주의에 쇠라는 도달하고 있다. 양식을 세우 기 위해서는 인상주의적 작업을 분할주의로 대체하는 것만으로 는 충분치 못하다. 여기서 양식이란 다시 말하면 시각적 해석 • 방법, 사물들 사이나 또는 대상과 주체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의식하는 기록인 것이다. 쇠라에 있어, 공간 형상화에서 볼 때 그의 화면은 전적으로 전통적이다 . 그의 화면은 입방체적 공간 과 선적 투시가 여전히 지켜지고 있어 인상주의로의 전체적 후 퇴가 보인다. 기법은 미세한 수공적 제조법에 가깝다. 나는 그런 입장을 풍요로운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신인상주의가 공간의 조형적 형상화의 역사에서 긍정적 단계를 차지했다고도 생각하 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 예술가들 가운데 쇠라는 커다란 명성을 누리고 있고, 이 명성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 댜 그러므로 내 개인적 견해로는 그가 공간의 시각적 해석에 있어 평범한 작품을 만들어낸 것으로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 고 그는 현대 미술 발전에 있어 그 나름대로의 역할을 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쇠라에게 원래 있던 것 이상으로 우리가 그를 평가 했다 하더라도 이제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 되어 버렸 댜 물론 그렇다고 해서 쇠라가 그 유명한 〈신고전주의〉의 아버 지 격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스공자크는 한때 이 신고전

주의의 영웅이었다 7) 내 생각에는 쇠라 작품을 모두 모아서 열 렸던 전시회가 결정적이었다고 생각된다. 그의 100 여 점의 작품 이 세라핀 ® 의 두 작품에도 못 미쳤던 이 화가를 사람들은 곧 잊 어버리게 될 것이다. 7) 쇠라 Seura t나 신고전주의의 전통적 해석에 관해서는 레이 R. Re y의 『 19 세 기 말 프랑스 회화에서 고전적 감성의 부활 .!I (파리, 1930, 참고문헌) 참조. 현대미술의 기초를 고전주의로의 복귀에 두는 바로 그의 책을, 인상주의 에 대한 내 책에서, 전에 통렬히 비난한 적이 있다. 오늘날 미 술 에서 안정 된 확고한 길을 발견하려다가 결국은 세잔 작품, 드가나 피카소의 작품에 서까지 고전적 도표와 비교되는 선적 방식이 보이는 작품들을 따로 떼어 놓게 되었다. 이것이 역사적 양식일까 아니면 획일화된 양식발전의 한 단 계인 것일까? 그 위에 또 어떤 이들은 쇠라를 신고전주의의 대가로 보는 반면, 예를 들면 르월드 같은 다른 이들은 쇠라를 신인상주의의 대가로 본다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 모든 해석의 공통된 오류는 그 화가 의 삶에서 출발하지 않고 책에 의한 공식들이나 시대에 뒤진 범주 를 따지 는 데에서 생긴다. 가장 중대한 문제는, 쇠라가 신고전주의에 속하는지 또 는 신 어떤 주의에 속하는지를 알려고 비평가들이 서로 다툰다는 사실이 아니라, 화가들이 신 이런 또는 신 저런 방식으로 그린다는 사실이다. 그 러나 결국 화가들은 티치아노의 색채와 라파엘의 데생을 화합했던 17 세 기 아카데미파 화가들이 했던 것만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 아카데미는 항상 있어 왔으나 이와 병행하여 예술은 항상 진보해 왔다. 쇠라에 대해 서는 쿠스뒤리에 L. Cous turi er 의 책, 특히 『 쇠라 』 (파리, 1921) 와 칸바일러 M. D. H. Kahnwe il er 의 『 주앙 그리, 그의 생애, 그의 작품, 그의 저술』(파 리, 1946) 에 여러 홍미있는 정보가 실려 있다. 들로네에 대해서는 지금 한 권의 단행본을 기다리는 중이지만, 기디옹 웰커 G i e di on-Welcker 의 훌륭 한 학술기사 『로베르 들로네』(워크, 1946) 에서 들로네에 대한 기본적 평 가를, 또 스키라 제 3 권에서 참고문헌을 볼 수 있다. 살아남은 미술을 제작 하지 못한 현대화가로는 스공자크만을 인용하였다. 일시적으로 성공은 했 으나 계속 살아남을 것같이 보이지 않는, 감성이 예민하고 상당히 진지한 화가들을 모욕하거나 격 렬하게 딱 잘라 말하고 싶지 않다. ® 세라핀 Seraph ine de Sen lis( 1 8 64-1934) : 꽃을 그린 프랑스 화가. 가난한 농부의 딸로서 그의 회화작업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1912 년 상 리스 Se nli s 에서 위드 W ilh elm Uhde 가 우연히 이 화가의 한 작품을 발견 했는데 자신의 하인의 작품임을 알게 되어 놀란다. 전후에 다시 지방전시

회에서 그의 옛 하인의 작품을 재발견하고 세라핀을 도와서 대작품들을 찾아 모았댜 가난과 종교적 황홀의 상태에서 꽃, 앞 과일 동을 모았으며, 그림에는 화관 가운데에 눈이 그려져 있고 수술이 눈썹이나 입술의 형태 를 하고 있다. 이 식물 모티브들은 묘사적이 아니라 상상적임에도 불구하 고 놀라운 확실성에 입각하여 그려졌으며 날카로운 리듬감각을 갖고 구성 되었다 . 색채만을 보아서는 무슨 물감인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물감이 어떻게 그렇게 변하지 않는 신선함을 간직할 수 있었는지 동 모두가 알려져 있지 않다. 종교적 집념에 괴로워 한 그는 1930 년 이성을 잃고 4 년 뒤에 죽었다 .

이 쇠라의 신비를 자문해 보면 그의 중요성에 대한 좋은 설명 울 발견하게 된댜 흔히 긍정하는 바와는 달리 쇠라는 색채의 대조가 어떻게 공간 구축에 사용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지 못했 댜 이는 오히려 반 고흐의 교훈이었으며, 쇠라의 체험은 주로 형태에 관한 것으로, 칸바일러 M. Kahnwe i ler 가 주앙 그리에 관 한 책에서 언급했던 대로 쇠라가 모방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삼 차원의 물체를 어떻게 이차원 공간에 표현할 수 있는지 보여주 었다 . 바로 여기에서 또 한번 쇠라의 교훈은 특히 세잔 같은 동 시대인의 가르침과 일치한다. 쇠라의 불행은, 몇몇 방법들을 그가 재발견한 데 지나지 않는 다는 데 있댜 이 방법들 가운데 보다 완벽한 것들은 이미 밝혀 져 있었고 , 그가 재발견한 방법들은 운좋게 오래 지속되었다 . 그 는 다른 시도들을 확인한 것뿐인데, 아마도 리듬감에 대한 그의 발견은 예외일지 모른댜 이 점에 있어서는, 얼마 후 r 에펠탑」에 서 들로네가 다시 이 가르침을 다룬다. 게다가 오늘날 쇠라의 영향을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예를 들면, 피 뇽이나, 기쉬아, 에스테브 같은 오늘날의 화가들이 리듬의 가능 성을 발전시키고 있다고 한다면, 앞서 쇠라에게 거부되었던 중 요성을 쇠라는 결국 되찾게 될 것이다. 이것은 어떤 조형적 방

법들을 수용하거나 혹은 거절함으로써, 또는 명백하게 하거나 버림으로써, 양식이 세워지는 방식의 좋 은 예가 되 겠 다 . 우리는 포시옹 Foc ill on ® 의 말대로, 예술작품이 그 제작자와는 관계없이 살아 존속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 포시옹 He rui Focill on (1881-1943) : 프랑스 미 술 사가, 미학자 . 판화가의 아들로 상당히 다양한 분야에 걸친 미술사 저술가이다 . 주요 저 술 로는 『 피라네즈 판화가에 대한 논문 』 (1918), 『 불교미술 』 (1 921), 『 판화의 대가 들 ., (1 930) , 『 로마네스크 조각가 예술 』 (1931), 『 서 양미술 .!I (1938) 둥이 있다 . 미술작품이 외적 현실을 반영하는 이미지와 비교될 수도 있고 그 작품 자체와 다른 어떤 것으로 환원되는 기호에 비교될 수도 있으나, 무엇보다 하나의 형태 fo rme 이며, 그 작품이 건축되었거나 조각되었거나 그려졌거 나 새겨졌거나 간에 〈덩어리들간의 균형 , 명암의 변화 , 색조나 터치에 의 해서 표현된 공간과 마티에르의 구축이다.〉 배경과 형태의 전통적 구별을 뛰어 넘어 형태의 근본적 내용은 형식적 내용이라고 그의 저술 『 형태의 생명 La Vie des fo rmes 』 (1 939) 에서 주장한다 .

그러나 이렇게 모두 검토해 보았어도, 현대 미술의 근본 방향 이 어디에 있는지는 여전히 포착되지 않는다. 영감의 원천을 찾 아 선배 화가들을 선택한다거나,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그 생 활이 중요하다는 식으로, 지금까지 단순하게 열거해 온 이 근거 에 의거해서 현대미술을 정의할 수는 없다 . 현대 포스터의 위대한 선구자 툴루즈 로트렉 같은 사람의 중 요성을 여기서 단지 참고삼아 지적해 보고자 한다. 그렇지만 포 스터의 역할은 영화에 비교해 볼 만하다 . 포스터는 새로운 반응 에 따라서 관상자의 취미를 변화시켰고, 간결한 이미지를 읽어 내는 능력을 발달시켰다. 체자레 비로토 시대에는, 한 작품의 장 점을 열거해 가며 선전했다 선전이란 주로 연설적 논리에 의존 했다 오늘날에 와서는 시각이 발달되어 사람들이 완전한 상징 자체인 기호를 죽시 읽어낸다 . 예를 들면 그 유명한 〈웃는 소〉 라는 치즈 선전의 경우와 같이, 이 완전한 상징은 애초에 의미

하는 것과 의미된 것 사이에서, 그 상품의 품질과 이 상품이 주 는 기쁨으로 대치하는 모든 작용을 가능하게 해준다 . 이러한 연 구들은 내 연구 주제에 속하지 않으며 오히려 의미를 부여하는 세속화된 방법이나 형태에 관한 광범위한 조사에 속한다 . 그러 므로 우선은 대중의 감각교육과 관계된 것들은 다루지 않기로 하겠다 이것은 공간을 민감하게 형상화하는 새로운 체계의 출 현에 지표가 되는 것만을 다루기 위해서, 현대 미술을 숙고하고 창조한 그룹의 역사를 제외한 것과 같은 경우이다. 이미 얻어진 견해롤 뛰어넘는 새로운 예술에 대해 결국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어떤 작품들에서, 새로운 사고나 새로 운 대상에 연관된 어떤 새로운 논리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 댜 이 표현의 실증적 가치에 관해서는 다음에 밝히도록 하겠다. 우선은 하나의 새로운 양식의 출현에 관한 명제가 어떤 실증적 요소에 기초를 두는가 하는 점을 살펴보자. 인상주의 화가 들이 쿠르베나 들라크루아로부터 출발했고, 또 고갱이나 반 고흐가 인상주의자들로부터 출발했던 것처럼, 현대 화가들은 세잔, 반 고흐, 고갱으로부터 출발하였다. 이 역사의 세부사항이나 양상에 관해서는 다른 곳에서 다룰 예정이므로 여 기서는 넘어가도록 하자. 이 책에 실린 일련의 도해들에서 그것 과 연관된 것만을 간략히 언급하겠다. 고갱이나 세잔으로부터는 특별히 화면 구성의 의미, 화면의 고유한 가치의 의미를 따오며 , 반 고흐로부터는 색채의 의미를, 고갱에서는 아라베스크의 의미 와 화면의 표면적 공간을 새롭게 삼각형으로 구성하는 의미를 사용하며, 세잔에게서는 경( 景 )과 볼륨에 의한 사물의 표현방법 이라는 두 가르침을 받는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지난 반 세기의 역사는 대다수 대중이 인상주의의 총결산을 발견한 역사 이기도 하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마네가 거둔 대중으로부터의 승리가 1932 년에 있었던 훌륭한 백주년 기념전시의 결과란 점과, 바로 이 시점으로부터 1860 년대 사람들의 작품이 연이어 인정을 받았 으며, 1860 년대의 마지막에 위치한 반 고흐 그리고 고갱과 더불 어 막이 내린다. 그 다음 세대가 출발점으로 사용한 이 인상주 의의 교훈들을 대중이 발견한 사실을 낮게 평가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필요했었다. 물론 레제파나 브라크파는 대중이 이 예술 가들을 이해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 예술가들을 이해했던 것 은 아니댜 그러나 이 두 방식간의 불가피한 접근이 이루어져 , 이 덕분에 현대 미술의 상당 부분은 벌써 회고전의 대상이 되려 고 한댜 8) 물론 가장 수월한 야수주의로부터 시작하지만 이미 초기의 입체파들 전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아방가르드의 눈에는 거의 낡은 공식주의자가 되어 버렸다. 우리 세기의 첫 세대는 특별히 드가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이 사실을 비교에 의 해 밝혔는데, 현대미술이 도입한 신체적인 특성에 대한 진정한 연구에 부여해야 할 중요성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 다. 사물에 대한 정상적인 지각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가장 큰 결과가 언젠가는 반드시 이 연구로부터 나오게 될 것이다 . 9 ) 물론 최초의 실증 단계는 입체파였으며, 그 역할에 대해서는 8) 이런 방향의 시도는, 1949 년과 1950 년에 〈 어떤 사람의 소장품, 오늘날 한 아마추어의 서재〉라는 제목으로 갈르리 드 프랑스에서 열렀던 전시회 에서 볼 수 있다. 이 세 차례의 전시회는, 이제는 그 특징은 알아보기가 상당히 쉬워진 초기 입체파의 이미 자연스런 특징을 잘 드러내주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했다. 우리는 1950 년 베니스 비엔날레 회고전에서 같 온 인상을 받았다. 경의 자리를 바꾸고 부분들을 병치하는 엄밀한 의미에 서의 입체파는 오늘날 이미 미래파나 추상미술의 〈역동적인〉 작품들보다 훨씬 덜 대담하며 보다 더 〈읽기〉 쉽다. 9) 육체적 민족학의 사상에 대해서는, 모스의 사후문집 『인류학과 사회학 』 에 레비국스트로스가 쓴 서문 참조(제 2 장의 주 13 번).

그들의 초기의 체험의 범위를 넘어서면서까지 길게 설명한 바 있댜 그럼에도 불구하고 , 나는 입체주의가 그대로 벌써 지나간 것이 되었고, 생각했던 것보다는 그렇게 대담하지 못했다는 생 각이 든댜 근본적으로 볼 때 여러 경들은 도입한 것으로서 대 상을 연속적으로 본 각도에서 빌려온 요소들을 병렬한 것이다 .1 0 )

10) 최근 베니스 비엔날레는 , 1910 년 입체파 테크닉과 전후 미래파 사이를 연결해준 지노 세베리니 작품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었다. 선의 정지적 자 리옮김에 의해 생겨난 회화운동과 추상 같은 역동적이고 죽각적인 표현 (이 표현이 반드시 감상적이란 의미는 아니다)을 제공하려는 운동 사이에 있는 근본적 차이를 우리는 특히 잘 이해하게 된다. 오늘날 예술의 핵심 인 이 모든 문제들은 토론되어야 하고 무엇보다 분명하게 제기되어야 한 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20 세기 미술사를 하려는 것이 아니며, 르네상스 조형공간의 소멸의 역사를 밝히 려고 한다 .

사실 입체파들의 체험 내부에는 초기 인상주의 체험에서처럼 일 종의 망이 있었고, 이 형태의 망에는 이 세계에 대한 전체적이 고 즉각적인 시각이 변함이 없었으며 변할 수도 없었다. 접근이 라는 방법에 의해 예술가들은 전통적인 형태 표현에서 남은 것 들을 파괴하는 일부터 시작하였다. 그들이 새로운 사물을 보려 애쓰거나 그것을 형상화하려 노력한 것은 그 후의 일이다. 자연에서 미지의 어떤 면이 인간의 감각을 움직이려면 인간의 비평감각이 몹시 발달되었거나 특별히 조예가 깊어야만 가능하 댜 실재에 직면했을 때 인간들의 반응은 안정되어 있으며 모든 개인들은 주어진 조형표현체계에 대해 유사한 모양으로 반응을 일으킨다고 믿는 심리학자들이 오늘날에도 있다.11)

11) 이 주제에 관해서는 내가 영화에 관해 미쇼트 M. Mi cho tt e 와 가졌던, 그 러나 아직 끝나지 않은 토론을 참고로 하라. 미쇼트의 논문 『영화 영사의 〈레알리테〉적 특성』과 나의 논문 r 공간과 환상』, 미쇼트가 국제 영화학 잡지에 실은 반박하는 글(1 949, 1950) 참조. 미쇼토는 사물의 〈안정성〉을 조형막의 밝고 미묘한 홍분이 있는 부분에 연결시키고 있다. 미쇼트는, 나는 틀리다고 생각하는 주장인데, 〈정상적 투시의 부분에서 대상에 덩어

리 같은 볼륨감을 주는 것은 그림자라는〉 주장을 그의 반박하는 글에서 고집하였다 그런데 그의 초기 글에서 그 자신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우리가 영화 스크린에서 보는 사물은 실은 대부분이 이미지의 어두운 부분과 그림자에 의해 형성된다. 게다가 이 사물들은 불투명하며, 또한 대상들은 덩어리 같은 볼륨감을 준다! 정반대로 단일한 광선으로 된 커다 란 부분들은 보통 변하기 쉬운 대기적 〈배경〉 또는 사물이 거기서 드러 나는 특히 하늘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그림자 자체는 그림자를 있는 그대로 특징짓는 현상적 특징, 죽 색채막이 이질적으로 머물러 있는 표면 위에 놓여진 〈색채」막〉(표면색채)이라는 특징은 없다. 오히려 이 그림자 가 우리에게는 사물의 고유색(표면의 색채)처럼 보인다…… 그림자는 빛 과 결합되며, 또한 이 그림자는 사물의 〈본질〉을 형성하기 위해 서로 협 력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나의 짧은 구절이, 미쇼트의 사고에 의하면 영화의 영역과는 다른 정상적 투시 영역에 속하는 것을 분명하게 명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바난받을 수 있다는 데 나는 동의한다. 미쇼트가 실제적 이미지의 〈질료〉 및 영화 이미지의 질료에 대해 갖는 생각이 조 금도 놀라울 것이 없음에는 변함이 없다. 그의 불분명한 글에서 위의 두 이미지를 분명하게 구별하는 것 같지 않다. 그 밖에 미쇼트는 그의 반박 하는 글에서 이 모호성을 전연 바난함이 없이 오히려 정반대로 위의 두 이미지를 동일시하며 견고한 〈사물〉을 형성하는 것은 막의 어두운 부분 들이라고 그는 확신한다. 그 결과로 저자는 실제적 시각과 영화 시각이나 조형시각을 동일시하게 되며, 또 그림자와 빛의 결합이 〈사물〉을 어느 정 도 사실주의적으로 표현하는 데 이르게 된다. 왜냐하면 미쇼트는 본질의 개념은 도외시하지만 사물의 개념은 결코 버리지 않는다. 여기서 나는 이 논쟁을 계속하고 싶지 않지만 미쇼트는 영화나 고정 예술에 관해 말할 때, 선정한 테크닉과 존경받는 사회집단에 따라서 조형 이미지를 지각할 때 있을 수 있는 근본적 차이의 문제는 전연 생각하지 않음을 나는 확인 하게 된다 그의 모든 사유는 예술 현상에 직면해 주제를 지각하는 전형 적 한 개인이나 한 사회집단의 존재에 근본을 두고 있다. 확실히 미쇼토 는 존재론적 현실과 인식론적 현실, 또 감각의 현실과 정신생리학적 현실 을 구별하지만, 나에게는 근본적이라고 생각되는 개인들의 심리에 있어 서의 특수한 변이의 개념은 전연 도입하지 않고 있다. 선적 데생과 투시 는 지각을 위한 도구이자 인류를 위한 영원한 지식이라고 생각하는 이들 은 필경 그들인 듯하다. 그렇지 만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선형 원근 법의 실증적 • 구체적 가치에 대한 사고는 상당히 최근의 것이라는 사실 이다. 『원근법과 연극무대에 원근법의 적용.!l(밀라노, 1875) 에서 저자 타 코니 Fr. Tacco ni는 투시란 색채와 선이 결합된 체계로서 한 개나 여러

개의 표면에 세워지며, 우리들의 눈에는 대상과 동일한 감각을 준다고 적 고 있다. 바로 현대는 선적 투시감각을 잃음으로써 , 환상주의가 아니라 객관적 번역 죽 실제를 영화로 번역한 것을 보게 되었다. 암스 AAmes J r. 의 홍미있는 논문 『회화예술의 깊이』( < 예술지 > , 1925) 를 나는 알리고 싶다. 여기서 저자는 회화가 깊이룰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는 원근법이 아닌 다른 방법들을 연구하고 있다 .

결국 입체파는 20 세기 초의 모든 유행이나 운동 가운데 어느 것과 비교될 수 없는 중요성을 띤다. 왜냐하면 인상주의의 뒤를 이으면서도 감각분석에 대한 진정한 호기심을 표명했기 때문이 며, 특히 인간의 정신이 조형언어의 변형이라는 사고에 길들여 지도록 했기 때문이다. 동치(同値 )e qui valence 라는 임의적 체계 에 대한 개념을 발전시킨 것도 그들이었고, 회화를 생리학에 접 근시킨 것도 그들이었다. 다른 분야가 문제시 될 때는 아무도 반박할 생각도 못하면서, 다만 회화가 문제시 될 때에만 회의주 의와 몰이해가 일어나는 그런 문화운동 내부에서, 후에 설명하 겠지만, 예술가들이 그래도 입체파 덕분에 그들의 역할을 담당 할 수 있었댜 이것은 틀림없이 전문 지식이 없는 수많은 집단 이 외적 세계의 조형표현에 관심을 가졌고, 이미지 언어는 가장 널리 보급되어 있었으나 동시에 가장 연구가 안 되어 있었기 때 문이댜 언어학 자체는 구조 언어학과 함께 미술사보다 앞서 있 댜 1 2 ) 흔히 교양있는 이들의 집단이 조형적 공간 형상화의 조건 올 전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물리(物理) 입체파나 분석 입체파, 장식 입체파 등 입체파 이 념의 다양한 형태가 아틀리에에서의 토론이나 평론가들의 열띤

12) 언어학이 최근 취한 방향에 대해서는, 레비-스트로스가 모스의 책 서문 에 쓴 글과, 프라하 학교의 투릅츠코이, 또 자콥슨의 연구와, 프랑스에서 이 연구로 생겨난 중요성, 특별히 1950 년 < 정상 병리심리학 잡지 > 특별 호 참조(제 2 장의 주 13 번).

글속에서 계속적으로 다루어지는가 하면, 하나의 중요한 활동이 완성된 예술이 아니라 빨리 상상되고 찬양되는 예술이 갖는 예 언자적이고 개척자적인 기능 내부에서 화가와 문학가들을 결합 시키고 있었던 반면에, 또 다른 하나의 실증적 풍요의 원천이 주로 레제의 작품에서 나타나고 있었는데 오브제의 숭배가 그것 이댜 그 세대에 있어 오브제를 둘러싼 논쟁은 낭만주의시대에 있어 서의 주제에 관한 토론에 비견될 만하다. 대상이 연구의 중요한 근거 내지는 새롭게 개혁하는 근거가 되었다. 그밖에도 화가들 은 또 소수의 대상을 발견하였는데 조그만 원탁이라든가 병, 물 잔, 정과 그릇, 촛대, 꽃병, 나무 조각들과 같은 예술가들이 다룬 주제가 제한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우리는 상당히 놀라게 될 것이다. 광대나 곡예사 등의 인물이 그들 그림에 등장할 때조차 도 물건처럼 처리되고 있다. 화가들 자신이 그들에게 보여진 그대로의 실재에서 따온 그렇 게 적은 요소들에 얼마만큼이나 집착을 가졌는지 알고 있었을 까? 나는 확신할 수가 없다. 이 집착은 그들 주위 환경의 목록 조사를 세우기보다는, 오히려 하나의 언어, 아직은 기호와 의미 가 빈약한 언어를 발전시켰다는 증거이다. 그 시대 전부가 새로 운 대상에 대해 이러한 호기심을 갖고 있었으며, 이 새로운 대 상이란, 현실 속에 실제로 있는 일상의 장면 같은 단순한 요소 들이긴 하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각자의 능력과 견해에 따라 다 양한 특징을 지닌 것이 되기도 한다. 오브제에 대한 개념의 이러한 중요성은 사회적 사실마저도 대 상들처럼 취급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 뒤르켐 Durkheim

대 일반의 문화운동과 관련된다. 다른 언어에서처럼 조형언어의 정 의 를 주재 하는 정 신 적 거 리 la dist a n ce p s y ch iq ue 라는 개 념 을 여기서 우리는 재발견하게 된다. 대상을 발견함으로써 그 발견 자는 어떤 문화의 경우이든간에 외부 세계와 관련해서 행위의 방법이나 이해하는 방법을 의식하게 된다 . 이것은 왜냐하면 일 단 말이나 제스처 또는 이미지에 의해 그 대상에 늘 임의적이기 마련인 정의를 부여하기만 하면, 그 대상을 묘사할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그것의 위치를 파악하게 되고 다론 개인들과 비교 하는 수단으로 그것을 사용할 줄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어떤 개인이든 대상을 지속적으로 인식하며 모든 사회, 또 모 든 인간 집단은 그들이 공동의 가치를 부여하는 일련의 표현 방 식을 가지고 있다 . 사회집단이란 생활하는 그 내부에서의 기호 나 가치란 것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 있는 사회학자들은 나 의 이러한 이론을 금방 이해할 것이다. 이치를 따지려면 숫자와 같은 실증적이거나 임의의 대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아는 학자들도 나를 쉽게 이해할 것이며, 일련의 상상적인 것에 대한 추론이 잘 진행되면 현실에서 그것을 확인하게 된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들이나 현대적 방법에 통달하고 있는 언어학자들의 경 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떤 분야에서건 낡은 전통적 표현체 계에 만족하는 사람들은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회화가 한 언어를 형성한다는 사실, 나아가서 이 회화는 우리가 사회의 〈의사소통〉에 관해서 최근에 배운 바에 비추어 연구되어야 한다 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리라고 나는 절대적으로 확신한 댜 13) 비평가나 역사가가 이런 견해를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좋은 ® 뒤르켐 : 제 1 장의 역자 주 ®번 참조. 13) 나는 여기서 지식심리학의 최근 발전을 말하려 한다. 이 주제에 관해서 는 구르비치 이름으로 < 사회학 연도 > 최근 별집들에 실린 최근 단행본

들 서평 참조.

결과를 얻은 셈인데, 왜냐하면 이 견해가 그만큼 가치있기 때문 이댜 사실 대중들은 예술가들이 의미하는 것을 이해할 준비가 이미 되어 있다 포스터와 같은 분야에서는 현대 미술은 벌써 그 주장을 관철시켰다고 나는 되풀이 말한다. 조형언어의 독단적 가치를 발견한 것이나 조형 언어나 다른 언어의 지주로서의 오브제의 역할을 발견한 일 등은 그것만으로 벌써 중요한 사실들이다 . 나는 현대미술이 증명해 보인 발명해 내는 능력에 관해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세계를 대변해주는 사고나 감정을 표현해낼 수 있을 만큼 충분하게 유기적인 양식화에 우리가 이미 도달했는지 아닌 지는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분명히 몇 개의 체계가 나타나고 있음을 목격할 수 있다. 문 제를 철저히 규명하기보다도, 절대가치나 상대가치에 대한 긴 토론을 필요로 하는 연구방법을 제시하려는 한 가지 목적만 가 지고도 한 새로운 언어의 근본적 구성요소를 드러내는 몇몇 그 룹의 작품들을 가려 낼 수 있을 것 같다 .1 4) 어떤 이들은, 공간을 조각으로 자르는 작업이나 혹은 감각적 세계를 표현하는 여러 조각들을 결합하는 작업에 있어서 드가와 같은 인상주의자들의 체험을 발전시켰다 . 1914 년에서 1920 년 사

14) 내가 참고로 한 모든 현대화가들에 관해서는 이미 인용한 위그의 책 『 현대인들 』 (파리, 1939, 제 2 판)과 도리발 B . Do ri val 의 『 현대 프랑스 회화 단계 』 와 스키라의 『 현대 회화사 』 참조. 예술작품 해석에 있어 나는 항상 이들과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할 필요는 없겠다 . 그러나 오늘날 우리 시대에 대한 우리의 지식, 특히 나의 지식이 기초하고 있는 정보수집에 기울인 그의 노력에 나는 경의를 표하는 수밖에 없다. 그들은 좋은 연대 기 기록자와 보이스카우트의 작업을 했다. 인간을 기준으로 하기보다는 작품을 기준으로 해서 문제를 제기할 때이다.

이에 레제의 「도시」나 마티스의 r 목욕하는 여인들」과 「기도하는 모로코 사람」 같은 작품들은 그러한 체험에 대한 기록될 만한 본보기가 되었다. r 도시」와 영화와의 관계는 강조할 필요가 없 다고 생각된댜 「기계적 무도회」를 그린 화가는 이미지 조각들 울 망막 위에서 빠르게 교체하는 방법을 사용하려 했다. 이 체 험이 체계적으로 공간을 형상화하는 견고한 방식에는 아직 이르 지 못했으나 이러한 방식이 완전히 시사되고 있음은 사실이다. 다른 한편, 마티스는 「소녀들」이란 작품에서 드가식으로 화면 의 틀을 칸으로 구획하여 여러 단으로 나누는 방법과 고갱식으 로 아라베스크를 삽입하는 방법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 결국 그 당시에 작품은 경탄할 만했으며, 그때부터 단순하게 표현된 인물은 놀라운 평가를 받았다. 세계 각 곳의 진열장에 전시된 마티스식의 마네킹이 구매자를 당황하게 만든 적이 전혀 없었음 을 불신자들을 위해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모로코 사람」은 또 다른 방법을 쓰고 있는데 피에로 델라 프 란체스카처럼 화면을 네 쪽으로 나누고 있다. 그렇지만 〈승마적 표현〉과 〈복합적 투시〉를 새롭게 결합하고 있으며 주요인물을 드러내는 것은 완전히 제외되었다. 배추가 한 인간과 동등한 가 치를 지닌댜 여기에서도 연속적이고 분석적인 시각 해석 방법 이 널리 사용되었고, 르네상스 회화에서보다는 더 많이 쓰인 편 이 아니나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사물들간의 시각적이고 인간적인 관계는 완전히 전복되었다. 소위 직접적인 시각 해석 방법에 있어 부속물들보다 인간에 더 중요성을 부여하는 임의적 척도는 철저히 거부된다. 르네상스는 인간을 찬양하는 특수한 표현을 하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배추와 기와, 그리고 모로코 사 람을 같은 차원에 둠으로써 시각의 통일을 이룬 것이 바로 현대 미술이다. 작품 「라 시모네타」에서의 풍경이 더욱 사실주의적이

라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정신이 아닌 신체가 모든 것의 척도라 고 할 때 그것은 인간적이 될 수가 없다 . 「모로코 사람」도 완전 하게 판독할 수가 있는데 여기서 인간과 자연 사이의 실증적인 관계가 역시 강조되고 있다. 그 밖에도 칸으로 구획된 공간과 정신생리학적 시각을 통합시 키는 방법은 사람이나 작품에 따라 상당히 다르다 . 인정을 받고 있는 한 방식이나 제한된 채로 나타나고 있는 방식조차도 전혀 중요하지가 않다 . 「도시」의 작자인 레제는 「도시」의 방식과 그 리고 서로 대조되는 표면들을 사용하는 방식을 결합하여 r 활기 있는 풍경」을 구상하였다. 여기에서 공간을 선적으로 동강내는 방법과 순수색채에 의해 경들을 배치하는 방식을 결합하여 , 옛 날 식으로 환상적인 공간 내부에서의 구성을 추구하고 있다. 여 기에서 체험의 중요성을 잘 알 수 있다. 「세 그루의 나무」에서 에스테브는 다시 화면을 여러 쪽으로 잘라내고 있지만, 다른 요소들을 통합시키고 있다. 근경의 나무 실루엣은 몹시 거친 시각적 촉감을 보여주는 단순화시칸 형태로 축소되었댜 이 촉감은 선택되지 않은 한 경의 불분명한 부분 내부에서 형태들이 자리옮김을 하도록 하며, 태양의 심한 그슬 림으로 생긴 흥분된 상태와 〈짙고〉 신선한 그림자 부분의 만남 도 야기한다. 이것은 다감각을 나타낸 표현으로서 훌륭한 예이 댜 근경들은 굽어보는 전망으로 표현되었는가 하면 , 언덕들이 만들어 주는 선은 중경에서 윤곽이 뚜렷이 나타나며, 멀리 있는 네모진 광경은 한 모퉁이에서 강하게 다가오는 듯하며, 특별히 감정적이고 민감한 처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사실 여기서 에스 테브는, 얼핏보아 〈베뒤타〉처럼 보이는 방법에 가까운 것을 쓰 고 있지만, 서로를 연결하는 방법은 화면을 네모진 타일에 기초 를 두지 않고 감정의 연합, 내적 결합에 근거하고 있다. 그 밖에

도 기록된 모든 감각 들 은, 규칙적 좌표와 관계될 뿐 우주를 시 각적이고 전체적으로 해석하는 시각과는 관계가 없다. 일관성은 조형적 막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적 시각의 차 원에서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의 새로운 형상화의 질서 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에스테브의 방식이 미래 예술의 모델이 될 수 있는지 역시 확 실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클리드적인 조직망에 포함 ’ 되어 있으며, 평면 위에 투사된 시각적 삼차원이라는 단일한 법 칙들에 예속되어 있기도 한 대상 조각들(왜냐하면 르네상스 공간 도 임의적 체계 내부에서 여러 다른 조각들이 연합되어 이루어졌기 때문이댜)의 불가피한 결합에 기초한 공간이라기보다, 내적 이 미지의 결합에 기초한 공간을 구축하는 가능성을 보여준 데 대 해 나는 감사히 여긴다. 이미 부동의 조형적 형상화에 새로운 유형의 상상적이고 결합적인 가치를 도입하는 물질적 가능성을 현대회화가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보여 주었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것처럼 보이며, 또한 현대회화는 르네상스에서 얻어온 진정 한 부분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이해시켜 준다. 내가 선정한 여러 도해들을 통해서, 인상주의자들의 직접적 체험과 현대 미술의 최후의 시도가 지니는 가치 사이에 존재하는 긴밀한 연관을 동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집단적 이해 방법을 개인적 체험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게 해주는 바로 이러 한 종류의 변화가 중요하다. 말하자면 형상화의 어떤 실증적 요 소들은 불가피한 양면성의 언어가 되어, 형식적으로는 전시대에 속하고 지적으로는 새시대에 속한다. 어쨌든 기법의 피상적 유 사점이 무엇이든간에 우리는 에스테브와 더불어 르네상스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르네상스는 확실히 죽었는데, 그 이유는 지각 된 것과 의미된 것 사이의 관계가 새로운 체계를 갖고 나타나기

때문이며, 다른 새로운 지속적인 정신구조에 기초를 둔 체계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우리는 내밀한 체험들의 다감각적 차원과 관계된 공간으로 향하게 된다. 지금까지 없었던 이미지의 결합에 기초를 둔 이 새로운 시각 화 체계를 두드러지게 한 사고들 가운데 〈휘어진 공간〉에 대한 사고가 중요하다. 여기서도 또한 그대로의 감각을 엄격하게 분 석하는 것에 영향받은 19 세기 말 화가들의 체험과 현대 미술의 발전 사이에 완전히 실증적인 연관이 존재한다. 중개적 방법으 로 나는 듀피를 택했다. 이 화가의 작품은 이러한 성격의 공간 으로 특별히 풍요하다. 그러나 그는 그가 받아야 할 정당한 대 우를 일반적으로 부여받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대들 간을 연결지어주는 데 가장 크게 공헌한 사람 중의 하나로, 또 세계의 새로운 형태적 특징에 사람들이 익숙해지도록 해준 사람 의 하나로 언젠가는 그가 틀림없이 인정받을 것이다. 듀피의 작 품은 이러한 경사지고 휘어진 공간, 가장자리가 없는 공간, 아직 은 인상주의적 입장에서 영향을 받은 공간, 시각적 놀라운 감수 성에서 나온 공간으로 가득하지만, 원근법적인 입방체 내부에 자리잡는 유클리드적안 좌표를 추종하는 데에서는 해방된 공간 이다. 듀피는 빨리 진행되는 광경 속에서 근본적 특징을 포착하 는 놀라운 재능을 타고 났으며, 회화적 감각의 경탄할 만한 속 기사이댜 그의 여러 구성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지각의 기 록이 넘쳐흐르는 것을 보게 된다. 죽 휘어진 공간, 사라져 없어 지고 있는 형태들 거울 같은 반사, 신기루 둥은 미래의 예술가 들에게 무진장의 보고이며, 그의 방대한 체험이 새로운 양식화 에 하나의 자료를 제공해 주기를 우리는 바라고 있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그가 장식 취미에 너무 치우친 감이 있기 때문에, 순수하게 시각적인 기록이라는 법칙에 집착하는 세대들 사이에

서 거의 중간적 위치에 속한다. 그의 시각적 해석방법은 놀라울 만큼 새로운 반면, 그의 미학은 그의 재능보다는 좀 뒤진다. 그 러나 앞으로 그는 시각을 해방시킨 사람 가운데 하나로 꼽히리 라 생각된댜 그는 우리 시대가 새로운 대상을 발견하도록 도와 준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 여러 면으로 보아 마티스도 듀피와 마찬가지로 복잡하면서도 의미깊은 의도에 시각을 맞추어 나간 바로 이 과도기에 속한다. 1910 년에서 1920 년 사이에 이루어진 「무용」은 최대한 그의 의도 를 부여한 작품 가운데 하나였다. 어떻게 보면 위험한 조형적 테마였댜 공모양의 둥근 지구의 꼭대기에 인물들을 둥글게 배 치하는 이 구상은 가장 〈르네상스적인〉 것의 하나이다. 중세에 서는 이것은 생각조차 못한 일이었다. 예술가는 세계를 대기로 둘러싸인 지구의 형태로 표현하며, 그 지구의 중심에 인체들이 서 있을 수 있고, 우리 지구 위에서와 똑같은 조건으로 이동하 며 돌아다닐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물리적이고 우주적으로 규 정된 사실들에 대한 지식으로부터의 연역이나 실증적 신념이 있 어야 했다. 지구를 둥근 원판으로 표현하고, 위성들을 이차원의 동심원 모양의 고리들 속에서 움직이는 것으로 나타내며, 시간 에 관한 모든 이미지, 대기로 둘러싸인 구형의 세계를 지배하는 죽음과 신과 성인들에 관한 이미지들을 표현하던 시대에는 생각 조차할 수 없던 것들이었다. 마티스에게 출발점으로 사용되었던 형상화보다 더 특별히 역사에 남을 형상화는 없다. 특기할 만한 현상은 마티스가 거기에서 출발하면서, 결국에는 현대적 정신과 현대적 형상화라고 볼 수 있는 작품을 제작했다는 사실이다. 지구를 더욱 축소한 이 구상적 요소, 구면체의 상반부를 형성 하는, 어떤 이들은 환상적이라고 말했던 이 구상적 요소가 점차 적으로 가치룰 잃어갔다. 종국에는 이것이 한 특징이 아니라 암

시적인 기호가 되었댜 르네상스의 조형적 형상화를 잘 모르는 사람도 이 한 토막의 선, 시각보다 훨씬 상상으로 알아보는 땅 의 구실을 하는 선 속에서 세계를 알아볼 수는 없을 것이다. 사 실상 마티스 작품은 고전 미술의 표현에 대한 존중으로 깊이 얼 룩져 있댜 15 세기 미술과 같은 상황을 재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면, 벨리니나 라파엘이 구성 속에 바위나 성당을 전통적 • 상 징적 의미로 도입할 때와 같은 경우인데, 하나의 새로운 형태적 양식이 창조되려면 반드시 동일한 단계를 거치게 마련이다 . 그 러나 r 무용」을 시대에 뒤늦은 작품으로 본다면 오류이다. 전통 적 요소라고 인정되는 것에 일단 동의한다면, 다음에는 구성의 새로운 요소들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작가가 르네상스 화가였 다면, 그 등장 인물수를 세어보았을 것이며, 그 인물들에 세심하 게 특성들을 부여했을 것이고, 공식 단체의 기독교 문화와 조화 되는 이교도적인 전설을 보여주는 장면이 되도록 인물들을 그룹 으로 배치하였을 것이다. 예를 들면 9 명의 예술의 신(神)이 있을 수 있겠댜 그 예로 만테냐의 「파르나스」를 보자. 이 작품은 순 수히 선적인 배치에서 나온 추상으로, 모든 미학적 가치나 의미 상의 가치는 하나의 다른 공간을 시각화하는 체계를 위해 요구 되고 있다 마티스의 인물들은 순수운동으로 향하고 있다. 인물 들의 형체는 길고, 선의 단순한 이동을 암시하는 아라베스크에 따라 조직되고 있다 . 새로운 신은 형체도 없고 갑주도 없는 신 이다. 이 새로운 신은 속도 자체이며 모든 사물의 영원한 움직 임이댜 사람들은 이제 지적 설명이 되는 요소들은 표현하지 않 고 대신 감각을 표현한다.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도치하 는 것이다. 아이디어가 아니라 제스처가 문제시된다. 지적 연결 체계는 완전히 바뀌었다. 르네상스는 중세가 제의했던 우주에 대한 문자적 설명을 거부하였으나, 모든 현실의 척도이자 형태

로서의 인물에 기초한 새로운 설명으로 대체하였다 . 우리 시대 는 자연의 힘을 직접 체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세계가 인간이 라는 왕을 위해 인간의 이미지를 본떠 이루어진 것이라고는 더 이상 생각지 않으며, 가령 지구의 형태가 세계의 형태라고도 생 각하지 않게 되었다. 세계는 원근화법적인 입방체의 무한한 확 대라는 생각, 그 중심에 배우인 인간이 위치하고 있다는 생각을 버리게 되었댜 1 5) 공간의 형상화는 희화적인 묘사나 장식적 묘사 를 그만두며 나중에는 여러 감각과 합치됨에 따라서 의식의 차 원에서 느낀 감각과 나아가서는 기본적 제스처와 행위를 기록하 게 된댜 르네상스기에 수없이 많이 제작된 「생명의 춤」을 주제 로 한 작품을 마티스의 r 무용」에서 공간의 형상화가 강한 역동 적 환기를 보여준다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알 수 있을 것이며, 이 작품이 즉각적이고 다감각적인 체험에 근거를 두고 있음도 누구 나 다 알 수 있다. 우리는 이제 비행하는 인간, 또 심지어 인간 무의식의 복잡한 작용을 이성과 접촉시키는 이 인간에게 친숙해 15) 케르노들은 르네상스 예술의 근본특징의 하나가 원근화법적인 입방체의 다수화 방식이라는 생각을 지지하였다. 그의 견해는 어떤 조정이 필요하 다고 생각한다 . 슐의 뛰어난 논문 r 갈리버 테마와 라플라스 정리』(1 947 년 도 정상 병리심리학 신문)와 르네상스 음악공간 발전에 관한 이미 지적 한 로윈스키의 논문을 각별히 권한다. 주 38 참조 . 주 10 에서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케르노들은 르네상스 연극이 일정한 부동의 회화적 공간을 발 견했다고 지나치게 믿었다 . 또 미술과 연극의 서로 연관된 발전의 문제는 이제 겨우 윤곽이 그려진 정도로, 가장 놀라운 접들은 아직 연구가들의 과제로 남겨져 있다. 특별히 여기서, 이와 유사한 사고가 현대 연극과 회 화의 연관된 발전의 길로 동시에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이 연구는 연극이 화가들에게 영향을 준 작품을 목록으로 작성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되 며 무대와 조형막에서의 조형 〈표현〉을 병행해서 심도있게 파들어가야 할 것이다. 현대에서 의미화의 이 두 방식을, 하나의 동일한 정신을 보여 주는 구조들의 우연한 만남의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근본적 메커니즘의 차원에서 비교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 감각을 곧 표현해 낼 수 있게 되었음 을 누 구 나 다 알 고 있다. 현대 적 공간의 형상화, 사고의 분석에 기 초를 둔 공간의 형 상화, 그 말의 유클리드적인 의미에서 시각적이 아닌 정신생리학 적 인 형상화이다. 휘어진 공간에 대한 사고가 단지 마티 스 만의 특권은 아니었 댜 마티스는 「무용」을 구성하는 데 있어 속도에 대한 친 숙한 체험에서 출발은 하고 있으나 피카소와 피뇽은 듀피가 특 히 민 감했던 근본적 현상을 좀 더 분석적으로 관 찰 하는 데에 기초를 두고 있댜 피카소 작 「아틀리에」, 좀 더 정확 히 말해서 「아틀리 에」 연작들은 일련의 기나긴 체험들을 요약하고 있다. 즉 r 아틀 리에」를 중심으로 일련의 습작들과 초벌그림들을 모을 수 있는 데 이것들은 그의 체험의 총괄을 예비하고 있다 . 현대 화가들의 작업을 보면 그들 작품에서 보이는 동일한 주제에 대한 수많은 접근방법에서 양식화의 노력이 두드러지게 잘 나타난다 . 피카소 는 「아틀리에」라는 작품을 10 점이나 그렸고, r 광대」는 20 점, 또 피뇽은 우스텐드와 콜리우르를 같은 조형적 테마를 가지고 서른 번이나 그렸댜 르네상스 초기에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만, 특히 예술가들이 비유적이고 전통적인 공식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는 시대, 아이디어를 발 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 선이나 봇터치 사이의 관계, 또는 그들에 게 필요불가결한 내적 세계와 의적 세계 사이의 의미있는 관계 를 고정시키려 노력하는 시대에 특히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피카소의 작품을 연대기적으로 나열하지 말고, 그가 특히 끌 렀던 희귀한 조형적 테마에 따라 유화와 데생을 연구해보는 것 도 아주 홍미있다고 생각된다. 하나의 개요라 볼 수 있는 r 아틀 리에」 같은 작품을 준비할 때, 직접적 준비만이 아니라 간접적 준비, 다시 말하면 경사진 공간 이나 흰 공간에 대한 체험만이

아니라, 홋날 구축의 문제를 깊이 탐구한 중요한 작품들로 남는 준비작업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유화로는 r 첫 발자 국」, 에스키스로는 「발을 닦는 여인」이나 「원탁」 등이 「아틀리 에」의 의미와 이해를 제공하는 체험자료가 될 것이다. 모퉁이가 없는 공간과 볼륨에 피카소 가 친숙해질 수 있었던 둥근 인물을 그린 연작들도 모두 거기에 포함시켜야 한다. 동시에 어떻게 피 카소 작품이 휘어진 먼 공간에 대한 연구에서 나왔는지 , 또한 감각 세계에 아주 가까이 접근시킨 부분들을 새로운 각도에서 결합시키는 것에 대한 연구에서 나왔는지를 보여주는 것은 가장 흥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예 를 들면 테이블에 구부린 배경인물을 그린 두 종류의 상당 히 재미있는 준비작품들이 있다. 한 종류로는 테이불이나 원탁 앞에 앉은 인물을 입체파적으로 다루거나 자연 그대로 유연하게 다룬 습작들이 있고, 다른 종류로는 머리를 다룬 더욱 중요한 습작들이 있다. 드가나 르누아르가 열어놓은 길을 따라서 피카 소는 가까이 있는 것에 대한 시각 현상을 놀라운 인내심을 가지 고 연구했음을 우리는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한 것 같다 . 가장 대담한 그의 데포르마시옹은 각자가 아주 간단한 시각체 험에 의해 경험해볼 수 있다. 건드릴 수 있을 만큼 얼굴 가까이 접근하여 한 눈으로 관찰해 보자. 시각적 감각의 전세계 그러나 유클리드적이지는 않은 전세계가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 며, 이 세계는 르네상스 시각만큼이나 강하게 단안적으로 통일 된 성격을 보일 것이며 육체의 놀라운 특징들을 드러낼 것이다. 이것은 현미경에 의한 시각은 아니지만, 이전의 전통적 투시가 사물이 위치하는 관계를 고정시킨다거나, 행위를 연결하는 이동 을 나타내려는 목적으로 이 세계를 수정해 왔다고 볼 때 이러한 전통적 투시에 의해 수정되지 않은 세계가 어떤 것일까에 대한

구체적 체험을 시사해 준다. 그 밖에도 우리 시대에는 조각가들 덕분에 매우 중대한 즉각 적 감각의 그룹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16) 우리들은 나무 껍질, 또 는 매끄럽거나 거친 뿌리 등 레제의 구상적 대상을 환기시켜주 는 조형적 대상을 좋아하게 되었다. 이점에 관해서는 레제가 미 국에서 제작한 영화를 보면 좋겠다. 여기서 예술가는 구상적 대 상들 그리고 실제와 접촉해서 느낀 육체적 감각 사이에 존재하 는 실증적 관계를 설정하였다.17) 바로 거기에는 거대한 근본적 감각의 세계, 우리들의 공간체험을 풍요하게 해주는 세계인, 인 간적인 또는 인간적이 아닌 물질과 우리들의 피부와 근육이 접 촉하는 세계가 있다. 그와 동시에 정신분석학과 과학이 이 세계 룰 이해하는 데 명백한 역할을 하는 생체학적-정신적 현실에 우 16) 우리는 현대조각에 관한 책을 기다리는 중이다. 기시아L. G i sc hi a 와 베 드레 N. Vedres 의 홍미있는 수필집 『 로댕 이후 프랑스 조각 』 (파리, 1945) 참조. 이 수필에서는 국제전에서 확실한 위치 를 점한 화파에 중요한 자리 가 주어지지 않았다 . 진정한 개혁자 자리를 로랑스에게 주어야 할 것이 다 . 무어의 작품이 보다 더 알려져 있으며 더 많은 평가를 받고 있다. 내 개인은 이에 별로 만족하지 않는다. 너무 자주 재료에 영감이 희생되는 듯하며, 대체로 상당히 임의적인 형태로 고전적 도표가 동장하는데, 새로 운 시각보다는 망이나 포장하는 모습이 문제시된다. 그와 같은 나라 사람 인 바바라 헵워드의 조각은 공간의 차원에 대한 수학적 사유에 보다 더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로랑스, 아담, 또 브랑쿠시 Brancus i나 아 르프Arp의 작품에서 우리 시대의 지적 소요의 발전에서 나온 형태가 아 니라 형태의 자발적이며 총체적인 시각에서 나온 형태를 진정으로 발견 하게 된다. 이제부터 조각은 회화나 건축보다 뒤지지 않고 있으며, 오히 려 능가하고 있다. 조각은 볼륨이나 접촉, 위상학, 역동성과 리듬 같은 동 일한 사고의 원천을 발견했으며 또한 자율적인 방법으로 그것을 표현하 고 있다. 프랑시나와 자콥센 같은 젊은이들의 연구도 지적해야 하겠다. 17) 유감스럽게도 이 영화는 전문 영사실에서만 볼 수 있다. 예술가가 자신 의 어떤 작품과 나무껍질의 옹이를 상당히 홍미있게 비교한 것이 책이나 앨범을 통해 보급이 수월한 사진복사로써 도해되기를 기대한다.

리가 날마다 더욱더 접촉하도록 해주고 있음을 상기해 보자. 그 밖에도 또한 우리에게 시각적 혹은 촉감적인 면에서 실증적 체 험을 가져다주는 철, 시멘트, 플라스틱 등의 새로운 재료와 새로 운 데크닉에 대한 취향이 발달되고 있음을 상기해 보자. 우리의 육체가 의부세계와 만나는 모든 가능성을, 우리의 눈이 상상에 의해 평가하는 데 익숙해지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 1 81

18) 어떤 문제들을 우리가 의식하고 나아가서는 깊이 알아볼 수 있도록 체 계적 체험이 여러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면 〈음향 부조 re­ lief sonore 〉의 연구가 〈순수한 소여 donnees p ures 〉를 해석하는 정신적 메커니즘 연구를 완벽하게 하기 위해 불가피하다. 음향적 지각의 수준에 서 감각이 제공하는 정보의 특성에 따라 수정이 특수한 방식으로 정신 내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가? 아니면, 총체적 해석 및 구조화는 이질적 요소들을 사용하는 높은 통합의 차원에서 하나의 자율적 현상인가?

이 생체학적-형태적 체험이 아직은 하나의 양식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음에 나는 동의하는 바이지만, 내일의 예술에 반드시 기초를 형성해줄 것이며 여기에 대해 나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 는 바이댜 위의 체험이 알아볼 수도 있고 미학적 성격도 지닌 어떤 양식화에 이미 이르렀는지 아닌지는 물론 각자가 판단할 일이다 이것을 판단하려면 물론 회화를 자연스럽게 읽어낼 줄 아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더 폭넓은 대중에게 어떤 지식의 전수 가 불가피하다 . 여러 종류의 언어롤 표현하고 분석하는 기능은 육체나 정신의 다른 재능처럼 사람들에게 동등하게 부여된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어떤 이들은 장님이거나 귀머거리이고, 또 다 른 이들은 음악적으로 시각적으로 그러하다. 나는 단지 음악이 나 무용, 회화 등이 말이나 언어의 형태로 쓰여진 것만큼이나 역사상으로 많은 개인들에게 감동을 주었음을 위에 언급한 문제 롤 무시하는 사람들이 상기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문화 전체는 사고의 전달방법으로서 기록되지 않은 기호를 갖고 있었다 .19 ) 의

19) 다비드 M . Da vi d 의 상당히 홍미있는 논문 r 문자와 사고』( <철 학 잡지 > , 1948) 를 이미 언급했다. 사고를 객관적으로 고정시킨 것이자 특히 문화적 사실로서의 문자가 다양해질 때, 하나의 새로워진 정신세계 를 전제로 한 다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그는 또 문자는 어느 정도는 행위에 연결되 어 있다고 추가하고 있다 . 언젠가는 다양한 유형의 문화 내부에서의 예술 과 문자와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검토해야 하며, 진보된 문화형태에서 있 을 수 있는 원시적 입장의 잔재를 조사해야 한다.

미론적 체계를 실행하는 데만 너무 편협하게 기초 를 두고 있는 문화를 좀 더 넓혀야만 인간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 피카소가 시작한 탐구에 깊이 관련되는 피뇽의 몇몇 작품들은 반드시 삼각측량이 아니라 휘어진 공간을 조직하는 데서 나오는 거대한 조형적 방법들을 증명하는 듯이 보인다 . 이러한 경향의 발전에 있어서, 형태가 전달하는 내용을 새롭게 하면 된다는 생 각을 하지 않기 바란다. 절대적으로 필요한 형태적 의미란 이 세계에 대한 우리들의 정신생리학적 체험 의 심화와 더불어 가능 하댜 그러므로 예술가와 그 시대 사이의 접촉만이 밀접해질 것 이댜 조각난 공간, 휘어졌거나 만질 수 있는 공간 등, 우리 시대는 환상적이며 상상적인 공간 분석에 노력해 왔다. 여기에서 또 연 구의 출발점에서 입체파를 발견하게 된다 . 우리 시대가 몰두한 중요한 부분은 인간이 자연의 신기루 앞에서 느끼는 새로운 신 비스런 감정을 표현하려는 것이었다. 자연은 인간의 형체를 닮 은 구체화된 위력이라기보다 움직이는 프리즘처럼 그들에게 보 인댜 이 세계의 무한성이란 어떤 의미에서 보면 현실에서 분리 된 것으로, 더 정확하게 감동적인 형상화를 추구한 오랜 전통이 높이 평가하던 감상적이고 정열적인 가치와는 먼 것이다 . 그러 나 세계의 무한성이 비인격화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레제 작품

은 일종의 견고성과, 사는 기쁨, 그리고 자신감을 보여준다. 고 전적 심리학에 더욱 기울어져 있는 마티스의 경우, 특히 크레용 으로 그린 초상화의 경우에 자연 앞에서의 현대인의 모습이 비 교적 덜 표현되어 있다. 놀랍게도 문학이 그 시대의 고통스런 면을 강조하는 반면 , 회화는 그 세기가 정복한 자신만만한 면을 표현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상반된 특성과 아직 도 진부하고 평범한 것이 지배적인 문학 기법의 뒤떨어진 성격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자연은 예술가에게 마치 거대한 연극 장면이나 만화경처럼 보 였댜 예술가들은 이 상상적 공간, 비합리적 조칙 원리에 따르면 서 사라져버리는 듯한 변화무쌍한 그런 공간에 대한 감각을 표 현해보려 애썼다. 여러 차례에 걸쳐 이러한 시도가 있었으며, 결 국에 가서는 추상미술에 도달하는 들로네의 시도로부터 초현실 주의에 연결되는 미로와 브라크의 노력이 있었다 . 20)

20) 나의 목적이, 지금으로서는 준비단계에 머물고 있는 새로운 하나의 체계 의 형성단계를 다시 더듬어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나의 형태적 체 계가 제거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 책에서 현대미술과 초현 실주와의 관계는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초현실주의는 일찍 동장한 야수 파 및 입체파와 더불어 우리 시대 사고를 보여주는 문학과 미술에 공통 된 형태임에 유의하지 않을 수 없다 . 그리고 야수파와 입체파가 또 다른 분야에서도 옹답이 있었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그 밖에 회화와 조각 같은 테크닉과 밀접히 관계된 현 시도들의 구성요소가 무엇인지, 또는 정반대 로 좀 동떨어진 테크닉과 공통된 시도들의 구성요소가 무엇인지를 알아 보아야 한다. 이것은 상상 영역의 문제이다. 어떤 현상들은 유일한 표현 의 영역에 속하며 다른 현상들은 유일한 구조화의 영역에 속하는가?

1910 년대에 입체주의 개척자의 한 사람이었던 로베르 들로네 는 레제와 더불어 그의 작품들 r 뛰는 사람들」에서 대상의 위치 를 표현하기 위해 색채 반점을 사용하는 것을 발견하는 데 기여 하였다 이 방법은 브라크나 피카소 또 그리 G ri s 의 그 유명한

콜라주와도 통하며, 빛이나 음영을 떠난 사물의 고유 색채에 대 한 최후의 공세에 결부된다. 그러나 거기에서 출 발하여 나중에 는 이중의 명제에 대해 숙고하게 되었다. 즉 공간의 조형적 표 현에 절대적 채색 질서를 형상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리듬 이댜 r 창문들」이나 「에펠탑」 같은 작품들의 중요성을 과소평가 해서는 안될 것이다 . 이것은 형상화와 완전히 바객관적인 회화 와의 한계점에 위치하는데, 들로네에게 있어 대상 자체가 한 주 제가 될 위기 또는 너무 사실주의적이 될 위기마저도 있다. 그 밖에도 과학적으로 말해 색채는 생생히 숨쉬고 있는 반면, 순수 색으로 공간을 표현하는 것은 너무 정체적이라고 그는 생각한 다 . 인상주의자들과 쇠라에게 그렇게 유용했던 작업인 색채의 동시적 대조에 관한 슈브뢸의 유명한 저술을 다시 보면, 들로네 는 레제가 정의내린 바와 같이 또 몬드리안이나 반 되스부르그 Van Doesbur g가 사용했던 바와 같이, 신축성 있는 공간의 정체 적 성격과는 대조되는 하나의 이론을 색채의 동시적 대조로부터 끌어내고 있댜 정체적 가치와 더불어 운동감을 상기시키는 채 색 질서에 의해 공간을 완벽하게 형상화한 가능성이 있다고 그 는 생각한다. 들로네와 더불어 우리는 그렇게도 열정적으로 토론되었던 추 상예술이라는 어려운 문제에 봉착한다. 입체파에 대해서와 마찬 가지로 이 추상예술에 대해서도 가장 대조되는 이론들을 동일하 게 비타협적으로 옹호한다. 어떤 이들에게는 추상예술의 기원이 칸딘스키의 우주적 서정주의인가 하면, 다른 이들에게는 아르프 나 허르빈의 초합리주의에 있다. 이러한 문제는 연대기 속에서 각자가 차지하는 정당한 위치를 확정시켜주는 실증적 정보자료 가 모두 수집된 때라야 유용하게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류의 조형적 창조운동이든간에 그 발생 원천의 성격에 따라 설

명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상 잘못이라고 나는 확신한 댜 예술작품은 하나의 생각이 아니라 실현된 것으로서, 문자 그 대로 만들어진 사물이다 . 술하게 많은 사람 들 이 거대한 것에 대 해 꿈꾸었으나 결국 표현되지 못하고 끝나버린 경우가 대부분이 아니겠는갸 의지와 실현 사이에는 재빨리 그린 크로키와 중단 된 작품 또는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화풍과 조형적 표 현 방식 등을 구별해주는 여러 등급의 차이가 있다. 예술가가 자신의 감동과 이 감동을 표현하려는 〈 의식적 〉 방법을 강조할 때 양식이 존재한다 . 형태없는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밖에도 추상예술이나 다른 형태의 예술일지라도 그것이 어 떤 한 모델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완전한 오 류이댜 추상예술이나 또 소위 원시적이라는 미술들 전부, 그리 고 세계에 대한 감동적 시각에서 나온 것이기보다 비인간적이고 회교적인 엮음장식 예술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고딕이 어느 정도로 추상에 속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확실한가? 고딕 은 색유리를 통해 조정되는 빛의 예술이자 돌을 사용하여 조정 된 힘을 선적 도표로 마음대로 그리는 도표예술이기도 하다 .2 1 ) 카메라를 들고 성당의 주랑을 산책해 보면 정체적이 아닌 상상 적인 아름다운 요소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되는데, 들로네는 이것을 그의 작품 「생세브랭」에서 구체화하였다. 추상예술만이 21) 이 점에 대해서는 폴 아브라함 M.PolAbraham 의 『 비올레 르 뒤크와 중 세 합리주의 .!I (파리, 1936) 를 참고로 하였다. 이 책은, 고딕건축이 그 시대 의 테크닉과 취향의 문제 를 고려하여 19 세기 중엽의 한 사람이 규정했던 것처럼 논리적 기능주의 기준에 답하지는 못한다고 논중하였다. 이 기회 에 고고학자 들 간에 제기된 상당히 홍미있는 토론의 결과가 아직은 충분 히 진전되지 못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토론은 라브당 P . Lavedan 이 『 마뉴엘 클리오 』 의 270 쪽에서 잘 요약했으며, 또 아브라함의 논문이 이 입장을 취하고 있다.

있는 것은 아니댜 고딕에 대한 진지한 연구 를 부탁하고 싶은데, 이 분야는 잘 알려지지 않은 가치의 거대한 보고( 寶庫 )이다. 오래된 비평전통이 소홀히 해온 가치들을 우리 시대가 다시 재발견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 좀 단순한 신문기자들까지도 이 주제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는 것이 이 연구의 영향력을 증언해 주며, 나아가 깊은 필요성에 대한 동의를 말해준다. 여러 분야에 서 공통적으로 확립된 현대적 양식이 아직 없는 것과 마찬가지 로, 우리 시대의 추상 양식은 그 목적이나 형태에 있어서 아직 고정되지 않았댜 그러나 커다란 가능성의 영역이 현대적 사고 에 의해 개방되었으며, 이렇게 볼 때 르네상스는 완전히 지나간 것임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이제부터 들로네의 「탑」은 지표 그 이상이 된다 . 죽 이 작품 들은 그 자체로 강렬하고 아름답다. 그리고 내가 확신하는 바는 1910 년의 세대를 찾아보면, 들로네는 가장 개성이 두드러진 화 가들 가운데 한 사람임에 틀림없다는 점이다. 빛에 대한 새로운 체험에 기초를 두고 형성되는 미래의 양식이 가장 발전된 싹은 아마도 들로네와 레제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아주 다른 분야에서는 미로나 피카소 또 브라크의 초현실주의 적 구성이 상당한 중요성을 지닌다. 그들의 구성은 그 거대한 풍요성을 지닌 형태의 형상화에, 그리고 즉각적 시각화의 다소 영속적인 수단이랄 수 있는 그런 형태의 형상화에 우리가 친숙 해지도록 한댜 게다가 다른 형태의 양식화에서 빌려온 표현방법이 갖는 지나 치게 지성적인 면에 의존하는 실증적 방법들에 대해서는 주의를 해야 한다. 브라크나 미로의 고풍스럽고 원초주의적 입장에서의 시도가 공간의 현대적 형상화에 구체적 기초가 될 수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한때 혹인미술이 그랬던 것처럼, 단지 고고학적 호

기심이 아닐까 하는 점이 나에게는 염려스럽지만 그러나 인간적 표현 방법에 대한 우리들의 친근한 이해가 확장되고 있다는 것 은 명백하댜 언어학도 마찬가지로 적어도 조사 단계에 있어서 는 최대한의 사실들에 대한 지식에 기초하나 그 사실들을 공급 하는 사람들의 정신적 수준은 고려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 시대 예술가들이 거울이는 노력에 있어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표기법에 그들이 익숙해지도록 해주는 것, 즉 단지 그들의 욕망 의 측정과, 그들 작품의 독창적 창조의 부분을 형성해 주는 것 사이를 구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전환이나 종합을 보 이는 작품들 속에서만 표현되며, 바로 여기에서 우리 시대의 인 간적 심사숙고가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우리 분석의 출발점이 무엇이든 14, 15 세기의 수많은 시도를 상기시키는 격렬한 개척적인 특징과 이러한 노력의 실증적인 면 올 잘 구별해야 한다. 살아 있는 희화 작품이란 조형언어의 고 고학이 아니다. 희화는 매력적인 측면들을 민감하게 포착하는 형상화이면서 또한 현실의 형태나 특수한 활동형태에 일치하는 형상화에 기초를 두고 있는 해결책을 주려 한다. 르네상스로 인해 연결해주는 다리들이 단절된 것이 사실인데, 왜냐하면 리듬이나 속도, 과장, 조형성, 변이, 전이 등 예술가들 이 관심갖는 가치들이 우리 시대의 육체적 • 지성적 활동의 전체 적인 형태와는 일치되나, 안정이나 객관성, 또는 연속성 동과 같 은 르네상스에서 나온 사회의 열망과는 정반대가 되기 때문이 댜 우리 시대의 화가들은 영화가나 학자 등과 더불어 새로운 환상주의를 구축하고 있는 중이다. 상상 면에서 아직 우리는 그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 항상 우리의 제스처가 상징적 해석을 새롭게 하는 기능보다 앞서 간다. 인간은 사고하기 이전에 행동

하며, 연장을 소지하면 사용하기 마련이다 . 새로운 공간이 우리 의 숙고보다는 우리의 행동에 따라서 세워진 공간이 될 것은 이 제 확실하다. 르네상스는 다른 어떤 시대보다도 이성의 위력 속 에서 건드릴 수 없는 확고한 신념에 따랐다는 사실 때문에 특수 한 시대로 남게될 것이다. 정신과 육체에 대한 새로운 전문지식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체 험과 이성의 힘에 기초하는 공간표현을 조화시키기 위한 하나의 실증적 방식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우리시대 예술의 특 징이댜 나는 개방된 공간표현을 시사하는 일련의 중요한 작품 들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이 작품들의 표현이 바록 불완전하 지만 그것보다 더 나은 것은 발견되지 않는다. 매우 중요해 보 이는 이러한 경향의 특징을 도해로 검토하면서 무엇이 문제인가 를 포착해 보자. 우리는 입체파를 거치면서 항상 드가로 되돌아오게 된다. 드 가의 수많은 유화와 크로키에서 감상자를 향해 쏟아놓은 듯한 대상들을 본댜 여기서는 승마적 공간도, 조감 공간도, 장식적 공간이나 추상적 공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원근법적인 입방 체가 항상 있고, 우리에게 낯선 관찰 각도가 선택되었다. 그 방 법이 완전히 임의적임을 부언해야겠다. 채광이나 투시 그 어느 것도 화가의 눈의 위치로부터 충실히 추론되지 않았으며, 눈의 위치가 모든 세부의 통일된 묘사를 지배하지도 않는다. 문학적 으로가 아니라 기술적으로 우리는 상상의 공간과 대면하고 있 댜 어쨌든 이 공간은 예술가가 죽각적으로 기록한 감각적 공간 이라기보다는 르네상스 공간을 세련되게 변화시킨 것이다. 드가 의 「디에고 마르텔리」 같은 초상화나, 세잔의 「조후루아 초상J, r 세잔 부인」 초상 둥과 유사한 이 작품들은, 마티스나 보나르의 수많은 인물화 둥을 비롯한 20 세기 초의 작품들로부터 나왔다.

예를 들면 r 베른하임 형제」는 드가와 세잔의 방식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지만, 마티스는 「라 프랑스」에서 세부를 장식적인 방 법으로 다룸으로써 새로운 요소를 도입하고 있다 . 하나의 공식 이 이미 진전되고 있댜 22 )

22) 내가 도해한 드가의 작품, 도판 22 와 31 은 19 세기 말기 예술에서 예의가 아님 을 여 기서 지 적 하고자 한다. 르 모아스느 M. P. A. Lemo i sne 의 『 드 가 』 (파리, 1948) 를 보면, 소실축이 그림의 경과 평행하지 않은 무수한 공 간의 예를 보게 될 것이다 . r 복스 좌석에서 본 발레』 (1 88.5, 114 쪽)와 『여 성복 가게」(1 882, 190 쪽) 참조 . 19 세기 말기에는, 레제의 경우와 같이, 깊 이룰 나타내기 위해 색채표면을 병치한 조직적이지 않은 작품들을 보게 된다. 뷔야르의 『실내』(1 898, 스키라, 제 2 권, 이쪽)와 r 자신의 작품을 검 토하는 나이든 여안」 (98 쪽) 참조. 하나의 새로운 양식은 새로운 테크닉을 만나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의도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이 공식은 에스테브, 피뇽, 특히 기시아가 다시 다루었다. 첫 단계에서는 기시아의 「초록색 꽃병」이나 고흐의 작품과 연관된 에스테브의 「의자」 등이 감상자를 향해 쏟아져 내리는 공간이라 는 순수 기법적인 부분을 사용하고 있다. 이런 입방체를 표현한 배경이 여전히 등장한다. 특히 기시아가 중요하게 여겼던 이 그 림의 초점은 공간의 특수한 형상화를 부조나 볼륨 외에도 고전 적 음영의 작용에 의지하기보다 가능한 형태의 모든 조형적 특 질울 표현하려는 의도와 결합시키는 것이다. 특히 기시아가 다 른 누구보다도 노력을 기울인 이 연구의 중대성은 적지 않다. 이 연구는 현대미술의 고고학적 원천 중의 하나, 죽 입체파들이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새 세대들이 한발자국 앞으로 나아 가도록 해주었던 로마네스크 회화에 대해서 독창적인 해석을 제 시하고 있댜 우리 시대가 이 특수한 형상화의 방법을 연구하여 얻어낸 이 득은 1945 년경에 알려지기 시작했던 젊은 화가 그룹이 만든 작

품들이 증명한댜 실제로 이 새로운 회화에서의 공간처리는 19 세 기 개념과는 전혀 합치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해야 할 것이 댜 바로 이런 이유에서 체험은 홍미롭댜 이제부터 우리시대의 호기심을 해석해주는 이 새로운 예술가들은 여러 다양한 길로 발전해 나갔다. 마네시에나 생지에를 선두로 한 일부의 화가들 은 상상적 공간과 굽어보는 공간 사이의 타협으로 나아갔다 . 색 채에 대해 놀라운 재능을 가진 그들은 구성의 여러 부분들의 색 조들이 갖는 관계의 단순성에 의해 감동을 자아내는 다채로운 표면을 만들었다. 바로 여기에는 색채의 본질적 특성의 개발과 대기의 매혹적 유연성에 대한 강한 감정을 결합시키는 감성적 공간에 대한 체험이 있다. 이 회화는 규정할 수 없는 윤곽과 크 기를 지닌 대기적 공간으로부터 화가가 포착한 매력을 현대적으 로 전환한 것이다. 이 회화는 상당히 중요한데, 왜냐하면 색채와 빛에 대한 공간적 체험에 어떤 현대적 형태를 제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하며, 멀게는 에스테브의 연구와도 합치되기 때문 이댜 어쨌든 이 회화는 개인적 체험이라는 성격을 지니는데, 하나 의 진정한 조형언어를 발전시키는 출발점이 될 수 있는지를 판 단하기에는 망설여진다. 이 회화는 흔히 협약이란 방향으로 이 회화를 끌고 간다. 이념적으로 계획적 의도가 강해서 이것은 또 클레적인 의미에서의 추상미술과 표현주의 미술의 경계에 위치 하며, 내 개인의 생각으로는 현대의 조형언어가 되기에 충분한 일반적 표현수단의 창시자로서의 예술가라기보다는 그들 사회의 감수성의 증인으로서 더 홍미가 있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기시아와 피뇽이 로마미술의 생생한 해석 이나 더 나아가서는 소위 원시미술에 대한 지적 • 감성적 탐색을 계속하면서, 그 시대의 절대적 요구에 합치되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공간을 창조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기시아의 r 곡예사」 는 그의 작인 「레다」나 피뇽의 「농군」들이 사용했던 공간의 도 식적 표현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것은 다양한 미학적 목표를 지 지할 수 있는 폭넓은 가능성이 문제시되고 있음을 증명해 준다. 이는 또한 그림의 배경이나 원근법적 입방체의 시사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차이점과 더불어, 드가나 초기 기시아 작품에서와 매우 유사한 공간이다. 여기서 인물은 공간의 〈중심〉에 배치되 어 있고, 빛과 풍경들이 그 인물들을 향해 모든 곳에서 올 수가 있어, 유일한떤관점은 철저히 파괴되어 있다. 그 밖에도 그림자가 없는 새로운 회화기법은 명암의 문제 그리고 고전적 삼차원의 문제를 파괴하는 데 성공하고 있어, 공간 속에서 인물이 전례없 는 자유스러움을 갖고 회전하거나 우뚝 솟는 것을 볼 수 있다. 우주의 형태를 축소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원근화법적 입방체를 결정적으로 파괴한 이후, 인간이나 그의 주위환경을 척도로 하 는 개념이 사라지는 것을 본다. 인간은 인간의 행위와 사유에 편리한 법칙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연의 한가운데에서 이 자연의 지배를 받는 요소로 간주된다. 인간과 세계의 관계는 전복되었 댜 이제는 인간의 모든 제스처를 전 세계를 축약한 하나의 틀 의 환각적 한계에 결부시키지 않으며, 우리들에게 그 자신의 법 칙을 당당하게 강요하는 하나의 물질 가운데에서 보이는 우리의 다양한 반응에 관심을 갖게 된다. 때로 우리는 기시아의 몇몇 작품들이 포스터 같다고 비난한 댜 나도 그의 모든 작품을 옹호할 생각은 없댜 그의 연구는 일 종의 도식화의 성격을 띠기 마련이다. 이미 언급한 대로 우리 시대는 모든 분야에 있어 조형기호의 의미상 가치를 정확히 하 려고 노력한다는 사실과 포스터와 회화의 발전이 툴루즈-로트 렉과 유명한 「고양이』 작품을 남긴 마네 이후로 항상 동시적으

로 발전해왔다는 사실을 소 홀 히 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더욱 그 러하댜 그러나 바로 r 곡예사」와 「고양이」를 보면 고양이가 지 붕 뒤로 떨어지는 공간, 배경-휘장으로 한계지어진 공간 앞에 있음을 보게 되고, 곡예사는 그가 지배하고 있는 공간, 또 부분 적으로만 활기를 띤 흐르는 듯한 공간에 자리잡고 있음을 본다. 바로 여기에는 폴라이우올로 연구의 현대적 전환이 있다. 이러 한 체계의 일반화는 같은 방법이 피뇽의 「농군들」에서도 보인다 는 사실로 증명된다 . 피뇽의 작품에는 여러 종류의 방식이 있는 데 다른 류의 공간이 등장하는 작품은 그 배경이 문제가 되어 도해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피뇽과 기시아의 연구가 순수한 색채에 의해서 형태표현의 쇄신에 성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을 추가해 야겠댜 기시아는 아마도 쇠라의 영향으로 매우 기하학적이고 명료하게 규정된 표면을 좋아하며, 피뇽은 일하는 사람들의 상 체나 올리브 나무의 나무줄기 같은 선으로 표시하는 형태를 만 들어낸다. 둘다 기법적으로 새로운 체계 내에서 형태와 깊이의 모든 단계와 특징을 표현하는 방법을 증명하고 있다. 르네상스 에 제기되었던 모든 체계에 방법의 근본적 통일을 강요했던 기 하학적 시각과 빛의 유일원 사이의 유명한 만남의 문제는 제거 되어 있다. 이제부터 미래가 어떻게 되든간에, 형태와 색채의 문 제, 표현과 전달의 문제가 서로 조화되는 전체적 시각 체계를 새롭게 임의적으로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우리 시대에 조형기호를 발전시키려고 하는 경시할 수 없는 또 다른 시도들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 23 J 그러나 나 23) 1945 년경 새로운 예술가 그룹의 등장에 대해서는 나의 저술 『 새로운 소 묘, 새로운 회화 』 참조 . 그 이후로 이 그룹은 해체되었다. 사실 이 그룹은 일관성있는 한 회화운동의 성격을 지닌 적은 없었다 . 전쟁 직전에 좀 주

저하면서 성숙한 단계에 이르고 있었던 단지 몇몇 화가들이, 죽 기시아, 피뇽, 에스테브, 후즈롱, 탈 코아, 타이외, 마네시에 , 생지에, 르 모알, 또 바젠느, 라피크 등이 여러 차례에 걸쳐, 특별히 라 갈르리 드 프랑스에서 그들의 선배인 자크 비용을 둘러싸고 전시를 가졌다 . 1945 년 살롱 도톤느 였던 살롱 들라 리베라시용은 현대 예술가의 삶에 가입할 것을 선언했다. 그 이후로 몇몇 전시회를 통해 이들이 같이 모인 적이 있으나 특히 개인 전에서 그들의 개성적 방식이 바난을 받았다. 어떤 이들은 아카데미로 기 울었고 다른 이 들 은 세잔적 전통으로, 또 여러 화가들은 어디에도 기울지 않고 좀 정지된 채로 있었다 . 새로운 시각보다는 의도와 능란함으로 가득 한 작품을 보인 마르샹과 그뤼비에를 제외하고는 그 세대 사람들의 주의 를 끈 화가는 별로 없다. 마티스나 보나르 또 피카소가 50 세 이전에 어떠 했는지를 상상해보면, 새로운 형태를 창조하는 재질이나 능력에 대한 평 가 를, 작품에 대한 총체적이고 등급적인 가치판단(이 핵심적 부분은 반드 시 해야 될 일인데)으로 대체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는 것을 알게 된 다 . 그러나 반세기 동안 그 세대가 지녔던 〈희망〉을 이 그룹들 속에서 찾 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미 어떤 이들은 살아남게 될, 그러나 일련 의 새로운 창조가 그 가치를 평가하게 될 작품들을 제작했다. 이렇게 짧 은 요약만으로는 당연히 드놔이에, 보레스, 보댕 같은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에로의 이행을 준비했던 몇몇 화가들은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 . 앞으 로 나타나게 될 표현형태 또는 현대인들이 접해볼 수 없는 표현형태를 고려하면, 그 종합평가는 뒤에 이루어진다. 젊은 예술가들이 연장을 만들 어냈으므로, 남은 일은, 아직은 이 예술가들이 약간 비밀스런 언어로 표 현한 것의 가치와 필요성울 대중에게 이해시키고 이 대중을 형성하는 일 이다. 그들 가운데 지지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로마네스크 회 화와 그들의 시도의 관계에 대해서는 현대미술과 이국 양식을 비교했을 때와 동일한 방식으로 형태의 유사성과 정신의 상반성을 구별하는 연구 가 있어야 한다 .

는 이 간략한 분석 가운데, 우리 시대 예술가들이 자연 앞에서 취한 근본적 입장이라는 문제에 부딪친 것 같다. 우리는 옛 요 소들을 새롭게 결합하여 볼륨과 전통적 대상을 투영하려는 의도 로부터 기본적이고 육체적인 충동을 역동적으로 표현하려는 데 로 자리를 옮겼다. 순수색의 작용으로 공간을 확대하거나 축소 하는 방법을 발견했고, 드디어는 레제의 탄력있는 직사각형이나

기시아나 마네시에의 열린 공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열린 공간은 화가들의 노력을 건축가나 조각가에 연결시켜주는 개념 이기도 하댜 그 최초의 예로 로랑과 아담을 들 수 있다. 실제로 새롭게 나눈 여러 대상의 조각들을 회화적으로 조직하는 방법을 보여주었으며, 이제는 조형막 위에 폐쇄된 공간을 구성하지 않 게 되었다. 이 폐쇄된 공간에서는 감상자가, 인간 행위의 극장 구실을 하는 역시 폐쇄된 세계를 자체의 법칙대로 동일하게 재 현하는 소우주에서처럼 움직여야 했다 . 이제는 지나간 반세기의 회화적 체험이 상당히 긍정적 결과를 제공해주는 것처럼 보인 댜 여러 교양있는 집단이나 미학적으로 진보된 집단이 보이는 침묵을 내가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새로운 조형공간이 자 리잡아 가는 전통이 존재함은 확실하며, 이 전통은 19 세기 말의 혁명적 미술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체험과 사조에 자리를 잡고 있음도 명백하다. 에콜 드 파리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속한 사람들과, 이들을 옹호한, 더 정확히 말해서 문학가와 화가의 조화를 조심성있게 도우려 했던 사람들이 취한 입장은 여기에 진술된 조형 체험의 양식과 현대문화의 근본적 경향의 병행으로 특징지어진다. 에콜 드 파리는 원래 국제 생활의 중심이었지만, 보편적인 사고를 다 루는 그림 소재만은 너무나도 풍미가 있는 지방의 향기에 힘입 고 있다. 이 글을 끝내면서 다시 반복하지만, 예술비평과 고고학 은, 인간 신체의 변하지 않거나 또는 지속적이고 특수한 가능성 에 대한 보다 내밀한 지식에 기초를 둔 새로운 인문주의의 진보 과정에서 차지해야 할 엄연한 위치가 있다. 동시에 우리의 활동 영역인 우리의 공간은, 신속하게 여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 고 물질에 미치는 효율적인 작용이 증대함에 따라 흔히 체험하

는 〈웅대한 것〉과 〈무한히 작은 것〉을 애호하는 쪽으로 확장되 었댜 만일 휘어진 공간이 화가들에 의해 특권을 누리게 됐을 때, 이것이 수학자들의 사고와 관계가 없다거나 물질을 다루는 일상의 체험과 무관하다고 누가 생각할 수 있겠는가? 이 물질을 다루는 체험은 결국 예외없이 인간의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눈으 로 볼 수 있는 이상이 확인되는 새로운 종류의 〈형태〉를 생산하 게 된다 인간의 촉감적 이상과 시각적 이상은 일체가 된다. 자 동차 몸체의 휘어진 공간이나 비행기의 옆 부분은, 학자들이 개 척한 원리를 좀더 대중적 차원에서 인간이 제조한 물건으로 번 안된 것이다. 인간정신의 일차적 기능은 새로운 물질생활 조건 에 의해 많이 변화되었다. 이 물질생활을 프리드만은 정확하게 〈제 2 의 산업문화〉라고 부롤 것을 제안했다 .24 ) 바로 최근에 클로 드 레비-스트로스는 마르셀 모스의 사고에 관한 그의 훌륭한 저 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배우고 전달받은 모든 전통적 행위는 신경과 근육의 공동작용에 기초를 두며, 이 공동작용은 사회학적 배경과 밀접하게 관계가 있는 참다운 체계이다.〉 또 이 어서 〈개인의 정상적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는 결코 상징적이지 않으며, 집단적 상징체계가 구축되는 근거가 되는 요소일 뿐이 다〉라고 말한다. 한 시대의 예술이 한 사회의 문학적 표현보다 24) 프리드만M . G.F ri edmann 의 개인 저술 『기계와 인문주의』의 중요성은 이미 지적했다. 이 가운데 제 1, 2 권안 『진보의 위기』와 『산업 기계주의 의 인간적 문제 』 는 이미 발간되었고, 제 3 권 『기술 문화 시론』은 나올 예 정이다. 그 밖에도 프리드만은 전집 『인간과 기계』를 착수하였고, 이 중 제 1 권은 특별히 미술에 관한 저술이다. 이 저술은 인쇄중인데, 카수J. Cassou 의 『현대 미술의 상황』은 발간중이다. 아직 접근되지도 않았으나 현재의 작업에서 제기된 이 문제들이 일으키는 관심은 여러 곳에서 확인 되고 있다. 올해 여름 제 4 회 국제 역사학회에서 예술과 문화에 부여한 중 요성은 그러한 관심의 또 다른 중거가 되고 있다.

더욱 그러하다는 점에 그는 학문적으로 전연 의심하지 않으며, 또 그는 인간의 가장 깊은 정신적 • 생리학적 구조에 토대를 두 는데, 이것은 상부구조가 아니라 하나의 언어이다. 조형언어의 존재에 대한 이런 개념이, 인종학자나 인류학자들 의 경우는 좀 덜하지만 사회학자들 사이에서조차 다시 반대에 부딪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 상당히 모순된 이론 들 이 최근 미국에서 토론되었으며, 예술이 갖는 언어로서의 특질을 부정할 수 있다고 믿는 이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예를 들 면 수잔느 랑제의 책에서, 예술은 진정한 언어가 못되는데 왜냐 하면 음소(音素)로 동화될 수 있는 고정 된 요소를 사용하지 않 기 때문이라는 글을 대할 때 독자는 당황하게 된다 . 그런 것을 기록할 수 있고 토론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에 심한 분열을 일 으키며, 가장 진보된 집단들 내부에 얼마만큼 조형적 몰이해가 존재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 미쇼트는, 조형막 위에서 사물에 육중한 느낌을 주는 것은 그림자라고 적을 수 있었고, 생각해 보면 내가 그에게 보인 반박의 중요성을 짐작조차도 하지 못했 댜 25) 사물들이 세계 내부에, 그리고 우리들 앞에 놓여져 있으며, 인간이 측량하고 해석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 마술시대에 그 는 아직도 살고 있다. 미쇼트도 조형언어를 읽을 수 있는 사람 들 또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증언을 차별없이 사용하는 권위 죽 연구실의 실험에서 흔히 발견되는 그런 식의 권위를 내세우 25) 내가 말하려는 랑제 S . Lan g er 의 책 제목은 『 새로운 열쇠의 철학』(케임 브리지, 미국 , 1942) 이다. 모리스 C.Mo rri s 의 『 기호, 언어, 행위』(뉴욕, 1946) 를 추가할 수 있다 . 1940-1948 년 < 사회학 연도 > 에 실린 구르비취 G. G urvit ch 의 비 평 적 서 평 들과, 같은 잡지 1950 년호에 내 가 쓴 서 평 참 조 . 또 같은 출판사의 나의 논문 『 예술과 사회학 』 과 이미 언급한 나의 학 술논문 기사들 참조 .

고 있다. 이것은 마치 청각이 있는 사람들과 없는 사람들의 혼 합된 증언에 음악 이론의 기초를 두는 것과도 같다. 신인동형론 (神人同形論)과 신에 대한 믿음이 아직 강하다. 미쇼트는 이교도 인데, 아직도 그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 그 밖에도 잘못은 조형언어를 형성하고 조직하는 역사적 내지 는 지속적 조건에 대한 체계적 연구가 없다는 데 있다. 내가 바 라는 바는 이 작업이 일단 획득된 것의 예로서가 아니라, 조형 고고학의 분야에서 독창적 연구가 가능하다는 것, 또 이 연구에 대한 관심과 이 연구가 절박함을 보여주는 작업이 되었으면 하 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현명한 사람들이나 섬세한 미적 감각을 가진 사 람들이 불안하게 부딪치는 어려움들이 다 없어지게 될 것이다. 〈원시주의 primiti v i sme 〉와 〈전문성 t echnic it e 〉이라는 개념의 토 론을 통해서 자연스러운 해결책 아니면 적어도 긍정적 해결책을 찾게 될 것이댜 26) 우리 시대 예술이 기술에 대해 향수를 느낀다 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과거 물질에 대한 행동방식을 규정해 주던 모든 관계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있는 공간, 우리 들의 이론적이고 실제적인 지식에 따라 잘려진 형태로 풍요롭게 되었던 이 공간의 규모를 잴 때 기준이 되었던 거리나 크기, 속 도 둥에 대한 경험적 평가를 규정해 주던 모든 것들과는 완전히 관계를 끊었다. 새 시대가 오면 새로운 테크닉을 필요로 하기 26) 이 접에 대해서는 <국제 사회학 평론>의 내 논문 『예술과 테크닉J (19 49) 참조 〈원시주의〉의 문제에 대해서는 고전적 토론의 견해가 데오 나 W.Deonna 가 준비한 전집 『원시주의와 고전주의, 미술사의 양면 』 (연 구 제 2 호, 파리, 연구협회 국제 센터) 속에 포함되어 있다. 바로크나 고전 미술과 같이 오늘날 해결없는 토론들이, 조형언어에 대한 보다 더 깊은 찾연게구 와될 인것간이의다 . 표현양식을 전체적으로 비교하는 연구를 통해 해결점을

마련이댜 현대회화가 전문성을 결하고 있다고 우리가 비난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지 않는댜 오히려 정반대로 결함이 있다면, 감각적 체험을 비롯하여 합의된 형상화로 가득한 시각을 자발적 이고 즉각적인 방법으로 제시하는 기능이다. 우리 시대는 신화 의 영역에서 뒤져 있으며 현재로서는 이념을 만드는 데 그치고 있댜 르네상스 체험이 만들어낸 세계의 이미지에 따라 무대에서 전 개되는 것에 견주어 인간이 자신을 알아볼 수 있었던 그런 전통 이 파괴되고 난 뒤, 우리 시대는 인류의 새로운 의식이 투영되 는 새로운 상상의 틀을 아직 결정적인 방법으로 만들지 못하였 다. 우리 시대의 마술사들이 기능의 발휘라는 측면에서 지체하 고 있는 셈이다. 화가나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은 현대인에 대해 아직도 단편적이고 분석적인 지식을 갖고 있다. 이들은 사라져 가고 있는 언어에서 아직도 그 배경을 흔히 차용해 오고 있다. 여기에 바로 현대 미술의 모호성이 있지만, 현대미술은 사회적이 고 인간적인 높은 의미의 절대적 증거와 조건이 되고 있다. 오늘날의 예술가들은 언제나처럼 즉각적이고 감성적 형태로 그들 주위 사람들의 능력과 필요를 표현하는 힘을 부여받은 특 수 사회계층에 속한다. 예술작품은 살아 있는 형태이며, 포시옹 Foc il lon 이 말한 것처럼 만들어진 물건의 성격을 지니며, 진정한 자연의 조직체이고, 일단 그 창작자의 머리에서 나오면 전집단 의 의도와 욕망을 표현하는 하나의 진정한 사물이 된다. 예술작품을 통해 한 시대에 있어서 인간정신의 근본적 범주가 무엇인가를 재발견한다. 한 사회의 일상적인 또는 지적인 체험 들 전체를 표현하는 기능은 조형적 형태에만 속하지 않고, 구술 적 언어와 동작에 의한 언어, 또는 음악언어에도 속한다. 아직도 잘 정의되지 않은 인간유형이 있으며, 그들을 해석하고 그들의

위치를 정하는 과거와 현재 작품들의 이중적이고 조직적인 독해 에 기초해서 도록을 만드는 일이 긴급하다. 예술작품에 내재하 는 비합리적 행위 부분은 아직도 모호한 것들을 설명해 주는 수 단이 된댜 거기에는 조형적 기호와 쓰여진 기호의 변증법과 통 사론이 존재한다. 예술이란 신앙이나 지식의 차원에서 빌려온 요소들을 연결시켜주는 관계들의 체계이다. 예술작품은 사고와 실제 사이의 중간에 걸쳐 있다. 유클리드적 논리만이 전인류의 황금률은 아니다 . 우리 시대의 과학적 지식은 전시대의 것만큼 이나 엄격한데, 왜 예술이 인간발전의 한 단계에서 그치고 말겠 는가? 뒤르켐이 모든 인간의 활동은 대상 ob j e t으로 변형될 수 있다 고 우리에게 말한 것처럼, 모스는 전 사회적 현상은 언어에 동 화될 수 있다고 알려 주었다. 예술이 인간의 언어들 가운데 하 나라고 단언하는 것은 앞의 주장에 반대되지 않는다. 바로 그렇 게 다루어지고 연구되기를 기원할 뿐이다. 심리학이나 전통적 논리가 새로워지고 있는 시대에 예술도 절대적으로 그렇게 변형 될 필요가 있댜 회화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증거를 보 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르네상스 문제의 어떤 특징도 밝 혔다고 믿는 바이다. 르네상스 시대에도 오늘날처럼 외적 세계 에 대한 지적 태도에 변화가 일어났었다. 그 시대 작품에 점진 적으로 새겨진 것이 바로 이 변화이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과 거로 돌아가기도 하였고, 저항도 있었으며, 표현이 불명확하기도 했고, 결국 최초의 표현계획의 어느 부분 등은 삭감되는 일도 있었댜 모든 조형언어는 결국 음악과 같이 하나의 〈평균율〉 ® 의 수용 에 의해서 안정된 형태로 형성된다. 르네상스 사람들은 인간사 회의 균형상태에서 가장 완벽한 조형적 표현을 세계에 대한 인

® 평균율te m pe ramen t: 복합된 여러 요소들 사이나 한 구성에서의 균형 . 또는 행위나 판단에 있어서의 척도를 의미하는데, 음악에서는 약하게 하 거나 완화시키는 변화로서 음정을 고르게 하여 음계를 조직하는 것을 의 미한다. 옥타브를 12 개의 동일한 반음으로 등분하는 등분 평균율과 옥타 브가 8 개의 3 음정을 포함하는 불동분 평균율이 있다 .

간의 지적 태도에 기초해서 마련하였다. 르네상스는 세계를 시 각적으로 개척하던 시대에서처럼, 르네상스가 완전히 죽은 순간 인 오늘날 그의 희화적 공간표현을 통해 다시 나타나고 있다. 우리 시대는 이 세계를 다감각적으로 개척하는 시대 를 열어주고 있는지 모른다. 르네상스가 인간과 구별되는 자연의 이미지를 제공하였으나 이것도 인간과 인간의 반응에 따라서였다 . 오늘날 의 예술은 인간이 모델이거나 모든 사물의 중심이 더 이상 아닌 그런 새로운 관계를 지닌 세계로 우리가 향하고 있다고 알려주 고 있댜 이것은 인간의 이미지를 가진 자연이 아니라 , 이제는 자연의 이미지를 가진 인간이며, 또 인간을 둘러싼 환경과 인간 자신에 관한 심오한 체험에 의해 풍요해진 인간이며, 새로운 환 각을 향한 기술적 체험과 심리적인 체험의 넓이에 맞는 공간과 형태들을 형성하기 시작하는 인간이다 . 이 새로운 환각은 르네상스의 환각이 오로지 하나의 이론적 협약에 기초를 두었던 것보다 더 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술가 는 긍정적 의미에서 언제나 어느 정도는 마술사이다. 모스의 공 식대로 마술이 욕망을 표현하는 언어라고 할 때, 이 마술은 틀 림없이 인간을 결합시키는 사회적 관계를 완전히 변화시키는 전 쟁처럼 상당히 강력한 충고수단 가운데 하나이다 . 예술은 늘 여 론에 의해서 다소 비공식적으로 전달되거나 인정될 수 있는 의 례의 성격을 갖는다. 마술이 종교에 속한 것처럼 예술은 어느 정도 언어에 속한다. 문제의 집단감정이 다수의 신앙과 완전히

일치되지 않으면, 두려움과 적의의 뉘앙스를 띠고 한 시대의 신 화를 시사하는 진정한 위력을 감추는 것이 바로 예술이다. 마술 사와 같이 예술가는 감상을 위한 전문성을 요구하며 평범한 정 신을 거절하는 특수한 권력의 소지자이다. 예술가는 마술사처럼 제스처와 행위, 무엇인가 의도하는 바를 그의 작품에 옮긴다. 그 작품이 가치가 있는 경우에 그 형태의 변형 내부에 하나의 실증 적 힘이 존재한다. 예술가는 웅변가나 시인처럼 자신이 다른 사 람에게 발휘할 수 있는 힘을 갈망하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시각 즉 자신의 판단을 강요하려고 한다 . 집단의 힘을 소유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사람들을 매혹하고 사람들을 구속한다. 하나의 새로운 양식이 발전하려면 전문성이 있는 소수집단이 있 어야 함과 동시에 새로운 감동을 탐내는 청중이 필요하다. 여기 서 소수의 전문가 집단이란 주위 사회에서 사람들을 매혹시킬 수 있는 힘과, 또 이 사람들을 다소 견고한 감정의 변형에로 서 서히 이끌고 갈 수 있는 힘을 포착하려고 노력하는 집단이다. 예술가는 신화와 의식의 영역에서 자신의 작업을 수행해 나가 며, 한편 전시장은 우리 시대에 와서 한 문화상태가 다른 문화 상태로 바뀌는 장소가 되었다. 나는 작년 엑스 앙 프로방스의 훌륭한 옛 대주교 저택에서 모 차르트의 「돈주앙」을 듣고 있었다. 우연히도 내 뒷좌석에는 무 엇을 보게 될지 전연 모르고 거기에 온 몇몇 방청객이 자리를 잡았다. 그 여자들은 돈주앙이든 모차르트든 도무지 관심이 없 었고, 이탈리아어로 노래하는 것을 들으러 온 참이었다. 아마도 그 사람들은 이탈리아인들이었고 벨칸토의 애호가들이었던 모양 이다. 그들에게 가장 감동적이었던 연극의 부분은 그날 저녁의 가장 홍미로운 부분이었으며, 그 작품이나 음악의 수준이나 효 과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범죄 • 복수 • 유령 • 기적 같은 과장

이 심한 일종의 순회홍행물 내지는 예술 코미디만을 보고 있었 댜 한마디로 말해서 비참한 다 폰테의 각본만을…… 그들은 열 광적 분위기에 싸여 신성한 의식을 혼란시키는 속된 상황에 처 해 있었댜 청중 전체는 그날 저녁 어떤 의식에 참여하였는데, 배경이 엉 성한 연극의 주술성 덕분이라기보다는 음악가의 주술 덕분인 것 같았다 그리고 연주가 편에서 더욱 정확하고 체계화된 과학성 을 요구하는 이 음악은, 모차르트가 의도했던 대로 그날 전달되 지 않았다. 나는 열 세대에 걸쳐서까지 인간적이며 극적인 체험 을 요약해 줄 수 있는 작품이 이제는 더이상 제작되거나 표현될 수도 없으며, 또 인류가 일치된 마음으로 이해할 수도 없다고 생각되었다. 우리는 단지 라파엘이나 렘브란트를 우리 시대의 기술적 • 감정적 가치로 설명하듯이 인간적이며 극적인 체험을 해석하는 데 그칠 뿐이다. 배경은 이제 음악을 동반해 줄 수 없 으며, 그 배경은 19 세기 말 부르주아 문화를 통해 본 모차르트 를 위해 만들어졌던 것이다. 음악의 차원, 장식가의 차원, 그리 고 나쁜 각본으로 지친 청중들의 차원이라는 세 개의 차원이 이 작품에서 서로 충돌한다. 언젠가 우리는 고대 비극의 합창처럼 모차르트 음악도 듣지 않게 될 것이다. 미술이나 음악이나 회화 작품은 비밀스런 의식과 집단적 소통을 필요로 한다. 옛사람의 인간 모험으로 다시 돌아가거나 인간의 모험이 중단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술가가 자신의 확신이나 습관에 대한 정열적 해석을 투사하는 상상 공간을 인간들은 계속 창조해 낸 다. 조형공간은 의적 세계에 대한 우리 집단의 지배력에 따라 끊임없이 변형되며, 물질의 물리적 법칙에 대한 우리들의 수학 적 개념을 계속 반영하고, 우리가 드러내고 싶은 감정적 가치의 질서를 또 재현해 준다. 이 조형 공간은 15 세기 미술에서처럼

언제나 신화이면서 기하학이고, 형태이자 내용이며, 또 인간사회 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발전시켜온 신화와 기하학과는 다른 수많 은 신화와 기하학이 존재할 것이다.

49. 듀피, 『일요일」 . 구부러진 공간에 대한 사고는 현대미술이 공간적 기호체계 를 새롭게 하기 위하여 밟아온 중요한 과정 가운데 하나이다 .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도해 11) 도 전경에 둥근 사원을 배치했으나, 그 사원 주위 를 , 말하자면 선형 원 근 법에 따라 구성하고 있 다. 듀피의 공간은 어떤 다른 현실을 오려낸 것처럼 보인댜 감상자 는 거기에서 자신 의 관점을 선택해가며 그 중심건물 주위 를 원형적 시선을 갖고 계속 산책하게 된다. 또 칙접 겪은 경험체계 를 뚜렷이 보여주는 법칙을 가진 표현체계로 나타내려고 그 분위기와 동떨어진 요소들을 선택하지 않는다. 만일 이 시각이 〈 자연스럽다 〉 할지라 도 이것이 옛날 르네상스 체계보다 더 우수하다거나 그것을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바로 여기에서는 예술가가 체험했던 것과 가능한 한 가장 가까 운 인상을 기록하려 하는 반면에, 르네상스는 즉각적 시각에서 빼온 요소 들 을 항상 합리화하려고 한다는 점에 그 큰 차이가 있다. 게다가 이런 형태의 지각은 15 세기 예술가들이 모르고 있었던 것이 아니며, 그들 자신이 의식적으로 멀리했던 것이다 (도표 24, 26 참조). 50. 푸케, 『생 드니 대성당에 들어가는 샤를르 4 세 황제」 (1470 년경), 파리, 프랑 스 대연대기」, 국립 도서관. 지금 위에서 언급한 견해의 중거가 바로 이 작품이다. 이 세계의 원경에 대한 시 각적 연구에서 얻은 교훈을 경험한 뒤에, 16 세기 국제미술에서 유행했던 것과는 다 론 공간조직의 한 예를, 푸케의 소품은 보여주고 있다. 우첼로처럼 푸케는 바탕에 네 모난 타일을 까는 여러 방법을 시도하였으며 그는 또 여러 투사방법을 알고 있었다. 최종적으로 알베르티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법칙을 택한 것은 양식에 대한 의지에 서 오는 것이지 무의식적인 환영작용ill us i o nni sme 에서 온 것은 아니다. 또한 망막의 인상을 날카롭게 분석하려는 관심은 어느 시대롤 막론하고 구부러진 공간을 기록하 는 데로 나가게 하였다.

51 . 마티스, r 충』 (1909), 레닌그라드 , 은둔암 박물관. 듀피의 표기법이 여기서 양식화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대지의 둥근 꼭대기 부분 을 표현하는 것은 오래된 방법으로서 그때는 눈에 잘 안 띄게 표현했었는데 이제 여 기서는 대지 꼭대기 부분이 분간할 수 있을 정도의 일종의 표의적 기호 sig ne ide a- gra ph iqu e 가치만을 지니도록 축소되어 있다. 대지의 둥근 부분의 표현, 이것은 〈전 우주 위에서 춤의 승리〉라고 하는 〈주제〉 를 나타내 준다 . 반대로 인물 들 의 양식화는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 를 도입하고 있다 . 마티스는 드가가 지녔던 순수운동에 대 한 사고와 망막이 느낀 인상의 분석적 기록을 결합하고 있다 . 공간은 새로운 특질로 등장한다. 죽 균형있는 넓은 공간 , 조형성 그리고 한계 를 규정하지 않는 특징 둥이

댜 여기서 우리는 지나간 세기의 근본적 가설로부터 완전히 떠나 있다. 우리가 또다 시 확인하게 되는 것은, 현대미술이 새로운 환각적 체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시각 의 영원한 원천으로 되돌아 온다는 점이다 . 만일 르네상스의 감성적 • 지성적 근거, 즉 르네상스 시대의 심리 를 표현해 주는 구조 를 알고자 한다면, 르네상스가 글자 그 대로 해체되어 간 그 상황을 가까이서 연구해야 할 필요성 이 여기에 있다. 더구나 서로 낯선 사물 들을 선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도록 해준 아라베스크에 마티스가 부 여한 위치 를 우리는 관찰한다. 우리 시대와 르네상스 를 가르는 또 다른 큰 차이는 대상에 대한 개념의 변화인데, 이 개념의 변화가 갖는 지대한 중요성에 대해서는 뒤 에서 다시 언급하려 한다 .

52. 피카소, 『발을 닦는 여인」 (1944), 데생, 연필. 마티스의 작품 『춤」에서 휘어진 공간 표시는 결국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대지의 둥근 상부는 공간에 대한 흰 시각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장치 를 위한 부속물들 의 전통적 목록에 속하기 때문에 모호성이 있다. 또한 공간 속에서 운동감을 가진 인물들이 정지하고 있는 것은 반드시 비유클리드적 공간에 대한 가설에 속한 것도 아니며, 특히 구부러진 공간이라는 단 하나의 공식에 속하는 것만도 아니기 때문에 모호성이 있다(도해 33). 40 년 쯤 지난 뒤에 시각의 관점이나 형상화의 관접이 더 이 상 조형표현의 틀을 형성해 주지 못하는 이러한 비입방체적 공간에 대한 인식은 , 금 방 알아볼 수 있는 일정한 하나의 체계를 아직 형성하지 못하고 있지만, 한 가지 분 명한 것은 드가 • 마티스 • 듀피의 제안으로부터 일종의 미학적 모험이 발전되고 있 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피카소의 인물은 한 공간의 내부에 전체가 완전히 들어가 있 으며, 이 공간이 곧은 직선이 아니고 이렇게 구부러져 있는 모습이 좌표 자체가 되 고 있다 . 휘어진 공간을 외부로부터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속으로 우리 를 인도한다. 피카소가 그 공간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면 듀피나 마티스에게는 아직 도 공간이 밖에서 본 대상인 채로 남아 있으며, 있는 그대로 묘사되고 있다(도해 18, 19 참조) . 연구의 의미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대 기하학의 공식에 유념해야 한 다. 또 특별히 위상학(位相學)에도, 그리고 피부로 느껴지는 감각에 접근하고 결합함 으로써 우리의 정신 속에 구축되는 공간에도, 또 유클리드적 기하학의 차원과는 다 론 차원을 가진 우주를 포착하려는 노력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필자는 이 저서 의 본문에서 이 문제들을 우리 분석의 영역 밖으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되는 필요성 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려 노력하였다. 현대의 데포르마시옹 미학은 계속되고 있어, 피카소의 작품 앞에서 웃고 있는 사람들이 마치 영화관에서 실제의 영사(映寫) 앞에 있다고 느낄 정도이다. 작품 『아틀리에J(도해 57) 에서, 휘어진 공간에 대한 감각이 아닌 다른 타입의 구성을 질서화하는 노력을 보게 될 것이다. 피뇽의 r 우스텐드』 작 품들을 흑백으로 여기 도해할 수 없어 유감이지만 그는 피카소보다 좀더 앞으로 진 전하고 있다.

53. 반 고호, r 구두」. 공간의 차원, 형태, 한계, 특질에 대한 사고와 오브제의 속성에 대한 사고 사이에 는 긴밀한 관계가 있다. 15 세기 예술운동에 있어서, 오브제의 문제가 두 개의 관점에 서 제기된 것을 우리는 앞에서 보았다. 다시 말하면 오브제의 일관성이나 자율적 강 도에 대한 관점과 다른 오브제 들 이나 관자의 시선과 연관된 그의 상대적 위치에 대 한 관점이댜 이 유명한 반 고흐의 작품은 화가들이 독창적 관점을 만들기 위해 마 음대로 쓸 수 있도 록 드가와 마네가 제시했던 모든 원천들을 환기시킨다. 그 러나 공 간적으로 말해서, 여전히 관점과 전체적 시각이나 공통적 시각에 의해 정의된 대상 이 문제되고 있다 여기서 진실로 개성적 요소는- 〈전체를 위해 포착된 부분〉이 라고 언어학에서 부르는 것에 기초하고 있는-나중에 표현주의로 발전하게 되는 감성적 시각이댜 다시 말하자면 시각이나 양식의 조형적 변형이 아니라 감성적 에 너지의 강조로 나가는 시각이다. 54. 레제, r 오브제의 구성』 (1937), 파리 , A. 레자르 소장 . 위의 작품과는 대조적으로, 여기에서 우리는 현대미술이 성취한 모든 것을 발견 하게 된다. 죽 비례나 상대적 위치 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유로운 공간의 튤 속에 서 하나의 동일한 경( 景 ) 위에서 구성된 오브제들의 조각들을 보게 된다. 여기에서 여러 요소들이, 때로는 사물에 대한 전체적 체험 속에서(화분), 때로는 부분적 경험 속에서(꽃, 자른 나무 토막) 선택되고 있다 . 또 거기에는 서로 구별되지 않는 지각 공간의 몇 조각을 볼 수가 있다(드가의 솜 모양의 배경과 도해 47 참조). 작가는 지 평선 없는 공간, 죽 절반 정도는 느낄 듯하고, 나머지 절반은 상상해야 하는 공간 속 에 사물들을 배치하고 있다. 이 공간은 측정할 수 없는 공간은 아니며 거기에는 원 경이 있다. 그러나 완전히 사라진 것, 그리고 하나의 가설에 불과했다고 알게 된 것 은 바로 분명한 경들을 갖고 분리적 • 입방체적으로 우주를 표현하는 시각이다. 그와 병행해서 우리의 시대는 연극적 개념이나 대상들간의 거리를 심리적으로 측정하는 것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옛 것을 점진적으로 몰아내는 새로운 세계인 것이다 .

55. 피카소, 『자는 사람과 구부린 여인」 (1947), 색채 석판화 . 오브제에 대한 새로운 개념은 정물에만 관여하는 것이 아니며, 앞에서 본 소품의 연구 같은 것만을 설명해 주는 것도 아니다. 이미 여러 작품 들 나아가서는 대작들을 낳아준 연구의 바탕이 된다 . 현대미술은 몇마디 말을 더듬거리는 정도 그 이상의 것 으로 그 초보단계를 훨씬 넘어서 있다 . 중요한 시도 중의 하나는 인 체 의 표현을 오 브제에 대한 새로운 개념에 통합시키려는 것이다. 이 작품에 관해서 필자는 현 연구 의 전통적 근거 -여기서 전통적 근거란 그 말의 옛 의미로는 객관적 근거가 된 다-와 전통적 근거로부터의 단절을 보여주는 두 증거 를 결합해 보았다 . 이 석판 화는 마티스의 r 춤」에서처럼 〈사실적〉 모방에서 선적 양식화로 전이하는 그 첫 단 계 를 보여주는데, 그러나 습관된 내적 이미지를 간칙하면서 전이하는 것이다. 여기 에서 우리는 데포르마시옹과 표현주의의 단계로 들어가며, 이 단계는 오브제와 세계 에 대한 총체적 옛 시각을 보존하는 단계이다(틀 구획하기, 인 물들 의 상호 위치, 볼 륨, 제스처 등) . 56. 피카소, 『나체 습작』 (1941) , 데생, 연필, 앞의 그립과 반대로 공간의 새로운 이해에 기초를 둔 데생을 도해했다. 누워 있 는 한 인물 주위를 우리 자신이 빙 돌면서 움직이지 않는 이 모델을 관찰했을 때의 여러 결과들을 연속적 선으로 종이 위에 기록한다고 상상해 보자. 이러한 시도가 한 번 보아서 포착할 수 없는 오브제들을 동시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승마적 공 간보다 더 불합리하다고는 볼 수 없다. 또한 15 세기 미술이 입 방체로 집 약한 공간, 죽 입방체의 여러 면 중 한 쪽만 열어 놓으면서, 세계를 유클리드적으로 배치한 구 조를 순수한 가설에 의해 축소해 낸 이 공간의 가설보다 더 불합리하다고 볼 수도 없 다. 지평선이나 경들의 분리는 영구불멸의 법칙이 될 수 없으며, 〈전망(展望 )vedu­ te〉에 의한 조립이 정신의 결합 능력에 합치하는 유일한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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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피카소, r 아틀리에』 (1935) . 한 인물의 주위 를 우리가 돌면서 연속적으로 받는 인상들을 아라베스크의 도면적 연결 방법을 이용해 계속적으로 기록하려 할 때, 고립시켜 볼 때에만 만족감을 주는 요소들을 통일하는 문제에 우선 봉착하게 된다. 사실 여기서 공간적 연속의 문제에 칙면하게 된다. 삼차원의 고전적 공간에서는 이 연속이 가능했다 . 그것은 한편으로 는 표현에 있어서 엄격하고 규격화된 한계선(본래 평평한 표면)이 있음으로 해서, 다론 한편으로는 형상화의 법칙이 우주의 법칙과 동일하다는 가설에 의해서였다 . 그 밖에 세계의 모든 부분들이 선적인 단위에 따라 계산될 수 있다는 것, 또 하나의 고 정된 시각 위치에 따른다는 점을 인정함에 의해서였다. 이제부터는 무수한 공간적 특질을 가진 세계 를 가정하게 된다. 여기에서 관접은 세계의 여러 부분들을 한번에 포착하는지, 혹은 가까이에서 보는지, 멀리서 보는지, 또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포착 하는가에 따라서 변하게 된다. 그 세계에서는 이 론상의 통일이 단일한 사유구조에

의해서 이 루 어지는 것이 아니다. 르네상스의 공간이란 우주의 곳곳을 다니던 사람 들 , 무엇보다 소수의 평가 도표에 따라서 평상시 사용하는 물 건들의 위치 를 정해보 려던 사람 들 의 공간인 것이다 게다가 그 공간은 평평한 벽과 판에 대한 생각이 온 전히 지배적이었다 . 여기서 우리는 정반대로 아주 가까이 있다는 감각이 전체적 표 현과 서로 혼합되는 공간 을 보게 된다. 여기에서 운동감에 대한 빠른 포착이 〈정체 적( 停溝 的) 한 페이지 를 만드는 일〉과 맞서고 있다 . 또 여기에서 여러 방식의 양식 화가 동시에 시도된다 . 폐쇄적인 힘의 체계에 따르는 우주의 근본적 법칙이 이미 알 려진 어떤 정신의 카테고리와 실 질 적으로 동일하다는 확신은 여가서 근본적으로 단 절된다. 르네상스는 하나의 〈한계 를 짓는 작업〉이었고, 우리의 시대는 이 체계 를 버 렀다 . 왜냐하면 이 시대는 구조적 정신의 이해와 행위의 분야 를 동시에 풍요롭게 하 면서 인간 지식의 영역을 한번 더 확장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58. 레제, 『아담과 이브J (1934). 이 새로운 조형질서의 발전에서 가장 미묘한 부분은 인체의 표현이다 . 오브제처럼 인체도 안정감울 안겨주던 고정적 특질을 상실하고 말았다. 인체 역시 한 새로운 오 브제로서 화가들이 다루게 되었다 . 그 시대의 유행에 따라 옷을 입은 고전적 조각이 제공했던 전형화된 인체가 존재한다는 생각에서 떠나게 됨으로써 갑자기 발견하게 된 인체이다. 신의 형상과 이상적 미의 법칙에 따르는 〈인간 - 개인l' homme - perso n ­ n ag e 〉이라는 사고, 그리고 〈인간 - 반영 J 'homme 一 re fl e t〉이라는 사고는, 르네상스적인 기 본사고와는 다르게 나타난다. 바로 이점이 우리 시대에 와서 완전한 단절을 보여주는 접 중의 하나이다. 레제가 앞서 보여준 것과(도해 54) 유사한 오브제들로 구성한 세계

에서, 인간은 사물들과 동일한 헝깊으로 짜여진, 척도 를 떠나서 동일하게 취급된 하나 의 조각으로서 등장한다 . 현대의 조각가들이 만들어내는 매끄럽거나 또는 모가진 오 브제들은 우리가 손으로 이것을 잡아보거나 쓰다듬을 때 때로는 부드럽기도 하고 또 는 거칠거나 각이 진 것 같은 여러 종류의 촉감적이고 감각적인 기쁨을 느끼는데, 이 것은 민감한 눈을 소지한 사람이 그림을 볼 때 느낄수 있는 기쁨과 비교될 수 있다. 신 천지는 만질 수 있는 것이므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벌써 우리들 사이에 신천지가 닿 아 있는 것이다. 이 세계에서는 우리가 손으로 그 크기를 잡아볼 수 있으며, 더 이상 우 리의 꿈이 아닌 우리들 행위의 기억에 대한 개개인의 자유로운 표현을 구성할 수 있다.

59. 세잔, r 한 마을길」 (1877 년경), 할렘, 쿠닉 소장. 이 작업의 마지막 몇몇 도해에서, 화가들이 약 30 년 전부터 취해온 견해 를 요약 해보려 한다 한편으로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세잔에 힘입어 시각의 영원한 토대에 대한 자각에 근거하고 있는 입장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론적으로는 환각적 결합 이 무한히 가능하다는 사실 앞에서 오늘날의 화가 들은 자기들의 이론을 보여 주기 위 해 새로운 총체적 가설을 벌써 확립해 놓았다는 점이다. 사실 모든 언어 는 이마 선 택된 관례적 기호가 암시하는 풍요성이나 또는 정밀성에 있어서 한계가 있다. 세잔 의 이 두 작품 중 첫번째 것은 자연을 입방체와 구(球)로서 나타내려는 그의 의지 를 잘 보여준다 또 이 작품은 입체주의가 어느 정도 그의 작품에서 나오게 되었다 는 것을 보여주며, 보통 생각했던 것 보다는 훨씬 덜 과감하고 덜 개혁적임 을 보여준다. 60. 세잔, r 생 빅트아르 산J (1905 년경). 이 구성들 중 두번째는 이 세계에 대한 기하학적 시각이 아니라 감성적 시각을 지닌 부분들을 아라베스크로 연결하는 세잔식의 중요한 체험을 보여준다. 의미가 너 무 광범위한 아라베스크란 말보다는 초서적( 草밤 的) 기호라고 지적함이 더 적절하 다. 왜냐하면 가장 엄격한 유클리드적 기하학에도 어울리기 때문이다. 공간의 부유 (i'f遊)하는 경들을, 드가(도해 47) 의 연구나, 레제나 브라크의 정해진 경이 없이 넓 은 공간들의 표적을 세워주는 자유로운 표면의 조각들과 비교해 볼 만하다. 이 두 세잔 작품이 에스키스란 사실은 새로운 조형질서의 발전으로 향한 두 가지 길이 양 식화된 요소들의 근거없는 결합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직접적이고 부득이한 감각에 답하는 것임을 중명해 준다.

61. 레제, 『파리의 지붕들』 (1912 년경). 이 작품과 다음 작품을 통해 〈볼륨과 경에 의거한 표현〉과 세잔의 사고로부터 직 접 나온 〈초서적 선에 의한 표현〉이 근본적으로 어떻게 반대방향으로 발전했는가 보여주려 한다. 이해하기 쉬운 이 레재 작품은 현대미술과 인상주의와의 긴밀한 관 계를 잘 보여준다. 새로운 양식화는 그 근거를 〈실재 reel 〉에 두고 있으며, 이 실재는 15 세기 미술의 실재와 아주 유사하다. 다시 한번 여기에 옛 공식에 따라 오브제를 상대적으로 배치하는 문제가 제기된다(도해 5 와 그 다음 도해들 참조). 이번에는 수 평선에도 불구하고, 비워진 전경과 중심 모티브와의 교체만이 문제가 아니라, 경들 이 갖는 상호관계나 형태들을 중첩시키는 방법이 고전적 원근화법의 개념을 버리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경-표면〉들의 사이를 서로 떼어서 세계를 표현하는 방법은 레제의 r 도시』와 들로네의 r 뛰는 사람들』로부터 피뇽의 『공장의 일하는 사람들」에 이르는 훌륭한 일련의 작품들을 낳게 했다.

62. 에스테브, 『나는 사람들」 (1947). 20 세기 초의 연구가 인상주의적 양식 속에 삽입됨을 보여주었으므로 이제는 최근 여러 해 동안 더욱 대담한 시도들이 어떻게 그전 세대들이 열어준 길을 계속 걸어가 는가 보여주고자 한다. 공간의 정복을 보여주기 위해서 에스테브는 명백하고 도식화된 형태들의 수직성을 지닌 시각을 도입하였다. 그러나 또한 그는 입체주의적 경험으로부 터 아이디어를 얻은 경의 조정에 의거하고 있으며, 레제 덕분으로 감상자들이 쉽게 동 화할 수 있게 된 그런 경(景)처리를 하고 있다. 그러나 레제가 1912 년에 보여준 정지 적(有爭止的) 시각 외에도 앞으로 불쑥 돌출한 그리고 미끌어질 듯한 형태의 시각이 추 가되고 있다 르네상스 · 가설의 하나가 완전히 버려지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여전히 유사한 방법이 확인되는데, 시각의 근본적 원칙에로의 복귀, 기본적 공리의 수정, 새로 운 양식화 등이 그것이다. 이 시대에 통일성이 성취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63. 레제, 「자명종」 (1913-14 년경). 전통적 공간과의 단절에 의거하여 세잔과 인상주의가 실현한 다른 연구 들 을 이 작 품은 보여준다. 여기에서 잠자는 안물과 자명종 사이의 대담한 혼성은 〈 공간과 시간〉 이라는 한쌍의 새로운 평가에 의거하고 있다 . 모든 실재하는 조각 들 이 이리저리 흩 날 리며, 원근화법적인 입방체의 통일에 기초하지 않고 정신 내부에서의 지각의 통일에 기초하는 그런 질서 속에서 정열되고 있다 . 그 밖에, 고전적 가설인 수평선, 배경 , 주 요인물을 중요한 경에 배치하는 법칙이 지켜지고 있어서 작품을 이해하기 쉽게 되어 있다(도해 20 참조).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넘어갈 때에 불가피한 〈망 ]a grill e 〉체 계가 늘 문제가 된다. 우리는 아직도 한쪽 발은 르네상스에 두고 있는 셈이다.

64. 기시아 , 「곡예사」 (1948). 늘 한두 개의 가설을 선택하거나 버리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이 작품은 편편한 평면적 그립과 새로운 공간가치의 창조 사이의 뚜렷 한 대립을 보여준다. 그 사이에 추상미술과 로마네스크 회화의 발견이 있었다. ® (®의 내용은 404 쪽에 있음)감각의 새로운 질서화가 그림자의 전반적인 방가(우첼로가 새 롭게 본 문제이다. 도해 13 참조), 열려진 공간 둥에서 엿보이기 시작한다. 따라서 밝 음과 생명감이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 한 인물이 바닥 위에 세워져 있으나 이번에는 그 주위를 빙 둘러 볼 수가 있으며, 무대 뒤칸 같은 것은 없다 . 공간의 구 획, 한계는 특별히 명시되어 있지 않으며, 유클리드 기하학에 따라 규정된 형태로 구 성된 세계를 보수적으로 축소하거나 확대한다는 사고는 거기에 없고, 휘어진 공간의 가설마저도 넘어서고 있다. 우리는 인간의 부동(不動)의 시선으로는 측정할 수 없는 공간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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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피카소, 『테불』 (192 1), 불투명 수채. 두 시대의 전이라는 현실감을 좀더 강하게 느끼기 위해서, 이 조그만 원탁을 도 해해 보았다 . 이 그림은 앞의 작품의 구성과 비교해볼 때, 고전적 공간의 단절을 추 구하는 단계와 일관성이 있는 새로운 체계의 구축을 시도하는 두 단계의 중간에 입 체파를 위치시키는 작품이다. 여기서 입체주의는 근본적으로 고전적 시각을 가진 여 러 부분들을 분해하고 변경하는 방식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 즉 그들은 어떤 부분 들을 풍자적으로 강조하거나 또는 다른 부분들을 빼버리기도 하였고, 운동의 차원인 사 차원적 세계의 가설에 기초하였으며, 대상의 일부를 제거함으로써 그것을 움직이는 것 으로 만들 수 있다고도 생각하였다. 결국 구축하는 대신 도식화하였다 . 그러나 입체파들 은 전 세대 경험의 마지막 결과들을 참조하면서, 15 세기 예술의 질서와는 다른 새로운 질서의 창조자들에게 어떤 요소들을 제공해 주었다. 이것이 바로 최종적 〈망〉이 된다.

66. 브라크, 『아테네 신전J, 석판화. 한 감상자의 부동의 눈에 동시에 들어오는, 이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원근법 적인 소우주의 물방울 속에 반사되는 그런 세계의 한 고정된 이미지란 가설을 결정 적으로 포기하게 한다(도해 9). 회화는 자기 본래의 사명, 죽 한 시대의 감정적인 그 리고 원동력이 되는 체험에 따라서 형태를 연결하는 체계를 창조하는 사명으로 되 돌아온다. 개방적이고 다양한 형상화로 향하는 발전이 급속히 이루어진다. 여기서 다시 휘어진 선들, 그리고 레제의 작품 도해 54, 58 에서 본, 떠다니는 공간의 면들을 다시 보게 된다. 새로운 가설들은 근거없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우리 시대가 이렇게 운행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 바로 그 기원과 연관되어 있다(도해 62). 우리의 세대 는 공간에 대한 감각적 지각과 운동적 지각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67. 들로네, 『 〈 붉은 탑〉이라 불리는 에펠탑」 (1911), 구겐하임 박물관, 뉴욕 . 들로네는 방금 우리가 연구한 것과는 약간 다른 길을 보여 주고는 있으나 그 출 발점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 결국 이 작품의 구성은 레제의 r 자명종i斗 아 주 유사하 다 . 다시 말하면, 오브제들을 입체파식으로 조각낸 것, 화폭 중앙에 형태들을 피라미 드 모양으로 쌓아올려간 것, 고전적 공간의 깊이와 유사한 공간의 넓이 를 암시해 주 는 서로 붙은 경들의 배치 둥이 그것이다. 우첼로와 기 를란 다요 사이의 관계에 있어 서만큼이나 그 방법들이 분명히 다양하면서도 통일되어 있다. 들로 네의 개인적인 공 헌은, 테크닉의 측면인 명암도와, 미학의 측면인 빛에 부여한 중요성에 있다 . 밝은 평면의 조각들을 재현해 주고 있는 경들을 사용하는 동시에, 빛나는 광선으로 된 세 계 속에서만 실존하는 현실의 부분들을 끼워넣고 있다 . 이점에 있어 그는 쇠라의 노 력을 연장하고 있다. 들로네 덕분에 쇠라는 언젠가는 미래미술의 진정한 조상의 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기하학적 결합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명암으로도 감성적 이고 개방된 공간을 나타내려는 노력이 동시에 보인다. 공간의 감성적 표현을 동시 적 대조의 법칙에 기초하려는 의지를 작가는 확실히 한다. 이것으로부터 그는 현대 미술의 한 부분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마네시에나 생지에 를 도해하지 않 온 것은 색채없이 여러 예를 제시하는 것이 헛된 일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내가 보 여주려 했던 것은 색채를 이용해 뜻깊은 공간을 조형적으로 표현하려는 모든 화가 돌은 로베르 들로네로부터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자리를 옮길 때에 일어나는 한 운 동의 질적인 명암도(방향 • 속도 • 빛깔 둥)의 표현이 현대미술의 기본적 소재가 된 것은 바로 들로네에 의해서이다.

68. 둘로네, r 율동J (1937) , 뉴욕 , 솔로몬 R. 구겐하임 협회. 이 책에서 추상미술의 문제에 대한 부분이 적은 데 대해서 독자 들은 분명히 의아 해 할 것이다 . 나는 추상미술 을 소 홀 히 보거나 경멸하지 않는다 . 입체파와 표현주의 의 관계가 중요한 것 처럼 __- 이것도 우리의 토 론 에서 제외되었고 또 샤갈과 미 로 의 초현실주의도 역시 다루지 않았다-, 이 추상예술은 20 세기 미 술 의 전체적인 개괄을 위해서는 반드시 연구되어야 할 아주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 . 현대의 역사 를 , 사라져버릴 〈 여러 사조 들〉 로 동강내는 것에 대한 나의 혐 오는 이미 본문에서 분명히 설명한 바 있다. 한편, 추상마술 또는 초현실주의 , 그리고 표현주의 는 그 들 이 문제시하는 너무나 많은 가치 들 이 아직 충 분히 연구되지 않은 상태여서, 그 진정한 가치의 크기 를 단호하게 정의내릴 수는 없다 . 가(假)사조 들 의 역사보다는 카탈로그나 시대, 인간관계와 같은 기초자료에 관여하는 우리 지식의 근 본적 결함 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 결함 을 메운다고 해서 특 별히 잘 된 작품 들을 통 해서 이미 우리가 예견할 수 있는 운동 전부의 전체적 곡선을 변경할 수 있다고 나 는 믿지 않는다. 그렇지만 추상미술이 적어도 입체주의라고 하는 더욱 알려진 경험 에 관련된다는 점을 증명하려 하였다 . 왜냐하면 추상미술은 그 시대의 문학적 감성 의 측면들인 초현실주의와 표현주의와는 반대로, 하나의 완전한 조형표현 방식이기 때문이다 . 들로네의 작품은 빛의 공간적 특 질에 대한 분석 을 가초로 하되, 그 말의 궁정적 의미에서 대상들의 모든 형상화 를 제의했을 때 하나의 표현이 어떻게 가능 한가 보여준다. 대상은 사라지지 않고 , 수학의 방정식처럼 연구에 의해서 임의로 창 조되었다 가장 큰 실수는 기존의 가치 를 가지고 자신을 표현할 줄 모르는 예술가가 자연주의적인 막연한 욕망이나 변덕에 조정되어 , 주어진 형태나 색채들을 근거없이 제멋대로 형상화하는 것에 추상예술의 근본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비형상 미술art de J'i n fo nne 이나 또는 일시적으로 순수히 솟아나는 미술이란 있을 수가 없다 .® 들로 네의 세계에는 감성 논리에 대한 절대적 법칙의 파괴가 아니라, 이 법칙의 변형을 전제로 하는 하나의 질서에 대한 연구가 있는 것이다. ® 비형상l'inf orme: 형태가 없는 것 한 작품, 대상, 또는 작품을 제작한 의 도 둥을 경멸적으로 규정하는 말. 잘못 나온 것 또는 아직 발달하지 않은 것으로 조직적 구조를 갖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 형태는 있으되 비율이 잘못된 〈기형 diff orme 〉과는 구별된다.

69. 에스테브, 『나무 세 그루가 있는 언덕』 (1948). 고전적이고 대기( 大氣)적 인 공간의 법칙은 단일한 줄기의 광선 밑에서 경 들 의 상 호적 위치를 정하는 것에서 연역되었다. 오늘날 대기적 공간의 법칙은 산만한 빛 속 에서 오브제들이 보여주는 특징있는 부분들에 대한 사고에서 추론되고 있다. 르 네상 스는 표현의 전체적 의미에 특별히 주의 를 기울였고, 현대의 우리들의 경우에는 개 인적이고 친밀한 체험에 더욱 가치 를 부여한다. 세계는 하나의 연극이었으나 이제 는 살아 있는 생생한 힘의 영역이 되었다 . 여러 세기에 걸쳐 원근법, 이 세계라는 극장 에서의 인간-배우에 대해 얘기해 왔으나, 이제는 우리 신체의 구조나 신체가 겪는 개인적 경험에 대해 더욱 얘기하고 싶어한다. 이렇게 해서 조형적 사고는 자기 자신 을 발견해 나가는 인간정신의 움직임을 따라가고 , 물질적 활동의 결과만큼 그의 의 지를 의식하도록 도와주는 구체적 오브재 를 사회에 제공한다. 고전적 공간의 좌표는 우주 를 나타내주는 한 입방체나 무수한 작은 입방체의 빈 내부 를 여러 칸으로 나누 는 상상의 선들이 만들어 주는 이중의 망에 비교될 수 있었다. 새로운 기호체계는 공간 조직에 있어서 훨씬 더 내적인 측정가치를 좌표로 갖게 되었다. 전경에 언덕 위에 세 그루의 나무를 반은 무게있게, 반은 움칙이도록 도식화한 것, 골짜기 위에 중경에서 굽어보는 전망, 다른 바탈의 위치 를 알려주면서 땅의 운동감을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선, 결국은 왼편 상부의 모퉁이에 다채로운 경작지의 형상화, 이 경작지는 일종의 현대식 〈풍경 vedu ta〉이며 민감한 대상의 모습인데, 공간에서 정확한 위치를 지정하지 않고 상상 속에서 다루기 쉬운 것으로, 이 모든 것들은 행위보다는 감성에 더욱 연결된 시각의 틀을 형성해 준다. 전파탐지기의 세기인 우리의 시대에 있어서 중계국 역할을 하는 기호로 우리는 향하고 있는 셈이다 .

70. 기시아, r 레다와 학J ® (1948) . 확실하지 않지만, 베르트 모리소는 바지으를 찬양하였는데, 그것은 그가 공간 속 에 한 인물을 넣은 인상주의 그룹의 첫 화가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러한 문제는 미 술 사의 모든 단계에 있어서 중요하다 . 이 책을 마감하는 두 개의 커다란 구성은 우리 시대가 한번 더(도해 58 참조) 그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음을 증명해 준 댜 여기서 우리는 다루기 쉽고 안정감 있는 레제식의 탄력성 있는 공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중개적 경을 암시하는 조각들은 거의 떠 있는 공간을 보여주며, 이 공 간은 담긴 것 또는 담는 것의 전통적 관계에 의한다거나, 거리에 대한 기초적 감각 에 의해서는 더 이상 규정되지 않는 공간이다. 거리감을 주고 있는 색채의 대조는 이 풍경에 있어서 개방된 틀을 형성해 주어 명확한 외적 한계가 없으며, 모퉁이를 정하지도, 관점을 정하지도 않는다. 담기는 것에 대한 개념은 변하였다 . 표준이 되는 입방체 를 균일하게 채우는 반투명의 물질은 이제 없다 . 화가 각자는 과거 체험을 재 현해 가면서, 자기 의지 를 척도 로 하여, 의식적이기도 하며 또 비유적인 가치들이 거 의 명백하지 않은 세계에서 자유롭게 자기 마음대로 형태들을 상상의 한계 속에서 배치하는 것이다 . 이 그림은 어떤 커다란 공간 가운데에 팔을 번쩍 들 고 놓여진 베 르사유 운하의 하나일까? 또는 장엄한 동작보다는 신경이 예민한 손놀림에 더 재주 있는 말라르메적 반인반수의 숲의 신에 쫓기는 물의 요정인가? 인체가 보여주는 볼 륨은 그 행위의 에로틱한 빠른 동작과는 대조적이다 . 이것은 화가가 소재 를 공격하 는 것과 소재를 일시적으로 소유하는 것과의 이중적 표현이다. 결국 테마는 그리스 신화의 다프네 신을 베르니니가 작품화한 것을 현대적 시각으로 다시 옮긴 것이다. 기시아의 『레다」와 피뇽의 r 일하는 사람 들 』에서 보이는 두 개의 거대한 테마인 〈욕 망과 일〉은 15 세기 미술을 지배했던 〈영광과 죽음〉이라는 이미지에 대신하여 우리 세계 를 지배하는 두 커다란 세력이 아니겠는가? ® 레다 : 에톨리 전설의 주인공인 틴다르의 부인 레다는 틴다르와 결합하여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카스토르를 낳음 . 또는 백조로 변신한 제우스와 결합 하여 두 알을 낳아 거 기서 쌍둥이 레나와 폴룩스를 낳음.

71. 피뇽, r 올리브 나무 밑의 농부』 (1954) . 열린 공간 위에서 나르는 듯한 전망을 표현한 훌륭한 예이다 . 에스테브와 비교해 볼 때, 새로운 법칙에 어울리는 하나의 통일된 시각을 도입하려는 시도 를 보게 된다 . 레제의 방식대로 오브제같이 다뤄진 인물은 통일된 조형적 테마 속에 통합되어 있 고, 그 테마에 이 인물은 인간적 공명(共鳴)을 부여하고 있다. 이 작품은 기시아작 『곡예사」에서 보이는 둥근 형태들과 많은 유사점을 보인다(도해 64). 기호들은(도해 60 참조), 사람과 물건들을 섞으면서, 행위가 이루어지는 장소인 상상의 환경을 그려 낸다 . 세계는 기하학에 따라서가 아니라 우리의 행위에 맞추어져 있다. 르네상스는 인간이 변함없는 세계 내부에서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 이것은 세계가 신의 창조물이 라는 생각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르네상스는 이처럼 확대된 행위의 능력을 일종의 부동주의와 조화시킬 수 있었다 . 르네상스가 외부세계의 목록조사로 향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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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목 록 조사에 걸맞는 법 칙 이 존재한다고 믿었다면 , 현대는 완전히 다른 개념으 로 향하고 있다 . 여기에서 인간은 그의 욕망과 참여 능력에 따라서 사회와 세계 를 동시에 창조하는 목적 을 갖 는 다 . 그러므로 공간을 인간의 활동을 위해 열려진 〈장 소〉로서가 아닌 무수한 힘의 〈 영역〉으로 간주한다. 새로이 인간의 방법과 표현이 일 시적으로 균형을 이루는 날이 꼭 올 것이며 , 오랜 기간 동안 측정할 수 있는 세계 속에 있다는 감각을 갖게 될 것이다. 그날에는 그의 조형연구와 특 히 공간의 전체적 형상화에 균형이 이루어질 것이다 . 지금으로서는 인간의 행위의 법칙이 기초하고 있 던 오래된 가설이 독단이었음을 의식하게 되었다 . 현대인은 새로운 조화의 신의 역 할을 하려 노력한다 . 미래의 황금기 를 예견하면서 자신이 그 법칙들 을 세우고자 한 다. 여기에 바로 지나간 세기 들 의 공간이 한계가 있었던 것처럼, 그 들 의 공간이 근본 적으로 열려 있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 로마네스크 회화: 로마네스크는 1000 년에서 1200 년 사이에 발달했던 서 양의 미술 양식을 말한다. 이 말이 프랑스에서 처음 사용된 것은 1818 년 노르망디의 고고학자 뒤에리시에 드 제르빌 C. Duheri ss ie r de Gerv ill e 의 서간문에서였다. 〈……건축(몇몇 노르망디 성당)은 중후하고 조잡한데 우 리의 세련되지 못한 조상들이 변질시킨 로마네스크 작품이다 〉 . 로망어에 대해서도 라틴어를 잘못 사용한 불구의 언어라 하여 낮게 평가한다 . 영국 인 월폴 H . Wal po le 은 이미 1769 년 〈로마네스크식의 반원형 아치 〉 라는 표 현을 그의 편지에서 언급했다 . 샤를르마뉴 대제가 죽고난 뒤, 노르망디 침입, 아랍 침입 , 헝가리 침입을 겪은 서양은 10 세기에 정치 • 종교 • 경제 구조가 새롭게 정립되면서 고대 적 전통으로부터 벗어난다 . 이제 종교 수도회는 신앙의 보급과 찬양을 위 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우선 로마네스크 건축은 종교 적 성격을 띠는데 신자들을 위한 도시의 성당과 수도원 영역의 수도원 성 당의 건축이 주가 된다. 고대의 바질리카적 평면 설계가 발달하며, 성당의 후진(後陣)부분과 익부(翼部)가 발달하여 새로운 종교의식 프로그램에 옹 하는 동시에 성유물 숭배를 위해 많은 제단이 지어진다 . 라틴식 십자가는 골고다의 십자가와 십자가 처형받은 자를 상징한다 . 수도원에서 채용된 기하학적이며 동시에 유기적 평면설계는 질서의 이미지이다. 이러한 로마네스크 건축의 종교적 • 양식적 특징은 표현 테크닉에 따라 표현이 다양해지긴 하지만 성당 벽면, 다수의 익부와 후진의 궁륭 천장에 그려진 프레스크(벽화)에서 재발견된다.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의 결합에 의해 우주를 나타내는 이 로마네스크 건축과 회화는 끊임없이 둥 장하는 상징에 의해 신성한 것의 내부에서 인간과 신을 화합시켜주는 매 체가된다.

옮긴이 해제 이 책에서 프랑카스텔이 밝히고자 한 점들 이 책에서 프랑카스텔은 미술과 사회의 관계를 시대에 따른 회화에서의 공간의 변화를 통해 추구하고 있다. 공간에 대한 체 험이 미술사만이 아니라 사상사를 지배했던 15 세기 이탈리아 르 네상스 미술에서 현대의 프랑스 미술에까지 어떻게 변화되어 왔 는가를 밝혀보려 하였다. 이 책의 세 부분 즉, 〈공간의 탄생〉, 〈조형공간의 파괴〉, 〈새로운 공간으로〉는 15 세기 미술이 발견한 선적 원근법으로부터 인상파를 거쳐 입체파 체험으로 넘어가면 서 조형공간이 새롭게 발전되고 파괴되고 재창조되는 과정을 보 여준다. 15 세기 예술운동은 모든 조형체험을 포괄하여 그 이후 4 세기 동안의 서구문화의 표현욕구를 충족시켜주었으므로 공간 의 조형적 표현 토대를 15 세기 이탈리아 미술로 선정하였다. 공간의 투시나 표현을 특정한 문화단계의 구체적 표현이라 볼 때, 15 세기 미술이 발전시킨 조형체계의 운명이, 인간활동의 어 떤 물질적 • 지적 형태의 몰락 및 출현과의 연결 여부를 문제시 하게 됨으로써, 〈한 문화단계의 출현 및 몰락〉과 연결된 〈조형 공간의 탄생과 몰락〉의 두 부분으로 논증하였다. 그리고 그 몰

락된 표현체계가 다시 새로운 체계에 의해 모색되는 가운데 점 진적으로 대체되는 현상들을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를 제시하면서 결론을 맺었다. 조형언어를 형성하고 조직 하는 역사적 내지는 지속적 조건에 대한 체계적 연구의 긴박성 울 지적한댜 또 프랑카스텔은 이 조형언어의 형성과 몰락이라는 현상을 인 간 활동의 전체적 관점에서 고찰한다. 이것은 뵐플린이 공간의 회화적 형성을 다른 지적 기능들과는 독립된 시각기능으로 보는 것과 다르다. 미술사를 하나의 폐쇄된 분야로만 제한시킨다면 미술사의 장래가 위태로워질 것이므로 방법이나 가설면에서 다 른 진보된 분야들과 관련성을 가짐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장점 들을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여기서 다른 분야들, 민속학· 인류학· 사회학 등의 분야에서 발견되고 있는 집단의 표현현상, 소통현 상이 사회발전에서 맡았던 근본역할을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한 다. 그 밖에도 문학사나 철학에 대한 현대지식은 물론 인식론 • 수학 등의 분야까지도 포함되지만 이러한 모든 입장이 절대적으 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고, 서로 보완적이며 서로 혼합, 융합된 다. 이미지 언어는 널리 보급되어 있으나 가장 연구가 미진하며 언어학 자체는 구조언어학과 더불어 미술사보다 앞서 있다. 지 성인 사회에서 조형적 공간 형성화의 조건을 전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현상이 지배적이므로 이 책을 통해서 심리학자나 철학자들이 조형언어를 숙지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도록 하는 것 올 목표로 하고 있댜 이 책의 목적은 15 세기 이탈리아 미술, 인상주의, 입체주의의 문집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조형표현체계 형성에 관계되는 법칙 들의 발견과, 인간정신사의 일정 단계의 전형적이며, 상대적인 동시에 일관된 성격을 갖는 형상화의 체계를 기술하는 것이었

댜 기호심리학과 문화인류학이 조형표현 법칙에 대한 학문적 지식을 제공해 주어야 하며 문학사 • 철학 • 인식론 • 수학 • 민속 학 등의 현대적 지식과 관련하여 미술사의 방법론이나 가설을 세워야 한댜 공간은 시대에 따라 표현만 변하는 실재가 아니라 인간의 체험 자체이다 . 그러므로 이 책의 근본적 가설은 15 세기 부터 20 세기까지, 일정한 인간집단이 행위를 지배하는 일정한 정도의 인식과 실제적 법칙에 바탕을 두고 자연을 심리적 • 사회 적으로 해석해 나가면서, 회화적 표현방법을 확립했다는 것이다. 조형막 위에 표현된 것은 실제로 사유된 것이 아닌 하나의 기 호로서, 자연이나 공간의 단순한 기록이 아니며 화가가 체험하 고 살았던 이미지가 존재한다. 지각된 이미지, 기록된 잠재적 이 미지가 저자의 사고를 전달한다 . 그러므로 회화작품을 하나의 기호체계로서 연구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며, 다른 학문에서와 마찬가지로 엄격한 해석방법을 적용해야 함을 주장한다. 즉 한 폭의 그림에서 일화적 주제를 보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며, 그 림을 읽을 수 있고 효력있게 만든 개인적 • 사회적 메커니즘을 탐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모든 미학적 대상을 생산 해내고 해석하는 집단들이 〈미세사회 측정법〉을 사용해야 한다 고 말하고 있다. 현대 미술의 진보는 감정적 동경이 아니라 새 인간의 지적 메커니즘에 의해 설명된다. 그러므로 이 책은 프랑카스텔이 예술작품 제작에 있어서 이데 올로기적인 면만이 아니고 물질적이고 기술적인 면을 끊임없이 강조함으로써 진정한 사회학을, 〈생산〉이란 문제에 답하는 사회 학을 어떻게 구축해 나갔는가를 보여주는 저술이다. 그 시대의 미술사 연구는 미술작품과는 관계없이 주로 미학 자체에 관한 어림짐작이나 사고들만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볼 때 이 저술은 그 방법이나 내용에 있어서 개혁적이었다 . 왜냐하면 여기서 저

자는 회화의 기능은 한 사회 집단의 문화적 가능을 이해하는 데 필요불가결한 일부라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 예술은 사회 구조에 의해 설명되어야 한다고 믿어 왔으나 사실은 사회의 움 직임을 설명하여주는 것이 바로 예술이다. 프랑카스텔 출현 이전의 미술사회학의 선구자들 현대에 와서 최초로 미술사회학을 말한 사람은 헝가리의 마르크스 주의 미술사의 창시자인 프레데릭 안탈 Frede ri ck Anta l(1 8 fil-1 9 54) 로서, 그의 저서 『피렌체 회화와 그 사회적 배경 』 에서 미술사를 생산 내지는 여러 사회계급의 이데올로기와 관련하여 역사적 마 르크스주의를 적용하는 것이 미술사라고 보았다. 공존하는 양식 의 기원과 성격을 여러 사회집단을 연구하고 그들 철학의 재구성 올 통해서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양식을 예술 이데올로기 라고 규정했다. 같은 입장을 취하는 아놀드 하우저 Arnold Hauser 는 르네상스 롤 두 세대로 구분하고 (1515 년경과 1550 년 이후), 세계에 대한 새 로운 시각적 해석방법, 경제난, 종교적 • 정치적 사조 등을 여러 가지로 관찰하고 있다. 예술적 방법을 문학적 방법과 비교하지 만, 사회집단의 발전과 작품의 발전 사이의 관계는 분명하지 못 하댜 중세 종교미술 전문가로서 프랑스 미술사가인 에밀 말 E mi le M fil e(1862-1954) 은 중세 종교예술을 역사적 • 문학적 • 신학적 상 황에 비추어 봄으로써 안탈이나 하우저보다 연구 범위를 좁히고 있댜 위와 같은 미술사회학의 선구자들에 의해 미술사가 사회의 발 전과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우리 시대의 정신구조

가 지각할 수 있는 것만을 우리가 알 수 있을 뿐이라고 미셸 푸 코가 지적한 대로, 사회는 근본적으로 정신적인 메커니즘으로부 터 구축된댜 프랑스의 사회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 구 스트로스는 모든 사회의 기초는 소통, 커뮤니케이션으로 구조언어학이나 음 성학 같은 언어의 가장 현대적 분야만이 아니라 소통의 사실들 을 다루는 물리학 • 수학 연구도 참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 술작품 자체를 대상을 나타내주는 기호로 보면서 예술언어로서 의 특수성을 지적한다 . 헤겔의 현상학과 딜타이와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종합했던 헝 가리 철학자 루카치 Lukacs 는, 상상적 표현을 통해, 모든 사회적 체험과 한 개안이 자기 시대에 대해 제시하는 표현 사이에 상호 관계를 세울 수 있다고 믿었다 . 미술사회학은 바로 이 상관관계 를 찾으려는 것같이 보인다. 미술사회학은 희화 • 건축 • 조각 작 품등의 모든 문화 대상에 주의를 기울인다. 프랑카스텔을 단지 미국의 미술사가 파노프스키 이론을 프랑 스에 도입한 사람으로 간주하는 경우도 있으나 실은 커다란 차 이를 보인댜 〈프랑카스텔의 분석은 상상 체험에 가장 근접해서 터치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살았던 체험을 전복하는 능력을 공 간에 부여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미술기호론 발전에 기초를 마 련한 파노프스키는 모든 구조주의가 그러하듯이 일관성있는 정 연한 질서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며, 결국은 미술을 전체 속에서 문화와 관련지어 본다. 프랑카스텔에 있어서 예술, 다시 말하면 창조적 작업은, 한 질서에 반대되는 힘을 거기서 발견한다. 죽 15 세기 회화가 그 당시에 반항적이었으며 마찬가지로 입체파도 그 당시로서 저항적인 것이었다.〉

진정한 미술사회학의 창시자 프랑카스텔 이론의 특징 진정한 미술사회학의 창시자 프랑카스텔의 이론의 특징은 다 음과같댜 • 그의 사고의 독창성은 예술적 사실을 하나의 문화현상 un ph enomene de c i v ili sa ti on 으로 보는 견 해 이 다. • 예술가의 활동과 그 작품을 그 어떤 사회적 • 인간적 상황 속에 환원시켜 놓는 점이다. • 그가 특히 주장하는 점은 예술표현에 대한 연구 를 위해서 4 개 의 분야에 걸친 조사방법을 병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작품분 석을 위해서는 비평적 역사적 연구를, 그 평가를 위해서는 미학 적 연구를, 문화적 상황 속에 연루시키기 위해서는 사회적 연구 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최근 작품을 연구대상으로 할 때 현재성을 미술사에 비추어 봄으로써만 미술생산을 학문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프 랑카스텔은 전제하고 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현대미술은 그 근본적 새로움에 있어서 중세체계, 르네상스체계, 현대체계처럼 특수한 형태적 체계의 역사적 난입으로 토막토막 나뉘는 미술 사, 즉 비연속적인 미술사를 생각하게 한다고 그는 말한다. 현대 성에 대한 이런 관심으로 인해, 다른 한편 그는 현재와 과거를 문제시하면서 예술가를 그들 체험의 역사적 차원에 귀속시킨다. 과거에 있었던 가치체계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체계가 갖는 역사적 • 지적 기초와 방법에 대한 탐구가 요구된다. 현대 예술 작품은, 인상주의 이전의 서구예술을 특징지은 정신체계와 명암 의 기능과 단절하는 지적 전개와 감성적 가치에 그 정신을 투입 한다는 사실을 결국 확인하게 된다고 그는 본다. 공간이 인간 밖에 존재하는 영원한 실재 자체가 아니란 점을 인정할 때 화가

가 세계를 체험함에 있어서 실증적 가치와 상상적 가치를 도입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공간표현의 새로운 체계란 수학적이 기도, 상징적이기도 하고 신화적이기도 하며 오브제의 발견은 수학적이라기보다 사회적 • 실재적 의미에 따라 좌우된다. 미술이 사회의 하나의 안정된 기능이라면, 적어도 역사적 차 원에서 그렇다면, 이 기능은 문화에 따라 어느 정도는 변할 수 있는 것이댜 회화의 기능이 반드시 현실의 표현 및 허망한 중 복은 아니다 건축도 단순히 미학적 기쁨을 위해 형태를 변화시 키지는 않는댜 따라서, 희화 • 조각 • 건축 등의 여러 조형예술의 기능은 〈형태 체계〉라고 프랑카스텔이 부르는 것을 발전시키는 것이댜 모든 역사적 순간에 다양한 범위에 걸쳐 이 〈형태 체 계 〉 는 상상의 차원에서 계속적 추구를 통해 사회적 공간조직을 규정한다. 예술의 통시적 연구에서 관찰되는 변화, 단절, 변이 등은 예술이 사회의 생성 속에서 수행하는 적극적 역할을 실감 하도록 해준다. 그러므로 프랑카스텔이 〈비교역사적 사회학〉이라고 규정한 학문 프로젝트의 독창성을 이해할 수 있다. 죽 정확히 말하자면, 미술은 진보된 사회의 사치품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되며, 이국적 〈호기심〉의 집합이라고 보아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예술은 쾌락 을 위한 대상이 아니며 취향있는 사람들의 미학적 즐거움도 아 니댜 인간의 사고와 행위에 관여하는 일종의 사회적 훈련이다. 어떤 다른 것도 대신할 수 없는 소통방법이며 세계를 변혁하는 방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형태와 미적 대상의 사회학이 가능하 다. 문화사회학은 예술활동이 사용하는 다양한 사회적 제도와 탄원의 사회문화적 조건을 연구한다. 프랑카스텔은 사물의 이면 을 보며, 작품 자체가 한 사회 속에서 차지하는 실재적 역할을 규정하려 한다. 형태사회학은 사회적 현실에 대해 제도사회학만

큼이나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줄 수 있다 .• 예술은 결과만이 아니고 원인이기도 하다. • 그에게 있어서 조형언어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자치적 사고 방식의 표현이며, 언어학 같은 다른 분야와 공통된 자료들에 기초하지 말고 조형예술만의 고유한 자료 위에 서 그 연구가 진행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그에게 전체 사회는 언어적 환경에서만이 아니라 시각적 사회에서 살아간다. 그 중 에 회화는 특수한 표현분야로서, 형태예술은 실제적이고 상상적 인 형태요소에 질서와 구조를 부여하는 의미화 체계이다 . 〈예술 이 표현하려고 하는 것은 예술만이 표현할 수 있으며〉, 또 미술 작품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사회집단이 살아나가는 데 진정으 로 필요한 대상이댜 프랑스 미 술사가 프랑카스텔은 (1900-1970) 파리 소르본느에 서 문과를 수학한 뒤 미술사 고문서에 대한 연구를 했다. 1925 년에 서 1930 년 사이 베르사유의 건축부에서 일하는 동안 베르사유 조각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으며 (1930), 바르샤바 프랑스 연구원 에 교수로 임명되자 폴란드에서 5 년을 머물렀다. 1948 년 뤼시앙 페브르 Luc i en Febvre 는 프랑카스텔을 위해 고등연구 실습학교 I'Ec ole pr~ ti qu e des haute s e tu des 에 미 술사회 학 강의 를 창설 했 으며, 그의 강의는 그가 죽을 때까지 상당한 수의 프랑스와 외 국학생들의 주의를 끌었다. 그의 생생하고 발랄한 사고와 에너지로 인해 〈폴란드 도시의 기원〉 (1960) 이나 〈앙리 4 세와 루이 13 세 시대의 파리 도시계 획〉(1 960) 둥의 여러 국제 학술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또한 『저 명 한 조각가들 Sculpt eu rs celebres 』 (1959), 『유토피 아와 제 도 Ut op ies et i ns tituti ons 』 (1953) 둥의 중요한 공동 출판을 지도했

으며, 그 밖에 그의 많은 저술에서 자신의 이 론을 피력하고 있 댜 그의 저술은 중세 건축에서 1940 년대의 에콜 드 파리에 걸치 는 서양미술사의 전체를 포괄한다. 그의 연구의 광범위성 자체 로도 그의 저술을 이해하는 이중의 열쇠가 된다. 『 베르사유 조각 la Sculpt ur e de Versa i lles 』 (1930), 『 인상주의 L' i m p ress i on i sme 』 (1937), 『 황제시 대 양식 Le sty le Emp ire 』 (1939), 『 로마의 인본주 의 L'human i sme 』 (1942), 『새로운 소묘, 새로운 회화 Nouvewc dessin s , nouvelles p e i n t ures 』 (1942) 등이 『 회 화와 사회 Pein t u r e et so ti e t e 』 (1951) 이전에 출간되었으며, 그 이후로 그의 부인 갈 리 엔느 프랑카스텔 Ga lien ne Francas t el 과의 공동저술인 『 프랑스 회 화사 Hi st o i r e de la pe in t u r e fra n92 i se 』 (1955), 또한 『 19 세 기 20 세 기 의 미 술과 기 술 Art et tec hniq u e awe XIXe et XXe s i ecles 』 (1956), 『 형 태 적 현실, 미 술사회 학의 구조적 요소 la Roolite f igu- rati ve , 하 emen t str uc tu ra l de soc i olo 硏 de !'a r t 』 (1965), 『형 태와 장소, 15 세기 미술에서 시각적 질서 la Fig ure et le lie u , l'or dre vis u el au q ua ttr ocen t o 』 (1967) 등이 저 술되 었다. 위의 마지막 네 권의 책은 그가 고등연구 실습학교에서 한 미 술사회학 강의와 가장 깊은 관계가 있다. 이 각각의 책들은 여 러 다른 예술체계들의 비교를 연구방법으로 하고 있다. 『미술과 기술』에서는 미술과 기술 활동 분야와의 새로운 관계를 『형태적 현실』과 『형태와 장소』에서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치될 수 없 는 예술작품은 그것이 태어난 그 사회의 정신구조와 사고를 포 착하게 하는 표현방식이자 소통방식이라고 밝힌다. 프랑카스텔 연구 학회와 그 이후의 견해들 〈타고난 비전을 특권으로 지니는 정신의 영원성을 지지하는

피아제나 왈롱과 반대로, 프랑카스텔은 인간이라든가 비전이란 것이 세계와의 영원히 끝날 수 없는 토론에 관여하는 것으로 생 각하려 하며, 형태적 사고의 실재적 촌재를 지각하려 한다 . 또한 시각적 기능을 다른 지적 기능과 관계 없다고 생각했던 뵐플린 의 주장인 눈의 자율적 역사와도 그의 견해는 상반된다. 어떤 시대의 한 작품을 분석할 때, 그 창작을 설명해주는 체계의 역 사적 • 지적 토대와 방식에 대한 조사를 문제시 한다. 그러므로 르네상스 공간은 비전이 갖는 어떤 부동의 가치를 표현하는 방 법이 아니라 한 어떤 지식의 총체에 완전히 적용되는 하나의 체 계이다 당시의 사회적 • 경제적 • 학문적 • 정치적 관습과 풍습을 통해서만 이 르네상스 공간을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이 원대한 야망은 자신에 의해서는 모두 실현되지 못했 으며 대학의 테두리를 벗어난 기술된 또는 기술되지 않은 수많 온 자료의 연구조사와 해석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프랑카스텔 의 이 중대한 직관은 계속해서 그 결과를 내고 있는 중이다. 죽 그는 공간이 공간 이상의 것임을 알고 있었다. 장 뒤비노는, 프 랑카스텔 사회학의 위력은 상상으로 이미 받아들여진 문화를 문 제시하는 자료, 공간을 영원한 개혁의 연장으로 만들어 주는 자 료를 재발견한 데서 온다고 지적했다. 프랑카스텔과 함께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도 예술가의 역사 적 • 사회적 상황과 동시에 이미지 소비자인 대중의 상황을 분석 하는 미학대상사회학을 정립하는 데 기여하려 했다. 그러나 그 는 이 대상들이 전달해 주는 의미를 독해하는 이론 및 기호학을 여기에 밀접하게 연결시키고 있다. 그의 저술들은 롤랑 바르트 와 앙리 르페브르 또는 장-폴 사르트르의 책들과 접근시켜 보아 야 한다. 보드리야르는 어떤 방법으로, 또 어떤 이유로 서구인은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수많은 대상의 창조자이자 사용자안가를

연 구 한댜 주 체의 대상과의 관 계 는 전 연 순진무구 한 것 이 아님 을 지 적 하며, 역시 대상 은 사 용적 기 능 그 이상의 숨 겨 진 기 능 을 갖춘 기호라고 말한다 . 이 기호 는 여러 차원에서 작 용하며 , 이 것을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모델의 추구가 작품이나 양식 을 이해하 는 열쇠가 결 코 될 수 는 없기 때문에, 미 술 사회학의 목표는 그 자체만으로도 목 적 으 로 간 주 되는 유사성이나 동일성 을 조사하는 데 그쳐서는 결코 안된다 갈리엔 느 프랑카스텔은 오히려 정반대로 모델이 아닌 점들 이 한 작품에서 살아 있는 부분을 형성한다고 지적한다. 〈특 수성과 차이를 발견하려면 유일한 하나의 방법이 있다. 즉 예 술적 표 현에 속하는 답사 영역을 광범위하게 벗어나야 하는 데, 왜냐하면 예술표현은 고립되어 자율적으로 전개되는 현상이 아니라 한 사회생 활 에 필요 불 가결한 일부이기 때문이라고 주장 한댜 〉 프랑카 스 텔의 영향의 한 구체적 실례는 1974 년 파리 고등연구 실습학교 주최로 열린 피에르 프랑카스텔 국제학회에서 집약되 어 있으며, 발표된 논문들은 1976 년에 드노엘 공티에 출판사에 서 낸 『 미술 사회학 및 여러 학문분야를 연결하는 사명, 프랑카 스 텔 그 리 고 그 이 후 La socio l og ie de !'ar t et sa vocati on int e r - dis c ip li n a ir e , Francaste l et ap res 』 에 실 려 있댜 여 기 서 는 그 서 문에서 밝히는 바와 같이 문화대상으로서의 미술작품과 관련시 켜본 여러 인문과학분야들간의 대화, 미술사회학 이후의 새로운 접근들, 미술기호학 및 구조주의 연구 등이 포함되어 있다. 륄리 에의 「예술사회학과 여러 학문의 역사」, 대미시의 r 기호학과 도 상학」, 페리에의 「한 작품의 독해 : 게르니카의 경우」, 뒤비노의 「프랑카스텔과 파노프스키 : 공간의 문제」, 갈리 엔느 프랑카스텔 의 r 미술사회학과 영향개념 : 궁극적 목적의 문제』 등 다수의 논

문이 실려 있댜 20 세기 프랑스 미학은 독일과는 다른 점을 보여주었다 . 금세 기 독일 미학의 미학개념 정의는 전통적 독일 형이상학과 현대 심리학의 융합으로 특징지어진다 . 대학에서의 철학강의와 미학 강의는 구별되어 있지 않다 . 반면 프랑스 미학은 형이상학적 미 학의 방기와, 미학 • 철학 • 문학이 점점 더 서로 섞이고 , 그들의 방법, 사고, 실존주의가 서로 상호침투에 의해 교통된다는 점이 댜 프랑스 미학은 예술의 외적 현상을 심리학적 용어로 서술하 는 데에는 더 이상 관심이 없으며, 예술 속에 살아 있는 것을 연 구하려는 경향을 , 예술작품과 예술과의 직접적 접촉을 추구한다 고 볼때, 합리주의적 시기인 프랑스의 20 세기 전기 미학을 앙리 포시옹이 대표한다면, 형태적 공간의 사회심리학적 해석에 공헌 함으로써 예술사회학의 길을 닦은 학자 프랑카스텔은 1945 년 이 후의 프랑스 미학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추기 끝으로 이 책이 번역되어 나오도록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에 게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 책 번역의 필요성을 강조하 고 착수하도록 도와준 여러분들, 서울대학 인류학과 전경수 교 수, 파리 국립동양언어문화대학의 언어학 앙드레 파브르A. Fa- bre 교수와 파리 7 대학의 역사학 이옥 교수에게 감사드린다. 오 랜 시간을 필요로 했던 이 연구번역 작업에 항상 격려를 아끼지 않아주신 서울에 계신 나의 어머니, 서울대 고고미술사학 안휘 준 교수와 파리 고등연구대학원의 사회학 정성배 교수에게도 고

마움을 표하고 싶다. 파리에서 철학 전공한 저널리스트 쟝 프랑 소아 바롱 ].-F. B aron 과 7 개 의 국어 를 전공한 쟈닌 부스카라 ]. Bouscarat 선생님의 도움 또한 큰 힘이 되었다. 특별히 파리의 학구의 길에서 만난 학우들로, 교육학 분야의 박사논문을 작성하고 있는 배은주 학우와 경제학 분야의 박사논 문을 쓰고 있는 이상헌 학우들이, 이 번역물이 원문에 충실하면 서도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는 궁극적 목적을 달성하도록 끊임없 는 도움을 베풀어준 것에 뜨거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 이 책이 번역되어 나올 수 있도록 구체적 기회를 마련해 주 시고, 번거로운 모든 과정을 세심하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지 켜주시고 애써주신 대우재단 여러분께 깊은 고마움을 전한다. 또한 출판의 책임을 맡은 민음사에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 1998 년 12 월 파리 에 서 안-바롱 옥성

기t: _::_I,로 1460 년경 이탈리아 북부 지도 기마적 투시, 평행 투시 브루넬레스키의 시각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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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마적 투시, 평행 투시

브루넬레스키의 시각기구

률 가디 264 가르니에 207 가장자리가 없는 공간 344 가치 376 가치 상징 298 갈루아 265 갈리 엔느 프랑카스텔 413, 415 갈릴레이 112 갈멜 수도원 여 갈멜 수도회 51 감각을 공간화 업 2 감각의 객관화 239 감각의 기록 276 감각의 민감한 기록 'l78 감각의 세 계 75, 350 감각의 소여 240 감각의 순수한 소여 251 감각의 원시적 소여 75 감각의 원초적 소여 298 감각의 · 투사 198 감각적 가치 193 감각적 공간 298, 358 감각적 지각 395 감각적 체험 368 감상자의 공간 176, 178 감상적 가치 'l72 감상적 공간 'lll 감상주의 326 감성의 기적 'lll 감성 적 가치 292, 410 감성 적 공간 160, 229, 233, 234, 360 감성적 시각 380, 388 감성적이고 개방된 공간 396

감정적 가치 372 감정적 구조 145 감정적 동경 244 개념적 현실 326 개방된 공간 98 개방된 공간표현 358 개방적 공간개념 99 개별적 진실 巧 5 개인적, 사회적 메커니즘 15 개인적 경험 400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의미 111 개인적 체험 360 객관성 357 객관적 성격 258 객관적 요소 300 거스민 33 건축적 기능주의 사고 35 게르락 얽 게리프 250 경(泉)의 분리 103, 104, 170, 180 경 32, 94, 101, 170, 190, 200, 208, ?Zl, 246, 248, 261, 288, 296, 301, 326, 333-335, 342, 359, 380, 388, 390- 392, 396, 400 경 들의 분리 261, 286, 2.88, 382 경사지고 휘어진 공간 344 경사진 공간 348 경사진 광경 沈 5 경사진 축 261 경의 분리법 101, 103 경의 분리적 구성 326 경험론적인 사변 238 경험적 평가 %7 경험주의 258 경험주의적 사고 249

계급화된 사회 257 고갱 210, 239, 251, 264-273, 296, 300, 301, 325, 326, 333, 334, 341 고고학 315, 364 고고학자 355 고고학적 원천 359 고고학적 호기심 356 고대와 중세의 연극무대 43 고딕 5, 30, 34, 59, 77, 79, 166, 355, 356 고딕주의 44 고전 77, 80, 81, 136, 207, 211 고전극 43, 106 고전극장 沈 5 고전기 62 고전 기하학 304 고전무대 8.3 고전 미술 346, 367 고전시대 45 고전 연극 150 고전예술 300 고전적 78, 107, 206, 227, 248, 281, 297 고전적 가설 392 고전적 감성 330 고전적 개념 240 고전적 공간 294, 384, 394, 396, 400 고전적 그림 256 고전적 대답 66 고전적 도표 330, 350 고전적 방법 288 고전적 삼차원 361 고전적 선형 원근법 71 고전적 시각 229, 282, 394 고전적 시각화 210

고전적 심리학 353 고전적 원 근 화법 390 고전적 음영 359 고전적이고 대기( 大氣 )적인 공 간 400 고전적 작품 68 고전적 조각 386 고전적 질 서 232 고전적 토 론 367 고전적 특 성 250 고전적 틀 256 고전적 표현 43 고전적 형상화 247 고전주의 34, 65, 70, 203- 20 6, 226, 330, 367 고전주의자 204, 205, 228 고전 학문 244 고정된 척도 262 고촐리 64, 65 고티에 209 고호 359 곰브리치 70 공간 112 공간과 시간 392 공간과 환상 335 공간구조의 시 각적 평 가 190 공간 기하학 23, 91 공간분리법 104 공간을 감성적으로 즉각적으로 표현 262 공간을 구상적으로 표현 292 공간을 네모지게 나누는 처리 방법 53 공간을 형상화 341 공간의 감성 적 표현 396 공간의 단일성 43 공간의 도식 적 표현 361 공간의 삼각형 285

공간의 삼각형화 231 공간의 선적인 삼각화 87 공간의 수학적 형상화 54 공간의 시각적 이해방법 190 공간의 신화적 형상화 132 공간의 유클리드적 시각 .56 공간의 입 방체 적 • 전통적 표현방법 97 공간의 입방체적인 폐쇄적 표현 103 공간의 전체적 형상화 403 공간의 전체 표현 290 공간의 조형 적 감각 304 공간의 조형적 표현 없 공간의 조형적 형체화 288 공간의 지각과 형상화 234 공간의 차원 317 공간의 추락 288 공간의 탄생 147 공간의 투사적인 시각 76 공간의 표현체계 26 공간의 합리화된 단순화 303 공간의 현대적 시각 261 공간의 현대적 형상화 356 공간의 형상화 203 공간의 형상화 체계 104 공간의 회화적 표현 35 공간의 회화적 형상화 16 공간적 가치 148, 22.8 공간적 기호체계 374 공간적 모호성 271 공간적 실재 121 공간적 의미 22.8 공간적인 사고 61 공간조직 411 공간 지각 73 공간 투시 14

공간표현 방식 226 공간 형 상화 221, 222, m, 229, 329 공간 형상화의 법칙 64 공상적 사고 141 공상적인 역사 123 공쿠르 294 과장 357 과학적 사고 88 과학주의 238 관계논리 116 관계를 규정하는 공간 109 관례적 기호 388 관례적인 표현 200 관례적 형상화 190 관찰체계 初 7 관학(官學)주의자 169, 213, 228, 239 관학주의 90 관학파 88, 106 광경의 투사 284 광대한 공간 242 광선적 표현 229 광선주의 280 광학 얽 교감 240 교육학 223 구 251, 252, 388 구르비취 339, 366 구별 142 구부러진 공간 238, 374, 378 구상(具象)적 질서 '2:16 구상적(具象的) 입방체 182 구상적 공간 1'2:7 , 244 구상적 공간 체 계 22.5 구상적 기호 132 구상적 부속물 129

구상적 오브제의 보편성 176 구상적이고 합리적인 사고 144 구상적 이미지 136 구상적 입방체 107 구상적 체계 229 구상적 현실 7 구아르디 137 구아리노 데이 구아리니 144 구아리노 베로네제 144 구조언어학 406, 409 구조주의 415 구체적인 공간 256 구체적 체험과 논리 38 군사 투시 57 굽어보는 공간 360 규범구조문제 116 규약적 기호체계 189 규칙적 좌표 343 그라바르 92 그레코 202 그로피우스 29 그뤼바에 363 그리 353 그리스 수학과 물리학 38 그리스 신화 209 극동아시아적 VO 근접적 시각 242 글레이즈 메칭거 319 기계론 242 기계적 • 기하학적 공간 259 기계주의 31 기능주의 정신 166 기독교 신화 1 까 기독교적 사고 141 기독교적 신화 12.8

기독교적인 계시 72 기디옹 323, 328 기록된 이미지 102 기 를 란다요 64, 93, 96, 97, 156, 172, 184, 205, 396 기마 공간 57 기마적 조망 62 기 마적 투시 57, 198 기 베 르티 28, 33, 34, 40, 42, 51, 52, 63-65 기본감각 300 기수법 121 기술상의 경험 257 기술의 발전 상태 었 기술적 • 감정적 가치 372 기술적 공간 1'2: 7 기술적 체험 370 기 시 아 288, 350, 359-364, 393, 401, 402 기이 212 기 하학 9, 23, 31, 34, 155, 166, 1'51 , 325, 328, 373, 402 기 하학의 근본적 공식 328 기하학자 323 기하학적 362 기하학적 결합 396 기 하학적 구축 57, 174 기하학적 두 공간 282 기하학적 면 30 기 하학적 시 각 362, 388 기하학적이고 개별적인 지각 법칙 133 기하학적이고 이상적인 선 109 기 하학적 인 장소 30, 135 기하학적 인 좌표방법 98 기하학적인 투시법 얽

기하학적 자료 57 기하학적 좌표 67 기하학적 지점 67 기하학적 직관 74 가하학적 투시 326 기하학적 표현 229 기하학적 형상화 31 기하학적 형태구조 252 기하학주의 317 기하학화된 형태 74 기호 가치 70, 124 기호 목록 148 기호 심리학 15, 407 기호 역할 263 기 호 체 계 15, 119, 4(J7 기호학 414 꽁트 16 1!11 나비 스파 '2:11 , 326 나폴리 41, 46, 50, 144 낡은 공간의 를 '2:10 남성적 생명 128 낭만적 비유 212 낭만주의 9, 197, 203, 204, 206, 208- 210, 213, 241, 313, 338 낭만주의자 204, 205, 211, 252, 267 낭만주의 적 204, 2f17 낮은 사영시각 62 내적 시각 102 내적 시각의 차원 343 내적 이미지 343, 382 내적인 측정가치 400 네모진 타일 형태 53

노동의 성격 139 노발리스 252 눈속임 102 니체 77 니코 파솔라 68 니콜라 5 세 예배당 64 E 다각적 감성 298 다감각 342 다감각적 370 다감각적 차원 344 다비 드 66, 111, 122, 203, 204, 206, 212, 256, 352 다반치 68, 8.5, 190, 201, '3'/4 다프네 신 401 단안(單眼)시각 67, 78, 얽 단안(單眼)적 시각 60, 246 단안(單眼)적 원근화법 160 단안관찰법 50 단안적 %8 단안적 관점 62 단안적 투시 19<3 단안 조망법 51 단일조망법 137 단일한 공간 158 단일한 망 202 단일한 삼각형 94 단일한 소실점 60 단일한 시각 304 단일한 원근법적 입방체 163 단일한 입방체 166 단일한 접촉 260 단절 411

단테 28, 29, 48, 56, 204 닫혀진 구상적 입방체 166 닫힌 입방체 182 닫힌 입방체적인 공간개념 99 달마트 107 대기 공간 92 대기굴절 34 대기 원근법 173 대 기 적 공간 93, 100, 360, 400 대기 투시 93, 173 대미시 13, 415 대상 369 덩어리 36 데오나 205, 367 데카르트 121 데카르트적 288 데포르마시옹 325, 349, 382 데포르마시옹 미학 378 데포름 326 도나텔로 28, 30, 34, 35, 37, 40, 55, 58, 63, 65, 166 도데 267 도르스 77, 205 도리발 316, 340 도메니코 디 바르톨로 59, 60 도메니코 베네치아노 64 도미에 288 도시의 성당 404 도식 화 361, 394, 400 도식화된 형태 391 도표예술 355 독립적이고 공간적인 특질 262 독립적 입방체 182 독일 낭만주의 268 동양미술 235

두아니에 315 두치오 45 둥근 지 붕 29, 39, 40, 63, 82, 85, 90, 99, 112 둥근 천장 28-31, 33 뒤 르켐 15, 16, 21, 338, 339, 369 뒤메질 74, 75, 126 뒤비노 414, 415 될랭 256 듀랑티 217, 317 듀피 344, 345, 348, 374, 376, 378 드가 8.3, 231-233, 235, 236, 238, 241- 243, 248, 249, 260, 261, 272, Z79- 282, 284, 288, 298, 302, 303, 317, 330, 334, 340, 341, 349, 358, 359, 361, 376, 378, 380, 388 드놔이에 363 드니 116, 233, 251, 264, 271, 300 드랭 310 드뷔시 252 드 생 빅 토르 208-211 드자르그 8.3, 84 들라크루아 200, 204, 206, 207, 224, 241, 250, 268 들로네 319, 330, 331, 353-356, 390, 396, 398 등각(等角) 투영도 57 디 코시모 224 딜타이 409 또바젠느 363 E. 라보르드 71, 237 라브당 26, 41, 49, 355

라투르 250 라파엘 34, 66, 67, 118, 164, 190, 203, 204, 219, 229, 231, 330, 346, 372 라피 크 68, 69, 228, 363 랑제 366 랭부르 형제 186, 188 러스킨 116 러시아 발레 320 레다 401 레비-스트로스 122, 222, 334, 337, 365, 409 레알리테 누벨 310 레 오나르도 68, 314 레오나르도 다빈치 93 레이 330 레제 233, 262, 288, 319, 334, 338, 341, 342, 350, 352-354, 359, 363, 380, 386, 388, 390-392, 395, 396, 401 렘브란트 얽, 202 로댕 267, 288, 304, 350 로라나 107 로랑 364 로랑스 350 로렌제티 45 로렌초 28 로렌초 데 메디치 257 로렌초 디 비치 59 로렌초 모나코 61, 62, lfiO 로렝 200 로마네 스크 5, 224, 332, 404 로마네스크-고딕 61 로마네스크 미술 321 로마네스크 조각 38 로마네스크 회화 359, 363, 393 로마미 술 235, 320, 321, 360

로마의 인본주의 413 로마 인문주의 5 로베르 들로네 3W 로시 26, 136, 143 로윈스키 111, 113, 347 로제티 203 로캥 211 로트 228 로트렉 332 로트렉식 321 롬바르디아 54 루벤스 200, 205, 263 루소 310 루오 312-314 루카치 409 르네상스 7, 14, 16-18, 24-26, 28, 30, 33, 35, 36, 40, 41, 43-45, 48-50, 61, 62, 65, 68, 69, 71, 72, 76, 77, 79, 81, 89, 90, 95, 103-106, 110-115, 119- 121, 129, 133, 164, 166, 174, 180, 181, 184, 190, V6, m, 279, 281, 2.86, 290, 292, 298, 었 4, 377, 385, 392, 400, 402 르네상스 〈창시자들〉 刃 르네상스 가설 391 르네상스 건축 36 르네상스 공간 14, 79, 80, 109, 110, 145, 15.5 , 199, 258, Z'/3, 刃 4, 296, 343, 358, 414 르네상스 공간시각 78 르네상스 공간 표현 200, 244 르네상스기 5, 347 르네상스 기원 216 르네상스 문명 77 르네상스 문제 369

르네상스 미술 60, 67, 93, 104, 120, 189, 405 르네상스 방식 233 르네상스 사람들 369 르네상스 사상 24 르네상스 시각 286, 303, 349 르네상스 시 대 225, 369 르네상스 양식 156 르네상스 역사 108 르네상스 연극 44, 347 르네상스 예술 72, 106, 198, 234, 'l73 , 347 르네상스 예술가들 109 르네상스 원근법 104 르네상스 원칙 59 르네상스 음악공간 347 르네상스의 건축물 108 르네상스의 근본 명제 282 르네상스의 기하학과 지리학 'l73 르네상스의 기하학적 정신 316 르네상스의 목적 83 르네상스의 범위 218 르네상스의 법칙 237 르네상스의 비유 양식 'lll 르네상스의 사실주의 103 르네상스의 시각적 이해방법 'l78 르네상스의 조형공간 290 르네상스의 조형공간 구조 286 르네상스의 토대와 한계 281 르네상스의 환각 370 르네상스인 304 르네상스적 386 르네상스적 의미 261 르네상스적인 것 345 르네상스적 투시 62

르네상스 조형공간 lITT, 198, 245, 335 르네상스 조형체계 199 르네상스 체 계 35, 374 르네상스 체험 368 르네상스 초기 348 르네상스 파괴 l 얽 르네 상스 화가 204, 2'2: 7, 346 르네상스 회화 78, 341 르누아르 212, 230, 242, 243, 248, 249, '2:19 , 286, 288, 303, 304, 319, 349 르콰-구루앙 89, 122, 223, 248 르 리오네 328 르 모아스느 359 르 모알 363 르월드 210, 212, 214-217, 230, 234- 236, 251, 262, 330 르 코르뷔지에 288 르클레르크 2(17 르페브르 414 리듬 354, 357 리미니 51 리베 21 리스트 207 리터 38 리틀 106, 182 리피 156, 173 린하르트 74, 122-124, 132, 223, 321 E. 마네 212, 220, 229, 232, 234, -235 , 248, 288, 290, 294, 296, 317, 334, 361, 380 마네시에 360, 363, 364, 396 마네 티 2.8, 31, 32, 81, 82, 88, 137

마니에리즘 205 마랭 220 마르샹 363 마르크스주의 408, 409 마사치 오 40-42, 46-51, 53, 54, 56, 59, 63, 64, 94, 156, 162, 190, 241, 업 8, 290, .3 13, 324 마솔리노 40-42, 47-50, 52-54, 63, 97, 162, 166, 181, 188, 190, 290, 313, 324 마술적 인간 142 마이 어 손 75, 222, 321 마티니 45, 313 마티 스 71, 249, 282, 288, 309, 325- 3'Z7 , 341, 345-348, 353, 358, 359, 363, 376-378, 382 만질 수 있는 공간 352 만테냐 64, 101, 118, 170, 172, 184, 186, 280, 346 만투아 51, 144 말 408 말라르메 251, 267 망 109, 168, m, 282, 292, 335, 350 망 la grille 체 계 392 망령을 구체화 268 매체 240 매트르 217 맥 퍼슨 204 멈포드 323 메 디 치 가 24, 45, 50, 65, 79, 135, 136, 168, 193 메디치 궁전 力 메를로-퐁티 116 메소니에 幻 7 메스닐 41, 48, 68, 83

메커니즘의 차원 347 메테 134 멕시코 예술 初 0 명암 대조 233 명암법 얽 명암의 지각 260 명암표현 290 모네 212, 216-218, 224, 226, 228-230, 232, 233, 235, 238, 241, 248-251, 253, 업 6 모들레 40, 44, 46, 47 모딜 리 아니 312-314 모레노 18 모리소 401 모리스 266, 366 모밀리아노 26 모3스69 , 2~1,o 122, 136, 222, 334, m, 36.5, 모차르트 ~l, ~2 모퉁이가 없는 공간 349 모파상 294 모형 46 목조 모자이크 106 목조상감 106 몬드리안 235, 354 몬테펠트로 100, lITT, 131, 144 몽돌호 139 몽상예술 267 몽타주 106, 170, 173, 239, 286 몽테뉴 145 무게있는 공간 281 무대벽 44, 96 무어 350 무한한 공간 99, 103 무한히 열려진 공간 115

무한히 작은 것 %5 문자적 설명 346 문학 비평가 25 문학사 26, 77, 406, 407 문학적이며 사회학적인 의미 208 문화단계 14, 405 문화사회학 411 문화인류학 15, 221, 4ITT 문화적 기능 7, 408 문화적 단계 14 문화적 사실 352 문화 전체 351 문화현상 410 물리(物理) 입체파 337 물리적 • 지리적 공간 259 물리적 사고 73 물리 학 67, 323, 409 물리학자 33, 34 물리학적 공간 111 물리학 지식 ll4 물질 361, 364, 365, 367, 372 물질생활 %5 물질을 다루는 체험 %5 물질적 400 물질적 깊이 132 물질적인 부속물 246 뭉크 326 뮈세 213 미래미술 396 미래의 양식 356 미래파 334, 335 미 로 54, 353, 356, 398 미분심리학 75 미세사회 측정법 18, 4ITT 미셸 82

미쇼토 335, 366 미술과 기술 7 미술과 사회 5, 6, 7 미술기호론 409 미술기호학 415 미술 문화사 25 미 술사회 학 408-410, 412, 413, 415 미술의 신화 9, 23 미술의 이미지 237 미쉴레 24, 25 미시사회학 18 미 켈란젤로 24, 34, 49, 56, 152, 204 미켈로초 65 미학대상사회학 414 미학 문화 68 미학적 • 사회적 사실 181 미학적 • 정신적 가치 221 미학적 대상 18 미학적 시각 69 민속학 315, 406, 407 민족지학 17 민족학 21 민족학자 21, 122, 223 민족학적 16 밀라노 29, 31, 33, 41, 55, 65, 131, 144 밀레 216 밑 400 E. 바그너 252 바그너풍 250 바로크 16, 17, 26, 34, 44, 77, 173, 205, 206, 367 바로크 공간 205

바로크 화파 204, 205 바르트 414 바우하우스 29 바자리 24, 27, 28, 31, 40, 48, 5.5, 106, 219 바쟁 52, 205, 236, 250 바지 이 으 212, 215, 216, 234, 248-250, 257 바티 칸 60, 64, 160 반 고호 251, 259-265, 269, ?:72 , ?:73 , 285, 288, 290, 312, 325, 326, 331, 333, 334, 380 반다이크 83 반 데르 리유 122, 132 반델로 131 반 되스부르그 354 반 마를레 53, 54, 60, 61 반투명 공간의 넓 이 112 발도비네티 64 발명 37 발생론적안 생명 123 발생심리학 75 발생적 공간 73 방사(放射)하는 감각 304 배경막 94, 170 배경벽 113 배 경 포 105, 163, 166 버질 204 번 존스 116 범신론 258 베네데토 다 마자노 65 베 네 치 아 42, 136, 144, 201 베네치아노 荀 베 니 스 42, 47, 64, 65, 136, 144, 182, 205, 220

베니스 비 엔날레 313, 334, 335 베니스 화파 204, 205 베뒤타 342 베드레 350 베 렌손 59, 60, 281 베로키오 50, 64, 6.5 베르그송 116, 238, 252, 25.5 베르그송적 251 베르나르 261, 26.5 , 266 베르니니 401 베르사유 조각 413 베르티-토에스카 32 베를렌느 267 베를리오즈 207 벤야민 239, 240 벤투리 29, 47, 200, 206, 208, 218-220, 230, 251, 262, 268, 312, 314 벨라브르 46, 47 벨라스케스 130, 202 벨리니 8.5, 136, l'.r l, 3 46 벨페고르 126 변이 3.57 , 411 변증법적 사고 141 변화 411 병리심리학 75, 104 보나르 215, 220, 312, 325, 358, 363 보노 207 보댕 363 보드리야르 414 보들레르 49, 209, 212, 252 보레스 363 보스 83, 110 보카치 오 25, 48, fi6 보티14 2첼, 리16 0,2 91,9 25,0 ,2 0644 , 94, 133, 13.5 , 136,

복수 공간 58 복수적 조망 326 복합적이며 다각적인 감각 242 복합적 투시 341 볼로냐 51, 144, 228 볼로냐 화파 254 볼테르 211 뵈브 295 뵐플린 16, 44, 77, 205, 406, 414 부댕 263 부동(不動)의 시선 393 부동의 눈 67 부동적 고정성 252 부동주의 139 부룬쉬비크 31, 38 부르크하르트 16, 24, 25 부속물 98, 105, 108, 110, 129, 131, 136, 148, 169, 184, 341, 378 부속적 물건 178 분리된 경 253, 294 분리적 • 입방체적 380 분석 입체파 337 분할주의 '2:19 , 329 불변의 비유 252 불변의 자연공간 110 뷔야르 359 브라크 71, 181, 186, 319, 334, 353, 356, 388, 395 브란카치 43, 162 브란카치 성 당 41, 48, 51 브란카치 소성 당 162, 190 브랑쿠시 350 브루넬레스키 28-40, 47, 48, 52-54, 58, 81, 82, 84-90, 94, 99, 135, 137, 155, 166, 231

브루넬레스키의 사고 63 브륀스비크 121 브르통 310 불라맹크 310 불런트 33 비객관적인 회화 354 비교심리학 122 비교역사적 사회학 411 바물질적인 세계 140 비밀스런 의식 372 비엔나 59 바올레 르 뒤크 35.5 비 용 312, 313, 363 비유클리드적 298 비유클리드적 공간 378 비율과 숫자 36 비입방체적 공간 378 비잔틴 29, 61, 174, 235 비잔틴적 영향 46 비치 디 로렌초 59, 61, 160, 190 비토리노 다 펠트로 144 비평가 29, 209 비합리적 조칙 원리 353 비형상 미술 398 빌라르 288 빛의 공간적 특질 398 빛의 유일원 271, 362 빛의 작용 225 빛의 조정 37 빛의 특성 35 롭. 사고의 전달방법 351 사르트르 256, 414

사물의 고유 색채 354 사세 %6 사세 타 59, 60, 96, 160 사실적 213 사실적인 양식 35 사실적 투시법 62 사실주의(寫?[主義) 190 사실주의 28, 48, 77, 78, 107, 109, 123, 132, 143, 173, 209, 214, 241, 295, 303, 315-317 사실주의 운동 317 사실주의자 47 사실주의 적 101, 298, 341, 354 사실주의적 개념 202 사실주의적 시각 202 사실주의 화가 214 사영 (射影)적 원근법 178 사영( 射影)적 투시적 표상 117 사영적 투시 178 사유의 영역 91 사잘 267 사진 236, 237, 239, 240 사진의 이미지 237, 239 4 차원 317 사차원적 세계 394 사카스 92 사회계급구조 80 사회심리학적 해석 416 사회의 집단적 기억의 표현 248 사회 인류학자 409 사회적 가치 Z74 사회적 거리 244 사회적 공간 15 사회적 법칙 91 사회 적 사실 16, 338

사회적 성격 258 사회적 의미 318 사회적 질서 14 사회적 현상 369 사회적 현실 215 사회측정법 18 사회 학 89, 122, 222, 315, 334, 406, 407, 411, 414 사회 학자 16, 18, 21, 223, 339, 366, 414 사회학적 배경 36. 5 사회학적 사고 338 산 로렌초 28 산로마노 刃 산마르코 수도원 44, 52 산업문화 14 산 지오반니 32 산 지오반니 예배당 32 산 클레멘테 50 산 클레멘테 성당 49 산타 마리 아 노벨라 성 당 41, 156, 172 산타 마리아 누오바 47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162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 41, 45, 51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28, 31, 32 산타 마리아 디 트란스테베레 46 산타 마리아 디 프라리 성당 30 산타 마리아 마지오레 46 산타 마리아 마지오레 성당 47 산타 체칠리아 디 트란스테베레 성당 46 산타 크로체 성 당 152, 166 산타폴로니아 55 산토 스피리토 28 살로몽 130 살미 41, 48, 52, 55, 98, 106 삼각형화 232, 233

상감세 공 106, 164 상대적 크기 176 상부가 잘린 피라미드 62 상부가 횡으로 절단된 피라미드 86 상상의 공간 256, 259, 358 상상의 배경 164 상상의 창문 156 상상의 축 284 상상의 환경 402 상상적 가치 301, 411 상상적 공간 231, T/3, 353, 360 상상적 모델 35 상상적인 부속물 131 상징물로서의 공간 110 상징언어 150 상징적 • 사회적 형체화 294 상징적 공간 94 상징적 기호 209 상징적 둥가물 174 상징적 부속물 128 상징적으로 표현 244 상징적 의미 228 상징적이며 공간적인 가치 130 상징적 이미지 135 상징적 전환 69 상징적 통일 156 상징적 해석 357 상징적 형상화 70, 1 이 상징적 형태 208 상징 주의 266, 268, T/1 상징주의 시인 251 상징주의자 268 새로운 소묘, 새로운 데생 2T /, 230, 234 새로운 소묘, 새로운 회화 5, 362, 413 색상의 혼합 262

색점 85 색조의 단계적 표현 262 색채 반점 353 색체 사진 2'2: 7 색채의 대조 331 색채의 동시적 대조 354 색채의 봇터치 '2:16 색채적인 시각 85 색채표면 359 생리학 337 생리학자 295 생명의 상징적 승리 192 생명의 승리 184 생명의 신화 141 생명의 형상화 184 생물심리발달 116 생물학 323, 325 생성 인식론 116 생장-데一슈발리에 61 생 지 에 360, 363, 396 생체학적-형태적 체험 351 생트 라그 328 생트-파르一가르노 139 샤갈 200, 218, 312-314, 398 샤라쿠 288 샹플레리 317 서구주의 '2:10 서술적인 세계 92 서정적 측면 226 서정주의 244 선(線)적 도식 화 280, 304 선으로 된 아미지 228 선적 도식 87 선적 사실적 원근법 93 선적 원근법 405

선적인 구조 325 선적인 배치 346 선적인 시각 85 선적 좌표 99 선 적 투시 87, 101, 256, 329 선적 투시감각 337 선적 투시법 62 선험적 미학 60 선형 원근법 13, 14, 44, 58, 60, 62, 63, 66, 68, 77, 83, 86, 109, 118, 'Zll, 374 성 단 'Zl, 28, 61, 62 성 당 41, 46, 47, 162 성 베드로 성당 56 성 아폴로니아 성당 47 성 아폴로니 아 수도원 48, 154 성 아폴리니아의 식당 190 성 요한 성당 46 성적 상징언어 223 성 클레맨트 성당 42 성 프란체스카 45, 53, 95 성 프란체스카 성당 45 성 프란체스코 48, 60 성 프란체스코 성당 29, 174, 190 세계를 객관화 133 세계의 공간 69 세계의 공간적 표현 133 세계의 친숙한 구조 242 세네카 l0l, 2 아 세라핀 330 세례당 32, 33, 34 세뤼지에 없 1 세밀화 53, 54, 59, 61, 174, 181, 224 세밀화가 62 세베리니 33.5 세부의 연속적 시각 282

세 잔 201, 205, 210, 213, 218, 230, 234-236, 249- 25 1, 253, 254, 257- 25 9, 261, 264, 267, 269, 업 0, 'l:/3, 284, 288, 292, 315, 325, 330, 331, 333, 358, 359, 388, 390, 392 셰익스피어 288 소마르 55 소성당 162 소실선 38, 50, 54, 56, 얽, fJl, 199 소실적인 투시법 57 소실 점 13, 67, 253 소실축 359 속도 346, 348, 357, 396 쇠 라 210, 까 2, 初 8-280, 325, 3'2: /, 329-331, 354, 362, 396 쇼팽 207 수도원 44 수도원 성당 404 수리오 325 수직성 391 수치계산법 31 수평선 392 수필가 209 수학 17, 31, 406, 4ITT, 409 수학자 23, 28, 34, 74, 84, 200 수학자들의 사고 36. 5 수학적 • 물리적 • 지리적 사고 198 수학적 공간 120 수학적 사고 57, 73, 99, 313, 328 수학적 시각법칙 66 수학적 이성 96 수학적인 이치 241 수학주의 31 순간적 시각 292 순수공간 69

순수색의 작용 363 순수색채 260, 290, 342 순수색채의 자율적 가치 325 순수운동 346, 376 순수한 상징 15 순수한 상태 262 순수한 색조 263 순수한 색 채 262, 업 1, 362 순수한 소여 351 순수한 운동감 302 숫자로 계산되어 표시되는 세계 92 슈만 207 슈브뢸 354 슈브링 58 슐 75, 89, 104, 139, 347 슐로서 33 스공자크 329, 330 스키 라 214, 230, 327, 330, 340 스타르니 나 62, 100 스트라토니스 237 습관적인 인상 176 승마적 공간 358, 382 승마적 투시 57, 100 승마적 표현 341 시 각기 구 32, 88, 15.5 시각의 객관적 조건 239 시각의 선험적 사실 316 시각의 영원한 토대 388 시각의 통일 341 시각장치 31 시각적 57 시각적 가치 79 시각적 원근법 16 시각적 이상 %5 시 각적 이 해 방법 16, 75, 78, 15.5 , 156,

188, 189 시각적 지각 103 시각적 측정 방법 282 시 각적 해 석 방법 329, 345, 408 시각 피라미드 325 시각해석 방법 321, 341 시각화 43, 123 시나 206 시냑 206 시뇨렐리 64, 6.5 시슬레 220, 248 시야의 법칙 101 시 에 나 45, 53, 54, 59-62, 64 시의회 32 신고전주의 205, 211, 329, 330 신비스런 불안 266 신비주의 244 신비주의자 260 신사실주의 316 신에 대한 구체화 132 신의 사고 71, 138, 140 신의 창조물 402 신의 형상 386 신인상주의 206, 'l:79 , 329, 330 신천지 387 신체 400 신체적인 특성 334 신플라토닉사고 70 신플라토닉학파 50 신플라톤주의 70, 92 신플라톤주의자 135 신화적 가치 122, l'Z l 신화적 개념 129, 134 신화적 공간 129, 131, 135, 145, 203 신화적 기능 137

신화적 방법 126 신화적 비전 134 신화적 사건 140 신화적 사고 122, 123, 125- 12 9, 132, 140-142 신화적 사실 126, 140 신화적 사유 123 신화적 언어 124 신화적이고 사회적인 이중의 의미 115 신화적 이해 128 신화적 인간 125 신화적 장소 125 신화적 진실 140 신화적 창조 135 신화적 체험 l 刃 신화 창조 136 실재 102 실재의 공간 166 실제의 공간 145 실제적 대상 15 실존주의 416 실증적 가치 128, 131, 137, 236, 333, 411 실중적 방식 358 실증적 법칙 263 실증적 세계 199 실증적 시각 156 실증적인 경험 225 실중적인 현상 143 실중적 조건 244 실증적 체험 351 실중적 힘 371 실중주의 16 실험적 가치 231 심리분석가 116

심리적, 사회적으로 해석 19 심리적 거리 296, 았 n 심리적으로 측정 380 심리적인 체험 'J?O 심 리 학 74, 206, 244, 369 심 리 학자 17, 72, 73, 33.5, 406 심리학적 • 분석적 해석 239 심리학적 사회학적 사고 73 심포니 악보 113 19 세기 20 세기의 미술과 기술 413 E 아누이 256 아담 %0 아동정신 73 아라베스크 46, 50, 65, 2.82, 298, 317, 325, 326, 333, 341, 346, 377, 384, 388 아레초 41, 42, 45, 5.5, 56, 93, 174, 190 아르간 29, 31, 62, 70, 144 아르 누보 118, 288 아르프 3.50, 354 아리스토텔레스 95 아방가르드 215, 309, 310, 322, 323, 334 아비뇽 49, 61 아시 시 29, 45, 46, 48 아치아노 96 아카데미 53, 54, 69, &'3, 84, 89, 101, 114, 144, 200, 228, 254, 268, 'X'/1, 'X'/4, 294, 363 아카데 미 즘 60, 162, 173, 188, 249, 318 아카데미파 330 아카데믹 252, 254

아 틀 리에적 표현방식 182, 184 아 폴리 네 르 310, 317, 319 안드레아 델 사르토 24, 190 안 드레 아 델 카스타뇨 47, 55, 63, 64, 154, 166, 168, 190 안세르메만 323 안정 357 안정감 386, 401 안젤리코 53, 54, 63, 166, 313 안코나 131 안코니아 136 안탈 79, 80, 408 안토넬로 다 메시나 64 알베르티 13, 50, 51, 58, 62, 65-67, 81, 82, 84-88, 91, 93, 94, 98, 100, 109, 110, 118, 156, 173, 176, 190, 192, 135, 231, 264, 278, 374 알베르티식의 열린 창문 182 알베르티의 열려진 창문 226 알베르티의 이론 218 알베르티의 입방체 232 알베르티의 창문 66 알파사 33 알 하잔 34 알 하젠 33 암브로지오 45 암브로지오 로렌제티 53 암스 337 앙드레아 델 카스타뇨 48 앙리아드 211 앵 그르 66, 100, 173, 203, 224, 233, 237, 241, 264 앵데팡당전 310 야만족들의 예술 '1:10 야수주의 230, 324, 334

야 수파 288, 315, 316 , 326 , 353 양식 90, 174, 189, 190, 205- 20 7, 213, 217 , 235, 238-240, 262, 263, 266, '2:10 , 278, 290, 304, 313, 319, 321- 325, 329, 330, 332, 333, 351, 355, 359, 371, 374, 380, 408, 415 양식 화 148, 154, 182, 189, 190, 240, 280, 340, 344, 348, 351, 376, 382, 385, 390, 391 양식화된 요소 388 양식화의 법칙 181 언어학 337, 357, 406, 412 언어학자 339 에반스 80 에 스 테브 233, 331, 342, 343, 359, 360, 363, 391, 400, 402 에스티엔느 327 에워싸는 대기 301 에 콜 드 파리 245, 247, 364, 413 에 콜 드 파리 화가 '2:13 엘리오트 288 엘슬러 207 여러 경 282 여성적 생명 128 역동적이고 죽각적인 표현 335 역사가 25, 29 역사적 내지는 지속적 조건 367 역사학 37 연속성 357 열려진 공간 166, 393 . 열린 공간 364, 402 열린 창문 93 열린 창문이라는 규약 62 영광과 죽음 401 영속적인 언어 224

영 원 한 실 재 109, 410 영 혼 의 동 요 221 영 화 240 영화시 각 286 영화 필름 시각 2&5 영 화 학 240 예 술 과 사회 248 예 술 과 사 회학 366 예 술 바평 364 예 술 사회학 89, 111, 416 예 술 심리학 111, 323 예 술 의 기적 271 예 이 츠 89, 114, 139, 144 오로나 성당 52 오 브제 와 빛 에 대한 체 험 300 오브제의 숭배 338 오비드 211 , 256 오 시 안 204 오타비아노 넬리 176 오토만 174 오트쾨르 79 올 드 필 드 103 완전한 공간 264 완전한 공간적 의미 264 왈롱 73, 75, 116, 414 외르텔 49 외부세계의 목록조사 402 욕망과 일 401 우르비 노 51, 98, 100, 106, lf17 , 136, 156, 164, 100, 170 우상학적 집중 97 우의( 寫 意)적이고 공간적인 가치 134 우주적 서정주의 354 우첼로 'Zl, 28, 35, 38, 44, 47, 48, 55- 58, 63, 71, &5, 97, 104, 105, 118,

129- 13 1, 136 , l'J? , 142, 156, 1 책 162, 166, 168, 172, 181, 208, 249, 290, 297, 324, 374, 393, 396 우 첼 로-브 루넬 레 스 키 324 우피 치 54, 56, 160, 170, 173, 192 운동 396, 398 운동감 3&5 운동의 차원 394 운동적 지각 395 움브리아 42 웅대한 것 36.5 원근법에 의거한 공간구성 13 원근법적 구성 24 원근법적인 소우주 395 원근법 적 입 방체 281, 361 원근화법적 공간 246 원근화법적 시각 285 원근화법적인 개념 202 원근화법적인 경의 분리 105 원근화법적인 방식 32 원근화법 적 인 입 방체 347, 392 원시문화 248 원시미술 235, m , 288, 321, 3fiO 원시인간 223 원시적 감각 소여 238 원시적 사고 120 원시적 입장 352 원시적 _ 지체적 사고 122 원시적_탐구적 방식 122 원시 주의 116, 119, 121, 141, 201, 235, 3fi7 원시주의적 시대 121 원초주의적 입장 356 원추 2.52 원추 투사기하학 83

위 ({ 8 ) 고전주의 279 위 그 267- 26 9, 316, 3Z7, 340 위 드 330 위베르 21 위상적 가치 75 위상적인 단계 75 위상학 350, 378 위상학적(位相 t성 的) 표상 117, 121 위상학적 공간 74 위상학적 시각 323 위상학적 표현 126 위상학적 형태 125 위 트코워 66, 89, 95, 144 유아심리 73, 116 유아의 사고 117 유아 의식 116 유아정신 73 유일한 빛의 원천 228 유클리드 31, 38, 155 유클리드 공리 76 유클리드 기하학 203, 393 유클리드 법칙 66, 74 유클리드 수학 23 유클리드적 202, 260, 349, 382 유클리드적 공간 시각 74 유클리드적 구조 252 유클리드적 기하학 378, 388 유클리드적 논리 369 유클리드적인 의미 348 유클리드적인 조직망 343 유클리드적 인 좌표 344 유클리드적 투시 71 유클리 드적 표현 65, 66 유트릴로 312-314 유행 262, 319, 꼬 7

유행의 역사 322 육체적 민족학 334 육체적인 충동 363 융킨트 216 음계적 공간 112 음성학 409 음소 366 음악 공간 113 음악법칙 114 음악체 험 의 공간적 특성 114 음향 부조 351 의미된 것 343 의미론적 체계 351 의미상 가치 361 의미있는 조각 巧 5 의미적인 표현법칙 133 의사소통 339 의사소통수단 15 의식의 순수한 소여 251 의식적 방법 355 이교도문화 107 이국 양식 363 이국예술 313 이국적 411 이국적 미술 321 이국 취미 269, 321 이 론적 사고 123, 249 이미지 언어 406 이상적 공간 31, 70, 137 이상적 눈 67 이상적 미 386 이상적 표현 201 이중망 201 이중의 기호망 201 인간 비교심리학 222

인간성 221 인간의 이미지 370 인간의 행위의 법칙 403 인간적 체험 257 인간 정신의 입장 143 인간행위의 조건 244 인류학 17, 122, 222, 315, 334, 406 인류학자 129, 366 인문주의 52, 66, 89, 211, 364, 365 인문주의자 51, 144, 193, 239 인본주의 26, 141, 143, 'nO , 328 인본주의자 100 인상주의 5, 9, 18, 189, 1'57 , 201, 206, 210, 212, 215-218, 225-2'n , 229-231, 238, 240, 241, 247, 249, 250, 252, 262-264, m, 282, 286, 292, 313- 317, 319, 329, 330, 3.33- 335, 337, 390, 392, 406, 410, 413 인상주의 그룹 401 인상주의 그림 236 인상주의 기원 216 인상주의 미술 225, 226 인상주의사 234, 262 인상주의 사상 218 인상주의 양식 220, 'n6 인상주의 역사 217, 230 인상주의 운동 214 인상주의 원칙 326 인상주의의 발전 231 인상주의자 83, 206, 214, 216, 221, 222, 224, 225, 2'n -2 31, 236, 246, 247, · 249-251, 254, '251, 260, 268, 3.33, 340, 343, 354 인상주의적 188 인상주의적 〈망〉 '2Z1, 업 7, 'n9

인상주의적 시각 220 인상주의적 양식 391 인상주의적 이상 325 인상주의적 입장 344 인상주의 정복 251 인상주의 창시자 217 인상주의 풍경 화 '2Zl 인상주의 화가 212, 213, 217, 231, 246, 247, 251, 업 8, 288, 333, 388 인상주의 회 화 216, 234 인상파 14, 405 인식론 17, 406, 4fJ7 인위 투시 93 인종학 122, 223 인종학자 116, 366 일본( 日 本)취 미 288 일본미술 235, 236 일본식 취향 234, 235 일상의 행위 318 일상적 오브제 294 일화를 형상화 업 2 일화적 신화 123 일화적 주제 15 임의로 만든 형태 317 임의의 기호 체계 188 임의적 척도 341 입면도적 시각 62 입 방체 3.59 , 382, 388, 400, 401 입방체적 256 입방체적 공간 94-96, 98, 172, 226, 232-234, 248, 253, 329 입방체적 구조 202 입방체적 시각 243 입 체주의 18, 220, 230, 238, 310, 315 316, 324, 335, 353, 388, 394, 398, 400

입체주의적 경 험 391 입 체 파 7, 9, 14, 84, 309, 310, 313, 314, 316-319, 323, 326, 327, 334, 335, 337, 352-354, 358, 359, 394, 398, 405, 409 입체파식 396 입체파 운동 315 입체파적 349 Ell 자연 공간 68 자연의 단편 258 자연의 이미지 370 자연의 힘 347 자연적 시각 189 자연적인 계시 72 자연주의 255, 295 자연주의적 접촉 154 자율적 현상 215 자코포 벨리니 178 자콥슨 337 장식 입체파 337 장식 적 공간 233, 358 장식적인 풍경 315 쟈모 130 적용 37, 40 적용의 영역 91 전망 382 전망법 103-105, 107 전문성 367, 36a, ~1 전설적 통일성 160 전이 357 전체적 시각 282, 380 전체적 시각 체계 362

전체적이고 죽각적 인 시각 335 전통적 • 상징적 의미 346 전통적 • 윤리적 가치 129 전통적 공간 109, 244, 318, 392 전통적 대상 363 전통적 도식 232 전통적 요소 346 전통적 일화 257 전동적 조직망 248 전통적 조형공간 247 전통적 투시 277, 349 전통적 투시 형태 326 전형적으로 형상화 318 전형화된 인체 386 절대적 공간 263 절대적 명도 262 절대적 채색 질서 354 절충주의 173, 190, 220, 254 철충주의자 228 접촉에 의한 지각 323 정상, 병리 심리학 139, 222, 228 정상심리학 75, 104 정신과의사 18 정신 내부에서의 지각의 통일 392 정신생리학적 113 정신생리학적 사고 286 정신생리학적 시각 342 정신생리학적 조건 69 정신생리학적 체험 352 정신을 구체화 269 정신의 메커니즘 244 정신적 • 생리학적 구조 366 정 신적 거 리 132, 133, 229, 242, 253, '2f51, 339 정신적 실재 102

정신적 이미지의 투사 284 정지적(靜止的) 시각 391 제단화 62 제도사회학 411 제르네 134 제스처 346, 347, 357, 361, 371, 382 제우스 401 제프로이 217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 160 젠틸레 벨리니 64 조각난 공간 352 조감 공간 358 조립된 풍경화 186 조망 178 조명에 의한 표현 얽 조직망 248 조형고고학 367 조형공간의 구조 241 조형기호 361, 362 조형 사고 63, 317 조형성 357 조형언어사 312 조형언어의 고고학 357 조형적·역사적·지리적·상상적 공간 203 조형적 가치 301 조형적 막의 차원 343 조형적 인문주의적 이상 40 조형적 일관성 156 조형적 통합 262 조형 체험의 양식 364 졸라 210, 236, 251, 317 종교사회학 21 • 종교 수도회 404 종교적 가치 244

종카인드 263 종합주의 업 1 죠르죠네 201 죠반니 디 파올로 59 주네 256 주앙 그리 330, 331 중간적 공간 301 중개적 경 256, 401 중세 25, 26, 29-31, 33, 34, 148, 152, 153, 172, 174, 208, 222, 244, 345, 346, 辱, 408, 410, 413 중세기적 방식 93 중세미술 5, 24, 38 중세적 45, 296 중세적 사실주의 39 중세적 형상화의 법칙 133 중세 체계 35 중심 원근법 51 중심투시 28, 57 쥬앙 그리 319 죽각적 시각 374 축각적 시각화 356 죽각적이고 감성적 형태 368 죽각적이고 다감각적인 체험 347 즉각적인 방법 368 죽각적인 해석 104 지각된 것 343 지각된 이미지 102 지각방법의 분석 239 지각의 각도 86 지드 288 지로데 204 지리적 • 과학적 공간 198 지성의 기원 116 지성적 • 철학적 • 방법적 • 시적 가치 100

지세학적(地勢學的) 공간 298 지식심리학 339 지식을 시각화 36 지오반니 벨리니 64 지오토 24, 28, 29, 44-46, 54, 61, 94, 95, 100, 118, 152, 153, 156, 162, 166, 172, 176, 182, 190, 200, 218, 219, 280, 314 지오토적 99 지오토주의 61 지적 관습 57 지적 메커니즘 244, 407 지적 전개 410 지젤 207 지평선 없는 공간 380 직선 원근 화법 13 직접적 • 즉각적 시각 292 집단의 힘 371 집단적 사고 89 집단적 상징체계 365 차집이단- 적심 리소학통 322732 집단적 평가 318 집단적 표현체계 16 착각법 6.5 창조적 진화 116 채색된 공간감각 290 채색된 반점 248 채색된 빛 31 채색된 이미지 22.8 채색주의자 290 척도 호 7

천공의 조화 241 천상적인 공간 97 천체의 구성 241 철학 406, 407 철 학자 17, 34, 406 철학적 사고 92 체험과 아성의 힘 358 체험된 사고 123 체험된 예술 169 체험적 형태 288 첸니니 264 초서적( 草꿉 的) 기호 388 초서적 선 390 초자연적인 감각 115 초합리주의 354 초현실주의 230, 310, 324, 353, 398 초현실주의 선언 310 초현실주의 적 구성 356 촉각적 가치 281 촉감적 시각 298 촉감적 이상 365 총체적 감각 242 총체적 공간 15.3 총체적 시각 201 총체적이고 지속적인 비전 323 총체적 형상화 203 최종적 〈망〉 394 추 251 추상미 술 324, 3'?:/, 334, 353, 360, 393, 398 추상 양식 356 추상예 술 354, 35.5 추상적 공간 358 축의 안정성 284 축이 있는 원근화법 152

취향의 역사 322 측정 기준 치수 254 측정할 수 있는 실재 38 치마부 28 친밀한 체험 400 친숙한 체험 128, 296 친숙한 환경 145 드:. 카나카인 'Xll 카날레토 137 카라바지오 201 카라치 253, 254 카르미네 41 카르미 네 성 당 42, 47, 49, 162, 190 카르파치 오 64, ITT, 136, 137 카리에르 267 카말돌리회 62 카메 라 236, '237 카메라의 이미지 '237 카바넬 267 카발리니 29, 46 카소네 28, 57, 58, 158 카수 89, 246, 365 카스타뇨 5.5 카스틸리오네 오로나 성당 42, 49, 166 카스틸리오네 오로나의 세례당 188 칸딘스키 326, 3'X 7, 3.54 칸바일러 330, 331 칸으로 구획 된 공간 ITT, 342 칸으로 구획된 입방체의 공간 153 칸으로 구획하기 39 칸으로 구획하는 투시법 57 케르노들 43, 44, ~. 98, 104, 108, 134,

347 켈트 예술 업 0 코로 154, 200, 208, 210 코르네이유 206 코르뱅 113 코마르 32 코이레 139 코트 38 콘스타불 200 콜라주 353 콜럼비아 이전의 예술 업 0 쿠르베 209, 210, 212-214, 249, 257, 317, 333 쿠스뒤리에 330 쿠튀르 211, 213 크기의 법칙 259 크라우타이 머 33, 105, 164 크로체 219 크리솔로라스 144 클레 360 키오스트로 베르데 55, 156 키케,로. 100 키클로프스 78 타데오 디 바르톨로 59 타바랑 209 타비 타 42, 44, 45, 47, 50, 94, 162, 163, 166 타원형의 공간 325 타이외 363 탄력있는 직사각형 363 탈주점 83 탈코아 %3

탐색적 시각 242 테라스 262 테크닉 244 테크닉상의 가치 181 테크닉상의 방법 57 테크닉의 동일성 160 텐느 24, 2.5 토리노 201 토스카나 24, 42, 190 토에스카 49 토파닌 26, 143 투롭츠코이 337 투명한 빛 31, 37 투사적 공간 74, 133 투사적인 구축 82 투사적 표상 121 투사적 형태 121 투시의 각도 86 투시적 공간 74 투시적 표현 lg / 투시적 형태 121 투시주의자 65, 66 투시체계의 결합 260 툴루즈-로트렉 361 륄리에 415 트렌트식 239 트리스탕 267 티소 업 1 티치아노 330 틴다르 401 틴토레토 66, 202, 205 Ell 파노프스키 31, 240, 409

파도바 28, 29, 41, 42 파두아 51, 63, 144 파라댕 130 파솔라 82, 84 파올레시 31 파우스트 206 파치 성당 28 파치 소성당 166 팔라디오 66 팔레르모 29, 61, 144 팔레스타인 42 페라라 51, 144 페루지노 64, 65, 94, 249 페리에 415 페브르 20, 26, 412 페트라르카 25, 100 페트라르카적 170 평가 113 평가 악보 113 평 균율 95, '2:16 , 369, 370 평면 기하학 23, 91 평행투시 57 평행투시도 158 폐쇄된 공간 98, 155, 364 폐쇄된 빛 35 폐쇄된 입방체적 공간개념 99 폐쇄적인 힘 沈 5 포르 205 포스터 326, 332, 340, 361 포시 옹 38, 205, 332, 368, 416 포아이에 75 폴라이우울로 50, 56, 64, 84, 142, 224, 362 폴리치아노 192, 193 폴 아브라함 35.5

폴 자모 294 표기법 282, 302, 357 표면적인 공간 96 표시 법 '2:78 표의문자 186 표의적 기호 376 표현 기호 186 표현의 공간 259 표현의 전체적 의미 400 표현적 공간 160 표현주의 190, 230, 238, 288, 324, 3 刃, 360, 380, 382, 398 표현척도 67 표현체계 없 7 푸루동 210 푸생 33, 34, 99, 155, 186, 239, 253, 256 푸케 238, 374 푸코 409 풍경 182, 184 풍경화식의 경 288 프라 안젤 리 코 44, 52, 64, 96, 150 프라이 32, 207 프란체스코 190 프란체스코파 152 프랑스 267 프랑스 회화사 413 프랑시나 350 프랑카스텔 6-8, 405-416 프랑카스텔 센터 국제 학회 8 프랑클 29, 31, 33, 89 프레스크 404 프리드만 365 프리즈 288 플랑드르파 204

플로라 26 플로렌스 41 플로망탱 263 플로베르 209, 211 플로티노스 92 피 뇽 331, 348, 352, 359~ 36 3, 'S/8, 390, 401, 402 피라네즈 332 피라미드식의 구성 253 피라미드 원근법의 시각 226 피란델로 255 피 렌체 23, 24, 'll-29 , 34, 35, 39, 41- 45, 47-52, 5.5, ffi, 59, 61, 62, 64, 65, 68, 77, 79, 108, 112, 144, 150, 152, 154, lff i, 160, 162, 164, 168-170, 172, 173, 190, 192, 205, 408 피렌체인 32 피사넬로 142 피사노 34 피사로 210, 220 피 아제 73-75, 116, 117, 119, 132, 133, 247, 414 피 에 로 r.n, 231, 241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13, 41, 42, 46, 50, 52, 5.5, ffi, 64, 68, 71, 81, 82, 84, 93, r.n, 98, 104-107, 110, 118, 131, 137, lff i, 164, 170, 172, 174, 190, 204, 208, 'l78 , 'l79 , 288, 290, 296, 341, 374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작품집 309 피에로 디 코시모 180 피에로 로라나 106 피에로_알베르티 324 피에르 프랑카스텔 5 피에브 디 산타 마리아 성당 45

피에솔레 44 피에타 49 피에트로 로렌제티 53, 62 피카소 71, 111, 186, 219, 220, 238, 249, 298, 310, 319, 321, 325, 330, 348, 349, 352, 353, 356, 363, 378, 382, 384, 394 피카소 예술 45 피토에프 256 핀투리키오 64 필립포 리피 50, 64, 94, 162 E 하나의 질료 110 하루노부 288 하우저 408 학문의 역사 37 한쪽이 열린 입방체 66 할레비 246 할프박스 248 합리적 • 수학적 사고 123 합리적 시각 198 합리적 안간 142 합리적인 정체성 39 합리주의 416 합리주의자 141 해부학 325 햄릿 206 헵워드 350 행 동 266, 357, 358, 367 행동체계 119 행위 347, 349, 352, 361, 365, 371, 沈 5, '2ZI, 400, 402, 4(J 7, 411 허구적 공간 145

허르빈 354 헤겔 409 현대 관학파 62 현대 기하학 378 현대문화 364 현대미술 18, 28, 69, 88, 89, 103, 201, 208, 217, 220, 224, 231, 235, 236, 238, 240, 244, 246, 254, 260, 270, 288, 309, 310, 312, 321, 325, 3'2 7, 329, 330, 332-334, 340, 343, 344, 353, 359, 363, 365, 368, 374, 377, 380, 382, 390, 396, 407, 410 현대미술사 239, 311 현대미술의 원천 309 현대사회 244 현대성 313 현대식 풍경 400 현대심리학 416 현대예술 240, 258, 264, 300, 323, 410 현대 인류학 222 현대적 감성 292 현대적 공간 58, 294 현 대 적 사고 203, 303, 356 현대적 양식 356 현대적 전환 362 현대적 정신 345 현대적 투시 67 현대적 형상화 321, 345 현대적 형태 360 현대 조형언어 257 현 대 회 화 233, 235, 240, 343 현실적 비유 257 형상화 체계 19, 124 형식미의 표준 192 형이상학 416

형이상학적 불안 266, 267 형태사회학 411 형태와 장소, 15 세기 미술에서 시각적 질서 413 형태의 양식화 356 형태의 자발적이며 총체적인 시각 350 형태적 공간 416 형태적 기호체계 192 형태적 양식 346 형태적 현실, 미술사회학의 구조적 요소 413 형태 체계 411 호머 256 호쿠사이 235, 288 확장된 공간 112 환각적 감각 255 환각적 결합 388 환상적 시각 292, 315 환상적이며 상상적인 공간 분석 352 환상주의 337, 357 환영적 체계 197 환영적 현실 326

황금 률 67, 202, 325, 3?:/, 369 황금분할 ?:/9, 313, 314 황제시대 양식 5, 413 회화 112 회화 공간 68, 69 회화와 사회 413 회화적 가치 304 회화적 환영주의 104 횔덜린 252 후기 마니에리즘 254 후세 209 후즈롱 363 휘슬러 212 휘어진 352 휘 어 진 공간 344, 348, 365, 378, 393 휘어진 공간에 대한 경험 300 휘어진 선 395 흰 공간 348 휴버트 75, 223 흑인미술 236, 320, 356 흑인 예술 270, 321 힘의 영역 403

약력 소개 피에르 프랑카스텔 P i erre Francaste l (1900-1970) …… 지 은 이 프랑스의 미술사가 , 미 술 사회 학 자. 1900 파리에서 출 생. 파리 소르본 대학과 고등연구 실 습학교 E . P . H . E . 에서 문과 수학 . 1925- 19 30 베르사유 건축부에서 연구 1930 베르사유 조각에 관한 학위논문 발표 1948 뤼시앙 페브르가 창 설 한 고등연구 실습학교의 미술사회학과 초 대교수로 취임 1960 국제학술회의 〈폴란드 도시의 기원 〉 과 〈 앙리 4 세와 루 이 13 세 시대의 파리 도시계획 〉 을 제안하고 추진 저서 목록은 중세 건축에서 1940 년대의 에콜 드 파리에 걸 치 는 서양미술사 전체 를 포괄하고 있다. 『 베르사유 조각 』 (1 930) 『 인상주의 .!l (1937) 『황 제시대양 식 』 (1 939) 『 로마의 인본주의 』 (1942) 『 새로운 소묘, 새로운 회화 』 (1 942) 『 미술 과 사회 』 (1951) 『 프랑스 회화사 』 (1 955) 『 19 세기 20 세기의 미술과 기술 .!l (1956) 『 형태적 현실, 미술사회학의 구조적 요소 』 (1 965) 『 형태와 장소 , 15 세기 미술 에서 시각적 질서.!l(1 967) 안-바롱 옥성 …… 옮긴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 취 득 프랑스 국립파리대학교 제 3 대학 누벨-소르본 대학에서 『한국 18 세기 문인화 : 중국 문인화와 비교연구」로 박사학위 취득 프랑스 파리 국립아시아미술 기메 미술관 연구원 역임 국립파리대학교 제 3 대학 동양언어문화대학에서 강사 역임 현재 동대학의 한국문화연구소 연구원으로 있음 lre 韓tt r國es文 人en 畵 C 와o re中e, 國c文o人m p 畵 ar 』 每 s Qua e lqlau esC hc inaer a cte Lri'sat ri q t u ep icdt ue ralla dpee inltau reC odreese pre h ist o riqu e La natu re vue pa r les peintres -lett res coreens et chi no is La peinture de ge nre de Kisa n au Musee Gu ime t Les edifice s du monaste re s T'on gd o et qu elqu es particu lar ites de leur concept ion ar- chi tecturale et fon cti on nelle La repr esenta tion de !'ois e au dans la cultu re co 函 nne et son ico nog raphie La pla ce des relig ion s dans les cultu res du XIXe sie c le -La situ ation en Coree 둥의 다수 학술 논문이 있음.

마설각사회 대우학술총서 • 번역 122 1 판 1 쇄 펴 냄 1998 년 12 월 25 일 지은이 피에르 프랑카스텔 옮긴이 안-바롱 옥성 펴낸이 박맹호 펴낸곳 (주)던욥사 출판등록 1966. 5. 19 (제 1 6-4 90 호)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506 강남출판문화센터 5 층 515 - 2000( 대표전화) / 515-2007( 팩시밀리) © (주) 면방어 1998. 예술, 회화 /KDC 650 Prin t e d in Seoul, Korea 값 20,000 원 ISBN 89 -37 4-4 1 22-5 94650 ISBN 89 -37 4-3 000-2 (세 트)

대우학술총서번역) 1

1 유목민족제국사 관텐/송기중 46 그리스 국가 에렌버그/김진경 89 殷代貞 卜人物通考 Il 라오쫑이/손예철 2 수학의 확실성 클라인/박세회 47 거대한 변환 폴라니/박현수 90 殷代貞 卜人物通考 冊 라오쫑이/손예철 3 중세철학사 와안버그/강영계 48 법인류학 포스피실/이문옹 91 순수경제학 레옹 왈라스/심상필 4 日本語의 起源 밀러/김방한 49 언어철학 올스튼/곽강제 92 문화유물론 마빈 해리스/유명기 5 古代漢語音韻學槪要 50 중세 이슬람 국가와 정부론 93 포 유동물의 가축화 역사 칼그렌/최영애 램톤/김정위 줄리엣 클루톤브록/김준민 6 말과 사물 푸코/이 광래 51 전통 쉴즈/김병서 신현순 94 르네상스 철학에서의 개체와 우주 7 수리철학과 과학철학 와일/김상문 52 몽골문어문법 뽀뻬/유원수 E 카시러/박지형 8 기후와 진화 피어슨/김준민 53 중국신화전설 l 원가/전인초 김선자 95 화학적 진화 SF 메이슨/고문주 9 이성 진리 역사 파트남/검효명 54 중국신화전설 ll 원가/전인초김선자 96 과학의 한계 바이 츠제커 /송병옥 10 사회과학에서의 場理諭 55 사회생물학 1 윌슨/이병훈 박시룡 97 러시아 연해주와 발해 역사 레빈/박재호 56 사회생물학 ll 윌슨/이병훈 박시룡 예 훼 샤브꾸노프/송기호 • 정석배 11 영국의 산업혁명 57 일반언어학의 제문제 I 98 경제정책의 원리 딘/나경수 이정우 맨베니스트/황경자 발터 오아켄/안병직 황신준 12 현대과학철학논쟁 58 일반언어학의 제문제 ll 99 비코와 헤르더 쿤 外/조승옥 김동석 밴베니스트/황경자 이사야 벌린/이종홉 강성호 13 있음에서 됨으로 프리고진/이철수 59 폭력과 성스러움 100 실용주의의 결과 14 비교종교학 바하/김종서 지라르/김진식 박무호 리처드 로티/김동식 15 동물행동학 하인드/장현갑 60 갑골학 60 년 董作賓/이형구 101 국제 지층구분 지침서 16 현대우주론 시아마 /양종만 61 현대수학의 여행자 A 살바도르/백인성 17 시베리아의 샤머니즘 피터슨/김인수 주형관 102 국가론 헤르만 헬러/홍성방 디오세지 호팔/최길성 62 프랑스 혁명의 지적 기원 103 경험과 판단 후설/이종훈 18 조형미술의 형식 모르네/주명철 104 17 세기 프랑스 정치사상 힐데브란트/조창섭 63 해석학과 과학 앙리 쎄/나정원 19 힐버트 리드/이일해 커널리 코이트너/이유선 105 고대 노예제도와 모던 이데올로기 20 원시국가의 진화 하스/최 몽룡 64 서양고대경제 핀리/지동식 M I 핀리 / 송문현 21 商文明 張光直/윤내현 65 음악사회학 베버/이건용 106 里鄕見聞錄 22 마음의 생태학 베이즌/서석봉 66 앙띠 오이디푸스 유재건/실시학사 고전문학 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