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통 바슐라르 Gasto n Bachelard (1884-1962) 철학자, 인식론자, 과학철학 및 과학사 교수, 문학비평가, 시인 등 다 양한 면모의 활동으로 현대 프랑스 사상사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평가 받는 가스통 바슐라르는 프랑스 샹파뉴 지 방의 소옵 바르-쉬르-오브에 서 태어났다. 부모는 담배와 신문을 파는 작은 잡화가게를 경영했고 할 아버지는 제화공이었다 . 중등교육을 받은 고향에서 임시직으로 시작한 우체국 직원 생활을 파리에서도 계속하는 가운데(1 903-1913), 주당 60 시간의 근무를 하면서 이과대학 과정을 마쳐 수학 전공 이학사가 되었 다(1 912). 1 차대전 내내 최전방에서 복무하였으며, 그후 고향의 출신학 교에서 물리, 화학 교사로 일했다 . 당시 전세계를 강타한 일반상대성 이론의 영향 아래 철학에 깊이 경도되었으며, 학사원상을 수상한 논문 『 근사적 (近似的) 인식』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후 디종 대학의 철학 교수를 거쳐 소르본 대학에서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강의하였다. 프랑 스최고훈장을 받았으며, 국가문학대상을 수상했다.

현대물리학의 합리주의적 활동

L ' acti vi te r ati on alist e de la phy si q u e conte n ip o rain e

by Gasto n Bachelard Cop yrigh t © Presses Univ e rsita i r e s de France 1951 All righ ts reserved. Korean tran slati on Cop yrigh t © 1998 by Mi nu msa Publi sh in g Co., L td . 이 책의 한국어 판 저작권은 Presses Univ e rsit aire s de France 와 독점 계 약한 (주)던옵^t에 있습니댜

현대물리학의 합리주의적 활동

가스통 바슐라르 정계섭 옮김 미L°.i^i t

차례

머리말 : 과학철학의 임무 7

제1장 역사적 회귀. 인식론과 과학사. 역사적 발전에서 파동-입자의 변증법 33

제2장 운동과 철학자들 71

제3장 현대 과학에서 입자의 개념 105

제4장 기본 입자들의 다양성 125

제5장 에너지 합리주의 175

제6장 광전효과. 광자 203

제7장 스핀과 자기량 219

제8장 연산자 231

제9장 파동 역학의 직관 247

제10장 입자-파동의 이중성 255

결론: 합리적 결정론과 기술적 결정론 285

역자 해제·303

역자 후기·319

찾아보기·321

머리말 ――과학 철학의 임무 지금이야말로 세계를 이해해야 할 때이다 . Hen ri MICHAUX, 『 필치 』 I 과학적 사유의 현안들에 대하여 숙고하는 철학자는 갈림길에 서 있 댜 그의 숙고는 새롭게 태어난 철학 속에서 여러 과학들이 통합되는 데 기여할 것인가 또는 심화된 과학적 사유 속에서 철학이 통합되는 데 기여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이미 받아들여진, 그리고 때로 어떤 철학자나 학자들이 원하는 과학과 철학의 결별이 성취되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그러나 과학적 소양과 결부된 새로운 철학적 생에 노력 울 경주하기로 그가 결심하자마자, 그는 가장 모순되는 충고를 받게 된다. 기술자는 〈정확하라!〉고 말하고, 철학자는 〈시시콜콜한 세부 사항은 필요 없다〉고 말한다. 〈정확하고 엄격해야 한다!〉라고 수학자가 말하 면, 심리학자는 〈이 모든 수학을 일상 언어로 번역해 주시오〉라고 주 문한다. 평범한 경험주의자는 이들 분야의 어떤 것도 일상 생활에 아

무런 영향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 상대성 원리, 양자 역학 그 리고 파동 역학의 정수를 이해하게 해주시오 〉 라고 말한댜 철학 사가는 과학자들이 모든 형이상학적 주장을 자제한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고 〈현대의 과학 철학은 어떤 철학 학파에 관련시켜야 할까요? 〉 라고 묻 는댜 이렇게 모순되는 요구들에 부대껴서 과학 철학자는 사료 편찬자의 역할로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과학의 가치를 드러내고자 하고 과학과 더불어 사물의 본질을 파고들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기 원들을 찾고 기초로 돌아간다. 일반적인 주제를 정하고 그는 핵심을 말했다고 믿는다 . 이렇게 해서 조금씩 인식론의 공리 중에서 가장 고 질적인 공리가 과학 철학 속에 들어가는데 그 공리에 의하면 원초적인 것이 항상 근본적이라는 것이다 . ”

1) 메이에르송에 정면으로 대립하여 과학과 상식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바슐라르 의 〈인식론적 단절〉은 필연적으로 과학사에서 불연속을 함축한다. 만일 과학의 역사를 연속적인 과정으로 본다면 선구자들의 업적을 부각시키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선구자의 신화〉로 불리는 이러한 입장은, 현대 과학의 현상 또는 대상 이 직접적 소여가 아니며 사유된 대상은 지각된 대상의 단순한 추상화가 아니 라는 점에서 그리고 현상의 생성 이전에 그 현상은 결코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에 의해 이 책의 저자로부터 철저하게 논박당한다.

그러나 이 철학자가 현대 과학의 모든 교훈을 받아들이기를 원한다 면 그는 자주 이 인식론의 공리에 반대해야 할 것이다. 그는 경험의 역사성이라든가 합리적인 것의 역사성 자체에 대해 투쟁해야 할 것이 다 . 이제부터 지속적인 개혁의 활동이 과학적 사유에 작용한다. 과학 적 사유의 주된 실현은 새로운 토대의 탐구와 병행한다. 기저에 대한 상부의 반응이야말로 현대의 과학적 사유에 있어서 탁월한 철학적 성 격인 것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각기 수학 이론에 의해 형성된 기법

2) 비유클리드 기하학에서 평행선의 공리가 부정되고, 상대성 이론에서 시간과 공 간에 대한 뉴턴적 개념이 붕괴하고, 양자 역학에서 에너지가 연속적이 아니라는 사실 동이 그 대표적인 사례가 되겠다 .

속에서 주로 실현된 합리주의와 경험주의의 결합에서 나오는 새로운 철학적 성격에 대해 자주 되돌아올 것이다. 만일 누군가 그의 현재의 연구에서 이렇게 합리적이고 기술적(技 術 的)인 이중적 활동 속에서 과학적 사유를 진행한다면 그는 일종의 첨 단 현상학이 활동하는 것을 볼 터인데 이 현상학의 중요성은 후설의 순수성을 잃어버린 현대의 현상학에 의해 때로 간과되어 왔다. 현대의 현상학은 과학으로부터 행동과 사유-의 문제들을 떼어놓는데 얼마나 무사태평한가! 오늘날의 현상학은 합리적 의식의 특수성을 파악하려는 수고를 하 지 않는댜 이 현상학은 촌재하는 순간의 경험주의 속에서만 의식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의부 세계의 인식에 관한 현상학을 다루면서도 오늘날의 현상학은 마치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 것, 지각된 것, 나아가서 상상된 것에 우위 성을 부여하는데 이는 바로 이 현상학이 원초적인 것에 그리고 원초 적인 것의 인식론적 배양에 열중하기 때문이다. 이 현상학은 사유된 것, 숙고된 것 그리고 기술적인 것에 결코 접근 하지 않아서 흔히 지각 작용의 눈가리개를 묘사할 뿐 지각하는 도구 의 사용에 있어서 과학자의 핵심적인 전략을 묘사하지 않는다? 모든 현상학자는 도구적 의식을 조사하기를 거부히는대 우리는 이 의식에 대한 아주 분명한 예를 기술 분야에서나 연산자의 분야에서 보여줄 것이다. 실상, 합리적인 것과 경험적인 것의 변증법은 끊임없는 전복 을 야기하는데 이러한 전복은 처음에 조사한 서술을 무효화하고 처음 에 구성한 개념들을 불안정하게 한다. 현상학의 아주 유식한 순진성은 과학적 개념들을 정의하는 서두조차 우리에게 제시하지 못한다. 과학 3) 후설의 현상학은 현상에 관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며 어떤 새로운 현상 도 생산하지는 못한다. 나중에 나오게 될 〈현상 조작술〉은 이러한 현상학을 확 장한다 .

적 사고가 지식의 본질적 재구성이라는 이 임무를 의식하자마자 , 거기 에 원초적인 역사적 사실을 남기고자 하는 경향은 참으로 혼란처럼 느껴진다. 합리적인 자각은 따라서 분명히 새로운 의식으로서 자신의 지식을 판단하고 또한 경험주의의 원죄를 초월하려는 의식이다. 현상들의 최초의 역사에 대한 보류에 관해 우리가 말한 것은 상식 이라고 하는 이 항구적인 원초성에 대해서도 재연되어야 한다 . 상식이 란 시작을 위한 교육적, 잠정적 소여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의 학설은 이제부터는 주로 작업과 연마의 학설이며 인간과 사물의 상관적인 변 형에 관한 학설이다 . 객관적인 탐험에 몰두해서 우리는 이 책에서 실재에 관한 지식의 심화로부터 나오는 주체 쪽에서의 깊은 반응에 대해 강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도 합리적으로 새로운 인식이 그리고 끊임없이 합리성의 개혁과 확대를 요구하는 인식이 근본적인 심리적 변화를 결 정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보기에 하나의 개체 발생 on t o g en y이 주체 쪽에서 과학 지식의 객관적으로 창조적인 힘에 대응해야 한다? 자신의 합리적인 활동을 의식하는 주체의 구성 된 성격을 고려한다면, 과학적 사유의 정상 상태를 목표로 하는 학설 을 〈심리주의〉로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4) 개체 발생은 탄생에서부터 죽음까지 개체의 발달을 의미하며, 종의 형성이나 진화를 의미하는 계통 발생 ph y lo g en y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여기에서는 과학 지식에 대한 인식하는 주체의 체험을 심화해야 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II 그래서 연구자의 일반적인 성격에 대해 길게 상술하지 않으면서 우 리는 끊임없이 논의를 적용된 합리주의와 기술적 물질론이 결합된 중

심부로 귀결시켜야 할 것이다. 연구하는 정신과 연구되는 소재의 중심 부에 있기 위해서 정신의 천부적 명석성이라든가 감각 세계의 실재성 에 대한 커다란 철학적 전통들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의 과학 은 데카르트적인 의미에서 용의주도하게 인위적 6 ) 인 것이어서 하나의 테크닉을 만들기 위하여 자연과 절연하고, 그리하여 하나의 현실을 구 축하며 , 소재를 선별하고, 분산된 여러 힘에 하나의 목표를 부여한다. 구축, 정화 , 동적인 집중! 바로 이것이 인간의 작업이자 과학의 작업인 것이댜

5) 데카르트의 〈명석판명한〉 관념이나 콩트의 실증주의를 모두 비판하고 있다. 6) 과학 활동에서 인간의 역할을 역설하는 용어로써 저자의 인식론적 관접을 나 타낸다. 과학의 법칙은 플라톤주의자에게 있어서처럼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발 명되는 것이다.

정신의 편에서 보더라도 오랜 기간의 재구성과 재구축의 작업이 필 요하다. 모든 두뇌 노동자는 일에 착수하기 위해서 오랜 준비 기간을 필요로 한다. 그는 오늘의 과학 속에서 합리성의 의식으로서 자신을 만들어야 한다. 현대의 문제 의식에 접근하기 위해 그는 가르치는 합 리주의에 의해 부과된 문제들의 기나긴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과학의 상호 주관성은 과학 철학을 모든 개인적인 문제 의식으로부 터 벗어나게 한다. 여기에서 개체성은 인용 괄호 안에 넣어야 하는데 그것은 현대 철학에 특징적인 개인에 대한 속내 이야기에 지나지 않 는다. 과학적 소양에서 개별적인 채로 남아 있는 문제 의식은 정신 분석 의 영역에 속한다 . 연구자는 한가함이 제기하는 이런 이상한 문제들로 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는 변형의 존재로서 운명지어진 인간을 일탈시 키는 이런 무위를 끊임없이 고발해야 한다. 특히 사람들이 밖으로부터 과학의 가치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과학적 소양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오랜 세월에 걸쳐 갱신하고 수

정하는 심리적 변화의 경험을 이해할 것인가? 결국. 과학의 심리적인 가치가 일단 체험되면 이런 가치들은 〈사고 의 무위〉로부터 나오는 가짜 가치들을 고발하는 데 유용할 것이다. 한 가한 사고는 우연적이고 개인적이기 때문에 자유롭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사고는 생성을 거부하기 때문에 존재를 소유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서는 만사가 정열이며 니체가 나태를 〈수동적인 정열〉로 정의한 것은 당연하다. 요즘 과학이 변천하는 속도를 고려해 보건대, 19 세기 초의 자연 철 학7 1 의 허구성이 나타난다. 현대의 과학적 소양은 그런 자연 철학의 착 상을 거부하는데, 왜냐하면 이런 착상은 주로 개별적인 차원에 머무르 고 또한 상상적인 가치에 속하기 때문이다. 상상적 가치는 커다란 열 광적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고 중요한 미학 작품을 만들 수도 있겠지 만 과학적 객관성의 의무로부터 벗어난다. 과학적 소양은 고지식한 관 념주의의 가짜 지식이나 오직 사적 체험에 의해 각성된 정신의 모든 수월한 확신을 멀리한다. 여기에서도 정신은 인위성에 대해 겁내지 않 는다. 과학적 소양에서 이성은 자연의 빛에 의해 밝혀지는 것이 아니 댜 수학적 이성은 조명을 바꾸고 공리 체계를 바꾸며 더욱 교묘하게 기하학에 의해 대수를, 대수에 의해 기하학을 밝히는 등 간접 조명을 이용한다 .81 7) 자연을 경험적 사실이나 현상의 연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관념이나 상상에 의 해 통일적으로 파악하려는 철학. 8) 해석 기하학에서는(또는 데카르트 기하학)에서는 점이나 그 밖의 기하학적 구 조를 실수들의 집합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기하학의 문제를 대수적 언어로 번역 하는 일이 가능해지고 이렇게 방정식으로 표현된 문제를 대수적 계산에 의해 풀어서 그 결과를 다시 기하학의 언어로 번역하여 기하학적 관계를 조명한다 . 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적당한 보조선을 그어야 하는 동 기하학적 직관을 필요 로 하지만 해석 기하학의 기법을 사용하면 그런 직관이 없더라도 문제를 푸는 데 어려움이 없다.

우리가 잠시 은유 를 사용해서 철학을 한 것은 가장 인위적인 기술 t ec hniq ues 의 은유적 풍요함을 확인하면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기 때 문이다. 과학 정신은 자신의 작업 속에서 자신을 이해하고 용이하게 그의 작업의 언어를 구성한다. 인위성은 이처럼 사고와 실험의 동질적 인 세계 속에서 확립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위성은 현대의 과학적 사고에서 핵심적인 도구성과 대등 한 것이다 . 현대 과학에서 과학적 현상이란 도구를 작동시키는 그 순 간에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 9)

9) 과학적 도구란 〈물질화된 이론〉에 다름아니다 . 과학 활동의 핵심은 합리적 이 론과 이를 실현하는 실험적 연구를 통하여 추상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을 결합 하는 데에 있다 .

현상이란 도구의 현상이어서 조작의 동일성의 원리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하지 않아도 된다. 여기에서는 철학자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 나의 기구는 오늘도 어제와 동일한가?〉라는 질문을 제기조차 하지 않는다 . 기구에 관한 한 동일성의 원리는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10 ) 만 일 몇몇 외부 조건들이 어떤 장치의 기능을 방해한다면 사용 전에 거 기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선 장치를 정상 상태로 정비해야 한다. 도구들의 동일성의 원리는 모든 실험 과학의 진정한 동일성의 원리이다. 당연히 철학자들은 이 〈도구적 인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 면서 우리가 장치 뒤에 위치한 주체의 문제에 대해 너무 빨리 무관심 하게 되었다고 평가할 것이다. 그러나 현미경 뒤에 있는 눈은 전적으 로 도구주의를 수락했으며 눈은 그 자신 장치 뒤의 장치가 된 것이다.

10) 밀(J. S. M 비, 1806-1 얽 3) 이 말하는 〈자연의 제일성의 원리〉에 의하면, 외적인 상황에 변화가 없을 때 동일한 원인은 동일한 대상에 대하여 항상 동일한 결과 를 유발한다.

이런 말을 꼭 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이제부터 기술적 tec hn iqu e 관찰 철학의 한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각에 과학 철학의 기 능 중 하나는 과학적 사고의 모든 심급들을 분간하는 것이다. 도구의

동일성의 원리는 그 극단적인 평범성이 원리의 기능을 가려서는 안 된다. 그리고 양자 역학에서 우리가 관찰의 개념과, 〈관찰 가능한 observable 〉 II ) 이라는 말의 정의와, 연산자의 개념에 대해 성찰할 적에 우리는 여기에서 말한 이 단순한 조작의 동일성 원리의 놀라운 변화 들을 정리해야 할 것이다 .

11) 과학 법칙은 경험적 법칙과 이론적 법칙으로 나눌 수 있다 . 〈관찰 가능한〉이라 는 용어는 감각에 의한 직접 관찰이든 측정 장치에 의한 간접 관찰이든 아무튼 관찰될 수 있는 현상에 대해 쓰이며, 경험적 법칙이란 따라서 관찰할 수 있는 것에 관한 법칙들이다 .

m 과학적 사유의 상호 주관성에 뒤 이어서 어떻게 과학 철학이 과학 적 사유의 불가피한 사회적 성격을 무시할 수 있을 것인가? 정해진 하나의 과학적 사유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수라는 핵심적 사실 이야말로 시인이 말히는 바 〈단수 천인칭〉 1 2) 의 표현이며, 이 다수성이 야말로 이전 세대들에 의해 알려지지 않은 경험의 인위성 속에서 그 리고 전혀 새로운 진리의 독특성 속에서 뭉쳐진 한 세대의 학자들인 것이다 .13) 물리학의 사회적 성격은 이 학문의 분명한 발전에 의해 나타 나는 것 같다. 고립된 연구자는 그 혼자로서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 었을 것이라고 고백해야 한다 .1 4 1 물리학의 발전은 이 학문에 진정한 교 육의 역사를 부여하는데 이것의 사회적 성격은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 교육하는 합리주의와 교육되는 합리주의의 사회적 공동체는 과학 정

12) Henr i PICHETTE, Emmanuel LOOTEN 의 『물위의 다락방. !l (원주). 13) 객관성의 경험은 복수의 주관들의 일치에 준거한다는 뜻이다. 14) 현대 과학의 세 가지 특징인 합리성 ra ti on ality , 기술성techni c ity에 이어 사회적 성격을 말하고 있다.

신에게 규칙적인 성장의 동력을 그리고 문화력의 팽창에 의해 심리적 으로나 사회적으로 인정된 확실한 진보의 동력을 제공한다 . 인간은 주 저하지만 과학의 학교는 주저하지 않는다. 학교는 훈련을 시킨다. 과학 발전은 그의 임무와 그의 성장선을 강요한다. 여기에서 철학 적 유토피아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 관념론은 아무것도 제시하지 못한댜 그래서 변화하는 사회 사상 속에서 변화하는 학교에 다녀야 한다 .1 5 1

15) 바슐라르는 자신의 시대의 10 년은 지난 시대의 수세기의 가치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렇게 급속도로 진행되는 과학 문화에서 과학자는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학생의 위치에 있다. 반면에 철학자는 〈선생〉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과학적 사유의 진보를 결정하는 여러 가지 성격 중 그 어느 것도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현대 과학 서적의 극단적인 중요성을 언급 해야 한다. 문화적 힘은 책의 조직성과 일관성을 요구한다. 과학적 사 유는 활동하는 책이자 대담하면서도 신중한 책이며 새롭게 재구성된 개정판을 내려고 하는 책이어서 그야말로 성장중에 있는 사유 존재인 것이다. 누군가 현대의 과학적 소양에서 이 확고한 연속성을 잊는다면 그는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철학자는 현상과 실체에 대해서 말한다. 왜 그는 책의 존재인 책 자체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가? 만일 희의적인 철학자가 전자가 존재하느냐고 묻는다면 그에게 책의 논리 로 대답하는 것은 논의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다. 즉, 50 년간 전자에 대 해서 쓴 책의 숫자는 500 년간 달에 대해서 쓴 책의 수보다 더 많다. 책에 의해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존재이며 그것도 인간적인 너무나 인 간적인 존재인 것이다! 사람들은 헛되이 이렇게 반박할 것이다. 달은 20 억의 사람들에게 〈존재〉하고, 전자는 단지 수천의 깨우친 물리학자 에 대해서만 존재할 따름이라고. 바로 이 점에서 과학 철학을 세워야 할 필요가 생기는데 여기에서 실재의 여러 가치들에 대한 위계 질서 가 정해져야 할 것이다. 과학 철학은 과학주의와는 아주 다르다. 왜냐

하면 과학 철학은 획득된 결과에 만족하지 않고 합리적 가치들을 뒤 혼들고 재구성하는· 다양한 변증법의 철학적 가치나 또는 여러 실험 주제들의 철학적 가치에 관한 토의에 모험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노력에 의해서 자연은 기술을 자연에 각인하는 활동적 인간의 영향 아래에 놓이게 된다 .16) 하나의 기술을 중심으로 한 인간들의 결합 이 자연적 대상물 주위의 그것보다 더 강하다. 그런데 기술은 저절로 발견되는 것이 아니고 교육을 통해서 배워지며 도표에 의해서 전달되 는 것이다. 우리는 기호화된 객관적 가치 앞에 있는 것이다. 씌어진 과 학의 단계 그리고 인쇄된 사고의 단계는 과학의 발견에 따라 창조되는 과학의 특수한 언어에 과학적 사고의 결합을 잘 나타낸다. 잠시만 생 각해 보면 이 언어가 자연적이 아님을 알 것이다. 이 언어를 말하는 사고는 자연스런 사고가 아니다. 과학적 사유의 실체는 현상들의 변형 을 위한 사고의 도구들이며 정적인 물자체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것은 이론들의 체계에서 밝혀진다.

16) Karl M 墨 『독일의 이념』, MOUTOR 번역, 163 쪽 이하 참조(원주).

만일 인간이 자연 현상에 대한 그의 인상을 교환하는 데 그친다면 그는 자연인으로 남아 있으며 객관적일 수 없다. 그는 개별성을 자랑 으로 삼는 자연스런 인상들의 관념론적 단계에 머물러 있다. 현대 과 학은 반대로 불가결한 사회적 행위를 요청하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당 면한 논쟁의 한가운데에 서 있음으로써만 사회적 행위에 참여하기 때 문이다. 우리는 더 이상 〈시사성이 없는〉 과학을 생각하지 않는다. 너 무 먼 과거에 있으면 과학은 단지 박식일 따름이고 또한 너무 먼 미래 에 있으면 과학은 유토피아가 된다. ’ 그렇다고 해서 과학의 〈현상태〉를 결정하고 정리하기를 바란다면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상태라는 개념 역시 거의 낡은 개념이다. 오늘 날 과학은 너무 다양해서 더 이상 과학 전체를 설정할 수 없게 되었

댜 전문가는 다만 그가 연구하는 〈문제의 상태〉를 결정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댜 씌어진 과학이라는 특수한 양상 아래서도 우리의 지식은 중차대한 무질서 속에서 소개된다. 현대의 모든 연구자는 책과 연구 논문집 그리고 논문의 불량한 배포 때문에 곤란을 느낀다 . 상이한 전 공에 관련이 있는 모든 문헌을 찾기는 어려우며 가장 훌륭한 규모의 구조를 주는 교육을 받는 일도 쉽지 않다 . 과학 지식이 발달하면 할수 록 교육에서의 합리주의는 더욱 결핍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문학이나 역사처럼 구조가 반약한 분야에서는 문제가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다. 모든 교양인은 그 분야에 관한 거의 모든 책들을 읽을 수 있다. 철학 에서조차도 어려운 책이 시작으로서 접근될 수 있어야 한다. 철학의 모든 위대한 서적들은 본질에 있어서 기본적인 책들이다. 반대로 과학 책은 일정한 지식 수준에서만 제공되며 때로 기나긴 준비 없이는 읽 힐 수가 없다 . 과학책은 말하자면 책의 대로 상에서만 나타난다. 누군가 과학자들의 푸념을 듣는다면 그는 이런 말들의 너무도 당연 한 그러나 실질적인 성격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만약 예전의 상황과 현재의 상황을 비교한다면 이런 말은 우리 시대에 있어서 특징적인 것 으로 분명하게 나타날 것이다. 예컨대, 18 세기의 프랑스에서 뉴턴 역 학에 대한 상황을 조사하고자 한다면 당시의 상황을 나타내기 위해서 거의 완전한 책들의 목록에 의지하면서 적절한 역사적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그러나 스핀의 개념이나 중성자의 개념처럼 현대 물 리학의 한 개념에 대해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한 개념들은 지배적인 가치의 선정에 있어서 훌륭한 안내자도 없이 어설 프게 선정된 잣대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단계의 어려움 속에서 나타 난다. 그래서 책들의 질서는 새로운 인간적인 질서로서 나타나는데, 이 질 서는 18 세기 물리학에 수월한 대상을 제공한 자연의 질서보다 훨씬 더 미묘한 것이다. 자연의 질서라! 이는 과학의 유년기에 그리고 초보의

단계에서 나타나는 행복한 개념인 것이다. w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과학의 동화에 대한 어려움을 강조한 만 큼 이제 이론가나 실험가의 긴요한 결합을 보다 잘 부각시킬 준비가 되었다. 이 결합의 어려움은 대단해서 이를 극복하는 작업만으로도 문 화의 새로운 사실이 된다. 먼저 우리는 고립되지 않은 이론가가 나타 나는 것을 본다. 수많은 이론적 논문들이 자주 여러 명의 서명을 지니 고 있다. 1948 년 10 월에서 12 월까지 The Ph ys ia z l Rev i ew 에 70 편의 논 문이 실렸는데 그중 35 편이 단독으로 서명되어 있다. 22 편의 논문이 2 명의 저자에 의해 씌어졌고 8 편의 논문이 3 명의 저자에 의해서 그리 고 4 편의 논문이 4 명의 저자들에 의해 씌어졌다. 합리적인 발견에서 이러한 협력은 새로운 시대의 징후이다. 20 세기까지의 수학의 역사는 2 명의 저자가 쓴 논문에 관해 단 하나의 사례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대수롭지 않은 통계는 이론가들의 교류에 대한 충분 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몇 개의 플루토늄 원자를 만들어 그 원자의 미세한 핵에 어떤 입자를 쏘아서 태풍의 힘과도 비교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에너지롤 얻기 위한 하나의 특수한 기술이 도시 전체가 공장 인 그런 공장 도시를 필요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이론적인 준비가 도시 전체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 이 두 개의 사회, 즉 이론가의 집단과 기술자의 집단은 접촉하고 협 력하며 서로를 이해한다. 효과적인 상호 이해야말로 새로운 철학적 사 실로서 저절로 되는 게 아니다.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보다 정확 하게 실험을 다시 한다거나 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우리는 단호 하게 우리 시대의 과학에 밀착되어야 한다. 우선 책을, 많은 힘든 책들

울 읽어야 하고, 어려운 점들을 전망하면서 조금씩 자리를 잡아야 한 댜 과학 연구의 다른 축, 즉 기술 면에서는 팀을 이루어 도구들을 다 루어야 하는데 이 도구들은 역설적으로 섬세하면서도 강력하다. 정확 성과 힘의 이러한 집중은 현실 세계의 어떠한 자연적 필연성과도 관련 이 없다 . 현대 물리학에서 우리는 현상 제조소에 들어가기 위해 자연 을 떠났다. 합리적 객관성, 기술적 객관성 그리고 사회적 객관성은 이 제부터 긴밀하게 결합된 현대 과학 문화의 세 가지 특성이다. 이중에 서 단 하나만을 빠트려도 우리는 공상의 분야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 다 . 공상을 거부히는 과학 철학은 이 세 가지 특성을 종합하도록 노력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철학적 사유의 고유한 습관에 반하여 사회적, 역사적 성격, 즉 상호 주관적 성격의 중요성을 드러내는 임무는 아마 도 과학 철학에 속할 것이다. 과학 철학은 과학의 가치를 분명히 해야 하는 임무를 지니고 있다 . 과학 발전의 모든 단계를 통하여 과학 철학 은 과학의 가치에 대한 전통적인 논문을 다시 써야 한다. 문호肉 관심 을 심리적으로 연구하는 임무도, 과학에서 진정한 전문적 방향 설정의 요인들을 결정하는 임무도 과학 철학에 속한다 . 이 마지막 사항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다시 해야 한다. 왜냐하면 현 대 과학은 최초의 지식의 지배에 대해 심오한 개혁을 요구하고 최초 의 경험적 확신과 분명한 결별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자주 최초의 관심들에 대해 빗장을 지를 줄 알아야 한다. 그것들은 너무 빨 리 대가를 치른다. 과학적 방향 설정의 목표인 전문화는· 보다 멀고 보 다 복합적인 관심을 요구한다. 과학의 전문화는 이와 같이 철학적 문 제를 제기하는데 이에 대해 지금부터 우리의 입장을 밝히려고 한다.

V 과학적 사유의 전문화는 필연적으로 이 전문화를 결정하는 견고한 지식이 선행해야 하기 때문에, 전문화가 그렇게도 수월하고 지속적으 로 마치 사고의 훼손처럼 고발당한다는 사실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과학적 사고가 지금 우리가 평가하기에 알기 쉬운 보통의 수준에 있 었던 시대에서도 우리는 과학의 장래를 위협한디는- 똑같은 비난과 경 고를 전문화에 대해서 보게 된다. 100 년 좀 더 전에 괴테는 전문화에 대한 과학적 경향을 개탄하였는데 그는 일생을 물리 현상의 수학적 정보화에 반대하여 싸워왔다. 그러한 판단 속에서 괴테와 파뒤로 Jero me Patu rot 같은 사람의 만남은 다분히 암시 적 이지 않은가? 1843 년에 레이보 Lo ui s Ra y baud 는: 〈과학을 전문화의 방향으로 몰아가고 세부 사항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바람에 모든 것이 분해되는 일종 의 정수(精盤)에 도달하게 된다 . 화학에서 그리고 수학에서 우리가 그 와 같은 상태에 이르게 되었는지 나는 겁이 난다.〉 17 ) 소설과 같은 이 옛날 책에서는 〈전공에 제동이 걸린〉 학자에 반대하는 그리고 아산화 망간 MnO 과 아산화철 FeO 이 구조적 동형이고 과산화망간 Mn2 야이 과 산화철 F 학야과 구조적 동형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화학자에 반대하여 오늘날 보면 농담 같은 이야기가 수페이지에 걸쳐 쓰여 있다. 구조적 동형i somo rphi sm 은 파튀로의 홍미를 끌지 않으며 화학은 그롤 그토록 전문화된 문제에 속박시키기 때문에 그에게 〈사회적 지위〉를 주는 것 은 화학이 아니다. 철학적으로 재치 있다고 스스로 믿는 자는 과학적 가치의 판단에 있어서 어수룩하다. 그러한 판단들은 괴테와 같은 현세 의 대가가 했거나 레이보의 글에 나오는 평균적인 소시민이 했거나 17) Lou is RAYBAUD, 『사회적 지위를 찾아나선 제롬 파뒤로』, 1 距 8 년판, 264 쪽 (원주).

간에 그 무용성에 의해서 우리를 놀라게 한다. 과학은 조용히 자기의 갈길을갈뿐이댜 이 옛날 비판들의 반향에 더 이상 신경쓰지 말고, 일반 교양의 지지 자들과 그들이 가까이 하지 않는 분야에서 재판관이 될 수 있다고 믿 는 철학자들의 규탄을 이제 그만 검토하고 긍정적이고 실제적인 양상 에서 전문화의 문제를 다루어보자. 우선 분명한 사실이 있는데 과학적 사고의 전문화는 지식의 과거에 대해 아주 심오한 희귀성을 가지고 있어서 전문화는 일반적 사고의 모든 유효성을 되찾고 또한 유사한 전문화를 자극한다 .181 요컨대 전문 화는 보편성을 현실화하고 변증법들을 준비해서 보편성에 적합한 증 거와 구체적인 검증을 제공한다, 전문화는 인식론적으로 두번째 근사 치의 영역에 속하며 첫번째 근사치의 이익을 간직하지 못하는 2 차적 근사치의 예는 있을 수 없다.

18) 하나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과거의 〈완고한 오류들의 조직〉인 인식론적 장 애를 밝혀준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다른 곳에서 바슐라르는 과학자에게 긴장 감과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것은 다름아닌 전문화라고 역설하고 있다.

모든 연장은 아무리 간단하다 할지라도 최초의 필요에 너무 가까운 도구성을 수정한다. 하긴 지렛대의 작용을 하기 위해서 그리고 싼값으 로 힘의 의지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사람은 어떤 물체라도 쓸 수 있다. 그러나 철봉을 취하면 지렛대의 작용을 더 잘 실현할 수 있으며 이렇 게 해서 하나의 도구를 특수화한 것이다. 만약 도구가 없으면 보다 지 적으로 대용품을 찾으면 될 것이다, 결국 대체에 가장 개방된 것은 가장 전문화된 지식이다. 이 점을 납 득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세부 사항의 개선이 때로 제작 과정들을 개 조해야 하는 전문화된 기술과 사고의 변증법적인 발전을 지켜보면 된 다. 대체에 대한 이런 능력은 가장 중요한 가치의 서열에 매겨져야 한 다 .

전문화된 지식은 실패에 대해서 아주 민감한 따라서 수정의 요구가 가장 큰 지식이다. 인습은 고쳐지지 않고 일반적인 사고는 검증할 방 법을 찾기에는 너무 모호하다 . 일반적인 사고는 부동성의 이유가 되기 때문에 흔히 근본적인 것으로 통한다 . 이론적 사고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대수의 문제를 전문으로 한 사람은 당연히 일반적인 대수적 지식을 넓힌다 . 여기에서 전문화는 심오한 지식의 보층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기존의 지식뿐만 아니라 문제 의식을 소유하고 있는 미래룰 원하는 지식이다 . 전문화 없는 과 학 문화는 날이 무딘 가위와 같은 것이다. 과학적 전문화는 주관적 사고를 하나의 임무에 집착하게 하는데 이 러한 집착은 한 탐구 분야에서 학자의 단호한 참여 조건이 된다. 집착 과 참여의 이 변증법을 이해하지 못하면 전문화된 과학적 탐구의 혁 신적인 힘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 철학자들이 원하는 일반 교양이라 는 것은 대개 시작하는 지식에 머무를 뿐이다. 나아가서 정신의 경향을 절대적 가치로 삼아서는 안 되는 것이, 과 학 정신은 상관적으로 대상의 지위라는 미덕을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현상학자들을 읽노라면 〈사고는 언제나 무언가에 대한 사고〉라 는 반복되는 주제가 객관성의 주요한 방법을 정하기 위하여 충분한 것으로 믿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여기에서 적용성과 적용이라는 인식 론적 자매어가 작용한다. 산만한 사고가 인간의 사고를 특징짓지 못하 는 것은 변덕스런 사랑이 참된 사랑의 성격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천착 능력은 결국 신중한 정신을 사용할 수 있는 긍정적 특징인 것이다. 이 능력은 반박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방심을 거부한다. 주 체의 세계나 대상의 세계에 이중적으로 맞을 내리지 않는 한 사고는 유효성의 뿌리를 찾지 못할 것이다. 요컨대 과학 정신으로부터 벗어난 철학자는 객관적 참여의 모든 가치를 보지 못하는대 그것은 평범한 대상은 진실로 자기 구속 e ng a g emen t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미학

적 관심과 과학적 관심을 제외하면 대상은 덧없는 목표에 지나지 않 는다. 만일 대상이 기구라면 그것은 순간적인 유용성 속에서 겨냥된 다. 유용성의 세계는 모순투성이어서 바니니 V anini는 〈인간에게 아주 유용한 당나귀로부터 인류 복지의 적인 노새가 태어난다〉 1 9 ) 라고 말했 다. 미학적, 과학적 홍미를 제외하면 대상은 단조로운 세계의 존재일 뿐이다 . 과학적 사고와 더불어 대상 속에서 심오한 전망이 나타난다. 객관적 참여는 정확성의 척도에서 점점더 세련되는 일련의 근사치들 속에서 강화되는데, 이 근사치들은 동일 대상에 결부되어 있으면서 객 관적 지식의 서로 다른 수준으로서 차례차례 지시되는 것이다 .20) 정렬 된 객관적 수준들의 전망을 따르면서 정신은 교정의 규율에서 훈련된 다 . 점점 정신은 올바른 정신이 되는데 왜냐하면 이성의 올바름은 타 고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령 올바론 이성의 특권을 사용­ 한다 할지라도 그 이성을 적용할 기회를 갖는 것은 좋은 일이다 . 적용 이 어려울수록 연습은 더욱 유익한 것이다. 명백히 전문화를 겨냥하는 사고는 교정의 특징을 띠고 있다. 우리는 단번에 전문화된 연구에 자 리잡지 않는다. 그리고 철학자의 비판이 어떻든 간에 진짜 학자는 결 코 그의 전공에 안주하지 않는다. 그는 그의 전공에서 강한데, 말하자 면 그의 전공에서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기 위해 가장 준비가 잘된 사 람들 속에 있디는 것이다. 그의 지식은 그래서 지속적인 개혁의 역사 인 것이다.

19) 노새는 수나귀와 암말 사이에서 태어난 잡종으로 생식 능력이 없다. 20) 모든 인식은 근사적 인식이고 그래서 데카르트적인 명중적 인식은 없다. 바슐 라르에게 있어 새로운 인식은 또 하나의 오류의 축출이다.

인지심리학자의 견해에 의하면, 과학 지식은 부정할 수 없는 진보 유형들의 수집품으로 나타난다. 과학 사상의 분야에서 전문화는 진보 의 특수한 유형들이다. 그런 유형들을 회고한다는 것은 뚜렷한 진보에 대해 전망하는 것이다 . 과학은 그 다양한 전문화 속에서 우리에게 진

보를 가르친다. 만일 지성을 진보성의 핵심적 능력으로서 정의한다면, 과학 지식은 지적 수준을 알게 해주는 테스트에 의한 어떤 경험적 결 정보다 더 좋은 위치에 있다. 과학 지식은 줄곧 지적 필요성을 위해 진보의 목표를 제기한다. 전문화의 특징 중의 하나는 전문화가 학자 사회의 성공이라는 점이 다. 특정 개인은 그 자신의 연구에 의해서 전문화의 길을 찾을 수가 없다. 만일 그가 어떤 특수한 작업에 전념한다면 그는 그의 최초 습관 들 속에 뿌리를 내릴 것이고, 최초의 솜씨에 대한 자부심 속에서 살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도끼가 가장 좋은 도끼라고 우쭙대는 이 노동자처럼 말이다. 이런 노동자들은 단 한 가지 대상, 단 한 가지 도 구의 육체적인 주인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늙는다 그러나 손에 는 똑같은 곡괭이, 똑같은 망치, 똑같은 문법, 똑같은 시학을 지니고 있다.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에서 초보적인 것은 잘못된 전문화이댜 과학에서의 전문화는 이 원초적인 노예 상태의 정반대이다. 전문화는 정신에 온통 활력을 주고 끊임없이 작업의 첨단에서 활동한다. 요컨대 전문화는 과학적 활동의 정수에 대하여 니체가 부여하는 조 건을 만족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전문화 속에서 〈과학 활동의 지속과 연대성에 대한 신앙〉이 나타나고 그래서 〈아무리 보잘것없다 할지라 도 각자는 헛되이 일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자기 자리에서 일 한다〉. 니체에 의하면 유일한 중차대한 마비가 있는데 그것은 헛되게 일하는 것, 헛되게 투쟁하는 것이다 .21) 21) NIETZSCHE, 『힘의 의지』, BIANQ U IS 번역, 2 권, 299 장, 99 쪽(원주).

VI 그러나 가장 일반적인 철학적 토대에 대하여 가장 큰 정신의 자유 를 발견하는 곳은 때로 가장 추상적이고 뛰어난 탐구에 종사하는 학 자들에게서이다. 그래서 어떤 구체적인 과학적 사실의 철학적 해석은 실재론에 뉘앙스를 띠게 하고 합리주의를 증가시킨다 . 이제부터 학자 는 합리성과 마찬가지로 객관성과도 관계가 있는 섬세함에 있어서의 거장이다. 하이틀러 Re itl er 는 그의 훌륭한 저서의 1 장 말미에 다음과 같이 주석을 달았다. 만일 독자가 철학자라면 파동의 장( 場 , #함수)이 〈객관적 실재〉 의 일부를 이루는지 또는 다만 경험의 결과~ 예측하기 위해 유익한 인간 정신의 창조물인지 자신을 위해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 물론 이러한 예측은 〈 객관적 사실〉과 항상 일치한다 . 221

22) W. BEITLER , 『 파동역학원론 』 , s.w 血 -BRUNSCHVICG 번역, 14 쪽(원주).

저자는 이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에 관해서 독자에게 영향을 미 치고자 하지 않는다 . 그는 다만 객관적 실재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 을 먼저 해명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 물론 문제는 막중하다 . 그런데 물리학자들은 형이상학자들이 〈객관 적 실재〉의 정의에 대해 상술하는 것보다 더 빨리 원자를 정의할 것 이다 . 그러나 만일 형이상학자들이 객관성의 특수하게 과학적인 뿌리 룰 검토하고자 한다면 객관성은 섬세한 지식 속에서 결정된다는 사실 울 알아차릴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합리적으로 제약된 실재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제부터 모든 과학적 실재는 합리성의 대로 상에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는 기꺼이 현대의 과학 사상은 이식된 실재론Z!)

23) 〈과학적 실재〉는 감각 세계가 가르쳐주는 것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이 를 넘 어서야 한다는 의미에서 쓰인 용어이다.

에 몰두한다고 말하고자 한다. 명백한 현실에 대한 처음의 표지 를 간 직하고자 하는 소박한 실재론적 철 학자의 객관적 실재에 일련의 탈현 실호遷 겪게 해야 하는데 이는 언제나 부분적이고 신중한 탈현실화로 서 어떤 관념론적 철 학자들을 유혹하는 실재의 유령화에 까지는 결코 가지 않는다 . 과학적으로 탈현실화는 현실과 어떤 관련을 지니고 있 다 . 위에서 말한 이식은 휘묻이에 의해서 수행된다. 그런데 바로 여기 에 객관성의 새로운 뿌리가 있댜 그 뿌리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 만지지 못하는 곳에, 이성조차 경험의 저편으로 설정하는 영역 속에 있으니 원자 물리학이 바로 그것이다 . 여기에서 현대 물리학은 철학의 한 가지 소심함을 극복하는 것으로 보인다 . 왜냐하면, 형이상학의 위상 속에서 원자물리학에 〈 물자체 〉 의 기능과 위치를 부여하지 않고 어찌 달리 원자 물리학을 분류할 수 있 울 것인가? 현대 철학은 물론 물자체라는 개념에서 형이상학적인 모 순을 고발할 경우 이의에는 더 이상 그 개념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 그것은 소여(所 與 )의 부정 속에서 소여를 확립하는 개념으로서 비논리 의 괴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유.는 논리주의의 장벽에도 불구하고 제 갈 길을 간다. 원자 물리학의 구성은 본질적 noumenal 이며 원자 물리 학은 합리성의 한 분야이다 . 원자는 한 뭉치의 근거인 것이다 언 합리 적인 원자 물리학은 파울리의 원리와 같은 그 자체의 고유한 구성 원 리들을 가지고 있다. 파울리의 원리는 상식적인 현상들에게서는 나타 나지 않지만 온통 한 영역의 화학적 현상들을 합리화한다.

24) 원자 가설은 화학에서 경험적 명제 전체를 조직하고 구조화한다는 의미에서.

따라서 원자 물리학은 지적 인식의 대상으로서의 본질 noumenon 이 라는 긍정적인 개념과 물자체라는 부정적인 개념을 종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 25 )

25) 과학이 현상으로서 생산하고 실현시키는 것은 바로 본질이다. 이제 〈물자체〉는 칸트에게서처럼 형이상학적 가정이 아니며, 미시 물리학에서 다루는 주제는 현 상적 특성이 아니라 본질적 특성이다.

이제부터 과학 사상에 필요불가결한 소립자 철학을 취급할 적에 우 리는 소립자가 합리적 구성의 분위기에서 소개되는 것을 볼 터인데 이는 소립자 자체에 대한 모든 질문을 멈추게 할 것이다. 소립자는 무 한소의 관점에서 하나의 긍정적인 〈결정〉이다. 이로부터 과학은 큰 혜 택을 받는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파스칼이 한 것처럼 인간이 두 개 의 무한 사이에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루이 드 브로이는 이 새로운 철 학적 사실을 강조했다. 우리는 앞으로 이 사실의 모든 철학적 중요성 올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 이제부터 우리는 객관성의 확장과 객관성의 견고함을 동시에 알아볼 수 있다. 대상이란 개념은 원자 물리학에 의 해 전복된 것으로 보인다.첵

26) 현대 과학의 대상들은 이론적 사고를 실현함으로써 과학자가 만든 것이다, 우 리는 여기에서 감각적 인식과 과학적 인식의 단절을 볼 수 있다. 현대 물리학의 대상은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으며 합리적 객관성의 기나긴 여로의 끝에서만 구성되는 것이다.

맨 결론적으로, 만일 우리가 현대의 과학 문화를 빨리 특징짓는다면 그 것은 아주 단단하게 조직되었고 동시에 아주· 정확하게 전문화되었다 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엄청난 통합력과 극단적인 변화의 자유 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우리는 수월하게 이런 이율 배반적 인 특징들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사고에 들어가게 되면, 끊임없이 이론에서 경험으로 그리고 다시 경험에서 근본적인 원 리들의 구성으로 가는 섬세한 변증법에 의하여 과학지식은 생기를 띠

게 된다는 사실을 파악할 것이다. 'll)

'l7) 여기에서 말하는 변증법은 과학 활동의 현실, 죽 이론 특히 수학적 이론과 전 문 기술에 의한 실험의 상호 조화 과정을 가리킨다. 만일 이들 사이에 어떤 불 일치가 발생했을 적에 살아 있는 과학은 가설을 수정하고 새로운 이론을 정식 화하는 한편 ,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실험 방향을 강구하면서 실험을 더욱 정 교화할 것이다.

이처럼 유동적인 변층법을 따라 가노라면 과학에 대한 어떤 철 학적 진단들의 조야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통상의 형이상학적 인 자격 부여는 재고되어야 한다. 물리학지를- 합리주의자나 경험주의 자로 지칭하는 일반적인 분류는 중요한 자격의 특징들을 주는 것이 아니다 . 과학 정신은 최초의 철학을 괄호치는 데에 있다. 원리적인 사 고로서, 실험적 활동으로서 과학 활동과 관계되는 철학은 미묘한 차이 를 고려해야 하고 따라서 유동적이어야 한다. 만일 철학자가 우리 시대의 과학 사상을 검토할 특수한 임무를 맡 는다면 이 일은 지식의 일반적 가치들에 대한 하나의 확고한 태도이 어야 한다. 이 일을 잘 해내기 위해서는 관찰을 구체적인 테마에 집중 시키고 현대 과학의 어려움의 본질에 파고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성찰에 연속성을 주기 위해서 어떤 방향의 예들을 선정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우리는 파동 역학의 기원이 되는 역학의 확장을 보여주면서 경험의 조직에서 상이한 역학 원리에 의해 제기된 문제들에 대해 우리의 주의를 집중할 것이다 . 그러나 우리는 철학자의 겸손한 임무에 머물고자 하기 때문에 우리 의 독자에게 현대 과학에 대해 가르쳐준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학자들이 몸소 그들의 어려운 이론과 테크닉을 발표한 탁월한 저서에 우리의 독자를 보내고자 한다.

VIII 지금부터 현대 물리학의 진보에 관한 철학적 진단이 되는 주요 테 마를 소개하겠다 . 우선 우리는 개개의 과학적 성공에서 어떻게 과학이 그 역사적 전 망을 정립하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광학의 가정들에 대한 문제에서 조차도 우리는 오늘날에까지도 여전히 비옥한 하나의 역사적 변증법 을 파악했다고 믿는댜 이론들의 체계에 대한 우리의 조사가 도식적이 긴 하지만 이러한 조사는 체계적 정신의 변증법적 의미를 분명히 드 러낼 것으로 믿는다. 2 장에서, 초기에는 결정적인 단순성과 명료성을 가진 것으로 여겨 져 왔던 역학의 점진적인 복잡화 현상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 두 개의 장은 진정으로 효율적이 되기 위해서는 두 권의 책으로 전개되어야 했을 것이댜 그러나 서둘러야 하고, 과학 철학은 이제까 지 너무 서문에서 우물쭈물하는 것으로 만족해 왔다 . 철학자가 경솔하 지 않다면 누가 경솔하겠는가 !28)

28) 1 장은 광학의 역사를 관통해야 하고, 2 장은 역학의 법위를 대폭 확장하는 장이 기 때문에 사고의 전개 과정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 저자는 이 접에 대해 독 자들의 양해를 구하고 있다.

다음으로 소립자 개념에 대한 긴 철학적 사색이 따르는데, 이 개념 은 고전 철학에서 결코 선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로서는 기본 입자들이 함축하는 철학적 성격의 새로움을 증명하기 위해 현대 물리 학에 나오는 근본적인 기본 입자들을 점검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벌써 부터 하나의 논거가 결정적으로 보인다: 서로 상이한 기본 입자들(전 자, 양성자, 광자, 중성자, 중성미자 등)을 고려해 볼 적에 우리는 죽시 이들이 동일한 존재론적 지위를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기본 입자들이 상호간에 그토록 심하게 다르다고 할진대 어찌 이들이

원자라고 하는 예전의 모델과 다르지 않겠는가? 다음 장에서 우리는 현대 과학에서 에너지의 개념이 하는 근본적인 역할을 보이고자 했다. 19 세기 과학의 에너지론에 대해서도 추가적으 로 완성해야 할 인식론적 운동이 여기에 있다 . 실상, 원초적인 개념으 로서의 에너지 개념으로부터 출발하는 이론에 접근해야 한다. 여러 가 지 면에서 순수한 동역학이 모든 존재론을 능가함을 여기에서 알 수 있다. 과학으로 하여금 그의 원리들을 재조직하도록 강요하는 구체적인 문제들에 보다 깊게 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잠깐 광전 현상을 검토했 는데 이 현상은 빛의 영역에서조차도 입자적 직관에 되돌아와야 할 필요성을 제고했다. 하나의 짧은 장이 스핀과 자기량 ma gn e t on 의 개념에 할애될 것이다. 다른 어떤 개념보다도 더 분명하게 스핀의 개념은 고전 과학에 대해 절대적 단절로서 드러나는 표지로 쓰일 수 있을 것이다 . 전혀 새로운 이러한 개념들과 연관해서 우리는 역시 새로운 개념인 연산자들의 구성을 살펴보는 하나의 짧은 장을 썼다. 연산자들의 대수 alg ebra 는 측정 개념에 대해 완전한 개혁을 요청한다. 연산자 대수는 측정의 철학 죽 전통적으로 실재론에 뿌리를 내린 철학의 전복을 야 기한다. 이제까지 특히 입자 철학의 수준에서 연구를 해왔기에 파동적 이미 지를 소개하고 이로부터 파동적 직관에 의한 연구를 보여주는 간단한 장을 쓰는 것이 유익하게 여겨졌다. 이러한 교육적 고려를 거쳐 저 유명한 파동과 입자의 대립을 검토 하였다. 이점에 대해서는 빨리 지나갈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이 문제는 파동 역학의 창시자들인 거장의 손으로 검토되었기 때문이다. 플라마 리옹 Flamm ari on 출판사의 〈과학 철학 총서〉나 알벵 미셸 Alb in Mich el 출판사의

들을 참조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우리는 단지 논의를 통상적으로 철학자들을 몰두시키는 문제의 중 심에 두려고 시도했고, 특히 파동 역학의 종합적 성격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동적인 종합이 과학의 문턱에 있는 철학이 기대하는 안이한 통일성이라는 이상과는 얼마나 차이가 나는가! 이것이 우리가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인상이다. 일련의 시도로 보 이는 이 책을 우리는 과학적 결정론에 대한 간결한 검토로 끝맺었다. 여기에서도 새로운 이론의 발달은 더 이상 일반적 방식에 만족할 수 없는 〈섬세의 정신〉 29) 을 일깨운댜 오직 깨어 있는 철학만이 과학적 원 리들의 심오한 변화를 따라갈 수 있는 것이다. 29) 파스칼은 대상의 단일성과 전체성을 즉각적으로 파악하는 감성을 〈섬세의 정 신〉이라 하고 기호의 도움에 의해 단계적으로 수행하는 추론적 사고를 〈기하학 적 정신〉이라 명명했다.

제 1 장 역사적 회귀. 인식론과 과학사. 역사적 발전에서 파동一 입자의 변증법 역사적 관점에서 가장 오래된 지식이 나중에 발 견된 사실의 이해에 반드시 토대로 남아 있을 필요는 없다.I)

1) 일반적으로 받아들어진 과학 이론들까지도 새롭고도 포괄적인 조화를 향한 도 약을 위해서 희생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참된 과학의 삶이란 끊임없는 자기 쇄 신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MACH , 『역학 』 I 이 책에서 우리의 목표가 현대 물리학이 전혀 새로운 경험적 수준 에서 재편성되기 위한 합리주의의 노력을 특히 연구하는 데에 있으므 로, 우리의 철학적 관찰을 새로운 역학에 집중시킬 것이다. 독자는 명 확한 문제들이 일반적인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될 것이다. 오 늘날 철학적 가치들은 부차적 근사값으로서 밝혀지는데 바로 최초 양 상의 일반성이 그 불충분함을 드러낼 때 그러하다. 종합은 실재의 세 부 사항에 대해서 그리고 경험의 섬세한 모순에 대해서 날카로운 주 의를 요구한다. 우리가 이론적 종합과 실험적 정확성의 노력에서 과학 을 지켜본다면 우리는 활동하는 합리주의의 지역에 있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파동 역학은 모든 시대의 가장 광범위한 과학적 종합 중 의 하나로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참으로 역사적 종합이다. 파동 역학 은 실상 수세기의 지식의 결합을 함의하는 지식의 종합인 것이다. 드 브로이가 지적한 것처람 오늘날의 많은 과학적 관념들은 만일 인간의 정신이 거기에 도달 하기 위해 따라온 길이 다른 길이었다면 현재의 관념과는 · 달랐을 것 이다 .2 )

2) Lou is de BROGLIE, 『물리학과 미시물리학』, 9 쪽(원주).

이 한마디의 말이 과학적 객관성의 모든 문제를 제기하는데, 왜냐하 면 이 말은 과학의 객관성을 인간의 역사와 당대인의 관심이 만나는 곳에 위치시키기 때문이다 . 따라서 철학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과학 활동에서 사상들의 역사적 통합은 과학 사상의 어떤 수준에서 수행되는가? 객 관성을 추구하는 과학 활동이 백지 상태 tab la rasa 로부터 출발하라는 규칙을 자신에게 부여할 수 있는가? 어쨌든, 파동· 역학에 있어서 우리 는 즉각적인 경험에 입각한 교육, 죽 직접적인 교육 방법을 생각할 수 없다 . 그러한 학설에 대한 교육은 필연적으로 지식의 변형에 관한 훈 련이다. 정신은 스스로 변화하면서 배울 수 있을 뿐이다 . 파동· 역학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 모든 범위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그리고 이 새로 운 학설에 함축된 경험의 합리적 재구성에 대한 가치를 평가하기 위 해서는 긴 역사적 서문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역설이 있으니 만일 이러한 종합이 역사적으로 준비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또는 역사를 구체화하기 위해 역사학자들이 혼 히 쓰는 표현대로 이 발견의 〈기미가 보였다〉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중차대한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 실상, 드 브로이가 뉴턴의 과학에도 그리고 프레넬의 과학에도 속하지 않는 입자들의 행태를 연구하기 위 하여 뉴턴의 어떤 가정들을 프레넬의 가정과 결합시키는 새로운 과학 을 제안했을 때, 프레넬의 물리 광학은 뉴턴의 물리 광학을 완전히 대 치했다. 과학적 종합은 변형시키는 종합이라는 점을 이보다 더 잘 보여 준 것은 없다. 이러한 결합이나 종합 이전에 아인슈타인은 광전 현상 을 관찰하기 위해서 다음에 광자라고 불리운 복사의 양자를 정의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입자설과 파동설의 종합은 보편성 속 에서 고려되지 않았다. 어떤 역사적 이유도 과학을 그러한 종합에의 길로 밀어 넣지 않았다. 다만 일종의 가설들의 마학에 대한 열망이 드 브로이에 의해 정초된 역학을 특징짓는 사고의 이중적인 전망을 트게 할 수 있었다. 문제의 방향을 바꾸고 논의를 확장한 것은 파동의 주제 를 빛뿐만 아니라 물질에까지도 적용한 바로 그 사실이었다 .3)

3) 물질파의 개념에 대해서는 10 장의 각주 9) 를 참고할 것.

이러한 확장은 엄청나서 전통적인 철학을 완화시키지 않고는 제대 로 음미할 수 없는 것이다 . 파동 역학의 수학적 전개에 있어서, 그리고 처음 보아 서로 다른 실험적 현상들을 연결시키는데 있어서 사용된 여러 종합적 과정들을 연구할 때 전통적인 철학적 관점들의 불충분함 을 점진적으로 확신하게 된다. 광범위한 종합을 위한 그러한 방법들은 ―현실적인 가치, 형식적인 가치, 합리적 가치 나아가서 새로운 과학 의 미학적 가치들을 분류하는 틀을 제공하는 하나의 다원적 철학 없 이는_철학적으로 검토될 수 없는 것이다. 누군가 우리 시대 과학 혁명의 인식론적인 기능을 명확히 하고자 한다면 새 과학 정신의 영감 속에서 배워야 한다. 예컨대, 빛의 회절이 있는 것처럼 전자 회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자마자 빛의 회절 에 관한 주제는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실상, 순수하게

파동적인 광자의 과학 즉 , 새로운 스타일로서 광자의 파동역학은 전자 의 파동 역학보다 늦었다 . 빛에 관한 드 브로이의 최근의 연구가 바로 이 역사적 모순을 해소하고자 한다. 그래서 광자로 인하여 입자설이 된 예전 스타일의 빛의 파동설은 새로운 스타일의 파동설이 되기 위 해 보다 노력을 해야 한다 . 현대 과학은 다시 틀 지어진 실험의 영역이며, 다시 생각된 사고의 영역이라는 사실을 잘 이해할 것이다. 폴켈트 Volkel t와 더불어 마하가 말한것처럼 처음에 덜 한정된 개념들은 지식의 되먹임에 의하여 〈소급적 강 화〉를 받아야 한다 . 4)

4) MACH , 『역학.!I, 번역판, 480 쪽(원주).

그러나 새로운 과학의 어려움 자체가 이 과학들의 심리적 혁신을 말해 준다. 이 새로운 과학 철학은 심리적 장애라는 개념을 긍정적인 인식론적 한정의 개념으로 생각할 적에 변할 것이다. 결국 상대론적 역학, 양자 역학, 파동 역학 등 현대의 역학들은 조상이 없는 과학들이 다? 아마 우리의 자손은 우리 층조부들의 과학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거기에서 비활동적인 사고 또는 교육 개혁의 구 실로서만 가치를 지니는 사싱들의 박물관들을 보게 될 것이다. 이미

5) 메이에르송은 현대 과학의 이론들과 이를 선행하는 이론들 사이에는 연속성이 존재한다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그에 의하면, 상대성 이론은 이미 l 的 7 년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에 그 싹이 나타나고 있으며 따라서 뉴턴으로부터 아 인슈타인을 연역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슐라르는 이에 정면으로 대립하여, 뉴 턴 체계와 아인슈타인 체계 사이에는 아무런 이행기도 없으며 , 상대성 이론은 동시성이나 질량 그리고 속도 둥 뉴턴 역학의 원초적인 개념을 의문에 부침으 로서 태어났다고 주장하면서 이는 과학자에게 전적으로 새로운 노력을 요구한 다고강조한다.

원자핵폭탄은 과학사의 커다란 한 분야를 갱신했 는 데 핵물리학자의 정신 속에는 전통적인 원자론에 대한 근본적인 개념의 흔적이 더 이 상 없기 때문이다. 원자핵을 핵에너지의 동력학 내에서 생각해야지 그 구성 요소의 배열에 관한 거하학 속에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과학은 과거에 유사한 과학이 없기 때문에 현대 과학의 발전에 있어 역사적 단절의 특히 분명한 예를 보여준다 . 그러나 그 혁명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정규적인 역사적 발전에 대 한 단절성에도 불구하고, 파동 역학과 같은 학설은 하나의 역사적 종 합이다. 왜냐하면 뉴턴적 사고나 프레넬적 사고와 같이 잘 수행된 사 고 속에서 두 번 멈춘 역사가 새로운 출발을 하고 과학 사상에서 새로 운 미학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 현대적 관점은 그래서 과학사에 대한 새로운 시야――과학 문화예 서 과학사의 시사적 효율성의 문제를 제기하는 시야――를 결정한다. 실상, 오류와 진리, 무기력한 것과 활동적인 것, 해로운 것과 생산적인 것을 분간해야 하는 역사 즉, 판결된 역사의 활동을 보여주는 것이 문 제이다. 일반적으로 이해된 역사는 더 이상 순수한 역사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과학사에서는 이해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또한 판단해야 한다. 다른 어디에서보다 이 점에서 니체의 말은 참되다: 〈 과거가 해석되는 것은 현재의 가장 큰 힘에 의해서일 뿐이다〉? 제국 과 국민의 역사는 사실에 대한 객관적 이야기롤 이상으로 삼고 있다.

6) NIETZSCHE, 『비현대적인 고찰』. 역사연구의 좋고 나쁜 점, ALBERT 번역, 193 쪽(원주) .

이런 역사는 역사가에게 판단하지 말라고 요구하며 만일 그가 과거 시대의 가치의 결정에 그 자신의 시대의 가치를 강요한다면 사람들은 당연히 그가 〈진보의 신화〉를 따라간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여기에 분명한 차이가 있으니 과학 사상에 관해서는 진보는

증명될 수 있으며 그 증명은 과학 문화의 발달을 위해 불가피한 교육 적 요소를 이룬다 . 달리 말하자면 진보는 과학 문화의 추진력 자체이 며 과학사가 써야 할 것은 이러한 추진력이다. 과학사는 판단하면서, 가치를 부여하면서, 잘못된 개념으로의 모든 회귀 가능성을 배제하면 서 기술해야 한다 . 과학사는 진보를 드러내기 위한 것으로서만 과거의 오류에 대해 강조할 수 있다. 이때에 우리는 인식론적 장애와 인식론적 활동의 변증법을 만나게 된다 우리는 그전의 책에서 인식론적 장애의 개념에 대해 오래도록 연구하였다.” 거기에 대립하는 인식론적 활동의 개념은 과학의 발달에서 예기치 않은 충격을 가져오는 과학적 천재의 격동기에 해당한다 . 그러므로 과학사상의 역사에는 긍정적인 것과 부 정적인 것이 있다. 부정적인 것의 편을 든 학자가 과학의 시민권을 박 탈당할 때 양자의 차이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의 논리에서 사는 데 그치는 사람은 역사가에 불과할 뿐이다. 현대 과학 의 관점에서 부정적인 것은 지식에 관한 정신 분석에 속하는 것으로 서 다시 나타나려고 할 때마다 막아야 한다. 반대로 과거에 긍정적이 었던 것은 현대적 사고 속에서 아직도 활동한다. 과거의 이러한 긍정 적인 유산은 일종의 현실적인 과거를 구성하는데 그 활동은 현재에도 명백하게 이어진다. 따라서 과학 人玲떼 고유한 역사적 변증법의 중요 성을 이해해야 한다.

7) 『과학정신의 형성』, Vri n, 1947( 원주) .

결국, 현실적으로 활동하는 과학에 의해 승인된 역사와 폐기된 역사 의 변증법을 중단없이 구성하고 재구성해야 한다 .8 ) 플로지스톤 설의 역사는 이 이론이 근본적인 오류 즉, 계량 과학에 모순되기 때문에 무

8) 과학은 급격한 변화나 토대가 되는 원리들의 재구성 동 변증법적 양상을 통해 진보하기 대문에 과학사는 그 자체가 변증법적이다 . 그래서 과학사는 이른바 위 기의 시대를 주목해야 하는데 이는 페기된 원리들 속에서 인식론적 장애를 발 견하기 때문이다 .

효인 것이댜 9) 인식론자는 다만 객관적 지식에 대한 정신 분석의 동기 를 거기에서 발견하기 때문에 홍미를 느낄 뿐이다. 그 이론에 홍미를 느끼는 과학사가는 자신이 일종의 고대 생물학 분야에서 일하고 있음 을 알아야 한다. 우리 시대의 과학 교육에 대해 그 가설이 영향력을 가질 수는 없다.

9) 연소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에는 타는 물질 속에 불의 근원이 되는 무언가 공통적인 원소가 있지 않을까 추측하고 이 원소룰 플로지스톤 Phl ogi sto n 이라 했다 . 그런데 나트륨이나 마그네슘 둥의 금속이 탄 뒤에 금속재 를 남기는데 이 금속재는 원래의 금속보다 무거워진다, 라부아지에는, 연소란 물질이 공기 중의 산소와 화합해서 발생되는 것으로 파악하여 플로지스톤설을 부정하고 연소 이 론을 확립하였다 .

플로지스톤설과는 반대로 열소( 熱素 )에 대한 블랙 Black 의 작업과 같은 다른 연구들은 비록 수정할 요소가 없지는 않으나 비열의 결정 에 관해 긍정적인 실험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그런데 비열의 개념은 언제나 과학적인 개념이다. 블랙의 연구는 따라서 승인된 역사의 기본 원리로서 기술될 수 있을 것이다 . 이론적으로 그것을 배우고, 인식론 적으로 밝히고, 합리화된 개념들의 총체에 그것의 편입을 추적하는 것 은 바람직한 일이다. 역사 철학, 인식론 철학 그리고 합리적인 철학은 여기에서 하나의 다원론적 철학의 여러 뉘앙스가 분포되어 있는 스펙 트럼 분석의 동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10) 교과서적인 진리에 관하여 〈 언제나〉라고 쓰는 어느 합리주의 철학 자의 독단에 대해 독지는 · 아마도 미소지으리라. 그러나 과학 문화에는 너무도 필수적인 개념들이 있어서 그 개념들을 버리는 데 이르리라고 는 상상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 개념들은 더 이상 우발적이거나 관례적인 것이 아니다. 그 개념들은 아마도 모호한 역사적 분위기 속

10) 『부정의 철학 』 (43 쪽)에서 바슐라르는 질량의 개념을 분석하면서, 소박한 합리 주의 , 실증적 경험주의, 이론 역학의 고전적 합리주의, 상대성 이론으로 대표되 는 완벽한 합리주의, 변중법적 합리주의 둥의 철학적 스펙트럼을 제시하고 있 다.

에서 형성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주~ 적확하고 명백하게 기능적인 개 념이 되어서 이제 더 이상 유식한 회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기껏해 야 그 개념들은 과학에 관한 일반적인 회의주의에 노출되어 있는데, 과학적 개념들의 추상성에 대해 노상 빈정대는 그 희의주의 말이다. 이런 수월한 풍자는 하나의 문화를 파괴될 수 없는 개념들에 결부시 키는 합리주의의 선서, 〈언제나〉 적확한 인식론적인 가치를 확인하는 선서를 손상시키지 않는다 . 이성은 성실해서 사상의 미래를 구속하는 개념 즉, 미래의 담보가 되는 개념들을 분명히 알아본다. 인정받은 개 념들에 관한 연속성의 철학은 따라서 합리적인 것이 점진적으로 우발 적인 것을 지배하는 역사적 연관의 문제 앞에 있다. II 그래서 현대의 확실성에서 출발하여 과거에서 진리의 점진적인 형 태들을 발견하는 역사, 현재의 목적에 의해 규명하는 역사, 요컨대 회 귀하는 역사 l” 를 구성할 교육적 필요가 생기는 것이댜 이처럼 과학 사 상은 진보의 이야기 속에서 견고해진다. 회귀의 역사는 당대의 과학책 에서 역사적 서문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너무 단축되고 중간 단 11) 과학사가 일반적인 역사와 다른 점은 바로 이 회귀성 recurrence 때문이다 . 과 학사는 폐기된 원리들 속에서 인식론적 장애를 보게 되고 회귀의 역사에 의해 개념들은 재구성된다. 〈질량〉 개념의 변천을 상기하면 〈회귀의 역사〉를 더욱 분 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인식론의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 첫번째는 매이에르송의 입장으로서 원 자론과 역학의 초기형태에서 점진적으로 오늘날의 형태로 돌아오는 방법인데 그렇게 되면 현대 과학은 이미 오랜 역사를 지닌 개념들에 따라서 검토되어야 한다. 바슐라르가 주장하는 두번째 입장은, 현대의 원자론과 역학 내부에 단호 하게 서서 전통 과학의 전제들에 대해 회고적 시선을 던지는 것이다.

계를 잊어서 회귀의 역사는 문화의 특징적인 입문 과정에 대해 충분 한 교육을 준비하지 못한다. 물론 이 회귀의 역사, 판정된 역사, 인정 받은 역사는 전과학적인 사고 방식을 복원할 수도 없고 원하지도 않 는다. 이 역사는 과학 사상의 과거가 비합리주의에 반대하여 쌓아 올 린 방벽의 힘을 자각하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만들어진다. 비오J ean­ Bapt iste B i o t는 『프랑스 혁명의 과학사 논고』에서 이렇게 말한다: 〈백 과 사전은 인간정신이 퇴보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방벽이었다〉 . 이 말에 는 합리주의적 인간의 일종의 인권 선언이 들어 있다. 과학사는 이제 모든 역사 중에서 가장 비가역적인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진실을 발 견하면서 과학자는 비합리적인 것을 차단한다. 비합리주의는 다른 곳 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금지된 길이 있다. 과학사 는 비합리주의의 패배의 역사이다 그러나 투쟁은 결코 끝나지 않았고, 각 세대의 과학자가 합리주의를 점검하고 과학사에 대한 종합 평가를 하는 것이 필요하게 보인다. 때 로 폐기된 역사와 과학에 통합된 역사간의 변증법은 매우 미묘하다 . 그럴 때의 변증법은 철학적으로 아주 교훈적이다. 예를 들어 리히트마 이어 Ri ch trny er 의 훌륭한 책 1 2) 은 그가 〈맥스웰의 업적은 물리학사 histo r y of p h y s i cs 의 일부분이라기보다는 현대 물리학의 넋을 빼는 이 야기 fas cin a ti ng s tory의 필요불가결한 일부로서 연구되어야 한다〉라고 말할 적에 철학적 면모를 바꾼다.

12) F. K RICHTMYER , 『현대물리학입문』, London, 1934( 원주).

s to ry과 h i s to ry라는 자매어는 여기에서 특별히 단호한 대조 속에서 나타난다. 과학의 이야기, 죽 이성의 목적성을 지닌, 진리의 목적성을 지닌, 기술적 실현의 목적성을 지닌 역사, 바로 이것이 학자를 〈매료〉 시키는 점이다. 이야기는 역사보다 훨씬 더 큰 홍미를 제공한다. 이야 기는 박식함의 단순한 가치를 능가하는 엄청난 교육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 과학사학자들은 자주 이런 가치들의 결정에 적대적이다. 그러나 말 은 하지 않지만 그들은 과학 활동에 고유한 인간적 가치 부여에 대하 여 논의한다. 실상 그들은 천재의 투쟁을 잊지 않고 묘사한다 . 천재의 투쟁은 보통 정신적 행복과 사회적 불행이라는 단순한 변증법 속에서 분석된다 . 과학사가들이 유달리 좋아하는 이 위대한 전기에 의하면 천 재는 사회적으로 실패하고 지적으로 성공한다 . 그리고 미래는 그가 옳 다고 인정한다. 그는 자신을 위해 번영을 지니고 있고, 천재의 가치는 과학자 사회의 전유물이 된다 이런 가치부여식의 이야기는 과학사의 모든 페이지에서 나타난다. 결국 과학들의 역사자체에 이 근본적인 가치 부여의 성격을 명심하 는 것이 근거 있는 일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 과학적 진리는 본질적 으로 미래를 가진 진리이다. rn 더욱이 물리학의 수학화에 관한 진보를 따라가자마자 가치 부여의 새로운 동기가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는 파동 역학의 지배적 인 철학적 양상들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강조해야 마땅하다. 실상 물리 과학에 통합되는 수학과 더불어 경험의 설명과 조직에서 필연성이 나타난다 .13 ) 원리와 결과를 연결하는 수학적 연쇄의 가치는 13) 과학 철학에서 명제는 실연적 (ass erti ve, 質然的) 판단과 필연적 a podi c ti c 판단 으로 구분한다. 전자는 주어와 술어의 관계가 경험적으로 성립함을 나타내는 〈 A 는 B 이다〉라는 형식의 판단이며, 후자는 〈 A 는 반드시 B 이어야 한다〉는 형식 을 취하는 판단으로 수학이나 논리학의 명제가 여기에 속한다. 학자에 따라서 〈확연적〉이나 〈필당연적〉이라고도 말한다. 바슐라르에 의하면, 진리들은 필연적 으로 연결되는데 반하여 오류들은 실연적으로 축적된다.

원인과 결과를 연결하는 연쇄의 가치에 추가된다. 물리적 원인과 수학 적 결과가 그들의 연쇄 가치들을 교환한다 .14 ) 철학의 이 오래된 테마들 의 일치에서 단지 말뿐인 통일성의 선언을 보아서는 안 된다 . 양자 화 학이 반(半)경험적인 공식을 쓰는 것은 사실이다. 사람들은 실험적 결 과를 , 계산하기에 아주 어려운 적분의 해답처럼 암시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처럼 적분은 실험적으로 해결된다 . 그에 대한 증거를 글라 스톤 Glas to ne 의 〈공명에너지의 실험적 결정〉 15) 이라고 제목이 붙은 단 락을 읽으면 보게 될 것이다.

14) 수학적 결정론은 결과에 의해 수립되고, 물리학적 결정론은 원인에 의해 수립 된다는 점에서 양자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원인은 수학적 용어로서 정의 될 수 없는 것이다. 부연해서 설명하자면, 물리학은 실험을 통하여 질문을 제기 하고 원리에서 출발하는 수학은 간단한 법칙, 죽 수학적 결과를 설정하여 이를 15) 다S시am u물el리 G학L적A S결ST과O로N E번, 역『이한론다화는학』 ,의 미Ne에w서 Y이o다rk., 1945, 1 '57쪽(원주).

그러나 증거들은 연마된 합리주의와 개선된 기술 사이의 중간 심급 에서 많이 나타난다 . 여기에서 우리는 새로운 계산기의 경이적인 기술을 환기할 수도 있 겠댜 그러나 이 기계론적인 단계를 강조하지 않더라도, 과학은 합리 적 이론과 이에 결부되는 기술적 실험의 타협 지대에 머무르면서 적 용된 합리주의의 점점더 강해지는 연결에 의해서 성립한다는 사실을 보게 될 것이다 . 그래서 사람들은 검증된 진리에서 증명된 증거로 간 다. 점진적인 수학화의 지배적인 추진력 속에서 과학사는 이처럼 확인 되고 배가되고 조정된 하나의 진리인 것이다. 조금씩 수리 물리학과 이론 물리학은 하나의 통일된 학설로 구성되고 물리학의 가정들은 수 학적으로 표현된다. 과학적 가설은 이제부터 수학적 형태로부터 분리 할 수 없으며 진정으로 수학적 사고인 것이다. 현대 물리학에서 순수 수학은 예상 외의 응용 사례들을 발견한다는 사실을 지 적 해야 한다. 르장드르 Leg en dre, 라플라스 Lapl a ce, 라게르

La gu erre 의 다항식 이 한 세기 또는 반세기 사이에 수소 원자나 좀더 복잡한 원자들의 에너지 준위의 연구에 개입한다는 사실, 이것이야말 로 합리주의적인 가치 부여의 활동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 경험주의자 는 이러한 예상외의 응용에 대해서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는 수학이 단순히 표현의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물리학의 법칙과 수 학 법칙의 종합은 훨씬 더 긴밀하다는 것을 우리는 보여야 한다 . 수학 속에서 단지 언어만을 보고자 하는 회의적 철학자들에게 소중한 이 상 투어를 버려야 한다 .16 ) 수학은 사고 활동이며 자신의 언어를 확신하는 사고 활동이다. 물리학지는 이러한 수학적 사고를 가지고 경험을 생각 한다. 원자의 서로 다른 에너지 준위를 말하는 물리학자가 해밀토니안 H amiltoni an1 7 ) 이나 에너지의 수학적 표현에 의거하지 않는다는 것은 생 각할 수 없다. 그래서 새로운 역학의 모든 철학적 진술은 수학적 합리 주의에 대한 지속적인 참조를 요구한댜 1 8) 이에 대한 이론적 준비 없이 실험적 결과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종합 철학의 가장 중요한 교훈을 16) 뷔퐁 B uff on 은 수학은 하나의 언어일 따름이며 그것도 순전히 관습적인 언어 일 뿐이라고 특기한 바 있다. 그 이래 수학은 표현할 뿐 설명하지 않는다는 하 나의 인식론적 입장이 천명되어왔다 . 『 과학정신의 형성 』 (231 쪽)에서 바슐라르는 이러한 입장을 비판하면서 수학적 사고는 물리학적 설명의 토대 를 구성함을 역 설한다. 그에게 있어서의 수학의 본질은 무엇보다도 추동력, 말하자면 발명의 힘에 있다 . 그래서 현미경이 미생물학을 창조한 것처럼 수학은 현대물리학을 창 조했다. 그러나 언어학자의 언어가 아니라 보다 일반적인 언어 이론, 죽 기호 이론이 확립된다면 뷔퐁의 주장은 진실의 일면을 담고 있지 않을까? 우리는 언 제나 임의의 기호를 써서 미지의 사실을 표상할 수 있기에. 17) 힘의 장 속에 움직이는 하나의 입자가 있다고 가정할 때, 이 계의 에너지(운동 에너지 + 위치 에너지)를 운동량 성분과 위치 성분으로 니누어 쓴 표현을 이 계의 해밀토니안 또는 해밀턴 함수라고 부른다. 18) 미시 세계에서 우리는 수학적으로 사고할 수밖에 없다 . 거기에서는 대상들이 현실성을 가지지 않고 다만 관계성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성을 취급 하는 순수한 사고의 양상은 수학적으로만 표현된다. . 이 러한 사실은 실재에 대한 직관의 한계를 의미하는 동시에 소박한 실재론에서처럼 직관에 의해 이루어진 결정론의 한계를 의미한다 .

빗나가는 것이댜 다른 한편, 이때에 수학적 실재론을 본받으려는 철학은 경험주의 철 학과 마찬가지로 부적절할 것이다 . 물리학에 대해서 Le g endre 의 다항 식은 지식을 조직하는 구조일 뿐이다. 추상적-구체적 사고의 분기점에 즉, 대수가 경험을 조직하는 곳에 자리를 잡고서 다항식의 인식론적 기능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 현상들을 형태와 구조에 의해 구체적으로 생각할 적에, 순수한 기하학적 정수의 세계, 감각 경험이 넘겨주는 불 완전한 구조로부터 성찰에 의해 명확해지는 플라톤적인 이데아의 세 계를 상정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현대 과학의 실험적 결정축은 플라 톤적 실재론에 의해 가정된 방향을 따르지 않는다. 실존주의의 용어로 말하자면 대수학적 기획은 실재에 기재된 목적을 추구하지 않는다. 경 험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추상적 계획을 사용할 때에는 추상적인 의식을 유지해야 한다. 달리 말해서, 추상적 사고는 구체적 존재의 묘 서를 위해서 제거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현대 물리학은 따라서 추상­ 구상의 불가분리의 결합이다 . 19) 물리학은 존재론을 겨냥하지 않으며 차라리 개체 발생을 실현한다. 우리 의견으로는 물리학을 개체 발생적 인식론으로서, 활동하는 적용된 합리주의로서 특징지어야 한다.

19) 물리학은 수학적 이론이 실험에 의해 구체화되는 두 개의 축을 지니고 있다 . 그래서 수학과 실험 사이에는 첨예한 긴장이 유지되고 있으며 종합에 의해 추 상-구체의 개념쌍을 실현한다.

그래서 물리학의 역사가 분산하는 진정한 초점을 찾기 위해서 우리 는 최초의 수학화가 진행된 지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수학이라 는 어린 가지롤 경험이라는 야생목에 접목한 위대한 역사적 순간을 다시 살아날 수 있게 한다면, 그 순간은 우리에게 일종의 호기심의 변 증법을 넘겨줄 것이다 . 실상 주의깊게 검토되어야 할 현상으로 우리를 이끄는 경험적 호기심 옆에 합리적 호기심이 자리를 잡는데 이는 현 상의 여러 면모들을 연결하는 수학적 관계들에 관심을 갖는 호기심이

다. 드랑브르 Delambre 가 쓴 것처 럼. 빛, 중력 그리고 물체의 운동이나 충돌에 관한 것은 모두 오늘날 거의 유일하게 기하학적 영역이다 .201

20) DELAMBRE, 『 1789 년 이 래 수학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보고』, Pa ris, 1810, ?.84쪽(원주).

이어서 그는 쿨롱 Coulomb 의 과학이 야기한 놀라움을 말한다. 자기와 전기 현상들까지도 계산에 맡기려는 시도까지 했다. 전기와 자기에 대한 엄청난 전과학적 문헌에 정통한 독자만이 전기 와 자기라는 자연 현상에 관하여 수학적 정보가 실현한 분산의 힘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때 그는 명석함에 대한 호기심, 현상들을 핵심적인 본질로 환원하 는 호기심, 기술적 실험과 수학의 법칙에 의한 자기 현상들 간의 관계 설정에 대한 호기심을 알게 될 것이다. 쿨롱의 〈천칭〉과 쿨롱의 법칙 은 전기 과학의 새로운 시대를 예고한다. 복잡한 현상들에 있어 꼭 필 요한 이 갑작스런 대수학적 엄격성은 과학 문화에 맞지 않는 사람들 을가로막는다. 그러나 그것은 과학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이득이 되는 것이다. 그 수학적 발전에 있어서 전자기 현상은 물리적 경험의 기하학적 구조화 에 대해 보다 복잡하고 따라서 보다 홍미로운 수많은 사례들을 주었 는데 이 기하학화는 드랑브르를 놀라게 했던 최초의 기하학적 정보와 같은 유형의 것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한 가지의 국지적인 합리주의 ,2 1) 현상의 특수한

21) 하나의 개별 과학, 예컨대 전기 과학을 그 국지성에서 확립한다는 것은 이 과

학의 법칙에 자율적인 필연적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직접 확립하는 것이다. 또 한, 제 과학의 국지성을 인정한다는 말은 인간 지성을 특징짓는 유일한 합리성 의 체계는 없다는 말이며 , 아울러 학문적 쇼비니즘을 경계하는 의미이기도 하 다.

한 가지 범주에 머물러야 하는 고로 우리는 지금부터 빛의 이론에 대 한 수학화의 발전을 따라가고자 한다. w 교육을 받은 세기에서 광학을 구성하려는 노력을 추적할 때에 우리 는 문제의 정확한 결정을 방해하는 장애물의 존재에 놀라게 된다. 이 인식론적 장애물은 빛을 물질적 실체로 생각하는 소박한 실재론으로부 터 온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과부하가 걸린 현상학으로 현상들의 연구를 시작한다 . 그들은 원인을 결정하기 위해서 결과들의 가능한 완 벽한 합으로부터 출발하기를 원하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식물에 대한 빛의 효과는 설명해야 할 효과 중에 서 제 1 열에 위치한다. 사람들은 식물의 색깔, 꽃의 색깔이 빛의 직접적 인 생산이라고 생각한다. 빛의 활동에 의하여 식물은 맛과 냄새와 심 지어 〈가연성〉까지도 얻게 된다. 햇볕이 잘 드는 지방의 과일은 일반 적으로 〈보다 향내나고, 보다 맛있고, 보다 수지(樹脂)가 많지 않던 가?〉 수지는 타면서 흡수한 빛을 내놓는 하나의 광물질인 것이다 .22) 마 케 Mac q uer 로서는 〈식물의 기름〉을 생산하는 것은 빛이다 .23) 드라메트 리 De La Me th e ri e 는 불과 빛과 공기의 원리들 사이에서 〈끊임없는 변 량들〉을 상정한다. 한 세기 앞서 뉴턴 자신은 이렇게 쓰고 있다.

22) 우리는 여기에서도 실체론적 장애인 물질적 흡수의 이미지를 보게 된다. 23) 우리의 논문: 『빛과 물질』, <형이상학과 윤리학지>, 1934 년 7 월, 343-366 쪽 참조(원주).

물체의 빛으로의 변화와 빛의 물체로의 변화는 변화를 좋아하는 자연의 흐름에 아 ~F 적합한 것이다 . 빛의 성질을 물체적 성질로 동화하는· 일이 기계적 이유일 때조차 반드시 실체적 혼동으로부터 벗어난 것은 아니다. 그래서 푸르크루아 Fourcro y는 빛이 물체의 근방을 통과하면서 바껴나간다고 말한다. 거 기에서 그는 하늘과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처럼 중력에 따르는 빛의 물질적 성질을 주장하기 위한 논지를 찾아낸다 . 18 세기말에는 중력과 화학적 친화력이 동일한 성질로 인식되었으므로, 빛이 〈화학적 인 력〉안)에 의해 회절 현상을 만든다는 사실을 입증한다고 그는 결론을 맺는다.

24) FOURCROY, 『자연사와 화학원론』, 프랑스공화력 2 년, 1 권 , 112 쪽(원주).

이처럼 실체 subs tan ce 의 개념을 다양한 성질들의 집합으로 보든가 혹은 모든 물체에 영향을 미치는 인력처럼 그 개념을 근본적인 성질 의 뿌리로 보면서 사람들은 화학과 광학의 영역들 사이에 경계를 정 하지 못한다 . 이어서 하나의 과학이 태어날 터인데 화학 반응에 대한 빛의 -보다 일반적으로 방사의 -작용을 연구하는 광화학이 그것 이다. 그러나 이 분야는 실체의 과학이라기보다는 에너지의 과학이다. 바로 광화학의 실증적인 역사는 사람들이 빛의 실체성에 대해 한 모 든 이야기를 낡은 역사로 기각한다. 이 단순한 기회에 우리는 진짜 철학적 불순물과 대면해 있다. 실체 론, 실재론, 물질론 바로 이러한 것들이 마께와 푸르크루아를 분리하 는 짧은 사이에서 사고의 진화를 철학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분명히 해야 할 여러 가지 뉘앙스들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것들이 빛의 현상 에 대한 철학적 접근의 가능성들을 전부 고찰하는 것은 아니다 . 빛은 광입자가 존재하는 하나의 물질이라고 말함으로써 광현상에 관한 객

관적인 연구의 축을 발견한 것은 아니다. 객관성은 그렇게 서두르는 철학적 선언에 의해 만족될 수 없다. 이제부터 과학적 객관성은 최종 적임을 우리는 확신해야 한다. 그것은 과학적 탐구의 가장 진화된 부 분에서 성립된다. 빛의 물질적 현상에 부여된 실재론은 이 현상들의 추론적인 연구에 관한 다양한 사고의 뉘앙스를 가리운다. 에밀 메이에 르송 E mil e Me y erson 이 광입자에 관한 뉴턴의 이론을 실체론적 직관 에 의한 설명으로 치부할 적에 그는 광입자의 정성적 양상을 과장한 다 : 〈 뉴턴의 광입자와 베리가르 B erig ard 의 정성적 원자들의 유사성은 마찬가지로 명백하다〉 흐 이러한 대조는 전적으로 옳지는 않은데, 뉴턴 광학에서 입자의 결정은 우리가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몇몇 엉뚱 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말하자면 표면적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입자 들 자체보다는 오히려 입자들의 행태를 연구하면서 입자의 행태를 입 자가 외부 환경과 맺는 관계에 의해 특징짓는다. 〈고리〉 현상을 설명 하기 위해서 뉴턴이 발작 가설 , 261 죽 차례로 용이한 전파 발작과 용이한 반사 발작을 제안했을 적에 〈발작〉이라는 단어는 나쁜 기분의 발작이 라는 의미로 강조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그 발작의 계기(織起)는 파 동의 상의 계기와 비교되어야 할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뉴턴의 고리는 간섭 현상이다끄 우리는 다음에 그것을 참조할 터인데 뉴턴의 고리는 파동 이론에 의해 완벽하게 설명될 것이다 . 지금으로서는 뉴턴 의 입자설의 파동적 설명으로의 경향을 알리고 〈발작〉과 같이 특수한 25) Em ile MEYERSON, 『동일성과 실재성.!I , 380 쪽(원주). 26) 광선은 임의의 면에 충돌할 때 매질 속에 진동을 일으키는데 이 진동은 매질 속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전파된다. 광선과 같은 운동을 하는 진동 속에 있을 때 광선은 쉽게 굴절하며, 반대로 광선의 운동을 저지하는 진동 속에 있을 때 광선은 쉽게 반사된다. 업) 렌즈를 평평한 판에 대고 누르면 이른바 〈뉴턴의 고리〉라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때 생긴 고리들의 색조가 사이에 있는 충의 두께를 계산하게 해준다 . 두께가 가장 작은 중앙에는 검은 점이 생기는데 그것은 아직 실질적인 접촉은 아니다.

말의 지나치게 친밀하고 노골적인 해석을 경계해야 한다. 이 기회에 물리학에서 비유적 표현이 풍부한 언어의 사용에 대하여 한마디 하는 것이 좋겠다 . 예를 들어 전자의 〈지유- 의지〉에 자주 결부 된 철학적 표현에 대해서 유사한 관찰을 할 수 있다. 여기서의 문제는 입자의 행태에 어떤 개연성을 남기는 것이다 . 그렇게 되면 물리학자는 심리적 이미지에 의존하는· 것이다. 어떤 형이상학자들은 거기에 걸려 들어서 심리주의를 전자의 본질적인 심리로 만들 정도로 무리를 한다! 물론 물리학자가 그것을 원한 것은 아니고 그는 다만 확률론을 편안 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무원인을 조금 과장하고 싶었을 뿐이다. 어 쨌든지 간에 뉴턴의 발작 이론과 보어 Bohr 나 디 랙 Dir ac 같은 사 람들의 〈입자의 자유 의지〉 이론은 합리주의 자체의 그늘 속에서 발 전한다 . 이러한 그늘 속에 아직도 비과학적인 문제들, 적확하지 못한 문제들이 있다. 이러한 지역에서 배우고자 하는 철학은 논지를 독단적 으로 경화시켜서는 안 되며 자신의 체계를 위해서 여러가지 차이룰 지니고 있는 것을 너무 빨리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과학은 이처럼 끊 임없이 철학적 섬세의 정신을 획득하기 위한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우리는 현대 과학에 의해 고려되고 있는 다양한 유형의 입 자들은 고유하게 말해서 실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다 분명하게 제시 해야 한다. 따라서 입자설과 파동설의 역사적 변증법에서 실재론적인 뉘앙스를 과장해서는 안 된다 . 현대 과학에 의해 논의되는 ·빛은 파동 이든 입자든 빛의 속도로 전파하다라는 동사의 주어 이외에 다른 아무 것도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실상 빛의 속도로 전파되는 모든 에너지는 일반호문 빛의 에너지 또는 인접된 용어에 따르면 복사 에너 지에 해당된다. 전파 운동의 동체 mob i le 에 우리가 추가해야 할 원리적 성질들은 많지 않다. 도중에 역사적인 고찰을 하면서 광학의 회귀적 역사에 대한 하나의 윤곽을 줄 수 있도록 우리는 이들을 검토할 것 이다.

V 광물질에 대한 소박한 실재론에 더 이상 구애받지 말고 근대에 와 서 빛의 전달 이론에 관한 변증법적 양상들을 상기해 보자. 데카르트의 이론은 특수하다 . 그 이론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순간적 인 전달을 가정한다. 빛의 현상은 충격의 이치에 속한다. 광현상은 마 치 공간이 완벽한 고체인 것처럼 공간을 통하여 전달된다. 데카르트는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 특수한 실체적 성질의 불가해한 성질을 설명하지 않는다. 데카르트로서는 빛은 하나의 실체가 아니다 . 반사와 굴절의 단순한 법칙에 근거하여 데카르트는 빛의 순수한 기하 학으로서 반사 광학과 굴절 광학을 세운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학설은 오늘날 물리 광학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 해서 가치 있는 주제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한편 덴마크의 천문학자 뢰머 Roemer 는 1676 년에 목성의 위성의 식의 주기에서 빛이 목성에서 지구까지 주파하는 데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전달은 아무리 빠르다 할지라도 순간적이지 않다 . 데카르트 우주론의 커다란 부분이 이 단순한 사실에 의해 실추된다. 뢰머의 시대 이래로 . 빛의 속도는 일종의 우주 상수가 되었다. 이 수는 우리에게 별 우주의 엄청남을 생각할 수 있도록 한다 . 우주 차원에서 그것은 추상적-구체 적 측정의 명료한 사례이다. 우리는 광년, 즉 빛이 일 년간 통과한 거 리에 의해 계산되는 거리를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없다 . 그러나 상상 을 불허하는 차원에 수개념을 도입한다는 사실에 의하여 우리는 추상 적으로 그 거리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 데카르트는 태양계의 소용돌 이 이외의 다른 소용돌이의 크기를 결정할 수 있는 아무런 가능성을 갖지 못한 채, 그의 하늘을 태양의 소용돌이와 유사한 소용돌이로 채 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우주의 크기에 대한 문제에 아무런 지식도 없 었다 . 우리는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역설을 건드리는 바 말하자면 연

장(延長)이라는 데카르트의 세계는 어떤 이유로든 측정의 세계가 아니 다. 데카르트의 물리학은 측정되지 않은 대상의 물리학이고 방정식이 없는 물리학이며 정해진 축척이 없는 기하학적 표상이어서 이 용어의 근대적인 의미에서 결코 수리 물리학에 속하지 않는다. VI 따라서 데카르트의 물리학을 그 역사적 고립 속에 내버려두자. 파 동-입자의 변증법을 체험하고자 할 때 우리는 그 물리학을 다시 만나 지 않는다. 이 변증법이 시작하는 것은 호이겐스(H u yg hens, 1629-1698) 와 더불 어서이다 . 사실을 말하자면, 그의 파동 개념은 진동 운동의 엄격한 주 기성에 의거하는 현재와 같은 의미에서의 파동 개념을 함의하지는 않 는다. 수면을 달리는 파동의 모습에서 암시를 받은 호이겐스는 상하 운동을 하는 유체의 진동주기에 그리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작은 파동들로부터 발전된 파동의 기하학을 설명하면서 특히 전달 운 동을 강조하였다. 그는 파동들의 후미에서 운동의 무력화〈無力化)에 관한 홍미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했다. 그러나 개념의 가장 새로운 철학적 양상은 탁월해야 한다. 즉, 파동 은 광선을 설명해야 한다. 파동 이론은 광선이라는 〈실재성〉을 구축해 야 한다. 다시 말해서, 파동 이론은 광선의 실재성을 발판으로 해서 파 동의 실재성을 받아들이게 해야 한다. 다음에 우리는 파동과 광선의 개념들이 기하학적으로 상보적인 개념이라는 사실을 강조해야 할 것이 다. 그러나 실재론적으로 광선은 보이고 파동은 보이지 않는댜 그래서 호이겐스는 실재론의 이동, 실재론의 전도 혹은 적어도 지배적인 실재 론의 변화를 제안한다. 과학적 사유의 작업에서 철학적으로 긍정적인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기회에서이다. 광파가 하나의 가정이라고 말하는 것은 파동의 개념에 구속적인 가치를 부여하지 않 는댜 호이겐스에 있어서 광파는 추상적-구체적 사고의 전망에서 그리 고 결부된 구체적 성질들을 나타낼 수 있는 하나의 추상 작용에서 나 타난댜 또 한편으로는 호이겐스 이론에서 파동 개념은 지체없이 주목할 만 한 인식론적 가치를 지니는데, 이 개념은 굴절광의 구성에 이르게 하 기 때문이다. 굴절광의 구성은 분명히 개념적인 조정으로 나타나며, 상이한 두 매질에서 빛의 두 전달 속도에 해당하는 두 가지 경험적 사 실을 연동시킨다. 호이겐스의 구성은 과학에 대한 결정적인 영수증이 어서 〈언제나〉 과학 속에 있다. 그것은 과학 사싱·의 역사적 진행에서 수월하게 부각되는 인식론적 가치이댜 그래서 이론의 귀납적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것이댜 이중 굴절 현상?.8)은 사실 상식적인 해석을 벗 어난다. 하나의 입사각이 둘로 나누어져서 두 개의 굴절광이 된다는 이 사실이 바로 부러진 막대기를 응시하면서 감각의 오류를 체험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심리학자들을 더욱 혼란시키는 것이다. 철학자는 그 의 심상들의 재고품을 갱신하는데서 득을 볼 것이다. 단순한 심상들의 사용은 복잡한 현상들의 탐구를 봉쇄한다. 그러나 완벽한 현상학을 알 려주는 것은 복잡한 현상들이다. 과학의 미래는 단순한 굴절 현상을 먼저 보여주던 매질 속에서 이중 굴절을 야기할 수 있음을 제시할 것 이다. 그래서 호이겐스의 구성과 더불어서 굴절 현상들의 총체에 대한 종합적 시야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현상적 종합의 가치는 이론의 정 합적 가치에 결합된다 .

28) 방해석을 통해서 물체를 보면 두 개로 나누어져 보인다. 그 이유는 빛이 방해 석 속에서 굴절 법칙을 충족시키는 정상 광선과 그렇지 못한 이상 광선으로 분 리되기 때문이다.

호이겐스의 기하학적 파동의 주제는 데카르트에 있어서 연장 개념

의 심상들보다 더 잘 광물질이라는 이상한 성질에 대한 모든 참조를 차단한다 . 물론 탄성이 서로 다른 3 차원의 매질에서 파동면에 관한 완 전한 방정식을 얻기 위해서는 19 세기로 와야 한다 .29 1 파동과 같이 하나 의 과학적 개념은 수학적 표현에 진입하자마자 문제성이 풍부하다는 사실을 보이기 위해서 우리는 이러한 확장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이 다. 현상의 번역으로서 하나의 수학적 표현을 취할 때에 사람들은 모 든 것을 다 말하지 않았다. 수학적 개념은 훨씬 더 암시적이어서 현상 의 단순한 검토가 시사하지 않는 실험적 탐구나 다양한 합리적 조사 에 길을 열어준댜

29) 1828 년 8 월 26 일 과학원에서 암페어가 읽은 논문을 볼 것. 프레넬은 4 차원이라 고 가정하면서 이 방정식을 얻었다(원주).

맨 광학 연구에 한정한다 하더라도 뉴턴의 업적의 모든 변증법적 기능 울 몇 페이지로 요약하기는 불가능하다. 모든 문제를 전개하는 데 필 요한 여유를 갖는다 하더라도 뉴턴적 사고의 극단적인 섬세함에 기인 하는 어려움이 남을 것이다. 예컨대 뉴턴은 자주 데카르트의 주장과 호이겐스의 주장에 동시에 반대하는 논쟁을 이끈다 . ~) 때때로 두 개의 학설이 동일한 문장 속에서 환기된다 . 〈만일 빛이 (데카르트식대로) 압 력으로 이루어졌거나 혹은 (호이겐스식으로) 유체매질을 통해 전달되 는 운동으로 이루어졌다면, 빛은 (데카르트식으로.) 순간적으로 혹은 (호이겐스식으로) 어떤 시간 간격을 두고 그늘 쪽으로 구부러질 것이 다.〉

30) NEWTON, 『광학』, COSTE 번역, Par is, 1722, 534 쪽 참조(원주).

둘째로, 뉴턴을 입자설의 절대적 옹호자로 지목하는 것은 지나치게

사실을 단순화하는 일이다 실상 파동적 직관은 뉴턴에게 결코 낯설지 않다 . 그는 아주 현대적인 방식으로 그가 지속된 운동이라고 부르는 것을 전달할 수 있는 발광성 에테르가 충족시켜야 할 물리적 조건들 울 정의하였다. 그는 아주 희박하고 아주 탄력성 있는 그래서 공기보 다 수천배 더 희박하고 보통의 고체보다 수천배 더 탄력성이 있는 에 테르의 필요성을 나타내는 역설에 직면했다. 그러나 입자설과 파동설 사이에서 타협적 가치를 지닌 뉴턴 광학을 눈에 띄게 하는 것은 〈용이한 반사와 용이한 전파의 번갈아드는 발작〉 에 의해 생긴 〈계기〉의 이론이다. 뉴턴으로서는, 빛은 투명한 물체 위에 떨어지기 전에 용이한 반사와 용이한 전파 의 발작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종류의 발작은 빛이 발광체로부터 나오기 시작하자마자 오는 것으로 보이며, 빛은 이 발작들을 진행하 는 전기간에 걸쳐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입자들이 발광체로부터 어떤 것은 용이한 반사의 표시를 가지고 어 떤 것은 용이한 전파의 표시를 가지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입자들이 지니지 않은 성질로서 입자 들을 생각하는 것이다. 모든 입자들은 그들의 전 도정에서 연속적으로 이런저런 〈발작〉 속에 있는 능력을 지닌다. 방금 반사한 입자는 그래 서 다른 유리 조각 속으로 전파될 수 있다. 따라서 각 입자는 연속적 인 경향이라는 이중의 시간성을 갖고 있다. 결국, 뉴턴은 그의 〈고리〉 실험과 더불어 간섭 현상을 설명해야 하 는 문제 앞에 와 있었다. 우리는 공간에서 일종의 주기성으로 나타나 는 모든 간섭 현상들이 얼마나 집요하게 시간에서 주기성을 초래하는 지 보게 될 것이댜 구조의 반복 현상은 리듬의 반복 현상을 요구한다. 뉴턴이 이미 알고 있었듯이 순수하게 입자적인 성질은 간섭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뉴턴의 광학은 단순한 이미지에서는 입자적이 지만 그의 교묘한 이론에서는 전(前)파동적이다. 입자적 이미지는 반 사라는 평범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충분하고, 울퉁불퉁한 표면 위에 서 입자들이 다시 튀어 오르는 확산을 설명하기 위해서도 역시 충분 하다. 뉴턴의 고리나 간섭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덜 단순한 원리, 용의주도하게 인공적인 원리가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활동적인 과학 사상의 철학적 다양성에 대한 증거이다. 요컨대, 비록 뉴턴이 입자설을 선호하기는 하지만 그의 광학은 실제 로 변증법적인 감수성을 지닌댜 그의 빛에 관한 학설이 오랫동안 견 고한 교육의 기초를 제공할 수 있었음을 우리는 이해한다 . 우리는 계 속해서 비오J ean-Ba pti s t e B i o t의 교육을 환기하면서 이러한 견고성의 또 하나의 예를 보여줄 것이다 . 또한 뉴턴 광학을 피상적으로 판단하 는 사람들이 얼마나 지나친 단순화에 의해 가장 좁은 의미에서의 입 자설에 만족하고 있는지 주목해야 한다. 우리가 본 바와 같이 푸르크 루아는 이 지나친 단순화의 분명한 예를 보여준댜 라메트리 La Me th e ri e 는 피상적인 연역을 과시하면서 광입자는 완전한 구형이라고 단언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광입자는 반사의 정확한 기하학적 법칙을 따를 수 없다는 것이다. 직관의 단순화는· 이처럼 인식론적 가치의 퇴 행을 야기한다. 이러한 퇴행은 과학사가 단번에 진보의 모든 가치들을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 뉴턴의 고리 현상과 같은 인조적인 현상, 희귀한 현상의 갑작스런 중요성에 주의를 환기해 보자. 어떤 철학자들은 특수한 현상에 관계되 는 교훈을 측정의 결함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바아더 Franz von Baader 같은 자연 철학자는 빛과 열의 진짜 신비성에 감동 되어 뉴턴의 입자설을 모순이라고 선언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 다 .3 1) 그에 의하면, 완벽한 연속성 없이는 광현상을 상상할 수 없기 때 문이다. 바아더와 같은 철학자로서는, 회절과 같은 우연적이고 드문

31) E. SUSINI, i'Fra nz von Baader 와 신비적 낭만주의』, I, 2'23쪽(원주).

현상에 대해서 빛을 연구한다고 주장하는 철학자는 현상 세계의 지고 의 가치들의 품위에 어긋나는 것이다. 바아더의 예는 과학의 가치에 선행하는 철학의 비효율성을 판단하 기에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과학 철학은 과학적 사유의 실질적인 작 업을 따라가야 하며 최초의 철학의 지나치게 관대한 주제들을 고려해 서는 안 된다. VIll 현대 과학의 발전에서 연속성의 주제를 찾는 것은 언제나 가능하다. 지금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는 광학의 역사에서 이 연속성에 관한 주 목할 만한 사례를 갖기 위해서는 광선의 기하 광학에 관한 주제에 제 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 기하학의 초보적인 책에서 직선을 광선의 진 로처럼 정의하는 것은 까닭 없는 일이 아니다. 거울에 의해 제공된 현 상들은 거의 자연스런 기하학적 구조 속에서 나타난다. 그림자, 암실, 요술 램프 등은 초보적인 기하 문제들을 제공한다. 기하 광학은 한 가 지의 기하학으로서 그 자체로 수학의 특이한 역사적 성격인 후퇴 없 는 진보 정규적인 진보의 특권을 누린다. 그래서 뉴턴은 데카르트룰 계승하고, 오일러는 뉴턴을 계승한다. 그러나 기하 광학의 이런 연속성은 물리 광학에 관한 여러 학설들 의 새로운 동요를 더욱 주목하게 한다. 실상 오일러는 뉴턴의 입자설 울 비판하고 파동설을 방어한다. 독일 여왕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오 일러는 입자설에 반대하여 통상적인 비판을 거듭한다.

만일 태양이 지속적으로 그리고 모든 방향으로 그렇게 엄청난 속 도로 광물질을 방출한다면 태양 물질은 그로 인해 소진되어야 할 것 이다 ? ' …… 아무리 미세하다 할지라도 입자를 가정하는 것은 소용 없는 일이다 . 그런 체계는 언제나 언어 도단이다.

32) 『독일의 여왕에게 보낸 오일러의 편지」 (Courno t판), Pa ris, 1842, 제 1 권, 69 쪽 (1760 년 6 월 7 일자 편지)(원주).

그리고 별들로부터 오는 모든 광선들이 〈무서운 힘에 쫓겨서〉 모든 방향에서 교차하므로, 창공은 〈엄청난 동요 속에서〉 빛이 뒤죽박죽되 어 있는 곳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 입자설에서는 투명한 물체는 모든 방향에서 수직의 구멍들에 의해 관통되어야 할 것이다. 자 여기에 구멍투성이의 물체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단 단하게 보인다. 이어서 〈구멍 뚫린〉 눈의 논지가 나온다. 눈이 어지러운 입자의 흐 름에 의해 관통될 때 어찌 무사할 수 있겠는가? 오일러의 결론은, 여왕 폐하께서는 이 입자 체계가 아주· 위대한 인간에 의해 구상되 고 그렇게도 많은 계몽 철학자들에게 신봉된다는 사실에 아마도 놀 라시겠지요. 그리고는 이어서 인간이 〈그토록 서글픈 추락에〉 예속되어 있으며 〈그러한 모순 속에〉 빠질 수 있음을 한탄한다. 우리는 상식적 토대에서 논의의 모든 방향들을 특기하는대, 객관적 지식에 관해 정신 분석을 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방향에 반대해서이기 때문이다. 상식적 지식과 과학적 지식의 연속성을 방어한다고 주장하는 철학자는 이러한 논지들을 받아들일 것인가? 그러한 논지를 문화의 출발점에 유지하는 것은 급조된 심상 에 만족하는 정신의 나태를 용인하는 것이다. 현대 과학은 무지한 자 들의 이의로부터 해방되었다 .33) 〈구멍 뚫린 눈〉 이라는 반박은 광자의 존재에 반대하여 결코 제기되지 않았다.

33) 과학 공동체가 철학자의 〈이성〉을 대체해, 상식에 의해 고무된 철학적 반론으 로부터 과학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과학의 공동체가 있기 때문이다.

뉴턴의 입자설에 대한 비판의 편지 후에 오일러는 투명한 물체의 분자간의 간격과 마찬가지로 별 사이의 공간을 채우는 희박하고도 탄 력성 있는 매질인 에테르 개념을 설명하기 위하여 여왕에게 편지를 쓴다 . 그리고는 빛과 소리에 대한 거창한 유추를 시도한다. 초보적 교 양의 반복되는 주제로서 존속하는 이 유추는 결국 허울 좋은 것으로 서 너무 싼값으로 일반적인 현상학에 통일성을 부여한다 . 이 유추의 급조성을 살펴보자. 광선은 공기에 의해 전달된 진동 이의의 다른 것이 아니다. 종소 리가 우리 귀에 들릴 때와 마찬가지로 태양에서 실제로 우리에게 오 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쿠르노 Courno t가 말하는 것처럼. 이 여러 가지 가설들의 결과들을 설명하고 그 결과들을 관찰된 현 상과 대조하기 위해서는 깊숙이 세부 사항에 들어가야 한다. 사실은 이 유추는 현상학적 차원에 머무룰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이 유추는 광학과 음향학이라는 두 개의 합리적 구조 를 비교할 때에만 가치가 있다. 따라서 ` 우리는 광학 현상 들 의 수학적 정보에로 되돌려 보내진다. 물리적 현상의 해석에서 실재론적 비율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과학의 연속성이 있는 곳은 바로 수학적 정보에서이다. IX 오일러에서 비오에 이르기까지 직관적 토대의 새로운 변화, 빛의 실 재론에 있어서 새로운 변화가 이루어졌다. 비오는 뉴턴의 이론에 새로 운 활기를 불어넣는다. 그러나 하나의 새로운 양상이 주목되어야 하는 데 오일러가 위대한 수학자였던 반면에 비오는 훌륭한 교수로서 우리 는 그롤 새로운 교육 시대의 중요한 층인으로 삼을 수 있다. 1816 년에 나온 네 권으로 구성된 그의 『물리학개론』은 20 년간 프랑스에서 물리 학 교육에 영향을 미쳤다 . 대혁명 아래 세워진 과학고등전문학교들과 집정 정치 시대 (1799-1804) 와 나폴레옹 제국 시대에 점증하는 권위를 갖게 된 프랑스 학사원은 사회적 현실이 된 과학에 대한 그만큼의 옹 집력을 나타낸다 . 어떤 단결의 원리도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과학 공동체 그리고 보다 특수하게 교육하는 합리주의의 활동을 가늠하기 위해서 우리가 제안한 물리학자 공동체라는 개념은 여기에서 정확한 적용을 찾게 된다. 놀레 Nollet 신부의 『실험 물리학 강의』 (1769) 를 보 면 한 세대 사이에 교육의 수준과 의미 그리고 기능이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놀레 신부는 독자를 가지고 있었고 비오는 학생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렇게 19 세기초에 물리학자의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이제 더 이상 아마추어의 관심에 의해서 유지되지 않는다. 이러한 공동체는 그 의 일꾼들을지휘한다. 우리가 교육되는 과학이라는 매우 사회적인 성격에 이처럼 중요성

울 부여하는 데 대해서 사람들은 놀랄 것이다. 그러나 지식의 합리적 이고 기술적인 조직에 대한 필요성은 그 근원에서부터 파악되어야 한 댜 물리학은 단호하게 전문적이 되었다. 구축하는 합리주의는 〈자연 스러운〉 확신이나 원초적인 관념에 만족할 수 없는 것이다. 최근의 우 리의 저서에서 교육하는 합리주의와 교육받는 합리주의 간의 변증법 에 대해 충분히 강조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과학사기들에 의해 너무 자주 잊혀진 하나의 사실을 특기하고자 하는데 그것은 이제부터 학교 의 활동은 강력한 활동이라는 사실이다. 즉, 개인적인 능력을 발휘하 기 전에 우선 대가들에게서 배워야 하며 자연이라는 책에서 읽기 전에 사람이 쓴 책에서 읽어야 한다. 비오의 『물리학 개론』을 배우는곤 자는 시간을 허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책은 물리학의 모든 견고한 과거 를 지니고 있고 사람들로 하여금 19 세기 초의 활동하~큰 과학을 받아 들일 수 있게 준비시킨다 . 그런 책은 아직도 교훈적이며 역사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친다 . 비오가 입자적 직관을 지지하는 방식은 철학적 교훈으로 가득하다. 그는 입자설의 주된 난점 앞에 단호하게 선다 . 만일 광선이 특수한 입 자들의 연속이라면 어떤 입자들은 투명체의 안으로 끌리고 다른 입자 들은 동일한 투명체에 의해 밀리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두 종류의 입자가 있는가? 이 가정은 받아들일 수 없는데 동일한 투명체에 다시 떨어지는 반사광은 또 다시 두 개의 광선으로 분할되어 하나의 광선 은 반사되고 (물질에 의해 밀리고) 다른 광선은 굴절되기 (물질에 의해 끌리고) 때문이다 . 모든 광입자3 4l 의 본질이 때로는 끌리고 때로는 밀리 므로 설명에서는 속성에서 양식으로 옮겨가야 한다. 다시 말해서, 모든 광입자는 색깔이 어떻든지 간에 양태적 양자택일에 따른다는 사실을 가정해야 한다. 입자는 입자의 상태를 바꾸게 하는 물리적 변화를 끊 34) 지금은 광자p ho to n 라고 부른다 .

임없이 받으며, 이 물리적 변화가 입자로 하여금 뉴턴이 말한 것처럼 차례대로 용이한 반사와 용이한 전파 상태에 둔다는 사실을 가정해야 한다 반사하는 빛의 입자는 아마도 굴절하는 빛의 입자와 동일한 물리 적 상태 또는 동일한 운동 상태에 있지 않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런데 광입자의 두 가지 상태와 관련한 현상에서 우리가 이끌어내 는 두 가지 대립된 결과에서 모순이 없기 위해서는 이러한 차이가 가능한 것으로 충분하다. 우리는 비오가 그의 가정에 필요한 약소한 요구를 보이기 위해서 원문에서 두 개의 단어를 강조했다 가설에 근거해서 구성하기 위해서 는 그 가정들이 가능한 것으로 충분하다. 이 인식론적 뉘앙스는 기억 되어야 하는데 어떤 철학자들은 이것을 물리학의 가정에서 모든 인식 론적 이론의 징조로 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 가지 뉘앙스 중 하나에 불과하며 곧 우리는 프레넬 Fresnel 에게서 보다 구속적이고 보다 분명하게 수리화된 과학적 가정의 유형을 보게 될 것이다 . 비오 는 정보의 일관성보다는 가정의 개연성에 대한 실험적 증거를 추구하 고 있다. 그는 광입자의 본질적 성질의 변호遷- 확인하는 〈수많은 증거 들〉을 환기한다. 실상 우리는 끊임없이 동일한 결론에 되돌아오는데, 이 변호庄곤 입자 의 운동에 리듬을 새기는 것으로 귀착한다. 비오의 이론과 같이 타협 적인 이론에서 광입자는 그래서 파동적 성질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비오에 의해 수락된 파~ 성질은 그의 물리학에 다시 덧 붙여진 성질이지 설명의 적극적 요소가 아니다 . 파동적 주제와 삼각 함수의 합리적 결합이 아직은 간섭 현상에 대한 수학적이고 실험적인 학설을 만들지 못했다. 경험이 완전한 일관성을 찾기 위해서는 수학이

지배해야 한다. x 마침내 혼들리지 않는 토대 위에 광학을 세운 프레넬 핀) 이 왔다. 역 사의 바로 이 순간에 빛 현상에 관한 기술적 실험과 합리적 착상 사이 에 영구적으로 합류점이 자리를 잡았다고 말할 수 있다. 프레넬의 업 적은 받아들여야 할 하나의 문화적 가치를 언제고 지닐 것이다. 그 다 음에 어떤 요소는 배제하고 어떤 개념들의 내용을 수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합리화된 기술에 있어서 개념들 간의 구조는 그로 인해 타격 울 받지 않을 것이다. 프레넬로부터 간섭의 합리주의에 대해 말하는 것 이 의미가 있다. 이 간섭 현상의 합리주의는 말하자면 국지적 합리주의 의 형태로 유리될 수 있다. 이 분야를 파악하기 위해서, 이 분야에서 경험에 대한 합리적인 정보를 안전하게 얻기 위해서 모든 물리학을 알 필요도 또한 모든 광학을 알 필요조차 없다.

3.5) 프랑스의 물리학자 (1788-18 'n). 수학적으로 치밀하게 토마스 영보다 10 년 뒤에 파동 이론을 확립하고 이에 의해 빛의 간섭 이론을 세웠으며 또한 빛이 횡파라 는 사실도 밝혔다. 광학에서 〈 수학의 지배〉를 확립했다는 사실이 프레넬의 업적 에 과학적 가치를 부여한다 .

그리고 이 간섭 현상의 합리주의는 적용된 합리주의의 방향을 지닌 댜 실상 경험을 촉발하고 변화를 주는 것은 합리적인 조직인 :11, 빛의 간섭 현상은 평범한 경험에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독 일 여왕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쿠르노 Courno t는 1842 년에 아직도 간섭 현상에 대해서 〈이 희한한 현상〉이라고 쓰고 있다. 이 말은 무지한 사 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적합한 예외적인 현상이라고 이해하면 된 다 . 간섭 현상에는 평범한 현상이 없다고 말해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

은 강의와 교과서에서 수면 위에 물결이 혼들리도록 만든 두 개의 중 심부를 설치하고 이 현상의 실현을 보여준다 . 그러나 그것은 프레넬 다음에 오는 실험이며 교수가 빛의 간섭 현상을 보여주기 위해 하는 것이다 실험가에 의해 실제로 구성되고 유리된 그러한 현상이야말로 과학적 경험과 평범한 경험의 단절을 주장하는 데 대한 명백한 논증 인 것이다. 3;)

36) 『 적용된 합리주의』 , 6 장 참조(원주) .

프레넬의 이론이 받아들여지자마자 기술적인 실험들이 증가한다. 도구의 수와 다양성이 간섭 측정의 중요성을 설명해 주는 증거가 된 다. 우리는 여기에서 언제나 현실적이고 살아 있는 과학적 과거 앞에 있다. 그래서 학생들이 측정의 정확성에 대한 강의를 듣기 위해 여기 에 오는 것이다. 간섭 현상의 측정이 간접적 성격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프레넬 의 간섭 무늬에서 갈라진 툼을 측정하며 우리는 생각한다 . 여기에서 측정은 사고의 한순간이다. 간섭 무늬에 의해 구성된 人밀은 이론적인 틀 밖에서 그것을 고려하면 흥미가 없는 것이다. 만일 사람들이 간섭 현상의 경험주의에 대해서 말한다면 모든 철학적 가치들을 뒤섞는 것 이다 . 여기에서 합리적인 특징은 참으로 인위성의 특징인 것이다. 간섭의 사실은 한편 아주 미묘해서 우리는 곧 잘 수행된 사실의 책 임을 보게 되어서 젊은 물리학자에게 잘할 줄 알아야 하고, 한번 한 것을 다시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주문해야 한다. 부아스 Bouasse 는 어 느 날 실험실에서 본 게시판에 대해 화를 냈는데 거기에는 광학 교실 에 온 학생들에게 프레넬의 거울을 건드리지 말라고 적혀 있었다. 기 술 문화는 구체적인 기하학적 사고를 통해서 기계의 조정을 다시 할 수 있고, 최대의 규칙성 속에서 간섭 현상을 나타나게 할 수 있다고 확신한 나머지 그는 서둘러서 거울의 V 자형 각을 흐뜨려놓았다. 오

직 그러한 연습만이 현대 과학 기술에게 섬세의 정신을 줄 수 있는 것이다. XI 그러나 우리는 프레넬의 연구로부터 나온 역사를 더 이상 전개하지 않겠댜 이 장에서 우리의 목표는 입자와 파동의 이론들에 관해 변증 법적 진전을 지적하자는 것뿐이었다. 우리는 광학사의 〈내부적 모순〉 을 요약하기 위해 데카르트, 호이겐스, 뉴턴, 오일러, 비오 그리고 프 레넬을 상기하면서 〈역사적 중심지〉를 한정시킬 수 있었다. 우리는 결 코 논쟁의 세부 사항에는 들어갈 수 없었는데 그렇게 되면 한 권의 책 을 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논쟁에 대해서 인식론자는 일반적인 철 학적 관찰을 하게 된다. 이 논쟁들은 두 개의 상이한 극을 가지고 있 는데 한쪽은 상식의 반박이고 다른 쪽은 수학적 구성의 암시이다. 그 리고 상식에 속하는 논쟁이 과학적으로 효력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 는 일은 어렵지 않다. 평범한 경험을 고려하는 상식적인 반박에 대하 여 상식은 평범한 경험에 의해 답변한다. 그러한 논쟁에서는 빛을 소 리에 의해 설명하게 되고 따라서 현상의 특수성을 잊어버리게 된다. 사고가 마비되는 또 하나의 다른 이유는 물리 현상의 연구에는 결코 적절하지 않은 지나치게 일반적인 우주론적 관점에 있다. 〈태양의 소 진〉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페이지를 썼던가! 매초 엄청난 입자를 잃는 이 큰 물체에서 무엇이 남을 것인가? 이것이 바로 오일러에게는 뉴턴 의 입자설을 포기하기 위해 충분했던 것이다. 과학이 활성화되는 것은 논쟁의 다른 극, 죽 기하학과 측정이 논지 가 될 때이다. 우리는 호이겐스의 기하학적 구성에 대해서 그리고 뉴 턴의 고리에 대해서 이러한 활동을 언급했다. 편광에 관한 말뤼 Malus

와 비오의 실험에 대해서도 보다 완벽한 조사에서는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도 프레넬의 업적은 활동적 인 과학의 모범이댜 여기에는 우주론 대신 장치와 도구가 있으며, 반 박 대신 증거가 있으며, 유추 대신에 측정과 방정식이 있기 때문이다. 이때에 기술적 실험의 일관성을 보장해 주는 개념의 군이 형성된다. 이 개념들이 일상적인 경험 속에 대응물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이 들은 정확하게 다시 정의되어야 하고 그리고 하나의 체계 속에 통합 되어야 한다. 고립된 개념의 수준에서는 과학적 지식이란 없다 . 따라서 구성의 가치에 따라서 인식론적 가치를 판단해야 한다. 과학은 묘사해 야 할 세계가 아니고 구성해야 하는 세계인 것이다 .37)

37) 과학적 인식에서는 자명한 것, 주어진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이 구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XII 누군가 그 모든 변화 속에서 입자설과 파동설의 역사를 지켜보았다 면 물리적 이론의 가치에 대해 어떤 상대주의, 나아가서 희의론을 주 장하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이론적인 활동은 항시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며 수학은 어떤 경험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처럼 판단하기 에 이른다. 피에르 뒤엠 P i erre Duhem 의 철학적 의견은 이 사정에 밝 은 회의론을 암시해 준다 .38) 그로서는 빛의 입자설과 파동설과 같이 그 처럼 상이한 두 개의 이론 사이에서 결정할 수 있는 결정적 실험도 없 다. 입자설의 발전을 저지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결정적이었던 피조

38) 프랑스의 물리학자 뒤엠 (1861-1916) 은 과학을 유익한 허구라고 본다. 그에 의 하면, 정신의 유연성을 지니기 위해 과학은 실험적인 분류에 만족해야지 실재 r eality를 통찰한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사실로부터 유리되어 과 학을 마비시키는 토론에 빠져들게 된다는 것이다.

F i zeau 의 실험 !9} 은 결정적이지 않을 수도 있었다 입자설의 지지자들은 적절한 수학적 변형을 통하여 피조의 실험적 결론을 동화할 수도 있 었을 것이다.

39) 1850 년대에 피조와 푸코는 진한 매질에서 빛의 속도가 붉은 매질에서보다 느 리다는 것을 측정하였다. 이렇게 해서 뉴턴의 입자설은 호이겐스의 파동설에 의 해 밀려나게 되었다.

간단히 말해서, 규칙을 완화하는 연습에 의해 모든 이론들은 우열이 없다 이 말은 이론들은 수학의 동화 능력에 대한 증거로서만 가치가 있으며, 〈수학 언어〉의 무척 유동적인 다변(多辯)으로서만 가치가 있 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이다. 인식론적 회귀와 역사적 가치의 재구성에 관한 우리의 의견은 뒤엠의 의견처럼 그렇게 멀리 가지는 않는다. 입 자론에 의한 휘조의 실험의 동화는 당시의 합리적 가치들을 뒤섞지 않고는, 획득된 합리성을 거슬리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라 고 우리는 생각한다 . 일반적으로 가정들의 등가에 관한 모든 학설은 인식론적인 가치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철학적 학설은 현대 과학의 인식론 적 가치라는 개념을 음미할 수 있는가? 바일 Hermann We y l 이 보고하 는 바에 따르면 1918 년 아인슈타인은 막스 플랑크의 60 회 생일 기념사 에서 아주 정당하게 인식론적 상황을 기술하였다고 한다. 역사적 발전 과정을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이론적 구성물 중에서 명백하게 나머지 모든 구성물보다 우월한 하나의 구성물이 언제나 있다. ~0)

40) Hermann WEYL, 『 수리철학과 과학철학』, 1949, 153 쪽(원주).

이 우월성은 단순히 사실만의 문제가 아니며 한 역사적 순간의 특 징적인 것도 아니다 . 이 우월성은 합리적인 확신 속에서 가설의 설명

적 가치로부터 밝혀진다 . 이 우월성이야말로 이성의 가치, 문화의 가 치, 그리고 인식론적 가치의 표지인 것이다. 과학의 운명에서 합리적 인 가치는 필요불가결하며 또한 역사적으로 그러하다 . 과학사는 일종 의 자율적인 필연성에 의해 이끌어져 왔댜 과학 철학은 인식론적 가 치의 결정과 등급을 둔 분류를 체계적으로 그 임무로 삼아야 할 것이 다 . 만일 과학적 사고의 가치에서 세부 사항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그 리고 모든 과학적 사고가 가장 높은 수준의 심리적 가치룰 민감하게 한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과학의 가치에 대한 일반적인 토의는 아주 무익한 것이다. 그러나 과학적 사고에 대해서 회의적인 의견의 영향은 오늘날 뚜 렷하다. 과학의 수수께끼를 푼다는 절대적인 신념으로 일하면서도 현 대의 물리학자들은 하나의 불확실한 철학을 수락한다 . 예컨대 , 빛은 월 ·수·금은 파동 운동이고 , 화· 목·토는 입자의 다발이라고 물리학 자는 생각한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 4 1) 일요일에 물리학자는 생각하는 일을 쉬는 모양이다 .4 2 ) 1 주일간의 이러한 〈창세기〉는 설령 3 세기의 역 사를 요약한다 하더라도 인식론적 가치의 점진적인 발현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41) ELDRIGE, 『사물의 물리적 기초 』 , London, 1934, 348 쪽 참조(원주). 42) 1920 년대의 물리학 교수들 사이에서는 전자가, 대학의 시간표가 작성되는 방식 처럼 월, 수, 금요일에는 입자처럼 행동하고 화, 목 , 토요일에는 파동처럼 행동 할 것이라는, 그리고 일요일에는 아마도 신의 도움을 간청할 것이라는 농담이 오갔다고 한다.

마침내 파동 역학이라는 광범위한 종합에 이르게 되면 수학적 정보 의 구사가 자유자재해서 이제 더 이상 희미한 상대주의에 만족할 수 없으며 그리고 유식한 회의론이 낡았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 파동 역학 이론의 안내 자체에 의해서 우리는 파동적 직관과 입자적 직관 울 동시에 정리하기에 이르른다. 이제 더 이상 이들 직관의 어느 한쪽

에 절대적인 존재론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직관은 수 학적 결정 다음에 오는 것이댜 직관은 수학적 의미에 의해서 밝혀지 며, 다시 말해서 직관은 다소간 추상적인 수학의 내용을 설명하기 위 하여 오는 것이다. 너무 심하게 실재론적인 모든 속성들은 쇠퇴하고 사라진다 . 그래서 사람들이 처음에 입자를 안내하는 아주 실재론적인 기능을 부여했던 물질파는 확률론으로 바뀌어졌다. 확률 이외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물 결치지 않는다 . 그래서 파동 역학의 동체(動體)는 실재론적으로 약화 된 물체라는 사실을 보여야 할 것이다 . 물론 학설의 어떤 발전이 입자적 직관의 방향에서 현상의 어떤 양 상들을 강조할 수도 있다 . 새로운 학설들의 철학적 감수성을 이루는 것은 바로 이렇게 강화된 또는 약화된 실재론의 게임이다. 이러한 학설들은 철학적으로 한데 묶 어서 특정지어질 수 없다. 현대의 물리학과 화학의 모든 성격을 철학 적으로 규명하고자 한다면 전통적인 철학들의 철학적 스펙트럼을 분 산시켜야 한다 . 4 3) 43) 각주 10) 을 참조할 것.

제 2 장 운동과 철학지들­ 단순한 이미지와 복잡한 수학 여보시오! 만일 당신이 무기 력 때문에 단 한 순 간이라도 정진을 멈춘다면 우주 전체가 곧장 떨 릴 것이다 . …… 곧바로 부동상태에 의해 왜곡된 관성물질 속에 있는 가장 작은 원자가 고통과 불순함의 특징과 더불어 나타날 것이다 . I)

1) 여기에서 타고르는 아주 미세하고 모든 것을 투과하는 영혼의 원자들을 가정 하고있다.

Rabin d ranath TAGORE, 『 백조 』 I 단순한 관념은 그 토대에 언제나 자신을 갖는 견고한 확신을 준다. 최소한의 애매한 점이라도 있으면 사람들은 단순한 관념을 찾고자 하 며 결코 오류를 범하지 않는 증거나 빛의 초점처럼 단순한 관념으로 되돌아가라는 충고를 받는다. 단순하고 명백한 관념을 끊임없이 다시 취하면서 그리고 그것을 지식의 가장 소중한 것으로서 찬미하면서 철 학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적어도 그것은 내가 잘 아는 것이고 언제나 이해한 것이다. 가득 찬 머리보다는 잘 만들어진 머리가 더 낫다 . 명백한 지대 너머로 확

대되는 지식은 의심스럽고 혼돈되고 순수하지 못한 지식이다. 그런 지식은 최초의 직관의 대담성과 근본적 지식에 대한 훌륭한 확신을 잃게 한다. 만일 우리가 끊임없이 이 명석성의 중심부로 되돌아오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이탈하게 되어 지식의 눈이 멀게 된다. 단순하고 분명한 관념에 대한 정신적인 정화와 영원하고 근본적인 진리에 대한 인간적인 호의를 누가 에드거 포보다 더 잘 표현했을까. 안디는 것은 언제나 영원한 축복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은 악마의 저주일 것이다 . 2 )

2) Edga r POE, 『새 경이로운 이야기』, 말의 힘, BAUDELAIRE 번역, 238 쪽(원 주) .

그러나 현실적 복잡성 속에서 과학적 사유를 추적하고자 하는 철학 자는 명백한 관념들을 나열하거나 지식의 근본으로 통하는 진리에 새 롭게 획득된 지식을 추가하는 것으로만 만족할 수는 없다. 그는 옛것 이든 새것이든 모든 지식을 동일한 하나의 기준들의 체계에 비추어 생각하면서 전반적인 재구성의 과업 앞에 서게 된다 . 따라서 그는 명 백한 관념들을 원래의 희미한 그늘 속에 다시 위치시켜야 하고 어떤 단순화 과정에 의하여 사람들이 단순한 관념을 정의할 수 있었는지 주 의 깊게 검토해야 한다. 이 관념들은 존재론적으로 너무 단순해서 모 든 관계의 근원이 된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관념들이다. 모든 새로운 관계들의 검토가 요구될 적에는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물리학이나 화학처럼 복잡한 과학에 관한 한 사람들은 최초의 관념

에 대한 재구성 작업의 정당성을 기꺼이 새로운 과학 정신의 몫으로 인정한다 . 그러나 형태나 운동의 이미지처럼 어떤 이미지들은 철학자 에게 너무 투명하게 보여서 그 어느 것도 이러한 이미지들을 동요시 킬 수 없고 그래서 이들은 언제나 외부 세계에 대한 지식의 토대로 여 겨진다. 철학자에게, 형태나 운동은 지각에 제시된 객관적 의관, 즉 외 재성의 개념을 철저하게 규명한다. 운동에 관한 일반적인 관념은 그래 서 결정적인 권위가 되고, 많은 철학자들이 운동의 일반론 속에서 운 동을 논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운동의 기하학을 잊을 지경에 까지 온 것이다! 그렇다면 운동은 특수한 연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운동하는 물체의 기동성의 근원으로서 사람들이 가정하는 일 종의 그 자체로서의 운동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된다. 운동에 대한 철 학의 이러한 직접적인 공략 앞에, 역학의 기본이 되는 개념들의 불가 피한 복잡화에 대해 철학자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어려움이 나타난다 . 물리학이나 화학의 기본이 되는 개념들에 대해서 그들이 받아들였던 예비적인 비판을 역학의 기본이 되는 개념들에 대해서는 제쳐놓는다. 그들은 언제나 운동의 개념이 단순한 개념이기를 원한다. 운동 현상의 문제 의식에 대한 무지 속에서 가장 예민하게 복잡한 사람들 내지는 가장 미묘하게 내성적인 사람들은 기묘하게도 단순한 관념에 만족하는 수가 있다. 니체 같은 사람은 운동과 같이 단순한 사 실을 설명하기 위해 너무 복잡한 가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쓰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에 의하면, 하나의 대상을 다른 대상에 접근시 키는 운동과 하나의 대상을 다른 대상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운동, 이 두 가지 운동의 양식을 설명하기만 하면 된다 .3) 그것은 졸속이라고 해서 양해할 수 있는 단 한번의 판단이 아니다. 니체는 여러 번 이 피 상적인 관점으로 되돌아온다 . 던져진 돌은 동시에 손으로부터 떠나고 3) NIETZSCHE, 『철학의 탄생』, BIANQ U IS 번역, Par is, 123 쪽(원주) .

목표에 접근한다고 이 철학자에게 반박하기는 얼마나 쉬운 일인가! 그 돌은 동시에 니체의 두 가지 〈운동〉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사실 니체는 치고자 하는 의지만을 생각하는데 그에게 있어 충돌과 충격, 매력과 혐오는 근본적으로 역동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 떨리는 운동을 알지 못했고 진동의 현상학, 복잡성에 통일성을 부 여하는 현상학, 진동수의 개념을 원초적 개념으로 설정하는 현상학을 몰랐다. 니체는 또한 중심부에서 발생하여 주위를 온통 뒤흔들고, 공 간에 탄력을 부여하며, 이러한 공간의 반응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 지 가정을 요구하는 운동에 대한 문제 의식에 접근할 수도 없었다 . 지 금 말한 것은 빛의 운동을 별에서 우리에게까지 나르는 에테르의 가 정이 이의 없이 지배하고 복잡한 수학으로 표현되던 시대의 일이다. 일반화된 운동 , 본질적으로 다양한 운동, 한 대상의 운동이 아닌 운동, 그 동체를 찾고 실재성의 정도에 대해 숙고하도록 끊임없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운동에 대해서는 문제가 엄청나게 많다. 니체는 인간이 원인 이자 겨누는 사람인 인간 중심적인 역학에 그친다. 파급 현상은 그의 관심을 끌지 않는다. 그래서 자주 사람들은 탐구하지 않는 문제들을 분명하다고 한다. 주로 현대의 과학 사상을 향한 이 책에서 만약 우리가 운동 과학의 선사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 충분한 여지를 준다면, 때로는 임 페투스 4 ► 라고 하는 제일 원인에서 때로는 동체가 그의 자연스런 장소 로 귀환한디는 목적인 5) 에서 운동 법칙을 발견한다고 주장하는 텍스트 4) 임페투스설에 대해서는 바터필드가 쓴 『근대과학의 기원 』 (차하순 옮김) 9- 없 쪽을 참고할 것 5) 아리스토텔레스는 질료인, 동력인 , 형상인, 목적인 등 네 가지의 원인을 설정했 다. 저기에 서 있는 집의 원인에는 우선 집을 짓는데 필요한 벽돌과 목재 동으 로 이루어지는 질료인이 있다. 그 다음 벽돌이 배열되어 구조나 형태를 이루는 형상인이 있고, 질료가 형상을 얻도록 하는 동력인, 죽 건축가가 있다. 마지막으 로 사물의 목적(집의 경우에는 거주)에 해당하는 목적인이 있다.

둘을 용이하게 소개할 수 있을 것이다 . 역학의 기본적 개념의 형성에 대한 극적 인 토론을 추적 하고자 하는 독자는 코이 레 Alexandre Koy re 의 『 갈릴레이 연구』에서 완벽한 정보를 찾아보기 바란다 . 교육받은 독 자는 갈릴레이와 같은 위대한 정신이 혼미한 생각에 사로잡혀 잘못된 관념의 분석에서 고통스럽게 참을 발견하고 느릿느릿 명료한 개념에 이르는 것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교양 있는 독 자는 이때에 건전한 과학 정신이 수행하는 방벽의 힘을 경험할 것이 다 . 이처럼 과학 사상을 숙고하기 위해 역사를 이용하고자 하는 학자 는 회귀의 역사를 어떤 명확한 지역 너머로 향하게 하지는 않는다. 이 때 그는 아직도 철학자를 위한 운동의 학설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랄 근거가 있는 것이다 . 혼미한 생각을 분명하고 명확한 관념처럼 제안하 는 니체 같은 사람의 고지식한 생각에 어떻게 놀라지 않을 수 있는가? 흔히 철학적 사고는 체계화 작업에서 가치룰 입증한 개념들을 혼미한 안개로 포장한다 . 과학적 객관성의 정복에서는 신참내기의 직접적인 직관을 거부해야 한다 . 실상 , 이 직관은 우리에게 사적인 경험만을 준 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운동의 문제에서 이러한 친밀성은 함정에 빠뜨리기 쉬운데, 운동이 우리의 내부에 있기에 우리는 그것이 우리의 운동이라고 수월하게 믿고 곧 이어서 운동이 우리의 생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객관적인 지식은 이러한 최초의 지식에서 밝혀지지 않는다. 객관성은, 이미지들을 개념들의 합리적인 조직화에 의해 대체 했을 적에, 즉 최초의 이미지들을 수정하고 최초의 관심을 차단한 연 후에 객관화 작업의 첨단에서 결정된다. ]] 역학의 점증하는 과학적 문제들의 진전에 대한 철학자들의 이탈을

보여주기 위해서 니체의 철학과 유사한 또 하나의 다른 철 학이 제시 될 수 있을 것이다 . 여러 가지 관점에서 베르그송의 동적인 철학은 운 동 개념에 대한 명시적인 연구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움직이는 물체의 존재론에 근거한다고 말할 수 있다. 베르그송식의 운동을 전개하지 않고 우리는 그 운동의 일반적인 방 향 설정에 주의를 집중하고자 한다 . 거기에서 우리는 하나의 깊이 파 고드는 관점을 볼 터인데 이는 우리로 하여금 반대 명제에 의하여 운 동 개념에 대해 현대의 역학이 구상하는 외연의 관점을 보다 잘 판단 하도록 해줄 것이다. 이때에 우리는 은유의 장과 개념의 장 사이에 있 는 차이를 보다 잘 이해할 것이다 . 철학자들의 전통적인 구분을 따르면서 관점들의 이러한 이원성을 수월하게 도식화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베르그송주의는 운동 경험의 내포의 가치를 높이고자 한 반면에 현대 과학은 이 개념의 외연을 증 가시키고자 한다 . 6 1 다시 말해서, 전자는 운동하는 물체에 대한 우리의 친밀한 경험을 외부의 이미지에 결부시키면서 하나의 직관을 심화하 는데 비해서 양자_파동 역학은 고전 과학의 원리들을 확장해서 미치 는 범위가 아주 넓은 하나의 귀납법을 발전시킨다

6) 현대 과학은 운동의 개념을 확장하여 동체의 역학적 운동으로부터 전기, 빛의 운동으로 그리고 마침내는 확 률 파의 전파까지 고려하게 된다.

그러나 이 비교 검토를 전개하기 전에, 우리는 외연의 연구가 현대 철학에서 겪는 좋지 않은 평판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 있기를 바란 댜 7) 이를 위하여 추상적 사고에 관한 외연의 직접적이고 실증적인 성 격에 주의하면 될 것이다. 대상들을 연결하는 것은 반드시 대상을 잃 는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대상들을 연결해 주는 방법론 , 겉으로 보기

7) 외연의 연구에 대한 좋지 않은 평판이란 이른바 내포 문맥(명제적 태도 동사, 간접 화법 , 양상 문맥, 부정법 동)에서 라이프니츠의 원리가 성 립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에 추상적이지만 구체적 사례에 대한 지배력에 의해 정당화되는 법칙 들을 계속 다양해지는 현상의 세계에 확대하는 방법론에 대해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파동 역학의 교훈 중의 하나는 외연의 철 학적 개념을 재평가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파동· 역학의 귀납적 가 치는 참으로 경이적이어서 우리는 자주 이 사실을 보여줄 것이다. 이제 운동의 한 유형을 깊이 파고드는 철학적 방법과 과학적 방법 을 잠깐 동안 바교해 보자. 후자는 우선 운동의 개념을 역학적, 전기 적, 광학적 등 가장 다양한 동체에 확장하고 다음에는 구체적인 제한 울 떠나서 위치 공간 속에서 확률적인 작은 구의 〈운동〉을 연구하는 데, 이는 동체의 현실주의와 합리성의 한가운데에 자리잡기 위해서 공 간의 현실주의를 벗어나는 이중적인 추상화 작업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베르그송은 19 세기에 유행했던 일반화된 기계 론에 대해 세심한 비판을 한다. 그는 일련의 불연속적인 특수한 순간 들 속에서 운동의 실재성을 파악하고자 하는 사고의 철학적 결함을 지 적한다. 베르그송이 영화의 스냅 사진을 찍는 것과 비교하는 이러한 오로지 수학적인 연구 방법은 한 직선의 점들만을 줄 수 있을 뿐이어 서, 우리에게 진실로 〈운동을 줄〉 수 없으며, 운동을 〈의식의 직접적 인 소여〉로 삼을 수 없다. 이 철학자가 생각하기로는, 정지된 점들에 한정된 이런 역학은 우리에게 운동의 연속성을 근본적으로 알게 해주 는 어떤 수단도 제공하지 않는다. 역학의 추상적 방법은 영화가 우리 에게 운동의 환상을 주듯이 연속성에 대한 환상을 줄 뿐이다. 수학적 이든 기술적이든 이러한 인위적 수단 대신에 베르그송은 내적인 실재 성에 호소한다. 요컨대 그로서는 연속성이란 의식의 직접적 소여이다. 우리가 외부적 경험의 불연속적인 의식 위에 도금하는 것은 이러한 내적 연속성이다 . 만일 우리에게 내적 연속성에 대한 직관이 없다면 운동에 대한 실증적인 검토는 결코 우리에게 연속성을 줄 수 없을 것 이다. 외부적인 검토가 상세하면 할수록 우리는 제논 Zenon 의 역설에

부딪힐 것이다 . 8) 그러나 내적 지속성에 대한 직관이 모든 것을 구하고 그래서 베르그송은 가치들의 전도를 제안하는 것이다. 의식과 생의 가 치가 보편적인 설명 가치의 반열에 오르는 것이다.

8) 베르그송에 의하면, 운동을 통과한 거리와 동일시하면, 죽 거리에 관해 참인 것을 운동에 관해서도 참인 것으로 가정하면 제논의 역설이 발생한다 . 거리는 무한히 분할이 가능하지만 운동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 공간과 시간에 대해 필연적으로 점괄적이고 불연속적인 분 석을 고려하는 베르그송의 비판은 가장 발전된 것이기는 하지만 아마 도 가장 핵심적인 것은 아니다. 베르그송이 고전 역학에서 마음속으로 비난하는 것은 운동에서 원인과 겨냥된 목표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 이다. 그런데 역학이 아니고 생물학이나 심리학에 종사하는 사람은 원 인과 목표가 운동의 필요불가결한 구성 요소가 된다는 사실을 쉽사리 인정할 것이다. 이 철학자의 재능은 결국 원인에서 목표로 가는 모든 도정을 따라서 원인과 목표가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귀착한다 . 원인이 계속해서 작용하고 그래서 운동은 근본적으로 연속적이다. 마찬가지로 운동의 끝은 실제의 운동 에너지에 영향을 미 쳐서 이 운동이 수행해야 할 작용에 잘 계측된 에너지를 전개하도록 한다. 이렇게 에너지, 측정, 작용, 연속, 운동 등 물리학자에게 친숙한 단어들 속에서 갑작스런 음향이 울려퍼지는데 이는 물리학자를 만족 시킬 수 없다. 왜냐하면 단어들이 과학적 탐구에서 제대로 체계화된 정확한 정의를 벗어날 때에는 텅 빈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단어 자체에 대해서 철학적 정신과 과학적 정신의 이혼이 시작된다. 물론 이 이혼은 보다 깊은 이유가 있겠지만 단어상에 대한 오해는 적 발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두 정신을 화해시키고자 하는 철학자의 임 무는, 철학자와 과학자가 동일한 문제를 취급한다는 사실을 조금이라 도 확신하기 위해서, 문제의 범위를 잘 제한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베르그송의 철학에서는 운동의 궤적에서 원인과 목표의 통합이 너

무 강한 나머지 중간 운동은 자주 이 철학자의 주의를 벗어난다 ? 궤 도는 수단의 처리에 다름아니어서 그의 관심을 끌지 않는다. 그는 줄 밥 속에서 움직여서 모든 순간에 운동의 흔적을 남기는 손의 이미지 처럼 실제적 가치가 없는 인위적인 궤도의 이미지를 부여한다. 이 줄 밥 매질은 특별한 저항조차도 없어서 베르그송의 줄밥은 추상적인 줄 밥일 뿐이댜 다른 한편, 베르그송은 도약과 장애의 변증법에 대하여 거의 생각하지 않는댜 그의 관점에서조차도 그는 운동의 수많은 다양 성을 검토하지 않는댜 그의 작품에는 훈련받은 운동, 잘 결합된 동작 의 합성, 복잡한 운동의 구성이 요구하는 교묘한 조작에 조회하는 것 은 아무것도 없다. 댄서의 운동에서 발랄함과 조화를 결합하는 우아함 의 감정에 대해 겨우 한 페이지가 있는데 유명하기는 하지만 동떨어 진 것이다.

9) 베르그송에 의하면, 단일한 운동이란 두 정지점 A, B 사이의 운동으로서 만일 중간에 정지점을 가정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단일한 운동이 아니다 . AB 사이의 화살의 운동은 활의 장력이나 마찬가지로 분해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영화의 추상화에 의존하는 비판이 그가 영화에서 가르침을 받 는 것을 방해하는 것 같다. 『의식의 직접적 소여』라는 책이 나올 적에 마레 Mare y의 새의 비상에 대한 활동 사진 연구가 전개되고 있었다. 마레의 시사에 따라 갈매기가 비상할 때의 특징적인 순간들이 하나의 삽화 속에 모여졌다. 이 삽화는 청동으로도 제작되었는데, 이것은 새 가 두 번 날개짓 하는 사이의 몇몇 자세를 나타낸다. 이 제작품은 자 연스런 운동의 몇몇 순간을 응결시키기 때문에 베르그송의 비판에 도 움이 되었어야 할 터이다 .10 ) 그러나 근본적인 인공성이 이 청동 작품을

10) 프랑스의 생리학자 마레 (E ti enne Jule s Marey, 1830-1W4) 는 다양한 형태의 운 동을 연구하였으며, 1880 년대에 운동을 재현할 목적으로 사진을 이용하기 시작 했다 그는 새가 나는 상태 를 자세히 알기 위해 갈매기가 날고 있는 상태를 구 리로 만든 조각으로 제작했다. 그 목적은 인간의 육안으로는 지각할 수 없는 운 동을 눈에 보이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 여기에서 바슐라르와 베르그송의 관점의

차이가 드러난다 . 새의 비상을 표현하고 있는 조각품을 보고 있는 응시자는 어 느 순간의 상태 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 이전과 이후 를 전부 본다고 바슐 라르는 생각하는 것 같다 . 그러나 상식적인 견해에 보다 가까운 배르그송은 거 기에서 다만 정지 상태를 볼 뿐이다 . 그래서 그런 상태 들 로부터 운동을 재구성 하려는 모든 시도는 운동이 움직이지 않는 것 들 로부터 이 루 어진다는 모순 을 , 즉 제논의 역설을 함축한다 .

응시하는 눈에게 새의 비상이 없는 이해만을 주어서 그 사람은 이 날 개의 복합체에 대한 응시에서 떨어질 수가 없다. 20 세기 초에 영화 를 이용한 검열에 의해 근로자들에게서 동작의 오류 를 감소시킨 길브레 드의 연구 작업도 있다)I) 길브레드의 파노라마 사진기는 활동적인 의 식에도 알려지지 않고 가장 주의깊은 눈에도 보이지 않는 세부 사항 울 넘겨준다 . 이처럼 영화는 운동의 기억 중에서 가장 충실하고 세밀 하다. 지 돈 Sie g fried G i edon 의 책 『기 계화가 지 휘 한다 !VIec haniz a ti on takes Command 』 (New York, 1948) 의 처음 몇 장을 넘기면 베르그송의 비판에 반대하는 영화에 의한 일종의 형이상학적 복수의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1 2 )

11) 미국의 생산기사 길브레드 (G il bre th, 1868-1924) 의 동작 연구는 작업을 단위 동 작으로 분할하는 데서 출발하여 운동의 시각화에 기여하였다. 그는 각각의 동작 이 어떤 궤적을 그리며 운동할 때 가장 효율적안가 를 연구하여 이른바 과학적 관리법의 선구자가 되었다. 12) 이 책은 『 기계문화의 발달사』(이건호 옮김, 유림문화사, 1995) 라는 제목으로 번 역되었다. 여기에서 바슐라르가 말하고자 한 요점은 모든 동작이나 운동은 분해 가 가능하다는 생각인데 베르그송의 관점과 정면으로 대립된다. 다른 한편, 설 령 운동을 분할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로부터 시간의 불연속성을 유도할 수는 없는 것으로 우리는 생각한다.

결국 베르그송이 우리에게 주는 사례에서 체험된 운동은 한 지식인 에 의해 체험된 운동으로 남아 있다. 체험성이라는 것도 역시 금방 하 나의 추상화가 된다. 심리적인 것, 생물학적인 것 그리고 역학적인 것 의 통합이 문제가 되므로 인간의 동작은 그 전체성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 . 장애물이 없는 사람의 동작은 무익하고 근거 없는 동작이 된다.

이 때에 우리는 실존주의자 사르트르의 〈운동은 존재의 장애이다〉 n ’ 라 는 선언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l41 실존주의의 존재 속에서 원인과 목 표가 다시 결합하고 그래서 모든 것이 고정된다.

13) Jea n-Paul SARTRE, 『존재와 무』, 414 쪽(원주). 14) 사물의 존재 양식과 인간의 실존 양식을 대비하고 있다 . 여기에 있는 분필이나 이 책상은 본질을 갖고 있다. 사물들은 이렇게 〈죽자적 en so i〉으로, 죽 안정된 상태로 존재한다. 이에 반해 인간은 〈대자적po ur so i〉으로 실존한다. 〈대자적〉 존재란 의식적 존재로서 대상으로 나아가 그 대상을 연구하고 분석하는, 기획 p roj e t을 갖는 존재이다. 그런데 대상은 장애물로서 문제를 구성한다. 그래서 움 직임은 존재의 병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사르트르의 운동은 역학적 운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다만 여기에서 우리는 저자의 시적 상상력의 한 단면을 보 면 될 것이다 .

어쨌든지 간에, 베르그송식의 존재론적 가치 부여나 사르트르식의 존재론적 평가 절하는· 철학자가 언제나 심화할 수 있다고 믿는 내적 경험에 의거한다. 반복해서 말하거니와 과학 사상이 힘을 기울이는 것 은 개념들의 객관적인 외연화 작업이다. 잠시후에 우리는 이 외연화 작업에 대한 스케치를 할 것이다. 그러나 운동의 존재론에서 원인과 목표의 통합에 관한 베르그송의 문제를 잊지 말자. 실상 우리는, 페르 마 Ferma t와 모페르튀 Mau pertui s 의 원리에 대해서 그리고 루이 드 브 로이 Lou is de Bro gli e 의 역학에서 이 두 원리의 종합에 관하여, 현대 과학도 역시 어느 정도로는 역학 현상의 기술에서 원인과 목표의 통 합을 검토한디는 점을 보여야 할 것이다. 궤도의 양극단에 관계되는 조건들이 파동 역학에 의해 명시되었다 . 그러나 거기에서도 광선과 역 학적 궤도의 개념을 확장한 연후에 즉, 이 두 개념이 동일한 수학적 정보를 받아들이거나 또는 적어도 대응 관계에 놓일 수 있을 적에 관 념들은 그들의 외연에 의해 분명해질 것이다.

III 이 책에서 우리는 현대 과학 철학의 진상을 해명할 수 있는 것만을 취급하는 고로, 고전적인 해석 역학의 인식론적 가치를 설정하려고 하 지는 않겠다. 갈릴레이의 업적 이래 운동학은 진정한 토대를 발견했 다. 뉴턴과 라그랑즈에 이르기까지 착실한 발전은 수많은 책에서 상세 하게 소개되었다. 이러한 진보에 대하여 전반적인 관점을 얻고자 하는 독자는 예컨대 마하 Erns t Mach 의 책을 참조하기 바란다 .1 5) 따라서 우 리는 현대 과학을 특징짓는 보다 복잡한 관점들만을 검토하고자 한다.

15) Rene DUGAS, 『역학사』, Gri ffon , Neuchate l, 1950( 원주).

만일 운동의 문제를 그 정확한 보편성 속에서 제기하고자 한다면, 특정 대상의 특수한 운동을 묘사하려고 서둘러서는 안 된다. 해석 역 학은 결국 가능한 운동들의 과학이기에 가능성의 일종의 전형적인 사 실에 빨리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에밀 보렐 E mile Borel 은 현대 역학 은 기하학, 물리학 그리고 확률론의 결합이라고 올바르게 지적하였다. 따라서 이 세 분야의 종합에 대해 강조해야 할 철학적 홍미가 있다 . 운동학의 발전 과정에서 여러가지 관점으로 보건대 사람들은 가능 한 운동들의 바탕에서 현실적인 운동을 결정하도록 이끌려졌다. 가상 변위의 원리는 실재에 대한 이러한 결정 방법의 증언이다. 실상 이 원 리의 의미는 무엇인가? 사고에 의하여 우리는 계의 상이한 지점에 결 합할 수 있는 무한히 작은 가능한 변위를 부여하고 이어서 이 가능한 변위들로부터 생기는 일을 계산한다. 이 가상일이 0 일 때 계의 평형을 결정하는 방정식을 얻게 된다. 달랑베르 d'Alembe rt의 원리가 계의 상이한 지점들의 관성력과 가한 힘을 동일시하도록 해주므로, 가상일의 원리는 정력학의 문제로부터 동력학의 문제로 전이될 수 있다 .16) 그래서 결합할 수 있는 모든 가능

16) 가능한 모든 경우에 질점은 F = ma 라는 법칙의 지배 를 받으며 정역학의 경우 F = O 이 된다. 달랑베르는 동역학의 일반적인 경우에 무엇이 0 이 되는가를 자 문하면서 즉시 F + (-ma) =O 이라고 위의 식을 변환하였다. 그렇게 되면 하나 의 질점은 적용된 힘의 합 F 에 판성력이라고 불리는 (-ma) 를 추가하면 전체가 0 인 힘에 이르게 되어 동역학을 정역학적으로 취급할 수 있게 된다.

한 운동에 대한 검토로부터 실제 운동의 방정식을 끌어내는 것이다. 실상, 이론 역학은 고립된 힘들보다는 역장(力場 )1 7) 을 고려한다. 역 장이란 만일 어떤 동체가 거기에 머무르거나 지나갈 때 힘이 나타나 게 될 공간의 어떤 지역이므로 가능한 힘의 장이다. 철학적 성향이 다 른 사람들은 다른 현실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역장을 특징지울 수도 있을 것이다. 열렬하게 현실적인 물리학자는 거기에서 감정 상태의 긴 장이 넘치는 공간의 어떤 지역을 보려고 할 것이다 . 파라데이 Faraday 같은 사람은 충전된 공간을, 팽팽하게 당겨진 줄처럼 거의 물질적인 선인 역선에 의해 차별화된 물리적 매질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한 해 석을 보여주는 것 같은 많은 실제적인 실험이 있다. 자기 스펙트럼에 관한 그림은 모든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 자석의 작용으로 줄밥이 정열되는 것을 한번 본 사람은 한 극에서 다른 극으로 조화롭게 휘는 이 곡선들의 집단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자기를 띤 공간은 이처럼 섬세한 다양성과 동시에 그 전체성 속에서 나타난다. 그래서 전류가 통과하는 구리선 코일에 의해 생긴 유사한 스펙트럼을 누가 우리에게 보여주면, 우리는 즉시 전류가 자기적 성질을 동반한다고 이해한다. 줄 밥에 의해 나타내지기 이전에 전자기장의 실재성을 믿지 않을 수 없었 으며 그래서 도선을 흐르는 전류는 도선 주위의 공간을 변화시킨다고 말하게 된 것이다 .

17) 요즘에는 〈힘의 마당〉이란 표현을 쓴다.

이러한 경험들의 명료성과 단순성은 이 경험들에게 확률적인 양상 을 은폐하는 현실주의를 부여한다. 실상, 실험의 조건에 대한 단순한 고찰만으로도 실험의 자의성에 대한 척도를 줄 것이다. 줄밥은 너무나

다르고 너무나 불규칙적인 것이다! 선들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으며 군데군데 엉기고 있다. 스펙트럼이 나타나는 판지를 살짝만 건 드려도 실현된 선둘을 이동시켜서 현상의 생성에는 우연이 있다. 결국 이 실험에 맞는 철학적 뉘앙스를 갖기 위해 상기해야 할 것은 기하학 적인 확률 하나의 정열된 개연성이다. 역장의 인식론적인 기능을 잘 이해하고자 한다면 역장의 현실론은 적어도 약화되어야 한다. 줄밥에 의한 형상화는 근본적으로 한 점에 국한된 것이며 거칠게 점마다 실 현된 것이어서 장의 연속성의 문제를 서투르게 제기한다. 장의 연속성에 관한 문제는 수학자와 물리학자에게 있어서는 좀 상 이한 조건 속에서 정확하게 나타난다. 수학자는, 어떤 지역의 각점이 임의적으로 선정된 어떤 힘의 근원이 될 수 있도록 말하자면 분산된 그리고 전적으로 불연속적인 역장을 정의하는 데에 아무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앙리 푸엥카레는, 내부적 힘이 하나의 역함수로부터 유래하지 않는 체계를 아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유의하면서 그러한 체계는 에너지 보존 윈리에 위배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 1 8) 실상 수리 물리학이 고려하는 모든 경우에서 우리는 퍼텐셜 1 9 )( 공간의 일정 지역에서 일양 연속 함수2 0 ) 로 주어지며 이를 미분함으로써 힘을 얻는다) 에서 유래하는 힘들을 고려한다. 이때 힘은 근방의 조건에 의해 정해 지는 것으로서 나타난다. 근방이란 용어는 일상 언어에서는 모호하지 만 수학적 의미에서는 원하는 모든 명료성을 받아들인다 .2 1) 퍼텐셜은 18) H. POINCARE, 『열역학 』 , 1908, 11 쪽(원주) . 19) 힘의 장 F 에 대하여 Fx, Fy, Fz 를 F 의 직각 좌표에 대한 성분이라 할 때 ,

Fx= ―景, F y=-뿡, Fz= ―뿔

가 되는 함수 u(x, Y, z) 가 있을 때 이 u 를 F 의 퍼텐셜이라고 한다 . 20) 택함하수면 F (|xx) 가_ Xxo =| < X o8 에일 서때 ,연 언속제이나란 l임f( 의x )의 — 양f(X수 o) Ic < 에 E 대가해 된 적다당는한 것 양이수다 . 8f 를 (x )선 를 어떤 구간에서 고려할 때 Xo 를 취하는 방법에 무관하게 f가 정해진다면 f(x) 를 이 구간에서 일양 연속 unifon nly con ti nuous 이 라고 한다.

21) P 가 위상 공간 X의 한 접이라고 할 때, X 의 부분 집합 N이 P 의 근방일 조건 은 P 를 포함하는 개집합 o pe n set G 가 있다고 할 때 PEGCN 가 성립하는 경우 이다 .

이처럼 , 주체의 문제 를 특정 상황에 위치시키면서 파악하는, 실존주의 의 용어로 말하자면 역동적인 상황을 정의한다. 합리적인 주체는 대단 히 다양하고 수많은 그리고 합리적으로 결정된 상황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시킨다 . 사람들은 그에게 수학적으로 주어진 역장에서 운 동을 연구할 것을 주문한다 . 철학자가 실제적인 작업에서 합리적 사고 를 추적한다면 합리적 상황에 대한 참조를 거부하지 못할 것이다 . 이 런 비교가 어떻든지 간에 수리 물리학에서 모든 역장은 합리적인 가설 로서 나타난다고 말할 수 있겠댜 하나의 퍼텐셀로부터 유래하는 역장을 연구하면서 우리는 역학 현 상의 수학적 표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중성 dual ity이 나타나는 것을 곧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역선과 등위면의 이중성이다. 여러 가 지 측면에서 이 이중성은 파동 역학의 파동과 입자의 궤적 간의 이중 성을 준비한다. 따라서 알려졌다 하더라도 우리가 잠시 거기에 머무를 필요가 있다. w 쇠의 줄밥이 뿌려진 하나의 자석이 그리는 그대로의 역장을 생각해 보자. 공간에서 잘 분포된 역선을 갖는 이상적인 자장에 접근할 수 있 도록 충분히 규칙적으로 자기를 띤 자석을 가정하자. 역선들을 직각으 로 자르는 면들의 그룹을 그리기 위해서 그다지 큰 상상력이 필요하 지는 않을 것이다 . 우리는 그림 1 에서 스펙트럼의 평면 위에 이 면들 중 몇 개를 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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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나타내었다. 물론 같은 높이의 면들의 그룹은 역선 들 의 그룹을 재구성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 줄밥이 역선을 나타내는 것처럼 만일 이러한 면들의 출현에 민감한 물질이 있다면 두번째 종류의 일종의 자기 스펙트럼을 갖게 될 것이다. 역선과 등위면은 직관적으로 상관적 이다. 그러나 역선의 개념과 등위면의 개념 사이에는 존재론적 차이가 있 댜 역선은 고려된 장의 유형에 민감한 동체가 있자마자 장의 한 점에 있는 동체가 따르는 진로를 가리키고 따라서 역선은 입자적 직관에 속한다. 반면에 등위면은 무수한 동체들의 운동의 동일한 가능성을 가 리키므로 파동적 직관에 속한다 . 이러한 이중성을 다른 예에서도 볼 수 있는데 거기에서 우리는 완

전하게 평형을 이룬 수학적 이중성으로부터 보다 덜 평형을 이룬 물 리학적 이중성으로의 이행을 보게 될 것이다. 지도 제작상의 두 가지 표상 방법을 상기해 보는 것으로 충분한데, 한 가지 방법은 등고선을 주는 것이고 다른 방법은 최속강하선 22 l 을 주는 것이다. 참모 본부의 8 만 분의 1 지도가 두번째 방법의 예이다. 이 지도의 가는 선들은 경사 를 따라서 흐르는 물방울이 따르는 진로를 나타낸다. 반대로 수준선 (등고선과 직교하는 선)들은 동일한 위치 에너지롤 가진 수많은 물방울 들의 낙하 가능성을 분명히 드러내준다.

22) 1696 년 요한 베르누이는 점 O 를 포함하는 연직면 위의 길을 따라 다른 한 접 P 까지 중력만의 작용으로 강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최소로 하라는 문제를 제 기하였다.

등고선은 그 밖에 강조해야 할 철학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아주 단 순하게 말해서 두 개의 등고선은 궤도 전체의 시발과 목적지를 통합 한다. 말하자면 한편에서는 하나의 등고선상에 시발의 동등성이 있고, 다른 편에서는 다른 등고선상에 목적지의 동등성이 있다. 두 개의 등 고선은 수많은 진로를 가지 게 한다. 거기에서 우리는 파악된 복잡성의 간단한 예를 갖게 되며 하나의 운동들 그룹에 대한 일반적인 교훈을 얻는다. 또한 나중에 우리가 되 돌아와야 하는 다양한 십급이 거기에 있는데, 그것은 잘 통합된 특징 속에서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V 광학에서 우리는 명백하게 변증법적인 방식으로 광선과 파동의 이 중적인 이미지를 나타낼 수 있다. 이 예비적인 묘사에서는 파동의 실 재론과 광선의 실재론에 관한 문제에 관여함이 없이 현상의 표상에서

이 이중적인 이미지의 작용을 나타내보자. 만일 우리가 하나의 광선을 다룬다면, 그것을 당연히 광입자의 진로 로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거기에 파동을 결부시킬 수 있겠는 가? 따라서 고전 광학의 이중적인 표상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광선의 집단을 고려해야 한다 . 광선이라고 명명된 기하학적인 단위는 하나의 한계 개념이라는 사실을 주목하자. 경험은 우리에게 광선의 다발만을 넘겨준다. 하나의 다발이 아무리 가늘다 하더라도 그것은 수많은 광선 들의 복수성을 함축한다. 이 단순한 지적은 광현상에 대해 고지식하게 단일한 견해에 반대하는 반박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광현상에서 엄청 난 다수성은 불가피한 특징들 중의 하나이다. 사람들이 하나의 광선이 라고 말할 때 그것은 하나의 추상화임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광선들의 다발들을 염두에 두자. 우리가 평행 광선들의 다발 과 관계할 적에 우리는 거기에 이 다발을 직각으로 자르는 표甫·들을 첨가할 수 있으며 그것은 평행한 평면파들이다. 이 파동다발은 광선 의 다발과 마찬가지로 광현상의 모든 가능성들을 완벽하게 개괄할 수있다. 예를 들어, 6 개의 피동이 그려진 그림 2 는 빛의 굴절 현상을 표현해 준다. 굴절된 파동은 굴절된 광선에 대응한다. 파동 다발은 광선 다발 과 마찬가지로 광현상 중의 하나의 발현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요약 해 준다. 등망성의 투명한 매질에서(특히 진공에서) 모든 방향으로 광선을 방 사하는 광원을 고려할 적에 우리는 일련의 동심의 구에 의해서나 마 찬가지로 하나의 구의 광선들에 의해 전체적인 현상을 나타낼 수 있 다. 이때 특정의 구면은 한 파동의 면이다프 여기에서 표상의 이중성 은 명백하다. 이러한 이중성은 구와 광선의 기하학에 의하여 전적으로 균형잡힌 것으로 보인다. 만일 누가 광선 광학의 정리를 수집한다면 그것을 파동 광학의 정

23) 7파~면 (구波형面 )파이면라은는 진개행념할은수 록호 이커겐지스며가 각 처 점음에 도서입의 하세였기다는 . 광줄원어든으다로.부 터 퍼져나

그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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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현상, 즉 계획 p lan 에 의해 재구성된 현상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광선과 파동의 철학적인 불균형은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계획에 대해서 생각하고 또 결합하며 모든 경험들을 계획에 의거해서 준비한다. 이론적이든 실험적이든 과학에 대하여 철학적 토의가 혼동 스러운 것은 대부분의 학자나 철학자들이 설명된 표상이라는 인식론적 으로 전형적인 사실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모든 실험은 우선 하나의 설계도로서 표상의 계획 자체에 의거해 생각되는 것이다. 이러한 표상으로부터 기술적인 방향에서는 실재론적인 철학으 로 치부할 수 있는 구체적 실현이 이루어지고 아울러서 이론적인 방향 에서는 합리적인 철학으로 치부할 수 있는 합리적 구성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여러 저서에서 계획에 의한 표상의 역할을 충분히 강 조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이 정도로 그칠까 한다 .24) 그러나 최초의 직관에 대한 실재론은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다는 24) 『부정의 철학』과 『적용된 합리주의』 참조(원주).

점을 주목해야 한댜 태양 광선 속에서 촘추는 먼지 가루들의 현상은 과학적으로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 만일 이 현상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면 확산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해야 할 것이다. 즉, 광선 의 직진성을 반박하는 현상을 연구해야 한다 . 다시 한번 더 다른 말로 하자면, 상식적인 현상이 명상에 잠긴 의식에 대해 의미하는 것과 과 학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동일하지 않다. 과학적 실재의 공략은 최초의 이미지에 만족할 수 없으며 최초의 직관에 의한 실재론은 유보되어야 한다 25)

25) 후설의 경우, 존재 를 성립시키는 근거를 규명하기 위해 일상적이고 자연적인 견해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는 것을 현상학적 에포케라 한다.

실재론적인 가치가 부여될 수 있는 곳은 경험의 근본적인 재구성에 서이다 . 과학은 이처럼 간접적인 실재론, 전문적인 구성과 밀접한 관 계가 있 는 실재론을 가르치며 이 점이 바로 아주 새로운 철학적 의미 인 것이다. 그래서 다수의 경험들을 총체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파동 설에 관해 통상적인 교육을 따른다면, 또한 파동에 의해 전달되는 실 제적 이미지에 의해 결정적으로 배울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하게 되면, 물속에 떨어진 돌이 일으키는 물결에 도움을 청할 것이다. 그러나 이 미지에 의한 사고의 불가피한 사정 때문에 이때에 파동은 보이지만 광선은 숨는다. 완전한 교육법은 따라서 이미지에서 신속하게 사유로. 가야 하고 파동과 광선의 기하학적인 이중성에 접근해야 한다. 그래서 과학 사상의 발전에 대하여 개관을 얻고자 한다면, 광선-파동의 이미 지와는 근본적으로 복잡한 이미지의 존재를 납득해야 한다. 우리는 기 꺼이 이 광선-파동의 이미지를 현대 과학 문화의 출발점에 놓아야 할 비데카르트적인 상상의 산물의 예로서 들고자 한다 . 26 )

26) 저자는 데카르트의 명석, 판명한 관념 대신에 복잡한 관념을 대립시키고 있다. 이것이 저자의 〈새로운 과학 정신〉의 요체인데, 이는 단순한 외관 아래서 복잡 한 실재 를 보는 것이다 .

물론, 광선-파동이라는 이중적인 이미지에 의한 이중적인 표상의 구성적 가치는 우리가 지적한 단순한 사례들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빛 이 전파되는 매질이 이방성 Z1) 일 경우에는 광선은 더 이상 직선이 아니 며 파동은 더 이상 면이나 구가 아니다. 그러나 복잡한 비유의 상관 관계는 지속될 것이며 복합적인 이미지는 이중적인 연구 방향을 간직 할 것이다. 역시 파동과 광선을 구분하는 존재론적인 뉘앙스도 남아 있을 것이다. 즉, 파동은 오히려 방사 운동 전체의 가능성을 요약한 것 이며, 광선의 다발에 밀접한 연관성을 주는 하나의 방식이고, 광선은 보다 실재성을 지닐 것이다. 그러나 무한 공간에서 한 세기 동안에 정 확하게 동일한 진로를 통과하는 태양의 두 광선이 있을 것인가? 광선 과 파동의 존재론적 지위는 결정하기 어렵다. 파동 역학의 개념들을 철학적으로 규명하고자 시도할 적에 이 어려움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Zl) 물질의 물리적 성질(빛의 굴절, 열전도, 팽창률 동)이 물체 안에서의 방향에 따 라 다르게 작용하는 성질, 반대의 경우는 등방성(等方性)이라 한다 .

VI 만일 모든 현상의 물질적인 조건을 생각한다면 다시 말해서 엄밀하 게 기하학적이고 역학적인 조건에 현상의 구체적인 생성 조건을 첨부 한다면 가장 단순한 개념들의 다원론적인 토대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점광원p o i n t ligh t source 이라는 아주 간단한 개념을 살펴보자. 그런데 그것을 기하학적인 양상에서 보는 대신에 빛 을 생성하는 질점으로서 검토해 보자. 느낄 수 있는 최소한의 빛을 생성하기 위해서는 진짜 대이변을 일

으켜야 한다. 가장 약한 불꽃을 위해서 수십억의 원자를 태워야 한다. 하나의 〈 광원 〉 은 아무리 작다 할지라도 곧바로 모든 방향으로 방사하 는 하나의 작은 태양이다. 이 태양이 순간적일지라도 그리고 불씨가 곧 꺼진다 할지라도 이 빛의 순간이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 해서는 안 된다. 광입자의 작은 사 출 이거나 대이변의 중심부에서 출발 하는 빛 파동의 진행인 이 현상들의 자세한 연대기를 추적한다면 엄 청난 수의 사건들을 기록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하나의 질점은 아무런 구체적인 존재에도 대응하지 않으며, 물질은 기하학적 점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기하학적인 점은 물질 적 인 성질을 가질 수 없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니 점광원에 대해서 는 뭐라고 말하겠는가! 하나의 점광원은 시공간에서 괴물 같은 다양성 을 보여준다. 실상, 물리학자가 하나의 점광원을 실현시키자마자 그는 아무런 인과 관계도 없는 근본적으로 다원적인 사건들을 생성시킨 것 이다. 점광원이 그 기하학적인 단순함이 부여하는 것으로 보이는 통일성 과 부동성을 보존할 수 없다고 누가 말한다면 물리학자는 놀랄 것인 가? 사실은, 점광원을 근원으로 가지고 있는 모든 관측할 수 있는 현 상은 하나의 통계에 속하므로 그것을 평균으로 고려해야 한다. 빛의 세기가 일정하다면 이는 큰 수의 법칙 281 에 따른 것일 뿐이다.

28) 한 번의 시행으로 사건 A 가 일어날 확률이 P 일 때, n 번 시행했을 경우 사건 A 가 일어나는 상대도수 f/ n 는 n 이 커짐에 따라 P 와 같게 된다. 이 법칙에 의해 수학적 확률은 경험적 확률과 일치하게 된다 .

확률, 통계, 다원성 이들이 점과 직선 그리고 초점과 광선의 기하학 에서 광현상의 생성을 동반하는 특징들이다. 이 특징들이 가장 단순한 현상에도 관련이 되어 있다는 점을 잊게 되면, 확률을 복합적인 현상 에 적용할 적에 설명 가치가 떨어질 것이다. 이처럼 가장 단순한 현상들도 통일성을 거부한다 . 점광원은 점으로

볼 수 있는 단위로 다루어질 수 없다. 결과적으로 점광원에 하나의 크 기, 하나의 형태를 부여해야 한다. 그러나 점광원에서 유래하는 사건 들의 다원성으로 말미암아 모든 방향에 무관한 형태, 즉 구형을 거기 에 부여해야 한다 이 구형은 다만 모든 방향의 빛의 방출에 대해서 동 등한 확률들의 형태를 나타낸댜 이 아무것도 아닌 크기가 공간 전체 에 관련된다. 구면 파동의 중심으로 가정된 형태는 실제적 형태들에 대한 우리들의 전적인 무지에 기인한다. 그러나 실제적인 형태들이라는 개념은 의미가 있는가? 모든 형태는 우리들의 지식 수준에 의해 규정된 대강의 크기에서 정의되지 않는 가? 게다가 운동의 형태가 관계될 때에는 문제가 더욱 복잡해진다. 이 문제를 구체적인 예에 근거해서 취급하기 위해 우리는 미시 물리학에 서 운동의 이미지에 대한 문제를 이 장의 끝에서 재검토하려고 한다. 특히 우리는 미시 물리학이 궤도의 개념에 부과한 뜻하지 않은 제한 에 대해 강조하고자 한다. 맨 이솝이 재치 있게 말한 대로 이미지란 차례차례 좋기도 하고 나쁘 기도 하고 필수적인가 하면 또 해롭기도 하다 . 29) 이미지가 좋을 때는 절도 있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하고 나빠지기 시작하자마자 벗어날 줄 알아야 한다. 나타나지 않는 현상이나 우리가 보지 못하는 세계를 묘 사하기 위해 사용된 모든 이미지는 그래서 항상 환원을 기다려야 한 다. 물리학 이론들의 역사는 자주 최초의 비유적 표현으로 된 이론들 29) 바슐라르는 이미지와 은유의 사용을 과학 교육에서 배제하지 않는다 . 그러나 수학적 이론과 기술적 실현, 죽 추상과 구체의 개념쌍으로부터 이중적 정보 를 담지하지 않는 그런 이미지나 은유는 거부한다.

의 환원의 역사이다 . 두 물체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여 서로 끌어 당긴다고 말하는 것은 끌어당김이라는 하나의 무절제한 현상학을 축소 하는 것이댜 이 끌어당김에 규칙을 주는 정확한 대수 방정식은 단번 에 모든 유혹의 심리학을 차단한다. 뉴턴의 가정에 대한 반박은 지나 친 이미지 그리고 체험된 이미지의 지지자 요컨대, 뉴턴의 공식을 얻 을 때까지 이미지를 환원하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언제나 왔다. 보어 Bohr 의 전자 궤도의 역사에 대해서도 인식론적으로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전자 궤도의 이미지에 지나친 부담을 지워서는 안 된다. 많은 대중화 서적에서 유행하는 이러한 과부하의 예를 한 가지 들어 보자. 알고 있는 것처럼 보어의 수리 물리학은 수소핵 주위를 도는 전 자의 가능한 궤도로서 분리된 궤도만을 염두에 둘 것을 주문한다 . 이 분리에 관해서는 명백한 수학적 이유가 있으니 발머 Balmer 스펙트럼 의 공식을 설명해 주는 것은 다름아닌 그러한 분리이기 때문이다. 분 리에 대한 물리학적 이유를 든다는 것은 확실히 커다란 발견일 것이 다. l'.) ) 그러나 이 물리학적 이유가 없다고 해서 비유적 이유를 들어야 할 것인가? 분명하게 터무니없는 이미지로 수학공식에 과중한 부담을 떠맡길 것인가? 고전적인 전자는 자유롭게 평원을 뛰어달리는 말인 반면에 보어의 전자는 무궤도 전차라고 말하는 화이트 헤드White head 에게서 배우기를 원하는 사람은 거기서 무슨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까 ?3)) 원형 궤도가 배치되고 중앙핵으로 구성된 수소 원자의 이미지는 어떤 점에서 교육적일 수 있을까?

30) 그림 9 와 5 장의 각주 17) 을 참고할 것. 31) 화이트해드는 수학적 법칙에 이미지를 부여하여 보다 쉽게 이해될 수 있기를 기대하지만 그것은 불합리한 이미지에 불과하다.

전체의 이미지는 세부적인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부자연스럽다. 우 리는 다른 곳에서 태양계 모형의 원자의 이미지, 그러니까 평범한 지식 과 과학 지식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듯한 이미지가 고등학교 수준에서

끼친 피해를 지적하였다 이 〈연속성〉을 조장하기 위해서 라스파이 Ras pai l 를 러더포드와 보어의 선구자로 들어야 할 것이다. 1 茂 5 년에 라 스파이는 원자와 원자의 운동을 태양계와 동일시했다. 그래서 그의 이 론에 〈원자론적 천문학 〉 이라는 이름을 준다 .32) 그는 인력을 〈 회전 압 축력 rota tor y com p ress i on 〉으로 대치한 그의 체계를 설명한다.

32) RASPAIL, <{ 응용과학보충학술지 > , 2 권, 13 쪽 이하(원주) .

기관차를 보지 않고 운동중에 있는 일련의 객차를 가정해 보자: 기관차는 객차의 앞이나 뒤에 마찬가지로 있을 수 있으므로 이 때 의 운동은 추진력에 의한 가정이나 마찬가지로 견인력에 의한 가정 으로도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의 과잉 앞에서 보어의 발견은 객관적인 지식에서 사 전 절충이 없는 절대적인 발견의 상태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인식론에 서 그의 발견은 은유적인 수사학의 중지로서의 지위를 확보한다 . 이러 한 제동은 교조적으로 하나의 실재를 단언하는 결과로서가 아니라 법 칙의 합리적인 이해에 관한 수학적 방법의 설정으로 간주해야 한댜 33) 그러나 보어의 궤도의 이미지를 제대로 보자프 실존주의는 단어들 울 고립시키지 않는 감성적인 언어를 유행시켜서 긴 단어의 그룹에 하이픈울 붙였다. 실존주의자에게는 〈인간은-세계-내에서-완수해야­ 할-초월-앞에-있다〉라고 쓰면 인간의 우주적 운명의 도정을 더 잘 나

33) 1 8.5.5년 라스파이는 원자를 작은 태양으로 보는 견해를 제시했다 . 그래서 연속 주의적 과학사가들은 라스파이를 보어의 선구자로 간주했는데 저자는 이 를 공 격하고 있다. 라스파이의 이미지는 은유적 상상에 그치는 반면에, 보어의 이미 지는 수학적으로 구성되고 싶험적으로 통제된 이미지이다 . 34) 원자의 행성 모델은 물리계의 실상을 그려주지 못하지만 , 교육과 도구로는 쓸 모가 있다. 무엇보다 그것은 수학적 공식들이 갖는 지배적인 의미에 따라서 읽 혀야한다.

타내는 것으로 보인댜 바로 이 단어의 궤적에 의한 방법을 전자가 궤 도 를 따라 더욱 잘 미끄러지게 하기 위해서 유명한 물리학자가 채택 했다 . 지드윅 S i d g w i ck 은 파동 역학은 정지파의 체계로서

궤도 함수를 얻기 위해서는 궤도의 확률적 정의로 귀착되는 궤도에 대한 점진적 탈현실화를 따라가야 한다. 원자의 구조에 관한 확률을 말할 적에 우리는 이 구조를 지니고 있 는 원자들의 수에 대해서도 역시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 결국은 하나 가 되는 두 개의 질문이 있다: 특정 화학 물질의 수십억개의 원자들 의 무리 속에서 반지름 a 의 궤도를 갖는 원자들의 수는 얼마인가? 또 는 , 이 물질의 한 원자의 궤도가 a 라는 반지름을 가질 확률은 얼마인 가? 전체 속에서 비율을 찾는 것이나 하나의 구조의 확률을 찾는 것 이나 문제는 동일하다. 곤세트 F. Gonse th처럼 말하자면 우리는 어떤 원자의 문제 앞에 있는 것이다. 물론 문제를 실험적인 관점에서 검토 한다면, 어떤 실험도 단일한 원자에 대해 시행되는 것이 아니며, 모든 실험은 원자들의 무리 속에서 어떤 원자에 대해서 시행되고, 따라서 직접적인 개념은 원자의 무리라는 점이 명백해진다. 과학 사상의 철학적 가치를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해서 이러한 복수 성을 이론의 토대 자체에 명기해야 하는데, 이 복수성은 실험의 토대 에 있기 때문이다. 원자는 무리이다. 원자는 개별자이기 전에 다수이 다. 원자의 존재론은 근본적으로 복수 체제이다. 그래서 현대 에너지

35) N. V. SIDGWICK , 『 원자가의 전자이론 』 , London, 1946, p . VI( 원주).

론의 근본적인 원자인 원자-확률을 가장 잘 이해하는 길은 원자―무리 를 고려할 때이다. 미시 물리학은 우리가 이 장의 서두에서 에밀 보렐 을 따라 환기한 역학, 물리학, 확률론의 예비적인 종합을 실현한다. 따라서 파동 역학의 시사를 받으면서 어떻게 전체 구조가 확률에 의하여 정의되는지를 보여야 한다. 그것은 파동 역학의 철학적 의미를 이해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확률론적 정신의 구성에 강력하게 기여하 는 상황의 역전이다. 간단히 하기 위해서 정상 상태의 수소 원자에 대해서 가능한 궤도 의 반경을 결정하는 문제만을 보기로 하자. 어떤 조건 아래서 정해진 에너지 준위 energy level 에서 나타난 수소 원자의 무리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가롤 아는 것은 다른 이유로 검토해야 할 하나의 문제이다. 들 뜨지 않은 상태에서 원자들의 무리를 관찰할 수 있는지는 자명하지 않다. 무리로서의 집합이 어느 정도 비율의 들뜬 원자들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모이자마자 동요하는 것이다. 이런 어려움은 차치하고, 최대한의 단순성을 받아들여서 모두가 정 상 상태에 있는, 에너지론의 관점에서 동일한 조건에 있는 원자들의 집단을 고려해 보자. 이 원자들이 모두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는 분명하지 않다. 이 단순화된 관점에서조차도 확률이 작용한다. 실 제로 파동 역학은, 핵의 역장fo rce fi eld 이 지배하는 공간의 한 점에서 전자의 존재 확률책)을 가리키는 파동 함수와 구조가 밝혀지는 공간의 한 구획을 결합하기에 이르렀다.

36) 양자 역학과 관련된 어떤 양(革)은 입자의 파동 함수 #이다. 帖에 의해 기술 된 입자가 발견될 수 있는 확률 밀도는 | 'P 12 으로 여겨진다.

원자핵에 의해 결정되는 장처럼 중심장에 대한 가장 간단한 파동함 수는 거리가 증가함에 따라 존재 확률의 지수 함수적 감소에 의해 표 현되는 하나의 함수이다. 감소의 원인을 전혀 모르는 모든 경우에서

만나게 되는 이 정보가 얼마나 빈약한 것인가 주목해 보자 . 또한 전통 적인 원자론의 직관을 가진 사람에게는 핵과 전자로 구성된 수소 원 자에서 전자가 핵으로부터 매우 먼 나아가서 무한한 거리에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역설적으로 보이겠는가 . 실상, 어떤 현상에서 지수 함수적 감소의 철학적 의미를 검토할 때 에 우리는 이 현상이 말하자면 원인이 결여된 것으로써 생각된다는 점을 이해하게 된다. 원인 작용이 없는 시간이 지수 법칙에 의해 기술 되는 자신의 결과를 보는 것이다 . 한 덩어리의 라듐 원자들은 〈알려진 원인 없이 〉 붕괴한다 .'J7 1 이 무리의 원자들은 아마도 무원인의 범주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역시 라듐의 붕괴는 지수 법칙을 따른다. 다 른 점에서, 이러한 붕괴의 극도의 규칙성은 확률의 실재성을 생생하게 제기한다. 라듐 원자 무리들의 붕괴 과정을 알리는 통계적 시간은 역 설적으로 규칙적 시간의 가장 완전한 모델로 간주될 수 있다 . 이 엄청 난 수의 사건들은 (라듐의 특정 핵에 대하여 붕괴는 하나의 사건이기에) 사건 없는 시간을 보여주는 것이다 . 수소 원자의 하부 구조로써 우리 는 바로 이 침묵하는 인고H 匡의 기능에 관계되는 것이다.

37) 강력(강한 상호 작용)은 아주 짧은 거리에서만 작용하고 핵자 거리의 몇 배만 되어도 0 이 된다. 양성자가 가까이 있으면 핵력에 의한 인력이 전기력에 의한 척력을 제압하지만 멀리 떨어진 양성자에서는 핵력은 척력보다 작다. 그래서 8'2 개 이상의 양성자를 가진 핵은 불안정하다. 이 때 알파선이나 베타선이 방출된 다. 라듐의 경우는 8 붕괴로 알려졌는데 강력과는 다른 종류의 핵력이 베타 방 출에 기여한다 . 이러한 핵력을 약력(약한 상호 작용)이라 한다.

사실, 전자의 존재 비율을 가리키는 것은 파동 함수의 자승이다. 모 든 방향이 등가이므로 여기에서 파동 함수는 전자에서 핵까지의 거리 r 의 함수로서 나타난다 . 전자의 존재 확률 분포는 따라서 그림 4 의 형 태가된다. 검사중인 구획에 관해 말하자면, 모든 방향이 동등하디~ 사실에 따

4' z

。 r 그림 4 v r 。 그림 5 P P 그림 6

라서, 우리는 이 구획이 인접하는 두 개의 동심구 사이에 있는 것으로 규정해야 할 것이다. 이 구들의 중심은 또한 핵의 중심이 된다 . 만일 우리가 두께 dr 의 구획을 고려하면, 검사중인 구획의 부피 V 는 그림 5 와 같이 거리에 따라서 포물선을 그리며 증가할 것이다. 수소 원자에서 전자로부터 핵까지 가장 개연성 있는 거리의 추정은 요컨대 일관성이 없는 이 두 가지 추정의 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중심 가까이에서 | ¢ I 2 은 크지만 아주 작은 구에서 형성된 구획은 아주 작아서 존재 확률은 거의 0 이다.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큰 구에서 형성된 구획들은 상대적으로 아주 크지만 | ¢ I 2 은 지수 함수적으로 감소해서 아~주 작다, 두 개의 추정을 곱하면 지수 합수가 포물선을 상쇄해서 촌재 확률은 0 이 된다. 결국 존재 확률을 나타내는 곡선은 앞의 두 곡선을 곱해서 얻어진 그림 6 과 같은 형태가 된다 . 이 곡선은 핵에서 a 의 거리에 있는 극대 값을 제시한다 . 정상 상태의 수소 원자에서 보어의 궤도 반경을 가리 키는 것은 단순히 확률의 이 극대값이다. 이처럼 문제는 더 이상 하나의 평면 궤도, 유일한 궤적으로 생각된 궤도, 행성 운동처럼 생각되는 하나의 궤도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기 하학이 확률 계산에 의해 밀려났다. 이제부터 원초적인 것은 확률적 지식이다 . 이제 한편에서는, 전자가 핵으로부터 일정한 거리에 있게 될 확률과 다른 편에서는, 핵과 전자의 일정한 거리에 의해 특징지어진 수소 원 자들의 수의 확률 사이의 변함없는 등가성을 고찰한다면, 세 번째 곡 선이 통계적 곡선임을 알 수 있다 . 단위 원자에 관계되는 확률 곡선과 원자의 집단에 관계되는 통계적 곡선 사이에는 등가성이 성립한다. 지나는 길에 파동 역학에 의해 실현된 기하학과 에너지론의 역전을 잘 주목하기 바란다. 파동 함수의 에너지론적 토대를 밝힐 적에 우리 는 이 문제에 되돌아올 것이다. 조금 전에 우리가 개략적으로 묘사한

문제에서 이 역전은 명백하댜 고전 과학의 문제에서는 엄격한 기하학 적 특징으로부터 일정한 에너지 를 계산한다. 양자 역학에서는 파동 방 정식에 의해 주어진 일정한 에너지로부터 말하자면 평균적인 궤도 , 보 다 정확히 말해서 궤도 함수를 가리키는 확률을 계산한다. 양자 화학 이 현대 물질론의 결과들을 해석하는 것은, 궤도 개념을 탈구체화한 후에 매우 추상적이 된 이 궤도 함수로부터이다 . 우리가 보기에 문제 의 그러한 진전은 바로 적용된 합리주의의 특색이다. 이 소묘에서 우리는 정상 상태의 수소 원자만을 고려하였다. 들뜬 형태하에서는 그림 6 의 곡선과 유사한 곡선들 속에서 다른 극대치들 이 나타날 것이다. 그래서 처음 태양계 이미지에서 서로 다론 궤도에 대응하는 다른 파동 함수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에 너지론이 너무 우세해서 사람들은 거기에서 기하학적인 것의 모순 같 은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들뜬 상태가 아닌 원자들의 무리에 서 취한 특정 원자의 전자가 들뜬 상태의 원자들의 무리를 특징짓는 거리에 도달할 정도로 핵에서 멀어진다 해도, 그 전자는 들뜬 전자들 로부터 조금도 에너지를 받지 않는디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거리가 들뜸의 충분한 표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보다 더 잘 말할 수 있겠는 가? 결국 실제 거리는 하나의 특정 원자, 미시 물리학의 대상으로 가 리킬 수 있는 원자 그리고 우리가 그 변모를 추적할 수 있는 원자만의 특징을 나타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원자는 철학적 신화에 불과하 다. 원자 내 세계에 적용된 실제 거리의 개념은 다음 장에서 보는 바와 같이 크기의 등급이라는 개념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하나의 유일한 원 자에 적용된 크기의 실재론은 원자 자체의 과학을 전제한다. 결국 원 자들의 무리에 부여된 특성에 대한 평균적인 실재론이 개별 원자의 실재성을 지배한다. 철학자는 존재들의 근본적인 복~ 대상으로 삼는 과학의 이런 가르침을 명상하는 데에서 많은 것을 배울 것이다. 원자는 하나이기 전에 여럿이다. 원자는 근본적으로 다수의 존재론이

다 . 그리고 모든 다수성은 확률의 결정에서 그 의미가 부여된다. 에밀 보렐이 현대 과학의 특징으로 특기한 기하학, 역학, 확률의 융합은 핵 심적인 철학 교육의 지위에 놓여야 한다. 다음 장에서 입자의 개념을 연구하면서 이 혼합된 새로운 존재론의 다른 양상들을 보기로 하자.

제 3 장 현대 과학에서 입자의 개념 우주에 대해 원자론적인 명상을 하시오 》

1) 사상( 事象 )의 온갖 차이는 원자들의 상태 변화에 기인하기 때문에 이 말은 깊 은 의미를 지닌다 .

Marcel SCHWOB, 『 모넬의 책 』 I 현대 물리학을 공부하는 철학자는 먼저 모든 사람들처럼 상식의 무 게에 의하여, 그 다음에 모든 교양인들처럼 그 자신의 지식의 기억에 의하여 방해롤 받는댜 그래서 그는 일상 생활의 직관을 따라서 입자 는 작은 물체라고 상상하며, 데모크리투스의 원자론에 대한 존경의 표 시로서 원자는 분할할 수 없는 물질의 궁극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지워지지 않는 인식론적 확신을 가지고 어떻게 과학 언어의 독창성을 이해할 것인가? 어떻게 완전히 새로운 개념을 형성할 수 있 는가? 어떻게 일상적인 경험주의의 테두리를 떠나서 실험실의 경험주 의를 이해할 수 있는가? 보편적인 지식의 확신에 대해서 기능을 발휘 하는 합리주의 대신에 어떻게 특정 분야에 한정된 지식에 대해서 설

정되는 순전히 공리적인 합리주의를 대체할 수 있겠는가? 현대 물리 학의 올바른 철학적 가치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고와 새로 운 경험에 접하기 위하여 초보적인 지식과 상식을 공식적으로 버리고 다시 침례를 받는 철학자들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입자의 개념을 개념의 새로움에 환원하기 위한 그리고 이 개념을 올바른 공리적 맥락 속에 집어넣기 위한 우리의 시도에서 우리는 게 으른 직관을 차단하기 위해 조금 역설적인 형태로 일련의 주장을 내 세우고자 하며 설명의 명석성을 도모하기 위해 이 주장들에 대해 번 호를 달겠다. II 1. 입자는 작은 물체가 아니다. 입자는 물질의 조각이 아니며 물질 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미 이론 화학이 원자의 개념을 형성할 적에 상식적인 경험에 의한 속성들을 원자로부터 박탈했다. 그래서 유고 H ug o 가 유황의 지옥적인 존재론의 뿌리로 노래한 〈유황의 덧없고 파 리한 창백함〉 2) 이란 구절은 원자 화학에 아무런 자취도 남기지 않는다. 원자화하면서 유황은 그의 사탄적인 면모를 잃은 것이다 . 유황에 대한 은유적인 실재성과 마찬가지로 상식적인 실재성은 유황 원자와는 관 련이 없다. 원자는 화학의 실험에서 합리적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새 로운 존재론적 지위를 갖는다. 아마도 보다 분명하게 현대 물리학의 입자들은 잘 정의된 실험에서 구성된 유형에 의거하고 있다 . 따라서 입자들의 정확한 정의의 수준에서 존재론적 지위를 결정해야 한다. 만 일 전자가 음전기를 띤 작은 물체라고 생각한다면, 다시 말해서 한 대 2) Vic t o r ffiJG O, 『사탄의 종말』, 자유의 천사(원주).

상의 존재나 대상의 속성의 존재를 두번에 걸쳐서 생각한다면 이는 과학에 파괴적인 습관을 가져오는 것이다. 윌슨W i lson 은 그러한 사고 의 철학적 결점을 분명하게 지적했다. 양성자와 전자가 전기를 띤 물질 입자로 고려되어야 하는지 물어 볼 수 있다. 대답은 이러한 관념은 사실에 의해 정당화되지 않는다 는 것이다. 음전기로 물체를 충전시키는 일은 이 물체에 전자를 추 가하는 데 있고, 물체로부터 전자를 빼내서 양성자가 더 많으면 그 물체는 양전기로 대전된다. 그래서 전자가 음으로 대전되어 있다고 상정할 수 없는데 하나의 전자에 하나의 전자를 추가하면 두 개의 전자가 되기 때문이다. 전자나 양성자는 바로 전기 원자들이며 오늘 날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들은 불가분리의 것이다. 우리는 전기를 전자와 양성자의 형태로만 알 수 있기 때문에 이 입자들이 마치 전 기와 물질이라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아 무 의미도 없다 .3 1

3) H. A WILSON, 『원자의 신비』, 1934, 28 쪽(원주).

우리는 이 긴 문장을 번역하였는데 이 물리학자는 특정의 철학적 난점에 대하여 주저함이 없이 역설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미 시 물리학의 개념과 고전 물리학의 개념 사이에 있는 절대적 단절에 직면하고 있다. 전기 공학에서 아주 통상적인 물체를 대전시키는 조작 은 입자 수준에서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전기적 입자는 대전된 작은 물체가 아니다. 언어 분석은 여기에서는 기만적일 수도 있다. 통상적 인 철학적 분석도 금해야 한다. 우리는 물질과 속성을 전체적으로 종 합해야 하며, 보다 정확히 말해서 오직 속성을 현실화해야 한다. 전기 라는 속성 뒤에서 물질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전기적 입자의 경우에

서 입자 철학은 엄밀하게 정의된 촌재론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철 학자 가 이러한 존재론에 결부되기를 원하면 이 존재론은 철학 교육에서 상당한 가치를 지닐 것이다. 확실히 이러한 입자의 존재론은 물질의 비합리주의라는 식의 모든 도피를 분명하게 차단할 것이다. rn 2. 입자는 설정할 수 있는 절대적 크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다만 크기의 등급만을 지정할 따름이다 . 이 크기의 등급은 존재의 구 역보다는 영향권을 결정한다 . 보다 정확하게 , 입자는 그가 활동하는 공 간의 한계 내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 여러 기회에 우리는 입자적 존재의 근본적으로 에너지적 성격에 대 해 주의를 환기시킬 것이다 . 바일 Hermann We y l 의 최근 저서 『수학철 학과 자연과학』 (1949) 에서 그는 전자의 반경에 부여된 크가의 등급이 10-13cm 라는 점을 상기하면서 〈이 수자는 두 개의 전자가 빛의 속도 와 유사한 속도로 서로 접근할 수 있는 거리로서 해석되어야 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입자는 이렇게 무기력한 사물로서가 아니라 그의 대항력으로 정의 된다. 바일의 홍미로운 정의는 이를테면 최대의 대립을 추구한다. 광 속도가 상대론에서 한계 속도로 간주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 이 한계 속도와 한계소(限界小) 사이의 관계가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된다. 입자의 크기를 동력학적으로 정의하는 이런 방식은 현대 입자 철학 의 근본적인 독창성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불침투성이라는 고전적 개념과 닮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 물리학자롤 사실보다 더 실재론자로 만들어서는 안 되며 메이에르송 Me y erson 이 하는 것처럼 현대 과학의 원자론을 철학자들의 원자론에 연관시켜서는 안 된다. 오직 철학자들

만이 아직도 원자나 입자를 침투할 수 없는 것으로 상정한다. 그러나 불침투성의 개념 없이 수천권의 물리와 화학 책을 읽을 수 있다. 개념 이 한 가지 역할을 하는 것은 철학적 원자론의 경우에서처럼 절대적 성격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가스의 압축에 관한 마리오 트 M ari o tt e 의 법칙에 대해 더 나은 근사치를 주는 반데발스 Van der Waals 방정식에서 우리는 분자들의 상대 운동에 금지된 영역을 공동 부피라는 이름으로 고정시킨다 .4) 그러나 그것은 불침투성이라고 절대 적으로 표현되지 않는 제한이다. 만약 기술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압 력보다 더 큰 압력을 가하면, 결과적으로 가짜 불침투성의 구역을 줄 이면서 보다 작은 부피를 공동부피로 보아야 할 것이다.

4) PV = RT 로부터 반데발스는 (P+ 감기 (V - b) = RT 를 얻었다. a, b 는 각각 의 가스에 고정된 값이다.

그러나 실재론적인 철학자는 여기에서 하나의 반박을 예비로 가지 고 있다. 즉, 우리가 입자에 대해서 크기의 등급만을 안다면 그것은 〈지식의 부족〉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이때 실재론자는 입자는 모든 물 체와 마찬가지로 정해진 크기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시작 된 토론은 실재론적인 철학자가 독백하는 토론이 될 터인데, 왜냐하면 실재론적인 철학자는 입자의 크기에 대한 어떤 측정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시 물리학의 수준에서 도구라는 개념은 불합리한 것이기에 물리학자는 그러한 측정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다. 모든 도구는 사실은 일상 생활의 대상이다. 결론적 으로 입자의 크기의 등급은 추론되어질 수밖에 없으며 오직 추론 방 법만이 토의될 수 있는 것이다.

IV 3. 상관적으로, 입자가 지정할 수 있는 크기를 갖지 않는다면 입자 는 지정할 수 있는 형태도 가지고 있지 않다 . 달리 말하자면, 기본 입 자는 기하학적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 사실은 현대 입자 철학의 토대에 두어야 하는 커다란 철학적 독창성이다. 기하학은 합성이 가능 할 때에만 요소들의 합성에 개입한다. 현상과 물질에 대한 지식의 관 점에서 기하학은 우선 점과 방향의 작용으로 나타난다. 합성은 방향을 결정하는데 그래서 우리는 합성 전에 요소들 속에서 잠재적인 방향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 그러나 방향의 잠정적인 존재는 하나의 관점으로 머물러야 한다. 고립된 요소에는 기하학이 없다. 기하적 개념들은 우리가 합성의 질서 속으로 들어가는 만큼 효과적 이다. 핵에서 화학원자로 가면서 화학 원자를 전자들의 구조로 볼 적 에 기하학적 개념의 중요성이 증대되는 것을 볼 것이다 . 그러나 원자 에서 전자층의 이 기하학적 구조는 양자 화학에서 거의 완벽하게 탈 기하화되었다는 점을 유의하자 . 사실 물질의 기하학이 진정으로 나타나는 것은 원자에서 분자로 합 성이 이루어질 때이다 . 분자로 말하자면 그것은 작은 물체로서 기하학 적으로 고려될 수 있으며 지정할 수 있는 크기를 가지고 있다 . 분지는­ 하나의 조직인 것이다. 분자의 조립에 참여하는 그만큼 분자조직을 보 다 잘 알게 된다는 점은 철학적으로 흥미롭다. 조금 복잡한 구조가 역 설적으로 보다 단순한 구조보다 더 잘 알려지게 된다. 화학자는 분자 의 조립자로서 자주 분자의 보완물로서 분자를 만들어낸다. 분자 기하 학은 따라서 발명 화학의 진정한 안내자이자 복잡한 화학 물질의 발 명을 위한 암시가 된다 . 역으로 합성을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는 어떻게 기하학적 구조를 생 각해야 할지 모른다. 단순하다는 것은 자동적으로 구조의 상실을 의미

한다 . 철학자의 원자와는 반대로 물리학자의 기본 입자는 전혀 기하학 적 구조를 가질 수 없는 것이다. V 4. 입자에 일정한 형태를 부여할 수 없기 때문에 입자에 정확한 위 치도 부여할 수 없다 . 입자에 위치를 부여한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외 부로부터 이를테면 부정적으로 입자에 하나의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 아닌가? 이처럼 절대적 형태를 찾을 때와 마찬가지로 절대적 위치를 찾을 적에 직관은 어지러워진다. 이 점에서 우리는 데카르트적인 상상력과 전적인 단절을 본다 . 5 )

5) 데카르트는 물질 res exte nsa 을 공간적인 연장(延長)을 갖는 실체로 정의하여 의식 res co gitan s 과 구별했다. 원자 물리학온 공간을 점유하는 것으로 정의된 물질의 개념을 붕괴시켰다 .

실상,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라서 입자의 위치 결정은 그러한 제한에 묶여 있기 때문에 위치가 설정된 존재라는 개념은 더 이상 절대적 가치롤 지니지 않는다. 입자 물리학에 관계가 있는 이러한 국한된 존재론의 결여는 철학자 로 하여금 숙고하도록 해야 한다. 위치가 설정된 존재란 실재론에 관한 모든 토의에서 대상들을 가리키는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 아니던가? 거기에 있다라고 하는 것은 현상학에서 객관화의 관점을 정착시키는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기능이다. 철학적 토론을 하면서 사람들은 자주 의식이란 사물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은 의식이 아닌가 자문-한다. 그러나 미시 물리학은 이러한 직접 지시의 특권을 보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통적 실재론과 마찬가지로 현대의 현상학도

미시물리학에 접근하는 데에 부적절한 것으로 드러난다. 이들은 일상 경험에서 출발하여 나아가는 철학이다. 현대 과학은 새로운 출발을 요 청하며 철학자에게 새로운 출발이라는 기묘한 문제를 제기한다. 여기 에서는 우리의 기계적인 동작의 언어나 기하학적 직관의 언어로 모두 표현되지는 않는 전문 기술에 의존해야 한다 . 미시물리학이 야기히는· 인식론적 혁명은 다른 한편 현상학을 본질로, 죽 지적 인식의 대상을 체계화하는 학문으로 대체하도록 한다. 사고의 대상들은 순수하게 인 공적인 실험 속에서 전문적 실험의 대상이 된다. 전자에 관해 연구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직접적인 현상들이 배제되고 차단되어야 하는지! 전자에 관한 전문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축적되고 조직 화되고 토의된 사고를 필요로 하는지! 동일한 사고선상에서 다음과 같은 점도 역시 강조되어야 하는데, 일 상의 경험에서 아주· 친근하고 분명한 ……안에 있다라는 말도 거기에 있다라는 말에 대한 반박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반박을 일으키기 시작 했디는 점이다. 우리는 원자핵의 분야에서 실제로 입자가 십중팔구 그 안에 존재하지 않았을 한 공간의 출구에 존재하는 신기한 입자의 경우 를 볼 수 있다 . 그 입자는 틀림없이 변환 과정중의 핵의 전자들로부터 나온다. 물론 핵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최초의 시도들은 전자를 핵 을 조립하는 요소들 중의 하나로서 간주하면서 수행되었다. 전자가 핵 의 내부에 있다는 이러한 착상은 점점 더 큰 어려움에 빠지게 했다. 사람들은 이미 핵에는 전자가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다. 이를테면 추방의 동력이 그 결과로 입자에 존재를 부여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한번 더 동력학이 성찰을 요하는 최초의 원리가 되며 그래서 미소물 (微小物)의 연구에서는 근본적으로 동역학적인 정보에 도달해야 한다. 미시 물리학의 영역에 들어갈수록 보다 큰 중요성을 에너지 개념에 주어야 한다. 상식의 대상들만이 공간에서 평온하게 움직이지 않고 존 재할수 있다.

지나가는 길에 오늘날 얼마나 빨리 과학적 사고가 성숙되는지 확인 해 보자. 수세기 동안 사람들은 불이 부싯돌 속에 충돌하기 전에 존재 했다고 믿었다 . 핵 속의 전자라는 대응하는 직관을 사람들은 단지 십 여 년간밖에는 따르지 않았다. VI 5. 여러 상황에서 미시 물리학은 입자의 개별성의 상실을 하나의 진 정한 원리로 제기한다 . 실제로 그들의 궤적에 의해 개별화된 두 개의 입자가 더 이상 그들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좁은 지역을 통과하게 되면 그들을 구분해 주었던 번호를 더 이상 매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서 지식을 망치는 재난을 본다면 그것은 잘못 생각하 는 것이댜 우리가 환기한 상황에서 탈개별화의 사실을 확인하는 일은 실증적 실험의 온통 하나의 영역을 파악하는· 풍요한 원리를 준다. 결 국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 원리의 필연적 귀결에 관한 문제가 된다. 이 보조 정리는 불확정성 원리와 동일한 실증성을 지닌다 . 물론 이 보 조 정리 역시 새로운 출발을 요구하며 철학자들에게서 숱한 토론을 불러일으켰던 구벌되지 않는 것들의 개념을 갱신한다 .61

6) 라이프니츠의 〈판별 불가능한 것의 동일 원리 the princ ip le of the ide nti ty of ind i sc ern ible s> : 만일 x 의 모든 속성 과 y의 모든 속성 이 같으면 x 와 y는 동일 하다.

문제는 더 이상 그 자체로서 분간되지 않는 사물들의 문제가 아니 기 때문에 잘 정의된 조작에 의거해야 하는데 바로 이런 조작이 구체 적인 상황에서 개별성을 분간할 수 있는 수단을 잃게 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입자들을 존재의 근원으로서가 아니라 실험의 근원으로서 고찰해야 한다. 물리학과 더불어 우리는 전문적 실험에 의

해 조건화된 존재론으로 들 어가 는 것이다. 실험에 따 르 지 않 는 가치 를 부여하는 절대적 존재론으로 우리는 무엇을 할지 모 른 다 . WI 6. 끝으로, 철학적 원자론의 근본적인 공리를 부정하는 마지막 명제 로서 현대 물리학은 입자가 소멸될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래서 그 최 초의 기능이 모든 변화에 하물며 파괴에 저항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던 원자는 현대 과학에서는 절대적 항상성의 역할, 근본적 존재의 역할은 더 이상 맡지 않는다. 〈없어지는 것도 없고 새로 생겨나는 것도 없다〉 는 고대의 원리는 새로운 비용을 치루고 생각되어야 한다. 아마도 입 자의 소멸에 따르는 현상이 있고 철학자는 입자가 사라지면 무언가 존속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러나 이 무언가는 사물이 아니 다. 메이에르송은 물리학자에게 고유한 것으로 간주했던 실재론적안 철학을 보다 분명히 할 것으로 생각하면서, 물리학자는 사물화하는 사 람이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직관은 인간의 지성이 특히 강체에 관한 지식에 적합하다는 베르그송의 주장과 여러 가지 점에서 유사하다. 그 렇게 되면 원자는 작은 고체, 작은 사물로 간주되고 원자론은 말할 나 위 없이 작은 물체에 관한 학설이 된다 . 입자의 소멸은 사물주의의 패배를 확립한다. 이에 대한 철학적 중요 성을 즉시 강조해야 한다 . 입자의 생성과 소멸은 대다수 철학자들의 관심을 끌지 않았디는 점에서 더더욱 필요하다. 그렇게도 기묘한 현상 앞에서 이러한 무관심은 철학 정신과 과학 정신 사이의 심연에 대한 새로운 표지이다. 철학자들에게 이 소멸과 생성의 현상을 설명하면 거 의 현상학적으로 이 무관심을 알아차리게 되며 얼굴에서 이 무관심을 읽을 수 있다. 과학의 그러한 현상은 자연의 현상이 아니다. 그러나 철

학자는 토론 없이 그냥 받아들이고 지나가버린다. 그는 과학의 현상을 철학에서 고려하지 않는다. 그는 과학이 절대성의 사양을 증명하는 시 간에서조차도 절대성을 간직한다. 반대로, 과학적 사고는 상당한 저항 후에야 과학의 현상을 받아들이 고 거기에 계속 몰두한다. 이럴 때 수학자는 반드시 소멸 연산자 annih il a ti on o p era t o/) 를 설정하게 되어 있다 . 그리고 그 일은 용이하지 않으며 결과가 곧바로 만족스럽지도 않다. 신기하고 매력적인 사고를 해야 하는 엄청난 이론적 작업이 필요하다. 이 소멸과 생성의 연산자 둘은 나아가서 기본 입자들의 모든 성질 변화를 작성하는 데 쓰여야 되지 않을까? 여기에서 우리는 존재의 문턱과 또한 변화의 문턱에 관 한 학설의 초안을 수중에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핵에서는 양성자와 중성자 사이에 아마도 성질 변화가 있다. 이러한 성질 변화는 소멸과 생성의 연속적인 과정의 결과가 아닐까? 현대의 입자 철학 수준에서 는 존재-생성의 변증법은 아주 새로운 문제들을 제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는 입자 변형의 존재론이 입자의 존재론에 결부되는 것을 본다 . 8 )

7)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진 독자는 예컨대 『 현대물리학사전 』 (전파과학사, 36'2- 364 쪽)을 참조 8) W. HEISENBERG, 『 두 강연』, 기본입자이론의 현상황, Cambri dge , 1 949, 13 쪽 참조(원주) .

VlII 좀 너무 빨리 요약한 감이 있지만 이러한 논쟁적인 주장에 의하여 우리는 다만 전통적인 원자론에 따른 철학적 직관 속에 입자의 개념 을 두는 무사려에 대하여 경고하고자 했을 뿐이다. 이론과 실험에 대

한 추론적 검토만이, 이론과 실험의 수많은 교차만이 입자의 철학적 의미를 우리에게 가르쳐줄 것이다. 그러나 우선 우리가 방금 만난 실재론의 강화 형태인 사물주의의 문제를 가능한 한 명백하게 제기해야 한다. 원자에 대한 현대적 개념이 점점 더 추상적이고 은밀하게 정의되는 시점에서 어떻게 원자에게 통상적인 현상이라는 구실을 줄 수 있는 가? 우리의 감각적 직관을 어떻게 직관을 벗어나는 존재들에게 옮길 수 있는가? 순진한 태도의 시기는 지났댜 어떤 물리학자나 실험가도 〈힘의 감각으로부터 나온 운동 원자의 개념처럼 입자적 원자의 개념 은 우리의 촉각으로부터 유래한다〉라는 메이에르송의 의견에 동의하 지 않는다. 1 장에서 지적한 대로 과학사에서 유익한 희귀 현상이 있기 는 하지만 현대적 관념을 감각적 소여에 결부시키는 것은 더 이상 아 무런 홍미도 주지 않는다 현대 과학은 감각 소여라는 선사 시대로부 터 완전히 벗어나서, 감각 기관을 가지고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실험 장치롤 가지고 사고한다. 우리가 위에서 환기한 제한들의 리스트를 훑어보면, 사물이라는 개 념을 입자의 특성 속에 두자마자 사물이라는 말속에 있는 이미지의 과 잉을 박탈하면서 실험적 사실들을 생각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특히 사물이라는 말에서 공간적 속성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면 입자는 사물이 아닌 하나의 사물처럼 정의된다. 비사물적 사물, 죽 보통 사물 의 특성이 아닌 특성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사물이 무엇인가를 이해하 기 위해서는 〈_자〉라는 접미사로 지정하는 모든 신참자, 미시 물리학 의 모든 〈대상〉을 생각해 보면 충분하다. 우리는 앞으로 이 모든 전자, 양성자, 핵자, 중성자, 광자 등의 특색을 말하도록 하겠다. 그러나 지 금부터 그들의 철학적 뉘앙스가 무척 다양하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하 는데 이들은 존재론적으로 상이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 이 목 록에 중력자, 제한자, 엑시톤등 핵물리학의 모든 발사체 p ro j ec ti le 들을

추가하면 그 차이는 더 커진다 이러한 다양성 앞에서 철학자, 실재론 자, 실증주의자, 합리주의자, 협약주의자 그리고 회의론자는 그들에게 논변으로 쓰이는 사례를 건질 수 있을 것이다. 사물론자라는 명목 아 래 모든 양상을 혼동하면 철학적 토론을 질식시킬 것이다. 한편, 사물주의의 문제에 병행하여 충돌주의라는 유사한 문제를 제 기해야 할 것이댜 충돌이라는 개념은 우리를 일종의 인식론적 괴물앞 에 서게 한다 . 9) 사람들은 이 개념을 단순한 것으로 추측하는데 그렇게 되면 과학과 철학을 거칠고 단순한 이미지 위에 세우게 된다. 사실은 근본적으로 복잡하다 . 왜냐하면 이 개념은 기하학적 개념과 물질적 개 념을 종합하기 때문이다.

9) 사물주의의 다른 형태인 충돌주의는 히드라(머리가 100 개나 된다는 괴물)로 비 유되는 소박 실재론의 또 다른 머리이다. 바슐라르에 의하면, 충돌 개념을 버림 으로써 얻게 되는 유리함이란 빛과 색에 관련하여 물리학의 축, 화학의 축, 시 각 생리학의 축 , 시각 심리학의 축 둥 합리성의 다른 축들을 정할 수 있게 된다 는 점이다 .

그래서 역설은 계속된다. 우연의 우주론 10) 에서 많은 교훈을 주는 충 돌 개념은 인과율이라는 학설의 근원 자체를 제공해 주었다. 이 개념 은 참으로 인과율에 대해 소박한 가르침을 준다 . 그래서 인과율의 개 념이 충돌이라는 소박한 직관이 주는 교훈을 넘어섰는지 자문하게 된 다. 퀴비에는 여기에 대해서 분명한 자백을 했는데 충분히 철학자들의 주의를 끌지 못했댜

10) 이 주제에 관심이 있는 독자는 역자의 졸고 「미쉘 세르 : 창조적 혼돈」(과학과 철학」, 제 7 집, 154-173 쪽)을 참고 .

충돌의 현상에서 벗어나자마자 우리는 더이상 원인과 결과에 대 해 분명한 관념을 갖지 못한다. II)

11) CUVIER , 『 1789 년 이 래 자연과학의 진보에 대한 역사적 보고 』 , Pa ris, 1810, 7 쪽(원주).

상식적으로 단순한 관념으로 보이는 도식호문 충돌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입자 철학에 이르게 되면 충돌에 관한 거시 적 이론에 조회해서는 안 되며 만남의 이론을 새로 만들어야 할 것 같 다. 그러나 메이에르송은 이렇게 쓴다 . 입자들간의 모든 작용은 〈명백히〉 충돌에 의하여서만 일어난다. 충돌에 의한 작용은 가스만의 이론이 아니라 모든 입자 이론의 〈핵 심적인〉 요소를 구성한다 .12 1

12) Em ile MEYERSON, 『동일성과 실재성』, 63 쪽(원주) .

우리는 원문의 두 단어에 밑줄을 그었는데 왜냐하면 사물론자와의 토론에서 이 단어에 반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 그러나 이런 토론은 무 익하다. 현대 과학은 형식적이어서 메이에르송의 주장에 반대되는 결 론에 이른다. 실상 지금의 과학은 충돌이라는 단어를 상호 작용에 있 어 상이한 과정들 대신에 간결을 위해서만 쓴다는 점을 주의깊게 예 고한다. 예를들어, 우주선에 관한 그의 훌륭한 책에서 르프렝스 렝그 Le prin ce- Ringu e 는 이 렇게 쓴다. 원자의 영역에서는 그리고 특히 전자와 같은 입자가 문제가 될 때 에는 충돌이란 표현은, 전자에 대해 공간적 표상을 할 수 없다는 이 유에서 접촉이 있었다는 사실을 함축하지 않는다. 충돌이라는 말 대 신 상호 작용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나은데 이렇게 하면 덜 명확한 이미지를 개입시키고 덜 부정확하다 .1 3 )

13) LEPRINCE-RINGUET, 『 우주선』, Albin Mich el, 23 쪽(원주) .

도델 Daudel 도 같은 언급을 하는데 미시 물리학에서 충돌에 대해 말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1 /41

14) P. and R. DAUDEL, 『 원자, 분자 그리고 빛 』 , Par is, 1946( 원주) .

유사한 언급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 또 다른 한편, 광자 와 전자처럼 상이한 성질의 입자들의 상호 작용을 생각해 보면 이런 상호 작용은 동일한 상아로 만든 두 당구공의 충돌처럼 연구될 수 없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그래서 적어도 〈충돌〉이라는 말에 새로운 정의 를 주어야 한댜 그런 상호 작용을 연구하는 컴프턴 효과는 새로운 사 고들을 내포하고 있다 . 만일 만남에서 〈충돌〉만을 본다면 그리고 광자 의 진동수 변화를 무시한다면 컴프턴 효과의 교훈적 가치를 잃을 것 이다 .1 5)

15) X 선을 전자에 충돌시키면 전자에 에너지의 일부를 주기 때문에 충돌 후 X 선 광자의 파장은 에너지 손실에 의하여 길어진다, 광자의 파장 A = h c/E.보다 자 세한 내용은 6 장의 각주 7) 을 참고 .

이처럼 사물주의나 충돌주의는 현대 과학의 현상들을 기술하는 데에 매우 부적합한 철학으로 우리에게 보인다. 그러한 철학은 공간과 힘에 관한 우리의 최초의 직관이라는 노예 상태에 우리를 넘겨준다. 원자가 공간의 한 조각 16 ) 이라고 말하는 메이에르송의 표현을 수락한다면 현대 원자론의 발전 과정을 따라갈 수 없다. 그의 말은 질문을 제기하지 않 는 표현이며 현대 원자론의 엄청난 문제의식을 소홀히하는 말이다 . 그 런 표현은 또한 실증적 정신의 신중한 제한들을 급히 제거한다. 그래 서 그런 말은 철학적 사고의 명백한 쇠퇴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사실 〈공간의 작은 한조각〉으로 정의된 입자의 개념은 우리로 하여금 데카 르트 물리학이나 데모크리투스 물리학으로 되돌아오게 하는데 , 현대 과학의 문제에 접근하고자 한다면 이런 물리학에 대항해서 사고해야 한다. 작은 물체로 간주된 입자의 개념이나 두 물체의 충돌로 간주된 상호 작용의 개념이야말로 장애가 되는 개념이며 문화의 정지가 되는

16) Em ile ivIBY ERSON, 앞의 책, 243 쪽(원주).

개념으로써 조심을 요해야 할 것이다. 이 점에 관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과학에 있어서 설명의 문 제이다. 즉, 왜 설명을 하고 누구에게 설명하는가? 아마도 모르는 사 람이나 설명이 필요한 사람에게 설명할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좀 아는 사람인가 그리고 더욱 알고 싶어하는가? 그 모르는 사람이 더욱 알기를 원한다면 그는 달리 알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는 연구된 주제 의 모든 문제 의식을 점진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요컨대 , 호기심이 문제인가 아니면 지식이 문제인가? 만일 설명이 통속적인 지식에의 환원일 뿐이라면 그런 설명은 과학적 사고의 핵심적인 산물 과 아무런 관련도 없다. 그런데 과학자에게 질문하는 철학자는 그에게 과학의 지식을 통상적인 지식 나아가서 감각적인 지식으로 환원해 줄 것을 요구한다. 그는 최초의 직관이라는 행복한 단순성을 다시 찾기 위해 수세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IX 다른 관점에서 만일 소여의 철학과 구성의 철학 사이에서 정리를 하고자 한다면, 철학에서 전통적으로 받아들인 소여 gi ven 라는 개념이 현대의 입자 철학에서 사라졌다는 시실을 강조해야 한다 . 실상 단어의 의미를 뒤엎지 않는 한 입자가 소여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 물론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입자는 전혀 감각적 소여가 아니다. 나아가서 입 자들이 감추어진 소여라고도 말할 수 없다 . 입자는 발견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발명하는 것이다끄 입자는 적용된 합리주의가 활동중인 분야에 서 발명과 발견의 경계선 상에 위치한다 . 입지는· 적용된 합리주의의 17) Rolin WAVRE, 『실재의 상상』 , 4 장 : 발명과 발견(원주).

〈대상〉이다. 물질을 사원소 내지 네 종류의 원자로 요약하면서 물질을 연구할 때, 현상학은 유혹적인 이미지를 준다: 불은 하나의 불씨를 가지고 있 고 , 물은 한방울을 가지고 있고 , 흙은 하나의 알갱이를 가지고 있고 공 기는 먼지의 움직임에서 감지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식에는 입 자를 고립시킬 수 있는 아무런 방법도 없다. 이 모든 이미지는 기만적 이다. 이런 표현이 아무리 이상하다 할지라도 입자들은 〈인간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1 8) 그들은 과학사의 특정한 지점에서 나타나며 그래서 선구자적인 전자가 좀 예외가 되지만 1 9) 〈매우 20 세기적〉이다. 어떤 상상적인 역사도, 어떤 철학적인 유토피아도 입자들이 나타난 전 기 기술의 성숙 시기로부터 입자를 떼어놓을 수 없다. 입자가 출현한 시기에서 입자 철학을 해야 하며 입자 철학이 발전하는 변증법 속에 서 철학적으로 배워야 할 것이다.

18) 과학은 인간적으로 접근 가능한 실재에 대한 지식이라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 19) 전자는 19 세기 말에 영국의 물리학자 톰슨에 의해 발견/발명되었기 때문에.

X 그러나 끊이지 않고 철학 토론에서는 입자의 실재성에 관한 문제가 제기된다: 화학자의 원자 속에서 이온화된 원자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철학자는 이 분할 과정이 끝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지를 보통 묻는다 . 전자는 전자대로 구성된 것으로 밝혀질 수 있다는 사실 을 고려해야 하지 않는가 ?20) 기본적인 성격은 언제나 이와 같이 잠정적

20) 미시 물리학의 그후의 발전을 고려하면 저자의 추측은 홍미롭다. 사실 전자는 최초의 수준에서는 기본 입자이다. 그러나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전자는 언제나

광자를 방출하고 홉수한다. 나아가서 전자구양전자 쌍이 생성되는 것을 볼 수 있 으며, 한단계 더 나아가면 음으로 대전된 음뮤온(µ-)과 양으로 대전된 양뮤온 (µ+)의 쌍이 나타난다. 이들은 입자나 반입자의 관계에 있다. 결국 전자는 잠 재적인 모든 기본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프랙탈(분수 차원)의 경우에서처 럼 관찰의 척도에 따라 상이한 양상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인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한 의견은 활발하지 않으며 시사적인 문제에 대한 지식과 일치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속에서라는 단어의 무조건적인 사용을 경계 해 왔다 . 원자의 수준에서 이 말은 의미가 없다 . 미시 물리학은 분할의 한계에 도달했으며 이런 사실은 원칙에 따라서 그러하다. 사람들이 전 자 이하에 대해서 말할 때에는 전자의 분열로부터 나오는 하나의 조 각이라기보다는 전자보다 덜 하전되고 더 가벼운 하나의 입자의 자율 성을 고려하는 것이다. 입자들의 존재론적 지위가 재검토될 수는 있지 만 이는 실증적인 실험에 의하여서만 가능하다. 〈전자를 두 개로 분할 하는 장치를 개발하겠다〉는 발상은 전문가에게는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다. 물리학자는· 문제의 실증성을 이해하고 이로부터 이탈하지 않 는다. XI 그러나 현대 과학이 그 토대에 대하여 심층적으로 재검토할 가능성 울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전자의 존재론과 전자장의 존 재론에 대해서 진정한 전도(願倒)를 암시하는 위대한 이론가의 말을 들어보자. 전자와 전자장의 이원성을 길게 소개한 후에 프랑켈 Frankel 은 주위 의 전자장에 대해서 전자에게 부여된 존재론적 우위에 반하는 이의를

제기하면서 이렇게 묻는다 . 전자장은 전자들의 상호 작용에 대한 묘사를· 위해 도입된 보조적 요인으로만 취급된댜 전자를 자연에서 원초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전자장의 속성과 무관한 역동적 속성을 지닌 넓이가 없는 점으로 취 급해야 하는가 ? 2 1 1

21) J. FRENKEL, 『파동역학 』 , 2 권, 1934, Ox for d, 517 쪽(원주) .

그리고 프랑켈은 전자장을 자연의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것으로 제 기하고, 전자나 양성자는 전자장이라는 최초의 실재로부터 파생되어 어떤 독립적인 역학적 속성도 갖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존재론적 인 가치의 도치쪽으로 기운다. 전자와 전자장의 관계에 의해 생기는 수많은 어려움들이 전자를 전자장의 근원으로서가 아니라 산물로 고려 될 때에 제거될 수 있기를 프랑켈은 기대한다 . 한 학자에 의해 제기된 인식론적 가치의 전도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간에 철학자는 이러한 생각이 가정하는 정신의 자유에 대해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참으로 존재론의 상대주의에 관한 문제이다. 이 상 대주의는 가장 절대적 색깔을 띤 철학에 충격을 주며 실재론에 충격 을 준다. 대상에 대한 실재론을 희생하며 공간에 퍼진 전자장에 우월 성을 부여하게 되면 과학적 실재론과 상식적 실재론의 분리를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왜냐하면 전자장에 부여된 지배적인 실재론은 죽각 적 실재론에게는 낯선 난해한 사고의 긴 회로를 거쳐서야만 확립될 수 있다는 점을 고백해야 하기 때문이다Z 21.

22) 저자 자신이 프랑벨의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고 다만 합리주의의 혁신적 인 노력에 경의 를 표하고 있을 따름이다.

다시 한번 우리는 과학적 실재론은 필연적으로 가공된 실재론이라 는 철학적 결론에 도달한다. 여기에서 실험적 작업이 진보적 합리주의

와 긴밀한 관계에 있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의 저서 『적용 된 합리주의』에서 지칭한 철학적 중심지로 우리는 계속 되돌아오는데, 이 중심지는 이성의 진리와 경험의 진리가 교환되는 활동적인 중심지 이다.

제 4 장 기본 입자들의 다양성 만일 복사광으로부터 중성화된 전기가 나타나는 그런 특 성을 연역하기에 이 를 수 있다면 이 얼 마나 엄청난 발견이 아니겠는가! BERZELil lS, 『 화학 개론 .!I I 철 학적 논쟁의 형태로 입자를 부정적으로 제시한 후에 이제는 다양 한 입자들의 성질을 긍정적인 방향에서 검토해 보자. 이를 위해 가장 간단한 길은 잠시 그들의 역사를 추적해 보는 것이다. 이런 역사를 통 해서 우리가 탐구하고자 하는 철학적 주제가 발전되는 것을 볼 것이 다. 그러면 하나의 과학적 개념이 단일한 철학적 명칭을 유지하기가 드물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 과학적 개념이 분명해지자마자 그 개 념은 거의 피할 수 없이 다수의 철학을 생기게 한다. 왜냐하면 개념은 합리적 이론들의 심화 없이는 그리고 통제된 전문기술의 개입 없이는 밝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기에 현대 물리학이 전념하는 입자들을 특징짓는 하나의 철학적 성격이 있다. 이 입자들은 원래 원자론적인 직관 속에서는 나 타나지 않는다. 현대의 원자는 화학의 가설이고 원자의 진정한 성질들

은 분자들을 만들기 위해서 서로 다른 원자들이 결합할 때에 나타난 댜 현대의 입자는 물리학의 가설이다. 물리학과 화학은 물질에 대한 지식에서 점점 더 긴밀하게 협력한다 할지라도 이 두 과학의 착상은 서로 다르다. 대체로 화학의 원자들은 물질이고, 물리학의 입자들은 원 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두 관념 사이의 관계는 아마도 점점 더 좁혀질 것이다. 그러나 물리학과 화학에 대한 해석은 그와 같아서 우 리는 많은 경우에 물질-원인이라는 인식론적 복합체의 구현을 찾아볼 수 있다. 어쨌든, 콩트 Com t e 가 지적한 물리학과 화학의 관계는 전복 되었다. 물질에 의한 설명은 화학에서조차도 원인에 의한 설명에게, 보 다 정확히 말해서 수학적 함수에 의한 설명에 길을 양보하는 경향이 있다. 즉, 수학의 함수가 화학에 나타난 것이다. 이 함수와 더불어 합 리적 명료성이 도입되어서 우리는 동시에 화학의 물리적 토대에 대한 갱신과 물질 과학의 수학화를· 보게 되는 것이다 . 우리가 화학과 물리학 사이의 이러한 일반적이고 새로운 관계를 지 적하는 것은 입자의 개념과 원자의 개념 사이의 관계에 대한 모든 선 입견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하나의 입자는 무엇보다도 하나의 원인이 다. 실재의 이 무한소는 역설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강한 원인에 관한 기술에 접근하도록 한다. 입자 철학은 강력한 에너지를 내는 기술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추상적인 철학은 이 강력한 기술 속에서 하나의 우연성을 볼 수도 있겠지만 과학 지식에 결부된 구체적인 철학은 탐 구의 모든 양상에 대하여 숙고해야 한다. 고에너지 기술만으로도 하나 의 새로운 세계이다. 현대 물리학의 입자들을 고립시키는 추출 동역학 을 체계화할 수 있다면 철학적 명상에서 새로운 주제를 얻을 수도 있 을것이다.

Il 전자, 양성자, 양전자, 중성자 등 가장 전형적인 입자들은 모두 전기 현상의 전문 기술에서 나타난다. 전하를 가지지 않고 전자기장에 반응 을 나타내지도 않는 중성자들도 전기 기술의 간접 산물이다. 전자나 알파 입자는 방사능 물체에서 자연적으로 나온다. 그러나 이들은 전기 기술 속에서 연구되고 이 전기 기술은 〈자연적〉이 아니다. 이런 기술 은 기계론적인 정신이나 도구인 homo fa ber 에 속하지 않는다. 이 기술 들을 조직화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앞서의 책에서 보인 것처럼 기계론 을 추월하는 전기론에 접근해야 한다 .I)

1) 『적용된 합리주의』, 8 장 참조(원주) .

마찬가지로 현대 물리학의 모든 입자들에 대해서 우리는 현상 조작 술 Phenomeno- t echn i cs 2) 의 연구만 할 수 있을 따름이다. 철학자는 여 기에서 자연주의적 현상학과 현상학적 전문 기술 사이에 있는 커다란 차이를 주목해야 한다. 현상학적 전문 기술에서는 어떤 현상도 자연스 럽게 나타나지 않으며, 어떤 현상도 최초의 양상이 아니며, 어떤 현상 도 주어진 것이 아니다. 현상은 구성되어야 하고, 도구적인 그리고 이 론적인 해석에 대한 빈틈 없는 의식을 가지고 현상의 성격을 읽어야 한다. 그렇다고 정신이 순전히 실험적인 사고와 순전히 이론으로 분리 되어서도 안 된다. 이 점에 대해 강조해야 할 것 같은데, 왜냐하면 이 론과 실험의 근본적인 분리를 단언하는 반대 의견이 주장되는 것을 보는 일이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물리학이 절대적인 실증 주의를 공공연히 주장하던 시기에 사람들은 전류는 전류가 나타내는 것, 죽 전선에서 나오는 열과 검류기의 바늘에 대한 전류의 작용의 합 에 불과할 뿐이라고 반복하여 말했다. 사람들은 심지어 물리학자가 연

2) 『역자 해제』를 참고.

구하는 사실들을 지시하는 눈금을 읽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소개하기 까지 했다. 전류의 〈존재〉를 지시하는 눈금과 동등하게 간주하는 것 은, 방정식의 해법을 그 구조를 대수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미지수의 값의 결정과 혼동하는 것이다. 대수학자는 문자로 생각하지 숫자로 생 각하지 않는다 . 물리학자는 법칙을 생각하며 특수한 측정만을 생각하 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물리학자의 사고가 측정으로 환원되는 것을 남용하였다 . 하나의 측정 결과는 측정 방법과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측정 방법에 대한 깊은 이론적 의미와의 관계에서 언제나 고려되어야 한다. 측정 방법에 대한 합리주의는 그 대신에 최상의 측정 결과에 의 해 검증된다. 이 모든 일반적인 의견들은 이미 전류에 관한 전문 기술 에 대하여 유효하며, 우리에게 현대 물리학의 입자들을 넘겨주는 까다 로운 기술을 이해한다면 점점 더 명백해질 것이다. 전류라는 양태에서 전자의 존재를 발견하면서 우리는 근본적으로 현상을 설명하게 된다 . 전류의 근본적인 실재로서 소개된 전자의 흐름은 외관 아래서의 존재 에 대한 하나의 사례를 준다. 『촌재와 무』의 앞부분에서 사르트르가 전류의 실재성을 전류가 나타내는 현상들의 합으로 환원한 19 세기의 회의적인 관점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물론 회의적 인 태도를 전자의 수준에 옮길 수도 있고, 전자 역시 전자가 나타내는 현상들의 합이라고 지난 세기에 되풀이하던 말을 반복할 수도 있다 .3 )

3) 인식의 대상을 경험적 사실에 국한한 콩트나 마하의 실증주의를 비판하고 있 다 .

그러나 그것은 단지 철학적 태도를 옮기는 것이다. 따라서 인식론적으 로 긍정적 수정을 할 수 있는 기회에 철학적으로 배울 수 있는 가능성 을 없애는 것이 된다. 전류에 의한 설명과 전자들의 흐름에 의한 설명, 이 두 가지 설명의 분야가 서로 겹친다. 이 두 분야는 실재에 대한 비 율을 재분배한다. 사고가 실재의 상이한 계수에 대하여 판단할 수 있

을 적에 이 사고는 존재와 현상이라는 기초적인 구분에 더 이상 만족 할 수 없으며, 감추어진 전자가 전류의 〈존재〉로서 밝혀진다는 점을 인정할 적에 우리에게 부과되는 철학적 역설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rn 전자 개념의 발전 과정을 쓰기 전에 이 개념의 먼 역사를 잠시 알 아보도록 하자. 일반적인 지식과 기술적 지식 사이의 단절을 보여주기 위해서 어느 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사실 전기 유체의 개념과 전자 다발의 개념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심연이 있댜 유체에서 다발 사이에 규명되어야 할 물질론적 변증법이 작용한다. 따라서 대국적 견지에서 보면서, 초기뿐만 아니라 카발로T. Cavallo 가 〈전기의 제 2 유아기〉라고 올바르게 부론 18 세기 후반부에까지 전기 유체로 보이는 현상들에 대한 비정상적인 가치 부여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회귀적 역사에 의해 볼 적에 18 세기의 전기 유체에 대한 개념은 하 나의 인식론적인 괴물이다. 이 개념은 가장 이질적인 관심들을 모은 것이어서 내적 확신과 객관적 관찰의 〈끔찍한 혼합〉이다. 18 세기 후반 부에 전기 현상에 대한 관심을 대강 알고자 한다면 한 세기 후의 강신 술(降神術)에 대한 열광을 생각해야 한다. 단순한 전기 과학은 말하자 면 물질의 강신술이다. 따라서 메스머 Mesmer 의 동물 자기가 동물의 자기의 귀결로서 생각된 점에 대해서 놀라서는 안 된다. 당시에 전기 와 자기는 생명의 원리로 여겨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식물과 동물 그 리고 사람에 대한 전기와 자기의 작용을 연구한다. 심장 장애를 고치 기 위해서 동물을 심장에 갖다댄다. 전기 유체는 물리학자가 불러일으

킬 줄 아는 하나의 힘이며 깊게 감추어진 힘이댜 전기는 생명과 마찬 가지로 신비하다. 이러한 신비의 결합에 의하여 모든 홍미가 일깨워진 다. 모든 미묘한 관찰 사항과 놀라운 세부 사항을 생명이라는 그럴 듯 한 형이상학적 주제에 끌어들인다. 전기 현상은 유( 類 )개념과 종(種)개 념을 특징짓기에 충분할 만큼 다양하고 일반적이다. 플로방스 지방의 개구리가 롱바르디 지방의 개구리와 정확하게 동일한 특성을 갖지 않 았다고 주장까지 하지 않았는가? 알프스 산맥 건너편에는 전기적 생 명력이 있고 이편에는 무기력 상태라니! 이러한 내밀한 힘의 형태로 사람들은 동물 전체에, 하나의 존재 전 체에 전기력을 부여하기에 이르렀다. 전기 가오리에 대한 해부와 전기 를 내는 기관의 정확한 판별은 19 세기에 와서야 이루어졌다 ? 사람들 은 오랫동안 전기 가오리와 라이덴 병을 비교하는 데에 만족하였다.

4) MATIEUCCI, 『동물의 전기-생리학적 현상론』, 1844 참조(원주).

무생물에 대한 실험도 전기 원리의 출처를 알아내지 못했다. 마찰하 는 수지(樹脂) 막대기는 마찰된 부분이 온통 전기를 띤 것으로 나타난 다 . 유리 도관에 의해 고립된 전도체는 마찰에 의해 더욱 분명하게 전 체적인 전기 현상을 제공한다 . 그 어느 것도 전기에 대한 입자적 관념 을 준비하지 않았다. 전가 유체의 가정이 설정되었을 때조차도 작은 입자로 된 유체의 개념은 함축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한 관념이 형성 되는 것처럼 보이는 드몬 경우에 우리는 불분명한 입자의 직관이 활동 중인 것을 느끼지만 그것은 보이지 않는 물처럼 도체를 채우는 연속적 인 유체에 관한 것이다 . 다른 실험에서 이 유체는 초의 불꽃을 기울게 하는 입김과 같다 . 사람이 목구멍으로 숨을 내쉬는 것처럼 전기는 뾰 족한 끝으로 숨을 내쉰다. 당시에 사람들이 말했듯이 〈전기 바람〉은 전체적인 활동을 가리키는 현상들 중의 하나였다. 대기전기 현상을 고려하게 되었을 적에도 사람들은 더욱 이 특수한

힘의 세계를 보증할 뿐이었다. 물리학자들은 별들이 전기력에 의해 움 직인다고 단정하기까지 했다. 이처럼 전기의 자연사에는 전기 우주론, 전기 생물학, 전기 물리학 이 뒤섞여 있다 그렇게 되면 전기 유체를 모든 자연 현상의 근원으로 보는 막연한 직관을 앞세우게 되는 것이다. 이런 어정쩡한 종합이 물 질 현상의 설명에서 전기 입자의 근본적인 역할을 증명하는 과학의 구체적인 결론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사실을 말할 필요가 있을까? 볼타 Vol ta의 실험이 사람들이 전기에 대해 품고 있었던 생각으로부 • 터 조금씩 모든 생기론을 떼어놓을 적에도 사람들이 도달하는· 곳은 아직도 전체적인 태도였다. 이처럼 전선에서 연구되는 전류는 시간을 통하여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양으로서 나타났다. 전류의 세기는 회로 의 모든 점에서 동일하다. 국부적 저항을 증가시키는 선의 꼬임은 전 류 전체에 작용한다. 회로는 전체로서 하나의 저항을 가지고 있고, 전 류는 전체로서 하나의 세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고전과학에 도달했을 때조차도 전기 현상은 연속성의 철학 이라는 직관에 따라서 시공간에 주어지고 펼쳐진 현상이다. 따라서 전 기에 관련된 입자적 직관을 간파할 기회는 자연 현상학에서도 도구 물리학의 최초의 형태에서도 아니다. 달리 말해서, 원자론은 전기 과 학을 위한 자연스런 학설이 아니다. 원자론의 가치는 오랜 우회를 거 쳐서야 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원자화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우리는 과학자가 점진적으로 마치 마지못해 의무에 사로잡혀서 거기에 도달 한다는 인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 전기 과학에서의 원자화는 이처럼 강도 높은 과학적 탐구의 결과인 것이다. 입자적 관념의 정확한 범위 를 추정할 수 있는 것은 궁극적 직관을 받아들임으로써가 아니라 스 스로 탐구를 다시 해보면서이다. 베르그송주의가 환기한 분할에 대한 직관은 여기에서 불안정하며 유체를 분할하지는 않는다. 실재의 분할 에 대한 베르그송의 주장은 전기 과학에서 설 자리가 없다. 도구인은

전반적인 인식론적 혁명 없이는 전기학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전기 에 대한 과학적 실험을 숙고하면서, 과학 문화는 가장 일반적인 철학 적 개념에 대해서도 재분류할 것을 요구한디는· 점을 알 수 있다. 과학 을 도구인의 일련의 연속적 직관으로 삼는 철학이 믿게 하는 것보다 과학 문화는 그 대상에 보다 융통성 있게 적응한다. 특히, 전기 과학에 대한 입자적 이론의 정확한 인식론적 역할을 판 단하기 위해 가설의 개념은 부적절하게 보인다. 그런 이론은 추리에 바탕을 둔 오랜 실험 과정의 결론으로서만 형성되며 과학사의 특정 지점에서만 태어날 수 있다. 만일 이론을 최초의 이미지와 제휴시키면 이론의 의미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w 그래서 우리는 어떠한 길고도 간접적인 도정에 의하여 과학이 우리 로 하여금 물체에 퍼진 전기라는 이미지로부터 참으로 입자적인 전기 로 나아가게 하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지나친 단순화의 희생자가 되지 않으려면 이 긴 역사의 추론적 성격을 머릿속에 잘 기억해 두어야 한 다. 미시 물리학을 철학적으로 본질적 과학으로 설정할 수 있는 것은 번갈아가면서 연속과 불연속에 대한 근거의 오랜 역사를 추적하면서 이다. 미시 물리학의 대상은 하나의 진정한 본질 noumenon 이지 일반적 대상의 축소물이 아니다 .5) 그 위에 또, 전기 입자의 비유적 성격을 사 물주의적 직관의 방향으로 강요하지 않는다면 차후에 이 입자에 파동 적 성격을 결부시키는 데 있어 아마도 보다 잘 준비가 될 것이다.

5) 칸트가 현상 이외의 것을 과학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과는 달리 저자는 과학은 〈현상 조작술〉의 도움으로 본질을 그대로 파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기 현상의 불연속성에 대한 개념을 정당화시킬 수 있었던 최초의 실험적 근거는 전기 분해와 관련한 패러데이 Farada y의 연구에서 1833 년에 나타났댜 서로 다른 염, 예컨대 염화은, 염화나트륨, 염화칼륨의 용엑에 동일한 전류를 통하게 하면, 음극에 침전된 은, 나트륨, 칼륨의 질량은 이 세 금속의 원자량에 비례합을 알 수 있다. 전기 분해의 법칙과 화학적 원자론의 법칙 사이의 이러한 일치는 원자가 valence 를 고려해 보면 일반적인 것이다 . 이로부터 전류는 화학 적 분해 작용에서 말하자면 여러 화학 물질에 고유한 불연속성을 따 른다고 결론지을 수 있댜 심지어 전류는 원자 이론을 알고 있는 화학 자로서 작용한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패러데이가 연구하던 시대에는 화학에서 원자 이론은 단지 발견술적인 가정으로 여겨졌지 전기 유체에 유효한 원자론적 이론을 세울 것을 생각하지는 않았다. 전기 분해 이론에서 이온의 개념조차도 물질의 원자를 운반하는 정해진 전기량으로 소개되었다. 원자론적인 원리는 오직 화학 물질에만 인정되었다 . 밀리칸Millik an 이 말한 것처 럼 전극의 전하가 어떤 정확한 수의 전기적 원자로 이루어졌다고 가 정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6) 통속의 포도주가 병으로 나뉘는 것처럼 전극의 전기는 전해질의 원자들에 대하여 분해된다는 것이다 .

6) MILLIKAN, 『전자』, 번역판, 23 쪽(원주).

밀리칸에 의해 인용된 헬름홀츠의 말을 숙고해 보면 전기의 원자화 라는 생각에 대한 인식론적인 저항을 추정할 수 있는데, 그의 말은 전 체적인 관념과 입자론적인 관념의 경계선상에 있기 때문에 그만큼 인 상적이다 . 헬름홀츠는 전기의 원자성을 제기해야 할 필요성 앞에서 놀 라고 뒷걸음질치는 것 같으며 적어도 주저하고 있다. 기본 물질이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가정을 받아들인다 하더라

도 패러데이 법칙의 가장 놀 라운 결과는 양이 든 음이든 전기가 일 정한 부분으로 나누어져서 전기의 원자처럼 작용한디는· 결론을 피할 수 없다는사실이다. 이것이야말로 과학자가 가설에 부여하는 의미를 결정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가 가설들의 일관성에 부여하는 · 가치를 결정하기 위해서 인 식론적인 시험으로 쓰일 수 있는 두드러진 텍스트가 아닐 수 없다. 1891 년 스토니가 패러데이 법칙을 심사숙고하면서 추론된 전하의 이 원자를 가리키기 위하여 전자라는 이름을 도입하였을 때에 그는 전 자에 어떤 질량이나 관성도 고려하지 않았다 . 7 1 그는 보통 근본적으로 여겨졌던 실재론적인 속성을 전자에 부여하지 않았던 것이다. 특정의 물질량과 관련하여 찾은 전기량은 물질의 어떤 역학적 속성도 갖지 않았다.

7) 아일랜드 태생의 물리학자 스토니 (S to ne y , 1826-1911) 는 , 물질 의 기본 단위로 서 원자가 있다면 전기량에도 역시 최소 단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1891 년 이 전기 소량(電 氣素祖 )에 전자라는 이름을 제창하였다 .

이 문제는 19 세기 말엽 X 선에 의한 가스의 이온화 를 발견한 후에 분명해졌다. 이때에 본래 화학적 발상이 함축된 문제가 물리적 방법에 의해 접근되었다 . 톰슨J.J. Thom p son 이 전기 원자의 개념을 분명히 해주는 두 개의 물리적 실체를 정의했는데 그것은 가스성 이온의 이 동도와 이온 계수이다.

nXe=— DII o X P

Vo: 이동도 계수, D: 확산 계수 p : 압력, n : 1 기압 15°C 에서 lcm 3 의 가스에 포함된 분자의 수

이 식에 의하여 전자의 전기적 수치 즉, 기본 전하인 e 를 계산할 수 있다 . 1908 년부터 가스에서 X 선, 라듐선, 자외선에 의해 생긴 음이온에 대 한 n X e 는 용액에서 일가 이온에 대한 값 즉, 절대 정전기 단위 1.23 X 1010 과 같다는 것이 밝혀졌다. 정확한 결과로 이끄는 기술의 다양성 과 배열을 고려하면 현대 과학에서 합리적 정보의 능력을 알 수 있다. e 의 실재성은 복잡한 계산의 결과로서 나타나며, 다양한 탐구에 대한 관점들의 교차점에서 이끌어내어진다. 이로부터 이론적, 기술적 활동 의 오랜 도정 끝에 그러한 〈실재성〉을 정하는 학자를· 통상적인 철학 적 의미에서 실재론자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수많은 미묘한 차이를 뒤섞는 것이다. 전기 입자에 두번째 성질이 결부되었는데 그것은 입자의 질량이다 . 음극선이 전자의 방출이라는 사실을 이해했을 적에 사람들은 이 선을 궤적으로서 연구했다. 이 궤적이자 선들이 자기장과 전기장에 의해 편 의된다는 사실로부터 다양한 역학적 실험을 할 수 있었다. 음극선에서 전자의 큰 속도와 전자를 관찰하는 크룩 Crookes 관에서의 짧은 공간 은 오직 중력의 작용에 의한 궤적의 휘어짐(직접 m 의 값을 줄 수 있는 휘어짐)을 연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을 잘 이해해야 한다. 전 자의 질량에 대한 최초의 준거는 elm 의 형태로 나타났다. 드디어 수많은 기술적 실험들이 전자의 두 가지 속성인 e 와 m 을 각 각 계산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평형을 이루고 있는 방울에 대한 밀리 칸의 훌륭한 연구만을 상가해 보도록 하자. 다르무아E. Darmo i s 는 그의 『전자』라는 책에서 밀리칸의 중심적인 아이디어를 이렇게 요약한다. 분무기의 도움으로 축전기의 판막 사이에 비휘발성(기름이나 수 은)의 아주 작은 방울들을 넣는다 . 이 방울들은 분무기를 통과하면서

전기를 띠고, 축전기에 전기장이 없을 때에 천천히 떨어진다 전기장 을 걸면 낙하를 가속시킬 수도 있고 지연시킬 수도 있으며 심지어 이 방울들을 다시 상승시킬 수도 있으며 모든 경우에 그 속도를 측 정할수 있다. 판막 사이에 있는 공기를 이온화시키면, 방울의 속도가 때때로 급 격한 변화를 겪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방울의 전하가 가스의 이온 들 중의 하나를 만날 때 변화한다는 점을 인정하면 이러한 변화들을 해석할 수 있다. 이온의 포획 전후에 방울 속도의 측정은 방울의 속 성과 방울이 돌아다니는 환경의 속성을 완전히 제거하도록 해준다. 모든 측정의 비교에서, 포획된 전하들이 기본 전하의 단순한 배수임 을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전자의 전하이며 1.59 2 X 10 - 19 쿨롱이다. 우리의 과업이 과학의 철학적 양상을 명확히 하는 데에 있으므로 우리가 다른 기회에 내린 판단에 반하여 다음과 같은 점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즉, 밀리칸의 실험은 실재론적인 관점, 나아가서 사물주의 적 관점에서 전개된디는· 점이다. 현미경에서 관찰된 수은이나 기름의 작은 방울들은 떨어지는 포탄이나 떠오르는 공처럼 행동한다. 그들의 느린 하강이나 비상은 주의깊은 눈에 의해 추적된다. 전자 포획으로부 터 기인하는 갑작스런 동요가 생기는 것은 이런 느린 운동 과정에서 이다. 이 모든 것은 일상적 운동에 대한 것과 마찬가지의 관찰 원리를 따르면서 현미경에서 관측된다. 그러나 그 이상 더 멀리 가야 하는가? 사물주의적 철학의 이런 서 두 후에 전자를 사물주의적 관점에서 계속 생각해야 하는가? 관찰되 는 것은 전자가 아니라는 점을 말할 필요가 있는가? 여기에서 전자는 우리가 이 장의 처음에서 제안한 구분에 따르면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원인으로서 나타난다. 전자적 현상은 여기에서 실상 방울의 운동을 변

화시키는 원인이다. 그러나 사물주의적 직관은 방울의 실험 넘어로 그 표상을 지속시킨 다. 대상으로서의 전자가 방울의 거시 물리학적 실험의 자명성을 연장 하기 위하여 철학적으로 불순한 방식으로 원인으로서의 전자 속으로 슬그머니 들어온다. 실재론자는· 관측된 현상의 근원으로서 전기를 띤 작은 구의 존재를 단정한다 . 이 대상으로서의 전자의 형태에 대해서는 물론 아무런 증거도 없다. 다만 보다 복잡한 형태를 부여하기 위한 충 족 이유가 없기 때문에 구의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합리주의와 실재론 사이의 얼마나 이상한 화해가 유효한 실 험을 초월하는 실재에 충족 이유의 원리를 적용하고 있는가! 하나의 과학적 대상에 대한 지식에서 충족 이유를 말하자마자 이 대상은 이 론가에게 넘겨진다. 언뜻 보기에 크기의 등급이라는 개념은 경험론자 가 서술한 하나의 추정으로 보이지만, 크기의 등급을 지정하는 것은 이론가의 뜻에 달려 있다. 수많은 이론적 가정의 결과로서 다음의 식 으로부터 〈전자의 반지름〉을 계산한다.

m=—2 3ea2

알려진 e 와 m 의 양을 가지고 구한 a 의 값은 1.7 x 10-13cm 인데, 이 는 수소 분자의 반경보다 100 만 배나 작은 것이다. 그러한 추산은 측정이 아니라는 점을 한번 더 반복해서 말해야겠다. 그것은 계산이며 이 계산은 근본적으로 이론적인 것이며 근본적으로 합리적인 것이다 .8) 그래서 차차 실재론적인, 실증주의적인, 경험주의적 인 주장은 흐려진다. 사물주의적 주장이 영향력을 회복하는 것으로 보 8) 현대 물리학이나 양자 화학은 측정에 의존하는 것보다 계산에 의존한다 . 계산 에 의한 측정의 대체는 저자에게는 가장 중요한 인식론적 사건으로 보인다.

이는 문제에서 우리는 합리주의적 관점을 위해 곧 설명의 관점을 전 복해야 하는 필요성에 직면하는 것이다. 계산 물리학에 의미를 주는 것은 물리학의 합리주의적 구조이다. 측정은 계산에 대한 구상이 함 축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 우리는 여기에서 측정 물리학 위 에 계산 물리학의 전형적 사례를 제안하는 새로운 기회를 보게 되는 것이다 . 이처럼 전문 기술과 측정 그리고 계산이 전자에 대한 진정한 합리 주의를 주기 위해 조직화된다 . 전자에 대한 이러한 합리주의는 모든 직접적 포착을 피하는 것으로 보이는 하나의 대상에 각별한 보편성을 부여한다. 그래서 밀리칸은 19 세기의 과학이 〈전자의 세계 〉 를 구축했 다고 말할 수 있었다. 이 전자의 세계로 안내하는 대로를 따라가는 철 학자는, 현대 과학이 기초한 우주론은 원시 우주론과 공통점이 없으며 그리고 세계를 거대한 전기 현상으로 보면서 우주론을 갱신하고자 했 던 18 세기의 소박한 일반화와도 아무런 공통적인 관계가 없다는 점을 즉시 이해할 것이다. 〈전자적 세계〉는 철학에서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 이다 . 사람들은 헛되이 이 세계를 〈원자론적 세계〉에 접근시키고자 했 다. 원자는 우연의 존재인데 반하여 전자는 법칙적 존재이다. 우리는 전자 물리학의 법칙을 앎으로써만 전자를 알 수 있다 . 전자에 대한 일반 철학의 마지막 성격으로서, 전자의 현상학은 자연 현상학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확립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전자는 가 장 이질적이고 가장 다양한 자연 현상으로부터 태어난다. 전자의 연구 에 관련을 갖는 자연 현상 속에서 그 어느 것도 명백한 공통적 특징 에 의하여 전자의 존재론적 공통성을 지시하지 않는다 . 이렇게 전자 는 1° 전기 방전에서, 2° 금속에 대한 빛의 작용에 의하여, 3° 가열된 금속선의 표면에서, 4° X 선의 작용에 의해서, 5° 방사성 물체의 방사 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과 그리고 다른 현상들에서 전자는 감추어 진 공통 인자로서 나타난다. 그토록 다양한 이런 현상들은 헤겔이나

셸링식의 자연 철학에서는 논증으로 쓰일 수 없을 것이다. 현대 물리 학의 이러한 존재들과 더불어 우리는 새로운 자연 즉, 인간의 역사에 서 인간적으로 사고되고 수립된 하나의 자연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상 상력에 대한 우리의 저술에서 언급한 것처럼, 세계는 인간의 도전에 의하여 조건지어진 것이다 . 전자의 세계는 참으로 합리적 도전의 결과 이댜 우리에 관해서 말하자면, 이 시대의 과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자유로운 개인적 명상과 부지런한 노력을 종합하는 데 주저한다면 우 리는 철학자가 아닐 것이다. 인간은 전자를 제어하면서 또 하나의 다 른 유형의 우주론에, 우주의 힘들 중 새로운 유형의 지배에 접근한다 는 사실이 명백해 보인다. 철학자로서의 우리의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하여, 물리학은 지향된 우주론의 상태에 있다고 요약의 형식으로 말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겸허의 어조를 되찾고 전기적 존재론의 새로운 존재인 양성 자를 검토하기로 하자. V 논리적 사고는 그 자신의 역사를 지우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사실 개념들의 창안에 대한 어려움은 개념들의 논리적 목록을 만들자마자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 것 같다. 과학의 현재 상태에서 원자에서 음성 입자의 존재는 양입자의 존재를 주장할 수 있도록 해준다. 사람들은 곧바로 결정적인 이유처럼 이렇게 추가한다. 즉, 전체 원자는 전기적 으로 중성이기 때문에 전자는 반대의 동일한 전하를 띤 입자와 결합 해야 한다 .. 이 추론은 하나의 역사의 전 기간을 지워버린다. 이 추론 은, 전자의 개념을 확립한 후에 이 전자가 희석된 양전기로 대전된 연 속 매질 속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톰슨의 사고를 끝난 과거로 치부

해 버린다 . 9)

9) 톰슨은 건포도빵 속에 건포도가 박혀 있는 것처럼 원자도 양의 전기가 원자 자 체에 균동하게 분포되어 있는 가운데 전자가 박혀 있다고 생각했다.

화학 원자 내부에 엄청난 빈자리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위해서 는 러더포드 Ru t he rf ord 의 위대한 발견이 필요했다. 이때에 양성입자의 개념이 필수불가결하게 되었다. 양성자가 과학에 진입한 것이다. 알루미늄 조각을 방사성 물체에서 나오는 알파 입자에 노출시키면 서 러더포드는 〈비정상적인〉 굴절을 관찰했는데 이는 서로 떨어져 있 는 반발력의 중심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양으로 대전된 알 파 입자에 대한 반발력의 중심이 바로 양성자인 것이다. 지나가는 길에 말하자면, 이러한 편차는 물질의 연속성이라는 견해 에서 보면 비정상적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데, 이는 근본적으로 수정해 야 할 견해이다. 상식적으로 가장 촘촘한 물질도 이제는 매우 분산된 입자들의 집합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알파 입자의 포격을 받는 알미 늄 조각은 물리학자의 손가락에서는 철학자의 손가락 사이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대상이다. 철학자에게 알루미늄 조각은 부드럽게 윤이 나 는 은백색의 아름다운 표면이고 그 가벼움이 인상적안 금속이다 . 철학 자는 이런 가벼움을 실체적으로 생각한다. 물리학자에게는 이 알루미 늄 조각은 거의 빈 공백의 조각인데, 핵 하나당 전자 13 개의 비율로 이곳저곳에 몇몇 핵과 몇몇 전자가 분포된 엄청난 공백이다. 핵물리학 자에게 있어서 조각의 두께는 전기 발사체에 의한 포격 실험에서 확 률 계수에 다름아니다. 일반적인 직관과 과학적 직관을 분리하는 이 두 가지 객관적 입장에서 우리가 전에 두 대상이라고 부른 예를 환기 하고자 한다. 이는 객관성의 이중적 관점에서 나타나는 대상을 의미 한다. 만일 모든 물질이 이처럼 전기를 띤 중심부들의 조직이라면 우리는

가장 단순한 원자들 속에서 입자적 요소들을 확인하기에 이른다. 가장 단순한 것은 수소 원자로서, 양의 단위 전하로 대전된 하나의 핵과 하 나의 전자의 결합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전자를 떼내자마자, 수소 원 자를 이온화시키자마자 양성 입자인 양성자를 만나게 된다. 수소의 원자량과 아보가드로의 수에 대한 조회는 양성자의 질량을 결정할 수 있게 해준댜 무척 다양한 실험에서 양성자 질량의 추산에 대한 검증을 얻을 수 있다. 현재 양성자의 질량은 전자의 질량의 1844 배로 정하고 있댜 10)

10) 오늘날 가장 정확한 값은 1836 으로 알려져 있다.

그 개별화가 질량에 의해 결정되는 서로 다론 입자들의 존재에 대 한 확립은, 진보된 경험주의자와 점점 더 앞서는 합리화로 향하는 합 리주의자 사이의 토론을 민감하게 만드는 철학적 문제를 제기한다. 예를 들어, 양성자의 질량이 전자 질량의 1844 배라는 것은 경험주의 자에게는 절대적인 사실이다. 이런 사실을 열광적으로 승인하면서 경 험주의자는 모든 토론을 종결짓고 〈그렇기 때문에 그러하다〉라고 말 할 때 그는 실험실의 현실주의적 신념에 의해 지지된다. 양성자와 전 자의 질량에 대한 상대적인 값을 구하기 위해 무척 애를 먹었는데 과 학자들은 1800 이라는 대강의 수에서 1844 라는 보다 정확한 수로 가기 위하여 실험적 측정의 기나긴 대로를 끈기 있게 따라갔다. 그래서 이 측정의 대로가 실재성의 대로라는 점을 의심할 수 없다. 이때에 경험 주의자는 의기양양하게 양성자의 질량은 전자의 질량보다 1844 배 더 크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회의하는 합리주의가 태평스런 경험주의를 괴롭히러 온다: 왜 1844 인가? 이 네 자리 숫자는 이성에 무엇을 의미하는가? 톰슨 경 Sir George Thomson 이 말하듯이 만일 그 수치가 3 이나 4 라면 실재의 합리성이라는 인상을 받을 터였다 .II) 그런데 1844 라니! 톰슨 경은 그

11) George TIIOMSON, 『 원자』, 3 판, 1949, 179 쪽(원주).

관계가 7[였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첨가한댜 여기에서 그는 합리주 의의 홍미로운 〈중용〉을 따르는데, 이런 중용은 적용된 합리주의의 운 명 그 자체인 것이다. 경험적 양들이 무리수 7[에 의해 연결된다면 이 는 더 이상 매혹적인 합리주의에 방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수리 물리 학은 원주의 길이와 직경의 비율인 7[라는 무리수를 참으로 합리적으 로 홉수하였다. 물리학에서 7[는 간단명료하고 적절한 수라고 말할 수 있댜 7[는 거북하지 않으며 한때 피타고라스 학파 사람들의 발전을 저지했던 충격의 힘을 잃었다 .1 2) 그래서 톰슨은 3 이나 4 또는 7[가 1844 보다 더 자연스러운 관계로 보인다고 말한 것이다.

12) 피타고라스 학파는 무리수 沿和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

그러나 합리주의는 수하에 대담한 사람들을 거느리고 있다. 에딩턴 Ed di n gt on 은 1844 라는 숫자를 설명하기 위해서, 이 경험적 수치를 합 리적으로 동화하기 위해서 끈질긴 노력을 했다 . 가장 중요한 두 입자 의 질량비를 이해하기 위해서 온통 우주론 전체가 여기에 개입한다. 경험에 의해서가 아니라 계산에 의해 1844 를 결정하기 위해 에딩턴은 상대성 원리를 따라 우주의 차원과 공간의 속성을 도입했다. 그의 논 증은 무척 추상적인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이론적 관점이 좋다거 나 유일하다거나 최상의 것이라고 보증할 수는 없다 . 그러나 그러한 관점이 시도되었다는 사실은 구성적 물리학의 합리주의적 욕망을 분 명히 가리키는 것이다 . 여기에서 경험주의자는 겸허하고 신중한 철학자연하기에 좋은 조건 에 있다. 왜 사실에 머무르지 않는가? 사실이 명확하고 잘 측정되었는 데 왜 사실을 넘어가려고 극성을 부리는가? 그렇게 그는 끝없이 반복 할 것이다. 경험주의자의 확신이 근시안적인 다른 경우에서와 마찬가 지로 그가 옳을 많은 이유를 가지고 있는 여기에서도 그는 우리가 보

기에는 철학에 사표 를 쓰는 철학자이다. 왜냐하면 결국 이 토론은 열 린 채로 남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양성자는 양의 단위 전하를 갖고 전자는 음의 단위 전하를 가져서 전기적으로는 합리화가 훌륭하게 균 형을 이루고 있는데 반하여 질량의 이질성은 대칭의 미학을 거슬린다. 대칭은 달리 찾을 터인데 질량과 전하에 있어 전자와 완전한 대칭을 이루는 양전자의 존재를 인식하고 나서의 일이다. 양성자로부터는 다 른 대칭을 찾을 것이다 . 이러한 연구는 양성자와 똑같은 질량을 갖지 만 정확하게 반대의 전하를 갖는 음의 양성자의 존재를 겨냥한다. 이 제까지 음의 양성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 존재에 대한 어떤 증거 도 없다 .) 3) 여기에서 우리는 미학적 사고와 구성적 사고가 활동하는 것 을 본다. 따라서 우리는 문제가 진전된 영역에 있는 셈이다. 모호하고 아마도 환상적인 미해결의 문제에 들이는 노력은 결코 실증적인 작업 을 방해하지 않는다 . 과학 정신은 자신이 확실히 소유한 것으로 만족 하는 일이 없다는 사실을 잊고 과학 정신을 서술한다면 이는 과학 정 신을 손상시키는 것이다.

13) 음의 양성자, 죽 반양성자는 이 책이 출판된 지 4 년 후 (l%5 년)에 발견되었는 데, 양전자처럼 우주선에서가 아니라 입자 가속기 〈베바트론〉의 도움으로 세그 레와 챔버레인에 의해 발견되었다 . 디랙이 착상한 〈상대론적 양자 역학〉에 의하 면, 모든 입자에는 〈반입자〉가 있으며, 이는 확인된 사실이다.

입자들의 존재론적인 지위가 그들의 모든 현상을 결정하지는 않는 다는 점 역시 강조해야 한다. 전자와 양성자는 자기장에 의해 대립된 두 방향에서 구부러지는 궤적을 줄 것이고 이 사실이 그들을 분간하 게 해줄 것이다. 그러나 자기장의 영향을 받지 않는 궤적을 검토해야 할 때도 있다. 이때 양성자의 궤적과 전자의 궤적을 구분하기 위해서 의존하는 것은 이온화에서의 질량의 작용이다 . 실제 전자의 궤적은 양 성자의 궤적보다 더 가느다란 이온화의 특징을 보여준다 . 그러나 여기 에서도 이 구분의 방법은 애매할 수도 있다. 르프렝스-렝게 Le pri nce-

Ring ue t가 이에 관해 말하고 있다 . HI 양성자가 전자 질량보다 1844 배되 는 질량을 갖는다고 말할 때 그것은 정지 질량을 의미한다. 우주선에 의해 도달된 속도에서는 상대성이 지배한댜 이때 운동중에 있는 전자 와 양성자의 질량은 거의 맞먹는다. 그는 이렇게 결론을 맺는다.

14) LEPRINCE-RINGUET, 『우주선』, 신판, 61 쪽(원주) .

예를 들어, 10 억 전자 볼트에 대하여 전자의 상대론적인 질량은 정지 질량의 2000 배이고, 양성자의 질량은 정지 질량의 2 배 즉, 전자 의 정지 질량의 3700 배이다 . 이 두 질량의 비율은 2 에 가깝다 . 우리 는 즉시 고 에너지에서 입자들을 구분하는 ·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게 된다. 우리는 나중에 현대 과학에서 에너지론적 관념이 갖는 근본적인 중 요성을 보게 될 것이다 . 르프렝스-렝게의 경고는 지금부터 우리로 하 여금 모든 존재론에 분명하게 동역학을 결부시키도록 해야 한다. 이제 부터 전자의 완벽한 대칭인 양전자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자 . VI 양전자 발견의 역사는 현대 물리학자의 탁월한 정신의 자유롤 보여 주는 데 아주 적절하다. 매우 드문 현상에서 그리고 대단히 인공적인 기술이 개입한 현상에서 물리학자는 그의 설명의 토대조차도 수정할 준비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양전자가 어떻게 확인되었는지 알아보자 . 그 최초의 흔적은 윌슨의 상자에서 찍은 전자의 궤도 사진에서 나타났다 . 1933 년 앤더슨은 우주

선 연구의 사진 건판을 검사하면서 전자가 주행하는 보통의 궤도와 반대 방향으로 굽은 하나의 안개 흔적을 보았다 .1 5)

15) ~물리학지~. 1933, 43, 491 쪽. Irene CURIE, F. JOL IOT, 『 양전자 』 , Pa ris, 1934( 원주). 앤더슨은 이 흔적을 남긴 입자에 양전자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 입자는 평범한 입자가 아니라 매우 별난 입자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앤더슨은 이 양전자의 발 견으로 1936 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

그러나 말이란 철학자에게 너무 많은 것을 너무 빨리 전하는 터이 라서 철학자는 하나의 궤도로부터 즉각 주행 방향을 알 수 있을 것으 로 가정하는 경향이 있댜 실상 사진은 궤도의 흔적만을 넘겨주었을 따름이댜 만일 흔적이 위로부터 와서 오른쪽으로 휘는 궤도를 그린다 면 그리고 전자의 궤도임이 알려진 다른 궤도가 동일한 자기장의 배 치에서 마찬가지로 위로부터 와서 왼쪽으로 흰다면 첫번째 혼적은 양 으로 대전된 입자의 궤도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 그러나 만약 첫번째 흔적이 아래에서 위로 주행된 것이라면 이 흔적은 이번에는 왼쪽으로 구부러질 것이고 그래서 전자의 궤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주행의 방향을 추론하기 위한 수단을 찾아야 한다. 이 문제 는 과학이 초보적인 묘사의 단계에 있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 앤더슨은 윌슨 상자의 가운데에 납조각을 놓을 생각을 했다. 이 납 조각은 입자를 지연시켜 입지를 편향하는 자기장의 작용에 민감하게 해서 결국 궤도를 더욱 휘게 하여 그림 7 과 비교해서 그림 8 의 오목한 모양을 두드러지게 한다. 그림 8 은 혼적이 위에서 아래로 주행되었음 을 나타낸다 . 이때에 우리는 양으로 대전된 입자와 관계하고 있음을 확신한다 물리학자는 이 두 그림에 대하여 아무리 숙고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인데, 그는 여기에서 물리학자의 확신이 형성되는 순간, 합리성의 순 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정확한 사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그림 7 그림 8

서 물리학자는 과학적 현상은 더 이상 명석한 관념의 관점에서 주어 지는 직접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할 것이다. 왜냐하면 운동 중에서 가장 단순한 운동인 선형 운동이 여기에서 그 진행 방향을 감 추고 있기 때문이다. 기차의 운행표를 만들 책임이 있는 철도 기사에 게 주행 방향에 대한 지시 없이 선로망을 주는 데 그친다면 그는 얼마 나 당황하겠는가! 주행 방향과 관련해서 보다 큰 어려움이 양전자에 대해서 언급되었 다. 이 입자는 어떤 새로운 관점에서 몇몇 명제들의 원인이 되었는데, 만일 이 명제들이 검증된다면 철학자에게 기묘한 명상의 주제를 제공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의 한 물리학회에서 미국 학자 파인만 Fe y n­ man 은 양전자는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음의 전자라고 가 정하는 발표를 하였다. 그러한 암시에 따르면, 미래의 인과율에 대해 서 말할 수 있을 것이며 미시 물리학적 시간에 대해서는 가역성을 가 정해야 할 것이다. 루이 드 브로이는 휠러 Wheeler 와 파인만의 견해를 로마 대학 교수 판타피에 L. Fan tappi e 의 연구인 r 물리학적, 생물학적 세계의 통일 이론의 원리」와 연관을 지으면서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확실히, 과학의 발전이 양전자 현상에서 시간의 가역성에 대한 증 명을 가져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가능성을 고려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미래의 과학의 진보가 어느 정도로 (철학적 관념의 분야에서조차도) 가장 뜻밖의 새로운 사실을 우리에게 가져 올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l61

16) ~의학의 동향>, 1%0, 2 호, 13 쪽(원주).

이러한 예상이 어찌되었든 간에 양전자의 발견이라는 실증적이고 역사적인 사실을 강조해야겠다. 앤더슨에 의해 해석된 유일한 사진 건 판은 아마도 1 세기 전 르베리 에 Leve rri er 의 해왕성 발견보다 더 중요 한데, 앤더슨의 음화는 전기적 입자의 존재론에 하나의 완결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 태양계에 행성이 하나 더 있디든지 없다든지 하는 것은 천문학 문제에 아무런 변화도 주지 않는다. 미시 물리학에서 하 나의 입자가 더 있디는· 사실은 우주론· 전체를 온통 뒤흔들 수도 있다. 그러나 양전자가 양의 단위 전하로 대전되어 있다고 말하면서 양전 자의 성질을 모두 규명한 것은 아니다. 양성자에 대하여 양전자가 어 떻게 차별화되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실상 입자적 전기에 관한 모든 학설은 오랫동안 전자와 양성자라는 두 입자의 존재에 의해서 정초되었다. 그렇다면 앤더슨의 음화는· 양전 하를 띠고 있는 양성자의 탓으로 돌려져야 하지 않을까? 앤더슨도 처 음에는 그렇게 믿었다. 윌슨 상자에서 안개 혼적 현상은 양성자인가 전자인가에 따라서 아주 다르다. 양성자가 남긴 혼적은 일반적으로 전 자가 남긴 흔적보다 훨씬 더 두터운데 이는 양성자의 이온화 능력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주선에 의해 형성된 입자에서처럼 고에너 지에서 그 차이는 완화된다. 불라켓 Blacke tt과 오키아닐리 Occ hialini는 앤더슨이 환기한 입자의

질량이 양성자의 질량보다 훨씬 작음을 증명했다. 그러고 나서 조금씩 새로운 입자가 전자의 질 량과 동일한 질량을· 갖으며 동일한 그러나 부호가 반대인 전하를 갖 는 다고 생각할 만한 이유들이 축 적되었다. 양 전자와 전자는 따라서 전적으로 대칭적인 입자이다 언어적으로 이 대 칭을 나타내기 위해서 사람들은 전자에 음전자라는 이름을 주기도 했 다. 이렇게 해서 양과 음의 두 전기에 대한 그전의 가설은 양전자와 전자에 이르러서는 입자적 의미를 취한다. 전자와 양성자의 대립은 이 미 입자적 대칭의 최초 형태였다. 그러나 전자보다 훨 씬 무거운 양성 자는 전기적으로만 전자와 상보적이었을 뿐이었댜 양전자와 전자는 보다 완벽한 대립을 이룬다. 그렇지만, 이 대칭이 어떤 특징에 의해 균형을 잃기라도 해야 하는 것처럼 양전자는 전자보다 훨 씬 그 수가 적댜 또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존재론적으로 완벽한 대칭은 음의 양성자 의 존재를 요구할 것이다. 대칭의 이유에 의해 음의 양성자의 존재를 믿어야 할 것인가? 그것은 화학의 기초가 도치되는 일이 될 것이며 모험적인 꿈일 것이다 . 때로 과학지는· 간접적인 가설을 만든다. 그러 나 미리 예상하지는 않는다 . 따라서 우리 시대의 지식의 총체로서 구성된 과학에 대한 철학적 논평으로 다시 돌아와야겠다. 두종류의 〈반대되는〉 전기에 대한 가설의 입자적 의미는, 어떤 음화 에서 동일 지점에서 출발하여 서로 반대 방향으로 굽은 두 개의 이온 화 궤도를 관찰했을 적에 더욱 확대되었다. 이때 사람들은 하나는 양 으로 대전되고(양전자), 하나는 음으로 대전된(음전자) 입자의 쌍과 관 계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 두 입자는 대단히 높은 진동수의 광자에 서 따라서 고에너지에서 그들의 에너지를 얻었다 . 새로운 과학 정신의 이런 멋진 철학성 유연성을 가지고 과학자들은 입자쌍의 생성에 즈음하여 퀴리 부인이 제안한 물질화의 생각을 죽시

받아들였다. 사실 생성하는 광자는 물질적으로 아 ~F 작은 질량만을 지 녔을 따름이댜 두 개의 생성된 입자인 양전자와 전자는 정해진 물질 적 질량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둘 다 물질적 촌재의 지위에 포함되며 광지는 동역학적인 존재의 지위에 남아 있다. 그래서 광자의 에너지를 비용으로 써서 물질의 창조, 죽 물질화가 되는 것이다. 171

17) 충분한 에너지를 가진 두 개의 광자가 서로 접근하면 갑자기 한 쌍의 전자_양 전자로 변환한다. 이처럼 순수한 에너지에서 새로운 입자들이 생기는 현상을 〈쌍생성〉이라고 한다. 그 역의 과정도 일어나는데, 전자와 양전자가 만나면 서 로를 상쇄시키고 두 개의 광자로 변환된다. 이를 〈쌍소멸〉이라고 한다. 이 현상 들은 질량과 에너지의 관계를 수립한 아인슈타인의 가설 E = mc2 을 확인시켜 주는 현상이다.

물질화라는 이 아주 새로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보존 의 법칙의 적용을 나타내는 방정식에서 이 현상을 읽어야 한다. 이러 한 해석을 자세하게 따라가보자. 전자의 질량과 양전자의 질량이 주어 졌다고 할 때 질량 mo 의 정지 에너지 moc: 2 을 주는 아인슈타인의 기본 관계를 적용하면서 물질화 에너지를 결정하기로 하자. 지나가는 길에, 정지 질량에 에너지를 부여하는 아인슈타인 공식의 경탄할 만한 철학 적 중요성을 주목하자. 전자의 정지 에너지는 전자 볼트로 0.51 X 106ev. 이고, 양전자의 존재에 해당하는 에너지도 마찬가지이다. 전부해 서 두 개의 입자에 대한 정지 에너지는 2 X 0.51 X 106ev.=l. 02 X 106ev. 이다. 만일 hv 가 생성시키는 광자의 에너지라고 하면, 완전한 물질화에 대한 방정식은 다음과 같다.

h v = 1.02 X 106ev. + Ei + Ez

(E l 과 E2 는 생성된 전자와 양전자의 운동 에너지)

전자와 양전자 사이의 운동 에너지의 분배는 좀더 상세한 조사를

할 때까지는 우연한 것으로 보인다. 주어진 hv 로부터 생성된 양전자의 최대 운동 에너지는 전자가 어 떤 운동 에너지도 받지 않은 경우, 죽 전자가 물질화의 에너지만을 홉 수한 경우에 해당한다. 그렇게 되면, El=0 이고 Ezmax. = h11— 1.02 X 106 이 된다 . h v 가 5 X 106ev 일 때 Ezmax 는 4 X 106ev 가 된다 . 그런데 이 최대 에너지는 실험에 의해 알려졌댜 계산 물리학과 측 정 물리학의 일치는 여기에서 아주 양호하다 . 실험에 의해 승인된 이론 물리학의 연역을 일단 받아돌이면, 역으로 양전자의 질량을 정하기 위해서 최종적인 실험에 의촌할 수 있다. 1934 년부터 양전자와 전자의 질량이 10% 의 차이로 동일하다는 것을 찾아냈다. 이 상호적 측정의 망속에서 〈악순환〉이라는 비난의 빌미를 찾기는 쉬운 일이다. 이렇게 되면 소심한 논리학자나 태도가 분명하지 않은 합리주의자라는 비판의 표적이 될 것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과 학은 출처가 다른 여러 정보에 의한 사실의 검증으로 자신을 지킨다 . 합리주의의 이성과 실험가의 증거 사이에 서로 주고받는 관계가 항상 진행되는 것이다. 나중에 검토하게 될 광전 효과처 럼 물질화는 문턱 에너지 thr eshold ener gy로서 지칭된다. 1.02 X 106ev. 보다 작은 에너지를 갖는 광자들은 물질화를 할 수 없다. 하나의 쌍을 생성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02 X 106ev 가 필요하다 . 우리는 여기에서 새로운 불연속성의 원리에 접하게 되는데 이는 특이하게 심오하고 진정으로 존재론적인 불연속성인 것 이다. 어디에서 물질화가 이루어지는가? 이마도 광자와 하나의 촉발물질 근방에서일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물론 묘사는 아니며 이를 추론해야 한다. 불라켈, 채드윅 그리고 오키아닐리는 양전자의 생산성에 대해 숙고하면서 이러한 묘사룰 연역하였댜 이들은 광자 에너지 2.65 X 106ev 에 의하여 납조각을 쪼이고 나서 물질화가 수행될 수 있는 단면

의 면적을 계산하였더니, 2.8 x 10 - z,i cm 2 를 얻었는데, 이는 핵의 지름 보다 10 배나 더 큰 지름에 해당되는 값이다. 이런 공간적 측정에 대해 너무 실재론적인 해석을 하지 않도록 주 의해야 한다. 이런 추산은 결국 하나의 확률 분포이며, 방튜f 가리킨 거 리보다 더 큰 거리에서 물질화가 불가능하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 . 다 만 물질화가 보다 드물게 이루어진다고 여겨야 할 것이다 . 물질화 현상의 근원에 있는 이러한 불명확성은 아마도 미시 물리학 에 타격을 주는 인과율의 결함의 한 예가 될 것이다. 현상의 실제적 공간은 말하자면 일종의 확률 공간으로부터 가정된 것이다. 이제 한편에서는 점증하는 영역, 특히 화학에 관계되는 전자의 엄청 난 현상학을 이해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아주 드물고 오랫동안 감추어 진 양전자에 관련된 현상들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지식의 변증법에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조직의 중요성을 납득하게 된다. 변증법을 너 무 빨리 현실 속으로, 즉각적인 경험으로 끌어들이지 않도록 주의해 야한다 . 예를 들어, 최초의 실험적 변증법인 수지 전기와 유리 전기의 대립 은 현대 과학 사상을 조직하기 위한 토대로 유지될 만큼 충분한 정교 함을 지니고 있지 않다. 회귀적 추론에 의할지라도 이 예전의 차이에 서 전기 과학이 초기에 지녔던 분류의 가치를 복구할 수 없을 것이다. 전자와 양전자의 차이는 전혀 유리 전기와 수지 전기의 차이를 포함 하지 않는다 . 이처럼 변증법도 끊임없이 이동한다 . 끊임없이 과학의 통일성을 다시 만들어야 할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과학의 이원성의 힘과 차별화 활동을 일깨워야 한다 . 틀림없이 합리화된 변증법은 이럴 때에 최초의 입장으로 깊게 역류해서 다론 공리를 생기게 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러나 이러한 변증법은 적용된 합리주의, 죽 이론적 이유들 의 체계나 전문 기술에 의한 실험의 계속적인 융합을 요청한다 . 그러 한 변증법은 논리적 사고나 헛도는 합리주의 그리고 순수 정신의 현

상학 속에 있지 않다. 과학사는 이 점에 대해서 분명한데, 전기학은 양 전기와 음전기라는 최초의 변증법 속에 가두어지지 않는댜 보다 섬세 함과 보다 성숙함이 필요하다. 진정한 변증법적 활동은 정상에서, 가 장 미묘한 차별화에서 활기를 띤다. 그 위에, 현대 물리학의 변증법은 철학적 뉘앙스들로 가득하다. 에 너지의 물질화에서 모든 양전자의 생성이 전자의 생성을 동반하는 데 도 양전자가 부족하다는 사실은 변증법적인 존재론이 통제되어야 한 다는 점을 충분히 입증한다. 전자와 양전자 이 대립적 존재들은 단순 히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상대적 존재를 잘 이해하 기 위해서는 아마도 존재에 대한 영속성의 계수, 존재 계수의 학설을 세워야 할 것이다. 이때에 기본적 현상의 뿌리에 뉘앙스를 띤 하나의 실존주의가 온통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 사람들은 양전자가 훨씬 적은 것은 그들이 순간적인 존재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 그 러나 이 명제는 어떻게 보면 뒤집어질 수도 있다. 사실 전자 수의 큰 여분을 부정할 수 없는 우주론적 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루이 드 브 로이는 이렇게 말한다. 이 여분의 결과로서 쌍의 출현에 의해 생긴 양전자는 쌍의 소멸에 의해 빨리 사라져야 하고, 우주는 이렇게 해서 전자만이 있는 일종 의 정상 상태로 끊임없이 되돌아오려는 경향을 보인다 .18)

18) Lou is de BROGLIE, 『물리학과 미시물리학』, 24 쪽(원주).

이런 관점에서 양전자는 그 수가 적기 때문에 일시적인 존재일 것 이다. 논리적 정신을 만족시키는 전자一양전자의 대립은, 양전자의 결 핍이라는 우주론적 사실을 고려해야 할 적에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일 반적으로 입자들의 물질화와 탈물질화 현상은 자동적이거나 선험적인

변증법에 의해 밝혀질 수 없는 형이상학적 문제 를 제기한다. 과학의 활동 중의 하나는 부분적안 부정, 섬세한 부정의 탐구에 있다. 오직 섬 세한 부정만이 사고하게 하며 논리학자의 순수한 부정은 토론하는 데 에나 쓰인다 . 맨 현대 물리학의 새로운 입자들의 역사를 세부적으로 따라가면, 대상 의 직접적 성격에 대한 많은 판단을 철학적으로 수정하기에 이른다. 이 점에서 중성자 발견의 역사는 아~구 교훈적인데 이제부터 여기에 대해 우리의 철학적 논평을 하고자 한다 .19 1

19) 전자, 양성자 그리고 중성자가 물질의 궁극적인 요소라고 생각했던 시대가 있 었다 . 이 세개의 입자 를 〈기본 입자〉로 부른 것은 그 시대의 산물이라 하겠다.

미시 물리학은 사실 미시 전기학으로서 발전했다 . 전기 장치들의 체 계 속에서 전기적 존재들을 만들었고 전기장 내에서 이들의 행태를 연구했다. 입자들의 전기적 속성은 앞으로 사물의 성질을 설명하는 데 에 근본적인 요소로 보였다 . 화학이 이런 유형의 설명에 문을 열었다. 핵물리학은 강력한 전기장에 의해 가속된 전기 입자의 두들김 bombardmen t~1 에 의하여 화학 원소의 변환 가능성을 밝혀주었다. 전 기를 띤 입자들이 가스를 이온화시키는 특성 덕분에 사람들은 윌슨 상자에서 핵을 파괴하는 발사체롤 혼적을 따라 추적하였다. 전기 현상 학은 조직화되고 점진적으로 규명되었다.

20) 우리는 문맥에 따라 〈포격〉이라는 용어도 아울러 사용하였다.

그런데 1930 년 베릴륨의 두들김 실험에서 보드 Bo t he 와 벡커 Becker 가 〈놀라운〉 현상을 주목하였다. 퀴리 부처의 연구는 이 놀라운 현상 에 대하여 많은 정보를 가져다주었다. 우리가 독서를 권장한 책에서

자세히 기술된 이 현상들의 세부 사항에 들어가지 않고, 우리는 단지 단 하나의 사실이 가장 견고한 이론을 좌절시킬 수 있다는 점을 말하 고자 한다. 한참 동안 수수께끼가 쌓여나갔다. 중성자의 개념을 내어 놓으면서 결정적인 해결책을 제안한 이는 채드윅 Chad wi ck 이었다. 그 래서 중성자의 객관성은 무엇보다 반박에 대한 하나의 답변이라고 할 수 있다. 1930 년과 1932 년 사이에 핵에 대한 실험에 의해 제기된 일련 의 문제를 검토하고 나서 리즐러 Ri ezler 는 이 렇게 말한다. 만일 우리가 중성자 가정을 채택한다면 이 모든 모순들이 단번에 해소된다 .211

21) Wolfg ang RIEZLER, 『핵물리학입문』, 2 판, 1942, 1 권, p .III( 원주).

그러나 철학자가 철학적으로 배워야 할 곳은 바로 여기다. 발견이라 는 말이 철학자를 속일 수 있는데, 우리는 작은 상자에서 뚜껑을 여는 것처럼 핵에서 중성자를 발견하지 않는다. 중성자는 어떤 전하도 가지 고 있지 않다는 사실로부터 〈전기적 의미〉를 벗어난다는 점과 윌슨 상자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중성자의 〈실재성〉을 평가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촌재론적 지위를 만들어야 한다. 요컨대 중성자 에 관해서는 그 결과에 의해 작성된 실재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 실재성은 참으로 간접적이어서, 합리적으로 구성된 그러나 재구성해야 하는 과학으로부터 그리고 원래 중성자의 탐지 방향으로 설정되지 않 았던 전문 기술로부터 추론된 것이다. 중성자는 적용된 합리주의 전형 적인 대상으로 우리에게 보인다. 이 대상은 구성적 합리주의와 기술적 물질론의 합성 없이는 부적당하고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중성자에 대한 철학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한 권의 특수한 책이 필 요하다. 특히 중성자의 발견 이래 핵물질론의 빠른 진화를 - 따라가 보

면 현대 과학의 끊임없는 재구성 활동에 대한 개념을 갖게 될 것이다. 중성자와 더불어 과학에 새로운 형태의 힘이 도입된다. 그 전에는 중 력과 전기력이라는 두 가지 유형의 힘을 알고 있었다. 뉴턴과 쿨롱 Coulomb 은 이 두 유형의 힘을 가지고 일반 동역학을 확립했다. 2'2 1 이제 부터는 핵력을 고려해야 하고 이 힘은 특수한 힘이라는 지위에 놓이 게 된댜 Zl)

22) 자연계에는 서로 다른 네 가지 종류의 힘이 있다. 뉴턴의 중력과 방사성 붕괴 에 관련되는 약력(약한 상호 작용), 전자기력과 핵력(강한 상호 작용)이 그것인 데 힘의 세기는 강력을 1 로 놓았을 적에 전자기력은 100 분의 1, 약력은 10 만분 의 1, 그리고 중력은 10-39 이어서 중력이 얼마나 작은 힘인지 알 수 있다 . 1970 년대에 과학자들은 약력과 전자가력을 결합시켜 〈전기적 약력〉을 만들었다. 23) 원자핵의 크기는 원자 지름의 10 만 분의 l 에 불과하다 . 이 작은 공간 속에 양 성자들이 들어 있으므로 그들 사이의 반발력은 무척 클 것이다. 이러한 반발력 을 제어하고 그들을 단단하게 결합시키기 위해서는 매우 강한 힘이 있어야 하 는데, 이 힘을 〈강한 상호 작용〉 또는 〈핵력 nuclear fo rce 〉이라고 부른다.

이 특수력 또는 핵력장은 엄청난 새로운 사실이며 이에 대한 연구 는 이론 역학의 진정한 개방을 요구한다. 고전적 이론 역학은 근본적 인 수정 없이는 특수력에 대한 연구에 접근할 수 없다. 다른 점에서, 존재론적인 고려에 만족한다면 중성자의 존재가 강요 하는 물질론의 혁명을 금방 납득하게 된다. 모든 원자들의 핵은 앞으 로 양성자와 중성자의 조직으로서 보아야 한다. 양성자와 중성자의 실재론적인 특징을 비교해 보자. 그들은 비슷한 질량을 가지고 있다 . 중성자와 양성자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작은 질량 올 갖는지 알기 위해서 긴 토론이 전개되었다. 가장 가벼운 것이 기본 입자로 지칭될 것이댜 예컨대 다음의 두 가설 사이에서 주저하지 않 겠는가?있)

24) 중성자는 약한 상호 작용에 의해 양성자와 전자와 뉴트리노로 붕괴한다. 양성 자가 붕괴하려면 뉴트리노가 17 분 동안 양성자에 붙어 있어야 하며 이때 중성 자와 양전자로 붕괴된다 .

1) 중성자 = 양성자 + 음전자 2) 양성자 = 중성자 + 양전자 그러나 이 토론은 루이 드 브로이가 요약하는 현대의 관점에서 그 중요성을 잃는다. 오늘날 우리는 양성자와 중성자를 동일한 중입자의 두 가지 상태 로 생각하고자 한다. 그래서 중성자는 전자를 방출하면서 안정 상태 의 양성자로 변환하려는 경향을 가진 중입자의 불완전한 상태거나 준안정 상태라고 말할 수 있댜 그 작은 차이를 보건대, 중성자의 질량+ 전자의 질량= 양성자의 질량 그러나 중성자는 상당히 긴 평균 수명을 가지며 거의 안정직으로­ 보인다고 생각할 수 있다 E)

25) Lou is de BROGLIE, 『파동역학에서 핵이론으로』, 1943, 1 권, 147 쪽(원주).

여기에서 우리는 즉시 아주 새로운 존재론적 문제 앞에 직면하게 된다 . 입자들은 상태이고 그들의 관계는 상태들의 변환이다. 전자와 양 성자의 질량비가 이들 입자가 받는 에너지에 따라서 변화한다고 말하 는 르프랭스-렝게의 견해를 우리가 상세하게 이야기할 적에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의 새로운 예를 보게 되는 바, 질량의 절대성에 대한 일 반적인 종말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입자들을 특징짓기 위해서는 다른 요인들에 문의해야 한다. 그래서 리즐러가 취한 중성자 질량과 양성자 질량이 각각 1. 00895 와 1. 00815( 산소 원자량 16 을 기준으로한 수)라는 점 만을 가리키면서 우리의 비교를 계속하자. 양성자와 중성자는 질량에 있어서 비슷하고 동일한 스핀을 가지고 있다. 모든 기본 입자들처럼 이 두 입자도 스핀성에 책임이 있다.

결국 그들의 근본적 차이는 전기적 성질에 관계된다. 양성자가 양의 단위 전하를 가지고 있는 반면에 중성자는 어떤 전하도 없다. 신기한 일은, 전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양성자처럼 중성자는 자기 모멘트를 소유하고 있다. 중성자의 자기 모멘트 개념만으로도 미시 물 리학의 개념들간의 일관성에 대해 어려운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나 이 모든 단순한 특징들은 현재의 관점에서 과학자들을 따라 간다면 아주 새로운 철학적 의미를 갖는다. 물론, 핵 속에서 중성자와 양성자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 순전히 위상학적인 설명이나 기하 학적 배열에 호소하던 시대는 지났다 . 물리학자가 단순히 형식적인 직 관으로부터 벗어난 것은 이제 수십년이 된다. 그는 실재의 핵심은 동 역학적이지 기하학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댜 현대의 과학 사상 은 베르그송이 가르친 것처럼 도구인의 직관에 전혀 종속되지 않는 댜 다음 장에서 보다 자세하게 설명하고자 하는 것처럼 현대의 과학 사상은 새로운 현상들에 맞춘 동역학적언 개념들을 조직할 줄 알고 있댜 우리가 조금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람들은 때때로 양성자와 중성 자 중에서 어느 것이 근본적인 입자인가를 자문하였다. 양성자를 전하 를 받은 중성자처럼 상상하는 것은 소박한 형이상학일 것이다. 중성자 는 양성자보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자격이 있다. 죽, 0 의 전하를 갖는 것은 단위 전하를 갖는 것과 마찬가지로 특수한 것이다. 전기적으로 중성이라는 사실이 바로 입자 두들김의 기술에서 중성 자에게 특수한 속성을 부여한다. 양성자나 알파 입자에 의한 두들김이 포격받는 핵의 척력을 극복해야 하는데 반하여 중성자는 아주 용이하 게 핵에 접근할 수 있다. :!; ) 그들은 핵 속으로 관통하기 위한 특선된 발 26) 원자핵의 전하는 쿨롱 장벽을 형성해 양의 전하 를 가진 입자들을 ” 밀어낸다. 중 성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이기 때문에 쿨롱 장벽으로부터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 으므로 곧바로 원자핵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

사체이다. 변환 실험에서 중성자의 작용은 핵물리학이라 는 새로운 과 학에서 검토되어야 할 핵 내부의 재편성을 이용한다. 따라서 단순하게 발사체의 속성만이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느 린 중성자가 빠 른 중성자 보다 더 활동적이라는 사실에 놀라서는 안 된다. 어떤 실험에서는 중 성자가 변환시켜야 할 핵의 근방에서 보다 오랜 주행 시간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 중성자를 지연시켰다 . 그러한 실험에서 소박한 물질론은 많은 모순을 당하게 된다. 예를 들어, 중성자 다발은 50cm 두께의 납판 을 통과하면서 크게 약화되지 않는 반면에 20cm 의 파라핀층에서는 정 지된다. 그래서 우리는 진정한 충돌의 화학, 충돌의 친화력에 관한 하 나의 학설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되며 보다 정확하게 말해, 여기에서 충돌의 이미지는 단순한 사물주의가 부여하는 설명의 특권을 간직할 수 없다는 하나의 새로운 증거를 보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의도는 핵물리학에 대해 논평하자는 것이 아니다 . 우 리의 검토롤 입자들의 철학적 성격에 제한해야 한다 . 때로 명확히 밝 혀 말할 필요가 없을 적에 양성자와 중성자를 핵자라는 이름으로 부 른다. 예를 들어 산소의 핵은 16 개의 핵자 (8 개의 양성자와 8 개의 중성 자)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관점에서 핵자는 단순하게 총칭적인 명사가 아니며 핵자는 양성자나 중성자보다 많은 내포를 지 니고 있다. 이럴 때에 핵자는 진정 근본적이며 위에서 말한 것처럼 양 성자와 중성자라는 두 가지 상태를 취할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이때 과학자들은 일종의 이원화된 입자적 촌재를 주는 교환 연산지를- 정의 한다. 중성자가 양성자로 변환하면 핵의 외부로 전자의 방출이 있다 . 이것이 자연 방사능 현상이다. 반대로 양성자가 중성자로 변하면 핵은 양전자를 방출한다. 우리는 인공 명 사능에서 이러한 변환의 수많은 사 례를 보게 된다. 그러나 끝없이 중성자에서 양성자로 그리고 양성자에서 중성자로 가는 율동적인 존재론을 상상해서는 안 된다 . 우리가 관찰하는 현상은

수많은 무리의 현상이다 동일한 핵에 대하여 두 번 작용할 확률은 어 떤 핵에 대한 작용 확률의 자승이다 따라서 그런 확률은 매우 희박하 댜 동일한 입자에 계속해서 부여할 수 없는 두 가지 유형의 변환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다지도 새로운 관념을 따라가노라면, 입자들에게 명확한 존재론 적 지위를 주는 무조건적인 실재론은 사고의 정지를 야기시킬 수 있 다는 점을 확신하게 된다. 여기에서 소박한 존재론을 계승하는 동역학 은 구성의 시기에 있다 근본적인 실체들에 대한 새로운 학설을 이해 하는 데 필요한 수학적 장치는 대단히 복잡하다 . 기본적인 원자론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수학적 개념들의 복잡성만으로도 매우 특이한 철 학적 성격을 나타낸다. 원자론이 단순한 철학적 학설이었던 시대, 걸 리버의 여행에서처럼 일상적인 지식의 명중성을 거인국과 소인국에 비추어 미세한 세계를 상상하던 시대는 끝났다. 과학 지식에 소용되고 자 하는 합리주의는 끝없이 그 토대를 재검토하고 개혁해야 한다. 이 런 합리주의는 진정으로 작업중에 있는 철학이다. VIII 현대 물리학이 파악한 입자들 중에는 그 존재에 대해 실재론적인 물리학자를 설득시키기에 충분한 확인을 받지 않은 입자들이 있다. 이 제부터 우리가 관여하고자하는 중성미자(뉴트리노)가 바로 그러한 경 우이다 . 이 입자는 적용된 합리주의의 철학적 의미를 민감하게 하는 데 아주 적절하게 보인다. 이에 대해 사실 많은 철학적 의문을 제기할 수있다. 중성미자는 단순하게 하나의 작업 가설에 해당하는가?

그것은 사실을 나타내는 데 유익한 하나의 규약 내지 하나의 편리 한 존재인가? 만일 그것이 하나의 규약이라면 왜 그렇게 일반적으로 인정되는가? 또는, 새로운 형태의 실험이나 탐지 장치에서의 증대된 감도가 중성미자의 실재성에 대해 새로운 증거를 가져올 것인가? 이 모든 질문들은 지식의 합리적 조직과 실험적 증거 사이에서 벌 리는 합리주의자와 실재론자의 토론 한 가운데에 중성미자의 문제가 위치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 철학자는 여기에서 형이상학적 섬세의 정 신을 위한 진정한 교훈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물리학자는 중 성미자가 필요한 입자이기는 해도 형이상학적이라고 말한다.'ll) 아직 물리학적이 아닌 입자, 실재론자가 형이상학적이라고 여기는 입자가 어 떻게 실험적 사고의 합리적 조직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입자가 되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업) NAHMIAS, 『원자포격 』 , Par is, 1947, 143 쪽(원주) .

라디움과 같은 방사성 물체에서 나온 방사선을 검사하면 알파벳순 으로 명명된 a선, f3선, 7 선이라는 3 종류의 요소를 검출한다. 일찍부 터 처음의 두 방사선은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a 선은 헬륨의 핵이어서 양성자 두 개와 중성자 두 개의 결합이고, /3 선은 바로 전자의 다발이다. r 선은 고주파의 광자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존재론적인 식별은 방사능 과학의 기본적 지식의 일부를 이 룬다. 마찬가지로 실증적 실험에 의해 a 선과 r 선의 에너지에 대하여 명 백하게 불연속적인 성질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3선에 대해서 실험은 그들이 양자화되지 않은 에너지를 가지고 방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려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관찰이다. 실상 이 세 방사선들은 핵현상이다. a 와 /3의 방출은 핵변환을 일

으킨다 원자 번호 A 인 핵은 a 선의 방출에 의하여 원자 번호 A 一 2 의 핵으로 그리고 /3선의 방 출 에 의해 원자 번호 A + 1 의 핵으로 각 각 변형된다 아버지 핵과 아 들 핵은 특수한 에너지에 의해 특징지어 진다. 따라서 f3선이 확정된 에너지를 가져가야 한다. 그래서 f3선 방 사가 a 선 방사처럼 작동하고 에너지 스펙트럼이 불연속적이어야 할 것 이 기대된다 . 그런데 실험적으로 관찰된 것은 연속적 에너지 스펙트 럼이었다. 루이 드 브로이는 이러한 상황이 매우 이상하다고 말했다 . 281 이러한 〈 모순 〉 은 연구자의 서류에 첨부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철학자는 그것 의 진정한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인식 철학을 서술의 단계에만 유지한다면, a 선의 스펙트럼과 f3선의 스펙트럼이 다르다고 말하는 것으로써 만족할 수도 있다. 우리의 일상적 경험으로부터 아주 떨어진 세계에서 생기는 이 입자들은 결국 실재가 근본적으로 불합리 성의 표지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지 않는가? 사람들은 철학 자에게 미시 물리학은 새로운 현상에 대한 자유로운 검토를 요청한다 고 반복해서 말한다. 이럴 때 철학자는 현대 과학이 수월하게 새로움 을 소화한다고 믿는다.

28) Lou is de BROGLIE, 『 파동역학에서 핵이론으로 』 , 1945, 2 권(원주) .

나아가서 이런 실험적 모순이 어떻게 보면 역사적 모순이고 그래서 현상의 예측에 대한 성공의 긴 과거를 의문에 부친다고 설명할 때, 철 학자는 아주 특수한 단 하나의 실험이 물질에 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의견에 대하여 갖는 영향력에 놀란다 . 그러나 바로 여기가 모순이 이르는 곳이다. 실상 문제의 목적은 다름아닌 에너지 보존의 원리인 것이다. 이때에 사람들은 에너지 보존 원리의 실험적 보편성을 의심하고자 할 수도 있으며, 라듐의 f3선에 관한 특수한 어려움은 곧 잊혀질 것이

댜 그러나 동시에 지식의 이론적 장치가 덜 견고해질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선택에 직면한다. 마침내 과학자들은 보존의 원리 를 지키고 중 성미자라는 추가적 입자의 존재 를 가정할 것을 선택했다 . /3입자가 자 신의 에너지를 가져가는 동시에 중성미자는 에너지를 가지고 가며 그 결과로 전자_중성미자 쌍이 가져간 전체 에너지 는 양자화될 것이다. 만일 필요하다면 과학자는 이 선택을 취소할 수도 있다는 점을 주 목하자. 그는 사람들이 믿는 것처럼 원리에 종속되어 있지 않다 . 에너 지 보존 원리의 유효성을 포기하려는 시도가 이때에 나타난 것은 과 학 공동체 내부에서이다. 에너지 보존 원리를 단순히 통계적인 원리로 보자는 제안도 나왔다. 보어는 이런 시도를 끝까지 밀고 나갔다. 그러나 활동적 사고가 된 것은 양자택일 중 다른 절충안이다. 그래 서 에너지 보존 원리를 간직하고 중성미자의 존재를 가정했던 것이다. 부수적으로 하나의 어려움이 해결되었다 . /3방사는 중성미자의 방 출에 의해 보완하지 않으면 스핀 보존의 원리라는 미시 물리학의 원 리와 모순을 일으킨다 . 그래서 사람들은 이 원리를 구하기 위하여 중 성미자에게 적절한 스핀을 부여한다 .29) 따라서 중성미자는 동시에 에 너지와 스핀의 두 가지 대차대조표를 뒷받침해 준다.

29) 스핀이 1/2 인 중성자가 스핀이 1/ 2 인 양성자와 전자로 붕괴하는 경우 중성미자 롤 개입시켜 이 문제 를 해결할 수 있다 . 죽,

+상 (n)=+ 송(p)-강 (e)+ 강(중성 미자)

그러나 이러한 회계적인 인위적 수단이 인정되고 나서 우리는 중성 미자에 어떤 존재론적 지위를 줄 수 있는가? 확실히 전하는 안 된다. 만일 음이든 양이든 전하를 부여한다면 중성미자는 현대 과학의 가장 근본 원리 중의 하나인 전하 보존의 원리를 위배할 것이다. 따라서 중 성미자는 중성이며 이러한 사실로부터 그 이름이 유래한다. 중성미자 가 정지 질량을 가지고 있다면 이 질량은 아주 작아야 하며 나아가서

0 이어야 한댜 우리는 0 의 전하와 0 의 질량이라는 결함투성이의 존재 론적 특징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합리적으로는 필연적이고, 질량과 전하 두 가지 실재성에서는 유령 과 같은 이 입자로부터 물리학자는 실증적인 현상을 추구한다. 현대 물리학의 입자들에 대한 가장 공통적인 증거들 중의 하나는 입자들이 야기하는 이온화 현상이다. 그런데 나미아 N ahini as 는 이렇게 환기한댜 만일 중성미자가 자기 모멘트를 가진다면 이것은 50 만 Ian 의 주행 에서 단 한 쌍의 이온도 만들 수 없을 정도로 작아야 한다. 이것을 센티미터당 3 만 개의 이온을 주는 a 입자의 이온화 능력과 비교할 때 중성미자의 불확실한 이온화 능력은 얼마나 미약한가! 나미 아는 이렇게 추가한다 . 우리는 중성미자의 존재를 나타내는 단 하나의 이온이나 또는 하 나의 궤적을 보지 못한 체 어떤 에너지로도 수십억 개의 중성미자를 며칠이고 몇 달이고 윌슨 상자를 통해 보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실험들은 덜 부정적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알렌 Allen 은 8 선 방출시 원자핵의 반동을 연구하면서 중성미자의 존재와 일치하 는 것으로 보이는 측정을 했다. 확실히 핵을 떠나는 전자의 운동량과 반동하는 핵의 운동량을 참작하면 우리는 또 다시 모순을 만난다. 운 동량 보존 법칙은 에너지 보존의 원리와 마찬가지로 궁지에 몰린다. 중성미자 가설은 여기에서 다시 근본적인 법칙을 구하게 된다. 따라서 중성미자에게 운동량을 부여해야 한다. 이 문제는 방사성인 戶 2 의 붕 괴에서 운동량 보존에 대한 그리고 중성미자나 전자의 각 상관 관계

ang u lar correla ti on 에 대한 셔윈 Chalwers W. Sherw i n 의 논돔본에서 자세 하게 연구되었댜 301 셔윈은 각 상관 관계의 여러 방식을 검토하고 실험 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한다. 설명되지 않은 어려움들이 남아 있지만 그의 실험은 중성미자 가정이 없을 때 운동량 보존 법칙은 더 이상 셔 윈이 연구한 구체적 현상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서 적어도 분명하다.

30) <물리학지>, 1948 년 2 월(원주).

게다가 중성미자와 같은 입자의 현상성이 얼마나 희미하고 애매한 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보다 완전하기 위해서는 여러 이론에서 중 성미자의 가설을 삽입하는 정확한 지점이 이론들에 따라서 달라야 한 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파울리 Pa uli에 대해 처음 간단한 형태로 제 안된 가정은 다양한 이론에 따라서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바로 그래 서 브릴루앙표 on B rill o ui n 은 페르미의 중성미자와 루이 드 브로이의 중성미자, 그리고 크로니그 Kro nig와 조르단J ordan 의 중성미지를- 혼동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중성미자의 그 모든 다양성을 현재의 과학 이 고려할 때 얼마나 섬세한 사고를 사용하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한 변증법적, 철학적 의미가 증가한다. 현대 과학과 더불 어 우리는 대담하면서도 동시에 신중한 이성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것 이다. IX 중간자의 존재에 관한 철학적 주제의 검토 역시 온통 한 권의 책이 필요할 터인데, 왜냐하면 이 주제는 앞서의 우주론과는 전혀 다른 용 어로 제기되는 우주론적 문제를 건드리도록 하기 때문이다. 역시 우리

는 과학 사상의 가장 큰 모험 중의 하나에서 현대 물리학을 따라가야 할 것이다. 하나의 이론적 활동이 어떻게 그것이 유효하다고 추정된 영역과는 아주 다른 실험적 인정을 받는지 상세하게 보고하는 것만으 로도 가정과 실험의 관계에 대한 피상적인 관념을 개선해야 할 것이 다. 분명히 중간자 가설은 처음에는 근본적으로 수학적 가정이었지 경 험과 연관된 이미지가 아니었다. 수학적 가설로서 그 가설은 수학화된 새로운 학설의 여건 속에서 나타났다. 그래서 실험적 확인이 제시되었 을 적에 최초의 명제와는 너무나 멀리 떨어진 분야에서의 일이었기에 그렇게 먼 거리에서의 종합을 예견하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중간 자 철학에 제목을 붙인다면 〈원자핵의 수학적 이론으로부터 우주선에 대한 천문학적 실험까지〉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긴 회로를 그 모든 단계에서 기술할 수는 없지만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만을 강조해 보자. 핵의 안정성에 관한 문제는 고전 물리학과 역학의 토대에서는 풀릴 수 없는 것으로 밝혀졌댜 하나의 술어 철학 3“ 이 아마도 즉시 어려움을 파악해서, 핵력은 중력이나 전자기력과는- 아주· 다른 특수한 힘이라고 하면서 어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 그러나 이런 구분은 아무것도 진 척시키지 못한다. 구성된 핵 중에서 가장 간단한 중양자 deu t eron 에서 왜 하나의 양성자와 하나의 중성자가 서로 견고하게 결합되어 있는지 를 물어야 하고 또한 헬륨의 핵에서 왜 두 개의 양성자와 두 개의 중 성자가 전기적 척력에도 불구하고 미시 물리학에서 가장 안정적인 구 조물을 이루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31) 문제의 주어에 대해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관점을 뜻한다.

이렇게 아주 새로운 문제 앞에서 과학 정신은 한번 더 신중하고 대 담하였다. 신중하다는 말은 분자 과학에서 확립된 지식에 의존하였기 때문이고, 대담하디는 것은 이 지식을 미지의 세계에 적용하면서 새로

운 언어로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포화될 수 없는 쿨롱의 힘이나 전기 력괴는 달리 핵력은 포화될 수 있는 힘이다 . 그런데 바로 화학 분자에 서 포화되는 힘이 있는 데 서로 만족시키고 활동을 중지하는 원자가 valence 힘이 그러하다 . 핵물리학자는 그래서 분자 과학을 핵의 과학 에 옮기고자 한다. 여기에서 인식론적 역설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를 잘 생각해 보라! 원자의 전기 화학을 수립하기 위하여 우리는 고전 물 리학에 뿌리박은 지식을 위반해야 했다. 보어는 스펙트럼 현상을 설명 하기 위하여 고전 역학과 단절해야 했다. 핵에 접근하면서 이제는 미 시 화학보다 큰 규모의 현상에서 취한 지식을 미시 물리학에 재편입 해야 할 것 같다. 분자의 성질, 원자의 성질 그리고 핵의 성질은 이처 럼 2 중적 변증법의 동기가 되어서 우리는 핵에서 분자를 다시 보게 된 다. 그러나 이런 비유적 표현은 간결한 말일 뿐이다. 활동중에 있는 과 학 정신이 명백하게 분자, 원자, 핵을 명확하게 분류할 것이고, 오랫동 안 상세하게 이 세 분야의 관계를 설정하기 위해 힘을 기울일 것은 분 명하다. 우리는 핵에 관계된 합리주의의 최초의 서광에 집중하고 싶을 뿐이다 . 핵력의 이론이 시작된 것은 교환 에너지의 착상으로부터 받은 희미한 조명에서이다. 이때에 교환 에너지를 입자화해야 할 필요성이 나타났다. 말하자면 광자가 전자기장의 양자화를 나타내는 것처럼 핵장의 양자화에 해당 하는 새로운 입자들의 교환을 핵자들 사이에 가정한 것이다. 최초의 시도인 페르미장(場)의 시도는 핵자들 사이에 중성미자와 전자의 교환 으로 이루어지는 입자적 교환을 상정했다. 복잡한 수학으로 전개된 이 생각은 핵의 안정성을 납득하기에는 너무 미약한 수치를 주었다 . 이때 페르미장은 단 하나의 교환 입자 가정에 입각한 유카와 Yukawa 장으로 대체되었는데, 이 입자는 전자처럼 단위전하를 소유하고 전자보다 훨 씬 무거운 입자였다. 유카와는 이 입자에 전자 질량의 200 배 가까운 질량을 부여하였다. 양성자 질량과 전자 질량의 중간인 이 질량은 중

간자라는 이름을 이 입자에게 가져다주었다 우 페르미의 가설처럼 유가 와의 수학적 가정은 가장 추상적인 이론과 관계된다. 따라서 중간자는 어떤 실증적 실험의 뒷받침도 없는 이론의 대로상에서 추상화된 존재 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의 순전히 설명적 이론, 검증 실험을 제안할 수 없는 이론 앞에 우리는 직면해 있는 것이다 . 양성자와 중성자 사이에 서 중간자의 교환을 보여주는 핵 내부의 실험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 는지 우리는 모른다.3.J)

32) 중간자의 수명은 매우 짧아서 10-Zl 초 정도이다. 이 시간은 불확정성 원리 AE • 삭 = h 에 대입하면 6. E 는 아주 큰 값이 된다. 6.E = mc2 을 이용하면 중간자 의 질량은 전자의 2 백배에서 3 백배 정도가 된다. 33) 중간자에는 질량이 서로 다른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유카와가 예언했던 입자는 오늘날 〈파이( 7[)중간자〉 또는 〈파이온〉으로 불리고, 그보다 가벼운 중간자는 〈뮤온(µ)〉으로 불리는데 유카와의 이론과는 무관하다. 고속으로 움직이는 양성자를 정지하고 있는 양성자에 충돌시키면 다음과 같은 결과들이 나타난다 .

p+p-> {;問°+

P+P+ 1r +_+ 1r - 양성자와 중성자가 충돌해도 파이온이 형성된다. p+ n _. p+p+ 7r -

유카와 중간자의 이 근본적으로 추상적인 성질은 중간자와 실험의 만남을 더욱 놀랍도록 만든다. 알고 있는 바처럼 과학자들은 우주숏선에 서 새로운 입자의 현상으로서 설명해야 할 현상을 발견했다. 이 새로 운 입자는 그 효과에 따라서 유가와가 중간자에 부여한 질량과 10% 의 오차를 갖는 질량을 받아야 했다. 즉시 사람들은 추상적 입자와 우주 선 입자를 동일시하기로 했다. 철학자가 그 모든 우여곡절을 검토한다 면 이러한 〈동일시〉는 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줄 것이다. 그는 소여 (所與)라는 전통적 철학 개념이 실험값의 힘겨운 추산의 결고遷广 특징 짓기에 얼마나 부적당한지 인정할 것이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또 다시 미묘한 실험에서 추론된 질량과 관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여기에서도 양전자와 경우에서처럼 〈유명한〉 사진 건판이 있 다. 1938 년에 앤더슨 Anderson 과 네더마이어 Nedderme y er 가 얻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르프렝스-렝게는 그것을 그의 보고서의 토대로 삼는 다. 자기장의 곡률과 이온에 응축되는 작은 안개 방울의 수에 의한 이 온화 궤도의 검사는 중간자의 정지 질량에 대해 전자의 질량보다 250 배 큰 질량을 주었다. 르프렝스-렝게의 팀이 얻은 다른 사진 건판에 대하여 그는 이렇게 말한다 . 그것은 우리가 알기로는 오늘날까지 얻은 이런 종류의 사진 건판 에서 유일한 것이고 정확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전세계에서 얻어진 수만 개의 궤적 사진 건판들 중에서 그것은 중간자와 전자의 충돌에 알맞은 유일한 사진 건판이라는 것을 알았다. 중간자 물리학의 한 가지 어려움에 대해 특기해야겠는데, 중간자현 상은 어떤 면에서는 사건들이다. 우리가 마음대로 이 현상을 만들 수 는 없다. 그래서 언제나 이 현상-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기다려야 한 댜 이 사건의 흔적을 수집하기 위해서는 많은 촬영을 해야 한다. 1943 년 르프렝스-렝게나 레리티에 Lhe riti er 가 찍은 만 개의 사진 건판 중 에서 이들은 단지 10 여 장만을 얻었는데 천 개에 대해 한 개 꼴이다.3- 1)

34) <{물리학지>, 1946 년 3 월 참조(원주).

중간자 물리학은 어떤 의미에서 무한소에 대한 일종의 기상학이다. 사 람들은 이 미세한 현상의 기상학을 성층권에서부터 깊은 바다 속에 이르기까지 가장 극단적인 차원에서 조사하면서 대자연에서 탐구한다. 중간자를 생성하는 우주선을 워싱턴에서 알라스카까지, 헤이그에서 바 타비아3 5) 까지 측정을 되풀이하면서 연구한다.

35) 일리노이 주 바타비아 Ba tavi a, Illi no i s 의 동쪽 5 마일 지점에 7 (XX)에이커의 옥 수수 밭이었던 곳에 페르미 연구소 F ennil ab 가 서 있다 .

아마도 이 마지막 말이 취급된 문제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댜 그러나 자연 철학에 종사한 철학자라면 물리학의 자연에의 복귀에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자연의 관찰과는 아주 다른 자연에서의 전문 기술이라는 새로운 철학적 양상을 어찌 무시할 수 있겠는가. 어쨌든 가장 추상적인 이론과 가장 면밀한 기술적 탐구의 합류점에 있는 중간자는 이제부터 현대 물리학의 존재자들에 필요한 이중의 존 재론적 지위를 부여받는 하나의 입자이다. ;Jj)

36) 그래서 중간자는 적용된 합리주의의 전형적인 사례가 된다.

그러나 중간자의 개념은 그 실재성의 다양성에서뿐만 아니라 기능 들의 복잡성 속에서 아직 소개되지 않았다. 이론에서 그리고 실험에서 사람들은 음의 중간자였던 최초에 만난 중간자의 정확한 대칭인 양의 중간자의 촌재를 인정했다. 이론은 또한 가벼운 중성자로 알려진 중성 중간자의 개념을 만들었다 . 그러나 지금 까지 중성중간자는 중성미자처럼 실험적 검증을 받지 못했다.'51 1

37) 중성중간자가 양 • 음의 중간자보다 발견되가 어려웠던 이유는 수명이 무척 짧 은데다가 중성이어서 측정장치 속에 궤적을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1~ 년 중성중간자의 붕괴 생성물을 검출함으로써 그 존재가 분명하게 확인되었다. 그리고 〈중성미자의 사냥꾼들〉인 미국의 코낸과 라이네스는 3 년간의 연구 끝에 1%6 년 중성미자의 발견을 발표했다 .

그 대신 실험은 무거운 중간자를 만났는데 그 질량이 최초 중간자 의 질량처럼 200mo 가 아니고 lOOOmo 인 중간자이디 {mo 는 전자의 정지 질량). 유가와의 가벼운 중간자를 7[중간자라 하고 이 무거운 중간자 를 K 중간자라고 부른다. 사진 건판의 감광성을 높이면서 한 입자의 흔적을 조사하면서 이 입자가 사진층에서 2500 마이크론을 주행하고 나서 세 궤적의 별모양 을 만들었는데 그중 하나의 궤적은 음의 r 중간자에 기인한 것으로

단정할 수 있었다. 르프렝스 - 렝게와 페롱 Pey ron 은 여기에서 하나의 K 중간자가 3 개의 7[중간자로 붕괴하는 것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것은 붕괴의 문제에 대한 서류에 첨부되어야 할 신기한 현상이다. 입 자들의 생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적에 붕괴는 현대 물질론의 특징적인 아주 새로운 개념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자료가 부족하다. 어떤 저자들은 파이 중간자에 대한 K 중간 자의 비율이 3% 를 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 . 르프렝스-렝게와 페롱 은 이렇게 분명하게 결론을 내린댜 그러한 입자가 존재하는 것은 가능하다 . 그러나 그 입자의 식별은, 방법들의 선택적 특징 때문에 그리고 생성이 희귀하기 때문에 또한 짧은 평균 수명 때문에 일반적으로 체계적 실험을 벗어난다. 에

38) LEPRINCE-RINGUET, C. PEYRON, r 중간자에 대한 고찰』, < 물리학지 > , l !W년 5 월 , 246 쪽(원주) .

또한, 근본적인 핵입자들 사이의 교환 입자로서 중간자 자체가 핵 밖에서는 짧은 수명을 가진 입자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핵 밖에서 중간자는 전자와 중성미자로 분리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관념 은 원자핵 내의 중간자 장의 현상과 /3전자와 중성미자의 동시 방사 이론을 집합시켜 줄 터인데, 이는 우리가 중성미자에 대해 말하면서 상기한 가정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양한 이론들이 동일한 실험적 결론을 향해 조직화될 것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중간자 과학은 이제 초기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다. 입자적 가능성들의 폭은 완전한가, 아니면 과다한가? 중간자처럼 최근에 확인된 입자에 대해서 이 질문은 미결인 채로 남아 있어야 할 것이다. 39)

39) 좀 정리를 해보자. 전자를 경입자족 ]e pto n 이라 하고, 양성자와 중성자를 강입

자족 hadron 이라 한다. 경입자족에는 전자, 뮤 µ 입자, 타우 r 입자와 세 종류 의 중성미자를 포함해서 6 종의 기본 입자가 알려져 있다. 반면에 중간자를 포함 하는 강입자족은 아주 복잡하다. 자연계의 4 가지 힘 중에서 강력은 강입자에게 만 작용하고 약력은 쌍방에 모두 작용한다. 1964 년 미국의 물리학자 겔만은 강입자들 모두가 보다 기본적인 입자들로 결 합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업 up, 다운 down, 스트레인지 s trang e 라는 세 가지 쿼 크롤 도입했다. 쿼크 이론의 곤란한 점은 이들이 어떤 실험에서도 발견되지 않 는다는사실이다. 중간자에 대한 보다 상세한 소개는 Y. 네이먼과 커시의 저서 『소립자를 찾아 서』(김재관 • 신현준 옮김, 미래사) 96-108 쪽을 참고 .

x 보통 기본적인 것으로 주어진 다양한 입자들에 대한 이 긴 조사로 부터 하나의 신기한 철학적 다원성이라는 느낌이 두드러져 보인다. 입자들은 여럿일 뿐 아니라 그들의 상이한 존재론적 지위를 비교해 볼 때 결코 동일한 실재론적 가치를 갖지 않는다. 어떤 것들은 특정 실 험 영역에서 필요하고 다른 것들은 다른 영역에서 권리를 행사한다. 특히 입자 물리학은 원자론의 철학적 동질성을 지니지 않는다. 그 철 학적 다원성에 의해 그것은 진정 새로운 철학이다. 데모크리토스의 원 자론은 모든 원자에 어떤 위계도 명시하지 않고 완전한 실재성을 주 는 거치른 선언이었다. 화학에서의 원자론은 서로 다른 원소들의 학설 로 설정되었다. 그러나 이 원소들은 화학적으로 소개되었고 역시 위계 가 없었다 모든 원자들은 화학자들에게는 동일한 방식으로 〈존재〉하 고 동일한 실재성의 정도를 갖는다 . 그러나 우리가 검토한 입자들에 이르면 회의적인 검토가 가능하다. 물리학자들 자신이 과학 문헌에서 만난 입자들의 〈존재〉에 대하여 의 견이 일치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실존적인 탐구를 한다면 입자적 실재론의 스펙트럼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입자 철학은 이 때 이론의 대로에 의해 접근하느냐 또는 실험의 조사에 의해 접근하

느냐에 따라서 커다란 다양성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즉시 이중적 입 자 철학이 나타날 터인데, 합리주의적 철학과 실험적 철학은 더 이상 전적으로 분리될 수 없을 것이다. 입자는 그래서 적용된 합리주의의 존재 자체로 여겨진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타협적인 철학 없이는, 이 론과 실험이 왕래하는 철학 없이는 입자 철학을 이해할 수 없다. 어떤 관점에서 일지라도 입자적 존재들을 측정하게 되면 매력적인 동시에 기대에 어긋나는 인상에 의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오로지 전 자, 양성자, 중성자, 광자로 이루어진 세계를 묵상하면서 톰슨 경은 단 순화에 대해 이렇게 자각하고 있다. 단순화는 입자들의 행태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되어야 하는 개념 들의 어려움에 대한 주된 미학적 보상이다. 4 개의 〈사물〉과 몇몇 법 칙이 현상 세계의 엄청난 다양성을 대신한다. 그러나 이러한 미학적 만족감은 완전하지 않다. 그 무엇도 이 4 가지 〈사물〉이 충분하다고 우리에게 보증하지 않는다. 우리가 보아온 것처 럼 중간자는 여러 개가 있는 것 같으며 중성미자는 잠재적 양상을 지 니고 있다. 양전기는 양성자와 양전자 두 개의 입자를 갖고 있다. 그래 서 이 변화의 세기에는 모든 것이 10 년마다 바뀐다. 따라서 어떤 면에 서는 잠정적 존재론, 우리 시대 물리학적 존재들에 대한 존재론에 대하 여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존재론의 과학이 합리적 연관 성을 결여하고 있고, 존재론적 위계 질서가 합리적으로 지적되지 않았 으며, 연속적인 발견의 역사 자체가 존재론적 질서의 충분한 예고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합리적 구축에 필요한 개념들 사이에 중심부가 있기를 기대한다. 하이젠베르그는 이제 동력학의 보편 상수 인 h 와 c 로부터 입자들의 질량을 연역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40) 입자적 존재들의 합리적 연역을 위해 확장된 개념장을 줄 수 있는 하

40) W. HEISENBERG, 『 기본입자론 』 , 12 쪽(원자) .

나의 새로운 보편 상수가 필요한 것이다 . 그는 이 새로운 상수가 아마 도 약 10 - 1 3cm 라는 근본적인 척도가 될 것이라고 시사한다 41 ) 원자핵 정 도의 크기의 세계, 그것은 현대 과학에서 이주 · 암시적인 사고의 창 조에 관한 문제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도덕을 계발하기 위해 베르그송 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 영웅적 호소와 유사한 일종의 천재적 호소를 보게 된다. 실상 과학 사상을 계발하고 새로운 지평을 주는 것이 관건 이댜 하이젠베르그가 제기한 문제의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은 이 문제 가 고전적 또는 후기 고전적 관념에 의해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납득 할 것이다 . 그래서 새로운 정신이 필요하다 . 새로운 플랑크, 새로운 아 인슈타인, 새로운 보어, 새로운 드 브로이, 새로운 디렉 새로운 하이 젠베르그가 필요하다.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움 속에서 다시 태어나고 자 하는 과학의 열망에서 과학을 파악하고자 한다.

41) 원자핵 크기의 정도 를 말한다 . 원자핵의 크기는 원자의 10 만분의 1, 죽 10 一 13cm 로서 l 페르미 라고 한다 .

이러한 새로움은 단순성의 방향으로 나아가는가? 이에 대한 답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한 입자적 상태의 발견이 경험과 이론을 단순화하는 기회로 , 달리 말해서 한 입자의 발견이 결 정적인 실재론적 보장이라고 상상해서는 안 된댜 아마 과학자는 현대 기술에 의해 상이한 입자들 사이에 위계 질서를 설정하기를 희망할 것이다. 잘못 분석된 철학 정신의 영감에 따라서 과학자는 모든 실재 성의 뿌리가 되는 근본 입자,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기본적 실체 를 언젠가 발견하리라는 환상을 추구한다. 현대 과학이 발전하는 양상 은 이런 방향에서가 아니다. 1937 년 브릴루앙은 그 어느 때보다 시사 성 이 있는 날카로운 언급을 했다. 현재, 전자로 하여금 유일한 근본 입자라는 특권적 상황을 잃어버

리게 하는 새로운 기본 입자들이 발견되어 왔다. 이 입자들에 관한 모든 정확한 이론은 입자들 전체를 포함해야 하며 단 하나의 입자만 을 고립적으로 묘사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사실 우리는 이 입자 들이 생성되거나 파괴되거나 또는 서로 변환하는 여러 개의 현상을 알고 있다.오)

42) 『푸엥카레협회연보』, 7 권(원주).

따라서 다양한 입자들의 현상학을 따로따로 기술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입자간의 철학을 형성하는 일이 문제이다. 현대 과학은 실재의 분석으로부터 원소들을 지칭할 때조차도 종합 활동을 유지해 야한다. 마지막 철학적 언급으로서, 현대 물리학의 입자들은 사실 보다 정확 히 말해서 존재의 중심부라기보다는 힘의 중심부이다. 입자들은 상호 적 생성이나 동역학적 합성을 거부하지 않는다. 이들은 언제나 가능한 동역학적 변환에서 상태로서 특징지어진다. 우리는 끊임없이 실재의 근본적으로 동역학적인 양상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다음 장에서는 현 대 미시 물리학에서 동역학적인 설명의 점진적인 특권을 소개하고자 한다.

제 5 장 에너지 합리주의 나는 많은 사람들이 원죄의 집요함과 맞먹을 만 큼 역 학 적 설명에 대한 강한 성향을 그 들 자신 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 BRIDGM 샤{ , 『 현대물리학의 논리 』 I 에너지의 개념을 역사 속에서 그리고 특히 현대의 화학과 물리학에 서 정교하고 정확한 그 개념의 적용 차원에서 따라가노라면 이 개념 은 합리주의의 발전과 경험 속에서 배우는 합리주의에 대한 훌륭한 사례를 제공한다 . 이 개념은 적용된 합리주의의 주제를 명확히 하는 데 에 쓰일 수 있다. 에밀 메이에르송이 분명히 설명한 바와 같이 , 일반적으로 우리가 보 존 원리를 제안하자마자 우리는 동일성의 원리”에 실마리를 준다. 이는 경험의 특정 영역에 이 원리가 적용되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여서 여 기에 더할 나위 없는 합리적 특징을 새긴다. 역학 분야에서 세 가지 보촌 원리는 합리주의가 여러 어려움과 더 1) 『역자 해제J 참조.

불어 서서이 구축되는 것을 보여주면서 차례차례 확 립 된 다 . 이 세 보 존 원리는 관성의 원리, 운동량 보존의 원리, 활 력 2 ) 의 보존 원리인데, 대수적 개념으로 표현해서 v 의 보존, mv 의 보존, m 건의 보존이 된다 . 속도 보존의 원리가 아니라면 사실 관성의 원리는 무엇인가? 동역 학의 근본 원리로서 속도의 보존이라는 이상적인 원리를 거기에 반대 하는 경험주의자에게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는 심오한 통찰력이 필 요했다 . 최근에 코이레 Ko yr e 는 관성 원리의 완성에 얽힌 우여곡절을 상세하게 보고하였다. 어떤 역사도 경험에 대하여 합리주의의 최초의 직관이 갖는 어려움을 보이는데 이보다 더 적절한 것은 없다 .

2) 錢 에너지 강 m 군에서 랑이 빠진 mv 2 을 활력이라고 한다.

우리가 역학의 역사를 쓴다면 운동량 개념 형성의 자취를 따라 추 적해야 한다. 특히 데카르트 물리학에서 운동량 보존이 갖는 역할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 다음에 데카르트의 일반적인 관점들 중에서 무엇 이 유효하게 남아 있는지 지적해야 한다. 현대 역학에서 그것은 하나 의 고정축에 대한 운동량 투영의 불변 정리”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하 나의 축 주위에 각운동량의 불변 정리 4) 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반 면에, 라이프니츠가 활력 보존의 원리를 동역학의 일반 원리로 제안할 적에 〈데카르트의 기념비적 오류〉라고 부른 라이프니츠의 비판을 설 명해야 할 것이다 . 5 ) 그러나 우리는 데카르트의 합리주의와 라이프니츠

3) p의 x, Y, z 축 성분 Px, J}y, Pz 도 각각 보존된다 . 4) 반지름 r 인 원의 둘레 를 v 의 속력으로 움직이는 질량 m 인 입자에서 , mv 는 일 정하나 방향이 항상 변하므로 운동량은 보존되지 않는다. 여기에서 보존되는 것 은 mv 가 아니라 mvr 이라는 다른 물리적 성질인데 이 를 〈각 운동량 보존 법칙〉 이라고 한다 . 5) 데카르트는 신은 불변이기 때문에 우주의 모든 운동의 양은 일정하다고 추론 하였다 . 그러나 m 균 대신에 mv 라고 했기 때문에 라이프니츠로부터 〈기념비적 인 오류〉라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공적을 과소 평가해서는 안 되 는 것이 호이겐스나 라이프니츠는 데카르트의 사고 방식을 따라가는 중에 운동

에너지의 보존 원리를 수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의 합리주의 사이의 분규에 대해 역점을 둘 수는 없다. 지나는 길에 우리로서는, 합리주의는 내부적인 논쟁으로부터 면제된 것이 아니며 합리주의에 급격한 변화의 권리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댜 이미 역사는 이러한 변화의 수많은 사례를 보여준 다. 데카르트 역학에서 라이프니츠 역학으로의 이행은 그 분명한 사례 이다 . II 요컨대, 우리의 목표를 위해서는 에너지 보존 원리를 고려하면 충분 하댜 이 원리의 합리적 특성은 충분히 드러난댜 여기에 우선 역학적 에너지 보존의 공리적 성격을 제안하는 텍스트 를 소개하고자 한다 〈활력 보존〉의 법칙을 구성하고 나서 베르누이 J. Berno ulli는 이 렇게 쓴댜 이 법칙의 증명을 시도하는 것은 법칙을 어렵게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사실 모든 사람들은, 모든 작용인은 전체로나 부분적으로나 소멸할 수 없으며 그리고 그 소멸과 동일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 을 명백한 공리로 생각한다. 움직이는 물체에 존재하는 것으로서의 활력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은 무언가 절대적이고 독립적이 고 아주 확실해서 우주의 나머지가 없어진다 하더라도 활력은 물체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 다른 물체를 만나서 감소하거나 증가하는 한 물체의 활력은 그 대신 동일한 양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켜야 한 다. 한 물체의 활력의 증가는 다른 물체의 활력이 감소한 즉각적인

결과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전체 활력 양의 보존을 가져온다 . 6)

6) J. B ERNOULLI, r 운동의 전달 법칙에 관하여」, 『전집』, Lausanne, 1772, 3 권, 56 쪽(원주).

우리는 이 긴 텍스트를 인용하였는데 그것은 하나의 원리를 공리적 으로 단언하는 증언이기 때문이다 . 베르누이로서는 활력의 보존은 〈힘 의 전달〉에 관한 현상을 합리적으로 조직하는· 하나의 공리이다. 에너지 보존의 원리에 대해서 다른 문헌들의 저자들은 진정한 신학 적 합리주의를 내세우는 데 주저하지 않는 것을 보여준댜 메이에르송 이 인용한 구절은 이 점에 있어 특히 인상적이다. 그는 그 구절을 1864 년에 출판된 문헌에서 빌려온다 . 힘은 바물질적이고 정신적인 존재이자 자연에 대한 그것의 영향 력에 의해서만 우리에게 알려진 실체이기 때문에, 이 실체는 존재하 는 모든 물질적 사물보다 우월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자연에서 알 아보고 경탄해 마지않는 지혜가 표현되는 것은 힘에 의해서일 뿐이 라는 사실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 힘은 자연의 진보를 유도하는 정 신적이고 바물질적이고 지적인 힘과 관계가 있어야 한다. 사정이 그 러하다면 이 힘이 무언가 소멸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전혀 불가능하다 . 따라서 이 힘은 절대적으로 불멸하는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 .7)

7) A COLDING, 『물리학과 화학 연보』, 85, 1 권, 1864, 4ff7쪽(원주).

그의 논문의 결론에서 물질에서 식물로, 식물에서 동물로, 동물의 세계에서 지적인 세계로 힘의 교환을 지켜보면서 콜딩 Col di n g은 이렇 게 말한다.

인간의 지적인 생명은 불멸의 정신적 세계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콜딩의 실험적 탐구를 언급하지 않는다면 이 장엄한 합리주의에 대해 그릇된 관념을 주게 될 것이다. 그는 다양한 압력과 속도 이래서, 놋쇠와 놋쇠, 놋쇠와 아연, 놋쇠와 납, 놋쇠와 쇠, 놋쇠와 나무, 놋쇠와 모직물을 충돌시켜 잃어버린 역학적 힘의 양과 발산된 열량을 측정하기 위해 세심한 실험을 했다. 그러한 실험들은 열용량에 관하여 물질들을 〈탈개별화〉하기 위해서 그리고 에너지 보존 현상의 일반성에 도달하기 위해 철학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그것은 강조해 야 할 문제의 측면인데, 왜냐하면 베르누이식의 자명성이나 콜딩식의 정신적 원리에 근거한 합리주의 대신에, 우리는 19 세기에 에너지 보존 원리를 진정으로 확립한 실험적 합리주의의 놀라운 활동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m 사실 이 원리는 동역한 개념들을 단순히 편성하는 데에 머물지 않 고 역학, 열, 전기, 화학과 같이 현상적으로 상이한 분야에 적용될 적 에 그 모든 의미를 갖는다. 이 원리의 그러한 확장은 아마도 인간의 사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것은 참으로 합리주의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과학사는 최초에 매우 엉성했던 실 험에 대해서 상세히 언급한다. 물질의 보존에 대한 실험에 있어서는 웬만큼 고립계의 개념을 사용할 수 있었던 반면에, 에너지 현상의 고 립은 훨씬 더 미묘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실상 메이에르송에 의하면 열의 역학적 해당량equi valen t 8) 의 최초의 측정은 4 (J1에서 561 kgrn까지 가지각색으로 달랐다.9) 헌Hirn의 측정은, 죽 줄J oule 의 실험의 역으로

8) 지금은 〈맞먹이〉라는 우리말이 쓰이고 있다. 9) Em ile MEYERSON, 『동일성과 실재성』, 4 판, 213 쪽(원주).

소개되어 역학에서 열이 아니라 열에서 역학으로 진행되어 특별히 홍 미로운데, 300 에서 400 까지 변하는 수치 를 주었다. 생각을 고정시키기 위하여 1 킬로칼로리 (C = lOOOcal) 의 역학적 해당량은 425k g m 로 정해 졌음을 기억하자. 실험적 측정의 이처럼 큰 변동에도 불구하고 역학적 일과 열의 등가 원리는 입증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먼 근사치를 통하 여 합리적 공식으로 가는 일종의 인력을 느끼게 된다 . 사람들은 추구 하는 바를 가정한다. 만일 절대적인 경험주의를 주장하면서 실험을 기 술하는 것으로 만족했다면 어떻게 이처럼 포착하가 어려운 법칙을 겨 냥할 수 있었겠는가? 정확한 것으로 향하는 이러한 배려는 결국 베르 누이나 콜딩 같은 사람들의 합리주의를 정당화하지 않겠는가? w 그러나 합리적 지식의 문제는 이 지식이 일정한 대상에 적용될 때 에만 그 참된 의미를 갖는다. 일반적 원리들조차도 정확한 적용을 목 표로 삼지 않는다면 그 의미를 상실할 수도 있다. 에너지 보존의 원리 는, 에너지의 보존과 동시에 계의 보존이 성립하도록 고립된 계에 대 해서만 적용되어야 한다. 그것은 푸엥카레 Po i ncare 가 매우 주의깊게 규명한 요점이다. 그는 『열역학』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원리를 우주에 적용하면서 그 모든 일반성에서 원리를 진술하고 자 하면, 말하자면 원리가 사라져버리는 것을 보게 되고 〈무언가 변 하지 않는 것이 있다〉리는 사실만 남는다 .10)

10) H. POINCARE, 『열역학』, 2 판, 1908, IX 쪽(원주).

이러한 사상은 『 과학과 가 설 』 에 원문대로 다시 나온다 . 이 책의 다 른 구 절들 도 동일한 생각을 환 기하고 있다 . 메이에 르 송은 이 책들에 의거해서 에너지 보존의 원리가 경험에 선행하는 추세에 속한다는 점 을 보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원리가 사라져버리는 것은 원리를 우주에 적용하면서 그 모든 일반성에서 진술하고자 하 는 가정에서일 따름이다 이러한 제한은 메이에르송의 주의를 끌지 못한 것으로 보인 다 실상, 우주 는 하나의 대상이 아니며 그래서 실험에 종속시킬 수는 없다 . 우주를 고립계로 간주하는 것은 계의 개념의 기능 자체를 상실 하 는것 이댜 절 대적인 합리주의는 흔히 어떤 물질계의 고립성을 엄격하게 단정 하가가 불가능하다고 반박한다 . 그러나 물리학자는 여기에서 철학자를 따르지 않고 정확하게 고립의 기술을 따른다 . 그는 모든 근사화의 규 칙 이 고립계를 정의하도록 해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에너지 보존의 원리가 그 적용을 구하 는 것은 이러한 전망에서이다. 이 원리가 유효 하거나 무효가 되는 것은 이런 측면에서이다. 그렇기 때문에 에너지 합리주의의 중요성을 잘 보기 위해서는 점점 더 정확한 실험에 결부된 합리주의, 개선된 합리주의를 따라야 한다. 20 세기 초에 사실상 에너지론의 근본적인 개혁이 자리를 잡는데, 이는 수처럼 불연속적인, 본질적으로 불연속적인 에너지 개념에로의 이행이 다. 하나의 〈 역사적 모순〉이 이보다 더 근본적이고 명백하게 변증법적 인 것은 없었다. 그리고 만일 인식 철학에 이 위대한 과학 혁명의 기 동성을 보여준다면, 에너지의 양자화가 확립하게 될 양자 역학에 전가 하는 비합리주의의 수많은 선언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이 실 재의 근본적인 비합리성에 대한 새로운 증거를 찾았다고 주장한 것은 실험적 불연속 상태에 대한 적절한 계산 방법을 찾기 위하여 검증되 지 않은 연속체라는 비합리성을 떠나는 순간이었다! 지식의 가치를 평 가하는 데 있어서 이보다 더 큰 황폐함이 가능한가? 양자 역학은 화

학 물질의 스펙트럼을 계수화하면서 에너지를 합리화한다는 보증하에 물질의 합리화에 대한 길을 열어준다. 그러나 존재론적인 혁명을 철저 히 이끌어야 하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물질을 동역학적인 본질에서 보 아야 한다 . 물질에 대한 현대적인 모든 이론의 근본적인 존재론적 개 념이 되는 것은 에너지이며 이는 물질적 실체의 개별화 원리 자체이 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모든 원자론적 철학은 개혁되어야 한다. 실재 가 그 성질에 따른 구조를 지니고 있는지 혹은 구조로 인해서 동역학 적인 현상을 보여주는지 결정해야 할 것이다 . 여기에서 우리는 아직도 그 영향력을 예견할 수 없는 변증법 앞에 있는 것이다 . V 그러나 간단하게 에너지롤 산술화해야 할 필요성을 생각해 보자. 열 역학의 법칙에 근거하면서 빈 W i en 은 엄격한 방식으로 하나의 공식을 만들었는데, 이 공식은 닫힌 계 Closed s y s te m 에서 흡수와 방출이 평형 에 도달했을 적에 복사의 상이한 진동수에 따라서 에너지분포를 알려 주는 공식이다. 이러한 분포는 용기 내벽의 물질적 성질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것은 철학자에게는 무척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빈의 분포 법칙은 아래와 같다.

p( 11) = v3f ( 11/T)

에너지 밀도는 따라서 단 하나의 변수 vi T 를 가진 함수를 진동수 의 세 제곱에 곱한 것과 같다. 이 일반 법칙은 열역학의 엄밀성을 지 니고 있으며, 양자 물리학과 마찬가지로 고전 물리학도 지배한다. 그러나 열역학의 법칙으로 만족한다면 함수의 형태가 불확정한 채

로 남아 있다 함수 f 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물질에 의한 복사의 방출 과 흡수의 메커니즘에 관해서 가설을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이 원자론 적인 착상에 도움을 청하고, 복사가 내벽 물질의 원자들에 의해서 방 출되고 흡수된다고 가정한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곧장 통계 역학의 시대가 열리고 우리는 가장 개연적인 추정에 의해 이른바 레 일리-진즈 Ra y le ig h- J eans 의 공식을 얻게 된다.

87 [k 3 T p(l/)=_c l/ X 一l/

이 공식은 빈의 법칙의 형태를 취한다. 함수 f는 vi T 의 역을 나타 내기 때문에 특히 단순하다. 그러나 박식하게 구성되고, 한결같이 검증된 원자론적 가설과 열역 학의 일반 법칙에 근거하는 것으로 보이는 레일리 구 진즈 공식은 경험 과 충돌한다. 이 공식은 가장 분명하고 나아가서 가장 이성적인 경험 과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기에서 합리적인 것과 이성적인 것의 갈등에 관련되어 있다. 사실 레일리와 진즈가 합리적으로 확립한 공식 에 만족한다면, 모든 온도에서 에너지 밀도는 복사의 진동수가 증가함 에 따라서 무한으로 향해야 할 것이다. 작은 파장 쪽으로 무한한 에너 지의 축적이 있어야 할 것이지만 경험은 정반대를 말해준다. 파장에 따라서 에너지 분포를 그리는 곡선은 평균 파장에 대해 최대를 나타 내고 점점 더 작은 파장들에 대해서는 점점 감소한다. 물론 레일리의 계산은 반복이 거듭된 것이고, 그가 공식에 도달하기 위해 사용된 방법은 가장 주의깊게 검토되었다. 이 오랜 노력들은 합 리적이고 이론적인 구축과 세심한 실험 사이의 모순을 더욱 인상깊게 할뿐이다. 이러한 실패를 피타고라스 시대에 사각형의 한 변에 대한 대각선의

약분 불가능성 i ncommensurab ility을 파악하면서 만난 실패에 비 교하면 서 그 중요성을 과장해서는 안 된다. 사실인즉, 플랑크 Planck 가 에너 지 양자라는 역사적 발견에 의해 문제를 해결했울 적에, 그는 무리수 를 구성한 피타고라스 학파의 운동과는 반대되는 인식론적 운동에 길 을 열었다. 플랑크의 제안은 그때까지 연속성의 지배 아래 있던 현상 인 에너지 현상에 불연속성을 도입하는 것으로 귀착한다. 합리성에 얽 힌 극적 사건은 모든 시대에 걸쳐 있다. 합리성의 진보는 매번 새로운 토대의 문제를 제기한다. 플랑크가 결정적인 혁명을 일으킨 것은 실제로 에너지론의 토대 자 체에서이다. 그의 저서 『 물리학 입문』에 나오는 플랑크의 발견에 관한 이야기는 탐구하는 과학 정신의 감동적인 고백으로서 읽어야 한다. 엄 청난 준비 후에 이제 발견의 결정적 순간이 왔다. 내 생애의 가장 치열한 연구로 채워진 몇 주가 지난 후에 내가 싸 우던 어둠 속에서 섬광이 스치고 의심할 수 없는 전망이 나에게 열 렀다. 플랑크는 실험과 완전히 일치하는 열방사의 법칙을 다음과 같은 형 태로 확립했다 .II) 11) X 축을 진동수라 하고 Y 축을 에너지 밀도라고 할 때 흑체 복사의 실험 결과는 대략 왼편이 보다 가파른 동산 모양의 형태가 된다. 그래서 왼편 경사면은 진동 수의 자승에 비례하고 오른편 경사면은 삼승에 비례한다 . 빈의 공식과 레일리― 진스의 공식은 각각 진동수가 작아지는 경우와 커지는 경우에 실험값과 일치하 지 않는데 후자의 경우를 특히 〈자외선 파탄〉이라고 부른다. 폴랑크는 양쪽의 식을 순전히 수학적 조작을 통해 결합하여 하나의 대수적 표 현을 유도했고 이 식은 실험값과 정확하게 일치하였다. 그러나 플랑크 자신은 h II 의 물리적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으며 이 문제는 아인슈타인의 광량 자 가설에 의해 해소된다. 폴랭크식을 검토해 보면, 먼저 높은 진동수에서는 h v > kT 이므로 ehe/k T - l

--> 00 이고 결국 에너지 밀도가 O 에 가까워져서 자의선 좌탄은 일어나지 않는다 . 낮면 은ex 진=동 1수 +에X서 이 므h 로v < kT 이므로 h v/kT < l 이다 . ex 를 전개할 적에 x 가 적으

eh v/k 1T -1 = l+—hk 1Tv - l = khTv

가 되어 결국 레일리-진스의 공식과 같아진다.

27Chv3 I

p ( v ) = C3 e h v/ K T _1

이 법칙은 에너지가 분할된 방식으로 방출되고 홉수된다고 가정하 였다. 이때 방출되거나 홉수된 양은 언제나 양자 hv 의 정수배이다. 플랑크의 직관으로는 에너지가 원자화되는 것은 다만 방출과 흡수될 때뿐이다. 에너지는 공간에서 파동처럼 전파된다 . 광자라는 복사 입자 에 대한 전반적인 직관을 얻기 위해서는 아인슈타인에 이르러야 한다. 플랑크의 공식과 더불어 h 라는 상수가 과학에서 처음 나타났다. 이 상수는 즉시 다양한 문제에 도입되었다. 그것은 빛의 속도와 같은 자 격의, 나아가서 7[와 같은 자격의 보편 상수이다. 알려진 것처 럼 h 는 아주 작은 양이며 CGS 단위로 6.55 X 10-Zl 이다. 그래서 모든 직관이나 직접적인 측정을 벗어난다. 그러나 이 양은 1/1000 을 넘어서는 아주 훌륭한 정확성으로 알려졌다. 물론 통상적 인 물리학의 척도에서 모든 에너지는 엄청난 수의 양자를 가지고 있으며, 몇 개의 양자에 의한 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것은 한국은행의 대차대 조표에서 1 원을 고려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토대에 있 어서 양자화는 원자의 에너지 현상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원자적 에너지론은 이제 숫자상의 존재론에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이 점에 있어서 철저하게 토대의 이론에 참여하지 않는 인식론의 시대는 끝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기본적인 에너지 교환의 불연속성에 대한 거부

를 상상할 수 없다 . 드 브로이는 미해결의 문제에 결부된 어려움을 무 시하지 않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수세기 동안 물리학이 이룩한 발전의 중요성과 범위에도 불구하 고 물리학자들이 양자의 존재를 모르는 한 물리적 현상의 본질적이 고 심오한 성격에 대해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양자 없이는 빛 도 물질도 없기 때문이다 . 1 21

12) Lou is de BROGLIE, 『새 물리학과 양자』, 6 쪽(원주).

이처럼 양자는 사물의 성질에 대하여 새로운 이해를 얻게 해줄 뿐 만 아니라 사물의 성질에 대한 그전의 모든 이해를 말하자면 추방한 다. 에너지 양자 없이는 우리는 복사와 물질의 근본적인 산술을 이해 할 수 없다. 에너지 현상 앞에서 우리는 그들의 손의 손가락을 셀 줄 모르는 부유한 은행가와 같다 . 그들은 금괴가 루이 금화를 만드는 데 쓰인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 금괴의 무게를 단다 .13 )

13) 에너지가 띄엄띄엄한 기본 단위량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비유적으로 설명 하고 있다.

반대로 에너지 교환이 세부적인 현상에서는 단위별로 이루어진다 는 사실과 이 단위의 값을 안 이래로 합리성의 다른 관점이 열린다. 그래서 연속성에 대한 직관의 실패는 결코 합리주의의 실패가 아니며 그러한 실패는 합리성을 새로운 길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엄밀하게 기하학적인 직관에서 발전한 고전적 합리주의는 공간의 성질에 의해 서만 실재에 접근할 수 있었고, 공간의 이상성 속에서 표현될 수 있어 서 합리주의와 관념주의 사이의 관계는 긴밀하게 남을 수 있었다. 에 너지 합리주의는 모든 관념주의적 해석 가능성을 떠나며, 만일 하나의 주관적 해석을 전개하고자 한다면 은유만을 언급하는 셈이 될 것이다. 에너지 합리주의의 운명은, 불연속의 에너지론인 양자적 에너지론의

엄청난 성공을 생각해 볼 때 전혀 다른 것이다. 이 합리주의는 이제 실제적 대상을 가지고 있는 합리주의이며, 중대한 실재론적 성질을 알 려주는 합리주의이다. 이미 19 세기 말에 사람들은 에너지가 실재 그 자체라고 말하였댜 화학자 오스트왈드 Os t wald 는, 실재하는 것은 스카 팽 Sca pi n1 41 의 방망이가 아니라 방망이 의 운동에너지라고 즐겨 말하였 다 .15) 그러나 20 세기의 에너지론은 전혀 다른 영향력을 가지고 있어서 단순한 현상의 기술이 아니라 현상의 생성을 규명한다. 양자론적 에너 지론은 현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알려줄 뿐만 아니라 왜 일어나는 지도 알려준다. 더욱이 이 왜의 과학은 어떻게의 과학에 대해서는 전 적으로 실망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 정확히 말해서, 이 왜의 과학은, 감지될 수 있는 명백한 사실을 합리주의적 증거로 대체하면서, 관심의 전환과 새로운 유형의 설명을 요구한다 . 에너지론의 왜로 된 합리주의 적 설명의 간결한 사례를 들어보자.

14) 프랑스의 회곡작가 몰리에르의 작품에 나오는 교활한 하인. 15) 돌맹이는 창문을 깨뜨린다. 이렇게 우리는 원인이 되는 힘을 그 자체로 하나의 대상으로 인정한다 . 그러나 창문을 깨뜨리는 것은 돌맹이가 가진 힘이며, 이 힘 을 물질적 대상인 돌맹이 자체가 가진 것은 아니다 .

VI 플랑크로부터 보어에 이르는 양자 에너지론의 발전은, 하나의 계가 에너지를 방출하거나 흡수하면서 한 에너지 상태에서 다른 에너지 상 태로 전이할 적에 현상들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1 6 1 특히, 보 어가 원자에서 전자 궤도의 불연속성을 가정하기에 이른 것은 스펙트 럼 현상을 분석하면서이다. 각 궤도는 특정 에너지를 나타낸다. 전자

16) Max PLANCK , 『물리학 입문』, 번역판, 73 쪽(원주).

가 한 궤도에서 다른 궤도로 통과하면 일정한 진동수 를 가진 광자가 방출되며 광자는 빛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빛의 스펙트럼에 대한 세심한 연구는 스펙트럼의 각각의 빛살을 두 개의 항으로 나타내도록 이끌었다 . 이 항들은 원자의 두 에너지 상태에 대한 수치를 준다. 정상 적 인 탄소 원자의 구조인 lS 썽 s 2 2 p2과 같은 스펙트럼 명 칭 의 구조를 고찰하면, 하나의 항은 과학적 개념들의 진정한 고리이자 난해한 이론 적 관점들이 수렴하는 중심이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경험론적 철 학자는 그래서 스펙트럼 항 s pect ral t enn 을 하나의 추상화라고 규정하 기에 좋은 조건에 있댜 그러나 사실은 여기에 깨달아야 할 철학적 전 도가 있다 . 에너지적 구체성인 지배적 구체성을 가장 분명하게 가르키 는 것은 바로 이 항이다. 그것은 합리주의적 활동에 의해 구축되었고 동시에 실재적이다. 구축되고 실재적인 스펙트럼 항은 에너지론의 대 상이며 미시 물리학의 대상이다. 그것은 현상들의 이유이자 뿌리이다. 이 항을 연구하면서 철학자는 적용된 합리주의에서 배운다 . 17) 보어의 원자 모델에서 두번째 가정이다 . 즉, 원자에서 전자기파가 방 출 되는 것 은 정상 상태들에서 에너지의 전이에 의한 것이다.

h Vn.m = 다 一 노 즉 Vn.m = Enh-E m

그립 9 에서 왼쪽은 V6,3 = V6 ,4 + V 4 .3 을 나타내고, 오른쪽은 v3 ,2 = vs .2-v s .3을 보여준다. 모든 원자는 종류에 따라 서로 다른 선 스펙트럼을 나타낸다. 수소 원자의 스 펙트럼은 빨강, 초록, 파랑, 보라의 네 가지 선을 나타내는데, 이 선들 사이의 간격은 짧은 파랑 쪽으로 갈수록 좁아진다. 여기에는 어떤 규칙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의미하는데 오랫동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가 1963 년 보어에 의해 해결 되었다. 그가 한 일은 플랑크가 제창한 양자 개념을 전자의 에너지에 도입한 데 있다. 즉 수소의 전자는 불연속적인 에너지 값만을 가질 수 있고, 높은 에너지 준위에서 낮은 에너지 준위로 떨어질 때 그 두 에너지 준위의 차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가진 광자가 방출된다. 광자가 지닌 에너지는 빛의 진동수(죽 그 빛의 색)에 비례하므로 (E=h v), 원자에서 나오는 빛의 스펙트럼은 그 원자가 지닌 고유한 에너지 준위들에 따라 결정되므로 지문처럼 각 원자에 고유한 모습을 나타낸다.

EE

v 관 측 E v 치 v』 3 v6.l V52 VS3 관 추 관 관 측 측 측 츠., E `' 치 `' 久 l 久 l `’ 치V32 E `’ `'추측치 E 그림 9

결합의 원리, 보다 정확하게 결합 금지의 원리를 고려하면서 에너지 대수의 상이한 항들을 정하고 나면, 어떤 물질의 색깔에 관한 현상의 생성, 보다 일반적으로 어떤 물질의 모든 복사 현상의 생성을 알게 될 것이다. 모든 화학 원자는 가능한 에너지 수준에 대한 유일한 도식에 의하여, 스펙트럼 연구에서 밝혀진 전체 에너지항들에 의하여 특징지 어진다. 예를 들어, 모든 염소 원자는 에너지 교환의 가능성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특수한 하나의 척도에 의해 나타내진다 이 척도의 실재성은 염소에 대한 분광학적 연구에 의해 보증된다. 그래서 적당히 떨어진 수평선들은 정확한 원자적 현상들 전체를 완전 하게 표상한다. 여기에 아주 의미심장한 인식론적 사실이 있으며, 이 는 명확한 철학적 토의에서 기초로 쓰일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를 고찰하면서 철학자들은 그들의 일반적인 철학 개념들이 과학의 인식 론적 가치를 결정하기 위해서 얼마나 부적절한지를 이해할 것이다. 예

컨대 그림 9 는 염소 원자에 부여한 어떤 기하학적 형태보다 덜 관례적 이다 . 그것은 가장 간결한 방식으로 염소 원자의 지배적인 실재성인 동역학적 실재성을 나타내기 때문에 탁월한 실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 다 .1 8) 이 그림은 과학적 합리화라는 긴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왜냐하 면 하나의 스펙트럼선이 양자 도약에 의해 결정되고 값의 척도에 의해 적절하게 표상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논증과 경험 을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많은 어휘를 강조했는데 그런 방법으로 모든 철학적 의미들을 암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렇 게 근본적으로 추상적이고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완전한 철학적 분석 울 위해서는 그러한 철학적 의미들을 참작해야 할 것이다. 어쨋든 염 소의 에너지 수준이라는 특수성에서 그림 9 를 이해하고 , 물질계에서 염소만이 이런 에너지 척도를 갖고 염소 이의의 모든 다른 물질은 에 너지 척도에서 다른 간격을 갖는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 왜 염소가 초록빛이 도는 노랑인지 알게 될 것이다 .19) 물론 여기에는 서술적이거 나 경험적인 것은 없으며 확실한 사실을 환기시키는 어떤 것도 없다.

18) 이 장의 제목 〈에너지 합리주의〉는 〈에너지 실재론〉과 유사한 개념으로써 , 이 제 근본적인 실재, 죽 〈물자체〉의 지위를 갖는 것은 바로 에너지라는 사실을 저 자는 강조한다. 에너지 합리주의는 현상에 대한 서술이 아니라 현상의 생성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 19) 다시 한번, 보어의 이론은 물질들의 화학적 성질을 기본 입자에 대한 단순한 법칙성으로 귀인시키는 데에 있다 .

이제 만일 당신의 실험실에서 좀 연하게 보이는 염소를 유리시킨다 면, 이 염소가 빈혈에 걸렸다고 상상해서는 안 된다. 실험을 다시 시작 하거나 필요하다면 당신의 화학 제품 공급자를 바꾸거나, 마지막으로 안과 의사에게 가봐야 할 것이다. 에너지 척도는 당신을 속일 수 없다. 만일 당신의 염소가 지나치게 연하다면 그것은 염소가 순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 당신은 그러한 사실을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데, 왜냐하 면 순수한 염소가 진짜 염소이기 때문이다. 순수한 진짜 염소는 자신

의 에너지값의 척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에너지 합리주의는 색깔의 합리주의를 실현시킨 것이다. WI 닐스 보어의 가정이 거둔 최초의 성공 이래 원자론의 결정적인 발 전을 유의한다면 , 기하학적인 특성은 파생된 특성으로써 추론되는 반 면에 에너지적 특성을 우선시하는 가치 전도의 중요성을 보다 잘 이 해 할 수 있을 것이다. 보어가 원자의 행성 모형이라는 혁명적 가설을 소개할 적에 그는 고전적 구조를 지니고 있던 하나의 원자론적 천문학으로부터 전자-행 성의 에너지를 연역하였다 . 이 에너지는 스펙트럼 현상에 의해 밝혀진 에너지와 일치했다 . 그러나 양자 역학은 보어의 행성 모형과의 최초의 연대를 깨뜨렀다. 어떤 의미에서 이 모형이 하나의 구축물, 예증, 표현 수단이 되는가는 과학 철학이 정해야 할 일이다. 아무튼, 보어의 궤도 는 하나의 실재를 묘사하지 않는다. 한 강연에서 갈레는 지금의 인식 론적 상황을 잘 명시하였다 . 특히 갈레는 파동 역학이 궤도의 개념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 보어 의 성과를 다시 찾아낸 순간에 대해서 우리의 주의를 끈다 20) 대수적 구성의 추상화에 의한 이러한 지원 없이는 보어의 기하학적 모델은 무효화되었을 것이라고 갈레는 말한다 . 원자 내의 기하학적 구조 더더 구나 원자핵 내의 기하학적 구조는 하이젠베르그 원리의 적용에 의한 절대적 위치 결정의 금지 때문에 희미해진다. 양자수라는 최초의 기하 화는 직관적인 예증의 지위로 넘어간다. 정지 상태의 서술보다 더 활 20) F. GALLAIS, 『파동역학과 화학 』 , Pa ris, 11 쪽(원주).

동적인, 기하학적 구조보다 더 심오한 구조에 도달해야 한다. 어떤 일 상적인 단어들의 의미를 변화시키는 어휘의 개혁이 필요하다. 정확하 게 파동 역학이 에너지 산정을 최전선에 둔댜 갈레가 말하는 것처럼 여러 양자수는 그들의 기하학적 의미를 잃으면서 에너지적 의미 를 되찾는다. 양자수는 이제 에너지의 수준과 하위 수준을 특징짓 는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 보어의 공식의 혼적을 지니고 있을 적에 어휘 는 심리 분석되어야 하고 탈기하화, 탈직관화되어야 한다. 층이라는 단어는 근본적인 에너지적 성격을 의미해야 할 것이다 . 이 말은 하나의 원자에서 동일한 주양자수pri nc ipa l qua ntu m number 를 갖 는 전자들 전체를 가리킨다. 동일한 방위양자수 az i mu tm l qua ntu m number 를 갖는 전자들은 동일 한 상태에 있다고 말해진다. 동일한 자기양자수 mag n e ti c qua ntu m number 를 갖는 전자들은 동일한 칸에 있다고 말해진다. 네번째 양자수는 스핀의 특성으로서 스핀양자수 spi n qua ntu m number 라고 말해진다. 각각의 칸에는 하나의 전자가 있거나 단지 두 개의 전자만이 있을 수 있는데 두번째 경우에 있어서 두 개의 전자들 은 방향이 다른 스핀이어야 한다. 층, 상태, 칸, 특성 이것이 바로 어떤 기하학적 조직도 없이 연루된 어휘이다 . 2 1) 충 위에 있다든지 칸 안에 있다든지 하는 것은 어떤 위상 학적 의미도 없는 표현들이다. 따라서 모든 독자는 무엇보다도 추상화 21) 〈주양자수〉는 전자의 에너지 상태를 나타낸다. 〈방위양자수〉는 전자 구름의 모 양을 설명해 주는 숫자로써, 구름이 공모양인지 클로버 잎과 같은 모양인지를 나타낸다. 〈자기양자수〉는 전자 구름의 방향을 나타낸다. 〈스핀양자수〉는 자전 하는 전자의 회전 방향을 나타낸다.

를 하도록 권고받고 있는 것이다. 원자 구조 를 구성하는 모든 전자의 개별성을 결정하는 파울리의 원리 22) 가 적용되는 것은 이 추상화의 영 역에서이다. 원자 구조는 동일한 원자의 두 개의 전자 사이에 모든 에 너지적 동일성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구조이다. 파울리의 배타 원리는 하나의 자리에서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 대차대조표에서 하나 의 지위로부터 배제하는 것이다. 그것은 실재의 근본적인 의미인 동역 학적인 의미를 결정하는 하나의 회계 규칙이다.

22) 이 원리는 하나의 궤도에 들어가는 전자수를 제한하는 제약이다 . 죽 전자는 네 양자수 n, I, m ,s 의 한 조로 지정되는 하나의 상태에는 다만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정인데 이를 파울리 (W. Paul i, 1900-1958) 의 배타 원리(19'24년)라고 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한 원자 속에 있는 전자들 중에서 이 4 개의 양자수가 모두 같은 전자는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주양자수 1, 2, 3, 4, ……에 의해서 목록이 만들어진 여러 층들 중의 각 층에서 가능한 상태들이 s, p, d, f, ……라는 문자들의 순서에 따라 지칭된다. 이 문자들은 스펙트럼 현상에서 의미를 갖는 문자들이다. s, p, d, f ……의 상태에서 칸들의 숫자는 각각 1, 3, 5, 7, ……이다. 스핀 의 방향을 추가하면 층, 상태, 칸 그리고 스핀의 화살에 의한 그림을 얻는데, 예를 들어 칼슘의 경우 다음과 같은 형태를 갖는다. 이 형태는 층들과 위층에 있는 만큼 더 큰 에너지를 갖는 상태들을 가리키는 계층적 순서 속에서 여러 칸들을 배치한다. 이것이 바로 칼슘 원자의 추상적인 형태이다. 칼슘의 화학은 거의 전적으로 꼭대기 층인 네번째 층에 의해 결정된다. 칼슘 원자의 정상 적 성질에 의하면 칼슘은 s 와 p의 상태만을 지니고 있다. 모든 칸들은 전지쌍에 의해 채워져 있다. 놀라운 일은 칼슘이 보다 작은 원자수의 원자들 그러니까 멘델레프 주기율표에서 앞에 있는 원자들의 하부 구조에 의거해서 구성되었다 는 사실이다. 특히 칼슘 원자의 감추어진 성질에 대한 동역학적 고고

4• couche 4si 回

3· couche } 33sp2· [Il] 二 2· couche } 32sp2 · [ITl 二 l 『• couchc 1&2 回 그림 10

학에서 우리가 세번째 층에서 멈출 적에 에너지 준위의 도식이 나타 내는 에너지 균형을 강조해야 한다. 이 세번째 층은 만원이 되자마자 동역학적 자기 만족인 일종의 화학적 결산을 야기시킨다. 자신의 두 개의 전자 4s 를 잃은, 그래서 두 배로 이온화된 칼슘 원자는 대기에 상대적으로 풍부한 불활성 기체인 아르곤 원자의 전기적 회계를 따 른다. 그러나 물론 아르곤 원자와 이중으로 이온화된 칼슘 원자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이중으로 이온화된 칼슘의 핵은 자신의 인력 에너지에서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이온화는 명목만을 바꾸었을 뿐이 다. 원자핵 내부의 에너지는 자신의 전기 작용에 의해 멀리서 나타난 다. 여기에서 원자의 세계와 핵의 세계, 이 두 가지 세계가 고려되어야

한다 . 이들의 관계 는 많은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으며, 우리는 화학과 핵물리학이라는 두 개의 분리된 과학에서 그 문제들을 탐구한다. 그러 나 이런 구분은 물론 결정적인 것이 아니다 . 물질에 대한 일반 과학이 그들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시대를 예견할 수도 있다 . 한편, 핵의 과학에서 에너지적 관점의 우선권은 너무도 분명해서 우리는 여 기에서 동역학적인 촌재론 또는 존재론적인 동역학의 근본적인 성격 에 대한 결정적인 논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VIlI 핵물리학으로부터 모든 기하학적 구조는 추방되었다 . 핵물리학은 유일하게 그리고 근본적으로 하나의 에너지론이다. 따라서 에너지의 개념은 이 분야에서 원초적 개념이다. 핵의 과학은 역사가 없으므로 그리고 지배적인 에너지론의 시대에 출현했으므로, 이 학문은 선행하 는 직관에 대한 정신 분석을 할 필요 없이 철학자에게 자유롭게 그 출 발을 검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분야에서 기하학자의 지성 에 대한 베르그송의 논거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에 너지를 이해하기 위해 배우는 수밖에 없다 . 이제부터 표상들은 그림이 자 도식이고 그래프인데, 도식은 경험을 요약하는 그래프를 해설한다. 이제 공간은 정확하게 한장의 백지이다. 공간을 이용할 적에 백지 위 에 도식을 그리거나 읽어야 할 것이다. 그림, 도식, 표상에 실재론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물리학자에게는 부조리한 일이다. 도식은 공간 적 관계가 아니라 〈에너지 상황〉을 나타낸다 . 하나의 에너지 상황을 나타내는 도식의 예로서 가모브 Gamov 의 모 델을 들겠는데 이는 20 년 이상 핵의 연구에서 합리성의 도구, 사고의 도구였다.

가모브의 모델은 핵 주위의 퍼텐셜을 나타내며, 핵으로부터의 거리 에 따라서 퍼텐셜을 묘사한다. 그런데 핵은 공간적 분석을 따르지 않 으므로 완벽한 대칭을 가정해야 한다. 어떤 방식으로 핵에 접근하든 , 핵을 포격하는 발사체가 어떤 방향에서 도달하든 간에 에너지 현상은 동일하다. 거리에 따라서 핵의 퍼텐셜을 연구한다는 것은 곧바로 〈거리〉의 차 원과 〈퍼텐셜〉 차원이라는 2 차원의 짜임새 공간 co nfig ura ti on s p ace 에 서 문제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퍼텐셜 우물〉을 만드는 것은 그렇게 해서이다. 그래서 모든 일이 포격의 차원이라는 일차원 공간에서 일어 나는 것처럼 표상 공간에서는 모든 것이 2 차원에서 진행된다. 핵은 그림 11 에 의해 표상되었다. 한 종류의 핵에서 다른 종류의 다 른 핵에 이르기까지 변하는 것은 우물의 깊이와 우물 둘레의 돌의 두 께와 높이뿐이다. 양성자, 중성자, a 입자들은 이 우물의 바닥에 있다고 생각해야 하 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가모브의 모델은 에너지 상황만을 나타낸다. 이 도식에서는 에너지의 해석에 그쳐야 한다. 이 도식은 핵의 연구에 서 핵심적인 인력과 척력의 변증법을 보여준다. 양성자로 핵을 포격하 면 양성자처럼 양전하를 가지고 있는 핵은 쿨롱의 법칙에 따라 이 양 성자를 밀어낸다. 쿨롱 퍼텐셜은 입사 양성자에게는 퍼텐셜 장벽으로 서 나타난다. 장벽을 넘기 위해 우물 둘레의 돌보다 더 높은 입사 에 너지를 가져야 한다. 이는 잠시 후에 말할 제한을 염두에 두지 않고 하는 말이다. OB 보다 작은 거리에서는 특수한 핵력의 퍼텐셜 작용이 나타난다. 양성자가 포격받은 핵에 응집되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 느냐 하는 것은 다른 동역학적 문제, 다른 에너지 상황에 속하는 문 제이다. 만약에 우리가 포격 기술에서 반응」현상이 되는 그런 현상을 생각 한다면 우리는 방사성의 문제에 직면하는데, 인공 방사성 핵은 자연방

그림 11

사성 핵과 동일한 에너지적 특징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 여기에서 우리는 방사능 현상에서 핵으로부터 추방된 입자들의 에 너지 균질성에 대해 언급했던 문제를 다시 만나게 된다. 가모브의 모 델에서 해소되어야 할 모순을 들어보자 . (1) 추방된 입자들의 운동에너지는 이 입자들이 퍼텐셜 우물의 내부 에 있음을 가리킨다 . (2) 입자가 핵을 떠나야 할 경우 , 그림에서 입자의 점은 우물 둘레 를 넘어서 뛰어올라야 한다 . 그러나 알려진 에너지적 원인이 없는 그 런 예외적인 도약은 에너지 이질성에 의해 나타나야 하는데 , 이는 전적 으로 경험에 부합되지 않는다 . 고전 역학은 이 모순을 해결할 수 없었다. 파동 역학은 양립되지 않는 것을 화해시키며 그래서 역학적 합리주의의 중용이라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고전 역학은 가모브의 퍼텐셜 우물 둘레의 돌을 단단하게 하고 우물가를 침투하지 못하는 데로 이끈다. 파동 역학은 어떤 관통 확률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댜 빠져나오는 입자는 터널 효과라고 하는 고전 역학에 위배되는 효과를 나타낸댜 Zl)

23) 고전 역학에 의하면 안에 있는 입자가 밖으로 나가려면 퍼텐셜 장벽을 넘을 만큼 입자의 에너지가 커야 한다. 그런데 양자 역학에서 전자의 확률파는 장벽 밖에서도 0 이 아니어서 충분한 에너지를 지니지 않는 전자가 마치 벽을 뚫고 나가듯이 밖으로 나갈 수 있는데 이를 터널 효과라고 한다. 이 효과를 응용하여 일본의 물리학자 에자키는 터널 다이오드를 발명하였다. 일반적으로 두 종류의 금속 사이에 절연체를 넣으면 전류는 흐르지 않는데, 절연체가 얇을 경우 전자 의 힘이 약해지기 전에 관통하기 때문에 전류가 흐르게 된다.

벽, 관통, 터널이라는 단어들은 물론 추상적인 것으로서 일상적 의 미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퍼텐셜 벽의 관통은 어쨌든 하나 의 율동적인 외력이다. 만약 절대로 불침투성의 내벽을 가진 퍼텐셜 우물을 원한다면 이 내벽의 두께는 무한해야 할 것이다. 이는 동역학적으로 불합리한데 핵 의 퍼텐셜은 핵으로부터 짧은 거리에서 자연스럽게 소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한한 두께의 내벽에서는 어떤 파장도 자리를 잡을 수 없 을 것이다 그러한 퍼텐셜 장벽은 전적으로 반사하는 장벽일 것이다. 그런데 동역학적으로 폐쇄된 상자라는 부적당한 이미지를 연구해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 너무 강조하다 보면 사정에 밝은 독자의 시간을 잃게 할 것이다. 교육받은 독자는 미시 물리학의 서술에 사용된 모든 구체적 용어들을 현상을 가리키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간주한다. 다시 한번 말해서 가모브의 우물은 백지 위의 그림이자 사고의 도구일 뿐이 다. 그러한 사고의 도구는 지식의 요약이나 실재의 묘사가 결코 아니 며 추상적 이론을 가르쳐주는 의미 있는 이론의 초안도 아니다. 그러 한 모델과 더불어 우리는 지식의 수학적 구조와 첨단 기술의 실험 사

이에 있는 적용된 합리주의의 타협 지대에서 연구하도록 권유받고 있 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자연 철학에서처럼 사물의 기원에 우리를 되돌 아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인간의 활동이라는 추상적이면 서도 구체적인 철학에서 실재의 변형 가능성에 대한 의식으로 되돌아 오게 한다. IX 우리는 아직 20 세기 물리학의 혁명적 성격을 고려하지 않았는데 이 물리학은 존재론에 비해서 동역학에 우선권을 주는 철학, 즉 동역학적 인 철학에 중요한 논거를 마련해 준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의 원리에 서 철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귀결 중 한 가지는 질량 보존과 에너지 보 존이라는 두 개의 핵심적 원리의 종합에 있다. 이 종합은 에너지는 질 량을 가지고 있고 질량은 곧 에너지라는 발견으로부터 유래한다. 아인 슈타인이 제안한 질량과 에너지 사이의 거래 공식은 경탄할 정도로 간결하고 전적으로 합리적이다. 우리는 그 공식을 m =E/c2 또는 E = mc2 으로 두 방향에서 읽을 수 있다. 이 공식은 실재의 근본적인 두 가 지 양상을 겨냥하는 사고의 두 축을 나타낸다. 정확한 산정에 이르게 될 때, 우리가 크다고 생각한 에너지가 우 리가 작게 생각하는 질량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대소의 평가는 우리의 〈감지할 수 있는〉 상황에 연관되어 있다. 이 〈감지할 수 있는〉 상황은 우리의 새로운 〈합리적〉 상황을 결코 가려 서는 안 된다 . 사실 아인슈타인의 공식은 무척 많은 경우에 입증되 어서 이 공식은 현대 물리학의 자연스러운 토대 중의 하나로 간주되 어야 한다 . 24 ) 그러나 이 공식의 혁신적 성격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질량과 에너지

24) Frie drich DESSAUER, 『원자에너지와 그 응용』, 번역판, 90 쪽 이하〈원주).

의 실재성에 대한 〈감지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하여 역점을 두어보자 . 에너지의 질량이 우리에게 감지될 수 있거나 질량을 결정하는 도구 에 의해 계수화되기 위해서는 대단히 농축된 에너지가 필요하다. 비행 중에 있는 비행기의 에너지는 미약한 질량을 가지고 있어서 정지 질 량에 거의 보탬이 되지 않아 무시될 수 있다 . 반대로 아주 적은 질량도 모두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댜 몇 킬로 그램의 잘량만으로도 c 2 이라는 비례 계수로 인하여 실험은 재난이 될 터이다 . 이 두 가지 결론은 Dessauer 의 방정식 형태로 놓을 수 있다 .

아주 농축된 에너지 = 아주 적은 질량

그는 여기에 나오는 최상급을 다음의 사례로 규명한다. 초정밀 저울은 백만 분의 1 그램까지 감지할 수 있다. 하극한으로 l0 - 8 g을 취하고 아인슈타인 공식을 적용하면 l0_8 g에 해당하는 에너 지 E = 10-8 X c2 = 10-8 X 9 X 1020 = 9 X 1012er g로서 0.28kWh 가 된 다. 이는 200 촉광의 0.5 와트 전구가 세 시간 동안 보통의 방 (5m X 10m X3m =150m3) 을 밝힐 수 있는 에너지이다. 그런데 10-8g 이라는 질량은 예컨대 백금 가루의 질량이라고 가정하 면 인간의 눈이 지각할 수 있는 극한치일 것이다. 이처럼 우리 눈에 거의 지각되지 않는 물질의 분량을 가지고 만일 우리가 변형 기술을 소유하고 있다면 백여명의 독자가 들어갈 만큼 넓은 도서관을 세 시 간 동안 조명할 수 있는 것이다. Dessauer 는 그가 소개한 예에서 공간에서 에너지의 소멸이 1017 이라 는 사실을 주목하게 한다. 조명 지속 시간이 3 시간 그러니까 약 일만

초라는 사실을 참작하면 공간에서의 소멸(1 017) 을 시간에서의 소멸 (10 사 로 곱해 주어야 한다. 결국 에너지의 소멸은 약 1a21 이 된다. 시사적 인 곱셈들을 계속하면서 Dessauer 는 물질 1k g을 변환하면 2 년 이상 스위스를 밝힐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 우리의 〈감지할 수 있는 상황〉의 역설이 있다 . 인간은 어떤 형태의 에너지, 즉 진동 형태(빛과 소리)의 에너지에 대해서는 매우 민 감하고, 질량에 의한 (무게 감각이나 촉감) 형태의 에너지에 대해서는 둔감하다 Dessauer 가 말하는 바대로, 우리는 상이한 두 가지 지각 영 역을 가지고 있으며, 질량에는 둔하고 에너지에는 예민하다. 수치를 들자면, 최적의 기능에서 귀는 10-15wa tt/c m2 에 반응하는데, 이것은 10 - 29 g에 해당하는 양이다 . 만일 저울과의 비교를 무릅쓴다면 귀는 가장 민감한 저울보다 1021 배나 더 예민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이다. 눈도 같은 등급의 에너지적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 이처 럼 멀리 떨어진 에너지를 접수하는 감각(시각과 청각)과 만질 수 있는 사물을 부리는 근육 감각 사이에는 일종의 에너지적 구분이 있다 . 에너지와 질량의 개념은 원래 독립적으로 소개되어야 한다고 사 람들은 이해한다. 경험 과학은 이 개념들이 심오하게 서로 함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의 공식이 에너지론에서 완전한 혁명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고도로 수학적이고 합리적안 활동에 오로지 의존한다. 따라서 아인슈타인 방정식은 에너지 합리주 의의 정상에 있는 것이다.

제 6 장 광전 효과. 광자 물체의 공간에 대한 관계는 가시적 대상이 빛에 대해 갖 는 관계와 같다 . NOVALIS, 『 단편 들』 I 최근에 광전 효과의 발견은 불연속 물리학의 지위를 격상시켰다 . 이 발견은 Ri ch tmy er 가 말하는 것처럼 과학사에 있어 결정적인 불연속성 을 나타낸다.” 역사적으로 사람들은 빛의 입자 상태를 함축하는 주장 들을 제안하고 옹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주장들은 상징적이었고, 입자적 이미지가 정당화될 수 있기 위하여 진정으로 하나의 특수한 현 상을 가지고 있다고 말은 못하면서 다만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이미 지로써 제시되었다. 특수한 입자적 현상이 없어서 파동적 이미지와 같 은 다른 이미지들이 입자적 이미지와 경쟁할 수 있었다. 이처럼, 광전 효과의 발견 전에는 빛의 물리학은 실질적인 불연속성에 대해 아무런 경험도 허용하지 않았다. 잠시 후에 광전 효과가 어떻게 빛의 존재 자 1) RICHTMYER, 『 현대물리학입문 』 , 서문(원주) .

체에 입자적 특징을 포함시키도록 하는지 환기하고자 한다. 광전 효과 와 더불어 빛 입자가 적어도 하나의 현상을 지니고 있다고 확실히 말 할 수 있기 때문에 입자적 특징을 제기해야 할 필요성이 분명하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그래서 파동적 설명에 의한 성공이 더 이상 기대되지 않는 광학 현상에서 새로운 현상은 지식의 근본적인 수정을 요구한다는 점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광전 효과의 발견은 1895 년 뢴트겐에 의 한 X 선의 발견, 1896 년 퀴 리 부부의 방사능의 발견, l8 切년 톰슨의 전자의 발견과 마찬가지로 실험 과 사고에 있어서 결정적인 단서 중의 하나에 해당한다 . II 먼저 광전 효과가 무엇인지 환기해 보자. 그것은 자외선과 같이 충 분히 짧은 파장의 복사를 받은 금속이 즉각적으로 전자를 방출하는 현상이다. 어떤 금속들에 대해서는 보랏빛의 작용에 의해 벌써 이 현 상이 발생하고, 알칼리성의 금속에 대해서는 노란빛과 더불어 이 현상 이 시작된다. 불로흐는 이렇게 말한다 .2 )

2) Leon BLOCH , 『신 • 구 양자이 론 』 , 1930, 2.5쪽( 원주).

계량적 관점에서 lOO2 년에 광전자 방출의 특징을 제공한 것은 레 나르트 Lenard 이다. 그는 우선 광전자들이 일정한 속도로 방출됨을 입증하였다. 신기한 것은 이 속도가 자극하는 복사의 세기와는 무관 한 반면에 복사의 진동수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모든 저자들이 예외 없이 똑같은 놀라움을 표시하는데, 이는 하나의 문화적 불연속성이 광전 효과에 관런된다는 증거이다. 사실, 빛의 세 기를 증가시키면 이 증가된 세기에 의해 금속의 전자들이 튀어나오게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 신기하게도 아주· 약한 보랏빛이 즉각 생성하는 현상을 아주 강한 푸른빛이 생성하지 못했다 . 〈세게 두드려 라 그러면 문을 열어줄 것이다〉라는 격언은 여기에서 전적으로 그르 다는 것이 밝혀졌다. 반대로, 현상을 발생시키기 위해서는 일정한 복 사의 리듬으로 두드려야 한다. 이 진동수 아래에서는 입사광이 아무리 강하고 또 지속된다고 하더라도 전자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 이 간단하면서도 신기한 현상은 적절한 기술만 찾는다면 즉각적이 댜 Marx 와 L i ch t eneck t er 는 회전 거울로부터 오는 빛으로 칼륨의 핵을 비추면서, 조명 시간을 10 - 7 초로 줄이면 생성된 전자의 수와 빛의세기 사이에 비례 관계가 유지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3)

3) ~물 리학연보 ~ . 41, 124 (1 913) (원주).

이처럼 힘에 대한 우리의 소박한 직관을 이상하게 반박하는 이 현 상은, 그 진동수가 〈방출 문턱 〉 에 도달하는 복사선을 이용하자마자 각 별하게 민감하다는 것이 밝혀진댜 만일 에너지가 빛파동 ligh t wave 의 전면에 걸쳐 퍼져 있다면, 금속의 원자들로부터 단 하나의 전자를 추출하기에 에너지가 불충분하다고 생각될 때까지 자극하는 복사의 강도를 낮출 수 있다. 자극하는 복사선의 입자적 성격을 가정해야 하 는 것은 바로 이때이다. 소량의 에너지가 파동·앞엣선 wave fr on t에 분 산되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파동의 모든 표면에 걸쳐 있는 에너지는 고립된 원자 공간에서 광전 효과를 발생시키기에 필요한 농도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빛이 h ll 라는 값의 에너지 알갱이로 원자에 접근한다면 만 사가 대번에 분명해진다. 이 값은 플랑크의 법칙에 따라 방출 현상에

서 그 작용을 본 것과 동일한 값이다. 그래서 hll 는 복사의 방출에 있 어서와 마찬가지로 흡수에서도 실재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실재론의 결구(結 hy 사는 과학의 문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는 아주 단순하게 보이지만 과학적 사고의 힘겨운 진보를 나타낸다. 광전 현상 의 원자적, 광학적, 역학적 특징을 요약하는 아인슈타인 법칙의 대수 적 표현에 대해 숙고한다면 이러한 진보의 중요성을 보다 잘 이해할 것이댜

—21 mv 2=hv— a

이 방정식은 실제 무엇을 나타내는가? 원자적 공간에 비교할 수 있 는 공간에서 h J/라는 농축된 빛 에너지는 m의 질량과 v 의 속도를 가 진 전자를 방출한다는 것을 이 공식은 설명한댜 이때 a 는 금속으로부 터 전자를 나오게 히는 데 소비해야 할 일을 나타낸댜 따라서 아인슈 타인 공식은 여러 가지 방향의 현상들의 교차점에 있으며 현상학의 합리주의적 종합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 중의 하나이다 .4) 4) 광전 효과의 중요성에 비추어 요약을 해보자, 광원을 금속에 가까이 접근시키면 빛의 세기가 증가하므로 금석 바깥으로 튀 어나오는 전자 역시 더 큰 에너지를 갖게 될 것이다. 즉, 그 전자는 더 빨리 움 직여야 할 터이다. 그러나 결과는 더 많은 전자들이 튀어나올 뿐이다 . 빛의 세 기를 증가시킨다는 것은 금속을 때리는 광자의 수가 많아짐을 의미하며 따라서 뒤어나오는 전자의 수 또한 많아지는 것이다. 이런 실험 결과는 파동 ·설 로는 설 명할 수 없다. 만일 빛이 파동으로서 공간에 골고루 퍼져나간다면 에너지는 아 주 적어져서 금속으로부터 전자를 튀어나가게 할 수 없다. 그러나 빛이 금속에 부딪힐 때 국재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아인슈타인의 양자 가정 E = h v 에 의 하면 양자의 에너지는 대응하는 파동의 진동수 함수이다. 실제로 튀어나온 전자 의 빠르기는 투사한 빛의 진동수에 따라 변하며 그 빠르기는 위의 식에 꼭 들 어맞는다. 결국 양자 가정은 흑체 복사의 문제와 광전 효과를 동시에 설명하여 에너지의 불연속성을 결정적으로 확립하였다. 난로가에 두 시간을 앉아 있어도

피부가 타지 않는 반면에 해변가에 10 분만 있어도 타는 이유는 진동수가 높은 자외선의 양자는 가시 광선의 양자보다 높은 에너지를 가져서 피부에 화학 작 용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rn 우리의 간결한 이야기는 도식적이어서 모든 현상의 묘사나 증거의 세부 사항에 들어갈 수 없었다. 특히, 광전 현상이 즉각적이라고 말하 면서 우리는 시간을 제거하였다. 이 시간 동안에 입자 에너지가 들뜬 원자가 전자를 추방하기 전에 이를테면 원자에 의해 홉수되는데 그런 시간은 실험을 벗어난다. 어떤 홉수에 필요한 이 중간에 있는 시간온 우리가 단순한 충돌의 철학으로부터 떠나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라만 효과와 같은 다른 효과들을 만날 적에 이 말을 반복해야 할 것이다. 금속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광전자들은 금속 내부에서 순환하는 자유 전자들로부터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다 . 광전자들은 원 자 내부에 있는 전자들이고 양자화된 구조의 일부를 이루는 전지들이 다. 보다 높은 진동수 따라서 보다 큰 에너지 양자를 갖는 복사가 원 자의 가장 깊은 층에 있는 전자들을 추출하는 데 필요할 것이다. 원자 에서 에너지의 양자화는 광전 작용의 상이한 문턱을 정식화할 수 있 게 해 준다. 그래서 우리는 양자적 설명의 일관성을 배가시킨다. 철학자는 이러 한 일관성을 합리주의의 설명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사실 일종의 상호적인 합리화가 분명한데, 광학적 현상의 분야와 원자 적 현상의 분야가 상호간에 조명되기 때문이다. 원자의 양자론적 과학 은 양자론적 광학과 일치된다. 합리주의의 이러한 위대한 일관성에 대한 증거는 무수히 많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주 간단한 예를 보는 것이다.

w 이 현상의 일반적인 성격을 특기해야 한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광전 현상은 하나의 주목할 만한 일반화 연산자라는 점을 깨닫도록 해 야 한다. 광전이라는 말은 물질의 효력이라는 방식으로 사고하는 데 익숙한 철학자를 기만할 수도 있다. 광전 현상에서 빛의 효력을 드러 내는 것은 꼭 빛은 아니다. 빛의 작용을 Fourcroy 같은 화학자의 실체 론적인 직관으로 생각하는 것은 철학적으로 부정확할 것이다. 자외선 보다 훨씬 높은 진동수를 가진 x 선이나 r 선 역시 광전 효과를 일으 킨다 이들은 처음 보랏빛에 의해 간파된 현상에 대해 일반호遷· 제공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일반호면 빛의 현상에 대면하게 되는데 이 빛의 효과는 진동수라고 하는 기본적인 변수에 의해 드러난다 진동수는 합 리적 일반화에 대한 변수를 제공하며 피동적 합리주의의 토대가 되는 개념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잘 수행된 추상화의 가치를 파악한다. 이 간단한 수리화는 현상학의 여러 분야에서 질서정연하게 정리하는 기능을 가 져다준다. 이렇게 현대 과학은 현상의 합리적 탐구에서 확신을 가지고 근본적인 변수들을 도출하는 것이다. 마침 위그 Hu yg hes 와 뒤 브리지 Du B ri dg e 는 이 렇게 말한다. 아인슈타인 방정식은 보랏빛으로부터 r 선에 이르기까지 모든 진 동수에 의해 배출된 광전자에 대해서 정확하게 검증되었다. 이러한 확장은 아인슈타인 방정식이 물리학의 가장 근본적인 관계들 중의 하나라는 것을 입증한다 .5) 5) A TAYLOR , GLASSTONE, 『물리화학논고』, Princ eto n , 1941, 155 쪽(원주).

경험적으로 무척 다양한 (광선, 자외선, X 선, 7 선) 분야에서 근본적 인 물리 법칙의 완전한 합법성은 철학자의 관심을 끌어야 할 것이다. 흔히 철학자는 일반 법칙의 예로서 〈모든 물체는 떨어진다〉라고 말하 는 것으로 만족한다. 이처럼 평범한 사례에 대해서 그는 일반적인 것 이 어떻게 특수한 것을 동화하는지 잘 추적하지 못할 위험이 있으며, 단지 떨어진다라는 동사를 환언할 우려가 있다. 아인슈타인과 더불어 원초적이고 놀라운 사실, 특이한 사실은 일반화의 뿌리 자체가 된다. 놀라운 효과를 갖는 모든 현상처럼 광전현상은 그 자체가 관심의 표 적이 된다. 이런 관심은 일반화하는 동안 내내 전파된다. 사고의 관심 에 관한 이런 언급은 과학에 대한 철학적 고찰에서 생략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인슈타인 법칙의 인식론적인 가치에 대한 토의를 계속하기에 앞 서, 오늘날 물리학자들은 광전 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입자성을 가정해 야 할 필요성을 확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자. 그것은 참으로 〈달 리 어떻게 할 수 없는〉 경우인 것이다. 그러나 현재 공통적으로 의식하고 있는 이러한 필연성이 금세기 초 그것을 인식한 천재의 지적 용기를 과소 평가하게 해서는 안 된다. 프 랑켈 Frankel 이 1905 년의 논문에 조회하면서 쓰는 것은 이 용기라는 표 현이다 .6) 19 세기 내내 복사의 파동 이론이 거둔 엄청난 성공에도 불구 하고 아인슈타인은 이때 입자적 방향으로 이론의 개혁을 시도했던 것 이다. 6) J. F RANKEL, 『파동역학』, Ox ford , 1932, 1 권, 9 쪽(원주).

v 광전 효과와 다른 현상들이 오늘날 알려졌는데 이들은 정당하게 복 사 입자 현상이라고 불릴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콤프턴 Com pt on 효 과와 라만 Raman 효과이다. 콤프톤 효과에서 우리는 하나의 복사 입자와 전자의 만남을 확인한 다. 이러한 만남을 간단히 말하기 위해서 충돌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 다. 그러나 그것은 특이한 충돌인데, 왜냐하면 이 충돌은 복사 입자의 유일한 존재론적 변수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충돌은 복사 입자의 진동수를 바꾼다. 정확히 말해서, 콤프턴 효과를 특징짓는 현 상은 hv 에서 hv' 로 이행하는 입사 광자의 진동수의 감소인데, v' 는 u 보다 작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 충돌은 에너지 보존 법칙과 운동 량 벡터 보존의 법칙과 일치한다? 광자 hv 를 광자 hv' 로 변환하기 위해서는 재구성의 과정을 가정해야 한다.

7) 빛의 입자성, 죽 광양자lig h t qua ntu m 가설은 콤프턴 (1892-1962) 이 수행한 실 험에 의해 직접적으로 증명되었다. 예를 들어 서쪽에서 X 선이 와서 자유 전자 에 충돌한다면, 전자가 동남쪽으로 튀었다고 할 때 X 선 광자는 동북쪽으로 산 란될 것이다. 산란된 광자의 에너지, 죽 진동수는 산란된 각도가 커짐에 따라 감소될 것이다 . 광량자 에너지와 빛에너지의 둥가성 (h 21 = mc2) 과 광자도 운동 량을 갖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여(p = me), h 21 = pc로부터 p = h 21 /c를 가정하 면, 실험 결과는 두 개의 당구공이 충돌할 때처럼 운동량 보존 법칙과 에너지 보존 법칙이 성립한다는 가정 아래 얻어낸 공식과 완전히 일치한다 .

콤프턴 효과는 x 선의 광자에 대해서 관찰되었다. 만일 이 효과가 가 시 광선의 광자에 대해 관찰되었다면 보라색 광자는 물질을 만나면서 푸른색 광자가 된다고 말할 수 있을 터이고, 충돌이 보라색 광자를 푸 르게 하고 푸른색 광자를 초록으로 만든다고 추측할 것이다 . 그러나 그러한 표현들은 무익한 실재론적 과잉 표현들이다. 진동수라는 핵심 적인 변수와 더불어 우리는 〈사물의 본질〉에 관계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엄격하게 동역학적인 존재론의 지위에서 복사 입자의 현상을 고찰해야 한다. 라만 효과는 가시 광선의 광자가 물체의 분자에 충돌하는 현상이다. 이 충돌은 보다 구조화된 변화를 초래하여 에너지가 재조직되는 과정 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광자가 가져온 에너지는 분자가 흡수하여 새로 운 동역학적 상태를 갖게 되는데, 이 분자는 입사 에너지를 여러 양자 적 상태 특히 희전의 양자적 상태에 분배한다. 이때 분자는 새로운 광 자를 방출하는데 이 광자들은 입사 광자의 진동수보다 더 큰 진동수 를 가질 수도 있어서 콤프턴 효과와 대조된다. 이때 추가된 에너지는 분자의 에너지에서 빌려온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화학과 분광학이 동시에 작용하는 굉장한 분야에 들어서고 있다. 합리적인 이론과 정확 한 실험의 결합이 아마 이보다 더 긴밀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세부적 으로 분광학과 화학이 가져온 유사한 확증들을 따라갈 때에 우리는 양자론의 종합하는 능력에 대해 놀라게 된다. 스펙트럼선의 불연속성 과 분자의 전자적 구성에 있어 서로 다른 가능성들의 불연속성, 이러 한 이중적인 불연속성은 상호 조화의 양상을 띤다. 불연속의 철학은 여기에서 날이 갈수록 많아지고 날이 갈수록 타당성이 있는 논거를 보게 된다. VI 광자와 전자 또는 분자와의 이러한 〈만남〉의 이미지를 너무 기하학 적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몇 마디 더 해보기로 한자. 사실 이들의 〈만남〉은 아주 드문 현상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 다. Dushman 이 보여주듯이, X 선이 가스를 통과할 때에, X 선은 진로에 있는 1 조 개의 원자나 분자에 대해서 하나의 원자만을 이온화한다. 십

중팔구는 X 선은 수십억 개의 분자를 통과하면서 아무런 에너지도 잃 지 않는다. 그 다음에 알 수 없는 이유로 하나의 분자가 X 선의 파동열 wave trai n 의 에너지를 홉수하고 나서 전자 하나가 방출된다. 이렇게 복사와 물질 사이의 에너지 교환 법칙에서는 지극히 규칙적이었던 현 상이 이 현상의 생성에서는 지극히 드문 현상이 된다. 그래서 합리적 법칙에서는 완벽하게 결정된 이 현상이 경험적으로 발생하는 데에 있 어서는 극단적인 불확정성에 맡겨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합리주 의와 경험주의의 상대적인 측정은 여기에서 쉽지가 않다. 그런데 그 입자적 성격이 광전 효과와 콤프턴 효과 그리고 라만 효 과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는 광자가 광자들 사이의 역학적 작용에 대해 서는 저항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두 광자가 만나는 상황을 정 립할 수 있는 현상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8) 이러한 결손은 우리들 의 모든 이미지들을 감독해야 한다는 하나의 경고가 되어야 한다. 특 히 광자의 궤적은 전혀 광선이 아니라는 점을 잘 이해해야 한다.

8) 4 장의 각주 17) 을 참고할 것.

우리가 광선에 대해서 보통 갖는 이미지는 궤적의 다발이라는 경험 에 의해 취해진 것이다. 이 다발은 수많은 궤적을 포함하고 있어서 우 리에게는 그 경로의 모든 구간에서 활동적인 것처럼 보인다. 사실은 어두운 방의 공중에 있는 먼지들이 빛나서 빛살을 주는 것이다. 그러 나 다발의 진로에서 고립된 광자는 드물게 활동적이라는 사실을 보아 온 참이다. 고립된 광지는, 광자가 나타날 수 있는 기회를 증가시킨다 하더라도 그리고 광자가 이온화해야 하는 가스의 압력을 상당히 증가 시킨다 하더라도, 이따금씩만 활동적이다. 하나의 광자의 진로는 따라 서 드문 사건들로 사이가 떨어진 하나의 기하학적 선이다.

VII 현대 물리학의 성과에 결부된 일반 우주론의 모든 가치들을 강조하 고자 한다면, 한편으로는 X 선의 광자에 의한 전자의 생성과, 다른 한 편으로는 전자에 의한 X 선의 광자의 생성 사이의 상호성에 대하여 강 조해야 한댜 우리는 X 선이, 음극선의 전자들의 유출이 갑자기 멈추는 양극 an ti ca t hode 에서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기에서 복사에서 물 질로 그리고 물질에서 복사로 가는 상관성이 완벽하다 .91

9) 광전 효과에 의해 광자가 전자에게 에너지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그 반대 과정도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 죽 운동중인 전자의 운동에너지의 일부 또는 전부를 광자로 변환시킬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이 역광전 효과는 1895 년 뢴트겐에 의해 관찰되었다. 그는 고속의 전자들이 금속 표면에 충돌하면 매우 투과력이 강한 복사선이 나온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X 선이라 명명했다.

정신은 이러한 이원론의 균형을 숙고하면서 실질적인 만족감을 느 낀다. 그러한 현상들의 상호성은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합리주의의 증 거가 된다. 〈사물 속에〉 봉쇄된 철저한 비합리주의의 지지자들은 이렇 게 순서가 바뀐 현상들의 생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 활동중에 있는 합리주의는 이런 이중적인 기술의 통제에서 분명해진다. 이런 복人1-물질 이중성은 반드시 정성적인 것만은 아니다. 위그와 뒤 브리지는 이렇게 강조한다. 아인슈타인 방정식은 광전 효과와 반대되는 과정(예컨대 전자에 의한 X 선의 생성)에 대해서도 유효하다. 이 발견은 플랑크 상수의 산정에 고도로 정확한 방법을 제공했다. 이 정확한 산정에서 우리는 경험주의에 대한 합리적 기술의 지배를 본다. 실재를 〈측정〉하기 위해 얼마나 머나먼 추론의 대로를 두루 돌

아다녀야 하는지! 우리는 경험주의자들이 생각하듯이 제공된 현실 앞 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복된 현실 앞에 있는 것이다. VIII 이제는 활동적 합리주의라는 변함없는 철학적 주제에 따라서, 에너 지 양자 개념을 보다 많은 개념적 관계 속에 도입할 적에 그 개념의 합리성이 중가하는 것을 보고자 한다. 한편으로는 광자의 역학적 특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과 다른 한 편으로는 광자의 물리적 특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연관시키는 관 계식의 완전한 체계에 플랑크의 관계식을 끌어들이면서 보완하면, 광 자 개념의 합리주의적 양상이 보다 명확해질 것이다. 현상의 합리적 구조에 참으로 접근하고자 한다면, 플랑크의 관계식 E =hv 는 일괄하 여 고려되어야 하는 관계식들의 집합으로부터 자의적으로 고립되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우선 플랑크의 공식은 한 측면에 의해서만 〈사물의 본질〉에 접근할 따름이라고 반박할 수 있다. 프랑켈은 이 공식이 근본적으로 근거 없 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말대로 왜 양자 에너지를 측정하는 파장 (A) 보 다 오히려 측정하지 않는 진동수 (V) 에 결부시키는가? 만일 파장의 관 점에 선다면 에너지 양자화의 기초식은 E = he/11 가 될 것이다 .10) 이 식은 모든 복사의 속도인 빛의 속도를 포함하는 이점이 있다.

10) E=mc2=mvc=p c=h/A ·c=he/ A.

그러나 우리가 주의를 끌고자하는 것은 이론의 다개념적 각도에서 이다. 양자론적 합리주의를 정초하는 것은 철학적으로 이런 견지이기 때문이다.

에너지의 과학은 에너지 양자의 개념을 핵심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는 사실을 사람들은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특권은 절대적일 수 없다. 광자는 에너지뿐만 아니라 운동량도 가지고 있다 . 하나가 없 는 다른 하나는 있을 수 없다. 분리할 수 없는 적어도 두 가지 기본 개념이 있는 것이다. 또한 광자가 고유한 질량을 가지고 있는지도 물 어야 할 것이다. 광자는 어쨌든 그 에너지에 해당하는· 질량을 가지고 있다 . 광자의 물질화, 즉 입자쌍의 생성(전자와 양전자)에서 개입하는 것은 이런 에너지의 질량이다. 따라서 광자의 존재론적 지위를 결정하 기 위해서는 에너지, 운동량, 질량 이 세 가지 기본 개념을 고려해야 한다. 양자화된 빛의 이론에 착수하기 위해서는 이 개념들을 연대적으 로 확립해야 한다 . 먼저 철학적으로 중요한 성격에 대해서 강조하고자 하는데, 세가지 양(에너지, 운동량, 질량)은 광자에 현실적으로 부여된 것이 아니고 방 정식에 의해 연결된 값으로서 합리적으로 주어졌다는 점이다. 기본적 인 방정식들을 환기해 보자. 광자가 E 라는 에너지를 가진다면 광자의 운동량 p =E/c 가 되고, 이 관계식 역시 근본적이다. 광자의 운동으로 인하여 광자는 에너지와 연관된 질량, m=E/c2 을 갖는다. 이 두 식을 결합하면 질량에 대한 다른 표현 m = p/ c 를 얻는다. 그러나 파장( A) 의 개념과 진동수( v )의 개념을 결합하는 기초 물리 학의 관계, A=c/v 또는 v=c/A 는 상대성 이론의 방식에서 해석 될 것을 요청한다. 관계식 p = E/c 도 마찬가지이다. 달리 말해서 시공 간의 형태에서 광자에 부여해야 할 진정한 종합적 기본 개념을 구성해 야한다. 관계식 P =E/c 대신에 대등한 관계식 P =h/ A 를 취해 보자 . 그리 고 파장수 wave leng th number 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면 다름아닌 1/A 이 되는데 이는 cm 당 파장의 수이다. 그것을 k 라고 하면 다음 식

울얻는다.

(a) p= hl<

그러나 공식들의 아주 간단한 이 모든 놀이에서 하나의 요소가 무 시되었다 . 우리는 아직 에너지가 스칼라 양인데 비해서 운동량이 벡터 량이라는 사실을 참작하지 않았다. (a) 식에 진정한 성 격 을 부여하려 면 p와 k 를 두 개의 벡터로서 간주해야 하고 jJ = hk 와 같이 써야 한 다 . 이 식은 3 개의 축의 공간 좌표에서 해석 기하학에서 잘 알려진 바 와 같이 세 개의 관계식을 준다.

( /3 ) Px = hl

바람직한 모든 수학적 정확성과 더불어 그것은 결국 파동의 운동 방향은 입자의 운동 방향과 같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이 말 은 결코 췌언이 아니다 . 이 두 방향의 동일성은 구성되어야 하고 수학 적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 합리주의는 정확히 말해서 하나의 관계의 모 든 특징들을 명시하도록 요청하는 규율이다. 사중 벡터의 형태로 된 운동량과 에너지에 관한 최초의 종합은 아 인슈타인식 합리주의의 가장 중요한 혁신 중의 하나인데 파동 역학에 서도 역시 나타난다. 그 말대로 파동상은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 II )

11) 입자적 묘사에서는 E, 恥 PY, Pz 의 네 성분에 대해서 말하고 , 파동적 묘사에서 는 II, kx, k y, kz 의 네 성분에 대해 말한다 . 比는 파수의 x 성분으로써 x 축을 따 라 2 ,r em 만큼 진행하면 만나게 되는 수이다.

'P = 2 7r (kxX + kyy + kz2 -v t)

그것은 3 차원 스칼라이다. 따라서 전파의 모든 특성이 동시에 기능 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제 플랑크의 최초의 관계식을 ( /3)의 관계식들과 결합시키면 이 모든 관계들이 하나의 관계식으로 맺어짐을 알 수 있다.

Px PY Pz E

一kx =―kr =—kz =-l/ =h

이때부터 E/v=h 라는 식은 모든 종류의 특권을 잃었다. Px, J)y, Pz, E 는 역학적 양을 그리고 kx, ky, kz, v 는 물리적 양을 가리킬 수 있음 을 주목하자. h 라는 인자는 역학적 성질과 물리적 성질 사이에서 일종 의 대응 인자가 될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이렇게 쓸 수 있을 것이다.

역학적

=h 물리학적

이처럼 우리는 역사적으로 근본적인 개념으로부터 개념간의 합리주 의를 확립하는 구조로 가는 핵심적인 변증법의 새로운 증언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체계가 최초의 토대에 사실상 의존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인식론적 가치의 검토는 각각의 구축에 따라서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근본적인 인식론적 가치들이 새롭게 배치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제 7 장 스핀과자기량 만일 기관차의 바퀴를 마음대로 강력한 자석으 로 바꿀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고지대라도 용 이하게 오를 수 있을 것이다. LIEBIG, 『화학에 관한 서한들 』 I 스핀의 개념은 그 자체만으로도 철학 학회의 주제가 될 수 있다.1)

1) 지구는 태양 주위를 공전하면서 동시에 자전을 하고 있다. 전자도 지구의 자전 에 해당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그 자전 방향은 시계 방향이거나 반시계 방 향 두 가지이다. 이러한 전자의 운동을 스핀이라고 하며, 전자의 회전 운동에 의해 자기장이 생기게 된다.

이 개념은 인식 철학의 분석에 있어 아주 적절해서 실재론자와 합리 주의자, 실험가와 이론가가 대립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토론은 실 재론자와 수학자 사이의 토론일 뿐만 아니라, 진정한 대화는 적당한 수학적 형식과 정교한 기술이라는 이중적 자명성의 활동을 보여줄 것 이라는 점을 곧 납득하게 될 것이다. 스핀의 개념은 적용된 합리주의 의 철학에서만 나타나고 밝혀진다. 실상 스핀은 합리주의적 대상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합리성

이 요청하는 개념이고 합리주의적 문화의 어느 지점에서만 나타날 수 있는 개념이며 수학의 관점 속에 있는 개념이다 . 수학자가 무언가 를 잊었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은 아마 실험적 실패나 이론과 실험 사이 의 경미한 모순이었을 것이다 그는 어떤 성질도 무시해서는 안 될 터 였다 . 그러나 새로운 개념이 형성되자마자 수학적 구조는 긴밀하게 결 합되고 확장되었다. 스핀 개념의 확장의 역사는 사반세기 이래 핵물리 학과 화학의 발전의 역사를 동시적으로 다시 보는 것이다. 스핀은 순수한 합리주의적 대상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직접 관찰되 지 않기 때문이다. 스핀은 그 결과에 있어서만 관찰할 수 있으며 이러 한 결과들은 간접적이다. 모든 입자에 대해서 스핀은 질량이나 전하와 같은 자격의 특징이라고 말할 적에, 직접적인 실재론의 비율은 질량과 스핀 사이에 그리고 전하나 스핀 사이에 아주 다르다는 점을 인정해 야 할 것이다. 질량과 전하는 정확한 입자적 특성을 받아들이기 위해 서 주의깊게 다듬어져야 한다 . 어쨌든 이 개념들은 기본적 문화에서 우리에게 친근한 반면에 스핀은 미시 물리학의 존재이며 거시 물리학 은 무시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해야 하는 존재이다 . 2 1

2) 보통 거시 물리학은 고전 물리학, 미시 물리학은 양자 • 입자 물리학으로 구분 하는데, 에너지 개념을 기준으로 어떤 입자의 주어진 운동에 의한 에너지를 평 형 상태에서 계의 일반 입자의 온도 (T) 에 의한 에너지 KaT(Ka : 볼츠만 상수) 와 비교했을 때 실온 room temperatur e 에서 그 값이 유사하면 실험적 관찰이 가능하여 거시 물리학 현상으로 간주되고, 그 값이 매우 작거나 큰 경우는 관찰 이 불가능하여 미시 물리학 현상으로 간주된다. 스핀은 그 효과에 의한 에너지 가 매우 작아 거시 물리학에서는 무시할 수 있는 미시 물리학적 현상이다.

수리화해야 할 본래의 실재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사람들은 처음 에 이미지에 의존한다 . 다른 데에서와 마찬가지로 지식의 대용품인 이 미지는 위험한 것이다 . 이미지가 그럴 듯한 설명을 가져오자마자 이미 지에 대한 정신 분석을 해야 하고 그 유혹을 중단시켜야 한다. 스핀 개념의 발전을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적용된 합리주의의 성장의 축 안

에서 그 개념을 수학적 여건에 되돌려놓아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신 분석을 전개하기 전에 본래의 이미지를 상기해 보자. 보어가 양자적으로 구성한 원자의 행성 모형에서 스펙트럼 현상 은 전자가 하나의 양자화된 궤도에서 다른 양자화된 궤도로 도약할 때 시작된다. 궤도 를 특징짓는 정수배의 양자수를 가지고 스펙트럼 항 을 만드는데 그 차이가 스펙트럼 선을 규정한다. 그러나 궤도의 영속 성과 동시에 전자의 도약하는 성질을 상정하는 이런 천문학은 근소하 게 부정확한 에너지 대차대조표를 준댜 3 ) 여기저기에 반( 半 )양자를 추 가해야 하고 이 반양자에 의해 최초 양자 이론의 정수로 이루어지는 산수를 교정해야 한다 . 1925 년 울렌벡 Uhlenbeck 와 구드스밋 Guodsm it 은 전자의 행성 모형을 끝장내자고 제안하였다? 전자는 공전 revolu ti on 의 시절이 있었고 이제 자전 ro tati on 의 시기를 맞은 것이다. 즉 전자는 스스로 회전하며 고유한 운동 모멘트를 지니고 있다 . 이 팽 이의 운동이 바로 스핀인데 영국 아이들은 팽이를 돌릴 적에

3) 보어의 원자 모델에 의하면, 전자는 외부 광자에 의해 에너지를 받거나 불안정 한 상태에서는 잉여 에너지 를 광자의 형태로 방출하여 안정 상태가 되는데, 이 때 홉수되거나 방 출 되는 광자는 띄엄띄엄한 궤도간의 에너지 차이와 정확하게 같아야 한다. 하지만 실제 실험에서는 그 중간 또는 임의의 에너지를 가진 광자 의 홉수나 방출이 확인되어 각운동량 양자화 개념의 한계가 노출되었다 . 울렌벡 과 구드스밋은 이런 추가적인 미세 스펙트럼 선을 전자의 자전에 의한 스핀과 공전에 의한 각운동량의 상호 작용으로 보아 완벽하게 해석하였다. 4) 이 두 학자는 전자는 자전(스핀)에 관게되는 고유의 각운동량을 갖는다고 생각 하였다 . 이것을 스핀 각운동량이라고 하는데 (l/2)h/2,r이다 .

이처럼 이미지는 얼마든지 있댜 기묘한 역사적 모순으로 해서 이런 이미지는 하이젠베르그의 원리가 그런 이미지를 금지하기 직전에 형 성되었다 . 그러니까 불확정성의 원리는 전자의 실제적 회전에 대한 모 든 이유를 배제한댜 이미지는 하나의 삽화로서 남아 있어야지 운동학

적인 그리고 기하학적인 어떤 실재성도 받아 들 일 수 없는 것이다. 스 핀은 입자적 상태의 직접적인 특성으로 간주되어야 한댜 한편, 궤도의 운동 모멘트는 양자 물리학에서 이미 전통적인 운동 모멘트의 개념에 위배되는데 , 5 ) 왜냐하면 그것은 양자화되었고 또한 축 주위로 h/2 7[라는 양자만큼만 감소하거나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에 대해서 스핀은 1/2 이고, 자전의 운동 모멘트는 최소 궤도 운동 모멘트의 반만큼 변해서 1/2 • h/21 r 가 된다. 이는 연속적 인 방식으로 증면 가대하칭거의나 도감구소로할서 수+ 없1/2는 • h독/2 특7r한 와 자—전1이/2 다 •! h/나 21중r 에의, 두스 핀가지은 가이능를성테 울 이용한디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5) 전통적인 운동 모멘트의 개념은 〈질량 X 속도〉로써 연속적인 속도에 의해 결 정되므로 불연속적으로 정량화될 수 없는 값이다.

전자에 대한 이 유일한 양자화에 의해 우리는 더 이상 막연한 활력 d ynami sm 을 갖지 않는 이미지, 축소되고 절제된 이미지와 대면하게 된 다. 다음 장에서 연산자의 견지에서 볼 적에 이러한 축소가 양자론적 수리주의의 승리에 의해 완성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스핀에 관계해서 서술해야 할 타협적 상황이 있으니, 고유한 운동 모멘트인 스핀에 고유한 자기 모멘트가 결부되어 있디는· 사실이다 .6) 이러한 이중적인 속성 부여는 결국 단호한 양상을 띤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이르기 전에 물리학자의 상상력 은 한번 더 고통스러운 처지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 말 그대로, 정전하 는 그 매체를 움직이자마자 전류의 모든 특성을 나타내는데 특히 그 러한 전하는 자기장을 형성한다. 그러나 거시 물리학적 관점에서 음전 하를 띠고 있다는 말은 전자들로 대전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 을 상기하면, 새로운 관점에서는 한 개의 전자의 전하에 대해서만 말

6) 자기 모멘트는 폐곡선을 이루며 회전하는 모든 대전 입자가 갖는 물리 량으로 써 〈전류 X 폐곡선 면적〉으로 정의된다.

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파르메니데스 Parme ni des 의 작은 전기적 모델로써 전자는 자기장을 형성해서는 안 되었던 것처럼 보일 것이다. 자전하면서 전자는 자신의 전기로부터 어떤 운동도 야기하지 않으며, 철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자신의 전기적 존재를 초월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미세한 비유는 잘못이다. 실험의 일반적 구조는 전자의 고유한 자기 모멘트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디랙에 의해 그의 공식의 불가결한 요소로서 발견되었다고 정당하게 말할 수 있겠 다. 보어의 자기량이라고 부르는 이 고유의 자기 모멘트는 참으로 수 학적인 여건에서 구성되었다 그래서 보어의 자기량은 종합적인 물리 학의 하나의 창조품이어서 위에서 말한 분석적 비유의 반박에도 불구 하고 종합하는 합리주의적 활동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합리적 정보에 의한 이런 조정된 존재는 이성의 존재가 아니다. 양자론적 분 광학의 설명에서 그것의 개입은 결정적이다. 스핀의 개념처럼 자기량 이라는 부속된 개념은 이제 실험의 기술적 정확성과 마찬가지로 이론 적 구조에 있어서도 기본 개념이 된다. 스핀이나 자기량과 같은 입자 적 토대의 복잡화 없이는 제만 Zeeman 효과7 ) 나 마찬가지로 광학 스펙 트럼이나 X 선의 복잡성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7) 원자핵 주위의 전자의 에너지 준위는 에너지(주양자수 n), 궤도 각운동 모멘트 (e), 궤도 각운동량 성분 (m), 스핀 각운동 모멘트 (s), 스핀 각운동량 성분 (ms) 에 의해 결정되는데, 평형 상태에서 동일한 n, ¢ 값을 가진 전자들이 외부 자장에 의해 서로 다른 m 값으로 세분화되거나 또는 궤도_스핀 상호 작용에 의해 서로 다른 ms 값을 갖게 되어 전체 에너지 준위가 세분화되어 스펙트럼선도 평형 상 태에서 보이지 않던 미세선이 나타나게 된다. 이를 제만 효과라고 부른다.

그건 그렇고, 전자의 스핀 1/2 • h/ 21r 로부터 보어 자기량의 개념적 구성을 간단히 알아보기로 하자. 그것은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a) -:21- X —2—h7 —f x —meo c

e: 전자의 전하, mo: 전자의 정지 질량, c: 광속도, h: 플랑크 상수

이 표현은 기본 개념들의 분기점을 이루고 있어서 입자적 원리의 독특한 풍성함을 보여주고 있다 . 이 개념적 구조에 대해 숙고하면서 철학자는 과학 사상의 추상성을 비난하는 판단을 교정하기 위한 훌륭 한 기회를 갖는 셈이다. 그토록 많은 과학이 여기에 축적되어서 개념 과 경험이라는 이중적 실재론은 사정에 밝은 사유· 작용에 꼭 필요하 다. 보어의 자기량이 디랙의 형식화와 같은 천재적인 형식화작업 이후 에 나타난다는 사실이야말로 형식적 구조에 대해 회의적인 판단을 언 제까지나 차단하는 것이다. 마치 …… 인 것처럼의 철학 시대도 마찬가 지로 끝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 철학적 의미를 무시함이 없이 보 어의 자기량 공식이 인위적 수단에 속한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특히 그 공식이 마치 전자가 작은 자석과 대등하게 효과를 발휘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데, 왜냐하면 작은 자석의 모멘트를 주는 공식은 한 극의 자 기량과 두 극 사이의 거리의 단순한 곱이기 때문이다 . 자기량 공식의 합리적이고 실험적인 구조의 가치는 모든 교양 있는 과학 정신이 감 지할 수 있다. c 는 아마도 전자기 단위 체계의 조정을 위해 도입되었 을 것이다. 그러나 e 와 c 의 연관성온 막스웰의 천재적 직관 이래 말하 자면 과학에 등록되어 있다. 교양 있는 과학 정신은 e/ c 의 관계가 작 동하는 것을 보는데 아주 익숙해져 있다. 이러한 습관은 현대 물리학 의 적용된 합리주의에서는 진정으로 합리적인 것이 되었으며, 나아가 서 잘 보증된 기술적 실험으로부터 다시 출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동화하는 합리주의의 한 가지 본이 될 수도 있다 . 그리고 전자의 질 량 IIlo 가 자기 량의 분모에 나타난다는 사실은 아주 자연스런 일이다. 우리는 무척 단순한 이해의 영역에서 그런 표현을

읽는 느낌이다 . 과학 정신은 여기에서 정확한 만족감을 느끼는데 철학 자가 보통 과학주의에 부여하는 일반적인 만족감과는 아주 다른 것이 다. 과학 사상의 생명을 잘 만들어진 개념, 정신에 〈와닿는〉 개념의 수 준에서 측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있겠는가? 기본 개념의 가치에 대한 증거 중의 한 가지는 그 개념이 최초에 확립된 영역과는 아주 다른 영역들에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런데 다음에 지적하겠지만 애초에 전자에 결부된 스핀의 개념은 다른 입자들에 대해서도 유효하다. 특히 이 개념은 완벽하게 양성자에 적용 된댜 그렇다면 전자와 마찬가지로 양성자에 대해서도 자기량의 존재 를 고려해야 하지 않는가 . 그 공식은 완전히 준비된 것 같다. (a) 식의 ITlo 대신에 양성자의 정지 질량 M0 을 대체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Mo 는 1840Ino 에 해당하므로 양성자의 자기량은 전자의 자기량보다 1840 배 적을 것이다.

21 x-2h rx Meo C

이것이 보어의 자기량이다 . 사실은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양성자의 자기량은 이 보어의 자기량 의 대략 3 배에 해당한다? 물리학자는 물론 실험치를 가지고 연구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물리학자의 절충적 태도와 마 ~F 하고 있는데, 그는 여 기에서 순수한 합리성과 근소하게 불일치하는 개념을 합리적으로 사 용하고 있다. 만일 구성 요소들을 합리적으로 배치하는 데에 존속하 는 부조화를 숨긴다면 적용된 합리주의의 오랜 인내심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합리주의는 다른 어느 철학보다도 그의 과업을 의식해

8) 정확한 값은 2.8 배이다.

야한다. 게다가 하나의 작은 구에 균일하게 퍼져 있는 층으로 생각할 수 없 는 단위 전하의 자전으로부터 출발하면서 전자의 자기량을 생각해야 하는 어려움을 강조했을 적에 우리는 이미 일반화된 자기량 개념의 이상한 비정상적 상황을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여기에 미시 전기 적 사실이 있는데, 중성자 역시 양성자 자기량의 1/3 에 가까운 자기량 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공식 없는 하나의 명칭과 마주 하는데 (a) 식을 가지고 일을 할 수가 없다 . 중성자의 자기량은 실험 데이터로 간주해야 한다 . 어떤 경험주의자는 그러니까 우리의 완만한 철학적 구축물을 말소 하기에 좋은 조건에 있을지도 모른다. 말 그대로 여기에서 미시 전기 는 자신의 합리성에서 모순을 만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최후의 애매함에도 불구하고 , 자기량의 개념은 너무나 분명한 역할을 하므로 이 개념의 최초의 합리적 가치를 잊어서는 안 된다 . 그 위에 또 미해결된 문제에 대해서 의기양양해하는 경험주의자에게 누가 그 문제를 제기했는지 물어야 한다 . 우리가 간략하게 서술해온 자기량 개 념의 역사는 이 개념이 순전히 경험의 영역에서 생길 수 없었음을 충 분히 분명하게 입증한댜 이 개념이 비정상에 이끈다 할지라도 이론적 대로는 필수적인 경로 로 남아있다. 비정상은 규칙으로부터 제기된다. 군더더기 말로 통할 수도 있는 이 말은 우리가 무척 공들여 만들어진 합리적 법칙의 적용 에 참여하는 그만큼 더욱 가치를 지닌다 . 뚜렷한 비정상과 정교한 법 칙 사이의 이런 관계는 멀리까지 밀고 나가면 적용된 합리주의의 진 정한 특징이 된다. 다시, 디랙의 자기 전자 이론이 상대성 이론과 파동 역학의 종합을 실현할 수 있었다는 점에 주의를 환기시키자. 이 종합은 단 하나의 전 자에 대해서만 성립되며, 전자들 무리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

다. 스핀의 개념은 처음에는 전자에 대해서 만들어졌다가 점점 아주 다른 입자들 나아가서 원자핵과 같은 입자적 구조에까지 확장되었다. 스핀 개념의 사용에 있어서 이러한 발전은 사람들을 참으로 놀라운 물질론적 변증법 앞에 대면하게 한다. 반양자 스핀 1/2 • h/2 7 f 인 전자의 스핀은 하나의 입자적 유형 에 특 징적인 것이다. 양성자, 양전자, 중성자, 중성미자도 스핀 1/ 2 에 의해 동일하게 특징을 부여할 수 있다. 광자와 같은 다른 입자들은 반대로 스핀 1 을 가지고 있다. 1/2 의 스핀을 가진 입자들과 l 의 스핀을 가진 입자들 사이의 차이는 매우 심한데, 1/2 의 스핀 입자들은 피울리의 배타 원리에 따른다. 드 브로이는 이 원리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배타 원리는 파동 역학의 발달에서 만난 개념 중에서 고전적 관념 으로는 가장 해석하기 어렵고 가장 놀라운 법칙 중의 하나이다 .91

9) Lou is de Brog lie, 『물리학과 미시물리학』, 50 쪽(원주) .

1 의 스핀을 가진 입자들은 이 절대적인 배타 원리의 관할권을 벗어 난다 . 이 첫번째의 변증법은 다음의 변증법에 영향을 가져온다. 1/2 의 스 핀을 가진 입자들은 아주 특수하고도 놀라운 통계인 페르미-디랙의 통계를 따르고, 1 의 스핀을 가진 입자들은 보즈_아인슈타인의 통계를 따른다 .10) 이에 대해 드 브로이는 말한다. 한편으로는 1 의 스핀과 1/2 의 스핀 사이의, 다른 한편으로는 보즈

10) 양성자, 중성자, 전자와 같은 입자는 1/ 2 로 측정되는 스핀을 가지고 있으며 〈페 르미온〉이라고 불린다. 스핀이 정수로 나타나는 입자는 〈보즈-아인슈타인 통 계〉를 만족하며 〈보손〉이라고 불린다. 알파 입자와 광자가 그 예이다.

의 통계와 페르미의 통계 사이의 이러한 대응은 입자에 대한 일반이 론의 근본적인 사실 중의 하나이다 . Il )

11) Lou is de Brog lie, 『파동역학에서 핵이론까지』, 1 권, 81 쪽(원주).

그런데 스핀 개념에 의한 변증법의 힘은 훨씬 멀리까지 간다. 하나 의 입자 구조 속에서 결합된 상이한 입자들의 스핀들이 덧붙여지므로 , 1/2 의 스핀을 갖는 입자들의 구조는 입자들이 짝수인가 홀수인가에 따 라서 현저한 특징을 갖게 될 것이댜 그런데 원자의 핵은 핵자들의 조직이댜 수소의 핵에서 초우라늄의 핵까지 핵자 숫자의 점진적인 증가를 따라서, 철학자가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짝수와 홀수의 변증법이 수립된다. 산수의 소박한 철학에서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한 짝수와 홀수의 이 변증법은 이처럼 실재의 한 복판에 등록되어 있다. 이 변증법은 사정에 밝은 물질론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안내자이다. 그러나 동시에, 추상적인 스핀 개념의 결정적 중요성 자체로 인하여 짝수와 홀수에 대한 해석의 단순함이 나타난다. 여기에서도 배우기 위 하여서는 핵의 안정성의 비교 속에서 과학 사상의 발전을 따라가야 한다. 그렇게 되면 홀짝성의 개념이 거기에서 분명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다른 관점에서, 엄밀하게 입자적인 상태는 1/2 의 스핀에 의해 특징 지어지는 것으로 보이므로, 사람들은 1 의 스핀을 가진 입자들을 1/2 의 스핀을 가진 두 개 입자의 구조로서 생각하기에 이르른다. 그래서 광 자의 파동 역학에 대한 드 브로이의 방대한 이론은 광자를 두 개의 반_광자의 결합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는 이론적 사유 작용이 영웅적 탐구 속에서 일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지휘하는 것은 진정 개념이다. 반-광자

현상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다. 반-광자 각각의 스핀 1/2 의 결합은 절대적이어야 하며 현실에서 불가분리어야 한다. 그러나 합리적이고 수학적인 구조는 기본 개념으로 가야 하는데, 스핀 에 대한 기본 개념은 1/2 의 스핀이며 스핀의 반-양자이다. 철학적 관 점에서 이 추상적 개념이 물질의 현상과 빛의 현상을 동시에 지배하 는 것을 보는 것은 인상적이다. 드 브로이가 광자의 파동 역학에 관해 수행한 탐구는 그의 물질의 파동 역학에 대한 탐구보다 철학자들에게 훨씬 덜 알려졌다. 그러나 광자에 대한 파동 역학은 역사적 변증법에 의해 끊임없이 활기를 띠는 물리학, 살아 있는 물리학의 명백한 증언 이다. 사실 광자에 고유한 파동 역학이 물질에 대한 파동 역학보다 늦 게 나타났다는 점은 놀랍지 않은가? 만일 이 질문이 뜻밖이라면 그것 은 표頂이라는 말이 가리키는 개념을 현대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인 슈타인의 광전 효과의 결과로서 광학에서 고전적 파동· 이론의 옆에 입자 이론을 수립할 때에 그래도 역시 빛 입자인 광자를 물질의 파동­ 역학이라는 새로운 학설에 따라서 취급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바 로 정확하게 말해서, 빛 입자(스핀 1) 와 물질 입자(전자, 스핀 1/ 2) 의 차 이는 완전히 새로운 검토를 요구한다. 그러나 이미지에 사로잡힌 철학자는 지나치게 표동이라는 말을 현 실로 간주한다. 표동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철학자는 흐르지 않는 물 의 물결을 앞에 둔 그의 꿈으로 되돌아온다. 그는 현상을 이론적으로 생각하려 하지 않으며, 엄격한 개념들의 엄격한 구조가 가져온 지적 명료성의 혜택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탐구하는 사유는 반대로 최초의 추상적인 개념들이 점점 더 다양해지고 확장되는 기능에 의하 여 어느 정도로 구체화되는지 경험을 통해서 안다. 현대의 물리학자와 화학자에게 스핀 개념은 구체화되기에 대한 좋은 예를 제공한다. 처음에 스핀은 아무것도, 거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양자 회 계에서 사소한 모순이자 에너지 대차대조표에서 하나의 마무리 손질

이었다. 사람들은 언젠가 스핀의 성질과 실재성을 보다 잘 이해하리라 고 기대하면서 스핀의 개념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적 근원 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점점 듣지 못하게 된다. 사람들은 이 개념에 익숙해지고, 이 개념이 기능을 발휘하는 것을 보고, 상이한 영역에서 이 개념의 역할이 확장되는 것을 보고, 그 역할들이 조직화되고, 그 기 능적 촌재가 확인되고 일반화되는 것을 보는 것이다. 연산자에 관한 다음 장에서 연산자의 성질로서 스핀을 서술할 때에 우리는 조직화의 가치에 의한, 기능에 의한 이런 개념의 존재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제 8 장 연산자 하나의 이론이 그럴 듯하게 보일 때에는 그 이 론이 틀렸다고 생각해도 좋다. FONTENELLE I 연산자 방법이 요청하는 사고의 재조직과 같은 특수한 국면에 있어 서도 현대 과학의 모든 인식론적 가치들을 지칭하기 위해 필수불가결 한 다원적 철학이 활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연산자2 ) 의 개념이 무엇 으로 이루어지는지 사람들은 알고 있다. 역학적 현상을 나타내는 대수 적 표현을 만들고나서 거기에 있는 여러 수학적 함수를 연산자로 대 체한다. 이 연산자들은 모두 파동 함수硏에 작용한다? 에너지의 대차 1) 연산자란 새로운 함수를 얻기위해 하나의 함수에 어떤 연산을 요청하는 기호 이다. f가 실변수 x 의 함수이고, 연산자 A 가 ci/ dx 라 할 때 이 연산자가 f (x) 에 적용된다는 것은 df/dx , 즉 도함수 f '(x) 를 구하는 문제가 된다 . ,p =Af= [ —ddx ] f= —ddfx = f'(x ) 2) 『현대물리학에서 공간의 경험 』 , PUF, 4 장 참조(원주) . 3) 파동 함수로 표현되는 물질의 운동 상태는 주어진 에너지(E), 운동량 (P), 각운

동량(L) 둥 물리량에 따라 고유한 운동 형태를 나타낸다. 파동 함수 ¢에 숨어 있는 고유값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수학적 기호를 이용하여 이와 같은 연산자를 정의하고 파동 함수에 적용하여 구한다.

대조표를 작성하는 해밀튼식의 연산자 방법을 적용한 슈뢰딩거는 그 렇게 해서 파동의 전파에 대한 기본적인 방정식을 만들어냈다.~ ) 이처 럼 간결하게 요약된 그러 한 대 입 subs tituti on 은 아마 이 해하기 어 려울 것이지만 적용에 있어서는 무척 단순해서 자동적으로 표현법을 변화 시킨다. 규정된 규칙에 의하면 운동량 px 성분을 연산자키(h/ 2 7[) • aI a x 로 바꿔야 한다. 만일 운동 모멘트가 자승에서 작용하면, px2 은

4) 이를 슈뢰딩거 방정식이라 하며 연산자 표현 방법은 Hr /J =E r/I로써 H 는 가 능한 역학적 에너지의 수학적 표현이다.

h 8 h 8 h 82

(—i —2 ,r —ax) (— i• 2,r ax ,),, 즉 , —(, 2,r ,)2 ax2

으로 대체될 것이다 . 여기에서 8/8x 는 연산자에 제공하는 함수를 x 에 대해서 미분하 라는 뜻이며 ,5) 82/8 균은 연산자가 작용하는 함수를 계속해서 두 번 미분하라는뜻이다.

5) f(x , y)에서 x 만의 영향에 의한 f의 변화를 알고 싶은 경우, y를 상수로 취급하 고 x 에 관해 f를 미분하면 된다. 이를 편도 함수라고 한다.

이러한 대수적 조작이 쉽기는 하더라도 우선 보기에 그 목적을 알 수 없고 즉시 철학적 의미를 분간할 수 없어서 이러한 방법과 더불어 우리는 형식주의의 한복판에 있다는 인상을 갖게 된다. 그러니까 이러한 방법 속에 숨어 있는 모든 내용을 느끼게 하기 위 해 많은 배려가 필요할 것이다. 실상 우리는 예민한 지점, 철학적 역전 의 중심부와 관계하고 있다. 가능한 한 실재와 가까이 있으면서 선행 하는 대수적 기법이 만든 것은 여기에서 가능성의 평가로 변형되어야

한다. 하나의 특정 현상에 대해서 이 방법은, 모든 가능한 경우에 대해 확률 계수를 할당하면서, 현상에 대한 가능성의 계획을 세우고자 한다 . 형식주의의 순간은 말하자면 과거의 지식과 가능한 미래의 예측 사이 에 있다. 실재론, 형식주의, 확률주의라는 다양한 철학들이 합리주의의 지배 아래 놓여 있는데, 이 합리주의는 현상의 실재적 파악과 대체의 형식주의 그리고 확률의 해석을 동시에 조율한다. 하나의 구체적안 철학적 문제를 취급하기 위하여, 특정 현상의 경험 전반에 걸친 정보에 대한 이 새로운 관점들이 어떻게 측정 개념의 철 학을 근본적으로 바꾸게 하는지 앞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II 측정은 측정 연산자의 고유값에 의해 지정된 양만을 결과로 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파동 역학에 내재하는 합리주의에서 근본적인 원리 들 중의 하나이다. 새로운 이론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누구나 이 원리가 수수께끼처럼 보일 수도 있다 . 이 원리의 철학적 관점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측정 개념에 관련된 모든 철학을 혁신해야 한다. 일상 생활은 측정 개념을 정확하고 명백한 경험의 모델로 삼는다. 자 나 저울을 다루는 것, 이것이야말로 이론의 여지 없이 명백한 현실주 의 속에 우리를 자리잡게 한다. 측정의 결과를 예측한다고? 이것이 무 슨 필요가 있겠는가, 왜냐하면 대상이 거기에 있고 언제나 있으며, 대 상을 측정하기 위한 장치가 준비되어 있고 언제나 기능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측정은 가장 엄격한 객관성의 경험으 로 통한다. 측정은 오류로 인하여 손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오류를 참작하고 또 오류가 우연적인 것인지 체계적인 것인지 나 아가서 개인적인 것인지에 따라서 분류할 줄도 안다. 그러한 오류의

예측에 이어 사람들은 측정의 객관성을 확신한다. 이런 객관성을 그들 의 사유와 경험의 토대로서 제시하는 학자들의 선언들을 어렵지 않게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과학적 실재성은 측정된 실재성 이다. 물론, 측정으로부터 출발한다고 선언하므로 측정의 결과에 대해서 는 경험에 앞선 모든 확언을 거부한다. 그렇다면 방정식 하나를 보고 어떤 현상에 결부된 실험적 측정의 결과들을 지정할 수 있다고 주장 하고 게다가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말할 수 있으며 모든 가능한 경우의 확률을 선험적으로 a prior i 정할 수 있다고 믿는 수학자의 태도 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뉴턴과 같은 천문학자가 하늘의 사건들 을 예측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슈뢰딩거와 같은 학자는 측정의 사건들 을 예측한다 . 오직 철학적 관점의 전복만이 그러한 인식론적 혁명을 정당화할 수 있다. 여기에서 일종의 선행하는 합리주의가 구체화되는데, 이 합리주 의는 잘 정의된 유형의 측정이 충족시켜야 할 모든 조건들에 대해서 상세한 연구에 착수한다 . 이 조건들은 진정한 조건들의 집합을 형성하 는데 이는 논리적 일관성에 있어서 경험적 측정의 단순한 주의 사항 들의 목록을 능가하는 것이다. 슈뢰딩거 방정식은 말하자면 측정의 유 기적인 계획인 이 조건들의 집합을 나타낸다. 그런데 측정 조건들의 이 러 한 결구 coor din a ti on 는 안이 하게 선험적 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우리는 단순히 기능적인 것으로 지칭되는 이 선험적 추리롤 잘 다듬어서 만들어야 한다. 이 선험적 추리를 상정하기 위해서는 철학자에게 섬세의 정신을 활 용하라고 주문해야 한다. 두번째 상황의 구성에서 기본적인 재구성으 로써 기능하게 될 이 선험적 추리는 실험적 원천에서 끌어온 자료나 나아가서 고전 역학의 조사 방법을 이용한다. 그러나 이 모든 지식들 은 처음에는 경험적 성격을 지녔지만, 기능적 합리주의로써 두번째 상

황의 합리주의에서는 참으로 다시 의미가 부여된 것이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문제가 수소 원자의 가능한 모든 에너지준 위 energy level 를 알아야 하는 것이라면 양성자의 전기장에서 움직이 는 전자의 에너지에 대한 고전적인 식을 써야 할 것이다. 수소 원자는 양성자인 핵과 핵 주위를 도는 전자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 에너 지는 운동 에너지와 위치 에너지의 합이어서 위치 변수와 운동 모멘 트의 함수인 해밀턴 함수로 이끌어진다.

H (x, Y, z, Px, PY, Pz) = —2—m1 -(Px2 十 값 + 값) — eU)

(U는 퍼텐셜 함수)

6) 핵 주위의 전자인 경우, 운동 에너지= 강 mv2= 강 m(v;+v;+ 균)= 盆 {(mvx)2 + (mvy ) 2 + (mv 泊 = 点(p; +p; +p~) 핵 주위를 회전하는 전자 하나에 대한 위치 에너지는 핵과 전자 사이에 쿨롱 힘 Coulomb fo rce 에 의한 퍼텐셜 U 만 존재하므로, 위치 에너지 = 전자 전하 량 X 핵과 전자 사이의 퍼텐셜 함수= _e U. H 는 해밀턴 에너지 연산자이므로 H = 운동 에너지 + 위치 에너지 =김;(p;+p計파)― eU

경험주의자는 여기에서 운동 에너지와 퍼텐셜 개념의 경험적 기원 을 강조하기에 좋은 조건에 있다 . 그 말대로 고전 역학에서 0 으로 놓 은 위의 식은 수소 원자의 전자의 운동에서 특수한 경우에 적용된 운 동에너지의 정리를 나타낸다.?) 그러한 방정식은 실재에 대한 탐구과정 의 결말로써 나타난다. 그래서 퍼텐셜함수 U 를 규정한 각각의 특별한 경우에 수학적으로 이 방정식을 풀기만 하면 충분할 것이다 .8)

7) 고전 역학에서 에너지는 입자가 갖는 스칼라량으로서 상수의 의미를 지닌다. 수소 원자 자체를 하나의 고립된 계로 가정하면 외부에서 에너지 입출력이 없 기 때문에 윗식에서 H = O 이다. 이를 역학적 에너지 보존 원리라 한다.

8) 뉴턴 법칙을 이용하여 F=m 강곤 =一 e~U 로부터 가정된 운동 형태와 특정 값 U 를 이용하여 속도 Y, 위치 ;를 시간의 함수로 계산한다.

고전적 정보를 결정하는 이 방정식은 파동적 정보에 착수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고전 역학은 끝나고 여기에서 파동 역학이 시작된 다. 파동 역학은 다른 대수적 기법 즉, 적용된 합리주의의 특징적인 방 법으로 발전하면서 자신의 실재성을 찾아나서는 대수적 기법 속에서 다시 시작한다 . 파동 역학은 고전 역학의 결과들을 사용할 때일지라도 선험적 추리 의 사용을 요구할 권리가 있으며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할 필요가 없 는데, 그 입장의 확실성은 나중에 나타날 것이다 . 파동 역학은 역학에 서 지식의 자율적인 구성이어서 모든 개선된 구성들처럼 재구성으로써 나타난다. 구성의 형이상학이 있다면 그것은 재구성의 힘 속에서만 자 신의 진정한 가치를 내보일 것이다. 고전 역학에 대한 파동 역학의 우월성이 나타나는 것은 원자 내 운 동의 구조에서처럼 복잡한 조직의 예에서이다 . 아마도 파동적 방법론 의 교육을 위해 사람들은 단순화된 예를 고려하기에 이르렀겠지만 이 러한 교육학적 시기가 철학자의 숙고에서 유일한 토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고전 역학은 질점 mate r ia l poi n t이 어떤 힘도 받지 않을 때에 직선상의 동체의 운동을 고려한다 . m 붙춘 =0 이呼 방정식은 즉시 적분되고 임의의 초속도와 더불 어 등속 직선 운동을 준다. 그러한 결과는 관성 원리의 단순한 동의어 반복이다. 파동 역학이 이렇게 단순한 예에 대해 작업하면서 똑같이 평범한 결과를 준다고 하더 라도 놀라서는 안 된다. 직선상의 동점 movable

point , 직선이라고 하는 일차원의 세계에서 어떤 조건도 부과되지 않은 점의 속도를 우리에게 주어야 하는 연산자는 연속 스펙트럼을 준다. 가 능한 모든 값을 취해야 하며, 그 결과로 연속성은 단순화의 속성이 되 는 것이댜 보다 정확하게 말해서, 파동 방정식의 고유값들의 스펙트럼을 -(X) 에서 +(X)에서 주는 방정식 규겔 망; = a

9) 직선 운동의 해를 구하는 접근 방법은, i ) 고전 역학에서 m 겅~ = d 꿀' = 0 로부터 구하고 ii) 파동 방정식에서는 Px (fl로부터 p를 대입하면 a =Px=mvx 값을 구할 수있다.

따라서 a 의 고유값들은 -(X)에서 +(X)까지 실수값들의 집합이고 연속 스펙트럼을 형성한다 .1 0 )

10) Lou is de Brog lie, 『새로운 역학의 양자화이론 』, Par is, 1932, 164 쪽(원주) .

위에서 말한 것처럼 속도는 _ CX)에서 +CX)까지 모든 값을 취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온다. +와 -기호는 속도가 오른쪽으로 향하는가 왼 쪽으로 향하는가에 따라서 부여될 것이다. 절대값으로서 속도는 0 에서 부터 물리적 한계 속도인 c 에 의해 구애받지 않고 무한대까지 모든 값 들을 취할 수 있다. 파동 역학은 비상대론적이다. 그렇게 단순하고 분명한 것을 말하는데 웬 수학적 장치냐고 경험주 의자는 말할 것이다. 그렇게도 구체적인 경우를 나타내기 위해 그런 추상화가 필요하다니! 그런데 이 구체적인 경우라는 것이 사실은 우주 밖에 있는데, 왜냐

하면 속도의 한계 를 초과하는 속도 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속도의 한계 인 광속은 아인슈타인 시공간의 이론적 구조에 새겨져 있으며 말 그 대로 미시 물리학의 수많은 현상에서 실질적 제한 을 의미한다. 지나가 는 길에, 최초의 자명성(가장 단순한 경험으로부터 명백하다고 여겨지는 자명성)에 대한 정신의 활동을 숙고한다면, 최초의 경험을 항상 과대 평가하는 경험주의 철학자가 빛의 속도가 초과될 수 없다는 것을 이 해할 수 없다는 사실에 우리는 더 이상 놀라지 않을 것이다. 작은 속 도의 명백성이 큰 속도의 법칙을 감춘다 속도의 개념은 이론과 경험 에서 배워야 하는 최종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빛의 속도에 대한 이 여담으로 우리는 일상적인 경험적 지식이 여 기에서 무한의 개념을 동화하는 경솔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러한 지 식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무한을 구체적이라고 생각하는 개념에 추 7} 한다 . 사실은, 자신의 개념들을 보증하는 대수적 일관성 속에서 파동 역학 은 자주 무한의 개념과 연속의 개념 사이에서 하나의 관계를 발견한 다. 연속성이 나타나는 것은 가능성의 영역이 무한일 때이다 . 무한과 연속의 두 가지 성질은 말하자면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 두 성질은 구조적 결손의 징조이며, 그 결과 분석의 정지로서 나타난다. 그러나 다른 특수성, 다른 조건, 다른 연관성이 없이 무한 직선상의 동체는 교과서적인 연습 이외에 무슨 홍미가 있겠는가? 이런 〈경험〉 은 분석의 기교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의 〈사고 실험〉이다. 사 고 실험을 해야 하고 끝내야 하지만 그것은 책의 맨 앞에 나와 있기 때문에 조금도 근본적인 것이 아니다 . 현대 과학이 추상적 가치와 구체적 가치의 관계에서 수행한 독특한 역전에서, 경험주의자가 구체적이라고 간주한 단순한 경우는 추상의 지위로, 더욱이 실제적인 응용이 없는 추상의 지위로 넘어간다. 사실 각운동량이라는 연산자는 단독으로 쓰일 수 없다. 단 하나의

연산자가 역학을 만들지는 못하는데, 조건들의 체계 밖에 나타나는 단 하나의 역학적 크기는 진정으로 구체적인 역학적 사례를 가리키지 않 기 때문이다 . HI 스핀의 개념에 대해서 언급할 적에 우리는 연산자들의 구조 속에서 이 개념의 번역을 보류하였다 그런데 스핀의 개념과 이미 궤도각운동 량 개념은 연산자 개념의 기능과 이 개념이 지니는 경험적 정보력을 우리가 동시에 이해하도록 해주기에 아주· 적합한 것이다 . 회전에 대해 일반적인 직관에 따라서 어떤 동체가 임의의 축 주위 에 임의의 각속도로 회전할 수 있디는· 사실은 분명하다 . 고전 역학은 운동량의 모멘트 개념을 만들면서 이러한 자명성을 확인한다. 이 모멘 트는 동체의 운동량과 희전축까지의 거리의 곱이다. 물론 회전축은 언 제든지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운동량의 모멘트는 그러니까 벡터 M 으 로 나타낼 수 있다 . l” 운동량의 모멘트가 개입하는 고전역학의 문제들 은 임의의 세 직교축에 대한 투영을 참조하면서 벡터로서 또는 분석 적으로 취급될 수 있다 . 벡터나 벡터의 세 가지 투영은 크기나 방향에 있어서 어떤 제한도 받지 않는다 .12)

11) M=rxm-;

12) M= Mxx+My y+ M,z

양자 역학은 이러한 막연한 회전의 이미지를 심각하게 그리고 보다 심각하게 그런 이미지의 분석을 혼들어놓았다. 직관적 혼란은 두 번에 걸쳐 일어나는 것 같다. 우선 양자 역학은 벡터 쳐의 길이가 h/ 21r 의 정수배가 될 것을 요구한다 .13) 중간의 크기

13) 보어의 양자 궤도 이론에 의하면 불연속값을 갖는다.

들은 금지되어 있다. 그것은 정신이 기꺼이 수락하는 의무로서 이 의 무는 양자화된 실재에 대한 복종을 요구한다. 두번째 의무는 더욱 정 신을 괴롭히는 것 같은데, 사람들이 아마도 너무 일찍 실재성의 혜택 을 얻게 한 벡터 모멘트의 투영을 나타내는 벡터들에 대해서 양자화가 수행되어야 할 것을 요구한다. 이 두 가지 의무를 따르자면 직관적 공 간, 즉 균질이고 등방성의 공간이 분해되는 것처럼 보인다 . 사실 그런 공간은 이를테면 각의 연속성을 잃는다 . 각운동량 材과 M z 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t과 m 이 정수이고 따라서 각 a 는 cos a = m/t이 라는 관계에 의해 주어진 불연속적인 값만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명 시하면서 그림 12 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14)

14) m =kosa, m 과 t은 모두 정수이고 이므로 一¢소 m 도t, 죽 m 은 가'부터 切}지의 정수값만을 가진다.

직관적으로 연구하고자 원히는· 물리학자는 자신을 위해 양자화된 각ang le 공간을 만들어야 할 처지가 된다. 현대 과학은 이처럼 교육을 받은 새로운 직관의 구성을 요청한다. 물리학자 다윈은 양자화된 방향 들의 공간에 대한 이런 새로운 직관은 곧 〈자연스러워〉진다고 말한다 . 정신은 그 말대로 디산성이 있고 점점더 분명한 기능을 가진 인위적 수단을 수월하게 〈길들인다.〉 등방성 공간이라는 최초의 직관이 효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유익한 직관의 구성을 지연시킬 수도 있다는 것은 아마 사람들이 개념의 현실 성을 과대 평가했기 때문일 것이다. 측정의 경우에서처럼 사람들은 여 기에서도 마치 크기나 회전에 관해 서술해야 하는 미시 현상을 정말 로 가지고 있는 것처럼 정보를 생각한다. 반대로 연산자 개념은 이를 테면 검토의 합리적 자세를 과대 평가하면서 곧 새로운 전망들을 열어 줄 터인데, 이런 전망들은 고정되고 변함없는 것으로 간주된 대상에

굽 = Pxl + PyJ + P J<이다 .

이 때, I • l = J • J = K • K = l IXl=J X J = K XK =O I X J= K J x K =I K XI =J J x I = -K K x J = -I I X K= -J이다. 식을 전개하면, 파 (xi +yJ +zK) x (px l +pyJ +p,K ) = (yp, -zpy)I + (zp x -xp, )J + (xp y -Y Px)K =Mxl+M yJ +M,K 가 되어 Mx = YPz -zpy 가 된다.

이 장의 처음에 언급된 연산자의 형태로 놓 으려면 p 7. 를 _ 』21_ri 고a- z 에'1 -의1-해·1 -그-리,고- J1)-y' Y를= -_ 21hr_i 」ai Y- 로 대체해야 한다.

(M 깁 。P. = -;2:;-h-r- -‘-:- (z ~88y -Y 一8 _8 z― )

(M 사 。p와 (Mz) op에 대해서도 유사한 식을 얻는다. 이 기본 연산자들을 가지고 전체 운동량 모멘트에 해당하는 연산자 를 구성하면, 최초의 양자 이론이 얻은 결과를 개선시키는 결과를 얻 는다.

Mx2 + M y2 + Mz2 = M2

그 말대로 최초의 양자 이론이 e2 」4 7\( 을 알려준 반면에 , 연산자에

의한 처리는 M2 의 가능한 값에 대해 t(t + 1) 」4 :7C 깁全 준다. t은 양쪽에 서 모두 정수이다. 그런데 스펙트럼 현상울 치밀하게 규명하는 것은 계수 k 이 아니고 계수 t(t 十 l) 이다. 실험적 서술에서 찾아진 계수 t(t + l) 은 이제부터 양자론적 합리주의의 구축에 의해 이해된다. 그러나 연산자에 의한 정보는 새로운 관념으로 이끈다. 연산자 Mx, My , M 초 서로 교환하지 않는다 즉 연산자들의 곱은 숫자들의 곱처럼 교환이 가능하지 않다. 이 교환성의 결여는 양자 역학에서 연산자가 얻어내려고 하는 실체 들의 동시적 측정에 대한 불가능성의 신호이다 .17) 그것은 미시 물리학 의 기본에서 하이젠베르그의 원리로 새겨져 있는 근본적인 원리이다. 드 브로이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17) 두 연산자 A, B 의 교환 가능성에 대한 수학적 표현은 [A, B] = AB -B A 이며 A,B 가 교환 가능할 경우 [A, B] = 0, 죽 AB = BA 이다. 이 식의 물리적 의미는 두 가지 다른 측정 A, B 는 그 순서가 바뀌어도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 따라서 . A, B 의 측정이 동시에 가능하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개념 은 불확정성 원리와 직접 연관된다 . 죽 [A, B]*O 인 경우 AB*BA 이기 때문에 A 에 대한 측정의 결과가 B 의 측정에 영향을 주고 그 역도 성립해서 A, B 를 동 시에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특히 우리는 M 라 My 같은 두 가지 성분에 m 겔와 m' 갱; 형 태의 확실한 값을 동시에 부여할 수 없다 .18 1 그 결과로 우리는 벡터 모델과 전혀 모순되지 않고 또한 예전의 양자 이론이 만난 어려움은 제거된다.

18) MxMy =\cM y M x, 죽 동시에 Mx, M 澤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

미시 물리학에서는 벡터 쳐울 구축할 수 없다. 그래서 고전 역학의 모델에 의존한 벡터의 직관적인 구축은 직관적으로 풀리지 않는 문제

를 제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측정에 대해 사람들이 수월하게 부여하는 객관성에 대한 믿 음을 뒤흔드는 측정의 새로운 학설에 직면해 있는 셈이다. 최소한, 가 능한 여러 측정들을 체계적으로 관련지으면서 그러한 객관성은 대상 의 단순한 실재론을 거부하는 방식에 따라서 재고되어야 한다. 연산자 M 넵 M 초 서로 교환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 이 연산자 들은 동시적 측정의 대상이 될 수 있다 . 달리 말해서, 우리는 벡터 모 멘트의 길이와 임의의 축에 대한 하나의 투영을 동시에 알 수 있다. 스핀 연산자들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댜 스핀을 연 산자처럼 생각하면 처음에 벡터처럼 비유된 스핀이 제기하는 어려움 울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 스핀을 연산자로서 생각하는 이러한 입장 은 이 개념에 할애된 장에서 우리가 소개한 의견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합리적 정보가 지배적인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것은 경험의 실재론을 자신의 보호 아래 두며 너무 현실적인 표상을 형식 적으로 금한다. 우리는 그러한 개념들과 더불어 철학적으로 극히 민감 한 지대에 있는 것이다. 아마도 모든 뉘앙스를 없애는 것은 쉬울 것이다. 예컨대, 현실적인 양상에 만족하고, 전자가 스스로 회전하고 이로 인해 자기장을 만든다 고 여전히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론은 단순한 형식주의이며 상징 의 체계를 조직한다고 거꾸로 말할 수도 있다. 나아가서 명석판명한 관념이라는 합리주의에 의존하면서 이런 이론을 고발할 수도 있고, 이 모든 구축물들을 인간 이성의 안정적인 토대를 방해하지 않는 인조적 인 구축물로 간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철학적 단순화〉는 철학적 사유로부터 경탄할 만한 유연성의 훈련을 박탈한다. 왜냐하면, 파동 역학과 더불어 새로운 현 상, 실재성의 친근한 전망에서 나타나지 않는 현상을 이해할 것이 우 리에게 요청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들을 달리 이해할 것이 우리에

게 요청된댜 그것은 어떤 초월의 전망 속에서나 찾을 수 있는 형이상 학적 상황이다 . 그런데 이런 초월은 여기에서 미세하고 부분적인데, 바로 이 점이 아마도 위대한 철학의 경멸을 정당화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합리주의는 그의 과업의 실증성에 집착한다. 양자 역학과 특히 연산자 역학은 합리주의에게 초합리주의에 대한 아주 명확한 연습을 제시하므로, 정확한 철학적 문제에 마음을 두는 철학자는 현대 과학 사상의 합리적인 가치와 실재론적인 가치의 변증법이 극도로 미묘하 게 나타나는 이런 첨단적인 문제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제 9 장 파동 역학의 직관 조그마한 동그라미들이 무한정 확대되면서 나타 났다 . 그것은 사람들이 정신을 뺏기는 놀이 같았다 . Franc;o is de LIGNERIS, 『 작은 괴물의 소문 』 I 과학 문화에서 직관은 통제되고 논의되고 정리되었을 때에 한해서 유익할 수 있다. 특히, 직관은 현상에 대해 직접적인 지식을 줄 수 없 으며 이미지에서 관념으로 가기 위해서는 머나먼 길을 가야 한다. 파 동과 입자의 변증법을 보다 정확하게 연구하게 될 다음 장을 준비하 기 위해 이 예비적인 장에서는 근본적 개념의 토대에 있는 몇몇 파동 적 직관을 규명하고자 한다. 드 브로이가 말하는 것처럼 파동 역학에서는 고전적 의미의 운동에 대한 고찰로부터 출발해 서는 안 되고 전파 방정식 pro pa ga tio n eq ua ti on 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1)

1) Lou is de Brog lie, 『새로운 역학의 양자화이론.!I, 1932, 42 쪽(원주).

그 다음에 실재론자의 필연적인 질문을 만날 것이다. 우선 무엇이 전파되는지 말해 주시오. 왜냐하면 존재자의 행태 이전에 우리는 존재자를 정의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오 그러나 이런 거친 언행은 시기 적절하지 않다. 파동 역학이 자신의 주제를 순서대로 소개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그 다음에 이미지를 소 개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우리는 그것이 이미지라는 것을 알 것이다 . 벌써, 돌의 낙하에 의해 동요된 잔잔한 물의 표면을 달리는 동심원 들 앞에서 조금 숙고를 한다면 큰 교훈을 배울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국부적인 동요의에 수평 운동의 전파롤 보는데 특히 일종의 운동의 운 동인 전파롤 본다. 운동에 대한 실재론적 직관에서는 보통 운동이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물체의 이동을 말하며 이동하는 물체를 보지 못하면 운동의 개념을 적용하는 데에 주저할 것이다 . 그러나 연못의 중앙에서 가장자리로 전파되는 동심원들의 현상에서는 중앙에서 주변 까지 구체적인 이동은 없다 . 잔잔한 물 위를 달리는 것은 물결이지 어 떤 사물이 아니다. 일정한 동체 대신에 우리는 힘을 받은 매질을 연구 해야 한다. 가벼운 충격이 전 표면을 진동하게 한다. 이 현상을 잘 설 명하고 현상의 모든 상황들을 통합하기 위해 기초적인 교육법은 체계 적으로 질점이나 동체에 결부된 운동에 대한 극단적인 실재론적 직관 에 대항해야 했다. 그래서 물결 위에서 방사형 모양의 이동 없이 상하 로 움직이는 병마개의 이미지와 방사형 모양의 운동을 분리하고자 노 력한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방사형 운동의 의관인데, 왜냐하면 사물주의적 철학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어떤 것도 방사형으로 이동하 지 않기 때문이다. 이 단순한 경험에서 우리는 그 자리에서 진동하라

는 명령을 신호처럼 소지하고 물 위를 미끄러지는 말하자면 추상적인 운동에 직면한다 . 이 명령은 아주 충실하게 전달되어서 중앙으로부터 등거리에 있는 모든 점들은 동시에 진동하기 시작한다. 너무 이르게 구체화된 관념의 위험을 느끼는 명석한 교육자는 파동 의 전진의 개념, 진동 운동의 전파라는 근본 개념을 이해시키기 위해 은유적안 이미지의 도움을 청할 것이다. 여기에 하나의 이미지가 있는 데 이는 부아스 Bouasse 와 브리자르 B ri zard 의 교재에 암시되어 있고 파동 물리학의 기초 교육에서 우리에게 좋은 결과를 준 것이다 . 21

2) BOUASSE, BRIZARD, 『 수학교실의 물리학』, 1918, 195 쪽(원주).

군악대가 전체 연대의 보조를 맞출 적에 소리와 박자를 전달하는 환경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물리적 매질이 아니다. 음악과 보조(步 調)의 관계는 단순한 대응이며 하나의 단순한 대수 함수이다. 병사는 금관 악기의 소리를 들으면서 발걸음을 옮긴다. 그는 개인적인 보조를 연대의 음악에 맞춘다 여기에서 병사는 단순히 공명 연산자이다. 소 리가 그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입자도, 추진력도, 에너지도 아니며 다 만 하나의 신호, 즉 평보로 행진하라는 명령이다. 이 율동적인 명령의 전달과 실행의 관계를 연구하기 위해 대수는 어떤 구체적 비유보다 더 적합하다. 확실히 비물질적인 무형의 교훈은 아주 분명하고 양호해 서 소리의 전달 속도와 발걸음의 정상적인 박자를 알면 우리는 간략 하게 군대 행진의 파장이라고 부를 수 있는 〈파장〉을 알아낼 수 있다. 바람결이 물위를 흐르듯이 이러한 군대의 파동이 연대에 퍼져나간다. 그리고 사태는 진전되어 파동 물리학의 모든 개념들이 이제 언급한 은유에 관하여 실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일정한 간격에서 군악대와 동일한 보조로 기운차게 동시적으로 행진하는 소대들을 보 게 될 것이다. 그 소대들은 물리학에서 파장이라고 부르는 거리에 의 해 서로 떨어져 있을 것이다. 이 소대들 중에서 정확하게 반대편으로

행진하는 다른 소대를 만날 수 있는데 이들은 매 반파장마다 일어나 는 상p hase 의 지연을 보여줄 것이다 . 만약 연대장이 〈제자리걸음!〉을 명령하고 또 다른 군악대가 연대의 후미에서 연주한다면, 반대 방향에 서 전파되는 명령들의 간섭 현상을 보게 될 터인데 동시에 정반대의 명령을 받은 어떤 소대들은 어느 쪽 발을 들어야 할지 몰라서 부동의 상태에 빠지 게 되는데 이는 정지 사인꼴 sin u soid a l 운동의 마디 node 를 나타낸다. 정지파에 대한 어려운 강의는 이렇게 해서 새로운 예증을 갖게 될 것이다. 좀 엉뚱하지만, 음악과 규율의 결합된 효과에 의해 일체가 된 연대 의 예는 진동성 전파의 개념적 관계에 대해 종합적 전망을 준다 . 이러한 이미지에 의해서 사람들의 정신을 전파라는 추상적 관념에 초대할 수 있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 파동 역학의 발전이 우리로 하여 금 가장 간단한 경우에 6 차원을 갖는 배위 공간 co nfig ura ti on s p ace 에 서 전파에 대하여 말하도록 할 적에 이 전고柱즌 개념들의 상호 의존 관 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하고 드 브로이가 조언하듯이 전파의 방정식에 의거해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인식론적인 가치들에 관심을 갖게 하자마자, 거기에서 실재론적인 이미지의 과부하를 제거하자마자, 몇몇 예전의 문헌들은 피상적인 독 서가 놓친 의미들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호이겐스는 파동의 전 파에 있어서 동체의 이동이 확실히 없다는 점을 잘 이해했다 . 그는 직 선상에 맞대어 정렬된 마노로 만든 공에 대한 실험을 서술했는데, 줄 의 첫번째 공을 치면 오직 마지막 공만이 줄에서 벗어나면서 충격 에 너지의 전달을 나타낸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왜냐하면 만일 운동이 또는 운동에 대한 성향이 연속적으로 모든 공들을 통과하지 않는다면…… 이 공들은 모두 다 같이 전진할 터이 지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3)

3) HUYGHENS, 『전집』, 9 권, 472 쪽(원주) .

우리는 공에서 공으로 전달되는 〈운동의 성향〉이라는 기묘한 의미 를 강조하였댜 이 개념에 대하여 회고적인 토론을 벌릴 수도 있겠고 거기에 불가사의한 특성이 없는지 자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그것은 다만 역설적인 전달을 이해시키기 위 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물리 현상을 이해시키고 이해하고자 하는 필요성은 정신을 끊임없이 중용의 길로 이끄는데 여기에서는 파악해 야 할 개념이 정확한 실험적 지위와 합리적 지위를 갖출 때까지 이미 지들은 차례차례 현실화되고 탈현실화되어야 한다. II 기묘한 사례에 의해 파동의 전파에 대한 지나치게 실재론적인 이미 지를 추방했기 때문에 보다 실재론적인 이미지, 교육의 관례에 보다 적합한 이미지를 생각해 보자. 모든 교사는 제자리에서의 진동 현상과 파동의 전파 현상을 연관지워야 할 의무에 처해 있다. 여기에서 파동· 적 합리주의의 최초의 특징을 지니는 개념들간의 맥락에 관한 하나의 사례가 설정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파동의 전파를 탐구하는 기초 물리학 교수가 연못의 물위에 병마개 룰 위치시키는 상황을 보자. 그는 방사형 운동의 부재와 그리고 병마 개의 위치가 수면의 어디에 있든지 간에 진동 운동의 한결같은 주기 를 확인시킬 것이다. 모든 병마개들은 단일한 진동수, 단일한 주기를 가지고 있다. 주기 T 나 진동수 N = 1/T(N 은 초당 주기의 수), 이것이 모든 파동 현상의 일반적인 특성이다. 파동은 주기를 가지고 있는 것 이다.

아마도 초보적으로 여겨지는 이런 지적은, 모든 병마개들이 동일한 진폭으로 진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바로 보여주면 보다 의미를 지닐 것이다. 중심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진폭은 감소하며 그래서 진폭은 파 동의 일반적인 특징이 아니다. 파동 역학이 발전됨에 따라 파동 운동 의 진폭은 말하자면 이차적인 성질이라는 점이 보다 잘 이해될 것이 다 . 이러한 성질은 세기 i n t ens ity나 나아가서 존재 확률과 관련을 맺어 주어야 할 것이다. 현상의 실재론적인 서술에 있어서 여기에는 긴요한 선별이 있는데 철학자가 숙고해야 할 선별이다 . 현상의 합리적 조사에 서 진폭 현상은 구성의 두번째 단계에서야 고려될 것이다. 진폭이 근본적인 성질이 아니라는 이 사실만으로도, 공통 주기 T에 따라 올라가고 내려가는 병마개의 속도 역시 근본적인 성질이 아니다. 국소 운동 local mouvemen t으로부터, 지 향된 현상학은 따라서 주기 T 만을 취할 것이다. 그런데 제자리 운동의 주기 T 의 시간 동안에 파동의 운동은 전파 속도 V 로 전파된다 . 그리고 모든 국소 운동들은 동일 주기 T 를 가지 고 있으므로 거리 L( = VT) 에 의해 분리된 동체들에 대한 국소 운동 을 검토하면 이 운동들이 엄밀하게 동시적임을 알 것이다. L 은 파동 운동의 파장이며 제자리 운동의 주기와 전파 속도를 연결하는 개념이 다. 이런 개념들간의 관계는 과학 문화의 훈련으로서는 아주 기초적인 것이지만 철학적으로는 복잡하다. 〈단파〉나 〈장파〉라는 명칭에 우리를 익숙하게 만든 무선 전신 언어의 사용은 파장 개념의 근본적으로 복 잡한 특징을 지워버린다. 그러니까 철학자는 L = VT 라는 근본적인 관계가 요청하는 개념적 종합의 노력에 대해서 강조해야 한다 . 만약 파장이 견고하고 분명한 합리적 지위를 갖지 못한다면, 마음속에 그려 볼 수 없을 정도로 파장이 작은 감마선으로부터 라디오 장파의 파장 에 이르기까지, 파장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데 어려움을 느낄 것이 다. 라디오파의 경우, 약 만 분의 일 초의 영역인 시간적 구조와 약

50km 의 ,영. 역 인 공간적 구조를 결부시키는 일은 쉽지 않다 . 그러나 합 리주의의 지배력이 현상학을 지배하게 해주며 50km 의 헤르츠 파장은 라디오의 기사에게는 전적으로 명백한 개념이다. m 파장 개념의 형성에 대해 역설하였는데, 우리의 교육적 경험이 이 개념을 해명하기가 언제나 용이하지는 않다는 것을 가르쳐주었기 때 문이다. 그처럼 간단한 개념에 대해서도 실재론자와 수학자 간에 토론 이 전개될 수도 있다. 실재론자는, 자연에서 파장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하면서 그리고 파동의 단면 사진을 찍으면서 파동을 고정시키고 두 마루 cres t 사이의 파장을 측정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유리한 조건에 있다. 하기야 음향학은 현이나 통화관 등 수많은 실험에서 파장 개념 의 실재성이나 정상파의 최대폭이나 마디의 실재성을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토론은 그렇게 확인된 사실로 끝나지 않으며 그 개념을 개념 들간의 관계 속에 참여시키고 현상의 합리화에 대한 증거품으로 삼아 야 한다. 이렇게 되면 수학자가 개념을 책임진다. 파동의 주기에 정현 곡선의 성질을 부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중요한 연역의 장이 열린다. 실재론자가 기복이 있는 선을 보는 곳에서 수학자는 사인 곡선을 본 다 . 그들이 현상을 좀더 자세히 검토하면, 사실을 서술하는 것으로 그 치는 경험주의자는 손을 들어야 할 것이다. 파동 현상에 대하여 연구 계획을 제안하는 사람은 명백히 수학자이기 때문이다. 삼각 함수의 사 용이 없는 간섭 현상의 분석은 무엇이 될 것인가? 주기 현상 전체를 사인 곡선들의 합으로 환원하는 푸리에 정리 4 ) 는 어떤 면에서는 진동 4) 프랑스의 수학자 푸리에 (Fo uri er, 1768-1830) 는 1822 년 『열의 해석적 이론』을

발표하고 푸리에 급수의 이론을 전개했다. 그 내용은 임의의 함수가 어떤 구간 [a, b] 에서 사인 s in e 과 코사인 cos i ne 의 합의 형 태로 된 삼각 함수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운동에 대해 하나의 수학적 존재론을 확립한다. 열전달 방정식에 의거 해서 수립된 푸리에 공식은 불후의 가치가 있다고 할 정도로 특수한 물리적 직관으로부터 독립적이라고 네론스트 Nems t는 말했댜 물리 현상의 지식에 대한 수학적 정보의 지배력을 이 보다 잘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제 10 장 입자-파동의 이중성 병적 쾌감인가 아니면 직관적인 진실의 파악인가? I 이제까지 우리는 독자들을 판에 박은 직관과 일상 경험으로부터 취 한 개념들의 위장된 명확성에 대해 경계시키는 일에 전념해 왔다. 그 래서 분산된 지식들을 합리적으로 종합할 가능성을 가르쳐줄 수 있는 훈련된 직관에의 길을 준비하고자 했다. 또한 단순한 변증법의 관성과 위험을 지적하였다. 파동과 입자는 상보적인 개념이라고 입문서에서 물리도록 반복해서 말한다. 그런 책의 독자는 세부적으로 죽 그 기능 에 있어서 상보성을 검토하려는 배려 없이 즉시 그러한 변증법을 받 아들인다. 그는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 속에 있는 무언가 조화를 잃은 것을 헤아려보지 않는데, 이러한 이중성은 철학적으로 일(一)과 다 (多),” 불연속과 연속, 실재성과 개연성의 대립으로서 반향한다. 이런 1) 신플라톤학파의 유출설(流出說)에 의하면 , 세계의 성립은 절대적인 〈일자(一

者)〉에서 출발하여 차례로 완전성이 적은 하급의 존재들로 흘러내린다고 함으 로써 설명된다. 물질계는 유출의 최저 단계이다.

대립들은 단순한 기호들의 유희나 논리적 역(逆)의 거래로 분석되어서 는안된다. 확실히 과학 사상은 외관상 반대되는 개념들 사이에서 연관성을 설 정하기 위해 노력한다. 과학 활동이 몰두하는 것은 논리적 구분에 관 해서가 아니다. 여기에서 논리학자는 소용이 없으며 그들은 다만 개념 을 강화할 뿐이다? 반대로, 입자와 파동의 개념을 이를테면 탈현실화 해야 하며, 두 개념이 거의 추상적인 상태를 통과하도록 해야 한다. 그 러고 나서야 비로소 보다 정확하게 그들의 실현 가능성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 점을 납득하기 위해서는 디랙의 경고를 숙고하는 것으 로 충분할 것이다.

2) 저자에 의하면, 논리학자는 전투 수칙에 따라 지휘하는 융통성 없는 장군과 같 다. 그래서 적은 항상 아군의 기도를 간파하여 공격은 계속 실패하게 된다 . 과 학의 진보는 급변하는 상황에 따라 공격 방법과 공격 지점을 계속 변화시케야 하는 전투와 흡사하다. 다른 한편, 형식 논리에서 모순은 패배의 징조이지만 지 식의 진보에서 모순은 승리를 향한 첫걸음이 된다.

파동과 입자의 개념은 하나의 유일하고 동일한 물리적 실재를 서 술하기 위 해 사용된 두 가지 추상 작용으로서 간주되 어 야 한다. 이 러한 실재성을 입자와 파동을 동시에 지닌 서로 반응하는 그 무엇으 로 상상해서는 안 된다. 또한 입자의 실제 운동을 설명하면서 동시 에 입자와 파동의 관계를 올바르게 묘사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구축 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3)

3) DIRAC, 『양자역학의 원리들』, 1931, 번역본, 2 쪽(원주).

파동과 입자 사이에는 어떤 방향으로든지 간에, 파동에서 입자로 가 는 또는 입자에서 파동으로 가는 인과율의 원리를 적용해서는 안 된

댜 여기에서는 고전역학에 불가결한 인과론의 테두리 밖에 있어야 한 다. •1) 결국, 입자에 대한 고전 역학을 따르자마자 현상을 단순화하게 되 고 그렇게 되면 입자의 존재론적 독립을 암암리에 선언하는 셈이다. 사람들은 지정된 대상 , 그 통일성이 보장된 대상, 운동에서 추적된 대 상, 그러니까 추상화를 거친 대상에 의거하여 배운다고 주장한다. 이 러한 추상화가 〈자연스럽고〉 또한 감각에 의해 수행된 추상화를 연장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추상화를 위한 추상화라 면 자연스런 추상화가 아니며 수학자의 정돈된 추상화, 수학적 추상화 롤 선택하는 편이 더 좋다. 언젠가 입자 과학과 파동 과학 사이에 화 해가 있다면, 그러한 화해는 파동화와 입자화라는 두 가지 수학의 상 호 침투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 5 ) 프랑켈은 고전 역학에서 새로운 역학 으로의 이행을 허용하는 추론 조건들을 명시해 주는 수학의 통합 작 용을 강조했다.

4) 양자역학의 이상적인 결말은 입자와 파동 사이에 일종의 동일화하는 인과관계 를 설정하면서 단 하나의 개념으로 그 둘을 결합하는 데에 있다고 보는 메이에 르송의 입장을 비판하고 있다 . 5) 입자와 파동은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연결된 것이 아니다 . 그들의 결합은 수학 적 연역에 관한 것으로써 경험의 서로 다른 수학화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철학적 의미들이 간직되어야 한다. 특히, 과학을 절대적 경험주의나 무절제한 합리주의로 구분하려는 이중적 철학적 열광을 자제해야 한다. 뷜 Buhl 이 시도한 어떤 적분면의 변형 defo r - ma ti on 과 파동의 전파 사이의 비교는 무척 시사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교가 물리적 경험을 총체적인 수학화로 이끌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정확히 말해서, 물리학자는 파동과 입자 개념의 이중성에 대해 결코 분명히 알 수 없다. 이 두 개념들은 동일한 실재론적 무게, 동일한 철 학적 무게, 동일한 역사성의 무게를 갖지 않는다 . 뷜이 하나의 방정식 이 몽즈―암페어 Mon g e-Am pe re 라는 복잡한 이름을 갖는 것을 보고,

여기에서 몽즈의 수학과 암페어의 물리학의 심오한 결합을 본다고 감 탄할 때에 그는 암페어의 이중적으로 조명하는 천재성에 페를 끼치는 것이다 . 아마 20 세기에 나온 파동-입자라는 새로운 이중성을 19 세기에 형성된 기하학적 이중성 원리 61 에 대한 철학적 방식으로 해석하는 일 은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이중론의 철학적 상황은 아주 다 르다. 수학적 이중성은 전적으로 균형잡힌 것이어서, 동일한 기하학적 본질을 말하는 데에 두 가지 완벽한 방식이 있음을 증명한다. 물리학 적 이중성은 절름발이여서 동일한 현상을 두 번에 걸쳐 말하는 것이 아니다.

6) 쌍대의 원리 princ ip le of du ality라고 한다 . 어떤 기하학적 명제에 포함되어 있 는 〈점〉이나 〈직선〉의 용어들에 대해 〈점一직선〉식으로 교환해서 얻은 새로운 명제를 처음 명제의 〈쌍대〉라고 한다. 쌍대 관계에 있는 명제는 둘 중 하나만 성립하면 나머지 하나도 성립한다. 논리학에서도 이 원리의 적용 사례를 볼 수 있다 .

II 이제 비교들의 나태성을 보여주는 많은 언급들을 모을 수 있겠다. 그중에서 하나의 예를 적나라하게 들어보자. 그러면 덜 지독한 유추를 차단하도록 우리를 도와줄 무의식적인 심리 분석을 얻게 될 것이다 . 『존재와 무』의 끝부분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 기원에서부터 그리고 모든 존재론적 의미와 더불어 연속과 불연속의 이율 배반, 세계의 남성과 여성의 정반대 극들을 파악하는데 나중에 양자 이론과 파동 역학에 이르기까지 그 변증법적 발전을 보게 될 것이다 .7)

7) Jea n-Paul SARTRE, 『존재와 무』, 692 쪽(원주).

양자 역학에 성적 특질을 부여하는 이런 관점을 중지시키기 위하여 우리는 사르트르의 파동에 게 상파뉴 Champ ag n e 사람식으로 말하겠다. 조심해 이 귀여운 파동아! 너의 치마 밑에 광자들의 무리가 있지 않니 ? 8)

8) 빛의 이중성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말이다.

때로 관념의 이미지로의 이완은 과학 언어에 어떤 편안합을 줄 수 도 있다. 양자 화학은 그래서 독신의 전자라든가 역의 스핀을 가진 전 자들의 짝짓기에 대해서 말한다 . 그러나 이런 이미지들은 관념 다음에 그들의 기능을 찾는다. 반대로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때로 이미지를 관 념 요대 놓는다. 물질에 대해서 말하자마자 그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연금술사로 보인다. 어찌되었든 간에 물리학적 사유의 엄청난 작업을 음미할 수 있는 것은 논리 기호의 이론이나 실존주의적 의미 이론에 의해서가 아니다. m 드 브로이는 그의 최초의 연구들의 종합적 의미를 본인 스스로 강 조했다 . 그는 빛의 이론과 물질의 이론 사이에서 일종의 우주론적인 균형을 수립하고자 했다. 파동론적 원리 아래 상당히 많은 현상들을 바람직한 정확성으로 체계화한 빛의 과학에 입자론을 복귀시킨 아인 슈타인의 영웅적 결단에 뒤이어 광학은 입자 현상과 피~ 현상의 이 중성을 받아들여야 했다. 다르게 말하자면, 1905 년부터 광자와 파동이 라는 두 원리가 광학 현상의 두 영역, 죽 복사 현상학의 두 영역을 설

명하는 데 필수적임이 밝혀졌댜 맥스웰의 전자기학에서 연속적인 법 칙에 따르던 복사는 전자를 방출하는 광전 효과에서 불연속 현상을 나타낸다 . 20 세기 첫 사반세기에 확대된 광학, 이중호閔 광학은 그렇게 나타났다. 전자 공학은 그 당시 이중화되지 않았다. 음극선의 성질에 대하여 숱한 주저 뒤에, 사람들은 음극선 다발의 입자성을 단정하게 해주는 확실한 실험들을 축적했다. 음극선들은 전자들의 다발이었다. 페렝 Jea n Pe rri n 의 실험은 전자의 구체적 실재성을 확인하면서 그리고 전 기 입자의 역학적 작용을 고찰하면서 수월하게 해석되었다. 드 브로이의 존재론적인 문제가 결정적으로 제기되는 곳이 바로 여 기이다 . 만일 빛 입자가 파동의 법칙에 따른다면 왜 전기 입자 또한 파동의 법칙에 따르지 않을 것인가? 전자에 대해서 파동적 현상을 발 견할 수 있다면 광학과 전자 공학 사이에는 양쪽 모두 입자적 현상 과 파동적 현상으로 이중화되어 완전한 존재론적 유사성이 성립될 것이다. 그 뒤에, 전자에 대해 제안된 현상학적 추이가 이 입자의 전기적 성 질을 함축하는지 물어야 할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전자가 파동적 특 성을 갖는 것은 그것이 전기적 입자이기 때문인가? 사실은 그렇지 않 다는 점을 사람들은 곧 알 것이다. 즉시 전기적인 것뿐만 아니라 모든 역학적 동체에 파동적 수단을 결부시켜 주는 하나의 일반화가 제안되 었다. 그러니까 복사 입자와 복사파라는 이중성과 전적으로 유사한 물 질 입자와 물질파라는 이중성이 확립되는 것을 보게 된다. 드 브로이가 이 위대한 우주론적 종합을 제안했던 시기에 사람들은 파동적 해석을 받을 수 있는 어떤 전자 현상도 알지 못했다. 경험주의 가 아무것도 제공할 수 없어서 합리주의가 모든 일을 해야 했다. 수정 되고 보완될 수도 있는 개념들의 체계를 조직하면서 문제는 합리적인 구축의 길에 의해 접근되어야 했다. 이 개념 체계는 처음부터 합리성

의 영역인 이론 파동 역학을 만 들 었다. 이 책에서 우리 들 의 역할은 독 자 를 과학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의 철학적 가치 를 분명히 드러내는 데에 있으므로 우리는 파동 역학의 원래의 인식론적 발견은 바로 철학적이라는 점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은 확실히 운동의 철학을 근본적인 진리 속에서 복잡하게 만드 는 새로운 관점이다 . 이 관점은 일상적인 경험에 기초한 설명의 특권 을 파괴한다 . 만약 새로운 학설의 뛰어나게 철학적인 성격을 주목하기 를 거부한다면, 그것은 현대의 철학이 점점 과학 사상의 검토를 등한 시하기 때문이다. 과학에 어느 정도 주의를 하는 철학자들까지도 철학 을 과학 다음에 위치시킨다 그들은 철학 활동이 라이프니츠 시대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과학 활동과 함께 간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파동 역학과 양자 역학을 가지고 우리는 직접 다(多)의 운동에 접근한 다. 운동에 관한 모든 철학들은 새로운 토대에 따라서 재고되어야 한 다 . 그러한 확대의 철학적 중요성은 막대하다. 철학적 사색이 이렇게 확대된 역학과 다시 접촉하면서 제한된 기계론에 대한 비판들은 목표 롤 잃을 것이댜 그러나 새로운 역학의 철학적 참여에 대해 더 이상 강조함이 없이 파동 역학의 근본적인 개념들의 합리적 구축에 대해서 윤곽을 잡아 보자. IV 파동 역학에서는 기본 개념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본 개념들의 맥락으로부터, 기본적 간(間) 개념들로부터 출발한다. 이 관 계들 중에서 첫번째 관계는, 에너지의 현대적 개념에 대한 장의 마지 막에서 그 혁명적 중요성을 지적한 질량과 에너지의 관계이다. 어떤

힘도 작용하지 않는 질점에 대하여 이 방정식은 아래와 같다.

W =m c2

(c : 빛의 속도, W : 물체의 에너지, m : 물체의 질 량)

우리는 이 관계에서 하나의 공동 정의를 보아야 한다. 만일 하나의 입자에 질량 m 을 부여하면 우리는 동시에 그 입자에 에너지 W 를 부여 하는 것이다. 반대로, 어떤 현상이 에너지를 이용하면 이 에너지에 질 량을 부여해야 한다. 일반적인 역학적 현상에서 이 질량이 지극히 근 소하다고 반박하는 경험적 주장을 염두에 둘 필요는 없다. 이 기본 관계와 더불어 물리학자가 자신의 구축의 시발점에 태평스 럽게 악순환을 자리잡게 한다고 사람들은 비난할 것인가? 헤겔의 교 훈을 잊은 논리적인 철학자는 물리학자에게 하나의 내용을 한꺼번에 정의하라고 요구할 것인가? 그러나 바로 여기에서 일종의 선험적 종 합 판단이 나타난다. 근본적인 것은 관계이며 이 관계는 파동 역학의 모든 과정에서 기능적으로 근본적인 것으로 남을 것이다. 이러한 관계 가 고전적 과학 사상에서 전례를 가지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 19 세 기에 사람들이 알고 있었던 것 속에서 어떤 것도 이러한 관계를 가르 칠 수 없었다. 한편 W = mc2 이라는 공식은 보편 상수 c2 과 함께 현대 역학의 근본 적인 변화의 징조를 지니고 있다. 고전 역학에서는 그 어느 것도 설령 그것이 빛의 속도일지라도 특정한 속도에 보편적 의미를 줄 수 없다. 빛의 속도를 경험의 합리적 구축의 부품으로 삼기 위해서는 빛의 속 도를 보편화하는, 죽 합리화하는 완전히 새로운 제도가 필요하다. 이 기본 공식은 우리가 적용된 합리주의의 활동으로서 지적한 이 본질적 인 동화력의 훌륭한 사례이다 . 아인슈타인의 공식은 그러니까 고립된 개념들의 단순한 모자이크가 아닌 것이다.

V 우리는 현상을 조회하는 좌표계를 명시하지 않고 W = mc2 이라는 관계를 제시했다. 상대성 원리는 정지 질량과 운동 질량을 다른 것으 로 간주한다. 에너지값을 명시하지 않을 때에는 똑같은 대비를 해야한 다. 예로서 하나의 운동하는 동체는 그를 동반하는 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운동 에너지를 진짜로 갖지는 않는데 이는 일상적인 직관에게는 자명하게 보인다. 그러나 모든 관념적 존재자들은 특정계에 준하여 정 의되어야 한다. 상수 c 만이 상대성의 처음 공리에 의하여 축의 계에 대한 조회를 벗어난다. 특히 한 계의 정지 질량과 이 계의 에너지 사이에 일반적인 관계는 아래와 같다.

(1) w 。 = moc2

(지표 0 은 정지를 명시한다 . )

부동의 축들의 계로부터 아래의 관계를 갖는 것은 이 계에 대하여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움직이는 입자를 검사할 때이다.

(2) W = mc2

여기에서 W 에는 이른바 운동 에너지의 일부가 있는데 이 에너지는 고정 계 fixed s y s te m 의 관찰자가 사용할 수 있는 에 너지 이다. 이 에 너 지는 (2) 식에서 (1) 식을 빼면 바로 얻어진다.

W —W 。 = (m —I1lo )c2

그러나 상대성의 가장 변함없는 방법 중의 하나는 하나의 기준계에 서 다른 기준계로 넘어갈 적에, 달리 말해서 상대방에 대해서 운동중 인 두 관찰자가 동일한 현상에 관계되는 그들의 측정을 비교할 적에, 개념들이 변형되는 방식에 의해 개념들을 특징짓는 것이다. 그것은 활 동적 객관성의 진정한 원리인데, 이런 객관성은 서로 다른 운동중에 있는 두 관찰자의 운동 관계의 차이를 무시하면서 어떤 대상에서 동 일성을 가정하는 데에 만족하지 않는 꼼꼼한 객관성이다. 상대성은 운 동 질량과 정지 질량이 아래의 관계에 의해 연결되었음을 보여준다.

l11o

m= 广

이를 (2) 식에 대입하면

moc 2

W= 广

이 되고 따라서 에너지 사이에는 다음 관계가 성립한다 .

1

(3)W=-·Wo 言

그러나 만약 주기 운동을 생각하면 로렌츠 변환에 대한 유일한 고 찰이 두 계에서 진동수를 연결하는 다음의 방정식에 이르게 한다.

1

(4) v=-· vO 曰

기준계의 변환에서 유사한 법칙에 따라서 국면들이 변한다면 이 국 면들은 객관적으로 연관되었다고 정당하게 가정할 수 있을 것이다 . (3) 식과 (4) 식의 비교는 객관적인 관계로서 아래의 식을 시사한다.

W=kv

(k 는 비례 계수)

그런데 광자, 즉 광입자의 착상으로 이끈 광전 현상을 연구할 때에 우리는 전적으로 유사한 간단한 방정식을 제안하도록 촉구되었던 것 이다.

W=hv

즉각적인 개념적 유추가 미정인 채로 있었던 상수 k 를 플랭크의 보 편 상수 h 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도록 이끈다. 이와 같이 광자이든 전자든 모든 입자에 대해서 우리는 에너지 W 에 진동수 v 를 결부시킬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진동수라는 파동적 측정을 에너지라는 역학적 측정에 결합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이제 정확한 진동수의 측정을 가지고 전자의 역학적 운동을 파동현 상의 언어로 나타내자면 파동의 전파 속도인 상p hase 의 속도를 부여 해야 한다. 이 파동의 속도를 u 라 하자. 다음에 u 가 관계식 UV = c2 에 의해 입자의 속도 v 에 연관되어 있음을 알 것이다. 그때, 똥일한 존재 에 대해 하나는 파동성에 다른 하나는 입자성에 부여된 이 두 개의 속

도가 제기하는 어려움에 되돌아올 것이다. 입자에 부여된 에너지 hll 와 입자의 운동량 사이에는 일반적인 관 계가있다.

에너지

운동량= 속도 hv p= u

기본관계 .-l =u/ 11 를 대입하면, P =h/.-l가 되고 이로부터,

A = h— p

만일 p = mv 라는 고전적 표현에 만족한다면 _ 이 는 상대 적으로 미미한 역학적 속도를 가정하는 것인데―一아래의 기초 방정식을 얻 는다.

..-lm=hv -9)

9) 이러한 파동을 드브로이 파라고 한다. 빛의 이중성이 받아들여질 당시, 자연의 대칭성에서 암시를 얻은 드브로이는 1924 년 그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물질 입자 도 입자성과 함께 파동성을 갖지 않겠느냐는 대담한 착상을 하였다. 이제 운동 하는 입자는 그 질량과 속도로부터 전해지는 파장과 진동수를 갖는 파동으로써 간주된다. 그래서 빛의 운동량p=h/ A 는 물질 입자에 대해서도 성립한다고 가 정하여 물질파의 파장 A = h/ mv 가 된다. 이 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100 g의 질량을 가진 돌맹이가 초속 lOOlcm 의 속도로 달린다고 가정하자.

A = \·0\xx11넓 = 6 . 6 x1 0-32cm

이러한 파를 인지하는 것은 현존하는 어떠한 장치를 사용하더라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전자의 경우에는 전혀 사정이 다르다. 전자의 질량은 10- 7:lg이고 1 볼트 전압의 전기장 속에서 가속된다고 할 때 속도는 초당 6 x 107cm 가 되어,

A = 6.6X10 꿉 늑 10-7cm

6 X l07Xl0 꿉

이 정도의 파장은 대략 X 선의 파장에 해당하며 충분히 인지될 수 있다. 드브로이의 논문이 나오고 3 년 후, 미국의 데이비슨 Da vi sson 과 거머 Genner 는 전자선을 니켈 결정에 쏘아서 전자선의 회절 무늬를 얻었는데, 이는 전자가 물 결(파동)이 아니면 생길 수 없기 때문에 결정적인 실험이다.

질량 m 과 속도 v 를 가진 입자의 운동에 결부된 파동 현상의 파장은 이처럼 아주 간단하게 결정된다 .IO I

10) 위의 식을 mv = h/ ,l 로 변환해서 생각해 보면, 운동량은 질량에 비 례하므로 좌변은 입자에 관계되는 양이고 우변에는 파동에 관계되는 양이 나와 있다. 이 때에 h 는 두 양 사이의 관계를 정해 준다.

이 여러 공식들의 간단한 대수적 변화를 주의깊게 추적하는 철학자 는 여기에서는 고등 수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개념들의 이동에 관한 것이 문제라는 점을 납득할 것이다. 드 브로이가 처음에 A = h/ mv 에 의해 고전 역학과 파동 역학의 두 가지 현상학을 결합하기 위해서 이 룬 종합의 노력을 따라갈 적에 우리는 개념들의 결합을 〈원〉이나 〈자 발적 운동〉으로 간주한 헤겔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구축 물 속에서 우리는 확대하는 합리성의 필연성을 볼 수 있다. 헤겔은 말한다. 순수한 본질성의 이러한 운동은 일반적으로 과학의 성격을 구성 한다 . 내용의 결합으로써 간주되는 이런 운동은 필연적이며 유기적 인 전체 속에 내용을 확장하는 것이다 . 이 운동 덕분에 지식의 내용 에 도달한 길은 그 자신 유용하고 완전한 생성이 된다. 지식의 이러 한 준비 과정은 더 이상 철학의 우발적인 방식이 아니다…… .LLL

11) HEGEL, 『정신의 현상학 』, HYPPOLITE 번역, 1 권 , 32 쪽(원주) .

파동 역학이 요청하는 개념들의 첨가를 따라가면서 현대 물리학의 확장적인 합리주의가 무엇인가를 잘 검토해야 한다. 개념들의 연결은 이를테면 사후에 필요해진다. 우리는 지식의 조직력을 확장하는 일종 의 유추된 필연성에 직면해 있다. 협약주의나 형식주의 같은 평범한 주제는 팽창하는 합리성을 오해할 것이다. 이렇게 연결된 개념들의 수 준에서 파동역학이 발전하면서 요청하는 고도의 수리화 이전에 우리 는 개념들의 자율적인 조직화를 포착한다. 몇 가지 방정식을 썼지만 우리는 그저 개념들의 존재론으로 만족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역학의 고전적 개념들과 파동 현상이 체계화하는 보다 최근에 형성된 개념들 의 두 가지 구조 사이에 종합은 분명해 보인다. 한편, 우리가 서술한 인식론적 운동의 포섭적 성격을 특기해야겠다 . 전자의 파동화를 위해 수립한 공식들은 광자에 대해서도 유효하다. 기 묘한 역설에 직면하게 되는데, 물질에 대한 파동 역학이 발전되었을 때 빛의 입자인 광자가 충분히 〈파동적〉으로 보이지 않는 단계가 왔 다. 그래서 광자의 파동 역학을 구축해야 하는 필요성에 직면했다. 그 것은 결코 후퇴가 아닌 하나의 섬세하고도 새로운 변증법이다. 1 장에 서 언급한 대로 호이겐스에서 뉴턴으로, 뉴턴에서 오일러로, 오일러에 서 비오로, 비오에서 프레넬로 가는 기나긴 변증법을 아주 미묘하게 계승하는 이런 움직임을 잘 주목하자. 엄밀하게 현대적인 차원에서 프 레넬의 파동설은 광자와 더불어 아인슈타인의 입자설에 의해 변증화 된다. 그러자 광입자 자신이 어떤 파동화를 필요로 한다. 이제부터 교육적으로 유익한 되풀이에 의해 다른 방법으로 동일한 근본식 ;l=h/ mv 와 동일한 철학적 결론에 이르고자 한다.

VI 확실히 파동 역학의 성격이 드 브로이가 실현한 페르마의 원리와 모페르튀의 원리의 놀라운 종합에서보다 더 잘 나타나는 곳은 없다 .121

12) 프랑스의 수학자 페르마 (Ferma t, 1601-l fffi)는 빛의 반사와 굴절에 대한 연구 에서 빛은 가장 짧은 시간으로 달리는 경로를 따라 진행한다는 〈최소 시간의 원리〉를 제안하였다. 자연의 경제성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역시 프랑스 수학자 모페르티 (Mau perthi s, 1 698-1759) 에 의해 처음으로 뉴턴 역학에 도입되었다. 그 러나 그는 경제 원리가 〈시간〉이 아니라 〈작용〉에 의해 가장 잘 충족될 수 있 다고 주장했다. 그는 〈작용〉을 물체가 이동한 거리 X 속력으로 잘못 정의했다. 현대적인 작용의 개념은 속력 대신에 운동량을 사용한다. 〈작용〉에 경제 원리를 도입한 모페르티는, 입자가 한 지점에서 다론 지점으로 움직일 때 그 작용의 경 로가 극소인 경로를 선택한다는 〈최소 작용의 원리〉를 제안했다. 해밀턴은 독자적으로 최소 시간의 원리와 최소 작용의 원리 사이의 유사성을 확인하고 광학과 동력학의 법칙이 모두 보편적인 최소 원리로부터 도출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를 보이기 위하여 그는 페르마 원리에 나오는 시간 대신 매 질에서 광선이 통과한 거리를 그 매질에서 광선의 속력으로 나눈 것으로 바꾸 었다.

이 두 원리를 상기해 보자. 18 세기에 페르마는 빛은 한 지점에서 다 른 지점으로 가면서 최소 주행 경로를 따른다는 사실을 원리로 제안 한다. 균일한 매질에서 이 경로는 직선일 것이다. 그러나 광선이 두 상 이한 매질에서 전파될 때에는 속도가 가장 큰 매질에서 주행을 늘리 고 속도가 가장 느린 매질에서 주행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굴절될 것 이다. 양쪽의 정확한 평형이 굴절광의 경로를 제공할 것이다. 페르마 의 원리는 목적론의 분위기에서 진술된다. 바로 라이프니츠는 그의 『형이상학 담론』에서 그가 물리 법칙의 목적성이라고 믿는 바를 예시 하기 위해 이 원리를 사용하였다. 이런 목적론의 외관은 아마도 우리 가 어떤 전달을 가리키기 위해 초기 조건을 (위치와 속도) 주면서 일반 법칙으로부터 운동을 규정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유 래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는 처음 위치와 나중

위치를 주면서 특수한 적분을 규정할 수 있다. 변분법 calculus of v ari a ti on 은 실제 경로의 이웃 경로들을 검사하면서 두 점 사이의 빛의 도정에 페르마가 설정한 최소 시간의 원리를 엄밀하게 확립한다. u 를 광선의 한 점에서의 속도라 하고, ds 를 거리의 성분이라고 하면 변분법에 의해 페르마의 원리는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l) 8 J:뿐 =O

이 식은 가변 속도 u 와 더불어 M0 에서 M1 사이의 주행 시간이 모 든 근방의 경로와 비교해서 최소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페르마의 원리가 광선의 주행을 최소로 지정하듯이 모페르튀의 원 리는 운동의 실제 궤적을 최소로 지정한다. 주어진 에너지에 대해서 근방의 잠재적 궤적들과 바교된 실제 궤적 은 모페르튀의 적분을 최소로 만든다. 이는 몇몇 대수적 변환을 거쳐 아래의 방정식에 의해 표현된다 .13)

13) 한 입자의 라그랑지안은 입자의 운동 에너지에서 위치 에너지를 뺀 것이다.

L=T-U

위치 에너지가 없을 때, L=감 mv2 작용 s= 』~ Ld t oc jv2d t = Jv • 뿔· · dt = Jvds

S 가 최소가 되려면 BS = 8 fLd t = 0 이 되어야 한다. 이식의 뜻은, 운동하는 입자의 출발점과 종착점을 잇는 경로를 따라 작용을 생 각한다고 할 때 , 입자가 실제 운동한 경로를 따랐을 때의 작용이 다른 여러 가 상 경로를 따랐을 때의 작용보다 가장 작다는 것이다. 페르마의 경우는 L 이 항 상 일정한 특수한 경우이다.

S = IL dt cc Idt = f뿌V

여기에서 최소 시간이 되려면 BS = O 이 되어야 한다.

(2) 8 LM~ 。1 vds=O

이 식들은 매우 추상적으로 보인다. 페르마의 원리와 모페르튀의 원 리의 비교를 쉽게 하기 위해 두 개의 구체적 상황을 취해 보자. 첫번 째는 광학적 상황이고 두번째는 역학적 상황이다. 첫째로, 신기루 현상을 예로 들어보자. 밀도가 다른 공기층에서 점 점 굴절된 광선은 전반사를 받아서 휘는데 그 결과로 사람들은 언덕의 저쪽편에서 보게 된다. 만약 A 라는 실험자가 B 라는 실험자에게 광신 호를 보내고자 한다면 그리고 그가 에너지 hv 를 가진 광자만을 가지 고 있다고 하면 그가 B 에 도달하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그것은 페르마의 원리에 의해 명시된 경로를 따르는 것이다 . 둘째로, 관찰자 A 가 발사체를 보내고자 하는 역학적 상황을 생각해 보자. 만일 그가 일정한 에너지로 방출되는 발사체만을 가지고 있다면 그가 B 에 도달하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그것은 모페르뒤의 원리 에 의해 명시된 궤적을 따르는 것이다. 두 그림의 비교는 인상적이다. 그렇다면 왜 두 원리들의 대조가 20 세기를 기다려야 했는가? 개념적 관점에서, 개입된 근본 개념들은 아주 다르다. 페르마의 원 리는 시간에 관계하고, 모페르뒤의 원리는 작용, 즉 에너지 X 시간에 관계한다. 이 두번째 개념은 시간의 개념에 비해서 아주· 복잡하다. 작 용의 개념은 인공적인 것으로 통할 수 있으며, 정신은 시간처럼 자연 스럽고 원초적인 개념을 작용과 같은 구성된 개념과 비교하는 것을 주저한다. 지식의 토대에 결정적으로 놓여진 단순한 개념이라는 데카 르트적 이상 속에서 시는 한, 단순한 것과 구성된 것의 기능들을 비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 그러나 궁극적인 구축의 수준에서 다시 취해진 합리적 구조에서 그리고 개념간의 맥락이라는 현실에서 철학적 문제

B

A 그립 13 A 그림 14

는 더 이상 동일하지 않다. 이때에는 원초적이든 파생적이든지 간에 모든 개념들은 그들의 역할에서 비교될 수 있다. 대수적 방법은 실재의 법칙을 생각하는 자율적인 방식이라고 이 책 에서 내내 말했으므로 혹자는 여기에서 한 가지 이의를 제기할 수 있 울 것이다. 누군가 (1) 식과 (2) 식을 비교하고자 할 때 그는 사실 기본 적인 대수적 성질을 장애물로서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말 그대 로 (1) 식에서 빛의 현상의 속도 u 는 분모에 나타나고, (2) 식에서 역학 적 현상의 속도 v 는 분자에서 나타난다. 거기에는 너무나 단순하고 명 백한 대수적 차이가 있어서 이 차이가 모든 비교를 중단해야 할 것처 럼 보인다. 어떻게 이런 대수적 차이를 초월해야 하는가? 어떻게 역학적 공식

(2) 와 광학적 공식 (1)을 동시에 생각할 수 있는가? 역학적 속도 v 와 광학적 속도 u 사이에 v =k 上u 라는 관계를 상정 하면 비교는 대번에 완전해질 것이다. 사실은 상수 k 에 대하여 빛의 속도의 자승을 명시하기에 이르렀다.

c2

v=u- 또는 UV=c2

따라서 경로와 궤적의 두 영역을 결합하는 것은 일종의 대수적 비 결이다 . 어떤 경우에는 입자적 현상학으로 다른 경우에는 파동적 현상학으 로 나타나는 이중적 현상학을 발전시키는 일은 본질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관계로부터이다 . 이런 이중적 현상학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실재론적인 철학에 지나 친 영향력을 주어서는 안 되며 현상적 성격에 무분별하게 구체적인 형태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 〈고려된 현상에서 무엇이 이동하는가?〉라 는 질문에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답변한다면 다소간 명백한 동어 반복 에 속게 된다. 광선에 의해 무엇이 운반되는가? 혹자는 빛이라고 대답하지만 보다 정확하게는 hll 라는 수학적으로 특징지어진 진동 에너지가 관계되는 일이다. 궤적 위로 무엇이 운반되는가? 〈아무렵 동체나 입자이지〉라고 사 물주의자는 답변하지만 사실은 오직 운동 에너지에 관한 문제일 뿐 이댜 따라서 실체론을 벗어나자. 입자적이니 파동적이니 하는 형용사들 의 존재론조차 넘어서자. 그리고 형용사를 넘어 첨가의 이론에 착수

하자 . 왜냐하면 바로 여기에 파동 역학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전자의 입자성에 파동성을 첨가할 수 있는가? 우리는 상대성이 가져온 질량과 에너지 사이의 유명한 관계를 자주 반복해서 말했다 . 여기에서 기본 개념이 되어야 할 것은 에너지개념이 다. 조금 전에 모페르튀의 원리를 설명하면서 실제 궤적은 이 궤적을 동일한 에너지를 쓰는 이웃의 잠정적인 궤적들과 비교 할 때 최소 작용 을 주는 궤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입자 형태의 동체의 전체 에 너지는 mc2 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파동적 국면에서 이 동일한 에너지 의 특징 부여는 hv 이다. 따라서 다음 관계가 성립한다 .

h11=me2

이 관계는 파동적 그리고 입자적이라는 두 수식어의 관련성을 설정 한다. 파장, 주기, 진동수, 전파 속도 동의 간 (r司 ) 개념들을 이용하면서 우 리는 전자 입자의 파동화를 위해 자연스럽게 다음 식들을 도입한다.

(3) ,l =~ ~ =uT

마지막으로 두 현상학의 전이식 UV = c2 울 상정하면 앞서 나온 방 정식을 도출한다.

A=— c2

V J/ h (4) ..-l = mv

그래서 입자의 파동화를 위해 (4) 식에 의해 주어진 속도 v 에 덧붙여 (3) 식에 의해 주어진 속도 u 를 고려해야 한다. 마침내 여기에 파동화된 입자의 이중적 현상학에 대한 두 개의 표 가있다.

입자성 파동성

A=— mhv `^ = —IuI

그렇다면 현상의 심오한 존재자는 u 와 v 라는 두 가지 속도를 가지 고 있는가? 그것은 상식에 대해서 또한 입자적 차원에 머물러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부조리하다. 그러나 우리가 이중적 자격 부여를 수락하자마자 그 사실은 인정될 수 있으며 그러한 이중적 자격 부여는 이중적 전문 기술에서 검증될 것이다. 만일 vc 일 것이다. 이 두번째 부등식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c 는 한계 속도로서 초과될 수 없는 속도라고 가르치지 않았 던가? 그러나 이런 제한을 부과할 때 그것은 입자의 속도에만 적용되 는 것이다. 확실히 u 는 상의 속도이다. 그래서 두 현상학은 모두 일관 성이 있는 것이다. 부등식 vc 는 간섭으로 탐지된 상의 속도를 줄 것이 다. 복사 입자인 광자에 대해서는 거의 u = v = c 이다. 광자들은 충돌 이나 간섭에 의해 탐지될 수 있다. 광자는 그러니까 매우 특이한 입자임이 판명된다. 정확하게 스핀에 관해서, 말하자면 모든 기본 입자들이 ½의 스핀을 갖는 반면에 광자

이론은 광자에 1 의 스핀을 부여해야 한다. 이미 말한 대로, 기본 입자 들이 페르미-디랙의 통계에 따르는 반면에 l 이라는 스핀은 광자가 보 즈-아인슈타인 통계에 속하도록 한다. 맨 파동 역학의 이론적 성공 중의 하나는 보어 궤도의 양자화에 가져 다준 직관적 지지였다 . 전자 입자의 실질적 주행을 추측하게 하는 궤 도-궤적 대신에 사람들은 궤도-정지 파동을 고찰한다. 입자적 관점을 파동적 관점으로 대체하는 데에 있어서 궤도의 길 이는 파장의 정해진 정수로 나누어져야 한다 . 그래서 그림 15 의 주 행 궤도 대신에 그림 16 의 마디 node 가 고정된 물결 무늬의 궤도를 갖는다 . 1 4 1

14)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핵 주위의 전자의 위치는 그림 16 처럼 정확히 알 수 없 고 다만 파동 함수의 존재 확률로만 위치를 말할 수 있기 때문에 양자 역학적 관접에서는 〈전자 구름〉으로 본다.

그림 15 그림 16

이러한 사실을 순환 적분으로 표현할 수 있다.

q Adt — =- n

여기에 A = h/m v 와 mv = p를 대입하면 ,

§ —dAt =§—p—hd t =n 또는 ppdt= nh

이 식이 바로 보어 궤도의 양자화 조건이다 .1 5)

15) 보어의 원자 모델의 첫번째 가정이다 . 27Cr = nA 에 ,l =h / mv 를 대입하면

27Cr= 器

21rr mv = nh (n 은 정수) 이것이 바로 양자화 조건이다.

이렇게 원래 상이한 영감으로부터 나온 양자 물리학과 파동· 역학은 서로를 확인해 준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림 15 와 그림 16 은 모두 지나간 역사의 한 지점 에서의 예시일 뿐이다 . 우리는 2 장에서부터 궤도의 개념은 미시 물리 학에서 부적절한 개념이라고 말했다 . 물결 모양의 곡선은 잠정적으로 직관적인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 문화의 모든 시기에 걸쳐서 사 람들은 직관이 과학 정신에게 일종의 휴식을 허용하는 단계를 찾아낸 다. 그러나 조만간 직관에서의 이런 휴식은 새로운 엄밀성의 필요에 의해서 그리고 이론들을 더욱 강하게 연결시켜야 할 필요성에 의해서 중단되어야 한다 . 양자 역학의 직관과 파동 역학의 직관이 상호간에 확인되는 이런

직관적 지식의 시기는 철학자에게는 매우 유익하다.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작업이 필요하고 거기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더욱 어 려운 작업이 필요하댜 파동 역학과 양자 역학이 더욱 진전되었을 적에 사람들은 이미지와 실재의 불일치를 보다 잘 납득했다. 실재로 간주한 이미지가 사실은 잠정적 이미지일 따름이었다는 것을 이제 우리는 알게 되었다. 그런 이미지들은 우리가 버리는 순간에도 우리를 생각하게 만들고 교육적 으로 유익한 중개물로서 되돌아온다. 이때에 과학 정신은 일종의 심층 심리를 갖게 되고, 그래서 명석성으로 향하는 과학 정신은 진정한 무 의식을 증언한다. 단순한 궤도와 물결 무늬 궤도의 싸움이 계속되지 않을지 어떨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명백한 역사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두 그림의 비교에서 우리는 지나간 그러나 교육적으로 살아 있 는 역사와 대면하고 있는 것이다. VIII 그러나 우리는 파동 역학에서 물질파의 거의 완벽한 탈현실화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아야 하고, 〈물질파는 무엇보다도 가장 바물질적이 다〉라는 말을 정당화해야 한다. 연산자 개념을 탐구하면서 우리는 어떻게 해밀턴 함수으로부터 파 동 함수의 식을 얻는지 환기하였다. 이 방법은 슈뢰딩거가 제안했다. 그의 방법은 허수 i가 나타나는 계수들을 도입한다. 때로 허수의 사용 은 단순한 계산의 중개자로서 계산의 결과에서는 더 이상 허수를 보 게 되지 않는다. 여기에서는 다른데 파동 함수 W 는 허수를 보존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것은 직접 물리적 실재에 대응할 수 없는 것이다. 파 동 역학의 〈파동〉은 단지 이 사실로부터 탈현실화된 것이다. 우리는

파동 역학을 바로 실재론적인 이론으로 만들 수 없으며 더 이상 그러 한 파동을 전달하는 〈매질〉을 가정할 필요가 없다. 얼마간의 주저 후에 사람들은 사반세기 이래 파동- 개념에 대한 모 든 실재론적인 해석을 제거했다 . 그리고 잘 알려진 것처럼 확률파라는 설명에 이르렀다. 실재론에서 확률론으로의 이러한 이행은 학자들이 쓴 책에서 길게 설명되었으므로 우리는 거기에서 철학적 결론들을 이 끌어내는 것으로 그치고자 한다. 확률 개념은 다원론과 각별하게 밀접한 관련이 있다 . 하나의 사건이 있을 법하고, 하나의 입자가 일정한 장소에 있을 주어진 확률을 가지 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들은, 동일한 유형의 사건들의 다원성을 토대로 또는 동일한 일반적 정보를 가진 입자들의 다원성을 토대로 정보를 받아들일 경우에만 의미룰 지닌다. 근본적으 로, 유일한 것은 확률이 없다. 그래서 각종의 입자들에 대한 이론은 각 종의 통계와 그리고 당연히 각종의 확률 정보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야 한다고 이해하게 된다. 여러 가지 측면에 비추어 통계적 사실은 실 재론적 사실과 확률적 사실의 중간에 있다. 이제 한 가지 결론이 불가피한데, 어떤 현상의 파동성은 하나의 존 재에 속할 수 없으며 다수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고립된 하나의 빛 입 자는 파동적 성질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파동성이 나타나는 것은 광 자들의 모임에서이다. 간섭 기술은, 간섭 장치에 들어가는 단 하나의 광자가 간섭 장치에 함께 들어가는 광자 무리의 확률적 행태를 지니 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를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실험은 확률 계산에서 살펴보면 확률론의 기본 공리를 예시할 뿐이다. 죽, 동전을 100 번 계속해서 던지거나 100 개의 동전을 한꺼번에 던지거나 앞뒤가 나올 확률은 같다. 다수성이 없는 파동화는 없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일(一)과 다년~) 의 전통적 변증법을 되살리는 하나의 결론이다. 현대 물리학에서 볼

때 이 변증법은 지극히 명료하다 . 다수성은 단순한 덧셈으로 해결되 지 않는다 . 다수성은 직접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 특성온 더해 진 존재자들의 합계가 감소할 때 명료성을 잃고 개체의 수준에서 사 라진다. IX 마지막으로 강조하고자 하는 철학적 성격은, 20 세기에 물리학을 갱 신한 모든 위대한 이론들은 고전 물리학과 고전 역학의 모든 결론을 되찾는다는 점이다. 그 이론들은 말하자면 포섭적이어서 일반화된 합 리성의 분위기로 국지적 합리성의 영역들을 감싼다. 상대론적 역학은 고전 역학을 감싼다. 고전 역학의 공식을 되찾으려 면 상대성 이론의 공식에서 빛의 속도를 무한으로 간주하면 충분하다 . 이 무한이라는 단어는 조급하게 말해진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 그러 나 사실 실험가에 의해 측정된 대로의 빛의 속도는 이미 너무 커서 원 래 생각조차 못할 일이었다. 합리적으로 그리고 수학적으로 빛의 속도 의 기호 c 와 그 크기 3 x 1010c m/ sec 를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빛의 속도를 진정으로 경험적 자료로 삼기 위한 충분한 수단이 아니 다. 물론 빛의 속도를 무한하다고 상정하면 시공간의 연결은 깨어지고 공간과 시간은 각각의 특수성을 되찾는다. 시공간에 대해서 상식적인 이론은 없다. 마찬가지로 양자 역학은 고전 역학을 감싼다. 모든 양자가 사라지고 연속성이 복구되기 위해서는 양자 역학의 공식에서 플랭크의 상수를 0 으로간주하면 된다. 동일한 방식으로 파동 역학의 고전 역학에 대한 관계는 물리 광학 의 기하 광학에 대한 관계와 같다.

상이한 영감에서 나온 이론들 속에서 이처럼 증대된 합리주의의 종 합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이론들의 결론을 결합시키는 데 성공한 많은 연구 작업을 세부적으로 따라가야 할 것이다. 예컨대, 하이젠베 르그가 행렬 계산에 기초한 양자 역학에 대하여 새로운 관점을 형성 하자마자 슈뢰딩거는 양자 역학과 파동 역학을 완전히 대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증명했다 . 이 비교에 대해 드 브로이의 명저『새물리학 과 양자』에서 명쾌한 논평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철학적 목표를 위해서는 이러한 합리적 연관성의 사후적 성 격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으로 충분하다. 양자 역학과 파동· 역학은 동일한 성찰의 중심지로부터 출발하지 않았다. 두 이론은 잘 정의된 국지적 합리주의를 구성하면서 아주 다른 지평에서 나타났다. 슈뢰딩 거의 논문들은 두 역학 중의 어느 한 편이 다론 편으로 〈번역〉될 수 있다고 증명하면서, 유클리드 기하학과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등가성을 수립하고 진정으로 범(:{}I.)기하학을 확립한 것과 동일한 인식론적 운동 를 되풀이하였다. 이제 비유를 쓰지 않고 범역학에 대해서 말할 수 있 을 것이다. 또한 가장 특이한 교훈들이 하나의 이론에서 다른 이론으로 수월하 게 통과할 수 있었던 능력을 특기해야 할 것이다. 하이젠베르그의 불 확정성 원리 161 보다 더 특수하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원리 를 확률에 자리잡은 이론에 융합시킨다는 것은 자명하지 않았다. 그러 나 양자 역학과 파동 역학의 자연스러운 비교가 이제 파동 역학의 어 16)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측정하는 데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이 원리는 입자의 파동성에 또는 파동의 입자성에 근거한 논의로부터 각각 도출될 수 있다. h 의 값이 아주 작기 때문에 이 원리가 일상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무 시해도 좋을 정도이다. 그러나 원리 자체가 소멸되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타이 어의 압력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그 안의 공기가 조금 빠져나가게 되어 타이어의 압력은 미소하나마 변화를 겪게 된다.

떤 국면을 이해하는 데 하이젠베르그의 원리 를 명시하는 부등식을 이 용하도록 해준다. 현대 미시 물리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그 원리에 대해 하나의 장을 전개하지 않았는데 우리는 전에 그 원리의 조직적 성격을 보이고자 시도한 작은 책을 썼기 때문이다 . 그러나 이 책에서 우리는 주관적 해석을 차단하는 것을 임무로 삼으므로 한마디로 그 원리의 탁월하게 객관적인 성격을 말하자 . 만일 그 원리가 〈주관성〉을 지닌다면 어떻게 그 원리가 현대 물리학의 점점더 정확한 객관성 속 에 새겨질 것인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모든 새로운 역학들은 그에 대한 연구를 아주 · 어렵게 만드는 그 들의 수학적 정보를 완화하면서 최초의 직관을 되찾는다 . 추상 작용과 직관의 끊임없는 유희가 현대 물리학에서 명백하다 . 그래서 이론의 확 장을 목표로 삼는가 아니면 명백한 원리로 구성된 원초적 중심지로 이론의 환원을 목표로 삼는가에 따라서 두 가지 합리주의적 태도가 있다고 이해하게 된다. 이성 자체도 전체와 부분의 변증법 안에서 이 해된다. 보통의 철학에서 사람들은 너무 싼값으로 이성에게 총체성의 원리를 부여하고 따라서 영구불변한 가치를 준다. 이 책에서 우리가 환기한 구체적인 문제들에 의거해서 서로 다론 종합적 구성물들이 활 동중인 것을 보게 되는데, 이러한 사실은 합리주의의 확장의 원리들은 기본적인 합리적 원리들의 단순한 발전이 아니라는 점을 증언하는데 충분하게 보인다. 그런데 우리는 명확하게 합리적 초월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가능하다고 밝혀진 과학 정신만을 안다. 이 초월성은 객 관화될 수 있고, 증명될 수 있고, 전달될 수 있고 교육될 수 있다. 아주 합리적으로 처리되고 실증적으로 분류되고 용이하게 사회화된 이 초월성이 비합리주의가 그 특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역할을 빼앗는 다고 생각하는 철학자들이 아마 있을 것이다. 초월성은 자신의 한계를 넘고 지상의 자신의 존재를 두 배로 하도록 요구한다고 혹자는 우리 에게 말할 것이다. 그러나 보다 겸허한 차원에서 우리는 이렇게 생각

한다. 즉, 자신의 최초의 분명한 관념에서 벗어난다는 사실, 결코 생각 된 적이 없는 사고를 우리에게 가져오는 끊임없이 정교하고 치밀해진 경험에 의하여 평범한 경험을 배가한다는 사실, 이런 사실들은 우리가 거기에서 과학 문화의 변증법적인-심오하면서도 촌재론적으로 변 증법적인-의미의 표지를 볼 수 있는 만큼 정신적 부활의 요인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결론 합리적 결정론과 기술적 결정론 물리적 원인을 탐구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 그러나 자연에 대한 지식이 진보하는 것은 이론 들을 만들면서 동시에 다음에는 버릴 수 있는 용기를 가질 때이다 . Bern i-N orr is RUSSELL, 『 신성과 왜성 』 I 철학적 결정론에 요약되어 있는 사상을 상세하게 전개한다면 믿을 수 없는 주장 앞에서 물러서게 되고 결국 보편적 결정론이라는 가정의 기괴한 성격을 더 이상 수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구체적 예를 들고자 하면 형이상학자들에게 무례하다는 인상을 주게 된다. 사실 그 들에게 이렇게 물어야 한다.

1) 다원론적인 인식론에서 보편적 결정론의 개념은 현대 과학의 상황과 보다 잘 일치하고 있는 기술적 결정론의 개념에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프랑스 평원에서 어떤 말의 뒷발차기가 인도네시아에 있는 송드 Sonde 군도에 있는 나비의 비상을 방해한다고 당신은 진지하게 믿 습니까? 2)

2) DIDEROT, 『물질과 운동에 대한 철학적 원리』, 1821, 2 권, 233 쪽 참조(원주). 여기에서 저자의 견해는 카오스 이론과 정면으로 대치하고 있다 . 미국의 기상 학자 에드워드 로렌츠는 1961 년 컵퓨터 기억 장치에 기억되어 있는 소수점 이 하 6 자리수 .5061 'l7에서 1/10 00 정도의 차이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506 만 을 입력하였다. 그랬더니 컴퓨터로 재현된 두 기후 형태는 점점 달라져서 유사 점이 없어진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것은 입력에서의 미세한 차이가 출력에 서 엄청나게 큰 차이로 나타나는 이른바 〈나비 효과 bu tterfly e ffe c t〉를 의미한 다 . 이 효과는 〈초기 조건에 민감한 의존성〉이리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역자로 서는 인생에서도 나비 효과가 작용하지 않는가 자주 자문한다. 어떤 사건이 발 생할 확률은 너무나 작아서 그런 사건을 대할 때마다 기적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여러분은, 간접적인 원인은 지각될 수 없겠지만 그 원인은 〈존재〉한 다고 말하면서 그렇다고 대답하는 고집이 센 철학자를 만날 수도 있 을 것이다 . 이 철학자들은 모든 사람들처럼 전혀 다른 것을 관찰하면 서도 그처럼 철학적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공간 관념의 희생자들인데 그래서 공간 관념의 특수한 존재 론일 따름인 하나의 존재 유형을 실재 re ality에 부여한다. 그들은 이렇 게 생각한다. 즉, 공간은 무제한의 〈존재〉를 갖고 있다 . 따라서 공간에 거주하는 실재는 무한 공간과 동일하게 우주적으로 결정된다. 만일 철 학자에게 실증적 경험을 환기시키면 또 만일 보편적 결정론의 철학자 에게 전자기 현상이나 화학 현상 등 특수 현상의 결정론을 연구하라 고 당부하면, 그는 무한 연장(延長)이라는 초보적 직관에 조회하면서 〈언제든지 그 어디에 있는 무엇인가는 도처에서 자신의 존재의 효력 을 나타낸다〉고 답변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철학적 결정론을 위해 다 음과 같은 문구의 지배가 시작된다 . 모든 것은 서로 연관성이 있다. 모든 것은 모든 것 안에 있다. 무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진공은 실재성이 없다. 존재는 무에 의해 제한될 수 없다. 우주는 연관성이 있는 하나의 전체이다. 철학적 결정론은 이렇게 전체성이라는 관념의 주석이 되었다. 무규 정적인 모든 것이라는 모호한 관념이, 어떤 집합의 대상들을 고려할 때 아주 분명한 특정의 대상들 전부라는 관념 대신에 자리를 잡는다. 그러나 철학자들은 라플라스의 견해에 의존한다. 우리는 우주의 현재 상태를, 선행하는 상태의 결과로서 그리고 미 래 상태의 원인으로서 생각해야 한다 . 주어진 순간에 자연에 생기를 주는 모든 힘과 자연을 구성하는 존재자들 각각의 상황을 알 수 있 는 지성이 있다면 그리고 모든 자료를 분석할 수 있을 만큼 방대한 지성이라면 그러한 지성은 우주의 가장 큰 물체의 운동과 가장 가벼 운 원자의 운동을 동일한 공식 속에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지성에게는 아무것도 불확실하지 않을 것이며, 과거와 마찬가지로 미래도 눈에 선할 것이다. 진리 탐구에 있어서 인간 정신의 모든 노 력은 이러한 지성에 제한 없이 접근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3)

3) 케플러의 〈기하학자로서의 신〉은 갈릴레이, 뉴턴, 라플라스와 더불어 〈시계 제 작자로서의 신〉이 되었다. 라플라스는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원자가 우주라는 톱니바퀴 시계의 부문품을 구성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은 서로 연관되 어 있다.〉는 말은 라플라스에게는 자명한 진리로 보였다.

철학 토론에서 자주 떠올리는 이 글은 무절제한 관념론의 혼적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똑같은 라플라스로부 터 사람들이 이렇게 되풀이 말한다는 것이다.

우주를 설명하기 위하여 나는 신의 가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 41

4) 라플라스 (La p lace , 1749-18Z7). 〈프랑스의 뉴턴〉이라 불리는 수학자이자 천문 학자. 일화에 의하면, 나폴레옹이 그의 이론에서 신이 차지하는· 자리가 어디냐 고 묻자 이와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보다 정확히 말해서 라플라스가 추측한 소박한 역학적 보편성은 하 나의 단순한 관념론적인 작용이어서 그런 보편성은 실재에 적용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인간 정신이 전우주의 가장 작은 부분에서 모든 운 동을 결정하기 위해 진정으로 노력한다면 일종의 무의미한 결정론에 도달할 터이다. 정신은 그처럼 세분화된 현상들의 메커니즘 속에서 방 황하게 되어 현상학의 다양한 의미에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사실은 과학 사상과 마찬가지로 철학 사상도 구조화된 현상, 한정된 체계 그 리고 일련의 잘 이끌어진 근사화에 의해 고립 속에서 정의될 수 있는 체계에만 관심을 가질 수 있을 따름이다. 만일 라플라스가 언급하는· 존재자들의 개념을 명시해 달라고 그에게 요청한다면 그가 어떤 의미 를 목표로 삼았는지 자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존재자들은 위치한 이라는 기능의 단순한 실체화가 아닌가? 라플라스가 일차적 자료로서 〈자연을 구성하는 존재자들의 각각의 상황〉을 요청할 적에 그는 은연 중에 지성이 자연을 분해하는 방식에 의지하지 않는가? 그는 논의되 지 않은, 실증적 경험에 조회되지 않은 관념론적 주장의 희생자가 아 닌가? 자연의 합성과 분해의 문제가 존재의 개념을 바꾸기 위해서는, 경험의 유형을 바꾸는 것으로 그리고 한가로운 정신의 첫번째 주장에 서 존재자를 상정하지 않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 는 끊임없이 우리의 철학적 원리인 존재의 영역들이라는 개념에 되돌 아온다. 과학적 사고와 실험의 실제적인 노력을 추적하면, 존재자는 아주 다양한 경험의 영역에서 지위를 확보하므로 그에 대한 공간적, 시간적 묘사는 존재를 모두 규정하는 데에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누

구나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공간적 묘사에 제한된 보편적 결정론은 비 록 단순한 관념론적 가정은 아닐지라도 현상들의 실제적인 연관성의 연구에 충분한 밑그림을 주지 못할 것이다. II 한편, 필요하다면 양자 과학에 의지하면서 특정한 국지적 작용으로 부터 전우주를 연루시킨다고 주장하는 역학적 결정론에 한계를 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어떤 역학적 현상에 개입된 에너지가 보편적 결정론이 가정하듯이 우주의 모든 점에서 감지될 수 있도록 모든 방향 으로 전달되어야 한다면 이 에너지는 곧 너무나 큰 제수(除數)에 의해 나누어져서 어떤 탐지기를 움직이는 데 필요한 에너지 양자, 보다 정 확하게 모든 자연적인 탐지에 필요한 에너지 양자 이하로 떨어질 것 이다. 이러한 제한은 확실히 인간적 수단의 불충분함에만 기인하는 것 은 아니다. 하이젠베르그 원리의 적용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문제가 되 는 것은 자연의 자동 탐지인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의 논쟁점 에 관여하게 되는데 왜냐하면, 많은 철학자들이 하이젠베르그 원리의 현실성과 합리적 가정으로서의 원리의 역할을 동시에 수용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적용된 합리주 의의 원리 그 자체라고 믿는 바에 따라서 실재론과 합리론을 강하게 연결시켜야 한다. 이처럼 역학을 양자 역학이리는· 보다 섬세한 근사화의 수준에 이르 게 하자마자 언제나 어떤 차이가 발생하는데, 이로부터 일체를 이루는 전(全)공간을 끌어들이는 절대적 결정론은 폐기될 것이다. 미시 물리 학에서 만들어진 양자 역학은 그래서 무제한의 우주라는 나태한 관점 에 대해 수정 작용을 할 것이다. 힘을 고려할 필요가 없는 직관 속에

서 운동학적 관점에 머물러 있는 한, 세계는 가득 매워진 연관성이 있 는 덩어리로 생각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세계는 데카르트 물리학 에서처럼 물화 {4 物化)된 공간에 지나지 않으며 거기에서는 기하학적 결정론만을 탐구할 것이다. 실세계와 이것이 함축하는· 동역학적 결정론은 다른 직관, 즉 동역학 적 직관을 요구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철학 어휘가 필요할 것 이다. 귀납이라는 단어가 그처럼 많은 의미를 가지지 않았더라면 이 단어를 이러한 동역학적 직관에 적용할 것을 제안했을 터이다 . 이름이 야 어떻게 부르든지 간에 동역학적 직관은 우리를 직접적인 에너지 실재론으로 끌어넣는다 . 이 에너지 실재론은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기하학적 세계가 아닌 세계에서 합리주의의 문제를 제기하게 하며, 현 대 과학에서 배우고자 하는 철학자에게 비데카르트적인 인식론에 도 달할 것을 요청한다 .51

5) 『새로운 과학정신』, PUF, 4 장 참조(원주) .

III 그러나 우주적 결정론이 논지를 얻을 수 있는 각별히 민감한 영 역이 있는데, 그것은 빛의 영역이고 보다 일반적으로는 복사의 영역 이다. 확실히 가장 멀리 떨어진 별들은 우리의 망막과 그리고 우리의 과 학적 장치에 작용한다 . 스펙트럼 분석의 기술은 그러니까 무제한의 범 위에 미치는 결정론에 논거를 줄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별적인 양 상에서 볼 때 광자는 별에서 오는 광선에 따라서 결정되고 광선은 별 에서 형성된 원자적 현상을 약화시키지 않고 완벽하게 우리에게 가져

온댜 이러한 반박을 자세히 검토하면 그것은 건설적인 반박임을 알 수 있다. 그 반박은 우리가 간략하게 선형의 결정론이라고 부르고자 하는 결정론의 한 특수한 유형과 대면하게 한다 . 실제로 빛의 현상 또는 보 다 일반적으로 복사 현상이 이처럼 모든 손실로부터 보존되는 것은, 이런 현상은 전체적 결정론의 경우에서처럼 전 공간에 관계하지 않기 때문이다. 광자는 그의 궤적에서 에너지를 보존하기 때문에 자신의 존 재를 유지한다. 광자는 궤적 위에서만 현상을 보여줄 수 있다. 추진력 으로부터 탄생해서 광자는 충돌에서 사라지므로 참으로 선형의 결정 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광선은 시공간의 하나의 측지선이라고 말하는 수학적 견해는 선형 결정론의 중요성을 강조할 뿐이다. 그건 그렇고, 우리의 철학적 사색의 수준에 머물러서 확실한 결정론 은 선형화된 결정론이라는 점을 이해하자 . 우리는 그런 결정론의 기술 적 이미지를 1 의 자유도6 ) 를 가진 메커니즘에서 찾아낸다. 선형 결정론 의 기술적 교훈을 얻는 곳은 바로 그러한 메커니즘에서이다. 경사진 홈을 미끄러지는 동체는 선형 결정론의 중요한 교훈을 준다. 푸시로드 와 크랭크는 선형 결정론에 따르는 운동 변환의 사례를 보여준다.

6) 자유도 de gree of fr edom 를 사용하면 수월하게 차원dim ens i on 의 개념을 포착 할 수 있다. 기차는 단 하나의 방향으로만 움직이므로 자유도가 1 인 일차원 세 계에서 움직인다 . 바다 룰 항해하는 배는 전후와 좌우로 움칙이므로 자유도가 2 인 이차원 세계에서 움직인다 . 날고 있는 비행기는 전후, 좌우, 상하에서 움직이 므로 비행기는 3 의 자유도 를 가지며 삼차원 세계에 속한다. 그러나 자유도는 꼭 공간적일 필요는 없다. 차원을 자유도로 간주하면, 삼차원에서 멈출 이유가 없 다 . 임의의 양의 정수 n 에 대해 n 차원 유클리드 공간이 존재하며 합으로 나타 낸다.

물론 여러 가지 자유도를 갖는 메커니즘을 계획하고 또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말이 우리를 속여서는 안 된다. 역학에서 다양한

자유도는 연쇄의 선들이다. 또한 이 다양한 자유도들이 반드시 똑같은 민감성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이때 우리가 보기 에 복수적 결정론들의 개념을 지배하는 하나의 개념이 생기는데 그것 은 기능성의 개념이다 . 현상들의 결정을 판단하는 사고는 상이한 기능적 국면들의 실질적 인 전개를 참작함이 없이 우선 기능성들 전체를 정할 필요가 있다. 여 기에서 우리의 『적용된 합리주의』의 마지막 장에서 제안한 개념을 되 찾게 되는데 그것은 위상적 결정론의 개념이다 . 이에 대해 조금 살펴 보도록하자. w 사람들이 충분히 주의하지 않는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결정론의 모 든 증거들은 하나의 현상에서 다른 현상으로 간다는 사실이다 . 현상들 의 인과 관계를 무수한 인과적 연관으로 분해하는 대신에 우리는 변 화 과정에서 명백하게 식별되는 두 국면 사이에서 원인과 결과의 관 계를 확인한다. 인과 관계를 나타내는 모든 현상학은 필연적으로 불연 속이다. 왜냐하면 원인을 따르는 결과에 대해 말할 때에 결과는 원인 과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는 현상들의 존재영역의 변화이 자 흔히 하나의 감지될 수 있는 감각의 현상으로부터 다론 감각 현상 으로의 이행이다. 열(열의 감각)은 물체를 팽창시킨디{시각적 감각). 원 인의 관념이 기본적이고 명백한 성격을 갖는 것은 이런 현상학적 불 연속에서이다. 바일 H. We y l 이 말하는 것처럼 원인과 결과는 존재의 상이한 영역에 속한다. 꽃은 열매를 준다 . 양귀비의 꽃이 다소간 붉고 씨앗이 다소간 둥근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아편은 언제나 도취 시킨다. 과학적 명칭은 비록 보다 까다롭기는 하지만 하나의 법칙에

연관된 현상들의 유형들에 대하여 역시 변동을 허용한다. 만약 가열 현상을 보여주고자 한다면 뜨겁게 달구어진 금속판에 붓는 작은 물방 울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법칙은 상이한 유형에 대해서 드러난다. 물질계의 현상들에서조차도 결정론은 유형에서 유형으로 해석될 수 있댜 유형에서 유형으로 나아가는 이런 결정론에 형이상학적인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 그것은 반대로 무제한적 결정론의 형이상학을 증거의 사실주의로 돌아오게 한다. 실험적으로 일정한 관계의 유효성을 보증 하는 모든 것은 두 개의 한정된 현상 사이에, 두 개의 식별할 수 있는 현상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관련된 두 현상은 변형에 어떤 저항을 지 녀야 하고 그들의 핵심적인 변수들에서 일관성을 지녀야 한다. 기능적 인 관점에서 현상의 다양한 기능들의 일관성과 기능들 각각에 허용된 가변성 사이에 어떤 변증법을 상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보다 정밀한 변화의 연구에서는 섬세한 기능성을 참작해야 하고 변 수들의 민감성을 연구해야 하며 변질성을 없애야 할 것이다 . 이 때에 측정들의 체계를 뒷받침해 주는 진정한 대수적 alge b rai c 결정론에 접 근할 것이다. 이처럼 현상의 측정은 선행하는 체계에 필연적으로 종속 된다. 위상적 결정론은 측정의 결정론에서 연구되어야 할 변수들의 그 룹을 결정한다 . 현상들에 대한 과다한 묘사와 채택된 변수들의 정확한 측정 사이의 중간에 있는 이런 위상적 결정론을 상정할 수 없어서 사람들은 온갖 지나친 수량주의에 빠진다. 그래서 모든 것이 측정될 수 있다고 쉽게 상상한댜 프루동 Prouhdon 이 남자 대 여자가 3 대 2 라고 말했을 적에 그는 전혀 의미가 없는 측정을 주장한 것이었다. 이 비율은 나중에 刃 대 8 이 된다. 계산할 수 없는 것을 계산하기 시작하면 어디에서 멈추 어야 할지 모르게 된다 . 프루동이 하듯이 어리석음을 세제곱할 수도 있다. 이 하나의 예로 충분한데 몰상식한 측정에 대한 자료는 얼마든

지 있다 . v 제한된 결정론, 선형 결정론, 위상적 결정론 , 계측된 결정론 둥 이렇 게 이미 많은 의미들이 결정론들의 복수성을 확인하게 해준다. 결국 모든 결정론은 부분적이고 특수하고 국부적이다. 모든 결정론은 특수 한 관점에서, 지정된 크기의 등급에서, 명백하거나 암시적으로 정해진 한계 내에서 파악된다. 역으로 우리가 정성들여 연구하는 모든 것은 일정한 결정론과 관계 된다.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 원리조차도 일정한 권한을 갖는다 . 그 것은 엄밀한 대수적 법칙과 표현을 가지고 결정론의 특수한 하나의 영역을 나타낸다. 이런 결정론의 분야에서 불확정성은 체계화되고 실 제로 관측할 수 있는 현상들 속에 노출된 것에 관해서는 예측의 장이 열린다. 그러나 과학 사상이 탐구의 모든 영역에서 결정론을 상정한다고 해 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은 결정된다〉라는 말은 전문 기술자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데, 그의 역할은, 전문 기술의 특수한 결정론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배제하려고 노력하면서, 결정론 의 한 영역에 자리잡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잡음을 몰아내고 교란 을 제어하고 블춘물 요 제거해야 하며 체계, 정상적 작동, 과학 법칙과 도구 사이의 보다 정밀한 일치를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 그의 전문 기술의 목표인 잘 정의된 결정론의 구조를 에워싸고 있는 무제한적인 결정론의 안개를 거두어내면서 점점더 잘 그의 작업을 실현시켜야 한 다. 만일 그가, 〈모든 것은 모든 것 속에 있다〉, 〈모든 것은 모든 것에 대하여 작용한다〉라는 말을 믿는다면 〈도구 의식〉을 포기하는 것이며

그의 기술적 확신의 토대 자체 를 잃는 것이다. VI 그렇다면 결정론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장악력을 서명하는 개념이 댜 결정적인 요인은 인간적 요인이댜 우리는 이 요인을 명백하게 밝 히고자 한댜 이를 위해서 몇몇 되풀이를 무릅쓰고 사태를 좀 대국적 으로 보면서 인과 관계의 개념에 대해 단순하게 생각해 보자. 그리고 어떤 새로운 힘을 지니고 이 개념의 특수성이 과학 지식에서 규정되 는지 알아보자. 우리가 결정론에 관하여 해온 모든 구분들은 몇몇 되 풀이를 정당화시키는 뉘앙스와 더불어 원인의 개념에 대해서도 다시 발견될 것이다. 인간의 역할이 주된 원인을 파악하는 데에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 실이다 . 그러나 결정론에 대한 우리의 검토를 좀더 완화시키고, 평범 한 지식의 수준에서가 아니라 현재 과학적 탐구의 수준에서 드러나는 대로의 인과 관계의 개념에 대해 성찰하면서 이 책을 끝내고자 한다. 자연적 원인의 개념은 보통 말하듯이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는 개념 이 아니다. 사실 객관적으로 인정되었다고 하더라도 원인이라는 개념 은 이 개념이 초래하는 확신의 근원에서 사고하고 활동하는 나, 행동 의 대용물로서 하나의 생각을 확인하는 나, 원인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요소를 수집하고 그 원인을 조화의 신처럼 사용하는 나를 함축한다. 이것이 소박한 차원에서 본 것이다. 그러나 과학적 차원에서 하나의 원인의 결정은 배우는 그리고 배우고자 하는 주체, 합리성의 도상에 있는 주체를 요구한다. 그래서 인과 관계의 치밀한 구상과 밀접한 관 련을 맺고 있는 하나의 전문 기술을 고려해야 한다. 인과 관계가 종합 개념의 대상이 되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이 원인의 요소들을 수집했

을 경우뿐이다. 물론 원인이 되는 요소들의 이런 수집은 중개인을 통 해서 수행될 수도 있댜 나는 〈문 제가 되는〉 힘을 지배할 수 있고 지 배한다고 믿는다 .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 인간은 필요하다면 보편적 메 커니즘을 책임진 신을 만든다 . 인과 관계의 제국주의가 존재하든가 또 는 모든 제국주의의 경우에서처럼 제국주의의 허구가 존재한다. 자연 적인 원인을 안다는 것은 우주의 주권자라고 상상하는 것이다. 이로부 터 그 당당한 겸허함으로 인해 유명한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문구 가 나온다. 하나의 원인에 대한 지식을 서명하는 제국주의는 아마도 곧 익명으로 분산될 것이다. 모든 과학은 보다 정확하게 모든 과학 공 동체는 법칙의 유효성의 보증인이댜 그러나 지식과 힘의 관계를 수립 해야 할 곳은 법칙의 세부 사항에서이다. 지식을 넘어 이해해야 한다. 이때에 비로소 이해는 절대적 권능으로서 우리에게 나타난다. 현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원인으로 작용하는 나의 자아, 내가 아는 현상의 인 과 관계를 이해하고자 하지 않는 모든 다른 주체와 토론하는 나의 자 아, 그런 자아의 일종의 가능성에 현상을 종속시키는 것이다 .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하나의 원인에 동의하는 합리적 주체에 대해 완전 한 심리 분석을 하고자 한다면 개인적인 확신의 심급이 고려되어야 한다. 거기에는 무수한 오류를 거쳐서 얻어진 합리적 의식인 하나의 논쟁이 잠재되어 있다. 확실한 것으로 간주된 원인이 망상의 배경에서 나타난다. 합리적 주체가 확실한 원인에 대한 그의 자각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서 고발해야 할 것은 이런 망상들이다. 원인은 주체의 선행하는 의식 속에서만 원인의 지위를 갖는다는 사 실은 원인의 말하자면 중앙 집권화된 성격을 고려하면 분명하게 나타 난다. 흩어진 원인들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중심적 원인을 잘 모르는 것이며 부정확한 지식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만약 주체의 활동을 실 질적으로 상정하지 않는다면 말뿐인 철학적 결정론에 빠지면서 전 우 주의 변화를 묘사해야 할 것이다. 모든 중앙 집권은 비록 은유적 표현

이기는 하지만 잠재적인 주체화이다. 중앙 집권은 고정된 중심부가 논 리적 일관성을 갖춘 이유들로 구성될 적에 객관적 기능을 갖게 될 것 이다. 아무튼 우주는 하나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우주의 생성을 고려할 수 없다 . 다만 우주에서 취한 어떤 범주의 현상의 생성에 대해서만 말 할 수 있을 뿐이댜 우리의 모든 경험과 지식은 그 전체를 생각할 수 없는 현상의 한 영역에 상관적인 것이다. 최소한 상상에서라도 초기 조건을 장악하지 않으면 인과 관계에 대 해서 말할 수 없다. 현상의 전개를 주재하는 초기 조건을 발견하면서 언제 이 현상의 전개를 원하는지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소유하게 된다. 그렇다면 원인은 전혀 경험적인 것이 아니다. 원인은 원래 언제나 숨어 있고 최초의 탐구에 들어 있는 오류 속에 감추어져 있다. 하나의 원인은 원인들의 체계 속으로 들어갈 때에만 그리고 인과적 검토롤 받을 때에만 알려진다. 예외적인 원인이란 없다. 그것은 기적이며 기 적은 가르치지 않는다. 그런데, 흄의 인과 관계에 대한 평가 절하를 이해한다면 71 가장 일반 적인 원인도 예의라는 뒷맛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말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평범화된 하나의 예외이다. 기다려야 하는 이유 없이 예외로서 가장 일반적인 원인을 기다려야 한다.

7) 흄에 의하면, 인과 관계는 경험으로부터 직접 도출할 수 없고 그것은 경험의 반복에 의해 유사한 원인에서 유사한 결과를 기대하는 인간 심리의 소산이며 주관적인 상상에 불과하다. 칸트롤 〈독단의 잠에서 깨워준〉 것은 이러한 흄의 서상이다.

그리고 원인들과 결과들의 단순한 계기(繼起)는 주체의 경험에서 표현된 시간, 인간의 시간에서의 계기이다. 인과 관계의 흐름은 직선 으로 따라갈 수 없다. 우리는 이 흐름을 항시 역(驛)에서 역으로 표현

한다 ? 결과가 마지막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보증하면서 출 발 신호를 주는 것은 합리성이다. 표현된 모든 원인이란 시동 장치의 원인이다. 우리는 전개의 원인을 알지 못한다 . 시간의 연속성을 수리 화할 때, 원인에 대한 인간적인 관념을 기능이라는 과학적 개념으로 대체할 때, 인과 관계에 대한 전문 기술에 의해 연쇄의 원리를 확립할 때 만사는 다행히도 바뀔 것이다 .

8) 하나의 매듭에서 다른 하나의 매듭으로, 또는 잘 정의된 원인에서 잘 정의된 결과로 진행되는 실험 과정을 통해서만 결정론이 확립된다는 의미에서이다.

VII 이때에 개별적인 주체는 제거될 것이다. 보다 정확하게, 임의의 주 체의 능력이라는 형태로 인과 관계를 생각하도록 허용하는- 결정적인 도치룰 실현해야 한다. 이 임의의 주체는 지식의 경험주의에 경도된 경험적 주체일 수는 없다. 그는 자신의 보편성의 확실함을 분명하게 아는 합리적 주체이고, 과학자 사회의 주체이다 . 수학적 함수로 진술된 원인들의 합리성은 합리적인 것과 실재의 이 중적 객관성에 도달하는 것을 보증한다 . 원초적인 형태에서 인과 관계 는 마술이자 물활론이었다. 즉, 모든 것이 심리적 구름에 뒤섞여 있는 , 무의식이 유착된 수준에 매여 있었다. 가장 정교한 과학적 형태, 치밀 하게 구상된 수학적 형태에서 인과 관계는 천재성이다. 이 점을 납득 하기 위해서는 과학사에서 힌트를 얻으면 된댜 모든 위대한 원인들, 모든 위대한 원리들은 성(姓)을 가지고 있다. 거리의 자승에 반비례하 는 중력은 뉴턴과 결부되어 있다. 전기적 원인은 아주· 많은 천재들과 연관되어 있어서 이들은 서서히 익명이 된다 . 지상에 인간이 없이는

번개에서 천둥으로 가는 인과 관계 외의 다른 전기적 인과 관계는 없 댜 오직 사회만이 전기를 전선에 보낼 수 있다. 오직 사회만이 전기 현상에 전선의 선형적 인과 관계를 줄 수 있다. 푸엥카레는 만일 과학 의 역사에서 무선 전신이 유선 전신보다 먼저 발견되었더라면 후지는 · 전자의 개량이었을 것이라는 점을 주목하게 했다. 자연적인 수단으로 소리를 한 대륙에서 다른 대륙으로 전달하는 것 은 불가능하다. 전자 공학의 중개가 필수적이며 이런 중개는 인간적이 고 사회적인 것이다. 생물권 위에 그리고 전리층 아래에 인간은 탁월 하게 기술적인 인과 관계에 종속되는 무선 전신 영역을 규정하였다. 이 기술은 잡음과 자기 교란에 의해 방해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잡 음과 자연에 의해 야기된 무질서는 합리적, 기술적 조직의 힘을 보다 잘 이해하게 할 뿐이다. 기술적 인과 관계는 자연의 혼란한 인과 관계 에도 불구하고 견고하게 확립된다. 르페브르 He nri Le f ebvre 가 아주 잘 말하듯이. 생산 활동은 자연적 대상을 결정론으로 개조한다. 생산 활동의 다 양성은 상이한 과학, 기술 그리고 지식의 전문화와 관련된다. 활동적 인간이 그러니까 결정론의 사슬이다. 이어서 그는 이런 구분을 약화시키지만 인간적 징후를 떠나지 않는 다. 우리가 보기에 이것은 결정론을 결정하는 요인이다. 이와 같이 결정론은 특수한 결정론들의 규정 이전이 아니라 이후에 일반적인 학설이 된다. 결정론을 보편적 결정론으로 상정하는 것은 특 수성을 규정하려는 노력을 방해하는 것이며 특수한 결정론에 이르고 자 하는 인간의 노력을 중단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술적 물질 론과는 아주 다른 말하자면 물질의 필연에 빠질 것이다. 정확하게 르페브르는 과학적 결정론의 강호떤 성격을 강조하면서

인간적 요인의 중요성을 본다. 모든 결정론은 실천적인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객관적인 조작에 의하여 자연의 무한한 실재로부터, 교란 원인으로부터 그리고 모든 우연으로부터 벗어난다. 모든 결정론은 하나의 강화된 계열이다. 명제와 반대 명제의 종합을 이루는 것은 기술적 결정론의 이러한 강화이다. 사실 일종의 부정성 ne g a tivity의 전문 기술이, 간접적 원인 이나 외부적 원인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필요한 모 든 방벽을 기술적 설비를 갖추고 수립한다. 모든 전문 기술은 자신의 자율적인 결정론을 확인하면서 이렇게 라플라스의 결정론을 부인한다. 제거된 교란이나 강화된 결정론의 활동을 보기 위해서는 무선 전신의 기술과 같은 기술의 개선을 추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러한 활동은 이론과 기술의 긴밀한 협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강화된 결정론은 이 해된 결정론이다. VlII 현대적인 형태에서 과학 사상의 비약적인 발전은 천재성과 기술의 긴밀한 상호 의존 관계로서 나타난다. 그래서 자연은 그 신비에 있어 서 정복되고 그 힘에 있어서 정복되어 두 번 정복된다. 인간은 자신의 사고에 질서를 부여하고 동시에 자신의 작업에 질서를 부여하면서 자 연을 정돈한다. 이렇게 합리주의는 변증법적으로 작용한다. 합리주의 는 성찰의 철학이라고 우리가 말한다면 혹자는 군더더기 말이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미 성찰의 결과인 기술에 대하여 실제로 숙 고한다면, 과학적 사유에서 끊임없이 이론에서 기술로 그리고 새로운

기술적 성과에서 이론의 재주조로 가는 회로가 우리에게 새로운 활기 를 준다는 점을 이해할 것이다. 이론과 전문 기술의 이러한 강하고도 불가결한 연관성은 몇 세기전 수학과 실험 과학이 분리된 때에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인식론적 결 정론으로서 그리고 아주 특수한 인간적 결정론으로서 진술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9) 두 개의 항, 두 가지 방법을 가진 이러한 결정론의 중 단은 생각할 수 없을 것이댜 사고와 과학적 실험에 의한 이러한 결정 론은 이중적인 다산성을 나타낸다. 그러한 결정론은 인간의 의미를 확 대할 것이다.

9) 인간적 결정론은 합리적 이론과 실험 기술 사이에 변증법적 상보성의 관계를 설정한다. 보다 일반적으로, 인과율과 결정론의 관계에 대해서 알아보자. 인과의 원리란 모든 사건은 어떤 원인의 결과라는 주장이다 . 이 원리는 보편 타당한가? 이 질 문은 중요한데, 왜냐하면 만일 이 세계에 있는 모든 사건들이 선행하는 상태에 의하여 엄밀한 법칙에 따라서 결정된다면 우연이나 의지의 자유가 개입할 여지 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인과율의 원리에 보편타당성을 안정하는 주장이 결정론이며 그렇지 않을 때 비결정론이 된다. 고전역학에서는 초기 조건을 알면 과거든 미래든 모든 상태를 알 수 있어서 결정론적이다. 그러나 양자 역학에서는 양자 도약q uan tum jum p 에서 보듯이 h 의 상태를 안다고 해서 t2 의 상태를 알 수는 없다 . 그래서 결정론 은 붕괴된 것으로 보인다 .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바결정론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신은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경험의 결정적인 국면들이 과대 평가되는 유기 적인 결정론의 개념과, 다른 한편으로는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명백하 게 효력이 없는 세세한 부분에 숙명을 가정하는 무질서의 결정론을 구별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성찰이 철학자에게 필요할 것인가! 또한 인간적 결정과 이것이 함축하고 이용하는 결정론 사이의 관계를 설명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철학적 탐구가 필요한가! 요컨대 인식의 가치 를 제자리에 회복시키기 위하여 엄청난 교정이 인간의 가치를 다루는

철학에 의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명백한 것을 인정해야 하며 인간 은 인식의 운명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진 실로 지성을 갈망하는 존재이다. 이 인식의 운명에는 끝이 있을 수 없 다. 과학적 탐구의 역사가 이룰 충분히 증명한다. 가장 훌륭한 문제들 은 문화의 정상에서 제기된다. 안다는 것은 보다 더 알고, 보다 잘 알자 는 단 하나의 욕망만을 자극한다. 문화의 과거는 문화의 미래를 준비 하는 데에 그 진정한 기능이 있다. 문화의 생성에 의하여 교양인을 정 의하는 다음의 말은 프란츠 폰 바더 Franz von Baader 의 생각이 다. 우리는 살아 있는 책이다. 읽기 시작하고 싶은 책이 아니라 쓰기 시작하고 싶은 책이다 .

역자해제 1 실재론 비판 메이에르송(1 859-1933) 에 의하면, 자연 과학은 법칙성 le gality과 인 과성 caus ality의 두 가지 원리를 상정하고 있다. 인식 대상을 경험적 사실, 즉 현상에 국한하는 실증주의는 법칙성의 원리만을 인정하기 때 문에 얽히고 설킨 현상들 속에서 경험적으로 규칙적인 것만을 인정한 다. 여기에서는 〈 wh y〉라는 질문을 제기해서는 안 되며 〈 how 〉라는 질 문만을 제기해야 한다. 그러나 메이에르송은 원인에 대한 질문을 포기 하는 것은 과학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소치로 생각한다. 과 학은 인과성의 원리에 도달하여 원인을 인식하고 설명해야 비로소 우 리는 현상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적 설명이란 무엇인가? 역시 메이에르송에 의하면, 인간의 이성은 어떤 미지의 시실을 기지의 사실과 동일화i den tifi ca ti on 하는 데에 이를 때에만 그 사실을 이해했다고 믿는다. 다시 말해서 이 해하기 위해 지성 이 시도하는 모든 조작 ope ra ti on 의 근본은 다양한 것 을 동일화하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황산소오다를 만드는 과정 에서 화학 반응 전후에 Na 와 Cl 이 두 가지 다른 형태로 자신을 유지 하고 있음을볼수 있다.

2NaCl + ThS04 -+ Na2S04 + 2HC1

원인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다른 것 가운데에 있는 같은 것이며 이런 차이와 반복에 의한 동일화의 사상이 메이베르송의 전저작의 길 잡이가 되고 있고, 특히 『동일성과 실재』 (1908) 라는 명저에서 동일화 야말로 과학적 논리의 핵심이고 인간이 사유를、 진행시키는 진정한 틀 이라는 입장을 전개하고 있다. 요컨대 그의 인식론은 라이프니츠의 〈원인은 결과와 같다 Causa aeq u at e ff ec tum〉는 교리 속에 화학자로서 자신의 경험을 십분 활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법칙으로써만 만족하지 않고 설명을 추구한다면 그 근저에 는 존재론적인 전제가 필연적으로 함의되어야 한다. 전통적으로 이러 한 존재론은 실체 en tity라든가 기하학적 배열(형태와 운동) 또는 뉴턴 역학에서처럼 질점 mate rial point 동으로 이루어진다. 과학은 인식 주 체와 독립적이고 외부적인 객관적 실재를 가정해 왔던 것이다. 바슐라르는 이러한 입장을 실재론으로 규정하면서 위에 언급된 저 서가 나온 후 사반세기에 걸쳐 줄기차게 비판한다. 그는 고전 역학의 대상 개념은 소립자 물리학에 의해 붕괴되었으며, 즉각적인 것 따라서 직관적인 것은 현대 , 과학에서 구성 또는 구축된 것에 자리롤 내주어 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의 출발점이 즉각적인 것에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일이가에 수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적 대상들은 우리가 만든 것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 라는 수준에 도달했다. ·… 우리는 점차로 우리의 이론적 사고를 실 현하고 있다. (『지속의 변증법』, 63-64 쪽) 과학에서의 대상은 합리적 객관성의 긴 과정의 끝에서만 구성되는 대(『합리적 물질론』, 1 얽쪽), 이런 대상의 특수성을 드러내기 위해 바슐 라르는 위험하고 무익하게 보이는 실체 subs tan ce 라는 용어 대신에

〈초(超)체 exs t ance 〉라는 용어를 도입한다. 예를 들어 전자 elec t ron 는 사물로서의 실재성이 아니라 원인으로서의 실재성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에서 초체가 된다. 『 부정의 철학 』 (139 쪽)에 나타나는 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다른 곳에서는(『적용된 합리주의 』 , 109 쪽) 〈 b i -ob j ec t〉의 개념을 제안 하는데 하나의 대상을 평범한 경험주의의 사례로 볼 수도 있고 적용 된 합리주의의 사례로도 볼 수가 있다는 뜻에서이다. 소박한 실재론자 가 물결치는 선을 보는 데에서 수학자는 사인 곡선을 본다는 점에서 파동은 〈 b i -ob j ec t〉라고 볼 수 있겠다. 끝으로 『합리적 물질론』(1 42 쪽)에서는 〈이차적 대상 second ary ob 一 j ec t〉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는 이론이 선행하는 대상으로서 〈이차 적〉이란 대상의 개념에 스며들 수 있는 일상적인 경험적 의미를 제거 하자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 이 모든 신조어들은 일상적 대상과 경험적 대상을 철저히 차별화 하려는 의도를 대변하고 있다. 죽 현대 과학의 대상은 관찰되는 것이 아니라 구축되는 것이고,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발명된다는 것이다. 대상의 생성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현상 조작술 Phenomena-Techn ics >이 다. 2 현상 조작술에 의한 간접적 실재론 인식의 기초를 존재나 경험에서 찾는 경우 우리는 아무튼 실재론자

의 입장이 되며, 존재의 기초를 사유에서 구하는 경우 우리는 관념론 자의 입장에 선다고 볼 수 있는데 바슐라르는 이 두 입장에 대립하여 싸우고 있다. 경험적 법칙의 가치는 그것을 추론의 토대로 삼을 때에 정해지며, 하나의 이론은 그것을 실험의 토대로 삼을 수 있을 적에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험주의는 이해될 필요가 있으며 합리주의는 적용될 필요가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연역적인 법칙이 없는 경험주 의는 생각될 수 없으며, 현실에 적용되지 못하는 합리주의는 상호 주 관성을 획득할 수 없다. 요컨대 실험과 관찰에 의해 이론을 수정하고 이론에 의해 경험을 수정해서 추상=국체의 개념쌍을 실현하는 것이 바슐라르 인식론의 시금석을 이루고 있다. 현대 과학의 발전 양상이 이러하기 때문에 과학에서 도구나 실험장 치들은 단순한 보조물이 아니라 이를테면 새로운 감각 기관이 된 셈 이다. 바슐라르가 도구를 〈물질화된 이론〉 내지는 〈사물화된 정리〉라 고 정의한 이유는 현대 과학이 실험 장치를 가지고 사고하며 인간의 감각 기관을 가지고 사고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일상적인 경험에서 일찍이 존재한 적이 없는 새로운 현상을 생성하는 능력에 바슐라르는 〈현상 조작술〉이라는 이름을 부치면서, 이것은 현대 과학의 가장 본질 적인 구성 요소로서 가장 주목해야 할 특징들 중의 하나라고 끊임없 이 강조한다. 그래서 이제 과학은 현상의 과학이 아니라 〈효과〉의 과 학이 되었다(광전 효과, 콤프턴 효과, 제만 효과 둥). 동일한 의미에서 현대 과학은 마이켈슨겨골리의 실험, 토마스 영의 간섭 실험 등 〈실험 의 과학〉이 되었다고 덧붙일 수 있겠다. 계속해서 HH t라르는 〈적용된 합리주의〉라는 개념을 도입하는데 이 는, 과학 사상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이제 형식적이고 추상적이며 보편 적인 합리주의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고 거기에 덧붙여 언제나 특수하 고 정확한 실험과 연관성이 있는 구체적인 합리주의에 도달해야 한다

는 의미를 지니고 있댜 합리주의가 개념들의 구축을 의미한다고 할 때, 적용된 합리주의란 개념들을 생산하는 단계에서부터 응용 조건들 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의미한다. 개념 속에 이미 개념의 실현 조건 들을 통합시켜야 한다. 현상의 실현과 수학적 개념간의 부단한 교류를 필수적으로 본다는 점에서 현상 조작술이나 적용된 합리주의 그리고 다른 곳에서 제안하는 초(超)합리주의나 공합리주의 cora ti on ali sm 는 모 두 동의어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적용된 합리주의의 전형적인 사례로서 중간자 meson 와 중성 미자 neu tri no 를 들고자 한댜 가장 추상적인 이론과 가장 세심한 기술적 연구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는 중간지는· 현대 물리학의 존재론자들에게 필요한 이중의 존재론적 지위를 갖추고 있는 입자이다 ( 『 현대 물리학의 합리주의적 활동』, 174 쪽). 중간자는 본질적으로 수학적인 가설 그러니까 순수한 이론으로부터 출발하여 나중에 경험적 존재자가 우주선에서 검출된 놀라운 경우이 다. 다른 한편 경험 법칙으로부터 이론적 존재자를 가정한 경우가 중 성미자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핵에서 방출되는 입자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데 이 에너지는 핵의 질량이 변환되어 생긴 것이다. 그런데 a 입자의 방출시에는 예측된 에너지롤 지니고 있는 반면에 B 입자의 경우에는 핵의 질량 결손과 8 입자의 에너지 사이에 대차대조표가 맞지 않는다. 죽 B 입자의 에너지가 모자라게 나타난다. 보어와 같은 위대한 물리학 자가 에너지 보존 법칙을 포기하려고까지 이른 상황에서 파울리는 1931 년 보존 법칙을 구하기 위해 모자라는 만큼의 에너지를 가진 또 다른 입자가 8 입자와 함께 방출된다는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과학에서는 오직 이론적일 뿐인 존 재자 를 수용할 수는 없다. 결국 1956 년 미국의 물리학자 코완 Cowan 과 라이네스 Re i nes 는 중성미자의 검출을 발표했는데 이는 오로지 핵반응로라는 실험 장치 덕분이었다 . 우리는 중간자와 중성미자의 사례에서 〈이중의 존재론적 위치 〉 의 뜻 하는 바가 바로 응용 합리주의의 구현에 있음을 분명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여기에서 현대 과학의 특징으로서 인조성 fac tit iou sness 을 볼 수 있다 . 세계는 인간의 도전에 의해 조건지어진 것으로서 이것 이 바로 제 2 의 자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바슐라르는 〈과학은 묘사 해야 하는 세계가 아니라 구축해야 하는 세계 〉 라고 말할 수 있었다. 결국 바슐라르는 물질의 기본 입자들에 대해서 존재론적으로 상이 한 상태를 부여해야 한다고 믿기에 이른다 . 그것들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실재성의 계수, 즉 존재 계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다. 이러한 입장은 실재성 re ality의 개념을 파악하는 데에 있어서 중대 한 진일보를 한 것으로 우리는 생각한다. 중성미자의 경우에서 본 것 처럼, 미시 물리학의 대상이란 다른 대상과의 관계에 의하여 확정된 다. 바슐라르가 수차 강조하듯이, 고립된 대상은 진짜 대상이 아니다. 이렇게 대상이란 하나의 체계 속에서 설정되기 때문에 , 그것은 감각 기관에 의해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실험과 추론의 결과인 것이다 . 3 인식론적 단절 대상을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는· 중차대하다 . 여기에 서 다시 바슐라르는 메이에르송과 만나게 된다. 정신의 모든 사유 활 동에서 통일성을 확신하는 후자는 과학적 지식과 일상적 지식 사이에 연속성을 가정한다. 『상대론적 연역』(1 925) 에서 그는 상대성 이론은 이미 뉴턴에게서 그 싹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논증하고자 한다. 그

러나 전자에 의하면, 상대성 이론은 천문학 일반에 대한 고찰에서 나 온 것이 아니라 뉴턴 물리학의 기본 개념들, 즉 동시성, 질량, 속도 등 즉각적인 직관의 특성을 이루는 개념들을 의문에 부친 데서 나온 것 이댜 한편 메이에르송에 있어서 지식의 연속성은 인식 대상들의 동일성 에 의해서 지지되는데 바슐라르가 호재로 생각하는 공격 지점이 바로 그러한 입장이다. 대상은 직접적으로 〈객관적인〉 것으로 지정될 수 없다. 따라서 감 각적 인식과 과학적 인식 사이의 진정한 단절을 수용하는 것이 필요 하댜 (『과학정신의 형성』, 239 쪽)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현대 과학이 취급하는· 대상이나 현상은 직 접적 소여가 아니며 그것을 생산하기 이전에는 일찍이 존재한 일이 없었다는 사실로부터 바슐라르는 상식과 과학적 지식 사이에는 아무 런 연속성도 없다고 단언한다. 뉴턴으로부터 아인슈타인을 연역할 수 있는지 없는지, 그래서 그 둘 사이에 연속성이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는 차후의 연구 주제로 남겨두 고자 한다. 다만 급격하게 발전하는 과학 문화에서 선생을 자처하는 철학자와는 달리 과학자는 학생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 바슐 라르의 말을 상기하면서, 결국 바슐라르의 〈단절〉이나 〈불연속〉은 창 조의 순간 또는 새로운 지식의 생산을 의미한다고 여겨지는데, 창조의 순간에 도약이 있다고 해서 연속성을 무시해도 좋다는 논리적 귀결이 따르는지는 좀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일찍이 뉴턴은 〈나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었다〉고 고백하였다. 인식론적 단절이라는 주제가 프랑스 철학계에 거의 절대적이라고

할 만큼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현대의 과학 사상가 중에서 그 것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입장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시와 물리학, 과학과 문화의 구분을 기꺼이 무효화시키는 미셸 세르 (Mich el Serres, 1930-) 는 라 퐁텐의 우화에서 기하학적 논증의 엄격 성을 찾아내고 기하학의 증명에서 시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동형 구조 탐구의 대가인 세르에게 있어서 인식의 연속성은 자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리스의 원자론, 점성술, 연금술이 각각 근대의 원자 론, 천문학 그리고 화학의 발전에 나름대로 기여를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고립된 소수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저자가 이런 사실을 간과할 리는 없다 . 그렇다면 왜 그처럼 집요하게 단절이라는 논제를 주장했는가? 이 문제는 바슐라르 인식론의 출발점을 이루고 있는 『근사적 지식』 (1928) 에서 해결의 실마 리가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바슐라르에게 있어서는 데카르트식의 명석판명한 인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경험적 소여는 연속적이고 분할할 수 없는 전체이기 때문에 개념화라든가 측정 그리고 법칙의 적용 등은 점증하는 정확도에 도달 하기 위해 끊임없이 개선될 수 있는 근사치에 다름아니다. 모든 지식 은 언제나 부분적이고 잠정적이며 결정적인 지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러한 지식이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는 데에서 가장 완고한 방해물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바슐라르가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 을 인식의 분야에 처음으로 적용한 소이가 여기에 있다. 현상 조작술 이 창조적이라면 정신 분석은 치료적 효과를 가지고 있다. 바로 이 치 료 효과를 분명히 하기 위해 단절의 문제를 그의 인식론의 근간으로 삼은 것으로 우리는 믿고 있다. 아무튼 인식론적 단절은 그 결과로서 과학사의 불연속을 함의하는 데, 과학의 발전은 지식의 축적에 의해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예컨대 상대성 이론, 양자 역학, 파동 역학 등 새

로운 인식의 출현은 이른바 선구자가 없는 과학이라는 것이다. 바슐라 르의 〈회귀하는 역사〉란 현재의 목적에 따라 가치를 부여하고 평가하 는 역사를 의미하는데, 그 핵심은 〈원초적인 것〉이 근본적이라는 공리 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데에 있다. 이러한 불연속성은 시간의 실재성이 무(無)로 단절되어 있는 순간 들에 있다는 바슐라르의 시간관에 의해서도 지지를 받는데 이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4 지속과 순간 지속의 철학자로서 베르그송의 논지는, 내면의 자아에 의해 체험된 정성적이고 심리적인 시간이란 지속이라는 환원할 수 없는 성격을 지 니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는 데에 있다. 그는 『의식의 직접적 소여』 (1889) 에서 오직 지속만이 시간적 실재성을 .지니며, 순간이란 공간화 된 시간에 도입되는 추상적 분할의 가능성임을 지적하였다. 실상 우리 는 시간을 직접 표상할 수 없기 때문에 공간과는 달리 시간을 나타내 기 위해서는 공간적 비유를 통해야 한다. 『지속과 동시성』 (1922) 에서 베르그송은, 하나의 준거 체계를 암암리에 선택하는 물리학자의 관점 과 실제 관찰자에 의해 체험되고 지각되는 시간에 의거하는 철학자 사이의 차이를 분명히 했다. 공간은 본질적으로 측정될 수 있어서 물 리학의 수학적 관점은 정당하지만 노쇠나 지속처럼 질적인 영역에서 의 시간은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반대하여 바슐라르는, 시간은 단 하나의 실재성, 죽 순간의 실 재성만을 지니고 있으며, 지속이란 무(無)의 제거에 의해 구축된 상상 적인 연속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순간의 감성 이외에 어떤 다른 감성도 없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두 가지 언급으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첫째, 베르그송의 시간관은 수학이나 물리학적 모델에 의거한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 모델에 의거하고 있는 반면에 바슐라르의 경우는 혹 체 복사나 광전 효과 등 에너지의 불연속성을 보여주는 양자 역학에 의거하여 불연속적 시간관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 인간적으로〉 베르그송의 지속이 우리에게 보다 더 호소력이 있다는 점은 차치하고 라도 준거의 틀이 서로 다르다는 점에서 우리는 <;a de pe nd! (경우에 따 라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말은 아 무런 선택도 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다. 둘째, 시간의 문제를 취급할 적에 우리는 물리적 시간과 생물학적 (심리적) 시간 이외에 언어학적 시간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 한다. 개별 언어는 고유한 시제의 체계를 지니고 있으며 이 체계를 가 지고 시간을 표현한댜 서로 다른 시제를 가지고 있는 언어들에 대한 비교 연구는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클 것으로 생 각된다. 프랑스어의 경우, 하나의 사건을 외부에서 본다면 그 사건의 전개 시간이 어떻든지 간에 단순 과거라는 시제를 쓰는데 이렇게 해서 사 건은 일점에서 포착되며 점괄적(點括的)이 된다. 그러나 사건을 그 내 부에서 볼 경우에는 마찬가지로 시간의 장단에 관계없이 지속상이 되 는데 이때는 반과거가 사용된다. 그래서 배경이나 상황을 묘사할 경우 그것은 점으로 분할할 수 없기 때문에 예의 없이 반과거가 쓰이고 있 다. 이 시제는 명백하게 연속성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댜 따라서 여기 에서도 문제는 관점의 차이가 된다. 우리로서는 바슐라르가 물리학적 시간관을 모든 시간에 외삽한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를 금할 수 없으 며 그토록 단호하게 베르그송을 공격한 데 대하여 의아심을 품게 된 다. 인식 발전의 연속성이나 불연속성의 문제 그리고 지속이냐 순간이 냐 하는 문제는 다음에 검토하고자 하는 변증법적 일반화에 의해 종

합될 수는 없을 것인가? 아무튼 불연속적 시간관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인 경우와 우 연적인 경우 두 가지로 나누어 고찰해야 할 것같다. 필연적인 경우, 불연속성의 원인은 시간의 속성 자체에서 찾아야 하 는데 과학은 아직 이 문제에 대해 명백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물 리학에서 현재 관찰 가능한 가장 짧은 시간 간격은 10 - 26 초인데 이 수 준에서는 시간이 비약한다는 어떤 징후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휠씬 더 짧은 시간 간격에서 극미한 비약이 나타날지 어떨지는 아무도 장 담할 수 없다. 우연적인 경우, 불연속에 대한 입장은 시간의 차원을 넘어 다른 데 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논의의 범위가 완전히 달라진다. 바로 여기에 바슐라르의 의도가 숨어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일반 적인 생각이다. 시간의 불연속성을 수용한다는 것은 언제나 다시 출발 할 수 있는 가능성, 즉 시간성에 인식 주체의 자발성 내지 주도권을 부여한다는 말이댜 생명체는 연속적으로 변화하지만 의식적인 의지가 개입하여 언제나 방향 전환이나 단절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5 변증법적 일반화 바슐라르에 의하면 기존의 과학 철학은 지식의 양극단에 격리되어 있었다. 죽 철학자는 일반적인 원리에만 머무르고 과학자는 너무 특수 한 결과에만 집착한다는 것이다. 이는 일반적인 것과 즉각적인 것이라 는 두 가지 인식론적 장애물로써 작용하여 때로는 선험적인 것이 때 로는 후험적인 것이 가치를 부여받는다. 그러나 이는 현대 과학이 합 리적 가치와 실험적 가치 사이에서 부단하게 수행하는 인식론적 가치 의 변화를 간과하는 소치이다.

고전적 합리주의는 이론과 실험 결과 사이의 괴리를 하나의 유익한 정보로 받아들이기를 주저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경험주의는 선험적인 것의 우선적인 역할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각각 오류를 범하였 다 . 이제는 어떤 조건 아래서 일반 원리가 특수한 결과에 이르는지 그 리고 어떤 조건 아래서 특수한 결과가 일반화를 암시하는지 제시해 주는 과학 철학이 필요하다. 과학적 사유의 핵심은 합리적인 것과 실험적인 것, 선험적인 것과 후험적인 것, 요컨대 경험주의와 합리주의 사이의 계속적인 왕복운동 을 이해하는 데 있다. 이렇게 과학의 진보는 합리적 이론과 전문 기술 에 의한 실험 사이의 상호 조정 과정에서 이루어진다는 의미에서 변 증법적이다. 바슐라르적인 변증법은 어떤 과학의 문제에 개입하는 서 로 다른 차원들을 관계맺어 주어 추상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의 연관 성을 긴밀히 해준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 물리학은 두 개의 철학적 축을 가지고 있다 . 물리학은 수학과 실 험에서 특수성이 규정되는 그리고 수학과 실험의 결합에서 극도로 활기를 띠는 진정한 사고의 장(場)이다. 물리학은 탁월한 종합으로 서 추상적-구체적 사고방식을 결정한다 . (『적용된 합리주의』, 1 쪽) 말할 나위도 없이 여기에서 수학의 본질은 발명의 힘에 있으며 실 험의 중요성은 현상 조작술에 의해 추상적인 것을 구체화하는 데에 있다. 다른 곳에서 공합리주의 또는 초(超)합리주의라고 명명되는 이러한 합리주의적 변중법은 수학 문화와 실험 문화 사이의 공고한 결합에 의해 인간적 결정론 또는 인식론적 결정론의 표지가 된다. 실험실과 수학의 환원할 수 없는 중요성을 부각함으로써 이제까지

과학 철학이 실험을 이론 종속적이고 부수적인 것으로 파악한 것과는 달리 실험 자체에 고유한 독자적 가치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바슐라르 는 실험 의학의 주창자인 클로드 베르나르와 더불어 정당하게 실험 철학의 선구자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바슐라르의 변증법은 헤겔의 선험적인 변증법과는 아 ~L 런 관계가 없는데 현대 과학의 변증법은 자연을 연구하는 과학자의 실질 적인 진행 과정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헤겔의 변증법에서는 정립과 반 정립의 모순이 보다 높은 차원의 개념에서 종합이 이루어지는 데에 있지만 과학적 변증법에서는 결합된 개념들이 모순적이 아니라 상보 적이다. 가장 친근한 사례로 상보성 원리를 들 수 있겠다. 주지하는 바와 같 이 이 원리는 복사의 입자적 행태와 물질(전자)의 파동적 행태처럼 어 떤 현상이 서로 배제하면서 동시에 서로 보충하는 두 가지 형태로 나 타나는 사실을 천명함으로써 탁월하게 변증법적이다. 이제 우리는 입 자성과 파동성을 하나의 현상의 서로 다른 수학화 내지는 서로 다른 실험의 결과로 이해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러한 교호 작용이야말로 완 전한 실재성을 파악하기 위한 지식의 재조직에서 필요 불가결한 것 이다. 우리가 보기에 바슐라르는 또 다른 의미에서 〈변증법〉이라는 용 어를 도입하고 있는데 캉길렘의 정의가 그러한 정황을 잘 소개하고 있다. 바슐라르가 변증법이라고 부르는 것은 토대를 확장하면서 지식을 재구성하는 귀납적 운동을 의미하는데, 거기에서는 개념과 공리의 부정이 그것들을 일반화하는 한 국면일 뿐이다. (『과학사와 과학철학 연구』, 196 쪽)

이러한 변증법의 사례는, 새로운 행성을 발견하는 것은 천문학 체계 에 큰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지만 새로운 기본 입자의 발명은 우주론 을 온통 뒤흔들어놓을 수 있다고 갈파한 바슐라르의 말에서 잘 읽을 수 있다. 또 다른 사례로서, 로바체프스키는 평행선의 개념을 변증화함으로 써 기하학의 근본 개념을 보완했고 플랑크는 우주 상수 h 를 발견함으 로써 에너지 합리주의의 토대를 구축하였다. 현대 과학은 이렇게 첨단 에서 활동하면서 토대를 개혁한다. 단 하나의 변증법화된 공리가 자연을 온통 노래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하다. (『부정의 철학』, 138 쪽) 바슐라르는 이러한 살아 있는 과학을 변증법적인 일반화라고 부르 는데 그 특징은 처음에 부정한 것을 다시 감싸는 데에 또는 포함하는 데에 있다. 리만 공간의 곡률을 0 으로 놓으면 우리는 다시 유클리드 공간을 되찾게 되어 비유클리드 기하학 또는 범(洪)기하학은 유클리드 기하학을 특수한 경우로서 감싼다. 피동 역학에서 h=O 으로 놓으면 다시 뉴턴 역학을 만나게 되고, 상대성 이론에서 빛의 속도를 무한으 로 간주하면 고전 역학을 다시 만나게 된다 . 변증법적 일반화의 요체 는 이처 럼 흑백 논리 m ani che i sm 를 지 양하여 과학 발전의 특정한 시기 에 이론을 재검토해서 다른 가설을 세우거나 실험을 보다 정교하고 치밀하게 해서 인식의 진보를 가능하게 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 이제까지 우리는 바슐라르의 과학 사상을 가장 잘 특징짓는다고 생 각되는 테마들을 중심으로 과학 철학자로서 그의 면모를 살펴보았다. 이 모든 테마는 그가 제안한 〈새로운 과학 정신〉으로 요약될 수 있겠

는데, 이는 단순한 외관에서 복잡한 현실을 읽어내는 정신을 뜻한다. 우리 모두는 뜨거운 난로에서 열이 방출되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 댜 그러나 여기에는 복잡한 복사 공식이 숨어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 눈에 보이는 일상적 인 빛이 실은 mv = h/祥柱근 입자 — 파동 식을 만족 시키고 있다 . 사유된 것 속에는 지각된 것보다 더 많은 것이 들어 있 다는 바슐라르의 교훈은 두고두고 음미되어야 할 것이다 .

역자후기 바슐라르 (1884-1962) 는 과학과 예술 두 분야에서 주옥 같은 저술을 남긴 프랑스 당대 인식론의 대가로서 특히 과학 철학과 시적 상상력 이라는 두 테마를 천착하여 그의 세대를 온통 열광시킨 학자이다. 그 의 〈인식론적 단절〉이라는 주제는 그의 계승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 쳤고, 유명한

해 새로운 실험의 수준에서 재구성되고자 하 는 합리주의의 노력을 보 여주어야 한다. 가볍지만은 않은 이러한 교훈 들 이 역자의 가슴에 와닿 은 것은 아마도 겁없던 젊음의 탓이었던 듯싶다. 이 책은 번역하는 과정에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댜 먼저 연구 번역의 기회를 제공하고 지원해 준 대우재단과 관계자 여러분에게 심 심한 경의를 표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덕분에 적지 않은 시간을 물 리학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 책을 번역하도록 용기를 복돋아주신 과학사상연구회 김용준 회 장님과 장회익 선생님 그리고 송상용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매번 번거로운 질문에 성심성의껏 설명해 준 이중원 교수에게도 고마 운뜻을 전한다. 최무영 교수(서울대)와 신내호 교수(육사)는 바쁜 학기 중에 원고를 통독하고 문제되는 부분을 지적해 주셨으며 노봉환 교수님(전 고려대) 과 양형진 교수(고려대)는 물리학에 관한 질문에 자상하게 응해 주셨다. 그러나 만일 오류가 있다면 그것은 물론 전적으로 역자의 책임이다. 아울러 원고를 다듬어 준 덕성여대의 조은희 양, 송시정 양 그리고 이미선 양에게 특별히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성실하게 원고를 교정하고 형식을 갖추어 준 민음사의 편집진에게도 감사한다. <번 역 은 반역 Tradutt ore trad i tor e> 이 라는 이 탈리 아 말이 있다. 열심 히 한다고 했으나 저자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걱정스럽다. 번 역을 마치고 영어와 일어 번역본을 수소문하였으나 찾을 수 없었다. 이 분야에 관심있는 분들의 비판과 질정을 기다리겠다. 각주는 본문의 이해를 돕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여 저자의 입장을 충실히 반 영하는 관점에서 썼고, 해제는 니름대로 비판적인 시각에서 썼음을 밝 혀 둔다.

_' 갈릴레이 75 객관성 25, 34 결정론 285 이하 경험주의 9, 212 경험주의자 142 계산 137 곤세트 얽 과학사 37, 38 과학적 실재성 234 과학 철학 15, 68 광전 효과 203 이하 광학 29 괴테 20 구성 53 궤도 함수 97 근방 84 글라스톤 43 기술자 18 기하학적 결정론 290 L 나미아 163 내포 76 뉴턴 47 니체 73

C 다르무아 135 달랑베르 d'Alembe rt의 원리 82 대수 45 대수적 alge b rai c 결정론 293 데카르트 51 데카르트 물리학 176 동역학적 149 동역학적 결정론 290 뒤 브리지 208 뒤엠 OO 드라메트리 47 드 브로이 35, 152, 186, 247 동위면 86 己 라게르 43 라만 Raman 효과 210 라스파이 96 라이프니츠 176 라플라스 43, '2Z1 레이보 20 레 일리-진즈 Ra y l eig h- J eans 의 공식 18.3 뢰머 51 르베리에 147 르장드르 43 리즐러 154

리히트마이어 41 □ 마레 79 마케 47 마하 82 메이에르송 108, 175 모페르튀의 원리 269 문턱 에너지 lfi> 물리적 특징 214 물자체 16 물질적 149 물질파 '2:18 t 바아더 56 바일 67, 108 반데발스 109 발머 95 방위양자수 192 배타 원리 193 베르그송 76 이하 베르누이 177 벡커 153 변증법 21, '2:1, 38 변형 34, 3.5 변환 156 보드 153

보렐 82 보어 187 본질 26, 132 부아스 64 불연속성의 원리 150 브릴루앙 173 불라켓 147 블랙 39 비오 41 빈의 분포 법칙 182 人 사르트르 81 사물론자 117 셔윈 164 소립자 刃 소여 120 스토니 134 스펙트럼 항 188 스핀 219 이하 스핀양자수 192 실재론 25, 47 실재론적 가치 171 실재성 52, 99 심급 13, 43, 87 。 아인슈타인 35, 149, 199

앤더슨 144 양성자 140 이하 양자 역학 277 양전자 144 이하 에너지 30 에너지 합리주의 181, 186 에딩턴 142 에밀 매이에르송 49 Leg en dre 45 역사적 종합 34, 37 역선 85 역장 鉛 역학 28, 29 역학적 특징 214 연산자 231 연속성 57, 59 연속적 78 오스트왈드 1 얽 오일러 57 오키아닐리 147 외연 76 운동 73 이하 원초적 8 위그 208 유카와 166 이론가 18 이 미 지 94, '2:78 이중성 85, 乃 5 인간적 결정론 301 인공적 56

인식론적 결정론 301 인식론적 장애 38 인위성 12, 13 인위적 11 일반화 연산자 208 입자 106 이하, 255 입 자설 35, 50, 5.5 입자성 Z75 万 자기량 223 이하 자기 모멘트 157 자기양자수 192 재구성 10, 11, 16, 34, 72, 90, 154 적용된 합리주의 10, 63, 175 전문화 20-24 전자 129 이하 전하 135 제논 Zenon 71 존재 계수 152 주양자수 192 중간자 164 이하 중성미자 159 이하 중성자 154 이하 지돈 80 질량 135

* 채드윅 154 추상-구상 45 추상적-구체적 51, 53 충돌주의 117 겨 코이레 75, 176 콜딩 178 콤프턴 Comp ton 효과 210 쿨롱 46 E 탈현실화 26, 'Z78 터널 효과 198 톰슨 134 끄 파동 25.5 파동설 3.5, 50, 5.5 파동성 V5 파동 역학 261, 刃 7 파동함수 98 파라데이 83 파울리 164 파인만 146

파뒤로 20 퍼텐셜 84 퍼텐셜 장 벽 196 페렝 260 페르마의 원리 269 푸르크루아 48 푸엥카레 180 프랑켈 122 프레넬 35, 63 플랑크 184 굴 하이젠베르그 191 합리성 145, 298 합리주의 9, 14, 17, 33, 141, 212, 233, 268 해밀턴 함수 235 해밀토니안 44 핵자 158 헬름홀츠 133 현상 제조소 19 현상 조작술 l'ZT 현상학 9, 47 호이겐스 52 환원 94 활력 보존의 원리 176 회귀하는 역사 40 회절 35, 48 휠러 146

정계섭 函 1 년 육사 졸업(이학사) 1975 년 서울대 문리대 불어불문학과 졸업(문학사) 1978 년 Besanc; o n 대학 언어학과(일반언어학 석사) 1985 년 Par is 제 7 대학 언어학과(일반언어학 박사) 현재 덕성여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현대물리학의 합리주의적 활동 대우학술총서 • 번역 117 1 판 1 쇄 펴냄 1998 년 8 월 30 일 지은이 가스통 바슐라르 옮긴이 정계섭 펴낸이 朴孟浩 펴낸곳 (주)인옵사 출판등록 1966. 5. 19( 제 16-490 호)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506 강남출판문화센터 5 층 515-2000( 대표전화 )/515-2007( 팩시밀리) 한국어판 ©(주) 민음사, 1998 순수과학 • 과학철학/KD C 401 Printed in Seoul, Korea 값 14,500 원 ISBN 89-374-4117-9 94400 ISBN 89-374-3000-2 (세트)

| 대우학술총서번악) 1 1 유목민족제국사 콴텐 / 송기중 43 大同書 康有爲 / 이성애 풀·클라크 / 이도원 · 조병철 2 수학의 확실성 클라인 / 박세희 44 표상 포더 / 이영옥정성호 85 수학, 과학 그리고 인식론 3 중세철학사 와인버그 / 강영계 45 과정과 실재 화이트해드/오영환 I 라카토시 / 이영애 4 日本語의 起源 밀러/김방한 46 그리스 국가 에렌버그/김진경 86 봉건제의 이해 러쉬튼 쿨본/김동순 5 古代漢語音韻學槪要 47 거대한 변환 폴라니/박현 수 87 그라마톨로지 자크 데리다/김성도 칼그렌/최영애 48 법인류학 포스피실/이문웅 88 殷代貞 卜人物通考 l 라오쫑이/손예철 6 말과 사물 푸코/이광래 49 언어철학 울스튼/곽강제 89 殷代貞 卜 人物通考 1 라오쫑이 /손예철 7 수리철학과 과학철학 와일/김상문 50 중세 이슬람 국가와 정부론 90 殷代貞 卜人物通考 Ill 라오쫑이/손예철 8 기후와 진화 피어슨/김준민 램톤/김정위 91 순수경제학 레옹 왈라스 1 심상필 9 이성 진리 역사 파트남/김효명 51 전통 쉴즈/김병서·신현순 92 문화유물론 마빈 해리스/유명기 10 사회과학에서의 場理論 52 몽골문어문법 뽀뻬/유원수 93 포유동물의 가축화 역사 레빈 / 박재호 53 중국신화전설 1 원가/전인초김선자 줄리엣 클루톤브록/김준민 11 영국의 산업혁명 54 중국신화전설 ll 원가/전인초김선자 94 르네상스 철학에서의 개체와 우주 딘/ 나경수이정우 55 사회생물학 l 윌슨 / 이병훈·박시룡 E . 카시러 / 박지형 12 현대과학철학논쟁 56 사회생물학 Il 윌슨 / 이병훈·박시룡 95 화학적 진화 S. F 대이슨 / 고문주 쿤 外 / 조승옥 김동식 57 일반언어학의 제문제 l 96 과학의 한계 바이츠제키/송병옥 13 있음에서 됨으로 프리고진/아철수 밴베니스 트 /황경자 97 러시아 연해주와 발해 역사 14 비교종교학 바하/검종서 58 일반언어학의 제문제 Il 예훼 샤브꾸노프/송기호 • 정석배 15 동물행동학 하인드/장현갑 밴베니스트/황경자 98 경제정책의 원리 16 현대우주론 시아마/양종만 59 폭력과 성스러움 발터 오이켄/안병직 • 황신준 17 시베리아의 샤머니즘 치라르/김진식·박무호 99 바코와 헤르더 디오세지·호괄/최길성 60 갑골학 60 년 蘆作賓/ 이형구 이사야 벌린/이종홉 • 강성호 18 조형미술의 형식 61 현대수학의 여행자 100 실용주의의 결과 힐 테브란트 / 조창섭 피터슨 / 김안수 주형관 리처드 로티 / 김동식 19 힐버트 리 드/ 이일해 62 프랑스 혁명의 지적 기원 101 국제 지층구분 지침서 20 원시국가의 진화 하스 / 최 몽룡 모르네 / 주명철 A 살바도르 / 백안성 21 商文明 張光 直/ 윤 내 현 63 해석학과 과학 102 국가론 헤르만 헬러 / 홍성방 22 마음의 생태학 베이촌 / 서석봉 커 널리 코이트너 / 이유선 103 경험과 판단 후설 / 이종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