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시 러 (Ernst Cassir e r, 1874-1945) 신칸트학파의 대 표 적 사상가 베를린 대학, 함부르크 대학 교수 역임 전후 영국, 스 웨덴, 미국에 체류하며 활동 『 근 세의 철 학과 학문에 있어서의 인식의 문제 Das Erkenntn i s p r o blem in der Phil os op h ie und Wis s enschaft der neueren Ze it 』 ( 1906-1907) I•' 실 체 개 념 과 기 능 개 념 Substa n zbeg r if f und Funk ti onsbe g r iff.』 ( 1910) 『 상징 형식의 철 학 Ph i l oso p h i e der sym bo lisc hen Formen 』 (1 923-1929) I ’ 인간론 An Essays on Man 』 (1 944) 등의 저서가 있다 박지형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졸업 독일 쾰 른 대학 미술사학과 석사 역서로 H 뵐플린의 『 미술사의 기초 개념 Kunstg e schic h tl i c h e Gr;ndbe g r iffe 』 이 있 다

르네상스 철학에서의 개체와 우주

르네상스 철학에서의 개체와 우주

에른스트 카시러 지음 박지형 옮김 미L으D^ t

1926 년 6 월 13 일 아비 바르부르그 A. Warbur g의 60 회 생일에

천애하는 벗에게 여기 당신의 60 회 생일을 기념하여 드리는 이 저술은 원래 당신에 대한 나의 진실한 우정과 경의를 순수한 개인적 차원에서 표현하고자 씌어졌습 니댜 그러나 당신이 건립한 도서관을 중심으로 뭉친 저 연구 공동체의 한 결같은 격려와 고무가 없었던들 이 저술 작업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입니댜 그러므로 이제 나는 더 이상 나 일개인으로서가 아닌-오래전 부터 당신을 정신사 연구의 모범으로 삼는 - 저 연구 공동체 일동을 대 표하여 말하겠습니다 . 바르부르그 도서관은 지난 30 년에 걸쳐 정신사와 문 화 과학연구를 위한 자료를 확보하고자 조용하고 끈질긴 노력을 기울여 왔 음은 물론 그와 같은 연구가 지침으로 삼아야 할 제반 원칙을 유례없이 인 상적으로 제시하였으며 더 나아가 그 구성과 사상적 측면에서 정신사의 제 반 분야와 경향을 망라한 방법적 통일과 결합을 꾀하려는 이상을 실현시켰 습니댜 이제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며 새 건물로 이사하여, 한층 더 그 위 력을 발휘할 계기가 마련된 지금, 우리 일동은 새삼 이 도서관에 대한 애 정과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도서관이 단순히 새로운 문제들을 해결하는 차원을 넘어, 우리의 우정어린 공동 작업을 상기시키고 우리의 정신적 유대를 더욱 공고히 잇는 끈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 니다. 부디 이 도서관을 통해 당신이 실현한 정신사 연구의 오르가논 Or g anon 이 앞으로도 우리를 무한히 고무시키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또 붙한여 원 —컨-대앞 우으리로에도게 계 속부 과새된로 운문 제지를침 을해 결열하어는 주 데시 기- 바지랍금니까다지. 의 노고에 덧 함부르크, 1926 년 6 월 13 일 에른스트 카시러

차례

친애하는 벗에게

서문

제1장 니콜라우스쿠자누스 9

제2장 쿠자누스와 이탈리아 69

제3장 르네상스 철학에서의 자유와 필연 109

제4장 르네상스 철학에서의 주관과 대상의 문제 189

옮긴이 해설 • 291

찾아보기 • 301

서문 한 시대의 철학은 전체 상황이 품고 있는 정신적 본질을 함축하며 다양한 전체상을 포괄하여 결국 단일 초점, 죽 스스로를 인식하는 개 념 sic h wis s ende Be griffe 으로 수렴 된다는 헤 겔의 전제 는 초기 르네 상스 철학사에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13 세기에서 14 세기로 넘어 갈 무렵 시와 조형예술 분야 , 그리고 정치, 역사 분야에서 비등하여 하나의 정신적 쇄신을 예견케 하였던 새로운 역동성은 사상 분야에서 는 일단 별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였다. 그것은 그 당시의 사 상이 부분적으로는 스콜라 철학의 성과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지만 대 체로 여전히 거기에 종속되어 있었던 까닭이었다. 페트라르카는 『그 자 신과 많은 이 들의 무지 에 관하여 De sui ipsi u s et multo r um ign oran ti a 』라는 글에서 스콜라 철학에 도전하였지만 그가 스콜라 철 학과 아리스토텔레스적 교조에 대항하여 내세운 원칙들이 철학적 토 대나 내용을 결한 사실을 고려하면 오히려 그 시대를 풍미한 스콜라 철학의 영향력을 반증하였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 그는 새로운 사유 방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능변 Elo q uenz> 이라는 새로운 교양 이념 을 내세워 강단 철학에 맞섰던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 볼 때 아리스 토텔레스 저술은 <능변과는 거리가 멀며> 그런 의미에서 더 이상 지 식의 사표(師表)이거나 <교양>의 대표일 수 · 없었다 . 이처럼 아리스토 텔레스에 대한 인문주의적인 비판은 그 내용적 측면보다는 그 형식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이 진행되는 동안

그와 같은 전제는 점점 예측 불허의 결과 를 수반하게 되어 마침내 인 문주의적 노력이 확산되고 그 학문적 수단이 세련되어짐에 따라 스콜 라 철학적인 아리스토텔레스상은 원전에 입각한 원래의 아리스토텔레 스와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왜곡되기에 이르렀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 정치학』과 『니코마코스 윤리학 』 을 맨 처음 번역하였던 레오나르도 부루니 Leonardo Bru ni는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조차도 ― ~마치 악타 에온Akta eon 이 사슴으로 변모했을 때 그가 기르던 개조차 그를 알 아보지 못한 것처럼! ) -스콜라 철학에 의해 변모된 자신의 저술을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기 힘들 것이라 말했다. 이러한 판단하에 인문 주의 운동은 아리스토텔레스와 대타협을 꾀하게 되었다. 즉 그를 공 박하는 대신 그에 대한 언어적, 사상적 이해가 요구되기에 이른 것이 다. 그러나 이렇게 제기된 문제조차 철학적이라기보다는 문헌학적인 성격을 띤 것이어서 예를 들면 레오나르도 부루니의 번역 작업에서 보이는 것처럼 아리스토텔레스의 -r'a r a.i tov (ta ga th o n) 개념을 최고 선 summum bonum 으로 할 것인지 선 자체 bonum ip sum 으로 할 것 인지에 대한 격론이 벌어지게 되었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엔텔레 키 En te lec hi e 라는 용어 를 en t elec hi a 로 표기 할 것 인지 endelec hi a 로 표기할 것인지 하는 문제라든가 그것의 다의적 해석 가능성에 관하여 필 렐포 F ill e lf o 나 안젤로 폴리 찌 아노 Ang e lo Poli zia n o 같은 당대의 저명한 인문주의자들이 열을 올렸다 .2) 그러나 그들과 같은 좁은 의미 의 인문주의자가 아닌, 새롭게 철학과 문헌학을 탐구하고자 하는 집 1) Leonardi Aretin i, Lib e llus de dis p u ta tion um usu (14 01 ), 25 쪽; Georg Voig t, Di e Wi ed erbelebung des klass. Alte r tu ms II, 169 Fio r enti no , 11 riso rgi me nto filos ofic o nel Qu att roc ento , Napo li 1885, 183 쪽 참조. 2) 더 자세한 것은 Fi oren ti no 의 위 저서 중 L'umanis m o nella filos ofia 184 쪽을 참조하라.

단들 안에서조차, 철학의 우선 순위는 인정되었으되 진정한 방법적 쇄신은 달성되지 못하였다 15 세기 후반기에 진행되었던 플라톤적 견 해와 아리스토텔레스적 견해 사이의 우위 다툼도 결코 원칙적 전제에 대해 궁극적으로 검토된 것이 아니었다. 이 두 조류가 공통으로 사용 하였던 가치의 척도는 체계적인 영역과는 무관한 종교적 전제들이나 교조적 명제들에 관한 것이어서 결국 그 다툼은 사상사적으로 아무런 본격적인 소득도 거두지 못했다. 그리하여 폴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적인 견해 사이의 실제적인 내용과 근본 원칙에 대한 엄밀한 구분 대 신 혼합주의적인 융합을 꾀하려는 요청과 시도가 팽배하게 되었다. 플라톤 유산의 진정한 수호자임을 자처한 피렌체 아카데미가 바로 가 장 광범위하게 그것을 시도하여 피치노 F i c i no 의에도 동료들로부터 <융합의 대가 Pri nc eps Concor di ae> 라고 불렀던 피코 델라 미 란돌 라 Pic o della Miran dolla 같은 이가 거기에 참여하였다. 피코에게는 스콜라 철학과 플라톤주의의 통일내지 화해야말로 사상의 핵심 목표 였댜 그는 에르몰라오 바르바로 Ermolao Barbaro 에 게 보낸 서 간에 서 자신은 변절자로서가 아니라 정탐자의 입장으로 피렌체 아카데미 에 발을 들여 놓았다고 토로하고 있다. 그러한 탐색의 결과, 그렇게도 상충되어 보이기만 하던 아리스토텔레스와 풀라톤이 사실은 도처에서 일치 함이 입증되 었다 . 3 ) 3) Ioann. Pic i M ira ndulae Op e ra (Basel o. J.) I, 368. 피 코 의 스콜라 철학 연구에 관해서는 같은 책 I. 351 을 참조하라 .

르네상스 철학의 기본 성향 이러한 융합에의 노력으로 인해 결국 위대한 철학적 체계들은­ 피치노가 모세와 플라톤, 조로아스터와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 , 오르페우스와 피타고라스, 베르길리우스와 폴로티누스 등을 마구 인 용한 사실에서도 드러나듯 4)- 그 본연의 모습을 상실하게 되었으며 기독교 철학적인 계시의 안개에 휩싸이게 되었다. 당시의 철학적인 기본적 역량은 대략 이런 상황이어서 엄밀한 구별과 구성, 선별과 개 별화에의 요청은 아직 미미하였으며 그 시도조차 열악한 실정이었다.

4) cFhir cis itnia on 의a Brerli iegf ei o, n Oe,p eCra a,p . B XasXiIleI a e(O op .e rJa., 82656 쪽, )'o와l l도 쪽 을대 조참하조,라 . 특히 Fic inu s, De

이상을 고려할 때, 뚜렷하고 선명한 개별적 사실에서 출발하는 문 화사가가 그러한 조건을 전혀 충족시켜 주지 않는 당대의 철학적 기 록들을 자신의 논의에서 제의시킨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 야 콥 부르크하르트 Jac ob Burckhard t는 르네상스 문화에 대 한 방대 한 저작에서 르네상스 철학에 대해 조금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의 저술 에서 그 시대의 철학은 헤겔적 의미에서의 정신의 <단일 초점>이나 <한 시대의 실체적 정신>으로 대접받기는 고사하고 당시 사상적 분 위기의 한 계기로조차도 다루어지지 않았다 . 아마 그러한 대립은 역 사가와 역사 철학자 사이에 의견의 상충이 있을 때는 필연적으로 전 자를 변호해야 한다거나 사변적, 구성적 체계는 역사적 사실 앞에서 는 초라할 뿐이며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통해 묵살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처럼 판에 박힌 판단으로는 여기서 논의 되고 있는 의견 대립은 해결은커녕 파악조차 될 수 없다. 문제를 좀 더 깊게 추적하면 부르크하르트는 르네상스 철학을 자신의 관심 영역

에서 제외시킴으로써 필연적으로 하나의 또 다른 사실을 인정하였던 것이댜 즉 르네상스 철학은 스콜라 철학적인 속성을 지녔기 때문에 철학적 사상과 종교적인 사상 사이의 명확한 경계 설정을 어렵게 한 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콰트로첸토 철학은 그 의미나 성과면에서 본 질적으로 여전히 신학이었다. 그것이 다루는 내용은 크게 세 가지, 즉 신, 자유, 영혼의 불멸성의 주제로 압축될 수 있다. 바로 이 주제들이 야말로 < 알렉산드리아파>와 <아베로이스파> 간에 벌어진 파두아 학 파 내에서의 논쟁의 시발점을 이루며 동시에 피렌체의 플라톤 연구가 들의 사변적 핵심을 이룬 것들이었다. 부르크하르트는 아마도 주로 풍속과 종교에 입각한 저 방대한 르네상스의 개관에서 그와 같은 사 실을 규명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포기한 듯 하다. 그 주제들은 부르크 하르트가 보기에는 단지 원래 있던 전통의 한 연장에 불과한 것으로 당시의 종교적 역동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종의 보조적 의미만 을 지닌 것이었댜 그는 그러한 종교적 역동성을 이론적 논조나 종교 에 대한 철학적 문구가 아닌, 인간의 직접적인 행위, 세속적 삶과 정 신적, 일상적인 현실에 대한 실천적인 태도들 속에서 찾아내려 하였 댜 그러나 과연 그와 같은 종교적 <이론>과 <실천>의 구분이 사태 에 들어맞는 것인지, 아니면 부르크하르트가 자신의 입장을 개입시켜 조작한 것에 불과한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혹시 그러한 구분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거나 그가 구분하여 서술한 두 요소가 당시의 실 제 삶에서는 항상 혼동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바로 그가 말하는 <르네상스 정신>의 속성은 아닐까? 르네상스가 <신앙>과 <미신> 의 잡다한 요소를 거리낌없이 수용했다면 당시의 이론적인 교조가 아 직 소박한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것에 못지 않게 신앙에서 보여지는 소박성 또한 교조적 성격을 띤 것은 아니었을까? 경험적 역사가들이 부르크하르트를 향해 던지는 비판의 핵심은 바로 이러한 문제를 둘러

싼 것이댜 이러한 비판적 경향은 미술사, 정신사 , 일반 정치사에도 반영되어 르네상스와 중세 사이의 연대적 , 내용적 경계에 대한 인식 을 점차 변모시키기에 이른댜 5) 르네상스 개념 여기서 미술 분야의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13 세기 초에까지 소급하 고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를 새로운 경건 이상의 선구자로서뿐만 아 니라 15 세기에 완성된 회화와 시 분야의 선구자로 본 앙리 토데 Hern y Thode 는 덮어두기로 하겠다 . 그의 주장은 오늘날 학문적으로 거의 지지를 얻고 있지 못하다 .6 ) 그러나 구체적인 연구가 진행될수록 <중세적 인간>과 <르네상스적 인간> 사이의 대비가 유동적으로 해 체되는 듯한 인상을 배제하기 어렵댜 이 분야의 정평 있는 한 연구 가는 최근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콰트로첸토 시기의 탁월한 인 물들, 예를 들면 콜루치오 살루타티 Colluccio Salu tati나 포지오 브 라치올리니 Fog gie Braccio l in i, 레오나르도 부루니 Leonardo Brun i, 로렌조 발라 Lorenzo Valla, 로렌조 마니피코 Lorenzo Mag nifico , 루이지 풀치 Lu igi Pulci 등의 삶을 순수하게 귀납적으로 살펴본다면 어김 없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즉 당시의 학식 있는 인사들에게는 (‘개인주의’나 ‘이교주의’, ‘감각주의'나 ‘회의 懷 疑' 5) 여기서 이 과정을 일일이 거명할 수는 없으되 가장 기본이 될 만한 저술로 Konrad Burdach 의 Vom Mi ttela lte r zur Refo r mati on , Forschung e n zur Geschi ch t e der deuts c hen Bi ldu ng , Berlin 1912 와 동 저 자의 Deuts c he Rena iss ance, Berlin 1918, Refo r mati on , Renais s ance, Humanis m us, Berelin 6) 1T91h8o d등e,을 F r들a n수z v있o다n .A ssis i u die An [an ge der Kunst der Renais s ance in Ita lien , Berlin 188 .5 참조 .

같은) 그러한 특징들이 도무지 들어맞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 특 징들을 위에 열거한 인물들이나 그 시대의 전반적인 조류에서 찾아보 려는 시도는 십중팔구 실패로 돌아갈 것이며, 귀납적인 연구 결과는 우리에게-경건과 불경, 선과 악 , 천상에의 동경과 지상의 열락이 뒤섞여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한一~전혀 새로운 르네상스상을 전 달할 것이다 >71 이와 같은 진술은 철학사에도 해당되는 사항이다. 철 학사를 연구함에 있어서도 일반적인 것에 대한 추구를 포기하지 않음 과 동시에 구체적인 특수화 작업이나 역사적 디테일에 대한 섬세한 노력을 기울일 때에만 진정한 일반성이 구해짐을 명심해야 한다. 그 러나 체계적인 관점이나 체계적인 원리 차원에서의 일반성과, 시대 구분이나 각 시대에 대한 용이한 파악을 돕는, 단순히 경험적 차원의 유개념적 일반성은 엄격히 구별되어야만 한다 . 앞으로 이 책에서 다 루어질 논의에서도 바로 이 점을 유의할 것이다. 우리의 논의는 요사 이 정치사 서술이나 문학, 미술사에 흔히 도입되는, 르네상스와 중세 의 < 역사적 연관성 > 의 내용이나 의미를 둘러싼 논쟁에 끼어들려는 의 도는 없댜 81 우리 의 논의 는 그보다는 철학적 인 문제사 Problemg e - sc hi ch t e 의 성격을 고수할 것이며, 더 나아가 15 세기와 16 세기의 사 상적 운동이 그 주제의 다양성과 해결의 난삼성에도 불구하고 과연 7) Ernst Walser, Stu d ie n zur Welt:a ns chauung der Renais s ance, Basel 1920, 5 쪽 . 8) 이러한 논쟁의 발생 경위와 현재 상황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한 Konrad Burdach 의 저서들 외에도 특 히 Walte r Goe tz의 Rena iss ance und Anti ke, Histo r . Zeit sch r., Bd. 113, 237 쪽 이하; Renais s ance und Mi ttela lt er, Hi st o r . Zeit sch r. Bd. 98, 39 쪽, 그 밖에 풍부한 기초자료 를 제공하는 Karl Bo ri ns ki의 Di e Weltw ied erge burts i d e e in den neueren Zeit en I. Der Str ei t um die Renais s ance und . die Ents t e h ung s g e schic h t e der his t o r i sch en Bezie h un- gb eg riffe Renais s ance u. Mi ttela lt er , (Sit zu ng s beri ch te der Ba ye r. Akad. d Wi ss ensch, Phil os -ph ilo l. Klasse 1919) 둥을 둘 수 있다.

자체 완결적인 통일체를 이루었는지, 또 과연 이루었다면 어느 정도 였는지에 대한 해답을 구할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하나의 통일체로 서 입증하고 르네상스 철학이 제시하는 문제의 난맥상에 체계적인 중 심을 세울 수 있게 된다면 르네상스의 이론적, 사상적 작업과 그 사 상적 양태를 결정짓는 여타 요인간의 관련에 대해서도 규명하게 되는 것이댜 그럼으로써 결국 사상적 움직임의 제반 업적에서 사유 작업 과 그것의 추진력이 따로 따로 구분된다거나, 전자가 후자를 추상적 으로, 또는 단지 그림자처럼 좇는 것이 아니라 생산적이고 결정적으 로 포용하는 것임이 규명될 것이다. 그러한 제반 업적은 결코 단순한 한 부분을 의미하지 않으며 명실상부하게 전체를 드러내며 그것을 개 념적, 상징적으로 표현해 낸다. 어떻게 그와 같은 새로운 총괄적 생명 력이 르네상스에 스며들어 사상의 신국면을 요구하게 되었는지, 또 어떻게 그 속에서 그 생명력이 반영되었으며 자각되었는지 그 경위에 대해 이제부터 논의하여 보도록 하겠다.

제 1 장 니콜라우스 쿠자누스 - 르네상스 철학을 하나의 체계적인 통일체로 파악하려면 우선 니콜 라우스 쿠자누스 Nik ol aus Cusanus 를 이해하여야만 한다. 왜냐하면 콰트로첸토의 제철학적 조류나 경향 중에 오로지 그의 논조만이 다양 하기 이를 데 없는 광선들이 수렴하는 <단일 초점>을 제시함으로써 위에서 언급한 헤겔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때문이다. 쿠자누스는 당시 사상가로서는 유일하게 문제 전체를 단일한 방법적 원리에 입각하여 파악하고 해결하였다. 그의 사상은 중세적인 총체성의 이념에 걸맞게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전 우주를 포괄하는 것으로서 실로 전 분야를 망라한 것이었다. 그는 사변적 신학자인 동시에 사변적 수학자였으며 정역학靜力學과 일반 운동 이론뿐만 아니라 천문학과 천문지, 교회사 와 정치사, 법제사와 일반 정신사 둥에 두루 관심을 쏟았다. 그는 이 모든 분야에서 빼어난 학자였으며, 전 분야에 걸쳐 고유한 업적을 남

겼으되 , 결코 특수화나 고립화에 빠지는 법이 없었다. 그것은 쿠자누 스가 추구하였던 것이 단순히 단일 지적 체계에 부합한다거나 다른 분야와 단지 파생적으로 통일체를 형성하는 그와 같은 것이 아니라, 그의 첫 철학적 저술인 De docta ign oran tia 에서 표방한 근본 문제 에 대한 부단한 심화와 해석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쿠자누스가 신과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세계와 인간 정신과의 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도입한 함축 Com p l i ca ti o 과 구현 Ex pli ca ti o 같은 개념의 대비도 단일한 사상적 맹아에서 성장하였으되 시간이 경과할수록 다양하게 전개되어 시대적인 상황이나 지식 전체의 문제를 내포하는 논조에까 지 적용되기에 이르렀다. 쿠자누스 철학의 근본 원리는 그 자체로서 이미 새로운 근원 진리 의 출현을 의미한다. 그 진리는 삼단 논법적 귀결에 의해 매개된 것 이 아니라 급작스럽게 출현한 것으로서 위대한 직관력을 배태한 것이 다. 쿠자누스 자신은 콘스탄티노플에서 귀환하는 도중 이 원리가 < 신 적인 선물>처럼 그에게 출몰한 경위를 회고한 바 있다 . ” 그러므로 그 내용을 추상적으로 표현하고자 한다거나, 쿠자누스 자신에게조차 유 일무이하고 더할 나위없이 독특한 것으로 이해되었던 그 원리에 대해 조직적으로 규정하여 역사적인 목록을 붙이려 든다면 그것은 곧 그의 새로운 사상이 갖는 독창성과 깊이룰 간과하는 것을 의미한다 . < 배운 무지 docta ig noran ti a> 의 원리나 그 개념에 기초한 <대립의 일치> 개념은 사실 언뜻 보아 중세 신비주의 사상의 개작쯤으로밖에는 보이 1) De doct.a igno ranti a m, 12:

지 않는다. 사실 쿠자누스는 곳곳에서 에카르트 Eckh art나 위 (僞) 디 오니 시 우스 Pseudo-D i on y s i us 의 저 술들을 들먹 거 려 자기 고유의 사 상과 그것들을 명료하게 구분하는 것을 매우 어렵게 만든다 . 만일 쿠 자누스 저술의 핵심이 신, 죽 절대적 존재는 그 어떠한 긍정적 규정 도 배제하며 단지 부정적 술어에 의해서만 칭하여질 수 있으며 모든 유한한 척도와 명제, 비교를 뛰어넘는 것이라는 사상에 근간을 둔 것 이라면 그것은 결코 그 내용이나 목표면에서 새로운 것이라 할 수 없 댜 왜냐하면 그와 같은 <신비주의적> 신학 조류는 스콜라 철학에 저항하였으되 결국은 스콜라 철학 내에서 하나의 독특한 조류를 이루 며 발전하였기 때문이었다 .• 스 콜라 철학은 오래전부터 위(僞)아레오 파기 타 Pseudo ― Areo p a gita의 교설을 이 미 자신들의 지 침 으로 삼아, 요한네스 에리우게나J ohannes E ri ug ena 는 그의 저술을 참조하였으 며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Albert us Ma g nus 나 토마스 아퀴나스 Thomas von Aq uin 역시 그에 대한 주석을 다는 등 중세적 삶과 사 상 내에서 신비주의의 지위를 공고하게 하였다. 이처럼 신비주의적 체계의 지위는 확고부동한 것이었으되 그 낡은 사상은 이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롭게 각인되고 강조될 필요가 있었다. <배운 무지 docta ign oran ti a> 의 원리 그와 같은 새로운 각인이 어디서 이루어졌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우 선 아레오파기타 저작의 전체 구조를 문헌학적, 사상적으로 살펴보아 야만 한다. 이미 아레오파기타 저작의 제목이 그 구조를 암시하며 신 과 세계에 대한 중세적인 원리 전체에서 그것이 어떠한 위치를 차지 하였는가를 보여준다. 여기서 처음으로 날카롭게 형이상학적 차원에 서 그 전제와 다중적인 변화상이 제시된 것은 바로 위계 Hier arch ie

의 문제였댜 신의 이름에 관한 그의 저술 7(c p i 8ciQ V bvoµdTov 외에 도 특히 천상의 위계와 교회의 위계에 관한 저술 (7tf.pL 때g oUp av ia C 1cg px ia c , ncp i 때g 切 xxAml (JJJ Tl 志 1c pap x i a g)은 후대에 지대한 영향 을 끼쳤는데 이 저작들의 의미는 바로 그것을 통해 중세의 신앙과 학 문이 근거하고 있던 양대 경향과 동기가 처음으로 견고히 결합되었으 며 그를 통해 기독교적인 구원론과 희랍적인 사변의 진정한 유착이 이루어졌다는 데 있다. 이와 같은 사변, 즉 신플라톤주의가 기독교에 제공한 것은 무엇보다 계층적 우주 개념과 그것의 일반적인 모습이었 다. 세계는 낮은 세계와 높은 세계로, 또 감각계와 예지계로 나누어진 댜 그것들은 서로 대비될 뿐만 아니라 바로 그와 같은 상호 부정과 대극적인 대립성 속에 자신의 본질을 내포한다. 그러나 그러한 부정 의 심연 속에서도 그것들은 정신적인 끈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 그것 은 한 극에서 다른 극에로의, 즉 초존재와 초일자를 의미하는 형상의 왕국에서 절대적으로 형상을 결한 물질에로의 하락에 이르기까지 부 단한 매개가 일어남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무한자는 유한자로 전 환되며 유한한 것은 무한자에로 희귀한다. 그리하여 인간의 신성화를 의미하는 동시에 신의 인성화를 의미하는 구원의 전 과정이 완결된 댜 여기서는 늘 극복되어야 하는 <중간> 상태, 죽 분리하는 매개의 상태가 남게 된다. 그것은 바약될 수 없고 단지 엄격하게 규정된 차 례에 따라 점차적으로 거쳐져야만 하는 것이다. 천상으로부터 지상에 로 뻗어있고 지상을 천상에로 이끄는 이 사다리는 디오니시우스의 저 작에 체계적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그에 따르면 신과 인간 사이에는 세 개의 동심원을 이루는 순수 지성과 천상적 권능의 세계가 존재한 댜 그 각각은 다시 또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죽 그 첫번째 원은 최 고천사 세라핌 Seraph im, 지 천사 케루빔 Cherubim , 옥좌 천사 트로니 Thro ni로 이루어져 있으며 두번째 원은 주천사 도미나티오네

스 Do rni na ti ones , 덕천사 비르투테스 V irt u t es, 능천사 포테스타티스 Pote s ta t e s , 세번째 원은 권천사 프린키파투스 P ri nc ip a t us, 천사장 Archang e li, 천사 An g el i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체계 안에서 모든 존재는 신에게로 다시 결합되고 소멸하기까지 특정한 정도로 신의 광 휘 를 받아 출발한다. 동심원을 이루는 광선이 중심에서 내뿜어지듯이 신은 모든 사물의 출발이자 귀결이다. 광선이 중심에서 가까울수록 밀도가 있듯이 사물은 동일한 중심, 죽 존재와 생명의 근원에서 가까 울수록 본질과의 합일이 그것과의 분리를 압도한다 . 이로 인해 교회 질서에 대한 본격적인 신정론적 정당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왜냐하 면 교회 질서는 다름 아닌 정신적 우주 질서에 대한 완벽한 모사이기 때문이댜 교회의 계서는 천상의 계서를 반영하며 이 반영을 통해 포 기될 수 없는 필연성을 띠게 되었다 . 중세적 우주론과 중세적 신앙, 죽 세계 질서에 대한 견해와 풍습적, 종교적 구원 질서는 이와 같은 절대절명의 구도, 죽 최고의 의미 함축과 내적 귀결의 이미지로 굳어 지게 되었다. 니콜라우스 쿠자누스는 이러한 구도에 추호도 반기를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사변 전체, 특히 초기 사변 속에서 그는 그것을 직접적 으로 전제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De docta ign oran ti a 의 문장에서는 전혀 새로운 전체적 관점을 내포하는 사상 이 발견된다 . 여기서도 절대자의 존재와 경험적으로 제한된 존재자 사이의 대비, 또 무한자와 유한자 사이의 대비는 인정된다. 그러나 이 대비는 이제 더 이상 교조적으로 설정되어 있지 않고 궁극적인 깊이 에로까지 연구되어 인간의 인식 조건에서 출발하여 규명되어진다. 바 로 이 인식 문제에 관한 태도가 쿠자누스를 근대적 사상의 효시이게 끔 한다 . 21 그의 최초의 시도는 신에 대한 것이었다기보다는 신에 대 해 알 수 있는 가능성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그가 보기에

2) 이에 관해서는 인식 문제에 관한 나의 저술 1 권 21 쪽을 참조하기 바란다. 이밖 에도 최근의 상세한 연구에 의해 쿠자누스의 신론과 인식론의 연관성이 입증되 고 있다 . Vans tee nber g he 는 (Le azrdin a l Ni co las de Cues, Pa ris 1920, 'l79 쪽) 라고 말한다.

그때까지의 철학이나 사변적 신앙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전혀 충분 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위계 H i erarch i e 의 문제 그러한 사실은 아주 간단한 인식 개념이나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전제들을 상기해 볼 때 이내 확인된다 . 모든 인식은 비교를 전제로 하는 것으로, 좀더 정확히 말하면 측정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어떠한 성분들을 서로 뒤섞어 재기 위해서는 우선 동질성의 확보가 필수불가 결한 전제로 요구된다. 그 성분들은 동일한 측정 단위로 환원되어야 만 하고 같은 척도의 질서에 속하는 것으로 입증되어야만 한다. 그러 나 안식의 목표와 대상이 유한하고 제한된 개별자가 아니고 절대적인 대상일 경우, 이 조건은 더 이상 충족될 수 없다. 절대적 대상은 그 본질과 정의상 비교와 측정의 모든 가능성을 초월하며 인식 가능성 또한 초월한다. 모든 경험적인 인식과 측정은 일련의 조작과 사유 단 계의 한정된 진행에 의해 어떤 크기를 다른 크기로, 어떤 요소를 다 른 요소로 전환시키는 과정인데 반해 , 무한자에 대해서는 그와 같은 방식의 그 어떠한 환원도 무의미하다 . < 유한자와 무한자 사이에는 아 무런 상관 관계가 없다. Fin iti et inf i niti nulla pro p or t io. > 설령 그 사이에 수많은 중간자들을 끼워 넣는다 해도 유한자와 무한자 사이의 그와 같은 거리는 좁혀질 수 없다. 이 양 극단 사이의 틈을 채워 하

나를 다른 하나로 유도해 낼 만한 그 어떠한 사유의 합리적 방법이나 < 언변적 > 방법, 요소 요소를 따져 결합시키는 그 어떠한 절차도 존 재하지 않는 것이댜 3 1

3) De doct. igno r. I, I:

De docta ign oran ti a 의 짤막하고 소박한 이 첫 구절은 이미 결정 적인 변화가 일어났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 단 한번의 날카로운 선언 으로 인해 그때까지 스콜라 신학과 스콜라 논리학을 결합시켰던 끈은 끊어지게 되었댜 이제 논리학은 그때까지 누렸던 사변적 신학의 오 르가논 역할을 포기해야만 했다. 게다가 스콜라 철학 자체도 변모함 으로써 쿠자누스의 결론을 유도하는 데 일조하였다. 일찍 이 오캄 Wi lh elm von Occam 이 주장한 유명론과 그와 관련된 스콜라 철학의 < 근대적 > 움직임은 실재론적인 고전적 체계 속에 놓여 있던 논리학 과 문법학 사이의 연관이나 신학과 형이상학 사이의 연관을 약화시켜 놓았는데 41 이제 바야흐로 더욱 더 근원적인 분리가 이루어져 쿠자누

4) 리터 Gerhard Ritt er 는 14 세기와 15 세기의 간의 경합 과정을 연구하면서 오캄 이론에서 체계적으로 요구되어 어느 정도까 지 실현된 이와 같은 약화 과정이 그렇다고 하여 두 요소 사이의 결별을 의미하 지 않으며 오히려 당시 대학의 진영에서는 오캄이 설정한 한계마저 도 해소되 었음을 밝히고 있다 .(S tudi en zur Sp a tsc holastik : I. Marsi lius von Thg h en und die okka mist is c he Schule in Deuts c hland. II. Via anti qu a und via modema auf den deuts c hen U ni vers i닳t en des 15. Jah rhundert s, Sit zu ng sb er. der he ide lb. Akad. der wiss ., P h ilos . hist o r . KI., 1921 /22 .) 리터

는 위의 책 11 장 86 쪽에서 자신의 연구 결과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우 리는 오캄의 인식론적인 교조가 그의 추종자들을 거치며 얼마나 온건해졌는지 꼼꼼히 추적하였다. 게르손 Joh annes Gerson 같은 이는 오캄이 이루어 놓은 사 상적 핵심을 고수하면서 종교적 인식의 근거는 자연적인 이성과 전혀 다 른 정신 적 영역에서 연원하므로 자연적 이성은 신학적 형이상학적 사변에 도움이 되기 는커녕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말한다 . 만일 그가 이러한 사상을 강력하게 밀고나 갔다면 그는 실제 스콜라 철학의 몰락을 몰고 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결과에 이르지 않았다. 게르손조차도 스콜라 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저 사상, 죽 종교적 교조적 영역과 형이상학적 논리적 영역을 결합하려는 시도에서 크게 벗 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 . 그는 추상적이고 논리적인 개념의 형성에 대해 의심 치 않았다 . 더 나아가 Marsili us von ln g hen 의 철학 문헌과 신학 문헌에 관해 연구해 보면 우리는 유명론적인 토대에서 전성기 스콜라 철학이 지니고 있는 형 이상학과 신학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하나의 완결된 학적 체계를 발견하게 된다.> 리터의 이와 같은 연구를 참작한다면, 쿠자누스가 그의 첫 저술에서 보여 준 입장이 얼마나 획기적안 것이었으며 그의 오캄 이론이 하이델베르크에서 어 떠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는지 명백해진다.

스의 입장에서는 배증률에 근거한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은 단지 유 한자의 논리학일 뿐, 무한자를 직관하는 데는 필연적으로 부적격한 것이 되고 말았다 ?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의 개념은 모두 비교 개념 으로 이 개념들은 동일한 것과 유사한 것은 합치고, 상이하고 비슷하 지 않은 것은 서로 분리하는 것에 근거한다. 비교와 구분, 특수화와 제한이라는 그와.같은 방법을 통해 모든 경험적 존재들은 서로 엄격 한 상위와 하위 질서 관계 속에 놓여 있는 특정한 유와 종으로 나누 어진다. 논리학적 사유의 모든 기술은 바로 개념적 영역의 상호 관계 를 뚜렷하게 제시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5) 여기서 스콜라적 전통에 놓여있던 하이델베르크 출신의 요한 벵크 Joh ann Wenck 에 대한 쿠자누스의 항변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Ap o /. doct. ign. 64 쪽 .

스콜라 논리학의 한계 이때 우리는 어떤 개념을 다른 개념을 써서 규정하기 위해서 그 사 이에 놓인 일련의 매개념을 섭렵해야 하며 자연 상태의 사유에 직접 적으로는 주어지지 않은 이 매개념을 삼단 논법의 힘을 빌려 발견해 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만 사유의 특수한 질서 속에 추상적인 것 과 구체적인 것을,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을 포용하게 된다. 이 질 서는 존재의 질서와 상응한다. 즉 개념의 위계적인 구분을 통해 존재 의 계서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쿠자누스의 반론은 이렇게 시작된다-그와 같은 방식으로는 유사함과 상이함, 즉 유한자끼리 의 일치와 대비는 파악될 수 있다 할지라도 그러한 비교를 초월하는 절대자, 무제한자는 영원히 파악할 수 없다. 그러므로 스콜라적 사유 의 대상은 그것이 지니는 형식과 모순을 이룬다. 양자는 서로가 배타 적인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다. 절대자, 무한자를 생각할 수 있는 가 능성이 있다 해도 그것은 전통 < 논리학>의 버팀목과는 어쨌건 아무 런 관련이 없다. 전통 < 논리학 > 은 단지 하나의 유한하고 제한된 것 을 다른 데에로 유도할 뿐, 유한성과 조건성의 영역을 넘어서 적용될 수는 없다. 이런 경위로 일체의 < 합리적> 신학이 거부되고 대신 <신비 신학> 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쿠자누스는 전통적 개념의 논리학뿐 아 니라 전통적 개념의 신비주의도 극복해 내었다. 그는 논리적인 추상 화나 유개념을 통한 무한자의 파악을 단호하게 부정함과 아울러 단순 한 감정을 통한 무한자의 파악 가능성도 거부하였다. 15 세기 신비 신 학에서는 두 개의 노선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이성을, 다른 하나는 의지를 영혼의 기본적인 역량 내지 신에의 합일 로 이끄는 도구로 여겼다. 이 논쟁에서 쿠자누스는 명백히 전자의 입

장을 취하였다. 신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신에 대한 이지적 사랑 amor Dei i n t ellec t ua li s 이댜 거기에는 인식이 필연적인 동기이자 필 연적인 조건으로서 내포되어 있다. 왜냐하면 어떤 의미에서든 우선 알지 않고서는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식의 참여 없는 단순한 정서는 그 자체로 모순이다. 사랑의 대상은 항상 선의 이데아에 속하 며 <선한 이성을 통해 sub rati on e boni> 파악된다. 설령 선 자체라 는 단일한 본질이 인식 불가능한 것일지라도 선을 향한 앎은 의지력 을 자극하고 고무한다. 이렇게 하여 앎과 모름은 하나로 결합되어 새 로이 <배운 무지>, 즉 docta ig noran ti a 의 원리가 성 립되게 된다 .6) 그 속에는 그 어떠한 형태의 <회의>도 부정하는 계기가 포함되어 있 다 . 가 절대자와 합리적이자 논리적, 개념적인 인 식이 양립할 수 없음을 강조할 때 거기에는 긍정적인 요청이 내포되 어 있다. 단순한 개념을 통한 논변적 지식에 대해서 스스로를 차단하 는 무조건적인 신적 존재는 새로운 인식 방식과 새로운 인식 형식을 6) 가스파 엔도르퍼 Gespa rd Ai ndo rffe r 게 보내는 쿠자누스의 1452 년 9 월 22 일자 서 한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 쿠자누스와 대별되는 순수 한 충동 신비주의, 의지 신비주의적 입장은 매우 독특한 형태로 악스바흐 Vin c ent von A gg sbach 에 의해 주장되고 있다. 이 논쟁에 관해서는 반슈텐베르 게 E. Vans tee nber ghe 의 Auto r de la docte igno rance. Une contr au erse sur 뇨 t函 lo gie my st i qu e au XVe sie c le, Mi ins te r 1915 를 참조하기 바란다 . 이 책에는 이 논쟁을 둘러싼 각종 기록들이 수록되어 있다. (위에 언급된 편지는 같 은 책 111 쪽에 수록되어 있음 . )

요구한댜 그것을 파악하는 진정한 도구는 그 속에서 논리적 유와 종 의 모든 대 비 성 이 소멸 되 는 지 적 관조, 즉 이 다. 우리는 그 속에서 존재의 모든 경험적 차이와 그것의 단순한 개념적 구분을 넘어서서 그것의 단일한 근원, 죽 모든 구분과 모든 대조에 선 행하는 한 점에 도달하게 된다 . 이러한 방식의 관조를 통해, 그리고 단 지 그것을 통해서만 진정한 < 신의 모방fili a ti o De i > 이 성취된다 ? 쿠 자누스는 이 < fili a ti o > 라는 사상을 통해서 곳곳에서 중세적 신비주의 의 기본 요소들과 관련을 맺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절대자와 유 한자에 대한 그의 새로운 조망 역시 그 사상을 통하여 전환되었음을 주목하여야 한다 . 즉 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타에 있어서 <신화(神 化 , Gott we rdung )> , 죽 ~t. @a t~(t heos i s) 란 위계적인 원칙에 준해 운동 과 채광, 그리고 합일의 과정을 수행하는 것인데 반해 쿠자누스에 있 어서 그것은 인간이 자기 스스로를 신에게로 직접 연관시키는 통일된 과정이나 행위를 의미한다. 그러나 신과 인간 사이의 그와 같은 관계 는 단순한 황홀지경에 의해 획득하는 것이 아니다. 는 정신의 자발적인 운동을 전제로 하며 그 속에 놓인 근원적인 힘과 부단한 사유 작업을 통한 힘의 전개를 전제로 한다.

7) 쿠자누스의 De filiat i on e Dei (Op er a P. 119 이하) 를 참조하라

새로운 인식 형태의 요구 이러한 맥락에서 쿠자누스는 의 의미와 목표

를 설명하는 데 수동적 관조라는 신비적 형식보다는 수학에 의존했 댜 그에게는 수학이야말로 사변적 사유나 대립에 대한 사변적 개관 을 위한 참되고 유일한 상징을 의미하였다 . < 우리는 수학 이외에는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Ni hil certi habemus in nostr a scie n ti a nisi nostr am math e mati ca m.> 수학적 언어가 통용되지 않 는 영역에서는 인간 정신에 의해 파악 가능하고 인식 가능한 것이 있 을 수 없댜 8) 그는 이처럼 모순율과 배중률 하에 놓여 있는 유개념의 논리학, 스콜라적 논리학을 거부하고 대신 수학적 논리학이라는 새로 운 유형을 추구했다. 그 안에서는 반대 개념의 공존이 거부되지 않고 바로 이 공존, 즉 극대와 극소의 일치가 항구한 원칙으로써, 또 진보 하는 인식의 필수 불가결한 도구로서 요구된다.

8) Di al. de po ssest (Op . 259 쪽)를 참조하라 de math e mati ai pe rf ect i on e, Op era , 1120 쪽 이 하와 비 교해 볼 것 .

신에 관한 학 (Theo-Lo gi e) 에 명실상부한 새로운 장이 열려 중세적 사유 방식의 한계와 더불어 중세적 세계상의 한계를 극복하게 되었음 은, 쿠자누스적 방법의 고유성을 그 체계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사 상의 보편사적 맥락과 철학사적 맥락, 그리고 일반 정신사를 통해 규 명함으로써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 콰트로첸토의 전체적 분위 기가 그러했듯 쿠자누스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사이에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사상적인 분기점에 놓여 있었다. 이 결단은 오래된 인문 주의자들 사이에서도 횡행하여 예를 들어 페트라르카는 자신의 『명성 의 승리』에서 플라톤을 아리스토텔레스는 결코 따라 잡을 수 없는 철

잠해 위 디오니시우스의 저작이나 비교적(秘 敎 的)인 책들, 프로클레스 등에 익숙해 있던 그의 정신에 플라톤의 대화편들이 새로이 등장했을 때의 충격을 연상해 보면, 그에게서 왜 그렇게 새로운 문제 제기가 속속 일어날 수 있었는지 가히 수긍할 수 있다. 중세의 지식과 사상 곳곳에서 발견되는 플라톤적 사유와 신플라톤적 사유 방식의 어정쩡 한 혼합은 이제 더 이상 용납될 수 없게 되었다. 철학과 수학 수업뿐 아니라 인문주의적, 문헌학적 비판 수업을 섭렵하여 스스로 그러한 비판을 수행하고 확립한 쿠자누스 같은 사상가로서는 플라톤적 요소 와 신플라톤적 요소의 단순한 병립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았던 것이 다. 대신 그는 그 모든 것들을 서로 대결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그 러나 쿠자누스는 저 유명한 문헌학적 논쟁에서도 플레톤의 저서 『아 리스토텔레스의 플라톤 비판에 관하여 nEp L @V 'AplO TOTEAllc; np oc ; I D.a Tovm &叫tpga l 』를 인용하며 단지 간접적으로 관여하였을 뿐 결코 그 문제에 대한 명료한 저술을 남기지는 않았다. 풀라톤 철학의 재평가 그는 문헌학적 비판 대신 심오하고 풍부한 체계적 비판을 남겼다. 그리하여 쿠자누스의 사변은 중세 철학 내에서 예외없이 중첩하여 등 장하던 사유의 제 요소들이 만나 서로를 알고 가늠하는 각축장의 양 상을 띠게 되었다. 이러한 각축을 통해-플레톤과 베사리온, 테오 도루스 가자 Theodorus Gaza 와 게오르그 폰 트라페준트 Geor g von Trape z unt 같은 이들간의 문학적 논쟁과는 구별되게-플라톤 철 학의 근원적 · 의미에 대한 새로운 해명이 이루어졌으며 플라톤과 아리 스토텔레스 사이의 사상적 경계와, 플라톤과 신플라톤주의 사이의 사 상적 경계가 설정되기에 이르렀다.

폴라톤의 세계관은 감각계와 예지계, 현상계와 이데아계 사이의 명 료한 단절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 두 세계, 즉 < 가시적인 > 세 계와 < 불가시적인 > 세계, 6 pa-r ov(hora t on) 의 세계와 vowov (noeto n ) 의 세계는 결코 같은 지평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어서 직접적인 비 교를 절대로 허용하지 않으며 한 쪽은 다른 한 쪽에 대한 전적인 대 립 玩£fX) V(he t eron) 을 의미한댜 우리가 어느 한 쪽을 설명하려고 동 원하는 일체의 술어들은 그러므로 다른 한 쪽에 대해서는 부적격할 수밖에 없댜 < 이데아 > 의 성격은 이와 같이 현상의 성격을 반립적으 로 부정함으로써 추론된다. 현상이 부단한 흐름으로 규정된다면 이데 아에는 지속적인 상태라는 표현이 적합하다. 현상은 원래 결코 단일 하지 않고 그것을 파악하려는 시선에 대해 그때 그때 다양하게 변하 는 반면 이데아는 자기 스스로와의 순수 동일성을 고수한다. 이데아 를 일반적으로 의미 불변에의 요청이라고 규정한다면 감각적 현상의 세계는 그러한 종류의 규정, 아니 그 가능성까지도 부인한다. 그 속에 서는 아무 것도 진정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아무 것도 진정으로 동일 하지 않다. 또 아무 것도 그 무엇으로서 확연한 성질을 드러내지 않 는다. 이러한 근거로 지식과 억견, 즉 en tOTIJJ[T] (e pi s t eme) 와 8bt a (doxa) 의 영역은 구분된다. 전자는 항구적으로 존재하며 항상 같은 상태로 있는 것을 좇으며 후자는 한갓진 지각, 표상 내지 우리가 지 닌 관념의 추이에 따른다. 모든 철학은 그것이 이론 철학이건 실천 철학이건, 변증법이건 윤리학이건을 막론하고 바로 이 대립을 인식하 는 것에 자신의 노력을 경주한다. 이 대립을 지양한다거나 어떻게든 화해시키려는 시도는 바로 철학 자체를 지양하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양면성(이원성)을 간과함으로써 지식의 전제를 무너뜨리는 것은 판 단하는 행위의 의미와 뜻을, 더 나아가서 모든 학문적 <담화>의 권 위를 파괴하는 것과 같다 . (그것은 모든 대화의 효력을 파괴한다. &叫 8

모든 상이함을 포함하는 단일한 작용 연관 단위이다. 설령 두 개의 < 상이한 > 존재 방식과 존재 양상이 주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을 연결 하고 화해시키기 위해서는 통일적이고 역동적인 그와 같은 과정을 상 기하는 것으로 족하다. 그리하여 플라톤적인 < 현상 > 과 < 이데아> 간 의 구획은 사라지게 되었으며 < 감각계 > 와 < 예지계 >, < 하위의 것> 과 <상 위의 것>, < 신적인 것>과 <지 상의 것>은 서로 동일한 항구 적 작용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세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영 역을 이루는 것으로, 그 안에서는 단지 단계의 차이만이 존재한다. 삼 라만상에 작용하는 신적인 부동( 不動 )의 동인(動 因 )은 가장 바깥쪽의 천상 궤도에까지 그 힘을 뻗쳐, 전 존재자를 향해 항구적이고 규칙적 인 차례에 따라 자신을 분배하며 , 서로 맞물린 천상계의 매개를 거쳐 월하(月下, subluna risc h) 세계에 자신을 드러낸다. 물론 출발과 끝 지 점 사이의 거리는 엄청나겠지만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전환되는 과 정에서 그 어디서도 절대적인 <착 수 > 나 < 중지> 같은 단절이 일어나 지 않는다. 그리하여 양자를 가르는 동시에 연결하는 것은 유한하고 균질적인 공간, 즉 특정 단계로서 측정 가능한 공간을 이룬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신풀라톤주의 플로티누스와 신플라톤주의는 플라톤 사상과 아리스토텔레스 사삼l­ 의 통합울 추구하였다. 그러나 조직적 측면에서 볼 때 그것은 단지 이 두 사상의 절충주의적인 혼합만을 달성하였다. 신플라톤적 체계는 예지계와 감각계 사이의 절대적인 대립, 즉 플라톤의 <초월 Trans- zendenz> 사상에 근간을 두고 있다. 신플라톤주의의 그와 같은 경향 은 고스란히 플라톤적인 어투나 문체로 서술되어 있으며 어떤 의미에 서는 그 표현에 있어 더 과격할 정도이다. 그러나 신플라톤주의는 아

리스토텔레스의 발전 개념 역시 도입, 차용함으로써 플라톤 체계 내 에서는 지양 불가능했던 변증법적 긴장을 해소하였다. 즉 초월이라는 플라톤적 범주와 발전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적 범주를 통해 < 유출 Emana ti on> 이라는 파생 개념을 창조해 내게 된 것이다 . 절대자는 유 한자를 초월하여 초일자로서, 초존재로서 자신 내에 머문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거기로부터 내재된 잉여의 힘이 나와 무정형의 물질, 즉 비존재자의 가장 바깥쪽 경계에까지 이르는 세계의 다양성을 생성 한다. 우리는 위 디오니소스의 저서를 통해 어떻게 기독교적 중세가 그와 같은 전제를 수용하여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였는가롤 확인할 수 있다. 중세는 신플라톤주의에서 단계적 매개라는 근본 범주를 수용하 였다. 이 근본 범주는 신적인 초월성을 성립하게 함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개념의 계서, 정신적 힘의 계서라는 사상을 통해 그것을 이론적, 실천적으로 극복한다 . 이제 초월성은 교회의 구원 질서와 삶 의 질서라는 기적을 통해 인정받는 동시에 극복되기에 이르렀다. 이 기적을 통해 인간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게 되고, 파악 불가능하 던 것이 파악 가능케 된 것이다. 니콜라우스 쿠자누스는 그 사상이나 저작을 살펴볼 때 여전히 그와 같은 중세적 정신과 삶의 전제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인물이다. 지난 세기 동안 기독교의 교리와 아리스토텔레스나 신플라톤주의 체계의 이론적 내용을 잇고 있던 끈이 너무도 공고했던 탓에, 기독교 신앙 내에서 독실하고 굳건하게 머물렀던 그와 같은 사상가가 단번에 그 끈을 끊어버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쿠자누스가 과거의 위대한 스콜라적 체계와 연관되어 있으며 더 나아가 그것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음을 시사하는 또 다른 계기가 존재한다. 스콜라 적 철학 체계는 쿠자누스의 철학적 사유에 그 내용뿐 아니라 형식도 선사했다. 스콜라적 체계는 유례없이 독특한 언어를 통해 전개되었는

데 인문주의는 바로 이 점에 착안해 스 콜라 철 학을 논박하곤 하였다. 인문주의적 입장에서는 스 콜 라 철 학이 구사하는 < 조야한 > 라틴어를 비난함으로써 그것의 사상마저도 정복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쿠자누스는 인문주의와 기본적인 성향은 같이 하였음에도 불 구하고, 그 점에 대해서만큼은 동조하지 않았다. 그는 독일인이었기 때문에 위대한 문장가들이나 인문주의적 능변의 대가들에게 애초부터 열등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 자신도 느끼고 고백한 대로, 에네아 실비 오 피콜로미니 Enea Silv i o P i ccolo mini나 로렌조 발라 Lorenzo Valla 같은 < 태생이 라틴계인 > 사람들과 경쟁한다는 것은 그로서는 불가능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약점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에 의하면 사심없고 순수한 의미는 바로 이런 소박하고 서툰 표현 (hum ilior i elo qu i o) 을 통해 드러난다는 것이다 .1 3 ) 그러나 쿠자누스가 스콜라적 < 문체 > 를 고수함으로 인해 내적인 난점이 배태되어 결국 그에게 한층 더 중요한 임무가 부과되게 되었다. 그에게는 바야흐로 당시 지배적인 철학적 개념의 테두리를 지키되, 죽 스콜라적인 용어 체계를 고수하되 그 내용과 경향면에서는 스콜라 철학을 훨씬 뛰어넘 는 사상을 설파할 것이 요구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쿠 자누스의 그 이상야릇한 라틴어는 일견 모호하고 불가사의하며 서툴 13) 쿠자누스의 De concordanti a ca t hol i ca 의 서 문, Op ., f ol. 683.

게 보이지만, 독특한 새 문체를 풍부히 구사하여, 때로는 자신조차 감 동시키는 절대적이고 사변적인 근본적 문제의 심오함을 단 한 단어 로, 단 하나의 근사한 신조어(新造 語 )로 기발하게 표현해 내곤 하였다. 그가 구사한 라틴어는 그가 중세에 대하여 취하고 있던 전체적인 사 상적 태도를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표현을 둘러싼 그의 각별한 노력은 스콜라 철학이라는 거대한 사상 덩어리가 훈도적인 경직성을 탈피하여 전혀 새로운 사상적 조류에 홉수되었음을 알린다. 스콜라 철학과의 관계 쿠자누스의 저술에서 때로는 암시적으로, 때로는 놀라우리만큼 명 료하게 드러나는 그와 같은 변화는 <감각적> 세계와 < 초감각적 > 세 계, <경험적> 세계와 <예지적> 세계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 는 것홀 그 목표로 하고 있다. 그 관계에 대한 체계적인 관찰과 파악 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 참여와 단절 개념, 즉 µe~E~Lt; (me t he xi s) 와 X wp loµo c; (cho ri smos) 라는 순수 폴라톤적인 기본 개념에로 눈을 돌리게 한다 .14) 사유가 존재의 세계에 설정한 구획이 고전적인 스콜라 철학에 서와는 다른 방식과 관점하에서 이해되었음은 이미 De docta ign oran ti a 의 첫 구절에 드러난다 . 쿠자누스는 선이 <존재의 피안에 g 1C 江 Clm 때 C OOOi ac > 놓여 있다는 플라톤의 말을 다시금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죽 경험적으로 주어진 것에서 시작하여 지속적인 진행을 통해 하나의 경험적 사실에다 다른 것을 접속시키고 관련시키는 추론 으로는 절대 거기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사유는 기 14) 어째서 이 개념이 중세기를 통해 원래적인 플라톤적 의미를 상실하였는지에 대 해서는 호프만 Ho ffm ann 의 탁월한 논문 Plato nism us und Mittela lte r , Vort rag e der Bi bl io t h e k Warburg, ID, 17 쪽 이 하를 참조하라.

껏해야 비교를 통해, 즉 < 더 > 하고 < 덜 > 함의 영역 내에서 진행된다. 도대체 어떻게 그와 같은 비교를 통해, 모든 비교를 초월한— _[ 단지 상대적 의미에서 크고 더 크고를 뛰어넘어 절대적으로 가장 큰――­ < 최고치, 극대 Max i mum > 를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인가? 여기서 우리 는 극대라는 표현을 오해하여서는 안 된다. 그것은 비교급을 전제로 하는 최상급의 설정이 아니며 오히려 일체의 비교, 모든 양적 단계화 작업에 대한 절대적인 대립을 의미한다. 극대는 크기 개념이 아니고 순수한 질적인 개념인 것이댜 그것은 존재의 절대적 근원임과 동시 에 인식의 절대적 근원이다 .1 5) 그 어떠한 양화 작업이나 순차적인 단 계로도 이 존재의 근원과 경험적 존재 사이에 놓인 틈이 메워질 수는 없댜 경험적 존재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체의 측정, 비교, 추론은 자 신의 영역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과정은 경험적 테두리 내에서는 무한정 확장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불확정 적 인 것 Unbes timmt e 에로 의 끝없는 진행이 무한자 Unendl i che 를 파악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 15) 여기서 폴 라톤에 있어서 최고의 원 칙 적 근거이자 인식 근거인 선의 이데아 역 시 < 최대 > 라는 말로 표현되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µtrL crrov µ~ (meg ist o n ma t hema) 이다 (Pla t. Rep u b. VI, 505 A). 쿠자누스가 경험적인 존재 를 < 더하고 덜함 > (µill. ov n xai frIT ov) 의 세계로 정의한 것이 직접 폴라톤을 원 용한 것 인지는 의문아다 . 그가 그러한 내용이 가장 잘 드러난 대화편 Ph ileb os 편 을 알 았 는지에 대한 중거는 희박하다 . 그러나 설령 그가 독자적으로 그와 같은 사상과 표현 을 창안해 냈다 하더라도 플라톤과의 방법적인 연관성은 결코 무시 할 수 없다. 쿠자누 스 는 플라톤을 신을 인식함에 docta ign oran ti a 의 방법을 따 르는 유일한 사상가로 평가하고 있다 . De venati on e sapi en ti ae , Cap . XII, fol. 307.

는데 그 이유는 절대성이라는 극대의 특징 때문이다. 이처럼 쿠자누 스 철학에서는 < 무한정, 부정( 不定 , Inde finit es) > 과 < 무한 In fi n it es > 개념이 확연히 구분된다 . 규정되었거나 부단히 규정될 수 있는 세계 와 규정되지 않은 세계 사이에 성립 가능한 관계는 오로지 서로 전적 으로 배척하는 관계일 뿐이다. 규정되지 않은 것은 일체의 경험적 술 어에 대한 부정에 의해서만 그 기술이 가능하다 . 결국 < 다름 Andersheit > 이 라고 하는 플라톤적 계 기 , 죽 gTc {X )v (hete r on) 이 첨 예 하게 드러난댜 감각적인 것과 예지적인 것 사이에서는 그 어떠한 <유사함>도 발견될 수 없다. 감각적인 원이나 구는 결코 그것의 순 수 개념과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필연적으로 거기에 예속될 뿐이다. 우리는 감각적인 것을 개념적인 것과 관련시킬 줄 알며, 가시적으로 주어진 존재가 구나 원 같은 불가시적 개념을 그럭저럭 충족시킴을 확인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 모상 Abb il d > 과 < 원형 Urbil d> 사이의 근원적인 차이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원 형이 지니는 순수한 진리에는 <더함>이나 <덜함> 같은 특징이 해당 되지 않기 때문이댜 거기서 조금이라도 감한다거나 제거하기를 시도 한다면 그 진리는 본질상 파괴된다. 그러나 감각적인 것은 불확정성 Unbes ti rnrn the it을 내포하며 바로 그러한 것을 특징으로 지니고 있 댜 그것은 무한한 생성, 그러그러함 So-Se i n 과 다름 Anders-Sein 사이의 부단한 왕복이라는 지평에서, 주어진 대로 존재할 뿐이다. <무한자와 유한자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음이 분명하므로 인간은 항상 극복하고 극복되면서도 결코 최대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왜냐하 면 극복하는 것이나 극복되는 것은 유한한 . 것인데 반해 절대적으로 최대인 것은 필연적으로 무한하기 때문이다. 절대적 최대치가 아닌 것은 항상 그것보다 더 큰 것을 발견케 할 여지를 남긴다.

극대 Max i mum 로서의 절대자 또 서로 너무도 비슷하여 더 비슷한 것을 찾아내지 못할 정도로 서 로 같거나 유사한 두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도나 크기에 있어 서로 접근하여도 그 사이의 차이는 여전히 남는다. 그러므로 유한한 오성은 사물의 진상을 그 정확도에 있어 보잘것없는 근사값으로밖에 는 인식하지 못한다 . 진리는 더도 덜도 아니고 나뉠 수도 없는 그와 같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지성이 진리에 대하여 취하는 관계는 마치 다각형이 원에 대하여 취하는 관계와 같다. 다각형이 점 점 그 각과 변을 늘릴수록 원에 접근하지만 그 각과 변을 무한대로 늘려도 결코 원과 같아질 수는 없는 것처럼 진리 역시 부정확한 정도 로밖에는 파악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진리는 그 자체가 더도 덜도 될 수 없는 절대적 필연성이지만 우리의 지성은 한낱 가능성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 1 61 우리는 이 의미심장한 구절을 통해, 한정된 것에서 무한정에로는 어떠한 형태의 상승도 용납되지 않으며, 경험적, 또는 합리적 <진리> 와 절대적 진리 사이에는 어떠한 연속도 성립될 수 없다는 것과 아울 러 스콜라적 논리학의 형식과 스콜라적 존재론의 목표가 어떻게 부인 되는지 확인한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동시에 독특한 방향 전환을 의미한댜 감각계와 예지계를 나누며 경험과 논리학을 형이상학과 구 별하려는 그의 시도는 결코 경험 자체의 생명력을 단절시키지는 않는 다 . 오히려 바로 그와 같은 구별이야말로 경험으로 하여금 정당성을 확보케 하는 관건으로 작용한다. 이것은 쿠자누스가 <단절> 개념에 대해서 못지 않은 단호함과 날카로움을 발휘하여 <참여> 개념에 대 16) De docta igno ranti a I., 3 , fol. 2 이 하 .

해 논구한 끝에 얻어낸 결론이다. < 단절 > 과 < 참여 > 는 결코 서로 배 타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호간의 연관을 통해서만 상상할 수 있 는 그러한 관계를 맺는다. 경험적 지식을 정의하는 데는 필연적으로 두 요소가 서로 연관되어 내포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 어떠한 경험적 지식도 이념적 존재나 이념적 양태와의 관련없이는 성립이 불가능하 기 때문이댜 그러나 그 어떠한 경험적 지식도 이념적인 진리를 단순 히 내포하거나 일부분으로서 함축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미 보았듯 이 경험적인 것의 속성은 그 무한한 규정 가능성에 있으며, 관념적인 것의 속성은 그 완결성, 그 필연적이며 확연한 확정성에 있다. 그러나 규정 가능성은 안정된 형태나 방향을 부여하는 확정성에 대한 고려를 할 때에만 가능하다. 이처럼 유한자들은 결코 무조건적인 것에 이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관여한다. 이것이 바로 docta ign oranti a 개념이 품고 있는 두번째 계기이다. 신론과 관련하여서 이 개념은 배운 무지를 의미한다. 물론 경험은 진정한 지식을 배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지식은 결코 절대적인 것에 도달할 수 없고 단지 상 대적인 목표와 결과에 도달하기 때문에 언제든 개선될 여지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 이 영역에서는 그 어떠한 엄밀성, 그 어떠한 정확성 p raec i s i o 도 보장되지 않으며, 정확한 진술이나 측정이라 하더라도 한 충 더 정확한 것에 의해 극복 가능하고 또 극복되어야만 한다. <추측 conje c tu ra> 개념을 통해 현상이 이데아에 참여한다는 사상과 이데 아와 현상이 영원히 <상이>하다는 생각은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되었 다. 경험적 지식에 관한 쿠자누스의 정의는 단지 이와 같은 연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상이성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적극적인 진술은 진리에 관한 추측에 불과하다. Conje c tu ra est po sit iva assert io in alte ritate veri tatem uti est partici p a ns.>11> 우리는 이 렇게 하여 부 정 신학과 더불어 긍정적 경험론을 획득하게 된다. 둘은 결코 배타적

인 것이 아니고 단지 지식의 동일한 근본 파악을 상이한 방향에서 드 러낸 것 일 뿐이댜 우리로서는 절대적 존재가 지니고 있는 그 파악 불가능한 진리를 단지 상이함의 영역에서 상정해 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상이성은 그 어떠한 방식으로든 동일성에 대해 암시하고 그 것에 참여하게 마련이다 . 1 81 물론 우리는 그 어떠한 동질화, 한 영역과 다른 영역의 혼동, 그 어떠한 이원주의의 지양도 피해야만 한다 . 바로 이와 같은 포기를 통해서만 우리 인식은 그 상대적 정당성과 상대적 진리 를 확보할 수 있다. 칸트 Kan t식으로 말하면 우리 지식은 분명 결코 극복될 수 없는 한계를 지니되 허용된 한도 내에서는 제한을 받 지 않는다는 것이다. 죽 그것은 상이성의 영역 내에서는 자유롭게 방 해받지 않고 모든 면으로 확장 가능하고 또 확장되어야만 한다. 이러 한 분리는 양자간의 혼동을 막는 동시에, 한 영역에서 상대 영역을 보는 법을 가르침으로써 이념적 세계에 대한 감각계의 진정한 분유 가능성을 확보한다.

17) De con jec tu r is I, 13. 18) p (er위 의q 떠책) d.e m pro p inq u ius , ips a semp er uti est ina tt ingibi l i

2 단일성과 상이성 우리는 지금까지 쿠자누스 철학의 일반적인 방법적 원칙에 대하여 서만 논의하였다. 그러나 이 원칙에는 구체적 세계상 , 즉 물질적인 것 을 넘어 정신적 우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결론들이 내포되어 있다. 예 컨 대 위 에 서 인용한 De docta ign oran tia 와 De conj ec t ur i s 의 구 절 뒤에는 운동의 상대성과 지구의 자전에 관한 견해가 피력되어 있 다. 뒤에서도 명백히 밝히겠지만 쿠자누스는 물리학적 고찰이 아닌 사변적이고 일반 인식론적인 고찰에서 출발하여 그와 같은 결론에 도 달하였다. 즉 그는 물리학자로서가 아니라 <배운 무지 > 라는 원리에 대한 주창자로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글이 이처럼 그 추론 방식이나 형식에 있어 경험적 성격보다는 단순한 < 착상 A p er~u > 의 성격을 띠는 듯하여, 경험적 자연 과학사가들에게는 다소 저항감을 불러일으키지만 철학사가로서는 거기에 신경쓸 필요가 없다. 철학사 가의 임무는 그 착상처럼 보이는 것에 어떻게 쿠자누스의 논조 전체 가 관련되어 있으며, 어떻게 그 전체가 특수한 문제를 통해 확증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쿠자누스의 명제가 갖는 독특함과 그것의 고유한 사상 적 동기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그것과 중세 물리학을 비교하여 보 겠다. 중세 물리학은 우주 구성에서 각각 독특한 역할을 수행하는 네 가지 원소의 설정을 근간으로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 의존한 다. 불, 물 공기, 흙은 서로 엄격히 규정된 공간적 관계, 죽 <위>와 <아래>라는 특정 질서 속에 놓여 있다. 각 원소의 속성은 그 원소로 하여금 우주의 중심에서부터 특정한 거리를 취할 것을 지정하여 준

댜 우주의 중심에서 가장 가까운 것은 흙인데 그것은 자신에게 자연 스런 장소, 즉 세계 중심부에서 근접한 장소에 떨어지는 찰나 직선 운동을 통해 거기에로 회귀하려는 경향을 띤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불의 운동은 < 본유적으로 > 위를 향한 것으로 항상 중심으로부터 멀 어지려고 애쓴다. 흙과 불의 장소에는 공기와 물의 영역도 자리잡고 있댜 모든 물질적 작용은 한 원소가 다른 원소, 즉 자신에게 인접한 원소로 전환되는 과정을 통해, 즉 불은 공기로, 공기는 물로, 물은 흙 으로 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지상에서 벌어지는 삼 라만상은 이 상호 변화의 원칙, 생성과 소멸의 법칙에 의해 지배된다. 그러나 이 지상을 넘어선 곳에는 이 법칙에 지배되지도 않고 생성이 나 소멸 따위와 무관한 영역이 전개된다. 천체의 물질은 지상의 4 원 소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고유한 속성, 즉 < 제 5 의 성질 quint a essen ti a > 을 지닌다. 거기에는 질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변동이 있 다면 단지 한 가지, 순수한 장소의 변동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완 벽한 천체들은 모든 가능한 운동 형식 중에서 가장 완벽한 형식을 택 한다는 의미에서 세계의 중심을 도는 원운동을 한다. 중세기 전체를 통해 위와 같은 시스템은 거의 고정 불변한 정설로 여겨졌다. 간혹 < 천상계를 이루는 물질 > 에 대해 왕왕 의문이 제기되어 부분적인 수 정이 가해지기도 하였지만 기본적인 견해는 본질적으로 고수되었다. 둔스 스코투스와 오캄은 천체는 지상과 같은 원소로 이루어져 있고 다른 형태로 변화하거나 생성하는 가능성도 띠고 있는데, 단지 그러 한 변화를 개시하는 자연적 동력을 지니지 못했다는 테제를 들고 나 옴으로써 그 문제에 개입하였다. 그들의 견해를 통해, 천상에서는, 비 록 논리적이지는 않지만 실제적인 필연성에 의해, 또 관념적이 아닌 사실적 차원에서 생성과 소멸이 부정되었다. 그들에 의하면 만일 천 상에서 생성과 소멸이 진행된다면 그것은 단지 신의 직접적 개입에

의한 것일 뿐, 절대 그 스스로에 내재한 동력에 의한 것이 아니다 .1 9) 이 <고전적인> 아리스토텔레스적, 스콜라적 우주관은 쿠자누스가 De docta ign oran ti a 에서 밝힌 사변적 기본 원칙과 두 가지면에서 상충된댜 스콜라적 우주관은 우선 천상계의 원소와 · 지상계의 4 원소 를 가치 함축적인 공간 단계로 구분한다. 중세 물리학과의 차이 죽 그것에 따르면 한 원소가 우주 질서의 사다리에서 높은 위치에 있을수록 세계에 대한 부동의 원동자에 가까우므로 그만큼 더 순수하 고 완벽한 속성을 지닌다. 그러나 쿠자누스는 감각적인 세계와 초감 각적인 세계 사이의 그와 같은 원근 관계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았 다. 만일 거리가 자체로서 무한하다면 유한한 상대적 차이는 소멸되 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원소, 모든 자연적 존재는 존재의 신적 근원과 견주어 볼 때 거기로부터 동일하게 멀고 또 동일하게 가깝다. 이제 더 이상 <위>나 <아래>는 성립될 수 없으며 단지 경험적 우주 로서 절대적 존재에 대면하고 있는 균질적이며 유일한 우주가 있을 뿐이다. 다른 한편으로 경험적 자연에의 참여가 허용되므로 그것은 절대적 존재에 전체로서 참여한다. 이러한 참여의 방식은 원칙적으로 모든 삼라만상에 해당되기 때문에 그 참여가 어떤 것에는 많이, 어떤 것에는 적게 할당되는 따위는 성립될 수 없다. 이로 인해 낮은 월하 계와 높은 천상계 사이의 가치 차이는 단번에 소멸되게 되었다. 그리 하여 페리파토스 Pe rip a t os( 소요학파, 아리스토텔레스학파)적 물리학이 19) 이 문제와 함께 스콜라 철학에서 천상의 본질에 대한 이론이 변화하는 과정에 대해서는 P. Duhem, Etu d es sur Leonard de Vinc i , 2e seri e., Pa ris 1909, 255 쪽 이하를 참조할 것.

인정하는 원소의 위계 적 파악 대신 아낙사고라스 Anaxa g oras 의 명 제, 죽 물질계에서는 < 모든 것 속에 모든 것이 포함된다 > 라는 명제 가 채택되게 되었댜 우리가 각각의 천체에서 인정해야만 하는 차이 는 그 본질에서 기인한 특수한 차이가 아니라, 단지 늘 동질적이며 전 우주를 통해 퍼져 있는 기본 원소의 다양한 혼합 상태에서 연유한 것이다. 만일 우리가 태양에 직접 갈 수 있다면 우리는 거기서도 불 과 물 , 공기 , 흙의 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한편 지구도 그것을 바 깥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면 빛나는 별로 드러날 것이다 .20 ) 이제 쿠자 누스로 하여금 아리스토텔레스와 스콜라적 우주론을 부정하게끔 한 두번째 논구를 살펴보도록 하자 . 아리스토텔레스적, 스콜라적 체계를 면밀히 살펴보면 거기에서는 전혀 다른 , 두 영역, 끝내 일치될 수 없 는 두 영역이 서로 얽혀져 짜 맞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이념 적인 것이 경험적인 것에 섞여 있으며 경험적인 것이 이념적인 것에 섞여 있는 것 이다. 그 체계에 의하면 천상의 완전한 본질에는 완전한 운동, 즉 완벽한 원궤도 운동(원주 운동)이 걸맞는다. 그러나 진정으 로 정확한 것은 의 원칙이 우리에게 가르치듯 , 결 코 실제적 상황으로 드러나지 않으며 사물의 현실 속에서 존재하거나 지칭될 수 없댜 물체나 물체의 운동을 인식하는 데 있어 우리가 의 존하는 것은 이념이지만, 그 이념은 결코 뚜렷한 특징으로서 물체나 물체의 운동속에 직접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2 1) 죽 우주는 감각으로 20) De doct . ign. II, 12 (fol. 39 이하)

인지 가능한 일체의 대상이 그렇듯 불안정성의 영역 , 죽 단순한 < 더 함과 덜함 > 의 영역에 머문다. 지구는 자전하며 구의 형태를 띤다 . 그 러나 그 운동이나 형태를 절대적인 수학적 엄밀함으로 확정지을 수 없다. 그러나 가시적인 자연에서 발견되는 다른 모든 것들도 마찬가 지로 그러한 무조건적인 완벽함에 미치지 못하므로 이 대자연 안에서 지구를 일컬어 더 이상 낮다거나 비천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우주의 전 체계내에서 그 어떤 부분도 포기될 수 없으며 오히려 각각이 나름 대로의 작용과, 그에 걸맞는 독특한 가치를 지니듯이 지구는 빛과 온 기, 그리고 다른 모든 별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작용을 품고 있는 고 귀한 별이다 .22 1 이러한 연관들 속에서 우리는 쿠자누스가 지구 중심적 21) 쿠자누스에 의해 부각된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우주관을 반영하는 이와 같은 언 급은 이미 플라톤에게서도 극명하게 발견된다 . Rep u bl. 529 D: Ou){OUu, ct1 C 0J J, 더 1Ccp i Tbp o0p avb IJ 1C0LXLAt a Tap a6 ci rµ dCl xpn G Tt oJ J T 처 C 7p bc txc tJ Ja µa 競 6Coc E 西 xa , bµoi oc 如 nc p 砂 cI TlC £JJ'r0 XOl 磁 AaL6aov h TlJJO C aAov 5 T]µlO VP}'OU ii l 函腐 &aip t:p6 V' rwC rq paµµtol C xat t xnwo 패µtJJ OlC 6ta 7 p< iµµ dGlJJ, 並 #aLTO rdp 砂 nob TLC g µn스 po c rcC ,)µgpiac i6@ JJ Td TOlaUTa, /(drrl OTa µtJJ txC lµ dncp ra oi a, rcAoIoµ µiv t1C LOX01CCt v TaUTa 6nov6i &c Thv 磁 8cL 叫 tp a 衍 o t c Anljl bµ cuoµ too v xal &TAaoi ov i aAnc TlJJb c ovµµg piac . - 따 6‘0U µma rcAot oµ ctu a L; 硏 - T§ 6JJ 'rL 6i d6Tp oJJ0µ LXbIJ , 저 v 6'tr@ , 6Ea o0x ot cL Ta 衍 b pnc i oc 야 m cic 函 禪 &oT 印JJ '{X)pa.c a.n o(3 U no!J 'ra ; VO µLCt µ µtu, bc oIbI) TC XaLOTa Td TOLa 衍 a gpr a OOOThca 야 aL, o0To tvJJ C 6Ta ml 짜 TOO o0mm0 6muovp r§ a 衍 b JJ Tc xai Ta tµ abT§. T 油µ 6t JJU /(Tbc 1Cp b c 柚tpa u tvµ µg piav xai TO 的C,) U np b c µ籠四 xai µnubc; 1Cp b c tVL am· bµ xai 五] JJ aov &0T 凶 V rpb c TC Ta 禪 xai np b c a T/A a, o0x &T01COJ J, ot CL , WH 없 CTaL 떄JJ JJOµi (o 江 a r t rvc 야 a t TC Ta 衍 a dct 磁o-r wc xat otJ 6 aµij oti 6t v na pa \M귬 cw, Olilµa -re lXolJ 'ra xal 磁 µcva, xal 罰 mc tJJ naJJ 'rl T p b 먀 따 쩌 8aav aOT lilµ Aa/ 1c tp ; 22)

lumen et calorem et influe nti am habet alia m et dive rsam ab om nibu s aliis ste ll is … Ita quide m Deus bened ict u s omn ia creavi t, ut durn qu od libe t stu d et esse suurn conservare, qu asi qu oddam munus divin u rn, hoc ag a t in com minion e cum aliis, ut sic u t pes non sib i tan tu m, sec ! oculo ac mani bu s ac corp o ri et horn ini tot i serv it, pe r hoc qu ad est tan tu m ad ambulandu rn, et ita de oculo et reliq uis membri s: pariformiter de mund i partibu s. Plato eni m mundurn ani ma l dixit, cuj us ani ma m absqu e imrne rsio n e Deurn si concip is, multa horum, qu ae diximu s tibi clara erunt. > De doct ign. II, 1 2.

인 천동설 을 극복하여 새로운 철 학 적 조 망 들 을 이루어 낸 것은 , 바로 정 신 질서에 대한 그의 이와 같 은 새로운 견해의 귀결임을 알 수 있다. 지구 중심적 세계관의 극복 이 와 같은 내 적 복합성 은 이 미 De docta ign oran tia 에 서 쿠자누스 의 우주론적 사상이 전개되는 방식을 통해 드러난다. 우주에서 물리 학적인 중심점을 찾는 것은 헛된 노력에 불과하다. 죽 우주는 그 어 떠한 명료한 윤곽의 기하학적 형태도 가지지 않고 공간적으로 불확정 하게 전개되므로 자연히 그 어떠한 장소적 중심도 가지지 못한다. 그 러므로 그것의 중심점에 관한 질문은 물리학적 맥락에서가 아닌 형이 상학적 맥락에서만 가능하다. 신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중심 이듯 지구와 모든 천체의 중심이다. 또 신은 본질상 모든 여타의 것 을 포함하기 때문에 231 모든 것의 중심점인 동시에 모든 것을 감싸는

23)

repe ribil is non est, quia ips e solus est inf i nita aeq u a litas . Qui igitur est centr um mund i, scili ce t Deus benedi ct u s , ille est centr um ter rae et om nium sph aerarum at.q u e om nium qu ae in mundo sunt, qui est sim u l om niur n cir cu r nfer enti a infinita.> De doct. ign. II., II, fol. 38.

무한한 외접원이댜 쿠자누스의 이러한 기본 시각은 자연적인 의미와 함께 정신적인 의미를 띤 것이며 물질적 의미와 함께 < 정령적 spr itue ll> 의 미를 지 닌 것이 댜 그의 새로운 우주론이 주장하는 것들, 즉 우주 질서 속에는 그 어떠한 절대적 상하가 있을 수 없고, 그 어 떠한 천체도 존재의 신적인 근원에서 더 멀거나 더 가깝게 있지 않으 며 다만 각자가 모두 <직접 신에게로 > 향한다는 주장은 새로운 종교 적 형식과 분위기를 유도한다 . 이러한 관점에서 볼때 De docta ign oran tia 에 드러난 우주론적 명제들과 쿠자누스가 『신앙의 평화에 대하여 De pa ce fi de i』 (1454) 에서 전개한 종교 철학적 관조는 서로 직접적인 연관을 맺는다고 할 수 있다 . 두 저서는 내용적으로 볼때 아주 이질적인 영역을 다루고 있지만 사실은 동일한 견해 를 상이하게 반영한 것에 불과하다. 이렇듯 의 원칙으로부터는 세계에 대한 지식이 유도되듯 이제 신에 관한 지식도 유도될 수 있 다. 우주의 삼라만상이 각자 스스로의 중심점을 회전하는 다양한 운 동을 통해 백양백태를 땀에도 불구하고 공통의 원인을 지니고 공통의 보편적 법칙에 관여함으로써 서로 결합되는 것은 정신적인 존재에도 그대로 적용이 가능하다. 모든 정신적 존재는 내부에 중심을 지닌다. 그러나 이 중심의 설정, 그것의 포기될 수 없는 개별성을 통해 그것 은 신적인 것에 관여한다 . 개체성은 결코 자기만의 단순한 아성을 의 미하는 것이 아니다 . 그것은 평균화될 수도 없고 해제될 수도 없는 고유한 가치를 제시하는데 왜냐하면 단지 그와 같은 가치를 통해서만 <존재의 피안에> 있는 일자가 파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쿠자누스에

있어서 이러한 사상은 종교적인 제반 형식아나 의식( 儀式 )과 관련된 신정론(神 正論 )의 형태를 떨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사상을 통해서만이 제반 형식들의 다양성, 차이, 이질성 등이 더 이상 종교의 단일성과 보편성에 대한 모순을 의미하지 않고 오히려 그 보편성의 필연적 표현으로 인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신앙의 평화에 대하여 』 는 우리에게 그와 같은 기본 사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모든 민족 과 종파로부터 파견된 사신들이 그들 사이를 이간하는 분쟁을 중재해 주실 것을 간청하기 위해 신 앞에 집결했다. 모든 종교가 동일한 목 표를 지니며 동일한 신의 존재를 추구하는데 도대체 그러한 분쟁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 살아있는 것이 사는 것 이의에 무엇을 더 필 요로 하며 존재하는 것이 존재 이외에 무엇을 더 필요로 하겠습니까? 삶과 존재의 주창자이신 당신도 또한 다양한 의식에 의해 다양한 방 식으로 추구되는 분이시며,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분임에도 불구하 고 모두에 대해 의연한 채 알려지지 않은 모습으로, 언표될 수 없는 모습으로 머물러 계십니다. 왜냐하면 전지전능함이신 당신은 당신이 창조해 놓으신 것과는 조금도 닮지 않으셨으며 피조물은 당신의 무한 함을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유한자와 무한자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도 없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시며 그 어떠한 정신으로도 볼 수 없 는 당신은, 또한 당신 스스로를 우리가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드 러내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더 이상 숨지 마소서. 오 주여, 축복을 내리사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소서. 그러면 모든 민족이 구원될 것입 니다 . 당신의 존재를 아는 이상 아무도 당신을 멀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면 전쟁과 미움, 질투와 번민이 사라지고 우리 모두는 의식의 다양함 속에서도 오직 하나의 종교만이 존재함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 물론 의식(儀式)의 다양함은 극복되지 않으며 또 극복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은 것으로 보이는

데, 그것은 이 상이함 자체가 경건심을 독려하는 것이며 각 나라는 자기의 의식을 당신께서 가장 좋아할 것으로 여겨 온 정성을 기울여 수행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 그러나 당신이 한 분이신 이상 그것은 하 나의 종교이며 하나의 찬양임에 틀림없습니다 .>2-l) 보편 종교에 대한 요구, 즉 세계를 포용하는 <공번됨 Ka t hol i z it a t>에의 요구는 이렇게 해서 성립된댜 그러나 그것은 중세 교회적 견해와는 판이하게 구별 되는 의미와 토대를 지닌 것이다. 보편 종교 개념 이제, 신앙의 내용 자체가-그것이 항상 필연적으로 인간의 표 상 내용인 이상-<추측>에 불과한 것이 되었는데 그것은 단일한 존재, 단일한 진리는 단지 <상이성>이라는 형식을 띠며 드러날 수밖 에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25 ) 인간 인식 자체의 방식과 본질에 깔려있는 이 상이성은 그 어떠한 신앙 형태에서도 배제될 수 없다. 결국 보편적으로 정당하며 보편적으로 강제성을 띤 <정통 > 과 맞서는 것은 이제 더 이상 한 무리의 <이단>일 수 없으며 단지 하나의 상이 함을 의미할 뿐이다. e 'rt:{X) V(he t eron) 은 oo~a(doxa) 의 기본 요소임을 스스로 인정하게 된 것이다. 스스로 그 자체로 파악될 수 없으며 인 식될 수 없는 진리는 단지 그것과의 상이함을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 다. 2 6) 쿠자누스는 . 이러한 기본 지침에서 출발하여 냉담함 과는 전적으로 구별되는, 진정으로 훌륭한 <관용 Toleranz> 의 사상 24) De pace fide i, Cap. I (fol. 862 이 하) 25) De con jec tu r i s I, 13 (이 책 24 쪽 각주 2) 을 참조하라. 26) De con jec tu r i s I , 2 (fol. 76)

에 이르게 된댜 즉 신앙 형식의 다양함이 단순한 경험적 나열로서 용인된 것이 아니라 사변적으로 요청되었으며 인식론적으로도 그 근 거를 획득하게 된 것이댜 De pa ce fi dei의 대화중에 제민족의 사신 들 중 하나인 타타르인이 등장해 신앙의 통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댜 즉 그 계획은 이론적인 기본 신조와 관련해서뿐만 아니라 의식과 풍습상에서 드러나는 근원적인 차이 때문에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것 이다 . 한 종교에서는 축첩을 허락하고 권장하기까지 하는데, 다른 종 교에서는 그것을 죄악으로 친다든지, 기독교의 미사에서는 그리스도 의 몸과 피가 미사의 제물로 쓰이지만 비기독교인이 볼 때는 그와 같 은 것은 가장 성스러운 것을 먹고 마시는 극악 무도함으로 비치는 따 위의 모순을 어떻게 극복한단 말인가? 그는 계속한다. <그러므로 장 소나 시대에 따라 변하는 그 모든 것들 속에서 어떻게 통일이 이루어 질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군요. 그러나 그 통일이 이뤄지지 않는 한 박해는 계속될 것입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은 분열과 적개심, 미움과 전쟁을 낳게 마련이니까요.> 그러나 이 반론을 뒤엎기 위해 신은 성 바오로를 불러들여 판결을 요한다. 그는 판결하기를, 영혼의 구원은 의례적인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앙에 의해서 이루어짐을 깨달아 야 한다고 한다. 가독교인, 아랍인, 유태인을 통틀어, 믿는 이들의 아 버지격인 아브라함 역시 하느님을 믿음으로써 자신을 의롭게 하였다. 여기서 모든 외적인 차이는 의미를 잃는다. <의로운 영혼은 영생을 누린댜 anim a jus ti haered itab it vit am aete m am.> 만일 우리가 이 것을 받아들인다면 의식의 다양함은 하등의 장애가 될 수 없다. 왜냐 하면 모든 조직이나 의식은 신앙의 진리를 감각적으로 표시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표시되는 것이 아닌 표시하는 것은 교체되고 변화되 게 마련인 까닭이다門 이러한 기본 시각에 비추어 볼 때 정당하지 못 한, 비천하고 사악한 신앙 형태란 있을 수 없다. 그 점에서는 다신론

?:1) De pac e fide i Cap. 15:

도 예외일 수 없댜 신들을 경배하는 것에도 신적인 이데아는 전제되 어 있기 때문이댜 281 쿠자누스에게 있어 종교들간의 질서는 그의 물질 적 우주관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에게서 똑같이 가깝고도 멀며, 범할 수 없는 동일성과 더불어 극복될 수 없는 상이성, 죽 통일성과 개별 성을 예외없이 띠고 있다.

28) De pace fide i Cap. VI:

이러한 사상은 대자연이나 사상의 역사적 형태에서 드러나는 개별 성에서부터 시작하여 최종적인 개별자인 개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 게 적용된다. 개체 또한 종교적 의미에서 볼 때 일반자에 대한 대립 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의 진정한 성취 를 의미한다. 쿠 자누스는 테게른제 수도원의 수도승들을 위하여 쓴 『 신의 얼굴 De vis i o n e De i』에서 그와 같은 신조를 명백히 밝히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여기서도 특유의 상징적 형식을 동원하고 있다. 괴테는 신비한 것의 구체적, 생동적 개시를 상징의 본질이라고 보았 는데 쿠자누스도 그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느낀 듯하다. 그는 일반적인 것 내지 가장 일반적인 것을 개별적인 것, 감각에 직접적으로 수용되는 것과 관련 시키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이 저술의 첫 머리에서 그는 브뤼셀 시청

사에서 본-저 모든 감상자의 눈을 전 방향에서 뚫어져라 응시하는 一一로지 어 반 데르 바이 덴 Rog e r van der We y den 의 자화상에 대 해 언급한댜 291

29) Erwi n Pano fs k y에 의하면 로지어 반 데르 바이덴의 자화상은 현재 남아있지 않다. 그대신 고불린 자수로 된 모사가베른 Bern 박물관에 현존하는데 이 모사 작품 을 De vis i o n e De i에 나오는 구절에 입 각하여 발견해 낸 것은 카우프만 H. Kauff ma nn (Re pe rtor i um fur Kunstg e sch ich te , 1916) 이다. 쿠자누스가 언급하 고 있t-―—뉘른베르크 시청사의 __- 또 다른 작품은 그 재구성이 불가능하다.

신의 관망에 대한 문제 그러한 초상화가 수도원의 성물 납실 북쪽 벽에 걸려있고 그 주위 에 수도승들이 반원으로 빙 둘러서 있다고 상상해 보자. 아마 그들 모두는 그림 속의 시선이 직접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고 있다고 믿을 것이댜 그러나 그 그림은 동일한 시선을 가지고 남쪽, 서쪽, 북쪽을 보는 외에도 3 중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즉 그것은 정지한 관찰자에게 는 정지한 시선으로, 움직이는 관찰자에게는 추격하는 시선으로 보이 며, 한 수도승이 동에서 서로, 다른 한 수도승이 서에서 동으로 활보 할 때는 그 두 반대 방향에 고루 관여한다. 우리는 여기서 동일한 부 동의 얼굴이 사방 팔방으로 움직이며, 한 장소에 고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다론 모든 여타의 장소에도 있고 더 나아가 하나의 움직임으로 파악되는 것이 다른 모든 운동에도 참여함을 목격한다. 이러한 감각적인 비유를 통해 우리는 모든 것을 감싸는 존재인 신과 유한한 개별자적인 존재가 맺는 관계의 성질을 알 수 있다. 모든 특 수자와 개별자는 신에 대해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으며 신과 정면 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신적인 것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 정신이

더 이상 그러한 관계들 속에서 단지 하나에 연연하거나 또는 그것들 의 단순한 종합에 매달리지 않고, 그러한 관계 들을 통일된 조망, 즉 < 지적 조망 v i s i o i n t ellec t ual i s > 으로 결합함으로써 드 러난다. 그러나 우리가 개별적 < 시점 > 의 한계를 배제하고 절대자 그 자체를 사유하 고 원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 어떠한 시점도 다 른 시점에 비해 우월하다고 주장될 수 없는데, 그것은 우리에게 전체 에 대한 진정한 상을 전달해 주는 능력을 지닌 것은 바로 그와 같은 시점들의 구체적인 총체성이기 때문이다. 이 총체성 속에는 모든 개 별 견해들이 포함되어 있어, 그것은 우연이건 필연이건 검증되게 마 련이다. 우리가 지닌 신에 대한 직관은 <대상 Ob j ek t>의 속성에 의 해서뿐만 아니라 <주체 Sub j ek t>의 속성에 의해 조건지어진 것에 지 나지 않으며 보이는 것과 함께 봄의 특정 방식이나 성향을 내포한 것 에 지나지 않는다. 모두는 단지 신을 통해 자신을 보며 마찬가지로 자신을 통해 신을 볼 뿐이댜 그 어떠한 양적 표현이나, < 부분 > 과 <전체>의 대립과 관련된 그 어떠한 표현으로도 이 순수한 뒤섞임을 지칭할 수 없다 . <당신의 얼굴은 모든 제한으로부터 자유로우며, 공 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그 어떠한 크기나 속성도 지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체로서 절대적인 형태이며 얼굴 중의 얼굴이기 때 문입니다. 그러나 그 얼굴이 모든 얼굴에게 적절한 진리이자 척도임 을 상기하면 저는 놀라울 따름입니다. 모든 얼굴들의 진리이신 그 얼 굴은 절대적인 것으로, 모든 것을 초월하였으므로 크기도 없고 더함 도 덜함도 없으며 그 어떤 것에도 견줄 수 없습니다. 오 주여! 그러므 로 저는 당신의 모습이 모든 보이는 것들에 선행하며 모든 모습의 진 상이자 모범이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당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얼굴 은 다름아닌 자기 자신을 볼 뿐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스스로의 진상 을 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그림을 동쪽에서 보면 홉사 제가 그림

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 저를 보는 듯한데 그것은 제가 남쪽이나 서쪽에서 바라다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의 모습은 그렇게 당신 을 바라보는 모두를 향해 계십니다. 사랑에 찬 눈으로 당신을 바라보 면 당신의 사랑에 찬 시선이 느껴지며, 당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사랑 이 큰 것일수록 당신의 시선은 더욱 사랑에 찬 광채를 발합니다. 분 노 속에 당신을 바라보면 당신 얼굴도 분노에 차 있고 당신을 기쁘게 쳐다보면 당신 얼굴도 기쁘게 느껴집니다. 육신의 눈에도 붉은 안경 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붉게 보이듯 정신의 눈도 나름대 로의 제한 속에서 정신적 관찰의 목표이자 대상이신 당신을 자기 스 스로의 제한된 속성에 따라 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인간적으로밖에 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사자는 당신 모습을 사자라 고 하며 소는 소라고, 독수리는 독수리라고 합니다. 오 주여, 남자는 남자로서, 노인은 노인으로서 떠올려야만 하는 당신의 얼굴은 너무도 신비롭습니다. 당신 얼굴은 모든 얼굴들 속에 숨어계시는고로, 우리로 서는 모든 얼굴에 대해서 당신이 취하고 계신 그 오묘하고 어두운 침 묵에 대해 연구하지 않고는, 그리하여 당신 얼굴에 대해 더 이상 알 것이 없게 되기 전에는 그것을 드러난 채로 본다는 것은 수수께끼처럼 불가능합니다 .>30) 『신의 얼굴 De vis i o n e De i』의 이러한 구절들을 통해 우리는 쿠자 누스 사변의 핵심을 인식하게 되며 이 핵심에서 출발하여 그의 사변 과 당시의 신에 관한 사상적 원동력들 사이의 관련을 가장 확실하게 조망해 볼 수 있다. 쿠자누스의 초년기 수업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으 며 그의 학식을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공헌한 것은 세 가지 원동 력이었다. 그가 맨 처음 교육받은 곳은 데벤터의 <공동 생활 수도 30) De vis io n e Dei, cap. VI, fol. 185 이 하 .

회>였댜 그곳은 개인적 경건함의 새로운 유형 즉 라는 새로운 이념이 처음으로 활기를 띤 곳으로, 쿠자누스는 여 기서 처음으로 독일 신바주의 정신을 통해 그의 사변적 깊이를 심화 시켰으며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감홍을 얻었다 . 3 1)

31) < 공동 생활 수도회 > 와 의 종교적 신조에 대해서는 Mestw e rdt, Die Anfa n g e des Erasmus. Huma nism us und 'D evoti o moderna', Leip z ig , 1917, 86 쪽과 Albert Hy m a, The Ch rist i an Rena iss ance. A Histo ry of the 'De voti o moderna', 2 권 . Grand Rape ds, Mich iga n, 1924 를 참조하라.

쿠자누스 철학에서의 신비주의, 스콜라 철학, 인문주의 데벤터의 종교적 삶의 형태가 독일 신비주의와 관련을 맺게 된 역 사적 경위는 뚜렷하다 공동 생활 수도원의 창건자인 게라트 그루테 Ger 紅 d Groo t e 와 가까웠던 뤼스브뤽 Ru y sbroeck 32 ) 의 기본 성향은 에 카르트에게로 직접 소급되는 것이다. 우리는 쿠자누스의 저술을 통해 에카르트의 가르침이 얼마나 그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그 영향이 어떻 게 전개되게 되었는가를 생생히 접할 수 있다 . 33) 그는 에카르트의 가 르침이야말로 그 종교적 감수성과 언어적 표현력에 의해 기독교의 교 조적 내용과 영혼적, 개체적인 내용 사이의 사상 유례없는 화합을 달 성하였다고 보았다 신의 인간되심(강생 수육의 역사)의 신비는 자연계

32) Gerard Groo te와, 그와 Ru y asbroeck 의 관계에 대해서는 H y ma 의 위의 책 I., IIf와 Gabri ele Dolez i ch 의 Die My s tik Jan van Ruy xb roecks des Wunderbaren

나 역사계의 그 어떠한 유비로도 벗겨질 수 없음은 물론, 감히 언표 될 수조차 없댜 다만 이것이라고 지칭되는 개별적 개개 영혼, 죽 인 간의 영혼만이 그 인간되심의 기적이 일어나는 장소인 것이다. 이 기 적은 객관적으로 역사적인 시대의 한 시점에 일어나서 이미 지나가 버렸거나 그 시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모든 자아에게 서 되풀이하여 일어나며 또 일어날 수밖에 없는 그와 같은 과정이다. 영혼의 심연 속에서, 즉 가장 궁극적인 영혼 근저에서 신성함이 탄생 되어야 한댜 그곳이야말로 진정한 < 신성의 요람 > 이다. 쿠자누스가 후에 신비주의자적인 입장에서 얘기할 때, 우리는 곳곳에서 에카르트 적 신앙과 경건의 기본 지침을 읽어낼 수 있다. 그러나 쿠자누스는 여 기 에 머무르지 않는다 . Devoti o moderna 를 섭 렵 한 후 그는 곧 하 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스콜라 철학적인 지식과 신학을 익히게 된다. 그는 여기서, 오캄의 추종자인 마르실리우스 폰 인겐 Marsili us van In g hen 에 의해 새로이 하이델베르크에 도입되어 15 세기의 벽두 10 년 간 거의 논박을 불허한 <새 길 v i a moderna> 의 추종자가 되어 34) 강하 고 지속적인 추진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후에 쿠자누스가 당대인들로 부터 가장 탁월한 <중세 전문가>로 여겨진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당연한 일이다 . 35 ) 그러나 그의 결정적인 사상적 전환은 이탈리아 34) 당시의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상황에 관해서는 리터 Gerhard Ritt er 의 Stu d ie n zur Sp iitsc holastik (이 책 12 쪽, 각주 l) 을 참조하라. 특이하고도 홍미로운 것은 하이델베르크의 신진 세력들이 와 대결하는 과정에서 니콜라우스 쿠자누스를 자신들의 진영으로 받아들인 것은 한참 후에 이르러서였다는 사실이 다 . 오감 알베르투스 폰 작센, 요한네스 게르손 등과 더불어 쿠자누스를 <신진> 세 력으로 인정한 쉐퍼센 Scho ffe rschen 의 1494 년 인쇄물을 참조하라. (Ritter, II, 77, 각주 2) 35) 레 만 Paul Lehmann 은 Vom Mi ttee lalt er und van der late i n i s c hen Phil olo g ie des Mi ttela lte r s, MUnchen 1914, 6 쪽에서 <중세>라는 용어의 최 초의 전거로서 알레리아의 주교 요하네스 안드레아가 1469 년 니콜라우스 쿠자누

스에 게 바친 추도문을 들고 있다. 그는 여 기서 라고 말하고 있다. 하르트만 쉐델 Ha rtma nn Schedel 역시 자신의 세계사 연표에서, 그리고 1514 년 스타플렌서스 Faber S tap ulens i s 는 쿠자누스 전집의 서문에서 그를 <중세 전문가>로 평가하 고 있다.

시절에 이루어졌다. 고대에서 콰트로첸토를 거치는 동안 이탈리아에 서 이뤄진 고대의 변모된 모습에 접합으로써 그는 진정 본연의 자신 을 확립하여 갔다. 이탈리아는 후에 독일 미술가들에게 끼친 것과 같 은 영향력을 이 최초의 독일 철학자에게도 발휘하였던 것이다. 게다 가 괴테가 마혼에 이르러서야 그랬던 것과는 다르게 쿠자누스는 불과 17 세의 나이로 이탈리아에 발을 디몄다. 1417 년 파두아 대학에 들어 갔을 때 그가 맨 처음 접한 것은 당시의 세속적 교양이었다. 그는 바 야흐로 신비적 정서의 고리타분함과 고독감, 중세적인 독일 학자의 삶에서 느껴지는 답답함에서 벗어나 넓은 세계와 자유로운 삶에 접하 게 되었으며 인문주의적 문화에 흄뻑 젖게 되었다. 또한 그는 여기서 ―후에 그로 하여금 깊이 있는 플라톤 연구, 아르키메데스와 희랍 수학의 근본 문제에 대한 연구 등을 가능케 한 __- 희랍어 지식을 얻 었댜 그러나 그는-바로 이 점이 쿠자누스와 포지오 Po ggi o, 또는 발라 Valla 같은 전형적인 인문주의자들을 구별케 하는 점이다 고대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시나 수사학 분야 대신 곧장 철학이나 수 학 분야에서 드러내었다. 그리하여 그는 파두아에서 이미 그의 전생 애를 통해 계속 유지된, 저 저명한 이탈리아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파올로 토스카넬리 Paolo Toscane lli와 친분을 맺게 되었댜 36) 토스카

36) 토스카넬리에 대해서는 Uz i el li의 Paolo dal Pozzo Toscane lli를 참조하라. 쿠 자누스와 토스카넬리의 관계는 특히 쿠자누스가 토스카넬리에게 헌정한 De tran smuta tion ibu s Geome tri c i s 를 통해 입증된다.

juv entu tis atq u e adolescenti ae nostr ae str ict i or i amicitiae nodo atq u e cordi ali qu odam amp le xu ind esin e nte r constri rucist i: tanto nunc accurati us emendati on i anim w n adh ibe et in commun ion em alior um (nisi correctu m) pro d ire non sin q s .>

넬리에 의하여 그는 당시의 지리학적, 우주 형상지적, 물리학적 문제 에 접하게 되었으며,_후에 게오르그 포이어바흐 Geor g Peur- bach 나 레 기 오몬탄 Reg iom onta n , 더 나아가 코페 르니 쿠스 Cop e rn- i kus 에 이르는 독일의 수학자와 천문학자들도 독려하였던_ . ~새로운 자극을 받게 되었다 . 개체의 문제 쿠자누스의 지적 편력에 드러난 이 세 가지 기본 요소는 하나의 사 상적 평형을 요구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하나의 종합, 즉 언뜻 보기 에 문자 그대 로 <반 대 의 일 치 coin c id e nti a opp o sit or um> 인 것 같이 보이는 것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면 이것은 바로 르네상스 특유의 사상적 성향을 배태한 하나의 특수한 양상에 지나지 않는댜 의심할 여지 없이 르네상스는 그 사상적 총력을 개체의 문제를 심 화하는 데 기울였다. 부르크하르트의 서술도 이 점에 있어 추호도 의 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 부르크하르트는 단지 근대적 인간이 자 의식을 성숙시키는 그 거대한 해방 과정의 한 단면만을 다루었다고 볼 수 있다. <중세에는 의식의 두 가지 측면, 즉 세계를 향한 의식과 인간 자신의 내면을 향한 의식이 동일한 베일 속에서 비몽사몽간을 헤매고 있다 . 그 베일은 신앙과 소아병적 편견, 광기 등으로 짜여진 것이댜 그것을 통해 바라다 본 세상과 역사는 신비롭게 윤색되었고

인간은 스스로를 단지 인종, 종족, 당파, 단체, 가족, 또는 여타의 일 반적 형태로만 파악하였다. 그러던 것이 이탈리아에서 처음 이 베일 이 바람에 날려 벗겨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국가나 이 세계에 만재한 만물에 대한 객관적 관찰과 취급이 개시되었다. 그와 더불어 주체가 신중히 부각되어 인간은 이제 정신적 개체로서 스스로를 인식하게 되 었다 . >37) 이 새로운 객관적 관찰과 주체성의 심화에 쿠자누스는 크게 공헌했다. 그러나 그의 위대함이나 역사적인 의의는, 그가 이 변화를 중세의 종교적 사상과의 대립을 통해서가 아니라 바로 그러한 사상적 관점에서 출발하여 수행하였다는 데에 있다. 그는 종교적 성향을 바 탕으로 <자연과 인간의 발견>을 이루어 냈으며 그러한 바탕 위에 그 것을 고정시키고 안착시키려 노력했다. 신비주의자이자 신학자로서의 입장을 고수하였던 쿠자누스는 세계와 자연, 역사와 새로운 세속적 인문주의적 교양 앞에서 성장해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는 그와 같 은 요소들을 배격하지 않고 점점 그 영역에 빠져들었으며 더 나아가 자신의 사유 영역에로 끌어들였다. 그와 같은 과정은 쿠자누스의 초 기 저술들에서 이미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그 저술들 속에 서 플라톤의 <단절 Cho ri smus> 적 요소가 우세한 듯 했으나 후기 저 술에 이를수록 점 점 <참여 Me th e xi s> 의 요소가 우위를 차지하게 되 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신비주의의 몽롱함 속에서 찾으려 했던 진리 나, 모든 다양함과 변화에 대한 대립항으로 여겨지던 진리가 이제는 경험적 다양성의 영역 속에서, 심지어 노상(路上)의 일상을 통해서도 드러난다는 통찰이 그의 <이론적 정점>을 이루게 되었다우 쿠자누스 37) 부르크하르트, Kultu r der Renais s ance. I, 141. 38) De apice the orie (fol. 332):

ante omnem va rieta tem et opp o siti on em, qu aeri opo rter e: non ate n d i, quidd itatem in se subsis t e n te in esse omn ium substa ntiar um inv a riab il em sib s is t e n ti am , ide o nee multip lica bil em nee plu ral ifica bil em , et hinc non aliam et aliam alior um enti um quidd i tatem, sed eandem om niw n hyp o sta s im . Dein d e vid i necessar io faten dum ips am rerum hyp os ta s in seu subsis te n ti am pos se esse. Et quia potes t esse: utq u e sin e pos se ipso non potes t esse, qu omodo eni m sin e pos se potes t ... Veri tas qu anto clar ior tan to fac ik ior . Puta b am ego aliqu ando ips am in obscuro meli us rep eriri. Mag n ae po te n ti ae veri tas est, in qu a pos se ips wn valde lucet: clar nitat eni m in pla te is. sic u t in libe llo de Id.i ot a leg ist i, valde cert e se und iqu e fac ile rep ertum oste n d it.> 특히 Jdi o t a e lib. I, fol. 137 이 하를 참조하라 .

에게서 발견되는 이 새로운 세계관은 그 특유의 종교적 낙관주의와 결부되어 점점 더 강렬하게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범신론>이라는 단어로는 이 새로운 세계관을 표현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에게서는 신의 존재와 세계의 존재는 결코 섞이지 않고 엄격히 따로 떨어져 있 는 것이기 때문이댜 그러나 De vis i o n e De i에서 가르치는 대로, 일 반자의 진리성과 개별자의 특수성이 서로 얽혀, 신적인 존재도 단지 백양백태의 개별적 시각에 의해서만 파악될 수 있듯이, 일체의 제한 과 <응축 Kon tr ak ti on> 에 선행하는 존재도 바로 그러한 한계를 통해 서만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식이 추구해야 하는 이상은 그 개별화를 부정하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아주 다양 하게 확장시키는 일이다. 단지 얼굴들의 총합만이 우리로 하여금 신 적인 것을 보게끔 허락하기 때문이다. 세계는 신에 대한 상징이 되었 다. 그러나 그와 같은 귀결은, 그 중 일부를 딱 떼어냄으로써 그것이 지니는 고유한 가치를 파악하는 그러한 방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 양태의 전체를 훑어보고 그것의 다양성, 그것들 사이의 대비에 주목 함으로써 성립한다. 쿠자누스는 자신의 사변적 요구를 독특한 사유 전개로서 충족시켰을 뿐 아니라 교회 내에서 충족시킴으로써, 교회사

제 1 장 니콜라우스 쿠자누스 53

와 일반 정신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그는 후대에 가톨 릭 교회가 프로테스탄트의 공격에 대항하여 스스로를 전통적 교리로 정비하느라 배척한 신사상과 신조류를 오히려 포용하는 입장이었다 . 신과세계 쿠자누스가 De docta ign oran ti a 에서 전개한 우주론적 이론은 150 년이 약간 지난 후에 조르다노 부르노로 하여금 죽음을, 그리고 갈릴 레이로 하여금 교회의 추적과 파문을 감수케 한 바로 그 이론이다. 이 렇듯 쿠자누스 철학은 시대와 사상의 아슬아슬한 분기점에 서 있었는 데 그러한 사실은 후대와의 관련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전대와 의 관련 속에서도 드러난다. 그의 철학에서는 진정 절묘한 방식으로 신비주의 __- 특히 에카르트나 타울러 Tauler 같은 이들의 독일 신바 주의_에 근원을 둔 종교적 개인주의와 세속적 개인주의, 새로운 교양과 인간성 이념이 경합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경합이 시작된 것 은 트레첸토에까지 소급될 수 있다. 페트라르카의 생애와 철학은 이 두 계기 사이를 오가며 고대의 인문주의적 요구와 중세의 종교적 요 구 사이의 균형을 이루려는 노력으로 점철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 갈등을 해소시켜 서로 대립하는 제반 경향들 사이의 내적인 균형 을 이루는 위업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페트라르카의 대화편들이 지니 는 매력이나 생동감은 바로 우리를 투쟁의 한 가운데로 밀어 넣어 자 아 自我가 그 대립된 사상적 위력 앞에서 하릴없이 표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데 있다. 페트라르카의 내면 세계는 키케로와 아우구스티누 스적인 요소로 분열되어 있다. 그래서 결국 그는 한편으로 추구하는 것을 다른 한편으로는 배척해야만 했으며 그의 삶을 지탱하는 지주와 가치에 대해 종교적인 비방을 퍼부어야만 했다. 그의 자아가 온전히

심취했던 모든 세속적 인간적 이상들 죽 명상, 아름다움 , 사랑 등이 그러한 심판 앞에 굴복하였다. 페트라르카가 그의 내밀한 대화편 『은 밀 한 마음의 갈등 De secreto conf[ ict u curarum •s uarum 』 에 서 밝힌 것과 같은 자신의 정신분열적인 병세는 바로 여기에 연유한다. 결국 그에게는 갈등의 결과로서 체념과 세상에 대한 권태, <태만 Ace di a> 만이 남게 된댜 삶은-페트라르카는 그와 같은 기분을 다음과 같 이 읊었다—―꿈이요, 환상일 뿐이다 39)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자신 의 허무함을 응시할 뿐이다 . 그러나 쿠자누스에게서는 그와 같은 내적 갈등이나 페트라르카의 바관주의, 금욕주의 경향은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쿠자누스도 오스트리아의 지그문트 대공과 갈등 끝에 체포되었 울 때, 이 세상의 근심에서 벗어나 그저 테게른 호수의 친밀한 수도승 들과 수도원 골방이나 한 칸 차지하며 살고 싶노라고 토로한 적도 있 지만 , 40) 전체적으로 그의 삶은 아주 정력적인 것으로서 시종일관 담대 한 세속 정치적 계획과 임무, 실천적 계획과 철학적, 과학적 탐구로 충만되어 있었다 그의 사변이 지니는 기본 동기는 바로 이 강한 역동 성을 배경으로 출현하였다. 그의 행위에서 모순되어 보이는 것들은 이 제 그의 사상을 통해 통합되어야만 할 형편이었다. 대립을 화해시키고 <대립의 일치>라는 원리를 통해 그것을 지양하고 극복하기 위해 바 로 그 대립을 설정하는 것이야말로 그의 사상의 본질을 이룬다. 아마도 그의 철학 중 가장 특기할 만하고 가장 어렵다고 할 수 있 는 이론은 종교적 전제들과 세속적 이념, 교양 사이의 궁극적 화해를 이루려는 시도에서 발견될 것이다. 그는 기독교 교리에 대한 담백한 39) Ep isto l ae rerum fam i liar i um II, an Gia c omo Colonna (Voig t, 위의 책, I. 136) 40) Gaspa r d Ain do rf er 에게 보내는 1454 년 8 월 16 일자 서한을 참조하라 .(Van­ ste en bergh e, Auto u r de le docte ign orance, 139 쪽)

심화를 통해 그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였다. 그리스도의 이념은 인간 성의 이념을 정당화하며 종교적으로 합법화하고 신성화하는 데 도입 되었댜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 De docta igno ranti a 제 3 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해, 쿠자누스의 전체 철학 내에서 그것을 말소 해 버리려는 시도도 하였고, 단지 교의적 관심에서 유래한 자의적인 <신학적> 부록쯤으로 매도하였댜 41 ) 그러나 그러한 통례적 시각은 쿠 자누스 학설의 전체 구조를 망가뜨릴 뿐이며 그의 독특한 사상적 구 조에 저 촉될 뿐이 다. 사실 De docta ign oran tia 의 사상은 그와 같은 시도를 통해 비로소 본격적인 추진력을 얻어 성취되었던 것이다. 우 리는 이제 본격적인 과도적 지점, 죽 그의 기본 사상이 변증법적으로 변화하는 지점에 서 있다. 원래 그의 기본 사상은 조건적인 것과 무 조건적인 것,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 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 사이 의 날카로운 단절을 목표로 하고 있다.

41) T. 陶ttak er 역시 Ni ch olas of Gusa, M ind , XXXIV (1925), 439 쪽에서 이 와 같이 판단한다.

그리스도의 이념 둘 중의 그 어느 것도 상대편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서로에 대해 단념과 자포자기 외에 다론 태도를 취할 수 없다 . 그러나 바로 이 단 념은 긍정적 계기를 품고 있다. 인간의 인식이 절대적인 것에 대한 무지함에 다다르게 되면, 결국 이 무지함에 대한 앎을 얻게 되는 것 이다. 그것은 명료한 <그 무엇>으로서의 절대적 단일체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의 구별, 죽 통례적인 <상이함>을 통해 파악될 뿐이다. 바로 이 상이함은 인식의 부정적 극 neg a ti ve r Pol 과 관계를

맺는댜 이러한 관련없이는 우리의 인식은 절대로 그 본연의 허무함 속에서 자신을 자각할 수 없다._쿠자누스에 의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이미 예견된_헤겔의 말을 빌리면 인식의 한계를 설정하 려면 한계를 초극해야만 하는 것이다. 차이에 대한 의식은 차이에 대 한 매개를 내포하고 있다 . 이 매개는 그렇다고 해서 무한한 것, 즉 절 대적 존재가 유일한 경험적 자기의식과 어떤 종류의 관계를 맺고 있 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거기에는 여전히 뛰어넘지 못하는 심연이 놓여 있다. 이를 극복하는 데는 경험적 자아가 일반적 자아로, 개별적 인 특수 존재(실존)로서의 인간이 인류 전체의 보편적인 정신으로 대 체될 필요가 있댜 쿠자누스는 인류의 그와 같은 정신적 보편 성분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오로지 그리스 도만이 유한함과 무한함을 하나로 묶는 진정한 <매개 속성 natu ra med i a > 이댜 이 통합은 결코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것이다. 그것은 결코 자체로 나누어진 것이 그저 실제적인 <결합>을 통해 맺 어진 것이 아니라, 두 대립 계기의 원천적이며 필연적인 관계를 의미 한댜 요청되는 < 매개 속성 > 은 높은 것과 낮은 것을 자신의 전체성 속에 포함해야 하며 , 낮은 세계의 최고이자 높은 세계의 최저치로서 그 어떤 형태를 막론하고 전 우주를 감싸며_쿠자누스의 표현대로 라면――·그것을 자기 안에서 <복합화하는> 방식을 띠어야만 한다. 이로써 그 속성은 모든 것을 결합하는 <세계의 열쇠>가 된다. 4'.l) 그리 스도가 전체 인간성을 표현하며 그것의 간단한 이념이자 본질을 이룬 다면, 인간은 본질상 만물을 내포한댜 즉 소우주Mikr okosmos 로서 의 인간성 안에서 대우주 Makro~osmos 의 모든 궤도가 함께 진행된 42) Exci tat. Lib. IX (fol. 639): Et in hoc pa ssu me diat i o Ch rist i intelligitur, qu ae est cop u la huju s . coin cide nti ae , ascensus hom inis interioi s in Deum, et Dei in homenem .

댜 41 ) 우리는 여기서 쿠자누스에 의해 명백히 고대적 발상이라고 규명 된 소우주 개념이 44 ) 어떻게 기독교의 종교적 이념과 절묘한 방식으로 결합되는지 목격하게 된다. 중세적 사유에 의하면 구원의 개념은 본 질적으로 세계로부터의 탈출, 즉 낮은 감각적 지상적 존재를 뛰어넘 는 인간의 고양을 의미한다. 그러나 쿠자누스에게서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이와 같은 분리는 더 이상 성립할 수 없다. 인간은 소우주로 서 만물의 속성을 내포하므로 인간의 구원이나 신적인 고양은 마땅히 만물의 고양도 내포한다 . 그러므로 종교적 구원 과정에서는 일탈한 개별자나 분리된 것, 추방된 것 따위는 존재치 않는다. 그리스도에 의 해 하느님에게로 오르는 것은 인간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그 속에서 그에 힘입어 모든 것이 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 축복의 영역 re g num gr a ti ae> 과 <자연의 영 역 reg n um na tur ae > 은 더 이상 서로 낯설고 적대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다. 이제 두 영역은 나란히 동일한 신적 목표에 연관된다. 이렇게 됨으로써 신과 인간 사이뿐만 아니라 신과 피조물 사이의 화합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 창조의 원리와 창조된 것, 죽 신과 피조물 사이에 인간성의 정신, 즉 후마니타스 Human it as 가 43) De docta ign. ill, 3: 44) (위 의 책)

창조자인 동시에 피조물로서 등장함으로써 둘 사이의 거리가 메워지 게 된 것이댜 45)

45) De doct. ign. ill, 2: 특히 De visi o n e Dei, cap. XX 올 참조하라 :

< 구현 ex pli ca ti o > 으로서의 인식 여기에서 쿠자누스는 형식적으로는 여전히 요한네스 스코투스 Joh annes Sco tu s 가 설정한 진부한 방식의 < 세계 구분>, 죽 ―자연을 창조하되 창조되지 않은 것, 창조되었음과 동시 에 창조하는 것, 창조되었으되 창조하지 않은 것, 창조하지도 창조되 지도 않은 것으로 구별하는 방식-을 따르지만, 이제 그 형식들은 새로운 내용을 담게 되었다. 에우리게나는 창조된 것인 동시에 창조 하는 본질을, 사물의 영원한 전형이자 범례인, 시간을 초월한 이데아 로부터 사물이 출현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 46) 그러나 쿠자누스가 창조적 원동력으로 보는 것은 신플라톤주의적 의미의 이데아가 아니 다 . 그는 모든 진정한 창조적 활동의 중심이자 출발로서 구체적 주체

46) 특히 요하네스 스코투스의 De diu i s io n e natu ra e II, 2 를 참조하라.

룰 요구한다. 그런데 이 주체란 그에 의하면 다름아닌 인간의 정신을 통해서만 제시될 뿐이댜 바로 이 점은 인식론상의 새로운 변화를 가 져오게끔 하였댜 진정한 인식이라면 결코 단순한 실제의 반영(모사) 을 목표로 하지 않으며 항상 특정 성향의 정신적 행위를 제시한다. 우리가 학문, 특히 수학에서 발견하는 필연성은 이러한 자유로운 활 동을 근거로 성립한다. 정신은 의적인 존재를 모사함을 통해서가 아 니라 자기 스스로를, 그리고 자신의 본질을 <드러냄 으로써 exp li zi e r t > 진정한 통찰에 이를 수 있다. 정신은 부단히 반복되는 늘 어놓음울 통해 선, 면, 더 나아가 연장된 전세계를 가능케 하는 순수 한 점 개념과 그 <원리>를 다름아닌 자기 스스로에게서 발견한다. 또 그것은 시간적 흐름의 영원성으로 전개되는 <지금>이라는 단순 관념도 스스로에게서 발견한다. 정신 속에는 직관의 근본 형식들, 즉 공간과 시간뿐 아니라 수나 크기의 개념도 내재되어 있으며 모든 논 리적, 수학적 범주도 내재되어 있다 . 정신은 이 범주들을 전개시킴으 로써 대수학, 기하학, 음악, 천문학을 이뤄낸다. 또 모든 논리적 범주 들, 죽 열 가지 보조 범주와 다섯 가지 최고류 등등은 그와 같은 정 신의 기본 능력 에 속한댜 그것들은 모든 <분별 Di skre ti on> 의 전제 들인 동시에 삼라만상을 유와 종으로 나누며, 경험적, 가변적인 것을 고정불변한 법칙으로 환원시키는 것을 가능케 하는 전제들이다 .47) 그 47) 쿠자누스 인식론의 기본 원칙에 대해서는 나의 Erkenntn isp r o blem, I, 33 이하 를 참조하라. De ludo g/o bi, Lib . II, fol. 23 이하도 참조하라.

qua e Nunc seu pra esenti a dicit ur . Nih il eni m in tem p o re nisi Nunc rep eritur . Et ita de omnib u s comp lica ti on i bu s dice ndwn, scil ice t qu od anima rati on alis est sim plicit a s omn iw n comp lica ti on wn noti on a liw n. Comp lica t eni m vis subti liss im a ani ma e rati na lis in sua sim plicit a te ornnem comp lici t at e m m, sin e qua perfec ta disc reti o fier i non potes t. Qu ap ro p ter ut multit udine m disc ernat, un itati seu comp lica ti on i nwneri se assim ilat et ex se noti on alem multit ud inis nwnerum exp lica t. Sic se pu cto assim ilatr n qui comp lica t mag nitudine m, ut de se noti on ales line as supe r f ici e s et corp or a exp li ce t. Et ex comp lica ti on e illor um et illar wn, scil ice t uni tate et pu ncto , math e matic a les exp lica t figu ras cir cu lares et pol yg o ni as . Sic se assili at quieti , ut motu rn disc ernat ... Et cwn hae omnes comp lica ti on es sin t in ipsa un itae, ipsa tan q u am comp lica ti o comp lica tio n wn exp lica to r i e om nia disc ern it et mensurat, et motu rn et agr o s et qu aeq u e qu anta . Et inv en it disc ip lina s, scili ce t Arithrne tic a m, Geometr ica m, Music a m et Astr on om ica m et illas in sua vir tut e comp lica ri exp eritur. Sunt eni m illae disc ip lina e per horn ine s inv enta e et exp lica ta e ... Unde et decem pra ed ica menta in (animae rati on a lis) vi noti on a li comp lica ntu r; sim iliter et quinq u e Un ive rsal ia et qua eq u e log ica l ia et alia ad perfec ta m noti on em necessar ia, siv e illa habeant esse extr a mente m , siv e non, qu ando sin e ips is non potes t disc reti o et noti o perfec te per anima m haberi .>

러한 학문의 정초 과정에서 합리적 영혼의 창조력은 두 가지 기본 계 기를 통해 드러난다. 즉 정신은 스스로를 전개함에 있어 시간 속으로 빠져들어 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연속으로서의 시간을 초 월한댜 말하자면, 학문의 근원이자 창조자인 정신이 시간에 속한 것 이 아니라, 시간이 정신 속에 있는 것이다. 정신이야말로 자신의 분별 력을 통해 비로소 확고한 시간 구획과 시간 분할을 가능케 하며, 시 각, 달, 햇수 등을 서로 구분하는 것이다. 신이 모든 본질 차이를 산 출하듯 인간의 지성은 모든 개념 차이룰 산출하며, 그러므로 그것은 대립적인 것을 항상 통합시키는 조화의 원천이다. 인간의 지성은 프 톨레마이오스로 하여금 관측의를, 오르페우스로 하여금 리라를 만들 어내게 하였다 . 발명이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 질료를 통

해 개념을 실현시키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시간과 영혼의 관계는 눈과 보는 행위의 관계에 비유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시간은 영혼이 자신의 기본 기능, 죽 다양하고 난삼하게 흐트러진 것을 정리하고 구 분하는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사용하는 한 기관이다 . 48 )

48) (위의 책) 특히 Idio t. Lib. III, De mente , Cap. 15, fol. 171 을 참조하라.

시간과역사 쿠자누스는 이와 같은 관념론적 해석을 통해 후에 케플러나 라이프 니츠에게서 등장하는 근대적인 수학적, 물리학적 시간 개념의 기초를 마련한 의에도 4 9) 역사에 대한 새로운 조망과 평가의 장을 열었다. 이 제 역사적 존재도 <함축>과 <구현>이라는 근본 대립에 종속하게 되 어, 단지 외적인 <사건>이 아닌, 인간의 가장 고유한 행위로서 드러 나게 되었다. 인간은 바로 자신의 역사를 통해 창조적이고 고유한 행 위로서의 자신을 드러낸다. 여기에서 인간은 우연적으로 주어진 것들 의 추이와 외부적 조건들로 인한 일체의 억압에도 불구하고 항상

49) 케플러는 이미 자신의 첫 저작인 My st e r i um Cosmog rap h ic u m, hin. P. Cap. II, Oper a (Fri sc h 편) I. 122 에서 <신적 인 쿠자누스> (divinu s m 恥 Cusanus) 의 논조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그 밖에도 Op er a II, 490, 595 를 참조하라.

<창조된 신>으로서 군림한다. 시간과, 각 순간의 특수 상황에 속하며 순간적 조건에 얽매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하여 항상 임을 자처하는 것이다. 인간은 스 스로의 고유한 존재 속에 머물며 그 특수한 인간적 속성의 한계를 결 코 뛰어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그 속성을 다방면으로 발전시키 고 드러냄으로써 인간적인 형식와 튤속에서 신적인 것을 구현하는데 50 ) 그 것은 인간도 역시 다른 모든 존재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형식을 완성 하고 실현할 권리를 지니기 때문이댜 51) 인간은 이 형식, 이 한계를 시인하여도 되며 더 나아가 시인해야만 하는데, 그것은 그가 그렇게 할 때만 그 속에서 신을 찬양하며 사랑할 수 있게 되고 자신의 근원 에 대한 정결함을 공표할 수 있기 때문이다 . 52 ) 이로 인해 전 중세 사

50) De conje c tu r i s II, 14. 51) De doct ign II, 2. 52) 이 러 한 사상은 그의 저술 De data patris lum i num 에 가장 분명 하게 드러 난 다.

data natu ra, si a diminu to et creato bona esset, sed quia ab op tima et ma xima mag ist r o, qu o nihil altiu s , sort itum est esse suwn, omne id qu ad est quies ci t in spe cifica natu r a sua ut in opt ima ab opt ima .>

상과 삶을 지배한 저-쿠자누스조차 이의 를 제기하지 않았던 53) ―원죄설은 그 위력을 상실하는 대신 바야흐로 저-아우구스티 누스가 그것을 철저히 논박함으로써 중세의 신앙론을 확립하였던 ―펠라기아니스적 정신이 다시 고개를 들게 되었다. 즉 인간의 자 유에 관한 가르침이 날카롭게 부각되었는데 그것은 인간은 단지 자유 를 통해서 만 신과 유사해질 수 있으며 신의 그릇노 릇 (ca p ax De i)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헨 인간은 자신의 존재가 전적으로 신으로부터의 봉토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자유로운 창조자로서의 역할을 수행 할 영역, 그가 자유로이 관리할 영역을 지닌다 . 이 영역은 가치의 영 역이다 . 인간적 속성이 없이는 가치 같은 것은 성립할 수 없으며 사 물을 그 완전도에 따라 평가하는 원칙 따위는 있을 수 없다. 만물에 대하여 인간적 속성이 관여하지 않게 되어 그 어떠한 가치의 차등도 사라지게 된다고 상상해 보라. 신이 동전을 주조하는 장인이라면 인 간의 정신은 그것의 값을 결정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정신은 가치를 창출하지는 않지만 가치 구별이 가능키 위한 필수 불가결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지성을 포기하면 도대체 가치가 성립되는지조차 알 길이

53) 쿠자누스의 원죄론에 대해서는 그의 설교 Coelwn et ter ra tran sib u nt, Excita t. Lib. V, fol. 495 를 참조하라 54) Exdta t. Lib . V, fol. 498.

없댜 판단과 비교 능력 없이는 어떠한 평가도 불가능하며, 더불어 가 치도 소멸될 수밖에 없댜 바로 여기에서 정신의 위대함이 유래한다. 그것 없이는 모든 피조물들이 가치롤 상실한 것이 되고 말 것이기 때 문이댜 신은 자기 작품들에 대해 가치를 부여해 주기 위해 사물과는 별도로 존재하는 지성적 속성을 창조하여야만 했다 .> 55) 이러한 구절 은 쿠자누스의 종교적 인본주의와 종교적 낙관주의가 그 절정에 달했 음을 보여준다. 도대체 모든 가치의 원리이자 원천인 존재가 어떻게 무가치할 수 있으며 타락과 죄악의 나락에 빠질 수 있단 말인가? 인 간이라는 매개에 의해 자연이 신에게로 올려짐과 같이 이제 인간의 문화 역시 진정한 신정론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속에는 인간 정신의 신성을 선포하는 자유가 내포되어 있다. 이로써 세계에 대한 도피의 정서는 극복되었고 세계에 대한 불신은 사라지게 되었다. 존재와가치 또한 감각적인 속성과 감각적 인식 능력도 모든 지성 활동에 대한 자극과 고무를 수행한다는 의미에서 이제 더 이상 비천한 것이 아니 게끔 되었댜 정신은 영원무궁한 지혜에 대한 살아있는 서술이다. 그 것은 잠들어 있을 때나, 감각적 관찰을 통한 경이로움으로 흥분해 있 을 때를 막론하고 살아 있다 . 56) 그 격동은 정신에서 시작하여 정신에 55) De ludo glo bi, Lib . II, fol. 236 이 하; Erkenntn isp r o blem, I, 57 이 하를 참조 할것. 56) Idio t a e Lib. III: De mente , cap. 5:

서 끝난댜 그러나 그것은 감각계 를 관통하여 진행된다. 색에 대해 보 고 음에 대해 듣는 것처럼 감각적인 것에 < 동화되 는> 것은 늘 정신 스스로이다 . SI ) 이 지각 세계로의 하강은 더 이상 추락이나 인식의 타 락 같은 것이 아니다 . 오히려 그 속에서 다양성에서 통일성에로, 한정 에서 일반에로, 혼란에서 명료에로 고양되는 감각계의 상승이 일어난 댜 58) 인간 정신은-이 함축성 있는 상징을 통해 쿠자누스는 자신 의 사상 전체를 표현한다-그 단순한 본질 속에 가지 전체를 포괄 하는 신적인 씨앗이댜 그러나 이 씨가 싹을 퇴우고 열매 맺기 위해 서는 감각적 지상계로 내려와야 한다 . 59) 쿠자누스가 추구하는 저 < 연 57) ldoit ae Lib . III, cap. 7: 58) De con jec tu r. II, 16: 59) Idio t Lib . III, cap. 5 (fol. 154)

합적 신학 kop u lati ve Theolo gi e > 의 기본 성격은 바로 정신과 세계, 지성과 감각 사이의 이와 같은 화해 속에 놓여 있다. 쿠자누스의 이 와 같은 신학은 일체의 단순한 < 선언적 disj u n ti v 신학>이나 부정적, 분리적 신학과 방법론적 차원에서 명백히 구별된다 .60 1

60) 여기서 Vans te enber g he 의 Auto u r de la docte ign orance (113 쪽 이하)에 수 록된, 테게론 호수의 수도사들에게 보낸 그의 1453 년 9 월 14 일자 서한울 참조하 라 . 또한 De filia t i on e Dei (fol. 125) 도 참조하라.

제 2 장 쿠자누스와 이탈리아 - 쿠자누스가 그 성향이나 학설면에서 콰트로첸토 당시의 이탈리아 사상 전반에 강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이미 당대인들도 인정하는 바였다.” 그러나 르네상스 철학사와 일반 문화사 사이의 밀접한 관련 에 대해서는 여태껏 한번도 제대로 평가되거나 연구된 적이 없다. 이 탈리아 철학사에 끼친 쿠자누스의 영향은 조르다노 부르노에 이르러 서야 명료하고 확연하게 드러난다. 부르노는 자신의 정신적 해방자이 자 구세주라고 칭송한 바 있는 두 사상가, 이름하여 저 <신을 방불케 하는 쿠자누스>와 코페르니쿠스로부터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얻 었는지 에 대해 추호도 의 심 하지 않았다. 그러 나 docta ig noran ti a 와 1) Ap o! . doc t. igno ranti ae , (fol. 75):

부르노의 주요 철학 저술 간행 시기 사이에는 거의 150 년이라는 세월 이 가로 놓여 있다 . 그렇다면 우리는 쿠자누스의 사변 적 사상이 그 기간 동안 세인들의 무지 속에 묻혀서 당대에 그 어떠한 영향력도 행 사하지 못했다고 받아들여야만 할까? 당시의 대표적인 철학 체계들 중 그 어느 것도 그의 기본 사상을 수용하지 않았으며, 그 사상의 창 안자가 누구인지 이름조차 아득해진 사실을 고려해 본다면 그러한 결 론은 불가피한 듯 하다. 폼포나찌나 파두아 학파의 학자들 , 또 피치노 와 피코로 대표되는 플라톤주의자들에게서 니콜라우스 쿠자누스가 언 급된 혼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 2) 그러므로 역사적 사실만을 고려해 본 다면 쿠자누스의 체계와 15 세기 이탈리아 철학의 기본 논조 사이에 관련을 수립해 보려는 < 구성적 > 시도는 모두 헛되게만 느껴진다. 사 실 이탈리아 출신의 철학사가들은 이 문제와 관련해 대부분 부정적 결론을 내린다. 그와 같은 배후에는, 이탈리아의 철학적 문헌, 구체적 으로 지난 10 년간의 문헌에 특히 짙게 배어있는 민족주의적 성향이 작용하였음도 배제할 수 없다 . 이러한 민족주의적 견해에 따르면 르 네상스 사상은 다른 여타 문화 영역과 마찬가지로 고유한 민족적. 기 반을 지닌 것으로, 이탈리아적 정신의 토착적 창조로서 이해되어야만 한다. 젠틸레 Genti le 같은 학자가 조르다노 부르노에 관한 연구나 <르네상스의 인간 개념>에 대한 논문에서 쿠자누스 사상에 대해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것은 바로 그와 같은 배경을 통해서만 이해 2) 피코의 작품에는 쿠자누스의 이름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피치노의 작품에서 는 한 서간문에 왜곡된 모습으로 단 한번 둥장하는데 , 플라톤적 사상을 대표하는 저술을 열거하는 과정에서 플라톤 사상에 대한 베싸리온의 변론 외에 쿠자누스 의 <명료한 사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q uaedam spe cu lati on es Nic o lai Ca isi i (sic ! ) Cardi na lis) . Ep isto l ., Lib. IX, Op . fol. 899. 그러나 피치노가 쿠자 누스의 작품을 알고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 (G. Sa itta, Lo. filos ofia di Marsili o Fid n o, Messin a 1932, 75 쪽과 이하에 제시된 부분을 참조하라.)

가 가능하다 . 31 이러한 상황에서도 한 위대한 이탈리아의 철학사가는 이미 40 년 전에 쿠자누스와 이탈리아의 관련을 명확하게 진술한 바 있댜 피오렌티노 F i oren ti no 의 그리 주목받지 못하는 저작 『 콰트로첸 토의 철 학 부흥 fl ris o rgi me nto filos ofi co nel Q ua ttr ocen t o 』은 첫 머리부터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된다. <르네상스를 고대 사상으로의 단순한 복귀라고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는 결코 반 복되지도 않을뿐더러 이미 거기에는 재래의 이탈리아적, 희랍적 지주 위에 독일 사상이라는 새로운 가지가 접목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변 적 사상사에 등장한 이 새로운 요소를 무시하거나, 잘못된 민족적 명 예욕 때문에 과소 평가한다면 우리는 오류를 피할 수 없으며 새로운 철학의 신기원에 대한 참다운 이해를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만약 르 네상스 철학의 가장 뛰어난 전문가 중의 하나였던 피오렌티노가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테제를 세부적으로 입증하고 전개해 나갔다면 르네상스 사상의 근원과 동기를 이해하는 데 무척 유익했으리라. 그 러나 그의 저술은 애석하게도 단편으로만 존재하며 좀더 면밀한 사료 연구가 행해져야 할 부분에서 중단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방법적 경고와 충고는 객관적 역사 서술을 하는데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댜 쿠자누스 이론의 정신사적 의의 편협한 민족주의적 관점으로는 위대한 정신적 변화, 특히 철학적 변화의 역사를 이해할 수 없다. 진정 위대하며 좀더 깊은 차원에서 3) 19G2i3o .v . Genti le, Cordano Bruno e il pe nsie r o de[ Rin a sci me nto , Fir en ze

< 민족적인 > 정신의 소유자라면 그러한 관찰 방식상의 편협성을 즉각 거부하게 된다. 특히 쿠자누스의 경우는 이중적으로 그와 같은 입장 을 적용하여야만 한다 우리는 그가 이탈리아로부터 얻은 것이나, 그 가 15 세기 이탈리아 문화와의 접촉을 통해 바로소 밝고 넓은 세계로 인도된 경위, 또 그와 같은 경위로 인해 그의 사상이 비로소 확고한 형식과 틀을 갖추게 된 경위 등에 대해서 이미 살펴보았다 . 그러나 우리는 그가 이탈리아에 끼친 영향 또한 간과하여서는 안 된다. 그러 한 영향은 완결된 형태로 우리에게 확연히 드러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파악하려면 우리는 르네상스 철학을 단지 <전문적 개념>으로서가 아닌 < 일상적 개념 > 으로 수용할 필요 가 있다 . 쿠자누스 사상의 근본 계기는 늘 일상적 개념을 통해 드러 나는데, 그와 같은 경향은 특히 개별 사상에 대한 단순한 전수나 개 별적 성과에 대한 막연한 집착 따위를 버릴 때 확연이 드러난다. 쿠 자누스가 당시 이탈리아 철학에 준 것은 확정된 성과가 아니라 하나 의 경향과 자극이었다 . 그 경향은 확고한 교조적 교의에서보다는 전 체를 파악하는 새로운 경향과 사변, 삶의 새로운 목표 등에서 확고히 드러난다. 그러므로 쿠자누스 사상의 의의와 영향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철학 이나 철학 분야의 대가보다는 아마추어의 세계나 그 지적 대변자들에 대해 살펴보아야만 한다. 부르크하르트는 15 세기에 있었던 <완벽한 교양안의 증가>를 르네상스의 가장 특기할 만한 양상으로 꼽았다. 그 러나 이러한 <팔방 미인>들은 부르크하르트도 서술하였듯이 스콜라 적 사유나 학구적 성향에 묶여 있던 당시의 철학에서는 정신적 실현 의 계기를 얻어내지 못했다. 일찍이 페트라르카는 자신의 개인적 교 양 이상을 따르고자 철학적 현학을 띤 수업 방식을 단호히 거부하였 으며 4) 그러한 분야에 대한 자신의 무지를 당당히 시인하고 나섰다.

4) 특히 De sui ips iu s et alior um ign oran tia 를 참조할 것 .

레오나르도 다빈치 역시 권위와 전통에 꾸준히 저항하였으며, 이 저 항을 통해 비로소 자신이 추구하며 자신을 통해 방법적 전제들이 창 안될 저 새로운 지식의 이념을 확립하여 갔다. 레오나르도는 사상가 들을 원천적 창안자들과 모방자들, <주석가들>로 구분하였다. 최초의 몇몇 위대한-레오나르도의 표현으로는 <원천적인primiti v>­ 사상가들은 자신들의 연구에 있어 단지 경험이라는 하나의 범례와 보 기에 준하였으며 그런 의미에서 창안자로 칭송받아 마땅하지만, 그 뒤에 등장한 이들은 단지 개념적 구별di scors i의 세계에 골몰하느라 자연과 현실을 등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자연스런> 인 간 오성에로, 죽 왜곡되지 않은 정신의 능력에로 회귀하는 것만이 상 책이다 . Le bone lett er e son nate da un bono natu ral e, e perc he si dee piu laudare la cag ion che l'ef f et t o, piu lauderai un hon natu rale sanza lett er e che un hon lett er ato sanzo natu ral e. (좋은 글은 좋은 자연으로부터 유래한다. 그러므로 결과보다는 원인을 찬양한다는 의 미 에서 좋은 저술보다는 좋은 자연을 찬미하노라 .)5) 당대의 사상가들 중에서 레오나르도의 위와 같은 입장을 니콜라우 스 쿠자누스처럼 날카롭게 논술하고 인상적으로 정초한 이는 없었다. 쿠자누스는 공동 생활 형제단에서 익히고 습득한 평신도 신앙의 이 념, 죽 에 부합되는 범부의 지 식 이 라는 새로운 이념을 확립시켰다. 이 이념에 대한 서술과 정당화는 이미 제목에서

5) Il codic e Atl a nti co di Leonardo da Vinc i, Roma -M ilan o 1894 이하 . fol. 75.

그 내용이 암시되는 그의 한 주요 저술에 실려 있다. 쿠자누스는 『 지 혜에 관하여 De sap i en ti a 』와 『 정신에 관하여 De men t e 』 , 그리고 『정력학 실험에 관하여 De sati cis exp er i men ti s 』 라는 대화편을 한 데 묶어 『 범부(凡夫) ld i o ta 』 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것은 세 대화편에 서 공히 학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이 상대 담화자인 철학자의 스승으 로 등장하여 이미 해답을 함축하거나 어떤 의미에서 해답이 선취된 주요 질문들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 이 저작은 한 평범한 사람이 로마의 광장에서 한 연설가를 만나 그에게 정신의 진정한 양식은 다 른 사람의 저술 속에 있는 것이 아니며, 참 지혜는 결코 권위에 대한 굴종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역설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 당신 은 주제넘게도 스스로 지혜롭다고 자처하면서 뻐기는구려 . 나야 뭐 무식한 사람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당신보다는 좀더 낫다고 할 수 있지.> 지혜란 현학적 장비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오로지 그것을 경청할 줄 아는 이에 대해서만 명료히 존재한다. 시장의 왁자지껄함 이나 인간의 일상적 잡무 속에서도 지혜는 직접적으로 드러나는데 그 것은 이 모든 것이 인간의 기본 능력, 죽 재고 달고 셈하는 능력으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범부의 지식에 대한 이념 그러한 능력 속에는 모든 이성 활동의 토대가 놓여 있으며 정신의 탁월한 특징들이 놓여 있다. 정신의 속성이 지닌 본질과 신비를 파악 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지닌 능력이나 그것의 가장 단순하고 평범한 표현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족하다 .6) 쿠자누스가 소위 천재적인 <범 6) Idi ot a (ad Orato re m):

natu r a libe r, sed arte capi st r o alliga tu s pra esepi , ubi non aliud come clit, nisi qu od illi rninist r at u r> Pascit ur eni m int e ll ectu s tuu s, aucto ritati scri be nti um artrict u s , pab ulo alien o et non natu rali. Non dico ibi non esse, sed dico natu r ale ibi non rep eriri. Qui eni m primo se ad scri be ndum de sapi en ti a contu ler unt, non de libr orum pab ulo, qui nondum erant, inc rementa recepe r unt, sed natu rali alime nto in virum perfec tu m perd ucebantu r et ii caete ro s, qui ex libr i s se pu ta nt pro fe c is s e, lon ge sapi en ti a ante ce dunt ... Scri bt aliquis verbum illud , cui crec lis. Eg o aute m dico tibi, qu od sapi en ti a fortis clamat in pla te is et est clamor eju s , qu omodo ips a habit at in altis s im us. Orato r. Ut aud io, cum sis Idi ota , sape r e te pu ta s ? Idi ota . Haec est fortas sis int e r te et me differ enti a: tu te scie n ti em pu ta s , cum non sis , hinc supe rb is ; ego vero Idi ot a m me esse cog n osco, hinc hu milior , in hoc forte docti or exi st o > etc . (Idio t. de sap ien ti a lib. I, fol. 137).

부 > 들에게 끼친 영향은 바로 이와 같은 기본 입장을 통해 이해될 수 있댜 두헴 Duhem 은 레오나르도 사상을 연구함에 필수 불가결한 사 료를 발굴해 내는 인상적인 개가를 올림으로써 니콜라우스 쿠자누스 와 레오나르도가 얼마나 밀접한 연관을 갖는지 입증하였다. 두헴은 레오나르도가 수많은 문제들을 직접 쿠자누스로부터 물려받은 사실과 더불어, 바로 쿠자누스가 멈춘 지점에서 레오나르도가 출발한 경위를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레오나르도가 쿠자누스에게로 돌아가 곳곳에 서 쿠자누스의 유산을 대변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방법적 일체감에 기 인한다. 레오나르도가 보기에 쿠자누스는 특정한 철학적 체계의 대변 자라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연구 방식과 연구 방향의 대표자였다. 바로 이 점이야말로 양자의 관계가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발 전하게 된 경위를 해명해 주는 것으로, 바야흐로 쿠자누스는 레오나 르도가 속한 정신적 집단의 대표격이 되었다. 이 집단은 15 세기 이탈 리아에서 몰락해 가는 스콜라 철학적 교양과 발흥하는 인문주의적 교

7) Et ud e sur Leonard de Vinc i , ceux qu 'il a /us et ceux qu i l'on t lu, Seconde seri e, Pa ris 1909, 99 쪽 이 하.

양을 배경으로, 지식과 인식 의지에 관한 제 3 의 특수한 근대적 형태 를 제시했다. 여기서는 불변의 종교적 내용이 학문적으로 고정되고 파악되는 따위란 있을 수 없으며 위대한 고대에의 전통에로 돌아가 거기에서 인류의 쇄신을 꾀하는 따위도 시도되지 않는다. 이러한 새 로운 형태가 문제 삼는 것은 단지 <이론>을 토대로 한 구체적인 기 술과 예술의 문제였다 . 창조적인 예술 활동이 이루어짐에 따라 그러 한 활동에 대해 깊이 숙고할 필요가 생겼는데 그것은 지식의, 특히 수학적 지식의 최종 근거들에 대해 반성해 보지 않고서는 불가능하였 다. 레오나르도와 더불어 그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사상적 활력과 문 제 의식을 몸소 구현한 이로는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 Leon Bat- tista Albe rti를 들 수 있다. 그는 쿠자누스와 개인적 관계를 맺는 것 울 넘어서 자신의 이론적 주저를 통해 그의 수학적 철학적 사변들, 특히 구적법에 대한 방법적 성찰을 상기하고 있다 . 8) 이와 같은 구체 적인 문제를 통해, 우리는 이러한 부류의 인물들이 어떠한 사상적 맥 락에서 쿠자누스와 관련되는지 알 수 있다 .9> n·e d octa ign oran ti a 에 8) 더 상세한 것은 Mancin i, Vita di Leon Batt ista Alberti, 2 판 , Fir e nze 1909 와 Olsch ki, Geschic h te der neuspr achlic h en wis s enscha ftlich en Lit er atu r , I, Heid e lb. 1919, 81 쪽 이하를 참조하라 9) 쿠자누스가 이탈리아에 끼친 영향력에 대한 중거로는 Vans t eenber g he 가 쓴 일 대기에 이탈리아에는 <작은 쿠자누스 학파>가 성립하여 세기 말에는 <학회>를 개최할 정도였다는 사실을 든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 그 밖에도 Pac i o li가 Divina p ro p o rti one” 의 서문을 쓰는 가운데, <일군의 위대한 추기경 나리들> 외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참석하였음을 알리는 것은 두헴의 테제를 뒷받침하는 새로운 전거를 이룬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의 오류가 발견되는데, 그것은 그와 같은 서문의 내용이 반드시 쿠자누스 학파의 존재를 설명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다 . 그 서문에서는 1498 년 2 월 9 일 밀라노성에 Lodovic o Ma ria S fo rza 공이 참 석한 가운데 Arnbrog io da Rosate , Marlia n i , Provano, Leonardo da Vi nc i , Andrea Novarese 와 Nic c olo Cusano 둥이 운집하고 있었음을 알리고 있으며 어떤 사람이 쿠자누스의 의학적 지식과 천문학에 관한 지식을 칭송하는 장면이

나온다. (E da li pre fa ti molto in tutti pre messe (disc ip line ) ad mirato e venerato Nic o lo cusano: Luca Pacio l i, Divina pro p ortion e, in: Q u ellen-sch riften fur Kunstg e schi ch te und Kunstt he ori e des Mittela lte r s und der Neuzeit. N. F. II 권, Wi en 1889, 32 쪽) 그러나 여기서 쿠자누스의 사람됨이나 그 철학적 논지에 대한 경의는 발견되지 않는다 . 그러므로 여기서 거론되고 있는 Nic c olo Cusano 는 당시 Pav i a 에서 교수로 활동하던 같은 이름의 의사가 아니었 던가 생각된다. (그에 관한 것과 아울러 Pac i o li의 서문에 둥장하는 인물들에 관 해서는 Gusta v o Uzie l li , Rice rche int e m o a Leonardo da Vi nc i, Seri e prima , Tori no 1896, 368 쪽 이하를 참조하라.) 이 모임, 죽 소위 에 대해서는 Uzie l li (위의 책 341 쪽 이하)와 Olsc hiki(위의 책 I. 239 이 하) 를 참조하라.

서는 일체의 인식을 측 정이라고 규정하며 그에 걸맞게 측정의 가능 조건을 의미하는 비례 개념을 인식 전체의 매개자로서 규정한다 . 비례의 개념 < 모든 연구는 비교를 통해 이루어지며 비례를 도구로 사용한다. Comp a rati va est ornnis inq u is i t io, med io pro p o r tion is ute n s.> !Ol 그러나 비례는 논리적 수학적 개념이기에 앞서 무엇보다 미학적인 개 념이다. 그러므로 측정 개념은 자연에 대하여 연구하는 이와 제 2 의 < 자연 > 을 창조하는 예술가가 조우하는 지점이다. 레오나르도의 친우 였던 루카 빠치올리 Luca Pac i ol i의 말처럼 비례란 지식의 어머니일 뿐 아니라 < 예술의 어머니이자 여왕>인 것이다 . 그 개념속에는 당시 의 사변적이자 철학적인 제반 경향, 그리고 기술적이자 수학적인, 그 리고 예술적인 제반 경향들이 서로 뒤엉켜 있다. 바로 이와 같은 뒤 엉킴이야말로 형식의 문제가 르네상스 문화의 중심 문제로 등장하게 된 원인을 제공한다. 르네상스가 시작된 이래 중세 사상을 형성하던

10) De doct. ign I, I.

종교적 계기들이 겪은 저 독특한 < 세속화 > 과정도 바로 이런 관점에 서 이해될 수 있댜 이제 막 형성되기 시작한 < 자연 > 과 < 자연 진 리 > 에 대한 새로운 개념은 원래 역사적인 근원을 따져보면 종교적 동기를 지니는 것으로 소급된다. 자연에의 관심은 _ ~이 말을 근대 미학적 의미나 근대 과학적 의미가 아닌 종교적 의미로 사용할 때 ―이미 중세 신비주의를 통해 형성된 저 경건성에 대한 위대한 변 화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토데 Thode 는 바로 이 점을 자신이 쓴 아시 시의 성 프란체스코에 관한 저술에서 정확히 지적했다.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는 교조적으로 굳어진 < 자연 > 과 < 정신 > 사이의 단절을 해소하고 극복하여 새로운 기독교적 사랑이라는 이념을 탄생시켰다. 죽 신비적 정서가 삼라만상과 혼연일체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특수화와 개별화의 구획이 사라지게 되며 , 사랑은 더 이상 존재의 원 천이자 초월적 근원인 신에게로만 향한 것이거나 도덕적 관습적인 인 간끼리의 관계에 국한된 것이 아니게끔 되는 것이다. 이제 사랑은 모 든 피조물, 즉 동물과 식물, 해와 달, 원소들과 자연의 힘 등에 고루 충만되게 되었다. 이 모든 것들은 이제 더 이상 홀로 고립되어 존재 하는 존재의 <부분들 > 이 아니라 신비적 사랑의 열로 인간, 그리고 신과 더불어 한데 녹아든다. 그리하여 결국 자연계를 고정된 특정 유 로 분리시키고 그 서열을 나누는 것을 가능케 하는, 특수하고 개별적 인 사물성의 범주는 형제애라는 범주 앞에서 빛을 잃게 되었다. 아시 시의 성 프란체스코에게는 물고기나 새, 나무나 꽃은 물론이고 바람 과 물까지도 인간의 <형제 자매>이다. 이러한 프란체스코파적인 신 비주의의 형태로 중세 정신은 자연을 구원하고 그것에서 죄와 욕정이 라는 오명을 벗겨낸 위대한 작업을 수행했다. 그러나 아직도 이러한 형태의 사랑에 걸맞는 인식의 형태는 확립되어 있지 않았다 . 우리는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에게 이와 같은 인식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확인하는 동시에 신비주의 사상에 기초한 그가 다른 한편으로 얼마나 자연에 대한 사변적 정당화를 추구하였는지 확인한다. 그는 그와 같 은 임무를 수행코자 새로운 방법, 죽 신비주의 대신 논리학을 동원하 였댜 그러나 여기서 거론되는 논리학은 쿠자누스가 <아리스토텔레스 종파>의 논리학이라고 부른 저 낡은 강단 논리학이 더 이상 아니다. 낡은 논리학의 기본 원칙은 <대립의 일치>를 주장하는 철학자에게는 용납될 수 없었던 것이다 .11) 그는 우리로 하여금 신비적 정서의 영역 을 넘어 지적 관조에로 비약하게끔 하는 수단을 제공함에 있어 형식 논리학적인 삼단논법 대신 수학이라는 논리학을 동원한다. 이렇게 함 으로써 비로소 신비주의자의 신에 대한 사랑은 완성을 이루고 진정한 목표를 달성하게 되는데 그것은 쿠자누스에게 있어 진정한 사랑은 반 드시 인식 행위에 기초한 사랑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수학의 정 확성을 그 자체나 자연 인식의 정초를 위해서가 아니라, 신인식의 정 초와 심화를 위해 동원하게 되는, 철학사 전체를 통틀어 전대미문의 시 도가 이 루어 지 게 된 것 이 다. De docta ign oran ti a 에 의 하면 모든 현인들과 스승들은 한결같이 가시적인 것은 단지 거울을 통해, 또는 수수께끼의 형태로 드러난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의 모상에 불과하 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신적인 것 그 자체가 접근이 불가능하며 단 지 상징이나 표상을 통해서 파악될 수 있는 것이라 해도, 그 표상 자 체에는 의심스러운 것이나 불명료한 것이 포함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불확실한 것도 단지 확실한 것과 정확한 것을 통해서만 파악되기 때 문이다 .12) 이처럼 신적인 것에 대한 파악을 가능케 해주는 상징에 대 하여, 감각적인 풍부함이나 능력 의에도 그 사상적 고유성과 정확성 이 요구되게 된 것은 새로운 사실이다. 그리하여 세계와 신 사이의 1112)) A이p o책 l.o g2 i5a, d2o6c 쪽t.,a e igno ranti ae , 이 책, 16 쪽 각주 5.

관계, 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 사이의 관계는 철 저히 변화되게 되었다. <신의 책 > 으로서의 자연 신비적 사유 방식에 의하면 모든 존재는 신과 세계를 연결하는 출 발점이 될 수 있다. 죽 모든 개별자들에게서 < 신의 흔적 > 이 발견되 며 신은 유한한 것을 통해 드러난댜 쿠자누스는 이러한 점에서 신비 주의와 일치하나 한 걸음 더 나아가 1 3 1 그와 같은 변화를 새로운 보편 적 연관으로 확립시켰다. 그에게 있어 자연이란 단지 신적 존재와 신 적 능력의 반영일 뿐 아니라 신이 직접 쓴 책을 의미한다 .1 41 이것은 여전히 종교적 전제를 띤 발상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쉘링을 인용 하자면_객관적 학문의 자유로운 장을 여는 계기를 의미한다. 왜 냐하면 자연이라는 책의 의미는 단지 주관적 정서나 신비적 예감으로 는 알아낼 수 없으며, 단지 연구되고——-낱말 하나하나에서 철자 하 나하나에 이르기까지―-―파헤쳐져야만 그 해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 세계는 더 이상 단순한 신적 상형문자나 성스런 기호로서 우리 앞에 머물 수 없으며, 설명과 체계적 해석을 요구한다 . 이 설명이 어떠한 방향으로 진행되느냐에 따라 그것은 새로운 형이상학을 성립시키기도 하고 엄밀한 자연과학을 성립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기로에서 르네상 스 자연 철학은 형이상학에로의 길을 택했다. 그리하여 자연은 그안 13) De doct ign. I, II: 14) Idio t a , Lib e r I de sapi en ti a, (fol. 137):

에서 신이 부단히 변모하며 드러나는 < 신의 책 > 이라는 사상이 취해 지게 되었다. 캄파넬라는 바로 이러한 토대 위에서 자신의 인식론과 형이상학을 구축하였다 . 그에게 있어 < 인식함 > 이란 다름아닌 자연에 드러난 신의 글을 읽는 것이다 . 즉 < 인식함i n t ell ig ere > 이란 < 읽어냄 le g ere > 을 의미하는 것이댜 < 세상은 신의 입상이고 살아 있는 성전 이자, 신의 정신이 지닌 무궁한 위엄을 갖춘 것들에 대해 신이 직접 써놓고 그려 놓은 신의 법전이다. 복 받으라, 자신의 판단이나 서툰 의견으로 사물의 본성에 대해 꾸며대지 않고 단지 이 책을 읽음으로 써 그것을 배우려는 자여 .> 1 51 여기에 등장한 비유는 그 자체로는 새 로운 것이라 할 수 없으며 니콜라우스 쿠자누스를 넘어 일찍이 중세 철학, 즉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에게로까지 소급이 가능한 것이지 만 그 내용상 아주 새로운 자연관을 내포하고 있다 . 그러나 우리는 위의 구절이 『 자연에 대한 이해와 마술에 관하여 De sensu rerum et ma gi a 』라는 저술 말미 에 씌 어 있음을 주의 해 보아야만 한다. 즉 여기서 자연을 은밀히 지탱하며 자연과 인간을 연결하는 끈은 아직 전적으로 마술적이고 신비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삶을 자연에 직접 투영하는 것을 통해서만 자연을 이해 할 뿐이다. 그러므로 삶에서 느껴지는 감각의 한계, 직접적인 잔류 감 각 Nachem pfi ndun g에서 드러나는 한계는 바로 자연에 대한 인식의 한계를 의미한다 . 그러나 쿠자누스로부터 출발하여 레오나르도 다빈 치를 거쳐 갈릴레이와 케플러로 이르는 또 하나의 조류는 이와는 대 조적인 해석 방식을 제시한다. 이 조류는 우리의 정신적 구조를 읽어 내게끔 하는 기호의 구상적이고 상징적인 효과로는 만족하지 않고 더 15) 캄파넬라, De sensu rerum et mag ia, Tob. Ada mi 편집, Fr ankfurt 1620, 370 쪽 (더 자세한 것은 Erkenntn isp r o blem I, 268, 282 쪽 참조하라.)

나아가 이 기호가 체계, 즉 총괄적 질서 를 지닌 연관을 가져야 한다 고 본다. 자연의 < 의미 > 는 더 이상 단순히 신비롭게 느껴지는 것이 어서는 안 된댜 그것은 논리적 의미로 사유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 요청은 수학이 아니고서는 충족시키기 어렵다. 오직 수학만이 억견의 자의성과 애매함에 대항하여 필연성과 확실성을 지닌 척도를 제공한 댜 그래서 레오·나르도는 궤변과 과학을 가르는 관건은 바로 수학이 라고 보았다. 그는 수학의 드높은 확실성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는 자 는 그만큼 정신을 어지럽히는 우를 범하게 된다고 말하였다 . 또 몇몇 자구 따위에 현혹되는 자는 그 자구에서 연원하는 불확실성과 다의성 에 빠져 결국 끝없는 말장난에 휘말리게 된다고 하였다 .1 6) 오직 수학 만이 언어의 의미를 고정시키고 그것을 특정 규칙과 연결시킴으로써 단순한 말잔치 대신 사상과 명제의 엄밀한 의미 구조를 제시함을 통 해 말장난을 종식시킨다. 갈릴레이에 이르러 이러한 경향은 그 절정 을 이루었다. 그는 개별적인 감각적 지각조차도, 설령 그것이 아무리 강렬하고 인상적이라 해도 아무 것도 <진술하지> 않는 한, 그래서 아무런 객관적 의미도 내포하지 못하는 한, 그저 하나의 <이름>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17 ) 객관적 의미란 인간 정신이 지각의 내용을 자신 이 지닌 인식의 기본 형식과 연관시킬 때에만 비로소 드러난다. 바로 이 연관에 의해 우리는 자연이라는 책을 읽고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거쳐 갈릴레이는―_一인간 정신이 지 니고 있고 또 필요로 하는 일체의 상징 중에서 단지 수학적 기호에만 16) Leonardo da Vin c i , Sc ritti lett er ari, J ea n Paul Rich te r 편집, London 1883, No. 1157 (II,28 9). 17) 갈릴레이, /I sagg iator e (Op er e Albert i 편집 IV, 334): Per lo che vo io pen sando, che qu esti sapo ri, odori , colori etc ., per la parte del sug ge tt o, nel qua le ci pa r che rise gg a no, non sie n o altr o che puri nom i, ma ten g an o solamente lor resid e nza nel corp o sensit ivo etc .

합당하게 들어맞는 저 < 불가침의 확실성 inc orrup tibi l is ce rtit udo > 에 대한 쿠자누스의 사상에서 출발하여一~자신의 연구가 지향하는 목 표와 특수성을 규정짓는 저 유명한 주요 명제들에 도달하게 된다 . 수학의 척도 그리하여 성서적인 계시에 대항하여 점점 <자연이라는 책>에 대한 신비가 벗겨지면서 하나의 세속화 과정이 완성되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 이 양자 사이에는 아무런 근원적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왜냐하 면 이 둘은 동일한 정신적 의미를 상이한 형식을 통해 제시한 것으 로, 그 속에서 자연을 이뤄낸 신적인 창조자의 단일성을 공표하기 때 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우리에게 하나의 갈등 상황을 제 시한다면 우리는 말을 통한 드러남보다는 실제 상황을 통한 드러남에 우선권을 주는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말이란 이미 지나간 것이고 전 해 내려오는 것에 불과하지만 구체적으로 벌어지는 일은 현존하며 지 속적인 것으로서 직접 생생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1 8 ) 18) 특 히 갈릴레이가 Di oda ti에게 보낸 1663 년 1 월 15 일자 편지를 참조하라 .

suo stil e cir ca i mov ime nti , figu ra e disp o s iz ion e delle parti dell'un ive rso, son cer to che egl i risp o n dera che la luna fu semp re sfe r i ca , sebbene l'un ive rsale ten ne gran tempo ch'ella fos se pian a, e in somma clira nulla muta rsi giammai dalla natu ra per accomodare la fattura sua alla stir na e opi nion e degl i uorn ini.> (Ectizion e nazio n ale XV, 23).

자연 개념의 이와 같은 발전과 그것이 종교적 신학적 전제들로부터 점진적으로 해방되는 과정에는 르네상스의 정신적 삶에 전반적으로 개입하여 신조류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한 두 가지 힘이 작 용했댜 그것은 언어와 기술 분야에서 이뤄진 새로운 표현 가능성을 말한댜 니콜라우스 쿠자누스가 『범부』에서 새로운 지식의 이념을 명 명백백하게 확립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그 지식은 그에 걸맞는 표현 형식을 가지지 못한 상태였다. 저 <범부>는 웅변가와 철학자로 하여 금 무지롤 시인하게끔 하려고 스콜라 철학적인 지식과 인문주의적 지 식 개념의 근본 전제들을 뒤혼들지만 그 자신 여전히 강단에서나 쓰 이는 라틴어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쿠자누스가 언어적 구속과 중 세적 용어에의 속박 때문에 자신의 참신한 기본 사상을 전개하는 데 얼마나 많은 애를 먹었는지 이미 확인하였다 .(20 쪽과 비교) 그러나 이 탈리아에서 그의 사상을 수용하여 발전시키게 된 이들은 그와 같은 제약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들, 즉 수학자들과 기술자들, 예술가들 은 전통적 지식의 내용뿐 아니라 전통적 지식의 형식도 거부했다. 그 들은 주석가가 아닌 창안자가 되고자 하였던 고로 스스로의 두뇌로 사유하는 것에 못지 않게 고유의 언어로 말하기를 원했다 . 레오나르 도는 당시의 스콜라 철학자들과 인문주의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 의를 제기했다. <설령 나는 저들처럼 대가들을 인용할 줄 모르지만 저들을 가르친 선생들의 선생인 경험에 의존함으로써 훨씬 위대하고 위엄 있는 것을 인용하겠다. 저들은 과장된 표정으로 화려하게 거들

먹거리고, 자기 자신의 노고가 아닌 다른 이의 노고에 의한 옷과 장 식을 휘감고 있으면서도 나의 주장을 업수이 여긴다. 그러나 저들이 창안자인 나를 업수이 여긴다면 창안자가 아닌 허풍선이, 낭독꾼에 지나지 않는 저 들 은 도대체 얼마나 더 형편 없을까. 저들은 아마 내 가 문식( 文識 )이 없어서(p er non avere lett ere ) 의도하는 닙 H} 제대로 말할 수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임무는 다른 이의 말보 다는 경험을 통해 해결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저들이 알고나 있을 까? 문장력이 좋았던 그 모든 이들의 참스승인 경험을 나 또한 참스 승으로 모실 터이며 모든 경우에 참고할 것이다 . > 1 9 ) 그러나 이와 같 은 경험에로의 전향도 만일 새로운 수단을 갖추지 못했다면 아무런 결실도 맺을 수 없었을 것이며 스콜라 철학으로부터 진정 해방되지도 못하였을 것이다. 올쉬키는 『근대어로 씌어진 학술 서적의 역사 Geschic h te der neusp r achlic h en wis s enscha ftlic h en Lit ter atu r .!I 에 서 위와 같은 두 과제가 밀접히 연관된 경위와 그것들이 동시에 해결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 적확히 기술하고 있다. 중세 라틴어를 탈피하고 < 토속어 Vol g are > 를 점차로 독립된 학문 표현 수단으로 확 립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과학적 사유와 그것의 방법적 이념을 자유로 이 발전시키기 위한 필요 조건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언어는 단순히 사상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상 형성의 본질적 요소를 이룬 다는 훔볼트의 견해가 지닌 진리와 심오함을 재삼 확인하게 된다. 스 콜라 철학에서 사용된 라틴어와 근대 이탈리아어 사이의 차이는 단순 한 <의관과 표지의 차이>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세계관의 차이> 를 의미하는 것이다.

19) Il codic e At l.antico di L. da Vinc i fol. 115, 117, 레오나르도의 방법적 토대 의 형식과 근거가 쿠자누스와 얼마나 근접한 것인지는 Id i o ta의 서두 를 보면 알 수 있다 .

수학적 지식과 기술적 지식 언어는 단순히 세계관을 담는 그릇이기를 넘어 스스로 그 세계관을 자극하여 자신의 고유한 형태를 통해 세계관을 형성해 나간다. 르네 상스 시기예는 기술에 관한 사유 역시 언어에 관한 사유와 같은 방식 으로 발전하였다 .20) 여기서도 니콜라우스 쿠자누스는 놀라울 정도의 선구적 역할을 발휘하여 그의 철학에서 기술적인 정신, 즉 < 창시자 > 의 정신은 아주 새로운 의미와 지위를 부여받게 된다. 쿠자누스가 지 식에 대한 자신의 기본 견해를 피력하고 옹호할 때, 혹은 지식이란 정신의 단순한 본질 속에 복합적으로 내포된 것에 대한 전개와 현현 ( 顯 現)이라고 주장할 때는 논리학이나 수학, 또 수학적인 자연과학만 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기술적인 창조도 염두에 둔 것이다. 정신 이 자신에 내재한 점의 원리에 따라 공간을 구성하고, 단순한 <지 금>에서 출발하여 시간을 구성하며, 단일성에서 출발하여 수를 형성 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자연에 대한 정신의 작용에는 관념적인 <설계>가 선행되어야만 한다. 모든 예술과 숙련은 그러한 설계를 근 거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논리학의 보조 범주들이나 기하학, 대수학, 음악, 그리고 천문학의 개념들 외에 기술적인 성과들, 죽 오르페우스 의 리라나 프톨레마이오스의 천구의 같은 것들도 정신의 독립성과 영 원성에 대한 징표로 여겨지게 되었다 .2 1) 정신이 자신의 창조력을 전개 20) 이러한 연관의 상세한 내력에 대해서는 Olsc hki의 글 (1. 3 이하, 30 이하, 53 이하)을 참조하기 바란다. 21) 특히 De ludo glo bi, Lib . II (fol. 232) 를 참조할 것 또한 Excita t. Lib. V, fol. 498 를 참조하라 .

ista natu ra (int e ll ectu ali) Deus volui t mag is oste n dere divitias glo ri ae suae: vide mus eni m, qu omodo int e ll ectu s omn ia ambit et assirn ilat et artes de se exseri t assirn ilati va s, ut est fab ri lis et pict o r i a> ( 이 책 , 59 쪽 이 하 를 참조하 라 . )

하면서 결코 자신에 정체되어 있지 않고 만들고 변형시킬 감각적 < 질료 > 를 동원하는 것은 결코 자신의 순수한 지적 속성이나 본질로 부터의 타락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경우 위로 향하는 것과 아래로 향하는 것은 하나의 단일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죽 지성이 감각적인 것에로 내려오는 이유는 감각계를 자신에로 끌어올리기 위 해서인 것이댜 일견 대조적으로 보이는 물질계에 대한 지성의 작용 은, 지성이 스스로의 형식을 파악하고 그 형식을 실현시키기 위한 조 건이며, 그 형식을 잠재적 존재의 위치에서 실재적인 존재로 끌어내 기 위한 조건이다. 22) 바로 이러한 배경은 어떻게 쿠자누스의 관념론이 강한 < 실재론적 > 효과를 띠게 되었으며 어떻게 플라톤적인 상기설을 부홍시킨 그가 위대한 < 경험론자 > 의 선생격이자 근대적 경험 과학의 확립자가 될 수 있었던가를 설명한다 . 경험 과학의 입장에서도 <선험 주의 > 와 < 경험주의 > 사이의 대립 따위는 성립할 수 없는데, 그것은 이성이나 필연성 역시 경험을 통해 발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레오 나르도가 경험에 의존하는 것은 그것을 통해 이성의 영원 불변한 법 칙성을 규명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원래 관심을 가진 것은 경험 자체 라기보다는 그 속에 감춰져 있으며 그 속에서 실현된 이성적 근거, 즉 < 원리 ra gi on i > 를 규명하는 것이었다. 그는 자연은 결코 경험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성적 근거>로 충만해 있다고 말했다 . 2 3 , 갈

22) De con jec tu ris II, 16 (이 책 66 쪽, 각주 58 을 참조하라.) 23) Les manuscrite de L. de Vinc i , Charles Rava iss on 편집, Pa ris 1881 이하. fol. 18; 특히 Cod. At lan t. f. 147:

rag ion e, int e n d i la rag ion e e non ti bis o g n a espe rien zia . >

릴레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경험의 합당성을 열렬히 주장한 것에 못지않게 정신은 본래적이고 필연적인 지식을 스스로 (da pe r se) 창출해 낼 줄 안다고 강조하였다. 우리는 이와 같은 과정에서 당 대의 뛰어난 사상가들이 새로운 자연 과학을 통해 스콜라 철학으로부 터의 해방을 꾀함에 있어, 고대의 철학과 자신들의 개혁의 연관을 부 정하기는커녕 오히려 공고히 선포하였던 경위를 납득하게 된다 . 2 논의를 진행시키는 동안 우리는 어느새 쿠자누스 사상이 전개된 시 기와 그것의 직접적인 파급 효과가 미친 시대를 훨씬 지나게 되었다 . 여기서 돌이켜보건대 쿠자누스 사상이 콰트로첸토 시기의 본격적인 <철학적> 문제들의 발전과 변화에 대해서는 어떠한 의미를 행사하였 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된다. 그러나 주지하듯이 이 문제에 대한 역사 적 전거는 불충분하다. 수학자로서의 쿠자누스에게는 포이어바흐 Peurbach 나 레기오몬탄 Re gi omon ta n 같은 독일인 외에도 수많은 이 탈리아 수학자들이 추종자 집단으로서 모여들었다. 물론 당시 이탈리 아에는 수학 분야에서 이렇다 하게 뛰어난 인물도 없었고 문제 제기 의 독창성과 깊이에 있어 쿠자누스에 필적할 만한 사상가도 없었다. 피렌체의 플라톤 아카데미 칸토르는 15 세기 수학에 관해 서술하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단지 한 사람, 쿠자누스에게만이 천재적 두뇌의 창시자라는 명칭이 걸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수학적 창안이 빈약했던 까닭은 아 마 그자신 학문적 외값인 수학자로서 머무는 데 만족할 수 없었기 때 문일 것이다 . > 24) 한편 당시의 철학은 과거에 깊이 뿌리박힌 채 나름 대로 독특한 과제들을 수행하고 있었다. 원전 비판과 번역의 발달로 점차 < 원래의 > 아리스토텔레스와 <원래의> 폴라톤이 그 모습을 드 러내기 시작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은 이제 한낱 역사적 의미 를 띤 인물로 등장하는 것을 넘어서게 되어 플라톤의 사랑에 관한 이 론과 이데아론, 그리고 새로이 단장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 등은 당시 사상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 서 그 어떠한 결론과 고정된 체계에 대해서도 반박을 주저하지 않는 생동적인 기운이 감돌게 되었다. 쿠자누스 사상도 이러한 움직임에 동원되었다 .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쿠자누스 사상이 뚜렷한 영향력 을 행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 영향은 전체 체계적 측면보다는 몇몇 단편적인 측면에 국한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죽 당면하고 있는 새로운 철학적 임무의 구도에 적합하다고 생 각되면 이런 문제, 저런 요소 할 것 없이 마구 수용되었던 것이다. 물 론 이러한 끼워 맞추기식 과정에서 어려움이나 망설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5 세기 중반 무렵부터 말엽에 이르기까지 <르네상스> 의 사상적 변화를 상기해 보면 그와 같은 망설임의 혼적이 명백히 드 러난다. 쿠자누스의 철학적 저술과 피치노나 피코의 저술 사이에는 단지 한 사람의 일생에 해당하는 시간이 가로 놓여 있을 뿐임에도 ―그것들을 비교하건대―― - 단지 추상적 문제에서뿐만이 아니라 사상의 흐름과 전체적인 정신적 태도상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음을 24) M. Canto r , Vorles. iibe r Geschic h t e der Math e mati k II, 211 .

알 수 있댜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 중세>로부터 르네상스가 직선적 인 일관된 진보의 양상을 띠며 떨어져 나왔다고 믿는 것은 얼마나 허 구인가를 알 수 있다 . 실제 상황은 결코 조용하고 균질적인 전개나 단순한 성장 과정으로서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제반 요소 간의 갈등 속에 늘 잠정적이고 불안정한 일시적 균형을 이룰 뿐이었 다. 쿠자누스의 체계도 종교적 진리 개념과 철학적 진리 개념, 신앙과 지식, 종교와 세속적 교양 사이의 커다란 대결 과정에서 드러난 균형 국면을 의미한다. 그러나 온 세상에 대하여 인간과 우주 질서, 자연과 역사를 망라하여 서로 화해시키고자 시도한 쿠자누스의 종교적 낙관 주의는, 그 과정에서 극복되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 연합되어야 하 는 저항 세력의 위력을 다소 과소 평가했다고 할 수 있다. 그와 같은 비극적 착각은 쿠자누스의 철학보다는 그의 삶속에서, 즉 그의 정치 적, 종교적 활동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가톨릭 교리에 관하여 De concordanti a (X1th ol i(X1』라는 저술에서 교회의 주권을 주장함으 로써 교황의 절대 권력에 대한 대항을 통해 교회 안에서의 활동을 개 시하였다. 그에 따르면 교회는 보편적인 일반 공의회를 통해 성립되 며, 그런 의미에서 주교나 교황보다 상위이다 . 교황은 가톨릭 교회의 단일성을 대표하며, 교회가 그리스도의 모상이듯 그 자신 교회의 모 상이댜 원형이 모상에 대해 우위이고 그리스도가 교회에 대해 우위 이듯 교회도 교황에 대해 우위인 것이다 25 ) 그러나 그의 이러한 이론 적 신조는 이미 바젤 공의회의 논쟁에서 된서리를 맞는다. 결국 쿠자 누스는 교회의 일치라는 자신의 이상을 지키고 교회를 분열과 퇴락으 25) De concord Cath o li ca II, 18; fol. 739.

로부터 보호하려면 차라리 반대 진영에 가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 단했다 그리하여 그는 교황당에로 전향하여 향후 지속적으로 거기에 가담하였고 교황주의의 강력한 옹호자가 되었다. 그의 삶과 정치적, 지성적 활동은 이처럼 교회적 질서의 테두리 안에서만 이루어졌다. 그 질서의 이름하에 그는 자유와 생명이 위협받는 최후의 순간까지 세속적 저항세력에 대항하여 투쟁하였다 우 결국 우리는 쿠자누스의 삶을 통해 그가 사상적으로 결합하고 체계적 통일체와 조화로서 연결 시키려 했던 갈등 요인들이 구체적인 그의 삶이나 현실에서는 다시 분열되고 마는 것을 목격한다. 이러한 절망 속에서도 쿠자누스는 늘 위 대한 낙관론자로 머물렀으며 언제나 대 립의 <일치 ko i nz i denz> 가 가능하고 필연적이라고 역설하였지만 역사는 점점 그 희망을 묵살하 는 쪽으로 진행되어 가는 듯 했다. 역사는 바야흐로 명료한 자의식을 획득하기 시작한 새로운 세력들이 아무런 주저함이나 머뭇거림없이 각자의 독자성을 요구하고 나서는 쪽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피치노 사상의 역사적 위치와 기본 성격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철학은 두 가지 방식, 죽 스콜라 철학이 조 성해 놓은 낡은 사상적 토대를 점차 허물거나, 그 낡은 사상 대신 고 전적인 인문주의적 교양을 취함으로써 그러한 상황에 대처하였다. 그 러므로 콰트로첸토 철학은 크게 이 두 가지 경향으로 나누어질 수 있 다. 그러나 반동적인 움직임, 즉 스콜라적인 사상의 <복구>를 시도하 는 세력도 만만치 않아서 피렌체의 플라톤 아카데미가 세력을 떨치던 26) 더 상세한 것은 A. Jae g er 의 Der Str ei t des Kardin a ls Ni ko laus von Gusa mi t dem Herzog e Sig mu nd v. oste r reic h , 2. B., Innsbruck 1861 을 참조하 라.

15 세기의 마지막 10 년에 그와 같은 움직임은 그 절 정에 다다랐다. 이 러한 상황에서 철학은 각 방면에서 위협적으로 엄습해 오는 세속적 세력들에 대항한 은신처가 되어 쿠자누스가 이뤄놓은 독립되고 특수 한 방법론을 다시 궁지로 몰아 점점 더 < 신학 > 에로 변모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댜 마르실리오 피치노가 자신의 주저에 Theolog ia p la t on ica,라는 제목을 단 것이나 피코 델라 미란돌라가 자신의 철학 적, 학문적 활동을 모세의 창조 신화에 관한 우의적 해석인 Hept ap l us 를 쓰는 것으로서 시작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근대의 위대한 관념론적 체계에서는 플라톤주의가 학적 철학의 기초로 이해되는 가 운데 라이프니츠 같은 사상가로 하여금 < 불변의 철학 pe renn is qu aedam phil oso phi a> 을 요청하게끔 유도하였으나 피렌체의 폴라톤 주의는 단지 <경건한 철학pi a qu aedam phil oso phi a> 을 요구하는 것으로 그쳤다. 'll ) 결국 신앙은 다시금 중세 교회적인 < 혼미한 신앙 fide s i rn pli c it a> 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 피치노는 한 서간에서 <나는 인간적 이 성 을 통해 글을 쓰느니 하느님 을 믿 겠다. eg o cert e rnalo divi n e credere qu am humane sc ir e.> 안)라고 말하고 있다. 이 단호한 문구는 당시 신앙과 지식 사이의 긴장이 얼마나 팽팽하였는지를 단적 으로 보여준다. 쿠자누스는 <배운 무지>라는 원칙을 통해 이 긴장을 표현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원칙 속에서 그러한 긴장을 철학적, '2:1) 28)피 E치p 노is,o lEape ,i sLto i bl a. e V, .l,i bf.o lV. I7II8,3 .O p er a, Basil. o. J., fol. 얽1.

사변적 경로를 통해 극복하려는 수단을 강구하고자 한 것이다 . 피치 노와 피코도 그러한 사변적 경로를 밟아보려 시도하였지만 그들에게 있어 그러한 경로의 처음과 끝, 동기와 목표는 지식 자체가 아닌――­ 반은 신비롭고 반은 역사적인 의미로 이해되는 __- 계시를 통해서만 보장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로렌조 마니피코 Lorenzo Ma gnifi co 의 송가나 그의 방탕 한 노래 Canti camascia l esch i 따위는 피렌체 집단의 생활 정서의 한 단면만을 보여줄 뿐이다. 물론 피렌체에서 예술과 미에 대한 숭배가 세속과 관능의 숭배에로 전개되고 순수한 죽물적 <현세>에 대한 환 희가 강하고 거침없이 표현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와 같은 기본 정 서의 표현에는 그와 이질적인 또 다른 요소가 개입하였음을 간과하여 서는 안 된댜 사보나롤라의 등장과 그의 본격적인 역사적 활동 이전 에 이미 피렌체인들에게는 사보나롤라의 암운이 드리워져 있었다. 피 렌체 아카데미를 이끌던 뛰어난 사상가들이 결국 사보나롤라에게 패 하여 거의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굴복하고만 것도, 원래 그들 세계관에 팽배해 있던 금욕주의적 성향을 통해 이해될 수 있다. 그러 한 성향은 피치노의 사상적 성향과 도덕관을 형성하는 데에도 결정적 으로 작용하였다. 피치노는 44 살에 이르러 심한 병을 앓던 중에 헛되 게도 철학과 이교 저술가의 작품에서 위안을 얻으려 했노라고 회한울 토로하고 있다. 이윽고 그는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를 하고 완쾌의 징 표를 구하자 이내 회복되기에 이르렀으며 철학만 가지고는 영혼이 구 원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그는 자신의 루크레티우스 주 석을 불에 던져 버리고 모든 철학적, 학문적 여생을 종교와 신앙의 확립과 확장을 위해 온전히 바치리라 결심했다 .29) 그런가 하면 당대인 29) 피치노, Ep isto l ae lib. I (fol. 644); L. Galeoti , Sag gio intorn o alla vita ed

ag li scri tti de Marsili o Fic ino , Arch. sto rico italian o, N. S., T. IX, 33 쪽 이 하 .

들에게 그렇게 당당하게 비추어 < 사상가들 사이의 불사조 > 로 여겨졌 던 피코 델라 미란돌라의 모습에도 점점 깊고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 워졌다. 그는 인간 정신의 능력과 인문주의적 삶의 이상, 교양 이상에 대해 거의 무한한 신뢰에 차있던 희망찬 출세의 시절을 풍미한 뒤 돌 연 금욕적 성향을 띠게 된다. 특히 피코의 서간문에 그와 같은 세계 부정과 세계 멸시에의 경향이 강하고 확연하게 드러난다 . 30) 사보나롤 라는 그 어떤 영혼보다도 피코의 영혼에 대하여 끈질기고 열정적인 광신적 투쟁을 벌였는데 종국에는 이처럼 승리를 거두고 만 것이다. 피렌체 아카데미의 미적 주제 피코는 죽기 직전 사보나롤라의 교조에 순종하여 산 마르코 수도원 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이렇게 해서 그도 생의 말미를 체념으로 끝맺고 말았댜 그것은 단지 종교적 독단에로뿐 아니라 교회의 성사 와 기독교적인 중세적 생활 양식에로의 체념 어린 귀환이었다. 만일 이와 같은 반동적 움직임들만 고려한다면 플라톤 아카데미가 저 수많은 위대한 피렌체인들에게 행사한――-한때 마키아벨리의 저 의심많고 냉정한 정신조차 압도한 강하고 직접적인 영향은 그 설 명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철학적 사상의 전체적 경향과 발전에 종교 적 신학적 관심이 크게 작용했던 것에 못지 않게 종교적 사상 그 자 체도 그 사이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즉 새로운 <근대적> 종교 개념을 길러낸 콰트로첸토 상반기의 사상적 작업은 계속 유지되었던

30) 피코가 자신의 조카 Gio v an Francesco O pe ra 에게 보낸 편지를 참조하라. Op er a 340 쪽 이하, 344 쪽 이하

것이댜 플라톤 아카데미와 이 작업의 연관을 낱낱이 열거하여 추적 하기란 무척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이고 간접적인 관련 은 곳곳에서 규명 가능하다. 피치노의 사상과 쿠자누스의 사상은 인 식 문제의 의미와 그 해결에 관한 중요한 결정에서만 접맥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 사이의 관련은 그러한 논리적 근본 문제들에서보 다 형이상학이나 종교 철학의 근본 문제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쿠자 누스 사변에서 발견되는 신과 세계 사이의 독특한 관계는 모든 사상 적 반대 조류에도 불구하고 피치노에게서 유효하게 남는다. 더 나아 가 그것은 쿠자누스와 비교적 관련이 적은 주제를 통해 새롭게 인정 받기에 이른댜 쿠자누스는 세계에 대한 종교적 <정당화> 과정에서 대부분 수학적이고 우주론적인 문제를 실마리로 삼은 반면 플라톤 아 카데미는 항상 아름다움이라는 기적, 예술적 형식과 조형의 경이로움 을 문제삼았다. 그들의 신정론도 바로 이러한 것에 기초하고 있다. 삼 라만상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우주의 신적인 근원을 암시하며 그것의 정신적 가치에 대한 최종 최고의 증거를 제시한다. 그것은 철두철미 객관적인 것, 즉 크기와 형태, 사물에서의 비례와 조화 같은 것을 통 해 드러난다. 정신은 바로 이 객관적인 것을 자신에 속한 것, 죽 자신 의 본질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천하고 조야한 분별력만으로 도 미와 추가 구별되며 산만함 대신 정돈된 것이 선호되는 것은 그러 한 분별력이, 경험이나 사변과 상관없이 미에 관한 고정된 규준을 지 니는 데에 기인한다. <누구나 사물 가운데서 둥근 형태를 대하게 되 면 그것을 칭송하지만 왜 칭송하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다. 마찬 가지로 우리는 건물에서 벽들의 대칭성, 돌의 안배, 창과 문의 형태 따위를 칭찬하며 인체에서는 사지의 비례를, 또 선율 속에서는 화음 울 칭송한댜 모든 정신이 이 모든 것들을 다 인정하고, 그 근거도 알 지도 못한 채 인정하는 것으로 미루어 그것은 단지 본연적이고 필연

적인 본능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임을 알 수 있다 …… 그러한 판단의 근거들은 정신에 선천적으로 존재한다 . >3 1) 이렇게 하여 조화는 신이 자신의 작품에 찍은 인장이 되었으며 신은 그 덕택에 자신의 작품을 귀하게 승격시킬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신은 이 조화를 근거 로 자신의 작품과 인간 정신 사이에 내적이고 필연적인 연관을 성립 시켰다. 인간 정신은 미에 관한 인식과 자신에게서 발견한 척도를 가 지고 신과 우주 사이에 등장함으로써 그 둘 사이의 진정한 일치를 도 모한다. 우리는 여기서 쿠자누스에게서 유래하는 저 독특한 소우주 사상에 다시금 접한다. 즉 인간은 우주를 묶는 끈으로 나타나는 것이 댜 그러나 그것은 인간이 우주의 모든 요소를 자신 속에서 통합한다 는 의미에서라기보다는 그를 통해 우주의 종교적 운명이 결정된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댜 인간은 삼라만상의 대표이며 그 모든 능력들의 정수이므로 삼라만상의 고양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그 자신도 신적 인 것에로 고양될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의 구제는 그저 비천하고 감각적인 영역에 불과한 세계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 존재자의 구제를 의미한다. 이 사상은 피렌체 아카데미에 의해 수용되었으며 피치노 종교 철학의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테마 가 되었다. 피치노에게서도 영혼은 우주의 정신적 < 중심>이며 예지 계와 감각계 사이를 잇는 <제 3 의 영역>이다. 그것은 스스로 시간을 내포하므로 시간을 초월하지만 동시에 시간에 참여하지 않는 사물들 가운데에도 존재한다. 그것은 운동하며 동시에 운동하지 않고, 단순하 며 동시에 다양하다 .32) 그것은 고귀한 것을 품고 있으나 그렇다고 비 천한 것을 외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결코 단일한 운동에 몰 31) 피 치 노, Theolog ia Plato n ic a siv e de im morta litate anim ae, Lib . XI, Cap. V (fol. 25.5). 32) Theol Plato n ic a Lib. I, Cap. 3 이 하 .

두하지 않고 그 운동중에도 항상 전향과 전회의 가능성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쿠자누스와 피치노에 있어서의 자유 개념 이처럼 영혼은 모든 것을 정적으로가 아니라 역동적으로 포함하고 있댜 그것은 단순히 대우주를 이루고 있는 낱낱의 부분들이 아니며, 한 방향의 목표에만 매달리거나 집착하지 않고 모든 것을 향해 자신 의 의지를 뻗친다 . 33 1 그리고 그러한 방향은 외부가 아닌 내부로부터 유래한다 영혼은 초월적인 숙명이나 한낱 자연의 위력 때문에 감각 적인 것에로 몰락하지도 않고, 단지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신의 축복 덕택에 초감각적인 것에로 상승하지도 않는다. 피치노는 아우구스티 누스를 페트라르카가 그랬던 것처럼――-거의 모든 저술에서 가 장 높은 종교적 권위로서 받아들였지만 바로 위와 같은 논점에서는 구별된다고 볼 수 있다. 피치노의 이러한 이탈은 쿠자누스에로의 전 33) , a-d T ehxetor !e. m Pulmat o an l tem ru, m2 , dfoecl. li1 n1a 9b.i t , neq u e vera eri t ulte rius mund i

향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쿠자누스야말로 자신의 철 학적 사상을 지배 하고 있는 기본 신조를 위해 사도 바울적이자 아우구스티누스적인 예 정설을 척결해야만 했던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De vis i o n e De i에 서 영혼은 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 < 당신을 가지지 않고서는 아무도 당신을 보지 못합니다. 당신이 당신을 주시지 않는 한 아무도 당신을 잡을 수 없습니댜 그러나 어떻게 제가 당신을 가질 수 있으 며, 접근할 수조차 없는 당신께 어떻게 나의 말을 전할 수 있겠습니 까? 도대체 어떻게 제가 당신을 감동시킨단 말입니까? 모든 곳에 계 시는 당신을 나에게 주신다는 것처럼 황당무계한 것이 있습니까? 어 떻게 나에게 당신께 속한 저 하늘과 땅을 주시지 않고서 당신을 주실 수 있다는 말입니까? > 그러나 신은 다음과 같이 대답함으로써 그 영 혼의 의심을 푼다. < 네가 네 스스로가 될 때 나는 너의 것이 되리 라.> 자기 스스로의 의지를 발휘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은 인 간의 자유에 달려있다. 그러나 인간이 스스로의 의지를 발휘하기 위 한 자발적인 결심을 할 때에만 신은 그에게 주어진다.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은 자신이댜 34) 피치노의 저술 『기독교에 관하여 De chris t i an a rel igi one 』 에 서 도 이 러 한 기 본 입 장이 고수된다 . 35) 더 나아 34) De vis io n e Dei Cap. VII: 35) 예를 들어 Cap. 35 (fol 74) 를 참조하라: etc . 또한 Ep ist Lib . II (fol. 683) 도 참조하라.

clixer it , mente m ab alien i s vel extr ins eci s ad intell i ge nti am non moveri , sed ipsa m et pro p ria et mirab il i qu adam virtute suas sib i spe cies , sua obje c ta conci pere , dice mus ex eo seq ui mente m esse inc orp ore am penitus et aete m am, si neq u aqu am ab alio, sed a seip s a movetu r.>

가 이 저술 역시 구원이라는 주제에 변화를 가져옴으로써 이제 모든 것, 즉 감각계까지도 종교적 의미에서 구제받게 되었다. 인간의 구원 은 단지 자신에게만 새로운 본질을 부여할 뿐 아니라 우주 전체에 새 로운 형태를 선사한댜 이 변화, 이 <개혁 re fo rma ti o> 은 실로 새로 운 정신적 창조를 의미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신적인 속성을 감지 하고 자신의 본성에 대한 불신을 극복함으로써 세계에 대한 불신도 극복한다. 신은 스스로 사람되심을 통해 이제 이 세상에 보잘것없고 경멸스러운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음을 알린다 . 36 ) 그는 인간을 자신 에게로 고양시키기 위해 세계를 승격시켜야만 했다. 인간이 자신의 본성을 깊이 파악하면 할수록 그리고 자신의 근원을 이루는 정신에 침잠하면 할수록 세계에는 그만큼 더 높은 가치가 부여되는 것이다. 반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는 것은 자신과 더불어 전 우주를 다시 허무와 죽음의 나락으로 처넣는 것을 의미한다. 피치노는 이러 한 형태의 구원관이 위계적인 구분이나 매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 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 신이 아무런 매개없이 absqu e med io 인간과 관계를 맺는 것처럼 우리는 아무 매개자 없이 신에게 매달림으로써 구원될 수 있음을 명심하여야만 한다 .37) 여기서 우리는 종교 개혁의

36) De chris t. relig . Cap. XVIll (fol. 22):

길목에 서게 되지만 이러한 변화는 이미 르네상스 문화의 근본적인 주제에서 암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세계와 인간의 < 개혁 > 이제 인간의 자기 긍정은 바야흐로 세계 긍정으로 발전하게 되었 다. <인간성 huma nitati s > 이라는 이념은 대우주에 대해서도 새로운 형태와 의미를 부여한다. 바로 이런 점에 착안할 때 우리는 비로소 플라톤 아카데미가 르네상스의 위대한 예술가들에게 끼친 깊은 영향 을 이해할 수 있다. 피치노에 의하면 이 세상에서 형태 없는 모든 것 을 근절하고 형태를 통해 추상적인 것을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종교 내지 철학적 인식의 결정체이다. 그러나 이 인식은 그저 개념 적 으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것은 · 행위로 전환되어야 하며 그것을 통해 보 존되어야 한다. 바로 여기에 예술가의 업적이 동원된다. 사변을 통해 서는 단지 제기되는 것에 머물러 있던 요청이 , 이제 예술가에 의해 충족되기에 이르렀다. 인간은 감각계에 발전적인 형식을 부여함으로 써 감각계가 형식과 구색을 갖추었다. 감각계의 아름다움은 그 자체 로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 인간의 자유로운 창조력이 발휘되고 자각되기 위한 수단으로서 존재한다. 정신적 생명력은 구원 을 인간 형태와 자연 형태의 쇄신, 진정한 < 개혁 > 으로 받아들여 38 ) 37) De chri sti a n. relig . Cap. XIX (fol. 23). 38) Konrad Burdach 는 언어사적, 사상사적 연구 를 통해 <개혁 refo nna ti o > 이나 <재생 renasci > 같은 개념이 어떠한 종교 사상적 기원을 지니는지, 또한 그것이

어떠한 경로 를 통 해 세속적 의미로 확장되었는지 보여주고 있다. (Sin n und Urspr u ng der Worte Renais s ance und Refo r mati on , Sit zu ng sb er. der Berl. Akademi e d Wi ss . 1910: Refo r matio n , Renais s ane, Humanis m us, Berl. 1918 에 재수록). 여기서 부르다흐는 유감스럽게도 르네상스 시대의 철학 문헌에 대해서는 다루고 있지 를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전체 과정을 통해 가장 중요한 결집의 계기였음을 시사하고 있다 . 위에서 언급한 바 있는 (이 책 99 쪽, 각주 36) 피 치 노의 글 De chri stl ic h e re ligi, one 는 특히 하나의 사상적 전환점을 의미한다. 여기서 <개혁 re fo nnare> 이란 구원을 통한 존재의 새로운 창조 를 의미하는 동시에 당시 새롭게 대두된 세속적 교양 이념을 내포하는 <인 간과 자연의 발견>을 의미한다.

< 이데아 > 에 구체성을 부여하고 예술가의 정신에 내재한 추상적 형태 를 세계 내로 끌어내어 실현시킴으로써 발견될 수 있다 . 그러므로 형 태를 조성하는 기본 행위에 몰두하지 않고 단지 이미 이뤄진 형태만 에 집착한다면 그 사변은 필연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레오나르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오! 사물을 연구하는 자여! 자연이 평범한 진 행을 통해 생산해 놓은 그러한 것들에 대한 지식을 뽐내지 말고 당신 정신이 계획하고 있는 대상의 귀결을 아는 것으로 기뻐하시오 .> 39) 그 에게 있어 학문과 예술은 이러한 맥락을 띤다. 즉 학문이란 이성을 통한 제 2 의 자연 창조이며 예술은 구상력에 의한 제 2 의 자연 창조이 다 . 40 ) 그리고 이 양자, 죽 이성과 구상력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 라 단지 동일한 인간 능력의 상이한 구현에 불과하다.

39) Leonardo da Vinc i (Rava iss on 편 )G. fol. 47r. 40) Tratt: ato de/la pittur a (Manzi 편) 38 쪽.

이러한 사상의 전사(前 史 )를 소급해 들어가면 쿠자누스 사상이 인 간 정신과 신 사이의 < 유사성 > 이라는 주제를 통해 도입한 중요한 변 화를 목격하게 된다 . 그러나 이 유사성은 결코 둘 사이의 죽물적, 내 용적 < 비슷함 > 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은 의 원칙, 죽 <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 사이에는

아무런 연계가 없댜 fini t i et inf i ni t i nulla p ro p o rti o. > 라는 명제 를 통해 절대적으로 배제되기 때문이다 . 신과 인간은 그 촌 재나 행위면 에서 결코 같지 않다. 신의 창조를 통해서는 사물들 자체가 생겨나는 반면 인간 정신은 항상 그것들의 기호나 상징에만 관여한다 . 인간이 스스로에게 제공하고 자신의 인식에 끌어 들여 정해진 규칙에 따라 결합하는 것은 그와 같은 기호와 상징들이다. 신이 사물의 실재 를 창 출한다면 인간은 관념적 질서를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전자에 < 실재 적 능력 vis en tifi ca ti va > 이라는 말이 적합하다면 후자에는 < 비유 적 능력 vis assim ilat i va > 이 라는 말이 적 합할 것 이 다 . 4“ 그러 나 신 적 정 신과 인간 정신이 서로 다른 차원에 속하며 그 촌재 형식이나 산 출 대상 측면에서 대별된다 할지라도 그 둘 사이에는 그 창출 방식면에 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관련이 있다. 바로 이 점이 양자간의 진정한 비교 관점 ter t ium com p ara ti o ni s 을 제공한댜 이 관계는 정 적 인 것 이 아니라 역동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미 완성된 사물계에서 취한 그 어 떠한 비유로도 해명될 수 없다. 여기서는 실체적인 유사성이나 본질 적 유사성을 찾는 것은 부질없는 대신 행위와 조작면에서 일치점이 발견된다. 모상을 통하여 원형의 실체적 본질을 전하려 해도 모상 자 체는 단지 죽은 모상일 뿐이다 . 단지 작용의 양상에서 모상과 원형이 일치될 때 비로소 생명이 부여된다고 할 수 있다.

41) Idi ot a e lib. III, de mente ; Cap. 3, 특 히 Cap. 7 을 참조하라.

인간 정신의 무한성 만일 우리가 창조력안 신을 < 절대적 예술 > 로 설정한다면 그것은 두 가지 의미의 그림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 즉 그것은 우선 그림 을 통해 달성될 수 있는 일체의 완벽함을 지녔으되 바로 그래서 이미 가능한 완벽의 한계에 도달하였으며 이 한계를 더 이상 극복할 수 없 는 그림일 수 있다 . 또는 그것은 그 자체로 불완전하되 항상 스스로 를 극복하여 원형에 부단히 접근해 가는 능력을 가진 그와 같은 그림 일 수 있댜 이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우월한가 하는 질문은 우문에 불과하다. 이 둘의 관계는 마치 화가에 의해 그려진 어떤 사람의 모 습이, 모든 면에서 원형과 같되 무표정하게 죽은 채로 드러나는 경우 와, 다소 덜 비슷하되 생동력을 지니는 경우로 나누어지는 것과 같다 . 바로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정신은 무한한 예술에 대한, 완벽하면서 도 생동감 넘치는 모상을 의미한다. 우리의 정신은 비록 당면한 창조 의 시발점에서는 무한한 예술과 요원하게 떨어져 있지만 선천적으로 거기에 점점 접근해 가는 능력을 지녔다 . 42 ) 이미 이뤄낸 목표에 만족 하지 않고 부단히 그것을 능가하고 극복하는 것을 통해 우리 정신은 그 특유의 완벽성을 입증한다. 감각 기관인 눈이 결코 보는 것에 질 리지 않고 일체의 가시적인 것을 마다 않고 수용하듯이 지적 관조도 결코 진리를 보는 것에 대하여 지치는 법이 없다. 르네상스의 파우스 트적 정서를 가장 명료하게 철학적으로 표현하는 동시에 거기에 심오 한 철학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점이다. 무한한 것에로의 충동, 그 어떤 주어진 것과 이루어낸 것 앞에서도 만족하지 않는 태도는 결코 정신의 과오와 오만함이 아니며 오히려 거룩한 숙 42) Idio t . Lib . III, De mente , cap. 13, fol. 169.

명이며 불멸성의 각인이댜 -13) 우리는 어떻게 이 독특한 성향이 르네상 스의 정신적 삶의 영역에 개입하였으며 또 어떻게 그 속에서 변화를 겪게 되는지 차츰 차츰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레오나르도의 예 술 이론에서뿐만 섞) 아니라 피치노의 철학적인 영혼 불멸성의 이론에 서도 중요한 의미를 띤다. 쿠자누스는 영혼의 불멸성 개념을 세 가지 로 구분하였다. 그는 절대적이고 무한한 최대치이자 인간 지성으로 다다를 수 없는 신에 맞서는 두 가지 형태의 상대적 무한함을 설정하 였다. 그 중 하나는 우주를 통해 드러나며 다른 하나는 인간 정신에 서 드러난다 . 전자에서는, 우주가 어떠한 공간적 한계도 가지지 않고 무한한 넓이로 확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통해 절대적인 무한성이 구현 된댜 후자에서는 정신이 진행됨에 있어 < 극한점 necpl u s ul t ra > 이나 한계를 인정하지 않음을 통해 그 절대적 무한성이 표현된다. 이러한 기본 입장은 우주론적 측면에서는 16 세기 자연 철학, 특히 조르다노 부르노에 이르러서야 뒤늦게 중요성을 띠게 되지만 사변적 심리학적 측면에서는 이미 피렌체 학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져 피치노의 주저인 Theologi ,a Pla t on ica,도 전적으로 그에 착안한 이론을 펴고 있다. 물 론 이 저술은 고대와 중세의 선례에 많이 의존하고 있고 폴라톤과 플 로티누스, 그리고 신플라톤주의자들과 아우구스티누스가 영혼의 파괴 43) Exci tat, lib. V (Ex . serm. : Si quis sermonem meurn servaveri t), fol. 488. 44) Leonardo, Tratt della pittur a 28:

불가능성을 증명하고자 끌어들인 근거들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그러 나 이 작품에서 역설된 것은, 정신은 자기 스스로가 모든 시간적 한 계를 창출하고 생성의 지속적 과정을 특정 단계와 기간으로 나누므로 시간의 제약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시간과 그것의 무한한 지속 에 관한 앓 그 지속을 중지시키고 사유를 통해 < 확인 > 가능한 계량 으로 환원시키는 앎이야말로 정신을 시간의 우위에 올려 놓는다 . 45) 의 지의 측면에서도 우리는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45) <(M e ns ) corp o ra divid it in partes piurima s partium q u e particu las, numeros aug e t sup ra numeros absqu e fine . Fig u rarum modos mutu a squ e illar um pro p ortion es atq u e eti am numerorum comp a rati on es inn umerabil es inv en it, l ine as sup ra coelum ultr a terminu m und iqu e pro te n d it. Temp u s in pra ete r i tum absqu e pricipio, in futurum absqu e fine pro ducil Ne qu e solum ultr a omne tem p u s aliquid an tiq떠 us cog itat, verum eti am ultra omnem locum alium semp er cog itat amp lior em. ... llud ... mihi vide tu r vim menti s ... int e rmina ta m pra e cete ris demonstr ar e, qu od ips am imfinitatem esse inv en it, quidv e sit et qu a lis defin it. Cum vero cog nitio per qu andam menti s cum rebus aeq u ati on em perfica tu r, mens cog nitae infinitati aeq u atu r quo dammodo. Inf initum vero opo rtet esse, quia aeq u atu r infinitati. Ac si tem p u s, qu ad successio n e qu adam meti tur motu m, infinitum esse op ortet, si modo motu s fue ri t inf in itus , qu anto mag is infinitam esse op ortet meilt em , qu ae non modo motu m tem p u squ e sta b il i noti on e, sed infinitatem ips am qu oq u e meti atu r? Cum necesse sit mensuram ad qu ad ips a meti tur habere pro p ortion em, finiti vero ad infinitum sit nulla pro p ortio. > (Theo!. Plat. VIII, 16, fol. 200 이 하). 마지 막 문장은 De docta ign oran tia에 서 직 접 인 용( 이한 책것 4이4 쪽다, . 각쿠주자 누1)스 도와 참 관조하련라하.여 De ludo glo bi, Lib . II 와 Idio t . Lib. III, 15

쿠자누스와 피치노의 그리스도 이념 정신은 모든 유한한 목표를 뛰어넘으려는 것을 통해 비로소 진정

인간적인 의지가 된댜 모든 자연적 존재와 생명은 특정한 영역에 만 족하며 자신의 상태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지만 인간에게만은 이미 달 성된 모든 것이――-극복될 여지가 있는 한―― 一 초라하게만 느껴진 다. 그에게는 만족스런 도달점이나 휴식의 장소 따위란 있을 수 없다 .461 이러한 사상은 개별 인간의 속성에서 인간 전체의 속성에로 확장, 적 용되고, 심리적 관찰의 영역을 넘어 역사 철학적 관점에로 확장됨으 로써 본격적인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쿠자누스가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 전체가 일치를 이루게 되었다고 봄으로써 모든 개인을 < 전체 그리 스도를 이 루는 하나의 그리 스도 unus ch rist u s ex om nibu s> 라고 하 였듯이 4 71 피치노 역시 그리스도의 이념에로 주목한다 . 481 이렇게 해서 아직 기독교 교의적인 사상 영역에 강하게 속해 있으면서도 그 교의 46) Theol. Plat. XN, 7, fol. 315. 같은 책 XVIII, 8 fol. 411: 47) De doct ign. ill, 12; 이 책 58 쪽, 각주 43 을 참조하라 . 48) 피치노, Ep isto l . Lib. I, fol. 635.

적 구속을 극복하여, 종교의 개념은 결코 배타적인 단일 종교 형태가 아닌 역사적 신앙 형태의 총체를 통해 실현된다고 보는 역사 철학이 성립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아우구스티누스가 『 신국론 De civi t ate De i』에서 대변한 기독교 역사 철학의 모범적 형태는 파괴되고 말았 다 . 『신국론 』 의 주요 주제는 역사의 목적으로서, 그에 의하면 역사란 모든 특수한 사건을 통해, 원죄와 구원의 역사가 신학적 의미를 띤 종교적 양극을 이루며 드러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그러한 사 건들의 장광설은 극복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진보 사상이 종교적 영역에 수용되게 되었으며 신을 예배하는 형태와 단계적 다양성도 신 이라는 이념의 단일성에 의하여 정당화되게 되었다. 진정한 기독교는 신앙의 적들을 말살시키려 하지 않고 이성을 통해 설득하며 교화를 통해 개조하거나 관대하게 용인한다 .49) 왜냐하면 신의 섭리에 의하면 시대를 막론하고 그 어떠한 형태이건 신을 예배하지 않는 지역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신의 섭리는 특정한 예식과 몸짓보다는 전체 로써 찬양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신은 일견 가장 비천하고 바보스런 신앙이나 숭배 형태도 , 그것이 인간적 형태이며 필연적 한계를 지닌 인간적 속성의 표현인 한, 마음에 들어 한다 .50) 우리는 여기서 피치노 49) De chris t . r elig . Cap. 8, fol. II. 50) De chris t . relig . Cap . 4: 여기서 쿠자누스가 엔드로퍼에게 보낸 1452 년 9 월 22 일자 서한울 참조하라.

exp !ica tu r, ut in va rieta te tanta eju s infinitas clarescat; unwn tame n est divinw n verbwn irn om nibu s relucens.> 이 책 36 쪽 이 하도 참조하라 .

철학이 여전히 계시 신학적 개념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개념 자체의 의미에 대한 하나의 변증법적 변화를 예비하게된 과정을 확인하게 된댜 인간 역사를 통해 드러나는 제반 가치가 통일된 계시 로 환원되고 정초될 수 있다면, 우리가 찾는 계시의 단일성도 다름 아닌 역사 전반과 그 형성의 총체를 통해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 가능하다. 결국 일반적 강제력을 띤 독단적 문구의 추상적 단 일성은 이제 인간 의식의 결과인 상징의 다양성을 수반하는 종교적 의식의 구체적 일반성에 의해 대체되기에 이르렀다.

제 3 장 르네상스 철학에서의 자유와 필연 - 때는 1501 년 말엽, 알퐁소 데스테 Alfon so d'Es t e 와 결혼하게 될 루크레지아 보르지아 Lucrez i a Bor gi a 를 페라라로 수행하고자 로마에 사신단이 도착하였을 때 이들 사신단을 위하여 교황궁에서 벌어진 축 제극 속에는 포르투나와 헤라클레스의 싸움을 소재로 한 것이 포함되 어 있었다. 여신 주노는 숙적인 해라클레스에게 포르투나를 보내지만 포르투나는 그를 정복하기는커녕 도리어 사로잡히는 신세가 된다. 주 노의 간절한 부탁으로 헤라클레스는 포르투나를 풀어주지만 단, 포르 투나를 비롯해 그 어떤 존재도 보르지아나 에스테 가문에 누를 끼쳐 서는 안되며 두 가문 사이에 맺어진 혼인을 도와야 한다는 조건을 건 다.” 이상은 궁정에서 사용되는 판에 박힌 언어로 장식된 궁정 연극 1) 이 축제에 관해 더 자세한 것은 그레고로비우스 Ferd. Gre g oro vi us 의 Lucrezia

Borgi a, 1911, 183 쪽을 참조할 것.

의 표본으로서 해라클레스 상징을 도입한 것 은 당시 페라라 공 이었던 알퐁소의 아버지 에르콜레 데스테 Ercole d'Es t e 를 염두에 둔 것인 듯하다 그러나 이 연극에 등장하는 우의적 대비가 당시의 문학뿐만 아니라 철학에까지 유입된 사실은 우리를 적이 당황하게 한다. 실제 로 16 세기 말엽 조르다노 부르노의 도덕철학 주저에도 같은 모티프가 등장하는 것이댜 부르노의 『 의기양양한 야수의 추방 Sp acc i o della besti a t r i o rifa n t e 』 (1584) 에는 포르투나가 제우스 를 비 롯 한 올림포스 신들의 집회에 나와 여태까지 헤라클레스가 성좌의 반열에서 차지했 던 자리를 요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결국 그녀의 부탁은 묵살되지만, 대신 배회나 일삼고 진득하지 못한 그녀에게는 천상이건 지상이건 이 우주의 어떤 곳도 마음내키는 대로 갈 수 있음이 허락되었다. 대신 헤라클레스의 자리는 용기가 차지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인즉 진리와 법과 정의가 지배하는 곳에는 결코 용기가 배제될 수 없기 때문이었 다. 용기는 모든 여타 덕들의 보루이며 정의의 방패인 동시에 진리의 성탑이다. 그것은 악덕에 대하여 난공불락이며 고통에 아랑곳하지 않 으며 위험을 끈기있게 물리치는 동시에 탐욕에 대하여 엄격하다. 그 것은 또 부귀를 경멸하며 운명을 극복한다 ? 우리는 여기서 이와 같 은 사상의 궁정(宮廷)적인 표현을 철학적 표현으로 직접 전환시켜 해 석하는 데 전혀 주저할 필요가 없다 . 바로 이와 같은 관련과 융합이 가능한 것이야말로 르네상스 문화나 사상의 독특한 측면이다. 르네상 스 시대의 사교나 축제, 연극 따위의 형식이 르네상스의 사상과 얼마 나 밀접한 관련을 지녔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부르크하르트가 입증하 였다. 조르다노 부르노 같은 위인도 연극의 우의적 의미가 일상적인

2) Bruno, Spa ccio della bestia trior ,f an te , Dial. II, terz a parte; Op ere italian e (Laga rde 편집 , Gott inge n 1888) 486 쪽 이하 .

견지에서는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비구상적 사유를 통해서만 이해됨직 한 영역과도 밀접히 관련되어 있음을 입증해 보이고 있다. 일상적 삶 에 사상이 깊게 투영되어 세계에 대한 인간의 위치나 자유와 운명에 대한 사상이 축제의 연극에까지 등장하는 이와 같은 시대에는, 사상 은 그 자체로 고립되기보다는 가시적인 상징을 추구하게 마련이다. 조르다노 부르노는 바로 그와 같은 르네상스 철학의 기본적 토대와 정서를 가장 잘 대표하고 있다. 그는 일찍이 『이데아의 그림자에 관 하여 De umbris i dearum 』를 비 롯한 초기 저 술에 서 이 데아는 인간 인식에 대하여 단지 구상적 형태로밖에는 드러나지 않는다는 견해를 편다. 물론 그와 같은 구상적 형태는 이데아의 영원한 초월적 본성을 고려할 때 그것에 대한 그림자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단지 그 것만이 우리의 사유와 우리의 정신에 합당한 것이다. 그림자가 단지 어두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빛과 어두움의 산물이듯이 인간적 형태 로 파악된 이데아도 한낱 기만에 그치는 대신 유한한 존재에게 파악 되어지는바, 진리 자체이다 .3 ) 이러한 사유 방식에서 우의는 결코 겉치 레나 우연적인 장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상 자체의 담지자 노릇 을 할 수밖에 없다. 포르투나 상징의 변화 특히 우주의 형태보다 인간의 모습과 관련이 깊은 부르노의 윤리학 은 곳곳에서 그와 같은 독특한 인간적 표현 수단을 채택하고 있다. 부르노의 『추방!::Jp acc i o 』은 인간의 내면세계를 가시적이고 공간적인 3) Bruno, De umbr is ide arum, Inte n ti o secunda, Op e ra /ati na (톡 Toce, 이 옴브리아니 Iombri an i 둥이 편집) II 권, 쪽 21 쪽

우주의 등장 요소를 통해 서술함으로써 윤리적 우의의 백미 를 보여준 댜 여기서는 인간의 내면을 움직이는 힘은 우주의 위력으로, 덕과 악 덕은 성좌로 그려진다 . 특히 용기 fort ezza 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면 단 지 윤리적 개념이나 덕목임을 넘어서 < 비르투스 V irtu s > 란 개념의 어원적 의미에 따라 남성다움 일반, 또 운명의 제어자이자 < 운명의 지배자 do mitri ce della fort una > 로서의 인간적 의지력을 의미한다 . 그것은_바르부르그 Warbur g가 다른 분야에서 적용한 표현을 빌 리자면_새롭고도, 진정 고대적인 격정 형식 Pa t hos fo rm 핵 즉 자 신의 언어와 사상의 정당화를 꾀하는 영웅적 기상이다. 르네상스 시기에 드러난 자유와 필연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이론을 본격적으로 깊이 이해하려면 우선 그 이론의 역사를 철저히 캐야만 한다. 르네상스 철학은 기본적으로 이 문제가 지니는 변증법적 측면 을 면면히 수용하였다. 폼파나티우스 Pom p ana ti us 의 『운명과 자유의 지 , 그리 고 예 정 에 관하여 De Fata , lib e ro arbit rio de pr aede- s ti na ti one 』는 그러한 측면을 상세히 설명하고 꼼꼼히 분석하여 정리 해 놓고 있다. 이 저술에서는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루었던 모든 분파가 총망라되어, 고대 철학과 스콜라 철학이 신의 선견지명과 인 간 의지와 행동의 자유를 조화시키기 위해 동원하였던 개념적 틀들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저술은 원칙적 차원에서는 아무런 새로운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였고 또 그것을 구하려고도 하지 않았 다. 폼파나티우스의 입장을 명확히 파악하려면 그의 다른 철학 저술, 특히 영혼의 불멸성에 관한 저술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러한 저술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그에게서 발견되는 전통적 개념과 상투적 문구의 경직성이 서서히 해소되는 과정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르 네상스 미술에서 드러나는 포르투나 상징의 변화 과정과도 비슷하다. 바르부르그 Warbur g와 도렌 Doren 은 자신들의 연구에서, 이미 고정

관념으로 굳어진 중세적 형태가 아직은 잔존하되, 고대에 기원을 둔, 새로운 사상과 생명력으로 충만된 다른 유형의 포르투나관이 점점 강 하게 부상하고 있음을 입증하였다 . 그와 같은 경향은 지식 세계 전반 에 걸쳐 발견되는 국면이었는데, 여기서도 곧바로 새로운 결론이 수 용되기보다는 우선 그것이 정착되기 전에 사상간의 새로운 긴장 국면 이 요구되었댜 그것은 그 어떤 분야에서건 과거 철학과의 완전한 단 절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분명 사상은 그 역동성 을 발휘하기 시작하여, 바르부르그식으로 말하면 <힘에 넘치는 균형 국면 > 을 추구하는 노력이 개시되었다고 할 수 있다 . 그리하여 미술 분야에서 조형적인 균형 상태가 추구되었듯이 바야흐로 철학에서는 < 중세적인 신심과 르네상스적 인간의 자기 신뢰 사이의> 사상적 균 형 형태가 추구되게 되었댜 4 ) 이러한 노력은 당대의 본격적인 <철 학 > 저술들뿐만 아니라, 새로운 인문주의 시대의 전형적인 문학 형식 인, 반은 철학적이고 반은 수사학적인 단편적 글들을 통해서도 뚜렷 이 드러난다. 우리는 그 예로써 페트라르카의 『행과 불행에 대처하는 묘방에 관하여 De remedii s utr ius qu e fo rtu nae 』를 필두로 살루타티 Salu t a ti와 포지오 Pog gio, 폰타노 Pon tano 의 글들을 두루 떠올릴 수 있다. 포지오는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상반된 요소들이 인간의 연령 에 따라 그 세력 판도를 바꾼다는 독특한 주장을 제시하였다. 그에 4) 르네상스 미술에서의 포르투나 상징의 변화에 대하여서는 바르부르그의 Francesco Sassett is' s letz twillige Verf tigun g (Kunstw iss ensch. Be i댜g e, Aug u st Schmarsow 에게 헌정 , Leip z ig 19< J7, 129 쪽)과 도렌 A. Doren 의 Fort un a im Mittela lte r und in der Rena iss ance, Vort r. der Bib i . Warburg, Fri tz Saxl 편집, 1922 /23 , I 부, Leip z ig 1924, 71 쪽을 참조하라. 최근 패취 H. Pa tc h 의 The trad i tion of the Godness Fort una in Me diev al Ph ilos oph y and Littera tu re; Sm ith College Stu dies in Modern Lang uage, Juli 1922 에 의 해 도렌의 문헌적인 연구와 설명이 보강되었다.

의하면 외부의 운명적 힘이 인간에게 가하 는 위험은 인간이 아직 본 격적인 자아를 확립하지 못했을 때 , 즉 유년기나 소년기에 가장 기세 등등하댜 그러나 자유로운 인간의 저력과 도덕적, 지 적 노력 을 통해 본격적으로 자아가 전개되기 시작하면, 그 위험은 이내 수그러들게 되어 결국 < 용기 V irtu s > 와 < 정진 S tudi um > 은 천상의 적대 세력을 이기게 된다 . 5) •

5) Pog gio Ep ist. I I, 195: 더 자세한 것은 에른스트 발저 Ernst Walser, Pog gins Florenti ns , Leip zi g /Be rlin 1914, 196, 236 쪽 참조.

르네상스 문학에서의 포르투나 문제 이와 같은 사상적 변화는 새로운 신념을 제시하지만 그에 못 지 않 게 새로운 정신적 혼란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이제 모든 모순적 요소 롤 무시한, 하나의 구체적 단일체로서 포르투나를 파악하는 단테적안 발상, 즉 고유한 존재와 특성을 지니되 영험한 신적 질 서에 귀속된 것으로서 포르투나를 파악하는 방식은 설득력을 잃게 되었는데 이와 같은 불안정성은 중세적인 계시신앙의 안정감이나 아늑함에서 벗어나 게 됨을 의미한다 . 중세적인 이원적 세계관과 그와 결부된 일체의 이 원론에 의하면, 인간은 그를 둘러싼 힘들에 대하여 그저 수수방관 체 념할 뿐이다. 즉 인간은 그 힘들간의 다툼을 경험하지만 그 다툼에 직접 끼어들지는 못한다. 그는 장대한 우주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무

대로서의 의미를 지닐 뿐 아직 진정한 의미의 배역을 담당하지는 않 는다. 그러나 인간을 끼운 채 돌면서 때로는 인간을 올려주고 때로는 인간을 바닥으로 내동댕이치는 수레 바퀴와 함께 표현되었던 포르투 나는 이제 돛단배와 함께 등장하게 된다. 게다가 이 배를 이끄는 것 은 포르투나만이 아니라 바로 그 뱃머리에 앉아있는 인간이다 . 6) 이와 같은 사상적 경향은 당대의 고답적 이론가들에게서뿐만 아니라 구체 적 행위나 특수한 분야의 이론가들에게서도 입증된다. 마키아벨리는 행운은 모든 인간 행위의 태반을 좌우하되 결코 행동하지 않는 방관 자가 아닌 행위하는 자, 민첩하고 지혜롭게 수요하는 자에게만 주어 진다고 말했다. 알베르티 Leon Batt ista Albe rti도 포르두나의 파도는 자신있게 자기 길을 헤쳐나가는 이에게는 결코 위협이 되지 못한다고 하였다 . 7 1 < 포르투나는 자신에게 저항하는 이에 대해서는 사납지 않고 온순하게 마련이다. La fortun a pe r se, non dubit are , semp re fu e semp r e sara inb ecil liss irn a et deboli ss irn a, a ch i se gli opp o ng a .>8) 마키아벨리와 알베르티의 이와 같은 말은 로렌조 마니피 코와 같은 행동가나 정치가뿐 아니라, 사보나롤라가 등장하기 전까지 는 사변적 사상가들에게까지도 해당되었던 당대 피렌체의 일반적 정 서를 반영하고 있다. 피치노는 루첼라이에게 보내는 한 편지에서 우 리의 의지를 포르투나의 뜻에 맞춰 평화로운 협정을 맺게 함으로써, 포르투나로 하여금 우리를 불미스런 길로 이끌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밝혔으며 9) 플라톤 아카데미의 젊은 지도자였던 피코 델라 6) 바르부르그 논문의 도판 자료와 도렌 논문의 도판 VI, 14, 10 을 참조하라. 7) Macch iav elli , Prici p e , cap. 25; L. B. Albert i, lnte r coenales (Op . ine d. 8) ML.a nBci.n Ai l편b집er,t i ,1 3D6e 쪽l)la ; t더ra n자 q 세u il한 li t a 것 d은e ll도' a렌n의im o논 L문ib 1. 1 i7ll, , 13O2p 쪽 e r e참 v조ol ga ri I, 113 쪽 (패치의 논문 217 쪽) 9) 루첼라이에게 보내는 피치노의 편지는 바르부르그의 Sassett i 논문 149 쪽에 나

온다.

미란돌라는 훨씬 대담하고 분방하게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편다 . < 정신 의 기적은 천상의 기적보다 위대하다 ……이 세상에서 인간만큼 위 대한 것은 없고 인간 중에서도 그 정신과 영혼만큼 위대한 것은 없 다. 그대가 만일 그것들에게로 오르면, 그대는 이미 천상을 훨씬 뛰어 넘었다고 할 수 있댜 >10 ) 피렌체 플라톤주의의 엄격한 신앙적 기풍의 와중에서도 이와 같은 <영웅적 격정 > 이 폭발하여 그것은 결국 조르 다노 부르노의 대화편 『영웅적 열정에 관하여 Deg li eroic i fu ror i.IJ에 로까지 귀결되게 된다. 우리는 여기서 이러한 정신적, 정서적 변화를 낱낱이 추적하기보다 는 철학적 이론을 통한 체계적 표현을 살펴보고자 한다. 의지의 자유 에 관한 이론적 정립은 로렌조 발라 Lorenzo Valla 의 저술 『자유 의 지 에 관하여 De lib e ro arb itri o 』 에 서 처 음 시 도되 었다. 이 저 술의 의 의나 이 저술이 동일 주제를 다룬 여타의 스콜라적 중세적 논고들과 구별되는 점은 그 내용에 연원하기보다는 그 형식에 기인한다. 실로 이 형식을 통해 새로운 문학 형식뿐 아니라 새로운 사유 양식까지도 시도되었던 것이댜 죽 고대 이래 처음으로 자유의 문제가 순수하게 세속적인 토론장, 즉 <인간 이성 nati irlich e Vemun ft>의 법정 앞에 서게 되었다. 물론 발라는 교의에 직접 대항하기는커녕 오히려-나 폴리의 종교 재판정에서 후에 그가 진술하였듯이” , _결국 반은 신 앙적이고 반은 자조적으로 <본교회>에 순종하는 결론을 택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의 저술 곳곳에서 새로운 비판적 근대 정신이 그의 저력이자 정신적 무기로서 등장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발라

10) Pic o della Miran dolla, In Astr o g iam, Lib . ID, cap. 업, Op . fol. 519. 11) 종교 재판관들에 대한 발라의 입장에 대해서는 Vo igt의 Wi ed erbelebung des klass. Al tert u ms, I. 476 쪽을 참조하라 .

는 17 세기에 바일 Ba y le 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18 세기에 레싱 Les- s i n g에 의하여 이루어진 교의 비판 형식을 맨 처음 시도한 사람이다. 그는 최종 결론만큼은 유보하였지만 오로지 이성의 입장에서 이성이 라는 수단을 써서 연구를 진행시켜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성은 그 어떤 증거도 능가할 수 없는 < 가장 탁월한 진술자 > 인 것이다 . 1 21

12) Valla, Co,i futa t. prior in Benedic t u m Morandum Bononie n sem, Op e ra, Basi l. 1543, 445 쪽.

로렌조발라 그러므로 발라는 바일처럼 신앙의 내용을 침해하지는 않았으되 그 내용을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 철학 > 과의 위험한 관계를 청산시 키려 하 였 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점차 신앙적 내용에 대한 전통적 논거들조차 비판적으로 검토되기 시직하였으며 이 검토로 인해 그것 들은 점차 그 설득력을 잃기 시작했다. 그러한 비판은 교회의 계서적 조직이 갖는 도덕적, 법적 근거에 대한 비판을 필두로 진행되었다. 이 미 쿠자누스가 『가톨릭 교의 De concordia n ti a ca t hol i ca 』에서 시도 한 제정일치적 헌납에 대한 반론이 새롭고 날카롭게 제기됨으로써 결 국 교회가 세속 권력을 법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전혀 근거없는 것임 이 밝혀졌다 . 13) 교회적 계서의 근거에 대한 이러한 법적 논쟁은 발라 가 『성직에 관하여 De pr ofe s sio n e rel igi osorum 』에서 피력한 윤리

13) Valla, De fals o credit a et ementi ta Costa n ti ni donati on e decla matio, Op. 761 쪽 이하 참조 .

적 논쟁과도 부합한다. 여기서도 종교적 내용 그 자체는 결코 침해되 지 않았다. 그러나 발라는 그 종교적 내용이 특정한 생활 양식이나 사회 형태를 통해 배타적 내지 우선적으로 구현된다는 주장에 대해서 는 강력히 반발하고 나선다. 그리하여 수도 생활이나 성직자의 우월 성은 단호히 부정되게 되었다. 종교와 경건의 본질은 믿음과 의지의 주체인 내가 나 자신을 신께 바치는 자유로운 관계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관계를 외적인 법률적 의무로 받아들이거나 특정한 외적 행위가 가해져야 심정적인 순수한 내면성이 의미를 갖게 된다고 믿는 것은 그와 같은 관계의 고유성을 간과하고 말소하는 격이다. 그 어떠 한 태도나 행위도 자기자신을 바치는 것과는 바교될 수 없고 윤리적 도덕적으로 결코 그것을 능가할 수 없다. 자기 자신을 바치는 이는 모든 것 을 바치 는 것 이 다 .(o mni a dat, qui se ips urn dat. ) 이 처 럼 객 관 이 아닌 주관에, <드러난 행위>가 아닌 <믿음>에 초점을 맞추면 신 자들을 대표하는 신분 따위란 성립될 수 없다. 141 계서적 구속으로부터의 이와 같은 해방은 행위뿐 아니라 사상 차원에서도 아주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다. 결국 진리의 절대적 담당자임을 자처하는 기독교의 요구는 침범당하지 않 았지만 기독교 신앙의 내용은 점점 인간 오성의 요구에 적합한 해석 을 감수하여야만 했다. 그것은 발라의 첫 저술인 『쾌락에 관하여 De voluptat e 』에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여기서 쾌락은 최고선일뿐 아 14) 발라의 Ap o log ia contr a calumnia t o r es ad Eug e niu m IV, Op er a 799 de pro fe s sio n e relig ios orum (Vahlen 편 집 , Laurenti i Vallae op u scula tria, Wi en 1869, 160 쪽)과 비교할 것

니라 선 그 자체, 모든 생명을 보존하는 원리, 그리고 모든 가치의 기 본 원리로서 해석된댜 이러한 쾌락주의의 부활은 결코 신앙과 대적 하지 않고 오히려 신앙을 통해 바호된다. 발라의 기본 테제에 의하면 기독교는 에피쿠로스주의에 대해 적대적이기는커녕 오히려 그 자체가 고양되고 승화된 에피쿠로스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기독교가 신도들 에게 약속하는 지복( 至 福)이란 것이 가장 고귀하고 완전한 형태의 쾌 락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1 5) 우리는 발라의 초기 저술에서, 그에 게 관심거리가 된 것은 테제 자체의 정립보다는 논박의 즐거움이었다 는 사실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그의 모든 철학적 저술을 통해 일관된 경향이다. 발라에게는, 사냥하는 동안의 재미가 단순한 노획을 능가한 다는 레싱의 말이 그대로 적용된다. 의지의 자유에 관한 그의 저술에 서도 문학적으로나 사상적으로 그와 같은 경향이 뚜렷이 드러난다. 이 저술의 성공이나 그것의-라이프니츠에 이르는-강한 역사 적 영향력은, 바로 이 저술을 통해, 스콜라 철학이 수없이 많은 제반 주제들과 새로운 변증법적 개념들을 동원하여 분석해 놓은 문제가 다 시금 그 총체성을 회복하여, 가장 함축적이면서-문체적으로나 사 상적으로-가장 세련된 표현을 통해 다루어졌다는 점에 기인한다. 그런 의미에서 발라는 철학자로서뿐만 아니라 인문주의자로서도 중요 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한 형식은 인문주의자나 천재적인 문필가가 아니고서는 이루어낼 수 없는 것이다. 발라는 신적인 예견과 신적 전 능이란 개념을 규정하고, 그 두 개념을 인간의 자유의지와 대비시키 는 대신 의인화하는 것으로서 논의를 시작한다.

15) Valla, De vo/up tate Lib . ill, Cap. 9 (Op . 977)

발라의 『 자유 의지에 관하여 』 죽 고대의 신화가 논리적 사유 작업을 표현하는 역할을 새로이 맡 게 되어 신적인 예견은 아폴론으로, 신적 전능은 주피터로 묘사하게 되었댜 이 두 세력은 서로 투쟁하는 관계가 아닌데 그 이유는 미래 에 대한 앎과 미래를 창출하는 것은-현재에 대한 앎과 현재 를 이 루는 것이 무관하듯-서로 무관하기 때문이다. 미래에 일어날 일 을 예견하는 것은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기 위한 아무런 실재적 원인 도 포함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섹스투스 타르키니우스 Sex t us Tarqu - ini us 가 범죄를 저지를 것을 예견한 아폴론은 그 행위에 대해 이무런 책임이 없다. 발라의 논의는 아폴론이 섹스투스를 그에게 그와 같은 성향과 의지룰 심어준 주피터의 심판대로 보내는 데에서 끝을 맺는 다 . 결국 그에 있어서는 인간이 피조물로서 전적으로 신에 의해 그 존재를 부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의지 결정의 자유를 지녔으 며 고로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져야만 하는가 하는 문제는 그 철학적 으로 미결 상태이다 . 이렇게 하여 결국 체념과 불가사의한 도피만이 남 게 되었지만 16) 그렇다고 하여 그러한 체념을 단순히 무리한 신학적 결 론에 대한 회피라고 해석할 필요는 없다 . 그와 같은 체념은 발라의 사유 방식 전체에 걸맞는 것으로서 그는 언제나 완결된 해답을 주는 대신 가장 첨예한 형태로 문제를 제시하여 우리에게 그 문제를 남겨 놓는 것으로 만족한다. 반면 폼포나찌 Pomonazz i의 『 운명 과 자유의지, 그리 고 예정 에 관 하여 De Jato , lib e ro arbit rio et p raedes ti na ti one 』 는 전혀 다른 사 상적 배경을 지닌 발라가 자유의지와 예정의 문제를 지극히 암시적인 16) De libe ro arbit rio, Op e ra, 1004 쪽 이 하

어조로 다루었던 반면 그 는 그 것 을 분석함에 스콜라 철 학에서나 있음 직한 꼼꼼함과 냉정함을 발휘하였다 . 그는 오로지 원전을 좀더 면밀 하고 비판적으로 사용함으로써만 원전의 내용과 스콜라 철 학과의 차 이 를 강조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 순수하게 > 원전에 ’ 입각한 아리 스 토텔레스에로의 희귀가 요청되었으며 발라가 그렇게도 맹렬히 거부하였던 17)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시금 세속적 지식의 최고 권위로 인정받게 되었댜 그러나 이러한 권위나――석꼽포나찌에 의하면 아리 스토텔레스에게서 가장 잘 구현된-인간 이성을 신앙과 조화시키 는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보존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인간 이성과 신 앙 사이의 대비는 은폐되지 않은 정도를 지나 일부러 강조되기에 이 르러 결국 < 이중적 진리, 진리의 이중성 > 이라는 지혜로운 결론이 내 려지게 되었다 . 우리는 여기서 이 논의에 관한 사상적, 정서적 태도가 중세와 비교해 보았을 때 분명히 변화하였음을 알 수 있다 . 이 이론 은 교회의 교의적인 승인도 얻어내었으며 맹목의 신앙fi des implicit a 이라는 개념도 거의 침해하지 않았지만 그전에 있었던 오캄주의의 공 인과 비교해 분명 < 이성 > 을 옹호하는 쪽으로 판도가 바뀌었음을 의 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폼포나찌는 <마지막 스콜라 철학자>로 불 리지만 동시에 최초의 계몽사상가로도 불릴 만하다. 사실 그의 저술 들에서 일관되게 발견되는 것은 스콜라 철학을 가장한 계몽이었던 것 이다. 그는 눌 엄격하고 냉정하게, 개념적 정확성과 엄밀함을 추구하 며 연구에 임한다 . 그는 단지 아는 것만 이야기할 뿐 최종 결론이나 17) Valla 의 Diale cti ca e disp u ta tion es, Op er a 645 쪽 이 하와 비 교. De libr o arbit rio 1004 이 하도 참조해 볼만하다.

결단을 내리지는 않는다. 그는 교회의 초월적 세계를 용인한 반면 학 문의 구성, 즉 심리학 또는 인식론의 구성과 윤리학의 구성을 위해서 는 그와 같은 것들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명명백백 히 밝혔댜 그에 의하면 학문이나 윤리는 공히 고유한 자체적 근거를 지니며 신학의 형태와 독립하여 존재한다. 그의 사상이 갖는 이러한 특성은 그의 자유 의지에 관한 글에서도 드러난다. 발라의 작품은 같 은 주제를 다름에 있어 사상적으로나 문학적으로나 농축된 형식을 띠 어 문제를 몇몇 측면에로 집중시킨 반면, 폼포나찌의 작품은 증명과 반증, 정의와 구분 등의 전과정을 낱낱이 제시한다. 이 저술은 알렉산 더 아프로디 시 아스 Alexander von A p hro di s i as 의 『 예 정 에 관하여 成 pi c i瓜/1gJJTJ C 』를 구구절절이 분석해 놓은 주해서의 형태를 띤 것으 로, 글 전체를 통해 집요한 오성 , 즉 낱낱의 문장을 궁극에까지 심사 숙고하며 모든 논증에 대하여 반증을 시도하는, 작품에 대한 날카로 운 변증술을 동원하고 있다. 그러나 폼포나찌 자신의 체계적 판단은 여기서 모호한 상태로 유보되어 있다. 단지 한 계기만이 날카롭고 명 료하게 강조되고 논구되었는데 그것은 발라에게서도 강조되었던바, 신적인 예지와 인간 행위의 자유는 결코 필연적인 대립 관계가 아니 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신은 미래의 행위를 알지만 결코 자유를 인정 하는 것과 양립될 수 없는 그와 같은 근거에서 아는 것이 아니고 단 지 명백한 사실, 죽 <어떠함>으로서 알기 때문이다. 인간의 경우는 과거의 것과 현재의 것은 <어떠함>으로 파악할 수 있는 반면에 미래 에 대해서는-그것이 직접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고 단지 원인을 통해 유추될 수 있는 것인 이상一―-<왜>라는 물음에 대한 앎에 의 존하여 추측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신적 인식에서는 그와 같은 직접 적 앎과 간접적 앎의 차이, 즉 주어진 앎과 유추된 앎 사이의 구분이 성립되지 않는다.

품포나찌에 있어서의 자유와 필연 또 미래를 앎에 있어서도 어떤 매개나 그러한 미래를 가능케 하는 조건들에 대한 논증적 검토 같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1 81 이리하 여 인간 행위의 예견 문제는 발라의 경우와 비슷하게 결론지어졌다. 그러나 폼포나찌에 있어 신의 전능과 인간의 자유나 책임을 조화시키 는 문제는 그 비중을 상실했다. 그는 이 문제를 결코 단정적으로 설 명하려 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의 판단은 명백히 엄격한 결정론 적 성향을 띤다. 그는 자연 철학에 관한 저술 『자연의 경이로운 인과 관계에 대하여 de natu r aliu m ejfe ct u m admi ra ndorum caus i s 』에서 사건의 인과 관계를 엄격한 점성학적 의미로 해석하여 역사계나 자연 계를 모두 천체의 작용에 의한 필연적 결과로서 이해하였다. 이외에 도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신의 스토아적 운명관이 비교적 합당하 고 인간 이성에 걸맞는 해답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당시 이 러한 결론이 수용되는 데에는 논리적 반발에 앞서 윤리적 차원의 반 발이 거세게 작용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저작들의 대부분을 그와 같은 반발에 논박하는 데 할애할 수밖에 없었다. 발라는 『쾌락 에 관하여』에서 종교적 형이상학의 형식과 자신의 세속적 윤리학을 융화시키려고 노력했던 반면 폼포나찌는 여태껏 형이상학과 윤리학을 연결하고 있었던 끈울 단호히 끊어버렸다. 그에 의하면 양자는 원칙 적으로 완전히 독자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죽 인간의 삶에 대한 가치 평가가 그 삶의 지속이나 인간 영혼의 불멸성 따위에 대한 우리 의 관념과 무관하듯, 우리 행위가 가치있느냐 그렇지 못하냐 하는 문 18) Pomp on azzi, De Jato , lib e ro arbit rio et de pra edesti na ti on e, Basel, 15o1 이 하, 특히 Lib . V 의 913 쪽 이하.

제는 그것의 원인에 대한 해석 방식과는 전혀 다른 해석 방식을 요구 한댜 그러므로 설령 우리가 그 원인을 규명할 수 있다 해도 윤리 실 천적 판단은 여전히 별개의 문제로 남는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은 자 유야말로――-괴물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원인 불명의 상태가 아니라 ―그가 다루고자 한 문제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특기할 만한 것은 폼포나찌의 저술이 발라의 저술보다 연대 적으로 80 년 이상이나 후에 씌어졌다는 사실이다. 죽 폼포나찌의 것 은 1520 년에 완성된 반면 발라의 것은 1436 년경 씌어진 것으로 1 9 ) 바 로 이 시기는 르네상스의 철학적 사유가 피렌체 아카데미의 플라톤 주의에 의해 변모를 겪는 때이다. 아카데미의 이론은 연대적으로뿐만 아니라 계통적으로도 인문주의와 파두아 학파에 의한 스콜라 철학의 부흥 중간에 위치한다. 그러나 피렌체 아카데미의 이론 형성에 있어 서는 쿠자누스의 영향도 간과될 수 없는 요소이다.――-후에 로마에 서 행한 900 조항 변론의 맹아격이라 할 수 있는-피코의 저 유명 한 연설문은 그와 같은 사상적 맹아를 명백히 시사한다. 피코가 <인 간의 존엄성>이란 주제를 주요 쟁점으로 등장시킨 것은 일차적으로 는 전통적 인문주의가 수사학적으로 부단히 운위한 특정 소재를 다시 수용한 것에 불과하다. 지 아나쪼 마네 티 Gi an azzo Mane tti가 1452 년 경에 쓴 글 『인간의 존엄성과 탁월함에 대하여 De dig nitate et excellenti a hom i n i s 』는 이 미 형 식 적 으로나 사상적 으로 피 코와 유사 한 양상을 띠고 있다. 그는 단지 생성된 것에 불과한 자연계와 생성 해 내는 정신의 세계, 즉 문화의 세계를 대비시키면서 단지 이 정신 19) 발라의 대화편 De libe ro arb itri o 의 연대 추정에 대해서는 M. von Wol ff의 Lorenzo Valla, Leip z ig , 1893, 36 쪽을 참고하라. 폼포나찌 의 논문은 1567 년 바 첼에서 De acl mirand orum eff ec tu u m caus i s” 의 부록으로 처음 출판되었으나 저자가 말미에 밝히듯이 이미 1520 년에 완성되었다.

의 세계만이 인간 정신의 본향이며, 인간의 존엄과 자유는 단지 이 세계를 통해서만 실현가능하다고 주장한다. Nostr a namq ue , hoc est hurnana, sunt, quo n iam ab hom inibu s eff ec ta , qu ae cemuntu r: ornnes domus, om nia op pida , ornnes urbes, om nia den iqu e orbis ter rarum aed ificia . Nostr ae sunt picturae , nostr a e sculpt urae , nostr ae sunt artes , nostr ae scie n ti ae … sapi en ti ae . Nostr ae sunt … ornnes ad inv eti on es, nostr a om niur n dive rsarum ling u arum ac va riar um litter arum ge nera, de qu arum necessa riis usib u s qua nta mag is mag isq u e cog itamu s, tanto vehementi us ad mirari et obstu pe scere cog irnu r. (우리가 누리는 것 중 인간의 업적에 속한 것들에는 다음과 같은 것 들이 있다 . 즉 모든 집과 성곽, 도시, 그리고 이 지상의 모든 건물들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림과 조각, 예술과 학문, 지혜도 거기에 속하며 일체 의 발명, 다양한 문학 형태에 드러나는 다양한 언어가 그에 속한다 . 우 리는 그것들의 쓰임새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경이로움을 억누를 수 없다 .) 20 )

20) Gen til e 의 논문 II concetto dell'uomo nel rina scim e nto (Gi or dano bruno e ii pe nsie r o def Rin a sdmento 111 쪽 이하에 재게)에서 상세히 연구된 Gia n nozzo Mane tti의 굴 De dignitate et exellenti a hom inis (1 452) 에 나오 는문장입

그러나 이와 같은 마네티의 글이 본질적으로 고대 스토아적 사상에 복귀하는 것이었던 반면에 피코의 연설에는 전혀 새로운 요소가 등장 한다. 즉 그의 견해는 전체적으로 쿠자누스와 그 이후 피치노가 이뤄 낸 (86 쪽 이하를 참조하라) 소우주 모티브에 대한 독특한 변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연설은 이로 인해 비로소 단순한 웅변적 미사여구 를 능가하는 독특한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즉 그 수사학적 격정에는 근대적 사상 특유의 격정이 동시에 내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우주 질서의 조직 속에서 인간에게 부여된 그 고정적 위치 나 속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우주가 계서적인 체계로 구분되고 각 존재들에게 각자 우주의 질서에 걸맞는 자리가 하나씩 부여된다는 견해는 인간의 자유가 갖는 의미와 문제를 간파하는 데에는 부적절 하다. 피코의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연설 왜냐하면 인간의 자유라는 문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존재와 작용의 관계를 도치시킴으로써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물 세계에 대하 여서는 전통적인 스콜라적 경구인 가 타당하게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세계는 상반된 규 정이라도 공히 타당할 수 있는 본질과 속성을 지닌다. 그리하여 여기 서는 존재가 형태를 이루어감에 영구 불변한 향방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이루는 원천적인 향방에 의해 비로소 존재가 규정된 다. 즉 인간 존재는 자신의 행위로부터 유래한댜 그리고 이 행위는 단지 의지의 원동력을 통해 유발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모든 형성 능 력을 포괄한다. 왜냐하면 일체의 진정한 창조적 형성은 세계 자체에 대한 단순한 작용임을 넘어서서, 작용하는 것이 작용을 받는 것으로 부터, 죽 행위의 주체가 대상으로부터 자신을 구분하며 그것과 의식 적으로 대립한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대립은 결코 특정한 귀결로 끝맺는 일회적 과정이 아니라 부단히 새롭게 수행되어 야 한다. 인간의 존재와 가치는 바로 이 수행에 달려 있고 고로 항상

정적이 아니라 역동적인 것으로 일컬어질 수 있다. 우리는 우리를 존 재의 계서적 사다리에서 훨씬 높이, 즉 천상적인 지성에까지, 더 나아 가 모든 존재의 신적인 근원에로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그러나 만일 그 사다리의 어느 단계에선가 그냥 머물러 있으면 우리는 거기서 자 유라는 특유한 가치를 발견할 수 없다 . 고정된 계서적 체계의 경우, 이 자유라는 가치는 항상 낯선 골칫덩어리로 < 불합리하게> 비춰질 수밖에 없다. 단순한 존재의 질서는 생성의 의미와 운동을 포괄하지 않기 때문이다. 피코의 이론은 일반적으로 부분적으로는 아리스토텔 레스적 내지 스콜라적 전통에 의해, 부분적으로는 신플라톤적 전통에 의해 성립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전혀 새로운 장 을 여는 계기도 포함한다. 이제 창조나 유출이라는 카테고리로는 더 이상 신과 인간 사이, 또 인간과 세계 사이에 놓인 관계가 설명될 수 없다 . 통상적 의미의 창조는 피조물에 대하여 특정 존재를 부여할 뿐 만 아니라 동시에 그것에 대해 특정 범위의 의지와 실행을 할당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그러한 한계를 뛰어넘는다. 인 간의 작용은 인간의 실재적 속성을 통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항상 새 로운 것, 모든 유한한 영역을 원칙적으로 뛰어넘는 가능성을 내포한 댜 바로 이 점이 인간보다 하위에 속한 세계뿐 아니라 예지계조차 부러워하는 인간 속성의· 비밀이다. 단지 인간에게서만 다른 곳에서 적용되는 창조의 규칙, 그 고정된 <유형>이 지양된다. 피코의 연설 앞머리에 나오는 신화에 의하면, 창조가 끝날 무렵 조물주는 자신이 창조한 작품들의 근원을 인식할 수 있고 그것의 아름다움을 사랑할 만한 능력을 지닌 존재를 만들려는 의욕을 품는다. <그러나 수많은 사물 중에 이 새로운 존재에 걸맞는 것은 없었으며 조물주조차 이 새 로운 작품에게 줄만한 것을 가지지 못하였다. 게다가 우주 어디에서 고 우주 만물에 대한 관찰자의 위치를 정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미 모든 것은 꽉 차버렸고 모든 영역이, 즉 가장 높은 것에서부터 가 장 낮은 것, 그리고 중간의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존재들에게 걸맞게 다 배당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 그리하여 조물주는 이 피조물에게 아 무 것도 주지 않는 대신 다른 모든 것들에게 부여한 것을 포괄할 수 있도록 선처하였다. 그는 인간을 특별한 특징이 없는 포괄적인 상으 로 만든 다음 그를 우주의 중심에 세우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우리 는 너 아담에게 어떠한 고정된 자리도, 또 어떠한 고유의 형태나 천 성도 주지 않았댜 그러므로 너는 어떠한 자리나 형태건, 또 어떠한 능력이건 간에 네가 원하는 대로 결정하여 가질 수 있다. 다른 존재 들은 이미 고정된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에 의해 고정된 법칙으 로 묶여 있다. 단지 너만은 제한 없이 내가 너에게 허락한 너의 의지 대로 선택할 수 있다. 네가 네 주위를 좀더 쉽게 보고 그 곳에 무엇 이 있는가 알 수 있도록 나는 너를 우주의 중심에 세웠다. 또 나는 네가 네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는 동시에 또 극복하는 촌재로서 네가 자신을 위해 택한 모든 형태를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해 너를 천상의 것도 아니되 지상의 것도 아닌 , 또 죽지도 않되 영원하지도 않은 유 일한 존재로 만들어냈다. 너는 짐승에로 타락할 수도 있고 신적인 것 으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다. ……짐승은…… 태어날 때부터 자기가 지녀야 할 것을 지니고 있다. 또 높으신 정령들은 처음부터 또는 그 직후부터 영원 불변하다. 그러나 인간은 태어날 때 그 아비로부터 모 든 생명 있은 것들의 씨를 같이 부여받았다. 그중 어떤 것을 기르건 간에 그것은 인간 안에서 자라나고 열매를 맺게 된다. 만일 그것이 식물의 씨면 그는 식물이 되고 만일 그가 감각적인 것을 추구하면 그 는 동물이 된다. 만일 그가 이성의 눙력을 키우면 그는 천상적인 생 물이 될 것이며 지성을 따르면 천사나 신의 아들이 된다 .'>2 1) 부르크 하르트는 피코의 이 연설을 르네상스 문화의 가장 고귀한 유산 중의

21) 피코 Orati o de homi ni s dig nitate Op . fol. 314 이하. (이 번역은 부분적으로 부르크하르트의 <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 > (II 73) 에서 이루어진 번역에 의존하 고 있다 .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로서 정령이나 영험한 지성조차 능가한다는 견해 는 당시 피렌체에서 횡행한 은밀한 전통에 근거한 것이다. 피치노는 오래된 은밀 한 저술들을 라틴어로 번역하였다 . 이 점에 대해서는 부르다흐 Konrad Burdach 의 보헤미아 농부에 붙이는 주석 (Vom M ittela lt er zur Refo r mati on ill, I, 293 쪽 이하, 325 쪽 이하)을 참조하라.

하나라고 칭송하였다. 진정 이 연설 속에는 르네상스적인 의지 전체 와 인식 개념 전반이 뛰어난 간결과 함축을 통해 요약되어 있다. 여 기에는 르네상스 사상의 특징인 도덕적, 지적 긴장을 유발하는 두 계 기가 나란히 등장한다. 피코의 인간성 이념 죽 인간의 의지나 인식은 세계에 대한 전적인 참여와 아울러 세계 로부터의 전적인 단절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의지와 인식은 우주의 모든 부분에 대하여 자신을 투여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데 그것은 인간은 삼라만상의 전영역을 두루 살펴봄으로써만 자기 자신의 특성 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에 대한 그와 같은 전적인 개방성이 다른 한편으로는 그에 동화되는 것, 즉 신비적 범신론적 의 미의 몰아지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 의지는 그 어떠한 목표 도 완벽하게 달성할 수 없음을 앎으로서 성립되며 인간 인식 역시 그 어떠한 내용에 대해서도 완벽히 파악할 수 없음을 알 때에만 성립되 는 것이다. 이렇듯이 우주 전체에 대한 관심은 자신을 그 중 어떠한 부분과도 동일시하지 않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인간과 세계 사이의, 죽 <정신>과 <자연> 사이의 이원성이 엄격히 유지되 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이 이원성이 스콜라적, 중세적인 절대적 이원

주의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 왜냐하면 이 극 성은 절대적이 아닌 상대 적 대립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양극간의 차이는 단지 그것이 상호관계 를 이룰 때에만 가능하며 파악 가능하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그것과 반대되는 사상적 특징, 즉 당시에 막 떠오르기 시작한 < 초월 > 과 금 욕의 성향에 의해 결코 극복되거나 해체될 수 없는 피렌체 플라톤주 의의 또 다른 기본 입장을 확인한댜 피치노와 피코는 곳곳에서 신플 라톤적인 발상에 깊은 영향을 받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 분리>와 <분유> 개념에 대한 순 플라톤적인 기본 의미를 재현시켰다 . 이 기 본적 의미에 따라 <초월>과 <분유 > 는 서로 상대를 성립시키는 전제 로서 등장한다. 이 상호적 특성은 객관적으로 보아서는 수수께끼같고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욕구하며 인식하는 주체인 자아의 속성을 들여 다보면 필연적이고 명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의지라는 자유행위와 인식이라는 자유행위는 단순한 존재는 결코 지니지 못한 점을 지니고 있다. 이 행위는 구별하는 능력과 통합하는 능력을,동시에 의미하는 것으로 단지 이 행위만이 구별지어진 것을 절대적으로 분리하지 않은 채 가장 첨예하게 구별할 수 있다. 자아와 세계, 주체와 객체 사이의 이와 같은 관계는 실로 쿠자누스 적인 <대립의 일치> 개념에 걸맞는 것으로 그것은 피코가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연설을 통해 제시한 사상적 모티브가 발전되는 과정 에서 뚜렷이 확인된다. 그것은 더 명확히 말해 피코의 연설에 쿠지~스 사변의 아류가 포함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쿠지누-스의 De conje c tu r is 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Hu manitatis unitas cum hum aniter contr ac ta exi sta t, om nia secundum hanc contr act io n i s natu rarn comp lica re vide tu r. Ambit eni m virtus unitatis eju s unive rsa a 떠 ue ips a intra suae reg ion i s termino s

adeo coercet, ut nihil dmniur n eju s auf ugiat poten tia m. .. Homo eni m Deus est, sed non absolute , qu on iam Homo. Humanus est igitur Deus. Homo etia m mundus est, sed non contr ac te om nia, qu on iam homo. Est igitur Homo µLxp o xoaµ oc; aut humanus quide m mundus. Reg io igitur ips a hum anitatis Deum atq u e unive rsum mundum hurnana li sua poten ti a ambit. Pote s t igitur homo esse humanus Deus atq u e Deus hum aniter, potes t esse humanus ang e lus, hurnana bestia , hurnana leo aut ursus, aut aliud qu odcurnq u e. Intr a hu manitatis poten ti am om nia suo exi st u nt modo. In hum anitate igitur onr nia hu maniter, uti in ipso unive rso unive rsal iter, exp lica ta sunt hamaniter, qu on iam hurnanus est Deus. Nam hum anitas unitas est, qu ae est et infirritas hu maniter contr ac ta .. . Non ergo acti va e creati oi s hu manitatis alius ext at firris qu am hu manitas. Non eni m perg i t ex tra se dum creat, sed dum eju s exp lica t virtutem ad se ipsa m pertingit neq u e q떠 c q uam nov i eff icit , sed cuncta qu ae exp lica ndo creat, i n ips a fuiss e comp erit. (인간적으로 응축된, 인간성이라는 단위가 존재한다. 모든 것은 이러 한 응축 작용의 본성에 따라서 응축 com pli care 되는 것처럼 보인다. 도 처에 있는 저 통일성의 힘이 만물을 감싸고 있고 , 만물 중 그 어느 것도 그의 힘을 벗어날 수 없듯이 바로 그 힘이 자신의 영역의 한계 내에서 질서를 유지시켜 준다. 인간은 신이되 절대적인 의미에서의 신은 아니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인간이다. 그러므로 신은 인간적이다 . 인간은 어떤 점에서 세계이나 응축되어 있다는 점에서 볼 때 모든 것은 아니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인간이다. 따라서 인간은 소우주이거나 특정한 인간적 세계이다. 그러므로 인간적 영역 그 자체는 그 인간적 가능성에 있어 신 과 우주 세계를 감싼다. 그러므로 인간은 인간적인 신이 될 수도 있고 인간적으로 신이 될 수도 있으며 인간적인 천사, 인간적인 짐승, 인간적

인 사자, 인간적인 곰, 그리고 그외의 어떤 것도 될 수 있다 . 인간의 가 능성 속에는 그 양상에 따라 볼 때 모든 것들이 존재한다 . 따라서 우주 속에서 보편적으로 그러하듯이 인간성 속에서는 모든 것이 인간적으로 방출되어 있다. 왜냐하면 세계란 인간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인간성 속에는 모든 것이 인간적으로 응축되어 있다 . 왜냐하면 신 이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이제 인간성은 인간적으로 응축된 단위이다. 따라서 그 어떤 인간성의 적극적인 창조의 한계는 바로 인간성 그 자체 이다……왜냐하면 인간성은 창조하는 동안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 한 채 자기 자신의 가능성을 전개시키면서 자기 자신을 향해 자기 자신 을 펼쳐나가고 어떤 새로운 것을 산출해 내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전개 해 나가면서 스스로 창조해 낸 모든 것을 자신이 자체 내에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경험한댜 ) Z2 ) 위의 문장은 인문주의가 단순한 학자들간의 현학적 유행이기를 넘 어 철학적인 형식과 권위를 얻고자 할 때 으레 혼히 인용되곤 한다. 위와 같은 쿠자누스적 사변의 영향은 결코 몇몇 집단에 제한된 것이 아닌 초민족적이고 초학파적인 현상으로서, 이탈리아를 넘어 프랑스 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철학적인 플라톤적 인문주의에서 아리스토텔 레스적 인문주의를 망라한 사상적인 시발점을 제공하였다. 카롭루스 보빌루스 그와 같은 사실은 단지 사상의 내용적 체계적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개별적인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도 낱낱이 입증된다. 아리스토텔레스 22) Cusanus, De con jec tu ris II, 14 (45 쪽과 비교).

연구의 본격적인 제창자이자 프랑스에서 일어난 < 아리스토텔레스 부 흥> 의 주창자인 야콥 파버 스타풀렌시스J akob Faber S tap ulens i s 는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의 저작들을 편집하였는데 그는 곳곳에서 경이와 홉모에 차 쿠자누스를 칭송하는 외에도 피렌체의 플라톤 아카데미에 결정적으로 경도되었다 . 231 그리하여 그 두 가지 요소는 그의 제자인 카롤루스 보빌루스 Carolus Bovil lus (Charles de Bouelles) 가 쓴 작 품을 통해 결집되기에 이르렀다. 이 작품은 피코의 연설을 곧바로 확 대하여 전개시킨 것이자 피코 연설의 기본 사상을 체계적으로 응용한 작품이다 . 24 1 바로 이 작품, 죽 1509 년에 씌어진 『현자( 賢 者)에 관하여 De Sap i en t e 』는 아마도 르네상스 철학사를 통틀어 가장 기 이 하고 독 특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처럼 전통적인 것과 새 23) 플 라톤 아카데미의 학설 이 일찍이 프랑 스 , 특히 파리 대학을 중심으로 유입되 었 다는 사 실 은 가구인 Ga gui n 이 피치노에게 보낸 1 4 96 년 9 월 1 일자 편지에서 확 인된다 . (De Sap i en t e 는 1509 년에 씌어져 1510 년 그의 다른 작품과 함께 파리에서 출판되었 다. 이 글과 보빌루스 인식론에 대해서는 졸저 Erkenn tni sp roblem 의 3 판 1 권 66 쪽 이하를 참조하라.

로운 것, 재래의 요소와 신선한 충격을 던져 주는 요소가 나란히 등 장하는 작품은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도 유비 Analo gi e 라는 총총한 그물을 통해 우주 전체, 즉 물질적 세계와 정신 적 세계를 파악하려는 중세적 사유의 기본적 성향은 여전히 극성을 부리며, 소우주와 대우주의 질서, 원소와 자연적 힘, 그리고 도덕적 능력의 법칙, 삼단 논법의 논리적 세계와 실재적 인과의 형이상학적 세계에 대한 기본 도식은 여전히 상투적으로 반복된다 . 그러나 이러 한 우주 전체에 대한 도식적, 우의적 파악 가운데에서도 우리로 하여 금 근대 철학의 관념론 , 즉 라이프니츠나 헤겔을 연상케 하는 본격적 인 사변적 요소나 독특한 성향이 발견된다. 보빌루스에 의하면 세계 는 <객체>에서 <주체 > 로의 길, 즉 단순한 < 존재 > 에서 < 자기 의 식>에로 이르는 길을 제시하는, 네 개의 서로 다른 단계로 이루어진 다. 가장 추상적인 계기인 존재는 모든 것에 공통인 반면 가장 구체 적이고 가장 발달된 단계인 자기의식은 최상의 피조물인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속성이다. 그리고 이 양극 사이에는 정신의 선단계이며 잠 재적 상태인 자연이 있다. 자연은 다양한 형태의 생명을 이루지만 이 성이나 반성적 상태, 자기 스스로에 대한 앎에는 미처 도달하지 못한 다. 존재는 자기 자신, 다시 말해 자기 자신에의 개념에 도달하기 위 해 있음 Esse, 삶 V i vere, 느낌 Senti re, 앎 In t e llig ere 이라는 단계를 거친다. 가장 아래 단계인 존재 그 자체는 모든 삼라만상 , 즉 돌이나 식물, 동물 , 인간에게 두루 적용된다. 그러나 이 단순한 실체성의 토 대 위에는 다양한 주체적 삶의 등급이 전개된다 . 25 ) 보빌루스는 이로써 정신의 전개 과정이 갖는 의미와 목표는 <실체>에서 <주체>로 전환 되는 데 있다고 본 헤겔의 경구를 예견하고 있다. 인간의 이성은 <어 25) De Sap ien te 1 장과 2 장을 참조하라 .

머니 자연 > 에 대해 반성하고 그 순환을 종결시켜 다시금 회귀시키는 능력이다 .2(j ) 그러나 이때 자연은 결 코 처음 출발할 때와 같은 형태로 회귀되는 것이 아니다. 일단 인간에게서 최초의 분리가 일어나 원래 의 단순성을 잃은 이상, 자연은 온전한 단순성에로는 결코 다시 돌아 갈 수 없댜 인간은 대립을 통하여, 차이를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차 이를 성립시키고 전제로 하는, 그와 같은 본질적인 단위를 발견해 내 어야 한댜 왜냐하면 단순한 존재 자체는 아무런 능력도 지니지 못하 기 때문이댜

26) De sap ien te , V.

보빌루스에 있어서의 존재와 자기의식 이러한 사상을 전개함에 있어 보빌루스는 두말할 것도 없이 쿠자누 스가 제시한 삼위일체설에 대한 사변적 해석에 준하고 있다. 'ZI) 보빌루 스 또한 쿠자누스와 마찬가지로 진정한 삼위일체는 정적인 것이 아니 라 역동적인 것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단순한 실체 속에 세 개의 <속 성 > 이 나란히 있는 것이 아니라 발전하는 연속적 통일체로 파악되어

27) De sap. VI. VII

야함을 역설했댜 이러한 발전은 단순한 <가능성 > 을 < 실재성 > 에로, <잠재력>을 완벽한 <활성적 상태>로 변모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제 신에 대한 그와 같은 기본 이해가 인간에게까지 적용되게 됨으로 써 인간의 진정한 실재성은 위와 같은 전과정을 거침으로써만 성립하 게 되었댜 죽 단지 그와 같은 생성을 통해서만 자신의 독특한 존재 를 달성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 지혜>라 고 부르는 것은 그 본래적 의미에 의하면 외부 대상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한 앎이다. 죽 자연이 아닌 인간성 human itas 이 그것의 원래 대상이다. 현인은 인간의 본질에 놓여 있는 대립을 감지하며 인식하고 더 나아가 극복하는 자다. 그는 잠재력을 지닌 인 간 homo in p o t en ti a 이며 행위하는 인간 homo in actu , 원리를 띤 인 간 homo ex pri nc ipi o 이자 목적을 띤 인간 homo ex fi ne 이다 . 또 그 는 생성하는 인간 homo e xi s t ens 이자 드러나는 인간 homo app a rens, 자연에 근거한 인간 homo a na t ura 이자 지성에 근거한 인 간 homo ab i n t ellec tu이댜 28) 보빌루스는 지혜에 관한 위와 같은 정 의 속에 자유의 문제에 대한 내용이나 해답도 내포되어 있다고 보았 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 자유란 바로 인간이 다른 것들처럼 자신의 존재를 자연으로부터 부여받는 동시에 자신을 지속적으로 자연에 예 속시키는 것을 뛰어넘어 자기 스스로의 덕 virt us 과 기술 ars 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형성해 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인간의 자기 가 치는 바로 이 형성에 쏟는 정력이 얼마나 크냐 작으냐에 달려 있다. 이렇게 하여 보빌루스의 사변적 형이상학 체계 외에도 그와 동일한 토대를 지닌 완벽한 윤리학 체계가 성립하게 되었다. 존재가 있음, 삶, 느낌, 앎의 단계로 나누어지듯 인간은 자신의 의지에 의해 이 모 28) De sapi en te , VI.

든 단계들을 두루 통과할 수도 있고 또는 단 한 단계에 머물러 만족 할 수도 있댜 예를 들어 인간은 중세적인 용어로 < 아케디아 ace di a > 에 해당하는 나태의 죄악에 빠지면 아무런 형식도 지니지 못하며 동 시에 존재에 대한 아무런 의식도 지니지 못한 단순한 존재의 상태로 추락한다 . 반면 인간은 자기 인식을 토대로 우주에 대한 인식을 얻는 최상의 경지에 이룰 수도 있다 . 29) 이때 이 두 방면의 인식, 즉 자기 인식과 우주에 대한 인식은 서로 상대편을 전제로 하였을 때에만 달 성될 수 있다. 이 두 인식은 서로 다른 대립 과정으로 보이지만 실제 로 자아는 단지 세계에 대해 골몰하고 그것을 완전히 자신에게 끌여 들여 그것의 형식과 그것이 지닌 여러 <종>들 전체를 음미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음미 과정은 단순한 수동적 성 과이며 기억에 의존한 것에 불과한 듯하지만, 실은 지성의 모든 능력 들, 즉 관조와 반성을 포함하고 있댜 이렇듯 <대우주 ma j or mundus > 는 < 소우주 mino r mundus> 를 통해 그 진상이 밝혀 진다. 우주는 삼라만상을 포괄하지만 이 삼라만상을 아는 것은 바로 인간인 것이다. 우주는 인간을 한 부분으로서 품지만 인간은 그 우주의 원리 를 파악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우주와의 관계에서 가장 큰 것으로 불 릴 수도 있고 가장 작은 것으로 불릴 수도 있다. Mundus maxima substa ntia, sci en ti a nullus. Homo scien ta amp liss im u s, substa ntia pu sill us . Ute rq u e sta t in utr oqu e; ute rqu e utr ius qu e capa x . Hom inis eni m substa ntia versatu r in mundo, mund i vero scie n ti a in hom ine. Mundus substa ntilis mundus est, homo ratio n a lis mundus. Qunta in mundo subta ntiar urn disc retio qu nta qu e 29) 위의 책, I., II.

rerum differi tas, tantum in hom ine rati on um disc ri me n. In utr oqu e sunt om nia, in qu oli be t qu oc llibe t et in utr ou e nihil. In hom ine substa ntia nulla: in mundo rati o itide m et concep tio nulla. Vacuus ute rq u e est et ple nus ute rq u e . Inop s rerum homo: rati on um dive s est. Mundus vero rerum ple nus, inanis ratio n u m. (우주는 가장 거대한 실체인 반면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데 비해, 인 간은 광활한 지식을 가지지만 미미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각자는 서로를 포괄하며 공히 위대하다. 우주의 실체들은 인간을 통해 사고되며 인간의 지식은 우주를 반영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가 실체적 의미의 우주라면 인간은 지성적인 우주라 할 것이다. 우주에 만재한 실체들이 다양한 만 큼 인간의 지성도 다양한 양상을 띤다 . 그안에는 모든 것이 존재한다고 할 수도 있고 아무 것도 없다고 할 수도 있다. 인간 안에는 아무런 실체 도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우주 안에서는 그 어떠한 지성이나 인식 작용 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양자는 비어 있는 동시에 충만해 있다. 인간은 보잘것 없는 존재이지만 충만한 지성을 지닌 반면 , 우주는 충만 해 있지만 아무런 지성 활동도 하지 않는 것이다 .) 30 1 <실체성 Subs tan z ialitat>과 <주관성 Sub j e kti v itat>의 대 립, < 즉자 적 존재 An-S i ch - Se i n> 와 <대자적 존재 F tir -S i ch-Se i n > 의 대 립을 이처럼 극명하게 드러낸 말은 다시 없을 것이다 . 3 1 ) 30) 위의 책, XIX. 31) XXIV 장과 비 교하라 .

exq u ir it a sin g ulis qu e sua sunt, abstr ahit a qu a libe t mund i substa n ti a pro p rie spe c ie i ato m um. Illarn sib i vend ica t atq u e ins eri t et ex plu r ium spe c ie r um ato m is suarn elic i t pro fe r t qu e spe ciem , qu e natu ralis et primi nostr i hom inis fruc tu s seu accq uisi tu s stu d i os usve homo nuncup a tu r. Hee itaqu e hom inis est consumatio : cum ad hunc modum ex substa ntiali scili ce t hom ine rati on alem, ex natu rali acqu isit u m et ex sim plici comp o sit um , per f ec t um , stu d ios um.>

< 자연>인과 <만들어진> 인간 헤겔과 마찬가지로 보빌루스는 이러한 대립은 한층 더 높은 사변적 종합에 의해 극복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자연>적 인간, 단순한 인간 은 이제 < 만들어진 > 인간, 즉 homo-homo 가 되어야만 한댜 이러한 차이는 그 필연성을 인식함으로써 이미 극복된다 . 이 두 단계를 뛰어 넘으면 궁극적이고 가장 높은 단계인 homo-homo-homo 의 삼위일체 가 나타난댜 32) 이 삼위일체 속에서는 힘과 행위, 자연과 자유, 존재와

32) De sap. X 지 I

un ion em et concordi ar n. ltaq u e sap ien ti a qu edarn est trina hom ini s sump tio, hom inis trinitas, human itas tryas . Est eni m trini t as tot i us perfec ti on is emula, cum sin e trinitate nulla rep eritur perfec ti o. >

의식간의 대립이 일시에 파악되고 지양된다. 그리하여 인간은 더 이 상 삼라만상의 한 부분이 아닌 그것의 눈이자 거울로 나타나게 되며 이 거울은 사물의 상을 밖에서 얻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속에서 이루어 낸댜 331

33) (de sap. 26장). 이 문장은 역사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바, 르네상스 철학에서 소우주 모티프가 겪는 독특한 <변 화상>을 함축하고 있다 . 이 모티프는 보빌루스뿐만 아니라 피코와 쿠자누스에게 있어서도 인간과 세계의 단일성뿐만 아니라 바로 그 단일성이 내포하는 대옹과 대립의 관계, 다시 말해 <주관>과 <대상>의 상극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라이프니츠적인 단자론의 시발점에 이른다 . 단자 Monade 역시 그 속성과 본질상-세계를 완벽하게 드러내며 그것의 <생동감 넘치는 거울>

이 되고자_―-현상의 세계와 구분된다 .

사상을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구상적 내지 상징 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르네상스 철학의 본질적 특성이다. 고대의 프 로메테우스 신화는 이러한 맥락에서 새롭게 부각되어 사상적으로 재 해석되기에 이른다 . 프로메테우스 주제는 고대 철학이 꾸준히 다루어 온 신화적 소재로서 플라톤은 그의 대화편 프로타고라스에서 이 신화 의 우의적인 해석을 시도하였으며 플로티누스를 바롯한 신플라톤주의 자도 마찬가지의 시도를 하였다. 또한 이 주제는 기독교의 아담 Adam 주제와 때로는 융합하고 때로는 대결하면서 그 차이를 토대로 내적인 변화를 겪게 되었다. 부르다흐 Burdach 는 아담의 주제가 전개 된 과정을 세세히 ' 추적하여 그 주제가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얼마나 풍부하고 진취적으로 변모하였는지를 보여주고 있 댜 성경에 준하고 교회의 견해에 따른 최초의 인간 형태는 이제 폴 라톤적 내지 아우구스티누스적인 사상, 그리고 신플라톤주의적인 사 상의 혼합에 의해 새로운 의미를 띠게 되었다. 죽 인간의 시조는 이 제 정신적인 인간, 즉 < 호모 스피리투알리스 homo s pirit u ali s> 의 화 신으로서, 쇄신과 재생, 그리고 인간 회복을 목표로 하는 당시의 모든 사상적 사조들의 집결체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34) 이와 같은 변화는 영 문학사에 등장하는 윌리 엄 랭 랜드 Wi lliam Lan g land 의 시 r 촌놈 피 어스 Pie r s the Plowman 」 라든가, 독문학사에 등장하는 요하네스 폰 자즈 Joh annes von Saaz 의 1400 년경 작품인 「농부와 죽음 사이 의 대화」 등에 잘 반영되어 있다. 부르다흐가 독일 당대 시예술의 백 미라고 칭송한 이 대화는 그 구성과 언어의 위력면에서 이미 새로이 발흥하는 사상적 토대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확정된 이론이 아닌 시 의 형식을 띠지만 명백히 새로운 사상의 입김에 휩싸여 있다. 당시의

34) Burdach, Refo r mati on , Renais s ance, Humanis m us, 171 쪽 이하와 비교 .

사상은 이처럼 시의 형식을 빌려 전개됨으로써 스콜라적 형식으로부 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댜 즉 문제를 제시하고 해결하는 추상적 철학 적 고찰의 형태가 아니라 자신의 근원과 세계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 을 제시하는 삶 자체의 형식을 취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단지 변증 술적인 것에 지나지 않던 일체의 대립 개념이 이제 구체적으로 연극 에서의 상대 배역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프로메테우스 주제 이 대화편은 우리에게 대립의 해결이 아닌 대립 자체를 제시한다. 농부의 죽음, 죽 파괴적인 운명의 힘과 그것에 저항하는 인간 정신 사이의 싸움은 좀처럼 결말이 나지를 않는다. 대화편 마지막에 신은 죽음에게 승리를 부여하고 저항자, 즉 농부에게는 저항에 대한 명예 를 부여하는 판결을 내린다. <전쟁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너희들은 아주 잘 싸웠다. 그러므로 싸움에 임한 이에게 나는 진실을 밝히노라. 저항자에게는 명예를! 죽음에게는 승리를 !> 35 ) 그러나 죽음의 승리는 그것의 몰락을 의미할 뿐인데, 그것은 죽음의 물리적 힘은 승인되었 으되 정신적 힘은 꺾였기 때문이다. 생명의 파괴, 즉 신이 죽음에게 파괴를 허락하는 상황은 결코 생명이 무효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 냐하면 생명은 비록 그 존재 측면에서 파괴되었지만 자기 자신과 세 계를 향해 자유로운 인간이 이루어 놓은 가치는 여전히 파괴할 수 없 는 것으로 남기 때문이다. 인간성에 대한 이러한 신뢰는 이미 인간성 의 부활에 대한 확신을 의미한다. 시가 지닌 우의적 형식은 여기서 35) Der Ackermann aus Bohmen, Bem t와 Burdach 편집, Berlin 1917, (Vom Mi ttela lte r zur Refo r matio n Forschung e n zur Gesch der deuts c hen Bi/ d ung III, I) XXXI 끄장 (85 쪽)

가벼운 베일과도 같은 효과를 띤 것으로, 우리는 그 너머에서 그러한 예술적 형식과 사상 전개상의 위대한 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장차 다가올 르네상스의 기본 정서를 명확하게 목 격한다. 인간은 신의 가장 자유로운 창조물인 고로 가장 완벽하고 훌 륭하다고 칭송한 항변은――」부르다흐가 간파하였듯이-두 세대 후 피코가 행한 인간 존엄성에 대한 연설과 동일한 사상을 포함한다. <천사, 악마, 숲의 정령, 마녀 등등은 모두 영험한 존재임에 틀림없 댜 그러나 인간은 신이 만든 가장 고귀하고 오묘하며 자유로운 작품 이다 > 36) 더 나아가 이 항변은 기독교 교의의 비관적 성향을 단호히 거부하고 인간의 능력, 그리고 신이 의도한 인간의 선한 속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 등, 그 펠라기우수스적 요소로 인해 37) 얼마 후 독일 철학 을 통해 개념적으로 정립되고 정당화된 바로 그러한 사상의 시발을 이룬다고 할 것이다. 이 시의 작가는 아담의 죄에서 유래하였으며 신 의 저주로 천명되어 버린 저 인간의 타락, 즉 모든 인간이 탄생과 함 께 짊어지는 업보를 부정하고 나서는데 얼마 후 쿠자누스 역시 거의 같은 표현을 통해 그것에 반대하고 나선다. Omnis vis ilia qua e se esse cog no sc it ab op timi, op time se esse cog no scit . Ornne id, qu od est, quies cit in spe cifica natu ra sua , ut in op tima ab op tima . Datu m igitur natu rale qua lecu mque in om ni eo quo d est, est op timum. .. de sursum igitur est ab om nipoten ti a infinita. (자기가 가장 훌륭한 존재에서 유래함을 인식하는 저 위대한 영혼의 능력은 자신이 가장 훌륭하다는 것울 인식한다. 모든 존재자는 가장 훌 륭한 것에서 유래하는 가장 훌륭한 본성인바 각자의 고유한 본성 속에 36) Ackermann aus Bohmen, XXV 장, 58 쪽; Burdach 의 주해서 323 쪽. 37) Burdach, 위의 책. 315 쪽.

서 유유히 활동한다. 따라서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건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통틀어 가장 훌륭한 자연 적 재능은 전능한 무한한 존재에게서 유 래한댜 ) 38) 이제 우리는 어떻게 아담의 주제가 곧장 프로메테우스 주제에로 전 환될 수 있었든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 사실 이러한 전환을 이루 는 데는 사상의 내용적 변화 대신 강조점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족하 다. 인간은 피조물이지만 창조주로부터 창조의 능력 자체가 부여되었 다는 점에서 다른 피조물과 구별된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근원적 능 력을 발휘함으로써만 자신의 사명을 달성하며 자신의 존재를 완성한 다 . 인간을 만드는 예술가인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신화는 중세 사상 에서도 익숙한 것이어서 테르툴리안 Te rt u lli an 이나 락탄쯔 Lac ta nz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의 작품에도 등장한다 . 그러나 중세 사상은 이 신화를 해석함에 대체로 부정적인 경향을 띠어서 그것을 단지 성서적 인 창조 주제에 대한 이교적인 개작쯤으로밖에는 보지 않았다. 그리 고 그들이 그 모든 곡해에 대항하여 엄격하게 정립시키고자 한 것은 역시 성서적 주제였다 . 기독교 신앙이 용인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진 정한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이 아닌 유일신뿐이었다 . <우주를 창조하시 고 흙에서 인간울 만들어 내신 신만이 진정한 프로메테우스이다 . Deus un icu s • qui un ive rsa cond idit, qui hom ine m de humo stu xit, hie est verus Prom 따 eus.> 39 i 그러나 보카치오가 『신들의 38) Cusanus, De dato patris lumi nu m, I 장 (Op . fol. 284 이하) ; 이 책 63 쪽 주 52 를 참조하라. 39) 프로메테우스 모티프의 확립 과정, 특히 Lac ta nz 와

시각 예술에 수용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하비히 Georg Hab i ch 의 Ober 2 Prometh e us - Bi ld er ang e bli ch von Fie r o di Cosim o, Sit un g s ber. d Baye r . Akad. d. Wi ss .: P h ilos . -p hilol. Klasse, 1920 을 참조하라.

기원 Genealog i a deorum 』에서 프로메테우스 전설을 에우헤메로스 Euhemeros 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창조를 두 단계로 구분한 것은 이미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음을 시사한다. 여기서 창조의 첫 단계는 인간 으로 하여금 존재를 띠게 하는 것이며 두번째 단계는 이 존재에 정신 적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자연에서 유래한 조야하고 무 지한 인간은 단지 새로운 창조 행위를 통해서만 자신을 완성시킬 수 있댜 첫번째 창조가 인간에게 물질적 실재를 부여했다면 두번째 창 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의 독특한 형상이 갖추어지게 되는 것이 댜 프로메테우스는 여기서 인간적인 문화 영웅이며 지식과 정치 내 지 도덕적 질서의 담지자이자 그러한 것들을 통해 인간을 본격적으로 <개혁 > 하는, 즉 그들에게 새로운 형식과 본질을 부여하는 존재로 등 장한다 . 40 )

40) Boccaccio , De ge neolog ia Deorum, Lib . IV, IV.

르네상스 시기의 프로메테우스 주제의 변화 그러나 르네상스 철학은 위와 같은 해석도 뛰어넘어 결국 형성의 전과정이 개별 주체의 활동에 달려있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리 하여 개인의 행위는 창조주의 행위, 구세주의 행위에 못지 않은 의미

를 부여받게 되었댜 < 기독교적 플라톤주의 > 의 사상적 세계에도 이 러한 기본 견해는 수용되어 피치노에게서조차 때때로 이 영웅적 개인 주의가 발견된다 . 죽, 그 역시 인간을 창조주의 노예가 아닌 , 창조주 의 작품을 완성하고 개선하는 한 경쟁자로 본 것이다 . 그는 이러한 맥락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humanae artes fab ri ca nt per se ips as qu aecumq u e fab ri ca t ips a natu ra, qu asi non serv i sim u s natr ae, sed aemu li. (인간은 자연의 시종이 아닌 경쟁자로서 자신과 자연을 조성해 나간 다 . ) 4 1) 우리는 위에서 이러한 사상이 보빌루스에 의해 보강되는 경위를 살 41) Fic i n u s, Theolog ia Plato n ic a XIII, 3; fol. 295. 피치노의 개념 이 내포하고 있는 긴장은 그가 이 개념을 설명함에 한동안은 중세 적 인 어원론적 입장을 취하여 humus 와 연결시키는가 하면 (homo dici t ur ab humo Ep ist o l . I, fol. 641) 다른 곳에서는 그러한 경향을 분명히 배격하는 데에 있다 . : <(huma nitatem ) cave ne qu ando conte m as forte exis t i ma ns human itatem hu mi nata m. Est en im humanit as ips a pra esta n ti corp o re ny m p h a, coelesti orgi ne nata Aeth e reo ante alias dilec ta Deo.> (Ep ist. Lib . V., f ol. 805) 우 리는 여기서도 그가 세기 초에 농부와 죽음 간의 대화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이 율배반을 경험한다. (특히 Ackermann aus Bohmen 의 XMV 와 XXV 을 보라.) 부르다흐의 주석서 (310, 317 쪽)는 이 대화문의 직접, 혹은 간접적인 근거로서 이노센쯔 3 세의 De conte m p tu mundi siv e de mi se ra condit ion is humanae 를 들고 있다 . 이러한 견해를 인정할 때, 우리는 다시 한번 르네상스 시대의 종 교적 사상 영역과 철학적, 인문주의적 사상 영역이 얼마나 밀접하게 얽혀있었는 지 확인하게 된다 . Gia n nozzo Mane tti는 자신의 소논문 De dignitate et excellenti a hom inis (1 452) 에서 위의 글을 비판하고 나섰는데 이 마네띠의 소 논문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피치노의 <인간성 Human i沮t> 개념에 대한 변론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 (더 자세한 것은 젠틸레의 위의 책 153 쪽 이하와 이 책 125 쪽을 참조하라)

펴보았다. 그 또한 De sap i en t e 에서 프로메테우스 전설을 도입하여 자신의 자연 철학과 형이상학에 걸맞게 해석하고 변형시킨다 . 그의 형이상학이 모든 존재를 존재 Esse, 삶 V i vere, 느낌 Senti re, 앎 In t e llig ere 의 기본 도식에 따라 네 단계로 나누는 것은, 그의 전 이론 을 지배하는 우의적 유희, 즉 우주의 원소 중 흙은 첫번째, 물은 두번 째, 공기는 세번째 단계이며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하는 불은 <이 성 > 에 대한 우의이자 화신이라는 저 우의적 유희에 상응하는 것이다. 그것은 스토아적인 기본 사상이, 신플라톤적 기원을 지니며 후에는 르네상스 자연 철학, 특히 파트리치에 의해 다시 한번 체계적으로 부 홍되게 되는 일종의 < 빛의 형이상학 > 과 결합하게 되었음을 의미한 댜 ,12) 또한 보빌루스에게 있어 프로메테우스 주제는 자연 철학과 정신 철학의 가교 역할을 담당한다. 현인은 지상의 인간으로부터 천상의 인간을, 잠재적 인간으로부터 실재적 인간을, 자연에서 지성을 산출하 는 행위를 통해, 생명의 근원인 불을 신으로부터 훔치고자 하늘로 오 르는 프로메테우스를 모방한다. 죽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한 창조자이 며 장인이다 . 단순한 < 자연>인은 의부의 힘에 종속되어 있고 그것에 대해서 영원히 빚을 지고 있는 반면, 현인은 스스로를 만둘어가고 소 유한다 우 그러므로 <자연>인과 <만들어진> 인간 사이의, 즉 <제 l 42) 파뜨리찌, Pancosmi a, Lib . IV (Nova de univ e rsis Phil o sop h ia , Ferrar iae 1591, IV, fol. 73 쪽 이하) 43)

ac figulinw n hom ine rn (qu ern fixe rar prius ) anima vi t. Ita et sapi en s vi conte m p la ti on i s sensib i le m mundwn linq u ens pen etr an squ e in reg iam celi concept um ibi d e m lucid iss im w n sapi en ti e ign ern immo rt ali menti s grem io in inferior a repo rtat eaqu e sin c era ac vege ti ss im a flam rna natu ralis ips iu s tellur eusve homo viret , fov etu r, anima tu r. Sapi en s natu re munera stu dios o hom ine conpe n sat, sei ps wn ins upe r acqu isiv it seg u e pos sid e t ac suus mq n el Insip ien s vero ... m anet perpes natu re debit or, substa ntiali hom ine oberatu s et nunq u am suus.> Bov illus , De sap ien te , Cap. VIll.

인간 primu s homo > 와 < 제 2 인간 secundus homo > 사이의 시간적인 선후 관계는 가치면에서는 그 서열이 뒤바뀐다고 할 수 있다 . 즉 시 간적으로 후에 생긴 것이 가치면에서는 우위인 것이다. 왜냐하면 인 간은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사명을 결정하며 一 ~피코가 말했듯――-자 기 자신의 자유로운 형성자가 됨으로써 (sui ips iu s qu asi arbit rarius honorar ius qu e pla ste s et fictor ) 비로소 자신의 사명을 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르다노 부르노 역시 초기의 종교적 성향을 탈피하고 의 식적으로 거부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그에게는 자아의 자기 주장에 서 비롯되는 영웅적 열정만이 의미를 지니게 된다. 설령 자아가 인간 적 파악 능력으로는 절대로 다다를 수 없는 초월적인 것을 인정한다 해도 결코 그 초감각적인 것을 단순한 축복의 산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인간성과 자율성 물론 그것을 선물로서 받아들이는 이는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신적 인 것의 인식에 도달하려고 애쓰는 이에 비해 실제로 더 큰 것을 지 닐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외적인 선물은 스스로의 노력과 행위가 지 니는 독특한 가치에 결코 버금갈 수 없다. 즉 인간은 하나의 그릇이

나 단순한 도구로서가 아닌 예술가이자 유효한 원인의 자격으로 신적 인 것을 파악하여야만 한다. 그래서 부르노는 단지 신앙적 차원의 수 용자와, 자기 자신에게서 신적인 것에로 상승하려는 충동과 의지, 즉, < 이성적 충동i m p e rt o ra ti onale > 을 소유한 자를 구분했다. gli prirni hanno piu dign ata , p otes ta et eff ica cia in se, per che hanno la divin ita; gli scond i son essi piu deg ni, piu poten ti et eff ica ci, et son divin i. G li prirni son degn i come i'as in o che porta li sacramenti: gli scond i come ina cosa sacra. Nell i prirni si consid e ra et vede in eff et t o la divi n a ta et qu ella s'adr nira, adora et obed isc e, neg li second i si consid e ra et vede l'ec cellenza della pro p ria human itad e. (첫번째 부류는 존엄과 권능과 효율을 소유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 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두번째 부류는 존엄하고 권능스러우며 효율적이 다. 그리고 신성하다. 첫번째 부류는 성스런 몸을 등에 지고가는 나귀처 럼 신성하지만 두번째 부류는 그 자체가 성스런 몸이다. 첫번째 부류의 사람들에게서 우리는 신성을 발견하며 그것을 경배하고 기린다. 두번째 부류의 사람들에게서 우리는 인간성 hu manitas 그 자체의 탁월성을 보 고 떠올린다.) 섞 ) 부르노의 대화편 『영웅적 열정에 관하여 Deg li eroid furo ri.』에 나 오는 윗 구절을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의 De docta ign oran ti a 에 나오 는 인간성 huma nita s 의 개념과 관련시 켜 보면, 15 세기와 16 세기 에 걸 쳐 일어난 사상적 변화의 전모가 드러난다. 쿠자누스는 인간성 44) Bruno, De gli heroic i f uro ri, Dial . III; Ope r e ital., Lag ar de 편집, 641 쪽 ..

human itas 개념을 종교적 사상의 영역에로 영입시키려 했을 뿐 아니 라, 기독교 교리의 완성이자 실현이라고 보았다. 그리하여 인간성 개 념은 그리스도의 개념과 혼연일체를 이루게 된다. 그러나 철학적 사 변이 진행될수록 그러한 연관은 느슨해져 결국에는 해체되기에 이른 댜 조르다노 부르노의 글에는 그러한 해체 과정에 박차를 가한 원동 력이 그 특유의 단호한 어조로 드러나 있다 . 이제 인간성 개념은 자 율의 개념을 내포하게 되었으며 이 자율 개념이 중요해짐에 따라, 한 때 인간성 개념을 종교적으로 해석하려 했던 쿠자누스나 피렌체 아카 데미의 시도는 좌절되고 말았다. 2 지금까지 우리는 르네상스의 종교 사상 내에서 자유라는 문제가 점 점 중요하게 대두되는 경위를 살펴보았다. 이와 같은 사실은 신학적 교의가 그 기반을 상실하게 됨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교의의 주창자 들은 다름아닌 르네상스 철학의 대가인 동시에 철학적 종교적인 권위 자들이었으므로 그러한 과정은 자연히 우여곡절을 겪을 수밖에 없었 다. 페트라르카는 아우구스티누스를 홈모하여, 그를 수많은 고대 인물 들 중 특별히 지목하여 <발군(拔群)의 위인>이라고 칭하였다 . 45 ) 아우 구스티누스에게서 <기독교적 플라톤주의자>의 모범을 찾은 피렌체 아카데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을 통해 우리는 당시에 극복되어야만 했던 기독교적 저항이 얼마나 만만찮은 것이었 던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자유라는 이념에 승리를 안겨주기 위해서 45) Petr ar ca, De secreto cort /lictu curarum suarum, Praefa t i o.

는 그와 같은 저항에 대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였다. 그와 같은 승 리를 얻기 위해서는 당시 르네상스 사상을 단단히 얽어매고 있던 또 하나의 세력을 타파하여야만 했다. 라이프니츠는 자신의 변신론에서 세 가지 형 태의 운명에 대해 논하면서 < 기독교적 운명 Fatu rn Ch rist e n tu r n> < 이슬람적 운명 Fatu r n Mahurneta n urn> <스토아적 운명 Fatu rn S t o i curn > 을 대비시켰댜 이 개념들이 뜻하는 세 가지 사유 방식은 전 르네상스 시기를 통해 모두 만만찮은 세력을 떨쳤다. 즉 기독교적 세력 못지 않게, 이교적 내지 아라비아적인 출처를 지닌 점성학적 사상 체계가 유력한 세력을 형성하였던 것이다. 중세의 기 독교적 전통이나 교의에 대항하는 데 고대가 동원되었지만 이 새로운 적 앞에서는 고대의 철학조차 무력할 수밖에 없었으며, 오히려 그것 의 기승을 부추기는 역할만을 하였는데 그 이유는 르네상스 시기에는 희랍철학의 < 고전 > 기에 이르는 방법이 차단되어 있어서 헬레니즘적 으로 변모된 고대 철학밖에는 접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르네상스 는 플라톤 사상 역시 신플라톤주의위 매개를 통해 짐작할 뿐이었다. 따라서 고대의 개념적 세계 못지 않게 고대의 신화적 체계 또한 부흥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조르다노 부르노의 철학적 사유 에서 조차 신화적 체계는 완전히 극복되지 못한 채 곳곳에서 철학적 사유에 개입된다. 이러한 결과는 개념적 사유가 아닌 예술가적 감성 이나 격정을 통해 자아와 세계, 개인과 우주 사이의 관계 정립을 꾀 할 때 특히 강하게 나타났다. 이러한 경향이 르네상스 시기에 점차 독자적으로 대담하게 대두됨에 따라 점성학 체계에 대한 중세적 저항 둘은 점차 쇠퇴하게 되었다. 물론 기독교적 중세도 점성학 체계를 완 전히 거부하거나 배격하지는 않았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의 점성학 대체로 중세에는 고대적 내지 이교적인 사상들이 묵인되고 발전되 는 가운데 점성학 체계 또한 대체로 허용되는 편이었으며 해묵은 신 들의 형태 또한 계속 유지되는 형편이었다. 단 그것들은 격이 낮은 귀신이나 정령들의 지위로 격하되었다. 인간에게는 귀신 공포층이라 는 원시적 정서가 기승을 부리지만 이제 그것은 유일신의 전능에 관 한 믿음을 통해 다스려지고 제한되게 되었다. 이 유일신의 의지에 대 해서는 그 어떠한 저항 세력도 용납될 수 없었다 . 그러므로 소위 중 세의 <지식>, 특히 의학이나 자연과학 등이 전적으로 점성학적 요소 로 점철된 반면, 중세적 신앙은 부단히 그것을 제한하는 수단을 제시 하였다. 그러나 중세 신앙은 결코 그와 같은 점성학적 요소를 부정하 거나 말살하지 않고 단지 신적인 예지에 비해 하위에 두었을 따름이 었다. 이 하위적인 지위 덕택에 점성학은 세속적 지식의 원리로서 계 속 머무를 수 있었다. 단테조차 그것을 수용하여 심지어 Conv i v i o 에 서는 점성학 체계에 따라 지식의 체계를 제시한다. 즉 일곱 개의 위 성에 3 학 T ri v i um 과 4 예 Q ua dri um 로 이뤄진 일곱 학문 분야를 대옹 시켜 달의 영역에는 문법을, 수성에는 변증술을, 금성에는 수사학을, 태양에는 산술을, 화성에는 음악을, 목성에는 기하학을, 그리고 토성 에는 천문학을 배당한 것이다 . 46) 인문주의 진영 역시 처음에는 점성학 에 대해 이렇다 할 특별한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페트라르카는 여전 히 기독교적인 입장을 고수하여 점성학에 대해서도 그가 그렇게 즐겨 인용한 아우구스티누스의 태도에 전적으로 준하였다.,fl) 살루타티는 젊 46) Dante , Conviv io , trat t ato secondo, Cap. XIV. 47) Petr ar ca, Ep ist. rerum fam i liar i um ill, 8 (더 자세한 것은 Vo igt의 Wi ed erbel. des klass. Al tert . 2. I, 73 이하)

은 시절에는 점성학적 운명론에 심취하였으나 후기의 저술 『 운명과 포르투나에 관해 De Jato et fo r t una 』 에서는 그것을 극복하여 단호히 거부하게 되었다. 그에 의하면 천체들은 독자적인 힘을 가진 것이 아 니라 하느님이 쓰시는 연장에 불과하다 . 481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세 속적 사상과 교양이 출몰함으로써 점성학적 이론에 집착하려는 경향 이 짙어지게 되었댜 그리하여 다른 측면에서는 그렇게 균형잡히고 안정된 삶을 누렸던 피치노조차 점성학에 대해서만큼은 사상적 , 도덕 적으로 이중적인 견해를 취함으로써 불안과 내적 긴장을 감내할 수밖 에 없게 되었다 . 그 또한 기독교적 관점에 따라 설령 천체가 인간의 몸에 대해서는 영향력을 지녔다손 치더라도 그의 정신과 의지에 대해 서는 강제력을 행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 49 1 그리하여 그는 점성학적 수단을 써서 미래를 점치려는 시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공박하였다.

48) 더 자세한 것은 살루타티의 글 De Jat o et for tu n a (1396) 와 A. v. Ma rtin, Colucci o Saluta t i und dos humanis t is c he Lebensid e al, Leip z ig , Berlin 1916, 69 쪽 이하, 283 쪽 이하 를 참조하라 . 49) 피치노가 카발칸티 Cavalcan ti에게 보내는 서신, Ep isto l . Lib . I., Op , fol. 633. tu n e eni m vim suam fortun a exp le bit in

si dilige nti us rem ips am consid e ramus, non tam fatis ips is , qu am fatius fator um assert or i bu s ag imu r. (사물을 정확히 파악하려거든 운명에 이끌리기보다는 그것의 개척자 로서 행동하라 .) 50)

50) Fic ino , Ep isto l . Lib . IV, fol. 781 .

그러나 그의 이러한 이론적 확신도 그의 삶의 정서 를 바꾸지는 못 하였다. 삶에 대한 그의 기본 정서는 여전히 별의 위력에 대한 믿음, 특히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와 자신을 지배하는 저 불길한 토성에 대한 믿음으로 꽉 차있다 언 이처럼 그와 같은 현인조차도 감히 자신 을 지배하는 별의 위력으로부터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단지 그 위력 을 좋은 쪽으로 유도하여 좋은 영향은 살리고 해로운 것은 피하고자 시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에 의하면 인생을 가꾸는 것은 바로 이처 럼 지정된 한계 내에서 통일성과 완벽성을 이뤄내는 능력을 의미한 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 한계만은 극복될 수 없고 극 복하여서도 안되는 것이다. De vit a coeli tus comp a randa (천계에 비견 되는 삶)라는 부제가 붙은 『삼중의 생 De tripli ci v ita 』 이라는 저서에서 그는 별에 의해 결정된 숙명과 영향에 맞추어 세부까지 완 벽하게 규정된 처세술을 제시하였다 . 521 이상을 통해 우리는 르네상스 적인 새로운 삶의 정서와 인간성의 이념 내지 이상이 관철되는 데에 두 가지의 세력이 걸림돌로 작용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자아를 해방시키려는 노력에 대하여 이 두 가지 요소는 일종의 필연적인 방 해 요소였다 . 즉 한편에서는 <축복의 위력 reg n um g ra ti ae> 이, 다른 한편에서는 <자연의 힘 reg n um na tur ae> 이 자아로부터 인정과 굴복 을 강요하고 나선다. 결국 전자의 의미가 퇴색하게 됨에 따라 후자가 더욱 기승을 부리며 독자적인 정당성을 고집하기에 이르렀다. 초월적 인 구속 대신 내재적인 구속이, 죽 종교적, 신학적인 구속 대신 자연 의 구속이 문제가 되기에 이르렀다. 51) 피치노가 카발칸티에게 보낸 서신 ; Ep ist. Lib .I II, fol. 731, 732. 52) 피치노의 De vita trip/i d 와 그의 접성학에 대한 입장에 관해서는 특히 Panofs k y - Sa x!, Di ire rs Melancolia I (Stu d . der Bib i. Warburg Nr. II) Leip z ig , Berlin 1923, 32 쪽 이 하를 참조하라 .

근대적 자연 개념의 성립에 작용한 점성학의 의미 그런데 이러한 자연의 구속은 정복되기가 더더욱 힘드는데 그것은 르네상스의 자연 개념이 궁극적으로 르네상스적인 정신 개념과 인간 개념을 성립시킨 것과 동일한 사상적 토대를 지녔으므로 이제 그러한 토대에 대해 반성한다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한계룰 설정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죽 스콜라 철학과 중세적 교의에 대항한 투쟁이 외부 를 향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내적인 투쟁이 요구되게 된 것이다. 이 투쟁은 실로 어렵고 인내가 요구되는 과정이었다. 사실 15 세기에 성립하여 16 세가, 더 나아가 17 세기 초에까지 계속 유지된 르네상스 의 자연 철학은 인과관계에 대한 마술적 점성학적 견해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댜 자연을 <고유한 원리에 따라 jwcta pro p ria princ ip ia> 파악한다는 것은 .바로 그 자연에 원칙적으로 것들여 있는 힘에 대해 해명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천체의 운행만큼 그 힘을 뚜렷이 드러내며 용이하게 포괄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우리는 여기에서 우주의 내적인 법칙, 죽 모든 개별 사 건까지 포괄하는 일반적인 법칙을 읽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 다. 그러므로 점성학과 마술은 르네상스 시기에 있어 <근대적> 자연 개념에 상치되기는커녕 오히려 그 개념의 가장 유력한 담당자였다. 즉 점성학과 새로운 경험적 자연 <과학>은 서로 동격인 동시에 내용 적인 연합을 이루어 갔다. 이제 우리는 구체적인 한 사상가를 통해 이러한 연합이 전개된 양상을 살펴보도록 하자. 카르다노 Cardano 같 은 이의 자서전에 드러나는 그와 같은 연합의 형태를 관찰해 보면 그 것이 그의 삶과 이론적 견해, 더 나아가 실천적 국면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연관은 코페르니 쿠스와 갈릴레이에 이르러서야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그러나 이 해

소조차도 결코 단순히 < 사유 > 에 대한 <경 험 > 의 승리, 즉 < 사변 > 에 대한 계산과 측정의 승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한 해소 과정에 는 우선 사유 방식 자체의 변화가 요구되었으며 자연 파악에 대한 새 로운 논리의 형성이 요구되었다 . 르네상스 철학의 커다란 체계적 맥 락을 파악하려면 우선 이러한 논리의 형성 과정을 추적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결과 자체보다도 그것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온통 공상적 미신의 혼미함으로 점철된 것으로 서, 우리는 부르노나 캄파넬라 같은 사상가에게서조차 신화와 과학, <마술>과 <철학> 사이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음을 확인하게 되지만, 반면 그러면 그럴수록 두 분야 사이의 느리고 꾸준한 < 대결 > 을 통한 그와 같은 사상적 운동의 역동성 역시 절실히 통감하게 된다. 그러나 사상들의 연대적인 순서가 곧 체계적 완성도를 의미하고 반 영한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 이 경우에는 특정 목표를 향하여 진행되 는 지속적인 <진보> 개념은 결코 적절하지 않은 대신 낡은 것과 새 것이 장시간에 걸쳐 병존하였으며 지속적으로 서로를 넘나들었다. 그 러므로 여기서는 그와 같은 어수선함 속에서도 몇몇 개별적인 사상의 모티프가 점점 뚜렷해져 특정한 유형적 형태로 등장하게 되었다는 의 미로밖에는 <발전>에 대해서 논할 수 없다. 이러한 유형들의 형성 과정은 시간적 내지 경험적 추이와 결코 맞물리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의 사상적, 내적 과정을 겪는다. 우리는 우선 점성학적 세계관을 극복 함에 있어 상이한 두 단계를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이 세계관의 내 용에 대한 부인이며, 다른 하나는 그 내용을 새로운 형식으로 치장함 으로써 그것에 새로운 방법적 정초를 제공하려는 시도이다. 후자와 같은 시도는, 현상에 직접 의거하지 않고 아리스토텔레스 내지 스콜 라적 자연 개념을 매개로 현상을 관찰하여 그것을 이 개념 체계에 끼 워 맞추려는 자연 관찰 방식에 전형적으로 드러난다. 그로 인해 몇몇

중세적 체계, 특히 아베로이스주의에서 그 선례가 발견되는 일종의 스콜라적 점성학, 또는 점성학적 스콜라 철학이라 할 만한 기묘한 혼 합물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와 같은 사유 유형은 폼포나찌의 『 자연의 경이로운 인과 작용 또는 주술에 관하여 De natu r aliu m ejfec tu m admi ra ndorum causis siv e de i ncan ta ti on i bus 』 (1520) 에 독특하게 기술되어 있댜 이 저술은 언뜻 보기에 고대와 중세에 횡행했던 미신 의 편람에 지나지 않는 듯하다 . 죽 여기에는 수많은 종류의 부적과 기적 현상,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점복술과 마술 따위가 소개되어 유 형별로 분류되어 있댜 폼포나찌는 이 마법에 관한 기록에서 단지 몇 몇 경우에 대해서만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태도를 취할 뿐, 전체적으 로 그 진리와 신빙성에 관해 결코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는 그 와 같은 미신의 진리성은 철학적 비판가들조차 수긍할 수밖에 없는 < 경험 > 을 통해 보장된다고 주장한다. 폼포나찌의 기적 신앙에 관한 점성학적 비판 그러므로 설령 어떤 현상이 아무리 기괴하고 믿을 수 없다 해도, 관찰 결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보다는 그 관찰 내용을 <수호해야 만>하는 이론으로서는, 그 결과의 사실성, 죽 <어떠함>에 대해서는 논박할 수 없으며 오히려 그 <어떠함>에 대해 <왜>라는 물음에 대 한 답, 죽 현상에 대한 <원인>을 찾아내야만 한다. 이러한 원인을 발 견하는 것은 현상들에게서 드러나는 개별성을 지양하고 불가사의한 듯 보이는 일체의 개별적 결과를 법칙성 일반의 일반적 형식으로 환 원시킴으로써 가능하다. 그런데 폼포나찌는 그러한 형식은 바로 천체 의 작용과 점성학적 인과관계에서 드러난다고 보았던 것이다. 죽 그 에 의하면 점성학적 인과관계는 모든 자연 현상에 관한 설명을 가능

케 하는 요건 바로 그것이다 . 그러므로 점성학적 방법을 통해 존재와 생성의 최종적 원인과 결부되지 않는 한, 그 어떠한 사태도 결코 완 벽하게 파악되었다고 할 수 없댜 지상에 대한 천체의 작용을 통해 해명되지 않는 자연 현상이란 원칙적으로 있을 수 없다. 폼포나찌에 의하면 독특한 <기적>조차 천체 작용의 결과로 규명될 수 있는 것이 다. 그는 소위 마술적 효과나 마술 현상, 해몽, 손금 읽기, 강신술 등 도 바로 천체의 위력을 통해 해명되어야 한다고 곳곳에서 주장하였 다. 민간신앙은 그러한 현상들을 단지 어떤 인격체적인 힘의 방출과 의지 행위로서 이해하는 반면 이론가는 자연 법칙을 임의로 설명하는 그와 같은 전제들을 척결해야만 한다. 그에게는 개별적 사건들간의 법칙성을 압도하는 귀신의 직접적인 간섭이나 신적인 관여는 성립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에 의하면 세계에 대한 신의 작용조차도 천체라 는 매개를 통해서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 천체는 신적 의지의 표지일 뿐 아니라 그것의 진정하고 필수 불가결한 수단적 원인이다 .53) 우리가 과연 모든 개별 사실에 대해 그와 같은 점성학적 원인을 규명 할 수 있는지, 또 그 원인을 빈틈없이 추적해낼 수 있는지는 의문이 지만, 그러한 원인의 연속성이 존재하며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일단은 족하댜 54) 철학적 오성은 여하한 경우에도 그와 같 53) Pomp on azzi, De natu r aliu m ejfe ct u u m admi ra ndorum causis seu de ina znta tion ib u s. Cap. X, Basel 판 1567, 122 쪽 이 하. 54)

... Eff ec tu s inf e r i or imme di ate non fit a Deo supe r nos, sed tantum me dian ti bu s eju s ministr is. Omn ia eni m Deus ordi na t et disp o nit ordi na te et suavi ter !eg em q u e aete m am rebus ind . id.it qu am pra ete rire impos sobil ie est. > 위의 책. 131, 134 쪽; Cap. 12, 223 쪽 둥을 참조하라.

은 요청을 저버려서는 안 되며, 점성학적 인과관계의 수단을 간과하 거나 그 연구를 미리 중단해 버리는 그 어떠한 설명 방식도 용납해서 는 안 된댜 왜냐하면 근본 원리에 대한 단 하나의 예외 를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자연 질서는 이미 그 내적인 안정성을 잃기 때문이다. 만 일 천사나 악마가 천체와 관계없이 자연적 대상과 인간 세상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천체의 의미와 필연성은 물론 이 우주 전체를 채우는 그것의 작용 따위란 더 이상 성립될 수 없을 것이다 프 결국 우리는 그의 주장을 통해 점성학의 독특한 형태와 토대는, 미래로 눈 울 돌려 그 비밀을 캐보려는 욕구도 아니며 경험적 관찰이나 수학적 이론도 아닌 , 단지 점성학의 형식을 우리 자연 인식에 유일하게 적합 한 것으로서 선험적으로 연역하려는 논리임을 알 수 있다. 현대적인 ­ 표현을 쓰 자면 점성 학적 인과관계는 < 자연 파악의 가능 조건 Bed. in- gu ng der Beg re if lich keit der Natu r> 인 것 이 다. 이 렇듯 폼포나찌 에 게 있어 점성학적 인과관계는 결코 미신에로의 비약이 아니며 오히려 그것으로부터의 유일한 구제책이자 자연 법칙의 타당성을 수호하는 유일한 근거이다. 우리는 여기서――-언뜻 보기에 역설적이게도­ 철두철미 <합리적인> 점성학을 목격한다. 죽 과학적 이성의 절대적 우위를 지키기 위해 지상 만물에 대한 천체들의 절대적인 지배가 천 명된 것이다. 폼포나찌는 자신의 여타 저서들에서도 위의 목표를 밝 힌다. 그는 <신앙> 대신 <지식>을 확립하고자 하였으며 초월적인 설명보다는 순수하게 <내재적인imm anen t> 설명을 추구하였다. 영

55) 위 의 책, Cap. X, 142 쪽; Cap. 13, 299 쪽 둥을 참조하라.

혼의 불멸성이나 내세에 대한 믿음과는 별도로, 고유한 토대에서 출 발하여 이성의 원천적인 확실성으로부터 연역하고자 했던 그의 윤리 학도 바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또 <영혼>과 <정 신> 사이의 이원적 대립을 거부하고 가장 고도의 정신적인 작용조차 감각과의 유기적인 관련, 즉 신체 기능과의 관련 속에서 이해되어야 함을 역설한 그의 심리학도 그와 같은 맥락을 띤 것이다. <점성학적 인과관계>의 근본 성격 폼포나찌가 자신의 글 『영혼의 불멸성에 대하여 De im morta li ta te an i m i』에서 보여준 윤리학과 심리학적 내용은 이제 『주술에 관하여』 에서 자연 철학적으로 적용되기에 이른다. 그의 자연 철학은 그 어떠 한 <마술적> 효과라도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고 일어날 수 있는 것인 이상 자연의 단일한 내적 인과관계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함을 규명코 자 한다. 자연 그 자체에는 범상한 것이나 비범한 것이 없다. 단지 그 러한 구별을 하는 것은 우리의 파악 능력이 지니는 한계에 연원한다. 언뜻 보아 내적 인과관계의 범위를 넘는 듯한 것도 자세히 살펴보면 결국 그 범위 내에서 설명이 되며 우연적이고 개별적인 것은 필연적 이고 일반적인 것으로 전환된다. 여기서 우리는 점성학적 세계관의 승리를 목격하는 듯 하지만 좀더 정확히 살펴보면 이 세계관 자체도 이미 나름대로 해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점성학은―-―바르부르 그가 역사적으로 밝혔듯이_―-원래 사상적으로 이중적이다. 이론으 로서의 점성학은 냉정하고 명확한 성격을 띤 것으로, 전 우주에 대한 영원한 법칙을 제시하고자 하지만 그것의 실천적 적용은 귀신 공포증 의 한 징표로서 <종교 유발의 가장 초보적인 단계>를 의미한다 .56) 폼 포나찌의 저술 『주술에 관하여』의 사상사적 의미는, 그것이 비록 여

56) A. Warburg, Heid nisc h- an ti ke Weis s ag u ng in Wort und Bil d zu Luth e rs Zeite n , Sit zu ng sb er. der Heid e lberg. Akad. d. Wi ss ensch. Ph ilos -hi st. K.las se, 1919 년. 24, 70 쪽 .

전히 점성학적 세계관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그러한 점성 학적 세계 안에서 속수무책으로 얽혀있던 위의 두 계기를 처음으로 날카롭게 의식적으로 구분하였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언뜻 보기에 홉사 기적 신앙의 산실 같은 이 저술은 실은 진정한 비판적 사유 작 업을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천체 신앙에 드러나는 단순히 < 미 개한 > 악마적인 요소는 척결되고 그 대신 예의를 인정하지 않는, 단 일한 영구 불변의 법칙을 추구하는 사상이 남게 되었다. 즉 믿음에 기초한 < 영험적 > 인과관계는 과학적인 인과관계에 자리를 내주고 말 게 된 것이다 . SI) 그러나 폼포나찌에게는 아직 수학적 자연과학 개념은 없었으므로 그 과학적 인과관계라는 것도 아직은 전통적인 점성학의 한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 그러나 이 제한이 한번 무너져 점성학 적 원인 개념이 수학적 내지 물리학적인 것으로 대체되기만 하면 그 러한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이라는 것은 이제 명약관화한 사실 이 되었다. 그러므로 폼포나찌의 그 야릇하고 난해한 작품은 아주 간 접적인 의미일지언정 방법적 측면에서 자연 현상에 대한 새로운 엄밀 과학적 태도를 수립하는 데 일조하였다고 볼 수 있다.

57) 여기서 <철학적 (페리파토스 학파적)> 원인 개념과 <종교적> 원인 개념을 비 교해 볼 필요가 있다. De inc anta t, Cap. X, 198 쪽, Cap. XIII, 306 쪽 이 하를 참 조할 것 또한 더 글라스 Dou g las 의 The ph il o soph y and psych olog y of Pi et r o Pom p onaz 각, Cambri dg e 1910. 'l7 0 쪽 이하를 참조할 것.

그러나 이러한 성과는 또다른 결과를 초래하였다. 즉 폼포나찌에 의한 엄격한 자연주의에로의 전향은 자연주의적 세계관이 모든 정신 적 삶의 영역까지 독점적으로 지배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죽 어떠한 제한이나 한계도 용납됨이 없이 유일하고 명백한 인과관계가

성립되어야 한다는 요청이 제기되는 것이다. 인과관계의 유일성은 우 리가 <자연>이라고 부르는 일반적 한계 영역을 벗어나는 또 다른 영 역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이러한 원칙에 의하면 우리가 자유로 운 생성과 창조적 생산의 영역이라고 여겨온 일체의 정신적 활동도, 현상계 전체의 질서와 연관을 설명하는 것과 동일한 포괄적 법칙에로 환원되지 않는 한 옳게 파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폼포나찌의 말을 빌리면 그것은 바로 점성학적 인과관계가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원리 일 뿐 아니라 역사에 대한 구성 원리임을 의미한다. 일체의 자연적인 존재나 생성과 마찬가지로 모든 역사적 진행은 별들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 역사는 천체에서 최초의 동인을 얻으며 천체에 의해 모든 추이가 결정된다. 이러한 사상은 특히 그의 종교사에 과격한 형태로 적용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적용이 폼포나찌 홀로만의 발상은 아 니었다. 그가 그 적용을 통해 드러낸 것은 단지 오래전부터 점성학적 체계에 의해 유도되었던 하나의 귀결이었다. 점성학을 신뢰하는 견해 중에는 자연의 형태뿐 아니라 종교 형태도 천체의 운행에 따라 각 <시대>별로 융성기와 쇠퇴기를 가진다는 견해가 있다. 그에 따르면 유태의 신앙은 목성과 토성의 상합, 바빌론의 신앙은 목성과 화성의 상합, 이집트의 신앙은 목성과 태양의 상합, 이슬람적 신앙은 목성과 금성의 상합으로 드러난다. 점성학적 역사 철학 이러한 점성학적 역사 구성은 기독교에 대해서조차 감행되어 1327 년 체꼬 다스꼴리 Cecco d'Asco li는 그리스도의 운명을 그가 출생할 당시 별의 위치로 점치려다 화형에 처해지고 말았다. 부르크하르트는 이러한 시도들이 <일체의 초감각적인 것에 대한 그럴듯한 왜곡>울

초래하였다고 간파하였다 . 58) 그와 같은 결과는 특히 폼포나찌의 작품 에 가장 의식적으로 반영되어, 그는 자연 법칙의 자족성과 자율성을 좀더 뚜렷하고 선명하게 부각시키기 위해서 바로 그와 같은 < 왜곡 > 을 적극적으로 감행하고 나섰다. 그리하여 그는 가장 극단에로까지 이 이론을 전개하여 유례없이 과격하고 대담한 형태의 결론을 이끌어 냈다. 죽 그에 의하면 천체의 운행은 그 내적 필연성에 따라 < 신들의 세력 판도 변화 > 까지도 야기한다. 사실 그와 같은 주제는 전적으로 < 비합리적이며 > 자연적인 인과관계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역에 속한 다 . 종교란 그 토대를 계시나 그것의 공표자들인 예언자들이 지닌 직 접적인 영감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그러나 여기서 폼포나 찌의 독특한 방법론이 또 다시 동원된다. 즉 그는 결코 계시를 부정 하지 않았으나 그 계시조차 자연의 일반적 진행과 법칙에로 수용되어 야한다고 역설했다 . 신적인 것은 하계에 대해 결코 직접적으로 영향 력을 행사하지 않고 단지 특정한 매개 수단을 써서 작용한다는 기본 원칙은 바로 이런 점에서 계속 견지되어야만 한다. 모든 종교 형태의 생성 또한 그것이 경험적, 시간적인 생성인 한 그와 같은 매개 수단 에 종속되어 있다. 즉 종교적 창시자의 주창도 그에게 천성적인 <본 성>이 있음울 전제로 하며 또 그러한 주창이 효력을 발생하기 위해 서는 계속 특정한 조건이 주어져야만 한다. 이와 같은 자연적 상황을 요약하여 그 최종적인 단일 근거를 규명해 보면, 그것은 결국 천체의 힘에로 귀결된다 . 모든 정신적 존재와 사건은 결국 별자리에 의해 좌 우되며 예술가나 시인뿐 아니라 종교적인 선지자, 예언자들을 탄생시 키는 원인이 된다. 그러므로 외부적인 힘, 즉 신적이거나 영험적인 <신들림> 같은 개념은 경계되어야만 한다. 물론 신은 모든 사건의 58) 부르크하르트, Kult ur der Renais s ance, II, 243.

근원이자 예언자적 영감의 근원이지만 이 영감조차도 천체의 배열로 대표되는 우주적 정황에 순종한다. 예언자의 능력을 고무하고 그 성 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것도 천체의 배열인 것이다 S!J) 그러므로 그 어 떠한 신앙 형태도 시대를 초월한 영원한 진리임을 주장할 수 없고 단 지 시대에 의해 규정되고 시대에 종속되어 있음을 드러낼 뿐이다. 신 앙도 다른 모든 자연적 존재들과 마찬가지로 피었다 시들고, 일시적 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하는 것이다. 희랍적인 이교 신앙만 해도 한때 그 신들이 세상을 지배하였으며 이교 신앙에서 우러난 기도와 탄원이 모두 이뤄진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유태교와 이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댜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강림 못지 않게 모세와 마호메트의 탄생도 하나의 <기적 > 으로 예견되었으며 확신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징후나 전조는 절대적 의미의 기적도 아 니며 자연에 반하거나 자연의 질서에서 벗어난 현상은 더더욱 아니 다. 우리가 여기서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간격을 두고 반복되 는 드물고 비범한 현상으로 이 세상의 위대한 정신적 움직임과 관련 을 맺는 사건을 의미한다. 그것은 한 신앙이 쇠퇴하여 한층 더 위력 있는 다른 신앙 형태에 압도되고 이윽고 이 새로운 신앙이 발흥하게 될 때 가장 뚜렷이 드러난다. 이처럼 특정 신들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59) Pomp om azzi, De inc anta t., Cap. 12, 230 쪽 이 하.

그 신들의 언표나 예견, 신탁에 이르기까지 별들에 의해 정해진 나름 대로의 최적 시기가 있는 것이다. neq u e en im sig n um vel scri ptur a, vel vox hoc ex se fac ere po ssunt, sed vir tut e corp oru m coelesti um hoc fit fav enti um tali leg isl ato r i bu s et eju s stig m ati bu s … Nam veluti nunc orati on es fac ta e valent ad mult a, sic tem p ore illor um deorum hy mni dict i in eorum laudem pro fi cie b ant tun e: pro fi cie b ant aute m , q떠 a tune sid e ra illis fav ebant, nunc vero non fav ent, qu on iam pro p itia sunt ist i s qui nunc sunt. (그것들은 스스로 상징적으로 표현하지도, 글씨를 쓰지도, 말을 하지 도 못한댜 그들의 권세나 그들의 노예상태는 오직 행운을 가져다 주는 천체들의 도움으로 이루어진다. …. .. 요즈음 이루어지고 있는 연설이 여 러 가지 것들에 대해 힘을 발휘하듯이 저 신들의 시대에는 천체들의 송 가들이 신을 찬양하는데 사용되곤 했다. 이처럼 천체들의 송가가 사용되 었던 것은 말하자면 그 당시에는 천체들이 그들 편에 서 있었기 때문이 다. 그런데 오늘날은 연설들이 현재 생존하는 자들을 위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천체들은 더 이상 그들의 편에 서 있지 않다.)田) 폼포나찌에 의하면 기독교 또한 이 생성과 소멸의 영역에서 벗어나 지 않는다. 우리는 기독교 내에서조차 영원한 상태보다는 다른 여타 의 곳에 적용되는 성립과 붕괴의 규칙이 적용됨을 확인한다. 폼포나 찌는 더 나아가 대담하게도 그 당시의 별자리가 기독교 신앙이 조만 간 붕괴할 것을 예시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그에게 있어서는 한 60) 같은 책 . , Cap. 12, '2Z1쪽 이 하.

때 이교적 신들과 이교적 숭배를 척결한 저 십자가 표지에도 결코 무 제한의 능력과 효험이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 세상의 자연적인 것이 모두 그러하듯 정신적인 것도 일단 생겨난 이상 그 종말 역시 기정 사실로 정해지는 것이댜 6 1)

61) (Ibid . Cap. 12, 286 쪽.)

<신들의 세력 판도 변화> 폼포나찌의 저술에는 르네상스 철학이 해결해야만 하는 일반적인 문제와 그 철학이 내적으로 극복해야만 하는 모순이 제시되어 있다. 르네상스 철학에서는 새로운 자연 개념과 새로운 인간 개념의 성립이 급선무였다. 그러나 이 양자 사이에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왜냐하 • 면 그것들은 서로 다를 뿐 아니라 서로 대립되는 경향을 배태하고 있 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명확하고 날카롭게 규명하면 할수록 양자 사이의 대립은 점점 더 명료히 드러난다.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자유의 세계는 항상 하나의 신바요, 기적이다. 이러한 기적은 르 네상스적인 자연 개념의 독특한 의미가 침해되지 않고서는 인정될 수 없다. 르네상스 자연 개념의 독특한 의미는, 자연은 통일되고 유일한 체계로 설명될 수 있다는 점에 근거한 것으로, 그와 같은 방법적 일 원론은 일단 그 어떠한 존재론적 이원론도 용납하지 않는 듯하다. 위 와 같은 자연관에 입각해 볼 때는 정신적, 역사적 세계도 결코 자연

계와 별도로 존재하는 < 자치국 > 의 형태를 떨 수 없으며 오로지 자연 계로 수용되어 그 법칙으로 환원될 수 있어야만 한다 . 그러나 이러한 환원은 르네상스적인 인식 개념의 차원에서는 불가피한 것이지만 르 네상스적인 삶의 정서에는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폼포나찌의 글 『주술에 관하여 』 가 위와 같은 논리의 극단적인 예라면 점성학에 대항한 피코의 논박문은 그러한 논리에 대한 극단적인 저항의 예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양극적인 대립 사이에서 균형과 중재를 이뤄보려는 시도도 왕왕 있었다. 그것은 르네상스 철학의 한 모티프 인 < 소우주 > 모티프만 보더라도 금방 입증된다. 우리는 여기서 르네 상스적 자연 개념과 < 인간성 hurnanit as > 개념이 만나 교류하는 중 간 영역을 발견한다. 자연에 대한 상징 내지 화신인 인간은 자연과 구별되는 것 못지 않게 또한 그것과 연관을 맺는다. 죽 인간은 자연 과 동화되지는 않더라도 자연을 자신 속에 포괄할 수 있다. 또 인간 은 자연의 모든 능력을 지녔으며 더 나아가 독특한 새 능력, 죽 <의 식적 > 능력까지 더불어 갖고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출발하여 점성 학적 사상계에도 내적인 변화의 기운이 움트게 되었다. 점성학적 세 계관은 소우주 사상과 오래전부터 연관되어 있었음은 물론, 바로 그 소우주 사상의 명백한 귀결이자 적용이다. 피치노는 『삼중의 생 De vit a trip l ici』에서 우주는 결코 죽은 원소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생명 을 지닌 존재이며, 그 속에는 결코 전체와 떨어져 독립적으로 존재하 는 단순한 <부분들> 따위란 있을 수 없다는 사상을 필두로 자신의 점성학 체계를 서술하고 있다. 피상적으로 보아 우주의 부분들로 간 주되는 것들은 좀더 면밀히 파악해 보면 사실 우주의 생명 연관 속에 서 독특한 위치와 필수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하나의 기관이다 . 우주 적 작용 연관의 단위는 그와 같은 다양한 기관들로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분화 현상은 전체에 대한 부분의 특수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

니라 전체에 대한 다양한 표현 , 자기 현시의 다양한 국면을 의미할 뿐이다. 이와 같은 우주의 완결성 concordi a mun di은 그와 같은 개별 세력간의 상호 융합과 그 세력간의 특정한 계서적 질서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불가능한 것이다 . 우주의 작용은 특정 형태 를 띠고 있을 뿐 만 아니라 일관된 특정 방향을 띤댜 즉 그것은 위에서 아래로, 예지 계에서 감각계로 펼쳐져 있는 것이다 . 드높은 천상의 영역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넘쳐 흐르는 힘에 의해 지상의 존재는 유지되고 더 나아 가 늘 새롭게 열매맺는다. 그러나 고리타분한 후기 헬레니즘 마술이 나 점성학의 고전인 피카트릭스 P i catrix에 입각해서 피력한 피치노의 위와 같은 유출설적 물리학 형태는 62)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그 토 대가 혼들리게 되었다. 왜냐하면 콰트로첸토의 철학적 사유에 의해 우주의 층계 구조에 대한 단호한 비판이 일어 결국 그것의 견고한 토 대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에 의해 시작된 새로운 우주관에 의하면 절대적인 <위 > 와 < 아래 > 란 있을 수 없으며 따라서 그 작용면에서도 명백한 방향성이란 더 이상 있을 수 없다. 이제 우 주 유기체 사상은 한 걸음 더 발전하여 우주의 모든 요소가 한결같이 전체에 대한 중심이 될 수 있다는 데로 발전하게 된다 . (28 쪽 참조) 소우주 모티프―파라셀수스 그리하여 지금까지 지상과 천상 사이에 설정되어 온 일방적인 구속 관계는 이제 점점 완벽한 평형 관계의 양상을 띠게 됨으로써, 아직 점성학의 일반적 전제가 남아 있는 영역에서조차 그 사상적 유형이나 62) P i ca trix에 대해서는 리터의 Pic a tr ix, ein arabis c hes Handbuch hellenis tisc her Mag ie, Vort r. der Bil b. Warburg I. (19 21/22), 94 쪽을 참조하 라.

토대 차원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독일의 경우, 이러한 변화를 가 장 잘 반영한 것은 파라셀수스의 자연 철학이었다. 물론 < 대 > 우주와 < 소 > 우주 사이의 관련이나 양자간의 일관된 상관성이라는 착상은 그 에게서도 여전히 유지된다. 파라셀수스에 있어 그러한 사상은 모든 약리학의 전제인 것이다. 그에 있어 철학은 < 시약술의 제 1 근거 > 이 며 천문학은 < 또 다른 근거 > 인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 다. < 우선 의사는 철학적인 천문학을 통해 인간의 또 다른 반쪽을 이 해하여야 하며 그 체계를 통해 인간과 천계를 연결시킬 수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는 결코 사람에 대해 의술을 펼 수 없는데 그 이유인즉, 천계는 인간의 또 다른 측면으로 질병의 태반이 그 속 에서 관장되기 때문이댜 이와 같은 태반의 질병을 이해하지 않고서 어떻게 의사 노릇을 한다는 말인가? …… 의사가 의당 알고 있어야 할 천문지에서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면 그가 과연 의사라고 할 수 있겠는가. ……모든 인식은 천문지에서 유래하며 그것이 없이는 그 어떤 것도 불가능하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론적 약리학의 주 된 관심인 우주와 인간 사이의 조화는 이제 더 이상 단순한 종속 관 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 서로 똑같이 닮은 쌍둥이 중에서 누가 애초 에 상대로 하여금 닮도록 마련된 기준이었을까? 아마 그 누구라고 단 언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들 중 누구를 가리켜 목 성의 아이라는 둥 화성의 아이라는 둥 하는 것은 우리가 그것들과 쌍 둥이와 같은 관계를 맺고 있음을 의미한다.> 만일 이와 같은 유사 관 계를 인과 관계로 전환시키려면 <외적> 측면보다는 <내적> 측면을, 즉 존재의 양상보다는 <성향 > 을 부각시키면 될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인간이 화성을 닮았다는 말 대신 화성이 인간을 닮았다는 말이 지당 하게 된댜 <왜냐하면 인간은 화성을 비롯한 별 따위에 비길 수 없기 때문이다 . > 63) 우리는 여기서 점성학이 자연에 대해 취하였던 사상에

서와 비슷한, 근본적으로 새롭고 낯선 계기가 개입됨을 알 수 있다. 즉 순수하게 안과적인 파악 방식은 이제 목적론적 파악 방식으로 변 모했으며 그로 인해 소우주와 대우주 사이의 관련에 관한 모든 견해 들이 내용적으로는 보존되었으되 외형적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그 것은 점성학적 운명론에 맞서 인간의 윤리적 자의식이 대두되게 되었 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미 파라셀수스의 약리학과 자연 철학의 외 적 구성에서 그러한 독특한 혼합 · 형태를 엿볼 수 있다. 파라셀수스는 그의 『핵심서 Buch Para gr anum 』에서 철학, 천문학, 연금술 외에도 <덕 V irtu s> 을 가리켜 의학의 <네 기둥>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그 는 <네번째 기둥은 덕인즉, 이것은 의사가 죽을 때까지 명심할 바이 댜 왜냐하면 그것은 다른 세 기둥을 아우르고 지탱하기 때문이다.>어) 라고 쓰고 있다. 이처럼 르네상스 철학의 소우주 사상은 하나의 질적 전환 µITMa .al ~ lL~ illo rs vo~(meta b asis eis allo ge nos), 즉 물리학 에서 윤리학에로의 전이를 허락하며, 더 나아가 그것을 적극적으로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이제 소우주 사상이 생리학과 심리학뿐 아니라 윤리학과도 연관됨을 입증한다. 이 사상은 더 나아가 인간의 자아는 우주를 통해 인식되지만 진정한 우주 인식은 자기 인식이라는 매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생각도 포함한다. 파라셀수스에 있어서 도 이 두 가지 요청은 밀접한 관계를 띤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단지 <네 가지 원소로 이뤄진, 거울 속의 초상>에 지나지 않으며 <거울 속의 본질에 대하여, 그것이 죽은 초상화처럼 존재하는 한 아무도 그 가 누구인지 인식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아무 63) Theoph r ast v. Hohenheirn , 일 명 Paracelsus, mediz i n i s c he, natu r wi ss en- SC며 'tlic he und philo soph isc he Schr iften , Karl Sudhoff 편집, VII 권 (Mi inc hen 1924), 68 쪽 이하, 91 쪽 이하, 103 쪽 이하 둥을 참조하라. 64) Paracelsus, Das Buch Parag ran um, Sudhoff 판, 56 쪽.

것도 얻지 못한 채-단지 외적 지식을 통해一一 7 거울 속에 비친 모습만을 볼 뿐이댜 >651 그러나 이 < 죽은 초상 > 은 순수한 주관성의 능력과 인식 능력, 의지 능력을 지님으로 인해 새로운 의미를 띤 우 주의 핵이자 중심으로 등장하게 된다. < 그러므로 인간의 정신은 참으 로 위대하고 불가사의한 것이댜 그것은 세 가지 영원 불변한 존재인 신과 제 1 질료, 그리고 천계와 동일한 성격을 띤다. 인간은 바로 이 정신으로 말미암아 위대하다 . ……그러므로 우리가 인간의 정신을 파 악하면 이 지상에서 불가능한 것이란 있을 수 없다 .> 661 점성학적 세 계관이 팽배한 가운데에서도 이렇듯 인간의 지위를 격상시커려는 노 력은 현저하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파라셀수스의 이러한 사상도 사실 은_칭찬에 인색한 그조차 <이탈리아에서 가장 훌륭한 의사>라고 칭송해 마지 않던-피치노의 사상을 수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67 ) 피치노에 있어서의 점성학의 의미 그가 피치노에 대해 그처럼 높이 평가한 것은 전체 의학을 점성학 적 토대 위에 정립시키려고 했던 피치노의 『생에 관하여 de v ita 』라 는 저술에 기인한다. 이 저술에는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기질 전체를 결정한다는 천체의 광휘에 관한 이론이 특유의 원만한 어조로 전개되 어 있댜 물론 피치노도 인간은 출생의 순간부터 각자 <자신의> 별 과 연관되어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탄생좌에 속한 불길한 별이 자신과 자신의 삶 전체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끊임없이 65) Paracelsus, Buch Parag ra num, 72 쪽 66) Paracelsus, Lib e r de im ag ini b u s, Cap. XII 전집 , Joh . Huser 판, Basel 1589, IX, 389 이하 . 67) Ch rist o p h Clauser 에 보내는 서신, Huser 판 전집, VII 권 .

개탄하였댜 다른 이들은 목성 덕택에 인생의 즐거움과 안정을 누리 건만 < 토성 아래에서 태어난 > 그에게는 그와 같은 것이 허락되지 않 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점성학적 운명에 관한 피치노의 그와 같은 인 정이, 삶 자체에 대한 고유한 가치를 전적으로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 지는 않는다 . 그리하여 운명에 순종하는 무기력하고 비애스런 체념의 태도는 점점 자유로운 새 정서로 대체되게 된다. 인간은 결코 자신의 별이나 자신의 신체적 실천적 성향, 기질 등을 임의로 선택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별이 지정한 한도 내에서는 선택의 자유 를 누린다 . 왜냐하면 모든 별들은 그 나름의 영역에서 임의의 선택을 허용하는, 아주 다양하고 때로는 대조적이기까지 한 삶의 형태를 포 괄하기 때문이댜 예를 들어 토성은 나태함이나 자아 편집적인 공허 한 우울의 정령도 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지적인 관조나 침잠, 지 성과 사색의 수호신도 되는 것이다. 이제 점성학의 전 체계를 통해 그와 같은 별들의 모순성이 인정되고, 천명되기에 이르러 바야흐로 인간에 의한 자유로운 의사 결정이 인정되게 되었다. 죽 인간이 의지 를 발하여 관철시키는 데는 일정 한계가 설정되어 있지만 그 방향은 결코 확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별들이 무차별적으로 갖고 있는 여러 가능성 중 고상한 쪽을 택하느냐 비천한 쪽을 택하느냐, 또 정 신적인 것을 취하느냐 감각적인 것을 취하느냐에 따라 인생은 다양하 고, 더 나아가 서로 상반되기까지 한 양태를 띠게 되는 것이다 . 그러 므로 동일한 별이라 할지라도 인간이 취하는 내적인 태도에 따라 그 별은 친구가 되는가 하면 적도 되고, 복을 주는가 하면 재앙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토성은 천박한 삶을 사는 이들에 게는 적이지만 자신이 지닌 소질을 실현코자 노력하며 영혼을 바쳐 신적인 사색에 몰두하는 이들에게는 친구이자 보호자인 것이다. 피치 노는 이처럼 <별의 자식>이라는 착상 자체는 유지하지만, 별로부터

의 태생적인 기원 외에도 정신적인, 말하자면 < 선택 가능한 별의 자 식론 > 을 주장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어디까지나 어떤 특정 별 아래에서 태어나 그것의 지배 아래 삶을 영위하지만 그 별에 놓여 있는 가능성과 능력 중 어떤 것을 전개시키고 완성시킬 것인가는 전 적으로 그의 자유 의사에 달려 있다. 죽 인간은 자신에 대하여 쏟는 정신적인 취향이나 노력에 따라 어떤 때는 이 별의 영향을 받다가 또 어떤 때는 다른 별의 영향도 받다가 하는 것이다 . 68) 피치노는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의 신학적 체계와 점성학적 기본 이론을 접목시키려 하 였다 그는 만물을 지배하는 세 원리가 있다고 하면서 그것을 각각 예지 pro vid e nti a, 운명 fatum , 자연 na tur a 이라 불렀다. 예지는 정신 의 왕국을 의미하며 운명은 영혼의 왕국을, 자연은 육신의 왕국을 의 미한댜 육신은 자연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 합리적> 영혼 또한 몸 과 관련울 맺고 몸에 속한 원동력인 이상 육신의 영향을 받으며 육신 의 영역이 지닌 필연성에 속하지만, 인간의 순수한 정신적 원리는 그 와 같은 일체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인간의 <자 유>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위와 같은 세 가지 체계에 얽매어 있음에 도 불구하고 특정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스스로를 전환시킬 수 있다 는 바로 그 점을 의미한다. 우리의 정신은 예지에, 우리의 상상력과 감각은 운명에, 우리의 자연적 속성은 우주의 일반적인 자연적 속성 에 종속되어 있지만, 우리는 우리의 이성 덕택에 스스로에 대한 주인 nostr i juri s 일 수 있으며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취사 선택할 가능성 울 누린다.ffi) 피치노의 점성학 체계는 이런 맥락에서, 피코의 연설 68) 나는 여기서 피치노의 글 De vita trip li d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는 대신 파노 프스키와 작슬 S ax!의 Darers Melancolia I, 32 쪽을 참고하기를 권한다 . 이 책 부록 VI 에는 피치노 작품이 방대하게 제시되어 있다 . 69) Fic ino , Theolog ia Plato n ic a , Lib . XIII (fol. 289 이하):

rudenti bu s toti mach ina e coll iga mur, mente menti bu s, ido lo ido li s, natu r 'a natu r i s ... An ima per mente m est sup ra fatum, in solo pro vid e nti ae ordi ne tan q u am supe m a irnitan s et inf e rior a una cum illis gu bemans. lps a eni m tanqu am pro v ide nti ae partice ps ad divi n a e gu bematio n is exemp la r reg it se, domurn, civi ta tem , artes et animalia. Per ido lurn est in ordi ne fati_s irn iliter, non sub fato ... Per natu r am quide m corp u s est sub fato, ani ma in fato natu ram movet. Ita qu e mens supe r fatum in pro v ide nti a est, ido lurn in fato supe r natu ram, natu r a sub fato, sup ra corp u s .. S ic an ima in pro v ide nti ae , fati, natu rae leg ibu s non ut pat i en s modo ponitur , sed ut age ns ... Den iqu e fac ulta s ilia rati on a lis qu ae pro p rie est anima e verae natu ra, non est ad aliquid unurn dete rmina ta . Nam libe ro motu sursurn deorsumq u e vag a tu r ... Qu amobrem lice t per mente m .Pr ov ide nti ae , per ido lurn fato, per natu ram sin g u larem un ive rsae natu rae , tame n per rati on em nostr i juris sumus om nino et tanqu am soluti, modo has partes, modo illas secta mu r.>

『 인간의 존엄성에 관하여 』 를 탄생시킨 피렌체 아카데미의 사상적 조 류와 합치된다고 할 수 있댜 인간은 존재의 질서 내에서 자신의 선 택에 따라 그 위치가 정해진댜 즉 인간의 개인적인 특성은 궁극적으 로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며 이 선택은 그의 천성적 기질의 결과라 기보다는 그의 자유로운 행위의 결과인 것이다. 피코의 점성학 비판 그러나――-피치노가 그렇게 부단히 고심하였다고는 하지만-피 치노는 이 문제에 대해 완전한 해결책이 아닌, 하나의 타협만을 제시 하였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점성학에 대한 피코의 논박은 전적으로 새로운 국면을 가져와 그의 새로운 논박에 의해 점성학의 위력은 단 번에 무너지게 되었다. 피코가 그러한 성과를 올린 사실은 언뜻 아이 러니컬하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그의 이론 전체는-그것이 자연철 학이건 종교철학이건――-마술적인 은밀한 사유의 지배를 받기 때문

이다. 피코 철학의 시발을 이루었던 900 개의 테제 중에는 피코 스스 로도 은밀한 주술적 결론이라고 인정한 것이 71 개나 있다 . 70) 그러므로 위대한 점성학사가인 프란쯔 볼 Franz Boll 이, 날카로운 비판력 못지 않게 신플라톤적이며 신피타고라스적인 신비주의에 경도된 피코 같은 이중적 인물이 한편으로는 꾸준히 점성학적 신앙을 앙양하는 철학적 입장을 대변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그처럼 혹독하게 점성학을 공 격한 사실에 대해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 7 1 1 그러나 피코 저술의 사상적 특성을 고려해 보면 그와 같은 귀결은 결코 볼이 분석하듯, 외적인 충격, 죽 사보나롤라의 설교에 대한 전율적언 감동에 기인한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피코가 점성학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 한 것은-그의 자연관보다는 ― 一二 1 의 윤리적 견해에 기인한 것임 울 알아야 한댜 피코는 형이상학, 신학, 자연 철학 분야에서는 여전 히 과거에 집착하였던 반면 윤리학 분야에는 진정 르네상스 정신의 선구자이자 개척자라 할 만하다. 그의 저술은 이와 같은 윤리적 인간 상을 토대로 하여 점성학을 논박하고 있어 피코의 연설 <인간의 존 엄 > 에 흐르는 정신을 완벽하고 순수하게 드러난다. Ni hil mag n um in ter ra pra ete r hom ine m, nihil ma gn um m hom ine pra ete r mente m et an irnu m, hue si ascend. is, coelum tra scend is, si ad corp u s inc lin a s et coelum suspi ci s , muscam te vid e s et musca aliquid minu s. (이 지상에서 인간만큼 위대한 것은 없으며, 그 중에서도 인간의 정신 과 영혼만큼 위대한 것은 없다. 그러므로 그것에로 고양되는 것은 천상 을 뛰어넘는 것인 반면,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고 천상의 양태만을 쳐다 70) Joh Pic i Mi ra ndulae Conclusio n es DCCCC; Op era , fol. 63 이 하, lCJ l 이 하. 71) Fr. Boll, S te m g la ube und Ste m deutu ng, 2 판 . Lpz . 1919, 50 쪽 .

보는 것은 저급한 호기심에 빠지는 것이다 . ) T2) 이 구절을 통해 우리는 원래적인 플라톤적 주제가 다시금 활기를 띠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공간의 형식을 초월하기 때문에 더 이 상 공간적인 척도를 인정하지 않는 일종의 < 초월 > 이 요청되기에 이 른 것이다. 이 사상은 겉보기에는 아주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사실은 헬레니즘 전통의 신플라톤주의적인 세계관과 기독교적인 중세적 세계 관이 의존하고 있는 근본 전제들을 부인하는 내용을 함축한다. 이들 세계관은 내세에 대한 주제, 죽 플라톤적인 tnt u iv a(epe kein a 피안 , 내세)의 주제를 공간적이자 정신적인 것으로 수용하여 그 두 가지 의 미를 서로 섞어 놓는 특성을 지닌다. 피코는 다른 데에서는 신플라톤 적 경향과 더불어 혼합주의적 경향을 띠지만 여기에서만큼은 그러한 혼동에 대해 비판을 가해 날카로운 경계를 설정하는 데 성공한다 . 이 로 인해 고대 사상에 대한 평가가 더 풍부해지고 심오해지게 되었다 . 즉 플로티누스에서 출발하여 플라톤에로 이르며, 헬레니즘에서 출발 하여 고전적 희랍 정신을 회복하는 저 길고 험난한 길에 첫 발이 내 디뎌지게 된 것이다. 피코는 이미 자신의 글 첫 문장에서 점성학은 진정한 고전적 희랍 사상과는 아무 연관이 없음을 뚜렷이 강조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점성학에 대해 단 한 번의 언급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피코에 의하면 그들은 점성학에 대해 귀찮게 반박하느니 차라리 침묵함으로써 그것에 대한 자신들의 경멸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 73) 그는 이러한 역사적 중거 의에도 본격적 으로 중요한 체계적 증거들을 대기 시작했다. 여기서 피코는 자신의 기본 테제를 관철하기 위해 인식에 대한 비판을 감행하고 나선다. 죽 72) Pic o della Miva ndola. In astr olo g iam lib ri XII, Lib . III, Cap. 'l7, fol. 519. 73) Pic o , Jri astr olo g iam, Lib. I (fol. 415).

그는 수학적이고 물리학적인 인과관계의 형식을 점성학적인 인과관계 의 형식으로부터 해방시켜야만 했다. 후자는 은밀한 성격을 띠는 반 면 전자는 경험과 경험적 직관이 가르쳐 주는 것에 만족한다. 그에게 는 공감을 통하여 각 별들에 부속된 것을 조종하는 별들의 비밀스런 < 광휘 > 따위는 이제 더 이상 천상과 지상을 잇는 끈으로서의 의미를 지닐 수 없다. 이제 그와 같은 기괴한 허구 대신에 관찰에 의해 직접 주어지며 경험적으로 설득되고 증명되어질 수 있는 현상이 중요성을 띠게 되는 것이다. 인과 개념의 변화 피치노의 점성학적 물리학에서는 모든 것에 생기를 불어넣는 프노 이마가 천상과 지상을 잇는 별들의 광휘를 통해 전달됨으로써 일체 만물의 현상이 결정된다고 보았지만 피코는 이러한 설명을 내용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방법적인 측면에서 철저히 거부했다. 피코는 모 든 현상은 내재적인 원리로 (ex pro p riis princ ip iis) 파악되어야만 하며 가장 근접하고 개별적인 원인을 통해 파악되어야만 한다. 천체가 실 제로 효력을 발휘하는 삼라만상에 대한 원인은 그러므로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그것은 바로 빛과 열의 힘이라는 평범하고 구체적인 현 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그것만이 모든 천체의 작용 내용이며, 위치상 그렇게 멀리 떨어진 것들을 역동적으로 서로 연결시키는 계기 인 것이다 . 7 4 ) 피코의 이러한 주장은 언뜻 보기에 후에 텔레시오 74) In astr ol. Lib . ill, Cap. V (fol. 461): . 특히 Lib. ill, Cap. XIX (fol. 503) 과 비 교하라 .

disp o s it ion e... Qu are raro fal lunt, aerem scil ice t ex aere, sic u t med ici aegr u m ex aegr o pra eju d ica nte s , hoc est ex pro p riis, non qu od faciun t astr olo g i, ex remoti s et commun ibu s in un ive rsal ibu s, imo , quo d pejus est, fict i s ima gi nariis fab ulosis . >

Teles i o 나 파트리치에게서 발견되는 자연 철학과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 이론이 처한 맥락을 살펴보면 그 속에 훨씬 더 많 은 것이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댜 왜냐하면 여기에 제시된 내용은 바 로 케플러와 뉴턴이 떠올렸으며 그들의 귀납적 원리의 토대가 된 < 진정한 원인 vera causa> 개념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관 은 역사적으로도 그 증명이 가능하다 . 케플러는 자신의 첫번째 방법 론적 주저 인 Ap o log ie Ty chons 에 서 이 미 피 코와 그의 점 성 학에 대 한 저항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의 논리에 의하면 우리가 자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관념적으로 고안한 근거들은 결코 모두 옳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증명 가능하고 관찰과 측정을 통해 확인 가능할 때에 만 참된 것이다. 비록 피코는 이러한 원칙을 수학적 자연과학의 창시 자와 같이 명료하게 서술하지는 않았지만 항상 그것을 자신의 시금석 으로 삼았다. 그 덕분에 그는 사상 초유로 특정 장소는 일정한 힘을 갖는다는 가정을 부정하고 나설 수 있었다 . 장소는 물리학적 실재적 규정이 아닌 기하학적 관념적 규정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구체적인 물리적 작용이 유발될 수는 없는 것이다 . 75) 그러므로 점성학에서 실재 하는 것으로 오해되었으며 실재적인 힘을 지녔다고 간주된 것은 관념 적일 뿐만 아니라 허구에 불과하다. 점성학의 경우, 점성가가 방위를 파악코자 천구에 설정한 선이나 구획 같은 계산적 사유 장치는 그 자 체로 독특한 토대를 형성하여, 하나의 정령적인 힘을 지닌 존재 su i g ene ri로서 이해된댜 그러나 그러한 가상의 것들은, 우리가 그것이

75) In astr olo gi am, Lib. VI, Cap. 3, fol.-5 8 4 이하.

결코 존재론적 의미를 지닌 것이 아닌, 단지 표지적인 의미만을 지닌 것임을 깨달음으로써 곧장 소멸되어 버린다 . 물론 본격적인 자연 과 학도 점성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와 같은 표지나 기호를 통한 조 작 없이는 성립될 수 없다. 그러나 자연과학에 있어 기호란 독자적으 로 존재하는 것은 고사하고 결코 궁극적인 것이 아니며, 단지 사상의 한 매개 노릇을 수행할 뿐이다. 그것은 현상에 대한 감각적 파악에서 출발하여 그 원리를 캐는 사유적 파악에로 잇는 과정에 등장하는 한 단계일 뿐이다 . 이러한 단계는 그러나 막연한 대응이나 공간적, 시간 적으로 떨어져 있는 존재 요소들간의 단순한 유비적 관계 이상을 의 미한댜 진정한 인과적 관계에 대하여 말할 수 있으려면 우리는 우주 의 한 지점에서 개시된 연속적인 변화 추이를 차근차근히 추적할 수 있어야만 하며 이 모든 연속적인 변화를 관장하는 통일된 법칙을 수 립할 수 있어야만 한다. 우리가 천체의 작용에 대한 그와 같은 법칙 을 경험적으로 규명할 수 없다면, 그것을 미래의 사건을 알리는 기호 로 본다거나 그 기호를 풀어보려고 시도하는 것 따위도 헛수고에 불 과하다. 왜냐하면 천체는 단지 원인의 결과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 non po te s t coelum eju s rei sig n um esse, cuju s causa non sit . (천상은 사실의 징표일 뿐 원인이 될 수 없다 .) 761 이 결정적인 발언으로 피코는 단순한 점성학 비판에서 일보 진전하 여 점성학의 마술적 기호를 수학이나 수학적 자연과학의 지성적 기호 76) In astr o log. , Lib. IV, Cap . 12, fol. 543:

와 엄격히 구분하기에 이른다. 바야흐로 정신과 무관한 억지에 의해 서가 아니라 정신 스스로의 창조물을 상징하는 수학적 물리학적 상징 을 통해 <자연의 암호>를 푸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피코의 점성학 비판은 원래는 결코 그러한 논리적인 인식 비판적 숙고에서 연원한 것이 아니다. 그가 점성학에 반대하여 쓴 글 들에 혼을 불어넣은 열정은 그 근원을 따져 볼 때 사상적 열정이라기 보다는 윤리적 열정에 가깝다. 그는 항상 자신의 윤리적 유심론과 점 성학을 대비시켰다. 천재 개념 점성학을 인정한다는 것은 사물의 존재 체계에 앞서 사물의 가치 체계를 어지럽히는 일이며 <물질>이 <정신>을 지배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반발은 점성학의 근본 형식과 그것의 역사적 인 기원을 고려해 볼 때는 그 근거가 약하다. 왜냐하면 점성학에서의 천체란 기본적으로 결코 물질적 덩어리일 수 없으며 정신적인 원리나 지성에 의해 생명과 혼을 부여 받아 그 지성에 의해 움직여지는 것이 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운명이 천체에 종속되었다고 해서 인 간 존재가 물질적 원리에 묶여있다고 할 수는 없으며, 단지 모든 것 을 관장하는 예지적 능력의 계서에서 인간 존재에 대해 특정 위치가 결정됨을 의미한다. 피코의 연설 『인간의 존엄성에 관하여』에서 밝힌 자유 개념은 바로 이 점에서 문제가 된다. 이 자유 개념은 인간 정신 이 자연의 인과관계에 복종할 때는 물론이고, 자신이 아닌 다른 어떤 방식의 결정에 복종할 때에도 이미 손상되고 만다. 인간이 다른 자연 물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정신들의 왕국>, 죽 지성의 왕국에 대해서 조차 우위임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자신의 본질을 애초에 타고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유로운 결정에 따라 형성해 나간다는 데 있다. 이 형성은 < 물질적 > 인 것이든, < 정신적 > 인 것이든 간에 어떠한 외 부의 결정과도 무관하다. 피코는 인간의 순수한 창조력과 그 창조력 의 자율성에 대한 신봉, 즉 진정한 인본주의적 신조를 통해 점성학을 극복할 수 있었으며 , 더 나아가 자신의 테제는 결정적으로 점성학적 세계와 인간 문화의 세계를 대조함으로써 그 증명이 가능하다고 보았 다 . 인간의 문화는 우주적 힘의 창조물이 아니라 천재의 작품이다. 그 러나 천재에게는 < 비합리적 > 이면서 그 요소나 인과적 근원을 더 이 상 밝힐 수 없는 힘이 발견되므로, 우리는 천재를 인정함으로써 또 다시 인식의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그러나 이 한계는 신비적인 성격 을 띤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성격을 띤 것이므로 우리는 그 한계에 머물러 있어도 무방하다 . 우리는 그 한계에 접근함으로써 인간 존재 와 인간적 숙명이 지니는 범위를 가늠하게 된다 . 우리는 우리의 능력 으로 파악할 수 있는 한계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들 은 우리 자신의 본질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최종적 근거들을 그것보다 선행하는 다른 어떤 것에 관련시킨다거나 우주적안 힘이나 영향력 따위로 <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자기 기만에 지나지 않는댜 우리가 위대한 사상가나 정치가, 예술가의 위업에서 발견하고 기려야만 하는 것은 별의 힘이 아닌 인간의 힘인 것이다. 아리스토텔 레스나 알렉산더를 다른 동시대인들에 비해 탁월하게 만든 것, 그리 고 그들에게 의미와 힘을 부여한 것은 , 뛰어난 별이 아닌 뛰어난 <재 능 In g e ni um> 이었던 것이다. 이 재능은 별이나 물질적인 원인에 기 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정신적 존재의 원인이자 근원인 신으로부터 직접 유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신의 기적은 천계의 기적보다 더 위대하댜 따라서 정신의 기적을 천계의 기적으로 환원시키려는 시도 는 그것을 파악하기는커녕 부정하고 무시하는 처사이다.Tl)

77) In Astr al. Lib . ill, C ap . 27, fol 517 이 하:

이렇듯, 점성학적 우주관을 극복함에 있어 경험적 , 자연과학적 근 거, 관찰이나 수학적 계산의 방법 등은 단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방법들이 완성되기 전에 이미 결정적인 작업은 다 이루어졌던 것이다. 진정한 해방의 동기는 새로운 자연관이 아닌 인간 가치에 대 한 새로운 조망이 었다. < 운명 Fo rt una > 의 힘 대신 < 덕 V irt us > 의 힘 이 등장하게 되었으며, 운명에 대항하여 자신감에 충만한 의지가 맞 서게 되었다 . 진정한 의미의 인간 운명은 결쿠 위에서 , 즉 별로부터 떨어져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 깊숙한 데서 솟아나오는 것이댜 우리는 운명을 여신으로 신격화하여 천계와 관련시켰지만 실 은 운명은 <영혼의 딸 sors anim ae fili a > 인 것이댜 781 다른 사람도

78) In astr al. , Lib. IV, Cap. 4, fol. 531.

아닌 케플러가 피코 사상을 직접 수용하고 전개해 나간 것은, 다양한 사상적 가지로부터 유래한 수많은 주제들이 서로 융합하여 서로에게 결실을 맺게 한 르네상스 철학의 특성을 전형적으로 드러낸다. 점성학에 대한 케풀러의 입장 자연학자이자 수학자이며 천문학자였던 케플러는 아직은 점성학을 전적으로 배격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는 점성학으로부터 아주 점 진적으로 벗어났는데, 그 진행 과정은 르네상스 철학의 전개 과정에 서 드러나는 모든 절충과 과도적 성향을 포함한 것이었다. 그러한 탈 피 과정이 방해되고 지연된 것은 케플러 당시의 천문학자는 점성가 노릇도 겸해야만 했다는 사회적 경제적 이유에서만은 아니었다. 케플 러는 언젠가 < 멍청이 딸 점성학 > 이 아주 현명하기는 하되 가난한 어머니 천문학을 먹여살릴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 79 ) 그러 나 점성학에 관한 그의 진술이 언제나 그처럼 아이러니컬하고 유머 러스한 우월감을 시사하는 것만은 아니다 . 1623 년에 쓴 글에서 그는 여전히 위성의 합삭 현상이 지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되 <해독과 나쁜 동인>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비록 간접적이 기는 해도 그러한 인과관계의 사상에서 출발하여 결국 단순한 <대

79) Kepl e r, De ste l la nova in pe de Serpe nta rii (1606) Cap. XII. (Op era , Fri sc h 편집, II, 656 이하). sed pa up er em stu l ta filia,

응>의 사상으로 후퇴하고 만댜 즉 < 원인 > 과 < 결과 > 의 관계가 단 순한 대응 관계로 대체되게 된 것이다. 하늘은 직접 행위하지 않지만 자연적 원인이나 물질적 원인, 또는 인간의 격정 따위를 부추긴다 . 80) 그러나 케플러 또한 자연적 현상 체계가 아닌 정신적 창조의 세계를 들어 점성학에 반론을 펴고 나선다. 그 역시 정신의 근원력이나 < 천 재>의 능력에 대한 의미 부여를 통해 최종적인 결론을 내렸던 것이 댜 그는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수성이나 화성이 아니라 코페르 니쿠스와 티코 브라해였음을 고백한다. 그러므로 그가 1596 년 위성 사이의 거리비를 밝혀내고, 1604 년과 1618 년에 위성의 운동 법칙을 발견해 낸 동기를 그의 탄생좌에서 찾으려 드는 것은 헛된 시도에 불과하다.

80) Ke pl er 의 Dis c urs von der groB en Con jun cti on und allerei Vati dn ii s aber das 1623. Jah r, Op. VII, 697 이 하를 참조할 것 특히 VII, 706 이 하와 비 교하라.

Non influx erunt ist a cum characte r e coeli in flam mulam illam fac ulta tis vit alis nupe r inc ensae inq ue actu m pro ducta e , sed partim intus in pen ti ss im a anima e essenti a late b ant secundum Plato n ica m doctr ina m …, partim alia via per oculos nimirum, int r os um recept a sunt; ing en i i jud icii q u e ignicu los et ins tig a vit an imu m ad laborem ind efe s sum au xitqu e desid e ri um sci en d i; brevit er: non ins p irav it animu m, non ullam dicta rum hie fac ulta tum, sed exciv it . (플라톤의 이론에 의하면 천상의 특징을 가진 저것들은 한때 연소되 던 것들이 지니고 있는 생명의 화염으로 흘러들어가는 대신, 일부는 영 혼의 내밀한 본질 속으로, 일부는 눈을 통해 내면적으로 수용된다. 출생 과 관련된 어려움은 바로 저 오성과 판단력의 불꽃을 방출하고, 영혼을

지칠 줄 모르게 일하도록 부추기고, 알고자 하는 욕망이 더욱 더 커지도 록 하는 작업, 간단히 말해 영혼의 언표능력에 최초의 생명을 부여하는 일이 아닌, 그 영혼의 능력을 활성화하는 과정이다 .)HII 여기서도 피코의 점성학에 대한 반박문에서 나타난 것처럼 자유의 문제는 인식의 문제와 밀접히 연관을 맺는다는 사실이 함축되어 있 댜 자유 개념은 인식 개념을 규정하며 이는 뒤집어 말해 인식 개념 은 자유 개념에 의해 규정됨을 의미한다. 즉 인식의 자발성과 생산성 이야말로 인간의 자유와 창조력을 증명하는 궁극적인 근거인 것이다. 우리는 앞에서 르네상스적 사유를 통해 점차 진보적으로 발전된 프로 메테우스의 주제와 중세적, 신학적 세계관의 점진적 변화 사이의 연 관을 살펴보았는데 점성학와 고대 말기의 세계관에 대항한 투쟁에 추 진력을 불어 넣어 마침내 승리로 이끈 것도 기본적으로 그것과 일맥 상통한다. 조르다노 부르노는 그의 『의기 양양한 야수들의 추방 Sp a ccio della besti a tri onf a n t e 』에서 독특한 상징을 통해 그와 같은 정신적 변화를 묘사하고 있다. 그는 광기와 미신에 사로잡힌 인간들 의 운명을 결정하면서 그들의 지고한 지배자임을 자처하면서 아웅다 웅하는 12 궁은 타파되어야 하며 다른 것으로 대체되어야만 한다고 주 장한댜 그리고 순수하게 우리의 영혼이 관장하는, <내적인 빛>에 준 한 새로운 도덕 철학이 성립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부 르노가 의 원리라고 부론 82) 양심과 자기 의식의 원리가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 우주적이며 정령적인 힘을 대체하게 되었다. <우리의 정신에 놓여 있는 (che int e l lectu a lmente a dentr a noi) 천상 81) Kapl e r, Harmonic e mundi, Lib . IV, Cap. 7 (Op . V, 262 이하) 82) Bruno, Lo spa cc i o della bestia trior if an te : Op e re ital. , Lag a rde 편집. 412 쪽.

부터 정리하고 나서 우리 눈에 물질적으로 드러나는 가시적인 천상을 정리하자. 우리 정신의 천상에서 야만스러운 큰곰좌와 질투의 화살좌, 경박한 망아지좌와 사악한 험담을 일삼는 수캐좌, 아침을 늘어 놓는 암캐좌 따위를 제거하며 폭력적인 해라클레스좌와 음모 를 꾸미는 수 금좌 … 냉혹하기 이를 데 없는 케페우스좌 따위를 추방해 버리자. 만일 우리가 그와 같이 우리의 처소를 정결히 하고 우리의 천상을 새 로이 창조한다면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성좌나 그것의 작용도 새롭 게 바뀔 것이다. 부르노의 『의기 양양한 야수들의 추방 』 왜냐하면 모든 것은 그와 같은 내면적인 천상에 달려 있는 것으로 , 원인이 바뀌면 결과는 필연적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신과 생각을 바르게 가꾼다면 오! 우리는 얼마나 행복하며 축복받은 자인 가. 우리의 상황을 변화시키려 한다면 우리의 도덕을 바꾸어야 한다 . 우리의 상황을 개선하려면 우리의 도덕이 악화되어서는 안 된다. 우 리 내부의 충동을 다스리자 . 내면 세계를 새로이 하면 감각적인 외부 세계롤 변화시키기란 어렵지 않댜(p ur ghiarno l'int e r i or e aff ett o : atte so che dall'inf o rm atio n e di qu esto mondo int e r no non sara difficil e di far pro g re sso alla riform ati on e di qu esto sensib i l ie et este rn o.) 83) 이상에서 우리는 르네상스 <자연주의>의 대변자라 할 만한 사상가 의 자연 철학과 우주론조차 그 성격을 따져보건대 명백히 윤리적 의 미를 띤 것임을 확인하게 된다. 인간은 내면에 품고 있는 영웅적인 83) Brano, Sp ac ci o, 439 쪽.

정열을 통해서만 자연에 접근할 수 있으며 그 불멸성과 광대함을 관 조할 수 있는 것이다 .

제 4 장 르네상스 철학에서의 주관과 대상의 문제 - 르네상스가 고대나 중세에 대별되는 것은 자기 의식의 문제를 다룰 때 가장 여실히 확인된다. 이 핵심적 주제에는 그와 같은 상반된 태 도를 조장하는 일체의 사상적 조류들이 집결되어 있다. 이처럼 난삽 하고 상반된 역사적 상황에서 이제 새로운 차원의 체계적 질문이 제 기되기 시작했다. 물론 그러한 질문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르네 상스 철학의 말기에나 해당되며 그것이 본격적으로 완성된 것은 데카 르트에 이르러서야,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라이프니츠에 이르러서야 가능했다. 죽 이때에 이르러서야 새로운 <아르키메데스의> 점이 발 견되어 스콜라 철학적인 개념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일신의 작업이 이 루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이 지점, 즉 데카르트의 <코기 토>의 원리에서 근대 철학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이 시발점은 역사적 으로는 결코 그 기원을 완벽하게 해명될 수 없다. 데카르트 자신도

피력했듯이 그것은 일회적인 자발적 의지에서 출발한 것으로, 과거로 부터의 모든 것을 청산하고 사유하는 자기 의식에의 길을 택한 정신 의 자유로운 행위에서 유래하였다. 그것은 결코 점진적인 진화가 아 닌, 명실상부한 <사유 방식상의 혁명>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그 혁명을 유발한 지적, 사상적 힘의 형성 과정과 부단한 성장 과정 을 규명한다 해서 그 혁명의 가치와 의미가 줄어드는 것은 아닐 것이 댜 그 힘들은 처음에는 아무런 통일적 세력도 이루지 못했으며 엄격 한 체계를 갖추지도 못한 채 상보적이기보다는 대립적인 양상을 띠었 댜 게다가 그것들의 동기가 다양한 만큼, 그것들이 지향하는 지적인 목표도 다양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소극적이나마 그러한 혁명에 한결 같이 영향을 미쳐, 바야흐로 주관과 대상의 관계에 대한 새롭고 근대 적인 사상이 탄생되기 위한 무드를 조성하는 데 한몫하였다. 희랍 철학에서의 영혼과 자기 의식 르네상스 철학은 분야를 막론하고 그와 같은 작업과 무관하지 않았 다. 형이상학뿐 아니라 자연 철학이나 경험적 자연 인식, 그리고 심리 학과 윤리학, 미학 등이 두루 거기에 해당된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학파간의 차이도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서로 화해하는 듯하여, 플 라톤주의에서 출발한 사상이나 새로 개혁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서 출발한 사상이나 할 것 없이 모두 일치하였다. 그리하여 그 시대의 역사 의식뿐 아니라 그 시대가 갖는 체계적 의식은 바야흐로 동일한 근본 문제에 직면하여 명백한 결론을 내려야만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 희랍 철학의 가장 근본적인 업적은 신화적 사유의 영역에서 세계의 개념뿐만 아니라 자기의식이라는 개념을 분리하는 데 처음 성공한 것

이었다. 자아에 대한 새로운 관념이 성립되는 데에는 희랍적 사고에 의해 제시된 새로운 우주상이 필연적으로 요구되었으므로 이 양자는 긴밀히 연관될 수밖에 없었다. 자아에 대한 직관은 사물에 대한 직관 에 비해 분명 신화적 요소나 그 전제에 한층 더 깊고 견고하게 연루 되어 있다. 플라톤에게서도 여전히 자아의 문제는 영혼의 문제와 연 루되어 있어서 그의 철학적 언어로는 이 문제가 cp v 제(p s y che) 라는 개 념에로 회귀되어 표현될 수밖에 없었다 . 플라톤에게 있어 이 두 요소 는 시종일관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하여 변증술의 대가였던 플 라톤이 자신의 논의를 진전시켜 지식에 대한 심오한 정초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획득한 새로운 사상은 형이상학적이자 심리학적인 언어의 옷을 입게 되었댜 < A pri o ri>라는 개념의 정의와 그 필연적 근거에 대한 규명은 영혼을 여러 가지로 구분함으로써 가능케 되었다. 그리 하여 플라톤 사변의 극치를 보여주는 후기 대화편에서는 어느 정도 확실하고 명료한 구분이 달성된 듯하다. 테아이테토스에서는 의식의 단위를 영혼의 단위, 죽 gv Tl Q V제 C: (hen ti p s y ches) 로 정의하고 있 다. 그러나 이 영혼 개념은 일체의 원시적인 신화적 요소나 오르페우 스적인 영혼 개념, 영혼 신앙을 연상케 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지 않 으며, 단지 순수사유가 지각된 내용에 대해 수행하는 일련의 발전적 과정과 기능의 상징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동기 적 측면에서나 서술의 방법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양극성이 존재한 댜 철학에는 서로 엄격히 구분되는 두 서술 수단이 있는데 그 중 하 나는 존재의 영역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생성의 영역을 위한 것 이댜 항상 존재하는 것, 죽 항시 자기 자신과 동일하며 항구적으로 불변인 것에 대해서만 엄밀한 지식이 가능한 반면, 생성하는 것, 죽 시간적으로 제한되어 있으며 순간 순간 변하는 것에 대해서는 지식에 의한 그와 같은 파악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기껏해야 신화의 언어를

통해서만 서술될 수 있댜 그러나 만일 이러한 플라톤적 인식론의 기 본적 구분에 맞추어 영혼의 파악과 묘사에 어떤 인식 수단이 적합한 지 의문을 제시한다면 그 대답은 결코 일의적일 수 없다. 왜냐하면 영혼은 정통적인 플라톤적 구분을 해체시키기 때문이다 . 그것은 존재 의 영역에 속할 뿐만 아니라 생성의 영역에도 속하는가 하면, 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중간적 존재이자 혼합적인 존재이다. 즉 여기에서는 이데아의 순수 존재나 현상과 생성의 세계 양쪽 모두 가 결코 전적으로 포기되지 않는다 . 모든 인간 영혼은 원래 진정으로 존재하는 것을 이미 보았으므로 순수한 존재 양태를 파악할 능력을 지닌다. 그러나 동시에 영혼은 감각적인 다원성과 감각적 생성에의 성향이나 노력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의 양태와 원래적인 본성은 이 중적 운동 속에 드러난다. 그리하여 그것은 생성과 존재, 현상과 이데 아의 <중개자> 역할을 담당한다. 그것은 양극, 즉 존재자와 생성자, 동일과 다양에 공히 관련을 맺으면서도 어느 한 곳에 전적으로 속하 거나 묶여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순수 이데아에 대해서건 현상, 죽 감각적으로 지각된 내용에 대해서건 독립적인 태도를 취한다. 사 유와 지각의 <주체>인 영혼은 지각된 내용, 또는 사유된 내용과 일 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플라톤의 또 다른 대화편 『티마이오스』에서의 신화적 언어는 그러한 차이룰 무시하고 있다. 이 신화적 언어는 시간 적 추이라는 단일 차원밖에 알지 못하는 고로 모든 질적인 차이를 시 간적 기원과 시간적 창조의 차이로 전환시켜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 리하여 여기서 영혼은 창조주인 데미우르고스가 동일과 다양, 즉 Tau -r ov( ta u to n) 과 泥 Tc {X) v( th a t eron) 이라는 대립된 속성을 각인하고 융해 시킨 혼합체로서 묘사되어 있다.

플라톤적 영혼 개념과 아리스토텔레스적 영혼 개념 결국 관념적인 의미 차이는 신화적 표현의 본질과 특성에 걸맞게 존재와 기원에 대한 존재론적 차이로 전환되었다. 플라톤의 영혼설은 본질적으로 그와 같은 형태를 유지한 채 후대에 영향을 끼쳤다. 중세 전체를 통하여 『티마이오스』는 철학적인 지침서 역할을 하였으며 플 라톤의 대화편 중, 칼키디우스 Chalc idi us 의 번역을 통해 거의 유일하 게 알려진 것이었다 . 그리하여 영혼을 주관성의 원칙으로 파악하는 소크라테스적 영혼 개념은 신화적 베일과 신화적 객관화를 통해서만 접근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한 신화적 객관화 작업은 이미 고대사 상 내에서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주지하는 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영 혼을 신체의 형상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그 자체로 서 신체안에서 작용하는 운동의 내재적인 원동력과도 같은 것을 의미 한댜 그것은 신체의 이상적 <특성>을 의미하는 목적인일 뿐만 아니 라 신체가 그와 같은 특징의 점진적인 발달을 이루어내도록 이끄는 운동인이다. 영혼을 몸의 <현실태 En t elechi e> 로 파악하는 이와 같 은 방식에서 영혼은 다시금 순수한 자연적 잠재력이자, 유기적 생명 과 유기적 형태의 힘으로서 해석된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는 결정적 인 대목에서 자신이 주장하는 영혼 개념을 수정하고 확장시킬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위와 같은 영혼 개념은 생명 현상을 포괄 하고 설명할 수는 있어도 앎의 특성을 포괄하기는 부족하기 때문이 다. 가장 높고 순수한 단계의 지식은 개별적인 것이 아닌 일반적인 것과 관련을 맺으며 <질료적인 것>이 아닌 순수하게 예지적인 내용 과 관련을 맺는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지식을 자신 속에서 전개하는 영혼의 능력도 그 대상과 같은 양상을 띠는, 죽 모든 물질적인 것에 서부터 독립되어 그것과 섞이지 않는 것 (X(,,)p Lmbc xai. 如 L 제 C

(chor ist o s ka i amig es) )으로 간주되 어 야 한댜 그러 나 이 러 한 구분은 또 다시 형이상학적이자 존재론적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순수 사유 , 즉 < 영원한 진리 > 의 사유 주체인 아리스토텔레스의 voile ;(n ous) 개념 은, 유기적 실체의 형상으로서의 영혼이 하나의 자연적 존재이듯이 하나의 객관적인 < 정신 존재>를 의미한다. 그리고 자연적 촌재로서 의 영혼이 원동력이듯 그 개념은 외부로부터 (的{XJ.1' w( t hura t hen)) 인 간에게로 유입되는 사유 능력을 의미한다 . 신플라톤주의는 이러한 아 리스토텔레스적 정의를 수용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사유 능력을 일자 에서 다자로, 예지계에서 감각계로 전개되는 힘의 일반적 계서 속에 편입시켜, 그 속에서 고유한 위치를 부여함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가 부여한 특별한 성격을 제거했다. 신플라톤적인 체계에 의하면 사유가 진행됨에 따라 사유 능력 자체와 구체적 개체로서의 인간에게서 나타 나는 그 구체적 양태 사이에는 반은 신, 혹은 정령과도 같은 일련의 중간적 존재가 나타난다. 이러한 과정은 중세의 아리비아 철학, 특히 아베로이스적 이론 속에서 추론을 통해 논리 정연하고 조직적으로 서 술되어 있다. 여기서는 영혼이 다시금 객관적 형이상학적 힘의 영역 에로 수용됨으로써 주관성의 원칙뿐 아니라 개체성의 원칙까지 포기 되기에 이른다. 사유의 근원적 힘은 그 어떠한 방식의 개체화도 초월 하는데 왜냐하면 지성 그 자체는 결코 여러 개로 나누어질 수 없는 절대적인 단일체를 이루기 때문이다 . 사유의 행위는 바로 자아가 생 물로서 불가피하게 지니는 고립에서 벗어나 하나의 절대적 지성, 죽 <살아있는 지성 int e l lectu s a g en~> 에로 융화되는 것을 통해 성 립한 다 . 이러한 융화의 가능성은 바야흐로 신비주의적 관점에서뿐만 아니 라 논리학의 관점에서 요청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러한 가능성에 의하여서만 오로지 사유 과정을 생생하게 설명할 수 있으며 사유에 대한 필연적 타당성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유의 주체

는 개체나 < 자아 > 가 아니라 모든 사유자에게 공히 존재하는 근원 인 격적인, 실체성을 띤 존재이다. 그것과 개별적인 자아와의 < 결합 > 은 단지 외적이고 우연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주의 나 신플라톤주의의 융합에서 생겨난 이와 같은 논리적 형이상학적 체 계는 바로 이 점에서 지금껏 가장 큰 버팀목 노릇을 해온 신앙의 체 계와 정면으로 충돌하게 된다. 기독교 신앙에서 < 주관주의 > 의 원칙 이나 독립성, 또는 개개 영혼의 고유 가치에 대한 원칙을 포기한다는 것은 종교적인 기본 전제를 흐리는 것을 의미한다. 13 세기의 위대한 기독교 사상가들은 바로 이러한 균열을 메우느라 아베로이스주의의 체계적 결론에 집요하게 대항하였다. 예를 들면 토마스 아퀴나스는 자신의 저술 『아베로이스주의자들에게 대항하는 통일된 지성에 대하 여 De unit ate int e l lectu s contr a Averro i s tas』 에 서 그와 같은 반박 에 열을 올리는데 , 이 저술에 따르면 아베로이스의 테제는 그것이 설 명코자 하는 사유 현상을 실은 말살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지성 자체 가 무엇인지, 또 그것의 일반적인 속성이 어떤 것인지 하는 질문은 사유의 기능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던져질 수 없는 질문이다. 그런데 이 기능 자체는 경험적으로 단지 개인적인 형태로밖에는 알 수 없으 며, 사유하는 자신과의 관련 속에서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을 거부하는 것은 지식에 대한 모든 이론의 토대를 말살하는 것이다. 아베로이스주의 뿐만 아니라 아베로이스주의는 지식에 관한 이론을 넘어서 종교적 자명성이 지니는 독보성과 핵심적 측면까지 위협하고 나선다 . 종교적 자명성에 의하면 기본적인 종교적 관계의 두 성원인 신과 자아는 각 각의 독립성을 보장받을 것이 요구된다. 신앙의 일반적, 절대적 내용

은 다름아닌 우리가 종교적 삶의 중심에 놓이게 되는 데서 출발한다. 이 종교적 삶에서 인격은 결코 단순한 우연적 제한이나 한계를 의미 하지 않으며 필수 불가결한 구성적 요소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 러한 결론은 최초의 위대한 기독교 사상가인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이미 첨예하게 발견된다. 잘 알려진 대로 그의 종교적 주관주의는 데 카르트가 후에-논리학자이자 인식 비판가적인 입장에서 설파 한 기본적 성과와도 직결된다. 그의 종교적 관념론과 데카르트의 논 리적 관념론은 공히 자기 자신에 관한 반성이라는 내면화의 원칙에 그 토대를 두고있댜 Noli for as ire, in te ips um red i: in int e r i or e horn ine habit at veri tas . (밖으로 향하지 말고 너 자신에게로 회귀하라. 인간의 내면에 진리가 있나니.) 스스로의 존재, 앎, 그리고 의지야말로 모든 이론의 고정 불변한 출 발점인데 그 이유인즉, 정신은 스스로에게 생생하게 벌어지는 것을 가장 잘 알며 자기 자신의 양태를 가장 생생하게 접하기 때문이다.I) 위와 같은 구절은 우리로 하여금 일체의 형이상학적 영혼설 내지 신 학의 교조적 결론에 대해 종교적 경험이 우위임을 확인케 한다. 그리 하여 자아를 객관적 인식의 구조적인 틀에 끼워 맞추려는 일은 중단 되었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간접적인 규정은 자아의 본질, 또 철저히 선천적인 가치라 할 수 있는 자아의 특수한 가치를 설명하기에 적절 치 못하기 때문이다. 1) Aug us tin u s, De trinit ate XIV, 7., De vera relig ion e, Cap. 39.

르네상스 철학이 가져온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중세적 인 이론이나 삶의 체계에 존재하고 있었던 대립과 긴장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댜 아베로이스주의는 14, 15 세기에 행해진 정통 스콜라 철 학적 반박에도 불구하고 그 기본적인 이론적 토대를 보촌하였으며 이 탈리아의 대학에서 오랫동안 지배 적 학설로서 군림하였다. 그리하여 스콜라적 연구의 본령이라 할 만한 파두아에서조차 아베로이스적 교 조는 14 세기 상반기부터 16, 17 세기에 이르기까지 그 맹위를 떨쳤다 . 2 ) 그러나 그에 대한 반격 또한 점점 만만찮게 제기되었는데 특이하게도 그러한 반격은 순수 학자들이 아닌 다른 분야의 사람들로부터 강한 지지롤 얻고 있었다. 아베로이스주의에 대하여 처음 반기를 든 이들 은 새로운 인문주의적 교양 이상과 르네상스적인 새 인격 이상을 갖 춘 인물들이었다. 페트라르카는 이 과정에서도 역시 선두를 이뤘는데, 아베로이스주의에 대항한 그의 필생의 노력들은 오해도 불러일으키지 만 결코 무가치하지 않은바 , 그것은 자신의 원초적인 삶의 정서에서 출발하여 그 권리를 제한하고 저해하려는 것에 대해 반항하려는 천재 적인 안격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개체성>의 무한한 가능 성과 가치를 발견한 예술가나 대가들은, 개체성 따위는 우연적이고 단지 < 우발적인 것 > 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철학에 대해 당연히 저항 하고 나섰댜 이러한 저항 과정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든든한 버팀돌 이 되었던바, 정신의 역사적 창조를 단지 객관적 내용을 띤 것으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 그 배후의 창조자의 생명을 느끼고 거기에 동참 하기 원했던 이의 효시격인 페트라르카는 바로 이러한 점에서 몇 세 기를 뛰어넘어 아우구스티누스와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 개체성을 2) 더 자세한 것은 Ernest Renan, Averroes et l'Av errois m e, 3e. edit., Pa ris 1866 을 참조하라.

주장하는 문학적인 천재성은 개체성을 옹호하는 종교적 천재성도 자 극하여 페트라르카의 신비주의에서는 시와 종교가 아주 독특한 형태 로 융화되었댜 이 신비주의는 아베로이스주의자들과는 달리 우주론 적인 것이 아닌, 심리학적인 것이었다 . 또 그것은 영혼과 신의 합일을 간절히 원하면서도 결코 그것만을 유일한 목표로 삼지는 않는다. 오 히려 그것은 자아의 다양함에 경이로워하고 또 그 대비를 즐기고자 자아의 내적 움직임을 직관하는 데 열중한다. 우리는 여기서 페트라 르카가 아베로이스주의와의 저항에서 얼마나 꾸준히 자신의 신앙을 강조하면서, 인간 이성에 대항하여 신앙의 소박함을 수호하는 정통 기독교인으로 자처하였는지 확인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에게서 발견되는 기독교는 아주 개인적이며, 종교적이라기보다는 탐미적인 색채가 짙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베로이스주의를 철학적으 로 제압하려면 이와는 다른 길을 택해야만 했다. 즉 감정이나 개체성 의 환희에 몰입하는 대신 개체성을 수호하기 위한 새롭고 한층 더 심오한 원칙을 찾아내야만 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원칙을 처음 이루어 낸 예가 바로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의 이론임을 이미 확인하 였다. 아베로이스주의에 대한 페트라르카와 쿠자누스의 저항 쿠자누스가 파두아에서 수업한 시절은 파두아 학파의 아베로이스주 의가 극성에 달한 때였다. 그러나 그가 거기에서 어떤 중대한 사상적 자극을 받은 흔적은 없다. 그는 자신의 후기 저술에서 아베로이스주 의의 기본 강령에 대해 형이상학적 입장에서보다는 인식론적 입장에 서 명백히 반박하고 나선다. 그의 인식론은 감각계와 예지계 사이의 절대적인 분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감각적인 것과 예지적인

것이 서로 대비된다 해도 지성은 감각적 지각과 맞닥뜨려 거기에 의 존함으로써만 자신을 완성하고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59-60 쪽과 비교) 마찬가지로 감각적 질료로부터 완전히 떨어져서 수행될 수 있 는 정신 작용은 있을 수 없다. 정신이 실제 효력을 띠는 데에는 거기 에 부응하는 <적합한> 물체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사유 방식은 신체 기관처럼 다양하고 개별적이다. <네 눈으로 보는 것은 설령 그것이 너의 눈에서 떨어져 나와 다른 이의 눈과 결합된다 할 경우에도 다른 이가 보는 것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네 눈이 지니는 척도는 다른 이에게서는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며 네가 보는 것에 의 한 구분은 다론 이가 보는 것에서 나타나는 구분과는 다르기 때문이 댜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에 대하여 동일하게 적용되는 지성 같은 것 은 상상할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라이프니츠에 이르러서야 완전히 체계적으로 완성된 새로운 사상이 배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순수 사유 행위는 감각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대해 결코 무관하거나 냉담하 지 않으며 또한 그것에 대해 홉사 죽은 도구와 같은 하나의 기관으로 서 종속되어 있지도 않다. 오히려 이 행위의 힘과 성과는 감각적인 것에 놓여 있는 차이룰 파악하여 완벽하게 자기 내부에서 드러낸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개체화의 원리 Princ ip ium i n d.i v i dua ti o ni s 는 결코 단순한 <질료>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형식>에서 그 근 거가 찾아진다 능동적인 사유 능력으로서의 영혼은 신체나 외적인 껍질에 묶여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다양한 양태와 그 속에서 벌어지는 변화상을 때로는 아주 명료하게, 또 때로는 덜 명료하게 드 러낸다. 그러므로 영혼과 육체 사이에는 단순한 결합 관계뿐 아니라 일관된 <부합>(호응)관계가 성립된다. 쿠자누스는 그것을 가리켜 일 반적 조화라고 명명하였다 .3) 이러한 점에서 볼때 그는 아베로이스뿐 만 아니라 일부 신플라톤주의자들의 이론과도 상반되는 견해를 지녔

3) Cusanus, Idio t ,a lib. III de mente , Cap. 12, fol. 167 이 하:

던 반면 특이하게도 르네상스 신플라톤주의와 피렌체 아카데미와는 전적으로 일치된 의견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피치노 역시 자신 의 주저인 Theolog ia p la t on ica,와 서간 등을 통해 <능동적 지성>의 유일성에 대해 집요하게 반박했다. 그 역시-자아나 사유라고 불 리며 단지 개별적 형태로밖에는 우리에게 드러나지 않는 직접적 경험 에 근거하며, 자아의 본질과 우리의 인식에 직접 드러나는 것은 원칙 적으로 동일한 것임을 주장한다. quid en im menti natu ralius , qu am s 떠 ips iu s cog nitio? (정신은 다름아닌 스스로가 인식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4 ) 그러나 주관성 개념에 대한 이론적 근거와 조건을 결정하는 과정과 는 별개로, 그러한 전체적 변화를 관장하고 지배한 또다른 원동력이 있었음을 명심하여야만 한다. 피치노는 영혼에 관한 이론이나 개개 영혼의 불멸성에 관한 이론을 폄에 있어 인간 인식에 준하기보다는 인간 의지에 준하였다. 에로스 Eros 에 관한 이론은 피치노 심리학의 —진정한크 리핵 스심토인포 로동 시란에디 노피 C렌h 체ris t o 아fo카ro 데L미an의 d in o철 의학 적D i sp중 u 심t: a주tio제n e였s 으C며a- maldulenses 에서 확인되듯5 ) ___ 아카데미의 영원한 토론 주제였다.

4) Fic ino , Ep isto l . Lib. I., 628 이 하 .

당시의 정신적인 삶, 즉 콰트로첸토의 문학과 조형 예술에 끼친 아카 데미의 영향 역시 바로 이 주제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 이 주제와 관 련하여 철학적 작업과 예술적 작업 사이에는 항상 부단한 상호작용이 일어나 예를 들어 지롤라모 베니비엔니 Gir ol amo Ben i v i e ni는 자신의 저술 『천상의 신성한 에로스의 노래 Canzone delt'a m or celeste e d i v i no 』 에서 피치노의 사랑에 관한 이론을 시의 형태로 표현하였는가 하면 피코 델라 미란돌라는 이 베니비엔니의 시에 대해 다시금 순수 철학적인 주석을 달기도 했다 . 6) 에로스에 관한 피치노의 이론 피코와 피치노는 이 문제에 있어 플라톤의 에로스론을 되도록 충실 히 재현하려고 노력하면서 플라톤의 <향연>을 직접 떠올리는데 특히 피치노는 한 저술을 할애해 그것에 대한 독특한 주석을 시도하고 있 다. 피치노는 루카 콘트로니 Luca Con tr o ni에게 자신의 Sym pos iu m 주석과 『기독교에 관하여 De chris t i an a rel igi, one 』를 전달하며 보낸 서간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Mitto ad te amorem, qu ern pro m ise ram. Mitto etia m relig ion ern ut agn oscas et amorem meum relig ios um esse et relig ion em amato r i am . 5) 란디노 Lan di no 의 Dis p u ta tion es Camaldulenses 와, 피렌체 아카데미 역사를 연구함에 있어 그것이 지니는 사료적 가치에 관해서는 특히 델라 토레 della Torre 의 Sto r ia dell'A c ademi a Plato n ic a di Fir e nze, Fir en ze 1902, 579 쪽 이 6) 하P i를c o 참d조el하la라 M.i ran dola, Ope r a fol. 734 이 하 .

(나는 그대에게 약속했던 대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노라. 또한 종교 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나니 , 그로 인해 그대는 내가 말하는 사랑이 종교 적인 것이며 종교에 대해 우호적임을 깨닫게 되리라 . ) n 실제로 피치노의 에로스론에는 심리학적 계기와 신학적 계기가 서 로 만나 밀접히 융합되어 있다 . 플라톤에게서도 에로스는 존재의 중 간 영역, 즉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 예지계와 감각계의 중간에 놓 여 있으며 이 둘을 서로 관련시켜 결합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결합은 그것이 어느 한쪽에 전적으로 속해 있지 않을 때에만 가능하 다. 그것은 충만도 아니요, 그렇다고 결핍도 아니며, 아는 것도 아니 요 모르는 것도 아니며, 영원하지도 유한하지도 않은 것으로서, 이 모 든 대립을 자신의 <괴기스런 > 본질에 포괄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에 로스의 이중적 속성은 바로 플라톤적인 우주의 운동인을 이루며 플라 톤적 우주의 정적인 구조에 동적인 요소를 불어넣는다. 현상계와 사 랑의 세계는 더 이상 단순히 동떨어진 것이 아니며, 현상 자신은 이 데아를 <추구한다 >(6 p srcra t -roi l ovro~ (oreg e ta i tou onto s )) 이 추구 는 모든 생성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다. 내적인 불만족은 모든 추이 에 대하여 어떤 특정한 방향, 즉 항구 불변한 이데아를 향한 방향을 설정함으로써 영원히 생동하는 <불안정성>을 이룬다. 그러나 폴라톤 의 체계 내에서 이 방향은 거꾸로는 적용되지 않는다. 죽 <존재를 향 한 생성>은 있을 수 있어도 이데아에서 현상에로 향하는, 생성을 향 한 존재의 작용은 성립하지 않아서, 단절의 계기가 아주 엄격하게 적 용된다. 이를테면 선의 이데아는 목표와 궁극을 설정한다는 의미에서 생성의 <원인>을 제공할 뿐 경험적, 감각적 현실의 작업에 직접 한 7) Fic ino , Ep isto l . Lib. I, f ol. 632.

동인으로 개입하지는 않는다. 이와 같은 방법적 상황은 결국 신플라 톤주의적 체계를 통해 그 형이상학적인 의미와 실체성을 얻게 된다. 신플라톤주의에서도 부차적이고 파생적인 존재들은 최초의 원인으로 희귀하고자 하는 본능을 가진 것으로서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유한 하고 부차적인, 일체의 한정된 것에서 한정되어 있지 않은 것에로의 추구와는 달리 후자에서 출발한 반대쪽으로의 귀결은 성립하지 않는 댜 신플라톤주의에서 말하는 초월적 존재나 일자(一者)는 삶을 초월 하여 존재한다. 실천적인 주관적 의식이건 이론적인 주관적 의식이건 예 상관없이 절대적 존재의 순수한 객관성은 그 자체로 주관적 의식 영역을 초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적 존재는 그 어떤 것도 추구 하지 않으며 그 어떤 것도 인식하지 않는다. 모든 인식은 다른 것과 의 관련을 전제로 하는데 그것은 절대적 존재의 순수 자족성이나 완 결성에 이미 모순되기 때문이다 .81 그러나 피치노의 에로스에 관한 이론은 사랑의 과정을 철저히 상호 적인 과정으로 파악했다는 점에서 그와 같은 사상을 뛰어넘는다고 할 수 있다. 그에 의하면 에로스를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신에 대한 추 구는 신의 인간에 대한 추구없이는 불가능하다. 피치노에게서는 이처 럼 기독교적 신비주의 사상이 새롭게 살아나 그의 신플라톤주의에 독 특한 성격을 부여하고 있다. 신, 죽 절대적인 객관적 존재는 주관성에 도 숨어 있으며, 주관성이 신과 관련을 맺고 그것을 향해 있듯이, 그 주관성에 대한 하나의 부응물로서, 죽 필연적인 상대로서 결합되어 있다. 사랑은 이와 같은 이중적인 형태로만 실현될 수 있다. 그것은 낮은 것에서 높은 데로의 희구일 뿐만 아니라 높은 것에서 낮은 것에 로의, 예지계에서 감각계로의 충동도 포함한다. 신이 세상에 대하여 8) 특히 플로티누스의 Ennead. Vi, 7, 3.5, VI, 7, 41 둥과 비교할 것

자발적으로 호감을 갖고 자신의 축복을 통한 자유로운 행위를 통해 인간과 세계를 구원하듯, 모든 이성적 존재에게는 그와 같은 이중적 인 방향의 추구가 내재해 있다. <모든 신적 정령들은 높은 것을 쳐다 보면서도 부단히 낮은 것을 살피고 걱정하는 독특한 속성을 지닌다. 이것은 또한 우리 자신의 몸뿐만 아니라 이 세상 만물의 몸을 떠맡아 보호하는 우리 영혼의 속성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감각적인 것에 대 한 보호나 감각적인 <문화> 속에 바로 정신적인 것의 근본 계기와 근본 임무가 놓여 있는 것이다. 에로스에 관한 이러한 이론은 신플라 톤주의가 늘 골몰한 신정론의 문제에 신기원을 제공하여 이제야 엄밀 한 의미의 신정론을 가능케 하였는데 그것은 이제야 비로소 질료는 단순한 형식의 대립 개념이거나 <악한> 것이 아닌, 형식의 효과가 드러나며 그 효과를 내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서 여겨지게 되 었기 때문이댜 에로스 이론의 종교 철학적인 의미 이렇게 하여 에로스는 진정한 의미의 <세계의 고리>가 되었다. 그 것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존재 요소의 실체적인 차이를 동일한, 역동 적 기능의 주관 내지 중심으로 인식하여 화해시키고 극복함으로써 다 양한 요소와 영역 간의 모든 상이성을 극복한다. 사랑은 정신으로 하 여금 감각적, 육체적인 것에로 내려오게끔 하며 그것을 다시 그 영역 에서 고양시킨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움직임에서 추구하는 것은 결코 생경한 충동이나 숙명적인 강제력이 아닌 스스로의 자유로운 결정에 의한 것이다. Animu s nunqu am cog itur aliun de, sed amore se mergi t in

corp u s, amore se mergi t e corp o re. (정신은 사랑을 통해 감각적인 것에로 내려오며, 감각적인 것으로부터 고양된다 . ) 9 )

9) Fic in o , Theolog . Pl 릿t o ni ca , Lib . XVI, Cap. 7., fol 382. 피치노의 에로스에 관 한 이 론에 서 매 우 중요한 이 와 같은 요소는 Sa itta, La filos ofi a di Marsili o Ficin o , Messin a 1923, 217 쪽 이하에서 잘 지적되었다 . 그러나 싸이타는 다른 데에서와 마찬가지로 니 콜 라우스 쿠자누스에 대하여 갖는 피치노의 독창성을 너 p무re c과ed장en하ti고 c o나m선p r다e s .o 그ii 는C u쓰sa기no를, e< Cl 'iion t uc hizeio nd ei ffetrra evn ozliga e n iit e F idc ei nl lo' a mdaoi r ef ilcoos mofei spi eg a m ento assoluto , inf i nito di li be 따 ... II vero mist ic o s'app u nta nella assoluta ind ist in z io n e o ind iffer enza, laddove ii pen sie r o de Fic i n o respi ra nell'atm o sfe r a sana della li be 댜 come conti nu a diff erenz i az i one> 라고 하고 있다. (위의 책, 256 쪽). 그러나 이 <자유의 분위기>야말로 다름아닌 쿠자누스의 창조 개념과 신적 사랑의 개념이 전개되는 장이다. 여기서 예 를 들어 그의 De bery ll o, Cap. XXIII fol. 'l7 5 를 인용하여 보겠다 .

이렇듯 영혼의 순환은 자기 스스로 자신의 목표와 한계를 설정하며 운동의 원칙뿐 아니라 정지의 원칙까지 관장하므로 아무런 의적인 목 표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 10 ) 르네상스 철학은 피치노의 이러한 사변적 애론(愛 論 )을 윤리학이나

10) Fic ino , Theo/. Plato n ic a IX, 4; fol. 211 .

자연 철학, 더 나아가 인식론과 예술 이론에까지 유용하게 적용하려 고 시도하였댜· 인식에 관한 이론을 살펴보면 중세의 신플라톤주의적 이자 신비주의적인 문헌에서도 인식과 사랑을 밀접하게 연관시킨 예 가 발견되는데, 그것은 정신은 결코 어떠한 대상에 대해 순수 이론적 인 관점으로만 몰두할 수 없으며 사랑이라는 행위에 의해 그 대상에 로 고무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이러한 견해는 르네상스 철학에서 파트리치의 이론에 의해 새로이 수용되어 체계적으로 전개되기에 이 르렀댜 인식의 행위와 사랑의 행위는 양자가 모두 존재 요소의 분리 롤 지양하고 근원적인 단일성에로 회귀하려 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목 표를 지닌다. 지식은 다름아닌 이러한 회귀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특 정 단계이다. 그것은 그 자체로 추구의 형식을 띠는데 왜냐하면 모든 지식에 있어서는 늘 그 대상에 대한 <지향>이 결정적으로 작용하기 때 문이다.(대상을 향한 인식 지향 int e n sio cog n oscenti s in cog n oscib i l e) 지고한 지성은 그러므로 사랑에 고무되어 자신을 양분시키고 지식의 대상을 관찰 대상으로 자기 자신과 대비시킴으로써 지성, 즉 사유하 는 의식에 이른다. 그러나 이처럼 양분을 강행하고 다양성을 위해 근 원적인 통일성을 유보하는 인식 행위는 그와 같은 양분을 극복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한 대상을 안다는 것은 그와 의식 사이에 놓인 거리 를 부정하고 어떤 의미에서 그것과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 이다. cog nitio nihil est aliud , qu am Coit io qu aedam cum suo cog n obili . (인식은 다름아닌 인식 대상과의 합일을 의미한다 . )I 11) Franci sc i Patr icii Panarchia s Lib . XV: De int e l lectu (Nova de uni ve rsis philos op hia, Ferrar. 1591, fol. 31).

그러나 피치노에 의해 수정된 에로스론은 인식론에 대해서보다는 예술의 본질과 의미에 관한 르네상스적 견해에 더 크고 깊은 영향을 끼쳤댜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예술가들이 피렌체 아카데미의 사변 적 신조에 대해 보여준 정열은 그들이 그 사상을 단순한 사변 이상으 로 이해하였음을 시사한다. 즉 그들은 거기에서 그들의 신조에 걸맞 는 우주론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그들 창조의 비밀이 해석 되고 규명되었다고 보았다. 예술가의 불가사의한 이중적 속성, 즉 감 각적 현상에 대한 몰두와 그것에 대한 부단한 거부, 초월이 이제야 이해 가능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정당화되기에 이른 것이댜 피치노가 사랑에 관한 논의를 통해 수행한 세계에 관한 신정 론은 동시에 예술에 관한 본격적인 신정론이 되었다 . 예술가는 에로 스와 마찬가지로 분열되고 대립하는 것들을 부단히 결합시키려는 성 향, 즉 <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감각적인 것>에서 <예지적인 것>을 찾으려는 성향을 지녔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관조 와 구성이 비록 순수 형식에 의해 결정된다 하더라도 그 순수 형식은 질료를 통해 실현됨으로써만 진정 소유될 수 있다. 예술가는 다른 누 구보다도 이러한 긴장, 즉 존재 요소들의 극단적 대비에 민감한 사람 들이며, 동시에 그러한 대비의 중재자임을 자처하는 이들이다. 에로스론이 인식론과 미학에 끼친 영향 그와 같은 긴장 속에는 일체의 미적 조화의 핵심이 놓여 있으며 물 질을 통해서 현시되는 조화와 아름다움이 지닌 영원한 결핍이 포함된 댜 피치노의 애론은 미켈란젤로의 소네토에 심화되어 드러난다. 이러 한 영향을 파트리치에 의한 인식론이나 조르다노 부르노의 윤리학 형 성과정과 비교해 보면 이 이론의 탁월함이 어디에 있는가가 확연해진

다. 물론 피렌체 학파의 플라톤주의도 이데아를 여전히 어떤 힘으로, 즉 어떤 객관적인 우주적인 잠재력으로 이해했다 . 그러나 피렌체 학 파의 플라톤주의는 에로스론을 통해 정신적인 자기의식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발견하였댜 이 자기의식은 자체 완결성과 일관성뿐만 아니라 자신의 단일성과 다양성 , 그리고 인식과 의지와 예술적 창조의 활동 이 지닌 특징을 띤다 . 자아, 즉 <주관적 정신 > 은 문화의 다양함과 <객관적 정신 > 의 체계를 배태하고 있는 다양한 창조 성향을 띤다. 조르다노 부르노 역시 플로티누스에 대해 언급하면서 진정한 주관성 의 경지를 열어보이는 에로스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우리의 눈이 단 지 지각된 대상에 대한 단순한 직관에 몰두한다면 미의 현상이나 사 랑의 현상은 생겨날 수 없다. 이 둘은 정신이 가시적 형상의 외적인 형식으로부터 벗어나, 그 고유의 불가분한, 또 모든 가시성을 거부하 는 형식에 몰두할 때 비로소 가능하댜 12 )

12) Gio r dano Bruno, De umbris ide arum (Op e ra lati na , Imb riani편집 , II, 48):

영혼의 문제와 자기 의식의 문제에 관한 르네상스적 견해는 결정적 으로 르네상스적 유심론에 의해 성립되었지만, 자연 개념이나 자연주 의적인 심리학적 관점에서는 이 두 문제는 아주 판이하게 다루어진듯 하다. 자연주의에로의 경도, 죽 <영혼>의 원리를 일반적 자연 연관 속에 편입시키고 순수하게 그 테두리 내에서 설명해 내려는 시도는, 15 세기말 파두아 학파에 의해 시도된 아리스토텔레스 심리학에 대한 비판적 개혁의 근간을 이루었다. 폼포나찌의 저술 『영혼의 불멸성』은 그와 같은 결론을 처음으로 제시하는데 여기서는 다시금 아베로이스

주의와의 대결이 그 중심에 대두된다. 아베로이스적인 이론에 의하면 지성의 단일성은 그것의 일반성과 단일성을 동일한 것으로 보며, 사 유 원리의 개체성을 근원적이 아닌 우연적인 특성으로 받아들일 때에 만 보장된다 그러나 만일 영혼적 행위를 순수한 사태 측면에서 서술 하지 않고 그것의 초월적인 원인을 묻는다거나, 또 그 원인을 규명함 에 있어 일체의 영혼적 과정의 다양한 경험적 특성을 망각한다면 그 것은 더이상 심리학이 아니라, 형이상학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경험적 특성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설명하기 전에 우리는 그것 을 일단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아베로이스주의에는 바로 그러한 방법적인 근원 원리가 결여되어 있다. 아베로이스주의는 오히 려 사유하는 의식을 소멸시키는 쪽으로 논리를 전개한다. 아베로이스 주의가 말하는 단일한 < 활동하는 오성>을 하나의 우주적인 존재나 힘으로 받아들인다 해도 그 힘에는 그것을 자기 의식으로 만들 수 있 는 계기, 즉 단순한 즉자적 상태에서 < 대자적 존재>로 전환시킬 만 한 계기가 없다. 그러나 의식이란 오로지 <대자적> 형태로만 가능하 며 늘 구체적 개별화를 통해서만 상상해 볼 수 있다. 죽 모든 규정은 타자를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폼포나찌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의식 주관의 개별화는 거기에 상응하는 객체의 개별화를 상정하지 않 고서는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개별적 영혼은 개별적 육신의 형 상으로서만 이해되어질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우리가 육신의 영활이라 고 부르는 것은 바로 다름아닌 육신의 개별화 작업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영혼으로 인하여 육신은 단순한 <물질>과 구별되며, 독특한 특성을 띤, 독특하고 구체적인 개인적 삶을 담지하는 유기적 육신이 된다. <영혼> 역시 <육체>에 대한 외적인 동인이나 생동의 원리로 등장하는 대신, 육체를 형성하며 그것에 독특한 특성을 부여하여 완 성하는 역할을 한다 . 이 엄격한 대응 관계는 거꾸로도 적용될 수 있

다. 영혼은 단지 < 보조적 형식 for ma ass i s t ens > 이 아닌 <구성적 형 식 form a i n fo rmans> 으로서, 그 형성 기능은 항상 특정한 물질적 기 초를 통해 수행되며, 그러한 기초를 포기한다는 것은 자신의 기반뿐 아니라 바로 자신과 자신의 의미를 잃게 됨을 의미한다. 영혼과 영혼의 불멸성의 논의에 대한 폼포나찌의 비판 바로 이점에서 폼포나찌는 아베로이스주의뿐 아니라 일체의 유심론 적 심리학과도 구별된다. 육신의 형상인 영혼을 육신과 별도의 존재 로 분리시킬 수 없는 것처럼 그 <고도의> 기능과 < 저급한 > 기능을 구별케 하는 절대적 구분도 불가능하다 . 그것은 <살아 있는> 한에 있어서만 <지성>이요, <정신>인 것이다. 또 그것은 오로지 특정한 유기체를 통해서만 그 생명력을 발휘한다. 그러므로_우리가 순수 한 이성적 근거를 따르건대_영혼의 불멸성, 죽 육체와 별도로 성 립하는 그것의 독립적인 항구성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한 증명은 면밀히 살펴보면 전적으로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 pe ti tio pri nc ipii를 품고 있는 것으로, 사유 기능의 일반성과 더불어 감각적 지각과 대조되는 <순수>사유의 독자적 성과를 인정하며 그것의 실존 성과 그것을 사유하는 실체에서 분리하는 것이 가능함을 인정한다. 일반적이며 이념적인 의미들이 존재하므로, 즉 감각 경험과는 별도의 논리적 윤리적 가치가 존재하므로 그러한 가치의 담지자인 독립적 사 유 능력 역시 요청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사유 행위에 대 한 이 날카로운 분석은 별다른 효력이 없는데, 그 이유는 정신은 일 반적 개념의 의미나 일반적 규칙을 단지 특수한 것, 죽 지각이나 감 각적 상상의 내용을 직관하는 것을 통해서만 파악하기 때문이다. 이 러한 구체적 충족이나 특수자와의 관련이 없다면 보편적 사상은 공허

할 뿐이다. 이렇게 하여 논리학과 심리학은 공히 기독교적 논리와는 철저하게 상반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폼포나찌는 결코 이와 같은 기독교와의 모순 때문에 고심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진리 의 이중성>이라는 이론을 수용하기 위해 그러한 모순을 더 강조하였 다. 이와 같은 형식적 해결은 그의 테제가 갖는 급진성을 더욱 인정 하는 결과만을 초래하였다. 그는 아베로이스주의와 대결할 때면 항상 토마스 아퀴나스가 만인에 대한 지성의 단일성 이론에 대해 반론을 펴면서 쓰곤 했던 논거둘을 차용했지만, 이제 토마스와, 전체 스콜라 심리학의 토대에 대하여 논박하기에 이르러, 무엇보다 토마스의 영혼 개념이 지니는 플라톤적 요소와 아리스토텔레스적 요소 간의 갈등을 더할 나위없이 철저하게 파헤치기에 이른다. 폼포나찌는 영혼과 육신 을 근원적으로 다른 것으로 보며 다른 실체로 파악하는 플라톤주의가 자신의 엄격한 형이상학적 이중주의와 어느 정도 일맥 상통함을 인정 한다. 그는 육체와 영혼 간의 <결합>을 상호관계, 즉 내적이고 본질 적인 연관으로 파악하는 대신, 영혼을 단지 의부에서 가해지는 운동 인이라고 보았댜 그러므로 우리가 인간의 자기 의식을 통해 직접 경 험한다고 믿는 <육체>와 <정신>의 통일 따위는 결국 기만에 불과하 댜 그것은 황소와 쟁기 사이에 놓여 있는 결합 이상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一-아리스토텔레스의 기본 정의에 의하면 영혼이란 바로 현 실, 즉 육체의 <완성태> 그 자체인데-어떻게 아리스토텔레스주 의자였던 그가 위와 같은 의미의 결합에 만족할 수 있었겠는가? 영혼 에 대해 한편으로는 지상의 삶과 연결되어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육체로부터 분리하여 독립된 실체로 드러나는 능력을 지녔다는 식으 로 설명하는 것은 모순이다. · 실체는 우리에게 결코 절대적 존재를 <죽자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조작과 작용 방식을 통해 유추될 수 있는바 동일한 실체에 대하여 두 가지 전혀 다른 작용 형식이 있다고

보는 것은 무리이다 . 만약 우리가 영혼에 대하여 육체의 형상으로서 경험적으로 제한된, 경험적으로 드러나는 작용 방식 외에 또 다른 것, 즉 그러한 것과 독립된 방식을 인정한다면 그것은 실재적인 정체성이 아닌 껍데기만을 의미한댜 바로 이점이 토마스 이론의 가장 큰 결함 이다 토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의 인식론적 토대를 인정하지 않 을 수 없었다 .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마찬가지로, 사유는 어떤 방식 으로든 감각적 표상과 연결되어야지 그렇지 않고서는 어떠한 사유나 어떠한 지성적 작용도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간접적이며 < 대리적인> 사유 행위는 항상 직접적으로 소여된 그 무엇, 죽 의식에 직접 현존 하는 것에 의존한댜 그리고 이러한 현존은 단지 < 환상 > 이나 지각, 감각적 구상력을 통한 상을 의미한다. 그러나 토마스는 인식론적 입 장에서 볼 때 필연적인 이와 같은 귀결을 형이상학자적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육체로부터 영혼을 분리하는 것은 영혼으로부 터 자신의 기능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토대를 빼앗는 것과도 같 다. 그의 사상적 전제의 이와 같은 변화는 그 사상 자체의 극복보다 는 그 이전과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형식을 요청하게 되었다. 아베로이스주의와 스콜라적 심리학의 대립 그러나 그러한 형식은 단지 고안될 수 있을 뿐 경험되는 것은 아니 며 더 나아가 결코 경험될 수 없다 . 여기서는 경험 같은 것은 쓸모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더 이상 심리적 또는 논리적 분석이 아 닌 사변적 성향을 떨 수밖에 없게 되었다. 분석가이자 심리학자인 아 리스토텔레스는 결코 영혼의 한 작용방식이 다른 것, 즉 극단적으로 상반된 것에로 전환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 1 3 ) 이 전환은――-존재 개념이 작용 개념으로 특징지어진 고로-사실 일종의 신비적 변모,

13) < N 띠 ue plu res mod i cog n oscend i ab Arist o t e le s in aliq u o loco sunt rep erti, n 띠 ue consonat rati on o.> Pomp on azzi, De im morta li ta te anim i (15 16); Cap. IV, IX 둥

즉 오비디우스의 기적 묘사에나 나올 법한 변형을 방불케 한다 .1 4} 그 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와 스콜라적 심리학과의 갈등이 여기에서처럼 첨예하게 드러나는 곳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스콜라 철학적인 영혼의 형이상학은 이제 전적으로 한낮 영혼의 우화, 죽 실제 상황 내 지 < 자연스런 > 상황과 전혀 무관한 허구가 되고 말았다. 만일 육체와 동떨어진 영혼의 이중적 존재를 인정한다면 육체는 감각적인 것에 관 련되고 영혼은 그것으로부터 전적으로 분리된 것이므로 그에 대한 두 가지 상이한 인식 방식이 규명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물질적인 현상들 에 대한 관찰은 우리에게 그러한 분리를 규명하는 데 아무런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합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것은 단지 물질적 현상들 에 대한 해석과 < 규명 > 일 뿐, 우리 입장에서 보아 초월적이고 파악 불가능한 다른 < 세계 > 와 그 속에 있는 영혼의 상태에 대한 자의적인 추측은 아니다 < 이성 > 을 발휘한다면 올바르게 제대로 해석된 아리스 토텔레스의 입장을 따르는 수밖에 없다. 이처럼 인간 영혼은 양쪽 입 장에서 모두 , 단지 기관울 지닌 육신의 형상일 뿐이며, 개별적인 것을 넘어 일반적인 것을 추구하며 감각적이고 유한한 것을 넘어서서 항구 무변한 것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일견 불멸하는 (secundum quid

14) 위 의 책 . Cap. IX:

im mort alis) > 것으로 불리울 수도 있지만 그 자체로는 < 본질적으로 죽는다 (s impli c it er mor tali s) > .151 이상은 피렌체 아카데미의 영혼설과는 엄연히 대립되는 견해이다. 사실 폼포나찌의 소논문인 『영혼의 불멸성에 대하여」는 같은 제목의 피치노의 글과 여러 가지 측면에서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이와 같은 대립을 뛰어넘어 거기에는 분명 체계면에서의 공통성이 존재한다. 즉 폼포나찌와 피치노는 공히 개체성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여 < 자아 > 현 상을 심리학의 주제로 삼으려 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그 목표를 전혀 상이한 방식을 통해 추구한다. 피치노에 있어서 인간을 엄격한 의미 의 < 자아 본질>로 이해케 하며 모든 단순한 사물들의 영역으로부터 인간을 구별케 하는 것은 인간의 순수 정신적인 속성이다 . 진정한 자 아가 구현될 수 있는 인간의 자유는 육체로부터 영혼이 자유롭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와는 반대로 폼포나찌의 입장에서의 개체성은 결코 자연에 반하여 주장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으로부터 귀결된 것이 며 자연을 통해 입증된다 . 그에 따르면 개체성은 결코 < 정신 > 의 특 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의 근본 속성이다. 생명이란 다름아닌 개별적 형식과 부단히 개별적인 형성을 통한 존재를 의미한 다. 피치노가 개별적 자아의 권리와 특성을 수호하고자 초자연주의와 초월성에 호소했다면 폼포나찌는 바로 같은 목적을 위하여 자연주의 와 내재성에 의존했다. 폼포나찌에게는 개별자의 최종 근거와 그 진 정한 정당화는 자연과 대비되는 내세에 있지 않고 현세에 있다. 그는 <개체화>의 범례와 그 근원적 유형을 바로 유기적 실체에서 보았다. 15) De im morta litate an i m i외에도 아리스토텔레스의 de an i ma( 페리 Fen i, Rom 1 얽 6 편집)에 대한 주석을 참조하라. 더 자세한 것은 나의 글 Erkenntn i- spr o blem, I. 105 쪽 이 하와 더 글라스 Dog la s, The ph il o soph y and psych olog y of Pi et r o Pomp o nazzi, C ap. 4, 5 를 참조하라.

그리하여 그를 통해 형이상학자로서의 아리스토텔레스 대신 생물학자 로서의 아리스토텔레스가 다시금 각광받기에 이른다. 이와 같이 그는 원칙적으로 육체적인 것과 구별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의 지속적인 전개와 완성을 의미하는 영혼설을 대변하였다. < 외계 > 는 <내적> 세 계의 실상에 준해 형성되며, 동시에 개별적 영혼의 삶에 대한 기본 경험은 전체 자연을 이해하는 열쇠로 작용한다. 그러나 후대의 근대 적인 자연관과 자기 의지에 관한 견해가 이루어 낸 것은 피치노의 입 장이나 폼포나찌의 입장과는 구별된다. 근대적 견해의 진정한 원천은 < 주관 > 을 < 객관 > 에 종속시키려는 것도 아니요, <객관>을 <주관> 에 종속시키려는 것도 아닌, 어떤 의미에서 양자간의 새로운 이상적 균형을 추구하는 사상적 움직임에서 찾아야만 한다. 개체성 문제에 관한 유심론적 견해와 자연주의적 견해 이러한 균형을 이루고 새로운 자연 개념과 새로운 지성 개념, 정신 개념을 얻어내어 확립시키려면 형이상학적 방법이나 단순한 심리학적 방법을 버려야만 한다. 그러한 목표는 초자연적인 형이상학도 아니요, 자연주의적인 심리학도 아닌 사실에 관한 엄밀 과학적인 관찰, 예술 가적인 관찰을 통해 달성되었다. 이러한 관찰을 통해 정신의 자유와 자율성에 더 이상 모순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의 가장 믿을 만한 증거 로서 자연적 필연성과 자연적 법칙성이라는 개념이 창안되기에 이르 렀다.

3 르네상스 시대의 심리학은 그 철학적 과학적인 형식면에서, <주관 성>이라는 새로운 심오한 개념을 배태한 저 위대한 정신적 운동의 초보적 단계에 불과할 뿐, 아직 새로운 문제 전체를 제대로 포괄하거 나 서술하지는 못하였다 . 그것은 르네상스의 심리학이 그러한 문제와 관련된 두 개의 대립된 계기를 진정한 통일체로 결합시키는 데 성공 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유심론>과 <자연주의> 사이의 해묵은 대결 은 르네상스적 풍토에서는 결말이 내려질 수 없었다. 그러한 점에서 초기 르네상스의 심리학적 체계는 단지 그러한 갈등을 첨예하게 드러 내었다는 공로밖에는 이렇다 할 의의를 지니지 못하였다. 이렇게 하 여 <자연> 개념과 <정신> 개념은 다시금 인간 <영혼>에 대한 주권 을 놓고 다투게 되었으며 이론적인 영혼설은 두 개의 엇갈린 견해 속 에서 분열된 채 남아 있게 되었다. 유심론을 추구하는 피렌체 아카데 미에서는 영혼설이 자연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수반할 수밖에 없었으며, 폼포나찌의 심리학처럼 <영혼>과 <삶>이 하나로 파악되 는 경우는 정신의 특수성이나 <높은 차원의> 지적, 윤리적 기능이 갖는 특수성이 상실되기에 이르렀다. 죽 정신의 영원성이나 불멸성에 대한 주장은 자연을 부정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의 유일성이나 완결 성을 주장하는 이론은 영혼의 불멸성을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배타적 관계가 성립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바로 이 대립을 순수 실체적 관점에서 파악한 데 연원한다. <자연>과 <정 신>을 각각 존재의 두 부분으로 간주하는 한, 둘 중 어느 것이 포괄 하며 혹은 포괄되는가 하는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며, 그 부단한 논쟁은 실로 현실의 전 영역에 걸쳐 세찬 논쟁을 불러일으 킨다. 텔레시오는 정신을 자연의 일반적 힘, 죽 따뜻한 기운과 찬 기

운에 의해 지배되고 움직이는 자연의 한 특수 영역으로 보았다. 피치 노는 자연을 축복의 영역이나 < 신적 예언 Prov i den ti a > 의 단계 , < 숙 명 Fa t um > 의 단계보다 아래에 있는, 존재의 가장 낮은 단계로 보았 댜 자연주의적 입장에서 볼 때는 정신적인 영역은 존재의 한 < 구 역 > 을 형성하는 것으로서 < 독자적 영역 > 으로 파악되기보다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법칙을 배태하는 그와 같은 것이다. 반면 유심론적 입 장에서의 자연은 < 형상 > 계와 < 질료 > 계를 연결시키는 최종적인 고리 이댜 1 6) 그러나 단순한 견해 이상인 이와 같은 기본 토대에 대한 연구 가 진행되어 결국 유심론적인 심리학뿐 아니라 자연주의적 심리학의 전제로부터 서서히 이탈하는 대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제 < 육체 > 와 < 영혼 > 간의, 죽 < 자연 > 과 < 정신> 간의 실체적 물질 적 관련 대신 그 기능적 관련이 강조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형 이상학은 이와 같은 새로운 관련을 자생적으로 얻거나 형성하지는 못 했다. 즉 다른 분야에서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당시의 형이상학은 유 심론과 르네상스적 자연주의에 영향을 미친 스콜라 철학적인 토대를 결코 뛰어넘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도움은 한편으로는 엄밀한 경험적 연구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 이론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두 영역의 통합은 르네상스 사상사 전체를 통하여 가장 획기적이고 16) 일반적으로 인문주의 역시 자연학에 가장 하위의 위치 를 부여한 중세적 학문관 을 극복하지 못하였다 . 예 를 들 어 살루타티는 법률학을 의학의 우위에 두었는데, 그 이유인즉, 전자는 신적 지혜의 직접적인 중거인 형평 a equita s 의 원리를 근간 으로 하는 반면에, 후자는 변용하고 일시적인 것을 대상으로 삼으므로 학문이라 기보다는 기술에 가깝다는 것이다. 의학은 선( 善 )을 추구하지 않고 단지 하위에 위치하는 진( 眞 )을 추구하며 단지 경험적인 <실험과 도구> 를 사용함으로써, 사 변을 통해 사물의 영원 불변한 이성적 근거 를 얻는 것과는 달리, 단지 일시적인 것만을 추구한다. (더 자세한 것은 Paul Joa ch ims en, Aus der Entw ick lung des itali en is c hen Humanis m us, Hi st o r. Z eit sc hri ft, Bd. 121 (19 20), 196 쪽 이 하와 Ernst Walser, P og gius Florenti us , 250 쪽 이하 를 참조하라.)

괄목할 만한 풍부한 계기를 제공한다. 자연 인식의 이론과 예술적 창 조의 이론은 이제 철학에 있어서 새로운 길을 제시할 뿐 아니라 그것 을 선도하기에 이르었다. 새로운 자연 정서—페트라르카 그리고 그것은 자연 법칙에 대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 다. 그리하여 <자유>와 <필연>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하여 새로 운 장이 열리게 되었다. 르네상스의 과학 이론이나 예술 이론은 당대 의 사상적 중심 문제를 간과할 수 없었으며 바야흐로 형이상학적인 반대 학설을 초월한 해결책을 찾아내기에 이르렀다. 자유와 필연의 이율배반은 이제 대응관계로 변모하게 되었으며 순수 안식의 세계와 예술적 창조의 세계를 · 연결하는 일반적 특성으로 인해 두 영역에서는 비록 방식은 다를지라도 명실 상부한 정신적 산출의 계기가 부각되게 되었댜 그리하여 그것들은 칸트식으로 말해 모든 소여된 것의 <복사 적> 관찰을 뛰어넘는 우주의 <구축적> 구성을 달성하게끔 되었다. 과학과 예술은 그와 같은 자신의 형성적 기능에 대해 의식하게 됨으 로써 자신들이 신봉하는 법칙을 본질적인 자유의 표현으로 이해하게 끔 되었다. 그리하여 자연 개념과 전 대상계는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되었으며 <대상>은 이제 단지 자아에 대한 대립이나 반대 급부이기 를 지나 자아를 통한 일체의 생산적 창조의 목표가 되어, 바로 그것 을 통해서만이 진정한 구체성을 띠게 되었다. 대상의 필연성을 통해 자아는 자기 스스로 자발성과 그 방향을 인식한다. 이와 같은 철학적 관념론의 기본 사상은 이미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에게서 날카롭고 깊 게 다루어진 바 있다. 그러나 그의 그와 같은 사상이 본격적인 결실 과 만족을 얻은 것은 추상적 사변의 영역에서가 아니라 과학적 인식

과 예술적 직관이 지닌 새로운 형식을 통해서였다. 그러나 자연 개념이 변화하였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철학적이건 과 학적 또는 예술적이건 단순한 이론에서 발견되기보다는 13 세기 이래 진행된 자연에 관한 정서를 통해 드러난다. 페트라르카의 서정시는 교조적이자 중세적인 자연관을 최초로 해체시켰다. 그리하여 모든 이 질적인 요소, 괴기스럽고 영험적인 요소는 자연에서 배제되게 되었으 며, 서정시적인 감홍을 통해 자연에서 영혼적 실재에 대한 대립을 느 끼는 대신 영혼의 혼적과 여운을 느끼게 되었다 . 이처럼 페트라르카 에게 있어서 풍경은 자아의 생생한 거울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에 대한 정서를 해방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제한하는 의미도 지 닌댜 왜냐하면 바로 영혼적인 것을 반영하는 그와 같은 기능을 통해 서는 자연은 단지 간접적이자 반성된 현실성만을 지니기 때문이다. 즉 자연은 그 자체로서 연구되거나 묘사되지 않는다. 그것의 가치는 다만 근대적 인간으로 하여금 그 속에서 자기 자신과 자기 내부의 생 동성, 그리고 무한한 다면성을 표현하는 새로운 수단이라는 점에 있 다. 페트라르카의 서간에는 그의 자연 정서가 지니고 있는 독특한 양 극성이 놀라우리만치 명료하고 의식적으로 드러나 있다. 그의 자연 정서는 그를 내적 자아의 표현을 넘어 자연 묘사에로 고무하지만 그 는 결국 바로 이러한 관조를 통해 자신에로, 즉 자아에로 회귀한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 풍경은 그 자체로서의 가치나 의미는 상실한 것으로, 자연 정서는-이제 바야흐로 자아 정서에 침잠하게 된 것이다. quid en im habet locus ille glo ri os iu s habit ator e Francis c o. (누가 과연 프랑스에 사는 이들보다 영광스런 자연을 누리리 ?)17) 17) Petr ar ca, Ap pe nd litt. epi st. 6, Francassett i 편 집 , Voig t, Wi ed erbel. d klass. Al tert ., I, 113.

페트라르카의 자연 묘사는 곳곳에서 이와 같은 이중성과 그 특유의 동요를 포함하고 있다. 그의 자연 묘사 중 가장 유명한 방뚜산 Mont Ventu o x 등정기에서도 그와 같은 사실이 명료히 드러난다. 우리는 페트라르카가 천신만고 끝에 산꼭대기에 올라서서는, 눈앞에 전개되 는 광경을 보는 대신 자신의 길잡이가 되어준 책을 떠올리는 특이한 장면을 알고 있댜 그는 인간은 높은 산과 넓은 바다 물결, 그리고 천 체의 운행에 대해 경이를 느끼면서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잊는 다고 말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떠올린다 . 181 이 한 문장에는 사 상과 정서의 대립이 전형적인 형태로 함축되어 있다. 자연에의 충동 이나 자연을 직접적으로 관조하려는 욕구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경고, 즉 그러한 것은 유일하게 참되고 직접적인 영혼과 신의 관계를 흐릴 뿐이라는 저 경고로 인해 움츠려 든다. Noli for as ire, in te ips um redi , in int e r i or e hom ine habit at verit as. (밖으로 향하지 말고 너 자신에게로 회귀하라. 인간의 내면에 진리가 있나니 .)19) 아우구스티누스의 이와 같은 경고는 자연에 대한, 그리고 <외적> 직관의 세계에 대한 모든 직접적 접근을 저지한다. 페트라르카의 자 연 정서는 결국 그의 전체적 세계 정서를 반영하는 긴장을 담고 있 댜 그는 인간과 자연, 세계와 역사를 새로운 의양을 지닌 것으로 바 라보았으나 그 외양 자체는 그에게 있어 하나의 기만이나 유혹일 뿐 18) Petr arca , Ep istol ae Jam i l. IV, I; 부르크하르트, Kult d Ren, II, 18 이하와 비교하라. 19) Aug u stin u s. De vera reli gion e, Cap. 39.

이었댜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그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 가슴 깊숙이 느껴지는 은밀한 투쟁 > 을 다룬 끝에, 근대적 영혼이나 근대적 인간을 제시한 효시격이라 할 만한 책에 『헛된 세상에 관하여 De conte m p tu mund i .!l 라는 지 극히 중세 적 인 제목을 달기 에 이 른 것 이다 . <자연의 발견>이라는 방법 페트라르카가 자연에 대하여 취한 태도는 그가 세속적 삶을 지탱하 는 사교와 명성에 대하여 취한 태도와 흡사하다. 죽 그는 저항할 수 없을 정도의 열정을 가지고 자연에 몰두하였지만, 결코 아무 거리낌 없이 거가에 몰두할 수는 없었다. 이렇게 하여 결국 천진하기보다는 철저하게 <감상적인 > 자연과의 관계가 성립되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연은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단지 자아에 대하여 때로는 어둡고 때 로는 밝은 배경을 제공하는 것으로서 이해되고 느껴지며 향유되어지 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콰트로첸토와 친퀘첸토가 도래하자 그러한 · 상황에는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바야흐로 자연 개념을 우선 그 자체로서 확 립하고 거기에 확고하고 엄격한 <객관적> 성격을 부여해야만 하는 과제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것이 해결되고 나서야 어떻게 이 새로 운 독립적 영역이 <의식>의 세계나 <정신>의 세계와 관련되는지 하 는 문제가 새롭게 제기될수 있는 것이다. 이 두 세계를 <호응>이나 <조화> 동의 개념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수도 없이 뒤따랐지만 우 선 그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두 영역에 대해 각자의 확실성이 부여 되어야만 했다. 문화사나 철학사적인 통설에 의하면 자연의 고유 영 역을 발견함에 있어 르네상스 시대에는 직접적인, 즉 감각적이고 경

험적인 관조를 동원하였다. 부르크하르트는 자신의 저술 중 가장 중 요한 부분을 할애하여 이와 같은 진보적인 < 세계의 발견 > 에 대해 서 술하였댜 순수한 경험 현실로서의 새로운 현실상을 얻기 위해, 세계 상을 인간과 연관시키기보다는 순수하고 객관적으로 포착하고 단순한 감각적 특성에 따라 수용하여 묘사, 분류하게끔 되었다. 그와 같은 관 찰 방식의 발달은 14, 15 세기 이탈리아 곳곳에 등장하여 점점 더 그 세력과 범위를 확장해 나갔다 . 새로운 세계상의 범례가 될 만한 자료 들은 점점 더 늘어났으며 그와 같은 새로운 제반 세계상은 이제 개괄 적으로뿐만 아니라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명료하게 전개 되었다. 그리고 직접적인 관찰에의 충동에 걸맞게 조직적으로 설명하 고 분류하고자 하는 욕구도 일기 시작했다. 식물원이나 동물원을 향 한 박학 취미는 이제 새롭고 엄밀한 형식을 갖춘 자연 서술에의 효시 를 이루게 되었다. 카살핀 Casal pi n 은 『식물에 관하여 De p lan ti s 』 (1583) 에서 식물 세계의 < 자연적 체계 > 를 처음으로 세움으로써 과학 적 식물학의 장을 열었다 . 르네상스의 자연 철학도 일단 이와 같은 순수 경험적 성향을 띠는 듯 햇다. 후에 베이컨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텔레시오도 자연은 추상적인 아리스토텔레스적 범주의 매개를 통해서 가 아니라 그 자체를 통해 인식되어지고 , 그 자체의 원리에 부합되게 Uwc ta pro p ria princ ip ia) 연구되 어 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 와 같은 고 유의 원리는 <형상>이나 <질료> , 또는 <현실성>과 <실재성>, <실 재>와 <상실> 같은 논리적 개념과는 무관하며, 다만 일관된 구체적 자연 현상을 통해 발견되어 질 수 있는 것이다 . 이처럼 직접적인 감 각적 관조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근원 현상으로 텔레시오는 우선 온 기와 냉기를 구분하였다. 일련의 구체적 사테들은 이 두 기운이 서로 균형을 이루거나_변화의 논리적 주체가 아닌_그것의 실재적 인 물질적 담지체인 질료가 계속 다양한 형태를 땀으로써 드러나는

것이다. 이 다양함은 삼단계로 정리되어 엄격한 법칙성을 띤 단위를 이룬댜 텔레시오는 이와 같은 인식의 기본 수단으로서 늘 감각적 수 용을 들었다. 그것은 모든 지성적 활동, 사유를 통한 정돈, 개별 사실 에 대한 비교작업의 전제이다 . 왜냐하면 단지 그것만이 <주관>과 <객 관 > 사이의 관계, 인식과 현실 사이의 접촉을 성립시키는 능력을 지녔가 때문이다 . 텔레시오의 자연 체계와 인식 체계는 철두철미 이 러한 접촉에 근거한 것으로, 어떤 대상에 대한 일체의 사유 판단은 그 대상과의 감각적 접촉을 전제로 한 것이다 . 우리는 대상에 관한 의식을 다름 아닌, 대상이 우리에게 작용하는 것, 죽 대상이 그 작용 력을 통해 우리에게 들어오는 것을 통해 얻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 신 > 이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의 움직이는 실체로서 그 운동 상태는 외부적인 작용에 의해 고정되기도 하고 변모되기도 한다 . 그리고 일 체의 감각적 지각은 그와 같은 변화에 대한 일정한 양태를 반영한다. 단지 여기서 차이를 드러내는 것은 근원 동력의 전개 방식인데, 그것 은 전개를 담당하는 매개의 속성에 의해 결정된다. 즉 온기와 냉기는 시각적 감각에서는 빛의 매개를 통해, 청각적 감각과 후각적 감각에 서는 공기라는 매개를 통해 전환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간접적 전달 도 결국 직접적인 접촉으로 귀결되므로 텔레시오는 촉각을 감각 중에 서도 으뜸으로 여겼다. 텔레시오의 자연 철학과 그 인식론적 토대 그에 의하면 모든 <고도의> 정신적인 기능도 궁극적으로는 촉각에 로 환원시킬 수 있으며 우리의 모든 사유와 추론도 결국 <먼 곳에 대한 접촉>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성적 추론 작업은 바로 정신이 의 부로부터 연원한 요인, 죽 냉기와 온기의 조합을 감각적으로 수용할

뿐만 아니라, 자기 내부에 보존하여 한때 외적 영향에 의해 생겨난 운동 상태를, 특정 조건 아래서 다시금 재개시키는 능력을 뜻한다. 정 신은 이러한 방식으로 과거 인상의 반복은 물론 현재와 과거 상태를 결합할 줄 알며, 더 나아가 미래를 예견하여 장래의 인상을 미리 점 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과거에의 회상과 미래에의 응용 형식을 가리켜 우리는 흔히 사유의 반성적 능력, 즉 < 이성적 추론 > 능력이 라고 부른댜 그러나 여기서는 독립적이며 <능동적인 지성 > 의 고유 한 힘 대신 한때 우리 안에서 작용했던 운동의 기계적 전개만이 드러 날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감각에서 기억울, 기억에서 경험을, 경 험에서 인식을 유도한 것은, 그가 비록 명시적으로는 자신의 nous 에 대한 이론을 통해 개별적인 영혼의 기능을 다시 부정했지만, 내적으 로는 그러한 상황과 지식 구성에 미치는 그것의 기여를 인정했음을 의미한다. 실상 감각과 표상, 표상과 기억, 기억과 지식 사이에는 단 지 모호한 차이만이 있을 뿐이며, 지성 자체는 그러한 간접성으로 인 해 필연적으로 불완전한 상태로 머물면서 주어진 것의 실재 성격 중 단지 일종의 그림자, 유비, 비유 동만을 취할 뿐인, 간접적으로 유도 된 감각에 불과하다 . 20 ) 르네상스 자연주의는 언뜻보아 그 체계상 엄격한 경험주의나 감각 주의적 성향을 띤 듯하다. 즉 그것은 전적으로 경험적 관찰만을 따르 며 감각적 지각에 의한 직접적 증거를 지니지 않은 것은 자연의 영역 에서 일체 배제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 그러나 텔레시오의 사상이 르 네상스 자연 철학에 끼친 영향을 추적해 보면 그와는 다른 독특한 양 상이 벌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미 텔레시오의 다음 세대, 죽 그의 직 20) Telesio, De rerum natu ra jux ta pr op ria princ ip ia; 특히 Lib . VIII, Cap. 3, II, Neapo li 1 해 7, fol. 314 이하, 326 이하와 비교할 것

속 제자들조차 자연에 관한 엄밀한 관찰과 엄밀한 서술적 인식 방법 을 거부하기에 이른댜 물론 텔레시오의 기본 성향은 아리스토텔레스 내지 스콜라 철학적인 자연 해명에도 반대되지만 그에 못지 않게 < 비밀스런 > 과학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는 <자체 의 원리로 > 자연을 해명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점성학이나 마술 같은 비밀 과학을 거부하고 있다 . 그러나 그와 같은 경험 과학의 독립성은 획득되자마자 다시 소멸되기에 이르러, 르네상스 자연 철학에서는 결 코 마술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 예를 들어 조르다노 부르노의 저 술에서조차 < 자연적 마술 > 의 문제는 너무도 광범위하게 다루어져서 사변적 철학적 문제들을 압도하였으며, 자연론에 관한 기본 성향이나 인식론 측면에서 텔레시오와 가장 가까운 캄파넬라도 자신의 자연 철 학 주저에 『 자연의 의미와 마술에 관하여 De sensu rerum et ma gi다같은 제목을 달 지경이었다. 즉 새롭게 제시된 <경험주의>는 아직 그 자체로서 < 순수 경험> 체계를 이루고 그것을 모든 상상적 요소로부터 방어할 만한 능력을 갖추지는 못하였다. 오히려 이 <경험 주의>는 곳곳에서 자신과 모순되는 것, 즉 신지학이나 신비주의 같은 것으로 전환되곤 하였다. 그리하여 결국 텔레시오의 자연 개념은 직 접 근대적 과학에로 귀결되지 못하였다. 캄파넬라가 자기 자신을 텔 레시오적인 원리를 대표하는 동시에 갈릴레이의 옹호자라고 자처한 것은 자기 기만에 불과하였는데 , 2 1 ) 그것은 그가 그들과 자연 인식의 방법 차원에서 날카로운 차이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경험을 통하여 <이성>을 찾으며 경험 속에서 현실의 를 찾는 레오나르도 와 갈릴레이의 방법은 감각주의적인 자연론의 방법과는 확연하게 구 21) 캄파넬라의 Ap o log ia pr o Gali leo math e mati co jlore nti no , Fra nkfurt 1622 과 비교할것

별된댜 즉 전자는 점점 더 수학적인 관념론에 몰두하는 반면, 후자는 언제나 만유정신론적인 원시적 형태로 후퇴한다 . 이러한 후퇴는 결코 우연의 소산도 아니며 단순한 역사적 퇴보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자 할 때 흔히 동원하는 어두침침한 충동이나 격정 따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탈리아 자연 철학의 일반적인 이론적 전제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 한 사물을 < 인 식한다>는 것은-―一이것이야말로 위의 성향이 늘 문제삼는 주제이 다一―-그것과 하나가 됨을 의미한다. 그러한 일치는 주관과 객관, 즉 인식하는 자와 인식되는 것이 동일한 속성을 띠며 동일한 생명 기관 의 지체이자 부분일 때에만 가능하다. 경험적 세계관과 마술적 세계관 모든 감각적 지각은 그와 같은 융합과 재결합의 과정이다. 대상은 우리가 그것에서 동일한 생명감을 느끼고 그것들이 우리들의 자아 경 험에 직접 드러나 현존하는 방식으로 운동과 영혼이 포착됨으로써 지 각되며 파악된다. 이와 같이 범신론은 이제 인식론의 필연적 귀결점 이 됨과 동시에 대전제를 이루게 되었다. 파트리치가 자신의 인식론 을 전개함에 있어 라는 제목의 글을 첨부한 것도 그러 한 사실을 반영한다. 그는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범신론적 기본 사상을 단지 부분적으로만 인정하여 별들이 운행하는 천상계에만이 영혼이 것들여 있고 다른 것들에는 영혼이 것들여 있지 않다고 봄으 로써 세계를 하나의 괴물로 만들어 버렸다고 비판한다. 파트리치에 의하면 생명의 단위는 그와 같은 구분이나 제한을 허용하는 것이 아 니며 전적으로 모든 물질계에 해당되는 것으로 가장 큰 것과 가장 작 은 것, 가장 높은 것과 가장 낮은 것, 천체에뿐만 아니라 단순한 원소

들에 이르기까지 고루 해당된다 . 영혼을 지닌 것만이 진정한 존재성 과 가치를 지녔다고 할 수 있으므로 원소에 고유한 생명력이 없다고 보는 것은 그것의 존재와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다 . 221 사유와 <합리 적 > 추론 기능을 유비의 형성이라는 기능으로 환원시킴으로써 지성 과 감각이 단일함을 증명한 것은(i n t ellec ti o ni s cuju s vis princ ip ium sim plitud o est sensu per cep ta. t) 이미 텔레시오의 인식론을 통해서였 는데 이제 그와 같은 유비의 형성 과정이 명실 상부한 형이상학적 구 조를 지닌 것으로서 천착되기에 이론 것이다. <유비>의 이론적 유도 는 모든 존재자의 근원적인 본질 연관에 근거를 둔 것으로 그와 같은 연관을 전제로 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일체의 파악과 간 접적 결론들은 결국 감정 이입이라는 근원적인 행위로 귀결되며 우리 는 이 행위를 통해 우리와 다른 일체의 존재를 결합시키는 공통성을 얻게 된댜 카르단 Cardan 의 자연론도 철저히 직접적이고 직관적인 파악의 의미를 지닌다. 금속은 다름 아닌 땅속에 <파묻힌 식물>이며, 돌도 나름대로의 발전 과정과 성장, 성숙을 겪는다. 입) 이러한 입장은 마술을 단순히 허용하는 차원을 넘어 그것을 적극적으로 요청하기에 이르러, 마술에서야말로 모든 자연 과학이 진정으로 완결된다고 본다. 피코가 자신의 900 개 조항과 이 명제의 이단 시비에 대항하여 쓴 『반 박문 』 에서 마술이야말로 모든 자연적 지혜의 총화이며 일체 자연 과 22) Franci sc us Patr itius , Panp sych ia (Novae de univ e rsis Phil os op h ia e tom us ill). F errar iae 1591, Lib . IV, fol. 54 이하 . 23) Telesio , De rerum natu r a, VIII, 3, 텔레시오의 인식론에 대해서는 나의 Erkenntn isp r o blem, I, 232 이하 를 보라 . 24) Cardanus, De subti litate libr i X 꼬, Basel 1554, Lib . V, fol. 152:

학의 실천적 국면이라고 정의한 것도 바로 르네상스 자연 철학의 위 와 같은 일반적 신조를 반영한 것에 불과하다. 마술이란 바로 자연 인식의 실제적인 국면으로서, 자연 인식을 통해 이론적으로 유사하고 연관을 이루는 것으로 규명된 것은 마술을 통해 실제 서로 결합되어 공통된 목표를 추구하게 된다. 그러므로 마술은 그 자체가 기적이라 기보다는 자연의 위력에 대한 끈질긴 시녀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마술은 희립인들이 ‘공감’이라고 부른 우주와의 관련을 연구한다. 그것은 모든 사물의 본질을 꿰뚫고 지상의 품과 그 신비스런 저장실 에 감춰진 기적을 흡사 스스로 창조하기라도 한 양 드러내 보인다. 농부가 느릅나무와 포도나무를 접붙이듯 마술사는 하늘과 땅을 결합 시키고 저급한 세계의 기운과 드높은 세계의 기운을 서로 접촉게 한 다 .> 25 ) 이처럼 마술은 그 영험의 근거가 결코 자연을 이탈하거나 초 월하지 않고 단지 자연의 내부에서 찾아진다는 그 한 가지 조건에 힘 입어 전 영역에 걸쳐 승인되기에 이르렀다. 모든 마술적 작용은 악마 적 능력의 개입이 아니라 상황 전개에 대한 관찰과 그것에 내재하고 있는 법칙을 통해 그 향방과 귀결이 결정된다. 지암바티스타 포르타 Gia m batt ista Porta는 자신의 저술 『자연적 마술』에서 마술의 개념을 이와 같은 맥락에서 규정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자연은 마술의 대상 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의 주체이다. 자연은 동일한 것끼리 끌어 당기고 다른 것끼리 물리치는 내재적인 힘을 통해 모든 마술적 능력 의 원천이자 근원을 이룬다 . 26 ) 캄파넬라는 자신의 저술 De sensu rerum et ma gi a 에서 이와 같은 포르타의 기본 입장에 동의한다. 그 25) Pic o della Miran dola, Ap o log ia, Op e ra fol. 170 이 하 특히 연설문 de homi ni s dig nitate, fol. 3 'Z7이하 (번역은 부분적으로 Li be rt의 독역, 210 쪽)에 준 한 것임)를 참조하라. 26) Joh . Bap tista Port a, Mag iae natu ra lis Lib r i vig inti , Lib . I, cap. 2.

러나 포르타는 avµnvot a 11.ctl)Ta (sy m p n oia p an ta)의 사실, 즉 일반적 공감이라는 < 사실 > 에서 출발하는 반면 캄파넬라는 이 사실 자체에 사변적 < 근거 > 를 마련코자 했다. 르네상스 자연관에서의 마술의 의미 이렇게 해서 그는_르네상스 철학에서도 발견되는 역설적인 혼 합을 통해―—-마술에 대한 합리적 방법론자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임무는 포르타가 역사적, 사실적으로 일정 범위의 특정 사실로서 제 시한 자연적 마술의 궁극적 원인을 추적함으로써 거기에 진정한 합리 적인 형식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명백히 밝혔다 . Tl) 포르타의 저술이 대 우주와 소우주, 인간의 세계와 원소계, 식물계 , 그리고 동물계 사이에 촌재하는 일련의 유비를 탐구했다면 캄파넬라는 그와 같은 다양성 전 체를 단일한 원리로 환원시키고자 했다. 그는 대응이라는 사실에 만 족하지 않고 그것의 < 원인>을 캐려 하였으며 일체의 결합이나 일체 의 유사성과 상이성, 모든 공감과 반감의 원인을 감각적 통각 능력이 라고 함으로써 그것의 <원인>을 규명했다고 믿었다. 이와 같은 통각 능력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존재자에게 고루 해당되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간접적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단지 경험적일 뿐 아니 라 선험적으로 모든 것을 결합시킨다. 감각은 이제 단연코 모든 개체 적 차이룰 뛰어, 전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존재론적 본질 규정이 되었 初) Camp an ella, De sensu rerum et mag ia, Tob. Ad ami편집, Fra nkfurt 1620, Lib. IV, Cap. I, 260 쪽:

으며 그로 인해 모든 존재 요소들의 분리나 일체의 일시적 괴리는 해 소되게 되었다. 그것은 생성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는 것으로서 자연의 개별적 유기적 상태뿐 아니라 일체의 형식에 공통으로 내재한 댜 원인에 잠재하지 않는 것은 그 어떤 것도 결과로서 드러나지 않 듯이 생명이 없고 감각 능력이 없는 것에서는 감각과 생명을 띤 존재 가 나올 수 없는 것이다 . 281

28) Camp ane lla, Univ e rsalis ph io l osop h ia e seu meta physi a iru m rerum jux ta pr op ria dog mata part e s tres , Pa ris 1638, P. II, Lib. VI, Cap. 7 쪽; 캄파넬라 와 지암바티스타 포르타의 관계에 대해서는 Pio r enti on , Bernardin o Telesio , Fir en ze l 'o7 2 이하, II, 123 이하를 참조할 것.

우리는 여기서 캄파넬라 이론의 형이상학적 귀결에 대해 논의하기 보다는 그 이론의 방법적 측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런데 바로 이러 한 측면에서, 현상계에 충만한 감각적 요소에 대한 몰두와 그것을 직 접적으로 파악하고 규명하려는 노력은, 새롭고 특수한 현대적 개념으 로서의 <자연>개념을 창조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도외시하고 저 지했음이 확인된다. 수학이라는 수단과 그로부터 생겨나는 새로운 사 고 수단을 통해 경험에 대한 특정 표준을 수립하지 않는 한, 르네상 스의 경험주의는 객관적 가치 기준이나-쇄도하는 관찰 가운데에 서―—선택의 기준을 결하게 된다. 거기에는 단지 개별적 <사실>들 이 혼란스런 무질서 속에 잔뜩 늘어서 있을 뿐이다. 경험에 의존하는 것은 그 경험이 서로 이질적인 구성 요소를 내포하는 한 아무런 근거 도 제공해 주지 않는다. 이처럼 15, 16 세기의 자연 이론은 엄밀한 묘 사나 실험을 위한 첫 계기도 제공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경험적 마 술>을 성립시키는 계기도 제공하였다 . <자연적> 마술과 <정령적> 마술의 차이는 29) 후자가 초월적인 힘을 인정하는 데 반해 전자는 전

29) 이처럼 <자연적> 마술과 <정령적> 마술을 구분하는 것은 르네상스 철학에서 의 일관된 경향이다. 그 구체적인 예로는 피코의 Ap olo gi e 에 둥장하는 900 개의

의 총체 exp e ri m ento r um multo r um coacervati o> 정 도로 정 의 한다 면, 그 구성 요소에 대한 분류나 체계적인 < 자연 > 구성에서 차지하 는 개별자에 대한 평가는 불가능하다. 그와 같은 것은 다른 분야의 도움을 통해 경험의 여러 구성 요소가 분류되고, 경험 자체에 대해 내적인 < 위기 > 가 거쳐져야만 비로소 가능하다. < 우연적인 것 > 에서 <필연적인 것 > 을 구분하고 공상적이고 자의적인 것 에서 법칙적인 것 을 구분하는 이러한 분류는, 자연 철학이 표방하는 경험주의나 감각 주의를 통해서가 아니라 수학적 이성주의에 의해 수행된다 . 그러나 이러한 갈등 국면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승부를 낸 것은 단지 순수 한 이성적 요소만이 아니어서, 수학의 원리는― ― 다가로 이점은 르네 상스 정신사롤 통해 매우 독특하고 중요한 사실이다 - 예술 이론과 맥을 같이 하여 전개되었다. 수학과 예술의 이와 같은 연합을 통해 비로소 자연의 <필연성>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성립되게 되었다. 수 학과 예술은 동일한 기본 요청 , 즉 < 형식 > 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일 맥상통하여 예술 이론과 과학을 가르는 벽은 이 공통의 관심 앞에서 무너져 버렸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직접 쿠자누스와 관련되며, 갈 릴레이는 자신의 대화편 중 경험적 지식의 구성 과정에서 인간 지성 과 그것의 역할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중명코자 두 가지 커다란 우주 체계에 대해 논하면서 미켈란젤로와 라파엘, 티치아노를 떠올리고 있다 . 30) 그리하여 정신의 세계에서는 새로운 종합이 성립되게 되었으며 <주 관>과 <대상> 간의 새로운 상관관계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죽 인간 자유에 대한 고찰, 인간의 원초적인 창조력에 관한 고찰이 자연적 대 상의 내적 <필연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보강되고 인정되기에 이른 30v) nG, a 1li2le9i 이, 하D .i a lo g o spo rsa i due massim i sis t e m i del mondo, Ed. nazio n ale

것이다 . 레오나르도의 수고(手 稿 )에는 이와 같은 이중적 과정이 아주 명료 하게 드러난다. 레오나르도의 글들은, 자연과 그것의 은밀한 힘을 직 접 관장할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부추기며 인간을 꼬드기는 저 < 거 짓된 > 과학에 저항하는 것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는 그러한 과학들은 진정한 매개 수단 , 즉 자연 인식의 유일한 참 수단인 수학을 경시한 다고 비난했댜 < 수학의 지고한 지혜에 대하여 불평하는 자는 오류를 면치 못하며, 사람들에게 한낱 수다 거리밖에는 가르쳐 주지 않는 궤 변적 과학의 모순에서 결코 헤어나지 못한다 .> 3 1) 레오나르도는 이와 같은 말을 통해 자연 철학의 < 광신자들 > , 즉 그가 <방황하는 정신 vag a bund i i ng e ni > 이라고 부른 이들과 결정적으로 결별한다. 이 광 신자들은 짐짓 가장 높은 목표를 성취하고 자연의 최종 근거까지 추 적해 들어 가는 듯 하지만 실은 그들 과학이 다루는 대상은 너무 엄 청난 것이어서 그 토대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었다. <꿈속에 사는 너 에게는 궤변적 논거나 위대하고 불확실한 대상에 대한 허풍선이 같은 사기가, 그보다는 높지 않지만 확실하게 자연스런 대상보다 마음에 들 것이다 . >32) 이렇게 하여 개별 과학의 서열을 결정하는 데 쓰인 중 세적 체계의 가치 기준은 단번에 변모하였다. 우리는 살루타티가 법 률학은 법, 즉 정신적이고 신적인 것을 다루는 반면 의학은 여타 자 연 과학와 마찬가지로 비천한 물질적 대상만을 다룬다는 이유에서 법 률학을 의학의 우위에 놓은 사실을 알고 있다. 살루타티의 저술 『법 률학과 의 학의 지 위 에 관하여 De nobil it a te legu m et med ici nae 』 31) The lite r ary works of Leonardo da Vinc i , Jea n Paul Rich te r 편집, 2 권, London 1883, Nr. 1157 (번역은 부분적으로 Ma rie Herz feld , Leon da Vinc i , der Denker, F orscher und Poet, Lp z. 1904 에 의 존한 것 임 ). 32) Leonardo da Vinc i , (Ric h te r) Nr. 1168.

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져 있다 . < 나는 흙 으로 창조되었지만 법은 진 정 신적인 정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므로 영원하댜 sed leg e s aete r na, eg o de ter ra creata sum, lex vero de mente divi n a . > 죽 법은 신으로부터 직접 유래하기 때문에 < 의학보다 더 필연적이다 .>3.3 1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지식의 대상이 지닌 고귀함이나 품격에 종속 된 것이 아닌, 지식의 형태, 확실성의 정도에 따른 새로운 개념, 새로 운 규준으로서의 <필연성 > 개념이 생겨나게 되었으며 확실성 ce rt ezza 만이 진정 유일한 < 분류 기준fu ndamen tu m di v i s i o ni s > 이 되었다. 그리하여 수학은 인식의 결정적 관건이 되었는데 그것은 수 학적 과학이 동원되고 문제의 대상을 수학적 원리의 연관을 통해 규 명할 때에만 확실성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 34) 이로써 수학적 예증의 형 식은 진정한 과학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 cond itio sin e qu a non 이 되었다. nessuna inv estig a zio n e si po ' dima ndare vera sci en za, s'e s sa non pa ssa per le math e matic h e dimo str az io n i . (진정한 과학임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수학적 예증의 형식을 반드시 거 쳐 야만 한다 .) 35 1 물론 이와 같은 기본 명제가 세워졌음에도 불구하고 레오나르도의 글들을 전체적으로 조망해 보면, 때때로 그의 사상이 자연 인식의 진 정한 방법적 토대라는 측면에서 , 두 가지 서로 상반된 개념 사이를 33) 217 쪽의 주 16 을 보라 . 특히 Walser, P og gius Florenti us , 250 쪽 이 하. 34) Les manuscr it de 驗 nard de Vinc i , Charles Rava iss on -M oil ien 출판, 35f)o lT. r9a6t.t a to della pittura , Ludw ig 편집, Lpz . 1 882, I, 3 3.

왔다 갔다하는 것으로 보인다 . 레오나르도의 진리 개념 즉 어떤 때는 수학이 기본 원리로 채택되는가 하면 어떤 때는 <경 험 > 이 채택된다. 그에게 있어 지혜는 경험의 딸이며 실험은 정교한 자연과 인간이라는 종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역 수단이다 . 361 그러므로 오류를 품고 있는 것은 경험이나 감각에 의한 자료가 아니라, 우리가 거기에 대해 수행하는 잘못된 고찰과 판단이다. 인간은 그와 같은 오 류에서 출발하여 어리석게도 경험을 비난하고 그것에 대하여 기만적 이라는 책임을 뒤집어 씌운다. 그는 <경험을 탓하지 말고, 너희의 탐 욕스럽고 망령된 소망을 부추겨 너희 능력 밖에 있는 것들에 대해 호 언장담케 하는 그 무지함을 탓하라 > 라고 말한다 . 37 1 그러나 이러한 문 구에도 불구하고 경험이 수학에 버금가거나 또는 수학을 능가하는 확 실성의 원리로 인정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추상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 사이의 이원성, <이성>과 <경험>의 이원성은 레 오나르도에게서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제 두 계기는 서 로 연관되고 결합되어, 경험은 수학을 통해 완성되고 수학은 경험을 통해 비로소 결실을 맺게 되었다. 여기서는 투쟁은 고사하고 경쟁도 있을 수 없으며 단지 상보적 관계만이 성립할 뿐이다. 왜냐하면 현상 에 대한 분석이나 대상과 체계가 지닌 기본 전제에 대한 해명없이는 진정한 경험이란 있을 수 없으며 이러한 분석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수학적 증명이나 수학적 계산 같은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 문이다. 우리가 사실의 세계라고 부르는 것도 <이성적 근거>나 규정 36) II codic e At lan ti co de L. da Vinc i , Milan o, 1894, fol. 86. 37) 위 의 문헌, fol. 154.

적 요소로 짜여진 조직에 불과하다 이 요소들은 구체적 존재와 사건 속에 무한히 다양하게 얽혀 있으며 단지 사유의 힘을 통해서만 서로 분류되고 각자의 고유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받을 수 있다. 실험의 진 정한 가치는 그러한 분석을 유도하여 복잡한 현상에 개입된 일련의 요인들을 규명하고 그 결과를 추적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아리스토 텔레스가 말한 바와 같이 경험은 단지 우리에 대해 선행하는 것 npo T @v 1CPbc 油&C: (pro te r on pro s hemas) 에 불과한 반면, 그것 이 토대로 삼는 수학, 즉 이성적 근거는 자체적으로 선행하는 것 np6 T C(X )/) 때 cp oou (pro te r on te p hy se i)인 것이댜 사실 경험이나 현상계가 우리에 게 보여주는 것은 단지 이성적 근거들로 이루어진, 그 자체로 무한히 다양한 영역의 한 단편, 한 유한한 부분에 불과하다. 자연에는 결코 감각적 현상으로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원인들이 배태되어 있다 .38) 그 러므로 경험을 수학과 연관시켜 일련의 유동적 현상에 대하여 특정 기준과 고정된 법칙을 부여하며, 경험적으로 우연적인 것을 법칙적이 며 필연적인 것으로 변모시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연구 태도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하여 르네상스 자연 철학은 그 이전에는 결코 다다 롤 수 없었던 새로운 경지에 이르게 되었으며 경험이라는 방법과 단 순한 <사변>을 명확히 구분하게 되었다 . 39) 오류와 진실을 규명하고, 과학적으로 규명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즉 공상을 구별하는 법칙 이 수립되었다. 이로써 인간은 지식의 목표와 아울러 지식의 한계를 파악하게 되었으며, 아무런 성과도 없이 결국은 의심에 가득찬 회의 만을 걸머질 수밖에 없는 몽매함에 더 이상 휩쓸리지 않게 되었다 . 40 ) 38) Lit ter ary works (Rich te r ) Nr. 1 151. 39) (Rava iss on -M oil ien , B fol. 14. v.). 40) Codex At lan ti cu s fol. 119.

우리는 엄밀 과학의 성립에 끼친 레오나르도의 공로를 논할 때 혼 히 그가 초기에 다룬 근대적인 정역학과 동역학의 성과를 떠올리곤 한다. 사실 거기에서는 갈릴레이 운동 이론의 기본 원리를 예견케 하 는 것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 그러한 암시는 관성의 법칙뿐 아니라 작용과 반작용의 동일함에 대한 명제, 힘의 평행사변형과 속도의 평 행사변형의 문제, 지렛대의 원리, 그리고 후에 라그랑제 La gr an g e 가 < 잠재 속도의 원리 > 라고 명명한 바로 그 원리에 이르기까지 두루 해 당된댜 그러나 그렇듯 중요하고 근본적인 사실도 4 1) 레오나르도의 이 론적 성과 전체를 놓고 볼 때는 결코 대수로운 것이라 할 수 없다. 그의 업적은 결과에 있기보다는 새로운 문제 제기, 즉 그가 수립하여 다각도에서 관철한 < 자연의 필연성>이라는 새로운 개념에서 찾아져 야만 한댜 그는 < 필연성 > 이라는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함으로써 진정한 방법론적 핵심을 창출해냈다. La necie s sit a e maestr a e tutrice della natu ra, la necie s si ta e tem a e inv entr ice della natu ra e fren o e reg o la ete r na. (필연성은 자연의 선생이자 감독관인 동시에, 자연의 주제이자 고안자 이며 자연의 제어자이자 영원한 규칙이다 . ) 42) 레오나르도의 <자연적 필연성> 개념 바로 레오나르도 사상의 위대함은 이와 같은 문제 제기, 엄밀과학 41) 기계에 관한 레오나르도의 연구에 대해서는 Duhem 의 기본적인 연구의에 Ivor B. H art의 The mechanic a l inv esti ga ti on s of L. da Vind , London 1925 올 참 조하라 42) Ric h te r Nr. 1 133.

이라는 < 주제 > 의 설정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연은 이성의 법 칙 아래 놓여 있댜 이 법칙은 자연에 내재한 것으로 자연은 결코 그 것을 벗어나지 못한다 . 43 1 그러므로 우리로 하여금 자연과 동화케 하고 자연의 신비를 캘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더 이상 감관이나 감각, 또는 직접적인 느낌 따위가 아니다. 오로지 레오나르도가 수학적 정초라는 대명제로서 설정한 < 근거율 > 만이 자연에 대한 진정 합당한 수단이 다. 바로 이 점에 착안하여야만 레오나르도가 갈릴레이에게 끼친 영 향을 제대로 파악하고 평가할 수 있다. 물론 레오나르도가 규명한 자 연 법칙은 개별적으로 보아서는 때때로 일관성이 없고 모호하다. 그 러나 그에게서는 자연 법칙 자체에 대한 사상과 정의만큼은 확고부동 하다. 갈릴레이는 바로 이 점에서 레오나르도와 직결되며, 어떤 의미 에서 레오나르도가 시작한 것을 확장하고 구현했을 뿐이라고 할 수 있다. 갈릴레이의 입장에서 볼 때도 자연은 필연성을 < 지녔다 > 기보 다는 바로 필연성 그 자체이며 이것은 우리가 자연이라고 부르는 것 을 허구와 시적 망상의 영역으로부터 구별케 하는데 결정적인 특징이 다. 갈릴레이가 당시의 사변적 자연 철학에 대해서뿐 아니라 아리스 토텔레스와 스콜라 철학에 대해서도 반기를 든 것도, 사실 그것들이 이론을 전개함에 늘 위와 같은 차이를 간과한 데 있다. 그들은―-一 갈릴레이가 Sa ggi a t ore 에서 말한 것에 따르면 __- 철학을 한 권의 책 쯤으로 여기며, 『일리어드』나 『롤랑의 노래』처럼 그 속에 씌어진 것 이 사실인가의 여부는 전혀 중요치 않은_상상의 소산 정도로 보 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를 않다. 철학은 우리가 늘 접하는 자연이라는 위대한 책속에 씌어져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것이 씌어 43) (Ravai ss on -m oll ien , C fol. 23 v.)

진 암호 , 즉 수학적 기호와 그것들의 필연적 결합을 이해하는 것을 습득하기 전에는 아무도 읽어낼 수 없다 . >44) < 원인 > 과 <작용> 간의, 혹은 < 작용 > 과 < 원인 > 간의 그와 같은 엄밀하고 명료한 결합을 통 해서만이 존재와 상황이 지닌 논리적 수학적 관계가 해명된다. 그러 나 이렇듯 유사한 자연관을 지닌 레오나르도와 갈릴레이였지만 그들 이 그러한 결론을 얻기까지 동일한 경로를 밟았던 것은 아니었다. 갈 릴레이가 자연이 지닌 객관적 진리와 우화나 허구의 세계를 구별할 때 시와 미술은 후자의 영역에 속한다. 반면 레오나르도에게 있어 미 술은 결코 단순한 주관적 상상의 소산물을 의미하지 않으며, 실재 파 악을 위한 참되고 필수 불가결한 수단을 의미하므로 그것이 지닌 진 리치는 과학의 진리치에 버금간다 . 레오나르도는 예술과 과학 양자에 서 모두 주관적 자아의 요소를 배제하였으며 , 양자에서 공히 자연의 주제이자 발견자이며 자연의 길잡이이자 그것의 영원한 법칙으로서의 필연성을 문제삼았다 괴테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예술적 <양식 Sti l> 과 단순히 우연적인 개인적 <투 M ani er> 를 엄격히 구분한다. 즉 양 식이란 우리가 사물의 본질을 보고 만점으로써 인식하는 한, 인식의 가장 깊은 토대인 사물의 본질에 관여하는 것이다. 레오나르도는 과 학자로서도 역시 이처럼 보이는 것과 만질 수 있는 것에 준하는 태도 룰 고수하였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모든 인식은 바로 사물의 가시성 과 가촉성이라는 한계 내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서는 보이는 형태의 영역을 완벽히 가늠하여 각 형태들의 윤곽을 명료하게 파악하며 그것들의 의부와 내부를 확실히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과학 의최종 목표이다. 그에게 있어 시각적 한계는 동시에 이해의 한계를 의미한다. 그는 이렇듯 예술가로서나 학자로서나 항상 <눈에 보이는 44) Ga lilei, I I sag giato r e, Ed. naz. VI, 232.

세계>를 대상으로 삼았지만 그에게 있어 이 세계는 결코 낱개로 홑 어져 있거나 단편적인 것이 아니라 완벽하고 체계적인 것을 의미한 다 .45) 그러나 레오나르도가 제시한 문제의 기본 형식을 간과하여 후대의 수학적 자연 과학에 의해 비로소 제기될 수 있었던 문제들과 혼동한 다면 그의 지식 개념이나 학문적 업적을 그릇된 기준에 의해 평가하 게 될 위험이 있다. 그의 지식 개념을 공박하고 인식의 역사에서 차 지하는 그의 의미를 제한하려는 시도는 두 가지 관점에서 가능하다 . 크로체는 <철학자로서의 레오나르도>에 관한 한 논문에서 레오나르 도를 갈릴레이나 뉴턴 같은 위대한 자연 과학자와 버금간다고 보고 있지만 그가 내적인 세계, 죽 정신과 사변적 인식의 본격적인 영역을 보는 눈은 결하였다고 주장한다 .46) 한편 올쉬키 Olsc hki는 『근대어로 씌어진 과학 문헌의 역사』에서 <그는 과학적으로 쓸모 있는 일반화, 죽 연역이나 귀납적 방법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일반화를 기피한 듯 하며 가장 쉬운 추상화 작업에서조차 무력하여, 결국 그림을 곁들인 직관적 증명으로 만족한 듯 하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레오나르도의 자연관에 나타나는 이론적 요소와 미학적 요소 그러나 이 두 가지 판단, 죽 레오나르도에게서 사변적 관념론의 전 형이 결여되었다는 판단이나 근대적 실증주의의 전형이 결여되었다고 보는 판단은 괴테가 설정한, 나름대로의 고유한 법칙과 내적 척도를 45) 레오나르도에 있어서의 <보는 것>과 <아는 것>의 관계에 대해서는 파리넬리 F arin el li의 La natu r a nel pe nsie r o e nell'ar te di Leonardo da Vinc i (Mich elang e lo e Dante , Tori no , 1918, 315 쪽 이하)를 참조할 것 46) Croce, Leonardo filos ofo (Sag gi filos ofic i, Pa ris 1913, ill).

지니는 < 엄밀한 상상력>의 존재를 간과하는 것이다. 레오나르도는 그와 같은 형태의 엄밀한 상상력이 경험적 연구에 대해 어떻게 기여 할 수 있는가를 유례없이 입증해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과학적 업적을 단지 날카롭게 관찰한 사실과 상상력 풍부한 <도취>의 혼합 체일 뿐이라고 보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q) 그에게 있어 상상 력은 지각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지각의 생생한 담당자 이기 때문이댜 상상력은 지각을 선도하며 거기에 의미와 정확성을 부여한댜 레오나르도가 다름 아닌 보는 것의 완성, 죽 <보는 법을 아는 것 sape r vedere> 을 학문의 이상으로 삼은 것이나, 자신의 기 계론적, 광학적, 기하학적 논변에서 시각적 근거를 대거 사용하는 것, 그리고 <추상>과 < 조망>을 서로 긴밀히 연관시킨 것은 다 이런 맥 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 48) 그의 연구에서 얻어진 가장 훌륭한 성과들 은 바로 그와 같은 연관을 통해 이루어진 것들이었다. 레오나르도는 실토하기를, 자신은 빛의 양에 따라 동공이 수축하고 이완하는 것을 일차적으로는 화가로서 관찰하며 차후에 이론가의 입장에서 다룬다고 실토하였댜 49) 그러므로 자연적 대상물에 대한 레오나르도의 그림들은 방법론적으로 필연적인 하나의 절차라고 보아야 한다. 과학적 추상화 로 하여금 그 정당성을 확보케 하고 그 길을 열게 한 것은 바로 예술 적인 <조망>이었던 것이다. 예술가로서의 레오나르도가 지닌 <엄정 한 상상>은 모든 형태를 구별없는 덩어리로 뭉뚱그리는 주관적 정서 47) Olschk i, Geschic h t e der neuspr achlich en w i ssensc 벼cli chen Lit er atu r, Heid e lb. 1919, I, 261: I, 300 이하. 48) Olschk i, 위 의 책 I, 3 42, 379. 49) Ravai ss on - Moil ien , D fol. 13 r ; Solm i, Nuovi stu d i sulla filos oj ia natu ra le di L da Vinc i, P. 39:

의 격정을 뛰어넘을 뿐 아니라, 가시적 현실에 고착된 일체의 단순한 개념적 추상적 구분과도 대별된다. 그에게 있어서는 더도 덜도 아닌 직관을 통해서만 진정한 객관적 필연성이 발견되는 것이다 . 이렇게 됨으로써 필연성의 의미와 어감도 바뀌게 되어, 여태까지 필연성이 자연의 영역 reg n urn na tur ae 에 속한 것으로서 자유나 정신의 영역과 대립되는 것으로 이해된 것과 달리, 이제 정신의 특징 그 자체가 되 었다. 레오나르도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오! 위대한 필연성이여! 너는 가장 이성적으로 모든 작용이 원인을 가진다는 것을 규명하며, 그런 너에 맞추어 모든 자연적 추이는 지고하고 불가침한 법칙에 즉 각 순종하는구나 . 인간 오성을 신적 직관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이와 같은 기적을 그 누가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오! 기기묘묘한 자연이 라는 도구여! 신과 시간이 창조적 자연에게 부여한 법칙에 순종하는 것이 너의 몫이다 >50 ) 이와 같은 필연성의 순리와 그것의 깊은 의미는 예술적 직관에 의해 비로소 얻어진다. 이름다움이란, 우리에게 드러나 지 않는 한 영원히 은폐될 수밖에 없는 신비스런 자연 법칙이 공표된 것이라는 괴테의 말은 이런 의미에서 레오나르도의 의도와 일치하며 , 그의 사상적 핵심을 표현한다. 레오나르도에게 있어 아름다움이 지니 는 내적 질서의 균형은 자연과 자유 사이의 진정한 중간 영역이며 그 양자를 결합하는 영역이다 . 정신은 존재하는 것, 객관적인 것으로서의 미에 토대를 둔 것으로 그 속에서 자기 자신과 자기 자신의 고유한 법칙을 재발견한다. 예술 이론과 과학이론의 이와 같은 병행적 관계에 대해 좀 더 논의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은데 그것은 바로 그러한 병행적 관계를 통 해서만이 르네상스 사상의 저변적 요소 중 하나가 규명되기 때문이 50) Cod. At/ ant. fol. 345r.

다. 르네상스의 탁월한 업적은 거의 예외없이 그와 같은 병행적 관계 를 함축하며, 거의가 형식의 문제를 새로이 제기하고 형식에 대한 새 로운 감각에 근거하고 있음을 주목해야만 한다. 그것은 시와 회화에 공히 해당되는 양상이었다. 보린스키 Bo ri ns ki는 르네상스 시학이 당 시의 일반적인 정신적 삶의 이념에 어떤 의미를 지녔던가를 보여주고 있댜 < 이러한 정신적 태도상의 격변은 우선 고전적인 고대 문화가 새로운 정신의 시대에 대해 갖는 의미를 크게 부각시켰다. 고대를 단 절시킨 문화 세력인 교회도 고대와의 전적인 단절보다는-카롤링 거 왕조와 오토 왕조 , 호엔슈타우펜 왕조와 마찬가지로-위대한 정신적 운동의 맹아를 이루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그 시대에 는 고대의 수용이 대부분 일반적 의미의 ‘소재적인’ 수준에 머물렀으 며 이 ‘소재적인 고대’는 본격적인 르네상스가 도래하기까지 그 맹위 를 떨쳤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대에 대한 입장의 변화는 형식, 즉 느끼고 사유하고 삶을 영위하는 각 개체들의 형식에서 출발하여 시와 예술 , 사회와 국가에 대한 고대적, 고전적인 형식 부여에 이르기까지 두루 일어났던 저 형식상의 변화를 통해 일어났다 .> 5 1) 형식의 문제 르네상스의 사상과 삶에서 형식이 독특한 우위를 얻게 된 이와 같 은 사실은 모든 정신적 분야를 통해 고루 입증된다. 서정시 분야는 여기서 단연 선두격이어서 새로운 형식의지를 가장 처음, 그리고 가 장 광범위하게 반영하였다. 단테의 『신생(新生) Vita nuova 』이나 페트 라르카의 소네트 등에서는 어떤 의미에서 형식이 삶의 정서를 압도하 51) Bori ns ki , Der Str ei t um die Renais s ance (이 책 7 쪽, 각주 8); 20 쪽 이하.

고 있댜 즉 삶의 정서는 여전히 중세적 정서와 직관의 영역에 속해 있는 반면에 형식은 본격적인 해방과 탈피를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이 다. 시적인 표현은 이처럼 이미 완성되어, 내적 현실성을 완결되게 묘 사할 뿐 아니라 현실성 자체를 발견하고 창조하기에 이르렀다. 즉 새 로운 서정시의 양식은 새로운 삶의 원천이 되었다 . 이러한 양식의 철 학적 기원은 중세 철학, 특히 아베로이스주의로 소급된다 . 이들 서정 시가 다루고 있는 내용이나 구사하는 일체의 유비적 개념의 언어들은 역사적인 전제, 죽 음유시인의 시적 전통과 스콜라 철학의 학문적 전 통으로부터 유도할 때만 규명될 수 있다 . 521 그러나 이러한 전통적인 내용을 담는 새로운 형식은 그 내용 자체를 점차 진보적으로 변화시 킬 운명에 놓여 있었다 . 서정시 분야에서의 내용과 형식 간의 이와 같은 관계는 논리학 분야에서도 성립한다. 왜냐하면 이 분야에서도 인문주의의 테두리 내에서 성장한 르네상스의 새로운 언어 감각이 사 유의 직접적인 추진력으로서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언어를 순화 하려는 노력, 죽 스콜라 철학이 구사하는 < 조야한 > 기형의 라틴어로 부터 벗어나려는 움직임은 결과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변증법을 성립 시키게 되었다. 발라가 구사하는 라틴어의 우아함은 그의 변증법적 논쟁과 동일한 목적을 지닌 것으로 공히 명료함과 간명함, 언어의 순 화를 추구한다. 이러한 것들은 결국 자동적으로 사유의 단순과 정연 함을 가능케 하는 것들로 수용되어 옹변의 구성에 관한 이론은 이제 사유의 일반적 구조에 관한 이론으로 발전되었으며 , 문체론은 범주론 의 모체이자 선구가 되었다. 즉 철학, 논리학, 변증법 둥은 <웅변이라 는 여왕>으로부터 자기들의 고유한 영역을 봉토로 받은 격이 되었다. 52) 이에 대해 더 자세한 것은 Karl VoBler, Di e ph ilo s op h is c hen Grundlag e n zum sii/ Jen neuen Sti l des Guid o Guin i c e lli, Guid o Cavalcanti und Dante Ali ghier i , Heid e lberg 1904 를 참조하라 .

쾌락에 관한 발라의 대화편에 등장하는 인문주의자이자 수사학자인 안토니오 파노르미타는 이러한 맥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orn nia qu ae philos op hia sib i vend ica t nostr a sunt. ( 철 학의 영역에 속한 모든 것들이 우리의 것이다.) 5.1 1 이처럼 인문주의의 근원이나 인문주의자들을 포괄하는 공동의 끈은 혼히 말해지듯 개인주의나 정치, 철학, 종교적 측면에서의 공동된 이 념이었다기보다는 그 예술적인 감각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54 ) 그러 나 이러한 예술적인 감각은 르네상스 과학이 이루어낸 새로운 자연 개념에 구체적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였다. 우리 모두가 인정하는 바 대로 레오나르도의 예술적 창조와 그의 과학적 업적 사이에는一 __ 동 일인의 업적이라는 연관을 넘어-진정한 내용적 연관이 존재한다 . 이러한 내용적인 연관 덕택에 그는 < 자유>와 <필연>, <주관>과 < 대상 >, <천재 > 와 < 자연 > 사이의 연관에 대해 참신한 견해를 펼 수 있었다. 레오나르도가 토대로 삼았던 르네상스의 전통적인 예술 이론은 위의 양자를 확연히 구분하였다.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의 <회화론>은 예술가들이 <자연>이라는 모범에 몰두하는 대신 자신의 천재적 능력을 맹신하는 것에 대하여 경종을 울리고 있다. 즉 예술가 가 자신의 재능을 과신한 나머지 눈이나 오성으로 자연에서 채취한 범례없이도 회화를 통해 개가를 올릴 수 있다고 믿는 따위는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오류라는 것이다프 그러나 레오나르도에게서는 그 53) Valla, De volup tate, Lib. I, Cap . X; Op er a fol. 覇 54) Ernst Walser, Stu d ie n zur Welta nscl r iuu ng der Renais sa nce, 12 쪽 . 55) Leon Batt ist a Albert i, Tratt ato della pittur a, Lib . ill (ed. Janitsc hek, Wi en 1 蜀 151 쪽) :

Qu ella consuetu dine d'alcun i scio c ch i, i qu al i pre suntu o si di suo ing e gn io, senza avere essemp lo alcuno dalla natu ra qu ale con occh i o mente segu a no, stu dian o da se ad se acq uist a re lode di dipigniere . Qu esti non imparano dipignier e bene, ma assuefa n no se a suoi errori . Fug gie !'ing e gn i dnoisnc empeornitoi .>q u ella ide a delle bellezze, qu ale i ben i exercita tiss iin i app en a

와 같은 대립이 일종의 평형 상태로 전환된다 . 그에게는 예술가의 창 조력도 이론적, 과학적 사유만큼이나 확고한 것으로 존재한다. 과학이 오성에 의한 제 2 의 창조라면 회화는 상상력에 의한 제 2 의 창조이 다. Oa scie n za e una seconda creazio n e fatta col disc orso, la pittur a e una sconda creazio n e fatta colla fan ta s ia .) 그러 나 이 두 창조의 진 가는 그것이 자연이나 사물의 경험적 진리와 별개가 아니라 바로 그 와 같은 진리를 깨닫고 발견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 자연 > 과 <자 유> 사이의 이와 같은 독특한 상관관계는 윤리적, 종교적 범주 내에 서는 결코 성립될 수 없댜 의지의 영역인 윤리, 종교의 영역에서는 도덕적, 종교적 자아에 의한 양자 택일만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도 덕적, 종교적 자아는 임의의 입장을 선택하여, 자연을 옹호하고자 자 유나 축복따위에 반기를 들거나, 혹은 자연에 반대하여 < 축복의 영역 reg n um g ra ti ae> 이 나 자유와 섭 리를 옹호하거나 할 수밖에 없다. 자연과천재 그러나 레오나르도는 피코의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연설의 기본 테 마이기도 하였던 이러한 논쟁을 애초부터 초월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레오나르도에게 있어 자연은 더 이상 형식의 원리와 지배에 모순되는 무정형의 영역, 죽 단순한 질료를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예 술의 눈을 통해 그것을 바라보는 그에게 있어 자연은 형식 그 자체를

의미한댜 그러므로 그 속에는 그것을 결합하는 영원한 법칙으로서의 필연성이 내재하고 있댜 그러나 이 필연성은 단순한 질료의 필연성 이 아니라 정신과 긴밀한 유사성을 지닌 순수 <비례>를 의미한다. 비례는 단지 수나 척도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음계, 무게, 시 간, 장소, 그리고 여하한 형태의 힘에 고루 존재한다 .!,;) 바로 이것, 즉 내적 균제와 조화로 인해 이제 자연은 해방된 동시에 격상되었다. 자 연은 이제 더 이상 인간에 대하여 적대적이거나 낯선 세력으로 맞서 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에게 너무도 광대하고 무한한 대상이지만, 그 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무한성이 바로 결코 그 범위를 가늠할 수 없으되 그 최종 근거나 원리는 파악 가능한 수학에서의 <무한 infinite rag ion i> 같은 것임을 확신한다. 수학의 이념은 정신을 가장 높은 경 지로 끌어올리며 진정으로 완성시키며 중세적 세계관에 의해 설정된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나 인간 지성과 신적 지성 사이의 한계를 극 복한댜 갈릴레이 역시 바로 이러한 현명한 결론을 채택하여 지식의 정도 그는 우주의 양대 체계에 대한 대화편에서 다음과 같이 피 력한다 는 인간이 지식을 응집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는가, 확장적 인 의미로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이중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하였 다. 만일 확장적인 지식을 추구한다면 가지적(可知的)인 것의 범위를 따지게 되며 결국 인간의 오성은 그 범위를 고려할 때 너무도 보잘것 이 없게 되고 만다. 그러나 만약 이와 같이 지식의 대상에 착안하지 않고 그것의 근거와 원리, 지식을 형성하는 바로 그것을 추적한다면 <인간의 정신은 몇몇 사실에 대해 매우 완벽하게 이해하며 그것에 대해 자연 자체에 버금가는 절대적 확실성을 확보하게 된다. 순수한 수학적 학문이 바로 그러한 양상을 띤다. 비록 신적 지성은 우리에 56) Rava iss on -M oil ien fol. 49 r. (He rzfe ld 판, 26 쪽).

비해 무한히 광대한 범위의 수학적 진리를 깨닫고 있지만 (왜냐하면 신은 모든 것을 아니까) 인간 지성이 파악하는 몇몇 가지도 그 객관적 확실성에 있어 신적인 것에 못지 않다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인간은 더 이상의 확실성은 있을 수 없는 그것의 필연성을 통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 >57) 이렇게 하여 예술적 상상력과 현실 간의, 죽 < 천재 > 와 < 자연 > 간 의 진정한 관계가 수립되고 확인되기에 이르렀다 . 이 양자 사이에는 이제 아무런 모순도 없다. 진정한 예술적 상상력은 자연을 넘어선 허 구와 구상력의 영역을 좇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의 영구 불변한 법칙을 파악하는 것이다. 왜냐하면―一-이점에서도 레오나르도는 괴 테와 일치한다- < 현상계에 드러나는 법칙은 자기 자신의 조건에 최대한 충실하게 객관적 미를 산출한다. 그러나 그것을 파악하는 데 에는 적절한 주관이 요구된다 .>58) < 제 2 의 자연 > 을 산출하는 예술가 와 그의 상상력이 지니는 창조력은 바로 이러한 법칙을 고안하거나 무에서 창조해 내는 것이 아니라 , 단지 발견하고 증명하는 것을 의미 한다. 예술적인 관조와 예술적 표현 행위는 우연적인 것과 필연적인 것으로 나누어지며 이러한 행위를 통해 사물의 본질은 가시적인 표현 형태를 통해 드러난다. 갈릴레이와 케플러에 의해 확립된 경험에 관 한 과학적 이론은 예술 이론이 확립한 <정확성 > 이라는 근본 개념이 나 요구에 직결된댜 이 양자, 죽 예술 이론과 엄밀 과학적 인식론은 이렇게 하여 완벽하게 동일한 사유의 경로를 밟는다. 그러므로 르네 상스 예술 이론의 가장 의미 있는 계기는 바로 전 중세를 통하여 예 술을 신학적 형 이상학적 영 역 에 묶어 놓았던 <미 Pulchrum 와 선 57) Ga lilei, Di alo g o sop r a i due massim i sis t e m i de[ mondo, I, Ed. naz. VII, 581) 2G9.o eth e , Maxim en und Ref[e x io n en, Max Hecker, N r. 1 346.

Bonum 의 연계>가 처음으로 해체되기 시작하여―一-비록 3 세기가 훨씬 지나서야 이론적으로 확립되긴 했어도― ― 1 미적 영역의 자율성 이 처음으로 확보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ffi ) 그 러나 < 미와 선 사이의 연계 > 가 헐거워진 대신 <미>와 <진 Verum> 사이는 더욱 공고히 결합되게 되었댜 레오나르도는 <다른 이의 투를 모방하는 > 예술가를 질책하는 가운데 자연이 아닌 타작가 만을 연구하는 이는 자연의 직속 자식이 아닌 손자뻘이라고 하였으 며 , 60) 갈릴레이 역시 현상에 대한 설명과 해석 대신 작가의 주해에나 골몰하는 스콜라 철학적인 방법에 대해 부단히 저항하고 나선다. <자연 진리>의 새로운 개념 다른 한편으로는 레오나르도와 마찬가지로 갈릴레이도 현상을 지배 하는 법칙, 즉 그 속에 내재하는 <원인>은 결코 감각적인 지각으로 직접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수학적 오성의 자발성을 필요로 한 다는 것을 부단히 강조했다. 죽 사물에 있어 영원하고 필연적인 것은 결코 감각적 경험의 반복이나 비교 따위로 알 수 없으며 오히려 정신 이 그것을 <스스로> 파악하여 현상계에서 검증하여야만 한다. 참이 고 필연적인 사태, 죽 그렇게 밖에는 될 수 없는 사태에 대해서는 모 든 오성이 스스로 (da per se) 알고 있으며, 그렇지 않은 바에는 알 수 없다 .611 그러므로 그 어떠한 실험, 그 어떠한 경험에의 문제도 사유에 59) Erwi n Panofs k y , Idea, Ein Beit rag zur Beg riffsg e schic h te der iilter en Kunstt he orie (Stu dien der Bib i. Warburg, Fri tz Saxl 편집, V), Lp z. 1924, 29 쪽 60) Codex At lan ti cu s fol. 141 r. (M. Herz f eld 판 137 쪽과 비교하라 . ) 61 ) Ga lilei, Dia l og o sop r a i due massim i sis t e mi de! mondo, Ed. naz. VII, 183:

le vere, cioe le necessar ie, cioe qu elle che e irnpos sib i le ad esser altr ime nti , ogn i me dioc re disc orso o le sa da se o e irnpos sib i le che ei le sapp ia ma i.>

의한 지적 < 고안 > , 즉 갈릴레이가 말하는 를 전제 로 할 때에만 가능하다 . 이러한 지적 고안을 통해 우리는 자연의 법 칙성을 예견하며 추가로 경험을 통한 검증으로 그 확실성을 얻어낸 댜 결국 객관적 법칙성을 띤 것이나 모든 자연 현상을 결정하고 지 배하는 확고한 기본 척도는 간단히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 라 일단 경험에 대한 < 가설 > 의 형태를 띠며 바로 경험을 통해 검증, 혹은 반증된다. 바로 이것이 갈릴레이가 주장하는바 모든 자연 과학 의 근거인 < 오성 di scorsa > 과 감각, 즉 경험과 사유의 새로운 관계이 댜 이 관계는 르네상스 예술 이론이 화가의 상상력과 사물의 < 객관 적> 실제 사이에 설정한 연관과 명백한 유비를 이룬다. 예술적 혹은 과학적 천재의 정신력은 결코 방종한 자의성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대상>을 진실되고 가장 확실하게 드러내어 알게끔 하는데 있댜 예술적 천재이건 사상적 천재이건 간에 그들은 자연의 필연성 을 발견한댜 이러한 생각이 이론적 확실성을 얻은 것은 몇 세기 후 <판단력 비판>에서 천재란 <주관에 놓인 자연 > 으로 하여금 예술에 대해 법칙을 부여하게 하는 천성이라는 명제에 이르러서였지만 그러 한 명제에로 이르는 과정은 이미 이때 천명되었으며 , 62) 바로 이러한

62) 나는 여기서 르네상스 시학에서 규명된 천재의 < 자발성 > 과 < 규칙 > 이 갖는 <객관성>의 대립에 대해서는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다. 이 주제 를 상세하게 다 룬 것 중 최 근의 성 과로는 지 젤 Edg a r Zis e l, Di e Ents teh ung des Genie b e- griffs, Tti bi n g e n 1926 외에도 함부르크 대학에 학위 논문으로 제 출 된 튀메 Hans Th ilme 의 Be i댜g e zur Gesch ich te des Gen ieb eg riffs in En g land 의 서문을 참조할 만하다. 그 밖에 폴리찌안과 피코 , 에라스무스 둥과 코르테제, 벰 보의 진영을 가르는 <모방 imitati o> 과 <창안 inv enti o> 사이의 구분도 그 개 념적 규명이 결코 확실하고 명확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이미 르네상스 철

학의 중요 쟁점으로 등장하여 영국의 심리학과 미학에 의한 중재를 거쳐 결국 레싱과 칸트에게까지 영향을 주게 된다 . 부르노는 시란 결코 규칙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규칙이 시로부터 유래하며 시의 형식이 다양한 만큼 규칙 역시 다양한 형태 를 띤다고 단호히 진술하였다. (Eroic i furo ri I. Op ere ital. (Lag a rde) 625 쪽). 그밖에 파노프스키는 (위의 책, 38 쪽) <원래 르네상스>는 < 천재와 자연의 차이뿐 아니라 천재와 규칙의 모순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적었 으며 , 예술적인 정신이 지니는 자유는 실재의 요구에 의해 기초지어지며 조건지 어진다 > 고 주장함로써 그 양자가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규명하였다. 이러한 견 해는 우리의 견해와 온전히 일치하는 것이지만 나는 르네상스 사상이 예술에 관 한 일반적인 이념을 지녔으되 구체적으로는 <경험적이고 후천적인> 미 개념을 지녔다고 보는 것에 대해서는 찬동할 수 없다. 나는 르네상스 사상의 결정적인 특징은 자연 철학이나 예술 이론이거나를 막론하고 이념의 <선험성>을 견지하 며 이 선험성을 통해 이념과 경험을 연결시킨 데 있다고 본다. 이로써 비례나 조 화 같은 선험적, 수학적 이념은 예술적인 아름다움이 지니는 경험적 진리와 동일 한 근거 를 지니게 된다. 케플러는 위성에 대한 자신의 3 법칙을 수립함에 있어 수 에 대한 <선천적> 개념과 아울러 미에 대한 <선천적> 개념을 끌어들였음을 여 러 번 강조하였다.

경로를 통해 르네상스는 비로소 마술과 신비설, 그리고 <은밀> 과학 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수학과 예술 이론의 결집이 이루어낸 성과는 경험적, 감각적 관찰이나 <자연의 내밀함>에 대한 직접적인 감성적 몰두로는 도저히 이루어낼 수 없는 것들로서, 이제 바야흐로 케플러의 우주 조화에 관한 저술에 가장 잘 드러나 있는 저 르네상스의 이론적 정신과 예술적 정신의 종합체로서의 새롭고 본격 적인 근대적 자연 이념이 탄생하게 되었다. 케플러 자신은 여기서 순 수 플라톤적 개념을 써서 그와 같은 상황을 논하고 있다. 그에 따르 면 조화의 법칙은 근본적인 특성으로 우리가 그것을 경험적인 것이나 감각적이고 가시적인 것을 통해 발견하는 것은 단지 모든 가시적인 것들이 바로 그러한 질서와 척도, 산술과 기하의 영원한 <원형>에 입각해 창조되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 경험적인 것과 형이상학적인 것, 논리적인 것과 미적인 것을 주의 깊게 구별하고자 했던 위대한

과학적 분석가 갈릴레이 역시 예술적 정신과 과학적 정신이 공통적 기반을 가짐을 인정하였다. 수학과 예술 이론 그에게 있어 이 양자는 상이한 방식을 통해 형식을 조성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는 위대한 예술가에게서 발견되는 조성 능력을 순수 이 론적 관점에 비해 단호히 우위에 놓는다. 그는 인간 지성과 신적 지 성의 동등함을 사려 깊게 주장하는 구절을 통해 인간 정신의 고귀함 울 입증함에 있어 무엇보다 이론가를 훨씬 능가하는 조형 예술가의 창조성을 강조하고 있다. < 예술과 과학에서 인류가 이루어 놓은 수많 은 위대한 발견을 돌이켜보면 나의 지식이란 것이 새로운 것을 드러 내기는커녕 이미 발견된 것도 이해하고 있지 못함에 실망과 희의를 금할 수 없으며 불행한 심정 억누를 수 없다. 뛰어난 조각 작품을 바 라볼 때면 나는 이렇게 읊조린다 . 너는 언제나 대리석 덩어리에서 저 와 같은 진수를 발견할 것이며 그속에 숨겨진 위대한 형태를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인가? 또 언제쯤 다양한 색채를 혼합하여 미켈란젤로나 라파엘, 티치아노 같은 화가들처럼 화폭이나 벽면에 가시적인 것의 전 영역을 펼쳐 놓을 수 있게 될까 ?> 63 ) 예술 이론과 경험 이론의 이 러한 연관에서는, 이전에 윤리적, 종교적 사변의 영역에서나 발견된 기본 요소가 여러번 등장한다 . 인간의 정신은 이제 다시금 제 2 의 창 조주, 、; · ' 죽 <주피터 아래의 프로메테우스>로서 입증되어, 르네상스 시 대의 상이한 분야를 통한 다양한 전개 경로에도 불구하고 그 동일한 63) Ga lilee , Di alog o sop r a i due massim i sis t e m i, Ed. naz. VII, 118. (Em il Str au B, Lp z, 1892, 110 쪽).

모습을 유지한다 . 이러한 모습은 르네상스 시대에 있어서는 단지 하 나의 비유이기를 넘어, 하나의 정신적 운동으로서의 실체성과 궁극의 목표를 의미한다 . 이와 같은 새로운 자연 개념의 발견을 통해, 아니 바로 그 발견 자 체에서 르네상스는 자신의 역사 의식을 강화하고 심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제 르네상스는 고전적인 희랍 사상에 새로이 접근할 수 있게 되어 고대 말기의 헬레니즘 철학에서 플라톤의 이상주의에로 소급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은 단순히 순수 플라톤 사상에 대한 선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플라톤 이론에 대한 진정한 <상 기 Anamnesis > , 즉 사유의 고유한 근원에 대한 재개를 뜻한다. 이 과정을 뚜렷하고 명쾌하게 이해하는 데에는 플라톤 이데아론의 핵심 적인 요소와 발생에 대해 논하고 있는 『파이돈』 저 유명한 구절을 떠 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플라톤은 존재를 연구함에 있어, 전혀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것, 그리고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이 지닌 방법론과의 단절을 기본 원칙으로 삼는다. 그 자신이 토로하듯 플라 톤 역시 청년 시절에는 사람들이 자연지라고 일컫는 지식에 관해 무 척 열광하고 있었으며 모든 사물을 규정하고 생성, 소멸시키는 원인 을 알아내는 것은 실로 훌륭한 일이라고 여겼다. 동시에 그는 지각이 이끄는 데로 따르고 눈과 귀 등 개별 감각을 통해 사물을 직접 파악 하려고 시도함으로써 자연 철학자들의 열광에 동조하였다. 그러나 그 는 그러한 입장을 전개시킬수록 그러한 방식으로는 결코 존재자에 대 한 진리 (wv ovrwv iJ

들은 눈을 상하게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만일 나의 눈이 직접 대상에 로 향하고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그것을 파악하려 한다면 나의 영혼 은 눈이 멀 것이라는 확신과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하여 나는 나의 사유에로 침잠하여 그 속에서 사물의 진정한 본질을 보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아마 위와 같은 비유가 딱 맞아 떨어지지 않을 수 도 있댜 왜냐하면 나는 사유 속에서 존재자를 보는 이가 자연 사물 에서 보는 이에 비해 단지 상(像)을 통해 본다고는 믿지 않기 때문이 다. 이러한 연유로 나는 방향을 전환하여 내가 가장 신뢰하는 로고스 Lo g os 를 기본으로 삼아 그것에 일치하는 것은 참으로 보며 그것에 일치하지 않는 것은 참이 아닌 것으로 간주하고자 한다 . > 바로 이 말 속에는 플라톤 사상의 새로운 국면과 그것이 희랍의 자연 철학과 구 별되는 점이 내포되어 있다. 잘 알려진 대로 플라톤은 이러한 맥락에 서 아낙사고라스의 사상도 비판하였다. 플라톤에 의하면 아낙사고라 스가 말하는 nous 란 자세히 살펴보면 단지 운동력, 즉 단지 하나의 자연적 힘에 지나지 않으므로 이름에 걸맞는 자격을 결하고 있다. 자 연 사물에 대한 직접적, 감각적 파악을 거부하고 오로지 <로고스로 귀결>하는 것이야말로 존재자를 볼 수 있게끔 한다. 그런데 이러한 로고스에로의 귀결은 플라톤에게 있어 다름아닌 수학에로의 귀결을 의미하는 것이다 풀라톤,레오나르도,갈릴레이 그는 이것을 <제 2 의 항해>, 죽 이데아 세계의 해안에로 이끄는 8 햐rt::{X)!; rrAOu!; (deute ro s p lous) 라고 칭하였다. 이러한 발전 과정을 르네상스의 자연 개념 발전 과정과 비교하여보면 그 개별적 단계면에 서 놀랄 만한 유사성이 발견됨을 알 수 있다 .64) 르네상스도 일단 자연

64—) 이후비 의록 논근의대에적 대자해연 더개 념자을세 한발 견것하은는 나 과의정 E에r서ke n미nt적n i인sp r 요o b소le가m 개I, 입31한4 쪽 경 위이 를하 철저하게 규명하지는 못했지만一~ 참조하라.

에 관한 직접적 감각적 파악에서 출 발하였다. 모든 인식은 결국 나와 사물 간의 접촉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텔레시오의 견해는 플라톤이 존재를 < 바로 손으로 (anp l~ -ra tv XE.( X)L V), (ap rix tain cheroin ) > 잡을 수 있다고 믿는 이들에 대해 비웃었던 사실을 연상시킨다 . 그러나 그 러한 시도는 자연 철학으로 하여금 결국 자연의 고유한 < 진리 > 와 그 것의 보편적 법칙성에 관한 안목을 상실하게 하고 신비술과 신지학의 어두침침함으로 떨어지게 한 주범 노릇을 하였으므로 진정한 자연 과 학의 길을 연 것은 < 로고스 > 에로의 귀환을 통해서였다고 할 수 있 댜 플라톤이 우리가 근거로 삼아야 할 것은 Abrol(lo g o i)라고 한 것 과 마찬가지로 레오나르도는 우리 지식이 경험을 통해 밝혀내야 하는 것을 일컬어 < ra gi o ni > 라고 했댜 그리고 그는 경험적 지식이 지닌 절대적인 가치를 인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감각적인 관찰에 비해 단연코 ra gi o ni가 우위임을 주장하였다. Nessuno eff et t o e in natu r a sanza rag ion e; inten d i la rag ion e e non ti bis o g n a espe ri en zia . (일체의 자연 현상은 원리를 지닌다. 그러므로 경험에 연연해 하지 말 고 원리를 이해하라 .) 651 갈릴레이의 연구도 같은 동기를 지닌 것으로서, 그에 의하면 자연 의 근본 원리는 직접 주어져 있거나 사태를 통해 규명될 수 있는 것 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는 결코 완벽하게 실현될 수 없는 어떤 이상

65) Leonardo, Cod. At lan t. fol. 147v.

적인 경우와 관련된다 .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결코 그 법칙의 진리성 이나 < 객관성 > 에 저촉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자연에서 나선 운동을 하는 물체가 발견되지 않는다 해서 아르키메데스의 나선에 관한 법칙 이 무효가 아니며, < 홀로 방치된 물체 > 가 자연에서 결코 있을 수 없 다는 것이 관성의 법칙에 대한 반론일 수 없다. 레오나르도와 갈릴레 이는 공히 플라톤과 체계적으로 일치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를 통해 그들에게 순수 플라톤적인 기본 사상이 전달되었는가 하는 물음 에 대한 대답은 다를 수 있다. 레오나르도가 신플라톤주의적 분위기 의 본산인 콰트로첸토 피렌체에 살면서도 신플라톤주의와 거의 무관 할 수 있었던 것은, 불가사의함으로 가득찬 레오나르도의 세계를 고 려한다면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그로 하여금 원래의 플라톤에게로 회귀케 하고, 피치노나 피렌체 아카데미의 극성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플라톤주의자로 남게끔 한 것은 바로 그가 예술가, 예술 이론가, 또 과학자로서 플라톤의 경구인 < 四 8c i c ctc t T o dyc (, )µt TP moc (기하학을 모르는 이는 들어오지 말지어다)>를 전적으로 옹호하는 입장울 취하였 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그는 이말을 전적으로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 였다. non mi leg ga chi non e rnate rn ati co nell i mia princ ip i. (수학적으로 사고하지 않는 이는 나의 이론을 읽지 말라 .) 66) 플라톤 철학에 대한 이와 같은 새로운 견해는 갈릴레이에게서도 확 고하고 명료하게 발견된다. 그의 작품, 특히 양대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편에서는 시종 일관 플라톤의 지 식이론이 거론되고 있다. 그는 66) Leonardo, (Rich te r 편집 , Nr.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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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지식이론이 말하는 @CJ.flVW le; (anamnes i s) 에서 자신의 개념, 죽 da pe r se 개념을 끌어낸댜 정신의 자발성과 이론 적 이성의 자율성을 시사하는 이 한마디로써 르네상스 자연 철학이 묶여 있던 마술적 토대는 파괴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그 한 마디를 통해 객관 적 자연 인식에의 자유로운 장이 열린 동시에 헬레니즘에서 벗어난 고전적 고대로의 회귀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바르부르 그는 자신의 루터 논문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점성학적 이념의 발달 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개괄하고 있다. < 그 시대는 파우스트의 시 대로, 근대적 과학자는 마술적 간계와 우주론적 수학 사이에서 대상 에 대한 명쾌한 사유를 추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아테네는 늘 알렉 산드리아로부터 다시 패권을 돌려받고자 했다.>fj/ ) 이러한 <알렉산드 리아로부터의 아테네의 패권 탈환 > 이야말로 르네상스의 예술 이론과 엄밀 과학 이론이 공통적으로 목표로 삼은 것이었다. <명쾌한 사유> 는 플라톤적인 로고스와 소크라테스적, 플라톤적인 근거 제시 Abrov 福 oval (log o n di don ai)에 대한 재고 과정을 통해 다시 얻을 수 있게 되었댜 새로운 자연관은 이렇게 인식의 의미와 목표에 대한 새로운 견해에서 유래한다. 르네상스 자연 철학이 원래 시도한 것도 다름 아 닌 마술의 인식론적 정초와 정당화였던 것이다. 예를 들어 캄파넬라 에 의하면 마술이 가능한 것은 인식이 가능한 것과 같은 원리를 지니 는데 왜냐하면 주관과 객관, 인간과 자연이 원천적, 본질적으로 하나 가 아니라면 우리는 <인식>할 수 없으며, 단지 대상과의 융합을 통 해, 또 그것과 동화됨으로써만 참된 인식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캄파넬라는 그래서 <인식이란 자연을 체험하는 것이다. Cog n oscere 67Z) eWite an r,b u 7r0g 쪽, . Heid nisc h-anti ke Weis s agu ng in Wort und Bil d zu Luth e rs

est fier i rem co gn it am. > 라고 정의하였으며 파트리치는 < 인식은 체 험을 통한 믿음이다 . Cog n oscere est coir e cum suo co g nobl i .> 라 정의하였댜 신비적 마술적 자연관의 극복 지식을 통해서 이론적으로 드러난 그와 같은 내용을 마술은 단지 실천적인 입장으로 표 촨할 뿐이댜 마술은 주관과 대상의 동일성을 근거로, 주관이 대상을 파악할 뿐 아니라 지배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주관은 자연을 오성뿐 아니라 의지에 종속시킬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리하여 마술은-<정령적>이 아닌 < 자연적 > 인 것으로 여겨져서 ―자연 인식의 백미이자 < 철학의 완성 > 으로까지 추앙되었다. 피 코 델라 미란돌라가 어떤 한 완벽한 범례를 특정 개념과 동일시하여 마치 로마를 (그) 도시, 베르길리우스를 (그) 시인, 아리스토텔레스를 (그) 철학자로 표기했듯이 이제 전체 과학과 전체 철학 분야가 마술 로 대표될 지경이었다 . 68) 그러나 예술 이론이나 엄밀한 자연 과학의 이론은 그와 같은 자연 철학적 경향에 동조할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이 양자 모두가 신비적, 마술적 자연관에 대해 순수한 형식을 추구하 는 정신적 성향을 땀으로서 대립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형식은 이론 적 의미를 지녔든, 미적 의미를 지녔든 간에 모두 한계와 결합, 그리 고 사물의 명료한 경계를 전제로 한다. 자연이 회화를 통해 드러나거 68) Pic o della Mirand ola, Ap o log ia (Op er a fol. 170).

나 사유를 통해 법칙적이고 필연적인 것으로 파악될 때 범신론적 정 서나 만유재신론적 정서 따위는 더 이상 설득력을 잃게 된다. 자연의 전일성에 탐닉하려는 충동 대신 이제 그와는 정반대의 충동, 죽 분화 와 특수화의 욕구가 대두되어 예술에서건 수학에서건 주관을 대상에 몰입시키거나 대상으로 하여금 주관을 상쇄케 하는 일 따위는 허용되 지 않게 되었는데, 그것은 미적인 회화 공간과 논리 수학적인 사유 공간의 확보는 주관과 대상 사이의 거리를 유지함으로써만 가능하기 때문이댜 르네상스 시대의 이와 같은 양대 정신적 조류의 상호 작용은 뜻하 지 않은 수확을 거두어 < 감각성 > 에 대한 이론적 견해롤 변화시켰음 은 물론 그것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이미 레오나르도의 자연관이 그의 독특한 저력, 즉 그의 정확한 감각 적 상상력에서 유래함을 확인하였다 . 그리하여 피코에게 있어서 마술 이 < 철학의 최고봉 (ape x et fas ti gium tot i us phi loso phi ae)> 이었다면 레오나르도의 『희화론』에서는 희화가 그와 같은 지위를 요구하고 나 선다. 그에 의하면 회화를 경시하는 자는 철학도 자연도 사랑하지 않 는 자이다 . 69 ) 조형 예술의 가치와 의미에 관한 이와 같은 관점으로 미 루어 르네상스는 조형 예술을 단지 <모방적> 관점, 즉 주어진 것에 대한 재현으로 파악하며 이데아의 관조와는 무관한 환각의 기술 정도 로 본 폴라톤의 관점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 7 0) 그와 같은 차이는 전 르 네상스를 통해 너무도 깊이 각인되어, 사변적 관념론조차 그와 같은 새로운 요구를 수용하여 그것을 조직적으로 승인하기에 이르렀다. 니 69) Leonardo, Rava iss on -M oil ien 편집, Ash. fol. 20 r. .

콜라우스 쿠자누스는 지성의 체계 내에서 독립된 미학을 발전시키지 는 않았지만 인식론적 관점에서 플라톤의 견해와는 대조적으로 감각 에 대해 새로운 지위와 가치를 부여하였다. 쿠자누스는 플라톤이 평 소와는 달리 감각적 지각을 수긍하고, 비록 제한되고 상대적일지언정 그것에 대해 인식적 가치를 부여하는 듯 보일 때에만 플라톤을 인용 하는데, 이는 자못 시사하는 바가 크다. 쿠자누스는 특정의 감각적 지 각은 자신이 지닌 내적 모순 때문에 간접적으로 인식의 달성을 촉진 한다고 서술한 플라톤 공화국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이 내적 모순이야말로 영혼으로 하여금 단순한 지각에 만족하는 것을 허용하 지 않고 사유를 촉구하여 스스로 <중재자> 역할을 담당케 하는 계기 이다. 즉 감각적인 것에 존재하는 모순은 다론 영역, 즉 오성 &avola 의 영역에서 진정한 감각을 찾도록 독려한다 .7 1) 그러나 플라톤이 여기 에서 단지 감각 지각의 특정 종에 대해서만 서술한 것에 반해 쿠자누 스는 그것의 전체 유에로 확장시켜 생각하고 있다. 즉 쿠자누스에게 서는 특정한 종의 지각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감각적 경험 전체에 대 하여 그와 같은 생생한 역동성이 해당된다. 지성은 감각 능력을 통한 운동을 개시하지 않고서는 자신이 무엇이며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에 대한 의식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 감각적 영역에로 몰입하는 그와 같은 경향은 결코 거기에로 몰락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자신 에게로 끌어올리기 위함이다. 언뜻 보아 지성이 감각적인 것에로 전 락하는 듯 보이는 것도 실은 그 감각적인 것을 자신에게로 고양시키 기 위한 과정을 의미한다. 71) Plat.o n , Repu bl. 523 Aff., c f. Cusanuas, Idio t a , Lib. Iii, 4.

감각의 새로운 지위 왜냐하면 지성은 감각계의 < 상이성 > 에서 바로 자신의 고유하고 부 동한 단일성과 동질성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자신과 본질적으로 달라 보이는 것에 대해 몰두하는 것을 통해 그것은 자신의 완벽함과 자기 전개, 자기 파악을 체험한댜 72) 그러므로 경험은 더 이상 이론적 인식 의 기본 능력, 즉 과학적 이성에 대한 저항이나 상극을 의미하지 않 으며 오히려 그것을 위한 진정한 매개를 의미하며 그것이 전개되며 보존되는 장을 마련한다. 레오나르도뿐 아니라 갈릴레이에 있어서도 위의 대립은 순수한 상호관계로 전환되었다. 이성과 경험의 차이는 각각이 취하고 있는 방향의 차이에 연원할 뿐이다 . 레오나르도는 지 렛대의 원리에 대한 연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의 의도는 우선 실험을 하고 난 연후에 이성을 통해 (colla rag ion e dion str ar e) 어째서 그와 같은 실험이 다름 아닌 그러한 방식으로 필연적인 귀결 올 가지는가를 보여주는 데 있다. 바로 이것이 자연 현상을 연구하는 자들이 밟아야 할 절차이다 . 즉 자연은 원인에서 출발하여 경험으로 귀결되지만 우리는 거꾸로 실험으로 시작하여 그것을 통해 근거 ra gi one 를 연구하는 방식을 취해야만 한다. >73 ) 이렇게 하여 갈릴레이 가 <분해적(분석적)> 방법과 <결합적(구성적)> 방법을 구별하고 서 로 연관시켰을 때와 같은 명실상부한 순환의 과정이 성립하게 되었 다. 즉 현상은 그것의 <근원>에로, 근원은 다시 현상에로 되돌아간 다. 이로 인해 플라톤이 변증론자의 방법과 수학자의 방법을 엄격히 구별한 것은 7 4 ) 이제 그 효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변증론자의 <위를 72) Cusanus, De con jec tu ris II, II; II, 16; (전체적으로 이 책 47 쪽과 비교하라) 73) Leonardo, (Ra va iss on -M oil ien E., fol. 55 r; Her zfe ld 판 6 쪽과 비 교하라) 74) Plato n , Rep u bl. 533 Cff .

향한> 방법이나 수학자의 <아래를 향한> 방법은 인식의 순환 과정 에서 감각의 상이한 단계를 거칠 뿐 결국은 같은 것이다. 이로 인해 순수 이론과 그것의 응용 사이의 관계도 새로운 시각을 통해 정립되 기에 이르렀댜 플라톤의 인식론 역시 <응용> 수학을 인정하며 그것 이 지식의 체계적인 서열에서 차지하는 특수한 지위를 인정한다. 더 나아가 플라톤은 당시의 천문학자들에게 저 유명한 요청, 즉 천상의 현상을 정연하고 동일한 형태의 운동에로 연관, 환원시킬 것을 제시 함으로써 자연에 대한 수학적 <응용> 개념에 최초로 날카롭고 풍부 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있어서 자연 인식 이나 감각적 현상 자체에 대한 지식은 그 자체로 목적일 수 없으며 단지 순수 이론을 통한 비판적 대상의 역할만을 수행한다. 변증론자 가 천문학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것이 다루는 대상에 기인한 것이 아 니라 그것이 수학자나 순수 사유에 대해 제시하는 문제에 기인한다. 변중론자는 <천상에서 벌어지는 화려한 현상>에 대한 관찰이나 경이 에 빠지려는 것이 아니다. 그가 별에 관해 몰두하여 자기 자신의 영 혼 속에 내재한 이성적인 요소를 발휘할 때 천체 자체에 대해서는 무 관심하다 .75) 그러므로 진정한 철학적 천문학의 목표는 경험적 성격을 띠는 것이 아니라 원리적인 성격을 띤 것이다. 그것은 감각계 자체를 탐구하지 않고 감각계로부터 순수 사유에로 향하는 영혼의 <전환>에 관심을 갖는다. 이와 같은 사실을 고려해 볼 때 르네상스 사상은 순 수 플라톤적 요소가 생생하게 남아있는 영역에서조차 하나의 결정적 인 변화를 겪었음을 알 수 있다. 경험 세계는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진정한 권리를 쟁취하게 되었다. 경험적 내용과 수학적 형식은 여전 히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으되 이 연관은 이제 이전과는 판이한 양상 75) Plato n , Rep u bl. 630 A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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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띤다 경험적인 것은 관념적인 것에로 고양된다고 해서 결코 자신 의 고유한 특성을 상실하지 않게 되었으며, 반대로 관념적인 것은 경 험적인 것을 통해 비로소 완성, 보존되며 정당성을 얻게 되었다. 플라 톤에게 있어 운동 이론은 한 <범례>, 즉 추상적, 수학적 관계에 비해 필연적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실례에 불과했던 반면, 이제 그것 은 고유의 가치를 획득했을 뿐 아니라 바로 순수 수학이 지향하는 목 표가 되었다. 레오나르도는 역학을 통해서만 수학의 <결실>이 가능 하다는 이유를 들어 역학을 일컬어 <수학적 과학의 천국>이라고 했 댜 761 갈릴레이는 이러한 과정을 완성시켜 운동 자체를 이데아로 봄으 로써 가장 명석한 방법적 형식을 거기에 부여했다. 운동은 이제 엄격 한 법칙성과 일관성, 그리고 필연성을 지니므로 더 이상 어두운 생성 의 영역, 즉 플라톤적 의미의 revml~ (g enes i s) 에 속하지 않고 순수 존재로 격상된다 운동이나 심지어 물질의 질량 그 자체도 지식의 대 상으로서 관념성을 지닌다. 왜냐하면 이 양자간에는 항상 일관된 고 정 불변의 특성, 즉 진정 수학적인 본질적 법칙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711 <순수> 수학과 <응용> 수학 이렇게 하여 경험 그 자체가 엄격한 인식으로 승격되어, 갈릴레이 76) Leonardo, Rava iss on -M oil ien E. fol. 8v. 77) 예를 들어 갈릴레이의 Di sc orsi e dim onstr azion i mate m ati ch e int o m o a due nuoue sci en ze I을 참조하라 (O p., Albe ri편, XIII, 7): 운동에 관 한 이론에서도-예를 들면 Vin c enzo di Graz i a 에 대항한 갈릴레이의 글 (O p. XII, 507 이하)에서----%일한 법칙이 제시되었다.

가 국소 운동에 관한 대화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 아주 해묵은 대상 을 전혀 새롭게 다루는 과학 > 이 성립하게 된 것이댜 78) 르네상스의 과학 이론이 감각에 대해 새로운 지위를 부여할 수 있었던 것은, 감 각에 대한 명실상부한 이론이 성숙하였음을 자각하였기 때문이며, 관 념적 수단을 발판으로, 단순한 감각에 지나지 않던 것을 순수 관조의 차원으로 변모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르네상스의 우주론 역시 동일한 관찰 방식을 지니며 동일한 과도적 과정을 겪는다. 즉 운동의 속성에 대한 견해가 변화함에 따라 새로운 우주 개념이 요청되고 창 출되기에 이른 것이다. 즉 운동의 문제가 크게 대두되고 그것이 새로 운 형식을 통해 날카롭게 정바됨에 따라 원소와 우주에 관한 학설은 근본적인 변혁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4 르네상스 철학이 운동의 문제를 통해 얻어낸 논리적 , 과학적 성과 가 근대 우주론의 핵심과 근원을 함축한다는 주장은 역사적인 파라독 스처럼 보인다. 운동 개념에 대한 중요성은 정작 오래전에 강조되었 던 것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론도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전체 자연 이론의 핵심이자 개념적 중추를 이루지 않았던가? 소요학파 물 리학은 운동의 근본 형식을 구분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아리스토텔레 스는 운동 }{iv-rpL I:; (ki nes i s) 의 개념을 넓게 사용하여 장소 변경뿐 아 니라 양적인 성장 ao 罰 1PL I:; (auxes i s) 과 생성, 소멸 rtV C GlC }{aL ~OfJ CI. (ge nesis ka i ptho ra) 둥도 포함시켰지만, 그에게 있어 단순한 장소 변 78) Ga lilei, D is c orsi, Gio m ata ter za. Op . XIII, 148.

경은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것으로 다른 것들에 본질적으로 선행 한댜 장소 변경에서 드러나는 차이는 그 차이의 담지자인 주체의 속 성과 특징을 반영한다 전 우주를 구성하는 4 원소, 죽 흙, 물, 공기, 불이 가지는 독특한 개성은 바로 그것들이 각자 특수한 운동 방식을 지닌 것을 통해 입증된다. 각 원소는 전체를 구성함에 있어 가장 적 절한 고유의 장소를 부여받으며 그 장소에서 이탈했을 경우는 필연적 으로 복귀하려는 경향을 띤다. 이와 같은 기본적 성향에 입각하여 원 소는 직선 운동을 하며, 천체를 이루는 불멸하고 완벽한 원소는 그에 유일하게 걸맞는 운동 형태인 원운동만을 하는 것이다. 흙은 자신의 속성, 즉 근원적인 절대적 중량 때문이 지상의 중심을 향하려 하며 불은 절대적인 가벼움 때문에 항상 중심을 이탈하려 한다. 그러나 천 상의 물체를 구성하는 에테르는 그러한 종류의 대립과는 무관하다. 거기에는 순수하고 완벽한 일관성만이 지배한다. 또한 천계의 운동을 관장하는 신적인 운동인은 바로 그 운행 속에서 자신의 모상을 드러 내야만 하므로 그것은 엄밀한 규칙성을 띤 원의 형태를 떨 수밖에 없다.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운동은 물질적 의미에서건 형이상 학적 의미에서건 세계에 대한 진정한 구분 기준 fund amentu rn di v i s i o nis 이 된다 . 그러나 운동이 존재 규정의 근원적 계기가 되려면 그 자신이 우선 순수하게 질적인 측면에서, 절대적 존재성을 인정받 아야만 한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운동을 통해 이해하는 것은 결코 공간과 시간이라는 양대 보편적 위치 질서에서 벌어지는 단순한 관념적 관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한 관계는 아리스토텔레스 체 계가 갖는 기본 신조에 비추어 운동에 대해 실재적이고 존재론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데 결코 합당하지 않다. 그것은 수학적이고 추상적 인 영역, 죽 단순한 사유 영역에 머물 뿐, 구체적인 그 무엇이나 자연

적 대상의 본질을 창조하지도 표현하지도 못한다. 우리가 어떤 구체 적인 < 무엇 > 에 대해 내리는 진술에는 항상 < 장소 > 에 대한 진술이 개입한다는 사실, 그리고 위치에 관한 규정없이 물체의 질 적 규명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결국 아리스토텔레스로 하여금 위치 자체에 대해 고유한 실체적 의미를 부여하게끔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의 전제들 장소는 그 속성상 물체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양상을 띤다. 그런가 하면 이 양자 사이에는 공통성 또는 대조성, 공감 또는 반감이라는 특수한 연관이 성립한다. 물체는 자신이 놓여져 있는, 자신을 둘러싼 장소와 결코 무관하지 않으며 실재근거적인 관련을 맺는다. 모든 물 질적 원소들은 자신에게 걸맞는 장소를 찾으며 자신에 위배되는 장소 는 피한댜 그러므로 장소 자체는 어떤 특정 원소와 결부되어 효력을 지닌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 힘은 우리가 근대 역학적 의미에서 인 력 또는 척력으로 정의하는 것과는 물론 다르다. 왜냐하면 그것은 <더>하고 <덜>하다라는 원칙에 따라 등급이 매겨질 수 있는 수학적 물리학적 크기와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그러한 상대적 크기 대신 절대적 존재성을 목격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우주 론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특정 원소가 원 위치를 회복하려는 경향으로 미루어, 혹 원 위치에서 원소가 떨어져 있는 정도에 따라 그러한 경 향이 약해지거나 세지거나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었다. 그 러나 그는 자신의 물리학과 우주론의 근본 전제에 비추어 그와 같은 의문을 단호히 일축해야만 했댜 무게를 지닌 물체가 지상에서 가까 우면 가까울수록 거기에로 세게 이끌린다는 의견 따위는 그로서는 불 합리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 거리 자체란 우리가 사물의

<속성>, 그리고 그것의 본질에서 연원한 작용을 확인하려 할 때 전 혀 고려될 필요없는 단순한 외적 규정이기 때문이다. 사물의 본질과 그것에서 연원한 운동 성향은 각 사물에 대하여 외적이고 우연적으로 주어진 환경이나, 가깝고 먼 정도와는 무관한 일관성을 띤다. 79) 이 구절에는 <실체적 형상>의 물리학이 함축하는 사상이 아주 날카롭고 의미심장하게 드러나 있다. 근대 물 리학에서는 특정한 ’ ' 불변의 관계만이 진정 객관적이고 실재적인 의미 를 띠며, 모든 물질적 존재와 현상에 대한 규정은 일반적 자연 법칙 으로 표현되는 그와 같은 관계에 의존하는바, 각각의 관계항들, 즉 물 체와 장소는 이러한 법칙을 통해서만 정의될 수 있는 반면, 아리스토 텔레스에게 있어서의 상황은 정반대의 양상을 띠어 자연 tpool ~ (p hy s i s) 과 장소 <자체>라는 형상 d&>c: ( eid o s), 그리고 물체와 원소 <자체>가, 우주의 전체 구조나 그 속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의 양태를 결정한댜 스콜라 철학에 바탕을 둔 물리학은 이와 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기 본 전제를 끈질기게 견지하였다. 물론 14 세기 두헴 Duhem 에 이르러 스콜라 철학적인 물리학 내에서도 새로운 기운이 일어나 특히 알베르 트 폰 작센 Albert s van Sachsen 같은 이 의 저 술은 문제 제 기 측면 에서 근대 우주론, 죽 케플러나 뉴턴 이론의 출현을 도운 몇몇 문제 들을 함축하고 있다 .OO) 그러나 그와 같은 문제는 아리스토텔레스적 물 79) Arist o t e l es, rccp t oti, xwoii A 8. 80) Duhem, Et ud es sur Leonard de Vind , Seconde seri e, II 82 이 하 둥과 비 교하라.

리학이 일소되어 장소와 공간에 대한 이론이 근본적으로 수정될 때에 만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이와 같은 돌파구를 마련하는데 사변적 철학의 영역에서는 De docta ign oran ti a 가 본격적인 역할을 수행하여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의 핵심을 공박하고 나선다. 쿠자누 스의 De docta ign oran ti a 가 우주론적 차원에서 갖는 의미는 , 그 저 술이 지구 자전에 관한 고대적인 이론, 특히 피타고라스적인 이론을 다시 거론하고 나섰다는 단순한 사실에 있기보다는, 바로 그와 같은 거론을 가능케 한 원칙에 기인한다. 이 책에서는 장소와 운동의 상대 성이라는 사상이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서술되고 있는데 사실 이 사상 자체는 쿠자누스의 인식론을 규정하고 있는 일반적 요청에 부응하는 필연적 결론에 지나지 않는다. 쿠자누스는 객관적 진리라는 개념을 규정하기 위해 사변적, 철학적으로 측정이라는 원리에 몰두하여야만 했다. 그에게 있어 일체의 인식이란 단지 측정이라는 보편적 기능의 한 특수한 경우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정신 Mens > 과 < 척도, 측 정 rnensura> 은 결국 동일한 것으로 측정의 본질을 간파한 자는 정신 이 지니는 진정한 의미와 깊이를 간파한 격이다. 이와 같은 문제는 또 다른 성과를 초래하여 측정에 관한 본격적인 이론이나 수학적 우 주지, 우주론이 <주관>과 <대상 > 의 원칙적 관계에 대한 통찰로 귀 속되게 되었다. 즉 만물의 진정한, 객관적 크기를 알고자 한다면 무엇 보다 측정의 절차와 기본 형식 전체에 대해 고찰하여야만 하며 측정 의 전제들에 대해 명료하게 통달해야만 한다. 측정의 본질적인 조건 , 특히 장소적이고 시간적인 비교의 조건은 쿠자누스에 따르면 우선 고 정되고 불변한 한 점을 설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장소와 운동의 상대성에 관한 발견 그와 같은 고정점, 죽 한 극점이나 중심점의 설정없이는 물리적 운 동의 서술이란 불가능하다 . 이러한 설정은 물론 필수불가결한 것이기 는 하지만 docta ig noran ti a 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 분명 하나의 설 정에 지나지 않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절대적이고 존재론적인 규정이 아닌 가설적이고 관념적인 것으로 이해해야만 한다. 측정을 하려면 고정점이나 중심을 결코 간과할 수 없지만, 이러한 점의 선택은 사물 에 놓인 객관적 속성에 의해 확고히 예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측 정하는 자의 자유 소관인 것이다. 그러므로 결코 어떠한 물리적 <장 소 > 도 다른 것에 대한 본원적인 우위를 주장할 수 없다. 즉 어떤 관 찰자의 입장에서 보면 정지한 것도 다른 입장에서 보면 움직이는 것 으로 보이는가 하면 그 반대의 경우도 성립하는 것이다. 절대장소와 절대운동 개념은 이로 인해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만일 한 관찰 자는 지구의 북극에 서 있고 다른 관찰자는 천구의 북극에 서 있다면 전자는 극점을, 후자는 중점을 보게 될 것인즉, 양자 모두 당연히 자 기가 서 있는 지점을 중심으로 하여 다른 것들을 연관시킬 것이다. 오성의 임무는 이러한 상이한 감각적 조망을 서로 결합하여 <상보적 으로 > 조화시키는 데 있다 . 이러한 개관 속에서 우주는 결코 다론 점 에 비해 우위인 중심점 따위롤 어디에도 가지고 있지 않은 바퀴 속의 바퀴, 구 속의 구와 같은 형태를 띤다 .8 1 ) 81) Cusanus, De doct ign. II, II; 이 이론에 대 한 역사적인 의미와 전개 과정에 대해서는 E. F. Ap elt , Di e Refo r mati on der

Ste r nkunde, Jen a 18.5 2 , 18 쪽 이 하 를 참조하라. 쿠자누스의 형 이상학과 우주론 사이에 존재하는 체계적인 관련에 대해서는 조만간 선을 보일 Hans Joa ch im Ritte r 의 함부르크 대학 학위 논문을 참조하라.

고정된 장소와 크기로 성립되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우주와 비교해 이와 같은 상대주의는 하나의 철저한 해체 과정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 docta ig noran ti a 의 원칙이 내포하는 희의( 懷 疑) 의 과정은 근본적으로는 새로운 긍정적 성과를 이루어내기 위한 한 예비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소요학파의 물리학 체계에서는 어떤 의미 에서 기본 요소들간의 상호작용이 지배적 요소로 등장하며 장소는 물 체에 의해, 물체는 자기가 속한 장소에 의해 결정된다. 공간 영역은 여기서 사물 영역과 같은 방식으로 구분된다. 죽 사물도 영원한 것과 변화하는 것, 완전한 것과 불완전한 것으로 나누어지듯 공간적 세계 역시 그와 유사하게 구분되는 것이다. 전자에서는 고유한 속성이 관 건이라면 후자에서는 고유한 위치가 관건이라 할 수 있다. < 위>는 <아래>와 구별되며 <드높은> 천상계는 <낮은> 월하계(月下界)와 엄격히 구별된댜 이와 같은 구별을 지양한다는 것은 일단은 저 확고 한 공간적 고정, 저 명료한 한계 설정을 혼드는 것처럼 보인다. 즉 양 적으로 무한할 뿐 아니라 질적으로 규정되지 않았다는 의미의 아페이 론 rJJCl l{X) V (a p e ir on) 이 다시 규정성 冠{XJ.C: (p eras) 을 압도하는 듯 하 며 혼돈이 질서를 압도하는 듯 보이는 것이다 . 그러나 바로 여기에서 절대적으로 유익한 하나의 새로운 긍정적 요청이 제기된다 . 쿠자누스 철학이 지니는 인식 원리, 즉 새로이 수립된 확실성에 관한 기준은, 고정된 중심과 결집된 영역으로 이뤄진 아리스토텔레스적 세계상을 단지 하나의 가상으로 간주함으로써 파괴시켜 버렸다 . 그러나 바로 이와 같은 파괴를 계기로 이제 존재와 현상들에 관한 전체 질서를 지 성이 지닌 자체적 능력과 고유한 수단을 통해 재수립해야만 하는 과

제가 등장하게 되었다. 지성은 이제 감각성을 압도하여 그것을 자신 에로 고양시키기 위해 감각적인 도움이나 원조 없이 스스로의 매개를 통해, 죽 자유로운 사유의 에테르를 통해 운동하는 법을 익혀야만 한 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적, 스콜라적인 물리학과 비교하여 볼 때 문 제의 해결 순서가 뒤바뀌게 되어, 아리스토텔레스적 스콜라적 물리학 에서 출발점으로 삼았던 것이 우주론적 관찰의 궁극 목표가 되었다. 모든 장소 규정이 갖는 상대성을 원칙적으로 인식하면 어떻게 우리가 우주의 고정된 점들을 인식할 수 있을까 하는 따위의 의문은 성립하 지 않으며 그 대신 우리가 처한 이처럼 복잡하고 다양한 영역에서 어 떻게 확고한 변화 법칙을 얻어낼 수 있을까 하는 문제만이 남게 된 다. 어떤 <장소>에 대한 규정은 이제 운동에 관한 어떤 일반 규칙 체계를 전제로 하며 단지 이 체계 내에서만 타당하다. 바로 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우주의 단일성은 바로 이러한 규칙의 단일성에 기인한다. 그리고 바로 신이 가지는 절대적 단일성과 우리가 <세계>라고 부르는 <조립된> 단일성과의 차이는, 이 <조립된> 단일성에서의 단일성은 결코 실체적인 단일함이 아니라 단지 상대적인 것이며 단지 <다름>과의 연관울 통해서만 드러난다는 사실이댜 단지 다수성이라는 매개를 통해서만 단일성을 이해할 수 있으며 변화라는 매개를 통해서만 일관됨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대비적 개념들은 각자 다른 우주 영역에 배당되어 한 곳에는 변화 가, 다른 한 곳에서는 단일함과 동일함이 지배한다는 식으로 구분되 는 그와 같은 것이 아니다. 쿠자누스에 있어서의 운동의 상대성에 관한 원리 그와 같은 공간적 구분은 새로이 확립된 상관성이라는 관념적 원리

에 위배되는 것이댜 쿠자누스의 우주관에 의하면 그 어떠한 개별적 존재도 양 대비개념, 즉 < 단일성 > 과 < 상이성 > , 그리고 일관성과 부 단한 교체를 긴밀하게 연관시켜 내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 어떠한 개별적 부분도 다른 것과 < 분리되어 > 있거나 다른 것보다 < 위> 또는 <아래 > 에 있는 것이 아니며 단지 모든 것 속에 모든 것 (qu od libe t in q uo li be t)이 있다는 명제만이 타당하다. 만물을 운동하는 하나의 단일체로 파악하면 더 이상 < 위 > 나 < 아래 > 란 있을 수 없고, 시간적이고 우연적인 것과 구별되는, 영원하고 필연적인 것 따위란 있을 수 없댜 오히려 모든 경험적 현실들은 바로 이러한 대립들의 일치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일치는 질적인 융합이며 단지 있 거나 또는 없거나 할 뿐이지 여기서는 조금, 저기서는 많이 있는 그 런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주를 이루는 부분들 사이에는 쿠자누스 가 우주와 신 사이에 설정한 것과 같은 상징적 관계가 존재한다. 절 대적 극대치가 상대적 극대치에서, 또 신의 절대적 무한성이 우주의 무한함에서 자신의 모상을 드러내듯, 우주 전체는 그것을 이루는 각 부분들 속에서 발견되며 전체 구조는 그것의 특수한 특징이나 개별적 상황을 통해 반영된다. 물론 그 어떠한 부분도 결코 전체일 수 없고 전체가 지니는 완벽성과 완성도를 품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 고 모든 것은 그러한 완성도를 대리함에 있어 똑같은 자격을 누린다. 이러한 형이상학적 근본 구상으로부터 출발하여 쿠자누스는 동일 형 식성이라는 우주론적 개념을 성립시켰다. 동일 형식성에 대한 통찰은 docta ig noran ti a 의 원리에 힘입어, 경험적인 것과 <절대적> 형상의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는 무한대로 확장하는 대신 주어진 감각적 경험적 현실에서 벌어지는 차이점은 상대화하고 지양함으로써 얻어진 성과이다. 우주의 모든 부분들과 그것의 속성은 전체와의 연관 속에 서만 존재한다. 이 연관은, 전체 기능에 저촉되지 않고서 그 중 어느

한 부분만을 제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그와 같은 것으로 이해되어 질 수 있다. 우주의 운동은 이와 같은 모든 부분들간의 내적인 상호 연관에서 기인한 것일 뿐,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충격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운동은 이제 사물의 상호 연관성과 본유적 <현실>을 표현하 는 것으로 이해되어 더 이상 외부로부터의 추진력이나 신적인 원동자· 를 필요로 하지 않는댜 자연 개념은 그러한 전체성, 즉 개별 운동들 의 무한한 다양성과 더불어 통일된 원리로서 그것을 포용하는 일반적 법칙을 통해 명명백백히 드러난다. 죽 자연은 운동 속에 존재하며, 운 동을 통해 발생하는 모든 것의 <복합>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하여 새로운 동력학이 성립되는 기반이 마련되게 되었다. 그러나 쿠자누스를 통하여 그러한 임무가 놀랄 만큼 명확하게 부각되 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변적 사상은 결코 자발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 지 못하였다. 먼 장래를 위해 설정된 목표는 그 달성을 위해 우선 점 진적으로 자신에게 적합한 수단과 사유 형식을 마련해야만 한다. 이 런 관점에서 케플러는 천체 운동의 기본 법칙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 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한 방법적이고 원리적인 정초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그 누구보다 탁월한 근대 과학 개념의 창시자였다고 할 만하 다. 그는 장소란 그 자체로 확정되거나 주어진 것이 아니라 모두 정 신의 산물일 뿐이라고 강조하였다. 821 이 기본 명제는 케플러의 이론 천문학뿐 아니라 광학과 지각 이론까지 지배하여 이 세 분야를 사상 적인 통일체로 결집시키는 원리로 작용하였다. 이렇게 하여 장소와 운동의 상대성에 관한 통찰의 근대 사상적 기여는 그에 이르러서야 그 모습을 명확히 드러내게 되었다. 바로 이 원리에 입각하여 <자 82) Kepl e r, Op e ra, Fri sc h 편 II, 55.

연 > 과 < 정신 > 간의 관계, 그리고 < 대상 > 과 < 주관 > 과의 관계가 새 롭게 정립되었다. 바야흐로 모든 대상 설정과 모든 공간적 개념화가 내포한 관념적 요인들이 극명하게 드러나게 된 것이다 . 장소는 더 이 상 직접적으로 주어진 물질적 특성으로 여겨질 수 없으며 단지 관계 를 의미할 뿐이라는 사실은 자연 인식 전체에서 관계가 차지하는 의 미를 규명하고 더 나아가 그것이 지니는 고유하고 특수한 < 구조 > 를 이해하여야만 한다는 과제를 성립시킨다. 이로 인해 < 공간 > 과 개별 적 <장소 > 의 관계도 본질적으로 수정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학 적이라기보다는 물리학적인 착상에서 개별적인 장소 규정을 통일된 전체 공간 내로 통합하였댜 즉 여기서 이루어지고 있는 결합은 개념 적이라기보다는 물질적인 것이어서, 모든 것을 포괄하는 공간은 특정 장소를 자신의 구성 요소로서 포함한다. 집합 공간에서 체계 공간에로의 전환 일반적으로 물체가 접하고 있는 장소와 그 물체 자체 사이에도 그 와 같은 관계가 성립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관계를 그릇과 거기에 부어진 액체의 관계에 비유하였다. 동일한 항아리나 자루가 어떤 때 는 술을 담고 어떤 때는 물을 담듯, 같은 장소도 때에 따라 다른 물 체를 품는다 우리가 공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물체도 아닐뿐더러 물 체를 이루는 질료도 아니다. 왜냐하면 물체나 물체의 질료는 둘러싸 이는 것인데 반해 우리가 공간 개념을 통해 연상하는 것은 둘러싸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둘러싸는 것은 물체의 외곽이나 형태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물체의 형태는 물체와 더불어 운동하는 고로 우리가 만약 공간이라는 표현으로 물체의 형태를 이해한다면 물 체는 공간 속에서가 아니라 공간과 함께 움직이는 격이 될 것이기 때

문이댜 그러므로 공간은 이 경우 둘러싸이는 것과 대별되는 둘러싸 는 것의 테두리로서 규정될 수 있다 . 이에 따르면 개별 물체들의 장 소는 바로 옆에서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것의 안쪽 경계로 표현될 수 있는 반면 공간 전체는 천구의 가장 바깥 경계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 다 .83) 물론 여기서의 경계선은 기하학적인 선이지 물질적인 선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와 같은 기하학적 규정조 차 하나의 체계를 제시하기보다는 하나의 총합을 제시할 뿐이다. 왜 냐하면 이 경우 -r6n oc: HOLVoC: (top o s koin o s), 즉 <일반> 공간은 결 코 개별 공간 성립을 위한 조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특수한 공간들 즉 모든 감각적인 것을 둘러싸는 공간에 대해, 마치 이러한 특수 공간이 개별 사물에 대하여 맺는 것과 비슷한 연관만을 지니기 때문이다. 모든 < 특수 장소 t6i.oc : -r6n oc: (idios t o p os)> 는 그것이 포 함하고 있는 특정 사물을 마치 껍데기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일반 공 간은 이러한 관계, 죽 이와 같은 끊임없는 에워쌈의 과정에서 단지 가장 마지막, 그리고 가장 바깥쪽의 껍질을 의미할 뿐이다. 이와 같은 가장 바깥쪽의 껍질 너머에는 물체는 물론 공간도 성립될 수 없다. 소요학파 물리학 체계에서는 이처럼 공간을 물체에 대한 하나의 규 정, 즉 그것의 그릇으로서 파악하기 때문에 <비어 있는 공간>이라는 개념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결국 물체가 없으면 공간도 성립할 수 없다는 결론이 유도된다. 비어 있는 공간은 아무 것도 감쌀 것이 없 는 상태롤 감싸는 것으로 자체 모순 contr ad ict i o in adj ec t o 에 불과 하다. 이에 부합하여 기하학적 관념적이던 공간의 연속성 개념도 일 종의 물질적 성격을 띤 것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우리가 물질세계를 일컬어 연속적이라고 일컫는 이유가 다음과 같은 이유, 죽 모든 사물 83) 아리스토텔레스, Ph ysi k IV, Cap. 5-7, De coelo IV, 3 둥과 비교하라.

이 가장 가까이에 또 다른 사물을 접하고 있어 어디에도 빈틈이 없다 는 데서 연원하듯, 개별 장소와 전체 공간의 관계에서도 균열이란 상 상할 수 없댜 여기서 공간의 연속성은 관념적인 공간 이론, 즉 그것 의 < 형식>과 <원리 > 같은 것을 통해 근거를 확보하는 대신 기본적 으로 공간을 물질적 실체로 보는 시각을 통해 성립되게 되었다. 르네상스 철학과 르네상스 수학의 중요한 과제는 바로 이와 같은 견해를 극복하여 점진적으로 새로운 공간 개념을 창출하는 데에, 즉, 총합 공간을 체계 공간으로 , 질료로서의 공간을 기능으로서의 공간으 로 대체하는 데에 있었다. 동시에 공간은 물질적 성격, 질료적 속성을 탈피하고 자유로운 관념적 선조직으로 발견되어야만 하였다 . 84) 이러한 과정은 공간의 동질성이라는 포괄적 명제를 확립하는 것으로서 출발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 체계에서는 < 장소들 > 사이에도 물질 적 요소들 사이에 존재하는 것과 같은 확연한 차이가 존재하므로 공 간의 균질성이란 성립될 수 없다. 어느 특정 원소는 그 속성상 위로 향하는 반면 다른 원소는 아래로 향한다는 말은 바로 < 위 > 나 < 아 래> 자체가 고유한 특정 성질과 특수한 ¢OOlC (p h y s i s) 를 지님을 의 미한다. 그러나 공간을 그와 같이 규정된 속성의 총화가 아닌 하나의 체계적 전체로서 조직적으로 창출해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러한 조직의 형식이 엄밀하게 통일된 법칙에 준한 것임을 증명해내야만 한 다. 이제 어떤 점에서건 원칙적으로 동일한 공간의 구성이 가능하여 야만 하며 모든 점은 그 어떠한 기하학적 조작에 대해서도 출발점이 84) 어떻게 이와 같은 발견이 수학이나 우주론에뿐만 아니라 르네상스의 미술이나 미술 이론에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원근법에 관한 이론이 어떻게 근대의 수학 이나 우주론을 예견케 하였는지에 대해 파노프스키의 강연 (Vo rtr ag e der Bi bi. Warburg, IV, 19 24/2 5) 은 다루 고 있다.

면서 동시에 궁극점을 의미하여야만 한다. 이 요청은 이미 니콜라우 스 쿠자누스를 통해 포괄적으로 인식되었지만 그것이 본격적으로 충 족된 것은 갈릴레이의 운동 이론에 이르러서였다 . 이제 우리는 어째 서 갈릴레이가 소요학파 철학이나 물리학에 대한 비판과정에서 위와 같은 문제를 끊임없이 거론하였는지 이해할 수 있댜 갈릴레이룰 통 해 바로 여태까지의 자연 개념에 대한 철저한 전복이 이루어져, <자 연 > 은 이제 더 이상 질료 형태를 띤 세계도 아니요, 원소의 운동이나 정지에 대한 원인도 아닌, 저 일반적 운동의 법칙성을 의미하게 되었 댜 그 어떤 특수 존재도, 세부적으로 어떤 속성을 지녔건 이 법칙성 을 벗어날 수 없는데, 그것은 바로 이러한 법칙성을 통해서만이 현상 의 보편적 질서에 그 특수 존재가 편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간과 우주의 균질성 이 질서를 일단 수학적, 관념적으로 정립하고 난 연후에 감각적 경 험의 기록과 비교 검증하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이 양자 사이에는 항 구한 관계가 생겨나게 되었다. 여기에는 원칙적으로 제한 같은 것이 있을 수 없다. 갈릴레이의 우주관에 의하면 <현실적인 것>에 대해 <관념적인 것>이 온전히 적용된다거나 <추상적인 것>이 <구체적인 것>에 대해 온전히 타당한 것임을 저해하는 제한 따위란 없다. 그리 하여 결국 그를 통해 기하학적 공간의 필연적 균질성으로부터 우주의 균질성이 유도된댜 운동은 이제 다양한 종류의 물체에서 각기 다른 양상을 띠는 독특한 <갈등>이 아니라, 동일한 일반적 타당성을 띤 척도와 양의 법칙으로 환원되고 규정될 수 있는 그와 같은 것으로, 이제 제반 운동의 결합이나 종합은 다름아닌 순수한 수적 종합이나 다양한 기하학적 조작에서 발견되는 구성 원리를 따를 뿐이다. 아리

스토텔레스 물리학의 기본 전제 를 견지할 경우 이와 같은 구성은 불 가능한데, 그 이유는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에 의하면 다양한 운동 형식 사이에는 실재적 모순뿐 아니라 일종의 논리적 모순조차 내재하 기 때문이다 . 물론 아리스토텔레스도 직선이나 원 운동같이 서로 대 립적인 운동의 기본 형식 외에 이 양자의 성질을 고루 지닌 < 복합 > 운동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그에게 있어 그와 같은 복합 양상은 단 지 운동의 주체가 통일적이지 않을 때, 즉 움직이는 것이 결코 단순 한 것이 아닌 다양한 부분으로 이루어진 물체일 때에만 가능하댜 만 일 진정 단순한 것에로 환원시키면, 각 원소들의 < 속성 > 에는 단지 하나의 운동이 해당될 뿐이다. 한 원소에 대해 여러 가지 운동이 가 능하다고 보는 것은 그 원소의 고유하고 확실한 특징을 부정하는 것 이 되고 만다. 사실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의 입장에서는 원운동을 하면서 직선 운동을 한다든지, 중심을 향한 운동을 하면서 중심을 벗 어나려는 운동을 하는 < 단순 > 물체가 있다면, 그것은 목재의 성질을 띤 쇠와 같은 것을 의미한다 즉 그 안에서는 두 가지 서로 대비되는 질료적 형태가 통합되어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갈릴레이는 아리스토 텔레스적 이자 스콜라적 인 원칙, 즉 <본성 대로 조작된다 ope r ar i sequ itur esse> 라는 명제를 전도시켜 존재의 형식에 대한 교조적 가 정으로부터 작용 형식을 유도해 내는 대신, 존재를 규정하는 데 필요 한 계기를 간접적으로 얻고자 작용이 지닌 경험적 법칙으로부터 출발 하였다 .85) 이와 같은 작용 형식에 관한 그의 견해는 원래 지식의 형식 에 관한 그의 가본관을 반영한 것으로, 그에게 있어 자연 Ph y s i s 의 단일성은 물리학의 완결성에서 근거하며 물리학적 완결성은 다시 기 하학과 수학의 완결성에 힘입은 것이다. 측정이나 엄밀하고 경험적인 8.5) Erkenn tnisp r o blem L 401 이 하.

크기 규정에 대한 공리 체계가 존재하는 한, 측정 가능한 것으로 이 루어진 세계에는 극복될 수 없는 대립 따위란 있을 수 없다. 이 원칙 에 따르면 돌의 낙하나 천체의 운행, 지상계와 천계 할 것 없이 모두 동일한 관념적 원리로 환원되어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 를 통해 존재의 문제에 대한 방법적 문제가 차지하는 의미가 체계적 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새롭게 부각되게 되었다. 중세에는 방법적인 이 원주의, 즉 신학과 물리학의 대립이 이원적 질료 개념을 통해 반영된 다 . 토마스 아퀴나스도 바로 지상의 질료와 천상의 질료는 이름만 같 울 뿐 하등의 본질적 공통점도 지니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 나 지성의 단일성이라는 전제, 즉 데카르트의 <보편 수학 Ma th es i s un ive rsal is> 사상에 의 존하고 있는 근대 적 세 계관은 이 와는 상반된 결론을 내리는데 만물의 실체는-경험적 지식과 합리적 지식에 그 대상 여하를 불문하고 동일한 법칙과 원리가 적용되는 한-――동일한 것이다. 그러나 경험 물리학의 성립과 운동 개념 정립에 수학적 인식의 관 념적 규약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에 못지 않게 그것과 도치된 과정도 일어나고 있었음을 명심하여야만 한다. 즉 기하학과 물리학 사이에 생겨난 새로운 결집을 통해, 운동을 수학적인 개념으로 보아 기하학적으로 서술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도약 은 고대 수학에서 근대 수학에로의 발전 과정, 죽 희랍인들의 <종합 적> 기하학이 해석 기하와 극한의 해석에로 이르는 과정에 결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도약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공간 직관을 경험 적 사물 직관과 명료히 구분할 수 있게 되었으며 <사물 공간>을 순 수한 <체계 공간>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가능케 되었다. 아리스토텔 레스의 물리학적 공간은 둘러싸인 것과 대조되는 둘러싸는 물체의 한 계로서 정의되는데, 이러한 정의에는 공간이 물체에 부속되어 있고

단지 물질적 측면만을 지니며 또 물질적인 것에 대한 규정을 의미할 뿐이라는 점이 함축되어 있다 . 기하학적 기본 개념으로서의 운동 그러므로 그 안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운동의 자유나 진행 따위란 있을 수 없다 . 거기서는 그 어떠한 선도 진정한 의미에서 무한대로 연장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왜냐하면 현존하는 무한이란 내적 모순이므로-임의의 방향에로 제한없이 계속 진행되는 운동도 상 상할 수 없댜 진행의 추이는 움직이는 것의 고유한 특성에 따라 애 초에 결정되어 버리는 것이다. 즉 특정 원소는 자신에게 걸맞고 자연 스런 특정 장소와 특정 방향을 가질 뿐, 다른 식으로 운동하지 않는 다. 그러나 근대 역학은 운동을 아주 포괄적으로 받아들여 공간 인식 의 담당자이자 기하학적 형태에 대한 정의로 받아들임으로써 이러한 상황을 일신하였다 . 이러한 변모는 케플러의 입체 기하학적 연구를 ,,. 통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 케플러는 복잡한 입체들을 그저 있는 그대로, 주어진 대로 비교하지 않고, 그것들 자체 대신 그것들을 성립 시키는 원리를 살핌으로써 크기를 비교하였다 . 이제 모든 도형들은 자신이 발생적으로 생겨날 때 거쳤음직한 수많은 개별적 양상의 총합 으로 드러나며 수학적 사유의 임무는 이 총체를 하나의 양 개념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파악 방식에 의하면 원은 그 꼭지점을 중심으로 모으고 있는, 한없이 좁다란 이등변 삼각형들의 총합이며 구는 수없이 많은 원추들의 합으로 간주될 수 있다. 케플러는 자신의 연구를 이와 같은 기하학적 기본 도형에 국한시키지 않고 다양한 구 면과 원추면을 특정한 축과 지름, 종축을 중심으로 회전시킴으로써 일련의 새로운 형태를 출현시켰으며 그것들의 체적을 일반적 방법을

통해 구하고자 하였다 쁘 이처럼 수학에서 무한 개념이 정당한 인식 수단이기를 넘어 필연적인 인식 수단으로 규명됨으로써 세계 개념, 즉 인식 대상 개념도 새로이 정립되게 되었다 . 왜냐하면 모든 <정적 분 > 은――케플러의 방법은 바로 기하학적 도형을 정적분으로 파악 하고 환원시키는 것이다-여태껏 서로 양립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 된 두 계기의 결합을 노골적으로 함축하기 때문이다 . 한계, 즉 규정자 Tlt{ XJ.c;; (p eras) 에 대한 모순적 대 립을 의미하는 무규정자 CJ.TlE.l fX )V (a p e i ron) 로서의 무한 개념이 이제 수학적 해석의 새로운 형태에서 양 을 규정하는 보조 역할로 등장하게 되었으며 심지어 그것을 위한 가 장 중요한 도구로 규명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것의 형이상학적 초 월성은 이제 논리적 내재성으로 전환되었으며, 공간 개념도 질료적인 성격을 완전히 탈피하여 순수한 질서 체계로 대체되었다 . 이와 같은 변화는 페르마 Ferma t와 데카르트에 의해 도입된 좌표 개념을 통해 가장 잘 드러난댜 데카르트의 해석 기하학은 논리적으로나 기하학적 으로나 케플러가 ste r eometr ia do li orum 에서 제시한 내용과 유사한 원리를 지닌댜 죽 데카르트는 자신이 관찰하고 있는 곡선을 단지 감 각적으로 볼 수 있는, 이미 주어진 것으로서 다루지 않고 일련의 운 동들이 빚어낸 질서 잡힌 복합체로서 파악했다 . 모든 운동들이 갖는 상대적 성격에 대한 통찰은 더 나아가 어떠한 복잡한 운동도 원칙적 으로 일련의 기본 운동들로 분해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했다. 이러한 기본 운동은 서로 직각을 이루는 두 개의 축을 상정하면 가장 쉽게 연상된다. 종축과 횡축을 따라 일어나는 두 운동 사이에 존재하 는 다양한 속도 관계는 바로 그 결과로서 드러나는 곡선의 기하학적 86) Ste r eometr ia do li orum 에 제시된 케플러의 방법에 대해서는 Zeuth en , Geschic h te der Math e mati k im 16. und JZ Ja hrhunder t와 Gerhard t의 Di e Entd e ckung der hohem Analys i s , Halle 18. 55, 15 쪽 이 하 를 참조하라 .

형태를 명확히 결정하며 그것이 지니는 모든 특성을 완벽하게 드러낸 다. 게다가 새로이 성립된 이와 같은 순수 관계 공간 내지 체계 공간 에서는, 어떤 점을 정지한 것으로 보고 어떤 점을 움직이는 것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수학적 사유의 자유 소관이다. 한 좌표는 좌표의 변환이라는 법칙만으로도 다른 좌표로 전환될 수 있으 며, 이때 운동의 법칙, 죽 특정 곡선을 표현하는 방정식은 단지 외향 적인 변화만을 겪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_희랍 수학에 비하여 ―근대적인 해석기하학이 올린 성과 중 가장 탁월한 것이다 . 물론 희랍 수학에서도 좌표의 개념을 사용한 몇몇 혼적이 발견되지만 그것 은 단지 그때 그때 주어진 개별 도형에 관해서일 뿐 진정한 일반성을 띤 것은 아니었다. 즉 희랍 수학에서는 좌표의 원점이 늘 관찰되는 도형 위에 잡혀지거나 또는 그 도형 내지 그 도형의 기하학적 기본 속성과 아주 긴밀한 연관을 맺어야만 했다. 데카르트와 페르마에 있어서의 좌표 개념 그러나 페르마에 이르러서야 그러한 것과 구별되는 새로운 방법이 고안되어 모든 구속은 허물어지고 전체 체계의 중심을 곡선이 놓여 있는 평면상에 임의로 설정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뿐만 아니라 종축과 횡축의 방향에 대해서도 여하한 방식의 변위와 희전이 허락되었으며, 직각좌표 대신 사각좌표의 사용도 가능하게 되어, 한 마디로 좌표는 곡선에 대해 얼마든지 자유롭게 설정될 수 있게 되었다. 페르마는 『평 면 기 하학 입 문 Ad locos piano s et solid o s i sa g o g e 』 에 서 자신 이 근 본적으로 문제삼은 것은 <이 지식 분야에 가장 걸맞는 해석을 유도하 여 장소에 대한 일반적 이해를 가능케 하는 것>이라고 밝히면서 87) 자신 이 고안한 방식이 낡은 방식에 비하여 방법적으로 탁월하다는 사실을

사실을 명백히 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분야, 특히 우주론과 자연 철 학 분야에서 아리스토텔레스적, 스콜라적 공간 개념에 대한 해체 작 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순수 과학 분야에서 이루어진 위와 같은 공간 해석상의 보편주의도 성립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이와 같은 변화는 엄밀 과학의 방법론을 통해 드러나기 훨씬 전, 세계에 대한 새로운 정서가 조성됨으로써 예견되었다 . 조르다노 부르노가 그 단적인 예이다 . 그로서는 무한 개념을 엄밀 과학적인 인 식의 도구로 인정하는 것은 아직 생소한 것이었다. 아니 그는 자신의 최소 이론을 통해 무한 개념의 그와 같은 기능을 단호히 부정하고 거 부하였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무한 개념의 논리적 구조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던 반면 , 무한한 우주에 대해서는 넘치는 격정을 가지고 대하였다. 이와 같은 영웅적 격정은 중세의 교조적인 신앙에서 유래 한 < 극한 Ne plu s ul tr a > 의 원칙에 대해서는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적 내지 스콜라적 우주관에 대해서도 저항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자유로 운 상상력의 비행이나 자유로운 사유의 비행은 결코 고정된 공간적 물질적 제한을 용납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이유로 부루노는 무엇보다 공 간을 < 둘러씨는 것 > 이라는 의미의 01'.ilflD. nEp Le ,t ov (soma p e ri echon) 으로 보는 소요학파의 물리학적 시각을 단호히 부정하였다. 세계가 놓여 있는 공간은 그에게 있어 결코 그 안에 세계가 감싸여져 머물고 있는 곳의 가장 바깥쪽 경계 따위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공간은 모 든 한계를 넘어서서 모든 방향에로 거침없이 전개되는, 운동을 위한 자유로운 장이다 . 운동은 어떤 개별 사물의 <속성>이나 우주의 일반 적 속성에 의해 제한될 수 없고 또 제한되어서도 안되는데 그것은 운 87) Wi ele itn er , Di e Geburt der modemen Math e mati k, Hi st o r i sch es und Grundsiit zl ich es J: Di e analyt isc he Geometr ie, Karlsruhe 1924, 36 쪽 이 하와 비교할 것.

동이야말로 그 보편성과 무제한성이라는 측면에서 자연을 구성하는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무한 공간은 무한한 힘의 담당자가 되 어야만 하며 바로 이 무한한 힘이란 우주의 무한한 생명의 표현이다. 부르노의 사상에서 이 세 가지 계기는 결코 따로 따로 분리될 수 없 다. 그의 사상적 바탕을 이루는 스토아적 물리학이나 신플라톤주의적 물리학에서와 마찬가지로 그에게 있어 공간 개념은 에테르 개념으로 대체되기도 하고 에테르 개념은 또 세계 영혼의 개념과 혼동되기도 한다. 바로 이러한 점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적 내지 스콜라적 우주가 지니는 경직성을 타파하는 역동적 계기를 제공한다. 그러나 그에게서 결정적인 것은 케플러나 갈릴레이의 경우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동 력학이라는 새로운 과학 형태가 아니라 새로운 역동적 세계 정서였 다. 부르노가 보기에는 코페르니쿠스도 계산에 열중하는 천문학자이 기에 앞서 이와 같은 새로운 세계 정서를 지닌 영웅이다. < 어리석은 무리들이 내린 판단에 흔들리기는커녕 박해를 무릅쓰고 최초로 참된 의견을 승리로 이끄는 데 공헌한 이 독일인의 공로를 어찌 이루 다 칭송할 수 있을까? 그의 참된 의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지식은 단지 한 개의 창문을 통해 별을 바라볼 수밖에 없던 답답한 감옥에서 해방 되었으며, 대기를 뚫고 천계를 관통하여, 하나의 가상에 지나지 않는 제 1 천, 제 8 천, 제 9 천, 제 10 천 간의 벽을 허물었노라 > 88) 이와 같은 글 88) Bruno, La cena de la ceneri, Op . itali an e (Lag a ede) 124 쪽 이 하; De Immenso et Innumerablib u s, Lib . I, Cap . I. (Op. lati na I, I, 201 쪽)도 참조할 것 Inte r spa tiu m irnme nsum sic find ere pen n is Exori or , neq u e fam a fac it me irnping e re in orbes, Qu os fals o sta tuit verus de princ i pio error, Ut sub con ficto repr ima mur carcere vere,

을 통해 우리는 조르다노 부르노가 공간의 문제를 우주론적이고 자연 철학적인 문제에 국한시켜 생각하지 않고 무엇보다 윤리적 관점에서 조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독특한 연관은 감각이나 직관만으로는 진정한 무한 개념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경험적 또는 수학적 직관을 통한 단순한 증거를 근거로 하여서는 결코 공간 의 무한성을 주장할 수 없다는 부르노의 주장을 배태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무한 개념은 오히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정신적 존재나 본질 을 파악할 때 동원하는 것과 동일한 방법을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 다. 그의 인식의 원리는 바로 자아의 원리, 죽 자기 의식의 원리였던 것이다 . 89)

Tanq u am adamante is cludatu r moen ibu s toturn. 89c) hBe ruvneNog,a g mDa eml 'iilnh'i rfi i i nfmiintoei tn, o s, n mounne ilvi oe e rr ss.o.e. neso m doan dci.u iI . sOi p r .i ciht a iel.d a3 ITqT 쪽u e:s t c he

조르다노 부르노에 있어서의 공간, 힘 , 생명 그러므로 자아의 진정한 본질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단지 수동적 관 찰, 즉 단지 감각적이거나 심미적인 사색에 머물러서는 안되며 그에 도달하기 위한 정신의 자유로운 행위와 비약이 요구된다. 그에 따르 면 자아의 내적 자유가 보장되는 이와 같은 행위 속에는 지적 자아 관조에 상응하는 무한한 우주에의 관조가 공존한다. 여기서는 주체에 대한 지식과 대상에 대한 지식이 서로 긴밀하게 얽혀있다. 즉 자기

스스로를 통해, 자기 주장을 하는 영웅적 격정과 무한한 자기 확장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우주나 우주의 무한함에 대해 무지한 상태를 면 할 수 없다. 부르노의 대화편 『영웅적 격정에 관하여 Deg li eroic i fu ro 마에서 르네상스 심리학이나 르네상스 윤리학의 형식은 새로운 우주관을 형성하는 결정적인 계기로 ' 작용하였다. 여기에서 무한 개념 에 대한 직관은 전적으로 자아의 행위로서 기술되고 있으며 더 나아 가 요청되고 있다. 물론 중세적 사변에서도 우주의 광대함이나 무한 함에 대한 발상은 낯선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중세 사상은 여러 가 지 각도에서 그와 같은 발상이 이론적으로 가능할 수 있음에 대해 고 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천계에 대하여 De coelo 』에서 세계의 단일성을 증명하고자 끌어들인 여러 증명들을 수 용하느라 그와 같은 가능성을 대개 일축하고 말았다 .OO ) 그러한 결과의 배경에는 역시 지적인 계기 외에도 윤리적, 종교적 계기가 결정적으 로 작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중세적 관점에서 볼 때 세계의 유일성 에 관한 사상을 포기한다는 것은 인간의 지존한 가치를 부르짖는 사 상을 포기하는 것과 같으며, 그것은 종교적으로 보아 단일한 구심점 을 부정하고 나서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초기 르네상스의 태두 격인 사상가들 중 가히 대표라 할 만한 페트라르카는 자신의 글 De sui ips iu s et alio r um ign oran tia 에서 우주의 무한성에 관한 테제를 일컬어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못박았으며 철학적 이단이라는 낙인 을 찍었다. 반면 부르노의 입장에서는 바로 자아의 지적, 도덕적 존엄 성, 죽 인격 개념을 근거로 하여 새로운 우주 개념이 요청된다. 우리 는 그가 설파한 우주론적 신념에서 그와 같은 주관적 격정을 느낀다. 90) 12, 13 세기 스콜라 물리학에서 이 문제가 지니는 의미에 대해서는 Duhem 의 Leonard de Vinc ie les deux Irr/ ini s . (Etu d es sur L. de Vinc i II) 를 참조하 라 .

그가 늘 강조한 것은 우주라기보다는 스스로 우주에의 직관을 얻어내 야만 하는 자아였다. 새로운 우주관은 새로운 역동성, 죽 새로운 충동 과 자극의 형태로서 드러난다. 인간은 무한한 만상을 자신에로 흡수 하고 동시에 자신을 거기에로 확장하는 것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진 정한 자아를 발견한다. 여기서는 죽음과 삶의 구분조차 무너지는데 그것은 개별적 존재 형식의 궁극점인 죽음울 통해서야 비로소 삶이 지니는 진정한 진리와 보편성이 파악되기 때문이다. 결국 조르다노 부르노는――-철학자로서이기보다는 시인의 감수성을 발휘하여_ 대화편 『영웅적 격정에 관하여』의 소네트에서, 자신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순수하고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Poi che spi eg a t' ho l'ali al bel desi o Qu anto piu sott 'il pie l'aria mi scorgo , Piu ie veloci penni al vento porg o , Et spr e g gio il rnondo, et vers' il cielo rn'in vio. Ne del figiluo l di Dedalo il fin rio Fa che piu pieg h i, anzio via piu riso rgo . Ch'i' cadro rnort o a terra ben rn'accorgo , Ma qu al vita pareg g ia al rnori r mio? La voce del mio cor per i'aria sento , Ove mi porti temerario? chi na, Che raro e senza duol trop p 'a rdi men to . Non tern er, respo n d'io, i'alt a ruina . Fend i sic u r le nubi, et rnuor conte n to . S'il cie l si illus tr e rnort e ne destin a 91)

아름다운 욕망의 날개를 펼쳐서 허공을 딛고 솟구친다. 바람을 휘감아 내는 날갯짓 민첩하게 하늘 가까이 날아오니 볼품없는 대지는 눈에도 차지 않네 . 다이달로스의 아들 (이카루스)이 오르지 못한 곳, 날개 소리도 힘차게 비상했네. 나는 알지, 추락은 곧 죽음에 이른다는 사실을 . 그러나 어떤 삶이 나의 죽음보다 빛날까? 내 심장 두근대는 소리, 바람타고 들려오네. 길을 혹시 잘못 든걸까? 고통은 그러나 아름다운 욕망의 훈장. 두려워 말게, 오래된 폐허여 견고한 구름을 딛고 만족스런 죽음을 준비하게. 이처럼 청명스런 하늘이 나에게 죽음을 약속한다면 . 이처럼 공간의 문제가 르네상스 철학의 전반적인 쟁점인 <주관>과 <대상>의 관계에 대한 문제로 귀착됨에 따라, 오랫동안 르네상스 철 학이 골머리를 앓아온 변증법이 새로이 부각되게 되었다. 더 나아가 그것은 가장 구체적인 형태, 죽 공간 관조라는 형식을 띠게 됨으로써 이제야 비로소 명료하게 표현되기에 이르렀다. 인간은 우주에 대하여, 그리고 자아는 세계에 대하여 둘러싸이는 동시에 둘러싸는 존재이다. 인간이 우주와 맺고 있는 관계를 정의함에 있어 이 두 개념은 공히 필수적이며 이 양자 사이에는 부단한 반작용과 변모가 진행된다. 91) Eroic i furo ri , Dia l. I II, Op . it,ai. 648 쪽.

르네상스의 세계 정서에 드러나는 근본 대립 우주의 무한함에 비하면 자아란 보잘것없고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지만 바로 이와 같은 우주의 무한함은 자아가 한없이 격상될 수 있 는 근거를 제공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정신은 자신이 파악하는 세계 와 동격을 이루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철학은 이와 같은 기본 신조를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하여 늘 새롭게 변화시켰다. 피치노가 아우구스 티누스의 선례에 따라 집필한 신과 영혼 사이의 대화에서 신은 다음 과 같이 말한다. < 나는 천상과 지상을 채우고 관통하며 또 포용한다. 나는 충만 그 자체이므로 채울 뿐 채워지지 않는다. 나는 관통하는 힘 자체이므로 관통할 뿐 관통되지 않는다. 또한 나는 포용하는 능력 그 자체이므로 포용할 뿐 포용되지 않는다> 9'l) 그러나 여기서 신이 자 신을 설명하는 데 쓰는 술어는 이제 인간 영혼에도 동일하게 해당될 수 있게 된다. 인간 영혼도 인식의 주체라는 면에서, 대상 현실에 둘 러싸이는 대신 오히려 그것을 포함한다. 이로써 인간 영혼이 다른 여 타 사물들에 대하여 갖는 우위는 확고히 보장되게 되었다. 자아는 우 주가 무한하다는 것을 알도록 하는 원리들을 스스로 찾아냈으므로 무 한한 우주와 비교해 전혀 손색이 없다. 그러나 이 앎은 단지 추상적 이거나 논증적인 성격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논리적 오성이라기보다 는 자아의 특수한 생명 원천으로부터 나와 부단히 샘솟는 직관적 확 실성이댜 괴테의 가니메드 Gan y med 처럼, 르네상스의 인간은 신과 무한한 우주에 대해 <감싸면서 감싸이는> 관계를 취하고 있다. 르네 상스 철학은 아직 이와 같은 이중적 관계에 내포된 변증법적 이율 배 92) Fic i n o , Di alo g us int e r Deum et anim am Theolog icu s. Ep isto L Lib . I. (Op era . fol. 610).

반을 극복하지는 못하였다 .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최초로 부각시켜 그것을 엄밀 과학과 체계적 철학의 세기인 다음 세기를 향해 전달한 것은 르네상스 철학이 이루어낸 공로임에 틀림없다.

옮긴이 해설 이 책 『 Ind i v i duum und Kosmos in der Phil o sop h ie der Renais s ance 르네상스 철학에서의 개체와 우주』는 저명한 바르부르그 연구소 Warburg Ins titut가 지금의 런던이 아닌 함부르크에 있던 시 절, 카시러 E. Cass i rer 가 자신의 동료이자 바르부르그 연구소의 창립 자인 바르부르그 A Warbur g에게 헌정하는 형태로 출판되었다. 당시 바르부르그 연구소는 도서 수집과 관리, 연구 외에도 둥 두 시리즈를 간행하고 있었는데 이 책은 그 중 후자의 일권으로 출판된 것이다. 시리즈는 주로 단일 주제에 대한 무게있는 단행본 형태의 간행물로서 카시러는 이 책 외에도 『 Das Beg rijfsfor m im my this c hen Denken 신화적 사유의 개 념 형식』 (1922), 『 Sp rache und My tho s, Ein Beit rag zum Gott er namen 언어와 신화, 신의 이름에 관한 연구』(1 925) 를 같은 시 리즈에 출간하였다. 이 에는 당시 함부르크에 재직중이던 파노프스키 Pano f s ky가 바르부르그 연구소의 제 1 세대에 속하던 작슬 F. Saxl 과 공저 형 태로 낸 저 기 념 비 적 저 술 『 D il rers , Ein e q uellen 一 und type ng e schic h tl ich e Unte r suchung 뒤 러 의 <멜랑콜리아 I>, 문헌사적 유형사적 연구』 (1923) 외에도, 파노프스키 의 Idea(1924), 『 Hercules am Scheid e weg e und andere anti ke Bi ld sto f fe i n der neueren Kunst 갈림길에 선 헤라클레스와 근대 미 술에서의 고대적 주제』 (1930) 둥, 특히 미술사학도들의 관심을 모으는

대작들이 포함되어 있다. 바르부르그 연구소의 주요 테마는 위 저서들 의 제목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서양 문화사에서 < 고대의 잔존 Nachleben der Anti ke > 형식을 추적하는 일이었는데 그것은 1919 년 에 새로이 함부르크에 부임한 카시러가 가졌던 관심사, 즉 그가 한 서 한에서 밝힌 대로, < 여태까지는 주로 수학적, 자연 과학적 인식에 대한 비판에 관심을 가졌는데 이제 정신과학 일반에 관한 철 학적 규명에 주 력하겠다>라는 입장과도 부합하는 주제였다. 이와 관련하여 카시러는 홋날 1929 년, 바르부르그를 영결하는 자리에서 자신이 바르부르그 도 서관에 처음 접했을 때의 그 < 심상치 않던 > 감회를 다음과 같이 회상 하고 있댜 <그러니까 8 년 전쯤 동료였던 작슬의 안내로 바르브르크 도서관의 서고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 나는 어안이 벙벙하였다. 낡 은 건물을 배곡하게 채우고 있는 그 방대한 규모의 책들을 보면서 나 는 이것이 결코 서적광의 단순한 수집열이나 학자의 근면만으로 빚어 진 결과가 아님을 한눈에 알아차렸다. 그 책들에게서는 일종의 마술적 인 기운조차 감돌았다. 나의 이 첫 감회는 이 도서관의 장서들에 몰입 하면 할수록 더욱 더 굳어졌다 > 그런가 하면 1923 년 바르부르그 도서 관의 <강연> 시리즈로 출판한 『 Der Beg rijf der sym bolisc hen Form im Au jba u der Gesis t e s wi ss ensscha ften 정신과학 구성에 있 어서의 상징 형식의 의미』라는 글에서 그는 이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 는 자료들은 분야를 막론하여 하나의 체계적 원칙에 따라 정리되어야 하며 단순한 역사적 개괄에서 명실상부한 정신적 유산의 총괄적 상을 보여주어야만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르네상스 시기 __ 특히 초기 르 네상스 시기 __는 <고대의 잔존>이라는 문제를 다름에 있어, 고대로 부터 유래하는 제반 요소와 경향들이 일대 각축을 벌이는 용광로와 같 은 과정을 의미하며 온갖 잡다한 모순적 요소들이 <극성(極性 Pol ari沮t)>을 이룬 가운데 점차 근대적인 합리적 이성으로 결정되어가

는 일대 드라마를 의미하는 시기인 만큼 자연스레 바르부르그 연구소 의 연구 공동체의 주된 관심사였다. 한편 르네상스 시기의 그와 같은 과정은 카시러가 추구하는 정신 과학의 성립 기원을 밝히는 작업과도 무관하지 않댜 그에 따르면 정신 과학의 성립 과정은 역사적으로 살펴 보건대 자연과학이나 수학으로부터의 독자성을 주장하는 것과 무관하 며 오히려 재래의 철학적, 사상적 전통에 대항하여 합리적 도구인 수학 을 통해 우주론적으로나, 미학적으로, 혹은 윤리학적인 측면에서까지 인간성의 해방과 승격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르네상스 철학은 그와 같은 역동적 과정을 몸소 반영하므로 철학사 적으로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흔히는 그 독자적 의미를 인정받 지 못하여 심지어 부르크하르트의 대작에서도 일체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물론 당시의 철학은 아직 종교 사상적인 영역이나 재래의 스콜 라 철학 전통에 워낙 밀접하게 종속되어 있었으며 그러한 분위기를 쇄신하고자 하였던 인문주의자들의 노력조차 철학적 문제의 심화보다 는 문헌학적, 수사학적 논쟁에 집중되어 있었다. 부르크하르트는 신과 자유, 영혼의 불멸성 동으로 요약되는 르네상스 철학의 주제들이 전 통의 연장에 불과한 것으로 당시의 종교적 역동성을 조성하는 데는 별다른 변수로 작용하지 못하였다고 보아, 철학적 문구대신 인간의 직접적인 행태와 세속적 삶, 실천적 태도 등에서 당대인들의 세계관, 종교관을 읽어내려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경험적이고 귀납적인 역사 가들의 구체적이고 섬세한 연구는 종교적 <이론>과 <실천>의 구분 은 결코 사태에 들어맞지 않으며 구체적 인물들의 삶에서도 부르크하 르트가 주장하는 <개인주의>나 <이교주의>, <감각주의>나 <회의> 같은 균질적인 근대적 성향들보다는 경건과 불경, 종교적 신심과 미 신에의 열광, 천상에의 동경과 지상의 열락을 추구하는 정서가 복잡 하게 얽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카시러는 이 점에 착안하여 철학사

서술에서도 일반화 작업에 앞서 역사적 디테일에 대한 섬세한 연구가 중요함을 강조하면서 15, 16 세기 사상들이 그 내용적 기괴함과 난삽 에도 불구하고 과연 그 체계적인 중심을 지니는 것인지에 대해 문제 사적 서술을 통한 해결을 시도하고 있다. 각장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1 장에서는 카시러가 르네상스 철학 체계의 진정한 효시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의 철학을 그 독창적 철학 원리인 의 원리에 입각하여 기술하고 있다. 독 창적 이 라고는 하지 만 사실 docta ig noran ti a 의 원리 는 중세 신비 주의 사상이나 전통적인 부정 신학 ne g a ti ve Theolo gi e 의 근간을 이루는 교설로, 언뜻 보면 쿠자누스 철학은 그와 같은 전통에 대한 개작 정 도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중세 철학 내에서의 그것이 전통 적인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우주관과 신플라톤주의적인 천상과 교회의 위계 Hi erarc hi e 관을 바탕으로 한 감각계와 예지계의 구분을 통해, 중세적 우주론과 중세적 신앙의 이미지를 굳히는 데 일조하였던 반면 쿠자누스에 있어서 그것은 무엇보다 인간 인식 조건에서 출발하여 규 명되어진다 저자는 바로 이 인식 문제에 관한 태도야말로 쿠자누스 철학을 그전의 철학과 구별하여 근대적 사상의 효시이게끔 하는 관건 으로 보고 있다. 모든 인식은 본질적으로 비교와 측정을 의미하며 비 교와 측정은 동일한 척도와 측정 단위를 전제로 하는데 절대적 대상 은 본질적으로 그러한 것을 불허하므로, 유한자와 무한자 사이에는 좁혀질 수 없는 심연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유한자와 무한자 사 이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것이다. Fin iti et infiniti nulla pro p ortio. > 그러므로 배중률을 근간으로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스 콜라적 논리학은 절대자를 파악하는데 그 형식상 모순이다. 쿠자누스 는 바로 이와 같은 상황에서 신비주의에로 회귀하기를 거부하는 대신

앎과 모름이 하나로 결합되는 배운 무지, 즉 docta ig noran ti a 의 원리 를 성립시키는 것이다. 이 원리는 신비적이고 정서적인 황홀경과는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것으로, 무엇보다 반대 개념의 공존, 즉 극대와 극소의 일치가 항구한 원칙으로 받아들여지는 수학적 논리학에 바탕 올 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수학 이의에 그 어떠한 확실한 지 식 도 지 니 고 있지 않댜 Nih il habemus in nostr a scie n ti a nisi nostr am math e mati ca m.> 그의 이와 같은 방법적 원칙은 구체적 세 계상에 대한 그의 결론까지도 함축하는 것으로, 무엇보다 전통적인 아리스토텔레스적 4 원소설과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상하 개념이나 운 동 개념과 대비되는 새로운 우주관의 성립을 의미한다. 그의 세계관 에 따르면 감각적인 세계와 초감각적인 세계 사이의 원근관계를 통한 <위>나 <아래>의 설정은 있을 수 없으며 단지 경험적 우주로서 절 대적 존재에 대면하고 있는 균질적이며 유일한 우주가 존재할 뿐이 댜 이러한 우주관은 더 나아가 모든 종교적 제반 형식이 신과 직결 된다는 새로운 의미의 <공번성 Ka t ho li z i沮t>을 성 립시켜 결국 그의 신학 체계의 핵심을 이루는 보편 종교 개념을 성립시킨다. 제 2 장에서는 바로 이와 같은 그의 철학적 원리가 이탈리아 콰트로 첸토의 문화적 풍토 안에 수용되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는데 르네상스 철학을 이탈리아의 자생적 현상으로 보려는 편협한 민족주의를 극복 한다면 그의 영향은 이내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의 사상은 보수적인 전문 철학자들보다는 당시 증가 일로에 있던 <완벽한 교양인>들에 의해 수용되어, 전통과 교조에 대항하는 창조적 아마추어 집단의 성 립이라는 독특한 현상을 유도하게 된다. 레오나르도는 그러한 비전문 가 그룹의 대표적인 인물로, 몰락해 가는 스콜라 철학적 교양과 발홍 하는 인문주의적 교양을 배경으로, 제 3 의 특수한 근대적 형태의 지 식을 제시하고 있다. 쿠자누스로부터 출발하여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거쳐 갈릴레이와 케플러에 이르는 이 조류는, 당대의 자연 철 학이 신 비적 형이상학과 엄밀한 자연과학에서 전자 를 택했던 것과 대별되게, 주술과 상징 따위를 배격하며 오직 수학을 통한 체계와 총괄적 질서 의 확립에 골몰한댜 그러나 당시에 대종을 이루던 철학 역시 과거에 깊이 뿌리 박힌 채 남아 있었으되, 나름대로 고정된 체계에 대한 반 박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비록 단편적 수준에 머물렀을망정, 쿠자누스 사상을 동원하였댜 당시의 철학은 스콜라 철학이 조성해 놓은 낡은 사상적 토대를 점진적으로 허물거나 고전적인 안문주의적 교양을 취 함으로써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였는가 하면, 스콜라 철학의 < 복구 > 룰 시도하는 반동적 조류도 내포하고 있어 실로 < 대립의 일치 > 라는 쿠자누스적 표현에 걸맞는 양상을 띠고 있었다. 그리하여 신앙과 지 식, 세속이나 관능의 숭배와 금욕주의적 성향둘이 당시 철학자들의 사상적 성향과 도덕관을 형성하는데 팽팽한 긴장을 이루며 작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피치노는 감각계와 예지계를 매개하고 우 주를 한데 묶는 존재 co p ula mun di로서 인간의 정신을 설정하여 쿠자 누스에게서 유래하는 저 독특한 소우주 사상을 상기시킨다 . 제 3 장에서는 이와 같은 인간 정신의 기적을 주로 윤리학적인 측면 에 입각하여 조명하고 있는데, 그것은 르네상스 철학에서의 인간 정 신의 자유는 무엇보다 고정된 계서적 체계를 뛰어넘어 - 하위의 세 계뿐 아니라 예지계조차 부러워하는-인간 속성의 비밀을 가능케 하는 도덕적, 지적 긴장의 계기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부르크하르트가 르네상스 문화의 가장 고귀한 유산이라고 칭송한 피코의 은 바로 그와 같은 계 기를 극명하게 함축하고 있다. 저자는 쿠자누스의 De Conj ec tu r i s 의 한 부분을 인용하여 피코 연설의 사상적 모티프 역시 쿠자누스에게서 유래함을 입증함과 아울러 쿠자누스적 사변의 영향이 결코 몇몇 집단

에 제한된 것이 아니라 초민족적이고 초학파적인 현상이었음을 암시 하고 있다 . 그러한 영향은 비단 이탈리아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어서 프랑스의 카롤루스 보빌루스 Carolus Bovil lus (Charles de Bouelles) 의 『 De sap ien te 현인에 관하여 』 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 작품은 피코의 연설을 확대 전개시킴과 아울러 피코 연설의 기본 사 상을 체계적으로 응용한 것인데, 우주 전체에 대한 도식적이고 우의 적안 파악의 와중에서도 근대 철학의 관념론, 즉 라이프니츠와 헤겔 울 연상케 하는 사변적 요소와 독특한 성향을 예견케 한다. 보빌루스 에 의하면 세계는 < 객체 > 에서 < 주체>에로, 즉 < 존재 > 에서 <자기 의식 > 에로 이르는 길을 제시하는바 이는 곧 헤겔적인 사변적 종합 과정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결국 이성을 지닌 인간은 프로메테우 스를 모방하며 자신을 관장하는 자기 자신의 자유로운 형성자가 되는 것 이 다. 이 렇 게 하여 니 콜라우스 쿠자누스가 De docta ign oran tia 에 서 제시한 인간성 Humanit as 개념은, 자율의 개념이 강조됨에 따라 그 종교적, 기독교적 색채를 탈피하게 되었으며, 그리스도의 개념과 일치되는 대신, 자기 자신에게서 신적인 것에로 상승하려는 충동과 의지를 지닌 < 영웅적 열정 > 의 결정체로 파악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렇듯 초월적인 위력과 구속이 퇴색됨에 따라 내재적이고 자연적인 구속이 강조되기에 이르러, 점성학이 르네상스적인 새로운 삶의 정서 와 인간성 이념이 관철되는 데 새로운 걸림돌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 러나 당시로서는 점성학적 인과 관계는 결코 미신에로의 비약이 아니 며 오히려 거기로부터의 유일한 구제책이자, 자연 법칙의 타당성을 위협하는 유일한 근거였다. 죽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합리적인> 점 성학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점성학적 인과 관계>는 르네상스의 역사 철학이나 종교사 서술에 영향을 끼치며 의학과 윤리학 체계를 결정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피코는 점성학에 대해 -자연

철학적 관점에서보다는 무엇보다 윤리적 견해에 착안하여 - 단호히 비판하여 윤리학의 신기원을 이룬다 . 그의 철학 체계에 의하면 인간 정신은 자연의 인과관계에 복종하는 그와 같은 것일 수 없으며 지성 의 왕국에 대해서조차 자신의 자유를 근거로 하여 우위를 주장할 수 있는 존재이댜 인간의 창조력과 자율성에 대한 이와 같은 인본주의 적 신뢰는 예술적 창조물이나 문화의 원인이 우주적 힘이 아닌 천재 에 연원함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이는 < 운명 Fo rt una > 보다는 < 덕 V irtu s> 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인간 가치의 수립을 의미한댜 케플 러 역시 자연적 현상 체계가 아닌 정신적 창조의 세계를 들어 인식의 자발성과 생산성이야말로 인간의 자유와 창조력을 증명하는 궁극적 근거라고 본댜 이와 같은 인식의 자발성은 자기의식의 문제에서 가장 첨예하게 드 러나는 바, 4 장에서는 근대 철학의 핵심인 데카르트의 <코기토 > 의 기원을 역사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인격은 종교 적 관념론과 데카르트적인 논리적 관념론에 공히 필수 불가결한 요소 로서 우리는 여기서 일찍이 아우구스티누스가 De tri n itat e 에서 설파 한 저 유명 한 구절, 죽 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러한 아우구스티누스적 신조는 <개체성>을 단지 우연적이고 하나의 <우발적인 것>으로 보던 아베로이스주의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수용 되어 페트라르카의 탐미적 자연관, 쿠자누스의 영육 조화설, 피치노의 에로스론 둥에 반영된다. 르네상스 철학에서 개체성의 강조는 감각과 경험에 대한 새로운 지위를 부여하여 감각계에서 출발하여 순수사유 에로 향하는 영혼의 <전환> 과정에 관심을 갖는바, 감각에 대한 명 실상부한 이론이 성숙하였으며, 단순한 감각에 지나지 않던 것이 순 298

수 관조의 차원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전통적인 아리스토텔레스 물리 학 체계는 고정된 중심과 결집된 영역으로 세계를 구성하였던 반면 이제 존재와 현상들에 관한 전체 질서를 지성이 지닌 자체적 능력과 고유한 수단을 통해 재수립해야만 하는 과제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 것은 물질적이고 집합적인 공간 개념이 원리적이고 기능적인 체계 공 간으로 대체되는 과정을 수반하여 우주의 균질성이라는 획기적인 결 론을 유도한다. 바로 이러한 전복은 갈릴레이룰 통해 가장 철저히 수 행되어, <자연>은 이제 더 이상 질료 형태를 띤 세계나 원소의 운동 이나 정지에 대한 원인도 아닌, 저 일반적 운동 법칙성 자체를 의미 하게 된다. 이와 같은 우주관은 경험 물리학과 기하학 사이의 결집, 해석 기하와 극한의 해석 등을 통한 <체계 공간>의 성립을 가능케 하며 여하한 시점에서건 좌표를 설정하여 우주의 보편성과 무제한성 을 설명 가능케 한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적 우주관의 경직성을 타파하는 것으로, 새로운 동력학의 성립뿐만 아니라 새로운 역동적 세계 정서의 출현에도 기여한다. 특히 부르노는 공간의 문제를 우주 론적이고 자연 철학적인 문제에 국한시켜 생각하지 않고 무엇보다 윤 리적 관점에서 조망하여, 무한 개념은 경험적 직관을 통한 단순한 증 거를 통해서보다는 오히려 우리 자신의 정신적 존재나 본질을 파악할 때 동원하는 것과 같은 방법을 통해서만 그 파악이 가능하다고 역설 하였다. 결론적으로 르네상스적인 우주관과 세계 정서는 자아 내지 인간 영혼이 한없이 격상될 수 있는 바로 그와 같은 계기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번역을 마무리하면서 한 가지 밝힐 것은 이 책에서 Anhan g(부록)으로 제시되어 있는 1 차 문헌들 —_ 구체적으로 거명해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의 의 라틴어, 독일 어 대역 (對譯)과 카롤루스 보빌루스의 라틴어 텍스트

현인에 관하여> - 는 번역에서 제외하였다는 사실이다. 이 부분은 일종의 일차 문헌 발굴 범례를 제시하는 것으로 굳이 많은 지면을 할 애하여 제시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져 본 번역서에는 개제하지 않았 다. 본문 곳곳에 등장하는 라틴어와 이탈리아어 인용문 등은 역주를 통해 그 번역을 제시하였다. 번역에 사용한 텍스트는 E. Cassir e r, Indiv i d u um und Kosmos in der Phil o sop h ie der Renais s ance, 제 6 판, Darmsta d t, 1987 이다. 워낙 세세한 정보를 담고 있는 책이라 역자의 실수가 헤아리기 어 려울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를 찾고 바로잡는 것은 독자 여러분의 몫 이라고 생각한다. 이 자리를 빌려 변변찮은 본인을 대우학술총서 번 역자로 추천하여 주신 국립 현대 미술관의 박래경 학예연구실장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이 출판되는 과정에서 도와주신 민음 사 편집부 여러분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I 갈릴 레 이 82, 237, 247, 251 괴테 249, 289 L- 뉴턴 178, 240 E: 단테 114, 152, 243 데카르트 189, 196, 279, 281 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타 11, 19, 22 근 라이프니츠 92, 134, 151, 189, 199 레오나르도 다빈치 73, 235, 261 레싱 117, 119, 251 로렌조 데 메디치 6, 114 口 마키 아벨리 94, 114, 234, 237, 254, 258 미 켈란젤로 207, 232, 252 1::1 바일 116

발라 116 -11 7 베르길리우스 4, 258 베이컨 222 베사리온 22 벰보 251 보빌루스 132-136, 146 보카치오 144 부르노 69, 110, 148, 186, 282-284 부르크하르트 4, 129 人 살루타티 6, 152, 217, 234 。 아낙사고라스 254 아르키메데스 50 아리스토텔레스 20, 22, 26, 120, 193, 207, 222, 264-265, 274, 277 아우구스티누스 81, 107 아프로디시아스 122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11 알베 르티 76, 114, 245 알폰소 데스테 109 에라스무스 25. 250 에카르트 11, 48, 54 오르페우스 61, 86, 191

오캄 14, 35, 49 = 칸트 251 캄파넬라 228 케플러 82. 127, 178, 273, 280 코페르니쿠스 155, 184, 284 쿠자누스 14, 17, 28, 47-4 8 , 59, 69, 73, 82, 97, 235, 269 키케로 22, 54 E 텔레시오 178, 223 토마스 아퀴나스 81, 195, 211, 279 IZ 파라셀수스 168

페트라르카 39, 151, 197, 218 폼포나찌 120, 157, 160-161, 165, 207, 209 프란체스코 6, 78 프로클로스 22 플라톤 22, 28, 191, 255, 261 플레톤 22-23 플로틴 4, 176, 207 피 치 노 3, 94, 97, 107, 152, 203 피코 델라 미란돌라 3, 92, 174, 176, 178 -_o 헤겔 9, 57, 139

-I 가치 65, 119, 148 감각 235, 260 개체 194-196 경 험 222-223, 229-230, 235, 248- 249, 261-262 계시 93 공간 176, 265, 267, 273, 279, 282 그리스도 56 극대 31 기독교 55, 117, 151, 195 기적 158, 164, 228, 231 기하학 280-283 L 논리 학 14, 16, 156 C 대 립 의 일 치 (Coin cide nti a Opposi - tor um) 10, 55, 59-60 2 르네상스 6, 77 □ 마술 156 -15 8, 228, 231, 257

모나드 (Mo nade) 140, 199 문화 181 미 95, 100 ki 방법 75, 182, 215, 229, 235 법 칙 성 236-238, 257, 267, 280 분유 (Me th e xi s) 96, 130 비례 95 人 삼위 일체 (Trinitat) 135 상징 44, 79, 102, 108, 110, 167 세계 35, 53, 95, 126, 137, 190, 288 소우주 사상 147, 167, 169 수학 50, 83, 176, 235, 249, 257, 263, 279-280 스콜라 철학 14, 28, 49, 72, 92 스토아 철학 284 시간 59, 86 신 17, 53, 56, 79-80, 102, 165 신비주의 17, 48 신정론 95, 203, 207 신화 141, 144, 151, 156, 190 신화학 156 신플라톤주의 174-177, 194, 257

실체 217 。 아베로이스주의 195-196 언어 27, 244 에로스 201-204 엔텔레키아 2, 193, 211 역사 106, 162, 253 영혼 96, 190, 194, 210-214 영혼의 불멸성 104, 112, 214 예술 102-103, 217, 232, 241, 245, 257, 259 예술 이론 95, 102, 206, 217, 232, 245-248 우주론 36, 134, 159, 267~270, 284 운동 264-265, 270, 276, 278-279, 282 운명 109, 112, 170-172 원소 34, 266 원인 158, 162, 184, 202 윤리 120, 136, 174, 180, 245, 285 위 계 (Hiera rchi e) 17, 90 의지 17, 120, 181 이 성 160, 223-224, 257, 269 인간성 54- 55 , 149, 181 인과성 157, 162, 178 인문주의 27, 50, 75, 132, 244

인식론 13, 17, 30, 75, 269, 285 x: 자기 의식 208, 211, 285 자연 58, 77, 79-80, 135, 159, 227, 245, 262-265 자연 철학 222, 226 자유 97, 120, 180, 245 장소 265, 274 점성학 151-153, 161, 171, 174, 182, 228 정 령 신학 (Da moneng lau be) 191, 228 정역학 237, 263 중세 6, 49, 144, 244 직 관 222, 242, 285 진리 235, 246 大 천문학 169, 261 천재 245-246 축복 97, 246 끄 포르투나 109, 112 프로메테우스 신화 142-147 폴라톤주의 22, 93, 95, 130, 203, 211

필연성 158, 162, 237, 239, 248 t 학문 155

형식 243

카시 러 (Ernst Cassire r, 1874-1945) 신칸트학파의 대표적 사상가 베를린 대학, 함부르크 대학 교수 역임 전후 영국, 스웨덴, 미국에 체류하며 활동 『근세의 철학과 학문에 있어서의 인식의 문제 Das Erkenntn i s p ro blem in der Phil oso p h ie uml Wis s enschaft der neueren Ze it 』 ( 1906-I gQ7 ) 『 실 체 개 념 과 기 능개 념 Subs t anzbe g r iff und Funk tion sbegr i.ff..!I(1 910) 『 상징 형 식 의 철학 Ph il oso p h i e der sym boli sch en Formen 』 (1923-1929) 『 인간론 An Essays on Man 』 (1944) 동의 저서가 있다 박지형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졸업 독일 쾰른 대학 미술사학과 석사 역서로 H. 뵐플린의 『미술사의 기초 개념 Kunstg e schic h tl ich e Grumlbeg r if fe.!I 이 있다. 르네상스 철학에서의 개체와 우주 대우학술총서 번역 94 1 판 1 쇄 펴냄 • 1996 년 6 월 10 일 에른스트 카시러 지음/박지형 옮김 펴낸이 • 朴孟浩|펴낸곳 • (주)민음사 출판등록 1966. 5. 19. 제 16 -4 90 호 서울 강남구 신사동 506 대표전화 • 515-2000/ 팩시밀리 • 515-2007 값 11,500 원 ® 박지 형 , 1996, Pri nted in Seoul, Korea 서 양철학 / KDC 160 ISBN 89-3 7 4-4 0 94-6 94160 / 89-374-3000-2( 세 트)

대우학술총서(번역) 1

1 유목민족제국사 콴텐/송기중 2 수학의 확실성 클라인/박세희 3 중세철학사 와인버그/강영계 4 日本語의 起源 밀러/검방한 5 古代漠語音 韻 學槪要 칼그렌/최영애 6 말과 사물 푸코/이 광래 7 수리철학과 과학철학 와일/김상문 8 기후와 진화 파어슨/김준민 9 이상진리 역사 파트남/김효명 10 사회과학 에 서의 場理論 레빈/박재호 11 영국의 산업혁명 딘/나경수·이정우 12 현대과학철학논쟁 쿤 外/조승옥·김동식 13 있음에서 됨으로 프리고진/이철수 14 비교종교학 바하/김종서 15 동물행동학 하인드/장현갑 16 현대우주론 시아마/양종만 17 시베리아의 샤머니즘 디오세지 · 호괄/최길성 18 조형미술의 형식 키데브란트/조강서 19 힐버트 리드 / 이일해 20 원 시 국가의 진화 하스 / 최몽룡 21 商 文明 張 光 直 윤내현 22 마음의 생태학 베 이츤 / 서석봉 2 3 혼 돈 속의 질서 프리고진 ·스 텐저스 / 유기풍 24 생명의 기원 밀라오르겔 / 박인원 25 일반언어학이론 야콥슨 1 권재일 2 6 국가권력의 이념사 마이네케 / 이광주 27 역 사학 논고 브 로델 / 이정옥 28 유럽의식의 위기 ] 아자르 / 조한경 29 유럽의식의 위기 l or 자르 / 조한경 30 일반국가학 켈젠 / 민준기 31 일반언어학강의 소쉬르 / 최승언 32 일반체계이론 버를란피 / 현승일 33 현대문명의 위기와 기술철학 에거시 / 이군현 34 언어에 대한 지식 촘스 키 / 이선우 35 음운학원론 트루베쯔코 이 / 한문회 36 우주의 발견 하위트 / 강용희

37 수학적 발견의 논리 라카토스/우정호 38 텍스트 사회학 지마/허창운 39 현대물리학의 철학적 테두리 보음/전일동 40 과학과 가치관의 우선순위 스페리/이남표 41 신화의 진실 휘브너/이규영 42 대폭발 실크/홍승수 43 大同書 康有伊J/이 성 애 44 표상 포더/이영옥정성호 45 과정과 실재 화이트헤드/오영환 46 그리스 국가 에렌버그/김진경 47 거대한 변환 풀라 니/박현수 48 법인류학 포스피실/아문웅 49 언어철학 올스튼/곽강제 50 중세 이슬람 국가와 정부론 램톤/김정위 51 전통 쉴즈/검병서 신현순 52 몽골문어문법 뽀뻬/유원수 53 중국신화전설 1 袁}可/전인초김선자 54 중국신화전설 Il 〈근간〉 55 사회생물학 1 윌슨/이병훈·박시룡 밴 베니 스트 / 황경자 58 일반언어학의 제문제 l 벤 베니 스트 / 황경자 59 폭력과 성스러움 지라르 / 김진식·박무호 60 갑골학 60 년 董 作 賓/ 이형구 61 현대수학의 여행자 피 터 슨 / 김인수 · 주형관 62 프랑스 혁명의 지적 기원 모르 네 / 주명철 63 해석학과 과학 커널리 · 코 이트너 / 이유 선 64 서양고대경제 핀 리 / 지 동 식 65 음악사회학 베 버 / 이 건용 66 앙띠 오이디푸스 들뢰즈 · 가 따리 / 최명관 67 과학커뮤니케이션른 프 라 이스/ 남태 우 · 정준민 68 교양교육의 개혁 다니엘 벨 / 송미섭 69 과학과 가치 래 리 라 우든 / 이유 선 70 초기제국에 있어서의 교역과 시장 칼 폴 라 니 / 이 종욱

71 폭정론과 저항권 헬라 만트/심재우 72 생명과학철학 데이비드 헐/하두봉 • 구혜영 73 사랑의 역사 쥴리아 크리스 데바 /김영 74 大地의 노모스 칼 슈미트/최재훈 75 일반 공법학 강의 레옹 뒤기/이광윤 76 텍스트학 반 다이크/정시호 77 문명의 발생 찰스 레 드만/ 최 몽룡 78 근대국가의 발전 G 폿지/박상섭 79 과학적 발견의 패턴 N. R. 핸슨/송진웅 • 조숙경 80 아랍 문학사 R. A. 니 콜슨/사희만 81 1 8 세기 중국의 관료제도와 자연재해 P. E. 빌/정철웅 82 역사비교언어학개론 R. 안틸라/박기덕 • 남성우 83 계몽주의 철학 E. 카시러/박완규 84 토양 미생물학과 생화학 폴·클라크/ 이 도원 · 조병철 85 수학. 과학 그리고 인식론 I 라카토시/이영애 86 봉건제의 이해 러쉬튼 쿨본/김동순 87 그라마톨로지 자크 데 리다/김성도 8i 8 』 述息上 스 摘通 考 | 라 오 쏭이 /.. 손 예철七 ――89 殷代貞 卜 人物 通考 1 라 오쫑 이 / 손 예 철 90 殷 代貞卜 人物 通考 1 라 오쫑 이 / 손예철 91 순수경제학 레옹 왈 라 스 / 십상필 92 문화유물론 마 빈 해 리 스 / 유명 기 93 포유동몰의 가축화 역사 줄 리 엣 클 루톤 브 록 / 김준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