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시러 Ernst Cassir e r(1847-1945) 폴란드의 브레슬라우에서 출생 베를린, 라이프치히, 하이델베르크.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수학 베 를 린 대학 교수 및 총장 역임 예일 컬럼비아 대학 초빙 교수 주요 저 서 :S ubsta n zb e g ri ff und Funkti on sbeg ri ff , Phil o sop h te der sym boli sch en Formen, An Essay on Man 의 다수 박완규 서울대학교 철학과 졸업 동 대학원에서 서양 철학 전공 현재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계몽주의 철학

Di e Ph ilos op hie d er Au flda rung

Ernst Cassir e r VERLAG VONJ . C. B. MOHR(PAUL SIEBECK) TUBINGEN, 1932

계몽주의 철학

에른스트 카시러 지음 박완규옮김 미L으O^ t

차례

머리말7

제 1 장 계몽주의 시대의 사유 형식17

제 2 장 계몽 철학의 사유에서 자연과 자연의 인식 59

제 3 장 심리학과 인식론 131

제 4 장 종교의 이념 183

1 원죄의 교리와 신정론(神正論)의 문제 187

2 관용의 이념과 자연종교의 정초 216

3 종교와 역사 244

제 5 장 역사 세계의 공략 263

제 6 장 법, 국가 및 사회 313

1 법의 이념과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의 원리 313

2 사회계약 사상과 사회과학의 방법 338

제 7 장 미학의 근본 문제 367

l 비평의 시대 367

2 고전적 미학과 미의 객관성 문제 372

3 미적 감식력의 문제와 주관주의에로의 전환 395

4 직관의 미학과 천재의 문제 414

5 오성과 상상력 : 고트쉐드와 스위스 학파 438

6 체계적 미학의 정초 : 바움가르텐 447

옮긴이 해제 475

찾아보기 481

머리말 이 책은 18 세기 계몽철학 1) 을 실증적으로 상세히 서술한 각론 (各論 Monog ra p hi e ) 이 아니 댜 이 책 은 각론 이 상의 것 이 며 동시에 그 이하의 것이기도 하다. 각론이라면, 마땅히 세부적 인 풍부한 자료를 제시하고 모든 문제들의 형성과 전개과정을 자세히 추적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소위 〈철학적 학문들의 요강(要綱 )Grund riB der philos op hisc hen WISsensch aft en 〉을 위해 서라면, 그러한 서술방식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러한 요강을 위해서는 계몽철학이 제시한 모든 문제를 남김없이 개괄할 필 요가 없다. 다시 말해 요강을 위해서는 외면적이고 양적이기보 다 내면적이고 질적인 탐구가 요구된다. 계몽철학의 모든 역사 적 결과와 표현양식을 들추어 내는 것이 아니라 계몽철학의 사 상적 원천과 원리의 통일성을 드러내야 한다. 따라서 여기서 요구되는 것은 계몽철학의 전개과정과 그 결과에 대한 역사 1) 역주 : 계몽 철학은 Phil os op h ie der Au fkl arun g의 번역이다 . Au fklar ung 은 〈계몽〉을 뜻하기도 하고 18 세기의 시대 사조인 〈계몽주의〉를 가리 키기도 한댜 Philo s op hie der Au fkl arun g은 〈계몽주의의 철학〉으로 번 감역안해하야여 마 간땅하략나히, 〈이계 몽책철이학 〉1으8 세로기 옮 긴계다몽.주 의의 철학을 다룬다는 점을

적 • 서술적 보고가 아니라 계몽철학의 내적인 운동 자체를, 말 하자면 계몽철학의 극적인 사유행위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계몽철학의 본래적인 매력과 가치는 바로 이러한 운동 자체에 있다. 다시 말해 그것은 계몽철학을 추진시켜 나간 사유의 힘 속에, 그리고 계몽철학으로 하여금 그 모든 문제를 탐구하도록 한 사유의 정열속에 있다. 이러한 면에서 본다면 계몽철학의 다양한 측면들은 그 운동의 면에서 하나로 통일될 수 있다. 그 러나 이 여러 측면들을 단지 그 결과에서만 본다면, 그것들은 서로 어울리기 어려운 모순들로 보일 것이요기 서로 이질적인 사 상적 계기들의 혼합으로 보일 것이다. 계몽철학의 진정한 역사 적 의미를 분명하게 이해하려면, 이 철학의 문제설정과 해결, 의 심과 확정 그리고 회의와 확신을 하나의 통일적인 중심점으로 부터 해석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바로 이러한 해석이 이 책의 목적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 책 은 또 하나의 과제를 지니는 바, 이는 계몽철학을 보다 광범한 역사철학적인 주제와 관련시켜 보는 일이다. 왜냐하면 계몽운 동은 그 자체가 고립된 것이 아니라 그것의 전후(前後)에 항상 자신을 넘어서는 다른 것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이 운동은 근 세인 특유의 자기확신, 자부심, 자신감을 낳아준 근대 철학적 정신운동의 한 국면에 불과하다. 『르네상스 철학에 있어서 개 인과 우주 Indiv id uum und Kosmos in der Phil o sop h ie der Rena i ssanc e,』 (1927), 그리고 『영국에 있어서 플라톤의 르네상 스 Di e Plato nis c he Renais sa nce in En g lan d.』 (1932) 라는 나의 두 저서는 이러한 근대정신 운동의 다른 국면을 살피고 그 의미를 평가하고 부각시키고자 했다. 이 두 저서의 실질적 목적과 방 법적인 기본계획은 이 책과 동일하다. 따라서 이 세 책은 다

같이 철학사의 고찰 방법을 문제삼는데, 이것은 단순히 역사적 결과들을 확정시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이 결과들을 형성해 낸 근본힘을 밝혀 내려는 것이다. 철학적 체계의 전개와 관련 해 볼 때, 이러한 방법론이 의도하는 바는 말하자면 〈철학적 정신의 현상학 〉 이라 하겠다. 이것은 〈 어떻게 하여 철학적 정신 온 순수 객관적인 문제를 다름으로써 동시에 자기자신을 즉 자 기자신의 본질, 규정성, 근본성격 및 사명을 분명하고 깊게 자 각하여 갔는가 〉 를 추적해 보는 작업이다. 여기서 나는 감히 이 전의 모든 연구들을 한데 모아 이러한 작업의 일대 완성을 시 도하지는 않는다. 아직도 단편적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러 한 연구들은 완성된 하나의 건물이 아니라 이 건물을 짓는 데 필요한 벽돌에 불과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 때가 되면 이 모든 벽돌들이 요긴하게 쓰여 위대한 건물이 세워지기를 바 라마지 않는다. 이러한 논술방식에는 특히 계몽철학이 보다 유리한 조건을 지닌다. 왜냐하면 이 철학의 지속적인 가치는, 이 철학이 형성 발전시킨 모종의 독단적 학설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18 세기 계몽철학은 계몽시대 자신이 의식하고 있는 것보다 훨 씬 더 많이 17 세기에 의존하고 있다. 그것은 정말 새롭고 원천 적인 사상을 형성시킨 것이라기보다는 이 유산을 확실하게 다 지고 발전시킨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상의 내용적 측면의 이러한 의존성에도 불구하고, 계몽철학은 철학사상의 새롭고 고유한 형식을 형성한다. 비록 그것이 전시대의 유산울 매만질 때에도, 다시 말해 자연철학에서 특히 그러하돗이 17 세기가 일 구어 놓은 기초 위에서 작업을 할 때에도, 역시 모든 것은 새 로운 의의를 지니게 되고 새로운 철학적 지평 위에서 해명된

다. 왜냐하면 철학함의 보편적 과정일반이 진정으로 이전과는 달라졌기 때문이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계몽철학은 기존의 철 학적 인식틀인 형이상학적 체계형식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그 것은 더 이상 소위 〈체계정신 esp ri t de s y s t eme 〉의 권능을 믿지 않는다. 체계정신은 이제 철학적 이성의 장점이 아니라 방해물 이 된다. 그러나 계몽철학이 〈체계정신〉을 포기하고 이에 맞서 싸운다고 해서, 〈체계적 정신 esp ri t s y s t ema tiq ue 〉까지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계몽철학에서는 오히려 이 체계적 정신의 세력이 일층 강화되고 확대되며 그 활동이 활발해진다. 고정된 학설 내지 교리에 안주하는 대신에, 또는 고정된 공리로부터 연역하 는 것에만 의존하는 대신에, 이제 철학적 정신은 자신을 해방 시키고, 해방된 내적 활동을 통해서 모든 실재의 근본형식 즉 모든 자연적인 존재와 정신적 존재의 근본형식을 해명한다. 이 런 식으로 볼 때, 철학은 자연과학, 법학, 정치학 등과 동급의 인식체계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이 모든 과학들을 형성 발 전시키고 정초하는 포괄적인 매개물이요, 이 모든 과학들이 활 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분위기요, 이 모든 과학들에 생명력을 주는 호흡과 같은 것이다. 철학은 더 이상 정신이 만들어 낸 독립된 실체적 내용이 아니다. 철학은 오히려 정신의 순수한 모든 기능을, 즉 질문하고 탐구하고 인식하는 정신의 독특한 방식과 기능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또한 과거로부터 넘겨받은 모든 철학적 개념들과 문제들도 완전히 다른 위치에 놓이게 되고 독특한 의미변화를 겪게 된다. 그것 들은 이제 완성되고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생생하게 활동하는 힘 으로 변한다. 다시 말해 그것들은 이제 결과물들이 아니라 장 차 이룩해 내야 할 명령으로 변한다. 여기에 계몽적 사유의 고

유한 생산적 의의가 나타난다. 이 의의는 일정한 사상내용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철학적 사상의 계몽적 사용에서, 그리고 철학적 사상에 부여한 계몽적 위치와 과제에 서 드러난다. 18 세기가 자신을 〈철학적 세기〉라고 뽐낼 때, 이 말은 어느 정도 타당하다. 왜냐하면 18 세기에 철학은 사실상 자신의 근원적 권능을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원천적이고 〈고전 적〉인 철학의 의미를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철학은 이제 단순 한 사유의 영역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사유를 포함한 모든 정신적 행위의 원천이 되고 바탕이 되는 보다 깊은 질서의 세 계로 들어간다. 계몽철학을 단순히 〈반성철학 Re fl e xi ons phi lo­ so ph i e 〉으로 간주하는 견해가 있다면, 이는 계몽철학의 참된 뜻을 곡해하는 짓이다. 이런 견해를 처음 제시한 사람은 다른 사람아닌 헤겔이요, 그의 명성에 힘입어 이 견해는 정당한 것 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헤겔 자신이 다른 곳에서 자신의 이 견 해를 수정하고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형이상학자로서 헤겔의 이러한 견해는 철학사가로서 헤겔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헤 겔은 『정신 현상학』에서 이러한 견해와는 달리 보다 풍부하고 깊은 계몽기의 상(像)을 그려내고 있다. 사실상 계몽철학의 근 본경향과 주된 노력은 삶을 단순히 관조하고, 이룰 거울속에 반영 Re fl ex i on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 그것은 오히려 사유의 원천적 자발성 ( 自發性, S pon t ane i曲)을 믿는다. 계몽철학에 있 어 사유은 삶의 관조 내지 묘사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 자 체를 형성하는 힘이 된다. 사유은 단순히 분석할 뿐만 아니라 필연적인 질서를 스스로 이끌어 내고 실현시켜야 하며, 이렇게 함으로써 또한 사유의 현실성과 진리성을 증명해 보여주어야 한다.

대부분의 역사적 서술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계몽철학의 다 양한 산물들을 시간적으로 나열하고 연대기적으로 파악하려 한 다면, 우리는 계몽철학의 보다 깊은 심층으로 들어갈 수 없다. 이런 식의 고찰은 언제나 방법적인 면에서 볼 때 만족스럽지 못하다. 특히 이런 고찰의 단점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 바로 우리가 탐구하려고 하는 18 세기 철학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17 세기 철학은 데카르트에서 말브랑슈로, 스피노자에서 라이프니 츠로, 베이컨과 홉스에서 로크로 이어지는 이른바 〈체계에서 체계로의 발전〉으로 파악될 수 있다. 그러나 18 세기의 문턱에 들어서면서 이런 접근방법은 무력해진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철학적 체계 자체가 이미 철학의 여러 요소를 종합하고 대변하 는 능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볼프가 〈철학의 진리성은 체계 에 있다〉고 생각하고 전력을 다하여 체계형식을 고수하려 했지 만, 이 시대의 모든 철학적 문제들을 체계 속에 수렴하려는 그 의 노력은 결국 수포로 돌아가 버리고 만다. 계몽적 사유는 언 제나 거듭해서 체계의 단단한 껍질을 깨뜨리고 엄격한 체계적 규율을 벗어나고자 한다. 참된 계몽적 사유의 가장 순수하고 명백한 형식은 개별적인 공리나 학설이나 이론을 만들어내는 사유에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심하여 묻고, 허물 어 헤치고, 다시 세우는 사유의 생성 속에서 보여진다. 끊임없 이 동요하는 이러한 운동 전체는 개별적인 학설들의 단순한 합 계로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계몽주의의 진정한 〈철학〉은 볼테 르, 몽테스키외, 흄, 콩디야크, 달랑베르, 디드로, 볼프 혹은 람베르트와 같은 주도적 사상가들이 생각해 내고 가르친 것들 의 총계와는 다른 어떤 것이다. 그것은 이런 학설들의 총계나 혹은 시간적인 연계 속에서 드러내질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

은 일정한 명제들에서가 아니라 지적 활동 자체의 형식과 방식 에서 찾아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이런 지적 활동과 이의 끊임없는 전개과정에서만 기본적인 정신적 힘들이 파악될 수 있으며, 이렇게 될 때에만 계몽기의 내적인 정신적 삶의 맥 박이 느껴질 수 있게 된다. 계몽철학은 지적인 걸작품에 속한 댜 그것은 〈한 번 밟아 무수한 실가닥들이 움직이고 작은 북 들이 이리 가고 저리 가며, 보이지 않는 사이에 실들이 흘러나 오는〉 직조공의 위대한 걸작품에 속한다. 계몽기에 대한 역사 적 재구성과 고찰은 이 보이지 않는 실들을 해명하는 것을 본 래의 최고 과제로 삼아야 한다. 개별적 사상가 및 이들의 가르 침에 대한 역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계몽시대 이념들의 순 수 역사를 제공함으로써, 이 책은 이 과제를 완성시키고자 한 다. 이 책은 이런 이념들 자체를 그저 추상적이며 이론적으로 파악할 뿐만 아니라 이념들이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작용하는 모습을 들추어 내보이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이 책은 세부적 인 자세한 자료들을 생략하지 않을 수 없는 반면에 계몽철학의 실상을 형성하는 근본적인 힘들의 어느 하나도, 다시 말해 계 몽철학의 자연관, 역사관, 사회관, 종교관 그리고 예술관을 규 정하는 근본적인 힘들의 어느 하나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 이 렇게 추구해 나갈 때, 매우 다양한 사상적 계기들의 한갓 절충 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지곤 하던 계몽기의 철학은 몇몇 중요한 근본 이념들에 의해 질서정연하고 일관되게 통괄될 수 있다. 계몽기에 대한 모든 역사적 설명은 이 이념들을 출발점으로 삼 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할 때에만 비로소 개별적인 학설 과 이론의 어지로운 미로를 헤쳐 나갈 수 있는 명백하고 확실 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계몽철학을 체계적으로 비판할 수 없다. 비판 이전에 우선 우리는 〈비웃거나 한탄하거나 저주하지 말고 먼저 이해하라〉는 스피노자의 말을 앞세워야 할 것이다. 계몽기의 정확한 이해는 이상하게도 혼치 않았다. 일반적으로 계몽철학 이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다는 점과 소박한 자신감에 서 자신의 척도롤 절대적인 규범으로 만들어 놓고 이를 과거 역사에 마구 적용시켰다는 점이 계몽기의 근본 결함으로 생각 되어 왔다. 비록 계몽주의가 이 결함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하더라도, 계몽주의는 그 대가를 너무 지나치게 많이 치러 왔 고, 이에 따라 계몽기가 지니는 장점마저 부정적으로 평가되기 도 하였다 . 이 시대의 특징인 〈더 잘 안다〉는 것의 긍정적 측 면보다는 오히려 부정적 측면만이 즉 지적 교만성만이 언제나 거듭 지적되어 왔다. 그리고 이로부터 여러 가지 편견들이 생 겨나서 오늘날까지도 계몽주의에 대한 공평무사한 역사적 고찰 과 평가를 어렵게 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편견들을 비판함 으로써 계몽주의를 구출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의 목적은 계몽철학의 내용과 중심점을 역사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전 개시키고 해명하는 일이다 . 이러한 해명은 계몽주의에 대한 낭 만주의의 잘못된 판결을 교정하기 위한 첫번째의 필수 불가결 한 작업이다. 〈얄팍한 계몽주의〉라는 낭만주의의 얄팍한 판결 이 오늘날에도 아무런 비판 없이 유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책이 이 유행의 소리를 잠재울 수 있다면, 이 책의 주된 목적 은 달성되는 것이다. 〈사고방식의 혁명〉이라는 칸트의 위업이 『순수 이성 비판』에서 달성된 이후로 우리는 간단히 계몽철학 적인 의문과 해답에 안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칸트가 이 성비판의 마지막 절에서 그렸던 바와 같은 〈순수 이성의 역사〉

를 이야기한다면, 언제나 이 계몽기를 우선적으로 언급하지 않 을 수 없댜 왜냐하면 이 시대야말로 최초로 이성의 자율을 찾 아내고, 이를 위해 정열적으로 싸우며, 이를 모든 지적 영역으 로 확대적용시키기 때문이다. 철학사를 진정으로 다룬다면, 그 것은 단순히 과거 역사에 머물지 않는다. 왜냐하면 철학함의 과거를 돌이켜 본다는 것은 동시에 철학적인 자각과 자기비판 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어느 때 보다도 더 우리의 시대 는 이러한 자기비판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서 우 리는 우리의 시대를 계몽기가 만들어 낸 밝고 투명한 거울 앞 에 되비추어 볼 필요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늘날 〈진보〉의 결과라고 보여지는 많은 것들이 이 거울 속에서는 전혀 그 휘 광을 상실할 것이요, 우리가 칭찬해 마지않는 많은 것들이 이 거울 속에서 보면 기이하게 뒤틀린 것이 될 것이다. 이 뒤틀림 의 진정한 원인을 추적하지 않고 단지 거울의 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위험한 자기기만이 될 것이다. 〈계몽의 표어〉 라고 칸트가 일컬은 〈감히 알려고 하라! Sap er e aude 〉라는 말은 계몽주의에 대한 우리 자신의 관계에 대해서도 아주 썩 어울리 는 말이다. 계몽주의를 깔보고 무시해서 이 관계를 무시하는 우를 범하지 말고, 계몽주의의 척도로 우리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을 재보고 음미해 보는 용기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이성과 학문을 인간의 최고 능력으로 간주하는 계몽의 세기는 간단히 흘러가 버린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그 세기의 참된 모습을 되 찾아 볼 뿐만 아니라 이 모습을 만들어 낸 근원적인 힘들을 다 시 소생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메디쿠스 F ritz Medic u s 교수에게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는 『철학적 학문들의 요강』

의 편집인으로서 나에게 이 책을 쓰도록 처음으로 권유했을 뿐 더러, 이 책의 교정을 함께 보아준 분이다. 또한 하일브룬너 Alix Heil br unner 양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표한다. 그녀는 책 말미의 인명 색인을 만들고 이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 지 재료들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 함부르크, 1932 년 10 월 에른스트 카시러

제 1 장 계몽주의 시대의 사유 형식 - 달랑베르 d'Alembe rt는 『철학의 요소에 관한 탐구』 서두에서 18 세기 중엽의 인간정신의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 그에 의하 면, 18 세기 이전 3 세기에 걸쳐, 특히 각 세기의 중엽을 중심으 로, 정신적 삶의 중대한 전환이 이루어진다. 15 세기에 르네상 스라는 지적 운동이 전개되고, 16 세기에 종교개혁이 절정에 도 달하고, 17 세기에 세계상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은 데카르트 철 학이 승리를 구가한다. 이제 18 세기에는 이와 대적할 만한 어 떤 운동이 있는가? 이런 물음을 계속하면서 달랑베르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우리 시대인 18 세기 중엽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면, 다시 말해 우리 눈 앞에 전개되는 사건들, 우리가 만들어 낸 작품들, 우리의 관습들, 심지어 우리의 일상적인 이 야깃거리들을 주의 깊게 들여다 본다면, 우리는 어렵지 않게 관념의 놀랄 만한 변혁을 느껴 알 수 있으며, 이 변혁의 속도 가 너무나 빨라 다른 어떤 세기보다 더 커다란 변화가 장차 도 래하리라고 믿는다. 물론 이 세기가 지난 후에야 비로소 이 변

혁의 대상이 무엇이며, 그 본성과 한계가 어떠한지를 , 그리고 그 변혁의 장단점이 무엇인지를 보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즐겨 이 시대를 철학의 시대라고 일컫는다. 우리 가 편견 없이 현재 인간의 지식상태를 점검해 본다면, 우리의 철학은 중요한 발전을 이룩해 온 것이 틀림없다. 자연과학은 날로 새로운 부(富)를 획득하고, 기하학은 그 한계를 확대하여 그 횃불을 인접한 물리학에까지 비추어 주어, 물질 세계의 참 된 구조가 점차 확실하게 알려져 가는 중이다 . 지구에서 토성 까지, 하늘의 역사에서 곤충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자연과학은 변혁되고 발전되었다 . 이와 더불어 또한 거의 모든 여타의 인 식 분야들도 이러한 추세의 영향을 받아 날로 새로운 발전을 이룩하였다 . 자연탐구는, 그 자체로 볼 때, 냉정하고 조용한 것이지 요란한 흥분을 자아내는 것이 아니다. 이 탐구가 우리 에게 주는 만족감은 조용하게 가라앉은 지적 희열이다. 그러나 철학함의 새로운 방법을 발견하고 활용하게 되면, 이에 따른 열광은 곧 관념의 비상을 일으키고, 마침내 시대의 정신이 힘 차게 끓어 오르게 된다. 이러한 발효는 마치 둑을 무너뜨린 물 줄기처럼 모든 방향으로 퍼져나가 모든 것을 집어 삼킨다. 과 학의 원리로부터 계시종교의 근거에 이르기까지, 형이상학의 문제로부터 취미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음악에서 도덕에 이르기 까지, 신학적 논쟁에서 경제와 상업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군주 의 법에서 민중의 법에 이르기까지, 자연법에서 실증법에 이르 기까지 모든 것들이 논의되고 분석된다. 시대정신의 보편적인 발효로 인하여, 새로운 빛과 새로운 어둠이 생긴다一―-마치 바다의 밀물이 새로운 많은 것들을 해변으로 가져오는가 하 면, 썰물은 다른 많은 것들을 해변으로부터 거두어 어둠속으로

집어 삼켜버리듯이.〉 I )

1) d' Alembert, Elements de Phi/ o sop hi e I; Melange s de Lite r ati ,~ d' Hi - sto i r e et de Phil o sop h ie , Amste r dam 1758, N, 1 ff.

이것은 계몽기의 가장 중요한 학자 중의 한 사람이요, 말하 자면 이 시대의 지적 대변인이라 할 만한 사람의 말이다 . 따라 서 여기서 우리는 직접적으로 당시의 지적인 삶의 특성과 경향 을 느낄 수 있다. 달랑베르의 시대에는 하나의 힘찬 지적 운동 의 물결이 일고 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저 이 운동에 자신 울 내맡긴 것이 아니라, 이 운동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를, 즉 이 운동의 원천과 목적지를 알고자 한다. 이와 같은 자 기 자신의 행위에 대한 지식, 즉 원천에 관한 지적 자각과 미 래의 목적에 관한 지적 예견이 이 시대 사유의 특징적 기능이 요, 과제이다. 사유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대상들을 그저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고 자 하며, 이 행로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고자 한다. 사유는 새로운 대상 세계를 발견하고 기쁨을 누리긴 하나, 사유의 지 적 호기심은 이러한 의적 세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 시대 의 사유는 사유 자신의 본성과 가능성에 대한 물음에 보다 더 심취해 있다. 사유는 대상 세계의 지평을 확대하려는 다양한 탐구여행으로부터 그 본래의 출발점으로 재삼 재사 되돌아 온 댜 〈 인간의 궁극적 탐구대상은 역시 인간이다〉라는 포프 Po p e 의 시구는 이 시대상의 정곡을 찌른 표현이다. 이 시대에는 새 로운 힘이 작동하고 있다. 그런데 이 힘에 의해 만들어진 여러 결과물들보다 이 힘의 활동 자체에 대해 이 시대는 더욱 매력 을 느끼고 있다. 이 시대는 그 결과물들을 단지 즐길 뿐만 아 니라 이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탐구하고자 한다. 18 세기의 지

적 〈발전〉 문제는 이런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이 시대만 큼 지적 발전의 이념이 철저한 시대는 없었다 . 그러나 만약 이 발전을 순전히 지식의 양적 확대로만 생각한다면, 이 이념의 깊은 뜻과 핵심을 놓치게 된다. 양적 팽창에는 항상 질적 규정 이 잇따른다. 지식의 양적 확대에 대응하여 지식은 점점 더 뚜 렷이 지식의 본래 중심점으로 되돌아 간다 . 다양을 탐구하되, 이 를 통해 통일성을 확인한다. 지식의 확대는 정신을 어지럽히고 훼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신을 자신에게로 되돌아가게 하는 계기를 준다. 실재 세계를 파악하기 위해 정신이 가는 길 은 어쩔 수 없이 다양하지만, 이것은 단지 외면적일 뿐이다. 이 길을 드러난 모습대로 보면 다양하지만, 이 다양은 단순히 이리저리 흐트러진 분산이 아니다. 왜냐하면 여러 방향으로 쏟 아지는 지적 힘들은 하나의 공통된 힘의 중심점에서 나오기 때 문이다. 따라서 이 다양성은 본래 동질적인 하나의 힘의 다양 한 전개 양상에 불과하다. 18 세기가 이 힘의 특성을 한 마디로 표현하고자 했을 때, 다름 아닌 이성이라는 이름을 택했다. 이 성은 이 세기의 통일적인 중심점이요, 이 세기가 동경하고 추 구하고 성취해 낸 모든 것들을 표현하는 이름이다. 그러나 18 세기를 연구하는 철학사가가 이러한 말로 만족하려 한다면, 이 것은 너무 성급한 생각이다. 왜냐하면 18 세기 자신은 이성에서 그 목적을 보지만, 역사가는 이 이성에서 단지 그 자신의 탐구 의 출발점만을 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18 세기 자신은 해 답으로서 이성을 추구하지만, 역사가에게는 이 해답 자체가 하 나의 진정한 문제로 부각되기 때문이다. 좀 더 상세히 말해보 자. 18 세기는 이성의 통일성과 불변성을 완전히 믿는다. 이성 은 모든 사유 주관들에, 모든 민족에, 모든 시대에, 모든 문화

에 대해 동일하다 . 따라서 종교적 신조나 , 도덕적 신념 혹은 이론적 견해들이 각기 다르다 하더라도, 이들로부터 동일성과 불변성과 지속성을 지니는 이성의 참된 본질 요소를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의 우리에게 이성이라는 말은 그 명료하 고 확실한 뜻을 상실한지 이미 오래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말 을 쓸 때 그 말의 의미 변천사를 꼭 되살펴야 한다. 이 말이 그간에 얼마나 많이 그 의미 변화를 겪어 왔는지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볼 때, 〈 이성 〉 혹은 〈합리주의〉 라는 말의 명확한 의미를 집어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성〉이라는 개념은 일반적으로 애매하기 그지 없다. 이 개념의 올바른 종차(種差 dif fer enti a s p ec ific a) 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밝 혔 을 때 비로소 그 개념은 명석판명하게 된다 . 18 세기의 이성 의 종차는 어디서 찾아져야 하는가? 18 세기가 자신의 시대를 〈이 성의 세기 〉 니, 〈철학적 세기〉니 하고 자칭하는데, 이때 이 표 현의 근본적 징표는 어디에 있는가? 어떤 의미로 여기서 〈철학〉 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는가? 세계관과 인간관의 확실한 기초 를 세우기 위해 이 철학은 무엇을 과제로 삼는가? 그리고 이 과제를 풀기 위해 이 철학은 어떤 수단을 사용할 수 있는가? 이런 문제에 대한 17 세기의 대답과 18 세기의 대답을 비교해 본다면, 뚜렷한 차이가 드러난다. 17 세기의 철학 목표는 철학 적 〈체계〉를 세우는 일이다. 최고의 존재와 최고의 직각적 확 실성에서 출발하여, 이 확실성의 빛을 파생적 존재와 파생적 지식에 비추어 주었을 때, 비로소 이 파생적인 것들에 대한 〈철 학적〉 지식이 생긴다. 그리고 이것은 엄격한 논증적 방식에 의 해 이루어진다 . 다시 말해 최초의 근원적 확실성을 지닌 명제 로부터 파생적 명제들을 하나하나 간접적으로 이끌어내어 감으

로써 마침내 완전한 지식의 고리(체계)를 형성한다. 이 연쇄 고 리 중 어느 하나도 전체로부터 빠져나와 독자적으로 자신을 정 당화할 수 없다. 엄격한 체계적 연역만이 정당화의 유일한 방 법이다. 왜냐하면 이런 연역을 통해서만 각각의 고리는 확실성 의 원천으로 소급되어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18 세기는 이 러한 연역의 증명 방식을 포기한다. 이제는 데카르트나 말브랑 슈 혹은 라이프니츠나 스피노자처럼 체계적 엄격성과 완전성울 추구하지 않는다. 이제 〈진리〉와 〈철학〉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추구한다. 이 새 개념으로 말미암아 진리와 철학은 보다 더 유 연하고 구체적인 생동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계몽운동은 이러 한 사유 방식의 전형을 과거의 철학으로부터 찾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자연철학을 모델로 삼아서 찾는다. 철학적 방법의 기본 문제에 대한 해결은 이제 데카르트의 〈방 법서설〉이 아니라 뉴턴의 〈철학함의 규칙 Reg ul ae Phil os op h andi> 에 의존한다. 이로써 철학은 완전히 새로운 방향의 길을 취한 다. 뉴턴의 방법은 순수 연역적 방법이 아니고 분석의 방법이 댜 그는 〈사실〉에 관한 구체적 지식에 도달하기 위해 먼저 원 리나 보편개념이나 공리를 내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이와는 정반 대이다. 현상(사실)은 주어진 소여이고, 원리는 추구되어야 할 과제이다. 존재의 본성에서 볼 때, 원리가 먼저이고 일차적이지 만, 우리가 아는 과정상에서 볼 때, 우리에게 먼저 알려지는 것 은 원리가 아니라 현상이다. 원리가 〈본성상 먼저인 것 n p6't e p ov 떠 (JYIJ OEL 〉이 라면, 현상은 〈우리 에 게 먼저 인 것 np 6i :E p ov np os 어µ쇼〉이댜 따라서 물리학의 참된 방법은 인위적인 선천적 출 발점 죽 가설(원리)에서 출발하여 이 안에 함축된 논리적 귀결 들을 이끌어 내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가설은 임의

적으로 고안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만 보면, 이 가설 들 중 어느 것도 나머지 가설들과 동등하게 타당하다. 따라서 참된 물리학적 진리를 얻으려면, 연역과는 다른 진리의 기준을 찾아야 한다 . 물리학에서 추상적인 정의는 참된 출발점이 될 수 없댜 확실한 출발점은 오직 경험과 관찰에서만 얻어질 수 있댜 그렇다고 하여 이것이 곧 경험과 사유의 분리를, 죽 사실 의 영역과 순수 사유의 분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흄의 『인 간 오성 론 Enq ui r y concernin g Human Unders t and i ng 』 처 럼 〈관 념의 관계 relati on s of i deas 〉와 〈사실의 문제 matt er of fa c t〉라는 방법론적 이원론은 여기서 보이지 않는다. 뉴턴 탐구의 근본 목적은 질료적 세계 속에 들어 있는 보편적 법칙과 질서이다. 여기서는 사실 그 자체가 단순히 질료가 아니요, 개체들의 무 질서한 뒤범벅이 아니다. 사실은 오히려 자신 속에 보편적인 형식을 드러내 보여준다. 이 형식은 척도와 수에 따른 수학적 규정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규정은 단순히 개념 속에서 찾 아질 수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실 자체에서 찾아져야 한 댜 이 과정을 한 마디로 말하면, 〈개념과 원리에서 현상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이다. 관찰은 주어진 〈사실 Da tu m 〉이요, 원리와 법칙은 이 사실로부터 찾아내야 할 〈과제 Q uaes itu m 〉이다. 관찰된 사실(현상)에서 원리로 나아가는 길이 뉴턴의 방법이다. 이 새로운 방법론적 순서가 18 세기 사상의 특징이다. 〈체계 적 정신〉 즉 〈체계의 가치〉는 무시되지도 않고 낮게 평가되지 도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체계 정신〉 즉 〈체계를 위한 체계 의 사랑〉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18 세기의 모든 인식론은 바로 이 구별을 확고히 하고자 한다. 달랑베르는 프랑스 백과전서의

서론에서 이 구별을 논의의 중심점으로 삼았으며, 콩디야크는 『체 계 론 Trait e d es sy s t emes ,』 에 서 이 구별 의 형 식 을 명 백 히 공식 화하고 정당화하려 한다. 콩디야크는 17 세기의 모든 위대한 체 계들을 비판한다. 그에 의하면, 이 모든 체계들은 사실에서 출 발하여 이로부터 개념을 전개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개념 올 먼저 앞세우고 이것을 사실과 아무런 연관 없이 독단화시킴 으로써 오류에 빠진다. 〈체계의 정신〉 대신에 이제 〈실증적 po si- tiv> 정 신과 〈합리적 rati on al> 정 신이 요구되며, 이 양자의 새로 운 결합이 요구된다. 실증과 합리는 서로 모순된 것이 아니다. 단지 이 양자의 진정한 종합을 위해서는 올바른 매개가 요구될 뿐이다. 우리는 질서, 법칙 내지 〈이성 Lo g os 〉을 현상에 앞서 파악될 수 있는 규칙 으로 죽 현상의 〈선천성 A p r i or i〉으로 보아 서는 안 된다. 이와는 거꾸로, 우리는 법칙 내지 이성을 현상 자체 속에서 찾아야 하며, 현상의 내재적 연관 형식으로 보아 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이성을 처음부터 완전한 체계로 전제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사실의 인식이 발전함에 따라서, 이성 도 점점 더 명료하고, 뚜렷하고, 완전하게 전개되어 간다는 것 을 인정해야 한다. 여기서 추구되는 새로운 논리학은 모든 지 식 영역에 대해서도 타당한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스콜라 학 파의 논리학도 아니고 순수 수학적 개념의 논리학도 아니다. 그것은 〈사실의 논리학 Lo gik derTa t sachen 〉이다. 정신은 풍요한 현상에 자신을 일단 맡기고, 이 현상에 맞추어서 자신을 조정 하고 평가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런 현상온 정신을 어지럽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신의 참된 진리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비로소 〈주관〉과 〈객관〉의, 〈진리〉와 〈실 재〉의 진정한 상관 관계를 얻게 되고, 〈지성과 사물의 합치〉라

는 과학적 지식의 전제 조건을 확립하게 된다. 이러한 자연과학적 사유의 실제적 진행과정을 살펴 보건데, 합 리성과 실증성의 종합은 이제 단순히 요청에 불과한 것이 아니 라, 충분히 실현될 수 있는 이상이요, 목표가 된다. 말하자면 계몽철학은 자연과학의 전개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이상을 구 체적으로 실현시킨다. 근대 분석적 정신의 승리의 발걸음은 자 연과학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히 진행된다 . 거의 150 년 동 안에 걸쳐 이 분석적 정신에 의하여 모든 실재가 착착 정복되 어 갔고, 이제 다양한 자연현상을 하나의 보편적 법칙으로 환 원하려는 과학의 위대한 목표가 바야흐로 성취될 것처럼 보인 다 .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은 우주론적인 공식은 우연히 발견되는 것도 아니고, 산발적인 실험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자연과학적 방법을 엄격히 적용 함으로써만 얻어질 수 있다. 뉴턴은 케플러와 갈릴레이가 시 작한 작업을 완성시킨다 . 이 세 사람은 단순히 위대한 과학자 로 거명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지식 내지 사유〉의 상징이 요, 이정표를 의미한다. 케플러는 천체 현상을 관찰하고, 관찰 된 내용에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수학적 정밀성을 부여한다. 지 칠줄 모르는 노력으로 그는 혹성의 궤도를 확정하고, 혹성들의 공전 주기와 태양과의 거리의 상관관계를 알아냈다. 그러나 이 러한 사실적인 통찰은 앞으로의 발전과정의 제 일보에 불과하다. 갈릴레이의 운동이론은 보다 포괄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그의 문제는 자연과학적 개념 형성의 보다 깊고 보다 넓은 층으로 육박한다. 이제는 자연현상을 관찰하고 기술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역학 D y nam ik이라는 자연이론 그 자체의 보편적인 기 초가 목표이다. 단순히 자연현상의 직접적인 관찰에 의해서는

이 목표가 얻어질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다른 인식 방법 내 지 다른 정신적 기능이 있어야 한다. 자연현상은 통일적인 전 체로서 우리의 직관에 나타난다. 직관은 자연 현상이 무엇인지 롤 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대강 기술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의 방식은 참된 〈설명〉은 아니다. 자연 현 상의 설 명 은 무엇 이 있으며 (Dasein ) 이 것 이 어 떠 한 것 (Sosein ) 인지를 아는 일이 아니라, 자연 현상을 일으키게 한 조건들을 모두 찾아내고 이 현상이 어떻게 이 조건들에 의존하고 있는지 를 밝혀 내는 일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의 자연 현상을 여러 가지의 구성 요소로 분해해야 한다. 갈릴레이에 의하면 T^ 이러한 분석 과정은 모든 자연과학의 전제가 된다. 자 연과학적 개념 형성의 방법은 〈분해 resolu ti v 〉와 〈조립 komp os i- ti v 〉이다. 의견상 단순한 사건을 그 구성 요소들로 분해하고 다 시 이 요소들을 조립해서 이 사건을 구성해 낼 때에 비로소 우 리는 이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의 고전적 인 예는 갈릴레이의 탄도(彈道) 포물선에서 보여진다. 총알이 날아가는 궤도는 단순히 관찰에 의해서 얻어질 수 없다. 관찰 온 물론 일반적인 특성을 알려 준다. 예컨대 처음에는 궤도가 솟아 오르다가 나중에는 내려간다는 성질을 알려준다. 그러나 이 궤도의 정확한 규정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어떤 사건에 대 한 정확한 수학적 개념을 얻으려면, 이 사건을 이것의 조건들 로 환원하고, 동시적으로 함께 작용하는 이 조건들을 하나하나 독립시키고, 이 독립된 조건들의 법칙을 찾아내야 한다. 총알 의 포물선 궤도 법칙과 총알 속도의 증가와 감소를 정확히 규 정하려면, 먼저 총알이 날아가는 현상을 단순한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것으로 보고, 이 복합의 요소 죽 원래의 충격력과 인

력이라는 두 요소를 찾아내야 한다. 이 단순한 예는 장차 물리 학이 어떤 식으로 발전해 나갈 것인지를, 그리고 그 방법적 구 조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예시적으로 보여 준다. 뉴턴의 이론은 여기서 이미 알려진 모든 특성들을 확인하고 확증한다. 뉴턴도 역시 분해와 조립의 상호의존 방식에 의거하기 때문이다. 케플 러의 세 법칙을 출발점으로 삼지만, 이의 해석에 있어 뉴턴은 진일보한다. 뉴턴은 법칙을 관찰된 사건의 표현방식으로 해석 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는 사건의 원천이 되는 전제들 울 찾아 소급해 올라간다. 그러고 나서 그는 사건이 모든 조건 들의 연합작용에서 생긴 필연적 결과임을 증명하고자 한다. 물 론 이 조건들이 각각 독자적으로 탐구되고, 그 기능의 방식이 확인되어야 한다. 케플러가 단순한 사건으로 보았던 혹성 운동 은 이제 복합적인 것으로 증명된다. 그것은 두 개의 기본적인 자연법칙 즉 자유낙하의 법칙과 원심력 법칙으로 환원된다. 이 두 법칙은 각각 갈릴레이나 호이헨스 H. C. Huyg e ns(1629 - 1695) 에 의해 정확히 탐구되었다. 이제 문제는 이런 발견들을 하나의 포괄적인 원리로 환원시키는 일이다. 이런 환원 작업이 뉴턴의 위업이다. 이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에 대한 새로운 지식의 획득이 아니라, 경험적 현상을 지적으로 변형시 켜 재구성하는 일이다. 우주의 구조는 단순히 관찰되는 것이 아니라, 어둠의 장막을 뚫고 속을 들여다 보아야 알려진다. 이 렇게 하기 위해서는 수학적 분석방법이 우주 탐구에 사용되어 야 한다.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미적분은 이런 탐구에 필요한 알맞은 도구를 제공하였으며, 이로써 자연의 개념적 파악 가능 성이 비로소 확실하게 증명되었다. 이제 자연과학의 길은 무한 히 뻗어나가며, 그 방향 또한 확정되어 있다. 왜냐하면 자연과

학의 출발점과 목표는 대상의 성질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이성의 힘과 기능 방식에 의해서도 결정되기 때 문이다. 18 세기 철학온 뉴턴 물리학의 방법을 받아들여서 이것을 일 반화시킨다. 이제 분석은 단지 수리물리학의 도구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유 일반에 대한 필수 불가결한 도구가 된 다 바로 이런 분석 방법의 전면적 일반화가 18 세기 중엽에 꽃 을 피운다. 사상가 개개인이나 학파들의 탐구 결과가 서로 다 르다 할지라도 인식론적인 방법에 있어서는 모두 동일하다. 볼 테 르의 『형 이 상학론 Trait e de Me t ap hy s iq u e,』 , 달랑베 르의 백 과 전서 ·신 론, 칸트의 자연신학과 도덕원리에 관한 탐구는 모두 이 점에 있어 일치한다. 이들 모두는 형이상학의 참된 방법을 뉴턴의 자연과학적 방법과 근본적으로 같은 것으로 본다. 볼테 르에 의하면, 우리가 사물의 내적 본질 즉 사물 자체를 알려고 하면, 우리는 즉시 우리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게 된다. 우리는 마치 맹인이 색깔을 알아보려는 꼴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런 맹 인에게 자비로운 선물이 있으니, 이것이 분석이라는 지팡이이 다. 이것을 가지고 우리는 현상계의 질서와 짜임새를 헤쳐 알 아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삶과 학문을 위한 지적 작업에 사용할 수 있는 전부이다. 〈원리를 만들어 내고 이것으 로부터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하지 마라. 어디까지나 사물을 정확히 분석만 하자. …… 수학이라는 나침반과 경험이라는 횃 불이 없다면, 우리는 한 발짝도 내디딜 수가 없~ 그러나 이런 도구가 준비되어 있으면, 우리는 높은 지식 세계에 도전 2) Volta ire, Trait e de Meta p hy s i q u e, Ch. V.

할 수 있다. 이때 물론 우리는 사물의 궁극적 신비를 풀어 내 려는 희망을 그리고 물질이나 인간 영혼의 절대적 존재로 나아 가려는 희망을 버려야 한다. 그러나 경험적인 법칙이나 질서의 의미로서 〈 사물의 내적 핵심 〉 은 결코 접근 불가능한 것만이 아 니다. 경험계 내에서라면 우리는 모든 방향으로 확실하게 발걸 음을 내디딜 수 있다. 이성의 힘은 경험계를 초월하는 것이 아 니라 경험계의 짜임새에 정통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성 의 의미가 17 세기와는 다른 것으로 변화되었음을 안다. 17 세기 의 위대한 형이상학적 체계 죽 데카르트, 말브랑슈, 스피노자 및 라이프니츠의 체계에서 이성은 〈영원한 진리〉의 영역이요기 인 간정신과 신의 정신에 공통된 진리 영역이다 . 이성에 의해 우 리가 아는 것을 우리는 신 속에서도 본다 . 이성의 행위는 곧 신적인 것에 참여함을 의미한다 . 이성은 우리에게 초감각적인 예지계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에 비해 18 세기의 이성은 좀 더 겸손하다. 이성은 이제 경험과 관계 없이 사물의 절대적 본질 울 알려주는 〈 본유관념〉의 총체가 아니다. 이성온 유산(遺産)과 같은 확고한 소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진리를 마치 동전처럼 간직하고 있는 마음의 창고가 아니다. 그것은 진리를 발견하고 진리를 확증하는 정신의 근원적인 힘이다. 18 세기는 이성을 지 식, 원리 내지 진리의 내용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가능적인 힘 으로 본다 . 이 힘은 이것이 실제로 작용하는 행위에서만 온전 히 이해될 수 있다. 이성이라는 이 힘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는 그것이 만들어 낸 결과물들에서가 아니라 그것의 기능을 통 해서만 완전하게 알려질 수 있다. 이성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분해하고 연결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실적인 모든 것 즉 주어 진 모든 것을 분해하여 그 단순한 요소로 환원하고, 그리고 계

시 내지 권위에 근거하고 있는 모든 믿음을 분해하여 믿음의 궁극적 동기로 환원한다 . 이런 분석의 작업 후에 다시 연결하 는 종합의 작업을 한다. 이성은 그 자신이 규정한 법칙에 쫓아 서 환원된 요소들을 다시 모아 짜서 전체를 만들어 내기 때문 에, 이성은 이렇게 만들어진 전체의 구조를 완전하게 알고 있다. 이성은 이 구조를 그 전체에 있어서 알 뿐만 아니라 그 요소들 이 짜여지는 질서와 순서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분석과 종합 이라는 이성의 이중적 행위를 인식할 때에만 우리는 존재가 아 니라 행위로서의 18 세기 이성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확신은 18 세기의 모든 영역에 두루 퍼져 있다. 이성 의 참된 힘은 지식의 단순한 소유가 아니라 〈애써 지식을 획득 함〉에 있다는 레싱의 말은 18 세기 정신사를 잘 대변해 준다. 몽테스키외는 인간 영혼의 지적 욕구를 이론적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인간은 하나의 개념을 획득함으로써 만족하는 것이 아니 라 이로부터 다른 개념으로 끊임없이 나아가는 지칠 줄 모르는 지적 욕구를 지니고 있다. 몽테스키의는 말한다. 〈우리의 영혼 은 사유하도록 죽 지각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유 존재는 지적 호기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사 물이 앞뒤로 다른 사물들과 연결되어 있듯이, 우리는 어떤 관 념을 보면 이와 관련된 다른 관념을 또 보려고 욕구하기 때문 이다.〉 신학적 독단에 의해 〈지적 자만심〉으로 낙인찍혔던 〈지 적 즐거움 L i b i do Sc i end i〉은 이제 인간 영혼의 필수적 특성으로 되었고 그 본래적 권리롤 되찾는다. 18 세기 문화의 주된 목표 는 이러한 사고방식을 옹호하고, 강조하고, 확실하게 하는 것 이지, 단순히 어떤 지식을 획득하고 증가시키는 일이 아니다. 지식의 창고 역할을 하였던 백과전서파에서조차도 이러한 18 세

기의 주된 목표는 뚜렷하게 확인된다. 백과전서파의 창시자인 디드로의 말을 빌리면, 백과전서의 목적은 어떤 지식 내용을 공급할 뿐만 아니라 사고방식의 변혁을 도래시키는 일이다. 이 러한 임무를 자각하였기에 그 시대의 모든 정신은 새로운 내적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 진정한 과학자라면, 그가 아무리 조용하 고 신중할지라도, 이러한 정신적 운동의 대세에 영향받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그가 이 운동의 궁극적 목적을 분명하게 말할 줄 모른다고 하더라도, 그는 이런 운동의 추세 속에서 인류의 새로운 미래가 장차 도래할 것이라고 느낀다. 『금세기 도덕에 관한 고찰』에서 뒤클로 Duclos 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금세기 를 지나치게 평가하려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하나의 보편적인 정신적 발효가 일어나고 있는데, 우리는 적절한 교육을 통해 이 발효의 진행 방향과 속도를 조정할 수 있다.〉 당대의 사람 들은 단순히 시대의 발효에 자기 자신을 내맡기는 대신에 이 발효의 힘을 이해함으로써 이 힘을 조정하고자 한다. 그들은 단순히 새로운 사상의 회오리 바람에 휩싸이는 것이 아니라, 스 스로 조정 장치를 잡고서 이 바람의 진정한 목표를 향하여 우 리의 정신적 여로를 이끌어 나아가고자 한다. 이런 방향에서 18 세기가 내디딘 첫 걸음은 수학적 정신과 철 학적 정신의 한계를 분명하게 나타내는 일이다. 이것은 내적으 로 볼 때 변증법적인 어려운 문제이다. 왜냐하면 외견상 서로 배치되는 두 과제가 동시에 성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학과 철학 사이의 끈은 끊어질 수도 없고 느슨해질 수도 없다. 수학 이야말로 〈인간 이성의 자랑거리〉요, 이성의 시금석이요 보증 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수학의 한계가 점차 뚜렷해졌다. 물 론 수학은 아직도 이성의 모범을 이루지만 이성의 내용면을 모

두 드러내주지는 못한다. 이렇게 해서 서로 배치되는 듯이 보 이는 두 힘에 의한 사유의 긴장이 시작된다. 이제 철학적 사유 는 수학으로부터 독립 하고자 하는 동시 에 수학에 꽉 달라 붙는 댜 다시 말해서 철학적 사유는 수학의 권위로부터 해방되려고 하나, 그렇다고 하여 수학의 권위를 시험하거나 파괴하고자 하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각도에서 이 권위를 정당화하고 자 한다. 이 두 방향의 욕구는 성취된다. 이 양면적 과제를 철 학적 사유는 성공적으로 푼다. 순수 분석은 수학적 사유의 기 초가 된다. 그러나 순수 분석의 보편적 기능은 양과 수의 순수 수학적 한계를 훨씬 넘어서 확대될 수 있다. 이런 생각의 싹들 은 17 세기에서 이미 나타난다. 파스칼이 수학과 철학의 한계를 명백히 하고자 〈기하학적 정신 esp ri t g eome t r iq ue 〉과 〈 섬세한 정 신 esp ri t fi n 〉을 구분하고 이 들의 구조와 기 능의 차이 점 을 보 여주고자 하였으나, 이 날카로운 구분은 곧 사라져 버린다. 퐁 트넬은 『수학과 물리학의 유용론』이라는 책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기하학적 정신은 꼭 기하학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러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다. 윤리학, 정 치학, 비평 혹은 심지어 웅변술에 관한 책이 기하학적 정신으 로 쓰여진다면, 그만큼 그 책은 아름답고 완전할 것이다.〉 3 ) 이런 문제에 대한 18 세기의 결정은, 기하학적 정신이 순수 분 석 정신으로 이해되는 한, 이 정신이 어떤 특수한 지식분야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적용 범위에 한계가 없다는 것이다. 두 가지 방향에서 이 명제의 증명이 시도되었다. 지금까지 수와 양의 영역에만 적용된 분석은 이제 심리적, 사회적 존재 3) Fon ten elle, 전집 1 권, 34 쪽.

에도 적용된다. 이성의 분석과 종합의 방법이 적절히 사용만 된다면 이런 존재 영역들도 중요한 지적 가치를 지닌 영역으로 될 수 있음을 밝혀내는 것이 여기서의 문제이다. 우선 심적 존 재부터 살펴본다 .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주어진 심적 존재에 분석의 방법을 적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듯하다 . 왜냐하면 심 적 존재는 무한히 다양하고 풍부한 것처럼 보여, 그 중 어떤 것도 다른 것과 같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심적 현상 의 흐름에는 같은 모양을 지닌 물결이란 하나도 없고 각각의 물결은 말하자면 무로부터 나와서 무로 되돌아가는 일회적이 고, 결코 반복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18 세기의 주된 심리학적 견해에 따르면, 이러한 심적 현상의 다양성, 이질 성, 유동성은 가상일 뿐이다 . 이 다양한 심적 현상을 좀 더 면 밀히 조사하면, 거기에도 역시 단단하고 불변적인 근본 요소가 찾아질 수 있다 . 과학의 임무란 직접적으로 보여지지 않는 이 요소들을 명확하고 분명하게 드러내 보이는 일이다. 이렇게 될 때, 어떤 심적 현상도, 이것이 아무리 다양하고 이질적이라 하 더라도, 근본 요소들로 환원되며, 무한히 변화하는 생성도 실 은 그 밑바닥 근거에는 불변하는 존재적 요소를 전제한다. 우 리가 심적 현상의 원천과 기원을 찾아 올라가면, 우리는 언제 나 이러한 단순한 요소들과 만나게 된다. 이런 신념을 품은 18 세기 심리학은 그의 위대한 선배인 로크를 뒤따르지만 또 로크 를 넘어선다. 로크는 심적 현상의 두 원천을 지적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로크에 의 하면 〈감각 sensa ti on 〉과 〈반성 re fl e xi on 〉은 각기 심적 체험의 환원 불가능한 두 형식이다. 그의 제자와 후 계자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 이원론을 극복하고 일원론적 인 심리학의 기초를 마련하고자 한다 . 버클리와 흄은 〈감각〉과

〈반성〉 대신에 〈지각p erce pti on 〉을 내세우고, 이 지각이야말로 외적 경험과 내적 경험을, 죽 자연의 자료와 우리 마음의 자료 를 모두 아우르는 말이라고 한다. 로크의 방법을 따르지만, 이 방법을 새로운 심적 사실에 적용시킨 콩디야크는, 바로 이런 점에서 자신이 로크보다 한발 앞선다고 생각한다. 로크의 분석 방법은 관념의 분석에서 끝나고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 로 크에 의하면 아무리 복잡한 관념이라도 그것은 감각과 반성의 재료에 의해 구성된 것이요, 이 재료들이 어떤 식으로 해서 복 잡한 여러 관념들을 만들어 내는가를 살펴 보는 것으로 족하 댜 콩디야크가 지적하듯이, 로크는 관념형성의 형식분석에만 몰두하고 다른 심적 현상에는 이 분석방법을 적용 시킬 줄 모 른다. 그래서 로크는 관찰, 비교, 구분, 결합, 욕구 및 의욕과 같은 심적 활동을 마치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의 단순 감각처럼 환원 불가능한 독자적 요소로 본다. 이렇게 되어 분 석 방법이 본래 지니고 있는 학문적 가치는 반감되고 만다 . 왜 냐하면 그만큼 환원 불가능한 영역들이 많아지고 이 영역들은 단지 그 독특한 형식으로 기술될 수 있을 뿐 더 이상 그 원천 으로부터 설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로크가 관념의 영역 에만 적용시킨 분석 방법은 마음의 모든 활동 영역에도 적용되 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또한 외견상 직접적 단순성으로 보이는 것들이 실은 가상이요, 오히려 과학적 분석의 대상이 되어야 함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이제 마음의 개별적 활동들은 결코 원 천적인 것이 아니고 오히려 복합적으로 생성된 것이다. 이러한 복합체의 구조와 본성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그것들의 생성 과 정을 조사해야 한다. 마음이 외부로부터 받아서 직접 지니고 있는 것은 단순한 감각 자료들 뿐인데, 마음은 어떻게 해서 이

것들로부터 이것들을 주의하고 비교하고 구별하고 분리하고 결 합하는 능력울 키워 내는가? 바로 이 문제가 콩디야크의 『감각 론 Traite d es Sensati on s, 의 과제 이 다. 여 기 서 이 제 분석 방법 은 자연과학에서 거둔 승리 못지 않은 새로운 또 하나의 승리를 얻게 된다. 이제 물질영역과 정신영역은 말하자면 공분모(公分 母)로 환원되며, 따라서 같은 요소로 구성되고 같은 법칙에 따 라서 형성된다 .4) 자연과 심적 현상 이외에 분석방법이 적용될 또 하나의 영역 이 있는 바, 우리는 이 영역의 존재를 단순한 소여로 취급하여 서는 안 되고 그 원천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렇게 함으 로써 우리는 또한 이 영역에서 이성적 법칙을 찾아낼 수 있다. 이 제 3 의 영역은 국가와 사회의 구조 내지 질서이다. 인간은 이 구조 속에서 태어나는 것이지, 이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이미 형성된 이 구조와 만나며 이 구조에 적응 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근세 사유의 힘이 눈을 떴을 때, 다른 두 영역과 마찬가지로 이 영역에서도 역시 단순한 수동적인 받 아들임의 자세에 의문이 제기되기 마련이다. 이제 〈깨어난 사 유〉는 말하자면 기존의 사회 구조 내지 질서를 법정에 고소하 고 그것의 정당성, 타당성, 진리성의 근거를 심문한다. 이러한 심문과정에서 사회적 존재도 자연과학의 탐구 대상인 물리적 존재와 같은 방식으로 다루어 진다. 무엇보다도 〈부분으로 분 해하는 작업〉이 시작된다. 국가의 전체 일반의지는 이제 개개 인의 의지를 모은 것에서 생겨난 것처럼 다루어진다. 이런 식 4) 전체 논의에 대해서는 콩디야크의 Tra ite desSensa tio ns 과 재판에 첨 부된 Extr a it rais o nne(George s Lyo n 판, Paris , 1921), 32 쪽 이 하를 참 고하라.

으로 볼 때 우리는 국가를 하나의 물체로 간주하는 꼴이요, 물 리적 세계에서 놀라운 성과를 얻어낸 분석적 방법이 국가라는 물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18 세기에 앞서 홉스가 이미 이 일 을 해낸다. 국가를 하나의 〈물체〉라고 보아야 한다는 홉스 정 치학의 근본 명제는 여기에서 그 의의가 명백히 드러난다. 그 리고 〈사유는 계산이요, 계산은 더하기와 빼기이다〉라는 홉스 의 사유관은 그대로 정치학적 사유에도 타당하다. 정치학적 사 유는 우선 개인 의지들을 묶고 있는 끈을 잘라서 개인의지 하 나하나를 전체의지에서 빼내고, 그런 다음 이 개인의지 하나하 나를 다시 더해서 전체의지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홉스는 〈시 민 상태 sta t u s ci v ili s 〉를 〈자연 상태 sta t u s na t ura li s 〉로 분해한다. 개인의지를 묶는 모든 끈이 잘려진 후에는 철저한 개인의지 사이의 대립 죽 〈만인 대 만인의 싸움〉만이 남는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싸움의 부정적인 면으로부터 국법의 긍정 적 내용이 무조건적인 타당성을 지니고서 나타난다. 이제 개인 의지 사이의 계약형식으로부터 국가의지가 나오게 된다. 국가 의지의 내용은 오직 계약이 무엇이냐에 달려 있고, 국가의지의 내용을 알려면 이 계약내용을 알면 족하고, 국가의지 내용의 정당성을 묻는다면 이 계약을 가리키면 족하다. 다시 말해서 계약은 국가의지 내용의 인식 근거요, 존재 근거가 된다. 이제 홉스의 자연론과 국가론을 결합하는 방법적 끈이 여기서 찾아 질 수 있다. 양자는 그의 논리적 근본사상을 각기 적용한 것 에 불과한 것이요, 방법적 끈이 되는 근본사상이란 〈인간이 어 떤 것을 참되게 이해하려면 그것의 근본 요소들을 찾아내고 이 요소로부터 그것을 다시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개념 형성, 죽 진정한 정의는 모두 이 근본 사상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진정한 정의는 〈인과적〉 정의일 수밖에 없다 . 철 학이란 이러한 인과적 정의의 총계이다. 철학이란 원인으로부 터 결과를 온전하게 인식하는 일이다. 18 세기 국가사회 이론은 물론 홉스 학설의 내용을 그대로 수 용하지는 않으나, 홉스의 방법적 형식은 강력한 영향을 끼친 다 . 18 세기의 정치사상도 계약 이론에 기초한다. 물론 계약론 의 근본 전제는 고대와 중세 사상으로부터 유래된다. 그러나 18 세기는 이 근본 전제를 근대 자연과학적 세계관의 특징적인 방법에 따라서 개조한다. 국가 사회 이론의 분야에서도 역시 분석-종합의 방법이 승리를 거둔다. 사회학은 물리학과 분석 심리학의 모형을 따른다. 『체계론』에서 콩디야크가 말하듯이, 사 회학적 방법의 요체는 사회를 부분들로 구성된 정교한 인위적 물체로 간주하는 것이다 . 이 물체의 어떤 부류도 특권을 행사 해서 전체의 균형과 조화를 깨뜨려서는 안 되고, 오히려 모든 부분적 이해 관심은 전체의 질서에 종속되어야 한다 .5) 이렇게 해서 사회학과 정치학의 문제는 일종의 정력학(靜力學, Sta t i k) 의 문제로 변형된다.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도 이러한 변형 울 최대 과제로 삼는다 . 몽테스키외의 의도는 단순히 여러 형 태의 정체(政體)를 예컨대 전제 정체, 입헌군주 정체 내지 공화 정체를 경험적으로 기술하고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이 여러 정체들을 구성하는 힘들을 찾아내고 이로부터 정체들을 구성해 내는 일이다. 이 힘들을 올바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 서 우리가 이 힘들을 사용하여 가능한 최대의 자유를 실현하는 정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 힘들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몽 테스키외가 보여주듯이, 최대의 자유가 가능하려면, 모든 개별 5) Condil lac , Trait e des Sys t e m es, i, Part . 2, Ch. 15.

적 힘들이 상호간에 서로를 견제하여야 한다. 〈권력 분립〉이라 는 몽테스키외의 유명한 학설도 이러한 그의 기본사상을 구체 적으로 전개시킨 것에 불과하다. 그것의 목적은 불완전한 국가 의 특징인 불안정한 균형을 안정된 균형으로 바꾸는 것이다. 더 나아가 어떤 힘도 다른 힘보다 더 우세하지 않도록 하기 위 해서 그리고 모든 힘들이 상호균형을 이루어 최대한의 가능한 자유를 얻도록 하기 위해서, 개별적인 힘들 사이에는 어떠한 끈이 있어야 하는가를 밝히려고 한다. 몽테스키외 국가론의 이 상온 따라서 〈화합된 정부〉의 이상(理想)이다. 전제 정체로 타 락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화합의 형식은 아주 현명하고 세심하 게 짜여져야 하며, 한 방향으로의 힘의 행세는 다른 방향에서 의 반대 힘을 직접 불러일으켜서 자동적으로 다시 균형이 이루 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해서 몽테스키외는 굉장히 다양하고 산만한 국가 형태들을 사상적으로 도식화해서 정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원리적인 정리와 정초가 몽테스키의 의 제일 목적이다. 『법의 정신』 서문에서 몽테스키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원리들을 수립하였다. 그리고 개별적 경우 들이 어떻게 해서, 마치 원리들 자체에 속해 있는 것처럼, 이 원리들에 잘 들어맞게 되는지를 알아 보았다 . 그리고 모든 국 가의 역사란 단지 원리에서 이끌려 나온 귀결임을 알았고, 모 돈 개별적인 법은 다른 법과 연관되거나 혹은 일반적인 법에 의존함을 알았다.〉 이리하여 이 분야에서 이성의 방법은 정확 히 자연과학과 심리학의 방법과 일치한다. 그것은 관찰된 사실 에서 출발하나 단순히 이 사실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개별적인 사실들은 서로 연관되어야 한다. 처음에는 사실들이 그저 함께 있을 뿐이지만, 이들을 세심히 조사하면 이들 사이의 상호연관

성이 발견된다. 그래서 단순한 집합의 형식은 체계의 형식으로 변형된다 물론 사실을 강제로 체계화시킬 수는 없다. 체계화 는 사실들 자체로부터 생겨야 한다 . 확실한 지식을 가능하게 해주는 원리를 우리는 각 분야에서 추구해 마지않는 바인데 , 이 원리는 인위적으로 선택된 사유의 출발점도 아니요, 강제적으 로 구체적 경험에 적용시켜 경험적 사실을 왜곡시키는 것도 아 니다 . 그것은 오히려 주어진 사실을 완전히 분석할 때 스스로 드러나는 일반적인 조건이다 . 그래서 사유의 길은, 물리학뿐만 아니라 심리학이나 정치학에 있어서도, 개체에서 보편으로 가 는 길이다. 이 방법이 가능하려면, 모든 개체는 그 자체 이미 보편적인 규칙에 의존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처음부터 보편적인 것이 개체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 댜 이제 18 세기의 원리 개념은 17 세기의 형이상학적인 위대한 체계 속에서 주장되고 있는 절대성을 배제한다. 그것은 상대적 타당성에 만족한다. 그것은 사유가 그때그때 도달한 종점에 불 과한 것이요, 따라서 사유는 그것을 극복해서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상대성의 관점에서 볼 때, 과학적 원리는 인식의 발전 상태 여하에 좌우된다. 그리하여 동일한 명제가 어떤 과 학에서는 원리로 보이지만, 다른 과학에서는 연역된 귀결이 될 수 있다 . 그래서 달랑베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과학 의 원리를 탐구할 때, 어떤 지점에서 멈추어야 하느냐 하는 문 제는 그 과학 자체의 본성에 따라 결정된다. 다시 말해서 그 과학이 대상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이럴 경우, 우리가 찾은 원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진짜 원리 에서 파생된 귀결에 불과할는지도 모르며, 그래서 우리가 출발 점으로 삼은 원리는 원리라는 이름을 지니기 보다는 귀결이라

는 이름을 지니는 게 합당할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귀결의 성격을 띤 것이 그 자체로 원리일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적 어도 우리의 지식 상태에서는 원리 노릇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요, 또 그렇게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6) 그렇다고 이러한 상대성이 회의주의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이성 의 착실한 진전에 어떠한 한계도 있을 수 없음을, 즉 이성이 도달한 그때그때의 종점은 새로운 출발점에 불과함을 나타낼 뿐이다. 이렇게 볼 때, 18 세기 사상과 17 세기 사상을 비교해 보면, 이 양자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없음이 밝혀진다. 18 세기 새로운 지식의 이상은 17 세기 논리학과 인식론의 싹, 특히 데카르트와 라이 프니츠 사상의 근본 싹으로부터 점 차 자라나온 것에 불과 하다. 사고방식의 차이는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 라 단지 강조점이 달라짐을 뜻할 뿐이다. 17 세기에서 18 세기로 건너 가면서, 보편에서 특수로, 원리에서 현상으로 강조점이 옮아갔다. 그러나 〈원리와 현상의 두 영역 사이에 대립과 모순 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전하고 순수한 상호 규정의 관 계가 있다〉는 기본 전제는 변함이 없다. (물론 원리적으로 전혀 다른 질문형식을 지니는 흄의 회의론은 여기서 제외된다. ) 〈이성 의 자신감〉은 어디서도 도전받지 않는다. 통일성에 대한 합리 주의적 요청은 이 시대 모든 사람의 마음울 지배한다. 통일성 의 개념과 과학의 개념은 상호의존하는 상관개념이다. 〈모든 과학은 그 전체에서 볼 때 인간 지성의 산물이요, 이 지성온 6) 달랑베르가 기고한 백과전서의 ‘'El ements de Sci en ce 항목 . 또한 달 랑베 르의 Elements de Phil o sop h ie 4 권 과 Melang es de Lit ter atu re, d'His tot r e et de Phtl os op h ie 4 권, 35 쪽 이 하를 참조하라.

언제나 하나요, 동일한 것이다. 지성은, 그것의 대상들이 아 무리 다양할지라도, 언제나 자기자신과 동일한 것이다.〉 달랑 베르의 이 말은 데카르트의 『정신지도의 규칙』의 ‘ 서두 문장을 재차 강조한 내용에 불과하다 . 17 세기의 내적 견고성은, 특히 프랑스 고전주의 문화 속에 들어있는 견고성은 바로 모든 영역 에로 확장되는 통일성에 대한 요청에 의존한다 . 이 요청은 과 학뿐만 아니라 종교, 정치, 문학에까지 뻗어 있다 . 〈하나의 왕, 하나의 법 률, 하나의 신 앙 un roi, une loi, une foi〉은 17 세 기의 표어이다. 18 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이러한 절대적 통일 성 사상은 점차 그 힘을 잃고 어느 정도 한계를 인정하게 된 댜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그 사상 자체의 핵심적 변화를 의미 하지 않는다 . 왜냐하면 통일화의 기능은 18 세기에도 여전히 이 성의 근본 역할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이런 통일화 없이는 사 실에 대한 합리적인 통제와 조절이 불가능하다. 하나의 다양을 인식한다는 것은 그 구성 요소들을 보편적 규칙에 따라 상호 연관짓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형태의 추론적 dis k ursiv 인식은 데카르트에 의하여 수학적 인식의 기본형식으로 확립되었다. 그에 의하면, 모든 수학적 계산은 결국 이미 알려진 양(量)과 미지의 양 사이의 비례적 관계를 결정짓는 일이다. 그리고 이 비례적 관계는, 기지의 것과 미지의 것이 하나의 공통된 것으 로 환원될 때, 엄밀하게 결정될 수 있다. 기지의 것과 미지의 것 양자는 모두 양으로 환원되어야 하고, 양으로서의 이 양자 는 수로 환원되어야 한다. 이러한 추론적인 지식 형태는 항상 환원의 성격을 지닌다. 그것은 복잡한 것을 단순한 것에로 환 원하며, 외견상 다양한 것들을 동일한 것에로 환원한다. 18 세 기 사상은 이 기본적 방법을 고수하고 이룰 점차 광범하게 확

대 적용하고자 한다. 이런 확대로 인하여 순수 수학적이던 〈 계 산〉 개념이 변질된다. 계산은 이제 단순히 수나 양에만 적용될 뿐만 아니라 성질들의 영역에까지 파급된다. 왜냐하면 성질들 도 비례적 관계로 환원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이것이 가능할 때, 우리는 이 비례적 관계의 일반법칙을 통하여 이 법칙이 적 용될 수 있는 전 영역울 명확하게 개관할 수 있다. 이제 〈계산 〉 의 개념과 과학 자체의 개념은 그 외연(外延)에 있어 동일하게 된다 다양한 것들을 기본적인 관계로 환원시킬 수 있을 때에 는 언제나 〈계산〉이 가능하다. ’ 「계산의 언어 La Lang u e des Calculs 」라는 논문에서 이러한 보편적인 과학적 개념을 최초로 명시한 콩디야크는 그의 심리학에서 이 개념을 성공적으로 사 용한 본보기를 보여주고자 한다. 데카르트적인 비물질적 영혼 개념을 지지하였던 콩디야크에게 있어서 수학적 방법을 직접 심적 현상에 적용한다는 것은 물론 불가능하다. 양의 개념을 직접 사용하려면, 대상이 부분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연장성 (延長性)으로 정의되는 물체는 부분으로 이루어져 양 개념의 직 접 사용이 가능하나, 비연장적(非延長的)인 따라서 불가분적(不 可分的)인 사유실체는 부분이 없으므로 양 개념을 직접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신체와 영혼 사이에 이러한 근본적 대립이 있 다 할지라도, 이것이 곧 분석적 인식기능의 한계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분석적 기능은, 이것이 지닌 순수 형식성 때 문에, 어떠한 내용적 차이도 전혀 도외시한다. 비록 심적 현상 이 물체처럼 그 연장성에서 부분으로 나누어질 수 없다 할지라 도, 그것은 관념적으로나마 그 구성요소로 분해될 수 있다. 이 렇게 하기 위해서는 심적 현상이 지니는 의견상의 다양성이 극 복되어야 한다 . 모든 심적 현상들이 하나의 공통된 근원으로부

터 나온 것임이 밝혀질 때, 심적 현상의 다양성은 극복될 수 있다. 콩디야크는 이를 증명하고자 그의 심리학에서 유명한 비 유적 설명을 도입한다 . 여기에 대리석으로 만든 인간상이 있다 고 하자. 오감(五感)의 성질들을 하나하나 이 대리석상에 집어 넣었다고 하자. 그러면 이 대리석상은 이것이 받은 감각 성질 들만을 가지고서 점차로 인간의 심적 현상의 풍부한 전 내용을 만들어 나아갈 수 있음을 콩디야크는 밝혀내고자 한다. 일련의 〈인상들〉과 이것들이 만들어지는 시간적 질서를 안다면, 우리 는 이로부터 복잡다단하고 미묘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모든 심 적 체험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심적 체험을 이렇게 만 들어낼 수 있다면, 이는 동시에 심적 체험을 구성요소로 환원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체험하는 모든 심적 실재는 가장 단순한 감각 지각 속에 들어 있는 기본적 성질들 의 재생 내지 변형에 불과하게 된다. 따라서 감각 지각이야말 로 죽은 대리석상과 살아 있는 인간을 구별짓는 유일한 기준이 댜 이 기준 이외에 다른 여타의 본질적 차이를 전제할 필요가 없다. 단순한 감각능력과 대조되는 것으로 일컫는 소위 〈고등 한 정신능력〉은 실상 감각 지각의 기본요소를 변형시킨 것에 불과하다 . 사유, 판단, 욕구, 의욕, 예술적인 창조력 내지 상 상력, 이 모두가 질적으로 볼 때 기본요소와 본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어떤 것이 아니다. 마음은 창조하는 것도 발명하는 것 도 아니다. 그것은 단지 재생하고 복잡하게 구성할 뿐이다. 그 러나 이 재생능력에 있어 마음은 거의 무한한 힘을 지닌다. 그 래서 마음은 가시적(可視的) 세계를 무한히 확대할 수 있고 공 간과 시간의 무한성을 타고 넘을 수 있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지어 [作] 낼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활동에서 마음이

실제로 관여하고 있는 것은 단지 마음 자신과 〈단순관념〉일 뿐 이다. 이 단순관념이야말로 마음이 만들어 놓은 모든 건축물의 굳건한 바탕이 되며 마음은 이 바탕으로부터 잠시도 떠날 수가 없다. 콩디야크는 모든 심적 실재를 단순한 감각지각의 변형으로 설명하거니와, 이런 시도는 엘베시우스 Helve ti us 의 『정신론 De l'Esp ,1 t』에서 계속된다. 이 책은 어떤 근원적인 사상을 새롭게 제시한 것이 아니라 단지 18 세기 사상의 기본 골자를 아주 명 료하게, 그러면서도 풍자적으로 과장하여 표현한다. 18 세기 사 고 방법의 방법론적 한계와 위험은 바로 이러한 엘베시우스의 과장 속에 잘 드러난다. 모든 심적 현상들이 과장되게 동일화 내지 평준화되고, 이에 따라 인간의식의 생생한 다양성과 풍요 성은 단지 하나의 가면에 불과하게 된다. 분석적 사유는, 심적 현상에 붙어 있는 이 가면을 벗겨냄으로써, 외견상의 다양성과 차이성이 제거된 뒤에 남는 동일성을 보여주려 한다. 심적 현 상에 있어서 형태 Ges t al t의 차이나 가치의 차이는 모두 환상으 로 간주된다. 심적 현상에는 더 이상 높은 것도 없고 낮은 것 도 없으며 위도 없고 아래도 없게 된다. 모든 것이 같은 평면 위에 있고 같은 가치를 지니게 된다. 엘베시우스는 특히 이 사 상을 윤리학에 적용한다. 관습상 일컬어지는 모든 인위적 차이 와 구별을 쓸어 없애려는 것이 그의 주된 의도이다. 전통적 윤 리학이 〈도덕 감정〉을 말하고, 또 인간 속에는 근원적인 〈동정 심〉이 있어서 감각적이고 이기적인 욕망울 제한한다고 말하지 만, 인간의 적나라한 감정과 행동을 볼 때, 이런 가정들이 얼 마나 엉터리인가를 보여주려는 것이 엘베시우스의 시도이다. 적나라한 실재를 편견 없이 그대로 관찰하는 사람이라면, 의견

상으로 보이는 저 이름 높은 이원론의 즉 존재와 당위의 이원 론의 어느 한 구석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그는 언제 어디서나 철저하게 일원론적으로 동일한 동기(충동)만을 보게 된다 이타심, 헌신, 자기희생 등으로 칭송되는 것들이 인간의 기본적 충동과 이름만 다를 뿐이지, 그 실재에서는 전혀 동일 하다 이 동일한 평면에서 위로 솟구쳐 오른 도덕적 위대함이 란 말 뿐이요, 가상에 지나지 않는다. 의지의 목표가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의지가 초자연적이고 초감성적인 목적을 안중 에 둔다 하더라도, 그것은 꺼풀을 벗겨 보면 언제나 이기심, 야 망 혹은 자만심의 좁은 울타리 안에 갇혀 있다. 인간사회의 교 육적 기능이 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기본적 충동을 억압해 없 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를 승화시키고 변장시키는 일 뿐이 다. 거꾸로 말해, 이런 일이 사회가 개인에게 기대하거나 요구 할 수 있는 전부가 된다. 이러한 사회적 기능이 인식될 때, 사 회가 개인에게 진정으로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승화 내지 변장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은 이론적인 세계에 대하여도 마찬가지다. 엘베시우스에 의하면, 윤리적 가치에 기 본적인 차이가 없듯이, 이론적 형식에 있어서도 근본적인 차이 가 없다. 모든 차이들은 감각으로 환원된다. 소위 판단과 인 식, 상상과 기억, 그리고 오성과 이성이라 일컫는 것들은 영혼 의 원천적이고 독자적인 능력이 아니다. 이것들도 변장에 불과 하다. 우리는 감각지각의 모습이 조금만 변형되더라도 이것을 초감각적인 것으로 생각하기가 일쑤요, 그래서 이것에다 이성 이니 오성이니 하는 변장된 이름을 갖다 붙인다. 이러한 변장 된 꺼풀을 벗겨내고, 그 본래 모습을 드러내는 비판은 이론적 인 분야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마음의 모든 조작들은 모두

〈판단함〉으로 환원될 수 있고, 판단함은 두 관념이 다르냐 같 으냐를 파악하는 일이다 . 그런데 같음과 다름의 인식은 모종의 직각적인 앎울 전제로 하는데, 이 앎은 감각적인 지각과 동일 한 일이댜 <‘ 손가락’ 이라고 일컫는 이 대상이 ‘발가락’ 이라고 일컫는 저 대상과는 다른 인상을 나에게 심어주고, ‘빨강’ 이라 고 일컫는 이 색깔이 ‘노랑’ 이라고 일컫는 저 색깔과는 다른 인상을 나의 눈에 심어 준다고 나는 판단하거나 혹은 지각한 다. 그러므로 나는 이러한 경우 판단함은 지각함이라고 결론을 맺는댜〉 7) 이제 윤리적인 가치의 건축물과 논리적 지식 등급은 모두 사라지게 된다. 이 두 가지 건축 구조는 무너져서 이제 땅바닥과 같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오직 이 땅바닥에서만 확 고부동한 기초를 발견하게 된다. 엘베시우스의 이런 견해를 계 몽철학으로 혹은 프랑스 백과전서학파 사상의 전형으로 간주하 는 버릇이 있는 바, 이는 잘못이다. 왜냐하면 엘베시우스에 대 한 가장 신랄한 비판이 바로 이 학파로부터 나오고 있기 때문 이댜 튀르고 Tur go t와 디드로 같은 일급 철학자들에게서 이 비 판은 유래된다. 그러나 콩디야크와 엘베시우스에서 나타난 방 법이 18 세기의 특징을 잘 드러내준다는 사실도 또한 부정할 수 없다-물론 이들의 사고 방식은 그 긍정적 업적과 내재적인 한계성을, 다시말해 그 승리와 패배를 미리부터 그 태에台)속에 잉태하고 있지만.

7) Helveti us , De !'Esprit, Paris, 1759, 8 쪽 .

2 지금까지 프랑스를 중심으로 분석적 정신의 발전과 관련된 18 세기 사상을 살펴 보았다. 프랑스는 본디 분석의 고향이다. 데카르트의 철학적 개혁은 바로 분석에 의존한다. 17 세기 중엽 이후 데카르트의 이 정신은 모든 지식 분야에 침투하여, 마침 내 그것은 철학, 문학, 도덕, 정치학, 사회학을 지배하였고, 더 나아가 신학에까지도 영향을 주어 새로운 형태의 신학을 잉태 시킨다. 그러나 라이프니츠 철학의 등장과 더불어 데카르트의 영향에 도전하는 새로운 지적인 힘이 대두된다. 라이프니츠는 당대 세계상의 내용을 바꾸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 고방식의 기본 노선을 개척하였다. 그러나 언뜻 보기에 라이프 니츠는 마치 데카르트가 하던 일을 계속해서 데카르트 철학에 잠재된 힘을 해방시켜 이를 온전하게 발전시키려는 듯이 보인 다. 라이프니츠의 수학적 업적인 미분학이 데카르트의 문제의 식에서 연유되듯이, 다시 말해 미분학이 데카르트 해석기하학 의 체계적 완성이듯이, 라이프니츠의 논리학도 이와 마찬가지 인 것처럼 보인다. 라이프니츠 논리학은 〈결합술(結合術, ars comb i na t o ri a) 〉에서 출발해서 이것을 사유의 보편 형식론으로 발전시키고자 한다. 사유의 보편 형식론의 발전은, 죽 〈보편학 sci en ti a gen eralis > 이념의 실현은 분석방법의 발전에서만 얻어 질 수 있다는 것이 라이프니츠의 확신이다. 이후 라이프니츠의 모든 논리적 연구는 이를 위한 것이다. 그의 목적은 사유의 알 파베트에 도달하는 것이요, 복합적인 모든 사유형식을 단순요 소로 그리고 궁극적이고 단순한 기본조작으로 분석하는 일이 댜 마치 수론(數論)에서 모든 수가 소수(素數)의 적 (積)으로

나타내질 수 있듯이, 이제 여기서는 통일성, 불변성, 단순성 내지 논리적 동일성이 사유의 최고 궁극 목표처럼 보인다 . 합 리적인 〈영원한〉 진리영역에 속하는 모든 참된 명제는 〈 가능적 으로 동일한 v irtu ell- i den ti sch 〉 명제요, 그리고 이것은 동일률과 모순율로 환원된다. 쿠튀라 L. Cou tu ra t (1868-1915) 처럼 우리는 라이프니츠 논리학 전체를 이런 관점에서 볼 수도 있다. 혹은 더 나아가 라이프니츠의 안식론, 자연철학 내지 형이상학을 이 런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런 해석이야말로 라이프니츠의 본래 의도와 일치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라이 프니츠는 거듭하여 말하기를, 그의 논리학과 수학과 형이상학 사이에는 하등의 툼도 없으며, 그의 전 철학은 수학의 가장 내 적인 핵심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고찰해 온 라이프니츠 해석의 이러한 기본 경향은, 이것이 비록 라이프니츠 사상체계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아주 긴요한 것이라 할지라도, 라이프니츠 사상 전체를 모두 다 설명해 내지는 못한다. 라이프니츠의 실체 개념의 독창적 의미를 파고들면 들수록, 이 개념이야말로 내용 적인 면은 물론 형식적인 면에 있어서까지 데카르트 철학과는 다른 새로운 사상적 전향(轉向)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임이 점점 뚜렷이 부각된다. 동일률에 기본한 논리학, 죽 다양을 통일 로, 변화를 불변으로, 다름을 같음으로 환원시키는 데서 지식 의 의의를 찾는 논리학, 이러한 논리학은 새로운 실체 개념의 내용과 의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 라이프니츠 형이상학 은 데카르트의 이원론적 형이상학이나 스피노자의 일원론적 형 이상학 대신 〈다원론적 우주 plu ralis ti s c hes Un i versum 〉를 설정 한다. 라이프니츠의 단자(單子, 모나드)는 단순히 수적(數的)인

단위로서의 일자(一者)가 아니라 역동적(力動的, d y nam i sch) 인 일자이다. 이러한 일자의 의미를 보충해 주는 상관개념은 개별 성이 아니라 무한성이다 . 각각의 모나드는 살아 있는 〈힘의 중 심점〉이다. 그리고 각 모나드의 무한한 충만성과 무한한 차이 성이 비로소 세계의 진정한 통일성을 형성한다. 모나드는 이것 이 활동하는 한에서만 있다. 이 활동은 〈끊임없이 새로운 상태 로 변해감 〉 이요 , 〈 끊임없이 자신을 자신으로부터 전개시켜 나 감 〉 이다. 〈 모나드의 본성은 자신으로부터 언제나 새로운 다양 한 것들을 생산해 내는 데 있다. >그 래서 모나드의 순간순간 Momen t은 각기 모나드의 과거 를 포함하고 또 미 래 를 잉 태 한 댜 그리고 이 순간의 어느 하나도 다른 순간과 같지 않으며, 어 느 하나의 순간도 정적(靜的)인 성질들의 합계로 해소되지 않는 다. 여기서 발견되는 모든 규정성은 오직 그 변화 속에서 파악 되어야 한다 . 이러한 규정성을 안다는 것은 우리가 그것의 개 별적 징표를 확정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규칙을 파악하는 것 이요, 변화의 법칙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을 끝까지 밀고 나아가면, 라이프니츠 세계관의 근본 동기가 단순히 논리 적 동일성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 데카르트와 스피노 자의 분석적 동일성 대신에 이제 지속성 Kon tin u it죠t의 원리가 등장한다 . 라이프니츠의 수학과 형이상학은 이 원리에 의거한다. 지속성은 〈 다양성 속의 통일성 Ein h eit in der V i elhe it〉이요, 〈생 성 속의 존재 Sein im Werden 〉요, 〈변화 속의 한결 같음 Beharr­ lich keit im Wandel 〉이다. 그것은 〈변화 속의 연관성〉이요, 따라 서 이러한 연관성은 다양성과 동시에 통일성을 근본적으로 요 청한다. 이제 보편과 특수의 관계는 새로운 관점에서 보여진 다. 물론 라이프니츠는 보편의 논리적 우선권을 주장하는 듯이

보인다. 모든 인식의 궁극 목표는 관념들 사이의 즉 주개념과 빈개념 사이의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영원한 진리〉이다. 사실적 죽 우연적 진리는 이러한 논리적 이상에 도 달할 수 없다. 사실적 진리는, 우리가 이것을 순수 합리적인 규정들로 환원시키면 시킬수록, 점점 더 명석하고 판명해진다. 사실적 진리를 합리적 규정으로 완전히 해소시키려는 이상온 오직 신에게만 가능할 뿐이지 인간에게는 불가능하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상은 사실적 진리가 추구하고 따라야 할 규범이 된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볼 때, 즉 라이프니츠의 논리학과 인식론의 근본 견해에서 볼 때, 보편과 특수의 관계 는 단순한 포섭의 관계가 아니다. 어떤 것을 다른 것에 종속시 키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해서 어떤 것이 다른 것 속에 터(근거)를 닦아 이것 속에 포함되는가를 아는 것도 문제 이다. 따라서 동일률 이외에 이와 똑같이 중요한 진리규범으로 서 〈충족 이유율 P rinzip des zureic h enden Grundes 〉이 있어야 하 며, 이는 라이프니츠에 따르면 모든 사실적 진리들의 전제가 된다. 수학이 동일률에 의거하듯이, 물리학은 충족 이유율에 근거한다. 물리학은 순수개념적 관계 설정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관념들의 일치와 불일치로 해소되지 않는다 . 오히려 그 것은 관찰 즉 감각적 경험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단순히 관찰한 것들을 나열하고 이 나열된 것들을 고찰하는 것 만으로는 만족되지 못한다. 물리학은 이런 단순한 모음 대신에 체계를 요구한다. 체계에 도달하려면, 느슨하고 헝클어진 사실 들 간의 매듭을 단단히 조여 붙잡아 매어서, 이 매듭이 원인과 결과의 매듭이 되게끔 하여야 한다. 이렇게 해서 공간적으로 〈곁에 있음〉과 〈시간적으로 잇달아 있음〉은 비로소 진정한 〈연

관 Konnex 〉으로 된다. 그리고 이 연관의 모든 가지는 다른 가 지를 확고한 규칙에 따라 규정하고 조건짓는다. 그래서 우주의 어떤 하나의 개별적 상태가 완전히 인식되면, 이것으로부터 우 주현상의 전체가 알려질 수 있게 된다. 여기서 라이프니츠의 이런 사상을 자세히 논하지는 않겠다. 단지 이 사상의 근본적 구조만을 분명히 해두자 . 이 새로운 사 상에 입각할 때, 전체의 개념은 데카르트 철학과는 다른 보다 깊은 의미를 지닌다. 세계의 전체는 이제 부분들의 합계로 환 원되지 않는다. 이 새로운 전체는 기계론적인 전체가 아니라 유기적인 전체이다. 부분이 먼저 있고 이 부분들을 모두 합치 면 전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전체가 부분에 선행(先行)하 며, 부분의 본성과 본질은 전체에 의하여 비로소 가능해진다. 이런 점에서 모나드와 원자의 차이가 뚜렷해 진다 . 사물을 궁 극적인 부분으로 나눌 때 끝까지 남아 있는 것이 원자라는 의 미에서, 원자는 사물의 근본실체이다. 따라서 일자로서의 원자 는 다수성(多數性)을 배제하며, 분해의 모든 노력에 대항하여 자신의 불가분성을 유지한다. 그러나 모나드는 이러한 배제와 대립을 모른다. 모나드에 있어서는 일자(一者)냐 다수(多數)냐 하는 양자택일이 없다. 오히려 그 반대로 이 양자의 내적 상호 교환이 있고 필연적인 상관관계가 있다. 모나드는 일자도 아니 요 다수도 아니다. 그것은 〈다(多)를 일(一) 속에서 표현한 것 multo rum in uno ex p ress i o 〉이다. 그것은 부분이 모여서 만들어 진 전체가 아니라 순간순간 각기 다른 다양한 규정들로 자신을 드러내는 전체이다. 순간순간 모나드가 지니는 특수성은 계속 적인 특수화 작업의 결과이다. 그리고 이런 모습의 특수화가 가능하려면, 장차 전개될 모나드의 전체 내용이 모나드 자체

속에 이미 결정된 상태로 포함되어야 한다. 모나드의 본성과 본질은 잇따라 나타나는 규정들 각각에 나누어져서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규정들에 조금도 손상됨이 없이 온전하게 그대로 유지되어 나타난다 . 라이프니츠는 이런 기본생각을 힘 Kra ft이라는 전문적인 술어로 표시한다. 라이프니츠에게 있어서 〈힘〉의 현재 상태란 미래의 다음 상태를 언제나 추구해 나가 며, 미래의 다음 상태를 자신속에 품고 있는 것이다 . 모나드는 집합적 전체가 아니라 역동적 전체이다 . 이 역동적 전체는, 무 한히 풍부한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 있지만, 이러한 힘의 무한 하고 특수한 의화(外化)현상들 Kra ft -Au fs erun g en 에서 〈살아있는 동일한 힘의 중심점 Kra ft -Zen t rum 〉을 언제나 유지하고 있다. 존재개념이 아니라 순수 활동개념에 의거한 이런 생각은 개체 문제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분석적 논리학 즉 동일성 논 리학의 한계 내에서 본다면, 이 문제는 개체를 보편적 개념에 환원시킴으로써 간단히 해결된다 . 보편과 관련시킴으로써 개체 는 비로소 〈사유〉될 수 있으며 〈명석 판명하게〉 인식될 수 있 다. 보편과 관련시킴이 없이 개체를 단지 감각적 지각이 보여 주는 대로 본다면, 모든 개체는 〈혼란된〉 관념에 불과하다. 감 각지각의 애매한 전체 인상에서 개체가 있다는 것은 확실히 말 할 수 있으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확실히 말할 수 없다 . 이 무 엇에 대한 인식은 보편개념과 관련된 인식이다. 이런 인식은 유개념에 대한 통찰 혹은 보편적 징표를 확정하는 정의로부터 얻어질 수 있다. 따라서 개체는 보편개념에 포함되거나 포섭될 때에 비로소 개념적으로 인식된다. 라이프니츠의 개념론은 때 때로 이러한 전통적 도식과 궤도를 같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그의 철학온 이 도식을 결정적으로 비판하고 암암리에 그것

을 개조한다. 왜냐하면 라이프니츠 철학에 있어서 개체는 양도 할 수 없는 고유성을 획득하기 때문이다. 개체는 단지 보편의 한 예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 자체 본질적인 것, 그 자체 가치 있는 것을 지닌다. 라이프니츠 체계 내에서 모든 개체적 실체는 단지 우주의 단편 내지 파편에 그치는 것 이 아니라 어떤 하나의 〈 관점 〉 에서 본 우주 그 자체이다. 이러 한 독특한 관점들을 모두 모아 놓을 때 비로소 존재의 진리가 나온다. 이러한 진리는 소위 〈 객관적 〉 진리 즉 여러 가지의 단 자론적 세계상들이 공통적으로 함께 지니고 있는 〈객관적〉 사 실의 진리와는 다른 것이다 . 오히려 그러한 진리는, 비록 모든 실체가 자신을 고수하고 자신의 독특한 법칙에 따라 표상들을 전개하지만, 또한 이러한 표상의 창조 작업에서 모든 실체가 다른 모든 실체들과 조화롭게 관련되는 진리이다. 따라서 라이 프니츠 철학의 중심사상은 개체의 개념에 있는 것도 아니요, 보 편의 개념에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 양개념은 서로 상대 방을 통해서만 해명될 수 있다. 이 양개념은 서로 상대방을 반 영하며, 이러한 반영 속에서 라이프니츠 철학의 출발점이자 목 표점인 조화개념이 생긴다. 「신비적인 참된 신학에 관하여」라 는 논문에서 라이프니츠는 말하기를, 우리 자신의 존재 속에 신적 존재의 씨앗이, 신적 존재의 발자국이, 신적 존재의 상징 이, 신적 존재를 참되게 닮은 것이 들어 있다고 한다 . 이것의 의미는, 개별적인 모든 힘들을 평준화하고 동일화하고 소멸시 키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이 힘들을 최고도로 발전시킬 때, 비로소 존재의 진리에 도달하고, 최고도의 조화예 이르 고, 가장 강도 깊은 실재의 충만성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사상에 의해 새로운 지적 방향전환이 요청된다. 개별

적인 구체적 결과들의 변화 뿐만 아니라 모든 철학의 이념적인 중심의 이전(移轉)이 요청된다. 물론 처음에는 이러한 내적 변화가 18 세기 철학 전반에 직접 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하였다. 라이프니츠의 근본사상 전체가 온전하게 18 세기에 알려지지 못하였다. 라이프니츠의 철학은 일단 불완전한 상태로 죽 〈세속화된〉 상태로 18 세기에 도입된 댜 왜냐하면 처음에 소개된 라이프니츠의 몇 안 되는 저술, 예 컨대 『모나드론』과 『신정론(神正論) Tbeod i ze e,』 같은 책들은 그 의 근본사상을 개념적으로 엄격히 다룬 것들이 아니라 이룰 일 반 사람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통속화하고 간략히 번안한 것들 이기 때문이다. 라이프니츠 인식론의 주저인 『신오성론(新悟性 論) Nouveaux Essais sur l'Ente n dement Huma i~』은 1765 년 라스 페 Ras p e 가 하노버에서 출판하기 전까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 다. 그러나 이때 죽 1765 년 경에는 18 세기 사상 대부분이 거의 완전하게 형성되어 버린 때이다. 이 이전까지 라이프니츠 사상 의 영향은 간접적으로 다시 말해서 볼프에 의해 변형된 라이프 니츠 철학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볼프의 논리학과 방법론은 라 이프니츠의 다양한 사상의 씨앗들을 가능한 한 단순하고 형식 적인 도식으로 환원시킨 것이다. 조화의 원리, 지속의 원리, 충 족 이유율의 원리는 이 도식적 체계 내에 각각 자리를 차지하 고 있으나, 원래의 근원적이고 독자적인 의미는 상당히 제한되 고, 이제 단순히 모순율에서 이끌려 나온 귀결에 불과하게 된 댜 이렇게 해서 18 세기에 알려진 라이프니츠 철학의 개념은 매우 제한되고 변형된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어떤 매개체를 거쳐가는 동안에 상당히 그 본래 모습이 손상되었다 . 그러나 점차 이런 파손을 복구하고 제한을 걷어치우려는 사상적 노력

이 나타난다. 독일에서 볼 때, 볼프의 가장 중요한 제자인 바 움가르텐 A. Baum g a rt en 이 이 런 작업 에서 그 지 적 인 독창성 을 발휘한다. 그는 자신의 형이상학과 미학에서 지금까지 파묻혀 있었던 라이프니츠 철학의 중심사상으로 다가간다. 독일에서 미학과 역사철학의 발전은 점차 개체문제의 기본 개념을 부각 시켜 갔는데, 이는 라이프니츠의 단자론과 〈예정 조화의 체계〉 에서 근원적으로 다루어진 것과 같은 문제이다. 아직도 데카르 트의 영향이 지배하던 18 세기 프랑스 문화권 내에서도 라이프 니츠의 근본 개념과 문제가 점차로 부각된다. 그러나 프랑스의 이런 양상은 미학을 통해서라기 보다도――왜냐하면 미학은 17 세기 고전적 이론의 궤도를 벗어나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에 ―오히려 자연철학 내지 기술적(記述的) 자연과학을 통해서 ―왜냐하면 이런 학문들에서 17 세기의 엄격한 형식개념이 점 차 약화되고 파괴되어 갔기 때문에―一·이루어진다. 이제 라이 프니츠의 발전 사상이 점차 강조되어 갔고, 이로 말미암아 고 정되고 불변적인 종개념의 사상에 지배당하였던 18 세기 자연체 계 사상은 그 내부에서 스스로 변모한다. 이런 변화의 양상은 모페 르튀 이 Mau p e rt u i s 가 라이 프니 츠 역 학의 기 본사상을 다시 수용해서 지속성의 원리를 옹호하고 설명하려는 시도로부터 시 작하여, 디드로의 유기체의 물리학과 형이상학에 이르기까지, 그 리 고 뷔 퐁 Bu ffo n 이 그의 『박물학 Hi stoi r e na t urell e,』 에 서 포괄적 이고 기술적(記述的)인 자연론의 원리를 제시할 때까지, 꾸준히 발전하여 갔다. 『캉디 드 Candi d e,』에서 볼테 르는 라이 프니 츠의 『신정론(神正論)』을 풍자적으로 비난한다. 그리고 뉴턴 철학의 요소에 관한 논문에서 라이프니츠의 개념들이야말로 자연과학 발전의 방해요소라고 비판한다. 〈라이프니츠의 충족 이유율, 지

속성, 충만성, 모나드 등등의 개념들은 모든 혼란의 온상이었 거니와, 이 온상으로부터 볼프는 15 권의 책들을 써냈으니, 이 로 말미암아 독일사람은 이전보다 더 많이 읽으나 묘하게도 이 전보다 더 적게 이해한다〉라고 볼테르는 1741 년에 쓰고 있다 .8) 그러나 볼테르가 언제나 이처럼 비난만 한 것은 아니다. 『루이 14 시대』라는 저술에서 17 세기의 정신적 구조의 전체 윤곽을 제 시하고 이 구조를 그 기본적 힘들에 입각하여 이해하려 했을 때, 그는 결코 라이프니츠를 간과할 수 없었다. 여기서 그는 라이프니츠가 이룩한 전체 업적의 보편적 의미를 아무 조건 없 이 그대로 인정하고 있다. 라이프니츠에 대한 평가의 이러한 변화는 볼테르의 다음 세대 즉 프랑스 백과전서파들에서 더욱 더 분명해진다. 달랑베르는, 비록 라이프니츠 형이상학의 원리 를 반대하지만, 라이프니츠의 수학적이고 철학적인 천재성을 극구 칭찬한다. 백과사전 중 「라이프니츠」 항목을 쓴 디드로는 이 철학자를 열광적으로 칭찬한다. 희랍이 플라톤, 아리스토텔 레스 및 아르키메데스를 통해서 얻은 만큼의 명예와 영광을 독 일은 라이프니츠 한 사람을 통해서 얻었다고 퐁트넬과 디드로 는 말하고 있다. 물론 라이프니츠 개인에 대한 이러한 찬사로 부터 라이프니츠 철학원리의 보다 깊은 이해에 이르기까지는 아직도 상당한 거리가 있다 . 그렇지만, 우리가 18 세기의 정신 적인 구조 전체를 파악하고, 이것의 생성과정을 이해하려고 한 다면, 우리는 두 가지 사상의 줄기를 명확히 구별해야만 한다. 고전적인 데카르트의 분석 형식과 라이프니츠에게서 기원하는 새로운 철학적 종합형식이 18 세기 사상에 있어 서로 함께 작용 8) 1741 년 5 월 5 일자로 메랑 Ma i ran 과 1741 년 8 월 10 일자로 모페르튀이 에게 보낸 볼테르의 편지롤 참조.

하고 서로 융합하고 있다 . 〈명석 판명한 개념 〉 의 논리학에서 〈근원〉과 〈개체성〉의 논리학으로, 단순한 기하학에서 역학 내 지 역학적인 자연철학으로, 기계론에서 유기론으로, 동일성의 원리에서 무한성, 지속성 내지 조화의 원리로 나아간다. 18 세 기 사상이 성취하여야 할 저 위대한 사상적 과제는 바로 이러 한 근본적인 대립속에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18 세기는 인식 론, 자연철학, 심리학, 사회정치론, 종교철학 그리고 미학에서 이 과제를 해결하고자 다각적으로 시도한다.

제 2 장 계몽 철학의 사유에서 자연과 자연의 인식 l 근대 세계상의 형성에 이바지한 자연과학의 중요성을 알아보 려 할 때, 자연과학이 이룩한 개별적 내용의 특성들만을 고찰 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내용들은 거의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하게 많다. 그러나 이 내용들을 다 열거한다고 하더라 도, 자연과학에서 싹튼 새로운 형성력은 온전히 설명되지 못한 다. 자연과학의 결정적 역할은 자연과학이 인간에게 알려준 새 로운 대상의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학을 통해서 인 간정신이 새롭게 보여준 기능에 있다 . 자연과학은 대상 세계의 인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인간정신으로 하여 금 정신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해주는 계기요, 매개체 역 할을 한다. 이로써 단순한 인식내용의 확대와 중가보다 더 중 요하고 더 의의 깊은 하나의 새로운 사유과정이 시작된다. 인 식재료는 이미 16 • 17 세기에도 거의 무한하게 증가되어 가는 듯이 보인다. 고대와 중세의 확고한 세계관의 형식은 이미 허 물어졌다. 세계는 이제 질서가 잘 잡혀 짜여진 하나의 단일한

〈우주 Kosmos 〉 가 아니댜 공간과 시간은 무한히 뻗어 나간다 .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고대 우주론을 통해서는 공간과 시 간이 더 이상 설명될 수 없다 . 이것들은 유한한 척도와 유한한 수학을 통해서 해명될 수 없다 . 하나의 세계, 하나의 존재 대 신에 이제 생성의 자궁으로부터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나는 무 한한 세계들이 나타나거니와, 이 세계들은 각각 우주의 무궁한 생명의 생성과정에서 개별적이고 일시적인 하나의 단면만을 보 여줄 뿐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변화는 이러한 세계상의 무한한 확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확대 속에서 그리고 이 확대를 통해서 정신이 자신 속에 새로운 힘을 깨닫게 되었다는 점이 다. 만약 정신이 이런 외연적 성장을 통해서 동시에 새로운 내 적 성장을 즉 자기자신으로의 새로운 집중을 하지 못하였다 면, 모든 의연적 성장 그 자체도 결실을 맺지 못할 뿐만 아니 라, 마침내 정신을 무력화시키고 말았을 것이다. 이러한 내적 성장으로 말미암아 정신은 이제 그 참된 본성을 알게 된다. 정 신의 최고의 힘과 가장 심오한 진리는 무한한 것으로 나아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무한한 것에 대립하여 자신을 정립하 고, 더욱이 그 자신의 순수한 통일성 속에서 이 무한한 존재들 을 감당해 낼 수 있음을 보여준 데 있다 . 이미 근세 초기에 브 루노가 자아와 세계의 관계를 즉 주관과 객관의 관계를 이런 식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무한한 생성과정은 즉 우리 눈앞에 전개되는 위대한 세계의 모습은 자아갸 오직 자신 속에서만 찾아낼 수 있는 이성의 심오한 의미를 보증해 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성이란 바로 우리가 이 무한한 것에 접근 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이성을 통하여 무한자 의 범위를 한정할 수 없지만, 이 무한자를 관통하고 있는 법칙

을 인식할 수는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성은 무한자에게 척도 와 한계를 부여한다. 사유 속에서 발견되고 규정되는 우주의 법칙성은 직관적 경험에서 보여지는 우주의 무한성과 서로 배 치되는 모순 개념이 아니라 서로 의미를 보충해 완전하게 하는 상관개념 Korrela t이댜 정신사적으로 볼 때, 새로운 자연개념은 이렇게 해서 서로 대립되는 두 가지 힘의 상호작용에 의존한 다. 하나는 개체, 특수, 사실로의 충동이고 또 하나는 보편으 로의 충동이다. 다시 말해서 사물들에로 향한 충동과 개별적인 것을 넘어서서 이들을 참되게 개괄하고 조망하려는 충동이다. 개별적인 것에 대한 감각의 욕구와 즐거움은, 주어진 소여로부 터 벗어나 가능성의 나라로 자유롭게 비상하려는 정신의 힘과 서로 상보한다. 르네상스 이래 점점 뚜렷해진 근대의 자연개념 은, 죽 17 세기의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의 위대한 체 계 속에서 그 철학적 정당성이 추구된 근대 자연개념은 이제 감성과 오성 간의, 경험과 사유 간의, 감성계와 예지계 간의 새로운 관계를 통해서 그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다. 자연인식 방법론의 이러한 변화는 동시에 존재론의 결정적 변화를 불러온다. 다시 말해 그것은 지금까지 존재질서에 사용 되던 척도를 변화시킨다. 중세 사유의 과제는, 존재의 체계적 구조를 추적하고 이를 명료하게 서술하는 것이다. 스콜라 철학 에 의해 확정된 중세의 종교적 체계에 있어서, 모든 실재는 각 기 자기의 확고한 자리를 지닌다. 그리고 이 자리가 최고의 원 인자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느냐에 따라서 그것의 가치가 결 정된다 . 이에 대한 하등의 의심도 있을 수 없으며, 있어서도 안 된다. 여기서 사유란 기존의 불변적인 존재 질서 속에 편안 히 안주해 있기 마련이다. 신, 영혼, 세계가 존재의 커다란 축

을 이룬다. 이 축에 따라 지식의 체계도 성립한다. 자연의 인 식도 이 체계 안에 있다. 그것은 처음부터 존재의 일정한 권역 내에 머무른다. 이 영역을 넘어서게 되면, 지금까지 밝게 비 쳐주던 빛을 잃어 어둠에 빠지게 된다. 〈자연적〉 인식은 〈피조 물〉인 인간의 인식과 일치한다. 그것은 유한한 의존적 존재인 인간에게 가능한 지식이다. 따라서 이러한 인식은 감각적으로 유한한 대상에만 관련된다. 그것은 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나 제한된 지식이다. 물론 중세의 사유에서 자연적 인식의 한계는 물질적 존재의 한계와 일치하지 않는다. 물질세계에 대한 자연 적 인식이 있을 뿐만 아니라 법, 국가, 심지어 종교에 대한 자 연적 인식도 있다. 자연적 인식의 범위는 대상에 의해 결정되 는 것이 아니라 인식의 원천에 의해 결정된다. 어떤 내용을 다 루든 간에 오직 인간 이성을 통해서만 알려진 지식은 〈자연적〉 이다. 따라서 여기서의 〈자연〉은 일정한 대상영역을 가리킨다 기 보다는 오히려 실재 인식의 한 지평을 의미한다. 자연의 빛 lumen natu r ale 속에 있는 모든 것이, 단지 자연적 인식능력에 의해서 알려질 수 있는 모든 것이 자연에 속한다. 이러한 의미 에서 〈자연의 나라 Re i ch der Na tu r 〉는 〈은총의 나라 Re ic h der Gnade 〉에 대립된다 자연의 나라는 감각지각과 이것을 결합하 는 논리적 판단 내지 추리과정을 죽 추론적 오성 사용의 과정 울 통하여 알려지 는 나라이 고, 은총의 나라는 계 시 Of fen barung 의 힘에 의해서만 알려질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신앙과 지식 간에, 계시와 이성 간에 대립을 문제삼을 필요가 없다. 오히려 스콜라 철학 절정기의 모든 위대한 체계들은 이 양자를 화해시 키고, 내용에 따라 양자를 조화시키는 것을 그들의 근본과제로 삼는다. 은총의 나라는 자연의 나라를 부정하지 않는다. 은총

의 나라가 자연의 나라보다 위에 놓여 있으나, 자연의 나라를 경멸하지 않는다. 〈은총은 자연을 폐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완 성시킨다.〉 자연의 완성은 자연 자체 속에서는 찾아질 수 없고 언제나 자연 저편에서 찾아져야 한다. 과학, 도덕, 법, 국 가, 이 모두는 각기 자신의 기초 위에서 독자적으로 세워질 수 없댜 이들을 참되게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언제나 초(超)자연 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자연의 빛〉은 그 자체로 본 래적 진리를 지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본디 파손 되고 어두운 것이요, 그 자신 스스로는 이 어두움을 벗어날 수 없다. 중세의 사유에는 이론적 영역이나 실천적 영역에서 신법 (神法)과 나란히 비교적 독자적인 자연법의 권역 즉 이성에 의 해 파악되고 지배되는 권역이 있다. 그러나 언제나 〈자연법 lex na tu ra li s 〉은 〈신법 lex d i v in a 〉의 예비단계요 출발점에 불과하다. 이 신법만이 원죄로 인해서 상실된 근원인식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다. 이성은 계시의 시녀이다. 이성은 계시를 향하고 있으 며 계시를 도와 그 바탕을 마련한다. 16, 17 세기 신교의 신학에서도 여전히 스스럼 없이 주장된 스콜라 철학의 이러한 견해를 르네상스의 자연철학은 두 가지 관점에서 공격한다.!) 르내상스 자연철학의 근본방향과 원리는 자연의 참된 본질이 피조물의 영역 즉 〈소산적 자연 natu r a nat- ura t a 〉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행위 영역 죽 〈능산적 자연 natu r a na tu rans 〉에 있다는 것이다. 자연은 이제 단순한 피조물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근원적인 신의 본질에 참여한다. 왜냐 하면 자연 자체 속에 신의 활동력이 생생하게 스며들어 있기 1) 이에 관해 자세한 것은 Ernst Troeltsc h, Vemunft und Q./Jen bamng bei G ebard undMelancbto n , Gott inge n, 1891 을 보라 .

때문이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이원론은 이렇게 해서 지양된다 . 자연은 단순히 피조된 결과로서 이 결과를 일으킨 운동의 원인 자인 신에 대립해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은 오히려 내적 운동 원리요, 근원적인 형성원리이다 . 스스로 자기를 형성하고 전개 시키는 이 능력이야말로 자연 속에 들어 있는 신의 징표이다. 신은 이제 외부로부터 와서 이질적인 질료를 강제로 움직이게 하는 운동원인이 아니다. 신은 오히려 그 자체 자연의 진행과 정 속에 들어가 있으며, 따라서 자연속에서 직접적으로 나타나 있댜 이러한 〈나타나 있음 Ge g enwa rt 〉 이 바로 신에 어울리고 합당한 것이다. 〈신은 …… 외적인 지성이 아니라 운동의 내적 원리가 됨이 더 바람직하다. 그래서 신의 품 속에 사는 모든 것이 신의 본성을, 신의 나타나 있음을, 신의 영혼을 드러낸 댜〉 브루노의 이러한 말이 자연개념의 근본적 변혁을 나타낸 다. 이제 자연은 신의 영역으로 고양되고, 또 다른 한편으로 자연은 개별적, 독자적, 개체적 대상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작 용의 중심점으로서 개별 사물들이 지니는 각각의 고유한 힘 은, 존재영역 전체에서 그 사물이 차지하는 고유한 가치를 결 정한다. 이제 〈자연〉이라는 말 속에는 이 모든 것들이 다 포함 된다. 자연이라는 말은 〈모든 부분들이 생명적이고 활동적이며 포괄적인 하나의 전체속으로 편입됨〉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편입됨은 단순히 예속됨과 다르다. 왜냐하면 부분은 전체 속에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전체에 대립하여 자기자신을 주장함 으로써 그 자신의 독자성과 필연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개체들 이 따라야 할 법칙은 낯선 입법자가 만들어 강제로 부여한 것 이 아니다. 법칙은 개체들의 고유한 본질에 근거해 있으며 이 본질에 의해서만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결론

과 더불어 두번째의 중요한 변화양상이 시작된다 . 이제 르네상 스의 역학적 dy na mi sc h 자연철학이 수학적인 자연과학으로 암 암리에 변화하고 있다. 왜냐하면 수학적 자연과학온 전적으로 법칙개념에 의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이전에도 법칙개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법칙개념은 이전보다 더 명확하고 엄밀한 뜻을 지닌다. 이제 사물의 본성을 이루는 작 용법칙을 어렴풋이 예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 법칙 을 정확히 인식하고 명확한 개념으로 표현해 내야 한다. 감 정, 감각 혹은 상상력은 이런 요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이 요구를 충족시키려면, 지금까지 전혀 시도되지 못한 새로운 방 식으로 개체와 전체 사이의, 〈현상〉과 〈이념〉 사이의 연관을 찾아내야 한다 . 감각적 관찰과 정확한 계량을 연결시켜야 한 다. 새로운 자연이론은 이 두 요소의 연결에서 성장한다 . 그런 데 케플러와 갈릴레이의 저작 속에 들어 있는 이 새로운 자연 이론은 또한 아직도 강한 종교적 충동으로 물들어 있고, 또 이 충동에 의해 발전된다. 이 이론의 목표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법칙성에서 신의 흔적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러한 종교적 근본성향 때문에, 이 이론은 전통적인 신앙형식과 점차 날카롭게 대립한다. 근대 수학적 자연과학의 출현에 대한 교회의 투쟁은 이러한 관점에서만 비로소 온전히 이해될 수 있 댜 교회가 맞서 싸운 대상온 개별적안 탐구 결실들이 아니다. 이러한 결실들과 교회의 가르침 내용은 서로 화해가 가능하다. 갈릴레이 자신이 오랫동안 이러한 화해의 가능성을 믿고 이를 위해 성실히 노력하였다. 그러나 갈릴레이가 깨닫지 못한 비극 적인 오해가 있는 바, 그가 화해시키고자 한 두 대립요소의 진 상을 잘못 봄으로써 자신이 이룩한 혁신적인 방법론적 의의를

스스로 과소 평가한다. 다시 말해서 그는 이 대립의 근본적 뿌 리를 간과하고 단지 이 뿌리에서 자라나온 간접적인 결과들만 을 화해 조정시킨다. 교회가 실제로 반대한 것은 새로운 우주 론이 아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단순한 수학적 〈가설〉로서의 코 페르니쿠스적 체계를 이전의 프톨레미적 체계와 마찬가지로 수 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교회 체계의 근본을 위협해서 더 이상 교회를 참을 수 없게 만든 것은 갈릴레이가 알려준 새로운 진리 개념이다 .2 ) 이제 계시의 진리와 나란히 독자적이고 근원적인 자 연의 진리가 등장한다. 이 진리는 〈신의 말씀 속에〉가 아니라 〈신의 작품 속에〉 주어져 있다. 이 진리는 성경이나 전통의 권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 눈 앞에 나타나 있다. 그 렇다고 모든 사람이 이 진리를 읽을 줄 아는 것은 아니다 . 이 진리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이 진리가 표현된 자연의 문자를 잘 파악해서 자연이라는 교과서를 해독할 줄 아는 사람이다. 자연의 진리는 언어로 표현될 수 없다.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는 수학적 언어이다. 수학적 언어에서 자연은 자기 자신을 하등의 결함 없이 완벽하고 정확하게 드러낸다. 언어에 의한 계시는 이러한 명료성과 정확성을 얻지 못한다. 왜냐하면 언어 자체가 다의적이고 애매함으로 여러 가지 해석의 가능성 을 지니기 때문이다. 언어의 파악과 해석은 인간의 일이요, 따 라서 단편적일 수밖에 없다. 반면에 자연 속에는 우주의 모든 계획이 완벽한 통일성을 지니고 우리 앞에 나타난다_이 모 든 계획을 깨달을 인간의 정신을 고대하면서. 18 세기의 판단에 의하면, 이러한 정신이 곧 나타난다. 갈릴 2) 이것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Cassire r , Erkenntn i s prob le m, 3 판, 1 권, Z76 쪽 이하를 참고하라.

레이가 요구하는 신이 곧 나타난다. 갈릴레이가 요구하는 것이 뉴턴에서 실현된다. 그래서 르네상스가 제기한 문제는 너무나 갑작스럽게 해결된 듯이 보인다. 사실 갈릴레이와 케플러는 자 연법칙 및 이의 방법론적 의의를 완전히 파악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 법칙을 단지 개별적인 경우에만 즉 낙하물체와 유성 운동에만 적용시킬 줄 알았다 . 여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남 아 있다. 이제 하나의 보편적 입증이 요구된다. 다시 말해서 부분들에 대한 타당한 법칙을 전체에 대해서도 타당하게 하는 입증이, 우주 자체가 이제 수학적인 정확한 개념에 의해 완전 히 이해될 수 있다는 입증이 요구된다. 뉴턴은 바로 이 입증을 실현한다. 그에게는 이제 특별한 부분의 자연현상을 법칙으로 환원시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주 전체에 걸친 법칙의 수립 이 문제다.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은 이 과제의 해결이다. 이리 하여 인간 지식은 결정적으로 승리를 거둔다. 이제 인간의 지 식은 자연의 위대한 신비를 명확히 풀어낼 수 있을 정도로 성 장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18 세기는 뉴턴의 업적을 이해하고 칭 찬한다. 18 세기는 뉴턴에게서 위대한 경험적 과학자를 발견한 댜 그러나 여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다. 18 세기는 더 나아가 뉴턴이 자연에만 확고한 법칙을 부여한 것이 아니라 철학에도 똑같이 법칙을 부여했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한다. 다시 말해 뉴턴의 탐구 결과에 못지않게 또 중요한 것이 있으니, 이것은 자연과학적 인식에서 확립되고 입증된 〈철학함의 규칙〉 즉 탐 구의 방법론이다. 뉴턴에 대한 18 세기의 무조건적인 칭송은 뉴 턴의 이러한 업적을 염두에 둔 것이다. 탐구 결실들도 비할 데 없이 중요하지만 이 결실이 얻어지는 탐구방법은 더 한층 중요 하다. 뉴턴에 이르러 비로소 자연과학의 길은 인위적이고 상상

적인 가정에서 개념의 명료성에로, 어둠에서 밝음에로 접어들 게 된다. 〈이제껏 자연과 자연의 법칙은 어둠 속에 묻혀 있다. ‘뉴턴이 있으라’ 신이 이르시니 모든 것은 이제 밝게 드러나게 되었다.〉 포프 Po p e 의 이 시구는 계몽기에 뉴턴이 향유한 온갖 칭송을 아주 잘 대변해 준다. 뉴턴의 덕분으로 계몽기는 더 이 상 혼들릴 수 없는 확고부동한 지반을 마련한 것으로 여겨진 댜 자연과 인식의 상호관계는 확실하게 수립되었다. 이 양자 를 묶는 끈은 이제부터 파손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관계의 양항은 완전히 독립적이나, 바로 이 독립성 때문에 그리고 이 독립성에도 불구하고, 이 양자는 또한 완전히 조화를 이룩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인간 속의 자연(본성)이 우주 속의 자연(본 성)을 마중나가서 상대방에서 자신의 본래 모습을 재발견한다 . 하나를 발견한 자는 이를 통해 또 다른 하나를 발견한다. 이미 르네상스 자연철학에서 〈자연〉이란 말은 법칙을 의미하며, 이 때의 법칙은 사물의 외부에서 사물 속으로 주어진 법칙이 아니 라 사물 자신의 본질로부터 생겨난 법칙이요 따라서 사물에 본 래부터 주어져 있는 법칙이다. 〈자연이란 사물 속에 심어진 힘 이요, 모든 사물들이 제 갈 길을 갈 때 준거(準擔)로 삼는 법칙 이다.〉 3) 이 법칙을 발견하기 위해 우리는 자신의 생각이나 주 관적 상상을 자연 속에 투사시켜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어디까지나 자연 자체의 진행과정을 따라가야 하며, 관찰과 실 험을 통해서 그리고 측정과 계산을 통해서 이 과정을 확정지어 야 한다. 그러나 이때 측정의 기준은 감각적 소여에서 얻어질 수 없다. 오히려 이 기준은 비교하고 계산하고 결합하고 구별 3) Gio r dano Bruno, De Immenso, Libe r VIII, Cap . 9; Op er a lati na , Na- pies , 1879-1891, 1 권, 2 편, 310 쪽.

짓는, 이른바 지성의 본성을 이루는 보편적 기능에서 비롯한 댜 이렇게 해서 오성의 자율성이 자연의 순수 법칙성에 즉 자 연의 자율성에 대응한다. 계몽철학은 하나의 지적 해방 작업을 통해서 자연과 오성의 독립성을 한꺼번에 쟁취한다. 이제 이 양자는 그 본디 모습을 통해서 서로 간에 확고히 관련을 맺게 된다. 초월적인 존재나 힘에 의해 이 양자를 매개하려는 시도 는 이제 필요 없다. 그 어떠한 매개도 양자 사이의 끈을 더 튼 튼히 할 수 없다 . 오히려 제 삼자의 개입에 의한 매개는 양자 사이의 본디 연관을 의심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요, 바로 이러 한 의심은 이 양자를 묶는 끈울 느슨하게 하고 급기야는 이 끈 을 파손시킬 뿐이다. 근대의 〈기회 원인설 Okkasio n alis m us>4 ) 이 이의 한 예이다. 이 학설은 말하자면 신적인 제일 원인의 전능을 위해서 자연의 자율적 작용과 정신의 자율적 형식을 희 생시킨 꼴이다 . 이러한 초월에 반대하여, 계몽철학온 자연과 인식에 있어 원리의 순수 내재성을 선언한다. 자연과 인식은 그 고유한 원리적 본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제 이 본질은 더 이상 어둡거나 신비스러운 것이 아니요, 오성이 알 수 없는 어떤 것이 아니다. 이 본질은 원리에 있는 것이요, 오성은 이 원리를 완전히 파악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오성은 자신으로부터 이 원리를 이끌어 내어서 이를 체계적으로 나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 이러한 기본사상에 의해 자연과학은 계몽기의 모든 여타 사 4) 역주: 육체와 정신은 독립된 실체들로서 본래 아무런 관련을 맺을 수 없지만, 모든 육체적 과정은 이것에 대응하는 심적 과정이 생기는 기회가 되며 반대로 모든 심적 과정은 이것에 대응하는 육체적 과정이 생기는 기회가 되는 것처럼 신이 미리 설정해 놓았다는 허얼링크스 A. Geu li ncx 와 말브랑슈 N. Malebranche 의 학설 .

상에 거의 무한한 영향을 행사한다. 달랑베르가 18 세기를 철학 의 시대라고 부르고 있지만, 이에 못지않은 정당성을 가지고 18 세기는 자신의 시대를 자연과학의 시대라고 종종 부른다. 자 연과학의 형성은 이미 17 세기 때부터 크게 발전하여 내적인 결 실까지 맺는다. 1660 년 영국에서 설치된 〈영국 학술원 Ro y al Soc i e ty〉은 과학 탐구의 중심 체 역 할을 한다. 그러 나 이 보다 일 찍이 이 학술원의 전신으로서 개별 과학자들의 자유스런 모임 이 있었다. 왕의 법령에 의한 공식 기관으로 재가를 얻기 전까 지, 이 모임은 말하자면 〈보이지 않는 대학〉의 역할을 한다. 이때 이미 이 모임은 하나의 방법적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 경 험적 검증과 실험을 통해 확인되지 않은 개념은 물리학에서 결 코 용납될 수 없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이러한 과학자들의 모 임 운동은 곧 프랑스에 영향을 주어, 이곳에서도 1666 년 콜베 르]. B. Colbe rt에 의 해 프랑스 과학 아카데 미 Academi e des S ci ences 가 설립된다. 그러나 18 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 운동은 정신적 삶의 모든 영역에 이르기까지 아주 넓고 깊은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제 이 운동은 경험적인 과학자나 수학자나 물리학자의 관심사를 넘어서서 모든 정신과학들을 새 롭게 조명하려는 사상가들의 관심사로 확대된다 . 이제 정신과 학의 새로운 갱신은, 죽 법, 사회, 정치 및 시학의 정신에 대 한 보다 깊은 새로운 통찰은 자연과학의 모델에 입각하지 않으 면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 자연과학과 정신과학의 연합을 몸소 실현한 달랑베르는 『철학의 요소』에서 이 연합의 원리를 아주 명료하게 표현한다. 〈자연과학은 날로 부(富)를 축적하여 간다. 기하학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인접분야인 물리학에 자 신의 횃불을 비추어 준다. 드디어 우주의 참된 구조가 알려지

게 되었다. 지구에서 토성까지, 하늘의 역사에서 곤충의 역사 에 이르기까지 모든 자연 탐구의 모습은 달라졌다. 이로써 또 한 모든 다론 학문들도 새로운 형태를 띠게 되었다. 자연과학 을 통해 일단 야기된 이 정신적 발효는 이제 그 한계를 모른 댜 그것은 마치 둑 터진 봇물처럼 모든 영역을 휩쓴다. 세속 적 과학의 출발 근거에서 계시의 근거까지, 형이상학에서 취미 문제까지, 음악에서 도덕까지, 신학자들의 논의에서 경제 문제 까지, 자연 권리에서 실정법적 권리까지, 모든 것이 논의되고 분석되며 언급된다. 이러한 정신적 운동의 결실로 말미암아 많 은 대상들이 새로운 밝은 빛 속에 자신을 드러내 보이나, 반면 이 빛의 그늘에 가린 다른 대상들은 어둠 속에 자신의 모습을 감춘다-마치 밀물이 많은 새로운 것들을 해안으로 가지고 오는 반면, 썰물은 다른 많은 것들을 해안으로부터 씻어가듯 이.〉 5) 18 세기에 내로라 하는 사상가는 모두 이런 사상적 운동 의 영향을 받고 있다. 볼테르가 프랑스에서 새로운 시대를 연 것은 그의 문학적 창작이나 철학적 논문을 통해서가 아니라 『뉴턴 철학의 요소』라는 책을 통해서이다. 또한 디드로의 저술 중에는 생리학의 요소에 관한 것이 있으며, 루소도 화학의 기 본법칙을 논한 책을 썼다. 몽테스키의의 처음 저술은 물리학 적, 생리학적 문제들을 다룬 책이었다. 그는 젊어서 눈병에 걸 려 더 이상 자연과학적 관찰을 할 수 없게 되자, 자연과학적 탐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몽테스키의의 젊은 시절의 글귀 를 인용한다. 〈자연은 마치 처녀처럼 오랫동안 고집스럽게 자 신의 보물을 지켜 오다가, 어느 순간 이것을 내주고 말았다.〉 6)

5) D'Alembert , Elements dePbil oso p bi e . 그리고 이 책 18 쪽 이하를 참 조.

18 세기 전체는 바로 이런 확신으로 가득 차 있다. 다시 말해서 인류 역사에서 바야흐로 자연의 신비를 벗겨낼 순간이, 자연을 더 이상 어둠 속에 놓아 두는 것이 아니라 밝은 오성의 빛 속 으로 끄집어 내어 확인할 순간이 도래하고 있다는 신념으로 가 득차 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신학과 물리학 사이의 끈을 확실하게 끊어버리는 일이 필요하다. 18 세기에 이미 이 끈온 상당히 느 슨해졌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었다. 성서의 권위는 아직도 순수 자연과학 내에서도 옹호되었다. 볼테르가 〈성서적 물리학〉에 던진 조소는 오늘날 우리가 보기에는 별 것 아니지만 그 당시로서는 이러한 조소는 상당히 위험스러운 짓 이 다 교회 의 정 통파는 〈말씀의 성 령 감화 Verbal i ns pi ra ti on 〉의 원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이 원리 속에 함축된 의미는 진 정한 자연과학이란 모세의 창조 이야기 속에 들어 있으며, 이 이야기의 기본 골격은 달리 변경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신학자 뿐만 아니라 물리학자 내지 생물학자들도 이러한 과학을 지지 하고 설명하고자 하였다. 1726 년에 영국인 더햄 Derham 의 『물 리학적 신학』이 프랑스어로 번역되었고, 잇달아 프랑스에서 더 햄의 『천문학적 신학』, 파브리시우스 Fabr ici us 의 『물의 신 학』, 레서 Lesser 의 『곤충 신학』이 출판된다 .7) 볼테르는 신학적 물리학의 외면적 결과들을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자연에 적용한 신학자들의 방법이 거짓된 것임을 드러내 보이고자 하 6) 몽테스키외가 젊은 시절에 자연과학을 탐구한 것에 관해서는 Sain t e Beuve, Monte s q u ie u , Causeri es du Lundi, T. VII 을 참조하라. 7) 〈신학적 물리학〉의 문헌 범위와 내용에 관해서는 모네 D. Morne t의 Les sci en ces de la natu re en France au Xv7Il sie c le, Paris, 1911, 31 쪽 이하를 참고하라.

였고, 따라서 이들의 물리학이 신앙과 과학 사이에서 이상하게 태어난 튀기에 불과함을 알리고자 한다. 〈어떤 저술가는 물리 학을 통해서 나에게 삼위일체설을 설득하려고 한다. 그는 신성 의 삼위(三位)는 공간의 삼차원(三次元)과 같다고 말한다. 또 다른 사람은 성체변질(聖體變質)을 나에게 증명해 보이고자 한 다. 그는 운동법칙을 통해 우연적 성질이 실체 없이도 존재할 수 있음을 나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신학과 과학 사이의 방법 론적인 뚜렷한 차이에 대한 인식은 매우 느리게 진행된다. 이 문제에 있어 지질학이 앞장서서 성서의 창조 신화가 지니고 있 는 시간적 구조의 허구성을 파헤친다. 이미 17 세기에도 이 시 간적 구조에 대해 공격이 집중되었다. 퐁트넬온 천체(天體)의 불변성에 대한 고대인의 믿음을 풍자적으로 장미나무의 믿음에 비유한다. 즉 고대인의 믿음은 마치 한그루의 장미가, 살아 생 전에 자기를 가꾸어 주는 정원사가 죽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해서, 정원사를 불사적(不死的)이라고 믿는 것과 같다. 이러한 비판은 자신에 유리한 경험적 결과들이, 특히 고생물학적 발견 들이 드러남에 따라 더욱 더 강도를 높혀 간다. 『신성(神聖)한 지 구론(地球論)』 (1680) 과 『철학적 고고학』 (1692) 에서 버 네트 Thomas Burne t는 여 전히 성 서 의 창조 신화의 진리 를 보증하려 한다. 그러나 결국 그는 이 시도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이 에 따라 창조의 시간단위를 비유적으로 해석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이제 6 일 간의 창조 시간단위 대신에 경험적 탐구 결과 에 따른 새로운 연대가 가정된다. 뷔퐁 Bu ff on 은 『자연의 연대 Ep oc hen der Na t u r,』 에서 경 험 적 탐구 방식 을 과학적 탐구의 궁 극적 원리로 생각한다. 뷔퐁은 신학과의 싸움에 말려들기를 원 치 않았고, 자신의 저서에 대한 비판이 나오자, 그는 곧 소르

본 대학의 결정에 따른다. 그러나 창조 신화에 대한 그의 이러 한 침묵은 선전포고 이상의 웅변적 효과를 지닌다. 왜냐하면 이제 종교적 권위에 대한 요란한 논쟁 없이 오직 관찰된 사실 과 과학적인 원리만을 토대로 해서 충분히 우주역사에 대한 과 학적 해명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전통적 체계는 마침내 깨어 지기 시작한다. 볼테르는, 이 체계를 구성하는 돌 하나 하나를 빼어 내서 이 체계 건물 전체를 허물어 버릴 때까지, 반세기 이상에 걸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새로운 물리학이 자신의 새로운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이러한 완전한 파괴 작업이 먼저 수행되어야 한다 . 이제 비로소 과학은 갈릴레이에 대한 종교의 소송을 충분히 재심사할 수 있는 위치에 와 있다. 과학은 이 소송을 자신의 법정으로 소환하고 자신의 기본원리에 입각하여 판결을 내린다. 그리고 이제부터 이 판결에 그 누구도 항소하 지 않는다. 심지어 반대자들까지도 결국 이 판결을 조용히 받 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로써 계몽철학의 첫번째 결 정적 승리가 쟁취된다. 이런 관점에서 계몽철학은 르네상스가 시작한 일을 완성시킨다. 이제 합리적 지식의 가능한 영역이 명확히 제시된다. 이 영역 내에서는 이제부터 어떠한 권위적인 강제도 없다. 모든 방향으로 자유스러운 탐구활동이 있을 뿐이 다. 이런 자유를 바탕으로 계몽철학은 비로소 자기자신을 충분 히 자각하게 되고 자신이 지닌 고유한 힘들을 깨닫게 된다. 2 『다원적 세계들에 대한 대화』에서 퐁트넬은, 데카르트의 우

주론을 설명하기 위해서, 자연의 사건을 극장무대의 사건과 비 교한다 . 구경꾼은 무대 위에서 요란하게 전개되는 장면을 보는 데 심취해 있다. 그러나 이 장면들이 어떻게 해서 일어나는가 하는 의심을 품는 사람은 별로 없다. 구경꾼 중에 우연히 기계 전문가가 있다면, 아마도 그는 이 무대 장면을 그저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지 않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이 현상의 원인을 즉 무대장면 배후에 숨겨져 있는 기계장치를 알고자 할 것이다. 철학자가 하는 일은 이 기계 전문가의 일과 비슷하다. 물론 철 학자의 일에는 보다 더 큰 어려움이 있다. 왜냐하면 자연은 끊 임없이 자기 모습을 펼쳐 보이지만, 이 모습의 원인인 기계장 치가 너무나 꼭꼭 숨어 있어서 수세기가 지나도록 이 숨겨진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근대에 이르러서야 비로 소 과학은 자연현상 뿐만 아니라 이 현상을 야기시키는 기계의 태엽장치를 보게 되었다. 이 원인을 알았다고 해서 무대장면의 매력이 감소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가치가 더 증가한다 . 우주현상의 원인이 시계의 태엽장치에 불과하다고 해서 우주현 상의 매력과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나 로서 말한다면, 우주가 시계와 같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나 는 더욱 더 우주를 우러러 본다. 그렇게 찬탄할 만한 자연현상 이 그렇게 간단한 것에 근거해 있다는 사실, 이 사실이야말로 정말 놀라운 것이 아닌가?〉 8) 퐁트넬의 비교는 단순한 재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17 세기 자연과학 구조에 대해 아주 중요한 사상을 포함하고 있 다. 데카르트의 자연과학은 이 사상을 뚜렷이 형식화하고, 이 8) Fonte n elle, Entr e ti en s sur la Plurali te des Mandes, Premi er Soir , 전 집, Pari s, 1818, 2 권, 10 쪽 이하.

사상을 보편적으로 적용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자연을 단순히 시공적 현상의 총괄로 본다면, 우리는 자연을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이 현상을 원리로 환원시켜야 하거니와, 이 원리는 오 직 운동 법칙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 일단 이 법칙이 발견되 고, 엄밀한 수학적 기호로 표현된다면, 장래에 모든 지식의 확 고한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 자연 전체를 개괄하고 우주의 핵 심적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저 이 법칙 속에 암암 리에 들어 있는 것을 완전하게 전개하기만 하면 된다. 세계의 체계에 대한 데카르트의 저술은 바로 이러한 이론적인 기본 계 획을 실현시킨 것이다. 〈나에게 질료를 다오, 그러면 나는 세 계를 만들어 보일 것이다〉라는 것이 바로 이때의 표어가 된다. 사유는 이제 세계를 단순히 감각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보지 않 는다. 사유는 우주의 구조를 분석하는 것, 아니 자기자신의 원 천에서 이 구조를 형성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여긴다 . 사유는 자신의 명석 판명한 관념으로부터 시작해서 이 관념 속에서 모 든 실재의 원형을 발견한다. 수학적 원리와 공리의 명중성으로 인하여, 사유는 이제 자연의 모든 영역을 확실하게 통괄한다. 확고한 하나의 길, 죽 하나의 연역 체계만이 있다. 가장 보편 적인 자연 사건의 원인으로부터 개별적인 자연법칙 내지 복잡 한 개별적 결과들에 이르는 확고한 길이 마련된다. 명석 판명 한 관념의 영역과 사실의 영역 사이에는 즉 기하학과 물리학 사이에는 아무런 장벽도 없다. 물질적 실체는 순수한 연장성 (延長庄)이므로 이 연장성의 지식 즉 기하학은 곧 물리학의 선생 이 된다. 기하학은 물질세계의 본성과 본질을 명백히 표현하 고, 이로부터 사유의 연역과정을 통해 개별적인 사실 세계까지 정확히 규정한다.

그러나 데카르트 물리학의 이러한 야심에 찬 계획은 경험적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 데카르트가 자기의 길을 더 걸어가면 갈수록, 그리고 그가 자연의 특수한 현상들에 더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는 점점 더 큰 어려움에 부딪친다. 이 어려움을 헤 쳐 나가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끊임없이 가설 의 그물로 이루어진 더욱 더 복잡한 기계론을 만드는 일이다. 이렇게 짜여진 데카르트의 직물은 뉴턴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 버린다 뉴턴도 자연에서 수학적인 원리를 찾는다. 그러나 그 는 물리학을 단순히 기하학으로 환원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 댜 뉴턴에 의하면, 물리학적 탐구의 독자적인 기능과 특성이 있는 바, 이런 특성온 실험방법과 귀납방법에서 찾아질 수 있 댜 물리학적 탐구의 길은, 위에서 아래로, 죽 공리와 원리에 서 사실에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 반대의 길이다. 사물의 본성에 관한 보편적인 가정에서 출발해서 개별 사건들의 지식 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꾸로 직접 관찰에서 주 어진 개별적인 사건의 지식에서 시작하여 점진적으로 제일 원 인 내지 보편적인 단순 요소로 나아가는 것이다. 연역의 이상 에 맞서서 이제 분석의 이상이 대두된다. 그리고 이 분석은 원 칙상 완결적인 것이 아니다. 분석은 선천적으로 미리 생각될 수 있는 개념의 연쇄고리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경험과학의 모든 단계에서 언제나 새롭게 분석이 시도되어야 한다. 분석에 는 절대적인 목표 지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상대적이고 잠정적인 휴식 지점만이 있다. 뉴턴은 자신의 만유인력 이론을 이러한 잠정적 휴식 지점으로 본다. 그는 인력이 자연의 보편 적 현상임을 드러내는 것으로 만족하고, 이 인력의 궁극 원인 을 더 이상 추구하지 않는다. 그는 인력을 설명해 줄 어떤 기

계적 이론도 분명히 거부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이론에 대한 충분한 증거를 경험이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인력에 대한 그 어떤 형이상학적 정초도 원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이런 짓은 물리학자에게 있어서 부당한 월권적 행위가 되 기 때문이다. 그는 오직 인력의 현상에만 관여한다. 그러나 그 는 이 현상을 단순한 개념 내지 추상적 정의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포괄적인 수학적 공식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이 공식 은 말하자면 암암리에 구체적 개별 사례들로서의 현상을 포괄 하며, 이 현상을 완전하고 명료하게 기술하는 공식이다. 물리 학의 이론은 자연 현상의 기술(記述) 이상의 것을 시도하지 않 으며, 시도해서도 안 된다 .9)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력은 물 질의 보편적 성질이긴 하나, 굳이 물질의 본질적 성질이라고 볼 필요는 없다. 뉴턴에 의하면, 세계를 순수 사유속에서 개념 만을 가지고 구성하려는 자연 철학은 언제나 두 가지 유혹 내 지 위험에 빠진다. 이런 자연철학은 사물의 어떤 보편적인 성 질을 발견할 때마다, 이 성질을 실체화 h yp os t as i eren 시키거나 (죽 이 성질을 절대적으로 실재하는 근본 성질로 만들거나) 아니 면 이 성질을 선행하는 원인의 단순한 결과로 해소시켜야 한 다. 그러나 진정한 경험론에는 이 두 가지가 모두 낯선 것이 다. 경험론은 현상의 확립으로 만족한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그 어떤 현상도 궁극적인 것이 아니요 따라서 분석이 가해질 필요 가 있음〉을 안다. 그러나 이 분석을 사유 속에서 미리 선천적 으로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분석은 실험의 진행과정이 있은 9) 뉴턴 학파에 있어 〈자연의 설명〉과 〈자연의 기술〉 그리고 〈정의〉와 〈기 술〉에 대 한 상세 한 설 명 은 카시 러 , Erkenntn is p r o blem, 3 판, 2 권, 401 쪽을 보라.

후, 이를 토대로 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뉴턴이 주장하기 를, 인력은 잠정적으로만 자연의 궁극 요소요, 지금까지 알려 진 한의 어떤 기계론에 의해서도 설명될 수 없는 잠정적인 궁 극 성질이라고 한다. 미래의 관찰을 기초로 하여 이 성질을 보 다 더 단순한 자연 현상으로 환원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 든지 열려 있다. 스콜라 학파의 물리학이 끌어들인 것과 같 이, 〈신비스런〉 성질을 가정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짓이다. 반 면에, 이 풍부한 자연 현상을 물질의 기본 성질과 운동 법칙으 로 환원시킬 수 있다면――비록 이 성질이나 법칙의 원인이 아직 알려지지 못했다 할지라도 ___ 이것만으로도 과학적 탐구 는 그 중요한 발전을 이룩한 것이다. 뉴턴은, 그의 『광학』 끝마무리에 나타나는 이러한 고전적인 견해에서, 18 세기 모든 자연과학의 개요를 분명히 제시한다. 데카르트에게서 뉴턴으로 넘어간다는 것은 이 당시 자연과학의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 극장무대 장치의 비유를 통해 이미 소 개된 퐁트넬류(類)의 기계론적 자연철학의 이상은 점차 극복되 어 가다가, 마침내 새로운 물리학의 인식이론에 의해 완전히 포기된다. 『체계론』 (1758) 에서 콩디야크는 17 세기 형이상학의 위대한 건물을 만들어낸 〈체계의 정신〉을 이제 물리학으로부터 완전히 추방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소위 〈사물의 본성〉 에 의존하는 설명 대신에 이제 현상을 관찰하고 현상이 지닌 경험적 연관성을 명백히 하는 일이 필요하다 . 물리학자는 우주 에 대한 기계론적 설명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다. 물리학자는 자연에서 일정한 보편적 관계를 발견한다면, 이것으로 만족해 야 한다. 따라서 자연과학의 이상은 더 이상 기하학의 본을 따 르는 것이 아니라 수학의 본을 따른다. 왜냐하면 콩디야크에

의하면 수(數)의 이론은 관계의 이론 즉 관계 논리학의 가장 명 료한 예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 10) 볼테르가 데카르트적 물리학과 의 싸움에서 이러한 지식의 새로운 이상을 전투 구호로 사용한 이후, 이 이상은 굉장히 널리 선전되었고 실제로 커다란 효력 도 얻게 되었다. 왜냐하면 볼테르는 그의 뛰어난 단순화 능력 과 보편화 능력을 통하여 이 문제를 단번에 일반화시킬 수 있 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뉴턴의 방법은 물리학에만 한한 것이 아니라, 모든 지식 일반에도 역시 타당하게 된다. 그것은 여러 영역의 지식들을 처음부터 일정한 한계 내에 자리잡게 하 고 일정한 조건과 방법에 따르도록 한다. 즉 수학과 경험의 빛 을 사용하지 않으면, 이제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언젠가 사물의 본질을 알 수 있으리라는 환상은 쓸데 없는 짓이다. 한 사물이 다른 사물에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더 나아가 한 사물이 전혀 이질적인 마음에 어떻게 영향을 주 어 관념을 생기게 하는가 하는 문제, 이 두 문제는 보편 개념 만을 가지고는 조금도 대답될 수 없다. 이 두 경우 〈어떻게〉에 관해서는 모르더라도, 〈무엇이 어떠 어떠하다〉는 것이 확인된 다면, 우리는 이것으로써 만족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우리 가 생각하고 느끼며, 어떻게 우리의 손발이 의지의 명령에 복 종하는지를 묻는다는 것은 창조의 신비를 묻는 것이다 . 이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제일 원리에 관한 지식이란 우리에겐 있 을 수 없다. 우리는 절대적으로 참된 것을, 단적으로 근원적인 것을 알 수 없다고 볼테르는 말한다.11) 자연과학이 이처럼 구성 10) Condil lac , Trait e d es Sys t e m e s; Log iqu e P . II, Ch . 7 11) Volta ire, Le Phil oso p he Ign orant( 17 76) X; vg l. Ti'a ite de Meta p hy s i - qu e(1 7 34), 특히 3 장 이하 .

적 이상에서 분석적 이상으로 변함에 따라서 지식의 확실성과 불확실성을 가르는 기준도 달라진다. 데카르트에게서 지식의 확실성은 제일 원리에 근거하고, 반면에 사실적인 모든 것은 그 자체로 볼 때 불확실한 것이 된다. 우리는 감각적인 사물의 모습을 믿을 수 없다. 왜냐하면 감각 지각은 언제나 오류 가능 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류를 피하려면 현상의 배후로 뚫고 들어가서 감각적 소여를 그 자체로 명증적인 개념 으로 표현해야 한다. 그래서 원리는 직각적이고 직접적 확실성 울 지니나, 사실 지식은 매개적이고 파생적이다. 사실의 확실 성은 원리의 확실성에 의존하고 종속된다. 그러나 뉴턴과 로크 에 힘입은 〈새로운〉 물리학적 지식론은 이 관계를 역전시킨다. 원리가 파생적이고 사실이 원천적이다. 그 자체로 확실한 원리 는 없다. 모든 원리의 진리성과 신빙성은 그것의 실제적인 사 용 가치에 따른다. 여기서 사용 가치란, 다양한 현상을 개괄하 고 일정한 관점에 따라 이 개괄된 것을 가지런히 정돈하는 데 원리가 얼마 만큼 도움을 주느냐 하는 것이다. 원리에서 이러 한 정돈의 기능을 빼버린다면, 원리는 무용지물이다. 원리는 자기 자신 속에 자기의 근거를 지니지 못한다. 원리의 진리성 과 확실성은 원리를 근거로 해서 귀결된 지식에 의존한다 . 이 귀결된 지식이 관찰과 사실의 영역에 속한다면, 원리 또한 이 영역을 넘어서거나 떠날 수 없다. 18 세기 중엽에 이르러 이러 한 견해는 뉴턴의 제자들인 볼테르, 모페르튀이 및 달랑베르에 의해 확고해진다. 기계론 내지 유물론으로의 전향을 18 세기 자 연철학의 특징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유 물론은 홀바흐 Holbach 의 『자연 체계』 및 라메트리의 『인간 기 계론』에서 나타나는데, 이것들은 18 세기 자연철학의 전형이 아

니라 아주 예외적인 것들에 불과하다. 이 두 책은 18 세기 과학 자들이 그렇게 반대해 싸워 온 17 세기의 독단적인 사유 방식으 로 되돌아가는 역행의 대표적 예이다. 프랑스 백과전서파의 과 학적 정신은 휼바흐나 라메트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달랑베르에 의해서 대변된다 . 달랑베르는 기계론 내지 유물론을 사물 설명 의 궁극적 원리로, 즉 우주 신비의 그럴 듯한 해결책으로 간주 하는 것을 격렬히 반대한다. 그는 뉴턴의 방법에서 한 치도 벗 어나지 않는다. 또한 그는 사물의 절대적 본성이니 사물의 형 이상학적 기원이니 하는 것들을 문제삼지 않는다. 〈만약 우리 가 사물의 일차적 성질로부터 부차적 성질을 이끌어내고 이로 부터 현상들의 보편적 체계를 만들되 여기서 하등의 모순도 발 견하지 못한다면, 이로써 족할 일이요, 사물의 본질 파악 여부 는 어떠해도 무방하다. 겸손하게 우리 지식의 한계를 좁히자! 그렇지 않으면 빈약하나마 확실한 우리 지식의 범위를 쓸데 없 는 궤변으로 더욱 축소시키게 될는지도 모론다 . > 심신의 통일 문제, 상호관계 문제, 이들 문제에 관하여 달랑베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고의 지성(신)이 우리의 빈약한 시력 앞에 장 막을 드리워 놓았으니, 우리가 아무리 이 장막을 거두어 치워 버리려고 해도 헛된 일이다. 이는 과연 우리의 지적 호기심과 자부심에 대한 슬픈 운명이긴 하나, 어쩔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인간의 운명이기도 하다. 따라서 형이상학적 문제들에 관한 철학자들의 꿈 같은 이야기는 확실한 지식의 영역에서 배제하 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인간 정신에 의해 얻어질 수 있는 확실 한 지식만을 담으려는 저술 속에서는 그러한 꿈 이야기가 완전 히 배제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맺지 않을 수 없다.〉 12) 확실한 지식을 비판적으로 이렇게 제한하는 문제와 관련해

서, 보다 어려운 새로운 문제가 대두된다. 달랑베르는 사물의 본질을 밝혀줄 수 있다는 모든 형이상학적 요구를 포기하고, 오 로지 현상의 영역 내에 머무르면서 이 현상의 보편적 질서 체 계를 밝히고자 한다. 그런데 이 현상의 보편적 체계가 일관되 고, 한결같고, 균일하다는 것은 어디서 증명될 수 있는가? 달 랑베르는 그저 이러한 현상의 균일성을 요청할 뿐이지 보다 자 세히 이것의 근거를 풀어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요 청은 단지 새로운 형태의 믿음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그것은 증명되지 않은 그리고 증명될 수도 없는 형이상학적 전제를 이 미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데카르트, 스피노자의 고전적 합리론은 이미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들은 자연의 통일성 문제를 신적인 제일원인의 통일성 문제로 환원시킴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자연이 신의 작품이라면, 자 연은 의당 신의 정신을 반영할 것이요, 따라서 자연은 신의 불 변성과 영원성을 반영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자연의 원천이 바로 자연의 진리를 보장해 준다. 자연의 균일성은 신의 본질 에서 나온 것이다. 〈신〉이라는 말의 의미에서 볼 때, 신은 자 기자신과 완전히 일치하는 일자(一者)로서 사유할 때나 의지를 결정할 때나 조그만치의 오류도 회의도 없으니 만큼 절대적이 요 불변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 있는 것이 달리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함은 신의 본질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스피노 자가 신과 자연을 동일시한 〈신 즉 자연〉의 공식은 바로 이러 한 기본 사상에 입각한다. 지금과 다른 질서의 자연이 가능하 다고 생각하는 것은 신이 지금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일 수 있 12) D'Alembert, Elements de Phil o sop h ie , VI ; Melang es T. IV, 59 쪽 이 하 .

음을 가정하는 꼴이다 . 그러나 이는 신의 개념 자체에 어긋난 다. 〈만약 사물들이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결정되고, 다른 성질을 지니고, 따라서 자연의 질서가 지금과는 다른 질서가 된다면, 신의 본성도 또한 지금과는 다른 것이 될 것이다.〉 13 ) 따라서 우리가 자연의 법칙과 신의 법칙을 말할 때, 실은 동일 한 것을 두 가지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모든 현 상을 지배하는 자연의 보편 법칙은 영원한 진리와 필연성을 지 닌 신의 영원한 섭리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14) 라이프니츠에게 있어서도 자연의 균일성에 대한 증명, 이념 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의 조화에 대한 증명, 사실과 영원한 진 리의 일치에 대한 증명 등, 이 모든 증명은 결국 감성계와 오 성계의 뿌리가 되는 최고 원리의 통일성에 의존하는 길밖에 없 댜 미적분학의 원리가 제한 없이 자연 전체에 적용될 수 있다 는 것의 근거, 다른 말로 말해서, 지속성의 원리가 추상적인 수학적 의미만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물리적 의미도 지닌다는 것의 근거, 이 근거를 라이프니츠는 〈현실적인 것의 법칙이 수학과 논리학의 순수 이념적 법칙을 어길 수 없다〉는 이념에서 찾는다. 그러면서 그는 다시 이 이념의 근거를 〈모든 사물이 이성에 지배되며, 이성이라는 최고 원리에 어긋나는 지 식이 불가능하다〉는 데서 찾는다 .15) 그러나 이러한 근거 제시 방식은 명백히 순환논증의 오류를 범한다 . 자연이 우리에게 보 여주는 듯 싶은 경험적 균일성으로부터 신의 절대적 통일성과 13) Spi no za, Eth i k , I, Prop o s. 33. 14) Sp ino za, Tracta tu s Tbeolog ico ~P o li ticu s , Cap . III, sect . 7 . 15) 바리뇽 Va rign on 에게 보낸 라이프니츠의 서신 (1772, 2, 2. ) ; 게르하 르트 Gerhardt 편, Math e matis c he Schri ften , 4 권, 94 쪽.

불변성을 이끌어내고, 동시에 이 후자로부터 자연 질서의 완전 한 균일성을 증명해 낸다면, 증명되어야 할 것을 증명의 근거 로 삼는 가장 기본적인 논리학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 된다 . 바 꾸어 말하면, 경험적 판단과 추리의 확실성을 보장해 준다는 근거가 결국 이보다 더 의심스럽고 덜 확실한 형이상학적 가정 에 불과한 꼴이다. 여기서 우리는 자연철학의 모든 내용적 문 제보다 훨씬 더 어렵고 중요한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이 문제 는 자연의 구체적 내용 문제가 아니라 도대체 자연이 무엇이냐 하는 자연의 개념 문제요, 경험의 산물로서의 지식 문제가 아 니라 경험의 형식 문제이다. 계몽철학에 있어서 자연과학을 신 학의 지배와 감시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은 비교적 쉬운 문제일 것이다. 자연과학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계몽철학은 바로 앞 세 기들의 유산을 이어받기만 하면 된다 . 다른 말로 표현하면, 구 체적 사실에서 이미 실현된 자연과학과 신학의 분리를 단지 개 념적으로 명시하는 것으로 족하다. 따라서 이런 관점에서 성취 된 모든 것은 정말로 새로운 지적 출발이라기보다는 이전 것의 끝마무리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17, 18 세기 자연과 학을 통해서 이룩된 방법론적 발전을 개념적으로 명시하는 일 에 불과하다 . 그러나 이러한 자연과학 자체에 정당성의 근거를 묻게 되자마자, 보다 심각한 새로운 문제가 제기된다. 자연과 학을 일체의 신학적 -형이상학적 내용으로부터 해방시켰다고 하자. 그래서 자연과학을 오로지 순수 경험적 진술에 제한시켰 다고 하자 . 그렇다고 하더라도 만약 우리가 자연과학의 구조에 서 형이상학적 요소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 이 없게 될 것이다. 감각적으로 지금-여기서 주어진 것의 단 순한 확인을 넘어서는 모든 주장은 그 자체로 이미 형이상학적

요소를 포함한다 . 자연의 체계적 구조 내지 경험의 절대적 균 일성은 그 자체가 경험의 산물인가? 그것은 경험으로부터 이끌 어 내어질 수 있으며 경험에 의해 증명될 수 있는 것인가? 아 니면 그것은 오히려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 선입견 Vor­ Mein u ng , 내지 선판단(先判斷 Vor-Ur tei l ) 인가? 그렇다면 이 러 한 선판단으로서의 논리적 선천성(論理的 先天性, log isc hes A p r i ori)은 형이상학적 내지 신학적 선천성과 마찬가지로 의심 스러운 것이 아닌가? 경험과학의 영역에서 모든 형이상학적 개 념 내지 판단을 제거했다고 하자. 그리고 더 나아가서 자연개 념에서 신의 개념이 줄 수 있는 온갖 뒷방침을 제거했다고 하 자. 그러면 소위 자연의 〈필연성〉 즉 자연의 보편적이고 영원 불변한 법칙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런 필연성에 대한 직각적 (直覺的)인 확실성이 있는가? 혹은 이에 대한 어떤 연역적인 증 명이 가능한가? 아니면 확실성도 증명도 모두 불가능한 것인 가? 만약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마지막으로 사실의 세계는 본 래 그런 것이요, 따라서 이 세계에 대한 보다 확실한 다른 거 점(擬點)이나 합리적 〈근거〉를 찾는 일은 도로(徒勞)일 뿐이라 고 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문제를 볼 때, 우리는 수학적 자연과학의 현상론 Ph 걸 no-mena li smus 에서 흄의 회의론으로 넘어가는 여정을 예견 한댜 이것은 단순히 개인의 사상 형성의 문제가 아니라 18 세 기 사상의 구체적인 역사적 발전 과정의 문제이다. 지금까지 철학사 서술은 바로 이 점에서 오류를 범하여, 흄의 희의론의 참된 근원을 놓치고 만다. 만약 우리가, 늘 그래 왔듯이, 흄의 가르침을 오로지 영국 경험론과 관련시킨다면, 죽 그것을 단지 영국 경험론의 전제들에서 역사적으로 전개되는 것으로 생각한

다면, 우리는 흄의 회의의 참된 근윈울 알 수 없게 된다. 흄의 학설은 귀결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 그것은 베이컨 에서 홉스로, 홉스에서 로크로, 로크에서 버클리로 이어지는 사상의 연쇄적 발전의 한 고리에 불과하게 보일는지 모르나, 실 은 그 이상이다. 물론 이 여러 사상가들로부터 흄은 경험론 내 지 감각주의의 개념적이고 체계적인 사유 장치를 받아 들인다. 그러나 그의 고유한 문제 의식은 다른 원천에서 나온다. 그것 은 17 • 18 세기의 자연과학적 문제 의식의 줄기찬 발전에서 비 롯된다. 이런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뉴턴 학파 의 업적이다. 그 중에도 특히 네덜란드의 철학자 내지 과학자 들이 뉴턴의 기본 개념들을 방법적으로 철저히 발전시킨 것이 중요하다 .16) 그래서 네덜란드의 학자들은 이 개념들에 입각해서 경험과학의 논리학을 수립하고자 한다. 17 세기 네덜란드에서 사 실의 정확한 관찰 내지 엄밀한 실험적 방법은 자연과학적 가설 의 의미와 가치를 결정하려는 비판적 사고방식과 서로 잘 어울 리게 되었다. 네덜란드의 위대한 과학자 호이헨스는 바로 이러 한 양자의 결합을 전형적으로 이루어낸 사람이다. 『빛에 관한 연구』 (1690) 에서 그는 경험과 사유의 그리고 관찰과 이론의 관 계에 관한 원리를 설정하였던 바, 이는 그 명료성과 정확성에 서 데카르트를 훨씬 능가한다. 호이헨스가 강조하는 바에 의하 면, 물리학은 수학적인 논증이나 추리와 같은 정도의 명료성을 얻을 수 없고, 또 물리학의 기본 진리에 대한 직각적인 확실성 도 있을 수 없다. 물리 학은 단지 〈실천적 확실성 morali sc he 16) 네덜란드 과학자들이 프랑스 사상 발전에, 특히 볼테르에 끼친 영 향에 관해 서 는 피 에 르 브뤼 네 Pie r re Brune t의 Les Ph ysicie ns Hollandais et la Metb o de Exj函 men ta le en France au XVI!l sie c / e, Pari s, 1926 을 보라.

Gew i Bhe it〉만을 요구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의 현실적 생활영 역 내에서 실천적 확실성은 엄밀한 수학적 증명 못지않은 아주 높은 정도의 개연성을 확보한다. 어떤 가설에서 나온 결론들이 모두 경험에 의해 검증되고 또 이 결론을 기초로 해서 새로운 것이 예측되고, 이 새로운 것도 역시 경험에 의해 검증될 수 있다면, 우리가 과학에게 요구할 수 있는 진리요건은 다 갖춘 것이 될 것이다 .17) 18 세기 네덜란드의 물리학자들은 이러한 이 론을 더욱 발전시키고, 이 이론의 궁극적인 확증을 뉴턴 학설에 서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뉴턴의 학설에는 직접적 인 경험에 의해 확인될 수 없는 단 하나의 가설적 요소도 도입 되지 않기 때문이다. 스그라베잔데 S'Gravesande 가 1717 년에 라 이덴 대학의 수학, 천문학 교수로 초빙받았을 때, 그는 취임 강연에서 뉴턴 이론을 여러 국면으로 발전시키고 해명하려 한 댜 그러나 이렇게 할 때 그는 곧 놀랍도록 어려운 문제에 봉 착한다. 우리가 관찰한 것을 기초로 해서 아직 관찰하지 못한 다른 사실을 예견한다면, 우리의 예견은 자연의 균일성 내지 제일성(齊一』性)의 공리에 의거하는 것이다. 오늘 자연에 들어 있는 법칙들이 내일도 계속해서 타당할 것이라는 가정 죽 제일 성의 공리가 없다면, 과거에서 미래로의 모든 추리는 공허한 것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 공리는 어떻게 증명될 수 있는가? 스그라베잔데에 의하면, 이것은 엄밀한 논리적 공리가 아니라 실용적인p ra g ma ti sch 공리이다. 이 공리의 타당성은 사 유의 필연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행위의 필연성에서 나온 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가 과거경험의 교훈이 미래에도 타당하 17) Huyg he ns, Trait e de la Lumi er e; 롬멜 Lommel 에 의한 독일어 번역 판 (Le ip z ip, 1890), 3 쪽 이 하.

리라고 가정을 할 수 없다면, 우리의 실제적인 모든 삶의 행위 는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모든 과학적 예측은 형식 논리학의 삼단논법적 필연성을 지니 지 못한댜 그러나 그것은 〈없어서는 안 될 그리고 타당한〉 유 비추리 Analo gi eschlu fs이다. 물리적 사물에 관한 지식 즉 사물 의 경험적 성질에 관한 지식은 이러한 유비추리를 넘어서지 못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유비추리로서 만족해야 하며 만족해도 좋다. 우리가 어떤 것을 부정하게 될 때, 이것이 곧 인간의 경 험적, 생물학적 및 사회적인 삶의 부정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어찌 그것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한에서 그것 은 진리로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18) 이제 물리학의 확실성은 더 이상 순수 논리적 전제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단지 생물학적 내지 사회학적 전제에 근거한 것이 된댜 스그라베잔데는 이 사상을 형이상학적으로 다시 해석함 으로써, 이 사상이 지닌 과격한 혁명성을 애써 극소화하려고 한다. 〈자연의 창조주는 생물적 존재로서 우리가 유비추리를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러므로 유비추리는 우리의 추리에 있어 정당한 기초가 될 수 있다〉 19) 라고 스그라베잔데는 말한다. 그러나 이 문장에서의 〈그러므로〉는 분명히 〈주제의 전이 (轉移, meta b asis eis allo g enos) 〉이댜 왜냐하면 유추의 심 리학적 내지 생물학적 필연성은 유추의 논리학적 필연성 내지 유추의 객관적 진리성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 18) 스그라베잔데의 취 임 연설 ‘‘De Math e seos in omnib u s scie n ti is pr ae- cipu e in Phys i c is usu (1717) 과 그의 저술 Pbys i c e s Elementa … … siv e Jn tr o ductio adp h il o sop h ia m Newt on ia m (Leyd e n, 1720) 을 참조. 19) s' Gravesande, Pbys i c e s Elementa : 앞에 서 인용한 브뤼 네 Brune t의 책, 56 쪽을 참조.

서 수학적 경험론은 바로 회의적 경험론의 문턱에 와 있다. 뉴 턴에서 흄에로의 길은 피할 수 없는 길이다. 뉴턴의 수학적 경 험론과 흄의 회의적 경험론은 조그만 입김으로도 훌쩍 날려 버 릴 수 있는 얇은 간막이 천에 의해 구별될 뿐이다. 데카르트는 인식의 최고 확실성에 쐐기를 박기 위해 〈신의 성실성〉을 끄집 어 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예컨대 순수 수학의 개념이나 원칙 처럼, 아주 명백히 그리고 명증적으로 파악된 관념이나 원리의 절대적 타당성을 부인해 버리는 것은 곧 〈신의 성실성〉을 의심 하는 꼴이 된다. 그리고 최고의 물리학적 원리의 진리성 즉 경 험의 진리성을 보장하기 위하여서도 신의 성실성은 아니라 할 지라도 〈신의 선량함〉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신의 선 량함을 전제로 해서만 우리는 인간 생존에 필수불가결하게 중 요한 신념들이 사물세계에 객관적인 토대를 지닌다고 추리할 수 있다. 이제 신의 선량함이 고려된다면 유비추리는 믿을 만 한 것이라고 스그라베잔데는 말한다. 〈유추의 확실성은 모종의 법칙들의 불변성에 근거하고 있는데, 만약 이 법칙들이 변한다 면 그 순간 인류는 그로 말미암아 엄청난 재난과 파멸을 피할 수 없게 되리라.〉 20) 그러나 이로써 얻은 결과가 있다면, 물리 학의 근본문제를 변신론(辯神論)의 문제로 바꾸어버린 것에 불 과하다. 만약 여기서 변신론의 색체를 완전히 제거해 버리면 물리학적 귀납의 확실성 문제는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 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흄에서 일어난 일이다. 수학적 경험론 이 이제 도달한 귀결은, 자연의 제일성이 일종의 믿음에 근거 할 뿐이라는 것이다. 흄은 이 귀결을 받아들이되, 이 믿음에서 20) s' Gravesande, Rede iibe r die Evid e nz; 엘 리 드 종쿠르 Eli e de J oncou rt가 프랑스어로 번역한 『물리학의 요소』 서론을 참조.

일체의 형이상학적 색체나 초월적인 요소를 모두 제거한다. 이 믿음은 더 이상 종교적 근거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심 리적 근거만을 지닌다. 그것은 순전히 인간성의 내적 필연성에 서 비롯되는 믿음이다. 이런 의미에서 〈믿음 be li e f〉에 관한 흄 의 이론은 경험과학을 종교적 토대 위에서 세우려는 사상에 대 한 아이러니컬한 해결책이었다. 이 해결책은 과학과 종교의 역 할을 서로 뒤바꾼 것이다. 이제 과학에 확고한 기초를 제공해 주는 것은 절대적 진리성을 자랑하는 종교가 아니다. 오히려 과학적 인식의 상대성이야말로 또한 종교를 매력 있게 만든다. 과학과 마찬가지로 종교도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정당성을 지닐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종교와 과학을 주관적 원천에서 이끌 어 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때 우리가 종 교와 과학을 정초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이것들을 인간성의 근원적이고 근본적인 본능에서 나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인과율의 문제에서 도달한 귀결은 실체 문제에서 도달된 귀 결과 똑같다. 여기서도 또한 수학적 경험론은 하나의 결정적인 발전을 눈 앞에 본다. 수학적 경험론에 따르면, 사물의 경험적 인 여러 기본 성질들 사이에는 하등의 명확한 시간적 순서 내 지 인과 관계도 찾아볼 수 없으며, 따라서 어떤 한 성질에서 다른 성질을 논리적으로 연역해 낼 수도 없다. 그러나 데카르 트에게 있어서 이러한 연역은 바로 물리학의 이상이 된다. 그 는 순수 기하학적 성질들을 출발점으로 삼고 이로부터 사물의 여타의 성질들을 모두 이끌어 내고자 시도한다. 그래서 무게나 뚫고―들어갈-수-없음 등의 성질을 포함한 질료의 모든 성질 들은 단순한 연장성(延長性)으로 환원된다. 따라서 연장성은 사

물세계의 본질이요 진리가 되나, 그 외의 다른 모든 성질들은 단지 우연적인 성질들에 불과하다 . 그런데 뉴턴과 그의 학파는 바로 이러한 데카르트의 연역적 이상에 반대하고 순수 귀납적 이상을 주장한다 . 이들이 강조하는 바에 의하면, 우리가 엄밀 하게 경험이 알려주는 바를 따라갈 때, 우리는 단지 성질들이 함께 있다는 것만을 확인할 뿐이요, 따라서 어떤 한 성질을 다 른 성질에서 연역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다 . 이러한 논의의 전개를 위해서 특히 네덜란드 물리학자들의 학설을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 스그라베잔데와 그의 제자이며 후계자인 무쉔브 뢰크 Musschenbroek 는 거듭하여 강조하기를, 질료의 본질적 성 질과 뱌본질적 성질을 구별한다는 것이 근본적으로 부질없는 짓이라고 한다 . 왜냐하면 경험에 의해 어디서나 확인되고 따라 서 자연의 보편법칙으로 인정되지 않을 수 없는 어떤 자연법칙 이 예컨대 관성의 법칙이 있을 때, 이것이 과연 사물의 본질적 이고 필연적인 성질을 우리에게 알려 주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 기 때문이다. 〈이러한 법칙이 질료의 본질에서 유래하는 것인 지, 아니면 이러한 법칙이 ‘신이 사물에 부여하였으나 결코 사 물의 성질이 아닌 모종의 근본 성질’ 에서 유래하는 것인지, 혹은 우리가 보는 결과 현상들은 우리의 생각이 도저히 미치지 못하 는 어떤 외적 원인에 근거하는 것인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전혀 알 수 없다. > 연장과 형태, 운동과 정지, 무게와 관성이 질료의 근본 성질임은 경험적으로 확실하다. 그러나 우 리에게 알려진 이러한 성질 이외에 다른 성질들이 미 -래 에 발견 될는지도 모르며, 이 다른 성질들도 또한 이미 알려진 성질들 못지않게 기본적이고 근원적인 것일 수도 있다 . 21) 따라서 사물 의 성질을 근원적인 것과 부차적인 것으로 구분하려는 모든 시

도를 또한 포기하지 않을 수 없다. 〈본질〉과 〈현상〉을 구분하 고 후자를 전자로부터 이끌어내려고 시도하는 대신에 , 우리는 어디까지나 현상 세계 내에 머물러야 하며, 하나의 속성을 다 른 것에 의해 설명하려고 시도하는 대신에, 경험적으로 알려진 여러 징표들이 〈함께 있다(共存在)〉는 사실에 만족하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경험을 넘어서는 일체의 시도를 포기한다고 해 서 우리의 현실적인 앎에 어떤 손실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오 히려 우리는 그렇게 함으로써 경험적 인식의 전진을 방해해 왔 던 일체의 관념적 이상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자 이렇게 볼 때, 이것은 분명히 실체 개념의 전적인 포기에 이르는 길이 요, 〈사물의 관념은 단지 성질들의 집단 관념에 불과하다〉는 생각으로 이르는 길이다. 이러한 변화는 점진적으로 부지불식 간에 이루어진다 . 경험철학을 정초하는 데서 일체의 〈형이상학 적〉 요소를 제거하려는 이 시도는 결국 경험과학 자체의 논리 적 기초를 의문시하고 위태롭게 할 정도로 진전된다. 3 수학적 물리학이 현상론의 한계 내에 머무르고 또는 더 나아 가 회의적 결론에 도달하는 반면에, 자연과학적 통속철학은 정 확히 이와 반대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 철학에는 하동의 비판 적인 회의나 머뭇거림도 없으며, 인식론적인 제한도 없다. 그 21 ) s 'Gravesande, Phys i c e s Elementa Ma t hema ti c 려 서 문과 무쉔브뢰 크 p의h ys 총i c a장 (1취73 0임) 을연 참설조문. 인 De meth odo ins ti tue ndi exp e ri m enta

것은 세계의 내적 핵심을 알려고 하며, 세계의 신비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것에 의하면,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지금과는 다른 특별한 어떤 노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우리 가 해야 할 일은 단지 지금까지 자연인식의 발전을 지연시킨 방해물들을 제거하는 일로 족하다 . 인간정신이 자연을 참되게 정복하는 길을 방해한 것은 초월적 세계에 대한 부질없는 애착 심이다 . 만약 우리가 초월의 문제를 깨끗이 정리해 치워버린다 면, 자연은 더 이상 신비로운 것도 아니요, 알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정신이 자연을 안위적인 어둠 속에 가 두어 놓는다. 만일 자연의 모습으로부터 언어, 인위적 개념 내 지 환상적인 편견이 만들어내는 장막을 거두어 버린다면, 자연 은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드러날 것이요, 이때의 자연은 초월 적 원리로부터 독립한 독자적인 것이고, 자족적인 것이요, 유 기적인 전체로서 그 자신을 스스로 설명해 주는 것이다. 자연 의 원리를 초월적인 것에서 추구하는 〈외적〉 설명은 결코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도 자연의 작품이요, 자 연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연의 법칙으 로부터 벗어나고자함은 헛된 일이다. 자연의 법칙을 벗어난 인 간의 사유가 있다고 보는 것은 단지 외견상으로만 그러하다. 인간의 정신이 감각 세계를 넘어서고자 제 아무리 노력한다 하 더라도, 그것은 언제나 이 감각세계로 되돌아오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인간 정신의 유일한 능력은 단지 감각자료를 결합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자연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인간의 모든 지식은 감각자료에서만 생긴다. 그리고 이 감각자 료에는 하등의 어둠이나 의심도 남아 있지 않고 명백하고 완전 한 질서가 들어 있다. 자연의 신비에 끝까지 저항하고 대처하

는 인간 정신에게 자연의 신비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 러한 정신은 자연에서 하등의 모순이나 분열을 찾아 볼 수 없 고 오히려 오직 하나의 존재, 하나의 법칙 형성만을 보기 때문 이댜 소위 정신적 현상까지 포함한 자연의 모든 진행 과정 은, 다시 말해 사물의 물질적인 질서와 〈정신적〉인 질서는 모 두 물질과 물질의 운동으로 환원될 수 있으며 이 두 개념으로 완벽하게 설명될 수 있다 . 〈존재한다는 것은 운동할 수 있고 운동한다는 것이요, 운동을 주고받는 것이다. 다시 말해 존재 한다는 것은 자기 존재를 강화하기에 적합한 물질을 끌어들이 고 자기 존재를 약화시키거나 해롭게 할 물질을 거부하는 것이 댜〉 인간이라는 것 죽 인간의 관념, 의지 및 행위는 〈자연이 부여한 근본성질들〉과 〈이 성질들을 발전시키고 변화시키는 환 경〉과의 필연적 결과물들일 뿐이다 .22) 이제 자연의 진리를 확실하게 해줄 수 있는 길온 연역적, 논 리적 내지 수학적 추리가 아니라 부분에서 전체로 나가는 추론 이다. 인간의 본질로부터 자연 전체의 본질은 해독(解讀)되고 결정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에 관한 생리학이 자연 인식의 출 발점이며 열쇠가 된다. 유물론의 창시자들에게 있어서 수학 내 지 수학적 물리학온 자연 인식의 중심 위치에서 밀려나고 그 자리에 생물학과 일반 생리학이 대신 들어선다. 라메트리는 의 학적 관찰에서 시작한다. 홀바흐는 특히 화학과 유기적 생명과 학에 의존한다. 디드로는 콩디야크의 철학에 대해 감각을 모든 실재의 기본요소로 간주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고 이의 를 제기한다. 과학은 이것을 넘어서서 감각의 원인을 밝혀야 하거니와, 이 원인은 오직 인간의 신체적 조직에서만 발견될 22) Holbach, Sys t e m e de la Natu re, 특히 1 쪽 이 하와 53 쪽 둥을 참조 .

수 있댜 이렇게 해서 철학의 기초는 감각의 분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사, 생리학, 의학에 의존하게 된다 . 라메트리의 최초 저술은 『영혼의 박물학』이다. 그에 의하면 영혼의 역사는 엄밀히 육체적 현상만을 관찰하고, 그리고 엄밀한 관찰에 의해 서 정당화될 수 있는 단계만을 밟아 나감으로써 쓰여질 수 있 다. 그가 열병을 앓았을 때, 그는 그의 정서적 내지 지적 활동 이 평상시와 완전히 뒤바뀜을 체험하였는데, 바로 이와 같은 관찰이 그의 연구의 성향과 그의 철학 전체의 노선을 결정해 주었다고 말한다으 감각적이고 신체적인 경험만이 이제부터 그 의 유일한 안내자가 된다. 그는 감각에 대해 말하기를 〈여기 나의 철학자들이 있다〉고 한다 .24) 디드로에 의하면, 눈에 보이 는 것의 원인을 안 보이는 것에서 찾고자 하는 사람은 시계의 움직임을 보고 그 안에 어떤 영적 존재가 들어 있다고 생각하 는 농부와 같다고 말한다 . 여기서 독단적 유물론은 현상론의 길로 접어든다. 또한 그것 은 현상론의 귀결인 회의론에 찬성하지 않으면서도 현상론의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유물론에 있어서도 사물 의 절대적 본질 문제는 논외로 되며 그 중요성도 인정되지 않 기 때문이다. 라메트리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는 타성적인 단 순물질이 어떻게 하여 활동적인 유기적 사물로 변화되는가를 알지 못한다. 이 사실에 대하여 우리는 한탄해도 쓸데 없고 그 저 스스로를 자위할 뿐이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자연의 많 은 기적들에 대해서도 이러한 느낌은 마찬가지다. 예컨대 우리 23) Lamett rie, His t o i r e natu re/le de !'ame , 1745 를 참고 . 나중에 이 책 의 제 목은 Trait e d e !'ame 로 바뀐다. 24) 같은 책, 1 장.

의 제한된 감각에는 그저 물질 덩어리로밖에 안보이는 존재에 서 어떻게 하여 감정과 사유작용이 생기는지 하는 문제에 대해 서도 마찬가지 느낌만을 가질 뿐이다. 독자가 다 같이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면, ‘유기적인 물질은 운동 의 원리만을 지니고 있으며, 이 원리에 의해서 유기적 물질은 여러 가지 형태로 분화되고, 그리고 생물의 온갖 다양성은 이 유기적 조직의 차이에 기인할 뿐이다’ 라는 사실이다. > 원숭이 나 다른 고등 동물의 행동과 인간 행동의 차이는 마치 원시인 들이 고안한 시계와 호이헨스가 만든 천체 시계의 차이와 같 댜 〈예컨대 유성의 운동 과정을 알아 보려고 한다면, 단순히 그림자로 시간을 재는 것으로는 안 되고, 이보다 훨씬 더 복잡 한 기구와 톱니바퀴와 용수철을 사용한 시계가 필요하다. 그리 고 보캉송 Vaucanson 이라는 사람이 장난감 오리를 만들때 보다 는 ‘피리부는 사람’을 만들 때 더 많은 재간을 필요로 했듯 이, 그가 만일 말을 하는 사람을 만들려고 했다면,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한 장치와 재간과 노력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인간 의 신체도 하나의 거대한 시계이다. 그것은 엄청난 기술과 재 간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초침을 돌리는 톱니바퀴가 멈추 었을 때에도 분침이 여전히 돌아가는 시계이다.〉 25) 18 세기 유물 론의 방법적 특징은 17 세기 위대한 체계가들의 실체론적 관점 의 심신(心身)관계를 떠나 완전히 인과율의 관점만을 고려한다 는 점이다. 심신의 본질이 서로 어떻게 관계하느냐 하는 문제 는 더 이상 안중에 없다. 우리는 그저 심신의 작용이 서로 불 가분(不可分)하게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적 확인에 만족한다. 25) Lamett rie, L'HommeMachin ~ Mauri ce Solovin e 판, Par is, 1921, 129 쪽 이하.

심신 사이의 분명한 한계선을 그을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신 체적 현상과 심적 현상을 구분하는 것은 단순한 추상에 의한 것이요, 따라서 아무런 경험적 증거와 보증도 없는 것이기 때 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세심하게 관찰한다 할지라도, 그리고 우리가 아무리 실험적 분석을 끝까지 추구한다 할지라도, 우리 는 결코 심적인 것과 신체적인 것을 갈라놓는 명확한 지점에 도달할 수 없다 . 양자는 완전히 함께 주어지고 하나의 배역(配 役)을 맡기 때문에 양자 중 어느 하나를 없애는 것은 곧 다른 것을 함께 없애는 꼴이 된다. 우리가 사물의 본성에 접근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오직 그 사물의 작용에 대한 관찰에 의해서만 가능하듯이, 우리는 심신의 필연적이고 불가분적인 작용 연관 울 기초로 해서만 심신 본성의 동일성을 추론해 볼 수 있다. 죽은 물질과 살아있는 물질 현상 사이의 차이점, 죽 운동과 감 각 사이의 차이점은 여기서 문제시될 필요가 없다. 물론 우리 는 감각이 어떻게 해서 운동에서 생기는지를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물질 자체와 물질 현상의 관계에 대해서 조차도 역시 모르고 있지 않는가? 더 나아가 우리는 한 물질의 운동량이 다 른 물질에 어떻게 전달되는지도 죽 물질 간의 기계적 충격의 과정도 개념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단지 경험적으로 이런 것들을 관찰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다. 이와 마찬 가지로 심신의 문제에 있어서도 단지 경험적 관찰만이 확실하 고 유일한 길이다. 물질 간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심신의 문제 에서도 한편(본질적 측면)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으나 다 론 한편(작용에 대한 경험적 관찰의 측면)은 명백하다 . 경험이 알려주는 것에 만족하고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다면, 경 험은 심신 사이에도 물질 간의 관계와 똑같은 항구적인 관계가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물질이 그 기본적 성질인 연장성 이외에 다른 여타의 성질을 지닌다는 것에 대해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면, 그 물질이 감각, 기억 내지 사유의 능력을 지닌 다는 것에 대해서도 역시 의심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물질의 기본적 성질인 연장성과 전혀 다른 성질들 예컨대 불가분성(不 可分性), 전기(電氣), 자기(磁氣) 혹은 무게와 같은 성질들이 유기적인 물질과 모순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유도 유기 적인 물질과 모순되지 않는다 .26) 그리고 감각과 관념에 대해 타 당한 것은 또한 욕구나 욕망에 대해서도, 더 나아가 결심이나 도덕적 행위에 대해서도 타당하다. 욕구나 결심과 같은 현상들 울 이해하기 위해 이제 우리는 내적 원리나 초월적 원리 혹은 단순 실체 같은 것을 끌어들일 필요가 없다. 〈우리가 최소한의 운동 원리만을 가정한다면, 신체는 움직이고 느끼고 생각하고 후회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간단히 말해 신체적인 행위와 이를 기초로 한 도덕적인 행위를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구비 하게 될 것이다.〉 27) 그러나 우리가 유물론적 체계의 이러한 귀결들만을 본다면 아직도 우리는 유물론 체계의 사상적 핵심이 아니라 단지 그 외양만을 보고 있다. 왜냐하면, 언뜻 보기에 매우 이상할지 모 르지만, 이 핵심은 자연철학이 아니라 윤리학에서 찾아져야 하 기 때문이다. 18 세기에 지지되고 정당화된 유물론은 단순히 자 연과학적 내지 형이상학적 독단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의 시대적 실천 명령 ein Im p era ti v 이다. 그것은 자연 사물에 관한 이론을 세우고자 할 뿐만 아니라 행위를 명령하고 급지하고자 26) Lamett rie , L'HommeMachin e , 134 쪽. 27) 같은 책, 113 쪽.

한다 이런 특징은 특히 홀바흐의 『자연 체계』에서 분명히 드 러난다 피상적으로 볼 때, 홀바흐의 학설은 아주 엄밀하고 일 관된 결정론의 체계처럼 보인다. 인간의 욕구나 욕망을 근거로 해서만 이해될 수 있는 어떤 요소도 자연의 상(像) 속에 도입되 어서는 안 된다 . 좋은 것과 나쁜 것, 올바른 것과 그릇된 것은 자연 속에 없다. 자연의 모든 존재와 생성온 가치와 타당성에 있어서 똑같다. 모든 현상은 필연적이다. 특수한 상황 속에서 일정한 성질을 지닌 존재는 〈그것이 실재로 작용한 것과는 다 른 방식으로〉 작용할 수 없다. 따라서 자연에는 악도 없고 죄 도 없으며 무질서도 없다. 〈자연의 모든 것은 질서 속에 있다. 그 어떤 것도 그것의 본질로부터 생긴 필연적안 법칙을 조금치 도 벗어날 수 없다.〉 28) 인간이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믿는다 면, 그는 단지 위험스러운 망상 내지 지적인 연약함을 드러내 는 꼴에 불과하다. 인간을 형성하는 것은 원자 구조이고, 인간 을 부추켜 움직이게 하는 것은 원자의 운동이다. 인간과는 무 관한 원자적인 조건들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을 결정하고 인간의 운명을 이끌어 나간다 .29) 그러나 이러한 유물론의 내용을 공공 연히 말한다면, 상당한 적대감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은 뻔하 댜 왜냐하면 보통 사람들은 〈비웃지도 말고, 한탄하지도 말 고, 미워하지도 말라. 그대신 오직 이해하라〉는 스피노자의 경 구를 결코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 외면적으로 보더라도 이 미 홀바흐의 자연 철학은 보다 포괄적인 전체 체계를 위한 예 비 단계에 불과하다. 그의 〈자연 철학〉은 그의 〈사회 체계〉 및 28) Holbach, Sys t e m e de la Natu r e, 1 편, 4 장 및 5 장 (50 쪽 이하 및 58 쪽 이하). 29) 같은 책, 274 쪽.

〈 보편 도덕 〉 의 기초를 이룬다. 그리고 그의 사상의 주된 실질 적 성향은 이 후자의 두 저서에서 비로소 분명히 드러난다. 인 간은 사물의 〈근본 원인 〉 에 관련된 일체의 환상으로부터 벗어 나야 한다 . 이렇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인간은 자신의 생각 에 따라 독자적으로 자신의 세계 질서를 수립하고 실행시킬 수 있다 . 이제까지 신학적 유심론은 정치-사회적 체계의 참된 자 율적 규제를 방해하여 온 장본인이다 . 그것은 학문들의 발전을 매 단계마다 방해하여 온 학문의 감시자 노릇을 해왔다 . 〈 초자 연계의 학문인 신학, 따라서 경험의 천성적인 적(敵)인 신학은 자연과학의 발전에 골치 아픈 방해꾼이다. 물리학, 박물학 및 해부학은 미혹된 허깨비 눈을 통해서만 사물을 보도록 강요당 해왔다. 〉 30) 이러한 미신적인 규율은, 그것이 도덕 질서의 수립 울 위임받을 때, 더욱 더 위해(危害)롭게 된다 . 이렇게 되면 그 것은 인간의 지식을 없앨 뿐만 아니라 인간 행복의 기초마저 허물어뜨린다. 그것은 수천의 환상으로 인간을 위협해서 인간 현존의 자연스러운 온갖 즐거움을 빼앗아 간다. 온갖 유심론을 단호히 그리고 철저하게 배격함으로써만 이런 상황은 치유될 수 있다 . 신, 자유 및 영혼불멸의 관념은 단연코 뿌리째 뽑아 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이런 관념들에 의해 만들어진 초월적 세계의 온갖 부정적인 방해를 극복하고 자연의 합리적 질서가 수립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라메트리의 『인간 기계 론』에서도 발견된다. 신에 대한 믿음이 사라질 때에야 비로소 온갖 종류의 신학적 논쟁과 종교 전쟁이 그치게 될 것이다. 그 리고 〈지금까지 신성한 독약(毒藥)에 오염된 자연이 그 권리와 순수성을 되찾게 될 것이다 . 〉 3 1)

30) 같은 책, 311 쪽 .

그런데 『자연의 체계』가 이처럼 종교에 반대하여 주장하고 종교적 미신을 고발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다시 말해 그것이 순전히 이론의 확립에 만족하지 않고 인간의 사유와 믿음에 관 한 하나의 실천적 규범 Norm 을 주장함으로써, 그것은 스스로 아주 곤란한 딜레마에 빠져버린다. 자연현상의 절대적 필연성 을 주장하는 학설은 이를 위한 자신의 논증으로 말미암아 자신 의 발목을 잡히게 되는, 말하자면 자승자박의 꼴이 된다. 이런 학설은 도대체 무슨 권리로 실천을 말하며, 이 규범에 따르도 록 권고하며, 또 이 규범의 좋고 나쁨을 평가할 수 있는가? 이 학설에 따르면 모든 규범과 〈당위 So li en 〉는 거짓된 환상에 불 과하게 되며 결국 〈필연 Mussen 〉으로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우리에게 남은 길이란 이 필연에 따르는 길 뿐이라고 한다. 그 렇다면 우리는 이 필연의 길을 어떻게 하여 우리가 마음 먹은 대로 조종하고 규정할 수 있단 말인가? 『자연의 체계』에 대한 18 세기의 비판이 이미 이 이론의 이러한 기본적 약점을 잘 알 고 있다. 이 책에 대한 프리드리히 대왕의 논박서(論駿書)는 이 약점을 인상 깊게 드러내 준다. 〈자연 체계〉의 저자는 인간의 모든 행위가 숙명적인 필연성에 따름을 밝히기 위해 여러 가지 로 논증했다. 이로부터 나오는 귀결은 인간이 일종의 기계일 뿐 이요, 맹목적인 힘에 의해 움직이는 인형에 불과하다는 것이 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저자는 교회, 정부 내지 교육 제도 에 대해 격렬히 비판한다. 그리고 그는 이런 실천적 활동을 하 는 사람이 자유롭다는 것을 믿는다. 인간이 필연성의 노예임을 증명한 사람이 동시에 인간이 실천적으로 자유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짓거리인가! 모든 것이 필연적 31) L'HommeMacbi~ 111 쪽.

인 원인에 따른다면, 충고나, 교육이나, 상을 주거나, 벌을 주 는 일들은 아무 쓸데 없는 일이요, 그 의의를 지니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런 일들은 마치 참나무 보고 귤나무가 되라고 설득 하는 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홀바흐보다 더 예리하고 더 재 치 있는 변증가가 있다면, 그는 아마도 이러한 바판을 극복하 고 이 비판을 교묘히 자신의 논증 방식으로 소화 홉수할 수 있 을 것이다. 디드로는 숙명론의 체계가 지니는 이러한 이율배반 을 아주 날카롭고 분명하게 표현한다 . 그러면서도 그는 동시에 바로 이 이율배반을 자신의 철저한 변증적 사유의 추진력으로 사용한다. 그는 변증적 사고의 순환을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순환을 동시에 사유의 고차원적 유희로 만들어버린다. 그의 독창적이고 재기발랄한 저작 중의 하나는 바로 이러한 동 기에서 나왔다. 『숙명론자 쟈크』라는 소설에서 그는 숙명이 인 간 사유의 알파요, 오메가임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는 우리의 사유가 어떻게 하여 숙명 개념과 항상 모순되게 되는가를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사유는 바로 이 사유 가 숙명 개념을 비로소 정립(定立)한다는 사실 자체로써, 이 개 념을 암암리에 다시 부정하고 지양(止揚, Au th eben) 하지 않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지양의 과정도 또한 필연 적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우리는 표상하고 판단하고 긍정 하고 부정하는 사유 활동을 통해 언제나 저 필연성의 이념에 어긋나게 되는데, 이 어긋남의 과정도 또한 필연성의 영역 내 로 편입될 수밖에 없다. 디드로에 의하면, 자유와 필연이라는 양극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이중적 운동에 의하여 비로소 우리의 현존과 사유의 고리는 완성된다. 일면적인 주장이나 거 부가 아니라 이러한 양면적인 이중 운동을 통하여 비로소 포괄

적인 자연 개념이 -죽 근본적으로 선과 악을 넘어서고, 일 치와 모순을 넘어서고, 참과 거짓을 넘어서는 자연 개념이 ——- 획득된다. 왜냐하면 이 개념은 이 양 계기를 함께 지니고 있으 며, 아무런 차별을 두지 않고 이 양자를 다 받아들이기 때문 이다. 한편으로는 무신론에서 범신론(t凡神論)으로, 유물론에서 범 심론(t凡心論)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범신론에서 무신론으로, 범 심론에서 유물론으로 이행하는 디드로의 변증법적 소용돌이는 18 세기 사상계에서 아직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였다. 18 세기 사 상의 전반적인 발전에서 홀바흐의 〈자연 체계〉도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홀바흐에 가까운 사상가들조차도 이 책의 극단 적인 결론 뿐만 아니라 출발 전제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볼테 르의 신랄한 비판은 이 책의 최대 약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편 협한 독단론에 대한 투쟁의 기치를 내건 홀바흐 자신이 자신의 견해를 독단적으로 제시하고 이를 편협하기 그지없게 옹호하려 든다는 모순된 사실이 날카롭게 지적된다. 볼테르는 자신의 자 유 사상이 이런 식으로 오도되어 옹호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또 그는 홀바흐와 그 추종자들에 의해 〈무신론의 대변자〉로 낙 인 찍히는 것울 싫어했다. 그리고 볼테르는 홀바흐의 표현 방 식에 대해 더 가혹하게 바판을 가한다. 그는 홀바흐의 문체를 지겹도록 〈골치 아픈〉 특종의 문체라고 비난한다 .32) 사실 홀바 흐의 문체는 장황하고 지루할 뿐더러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다. 홀바흐 책의 목적은 자연철학에서 종교적인 요소 뿐만 아니라 감성적인 모든 요소까지도 배제하고, 감정과 상상의 모든 힘을 32) Volta ire , Gedic b t Les Cabeles( 1772) , 전 집 Paris, Leq ui e n , 1825, 24 권, 236 쪽 이하를 참조.

없애 버리는 것이다. 맹목적인 그리고 기계적으로만 움직이는 자연을 숭배하고 경배하는 일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이다. 〈자 연에는 감정이 없다. 자연의 모든 구체적인 형태들은 얼마 동 안 지속하다가 필연적으로 사라지게 마련이다 . 인간은 이러한 자연 가운데 느낌을 갖는 한 부분에 불과하다 . 자연은 거대한 공장이다. 이 안에는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을 만들어 내는 데 필요한 모든 기계설비가 갖추어져 있다. 이러한 자연에는 우리 가 멋대로 지어 만든 상상적인 원인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이 런 요사스런 원인은 단지 우리의 뇌 속에만 있을 뿐이다.〉 33) 괴 테가 스트라스부르그에 있던 그의 죽마고우들과 함께 백과전서 파들의 이야기를 듣고서, 〈우리들은 마치 어지럽게 움직이는 무수한 실패와 직조기들 사이를 지나가는 것처럼 느꼈고, 알 수 없는 복잡한 기계 장치들 때문에 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당혹감을 느꼈고, 그래서 이 모든 것들이 한 조각의 옷 감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자 우리 자신들이 걸친 옷에 대해서까지 지긋지긋한 느낌을 갖게 되었다〉라고 말했을 때, 괴테는 분명히 위에서 인용한 홀바흐의 이야기와 같은 것 들을 염두에 두고 말했을 것이다. 괴테가 전하는 말에 의하 면, 괴테와 그의 친구들은 『자연의 체계』와 같은 책들이 어떻 게 해서 그렇게 위험시될 수 있었는지 그 까닭을 알 수 없었다 고 한다. 〈그런 책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혼미하고 환 상적이고 마치 송장과 같이 보인다. 우리는 그 책 앞에서 마치 유령을 보는 것처럼 섬뜩한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홀 바흐의 책이 출판되자마자 이 책에 가해진 격렬한 비난의 원인 은 그 책이 모든 종교적인 힘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생생하게 33) Sys t e m e de la Natu r e, 205 쪽.

타오르는 모든 예술적인 불꽃들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데 있다. 이러한 새로운 불꽃의 힘들은 18 세기에 있어서 체계적인 미학 을 새로이 형성하는 원동력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자연관을 형 성하는 데 있어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자연과학 발전에 획기적인 역할을 한 하나의 중요한 운동이 바로 그러한 힘들에 서 발생하고 있음을 기억하자. 4 18 세기의 지적 운동과 변화에 대해 가장 민감한 이해력을 지 녔던 디드로는 그의 저서 『자연의 해석』에서 18 세기는 아주 곁 정적인 전환점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과학의 분야에서 위대한 혁명이 예고된다. 〈나의 예견으로 보면, 앞으로 일세기(一世紀) 가 지날 때까지 유럽에는 위대한 기하학자가 세 사람 이상 나 오지 않을 것이다. 기하학은 이미 그 정점에 도달했으며 따라 서 오일러 Euler, 베르누이 Bernoulli, 달랑베르, 라그랑지 La- gran g e 둥이 연구해 놓은 것에서 곧 멈추게 될 것이다. 이들은 기하학에서 헤라클레스의 기둥을 세웠으며, 우리는 그 이상으 로 나아갈 수 없게 될 것이다. >순 수 수학의 역사를 볼 때 이 예견은 잘못된 것이다. 디드로가 말한 백 년이 지나기 전에 벌 써 가우스 Gauss 가 죽었다. 가우스에 의해 수학은 완전히 새로 운 모습을 지니게 되었고, 또 내용적으로나 방법적으로도 수학 은 18 세기 사람이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영역을 확대하였 다. 이런 수학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디드로의 예견의 배후에는 참된 의미가 있다. 그가 강조한 점은 여러 자연과학 가운데서

수학이 지금까지 누려왔던 절대적 지배력이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제 수학이 맞서 싸워 이길 수 없는 적수가 서서히 나타난다. 수학이 그 자신의 영역 내에서 아무 리 완전하게 된다 할지라도, 그리고 수학적 개념들을 아무리 정확하게 발전시킨다 할지라도, 이러한 수학의 완전성은 어디 까지나 수학의 내재적 영역 내에 머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수학은 그 자신이 스스로 만든 개념의 영역 밖으로 나갈 수 없 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수학은 경험적인 구체적 실재로 직접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실재의 영역은 오직 충실한 경험과 정확한 관찰에 의해서만 접근될 수 있다. 실험적 방법이 제대 로 그 효능을 얻기 위해서는 이 방법을 모든 후견인으로부터 해방시키고 그 독자적인 자율성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이러기 위해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형이상학적인 체계 정신 뿐만 아니 라 수학적인 체계 정신과도 과감하게 맞서 싸울 필요가 있다. 수학자가 자기의 개념 세계를 전개시키고 더 나아가 이 개념 체계의 올가미로 실재를 낚울 수 있다고 생각할 때, 그는 이미 수학자를 넘어서 형이상학자가 되어버린다. 〈기하학자가 형이 상학자를 비난할 때, 그는 자신의 학문적 성격이 곧 형이상학 이 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18 세기의 모든 물리학을 지배하던 수학적 자연과학의 이상은 점차 퇴색되어 가고, 그 대신 순수 기술적(記述的)인 자연과학 의 이상이 대두된다. 디드로는 이 이상이 구체적으로 실현되기 훨씬 이전에 그 윤곽을 파악하고 예견하였다. 그는 이렇게 자 문자답한다 : 수학의 놀라운 발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자연에 관한 지식은 그렇게 보잘 것이 없단 말인가? 천재가 없어서 그 러한가? 아니면 사고와 연구가 부족해서 그러한가? 결코 그렇

지 않다. 그 까닭은 오히려 개념적 지식과 사실적 지식 사이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오해한 데에 있다. 〈수학과 같은 추상 과학 들은 너무 오랫동안 가장 탁월한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아왔다. 말과 개념들은 끝없이 부풀어왔지만, 사실에 관한 지식은 여전 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 그런데 철학의 진정한 보고는 바로 이 사실에 있다. 합리론적 철학의 편견을 비유적으로 말 하면, 많은 은화를 가지고 있더라도 이 은화를 셈할 줄 모르 는 사람은 단지 한 잎의 은화를 소유한 사람보다 더 부자라고 할 수 없다’ 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합리론적 철학은 새로운 사 실들을 모으는 대신에 이미 알려진 사실들을 비교하고 결합하 는 일만 한다.〉 34) 이렇게 말함으로써 디드로는 새로운 사고방식 의 도래를 정확히 알린다. 17 세기의 셈하고, 체계화하고, 계산 하는 정신은 이제 새로운 정신의 도전을 받는다. 이 새로운 정 신은 풍부한 실재를, 이것이 명석 판명한 개념으로 기술될 수 있을는지 없을는지 혹은 척도(尺度)와 수로 환원될 수 있을는지 없을는지에 대해서 전혀 고려함이 없이, 사심 없이 있는 그대 로 확인하고 탐구하려는 정신이다. 비록 이때에도 과거처럼 개 념의 체계를 세운다 할지라도, 이제 이러한 개념체계의 진정한 의미와 의의에 대해 오해가 없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에피 쿠로스나 루크레티우스처럼 혹은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처럼 자연으로부터 풍부한 상상력과 위대한 웅변술과 그림을 그리듯 한 놀랄 정도의 표현력을 선사받은 체계적 철학자는 행운아이 다. 그가 세운 건물은 언젠가 허물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의 개인적 초상(肖像)은 허물어진 폐허 위에 우뚝 솟은 채 남아 34) Dide rot, De !'/nte , pre ta t ion de la Natu re, IV, XVIII, XXI; Assezat 편 전집, 2 권.

있게 될 것이다.〉 체계란 보편적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그리 고 객관적이고 논리적이라기보다는 주관적이고 미학적인 의미 를 지닌다. 지식의 도구로서 체계는 필수불가결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한 도구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 댜 체계를 소유해야지, 체계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해서 하나의 새로운 탐구노선과 탐구경향이 생겨나게 되었는 바, 이것은 이제 자신의 독자성과 독특성에 대한 그리고 자신 의 방법에 대한 정당화를 필요로 한다. 이 정당화는 수학적 물리학자들이 이미 행했던 고찰 내용을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다. 데카르트의 〈합리적〉 물리학에 반대 한 뉴턴의 추종자와 제자들이 거듭 강조하는 것은 〈자연의 설명 에 대한 요청이 자연 현상의 충실한 기술(記術)에 대한 요청으 로 대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35) 순수 수학처럼 정의로부터 시 작하는 대신 기술이 등장해야 한다. 물리학자에게 있어서 사건 의 정확한 기술이란 결국 측정과 같은 일이 된다. 수치(數値)로 규정될 수 있고 수치 관계로 표현될 수 있는 것만이 정확히 기 술될 수 있다. 이제 물리학에서 생물학으로 넘어가면서 순수한 기술의 요청은 또 다른 차원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여기서는 직접 관찰된 실재를 수와 척도에 의해 양화(量化)시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경험적 실재의 고유한 종적(種的) 형태를 확보하 는 것이 문제로 되기 때문이다. 이런 종적 형태야말로 그 존재 에 있어서나 생성에 있어서 풍부하고 다양하게 우리 눈앞에 전 개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유개념과 종개념의 논리적 구조를 통해 자연을 인식하고자 하지만, 이러한 논리적 구조는 실재적인 종적 형태의 풍요로움에 비해 빈약하기 짝이 없을 뿐 35) 이 책 77 쪽 이하를 참고.

만 아니라 이 풍요로운 종적 형태에 어긋나기도 한다. 논리적 개념 구조란 경험적 관찰의 풍요로움을 필연적으로 제한시키게 마련이다. 그것은 관찰 내용을 충실히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이 내용을 메마르고 빈약하게 할 뿐이다. 이러한 빈약화는 새 로운 개념 형성의 방식을 통하여 보상되어야 한다. 이 새로운 방식에 의해 우리는 자연 형태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풍요로 움과 다양성을 직접 대면하고 이들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 그리고 우리의 개념 형성도 현상의 풍요로운 유연성에 따라 융 통성을 지녀야 한다. 디드로는 그의 생물학 저술에서 이러한 개념 형성의 본보기를 보여준다. 〈이상하게 들릴는지 모르나, 어 떤 상황에서는 방법만큼 지루하고 낭비적인 것이 없다. 방법은 물론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진리에 이르는 안내자이다. 왜 냐하면 우리가 그 안내자를 잃어버리면 곧 길을 잃고 헤매게 되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에게 말하는 것을 가르치고자 할 때 A 로 시작되는 말로 시작해서 그 다음에 B 로 시작되는 말로 나 아가고 또 그 다음 C 로 …… 등등과 같이 한다면, 알파벳울 다 끝내기 전에 아마 반평생이 걸릴는지도 모른다. 방법은 추리의 영역에서 탁월한 기능을 발휘한다. 그러나 박물학이나 특히 식 물학에서는 도움울 주기는커녕 헛된 수고만을 하게 한다 . 〉 36 ) 이 말의 뜻은 이런 과학들에 있어서 방법과 체계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이런 과학들의 체계 형식을 〈합리 적인〉 학문들에서 무조건 빌려올 것이 아니라 이 과학들의 독 특한 주제에 알맞게 그 형식이 도출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디드로가 『자연의 해석』에서 자신의 생각을 개진했을 때, 이 36) Dide rot, La Bota n iq u e mi se a la Parlee de tou t le Monde. Assezat 편 전집 6 권, 375 쪽 .

미 과학적 방법의 새로운 요청이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실현되 지 않았더라면, 그는 아마도 이 새로운 요청을 그처럼 명확하 고 자신만만하게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당 시에는 벌써 뷔퐁 Bu ff on 의 세 권으로 된 『박물학 H i s t o i re Na t urell e,』이 출판되었다. 뷔퐁의 업적은 새로운 유형의 자연과 학의 확립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에 필적할 만한 작품이다. 물론 내용이나 독자성이나 창 조성에 있어서 뷔퐁의 공헌은 뉴턴에 비길 만한 것이 못 된다. 그러나 방법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뷔퐁은 결코 뉴턴에 뒤지지 않는댜 왜냐하면 뷔퐁도 뉴턴에 못지않게 자연과학적 개념 형 성의 근본 방향을 아주 명백하게 그리고 보편화시켜서 표현했 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의 일원론적 이상을 수립하고 모든 자연 과학적 탐구들을 이 이상에 종속시킨다는 것은 헛된 것이요, 틀 릴 것이라고 뷔퐁은 자신의 책 서두에서 말한다. 그 어떤 방법 론적 일원론도 이미 수학과 물리학의 대립에서부터 좌절될 수 밖에 없다. 수학의 진리는 엄밀한 필연성의 끈에 의해 연결된 순수 분석적 명제의 체계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이 명 제들은 결국 동일한 지식내용을 다른 형식으로 표현한 것에 불 과하다. 그러나 이러한 진리개념은 우리가 실재세계에 발을 들 여놓자마자 그 의미와 위력을 상실한다. 수학에서는 우리 자신 이 스스로 개념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우리는 이 개념의 구조와 형식을 우리가 미리 규정할 수 있고, 연역적으로 개념들을 서 로 전개시켜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실재의 세계에서는 이처럼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개념을 다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 학적인 명료성 즉 단순히 관념의 비교에서 보여지는 명료성은 찾아질 수 없고 단지 개연적인 진리만이 확보될 수 있다. 우리

는 오직 경험의 안내만을 따라야 한다 . 왜냐하면 경험만이 물 질적 대상에 대한 개연적인 지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는 우리의 관찰을 증가시키고 날카롭게 하여야 한다. 우리는 개별 사실들을 유추를 통하여 결합하고 일반화시켜서 개체와 전체의 관계를 개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자연과 우리의 개념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자면 자연울 그 자신과 비교하는 꼴이 된다. 우리는 각각의 개별적 작용들 이 다른 작용들과 연결되는 모습을, 그리고 결국에는 이 작용 들이 한데 모여 자연이라는 하나의 전체 활동으로 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37) 우리가 이러한 통일성을 유(類)와 종(種)에 따라 분류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 통일성을 파악하지 못한다. 왜냐 하면 이러한 유와 종에 따른 분류는 자연의 체계가 아니라 단 지 명명법 (命名法, Nomenkla t ur) 의 체계 즉 우리 자신이 인위적 으로 만든 개념의 체계만을 줄 따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명 명법의 체계도 사실을 개관하기 위해서 유용하고 없어서는 안 될 것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여기서 단순한 이름뿐인 기호를 이 기호가 의미하는 것과 혼동하고, 명목적 정의를 실재적 정 의로 만들고, 이로부터 사물의 본질을 설명해 낼 수 있다고 생 각하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다. 뷔퐁에 의하면 린네 Li nne 의 『식물 철학』은 바로 이러한 오류를 범한다. 린네는 마음대로 어떤 성질과 모습을 선택하고서 이에 따라 식물세계를 분류하 여 놓는다. 이렇게 분류하고 배열함으로써 그는 식물 세계의 연관, 조직 및 구조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러한 실재 세계의 참된 그림온 린네의 방법을 원칙적으로 파기 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우리는 분석적인 분류 대신 결합의 원리 37) Buff on , His t o i r e Natu r elle (17 49); Premi er dis c ours

를 적용해야 하며, 미리 분류된 종(種)들에 맞추어 생물들을 배열하는 대신 생물들의 유사성, 변천 과정, 진화 및 변형들의 모습을 서로 관련지어 탐구해야 한다. 자연은 하나의 종에서 다른 종으로 진화해 가는데, 이 과정에는 우리가 알아차리기 어려운 많은 중간 단계들이 있다. 그리고 이 중 어떤 단계는 이 종에 속하는 것처럼 보이고 다른 단계는 다른 종에 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의 이러한 변화의 유연성 에 대처할 수 있도록 우리의 개념도 또한 유연하게 만들어야 한다 . 여기서 뷔퐁은 확연히 유명론에 기운다. 그에 의하면 자 연에는 개체만 있을 뿐이지 종이나 유는 없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관찰을 통해 어디서나 확인될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어느 한 대륙의 동물들이 다른 대륙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 설사 같은 종류의 동물들이 있을 것이라고 우리가 추정하지 만, 실재 조사해 보면 이들이 서로 매우 다른 모습으로 진화해 같은 종류임을 확인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이러한 증거만으 로도 우리는 생물의 모습이 변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 댜 동물의 특성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완전히 변하기도 하고 또 환경의 변화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종은 이미 사라 져 버렸거나 앞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 38) 뷔퐁의 견해가 진화론의 서곡으로서 지니는 중요한 의미는 여기서 논구될 필요가 없겠다. 우리의 관심사에 중요한 것은 뷔퐁 견해의 내용이 아니라, 뷔퐁에 의해 점차 구체적으로 실 현되어 가던 새로운 지식의 이상(理想) 형식 내지 접근 방식이 댜 여기에서 비로소 생물학적 인식의 독특한 구조가 명백히 38) 진화론의 역사에 있어서 뷔퐁의 위치에 관해서는 Perr ier , Phi! o so- phi e zoolog iqu e ava n t Dmw i n 을 참고.

그 윤곽을 드러내게 되고, 이론 물리학의 형식과 뚜렷이 대조 되어 나타난다. 이제 과학적 방법은 더 이상 수학에 의해 전적 으로 지배되지 않는다. 수학 이외에 말하자면 제 이의 중심점 이, 특히 역사적 지식의 형식을 위한 제 이의 중심점이 확보된 댜 〈자연의 고고학〉 이념을 최초로 명백히 개진한 칸트의 『판 단력 비판』의 널리 알려진 구절은 분명히 뷔퐁의 다음과 같은 말과 관련하여 쓰여진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기록된 문서를 읽고 동전과 기념 메달을 조사하고, 오래된 비문을 해독해서 인간 역사의 변천과 시대를 확정짓듯이, 자연사에 있어서도 우 리는 세계라는 기록 보전실을 탐사하고 오래된 화석을 발굴해 서 모든 물질적 변화의 흔적들을 확실한 증거물이 되도록 결합 하여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만 우리는 이 무한한 공간 속에 일정한 분포도(分布圖)를 만들 수 있고 무한한 시간의 흐름 속 에서 몇몇의 이정표를 마련할 수 있다.〉 39) 이러한 순수 기술적 자연과학의 힘은 특히 생물학에서 스콜라 철학의 논리적 방법 을 죽 최 근 유개 념 (最近 類槪念, gen us p rox i mum) 과 종차(種 差, dif fer enti a sp e cifi ca) 에 의 한 정 의 (定義) 의 방법 을 점 차 극복 하여 간다. 정확히 기술된 것만이 본래적인 의미에서 정의된 것 죽 명료하게 인식되고 판명하게 구별되어진 것이다. 자연과 학적 개념 형성의 본성과 목표가 이처럼 달리 파악됨으로써, 또 한 자연 현상의 본질적 내용에 대한 견해도 달라진다. 논리 - 수학적인 정의 이론은 이미 데카르트에게 있어서 그 이론의 필 연적인 계(系, Korollar) 로서 기계론적인 자연 설명을 필요로 한 다. 이제 고찰의 중심이 정의에서 기술로, 유(類)개념에서 개 39) Buff on , His toi r e Natu r e/le . 인용은 J. Fabre, Les Peres de la Re- voluti on (de Bayl e a Condorcet) , Pari s, 1910, 167 쪽 이하에서 따옴.

체로 이전함에 따라 기계론은 더 이상 유일하고 충분한 설명의 기초가 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새로운 자연관이 성립되기에 이르는데, 이것에 의하면 존재로부터 생성을 이끌어내고 설명 하는 것이 아니라 생성으로부터 존재를 이끌어내고 설명하고자 한다. 5 데카르트적 물리학의 체계는 프랑스에서 교회의 교리적 저항 과 스콜라 철학의 추종자들에 의한 소위 〈실체적 형상〉 물리학 의 저항을 빨리 극복하였다. 그래서 17 세기 중엽부터 그것은 급속히 전면에 부각된다. 그것은 학자들에게서 인정을 받울 뿐 만 아니라 퐁트넬의 『다원적 세계에 관한 논의』의 결과로 사회 의 일반적 교양으로까지 되었다. 데카르트주의의 영향은 너무 나 강력하고 지속적이었기 때문에 심지어 데카르트주의의 근본 목적에 반대하는 사상가들까지도 이 영향력을 피할 수 없을 정 도였다. 데카르트의 학설은 17 세기 프랑스 정신의 형성에 토대 를 마련해 주었으며, 이 형성은 매우 강력해서 이와는 상반되 는 내용들까지도 흡수 정복할 수 있었다 .40) 그러나 영국이나 독 일에서 데카르트주의는 그렇게 무제한할 정도의 세력을 떨치지 는 못한다. 독일 사상의 성장은 라이프니츠의 영향에 의존한 40) 데카르트의 영향에 관해 더 자세한 논의는 다음을 참조하라 : G . Lanson, L' Inf lue nce de la Phil os op hi e Cart es ie n ne sur la Lit ter atu r e Fran~ais e , Revue de Meta p h y si q u e, l896(Etu des d'his t o ir e Ii- tter air e , Paris, 1929, 58 쪽 이 하) .

댜 라이프니츠 사상의 영향은 아주 서서히 전면으로 부각되고 한 걸음 한 걸음 그 지반을 다져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것은 조용하고도 깊은 영향력울 발휘하였다. 영국에서는 경험 론의 체계가 서서히 데카르트적 체계에 대해 특히 본유 관념설 과 실체론에 대해 비판을 가한다. 이러한 경험론과 더불어 영 국에서 새로운 형식의 자연철학이 데카르트주의에 반대하고 나 선다. 이 자연철학은 르네상스의 역본설(力本說, Dy na mi sm us) 에서 직접 영향을 받았으나, 이에서 더 나아가 이 역본설의 고 대적 원천 특히 신플라톤학파에까지 연관되고 있다. 이러한 성 향의 자연철학은 케임브리지 학파의 저술에서 최초로 총괄적이 며 체계적으로 서술된다 . 이 학파의 지도적 사상가 중의 하나 인 모어 He nry More 는 데카르트 철학이 처음 소개되었을 때 이 룰 열광적으로 환영해 마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데카르트 철학에서 유심론 S piritu a li smus 의 결정적인 승리를, 사유실체와 연장실체의 즉 정신과 물질의 철저한 분리를 보았기 떄문이다. 그러나 후에 자신의 자연철학을 발전시킨 모어는 바로 이 점에 있어서 데카르트를 비판한다. 왜냐하면, 모어가 비판하듯이, 데 카르트는 두 실체를 구분했을 뿐만 아니라 두 실체를 서로 완 전히 분리해 버렸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데카르트는 두 실 체의 논리적 차이룰 지나치게 강조하여 드디어 이 두 실체 사이 의 실재적 연관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자연의 통일적 생(生)은 정신과 물질의 결합에, 그리고 이 양자의 상호 작용의 통일성에 의존한다. 우리가 만약 정신의 영역을 단지 인간의 자기 의식으로, 〈명석 판명한〉 관념의 영역으로, 다시 말해서 인간의 이성적 정신으로 제한해 버린다면, 인간을 포함 하는 자연의 전체적 통일적 생은 주장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자연의 구체적 지속성과 통일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이러한 제 한을 두어서는 안 된다. 유기적인 자연 속의 다양한 생의 형태 와 인간의 자기의식이라는 생의 형태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 는 틈이 벌어져 있지 않다. 생의 가장 초보적인 단계로부터 최 고의 사유단계에 이르기까지, 어둡고 혼란된 감각에서 최고의 반성적 지식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단계가 중단없이 이어진다. 경험이 이러한 연관성을 알려준다면, 우리의 사상은 이 경험의 증거를 따라야 한다. 현상세계가 중단됨이 없는 연속을 보여준 다면, 경험에 어긋나게 원리들을 서로 날카롭게 구별하고 분리 시켜서는 안 된다. 데카르트는 식물과 동물의 생을 말살하고 이들을 기계론으로 환원해 버린다 . 모어와 커드워스 Cudwo rt h 에 의해 고안된 〈 조형적 pla stic 자연 개념 〉 41 ) 은 이러한 기계론적 견해에 반대한다 . 생은 사유 내지 자기의식에 제한되지 않는 다 . 보다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생의 특징은 형성력에 있다. 현 존 방식이나 그 외적 형태에 있어서 이러한 형성력을 명백히 드러내주는 모든 것은 생을 지닌다. 〈조형적 자연〉 체계에는 가장 단순한 것에서부터 가장 복잡한 것에 이르기까지 자연적 생의 과정 모두가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가장 고도 로 발전된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유기체가 다 포함된다. 세계 의 질서와 연관은 이러한 〈조형적 자연〉 속에 근거한 것이지 단순한 질량과 그 운동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42)

41) 역주: 조형적 자연개념 : 자연 속에는 신은 아니지만 신의 도구로서 작용하는 활력원리 vita l dy na mi c pr in c ip le 즉 창조적 활동을 하는 세 계 영혼이 있다는 견해 (Co p el s t on, 『철학사』, 5 권, 60 쪽 참조). 42) 케임브리지 학파의 자연철학 및 〈 조형적 자연〉에 대해서는 카시러 의 Di e piat o nis c be Renais s ance i1z En g l and und die Schuie van Cambri dg e (Stu die n der Bib l io t h e k Warburg , Leip z ig , 1932, Kap . IV)

라이프니츠는 이러한 조형적 자연관을 분명히 거부한다 .43 ) 그렇다고 그가 데카르트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도 아니다. 그 는 케임브리지 학파와는 다른 관점에서 데카르트 철학을 비판 하고 보완한다. 생물학자이며 형이상학자로서 라이프니츠는 유 기적 생에 관심을 두고 있으면서 또한 데카르트의 수학적 원리 를 무시하지 않으려고 한다. 케임브리지 학파는 데카르트를 〈수 학의 병(病)〉이라 일컫고, 이 수학의 병이야말로 데카르트 자 연철학의 근본 결함이라고 말한다. 이에 반하여 라이프니츠는 어떠한 생의 이론도 수학적 물리학의 기본 원리에 어긋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라이프니츠는 이 양자의 사고 방식을 조 화롭게 통일시키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모든 자연현 상이 예의없이 수학적이고 기계적으로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반편에 불과하다. 그래서 둘째 기계론의 원리 자체는 단순히 연장(延長), 모양, 운동에서가 아니라 다른 근원에서 찾아져야 한다. 이 두 가지 조건이 만족되면, 위의 두 가지 사고방식은 조화로운 통일을 얻을 수 있다. 기계론은 현상계를 관통하는 확고하고 유일한 길을 우리에게 제공하는 지적인 나침반이다. 이 기계론에 의하여 모든 현상온 근거율 (根擔律, Sa tz vomGrund) 을 따르게 된다. 그리고 이에 따라 모 든 현상은 비로소 합리적으로 파악 가능하게 되며 완전히 설명 가능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식의 설명 방식만으로는 〈세계의 이해〉라는 궁극 목표가 도달되지 못한다. 현상의 인과론적 추 론과정 내지 시공간적(時空間的)인 질서연관만 가지고는 세계의 울참고하라. 43) Leib n iz, Consid e rati on s sur /es Pr inc ip e s de Vie et sur /es Natu res P/astiq u es , Gerhardt 편 전집, 6 권, 539 쪽 이하.

이해는 아직 거리가 멀다. 시 • 공적으로 인접한 요소들의 계열 울 하나하나 찾아 나가는 대신에, 즉 유기체 발전 과정의 여러 단계의 계열들을 하나하나 추적해서 인과율에 따라 이들을 결 합하는 대신에, 세계 이해는 모든 계열의 공통 근거에 대한 물 음을 제기한다. 이 근거 자체는 계열 속에 마치 이 계열의 한 요소처럼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계열을 초월한다. 이 근거 를 인식하기 위해 우리는 현상의 수리-물리적(數理洙原理的) 질 서를 벗어나 실체의 형이상학적 질서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파생적이고 추론적인 힘의 근거를 원천적이고 직관적인 힘 속 에서 찾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라이프니츠가 단자론의 체계에 서 성취하고자 했던 것이다. 단자는 모든 현상의 원천이 되는 주체이다. 단자의 활동 원리 즉 단자의 점진적 발전 원리는 원 인과 결과의 기계적 결합이 아니라 목적론적 연관이다. 모든 단 자는 참된 엔텔레케이아 En t elec hi e 즉 〈자신 속에 자기의 목적 을 지니고 이 목적을 달성하는 힘을 자신 속에 지닌 자〉이다. 단자는 자신의 본질을 전개시키고 발전시키고자 하며, 덜 완전 한 형태의 단계에서 더 완전한 형태의 단계로 올라가고자 한 다. 우리가 기계론적 현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체적 통일성 에서 즉 목적론적-내적 힘에서 일어나는 역동적(力動的, dy na - mis c h) 과정〉이 〈외적(外的)으로-감각적으로 드러난 측면〉에 불 과하다. 따라서 데카르트가 물질 실체의 속성으로 본 연장성 (延長性)은 비연장적(非延長的)인 것에서 파생된 것이요, 의연 적 (外延的)인 것

집된다. 이 엔텔레케이아는 기계론 내지 기계적 사물 현상의 원천이다 . 왜냐하면 현상은 단자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44 ) 이렇게 하여 수학적 자연 설명의 모든 권위가 인정된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유기적인 것에 관한 새로운 철학〉의 기초가 수립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철학의 문제 지평 이 열리게 되는 바, 이는 이후 18 세기 자연철학의 전개 과정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 문제가 거듭 거론되게 된 소이는 이론적 계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술가적 마음씨를 가진 사 람들의 새로운 미학적 세계관도 이론적 계기에 못지않게 중요하 댜 이 두 계기의 상호 침투작용은 이미 라이프니츠의 조화개 념에서도 엿보인다 . 그러나 새로운 자연관의 형성에 있어 미학 적 동기가 일층 뚜렷하게 나타난 것은 섀프츠베리에서이다. 섀 프츠베리의 자연관 형성은 케임브리지 학파의 〈조형적 자연〉 학설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는 모어가 이런 학설에서 이끌어 낸 모든 신비적인 귀곁들을 거부한다. 섀프츠베리는 순수 형식 개념의 정신적 내지 초감성적 원천을 해아려서 그 개념의 순수 직관적 규정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그는 세계를 예술작품으로 보고, 세계로부터 이 세계를 창작한 예술가로 시선을 돌린다. 이 예술가는 외부에 존재하는 범례를 모방해서 세계를 만든 것 도 아니고 또 미리 주어진 어떤 계획에 쫓아서 세계를 만든 것 도 아니다. 그의 창조 활동은 순전히 내적인 것에서 기원된다. 따라서 이러한 원천적 창조 활동은 현상계 내의 어떠한 활동에 44) 볼프에 게 보낸 라이 프니 츠의 서 신, ‘'Br ie f w e chsel zwi sc hen Leib n iz und Wolf f, Gerhardt 편, Halle, 1860, 139 쪽. 보다 자세한 것은 카 시 러 저 Leib n iz ' Sys t e 1 11 , Marburg, 1902 . 특히 238 쪽 이 하와 384 쪽 이하를 참조하라.

유추해서 서술될 수도 없다. 그리고 섀프츠베리 세계관의 중심 이 되는 목적 개념도 이제 새로운 차원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예술적인 창조와 감상에 있어서 우리는 어떤 목적을 노리는 것 은 아니다. 오히려 여기서는 행위의 목적이 행위 자체 속에, 다 시 말해서 창조와 관조 행위 자체 속에 놓여 있거니와, 이 말 은 또한 자연의 〈 창조정신 Gen i u s 〉 에 대해서도 타당하다. 자연 의 창조정신은 창조행위 자체 속에서만 존재한다 . 이 창조정신 의 본질은 자신의 작품들에서 소진되는 것이 아니다 . 그것은 오로지 작용하고 형성하는 행위 자체 속에서만 우리에게 자신 을 드러내 보인다. 그리고 이 행위는 모든 아름다움의 원천이 된다. 진정으로 아름다움은 아름답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아 름답게 하는 행위이다 . 섀프츠베리는 미학적 관점에서 도출한 목적 개념의 내재성을 자연철학에서도 고수함으로써 자연철학 의 새로운 기본 방향을 제시한다. 여기에서 그는 또한 케임브 리지 학파의 전형을 넘어선다. 왜냐하면 이 학파는 조형적 자 연을 신의 뜻에 복종하는 하위 (下位)의 능력으로 파악하기 때문 이다. 신은 이 세계의 목적 Telos 내지 초월적 원리로서 이 세 계를 넘어서 있는 반면에, 하위 능력으로서 조형적 자연은 세 계 속에서 작용하거니와 말하자면 최고의 원인자인 신으로부터 개체들의 형성을 위임받은 상태이다. 그러나 섀프츠베리에게 있어서 낮은 것과 높은 것의 대립 내지 최고의 신적인 힘과 자 연이 지닌 마력적인 힘 사이의 대립은 지양된다. 그는 전체 속 에서 하나를 그리고 하나 속에서 전체를 본다. 미학적 내재성 의 입장을 고수하여 자연 속에서도 위와 아래 내지 밖과 안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 왜냐하면 이쪽과 저쪽 죽 피안과 차 안의 절대적 구별이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내적 형식〉 개념

은 이런 유의 모든 분리를 극복한다. 밖에서 타당한 것은 안에 서도 타당하게 되는 것이 자연의 내용이다. 여기서 생긴 새로 운 자연관의 힘찬 물줄기가 이제 18 세기 정신사에 흘러들어 간 다. 섀프츠베리의 자연 송가는 특히 독일 정신사의 발전에 결 정적 영향을 끼친다. 섀프츠베리는 헤르더와 젊은 괴테의 자연 관 형성을 위한 기본적인 힘을 제공한다 .45)

45) 보다 상세한 내용을 위해서는 딜타이의 Aus der Zeit. .de r Sp ino za-Stu d ie n Goeth es (Archiv fur die Gescbic b te der Pbil o sop b ie , 1894, Ge-sammelte Sch riften II, 391 ff. )을 보라. 섀프츠베리의 자연관 및 이것 과 케 임 브리 지 학파 사상과의 관계 에 대 해 서 는 Cassir e r, Di e Pia - ton is c be Renais sa nce in Eng l and und die Schute v on Cambri dg e , Leip - zig, 1932, Kap . 6 을 보라.

헤르더와 괴테의 자연관은 물론 계몽주의 사조를 넘어선다. 그러나 18 세기 사상은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어떠한 튬새도 보 이지 않는다. 계몽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도 돌발적인 사건 이 아니라 오히려 일관된 발전의 한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이 러한 발전의 통일성과 지속성은 라이프니츠의 체계 내지 그의 사상의 보편성에 의해 처음부터 보증되었다. 18 세기 중엽부터 프랑스에 있어서도 라이프니츠의 단자론 영향은 점점 더 뚜렷 해진다. 라이프니츠를 프랑스에 도입한 사람은 모페르튀이이 다. 모페르튀이는 개인적으로 라이프니츠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형이상학, 자연철학 내지 인식론은 라이프니츠의 기본 개념과 같은 연관을 맺고 있다. 모페르튀이의 최소 행위 원리, 지속성 원리의 정당화, 그리고 시간과 공간의 현상론은 모두 라이프니츠의 기본 사상에 연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런 것들이 라이프니츠와 직접 연관되고 있지 않음을 보 여주고자 한다. 어떻든 그는 라이프니츠의 기본 사상을 암암리

에 받아들이고 있으면서도, 라이프니츠 체계 특히 볼프 류에 의해 변조된 라이프니츠의 체계를 꾸준히 비판하고 공격한다. 라이프니츠와의 이러한 양면적인 애매한 태도로 인하여 사뮤엘 쾨니히 Samuel Kon ig와 심한 논쟁을 벌인다 .46) 쾨니히가 지적 한 대로, 라이프니츠에의 의존성은 〈최소 행위의 원리〉에서보 다 생물학적인 이론에서 더욱 분명히 나타난다. 그의 생물학적 이론은 라틴어 논문 「자연의 보편 체계에 관한 형이상학」에 들 어 있는데, 이 논문은 1751 년 에어 랑겐 Erlan g en 에서 바우만 박 사 Dr . Baumann 라는 가명으로 출판되었다. 이 책의 정신사적 중요성은 이 책에서 모페르튀이가 처음으로 17 세기 자연철학의 두 대립적 입장을 조화시키고자 한 데 있다. 모페르튀이는 프 랑스에서 처음으로 뉴턴 사상을 지지한 사람이다. 그는 이 점 에서 볼테르를 앞선다 .47) 그러나 그는 곧 뉴턴의 만유인력 원리 가 기술적(記述的)인 자연과학을 위해서 즉 유기적 생의 이해와 해석을 위해서 충분치 못함을 깨닫는다. 뉴턴의 이론이 물리학 과 천문학에서 아무리 훌륭한 성과를 거둔다 할지라도, 화학의 분야에 들어서면 뉴턴적 개념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문제 가 제시된다. 만약 화학 분야에서도 인력 원리를 설명의 기초 로 삼고자 한다면, 우리는 인력의 개념을 다른 의미 내지 보다 폭넓은 의미로 개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 더 나아가 화학 에서 생물학으로 들어가서, 식물과 동물의 형성을 설명하고자 46) 이 논쟁의 보다 자세한 설명에 대해서는 Harnack, Gescbic b te der Akademi e der Wi sse nscbaft en zu Berlin, Berlin , 1901, 252 쪽 이 하를 보라. 47) 모페르튀이가 뉴턴을 옹호한 점에 관해서 그리고 모페르튀이의 수 리-물리학적 업적들에 관해서는 브뤼네 Brunet 저, Maup er t ui s , Pa- ris, 1929, 1 권, 13 쪽 이 하를 보라.

한다면 상황은 더욱 더 달라진다. 종족의 번식과 유전의 복잡 한 문제는 결코 물리학적 방법으로 해결될 수 없다. 아니 물리 학적 입장에 서 있기를 고수한다면 도시 이러한 문제가 제기조 차 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물리학자와는 다른 물질 개념을 찾지 않을 수 없다. 데카르트적인 연장 개념이나 뉴턴적인 인 력 개념에서는 생의 현상을 이끌어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생 의 현상이 설명될 수도 없다. 이제 남은 해결의 길은 순수 물 리학적 물질개념의 성질인 불가입성(不可入性), 운동, 관성 내 지 중력에다가 생의 사실과 관련된 다른 성질을 첨가하여 새로 운 물질개념을 만들어 내는 길 뿐이다. 이렇게 하여 모페르튀 이는, 자연 설명의 궁극적 원리를 단순히 물질개념에서 찾지 않고 표상하고 욕구하는 실체 죽 의식실체에서 찾는 라이프니 츠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모페르튀이의 주장에 의하면, 이제 존재의 기본적 요소로서 이러한 의식사실을 고려하지 않는 그 어떤 자연 설명도 완전한 것이 못 된다. 그런 반면에 모페르튀 이는 세계를 실체와 현상으로 즉 단순요소와 복합요소로 나누 는 라이프니츠의 극단적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모페르튀이 는 자연현상을 이루는 궁극적 단위로서 라이프니츠처럼 형이상 학적인 점(點) 즉 단자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인 점을 생각한다. 자연현상의 궁극 단위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물질 세계를 떠날 필요가 없고 단지 물질개념을 확대시켜 의식의 사 실까지도 포함시키면 족하다. 다시 말해서 물질의 개념은 연장 성, 불가입성, 중력 등등의 징표만 지닐 뿐만 아니라 욕구, 거 부 및 기억의 징표까지도 포함한다. 연장성과 의식을 이렇게 하나의 주체에 결합시키는 것이 그 자체 모순이라고 주장한다 면, 이는 물리학자의 물질 정의 죽 연장성으로서의 물질 정의

가 완벽하다는 전제하에서만 옳다. 만약 데카르트를 따라서 우 리가 의식과 사유를 정신의 본질적 속성으로 보고 연장성을 물 질의 본질적 속성으로 본다면, 물질과 정신 사이에는 절대적 장벽이 세워지고 이에 따라 두 속성도 서로 배타적일 수밖에 없댜 그러나 이러한 절대적 상호 배타성은, 우리의 모든 사유 란 단지 경험적인 징표들을 확립하는 데 그친다는 사실을 깨닫 게 되면, 더 이상 타당성을 지니지 못한다. 이 경험적 징표들 이 내적으로 어떻게 서로 연관되는지, 그리고 이것들이 과연 본질적으로 연관될 수 있는지 아니면 연관될 수 없는지에 대해 서 우리는 물음을 제기할 수도 없고 제기하려고도 않는다. 여 기서는 단지 경험이 알려주는 바에 따르면 족하다. 다시 말해 서 경험이 언제나 그들의 연관성을 우리에게 보여준다면, 그래 서 우리가 언제나 그것들의 규칙적인 공존재(共存在)를 관찰할 수 있다면, 이것으로 족하다. 〈사유와 연장성이 그저 속성에 불과하다면, 이들은 하나의 주체에, 우리가 그 본질을 알 수 없는 하나의 주체에 속할 수도 있다. 사유와 연장의 공존성(共 存性)이 결코 연장과 운동의 공존재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 은 아니다. 사유와 연장을 하나의 대상에 귀속시키는 것이 연 장과 운동을 결부시키는 것보다 더 거부감이 생길는지는 모른 댜 그러나 이런 거부감은 단지 다음과 같은 사실만을 가리킨 다: 경험은 우리에게 연장과 운동의 결부를 언제나 눈앞에 보 여주는 반면에, 사유와 연장의 결합은 직접 보여지는 것이 아 니라 단지 추론과 귀납을 통해서만 알려진다.〉 48) 심적 성질과 물질적 성질을 물질개념 속에 함께 포함시키는 48) Maup e rtu is , Sys t e m e de la Natu re, Sect, III, IV, XIV, XXII; Oeuvres, Lyo n 1756, 2 권, 139 쪽 아 하.

것에 대해 제기될 수 있는 논리적 내지 형이상학적 반대들을 이처럼 극복할 수 있다고 하면, 이제부터 아무런 주저 없이 새 로운 자연철학 체계를 구성할 수 있다. 의식이 없는 것으로부 터 의식을 이끌어낼 수 없다. 만약 이끌어낸다면 이는 없는 것 [無]으로부터 있는 것을 창조해 내는 꼴이 된다. 다시 말해서 심적인 것을 심적인 성질을 전혀 지니지 않은 원자들의 결합으 로서 설명할 수 없다 .49) 따라서 우리는 의식이 원자 자체 속에 있는 근원 현상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의식은 원자로부터 만들어지는 파생적인 것이 아니라, 의식의 씨알이 이미 원자 속에 있어서 그것이 스스로 전개되고 발전하여 점점 더 고도의 명확한 의식으로 된다. 모페르튀이가 이러한 자신의 사상을 전 개할 때에는 이미 라이프니츠 자연철학의 기본 원리를 완전히 벗어나고 있다. 라이프니츠의 유심론은 이제 일종의 물활론(物 活 rnu, H y lozo i smus) 으로 변한댜 물질 자체가 살아 있다. 물질 은 감각, 욕구, 동정심과 미움의 감정 등등을 지닌다. 모든 물 질의 알갱이는 자기에 알맞고 편한 것을 추구하고 그렇지 못한 것을 피하는 본능을 지닐 뿐만 아니라 일종의 자기 감정도 지 닌댜 한 알갱이가 다른 알갱이들과 합쳐 더 큰 물질 덩어리가 될 때에도 알갱이는 자기 감정을 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렇 게 알갱이들이 서로 화합하게 되면 이로부터 새로운 의식이 생 겨나고, 알갱이들은 이 새로운 의식을 공통으로 지닌다. 〈지각 은 알갱이들의 본질적 성질이기 때문에, 지각은 소멸하지도 않 고 줄어들지도 않고 증가되지도 않는다. 지각은 알갱이들이 다 양한 모습으로 결합함에 따라 여러 가지로 변용될 뿐이다. 그 러나 우주 전체의 지각은 항상 일정한 총량를 지닌다. 물론 우 49) 같은 책, Sect. LXIII, LXIV ; 166 쪽 이하 .

리는 이러한 총량을 계산하고 확인할 수는 없다 . …… 각각의 알갱이는 다른 알갱이들과 결합함으로써 자신의 의식(지각)을 다른 알갱이의 의식과 혼합시키고 이에 따라 자신의 독특했던 자기감정을 망각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신체의 알갱 이가 지녔던 원초적 상태를 회상할 수 없고 우리의 원천은 전 적으로 우리에게 망각되어 비밀로 감추어져 있다.〉 50)

50) 같은 책, Sect. LIII, LIV; 155 쪽 이 하.

디드로는 그의 『자연의 해석에 관한 고찰』에서 모페르튀이의 이러한 학설을 계승한다. 그러나 그는 이 학설의 약점을 여지 없이 날카롭게 들추어내고 비판한다. 그가 유물론을 확대하려 는 모페르튀이의 시도를 그 자체 변종된 유물론에 불과하다고 본 점은 타당하다. 교묘히 꾸며진 이러한 유물론에 반대하여 디드로는 순전히 역동적 (力動的, dy na mi sc h) 철학을 내세운다. 디드로의 철학을 한 마디로 못 박아 규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 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디드로의 생각은 끊임없이 변천하는 과정을 밟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어떤 특별한 목적이 달성 될 때에도 그의 생각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러한 특별 한 하나의 과정 내지 목적은 결코 그의 철학의 전체를 대변할 수 없다. 일생 동안 디드로는 그의 관점을 끊임없이 바꾸어 나 간다. 그러나 이 바꿈은 우연적이거나 인위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주를 바라보는 어떠한 관점도 우주의 풍요 성, 내적 다양성, 끊임없는 변화를 다 아울러 낼 수 없다는 그 의 신념을 나타낸 것이다. 그래서 디드로는 자기 사상을 절대 불변으로 고정시켜 결정적으로 표현하려고 하지 않는다. 디드 로의 사유는 언제나 변하고 유동적이다. 이런 사유의 유연성이 야말로 끊임없이 유전(流轉)하는 실재에 더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유일의 방도라고 그는 생각한다. 무한히 변하는 우주는 오직 이런 유연한 사고방식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하나의 출발 관점에서 다른 출발 관점으로 옮겨가고, 현 재 주어진 것에서 만족해 머무르지 않고 무한한 새로운 가능성 울 탐색하고 실험하는 사고방식만이 무한한 우주에 접근할 수 있다민 디드로 정신의 이러한 기본적 특성으로 인하여, 그는 18 세기의 정적(靜的)-수학적 세계상을 극복하고 이에 대신하여 역동적 세계상을 내세운 최초의 사상가 중의 한 사람이 되었 댜 디드로에게는 단순한 분류 내지 개념적 도식이 너무 협소 하고 적합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졌다. 개념적 도식은 어떤 순 간의 지식 상태를 기술하는 것에만 유용할 뿐이다 . 이런 도식 에 의해서 인식의 넓이에 어떤 한계를 두어서는 안 된다. 그리 고 이런 도식으로부터 연역하여 미래의 지식 상태를 미리 윤곽 지어서도 안 된다 .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마음 을 열어놓아야 한다. 어떤 체계나 규칙에 의해 우리의 경험 세 계를 좁게 제한시켜서도 안 된다. 이렇게 생각함으로써 디드로 는 새로운 자연철학의 개념을 형성한다. 자연을 어떤 한계내로 고착시키거나 자연을 인위적인 분류에 묶어 두려는 시도는 헛 된 일이다. 자연에는 단지 다양성과 철저한 이질성만이 있을 뿐이다. 자연의 어떠한 형식도 그 동일성을 유지하지 못한다. 각각의 형식은 자연적 형성력의 일시적 균형 상태만을 나타낼 뿐이요, 이 상태는 곧 다시 사라지게 마련이다. 〈개체(個體)와 마찬가지로 종(種)들도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동물 51) 이에 대해서는 디드로의 특색을 탁월하게 드러낸 Bernhardt Groeth u ys e n, La Pensee de Dide rot (La Grande Revue, Vol. 82, 1913, 322 쪽 이 하)를 참고하라 .

성의 요소들이 먼저 물질 속에 뿌려지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요소들이 서로 모여 하나의 동물 씨를 형성히고, 이 씨가 수많은 발전 단계를 거쳐 운동을 하게 되고 감각을 하게 되고 표상을 하게 되고 의식적인 사유와 반성적 사유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발전 단계들 사이에는 수백만 년의 시간이 흐르고 또 앞으로 다른 발전 단계에도 수백만 년의 세월이 흐 를 것이라고 볼 수는 없을까?〉 52 ) 〈우리에 앞서 변천해 온 동 물의 종을, 그리고 우리 다음에 전개될 동물의 종을 누가 다 알 수 있단 말인가? 모든 것은 변하고 사라진다. 그러나 전체 만은 항상 동일하다. 달이 차면 이지러지듯이 세계도 끊임없 이 생겨났다가 사그러진다 . 매 순간마다 세계는 끝이요, 새로 운 시작이다. 거대한 물질의 대양 속에 어느 하나도 다른 것 과 같지 않을 뿐더러 심지어 자기자신과도 같지 않다 . 매 순 간 새로운 사물의 질서가 탄생된다. _一―이것이 우주의 영원한 표현이다.〉 철학자에게 가장 위험스러운 일은 〈하루살이에 불 과한 궤변〉을 논하는 일이다 . 현재 세계의 존재는 무궁한 생성 변화 속의 순간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어떤 사상도 이 생성이 장차 이루어낼 풍요를 선천적으로 측량해 낼 수 없다 .53) 〈사물 의 새 로운 질서 가 탄생 된다 Rerum nov t1s nasci tur ordo 〉라는 격 언 으로 디드로는 자연의 특성을 나타낸다. 그리고 이 격언은 또 한 18 세기 사상가에게 있어 디드로 자신의 위치를 나타내는 말 이기도 하다. 그는 새로운 관념의 질서를 도입한다. 그는 지금 까지의 모든 위업을 넘어설 뿐만 아니라 이 위업을 가능하게 52) Dide rot, De l'Jn te r p e ta t i o n de la Natu r e, sect. LVIII; Assezat 편 전 집 2 권, 57 쪽 이하. 53) Did e rot, Reve d'Alembert, Oeuvres II, 132, 154 쪽 등.

하고 그 굳건한 근거를 제공해 주었던 사유의 형식 자체를 바 꾼다

제 3 장 심리학과 인식론 - 18 세기 사상의 특징은 자연의 문제와 인식의 문제를 불가분 하게 서로 밀접히 연관지은 데 있다. 사유는 외적 대상의 세계 로 향하는 동시에 또 자기자신에게로 시선을 돌리게 되어 있 다. 사유는 하나의 행위에서 자연의 진리를 확보하는 동시에 자신의 진리를 확보한다. 인식은 단순히 도구로서 생각되고 사 용되기도 하지만, 때때로 이런 인식 사용의 정당성(권리) 문제 내지 인식이라는 도구의 성질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이 문 제를 처음으로 제기한 것은 칸트가 아니다. 칸트는 단지 이 문 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보았고, 이 문제에 보다 깊은 의미를 주 었고, 보다 근본적인 새로운 해결을 준 사람이다. 정신의 한계 롤 정의하려는 일반적 과제는 이미 데카르트에게서 명백히 의 식되고 있다. 로크는 이 과제의 해결을 자신의 경험철학의 기 본으로 삼는다. 로크의 경험론에서도 이미 〈비판적〉 성향이 나 타난다. 로크에 의하면 경험의 대상을 규정하기 전에 경험의 기능을 먼저 조사하여야 한다. 우리는 아무 대상이나 붙들고

그것의 본성을 알아내려고 해서는 안 된다 . 어떤 종류의 대상 이 과연 우리의 인식에 적합한가를 먼저 다루어야 한다. 이런 문제의 해결은 즉 인간 오성의 고유한 특징을 정확히 조사하는 일은 오성에 속하는 모든 영역을 측량하는 일이요, 오성의 최 초 요소로부터 오성의 최고 형성물에 이르기까지 오성 발전의 모든 과정을 추적하는 일이다 . 따라서 비판적인 인식문제는 인 식의 발생적 문제로 된다. 인간정신의 생성과정을 파악할 때, 인 간정신의 본질은 충분히 해명될 수 있다. 따라서 심리학은 인 식 비판의 기초가 된다. 그리고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이 나 오기 전까지 심리학은 이러한 자리를 아주 당연한 듯이 누린 다 . 이러한 견해에 대한 비판은 라이프니츠의 『새로운 인간오 성론』에서 시작되고 있지만, 이 책이 실제 출판된 것은 라이프 니츠가 죽은 뒤 so 년이나 지난 1 7 65 년이기 때문에, 이 책의 영 향력은 상당히 뒤늦게서야 일어난다. 그리고 또한 이 책에서 보여준 비판적 안목의 영향은 얼마 동안 독일의 정신사에만 국 한된다 . 경험의 논리적 〈단서〉를 찾는 선험적인 방법과 경험의 심리적 〈유래〉를 찾는 심리학적 방법을 체계적으로 날카롭게 구분한 것은 칸트에 이르러 비로소 시작된다 . 따라서 이 양자 의 명확한 구분은 18 세기의 문제권에서 아직 뚜렷이 등장하지 못하였다 . 18 세기에는 인식의 근본개념에 대한 선험적 연역과 심리학적인 연역이 명확히 구분되지 못한 채 언제나 혼합되어 나타날 뿐이다. 인식의 근본개념들의 객관적 타당성온 그것들 의 유래를 통해 결정된다고 본다. 그래서 심리학적 원천이 논 리학적 기준으로 되어버린다. 그러나 다론 한편 모종의 논리학 적 규범들이 있는 바, 이것들은 결코 심리학적 원천으로 해소 될 수 없고 오히려 심리학적 문제 설정에도 침투하여 그 방향

울 제시한다. 심리학은 다른 개별과학과는 현저하게 반성적인 성격을 지닌다. 심리학은 심적 형성물이나 이의 생성과정을 단 순히 파악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이것들의 최후 근거에 즉 심적인 것의 요소들에 육박하여 이 요소들을 분명하게 드러 내 보이고자 한다. 바로 이 점에서 심리학은 자연과학에 아주 가까워진다. 심리학의 최고 이상은, 마치 화학이 무기체의 분 석술이듯이 그리고 해부학이 유기체의 분석술이듯이, 〈영혼의 분석술〉이 되는 것이다. 〈많은 철학자들이 영혼의 이력서를 써 왔지만, 이제야 영혼의 역사를 온전하게 기록한 한 현자가 나 타났다. 로크는 마치 탁월한 해부학자가 안간 신체의 모든 요 소들을 속속들이 설명하듯이 인간 이성의 요소들을 하나하나 진열해 드러내 보였다. >I)

1) Volta ire, Lett re s sur /es Ang la is , 서신 13; Leq u ie n 판 전집 (18 21) 26 권, 65 쪽.

17 세기의 위대한 합리론자들은 개념의 영역과 대상의 영역을 동일한 하나의 근원적인 존재로 환원시킴으로써 개념과 대상의 일치문제를 즉 인식의 진리문제를 해결한다. 개념과 대상은 이 근원 존재에서 서로 일치하며, 이러한 원천적인 일치로부터 그 이외의 모든 〈간접적인 대상과 개념의 일치〉는 보장된다. 인간 인식의 본질은 이러한 근원 존재로부터 획득될 수 있으며, 이 근원 존재에서 발견되는 관념들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다. 〈본 유 관념〉은 인간정신에 애초부터 찍혀진 인장(印章)이요, 바로 이 인장으로 말미암아 인간정신은 자신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 지를 확신한다. 데카르트에 의하면 모든 철학은 우리 정신속에 들어 있는 이러한 〈원초적 관념들 no ti ons p r imiti ves 〉을 고찰하 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 관념들은 말하자면 그 외의 모든 관념

들(인식들)이 근거로 삼아야 할 원본이 된다. 이 원초적 관념들 중에는 모든 사유 내용에 단적으로 타당한 〈존재 〉 , 〈수〉, 〈 지속〉 의 개념들이 있으며, 더 나아가 물질계에만 타당한 〈연장〉, 〈형태〉 및 〈운동〉의 개념이 있고 정신계에만 타당한 〈사유〉의 개념이 있다 .2) 이러한 얼마 안 되는 원본 내지 원형 속에 모든 경험적 실재, 물체의 모든 다양성, 그리고 정신적인 것의 모든 다양한 형태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이 원본들은 경험적 실재를 미리 예시(予示)한다. 엄격히 말해서 이 원본들은, 이것들이 경 험적 실재의 원천인 신에로 되돌아 갈 때에만, 경험적 실재를 예시할 수 있다. 본유관념은 창조주인 신이 자신의 작품에 새 겨 넣은 표시요, 〈작품에 새겨진 제작자의 혼적〉이다. 이제 본 유관념과 실재의 연관은 즉 본유관념을 실재에 적용하는 가능 성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본유관념과 실재는 동일한 하나의 근원에서 나왔으며 따라서 본유관념의 구조와 사물의 구조 사이에는 상치(相動)되는 곳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본유 관념은 마음놓고 실재에 사용될 수 있다. 명석판명한 관념체계 로서의 이성과 창조된 존재의 총체로서의 세계는 한 군데도 어 긋남이 없이 서로 조화롭게 대응한다. 이 양자는 같은 하나의 본질을 서로 다르게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이렇게 하여 데카 르트 철학에 있어서 신의 〈원본적 지성 intel lectu s arche typ us 〉은 사유와 존재를, 진리와 실재를 묶는 확고한 끈이요, 족쇄가 된 다. 데카르트 사상의 이러한 기본적 면모는 그의 직접 제자들 에게서 더욱 날카롭게 변모된다. 데카르트 생각에서 더 나아가 2) 이에 대해서는 특히 1643 년 5 월 21 일자로 팔즈 P fa lz 백작부인 엘리자 베스 E li sabe th에게 보낸 데카르트의 편지를 참고하라 . Adam-Tannery 판 전집 111, 665 쪽 .

이제 실재와 인간정신 사이의 그리고 연장실체와 사유실체 사 이의 직접적인 연관은 일체 부정되고 완전히 파괴된다 . 정신과 신체 사이의 그리고 관념과 실재 사이의 결합이 있다면, 이것 은 오직 신의 존재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 정신 존재에서 직접 물질 존재로 가는 길은 없다. 가는 길이 있다면 반드시 신적 존재 혹은 신적 활동의 중심을 거쳐야 하는 간접적인 길만이 있다. 이러한 매개체를 통해서만 우리는 외적 대상들을 인식하 고 이것들에 작용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본유관념에 관한 데 카르트의 학설은 말브랑슈에게 있어서 〈우리는 신을 통하여 신 속에서 모든 사물을 본다〉라는 명제로 격상된다. 감각적인 지 각들을 순수 이성의 관념에 연관시키지 않는 한, 우리는 사물 에 대한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없다 . 이러한 연관들을 통해서만 우리의 감성적 표상들은 단순히 자아의 심적 변용이 아니라 객 관적 실재와 질서를 대변하게 되고 객관적 의미를 획득하게 된 다. 감각적 성질들 예컨대 색깔과 소리의 감각은 존재에 대한 조그만큼의 인식도 지니지 못한다. 우리가 직접 체험하는 양상 으로서 이러한 감각 성질들은 순간 순간 변하는 우리 마음의 상태에 불과하다. 과학적 방법을 써야만 비로소 우리는 이러한 상태로부터 객관적으로 존립하고 객관적으로 타당한 확고한 법 칙성을 획득할 수 있다 . 그러나 이러한 법칙성의 획득은 우연 한 것을 필연적인 것으로, 단순히 사실적인 것을 이성적인 것 으로, 시간적인 것을 초시간적이고 영원한 것으로 환원시켰을 때에만 가능하다. 자연과 물질적 세계의 인식에 도달하기 위해 서 우리는 물질을 감각에 의해 파악될 수 있는 성질들로 보아 서는 안 되고 그것을 순수 〈연장성〉으로 환원해야 한다. 그리 고 이 환원 다음에 다시 보다 깊은 다른 차원의 환원이 잇달아

야 한다. 왜냐하면 구체적 직관에서 즉 〈상상력 Ein b il d ung s- kra ft〉에서 주어지는 감성적 연장으로서는 만족할 수 없기 때문 이다. 본래적이고 참된 연장성을 파악하려면, 우리는 상상력에 의한 일체의 심상들을 벗어나야 하며, 단순히 심상적 im ag ina ti v 연장성에서 〈예지적인 연장성 int e l lig ibl e Aus-dehnun g〉으로 나 가야 한다 . 3) 이러한 예지적 연장성의 관념에 의해서만 인간정 신은 자연 내지 물질적 실재를 인식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관념 울 파악하려면, 인간정신은 이 관념을 〈관념의 본래 자리〉로서 의 신에로 다시 환원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모든 진정한 인식행위 즉 이성의 모든 행위는 신과 인간정신의 직접적인 연 관 내지 통일성을 나타내게 된다. 인간 지식의 근본 개념들의 타당성, 가치 및 확실성은 우리가 이 개념들 속에서 그리고 이 개념들을 통하여 신적 존재에 참여함으로써만 확립된다. 모든 논리적인 진리 내지 모든 논리적 확실성은 결국 이러한 형이상 학적 참여에 의거해 있으며, 진리 내지 확실성의 완전한 입증 을 위해서는 이러한 형이상학적 참여를 필요로 한다. 우리에게 인식의 길을 비쳐주는 빛은 〈밖에서〉가 아니라 〈안에서〉, 감각 사물들에서가 아니라 〈관념과 영원한 진리〉의 영역에서 온다. 그러나 이 순수 〈내적인〉 빛은 단적으로 우리 자신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보다 높은 다른 광원(光源)으로부 터 온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주인인 빛나는 실체의 찬란한 광휘로부터 온다.〉 4) 데카르트 합리론의 이러한 형이상학적 전개를 볼 때, 계몽주 3) 말브랑슈의 〈예지적 연장성〉의 개념에 대한 자세한 것은 카시러의 Das Erkenntn isp r o b/eni, 3, I, . 573 쪽 이 하를 보라. 4) Malebranche, Entr e ti en ssurlaMeta p hy s i q u e, V, sect. 1 2.

의 철학이 이에 대해 어떤 점에서 이의를 제기할 것인지는 분 명하다. 계몽주의 철학은 자연의 문제에서 부딪쳤던 것과 똑같 은 과제를 인식의 문제에서도 발견한다. 자연과 인식은 다른 어떤 것에 의존함이 없이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들의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하며 자기 자신들의 조건으로써 해명되어야 한다. 자 연과 인식문제의 해결에 있어 초월적인 세계를 끌어 들여서는 안 된다 . 인식과 실재 사이에, 주관과 객관 사이에 그 어떤 의 적 권위도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만 인 식문제는 제기되고 해결되어야 한다. 경험을 넘어 한 발자국이 라도 나아가서 해결하려고 하면, 이는 거짓된 해결일 뿐이 요, 모르는 것을 더욱 모르는 것에 의존해서 설명하려는 것이 된다 . 합리론 내지 선천주의에서 인식의 최고 확실성의 토대로 서 간주되는 신적인 매개는 이제 단호히 거부된다. 계몽철학의 주된 임무인 〈 사유의 위대한 세속화 과정〉은 여기서 특히 두드 러진다 . 인식과 대상의 관계에 대한 논리적 혹은 인식론적 물 음은 초월적 혹은 형이상학적 요소의 도입을 통해서 해결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도입은 문제를 오히려 복잡하고 혼 란하게 만들 뿐이다. 헤르츠 Mar kt 1s Herz 에게 보낸 편지에서 칸트는 자신의 비판적 문제를 처음으로 정확히 공식화해서 표 현했는데, 여기서 칸트는 17 세기식 문제 해결의 시도를 아주 강하게 비난한다. 〈플라톤은 신적 영혼의 이데아 직관을 순수 오성개념 내지 원칙들의 원천이라고 보았고, 말브랑슈는 이러 한 근원 존재의 영원한 직관을 아직도 들먹이고 있다 . …… 인 식의 기원과 타당성 문제에 있어 ‘궁하면 끌어 들이는 신 deux ex machin a ’ 은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사리에 어긋나 는 짓이댜 그것은 추리의 악순환에 빠질 뿐만 아니라 어둡고

혼미한 망상과 변덕을 조장할 뿐이다.〉 5) 이 시기까지 칸트는 계몽철학의 보편적 신념을 여전히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다. 이 시대는 초월계를 수단으로 한 인식문제의 모든 해결책에 부 단히 반대한다. 볼테르가 이러한 수단을 쓰려는 경향에 끊임없 이 반대 투쟁을 할 때, 그는 자주 말브랑슈의 체계를 언급한 댜 그가 보기에 말브랑슈는 모든 시대의 가장 심오한 형이상 학자 중의 한 사람이다》 말브랑슈를 탁월한 형이상학자라고 보기 때문에, 볼테르는 형이상학적 체계 정신의 무력성을 드러 내 보이기 위해 바로 말브랑슈를 자주 언급한다.” 볼테르와 모 든 프랑스 백과사전파들에 있어 이러한 부정적 태도는 이제 아 주 확고부동한 것으로 된다. 초월자라는 매개체를 제거하고 나 면, 자아와 세계 사이에 그리고 주관과 객관 사이에 어떤 관계 가 남아 있을까? 어느 하나가 다른 것에 직접 영향을 주는 관 계를 제외한다면, 우리는 다른 어떤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단 말인가? 자아와 물질세계가 서로 다른 실재층에 속한다면, 그 러면서도 이 양자 사이에 그 어떤 관계가 있어야 한다면, 외적 실재가 우리 의식에 관여하는 관계만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유일한 관계형식은 객관이 주관 에 직접 영향을 주는 것이다. 이것만이 관념과 객관 사이에 다 리를 놓는다. 〈우리의 정신 속에 있는 모든 관념은 이전의 인 상(印象)에 근거하며 또 이룰 근거로 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는 5) 헤르츠 Markus Herz 에게 보낸 1772 년 2 월 21 일자 편지를 보라. 카시 러 판 전집 9 권, 104 쪽 이하. 6) 볼테르의 Sie c le de Louis XIV, Leq ui e n 판 전집 19 권, 140 쪽 . 7) 볼테르의 풍자시 ''Le s Sy st e m es (전집, 14 권, 231 ff. )과 그의 논문 To ut en Dieu , Commenta i r e sur Malebranche (1769) (전집, 31 권, 201 ff . )를 보라.

주장은 이제 의심의 여지없는 원리의 지위로 승격된다. 흄의 회의론이 비록 인과관계의 보편적 타당성을 부단히 의심할지라 도, 그것은 객관과 관념 사이의 특수한 인식적 인과방식에 대 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물론 한 관념의 경험적 원천 이 언제나 직접 보여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원천은 아주 깊이깊이 파묻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디엔가 그 관념의 원천이 있고 따라서 우리가 그 원천을 추적해 내야 한다는 것에 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만일 이에 대해 의심을 품어 반대한다 면, 그것은 단지 끈질긴 탐색적 사유력의 결핍 내지 경솔한 마 음씨를 드러내 보이는 것에 불과하다 .8) 여기서 우리는 놀랄 만한 체계적 역설의 귀결에 이르게 된 다. 심리학적 경험론을 논리일관되게 전개시키기 위해서 우리 는 그것을 심리학적 공리에 의존시키지 않을 수 없다. 〈먼저 감각에 들어 있지 않았던 것은 지성 속에도 없다 n ihil est in int e l lectu quo d non ante a fue rit in sensu 〉라는 원칙은 귀납적으 로 실증될 수 있는 사실적 진리가 아니다. 이 원칙은 단순히 경험적 개연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인 진리룰 말하고 있다. 디드로의 말을 빌리면, 〈오래된 저 원칙이 제일 공리로 서의 명증성을 지니지 못한다고 한다면, 형이상학에서 단 하나 의 명제도 입증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우리의 지적 능력에 관하여 그리고 우리 지식의 원천과 발전에 관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게 된다.〉 9) 이 말은 〈경험론일지라도 보편 원리 내지 이의 직접적인 선천적 명중성에의 의존성을 완전히 탈피 할 수 없음〉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표현이다. 그런데 이 명중성 98)) DHiudme reo, t, TArepa otli sg ei e o fd eH !u'Ambabne Ndea Ptu rra ed, esp, ar 1t 2I 절II, . sect. 2.

은 또한 특수한 성격을 지닌다. 그것은 순수 개념 사이의 연관 에 대한 명증성이 아니라 사실적 연관에 대한 통찰의 명증성을 주장한다. 정신에 관한 형이상학은 정신의 역사로, 다시 말해 서 데카르트에 반대하여 로크가 주장하는 이른바 〈정신에 관한 꾸밈없는 역사적 방법〉으로 대치되어야 한다 .10) 심리학이나 인 식론의 모든 문제에 관한 로크의 권위는 18 세기 전반부를 통해 거리낌없이 통용된다. 볼테르는 플라톤보다 로크를 더 높이 평가하고, 달랑베르는 백과전서의 서론에서 뉴턴이 과학적 물 리학의 창시자라면, 로크는 과학적 철학의 창시자라고 말한다. 콩디야크는 심리학의 역사를 개괄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 다음 에 바로 로크롤 말하고 있다. 심리학적 문제 해결의 실질적인 기여도를 기준으로 삼을 때, 아리스토텔레스와 로크 사이의 모 든 철학자들은 별다른 중요성을 지니지 못한다는 것이다 .11) 단 한 가지 관점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심리학은 로크를 넘어서고 자 한다. 이 심리학은 로크의 심리학적 원리에 남아 있는 이원 론적 혼적을 지워버리고자 한다. 그것은 내적 경험과 외적 경 험의 차이를 없애고, 모든 인간 지식을 하나의 원천으로 환원하 고자 한다. 소위 〈감각〉과 〈반성〉의 차이는 의견상의 차이일 뿐 이요, 보다 깊이 분석해 들어가면 이 차이는 없어진다는 것이 다. 로크에서 버클리를 거쳐 흄에 이르는 경험론의 발전은 감 각과 반성의 차이를 극소화하려는 일련의 시도로서 마침내 이 차이를 완전히 없애 버린다. 18 세기 프랑스의 철학적 비판도 로크가 생각하는 〈반성의 독자성〉의 혼적을 마지막까지 지워 10) Locke, Essay concernin g Human Unde1:s tan din g , l 권, 1 장, 2 절 . 11) Condil lac , Extm i t Rais i o n ne du Trait e des Senati on s, G. Lyo n 판, Paris, 1921, 32 쪽 .

없애 버리려고 꾸준히 작업한다. 반성은 정신이 그 자신의 상 태 내지 본성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앎을 보증 할 참된 경험적 재료가 정말로 있느냐? 우리가 우리 자신을 경 험할 때에는 언제나 우리 신체의 성질이나 조건에 관련된 모종 의 감각이 그 속에 이미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자아의 순수 감각 내지 추상적인 자아의식이 과연 경험될 수 있는가? 이러 한 의문을 제시한 모페르튀이는 이에 대해 물론 독단적으로 대 답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부정적으로 대답하려고 한다. 정 신의 순수 존재에 대한 관념을 보다 깊이 고찰하면 할수록, 그 리고 이 관념을 보다 면밀히 분석하면 할수록, 그 관념을 일체 의 감각소여와 구별한다는 것은 점점 더 불가능해지는 듯 싶 댜 특히 촉감은 물질적 실체의 관념형성 뿐만 아니라 이것에 유비하여 정신적 실체의 관념 형성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 댜 12) 콩디야크는 이와 비슷한 결론을 보다 철저한 형식으로 표 현한다. 그래서 그는 로크류의 심리학과 인식론의 기초를 보다 날카롭게 비판한다. 의심할 바 없이 로크는 아주 중요한 전진 의 일보를 내디렀고 경험론적 탐구의 길에 빛을 비추어준 최초 의 사람이다. 그러나 로크는 가장 어려운 문제에 부딪쳐 더 이 상 전진하지 못한 채 주저앉았다. 다시 말해서 비교하고, 구분 하고, 판단하고, 의욕하는 보다 높은 마음의 기능에 관해서 로 크는 자신의 발생론적 방법에 충실히 따르지 못하고 있다. 그 는 이 기능들의 원천까지 추적해 들어가는 대신 단지 이 기능 들을 열거하고 이것들을 마음의 기본적 능력들로 간주한다. 그 12) Maup er tu i s , Examen phi l oso p h iq u e de la pre uve de I' exis t e n ce de Di eu emp lo y ee dans I' Essai de Cosmolgie (M emoir e s de I' Academ ie de Berlin , 1756), 19 절 이 하를 참고하라.

래서 비판적 탐구의 실마리는 가장 결정적인 지점에서 갑자기 좌절되고 만다. 본유 관념에 대해서 로크가 성공적으로 비판을 가했으나, 마음의 본유 작용들에 대한 편견은 그대로 인정되고 있다. 비교하고 구분하는 인식 내지 이해작용들은 분석 불가능 한 궁극적인 마음의 작용이 아니라 경험과 학습을 통하여 나중 에 획득된 성질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로크는 깨닫지 못하고 있댜 〈만지고, 보고, 듣는 것 등에 의해서 우리가 얼마나 많 은 것을 배우는지를 로크는 알지 못했다. 마음의 모든 능력들 이 로크에게는 본유적인 성질들로 보였다 . 그래서 그는 이 능 력들의 원천이 바로 감각일 수 있다는 생각에는 전혀 미치지 못하였다.〉 13) 따라서 탐구는 로크를 넘어 더 진행되어야 한다. 마음의 발달과정에 어떤 상한선을 두어서는 안 된다. 이 발달과 정이 소위 〈고차적인〉 지적 능력들 앞에서 멈추어서는 안 된 댜 오히려 이 고차적인 능력들이 발달과정의 정점을 이룬다 . 이 능력들에 있어서도 또한 일찍이 감각적 요소들 속에 포함되 지 않았던 것은 하나도 없다. 정신적 작용에는 진정 새로운 그 래서 신비스러운 어떤 것도 없다. 모든 작용은 단지 감각의 변 용에 불과하다. 우리가 정신작용의 발생과정과 감각요소의 변 용과정을 하나하나 추적해 나간다면, 개별적인 정신활동의 국 면들 사이에 어떤 뚜렷한 구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국 면들이 서로 함께 연계되어 있음을 알 것이다. 이러한 정신적 변형을 전체적으로 고찰할 때, 사유하고 의욕하고 느끼고 지각 하는 행위들이 따로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동일한 변형과정 속에 있음을 알게 된다. 콩디야크는 자아를 단순히 〈관 13) Condil lac , Bctr a it rais o nne, 33 쪽.

념의 다발〉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흄과 동일한 의미 에서 감각주의자는 아니다 . 그는 정신의 단순한 구조를 주장하 고 이러한 구조에서만 의식의 주체가 찾아질 수 있다고 강조한 다. 인격의 통일성은 반드시 지각적 존재의 통일성을 전제한 다 . 그것은 단순 실체로서의 정신을 전제한다. 그리고 이 실체 는 신체가 받아들이는 여러 가지 인상들에 대응하여 여러 가지 로 변용된다 .14)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감각은 우리 지식의 필연 적 원인이 아니라 우연적 원인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감관이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기관의 변용이 생길 때마다 정신이 지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최초의 감각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마음의 최초 작용들의 원인을 찾아 내고, 이 작용들의 발달과정을 지켜보고, 이 과정의 마지막 한계까지 추 적해 들어가야 한다. 간단히 말하면, 베이컨이 말하듯이, 정신 의 구조를 정말로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인간정신을 새롭게 처음부터 끝까지 재창조해 내어야 한다 .15)

14) Condil lac , Trait e d esAnim aux :(1 755), 2 장. 15) Condil lac , Extr a it Rais o nne, 31 쪽 .

정신을 새롭게 창조하려는 시도에서 콩디야크는 단순히 경험 적인 고찰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감각론〉은 단순히 관 찰된 것들의 목록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체계적인 전제로부터 출발하여 이 전제를 하나하나 증명해 보 려는 것이다. 하나의 조상(彬像)이 있고 이것에 찍힌 인상들에 의해 그 조상이 생기(生氣)를 얻게 되고 이로부터 더 나아가 풍 부하고 다양한 생(生)의 여러 형태들을 갖추게 되는 과정을 그 린 저 유명한 조상의 예증, 이 예증은 콩디야크의 〈정신의 박 물학〉이 결코 사변적이고 구성적인 고찰을 완전히 외면할 수

없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 또한 콩디야크는 정신의 다양한 성장 과정을 단순히 제시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 그는 이 성 장의 경향을 설명하고자 하며 성장의 고유한 추동력을 알아내 고자 한다. 우리는 콩디야크에게서 새롭고 유익한 접근 방법을 발견한다. 그에 의하면, 우리가 단순히 개념 내지 관념에 죽 이론적 지식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한, 우리는 정신 발달의 궁 극적 힘들을 명백히 알아낼 수 없다. 따라서 이제 정신계의 다 른 차원으로 우리의 주의를 돌려야 한다 . 정신의 활동과 정신 의 다양한 활력들의 원천은 결코 정관(靜觀)이나 관조능력에 있 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운동은 정지의 개념으로써 해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정신의 역동성(力動性, D y nam i k) 은 정신 의 정태성(靜態性, S t a ti k) 으로써 설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정 신으로 하여금 언제나 새로운 모습과 작용울 하도록 부추기는 숨어 있는 활력을 즉 정신의 모든 변형들의 배후에 숨어 있는 활력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정신 속에 근원적인 동적 원 리를 가정해야 한다. 이 원리는 단순히 관념화 작용이나 사유 작용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욕구작용 속에서 발견될 수 있다. 따라서 욕구능력은 인식에 선행하여 없어서는 안 될 인 식의 전제조건이 된다 . 의지현상의 분석에서 로크가 강조하는 바에 의하면, 의지 결정의 구체적인 원인이 되고 또 의지 행위 를 야기하는 것은 미래의 선에 대한 단순한 관념이 아니다. 여 러 가지의 가능한 의지 목표들 중에서 좋고 나쁨을 가려내려는 순전히 이론적인 고찰만으로는 행위가 나오지 않는다. 행위를 일으키는 추동력은 미래에 대한 고찰로부터 즉 미래의 선에 대 한 이론적 전망이나 예기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 거의 경험으로부터 죽 정신이 일정한 상황에 처해서 느꼈던 불

쾌와 불안의 기억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로크는 이러 한 불쾌과 불안을 우리의 모든 의지행위의 진정한 원동력이 요, 결정적인 추동력으로 본다回 콩디야크는 로크의 이런 견해 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러나 그는 이 견해를 의지현상의 영 역을 넘어서 마음작용의 전체 영역으로 확대 적용한다 . 불안 i n qu i e t ude 은 욕구와 욕망의 그리 고 의 욕과 행 위 의 출발점 일 뿐 만 아니라 느끼고 지각하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모든 행위의 출 발점이요, 더 나아가 정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반성 작용〉 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만지고, 보고, 듣고, 느끼고, 맛보 고, 비교하고, 판단하고, 반성하고, 욕구하고, 사랑하고, 두려 워하고, 희망하고, 원하는 모든 습관들을 우리에게 만들어주는 최초의 원리는 바로 이 불안이다. 한마디로 말해 이 불안으로 인해 마음과 몸의 모든 습관들이 태어나게 된다.〉 17) 이렇게 하 여 데카르트 학파 심리학에 의해 정립된 관념들의 순서는 완전 히 거꾸로 된다. 의지가 관념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이 의지에 의존하게 된다. 여기서 최초로 우리는 주의주의적(主意 主義的) 전환을 보게 되는 바, 이것은 형이상학 분야에서 쇼펜 하우어에 의해, 인식론 분야에서 현대 실용주의에 의해 계승 발전된다. 콩디야크에 의하면, 순전히 이론적인 현상의 질서만 볼 때, 우리의 최초의 정신활동은 감관이 제시한 것을 파악하 는 단순한 행위 죽 지각행위이다. 이 지각행위 바로 다음에 주 의(注意)하는 행위가 뒤따르는데, 이것에 의해 어떤 특수한 지 각이 선택되고 강조되어 심적과정의 전체로부터 두드러지게 된 다. 어떤 지각의 선택 내지 강조는 선택의 기준을 필요로 하는 16) Locke, Essay on Human Understa n din g , 2 권, 21 장, 30 절 이 하. 17) Condil lac , Extr a it Rais o nne, 34 쪽

바, 이 기준은 이제 순수 이론적 분야의 것이 아니라 실천적 분야에 속한다. 어떤 지각에 주의(注意)하느냐 하는 것은 개인 에 관한 문제요, 개인의 욕구와 성향에 관한 문제아다 . 이와 비슷하게 우리의 욕구나 성향은 또한 우리의 기억에 대해서도 결정적 역할을 한다. 기억능력은 순전히 기계론적인 관념연합 에 의해 설명될 수 없고 오히려 우리의 욕구와 욕망에 의해 결 정된다. 잃어버린 관념을 어둠의 망각으로부터 회상해 내고 생 생하게 재생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욕구이다. 〈관념은 이것을 만들어낸 욕구에 의해 재생된다. > 관념들은 말하자면 마음 속에 소용돌이들을 만든다. 충동이 커지고 다양화해 짐에 따라 이 소용돌이들도 커진다. 각개의 소용돌이는 정신활동의 주변 쪽으로 즉 명석한 관념 쪽으로 나아가려는 한 운동의 중 심으로 볼 수 있다. 〈이 소용돌이들은 이들의 욕구 크기의 정 도에 따라 서로서로 극복하고 극복당한다. 그것들은 놀랄 만한 변용을 부리며 서로 모이고 파괴하고 …… 약화되고 소멸되고 또는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형태로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순 간적으로 한 소용돌이가 다른 소용돌이를 홉수해 버리는가 하 면 그 자신 소멸되기도 한다. 그리고 욕구가 사라지게 되면 곧 모든 소용돌이들은 하나로 녹아 사라지고 혼돈만이 다시 남게 된다 여기서 관념들은 아무런 질서도 없이 순간적으로 나타났 다가 사라지곤 하여 기이하고 불완전하고 유동적인 상(像)들을 만들어낼 뿐이다. 이 상들에 일정한 성격을 다시 부여해주고 또 분명한 모습을 드러내게 해주는 것이 다름아닌 우리의 욕구 들이다.〉 18) 콩디야크에 의하면, 관념의 논리적 질서는 으뜸이 18) Condil lac , Trait e d es Anim au x, 395 쪽 이 하.

되는 것이 아니라 파생적인 것에 불과하다 . 그것은 일종의 생 물학적 질서의 반영에 불과하다. 그리고 여기서 본질적인 것은 사물의 본성이 아니라 우리의 관심의 방향이다. 우리에게 유익 한 것, 우리 자신의 보존을 위해 필요한 것이 우리의 관심을 결정한다. 이제 우리는 계몽철학의 전반적 특성에 관련된 중요한 문제 에 도달한다. 〈계몽〉이라는 말을 너무 좁은 의미로 사용하는 우리의 습성으로 인해서, 우리는 보통 18 세기 심리학을 주지주 의적이라고 비난한다 . 다시 말해서 18 세기 심리학은 개념과 이 론적 인식에 주로 관심을 쏟고 정서적 생활의 특성은 거의 무 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18 세기를 공평하게 역사적으로 고찰 해 보면, 이러한 견해는 다분히 피상적인 것에 불과함이 알려 진다. 18 세기의 거의 모든 심리학적 체계들은 정서적 측면의 중요성을 분명히 깨닫고 이 문제를 탐구한다. 심지어 17 세기에 있어서조차도 감동Aff ek t e 과 정열의 문제는 심리학과 철학의 중요 관심사로 등장한다 . 영혼의 정열에 관한 데카르트의 저술 이나 윤리학 3 권의 감동에 관한 스피노자의 서술은 단순히 우 연적인 것들이 아니라 이들 체계의 중심부에 속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17 세기 철학체계를 전체적으로 볼 때, 영혼의 순수본질 이 이러한 측면으로부터는 결코 파악될 수 없다는 견해가 우세 하다. 왜냐하면 이 본질은 오직 사유 속에서 그 본래적 특성이 드러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애매하고 혼란된 감동에서가 아니 라 명석판명한 관념에서 영혼의 참된 본성은 그 특성을 발휘한 댜 욕구, 욕망, 감정적 정열은 단지 간집적으로만 영혼에 속 한다. 이들은 영혼의 본래적 성질이 아니라 영혼이 육체와 결 부해서 생겨나는 결과물이요, 따라서 순수영혼의 방해자이다.

17 세기 심리학과 윤리학은 대체로 감동을 마음의 동요 pe rt ur bati on es anim i 내지 방해자로 파악한다. 영혼의 능동적 부분이 수동적 부분을 극복하는 데에서 죽 이성이 정열을 극복 하는 데에서 나온 행위만이 윤리적 가치를 지닌다. 이러한 스 토아 학파적 견해는 17 세기의 철학만을 지배한 것이 아니라 이 시대의 전반적인 지적 삶을 지배하고 있다 . 이런 점에서 데카 르트의 가르침은 코르네이유의 가르침과 일치한다 .19) 감성적인 모든 욕구, 욕망, 정열을 이성적 의지가 지배할 때 인간의 자 유가 획득된다. 그러나 18 세기는 감동에 대한 17 세기의 부정적 평가를 지양한다. 그것은 감동을 단순히 방해자로 보는 것이 아 니라 감동이야말로 마음의 모든 작용들을 위해 근원적이요, 없 어서는 안 될 요소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독일에서 라이프니츠 의 견해는 이러한 방향으로 이미 영향력을 행세해 왔다. 단자 를 정의할 때, 라이프니츠는 단자를 결코 단순히 관념으로 즉 이론적 지식으로 해소시키려 하지 않았다. 단자는 표상작용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표상작용과 욕구작용의 결합으로 나타난 다. 표상개념에 대등하게 욕구 개념이 등장한다. 지각p erce pti o 개념에 대등하게 지각하고자 하는 〈지각의 욕구p erce ptu r iti o 〉 개념이 등장한다 .20) 독일 심리학은 대체로 이러한 기본적 전제 를 받아들임으로써, 의지와 순수감정의 현상을 심리학의 체계 에서 독자적 지위에 올려 놓는다. 각도는 좀 다르지만, 이 비 19) 데카르트와 코르네이유의 연관에 관한 상세한 것은 G. Lanson, L' /마 luence de la Phil o sop h ie Carlesie n ne sur la Lit ter atu r e Franra is 遷 참 고하라. 20) 라이 프니 츠에 서 p erce pti o 와 p erce ptu r iti o 의 차이 에 대 해 서 는 볼프 Ch ristian Wo lff와의 서신 (Gerhardt 편집, Halle, 1860, 56 쪽)을 참고 하라.

슷한 발전이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일어난다. 흄의 인식론적 회 의론은 지금까지 타당시되어 왔던 모든 척도를 뒤엎어 버린다. 여기서는 지금까지 인간의 최고 능력으로 존경해 마지 않던 이 성이 거꾸로 종속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성은 마음의 〈낮은〉 능력들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것들의 도움을 언제 나 필요로 한다. 감성과 상상력의 도움 없이는 이성은 한 걸음 도 나아갈 수 없다. 모든 합리적 인식은 〈결과에서 원인에로 추리함〉에 의존한다. 그러나 이 추리는 순수 논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삼는 것이 아니다. 이 추리에 대한 가능한 설명이 있 다면, 그것은 이 추리의 심리적 원천을 밝히고 인과율에 대한 우리 신념의 원천을 추적해 내는 것이다. 이 신념은 보편타당 하고 필연적인 이성의 원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인간의 단순 한 본능에서 나온 것이다. 이 본능은 그 자체 맹목적이다. 그 러니 우리의 모든 표상적 삶을 지배하는 힘은 바로 이 맹목성 속에 자리를 잡는다. 이러한 이론적인 탐구 결과를 이용해서 흄은 소위 마음의 고차적 능력들을 평준화하는 작업을 계속한 댜 흄에 의하여 마음의 고차적 층들은 이제 일정한 계획에 따 라 하나하나 제거된다. 〈종교의 박물학〉에서 흄이 보여주고자 한 것은 초월계에 대한 종교의 모든 권위는 환상에 불과한 것 이라는 사실이다. 신을 칭송하는 영역 죽 종교의 영역은 고차 적 능력이 아닌 다른 곳에 근거한다. 이 영역을 본유관념에서 찾거나 혹은 사유와 추리 즉 이론적 증명에서 찾는 일은 헛된 짓이다. 종교의 뿌리는 오직 인간 본성 가운데서 찾아질 수밖 에 없다. 두려움의 감정이 모든 종교의 발단이다. 종교의 다양 한 모습과 형태들은 모두 이 감정에서 나온 것이요, 이 개념을 사용해서 설명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18 세기 프랑스에서

기세를 올렸던 새로운 방향의 사유와 만난다. 『인간정신의 지 식 에 대 한 서 론 /ntr n duti on a la Connais s ance de !'Esp ri t Huma i 1~ 』 (17 46) 에 서 보브나르그 Vauvenar g ues 가 인 간의 참된 본성은 이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열에 있다고 말했을 때, 이 것은 거의 혁명적인 소리처럼 들린다. 이성이 정열을 지배해야 한다는 스토아적인 요구는 단순히 하나의 꿈에 지나지 않는다. 이성은 인간에 있어 지배자가 못된다. 그것은 비유컨대 시간을 가리키는 시계 바늘에 불과하다. 이 바늘을 움직이는 기계장치 는 깊숙이 속에 숨어 있다. 인식에 대한 욕구와 궁극적 동기는 전혀 비합리적 영역으로부터 들어오는 근원적인 충동에 있다. 프랑스 계몽철학 중 가장 명석하고 냉정한 사상가들조차도, 합 리적인 문화의 대변자들조차도 이러한 명제를 옹호한다. 볼테 르의 『형이상학』의 논의를 빌리면: 정열이 없이는, 명예에 대 한 욕구가 없이는 그리고 야망과 공명심이 없이는 인간성의 발 전도, 취미의 세련도 그리고 예술과 학문의 개선도 생각할 수 없다. 〈플라톤이 영원한 기하학자라고 부르는 신, 그리고 내가 영원한 기계 제작자라고 부르는 신, 이 신이 자연에 생기를 주 고 자연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은 이러한 충동에 기인한다. 정 열과 욕구야말로 자연이라는 모든 기계장치들을 움직이는 바퀴 가 된다.〉 21) 엘베시우스도 「정신에 관하여」라는 논문에서 이 견 해를 받아들인다 . 사상가로서 디드로가 최초에 내놓은 책인 『철학적 사상들』도 이와 비슷한 생각으로 시작된다. 정열에 반 대하는 것은 쓸모없는 짓이다. 정열을 부정하려는 짓은 곧 이성 의 자랑스러운 건물의 기초를 파헤치는 짓이다. 시, 회화, 음악 21) Volta ire, Trait ed eMeta p b y s i q u e(1734), 8 장 . Leq u ie n 판 전집, 31 권, 61 쪽.

에 있어 모든 탁월한 것 그리고 예술과 도덕에 있어 모든 고상 한 것은 바로 이 원천으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감정은 약화시 킬 것이 아니라 고양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영혼의 진정 한 힘은 정열의 조화로운 균형에서 생기는 것이요, 정열의 부 정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2) 이렇게 하여 심리학적 전망과 평가에 있어 점진적인 변화가 뚜렷해졌는데, 이 변화는 루소의 주요 저작들이 출판되기 이전에 일어난 것이요, 따라서 이 저작들의 영향을 받음이 없이 독자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이 변화는 이론적 지식의 체계에 대해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 요, 계몽기의 모든 영역에서 즉 윤리학, 종교철학 내지 미학의 분야에 대해서도 그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로써 이 분야들의 모든 문제들이 이제 새로운 토대 위에서 제기되기에 이른다. 2 18 세기의 인식론과 심리학의 문제들을 개괄해 보면, 이 문제 들이 매우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하나의 중심문제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의관상 서로 다르고 다양한 이 문제들의 탐 구는 결국 하나의 이론적 문제로 수렴되고 있다 . 23) 이것은 몰리 뇌스 Mol y neux 가 그의 『시 각론』 에서 처 음으로 제 기 한 문제 인 바, 이후 이 문제는 곧 철학의 최대 관심사가 되었다. 하나의 감각기관 예컨대 촉각에서 얻은 경험은 다른 감각기관 예컨대 22) Dide rot, Pensees Phi/ os op h iq u es(l 74 6), l 절 이 하. 23) 이것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E. Cassire r , Erkenn t n isp rob/en 떠 2 권을 보라.

시각에서 얻은 경험을 완전히 대치할 수 있는가? 촉각의 세계 로부터 시각의 세계로 직접 이행할 수 있을 만한 어떤 내적인 연관성이 과연 있는가? 예를 들어 말해보자. 장님으로 태어난 사람이 촉각경험에 의해 어떤 사물들의 형태들을 정확히 구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자. 그리고 이 장님이 눈의 수술을 받아 시력을 회복하게 되었다면, 이때 촉각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 고 순수 시각에 의해서 그는 사물들의 형태를 촉각에서 얻은 것과 똑같이 구별할 수 있을 것인가? 눈 수술을 받고 나서 촉 각은 쓰지 않고 오직 시각만으로 그는 정육면체와 구면체의 형 태를 곧 구별할 수 있을까? 아니면 촉각에 의한 지각내용과 시 각에 의한 지각내용을 일치시킬 수 있게 되기까지 오랜 조정기 간이 필요하게 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확고한 대답은 나오 지 않았다. 그러나 이 문제가 일단 제기되고 나자 이 문제의 영향권은 이와 관련된 한정된 영역을 넘어 광범하게 뻗어 나갔 댜 버클리의 철학적 일기는 이 문제가 그의 마음을 얼마나 사 로잡았는지를, 그리고 어떻게 하여 이 문제가 그의 지각이론의 출발점이 되었는지롤 잘 보여준다. 버클리 철학의 서론격이며 따라서 그의 나중의 사상들을 암암리에 내포하고 있는 「신 시 각론」은 이 몰리뇌스의 문제에 대한 체계적인 해결의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로부터 수십년 후 이 문제는 프랑스 철학에 서도 굉장히 연구되고 많은 결실을 보게 되었다. 『뉴턴 철학의 요소』 (1738) 에서 볼테르는 이 문제를 광범하게 설명한다 .24) 디 드로는 이 문제를 그의 최초의 심리학적이며 인식론적인 저술 인 『맹 인 에 관한 편지 Lett re sur !es Aveug le s.』 (1749) 의 중심 주제 24) Elements de la Phil o sop b ie de Newt on , 7 장, 전집 切권, 138 쪽 이 하.

로 삼고 있다. 콩디야크는 이 문제의 매력에 이끌리어 말하기 를, 이 문제야말로 근대 심리학의 원천이며 열쇠가 된다고 하 였다. 이 문제로 인하여 그는 복합적 지각과 마찬가지로 가장 단순한 지각에서도 판단능력이 지니는 역할의 중요성에 관심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흐 이렇게 해서 몰리닉스의 문제가 지니는 체계적인 그리고 일반적인 중요성이 확연히 드러나게 되었다. 이 문제 해결의 시도에서 보여졌던 개별적인 실례들에서 우리 는 이 문제가 지니는 보편적 의의를 깨닫게 된다. 즉 감각 자 체만으로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적 세계를 구성해 낼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이를 위해서 감각 이외에 마음의 다른 능력들의 도움이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이 능력들은 어떤 모습 의 것들인가?

25) Condil lac , Trait e d es Sensati on s , Lyo n 판, 33 쪽.

버클리는 『신 시각론』과 『인간 인식의 원리』에서 우리의 직 관세계를 만들기 위한 재료는 오직 감각에서만 주어지나, 이 직관세계가 나타내고 있는 형식들은 그 흔적조차도 감각에서 찾아질 수 없다는 역리로부터 출발한다. 우리는 우리 눈 앞에 있는 실재가 아주 확고하게 짜여진 구조물이요, 이 구조물의 요소들은 서로 일정한 관계 속에 놓여 있다고 믿는다 . 이러한 관계 규정성이야말로 모든 실재의 근본특성이 된다. 개별적인 지각들이 시 • 공간적으로 일정하게 정돈되지 않는다면 대상세 계 죽 〈사물의 성질〉은 있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가장 확고 한 관념론자라 할지라도 이러한 〈사물의 성질〉을 포기할 수 없 댜 현상을 단순히 가상으로 보지 않는 한, 그는 현상세계 내 의 일정한 질서를 요청하지 않을 수 없다 .26) 그래서 모든 인식

론의 근본 물음은 이러한 질서가 무엇을 뜻하느냐는 것이요, 모 든 발생 심리학의 근본 물음은 이러한 질서가 어떻게 해서 생 겨나게 되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확실하게 인도해 줄 것으로 기대되는 경험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무력하기 짝이 없 는 듯하다. 왜냐하면 경험은 언제나 오직 생성의 결과로서의 세계만을 우리에게 보여줄 뿐 세계의 생성과정 자체를 보여주 지 않기 때문이다 . 경험은 일정한 공간적 질서를 지닌 대상들 을 우리에게 보여주나, 대상들이 어떻게 하여 이런 질서를 지 니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사물을 처음 볼 때에도 우리는 감각적 성질들을 발견할 뿐만 아니라 그 사물의 일정한 공간적 관계도 안다고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물에 대해 서 일정한 크기, 위치 내지 다른 사물과의 관계 등을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정한 규정들의 근거는 감각적인 소여에서 찾 아질 수 없다. 그리고 이 감각소여가 성질이나 강도에 있어서 양적으로 여러가지 차등을 지니지만, 순수 양의 개념은 감각소 여 속에서 찾아질 수 없다 . 대상에서 나의 눈에 이르는 광선은 대상의 공간적 형태나 거리를 나에게 알려주는 것이 아니다. 나의 눈이 아는 모든 것은 망막에 비친 인상 뿐이다. 이 인상 으로부터 우리는 인상의 원인을 알아낼 수 없고 대상의 공간적 거리관계도 알아낼 수 없다. 이 모든 사실로부터 이끌어 낼 수 있는 결론은 소위 사물들의 거리, 위치, 크기 등은 〈볼-수一없 는一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로써 존재 esse 와 지각p er cipi 의 일치라는 버클리의 기본명제는 불합리한 것처람 보인다. 이 제 우리가 직접 지각하는 현상계 안에는 지각의 한계를 넘어서 26) Berkeley, Prin cip le s of H uman Knowledg e, 34 절 ; Di al og u es betw eenHy /a sandPhil o nous 중 제 3 대화를 참고하라 .

는 모종의 것이 있게 된다 . 대상들 사이의 거리는 그 본성상 지각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 그것은 세계를 형 성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기본 요소이다. 지각의 공간적 〈형 식 〉 은 지각의 감각적 〈질료〉와 함께 녹아 있다. 그러나 이 형 식은 결코 질료에서 찾아질 수도 없고 또 질료로 환원될 수도 없다. 이 형식은 직접적인 감각소여의 세계 내에서 볼 때 낯 선 것이다 . 그러나 그것은 이 세계를 혼돈으로 전락시키지 않 는 한 감각소여의 세계로부터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거리는 그 자신의 본성상 지각될 수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 은 시각에 의해 지각된다.〉 27) 버클리의 『신 시각론』의 이 말은 감각주의적 심리학과 인식론이 그 첫 출발부터 부딪치는 딜레 마를 가장 날카롭고 명료하게 표현한 것이다.

27) Berkeley , New Theory of Vis ion , 2 절 .

버클리는 지각개념의 의미를 확장함으로써 이 딜레마를 극복 한다. 그에 의하면 지각은 단순한 감각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상징 내지 표상 Re p rasen t a ti on 기능도 지닌다. 그래서 모든 감 각인상은 이러한 상징의 힘 즉 간접적인 암시의 힘을 지닌다. 한 인상온 자신의 감각적 내용만을 의식에 보여줄 뿐만 아니라 경험적인 연관에 의해 이 인상과 관련된 다른 내용들을 또한 의식에 나타나게 한다. 감각인상들이 이렇게 서로 상징하여 의 식에 환기시켜주는 규칙성, 다시 말해서 감각인상들의 상호 상 징작용이야말로 공간관념의 궁극적 근거가 된다. 공간관념 자 체는 개별적인 지각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 자체는 시각에도 촉각에도 속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소리나 색깔처 럼 근원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감각소여들이

서로 맺고 있는 관계로부터 나온 것이다 . 오랜 경험을 통해서 시각인상들과 촉각인상들이 서로 긴밀히 연결되면, 의식은 이 제 규칙적으로 하나의 인상에서 다른 인상으로 넘어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이행능력은 바로 공간관념 의 원천이 된다 . 물론 이 이행능력은 순전히 경험적인 것이지 합리적인 것이 아니다. 시각의 지각에서 촉각의 지각으로 혹은 이 반대로 넘어가는 것은 결코 이성적인 수리-논리적 추리가 아니다. 습관과 반복된 연습만이 이 연결의 끈을 만들어낼 수 있고 이 끈을 더욱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 . 따라서 공간의 관 념은 엄밀히 말해 감각적 의식의 요소가 아니라 이 감각적 의 식 속에서 행해지는 하나의 과정을 표현한 것이다 . 이 과정이 일어나는 빠른 속도와 엄밀한 규칙성 때문에 우리는 일상적으 로 이 과정의 중간 항들을 간과하게 되고, 말하자면 과정의 출 발점에서 이미 과정의 끝을 선취(先取)해 버린다. 보다 날카롭 게 심리학적으로 혹은 인식론적으로 분석을 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이 중간 항들을 알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었을 때 우 리는 〈언어 기호와 언어 의미 사이에 있는 것〉과 비슷한 연관 성이 여러 감각 영역들 사이에도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 언어 적 음성기호와 이것의 의미내용 사이에는 전혀 유사성도 없고 사실적인 연결의 필연성도 없다 . 그럼에도 음성기호는 의미내 용을 의식에 환기시켜주는 기능을 충실히 수행한다. 이러한 것 은 발생적으로 서로 다르고 질적으로도 전혀 상관이 없는 인상 들 사이의 연관에 대해서도 들어맞는다.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감각인상의 언어와 민족에 따라 서로 다른 음성기호의 언어 사 이의 차이는 단지 전자가 후자보다 그 연관성이 보다 보편적이 고 규칙적이라는 사실 뿐이다 . 버클리의 생각을 볼테르는 다음

과 같이 표현한다. 〈쓰고 읽는 것을 배우듯이, 우리는 보는 것 울 배운다. 태어나서 어느 정도 성장하면 우리 모두는 대상들 의 거리, 크기, 위치에 대해서 거침없이 그리고 쉽사리 합당한 판단을 내리게 되는데,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사물을 이런 식 으로 보기 위해서는 단지 눈만 뜨면 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러한 믿음은 틀린 것이다. 모든 인류가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 면, 아마도 우리는 말과 관념 사이에 필연적인 연관성이 있다 고 믿게 될 것이다. 바로 이러한 가정의 경우가 들어맞는 곳이 감각적 경험의 인상언어이다 . 감각경험의 나라에서 우리는 동 일한 언어를 사용한다 . 자연은 우리 모두에게 다음과 같이 말 한다 : 네가 어떤 색깔을 본다면, 너의 상상력으로 말미암아 너는 이 색깔로부터 자연스럽게 하나의 물체를 떠 올릴 뿐만 아니라 이 사물의 거리, 크기, 위치에 관해 네가 거침없이 판 단을 내리는데, 이 판단은 너의 모든 행동을 위해 유용하고 필 수불가결한 것일지니라.〉 28) 버클리 시각이론의 골자는 18 세기 거의 모든 중요한 심리학 자들에 의해 인정되었다. 콩디야크와 디드로는 이것을 부분적 으로 수정하여, 시각 인상은 이미 어느 정도의 〈공간성〉을 포 함한다고 말한다 .29 ) 이들에 의하면, 촉각은 시각적 경험을 그저 분명하고 확고하게 하는 역할만을 지닌다. 그래서 촉각은 공간 관념의 생성에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 시각에 의해 생긴 공간관 념을 단지 확실하게 다지는 데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28) Volta i r e , Elements de la Phi/ os op h ie de Newt o1 1, 7 장 ; 전집 30 권, 291)4 7D 쪽.id e rot, Lett re sur /es Aveu g les 와 Condil lac , Trait e des Sensati on s 1 편, 7 장, 11 장을 참고하라.

부분적 수정은 버클리의 철저한 경험론적 입장에 어긋나는 것 이 아니다. 여기서도 소위 공간의 〈선천성 A p r i or it a t〉은 철저히 부정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여 공간의 보편성과 필연 성 문제도 또한 새로운 모습을 띠게 된다. 공간적 구조관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경험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면, 예컨대 우 리 몸의 신체적 조직의 변화에 따른 경험의 변화로 인하여 공 간의 〈본질〉이 또한 달라질 수 있다는 가정이 성립된다. 그리 하여 이 가정에 대한 끊임없는 탐색작업이 시작되었다. 우리의 직관 형식들과 오성의 형식들이 지닌다고 보는 보편성과 객관 성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그것은 사물의 본성에 관한 것인가, 아니면 그것은 단지 우리 자신의 본성에 관계되는 것 인가? 베이컨의 말을 빌려 말하면, 소위 형식의 〈객관성〉에 근 거한 판단들은 우주에서 유추된 것인가 ex analog ia univ e rsi, 아 니 면 오직 인간으로부터 유추된 것 인가 ex analog ia homi ni s ? 이 렇게 해서 공간관념의 원천에 관한 문제는 애초의 문제영역을 훨씬 넘어서 확대된다. 이제 우리는 18 세기의 심리학적 내지 인식론적인 사유가 왜 늘상 이 문제에 그렇게 집착하게 되었는 지를 이해하게 된다. 일반적인 진리개념의 운명은 이 문제에 달려 있게 된다. 모든 인간적 직관의 근본요소가 되는 공간이 단지 여러 감각인상들의 상호연관에서 생겨난 것에 불과하다 면, 그 공간은 이 인상들이 지녔던 것보다 더 높은 필연성이나 더 높은 논리적 권위를 요구할 수 없다 . 근대과학에 의해 일반 적으로 인정된 감각성질의 주관성은 공간개념에도 역시 타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문제가 지니는 의의는 여기에 국한되 지 않는댜 공간에 대해 타당한 것은 더 나아가 인식 〈형식〉의 기초가 되는 다른 모든 요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타당하

게 된다. 이미 고대의 심리학예서도 색, 소리, 맛, 냄새 등의 감각 내용들과 순수 〈형식개념들〉이 분명하게 구별된다. 이 후 자에는 공간 이의에 지속, 수, 운동, 정지 등이 속하는데, 이 것들은 개별적 감각기관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공통감각 (Gemein s in n , sensus communis , ais t h e te r io n ko i non) 〉에 기 인 하는 만큼 특별한 것이다 .30) 그래서 근대의 합리론적 인식론도 개별 감각 내용의 타당성과 형식개념의 타당성의 차이를 설명 하기 위해서 이 양자의 발생원천을 심리학적으로 구별한다. 라 이 프니 츠가 강조하는 바에 의 하면, 공통감각에 속하는 관념 들 은 정신 자체에 속하며, 정신에서 유래한다. 〈순수 오성의 관 념들은 감각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발생의 우연적인 기회원인으로서 감각을 필요로 할 뿐이다. 따라서 그것들은 그 자체로 엄밀하게 정의되고 논증될 수 있다고 한다.〉 3 1)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몰리뇌스의 문제의 엄밀한 분석에 의해 결정적 으로 그 근거를 상실한 듯이 보인다. 1728 년 체슬든 Cheselden 이 14 세의 맹인 소년의 눈을 수술하는 데 성공했을 때 몰리눠 스의 가설적인 물음은 경험적으로 해결된 듯이 보인다. 수술 후 이 소년을 관찰한 결과 모든 점에서 경험주의적 명제가 들 30) 역주: Geme in s i nn 은 보통 상식으로 번역되나 여기서는 〈공통감각〉 으로 번역한다. Geme in s i nn 에 해당하는 라틴어 sensus commu nis 은 첫째 상식 또는 양식의 뜻이요, 다시 말해 오성이나 이성의 도움 없이 도 알 수 있는 통찰력을 뜻하며, 둘째 공공심, 협동정신 (독일어 Geme i n g e i s t)의 뜻으로, 공동체에 유용한 것을 알고 사회공동체적 행 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하며, 세째 공통감각의 뜻으로 시각, 청각등 외적 감각들의 여러 활동들을 통일함으로써 이 감각들의 대상들을 비교 할 수 있는 보편적 지각능력을 의미한다(J oach im Ritter , His t o r i sc bes 31W) 6Lret eibr bn uizc , b Ndeoru Pvbeail uoxs o Eps bsi ae ,i s suGre lm'Eenitne sn idn ne m e항nt목 H u참m조a)in ., 2 권, 5 장.

어맞는 것처럼 보였다. 버클리의 이론적인 가설은 이를 통해 확증되었다. 이 소년은 수술 후 곧 완전한 〈 시력 〉 을 얻은 것이 아니라 시각적으로 나타난 물체의 형태들을 구별하기 위해서 얼마 동안 노력을 들여 배워야 했다 . 이로써 촉각의 공간적 소 여와 시각의 공간적 소여 사이에는 원천적인 내적 유사성이 없 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이 양자의 연관성은 이것들의 습관적 결 합의 결과로써만 얻어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것이 사실이 라면, 우리는 모든 감각들에 대해, 말하자면, 동일한 기체로서 의 동일적 공간을 말할 수 없게 된다. 라이프니츠가 정신의 산 물이라고 한 동일한 공간은 이제 단순한 추상물에 지나지 않는 다. 경험 속에는 공간의 이러한 통일성이 발견될 수 없고 , 오 히려 다양한 감각영역들이 있는 만큼의 질적으로 서로 다른 다 양한 공간들이 있다 . 시각 공간, 촉각 공간, 운동감각 공간 등 이러한 모든 공간들은 각기 자신의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 다. 이것들을 서로 결합하고 연관시키는 것은 이 공간들의 공 통된 본질이나 추상적 〈형식〉이 아니다. 이 공간들 사이에는 단지 반복된 경험의 소산인 규칙적 결합만이 있을 뿐이요, 이 결합에 의해 공간들은 서로서로 다른 공간들을 상징하거나 표 상할 수 있게 된다. 이제 이 감각 공간들 중에서 어느 것이 참 된 공간인가 하는 물음에는 의미가 없다 . 그것들 모두는 동등 한 타당성을 지닌다. 이중 어떤 것도 더 높은 확실성, 객관 성, 혹은 보편성을 지니는 것이 아니다. 소위 객관성, 진리, 필 연성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상대적 인 의미만을 지닌다. 감각기관들은 각기 자신의 고유한 세계를 지닌다 . 우리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은 이 세계들를 하나의 공통요소로 환원하는 일이 아니라, 이것들을 순전히 경험적으

로 파악하고 분석하는 일이다. 계몽기의 철학은 이러한 상대성 을 드러내는 일에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이러한 상대성은 학 문적 고찰에서 뿐만 아니라 일반 문학에 있어서도 즐겨 찾는 주제가 되었다 . 스위프트 Sw ift의 『갈리버 여행기』는 이 주제를 풍자적으로 날카롭게 다룬 작품이다. 이로부터 이 주제는 프랑 스 문학에도 영향을 끼쳐, 볼테르의 『극대극소(極大極小 )M i crome­ g as』 와 같은 작품이 나오게 되었다. 또한 디드로는 「맹인에 관 한 편지」와 「귀머거리에 관한 편지」에서 의기양양하게 이 주제 를 여러 색깔로 변용시켜 다루고 있다. 맹인에 관한 편지의 골 자는, 손더 슨 Saunderson 이 라 불리 는 유명 한 맹 인 기 하학자를 예로 들어, 인간의 신체조직이 변함에 따라 정신적 세계가 필 연적으로 이에 상응하여 변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려는 것이 댜 신체조직이 변하면, 이에 따라 감각세계 죽 지각적 실재만 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깊고 자세히 분석하면, 이로부터 지식, 도덕, 미학, 종교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모든 영역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상대성온 소위 순수 정신적인 것이라 일컬어 지는 최고 이념의 영역에도 도입된다. 다시 말해서 맹인의 〈신〉 과 정상인의 〈신〉은 동일한 것을 의미할 수 없다는 것이다 . 과 연 우리의 감각기관으로부터 독립될 수 있는 하나의 논리학, 하 나의 형이상학, 하나의 도덕이 있겠는가? 물질적 세계와 정신 적 세계에 대한 우리의 모든 진술은 언제나 우리 자신의 신체 조직의 성질을 반영하는 데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만약 우리 에게 하나의 감각기관이 새로이 주어지거나 혹은 우리가 가진 감각기관들 중의 어느 하나가 없어진다면, 우리가 보는 존재세 계도 근본적으로 달라지게 마련일 것이다. 18 세기는 이렇게 해 서 시작된 심리학적 사변을 보완 설명하기 위해서 우주론적 사

변을 즐겨 끌어들인다. 퐁트넬의 『다원적 세계들에 관한 담론』 에서 칸트의 『일반 자연사와 천체 이론』에 이르는 과정은 바로 이러한 우주론적 사변의 일관된 과정을 잘 보여준다. 각각의 천체들마다 독특한 정신-물리적인 성질을 지닌 주민들이 살고 있다면, 우리가 추상적으로 고안해 낼 수 있는 여러 가능성들 이 다른 천체들에서 현실화되어 있을는지도 모른다 . 〈우리에게 만약 제 6( 第六)의 감각이 있다면, 이것은 현재 우리가 전혀 알 고 있지 못한 많은 것들을 알려줄 것이다. 제육의 감각이 아마 도 다른 세계에는 있을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 대신 거기서는 우리가 지닌 오감(五感) 중의 어느 하나가 결핍되어 있을는지도 모른다. 우리 인간의 지식은 인간정신의 유한성에 의해 일정한 한계를 지닌다. 이 한계 밖에 있는 것을 다른 세계인은 알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대신 거기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중의 어떤 것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32) 이러한 사상은 계몽기의 심리학적 내지 인식론적 문헌에서 거듭 되풀이되어 나타난다 .33) 그리고 논리학, 윤리학, 신학은 점점 인간학으로 해소되어 간다. 로시우스J oh. Chr. L oss i us 는 『참됨의 물리적 원 인들』이라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함으로써 이 흐름의 마 지막을 장식한다. 우리는 논리적 명제 내지 추리에 관한 쓸데 없는 논의를 그만두고 그 대신 개념의 발생에 관한 쓸모있는 논의를 하여야 한다. 여기서 개념은 그 내용이나 대상에 의해 분류되는 것이 아니라 개념을 만들어내는 우리의 신체 기관에 32) Fonte n elle, Entr e ti en s sur la Pluralite des Mandes, Trois i e m e soir : 전집, Paris, 1818, 2 권, 44 쪽 . 33) 이와 관련된 독일 계몽기의 저술가로는 줄처 Sulzer 를 둘 수 있다. Sulzer, Zerg lied erung des Begr i f fs d er Vernunft (1 758) ; Vermi sc bte pbi / o sop bi s c be Scbri ften , 1 권, 249 쪽을 참고하라.

따라 분류되어야 한다 . 그리고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인간이 지닌 관념의 본성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라이프니츠에 이르 는 설명 방식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물론 보 편 타당성 내지 객관적 타당성의 확립은 포기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름다움과 마찬가지로 진리도 객관적이기보다는 훨씬 더 주관적인 것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진리개념에 커다란 손상 을 입히는 것이 아니다. 진(眞)과 미(美)는 대상의 성질이 아니 라 단지 사물과 우리와의 관계이다 .34)

34) Lossiu s , Pbys i s c be Ursacben des Wabren, Goth a, 1775, 8 쪽 이 하 및 56 쪽 (Cass i rer, Erkennti spr oblem, 3 판, 2 권, 575 쪽 이하 참조).

이러한 기본적 견해로부터 〈주관적 관념론〉에 이르기까지는 단지 한 걸음만 내디디면 족하다. 그러나 18 세기 사상계에서 이 마지막 한 걸음울 내딛고 이로부터 나오는 귀결들을 과감히 이끌어낸 사람은 극히 드물다 . 버클리에게는 직접적인 제자나 후계자가 없다. 버클리의 심리학적 방법을 계승한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그는 이로부터 나오는 형이상학적 귀결들을 피하고 자 하였다. 이런 사실은 콩디야크의 인간 인식의 기원에 관한 저술들 예컨대 『감각론 Tra ite dessensa ti o ns_』에서 분명히 드러난 다. 콩디야크는 처음에 〈외계의 실재〉를 단순히 촉감으로써 증 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 다른 감각들 예컨대 후각, 미각, 시 각, 청각 등은 외계의 실재를 증명하는 데 충분치 못하다고 그 는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촉각 이외의 모든 감각들은 언제나 자아의 변용에 불과할 뿐이요, 이러한 변용을 일으키는 의적 원인에 대한 신빙할 만한 하등의 증거를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 다. 보거나, 냄새를 맡거나, 맛보거나, 들을 때 우리는 이런 활동에 필요한 신체적 기관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않

는다. 우리의 마음은 단지 지각 행위에 몰두할 뿐, 이 행위에 필요한 신체적 기관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나 촉각에서는 이러한 사정이 달라진다. 왜냐하면 모든 촉각 경험은 반드시 이중적 관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촉각 경험은 언제나 우리 신체에 관한 지식도 동시에 알려준다. 그것은 말하자면 객관적 실재 세계와 우리 신체의 직접적 접촉을 나타낸다. 그러나 콩 디야크는 자신의 이러한 외계 실재 증명에 만족하지 못한다. 『감각론』의 수정판에서 그는 이 증명을 보충하고 철저히 하고 자 시도한다. 이렇게 해서 외계 실재 증명의 문제는 이제 그에 게 전혀 다른 차원의 것으로 된다. 한편으로 우리의 모든 지식 이 감각에서 생긴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의 모든 감각은 우리 자신의 변용이요, 우리 자신의 존재방식에 불과함이 명백해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밖에 있는 객체를 어떻게 〈감각〉할 수 있는가? 우리가 하늘 끝까지 올라가거나 바다 깊숙이 내려간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자아 밖으로 나갈 수 없고 언제나 우리 자신 내에 머무를 뿐이다. 이렇게 해서 콩디야크는 이 문제를 아주 날카롭게 파악하고 있 었으나, 그의 감각주의적 방법으로는 그 해결을 도모할 수 없 었댜 35) 디드로는 콩디야크의 약점을 분명하게 알았다. 그의 판 단에 의하면, 콩디야크는 버클리의 기본 명제를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이 명제의 귀결들을 피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런 식 으로는 심리학적 관념론이 극복될 수 없다. 디드로는 칸트처럼 이 관념론에서 〈인간 이성의 스캔달〉을 보았다. 즉 이 관념론 은3 5G〈) . 인〈L간y외o 계n -정 의판 신실 에『재감〉 각 부론문끄』제의럽에 게서대론도한 1 4가콩 쪽디장울야 어보크라의처. 구 자니신 없없는는 태일도이에지 만관,해 서또는

한 극복하기에 가장 어려운 체계이다.〉 36)

36) Dide rot, Lett re sur !es Aveug le s, Naig e on 판 전집 2 권, 218 쪽.

언어의 기원에 관한 모페르튀이의 철학적 서간문에서도 이와 유사한 자신없는 불확실한 태도가 엿보인다. 여기서도 문제의 식은 투철하고 날카롭다. 그에 의하면, 연장성(延長性)은 그 객 관적 실재성의 면에서 볼 때 다른 감각적 성질들과 조금도 다 룰 바 없다. 순수공간과 색깔의 현상 사이에는 심리적 발생의 측면에서 볼 때 어떤 차이도 없다 . 더 나아가 그는 실재에 대 한 표현의 의미를 즉 <·… •• 이 있다 es ist, es gi b t〉라는 존재판 단의 의미를 묻는다. 이 판단의 내용과 근거는 무엇인가? 우리 가 한 나무를 보았다거나 만져 보았다는 것에서 더 나아가 한 나무가 〈있다〉라고 말할 때 이것은 무엇은 의미하는가? 이것은 단순한 감각 소여들 이외에 다른 무엇을 더 말해 주고 있는가? 있음(존재)의 지각이 색깔이나 소리의 지각처럼 직접적이고 원 천적으로 주어지는 것인가? 그러하지 못하다. 그렇다면 존재판 단의 의미는 무엇인가? 결국 〈있다〉라는 존재표현은 그 자신의 새로운 의미 내용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감각 소여들에 대한 새로운 또 하나의 기호이며 명칭에 불과할 뿐이다. 이 새 로운 기호를 사용하여 우리는 일련의 감각지각들을 하나의 이름 으로 부를 수 있고, 이렇게 함으로써 의식에 대해 이 지각들을 고정시키고 확고하게 만든다. 그 기호는 말하자면 현재의 지각 과 과거의 지각 기억과 미래의 기대를 합쳐 표현하는 수단이 다. 그 기호에 관한 경험 내용은, 비슷한 여러 가지의 경험들 의 반복을 그리고 이 경험들에 동반되어 이것들을 단단히 결합 시켜주고 이것들의 실재성을 보다 더 강화시켜주는 경험 여건

들의 반복을 의미한다. 예컨대 〈내가 한 나무를 보았다〉라는 지각은 〈내가 어떤 곳에 갔었다〉는 지각을 동반한다 . 그리고 내가 그 곳에 다시 갔을 때 다시 그 나무를 보았고…… 그래서 〈내가 그 곳에 다시 간다면 역시 그 나무를 보게 될 것이다〉라 는 새로운 의식이 생기게 된다. 이렇게 해서 결국 〈한 나무가 있다〉는 존재 판단이 생기게 된다. 이렇게 해서 존재문제에 대 한 감각주의적 설명의 단점이 극복되는 것처럼 보인다 . 그러나 실제적인 소득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단지 감각주의 적 해석이 유명론적 해석으로 바뀌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문제 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 단지 이전되었음을 모페르튀이 자신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래서 그의 분석은 마침내 회의적 귀결로 끝난다. 모페르튀이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 나무가 있다’ 는 지각은 이 지각의 대상에 실재성을 부여한다 . 그것은 나로 부터 독립해 있는 대상으로서 나무의 존재에 관한 판단이다. 그러나 이 지각 속에는 일련의 감각내용에 관한 명제들을 넘어 서는 어떤 다른 내용이 들어 있지 않다. 만약 ‘나무를 보았 다’, ‘소를 보았다’ 등과 같은 지각들이 각기 단 한 번 뿐이라 면, 이 한 번의 경험이 아무리 생생하다 하더라도 이로부터 ‘나무가 있다’라거나 ‘소가 있다’라는 존재판단이 나올 수 없 다. 마찬가지로, 만약 기억력이 굉장히 좋아서 모든 지각의 하나 하나에 제각기 다른 기호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할 때에 도, 역시 ‘……가 있다’ 라는 존재판단은 나올 수가 없을 것이 댜 그렇다면 이 존재판단은 과거에 늘상 보았고, 지금도 보 고, 앞으로도 보게 될 일련의 개별적 경험들을 축약하여 한 마 디로 말하는 표현상의 기법이 아닐까?〉 37) 이렇게 해서 존재문제 는 단순히 감각의 차원에서 판단의 차원으로 바뀐다. 그러나

여기서의 판단은 아직 그 고유한 논리적 특성이 파악되지 못한 채 단지 일련의 지각들의 집합에 불과한 것으로 해석된다. 칸 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판단은 〈판단행위의 통일성〉으로 해석 되고, 판단행위의 이런 근원적 〈자발성(自發性, S p on t ane it걸t)〉 에 의해 판단은 〈자기의식의 객관적 통일성〉으로 표현된다. 이 러한 판단해석이 성취되고 난 후에야 존재문제에 대한 근본적 변형과 더불어 비판적 해결이 가능하게 된다. 〈표상과 대상과 의 관계에 대한 문제〉는 이제 단순히 심리학적인 물음의 의의 를 넘어서서 선험적 논리학의 중심점이 된다 . 3 이 마지막 단계가 칸트에게서 〈사고방식의 혁명〉으로 표현되 고 있지만, 그것은 역시 역사적인 준비단계를 거쳐서 성취된 댜 적어도 독일에서는 로크, 버클리, 흄 내지 콩디야크의 심 리학이 아무런 논쟁 없이 타당시된 것은 아니다. 얼마 동안 로 크의 영향이 우세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역시 볼프에 의한 체 계적 심리학의 발달로 그 영향의 한계가 있었다. 볼프의 합리 적이고 경험적인 심리학은 라이프니츠의 기본 노선에 충실하면 서 자신의 길을 걷는다. 그의 심리학은 단자의 자발성, 자립성 내지 독창성에 의존한다. 단자는 밖으로부터 아무것도 받아들 이지 않고 오히려 그 자신의 고유한 법칙에 따라서 자신의 모 든 내용을 스스로 창조해 낸다. 이것은 처음부터 〈물질적인 유 37) Maup er tu is, Re flex io n s Phil o sop h iq u es sur l'Or igine des Lang u es et l a Sig n if icat i on desMots , 24 절 이하; 전집 1 권, 178 쪽 이하.

입 inf l ux us ph y s ic us 〉으로서의 〈인상〉개념과 화해될 수 없었다. 심리적인 것의 근거를 〈인상〉에서 찾으려는 심리학은, 라이프 니츠나 볼프에 의하면, 출발부터 잘못되었다. 왜냐하면 마음의 근원현상은 수동성이 아니라 능동성에 있는데, 그런 심리학은 이 현상을 간과해 버리기 때문이다. 이제 〈감각〉심리학에 대립 하여, 순수 기능 심리학 Funk ti ons p s y cholo gi e 이 등장한다. 그런 데 이것을 단순히 능력 심리학 Vermo g ens p s ycholo gi e 으로 이해 하고 비판한다면, 기능 심리학의 고유한 체계적 성향을 옳게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단순한 가능성 내지 잠재력으로서의 능력은 라이프니츠 학설 내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다. 또한 여 기서는 개별적인 심적 능력들을 엄격히 구분시켜 마치 독자적 인 여러 능력들이 있는 것처럼 볼 수도 없다. 볼프가 개념들을 엄격히 구별하고 있지만, 이것은 표현의 수단일 뿐, 사실 자체 에서 보면 그는 언제나 마음의 통일성을 엄격히 주장한다. 마 음의 모든 능력들이 서로 독자적인 개별 능력들이 아니라 하나 의 근원적 활동력인 표상력의 다양한 표현방식에 불과함을 그 는 거듭하여 강조하고 있다 .38)

38) Wolf f, Psyc holog ta Rati on alis, 184 절 이 하 및 Psyc holog ia Emp irlc a, 17 절 이 하를 참조.

그리고 여기서의 표상은 단순 외적 존재의 반영이 아니라 활 동적인 힘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라이프니츠에 의하면, 실체의 본성은 풍요성에 있다. 실체는 끊임없이 표상들을 자신으로부 터 산출해 낸다. 따라서 자아는 단순히 관념의 진열장이 아니 라 관념의 원천이요 근거이다. 자아의 진정한 완전성은 바로 이 점 에 있다. 자아가 완전하면 할수록 자아의 창조 활동은 그 만큼 더 자유스럽고 온전하게 된다. 「지혜에 관하여」라는 논문

에서 라이프니츠는 이렇게 말한다 . 〈나는 본질의 고양을 완전 성이라 부른다. 병이 건강을 떨어뜨리는 것이라면, 완전성은 건강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 병이 나쁜 외부 영향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면, 완전성은 자신의 활동하는 힘에서 생긴다. 실로 모든 본질은 힘이요, 이 힘이 크면 클수록 본질은 그 만 큼 더 자유스럽다. 더 나아가, 이 힘이 크면 클수록, 그 만큼 더 많은 다(多)가 하나(一者)로부터 나타난다. 하나는 자신 속 에서 다(多)를 미리 형성하고 자신 밖에서 다(多)를 지배한다. 다양의 통일성은 일치를 의미한다 . 어떤 것이 저것보다는 이것 에 더 잘 일치되기 때문에, 이로부터 질서가 생겨나고, 질서로 부터 모든 아름다움이 생겨난다. 그리고 아름다움은 사랑을 일깨운다 . 이렇게 해서 우리는 행복, 쾌락, 사랑, 완전성, 본 질, 힘, 자유, 일치, 질서 그리고 아름다움이 서로 연결됨을 본다. …… 영혼이 자신 속에서 커다란 조화, 질서, 자유, 힘 내지 완전성을 느끼고 이로써 즐거워진다면, 이는 하나의 기쁨 울 자아낸다. …… 이러한 기쁨은 영원한 것으로서, 이것이 참 된 인식에서 일어나고 밝은 빛에 의해 인도되는 것이라면, 장 차 어떠한 슬픔도 생기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 기쁨으로부터 의지 속에 선에 대한 욕구 죽 덕이 생겨난다. …… 오성의 깨 우침과 이에 따르는 의지의 실행만큼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은 없다. 그리고 우리 오성을 더 높은 찬란한 빛 속으로 인도할 수 있는 존재자를 인식함으로써 오성의 깨우침은 더욱 탁월하 게 될 것이요, 이로부터 지혜, 덕, 완전성 그리고 기쁨의 무한 한 전진이 이룩될 것이요, 이들의 효험은 지상의 생명이 다한 후에도 영혼과 더불어 남게 될 것이다.〉 39) 이 글 속에서 라이프니츠는 독일 계몽철학의 기본 방향을 제

시하고, 계몽의 본질개념을 규정하며 그 이론적 윤곽의 틀을 만들었다. 이 글은 〈다양 속의 참된 통일 Ein h eit in der Vi el heit> 을 나타낸다 . 이 글 속에는 심리학, 인식론, 윤리학, 미학 그리 고 종교철학에 관한 독일 계몽의 모든 씨앗들이 포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씨앗들이 장차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야 될 것 인가까지도 암시되어 있다. 이를 토대로 하여 18 세기의 독일 철학은 단순한 절충주의를 벗어날 수 있었다. 〈통속철학〉이 절 충주의에 상당히 빠져들어간 것이 사실이지만, 학문과 체계적 인 철학은 언제나 라이프니츠가 제시한 근원문제로 되돌아가 자신의 고유한 길을 나아갔다. 이런 점에서 볼프는 〈독일의 스 승〉이 된다. 볼프야말로 독일적인 철저성의 정신의 원조가 된 다는 칸트의 칭찬도 이런 점에서 전적으로 타당하다. 독일 계 몽철학 속에 통일적인 이론적 세계관을 형성할 수 있는 위대한 가능성이 명백히 엿보인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칸트는 이 계 몽철학의 계승자일 뿐만 아니라, 칸트 자신의 고유한 문제의식 과 체계도 이 계몽철학으로부터 성장해 나온 것이라 할 수 있 다. 독일 계몽철학의 기본 노선을 명백히 하기 위해, 우리가 앞서 다루었던 입장을 다시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18 세기 영 국과 프랑스의 계몽철학온 외부에서 빌려온 권위를 바탕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철학적 인식을 자신의 토대 위에서 얻 어내려는 것이다. 이 철학적 인식은 자신의 바탕 위에 서야 하 고 자기자신 내에서 변호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자율의 요 청에서 본유관념의 체계는 거부된다 . 본유적인 것에 의존함은 의적 권위에 호소하는 것과 같은 짓이요, 결국 인식을 신의 존 39) Leib n iz, Von der Weis b ei~ Guhrauer 판, 1 권, 422 쪽 이 하.

재에 의거해서 정초하려는 짓이나 마찬가지이다. 데카르트가 본유적인 것의 의미를 신의 창조력에 의존해서 해명하고 관념 내지 영원한 진리를 이 힘의 결과라고 한 것은 외적 권위에 호 소하는 전형적인 예이다 .40) 신이 본유관념의 원인이라는 설명에 대신해서 말브랑슈는 실체적 통일성을 내세운다. 즉 관념 내지 영원한 진리를 직관할 때, 인간정신은 신의 존재에 직접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경험론적 철학이 이러한 초월성을 비난했 을 때, 경험론적 철학에서 남은 인식 근거는 의적 경험 뿐이 댜 그런데 이 경험은 정신의 독자성을 새로운 각도에서 위협 한다. 정신은 이제 사물의 상을 되비칠 뿐 결코 이 상을 스스 로 만들어낼 수 없는 거울이 된다. 〈이런 면에서 오성은 수동 적일 뿐이다. 오성의 인식재료는 결코 오성의 힘 속에 있는 것 이 아니다 . …… 밖으로부터 마음에 제공된 단순관념을 오성은 거부할 수도 없고 변경할 수도 없으며, 새로운 것을 스스로 만 들어낼 수도 없다. 이는 마치 거울이 앞에 놓인 사물들의 상을 거부하거나 변경시킬 수 없음과 같다〉 41) 형이상학적 초월이론과 경험론적 내재성 이론에 반대하면서 라아프니츠는 자신의 견해를 세운다. 그는 우선 내재성의 요구 를 고수한다. 왜냐하면 단자가 지닌 모든 것은 자신의 근거에 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 원리를 더욱 날카롭게 하 40) 메르센느 Mersenne 에게 보낸 데카르트의 서신 (1630 년 5 월) (Adam-Tannery 판 전집 1 권, 151 쪽) . 〈당신은 영원한 진리의 근거에 대해서 나에게 물었다. ‘그 근거는 사물의 근거와 똑같이 신이다’ 라는 것이 나의 대답이다 . _왜냐하면 신은 사물의 본질과 존재를 만드셨는 데, 이 본질이 바로 영원한 진리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신은 만 물의 창조주요, 영원한 진리도 만물에 속하므로, 이것 역시 신의 작품 이댜〉 41) Locke, Eassay on Human Understa n din g , 2 권, 1 장, 25 절 .

여 신에 의존하는 것 뿐만 아니라 외적 사물에 의존하는 것도 거부한다. 정신과 사물을 대립시키고 정신을 사물에 의존시키 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주장될 수 없다. 〈사물을 관찰한다는 것 은 밖에서 찾을 필요가 없는 본유관념 내지 우리 자신의 정신 의 본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 42 ) 정신이 실재의 거울이 된다고 할 때, 거울의 의미는 우주를 반영하는 살아 있는 거울이다. 그 것은 단순히 상(像)들을 모두 합친 것이 아니라 상을 만드는 힘 들의 전체를 뜻한다. 이 힘의 독특한 구조를 밝히고 상호관련 을 이해하는 것이 심리학 내지 인식론의 과제가 된다 . 이 힘은 이제부터 독일 계몽철학이 파악하고 철저하게 연구할 대상이 다. 이 연구가 광범하게 이루어지고 때때로 이런 광범성 때문 에 산만해지기도 하지만 그 본래의 깊이는 결코 상실되지 않는 댜 왜냐하면 문제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근본원리를 여러 측면에서 밝히고 논구하려는 것이 중심을 이루고 있기 때 문이다 . 자아의 자발성에 대한 심리학적 파악을 통해, 이제 인 식과 예술에 대한 새로운 근본견해의 바탕이 마련되고, 인식비 판과 미학의 새로운 목적과 노선이 설정된다.

42) Leib n iz, Nouveaux Essais , 1 권, 1 장, 21 절 .

특히 마음을 개별적인 〈능력들〉로 구분하는 것은 순수 경험 론적인 현상분석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장래의 보편적 체계 에 대해서 죽 본래의 〈정신 현상학〉에 대해서 최초의 실마리와 윤곽을 그려 준다 . 당대의 가장 독창적이고 날카로운 심리학적 분석자가 바로 이런 연관성을 명백히 파악하고 있다. 테텐스 s. N. Te t ens(1736-1807) 의 『인간 본성과 이것의 발전에 관한 철 학적 탐구』는 버클리나 흄의 연구와 방법적으로 다르다. 그는

개별적인 마음의 현상들을 분류하고 기술하며, 이러한 기술을 〈객관적 정신〉에 대한 보편적 이론의 예비단계로 삼는다. 이제 오성이 감각 경험을 모아서 최초의 감성적 관념을 만드는 것을 관찰할 뿐만 아니라 또한 오성이 더 높이 비상하여 이론과 과 학적 진리를 창출하는 것도 관찰하여야 한다. 여기서 사유력으 로서 오성의 진면목이 나타난다. 여기서 이제 탐구해야 할 문 제는 기하학, 광학, 천문학과 같은 위대한 건물을 만드는 데 오성이 따라야 할 근본규칙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베이컨, 로 크, 콩디야크, 보네 Bonnet 및 흄이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공 헌한 것은 테텐스가 보기에 결코 충분한 것이 못된다. 이들은 이성적 인식의 고유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오로지 감각적 인식의 탐구에만 몰두하였다 .43) 〈마음의 능력〉에 관한 테텐스의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새로운 근본 개념이 이 문제 해결에 빛을 던져 준다. 그가 감정 Ge fu hl 의 문제를 날카롭게 드러내고, 이 룰 감각과 엄밀히 구분하였을 때, 이러한 구별은 단순한 내성 (內省)에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와 대상과의 관계가 완전 히 서로 다른 두 가지 방식으로 맺어질 수 있음을 성찰함으로 써 얻어진 것이다. 감각도 물론 우리 자신에 기인하는 면이 있 댜 그러나 감각의 본질은 그것이 우리 자신의 상태를 나타내 는 것이 아니라 객체의 성질을 나타낸다는 점이다. 이에 반하 여 감정은 전혀 다른 차원의 순수 주관적 연관을 드러낸다. 감 정은 전적으로 우리 자신의 변화요, 외적 대상과의 관련 없이 도 우리는 이런 변화를 직접적으로 인지한다. 그렇다고 하여 43) Tete n s, Phil oso p h is c he Versucbe uber die menscbli ch e Natt tr und ih re Entw i ck lung, Rig a , 1777, 1 권, 427 쪽 이하 (Neudruck der Kantg e sellschaft, Berlin , 1913, 416 쪽 이 하) .

감정이 아주 자의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감정의 주관적 연관도 자신의 고유한 규칙과 법칙성을 지니며, 따라서 그것은 진정한 소우주로서 자신의 세계를 형성한다. 이러한 감정이론은 독일 계몽철학에 있어서 〈소우주가 표현되고 전개되는 예술 현상〉을 통해 입증된다. 이 시점에서 마음의 능력에 관한 멘델스존의 이론을 소개해 보자. 멘델스존도 여러 종류의 정신적인 형성물 들에서 이것들의 원천이 되는 여러 종류의 힘들을 추론해 내 는, 말하자면, 재구성적 방법을 사용한다. 예술의 대상과 이론 적 인식의 대상을 명백히 구별하고 미와 진을 구분하려면, 미 에 대한 심적 현상을 독자적 영역으로 확립해야 할 것이다. 미 적 대상은 단순한 인식 대상도 아니고 단순한 욕구 대상도 아 니다. 우리가 미적 대상을 인식 대상으로 다루려고 한다면, 다 시 말해 그것을 인식의 방법인 개념분석과 개념정의로써 다루 려고 한다면, 미적 대상은 어느덧 우리 손안에서 사라져 버리고 만다. 또한 우리가 미적 대상을 순전히 〈실천적〉으로, 다시 말 해서 욕구의지와 행위의 관점에서 접근하려고 한다면, 역시 미 적 대상의 본성은 사라져 버리고 만다. 욕구대상은 미적 대상 이, 즉 예술적 관조와 즐김 Genu~ 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러 한 성찰로부터 멘델스존은 미에 대한 마음의 독자적인 능력을 요청하면서 이를 〈찬탄능력 B illig un g svermo g en 〉이라 일컬었다. 미에 대한 찬탄으로서 미적 평가는 욕구의 자극을 포함하지 않는댜 〈미 는 조용한 즐거 움 Wohl gfa llen 으로 관조되 는 것 이 요 그것을 소유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리고 그것을 소유하려 는 욕구가 전혀 없다 할지라도, 그저 그냥 마음이 즐거워지는 것이 미의 징표라 할 수 있다. 미를 우리의 이해 관계에서 바라 볼 때, 그리고 미의 소유를 재산으로 여기기 시작할 때, 비로소

그것을 소유하려는 욕구가 싹트기 시작한다. 이 욕구는 분명히 미의 즐김과는 거리가 멀다.〉 44) 이렇게 해서 능력 심리학은_ 바로 이 점에서 그 체계적인 독특한 가치가 있는 바인데――­ 단순히 감각과 인상이라는 의식의 요소에 관한 이론으로서의 심리학이 아니라, 마음의 태도와 행위에 관한 포괄적인 이론으 로서의 심리학을 추구한다. 정적으로 주어진 소여의 내용이 아 니라 마음의 힘들이 인식되고 기술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 에서 이제 심리학과 미학의 연관성이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미학에서 마음의 힘에 관한 이론은 뒤보스 Dubos 의 『시, 미술 그리고 음악에 관한 바판적 반성』(1 719) 이후 정설로 되었다. 뒤보의 고찰은 라이프니츠의 기본생각에 대한 직접적인 확증으 로 간주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미적 기쁨을 〈본질 의 고양〉 즉 마음의 힘들을 고무하고 고양시키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양된 삶의 기쁨 즉 고양된 순수 감정의 기 쁨온 단순히 대상을 고찰할 때 일어날지도 모르는 불쾌를 무 한히 압도해 나갈 수 있다. 레싱은 멘델스존에게 이렇게 말한 다. 〈보다 생동하게 규정된 힘에서 나오는 기쁨이 …… 대상에 관하여 우리가 지니는 불쾌감에 눌리어서 더 이상 그 기쁨을 의식하지 못하게 된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요.〉 45) 또한 줄처 Sulzer 도 「미술작품에 있어서 힘에 관하여」라는 논문에서 이 비슷한 견해를 밝히면서, 이런 가정하에서 이론적 사유의 힘 과, 미적 관조의 힘과 의지 운동의 힘을 각기 분간하려고 시도 한다.

44) Mendelssohn, Morg e nstu nden, 7 절 . 45M) un1c7k57e r년 판2 월전집 ,2 일1자7 권로, 멘90 델쪽)스 . 존에게 보낸 레싱의 편지 (Lachmann­

또 다른 측면에서 미학이론은 이제 순수 인식론에 영향을 미 친댜 미학분야에서 단순한 결합능력으로서가 아니라 원천적인 창조능력으로서 〈시작(詩作)의 능력〉과 순수 〈구상력〉이 확보되 자, 이에 영향을 받아 개념의 의미와 원천에 관한 논리적인 문 제권역에서도 일대 변혁이 일어난다. 버클리, 흄, 콩디야크에 게 있어서 개념은 단지 인상의 침전물에 불과하다 . 개념은 인 상의 집합이요, 인상을 대신한 기호에 불과하다. 이러한 대리 기호는 어떤 독자적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이 기호는 지각에 서 직접 주어진 것을 나중에 간접적으로 나타내고 있을 뿐이 댜 사물 개념 뿐만 아니라 순수 관계 개념에서도 기호의 이 성격은 하등 변함이 없다. 왜냐하면 정신은 먼저 현실적으로 결합을 경험하기 이전에 어떠한 결합도 스스로 행할 수 없으 며, 먼저 사실에 있어 통일이나 구별을 확인하기 이전에 어떠 한 통일이나 구별도 스스로 생각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 이제부터 순수 기능 심리학이 비판을 가한 댜 사유를 〈지각상(知覺像)의 단순한 자리바꿈〉으로 간주하는 이런 학설을 테텐스는 아주 강력하게 반대한다. 사유가 감각적 인상 죽 경험적인 소여에 의해 촉발될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사유는 결코 이 소여에 만족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유는 단 순한 집합적 결합으로서의 개념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이념적 인 것에로 상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념은 〈시적 구 상력〉의 도움 없이는 이해될 수 없다. 〈심리학자들은 보통 시 작(詩作)을 감각에서 얻어진 표상들을 단지 분간하고 재결합하 는 활동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시작은 ‘지각상의 단순한 자리바꿈'일 뿐이요, 따라서 단 하나의 새로운 표상도 생겨날 여지가 없게 된다.〉 예술작품을 이런 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부

실하기 짝이 없다 . 클롭스톡 Klo p s t ock 이나 밀턴과 같은 시인이 생명력 있는 시적 언어로 내뿜온 시상(詩像)들을 단순히 시공적 으로 결부된 감각상(感 覺 像)들의 집합이라고 본다면, 우리는 결 코 그러한 시인들의 참 뜻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 러한 말은 학문적인 이념들, 예컨대 엄밀한 수학적 인식의 이 념들에 대해서도 역시 들어맞는다 . 이러한 이념들도 역시 개별 적 지각들을 결합하거나 추상함으로써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 니라 〈 시적 구상력의 산물 〉 로 설명되어야 한다 . 사실온 수학적 개념 뿐만 아니라 모든 개념들이 다 그러하다. 감성적인 상(像) 을 순수 개념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경험적인 보편화와 다른 일 이다. 보편적인 감성적 표상은 이념도 아니고 시적 구상력과 오성의 산물인 개념도 아니다. 그것은 단지 개념이 되기 위한 재료 내지 질료에 불과한 것이요, 개념의 형식은 못된다. 이 형식이야말로 개념의 엄밀성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예컨대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곡선의 표상을 우리는 시각으로부터 얻는 다 . 그리고 이 표상은 개별적인 감각상들의 결합에 의해 그 형 태를 지니게 된다. 그러나 이것 이상의 것이 있다. 우리는 연 장성의 표상을 마음대로 머리 속에 그리며, 이 이념적인 연장 성을 마음대로 변용시킬 수 있다. 구상력에 의하여 우리는 하 나의 중심점에서 완전히 똑같은 거리에 있는 모든 점들의 궤적 으로서 원의 상을 마음대로 그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감성적 상에 첨가되는 구상력의 소임이요, 이는 모든 이념적인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46)

46) Tete n s, Phi/ os op hi s ch e Versuche iibe r die menschli ch e Natu r, Erste r Versuch: Ober die Natu r der Vorste l lung en , Nr. 15. Neudruck der Kant- Gesellschaft, 122 쪽 이하; 또한 Erkenntn is pro blem, 2 권, 567 쪽 이하 를 참고하라 .

직접적으로 주어진 감각적 인상을 넘어서는 일 즉 이론적 구 상력의 일은 결코 순수 수학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경험 개념을 형성할 때에도 이 구상력의 일은 마찬가지이다. 이론 물리학의 근거가 되는 개념들 또한 단순히 감각인상의 결합으 로 설명될 수 없다. 물론 이 개념들이 이러한 인상으로부터 출 발하나, 이 인상에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이 개 념들은 인상들을 결합하나 동시에 오성의 자율적인 내적 활동 을 통해 이 인상들을 개조한다. 운동의 제일 법칙들의 본래적 인 내용과 핵심은 감각의 규칙성에서 생겨난 습관이 아니라 바 로 이 자율적인 내적 활동이다. 물론 자연과학의 보편 법칙들 은 단순히 개념을 분석함으로써 선천적으로 입증되는 것이 아 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이 법칙들을 단순히 개별 사례의 집합이라는 귀납을 통해서 설명하려고 한다면, 이것 역시 잘못 이다 . 예컨대 관성의 법칙을 이런 식으로 이끌어내거나 설명하 려는 것은 충분하지 못하다. 〈다른 것에 작용하지도 않고 다른 것으로부터 작용받지도 않온 채 운동하는 물체의 관념에서 우 리의 오성은 이 운동이 불변적으로 지속할 것이라는 표상을 이 끌어낸다. 설사 후자의 표상이 감각으로부터 얻어진다고 할지 라도, 이 표상과 전자의 물체 관념과의 결합은 사고력의 소산 이다. 이 사고력은 자신의 본성에 따라서 관념들 간의 연관을 산출한다. 그리고 사고력의 조작에 의한 주어와 술어의 결합이 야말로 감각으로부터의 관념연합’ 보다는 훨씬 더 판단의 참된 근거가 된다.〉 47) 일반적으로 말해서, 관념 간의 관계를 단순히 수동적 인상에 의거해서 설명하려는 것은 관계관념 자체의 고 47) Tete ns, 같은 책 , Vie r te r Versuch: Uber die Denkkraft und das Denken, Nr. 4. Neudruck der Kant- G esellschaft, 310 쪽 이하.

유한 본성을 파악할 수도 없고 해명할 수도 없다. 이러한 고유 한 본성이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의식 내용간의 모든 관계, 관련 내지 결합은 동일성과 차이성 혹은 일치와 모순으로 환원될 수 없다. 사물간의 시간적 계기성, 공간적 인접성, 독특 한 종류의 공존성, 의존성, 이 모두는 단순한 일치와 불일치 이상의 것을 분명히 포함하고 있댜 모든 사유 속에는 상호간 에 확연히 구분되는 몇가지 고유한 관계 형식들이 어디서나 나 타난다. 그리고 이 각각의 관계 형식은 각각 일정한 사고의 방 향을 규정한다. 이 방향은 말하자면 사고가 따르는 길이요, 사 고는 이 길을 자발적으로 따르게 되어 있는 것이지, 결코 외부 의 영향을 받아서 다시 말해 인상과 습관의 기계적 강제에 의 해 따르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판단하고 추리하고 결합하는 것은 관념들을 계기적으로 연관하고 정리하는 것과는 다른 것 이요, 관념들 사이의 일치와 불일치를 지각하는 것 이상의 것 이댜 〈삼단논법이 두 관념간의 일치 혹은 불일치를 ‘이 두 관 념 각각이 제 삼의 관념과 맺고 있는 일치 혹은 불일치의 관 계’ 에서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할 때, 후자의 다른 관계들로부 터 전자의 일치 혹은 불일치를 이끌어낸다는 것은 오성의 고유 한 행위이다. 하나의 관계 관념에서 다론 관계 관념을 능동적 으로 산출해 내는 것, 이것은 두 관계를 하나하나 순차적으로 지각하는 것 이상이다.〉 48) 이렇게 해서 우리는 독일 계몽철학의 특색인 내적 통일성과 체계적 완결성이 뚜렷이 나타나는 지점에 이르게 된다. 심리학 48) 같은 책 , Fi.i nfter Versuch: Von der Verschie d enheit der Verhaltn iss e u쪽n이d 하all.ge m ein e n Verh 걸 l tni sbe griffe ; Neudruck der Kant- G esellscha ft, 319

과 논리학은 하나의 중심문제로 수렴된다. 이 양자는 〈관계 개 념〉의 본성과 원천을 탐구한다. 테텐스가 심리학적 분석가로서 이 문제를 제기하였다면, 람베르트는 이 문제를 자신의 논리학 과 방법론의 핵심으로 삼는다. 이 점에서 람베르트도 라이프니 츠와 연관된다. 라이프니츠 기본사상의 고유한 독창성과 깊이 를 재발견한 것은 람베르트의 역사적 공헌이다. 그러나 그는 볼프 및 볼프학파에 의한 전통적인 라이프니츠 철학에 만족하 지 않고, 라이프니츠가 자신의 체계를 형성한 근원적인 문제로 육박해 들어간다. 그의 지속적인 관심사가 된 것은 〈보편 기호 학 allge m ein e Charak t er i s ti k 〉의 설 계 이 댜 그는 사유 형 식 들의 체계를 추구하고, 이 형식들의 각각에 미적분의 계산법과 비슷 한 기호언어를 만들고자 하였다. 이것이 성취될 때, 각각의 개 념적 결합에 기호적인 조작방식이 부여될 때, 그리고 이러한 조작의 보편적 규칙이 확보될 때, 비로소 정말로 엄밀한 사유 가 가능하게 될 것이다. 람베르트는 이러한 생각을 순수 기하학 의 영역을 넘어서 확대하려고 한다. 그에 의하면, 의연량의 관 념만이 엄밀하게 연역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하나의 선입견이다. 연역의 확실성과 논리성은 양(量)의 영역 뿐만 아니라 순수 질 적 관계에서도 얻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람베르트는 인식의 근본 개념에 대한 로크적인 분석의 한계를 지적한다. 그는 로크의 〈개념의 해부학〉을 반대하려는 것이 아 니다. 그에 의하면, 실재의 요소를 나타내는 개념들은 단순히 머리 속에서 개념으로 고안될 수 없고 어디까지나 경험에 입각 하여 입증되어야 한다. 진정한 현실 인식은 예컨대 〈근거율 Satz vom Grunde 〉과 같은 형 식 적 이 고 순수 사유적 인 명 제 에 의거할 수 없다. 논리적 사유 가능성만으로는 현실세계의 인식

을 위해 불충분하다. 현실인식을 위해서는 오히려 질료적 규 정, 즉 현실의 〈견고한 힘〉이 중요하다. 실재적인 근본 힘들의 현존과 성질은 개념에 의해 구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 의 증험을 통해서만 주장될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개념의 정의를 포기하고 기술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해부 학적 방식〉에 의해 주어진 소여를 분석해서 그 궁극요소로 환 원해야 한다. 이 궁극요소 자체는 개념적인 설명에 의해 더 이 상 분명하게 되지 못한다. 여기서 더 분명하게 하는 작업이 가 능하다면, 그것은 오히려 개념적이고 논리적인 연구가 아니라 로크의 방식 즉 단순 관념의 발생적 분석일 것이다. 그러나 만 약 기본개념들이 확정되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이것들의 수와 질서를 개관할 수 있다고 하면, 이것은 로크의 길과는 전혀 다 른 일이다. 만약 기본개념들 각각의 본성과 성질이 확인되면, 이 로부터 직접 이끌어내어지는 보다 많은 규정들을 밝혀내는 데 는 더 이상 경험에 호소할 필요가 없다. 기본개념들은 각기 상 이한 관계, 예컨대 결합관계, 모순관계, 의존관계 등을 이루는 데 이 관계들은 개념의 〈본질〉을 순수히 고찰함으로서 확립될 수 있다. 이러한 관계 자체의 인식은 경험적이고 귀납적인 것 이 아니라 엄밀한 통찰에 의한 것이요, 〈선천적인 ap rior i sc h> 것이다. 그리고 람베르트에 의하면 이러한 〈선천성(先天性, A p r i or it걸t)〉은 결코 순수 기하학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다. 기하 학자는 공간의 체계적인 구조적 성질을 연역적 방식으로 밝혀 낸댜 기하학자가 공간 관념에 대해서 행한 방식을 다른 관념 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시도해 볼 수 있다는 생각을 로크는 미 49) Lambert, An/age zur Arcbit ek to n ik oder Tbeor ie d es Ein f a c ben und Erste n in der ph il os op h is c ben und matb e matis cb en Erkenntn i s , Riga ,

처 갖지 못했다 . 49) 여기서 람베르트의 〈진리론 Ale t h i olo gi e 〉이 등장한댜 이것은 〈보편 수학〉의 본을 좇아 진리에 관한 보편 이론 즉 단순관념들 간의 관계와 결합에 관한 이론을 세우고자 한댜 경험에서 얻어온 질료로부터 필연적인 규정들을 밝혀내 는 학문의 전형을 세우는 데 필요한 예증을 얻어내기 위해서, 람 베르트는 기하학 이외에 특히 수학, 순수 시간 측정술 Chro­ nometr ie, 순수 역학(力學, Phoronomi e) 등을 탐구한다. 이렇 게 해서 람베르트의 진리론과 테텐스의 순수 관계관념의 본성 에 관한 심리학은 논리적으로 서로 보완해 준다. 독일 계몽적 사유의 이 두 가지 흐름이 칸트에게서 통일됨으로써 계몽사유 는 그 완성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 완성은 또한 새로운 원리 와 새로운 문제 의식을 통한 계몽의 극복과 종국을 의미하기도 한다.

1771, 10 절을 참조. 람베르트의 방법에 대해 자세한 것은 Erkenntn is - pro blem , 2 권, 534 쪽 이 하를 보라

제 4 장 종교의 이념 전통적인 견해에 따르면, 종교에 대한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태도가 바로 계몽기의 기본특성이라고 한다. 이러한 견해의 타 당성 여부를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조사해 보면, 적 어도 독일과 영국의 계몽사상에 관한 한 상당한 의문점이 발견 된다. 이에 비해 18 세기 프랑스 철학은 전통적인 견해의 타당 성을 보여주는 듯싶다. 이 점에 대해서는 계몽의 반대자이건 찬미자이건 의견을 같이한다. 볼테르의 저술이나 편지 속에는 〈(가톨릭의) 파렴치함을 타파하라 Ecrasez I' inf ame 〉라는 전투구 호가 거듭 나온다. 이때 볼테르는 그의 투쟁대상이 믿음이 아 니라 미신임을, 종교가 아니라 가톨릭 교회임을 분명히 말하지 만, 볼테르를 정신적 지도자로 모시던 다음 세대는 이러한 구 별을 안중에 두지 않는다 . 프랑스 백과전서파들은 종교에 대하 여 즉 종교의 타당성과 진리성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선전포고 를 한다 . 그들은 종교가 진정한 도덕 및 사회정치적 질서의 창 립자도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적 발전의 영원한 방해자일 뿐이라고 말한다 . 홀바하는 자신의 저서 『자연 정치학』에서 이 점을 거듭 뇌까린다. 그에 의하면, 종교는 인간으로 하여금 보

이지 않는 독재자를 두려워하도록 가르칠 뿐만 아니라 또한 지 상의 독재자에게도 노예처럼 복종하게 만든다. 이렇게 하여 종 교는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갈 모든 독창성을 말살시켜 버린다.” 이신론(理神論 )2) 도 또한 정체를 알 수 없는 튀기요, 비겁한 타협안이라고 비판된다. 이신론은 종교라는 히 드라 3) 로부터 8 개의 머리를 잘라버렸지만, 나머지 하나의 머리 로부터 다시 다른 종교의 머리들이 생겨날 것이라고 디드로는 말한다 .4) 이렇게 종교 일반을 철저히 거부하는 것이야말로 인 간을 노예적 상태와 편견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그리고 인간의 진정한 행복의 길을 열어주는 유일한 수단이 된다. 디드로에 의하면, 자연은 인간에게 이렇게 말한다. 〈미신의 노예안 너 인간아! 내(자연)가 너를 위해 마련한 이 세계의 한계 밖에서 행복을 찾다니, 한심스럽구나! 나의 대권(大權)을 업신여기는 허망한 대적자(對敵者)인 종교, 이 종교의 사슬을 벗어나 너의 자유를 찾아라! 나의 힘을 찬탈한 신을 내던져 버리고 나의 법 칙으로 되돌아 가라! 쓸데없이 자연으로부터 도망쳐 나가지 말 고 자연으로 되돌아가라! 그녀(자연)는 너를 품안에 품어 위로 1) Holbach, Poli tiqu e Natu r elle, Dis c ours III, 특히 XII 이 하를 참고 (Hubert, d'Holbacb et s es Amie , Paris, 163 쪽 이 하) . 2) 역주: 세계의 창조자로서 신이 인정되지만, 창조 후의 세계는 그 자 체의 법칙에 따라 운동하므로 신이 개재할 여지가 없으며 따라서 신은 세상 일에 관여하거나 계시를 주는 인격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이성적 종교관을 말한다. 17, 18 세기 톨란드 Toland, 로크, 볼테르, 레싱 등 이 주장했다. 자연 신론, 혹은 자연종교라고도 한다 . 3) 역주 : 히드라 H yd ra 는 희랍 신화에서 머리를 하나 자르면 그 자리에 두 개의 머리가 생겨난다고 하는 괴물인데, 구두사(九頭蛇)라고 번역 되기도 한다. 4) Dide rot, Trait e d e la Tolerance, pub ! . par D . Tourneux et Cath e rin e , II, 292 쪽 이하.

하고 이제까지 너를 억눌렀던 모든 두려움을 쫓아낼 것이다. 자연에, 인간 본성에, 그리고 너 자신에 다시 의탁하라! 그러 면 너는 너의 인생항로를 따라 아름답게 피어난 꽃들을 볼 것 이다. 〉 〈모든 나라와 모든 시대의 역사를 조사해 보라! 그러면 너는 인간이 언제나 세 가지 법 즉 자연의 법, 사회의 법, 그 리고 종교의 법에 종속되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 법 사이에 참다운 조화 통일이 성취될 수 없기 때문 에, 이들 각각은 서로서로 방해하고 제한하고 충돌한다. 이 결 과 어떤 시대에서도 어떤 나라에서도 참된(자연적) 인간, 참된 시민, 참된 신자(信者)가 있었던 적은 없다.〉 5) 세 가지 법 사이 에 어떤 화해나 조정도 있을 수 없다면, 이제 우리는 자유와 노예 중 하나를, 명료한 의식과 애매한 감정 중 하나를, 그리 고 지식과 신앙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계몽기의 근대인에게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뻔하다. 근대인은 하늘 로부터의 모든 도움을 거절하고, 그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획 득할 수 있는 진리의 길을 갈고 닦아 나가야 한다.

5) Dide rot, Supp le ment au Voy ag e de Boug a in v il le(1 771), Assezet 편 전집 2 권, 199 쪽 이 하. 또한 240 쪽 이 하도 참고하라.

계몽기 기수(旗手)들의 이러한 선언을 근거로 해서 계몽기는 근본적으로 비종교적이고 종교에 적대시하는 시대라고 말하는 견해에는 아무래도 문제점이 남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견해는 이 시대의 가장 높은 긍정적 업적을 놓칠 위험이 있기 때문이 댜 불신(不信)과 회의주의란 도시 이런 업적을 성취할 수 없는 법이다. 가장 강력한 계몽의 지적인 추동력은 믿음의 거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계몽기에서 구현된 새로운 형태의 믿음과 종 교에 있다. 믿음과 불신에 대한 괴테의 말은 그 깊이나 진실성

에서 계몽기에도 들어맞는다. 괴테가 믿음과 불신 사이의 갈등 울 세계와 인간성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깊은 유일한 주제라고 말했을 때, 그리고 이에 덧붙여, 믿음이 지배하는 모든 시대는 그 당대뿐 아니라 그 후세에 있어서도 찬란하게 번영하는 반면 에 불신이 판을 치는 시대는 그 다음 세대가 오기 전에 사라져 버린다고_왜냐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지식을 위해 애쓰 는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__ 말했을 때, 과연 계몽기가 이 상충되는 두 가지 중 어느 것을 대변한다고 말할 수 있을 까? 이에 대해 우리는 거의 주저할 필요가 없다. 계몽기는 세 계의 개혁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 진정한 창조적 감정으로 물든 시대이댜. 그리고 이러한 개혁이 바로 종교에 대해서도 해당되 던 시대가 바로 계몽기다. 종교에 대한 이 시대의 외견상의 반 대로 말미암아 우리가 〈모든 정신적인 문제는 종교적 문제와 관련되며 전자는 후자 속에서 끊임없이 깊고 강한 추진력을 얻 는다〉는 사실에 눈이 멀어서는 안 된다. 이전의 종교가 지식과 도덕의 기본적인 물음에 내려준 해답이 불충분하면 할수록, 그 만큼 이 기본적인 물음은 더 강렬하게 부각되기 마련이다. 종 교에 대한 이제부터의 논의는 더 이상 특정한 종교적 교리와 이의 해석에 대한 것이 아니라 종교적 확실성의 성격에 관한 것이요, 단순히 지금까지 믿었던 것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믿 음 자체의 본성, 방향 내지 기능에 대한 것을 다룬다 . 특히 독 일 계몽사상가들에 있어서 이 논의의 기본 목표는 종교의 해체 가 아니라 종교의 선험적인 정당화와 터닦음接璋티이었다. 이러 한 노력에 비추어 볼 때, 종교에 대한 계몽기의 특성은 부정적 경향과 더불어 긍정적 경향을 같이 지니고 있다. 이 두 가지 경향을 함께 고려하고 이 두 경향의 상호 의존성을 제대로 인

식할 때, 비로소 우리는 18 세기 종교철학의 역사적 발전을 통 일적으로 다시 말해 〈 하나의 지적 중심점에서 출발하여 명확한 이상적 목표를 추구하여 나아가는 하나의 통일된 운동으로〉 이 해할 수 있다. 1 원죄의 교리와 신정론(神正論)의 문제 종교와 신학에 대한 풍부하고 다양한 문헌들에는 논의의 한 중심점이 있었던 바, 계몽철학은 이 중심점을 스스로 만들어낼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계몽철학은 이전의 세기들로부터 이 중심점을 유산으로 이어받았으며 단지 이 중심점을 새로운 지 적 무기로써 다루는 것으로 족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도 단순 히 고대의 재생이나 과학정신의 부흥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한 종교의 참된 개혁 내지 쇄신을 목표로 삼고 있다. 르네상 스는 이 세계와 인간 지성을 긍정하고 이들의 가치를 인정하는 종교를 수립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러한 종교는 이 세계와 인 간 지성을 부정하고 파괴함으로써가 아니라 이들을 적극적으로 고양시킴으로써 신성(神性)의 참된 증거를 찾고자 했다. 이처럼 16 • 17 세기의 인문주의적 신학 속에서 이미 보편적인 이신론 (理神論)의 싹온 마련된다. 이 신학의 기초는 〈신성이란 이것이 나타나는 모든 것들에서 파악될 수 있으며, 따라서 신성이 나 타나는 것들은 각기 그 고유하고 독자적인 가치를 지닌다〉는 생각이다. 그 어떤 형식이나 이름도 신의 절대성을 온전하게 다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형식이나 이름은 제한성을 지니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무한자의 본성에 어울리지 못하기 때문이

다. 오히려 모든 특수 형식들은 다 같이 절대자로부터 떨어져 있기에, 그것들은 또한 모두 절대자에 다 같이 가까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신성을 나타내는 모든 것들은, 이것들이 진정으로 참된 것인 한, 서로서로 대등한 것으로 비교될 수 있 다. 이것들 각각이 신성 자체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신 성을 비유나 상징으로 표현할 뿐임을 자인한다면, 바로 이 점 에서 이것들은 서로 동등한 위치에 있다. 이러한 인문주의적 종교정신의 성장과 발달의 혼적은 니콜라우스 쿠자누스로부터 마르실 리 우스 피 치 누스 Marsili us F ici nus 와 에 라스무스와 토마스 모어에 이르기까지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16 세기 초반에 이 러한 발전은 그 목표점에 도달하였으며, 여기서 『인간성의 한계 내 에 서 종교 Relig ion in nerhalb der Grenzen der Human it a~』 가 그 기초를 확립한 듯이 보인다. 이것은 기독교 교리를 적대시 하거나 회의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이 교 리를 새로운 종교적 신념의 표현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시 도이다. 니콜라우스 크자누스는 〈인간성 Human it as 〉의 기본 개 념이 그리스도의 이념 속에 구현되었음울 본다. 그리스도의 인 간성은 이 세계의 내적 통일성에 대한 최고의 증거가 된다. 다 시 말해 그리스도의 인간성이야말로 무한과 유한 사이의 벌어 진 틈을 그리고 창조의 제일 원리와 피조물 사이의 틈을 이어 주는 끈이다. 이렇게 해서 확립된 종교적 보편성은 이제 르네 상스어]서 생겨난 새로운 보편적인 지적 형식들을 포괄할 수 있 고, 이것들을 철학적 관점에 입각해서 재해석할 수-있게 되었 댜 이 보편성은 동시에 수학, 새로운 자연과학 및 우주론에도 연결될 수 있으며, 아우구스티누스와 중세의 역사관과는 다른 새로운 의미의 역사개념의 기초가 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이러한 종교적 지반 위에서 일어날 수 있으며, 따라서 종교에 반대함으로써가 아니라 종교에 힘입음으로써 성취되었던 것으 로 보인다. 이러한 종교적 보편성에서 종교의 궁극적 깊이가 비로소 진정으로 보여질 수 있게 된다. 중세의 신비주의와 스콜 라철학의 온갖 체계들이 그렇게 애써 해결하려고 노력했던 〈인 간과 신의 화해 문제〉가 이제 새로운 관점에서 나타난다. 이 화해는 이제 더이상 신의 은총만을 기다릴 수 없다 . 그것은 인 간정신의 자기 발전과정을 통해서만 기대될 수 있다 . 6)

6) 더 상세 한 것 은 Cassir e r, Indiv i d uum und Cosmos in der Phil o sop h ie der Renais s ance, Stu die n der Warburge r Bi b/ io t h ek X, Leip z ig , 1927 을 참조할 것 .

그런데 종교개혁은 이러한 인문주의적 종교에 대립되는 측면 울 지닌다. 종교개혁이 지상의 삶에 새로운 가치와 종교적 신 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는 르네상스와 같다 . 종교개혁도 신앙 내용의 내면화 내지 심령화(心 靈 化)를 요구한다. 종교적 주체인 자아만이 심령화되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도 또한 심령화된다. 이제 이 세계는 신앙적 확신의 중심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신 앙적 확신을 근거로 해서 정당화된다. 이렇게 해서 이 세계를 부정하는 금욕적 요구에 대립하여 이 세계를 긍정하는 요구가 등장한다. 이러한 세계긍정은 일상의 생활 죽 세속적인 사회질 서 내의 활동 속에서 실현된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인문주의 와 종교개혁은 그 길을 같이하지만, 그 궁극점에 있어서 서로 다르다. 종교개혁이 이해하는 신앙은 그 원천과 목적에서 볼 때 인문주의의 종교적 이상과 대립된다. 이 대립의 핵심은 양 자가 원죄에 대해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태도를 취한다는 점에 있다. 인문주의가 비록 공개적으로 원죄로 인한 인간타락의 교

리를 공격하지는 않지만, 지적인 근본성향을 볼 때 이 교리가 지니는 힘을 약화시키고 있음은 사실이다. 펠라기우스주의 7) 의 영향력이 인문주의 종교관에 점차 두드러지고, 이 반면에 아우 구스티누스적 전통의 강한 멍에를 떨쳐 버리려는 노력이 점점 커진다. 이러한 노력에 있어 물론 고대로의 회귀가 적지 않은 역할을 한다. 플라톤의 에로스 이론과 스토아학파의 의지의 자 기결정 학설이 〈인간성이 근본적으로 타락되었기 때문에 인간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서 다시 신성을 획득할 수 없다〉는 아우 구스티누스의 견해에 대립해서 나타난다. 인문주의가 추구하는 종교적 보편주의는 이러한 노선들과 연계되어 주장된다. 그것은 시 • 공적으로 제한되고 개별적으로 나타나는 신성의 나타남인 계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도처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신 성의 나타남을 가능케 해준다 .8) 그러나 종교개혁 사상은 교리 의 이러한 확대 해석에 대해서 아주 강하게 반대한다. 왜냐하 면 모든 종교개혁 교파들은 성서의 절대적이고 유일한 진리에 대한 믿음에 있어서는 길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삶 에 대한 어떠한 애착도 이 믿음을 뒤혼들 수 없고 혼들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 종교개혁의 주장이다. 오히려 성서에 대한 믿 음을 통해서만 저 세상과 이 세상은 요청되고 의미를 지니게 된다. 구원의 확실성은 오로지 성서의 〈초월성, 초자연적 원천 7) 역주: 펠라기우스주의 Pela gi an i smus 는 영국 태생의 신학자 펠라기우 스 Pela gi us(360 -4 20) 의 사상에서 유래됨. 펠라기우스에 의하면, 원죄 는 없고 단지 인간의 의지에 따라 악도 행할 수 있고 선도 행할 수 있 으며, 따라서 인간의 본성에는 선이나 악으로의 성향이 본래 있는 것 이 아니라고 한다. 8) 보다 자세한 것은 저자의 저서 Di ep la to n is c heRenais sa ncei n Eng la nd und die Schute v on Cambri dg ~ 2 장과 ,P.J-을 참조.

및 절대적 권위 〉 에 있다. 이렇게 해서 종교개혁이 대변하는 종 교적 〈 개인주의 〉 는 순수 객관적인 그리고 초자연적으로 구속하 는 성서의 사실들에 관련된다 .9 ) 개인주의가 이 구속을 더 강화 시키면 시킬수록, 그것은 아우구스티누스적인 교리해석으로 되 돌아간다. 이러한 교리해석은 다시 칼빈과 루터 신학의 거점이 요 , 핵심이 된다. 이렇게 해서 이제 인문주의와의 결별은 피할 수 없게 된다. 이 결별은 루터의 「노예가 된 의지 De servo a rb it r i o 」에서 아주 극명하게 완성된다. 에라스무스가 인류의 타 락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남아 있는 인간의 자유를 조심스럽게 옹호하고 의지의 자율을 지지하는 것은 루터가 보기에 종교적 회의론의 표현에 불과하다. 신의 은총 이외에 또 하나의 능력 으로 여겨질 수 있는 〈 인간의 독립성에 대한 믿음〉, 그리고 신 의 은총에 협조해서든지 혹은 이에 대립해서든지 여하튼 독자 적으로 그 무엇인가를 조금이라도 행사할 수 있는 힘으로 여겨 질 수 있는 〈 인간의 독립성에 대한 믿음〉, 이 믿음만큼 위험스 런 오류는 없다. 신의 일과 인간의 일은 절대적으로 구분되어 야 한다. 이러한 구별에 기초해서 인간의 자기인식은 신의 인 식 내지 영광으로부터 구별된다 . 〈인간이 자신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믿는 한, 그는 자만에 빠져 완전 한 절망을 체험하지 못한다 . 이렇게 되면 그는 신 앞에서 자신 을 낮추는 대신 자신을 내세우거나 아니면 적어도 자신의 구원 울 얻고자 기회를 엿보아 일을 도모하려 한다 . 그러나 모든 것 이 신의 의지에 달려 있음을 의심치 않은 사람은 인간이 스스 로를 구원할 수 없음을 절실히 깨달아 인간을 결코 내세우지 9) Troelts c h, Renais s ance und Re form ati on , Gesammelte Werke, IV, 275 쪽 이하를 참조 .

않고 대신 신의 능력을 기다린다 . 이런 사람만이 은총과 구원 에 가장 가까이 있는 자이다. 〉 이 말은 종교개혁이 인문주의에 대해 내린 판결문이요, 17 세 기는 헛되이 이 판결문에 대항한다. 물론 르네상스의 이상온 17 세기에도 유지되었고 또 철학자들 가운데 새로운 옹호자를 얻기도 하였다 . 그러나 커다란 종교운동의 대세는 이런 경향들 을 무시하고 흘러 나갔다 . 쿠자누스의 『신앙의 평화에 관하여 de p ace fi'de i,1에서 표현되고 있는 보편종교의 이념은 이미 사라 진지 오래다. 오히려 신앙의 평화 대신 가장 격렬한 종교적 논 쟁이 들어선다. 이러한 논쟁에서 승리는 언제나 가장 엄격한 교리주의의 것으로 끝난다 . 네덜란드의 그로티우스 Hu g o Gro ti us 와 영국의 케임브리지 학파가 다시 르네상스 정신의 부 활을 시도하였지만, 이들의 직접적 영향은 비교적 좁은 영역에 국한된다. 커 드워 스 Cudwo rt h 와 모어 More 가 퓨리 터 니 즘과 정 통 칼빈주의의 세력을 저지할 수 없었듯이, 그로티우스는 네덜 란드의 아르미니우스주의 10) 에 대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 고마 리 즘 Gomar i smus11) 의 공격 에 굴복하고 만다 그러 나 또한 그로 티우스, 커드워스 및 모어 같은 사람들도 종교와 일반 지성사 (知性史) 분야에서 적지 않은 결실을 맺는다. 다시 말해서 이들 은 18 세기의 〈계몽〉을 위한 길을 닦아 놓았다. 계몽시대의 신 10) 역주 : 〈신은 어떤 자는 구원하고 어떤 자는 멸망시키기로 예정했다 〉 는 칼빈주의의 이중(二重) 예정설에 반대하여 신의 구원은 특정 인간 에게만이 아니라 전 인류에게 향하여 있고, 단지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라 구원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한다는 네덜란드의 아르미니우스 ]. Arm ini us(1560-1609) 의 학설을 따르는 주의 . 11) 역주 : 고마루스 F. Gomarus(156 3- 1641) 는 아르미니우스에 반대하여 극단적인 예정설을 주장함 .

학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다. 〈계몽시대 란 세계사의 새로운 장을 시작하고 따라서 과거의 위업을 부정 한다〉는 일반적 평가는 여기서 들어맞지 않는다. 계몽기 독일 신학의 지도자들 중의 한 사람인 제믈러 Semler 는 성서의 역사 적 탐구를 통해서 역사비판의 정신을 보여준다. 정통파와의 논 쟁에서 그는 직접 에라스무스에게로 되돌아가고, 에라스무스를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이성의 독자적인 자 기 결정과 도덕적 의지의 자율에 관한 오래된 문제는 이제 새 로운 힘을 가지고 등장하게 되었으며, 이 해답은 일체의 권위 에서 독립하여 그리고 성서 및 교회와 무관하게 추구된다. 이 로써 중세 교리의 위력이 최초로 깨지게 된다 . 왜냐하면 이제 아우구스티누스주의에 대한 공격은 이 주의의 결과나 직접적인 영향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핵심 사상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 이다 . 계몽기가 여러 분파의 철학들을 가지고 있지만, 원죄개 념에 대해서만은 이 분파들이 힘을 합하여 대적한다 . 예컨대 이 싸움에서 흄은 영국 이신론의 입장에서 그리고 루소는 볼 테르의 입장에서 싸운다. 분파가 서로 다른 만큼 이들의 싸움 무기도 서로 다양했지만, 얼마 동안 이 무기의 다양성은 계몽 주의가 추구하는 싸움 목표의 통일성 때문에 가리어졌다. 우선 가장 큰 결실을 얻은 프랑스 지성사에서 이 문제를 추 적해보자. 프랑스 특유의 분석적 정신답게 이 문제의 모든 측 면들이 살살이 밝혀지고 이의 논리적 귀결들이 전개된다. 가능 한 다양한 방법들이 서로 명료하게 대립되어 상정되고, 이러한 대립으로부터 변증법적 해결이 저절로 이끌려 나온다. 17 세기 프랑스 철학에서 원죄문제는 가장 심오한 사상가 중의 한사람 에 의해 재차 제기된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열과 명료한

표현력으로써 파스칼은 『팡세』 속에서 이 문제를 제기한다. 이 문제의 내용은 아우구스티누스 이래 거의 변화된 것이 없다. 왜냐하면 아우구스티누스에 관한 얀세니우스 C. J ansen i us12) 의 위대한 저술을 통해서 이 이후로 원죄 사상에 대한 논의는 언 제나 그 원천인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의존하는 형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스칼의 탐구 방법과 형식은 아우구스티누 스와 다르며, 또 근대 사상가로서 파스칼의 면모를 잘 보여준 댜 이 방법은, 데카르트로부터 연유된 것으로서, 명석판명이 라는 논리적 이상을 심지어 신앙의 신비 영역에도 적용시키려 고 하였다. 이렇게 해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과 데카르트의 방법의 역설적인 결합이 파스칼에게서 생긴다. 파스칼이 확립 하고자 하는 교설은 이것에 이르는 방법 내지 수단과 아주 날 카롭게 대립된다. 파스칼이 옹호하는 명제는 이성의 절대적 무 력성이다. 이성은 그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어떠한 확실성도 얻 울 수 없으며 오직 신앙에 무조건 항복함으로써만 진리에 도달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파스칼은 이성이 항복해 야 된다고 주장하거나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항복의 필연성을 증명해 보인다. 그는 신자(信者)가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상대한다. 그는 이들을 논파하기 위해 이들의 주장 근거를 사 용한다. 그는 이들의 언어로 말하고 이들이 지닌 무기를 사용 하여 이들과 대적한다. 파스칼은 근대 분석논리의 대가이다. 12) 역주: 얀세니우스(1 585-1638) 는 그의 사후에 출판된 『아우구스티누 스』(1 640) 라는 저술로 말미암아 이른바 얀센주의J ansen i sm 의 장본인이 되었다. 이 책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가르침을 체계화한 것으로서, 아우 구스티누스가 이단으로 간주한 펠라기우스설은 물론, 아 흐름을 따르 는 당대의 이설(異說)도 배격하였기 때문에 예수회와의 싸움을 재연시 켜, 소위 뿔 르와얄운동을 초래하였다.

이 점을 그는 그의 수학적 업적에서 완전하게 보여준다. 그는 이 분석논리의 도구를 종교의 기본문제에 대해 사용한다. 다시 말해서 그는 기하학의 원추곡선 문제에 대해 사용했던 방법을 그리고 진공에 관한 물리학적 문제에 사용했던 방법을 종교문 제에도 적용한다 . 여기서 아주 중요한 것은 현상의 정확한 관 찰과 가설적 사유의 힘이다. 인간은 이 두 가지 이외에 다른 어떠한 수단도 지니지 못하고 있으며 또 지닐 필요도 없다. 자 연탐구에서 물리학자가 관련된 현상을 관찰하고 이것들을 체계 적으로 탐문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듯이, 인간 본성의 근본적 신비를 푸는 데도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현상들에 합당하고 현상들을 전부 기술할 수 있는 가설을 필요로 한다. 〈 현상 구제 Rett un g der Phanomene, croot EL v 댜 mv6µEva 〉 의 요청은 천문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신학에도 들 어맞는다. 바로 현상구제의 관점에서 파스칼은 신에 대한 희의 론자와 불신자(不信者)를 상대한다. 만약 이들이 인간문제의 종 교적 해답을 부인하고 인간의 이중성과 인간타락의 교리를 거 절한다면, 그들은 보다 그럴 듯한 다른 설명을 해야 한다. 그 들은 이중성 대신에 단순성을 그리고 이중성에 따른 갈등과 부 조리 대신에 단순성에 따른 조화를 말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통일성과 조화의 주장은 인간 경험의 모든 현상에 견주 어 볼 때 당장 깨뜨려진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완전 하고 조화롭게 통일된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자신으로부터 분 리되고 이에 따라 깊은 모순과 갈등으로 괴로워한다. 이런 모 순과 갈등이 인간 본성의 특징이다. 인간이 우주 속에서 자신 의 위치를 이해하고자 할 때, 그는 자신이 무한과 무(無) 사이 에 끼여 있음을 깨닫는다. 그는 이 양자 중 어느 하나에만 속

할 수 없다 . 인간은 모든 존재보다 높지만 동시에 모든 존재보 다 낮다. 그는 고귀한 동시에 비참하며, 위대한 동시에 왜소하 며 강한 동시에 무력하다. 그는 언제나 도달할 수 없는 목표를 세운다 . 이 높은 목표를 끈질기게 추구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아래로 타락하므로 그의 실존은 두 갈래로 찢긴다. 인간성의 어느 한 측면을 보더라도 거기에는 반드시 이러한 모순과 갈등 이 나타난다. 이런 모순을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현상의 원인을 찾아야 하며, 달리 말해서 사실로부터 이의 원리로 접 근해 가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인간성의 이중성온 타락의 비밀 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이 비밀은 어둠을 헤치고 인간성 의 모습을 밝게 드러내준다. 타락의 비밀이라는 가설이 그 자 체 절대적인 신비이지만, 또한 그것은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 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인간 본성은 그 밑바닥에 놓여 있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를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이것은 논리 적이고 합리적인 지식의 기준과 전혀 상반된다. 합리적인 지식 에서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은 이미 알려진 것에로 환원시킴으 로써 설명된다. 그러나 파스칼은 직접 주어진 현상울 〈절대로 알려질 수 없는 것〉에 의존해서 이해한다. 이처럼 합리적인 수 단과 방법을 폐기하지 않을 수 없음은 여기서 다루는 대상이 우연적이고 주관적인 지식의 한계문제가 아니라 필연적이고 객 관적인 지식의 한계문제임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단순히 우리 의 통찰력의 허약함 때문에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이보다는 오히려 대상 자체가 합리성을 거부하고 모순에 싸여 있다. 모 든 합리적 척도는 내재적 척도이다. 왜냐하면 합리적 지식의 형식은 사물의 확정된 본질로부터 이 사물에 속하는 속성들을 이끌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반면에 여기서는 그 자체 모

순된 것을 다룬다. 만약 우리가 이 내재성을 완전하게 이해하 고자 하면, 이 내재성은 곧장 자기자신울 부정하게 된다. 그래 서 내재성은 이제 초월성으로 바뀐다. 〈누가 이 혼란을 헤쳐낼 수 있는가? 자연은 피론주의자들을 13) 깨뜨리고 이성은 독단적 교리주의자들을 깨뜨린다 . 너의 이성으로써 너의 진정한 모습 울 알고자 하는 인간아, 너는 무엇이 될 것인가?…… 거만한 인간아, 역설적인 너의 진상을 알아라! 무력한 이성아, 겸손하 거라! 미약한 너의 본성아, 침묵하거라! 인간이 인간을 무한히 넘어설 수 있음을 알거라! 그리고 네가 모르는 너의 진상을 너 의 주인으로부터 배우거라! 신에게 귀를 기울이라!〉 14)

13) 역주: 피론 P y rrohn( 기원전 365?-275?) 은 고대 회의주의의 아버지로 여겨진다 . 감각도 이성도 사물의 본상을 알 수 없으므로 판단중지 e p oche 를 통해 마음의 평정 a t raxi a 를 얻는 것이 최고선이라고 주장 한다. 14) Pasca l, Pense~ Art. VIII (Emest Havet 편 5 판, Pa ris, 1897, I, 114 쪽) .

18 세기 철학의 가장 심오하고 어려운 문제는 파스칼의 이러 한 말 속에 있다. 18 세기 철학은 대등한 힘을 지닌 대적자로서 파스칼과 만난다. 그것이 한 발자욱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려면 이 대적자를 어떻게 해서든지 청산하여야 한다. 초월의 주문 (呪文)을 깨뜨리지 못하는 한, 그리고 인간을 〈자기 -초월적〉인 존재로서 보는 한, 세계와 인간의 자연적 설명은 그 출발부터 벽에 부딪친다. 이런 점에서 계몽기의 프랑스 철학이 항상 거 듭해서 파스칼의 팡세로 되돌아가 대결한다는 사실과, 그리고 이 철학이 지니는 비판력이 언제나 파스칼의 팡세에 의거해 심 사된다는 사실이 납득될 수 있다. 볼테르는 저술가로서의 전 생애에 걸쳐 파스칼을 대적하여 비판한다. 이 비판은 그 첫번

째 저술인 『영국인에 관한 편지』에서 시작하여 반세기 후 새로 운 논의로서 이 비판을 보충하고자 다시 이 처녀작을 개작할 때까지 계속된다 .1 5) 그는 파스칼의 도전을 받아들이고, 〈 사람을 싫어하는 고귀한 염세주의〉에 반대하여 인간성을 옹호하고자 한댜 그러나 그의 여러 논의를 살펴보면, 그는 마치 공개적인 정면 싸움을 피하는 듯싶다. 볼테르는 파스칼의 종교적 사상의 핵심을 이리저리 피하며 그리고 이 문제의 궁극적인 깊이를 피 한다 그는 인간존재의 표면성에 국한시켜서 파스칼에 대적한 댜 그리고 그는 이 표면성이 자기 충족적이며 다른 것의 도입 없이 명백히 설명됨을 보여주고자 한다. 볼테르는 파스칼의 심 오한 진실성을 그의 전형적인 뺀들거리는 방식으로 다루고, 파 스칼 추리의 간결한 정확성을 지적 경쾌함으로 대처하며, 파스 칼 감정의 신비적 깊이를 세속인의 피상성으로 맞이한다 . 여기 서 형이상학의 묘리(妙理)에 대처해서 상식이 다시 등장하고, 상 식은 이러한 묘리의 판결 기준이 된다. 인간성의 모순이라고 파스칼이 부르는 것은 볼테르에게서 인간성의 풍요성과 다양성 의 증거로 둔갑한다. 인간이 일정하게 규정된 존재가 아니요 따라서 획일적인 규칙에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볼 때, 인간 성은 확실히 단순한 것이 아니다. 인간은 영원히 새로운 가능 성을 시도하는 존재다. 그러나 볼테르에 의하면 인간이 지닌 거의 무한한 다양성은 인간의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강점이 된 다. 인간의 활동이 아무리 다양하게 보이더라도, 그리고 하나 의 성취 에 만족하지 못하고 항상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더 라도, 이 모두는 오히려 인간이 지닌 엄청난 힘과 강력함을 증 15) Volta ire, Remarqu e s sur /es Pensees de M. Pasca~ Leq u ie n 판 전 집, Paris, 1921, 31 권 281 쪽 이하를 참조.

명해 줄 뿐이다. 인간이 자신 속에 간직한 여러 가지 힘들을 마음껏 발휘하고 현실화시킨다는 사실, 이 사실온 바로 인간이 무엇이 될 수 있으며 무엇이 되어야 함을 알려준다. 〈당신(파스 칼)이 모순이라고 부르는 이 다양성온 실온 인간을 구성하는 필수적 요소들이요, 이 요소는 자연 속의 다른 존재들과 마찬 가지로 인간이 어떤 존재이어야 하는가를 결정한다.〉 이 문제에 대해 볼테르 철학은 상식만을 내세우는 것은 아니 다. 그가 파스칼의 논증을 인정하지 않지만, 그는 이 논증에 대처하기 위해 끊임없이 부심해 마지않는 인상이다. 사실 우리 는 단순히 부정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는 지점에 이제 도달 한다. 이 지점에서 계몽철학은 적극적인 명료한 해결책이 요구 된다. 만약 계몽철학이 원죄의 비밀을 부정한다면, 그것은 다 른 곳에서 죄의 원인과 원천을 찾아야 한다. 계몽철학은 이성 의 눈으로 볼 때에도 역시 죄의 원인이 꼭 있어야 함을 인정하 지 않을 수 없다. 이 지점에서 더 이상 형이상학 자체의 거부 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원죄의 교리를 의심하면, 우리는 악 의 존재를 신의 섭리로 보는 신정론(神正論)의 수수께끼 속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볼테르는 신의 존재를 〈엄밀히 증명할 수 있는 진리〉로 보는 까닭에 그에게도 이 신정론의 수수께끼 는 문제가 된다 .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필연적이고 영원한 존재가 존재한다〉라는 명제는 볼테르에게서도 마찬가지의 타당 성을 지닌다 .16) 그러나 만일 신정론 문제의 풀 수 없는 매듭이 이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미해결인 채로 남아 있다면, 〈이 매 16) Addit ion s aux Remarqu e s sur /es Pensees de Pascal (1743) 31 권, 334 쪽 참조. <‘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 영원히 존재한다’ 는 것도 명백한 명제이다.〉

듭의 고리가 우리를 신앙의 ‘심연’ 으로 인도한다 〉 는 파스칼의 결론은 피할 길이 없다. 〈 인간조건의 매듭은 저 심연 속에 그 고리를 가진다. 인간은, 만일 이 신비가 없다면, 이 신비가 이 해하기 어려운 것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다 .〉 1 7) 라이프니 츠와 섀프츠베리의 철학적 해결책인 낙관론을 볼테르는 언제나 거부한다 낙관론은 철학적 이론이 아니라 신비적 환상이나 공 상과 다름없는 것이라고 볼테르는 말한다 .18 ) 〈 이 세계의 모든 것은 다 좋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그저 허풍쟁이에 불과하 댜 우리는 악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19) 그러나 만약 볼테르가 여기서 신학과 형이상학에 반대하여 이론적 희의론을 주장하면, 그는 자신이 거부하고자 했던 파스칼의 논증에 다시 걸려들게 된다. 왜냐하면 적어도 결과적으로 볼 때 그는 파스 칼이 서 있던 바로 그 지점에 다시 서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철학이란 그리고 이성이란 계시의 도움 없이는 언제나 회의론 으로 귀결되며 바로 이 점에서 피론주의는 진리가 된다 〉 는 점 을 파스칼은 몇 번이고 강조한다. 죄의 원천 문제에 관한 한 볼테르는 회의론과 맞서 싸울 모든 무기를 잃어버렸기 때문 에, 이제 그는 회의론의 소용돌이 속에 이리저리 휘말려든다. 그는 모든 해결을 받아들이며 그리고 모든 해결을 동시에 거부 한다 쇼펜하우어 는 볼테 르의 『캉디 드 Cand i d e,』 를 자주 언급하 면서 이것을 낙관론에 반대하는 강력한 무기로 사용하려고 한 다. 그러나 볼테르는 진정한 의미에서 낙관론자도 비관론자도 17) Pensees, VIII a. a . O . , 115 쪽. 18) 특히 Ilfa u tp re ndre un pa rt i ou princ ip e d'acti on (1772) ; Sec t. XVII: Des romans inv ente s po ur devin e r l'or ig ine du ma!, (전집 31 권, 177 쪽 을 참조). 19) 같은 책, Sect. XVI, 전집 31 권, 174 쪽 이 하 .

아니다. 악의 문제에 대한 볼테르의 입장표명은 확고한 이론의 결과로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그가 세계와 인간을 바라보는 그시 그시의 분위기에 따른 표현일 뿐이다. 이 분위 기에는 온갖 뉘앙스가 있으며, 볼테르는 이 뉘앙스들을 가지고 노는 데 즐겨 빠져든다. 젊었을 시절 볼테르는 결코 비관주의 적 조짐을 지니지 않았다. 그는 인생의 모든 즐거움을 최대로 만끽하는 데 인생의 목적이 있다는 쾌락주의적 철학을 옹호한 다 . 쾌락 이외 다른 지혜를 추구한다는 것은 어려울 뿐만 아니 라 소용도 없는 짓이다 . 〈진정한 지혜는 슬픔을 피해 쾌락의 품안으로 도피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볼테르의 이러한 말 은 단지 그 시대의 변론일 뿐이요, 다시 말해 편견에 의해 억 제받지 않는 감각적 쾌락의 변론일 뿐이다. 그러나 리스본의 대지진이 일어난 후부터 그는 감각적 쾌락을 더 이상 칭송하지 않는다 . 〈모든 것이 좋다〉는 공리는 이제 학설로서는 결코 인 정되지 않는다 .20) 도처에서 부딪치는 악에 대해 눈을 감는 것은 바보스런 자기 기만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미래로 눈을 돌려 〈지금은 해결될 수 없는 수수께끼가 해결될 날이 오 리라〉라고 희망할 뿐이다. 〈‘언젠가 잘 될 것이다’라는 것이 우리의 희망이요, ‘모든 게 지금 잘 되어 있다’ 는 것은 환상이 댜〉 이렇게 볼테르는 화해의 언어롤 농한다. 그에게 있어 이 화해의 말은 이론적인 의도에서 뿐만 아니라 윤리적인 의도에 서도 들어맞는다. 도덕적 악도 역시 부정될 수 없다. 인간 본 성에서 도덕적 악은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허약함이 없다면 인간의 생활은 침체와 정지를 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 20) ''po eme sur le desastr e de Lis b onne ou examen de cet axiom e: Tout est b ie n (17 56), 전집 12 권, 179 ff.

이다. 실로 삶의 가장 강력한 충동은 욕구에서, 다시 말해서 윤리적 측면에서 보면, 결핍과 허약함에서 생긴다. 볼테르는 그의 철학적 소설 『있는 대로의 세계, 바부의 견해 Le Monde comme ii va, Vis ion de Babou c,』 ( 1746) 에 서 세 계 와 인 생 에 관한 이러한 견해를 아주 재치 있게 표현하고 있다. 밀턴의 『실락 원』 에 나오는 천사 이 튀 리 I t hur i el 는 바부 Babouc 에 게 이 르기 를 고향의 수도로 가서 그곳의 습관과 생활 태도를 조사하여 보고 하라고 한다. 바부의 보고 여하에 따라 그 도시가 파괴될 것인 지 아니면 보존될 것인지가 결정된다. 바부는 한편으로 이 도 시의 온갖 허점과 허물과 도덕적 비리를 다론 한편으로는 그 찬란하고 세련된 문화와 사회를 보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그 는 판결을 내린다. 그래서 그는 그 도시의 가장 뛰어난 세공장 이로 하여금 조그만 조상을 만들게 하였는데, 이 조상은 가장 고귀한 금속과 가장 나쁜 금속을 섞어 만들어졌다. 바부는 이 조상을 이튀리 천사에게 가지고 가서 이렇게 묻는다. 〈이 조상 이 전부 금이나 보석으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당신은 이 예쁜 조상을 부셔버리겠습니까?〉 이에 이뒤리 천사는 바부의 속 뜻 울 알아차리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부는 이 도시를 고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기로 결심했군. 모든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더라도 모든 것이 지낼만 하다고 바부가 말하니까.〉 낙관론에 온갖 조롱울 퍼붓는 『캉디드』에서도 볼테르는 이러한 기본 태도를 지킨다. 우리는 악을 피할 수도 없고 근절시킬 수 도 없다. 물리적인 자연세계와 도덕세계가 홀러가는 대로 그대 로 두고 이 세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악에 대해 투쟁하여 야 한다. 이러한 투쟁에서 인간만이 얻을 수 있는 행복이 생겨 나기 때문이다.

신정론의 문제에 관해 볼테르가 보여주는 애매성을 우리는 18 세기 사상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문헌은 부 지기수이다. 왜냐하면 아직도 이 시대의 철학자들은 형이상학 과 종교의 운명이 이 문제에 걸려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 래서 그들은 거듭 이 문제를 논의하나 이 문제의 본질적 해명 에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라이프니츠는 수없이 이 문 제를 논의하고 이 문제의 모든 측면들을 들추어낸다. 그러나 그의 철학의 기본 개념과 원리에 입각하여 이 논의들이 이해되 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체계적인 고찰 대신에 점차 절충적 입 장이 등장한다 .21) 경험 심리학이 자신의 독특한 방법으로 이 문 제에 접근했을 때 새로운 전망이 보이는 듯 싶었다. 인간에게 있어 쾌락과 고통의 중요성을 명확히 드러내고 이 문제를 과학 적으로 다루는 새로운 방법이 열리는 듯 싶었다. 이 문제를 해 결하려면, 막연한 가정에 만족해서는 안 되고 쾌락과 고통의 값을 측정할 수 있는 명확한 척도를 발견해야 한다. 수학과 감 각이라는 서로 이질적인 두 항을 조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방 법문제가 제기된다. 막연하고 유동적인 쾌락-고통 감각이 명확 하고 정확하게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 심리학과 수학의 결합 만이, 경험적 관찰과 순수 개념적 분석의 결합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모페르뒤이 Mau p e rtui s 는 그의 『도덕 철학론』 에서 이러한 종합을 시도한다. 그는 쾌락과 고통이 서로 수적 으로 비교될 수 있게끔 그것들을 양적 가치로 환원시켜 정의한 21) 신정론 문제의 절충적 취급에 대해 상세한 것은 여기서 다루지 않 겠다. 독자는 크레머 J. Kremer 의 Das Problem der Theodiz e e in der Phi/ o sop h ie und Lit er atu r des 18. Jah rhunderts , Berlin , 1909 과 볼프 K. Wol ff의 Schil /ers Theodiz e e, Leip z ig, 1909 를 보라.

댜 물질적 세계에 관한 지식의 성공은 질적으로 다양하게 지 각되는 물질 현상을 순전히 양적인 차이로 환원시키는 데 있 다. 심리학적 현상에 대한 지식도 마찬가지다. 여기서도 직접 체험되는 질적 이질성은 개념적 동질성으로 환원되고 수량적 처리가 가능케 된다. 쾌락과 고통의 방식이 아무리 다양할지라 도 이것들 모두가 일정한 강도와 지속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공 통된댜 강도와 지속을 측량할 수 있게 되고, 쾌락이나 고통의 전체 양이 이 두 요소에 의존하는 모종의 관계를 수립한다면, 문 제는 해결된다. 이렇게 해서 감각과 감정의 계산은 산수, 기하 학 내지 물리학 못지않게 정확히 공식화될 수 있다. 라이프니 츠가 무한 분석의 기본문제와 관련해서 생각했던 소위 강도량 의 수학 Math e sis i n t ensorum 의 문제 는 이 제 심 리 학의 영 역 으로 확대된다. 모페르튀이는 이제 정력학(靜力學)과 동력학(動力學) 의 기본법칙에 유사한 엄밀한 법칙을 세우고자 한다. 쾌와 고 통을 계산해 내기 위해서는 쾌 또는 고통의 양이 첫째 그것들 의 강도에 둘째 마음 속에서 작용하고 있는 그것들의 지속시간 에 의존함을 공식화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의 단위 시간에 두 배의 강도는 두 단위 시간의 강도와 같게 된다. 이를 일반화해 서 말하면, 쾌락이나 고통의 양적 수치는 그것들의 강도와 지 속을 곱한 것과 같다. 이 공식을 써서 모페르튀이는 여러 가지 윤리 체계들의 진리치를 산출하고자 시도한다. 자세히 분석해 보면 이 모든 체계들은 이것들의 바탕에 깔려 있는 서로 다른 〈행복의 계산〉에서만 구별된다. 이것들 모두는 최고선의 획득 방법을 죽 삶으로부터 가능한 최대의 행복량을 획득하는 방법 을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어떤 것은 좋은 것을 증가시킴으 로써 이 목적을 달성하려 하고, 어떤 것은 악을 피함으로써 이

렇게 하려 한다. 에피쿠로스학파는 쾌락의 양을 증가시키고자 하고 스토아 학파는 고통의 양을 감소시키고자 한다. 전자의 가르침은 인생의 목적이 행복의 획득에 있다는 것이요, 후자의 그것은 인생의 목적이 불행의 회피에 있다는 것이다 .22) 이러한 계산의 결과로 모페르튀이는 비관론에 이른다. 왜냐하면 일상 생활에서 악의 총량은 언제나 선의 총량보다 크기 때문이다 .23) 비판기 이전의 저술인 『부정량(否定量) 개념을 철학에 도입하는 문제 Ve rs uch, den Beg ri f f der nega ti ve n Gr6j3 e n in der Welt - weis h eit e i nzuf u hre~ 』 에 서 칸트는 모페 르튀 이 의 이 계 산법 을 언급하면서 그 결과와 방법을 비판한다. 이런 류의 계산은 동질 적인 감각에 대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칸트에 의하면, 우리의 감정은 극도로 복잡한 조건에 따르는 정서의 다양성에 의해 질 적인 차이가 미묘하기 그지 없기 때문에, 감정의 계산은 불가 능하다 .24 ) 그러나 칸트의 결정적인 반대 이유는 그 자신의 비판 적인 윤리학설에서 찾아진다. 이 학설은 18 세기 통속철학을 지 배했던 모든 신정론의 논의를 일거에 무너뜨린다. 행복이 윤리 의 기본임을 부정함으로써 이 학설은 쾌락과 고통의 계산이 아 무런 도덕적 내지 종교적 의미도 지니지 못함을 밝힌다 . 그래 서 이제 인생의 가치 문제는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찾아져야 한다 . 계몽기의 통속철학은 쾌락과 고통의 차원을 넘어선 〈목적의 이념〉에까지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다. 18 세기의 두 사상가만 22) Maup er t uis, Essai de Pbil o sop bi e Morale, l 장, 4 장 및 5 장, 전집 1 권, 193 쪽 이하 23) 같은 책, chap. 2, 201 쪽 이하. 24) Kant, Cassie r 편 전집 2 권, 219 쪽 이하.

이, 비록 서로 다른 관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지만, 이 이념 을 이해하였다는 점에서 이들은 칸트의 선구자가 된다. 이들에 의해서 신정론 문제는 새롭게 다루어지고 또 본질적으로 새로 운 의미를 지니게 된다. 형이상학의 온갖 시도가 쓸모없는 짓 으로 판명이 났기 때문에 이제 형이상학에 의한 새로운 가능성 은 기대될 수 없다. 그렇다고 하여, 이 문제를 신앙의 영역 즉 파스칼이 말하는 비합리의 〈심연〉으로 넘겨 버리는 일은 계몽 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이제 남은 일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른 지적인 힘을 찾아보는 일이다. 이렇게 하여 계몽 사상은 먼 우회로를 거쳐 신정론의 기본문제에 직접 접근하게 된댜 계몽사상온 더 이상 형이상학적이고 신학적인 논구를 출 발점으로 삼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이제 신개념의 정 의를 출발점으로 삼고 이로부터 여러 신적 속성들을 연역적으 로 도출해 내는 일을 하지 않는다. 절대자에 대한 심오한 사고 대신에 이제 자아가 지닌 형성력을 온전하게 들추어 내는 분석 작업이 등장한다. 문제의 내재적 해결 즉 지성의 한계를 넘어 서지 않는 지적 해결은 이 자아의 형성력에 의해서만 기대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두 개의 근본 주제가 다시 등장하는 데, 이 두 주제는 18 세기 지성의 역사 과정에서 그 모습을 뚜 렷이 나타냄에 따라 점차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것은 한편으로 미학적 문제요 또 한편으로 이제 서서히 전면에 부각 되는 법과 국가의 문제이다. 물론 이 두 문제는 신정론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정론 문제 의 새로운 깊이와 의미는 이 두 문제와 깊이 연관된다. 이 연 관의 다리를 처음 놓은 사람이 섀프츠베리 Shaft es bury (1 671- 1713) 이다. 그의 철학 체계에서 미학은 철학의 한 부분적 영 역

울 차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 체계의 중심 역활을 한다. 그 에 의하면 진리의 문제는 미의 문제와 분리될 수 없다. 왜냐하 면 이 두 문제는 그 바탕과 궁극 원리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모든 미는 진리이며, 모든 진리는 그 형식의 의미를 즉 미의 의미를 통해서만 근본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모든 사물은 형 식을 지니며 무형의 혼돈된 덩어리가 아니다. 따라서 그것은 내적인 비율(조화)에 따른 구조를 지니며 발전적인 운동 속에서 율동적 질서와 규칙을 보인다. 이런 근본 현상에서 실재하는 사물은 순수 지성적이고, 따라서 초감각적인 원천을 드러낸다. 감각 자체만으로는 이런 현상을 알 수 없으며, 이 현상의 궁극 적 원천에 대해서는 더 더욱 알 수 없다 . 감각만이 인정되는 곳에서는 형식의 영역이란 아직 요원하다 . 주위의 환경이 그 본능을 자극하고 이에 따른 반작용을 일으키는 동물에게 있어 서 사물의 형식에 대한 지식은 전무하다. 이 지식은 직접적인 감각 반응으로서 의 욕구의 힘 으로부터 나오는 것 이 아니 라 모 든 소유욕에서 해방된 그리고 대상을 점유하려는 모든 행위로 부터 해방된 〈순수 관조의 힘〉으로부터 나온다. 섀프츠베리에 의하면, 〈이해 관계 I nt eress 〉에 무관한 순수 관조의 힘과 이를 즐기는 힘은 바로 모든 예술적 즐김(향유)과 창조의 배후에 있 는 근본 힘이다. 이 힘에 의해 인간은 참된 자아를 실현하고, 인 간이 누릴 수 있는 지고의 복을 향유한다. 이와 관련하여 신정 론의 문제에 적용될 척도도 근본적으로 새로운 형태를 지닌다. 왜냐하면 이제 이 세계의 선악의 계산은 이 문제의 보다 깊은 의미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기 때문이다. 삶의 내 용은 이제 그 질료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그 형식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한다. 그것은 삶의 형식을 만드는 형성력의 순수활

동에 의존한다. 섀프츠베리는 참된 신정론을 즉 존재의 궁극적 정당화를 쾌락과 고통의 영역에서가 아니라 순수 지적 원형에 서 따라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내적 형성력에서 찾는다. 모든 쾌락을 뒤로 멀리하는 프로메테우스적인 활동이 바로 인간의 참된 신성을 그리고 우주의 신성을 드러내 준다 . 25) 신정론 문제에 관한 루소의 태도를 고찰할 때, 우리는 전혀 입장을 달리하는 근원적인 새로운 사상을 보게 된다. 루소야말 로 이 문제에 있어 마지막 일보를 내디딘 사람이라고 칸트는 말한댜 〈뉴턴은 지금까지 무질서와 혼란이 지배하던 영역에서 아주 단순한 질서와 규칙성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다. 마찬가 지로 루소는 인간 모습의 다양성 아래에 깊게 숨겨 있는 인간 의 본성을 그리고 신의 섭리를 정당화시켜 줄 만한 숨어 있는 법 칙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다. 이전에는 알폰수스 Al p honsus26) 에 반대하는 것이 타당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뉴턴과 루소 이래로 신은 정당화되었고 포프 Po p e27) 의 말이 진실이다.〉 28) 처 음 보기에 칸트의 이 말은 이해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루소의 저술에는 신정-론 문 제와 관련하여 라이프니츠, 섀프츠베리 혹 25) 섀프츠베리의 신정론의 형식과 기초에 관해 보다 자세한 설명은 저 자의 저술 Di ep la to n is c beRenais sa nce in Eng la nd , Kap . 6, 110 쪽 이 하를참조. . 26) 역주: Alph onsus Maria de Ligo rio ( 1695-1787) : 이탈리아의 성인, 설 교자, 저술가. 계몽사상과 얀센주의J ansen i sm 에 눌려 오던 18 세기 기 독교계에 예수의 속쇠의 확신을 소생시켰다. 정덕(定德)은 신의 사 랑에 있지, 얀센주의가 말하는 신에 대한 공포와 근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역설함 . 27) 역주: Pop e, Alexander(16 88-17 44) : 영국 시인. 『인간론 Essay on Man 』(1 732) 에서 인간 중심적인 계몽적 세계관을 모순에 가득찬 것으 28로) 비Ka판nt,함 H . art en ste i n 편 전집 8 권, 630 쪽.

은 포프처럼 명확하고 분석적인 설명을 한 곳이 없었기 때문이 다. 루소의 참된 독창성과 중요성은 전혀 다른 분야에 있다. 그것은 신의 문제가 아니라 법과 사회의 문제이다. 이 분야에 서 그는 새로운 탐구의 지평을 연다. 루소는 최초로 인간의 개 인적 존재 영역을 넘어서 사회의 영역으로 문제를 옮긴다. 그 는 인간 존재의 고유한 의미와 인간의 행, 불행의 문제를 결정 해 줄 요소를 사회 속에서 찾는다. 이것은 그가 정치 -사회적 제도를 연구하고 비판한 가운데서 얻는 귀결이다. 그의 『참회 록 Conf e ss i on s,』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것이 근본적으 로 정치학에 달려 있음을 그리고 모든 민족성은 그 정부의 체 제가 만들어내는 것임을 나는 보았다. 가능한 최선의 정부형태 에 대한 물음은 결국 ‘어떤 정부형태가 국민을 덕스럽고 현명 하고 계몽되게, 한 마디로 말해서, 가능한 한 완전하게 만들 수 있느냐?’는 문제로 귀착된다.〉 여기에 인간 현존의 새로운 규범이 제기된다. 단순한 행복의 추구가 아니라 법과 사회적 정의의 이념이 인간 현존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으로 된다. 이 기준을 적용해 보았을 때 루소는 처음에 부정적 결론에 도달한 댜 인류의 발달 과정에서 얻은 모든 재산 목록들은, 예컨대 지식의 보고(寶庫), 예술 및 물질 문명과 문화의 보고들은, 루 소의 철저한 비판 앞에서 사라져버린다. 그것들은 인간의 삶을 그 진정한 원천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하고 마침내 삶의 진정 한 의미를 상실케 하고 만다. 인간의 삶의 전통적이고 인습적 인 형태에 대한 묘사 속에서 그리고 인간 현존의 사회적 모습 에 대한 묘사 속에서 루소는 놀랍게도 파스칼과 일치한다. 루 소는 인간에 대한 파스칼의 고발을 신중히 생각해 본 그리고 이 고발이 지닌 강력한 힘을 이해한 최초의 18 세기 사상가였

댜 볼테르처럼 이 고발을 인간 혐오적이고, 자조적(自廟的)인 분위기로 곡해하여 이 고발이 지닌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 라 루소는 이 고발의 핵심을 파악한다. 파스칼의 『팡세 』 에 나 오는 인간의 위대함과 비참함에 대한 기술은 루소의 초기 저술 인 현상논문 「예술과 학문론」과 「불평등 기원론」에서 재등장한 다. 인간의 삶을 휘황찬란하게 꾸며주는 문명 속에서 그는 파 스칼처럼 단지 환영과 허울을 본다. 또한 루소는 이 모든 부 (富)는 단지 인간의 눈을 멀게 하여 자신의 내적인 빈곤을 못 보게 할 뿐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자기자신의 본래적 존재를 감당할 수 없고 자기자신의 빈곤한 참 모습을 두려워하기 때문 에 다양한 일상의 사회 속으로 도피한다. 맹목적이고 분망한 사회 속의 활동은 고요한 자기성찰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생긴 댜 왜냐하면 한 순간이라도 자신의 본래 모습을 되돌아보기 위해 멈춘다면, 인간은 깊고 깊은 절망의 희생물로 전락해 버 릴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사회 상태에서 인간울 서로 결속 시키는 힘에 대해 루소는 파스칼과 견해를 같이 한다. 그는 거 듭 강조하여 현재의 사회 상태 속에는 근원적인 도덕감도 없고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에 대한 욕구도 없으며 또 인간을 서로 연결시키는 본래적인 자연적 동정심도 없다고 주장한다. 현재 의 모든 사회적 끈은 환영에 의거하고 있다. 이기주의와 허 영, 남을 지배하고 억누르려는 충동, 이러한 것들이 사회를 결 속시키는 끈이다 . 〈어디서나 말의 잔치만이 그리고 행복을 추 구하는 싸움만이 보일 뿐이다. 어느 한 사람도 더 이상 실재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모두가 허상을 실재로 잘못 본다. 모두가 이기심의 노예가 되어 표류할 뿐이다. 그 결과 사는 것이 아니 라 살고 있다고 헛되게 믿을 뿐이다.〉 29)

이렇게 해서 루소는 파스칼의 모든 기본전제를 받아들인다 . 파스칼과 마찬가지로 그는 현재 인류의 상태를 극단적인 타락 상태로 묘사한다. 그러나 루소는, 비록 파스칼 논증의 출발점 이 되는 이러한 현상을 인정하지만, 이 현상에 대한 파스칼의 신비주의적이고 종교-형이상학적인 해석을 단호히 거부한다 . 다시 말해 인간 의지의 근원적 타락이라는 파스칼의 전제를 루 소는 반대한다. 인간 타락의 사상은 루소에 있어 그 힘과 타당 성을 상실한다. 이런 점에서 그는 볼테르나 프랑스 백과사전파 들에 못지않게 정통 교리를 반대한다. 이 반대로 인하여 그는 교회의 가르침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루소의 저술들에 대한 교 회의 판결은 이 점을 명백히 강조한다. 『에밀 Em i le』 에 대한 파 리 의 대 주교인 크리 스토프 드 보몽 Chris t o p h e de Beaumon t의 판결문은, 〈안간본성 이 순결하고 선하다〉는 루소의 주장이 명 백히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에 모순됨을 지적한다. 이제 루소 자신은 피할 수 없는 듯이 보이는 딜레마에 직면한다. 만약 루 소가 인간의 퇴보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는 이 퇴보의 원인으 로서 근본악(원죄)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그는 여기서 〈인 위적 상태〉와 〈자연 상태〉에 관한 학설을 도입함으로써 이 딜 레마를 벗어난다. 그에 의하면 인간에 관해 판단을 내릴 때, 우 리는 이 판단이 〈자연 인간 l'homme na tu rel 〉에 관한 것이냐 아 니면 〈문명된 인간『 homme a rtifi c i el 〉에 관한 것이냐를 주의 깊 게 구별해야 한다. 파스칼이 인간성의 모순을 형이상학적인 인 간 본질의 이중성을 도입하여 설명하는 것과는 달리, 루소는 이러한 이중성과 모순의 원인을 인간의 경험적 현존 내지 경험 29) 루소의 자서전인 서술, Rousseauj ug e deJe a n-J a q ue s, 3 번째 대화를 참조 .

적 발전 속에서 찾는다. 소위 〈 발전〉이란 인간을 사회의 일정 한 형식에 강제로 집어넣고, 인간을 모든 도덕적 악에 물들게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발전〉은 허영과 오만과 〈 한계를 모 르는 지배욕〉을 길러내고 조장시킬 뿐이다. 〈 창조자의 손을 벗 어날 당시 모든 것은 다 좋다. 그러나 인간의 손에 들어올 때 모든 것은 퇴보한다.〉 이렇게 해서 신은 악에 대한 부담을 벗 게 되고 그 대신 인간이 모든 악에 대해 책임을 진다 . 죄가 이 제 저 세계의 탓이 아니라 이 세계에 속하므로, 다시 말해서, 죄 가 인류의 경험적이고 역사적인 현존 이전에는 없었고, 이 현 존 이후에 생기게 되므로, 이 죄로부터의 구제도 오직 이 세계 안에서 찾아야 한다. 위로부터의 도움은 우리를 구제할 수 없 댜 우리 자신이 구제할 책임을 진다. 이렇게 해서 루소는 죄 의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을 발견하고, 그의 정치적 저 술 속에서 이 방법을 철저히 고수하여 그 논리적 귀결에 도달 한다 . 루소의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이론은 책임의 소재를 지금 까지와는 다른 곳에서 찾는다. 이 이론의 역사적 의의와 체계 적 가치는 그것이 책임 소재의 새로운 주체를 만들어낸다는 것 이다. 이 주체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다 . 개인 자체는 자연의 공작소에서 나왔을 때 선 • 악의 영역 밖에 놓여 있다. 그는 자 기보존이라는 자연적 본능을 따르며 자애(自愛, amour de soi) 의 원리에 지배된다. 이 자애원리가 다른 사람을 자기 뜻에 복 종시 켜 야 만족하는 이 기 적 (利已的) 사랑 amour p ro p re 에 로 타락 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가 바로 이 이기적 사랑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인간을 자연에 어긋나게 그리고 심지어 자기자신에 어긋나게 폭군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기주의이다. 이 기주의는 자연적 인간이 알지 못하는 욕구와 욕망을 일깨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한계를 모르는 이 욕구와 욕망을 채울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을 만들어낸다 . 남들이 자기자신을 추켜주기 를 바라는 욕구와 남들보다 유별나려는 욕망 때문에 우리는 우 리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부터 멀어지게 되고, 말하자면 우리를 우리 자신의 본래 모습 밖으로 꾀어내게 한다 .30 ) 그러면 이러한 자기소의는 모든 사회에서 다 일어나는가? 인간의 진정한 공동 체 즉 힘, 탐욕, 허영의 동기에 의존하지 않고 내적 결속력으 로 보여질 수 있는 법칙에 근거한 공동체는 생각될 수 없을까? 이것이 루소가 새롭게 제기한 문제요, 사회계약설 속에서 이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자 했던 문제이다. 지금까지 지배하였던 사 회의 강제 형식이 무너지고 새로운 정치적-윤리적 공동체가 즉 〈모든 구성원이 타인의 자의적 의지에 복종하는 대신 그 자신 의 의지라고 인정될 수 있는 ‘일반 의지’ 에 복종하는 공동체〉 가 들어선다면, 구제의 시간이 도래할 것이다. 어떤 신도 우리 를 구제할 수 없다. 인간만이 그 자신의 해방자가 되어야 하 며, 윤리적 의미에서 그 자신의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 지금까 지의 사회는 인류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그러나 또 한편 오 직 사회만이 변혁과 개혁을 통해 이 상처를 치유할 수 있고 치 유해야 한다. 이것이 신정론의 문제에 대해 루소가 그의 법철 학에서 내린 해답이다 .31) 루소는 이 문제를 형이상학의 영역에 서 윤리학과 정치학의 핵심 자리로 옮겨 놓음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전혀 새로운 지반을 마련했다 . 이쯤에서 18 세기 신정론 문제의 전반적 발전 과정을 다시 개 30) i)isco urs sur I'or ig ine de I'ine g a lit e par mi Jes hommes, Oeuvres, Zweib r i. ick en 1782, 72ff , 90ff , 138 ff를 참조. 31) 루소의 법철학의 기본원리와 내용에 대해서는 이 책 6 장을 보라.

괄해 보면, 이 시대의 일반적이고 근본적인 하나의 특징이 드 러난다 18 세기는 신정론의 문제를 독자적으로 제기한 것이 아 니다. 오히려 18 세기는 이 문제를 17 세기의 위대한 철학 체계 들로부터 이어받았다 . 특히 라이프니츠는 이 문제의 온갖 가능 성들을 다 들추어 보였다. 그래서 계몽철학은 그의 이론적 개 념들과 견해에 하등 덧보탠 것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계 몽철학도 철저히 형이상학적 언어로 말하고 형이상학적 개념 도구를 사용한다. 그러나 신정론의 문제 형식은 점차 새로운 내용을 받아들인다. 이 문제는 신학 내지 신학적 형이상학의 영역을 벗어나서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집어든다. 18 세기의 구 체적 사상내용이 이 문제에 파고들어 그 문제의 틀을 바꾸어 나갈 때, 지적인 내적 변혁이 일어난다. 자연과학 분야에서 일 어났던 세속화의 과정이 철학의 영역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 17 세기 형이상학의 체계적 개념들은 모든 독창성과 독립성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신학적 사유에 굳게 뿌리를 박고 있다. 데카 르트와 말브랑슈 그리고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에게 있어서 신 의 문제와 독립해서 진리의 문제를 해결할 방도가 아직 마련되 지 않았다. 왜냐하면 신적 존재의 인식은 다른 모든 지적 확실 성을 보장해 주는 인식의 최고 원리이기 때문이다. 자연과학, 역 사학, 법학, 정치학, 예술 등 지식의 여러 분야는 점차 전통적 인 형이상학과 신학의 지배 감독을 벗어난다. 이것들은 더 이 상 자신의 정당화와 합법성을 위해 신의 개념을 구하지 않는 다. 오히려 이 여러 과학들이 이제는 자신의 독특한 형식으로부 터 신(神) 개념을 규정하는 역할을 한다. 신 개념과 〈진리, 도 덕 및 법의 개념〉 사이의 관계는 여전히 맺어져 있으나, 그 관 계 맺음의 방식이 거꾸로 된다. 이제까지 다른 개념들을 정초

해 주던 개념이 이제 정초를 받아야 할 입장으로 변한다. 드디 어 18 세기의 신학까지도 이런 흐름의 영향을 받는다. 그것은 이제까지 누려 오던 절대적 우위권을 포기한다. 그것은 더이상 기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독립적인 지력(知力)의 총체인 〈 이 성 〉 에서 유도된 기본 규범에 종속하게 된다 . 이러한 위치의 변 동과 더불어 신학도 이제 원죄의 교리를 거부한다 . 이 교리의 거부야말로 계몽기 신학 노선의 기본적 특성을 이룬다. 이런 노선의 신학은 특히 독일에서 발전하고 또 여기서 그 중요한 대변자를 낳는다. 새로운 신학의 옹호자들은 후손에게 상속되 는 원죄 사상을 전혀 불합리한 것으로 그리고 논리와 윤리의 제일 법칙들에 어긋나는 것으로 본다. 이 사실은, 이들이 일반 적으로 교리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할 때, 더욱 더 의의 가 크다. 교리의 기본적 요소들을 약간씩 윤색하고 재해석을 가하여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면서도, 이들은 원죄 때문에 신의 은총 없이는 선과 진리를 얻을 수 없다는 견해를 매우 강력히 반대한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반대하는 논쟁이 〈 신교리를 채택 하는 neolo gi sch 〉 문헌들 전반에 걸쳐 점차 날카롭게 대두된 다. 32) 라이 마루스 Re i marus 조차도 그의 『변명 Ap olog ie,』 에 서 다 음과 같이 주장했다. 〈죄는 생각하는 행위, 욕구하는 행위 내 지 일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죄는 행위 주체의 의식과 긴밀히 관련되며, 물리적인 의미에서 유전될 수 없으며, 한 주체에서 다른 주체로 옮길 수도 없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죄로부터의 32) 우리는 이 논쟁의 예를 예루살렘J erusalem 의 설교집과 그의 사후 출판물에서 그리고 제믈러 Semler 의 자서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논쟁 의 발전에 관한 상세 한 설명 은 아너 Aner 의 Tbeolog ie d er Lessin g - zeit, 50ff . 158ff . 223ff . 울 보라 .

구원과 변호에 대해서도 타당하다. 왜냐하면 어떤 다른 사람도 나에 대해 도덕적인 죄를 지을 수 없듯이 또한 나에 대해 도덕 적 공덕을 쌓을 수도 없기 떠문이다.〉 이렇게 해서 신교의 내 적 발전에 중대한 변화가 생긴다. 루터와 에라스무스 사이의 논쟁이 다시 일어난다면, 이제는 싸움의 양상은 후자에 유리하 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사이에 즉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에 대한 인문주의적 이상〉과 〈인간의지의 제한성과 타락에 대한 교리〉 사이에 깊이 벌어진 틈은 이제 다시 연결의 실마리를 찾 게 된다. 계몽시대는 중세체계의 구속에 맞서 싸운 르네상스 정신의 근본적 요청에까지 직접 육박하려고 시도한다. 이렇게 해서 신교의 사상은 헤겔이 그의 역사철학에서 기술한 참된 본 성과 실질에 도달했다. 휴머니즘과의 화해에서 신교는 자유의 종교가 되었다. 프랑스에서 원죄 교리에 대한 논쟁이 종교와 철학을 극단적으로 분리해 놓은 반면, 독일에서 신교의 이상은 새로운 사상의 물결을 흡수하고 이전의 역사적 신교 형식을 극 복해 나감으로써 보다 순수하게 자신의 이념적 의미를 실현시 킬 수 있었다 .33)

33) 이 에 관해 서 는 특히 트뢸 치 Troel t sch 의 Di e Bedeut u ng des Prote s ta n tis m us fur die moderne Welt, 3 . Aufl . Munchen und Berlin 1927 과 Renais s ance und Refo r mati on , Gesammelte Werke IV, 261 쪽 이하를보라.

2 관용의 이념과 〈자연종교〉의 정초 계몽철학에서 여러 모습으로 되풀이되어 나타나는 일반적 원 리는 진리탐구의 최대의 적이 단순히 지력(知力)의 결핍이 아니

라는 것이다. 물론 지력의 결핍도 지식의 병이기는 하다. 다시 말해 지식발전의 매 걸음마다 지식의 불확실성 및 지식의 결핍 은 우리에게 고통거리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장벽은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닫자마자 진정한 위험이 못된다. 지력이 범하는 오류는 지력 자신에 의해, 지력 자신의 내적 발전을 통해 극복 된다. 지적 오류는 우리의 지력이 편견에서 벗어나 자유스럽게 그 길을 가게 되면, 스스로 제거된다. 보다 깊고 중대한 지적 오류는 단순히 지력의 부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전도(類倒) 된 방향의 지식에서 나온다. 단순히 지식의 부정이 아니라 전 도된 지식이 진정 걱정거리가 된다. 인식의 참된 척도를 거짓 되게 하는 이 전도는 우리가 탐구해야 할 지식의 목표를 탐구 이전에 미리 설정할 때에 생긴다. 회의가 아니라 독단이 지식 의 가장 해로운 적이다. 무지 그 자체가 아니라 진리인 척 하 고, 자칭 진리라고 주장하는 무지(잘못된 지식)가 지식에 치명 상을 입히는 적이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지적 오류의 문제가 아니라 지적 사기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고의에서가 아니라 부 지불식간에 생긴 오류는 용서받을 여지가 있으나 고의적인 지 적 오류는 자승자박으로 인해 더욱 더 오류의 강도를 높여간 다. 이런 일반 원리는 지식에 대해서만 아니라, 신앙에 대해서 도 들어맞는다. 신앙의 진정한 적은 불신(不信)이 아니라 미신 이다. 왜냐하면 미신은 믿음의 뿌리를 부식시키고 진정한 종교 의 원천을 메마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식과 신앙은 미신을 공동의 적으로 삼으며, 미신에 대한 싸움은 그들 공동 의 긴요한 과제가 된다. 그들은 이 과업을 위해 연합할 수 있 으며 또 연합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연합을 기반으로 해서 비로소 지식과 신앙 사이의 조약이 맺어질 수 있고 상호

간의 한계 영역이 규정될 수 있다. 벨은 이러한 견해를 철저히 그리고 분명하게 옹호한 최초의 사상가이다. 『역사 비판 사전』에서 그는 이 견해를 구체화하고 정당화하는 그 후의 모든 작업에 대해 기초를 마련해 준다. 이 러한 견해에 입각한 벨의 회의론은 이제 커다란 결실을 보고 그 적극적인 의의를 지니게 된다 . 〈훌륭한 탐구를 방해하는 것 은 지식의 결핍이 아니라 마음 속에 가득한 편견이라고 하겠 댜〉 사전 속의 이 말은 벨의 모든 저술의 표어가 된다. 그는 신앙내용을 다루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이 내용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앙을 위해서는 모든 수 단이 정당화되는 태도, 따라서 신앙을 옹호하기 위해서 유용하 기만 하다면, 이것이 진리이건 공상이건 통찰이건 편견이건 이 성이건 격정이건 상관 없이 마구 사용해도 좋다는 태도〉에 대 해서는 그는 극렬하게 맞서 싸운다. 이런 태도로서는 신앙내용 이 구제되기는커녕 오히려 파괴될 뿐이다. 신앙내용은, 오직 그 순수성에서만 구제되고 유지될 수 있다 . 비판되어야 할 상 대는 무신론이 아니라 미신이다. 벨의 이런 원칙은 프랑스 백 과전서파의 종교비판에 대한 선구 역할을 한다. 백과전서의 피 론주의 P y rro ni sme 항목에서 디드로는 논증술에 있어 벨보다 뛰 어난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으며 벨에 맞먹을 만한 사람도 거의 없다고 말한다. 벨은 의심에 의심을 거듭하면서도 항상 방법적인 원리를 가지고 전진한다. 벨 사전의 한 항목은 마치 살아 있는 하나의 산호요, 이로부터 수많은 다른 산호들이 가 지를 쳐 나가며, 이들 전체가 다시 서로 연관된다. 이와 비슷 하게 디드로도 〈무신론보다는 미신이 신을 더 오해하고 더 크 게 손상시키며, 무지보다는 편견이 진리와 거리가 더 멀다〉고

거듭 주장한다 . 34) 이러한 주장의 의미 내용을 파악하려면, 이것 이 지닌 방법론적이고 인식론적인 전제들을 먼저 이해해야 한 다 이 전제들은 데카르트의 합리론 정초에서 분명하게 드러난 댜 데카르트에 의하면, 인간의 지적 능력에는 여러 가지 착각 이 일어날 수 있는데, 이 착각으로 인하여 우리의 지적 능력이 오류의 길로 접어든다면, 이는 우리의 지적 능력이 책임을 져 야 한다. 왜냐하면 착각은 감각이나 상상에서 일어나는 반면, 오류는 판단을 잘못한 데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판단은 지성의 자유스런 활동이요, 따라서 판단에 대해서는 지성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지성은 감각과 상상에 따를 것인지, 아니면 이것들을 거부할 것인지를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지성은 확실하고 참된 판단을 내릴 만큼 재료가 충분하지 못하다면 판 단을 유보할 수 있으며, 또 마땅히 유보해야 한다. 지성이 서 둘러서 판단할 때, 즉 지성이 필요한 전제들을 아직 충족시키 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판단을 내리고 싶은 욕구에 빠 져버릴 때, 지성은 오류와 불확실성에 빠진다. 이러한 오류와 불확실성은 따라서 지적 능력의 결핍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서 둘러 판단울 내리고 싶어하는 욕구에서 나온다. 따라서 늦더라 도 지식의 길을 따를 것이냐 아니면 조급하게 서둘러 오류의 길로 빠지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의지의 소관사이다. 의지가 지 적 능력에게 〈명석판명한 기초가 없이는 판단하려고 욕구하지 말라〉고 요구함으로써 의지는 지식을 오류로부터 보호할 수 있 댜 계몽철학은 데카르트의 원리를 그대로 채용한다. 계몽철학 34) 디 드로의 Lett re sur /es sourds et muets. 2} Penseesp hi l o sop hi q u es , Sect. XII : La Sup er stit ion est plu s in ju r ie u se qu e I'a th e i sme( 무신론보다는 미 신이 더 해롭다)를 참조.

은 이 원리에 의해 칸트가 말한 〈계몽시대의 진정한 본성〉에 이른다 〈계몽은 인간이 스스로 책임져야 할 미숙으로부터 벗 어남을 뜻한다.〉 여기서 미숙은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는 자 신의 지성을 사용할 수 없음〉을 뜻한다. 이 미숙의 원인이 지 성의 미숙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 자신의 지성을 사용하고자 하는 용기와 결단이 없음〉에 있는 것이라 면, 이런 미숙은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 〈감히 알려고 하 라! Sap er e aude! 너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 이 것이 계몽의 표어이다.〉 35) 오류가 생길 수 있는 개별적인 조건 들에 대한 계몽철학의 여러 가지 평가와 입장은 칸트의 이러한 말로 설명될 수 있다. 모든 〈지식의 결핍〉 즉 모든 무지가 다 우리가 책임져야 할 잘못은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존재의 한계 에 따르는 무지는 피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일 정한 한계를 준 신이 〈우리가 이 한계를 넘어설 수 없음〉에 대 해 우리 인간을 책망할 수 없다. 우리는 이러한 인식 한계에 대해서 책임이 없다. 오히려 반대로 이 한계를 넘어서서 독단 적으로 우주와 그 기원에 관해 판단하려고 한다면 이는 어처구 니 없는 짓이다. 지적 회의는 무신앙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 인식능력에 대한 겸손한 태도를 보여준다. 무신앙 은 다론 사람의 견해를 거부하고 오직 자기자신의 생각만 주장 하는 독단적이고 잘못된 확신에 기인한다. 인식의 결함 내지 최고 존재에 대한 우리의 사유능력의 불완전성은, -윤리 -종교 적 의미에서 볼 때, 말 그대로 결함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윤리-종교의 지반을 만들어 준다. 〈자연의 창작자는 내가 재 35) Beantw o rt un g der Frage : Was ist A ufk lar ung . Kant, Werke IV, 169 쪽.

치 있다고 칭찬해 주는 것은 아니요, 내가 바보스럽다고 책망 하지도 않는다〉라고 디드로는 말한다 .36) 윤리적 기준에서 비난 되어야 할 것은 고의로 모든 탐구와 조사룰 방해하는 맹목적 신앙이다. 왜냐하면 맹목적 신앙은 인식의 내용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도시 인식의 존재, 형식 및 원리에 대해서도 제 마음대 로 제한울 가하기 때문이다.

36) Addit ion s au .x Penseesp bi / oso p b iq u es, XI.

계몽철학이 주장하는 관용의 요구를 순전히 부정적으로 해석 하면 크게 잘못이다. 여기서의 관용은 기본적인 종교문제에 대 해 아무래도 좋다는 ·무관심을 권장하는 뜻이 아니다. 이 시대 의 하찮은 사상가들 중에만 이러한 무관심의 뜻으로 관용을 생 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볼 때 이와는 정 반대 의 사조가 지배적이다. 신앙과 양심의 자유원리는 계몽시대 특 유의 새롭고 적극적인 종교적 힘의 표현이다. 이 원리에는 새 로운 형식의 종교적 의식이 구현되어 있고, 이 의식은 이후 점 차 분명하고 확고해진다. 그리고 이 새로운 종교형식은 종교목 적과 종교정신을 완전히 개혁함으로써만 얻어질 수 있다. 이러 한 변화는 진정한 종교적 에토스 E t hos 가 전(前)시대의 종교논 쟁을 주도했던 종교적 파토스 Pa th os 를 극복할 때 일어난다. 이 후로 종교는 더 이상 단순한 파토스의 수용성 문제가 아니라 에토스적 활동성에 근거한다. 인간은 기이한 어떤 힘의 활동에 수동적으로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로부터 이 활동 울 파악하고 형성해야 한다. 인간에게 종교적 확신을 심어주는 것은 초자연적 힘이나 신적인 은총이 아니다. 인간은 그 스스 로 이 확신에 이르도록 해야 하고 이 확신을 유지해야 한다.

이러한 이론적 원리로부터 계몽기의 모든 귀결과 모든 실천적 인 구체적 요구 등이 내적 필연을 띠고 나온다. 계몽의 전통적 개념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언뜻 보기에 납득이 가지 않는 하나 의 귀결이 나온다. 확실히 계몽기의 특색이라 볼 수 있는 하 나의 상투어가 있다면, 순수이론과 사유의 우위성을 주장하는 〈주지주의 시대〉라는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계몽기의 종교적 이념을 형성 발전시키는 문제에 있어서 이러한 견해는 전적으 로 타당한 것은 아니다 . 이 문제에 관해서는 오히려 정반대의 사조가 지배한다. 왜냐하면 계몽철학이 〈순수 이성의 한계 내 에서의 종교〉를 추구하지만, 다른 한편 그것은 또한 오성의 지 배로부터 종교를 해방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계몽철학온 신 학의 교리체계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을 가해 교리(오성)로부터 종교를 해방시키고자 한다. 신앙을 단순히 이론적인 교리 명제 들의 수용으로 보거나, 혹은 신앙을 이러한 명제들에 국한시키 고자 하는 종교체계가 있다면, 이것은 가장 중요한 종교적 확 실성을 놓치는 것이다. 신앙을 교리에 국한시키는 것은 가능하 지도 않으려니와 또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국한은 종교를 단순히 지식으로 변화시켜 종교의 도덕적이고 실천적인 힘을 빼앗아 버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힘이 생생하게 활동할 때, 우리는 종교적인 관념과 개념들의 상이성을 극복한 댜 이 관념과 개념들은 무한히 다양하다. 그렇다고 우리는 종 교의 통일에 대해 절망할 필요가 없다. 이 다양성은 단지 감각 적 상징기호에 관한 것이지, 종교가 지정한 초감각적 내용에 관한 것이 아니다. 종교적 통일의 바탕이 되는 이 내용은, 비 록 불완전하지만, 이런 상징 기호들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 계 몽운동은 이제 3 세기 전에 쿠자누스가 만든 원리를 재생시킨

댜 이 원리는, 다양한 종교적 예식들 가운데서 그리고 종교적 개념과 견해에 대해 수많은 논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의 동일성을 선언하는 원리이다. 계몽의 지평은 르네상스의 지평 보다 더 폭이 넓다. 이 원리 아래서 계몽운동이 포괄하려는 종 교현상의 다양성온 르네상스시대보다 훨씬 더 크다. 쿠자누스 의 『신앙의 평화론』에서 진정한 종교에 관한 논쟁은 기독교, 유 태교, 마호메트교를 다 망라할 뿐만 아니라 이교도 세계, 타타 르인 및 혹해 북부의 시디아인 들도 참여하여, 각기 신에 대한 참된 지식을 주장한다 . 그러나 18 세기에는 동양의 여러 민족들 도 각기 새로운 매력을 풍기면서 자신들의 종교적 확신을 똑같 이 인정해 주기를 요구한다 .37) 라이프니츠도 이미 중국문명에 관심을 가졌다. 볼프는 중국의 지혜에 관한 강연에서 공자를 순수도덕의 선지자로 칭송하고 예수 다음에 바로 공자를 앉혔 다. 볼테르도 이런 사조를 받아들이고, 이것을 〈종교와 도덕의 핵심은 신앙의 여러 특이한 꺼풀들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사실의 증거라고 말한다. 몽테스키외의 『페르시아인의 편지 Lett re s Persane s.』에서 동양과 서양이 비교되는데, 여기서 서양의 우위 가 입증되지 않는다. 페르시아인의 편견 없는 관찰과 비판에 의하면, 서양사람들에게 매우 확실하고 성스럽게 여겨지는 것 들 가운데 인위적이고 관습적이며 우연적인 요소들이 많이 들 어 있음이 밝혀진다. 이 저작에서 몽테스키외는 그후의 여러 논쟁과 비판의 문학적 전거(典操)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 논 쟁은 단순히 파괴를 그 목적으로 삼기보다는 오히려 파괴를 새 37) 18 세기 프랑스 문명에 대한 동양의 중요성에 관해서는 Mart ino , L' Or ien t dans la litt er atu r ef ra n~ais e au xvd et X VIIl Sie c /e , Paris, 1906 을보라.

로운 건설의 수단으로 이용한다. 교리의 편협성으로부터 벗어 나 이제 모든 것을 포괄하며 그리고 진정으로 보편적인 신(神) 의식의 자유를 추구한다. 디드로는 그의 『철학적 사유』에서 이 시대의 이러한 기본태도의 정곡을 찔러 말한다. 〈인간은 그들 의 내부로부터 신성을 추방하였다. 그들은 신성을 교회에 위탁 했다 교회의 벽은 신성의 한계이다. 이 벽을 넘어서 신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얼마나 미친 짓이냐! 너의 시야를 가로막 는 이 울타리를 파괴해 버려라! 신을 이 울타리로부터 해방시 켜라! 신이 진정 있는 모든 곳에서 신을 보라! 그렇지 않으면 신은 전혀 없다고 말하라. >38) 계몽운동이 지적이고 도덕적인 온갖 힘을 다 써서 신 개념의 확대를 위해 싸운 투쟁에 대해서는 여기서 상세히 설명할 수 없다 단지 그 주된 경향과 일반적 국면을 간략히 언급하는 것 으로 족하다. 이 투쟁의 무기는 이미 17 세기에 만들어진다. 여 기서도 벨의 사전은 계몽철학의 무기고 노릇을 한다. 루이 14 세가 낭트칙령 39) 을 폐한 데 반대하여 쓴 벨의 글은 신교의 신앙 과 양심의 자유에 대한 각별한 요구로 시작된다. 그런데 이러 한 요구를 정당화하고 표현하는 글 자체의 성격은 본래의 목적 을 넘어서고 있다. 이 글은 너무나 신랄하였기 때문에, 벨의 편에 선 동료들까지도 감정을 상하게 하였으며, 신교신학의 한 지도자인 쥐리의 Pie r re Jur i eu (1637-1713, 프랑스 신교학자)를 격 렬한 반대자로 만들었다. 여기서 벨은 〈자신의 종교자유 옹호 38) Dide rot, Penseesp h il o sop b iq u e. s; XXVI : Assezat 편 전집, 1 권, 138 쪽. 39) 역주: 1598 년 프랑스 왕 앙리 4 세가 캘빈파의 신앙자유를 허락함으 로써, 신구 양파의 갈등을 완화시키고저 낭트에서 내린 칙령. 1685 년 루이 14 세가 이 칙령을 폐지함.

가 어느 특정 종파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신앙에 타당해야 할 하나의 원리를 표현한 것이요, 보편적인 철학적 목표를 세 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벨에 의하면, 도덕적 이성의 기준에 근거한 윤리적 의미에서 볼 때, 강제는 불합리한 것이요 비난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종교와 도덕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 이 아니므로 종교를 위한 강제력의 사용도 정당화될 수 없다. 만약 도덕과 종교가 서로 상충된다면, 즉 성서의 가르침이 도 덕적 양심과 모순된다면, 도덕적 양심의 절대적 우위의 입장에 서 이 문제는 해결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도덕의 우위성을 포기하면, 종교적 진리의 기준이 없어지는 꼴이 되기 때문이 댜 이렇게 되면 제멋대로 주장될 수 있는 계시의 확실성을 잴 수 있는 척도가 없어지며, 종교 자체 내에서 참된 본질과 기만 올 분간할 기준이 없어진다. 따라서 성서를 문자적으로 해석하 는 것은, 이것이 만일 도덕의 제일 원리에 어긋난다면, 거절되 어야 한다. 성서해석의 불변의 참된 원칙은 이 도덕 원리에 있 는 것이지 문자 의미의 농간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문법과 문 헌 비판의 증거를 거부하는 것이 이성의 증거를 거부하는 것보 다 낫다.〉 따라서 성서 해석의 기본 원칙은 〈어떠한 해석도, 이 것이 만일 최고의 도덕 원리에 어긋나고 그리고 도덕적 범죄를 정당화하거나 권장하는 해석이라면, 틀린 해석이다〉라는 것이 다. 〈비행을 저지르게끔 만드는 어떠한 문자적 해석도 거짓이 다.〉 40) 이것은 계몽철학이 아무것도 더 보탤 필요가 없는 규제 적 준칙이다. 다만 계몽철학온 이 준칙의 본래 목적을 달성하 기 위해 그 논리적 귀결을 이끌어내기만 하면 된다. 이를 위해 40) Bay le , Commenta ir e ph il o sop h iq u e sur ces par oles de !'Evang ile: contr a in s Jes

서는 한 가지가 더 필요한데, 볼테르가 이것을 수행한다. 볼테 르는 벨 사전의 역사적 -신학적 가르침의 거대한 덩어리 밑에 감추어졌던 보고를 파낸다. 17 세기 동안 신 • 구교를 망라하여 격렬한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성서의 윤리적 비판의 원리〉는 이제 볼테르에 의해 이 시대의 보편적인 가르침으로 확립된다. 1763 년 『관용론』에서 볼테르가 이 원리를 둘러싼 17 세기의 논 쟁을 회고할 때에는 이미 그는 이 원리의 결정적 승리의 확신 감을 가진다. 〈우리는 하루가 다르게, 이성이 궁전 뿐만 아니 라 시정(市井)에서도 점차 단골손님이 되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 다〉고 볼테르는 말한다. 이러한 발전적 과정은 막을 수 없다. 이성의 열매는 충분히 익을 것이요, 익어야 한다. 과거와 전통 에 대한 존경은 이 과일의 익음을 방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지적 세계는 우리가 매일 이것을 새롭게 만들어나갈 때에만 존 속할 수 있다는 것이 지적 세계의 근본 법칙이기 때문이다. 〈과거는 마치 없었던 것과 같다. 이미 우리가 서 있는 지점에 서 그리고 이미 여러 국민들이 도달한 지점에서 출발한다는 것 은 언제나 필연적이다.〉 볼테르의 간결하고 명료한 이 표현은 계몽운동의 모든 지적 확실성과 경향성의 핵심을 찌른 말이다. 볼테르의 『관용론』이 지닌 또하나의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그 의 다른 종교적 저술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진지성, 냉정함, 공 평성을 가지고 그의 기본문제를 다룬다는 점이다. 쟝 칼라J ean Calas 에 대한 재판의 재개를 위한 구체적인 목적 으로 쓰여진 『관용론』에서 볼테르의 필치는 여느 때와는 다르 게 엄격하고 힘차다. 그는 장난기 또는 익살을 완전히 버리 며, 또 가능한 한 잡다한 논쟁을 삼가한다. 볼테르의 독설을 자아냈던 개인적 기질이 만년의 이 저술에서는 좀처럼 표현되

고 있지 않다. 종교적 광신자들이 위험한 오류요 엉뚱한 요구 라고 본 관용은 이 제 <이 성 의 근본속성 I' ap an ag e de la rais o n> 이 된다 . 관용은 철학의 여 러 특수한 요구들 중의 하나가 아니 라, 철학의 원리이다 . 관용은 철학의 본질이요, 철학의 권리근 거이다. 이런 근거에서 철학은 종교와 자매지간이 된다. 종교 전쟁의 시대가 지나면, 즉 유대교, 가톨릭교, 루터교, 그리스 정 교, 캘 빈 교, 재 침 례 교 W ie derta u f er , 그리 고 소찌 니 교 Sozz i aner41 ) 가 모두 다 함께 형제지간으로 잘 지내고, 다 같이 사회복지를 위해 봉사하는 날이 오면, 이것은 바로 철학의 최 대 승리가 된다. 〈철학, 종교의 누이인 철학만이 그렇게 오랫 동안 피로 물들여왔던 미신의 손에서 무기를 없앤다. 광기로부 터 깨어난 인간 정신은 광신주의의 기치 아래 이 광기가 저질 렀던 엄청난 난폭을 보고 놀란다.〉 아직도 열광과 광기가 호른 댜 그러나 이성이 제 직분을 충분히 해낼 때, 이성온 서서히 그렇지만 틀림없이 이 악을 고쳐나갈 것이다. 〈이성은 온화하 고 인정이 흐른다 . 그것은 우리에게 관용을 가르치고 알력을 없애준다. 그것은 덕을 촉진시키고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 리가 스스로 합의한 법칙의 순종을 가르친다.〉 42)

41) 역주 : 이탈리아의 F. Sozz ini(1 539-1609) 가 창설한 기독교 일파. 42) Volta i r e , Trait e s ur la to lerance a l' occasio n de la mort de Jea n Galas, Chap . 1 과 4( 전집 2 筑~. 63, 74 쪽 이하) .

또한 종교에 관한 한 순전히 지적 기준만 가지고는 충분치 못함이 점차 드러나게 된다. 종교진리는 이론적 기준에 의해 결정될 수 없다. 그것의 타당성은 그 도덕적 작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순전히 추상적으로 결정될 수 없다. 레싱의 『현인(賢 人) 나탄 Nath a n der We i s~』 에 나오는 반지 우화는 궁극적 인 종

교진리가 외적 증명이 아니라 내적인 확신에 의해서만 밝혀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 모든 증명은, 이것이 역사적 사실에 의한 것이건 논리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전제에 의한 것이건, 충분치 못하다. 왜냐하면 종교의 본질은 오직 정신태도와 행위에 의해 서만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곧 진정한 모든 종교의 시금석이다. 디드로는 이러한 기본적 논의를 통해 계시종교에 대한 자연종교의 우위성을 증명한다. 그에 의하면 역사적인 여 러 개별 종교들의 다툼을 직접 결정할 방법은 없다. 왜냐하면 각각의 종교는 다른 종교들에 대한 절대적 우수성을 주장하고 따라서 다른 모든 신앙들을 독단적으로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 러나 다른 종교를 무시하는 이 부정적 태도에도 한계는 있다. 다른 모든 종교들을 배제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종교도 자연종 교와의 관계를 완전히 부정할 수 없고 또 부정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자연종교는 모든 종교의 젖줄인 자연적 토양 이요, 이 토양을 결코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종교에 게 자신의 첫째자리 다음에 어떤 종교를 둘째 자리에 앉히겠느 냐고 물으면, 모든 종교의 대답은 똑같아진다. 모든 종교는 둘 째 자리에 자연종교를 앉힐 것이다. 적어도 편견에서 벗어난 철학적 판단력을 지닌 사람은 이제 종교간의 우위권 싸움에 결 정을 내릴 수 있다 . 왜냐하면 이런 사람에게는 종교의 참된 보 편성과 참된 영원성이 어디서 찾아져야 할 지가 아주 명백하기 때문이다. 〈시작이 있는 것은 끝이 있게 마련이요, 끝이 있는 것은 시작이 있게 마련이다. 시작이 없는 것은 소멸할 수 없다 . 유대교와 기독교는 시작이 있다. 지상의 그 어떤 종교도, 자연 종교를 빼놓고는, 다 시작이 있다. 따라서 자연종교만이 끝이 없을 것이요, 반면 다른 모든 종교는 소멸할 것이다. > 유대

교, 기독교, 그외 모든 종교는 자연종교의 분파요, 이단에 불 과하다. 자연종교의 진리와 계시종교의 진리의 관계는 〈내가 나 자신에게 주는 증거〉와 〈내가 타인들로부터 받아들인 증거〉 의 관계와 같고, 〈 나 자신 속에서 직접 내가 느끼는 것〉과 〈남 이 가르쳐준 것 〉 의 관계와 같다. 전자의 증거는 신이 내 속에 써놓은 증거요, 후자의 증거는 미신에 젖은 사람들이 양피지나 대리석에 써넣은 증거다 . 전자는 언제나 내 마음 속에 항상 같 은 것으로 들어 있으나 , 후자는 나 밖에 있고 나라마다, 지방 마다 서로 다르다. 전자는 교양인과 야만인을, 기독교도와 이 교도를, 철학자와 대중을, 학자와 무식자를, 노인과 어린이를 하나로 묶어 통일시키는 반면, 후자는 아버지와 아들을 갈라놓 고 사람과 사람을 갈라 서로 무장시키고 , 무지하고 광적인 사 람들로 하여금 현자를 박해하고 증오하게 한다 . 〈자연종교가 가장 오래된 것인 만큼 가장 불완전하다고 말한다면, 이는 잘 못이다. 왜냐하면 가장 오래된 것이 또한 가장 참된 것이요, 따 라서 그것은 모든 종교의 근거 A p r i or i가 되기 때문이다. 발전과 완전의 개념을 문제삼더라도 대답은 결코 현존하는 어떤 실증 종교에 유리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현재 발전의 마지막 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 만약 모세의 법이 자연법을 극복하고, 기독교법이 모세법을 극복 발전시킨 것이 라면, 신이 아직 인간에게 현시하지 않은 다른 종교의 법이 장 차 기독교 법을 극복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 〉 43) 『자연종교의 충 분성에 관하여』라는 디드로의 저술 속의 이러한 말들은 이미 레싱 사상의 냄새를 짙게 풍기고 있다. 디드로가 합리적 증명 43) Did e rot, De la sujfi san ce de la relig ion natu r ell~ IV, XIII, XXV ff.

과 사실적 증명을 엄격히 구별하여 〈사실적 증거는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진리를 증명하는 기초가 될 수 없음〉을 날카롭게 주 장하는 점도 또한 레싱의 모습을 미리 보여준다. 이렇게 해서 순수 이론적인 신 증명이 -17 세기의 모든 신학과 형이상학 적 체계는 이 증명의 바탕 위에 정초되었던 바인데-지니는 힘은 점점 약화되어 갔다. 그리고 종교적 확실성의 중심은 이 제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 이 새로운 중심은 이론적 증명이 불 가능한 곳이요, 또 이런 증명에 의존하지도 않는다. 영국의 이신론(理神論, De i smus) 도, 그 개별적 탐구의 다양 성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같은 기본 경향을 나타낸다. 이신 론은 엄밀한 주지주의적 체계로서 시작된다. 그것은 신비, 기 적, 비의(秘義)를 종교로부터 배제하고, 종교를 인식의 밝은 빛 속으로 가져온다. 『신비하지 않은 기독교 Chris t i an it y Not My s t e ri o us,』 (1696) 라는 톨랜드 Toland 의 저서는 이미 그 제목에 서 그 이후 거듭 되풀이되는 이신론 운동의 기본 주제를 말해 준다. 문제 제기에서 새로운 하나의 원리를 주장한다는 점이 이신론의 철학적 의의이다. 죽 이신론에 의하면, 신앙의 내용 문제와 신앙의 형식문제가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따라서 이 양자의 문제는 서로 한꺼번에 해결될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 관심의 초점은 개별교리의 진리내용 뿐만 아니라 또한 종교적 확신 자체의 유형에 있다. 톨랜드는 로크의 인식론적 개념과 원리를 종교문제에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인식 일 반에 타당한 것은 특수한 인식 죽 종교적 인식에도 타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로크는 인식 일반을 정의하여 〈인식은 관념들 의 일치 혹은 불일치의 관계를 아는 것〉이라고 하였다. 인식은 관계를 포함하므로, 관계의 양쪽 항이 먼저 의식에 주어져 명

료하게 파악되어야 한다. 관계의 기초가 되는 양쪽 항이 파악 되지 않는다면, 관계는 그 의미를 잃게 된다. 이러한 방법론적 고찰로써 톨랜드는 종교적 신앙의 대상에 관해 본질적 원리와 한계를 설정한 셈이 된다. 종교적 대상의 절대적 초월성은 거 부된다. 대상이 의식에 어떻게든 나타나지 않는다면, 의식은 이 대상을 알 수도 없고, 판단할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파악 능력을 넘어서는 불합리한 것은 의식에 나타날 수 없다. 따라서 이것에 관해서는 〈그것이 있다〉고 말 할 수 없고, 또 〈그것이 무엇이다〉라고 규정될 수도 없다. 한 사물의 속성을 알지 못하더라도, 죽 그것의 본성을 말할 수 없 다 하더라도, 그 사물의 존재를 확신할 수 있다는 말은 잘못이 다. 설사 이런 확신과 인식이 있다 할지라도, 이것에 무슨 종 교적 의의가 있겠는가? 신앙이 공허하고 무의미하게 되지 않으 려면, 신앙의 대상 역시 의미를 지녀야 하고, 분명하게 이해되 는 규정성을 지녀야 한다. 모든 점에서 신비스럽고 모든 이해 를 넘어서는 것은 지식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앙에서도 거리가 멀댜 〈하나의 비(非) 실재물을 예로 들어 ‘도리뚱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면서 ‘도리뚱 이 이 세계에 있다는 것을 틀림없이 안다고 말한다면, 아무도 이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44) 이렇게 해서 톨랜드는 신비란 절대적 의미에서 가 아니라 단지 상대적인 의미에서만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전 적으로 파악 불가능한 것은 아니나 어떤 방법으로는 파악될 수 없는 내용이 있다. 따라서 신비란 이성에 어긋나는 교설을 말 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된 진리이긴 하지만, 어떤 부류의 사람 44) Toland, Chri stian it y notM y s te r i ou s , 12 쪽, 128 쪽.

에게는 그 진리성이 드러나지 않는 교설이다. 계시의 개념과 자연종교의 개념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이것들이 서로 다른 독 특한 내용을 가진다는 뜻이 아니다. 양자를 구분하는 것은 알 려진 내용에 의한 것이 아니라 알려지는 방식의 특성에 의한 것이다. 계시는 확실한 인식의 근거가 아니라 단지 진리 전달 의 특수한 방식일 뿐이다. 그리고 이것의 궁극적이고 객관적인 근거와 검증은 이성 자체에서 찾아져야 한다. 틴달 T i ndal 도 그의 『창조만큼 오래된 기독교 Christ ia n it y as Oldas the Crea ti o1~ 』 (1730) 라는 저술에서 이 원리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에 의하면, 자연종교와 계시종교의 차이는 실질 내 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내용이 알려지는 방식의 차이라 한 다. 전자에서는 무한히 현명하고 선한 자의 의지가 내적으로 알려지고, 후자에서는 외적으로 알려진다. 그러한 존재를 참되 게 생각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그 존재를 인간 중심 적인 모든 편견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그러한 존재의 어느 특수한 본질과 활동만을 주장하거나, 그러한 존재가 어느 특정 한 시대의 특정한 민족에게만 호의를 베푼다고 생각한다면, 이 는 이 존재를 부당하고 편협하게 만드는 꼴이 된다. 신이 언제 나 한결같은 존재라고 한다면, 그리고 인간의 본성은 또한 불 변하는 같은 것이라고 한다면, 계시의 빛도 모든 사람에 똑같 이 발사되어야 할 것이다 . 만일 신이, 〈은총에 의한 선택〉의 교리가 보여주듯이, 보편적인 자기 본성을 감추고 어느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만을 선택하여 빛을 주고 다른 사람들을 어둠 속 에 내버려 둔다면, 그러한 신은 신이 될 자격이 없다. 진정한 계시이냐 아니냐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시간적이고 공간적인 제한을 넘어서는 〈계시의 보편성〉에 있다. 기독교가 이러한 기

본 조건을 충족시키는 한에서만, 그것은 참된 종교가 된다. 기 독교가 어느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는 한에서, 그 것은 세계의 나이만큼 오랫동안 존속된다 . 내용에 관한 한, 자 연법과 기독교의 법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후자는 전자속에 적 혀 있는 것을 다시 공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자연 법 의 재 공포 a rep ub li ca ti on of the Law of Na ture 〉의 필요성 은 특히 인간의 도덕적 인식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가치와 확실성에서 모든 것을 넘어서는 진정한 계시이다. 이렇 게 해서 틴달은 후에 칸트가 『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라는 저술에서 피력한 종교 개념에 도달한다. 틴달에게 있어서 종교 는 〈우리의 의무가 신의 명령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종교란 〈우 리가 보편적으로 타당하고 승인될 수 있는 규범을 출발점으로 삼지만, 이 규범이 신적인 창시자와 관련된 것이요, 이 창시자 의 의지를 표현한 것임을 보는 것〉이다. 영국의 이신론의 발전 과정에서 이제 무게의 중심은 순수 지적인 영역으로부터 〈실천 이성〉의 영역으로 옮겨졌으며, 순수 〈구성적(=이론적)〉 이신론 은 〈도덕적〉 이신론에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45)

45) 이신론의 발전과정에 대한 세부적인 것은 특히 Lesli e Ste p h en, His t o r y of E ng lish Tboung t in the Eig h te e nth Centu ry , 2 Vol. , second edit ., London, 1881 과 Troelsch, Deis m us 전집 4 권, 429 쪽 이하 및 Hermann Schwarz, Art . Deis m us in Pii da g o g isc hes Lexik o n (Velhage n & Klas ing)을 참조하라

영국 이신론이 18 세기의 지적인 전영역에서 끼친 지대한 영 향은 본질적으로 이러한 변화에 기인한다. 영국 이신론이 순수 이론적인 면에서 끼친 영향은 대수롭지 않다. 왜냐하면 영국의 이신론적 사상가 중에는 그 깊이와 독창성이 특출한 사람이 없 으며, 또 이신론의 기초를 이루는 순수 이론적인 연역들이 때

때로 의심의 여지가 있거나 고식적인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러 한 연역들보다는 오히려 이신론의 정신 태도, 즉 전통 교리를 비판하려는 도덕적 진지성과 성실한 진리 추구의 의욕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러한 것들이 이신론의 진정한 내적 힘이 댜 이신론 운동의 초기에 살았던 벨은 이 힘의 의미를 충분히 감지하고서 이신론의 승리를 예언한다. 낭뜨칙령의 폐기를 반 대하면서 벨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시대는 자유사상가와 이신론자들로 가득찬 시대다 . 사람들은 이 사실에 놀란다. 그 러나 나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감안할 때, 오히려 자유사상가 와 이신론자들이 더 많지 않음에 놀란다-종교가 이 세계에 불러일으킨 엄청난 파괴를 그리고 살인, 절도, 추방, 유괴와 같은 모든 죄악들을 종교적 권위로 자행함으로써 야기될 수밖 에 없었던 도덕성의 소멸 사실을 감안할 때, 그리고 이러한 죄 악들에 연이어 나타나는 수많은 추악한 일들, 위선들, 성례(聖 禮)의 더럽혀진 남용들, 등등의 사실을 감안할 때 . 〉 46 〉 이신론은 전 세기를 요란스럽게 했던 종교적 논쟁에 대한 조용한 거부에 서 싹튼다. 그것은 르네상스가 바라고 약속했으나 획득하지 못 한 〈신앙의 평화 Pax fi de i〉에 대한 깊은 동경의 표현이다. 종교 전쟁에서가 아니라 오직 종교적 평화에서 신의 진리와 본성은 우리에게 나타날 수 있고 나타나야 한다. 이것이 이신론 운동 의 일반적 신념이다. 벨이 주장하였듯이, 신은 너무나 자비로 운 존재이기 때문에 전쟁, 학살, 부정의 온갖 씨앗을 만들어낸 계시종교처럼 그렇게 사악한 것을 만들 수가 없다. 독일에서도 주로 이러한 동기로 인하여 이신론은 중단 없는 발전을 거듭한 46H) agB uea ,y l e1 ,7 37C, oVmoml.e nII,t a i3r 6e6 쪽P .h il o sop b iq u e, Oeuvres Di ve rses, The

다. 18 세기 독일의 지성사에서 이신론 운동의 성장은 10 년을 단위로 한다. 영국 자유사상가들의 저술에 관한 문헌 해설 및 비평은 여러 잡지들의 정기항목이 되었다 .47) 물론 독일에서 자 연종교의 정당성을 위한 싸움과 〈이성과 계시 사이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프랑스에서처럼 그렇게 신랄하지는 않았다. 왜냐 하면 이 싸움의 적은 프랑스의 경우와 달랐기 때문이다. 그 절 대적 권위와 힘으로써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고자 했던 정통교 리와 교회의 교권제도(敎權制度)는 독일에서 더 이상 이신론 운 동의 적이 되지 못했다. 독일 이신론의 임무는 새로운 사상의 다양한 씨앗들을 한데 모아 종교적 체계를 완수하는 일이다. 라이프니츠철학은 독일에서 종교사상을 발전시키는 지적 매개 물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 매개물은 가장 대립적인 원리들조 차도 포괄시키고 조화시킨다. 라이프니츠 사상의 기본 경향인 조화의 경향은 또한 독일 이신론에서도 생생하게 살아남는다. 볼프의 체계에는 신앙 내용과 지식 내용의 차이도 없고 계시와 이성의 차이도 없다. 양자의 요구는 세밀하게 균형이 잡히고 정확하게 규정된다 . 로크와 라이프니츠에게서처럼 신앙 내용의 비합리성이 논의되기는 하나, 이 내용이 오직 이성에서만 나올 수 있다거나 혹은 신앙에는 초자연적 요소가 없다거나 하는 주 장을 내세우는 사람은 없다. 이성과 계시는 지식의 두 원천이 댜 양자는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보한다. 이러한 협동 작업의 결과로서만 종교적 진리의 통일적 의미가 획득될 수 있음을 양자는 확신한다. 이 두 힘은 서로 대립을 불러일으 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 조화롭게 결합한다. 볼프학파 내에서는 47) 독일 이신론의 확대과정에 대해서는 예컨대 Hett ne r, Lit er atu rg e schi- cbte des achtz e hnte n j ab rhunderts , 3. Aufl . III, 264 쪽 이하를 보라.

계시신앙의 기본 내용을 바꾸지 않으려는 정통파의 자리가 마 련된다 그렇긴 하나 이 신앙이 표현되는 형식은 점차 변하 고, 그리고 논증의 방법 및 논증의 요구가 점차로 중요성을 띠 게 된다 . 48) 독일에서 진정한 의미의 신학적 개혁은 제믈러 Semler, 자크 Sack, 슈팔딩 Sp al din g , 예 루살렘 Jer usalem 등과 같은 사람들에 의한 소위 〈신신학(新神學, Neolo gi e) 〉에서 일어 나는 바, 이것은 한 단계를 넘어선다. 그것은 다른 원천에서 주어진 신앙 내용을 형식적으로 증명하고 지지하는 데 이성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또한 이성을 통하여 이러한 내용을 규정 하고자 한다 . 그것은, 만일 이러한 규정에서 나올 수 없는 요 소들이 있다면, 이것들을 모조리 교리에서 없애버리고, 또 교 리 역사의 연구를 통하여 이런 요소들이 순수 신앙내용이 아니 라 후에 첨가된 이질적인 것임을 밝히려 한다. 이렇게 하여 얼 마 동안 계시 개념이 그대로 유지되지만, 계시내용은 실질적으 로 축소된다. 그러나 이 계시 개념도 곧 이성에 일치할 수 있 는 진리를 지지하고 인가하는 목적으로만 사용되기에 이른다. 엄밀한 의미의 논층 즉 삼단논법적 증명 대신 이제 점차 경험 적 증명이 들어선다. 그러나 이 경험적 증명온 구체적 역사 사 실에서가 아니라 내적 확실성에서 그 증명 근거를 구한다. 〈나 의 경험이 나의 증명이다〉라고 예루살렘은 말한다. 그에게 있 어 모든 종교 증명의 근거가 될 경험의 본질은 마음의 평화이 며, 이론 능력으로서의 이성은 결코 이 마음의 평화를 줄 수 없다. 그리고 이 평화는 이성보다 훨씬 많은 축복을 우리에게 준다 .49) 종교적 확실성의 참된 원리로서 주관성을 내세움으로써 48) 자세한 것은 Troeltsc h, Au fk l 걸 run g 전집 4 권, 370 쪽 이하를 보라 .

소위 〈객관적〉 법정(교리)이 지니는 모든 권위는 거부된다. 이 로부터 이 권위를 명백히 폐기하는 데까지는 이제 한 걸음만 내디디면 족하다. 이보다 좀 뒤늦게 나타난 신학적 합리주의는 이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디딘다. 그것은 신앙내용 전체를 이성 의 법정에 내세우며, 독자적인 인식 원천으로서의 계시를 불필 요한 것으로 선언한다. 이렇게 해서 이신론의 기본 주장은 모 든 반대를 이겨내고 드디어 신학의 전면에 부각된다. 자크는 〈계시가 ‘이성의 망원경’ 이며, 따라서 계시가 없다면 이성은 가장 중요한 종교적 진리를 전혀 볼 수 없거나 아니면 흐릿하 게만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하여 라이마루스 Re i marus 는 이 비유에도 한계가 있음을 주장한다. 시각의 도구들이 예 컨대 망원경이나 현미경이 아무리 섬세하게 발달된다 하더라 도, 우리가 지닌 자연적 시력이 없다면 이 도구들도 아무 소용 이 없다. 이처럼 지각의 영역에서 자연적 지각기관이 비록 빈 약하더라도 필수불가결하듯이, 정신의 영역에서도 모든 지식은 결국 자연이 준 정신의 근본 힘에 의존한다 .50) 이신론은 자신의 앞길에 놓여 있던 모든 장애물을 극복한다. 해를 거듭하며 점점 더 부풀어 오르는 수많은 변신론적 문헌에 도 불구하고 이신론의 결정적 승리는 피할 수 없이 눈앞에 도 49) 독일에서 〈신설(新說)채용 Neolo gi e 〉의 발전과정에 대해서는 특히 Aner, Theolog ie d erLessin g z eit, Halle, 1929 에 들어 있는 풍부한 재료 를 보라.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18 세기 독일의 〈신설채용자〉들과 17 세기 영국 신학자들 사이의 밀접한 관계가 특별한 관심거리가 된 댜 예컨대 예루살렘의 〈종교적 경험〉 개념은 케임브지학파 사상가들 에 의해 이미 구체적으로 암시되고 있다. 이에 관한 자세한 것은 Cassir e r, Di ep la to n is c be Renais s ance in Eng l and , 19 쪽 이 하를 보라. 50) Reim ariu s , Abhandlung van den vomehmste n Wahrheit en der nati ir- lich en Re ligi o 뼈 서 문을 보라.

래한 듯 보인다 . 그런데 여기서 정통 교리의 무너져가는 체계 를 위한 도움이 전혀 예기치 않은 방면에서 나온다 . 이 도움을 준 자는 이 체계의 최대 대립자 중의 하나이지만, 여기서는 기 묘하게도 이신론에 대립된다는 측면에서 도움을 준 자와 교리 체계는 동료가 된다. 이신론을 반박하고 그 전도 양양한 듯한 길을 막은 자는 신학적 정통주의자가 아니라 철저한 철학적 회 의주의자였다 . 영국에서 사뮤엘 클라크 Samuel Clarke 는 『신의 존재 및 속성의 증명』에서 논리적 형안을 가지고 다시 한 번 기독교 교리의 전 내용을 보편타당한 전제들부터 연역해 내려 고 시도하였다. 볼테르조차도 클라크의 재능에 감탄을 금치 못 한댜 그는 『영국인에 관한 편지』에서 클라크를 가장 어려운 과제를 감당해 낼 수 있는 〈진정한 사유 기계 une vraie machin e a ra i sonnemen ts〉라고 묘사한다. 볼테르는 후에 가서도 이 판단 을 철회하지 않는다. 『형이상학론』에서 그는 으뜸가는 〈이성의 기술자〉로서 로크의 바로 옆 자리에 클라크를 앉힌다 . 그러나 클라크의 엄밀한 논리적 증명은 이신론의 주장을 되받아 치는 듯이 보이긴 하지만, 또한 동시에 정통교리의 허약성을 이전보 다 더 두드러지게 드러내 보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앤소니 콜 린스 An th on y Co lli ns 는 『자유사상 논의 A Di sc ourse of F reeth i n k - i n& 에서 〈클라크가 신의 존재 증명을 시도하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신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았다〉고 역설적으로 말한다. 논리적 내지 형이상학적 독단론에 철저히 반대한 흄은 논리학 자나 형이상학자가 할 수 없었던 일을 이룩한다. 이신론에 새 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이 문제를 통해 이신론의 주추돌을 뽑아 버린 사람은 흄이다. 이신론이 자신의 자연종교 개념을 정초하 는 출발점은 〈어디서나 똑같은 인간본성이 있으며, 이 인간본

성은 이론적인 그리고 실천적인 근본 인식들을 지닐 뿐만 아니 라 이 인식들을 절대적으로 확신한다〉는 가정이다. 그러나 이 러한 인간본성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것이 경험적으로 주어 진 사실이란 말인가, 아니면 단지 하나의 가설이란 말인가? 이 신론의 주요 약점은 그것이 이러한 가설을 암암리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요, 이 가설을 독단적으로 믿는다는 점이다. 흄은 이 독단을 비판한다. 이신론에 대한 흄의 반대는 이성에 관련 된 것도 아니고 계시에 관련된 것도 아니다. 그는 단지 이신론 을 순수 사실적 지식을 죽 경험을 기준점으로 삼아 평가한다. 이 평가에 의하면 이신론의 자랑스러운 전 건축물은 진흙 바탕 위에 서 있다 . 왜냐하면 자연종교의 기초로서 이신론이 내세운 〈인간 본성〉이라는 것이 그 자체 실재하는 것이 아니요, 단순 한 허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경험이 알려주는 바에 의하면 인간본성이란 이론-구성적인 이신론적 시도와는 전혀 다른 모 습으로 드러난다. 이제 인간 본성은 기본적 진리 즉 선천적 ap rior i 진리의 창고가 아니라 본능들의 어지러운 얽힘이요, 질 서 Kosmos 가 아니라 혼돈 Chaos 이댜 인간 본성을 더 깊이 파악 하면 할수록, 그리고 이것을 더 사실대로 기술하면 할수록, 그 것은 더욱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듯이 보이는 외양 죽 질서 정연한 듯이 보이는 외양을 상실해 간다. 흄은 이론적 관념의 영역에서도 이미 이러한 결론을 얻었다. 우리는 보통 〈충족 이 유율〉을 모든 이론적 지식의 원리라고 보며, 이 원리로 말미암 아 우리의 모든 지식은 통일성과 내적 연관성을 지닌다고 생각 한다. 그러나 이 개념을 보다 날카롭게 분석해 보면, 이러한 생각이 환영에 불과함이 드러난다. 왜냐하면 우리 지식의 밑바 침이 되는 원인이라는 개념 자체가 객관적인 근거를 지니지 못

하기 때문이다. 그 개념은 지각에 의해 직접 확인되는 것도 아 니요, 선천적인 필연성도 지니지 못한다 . 그것은 단지 관념 유 희의 산물이요, 이 산물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원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상상력의 유희 및 기계적인 유희 법칙에 의한 것 이댜 그리고 이것은 종교적 관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관념들이 지니는 소위 객관적인 내용 및 고귀한 의미는, 우 리가 이 관념들의 원천을 되돌아 보고 이것들의 생성 발전과정 을 조사해 보자마자, 곧 환영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난다. 이 원천에는 어떤 사변적인 내용이나 윤리적인 내용도 본래 들어 있지 않다. 거기에는 존재의 제일 원리에 대한 성찰도 그리고 세계 질서의 원인자에 대한 성찰도 보이지 않으며, 무한한 지 혜와 선을 지닌 존재에 대한 귀의 (歸依)의 염 (念)도 엿보이지 않는다 . 신개념을 최초로 만들어내고 또 이 개념을 지탱시켜 주는 것은 본래 이러한 성찰이나 귀의가 아니다. 일반 사람들 에게 이러한 순수 철학적인 고찰이란 어울리지 않는다 . 인간은 철학자로서 인생을 시작하는 것도 아니요, 〈그래도 인생의 마 지막은 철학자로서 끝맺는다〉는 것도 헛된 희망의 표현에 불과 하댜 인간은 본래 추상적인 이성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욕 망과 정열에 복종한다. 욕망과 열정이야말로 최초의 종교적 관 념들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이 관념들을 지속시켜주는 힘의 원 천이기도 하다 . 종교적 관념들은 이성의 사유나 도덕적 의지의 자식들이 아니요, 따라서 이것들로부터 그들이 존속하는 데 필 요한 영양분을 공급 받지도 않는다 . 인간을 맨 먼저 신앙에로 이끌어 가고 또 꾸준하게 이 신앙에 붙들어 매두는 것은 희망 과 공포의 정서이다. 여기서 우리는 종교의 진정한 원천을 본 댜 종교는 논리적이거나 윤리적인 근거에 뿌리를 박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인성학적 (서生學的, anth o p o log isc h) 원인 만을 지닌다. 그것은 초자연적 힘에 대한 공포로부터 그리고 이 힘을 잘 달래어 인간의 뜻에 복속시키려는 인간의 희망으로 부터 생긴다. 따라서 여기서도 우리의 종교적 생활을 지배하고 제어하는 것은 열정의 유희요, 상상력의 유희이다. 미신과 악 마에 대한 공포가 신관념의 진정한 원천이다. 이러한 시원적인 신관념을 훨씬 넘어서는 보다 고귀하고 순수 영적인 종교를 이 끌어 댐으로써 이러한 결론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종교의 합리적인 변용과 이상주의적 의상(衣袋)을 보지 말고 이 속에 감추어진 종교의 진정한 실제 모습을 냉정히 들여다 볼 때, 순수 영적인 종교 등등의 생각은 쓸모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교는 그 시작에서 그 끝 까지 그리고 가장 낮은 단계에서 가장 높은 단계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동일하다. 종교의 첫 출발에서 지배했던 심리적인 근본 힘이 종교의 진행 과정을 이미 규정하고 발전단계 전체에서도 생생하게 영향력을 끼친다. 미신은 점점 섬세하고 세련되어가 는 외양의 모습을 갖추나, 그 내적 본질은 이 외양을 통해 변 하는 것이 아니다. 〈고급〉 종교와 관련된 언어의, 추상적 개념 의, 그리고 도덕적 관념의 장막을 벗겨낸다면, 종교의 본 모습 은 어디서나 똑같다 . 〈불합리하므로 믿는다 Credo qu ia absurdum 〉는 표어는 언제 어디서나 그 오래된 힘을 발휘한다. (미사에서 제물인 밀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한다 는) 성체변화(聖體變化, Transsubs t an ti a ti on) 의 교리보다 논리적 으로 더 큰 불합리가 어디 있는가? 실증 종교들의 신앙교리보 다 인간사회에 윤리적으로 더 해로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고 급〉 종교와 〈저급〉 종교의 차이는 공포와 희망 이외에 제 삼의

계기가 첨가되는냐 아니냐의 차이다. 이 새로운 계기는 지적인 세련화에서 나오나, 윤리적 의미에서 볼 때 그것은 발전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퇴보이다. 이것은 아첨의 동기요, 이로 인해 인 간은 자신의 신을 고양시켜 지상적인 완전성의 모든 척도를 넘 어서게 하고, 더욱 더 고귀한 옷을 신에게 입힌다. 그러나 우 리가 인간들이 실제로 하는 짓들을 보다 세밀히 관찰하고 조사 해 본다면,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이 모든 고양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은 옛날 모습 그대로 남아 있음을 안다. 전선(全善)하 고, 전지(全知)하고, 정의(正義)로운 기독교 신은, 칼빈주의의 신상(神像)에서 볼 때, 원시종교가 두려워해서 섬겼던 폭군처럼 그렇게 무자비하고 음험하고 심술궂고 제멋대로인 폭군이 되어 버린다. 악마에 대한 공포는 이렇게 해서 모든 〈고급〉 종교의 관념들의 근거가 된다. 그리고 이 공포심은, 이것이 더이상 밖 으로 분명하게 노출되지 않게 되었다고 해서 그리고 원시종교 가 소박하게 드러냈던 결함들이 모든 위선에 의해 감추어졌다 고 해서, 조금도 개선되는 것이 아니다 .51)

51) Hume, TbeNatu ralHis tor y o J R elig ion , Sect. I ff., VI, VII-XV.

이것이 흄이 말하는 〈종교의 자연사〉이다. 그는 자연종교를 일거에 격퇴시키고 자연종교란 철학적인 꿈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준다. 계시종교의 체계를 가장 위험한 적(자연종교)으로부 터 구해준 것은 다름아닌 철학 자체이다. 그러나 흄의 분석의 날카로운 칼날은 정통교리 체계에 대해서도 똑같은 치명상을 입혔댜 회의론은 자연종교 뿐만 아니라 계시종교에 대해서도 최후의 판결을 내린다• 〈눈에 보이는 자연으로부터 지고한 창 조주 같은 고귀한 원리를 이끌어낼 수 있다니, 인간 이성은 참

으로 고귀한 특권을 누리는구나! 그러나 문제의 이면을 살펴보 라. 모든 시대의 모든 민족들에게서 실지로 일어나는 종교의 진행 과정을 살펴보라 . 이 세계에 실제로 있는 종교적 원리들 울 조사해 보라. 그러면 이것들이 열병환자의 꿈에 지나지 않 음을 확신할 것이다.…… 신학적 모순처럼 그렇게 큰 모순이 또 있을까? 날카로운 오성과 최고의 문화를 지닌 사람이 어찌 그러한 모순을 옹호할까? 종교적 율법처럼 그렇게 엄한 짓이 또 있을까? 관능만을 좇는 방탕한 사람이 어찌 그것을 지킬 수 있을까? …… 전 세계는 수수께끼요, 설명될 수 없는 신비이 댜 이러한 주제에 대한 정확한 조사의 유일한 결론은 희의, 불 확실, 내지 판단의 보류이다. 그러나 인간 이성온 덧없고 허약 하기 그지없기 때문에, 그리고 이성은 일반 상식에 다시 전염 됨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어나기 때문에, 이러한 의식적이고 방법적인 회의를 고수하기가 어렵다. 우리의 시야를 넓혀서 미 신과 미신이 서로 싸워 죽던 말던 상관하지 않을 때, 우리 자 신은 싸움의 광란 속에서나마 이 광란을 피하여 철학이라는 좀 애매하나 그래도 조용한 나라로 몸을 숨길 수 있다.〉 52)

52) Hume, 같은 책, Sect. X.V.

흄의 이러한 생각과 그 논리적 귀결은 18 세기의 전형적인 것 이 못된다. 이 세기는 인간 이성을 너무나 신뢰하였으므로 이 러한 중요한 사안에서 이성을 거부할 수 없었다. 이 세기는 회 의에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명백하고 확실한 결정을 내리고자 한다 흄의 『종교의 자연사』는 계몽기의 지식사에서 하나의 외 따른 현상이다. 흄에게서처럼 이성과 경험의 가파른 단절에 이 르는 길이 아니라 양자의 요구를 적절히 조화롭게 연결시키는

또 하나의 길이 남아 있다 . 회의적 공격에 맞서 대항하기 위해 서 자연종교의 추상적 개념은 명확한 내용에 연결되어야 한다 . 그 개념은 더 이상 단순한 요청으로 남아 있을 수 없다 . 이 개 념의 주장 내용이 현실적인 종교생활에 자리잡고 있음을 밝혀 야 한댜 이러한 자연종교의 개념은 이성에서 뿐만 아니라 구 체적 역사에서도 정초되어야 한다. 내적 필연성을 지닌 이 과 제로 인하여 18 세기 사상은 방법론적으로 적대시하였던 또 하 나의 일반적인 문제에 다시 대면하게 된다. 즉 종교와 역사의 관계가 이해되어야 한다. 이 두 개념이 상호 제약하고 있는 모 습을 그리고 종교의 구체적 실재가 바로 이 관계 속에 뿌리 박 고 있는 모습을 살펴보아야 한다 . 3 종교와 역사 18 세기는 역사 세계를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역사 세 계와 대치 상태라고 하거나 혹은 18 세기의 사고 방식은 비역사 적이라고 하는 견해는 아직도 통용되고 있으며 또 근절하기 어 려운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종교 문제의 발전 과정 울 살펴봄으로써 단번에 부정된다. 왜냐하면 종교의 내적 변화 는 〈종교가 형이상학적이고 신학적인 사유의 지배로부터 해방 되고, 새로운 판단의 규범을 스스로 확보함〉으로써 일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규범은 단순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요소의 종합에 근거한다 . 이성온 역사에 연관되고 역사는 이성 에 연관된다. 이러한 상호연관에서 새로운 종교관 내지 새로운 종교적 인식 이상이 획득된다. 이성과 역사는 분명히 구분되며

서로 긴장된 대치 상태를 유지한다. 바로 이러한 긴장과 대치 가 18 세기 종교적 사유의 내적 운동을 일으킨다. 이성을 위해 역사를 희생시키고 역사를 이성으로 지양해 버리는 단순한 수 평화 과정을 추구하는 대신 역사와 이성의 양극성이 모두 인정 되고 정확히 규정된다. 계몽철학의 근본 신념에서 볼 떄, 이 양극적 관계는 대립된 두 힘의 이상적 균형과 조화를 추구한 다 . 다시 말해서 하나의 실재와 하나의 진리가 역사 뿐만 아니 라 이성에도 밝혀진다. 밝혀지는 형식은 서로 다를지 몰라도 그 밝혀진 본질 내용은 동일하다. 역사를 이성의 거울에 비추 고 이 거울에서 역사의 모습을 보는 한편, 또한 모든 합리성은 역사적 관점에서 조명되어야 한다. 이 두 파악 방식은 상호 작 용을 통하여 그 방향과 목적을 설정한다. 영원 불변적인 이성 규범들의 고찰은 〈 이 규범들이 경험적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 구체화되는 방식의 고찰〉과 서로 보완 관계를 지녀야 한다. 정 신의 진정한 〈계몽 〉 은 서로 대립하는 이 두 고찰 방식의 조화 로운 통일에서만 가능하다 . 지성의 〈존재〉이해를 위해서는 지 성의 〈생성〉이해가 필수적 계기로서 전제되며, 다른 한편 생성 의 진정한 의미는 이것이 불변적 존재와 관련될 때에만 제대로 파악될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인식 개념이 극복해야 할 최초의 어려운 난관 은 종교적 확실성의 기초문제 즉 성서의 진리 내용을 방법적으 로 명료하고 확실하게 규정하고 정의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는 이미 종교적 사고방식의 혁명을 암암리에 뜻한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종교개혁에 의해 부정되기보다는 오히려 더 강조된 〈말 씀 계시설 Verbal in s pi ra ti on 〉 53) 의 원리에 대한 비판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의 주된 노력은 〈성서의 진리가 단일하고

유일하며 예의가 없고 무제한한 것임을 보이려는 것〉이다. 그 리고 이러한 진리가 주장되려면, 성서에는 어떠한 단절도 어떠 한 불일치도 없어야 할 것이다. 모든 단어와 모든 문자 하나하 나가 그 성스러운 가치에 있어서 전체와 동가(同價)를 지니며 계시 확실성의 충분한 타당성을 지녀야 한다. 그러나 철학사상 의 발전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요구는 이미 17 세기에 어려운 난관에 봉착한다. 왜냐하면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의 원리는 이 요구 앞에서도 역시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데카르트 자신은 자신의 새로운 방법이 오직 지식에 관한 것이요, 신앙 에 관한 것이 아님을 거듭 이야기한다. 신학적 교리의 모든 문 제에 관해서 그는 성서와 교회의 권위에 따를 것임을 분명히 말한다. 그러나 그의 직접 제자들 동료들은 데카르트의 이러한 조심스러운 태도를 벗어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순전히 개인 적으로 데카르트에게 감홍을 받은 사람들도 그리고 종교정신을 일깨우고 심오하게 하기 위해 데카르트의 원리를 이용하고자 했던 사람들도 모두 자연스럽게 이러한 분위기에 젖어들 수밖 에 없었다. 책 제목에서 이미 성서의 비판적 역사를 주장하는 최초의 저술이 오라토리오 서클 54) 에서 나왔다. 이 책 즉 『구약 성 서 의 비 판적 역 사 His t o i r e cri tiqu e du vie u x Tes t amen~』 의 저 자 인 시몽Ri chard S im on 은 친구인 말브랑슈에게 영향을 받았다. 시몽은 성서의 각 편(篇)들의 정당성(正當性)을 조사하고, 이것 들의 성립에 대해 정통적 견해의 기반을 혼들 수 있는 가설을 53) 역주: 성서의 한 마디 한 마디마다 성령을 통한 영감과 계시가 들 어 있다는 신학이론. 54) 역주: 통속적인 기도나 설교를 목적으로 1564 년 로마에 설립된 가 톨릭의 수도회 .

세운다. 이 최초의 역사적 비판은 정통 교회의 편에서 이루어 진 것이다. 그것의 직접적인 목적은 가톨릭 교회를 위한 것이 다. 왜냐하면 시몽의 목적은 〈성서만이 유일한 진리요 다른 모 든 종교적 권위는 거부되어야 한다〉는 신교의 주장이 터무니 없음을 밝히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서만으로는 데카르트가 불러일으킨 회의에 완전한 방패막이가 못된다. 따라서 성서는 다른 권위 즉 교회의 전통의 증거를 통해 보강되어야 한다 .55)

55) Rich ard Sim on, Hi stoi re crit iqu e du vie u x Testa m ent, Pari s, 1678 을 참조.

따라서 여기서는 아직도 성서에 대한 보다 자유로운 역사적 파 악과 평가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여기서 역사의 판결은, 이 것이 정통 교회의 목적에 부합될 때에만, 요구될 뿐이다. 스피노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실질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제 기 된다 . 그의 『신 학 -정 치 론 Theolog isc h-Politi sc her Trak ta ~』 은 성서 비판의 철학적 정당성과 정초에 대한 최초의 시도이다. 스피노자가 이러한 일을 했다고 말하면, 언뜻 보기에 이해가 안 갈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의 형이상학과 논리적 근거를 살펴볼 때, 이것들은 특별히 역사적 통찰이라고 할 만한 것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스피노자에게 있어서 확실성의 궁극 원천은 생성계가 아니라 순수 존재계에 있고, 경험적 변화가 아니 라 〈불변적 인 본질과 사물의 자기 완결적 인 본질 동일성 > 에 있다. 이러한 궁극 원천이 되는 것들만이 이성적으로 파악 될 수 있고, 유한적이고 파생적인 특수 존재들은 단지 〈상상력 Ima gi na ti on 〉을 통해서만 파악된다 시간과 시간적 관계에 대한 지식은 모두 상상력의 매개를 통한 것이다. 그것은 따라서 철 학적 지식에 즉 〈영원한 모습 아래서의 sub sp ec ie aete r ni> 지식

에 이르지 못한다 . 철학적 지식은 그 완전성에 이르기 위해서 시간적인 모든 요소를 제거해야 된다 . 스피노자의 이러한 견해 에서 볼 때, 〈역사적 진리〉는 미리부터 배제되는 듯 싶으며, 엄 밀히 말해서 〈명사와 이에 첨가된 술어 사이의 모순 co nt ra­ dic tio in adje c to >, 즉 <‘ 역사’ 와 ‘진리’ 간의 모순〉이 되는 듯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피노자는 성서의 역사적 개념을 최 초로 명백히 파악하고 냉철하고 정확하게 발전시킨 사람이다. 스피노자의 전체계에서 이 개념의 위치를 추적해 볼 때, 그 개 념은 역사적인 탐구나 역사적 탐구 방법에서 직접 나타나는 것 이 아니라, 전체계의 논리적 전제들로부터 간접적으로 드러난 다. 성서나 정신이 지니는 특별한 위치에 대해 충격을 가한 것 은 그의 일원론이었다. 연장(延長)과 사유, 자연과 정신, 그리 고 사물의 질서와 관념의 질서는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동일한 원칙에 근거한 동일한 질서이다. 그리고 역사적 존재에 대한 고찰은 자연적 존재에 대한 고찰과 다른 것이 아 니다. 양자는 같은 관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성서 해석의 방법은 자연해석의 방법과 크게 다른 바 없다. 실제로는 거의 같다. 자연해석이 자연의 역사를 조사하고 이것을 확실한 재료 로 삼아 원리에 따라서 자연물의 정의를 이끌어내듯이, 성서 해석은 성서의 충실한 역사를 조사하고 이것을 확실한 재료로 삼아 원리에 따라서 성서 저자의 뜻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 이 렇게 한다면 그리고 성서 자체와 성서 역사로부터 얻을 수 있 는 것 이의의 다른 재료나 원리를 첨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오류의 위험에 빠지지 않고 우리의 파악 능력을 넘어서는 것에 대해서도 자연의 빛을 통해 알 수 있는 것 못지않게 확실히 말 할 수 있다.〉 56) 이것이 스피노자가 대변한 원리이다. 이 원리는

간단하다. 하지만 그 날카로움이 매우 결정적이고 그 영향 범 위가 매우 광범하다. 이제 존재 내지 자연사물은 성서를 근거 로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성서 자체가 존재의 일부요, 따라서 성서도 존재의 일반 법칙에 따라서 파악된다 . 성서는 자연을 푸는 열쇠가 아니라 자연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 성서는 이제 모든 경험적 인식에 타당한 규칙들에 따라서 다루어져야 한다. 성서 자체가 다른 자연사물과 마찬가지로 전적으로 제약되고 매개되고 파생된 것이요, 성서 전체가 소산적(所産的) 자연 natu ra na t ura t a 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 사물의 근본 원리 죽 능산적 (能産的) 자연 natu r a na tu rans 에 대한 절대적 진리 내 지 형이상학적 통찰이 성서로부터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성서 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방법, 성서의 상대적 진리를 발견하는 방법은 경험적 탐구 수단을 써서 성서를 다루고 분석하는 방법 이외에는 없다. 우리가 성서 기록들을 그 본디 자리에 되돌려 놓았을 때, 즉 우리가 이 기록들을 시간을 넘어서 타당한 진리 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생긴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고, 저 술한 자의 개인 성격을 고려하여 이 기록들을 설명할 때, 성서 가 지닌 모든 문제들은 스스로 해결될 것이요, 이해할 수 없는 모순들도 제거 될 것이다. 『신학一정치론』의 이러한 설명방법 온, 그후의 과학적인 성서 비판의 성과들에 비추어 볼 때, 종 종 기이하고 자의적인 냄새가 난다. 그러나 방법적인 원칙 자 체는 이러한 약점과 결함에 의해 하나도 손상되지 않으며, 또 이 책에 대한 모든 적대시에도 불구하고 이 원칙은 보편적으로 승인되었다. 56) Sp ino za, Tracta t u s the olog ico -po l i ticu s, Cap . 17; deuts c he Ausga be von Carl Gebhardt, Leip z . 1908, ph il os . Bib l i ot h e k, Bd. 93, 135 쪽

스피노자는 18 세기 사상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 같지 는 않다. 그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기를 피했으며, 그의 가르침 온 간접적으로 그리고 다분히 희석화된 상태로 언급되었다. 벨 의 설명과 비판은 스피노자주의에 대한 논의를 일면적이고 잘 못된 관점으로 이끌고 가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성서의 역사적 비판의 이념은 조금도 방해를 받지 않고 발전한다. 이러한 발전 과정에서 방법 내지 체계에 대한 보편 적 고찰보다는 오히려 인문주의적인 지식의 이상이 더 크게 영 향을 끼친다. 스피노자가 아니라 에라스무스가 이 운동의 진정 한 지도자이다. 에라스무스가 신약성서를 비판적으로 편찬하는 가운데, .二 l 는 최초로 인문주의적 종교정신과 기질울 고전적으 로 표현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순수한 성서 원전의 복구는 동시에 순수한 기독교 교의의 회복을 뜻한다. 이 원전을 후에 임의로 추가된 거짓 내용들과 완전히 분리해 낼 수 있다면, 순 수 기독교의 진솔함과 도덕적인 근본 뜻이 밝혀질 수 있다. 에 라스무스의 이러한 사고방식은 그의 위대한 제자 그로티우스에 게 감명을 주었다. 그로티우스는 인문주의적이고 신학적인 여 러 원천들에서 지적 자양분을 섭취한 포괄적 정신의 소유자이 다. 이러한 정신에서 최초로 과학적인 성서비판의 완전한 계획 이 수립 된다. 그가 쓴 신 약과 구약의 『주석 Anno t a ti one s,』 은 18 세기의 탐구 방법을 그 세부에 이르기까지 예시 (豫示)하고 있 다. 에르네스티 Emes ti는 이 책을 크게 칭송하면서 자신의 작업 의 모범으로 삼는다 . 제믈러의 『정경(正經)의 자유로훈 탐구에 관하여』 5” 에서 이러한 발전은 제 일단계의 완성을 본다. 이후의 57) Abband/ung vonfr eier Unte r sucbung des Kanons 4Bde . , (1771 ) .

철학적 비판은 이 탐구에 더 보탠 것이 별로 없다. 그것은 보 통 이 탐구의 결과들을 참조하는 것으로 그리고 이 결과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백과전서에 기고한 디 드로의 「성서」 항목은 이미 성서비판의 기본 방향과 과제를 거 의 완벽할 정도로 서술하고 있다. 디드로는 성서의 여러 책들 의 진위를 가려낼 여러 기준들을 제시한다 . 그는 이 책들의 내 용을 세심히 분석할 것과 이것들이 쓰여진 여러 상황을 조사할 것과 이것들이 쓰여진 연대를 정확히 확정할 것을 주장한다. 이렇게 해서 〈 말씀 계시설 〉 의 원리는 확실하게 그 힘을 잃어버 린다. 그대신 성서의 역사적 파악과 평가가 신학 체계의 중심 에 자리를 잡게 된다. 이렇게 되었을 때 혹시 신학 체계의 진정한 정신이 손상되는 것은 아닐까? 역사적 의미를 도입함으로써 신학은 중대한 위기 를 만나는 것은 아닐까? 스피노자에게 있어서 성서의 역사성은 확실히 부정적 의미를 지닌다. 그에 의하면 시간적 관계에 관 한 모든 지식은 〈상상력〉을 통한 것이다 . 이러한 지식은 완전 한 관념이나 객관적인 통찰을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주관적인 지식이요, 의인관적(擬人觀的) 지식일 뿐이기 때 문이다 . 스피노자에게 있어서 성서를 시간적으로 제약된 것이 라고 보는 것은 성서가 의인관(擬人觀) 내지 신인동형관(神人同 形觀)의 요약임을 의미한다. 성서는 철학적 진리의 영역에서 완 전히 추방된다. 왜냐하면 철학적 진리는 〈상상력 im a gin a ti o 〉에 의한 지식이 아니라 이성 ra ti o 과 직관intuiti o 에 의한 지식이기 때문이다. 〈계시〉가 지니는 최고의 보증성은 여기서 오히려 계 시의 결함으로 나타난다. 어떤 높은 힘이 어떤 개인에게 계시 를 주고 마치 이 사람을 무의지적이고 무의식적인 도구처럼 사

용한다면, 이는 이 사람에게서 진정하고 엄밀한 진리 가능성을 빼앗아 버리는 꼴이 된다 . 왜냐하면 모든 진리는 내적인 자유 와 합리적인 통찰에 의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감정과 상상 력의 힘이 이성의 엄격한 법칙에 완전히 종속될 때에만 진리는 획득될 수 있다. 종교적인 예언자나 선지자들에게서 나타나는 감정의 고조나 상상력의 강한 힘은 〈객관적 진리의 발견〉내지 〈보편타당한 도덕적 명령울 알림〉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주 관적인 것에 더욱더 의존하는 꼴이 된다. 신에 관해 말한다고 주장하는 예언자의 목소리는 단지 자기자신에 관해서 말하는 꼴이요, 자신의 내적 상태만을 보여줄 뿐이다. 예언의 문제를 논하는 신학-정치론의 서론은 이런 주장을 날카롭게 펼친다. 신의 모습은 예언자마다 변한다. 그 모습은 예언자 개개인의 상상력과 심성에 따라 만들어진다. 예언자들의 말은 그들의 기 질과 상상력과 경험내용에 따라 달라진다 . 〈사람이 어떠하냐에 따라 신의 모습은 결정된다.〉 부드러운 사람에게 신은 부드럽 고, 화가 난 사람에게 신은 화난 모습으로 나타나고, 온화한 사람에게 신은 온화한 존재로 나타난다. 슬픈 심성의 사람에게 는 슬픈 모습으로, 엄한 사람에게는 엄한 모습으로, 자비로운 사람에게는 자비로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58) 신학-정치론에 나 타난 성서 비판의 기본사상을 스피노자 체계의 언어로 풀어 말 한다면, 선지자는 소위 〈실체〉 죽 신의 본질을 나타낼 수 없고 단지 이 실체의 양태만을 말할 뿐이다. 또한 〈모든 - 한정(규정) 은 부정이다〉라는 명제도 여기서 가장 잘 이해된다. 〈신은…… 이다〉와 같이 한정하는 말을 통해서는 신의 본질적 의미가 드 58) Tbeolog isc b-Polit i sc ber Trakta t, Kap . 2, deuts c he Ausg a be (Gebhardt) 41 쪽을 참조.

러나지 못하고 오히려 이 의미가 손상될 뿐이다 . 신의 특성은 보편성에 있으며, 이 보편성은 개별적인 어떠한 제한도 배제한 댜 성서의 기적은 이러한 철학적인 근본 확신에 어긋난다. 기 적은 신을 보편성과 필연성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우연적인 특 수성에서 찾는 꼴이다. 기적은 자연의 보편적 법칙과 질서에 대한 간섭이요 방해이다. 그리고 신은 이런 법칙과 질서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므로, 기적은 신을 부정한다. 〈모든 것이 오직 신의 결정에 따라서 필연적으로 진리이다. 그러므로 자연 의 보편 법칙도 신성의 필연성과 완전성에서 유래하는 신의(神 意) 즉 신의 결정일 뿐이다. 따라서 자연의 보편 법칙에 어긋나 는 일이 자연에서 생긴다면, 이는 곧 신의 결정, 신의 이성, 신 의 본성에 어긋나게 된다. 신이 자연법칙에 어긋나게 행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신이 신 자신의 본성에 어긋나 게 행한다고 말하는 꼴이요, 이는 완전히 불합리한 말이다.〉 59)

59) Tbeol. -po /it. Trakta t , Kap . 6, 112 쪽 이 하.

기적을 문자 그대로 믿는 것은, 스피노자가 볼 때, 종교를 곡 해하는 일이요, 종교의 견강부회에 지나지 않는다 . 기적을 주 장하는 것은 신울 부정하는 것이요, 신을 죽이는 일이다. 이와 같은 것은 주관적인 종교적 예언이나 계시에 대해서도 들어맞 는다. 예언이나 계시는 단지 개인 자신의 특성에서 유래할 뿐 이요, 개인 자신의 특성을 말하는 데 불과하다. 모든 개인적 특성은 보편성의 부정이요, 모든 역사성온 보편성을 제한하고 더럽히며 훼손한다. 스피노자에게 있어 종교에 역사적 방법을 도입함은 종교의 철학적 정당화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 반대로 그것은 종교적 확실성이 필연적으로 제한되어 있음

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었다. 18 세기 지성사에서 새로운 전환은, 스피노자의 종교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의 전철학의 합당함을 이해한 몇몇 위대한 사상가들이 종교적 확실성의 관점에서 스피노자를 한 단계 뛰 어넘게 되었을 떄, 일어난다. 레싱은 스피노자에 반대하는 신 학자 내지 철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모든 왜곡으로부터 스피노 자의 진정한 모습을 해방시킨 최초의 인물이다. 그는 스피노자 학설의 진정한 모습을 볼 줄 안 최초의 사람이요, 그리고 어떤 의혹이나 편견 없이 이 학설에 몰두하였다. 레싱은 말년에 이 르러서도 이 학설의 논리적 필연성과 체계적 통일성에 근본적 으로 반대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야코바J acob i와 레싱의 대화롤 통해 볼 때 레싱은 확실한 스피노자주의자로 보인다. 〈 신 성에 대한 정통적 개념들은 더 이상 나의 호감을 사지 못한다. 나는 그것들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 일죽다(―卽多), 이것 이의에 나는 어떤 것도 알지 못한다. >이 것으로 끝난다면, 레싱 의 진정한 위대함, 그의 불편부당한 위대한 포용성, 그리고 그 의 독창성의 깊이는 보여지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레 싱이 스피노자에게 크게 빚지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그 순 간에, 레싱이 스피노자의 가르침을 넘어서 방법론적이고 내재 적인 한 단계의 진전을 이룩한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 레싱의 풍요로운 업적은 물론 그의 미학 내지 문학적 비평의 분야에서 가장 뚜렷이 나타난다. 레싱은 스피노자 철학의 핵심 요소들을 받아들이기는 하나, 이것들을 자기자신의 독특한 사상 속에 소 화 흡수함으로써 이 요소들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스피노 자와 마찬가지로 레싱도 기적의 증거력(證擔力)을 부정한다 . 그 에 의하면, 참된 기적은 보편성과 필연성에서 찾아야지 특수와

우연 속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 라이프니츠가 말하듯이, 〈이성 의 기적〉이 바로 신의 참된 증거이다. 스피노자와 더불어 레싱 도 자연 개념의 보편성과 통일성을 주장하며 동시에 이 개념의 순수 내재성을 옹호한다 . 레싱에게 있어 신은 세계를 초월하는 힘이 아니라 세계 속에 내재하는 힘이다. 신은 이 세계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외부에서 간섭하는 강제의 힘이 아니라 경험세 계를 내부로부터 형성하는 힘이다. 그러나 이러한 형성력에 대 한 레싱의 개념은 스피노자의 그것과 전혀 다르다. 레싱은 스 피노자가 단지 환상으로밖에 볼 수 없었던 것에 새로운 진리의 힘을 부여한다. 레싱에게 있어서 전체와 부분 사이의, 보편과 특수 사이의 관계는 스피노자의 그것과 다르다. 레싱에게 있어 특수와 개체는 단순히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아주 중요한 궁극 적 의의를 지닌다. 이점에 있어 레싱은 라이프니츠의 견실한 후계자이다 . 〈정신은 (전체의) 한 부분이 아니라 신의 상(像)이 요 우주의 표상(상징)이다 Mens non par s est, sed sim u lacrum div i n i t at is , rep ra esenta t iv u m un i vers i〉라는 특색 있는 라이 프니 츠의 말은 레싱에게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레싱에게 있어 서 개체들은 단순히 양적인 제한이 아니라 각기 유일한 질적 규정성이요, 단순히 실재의 한 파편이 아니라 실재를 완전히 재현하는 복사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모든 시간적 존재 는 스피노자의 체계에서 표현된 것과 전혀 다른 양상을 지닌 댜 라이프니츠가 단자를 〈단일성 속에서 다양성의 표현〉이라 고 정의했듯이, 레싱은 그것을 〈불변자 속에서 시간적인 것(변 하는 것)의 표현〉이라고 정의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단자는, 이 것이 계속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전개해 나가는 한에 있어서 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자의 전개과정 하나하나는

전체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다 . 시간성의 형식 자체가 이제 존재와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오직 그러한 형 식 속에서만 촌재는 형성되고 자신의 순수한 본질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근본 개념을 종교에 적용함으로써 레싱 은 새로운 지평을 연다. 종교 원천의 역사성은 이제 종교교리 의 비판 내지 거부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종교 자체의 근원적 의미가 된다. 스피노자가 종교의 역사성을 통찰 함으로써 종교적 계시의 절대적 진리를 논박하려 한 반면, 레 싱은 똑같은 일을 함으로써 정 반대의 일을 한다. 즉 종교를 구제하고 회복한다. 종교의 모든 역사적 현현(顯現)방식들을 자 신 내에 포괄하는 종교만이 참된 종교요, 유일하게 절대적이라 고 할 수 있는 종교이다. 이러한 종교에서는 그 어느 부분도 손실됨이 없다. 이러한 종교 내에서 특수한 견해나 개별적인 오류는 간접적으로 전체 진리에 유용하며 또 전체 진리에 속한 다. 바로 이러한 근본 사상에서 레싱의 『인류의 교육 Erz i ehung des Menschen g eschlech ts,』 이 나오는 바, 이 는 라이 프니 츠의 신 정론(神正論) 개념을 새로운 분야에 적용시킨 결과이다. 종교를 〈신의 인류교육의 계획〉으로 본 레싱의 종교관은 태초에 있던 존재를 통해서가 아니라 시간속의 종교적 성장과 이 성장의 목 표를 통해서 종교를 정당화하는 역사의 신정론이다. 이러한 새로운 사상이 확립되기까지의 어려움을 알기 위해 우리는 이 점에 관련하여 레싱과 멘델스존을 비교해 본다. 이 두 사람의 종교적 이념은 내용면에서 볼 때 거의 비슷하나, 방 법적인 면에서는 차이가 두드러진다. 체계적인 근본전제에서 볼 때 두 사람은 라이프니츠의 개념들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만큼 서로 비슷하다. 두 사람 사이의 차이는 멘델스존이 대체

로 볼프 체계에서 보여지는 이 개념들의 전통적 형식을 받아들 이는 것으로 만족하는 반면에, 레싱은 역사적이고 철학적인 관 심과 비판적 정신으로 말미암아 이 개념들을 끝까지 추구하여 그 원천에 이르려고 부단히 노력한다는 점이다 . 두 사람 사이 의 고찰의 일반적 방식도 라이프니츠의 진리 형식의 구별에 의 존하므로 별 차이가 없다 .60) 라이프니츠의 인식론에 의하면, 〈영 원한〉 진리와 〈시간적인〉 진리 사이에, 〈필연적인〉 진리와 〈우 연적인〉 진리 사이에 확연한 구별이 성립한다. 전자는 순수이 념들 사이의 관계만을――-이 이념들의 대상이 경험적인 실재 세계에서 발견되든 발견되지 못하든 상관 없이 -표현한다. 순수기하학이나 산술의 명제들은, 비록 수학의 엄밀한 개념에 완전히 대응하는 것이 시공적인 현실 세계에서 전혀 발견될 수 없다 하더라도, 여전히 영원하고 필연적인 진리이다. 수학적인 진리에 대한 이러한 말들은 또한 논리학과 윤리학과 형이상학 의 진리등에 대해서도 들어맞는다. 이 진리들은 여기 -지금 주 어져 있는 현실 세계에 대해서 타당할 뿐만 아니라 모든 가능 적 세계에 대해서도 타당하다. 이 진리들은 공간 속의 유일한 존재나 시간 속의 일회적 사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성 자체 의 보편 형식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성은 언제나 어디서나 동 일하고 같은 것이요, 변화나 차이의 가능성을 지니지 않는 것 이므로, 만약 차이가 있다면 이는 이성의 초시간적이고 영원한 본성에 어긋나는 일이 되어버린다. 이제 문제는 라이프니츠의 60) 이 점 에 대 한 자세 한 설 명 은 카시 러 의 논문 Die Idee der Reli gion bei Lessin g und Mendelssohn, Festg a be zum zebnji ibr i ge n Beste b en der Akademi e fiir d ie Wi ss enscbaft des Ju dentu m s, Berlin 1929, 22 쪽 이하를 참조.

이러한 진리 정의가 종교적인 확신의 문제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요, 이 정의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하는 것이다. 종교적 믿음은 어떤 종류의 확신 인가? 그 믿음은 필연적 진리인가 아니면 우연적 진리인가? 그 것은 무시간적인 합리성에 근거를 둔 것인가 아니면 시간적인 역사성에 근거를 둔 것인가? 레싱은 이 문제와 줄기차게 씨름 을 하였으며, 때때로 자신의 해결을 의심하곤 하였다. 진정 그 는 종교의 〈합리성 Vernun ftig keit〉도 포기할 수 없었고 동시에 종교 형태의 특수성 즉 종교의 시공적 제약성도 의심할 수 없 었다. 모든 믿음의 핵심은 그 자체로 타당한 무시간적 개념체 계를 단순히 수긍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일회적이고 반복될 수 없는 유일한 사건에 관련된다. 본질상 서로 다른 이 두 이 질적 계기 사이에는 어떠한 중재도 불가능한 듯이 보인다. 〈우 연적인 역사적 진리는 필연적인 이성진리가 될 수 없다.〉 〈그 리스도가 죽은 자를 소생시켰다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만 한 역사적 근거가 없다면, 이로부터 신은 자신과 같은 본질의 아들을 두었다는 것을 내가 진리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 그리스도 자신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했다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만한 역사적 근거가 없다면, 이로부터 이 부활한 그리 스도가 바로 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내가 진리로 받아들여야 하 는가? …… 역사적 진리에서 완전히 다른 종류의 진리로 넘어 가는 것 그리고 이에 따라서 모든 형이상학적이고, 도덕적인 개념들도 변형되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다론 종류로 넘 어감’ 뵤題의 轉移〕의 의미가 아닌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아리 스토텔레스의 이 말의 뜻을 달리 어떻게 해석하겠는가? 이것은 내가 아무리 뛰어넘으려고 시도해도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할밉게 넓은 도랑’ 이다. 누군가 나를 도와 이것을 뛰어넘을 수 있게 해 준다면, 제발 그렇게 해 달라고 간청을 하겠다. 그 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진정 신의 축복을 받을 만하다〉 6 1)

61 ) Lessin g , Dber den Beweis des Geis t e s und der Kraft , Lachmann-Muncker 판, 전집 13 권, 5 쪽 이 하.

18 세기의 어떤 신학이나 형이상학도 레싱의 이 문제를 충분 히 해결해 줄 수 있는 원리를 제시하지 못하였다. 레싱 자신이 그의 앞에 가로 놓인 저 〈얄밉게 넓은 도랑〉을 메워 길을 열어 야 했다. 종교철학에 관한 레싱의 마지막 저술이 이 임무를 수 행한다. 『인류의 교육』 에서 레싱은 역사와 이성의 새로운 종 합을 만든다. 역사는 더 이상 이성에 대립되지 않는다. 오히려 역사는 이성의 자기 실현의 유일한 길이다. 라이프니츠의 분석 적 정신이 그렇게 명석하고 날카롭게 구별했던 두 요소는 이제 서로 화해의 길로 접어든다. 레싱에 의하면 종교는 단순히 필 연적이고 영원한 진리의 영역에 속하는 것도 아니요, 또 단순 히 우연적이고 시간적인 진리의 영역에 속하는 것도 아니다. 종교는 이 양자의 통일이다. 그것은 〈유한자 속에서 무한자가 나타남〉이요 〈생성의 시간 과정 속에서 영원하고 이성적인 것 이 나타남〉이다. 『인류의 교육』의 이러한 사상 발전을 통하여 레싱은 진정한 계몽철학의 전환점에 도달한다. 〈신신학(新神 學, Neolo gi smus) 〉도 그리고 모범적인 합리론도 레싱의 이 길을 따라갈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양자는 이성을 단지 〈분석적 동일성〉으로 보며, 이성의 진리와 통일성의 근거를 이성의 동 일성에서 찾기 때문이다. 레싱의 근본사상에 대한 멘델스존의 태도는 역사와 이성의 대립문제에 대해 시사하는 점이 많다. 멘델스존은 『예루살렘 ]erusalem 』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로서는 ‘인류의 교육’ 의 개념을 이해할 수 없다. 고인이 된 나의 친구 레싱이 어떤 역사가에게 영향을 받아서 이런 생각 을 품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신의 섭리에 따르는 개개인에 서 볼 때 발전이란 섭리의 영원성의 일부가 이 지상에서 실현 되는 것이다 . …… 그러나 인류 전체가 시간의 경과에 따라서 항상 발전하고 자신울 완성 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은 결코 신 의 섭리처럼 보이지 않는다 . 여하튼 그것은 신의 섭리 사상을 위해 꼭 필요한 것 같지는 않다. >멘 델스존과 멘델스존류의 계 몽철학에 있어서 이해될 수 없는 일은 인간의 최고 목적의 실 현을 위해서 비합리적이고 변덕스럽고, 오류 투성이인 역사를 그 안내자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계몽철학은 변화무 쌍한 역사를 피하고 이성의 영원한 법칙에 안주하고자 한다. 그러나 레싱은 그러한 이성을 더 이상 추구할 수 없다. 그는 일찍이 위대한 합리주의자였으며 끝까지 이를 고수한다. 그러 나 그는 분석적 이성 대신 종합적 이성을, 정적인 이성 대신 동적 이성을 내세운다. 이성은 이제 운동을 배제하는 것이 아 니라 오히려 운동을 자신의 내재적 법칙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이성 자신이 생성의 흐름 속으로 들어간다. 이 때 이성은 흐름 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는 것이 아니라 흐름 속에서 자신의 확고한 자리를 마련하고 자신의 불변성과 동질성을 확보한다. 이러한 이성관에서 일찍이 신학이나 형이상학이 성취할 수 없 었던 새로운 의미와 본질을 지닌 역사 개념이 생긴다. 새로운 역사개념의 발전에서 마지막 단계를 실현시킨 사람이 바로 헤 르더이다. 그는 역사적 현실성 전체를 문제삼고, 역사 현상의 구체적 중거를 토대로 하여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을 추구한다. 이러한 헤르더의 노력은 외견상 동떨어진 일처럼 보일는지 모

르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헤르더의 사상온 계몽사상과의 단 절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사상으로부터 서서히 그리 고 단단하게 발전되어 나온 것이요, 이 사상을 지반으로 해서 성장한 것이다. 계몽철학에서 역사문제는 우선 종교 현상의 문 제 영역에서 나타나기 시작하고 또 이 영역에서 진지한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계몽철학은 역사문제의 이러한 출발과 단초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그것은 이러한 단초로 부터 더 나아가 새로운 귀결들을 이끌어내고 새로운 요구들을 확대해 나간다. 그리고 이렇게 함으로써 계몽철학은 마침내 역 사세계의 전체 지평을 확보한다.

제 5 장 역사 세계의 공략 18 세기를 〈비역사적인〉 시대로 간주하는 항간의 견해에는 역 사적인 근거가 없다. 그러한 견해는 역사의식을 강조하는 19 세 기 낭만주의가 18 세기 계몽철학에 대항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표 어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싸움의 과정을 자세히 고찰하면, 계 몽주의야말로 역사의식이라는 낭만주의의 무기를 만들어낸 장 본인임이 밝혀진다. 〈역사적 문화세계〉라는 개념은 계몽철학의 지적 전제들을 비판하기 위해 낭만주의가 전가(傳家)의 보도처 럼 사용하는 무기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문화세계는 계몽 철학의 귀결을 근거로 해서만, 다시 말해 계몽주의의 이념과 이상을 토대로 해서만 비로소 발견될 수 있었다. 계몽철학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리고 그 정신적 유산을 이어받지 않았다 면, 낭만주의 자체의 고유한 입장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역사 의 내용파악 내지 역사철학에 있어서 낭만주의와 계몽주의 사 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방법에 있어서 낭만주의는 언제나 계몽주의에 크게 덕을 입고 있다. 왜냐하면 역사 분야 에 있어서도 그 근본적인 철학적 물음을 제기한 것은 바로 18 세기 계몽주의이기 때문이다. 18 세기는, 자연 인식의 가능성과

조건을 문제로 제기했듯이, 역사의 가능성과 조건을 문제삼았 댜 물론 예비적 단계에 지나지 않지만 18 세기는 이러한 조건 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18 세기는 역사에 대한 명석판명한 개념 을 추구하고, 보편과 특수, 이념과 현실, 법칙과 사실 간의 관 계를 확립하고 이들 사이의 한계를 확실히 함으로써 역사적인 것의 의미를 찾으려 했다. 낭만주의는 계몽철학의 이러한 개척 적 작업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 이제 이러한 낭 만주의의 잘못된 판단이 더 이상 우리의 판단을 오도하고 흐리 게 해서는 안 된다. 낭만주의가 역사성의 결핍을 내세워 계몽 주의를 비난한다면, 이 비난은 역사적 사실로서의 〈계몽주의의 개척적 위업〉을 무시하는 꼴이요, 따라서 역사성을 강조하는 낭만주의 자신이 비역사적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역 사적 지평의 폭에서나 역사 이해의 재능에서 18 세기보다 월등 히 우월했던 낭만주의가 18 세기 자체에 대한 역사적 고찰에 있 어서는 자신의 탁월성을 상실하고 만다. 과거 역사의 순수한 현실을 파악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기울였던 낭만주의가 자 신과 직접적 관계를 맺고 있는 바로 앞선 시대에 대해서는 오 히려 역사적 현실을 왜곡하고 만다. 시간적으로 자신과 멀리 떨어져 있던 역사 현실을 획득하기 위해 낭만주의가 내세웠던 원리가 자신과 아주 가까웠던 역사 현실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못했다. 낭만주의는 말하자면 자신의 부모세대에 대해서 〈역사 적으로 눈이 먼〉 상태였다. 낭만주의는 계몽주의를 계몽주의 자체의 척도로서 죽 계몽주의를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지 않았 다. 낭만주의의 편견은 계몽주의가 성취해 놓은 역사적 세계상 울 부정적으로만 다루었다. 이러한 편견적 이해는 심지어 풍자 화의 성격을 띠기조차 했다. 낭만주의 다음 시대에 이르러서야

낭만주의의 편견은 비로소 시정될 수 있었다. 이 다음 시대는 낭만주의적 정신에 깊게 물들어 있는 시대요, 이 정신에 의해 확립된 역사 고찰의 모든 요청을 고수하는 시대이다. 그러면서 도 이 시대는 18 세기에 대해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탐색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낭만주의가 지녔던 역사적 고찰의 장점을 18 세 기에도 적용시킬 수 있었다 . 「 18 세기와 역사적 세계」라는 논문 에서 딜타이는 이 장점을 계몽시대에 온당히 적용시킨 최초의 인물들 중의 하나이다. 18 세기가 역사성의 결여 시대요, 역사 에 적대적인 시대라는 일반적 편견을 불식하는 데 이 논문이 크게 성공하고 있지만, 18 세기에서 싹튼 구체적인 문제의식을 온전히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데에는 아직 거리가 멀다. 왜냐하 면 여기서 중요한 일은 계몽주의의 전체상 속에서 하나의 근본 특징으로서 〈역사적 의미〉를 찾아내는 것 뿐만 아니라, 이 시 대에 싹튼 정신적인 새로운 힘의 방향을 규정하고 이 힘의 작 용 결과까지 추적하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18 세기의 역사관 은 완성된 기성품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모든 방면으로 작용하는 힘이다. 이 힘이 종교 내지 신학적 문제에서 어떻게 싹토는지 를 그리고 이로부터 성장된 힘이 어떻게 하여 정신의 모든 영 역으로 확산되어 생명력있는 신선한 충격으로 작용하게 되었는 지를 우리는 다음의 고찰에서 탐구하고자 한다. - 18 세기 철학은 처음부터 자연과 역사를 하나의 문제로 다룬 댜 그것은 이 양자에 동일한 방식의 문제 설정과 동일한 탐구

방식 즉 이성의 보편적 방법을 적용시킨다. 자연과 역사에 대 한 이 새로운 인식 형태는 우선 전통적인 초월적 신학의 영향 을 극복해야 했다. 이를 위해서 자연과 역사는 각기 순수 〈내 재적인〉 근거를 요청하며, 자신의 고유한 독자적 영역을 확보 하여야 한다. 이제 초자연적인 것 내지 초역사적인 것은 학문 의 세계에서 거부된다. 이러한 거부로부터 새로운 형태의 신개 념과 신학이,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종교성이 어떻게 형성되었 는지를 우리는 앞에서 보았다. 18 세기의 새로운 학풍을 띤 〈신 신학자(新神學者)들t heolo gi sche Neolo g en 〉의 견해는 종교의 원 천에 관한 역사적인 탐구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독일에서 모 스하임 Mosheim , 미 카엘 리 스 Mi ch aeli s, 에 르네 스티 Ernesti 및 제믈러 Semler 등이 바로 이 〈신신학(新神學) 세대 Neolog e ng es - chlech t〉의 진정한 대가들이었다. 역사적 탐구야말로 이 신신학 (新神學)을 과거 수세기에 걸친 독단적 정통의 사슬로부터 해방 시키고 계몽의 횃불을 싹 퇴운 계기가 된다.!) 그러나 역사적 탐구의 상황은 자연과학처럼 그렇게 단순하고 일의적인 것이 아니었다. 18 세기의 자연과학은 이미 오래 전부터 획득된 확고 한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르네상스 시대에 그 확실한 발 전의 틀이 세워졌다. 이미 갈리레이의 신학문(新學問, nuova sci enza) 은 자연과학적 사고의 독자적 가치를 획득하였다. 그래 서 계몽철학은 수학적 물리학을 마치 칸트처럼 하나의 〈사실 Fa ktu m 〉로서 다룰 수가 있었다 이제 신학문의 존재 가능성은 더 이상 물어볼 필요가 없고 단지 그것의 성립 가능성에 대한 탐구만이 남아 있다. 이에 반해 역사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어 1) 이 책 235 쪽 이하를 참고하라.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서술은 아너 Aner 의 Tbeologi e derLe ssing s z ei4 204 쪽 이 하, 233 쪽, 309 쪽 동을 보라.

려운 과제를 갖고 있다 . 역사는 물리학과 비교될 만한 학문적 인 확실한 사실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따라서 자연세계처럼 역사세계도 우선 독자적인 영역의 사실로서 획득되고 개념적으 로 정초되어야 한다. 이 과제는 일거에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의 수고스런 사전 작업을 요구한다. 이 사전 작 업은 계몽의 모든 지적 능력들을 불러 모으고, 이것들의 효능 울 새로운 방면에서 확증하는 일이다. 여기서 계몽철학은 진정 한 생산적 활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개별 과학들이 제공해 준 학문적 결실들을 모으고 방법적으로 분류하는 것에 만족할 수 없다. 그것은 오히려 스스로 학문적 작업을 광범하 게 수행해야 한다. 자연과학 분야에서 볼테르는 뉴턴의 생각과 근본 개념들을 대중적으로 널리 보급시킨 사람이요, 뉴턴사상 을 문학적으로 도입하는 데에 길을 마련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 다 . 그러 나 역 사의 분야에 서 볼테 르가 『풍속론 Essai sur les Moeu rs,』에서 시도한 것은 자기 자신의 독창적인 사상이요, 방 법적으로 새로운 창안이다. 18 세기의 모든 위대한 역사 서술은 볼테르의 이러한 위업에 힘입고 있다. 볼테르가 프랑스에서 튀 르고 Tur g o t와 콩도르세 Condorce t에 게 영 향을 준 것과 비 슷하 게, 영국에서 그는 흄, 기번 Gi bb on 및 로버트슨 Robe rts on 에 게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흄은 한 개인에게 있어서 역사와 철 학이 매우 밀접히 연관된 구체적 예증이 되는 인물이다. 18 세 기에 시작된 〈철학적인 역사기술〉의 시대는 철학과 역사라는 두 요소를 아주 정교하게 조화시키려 한다. 여기서는 역사를 단순히 철학적 사변의 구성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풍 부한 역사 자료에 대한 생생한 관찰을 통해 철학의 과제와 문 제 설정이 준비된다. 이렇게 해서 도입된 철학과 역사에 대한

생각의 변화는 점점 더 확대되고 심화되어 결실을 얻게 되었 다. 수학이 정밀 인식의 원형이 되듯이, 역사는 이제 18 세기가 정신과학의 과제와 구조에 대한 심층 깊은 이해를 하는 데에 방법적인 모범 역할을 한다. 여기서의 첫걸음은 정신과학 전체 를 신학의 후견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이다. 신학이 점차 역사 적 방법을 도입하여 신학 자체가 마치 교리사나 교희사로 간주 되자, 신학은 역사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반면 역사는 점차 신학보다 더 발언권을 강화시켜 이제는 신학에 대항하여 자신의 독자적인 위치를 확보하려고 하였다. 우호적인 경쟁 관계였던 신학과 역사는 마침내 서로 투쟁적 관 계로 변한다. 그리고 이런 투쟁으로부터 역사 내지 역사학 일 반은 새로운 근본형태를 전개시켜 나갔다. 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 운동의 씨앗은 17 세기로 거슬러 올라 간다. 물론 데카르트주의는 엄격한 합리주의의 노선을 걸 음으로써 역사의 영역과는 거리가 멀었다. 데카르트주의에 따 르면 사실적인 것은 참된 진리가 될 수 없으며, 사실에 관한 지식의 가치는 논리학, 순수 수학 그리고 엄밀한 자연과학이 지니는 명석 판명한 지식에 결코 비교될 수 없다. 말브랑슈도 이 노선을 굳게 따른다. 〈아담과 이브조차도 알 수 있었던 것 만〉이 본래의 철학적 지식에 속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벨 은 전혀 다른 방향의 방법을 취한다. 그의 철학적 수업은 데카 르트 학파에서 출발한다. 특히 데카르트적인 물리학에 대해 언 제나 그는 경탄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벨에게 있어서 방법적 회의는 새로운 방향과 목적을 추구하였다. 데카르트의 회의 는, 한 번이라도 우리를 속였거나 속일 가능성이 있는 지식의 원천을 결코 신뢰해서는 안 된다는 원리의 천명이다. 이 척도

에서 볼 때, 감각지각 뿐만 아니라 엄밀하게 논증될 수 없는 다시 말해서 자명한 공리와 논리적 연역으로 환원될 수 없는 모든 지식도 받아 들여서는 안 된다. 따라서 역사적인 것 일체 는 데카르트적 지식의 영역에서 배제된다. 사실의 지식은 이 영 역 에 다시 말해서 참된 〈보편적 인 지식 sap ien ti a un i vera li s 〉에 도달할 수 없다. 데카르트적 회의는 역사에 대해 부정적이고 배제적이었다. 이에 반하여 벨은 사실 자체를 그렇게 부정적으 로 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는 사실을 과학 일반의 모범이요 원형으로 삼았다. 정말로 확실하고 확고한 사실의 획 득이야말로 그에게 있어서 모든 지식의 관건이 되는 아르키메 데스적 지랫점이 된다. 합리주의가 풍미하는 17 세기의 한가운 데에서 그는 최초의 철저한 〈실증주의자〉가 되었다. 형이상학 은 사실과학이든가 아니면 환상에 불과하다는 달랑베르의 말은 이미 벨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으리라. 벨은 최초의 절대적인 존재 근거에 관한 지식을 포기하고, 오로지 현상 자체를 개관 하고, 여기에서 확실한 것과 불확실한 것을, 〈개연적인 것〉과 거짓을 명백히 구별하고자 한다. 그는 역사에 회의적 방법을 적용시킨 것이 아니라, 역사 자체의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서 즉 역사에 알맞고 역사에 고유한 확실성을 탐구하기 위해서 회 의를 사용하였다. 이런 작업을 그는 굉장한 끈기를 가지고 수 행한다. 사실적이며 역사적으로 주어진 소여의 세계를 개관하 고 확정짓고자 하는 그칠 줄 모르는 충동이 그를 몰아 나갔다. 이 소여세계에는 그 어떤 것도 사소하거나 무가치한 것이 없으 니, 중요성의 차이나 가치의 차이 자체가 없다고 하겠다. 그가 이 비판적인 작업에 대해 〈역사적-비판적 사전〉이라는 명칭을 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사전의 특징은 합리적 체계

의 하이라키적인 종적 질서 정신이 아니라 단순히 횡적인 수집 의 질서를 드러내줄 뿐이다. 이 사전에는 어떤 것을 다른 것으 로부터 이끌어내는 연역이 없고 단순한 자료의 모음이 있을 뿐 이댜 그리고 이 자료들은 각기 다른 것과 동등한 의의를 지니 며, 동등하게 기술되고 동등하게 취급되어지기를 요구한다. 자 료를 수집하는 데에 벨은 하등의 차별을 두지 않는다. 이 점에 관해 그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확고한 방법적 계획을 세 우고, 이에 따라 개별적 내용을 제한하고 중요한 것과 중요치 않은 것을 구별하려는 사람, 이런 사람과 그는 거리가 멀다 . 때때로 그의 사전에는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이 자세하게 그리고 장황하게 다루어지는 반면에, 중요한 것이 가볍게 다루어지기 도 한다 . 자료의 선택을 결정하는 것은 사실의 중요성이 아니 라 개인적인 편애와 주관적 관심이다. 그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가장 외진 곳의 일들을, 역사적으로 진기한 일들을, 옛날의 자 질구레한 일들을 편애한다. 벨은 자신의 이러한 유별스러움을 잘 알고 있었다 . 그리고 종종 자신의 저술이나 서간문에서 이 러한 자신의 특성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자기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다움과 같이 말한다. 〈신기한 것에 대한 나의 만족할 줄 모르는 욕구는 고질적인 병폐중의 하나임을 잘 알고 있댜 이 병에는 온갖 약이 다 무효이다. 그것은 물을 먹으면 먹을수록 갈증을 더 일으키는 수종병(水麗病)과 같은 것이다.〉 2) 사실 자체에 대한 사랑과 작은 것에 대한 애정은 일찍이 누구 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벨의 특성이다. 이러한 류의 지식 2) 1773 년 2 월 27 일자로 동생에게 보낸 서신 . 그의 가족에게 보낸 서간 문은 그의 전집 (La Hay e, 1737) 1 권 부록에 들어 있다. 쾰른 Fritz C. A.Kae li n 과 페티그로브J ames P. Pe tt e gr ove 가 번역한 이 책의 영역본 Tbe Phil o sop hy th e Enli gh te n ment( P ri ns to n , 1951) 209 쪽의 주에 의하

에 대한 생각은 엄밀한 개념적 인식과 명백히 대립된다. 개념 적 인식이 정확성과 엄밀성에서 역사적 지식을 훨씬 능가하지 만, 바로 이 장점 때문에 그것은 또한 중요한 면에서 단점을 지니게 된다. 엄밀한 개념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개념적 인식은 현실과 직접 접촉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현실을 자신의 지식 영역에서 배제해 버린다. 수학적 논증의 형식적 확실성과 견고 성은 구체적 실재 세계에 대한 수학의 적용을 원칙적으로 의심 스럽게 만든다. 이제 역사적인 것은 수학과 다른 또하나의 〈확 실성의 유개념〉이 된다 . 이러한 확실성의 개념 내에서 역사적 인 것은 꾸준히 개선되어 나아갈 수 있었다. 〈키케로라는 사람 이 살았다〉는 역사적 지식은 예컨대 〈순수 수학이 정의하는 것 이 사물의 본성 세계에 실재로 존재한다〉는 것보다 형이상학적 으로 더 확실하다 . 3)

면, 벨이 죽은 해는 1706 년이므로 이 서간문의 연대는 오기이다 . 영역 3)자 P의ro j조e t 사 d에'U n 의Di하ct i면o n n2a 월ir e 2C7 일ri ti자qu의 e( D서i s 간s e문rt a을tio n 찾 a을 d u수 R o없nd다e!고), 한Ro다t.t e r dam 1692; Delvolve, Reli gion , Cri tiqu e et Phil o sop h ie pos it ive chez Pie r re Bayl e , Paris, 1906, 226 쪽 이하를 참조.

이렇게 해서 사실세계로 들어가는 길이 마련된다. 그러나 이 세계를 지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원리는 아직 획득되지 못했 댜 역사적 인식은 개별적인 것들을 한데 모은 것에 불과할 뿐 이것들의 내적 연관은 밝혀지지 않았다. 벨의 앞에는 마치 파 편들의 거대한 무더기 같은 역사가 놓여 있다. 이 무더기를 지 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가능성은 아직 없다. 점점 증가되는 개 별적 지식들을 섭렵하기 위해서 벨은 지칠 줄 모르는 자신의 수용능력을 발휘하여야 했다 . 〈사전〉이 지니는 의적인 틀이 홍 수처럼 범람하는 사실의 무더기로 인해 파괴될 수밖에 없다•

사전의 본래 표제 항목은 항목마다 따라 붙은 수 많은 주석들 과 설명들에 의해 압도될 지경이다. 벨은 표제항목의 주요 사 실들에 애착을 가졌다기보다는 오히려 표제 항목에 따라 붙은 부수적인 것에 더 애착심을 보인다. 그는 이 부수적인 것에 몰 두하고 심취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을 그는 사학자의 새로운 과제라고 생각하였다. 〈가장 하찮은 일을 가장 세밀히 탐구하 는 사람〉이라는 비난어린 질책에 그는 마음쓰지 않았다. 그가 이러한 탐구방식을 택한 것은 단순히 그의 개인적 기질 때문이 아니라 방법적인 의도와 신중한 사려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 다》 그에 의하면, 이러한 역사기술은 그 이전의 역사기술처럼 세계에 대한 거대한 형이상학적 윤곽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 라 특수한 사실들을 하나하나 추적하고 이것들을 비판적으로 밝혀 보려는 시도요, 이런 점에서 그것은 과거의 형이상학적인 역사기술보다 우월성을 지닌다 .5) 따라서 역사철학적인 목적론 적 역사이해는 벨과 거리가 멀다. 그는 오히려 역사의 어디에 서도 총괄적인 목적론적 설계의 혼적을 찾아볼 수 없다는 깊은 비관론에 물들어 있다. 인간 역사의 실제적 사실들을 사심 없 이 들여다볼 때, 그것은 인류의 불행과 파괴의 흔적들이 쌓인 무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때 우리는 비로소 성급한 형이상학적이고 사변적인 역사구성의 매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 6) 특수하고 개별적인 것들에 대한 시선이 보다 분명 하고 날카롭게 될수록, 우리는 전체의 개념적 파악을 더욱 더 45)) DDisi cs te ir ot an taionn n aai dr eu , RoAnrdcehle. l aus 항목 Delvolve, a. a. o. 226 쪽 이하 참조. 6) 같은 책, “Manic h eens 항목, Remarqu e D.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개별적인 것의 지식은 전체의 이 해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이러한 이해의 희망을 꺽어 버 린다. 그러나 벨은 이러한 역사세계의 해체로부터 드디어 새롭고 적극적이며 생산적인 역사이해의 개념을 터득한다. 제각기 분 리되었던 것들이 다시 연결되고 하나의 핵심으로 수렴된다 . 이 핵심을 얻고자 벨은 〈사실〉의 본성을 질료적인 의미로 이해할 뿐만 아니라 또한 형식적인 의미로 이해한다. 다시 말해서 그 는 사실의 본성을 내용적으로 문제삼을 뿐만 아니라 또한 방법 적으로 문제삼는다. 이러한 전환을 통하여 그는 자신의 고유한 독창성을 발휘하고 정신사적으로도 중요시된다. 벨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그의 사전에 모아놓은 〈사실들〉은 내용적인 면 에서 불 때 오늘날 우리의 관심사가 될 만한 것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업에서 불후의 가치가 있는 것이 있다 면, 그것은 이 작업이 사실 자체의 개념을 문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벨은 이제 개별적인 사실들을 〈역사가가 자신의 건물 울 짓는 데 필요한 확고한 초석〉으로 보지 않는다. 이제부터 그의 관심사가 되는 것은 바로 이 초석을 획득하는 지적 작업 이다 .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섬세한 분석과 명료성으로써, 그는 모든 사실판단 자체를 가능케 해주는 조건들을 밝힌다. 그리고 이 점에서 그는 역사의 논리학자가 된다 . 그에게 있어서 〈사실〉 은 역사 인식의 출발점이 아니라 그 궁극 목표점이 된다 . 그는 사실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목표로 설정한다. 그는 〈사실의 진리〉에로 이르는 길을 최초로 마련한 사람이다 . 우리 는 이 사실의 진리를 간단히 감각을 통해 직접 알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 사실온 오히려 수학적 사고 과정에 못지

않게 복잡하고 세밀하고 날카로운 지적 조작의 결실로 얻어지 는 것이다. 개별적인 증거들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조심스럽게 탐구하고 비판적으로 평가함으로써 역사적 〈사실〉의 핵심은 획 득될 수 있다. 벨의 역사 고찰의 본질적 가치는 그가 이런 요구를 단순히 추상적으로 제기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개별 연구에 서 이 요구를 철저히 실천했다는 점에 있다. 일찍이 볼 수 없 었던 엄격성, 준엄성 그리고 정확성을 가지고 그는 전통을 비 판한다 . 지칠 줄 모르는 끈기로써 그는 전통의 결함들, 애매한 점들 그리고 모순점들을 들추어낸다. 이런 작업에서 역사가로 서 그의 천재성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벨의 천재성은, 듣기에 이상할는지 모르나, 진실의 발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짓의 발견에 있다. 그의 『사전』의 본래 의도 내지 계획이 이 점을 잘 나타내 준다. 벨은 지식의 백과사전으로서 사전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말하자면 오류의 목록표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한 서간문에서 벨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 1690 년 11 월경에 나는 하나의 비판적 사전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이 사전은 이전의 많은 사전 편찬자들이나 다른 저술가들에 의해 저질러진 오류들을 모아 놓은 것이요, 어떤 인물과 도시에 대해 서 지금까지 잘못된 점들을 모두 찾아 모아 놓으려는 것이다.〉 7) 벨의 지적 탁월성과 학자적인 안목은 여기서 아주 알맞은 작업 장을 발견한다. 그의 추적의 열의는 여기서 승리의 축배를 거 둔다. 그의 발견의 가장 큰 기쁨은 수세기에 걸쳐 감추어져 내 려온 오류를 마침내 추적해냈을 때 얻어진다. 이 오류의 중요 7) 1692 년 5 월 22 일자 노디스 Naud i s 에게 보낸 서신; Le tt res de Bayl e a sa Fa mille, Oeuvres div e rses, I, 부록 161 쪽.

성 여부는 전혀 관심 밖이다. 오직 오류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를 매혹시킨다 . 오류는 그 마지막 잠복처까지 추적되고 뿌리 채 뽑혀야 그의 직성이 풀린다. 오류의 대상이 크거나 작거 나, 고상하거나 비천하거나, 중대하거나 하찮은 것이거나 전혀 상관이 없다. 벨의 비판적 열정은 내용적으로 하찮은 것에도 경도된다 . 오히려 그의 열정은 바로 이런 것에서 거듭 불타 오 른다. 왜냐하면 역사적 오류의 특징적 형태는 바로 이런 것에 서 가장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 하찮은 오류가 전통의 오랜 전 수과정에서 어떻게 하여 중대한 결과를 야기시키게 되는지, 하 찮은 오류가 어떻게 하여 커다란 진실을 완전히 거짓되게 만드 는 지를 우리는 여기서 잘 보게 된다. 따라서 이런 류의 오류 는 철저히 파헤쳐져야 하며, 순전히 부정적인 역사가의 이러한 작업은 어떠한 점에서도, 비록 이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 도, 소홀히 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가는 원천적인 보고서의 어 떠한 변조(變造)도 놓쳐서는 안 된다 . 사실적인 원천에 조회함 이 없이 막연히 인용한다거나 희미한 기억에 의존하는 일은 금 물이다. 이렇게 하여 벨은 역사적인 〈정확성 Akr i b i e 〉의 창시자 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철학적 작업의 면에서 볼 때, 이러한 정확성은 수단에 불과할 뿐 결코 목적은 못 된다. 벨이 역사 연구에서 노렸던 본래 목적을 알아 보려면, 우리는 보쉬에 Bossue t의 『보편사론 Dis c ours sur l'his toi r e un i versell e,』 같은 목 적론적인 역사 파악 내지 역사 구성과 벨의 작업을 비교해 보 는 것이 좋겠다. 보쉬에에게서 우리는 위대하고 장엄한 역사의 설계를 그리고 역사의 의미의 종교적인 해석을 보게 된다. 그 러나 이 대담하게 설계된 건축물은, 경험적인 순수 사실의 관 점에서 볼 때, 진흙과 같은 불완전한 토대 위에 발을 디디고

있다. 보쉬에에게서 사실의 진리를 보장해 주는 것은 기껏 논 리적인 순환추리일 뿐이다 . 그에게 있어 역사적 사실의 모든 권위는 성서의 권위에 의존하고, 성서 말씀의 권위는 교회의 권위와 전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해서 전통은 모든 역사적 확실성의 기초가 된다. 그러나 전통의 내용과 가치는 어디까지나 역사적 사실의 증거를 기초로 해서 증명되어야 한 다. 벨은 이러한 순환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이런 순환론에 기 인한 찰못된 결과들을 밝혀낸 최초의 근대적 사상가이다 . 이러 한 관점에서 벨은, 자연과학에 있어서 갈릴레이처럼, 역사과학 에 있어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다. 갈릴레이가 자연현상 의 파악과 해석에 있어 성서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주장하고, 이 주장을 방법적으로 실현시키고 정당화했듯이, 벨은 역사 분야 에서 이러한 위업의 길을 닦아 놓았다. 그는 말하자면 역사과 학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수행한 인물이다. 왜냐하면 그 는 역사의 〈진리〉를 성서나 교회에 의해 독단적으로 주어진 객 관적 존립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진리의 주관적인 원천과 조건이 무엇인가를 문제삼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의 유일한 목적이었던 역사적 원천의 비판은 탐구의 진행에 따라 점차 확대되고, 마침내 그것은 일종의 〈역사 이성의 비판 Kr iti k der his t o r i sc hen Vernu nft〉으로 되었다. 그에 의하면, 역사적 진 리는 각인된 동전과 같이 간단히 받아들일 수 있고 또 그러해 야 한다는 선입견처럼 찰못되고 해로운 것은 없다. 스스로 각 인하는 일, 그리고 모든 개별 경우 하나하나마다 항상 각인을 매우 조심스럽게 검사하는 일이야말로 지성이 해야 할 일이다.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는 풍문으로부터 진정 쓸 만한 것이 있 다고 너는 믿는가? 전통, 이것은 마치 환영과 같은 것이 아닌

가? 이제 지각 있는 판단만이 문제다. 일찍이 네가 버렸던 지 성, 이것만이 너를 맹목적 믿음의 사슬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 다. > 괴테의 『동서시집 We s t -6s tli cherD i van 』의 이 시구는 벨의 업적과 기본취지를 아주 명료하고 극명하게 나타내 준다. 벨의 날카로운 분석적 지성은 역사룰 맹신의 쇠사슬에서 해방시키고 역사를 독자적인 방법적 토대 위에 세워놓는다. 여기서 그는 신학적 전통의 비판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비 판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자신의 탐구를 세속적인 역사의 전체 범위로 확대한다 .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그는 18 세기의 길을 닦아놓은 사람이다. 18 세기에 대해서 그의 『역사적 -비판적 사 전 』 은 지식의 무진장한 보고가 될 뿐만 아니라 지적안 그리고 변증법적인 예행연습의 모델이 된다. 여기서 계몽철학은 자신 의 고유한 문제 의식을 지닐 수 있게 되고, 또 역사의식의 해 방이라는 목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무기들이 이미 마련되어 있음울 본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벨은 새로운 역사과학의 논리학자일 뿐만 아니라 또한 역사과학의 윤리학자가 되기도 한다 . 그는 참된 역사가가 지녀야 할 모든 덕목들을 세상에 널 리 공포했을 뿐만 아니라 이 덕목들을 몸소 실현한 화신이다. 〈역사란 깨끗한 손으로 만져야 하고, 그리고 역사서술은 어떤 선입견에 의해 방해받아서도 안 되며, 어떤 종교적 내지 정치 적 파당심에 의해 왜곡되어서도 안 된다〉고 그는 거듭 천명한 다전 역사 법칙을 아는 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과제를 충실히 수행하려는 역사가는 모름지기 아첨과 비방의 정신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이다. 역사가는 가능한 한 일 8) Di ct io n nair e , Usson 항목, Remarqu e F; T. N, fol. 2858.

체의 정념으로부터 해방되는 스토아 학파의 정신을 배워야 한 댜 그는 오직 진리에 대해서만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요, 이 외의 모든 것에 대해 마음이 혼들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 그는 자신이 겪은 부당한 처우 때문에 생긴 적개심이나 혹은 자신이 받은 은혜에 대한 호의적 감정, 심지어 조국애의 감정 까지도 진리를 위해서 버려야 한다. 그는 자신이 속한 나라 도, 자신이 속한 종파도, 자신이 은혜를 입은 이러저러한 사람 도, 자신의 부모와 친구까지도 모두 잊어버려야 한다 . 이런 점 에서 역사가란 구약성서에 나오는 정의의 왕인 멜기세덱 Melch i sedech 처럼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으며 족보도 없 다. 그에게 당신이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이렇게 대 답하여야 한다. 〈나는 프랑스인도 , 독일인도, 영국인도, 스페 인 사람도 아니고 세계시민이다. 나는 독일 황제나 프랑스 왕 에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진리에 봉사할 뿐이다. 진리 만이 내가 충성의 맹세를 한 나의 왕이다 . 〉 이러한 격률과 윤 리적 명령으로써 벨은 계몽의 정신적 선구자가 된다 . 이렇게 해서 그는 〈세계시민적 안목에서 보편사의 이념〉의 선구자 역 할을 하고, 이 이념 실현의 전형적인 모범을 몸소 보여준다 . 2 벨은 본래 의미의 역사철학을 세우지 못하였다. 이미 보았듯 이, 그의 역사개념이나 방법론적인 전제를 고려해 볼 때, 그는 그러한 철학을 추구할 수조차 없었다 . 19 세기 역사철학의 길을 최초로 닦은 사람은 비코 G i amba tti s t a V i co 이다 . 그의 『모든 민

족의 보편적 성질에 관한 새로운 학문의 원리들 P ri nc ipi d i una scie n za nuova d'in to rno alla comune natu ra delle naz io n i』 (1725) 이라는 저서는 이 분야의 지식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 서 술이다. 그러나 이 저작은 고의적으로 데카르트에 반대하는 입 장에서 역사기술의 합리주의를 제거하려고 하였고 따라서 명석 판명한 개념의 논리학보다는 〈상상력의 논리학 Lo gi k der Phan t as i e 〉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계몽철학에 별로 영향을 끼치지 못하였다. 18 세기 늦게서야 헤르더에 의해 재조명받기 까지 그 책은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몽테스키의의 『법의 정 신』은 계몽시대 역사철학의 기초에 대한 최초의 중요한 업적이 다. 이 저술로 말미암아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다. 이 책의 직 접적 관심사는 물론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이 책의 이름이 보 여주듯이, 몽테스키외의 관심사는 사실의 정신이 아니라 법의 정신이다. 물론 그도 사실을 추구하고 조사하고 음미하였으 나, 이는 사실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실 속에 표현되고 있는 법을 위한 것이다. 법은 구체적인 상황에서만 이해될 수 있고, 서술될 수 있고, 설명될 수 있다. 반면에 이러한 현실적 상황은, 이것이 보편적 질서 연관을 예시하고 있는 본보기로 해석될 때에만, 그 참된 모습과 의미를 지니게 된다. 벨과 마 찬가지로 몽테스키의도 세부적 사실에 애착을 보인다. 광범한 여행과 연구를 통해 그는 그의 주제에 대한 세세한 사실들을 알 고자 했다. 특수한 사실에 대해 그가 보인 지나친 애착심으로 말미암아, 때때로 설명을 위해 도입된 사소한 일화들이 오히려 본 줄기가 되는 사상을 압도해 알아보기 어렵게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사실적 자료들은, 내용면으로 볼 때, 엄밀한 논리적 원리에 지배되고 있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적

고 있댜 〈나는 인간을 조사하기 시작했고, 무한히 다양한 인 간의 법과 관습이 순전히 인간의 자의적인 변덕에 기인되지 않 았음울 믿게 되었다 . 나는 모종의 원리들을 형성해 낼 수 있었 고, 개별적인 모든 경우들이 이 원리들에 아주 잘 들어맞음을 보았고, 더 나아가 모든 민족의 역사란 단지 이 원리들의 결과 임을 알았고, 모든 특수한 법이 보다 보편적인 법에 의존해 있 음을 알았다.〉 몽테스키외가 행한 탐구의 참된 목적은 사실 자체가 아니다 . 사실 자체는 그가 추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 다. 몽테스키의야말로 역사에서 〈이념형 ldeal typ us 〉의 개념을 명확히 이해하고 표현한 최초의 사람이다. 『법의 정신』은 정 치-사회학적인 유형론 T yp enlehre 이다. 그에 의하면, 공화정 체, 귀족정체, 군주정체 및 전제정체라고 일컫는 정부형태들은 각각 우연적인 개별 특징들을 모아 이에 이름을 붙인 것이 아 니라 어떤 원리를 지닌 것이요, 일정한 구조를 지닌 것이다 . 다양한 현상의 외양은 서로 닮은 것이 하나도 없다. 그것은 완 전히 서로 다르고 거의 무한히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이런 현 상에 머무르는 한, 우리는 원리적인 구조를 읽어낼 수 없다. 그러나 이런 현상에서 원리로, 눈에 보이는 다양한 외양에서 이를 형성하는 힘으로 우리의 눈길을 돌릴 때, 사태는 완연히 달라진다. 이제 우리는 수많은 공화정체의 실례들 가운데서 공 화정체의 기본형을 찾아내고, 역사상의 수많은 군주정체들 가 운데서 군주정체의 기본형을 읽어낸다. 몽테스키외가 강조한 점은, 공화정체가 시민적 덕의 원리에 입각한 반면, 군주정체 는 명예의 원리에, 그리고 전제정체는 공포의 원리에 의존한다 는 점이다. 여기서 국가를 형성하고 움직여가는 도덕적이고 정

신적인 원동력의 차이점이야 말로 정부형태의 본질적 차이점이 된댜 몽테스키의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 〈 정부형태의 본성 과 원리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다. 전자가 국가의 모습을 즉 국 가의 독특한 구조를 규정 한다면 후자는 국가를 움직 여 나가는 인간의 활동력을 규정한다. 〉 9 ) 이러한 기본 개념들의 독특한 논 리적 성질을 몽테스키외는 잘 깨닫고 있다 . 그에 의하면, 이 개념들은 여러 현상들에 공통된 성질을 끄집어내어 만든 추상 적 개념들과 다시 말해서 유개념적 일반성만을 지니는 형식논 리 적 개념들과 다르다 . 이 기본 개념들은 그러한 경험적 일반 화를 넘어서서 각각의 정부 형태 속에서 표현되는 의미의 보편 성을 확립한다. 그리고 이로부터 정부형태 각각을 규정하고 이 끌어가는 내적 규칙들이 찾아져야 한다. 이 규칙들은 역사상의 어떤 개별적 정부에서도 완전히 구현되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 라 앞으로도 완전히 구현될 수도 없다. 그러나 이렇다고 하여 이 규칙들의 중요성이 감소되는 것은 아니다. 몽테스키의가 각 각의 정부형태에 각각의 원리를 제시하였을 때, 이러한 정부 형태를 구체적인 경험적 현실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정부 형태는 현실적인 존재 Se in가 아니라 이상적인 당 위 Sollen 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10) 따라서 몽테스키의의 체계를 현실에 적용할 때 제기될 수 있는 비난들이 곧 그의 기본적 사 9) L 'Espr it des Lois , Liv r . III, ch . 1 ; v gl . ch . 2 ff. 10) 같은 책, chap . 11: 〈세 가지 정부 형태의 원리들이 지니는 의미는 이러하다 : 공화 정부의 사람이 시민적 덕을 지닌다는 것이 아니라 마 땅히 시민적 덕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요, 군주 정부의 사람이 명예심 을 지닌다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명예심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요, 전 제 정부의 사람이 공포심을 지닌다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공포심을 지 녀야 한다는 것이다 . 만약 그러하지 못다면, 정부란 불완전하게 될 것 이다.〉

상에 대한 비난으로 될 수는 없다. 그의 체계의 밑받침이 되었 던 경험적 탐구가, 오늘날의 확대된 역사적 지평과 발전된 사 희학적 문제의식의 관점에 비추어 볼 때, 매우 불완전하게 보 일지라도, 그가 사회과학 분야에서 새로운 방법과 유용한 원리 를 창안하였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가 최초로 도입 해서 유효 적절히 사용하였던 〈이념형〉의 고찰방법은 그후 결 코 포기된 적이 없고 오히려 19 세기와 20 세기의 사회학에서 커 다란 발전을 보게 되었다. 이미 몽테스키외는 이러한 고찰방식 에 의거해서 〈하나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모든 계기는 서로 간 에 밀접한 상호관계를 지닌다〉는 이론을 세웠다. 이 계기들은 단순히 산술적 총계로서의 요소들이 아니라 상호 유기적으로 연관된 힘들이요, 힘들의 상호작용은 전체의 형태에 의존한다. 공동체의 전체 성격과 구조 연관은 가장 미세한 부분에 이르기 까지 그 영향을 미친다. 교육방식, 재판방식, 혼인과 가족의 형태, 내치(內治)와 의치(外治)의 모든 구조, 이 모두는 국가의 근본형태에 의존하며, 이 근본형태가 바뀌지 않는 한 제멋대로 변경되지 않는다. 공동체의 부패는 공동체의 어느 한쪽 방향에 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내적 원리의 파괴로부터 시작된다• 〈모든 정부의 부패는 거의 언제나 그 원리의 부패로 시작된다.〉11) 국가형태의 원리가 건전하게 그대로 보존되는 한, 국가는 근심할 일이 없으며, 비록 개별적인 제도나 법에 결함이 있다 하더라도, 국가형태에 하등의 해도 끼치지 않는 댜 이 반면에 원리가 타락되면, 다시 말해 내적인 원동력이 문란하고 해이하게 되면, 아무리 좋은 법일지라도 제 구실을 11 ) Esprit des Lois , VIII, 1.

못한다. 〈일단 정부의 원리가 부패되면, 가장 훌륭한 법도 악 법(惡法)이 되며 국가에 해롭게 된다. 원리가 건전하면, 악법도 좋은 법의 효과를 지닌다. 원리의 힘이 모든 것을 이끌어 가 며, 모든 것은 원리의 힘에 의존한다. …… 국가가 그 원리를 상실하면, 어떤 법도 선하게 되지 못한다.〉 12)

12) 같은 책, VIII, 11.

이렇게 해서 정치철학의 윤곽이 그려졌으나, 역사철학의 토 대는 아직 세워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몽테스키의가 제시한 이 념형들 Ideal typ en 은 순전히 정적(靜的)인 형태로서 사회적 단체 의 존재 Se i n 에 대한 설명원리이지, 생기(生起, Geschehen) 의 방식을 명백히 알려주는 도구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몽테스키외는 자신의 고찰방식이 이 문제에도 확대 적용될 수 있으며 또 훌륭한 효과도 거두어들일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존재와 마찬가지로 생기도 단순한 집합, 죽 서로 무관 한 개별 사건들의 시간적 경과가 아님을 그는 확신한다. 생기 에서도 일정한 유형적 근본방향들이 찾아질 수 있다 . 겉으로 보기에, 역사에는 하등의 근본방향이 찾아질 수 없을는지 모르 며, 역사가 마치 이리저리 뒤엉킨 〈우연들〉일는지 모른다. 그 러나 현상의 외면으로부터 내면 깊숙이 파고 들면 들수록, 이 러한 겉 모양온 점점 사라져 버린다. 개별적 사건들의 모순과 혼란은 점차 실마리를 찾게 된다. 현상은 하나의 〈근거〉로 환 원되고 이 근거로부터 설명되고 이해된다. 몽테스키외는 자기 책의 첫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맹목적 숙명이 세 계 속의 모든 생기를 정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커다란 자기 모 순을 범한다• 왜냐하면 맹목적인 숙명이 지성적 존재를 만들어

낸다는 가정이야말로 가장 큰 불합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근원적인 근거 une rais o n p r i m iti ve 가 있다. 그리고 법칙 이란 이 근거와 개별자들 사이에 성립되는 관계 내지 이를 토 대로 한 개별자들 사이의 관계를 말한다.〉 13) 단순한 우연이 한 민족의 홍망을 결정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보다 날카롭고 투철하게 관찰해 보면 양상은 전혀 달라진다. 〈세계 를 지배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보편적인 정신적 내지 물리 적 원인들이 있고 이것들이 모든 국가에 작용하여 국가를 홍하 게도 하고 망하게도 한다. 모든 개별 사건들은 이 원인들에 기 인한다. 만약 우연한 전쟁이 한 국가를 멸망시켰다면, 이 국가 가 이 전쟁으로 인해 멸망하게끔 된 보다 보편적인 다른 원인 이 있다. 이 보편적 인 상황이 특수한 우연적 사건들의 참된 원 인이 된다.〉 14) 이 보편 상황에는 물리적인 요소도 들어 있다. 그리고 몽테스키의는 바로 이 물리적 요소의 의미를 제대로 해 석해 낸 최초의 인물들 중의 하나이다. 그는 한 나라의 국가 형태와 법률은 그 나라의 기후 내지 풍토와 밀접한 관계가 있 음을 밝혀냈다. 그러나 그는 순전히 물리적인 요소로부터 모든 것을 간단히 도출하지는 않는다 . 오히려 그는 물리적 원인보다 정신적 원인을 더 중요시한다. 물론 한 가지 정부형태가 모든 기후 풍토에 다 알맞는 것은 아니다. 반면에 정부형태가 물질 적인 조건에 의해 간단히 규정되는 것도 아니다. 물질적 조건 과 정부형태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찾아내는 것이 입법가의 일 이다. 변변찮은 입법가는 기후나 풍토의 나쁜 조건에 간단히 13) 같은 책, I, 1. 14) Consid e rati on s sur /es causes de la gra ndeur des Romain s et de leur decadence, Chap . XVIII .

굴복하는 자요, 훌륭한 입법가는 기후나 풍토의 불리한 점을 잘 파악하고, 이에 대해서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힘으로 대처하 게 하는 자이다. 〈물리적 원인들이 인간의 무력한 타성을 길러 내면 낼수록, 그만큼 더 도덕적 원인들에 의해 인간의 이런 타 성을 타파시켜야 한다.〉 IS) 인간은 자연의 힘에 간단히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이 힘을 인식함으로써 자신의 고유한 목적 달성을 위해 이 힘을 사용할 줄 알고, 또 공동체의 안전한 존립을 위 해 이 힘에 적절히 대처할 줄도 안다. 〈인간의 정신적 특성과 기질이 풍토에 따라서 다르게 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법도 이러한 특성과 기질에 알맞게 대응되어야 한다.〉 16) 인류사의 보 편적 진행과 목적에는 엄밀성과 확실성에서 자연법칙에 비교될 만한 질서가 들어 있다. 현재 우리의 발전 단계에서 볼 때, 도 덕적 세계는 물질적 세계처럼 그렇게 잘 질서가 잡혀 있지 못하 다. 비록 도덕적 세계에 불변하는 일정한 법칙들이 있지만, 자 연세계가 자연의 법칙에 따르듯이 도덕세계가 자신의 법칙에 엄격히 따르고 있지 못하다. 왜냐하면 인간의 오성능력은 한계 가 있어 사리를 분별할 때 오류를 범하기 때문이요, 더구나 인 간은 자신의 변변치 못한 생각과 욕구에 따라 행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자신에게 스스로 부여한 근본 법칙이나 규칙을 한결같이 준수하는 존재가 못 되기 때문 이다 17) 그러면서도 몽테스키외가 장차 인간 인식의 발전을 통 하여 새로운 질서의 도덕 세계가 혹은 새로운 인류사의 정치­ 사회적인 질서가 도래하리라는 것을 기대해 마지 않았다는 사 15) Espr itd esLois , XIV, 5: 특히 XVI, 12 를 참조하라. 16) 같은 책, XIV, 1. 17) 같은 책, I, 1.

실은 바로 그가 계몽시대의 아들이요, 진정한 계몽기적 사상가 임을 잘 보여준다 .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그는 역사 철학자가 된다 . 즉 그는 역사의 보편원리와 원동력을 인식함으로써 보다 확실한 미래 역사를 형성해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인간은 단 순히 자연의 필연성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자 유롭게 형성해 나갈 수 있고 나가야만 한다 . 인간은 자신이 계 획한 그리고 자신에게 적절한 미래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 러나 이와 같은 희망을 지닌다는 것만으로는 아무 것도 이룩되 지 않는다. 그 희망은 확실한 통찰을 통해 철저히 실현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통찰은 정신의 모든 힘들을 통합하고 연 관시킴으로써만 나올 수 있다. 이 통찰을 위해서는 개별적인 것들을 아주 세밀히 관찰하고 경험적인 자료를 열심히 탐구해 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 앞에 제시된 여러 가능성들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구별해 주는 순수 개념적 분석도 필요하다. 몽테스키의는 이 두 과제를 아주 잘 다루고 있다. 당대의 사상 가들 중에서 그는 가장 강력한 역사적 감정이입(感情移入) 능력 을 소지한 자요, 역사적 존재의 다양한 형식들에 대한 참된 직 관력을 지닌 자이다. 그가 고대의 역사룰 탐구할 때, 그는 자 신이 고대의 정신 속으로 들어가서 스스로 고대인이 되도록 시 도하였다 18) 특수한 것에 대한 사랑과 배려로 인하여 그는 순수 이론적으로 구성을 할 때에도, 어느 일면적인 독단적 편견에 빠지지 않았다. 그는 다양한 형태들을 고정된 도식에 맞추어 기술하는 것을 항상 반대한다. 『법의 정신』에서 몽테스키의는 영국의 헌법을 정치적 모범이라고 칭찬해 마지 않는다. 그럼에 18) 이에 대해서는 Sorel, Monte s qu i e u, Pari s, 1887, 151 쪽 이하를 참 조.

도 불구하고 그는 영국 헌법을 유일한 척도로 보지 않으며, 따 라서 다른 나라들이 모두 이와 똑같은 헌법을 갖도록 촉구하지 않는댜 〈이성의 과다(過多)가 언제나 바람직한 것은 아니요, 인 간사(人間事)의 모든 것에 지나친 것보다는 알맞은 것이 더 낫 다고 믿는 내가 어찌 그렇게 촉구할 수 있겠는가?〉 19) 또한 몽테 스키외는 순수 이론적 구성에 있어서도 항상 〈중용 ech t e Mi tte> 을 모색한다. 그는 근본요소들 간에, 예컨대 〈경험〉과 〈이성〉 사이에서도 균형을 유지하려고 한다. 그의 저작이 본래의 〈계 몽철학〉의 영역을 넘어서까지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 은 바로 몽테스키외의 이런 중용지도의 정신에 기인한다. 그의 저작은 백과전서파의 역사 파악의 모범이 되었을 뿐만 아니 라, 이러한 역사 파악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사람에게도 매혹의 대상이 된다. 헤르더는 몽테스키의의 방법과 전제를 비판하지 만, 그의 〈고귀 한 위 업 edles Ri esenwerk 〉에 대 해 눌 칭 찬해 마 지 않으며, 자신의 저작 설계에서조차 이 〈고귀한 위업〉을 모 방하고자 한다 .20)

19) 'Esprit des Lois , XI, 6. 20) Herder, Auch ein e Phil oso p h ie der Geschic h te zur Bil d ung der Menschhei~ Sup h an 판 전집 5 권, 565 쪽을 참조.

3 레싱이 1753 년 베를린의 일간지인 《보시쉐 신문 Vossis c he Ze it un g》에 볼테르의 『풍속론』을 소개할 때, 〈인간의 가장 고귀 한 일은 인간에 관한 일이요, 우리는 이 대상을 ‘이중적인 방

식으로’ 다룰 수 있다 〉 는 말로 시작한다 . 〈 우리는 인간을 개인 으로 다루거나 혹은 인간 일반으로서 다룬다. 첫째 방식으로 인간을 다룰 때, 이 일이 가장 고귀한 일이라고 말하기는 어렵 다. 인간 하나하나를 알아보면 바보요 악한이다 . 그러나 인간 일반을 보면 전혀 다르다. 이 때 인간은 위대함을 그리고 신적 인 근원을 보여준다. 인간이 어떤 종류의 위업을 이룩하는 지, 어떻게 인간이 자신의 오성의 한계를 뛰어넘는지, 인간의 법규속에 어떠한 지혜가 발휘되어 있는지 그리고 기념비적 일 을 위해 인간이 얼마나 부지런하였는지를 우리는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어떤 사람도 이 인간 일반을 특별한 탐구대상으로 삼 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책(『풍속론』)의 저자는 자랑스럽게 ‘나 야말로 텅빈 허공을 향해 자유로운 발자국을 내디딘 최초의 사 람이 다’ 라고 말할 수 있다. >21 )

21) Lessin g, Lachmann-Muncker 판 전집 5 권 v, 1 4 3 쪽 .

레싱은 18 세기에 볼테르의 최대 반대자요 비판자였지만, 볼 테르가 행한 역사 연구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정당하게 다루고 있다. 그는 볼테르의 기본사상의 핵심을 꿰뚫어 표현한다. 왜 냐하면 볼테르의 의도는 무엇보다도 역사를 우연적인 개인의 영역을 넘어서 다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볼테르는 일회적이고 개별적인 것을 묘사하려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정신〉을 그리 고 〈민족의 정신〉을 밝혀내려고 한다. 그를 매혹시킨 것은 사 건의 연속이 아니라 문화의 발전과정이요, 문화의 개별적 계기 들이 어떻게 내적으로 연관되느냐 하는 점이다. 볼테르가 전하 는 바에 의하면 『풍속론』의 초안은 역사지식의 개별성과 산만 성을 탄식했던 드 샤트레 후작부인 Mar qu i se de Cha t ele t에게 바

쳐지고 있다. 개별 사실들을 법칙으로 환원시키는 뉴턴의 자연 과학과 대바될 만한 것이 역사과학에 있어서도 가능하여야 할 것이다 . 그러나 역사에 있어서 법칙의 인식이란 생각조차 못했 다. 무한히 다양하고 변화무상한 인간 역사의 흐름 속에서 불 변적이고 자기 동일적인 것을 찾기란 실로 어렵다. 만약 이런 것이 있다면, 이것은 단지 인간본성 속에서만 찾아질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역사 속에서 정치적 사건, 제국의 흥망성쇄, 왕 조의 멸망만을 주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인간을 주시해야 한다. 〈나는 인간이다 homo sum 〉라는 명제는 모든 역사가의 모토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부분의 역사가는 전쟁 사만을 기록하여왔다. 역사가의 참된 대상온 정신의 역사이지 〈거의 언제나 왜곡되어 있는 세세한 사실〉이 아니다. 〈변화무 상한 사실의 거대한 무더기 대신에 이제 가장 확실하고 중요한 사실들만을 가려내야만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역사가는 독자 로 하여금 인간정신의 소멸과 재생과 발전에 관해 스스로 판단 할 수 있도록 하며, 모든 민족들의 성격과 풍속을 배우게끔 한 다.〉 22) 볼테르에 의하면, 지금까지 역사기술의 본질적 결함은 한편으로 사건의 신화적 파악 내지 해석이요, 다른 한편으로 영웅숭배이다. 이 양자는 상호 의존적이며, 동일한 것을 표현 만 달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영웅, 지도자 및 지배자에 대 한 숭배는 바로 역사의 신화화(神話化)에서 생기며 숭배의식은 이 신화화를 통해 끊임없이 자양분을 섭취하기 때문이다. 〈나 는 영웅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세상을 너무 요란스럽게 한다. 나는 뽐내는 저 정복자들을 증오한다. 그들은 지고한 행 22) Voit ai r e , Remarqu es po ur servir de supp le ment a L 'Essai sur /es Moeurs, Leq ui e n 판 전집 (Pa ris, 1820) 18 권, 429 쪽 이하를 참조.

복을 전투의 공포 속에서 찾으며, 어디서나 죽음을 노리며, 수 많은 사람들에게 죽음의 고통을 겪게 한다. 그들의 영광이 찬 란하면 할수록, 그 만큼 그들은 증오스러운 자들이다.〉 이 말 은 볼테르가 코투지츠 Cho t us it z 전투 23) 에서 승리한 프리드리히 대왕에게 보낸 편지 속에 쓰여 있는 말이다 .24) 이제 뚜렷한 방 법적 의도 아래 역사기술의 중심점은 정치사에서 순수 정신사 로 옮겨진다. 여기에 볼테르와 몽테스키외를 확연히 구별해 주 는 하나의 근본적인 뜻이 있다. 볼테르의 『풍속론』과 몽테스키 의의 『법의 정신』은 거의 같은 시대에 비슷한 문화적 조건 아 래에서 나타났다. 몽테스키의에게서는 정치적인 일이 역사의 중심이 된다. 국가가 세계사의 본래적이고 유일한 주제가 된 댜 그래서 역사의 정신온 〈법의 정신〉과 일치한다. 이에 반하 여 볼테르에게서는 정신의 개념이 더 포괄적으로 확대된다. 정 신의 개념은 이제 내적 생(生)의 전 과정을, 다시 말해서 인간 이 참다운 자기 의식에 도달하기까지 거쳐야 할 모든 변화의 총체를 의미한다. 『풍속론』의 참된 목적은 인간이 참된 자각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점진적인 진보과정을 밝혀내려는 것이요, 이 과정에서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될 방해요소들을 밝혀내려는 일 이다. 만약 정치적 발전만이 고려된다면, 이 과제는 해결될 수 없다 . 인류의 진보과정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리는 종교, 예 술, 과학, 철학의 발전을.다 포함해서 인간정신이 현재에 이르 기까지 전개하여 온 여러 다양한 국면들을 총체적으로 파악해 야한다.

23) 역주: 1742 년 5 월 17 일 프리드리히 대왕 휘하의 프러시아군이 오스 트리아군을 격파한 곳임. 24) 1742 년 5 월 26 일자 편지 . Leq ui e n 판 전집, 51 권 119 쪽.

그런데 볼테르의 이러한 역사고찰은 하나의 어려운 문제를 제기한다. 만일 우리가 이 고찰방식과 이의 기본 전제들을 심 도 있게 분석한다면, 우리는 하나의 독특한 딜레마에 빠진다. 볼테르는 발전사상을 열렬히 옹호한다. 볼테르가 당시대나 후 세에 가장 강력하게 영향을 준 사상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발전사상이다. 콩도르세의 『인간정신의 발전에 관한 역사적 소묘 Esq u is s e d'un tab leau his t o riq u e des pro g re s de !'espr i t huma i n 』는 볼테르의 이념과 원리를 확대시킨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볼테르에 의하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항상 동일 하며, 그 본성온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간의 발전에 관한 믿음과 인간 근본의 동일성에 대한 확신은 서로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가? 후자의 전제가 옳다면, 정신의 본래적 실체는 역사 의 모든 생성 변화와는 무관하게 되며, 역사적 생성이란 정신 의 내면 깊이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표면적인 것이 된다. 역사 현상의 껍질과 알맹이를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라 면, 역사를 지배하고 움직이는 힘은 언제 어디서나 동일한 것 임을 알 것이다. 이미 르네상스 시대에, 그리고 마키아벨리와 로드비 코 비 베 스 Lodovic o V i ves 에 의 해 주장된 이 사상 25) 은 볼 테르에 의해 더욱 더 확고해진다. 볼테르는 자기의 역사저술들 의 여러 곳에서 이 사상을 명백히 그리고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풍속론』의 말미에서 그는 다시 한 번 전체를 조망하면 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주제를 탐구한 결과 분명히 밝혀 진 것은, 첫째 인간본성에 내밀한 모든 것은 우주의 한 끝에서 다른 끝까지 동일하다는 것이요, 둘째 관습에 기인한 모든 것 25) 이에 관해 자세한 것은 Cassir er , Erkenntn is pr oblem , 2 판, I, 164 쪽 이하를 참조.

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만약 관습에 기인한 것이 동일한 경 우가 있다면, 이것은 단지 우연의 소치일 뿐이다. 관습의 영역 은 본성의 영역보다 훨씬 광범해서 풍속과 관례의 영역도 포함 한댜 관습이 우주라는 무대에 다양성의 씨를 뿌린다면, 본성 은 통일성의 씨를 뿌린다. 본성은 어디서나 몇 안 되는 불변의 원리들을 세운다. 이렇게 해서 어디서나 기초는 똑같은데, 문 화는 다양한 열매를 맺는다.〉 26) 만약 이렇다면, 참된 의미의 철 학적 역사가 있을 수 있는가? 우리가 현상의 다양한 표면을 뚫 고 들어가서 어디서나 동일한 원리들을 발견하게 된다면, 변화 나 발전은 하나의 가상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역사의 진행에 대한 철학적 인식은 원칙적 으로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역사적 현상의 다양성은 본성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단지 습관에서 나온 것이요 따라서 하나의 환상에 불과한 것이라 한다면, 철학자는 그런 것에 대해 의당 등을 돌리고 말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볼테르의 역사철학은 만족할 만한 명백한 답변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풍속론』에서 이에 대한 암시적인 해결책이 제시된다. 『풍속론』에서 볼테르 는 단순히 사건을 기술할 뿐만 아니라 현상들을 지적으로 분석 함으로써 우연적인 것과 필연적인 것을, 그리고 지속적인 것과 일시적인 것을 구별한다. 이런 점에서, 볼테르는 역사학자의 탐구와 자연과학자의 탐구를 똑같은 것으로 본다. 역사학자와 자연과학자는 뒤엉킨 현상들의 배후에 숨어있는 법칙을 탐구한 다. 자연에서와 마찬가지로 역사에 있어서도 이 법칙은 더 이 상 신의 섭리로 생각되어서는 안 된다. 자연인식과 역사인식에 26) Essais ur/esMoeurs , chap . CXCVII: 전집 18 권, 425 쪽.

서 소박한 신학은 거부되어야 한다. 볼테르는 이러한 신학의 예를 보쉬에의 『 보편사론 』 에서 찾는다. 그는 이 저작을 문학적 인 걸작으로 칭찬해 마지 않으나, 보쉬에가 황금 속에 거짓 보 석을 박아 놓았다고 비난한다 . 27) 비판적인 참된 역사적 사실의 기술이 역사에 공헌하는 것은, 수학이 자연과학에 공헌하는 것 과 똑같다. 참된 역사기술은 궁극원인의 지배로부터 역사를 해 방시키고, 역사를 경험적인 현실적 원인으로 환원시키는 작업 이 되어야 한다. 자연과학이 자연적 사건의 기계론적 법칙을 인식함으로써 신학으로부터 해방되었듯이, 역사학에서는 심리 학에 의해 이러한 작업이 성취되어야 한다. 심리학적 분석은 발전개념의 참된 의미를 규정하고 정초하고 정당화한다 . 그러 면서도 동시에 그것은 발전개념의 한계를 밝혀낸다. 심리학적 분석에 의하면, 인간은 자신의 본질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 그리고 이 본질 자체는 단번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온갖 방 해과 저항들을 하나하나 끊임없이 극복하여 나감으로써만 서서 히 자신의 모습을 갖추고 드러날 수 있다 . 우리는 인간의 근본 힘으로서 〈이성〉을 처음부터 타고 난다. 이성온 어디서나 똑같 은 하나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이러한 통일적인 완전한 형태 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관습과 습관의 무게에 눌려 숨겨져 있으며 일상적인 선입견의 목소리에 억눌려 있다. 역사는 이성 이 어떻게 하여 점차 이런 방해물들을 극복해서 그 참된 모습 울 실현시켜 나가는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발전이라는 말은 이 성 즉 인간성 자체를 두고 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이성이 밖 으로 드러남〉 혹은 〈이성이 경험적이며 객관적으로 가시화(可視 27) Volta i r e , Le Py rr honis m e de !'His toi r r ;( I7 68), Chap . 2 ; 전집 26 권 163 쪽.

化)됨〉을 뜻한다 . 역사 발전의 근본의미도 바로 이러한 이성의 가시화요 현현화(顯現化)를 의미한다. 역사는 이성의 원천에 대 한 형이상학적 물음을 제기할 필요도 없고 또 이에 대답할 수 도 없다. 왜냐하면 이성 자체는 초시간적인 것이요, 발생의 문 제가 제기될 수 없는 영원하고 필연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 역 사는 단지 이 영원한 것이 어떻게 하여 시간 속에서 자신의 모 습을 드러내는지, 다시 말해서 어떻게 하여 그것이 시간의 흐 름 속에 들어와서 자기의 본래 모습을 점점 더 완전하고 순수 하게 드러내는지를 밝힐 따름이다. 이러한 기본생각을 가지고 볼테르는 이론적인 설계를 세웠 댜 그리고 이후 계몽기의 모든 역사기술은 바로 이 설계를 본 으로 삼는다. 볼테르 자신은 『풍속론』에서 이 설계를 완전히 실현하는 데 실패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실패의 원인을 볼테 르의 체계적인 기본사상의 탓에 돌려서는 안 된다. 만약 우리 가 이 실패를 예로 들어 〈계몽철학이란 원리적으로 ‘비역사적’ 이다〉라는 명제를 증명하려 한다면, 이는 너무나 성급하고 불 성실한 비판이다. 흔히 지적되는, 역사 기술가로서의 볼테르가 지닌 약점들은 그의 체계의 약점들이라기보다는 그의 개성과 기질에 기인한 것들이다 . 볼테르의 천성온 조용히 역사적 고찰 만을 할 수 있을 만큼 참을성이 있는 조용한 사람이 아니다. 그가 과거 역사를 되돌아볼 때, 이는 과거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한 것이다. 과거 역사란 그에게 목적 이 아니라 수단이요, 인간정신의 자기계발을 위한 도구일 뿐이 댜 볼테르는 단순히 고찰하고 탐구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 다. 그는 욕구하고 이 욕구의 내용들을 정열적으로 선취(先取) 한다. 왜냐하면 그는 더 이상 자기가 도중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목적에 도달해 있다고 믿었으며, 많은 노력과 방황 끝에 이제 곧 도달하게 될 목적을 예감하는 감격 속에 도취되어 있 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인적인 기본 정조와 정열의 때깔이 그의 역사서술에 항상 거듭하여 영향을 끼친다. 볼테르가 자신 의 이상들을 과거 속에서 발견하면 할수록, 그 만큼 더 그의 역사서술은 자신만만한 냄새를 풍긴다. 이런 역사서술은 『루이 14 세 시대』라는 저술에서 그 절정에 달한다. 볼테르는 다른 시 대에 대해서도 명료하게 고찰하고 날카롭게 인식할 수 있었으 나, 언제나 너무나 재빠르고 민첩하게 판단을 내림으로써 조용 히 역사탐구에 침잠(沈潛)할 수 없었다. 철학자로서의 이성의 자만심이 역사가로서의 볼테르의 입을 막는다. 〈이성의 고전시 대〉인 자신의 시대가 참된 식견과 인식에 있어 중세뿐만 아니 라 그렇게 칭찬해 마지 않는 고대보다도 훨씬 더 탁월하다는 생각과 믿음이 거듭 꼬리를 물고 나온다. 여기서 볼테르는 순 수 이론가로서의 자신이 그렇게 정열적으로 반대하여 싸워왔던 소박한 목적론에 빠져버린다. 보쉬에가 역사 속에서 신학적 이 상을 보았다면, 볼테르는 역사 속에서 자신의 철학적 이상을 본다. 전자가 성서의 척도를 가지고 과거를 재었다면, 후자는 도처에서 자신의 합리적인 척도를 가지고 과거를 거리낌 없이 재단해 버린다. 이 모든 것이 보편사의 위대한 설계를, 그가 분명하게 머리에 그렸던 그리고 모든 문화와 시대와 민족을 똑 같은 사랑으로 포괄하여야 할 보편사의 위대한 설계를 실행하 는 데 방해가 되었다. 그러나 볼테르의 역사파악이 지니는 이 러한 결점은 그가 본래 지니고 있는 〈덕(德)들의 결함〉에 기인 한 것이 분명하다. 그의 역사파악의 한계성으로 나타나는 것 은, 다른 면에서 볼 때 바로 그의 서술의 매력이 되는 것이

요, 동시대인들을 감동시키고 매혹시킨 서술의 생동감과 개성 의 원천이 된다. 볼테르는 역사적 서술로서의 위대한 예술품의 유형을 다시 창조하고 이 유형을 고전적으로 몸소 구현시킨 18 세기의 제 일급 사상가이다. 1740 년 스웨덴의 노르드베르그 Nordberg 신부가 샤를르 12 세에 대한 박학한 역사책을 내면 서, 이 책에서 볼테르의 여러 가지 오류를 지적하고 특히 볼테 르의 『샤를르 12 세 시 대 의 역 사 His t o i r e de Charles X If. 』 에 대 한 몇 가지 사소한 비판을 했을 때, 볼테르는 풍자적으로 이 비판을 맞받아치고 있다. 노르드베르그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볼테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50 년 전에 불타버린 스톡홀름 성의 교회가 새로 지은 궁전의 북쪽 날개 편에 위치하였다든 지, 그 교회에서 예배를 볼 때에는 좌석들이 푸른 천으로 씌워 졌다든지, 혹은 좌석의 일부는 참나무로 만들어지고 또 다른 일부는 호도나무로 만들어졌다든지 하는 등등의 사실온 아마도 유럽에 있어 중요한 사실일는지 모른다. 샤를르 12 세가 즉위할 때 앉았던 옥좌의 차양이 얼마나 넓은지, 그리고 그 색깔이 무 엇이었는지를 아는 것이 지극히 중요한 일이라고 우리도 믿고 자 한다. 이 모든 것은 군주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 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쓸모 있는 일이다. 그런데 역사가는 여 러 가지 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이 중 두 가지만을 당신에게 말씀드리도록 하지요. 첫째는 남을 비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요, 둘째는 남을 지루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첫째 것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해서 나는 당신을 용서할 수 있습니 다. 왜냐하면 당신의 책을 읽는 사람은 별로 없을 터이니까요. 그러나 둘째 것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용서할 수 없군 요. 왜냐하면 당신은 내가 당신의 책을 읽지 않을 수 없게 만

들었으니까요 .〉 28) 이것은 단순한 풍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여 기서 볼테르는 자신이 하나의 규범으로 확립해 놓은 그리고 또 몸소 실천한 역사기술의 새로운 문체론적 ( 文體 論的, sti list i sc h) 이상을 표현하고 있다. 체스터 필드 경 Lord Cheste r F i e ld 은 볼 테르의 역사책들에 대해 〈 정신을 지닌 사람들을 위해 한 천재 가 쓴 〉 인간정신의 역사라고 말한다. 다른 분야와 다르게 역사 분야에서 볼테르는 단순한 지적 재치에 빠지는 경향이 훨씬 줄 어든다 . 왜냐하면 여기서 그는 광범하고 철저한 개별 연구들을 하고 있으며, 소위 역사적 〈 세밀성 Akr i b i e 〉 에 충실하기 때문이 다. 특히 그는 사회학적으로 자세한 고찰을 하는 데 심취해 있 다. 그는 여러 국가들의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실책들과 이 국 가들 사이에 일어난 전쟁들을 기술하기보다는 각 시대의 사회 상태, 가족생활의 형태, 그리고 수공업과 예술의 발전 상태를 즐겨 묘사하려고 한다. 그는 어원학과 언어학에서도 도움을 구 한다. 그에 의하면, 확실한 어원적 해명이 여러 민족의 여러 변화상을 통찰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고 한다. 한 민족이 사용 하는 문자는 그 민족의 진정한 교사들이 누구였는지를, 그리고 이 민족이 최초의 지적 계발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 지를 알 수 있는 훌륭한 증거품이 된다 . 2 9 ) 또한 순수 학문사(學問史)를 쓰 더라도 여기서 제시된 방법론적 요구들을 충족시켜야 한다. 이 28) Hi st o i r e de Charles XII (1 7 44 ) 의 신판 서문에 들어 있는 노르드베르 그씨에게 보내는 편지, 전집 22 권 12 쪽 이하 ; 볼테르에 대한 노르드베 르그의 비판에 관하여 자세한 것은 Georg Brandes, Volta i r e I, 182 쪽 이하를 보라 . 29) Essai sur !es Moeurs, int r od ucti on , 전집 15 권 110 쪽 역사가로서의 볼테 르를 자세 히 알려 면 Gusta v e Lanson, Volta ir e , Chap . 6; 6 판, 107 쪽 이하를 보라.

점에서 달랑베르도 볼테르의 제자가 된다 . 달랑베르가 쓴 백과 사전의 서문이 철학적 내지 문학적 측면에서 끼친 결정적 영향 은, 이 서문 속에서 처음으로 학문의 발전이 새로운 관점에서 논 의되고 정립되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달랑베르에 의하면, 학문 의 발전은 새로운 지식의 단순한 첨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 식 자체의 이념이 방법적으로 자신을 전개해 나가는 데 있다. 개별적인 주제들을 다룬 여러 역사들 대신에 하나의 철학적 원 리학이 제시되어야 하고, 학문의 역사는 이 원리학에 입각하여 다루어져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 『철학의 요소들』에서 달랑 베르가 보여준 지식의 백과전서적 계획을 보더라도, 그는 역사 의 과제를 위와 같은 의미로 규정하고 있다. 〈 학문과 예술의 보편사는 인식, 견해, 논쟁 및 오류라는 네 가지 큰 대상을 포 함한다 . 인식의 역사는 우리의 현실적 빈곤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그것은, 인간의 지식이 얼마나 근소한 것인가를 보여줌 으로써, 인간을 겸손케 한다. 반면에 그것은, 얼마 되지는 않 지만 명석하고 확실한 개념을 조심스럽게 사용할 줄 알게 된 자취를 보여줌으로써, 인간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며, 적어도 인 간을 위로해 준다. 견해의 역사는, 인간이 어떻게 하여 __- 때 로는 어쩔 수 없이 때로는 조급한 마음 때문에 -진리 대신 에 주관적 견해를 지니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 그리고 그것은 그저 견해에 불과하던 것이, 수세기에 걸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새롭게 천착되고 순수하게 되고 심오하게 됨으로써, 진리 로 변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그것은, 검증되여야 할 수많은 사실들, 추구해야 할 수많은 관점들 , 근거를 세워야 할 수많은 추측들, 그리고 확장시키고 완전하게 하여야 할 수많은 단편적인 지식들, 이 모두를 우리 시대의 명민한 사람들과 후

손들에게 숙제로서 제시한다 . 마지막으로 오류의 역사는 우리 자신과 더불어 다른 사람들을 일단 의심해 보는 방식을 우리 에게 가르쳐준다. 그것은 진리로부터 멀어지는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우리가 진리에 이르는 오솔길을 찾는 일에 도움을 준다. >30) 달랑베르의 이러한 계획은, 정밀과학의 역사에 관한 한, 그 의 천재적인 제자의 저술 속에서 아주 훌륭하게 실행되었다. 라그랑지 La g ran g e 의 『해석 역학 Mechan iq ue Ana lytiq u e.』은 오 늘날까지도 탁월하게 돋보이는 과학사의 모범이다. 그 후의 저 술들 예컨대 뒤링 Eug e n Duhr i n g의 『역학의 일반 원리에 관한 비 판적 역 사 Kriti sc he Geschic h te der allge mein e n Pr inz ip ien der Mechan ik,』는 라그랑지의 방법적 모범을 철저히 따르고 있다. 그런데 달랑베르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역사에 서 이론적 가치 뿐만 아니라 윤리적인 가치도 찾으며, 역사로 부터 〈도덕적 인간〉의 완전한 인식을 기대한다. 〈역사과학들은 두 가지 면에서 철학과 연관된다. 하나는 역사적 확실성의 근 거를 제공하는 원리의 면에서이고, 또하나는 역사로부터 우리 가 이끌어낼 수 있는 유용성의 면이다. 세계라는 무대 위에 놓 여진 인간들은, 현자가 보기엔, 관객이거나 배우이다. 현자는 물리적인 세계와 마찬가지로 정신적인 세계도 선입관 없이 고 찰하고 탐구한다 . 그는 자연현상을 탐구할 때와 마찬가지의 조 심성을 지니고 역사 저술가들의 보고서를 탐구한다 . 그는 미세 한 점들까지도 찰 구분하여서 역사적으로 참된 것과 그저 그럴 듯한 것을, 그리고 그럴돗한 것과 순전히 상상으로 꾸며진 것 30) d'Alembert, Elements de Phil o sop h i e, sect II(Melang e s de Lit ter atu r e, T. IV, 9 쪽 이 하) .

을 구별한다. 그는 또한 정직하게 말하는 투와, 아첨에서 나온 말투를 편견을 가지고 말하는 투와 증오심에서 나온 말투를 각기 구별할 줄 안다 . 그래서 그는 개별적인 증거들이 지니는 신빙성과 중요성의 여러 정도 차이를 확정지울 수 있다 . 이러한 섬세하고 확실한 규칙에 좇아서 그는 과거를 연구하되, 무엇보 다도 그와 함께 더불어 살고 있는 동시대인을 더 잘 인식하기 위해서 과거를 연구한다. 보통 사람에게 있어 역사는 호기심을 만족시켜주거나 시간 보내기 위한 이야기 거리에 지나지 않을 는지 모른다. 그러나 철학자에게 있어 역사는 인간에 관한 인 간의 도덕적인 경험들의 집합이다. 아마도 현자가 모았다면, 이 집합은 훨씬 더 짤막해지고 훨씬 더 완전해졌을 것이다. 그러 나 이 집합이 비록 현실적으로 불완전하더라도, 그 안에는 역 시 위대한 가르침이 들어 있다. 그것은 마치 모든 시대의 의학 적 고찰의 결과를 모은 집합, 다시 말해서 ‘양적으로 점점 증 가하나 역시 여전히 불완전한, 그러면서도 치료술의 요체를 모 두 담고 있는 의 학적 고찰들의 결과를 모은 집 합’ 과 같다 . >31 ) 그래서 계몽철학은 역사를 근거로 해서 인간에 대한 철학적 지 식의 이념을 탄생시킨다. 이것은 바로 칸트가 체계적으로 형성 해서 강의한 바 있는 보편적 『인간학 An t hrop olo g%의 이념이 다 .32) 비판적인 철학사에 대한 최초의 시도들은 달랑베르의 이 러한 작업들과 밀접히 연관된다. 디드로가 백과사전에 기고한 〈개별적 철학 체계들〉에 관한 논술들은 역사적인 창의성을 별 로 지니지 못한다. 디드로가 벨, 브루커 Brucker 에, 그리고 특 31) d 'Alembert, 같은 책, III: a. a. 0. 16 쪽 이하. 32문) (특We히rk e1,7 6A5-u1s7g6 .6 년Ca ss사ir이e r 의판 , 겨전 울집학 기2 권 ,강 의31 9계 쪽획 이 에하 )관을한 참칸조트하의라 .공 고

히 델 랑드 Deslandes 의 『비 판적 철 학사 Hi sto i r e cri tiqu e de la Ph i losop h ie,』에 의존하고 있음은 도처에서 드러나고 있다 . 그럼 에도 불구하고 이 논술들 속에는 하나의 새로운 정신의 분석적 인 활동이 돋보이는데, 특히 홉스, 스피노자 그리고 라이프니 츠 같은 근세철학을 해명하는 데에서 크게 돋보인다. 다시 말 해서 이제 의견들을 단순히 나열하는 대신에, 학설들의 내용에 대한 그리고 학설들의 역사적 발생조건들에 대한 역사적이고 체계적인 분석이 점차 자리를 넓혀간다. 물론 모든 분야에서 18 세기의 특징인 분석정신이 돋보였으 나, 이제 역사분야에서도 이 정신은 그 나래를 편다. 분석정신 으로 말미암아 역사에 있어서도 이제 변하는 것보다 불변적인 것이, 그리고 변화의 계기보다 항구성의 계기가 강조되었다. 그런데 역사분야에서 이러한 지배적 경향에 반대하면서 끝까지 자신의 독자적 인 입 장을 고수한 단 한 사람은 흄이 었다. 인식 론이나 종교철학에서 그는 계몽사조에 따르고 있으나 역사철학 에서는 계몽철학의 일반적 유형을 따르고 있지 않다. 인간본성 의 확고부동한 모든 성질들을 인식하려고 하는 역사의 정적 (靜 的)인 고찰방식은 흄에게는 거리가 멀다. 그는 역사적 과정 그 자체를 중요시했지만, 이 과정의 밑받침으로 전제되는 항구적 기체 Subs t ra t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그는 논리학자로서 뿐만 아니라 역사철학자로서도 실체개념을 비판한다. 그는 역사를 끊임없는 발전으로 보지는 않았으나, 여전히 역사의 끊임없는 변천과정 자체를 살피는 것으로 홉족했다. 이러한 변천과정에 서 그는 어떠한 〈이성〉도 추구하지 않고 또 믿지도 않는다. 합 리적인 관심사로서가 아니라 심리적이고 미적인 걸 s t he ti sch 관심 사로서 그는 거듭 역사적 변천과정을 살핀다. 인식론에서 그

중요성이 강조된 그리고 추상적 이성의 자리를 대신한 〈상상력 E i nb i ldun g skra ft〉은 역사에 있어서도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닌 다. 흄은 상상력을 모든 역사적 고찰의 근본 힘으로 간주한다. 〈우리의 상상력이 태고의 시대로 더듬어 옮겨갈 때, 여기서 사 람들이 더불어 사는 여러 모습을 그려볼 때, 여기서 학문과 예 술을 위해 최초의 연약한 싹들의 혼적을 추적할 때, 이로부터 정부의 형태나 정책이 그리고 우리의 취미와 표현 어법이 꾸준 히 세련되어가는 모습을 그려볼 때, 그리고 인간의 삶을 아름 답게 꾸미고 장식하는 요소들이 하나하나 완성되어 나가는 모 양을 새겨볼 때, 실로 이보다 더 큰 매력과 즐거움이 어디에 있겠는가?〉 33) 이러한 일반적인 서술에서 볼 때, 흄은 역사의 궁 극목적을 미리 규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구체적이고 풍부 한 사실내용에 탐닉할 뿐이다. 비록 개념적인 파악이 불가능하 더라도, 그리고 비록 궁극적인 원인들을 알 수 없다 할지라 도, 홈에게 있어서 역사는 다른 무엇에도 비길 수 없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고상한 〈정신의 일거리〉였다. 〈심심할 때 시간 울 보내기 위한 하찮은 소일거리가 어찌 이 고상한 정신의 일 거리에 비교될 수 있겠는가? 우리의 마음을 흘릴만한 더 가치 있는 대상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하찮은 잡기를 소일거리로 삼는 사람들의 취미란 얼마나 타락하기 쉬운가?〉 이렇게 흄은 역사를 높이 평가하고 인간 현존의 가장 고상한 장식품이라고 찬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한 흄은 역사에 있어서도 회의 주의를 버리지 못한다. 만일 우리가 〈역사학에 대한 흄의 찬양〉 과 〈역사에 대한 18 세기 전반의 기대, 요구 내지 이상〉을 비교 33) Hume, Of th e Stu dy of Hi st o ry , Essays Moral, Politi ca l and Lit er ary , ed. Green and Grose, London, 1898, II, 388 쪽 이하.

한다면, 양자의 차이점이 뚜렷이 드러날 것이다. 흄은 이러한 이상을 거부하고 의심한다. 〈역사는 얼마나 드라마와 같은 생 (生)의 모습을 보여주는가? 위대한 국가의 생성, 발전, 쇠퇴, 멸 망의 흔적을 추적해보고, 또 어떤 덕들이 국가를 융성케 하고 어떤 악덕들이 국가를 몰락시키게 되는지를 알아보는 것같이 즐거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모든 인류의 삶의 과정을 그 시초 에서부터 우리 눈 앞에 재연시켜 보는 일, 당대의 구경꾼들의 판단을 혼란시켰던 모든 가식들을 제거해 버리고 삶의 진정한 색 깔과 모습을 생각해 보는 일, 이것보다 더 홍미 있고, 더 다양 하고, 더 장대한 것이 있겠는가? 우리의 감관기관이나 상상력을 즐겁게 해주는 데에 이보다 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34) 확실 히 역사는 하나의 장관이다 . 그러나 흄에게 있어서는 그저 장 관으로서 끝난다. 왜냐하면 흄온 더 이상 이 장대한 생성의 깊 은 의미와 그 바탕 구조를 밝혀낼 수 있다고는 믿지 않기 때문 이다. 그는 〈역사 세계의 사건들을 가장 깊숙한 내면에서 연관 시켜주는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을 포기한다. 그는 역사가 자 신 앞에 펼쳐 보이는 끊임없는 변화상들을 고정된 〈이념〉의 틀 에 짜맞추려고 하지 않고, 그저 이 변화상들의 외모만을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흄의 회의를 단지 그 부 정적 계기에서만 본다면 옳지 못하다. 흄의 회의는 이러한 부 정적인 점에서도 하나의 중요한 적극적 역할을 하고 있다. 왜 냐하면 흄이 성급한 보편화에 반대하고 역사의 순수 사실에만 관심을 둔 것은 하나의 방법적인 경고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방법적 지침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흄의 학설은 34) 같은 책, II, 388 쪽 이하.

개체의 일회적 특성과 고유성을 옹호하고, 개체를 승인하는 새 로운 길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승인이 진정한 철학적 가치를 획득하기 위하여는 한 단계의 새로운 조치가 필요하나, 흄은 이것을 할 수 없었다. 개체는 〈사실〉로서 확립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은 〈문제〉로 제기되어야 한다. 개념의 영역에 반대되는 사실의 영역을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개체 가 이 개념의 영역에서 어떠한 자리를 잡아야 하는가를 규정해 야만 한다. 보다 깊고 보다 어려운 이 과제의 해결을 위해서 는, 개체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확립하고 이 개념의 다양한 의 미와 가능한 적용 내지 변용을 추적해야 한다. 흄의 경험론과 회의론은 이런 과제를 해결하는 데 충분치 못하다 . 여기서 18 세기 정신사는 새로운 길을 개척할 새로운 인도자를 필요로 한 다. 그것은 라이프니츠 학설 속에 숨겨진 방법적인 보물을 찾 아내는 일이다. 왜냐하면 라이프니츠 학설은 단자론에서 개체 문제를 가장 극명하게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포괄적인 전체 철 학 체계 속에서 개체가 자리하는 위치를 확실히 해주었기 때문 이다. 4 라이프니츠의 실체 개념은 변하는 것 가운데서 항존적인 것 울 드러내고자 한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이 실체개념의 특징 온 하나와 다수 사이의 관계를, 그리고 지속과 변화 사이의 관 계를 순수한 상호관계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 개념은 더 이상 다수를 하나에 혹은 변화를 지속에 종속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두 가지 계기를 오직 그 상호관계에서만 해명하려는 것이 실체개념의 출발 전제이다. 따라서 진정한 인식은 단순히 지속 내지 변화의 인식이 아니라, 이 양자의 순수 내적 상호관 계를 파악하는 것이요, 이 양자의 상호규정을 보여주는 것이 댜 법칙의 통일성과 실체의 통일성은 오직 끊임없는 변화 속 에서만 드러내질 수 있고 표현될 수 있다. 물론 실체는 지속하 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속은 정지가 아니라 실체 발전의 불변적 규칙을 의미한다. 실체의 정적(靜的) 파악 대신 그 역동 적(力動的) 파악이 대두된다. 실체는, 이것아 힘인 한에서 다시 말해서 이것이 직접적으로 활동하며 이 활동의 결과 속에서 자 신의 본질을 드러내는 한에서, 〈주체〉 내지 〈기체 Subs t ra t〉이 댜 실체의 본성은 〈그 자체 완전 폐쇄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새로운 다양성을 자신으로부터 전개시켜 나가는 생산 성〉에 있다. 실체의 존립 Bes t and 은 바로 〈언제나 새로운 내용 을 존립케 함〉을, 다시 말해서 〈실체의 현상들을 끊임없이 생 산해냄〉을 말한다. 이 현상들의 전체는 물론 실체 속에 완전히 미리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외부의 우연적 조건에 의한 전혀 이질적인 〈새로운 형성 E pig enes i s 〉이란 있을 수 없다. 외부 힘 의 영향을 받아서 생겨나는 것으로 보이는 모든 것도 사실은 실체의 고유한 본성에 이미 근거를 두고 있으며, 따라서 이 고 유한 본성 속에 미리 규정되어 있고 예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 러한 예정적 ·규정은 그 자체로 이미 완성되어 주어진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실체의 완성은 오히려 실체의 전개 활동이 완성될 때에 나타난다. 이 전개 활동의 중간이나 끝도, 그것의 시작과 마찬가지로,. 필연적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실체에 속 한 일이다. 라이프니츠 형이상학에서 〈단자〉의 존재는 단자의

동일성 Iden tit a t에 의 거 한다. 그런 데 라이 프니 츠는 이 동일성 에 지속성 Kon ti nu itat을 포함시킨다. 동일성과 지속성의 결합으로 부터 단자의 총체성 To t a litat이 나온다. 바로 이 총체성에서 모 나드의 완결성 Geschlossenheit 내지 모나드의 특징적 전체성 Ganzhe it이 성 립 한댜 35) 라이프니츠 형이상학의 이러한 근본사상에 의하여 역사세계 를 공략하고 지적으로 해명할 수 있는 새로운 바탕이 마련된 다. 그러나 이 새로운 바탕의 씨앗이 성장해서 풍요한 결실을 얻을 수 있기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컬린다. 물론 볼프의 체계 도 역사적인 것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볼프는 역사와 합리 사이 를 어떻게든 연결하고자 애쓴다. 볼프의 지식론에 의하면, 개별 과학온 〈추상-합리적인 것〉과 〈경험 -구체적인 것〉과 〈역사적 인 것〉으로 나누어진다. 이런 체계의 골격은 경험의 정당한 가 치를 인정한다. 보편적 우주론 곁에는 경험적 물리학이 있고, 합 리적 심리학 곁에는 경험적 심리학이 자리잡는다. 이와 같이 체계상에서 볼프가 추구한 합리와 경험 사이의 균형은, 그러나 방법적으로 볼 때, 유지될 수 없었다. 수학적인 연역과 논증의 형식에 의하여 이 균형은 깨지고 만다. 철학의 본래 과제는 역 사적인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것이요,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것 이 아니라 〈가능적인 것〉이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의 역사철학 온 볼프 체계내에서 자리잡을 수 없었다. 그것은 기껏해야 여 러 인식 종류가 혼합된 튀기요, 말하자면, 인식의 한계를 뒤엉 클어 혼란시키는 것이요, 이른바 〈다른 것으로 주제가 전이됨 (轉移)됨 Meta b asis eis allo genos 〉을 뜻한다. 철학의 대상은 역 35) 이에 대하여는 이 책 1 장 48 쪽 이하를 참고하라.

사의 관심사인 사실의 세계가 아니라 〈근거율〉의 세계이다. 〈근 거율 Sa t z vom Grunde 〉은 사실세계를 문제삼을 때에도 철학의 최고 준칙이요, 철학을 인도하는 나침반이다. 근거의 보편성과 필연성온 역사 현상의 우연성, 일회성, 특이성과 배치된다. 따 라서 수리철학적인 명료성의 진정한 이상은 역사세계에서 획득 될 수 없다. 역사에서는 학문과 철학의 거룩한 밀실로 들어가 는 입구를 찾을 수가 없다. 이 입구는 전혀 다른 측면으로부터 열리기 시작한다. 철학의 추상적인 순수성은 역사적인 것을 배척하고 또 배척하여야 한 다고 믿었다. 그러나 신학온 이 양자 사이의 울타리를 처음으 로 허물기 시작하였다. 신앙의 〈교리적〉 내용과 〈역사적〉 내용 사이에 세워진 단단한 울타리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다. 이 울타리를 허무는 작업이 어떠한 사상적 동기에서 시작되고 전 개되었는지를 우리는 이미 앞에서 보았다 .36) 독일 정신사에서 레싱은 이 동기에서 비롯된 마지막 귀결들 울 이끌어내고, 방법적인 면에서 최고 정점에 도달한 사람이 댜 그는 『인류의 교육』에서 종교적인 것과 역사적인 것을 화 해시킨다. 역사적인 것은 종교적인 것에 없어서는 안 될 계기 내지 요소로서 인정된다. 그러나 레싱은 이러한 고찰을 세계사 자체로 확장시키지 않는다. 그는 아주 미세한 것에 이르기까지 섭리의 손길이 닿지 않는 데가 없음을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그는 주제넘게 이 신비의 장막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헤 르더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 마지막의 결정적 단계가 도달된 다. 그 전체적인 구체성에서 볼 때 헤르더의 업적은 비길 데 36) 이 책 244 쪽 이 하를 보라.

없이 탁월하고 사전의 예비적 단계가 없이 창조적으로 이룩된 것이다 . 그 업적은, 마치 신들의 업적과 같이, 무(無)로부터 탄생된 듯이 보인다. 그것은, 그 순수성이나 완전성에서 볼 때,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역사에 대한 직관으로부터 유래한 다. 그러나 역사세계에 대한 새로운 이 직관도, 만일 이룰 위 해 필요한 지적인 수단이 미리 준비되지 않았더라면, 결코 체 계적으로 성취될 수 없었을 것이다. 역사에 대한 헤르더의 〈형 이상학〉은 도처에서 라이프니츠와 연결되며 라이츠니츠의 근본 개념에 의거한다 .37) 반면에 역사에 대한 헤르더의 생동감 있는 직관력은 라이프니츠 개념의 단순한 도식적 적용을 허용하지 않는다 . 헤르더가 추구하고 헤르더를 만족시키는 것은 단순히 역사의 개요를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개별적 형태 자체에 내적인 생명감을 불어넣어주고 이를 다시 직관하는 것이다. 헤 르더는 〈분석적 고찰 내지 동일성의 원리〉의 마력울 철저히 깨 부순다. 역사는 동일성의 가상을 파괴한다. 그것은 실제로 동 일한 것을 알지 못하며, 동일하게 반복되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것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 역사는 자신이 생성 시키는 모든 것에 결코 상실될 수 없는 고유한 형태를, 독특한 방식의 현존 모습을 부여한다. 추상적인 일반화는 역사에 있어 소용이 없다. 유개념적이고 보편적인 규범은 역사의 풍요성을 파악할 수 없다. 개개 인간은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역 사에서 각각의 국면은 내재적 권리와 내재적 필연성을 지닌다. 이 반면에, 개개 민족들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이들은 오직 37) 헤르더의 역사철학과 라이프니츠 철학의 근본 개념의 관계에 대해 서 는 Cassir e r, Freih e it und Form, Stu die n zur deuts c hen Geis tes - ges chic h te , 3. Aufl ., 180 쪽 이하에서 자세히 다루어진다.

전체 속에서만 있고 전체를 통해서만 존재한다. 그러면서도 이 들 각각은 전체를 위해 없어서는 안될 것들이다. 이러한 철저 한 이질성 Hete r og e ne 속에서 비로소 진정한 통일이 이루어지 는 바, 이 통일은 과정의 통일로 생각되어야지 존재의 동일성 으로 생각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가가 처음에 해야 할 일은 자 신의 척도를 대상에 맞추는 것이요, 대상을 자신의 고정된 척 도에 종속시키는 것이 아니다. 이집트인에 관련해서 헤르더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정신의 유아기 시대에 있는 이집트 인의 덕을 다른 시대의 척도로 잰다는 것은 바보 짓이다. 이런 점에서 희랍인조차도 오류를 범한다. 그러므로 먼저 생각하여 야 할 일은 이집트인을 이집트인의 위치에서 본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유럽인의 관점에서 일그러진 이집트인의 실없는 희화(戱畵)만을 볼 뿐이다. >역 사는 일체의 일반화를 포 기하여야 한다. 〈우리는 한 민족 전체, 한 시대 전체, 한 지역 전체를 그린다-이때 우리는 누구를 그린 것인가? 우리는 파 도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가운데서 민족과 시대의 변천과정을 개괄하여 파악한다――이때 우리가 그린 것은 누구인가? 이 그 림에 사용된 언어는 누구를 그린 언어인가? 구별된 것만을 구 별해서 말할 수 있는 인간에게 있어서, 그가 느끼고 살아가는 모양을 그대로 표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러한 인간이 사물들을 일단 자기 척도의 눈과 마음과 가슴으로 보고 느꼈을 때, 사물의 실상은 이와 얼마나 거리가 먼 것일까? 한 민족의 특성 속에는 또 얼마나 깊은 것이 놓여 있는가! 비록 우리가 이것을 느꼈다 할지라도 이 깊은 것은 우리의 관찰과 언어를 피해 버린댜 모든 민족, 모든 나라, 모든 시대의 커다 란 대양을 한 번 보고 느껴서 한 마디로 파악하려 한다면, 이

어찌 가소롭다 하지 않겠는가! 말이란 흐릿한 반쪽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삶의 방식, 습관, 욕구, 지리적 혹은 기후적 풍토, 이 모든 것의 생생한 그림은 어쨌든 언어로 표현되지 않 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들은 사라져버리기 때문이 댜〉 38) 구상적(具象的)인 형태를 우리 눈앞에 불러내 올 수 있 는 말들을, 따라서 분석적으로 쪼개는 것이 아니라 종합적으로 연관시키고 볼 수 있게 하는 말들을 찾아내는 데 헤르더의 정 열은 지칠 줄 모른다. 이 점에 있어서 그는 과연 대가적 풍모 롤 지닌다. 그는 각시대를 특성적으로 기술할 뿐만 아니라 자 신을 변화시켜 각시대 속으로 들어가 그 시대에 알맞는 고유한 분위기롤 자아낼 줄 안다. 철학자들이 정의하는 소위 〈불변적 이고 절대적이며 독자적인 행복〉의 꿈을 그는 거부한다. 인간 의 본성은 이러한 종류의 행복을 담는 그릇이 아니다. 〈인간의 본성은 자신이 누릴 수 있는 만큼의 행복을 도처에서 향수(享 受)한다. 그것은, 마치 마음대로 조형될 수 있는 진흙 같아 서, 상이한 여러 상태나 욕구나 필요에 따라서 자신을 여러 가 지로 형성시킬 수 있다. 행복의 내적 조건이 되는 취향이 변하 고; 행복의 의적 조건이 되는 기회나 사정이 변할 때, 누가 과 연 상이한 의미의 상이한 만족을 헤아려낼 수 있겠는가? …… 각각의 국가는, 마치 공이 무게의 중심을 지니듯이, 행복의 중 심점을 자신 속에 지닌다 . 〉 섭리 자체는 통일성이나 동일성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것은 변화 속에서, 즉 새로운 세력들의 끊 임없는 생성과 소멸 속에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 한다. 〈북쪽 산골짜기의 철학자여, 너는 너의 시대의 장난감 같은 저울을 38) Herder, Auch ein e Phil o sop h ie der Gescbic h te zur Bi/ du ng der Menschhe it, Sup h an 판 전집 5 권, 480 쪽 이 하와 501 쪽 이 하 .

가지고 섭리보다 더 잘 알 수 있단 말인가 ?39) 이런 말을 새겨 보건대, 헤르더는 하만 Hamann 의 영향과 도움으로써 자신의 시대를 벗어난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소리는 18 세기 역사철학 내에서는 들을 수 없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 소리는 몽테스 키외, 볼테르, 흄, 이 모두에 낯설은 말이다. 헤르더가 이처럼 계몽기의 사상세계를 벗어나긴 하지만, 그래도 그는 계몽기와 완전히 단절해 버리는 것은 아니다. 헤르더의 발전과 상승은 계몽기가 닦아놓은 길 위에서만 가능하다. 계몽기는 헤르더에 게 방법적 장비를 마련해 주나, 헤르더는 이 장비를 사용하여 계몽을 극복한다. 계몽기가 계몽기다운 명료성과 논리성으로써 기본전제들을 마련했다면, 헤르더는 이 전제들로부터 자기의 결론을 이끌어낸다. 따라서 헤르더에 의한 계몽의 극복은 진정 한 자기극복이다. 그것은 실로 자신의 승리를 의미하는 패배이 다. 그리고 이러한 패배속에서 계몽은 최고의 정신적 승리를 거둔다.

39) Herder, a. a. 0. , 507 쪽 이하 .

제 6 장 법, 국가 및 사회 l 법의 이념과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의 원리〉 계몽 철학의 기본 특성은 진보를 위해서 낡은 관습과 법을 부수고 새로운 삶의 양식을 세우고자 전진적인 노력을 하면서 도 언제나 철학의 근본 문제를 놓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단지 〈새로운〉 철학만을 내세우려고 할 뿐이라는 비난에 대한 데카 르트의 대답은 자기의 철학이야말로 오직 합리적인 원리와 이 성에 근거하므로 가장 나이가 든 연장자의 특권을 누릴 수 있 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데카르트에 의하면, 이성이야말로 장 자(長子)의 권리를 지니기 때문이다. 이성은 수세기 동안 이성 의 빛을 가려왔던 모든 견해나 선입견보다 연배가 훨씬 앞선다 고 한다. 계몽 철학은 데카르트의 이런 표어를 자신의 것으로 삼는다. 계몽 철학은 모든 영역에서 단순히 전래되어온 전통과 권위에 맞서서 싸운다. 그렇다고 그저 부정적이고 파괴적이기 만 한 것은 아니다. 계몽 철학은 오히려 인식이라는 건물의 참 된 기초를 드러내고 밝히기 위해서 세월의 흐름에 따라 부식된 쓰레기들을 깨끗이 청소하는 역할을 한다고 자부한다• 이러한

기초는 불변적이요, 인간성 자체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따라 서 계몽 철학은 자신의 역할을 파괴 행위가 아니라 원상복구 행위로 파악한다. 그 대담한 혁신적 행위에도 불구하고 계몽 철학은 하나의 복권(復權)에 지나지 않는다. 이른바 〈완전한 복 권 resti tutio in int e g rum 〉을 통해 이성이 본래 지녔던 옛 권리를 되찾고자 한다. 계몽 철학의 이러한 이중적 성향을 역사적 관 점에서 풀어보면, 계몽 철학은 한편으로 당대나 바로 앞선 시 대에 대항하여 싸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언제나 고대 사상 의 원천으로 되돌아가려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것은 르네상 스 시대 인문주의의 본을 충실히 따를 뿐만 아니라 르네상스의 유산도 받아들인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하나의 순수 철학적 운 동으로서 이 상속된 유산을 학자풍의 인문주의자들보다 훨씬 더 자유롭게 그리고 훨씬 더 근본적으로 다룬다. 그것은 이 유 산을 분해하여 그중에서 자신의 고유한 사고방식과 어울리는 요소들만을 취하고 그러하지 못한 것들은 과감하게 버린다. 이 러한 선별 과정을 통해서 또한 계몽 철학은 여러 문제들의 고 유한 원천에 바짝 다가선다. 이러한 작업의 적절한 예가 바로 법의 문제이다. 계몽철학은 이미 생성된 역사적인 법을 단순히 고찰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법을 넘어서 〈우리와 함께 더불어 태어난 법〉 죽 천부(天賊)의 법에로 되돌아간다. 이 천부의 법을 정초하고 변호하는 데서 그것은 다시 가장 오 래된 사상의 보배 즉 플라톤 철학의 근본 문제와 연결된다. 플 라톤이 법과 권력의 관계를 문제삼듯이, 계몽철학도 이 관계를 자신의 고유한 정신적 삶의 지평 위에서 문제삼는다. 이렇게 하여 이천 년이라는 시간적 간격을 뛰어넘어 고대 사상과의 직 접적인 대화가 이루어졌으니, 이는 정신사적 관점에서나 체계

적인 관점에서 매우 의의 있는 일이다. 플라톤의 『이상 국가 론』에서 소크라테스와 트라쉬마코스에 의해 각기 대변되는 두 개의 근본 명제는 계몽철학에서 다시 한번 서로 대립하면서 등 장한댜 이 문제를 다루고 형식화하는 계몽철학의 개념 틀과 이 론의 지평은 물론 플라톤의 그것과 완연히 다르다. 그러나 이 러한 틀과 지평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의 내적인 동질성 과 실질적 공통성은 여전히 유지된다. 상이한 시대의 상이한 언 어로 표현되지만 힘차고 날카로운 하나의 동일한 변증법이 양 쪽에서 발견된다. 이 변증법은 지금까지 있어왔던 온갖 화해의 시도를 거부하고 이제 새로이 명쾌한 원리적 해결을 시도한다. 정의의 본성과 본질에 관한 플라톤의 물음은 단순히 정의라 는 하나의 개념에 대한 철학적 해명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 댜 이 물음은 개념 일반의 본성과 의미에 관한 일반적인 문제 와 관련되어 있으며, 이 일반적인 문제의 해결을 통해서만 궁 극적으로 해명될 수 있는 물음이다. 우리의 논리적 내지 윤리 적 개념들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객관적 존재를 표현하는가? 아니면 그것은 우리가 임의적으로 어떤 내용에 붙인 언어적 기 호에 불과한가? 동일성 자체, 아름다움 자체, 정의 자체가 있 는가? 아니면 우리의 의식상(意識像)과는 다론 동일한 어떤 것 을 찾는다는 것은 단지 헛된 일에 불과한가? 이 개념들이 추구 하는 그리고 이 개념들에 대응하는 형상 e i dos 이 ·과연 있는가? 아니면 이런 근원 현상에 대한 물음 자체가 잘못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인가? 『고르기아스』 편과 『이상 국가』 편에서 나타나 는 정의의 본질에 관한 철저한 논의는 바로 이러한 보편적인 문제의 해결을 위한 것이다. 정의의 본성과 형상에 대한 물음 의 대답 여하에 따라서 형상 자체의 정당화 여부 즉 형상 자체

의 권리문제 qui d j ur i s 가 결정된다. 만약 정의의 관념이 본질적 이고 불변적인 의미를 지니지 못하고 단지 변화무쌍한 표상들 을 지칭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이러한 운명은 다른 모든 관념 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관념은 그저 우리가 임의로 〈정해 놓은 것 t hes i s 〉일 뿐이요, 본성 phy si s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관념은 단지 인간이 〈 정립한 것 Sa t zun g 〉 이요, 따라서 관념의 상대적인 내용과 지속성은 오직 이 정립에 의존한다. 플라톤은 소피스트의 이러한 해결책에 반대한다 . 그는 가장 순 수하고 가장 깊은 의미의 법의 근본 내용을 단순한 권력과 구 별하고, 법을 권력에 의해 정초하려는 모든 시도롤 논박한다. 이렇게 .A 함으로써 플라톤은 자신의 철학의 핵심문제를 해결하고 논리학과 윤리학의 존립을 구제한다 . 그 후의 역사적 발전은 이러한 플라톤의 엄격성을 점차 느슨하게 만들어갔다. 플라톤 문제의 방법적인 형식은 역사가 흐르는 동안 점차 그 본래적인 모습을 잃어가고 그 내용만이 남아, 법과 국가에 관한 모든 이 론 속에 하나의 요소로서 작용할 뿐이다. 17 세기와 18 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 문제는 다시 그 보 편적인 시각에서 탐구되기 시작한다. 특히 그로티우스 Hu g o Gro ti us 는 이 시각을 처음으로 연 사람이다. 그는 정치가요 법 학자일 뿐만 아니라 박학한 인문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는 인문 주의 영역에서 출발한 가장 중요하고 가장 독창적인 사상가이 다. 그는 도처에서 고대의 이론에 직접적인 연결을 꾀한다. 사 회의 근원과 법의 근원에 관한 이론에서 그는 우선 아리스토텔 레스에게 접근해 갔고, 거기서 다시 더 나아가 플라톤에게 다 가간다. 플라톤에게서 법의 이론이 논리학과 윤리학의 상호관 계로부터 생겨났듯이, 그로티우스에게 있어서도 법의 문제는

수학의 문제와 연관된다. 이러한 연관은 17 세기의 기본 방향에 있어 전형적 특성이 되고 있다. 수학은 플라톤의 〈형상〉을 회 복하는 보편적인 매개체요, 지적인 도구가 된다. 자연과학 뿐 만 아니라 정신과학들도 이 길을 따른다. 그러나 여기서 제시 된 방법적 결합은 언뜻 보기에 법학에서 매우 역설적이고 위험 한 결과를 낳는 듯이 보인다. 왜냐하면 순수 형상적인 관점에 서 본 법은 실재적이고 경험적인 적용 측면에서 볼 때 그 의미 를 상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형상으로 서의 법은 사실적이고 현실적이며 구체적인 측면으로부터 〈가 능성〉의 측면으로 훌쩍 건너뛴다. 법학이란 경험이 아니라 정 의(定義)에, 사실이 아니라 논리적 논증에 의존하는 학문이라고 라이프니츠가 말할 때, 그는 그로티우스의 근본 사상들 중에서 단지 분명하게 규정된 귀결만을 끄집어내어 말하고 있다. 법과 정의(正義)의 본질 자체는 경험으로부터 얻어질 수 없다는 것이 요, 이 양자는 일치, 균형, 비례, 조화의 개념을 포함하는데, 이 러한 개념들은 비록 구체적으로 단 한 번도 실현되지 않더라도 역시 타당하며, 정의를 행사하는 단 한 사람도 없더라도 역시 타당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법은 순수 수학과 같다고 하겠 다. 순수 수학이 수와 수적 관계의 본성에 관해서 우리에게 가 르쳐주는 내용은 영원하고 필연적인 진리요, 경험의 세계가 몽 땅 없어져버려도 그것은 그 자체 진리로 남아 있다. 수를 세는 단 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그리고 수가 적용될 구체적인 대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더라도, 역시 그것은 진리로 남아 있댜!) 그로티우스는 자신의 주저(主著) 서론에서 이와 똑같은 1)i pzGige,o r1g8 9M3,a ll2a2t, 쪽 .M i좀 tte i더l u n자ge 세n 한au s것 L은eib n 카iz시 ' 러un의g eLd eruibcn kitz e n S ySs ctebmr i ft ienn s, e inLe en-

비교 내지 방법적 유추를 중심 주제로 삼는다. 여기서 그가 분 명히 밝히는 바에 의하면, 전쟁과 평화의 법에 관한 자신의 연 역은 어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정치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현실적인 모든 문제를 떠나서 마치 수학자가 모든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여건을 떠나서 도형을 순수하게 다 루듯이 법을 순수하게 다루려는 것이다. 자연법이론이 발전해 감에 따라서 법의 수학화도 그 정도를 더해 간다. 푸펜도르프 Pu fe ndor f가 강조하는 바에 의 하면, 자연법 의 원리 를 구체 적 인 문제에 적용할 때 여러 난점이 생기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 원 리에 어떤 결함이 있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 원리 는, 수학의 공리가 현실적인 난점에도 불구하고 명증성을 지니 듯이, 이와 똑같은 명증성을 지닌다고 한다. 이렇게 자연법이 법과 수학을 결합시킬 수 있는 것은 자연법이 이 양자를 동일 한 정신력의 소산으로 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자연법은 이 양자 속에서 정신의 자발적인 입법성(立法性)을 본다. 정신 이 오로지 자신의 본유관념으로부터 양과 수의 세계를 건축할 수 있듯이, 정신은 또 법의 영역에서도 창조적인 건축물을 구 성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다. 정신은 자신으로부터 만들어낸 근원적인 규범을 가지고 시작하며, 더 나아가 이 규범으로부터 특수자를 형성해내는 길을 마련하기도 한다. 오직 이러한 길닦 음을 통해서만 정신은 사실의 우연성, 산만성 내지 외면성을 극복해서 법의 체계를 확립할 수 있다. 이 체계내에서 모든 것 wfsse nscbaft lich en Grundlage n , Marburg, 1902, 425ff . , 449 ff를 보라. 이 하의 고찰은 부분적 으로 Zeit sc hri ft fu r Rechts p h il o sop h ie in Lehre und Praxis , Bd. VI 에서 카시러가 기고한 Vom Wesen und Werden des Na tu rrech ts”에서 발취한 것이다.

온 서로 짜여져 전체를 이루게 되며, 모든 개별적 결정은 전체 의 본성으로부터 인정되고 비준을 받게 된다. 이러한 자연법의 근본 명제가 정당화되려면, 두 가지 장애를 극복하고 강력한 두 반대자를 승복시켜야 한다. 우선 순수한 측면에서 볼 때, 법은 신학적 교리에 반대하여 자신의 독자적 인 원천성을 확립하고 신학의 품안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그 다음 현실적인 측면에서 볼 때, 법의 순수 영역은 국가의 영역과 아주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하며, 법의 고유성과 고유 가치가 국가의 절대권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 이러한 이중적인 전 선(戰線)에서 근대 자연법의 정초를 위한 싸움은 계속된다. 이 싸움은 한편으로 인간 이성이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비합리적 인 신적 의지로부처 법을 연역해 내려는 신정론(神政論, Theo- kra ti e) 에 맞서서, 다른 한편으로 홉스의 절대 국가인 〈리바이어 던 국가〉에 맞서서 싸운다. 양자의 싸움은 모두 〈의지가 이성 울 대신한다 S t a t pro rati on e volun t as 〉는 하나의 근본 명제를 극 복하려는 싸움이다. 칼빈은 바로 이 명제에 의거해서 〈모든 법 은 결국 신의 전능한 힘에 의해 정초되고, 이 힘은 전적으로 무제약적이며, 따라서 이 힘은 어떤 규칙이나 규범(이성)에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밝히려 한다. 칼빈주의적 교리의 핵심 은, 특히 예정설의 중심교리는 이러한 사상에 기초를 두고 있 다. 구원과 지옥의 벌은 미리 결정되어 있다. 영혼구제에 대한 신적 결정의 근거와 권리를 묻는다면, 이 물음 자체가 신을 모 독하는 불손이요, 인간 이성이 신을 취조하는 불손이다. 인간 의 대부분을 벌주고 그 일부만을 선택해서 구원하되, 이 일을 인간적 의미의 어떠한 근거도 없이 그리고 도덕적인 선행이나 인간적 가치를 전혀 고려함이 없이 신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바로 신의 절대적인 힘이다. 자연법의 철학적 문제는 이러한 종교적 문제로부터 나온다. 네덜란드에서 아르미니우스 Arm­ ini u s 주교의 주도하에 〈은총에 의한 선택〉(예정설)이라는 칼빈 주의적 교리에 반대하는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을 때, 그로 티우스는 이 운동의 정신적인 지도자였다. 도르드레히트 Do­ rdrech t의 종교회 의 에 서 아르미 니 우스 학설 이 유죄 로 판결되 자, 아르미니우스교파 내지 〈항의자들〉과 맺은 관계로 인하여 그로티우스는 관직에서 해임되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러 한 사건은 당연히 그로티우스의 학문적이고 문필적인 활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로티우스는 정확히 에라스무스 Erasmus 가 겪었던 것과 똑같은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는 칼 빈이나 루터 같은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날카롭게 제기된 〈의지 의 부자유 U nf re ih e it des W ill ens 〉라는 기본 개념에 반대하여 인 문주의적 자유이념을 옹호하였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는 또 하나의 다른 반대자에 맞서 싸우게 된다 . 그는 신의 전능에 반 대하였던 것과 똑같이 국가의 전능에 대해서도 다시 말해 홉스 가 그 특징을 잘 표현한 이른바 〈가사적(可死的)인 신(神)〉으로 서의 국가의 전능에 대해서도 반대하였다? 여기서 그로티우스 는 르네상스 이래 점차 강력히 대두된 특징적인 근대사상에 직 면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보댕 Bod i n 의 국가론 이후로 2) 네덜란드에서 그로티우스가 칼빈주의적 교리와 절대주의적 국가 원 리에 반대해서 싸운 싸움은 후에 영국의 〈케임브리지 학파〉에 의해 비 슷한 방법적 내지 정신사적인 맥락하에서 계속된다.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여기서 다루지 않겠다. 이 문제는 Cassire r , 『영국의 플라톤적 르네 상스와 케 임 브리 지 학파 Di e pla to n is c he Renais s ance in Eng la nd und die S chute v on Camb ri dg e,』 (Leip z ig , 1932) 에 서 자세 히 다루어 지 고 있다.

최고의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자는 어떠한 법적 제약이나 제한 울 받지 않는다는 학설이 점차 유포되어갔다. 종교와 국가주의 에 반대하여 자연법은 〈인간적인 모든 힘이나 신적인 힘에 선 행하는 따라서 이 두 힘에 의존하지 않는 타당한 법이 존재한 다〉는 명제를 자연법의 최고 원칙으로서 옹호한다. 법 개념의 내용 자체는 단순히 힘이나 의지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 이성에 근거한다. 이성이 이성의 사실로서 파악한 것, 즉 이성 의 순수 본질 속에 주어진 것은 그 어떠한 힘의 절대적 명령에 의해서도 변경될 수도 없고 감소될 수도 없다 . 법의 원천적이 고 근원적인 의미는 다시 말해서 자연법 lex na tu ra li s 의 의미는 단순한 자의적(窓意的) 행위의 결과를 모아놓은 것이 아니다 . 그것은 단순히 〈명령되고 규정된 것 Gese t z t es 〉의 총계가 아니라 〈 근원적 으로 규정 하는 행 위 da s urs prii n gli ch-Se t zende 〉요, 〈질서 잡힌 질서 (소산적 (所産的) 질서 ) ordo ord i na tus 〉가 아니 라 〈질서 를 주는 질서 (능산적 (能産的) 질서 ) ordo ord i nans 〉이 다. 물론 법의 완전한 개념은 개별 의지에 대한 명령을 전제한다. 그러 나 이 명령은 법과 정의의 이념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 려 법 이념에 종속한다. 이 명령은 법 이념을 실현하고 있으 나, 이러한 실현울 법 이념 자체의 정초로 혼돈해서는 안 된 다 . 『전쟁과 평화의 법 DeJ ur e belli a c p a cis.』의 서설에서 그로 티우스가 보여주는 법 이념의 정초는 근대 자연법의 플라톤주 의적 성격을 가장 순수하게 드러내준다. 플라톤의 『티마이오스』 편에서 조물주인 데미우르고스는 이데아의 창조주가 아니라 영 원불변한 이데아를 본삼아서 현실세계를 형성한다. 이러한 사 실온, 그로티우스에 의하면, 국가 공동체의 형성과 질서에 대 해서도 타당하다. 입법자는 개별적인 실정법을 만들 때 절대적

으로 보편타당한 규범을 따르거니와, 이 규범은 입법자를 포함 한 모든 사람의 의지 규정에 모범이 되고 구속력을 지닌다. 이 런 의미에서 〈신이 없다고 가정해도, 신이 인간사에 무관심하 다고 가정해도, 역시 자연법의 명제들은 타당성을 지닌다〉는 그로티우스의 유명한 진술이 나온다 .3) 이 진술은 종교와 〈법 내지 도덕〉 사이의 간격을 벌리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로티우스 개인은 깊은 종교심을 지닌 사상가요, 종교의 도덕적 개혁은 법 이념의 지적인 정초에 못지 않게 그의 중요 관심사 였기 때문이다. 신 존재의 가정 없이도 법이 있을 수 있고 또 있어야 한다는 진술은 따라서 정언적으로가 아니라 단지 가언 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로티우스는 이 진술에 이어서 〈만 일 이 진술을 정언적인 주장으로 이해한다면, 그 자체가 하나 의 신성 모독이요, 불합리하다〉고 말한다. 폴라톤적 의미의 〈순 수 가설〉로서 이 진술은, 18 세기처럼 도덕과 종교가 아직 분리 되지 못하고 하나의 통합된 영역으로 있는 상태에서 볼 때, 여 러 개별 영역들을 서로간에 명백히 구별짓는 데 도움이 된다 . 따라서 법은 신이 있기 때문에 타당한 것도 아니요, 또 법은 경험적 존재이건 절대적 존재이건 그 어떤 의적 존재에 의거해 있는 것도 아니다. 플라톤의 말을 빌리면, 그것은 그 권능과 연령(年齡)에서 다른 어떤 것보다도 월등한 선(善)의 이데아로 부터 나온다• 모든 존재 영역을 뛰어넘는 〈정의와 선의 초월성〉 으로부터 법 이념의 〈초월성 Transzendenz 〉이 나오고, 이 초월 성으로 인하여 법 이념의 의미는 어떠한 현존적 존재에 의거해 서도 정초될 수 없다. 이러한 법 이념의 초월성은 이제 다시 그로티우스에 의해서 점점 강조되어 간다. 그로티우스의 철학 3) Groti us , DeJu r e be/I i acp a cis , Prolego m ena, Sect. XI.

적 내지 정신사적 위업은 바로 이러한 점에 있는 것이지 단순 한 자연법의 발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중세에서도 스토아 학 파로부터 빌려 온 자연법 사상은 그대로 유지된다. 스콜라 철 학은 〈신법 (神法, lex div i n a )> 곁에 어느 정도 독자적인 〈자연 법 lex na t ura li s 〉의 영역을 인정한다 . 법은 전적으로 계시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요, 또 오직 계시로부터 이끌려 나오는 것 도 아니다. 오히려 자연적 도덕성과 자연적 법-인식이 변호되 는데, 이것들은 인간의 전락(轉落) 후에도 이성에 내밀히 보존 되어 있는 것들이요, 신의 은총에 힘입어서 전락 이전의 완전 한 원래 인식을 다시 회복하는 데 필요한 전제 내지 출발점이 되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중세는 〈자연 적 이성〉의 완전한 고유 권능을 인정하지 않았듯이 자연법의 완전한 고유 권능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성은 계시의 시녀이다 ta nq ua m fam ula et mi ni s t r a . 이성은 자연적인 정신력의 한계내 에서 계시의 지반을 넓히고 계시에로 인도하는 데 도움을 줄 뿐이다. 따라서 자연법은, 이것이 광범하게 인정되고 있으면서 도, 항상 신법에 종속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자연법과 신법 을 신적 본질의 방사(放射)로 설명한다. 전자는 지상의 목적을 위한 것이요, 후자는 계시에 의한 것으로서 천상의 목적을 위 한 것이다 .4) 그로티우스는 내용보다는 오히려 방법에 있어서 4) 중세철학에서 〈자연법〉과 〈신법〉의 관계에 대해 자세한 것은 Gie r ke, Joh annes Alth u siu s und die Entw ic k lung der natu rrechtl ich en Sta a ts t h e or ien (1879, 3. Aufl . Breslau, 1913), 272 쪽 이하를 보라 . 신 교의 초기 신학에서도 중세적 개념은 그대로 보존된다. 이에 대해 자 세 한 것 은 Troeltsc h, Vemunft und Q./Jen barnng bei Joh ann Gerhard undMelanchth o n(Gott ing en , 1891), 98 쪽 이하를 보라. 그리고 이 책 62 쪽 이 하를 참고하라.

스콜라철학을 뛰어넘는다 . 그는 자연과학에서 갈릴레이가 성취 한 것을 법의 영역에서 성취한다. 새로운 법 인식의 원천이 밝 혀져야 하는데, 이 원천은 이제 신적 계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증명되고 그 자체의 본성에 의해 모든 오류와 허위를 벗어나는 것이어야 한다 . 갈릴레이가 수리 -물리학적 인식의 자율성을 주장하고 옹호하였듯이, 그로티우스는 법 인식의 자율성을 위 해 싸웠댜 그로티우스는 갈릴레이와 자신과의 이러한 이념적 연관을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는 갈릴레이를 극구 칭찬해 마지 않으며, 한 서간문에서 갈릴레이를 당대의 최고 천재라고 부른다 . 17 세기 사상에서 〈자연〉이라는 말은 두 가지 영역 즉 물질과 정신을 포괄하고, 이 두 가지를 통일적으 로 파악하는 개념이다 . 〈자연과학〉은 아직 〈정신과학〉과 분리 되지 않았고 또 과학적 인식의 종류나 타당성에 있어서도 양자 는 구별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 자연〉은 정신적인 것과 구별되 는 단순히 〈물리적〉 세계만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 (혹은 본성)〉이라는 표현은 사물세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원천과 근거에 관련된다 . 순전히 내재적으로 정초될 수 있고, 따라서 초월적 계시를 필요로 하지 않고 그 자체로부터 확실하고 명중적인 모든 진리는, 그 내용이 무엇이든지 간에 상관없이, 〈자연〉에 속한다. 이러한 진리는 물리적 세계뿐만 아니라 정신-도덕적인 세계에 대해서도 요구된다 . 왜냐하면 〈자 연〉이라고 할 수 있는 진정한 하나의 세계, 다시 말해서 그 자 체로 완전한 하나의 우주 Kosmos 는 정신과 물질의 결합으로 이 루어지기 때문이다. 18 세기에도 물질계와 정신계의 결합은 굳게 유지된다. 몽테 스키외는 경험적인 자연탐구가로서 시작하나 5) , 이 과정을 통하

여 자신의 본래 문제 즉 법적 내지 정치적 제도의 분석에로 옮 아간다. 법학자로서 그는 물리학자로서 뉴턴이 제기한 물음과 똑같은 방식의 물음을 제기한다. 그는 정치세계의 법들을 단순 히 경험적으로 인식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이 법들의 다양성 울 소수의 일정한 원리에로 환원시키려 한다. 다양한 개별적 규범들 사이에 이처럼 체계적인 원리적 연관성이 있다는 것, 이 것이 바로 몽테스키외에게 있어 『법의 정신 L'Esp ri t des Lo is,.!I의 알맹이가 된다. 그래서 그는 다양한 개별 사실들에 제한되지 않는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법의 의미를 드러내주는 법개념의 설명으로 아 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가장 넓은 의미에서 법 은 사물의 본성으로부터 나오는 필연적인 관계이다〉라고 그는 설명한다전 이러한 〈사물의 본성〉은 현실세계와 마찬가지로 가 능세계에도 있고, 사실적인 현존세계와 마찬가지로 순수 개념 세계에도 있으며, 도덕세계와 마찬가지로 물질세계에도 있다. 주어진 이질성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이것은 숨어 있는 동 형 성 Gle ic h fo rm ig ke it을 찾는 데 에 방해 자가 되 지 못하며 , 우연 적인 것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이것은 우리가 사물의 필연 적 질서를 인식하는데 방해자가 되지 못한다. 이러한 근본 사 상으로부터 몽테스키외는 이미 그의 『페르시아인의 편지 Lett re s Persane s,』에서 그로티우스의 자연법의 원리를 명백히 재현시키고 있다. 정의는 알맞음의 관계 un rap po rt de convenance 요,· 이 관계는 누가 파악하더라도 마찬가지로 동일한 것이요, 신이 보 거나 천사가 보거나 혹은 인간이 보거나 하등 상관없이 역시 동일하다. 그리고 신의 의지는 언제나 신의 인식과 일치하므 5) 이 책 71 쪽을 참고하라. 6) Monte s q ui e u , L 'Esp rit des Lois , Livr e I, ch. 1.

로, 신이 〈자신이 인식한 정의의 영원한 규범 〉 을 자신의 의지 로 위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설사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정의를 사랑하여야 할 것이요, 신이 존재한다 면 신은 필연적으로 정의로운 존재이므로 우리는 이 고귀한 존 재를 닮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비록 종교의 모든 멍에로부 터 벗어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정의의 지배하에 놓이고 정의 의 신하가 될 것이다? 법은 어떤 자의에 의해서도 변경될 수 없는 객관적인 구조를 지닌다. 이는 수학이 자신의 객관적 구 조를 지니는 이치와 같다. 〈실정법들이 있기 전에 먼저 정의로 운 관계가 가능하다. ‘실정법들이 명하거나 금한것을 제외한다 면 정의 혹은 부정의도 없다’ 라고 말하는 것은 원이 그려지기 전에는 그 원의 반지름들이 모두 같지 않다고 말하는 것과 마 찬가지다〉 8) 보편타당하고 불변적인 법의 근본규범이 있고 또 있어야 한 다는 법의 선천주의 내지 요청은 계몽철학에 있어서 우선은 철 저히 지켜진다. 순수한 철학적 경험주의자들도 이 점에 있어서 예외는 아니다 . 이러한 관점에서 볼테르와 디드로도 그로티우 스나 몽테스키의와 크게 다를 바 없으나, 그들은 곧 어려운 딜 레마에 빠지고만다. 왜냐하면 법의 선천주의와 그들의 경험론 적 인식론은 어울릴 수 없기 때문이다 . 다시 말해서 법이념의 필연성과 불변성은 〈모든 관념이 감각에서 나오며 따라서 그것 은 개별적인 감각 경험내용만을 지닐 수 있다〉는 경험론 명제 와 조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 볼테르는 이 모순을 분명하게 알 고 있었으며, 이 모순 해결에 때때로 유동적 입장을 보인다 .

7) Monte s q u ie u , Lett re s Persanes, Lett re LXXXII . 8) L 'Esprit des Lois , Libr e I, chap . 1.

그러나 결국에 가서 윤리적 합리주의자로서의 죽 도덕이성의 근원적 권능과 근본 힘을 믿는 자로서의 볼테르가 경험주의자 내지 회의론자로서 볼테르에게 승리를 거둔다. 이런 점에서 볼 테르는 자기의 스승격인 로크에게도 반대한다. 볼테르에 의하 면, 본유관념이 없다는 로크의 증명은 보편적인 도덕원리가 있 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러한 보편적 원리의 가 정은, 모든 사유존재에 그런 원리가 처음부터 현실적으로 작용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원리가 순전히 사유 존재 자신에 의해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할 뿐이다. 이 원 리의 발견은 어느 정도 발전단계에 이르렀을 때에만 가능하다. 그러나 발견되는 내용은 이 발견에 의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있었던 것이다. 〈나는 본유관념이 없다는 로크의 견 해에 동의한다. 따라서 우리 마음 속에 본유적인 도덕적 명제 가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가 태어날 때 수염이 나 지 않았다고 해서, 성인이 되어도 수염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틀린 말이다. 우리가 태어날 때 걸을 수 없지만, 얼 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다 걸을 수 있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 로, ‘정의는 필연적이다’ 라는 생각울 가지고 우리가 태어나는 것온 아니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이 생각에 동의하도록 신은 우리를 창조하였다.〉 9) 인간의 관습과 풍속이 가변적이고 우연적인 주위환경에 따라 서로 다르고 상충되며 따라서 상대 적일 수밖에 없음을 드러내 보여주는 데에 문화사가로서 볼테 르의 관심이 있긴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저러한 통찰 울 놓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사람들의 가변적인 의견, 선 9) 프리드리히 Frie d ri ch 황태자에게 보낸 볼테르의 서신(1 737. 10) . 전 집 , 50 권, 138 쪽 .

입관, 풍속의 이면 속에 불변적인 도덕성이 숨어 있음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 〈한 나라에서 덕(德)이라고 불리는 것이 다른 나라에서는 악으로 불릴지라도,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이 다 동의하지 않으면 안 될 자연법칙들이 있음을 나는 굳게 믿는 댜 신은 ‘너희 인간들이 모두 다 따르고 지켜야 할 법을 내가 너희에게 주니, 너희는 이것을 가져라!’ 라고 인간에게 말하지 는 않는다. 그러나 신은 다른 동물들에게 행한 것처럼 인간에 게도 행한다. 신이 꿀벌에게 꿀을 모으는 기묘한 본능을 부여 했듯이, 그는 인간에게 결코 상실될 수 없는 어떤 느낌들 Ge fii hle 을 부여했다. 그리고 이러한 느낌들은 인간 사회를 이 룩하는 최초의 법칙이요 영원한 끈이다.〉 10) 볼테르는 이러한 기 본 신념을 증명하기 위해 다시 자연법칙을 유추하여 설명한다. 언제 어디서나 통일과 질서와 철저한 규칙성을 보여주는 자연 이 유독 자신의 최고 걸작품인 인간에게서만 이런 것들을 보여 주는 데 실패했단 말인가? 물질적 세계를 항구적이고 불변적인 법칙으로 다스리는 자연이 인간의 도덕적 세계만을 유독 우연 성과 자의성에 맡겨버렸단 말인가? 여기서 우리는 로크롤 떠나 〈자연은 언제나 그 자신과 조화롭다 Na tura est semp er sib i con- sona 〉는 뉴턴의 위대한 격률에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지 구에서 발견된 중력의 법칙이 지구에만 국한되지 않고, 물질의 근본성질로서 우주 전체에 타당하듯이, 도덕의 근본법칙도 우 리가 아는 모든 나라에 타당하게 작용한다• 단지 이 근본법칙 의 해석과정에서 그 특수한 여건에 따라 수천 갈래의 차이성을 보일 뿐이다. 그러나 그 기본토대는 언제나 동일한 것으로서 10) Volta ire, Trait ed eMeta p by s i q u e, Ch. IV( 전집, 31 권, 65 쪽 이하).

정의(正義)와 부정(不正)의 이념이 된다. 〈격노했을 때 많은 부 정을 저지르듯이, 술에 취했을 때 인간은 이성을 상실한다. 그 러나 술이 깨고 나면 이성을 되찾는다. 나의 확신에 따르면 이 러한 이성이 인간사회를 지속시켜 나가는 유일한 원천이다. 이 성만이 서로간에 상충되는 인간의 욕구들을 조화롭게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원천이다.〉 lll 신의 존재, 신의 선함을 증명 하기 위해서 자연질서의 파괴라는 물질적 기적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도덕적 기적에 의존하여야 할 것이다. 〈기 적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이웃을 돕고 친구의 불행을 막아주 고 적을 용서하는 것, 이것이 보다 더 큰 기적이요 더할 수 없 는 기적이다.〉 12) 디드로도 인간의 불변적인 도덕성을, 그리고 이로부터 나오 는 정의의 원리를 굳게 믿는다. 이러한 믿음은 그의 역동적 세 계관에 있어서 굳건한 아르키메데스적인 점(点)이 된다 .13) 『정 신론 De l' Esp ri(』에서 엘베시우스가 이러한 믿음을 부정하고자 했을 때, 다시 말해서 그가 모든 도덕적 성향을 이기심의 변형 으로 설명하려 했을 때, 디드로는 이러한 하향(下向) 평준화에 분명히 반대한다 .14) 디드로는 영원불변적인 도덕성을 지지한다. 그러나 이 도덕성의 근거는 자연법 이론과는 다른 방향에서 찾 아진다. 왜냐하면 18 세기 전반에 걸친 〈자연〉개념의 의미변천 과정이 이때쯤 아주 뚜렷하게 드러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자 11) Volta ire, LePbil o sop be ign oran4 ch. XXXVI, 전집, 31 권, 130 쪽. 12) Volta i r e , Dis c ours en vers sur l'bom m~ Sep tiem e dis c ours, 전집 , 12 권, 92 쪽. 13) 이 에 대해서는 Groeth u y se n, La pen see. d e Di cl rot, 뇨 Grande Re vue, (19 13) Vol. 82, 337 쪽 이하를 참고하라. 14) 이 책 44 쪽 이하를 보라.

연개념의 의미중심은 선천주의에서 경험적인 것으로, 이성에서 순수경험으로 옮아간다 . 추상적인 이성의 명령이 인간들을 지 배해서 결합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성향, 충동, 감성적 욕구의 일치가 인간들을 결합시키는 보다 현실적인 끈이다. 인 간종족의 참된 유기적 통일성온 이런 것들 속에서 찾아져야 한 다. 단순히 종교적 내지 도덕적 규정이 아니라, 오직 이런 것 들이 인간의 사회적 결합의 참된 지주 노릇을 한다. 모든 초월 적 도덕 내지 종교가 인간행위를 일으키는 감성적인 자연적 욕 구를 무시한다면, 그 순간 그러한 도덕내지 종교는 단지 사상 누각에 불과하게 된다. 왜냐하면 단순히 〈……해야 한다〉는 당 위 Sollen 만 가지고는 인간의 감성적인 성향을 지양하거나 철저 히 변혁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 이런 감성적 성향은 당위에 거 슬려 거듭 생겨나고 당위보다 언제나 더 강력하게 대두된다. 이런 감성적 자연의 적대자로서 도덕은 따라서 처음부터 무력 한 존재로 치부된다. 만약 도덕이 현실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라 면, 도덕은 인간의 감성적 성향은 물론 모든 도덕적인 고귀한 성향까지도 그리고 인간의 자연적인 사랑과 헌신의 성향까지도 억누를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성향은 당위가 아니 라 자연적 소질이기 때문이다 .15) 자연이 지배하도록 내버려두어 라. 인위적이고 관습적인 제도로 자연을 억누르지 말고 자연이 15) 1759 년 8 월 17 일자로 소피 볼랑 So ph i e Volland 에 보낸 서신 (ed. Babelon, Paris, vol. 1. 17 쪽)에서, 디드로는 신부가 된 자기 동생 (Abbe D i dero t)에 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는 정직하나 지나치 게 엄격하다. 모든 불행을 무시하도록 그리스도가 그를 가르치지 않 았다면, 그는 좋은 친구요, 좋은 아버지가 되었을 것이다. 그는 좋은 기독교인이다. 그러나 좋은 기독교인의 행실로 미루어 보아 소위 기 독교적 완성이란 것이 단지 자연스러움을 질식시키는 것에 불과할 뿐 이요, 따라서 좋은 기독교인보다 차라리 그저 좋은 사람이 더 좋다 . 〉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복종하도록 내버려두자. 그러면 자연은 자신의 실현을 통해 참되고 선한 것을, 그리고 인간의 행복과 사회의 안녕을 이루어낼 것이다. 이렇게 해서 디드로는 선천 주의의 윤리학에서 순전히 공리주의적 성향으로 나가는 길을 닦는다. 본래 그는 그 자체로 타당하고 불변적인 법과 정의의 〈이념〉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이 이념의 내용을 자세히 규정 하고자 했을 때, 이 내용을 오직 이 이념이 직접적이고 구체적 으로 실현한 것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종교의 독 단을 비판하면서 거듭 보여주었던 그의 순수 도덕주의는 이제 점차로 단순한 실용주의로 변해버린다. 『달랑베르의 꿈 Reved' Alembe rt,』에서 레스피나스 양(讓 )Mademo i selle de l' Es pin asse 은 자연주의적 윤리관을 지닌 의사에게 이렇게 반문한다• 〈그러 나, 의사 선생님, 악과 덕은 어떻습니까? 덕, 이 말은 모든 언 어 가운데, 가장 거룩한 것이며 모든 사람들이 가장 칭송해 마 지 않는 말이 아닙니까?〉 이에 의사가 대답한다 . 〈덕은 이로움 으로, 악덕은 해로움으로 바꾸어 생각하여야 한다• 인간은 행 복하거나 불행하게 태어난다. 인간은 자신을 영광에로 이끌기 도 하고 불행에로 이끌기도 하는 커다란 조류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내맡기지 않을 수 없다.〉 16) 이렇게 해서 디드로는 신학 적 윤리보다 자연법 내지 자연도덕이 더 탁월한 까닭을 유용성 에서 찾게 된다. 그가 신학적 윤리 내지 모든 계시종교에 대해 비난하는 점은 이것들이 원래부터 사회의 유기적 형성에 해로 운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들은 인간과 인간 사이룰 잇는 16) Dide rot, Reve d'Alembert, Assezat 편 전집, 2 권, 176 쪽. 특히 디 드로의 대화편 「그는 착한가 악한가 ?Es t-il bon , est- il mechan t?」를 참 조하라.

모든 자연적인 끈을 끊어버리고, 가까운 친구나 친척들 간에 불화와 증오의 씨앗을 심는다. 이것들은 자연적인 사람의 도리 를 망상적인 종교적 의무 아래에 놓음으로써 이 자연적인 도리 를 천하게 여긴다 .17) 디드로가 백과전서에 쓴 글에서도 이러한 생각은 그대로 유지된다. 이러한 생각은, 윤리문제에 관한 한, 백과전서 전반에 걸친 기본사상으로 일관된다 .18) 달랑베르 도 역시 이러한 방법적 노선을 견지한다. 그에게 있어 순수철 학적 윤리학의 목적은 사회공동체 내에서 개인의 위치를 설정 하는 것이요, 공동체의 안녕과 복지를 위해서 각 개인들이 올 바르게 노력하는 길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성에 속하는 본질 적인 것, 따라서 모든 인간에 공통된 것, 이것이 인간에 대해 우리가 지녀야 할 의무의 기점(基点)이다. 이러한 의무의식이 도덕성이라 불린다• ……이보다 더 포괄적 주제를 다루는 학문 도 없고 이보다 더 확실한 원리를 다루는 학문도 없다. ……이 원리에 의하여 우리의 참된 관심과 의무의 이행이 내적으로 서 로 밀접히 연관되고 있음이 밝혀지며, 따라서 이 원리는 인간 의 행복을 위한 가장 확실한 수단을 마련해 준다. ……사회는 순전히 인간적 동기에서 생겨난다. 사회가 처음 형성될 때 종 교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철학자가 할 일은 인간 을 사회적인 인간이 되게끔 하는 것이다. 그러고나서 인간을 성전 아래로 인도하는 일이 필요하다면, 이것이 선교사가 할 일이다.〉 19)

17) Dide rot, Entr et i en d'un Ph ilos op h e avec la Marechale de… …” 를 참 고하라. 18) 더 자세 한 것 은 Hubert, Les Scie n ces soc ial es dans l' Encyc l o- ped ie , Pari s, 1923 을 참고하라. 19) D'Alem bert, 旗 men ts de Ph ilos oph ie, Sect. VII, Melang es de Lltte r atu re ,

이러한 사상을 발판으로 삼아 18 세기의 인권(人權) 내지 시 민권(市民權)의 이론이 전개된다. 이 이론을 정신적 중추로 삼 아 당시의 도덕적, 정치적 그리고 사회적 개혁이 여러 모로 시 도되었으며, 이 다양한 시도들은 이 이론을 근거로 하나의 이 념적 통일성을 유지한다. 최근의 헌법학은, 역사적으로 이보다 훨씬 좁은 범위 내에서, 인권사상을 정초하려 한다 . 옐리넥 G. J ell in ek 은 그의 유명한 저술 『인권과 시민권의 선언 die Erk!- arung der Menschen-und Burg errech te,』에서 〈 1789 년 8 월 26 일 프랑스 제헌의회의 인권선언과 17 • 18 세기 철학의 기본사상 사 이에는 역사적으로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프랑스 인권선언에 대한 본보기를 오히려 미국의 「권리장전 Bil ls of Rig h t」에서 특히 1776 년 6 월 12 일 버지니아 주의 권리장 전에서 찾는다. 물론 프랑스 인권선언이 미국의 권리장전에 의 존함이 여러 모로 논증된 사실이라 할지라도 옐리넥의 견해가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미국의 권리장전 자체가 바로 자연법이라는 새로운 사상에 크게 영향받고 있기 때문이 댜 인권과 시민권의 뿌리는 미국의 권리장전이 아니라 자연법 사상이다. 미국의 권리장전은 자연법이라는 보편이념이 특수한 동기와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전개된 하나의 실례에 불과하다. 따라서 미국의 권리장전은 단순히 i 7 세기 이래 영국에서 크게 문제되었던 신앙의 자유라는 원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연 법 사상에서 나온다 . 버지니아 주의 권리장전에 관한 최근의 연구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그당시 종교의 자유문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거나 문제가 되었다 하더라도 부차적인 것에 불과했다 .20) 프랑스 의회의 인권선언을 낳은 모체가 되는 인권 d 1His toi r e et d ep h il o sop h ie , VI, 79 쪽 이 하.

의 이념은 미국의 권리장전 이전에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그 이념의 역사는 근대 자연법의 시조인 그로티우스까지 거슬러올 라 가며, 그 체계적인 정초와 형성은 특히 라이프니츠와 볼프 의 독일 관념론적 법철학에서 이루어진다 .2 1) 로크의 『정부론 Treati se on Govermnen~』 에 따르면, 개인들이 서로 맺은 사회계 약은 인간들 사이의 법적 관계에 대한 유일한 근거가 아니다 . 계약적인 모든 관계는 보다 근원적인 연관을 전제하거니와, 이 연관은 계약에 의해 생기는 것도 아니요, 계약에 의해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연관이 바로 인간의 자연권인 바, 이것 은 인간의 정치 사회적인 모든 관계에 앞선다. 국가의 참된 기 능과 목적은 이러한 자연권을 보호하고 보장하는 데에 있다. 로크에 따르면, 기본적인 자연권에는 개인의 자유권과 재산권 이 있다. 이러한 사항을 감안해 볼 때, 18 세기 프랑스 철학은 양도할 수 없는 인간의 기본권을 처음으로 발견한 것이 아니라 이 사상을 최초로 도덕적 복음으로 전파하고, 열정적으로 옹호 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프랑스 철학은 이 사상에 정치적인 생 명을 부여하고, 더 나아가 프랑스 혁명 시 보여주었던 엄청난 20) 자세한 것은 G. A. Salander, . Vom Werden derMenscbenrecbte . Ein Beit rag zur modernen Verfa s sung s ge sch ich te unte r Zug r undeleg u ng der vir ginisc hen Erklarung der Rechte vom 12. Jun i 1776, Leip z ig , 1926 과 E. Voege lin , Der Sin n der Erklarung der Menschen-und Bi.i rg e rrechte von 1789, Zeits c br iftfur 6ff ent l i cb es Recht, VIII (19 28), 82 쪽 이 하를 보라. 또한 J. Hashag e n, Zur Ents t e hung s g e schic h te der nor-dameri kanisc hen Er k!걸 run g en der Menschenrechte , Zeits c br iftfur die ge samt e Sta a ts wisse nscbaft, 78. Jah rga ng (1924), 482 쪽 이하를 참고 21)하 라더. 상세한 것은 E. Cassir er , Di e !dee der repu bli ka nis c ben Ver fa- ssung, Hamburg, 1929 을 보라.

폭발력을 제공하였다. 개인적인 기질과 성향에 비추어 볼 때, 볼 테르는 확실히 혁명적인 사람이 아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예감한 전령자였다. 이론철학자 내지 형이상학자로서 그가 자유에 관해 논한 것은 불충분하고, 불명 료하며 비 체 계 적 이 다. 『형 이 상학론 Trait e d e Me t ap h ys iq u e,』 (17 34) 에서 그는 인간의지의 자유를 옹호한다. 볼테르가 여기서 보여 주듯이, 의지자유에 반대해서 제기될 수 있는 순수 개념적 내 지 변증법적인 모든 논의들은 자기의식이라는 명쾌한 증거 앞 에 꽁무니를 뺀다. 우리 모두가 생생하게 가지는 자유의 느낌 을 간단히 기만이라고 볼 수 없다. 이러한 의지의 단순한 현상 만으로도 의지자유를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무엇인가를 바라 고 행한다는 것, 이것은 정확히 자유로움과 똑같은 것이다.〉 인간의 자유와 신의 섭리가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느냐 하는 문 제는 참으로 해결될 수 없는 딜레마이다 . 그러나 이 어려움 때 문에 좌절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여기서 부딪히는 어려움은 모든 순수 형이상학적 문제를 다룰 때 부딪히는 어려움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22 ) 볼테르는 나중에 문제를 이런 식으로 해결 하는 대신 결정론을 받아들인다. 자유의 느낌 그 자체가 결정 론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자기의식에서 느끼 는 자유는 의욕하는 대로 의욕할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 라 의욕하는 대로 할 수 있음을 뜻하기 때문이요, 그리고 이때 의욕은 언제나 충분한 동기를 가지기 때문이다. 동기가 없는 의욕이란 그 자체 불합리하다. 왜냐하면 그러한 의욕이란 자연 의 질서를 벗어나는 것이요,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 되 기 때문이다. 〈모든 자연과 별들이 다 영원한 법칙을 따르는데 22) Trait e d eMeta p hy s i q u e, Chap . VII, 전집 31 권, 51 과 57 쪽 .

반하여 5 자 남짓한 작은 동물인 인간이 언제나 자기 멋대로 행 동할 수 있다면, 이는 매우 진기한 일이다. 인간의 행동을 우 연의 소치라고 말할는지 모르나, 우연이라는 말은 아무것도 아 닌 것이댜 어떤 결과의 원인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 인간은 우 연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23) 그러나 순수 형이상학적인 자유문 제에 대하여 볼테르가 보여준 이러한 애매함과 내적 동요는 그 가 이 문제의 형이상학적 측면에 대해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 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그의 관심사는 이론적 설명 내지 추상 적 정의의 문제가 아니라 그 시대가 당면한 실천적 문제였다. 그에게 있어 자유의 이상은 구체적인 정치적 현실문제로부터 죽 여러 형태의 정부를 비교검토하는 가운데서 생겨났다. 볼테 르가 보기에, 그 당시 유럽에서 자유의 이상이 어느 정도 구현 된 곳은 영국의 헌법이다. 왜냐하면 영국 헌법은 모든 시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하는 유일한 법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 민적 복리의 의미와 필요성을 일단 깨달은 사람이라면, 그는 스스로 그것을 보호하고 지키려 노력할 것이다. 그래서 볼테르 에게 있어 본질적인 자유개념은 인권개념과 일치하게 된다. 〈도 대체 자유롭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인권의 인식을 말한다. 왜냐하면 인권을 인식한 사람이라면, 스스로 또한 인 권을 옹호하게 되기 때문이다.〉 24) 볼테르의 모든 정치적 논술들 은 이러한 자유사상에 고무되어 쓰여졌다. 그의 확신에 따르 면, 인간의 모든 힘들을 자유의 실현에 경주시키려면, 자유이 23) LePbil o soph e ign orant (1766), Sect, XIII, 전집 31 권, 85 쪽 이 하. 24) 특히 볼테 르의 Lett re s sur !es Ang la is , Lett re IX 와 볼테 르의 Di ct i on nair e Pbil o soph i q u e, Sect. VI 중 ‘‘Gouvemement 항과 전집 26 권, 40 쪽 이 하 및 전집 心권, 101 쪽 이 하를 참조하라.

념의 참된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족하다. 따라서 칸트와 마찬가지로 볼테르에게 있어서, 언어적 가르침울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권리인 〈봇의 자유〉는 〈인권의 진정한 수호〉가 된다.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봇과 혀를 사 용하는 것은 자연권에 속한다. 내가 알기로 지루하기 짝이 없 는 책들도 많다. 그러나 정말 해를 끼치는 책은 단 한 권도 알 지 못한다.〉 25 ) 진정한 사상의 자유가 획득되고 확보된다면, 여 타의 모든 것도 해결된다. 이것이 볼테르가 당대의 철학에 심 어놓은 준칙이다. 그리고 이로써 그는 혁명적 프랑스의 모든 문헌에서 줄기차게 나타나는 거센 사상의 조류의 길을 열어놓 았다. 이제 각 방면으로부터 다음의 사실이 강조된다. 자유의 첫걸음 죽 새로운 국가질서의 사상적 구성이란 다름아닌 양도 할 수 없는 기본권의 선언이요, 다시 말해서 개인의 안전권리 의, 재산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권리의, 법 앞에서의 만인의 평동권리의 그리고 모든 시민이 정부에 참여하는 참정권리의 선언이다. 콩도르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리가 추구해 야 할 쓸모 있는 지식은 인간들이 이미 만들어놓은 여러 법률 적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이성 속에 있다. 여러 민족 들과 여러 시대에 만들어진 법률들에 대한 연구는 이성에게 관 찰과 실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서만 유용하다.〉 26) 역사철 학과 문화철학을 논하는 콩도르세의 『인간정신의 발전도표 Ta- bleau des pr og re s de !'espr it buma in,』 에 서 , 그는 양도할 수 없는 25) Di ct io n nair e Pbi/ os op b iq u e 중 Libe rt e d'im p ri m er 항목과 전집 41 권, 23 쪽. 26) Condorcet, Essai sur /es assemblees pro vin c ia l es, i par t ie, Art. VI; cf. Henri See, Les ide es pol iti qu es en France au XVIII sie c le, Paris 1920, 210 쪽.

기본권 사상에 관련된 여러 계기의 역사적 관계를 분명하고 정 확하게 서술한다. 콩도르세에 의하면, 인간사회에 대한 모든 지식의 유일한 목적은 인간의 기본권을 완전히 자유롭고 평등 하게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일이다. 그 당시 이 목적은 미합중국에서 어느 정도 달성되었다. 따라서 미국은 세기의 위 대한 사상을 최초로 실현시켰다는 명예를 지닌다. 콩도르세는 17 • 18 세기의 철학에로 거슬러 올라가 이 사상의 원천을 추적 한다. 그에 의하면, 다시는 결코 논박될 수 없고 잃어버릴 수 도 없는 진리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인권의 개념임을 확립한 사람이 루소이다 .27) 이처럼 계몽기 사상의 전체윤곽을 고려해 볼 때, 프랑스 혁명의 정신적 지도자들에게 있어 이론과 실천 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는가를 다시 한 번 확 인할 수 있다 . 그들은 결코 사유와 행위를 분리해 보지 않는 댜 그들에 의하면, 하나는 다른 하나로 번역될 수 있고 번역 되어야 하며, 또 하나는 다른 하나에 의해 확증될 수도 있고 확증되어야 한다. 2 사회 계 약사상과 사회 과학의 방법 17 • 18 세기 사회과학의 추세를 이해하려 한다면 그리고 여기 서 개발된 새로운 방법을 명확히 파악하고자 한다면, 이 당시 27) Condorcet, Tableau desp r og re s de I'esp r it human , 9 ep o q u e, Oe-uvres, 1804, VIII, 233 쪽. De !' inf l ue nce de la revoluti on de !' Ameri qu e, Intr od ucti on . (Melang es d'Economi e po li tiqu e XIV, Paris 1847, 544ff . )을 참조.

에 이룩된 논리학의 발전을 연관시켜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된 다. 이러한 연관이 좀 이상하게 보일는지 모르나, 그것은 이 시대의 기본적인 경향들 중의 하나이다. 르네상스 이래로 새로 운 형태의 논리학이 추구되어 왔거니와, 이 논리학은 단지 주 어진 지식을 분류하고 정돈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 로운 지식을 얻는 장치가 되고자 한다. 합리론과 경험론은 이 러한 새로운 논리학의 개념에 생각을 같이하면서 그 개발을 위 해 서로 경쟁을 하였다. 베이컨은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한 신 기관(新機關, Novum or g anum) 이라는 논리학을 창설하였다. 라 이프니츠가 거듭 강조한 바에 의하면, 논리학은 과거의 전통적 인 스콜라철학의 논리학을 극복하고 실질적인 효과가 있는 〈발 견의 논리학 lo gi ca i nven ti on i s 〉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논리학 적 사상이 가장 명백하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곳은 정의(定 義)에 관한 이론이다. 개념을 정의하는 스콜라 철학적 방법은 최 근 유개 념 (最近 類槪念, gen us pro xim um) 에 종차(種差 dif fer - enti a s p e cifi ca) 를 보태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방법으로는 점차 만족할 수 없게 되었다. 정의는 주어진 개념내용을 단순히 분 석하고 기술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개념내용을 구성적으로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바로 이 구성적 활동을 통해서 개념내용 울 정초해 줄 수 있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발생 적 혹은 인과적 정의의 이론이 나오게 되는 바, 17 세기의 위대 한 모든 논리학자들은 이 새로운 논리학의 발전을 위해 힘썼 다 .28) 추상적인 개념설명은 실질적 효과가 있는 참된 개념설명 이 못 된다. 개념이 지닌 칭표들의 복합으로부터 징표 하나하 284) 9ff이 . , 에 8 6f대f. ,한 12상7ff세. 을 한 보라것. 은 Cassir e r, Erkenntn is p r o blem , 3 판, 2 권,

나를 이끌어내어 나열하는 것으로 참된 개념설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참된 개념설명은 개념 전체를 성립시키는 내적 법칙을 추구한다. 이러한 생성 법칙에서 참된 개념설명은 개념 전체의 본래적인 참된 모습의 내력을 드러내 준다. 그것은 개념 전체 가 무엇인지 그리고 개념 전체가 왜 그러한지를 보여준다. 참 된 발생적 정의는 복합된 전체의 구조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이 구조의 근거까지도 알려준다. 홉스는 〈인과적 정의〉의 의미 를 밝혀낸 최초의 근대 사상가이다. 그는 이것을 단순히 논리 학적 개혁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인식 자체의 이념 을 바꾸는 터전으로 본다. 그는 스콜라 철학의 폐단을 지적한 댜 스콜라 철학에 따르면, 존재란 〈정적(靜的)인 성질과 징표 를 지닌 수동적인 어떤 것〉이요, 이로써 존재를 이해한다고 말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사유의 참된 성질 뿐만 아니라 물질적 자연의 참된 성질도 파악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양자는 오직 운동을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생 성시킬 수 있는 것만을 이해한다. 〈생성되지 않은 것〉은 우리 에게 말을 건네지 않는다. 생성됨이 없는 영원한 신의 존재나 신적 지성은 우리 인간의 이해력을 벗어난다 . 인간이 무엇을 참되게 알려면, 그는 스스로 그것을 구성해 내야 한다. 물질에 관한 과학이건 정신에 관한 과학이건 진정한 과학이 되려면, 모 름지기 인식대상의 구성 행위가 있어야 한다. 구성할 수 없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대상을 구성적으로 산출할 수 없는 곳에 서는 합리적인 철학적 인식의 가능성도 사라진다. 〈발생적 생 성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철학도 성립되지 않는다.〉 29) 철 학의 임무와 개념에 대한 예비적이고 기초적인 설명을 전제하 29) Hobbes, De corp o re , par t 1, ch, 1, sect. 8.

고 이제 우리는 홉스의 사회철학의 핵심으로 접근해 갈 수 있 댜 그러나 홉스에게 있어서 기초적인 설명과 사회철학 사이에 어떠한 간격이 생기거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홉스의 국가론은, 이것이 그의 보편적인 인식 방법에 일치할 때에 만, 진정 철학이 된다. 그의 사회철학은 이러한 보편적인 방법 을 하나의 특수한 대상에 적용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국가도 하나의 〈물체 cor p us 〉요, 따라서 국가를 그 궁국적 인 요 소로 분석 하고 다시 이 요소를 가지 고 국가를 재구성 함으로써 만 국가라는 것이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에 대한 진정 한 과학이 성립하려면, 갈릴레이가 자연에 사용했던 종합과 분 석의 방법을 정치분야에 적용함으로써 족하다 .30) 국가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구성요소인 부분들로 되돌아가서 이 것들이 어떻게 해서 하나로 결합되어 유지되는지를 살펴보면 된다. 이때 분석의 과정은 결코 임의적으로 어떤 지점에서 멈 추어서는 안 된다. 분석은 진정한 요소에 죽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절대적인 단위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우 리가 정치 사회적인 구조물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이것을 그 궁극적인 요소로 쪼개야 한다. 이러한 이상적인 방법이 경험적 으로 달성될 수 없음을 홉스도 잘 깨닫고 있다. 그는 자신의 보편적인 합리적 원리를 끝까지 철저하게 적용시켜 나간다. 물 론 자연이나 역사속에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이란 결코 격리된 개인이 아니라 이미 일정한 형태의 사회속의 인간인 것을 홉스 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홉스는 이러한 경험적인 한계를 의도적으로 벗어난다. 우리가 사회를 그 기본적인 요소로 나누 고 이 요소로써 재구성함으로써 그것을 이해하려 한다면, 우리 30) 이 책 31 쪽 이하를 보라.

는 우선 사회를 묶고 있는 실제적인 끈을 해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철학이란 사실의 존재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사실이 어 떻게 해서 존재하게 되었느냐에 대한 지식이라는 말은 여기서 도 타당하다. 홉스에 의하면, 모든 사유는 계산이요, 모든 계 산은 더하기와 빼기이다. 빼기의 힘 죽 개념적 추상의 힘이 끝 까지 발휘되었을 때, 비로소 올바른 더하기 즉 전체로의 지적 인 통합은 제대로 성공할 수 있다. 복합된 전체에 대한 참된 지식은 이 두 가지 방법의 상보(相補)작용에 의해서만 가능하 댜 그래서 홉스는 우선 문제 대상을 철저히 분석함으로써 시 작한다. 개인의 의지를 계산의 단위로써 사용할 수 있도록 하 기 위해 그는 개인의 의지를 어떠한 개별적 특성도 지니지 않 은 추상적 단위로 취급한다. 개인의 의지는 다른 사람의 의지 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것을 원한다. 그것도 각자 그 스스로 원 한댜 정치론의 문제는 이러한 절대적인 고립이 어떻게 하여 결합될 수 있느냐에 대한, 그리고 이 결합이 어떻게 해서 하나 의 단일한 전체를 이룩할 수 있느냐에 대한 설명의 문제이다. 자연 상태와 사회 계약에 대한 홉스의 이론은 이 문제를 해결 하려는 시도이다. 지배와 복종이라는 두 힘만이 자연적 상태에 서 나누어진 것을 정치적으로 하나로 묶어 유지할 수 있다. 따 라서 홉스가 보기에 사회계약이란 항복의 교섭 이외에 아무것 도 아니다. 복종을 느슨하게 하거나 복종에 어떠한 유보조항을 인정하는 것은 국가의 존재이유를 파괴하는 것이요, 정치적 질 서를 붕괴시켜 혼돈으로 만드는 것이 된다. 이렇게 해서 홉스 의 정치적 철저성은 논리적 철저성으로부터 유래하며, 또 반대 로 전자는 후자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어떤 의미로건 지배권 을 제한시키려는 것은 지배권의 사상적 뿌리를 공격하는 꼴이

되고, 지배권을 논리적으로 부정하는 꼴이 된다. 개인이 자신 의 의지를 포기하는 행위 즉 개인이 다른 사람과 똑같이 자신 의 의지를 지배자의 의지에 복종시키는 행위는 이미 형성된 기 성(紙成) 사회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행위는 공동사회의 첫 출발에서 생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행위야말 로 공동사회를 비로소 가능하게 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계 약의 두 가지 기 본 형 태 인 〈사회 계 약 pa ctu m soc i e t a ti s 〉과 〈복 종의 계약p ac tu m sub j ec ti on i s 〉의 관계에 대해서 홉스는 이 양자 의 전통적인 이원론을 해소시키고, 복종의 계약만을 사회를 가 능하게 하는 유일한 끈으로 인정한다 .31) 지배자와의 계약에 들 어가기 전의 개인들이란 단지 무질서한 집단이요, 전체로의 통 합에 대한 조그마한 흔적도 지니고 있지 못한 집합에 불과하 다. 지배자의 지배권만이 정치적인 전체를 만들어낼 수 있으 며, 이 전체는 무제한한 통치권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 따라서 복종의 계약으로서 국가계약만이 〈자연상태〉를 〈시민상 태〉로 이끄는 첫 단계일 뿐만 아니라 또한 시민상태를 유지보 존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유일한 조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법에 의한 무제한적 통치권 po te s ta s leg ibu s soluta > 이라는 정치적 권력의 개념은 이제 자연법의 원리에 의해 도전 받는다. 이 원리가 지지되는 한, 사회계약의 개념도 다른 방식 으로 해석되고 설명되어야 한다. 그로티우스에 의하면 사회는 단순히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인들의 조직체 가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사회란 〈사회적 욕구 a pp e titu s soc i- 31) 국가이론의 일반적 발전과정에서 이 단계가 지니는 의의에 대해서 는 특히 Gi er ke, Joh annes Altb u siu s, 3 . Aufl ag e , 86 쪽 이 하와 101 쪽 이하를 보라 .

e t a ti s 〉라는 인간의 기본적 본능에 기초하고 있거니와, 이 사회 적 욕구에 의해 사람은 비로소 인간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로 티우스의 견해에 따르면, 홉스이론의 기초가 되는 추상적 개인 은 인간의 유(개념)에 속하는 것이 못 된다 . 설사 그러한 인간 이 있다 하더라도 그는 계약을 맺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약속 으로서의 계약은 이미 사회적 본성이라는 인간의 기본 특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진대 사회란 그 본성상 계약에 의존하는 것도 아니요, 계약을 통해 비로소 생기는 것도 아니 다. 오히려 그 반대로 계약이란 것이 근원적인 〈사회성〉의 전 제하에서만 그리고 이 전제를 바탕으로 해서만 가능하고 또 이 해될 수 있다. 이성에 터 잡고 있는 이러한 사회성은 자의적인 행위나 혹은 단순한 관습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 라서 그로티우스는 법과 국가를 단순히 공리주의적으로 해석하 고 정당화하려는 모든 시도를 거부한다. 그도 또한 법과 국가 의 기본 임무를 사회의 보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사 회의 보전이 어디까지나 인간 지성에 합당한 것이 되도록 하여 야 한다고 강조하여 덧붙인다. 〈사회의 보존이 인간 지성에 합 당한 것인 한에서, 그것은 통치권의 원천이요, 통치권이 온당 하게 언급될 수있다.〉 32) 그래서 그로티우스는 〈유용성이 정의 와 공정 의 어 머 니 이 다 Utilitas jus ti pro p e mate r et ae q u i〉 33) 라는 진술을 배격한다. 인간은 유용성이나 이득이 없더라도 정의 자 체를 위해서 정의를 추구하고 촉진시키고자 하기 때문이다 .34) 법 혹은 법적 의무라는 순수개념을 생각하는 능력 그리고 공동 32) Groti us , Deju r e be/I i acp ac is , Proleg om ena, Sect. 8. 3343)) HGroortaic ues ,, SDaetji r ue s r eI, be3/I. i acp a cis, Prolego m ena, Sect. 16.

사회를 추구하는 자연적 본능 속에 이러한 순수 개념이 이미 포함되어 있음을 깨닫는 능력, 이 능력이야말로 인간됨의 특권 이요, 모든 인간 사회의 기반이 된다. 이러한 해석에서 그로티 우스의 특징이 되는 법의 정신과 인문주의적 정신의 결합을 우 리는 다시 보게 된다. 그는 법을 인간의 우연적 창조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진정한 본질규정으로 간주한다. 그로티우 스에게 있어서 법은 인간성 자체의 원천이 되고 또 법에서 인 간성 자체가 가장 순수하게 반영된다 . 그에 의하면, 계약의 근 본 개념의 명확한 의미와 완전한 정당화는 바로 이 원천으로부 터 나온다. 자연법의 최상격률 중의 하나인 〈계약에 대한 무조 건적 충성의 원리〉의 기초는, 국가를 단순히 물리적 강제수단 의 총계로 보는 견해에서는 생길 수 없다 . 오히려 국가란 국가 의 임무와 의미와 이상적 목표에 입각하여 그 본성이 해석되어 야 할 이상적 존재라고 보아야 한다 . 그리고 국가의 의미는 강 제력에 의한 의무로서가 아니라 자유로운 약속으로서의 계약의 개념 속에 들어 있다. 〈근원적 계약〉의 타당성은 정치적 통치 권에 의해 결코 파괴될 수 없다. 왜냐하면 계약이야말로 통치 권을 이론적으로 정당화시켜 주는 모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계약을 무효화시키는 어떠한 힘도 결국은 자기자신의 기반을 허무는 꼴이 된다. 국가가 근원적 법의 정신을 지니고 실현하 는 한에서, 국가는 법을 만들 수 있고 또 이 법을 정당화시킬 수 있다. 〈시민법 lex ci v ili s 〉의 모든 강제력은 이러한 〈자연법 lex na tu ra li s 〉의 근본 힘에서 유래한다. 법 그 자체가 국가보다 앞서며 국가보다 상위에 있다. 이렇게 법이 자율성과 독립성을 지녔을 때, 법은 국가의 튼튼한 버팀목을 줄 수 있다• 루소에게서 우리는 다른 유형의 사회계약 이론을 본다. 흔히

루소의 사회계약은 순수 자연법을 기반으로 해석되곤 했다. 그 러나 이러한 해석은 루소의 기본 사상의 체계적 핵심과 역사적 독창성을 무시하는 꼴이 된다. 루소가 홉스와 그로티우스의 요 소를 자신의 학설 속에 받아들인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이 양자를 비판한다. 이미 『불평등 기원론』에서 루소는 그로티우스의 몇몇 주장에 대해 강력한 이의를 제기한다. 또한 루소의 사회 계약은 자연법 사상의 단순한 연장으로 해석될 수 도 없다. 왜냐하면, 비록 루소의 사회 목적론이 여러가지 점에 서 자연법 사상과 비슷한 것이 사실이지만, 루소는 자연법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들을 함께 묶는 이른바 근원적인 〈사회적 욕구 a pp e titu s socie t a t i s> 이론을 분명히 거부한다. 이 지점에서 그는 주저없이 홉스로 되돌아간다 .35 ) 루소는 자연의 상태를 물론 만인 대 만인의 싸움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그러 나 그는 자연의 상태를 모든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으로부터 완전히 무관하게 격리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 이런 상태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도덕적인 끈도, 감정적인 끈도, 의무감도, 동정 심도 없다. 각자는 스스로를 위해 살 뿐이고, 자기보존에 필요 한 것만을 추구한다 . 루소에 의하면, 홉스 심리학에서 단 한 가지 잘못된 점은 홉스의 심리학이 자연의 상태에서 소극적인 이기주의 대신에 적극적인 이기주의를 취한다는 점이다. 자연 상태워 사람은 폭력에 의해 남의 것을 빼앗거나 남을 지배하려 는 충동을 알지 못한다. 이러한 충동은, 인간이 사회 속으로 들 어오고 사회가 유발시킨 소위 〈인위적인〉 욕구를 알게 된 후 35) 다음의 이 야기 는 부분적 으로 Cassir er , Das Problem Jea n-J a cq ue s Rousseau (Arcbiv f ur Gescbic b te der Pbil o sop bi e , hrsg. von Arth u r Ste i n , Band XLI, 1932, 210 ff.)라는 논문에서 발췌한 것이다.

에, 비로소 생기고 뿌리를 내린다. 자연 상태의 인간성을 특징 짓는 것은 다른 사람을 폭력에 의해 복종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무관심이요, 다른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분리되어 있으려는 충동이다. 자연적 인간이 동정심을 가질 수 있음울 루소도 물론 인정한다. 그러나 동정심은 〈본유적인〉 사 회적 본능에 뿌리를 박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상상력의 소산에 불과하다 . 인간은 본래 자기자신을 다른 사람의 처지로 옮겨놓고 이 사람의 감정을 미루어 느낄 줄 안다. 이러한 〈감 정이입(感情移入)〉의 능력으로 인해 인간은 다른 사람의 슬픔을 자신의 것인 양 어느 정도 느낄 줄 알게 된다 .36) 그러나 단지 감각인상에 의거해서 생긴 이러한 능력으로부터 다른 사람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에 이르기까지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따 라서 사회의 기원을 이러한 관심의 탓에 돌린다면, 이는 본말 (本末)을 뒤바꾸는 잘못을 저지르는 꼴이다. 이기주의를 극복하 고 다른 사람에 대한 동정어린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사회가 지향할 목표가 될지언정 분명히 사회 구성의 출발점이 될 수 없다. 자연의 상태에서는 개인의 관심과 공동의 관심 사이에 조화가 있을 수 없다. 개인의 관심은 결코 공동의 관심과 일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 배타적이다. 사회의 출발 온 의도적인 의지의 소산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인간이 따라 야 할 맹목적인힘의 소산인 바, 이러한 사회의 · 출발에 있어서 사회 법규들은 다른 사람에게만 지우고 자신은 지고 싶지 않은 멍에일 뿐이다. 루소는 사회 속에서 생겨난 전통적이고 관습적 인 사회형식들의 모든 멍에와 짐에 대해 통렬히 비판을 가한 36) 자연 인간에 관한 루소의 심리학과 루소의 홉스에 대한 비판을 위 해서는 특히 『불평등 기원론』 제 1 편을 보라.

다 . 루소에 따르면, 부자가 가난한 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 는 나를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나는 부유하고 너는 가난하니 까. 그러니 우리는 서로 계약을 맺도록 하자. 나는 너의 체면 을 살려 네가 나에게 봉사할 기회를 준다. 그대신 너를 지배하 는 나의 수고스러움에 대해서 너는 네가 가진 것 중에서 적은 몫을 나에게 주어야 한다.〉 37) 루소에 의하면, 이러한 것이 지금 까지 사회를 지배해 온 계약의 모습이요, 이 계약은 순전히 법 적 의무만을 포함할 뿐이어서 진정한 도덕적 의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루소의 항의와 개혁의 의지가 발동한다. 이제 홉스에 대해 격렬하게 루소는 맞선다. 사회계약은 그 자 체로 볼 때 아무것도 아니다. 사회계약이 개인의 의지들을 내 적으로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외적인 물리적 강제력을 통해서 개인의 의지들을 통합시킨다면, 그러한 사회계약은 그 자체 불 합리하고 모순이 된다. 강제력에 의한 끈은 불안정할 뿐만 아 니라 윤리적으로 무가치하다. 개인이 강제로 통치권에 복종하 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통치권에 복종할 때에만, 통치권은 도 덕적 가치를 지닌다. 루소의 사회계약은 이러한 도덕적 가치를 지닌 통치권의 기본형식과 규칙을 확고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계약의 당사자가 계약에 따른 의무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개인 적인 의지(욕구)로써 행동하려 한다면, 또는 오직 한 사람이 다 론 사람들과 일방적으로 계약을 맺는다면, 또는 개인들이 한 사람을 지배자로 뽑고, 공인(公人)이 아니라 사인(私人)으로서 이 지배자에게 복종한다면, 이로부터는 진정하고 참된 통일이 37) 루소가 기 고한 economi e po li tiqu e, Encyc l op ed ie , Pari s, 1755, vol. 5, 347 쪽을 보라.

나오지 않는다. 진정한 통일은 강제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 니요, 오직 자유를 토대로 한 계약을 통해서만 얻어진다. 자유 는 복종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는 행위의 자의성이 아 니라 자유스런 계약에 따른 행위의 엄격한 당위적 필연성을 내 포한댜 이러한 필연성으로서 〈계약에 복종함〉은 한 개인의 의 지가 다른 사람들에 복종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 그것은 오히려 개인적 의지 자체가 끝남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개인적 의지가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욕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일반 의지 volone gen erale> 안에 있고 일반의지로 욕구한다. 루소에 따르면, 이러한 류의 계약만이 물리적 강제력이 아니라 내적 의무에 따른 힘을 지닌다 . 이러한 고찰에서 루소는 진정한 자 유개념과 진정한 법개념 사이의 엄밀한 연관을 도출한다. 자유 는 제멋대로-함이 아니라 스스로 제정한 법에 대한 의무를 내 포한다. 자유의 참된 성격은 법으로부터 면제됨이 아니라 법을 자유롭게 스스로 인정함에 있다. 이제 루소의 문제는 사회의 모든 형식들로부터 개인을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의 문제 는, 모든 개인이 정치적인 조직의 통일된 힘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형태를, 다시 말해서 각 개인이 다른 개인들과 통 합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자는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복종 할 뿐인 사회형태를 추구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각자는 자신울 모든 사람에게 주나 또한 어떤 사람에게도 자신을 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우리 자신에 대한 권리를 양도하듯이, 이와 똑같은 권리를 그 사람도 우리에게 양도한 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잃은 것과 똑같은 것을 얻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진 것을 더 잘 지킬 수 있는 보다 더 큰 힘을 얻게 된다.〉 38) 각자가 스스로 인정한 자유로운 계약에 복종하는

한, 각자는 어떤 사람에게도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 자신의 의지에만 복종하는 것이다.〉 39) 일단 이런 계약에 들어서 는 사람은 자연 상태에서 누렸던 타인에 대한 〈자연적인 무관 심〉을 일거에 상실하고 그대신 더 안전하고 더 좋은 것을 얻게 된다. 이런 계약이 이루어진 후에야 비로소 인간은 보다 높은 차원의 개인이 될 수 있고, 지금까지 욕구와 감정에 지배받던 상태를 벗어나 자율적인 의지에 의해 지배되는 인격주체가 될 수 있다. 〈일반의지〉로 결속되었을 때에 비로소 자율적인 안격 주체가 성립된다. 루소가 『사회계약』에서 그린 사회의 목표 는, 그가 처음에 칭송하려는 듯했던 자연의 상태를 훨씬 뛰어 넘는 곳에 설정된다 .40) 인간이 사회 속에 들어오자마자 고립된 자연의 상태에서 누렸던 여러 이점(利點)들을 상실하지만, 반면 에 그는 자연의 상태를 벗어남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계발시키 고 생각을 일깨우고 감정을 고양시키고 순화시킬 줄 알게 된 다. 이렇게 해서 그는 〈우둔하고 무지한 동물로부터 정신적인 인간적 존재로 탈바꿈했던〉 4 1) 행복한 그 순간을 영원히 축복할 것이다·――물론, 사회라는 새로운 질서가 잘못 사용되고 부패 된다면, 자연의 상태보다 훨씬 못하게 될 위험도 따르지만. 법의 힘과 존엄성에 대한 루소의 정열과 감격은 그의 윤리학 과 정치학의 특성이 되며, 이런 점에서 루소는 칸트와 피히테 38) Contr at s o cia 4 I, 6. 39) Contr a t s ocia 4 II, 4 . 40) 이러한 것이 루소의 사상발전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리고 『불평등 기원론』과 『사회 계약』 사이에 하둥의 체계적인 모순 도 없다는 사실 에 대 해 서 는 Cassir e r, Das Problem Jea n-Ja c q u es Rousseau, 190 쪽 이하를 보라(이 책 346 쪽 주 35) 를 참조). 41) Contr ac ts o cia 4 Liv r e 1, ch. 8.

F ic h t e 의 선구자이다 . 4 2 ) 사회와 국가에 대한 루소의 이상적 관 점에서 볼 때, 개인의 자의성은 거의 허용되지 않는다. 그는 이러한 자의성을 인간사회의 참된 정신에 어긋나는 죄(罪)로 간주한다. 이 점에 대한 그의 견해는 확고하다. 『사회 계약론』 의 초안에서 법은 인간이 만든 모든 제도 가운데서 가장 고귀 한 것이요, 하늘이 내려주신 선물인 바, 이 선물 덕분에 인간 온 신의 영원한 법령을 이 지상에서 본뜰 수 있다 . 4 3 ) 역사적으 로 볼 때, 독일의 질풍노도 S tu rm und Drang 시대 (약 1770-17 8 0 년) 문학은 루소의 자연에 대한 예찬과 자연에의 복귀를 법 지 배의 종말로 잘못 해석한다 . 루소가 정말로 이런 경향을 지녔 다면, 그의 『사회 계약론』은 『불평등 기원론』과 화해할 수 없 는 심각한 모순에 빠진다 . 왜냐하면 『불평등 기원론』은 법의 절대적 지배와 통치를 더할 수 없이 강력히 주장하기 때문이 다. 법 앞에서 어떤 개인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사회계약 속에 만일 어떤 개인을 위한 유보조항을 둔다면, 이는 사회계약의 참된 의미와 내용을 파괴하는 꼴이 될 것이다. 계약에 의한 참 된 통일은, 모든 개인이 전체에 죽 계약에 자신을 양도하고 포 기할 때에 비로소 실현된다 . 〈양도가 예외없이 실현될 때, 통 일은 가능한 한 완전하게 되고 어떤 개인도 더 이상 특권을 요 구할 수 없게 된다.〉 44) 이러한 점에서 루소는 개인의 모든 저항 을 침묵시킬 수 있다 . 왜냐하면 법의 진정한 순수성과 보편성 이 통용된다면, 이에 따라 개인의 진정한 도덕적 요구들도 또 42) 이 에 대 해 서 는 Gurvit ch , Kant und Fic h te als Rousseau- Inte r pr e ta tion , Kan t-S tu die n , XXV1I(1 9 22), 138 쪽 이하를 참조. 43) Schin z , La Pensee de]. ]. Rousseau, Paris, 1929, 354 쪽 이 하를 참 고 . 44) Contr a ts ocia ~ L. 1, ch. 6.

한 직접적으로 실현될 것임을 루소는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 다. 이 요구들은 〈해소되며 보존된다〉는 뜻에서 지양(止揚)된 다. 한편으로 이 요구들은 더 이상 독자적인 요구들로 나타날 수 없고, 또 한편으로 이것들의 진정한 의미가 이미 법에 의해 수용되고 보존된다. 단순히 힘이 지배한다면, 다시 말해 어떤 개인이나 일군의 개인들이 인민에게 명령을 강요한다면, 이러 한 강제적인 힘에 확고한 제한를 가한다는 것은 물론 필요하며 의의가 크다. 왜냐하면 그러한 힘이란 남용되기 쉬운 법이요, 가 능한 한 이러한 남용은 방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 방적인 조치들을 제아무리 취한다하더라도 결국에는 아무런 소 용도 없게 된다. 법의 의지가 결핍되면, 제아무리 잘 고안된 〈기 본 법〉이라도 지배자는 이 법을 제나름으로 해석해 사용할 여 지가 있기 때문이다. 힘의 본성과 원천에 대한 변화없이 단순 히 힘의 양만을 제한하려는 짓은 소용 없는 일이다. 루소의 법 이론과 정치 이론은 바로 이러한 변화를 중심으로 한다. 그는 국가 의지의 절대적 통치권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 통치권은 법의 원천으로 오직 일반 의지만을 인정하는 국가를 전제한다. 이럴 경우라면, 통치권의 제한은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또한 자기모순이 된다. 이럴 경우엔 힘의 양(量) 문제는 아무런 의미 가 없기 때문이다. 힘에 대한 문제가 있다면, 오직 힘의 내용 과 원리의 문제뿐이요, 여기서는 양의 다소(多少)가 아무런 의 미를 지니지 못한다.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입헌국가의 순수 이념에 의해 통치된다면, 개인은 더 이상 보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개인의 참된 보호는 이미 국가에 의해 그리고 국가속 에 보장되어 있다. 이제 국가에 대해서 개인을 보호한다는 것 은 그 자체 불합리한 개념이다. 그렇다고 루소가 양도할 수 없

는 권리의 원리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이 원리는 국가에 대립해서 주장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국가 속에 굳건한 뿌리를 내려 구현되어 있다. 이론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이러한 기본 개념의 실현은, 홉스의 방법적 모형처럼, 사회계약론에서 지금까지 통용되어 왔던 이원론을 부정할 때 가능하다. 루소도 홉스처럼 계약의 이중적 형태의 구조를 즉 〈사회란 개인들로 구성된다〉는 형태와 〈사회란 지배자를 세우고 그의 의지에 복 종하는 데서 성립한다〉는 형태의 이중적 구조를 더 이상 인정 하지 않는다. 그러나 홉스가 국가형성의 과정을 〈복종의 계약〉 으로 환원시켰던 것에 반하여, 루소는 이 과정을 구성체의 순 수한 사회계약으로 환원시킨다 .45) 합법적인 모든 권력은 이 계 약속에 들어 있고 이 계약에서 나온다. 파생된 권력은 그 근거 가 되는 원천의 울타리를 넘어설 수 없다 . 따라서 모든 정부의 권력은, 이것이 개인에게 있든 혹은 집단에게 있든 상관 없 이, 민중이 위임해준 권력일 뿐이다. 그것은 일반의지의 유일 한 담지자인 민중의 주권을 폐지하거나 침해할 수 없다. 정부 의 권력이란 민중으로부터 유래될 때에만 합법적일 수 있다. 단순히 행정관리상의 의미를 지닐 뿐인 정부권력은 일반의지의 위임이 끝나는 순간 그 합법성의 근거를 상실한다. 물론 법은 그 시행에서 권력의 일부를 다른 사람에게 위임할 수 있으나, 이 위임의 행위가 법의 원천을 부정하는 데에까지 갈 수 없음은 당연하다. 자연법 이론에서 개인의 영역과 국가의 영역을 명확 히 구별해서 국가로부터 개인의 독립을 확보하기 위해 사용된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의 이념은 이제 루소가 보기에 국가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 된다. 개인이 아니라 전체 죽 〈일반의지〉 45) 더 자세한 것은 Gie r ke, Jo hannesAlt b usi썩 115 쪽 이하를 보라.

야말로 포기할 수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위임할 수도 없는 기 본적 권리를 지닌다 . 그렇지 않다면 일반의지는 의지의 주체로 서 자기자신을 파괴하고 자신의 참된 본성을 포기하는 꼴이 될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계약 사상에 엄청난 혁명적 힘이 들어 있음을 우리는 앞에서 이미 보았다 .46) 무엇보다도 여기서 루소는 그의 직접적인 역사적 환경 즉 프랑스 백과전서파의 지적 환경을 뛰 어넘는다. 개혁을 하고자 하는 마음자세와 이를 위한 중요한 계획에서 볼 때, 백과전서파들은 결코 루소에 뒤지지 않는다 . 〈구 체제 anc ien re gim e 〉의 고질적인 병폐는 이 시대 이전부터 이미 잘 알려져 왔다 . 백과전서파들이 체계적으로 수행한 국가 와 사회에 대한 비판은 17 세기와 18 세기 초반에 이미 그 토대 가 전반적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보방 Vauban, 부울랭빌리에 Boulain v il lier s 혹은 부와기 이 베 르 Bois g u i l leb ert 같은 사람은 이 미 페늘롱 Fenelon 이 명확히 제시한 노선을 추구했다. 페늘롱 은 이미 자신의 저서 『왕의 양심론』에서 절대군주 체제의 병폐 에 대해서 제기된 모든 논의들을 하나의 초점에 맞추어 일목요 연하게 파악한다. 그리고 이런 논의들은 추상적 고찰에 머무르 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오히려 모든 악폐의 근원적 뿌리를 파해치고 이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예방책을 추구한다. 모 든 분야에서 강렬한 개혁의지가 자리잡는다. 입법, 행정, 사 법, 조세, 재판 및 형벌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추구된다. 구체 제의 병폐에 맞서서 전쟁을 선포하고 수행한 사람은 철학자가 아니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철학자에 앞서 실천적인 개혁자들 46) 이 책 208 쪽 이 하를 보라.

의 활동이 있었다 .47> 1739 년에 쓰여져 원고로 읽혔으나 1764 에 야 출판된 다르장송 d'Ar g enson 의 저서 『과거와 현재 프랑스 정 부에 관한 고찰』에서, 프랑스는 화려한 의면에 의해 겨우 내적 병폐와 부패를 눈가림하는 〈회칠한 무덤〉으로 불린다. 다르쟝 송이 1774 년 각료에 임명되자, 그의 철학 친구들은 이를 열렬 히 환영하고, 사업가나 정치가들은 재치를 부려 그를 〈플라톤 공화국의 장관〉이라고 부른다 .48) 이렇게 해서, 두 개의 디종학 술원 현상논문에서 루소가 사회비판을 시도할 때, 이 비판의 토양은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이미 완전하게 준비되어 있 었다. 다르쟝송 자신도 그의 일기에서 루소의 『불평등 기원론』 울 〈진정한 철학자〉의 저술이라고 칭찬해 마지 않는다 .49) 이렇 게 볼 때, 루소는 18 세기의 일반적 열망 분위기와 완전히 일치 하는 듯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소는 자신이 당시의 지적 풍토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고 계속 믿어왔던 반면 에, 당시의 지도적 사상가들은 루소를 자기들의 사상노선으로 끌어들이고자 헛되이 노력하다가 마침내 그를 비록 매력은 있 으나 거부하지 않을 수 없는 방해꾼으로 간주하기에 이른다.

47) 이 에 관한 통찰과 개 관은 앙리 제 Hen ri See 의 저 서 Les ide es pol i - tiqu es en France au 1 i Sie c /e , Paris, 1923 그리 고 L ' evoluti on de la p있e다n s.e e p또ol한 it i quH e eennr i F Sraene c의e au논 문ls ' SiLe ce lse , idP eaersis , p h1 i9l 2o5s 에op h잘iq u 정es 리 e 되t 어la litter atu r e pre revoluti on nair e , Revue de Sy n t h 每 e his tor i qu e, 1925 를 참고하라 더 자세 히 알아보려 면, Gusta v e Lanson, Le Role d' Exp - eri en ce dans la form ati on de la ph il os op h ie du 1t Sie c le en France, Etu d es d'His toi r e Lit ter air e , Paris, 1930, 164 쪽 이 하를 보라. 48) 1757 년 2 월 4 일자 리셜리외 Rich elie u 공작에게 보낸 볼테르의 서신 울 참고하라 (Le q u i en 편 전집, 60 권, 238 쪽). 49) Henri S ee, L'evoluti on de lap en seep ol it iqu e, 98 쪽을 참고하라.

왜냐하면 루소를 인정하게 되면, 자신들의 철학적 견해가 불명 료해지고 불안정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50) 루소와 당대의 사상가 들 사이의 이러한 불일치의 핵심은 루소 사상의 내용보다는 그 의 사유방법에 있다. 루소가 그의 시대와 달랐던 점은 그의 정 치적인 이상에 있다기보다는 이러한 이상을 연역하고 정당화하 는 그의 방법에 있다. 이 시대가 정치적 부패로 인하여 제아무 리 고통을 당하였다고 하더라도, 이 시대의 비판은 결코 삶의 사회성 자체의 가치를 의심하는 데까지는 가지 못한다. 이 시 대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사회적 삶은 그 자체 자명한 목적으로 간주되어 왔다. 백과전서파 중 어느 누구도 인간이란 오직 사 회적 방식을 좇아 살 수 있을 뿐이지 그의 다른 방식으로는 살 수 없음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전제를 공격하 였던 것이 루소 사상의 독창성을 이루고 있다. 그는 이전의 모 든 사회개혁의 계획서들이 암암리에 인정하고 들어간 이 방법 적 전제를 부정한다. 〈공동체 Geme in scha ft의 이념〉이 과연 18 세 기 문화가 맹 목적 으로 추구해 온 〈사회 Gesellscha ft의 이 상〉 과 동일한 것이 될 수 있느냐? 아니면 이 둘 사이에는 근본적 인 차이가 있는 것이냐? 근본적인 차이로 말미암아 참된 공동 체의 달성 가능성은 우리가 사회에 대한 우리의 모든 우상들울 없앨 때 비로소 생기는 것은 아닌가? 바로 이 문제에 관하여 루소와 백과전서파 사이의 논쟁이 생겨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두 가지 상이한 견해를 각각 온당히 알아보기 위해서 우리는 이 논쟁의 발전과정을 추적해 볼 필요가 있다.

50) 루소와 백과전서파들의 관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카시러의 ‘'Da s Problem Jea n-Jac q ue s Rousseau, Archiv fur Geschic h te der Phil o- sop h ie , Band XU, 1932, 201 쪽 이하를 보라.

텐 Ta i ne 은 『현대 프랑스의 기원』이라는 저술에서 백과전서파 들을 유토피아적인 공론가라고 바난한다 . 그에 의하면, 이들은 구체적인 역사적 실재를 무시한 채 순전히 구성적인 정치-사회 적인 체계를 독단적으로 만든다. 그러나 탠의 이러한 비판은 이미 오래 전부터 부당한 것으로 인정되어 왔다. 백과전서파들 의 실재에 대한 존중과 실재에 대한 유연한 감각은 의심의 여 지가 없다. 그들은 이론에서 실천에 이르는 길아 매우 멀고 험 난함을 잘 알기에, 그들 모두는 곧바로 실천에 착수하기를 원 했을 뿐이다 . 홀바흐 같은 이론과 추상의 열광자도 그의 사변 을 직접 실천에 옮기려고 하지는 않는다. 홀바흐는 그의 『사회 체계』에서 정치적 문제의 혁명적 해결을 반대하면서, 혁명적 해결이란 항상 그전의 병폐보다 더 나쁘게 된다고 말한다. 이 성의 소리는 선동적인 것도 아니요, 피에 굶주린 것도 아니다. 이성이 제안하는 개혁은 점진적인 것이요, 바로 이렇기에 더욱 더 효과적이다 .51) 다른 한편 이 사상가들에 의하면 정치-사회적 인 개선의 길온 반드시 이성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국가와 사 회의 악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진정한 〈계몽〉 즉 악 폐의 원천과 근원에 대한 이성적 통찰이다. 18 세기의 정신적 지도자들이 지닌 이성적 통찰에 대한 믿음은 순수한 지적 문제 가 못된다. 조용하고 반성적인 성품을 지닌 달랑베르의 수학적 정신에 대해서는 〈주지주의〉의 딱지를 붙여도 무방하겠으나, 디 드로만 해도 전혀 다른 모습을 띤다. 그는 주지주의자라기보다 는 오히려 환상가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그의 순수 사변적 인 저술에서조차 엄격한 논증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재치가 넘치는 상상력의 활동이 판을 치고 있다. 〈합리주의〉와 〈비합 51) Holbach, Sys t e m e soc ia~ II, 2 쪽.

리주의〉라는 좀 애매한 대비를 전제해서 볼 때, 디드로에 비해 서 오히려 루소가 더 합리주의자로 보인다. 『사회 계약』에서 보인 루소의 엄격한 합리적 연역은 정치-사회의 근본 문제에 대해서 『백과전서』에 기고한 디드로의 글들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두 사람 사이의 진정한 차이는 다른 곳에 있다 . 디드로와 백과전서파들에 의하면, 인간은 문 화의 발전을 신뢰해도 좋다고 한다. 문화 발전은 그 자체의 내 적인 성향과 법칙에 의해 보다 나은 사회질서의 형태를 만들어 간다고 본다. 다시 말해 세련된 생활양식과 지적인 성장 및 확 대는 마침내 도덕심을 향상시키고 도덕에 굳건한 기초를 줄 것 이 틀림없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믿음이 매우 강하여서, 대부 분의 사상가들은 이들이 정당화하고자 노력한 공동체 Geme in scha ft의 개 념 을 사회 Gesellscha ft의 개 념 과 동일시 할 뿐 만 아니 라 심 지 어 사교성 Gesell ig ke it의 개 념 과도 동일시 하게 되었다 . so ci e t e 라는 프랑스 말에는 후자의 두 가지 의미가 항 상 겹쳐진다. 여기서 사교적 철학과 사교적 학문이 요구된다. 정치적 이상뿐만 아니라 이론적, 윤리적 내지 미학적 이상도 대저택의 응접실에서 이루어지는 명사들의 사교적 모임인 살롱 문화에 의해 그리고 살롱문화를 위해 만들어진다. 도시문화의 세련성과 우아성이 학문에 있어 참된 통찰의 기준이 된다. 도 시문화의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것만이 명석성과 판명성의 기 준을 통과한다. 17 세기 퐁트넬은 그의 저서 『다원적 세계에 관 한 대화』에서 바로 이러한 기준을 가지고 데카르트의 가르침을 검사하려 하였고, 18 세기 볼테르는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에 대해 똑같은 시도를 하였다 . 이러한 시도는 독일에도 전파되어, 오일러 Euler 의 『독일 공주에게 보낸 서신들』에서 그

전형적인 예가 찾아진다. 대중적 표현의 요구는 실은 도덕적 요구라고 디드로가 말했을 때, 이는 이러한 시도의 핵심을 찌 른 말이다. 진정한 박애정신 Human it걸t의 실현을 위해서는 대중 적 표현 Po p ular it걸t이 필요불가결한 조건으로 요구된다. 〈서둘 러 칠학을 대중화시키자. 철학자들이 앞으로 전진하기를 우리 가 원한다면, 우리는 철학자들이 서 있는 곳에서 대중들에게로 다가가도록 하자. 대중들이 이해할 수 없는 곳에 진정 위대한 작품이 있다고 철학자들은 말할 것인가? 만약 그들이 그렇게 말한다면, 이는 참된 방법과 오랜 연습을 통해서 이룩할 수 있 는 일이 무엇인지를 그들이 아직도 모르고 있음을 보여줄 뿐이 댜〉 52) 엄밀한 수학적 학문들도 당대 세기의 사교적 정신의 도 움을 아쉬워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학문들의 탁월한 대 표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오직 이러한 도움을 받을 때에 그들 의 탐구가 참되게 번창해서 가장 완숙한 결실을 맺을 수 있다 고 한댜 달랑베 르가 백 과전서 의 「서 론적 논의 Disc ours pre lim i- na i re 」에서 주장한 바에 의하면, 앞선 시대에 비해 18 세기가 지 니는 본질적인 장점은 이 시대가 진정 창조적인 위대한 천재들 울 보다 많이 배출했다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은 언제 나 동일하게 진행된다. 그래서 모든 시대는 각기 위대한 천재 들을 낳는다 . 그러나 이들이 각기 고립해서 자기 생각에만 파 묻혀 지낸다면, 이들은 과연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독 서와 사교적 교제를 통해 자연스럽게 얻어진 관념들이야말로 모든 발견의 참된 씨앗이 된다. 그것은 마치 아무런 생각없이 숨을 쉬나 우리 생명을 유지시키는 공기와 같다.〉 이러한 말은 52) Di de rot, De l' in te ,p re ta ti on de la Natu ~ Sect. XI, 絲 e z.at 편, 전 집, 2 권, 38f.

백과전서파의 지적인 분위기를 가장 정확하고 실감나게 표현해 준다. 사회란 참된 학문, 참된 철학, 참된 예술이 번창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력이다. 백과전서파는 이러한 사회적 연관성 울 확립하고자 애쓴다. 그것은 최초로 지식을 사회적 기능으로 파악한다. 말하자면 지식의 발전은 건전한 사회의 유기적 연관 울 기초로 해서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 모든 정치-사회적인 계 획과 노력도 사회속에서 그 근거를 찾아야 한다 . 그리고 지성 적인 사회 문화의 성장과 확대를 통해서만 정치-도덕적 삶의 르네상스를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이다 . 루소의 비판과 반대는 바로 이 점에서 비롯된다. 그는 지금 까지 불가분적인 관계로 파악한 도덕과 사회의 연관을 해체하 고자 한다. 그는 지금까지 소박하게 믿어 의심치 않고 받아들 여져 왔던 도덕의식과 문화의식 사이의 통일을 매우 의심스러 운 것으로 다룬다. 일단 이러한 의심의 원인이 진정으로 이해 되고 의심의 형식이 명확히 드러나면, 그 대답도 또한 명확하 게 주어질 수 있다 . 그 시대의 윤리적 이상과 지적-이론적 이 상 사이의 조화는 이제 스스로 붕괴된다. 루소는 그 자신의 경 우 이러한 붕괴가 일어났던 순간을 인상 깊게 설명한다. 디종 학술원의 현상논문을 준비하고 있을 때, 그는 예술과 과학의 진보가 과연 도덕의 향상에 이바지하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 게 되었다. 말르쉐르브 Malesherbes 에게 보낸 유명한 서신에서 루소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내가 이 문제를 골똘히 생각 하고 있을 때, 갑작스러운 영감과 같은 것이 나에게 끓어 올랐 다. 갑자기 수천 가지의 빛살이 비쳐, 나는 현기증으로 어지러 웠다. 수많은 상념들이 홍수처럼 나에게 세차게 밀려와 나는 형용할 수 없는 혼란에 빠져버렸다.〉 53) 이제 루소는 자신 앞에

놓여진 의지와 지식 사이의 거대한 심연을 보게 되었으나, 그 의 동시대 사람들은 이 심연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아무런 위험과 겁도 느끼지 못하고 이 심연의 가장자리를 위험천만하 게 오간다. 이제 의지의 영역은 지식의 영역과 구별된다. 이 양자는 목적만 다를 뿐만 아니라 이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과 방법에서도 서로 다르다. 18 세기가 인간성의 완전한 발현으로 간주한 지적이고 사교적인 문화는 루소가 보기에 가장 중대한 위험으로 보인다 . 루소가 이러한 문화의 내용과 기원과 현재 상태를 살펴 볼 때, 이 문화란 아무런 도덕적 동기도 지니지 못하고 그저 힘, 소유, 야심, 허영 등에 대한 욕구에서 기원했 을 뿐이다. 여기서 사회 철학자로서 루소는 역사 철학자가 되 어야 할 필요가 있다. 사회 철학자는 사회가 현재상태에 이르 기까지의 전과정을 추적해 보아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회 롤 움직이고 지배해 왔던 힘들을 명확하게 밝혀내야 한다. 또 한 사회 철학자의 이러한 임무는 단순히 역사적 의미만을 지니 는 것이 아니다. 그가 사회상태와 자연상태를 비교할 때, 그리 고 한 상태로부터 다른 상태로의 이전을 기술할 때, 이것이 단 순히 역사적 근거에서 그리고 역사적 서술의 테두리 안에서 결 정될 수 있는 사실의 문제가 아님을 그는 잘 알고 있다. 루소의 사회계약의 설명과 자연상태의 기술에서 소위 〈발전〉 개념은 경 험적인 의미라기보다는 논리적이고 방법론적인 의미로 쓰여지 고 있댜 루소가 시민 사회의 성립과 발전을 설명하나, 이 설명 은 서사시적인 서술이 아니라 17, 18 세기 법 철학과 국가 철학 의 기본방법이었던 〈발생적 정의〉의 의미를 지니는 설명이다 .54)

53) 1762 년 1 월 12 일자로 말르쉐르브에게 보낸 두번째 편지. 54) 이 책 338 쪽 이 하를 보라 .

발생적 정의의 의미에서 사회 형성의 과정이 기술되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만 사회 구조의 비밀과 사회형성의 내적인 힘 들이 밝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불평등 기원론』에서 루소는 이미 이러한 방법론적 관점을 정확히 서술한다. 이 책의 서문 에서 지적하듯이, 소위 〈자연의 상태〉를 언급하는 사람은, 현 재에도 없고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존재하지 않을 어떤 상 태를, 그렇지만 우리의 현재 상태를 정확히 판단하기 위해서 우리가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될 어떤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 이다. 루소는 자연의 상태를 고찰할 수 있는 사실로서, 그리고 때로는 우리가 못내 아쉬워 그리워할 대상으로서 보는 것이 아 니다. 현재의 우리 사회 상태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환 상인지를 그리고 무엇이 도덕적 의무의 법칙이고 무엇이 단순 한 관습과 전횡(專橫)인지를 구별해 줄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 기 위해 그는 자연의 상태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자연의 상태 라는 거울속에서 현재의 국가와 사회는 자신의 고유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요, 자신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만약 이 판단이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질서를 부정하고 거부 하는 데로 나아간다 하더라도, 이는 결코 모든 질서가 사라져 서 인간이 최초의 혼돈 상태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뜻하지 는 않는다. 〈법〉과 〈일반의지〉의 정열적인 전령자인 루소가 어 찌 그와 같은 이론적이고 실제적인 무정부론자가 될 수 있으 랴 문화와 예술과 학문에 관해서도 그는 그와 같은 무정부적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반대로 그의 거듭된 주장에 따르면, 그 가 예술과 학문을 공격할 때 이는 사회 형성에 있어 이것들의 역할을 완전히 배격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이러한 주장을 자기 기만이라고 치부해서는 안 되고 참된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는 그의 두 현상 논문에 관해 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두 논문에서 내가 말하고자 한 의도 는, 우리를 불행으로 이끌어간 것에 대해 어처구니 없이 칭송 해 마지 않는 우리들의 환상을 깨끗히 없애자는 것이요, 사악 한 재능을 존경하고 진짜 좋은 덕을 경멸해 마지 않는 잘못된 가치평가를 올바르게 고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성은 결코 뒤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인간은 그가 일단 버린 순 진무구하고 평등한 상태로 결코 되돌아갈 수 없다. 이 두 논문 의 저자는, 학문과 예술을 파괴하고 인간성을 최초의 야만성으 로 떨어뜨리려 시도하는 못된 자라고 끊임없이 손가락질을 받 아왔다. 그러나 정반대로 이 저자는 현존하는 제도의 존속을 주장하고, 만약 이 제도를 파괴한다면 이는 악의 창궐을 허용 하는 꼴이 되고, 악을 경감시키고 완화시키는 수단을 없애는 꼴이 되며, 부패를 없앤다고 하나 그 대신 아무런 제어를 받지 않는 방자한 힘을 끌어들이는 꼴이 된다는 사실을 명확히 말하 고자 한다.〉 55) 루소에 따르면, 이러한 방자한 힘은 자유이기는 커녕 참된 자유의 정반대이다. 만약 현실적인 방자한 힘이 있 다면, 이를 없애기 위해서는 현실의 부패된 제멋대로의 질서에 따른 정치-사회적인 구조물을 없애고 그 대신에 ·보다 확실한 기초 위에 보다 견고한 다른 구조물을 세워야 한다. 소위 〈사 회 계약〉이란 이러한 새로운 구조물을 세우기 위한 것이다. 사 회계약에 의해 루소는 지금까지의 임시변통적인 국가형태를 이 성적인 국가로 바꾸려고 한다. 그는 맹목적인 필연성의 산물로 서의 사회를 이성적 자유의 산물로서의 사회로 만들려고 한다.

55) RousseauJ ug e deJ ea n-Ja c q ue s, 세번째 대화 .

『불평등 기원론 』 에서 루소가 밝히고자 한 바에 의하면, 인간의 원천적인 도덕적 성향이 인간을 자연상태에서 사회상태로 만든 것도 아니요, 또 근원적인 도덕적 힘이나 순수 의지나 명확한 통찰력이 인간을 사회상태로 유지시키는 것도 아니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사회를 선택해서 만들어간 것이 아니라, 가 혹한 운명, 자연계의 물리적 강제, 자신의 맹목적인 감정과 열 정의 힘에 휩쓸려 사회의 희생물로 전락된 것이다. 인간은 이 러한 전락을 저지하고 지양해야 한다. 인간은 자신의 애초의 상태로, 애초의 본성으로 되돌아 가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함 은 애초의 상태에 머물러 살기 위함이 아니라, 애초의 이 출발 점에서 시작하여 인간이 사회적 존재로 가는 길을 다시 마련하 기 위해서이다. 이번에는 자신의 욕망과 정욕의 힘에 굴복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길의 방향을 잡아 나가야 한다. 스스로 키의 손잡이를 잡고 항로의 방향과 목적지를 스 스로 결정해야 한다. 인간은 그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왜 그리로 가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이럴 때에만 그는 법 이념의 승리를 확신할 수 있고 법 이념을 실현시킬 수 있기 때 문이다. 분명히 이것은 철저히 이성의 합리적 요구요, 이제 윤 리적 합리주의가 단순한 이론적 합리주의를 극복하고 그 우위 를 확보하는 양상이다 . 인간의 여러 능력들 사이에 조화로운 균형이 유지된다면, 지식도 그에 상응하는 권리를 당연히 누려 도 좋다• 『사회 계약론』에서 루소가 대변하는 바에 따르면, 지 식이 구체적인 삶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질 서를 위해 소용되는 한 지식은 위험한 것이 아니다. 지식이 절 대적인 우위의 자리를 주장해서는 안 된다. 정신적인 가치의 영역에서 이 자리를 향유하는 것은 도덕적 의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 사회에서 도덕적인 세계를 확고하고 명확하게 세 우는 것이 학문적 세계의 형성보다 앞서야 한다. 인간은 외적 대상의 법칙을 찾기 전에 자신속에 들어 있는 확고한 도덕법을 먼저 찾아내야 한다. 먼저 해야할 이 과제가 달성되고 정치-사 회적인 세계 질서에서 참된 자유가 획득된 후에야, 비로소 인 간은 지적 탐구의 자유를 만끽해도 좋다. 이렇게 될 때 지식은 하찮은 것을 쓸데없이 까다롭게 따지는 궤변적 공론이 되지 않 을 것이요, 또한 인간을 나약하고 게으른 존재로 만들지도 않 을 것이다. 거짓된 윤리적 질서는 지식을 이러한 부정적 방향 으로 이끌어 가고, 지식을 일종의 지적인 사치로 전락시킬 것 이다. 잘못된 윤리적 질서가 바로 잡혀질 때, 지식은 그 본래 의 궤도를 되찾을 것이다. 도덕적인 자유가 없다면, 지적인 자 유란 하등 쓸모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도덕적인 자유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자의성을 종식시키고 법의 내적인 필연성을 확 립시키는 사회질서의 근본적 개혁에서만 성취될 수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논의한 두 학설의 대립과 갈등 속에서 그리 고 그의 시대와 격렬히 다툰 루소의 논쟁에서 이 시대의 정신 적인 내적 통일이 새로운 빛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루소가 계몽주의를 공격하고 극복하지만, 그래도 역시 그는 계 몽주의의 진정한 아들이다. 감정에 대한 루소의 복음은 결코 그의 입지를 훼손시키지 않는다. 그가 여기서 다루고 있는 맥 락은 단순한 감정 요인들이 아니라 지적이고 도덕적인 참된 확 신이기 때문이다. 〈루소의 감정주의 Sen tim en t al is mus 〉에 길을 닦은 것은 단순한 〈감상(感傷 Em pfm dsamke it)〉이 아니라 윤리 적인 힘이요, 새로운 윤리적인 의지이다. 이러한 기본 성향으 로 말미암아 루소의 감정론은 예컨대 독일의 칸트나 레싱처럼

철저히 비감정적인 사상가들의 마음까지도 사로잡고 영향을 끼 쳤다. 아마도 계몽의 힘과 그 사상의 견고한 체계적 통일성이 유감없이 그 진가를 발휘하는 경우는, 계몽이 가장 위협적인 대적자의 공격을 견뎌내고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끝까지 지켜 낸 데에서 찾을 수 있겠다. 루소는 계몽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 는다. 그는 단지 이 세계의 무게 중심을 다른 곳으로 옮겨 놓 는다. 이러한 사상적 업적으로 말미암아 그는 18 세기의 어떤 사상가도 할 수 없었던 칸트의 길을 열어 놓는다 . 칸트가 계몽 을 극복하면서 동시에 계몽의 궁극적 완성을 뜻하는 사상 세계 를 건설해 나갈 때, 그는 루소에 의지할 수 있었고 루소를 근 거로 댈 수 있었다.

제 7 장 미학의 근본 문제 l 비평의 시대 18 세기는 자신의 시대를 〈철학의 시대〉 또는 〈비평의 시대〉 라고 즐겨 불렀다 . 이 두 표현은 동일한 사실을 달리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18 세기의 위대한 사상의 원천이 되며 18 세기를 관통하여 흐르는 근본적인 지적인 힘을 단지 다른 각도에서 묘사한 것에 불과하다. 철학과 문예 비평 의 결합은 18 세기의 모든 탁월한 사상가들에게서 명백히 드러 나고 있다. 이것은 어떤 사상가의 경우에도 단순한 우연이 아 니다. 왜냐하면 이 결합은 두 사상분야의 문제들이 내면적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서로 긴밀히 결합되어 있다는 것에 기인하 기 때문이다. 체계적인 철학의 기본문제와 문예비평의 문제 사 이에는 고래로부터 언제나 깊은 관계가 있어 왔다. 더욱이 〈예 술과 과학의 재생〉이라는 르네상스의 철학적 정신이 부활한 이 래로, 두 학문 사이의 상호관계는 직접적이고 활발하게 발전해 나간다. 계몽의 시대에 이르면, 이 발전은 한 걸음 더 내딛는 다. 이제 철학과 비평의 상호관계는 보다 엄밀한 의미에서 죽

상호 인과적인 영향의 뜻에서 뿐만 아니라, 원천적이고 실질적 인 뜻에서 해석되기에 이른다. 두 분야의 지식은 상호 의존적 이고 따라서 간접적으로 서로 일치할 뿐만 아니라, 이제는 그 것들 본성의 통일성이 주장되고 추구된다. 18 세기의 체계적 미 학은 〈철학과 비평의 통일성〉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부터 발생 한다. 그리고 그것은 서로 달리 작용하는 18 세기의 두 가지 기 본 경향을 포함한다. 그 하나는 세부적인 사실들을 명백하고 확실하게 정돈하려는 경향이요, 형식적 통일화와 엄격한 논리 적 정신을 지향하는 경향이다. 수세기에 걸친 문예 비평과 미 적 관조로부터 길러내진 수많은 실가닥들이 이제 논리적 통일 성의 형식에 의해 하나의 통일된 섬유로 짜여져야 한다. 시 학, 수사학 및 미술 이론에 의해 제공된 풍부한 재료들이 이제 통일적인 관점에 입각하여 정리정돈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 한 논리적인 명료화 내지 정돈의 요구는 단지 예비적 단계에 불과하다. 여기에 덧붙여야 할 다른 하나의 경향은, 논리적 형 식의 문제와 더불어, 이제 보다 깊은 지적 내용 자체의 통일성 울 지향하는 경향이다. 다시 말해서 철학의 내용과 예술의 내 용 사이에 통일성이 추구된다. 양자 사이의 유사성은 처음 보기 에 너무 희미해서 명확히 파악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바 로 이런 현상을 극복하는 것이 이제 비평의 주요 임무로 부각 된다. 비평은 감각과 미감 Geschmack1) 이 지니는 애매함을 자 1) 역주: Geschmack 은 schmecken( 맛이 나다, 맛보다)에서 나온 명사 로서 일차적으로 맛 죽 미각의 뜻이다. 여기서 〈미각능력〉 죽 〈맛을 보아 판가름할 수 있는 능력〉의 뜻으로 전개된다. 여기서 다시 추상적 으로 전용되어 〈아름답고 미운 것을, 또는 좋고 나쁨을 판가름하는 능 력〉 죽 〈미적 가치 판단 능력〉을 뜻한다. 이 능력을 간략히 미감 혹은 미적 감식력(鑑識力)이라 할 수 있다. 감식이란 예컨대 술맛의 좋고

신의 밝은 빛으로 명료화시켜야 한다. 비평은, 이때 감각과 미 감의 본성을 훼손시킴이 없이, 이것들을 순수인식의 지평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설사 순수 인식적인 개념화의 한계가 인정된 다고 할지라도, 설사 비합리적인 요소를 어쩔 수 없이 인정하 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할지라도, 18 세기는 이 한계를 명 확하고 온전하게 알고자 한다. 18 세기의 가장 심오한 사상가인 칸트가 이 세기 말쯤에 주장한 바에 의하면, 이러한 요구야말 로 철학 일반의 구성적 특성을 이루며, 철학적 이성은 이러한 한계를 명확히 규정하는 근본 능력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한계 규정의 필요성은, 구조적으로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서로 대립되는 두 지식간의 갈등이 고조될 때,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18 세기의 체계적 미학을 정초할 수 있었던 칸트의 지적 종합은 이러한 갈등적 대립의식으로부 터 싹터 나온다. 그러나 이 종합이 성취될 수 있기 위해서는, 다 시 말해 칸트의 저술에서 이 종합이 명백히 실현되기 위해서 는, 먼저 이 대립의 통일가능성을 여러 각도와 관점에서 알아 보려는 일련의 예비적 단계의 모색이 선행되어야 했다. 18 세기 미학에서 미학의 기본개념들을 정의하고 정돈하는 데에 기울인 여러 논쟁들은 바로 이러한 예비적 단계의 여러 모습을 반영한 댜 〈이성〉과 〈상상력〉 간의 논쟁이건, 〈천재〉와 〈규율〉 간의 나쁨을 판가름하여 아는 것이다. 이러한 감식이 예술 작품에 적용되었 을때 감상(鑑賞)이라고 한다. 따라서 Geschmack 의 미학적 용어는 감 상이라 할 수 있고, 감상은 미적 감식으로 정의될 수 있다. 이 책에서 는 Geschmack 를 경우에 따라 〈미감〉, 〈미적 감식력〉 혹은 오해의 여 지가 없을 경우 그냥 〈감식력〉으로 번역한다. Geschmack 는 또한 개 인의 〈취미〉 혹은 한 시대의 〈취향〉의 뜻이 있고, 칸트의 『판단력 비 번판』역에되서고 Ge있s다c.h mack 가 〈취미〉로, Geschmacksu rt e il이 〈취미 판단〉으로

논쟁이건, 혹은 미의 의미를 〈감정〉에 정초하느냐 아니면 〈지 식〉에 정초하느냐에 대한 논쟁이건, 이 모든 대립적 논쟁들은 동일한 하나의 근본 문제로 귀결된다. 이 귀결점은, 논리학과 미학이 혹은 순수 지식과 예술적 직관이 각기 자신의 고유한 내적 표준과 의미법칙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양자가 마 치 각기 상대방의 척도와 원리에 의해 검사되고 음미될 수 있 어야 한다는 것이다. 18 세기의 미학을 정초하려는 모든 노력들은_~ 아무 리 다양하게 나타난다고 할지라도――바로 저 귀결점에 이르 려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과정은 이 모든 노력들의 잠 재적인 중심점이요, 정신적인 초점이 된다. 물론 이 운동에 참 여하는 개개 사상가들이 처음부터 이 운동의 통일적인 목표를 확연하게 의식한 것은 아니다. 다양하게 전개된 시도들에서 처 음부터 이 운동의 본래 목표 내지 근본문제가 명확하게 인식된 것은 아니다. 미학문제의 제기방식이 끊임없이 변동되어 갔다. 그리고 미학의 기본 개념들을 정의하려고 할 때 심리적 관 심, 논리적 관심 혹은 윤리적 관심 중에서 어느 것을 출발점으 로서 중요시하느냐에 따라서, 형성될 미학의 토대가 될 기본 개념들 및 기본 규범들의 내용이 끊임없이 변천되어 갔다. 그 러나 서로 대립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 모든 사상 조류들의 격 랑으로부터 하나의 새로운 형성물이 생겨난다. 논리학, 도덕철 학, 자연철학, 그리고 심리학에 맞서서 새로운 복합적 문제 즉 미학의 문제가 대두하는데, 처음에는 이 학문들과 이 문제가 서로 확연히 구별되지 못했다. 실상 이 문제는 수많은 실가닥 들에 의해 이 학문들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철학적 사유는 이 끈들을 서서히 풀어서 마침내 이 새로운 문제를 기존의 학

문들로부터 독립시킨다. 이러한 지적 해방의 과정으로부터 새 로운 형태의 철학적 미학이 생겨난다. 또한 18 세기 미학의 여 러 요소들 가운데 그 자체로 보면 단순히 사로(邪路) 내지 오류 처럼 보이는 것들도 이 새로운 미학의 출발과 형성에 간접적으 로 기여하고 있다. 역사적인 고찰은 그 자체 불완전하고 미숙 한 이 여러 요소들까지도 잘 보살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바 로 이 미숙성에서조차 철학적 예술 의식의 새로운 발단이 그리 고 이 의식의 고유한 성장 법칙이 어쩌면 가장 뚜렷이 그리고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체계적인 미학의 성립과정에서 또 하나의 기적이 발생한다. 새로운 철학적 미학이 엄격한 논리적 방법에 의해 발전되어갔 을 뿐만 아니라 이 발전의 마지막에 또한 새로운 형태의 예술 적 창조가 일어난다. 칸트의 철학과 괴테의 시는 이 발전의 예 언적인 궁극 목표점을 이룬다. 18 세기의 이 두 가지 위대한 업 적 사이에 내재하는 관계는 오직 이러한 역사적 연관을 통해서 만 온전히 이해될 수 있다 . 독일 지성사에서 그러한 〈예정 조 화〉가 가능했던 것은 지금까지 하나의 놀라운 사건으로 여겨져 왔댜 칸트의 『판단력 비판』 에 관한 빈델반트의 말을 옮기면, 판 단력 비판은 말하자면 괴테적 문학 개념을 선천적으로 구성하 며, 후자가 구체적으로 실천하여 표현한 것은 순수한 철학적 사유의 필연성에 의해 전자 속에 정초되어 있고 요청되어 있 다. 요청과 실천의 통일 즉 반성적 숙고와 에술적 형성의 통일 은 18 세기 독일 지성사에서 인위적으로 매개되어 만들어진 것 이 아니라 오히려 요청과 실천을 형성했던 기본 힘들의 역동적 인 상호작용에서 직접 귀결된 것이다. 이러한 형성력들은 내재 적이고 필연적인 결과로서 전혀 새로운 형태의 철학 죽 미학을

산출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새로운 유형의, 새로운 차원의 예술적 창조를 이루어냈다 . 18 세기 문화의 정점을 이루는 이러 한 종합은 또한 이 세기의 성실한 지적 노력의 결정체이다. 계 몽시대를 특징짓는 말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이전에 없었던 정도로 비평 능력과 창조 능력을 결합시키고 이 양자를 직접적 으로 상호 전환시켰다는 것이다. 2 고전적 미학과 미의 객관성 문제 지식에 대한 데카르트의 새로운 이념에 의하면, 모든 지식은 하나로 통일되며 이에따라 모든 인식 능력들도 하나로 즉 이성 으로 통일된다. 엄밀한 의미에서 학문 예컨대 논리학, 수학, 물 리학 및 심리학은 이 이념에 따라 새로운 방향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 뿐만 아니라 예술도 또한 이러한 엄격한 학문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술도 이성의 규칙들에 의해 음 미되고 검사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이성의 검사에 의해 서만 그것이 참된 본질적인 내용을 지니느냐 지니지 못하느냐 가 판가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이 우리에게 불러일으 켜 주는 일시적인 즐거움의 감정은 이러한 본질적 내용이 될 수 없다. 본질적 내용은 보다 견고한 다른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한다. 그것은 무한히 변화하는 쾌 • 불쾌의 감정에서 벗어나서 필연적이고 고정된 요소로서 파악되어야 한다. 데카르트는 그 의 체계 속에 미학을 포괄시키지는 않았지만, 이 체계 속에는 이미 미학의 윤곽이 전반적으로 암시된다. 학문의 본성을 이루 는 이러한 절대적 통일성을 위해서는 과거의 인위적인 지식의

여러 구분이 극복되어야 한다 . 이 통일성은 그 후 데카르트 학 파에서 더욱 확장되어 예술의 영역에까지 확대되었다 . 데카르 트는 〈보편 이성 sap ien tia un i versa li s 〉의 개념을 주저 없이 확대 하여, 예술 일반 뿐만 아니라 예술의 개별적 여러 형태들까지 도 이 보편성 안에 포괄시키며, 이러한 포괄울 아주 타당한 요청 이라고까지 여긴다. 『정신 지도의 규칙 regu lae ad dir e cti on em i ng en 따서 데카르트는 〈보편 수학 ma t hes i s un i versa li s 〉의 이념 을 명확하고 상세하게 기술한다. 여기서 그는 이러한 이념 속 에 기하학과 수학 뿐만 아니라 광학과 천문학, 심지어 음악까 지도 포괄시킨다. 데카르트의 정신이 점점 더 확장되어감에 따 라, 그리고 이 정신이 점점 더 확고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쳐 나감에 따라, 예술 영역에서도 새로운 법칙의 개념은 그만큼 더 강력하게 주장된다. 미학 이론이 정당화되려면, 그리고 그 것이 단순히 경험적으로 관찰된 우연적인 규칙들의 집합 이상 의 것이 되려면, 우선 그것은 이론 그 자체의 기본 원리와 특 성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미학 이론이 그 대상의 산만성에 의해 오도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예술적 과정의 본성과 미 적 판단의 본성을 그 통일성에서 그리고 그 기본 특성에서 파 악해야 한다 . 예술 영역에서 이러한 통일성을 얻으려면, 먼저 예술 세계가 펼쳐 보이는 다양한 이질적 형식들을 하나의 원리 로 환원해야 하고, 이 다양한 형식들을 하나의 원리에 의해 규 정할 수 있어야 하고, 하나의 원리로부터 이 다양한 형식들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이리하여 17 • 18 세기의 미학은 일거 에 규정되어버린다. 다양한 자연이 소수의 원리에 의해 통괄되 듯이, 그리고 이 원리들을 명료하게 공식화하는 것이 자연과학 의 최대 임무이듯이, 자연의 경쟁 상대자인 예술도 자연과학과

똑같은 임무를 지닌다. 보편적인 자연 법칙들이 있듯이, 〈 자연 의 모방〉인 예술에도 마찬가지로 법칙들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 모든 부분 법칙들이 모두 하나의 단일 한 원리 즉 〈모방 일반의 공리 Axio m de r Na c ha h mung i.ib erhaup t> 수렴되어야 한다. 바토 Ba tt eaux 는 이러한 신념을 그의 책 제목인 『 단일 원리에로 환원된 미술 Les beau x arts reduit s a un meme p r i nc ipe.』에서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이 제목 은 17 • 18 세기 미학의 방법론 전반을 충실히 보여주는 듯하다. 뉴턴의 위대한 업적은 여기에서도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 리적 우주에서 그가 발견한 질서는 지적 세계, 윤리적 세계 및 미학적 세계에서도 찾아져야 한다. 칸트가 도덕 세계의 뉴턴을 루소에서 발견했듯이, 18 세기는 예술 세계의 뉴턴을 열망하고 요구한다. 이러한 요구는 〈파르나소스(문예)의 입법자 〉 라는 칭 호를 받은 부알로에 의해 성취된다. 부알로의 저술은 단순히 추상적인 요청 대신에 구체적이고 세심한 탐구를 통하여 미학 울 엄밀 과학의 지위로 승격시킨다. 프랑스 고전주의의 기본 명제 중의 하나인 〈예술과 과학의 유사성〉은 이제 실질적으로 검사되고 검증된 것처럼 보였다. 부알로 이전에도 물론 이 유 사성은 예술과 과학이 하나의 절대적인 이성에서 근원한다는 사실을 근거로 해서 설명되었다. 이 절대적 능력은 어떤 타협 도 어떤 제한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성을 완전한 전체로 보지 않거나 이성에 어떤 제한을 두는 것은 곧 이성의 실질과 본성을 부정하고 파괴하는 꼴이 된다. 부알로의 『시학 A rt Poe tiq u e.』이 출판되 기 5 년 전인 1669 년에 나온 도비 냐크 d'Aub ig nac 의 『연극 의 실제 Prati qu e du Thea t r e.』서, 도비냐크는 〈이성과 양식 (良 識 sens commun) 의 모든 문제에서 예컨대 극장의 규칙과 같은

문제에서 법칙에 예외적인 파격은 허용될 수 없는 죄이다〉라고 말한다 . 시적인 파격도 과학적인 파격처럼 거부되어야 한다. 『서사시론 』 의 서두에서 르 보쉬 Le Bossu 는 〈 예술은 과학과 마 찬가지로 이성에 근거하며, 예술에서도 ‘자연이 우리에게 준 빛' 울 따라야 하며, 이런 점에서 예술과 과학은 공통의 뿌리를 지닌다. 〉 2) 라고 적고 있다 . 이 인용구에서 고전 미학의 자연 개 념이 처음으로 온전하게 드러나고 있다. 〈자연 도덕〉과 〈자연 종교 〉 에서처럼 또한 미학 이론에서도 자연 개념은 물질적인 실 체의 의미로서가 아니라 기능적인 의미로 등장한다. 자연이 제 공하는 규범이나 모범은 잡다한 대상세계 영역에서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성의 자유로운 활동에서 나타 난다. 이런 점에서도 〈 자연 〉 은 〈이성〉과 동의어가 될 수 있다 . 3) 모든 것은 자연으로부터 나오고 자연에 귀속된다. 이러한 자연 은 순간적인 충동이나 일시적인 변덕의 산물이 아니라 영원한 법칙들에 의거해 있다. 미(美)와 진(眞)의 근거는 동일한 것이 댜 법칙 일반의 형성기원에까지 거슬러 올라가 본다면, 미영 역이 지니는 피상적인 예외성과 독특성은 사라지게 된다. 법칙 의 부정인 예외성은, 이것이 참된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 로, 또한 아름다운 것도 아니다. 참되지 못한 어떤 것도 아름 다운 것이 못 된다. 진과 미 그리고 이성과 자연은 동일한 것 올 달리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하나의 동일한 불변적 질서가 단지 그 다른 측면에서 자연과학과 예술로 표현될 뿐이다 . 예 2) Le Bossu, Trait e d u Poeme epi qu e, 1675 : 도비 냐크와 르 보쉬 의 미 학 이론에 관해서는 Hein r ic h von Ste i n , Di e Ents t e h ung der ne tter en Asth e tik , Stu ttga rt , 1886, 25 쪽 이하 및 64 쪽 이하를 참조하라. 3) 이 책 323 쪽 이하를 보라.

술가는 물론 자연의 창조주에 필적할 수 없다. 그러나 예술가 는 이 질서의 법칙을 모르는 한, 이 법칙을 완전히 체득하지 못하는 한, 자신의 예술적 형성물에 참된 생명을 불어넣어 줄 수 없다. 고전 비평의 근본적 확신은 셰니에 M.J . Chen i er 의 교 훈시에서 잘 지적되고 있다. 〈덕, 천재, 정신, 재능, 미감 Gout, 이 모든 것을 성취하는 것은 양식 bon sens 이요 이성이 댜 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실천된 이성이다. 재능이란 잘 꾸며진 이성이요, 정신은 잘 표현된 이성이다. 그리고 미감은 세련된 양식이고, 천재는 탁월한 이성을 이름한다.〉 4) 천재와 미감 Geschmack 을 양식으로 환원시키는 것을 단순히 상식 gem ein e r Menschenvers t and 에 대 한 찬사로 이 해 해 서 는 안 된다. 프랑스 고전주의 이론은 소위 〈상식 철학 Ph i loso p h i e des common sense 〉과는 무관하다. 그것은 일상적이고 평범한 〈오 성의 사용〉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이성이라는 최고의 능력을 다룬다. 수학, 물리학과 마찬가지로, 비평 이론도 엄격 한 정확성의 이상을 목표로 삼는다. 그리고 이러한 정확성은 비평 이론의 보편성을 위한 필수적인 전제요, 필연적인 요소가 된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이 시대의 과학적 이상과 예술적 이 상 사이의 완전한 조화를 볼 수 있다. 미학 이론도 결국 수학 과 자연과학이 취한 것과 똑같은 방법을 추구한다. 데카르트는 자연에 관한 모든 지식을 순수 기하학예 근거하여 정초한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가운데 그는 순수 직관적 지식의 새로운 승리를 예고하는 듯이 보인다. 그에 의하면, 모든 존재는, 그 것이 명석 판명하게 파악되고 순수 개념적으로 이해되기 위해 4)1 84M 2,a ri8e1 쪽J.os eph Chenie r , La Rais o n, 8-14 행 ; Poesie s , Brussels,

서, 우선 공간적 직관의 법칙들로 환원되어야 한다. 모든 존재 는 순수 기하학적 도형으로 옮겨져야 한다. 『정신 지도의 규 칙』에서 데카르트는 이러한 도형적 재현의 방식을 모든 인식의 근본 방법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러나 순수 사유에 대한 직 관의 우위성은 단지 외면적이요, 일차적인 데에 불과하다. 데 카르트는 곧 이어서 말하기를, 순수 직관적 성격은 기하학적 도형에 속하는 것이긴 하나, 그것은 결코 기하학적 방법 자체 에 속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는 기하학적 방법을 직관의 여러 제한적 요소들로부터 그리고 또 상상력과 관련된 여러 방 해물들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철학적 노 력의 결실이 그의 해석 기하학이다. 해석 기하학의 본질은 도 형들의 여러 직관적 관계들을 엄밀한 수학적 관계로 나타내는 데에 있다. 이렇게 해서 데카르트는 〈물질〉을 〈연장성〉으로 죽 물리학적 물체를 순수 공간으로 환원시킨다 . 데카르트의 인식 론에 있어서 공간은 감각경험이나 상상력에 의해 알려지는 것 이 아니라 순수 이성에 의해 즉 수학과 논리학에 의해 알려진 다 .5) 감각과 상상력에 대한 데카르트의 이러한 비판은 말브랑 슈에 의해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확대된다. 말브랑슈의 주요 저 서 인 『진 리 탐구 Recherche de la Ve rite.』 의 제 일부 전체 는 바로 이러한 비판의 확대를 위해 쓰여진다. 여기서도 상상력은 자연 과학 뿐만 아니라 도덕과학이나 형이상학에 있어서 진리의 길 이 아니라 인간 정신이 쉽게 빠져들 수 있는 모든 오류의 원천 5) 1641 년 7 월 메르센느 Mersenne 에게 보낸 데카르트의 서신을 참조. 〈우리의 상상력에 의존한다고 생각될 수도 있는 양, 도형 내지 운동에 관한 모든 지식은 상상력이 만들어낸 상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고 오 권직, 이39성5 쪽의 . 명석 판명한 개념에 근거한다. >A dam-Tannery 판 전집 3

으로 표현된다. 상상력을 신중히 규제하고 감시하는 것이 모든 철학적 비판의 최고 목표이다. 물론 이 능력의 도움이 완전히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 왜냐하면 그것은 지식을 얻고자 하는 최초의 충동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중대하고 위험 한 오류는 이러한 지식의 출발과 진정한 지식의 목표를 혼동하 는 일이댜 이 목표는 상상력에 의한 지식의 최초의 단계를 뛰 어넘고 그 대신 논리적으로 명백한 방식을 취함으로써 도달될 수 있다 순수 직관 자체도 이미 상상력의 단계를 뛰어넘은 것 (초월)이요, 또 뛰어넘어야 가능하다. 왜냐하면 〈상상력과 결부 된 지각〉에 의해 알려지는 감각-물체적 연장성은 순수 직관에 의한 〈지적 연장성〉으로 환원되어야 비로소 수학적인 정밀과학 의 기초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물질 세계를 이성의 빛에 의해 참되게 인식하려면, 우리는 물질세계를 〈지적 연장 성〉으로 환원하여 보아야 한다. 이성의 빛 속에서 볼 때, 모든 감각적 성질들은 주관적 환상에 속하는 것이요, 따라서 이것들 은 모두 진리의 영역에서 추방된다. 감각 성질들이 추방되고 난 뒤에 대상의 진정한 본성으로서 남는 것은 직접 지각에 드 러나는 대상아 아니라 엄밀하고 보편적인 규칙들로 표현되는 순수 지적 관계들이다. 보편적인 관계 및 비례에 적용되는 이 러한 규칙들은 따라서 모든 존재의 기본적인 뼈대요, 얼개가 된다. 이 규칙들은 규범이요, 존재는 이 규범을 벗어날 수 없 다. 만약 이 규범을 벗어나면 존재는 그 진정한 존재 성격을, 다 시 말해 그 객관적 진리를 상실하게 된다. 고전미학은 이러한 자연과학 내지 수학적 이론을 본떠서 형 성된다. 그러나 이러한 형성에는 새로운 어려운 문제가 부각된 댜 왜냐하면 순수 지식 영역과는 달리 예술 영역에서 상상력

을 완전히 도외시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 이다. 상상력의 제거는 예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닌가? 예술을 순수 직관적 관조의 형태로 변형시키는 것은 예술의 대상을, 그 리고 이 대상의 진정한 의미를 없애는 꼴이 아닌가? 실제로 고 전주의 미학 이론은, 비록 이 이론이 〈예술을 상상력에 정초하 는 것〉에 대해 심히 반대하고 있지만, 결코 상상력의 진정한 본성을 도의시할 수 없었고, 상상력의 매력에 둔감할 수 없었 댜 고대의 전통에 대한 존경심 자체가 이 고전주의의 시도에 애초부터 일정한 한계를 준다. 이 전통에 따르면, 예술작품의 완전한 실현은 엄격한 훈련과 타고난 재능을 필요로 한다. 이 두 가지 중 후자는 훈련에 의해 획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선물로서 처음부터 활동하는 것이어야 한다. 〈천재의 피를 타고나지 않으면, 어떠한 훈련도 아무런 소득이 없으 며, 훈련이 없으면 재능도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한다. 이 두 가지는 각기 상대방을 필요로 하며 서로 함께 합쳐 하나로 되 어야 소득이 생긴다.〉 부알로는 호라티우스의 이 시 구절을 그 의 『시학』에서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타고난 천재가 없는 천 박한 정신의 소유자가 시를 열심히 지음으로써 시단의 정상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 그가 하늘의 신비 스런 감응(感應)을 얻지 못한다면, 그는 언제나 천박한 정신으 로 남게 될 뿐이다. 그가 아무리 떠들어도 시의 ·신(神)은 완고 하게 귀를 막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부알로는 〈진정한 시인 온 태어나는 것이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격언을 다시 금 강조한다. 그러나 시인에 대해 진실한 것이 그대로 다 시에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시작(詩作)의 과정을 계속 유 지하게 해주는 충동과 이 과정의 결과로 나타난 작품은 서로

별개의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이 객관적인 진리를 소유한 〈완전하고 독립된 형태〉가 되려면, 그것은 그것이 생성되는 과 정에서 필요했던 모든 주관적인 요소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야 만 한다 . 예술 작품은 단순한 주관적 상상의 세계와 연결되는 모든 끈들을 남김없이 끊어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예술 자체를 지배하는 법칙은 상상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것은 예술가가 창안해 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물의 본성 속 에서 발견해 내는 순수 객관적 법칙이다 . 부알로는 이성을 이 러한 객관적 법칙의 전체로 보며, 이런 의미에서 그는 〈시인이 여 이성을 사랑하라〉고 명령한다. 시인은 의적인 허식과 장식 울 추구해서는 안 된다. 그는 그의 주제 자체가 스스로 보이는 것에 머물러야 한다. 만약 그가 그의 주제의 단순하고 명쾌한 진리성을 그려낸다면, 그는 확실히 미에 대한 최고의 규범을 실현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아름다움도 진리의 길을 따라서 만 얻어질 수 있기 때문이요, 그리고 이 길은 그저 감각적 사 물의 외양에로 통하는 길이 아니라 실재와 현상을 날카롭게 구 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자연적 대상의 실재를 알려면, 우리 에게 나타나는 외적인 현상들을 주의 깊게 헤아려서 변하는 것 과 불변하는 것을, 우연적인 것과 필연적인 것을 그리고 우리 에 대해서 타당한 것과 대상 자체에서 타당한 것을 구별해 내 야 한다. 이러한 것은 예술적 대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들 어맞는다. 예술적 대상도 그저 주어져서 알려지는 것이 아니 라, 자연적 대상을 다룰 때와 비슷한 헤아림과 구별의 과정을 통해 비로소 규정되고 획득되어야 할 것이다. 예술 작품을 만 드는 데에 필요한 일정한 규칙을 수립하려는 일단의 고전주의 적 노력이 있었는데, 이것은 이러한 과정을 무시한 너무나 안

이한 생각이요, 실상 이러한 시도는 고전주의 창시자의 생각이 아니라 아류들의 생각이다. 예술 작품울 만들기 위해서는 그러 한 규칙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구별하고 선택하는 과정이 있 어야 하며, 이 과정의 규범이 수립되어야 하며, 이 과정을 이 규범에 맞추어 진행하여야 한다는 것이 고전주의의 진면목이 다. 이러한 고전주의는 예술적 진리를 직접 보여줄 수 있다고 자만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단지 예술가가 오류에 빠지지 않도 록 해줄 수 있으며, 오류의 기준을 세울 수 있다고 믿는다. 이 러한 관점에서 볼 때, 고전주의 미학의 방법은 〈오직 간접적으 로만, 즉 오류의 여러 원천을 알아보고 오류를 극복하고 제거 함으로써만 철학적인 절대적 확실성에 도달할 수 있다〉는 소위 데카르트 철학의 회의적 방법과 유사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부 알로는 시적 표현의 미를 그것의 진리성에서 찾는다. 진리성은 그의 미학 전체의 중심 개념이 된다. 그래서 그는 해학적 문체 나 감동적 문체나 비꼬는 문체를 싫어한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진리성이라는 이상에서 여러 가지로 빗나가기 때문이다. 작품 에 대한 최고의 그리고 유일한 칭찬은, 작품이 언제나 이 기본 적인 규범에 충실하다는 것이요, 다시 말해 작품이 표현의 외 양적 매력에 의해 독자를 감동시킨다는 것이 아니라 그 사상의 단순한 명료성과 이룰 위한 표현의 치밀한 선택 내지 경제성 때문에 독자를 감동시킨다는 것이다. 〈진실되지 못한 것은 아 름답지 못하다. 진실만이 즐거움을 준다. 진실온 어디에서나 심지어 우화에도 들어 있어야 한다. 모든 허구가 지니는 재간 있는 솜씨는 단지 이 진실을 보다 찬란히 빛나게 하는 꺼풀에 불과하다. 나의 시가 어째서 시골 구석에서도 읽혀지는가? 어 째서 왕자도 그리고 평민도 나의 시를 즐겨 읽는가? 운율이 다

양하고 즐겁기 때문이 아니다. 시의 의미와 운율이 일치하기 때문도 아니요, 한 단어도 운율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도 아니 댜 그것은 거짓에 대한 진실의 승리가 도처에 명백하기 때문 이요, 그것이 독자의 심금을 울리기 때문이요, 선과 악이 적절 히 묘사되기 때문이요, 악한이 당당한 지위에 오르지 못하기 때문이요, 나의 정신을 이끌어가는 나의 가슴이 나 자신에게 말하지 않은 것은 결코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6) 고전 미학의 기본 중심문제는 즉 보편과 특수 사이의 혹은 규칙과 예외 사이의 관계문제는 이로부터 명백해진다. 〈고전미 학은 개체가 지닌 모든 의미를 상실하고, 진리와 미를 추상화 시켜 단지 진리 일반 내지 미 일반만을 추구한다〉는 비난조의 견해가 여태까지 수없이 제기되어 왔다. 이러한 견해를 텐도 옹호하였다. 그는 이 견해를 17 • 18 세기의 미학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고전주의 정신 자체에 대한 비판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 다. 그는 이 비판을 통해 고전주의에 붙은 허울 좋은 광채를 벗겨내고, 고전주의의 궁핍과 빈곤과 무력함을 드러내 보이고 자 하였다. 그러나 편견이 없는 공평한 역사가가 있다면, 그는 오히려 텐과는 정반대의 논의를 전개하였을 것이다. 〈고전주의 정신〉의 단점과 약점을 지적하는 대신 오히려 이 정신의 가장 강력한 장점들을 찾아내려고 할 것이요, 이 고전주의 정신을 그의 가장 중요한 업적들에 비추어서 이해하고 해석하려고 할 것이다. 여기서도 17 • 18 세기 미학과 수학의 발전의 유사성이 드러난다. 고대 기하학을 뛰어넘는 데카르트의 진정한 업적은 기하학에 논리적 독립성과 자족성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고대 기하학은 물론 정신의 개발을 위한 중요한 학과임에 틀림없다.

6) Boile a u, Epi tre IX, 전집 (Paris, 1821), 2 권, 111 쪽 이하.

그러나 『방법서설』에서 지적되듯이, 고대 기하학이 정신을 개 발시키려면, 그것은 기하학적 도형들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 기 위하여 항상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하학적 탐구는 특수한 도형들의 탐색에 몰두하고 각각의 특수한 경우 마다 이에 알맞는 증명을 찾아내지 않을 수 없었다. 데카르트 의 해석 기하학은 이러한 어려움을 제거한다. 그것은 개별적 경우들을 선천적으로 규정해 버리는 보편적인 규칙과 방법적 절차를 마련해 준다. 데카르트의 해석 기하학은 라이프니츠와 뉴턴의 미적분 발견에 의해 결정적인 진보를 한다. 이제 특수 에 대한 보편의 지배는 새로운 각도에서 성취된다. 주어진 함 수의 미분계수는 이 함수의 〈본성〉을 나타낸다. 그것은 이 함 수 곡선의 전과정을 아주 정확하게 보여준다. 관찰될 수 있는 이 곡선의 모든 부분들은 하나의 개념으로 표현되고, 하나의 논리적 초점에 맞추어진다. 무한 분석이 제공하는 이러한 개념 적 공식으로부터 우리는 이 곡선의 모든 성질을 직접 규정할 수 있으며, 이 곡선의 특성들을 연역적으로 엄밀하게 이끌어낼 수 있다. 관찰에 의해 어떤 기하학적 개념을 예컨대 타원의 개 념을 생각해 내고자 한다면, 유일한 길온 가능한 모든 형태의 타원들을 서로 비교하고 검토하는 일일 것이다. 이러한 비교로 부터 모종의 타원의 〈상(像)〉이 얻어졌다 하더라도, 이 〈상〉은 동종(同種)의 단일한 도형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직접적인 지 각에는 여러 종류의 타원들이 각기 뚜렷한 다른 모습을 나타내 기 때문이다. 원과 비슷한 타원이 있는가 하면, 원과는 상당히 다른 즉 길고 좁은 타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해석 기하학 의 개념은 이 모든 개별 타원들의 차이를 무시한다. 이 개념에 의하면, 타원의 본성은 관찰될 수 있는 수많은 여러 타원들의

차이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보편적인 구성법칙에 있 댜 그리고 타원의 방정식은 이 법칙을 정확히 구현한다. 여기 서 수학은 〈다양 속의 통일〉을 얻는다. 그것은 다양 자체를 부 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양을 이해해서 하나의 보편 법칙으로 부터 이끌어내고자 한다. 함수식 일반은 오직 보편 규칙만을 포함한다. 그리고 이 규칙에 따라 변수들의 상호 의존성이 선 천적으로 규정된다. 그리고 이 함수식에 특정한 양 즉 상수를 주면 특정한 형태의 도형이 형성될 수 있다. 이러한 양을 예컨 대 타원에서 장축의 길이와 단축의 길이를 줄 때마다, 새로운 특수한 모양의 타원 도형이 생긴다. 그러나 기하학자에게 이 모든 특수한 경우들은 다 동일한 것으로 간주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모두 타원 개념에 일치하기 때문이다. 타원 일반이라 는 하나의 진리가 모든 모양의 타원들에 숨겨져 있으며, 그 진 리는 해석 기하학적 공식에 의해 그 참된 본질이 찾아진다. 고전 미학이론의 〈다양 속의 통일〉은 수학적인 〈다양 속의 통일〉을 본따서 형성된다. 그런데 다양 속의 통일 원리가 고전 주의 정신에 정반대로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것은, 따라서 고전 주의의 반대극인 낭만주의야말로 이 원리를 아주 잘 나타낸다 고 생각하는 것은 오류이다 .7) 예술 영역에서 고전주의의 정신 온 다양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양을 다듬고 통제하고 제 7) 이 런 잘못된 견해의 예는 보이 믈러 Alfre d Baeumler 의 Kants K r itik der Urt ei ls kr aft, ihr e Geschic h te und Sys t e m atik , Halle, 1923, 1 권, 43 쪽에서 보여진다. 또한 보이물러에 의하면, 미학적 문맥에 서 〈통일로 환원된 다양〉이라는 공식이 크루사 Crousaz 의 『미론(美 論 )Tra it e du Bea u,』 (1715) 에서 처음 사용된다고 하는데, 이 역시 잘못된 주장이다. 미학적 문제와 관련해서 이 말의 철학적 의미는 라이프니츠에 의해 체계적으로 전개되고 정초된다. Leib n iz, ''vo n der Weis h eit 를 참조하라.

한하려는 것이다. 부알로는 그의 『시학』에서, 마치 기하학자가 곡선의 보편 이론을 확립하려고 하듯이, 시(詩) 장르의 보편 이론을 확립하려고 시도한다. 수학자가 원, 타원, 포물선을 그 〈가능성〉에서, 즉 이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구성 법칙에서 알아내려고 하듯이, 부알로는 실제로 주어진 다양한 것들에서 〈가능한 것〉을 이끌어내려고 한다. 비극시, 희극시, 비가, 서 사시, 풍자시 및 경구시는 모두 각기 일정한 형성 법칙을 지닌 댜 그리고 어떠한 개별적인 시작(詩作)도 이 법칙을 무시할 수 없다. 예컨대 어떤 비극시의 시작(詩作)이 비극시의 법칙에 어 긋나면, 그 시는 비극시의 〈본성〉 자체에 어긋나게 되고, 비극 시의 예술적 진리성을 상실하게 된다. 부알로는 시의 여러 장 르의 본성에 기초한 이러한 법칙들을 명석 판명하게 나타내고 자 한다. 그리고 예술가의 실제 예술 행위는 이 법칙들을 무의 식적으로나마 언제나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수학적 분석에 의 해 여러 종류의 도형들이 각기 지닌 근본구조와 진정한 개념적 내용이 하나의 수식으로 표현되듯이, 부알로는 예술 법칙들을 정확히 공식화해서 표현하려고 한다. 따라서 장르 자체는 예술 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도 아니요, 또 예술가가 마음내키 는 대로 임의로 택해서 사용하는 시작(詩作)의 도구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 자체로 주어진 것이요, 독립적인 것이요, 객 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예술의 장르와 유형은 자연물들의 유(類)와 종(種)에 대응한다. 후자와 마찬가지로 전자도 또한 조금도 가감(加滅)될 수 없는 불변적인 형식과 기능을 지닌다. 수학자나 물리학자가 자연의 입법자가 아니듯이, 미학자도 예 술의 입법자가 아니다. 예술가도 자연과학자와 마찬가지로 질 서 내지 법칙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있는 것〉을 확인

할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존재 형식들과 이것들의 법칙들을 따른다는 것이 천재에 대해 하등의 방해 요소가 되는 것은 아 니다. 오히려 존재 형식과 법칙을 따름으로써 천재는 〈제멋대 로 아무렇게 함〉과 구별되어 보호될 수 있고, 예술적 자유의 유일하게 가능한 형식을 획득할 수 있다. 예술의 대상과 장르 는 천재에게 있어서도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이다. 모든 대상 이 모든 장르에서 다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장르의 형식은 그 자체 속에 대상 선택의 구조를 지닌다. 이 형식은, 이것이 일 정한 취급 방식을 요하듯이, 또한 소재가 되는 대상을 일정하 게 제한한다. 따라서 창작의 자유는 다른 곳에서 찾아져야 한 다. 그것은 내용 자체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미리 규정된 내용 의 표현에 관련된 것이다. 표현만이 소위 〈창조성〉 내지 〈독창 성〉을 보여준다전 여기에서 예술가는 그의 참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동일한 하나의 대상에 대한 수 · 많은 여러 표현들 중 에 천재적 예술가의 표현은 전문적 숙달성에서, 대상에 충실함 에서, 그리고 명료성과 풍부함에서 여타의 표현들을 능가한다 . 그러나 표현의 새로움을 무작정 추구해서도 안 된다. 예술가는 표현의 새로움을 추구함과 동시에 표현의 단순성, 간명성, 설 득성, 간결성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부알로에 의하면, 새 로운 사상이란 이전에 누구도 생각해 보지 않은 사상을 의미하 는 것이 아니다. 이와는 반대로, 모든 사람에게 다 떠올랐던 생각을 어떤 한 사람이 고심해서 처음으로 표현했다는 데에 새 8) 고전 미학에서 〈창조성을 표현의 창조에 제한하는 것〉에 관해서는, 예 컨대 랑송 Gusta v e Lanson 의 저 술 Boi/ e au(Paris, 1892), 특히 131 쪽 이하를 보라. 〈예술가는 가능한 가장 진실되고 가장 아름다운 표현방 식을 언제나 창조해야 한다. >

로운 사상은 성립한다. 그러나 여기에도 또하나의 제한이 있는 바, 내용과 형식 사이의 그리고 대상과 표현 사이의 완전한 일 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할 때 예술은 최후 목표 에 도달하게 된다. 이 목표를 넘어서 나아가려는 것은 필요하 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예술의 진보는 무한하게 뻗어나가 는 진보가 아니다 . 예술의 진보는 일정한 완성 단계에서 멈춘 댜 모든 예술적인 완성은 궁극적 한계를 의미한다. 볼테르는 『루이 16 세 시대』라는 저술에서 예술 작품의 내용적 완성은 곧 이 작품이 속한 장르의 역사적 완성을 의미한다는 고전주의적 해석을 다시 한 번 반복한다. 여기서 다시 예술적 문제와 과학 적 문제 사이에 하나의 유추를 가정하고 이 유추를 구체적으로 증명해 보이려는 시도가 생긴다. 그래서 콩디야크는 예술과 과 학의 연결을 이 양자가 모두 언어에 관련된다는 점에서 찾는 다 . 그는 예술과 과학을 동일한 하나의 지적 기능의 두 측면으 로 보고, 이 기능을 〈기호의 창조 내지 사용〉으로 본다. 예술 과 과학은 둘 다 대상 자체가 아니라 대상을 나타내는 기호를 다룬다. 그리고 양자의 차이는 각기 기호를 사용하는 방식의 차이일 뿐이다선 예술적 기호인 말보다 과학적 기호가 지닌 장 점은 이것이 전자보다 더 명확하게 정의되고 보다 명백하고 완 전한 표현을 추구한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 점은 과학적 기호 의 참된 목적이다. 그런데, 이 목적에도 또한 내재적인 한계가 있다. 과학 이론은 하나의 동일한 대상을 여러 다른 기호들을 이용하여 달리 표시할 수 있다. 예컨대 기하학자는 데카르트의 좌표로 곡선의 방정식을 나타낼 수도 있고, 극좌표로 곡선의 9) Condil lac , Essai sur l' Orig ine des Connais s ances Huma i nes 과 I.a I.an gu e des Calcu 峰 참조하라 .

방정식을 나타낼 수도 있다. 이 둘 중 어느 것이 더 간명한 함 수식을 제공하느냐에 따라 그 우월성이 결정된다. 고전 미학은 이러한 〈간명성〉을 그 이상으로 삼는다. 간명성은 진리의 기준 이 되듯이 미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런 이론이 지니는 약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이론 이후 미학의 역사적 발전은 이 이론의 원리적인 결점과 결부된 것이 아니다. 일차적으로 부각되는 문제는 예술의 여러 장르와 작품 들을 고찰하기 위해 고전주의의 원리들을 적용했을 때 분명히 드러나는 결점들이다. 역설적으로 들릴는지 모르지만, 고전주 의 이론의 주된 결점은, 이 이론이 너무 추상화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추상화 작업을 논리 일관되게 충실히 견지하지 못하 였다는 데에 있다. 고전주의 이론의 정초에는 이 이론의 보편 적인 원리와 전제에서 나오는 지적 요소뿐만 아니라, 이와는 상관 없는 특수한 문제 상황에서 즉 17 세기의 역사적 구조에서 유래한 사상적 요소들도 처음부터 끼어들게 되었다. 이러한 상 황적 요소들의 영향으로 인하여 이 이론의 주된 이론가들조차 도 그들의 순수 원리적이고 체계적인 목표를 논리일관되게 추 구하지 못하였다. 우리는 이런 상황의 명확한 예를 때때로 고 전미학의 핵심이라고 여겨져 왔던 하나의 논쟁에서 찾아볼 수 있댜 고전미학은 우선 삼위일체설(三位一體說, drei Ein h eit en )10> 에 입각하여 그 구체적 검증을 받아야 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 리고 고전미학의 철학적 내지 이론적 운명은 이 검증에 좌우되 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삼위일체설은 고전미학에 의해 창시된 10) 역주: 고전 희곡에서 하나의 규범으로 요구되었던 세 가지의 통일 성 죽 시간의 통일성(하루), 공간의 통일성(한 장소), 사건의 통일성 (하나의 사건)을 의미한다.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전에 만들어져 있었던 것으로서 고전미학 의 체계내로 흘러들어온 것에 불과하다 .II ) 또한 삼위일체설을 이처럼 수용할 때, 그 정당화 작업이 확고하게 이루어진 적도 없었다. 부알로가 삼위일체설을 주장할 때, 물론 그는 여기서 도 이성의 입법자로서 그리고 이성의 이름을 빌려서 말한다 . 〈이 성의 규칙을 부여받은 우리는 연기(演技)가 예술 이론에 일치 하기를 바라며 , ‘하루 만에 한 곳에서 일어난 하나의 행위’ 라 는 개념이 연극의 끝까지 유지되기를 바란다 .〉 1 2) 그러나 순수한 논리적 기준으로 판단할 때, 이러한 삼위일체설의 적용은 명백 한 오류를 내포한다 . 왜냐하면 부알로가 다른 곳에서 늘상 주 장하였던 이성의 아념이 여기서는 단순한 경험적 기준으로 대 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고전미학은 〈보편 이성〉의 과학적 개념을 이탈하여 〈상식〉철학의 궤도로 접어든다. 그것 은 이성의 보편적 진리에 의존하는 대신 사실과 관련된 개연성 에 의존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의 개연성 도입은 고전 이론의 원리에 근본적으로 어긋난다. 관객이 극장에 앉아 있는 몇 시 간에 수십년 간에 걸쳐 일어난 사건을 본다는 것은 불합리하기 때문에, 연극의 시간과 공간의 통일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고 주장한다면, 이는 고전 이론의 입론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 〈불합리하기 때문에〉라는 이유가 사실에 관련되어 있 기 때문이다. 고전 미학은 그 기본 원리상 〈사물의 본성에 따 라 진리인 것〉과 〈개인적 관점에 따라 진리처럼 보이는 것〉을 엄격히 구별하고 이 양자의 혼동을 가장 경계하여 왔다. 고전 11) 삼위 일체설의 역사적 발전에 관해서 는 Lanson, Hi st o ir e de la Lit ter atu re Franf a is e, 22me ed . , Paris, 1930, 420 쪽 이 하를 보라. 12) Boil ea u, Ar t Poeti qu e, Chant .

미학에 의하면, 미적 주관으로서 개인은 자신의 특질이나 개성 Id i os y nkras i e 을 모두 걷 어 치 우고 오직 객 관적 법 칙 내 지 대 상의 순수 필연성만을 좇아가야 한다. 만약 관객의 우연적인 사실적 조건이 연극 구성의 규범 내지 기준이 된다면, 이것은 고전 미 학의 보편 이성이 요구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고전 이론으 로부터의 이탈은 이것만이 아니다 . 이것은 단지, 엄격한 고전 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에게서조차도 혼하게 찾아볼 수 있는 〈논리일관의 불철저성〉을 가장 뚜렷하게 드러내는 하나의 징후 적 예에 불과하다. 고전주의의 옹호자들은 모두 표현의 단순 성, 진실성 및 〈자연스러움〉을 추구하였으나, 이때 자연적인 것의 기준을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로부터 이끌어낸다. 그들은 이 기준을 그들의 직접적인 환경 죽 습관과 전통에 의존하여 만든다. 이런 점에서 고전 이론의 창시자들에게 부여되었던 추 상의 힘은 타락하기 시작한다. 비판적 반성 대신에 소박한 믿 음이 자리잡고, 17 세기의 지적 내지 예술적 문화전통 속에서 경험된 것들에 대한 존경심이 중심 자리를 잡는다. 부알로는 〈자연〉과 〈이성〉을 같은 것으로 볼 뿐만 아니라 진정한 자연을 특정한 수준의 문화 상태와 일치시킨다. 그에 의하면, 이러한 문화 상태는 사회적 삶에 의해 만들어진 모든 형식들을 가장 세련되게 도야함으로써만 얻어질 수 있다. 이렇게 해서 궁전과 수도(首都)의 세련된 문화가 일찍이 이성과 자연이 차지하였던 미학적 모범의 자리를 대신한다. 〈궁전을 연구하고 도시를 배 워라 이 양자는 모범으로 충만해 있다.〉 부지불식간에 예법이 자연을 대신하고, 관습이 진리를 대신한다. 특히 가장 고상한 사교의 꽃이었던 극장은 이러한 뒤바뀜의 전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성의 규칙이 극장만큼 엄격한 곳도 없다. 그러나 시

인이 극장의 진정한 목적을 위배하지 않으려면, 극장만큼 이성 의 규칙을 지키기 어려운 곳도 없다. 이렇게 해서 부알로에게 있어서 극작가가 지켜야 할 규칙의 정확성은 지키기 어려운 뻑 빽함으로 통한다. 〈하찮은 소설에서는 어떤 것도 쉽게 변조된 다. 소설은 순간적인 즐거움을 주는 것으로 족하며, 지나친 엄 격함은 격에 어울리지 않는다 . 그러나 극장의 무대는 정확한 이 성을 필요로 하며, 빽빽한 예법이 지켜져야 한다 . 〉 13 ) 이성을 예 법과 동일시함으로써 고전주의 이론은 마침내 그 미학적 이상 을 사회적 이상으로 바꾸어 놓았다 . 디드로의 『라모의 조카 Le Neveu deRamea~ 』 번역 주석에서 괴테는 이렇게 적고 있다. 〈시 의 여러 장르들은 마치 여러 사회들처럼 다루어진다. 그리고 이 여러 사회에는 여러 가지 유형의 행동방식이 만들어진 다.…… 이렇게 해서 프랑스 사람들은 원래 〈사교의 예법에 찰 어울림〉이라는 뜻으로만 쓰여 왔던 Convenance 라는 말을 정신 의 산물 즉 예술작품에 대해서 판단할 때에도 주저 없이 사용 하게 되었다 . 〉 14) 이러한 점과 관련하여 새롭게 전개된 사상적인 발전은 마침 내 고전주의의 이론을 해체하고 극복하기에 이른다 . 18 세기 전 반부에는 아직도 고전주의 이론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 거의 없 었다. 볼테르는 매우 명민하고 비판적이어서 고전주의의 구체 적 약점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는 루이 16 세 시대의 찬미자로서 미적 감식력의 분야에서 이 시대의 엄 격한 요구를 따랐다. 더욱이 회의적이고, 비판적인 기질의 볼 테르는 자신이 속한 · 시대의 문화를 비판한다. 『어수룩한 사나 13) Boil ea u, Ar t Poetiq u e, Chant III. 14) Goeth e , Weim arerAusga b e, Bd. 45, 174 쪽.

이 L 'J ng enu 』에서 그는 당시의 타락한 문화에 대립하여 자연의 거울, 사유의 단순성과 객관성, 그리고 도덕적 순진성을 내세 우고자 한다. 그러나 주인공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볼 때, 그는 자연의 이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아직도 그의 시대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그가 묘사하고자 한 자연의 순진한 아이는 거칠고 야생적인 흔적은 조금도 지니지 않는다. 그 아이는 오히려 아주 부드럽고 상냥한 마음씨를 가 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아하고 공손한 말씨를 쓸 줄 안다. 미학자로서 볼테르는 세련된 미적 감식력을 인간의 사회적 본 능의 세련된 결실로 본다. 『미적 감식력에 관하여 Essai sur le G6u t』에서 그는 〈이런 감식력의 발전은 오직 사회 속에서만 가 능하다〉고 말한다. 루소가 등장하기 전에는 18 세기 프랑스 문 화에서 사회와 자연의 문제가 아직도 날카롭게 구별되고 있지 않다. 자연은 그저 광신적으로 찬미된다 . 그러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자연 belle na t ure 〉의 상(像) 속에는 관습의 모든 특성들이 함께 섞여 있다. 프랑스에서 이런 관습을 뿌리 채 뒤혼들어 놓은 최초의 사람은 디드로이다. 그의 저술들은 새로운 혁명적 정신의 시작을 보여준다. 그러나 비평가 내지 저술가로서 그의 직접적인 활동, 특히 극작가로서의 직접적인 활동에서 볼 때, 그는 과감히 이런 관습적 굴레들을 벗겨내지 못하고 있다. 최후의 진일보(進一步)는 레싱의 저술 『함부르크 희곡론 Hamburg is cheDrama t urg ie,』에서 성취된다. 그는 프랑스 연극과 연극론이 지니는 나쁜 혼돈 죽 순수 미학적 이성의 요 구와 관습적인 시대적 요구의 혼돈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 그는 철저히 이 두 요소를 구분한다. 그는 〈진리와 자연에 기인하는 미학적 원리〉로부터 시대적 상황에 기인하는 모든 화려한 허상

들――이것이 아무리 눈부시게 빛나더라도_을 벗겨내 버린 다. 이러한 허상들은 진정한 예술적 형상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참된 연극의 특성도 이루지 못한다. 어떤 미학 학파의 시대적 인 예의범절 규칙이 아니라 진정한 시적 천재가 지닌 〈마법의 단장〉만이 이러한 형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허식과 에티켓이 인간을 기계로 만든다면, 이러한 기계로부터 인간을 회생시키 는 것이 시인의 사명이다.〉 물론 이러한 레싱의 작업을 위해서는 18 세기 미학의 예비적 작업이 있었다. 고전주의 이론이 범한 〈사회적 기준과 미학적 기준의 혼돈〉으로 말미암아 양자는 공통된 역사적 운명을 맞이 하게 된다. 사회적 기준이 더 이상 점증하는 비판의 물결을 견 뎌낼 수 없게 되고, 이 기준의 의문점과 허점이 속속들이 드러 나게 될 때, 미학적 기준도 역시 느슨하게 해이되고 마침내 해 체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 이 사건은 18 세기 미학의 새로운 발전을 위해 중요한 계기를 이룬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예 술과 시대정신의 연관관계에 대한 의식이 체험적으로 발아하게 되었다. 부알로의 시학은 그의 시대정신에 크게 영향받고 물들 어 있다 . 그러나 부알로의 미학이론 자체는 이러한 사실을 깨 닫고 있지 못했다. 부알로가 세운 규칙들은, 적어도 그 의도와 성향에서 볼 때, 보편적이고 영원한 규칙으로 상정된다. 이성 이 아니라 비이성적인 것만이 〈역사〉를 가진다. 이성온 처음부 터 끝까지 불변적인 이성으로 남는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고 전주의 미학의 전제는, 이로부터 나온 모든 귀결들과 함께, 혼 들리기 시작한다. 새로운 과학적 내지 철학적 사상의 출현과 더불어 그리고 새로운 정치 -사회적 장치의 도래와 더불어 미 학적 기준의 변화도 동시에 체험된다. 새로운 시대는 점점 더

강력하게 그리고 점점 더 의식적으로 새로운 예술을 요구한다 . 고전적 희곡의 영웅숭배와 파토스 대신, 디드로는 새로운 사회 적 성향 및 이와 더불어 새로운 미학적 성향을 드러내 보인다 .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성향을 표현하기 위해서 , 그는 새로운 시적 장르 즉 〈가정 비극t ra g ed i e domes tiq ue 〉 을 도입한다. 18 세기의 미학적 비판은 이러한 발전을 소화 홉수하고 이러한 발 전을 이론적으로 해석해 낼 준비가 되어 갔다 . 『 시, 회화 및 음악에 대 한 비 판적 반성 Rejl exio m Cri tiqu es sur la Poesie , la Pein t u r e et la Mus iq u e,』 에 서 , 뒤 보스는 이 미 이 러 한 길을 걷 는 다. 그는 개별적 예술들의 발전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러한 발 전의 원인을 추적한 최초의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많은 원인 둘 중에서, 그는 비단 지적인 것에만 관심을 기울인 것이 아니 라 자연적인 것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심지어 자연지리적 풍토 에 관련된 원인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 도덕적인 원인들 〉 이외 에 그는 자연적 내지 물리적 원인에도 커다란 비중을 둔다. 그 리하여 그는 후에 사회학과 정치이론에서 몽테스키외가 주장한 기본적 견해롤 미학의 분야에서 이미 다루고 있다. 모든 풍토 와 모든 시대가 똑같은 예술을 만들어낼 수 없다 . 즉 〈모든 땅 이 똑같이 모든 것 을 만들어 낼 수 없다 non omnis fort omnia tel lus. >1 5) 이러한 통찰은 고전주의적 도식의 붕괴를 의미한다. 이제는 미적 현상의 다양성과 가변성에 어울리는 이론이 요구 된다. 이제 천편일률적인 상투어 대신에 예술의 진정한 형식의 인식이 추구된다. 앞으로 점점 더 분명하게 될 것이지만, 이러 15) Dubos, Refl ect i on s Criti qu es sur la Poesie , la Pein t u r e et la Musiq ue, Paris, 1719, 2 부 , 19 절 . 이에 대한 전반적 논의는 2 부, 12 절 이하를 보라

한 형식은 단순히 예술작품 자체로부터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 창조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그리고 이 과정을 사상적으로 재현시키고자 하는 이론으로부터만 얻어내질 수 있다 . 3 미적 감식력 Geschmack 의 문제와 주관주의에로 전환 미학 영역에서 고전이론의 지배를 뒤엎은 내적 변화는, 그 방법적 관점에서 볼 때, 데카르트와 뉴턴 사이에서 일어났던 자연과학 이론의 변화에 정확히 대응한다. 이 두 변화는, 여러 가지로 서로 다른 지적 수단을 사용했지만, 추구한 목적은 똑 같다. 이들의 목표는 절대적인 지배권을 지녔던 연역 방법으로 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연역을 완전히 배제하 는 것이 아니라 연역과 더불어 사실 및 현상의 직접적인 관찰 도 중요시하는 것이다. 여기서도 원리적인 연구와 근거를 세우 는 작업은 결코 포기되지 않는다 . 그러나 이전에는 현상이 선 천적으로 타당한 원리에 무조건 복종하였다면, 이제 원리가 현 상에 의거하여 만들어져야 한다. 연역적 해석 방법은 점차 순 수 기술(純粹 · 記述)의 방법으로 바뀌어간다. 그리고 이러한 기 술은 이제 더 이상 예술작품에 직접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우 선 미학적 이해 방식의 특성이 무엇인가를 알아보고자 한다. 더 이상 예술적 장르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 행위 죽 〈예술작품이 감상자에게 주는 인상과 이 인상에 대한 감상자의 확고한 판단〉이 문제시된다. 이러한 경향의 미학도 〈본성 Natu r > 울 예술가가 추구하고 따라야 할 모범으로 본다. 그러나 이때

〈본성〉의 개념은 그 의미가 근본적으로 변한다. 미학적 객관주 의를 이끌어갔던 〈사물의 본성〉은 이제 〈인간의 본성〉으로 대 치된다 또한 당대의 심리학과 인식론도 과거의 형이상학이 해 결하고자 했으나 결코 그 해답을 줄 수 없었던 문제들을 인간 의 본성 속에서 해결하고자 한다. 이처럼 모든 분야에서 인간 본성이 중요시된다면, 미학의 분야에서는 더욱 더 당연히 그러 해야 했댜 왜냐하면 미학은 그 성질상 순전히 인간적인 현상 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분야에서는 처음부터 일체의 초 월성이 배제되는 듯싶다. 거기에는 논리적거이나 형이상학적인 해결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순전히 인간학적인 해결만이 있울 수 있다. 심리학과 미학은 이제 아주 긴밀한 유대를 지니 게 되고, 얼마 동안 거의 하나로 융합된 듯이 보인다. 이러한 심리학과의 유대 내지 융합을 끊어버리고 심리학과 관계 없이 미학의 문제를 독자적으로 해결한 것이 이른바 칸트의 선험적 방법인데, 〈그가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미학 분야에서 가장 힘 들게 선험적 방법을 성공시켰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심리학적 고찰 방법이 아름다움의 원천과 기초를 오직 인간 본성에서만 찾으려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방법이 곧바로 무제한한 상대주의를 편드는 것도 아니요, 또는 개인 주관을 예술작품의 절대적 심판자로 격상시키고자 한 것도 아니다. 오 히 려 이 방법 은 미 적 감식 력 Geschmack 울 일종의 공통감각 Ge-mein sinn, sensus commun i s 으로 본다. 그리 고 이 공통감각의 본성과 가능성을 헤아리는 일이 이 방법의 기본 문제가 되고 있댜 지금까지의 미학적 규범 형식이 거부됨은 사실이다. 그 렇다고 하여 모든 미학적 규칙이 포기되는 것은 아니요, 미적 인 것을 단순히 우연과 자의성(窓意性)에 맡기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자의성을 벗어나고 미적 의식의 독특한 법칙을 찾아내 는 일이야말로 여기서도 학으로서의 미학의 목적이 된다. 디드 로는 그의 『회화론』의 서두에서 이러한 기본 성향을 아주 간명 하게 강조하고 있다. 미적 감식력이 순전히 변덕스런 기분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갑작스럽고 격렬하게, 그리 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심금의 밑바닥을 울려주는 모 든 즐거운 미적 감정은 어디에서 올 것인가? 다시 말해서 우리 의 전 자아를 떨려 울리게 하고, 우리의 존재를 확대 긴장시키 고, 우리의 눈에서 기쁨 혹은 슬픔의 눈물을 자아내게 하는 모 든 감동은 어디에서 온단 말인가? 우리 모두 각자가 체험하는 이러한 현상은 개념적인 이론에 의해서도 결코 해명될 수 없고 회의적인 논변에 의해서도 결코 없앨 수 없다. 〈온갖 궤변론자 들이여, 모두 물러 가거라! 너희들은 결코 희열에 찬 나의 심 장과 맥박의 고동소리를 멈추게 할 수 없을 것이요, 내 가슴의 떨림과 울렁임을 없앨 수 없을 것이다〉 16) 라고 디드로는 의친다. 이러한 새로운 접근 방법은 미적 판단의 합리론적 정당화를 어느 정도 제한하거나 포기한다. 그러나 미적 판단의 보편성에 대한 요구는 여기서도 포기되지 않는다. 이제 문제는 이 보편 성의 본질을 좀 더 정확히 규정하고 이를 정당화시키는 새로운 방법이다. 연역과 추리는 더 이상 힘을 쑬 수 없다. 왜냐하면 미적 감식력의 올바름은 논리적 내지 수학적 추론의 필연성처 럼 논증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다른 방법적 절차가 요 구된다. 그리고 이것은 심리학적 요소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신념은 고전주의 이론의 테두리 내에서도 점차 인정되어 간다.

16) Di de rot, Essai sur la Pein tu re, 7 장; Assezat 판 전집 1 야인, 517 쪽 이하.

부우르의 저술 『정신의 작품에서 잘 생각하는 방식 La manie r e de bie n pe nser dans !es ouvrage s de !' espri t.11 (16 87) 은 부알로의 『시학』과 단지 십 년의 차이를 두고 나타났다. 부우로는 여기 서 단지 부알로의 저술을 보완하려 했을 뿐, 부알로의 근본 전 제를 버리지는 않는다. 제목이 암시하듯이, 이 저술은 미적 〈사 유론〉에 대한 시도로서 포르 르와얄 Po rt Roy al1 1> 수도원에서 간 행한 『사유 방법 A1 t dePense r.』의 짝이 된다 . 그러나 미적 사유 와 판단의 형식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더 분명하고 날카롭 게 모든 개념적 dis k ursiv 추론의 형식과 구별되어 갔다. 후자의 사유형식의 최고 목표는 정확성과 논리 일관성이다. 모든 개념 은 엄밀히 정의되어야 하고 그 모든 특성이 결정되어야 한다 . 그리고 이렇게 정의된 의미는 논리적 조작의 전 과정에서 철저 히 고수되어야 한다 . 불명료하고 애매한 모든 것은 수리-논리 적 개념의 사망선고나 마찬가지이다. 이 개념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는 그 정확성에 있으며, 이 이상에 가까워질수록 개념은 그만큼 더 완전하게 된다. 그러나 미학에서는 다른 규범이 등 장한다. 여기서는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은 모든 사람이라면 쉽 게 인정할 수 있는 일군의 개별 현상들이 있는 바, 이것들은 정확성과는 매우 거리가 멀기 때문에, 만약 이것들에 논리적 개념 방법을 적용시키면, 이 현상들은 완전히 파손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미적 사유의 가치와 매력은 정확성과 명석성에 있 는 것이 아니라 미적 사유가 지니는 연관의 풍부성에 있다. 비 록 이러한 연관의 풍부성을 전부 개괄하지 못할지라도, 그리고 이것을 그 개별 요소로 분석하지 못할지라도, 그 매력은 조금 17) 역주: 포르 르와얄 Po rt Ro y al 은 1204 년 파리에 세워진 수도원으로 16 세기 말 이래 프랑스 정신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도 손상되는 것이 아니다. 미적 사유가 지니는 의의는, 이 사 유에서 비롯된 연관들이 서로 모순될지라도, 이 사유가 수 많 은 색조를 띤다 할지라도, 그리고 이 사유가 유동적이고 물거 품과 같은 성질을 띤다 할지라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파스 칼이 섬 세 한 정 신 esp ri t fi n 과 기 하학적 정 신 esp ri t geo metr i q u e 울 구별하고, 이 양자를 날카롭게 서로 대립시켰듯이, 부우르 는 부알로가 예술의 원리로 삼았던 정확성의 정신에 대립시켜 섬세성 de li ca t esse 의 정신을 내세운다. 여기서 섬세성의 개념은 말하자면 새로운 감각기관이요, 이 기관의 목적은 수학적 사유 처럼 개념을 고정화시키고 견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 로 사유를 유연하게 하고 가볍게 함으로써 의미의 가장 예민한 색조와 변용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색조와 변용은 미학적 사유의 특성이다. 매우 이상해서 받아들이기 어렵게 들 릴는지 모르나, 정확성이라는 미학적 이상이 있는가 하면 이와 정반대되는 부정확성의 미학적 이상도 있다. 엄격한 고전주의 에서 부정확한 모든 것은 진실이 아닌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 나 부우르가 지적한 것처럼, 미학적 이성은 〈명석 판명한 것〉 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느 정도 부정확성을 받아 들일 뿐만 아니라 또 요구한다. 왜냐하면 미학적 상상력은 비 완결적 사유로부터 생겨나고 촉진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사 유의 단순한 내용이나 사유의 객관적 진리가 문제되는 것이 아 니라 사유의 과정 즉 사유가 작동하는 섬세성, 경쾌성 내지 신 속성이 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결과가 아니라 결과가 얻어지는 방식이다. 사유가 예기치 못한 형태를 산출하면 할수 록, 그 사유는 미학적으로 볼 때 그만큼 더 가치가 높다. 논리 학이 일률성을 요구한다면, 미학은 의외성을 요구한다. 논리학

이 사유의 모든 전제와 매개적 중간 단계들을 확립하여야 한다 면, 예술은 새로움의 무한한 원천을 직접적인 것에서 찾는다. 고전미학이 그 규범으로 제시한 엄격한 직선적 사유는 이제 충 분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직선은 오직 기하학에서 두 점 사이 의 최단 거리이지 미학에서는 그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섬세 성의 원리에 입각한 부우르의 미학은 직선이 아니라 우회로(辻 廻路)의 예술을 추구하고 이의 정당성과 유용성을 확립하고자 한다. 미학적으로 가치 있는 사유는 거의 언제나 이런 방식을 사용하여 그 목적을, 즉 갑작스럽게 마음울 휘어잡고 새로운 동기와 힘을 마음에 공급해 주려는 목적을 달성한다. 예컨대 격언시와 같은 시의 장르는 전적으로 이러한 방식에 의존한다. 진실만으로는 결코 미학적 의미의 경구시를 이루지 못한다. 다 시 말해서 단순히 진실만을 담고 예술적 생동감이 없는 논리적 명제만 가지고는 경구시를 만들 수 없다. 경구시는 이러한 생 동감을 진실의 힘을 통해서라기보다 오히려 거짓의 힘을 통해 서 획득한다. 〈때때로 사유는 이것이 진실이기 때문에 평범한 것이 되어버린다.〉 이러한 평범성은 사유가 도입되고 표현되는 방식에 의해, 다시 말해서 갑작스런 표현의 둔갑을 통해서 극 복될 수 있다. 강조점은 이제 점차 사유의 내용보다는 표현으 로 옮아간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가치 있는 예술작품에서 요구되는 것은 단순히 진리뿐만 아니라 거짓의 혼합이요, 그리 고 이런 이유에서 참과 거짓이 하나로 결합되어 있는 애매함 e q u i voq ue 이 옹호되어야 한다〉는 부우르의 말은 놀랄 것이 못 된다 .18) 전반적으로 볼 때 부우르는 아직도 고전주의의 용어법 18) 자세 한 것 은 H. von Ste i n , Die E nts teb ung der neueren Astb e tik , 87 쪽 이하를 보라.

울 사용하고 있다. 그러기에 부우르는 진리와 실재라는 고전주 의의 개념이 주는 속박을 벗어나서 자유롭게 미적 가상 Sche i n 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거짓〉이라는 표현법을 쓸 수밖에 없 었다. 미적인 것 그 자체는 투명하고 순수한 사유의 빛에서 발 아하고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 그것은 오히려 빛과 그늘의 대 조 내지 배분을 요구한다. 빛과 그늘은 둘 다 중요하다. 왜냐 하면 예술은 자연 세계 곁에 나란히 있는 제이의 객관적인 실 재가 아니라 이 자연 세계를 그린 상(像)이기 때문이다. 미학에 서 는 〈사물과 지 성 의 일치 adaeq ua ti o rei et i n t ellec tu s 〉라는 순 수 논리적인 이상이 과학에서와 똑같은 의미로 성취될 수 없 다. 고전 미학은 이 이상을 고수하였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 온 〈 자연적인 것〉과 〈정확함〉에 강조점을 두게 되었다. 주관에 기인하는 왜곡이나 훼손 없이 대상 자체를 얼마나 정확하게 반 영하느냐에 따라 진술은 그 성패가 결정되었다 . 그러나 이제 이러한 규범은 변해간다. 강조점은 〈대상에 가까움〉에서 〈대상 에서 멀음〉으로 옮아간다. 다시 말해서 강조점은 예술이 자연 에 얼마만큼 닮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 표현 매체의 독특한 성격에 있다. 예술적 표현 매체의 논리적인 부적합성 이, 그리고 이 매체가 지닌 간접적이고 은유적인 성격이 허용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사실에 의해 표현 매체의 가치는 조금도 손상되지 않는다. 예술이 그리는 상은, 이것이 대상을 닮지 않았다고 하여, 진실되지 못한 것으로 비난받는 것이 아 니다. 오히려 그 상은 그 자신의 내적인 진리를 지닌다. 〈비유 fig ure 는 거 짓 이 아니 요, 은유 me t a p hore 는, 마치 허 구가 그러 하듯이, 자신의 진실을 지닌다 . 〉 19)

19) Bouhours, La Manie r e de bie n Penser dans !es Ouvrage s de /'Esprit,

부우르 저술 속의 새로운 동기는 뒤보스에 의해 비로소 충분 히 발전된다. 전자에 의해 단지 암시된 것이 후자의 『시와 회 화에 대한 비판적 반성』에서 체계적인 기본사상으로 된다. 말 하자면 부우르가 당시 미학의 주변에서 발견한 현상온 이제 미 학 이론의 중심이 된다. 이제 문제는 오성의 힘과 더불어 상상 력과 감정 Ge fii hl 을 미의 근본 힘으로 확립하는 것이다. 만약 이런 이유로 뒤보스의 저술을 〈최초의 감상주의적 senti m enta l - isc h 미학〉이라고 부른다면, 이것은 역사적인 유보사항을 전제 할 때에만 옳다오 왜냐하면 뒤보스에게서는 그 후의 〈감상주의 Em pfi ndsamke it〉시 대 에 나타나는 〈감상적 인 senti m enta l > 요소 는 하나도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뒤보스가 사용한 〈감정 Gefi ihl , sen ti men t〉이라는 말은 자아 자신에로의 몰두 내지 이 런 의미의 주관주의적 성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더 이상 단순히 예술작품의 관조와 분석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 라 예술작품이 관람자에게 주는 효과를 중시하고 이것에서 예 술의 참된 본질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미적 감명(感 銘 E in druck) 의 분석에서 자아와 대상은 다 같이 필요한 요소 로 취급된다. 〈주관〉과 〈객관〉의 이러한 인과관계를 보다 자세 히 규정하는 일은 선천적이요 추상적인 고찰에 의해서가 아니 라 오직 경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뒤보스는 내성(內省, Sel-bstb e obachtu n g ) 을 미 학의 독특한 원 리 로 확립 하고, 단순히 논 리적인 모든 방법에 반대하여 이 원리를 옹호한 최초의 사람이 다. 미의 본성은 단순히 개념에 의해 알려질 수 없다. 미학 이 론가가 자신의 통찰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그리 12 쪽. cf. Baeumler, Kants K r itik der Ur tei /s k raft, I, 36 쪽 이 하. 20) Baeumler, 같은 책, 53 쪽을 참고하라.

고 이 통찰의 진리성을 그들에게 확신시키기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그들 자신의 내적 경험에 호소하는 길 뿐이다. 미적 개념 형성의 씨앗이 되는, 그리고 언제나 이 개념이 의지 해야 하는 직접적인 감명은 결코 연역의 대상이 아니다. 뒤보 스는 자기 저서의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한다. 〈만약 나의 책을 읽고 독자가 자신의 내적인 감응을 받지 않는다면, 나는 나의 이 저서를 추천할 생각이 없다. 자기자신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는 거울이 있다면, 우리는 이 거울을 믿을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2 1) 이제 미학자는 더 이상 법칙을 미리 가지고 서 예술가에게 접근하는 것도 아니요, 또 관객을 위한 불변적 인 일반 규칙들을 세우려고 시도하지도 않는다. 미학은 단순히 거울이요, 이 거울 속에서 예술가와 관객은 자신들의 반영된 모습을 본다. 그리고 이 거울 속에서 그들은 자신들을 재인(再 認)하며 자신들의 근본 체험을 재인하게 된다. 미적 판단을 세 련시키는 모든 교육은, 결국 이 체험 내지 원천적인 감명을 점 차 명확하게 알아볼 수 있게 하는 것이요, 그리고 이 감명을 〈반성에 의해 덧붙여진 인위적이고 우연적인 요소들〉로부터 구 별해 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에 도움이 못 되는 미적 개념 내지 이론은 거부되어야 한다. 감명의 순수성을 확 보하지 못하는 것, 그리고 이 감명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강화 시키지 못하는 것, 이 모든 것은 미학의 근본 목표에서 벗어나 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미적 감식력은 배울 수 없는 것이 요, 또 이론적인 고찰에 의해 배양될 수도 없다. 감관지각의 일에는 도시 이러한 일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우리 가슴온 21)P arDt ieu,b aSs,e ctR . efIl .e xi on s Cri tiqu es sur la Poesie et la Pein tu r e, Premi er e

일체의 학습과 숙고 이전에 스스로 울렁거리고 감응된다. 그것 은 본디 그러하게끔 만들어졌다. 따라서 그 기능은 이성의 숙 고에 앞서 발휘되니, 마치 눈과 귀의 감각기능이 숙고에 앞서 는 것과 같다. 태어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이 혼하지 않듯이, 이 런 가슴의 기능을 상실한 채 태어난 사람도 드물다. 맹인에게 시각을 줄 수 없듯이, 가슴을 지니지 못한 사람에게 감정을 느 끼게 할 수 없다. …… 비극을 보고 우리가 눈물을 흘릴 때, 이 는 시인이 우리에게 보여준 대상이 과연 우리를 감동시킬 만한 것인지 아닌지를 논의하고 숙고한 결과로 그런 것은 아니다. 이러한 숙고를 하기 전에 이미 우리의 감정은 스스로 결정을 내린다. …… 만약 시나 그림의 우월성이 일정한 규칙에 맞느 냐 맞지 않느냐에 따른다면, 시나 그림의 가치를 평가하는 가 장 좋은 방법은 숙고와 분석의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러나 시나 그림의 참된 우월성은 규칙에 알맞음의 여부가 아니라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점에 있다 . …… 왜냐하면, 키케로 C ic ero 가 말하 돗이, 예술품이 훌륭하냐 훌륭하지 못하느냐 하는 것을 모든 사람은 내적 감정에 의해_비록 규칙을 모르더라도_쉽사 리 판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22) 이렇게 해서 미적 감식력은 이제 추리의 논리적 과정과 같은 계열이 아니라 직접적인 순수 지각행위에, 예컨대 시각 , 청 각, 미각, 후각과 같은 계열에 속하게 된다 . 이러한 변화는 흄 이 철저하게 추구해 나간 길과 만난다. 분명히 흄의 철학은 미 학에 큰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심리학적, 인식론적 문제 내지 윤리-종교적 문제에 치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철학은 미학의 영역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더욱이 방법론적 22) Dubas, 같은 책 , 2 부, 23 절 .

관점에서 볼 때, 미학에 대한 흄 철학의 기여는 전적으로 새롭 고 원천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흄에게 있어서 미학적 논쟁의 싸움터는 전혀 새롭게 개편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감정 미학 의 옹호자들이 감정의 독자적 본성과 직접성을 아무리 강조할 지라도, 그들은 이성 자체를 공격할 수 없고 또 이성의 독특한 고유 기능을 논박할 수 없었다. 그들은 단지 이성의 여러 능력 들을 분리하고자 했지, 이성 자체의 힘을 불신하거나 축소시키 고자 한 것은 아니다 . 이성은 모든 논리적 사유의 기초로서, 그 리고 모든 실재 인식의 관건인 인과추리의 기초로서 여전히 그 위세에 변함이 없었다. 이러한 상황으로부터 흄은 결정적인 중 요한 한걸음을 내딛는다. 흄은 〈지금까지 합리론의 자랑스러운 강점으로 여겨져왔던 것〉이 실은 합리론의 최대 약점임을 보여 주고자 한다. 감정은 이제 더 이상 이성의 법정 앞에 서서 자 신을 변호할 필요가 없게 된다. 오히려 거꾸로, 이성이야말로 감각의 법정 앞에 즉 순수 〈감명〉의 법정 앞에 호출되어, 지금 까지 자신이 누렸던 권리에 대해 심문을 받는다. 이 심문에서 밝혀진 판결은, 순수 이성이 지금까지 휘둘렀던 모든 권위가 부당하고 무근거하다는 것이다. 이성은 이제 자신의 지배권을 상실한다. 지식의 영역에 있어서조차도 이성은 그 지배권을 상 상력에 양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렇게 하여 미학의 기초 와 관련된 논쟁에서 이성과 상상력은 지금까지의 입장이 뒤바 뀌어진다. 전에는 상상력이 조그마한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싸워야 했던 데에 반해, 이제 상상력은 마음의 근본 힘으로 여 겨지게 되고, 마음의 다른 모든 능력들은 이 상상력이라는 근 본 힘에 종속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러한 변화 속에 암시 되는 미학의 귀결은 자명한 것이요, 이는 흄의 『미적 감식력의

표준에 관하여 Of tbe S ta n dard of Tas te,』 라는 책 속에 잘 표현되 었다. 회의론이라는 말이 단순히 보편 필연적인 규범의 부정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제 미학도 회의론으로 빠지게 된다. 보 편 필연적 진리의 요청은 미학 분야에서 가장 쉽게 깨지게 된 다. 왜냐하면 우리의 일상경험이 가르쳐 주는 바에 의하면 결 코 고정된 미적 가치 척도란 없으며 또 여태까지 그런 척도가 있었던 적도 없다. 미를 측정하는 표준은 시대에 따라 다르고 사람에 따라 다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어느 한 견해를 뽑아 이것에 보편 타당성의 딱지를 붙이고 또 이렇게 해서 이것을 척도의 본으로 삼으려 한다면, 이는 헛된 희망 사항에 불과하 다. 그러나 이 반면, 만약 우리가 미적 판단의 상대성을 인정 할 수밖에 없다 할지라도, 이것은 순수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학문들에서처럼 위험 요소가 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합리 적 학문들은 사물의 본성에서 얻어낸 객관적인 표준이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객관 자체의 본질적 성질에 대한 지식을 구한다. 만약 회의론이 이러한 지식에 대 해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한다면, 이는 이런 학문들에 치명적인 것이 된다. 따라서 합리적 학문에 있어 회의론은 언제나 부정 적이고 파괴적인 · 원리가 된다. 그러나 우리가 감정과 순수 가 치판단의 영역에 들어서면 사정은 달라진다. 왜냐하면 가치판 단 자체는 사물 자체의 본성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지각하고 느끼고 판단하는 주관〉과 객관 사이에 있는 모종의 관계에 대 한 판단이기 때문이다. 이 관계는, 똑같은 사례가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개별적 사례마다 진실일 수 있다. 왜냐하면 한 관계의 본성은 이 관계의 어느 한 항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두 항의 상호 규정 방식에 의해서 비로소 생겨나

는 것이기 때문이다 . 따라서 판단하고 의욕하는 주관은 가치판 단의 의미 내용에 대해 결코 의적인 것이 아니라 이 의미 내용 울 함께 규정하는 요소이다. 이런 사실이 일단 이해되면, 미적 판단에는 논리적 판단과는 다른 독특한 장점이 생긴다. 이 장 점은 미적 판단이 논리적 판단보다 더 많은 것을 성취한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미적 판단이 논리적 판 단보다 요구를 더 적게 한다는 데에 있다. 왜냐하면 미적 판단 은 거짓된 일체의 일반화 23 ) 를 요구할 필요가 없고, 또 대상 자 체가 아니라 대상에 대한 우리의 주관의 관계만을 주장함으로 써, 그것은 객관 세계에 대한 학문들이 얻을 수 없는 주관과 객관의 일치를 쉽사리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별적 주관 은 사물에 대한 절대적 심판관이 될 수는 없으나, 주관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는 유일한 심판관이 된다. 미적 판단은 바로 이 런 상태의 표현을 의미한다 . 따라서 그것은 더 적은 것을 의도 함으로써 더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게 된다 . 이성은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성의 표준은 그 자신 내에 있는 것 이 아니라 이성이 관계하는 사물의 본성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정에는 이런 오류의 위험이 없다. 왜냐하면 감정의 내용과 표준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 자신 내에 있기 때문이다. 〈모든 감정은 옳다. 왜냐하면 그것은 오직 그 자신 과 관계하기 때문이요, 주관이 그것을 의식하는 한 언제나 현 실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 오성의 모든 규정들이 다 옳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그들 자신의 외부에 있는 어 떤 것들과 즉 실재 사실들과 관계하기 때문이다. >하 나의 객관 23) 역주 : 일반화를 하면 구체적인 것을 버리게 되며 이런 면에서 거짓 이 된다 .

적 사태에 관해서 수천 가지의 판단이 내려질 수 있으나 이 중 오직 하나의 판단만이 올바를 수 있다. 여기서 문제는 이 올바 른 판단을 어떻게 결정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하나의 대상에 대해 느끼는 수천 가지 감정들이나 미적 평가들은 각기 다 옳을 수 있다. 왜냐하면 감정은 결코 객관적인 어떤 것을 파악하거나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대상과 〈우리 마음의 능력 내지 기관〉 사이에 있는 모종의 일치를 표현할 따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미(美)란 사물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오로 지 주관 내의 상태에 대한 것이라고 결론지울 수 있는데, 바로 이런 점에서 우리는 미에 대해 일종의 객관적인 판단을 내린다 고 말할 수 있다. 〈미는 사물 자체의 성질이 아니다. 그것은 사물을 관조하는 마음 속에만 존재하며, 각기의 마음은 서로 다른 미 를 지 각한다. >24 ) 이제 보편 타당성 개념의 마지막 잔재까지도 미적 판단으로 부터 말끔히 제거된다. 그러나 흄이 순수 논리 분야에서와 마 찬가지로 미의 분야에서도 이론적인 보편성을 부인한다고 할 때, 이 말은 실천적인 일반화마저 포기한다는 뜻은 아니다. 미 적 감정이나 판단은 주관에 대해서만 타당할 뿐이요, 그리고 개개인은 서로간에 다른 미적 감정을 지니기 때문에 엄격한 논 리적 의미의 간주관적(間主觀的) 동일성은 찾아질 수 없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경험적인 동일성을 감지할 수 있다. 미적 감정의 개인차(個人差)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모종의 미적 가치 척도의 표준을 부인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경험적 동일성에 기인한다. 물론 이러한 표준은 선천적으로 미 자체의 24) Hume, Of the Sta ndard of Taste , Essays Moral, Politi ca l and Lit ter ary , ed. Green and Grose, London, 1898, 268 쪽.

본질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인간의 본성에 의거한 다. 인간의 본성에 의해 개인차는 일정한 한계를 지니게 된다. 여기서 인간의 본성 개념은 보편적인 논리적 개념도 아니고 윤 리적 내지 미학적 이상으로서의 본성도 아니요, 단지 생물학적 인 종(種)으로서의 인간성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각기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또한 서로 일치한다 . 개인적 차이성은 그 자체 한계와 법칙을 지닌다 . 여기서 우리 모두가 쉽게 알 수 있는 미적 판단의 상대적 일치성이 생긴다. 비록 절대적인 규 범을 세울 수 없다고 할지라도, 적어도 경험적인 규칙성 내지 경험적 평균치가 있다. 추상적으로 볼 때, 개인차는 여전히 중 요한 의미를 지니나, 구체적으로 보면 무의미하다. 오질비 (Og ilby , Joh n 1600-1676, 영 국시 인, 번 역 가, 화가, 탐험 가 : 역 주) 와 밀 턴을 혹은 번 얀 Bun y an 과 에 디 슨 (Add i son, Jos ep h 1672- 1719, 영국 수필가 : 역주)을 그 재능과 문체에 있어서 동등하게 보려고 한다면, 이것에 대해 순전히 합리적인 근거를 내세워 반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실제상으로 볼 때 마 치 두더쥐가 일구어 놓은 흙더미와 커다란 산을 혹은 작은 연 못과 대양을 같은 것으로 보려는 것과 진배 없다 . 25) 〈공통감각 Sensus commun i s 〉으로서의 미적 감식력이 주는 일치성은 연역 될 수도 없고 논증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것은 사실로서 존재하고, 바로 이 사실을 통해 . 그 어떤 사변도 줄 수 없었던 확실한 근거를 지니게 된다. 경험적 입장에서 볼 때, 사실적인 일치성은 순수 합리적인 철학의 분야보다 미적 분야에서 더 쉽사리 · 그리고 더 확실하게 찾아진다. 철학 체계 들에 관한 한, 각각의 체계는 시대에 따라 우세한 입장을 차지 25) Hume, 같은 책, 269 쪽 .

한다 새로운 혜성과 같이 새로운 체계가 나타남과 동시에 지 금까지 주름잡던 체계는 퇴색되어 버린다 . 그러나 위대한 고전 적 예술품들은 시대의 시험에 훨씬 더 잘 대처한다 . 비록 이 예술품들의 탄생이 당대의 시대상황에 관련되고, 따라서 그것 들의 이해가 그 당대의 여러 특이한 조건에 의존한다 할지라 도, 이러한 시대적 창작 조건은 이 작품들이 미치는 영향까지 제한하지 못한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는지 도 모른다 . 〈 그러한 예술품들은 시대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며, 따라서 그것들이야말로, 인간의 사유는 변하더라도, 인 간의 미적 감명의 능력과 감정은 기본적으로 같다는 데 대한 최선의 보증이 된다〉 . 고대의 위대한 사상가들에 의해 알려졌 다고 생각되는 소위 객관적 진리란 우리에게 낯설게 된지 이미 오래다. 그러나 고대의 위대한 시인들은 아직도 상실되지 않은 매력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우리가 받는 그 매력의 강도도 또 한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과 에피 쿠로스와 데카르트는 서로 서로 극복하고 있지만, 테렌티우스 (Terenti us 기원전 185?-159, 플라투스 Plau tu s 이후 로마의 최대 희극작가: 역주)와 버질은 인류의 마음 위에 군림하는 보편적인 제국을 아직도 유지한다. 키케로의 추상적 철학은 그 신용을 잃은지 오래이나, 그의 강렬한 웅변은 아직도 우리의 감탄 대 상이 된다.〉 26) 이렇게 하여 미학에서 최소한의 보편적 타당성이 인정된다. 그러나 이것은 경험의 근거를 해명하려는 18 세기 사상가들을 결코 만족시키지 못한다. 비록 이들이 경험을 미적 판단의 원 천으로 인정하지만, 이들은 더 나아가 경험에 보다 굳건한 기 26) Hume, 같은 책, 280 쪽.

초를 제공하려고 하였으며 경험으로부터 모종의 객관적 징표를 이끌어내려고 하였다. 이렇게 되면 문제 자체가 달라진다. 왜 냐하면 그것은 단순히 미적 현상을 기술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고, 오히려 이 현상의 배후 원천으로 거슬러 올라가 현상의 근거를 확립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근거를 어디서 찾을 것이며, 또 어떻게 하여 이 근거를 확립시킬 수 있는가? 유일 한 출구는, 미 를 합목적 성 Zweckmals ig ke it에 접 목시 키 는 길 이 요, 〈미란 이러한 합목적성이 둔갑되어 표현된 것임〉을 밝히는 길이다. 디드로는 자신의 미학 이론에서 이러한 견해를 충실히 전개시킨다. 그에 의하면 미적 감식력은 주관적이며 동시에 객 관적이다. 그것이 개인적 감정에 기초한다는 의미에서 주관적 이요, 그리고 이 감정은 개인적 경험이 수백 번 거듭된 결과라 는 점에서 객관적이다. 물론 미적 감식력의 직접적 현상은 더 이상 정의될 수도 없고 설명될 수도 없으며, 말하자면 〈그것이 무엇인지 내가 알지 못하는 것 je ne sais q uo i〉이다. 그러나 우리 가 직접적인 현재의 현상을 과거의 그것과 연관시킬 때, 우리 는 이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간접적인 지식을 갖는다. 미적 감식력에 대한 모든 판단에는 수 많은 과거의 경험들이 포함되 어 있다. 그런 판단은 사변적인 숙고에 의한 것도 아니요, 또 단순한 본능에 의한 것도 아니다. 미에 대해 본능이라는 말을 쓴다면, 이는 또하나의 불가사의한 가정을 도입하는 것이요, 그 리고 이러한 가정은 자연과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심리학에 있어 서도 무익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이러한 본능 울 순전히 경험적으로 설명해 낼 수 있다면, 다시 말해서 이 본능이 원천적인 것이 아니라 파생된 것임을 밝혀낼 수 있다 면,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우리가 눈을 뜨는 순간에 우리는

수많은 인상들을 받아들이고, 이 각각의 인상에는 좋고 싫은 어떤 감정 내지 가치판단이 수반된다. 이 모든 인상들과 경험 들이 우리의 기억 속에 쌓여 서로 녹아서 하나의 새로운 전체 적 표현으로 응집되었을 때, 이로부터 소위 미적 감정이라는 것이 생겨난다. 물론 미에 대한 순수 체험에서는 과거의 경험에 대한 모든 기억이 사라져 버리고, 따라서 순수 미적 경험의 현 실은 우리에게 이 경험의 발생적인 유래에 대해 아무 것도 알 려주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볼 때, 미적 감정의 발생 원천은 설 명될 수 없는 〈비합리적인 것〉이라 하겠다 .27) 그러나 디드로에 게 있어서 이 발생 원천의 개념은, 비록 직접적으로 논증될 수 있는 현상온 아닐지라도, 적어도 경험론의 일반 전제들로부터 이끌어낸 하나의 요청이다. 〈미적 감식력이란 무엇인가? 그것 은 반복 경험에 의해 얻어진 재능으로서, 진(眞) 혹은 선(善)이 미(美)로 전환되는 상황을 파악하는 재능이요, 또 이러한 파악 에 의해 쉽사리 감동될 수 있는 재능이다.〉 28) 미를 순전히 경험 적으로 설명하려는 디드로의 이러한 말은 물론 미의 특성을 흐 릿하게 하고 또 미를 자연적 내지 도덕적으로 완전한 것 죽 〈객 관적으로 합목적적인 것〉으로 해소해 버리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그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형태 롤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에 주었다. 기하학자인 라 히르 La Hire 27) 1762 년 9 월 2 일과 1767 년 10 월 4 일에 볼란드 So p h i e Volland 에게 보 낸 디드로의 서신을 참고하라. 디드로의 미학에 관해서는 특히 Folkie r ski, Entr e le Classic i s m e et le Romant ism e, Etu de sur l' Esth e tiq u e et les Esth e tic ie n s du xvd sie c le, Pari s, 1925, 355 쪽 이 하에 있는 상세한 설명을 참고하라. 28) Dide rot, &sa is urlaPei nt u ~ chap . VII: Assezat 편 전집 10 권, 519 쪽.

는 이 형태미에 도취되어 그 윤곽을 스케치했을 때, 그것이 최 대의 저항력을 지닌 곡선임을 알았다. 미켈란젤로가 수 많은 곡선 중에 이런 곡선을 택하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일 상 경험 이외의 딴 것에 있지 않다. 붕괴되는 벽을 받치는 버 팀목을 위한 최선의 각도를 아는 길은, 평범한 목수나 오일러 같은 위대한 수학자나 다 마찬가지로, 오직 경험 뿐이다. 경험 은 풍차 날개들의 적절한 경사 각도를 알려준다.〉 29) 미를 이처 럼 경험적이고 실천적으로 설명할 때, 미는 일상 경험으로 환 원될 위험이 따른다. 다시 말해서 미의 원천과 미의 직접적 형 태가 일상적으로 유용한 것으로 환원될 위험이 따른다. 실제로 디드로는 인간 신체의 미를 생명적 기능의 최선의 발휘 속에서 찾고 있다. 〈잘 생긴 사람이란 두 가지 기능 즉 개체의 보존과 종족 번식의 기능을 가능한 한 쉽게 발휘할 수 있도록 생긴 사 람이다.〉 30) 이리하여 디드로의 경험론은 그것이 극복하고자 했 던 위험을 피하지 못하게 되었고, 합리주의적 미학을 붕괴시킨 암초를 피하지 못하였다. 디드로가 미를 그저 기술할 뿐만 아 니라 미의 근거를 밝히려고 시도했을 때, 그에게 유일한 길온 〈미를 ‘진’ 에 의거하게 하고 따라서 미를 진의 변형으로 보는 길〉이었다. 단지 여기서는 진의 규범이 바뀌었을 뿐이다. 진의 내용은 이제 더 이상 선천적으로 보편 타당한 원리에 입각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경험의 유용성에 의존한다. 여하튼 고전 미학 과 경험론의 설명방식은 모두 미의 고유한 의미와 가치를 설명 하는 데 실패한다. 왜냐하면 두 경우 모두 사용된 표준이 미의 29) Did e rot, 같은 책, 519 쪽. 30)이 디하드를로 보의라 .미 학적 〈공리주의〉에 대해서는 Folk iers k i, 앞의 책, 383 쪽

순수 현상이 놓여 있는 지평과는 다른 지평에 있기 때문이다. 〈이 성〉이 고전 미학에서 승리를 거두듯이, 경험적 〈오성 Versta n d> 이 경험 미학에서 승세를 굳혔다. 상상력은, 이론적으로 볼 때, 독립된 능력으로 그리고 마음의 독특한 능력으로 간주된 다. 심지어 상상력이 모든 이론적 활동의 중심 능력임을 보여 주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러나 상상력에 대한 이러한 고양된 평가에는 상상력의 고유성을 없애는 위험이 따른다 . 왜냐하면 상상력이 이런 식으로 이론적 분야에 침투하고 그 결과 이론에 종속됨으로써, 그것은 마침내 이론과 혼동되기에 이르기 때문 이다. 미의 진정한 자율성과 상상력의 자족성은 다른 방식으로 만 확보될 수 있다. 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필요한 지적 충 동은 합리적 미학에서도 나올 수 없고 경험적 미학에서도 나올 수 없다 . 이 충동은, 미를 이론적으로 분해하고 규칙에 환원시 키려 할 때에도 나올 수 없고, 또 미를 심리적으로 기술하고 발생적으로 설명하려 할 때에도 나올 수 없다 . 그것은 오직 미 의 순수 직관 속에 침잠하고 이러한 직관 내용을 온전히 살려 내려는 사람에게서만 나올 수 있다. 이러한 최초의 사상가는 18 세기의 섀프츠베리 Scha ft esbu ry이다. 그의 학설은 자연히 미 에 대한 최초의 포괄적이고 독립적인 철학을 건설하는 데에 바 쳐진다. 4 직관의 미학과 천재의 문제 18 세기 영국 미학은 프랑스 고전주의의 길도 따르지 않고 또 흄의 길도 따르지 않는다. 물론 이 두 사조는 영국 미학의 설

정과 발전에 있어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있다 . 18 세기 영국의 문학과 미학은 프랑스 고전 비극의 위대한 모범을 존경하고 여 러 점에서 이 모범의 영향을 받고 있다. 또한편 영국 미학의 문제 형성에는 이미 기본적인 경험적 요소가 들어 있는 만큼, 경 험론의 영향을 벗어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이 문제 는 일반적으로 보아 심리학적 관점에서 접근된 문제이다. 18 세 기 영국의 심리학적 방법은 자연스럽게 발전되어갔다. 로크, 버 클리, 흄울 통하여 경험론의 승리는 확고부동한 것으로 나타난 댜 따라서 이후로 경험론의 원리는, 더 이상 논박됨이 없이, 정 신의 복잡한 여러 현상들을 설명하는 데에 점차 확대되어 사용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영국 미학이 경험론의 껍질울 깨트 리고서 점차 경험적 방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면, 이것은 영국 미학자들이 경험론적 사고방식과 다른 철학사상에 눈을 돌리고 이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18 세기 영국 미학을 실제로 이끌어 나간 사람들은 그 원천을 섀프츠베리 Sha ft esbu ry에 두고 있고, 스스로 섀프츠베리의 제 자요 계승자임을 자처한다. 그러나 새프츠베리 자신은 자신의 철학을 형성함에 있어 그 당시의 어떤 사상가에도 따르지 않는 다. 그의 어린 시절이나 청년기의 스승은 로크였다. 그러나 섀 프츠베리 사상의 일정한 부분에서만 이 스승의 영향이 감지될 수 있고, 그의 사상과 가르침의 전체 윤곽은 그 스스로 형성해 낸 것이다. 그는 당대의 철학에 호감을 느끼지 못하고 다른 지 적 원천을 추구한다. 그 당시의 철학가에 대한 새프츠베리의 무관심을 보기 위해서는 그의 철학적 일기를 들춰봄으로써 족 하다. 이 일기에는 그 당시 논란되었던 문제들의 혼적이 거의

없고, 또 이 시대의 지적 혹은 실천적 결정이 그에게 끼친 영 향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 일기는 당대의 떠들썩한 문제들 을 넘어서 르네상스와 고대의 사상에 관심을 두고 있다. 플라 톤, 아리스토텔레스, 플로티노스, 세네카, 마르쿠스 아우렐리 우스 Marcus Aureli us 내지 에 픽 테 토스 Ep ikt e t o s 같은 사상가들 과 직접 대화를 나눈다. 이제 철학을 논리적 개념 체계로 혹은 잡다한 과학의 모음으로 환원시키려는 시도는 가장 비위 거슬 리는 일로 치부된다. 그는 철학의 본래 이상 즉 고대의 순수 지혜론 We i she it slehre 의 이상을 되살리고 실현시키고자 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추상적 사변이나 경험적 관찰의 방법에 의존 함이 없이 미학의 문제들을 다루기 시작한다 . 그에게 있어 이 문제들은 이론적으로 다루어지기 이전에 먼저 그 자신의 개인 적인 삶의 문제였다. 그는 미학을 예술 작품의 관점에서 다루 기보다는 진정한 삶을 이룩하는 문제를, 죽 개인의 내적 세계 의 구조 법칙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미학을 탐구하고 이용 하였다. 순수한 지혜론으로서의 철학온, 미의 이론에서 그 구 체적 완성을 볼 때, 비로소 완전하게 된다. 왜냐하면 진정한 진리는 진정한 아름다움이 없이는 불가능하며 진리가 없는 아 름다움도 역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섀프츠베리의 철학과 미 학의 근본 명 제 인 〈모든 아름다움은 진 리 이 다 All beauty is truth〉라는 것은 바로 이런 문맥에서 그 의미가 이해될 수 있 다. 단순히 언어만을 볼 때 이 명제는 프랑스 고전미학이 주장 한 미의 객관성 요구와 다른 점이 없다. 즉 이 명제는 〈오직 진리만이 아름답다Ri en n'est beau que le vra i〉라는 부알로 Bo i­ leau 의 명제롤 번역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유사성은 어 디까지나 외견상의 것이다. 왜냐하면 같은 말이지만 그 의미하

는 사상 내용은 서로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섀프츠베리가 아름다움을 진리라 했을 때, 이 진리는 논리적 규칙, 기본 개 념 내지 원칙으로부터 나오는 명제들의 집합 즉 이론적 인식들 의 집합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진리는 우주의 내적 인 의미 연관이다. 그리고 이 연관은 단순한 개념 분석에서 알 려지지도 않고 귀납적으로 경험의 축적에 의해 파악되지도 않 는다. 그것은 단지 직접적으로 체험되며 직각적으로 이해될 뿐 이다. 체험과 내적 이해의 형식은 아름다움의 현상에서 잘 나 타난다. 여기서는 내적 세계와 외적 세계의 구분이 사라지며, 양 자를 포괄하는 하나의 법칙만이 있는 바, 양자는 각기 독특한 방식으로 이 법칙을 표현한다. 아름다움의 모든 현상에서 나타 나는 〈내 적 인 수 int e r io r numbers 〉야말로 또한 자연과 물질세 계 의 비밀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왜냐하면 자연 내지 물질세계도 단지 겉으로 보기에만 〈외적인 것〉 즉 〈단순한 사물적 현존 내 지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물질세계의 깊은 참된 진리는 〈이 세계 속에는 작용하는 원리가 숨을 쉬며, 이 세계의 모든 피조 물이 각양각색으로 이 원리를 구현하고, 이 원리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논리적인 간접성〉과는 다른 이러한 종류의 반성은, 죽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의 불가분한 관계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이러한 반성온 미를 관조할 때 우리 모두가 지니는 것이다. 모든 미는 진리에 근거하고 진리로 환원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 진리의 완전하고 구체적인 의미는 오직 미에 서만 보여질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새프츠베리는 〈자연(본성)에 따른 삶〉이라는 스토아 학파의 윤리적 근본 요구를 미학에 적 용한다. 인간은 미를 매개로 해서 자기 자신과 세계 사이의 가 장 순수한 조화를 얻는다 . 미를 매개로 해서만 인간은 다음과

같은 것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체험하고 인식한다. 〈하나의 동 일한 근원 형식이 있는 바, 모든 질서와 규칙은, 그리고 모든 통일성과 법칙성은 이 형식에 의존한다. 그리고 하나의 동일한 전체가 있는 바, 이것은 모든 개별 존재자들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 우주의 진리는 말하자면 미의 현상에서 표현된다. 그 진리는 침묵 속에 갇혀 있지 못하고 표현과 언어를 얻는다. 이 언어 속에서 진리의 의미 즉 진리의 참된 로고스 Lo g os 가 비 로소 온전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섀프츠베리의 견해로 인하여 미학은 고전주의적 체계 나 경험주의적 이론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지반 위에 서게 된 댜 여기서 우리는 미학 발전의 참된 전환점에 다다른다. 이 전환점을 전후로 해서 미학 사상가들이나 미학 문제들은 구분 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구분이 곧장 철저하게 나타나지도 않 았고 또 일단 구분이 되더라도 이것이 엄격히 유지되지도 못했 다. 섀프츠베리의 후계자들인 허치슨 Hutc hson, 퍼거슨 Fergu s on 혹은 홈 Home 등도 섀프츠베 리 의 근본 생 각을 순수 하게 드러내기보다는 오히려 이 생각을 다른 원천에서 유래한 사상들과 혼합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절충적 혼합과 이에 따른 희석화에도 불구하고 섀프츠베리의 근본 생각이 지닌 힘은 여 전히 그 위력을 잃지 않았다. 섀프츠베리의 학설은 미학문제 자체의 중심과 초점을 옮겨 놓았다. 고전주의적 미학의 중심 문제는 일차적으로 예술 작품이 되며, 이것을 자연 작품인 사물 의 탐구 방식과 유사한 방식으로 다루고자 하였다. 고전주의적 미 학은 종차 (種差, deff er enti a spe c if ica ) 와 최 근류 (最近類, gen us p ro xim um) 를 결합하는 논리적 정의와 비슷하게 예술 작품을 정 의하고자 한다. 이러한 논리적 정의를 추구하는 가운데 〈유개

념( 類 槪念) 불변성 〉 의 사상 혹은 〈 유개념에 포섭되는 개체들을 지배하는 엄밀한 객관적 법칙 〉 의 사상이 생겨난다. 경험주의적 미학은 탐구의 방법 뿐만 아니라 그 대상에 있어서도 이와 다 르다 . 그것은 예술 작품들을 대상으로 삼아 이것들을 구분하고 분류하고 포섭시키는 일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 려 예술 작품을 보고 즐기는 주관을 문제삼고, 이 주관의 심적 상태를 심리주의적 방법을 써서 인식하고 기술하고자 노력한 다. 여기서 탐구의 중심은 작품의 형태나 형식이 아니라 예술 작품을 체험하여 내면화시키는 심적 과정이 된다. 이 과정을 세밀히 분석하여 그 궁극 요소를 밝히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었 다 . 그러나 섀프츠베리는 이러한 류의 문제들은, 비록 피하지 는 않았다 하더라도 , 결코 철학적 중심 과제로 삼지 않았다. 그가 목적으로 삼는 것은 예술 작품의 질서와 분류도 아니요 작품 감상자의 심리적 과정의 설명도 아니다. 그의 목적은 논 리적 개념 형성도 아니고 심리적 기술도 아니다 . 그에게 있어 미 (美)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다 . 미는 전혀 다른 바탕에서 나오고, 원리적으로 다른 목표를 지향한다 . 미를 관조할 때, 인 간은 창조된 사물의 세계로부터 창조 과정의 세계로의 전환 을, 죽 대상적 현실의 총체인 우주로부터 우주를 내적으로 연 관시켜 형성해 내는 작용력으로의 전환을 감지한다. 이러한 관 조는 예술 작품의 단순한 분석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요, 또 예 술 작품을 수용하는 주체의 심적 과정에 몰두함으로써 얻어지 는 것도 아니다. 섀프츠베리에 의하면, 이런 것들은 미의 중심 점이 아니라 주변에 불과한 것이다. 중심점은 예술품의 수용과 향유에서가 아니라 오직 예술품의 형성과 창조에서만 찾아질 수 있댜 단순한 수용만으로는 불충분하고 무력할 뿐이다. 왜

냐하면 그것 은 미 의 진정 한 원천 인 자발성 S pon t ane it a t으로 나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원천이 일단 열리기만 하면, 주관과 객관 사이의 그리고 자아와 세계 사이의 종합뿐만 아니라, 인 간과 신 사이의 유일하게 가능한 종합까지도 성취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인간을 단순히 창조된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내재적 형성력에서 볼 때 즉 단순한 피조물로서가 아 니라 창작자로서 볼 때, 인간과 신 사이의 대립은 해소될 것이 기 때문이다 . 이러한 참된 형성력은, 인간이 경험적 실재로서 의 피조물 세계 내에 머물면서 이 세계의 질서와 윤곽을 그저 모방하여 그리는 한에서는, 발휘되지 못한다. 그 형성력은 진 정한 모든 예술작품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내적인 창조에서 비 로소 드러난다. 여기에서 인간의 참된 프로메테우스적인 본성 이 열린다 . 여기서 인간은 〈쥬피터 신(神) 아래 제이의 창조 주〉 31) 가 된다. 또 여기서 신적 본질을 파악하는 유일한 길도 열 린다 . 축소된 세계를 스스로 낳아서 대상화시킬 수 있는 예술 가만이, 우주를 〈예술가 자신 속에서 감지하는 형성력과 비슷 한 모종의 힘이 만들어낸 제작품〉으로서 이해할 수 있다. 그에 게 있어서 모든 개별적 존재는 신적인 것의 상징이요 상형문자 이댜 예술가만이 〈자신의 아폴로 (문예의 신)에서 예술가로서 의 신의 영혼〉도 읽어낼 수 있다 .32) 이제 이성과 경험 이의의 제 삼의 근본 힘이 나타나는 바, 섀 프츠베리에 의하면 이 힘은 다른 모든 힘들을 능가하며, 이 힘 31) 이 책 120 쪽 이 하를 참고하라. 32) 이 점에 대해서는 쉴러의 철학적 서간 속에 들어 있는 섀프츠베리 의 기본 사상을 참조하라. Schil ler 전집 (Cott as che S 겁 kularaus g abe) 11 권, 118 쪽.

만이 우리에게 미학 세계의 참된 깊이를 보여줄 수 있다. 한 개념에서 다른 개념으로 나가는 추론적 사유도, 그리고 개별 현상에 대한 꾸준하고 주의 깊은 관찰도 이 깊이를 보여줄 수 없다. 〈 개체에서 전체로 〉 가 아니라 〈전체에서 개체로〉 나가는 〈 직관적 오성 int u i t ive r Vers t and 〉 만이 이 깊이에 도달할 수 있 다. 섀프츠베리는 원형적 지성 int e l lectu s a rchetyp us 으로서의 이 러한 직관적 오성의 개념을 플로티노스의 〈예지적 미 int e l lig i- bles Scho n e> 이 론에서 이끌어 낸다. 그러나 그는 이 개념에 폴 라톤과 플로티노스에게 없었던 새로운 의미를 준다. 이 새로운 의미에 의해서 그는 플라톤이 철학적으로 예술에 가한 비난을 무력하게 만든다 . 예술은 〈그저 사물의 외양인 현상에 머물러 서 이 외양을 가능한 한 충실하게 묘사한다〉는 의미에서의 모 방 M i mes i s 이 결코 아니다. 예술의 모방형식은 전혀 다른 차원 의 것이다. 왜냐하면 예술은 단순히 제작품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제작 행위를 모방하는 것이요, 생성된 것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생성 자체를 모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섀프츠베 리에 의하면 이러한 생성 자체에 직접 참여할 수 있음이 천재 Gen i e 의 참된 본질이요, 비밀이다. 이리 하여 천재 문제는 미 학의 참된 중심 과제가 된다. 논리적 분석이나 경험적 관찰은 이 문제를 제기조차 할 수 없다. 오직 〈직관의 미학〉만이 이 문제에 참된 내용을 줄 수 있다. 어떤 낱말의 역사를 기초로 해서 사상 내지 이념 발전을 해석하려 할 때 일반적으로 주의 롤 요하거니와, 천재라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천재〉라는 말은 섀프츠베리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그는 미학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사용되고 잘 알려진 술어로서 이 말을 사용한다. 그러 나 그는 이 술어의 애매성과 다의성을 없애버리고 대신 철학적

으로 독특하고 풍부한 의미를 부여해 준 최초의 사람이다. 고 전주의 미학에서 천재 개념은 무엇보다도 〈자연적 소질 ing en i- um 〉이라는 말과 관련되며, 자연적 소질은 모든 정신작용의 근 본 힘으로서의 〈이성〉과 같은 의미로 된다. 천재는 최고로 승 화된 이성이요, 이성 능력의 빼어남이다. 〈천재는 탁월한 이성 이다.〉 33) 미학에 하나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서 〈섬세성 de- l ic a t esse 〉의 미학을 전개시킨 부우르의 노력은 고전주의 미학의 이러한 일면성을 어느 정도 극복한다. 부우르는 천재를 단순히 〈양식(良識, bon sens) 〉의 발전된 모습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다 복잡한 기능의 수행으로 여긴다. 천재의 힘은, 사물의 단 순한 진리를 파악하고 이 진리를 가능한 한 명석하면서도 뜻깊 게 표현할 줄 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뒤덮혀 감추어진 연관 관계를 찾아낼 줄 아는 능력이다. 〈천재적〉 사상온 일상적 궤 도(軌道)를 떠나서 사물에 대해 놀랄만한 통찰을 하고, 이를 은 유나 비유를 써서 비범하게 표현한 사상이다 .34) 그러나 여기서 도 천재는 단순한 정신의 영역내에 머무를 뿐이다. 다시 말해 여기서 강조되는 천재의 특성은 정신의 정교함, 예리함, 내지 민첩성이요, 이런 것들이 〈섬세성〉의 개념에서 포괄적으로 표 현된다. 섀프츠베리는 천재에 대한 고전주의적 개념과 부우르 의 해석을 넘어선다. 그에 의하면 천재는 단순한 느낌과 판단 과 평가의 영역을 넘어서서 〈형성하고 창조하는 참된 산출력〉 을 의미한다. 이리하여 섀프츠베리는 앞으로 전개될 천재 문제 에 대한 확고한 철학적 발판을 처음으로 마련한다. 그가 이 문 제에 대한 명확한 기본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이후로 체계적 33) 이 책 376 쪽을 참조하라. 34) 이 책 398 쪽 이하를 참조하라.

미학의 참된 창시자들은 통속적 철학이나 심리학이 보여준 잡 다한 변동에도 불구하고 이 기본 노선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따라 갈 수 있었다. 이로부터 18 세기 독일 지성사의 근본 문제에 이 르는 길 즉 문예 비평의 모범이 된 레싱의 『함부르크 희곡론』 과 칸트의 『판단력 비판』에 이르는 길은 곧장 뻗어나간다 .35 )

35) 판단력 비 판의 역 사적 배 경 에 관한 보이 믈러 Alfr ed Baeumler 의 세 심하고 철저한 탐구가 섀프츠베리의 이러한 계기를 거의 전부 간과하 고 있는데, 이는 기이한 일이다. 이 탐구는 섀프츠베리 이론의 중요 한 의미를 거의 알아보지 못했다. 따라서 보이믈러의 역사적 조망과 강조점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마련이었다. 보이물러는 18 세기 독 일 미학이 영국보다 프랑스에서 더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하 며, 레싱과 칸트에게서 정점에 도달한 천재 개념에 대해서도 이와 똑 같은 해석을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하여 쓰고 있다. 〈독일에서 는 영국의 영향을 받기 훨씬 이전에 이미 볼프학파에서 천재개념이 유행하였다. 천재개념과 관련하여 외국의 영향이 있었다면, 그것은 영국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온 것이다 . 18 세기 후반기에 가장 많이 읽 혀지고 인용된 책 중의 하나가 엘베시우스의 『 정신론 De !'esp ri~』 (1759) 이다 . 이 책에서 그는 정신을 ‘사상울 창조적으로 산출하는 능 력 ’ 이라고 정의하고 ‘천재란 항상 창안(創案)울 전제한다’ 고 말한 다.〉 그러나 만일 의국의 영향이 정말로 엘베시우스의 『정신론』에서 왔다면, 이것은 지성사의 맥락에서 볼 때 거의 기적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엘베시우스의 천재 개념에 대한 설명 어귀만을 보지 말고, 그의 『정신론』 전체의 의미를 고려해 볼 때, 엘베시우스의 〈정신〉에 관한 이론은 〈천재 동경〉의 기본 사상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이 천재 동경의 정신사적인 논리적 전제들에 대해서도 어긋나기 때문이다 . 엘 베시우스의 저서는 철저히 감각주의에 입각한다. 이 책은 감각주의의 명제를 고양시켜서 〈감각을 넘어서는 보다 높은 정신력을 가정하는 것은 환상일 뿐이요, 오성의 자기 기만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따라 서 감각보다 더 높다고 일컬어지는 모든 능력들은 정신의 근본 요소 로서의 감각으로 철저히 환원되어야 한다. 18 세기의 저술가들 중에서 정신의 자발성과 의지의 독자성을 없애버리는 이러한 감각주의를 엘 베시우스보다 더 강조한 사람은 없다. 그리고 바로 이런 면에서 엘베 시우스는 프랑스 내의 자기 친구들에 의해서도 반박을 당한다 . 따라 서 이 책이 독일의 〈천재 운동〉에 대해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그

예술적 창조의 자발성에 관한 섀프츠베리의 순수이론은, 만 약 이것이 다른 방향의 지적 운동으로부터 후원과 지지를 얻지 못했더라면 그 영향력이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18 세기 영국 문학에서 천재의 문제가 다루어질 때마다 그리고 천재와 〈규칙〉 의 관계가 논의될 적마다, 추상적 추론은 언제나 구체화된 천 재의 두 실례와 손을 잡는다. 셰익스피어 (1564-1616) 와 밀턴 (1 608-1674) 의 두 이름이 언제나 거듭하여 입에 올랐다. 이 두 사람은 〈천재〉 문제의 모든 이론적 탐구의 확고한 축이 되며, 천 재성의 가장 깊은 본질을 보여준다. 이 두 사람은 단순한 가능 성으로 그려볼 수 있었던 천재의 모든 것을 구현하고 있다. 에 드워드 영 E. Youn g (1683-1765) 의 『창조적 구성론 Conje c tu r es on Or igina l Comp os iti on』 은 셰 익 스피 어 와 밀 턴 이 라는 천 재 를 조명하고자 쓴 책이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작품들과 밀턴의 실 리고 더욱이 영국의 선구자보다 더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 말이다. 오히려 이 천재 운동은 엘베시우스의 기본 이론이 철저히 비판되고 부정되었을 때에 비로소 그 이론적 기반을 얻게 된 댜 물론 엘베시우스가 〈창안(創案)능력〉을 통해 천재를 설명하고 있 지만, 그가 거듭해 강조하는 말은 〈정말로 자발적이고 근원적인 참된 창안능력이란 인간에게 없으며, 창안이라 불리는 모든 것은 오히려 주어진 감각 요소들을 교묘히 선택해서 결합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묘한 결합이 〈새로움〉의 외양을 지니나, 그것은 참 된 새로움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결합에 의해 생긴 모든 것은 감각에 주어진 것을 치장한 것이요, 변용시킨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 다. 엘베시우스의 이러한 이야기는 독일의 〈천재 운동〉의 모든 사상 과 요청에 심하게 대립된다. 엘베시우스로부터는 〈미의 자율성〉 사상 에 이르는 길이 뚫리지 않는다. 이에 반하여 확실히 〈열광 Enth u sia s mus>, 〈무관심 적 만족 int e r essloses Wohlge f a ll en> 혹은 〈세 계의 천재(신)〉에 못지 않은 〈인간속의 천재〉 등등에 대한 섀프츠베 리의 사상이야말로 레싱, 헤르더 및 칸트에게서 체계적으로 전개된 새로운 사상의 모체가 된다.

락원에 대한 고찰로부터 영이 도달한 확신은, 시적 천재의 창 조성이 평범한 지적 기준에 의해 즉 추론적 오성의 기준에 의 해 파악될 수 없다는 것이다 . 천재가 이러한 오성과 거리가 먼 것은 마치 마법사가 건축가와 거리가 먼 것과 같다. 마법사라 는 말에서 영은 그의 천재론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영 은 모든 위대한 예술품 속에 들어 있는 마법에 대해 깊고 강한 감응을 받는다. 그의 이론은 바로 이러한 감응을 언어로 표현 하고, 개념적인 지식으로 옮겨 놓으려는 시도이다 . 시작(詩作) 의 마법에는 지적 매개가 필요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성가 신 것이 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마법의 참된 힘은 직접성에 있 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는 학교 교육을 받지 않았으나 그의 앞에는 다론 사람이 읽을 수 없는 두 권의 책 죽 자연의 책과 인간의 책이 항상 펼쳐져 있다 .36) 셰익스피어의 비극 작품들을 낳은 근원적인 생명력은 이미 18 세기의 영국 희곡에서 사라진 지 오래인 것처럼 보이며, 그가 희곡 작품에 불어넣은 생생한 숨결도 또한 메말라 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이론은 여 전히 이 위대한 영혼의 그림자를 찾아 언어로 표현하고자 시도 한다. 왜냐하면 이론은 미의 참된 본성이 〈창조적 구성〉에 있음 을, 그리고 모방자나 아류가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님을 확신하 기 때문이다. 천재의 창조적 구성만이 참된 마력을 지닌다. 이 러한 구성은 우리의 오성이나 미적 감식력에 말을 건넬 뿐만 아니라 우리 영혼 속의 정열을 일깨우고 정열의 격정을 달래기 도한다.

36) Young, Conje c tu r es on Or igina l Comp os it ion . 영 Youn g의 이 론을 보다 자세 히 알려 면 슈타인 H. von S t e i n 의 Di e Ents t e h ung der Neueren Astb e tik , 136 쪽 이하를 보라.

허치슨은 『미와 덕의 원천에 관한 탐구』 (1726) 에서 음유시 (哈 遊詩)처럼 표현된 섀프츠베리의 미학사상을 줄기차고 철저하게 다시 논구하고 가다듬고 정돈한다. 허치슨의 책을 통해서 비로 소 섀프츠베리의 사상은 시대의 유행이 된다 . 그러나 섀프츠베 리 사상은 허치슨의 재해석을 통해서 그 본래적 의미가 다소 변질되고 있다. 왜냐하면 허치슨은 섀프츠베리가 날카롭게 구 분한 〈수용성 〉과 〈자발성 〉의, 그리 고 〈감각〉과 〈직 관〉의 날카 로운 구분을 다시 흐릿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미의 본성을 그 리고자 허치슨이 사용한 표현들이 이미 이런 경향을 드러낸다. 왜냐하면 그가 미 인식의 직접성을 설명하고자 할 때, 그는 감 각 지각에 비유해서 설명하는 것보다 더 좋은 비유법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눈이 색채 지각의 독특한 감각기관이고, 귀 가 소리 지각의 독특한 감각기관이듯이, 미를 지각하는 독특한 감각기관이 있는 바, 이것은 다른 것으로 더 이상 환원될 수 없는 궁극적인 것이다 . 눈이나 귀가 없는 사람에게 색채나 소 리를 직접 알려주는 방법이 없듯이, 미의 감각기관이 없는 사 람에게 미를 직접 알려주는 방법도 없다 .37) 허치슨이 미, 조화 및 규칙성에 대한 감정을 〈내적 감각〉과 관련시키고, 외적 감 각과 구별해서 이 내적 감각에 독자적인 고유성을 부여하고 있 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섀프츠베리의 사상의 독특성은 어 쩔 수 없이 다시 평범하게 변질된다. 왜냐하면, 이로 말미암아 〈천재〉는 다시 수용적인 감수성으로 되고 〈섬세한 미적 감식력〉 과 같은 수준으로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 허치슨은 섀프츠베리의 기본 전제를 고수하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제육 37) Hutc h eson, Inq u ir y in to the Or igina l of our Ideas of Beauty and Virtue , sect. 12.

감(弟六感, der sechste Sin n )> 이론에서 방법적으로 딜레마에 빠 지 고 만다. 하인 리 히 폰 슈타인 Hein r ic h von S t e i n 은 그의 책 『근대 미 학의 성 립 Ents te h ung der neueren As t he tik,』 에 서 허 치 슨 의 이론이, 말하자면, 〈선천적 감각〉이라는 모순에 빠진다고 말한다 . 왜냐하면 허치슨의 이론은 한편으로 경험론의 모든 귀 결을 반대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보편타당한 감각을 내세우고 이것에 미를 근거짓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제기되는 비판 은 허치슨의 사상 자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이 사상을 표현 하는 언어에 관련된 것이다. 이러한 표현은, 섀프츠베리의 직 관적 미학의 개념을 경험주의 언어로 표현하려고 하기 때문 에, 그 뜻이 매우 애매모호하게 된다. 섀프츠베리의 미학적 직 관 개념의 특징은 이성과 경험 혹은 선천성과 후천성의 양자를· 다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의 직관〉은 18 세기 인식론 전체를 지배했던 이 양자의 도식적 대립을 극복하는 제 3 의 길 을 보여 주려는 것이요, 이 대립 위에 새로운 자유의 영역을 위한 자리를 정신에게 마련해 주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섀프츠 베리에게 있어 미는 데카르트 의미의 〈본유 관념〉도 아니요, 로 크 의미의 경험적 개념도 아니기 때문이다. 미는 독자적이 고, 근원적이요, 〈본래적〉이고 필연적이다. 왜냐하면 미는 그 저 우연이 아니라 정신의 실체에 속하는 것이요, 이 실체를 고 유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는 경험에서 얻어 지는 내용도 아니요, 정신에 처음부터 각인된 관념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정신의 독특한 방향이요, 순수 에너지요, 원천 적인 기능이다. 이렇게 해서 섀프츠베리는 자연의 이해에서와 마찬가지로 예 술의 이해에 있어서도 순수 역동적 d y nam i sch 인 견해를 주장한

다. 그러나 이 〈역동설(力動說, D y nam i s mus) 〉 은 이와 유사한 다른 견해들과 구별되어야 한다 . 언뜻 보기에, 섀프츠베리와 뒤보스는 같은 견해를 주장한 듯이 보인다. 왜냐하면 뒤보스의 『시와 회화의 비판적 고찰』도 〈미의 가치와 매력이 정신적 힘 들을 고양시키고 활기차게 해주는 데에 있다 〉 는 명제를 정초하 고 발전시키고자 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뒤보스는 이러 한 미적 활기참을 예술가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순전히 관람자 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그는 창작자의 활동이 아니라 감상자의 활동만을 고찰하기 때문에, 뒤보스의 미에 관 한 모든 척도와 가치는 섀프츠베리보다 훨씬 더 유동적이다. 이 두 사람은 그들 주장의 부정적인 면에서만 일치하고 적극적 인 면에서는 서로 다르다. 즉 그들이 비판하고 부정하는 면에 서는 일치하나, 그들이 주장하는 점에서는 다르다. 그들은 미 를 엄격하고 확고부동한 규칙에 맞추려는 모든 시도에 반대한 다 . 그들은 〈이러한 규칙들을 타파하고, 자신의 완전한 힘으로 부터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내는 것〉이 천재의 능력이요, 권능 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들은 단순한 〈추리〉나 추론적 개념 규 정 혹은 개념 분석을 통해서 미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모든 시 도에 반대한다. 이에 반해 그들은 미의 본질에 관한 〈직접적〉 인식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 직접성의 원천이 양자 간에 서로 다르다. 섀프츠베리에게 있어 원천은 순수 형상화의 과정에 있 는 반면, 뒤보스에게 있어 그것은 궁극적으로 수용과 이해의 양상에 있다. 모든 미학적 향유는 예술품의 모습이 관람자에게 불러일으키는 반응에 기인한다. 관람자는 스스로 예술품에 의 해 감옹받고 감동됨을 느낀다. 이러한 감동이 크면 클수록, 이 감동이 강하면 강할수록, 예술가의 목적은 그만큼 더 완전하게

성취된다. 뒤보스는, 이 감동 자체만을 추구함으로써, 감동의 강도를 미적 가치 판단의 유일한 척도로 삼는다. 그에게 있어 감동의 성질이나 그 독특한 본성 내지 고유성은 문제가 안 된 댜 이런 것들은 때때로 거의 무의미한 것으로 취급된다. 뒤보 스의 저술에서 처음부터 나타나는 특색은, 〈정신은 육체처럼 욕구를 가지며, 정신의 강력한 충동은 정신을 항상 운동하게 하는 충동이다〉라는 명제를 정초하기 위해 그가 처음부터 순수 예술적 현상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충동 일반 에 대해 언급한다는 사실이다. 그는 그림을 보거나 비극을 볼 때 받는 인상과 죄인의 참혹한 처형, 칼싸움 내지 투우에서 받 는 자극을 구별하지 않는다. 양자의 경우 모두 비슷한 충동이 일어난다. 인간은 아주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고 잘 참고 견디 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모습을 보고자 한다. 왜냐하 면 이런 모습을 봄으로써 그의 무기력 내지 심심함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혼의 무기력에서 나오는 지루함은 인간 에게 너무나 괴로운 악이 되기 때문에, 인간은 무기력의 고통 에서 벗어나고자 때때로 아주 고통스러운 일울 자초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홍분시킬 수 있는 일들을 본능적 으로 추구한다. 비록 이런 일들로 인하여 때때로 불안하고 슬 픔에 찬 나날들을 보낸다 할지라도, 그렇게 한다. 일반적으로 보아 인간은 격정으로 인한 고통보다는 격정이 없는 무기력한 삶에서 오는 고통을 참기 어려워한다•〉 38)

뒤보스에게 있어 예술품의 본질과 효과를 이해하는 수단인 역동설은 섀프츠베리처럼 순수 창조적 형성화의 역동설이 아니 38) Dubas, Refle xi o n s Cr itiqu es sur la Poesie et l a Pe int u re, l 절 .

라 수동적인 격정의 역동설이다. 이 역동설은, 섀프츠베리처럼 예술적 창작 과정의 중심에 서서 이 과정의 독특한 내적 규칙 과 율동을 밝혀 내 려 는 직 관적 미 학이 아니 라 〈감격 Pa t hos 〉의 미학이다. 그것은 시와 미술품이 감상자의 마음 속에 불러일으 키는 순수 감격을 조사하고자 한다. 모름지기 천재로서 예술가 는 자신의 작품에서 객관적 규범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작품 속에서 자신의 천재성을 드러내어야 한다. 〈언제나 감격을 주 어라! 그리고 너의 작품을 보거나 듣는 자로 하여금 결코 시큰 둥한 마음이 되지 않도록 하라!〉 이 말은 미학자로서 뒤보스가 예술가에게 요구한 제일의 준칙이다. 미술이나 시의 가치는 대 상과 관련된 진실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심상의 감격 le pa- the ti qu e des i ma g es 〉에 있다 . 뒤보스의 미학은 이렇게 격정의 원천을 헤아려냄으로써 미학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뒤 보스의 이러한 방법론은 처음부터 그 한계가 뚜렷했다. 왜냐하 면, 뒤보스의 경우처럼, 오로지 감상자만을 고려하는 미학 이 론은 예술품의 미학적 내용을 단지 감상자에게 주는 효과만으 로 측량하고, 마침내 내용과 효과라는 미학적 관계의 두 항을 완전히 혼동해 버리는 위험에 빠지기 때문이다 . 예술품은 이제 단순히 구경거리가 되어버릴 위험이 생긴다. 예술품이란 그저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관람자의 내적 관심과 자극을 일으키고 강화시키는 것이라고만 한다면, 무엇에 의해서건 이러한 효과 가 일어나기만 하면. 족할 것이요, 이 효과가 무엇에 의해 일어 나느냐 하는 것은 상관이 없게 될 것이다. 효과의 강도만이 효 과에 대한 미학적 기준이 되며, 자극의 강도만이 자극의 가치 롤 결정하게 된다. 회화와 시는 오직 감상자를 만족시키고, 감 상자에게 감홍을 주는 것을 목표로 삼으며, 이 목표 달성의 강

도에서 그 탁월성이 결정된다. 〈탁월한 회화나 시는 감동과 만 족을 준다.〉 39) 칸트는 행복주의의 윤리학이 도덕적 가치의 높고 낮은 차이를 무시한다는 점에서 이 윤리학에 반대한다. 다시 말해서 행위의 윤리적 가치가 오로지 그 행위가 낳는 쾌락의 양에 의해 결정된다면, 〈이 쾌락이 어떤 종류의 것인가〉 혹은 〈이 쾌락이 어디로부터 어떻게 해서 생겼느냐〉하는 문제는 전 혀 상관이 없게 된다 . 이와 비슷한 비판은 〈미학적 내용을 감 흥으로 보고 또 이 감홍울 결국 자극과 매력으로 해소해 버리 는 뒤보스의 미학〉에 대해서도 타당한 것이다. 뒤보스의 미학 에서 예술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은 자극의 사실 여 부에 있다. 〈시(詩)의 가치를 아는 유일한 방법은 이 시가 독자 에게 주는 인상을 조사해 보는 것이다.〉 40) 미적 감식력에 관해 서도 뒤보스의 이론은 섀프츠베리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뒤보 스가 미적 감식력의 〈직접성〉을 강조하고 예술품의 판단 기준 을 〈이성적 논의〉가 아니라 〈감정〉에서 찾을 때41), 이는 외견상 섀프츠베리와 일치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뒤보스는 직접성 울 섀프츠베리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설명한다. 섀프츠베리가 직접성을 순수 미학적 직관의 원리에서 찾는 데 반하여, 뒤보 스는 단순한 감각에 유추하여 그것을 찾는다. 이렇게 하여 뒤 보스에게 있어 〈미적 감식력 Geschmack 〉은 감각적 〈미각 Schmecken 〉에 가까워진다. 언젠가 뒤보스는 말하기를 〈혀가 음식물의 맛을 판가름하듯이, 우리의 감정은 예술품을 판가름 한다〉고 하였다. 이렇게 되면 〈감정〉과 단순한 〈감각〉을, 그리 39) Dubos, 같은 책, 2 부, 1 절. 40) Dubos, 같은 책, 2 부, 24 절 . 41) Dubos, 같은 책, 2 부, 23 절.

고 〈아름다움〉과 〈감각적 쾌락〉을 구분해 줄 확실한 원리가 사 라진다. 이에 반하여 섀프츠베리는 이러한 구분을 고찰의 중심 문제로 삼으며, 이러한 구분으로부터 그의 미학의 독창적 성과 인 〈무관심 적 만족 int e r esseloses Wohl g e fa llen 〉이 나온다 . 왜 냐 하면 섀프츠베리에게 있어 미의 본질과 가치는 감상자에게 끼 치는 자극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가 인간에게 형식의 영역을 열어준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자극에 지배되는 동물세계 는, 한 순간도 이 자극의 세력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순 수 형식의 세계를 알지 못한다 . 형식이 파악되고 그 순수한 의 미가 이해되려면, 형식은 단순한 작용 효과로부터 구분되어서 미학적인 순수 관조의 독자적 대상이 되어야만 한다 .4 2 ) 단순한 미의 감각과 구별되어야 할 미의 직관은 이러한 관조에서 비로 소 생길 수 있다. 그리고 이 관조는 영혼의 단순히 수동적인 상태가 아니라 영혼의 가장 순수하고 독자적인 활동성이다. 이렇게 하여 아름다움과 참됨의 관계 내지 예술과 자연의 관 계는 새로이 규정된다. 섀프츠베리는 양자의 철저한 조화를 주 장할 뿐만 아니라 양자의 차이점을 없앰으로써 완전한 동일성 울 주장하려는 듯이 보인다. 섀프츠베리의 〈모든 아름다움은 참됨이다〉라는 명제를 아름다움의 내재적 독립성에 대한 비판 으로 본다면, 이는 이 명제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섀프츠베리 가 주장하는 참됨과 아름다움 사이의 조화는 〈어느 하나가 다 른 하나에 의존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일 방적 의존성을 방지하려는 것이다. 참됨과 아름다움의 관계는 인과적 관계가 아니라 본질적 관계이다. 그것은 자연과 예술의 42) Schafts b ury , The Moralist , Part 3, Sect . 2 ; Characte ristics; second edit . , London, 1714, II, 424 쪽.

본질을 규정하려는 것이지 두 가지 창조 사건의 시간적 선후를 규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섀프츠베리에 의하면, 예술은 물론 자연에 꽉 매여 있어서 자연을 넘어서는 것을 추구할 수도 없 고 추구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예술에서 요구되는 자연과의 내적 일치는, 〈 예술이 경험적 세계에 들어가서 이 세계를 모방 하는 것 〉 이 아니라 〈 예술적 창조 속에서 자연의 ‘진리 ’ 가 구현 됨〉을 뜻한다. 왜냐하면 자연의 진리 죽 자연 자체는, 그 깊은 의미에서 볼 때, 창조된 사물의 총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우 주의 형식과 질서를 낳는 창조적 힘〉을 뜻하기 때문이다. 오직 이런 점에서만 미와 진리가 그리고 예술가와 자연(의 힘)이 같 아질 수 있다. 참된 예술가는, 자신의 창조 요소들을 자연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 〈 근원적으로 통일된 전체로서 자기 앞에 놓 여 있는 순수 내적인 본 Mus t er 내지 원형(原形, Vorb il d) 〉을 따 를 뿐이다. 이 원형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적 사물과 일치하지 않지만 사물의 본질적 진리와 일치한다. 예술 가의 창조는 주관적 상상력의 소산이 아니라 내적인 참된 필연 성에서 나왔다는 의미에서 참된 존재를 표현한다. 천재는 이 법칙을 외부로부터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의 근원성 에서 산출한다 . 이 법칙이 자연에서 온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 고 그 법칙은 자연과 일치하며, 자연의 근본 형식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형식을 발견하고 확증해 준다. 〈천재는 영원히 자연과 동맹을 맺고 있다. 그래서 하나가 약속한 것을 다른 하나는 틀림없이 수행한다.〉 쉴러의 이 말은 자연과 예술 의 관계에 대한 섀프츠베리의 근본 견해의 핵심을 아주 간결하 게 표현해 준다 . 천재는 자연이나 진리를 찾을 필요가 없다. 천재는 이것들을 자신 속에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천재는, 자

기 자신에 충실하면, 언제나 이것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 이렇 게 해서, 〈고전주의적 미학의 자연의 모방원리 〉 에 반대되는 〈 주 관성〉의 원리가 타당하게 된다. 또한 이 주관성은 심리학적 경 험주의의 주관과도 전혀 다르다. 왜냐하면 경험주의에 있어 자 아는 단순한 〈관념의 다발 〉 로 해소되지만, 섀프츠베리에게 있 어 자아는 근원적인 천재성이요 쪼갤 수 없는 통일성이기 때문 이다. 바로 이러한 자아의 통일성을 통해서 우리는 우주의 근 본 형식과 의미를 직접적으로 통찰할 수 있으며 〈 우주의 천재 즉 신(神 )Gen i us des Alls 〉를 이해하고 느끼며 파악한다. 섀프츠 베리의 진리는 사물의 단순한 객관성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주 관속의 자연〉을 의미하며, 그는 이러한 자연을 미의 규범으로 삼는다. 칸트가 『판단력 비판』에서 천재를 〈예술에 규칙을 부 여하는 재능〉으로 규정할 때, 그는 물론 이 명제의 선험적 정 초를 자신의 고유한 방식으로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명제 의 순수한 내용은 섀프츠베리의 〈직관적 미학〉의 원리 내지 전 제와 완전히 일치한다 . 18 세기 중엽부터 미의 분석과 더불어 〈숭고(崇高, das Erh- abene) 〉의 분석이 점차 명료해짐에 따라, 미학적 〈주관성〉의 개념은 보다 깊은 의미를 얻게 된다. 숭고의 분석은 물론 내용 적으로 볼 때 새로운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주제의 싹온 철학적 미학의 첫 출발에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고전 주의 미학도 고대의 전통으로부터 이 주제를 빌려온다. 부알로 는 1674 년에 숭고함에 관한 롱기 누스 Lon gi nus43) 의 저 술을 번역 43) 역주 : 롱기누스 Lon gi nus( 약 213-273) 는 신플라톤주의자로서 풀로티 노스와 달리 〈이 데아는 신적 이성 죽 누스로부터 독립 하여 존재 한다 〉 고 주장한다.

하고 주석했다 .44) 그러나 이 주석에는 18 세기 미학에서 다루어 진 숭고의 체계적 의미가 아직 엿보이지 않는다. 버크 Burke 의 『숭고와 미의 원천에 대한 철학적 탐구』(1 756) 는 이 문제에 대 한 중요한 의의를 지니는 최초의 저술이다. 이 책은 철학적이 라기보다는 심리학적이다. 그것은 통일된 미학 이론을 추구하 기보다는 미적 현상들을 분명히 구분해서 이들을 있는 그대로 충실하게 기술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순수 기술을 통하여 그는 지금까지의 미학체계가 지닌 결함을 발견한다. 미적 대상 의 특징을 질서, 균형, 명료한 한계 및 단순성으로 규정하는 한, 이 규정은 미학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지니는 모든 현상들 울 다 포괄할 수 없다. 이론적인 편견이 없이 있는 사실을 그 대로 관찰할 때 드러나는 일군의 미학적 현상들이 이러한 규정 올 벗어난다. 조화로운 균형 내지 엄격한 형식의 통일성으로서 의 미는 실상 영혼의 가장 깊은 전율도 그리고 가장 강력한 예 술적 체험도 주지 못한다. 형식의 통일성보다는 오히려 형식의 분해 내지 완전한 해체가 보다 강력한 자극을 준다. 엄격한 고 전주의적 의미의 〈형식〉 뿐만 아니라 〈기형(崎形, U nfo rm) 도 미적 가치와 미적 권리를 지닌다. 규칙화된 것 뿐만 아니라 무 규칙적인 것도, 일정한 기준에 의해 파악될 수 있는 것 뿐만 아니라 어떤 기준도 허용하지 않는 것도 미적 가치를 지닌다. 지금까지의 미학의 범주를 벗어나는 이러한 현상을 버크는 〈승 고〉라고 부른다. 이러한 숭고는 조화라는 고전적 미학의 요청 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숭고의 근본 특성은 단순한 조화를 초 월했기 때문이다. 숭고는 이러한 초월을 통해서만 성립하고 작 44) 이 번역에 대해 자세한 것은 앞에서 인용한 슈타인의 책, 4 쪽을 보 라.

용한다. 우리의 순수 직관을 통해 내적으로 형식화되고 한정된 것뿐만 아니라, 우리에 의해 형식화되고 규제되기는커녕 오히 려 우리를 압도하는 것도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이러한 파악 불가능한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강렬한 감동을 준다. 〈엄청 난 것 das Un g eheure 〉과 마주쳤을 때 우리는 자연과 예술의 힘 울 가장 잘 체험한다. 우리가 엄청난 것에 그저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엄청난 것에 직면해서 우리의 모든 힘이 솟 구치고 고양된다는 사실, 이 사실이야말로 숭고 현상에서 나타 나는 가장 깊은 미적 자극의 바탕이다. 숭고는 유한한 것의 한 계를 해소(解消)시킨다. 그러나 자아는 이 한계의 해소를 파괴 로서가 아니라 일종의 고양(高揚)과 자유로 느낀다. 왜냐하면 이제 자아가 자신 속에서 발견하는 무한함의 느낌에서, 자아는 자기 자신의 무한함에 대한 새로운 체험을 즐기기 때문이다. 숭고에 대한 이러헌 파악과 설명은 고전주의적 미학의 한계를 넘어설 뿐만 아니라 섀프츠베리도 넘어선다. 왜냐하면 섀프츠 베리가 그의 저서 『모랄리스트』의 자연 찬가 속에서 숭고에 대 한 깊은 이해심을 보이긴 했지만, 그는 역시 형식의 이념을 미 학의 근본원리로 삼기 때문이다. 이러한 숭고 개념의 도입에 의해 〈주관성〉의 개념도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된다. 숭고 개념 의 정신사적 의미는 〈행복주의의 좁은 한계가 숭고개념을 통해 극복된다〉는 사실에 있다. 18 세기의 윤리학이 그렇게 애를 썼 으나 성공하지 못한 행복주의의 극복은 이제 미학의 도움을 통 해 이루어진다. 버크는 숭고에 대한 이론을 전개시키기 위해서 먼저 미적 〈쾌락 Lus t〉의 개념을 분석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분석을 통해 그는 감각적 인 향락 GenuB 과도 다르고, 미 의 관조 에서 느끼는 기쁨 Freude 과도 다른 또하나의 독특한 종류의 쾌

락을 알게 되었다. 숭고한 것에 대한 느낌은 향락이 커진 것도 아니고 기쁨이 커진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이 양자에 대 립된다. 그 느낌은 단순히 만족적인 〈쾌락p leasure 〉이라고 말 할 수 없다. 그것은 전혀 다른 정서라 할 수 있는 〈희열 de lig h t〉 이다. 그리고 희열은 두려움과 무서움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것들을 포함하고 이것들에 의존한다. 이렇게 하여 순 수 미적 쾌락의 한 원천이 드러나는 바, 이것은 단순한 행복이 나 향락의 추구도 아니요, 목적 달성에서 오는 만족과도 다른 것이다. 그것은 〈전율 horror 로 가득찬 희열의 일종이요, 두려 움t error 이 가미된 평온함〉이다 .45) 숭고의 문제로부터 귀결되는 또하나의 고양과 자유가 있다. 자연적 대상들에 혹은 운명의 가혹한 힘에 맞서 인간의 내적인 자유가 숭고의 감정을 통해 느껴질 뿐만 아니라, 이 감정은 또한 공동사회의 일원으로서 개인에 부과되는 수많은 제약들로부터 개인을 해방시킨다. 숭 고의 체험에서 이러한 제약들은 허물어지고, 개인은 전적으로 그 자신 홀로 서 있으며, 자연과 사회를 합친 전 우주에 맞서 자신의 독자성과 근원성을 감지한다. 버크는 인간에게 두 가지 근본 충동이 있음을 강조한다. 그 하나는 자신의 독자적 존재 를 유지하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사회 속에서 모여 살려는 충동이다. 숭고의 감정은 전자에 의존하고, 미의 감정은 후자 에 의존한다. 미는 결합하고, 숭고는 해체한다. 미는, 사교와 친교의 알맞는 형식을 만들어내고 예의범절을 우아하게 함으로 45) Burke, A Phil o sop h ic a l Inq u ir y in to the Or igin of our Ideas of the Subli1n e and Beauti fi14 London, 1756, 208 쪽 이 하를 참조. 쾌 락 ple a- sure 과 희 열 de lig h t에 대 한 버 크의 구별 에 관해서 는 Folki er ski , Entr e le Classic i s m e et le Romanti sm e , 59 쪽 이 하를 보라.

써, 인간 사회를 교화시킨다 . 숭고는 자아의 가장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가서 이 깊은 자아를 자신의 것으로 온전히 체험케 해준다. 숭고의 감명만큼 자신감을 그리고 〈근원성과 본연성의 기분〉을 맛보게 해주는 체험은 없다. 이렇게 해서 고전주의 미 학의 발전 과정에서 언제나 부딪쳤던 한계를 넘어설 기초가 마 련된다. 고전주의 미학의 기본신조는, 〈예술작품의 엄격하고 단순한 ‘진리성’ 만을 말한다〉는 것이요, 예술 작품을 볼 때 사 실 자체에 근거한 죽 예술적 장르의 본질에 근거한 조건들만을 따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고전주의 미학은 실제로 이러한 이론 적 이상을 충실히 따르지 못한다. 본래 추구했던 〈자연의 진리〉 대신에 상대적이고 우연적인 〈사회적 진리〉가 들어서며, 보편 타당한 이성의 법칙 대신에 일정한 사회적 관습들이 들어선 댜 46) 숭고의 이론에서 이러한 오류는 가장 쉽게 밝혀질 수 있 다. 왜냐하면 숭고의 이론은 본질과 현상을, 자연과 관습을, 자 아의 참된 깊이와 우연적인 속성 연관을 가장 잘 구별해 주기 때문이다. 천재의 문제와 숭고의 문제는 여기서 같은 방향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바로 이 두가지 정신적 계기를 근거로 하여 개체성 Ind i v i dua lit걸t에 대한 보다 심오한 새로운 개념이 형성되 고 발전되어간다. 5 오성 과 상상력 : 고트쉐드 Go tt sched 와 스위 스 학파 18 세기 독일 미학의 발전과정과 영국 • 프랑스 미학의 발전과 46) 이 책 389 쪽 이하를 참조하라.

정음 비교해 보면, 사상적인 기본 경향이나 정신적인 전체 분 위기에 있어서 특징적인 차이가 드러난다. 개별적인 문제의 내 용이나 근본 개념의 분석 혹은 설명에 있어서 나라마다 엄격한 구별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 18 세기의 다른 모든 영역과 마찬가지로, 미학의 영역에서도 사상들의 끊임없는 교환이 이 루어진다 . 여러 사상들의 실가닥들이 이리저리 서로 엉키고 설 켜 하나의 직물(織物)이 만들어졌는데, 이제 이 실가닥들을 다 시 헤아려 갈라내고, 그 원천을 더듬어 찾아 올라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 독일 미학이 지니는 독특한 위치는 어떤 개 념들이나 원리들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프랑스 문학이나 영국 문학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개념이나 원리가 독일 문학에 있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하지만 프랑스나 영국 문학에서 끊임 없이 흘러 들어오는 모든 자극들은 독일에서 새로운 의미로 그 리고 새로운 목적을 향하여 전용(轉用)되고 조정된다. 독일에서 비로소 미학의 모든 문제들이 체계적인 철학의 지도와 후견 속 에 제자리를 잡는다. 독일의 중요한 미학자들은 단순히 미학적 현상의 영역에 머물러서 이 현상을 관찰하고 기술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항상 예술과 〈정신의 다른 영 역들〉과의 관계를 탐구하고, 오성, 이성 및 의지와 구별되는 〈미학적 능력의 특성〉을 따지고, 그러고 나서 정신의 내적 통 일성을 탐색하고 이 통일성 하에서 정신의 여러 구별 단계들을 체계화하려 한다. 독일 철학의 이러한 체계적 정신은 라이프니 츠에게서 싹이 렀고 볼프에 의해 가다듬어지고 발전된다. 이처 럼 체계적이고 이론적인 학과목으로서의 미학은 프랑스에도 없 고 영국에도 없다. 프랑스의 경우, 18 세기가 시작된 이후 죽 부 우르와 뒤보스의 저술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이후, 데

카르트 철학의 합리적 정신은 서서히 뒷전으로 물러난다. 물론 그 이후의 발전 과정에서도 철학과 미학적 문예비평의 긴밀한 관계가 유지되긴 하나, 철학 자체가 체계적 형식을 포기한다. 콩디야크의 『체계론』이 나온 이후로 모든 방면으로부터 〈체계 정신〉에 반대하는 싸움이 일어난다 .47) 레싱은 디드로에 관해 이 렇게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디드로를 빼놓고는 연극에 전심한 철학자가 한 사람도 없다. 그러나 디드로의 희곡론은 결코 체계적인 것은 못 된다.〉 디드로의 희곡론은 논리적으로 구성된 것도 아니고 추론에 의해 결론을 이끌어낸 것도 아니 댜 그것은 기발한 착상의 연속이요, 따라서 비약적이고 절충 적이다 영국에 있어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미학 분야에서 가 장 심오하고 훌륭했던 사상가요 미래 발전의 진정한 원동력을 지녔던 섀프츠베리도 철학적 체계의 모든 속박을 비웃고 경멸 한다. 〈체계의 길온 바보가 되는 빠른 길이다〉라고 그는 쪽집 게처럼 찍어 말한다 .48) 그러나 독일의 사정은 이와 다르다. 물 론 독일의 미학도 상상력의 근원성과 권리를 위해 투쟁하였지 만, 이때에도 여전히 논리학의 지배가 전반적인 추세이었다. 오히려 독일 미학은 상상력을 위한 투쟁에서 논리학과 긴밀한 협조를 맺는다. 미학자들은 논리학의 지배로부터 상상력을 해 방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독자적인 〈상상력의 논리학〉을 추구한 댜 〈상상력〉과 〈오성〉의 싸움을 주도한 스위스 학파가 고트쉐 드에 반대했을 때, 이는 결코 볼프의 논리적 엄격성의 포기를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미적 감식력의 개선을 위한 상상력의 47) 이 책 23 쪽 이 하를 참조하라. 48()C hSarcahcat efrt iss tb icus,r y,I , S29o0l i쪽lo) g . u y or Advic e to an Aut h or, 3 부, 1 절 .

사용과 영 향 Von dem Ein f l uss e und dem Gebrauche der Ein b il - dungs k raft, zur Ausbesserung des Geschmac ks,』 (17 27) 이 라는 보 드머 Bodmer 의 저술은 볼프에게 헌정(獻里)되고 있으며, 따라 서 이 책이 볼프의 후견 아래 있음을 알 수 있다. 볼프의 〈철학 함의 논증적 방식〉이야말로 원리에 의한 예술 체계의 구성을 비로소 가능케 했다고 보드머는 말한다. 스위스 학파는 단순히 볼프에 머물지 않고 다시 라이프니츠로 되돌아 가되, 그것도 논리학자로서의 라이프니츠에게로 되돌아 간다. 스위스 학파의 주장예 의하면, 예술철학의 정초를 위한 라이프니츠의 중요한 공헌은 〈예정조화의 체계에 의해 감각 이론에 결정적 타격을 준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감각으로부터 ‘부당하게 오랫동안 누렸던 재판관의 지위’를 박탈하고, 감각을 ‘영혼의 판단’을 위한 부수적이고 우연적인 요소로 격하시켰다.〉 49) 스위스 학파 에 있어서 판단문제가 차지하는 아러한 중심 역할을 감안해 볼 때, 스위스 학파는 이 두 학문의 굳건한 결합과 종합을 지향하 는 발전 도상에 있었거니와, 이 발전의 최고 완성은 칸트의 『판단력 비판』에서 보여진다. 이러한 연관을 감안해 볼 때, 고트쉐드와 스위스 학파가 진 정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를 분명하게 말하기 어려워진다. 이 싸움은 18 세기 독일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이 싸움이 독일 사람의 일반적인 지적 생활과 독일 시(詩)의 내적 성 장에 크게 영 향을 준 사실은, 『시 와 진실 Di ch tu ng und Wa- hrhe i~』에서 괴테가 하는 증언을 통해 분명해진다. 그러나 그 49) Bodmer, Br ief w ecbsel von der Natu r des Poetis c ben Geschmacks (1736). 스위스학파와 라이프니츠-볼프 철학의 관계에 대한 보다 상 세한 것은 앞에서 인용한 슈타인의 책 279 쪽 이하와 295 쪽을 보라.

당시의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은 논쟁 문건(文件)들을 만들어내 게 한 이 싸움의 핵심적 사안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 『비판과 훌륭한 미적 감식력을 촉진시키기 위한 할레풍의 노력 Hallisc he Bemuhunge n zur Bef6 r derung der Kriti k und des gu te n Geschmac ks,』이라는 저술의 서문에서 밀리우스 M y li us 와 크라머 Cramer 는 이렇게 말한다. 〈시에 관한 스위스 학파의 저술들은 큰 무리 없이 고트쉐드의 시학과 같은 계열에 나란히 놓여질 수 있다. …… 이 양자간의 싸움의 진정한 원인을 묻는 사람에 게 우리는 충분한 대답을 줄 수 ’ 없다. 언젠가 이 싸움에 대해 서 노래를 짓고자 하는 시인이 있다면, 그는 호메로스가 아킬 레우스와 아가멤논의 싸움을 서술하고자 할 때 필요로 했던 만 큼의 영감을 필요로 할 것이다 . 〉 50) 그리고 이 논쟁에 대한 문학 사적 내지 철학적인 모든 분석은 이러한 영감을 얻지 못한 것 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이 싸움의 진정한 동기와 추진력에 대한 여러 판결들은 여전히 서로 상반되기 때문이다 . 헤트너 Bett ne r 에 의하면, 이 싸움의 표면 밑에 숨어 있는 진정한 원안은 프 랑스의 영향권과 영국의 영향권의 대립으로 여겨진다. 고트쉐 드는 전적으로 프랑스 고전주의의 열렬한 지지자요, 이런 면에 서 그의 역사적 가치는 결정된다. 그러나 이 싸움의 원인을 이 렇게 간단하게 생각할 수 없다 . 왜냐하면 고트쉐드도 영국 문 학의 . 영향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섀프츠베리와 에 디슨 Add i son 을 인용할 뿐만 아니라 에디슨을 본떠 주간지를 발간하기도 한다. 또한 스위스 학파도 프랑스 미학 이론의 영 향을 끊임없이 받는다. 브라이팅거 Bre iti ng er 의 『비판적 시학 50) Hett ne r, Liter atu rg e sescbic i te des acbtz e bnte n Jab rbunderts , 3 판, 3 부, 1 권, 359 쪽에서 인용.

Kr itisc he Di ch tk u nst.fJ 에 대 한 서 문에 서 , 보드머 는 분명 히 뒤 보 스에 의존하면서 〈가장 훌륭한 저술은 규칙의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규칙이 저술에서 이끌려 나온다〉는 명제를 증명하려고 한다. 고트쉐드와 스위스 학파 사이의 진정한 차이는 외적인 것에서가 아니라 내적인 것에서 찾아져야 한다. 즉 이 차이는 어디서 영향을 받았느냐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의 체계적 문제의 싹이 서로 다르다는 데에서 찾아진다. 그리 고 이러한 차이점을 분명하게 드러내려면, 단순한 문학구미학적 문제권을 넘어서서 이 싸움을 보다 포괄적인 지적 투쟁의 한 계기로 파악해야 한다. 고트쉐드와 스위스 학파가 시학의 영역 내에서 확립하고자 했던 명제는 18 세기의 지적인 전체 상황을 고려했을 때 비로소 이해될 수 있다. 언뜻 보기에 매우 기이하 게 생각될는지 모르지만, 이 양자 사이의 대립을 역사적으로 충분히 해명하려면, 논리학의 문제 뿐만 아니라 자연과학적 인 식의 문제까지도 연관시켜 음미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18 세기 새로운 형식의 논리학은 자연과학적인 인식의 도움과 매개를 통해서 비로소 시작되기 때문이다. 보편에서 특수로 나아가 고, 특수를 보편에서 이끌어내려는 순수 연역논리의 이상(理想) 대신에 경험적 분석의 이상이 나타난다. 경험적 분석이라고 해 서 보편적 원리와 원칙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 분석 은 원리나 원칙을 미리부터 확립된 선천적 정립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것들을 현상의 관찰로부터 획득하고, 이것들의 타당 성을 현상에서 찾으려 한다. 이렇게 해서 〈현상〉과 〈원리〉의 상관 관계가 성립하되, 단지 이 연관의 강조점이 달라진다. 미 리부터 가정되고 확정된 원리로부터 현상을 연역해 내는 것이 아니라, 원리는 현상으로부터 이끌어내어지고 또 현상을 통해

서 다시 검증되어야 한다 .S I) 자연과학에서 이러한 방법적 변화 는 데카르트에서 뉴턴에 이르는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그리고 미학에 있어서 그것은 고트쉐드와 스위스 학파의 대립에서 가 장 분명하게 나타난다. 학문의 성격상 서로 사이가 먼 자연과 학과 미학에서 이러한 방법적 변화가 함께 일어났다는 사실은 18 세기의 특징인 사상적 구조의 통일성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 데카르트는 『세계론 LeMond e,』이라는 저술에서 〈 나에게 질료(물 질)를 달라! 그러면 나는 세계를 만들어낼 것이다 〉 라는 말로 자 신의 물리학의 기본을 서술한다. 세계의 기본 골격이 보편적인 운동 법칙에서 명확히 드러나기 때문에, 물리학자나 자연철학 자는 데카르트식의 세계 구성을 시도할 수 있다 . 물리학자는 이 보편 법칙을 경험에서 얻어내는 것이 아니다. 이 법칙은 수 학적인 것이요, 따라서 〈보편 수학 ma t hes i s un i v ersa li s 〉 의 규칙 속에 포함된다. 그리고 이 보편 수학을 정신은 순전히 자기 자 신으로부터 파악한다 . 데카르트와 볼프의 제자인 고트쉐드에 의하면 이와 같은 요구는 시의 영역에서도 관철될 수 있으며, 따 라서 시는 〈이성〉의 지배하에 놓여질 수 있다 . 〈나에게 어떤 소재와 주제를 달라! 그러면 나는 이로부터 시학의 보편 타당 한 규칙에 따라 완전한 시를 구성해 낼 것이다. >이 말은 고트 쉐드의 『비판적 시학』의 기본 골자를 데카르트식으로 바꿔 표 현해 본 것이다 . 〈우리가 바라는 목적에 적합한 도덕적 명제를 먼저 선택하라. 그러고 나서 이 명제를 구체적으로 예시해 줄 만한 보편적인 행위와 사건을 만들어라!〉 이론적 혹은 도덕적 진리인 〈명제〉가 먼저 전제된다. 그리고 이 명제를 예시해 주 기 위해서 죽 이 명제롤 구체적인 실례에서 보여주기 위해서 51) 이 책 75 쪽 이하를 참조하라 .

시적 행위와 사건이 뒤따른다. 그러나 스위스 학파는 이와 정 반대 관계를 설정한다. 이 학파는 〈명제에 앞선 사건의 우위성〉 사상을 말한다. 물론 이 학파도 도덕적 목적을 부인하지 않는 댜 이 학파도 이 목적을 거듭 강조한다. 그러나 이 목적은 오 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상상력에 의해서 도달될 수 있다고 본 다. 시의 임무는 감동을 주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이 학파는 뒤 보스와 일치된다. 그러나 이 감동은 최고의 유일한 목적이 못 된다. 상상력의 감동은 감동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이성적 통찰의 입구를 열게 하는 〈이성적 통찰을 위한 예비 단계〉에 불과하다. 단순한 개념과 추상적 이론이 성취할 수 없는 것을 적절한 은유와 시적 비유가 이룩해 낼 수 있다. 이런 근거에서 시적 비유는 시학에서 중요하고 중심적인 의미와 위치를 지닌 다. 브라이팅거는 『비유의 본성, 목적 및 사용에 관한 비판적 고찰 Kr it isc he Abhandlung van der Natu r , den Absic h te n und dem Ge b rau che der Gle i chn i ss e,』 (Zi.i ri c h , 1740) 에서 고대와 현대 의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예로 들면서 시적 비유의 의미를 설명한다 . 그러나 여기서도 비유는 독립적인 의미와 가치를 지 니지 못한다. 그것은 단지 다른 것을 위한 준바 단계일 뿐이 요, 이 다른 것의 본질이 아니라 껍데기에 불과하다. 〈마치 현 명한 의사가 쓰디 쓴 환약에 금빛을 칠하고 설탕을 바르듯이, 인 간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 진리를 사용하려는 사람들도 이 의사처럼 해야 한다.〉 따라서 『비판적 시학』에서 브라이팅거는 이솝 우화야말로 가장 완전한 시적 장르임을 주장한다. 왜냐하 면 이 우화는 저러한 이중적 임무를 가장 잘 수행해내기 때문 이다 . 우화란 마치 무미건조하고 쓴 진리에 달콤하고 부드러운 예술적 의상을 입힘으로써 인간의 마음을 끌어들여 그 진리에

젖어들지 않을 수 없게 한다 .52) 여기서 또한 처음으로 스위스 시학의 대명사인 〈놀라움 Wunderbares 〉 개념의 의미가 확실해 진다. 놀라움의 가치는 〈상상력의 자유로운 유희〉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이성의 모든 법칙을 벗어남〉에 있는 것도 아니다. 물 론 가장 놀랄 만한 예술품은 〈주어진 현실〉이 아니라 〈가능한 세계의 법칙〉에 관련된다. 그러나 그 예술품이 진정 시적인 것 이 되려면, 그것은 또한 예술의 목적에 알맞아야 한다. 그러한 예술품은 그것이 지닌 새로움과 놀라움에 의해 영혼을 감동시 키고서, 독자의 마음을 시인이 의도한 목적 즉 도덕적 목적에 로 인도한다. 상상적 감동과 이성적 통찰, 의상과 본체, 놀라 움과 도덕적 목적이라는 대립은 천재와 규칙의 대립 관계와 비 슷한 양상을 띤다. 고트쉐드와 스위스 학파는 섀프츠베리적인 〈직관적 미학〉의 천재관과 거리가 멀다. 보드머와 브라이팅거 도 엄격한 규율 훈련에서 해방된 천재론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 라 오히려 규범 Norm 을 수립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때 그들은 시 작품들 속에서 죽 현상 속에서 규범을 찾으려 한다. 그들은 외부로부터 규범을 찾아서 이것을 시작(詩作)에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시 작품을 관찰하고 이로부터 어떤 직관을 얻 은 다음 이 직관내용을 개념 내지 〈사변적 원리〉로 만들려고 한다. 이들이 고트쉐드보다 뛰어난 점이 있다면, 그것은 이들 이 고트쉐드보다 훨씬 더 높고 깊은 시적 직관의 능력을 가진 점이다. 이 능력으로 인해 이들은 호메로스, 단테, 밀턴에 대 해 진정한 시적 체험을 누린다. 그러나 비평가에게 있어 이러 한 체험은 단지 출발점일 뿐이지 목적은 되지 못한다. 비평가 52) Breit ing e r , Cri tisc he Di ch tk u nst, Zuric h , 1740, 166 쪽. 앞에서 인용 한 헤트너의 책 382 쪽을 참조하라.

는 이러한 체험 속에서 흐릿하게 알려진 규칙을 명료한 의식에 로 끌어올려야 한다. 시적 천재를 통해 자연이 이룩한 것, 이 것을 비평 예술은 시 작품 속에서 찾아내어 확고하고 분명한 형태로 변형시켜야 한다. 따라서 여기서도 경험적 분석은, 죽 특수 속에서 보편을 발견하고 구체적 현상에서 숨겨진 규칙을 찾아내는 일은, 그 진가를 발휘한다 . 브라이팅거의 『비판적 시 학』에 대한 보드머의 서문에서 규칙은 자의나 우연의 소치가 아니라 〈 감성적 인상 속에 들어 있는 불변적 요소〉 즉 〈독자의 마음에 끊임없는 영향을 주는 요소〉를 찾아냄으로써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18 세기 자연과학이 경험과 기하학을 서로 연결시켜 상호관련을 맺게 하듯이, 그리고 그것이 실험과 관찰 에서 시작하여 관찰영역 내에서 일정한 수학적 구조를 찾아내 듯이, 스위스 학파도 진정한 예술 비평가의 임무를 그렇게 규 정한다. 비평가는 위대한 예술 작품에 자신을 내맡기고, 이 작 품에 대한 체험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야 한다. 그러나 이 내맡 김이나 이끌림은 단순히 절대적 복종을 뜻하지 않는다. 물리학 자가 감각 소여 속에서 수학적 법칙울 찾아내듯이, 비평가도 상상력의 창조물 속에서 모든 우연을 넘어서는 필연적인 것을 찾아낸다. 그는 예술품에 대한 직접적 관조와 직관에 충실한 다 . 그러나 이 가운데에서 그는 본질적 규정의 형식을 발견하 고 이 형식에 대해 직관이 주는 〈명증적 확실성〉을 확보한다. 6 체계적 미학의 정초: 바움가르텐 Baum g a rt en 칸트는 당시 독일의 모든 사상가들 가운데서 바움가르텐을

아주 높이 평가한다. 그는 바움가르텐을 〈탁월한 분석가〉라고 부른다. 이 말은 바움가르텐의 정신과 학문적 업적을 특징적으 로 나타낸 말이다. 바움가르텐은 그의 저술 속에서 『개념 규정 및 분석』의 기술을 가장 세련되게 발전시켰다. 볼프의 모든 제 자들 가운데 바움가르텐만이 볼프가 가르쳐준 논리적 기술을 완벽히 터득하고, 이로써 그는 독일 철학에 그 뚜렷한 모습과 확고한 발판을 마련한다. 주의 깊고 정확한 개념 규정과 정의 를 통해 정확한 논증을 펼침으로써 바움가르텐의 『형이상학』은 오랫동안 칭송을 받아왔다. 칸트는 이 저술을 거듭 언급하면 서, 형이상학의 강의 기초로서 항상 애용하였다. 그러나 역사 적 의미에서 바움가르텐의 결정적인 장점은 다른 곳에 있다. 그는 탁월한 스콜라 논리학자요, 이 논리학의 모든 측면을 완 전히 터득하고 이 논리학에 가장 완벽한 형식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이렇게 완전히 숙달함으로써 이 논리학의 내용적 한계와 체계적 한계를 아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이 한 계를 분명히 깨달음으로써 그는 독창적이고 원천적인 일을 해 낼 수 있었으며, 미학에 철학적 정초를 마련할 수 있었다. 논 리학자로서 바움가르텐이 논리학의 모든 영역을 두루 조사하고 개관해 보았을 때, 그의 앞에 새로운 과제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가 이 과제를 자신이 배운 사상적 전제들을 통해 해결하려고 했을 때, 그는 이 전제들의 한계를 깨닫기 시작하였다. 다시 말해서 미학을 논리학으로부터 전개시켜 나갔을 때, 이 전개를 통해 동시에 전통적인 스콜라 논리학의 내재적 약점이 드러나 게 되었다. 바움가르텐은 단순한 〈이성의 기술자 Vernu nft kun­ s tl er 〉가 아니다. 그는 칸트가 〈이성의 자기인식〉이라고 일컫은 철학의 이상을 몸소 실현한다. 그는 분석의 대가이다. 그러나

그는 분석 기술의 가치를 과장되게 평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대가다움을 통해서 〈수단으로서의 분석〉과 〈분석의 목적〉 을 명백히 구분할 줄 알게 되었다. 분석에 완전히 통달함으로 써 분석 자체가 지양되고, 이로써 다시 새로운 생산적이고 종 합적안 시야가 전개된다. 마치 분석 자체로부터 새로운 출발의 씨앗이 움터 나와 새로운 지적 종합의 가능성이 열리는 모습 이다. 학문으로서의 미학에 대한 바움가르텐의 최초의 정의가 지니 는 힘과 의의는 바로 이러한 이념적 종합에 있다. 미학이 그저 예술품을 만들 때 지켜야 할 기술적(技術的)인 규칙을 논하거나 아니면 예술품이 감상자에게 미치는 효과에 대한 심리학적 관 찰을 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그러한 미학은 결코 학문이 될 수 없다. 이러한 일은 경험론자의 소관사요, 내용면에서나 방법면 에서 진정한 철학적 통찰과 거리가 먼 짓거리이다. 각각의 학 문이 지니는 철학적 내용과 의미는 인간 지식의 전체에서 그것 이 지니는 의미를 이해할 때 비로소 연역될 수 있다. 다시 말 해서 그것은 인간 지식 전체에서 각각의 학문이 지니는 위치와 위상으로부터 연역된다. 모든 학문은 지식이라는 보편적 유개 념에 적합해야 된다. 그러면서도 각각의 학문은 이러한 유개념 내에서 그 자신의 독특한 종차적 과제를 지녀야 하고, 이 과제 룰 각각의 독특한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어떤 개념의 정의 는 이 개념의 상위 개념인 〈최근 유개념 gen us p rox im um 〉에 종 차(種差)를 보태면 된다. 학문이라는 유개념의 본질은 인식 개 념이댜 미학을 정의하기 위해 이 개념이 상위개념으로서 우선 고려되어야 한다 . 그러나 이 최근 유개념은 미학의 정의를 위 해 단지 테두리만을 정할 뿐이다. 이 테두리를 채우는 내용이

보다 중요한데, 그것은 다른 학문과 달리 미학 개념만이 지닌 본질적 특성 즉 미학개념의 종차가 된다. 바움가르텐은 미학의 종차를 〈감성 S i nnl ic hke it〉으로 보아, 미학을 〈감성적 인식〉이라 고 정의한다. 전통적 학문의 척도에서 보았을 때, 이러한 정의 는 논리적 사생아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바움가르텐이 쓰고 있는 전문 용어법에 의하면, 감성적인 것은 애매모호한 영역일 뿐만 아니라 순수 인식에 대립된 영역으로서 순수 인식을 불가 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미학이 이렇게 애매한 감성 영역에 제한될 때, 과연 그것은 학문으로서 자리와 위엄을 지닐 수 있 겠는가? 이러한 의심이 사실상 제기되어서, 당시 바움가르텐의 미학은 인정 받기 어려웠고, 따라서 그의 미학도 오랫동안 아 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보드머는 바움가르텐의 정의에 대해 불쾌한 빛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반대한다. 그는 바움가르 텐의 저술에 대한 서평에서 53) <‘ 미적 감식력은 낮은 판단 능력 이요, 이 능력으로는 애매모호한 인식만이 가능하다’ 는 견해가 널리 유포되어 있는 바, 이러한 견해에 따라 판단한다면, 미적 감식력의 능력을 지닌다는 것이 별로 칭찬을 받을 만한 것도 아니요, 또 그것을 세련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일도 아무 가치 가 없게 된다〉라고 쓰고 있다. 그러나 보드머의 이러한 평가는 바움가르텐의 근본의도에서 매우 어긋난다. 탁월한 분석가인 바움가르텐은 〈애매모호한 인식〉이라는 〈그 자체 논리적으로 모순된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애매모호한 것〉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든 획득하고자 노력한다. 〈애매모호하다〉는 말은 탐구대상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지 이 대상에 대한 인식 내지 53) 이 서평은 Fr eym i. ithige n Nachr ic h t en” 에 들어 있다. 앞에서 인용한 슈타인의 책 281 쪽을 참조하라.

인식방법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학문이 감성의 영역으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감성적인 것이 독특한 인식방식 에 의해 통찰됨으로써 학문의 위치로 격상되어야 한다는 것이 다. 그 질료 측면에서 본다면, 감성적인 것은 애매모호하다. 그렇다고 감성적인 것을 인식하는 형식조차도 꼭 애매모호한 것일까? 오히려 이 형식은 감성의 세계에 새롭고 독특한 이해 방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닐까? 미학 탐구에서 바움가르텐의 문 제의식은 바로 이러한 물음이었던 바, 그는 이 물음에 대해 조 건 없이 긍정적으로 대답한다. 그는 감성 경험의 가치를 확보 하는 감성기능의 새로운 척도을 내세운다. 이렇게 하여 그는 감성에 새로운 완전성을 확보시켜 주는 바, 이 완전성은 어디까 지 나 〈현상적 완전성 per fe c tio p haenomenon 〉으로서 〈순수 내 재 적〉이라는 이점을 지닌다. 그런데 이 현상적 완전성은 〈판명한〉 개념의 발전 체계를 추구하는 논리학이나 수학의 완전성과 합 치하지 않는다. 현상적 완전성온 논리적 완전성으로 해소될 수 없는 독특한 요소를 지닌다. 이 요소를 통합 조정하기 위해 바 움가르텐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의 사상을 표현할 때 그는 대체로 전통적 학파로부터 빌려온 전문 술어를 사용한다. 그래서 그는 거듭하여 〈포섭〉 내지 〈종속〉이라는 말을 쓰게 된 다. 이러한 술어로 말미암아 그는 인식의 등급과 가치에 따른 자리매김의 척도를 세워야 했다. 이 척도에 의하면, 감성계의 인식으로서 미학은 가장 낮은 자리에 놓인다. 가장 낮은 자리 로서 미학은 〈처음〉에 놓인다. 그러나 이 〈처음〉은 예비에 불 과하다. 〈아름다움의 아침울 통과해야 너는 진리의 땅에 들어 선 다 Nur

대낮의 광휘 앞에 사그러진다. 사물의 현상이 아니라 그 깊은 존재를 알려주는 순수 진리 앞에서 현상으로만 통하는 아름다 움은 사그러지지 않을 수 없다. 형이상학자로서 바움가르텐온 이 기본적 견해를 결코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석 가로서 그리고 순수 현상학자로서 그는 이 견해를 넘어선다. 전통적인 논리학 내지 형이상학의 족쇄, 이 족쇄를 풀어 내던 졌을 때 비로소 미학은 밝은 〈태양의 자리〉를 얻을 수 있고 철 학의 한 분과로서 그 고유한 자리와 권리를 확보할 수 있다 .54) 라이 프니 츠는 『진리 , 인식 및 관념 에 관한 숙고 Medit at ion s de Ve1i tate , Cog n i tion e e t Ide is,』에서 인식의 등급을 논한다. 라 이프니츠의 이 논의는 바움가르텐의 모든 탐구의 출발점인 동 시에 기본 골격이 된다. 그러나 바움가르텐의 기본 생각을 온 전히 이해하려면, 라이프니츠의 논의를 그저 기억하는 것으로 충분치 못하다. 라이프니츠는 〈명석한 klar 〉 관념과 〈판명한 deutl ich > 관념 을 구분하고, 각각에 특별한 의 미 와 사용 목적 을 주었다. 명석한 관념은 일상생활의 요구를 충족시킨다. 이 관 념의 덕분으로 우리는 주위의 환경에 따라 알맞게 생활한다.

54) 거의 무비판적으로 자주 인용되는 〈독일 미학은 미학의 대상에 대 해서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Lo tz e, Gescbic b te der Astb e ti k im Deuts c h/and, 12 쪽)는 로체 Lo t ze 의 말은 바움가르텐의 기본 견해를 오해하고 있다. 최초의 저서인 『시의 재료에 관한 철학적 숙고 Medit at i on es Phi/ oso p h ic a e de Nonnu//is ad Poema Pe rti nen ti bu~ 』 (Halle, 1735) 에서 바움가르텐은 〈예술 문제를 다루는 것이 철학자에 게 가치 있는 일이 못 된다〉라는 널리 유포된 선입견을 공박한다 . 〈나 는 철학자들이 진지한 철학적 숙고의 대상에서 제외시키려는 시의 재 료 문제를 탐구 대상으로 선택했다. 왜냐하면 철학과 ‘시적 구성에 대한 인식’ 은 아주 긴밀한 연관성을 지니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 다.〉 (위의 책 §2).

우리의 일상생활을 위해서 우리는 주위에 있는 여러 사물들을 구별할 줄 알고 이렇게 구별된 사물들에 대해서 알맞게 행동하 면 된다. 예컨대 생활용품으로서 황금을 보는 사람은 순금과 가짜금을 구별할 줄 알면 된다. 이 구별을 위해 금의 색깔이나 굳기나 유연성 등등의 경험적 특징을 기준으로 삼으면 족하다. 그러나 라이프니츠에 의하면 이러한 진리는 학문이 추구하고 요구하는 완전한 참된 진리 죽 판명한 진리는 아니다. 참된 최 고의 판명한 진리는 단순한 〈사실 Da is〉의 진리가 아니라 〈근거 Warum 〉에 관한 지식이다. 학문은 단순히 사실을 모으려는 것 도 아니요, 사물들을 감각적 성질에 따라 구분하고 분류하는 것도 아니다. 학문은 다양한 속성들로부터 통일된 본질로 나아 가려 한다. 학문은 다양성의 궁극적 근거로 되돌아감으로써 이 러한 본질을 찾을 수 있다 . 따라서 동일율 및 모순율과 더불어 근거율이 엄밀한 모든 학문의 진정한 기준이 된다. 사물의 이 해는 사물을 후천적으로 죽 현상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그 원인성에서 선천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 따라서 라 이프니츠에게서 〈선천적 인식〉과 〈원인 내지 근거에 의한 인식〉 은 같은 것이 된다. 〈인과적〉 정의만이 유일한 참된 〈실재적〉 정의이다. 따라서 〈판명한 인식〉의 방법은 복잡한 현상을 이 현상의 근거가 되는 단순한 개별적 요소로 분석하는 것이다. 요소 중에 분석되지 않는 복합된 것이 하나도 없도록 분석이 완전히 되었을 때, 〈합당한 ad 걸q ua t〉 개념적 인식의 목적이 달 성된다. 개념이 대상을 반영시킬 뿐만 아니라 대상의 궁극적 요소를 추적하고 이 요소로부터 다시 대상을 구성해 낼 수 있 올 때, 우리의 개념은 그 대상에 참된 것이 된다 . 바움가르텐은 이러한 논리적인 학문의 이상을 전적으로 받아

들인다. 그는 학문적 인식의 영역 내에서 이 이상에 대해 조금 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는 〈사상의 알파벳(요소 )Gedankenal­ p habe t〉이라는 라이프니츠의 요구를 엄격히 지지한다. 특히 논 리적 학문의 이상이 볼프 및 볼프학파의 노력에 의해 점차 착 실히 실현되어 나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 그러나 바움가르텐에 따르면, 현상을 기본요소로 환원시킬 수 없는 영역이 있다 . 자연과학의 방법을 따라 색깔을 순수 운동 과정으로 해소해 설명한다면, 색깔의 감각적 인상 뿐만 아니라 색깔이 지닌 미적 의미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색깔을 수학-물 리학 개념으로 환원할 때, 화가의 예술적 표현 수단으로서 색 깔이 지닌 모든 의미는 사라져 버린다 . 따라서 색깔의 감각적 경험과 미적 기능도 일거에 사라져 버린다. 과연 이러한 기능 은 없어도 상관 없을 정도로 무가치한가? 아니면 그것은 고유 한 가치를 자체로 지니는가? 이러한 기능은 무의미한 것으로 치위버릴 것이 아니라 그 고유한 특성에서 확보될 만한 것임에 틀림없다 . 이러한 확보가 새로운 학문으로서 미학이 추구해야 할 일이다. 미학은 감성적 현상에 머물러 이에 몰두한다. 미학 은 결코 이 현상을 넘어서 이와 전혀 다른 어떤 것으로 죽 현 상의 근거로 돌아가려는 것이 아니다. 근거로 돌아감은 현상의 미적 성질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해 버린다 . 어떤 풍경 의 인상을 전달하는 예를 들어 보자. 이 인상을 개별적 요소로 쪼개서 이 각각의 요소에 분명한 개념을―—-마치 지리학자가 지도를 그리듯이 -주어 인상을 그린다면, 이것은 새로운 자 연과학적 지식은 될지언정 풍경의 아름다움은 조금도 살리지 못할 것이다. 이 아름다움은 오직 통일적 직관을 통해서만 즉 풍경을 전체로서 봄으로써만 획득된다• 이 전체성을 적절한 표

현 수단으로써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은 화가나 시인 같은 예술가만이 할 수 있다. 화가나 시인이 그린 풍경의 완전 한 묘사로 말미암아 우리는 눈앞에 풍경의 상을 생생하게 그려 볼 수 있고 이 그림을 미적으로 감상할 수 있으나, 이때 과학 적인 개념적 탐구의 과제인 이 풍경의 〈근거〉에 대해서 전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현상 자체가 주는 순수한 영 향에 머무름으로 족하다. 현상이 주는 영향은 물론 현상의 형 이상학적 본질을 이루는 것이 아니나 순수 미적 가치를 지닌 다 .55) 자연과학자는 현미경으로 사물을 관찰해서 그 구성 요소 와 객관적 성질을 밝혀내지만, 이럴 때 사물이 지닌 미적 인상 은 완전히 손실당한다. 괴테는 『라이프치히 시집 Leip z ig e s L i ederbuch 』의 한 시 에서 이 런 사상을 시 로서 읊는다. 〈우물가에 나래짓는 잠자리 진주처럼 영롱한 고운 때깔에 나는 넋을 잃고 즐거움에 잠긴다. 카메레온 색조의 변화처럼 어둡기도 하다 해맑기도 하고 붉기도 하다 푸르기도 하고 푸른가 하면 파랗기도 하다. 가까이서 더 가까이서 너의 아름다운 색깔을 보구 싶구나!

55) 예컨대 바움가르텐의 『미학』 §588 을 보라. 〈이성의 유사물(감성)이 현상계 내에서 하는 기능은 본래 우주의 최초 원인, 요소, 궁극적 힘 울 찾아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둥실 둥실 맴을 돌며 멈추질 않는구나! 마침내 버들가지에 사뿐히 내려 앉자 내 너를 손아귀로 잡아 채었다. 가까이서 가까이서 자세히 들여다 보니 보이는 빛 슬프게도 검푸른 빛 뿐 __- 기쁨의 해부학자여, 이것이 너의 일이로구나!〉 여기서 괴테는 자기 철학의 진수가 되는 내용을 구체적인 시 적 형식으로 표현한다. 이것은 미학 이론가인 바움가르텐이 말 한 것과 완전히 일치한다. 모든 〈판명한〉 지식의 원리인 근거 율이 더 이상 재판관 노릇을 할 수 없는 영역이 드러난다. 이 원리는, 현상적 실재의 미로를 벗어나 예지계로 우리를 안내하 는 아리아드네의 실(영웅 테세우스 Theseus 를 미궁에서 구해낸 실)이다. 그러나 예술 영역에서 이러한 초월은 일어나지도 않 고 일어날 수도 없다. 예술은 결코 현상 영역을 넘어서 나가려 하지 않고 오히려 현상의 한가운데 자리한다. 예술은 현상의 원리로 되돌아 가려는 것이 아니라 현상의 직접적 순수 내용을 파악하고 이 내용의 독특한 본성을 표현하려 한다. 근거율이라 는 아리아드네의 실이 없다고 해서 우리의 정신적 세계가 혼돈 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순수 직관적인 실재도 또한 그저 미궁이 아니라 그 나름의 독특한 척도를 지 니기 때문이다. 참된 예술작품은 이 척도를 우리에게 보여준 댜 그것은 풍부한 직관 내용을 보일 뿐만 아니라 또한 이 내 용을 지배한다• 그것은 이 내용의 내적 통일성을 조형해 보여 준다. 모든 참된 미적 직관은 다양함과 상이함을 보여준다. 미

학의 영 역 은 〈혼합된 지 각 pe rcep tio con f usa 〉이 라는 말로 표현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을 쓰려면, 우리는 그 말의 어원적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con fu sa 는 보통 〈혼란된〉으 로 번역되나, 본래 의미는 〈함께 녹아 있는〉이다: 역주). 이 말은 〈모든 미적 직관에 있어서 모든 요소들이 녹아 융합되어 있으 며 따라서 우리가 직관 전체로부터 개별적인 요소들을 따로 떼 어낼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러한 융합이 곧 혼란을 뜻 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순수한 직관에 있어 이 융합은 그 자체 철저히 규정된 유기적 전체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바움가 르텐 미학의 기본 명제에 의하면, 이러한 유기적 연관은 결코 개념에 의해서 획득될 수 없다. 그것은 개념 이전의 영역이 요, 따라서 순수 논리학이 다룰 필요가 없는 영역이다. 왜냐하 면 그것은, 순수 논리학의 입장에서 본다면, 단지 열등한 영혼 의 인식 능력에 속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열등한 인식 능력도 나름의 원리를 지니고 있으므로, 이에 해당하는 마땅한 인식 론 즉 〈열등한 인식 론 gn oseolog ia infe ri or 〉이 필요하다. 바 움가르텐은 합리적 이성의 엄격한 규율을 철저히 따른다. 그는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는 순수 논리적 규범의 엄격성을 조금도 손상시키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이성의 법정에서 순수 미적 직관의 사실을 변호한다. 이 직관에도 내적 법칙이 있음을 밝힘으로써 이 직관을 구제하고자 한다. 이 법칙은, 비 록 이성의 법칙과 일치하지 않을지라도, 이성의 유사물(類似 物, analog on ra ti on i s) 이다우 이성의 유사물이기 때문에, 미적 56) 바움가르텐은 미학에 관한 저술의 첫머리에서 미학을 〈이성의 유사 물에 관한 학술 ars analog i ra ti o nis〉이라고 정의한다. Prolego m ena , §1. 참조.

직관의 법칙 영역은 논리적 개념의 영역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 라 보다 넓은 범위와 규모를 지니며, 또 이 영역은, 비록 개념 형식으로 표현될 수 없을지라도, 모든 주관적 자의와 일시적 기분을 배제하는 법칙성을 지닌다. 이성을 크게 볼 때, 이것은 양 계기 즉 미적 법칙과 논리적 개념을 포함한다. 그것은 단순 히 개념적인 것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질서와 법칙 일반­ 이것이 어떠한 매체를 통해서 표현되건 간에―-―에 관계한다 . 이 전체 영역에서 이성은 여왕의 자리를 지킨다. 여왕의 지배 권은 순탄하게 유지되어 강제력을 동원하지 않는다. 〈이성은 모든 하위 능력들을 마땅히 지배하나, 이 지배권은 결코 강제 적 독재로 타락하지 않는다〉고 바움가르텐은 말한다 .57) 이성의 지배를 받는 어떠한 것도 결코 그 자신의 본성과 독특한 성질 을 잃지 않는다. 오히려 이성의 지배하에서만 사물의 본성과 특성은 사실 그대로 이해되고 보존된다. 그래서 바움가르텐 미 학의 목적은 영혼의 열등한 능력을 억압하고 페기하는 것이 아 니라 그 능력을 합법화하려는 것이다 .58) 바움가르텐 학설의 모든 요소들은 이러한 애초의 씨앗에 포 함되어 있다. 그가 제시하는 예술품의 모든 특성들은, 특히 시 적 표현 방식과 수단의 모든 계기들은 이 씨앗으로부터 전개되 어 나온다. 철저하고 완벽하려는 기질이 있는 바움가르텐온 시 적 표현과 논리적 표현의 차이를 드러내 주는 특성들을 하나하 나 열거하여 간다. 그에 의하면, 시적 표현은 밝음과 명료함 57) cf. Aestb e ti ca , §12. 〈낮은 능력들에 대한 지배규칙은 마땅히 요구 되나 전제적(專制的)이어서는 안 된다.〉 58) 새 로운 학문의 이 러 한 근본경 향은 마이 어 Georg Frie d ric h Me i er 의 저술 Anfa n gs g r i l nd e alt er scbonen Wi ss enscbaft en , Teil I, Halle, 1748, §5, §13, §16 ff. 등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

울, 충만과 진실을, 풍요와 선명함을 요구한다. 시인이 사용하 는 모든 표상들은 내적 의미, 설득력 그리고 생생함을 포함해 야 한다. 충만 ube rt as 과 장엄 mag n it ud o, 진실 ver it as 과 명 료함 clari tas , 그리고 빛 lux 과 확실성 cert itud o 등과 같은 특성들은 모두 하나의 요구로 수렴될 수 있는 바, 바움가르텐은 이것을 〈살아 있는 인식 vit a cog n iti on i s 〉으로 표현했다. 그는 〈시 의 원 천)과 〈사상의 원천〉을 구별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는 미학의 첫 머 리 에 서 미 학을 <아 름다운 사유에 관한 학술 ars pul cre cog i- t and i〉이라고 정의한다 .59 ) 그에 의하면, 시적 사상은 형식 뿐만 아니라 색깔도, 객관적 진리 뿐만 아니라 감성적 침투력도, 사 실에 맞는 통찰 뿐만 아니라 생생한 통찰력도 요한다. 이러한 통찰을 얻으려면, 단순히 논리적 개념의 형성 규칙에 따라서 특수에서 보편으로 나아갈 것이 아니라, 보편을 특수 속에서 그리고 특수를 보편 속에서 생생하게 이해해야 한다. 사물의 보다 높은 유개념 으로 나아가는 추상은 직 관내 용을 메 마르게 하고 고갈시키는 일이다. 추상과정은 삭감의 과정이다. 보편은 특수를 무시함으로써만 얻어질 수 있다. 따라서 보편은 구체적 규정성을 희생시킴으로써만 획득된다. 보편성과 규정성은 이처 럼 서로 상반된 방향으로 나아간다 .60) 미학은 이 둘 사이의 간 격에 다리를 놓는다. 미학의 〈진리〉는 구체적 성질들을 넘어서 59) Aesth e ti ca , §1. 〈미학(문예의 이론, 열등한 인식론, 아름다운 생각 에 관한 학술, 이성의 유사물(類似物)에 관한 학술)은 감성적 인식의 학문이다.〉 60) 바움가르텐의 〈개별화하는 개념 형성 ind iv id u alis ie re nde Beg riffsb il - dun g〉과 볼프의 〈추상화하는 개념 형성 abstr a hie r ende Beg ri ff sb il - dung > 의 차이에 관해서는 앞에서 인용한 보이물러 Baeumler 의 책 198 쪽 이하를 보라 .

서 발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성질들 가운데 서, 그러한 성질들 덕분에 얻어질 수 있다. 미는 〈 내포적 in te n - siv > 명 료성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외연적 exte n si v > 명 료성도 지닌다. 과학적 개념과 같은 내포적 명료성을 얻으려면, 직관 의 다양을 몇몇의 근본 규정성들로 압축하고, 이 압축된 규정 성들에서 직관 다양의 본질적 특성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적 압축이나 환원은 미학적 즉 외연적 명료성을 손 상시킨다. 예술가는 중심 뿐만 아니라 주변도 한꺼번에 포착하 려 한다 .61) 바움가르텐에 의하면, 예술적 천재는 위대한 감각적 수용력과 상상력 뿐만 아니라 날카롭고 깊은 통찰력도 지녀야 한다. 그러나 예술가의 통찰력은 과학자의 분석적 총명함과 다 르다. 예술가의 통찰력은 현상을 넘어서서 보려는 것이 아니라 현상 자체를 추구한다 . 예술가는 현상의 전체를, 현상의 내재 적 존재방식을 파악하고자 하며, 현상의 직관적 전체상을 추구 한다 . 바움가르텐은 최초로 과학적 정신과 예술적 정신의 차이를 철학적으로 형식화시켜 기술할 수 있었다. 이 기술을 위하여 그는 그저 자신의 생생한 내적 체험을 돌아보는 것으로 족하였 다. 슈타인H. v. S t e i n 이 잘 지적한 바와 같이, 바움가르텐의 체계적 미학이 단순히 인식론적 관심과 논리적 꼼꼼함의 결과 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바움가르텐의 미학은 예술 작품의 직접적 체험에 바탕을 두며, 그 자신 시를 짓고자 무던 히 노력한 사람이다 . 『시의 재료에 관한 숙고』에서 그는 시를 짓지 않고 지내는 날은 거의 없었다고 말한다. 비록 그의 시적 61) 외연적 명료성과 내포적 명료성의 구별에 대해서는 바움가르텐의 Medit at i on es de nonnullis adp o emap er lin e nti bu s , §13 ff를 보라 .

인 재능이 대수로운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자신의 직접적인 시작(詩作) 체험으로부터 그는 시의 주제가 어떤 것인지를 그리 고 이것이 순전히 논리적인 주제와 어떻게 다른지를 알 수 있 었다. 이 양자의 차이를 알아보기 위해 그는 자신이 몸소 행했 던 일을 되돌아보는 것으로 족했다. 이 차이를 확연히 구별하 기 위해 그가 시적 언어의 형식과 특성을 고찰했다는 사실은 언어철학이나 미학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언어 는 과학과 예술의 공통된 매체이다. 논리학자나 과학자가 전개 하는 사상은, 우리에게 감흥을 주려는 시인의 감각이나 표상이 그러하듯이, 언어 매체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양자는 이 동일 한 수단을 각기 다른 목적을 위해 쓴다. 과학적 주제를 다룰 때 언어는 순전히 개념 기호로서 추상적 의미만 지닌다. 이러 한 언어는 홉스가 표현한 것처럼 〈정신의 계산기호 Rechnen­ marken des Ge i s t es 〉이다. 과학의 목적을 위한 이 언어가 발달 하면 할수록, 원래 언어에 붙어 있던 구상적(具象的) 내용의 혼 적은 점점 더 사라진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것은 언어가 아니 라 기호로 된다. 바로 이러한 기호를 써서 우리의 사유에 일의 적(一義的) 표현을 주려는 것이 과학의 목적이다. 라이프니츠가 거 듭 강조한 바 있는 〈보편 과학 sci en ti a g enera li s 〉은 〈보편 기 호 characte r ist ic a g enera li s 〉의 발달로 완성 된다. 그러 나 과학의 최고 발전 단계에서 형성된 이 기호를 예술에 적용한다면, 이 는 예술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꼴이 된다. 그 기호는 예술이 지니는 모든 현상적인 내용을 없애버린다. 새로운 학문인 미학 이 추구하는 것은 이러한 내용의 박탈을 방지하는 일이다. 그 것은 인식 일반의 완전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직관적으로 체 험된 감각 인식의 완전을 추구한다. 〈미학의 목표는 감각 인식

자체를 완전하게 함이다. 그리고 이것이 미이다.〉 62) 예술가와 시인의 위대한 힘은 과학언어와 일상언어의 〈차갑게一죽은-기 호〉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능력이다. 예술가 의 언어는 그 어떤 것도 죽어 있거나 말라 빠져 텅빈 것이 아 니다. 그것은 내적으로 숨을 쉬며 살아 있으며 직접적인 감각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시적 언어에서 추상적 공식화는 모두 사라지고 그대신 생생한 구상(具象)이 자리한다. 바움가르텐은 아직도 시를 〈말 Rede 〉이라는 개념하에 포섭시키지만, 그렇다 고 이것이 그의 미학적 기본 사상을 조금이라도 손상시키는 것 은 아니 다 . 그는 단순히 수사학 Rhe t or ik의 매 력 에 이 끌리 는 것 이 아니다. 보다 엄밀히 〈말〉을 정의함으로써 그는 사전에 이 런 위험을 제거한다. 〈감각의 완전한 말은 시(詩)이다 Ora ti o sensit iva per fe c ta est po ema. >63 ) 완전한 감각적 표현의 힘을 지 닌 말, 생생한 직관과 그 구상(具象)을 불러일으켜 주는 말, 이 러한 말이라야 비로소 시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하여 바움가르텐온 18 세기 미학의 중심문제를 체계적 으로 형식화했다. 뒤보스와 스위스 학파시대 이후로 미학이론 은 〈참되게 시적인 것〉의 직관적 성격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그 리고 이 성격을 명확히 하기 위해 항상 미술을 끌어 들인다. 레싱의 『라오콘 Laokoo n,』 64) 이 출판되기 이전에 〈시는 그림과 같이 ut pict u r a p oes i s 〉라는 말이 널 리 쓰이 게 된 까닭도 여 기 에 있다 . 보드머는 시인들이 일컫는 〈시적 그림〉에 관해 비판적으 62) Aestb e tic a , §14. 63) Medit at i on es de nonnullis adp oe map er t ine nti bu s, §9. 64) 역주: 시와 그림의 차이를 논한 레싱의 저술 『 Laokoon oder ilbe r die Grenzen derMa/ere i undPoese(』 (1776) 을 말한다.

로 고찰하며, 브라이팅거는 『비판적 예술론』에서 〈창작 구상을 위해 시적 그림을 탐구한다〉는 목표를 분명히 말하면서, 이를 위해 고대와 근대로부터 여러 가지 예들을 인용한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물음이 제기된다. 시인이 미술가와 경쟁한다는 것 이 과연 가능한가? 시인의 〈인위적 기호〉가 미술가의 〈자연적 기호〉가 하는 역할을 똑같이 수행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경쟁은 예술 장르를 인위적으로 혼합시킨 데서 나온 것은 아닌 가? 그래서 그것은 시의 고유한 매체를 부당하게 파괴하는 것 온 아닌가? 바움가르텐은 이러한 혼란에 대하여 〈그림 같이〉라 는 요구는 부분을 전체로 잘못 봄으로써 야기되는 오류임을 지 적한다 . 이 요구는 철학적 내지 체계적으로 주장된 것이 아니 라 단지 은유적인 것이다. 그것은 감각적 인식의 참된 유개념 을 감각적 인식의 한 종개념인 미술로 대치시키는 오류를 범한 다 시인은 말로 그림을 그릴 수도 없고 그려서도 안 된다. 그 는 말로 명료하고 생생한 직관적인 표상들을 듣는 이에게 불러 일으킬 수 있고 일으켜야 한다. 이것이 시인이 타고난 능력이 다. 바움가르텐은 이것을 〈즐겁게 해주는 재능i n gen i um venus- tu m 〉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정신사적으로 볼 때 하나의 예언 처럼 들린다. 왜냐하면 그것은 『판단력 비판』과 모리츠 Karl Phil ipp Mor it z 의 『미 의 조형 적 모방 Uber die bil d ende Nachah- mung des Sch6nen 』 이 나타나기 40 여 년 전에 이 미 괴 테 의 〈대 상적 사유〉를 예시하기 때문이다. 〈즐겁게 해주는 재능〉은 대 상을 유개념과 종개념으로 파악할 뿐만 아니라 대상의 직관에 서 그 본래의 생명력을 지닌다. 그것이 지닌 〈즐거운 풍요 venusta p le nitu do 〉는 단순히 개념 의 결합에서 나올 수도 없고 요소들로 환원될 수도 없다• 그 재능은 그것이 파악하고 관계

하는 모든 것에 자신의 색조를 불어넣는 영혼의 품성이다. 이 러한 품성이 예술가적 정신의 특성이며 이는 배워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것이다. 〈훌륭한 미학자가 되기 위해 서는 ‘타고난 미학적 소질’ 이 요구된다. 다시 말해 아름다운 생각을 할 수 있는 영혼의 타고난 자연 성품이 요구된다.〉 65) 이렇게 해서 바움가르텐의 미학은 다시 한 번 논리학의 영역 을 넘어선다. 그것은 〈열등한 인식능력들에 대한 논리학〉이 되 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학은 단순히 철학체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 관한 학문〉을 위한 것이다. 바움가르텐의 길을 따른 헤르더는 그를 〈우리 시대의 아리스토텔레스〉라고 부른다 .66) 왜냐하면 헤르더는 바움가르텐의 저술들에서 하나의 중심이 되는 〈새로운 인간성의 이상〉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바움가르텐의 『미학』의 첫머리에서 우리는 지혜론으로서 철학 에 훈시를 주는 〈새로운 인간주의적 명령〉을 보게 된다. 〈철학 자는 인간들 중의 한 인간이다. 그는 인간에게 낯선 어떤 특출 한 지식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67) 특수한 재능 예컨대 개념 분석의 재능을 개발시키면 학자가 될 수 있고 전문가들의 칭찬 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철학의 임무를 다할 수 없다. 철학의 임무를 위해서는 어떤 지식 분야도 내버려서는 안 되고 인간의 마음의 어떤 소질의 개발도 등한히 해서는 안 된다. 철학적 정신은 직관과 상상력을 넘어선 어떤 특출한 것 65) Aestb e tic a , §28. 66) Heder, Fragm ent iibe r die Ode, Werke(Sup h an) XXXII, 83 . cf. 특히 Von Baumg ar te n s Denkart i n sein e n Schrift en , Werke XXXII, 178ff . , Enrwurf zu ein e r Denksch rift auf A . G . Baumg ar t en , J. D . Heilm ann und Th. Abbr, Werke XXXII 175ff . 67) Aestb e ti ca , §6 을 참고

이 아니라, 이 양자를 우선 잘 구비하고, 여기에다 판단력과 추리력을 조화 있게 보탠 정신이다. 이처럼 여러 능력들의 조 화적 개발에서 철학 체계는 비로소 포괄적인 내적 통일성을 이 룰 수 있으며, 철학 정신은 최고도로 구현될 수 있다. 따라서 철학 정신의 함양은 단순히 오성의 개발을 통해 얻어질 수 없 다. 철학자는, 그 사유의 근본 모습에서 그리고 전체성이라는 그 추구 목표에서 볼 때, 예술가와 비슷하다. 철학자는 미의 창조에서 예술가와 경쟁할 수 없지만 그는 미의 지식을 추구할 수 있고, 이 지식에 의해 자신의 세계상을 완성시킬 수 있다. 이제 미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은 단순히 논리적으로 합법화될 뿐만 아니라, 말하자면 윤리적으로 요청되고 정당화된다. 왜냐 하면 미학은 이제부터 단순히 독립된 지식 영역으로 그치는 것 이 아니라 인간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온전한 인간이 되도록 하 며 그래서 인간으로 하여금 참된 인간다움을 성취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68) 이리하여 미의 문제는 체계적 미학 뿐만 아니라 새로운 〈철 학적 인간학〉의 정초로 나아간다. 이와 더불어 18 세기 문화 전 체의 특징적 사상이 확고한 바탕을 마련한다. 지금까지 통용되 었던 척도가 새로운 입장에서 근본적으로 달라지게 된다. 인간 적 오성과 신적 오성 혹은 〈모형적 지성 int e l lectu s ec typ us 〉과 〈원형적 지성 int e l lectu s arche typ us 〉의 관계에 새로운 변화가 시 작된다. 문제는, 말르브랑슈나 스피노자와 같은 17 세기의 위대 한 형이상학 체계에서처럼, 유한자를 무한자로 해소시킴으로써 유한자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무한자에 대립하여 유 68) cf. G. F. Meie r , Anf a ng s g 따 nde al/er Schonen Wis se nschatft en, Bd. I , §5, §13; §15, §20 등등

한자가 자신의 고유한 특성과 본성을 당당히 내세운다. 미의 자율성을 위한 체계적 미학이 정초됨으로써 유한자의 독자적 존재형식이 주장된다. 왜냐하면, 독일철학이 라이프니츠로부터 전수받은 〈신적 존재란 미의 현상 세계를 초월한다〉는 원리에 따르면, 거기에는 미의 현상이 놓일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라 이프니츠에 의하면, 신적 인식은 감각적 표상의 영역이 아니 다. 오로지 〈충분한 ada q ua t〉 관념과 관계한다. 다시 말해서 신 적 인식은 복합체를 완전히 분석해서 궁극적 구성요소로 환원 한다 .69) 이러한 인식에서 미의 환상은 완전히 제거된다. 『감각 에 관한 편지』에서 멘델스존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개념의 완전한 충분성에서 성립하는 ‘천상(天上)의 비너스 Venus’ 와 아름다운 ‘지상의 비너스’ 를 혼돈하지 말아야 한다. 형이상학적 견지에서 볼 때, 미의 관념은 인간 영혼의 능력이 아니라 무능력에 기인한다. 완전한 인식능력은 미의 경험을 할 수도 없고 할 필요도 없다. >70 ) 멘델스존은 바움가르텐의 말을 중거로 삼아 감각적 미와 지적 완전성을 날카롭게 대비시킬 줄 알았으나, 바움가르텐의 대비는 그 사상적 의도가 다론 데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바움가르텐이 미의 한계를 추구함으로써 그는 인간을 어디까지나 이 한계 내에서 문제삼는다. 인간은 그 유한성을 넘어설 수 없다. 인간에게는 신적 이상인 충분한 지식이 결핍되어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결핍에 의해 인간 은 자신의 본성과 임무를 깨닫게 된다. 바움가르텐의 미학은, 라 이프니츠 이후 독일철학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계몽시대 69) cf. Leib n iz , Medit at i on es de cog n i tion e, verit at e et ide is , 70S) cMh reifntedne (lsGsoerhhn a, rdBt) r ieNf ,u b4e2r3d 쪽i.e E mp find tt ng en (l755), Fun fter Brie f.

의 윤리학, 종교철학, 법철학, 정치철학 전반에 걸쳐 일어난 새로운 사상과 접목된다. 계몽철학온 형이상학적 의미의 〈절대 자〉를, 인식의 신적 이상을 서서히 포기할 줄 알게 된다. 그 대신 새로운 인간의 이상이 점차 두드러지는 바, 계몽철학은 이 새로운 이상을 보다 더 날카롭게 규정하고 보다 더 엄밀하 게 실현시키고자 노력한다. 〈감성 의 인 간화 Humanis ie r ung der S i nn li chke it〉로써 18 세 기 의 또다른 중심문제의 해답이 얻어진다. 18 세기 철학은 〈상상력〉 의 권리 뿐만 아니라 감각과 정열의 권리도 옹호한다. 정열을 〈영혼의 훼방자〉로 보는 데카르트의 입장은 서서히 퇴조한다. 이제 정열은 〈마음 전체를 자극하여 활동을 유지시켜 주는 기 본적 충동력〉으로 나타난다 . 71) 모든 방면에서, 특히 프랑스 심 리학과 윤리학에서 감성의 해방을 위한 외침이 점차 소리를 높 여간다. 17 세기 철학 학설의 주조를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고 전 비극의 형성 동기로서 작용하였던 스토아주의는 점차 에피 쿠로스적 분위기로 대치되어 간다. 그리고 이 에피쿠로스주의 는 다양한 형식과 색조를 띠게 된다. 그것은, 예컨대 라메트리 의 『즐김 의 예술 L'Ar t de Jo u ir,』처 럼 , 감각적 즐김 을 옹호하기 도 하고, 또는 존재의 즐김을 지적으로 세련시키고 승화시키는 방 편이 되기도 한다. 파리의 니농 드 랑클로 N i non de l'Enclos 살 롱이 나 런던의 마담 드 마자랭 Mme de Mazarin 살롱에 모여 들 던 17 세기 〈자유사상가들 les li be rti ns 〉은 즐김의 예술을 완성시 키 고자 시 도한다. 생 떼 브르몽 St. Evremond(1616-1703) 은 이 런 71) 이 책 147 쪽 이하를 참고하라 . 72s) ie c자 /e유 , 사Pa상ris가, 들19에29 , 관28해 쪽 서을 는 보 라M.o rnet, La Pensee Fran~ais e au XXJil

예술의 가장 중요한 대변자이다 . 7 2 )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쓴 일 련의 글들은 모두 줄김의 예술을 옹호하는 하나의 학파임을 자 인한다. 이 학파는 이론적으로 즐거움을 얻는 길과 즐거움을 끈임없이 강화시키고 줄거움의 모든 가능성을 개발시켜주는 수 단과 방법을 일러주고자 한다 . 7 3) 이들이 여러가지로 가르쳐 주 는 줄거움의 세련화도 미학적으로 의의가 없지 않다. 그러나 이런 토대 위에 세워진 미학은 그저 자극의 미학에 불과하다. 그것은 기껏해야 감각적 자극을 인상 깊게 잘 받아들이게끔 할 는지 모르나 예술의 고유한 원천인 자발성의 영역에 도달하지 못한다. 바로 이러한 결점을 극복하려는 것이 바움가르텐의 미 학이다. 바움가르텐의 미학도 역시 감성의 권리를 옹호하나, 감 성을 그저 소극적으로 해방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감성을 적극 적으로 정신적 완성으로 이끌어가려고 한다 . 감성의 완성온 줄 거움이 아니라 아름다움에서 이루어진다 . 미는 줄거움이다. 그 러나 이 즐거움은 단지 자극에 기인하는 줄거움과 종류가 다르 다. 이 즐거움은 단순한 욕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순수직관과 순수인식에 대한 동경에 의해서 일어난다 . 이 미적 줄거움을 통해서 비로소 우리는 감성에 내재하는 생의 내적 운동과 순수 자발성을 체험하며, 〈살아 있는 감각 인식〉의 고유한 영역에 들어선다. 바움가르텐의 미학이 이미 헤르더의 인문주의를 예 상하였듯이, 이번에는 쉴러의 〈미적 교육에 관한 서간〉의 전망 73) cf. Sain t Evremond, Oeuvres meslees, Amste r dam, 1706 ; Remand le Gree, Ag a th o n ou Di al og u e de la volupe , 1702 ; Baudot de Jui ll y, D저i술a l o들g에 u e e대n한tr e 철M저. M한. 분Pa석in은 t eGt . d 'LAabnlsaonnc, ouLrel rsouler /desep I l'ea xisp i r es r , ie1 n 7c0e0 .d an이s la fon nati on de phi l os op h ie du XVII( sie c le en France(Etu d es d'bis t o r i e litter air e , Par is, 1930), 164 쪽 이 하를 보라

을 열어준다. 바움가르텐은 〈감각주의〉와 〈합리주의〉의 대립을 넘어서서 〈이성〉과 〈감성〉의 새로운 생산적 종합의 길을 여는 최초의 사상가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바움가르텐은 자신이 세운 목표를 완성시키지 못한 댜 그는 자신이 분명히 그려본 궤도를 끝까지 추적하지 못한 다. 그는 이미 『미학』의 첫부분에서 〈자신의 저술은 단지 새로 운 학문의 길을 열 뿐이지 이것을 체계적으로 완성시키고자 하 지 않는다〉고 말한다 .74) 또한 주관적인 관점에서 볼 때에도 이 미 그에게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그의 저술이 강단 철학의 어법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바움가르텐이 옹호한 새 로운 사상은 이에 걸맞는 새로운 서술형식을 찾지 못했다. 그 의 서술방식은 새로운 사상을 마치 스키 구두의 조임쇠처럼 구 절구절마다 잠구어서 본래 이 사상의 자유로운 생동성을 잃게 하였다. 바움가르텐울 올바로 읽어내는 사람은 이 두꺼운 껍질 속에서 그의 사상의 순수한 핵심을 찾아내고 이에 알맞는 새로 운 서술방식을 생각해 낼 것이다. 헤르더는 자신의 『강단 연설 집』에 「강단철학에 있어 우아의 개념에 관하여」라는 글을 싣는 다. 여기서 그는 우아의 개념을 명료하게 하기 위해서 누구보 다도 바움가르텐을 언급한다. 바움가르텐의 미학을 〈섬세한 단 순성으로 가득차게, 그리고 보통 사람의 눈에 잘 안 보일 뿐만 아니라 아무런 영감도 없는 사람에게는 홈집으로 보이는 ‘작은 매력들’ 로 가득차게〉 75) 만들어 준 것은 다름 아닌 우아라고 말 한다. 실제로 바움가르텐의 영향력은 매우 미미하여 당시 독일 문학계에서 거의 잊혀지다시피 했다. 레싱이 처음으로 두꺼운 74) Aesth e ti ca , §5. 75) Herder, Werke (Sup h an) :XXX, 325 쪽.

껍질을 깨고 바움가르텐에로의 길을 열어준다. 그는 사유와 행 위를, 이론과 삶을 하나로 묶어서 〈살아 있는 앎〉이라는 바움 가르텐의 요구를 완전히 실현시킬 수 있었다. 바움가르텐이 진 정한 미학자의 자질로 여긴 모든 것들이 레싱의 정신 속에 구 현되어 있다. 풍부, 위엄, 진실, 명석, 확신, 충만 그리고 고 상함의 계기들이 레싱에게 내재해 있다. 〈예민하게 감응하는 소질〉과 〈타고난 상상력의 소질〉과 〈섬세한 미적 감식력의 소 질〉과 〈타고난 총명〉이 조화롭게 잘 어울려 레싱에게 나타난 댜 이러한 여러 요소의 조화로운 통일로 말미암아 레싱은 비 할 수 없는 자신의 위업을 이룩하고 사상사에 확고한 위치를 점할 수 있게 된다. 만약 레싱의 저술에서 단순히 여러 가지 미학적 기본 개념들의 내용만을 본다면, 이는 레싱의 진면목을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개념들의 내용은 그가 처음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그 당시에 이미 만들 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레싱이 사용하는 대부분의 미학 개념이 나 원리는 그 당시의 문헌 속에 예켄대 바움가르텐, 스위스 학 파, 섀프츠베리, 뒤보스 내지 디드로의 문헌 속에 이미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빌미로 레싱의 기본 사상에 아무런 독창성이 없다고 판단한다면, 이는 전적으로 잘못이요, 오해이 다. 레싱의 독창성온 새로운 개념 내지 사상 계기의 창안이 아 니라 그의 손에 이미 들어 있는 여러 재료들을 질서 있게 결합 하고 논리적으로 가지를 치고 분류하여 잘 엮어 짬에 있다. 레 싱은 이 점에서 탁월한 논리학자이다 . 그러나 분류하여 비판적 으로 취사선택하고 다시 이를 정리해 짜맞추는 일은 형식 논리 의 연결과정과는 다른 것이다. 레싱의 목적은 단순히 개념들의 논리적 단계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개념들을 각기 그

고유한 생명 원천으로 환원시켜서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일이 댜 그는 당시 중요한 미학 개념들에 대해 이 일을 이루어냈 댜 이렇게 해서 재해석된 개념들은 형식과 추상의 빈곤을 극 복하고 구체적으로 체험된 직관 내용으로 가득 채워진다. 이 내용 덕분에 개념들은 다시 예술적 창작과정에 직접 관여해서 영향을 줄 수 있게 된다. 레싱의 이러한 업적을 위하여 중요한 것은 개념의 질료가 아니라 개념의 형식이요, 개념의 논리적 정의가 아니라 개념의 지적 변화이다. 용광로 같은 레싱의 정 신 속에서 개념의 변화, 변형, 재생이 거듭 이루어진다. 레싱 은 최고의 지극한 의미로 사용된 〈시인〉의 칭호를 포기한다 .. 왜냐하면 그는, 진정한 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시상(詩想)을 형상화시켜주는 〈창조적 마력〉, 진정한 시인으로 하여금 자신 의 형상물들에 현존과 생명력을 불어넣게 하는 〈창조적 마력〉 을 자신이 구비하고 있지 못함을 잘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나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 보여지는 〈이 러한 형상화의 방식〉이 자신에게 결여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이처럼 레싱이 위대한 시인의 마법을 지니지 못했지만, 그 대 신 그는 자신의 이전이나 이후 어느 누구도 갖추지 못한 〈사유 의 마법〉을 지니고 있었다. 이 사유의 마법에 걸려든 개념들은 모두 요술처럼 변하기 시작한다. 개념들은 〈단순히 죽은 결과 물〉에서 다시 〈근원적인 창조력〉으로 그리고 〈직접 움직이는 충동력〉으로 되돌아간다. 개념들은 더 이상 기성적인 완전한 존재가 아니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완전한 징표들의 총계〉 가 아니댜 개념들은 생성한다. 이러한 생성과 변화의 양상에 서, 그리고 개념들이 향하여 나갈 미지의 먼 목표에서, 우리는 개념들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인식한다. 천재와 규율에 관

한, 미술과 시의 관계에 관한, 〈 혼합된 감각들 〉 에 관한, 그리 고 예술의 분류와 체계를 위한, 그리고 기호의 의미에 관한 레 싱 의 가르침 들은 모두, 골격화된 추상적 이 론으로서 나마, 18 세 기 미학의 중요 저술들 속에서 하나하나 찾아질 수 있다. 그러 나 레싱에 이르러서야 이러한 골격화된 이론은 다시 진정한 생 명력을 되찾아서, 예술의 생에 내재화되고 동화된다. 레싱의 비판은 생산적으로 활동하여 예술적 창작을 촉진하고 〈 자극〉하 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러한 자극과 충격은 단지 외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레싱의 비판의 본질은 생산의 내재적 과 정의 비판이요, 이 생산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존재하기 때문 에, 〈생산적 비판〉이 된다. 바로 이런 특징으로 말미암아 레싱 은, 외견상 그저 계몽기의 지적 상속자에 불과한 것처럼 보임 에도 불구하고, 계몽기의 미학을 그 본래의 목표나 한계 밖으 로 이끌어 나간다. 오직 레싱만이, 고트쉐드와 스위스 학파 가, 볼테르와 디드로가, 그리고 섀프츠베리와 이의 추종자들이 이루지 못한 것을 성취할 수 있었다. 그는 한 시대의 미학 사 상을 완성시켰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모든 여건을 넘어서서 새로운 시학의 가능성을 찾았다. 그가 이 가능성에 자리를 마련 해 주고, 이 가능성의 길을 닦았다는 사실, 이것이 독일문학에 기여한 그의 최대 업적이다. 그러나 레싱의 미학에 관한 최근 의 서술에서 76 ) 보여지듯이, 레싱의 비판을 유럽적인 것이 아니 라 독일민족적 업적에 불과한 것이라고 본다면, 이는 레싱 업 적의 중요성을 부당히 폄하하는 일이요, 레싱 업적의 정신사적 76) Cf. Folk ier ski , Entr e le Classic i s m e et le Romanti cis m e. 이 책 578 쪽 에 〈레싱의 업적은 독일 민족적인 것이지 유럽적인 것이 아니다〉라고 쓰여 있다.

참된 의미를 손상시키는 일이다 . 레싱의 개념들과 〈 18 세기 독 일문학의 특수한 문제와 성격 〉 의 관계는 부정될 수 없다. 그러 나 바로 이 관계 덕분에 레싱은 예술 일반에 대한 새로운 기본 견해, 새로운 전망, 새로운 지평을 찾아낸다. 괴테의 말에 의 하면, 역사가이면서 역사철학자로서 헤르더의 의의는, 그가 그 저 사실의 질료적 힘에 굴복함이 없이 온 힘을 기울여 유일하 고 특수한 역사적 사실들에 몰두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괴테 가 헤르더를 칭찬한 것은 〈역사의 여러 잡동사니들을 살아 있 는 유기체로 환생시킬 줄 아는〉 77) 헤르더의 근본 자질이다 . 레 싱의 비판적인 미학 업적에 대해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다. 헤르더가 역사적 실재들에 대해서 지녔던 능력을 레싱은 개념 내지 명제들에 대해서 지녔다 . 미학적 개념들을 보고하고 비판 하고 정리하고 가려내는 논리적 작업 속에서도 레싱은 언제나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어, 죽었던 사상과 개념들을 되살아나게 한다 . 레싱은 새로움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는 온 힘 을 기울여 전통에 매달린다. 그는 전통을 온전히 이해하고, 전 통의 희미해진 흔적과 어둠에 깊이 싸인 길을 힘들여 찾아나가 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그는 단순히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애써 자기 것으로 되새김한다. 이 때문에 그는 당대의 어느 누구 못지 않은 창조적 힘을 지닌다 . 이 힘은 주어진 소 여에 대한 반대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 힘은 기존의 것이 골격화되어 고사(柏死)되지 않도록, 이것을 끊임없이 변형시키 는 충동을 스스로 지닌다. 레싱은 18 세기 미학의 근본 개념과 학설을 이러한 고사의 위험으로부터 구출한다 . 그리고 다음 세 대는 마땅히 이 일에 대해 레싱에게 감사해야 한다 . 괴테는 77) Goeth e an Herder, Mai 1775.

『시와 진실』에서 레싱의 『라오콘』이 이룩한 이 업적을 기린다. 괴테는 자신이 레싱의 근본 개념들의 영광에 힘입어 〈곤궁한 직관의 영역을 벗어나서 자유로운 사상의 광야로 비상하게 되 었음〉을 적고 있다. 레싱의 이 마력적인 힘은 시 분야 뿐만 아 니라 18 세기 철학 전반에 걸쳐 발휘된다. 비판의 기질로 특징 지울 수 있고 비판이 지배하던 계몽의 18 세기가 단순히 비판의 부정적 의미로 전락하지 않고, 비판에 창조력을 되찾아 주고, 비 판을 정신의 끊임없는 갱생의 도구로 사용할 줄 알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레싱의 덕분이다.

옮긴이 해제 - 유태계로 폴란드의 브레슬라우스에서 출생한 카시러 (1847- 1945) 는 베를린, 라이프치히, 하이델베르크, 마르부르크 대학 에서 수학한 뒤, 베를린 대학 강사직을 거쳐 1919 년 이후 함부 르크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193 0-1933 년까지 동대학 총장 직을 역임하였다. 유태인에 대한 나치의 박해가 심하여지자 1933 년 총장직을 사임하고 독일을 떠나 영국으로 망명하여 1933-1935 년까지 옥스퍼드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1935-1941 년 까지 스웨덴의 예테보리 대학에서 강의하였다. 그 후 다시 미 국으로 건너가 1941-1944 년까지 예일대학에서 강의하고, 1945 년 뉴욕에서 임종할 때까지 컬럼비아 대학 초빙 교수로 있었다. 카시러는 코헨 (H. Cohen 1842-1918), 나토르프 (Paul Natr o p 1854-1924), 하르트만 (N ic ola i Hart ma nn 1882-1950) 과 더불어 신 칸트학파의 하나인 마르부르크 학파 Die Marburge r Schule 를 창 시하고 이끌어 나간 중요한 인물이다. 하르트만이 실재론적인 객관주의로 방향을 돌려 이 학파로부터 거리를 점차 멀리한 반

면에, 카시러는 마르부르크학파의 입장을 발전시켜 나가면서 20 세기 초반의 근세철학사가로서 그리고 체계적 철학사상가로 서 독창적 업적을 남겼다. 카시러의 철학사상은 기본적으로 칸트의 비판철학을 계승발 전시켜 간 것이다. 객관적 세계는 무규정적인 다양에 선천적인 원리를 적용시킨 결과로 얻어진다고 주장함으로써 그는 칸트와 의견을 같이 한다. 그리고 대상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 이 의식에 알려지고 규정되는 방식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그의 철학 방법은 칸트와 마찬가지로 선험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경험의 다양을 수용해서 규정하는 원리가 칸트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라 발전해 나간다고 주장함으로써 그는 자신 의 독창적인 철학 사상을 세운다. 다시 말해서 그는 비판 철학 사상을 칸트처럼 합리적인 지식체계에 한정하지 않고, 인간의 정신적인 모든 문화적 경험의 영역에로 확대 적용하여 〈문화비 판〉으로서의 철학을 수립하고저 하였다. 비판철학적 입장에서 인간의 〈순수 존재〉에 대한 파악은 부정되나, 인간의 사유는 〈상징 형식들〉에 나타나는 새로운 실재를 만들어 나간다. 그는 인간 정신의 상징기능에서 다양성을 수용하는 통일적인 구성원 리를 찾아내고, 이 구성원리를 정적이고 고정적인 형식이 아니 라 역동적이고 생성적인 활동으로 해석한다. 그에게 있어 인간 문화로서의 역사란 상징을 형성하는 이념화 과정의 진척사요, 이 에 따라 인간의 자기의식 내지 자기규정도 점점 더 풍요해진 다. 그는 말하자면 칸트의 〈정적 (靜的) 이성비판〉을 확대하여 과학과 도덕은 물론 신화, 언어, 종교, 예술 등 인간정신이 산 출한 모든 문화 영역 전반에 걸친 〈동적인 문화비판〉을 목표로 세우고, 자신의 최대 역작인 『상칭형식의 철학』에서 이 목표를

달성한다 . 카시러의 최초 중요 저서인 『근대 철학과 과학에 있어서 인 식 문 제 Das Erkenntn is p ro blem in der Phi lo sop h ie und Wi ss enchaft der neueren Ze i~』 (3Bde., 1906-1923) 는 근세 철학사 가로서 과학사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과학과 철학의 발전적 교섭에 대한 〈역사-논리적〉 고찰의 한 전형적 형식을 드러내 보인다. 『실체개념과 기능개념 Substa n zbeg riffun dFun- kti on sbegr i fh (19 10) 은 근대 과학의 사유구조를 밝히 고 실 체 개 념 울 기능적인 관계개념으로 환원한다 . 3 권으로 된 대표적인 저술 인 『상정 형 식 의 철 학 Phil o sop h ie der sym bolis c hen Formen 』 (1 923-1929) 에서 20 세기 전반 문화철학의 대가로서 그의 진면목 울 보인다 . 『계몽주의 철학 Di e Phil o sop h ie der Auf k lii run g』 (1 932) 은 18 세기의 다양한 계몽적 사유가 계몽주의의 철학의 완 성자인 동시에 극복자인 칸트에게 이르게 되는 사유형식의 여 정을 그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정형식의 철학을 미국적인 취 향에 맞추어 풀어 쓴 『인간론 An Essay on Man 』 (1944) 이 있는 바, 이 책은 『국가의 신화 TbeMy th of th eS t a te,』 (1946) 와 더불어 일찍이 최명관 선생님의 번역으로 널리 읽혀지고 있다. 2 근세 이후 15 세기에 르네상스 운동이 전개되었고, 16 세기에 루터의 종교개혁이 절정에 달하였고, 17 세기에 데카르트를 비 롯한 위대한 형이상학적 체계들이 중세의 세계상을 뒤바꾸어 놓았다면, 18 세기에는 이들과 대적할 만한 어떤 특징적인 운동

이 있는가 ? 18 세기의 지적인 대변자라고 칭할 수 있는 달랑베 르는 이와 같이 자문하면서 『철학의 요소에 관한 연구』의 서두 에서 다음과 같이 18 세기를 그리고 있다. 〈 우리의 시대인 1 8 세 기 중엽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면, 다시 말해 우리 눈 앞에 전 개되는 사건들, 우리가 만들어 낸 작품들, 우리의 관습들, 심 지어 우리의 일상적인 이야기거리들을 주의 깊게 들여다 본다 면, 우리는 어렵지 않게 관념의 놀랄만한 변혁을 느껴 알 수 있으며, 이 변혁의 속도가 너무나 빨라 다른 어떤 세기보다 더 커다란 변화가 장차 도래하리라고 믿는다. 물론 이 세기가 지 난 후에야 비로소 이 변혁의 대상이 무엇이며, 그 본성과 한계 가 어떠한지를 그리고 그 변혁의 장단점이 무엇인지를 확실하 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즐겨 이 시대를 ‘철학의 시 대’ 라고 일컫는다. …… 일단 철학함의 새로운 방법을 발견해 서 활용하게 되면, 이에 따른 열광은 곧 관념의 비상을 일으키 고, 마침내 시대의 정신이 힘차게 끓어오른다. 이러한 발효는 마치 뚝을 무너트린 물줄기처럼 모든 방향으로 퍼져나가 모든 것을 집어 삼킨다. 과학의 원리로부터 계시종교의 근거에 이르 기까지, 형이상학의 문제로부터 취미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음 악에서 도덕에 이르기까지, 신학적 논쟁에서 경제와 상업의 문 제에 이르기까지, 군주의 법에서 민중의 법까지, 자연법에서 실증법까지 모든 것들이 논의되고 분석된다. 시대 정신의 보편 적인 발효로 말미암아 새로운 빛과 새로운 어둠이 생긴다­ 마치 밀물이 새로운 많은 것을 해변으로 가져오는가 하면, 썰 물은 다른 많은 것을 해변으로부터 거두어 어둠 속으로 집어 삼 켜버리듯이.〉 마치 오늘의 한국적인 삶의 모습을 그려놓은 듯한 달랑베르

의 이 글에서 〈 철학의 시대〉라는 18 세기의 별칭은 달리 말해 〈이 성의 시대 〉 요 〈 비판의 시대〉요 〈계몽의 시대〉이기도 하다. 이 시대의 철학함은 〈 감히 알려고 하라! Sap er e aude! 〉라는 칸트의 이른바 〈계몽의 표어〉에의 충실함이다. 모든 것울 의문시하고 비판하고 분석하여 알려고 하는 이 시대의 보편적인 지적 에너 지의 일대 발효는 다양한 측면들에서 다양한 결과들을 낳았다. 이 결과들만을 볼 때, 이것들은 서로 상이할 뿐만 아니라 심지 어 서로 어울리기 어려운 모순들로 보일 것이요, 서로 이질적 인 사상적 계기들의 혼잡으로 보일는지 모른다. 계몽주의 철학 의 진정한 역사적 의미를 올바로 인식하려면, 이러한 결과물들 만 볼 것이 아니라 이들을 낳게 한 계몽철학의 다양한 문제의 식들과 다양한 해결의 시도들을 하나의 통일적인 운동의 중심 점으로부터 해석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카시러의 『계몽주의 철학』은 이 과제에 대한 해답이다. 이 책은 계몽주의 시대의 철학의 전개 과정과 그 결과에 대한 역사적 서술적인 보고가 아니라 이 철학의 내적 운동 자체를 다시 말해 이 철학의 극적 인 사유행위를 사상적 원천과 원리의 통일성에서 드러내 보인 댜 다시 말해 계몽주의 철학의 자연관, 인간관, 역사관, 사회 관, 종교관 그리고 예술관을 규정하는 근본적인 힘들과 이념들 을 추적함으로써 다양한 학설들과 이론들의 어지러운 미로를 헤쳐나갈 확실한 실마리를 제공하려는 것이 이 책의 의도이다. 끝으로 이 책의 번역 작업을 후원하여 주신 대우학술재단에 감사드리고, 개인적으로 이 번역서가 나오기까지 많은 도움을 주시고 신세를 끼친 분들께 일일이 고마운 인사를 드리며, 오 늘의 세태에서 인기 없는 학술서를 마다않으시고 출판하여 주 신 민음사 박맹호 사장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기 가우스 K. F. Gauss(lm-1855: 독일의 수학자이며 물리학자 비(非)유클리드 기하학 발견) 106 갈릴레이 Gali lei 25-26, 65-6 7 , 74, 266, 276, 324, 341 고트쉐드J. C. Gott sc hed(1 7 00 -17 66: 독일 문학가 . 예술에서 감정과 감각의 추방울 주장. 보드머와 브라이팅거의 감정 존중론에 의해 반격을 당함) 438 , 440 -44 4 , 446 , 472 괴테 Goeth e 105, 122, 185-186, 277, 371, 391, 441, 455-456, 463, 473-474 그로티우스 H . Groti us (1 5 83-1645: 네덜란드의 자연법학자) 192, 250, 316 - 317 , 320 -32 6 , 334 , 343-346 기번 E. Gi b bon(1 7 37-1794: 『로마제국 홍망사 The his tor y oft he Declin e and Fall ofR oman Emp i re ,』를 쓴 영 국의 계몽기 역사가) 267 공자 Con fuc iu s 223 L 뉴턴 New ton 22-23 , 25 , 27 , 55 , 67-6 8 , 77 , 7 冠 2 , 'ol-8 8 , 90 , 92 , 109, 111, 123-124, 140, 208, 267, 289, 325, 328, 358, 374, 383, 444 C 다르장송 d'Ar g enson (1 694-1757: 1744 년 외무장관에 지명된 외교가) 355 단테 Dante 446 달랑베르 d'Alembe rt 17, 19, 23, 28, 39, 41, 56, 70, 81-83, lo6, 140 , 269 , 298-300 , 331-332 , 357 , 359 더햄 W. Derham( 16 57-1735: 영국의 신학자. 철학자) 72

데카르트 Descart es 12, 17, 22, 29, 40-41, 47-49, 51, 55-56, 61, 75-77, 79-81, 83, 87, 90-92, 109, 114-118, 124, 131, 133-134, 136 , 140 , 145 , 147-148 , 171, 194 , 214 , 219 , 246-247 , 268-269 , 279, 313, 358, 372-373, 376-377, 381-383, 387, 410, 427, 440, 444, 467 데 랑드 Deslandes 301 도니냐크 d'Aub ig nac(1604-1676 : 프랑스 문예비평가 • 극작가) 374 뒤 링 Duhri ng 299 뒤보스]. B. Dubos(1 6 60-1742: 프랑스 의교관 • 역사가 • 미학자) 175, 394 , 402-4 0 3 , 428-4 3 1 , 439 , 462 , 470 뒤 클로 Duclos 31 디 드로 Did e rot 12 , 31, 46 , 55-56 , 71, 95 , 103-104 , 106-108 , 110 , 127-129, 139, 150, 152, 157, 161, 164, 184, 218, 221, 224, 228- 22 9 , 251, 300 , 326 , 329 , 331-332 , 357-359 , 391-392 , 394 , 396, 411- 41 3, 440, 443, 470, 472 딜타이 Dil the y 265 근 라그랑지 J. L. Lag ra nge ( 1736- -18 13: 프랑스 수학자 • 천문학자) 106, 299 라메 트리 Lamett rie 81-82 , 95-9 6 , 467 라이마루스H. S. Reim a rus(1694-1768: 독일의 대표적인 이신론자) 215, 237 라이프니츠 Le i b niz 12, 22, 27, 29, 40, 47-56, 61, 84, 115, 118, 120, 122-124, 126, 132, 148, 159 -16 0, 163, 167, 168-171, 175, 180 , 200 , 203-204 , 208 , 214 , 223 , 235 , 255-259 , 301, 304-306 , 308, 317, 334, 339, 383, 439, 441, 452-4 5 5, 461, 466 람베르트J. H. Lambert (1 72. 8-lm : 독일의 철학자 • 수학자 • 물리학자 • 철학에 서 칸트의 선구자. 수학에서 라그랑지. 가우스의 선구자임) 12, 180 -18 2

레서 Leser 72 레 싱 Lessin g 175 , 229-230 , 254-260 , 287-288 , 307 , 365 , 393 , 423 , 440, 462, 469-474 로버트슨 W . Roberts o n(1721-1793: 영국의 역사가) 267 로시우스 Loss i us(1743-1813: 감각 및 사상의 생리학적 유물론적 설명을 시도 한 독일의 철학자) 162 로크 Locke 12, 33-34, 81, 87, 131, 133, 140 -14 2, 144-145, 167, 173 , 180 -18 1 , 230 , 235 , 238 , 327-328 , 334 , 415 롱기 누스 Long inu s 434 루소 Rousseau 71, 151, 193, 208-213, 338, 345-356, 358, 360--3< i 6, 374-392 루크레티우스 C. T. Lucreti us (B.C. 94-A.D. 55: 에피쿠로스학파의 시인) 108 루터 Luth er (1483-1546) 191, 216, 320 르보쉬 Le Bossu(1631-1689: 프랑스의 성직자) 375 린네 Lin n e 112 루이 14 세 224 , 295 루이 16 세 387 , 391 □ 마키아벨리 N. B. Macchia v elli(1 469 -15 27) 291, 320 말브랑슈 Malebranche(1638-1715 : 기회원인설을 주장한 프랑스 철학자) 12, 22 , 29 , 137-138 , 171, 214 , 246 , 268 , 377 , 465 멘델스존 M. Mendelssohn(1729 -17 86: 독일 계몽사상가 • 통속 철학자) 174-175, 256-257, 259 -26 0, 466 모리츠 K. P. Moritz 463 모스하임J. L. von Mosheim ( 1693-1755: 독일 프로테스탄트 신학자) 266 모어 Hen ry More(l614-1687: 케임브리지 플라톤학파 중의 가장 유명한 철학

자) 116 -11 7, 120, 188, 192 모페르튀이 Maup er t uis( 1688-1759: 프랑스 수학자 • 물리학자 • 천문학자) 55, 81, 122, 123-124, 126-127, 141, 165-166, 203-205 몰리닉스 W . Molyn e ux(1656-1698: 영국의 철학자 • 천문학자) 151-153, 159 몽테스키외 Mote s qu i e u (1689 -17 55) 12, 30, 37-38, 71, 223, 279-287, 290 , 311, 324-326 , 394 무쉔브뢰 크 Mussenbroek 92 미카엘리스 M i chae li s 266 미켈란젤로 M i chelan g elo 412-413 밀 리 우스 My lius 442 밀턴J. Mi lton (1608-1674) 202, 409, 424, 446 t:f 바토 C. Batt eu x(1 7 13-1780: 프랑스의 평론가 • 계몽철학자) 374 바움가르텐 A.C. Baumg ar t en (1714-1762: 독일 미학의 창시자로서 볼프학파 중 최대 철학자) 55, 447-4 60, 462-464, 466, 468-470 버네트 Burnet 73 버 질 Vir gil 410 버크 E. Burke(1 7 29 -17 97: 영국의 정치가 • 미학자) 435-437 버클리 Berkeley 33, 87, 140, 152-158, 160, 163-164, 167, 172, 176, 415 번얀J. Bunya n (162 8-16 88) 409 베르누이J. Bernoull i(1 654-1705: 스위스 수학자. 베르누이 수 발견자) lo6 베이컨 Bacon 12, 87, 143, 158, 173, 339 벨 P. Bay le (1647-1706: 계몽시대의 프랑스 철학자, 회의론파) 218, 224- 226, 234, 250, 268 -30 0 보네 C. Bonnet( 1 720 -1 793: 스위스 박물학자 • 철학자) 173 보댕J. Bod in(1 530 -15 96: 프랑스 절대주의 성립시기의 대표적인 정치 철

학자) 320 보드머 J. J. Bodmer(1 6 98-1783: 공상과 감정의 해방을 주장한 스위스 작가) 441, 446-447, 450, 462 보몽 Beaumont , Chris t o p h von 211 보방 Vauban 354 보캉송 Vaucauson 97 보브나르그 Vauvenar g ues(1715-1747: 프랑스 도덕철학자) 150 보쉬에 ].B. Bossuet( 1 629-1704: 왕권신수설을 주장한 프랑스 정치학자이며 신 학자) 275-276 , 293 , 295 볼테 르 Volta ire 12 , 28 , 55-56 , 71-72 , 74 , 80 -81 , 104 , 123 , 138 , 140 , 150 , 152 , 156 , 161, 183 , 193 , 197-203 , 210 -21 1, 223 , 226 , 238 , 267-298 , 311, 326-327 , 335-337 , 358 , 387 , 391-392 , 472 볼프 C. Wolff 12, 54-56, 123, 167-168, 170, 180, 223, 235-236, 257 , 306 , 334 , 439-441, 444 , 448 , 454 부우르 Bouhours 399-400 , 402 , 422 뷔퐁 Bu ffo n(1707-1788 : 백과전서파의 프랑스 박물학자 • 철학자) 55, 73, 111-114 브루커 Brucker(16%-1770: 철학사 연구가인 독일 철학자) 300 브루노 Bruno 60 , 64 브와기베르 P. Bois g u i l leb ert (1 646-1714: 중농주의 선구자인 프랑스 경제학 자) 354 브알로 D.N. Boil ea u(1636 -17 11: 프랑스 문예 비평가 • 시인) 374, 379 -38 0, 385-386, 389-391, 393, 398-399, 416, 434 브라이팅거 J. Breit inge r(1701-1776: 스위스 작가 • 문예 평론가) 442, 445-447, 463 부울랭빌리외 H. Boulain v il liers (1658-1722: 프랑스 역사가 • 비평가) 354 비 베 스 Lodovic o Viv e s 291 비코 V ic o 278 빈델반트 W in deband 371

人 섀프츠베리 Shaft es bury 120 -12 2, 200, 206-208, 414-4 2 2, 424, 426-4 3 4, 436, 440, 442, 斑, 470, 472 셰 익 스피 어 Shakesp ea re 424-4 2 5 , 471 소크라테 스 Sokrate s 315 손더슨 N. Saunderson(1682-1739: 영국의 맹인 수학자) 161 쇼펜하우어 Schop e nhauer 145 , 200 셰니에 M. J. Chenie r (1764-1811: 서정 시인 • 극작가 • 정치인) 376 쉴 러 Sch iller 433 , 451, 468 슈타인 H. v. Ste i n 427, 460 슈팔딩 A. Sp al din g(17 75-1821: 미국의 의사 • 해부학 교수) 236 스그라베잔데 s'Gravesande 88, 90, 92 스위 프트 Swif t .16 1 스피노자 S pin oza 12, 14, 22, 29, 48-4 9 , 61, 83, 100, 147, 214, 247-256, 465 시 몽 Sim o n 246 -24 7 , 301 。 아르미니우스J. Arminius (1 5 60 -16 09: 네덜란드 신학자) 192, 320 아르키 메 데 스 Arch ime des 56 , 269 , 329 아리스토텔레스Arist o t eles 56, 6o, 108, 140, 163, 258, 316, 410, 416, 440, 464 아우구스티누스 Au gu s tin us 188, 190 -19 1, 193-194, 215 아우렐리우스 M. Aureliu s 416 아퀴 나스J. Aq ui n as 323 야코비 Jac obi 254 얀세니우스 C. Jan sen ius (1585 -16 38) 194

에디슨 409-442 에 라스무스 Erasmus 188 , 191, 193 , 216 , 250 , 320 에르네스티J. Ernesti (1 707-1781: 루터파의 신학자 • 언어학자) 250, 266 에 피 쿠로스 Ep iku ros 108 , 410 엘베시우스 C . A. Helveti us (1715-1771: 프랑스 계몽기의 유물론 철학자) 44-46, 150, 329 영 Young 424 예루살렘 K. W . Jer salem(1854-1923: 발생론적 • 사회학적 입장을 견지한 독일 의 철학자 • 교육학자) 236 예 수 Christ u s 223 오일러 L. Euler(1707-1 7 83: 베르누이의 제자인 스위스 수학자) 106, 358, 413 오질비 Og ilby 409 츠 제믈러J . S . Semler(1725-1791: 독일 프로테스탄트 신학자·교회사가·성서학 자) 193 , 236 , 250 , 266 줄처J .G. Sulzer( 독일의 라이프니츠-볼프학파) 175 쥐 리 의 P . Jur ie u (16 37-1713 : 프랑스 칼빈주의 옹호자) 224 大 체 슬든 Cheselden 159 체 스터 필드 Cheste r Fie l d 297 구 커드워스 R. Cudwort h( l617-1688: 케임브리지 플라톤학의 대표) 117, 192

칸트 Kan t 14-15, 28, 114, 131-132, 137-138, 162, 164, 167, 170, 182 , 205-206 , 208 , 220 , 233 , 266 , 300 , 350 , 365-366 , 369 , 371 , 374, 396, 423, 431, 434, 441, 447-4 48 칼라 Calas 226 칼빈 Calvin 191, 319-320 케플러 Kep le r 25, 27, 65, 67 코르네이유 Corne ill e (1606- 1684 : 프랑스 고전 비극의 아버지로 불리는 극시 인) 148 코페 르니 쿠스 Cop er nic u s 66 , 276 콩도르세 Condorcet 267 , 291, 337-338 콩디야크 Cond ill ac 12, 24, 34-35, 37, 42-44, 46, 79, 95, 140 -14 6, 153, 157, 163-164, 167, 173, 176, 387, 440 쾨 니 히 Kon ig 123 쿠자누스 Cusanus 188 , 192 , 222-223 쿠튀 라 Coutu ra t 48 크라머 Cramer 442 클라크 S . Clarke(1675-1729: 영국의 철학자 • 신학자) 238 클롭스톡 F . G. Klop st o c k(1724-1803: 독일 계몽주의 전기의 대표적 시인) 1T7 키 케 로 Cic e ro 271, 404 , 410 E 테텐스J .N. Tete n s(173 6-18 05: 독일 계몽기의 심리학자 • 철학자, 지 • 정 • 의 라는 정신활동의 삼분법을 확립) 172-173, 176, 180, 182 톨랜드J. Toland(1669 -17 22: 아일랜드 태생의 이신론자) 230 -23 1 틴 달 M. Tin d al(1 6 57-1733 : 영 국의 이 신론자) 232-233 튀르고 A.R ,J. Turgo t ( 1 727-1781: 프랑스 계몽기의 경제학자 • 정치가) 46, 267

工 파브리 시 우스 Fabric ius 72 파스칼 Pascal 32 , 194-200 , 206 , 209-211, 399 페늘롱 Fenelon (1 651-1715 : 프랑스 성직자 • 문학자) 354 펠 라기 우스 Pelag ius (36 0-42 0 : 영 국 최 초의 신학자) 190 포프 A. Pop e( 1688-17 44 : 영국 고전주의 대표적 시인) 208-209 퐁트넬 B. Fonte n elle(1 6 57-1757: 프랑스 문학자 • 사상가) 32, 56, 73, 75, 79, 115, 162, 358 푸펜도르프 Pufe n dorf (16 32-1694: 독일의 자연법학자 • 국제법학자) 318 플로티 노스 Ploti no s 416 , 421 프리드리히 대왕 Fr i edr ic h d. Gro~e 102, 290 프톨레미 66 플라톤 Plato n 8 , 56 , 60 , 108 , 137 , 140 , 150 , 190 , 314-317 , 321- 322 , 355 , 410 , 416 , 421 피치누스 M. Fic inu s(1 4 33-1499: 이탈리아 인문주의자 • 플라톤 주의자) 188 피 히 테 Fic h te 350 -_O 하만 Hamann(173 0- 1788: 독일의 신앙철학자) 311 허치슨 F. Hutc h eson(1 6 94-1747: 영국 계몽기의 도덕철학자) 418, 426 -427 헤 겔 Hege l 11, 216 헤 르더 Herder 122 , 260 , 279 , 287 , 307-311, 464 , 468-- 469 , 473 헤르츠 Herz 137 헤 트너 Hett ne r 442 호라티 우스 Horati us 379 호메 로스 Homeros 442 , 446 , 471 호이헨스 Hu yg ens 27, 87, 97

홀바하 Holbach 81-82, 95, 100, 103-105, 183, 357 홈 Home 418 홉스 Hobbes 12 , 36~37 , 87 , 301, 319-320 , 340 -34 4 , 346 , 348 . 353 . 461 흄 Hume 12, 23, 33, 40, 86-87, 90-91, 139-140, 143, 149, 167, 172-173 , 176 , 193 , 238-239 , 242-243 , 267 , 301-304 , 311, 405 , 408, 414-4 1 5

계몽주의 철학 대우학술총서 • 번역 84 1 판 1 쇄 찍음 1995 년 2 월 15 일 1 판 1 쇄 펴냄 1995 년 2 월 25 일 지은이 카시러 옮긴 01 박완규 펴낸이 朴孟浩 펴낸곳 (주)딘욥사 출판등록 1991 . 12. 20. 제 16-490 호 135-120 서울 강남구 신사동 506 강남출판문화센터 5 층 515-2000( 대표전화 )/515-2007( 팩시밀리) 값 15,000 원 Prin t e d in Seoul, Korea. © 박완규, 1995 철학 • 서양철학 /KDC 160 ISBN 89-374-4083-0 94160 ISBN 89-374-3000-2 (세트)

대우학술총서 (번역) 1 유목민족제국사 관텐/송기중 42 대폭발 실크/홍승수 2 수학의 확실성 클라인/박세희 43 大 同 書 康有爲/이성애 3 중세철학사 와인버그/강영계 44 표상 포더/이영옥 정성호 4 日本 語 의 起源 밀러/김방한 45 과정과 실재 화이트헤드/오영환 5 古 代漠語 音 韻 學槪要 46 그리스 국가 에 렌버그/김진경 칼그렌/최영애 47 거대한 변 환 폴라니/박현수 6 말과 사물 푸코/이광래 48 법인류학 포스피실/이문웅 7 수리철학과 과학철학 와일/김상문 49 언어철학 올스톤/곽강제 8 기후와 진화 피어슨/김준만 50 중세 이슬람 국가와 정부론 9 이상진리 · 역사 파트남/김효명 램톤/검정위 10 사회과학에서의 場理 論 51 전통 쉴즈/김병서신현순 레빈/박재호 52 몽골문어문법 뽀뻬/유원수 11 영 국의 산업혁명 53 중국신화전설 ] 袁Jlij/전인초 김선자 딘/나경수·이정우 54 중국신화전설 Il 〈근간〉 12 현대과학철학논쟁 55 사회생물학 [ 윌슨/이병훈·박시룡 쿤 外/조승옥 김동식 56 사회생물학 ll 윌슨/이병훈 · 박시룡 13 있음에서 됨으로 프리고진/이철수 57 일반언어학의 제문제 l 14 비교종교학 바하/김종서 밴베니스트/황경자 15 동 물 행동학 하인드/장현갑 58 일 반언어학의 제문제 Il 16 현대우주론 시아마/양종만 밴베니스토/황경자 17 시베 리아 의 샤머니즘 59 폭 력 과 성스러움 디오세지 · 호팔/최길성 지라르/김진식·박무호 18 조형미 술 의 형식 60 갑골학 60 년 亞作賓/이형구 힐데브란트/조창섭 61 현대수학의 여행자 19 힐버트 리드/이일해 피터슨/김인수 · 주형관 20 원 시국가의 진화 하스/최몽룡 62 프랑스 혁명의 지적 기원 21 7ffi文明 弼 t 直「윤대 현 보드너 l li 장참 22 □ ~의 생태학 베 이츤/ 서 석봉 63 해석학과 과학 23 혼돈 속 의 질서 커널 리 · 코이트 너 / 이유선 프리고진· 스 텐저스 / 유기풍 64 서양고대경제 핀리 / 지동식 24 생명의 기원 밀라오르겔 / 박인원 65 음악사회학 베버 / 이건용 25 일반언어학이론 야콥슨 1 권재일 66 앙띠 오이디푸스 26 국가권력의 이념사 들뢰츠가 따 리 / 최명관 마이네케 / 이광주 67 과학커뮤니케이션론 27 역사학 논고 브로델 / 이정옥 프라이스 / 남 태 우정준민 28 유럽의 식 의 위기 I 68 교양교육의 개혁 다 니 엘 벨 / 송미섭 아자르 / 조한경 69 과학과 가치 래 리 라우든 / 이유선 29 유럽의식의 위기 I 70 초기제국에 있어서의 교역과 시장 아자르 / 조한경 칼 폴 라 니 / 이 종욱 30 일반국가학 켈전 / 민준기 71 폭정론과 저항권 헬 라 만토 / 심재우 31 일반언어학강의 소쉬르 / 최승언 72 생명과학철학 32 일반체계이론 버를란피 / 현승일 데이비 드 헐 / 하두봉 • 구혜영 33 현대문명의 위기와 기술철학 73 사랑의 역사 줄리 아 크리스 테바/ 김영 에거시 / 이군현 74 大地의 노모스 칼 슈미트 / 최재훈 34 언어에 대한 지식 촘스키 / 이 선우 75 일반 공법학 강의 레옹 뒤 기 / 이광윤 35 왕근학원론 트루 배 쯔코 이 / 한문회 76 텍스트학 반 다 이크/ 정시호 36 우주의 발견 하 위 트 / 강용희 77 문명의 발생 찰스 레 드만 / 최 몽 룡 37 수학적 발견의 논리 78 근대국가의 발전 G. 폿지 / 박상섭 病토스 / 우정호 79 과학적 발견의 패턴 38 텍스트 사회학 지마/ 허창운 N.R . 헨슨 / 송진옹 • 조숙경 39 현대물리학의 철학적 테두리 80 아랍 문학사 RA . 니 콜슨 / 사회 만 보음/ 전일동 811 8 세기 중국의 관료제도와 자연재해 40 과학과 가치관의 우선순위 P. 에티엔 빌 / 정철옹 스페리 / 이남표 82 역사바교언어학개론 41 신화의 진실 휘브 너 / 이규영 R 안틸라 / 박기덕 • 남성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