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리 라우든 Larry Laudan 1941 년 11 월,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에서 났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역사와 과학 철학을 전공했고 1965 년 동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2 년 이후 피츠버그 대학의 교수를 거쳐 현재는 하와이 대학에 재직중이다. 주저 로 Progr e ss and Its P roblems, Scie n ce and Hyp o th e sis, Scie n ce and Values 등을 꼽을 수 있고, 최근에는 과학철학의 논쟁을 대화 형식으로 꾸며 저술한 Sc i enceandReln ti v is m 을 내놓은 바 있다. 01 유선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고려대학교, 강원대학교 강사이다. 논문으로 「 로티의 네오프래그머티 즘에 관한 연구」. 「 가다머 해석학의 보편성 주장에 관하여」, 「정 신과학

(JM . 커널라 T. 코이트너)이 있고, 공동번역에 『 이데

올로기로서의 과학』 (J. 하버마스)이 있다.

과학과가치 과학의 목적과 과학 논쟁에서의 그 역할

SCIENCE AND VALUES

TheTirh e R Aolie m i sn oS fc iSe cn ite i n fcice D anebda te Lany Laudan Un ive rsit y of Cali for nia Press Berkeley Los Ang el es London

과학과가치

과학의 목적과 과학 논쟁에서의 그 역할 래리 라우든지음 이유선옮김 민음사

감사의글 지적인 측면에서 누군가에게 감사의 말을 글로 남긴다는 일은 언제나 불안하다. 이런 일이 성공하는 것은 처음부터 분명히 알 수 있는 잡다한 개념과 논중들을 주제에 대한 접근과정에서 다 시 생각해 낸다는 식의 미덥지 못한 가정에 의존하고 있다(유명 인사들을 접견해서 테이프에 기록한 역사 자료 같은 것이 혹평을 받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 저자들이 의지할 수 있는 몇 가지 비망록 이 있다. 자기 스승의 이름을 기록하거나, 도서관에서 본 저자 의 이름 혹은 자기 친구의 이름을 기록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있어서 내가 택한 것온 다른 기준을 사용해서 감사 의 의무를 줄이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나는 이 책을 전부(혹 은 부분적으로) 읽고 조언을 해준 친구와 동료들에게 분명한 지 적인 채무를 지고 있다. 이들이 비판을 해준 덕에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말 중에 새로운 것이 하나 도 없다고 생각했을 때 이들의 격려는 나에게 지탱해 나갈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여기 기록하는 것은 그들의 이름이다. 이 책 은 나의 노력 못지않게 그들의 노고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나오기까지 여러 가지 역할을 맡아 수고 해 준 분들께 가슴깊이 감사드린다. 다음은 그분들의 이름이다. Paul Anderson, Pete r Baker, Benj armin Ba rt, Henr y Bauer, Gerd Buchdahl, Rich ard Bu rida n, Robert Butts , Rich ard Creath , Arthu r

Donovan, Gerald Dop pe lt, Mauri ce Fin o cch iar o, Arthu r Fin e , Ron Gi er e, Clark Glym our, Adolf Gruenbaum, Gary Gutt ing , Carl Hemp el , David Hull, Norett a Koertg e , Rachel Laudan, Jare tt Lep li n , Andrew Lug g, Eman McMull in, Illcka Ni inilu oto , Jos eph Pit t, Nic h olas Rescher, Alex Rosenberg, Eleanore Stu m p , Robert o Tore tti, Ste ph en Turner, Robert Westm an, Joh n Worr all, Ste v e Wy ks tra . 국제 학술재 단 Na ti onal Scie n ce Founda ti on 과 국제 인 문학기 금 Natio n al Endowment for Human iti es 에 는 다른 의 미 의 감사를 드린 댜 이들 기관의 지원으로 이 프로젝트를 완수할 수 있었다. 초 고를 수정하고 다듬어 준 콕스 Bec ky Cox 에게도 감사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만들어지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 이 책 의 중심적인 생각에 대한 반응을 얻기 위해 1 장과 5 장을 Mi nerv a 와 Ph ilo sop hyof Sc ie nce 에 실온 적이 있다. 그 원고를 다시 묶어 책으로 내는 것을 허락해 준 잡지의 편집자들에게 감사드린다.

불랙스버그, 버지니아 1983. 7. 15. 래리 라우든

서문 이 책의 제목은 심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서가에서 이 책을 꺼내면서 독자는 내가 과학과 윤리학의 관계에 관한 복 잡한 문제로 씨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독자는 아마도 이 책이 기술과 과학에 의해 폭넓게 노정된, 자칫하면 통제할 수 없는 심각한 윤리적 딜레마를 다루는 평범한 책의 하 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분명히 말을 하고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과학자들을 어떻게 하면 더 도덕적 으로 만드느냐 혹은 도덕 이론을 어떻게 과학적으로 만드느냐 하는 문제를 다루는 책이 아니다. 물론 그런 결과가 나온다면 매우 바람직하겠지만 말이다. 나는 과학자들에게 그들이 알지 못하고 있는 과학적 탐구의 도덕성에 관해서 뭔가를 말해 줄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더구나 나는 과학 기술이 가져오는 윤리적인 문제에 직면 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옳은 것인지 잘 모르고 있다.1) 이런 문제는 물론 화려한 주제가 되기는 한다. 그러나 내가 여 기서 다루고자 하는 문제는 아니다. 이 책에서의 나의 관심은 도덕적인 가치에 관한 것이 아니다. 윤리적인 규범이나 행위의 규칙이 아니라 인식적인 가치, 방법론적인 규범이나 규칙이 나

1) 나는 그 이유를 설명한 적이 있다. Laudan, 1982 참조.

의 관심사이다전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인식적 가치보다는 윤 리적인 가치를 다루는 것으로 예상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과학 안에서, 그리고 과학에 관해서 일어나는 깊이 있 는 가치 문제가 윤리적이나 도덕적인 가치와 관계가 있어야 한 다고 생각해 왔음을 증명해 준다. 이 책의 제목이 말해 주고 있 듯이 나는 이 책에서 가치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도덕적 가치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런 가치들은 과학적 기획에서 지배적인 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윤리학이 과학에서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아니 댜 오히려 윤리적인 가치는 언제나 과학적인 의사결정에서 반 영되고 있으며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중요성은 편재해 있는 인식적 가치의 역할과 비교해 보면 크게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 이 책에는 과학적 합리성보다는 과학 적 도덕성에 더 마음을 빼앗긴 최근의 학자들에게 균형 감각을 찾아주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다.

2) 인식적 가치나 목적을 비인식적 가치나 목적에서 어떻게 정확히 구분하 느냐 하는 문제는 대단히 복잡하다. 이 책에서는 편의상 다움과 같은 입 장을 취했다:어떤 속성이 〈좋은 과학〉을 구성한다고 생각되는 이론의 속성을 나타내주면. 그 속성온 인식적 가치나 목적으로 여겨질 수 있다 .

간단히 말해서 이 책은 과학적 합리성을 형성하는 데서 인식 적 가치가 맡는 역할을 논한 것이다. 현대의 학자 중에 토마스 쿤T homasKuh 퍄i다 과학에서의 인식적 기준과 역할에 관심을 집

중시킨 인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사실, 지난 20 여 년 간 쿤의 견해一一그리고 그에 대한 논박―—는 과학적 변화와 과학적 합리성에 관한 설명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해 왔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 이 쿤의 『과학혁 명 의 구조 The Str ucture ofSc ie ntific Revolu ti o11S 』는 우리로 하여금 과학이 무엇이고 과학이 어떻게 작 용하는가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를 재고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과학철학, 과학사, 과학사회학 등의 모든 분야가 쿤이 가져온 형태 전환에 의해 형성된 과학적 합리성의 문제에 접근하고 있 댜 쿤의 이러한 업적은 이미 폭넓게 인정되고 있기 때문에 여 기서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3 ) 여기 덧붙여야 할 사실온 『과학혁명의 구조.!J가 나온 이후 20 년 동안 철저한 역 사 연구와 분석 작업을 통해 과학적 합리성과 과학적 변화의 과 정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쿤이 남겨놓은 지점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3) 쿤의 업적에 대해서는 Gutt ing, 1980 참조.

이제 우리는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전개되고, 『본질적 긴장 The Essenti al Tens i on .11에서 세련화된 쿤의 과학적 변화의 모델이 세세한 부분에서 뿐 아니라 그 중심적인 틀도 심각한 결함을 가 지고 있다는 것을 매우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와 있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그 선구적인 역할에도 불구하고 이제 이런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더이상 표준적인 준거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 이런 사실을 분명히 함으로써 이 영역의 기술적인 문헌들을 탐독할 톰이 없는 사람들이나 과학자 공동체가 쿤의 저작이 이 문제에 관한 최종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도 불충분하다. 한 학문 분야의 수호신을 격하시키는 일이 쉬운 일일 수 없다 . 각각의 사례가 세심하게 구성되어야 하고 문제의 본질을 꿰는 것이어야 한다. 이 책은 그런 노력에 기여하고자 하는 것이다 . 나의 의도가 오 해받지 않기 위해서 내가 그저 쿤의 정체를 폭로하려는 것이 아 님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의 나의 주된 관심은 과학 적 논쟁과 과학적 의사 결정에 관한 설명에 있다 . 이런 설명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나는 반복해서 많은 사람들이(비록 자신의 주 장에서 불확실한 태도를 보였던 쿤 자신에 의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 고) 쿤이 확립했다고 간주하는 테제들을 부정했다. 그런 이유에 서 쿤은 인정을 받기도 하고 심하게 조롱을 받기도 하는 양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은 물론 잘못된 이미지이다. 우리 시대에 이 분야에서 활동하는 그 누구도 쿤을 그의 체계에서 완전히 끄 집어낼 수는 없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그는 분명히 중요하고 생산적인 물음을 제시했다 . 우리가 요구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질문에 대한 그의 대부분의 대답이 별로 설득력 이 없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하자는 것이다. 이 책은 쿤의 물음에 대해 쿤 자신이 내놓았던 것보다 더 나

은 대답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쿤이 파이어아벤트 Fe y erabend 나 핸슨 Hanson 같은 그의 동료들을 따라서, 자신의 질 문만큼이나 설득력 있는 대답을 내놓지 못한 이유를 진단해 보 겠다. 이런 주장에 어떤 교만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댜 오히려 쿤의 주저가 나온지 20 여 년이 지난 오늘날 그런 주 장을 할 수 없다면 뭔가 찰못된 것이다 . 비록 과학과 다른 모든 것이 분명히 구분된다고 믿온 쿤 자신이 부정하긴 했지만, 과학 에서와 같이 철학에도 분명히 진보가 있다. 쿤의 질문에서 출발 해서 그의 관점을 넘어섰다고 주장함으로써 쿤의 업적에 홈을 내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의도도 아니고 내 힘으로 되는 것 도 아니다. 그것은 쿤의 주장을 넘어선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를 밝히게 될 이하의 논증이 떠맡아야 할 짐으로 주어져 있다.

과학과가치

과학의 목적과 과학 논쟁에서의 그 역할

차례

감사의 글 5

서문 7

제 1 장 과학에 관한 두 가지 수수께끼 : 과학철학과

과학사회학에서의 몇 가지 위기에 관한 고찰- 15

합의의 관점과 일치의 수수께끼 18

불일치의 설명에 몰두한 〈새-물결〉 33

제 2 장 과학적 논쟁의 계층적 구조 49

사실적 합의 형성 54

방법론적 합의 형성 64

제 3 장 평가에서 발생하는 순환의 종식 :

인식적 가치에 관한 불일치의 해결 77

공변성의 오류 78

그물형 모델과 목표평가의 역학 89

과학적 합리성의 그물형 모델 106

제 4 강 과학적 변화의 전체론적 상에 대한 분석 113

과학적 변화의 단위에 대한 쿤의 견해 115

방법론에 대한 쿤의 비판 141

제 5 강 그물형 모델을 통한 실재론적

가치론과 방법론에 대한 비판 163

에필로그 217

참고문헌 219

옮긴이 해제 225

옮긴이 후기 237

찾아보기 239

약력 소개 248

제 1 장 과학에 관한 두 가지 수수께끼 : 과학철학과 과학사회학에서의 몇 가지 위기에 관한 고찰 지난 반세기 동안 많은 저명한 철학차와 사회학자들이 과학 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숱한 문제들의 해결을 둘러싸고 고민해 왔다 . 과학 활동을 이해하고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는 철학이나 사회학 등의 영역에서 활동한 지도적인 사상가들에 의해 주로 이루어져 왔다. 이 책은 철학자나 사회학자들을 당혹하게 했던 몇 가지 도전적인 문제들을 해결해 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그렇 지만 내 자신의 해결책을 생각하기에 앞서, 내가 지금 다루고자 하는 문제가 현실적인 문제이며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라는 사실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 이런 문제를 둘러싼 최근의 논 쟁사를 간단히 요약해 보는 것이 이 문제를 다루는 가장 좋은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 이 역사는 철학자와 사회학자의 관심 사이에 홍미 있는 일치점이 있음을 보여준다. 1940 년대와 1950 년대에 철학과 사회학은 각각 과학의 활동방 식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전개하고 그것을 정교화했다. 내가 여기서 염두에 두고 있는 철학적 설명이란 논리경험주의와 포퍼

KPo ppe r의 입장을 말한다 사회학적 모델은 머튼R. Me rt on 과 그 의 추종자들에 의해 전개되었다. 당시 학자들에 의해 제시된 과 학에 관한 철학적 설명과 사회학적 설명 사이에 중요한 강조점 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들이 각각 그려낸 과학상―― -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一―은 매우 비슷하며 상호 보충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유사성이 처음부터 나타난다고 하는 것은 더욱 놀랍다. 두 학문 분야 사이에서 간혹 충돌이 일 어나기도 했지만 당시의 사회학자와 철학자들은 기본적인 전제 를 공유하고 공통의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 전제란 과학이 독특한 문화 현상이며, 철학, 신학, 미학 등의 다른 지적인 작 업으로부터 분명히 구획된다는 것이다.1) 철학과 사회학이 각기 설명하고자 했던 중심적인 문제는 과학에서 일어나는 매우 높은 수준의 의견의 일치에 관한 문제이다. 그러나 1 %0년대와 1 '17 0 년 대에 들어서면서 많은 사회학자와 철학자들이 이 문제에 관해 유지해 온 견해들은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1970 년대를 거치면 서 논리경험주의와 머튼류의 사회학이 취했던 입장은 사라지거 나 심각한 혼란에 빠져들었다. 과학에 관한 설명은 지금까지 이 어져 온 설명 방식과 심한 반목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낡은 설명 방식으로부터 새로운 분석이 분명히 구별되자(이하에서 기 술되는 식으로), 과학에 관한 새로운 철학적 조망과 새로운 사회 학적 조망 사이에 여전히 홍미있는 일치점이 있음이 드러났다. 과학에 관한 〈새―물결 new-wave 〉의 설명이 공유하고 있는 관점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 죽 과학에 관한 중심적 인 지적 혼란이 해결되기 위해서는 과학에 관한 의견의 불일치 가 주기적으로 터져 나온다는 사실을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1) 예를 들어 인식론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은 과학과 비과학을 구획하는 일이라는 이 당시 포퍼의 주목할 만한 주장을 생각해 보라 .

간단히 말하자면, 사회학자이건 철학자이건 과학의 발달을 연구한 학자들은 과학에 관한 의견의 일치를 설명하는 데 몰두 하거나, 그에 관한 불일치와 견해 차이를 강조하는 데 몰두해 왔다고 할 수 있다 . 이들이 나타내는 것이 강조점이나 관심의 차이라면, 이렇게 입장을 대조시키는 것이 해롭지는 않을 것이 댜 더구나 문제의 모든 측면을 동시에 지적한다는 것은 불가능 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느 쪽의 접근 방식도 양자를 다 다 룰 만한 설명 수단을 갖지 못 한다는 데서 긴장이 야기된다. 그 리고 주지하다시피, 어느 한 쪽의 입장에서 자신들이 고른 문제 에 대해 성공적인 설명을 했다고 주장하더라도, 상대방의 문제 와 씨름할 능력이 없으면 대체로 그런 입장은 무시되기 마련이 댜 그래서 1940 년대와 1950 년대의 과학에 관한 사회학적 모델 과 철학적 모델을 살펴보면, 당시의 학자들이 과학에서의 의견 의 일치를 설명할 때 요청하게 되는 합의-형성 메커니즘과 관 련하여 과학에서의 의견의 불일치, 논쟁의 범위와 그 성격을 이 해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공통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최근의 모델은 과학자들이 의견의 불일치를 보이게 되 는 데 대한 다양한 이유를 제시한다고는 하지만, 과학자들이 도 대체 어떻게 해서 논증을 끝내고 자신들의 의견의 불일치를 합 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는지에 관해서는 전혀 설명하고 있지 않다. 이 책의 주제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현재 이루 어지고 있는 설명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이 두 가지 수수께끼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과학에서의 의견의 불일치에 대한 설명과 과학 자들이 어떻게 그런 불일치를 극복하고 합의에 도달하게 되는가 하는 문제에 관한 설명의 문제 : 역주)를 다룰 수 있는 설명 수단을 결여 하고 있다. 2) 이것은 특히 최근에 유행한 과학에 대한 접근 방

식들에도 해당한다 . 결국 이러한 접근 방식들 역시 이들이 대체 시키고자 한 입장과 마찬가지로 결함이 있음이 드러났다. 3) 우 리는 과학을 둘러싸고 등장하는 이런 문제들을 설명해 줄 수 있 는 과학적 합리성에 관한 통일된 이론을 원한다. 1 장에서 내가 목표로 하는 것은, 우리가 이런 수수께끼를 모두 설명하지 못 하고 둘 중의 하나밖에 설명할 수 없는 곤경에 처하게 된 이유 를 진단해 보는 것이다. 이 책의 나머지 부분은 의견의 일치와 불일치가 어떻게 동시에 일어날 수 있는가, 그리고 때때로 어떻 게 한 쪽이 다론 한 쪽을 초래하게 되는가를 설명해 주는 몇 가 지 기제를서술한다. 합의의 관점과 일치의 수수께끼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의 영역에서는 경쟁 학파와의 논쟁과 의 견의 불일치가 항상 일어나고 있으며 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 들에게 자연과학은 매우 조용한 영역으로 보인다. 자연과학자들 온 어떤 분야에 종사하건 대체로 자신들의 분야에서 주장되는 대부분의 원리에 대체로 동의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들은 대체 로 설명해야 할 많은 현상들에 대해 의견의 일치를 보이며, 〈사 실 주장〉을 확립하는 데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수많은 실험 기술 에 관한 의견의 일치를 보인다. 설명해야 할 것에 관한 이런 일 치를 넘어서, 설명을 위한 이론적 실재라고 하는 더욱 깊은 수 준에서의 의견 일치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화학자들은 원자 구조와 원자를 구성하는 입자에 관해 매우 당연하게 이야기한 댜 현대의 지질학자들은 지표 밀에 거대한 판이 존재한다는 주 장을 사실로서 받아들이며 그 판의 운동이 관찰가능한 (지표상

의) 지각 변동 운동을 산출한다고 생각한다(저자는 이 책에서 지 질학의 판구조론에 대한 예를 자신의 논거를 밀받침해 주는 과학적 사 례로서 자주 인용하고 있다 . 판구조론이란 지구의 표면을 판이라고 불 리는 약 10 개의 부분으로 분할하여 각각의 판이 고유한 방향으로 수 cm/ 년인 빠르기로 수평 운동을 한다고 봄으로써 지질, 지진, 화산 현 상 들을 통일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이다 . 이 이론은 베게너 A L. We g ener (1 912) 의 대륙이동설이나 최근의 해저확장설을 발전시킨 것으로서 윌 슨J . T. W i lso n( l96 5), 모르간W. J. Morga n ( l96 8) 등에 의해 구성되었다 : 역주). 이런 주장은 30 년 전에는 전혀 현실성 없는 생각으로 여겨졌다. 생물학자들은 직접 관찰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하더라도 DNA 의 일반 구조나 일반적인 진화 메커니즘에 관해 서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대단히 높은 수준의 일치가 일 어나고 있다는 것은 과학 교과서와 철학이나 사회학 교과서를 비교해 보면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이런 비교를 통해서 핵심적인 사실을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과학을 주의깊게 살펴보 면서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합의에 충격을 받는 쪽은 주로 사회학자 나 철학자들이기 때문이다.) 철학자들·은 기초에 관해 논쟁을 벌이 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철학에서는 가장 중요한 문제에서 조차 경쟁 학파 사이에 의견의 일치를 찾아볼 수 없다. 그렇기 때문 에 (일례로) 토미즘의 입장에 있는 철학자가 쓴 텍스트와 실증주 의자가 쓴 텍스트 사이에 공통점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어찌보 면 당연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회학도 수많은 진영으로 나누 어져 있어서, (예를 들어) 마르크스주의자, 해석학자, 현상학 자, 기능주의자, 계량사회학자가 쓴 사회학 저서들은 현저한 견 해 차이를 드러낸다. 각각의 철학파나 사회학파는 그 분야의 중 심 문제에 관해 근본적으로 다른 의제를 제시한다. 그리고 이들 은 서로 다른 방법으로 그 분야의 주장을 시험하고 평가하려 한

댜 자연과학은 이와는 다르댜 최소한 1950 년대와 1960 년대의 많은 사회학자와 철학자들도 이렇지는 않았다. 과학에서 일어나는 높은 수준의 일치에 강한 인상을 받은 많 은 철학자와 사회학자들은 종종 일치의 정도를 과학의 핵심적인 인식적 특징으로 보려고 했다. 유명한 과학철학자 캠벨 N . R. Camp bell 은 이 점을 매우 솔직하게 표현했다 : 〈과학은 보편적인 일치에 도달할 수 있는 것에 관한 판단을 다루는 학문이다. 〉 2) 사회학자 중에서는 존 지먼J ohn Ziman이 같은 의견을 보이고 있 다 : 〈‘합의’는 과학이 기초하고 있는 기본 원칙이다. 그것은 ‘과학적 방법’ 의 부차적인 결과가 아니다 〉 .3 )

2) Camp bell , 1952, p. 2 7. 다른 곳에서 캠 벨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과 학의 주제는 보편적인 주장이 획득될 수 있는 것에 관한 판단으로 이루 어져 있다〉(1 957, p. 22). 3) Ziman, 1968, p. 9.

과학에서 일어나는 폭넓은 의견의 일치를 더욱 복잡하게 만 드는 것은 합의된 이론 자체가 나타나자마자 다시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과학을 특징짓는 높은 의견의 일치 정도는 , 과학이 마치 엄격한 종교처럼 도그마와 같은 학설에 기초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별로 놀랄 만한 것이 못 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도 달하게 된 합의는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으리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이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는 것은, 핵심 적인 문제에 관한 많은 견해들이 급속하게 새로운 견해로 대체 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과학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불과 10 년 전에는 논의의 대상조차 되지 않았을 그런 견해롤 수 용하기 위해 중도에서 입장을 바꾼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이런 변화는 다양한 수준에서 일어난다. 학설의 몇 가지 중심적인 문 제가 변화하고, 기본적인 설명 가설이 변경되며, 탐구의 규칙

마저도 차츰 발전한다. 그런 흐름의 복판에서 합의가 형성되고 재형성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한 세대 전에 제시된 과학적 합의의 모델이 불충분하게 보이긴 하지 만, 그와 같은 모델을 만든 사람들이 과학적 일치에 관한 설명 이 과학 이론에서 중심적인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 이유는 이해 할 만하다 . 급속하게 새로운 견해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고려하 면, 합의가 만장일치로 그와 같이 신속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 놀라운 것이 아니라, 합의에 도달하게 된다는 사실 자체가 놀 라운 것이다 . 과학에서 발생하는 높은 수준의 합의를 자료로 해서, 전 세대 의 지식인들은 과학의 모델, 특히 과학적 의사 결정의 모델을 구성했다. 이것은 과학이 사회이론이나 정치이론, 혹은 형이상 학과 같은 이데올로기 의존적인 영역과 구조적으로나 방법론적 으로 어떻게 구분되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기서 그 런 모델의 분명한 특징들을 기술해 보고자 한다. 앞으로의 논의 룰 위해서는 그런 모델의 장점과 약점을 잘 알아둘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l 철학자와 합의 20 세기 초기에 많은 관념론자와 신칸트주의자들에 의해 과학 이 상대적으로 철학적인 무시를 당했다고 하면, 그 이후 세대라 고 할 수 있는 1930 년대와 1940 년대의 철학자들은 과학을 새로 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미 과학이 어떻게 합의된 행위 일 수 있는가를 설명하기 위한 복잡한 기제를 가지고 있었다. 더욱이 오래전부터 철학자들은 내가 라이프니츠적인 이상 Le i b nizi an i deal 이라고 부르는 것을 받아들이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라이프니츠적인 이상이란 간단히 말해서 사실에 관한 모든 논쟁은 증거에 관한 적합한 규칙에 호소함으로써 공정하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베이컨 Bacon 이래로 모든 철학자들은 하나의 알고리듬 Al g o rithm(계산 기준을 정하기 위한 일련의 규칙 : 역 주), 혹은 알고리듬의 집합이 있다고 믿었으며, 이것을 통해 불 편부당한 관찰자가 어떠한 자료를 가지고 그것이 참이나 거짓 혹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거나 그렇지 않은 일이라고 하는 식의 다른 설명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철학자들은 우리가 지금 그 증거 규칙에 관해서 정확히 알고 있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 다양 한 낙관주의적인 입장을 보여주었다(예를 들어 밀Mill은 우리가 이 미 그 규칙을 수중에 넣고 있다고 믿었다. 다소 비관적인 태도를 보인 다른 철학자들은 아직 그런 규칙의 완성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고 믿었 다). 그러나 낙관주의자건 비관주의자건, 이성주의자건 경험주 의자건, 1930 년대에서 1950 년대의 대부분의 논리학자와 과학철 학자들은 최소한 원칙적으로나마 라이프니츠적인 이상을 믿었 댜 그들이 그렇게 믿었다는 것은 과학에서의 합의에 관한 그 들의 견해와 직접적인 관련성을 가졌다. 과학은 전적으로 사실 에 관한 주장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과학에서의 의견의 불일치가 기본적으로 사실의 불일치로 생각 되고, 기계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철학자 들은 과학에서의 합의에 대한 설명의 밀그림을 가지고 있었다 고 할수 있다. 특히 이들은 과학과 같은 합리적 공동체 내에서 합의를 낳을 수 있는 과학 방법론의 규칙이 있다고 주장했다. 만일 과학자들 이 두 경쟁 이론의 장점에 관해 의견을 달리한다면,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이론이 더 나은 이론인지를 가려주는 적절한 중거의 규칙을 참고하는 일이다. 그 규칙이 문제를 즉각 해결하

지 못 할 경우(예를 들어 두 이론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료에 의해 똑같이 지지될 경우) 의견의 불일치를 종식시키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문제되고 있는 이론의 어느 하나룰 확증해 주거나 반박하 는 더 정확한 새 증거를 수집하는 일이다 . 이런 식으로 보면, 과 학적 불일치는 언제나 가변적이며 불안정하다. 사실에 관한 불 일치는 특정 영역의 증거가 상대적으로 약하거나 불완전할 때에 만 발생했댜 불일치가 일단 확인되면 더 많은 증거를 수집하 고 증거에 의한 지지를 평가하는 적절한 규칙을 강력히 주장함 으로써 그 불일치는 합리적인 결말로 나아갈 수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철학자들은 과학이 합의 행위라고 설파했다 . 과학자들 (이들이 합리적인 한)은 공유하고 있는 〈과학 방법론〉이나 〈귀납 논리 〉 의 기준에 따라 명시적이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암묵적으로 나마 자신들의 신념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그런 기준이 사실 문 제에 관한 진정한 불일치를 해결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 시기의 많은 저명한 과학철학자들(예를 들어 카르납 R Carnap, 라이헨바하H. Re i chenbac h, 포퍼 등)은 과학자들이 암묵적으로 이론 선택에 사용하고 있는 증거 추론의 규칙을 설명해 내는 것이 일 차적인 과제라고 생각했다. 이와 같은 과학적 합의에 대한 설명은 매우 유혹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이것은 흔히 과학자들 스스로가 자신의 행 위에 대해 부여하는 설명과 잘 맞아떨어졌다. 수십 년 동안 과 학자들은 과학적 방법의 장점에 대해 격찬해 왔으며, 철학자들 과 마찬가지로, 선두에 선 과학자들이 그 방법에 대해 당연히 의견의 일치를 보여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런 접근은 또한 이 문제에 관한 전통적인 철학자들의 생각을 나타내 주는 것이 기도 했다. 과학을 물리 세계에 관한 신념을 산출하기 위한, 규 칙에 의해 지배된 행위로 간주하는 것은 오래전부터 철학자들

사이의 규범이었다. 1940 년대와 1950 년대의 대부분의 과학철학자들은 하나같이 과 학이 높은 수준의 일치에서 그 인식적 특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과학자들이 불편부당한 이론 평가의 논리에 따라 자신들의 견해롤 기꺼이 중재함으로써 그와 같은 정도의 합의에 도달한다고 보았다. 만일 이런 생각을 혼란시키는 문제거리들이 계속 발생할 경우, 이들은 과학적 불일치가 새로운 특이한 증거 에 직면해서 언제나 급속하게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도외 시할 뿐이었다. 사실 코페르니쿠스 Co perni cus 의 입장을 지지한 사람들과 프톨레마이오스Pto lem y의 입장을 지지한 사람들 사이 의 싸움은 의견의 불일치가 해소되기까지 근 1 세기를 끌었다 . 빛의 파동설과 입자설의 옹호자들은 19 세기의 절반올 싸움을 하 며 보냈다. 원자론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온 돌 턴 Dal t on(17 66- 1844, 영국의 화학자, 물리학자, 1803 년에 혼합기체의 물리적 상태의 고찰에서 원자량의 개념을 안출, 그의 원자 개념은 라 브와지에 Lavo isi er 의 홑소물질관에 원자량 개념을 결합시킨 것으로서 여 기서 배수비율의 법칙이 연역되었다. 1808 년에 새로운 원자 가설에 입 각한 화학 체계를 발표, 이 가설은 베르젤리우스J . J. Berze li us 등에 의한 배수비율 법칙의 실증을 얻어 근대 화학의 이론적 기초로서 확립되었 다 : 역주)의 New Sys t e m ofChemistry(1 8IO) 가 나온 이 래 20 세기 초 까지 물리학과 화학을 마구 휘저어 놓았다. 그와 같은 장기간의 논쟁이 심지어 최근의 과학에서도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는 라이프니츠적인 이상을 반박할 수 없다. 라이프니츠적인 이 상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는 체면을 차릴 수 있게 해주는 몇 가 지 선택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과학자들은 때때 로 중거에 직면해서 비합리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더 나은 이론 올 인정하기를 거부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꼬리표는 예

룰 들어 프리스틀리Pri es tl e y (1733-1804, 영국의 신학자, 철학자, 화 학자, 1771-1979 년에 산소, 암모니아, 염화수소 , 산화질소, 이산화황 동을 발견했댜 특히 산소의 발견은 라브와지에의 연소 이론의 확립에 큰 동기를 제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평생 열소설의 신봉자 였다 : 역주)와 연소설(燃素說)(베커J.J. Becher (1 669) 는 연소를 설명하 기 위하여 물질 원소의 하나로서 불타는 흙이라는 것을 가정하였는데 그 후 스탈 G.E . S tahl(1 703) 은 그 원소에 플로지스톤이라는 이름을 붙였 댜 그는 물체가 탈 때 그 속에서 폴로지스톤이 빠른 회전 운동을 하 면서 달아난다고 보았다. 이 설은 18 세기까지는 일반적으로 승인되었 다 : 역주)을 주장한 사람들이나 원자론의 반대자들, 그리고 코페 르니쿠스가 등장한 이후의 프톨레마이오스의 추종자들에게 붙 여졌다. 이런 논쟁이 지속되는 이유를 이론 선택을 위한 규칙이 정해 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 아니라 과학자의 완고함에서 찾는다면, 라 이프니츠적인 이상은 계속해서 매력적인 것으로 보일 것이다. 더구나 라이프니츠적인 이상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런 장기간 의 논쟁이 단순히 말싸움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 그런 관점에 서 보면 다투고 있는 이론들은 별다론 차이가 없는 것이었다(죽 이론들은 경험적으로 동동하다). 논쟁은 자신들의 모델이 서로 동 등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속되는 것으로 보였 댜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가설 사이에 벌어진 오랜 논쟁을 설명하는 것과 관련해서 1950 년대의 많은 철학자와 역사 가들이 이러한 견해를 채택했다 .4) 이들은 두 체계가 〈관찰상으 로 동동한〉 것임을 보이려는 정교한 증명에 착수했다. 이런 증 명의 잠재적인 기능은 그런 오랜 논쟁이 지배적인 합의 모델과

4) 예를 들어 Price, 1959 를 보라.

라이프니츠적인 이상을 거부하는 것이 될 수 없음을 보이는 것 이었다. 행렬역학과 파동역학의 관찰상의 동등성, 입자광학과 파동광학의 관찰상의 동등성에 관해서도 유사한 주장이 이루어 졌다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듯이 이 논증들의 대부분은 잘못된 것이 댜 왜냐하면 이 논증들은 두 이론이 그 형식적 구조——수학적 표현 ―가 일치할 경우에만 동등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불 행하게도, 이런 〈경험적 동등성〉에 대한 증명은 우리가 그 이론들의 기본적인 주장을 제거해 버릴 때에만 타당하게 된다. 이에 관한 자세 한 사항은 이하 5 장에서 다루기로 한다.) 따라서 합의를 과학적 규 범으로서 옹호했던 철학자들은 예상했던 합의가 빨리 이루어지 지 않을 경우, 그것은 결정적인 증거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거나, 관련된 과학자들의 경쟁 이론이 실제로 같은 것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거나, (최후의 수단으로) 과학자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그런 합의에 대한 명백한 예외를 핑계댈 수 있었다. 논리경험주의 입장에 서 있는 과학철학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분명한 또 하나의 요소는 과학이 합의 행위이어야 한다는 점을 표명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들은 수용 가능한 새 이 론이 새로운 사실온 물론이고 선행 이론의 성공에 대해 모두 설 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과학 방법의 핵심적인 규칙으로 내 세웠다. 간단히 말해서 과학은 누적적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 러한 강한 제약과 더불어 과학적 변화가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이전에 나왔던 이론이 설명했던 모든 것을 다루면서 그밖의 것들도 설 명해 내는 새로운 이론이 나타나면, 그런 새 이론의 매력에 끌 리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론 변화가 엄밀한 의 미에서 누적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한다면, 철학자는 소위 과

학 혁명에 수반되는 과학자들의 재빠른 태도변화를 설명할 수 있게 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과학에서의 이론 변화가 일반적 으로 비누적적이며 수렴하지 않는다는 1960 년대 이후의 발견이 논리경험주의와 포퍼에게 그와 같은 어려운 문제를 안겨주었던 것이다 . 5)

5) 과학 이론의 비누적적 성격의 의미에 관한 더 자세한 논의는 이 책 5 장 에서 다룬다.

2 사회학자와 과학적 합의 만일 철학자들이 사실의 문제에 관한 일치의 존재를 당연시 하고 그것을 설명해 온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면 사회학자 들의 경우는 전혀 그렇지 않다. 1930 년대 이전에는 과학사회학 이라는 명칭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후의 20 년 동안 과학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가 활짝 피어났음을 보게된다. 당시 에 이루어진 연구의 핵심은 합의와 의견의 불일치라는 이중적인 문제였다. 철학자들과 더불어 사회학자들은 합의를 물리학의 자 연스러운 상태로 간주하는 한편, 불일치의 경우는 예상된 규범 울 벗어나는 것으로서 특별한 설명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했다. 철학자들이 과학의 합의적인 성격의 근본 원인을 과학자들이 과학적 추론의 논리가 가진 기준에 집착하는 데서 찾았다고 하 면, 사회학자들은 과학자들이 과학 공동체의 전문가적인 삶을 지배하고 있는 일련의 규범이나 기준을 공유하기 때문에 과학이 그와 같은 높은 정도의 일치를 드러낸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로버트 머튼은 과학적인 하위문화가 〈보편주의, 공산주의, 몰 이해성, 유기적 회의주의〉의 규범을 공유한다고 주장한다 .6) 이

6) 이런 규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보려면 머튼의 고전적인 논문 T 라~onnati ve

Stru cture of Scien ce repr inted in Me rton , I 切 3 을 참조할 것

와 같은 규범들은 〈과학자들을 결합시키며…… 지시 규정, 금 지, 선호, 허가 동의 형태로 표현된다〉? 말하자면, 과학자들 은 동일한 가치와 기준을 공유하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안정 된 합의의 패턴올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 머튼은 나중에 주커 만Hani e t Zuckerman 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과학적 규범 과 기 준이 공유된다는 가설을 강하게 지지해 주는 것으로 생각되는 사실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더욱이 그와 주커만은 인문학과 사 회과학 계열의 학술지들이 제출된 논문을 거부하는 비율이 자연 과학 계열의 학술지보다 월등히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 (예를 둘 어, 머튼과 주커만의 연구에서 물리학 저널은 제출 논문의 24 퍼센트를 거부한 반면, 사회학과 철학 저널은 그 비율이 80 퍼센트 이상에 달한 댜) 머튼은 이러한 편차를 철학자와 사회학자들이 유의미하고 핵심적인 탐구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 의견의 불일치를 보이는 반면, 자연과학자들은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규범과 가치를 통 한 업적에 관해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는 것에 대한 증거로 보았다. 1

7) Me iton., l'l'7 3 ,, pp. 268-2i,9. 8) 위의 책, p. 472. 이 책의 말미에서 머튼은 이런 주장을 더욱 자세하게 펼치고 있다. 〈위에 언급한 여러 분야의 학술지들의 거부 비율이 차이를 보이는 것은 잠정적으로…… 올바른 과학과 학문의 기준에 관한 합의의 정도상의 차이로 돌릴 수도 있을 것이다〉(p. 474).

공적으로(죽 더욱 단일한 형태로) 그것을 내면화해 왔다. 과학의 규범이 언제나 분명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튼은 그것이 언제나 결정적인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 〈각각의 시 대마다 일련의 ‘규범적인’ 그리고 당시의 대부분의 과학자들에 의해 암묵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가정에 기초한 과학의 체계가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9) 20 년 전에 마이클 폴라니Mi chael Polan yi는 과학에서 발생하는 높은 수준의 합의에 관해 이와 유 사한 설명울 한 적이 있다:〈각각의 ‘과학자'들은 공통적인 의 도를 실현시키려고 하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다른 과학적 견 해에 따르면서 자신의 기여가 유효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다.〉 10) 폴라니의 생각에 따르면, 이러한 공 유된 규범이나 기준의 내면화는 〈과학지들의 지속적인 조정, ‘곧 의견의 일치’ 〉를 설명해 주는 것이다 . 11)

9) 위 의 책 , p. 250. 10) Polanyi , 1951, p. 39. 11) Mert on , 1973, pp. 268-2 6 9.

사회학자들은 당시의 철학자들 이상으로 과학에서 의견의 일 치가 불가피하거나 동시에 모든 곳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 지는 않았다. 물론 이들은 과학 공동체를 몇 개의 학파로 나누 어 놓은 몇몇 유명한 과학 논쟁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머 톤과 그의 동료 버나드 바버 BemardB 펴近와 같은 사회학자들은 예상된 합의로부터의 일탈을 설명하려고 했으며, 〈편견과 미신〉 이 때때로 과학자들이 〈과학적〉 규범을 따르는 데 제도적이고 지적인 방해물이 될 수도 있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바버는 많은 인용을 담고 있는 연구 논문에서 철학과 신학이 때때로 과학자 들이 전문적인 규범을 양심적으로 고수하는 것을 어렵게 만듦으 로써 과학 활동을 방해했음을 상세하게 논증하고 있다 .12) 따라

12) 특히 Barber, 1961 .

서 동일한 규범을 공유하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천문학자들 이 한 세기 반 동안이나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이론 중 어느 것이 옳은지에 대해 불일치를 보였다는 것이 합의주의 자의 관점에서 이상하게 보인다면, 합의주의의 신조를 가진 사 회학자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추종자들이 종교적인 선입견을 가 지고 있었기 때문에 올바른 과학의 규범을 내면화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라고 추측함으로써 그런 불일치에 관해 설명할 것이다. 이 설명에 의하면 코페르니쿠스를 지지한 사람들은 세속적인 가 치와 종교적인 가치를 분리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과학자로서 성공적인 행동을 한 것이 된다. 이런 설명이 오늘날에도 홍미있 게 보이는 만큼(프톨레마이오스가 코페르니쿠스보다 덜 과학적이라 거나 코페르니쿠스가 프톨레마이오스보다 덜 형이상학'적이라고 계속 주장하려 하는 과학사가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 설명은 1940 년 대와 1950 년대를 거치면서 당연한 것이 되었고, 당시의 사회학 자나 철학자들에 의해 도전받은 적이 거의 없다. 우리가 보기에 중요한 것은, 이런 합의주의적 접근을 옹호한 사회학자들이 일 단 적절한 과학적 규범이 재차 주장되면, 과학 논쟁은 결정적인 결말에 도달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라이 프니츠적인 이상에 대한 사회학적 해석을 받아들였다 . 이 속에 서는 공유된 가치가 방법론적 알고리듬보다는 보상과 처벌의 집 합 체계 속에 체계화되며, 불일치에서 조화를 이끌어내는 데 필 요한 연금술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제도적인 명령이나 ‘규범’은 ‘과학의’ 목표와 방법에서 유래 한다〉 13) 고 말하면서도, 머튼은 특히 과학적 탐구를 안내하며 지

13) Me rton, 1

인 유기적 회의 를 〈경험적이고 논리적인 기준을 통한 신념에 대한 공정 한 검토〉라고 규정하고 있는 사실을 생각할 수 있다(M e rt on , 1968, 8 장) . 그런 기준은 물론 과학 방법론에 의해 제공되는 기준이다.

도하는 공유된 규범이 철학자들이 말하는 것과 동일한 규범이라 고는 하지 않는다. 이 당시에 이루어진 과학에 대한 철학적 설 명과 사회학적 설명이 실제로 같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내 의 도의 핵심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되어야 할 것 온, 이 당시의 사회학자들과 철학자들이 〈사실〉에 관한 일치가 자연적인 상태라고 믿었으며, 그들은 그런 일치가 (철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절차와 방법의 차원이나 (사회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제도적인 보상 체계 속에 합병된 규범과 기준의 차원이라는 〈보 다 깊은 〉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과학지들의 의견 일치에서 직접 결과된다고 주장함으로써, 그런 사실적인 일치를 설명하려는 경향을 보였다는 점이다 . 양 진영은 과학적 일치가 선행적인 , 방 법론적이고 공리적인 협약의 부산물이라고 주장했다. 폴라니의 말을 빌면, 〈과학적 견해의 합의〉는 과학적 영역에서의 다양한 집단들이 각각 〈자신의 입장에서 의견의 일치에 이르기〉 때문에 변하게 된다 回 과학자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 그리고 사실의 문제에 관해 거의 만장일치에 이르게 되는 것을 설명해 주는 것 은, 행위의 지도적인 목표와 그런 목표를 완수할 가장 효과적인 수단에 관한 더욱 근본적인 합의였다.

14) Polanyi , 1951, p. 217.

주지하다시피 1950 년대와 1960 년대의 철학자와 사회학자의 합 의적 관점은 계속적인 분석을 견디어내지 못한다. 과학자들은 지금까지 매우 빈번하게 그리고 많은 중요한 문제들에서 의견의 불일치를 보여 왔기 때문에 과학적 불일치를 합의적 규범으로부 터의 소극적인 일탈로 간주하기 어렵게 되었다. 더욱이 우리는

이와 같은 불일치들을 자세하게 검토해 보았기 때문에, 고전적 인 과학철학이나 과학사회학의 설명력이, 불일치가 일어나는 폭넓은 사례 영역을 다루기에 전혀 무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 댜 예를 들어 불편부당함, 객관성, 합리성 둥의 적절한 규범을 따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과학자들도 결국 매우 다른 결론으 로 나아가게 됨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 우리는 오늘날 과학에 서의 자료가 특히 탐구의 최전선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이론들 간의 선택을 얼마나 어렵게 만드는지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논 리경험주의자들이 모든 과학자가 동일한 방법론과 평가 기준에 동의한다는 잘못된 신념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고 있다. 우리는 현재까지 지속된 과학적 불일치가 경험적으로 동등한 이론간의 단순한 말싸움이 아니라 오히려 때때로 유용한 증거에 의해 동 일한 지지를 받는 것으로 나타나는 상이한 경쟁이론들 간의 논 쟁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15 ) 지난 십 년 동안 과학자들이 과학 행위에 대한 머튼의 규범을 위반하고 때로는 그런 위반이 보상 받은 경우가 있음울 보여주는 많은 정보가 축적되었다. 우리는 그런 규범을 깨뜨리고자 하는 태도가 과학의 진보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상황을 매우 쉽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15) 진정한 불일치를 단순한 말싸움으로 환원시키려는 시도가 잘못된 것임 울 밝히는 논의는 Laudan, 1968, 1'17 7 , 2 장을 참조할 것 .

논리경험주의자나 머튼의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의 분석에 옳 은 점이 하나도 없다고 결론내려서는 안될 것이다. 나중에 살펴 보겠지만, 이런 학자들은 과학적 기획의 중요한 특색을 지적하 고 있다. 그러나 확실히 덧붙여야 할 것은 그 어떤 접근도 과학 이 과거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풍부하게 생산해 내고 있는 불일 치의 정도와 종류를 설명할 설명 자원을 가지고 있음을 보일 수 없다는 점이다. 학자들이 이런 초기 모델의 결점과 예의를 발견

하게 되자, 이들은 일반적으로 널리 퍼져 있지만 불신되고 있는 패러다임 속의 모든 것을 거부하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반응을 보였다. 쿤과 파이어아벤트 그리 고 일군의 젊은 과학사회학자들은 지난 몇 년간을 과학에서의 불일치를 설명해 내는 데 전념했다. 이제 이들의 모델에 눈을 돌려보자. 불일치의 설명에 몰두한 〈새품믈결〉 간단히 말해서, 과학적 합의에 대한 고전적 선입견을 무너뜨 린 논증에는 네 가지 입장이 있다. 과학적 탐구가 이전의 관점 이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더 논쟁 의존적이라는 것, 이론의 불 가공약성 inco mmensurabili ty 테 제, 이 론의 미 결정 성 unde rdetenninati on (underde tennin a ti on 을 미결정성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반드시 옳다고 할 수 없지만, 결정불가능성in de tennin a ti on 이라는 말과 구분하기 위해 이런 식의 번역이 불가피하다고 생각된다. 관찰 자료를 통해서는 이론 선택 에 있어서 충분한 결정울 내릴 수 없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 역 주) 테제, 성공적인 반규범적 행위의 현상 등이 그것이다. 이 문제들을 각각 간단히 살펴보자. 1 논쟁의 편재성 과학에서 이론은 빠르게 변화한다. 어제의 과학적 허구가 오 늘날에는 과학적 정설이 된다는 것은 이미 진부한 말이 되었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과학 공동체 내부의 신념과 충성심의 근본 적인 균열을 가져 오는 비난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나는 이미

코페르니쿠스-프톨레마이오스, 파동_입자 광학, 원자론 대 에 너지론 등 이와 같은 몇 가지 사례를 언급했다. 이런 목록에는 막연하게나마 다음과 같은 것이 덧붙여질 수 있다. 뉴턴 역학 대 데카르트 역학, 지질학에서의 균일론 대 변동론, 활력vi s vi va (라이프니츠는 질량 m 과 속도 v 의 곱으로써 mv 를 주장하는 데카르트 의 입장을 거부하고, 그것을 활력으로 대치하여 mv2 으로 표현하여 역 학적 에너지 보존의 파악에 가까워졌다 : 역주) 대 운동량 momen tum (선형운동량이라고도 하는데, 물체의 질량 m 과 속도 v 의 곱 p=mv , 질점 계에서는 각 질점의 운동량 총합을 계의 운동량이라고 한다 : 역주)의 역학, 일-전기유체설과 이-전기유체설, 화학에서의 프리스틀 리 대 라브와지에의 입장, 자연발생에 관한 논쟁, 양자역학에서 의 아인슈타인Einstein 대 보어 Bohr 의 입장, 창조론 대 진화론적 생물학, 대륙이동을 둘러싼 최근의 논쟁 등. 이런 논쟁들은 전 혀 다른 이론을 가진 저명한 과학자들에 의해 수십 년간 지속되 었다 그리고 양 쪽 모두 합리적인 논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 였다. 이와 같은 사례들은 과학의 규칙이나 규범이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미치든 간에 이런 논쟁을 확실하게 해결하기에는 불충 분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런 문제를 정식화하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만약 합의 모 델과 거기 수반된 라이프니츠적인 이상이 올바른 것이라면, 과 학 공동체 내의 독불장군과 같은 과학자나 혁명적인 과학자가 기존의 토양에서 자신들의 생각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었는지 룰 이해하기가 어렵게 된다. 이 점에 관해서는 쿤이 다음과 같 이 설득력 있게 주장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지배적인) 패 러다임에 대한 새로운 대안이, 처음부터 단지 상대적인 문제­ 해결 Problem-sol ving 능력밖에 검토하지 않는 머리가 단단히 굳온 사람들에 의해 판단될 수밖에 없다면, 과학은 중요한 혁명을 경

험하지 못할 것이다. 〉 16 ) 혁명아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아닌 만큼, 모든 과학 혁명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지배적인 이론에 안 주해 있는 동안 몇몇 과학자들이 새로운 개념을 추구하면서 시 작된다고 할 수 있다 . 합의 모델은 합리적인 사람들이 새로운 개념의 연구를 허용하는 식으로 의견의 불일치를 보이게 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쿤온 합의적 접근에 대한 이런 반대를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언급했다 : 새로운 과학 적 개념의 출현은 〈합리적인 사람들에게 불일치를 허용하는 결 정 과정을 요구하며, 그런 불일치는 철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추 구해 온 공유된 알고리듬에 의해 대체로 금지되었다. 만일 그것 측 그런 알고리듬’ 을 얻게 되면, 모든 순응적인 ‘죽 합리적인’ 과학자들은 동시에 동일한 결정을 내렸다.〉 1 7 ) 쿤은 새로운 이 론을 꽃 피게 하는 것은 단순히 과학자들 사이에 다양한 선호 성과 가치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 그렇지 않으면, 〈그 누구도……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거나, 새 이론의 풍부한 결과룰 보여주고, 그 정확성과 범위를 밝힘으로써 그것을 설명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1 8 ) 쿤이 자신의 다른 많은 저작에서 와 같이 이 구절에서도 과학자들이 이론 수락의 기준과 이론의 연구 가치에 대한 기준을 구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 음이 분명하다 . 1 9 ) 이런 구분은 쿤이 합의적인 관점에 제기한 몇 가지 문제를 피해 갈 수 있게 해준다 . 그러나 다음과 같은 점에 서 쿤온 분명히 옳다. 죽 합의의 관점은 과학적 불일치 사례의

16) Kuhn, 1962, p. 156. 17) Kuhn, 1977( 강조는 원문 그대로임). 18) 위의 책 p. 332. 19) 이론 수락의 기준과 이론의 연구 가치에 대한 기준의 차이를 자세히 살펴보려면 Laudan, 1CJ7 7 , 4 장을 참조할 것.

범위와 다양성을 이해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 그렇기 때문 에 합의의 관점에서 알 수 없는 그 이상의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불가공약성 데제 쿤 자신이 경쟁 이론의 옹호자는 단지 상대방과의 의사소통에 실패할 뿐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그림의 한 쪽을 보충할 것을 제 안했다. 이런 실패는 그가 생각하기에 우연적인 것이 아니다 . 왜냐하면, 경쟁 이론들은 극단적으로 불가공약적이기 때문이다 . 우리는 쿤의 패러다임 간의 불일치에 대한 설명을 살펴봄으로써 그가 왜 이렇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 그보다 앞선 어느 철학 자들보다 쿤은 과학사가 중요한 논쟁들로 가독차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 쿤 자신이 그런 논쟁의 하나, 죽 코페르니쿠스 적 혁명에 관한 영향력있는 책을 쓰기도 했다. 쿤에 따르면 , 과 학적 혁명의 시기는 각각 자신의 옹호자를 “ 가지고 있는 다양한 경쟁 패러다임이나 세계관이 (평화롭지 못하게) 공존하고 있는 것으로 설명된다. 쿤이 이런 경쟁 패러다임 간의 충돌을 기술하 고 있는 것과 같이, 이들 사이에서는 언제나 결말이 확실하게 나지 않는다. 이것은 패러다임 자체가 〈불가공약적〉이기 때문이 댜 한 패러다임의 옹호자는 경쟁 패러다임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다른 세계 속에 살고 있다. 이들은 동일한 용어를 사용 할지 모르지만, 그것을 가지고 전혀 다른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경쟁 패러다임 간의 충분한 번역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 의해 더욱 상황이 악화된다 . 즉 쿤이 그의 최근의 저서 『본질적 긴장 』 에서 주장하고 있듯이, 다른 패러다 임의 옹호자는 종종 다른 방법론적 기준에 동의하거나 다른 인

식 가치를 갖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 쪽에서 이론에 대한 긍 정적인 속성으로 간주하는 것이 다른 패러다임의 옹호자에게는 장애물로 보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가에 적절한 것으로 간주되는 기준이나 이론의 본질에 관해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게 된댜 3 자료에 의한 이론의 미결정성 미결정성에 관한 일련의 논증은 아마도 앞서 불일치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살펴본 것보다 더욱 중요할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 면, 이런 논증들은 과학의 규칙이나 평가 기준이 다른 모순되는 이론들을 모두 배제시킬 수 있을 만큼 분명한 하나의 이론을 골 라내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서로 독립된 몇 가지 노선의 논증들 이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그 중의 하나가 소위 듀엠 _ 콰인 Duheim -Quine 테제로서 이에 따르면, 어떤 이론도 증거에 의해 논리적으로 증명되거나 반박될 수 없다. 같은 결론에 도달한 또 다른 루트는 과학적 추론의 규칙이 연역적이건 귀납적이건 관계 없이 매우 애매해서 무수히 많은 상호 모순되는 방법으로 수행 될 수 있다는 주장에 의존하고 있다(이것은 다소 다른 이유에서 비 트겐슈타인Wittg ens tein과 넬슨 굿맨 Nelson Gocxlman 의 작업 과 관련되 어 있다). 비슷한 노선을 따르면서 쿤은( 『 본질적 긴장』에서) 과학자 들에 의해 공유되는 이론 선택의 기준이 너무 애매해서 선택 자 체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 이런 논증들은 종종 과학이 많은 경험론자들과 사회학자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규칙에 의해 지배 되는 행위가 될 수 없음을 함의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4 반규범적 행동 폴 파이어아벤트와 이안 미트로프 Ian Mitroff는 성공한 많은 과 학자들이 통상 과학적이라고 불리는 규범이나 기준울 반복해서 위반해 왔다고 주장했다 .20) 과학자들은 점차 증거를 무시하고, 정 합적이지 못한 것들을 참아낼 수 있게 되었으며, 반귀납적인 전 략을 추구해 왔다. 더욱이 주목할 만한 많은 과학적 진보의 사 례들은 규약적인 방법론적 정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과학자들 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 이런 행동은 (미트로프가 주장 하고 있듯이) 머튼이 규범을 과학적 실천을 인도하는 것으로 잘 못 파악했음을 암시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행동은 우리 를 파이어아벤트처럼 방법에 관한 한, 〈어떻게 해도 좋다 any thingg oes 〉는 결론으로 이끌어 갈 수도 있다.

20) Feye rabend , 1'17 8 ; Mitroff, 1'17 4 참조. 미 트로프의 효과적 인 〈반규범 적 > 행위에 대한 증거가 쿤의 것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다.

이런 유리한 입장에 놓이게 된 지난 10-15 년 사이의 새 물결 의 사회학자와 철학자들은 우리에게 과학적 논쟁과 불일치에 주 목할 것을 주장해 왔다. 왜냐하면 (그들이 생각하기에) 그런 불일 치는 합의보다 더욱 더 과학의 〈본질적인〉 상태에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들 학자들은 어떻게 불 일치가 발생하고 지속되는가 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정교한 기제를 내놓았다(예를 들면 불가공약성in commensurab ility이나 미결정 성 unde rdetenninati on). 그러나 내가 앞에서 잠깐 지적했듯이 이들은 일치가 지속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잘 설명할 수 없었다. 이런 접근이 합의 형성의 문제에 대해 올바른 설명을 할 수 없었던 이유를 알아 보기 위해, 일치가 쿤의 분석에 대해 노정한 난점 올 더욱 자세히 다루어 볼 필요가 있다. 쿤온 패러다임 간의 대

화가 어쩔 수 없이 부분적이고 불완전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 리고 다양한 패러다임의 옹호자들은 서로 다른 방법론적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많은 과학적 논쟁이 계속 이어 지고 해결할 수 없는 사태가 되는 이유룰 설명할 수 있었다. 만 일 양 쪽이 진정으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고〉 다른 기 준을 가지고 서로의 이론을 판단하고 있다면, 그들이 계속해서 불일치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간단히 말해서, 쿤의 모델은 불일치가 과학의 공통적인 특색임을 올바로 지적하고 있다. 그 의 모델이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과학적 불일치가 어떻 게-철저한 연구의 부족이나 정치적인 조작으로 인해_—종 결되는가 하는 것이다. 만일 경쟁하는 과학자들이 상대방의 관 점을 이해할 수 없다면, 그들이 〈좋은〉 과학이라고 생각되는 것에 관해 근본적으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면, 그런 과학자 들이 어떤 패러다임의 수락 가능성에 궁극적으로 의견의 일치를 보이게 되는 것은 그야말로 신비스럽게 보인다. 그러나 그런 일 치가 없다면, 쿤이 그렇게 장황하게 증거를 들이대고 있는 통상 과학 nonnalsc i ence 의 개시는 전혀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 합의 형 성에 대한 설명이 없이는, 우리는 불일치에 대한 이론(불가공약 성)과 합의 지속(통상과학)에 관한 이론이라는 쿤의 전체 이론의 두 가지 중요한 구성 요소에서 핵심적인 고리를 빠뜨리게 된다. 쿤은 종종 〈통상〉 과학에서 〈위기의〉 과학으로(즉 합의에서 의견 의 불일치로) 넘어가는 것을 설명하지 못하는 실수를 범했다. 왜 냐하면 그는 다루기는 어렵지만 위협적이지는 않은 수수께끼가 갑자기 패러다임을 위협하는 비통상적인 것이 되는 이유를 설명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비판에는 옳은 점이 있긴 하지만 쿤의 접근에서 핵심적인 결함을 지적한 것은 못된다 . 더욱 중요 한 문제는 쿤이 위기에서 통상과학으로의 뚜렷한 전이룰 설명할

근거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는 점이다. 일단 과학 공동체에서 불 일치가 발생하면, 쿤에게는 이 불일치를 다시 일치의 상태로 되 돌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쿤이 그리고 있는 과학에서 합의의 개 념이 얼마나 중심적인 것인가를 고려할 때(패러다임이란 그에 대 해 합의가 이루어지는 어떤 것이고 통상과학은 바로 합의가 지배적일 때 이루어지는 과학을 말한다), 그가 합의 형성의 메커니즘에 관 해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 는다. 이보다 더욱 좋지 않은 것은 쿤의 분석이 합의의 발생에 대한 설명의 가능성을 성급히 막아버리는 몇 가지 특징을 가지 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생각해 보자 . 쿤의 견해 에 의하면, 모든 패러다임은 사실상 자체 증명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각각의 패러다임은 자기가 지시하고 있는 기준들은 충족 시키면서 대립하는 패러다임이 지시하는 기준들은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2 1) 만일 패러다임이 정말로 이런 자기_강화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한 패러다임의 충실한 옹호 자가 어떻게 그 패러다임에 대한 태도 변화의 이유를 찾을 수 있게 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쿤은 경쟁 패러다임의 옹호자들 이 어떻게 더 좋은 패러다임에 대한 의견의 일치를 보게 되는지 를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우리에게 불일치에서 합의가 발생하게 되는 완전한 변화의 역동적인 과정에 대해 아무런 실 마리도 주지 않은 채, 두 가지의 전혀 다른 과학적인 생활 scie n ti fic life ( 〈통상과학〉과 〈혁명적〉 과학)의 존재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는 무능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혁명적 과학과 통상과학 온 각각 자기 나름의 의미를 지닐 것이다. 그러나 쿤은 과학이 어떻게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이동하는지 자세한 이야기를

21 ) Kuhn, 1962, pp. 108, 1()I ).

하고 있지 않댜 쿤이 합의 형성 이론을 빠뜨리고 있는 이유를 밝히는 것은 어렵지 않다. 불일치에 대한 그의 설명은 과학자들 사이의 그와 같은 뿌리깊은 의견의 차이와 불가공약성을 요구하 고 있기 때문에 일치를 새롭게 형성시킬 어떠한 공통 근거도 남 겨두고 있지 않은 것이다 . 그러나 쿤이 합의의 출현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그는 때때로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있 댜 심지어 그는 과학의 〈독특한 점 〉 은 합의가 불일치로부터 매 우 설득력있게 출현하는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 22) 여기에 덧붙여 쿤은 『과학 혁명의 구조』의 한 장을 〈 그룹(즉 과학 공동 체)으로 하여금 다른 것을 선택하기 위해 통상적인 연구 전통을 버리도록 하는 것은 무엇인가?〉 23) 라는 합의 형성의 문제에 답하 는 데 할애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답해야 하는 것은 어느 때 과학자들이 하나가 되어 무모순적으로 되고, 어느 때 제각기 홑 어져 모호한 상태에 놓이게 되느냐 하는 것이다 . 예를 들어 쿤 온 때때로 순전히 외적인 고려를 통해서 하나의 패러다임을 위 한 합의에서 경쟁 상대를 위한 합의로의 이행을 설명하려 하고 있다. 그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주도권을 잡기 전에 낡은 세대가 사라져 가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소위 플랑크 원리 ).24) 그

22) 쿤(위의 책 , p. 17) 은 다음과 갇이 말하고 있다 . 〈 우리가 과학이라고 부르는 영역에서 놀랍고 독특한 사실은 그와 같은 최초의 의견의 불일 치가 대부분 사라진다고 하는 것이다〉 . 23) 위의 책. pp. 143 이하 . 24) 플랑크의 원리는 막스 플랑크의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로 요약된다 (19 49, pp. 33-34) ; 〈새로운 과학적 진리는 그 반대자들을 납득시키고 이 해시켰기 때문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과학적 진리가 승리하 는 이유는 반대자들이 결국에는 죽어 없어지고 그것에 친숙한 새로운 세대가 자라나기 때문이다. >플 랑크 원리에 대한 쿤의 해석 내용을 찰 비판해 놓은 글로는 Hull, l

러나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것은 핵심적인 문제에 대해 서는 답을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만일 그와 같다면) 젊 온 과학자들이 정통 이론에 대립하는 어떤 특정 이론이 더 좋다 고 하는 데 동의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 댜 결국 쿤에게 있어 위기의 전이 기간은 제각기 관련 과학자 들의 충성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는 수많은 새로운 패러 다임의 존재에 의해 특징지어 진다. 우리가 (쿤을 따라서) 젊은 과학자들이 전세대보다 새로운 것에 더욱 열려 있다는 데 동의 하더라도, 이들이 의외의 역량울 가진 새로운 대안에 동의할 수 있게 되는 사실에 대한 설명은 여전히 불가능하다. 신념의 불가 공약성과 기준의 양립불가능성에 대해서 쿤이 옳다고 하더라 도, 경쟁 패러다임의 젊은 옹호자는 경쟁하고 있는 패러다임들 의 장점에 대한 일치에 도달함에 있어서 그의 전세대가 겪었던 것과 같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일단 특정 패러다임의 옹 호자들이 주요 저널을 통제하게 되고 그 학문 분야의 우세한 위 치를 점하게 되면 주도권과 통상과학은 명백해진다는 쿤의 제안 에 동일한 반론이 제기된다. 설사 그 제안이 옳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현실 정책으로의 과학적 결정의 환원은 과학 엘리트들이 하나의 새로운 패러다임 주위에 모여들게 되는 과정을 설명하지 않은 채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좀더 전통적으로 들리는 다른 예를 들어 보면, 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죽, 그것의 경험적 지지 정도, 이미 논증된 생산성, 그리고 문제-해결 능력 둥의 기준에 의해 객관적으로 새 패러다임이 앞선 패러다임보다 낫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결 국 새로운 패러다임을 중심으로 합의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25)

25) 쿤의 저작에서 이런 부분을 살펴보려면 특히 Kuhn, 196V il 마지막 장 울참조할것.

모든 혹은 대부분의 과학자들의 동의를 얻기 위해 이런 방향으 로 이론들을 비교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불가공약성과 공유된 기준이 없다는 것에 관해 쿤이 처음에 홍분해서 이야기했던 것 들이 불투명해진다. 그는 두 길을 다 택할 수 없다. 경쟁 패러 다임들 사이에 가로놓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 패러다임의 대표자들이 제안할 수 있는 공유된 분명한 기준이 있거나(이 경 우 불가공약성에 관해 그리고 공유된 인식 가치가 열거될 수 없다는 것에 관해 쿤이 설명하고 있는 것은 헛된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 의 불일치에 대한 설명 역시 근거를 잃게 된다), 혹은 · 그런 기준이 없거나(이 경우 불일치에 대한 쿤의 설명은 합의 형성에 대해 설명할 수 없다는 분명한 대가를 치르지 않을 수 없다), 둘 중의 한 경우일 수밖에 없다. 현대 과학철학자나 과학사회학자들 중에서 유독 쿤만이 일치 에 대한 설명의 전망을 남겨놓지 않은 채 불일치에 대한 설명을 내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라카토스뇨kato s 나 파이어 아벤트 같은 경우도 다른 이유에서 이긴 하지만 마찬가지 처지 에 놓여 있다. 라카토스는 이론 평가에서 다양한 규약의 역할을 장황하게 강조했다. 그에게 있어서 분명한 반증 사례를 진정한 반박으로 보려는 결정은 〈규약〉의 문제였다. 듀엠이 지적한 반 증의 애매성을 염두에 두면서 라카토스는 합리적인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 프로그램에 대한 현상적인 반박들을 완전히 무시 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 만일 그렇다면, 경쟁 이론가들이 어 떤 확고한 합의 속에서 불일치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수년 동안 혹은 수십년 동안 논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게 된댜 그러나 라카토스가 언제나 불투명하게 남겨두고 있 는 것은 과학자 공동체가 어떻게 해서 하나의 연구 프로그램이 다른 것보다 우월한 것이라는 결론에 합리적으로 도달하고 그렇

게 해서 새로운 합의를 도출해 내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라카 토스의 설명에 의하면, 쿤과 마찬가지로, 경험적으로 비통상적 인 어떤 것이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다소 막연하게나마 이론에 매달리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 그러나 사실상 그 렇게 말하는 것은 한 쪽의 연구 노선을 선호하는 것에 관한 합 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합리적인 메커니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 이런 식의 합의는 과학에서 진부한 것이기 때문에 라카토스의 접근 방식은 과학자들이 어떤 때는 매우 빨 리 대부분의 과학적 논쟁이 결정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간주하게 되는 사실을 전혀 설명해 주고 있지 않은 것이다. 라카토스가 자신의 의사와는 반대로 무정부주의자였다고 한 다면, 파이어아벤트는 의도적으로 엄청난 이론적 다원주의를 용 인하는 인식론을 자세히 설명하는 일에 착수했다. 파이어아벤트 의 관점에서는 과학자들이 어떤 것에 대해 합의에 도달해야 한 다는 것은 바람직하지가 않다. 그의 과학에 대한 이상은 기초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의 설정이다 . 이것은 어떤 것도 주어진 것으 로 간주되지 않으며, 모든 것이 합리적으로 부정되거나 긍정될 수 있는 소크라테스 이전 시기의 자연철학을 연상시킨다. 쿤과 마찬가지로 파이어아벤트는 극단적인 이론의 불가공약성을 믿었 댜 그는 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과학자들이 이론 평가에서 합리적으로 따라야 하는 어떤 방법론적 원칙이나 규범이 존재한 다는 것을 부정했다(〈어떻게 해도 좋다 an ythingg oes 〉). 파이어아벤 트는 과학자들이 때때로 어떤 이론이 좋은 이론이고 어떤 이론 이 나쁜 이론인지에 관해 의견의 일치를 보인다는 사실을 부정 하지는 않지만, 그런 사태가 불합리하게 이루어지는 것에 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과학자들이 좀더 나은 인식론적 관점을 이해한다면, 어떤 이론도 그 경쟁 이론이나 앞선 이론을 대체하

거나 그것의 신용을 떨어뜨렸다고 간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 닫게 되리라는 것이다. 사회학자들 역시, 과학에서 폭넓게 일어나는 논쟁의 존재가 그들 영역에서의 과학에 대한 낡은 모델과 잘 맞아떨어지지 않 는다는 사실을 재빨리 간파했다 . 마이클 멀케이Mi chaelMulkay 가 많은 새 물결의 이론가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은 과 학적 불일치의 현상을 낡은 접근 방식에 대한 반박으로 생각하 기 때문인 것 같다. 〈예를 들어, 머튼의 규범이 과학 내부에서 실제로 제도화되면, 과학 내부에서 주기적으로 일어나며, 또 과학적 지식의 성장이 갖는 불가피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빈 번한 지적인 저항들을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게 된다〉 .26)

26) Mulkay, 1 977, p. 106.

과학적 불일치에 몰두하는 태도는 콜린스 Co lli ns, 피커링 Pick erin g, 핀치Pin ch 등 몇몇 과학사회학자들의 연구에서 점점 빈 번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예를 들어 해리 콜린스는 이론물 리학의 최근의 논쟁들에 대한 연구에 엄청난 노력을 쏟고 있다. 콜린스는 자신이 검토한 사례들 속에서 독창적인 과학자들이 자 신들이 좋아하는 이론을 반박하는 논증이나 증거들을 피해 가기 위한 방법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실, 콜린 스의 주장은 실험적 증거가 언제나 너무 애매하기 때문에 모든 이론은 어떤 증거에 직면하게 되더라도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 다. 그의 표현을 빌면, 〈자연세계는 결코 무엇을 믿으라는 식의 강요는 하지 않는다〉 ,27) 바꾸어 말해서 〈자연세계는 과학적 지 식의 구성에서 매우 적은 역할을 하거나 거의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다〉뽀 콜린스에 따르면 (우리가 실험과 관찰을 통해서 배우게

27 ) Colli ns, 1981 a, p. 54. 28) Colli ns, 1981b, p. 3 .

되는) 자연세계의 특징이 실제로 세계에 대한 우리의 신념을 제 약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콜린스는 과학적 불일치가 연장되는 것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라카토스, 파이어아벤 트, 쿤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런 설명은 곧 장애물로 바뀐다. 왜 냐하면 세계와 그에 관한 우리의 신념 사이의 유의미한 모든 인 과적 고리를 끊어버림으로써 콜린스는 세계를 과학자로 하여금 궁극적인 합의에 도달케 하는 요소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콜린스가 자신이 과학에서의 합의 형성 메커니즘에 관심을 가지 고 있다고 말한다 해도(그는 〈해석의 유동성을 제한하고 그리하여 논쟁을 끝내게끔 하는 메커니즘〉을 기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 다 ),29) 나는 그가 우리의 신념에 대한 제약으로서의 세계를 고려 하지 않음으로써 이 문제를 다루는 가장 적절한 설명 자료를 빠 뜨렸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콜린스는 과학자 들이 어떻게 불일치를 보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너무 강하게 설명해 버리는 바람에 불편한 입장에 처하게 된 것같다. 말하자 면 과학자들이 세계에 관한 〈사실〉에 대해서, 그리고 어떤 이론 이 그러한 사실을 설명하는 데 가장 적합한 이론인가에 대해서 빈번하게 폭넓은 일치에 도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기적과 같 은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29) 위의 책, p. 4 .

나는 현대 과학철학과 과학사회학의 최근 경향에 대한 이러 한 간단한 스케치롤 통해서 어떤 새로운 물결의 접근도 틀린 것 이라거나 그들이 가진 결함이 복구할 수 없는 것임을 주장하려 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새로이 형성된 과학철학 과 과학사회학의 주장들이 경험론의 방법론과 머튼류의 사회학 의 파멸을 입증했다고 할 때, 그와 같은 정도로 위협적인 도전

에 똑같이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의 많은 이론가들은 고전적인 철학과 사회학의 빈곤을 지적하면서 전시대의 학자들 이 씨름했던 핵심적인 문제들을 무시해 왔다. 19 40- 1950 년대의 학자들이 과학의 기본적인 특징으로서 올바르게 주목하고 있는 분명한 사실들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 시대의 작업을 넘어섰다 고 주장할 수는 없다. 우리는 파이어아벤트를 따라서 합리적인 과학자들이 일반적인 일치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거나 (이것은 자료와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자주노 일 어나는 일반적인 일치의 가능성마저 배제할 정도로 뻣뻣하지는 않은 불일치에 대한 설명을 찾아내야 한다. 야누스의 얼굴을 한 과학을 설명해 내기 전에는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이해했다고 주장할 수 없을것이다. 이 책은 이런 방향으로 전진해 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하의 장들에서 나는 과학적 의견의 불일치가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수준을 기술하는 데 주로 초점을 맞출 것이다. 각각의 경우 우 리는 불일치가 어느 정도로 과학적 분석과 합리적인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를 탐구해 볼 것이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완 전한 라이프니츠적인 이상을 되살려 낼 수는 없다. 최선 의지를 통해서도 합리적으로 종결될 수 없는 과학적 논쟁들이 남아 있 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많은 과학적 논쟁들의 합리적인 해 결 방식을 이해하기 위한 적절한 분석 기제를 포함하고 있는 폭 넓은 사례들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제 2 장 과학적 논쟁의 계층적 구조 과학 공동체와 같은 다양한 공동체 내에서, 특히 전통과의 단절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지고 있는, 뿌리깊은 권위에 대한 도전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공동체 내에서 합의는 저절로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일치는 그보다 앞선 불일치 에서 출현하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합의 형성의 수수 께끼를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다 : 특정 주제에 관해 전에는 다 른(그리고 종종 양립불가능한)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 과학자들 대부분이 결국 그 주제에 관해 본질적으로 동일한 관점을 갖 게 되는 것은 어떻게 된 일인가? 이런 식으로 놓고 보면, 합 의 형성의 문제는 수렴하는 신념 변화의 역학에 관한 문제가 된다. 과학에서의 합의 형성의 문제에 대한 오늘날의 가장 유명한 해결책은 일반적으로 도구적 이성에 관한 이론으로 더 잘 알려 져 있긴 하지만, 내가 계층적인 정당화 모델hi erarc hi cal model of j us tifi ca ti on 이라고 부르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 이러한 모델의 대표자 1) 들은 과학적 합의가 형성되는 세 가지의 상호 관련된 수

준을 고찰하고 있다. 이런 단계들 중 가장 낮은 수준에서는 사 실의 문제에 관한 논쟁이 이루어진다. 여기서 〈 사실 ma tt er of fa c t〉이라는 구절은 직접 관찰 가능한 사건에 관한 주장뿐 아니 라, 관찰 불가능한 이론적인 실재에 관한 것을 포함해서, 세계 안에 존재하는 것에 관한 모든 주장을 포함한다 . 이런 분명한 이유에서 나는 이런 종류의 논쟁을 〈사실적 불일치fa c t ual dis - agr eemen t s 〉라고 부르며 이 수준의 합의를 〈사실적 합의fa c t ual consensus 〉라고 부른다. 일반적인 설명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공 유된 방법론적 규칙이라고 하는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올라감 으로써 사실적 불일치를 해결하고 사실적 합의를 만들어 낸다. 여기서 규칙은 사실적 언명을 만들어 내기 위한 역학적 알고리 듬이 될 것이다. 그러나 더욱 전형적으로 이 규칙은 우리가 이 론 속에서 추구하거나(예를 들어 독립적인 테스트 가능성), 회피하 거나 하는(예를 들어 애드 호크 adhoc 같은) 것들에 관한 단순한 제 약이나 금지 명령이다.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바와 같이, 기 본적으로 경험적인 지지의 원리, 상대적인 이론 평가의 원리가 되고 있는 그런 규칙들은 최소한 질적인 의미에서 평가중인 이 론을 위해 유용한 증거의 확실한 지지 정도(즉 확증이나 반증)를 요구한다 . 경쟁중에 있는 사실 주장 중 어떤 것이 더욱 믿을 만 한 것인가에 관해 두 과학자가 불일치를 보이고 있다면, 그들은 (이런 관점에서) 자신들의 불일치를 끝내기 위해 각자의 주장에 대한 지지 정도를 비교해 보아야 한다. 이런 모델에 따르면, 경 쟁 이론들은 우리의 법정에서 서로 변론에 나섬으로써 판정받을 것을 요구한다 . 말하자면 적절한 증거가 제시되고 법정은 잘 확 립되어 있는 증거의 판결 규칙에 따라 판정한다. 문제가 인간성

I) 영향력 있는 계충적 모델의 철학적 옹호지들 중에는 포퍼 KarlPo ppe r , 헴 펠C. G. Hemp el, 라이 헨바하H. Reic h enbach 등이 있다 .

보다 규칙에 의해 설정되기 때문에 불편부당한 판정이 〈보장된 다〉 . 그리고 끝으로 이 사례에 대한 각각의 입장들은 판정에 따 룰 것에 동의한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계층 이론은 과학자들이 그들의 사실적 논쟁들을 일종의 보이지 않는 〈과학 법정〉(이 경 우에는 몇몇 과학적인 전문 분야의 연구자들)에 복종시킬 것을 요구 한다. 〈과학 배심원〉은 그 전문 분야에서 활동하는 모든 과학자 들에게 동의를 얻고 있는 증거 지지 규칙에 따라 선택할 것으로 기대된다 . 그런 선행적인 일치는 〈판정〉이 모든 입장에 대해 불 편부당하고 수락 가능한 것이 될 것을 보증할 것이다. 얼핏 보 면 이런 접근은 성공적인 것 같다. 이런 접근은 합의 속에서 과 학적 불일치가 문제되는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런 일이 이루어지는 속도도 설명해 준다. (그리고 1 장에서 지적했 듯이 많은 과학적 논쟁과 관련하여 정말로 주목할 만한 사실은 그런 논쟁들의 해결이 대단히 빠르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 ) 시실즈 1 불일 치가 적절한 증거 규칙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는 테제는 내가 앞에서 〈라이프니츠적인 이상〉이라고 부른 것을 현대적으로 예 시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원래의 라이프니츠적인 이상온 모 든 사실적 불일치가 적절한 규칙에 의해 종식될 수 있다고 하는 데 반해, 현대의 방법론적 규칙의 지지자들은 그보다는 온건한 경향을 보인다. 이들은 어떤 불일치의 경우는 유용한 증거(그리 고 공유된 규칙)를 이용함으로써 즉각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런 해결에 실패할 경우, 이 들은 문제를 결정적으로 해결할 증거를 수집하는 절차를 제시하 기에는 규칙이 너무 한정적일 경우가 있다고 말한다. 규칙들 자 체는 (테스트 가능하고 단순한 가설을 정식화하는) 대단히 일반적인 것에서부터(단일 맹시험(單一 盲試驗)보다는 이중 맹검법(二重 盲檢 法)의 결과를 선호하는 : 단일 맹시험은 환자가 약의 내용을 모르고 테

스트를 받는 경우, 이중 맹검법은 시험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양자가 그 내용을 모르고 하는 방식을 말한다 : 역주), 어느 정도의 일반성 울 갖춘 것, 그리고 (기구 x 가 표준 y에 맞는지 확실히 측정해 보려 하는) 특정 학문 분야나 세부적인 학문 분야의 고유한 규칙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런 절차나 방법론적 규칙이 논쟁에 참 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그것이 경쟁하는 입장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데 문제가 없을 정도로 명확하다면, 그야 말로 사실에 관한 논쟁을 중재하는 데 충분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사실에 관한 논쟁의 상당 부분이 적절한 방법론적 절차 를 통해서 간단히 해결되곤 했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증거나 절차에 관한 적합한 규칙에 관해 서나 그런 규칙들이 당면 사례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느냐 하는 데 대해 의견의 불일치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2) 그런 상황에서 규칙은 사실적 불일치의 해결을 위한 적합한 도구가 될 수 없 댜 이런 일이 벌어질 경우, 특정한 사실적 불일치가 더욱 심층 적인 방법론적 불일치를 예시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표준적인 계층적 관점에서 그러한 방법론적 논쟁은 한 단계 올라섬으로

2) 과학자들이 상이한 방법론적 원칙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은 앤드루 러그 AndrewLu gg(l 978) 의 과학적 불일치의 원인에 관한 설명에 대해서는 예외로 보인다. 러그의 일반적인 테제는 과학의 본질적인 문제에 관한 불일치가 과학자들이 어떤 이론의 평가에 잠정적으로 유효한 기초 자료 에 접근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어 떤 전문 분야에서 활동하는 연구자는 경쟁 이론에 의해 주장되는 지지 정도에 관해서 다른 분야의 전문가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관점을 갖게 될 것이다. 러그는 이런 관점의 차이룰 불일치의 원인으로 본 점에서 옳 다. 그러나 그는 적절한 모든 증거에 접근하는 〈이상적인〉 관찰자 공동 체가 과학적 합의를 낳을 것아라고 생각한 점에서 틀렸다.왜냐하면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동일한 증거를 가지고서도 과학자들이 흔히 보여주 고 있는 방법론적인 입장의 차이룰 도외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써, 다시 말해 공유된 과학의 목표나 목적을 제시함으로써 해결 될 수 있다 . 이런 식의 생각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데, 조금 만 생각을 해보더라도 방법론적 규칙이 과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나 수단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힘을 갖게 되는 것이 분 명하기 때문이다. 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과학이나 그 밖의 영역에서 우리가 어떤 절차의 규칙이나 가치 평가의 규칙을 채 택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인식적 목표나 유용성을 실현시키 기 위한 최상의 도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과학자가 서로 다른 방법론적 규칙을 옹호한다고 할 때(그리고 그들이 동일 한 기본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자) 이들은 원칙적으로 어떤 규칙이 더 효과적으로 과학의 집합적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느 냐롤 결정함으로써 방법론적 차원에서의 자신들의 의견의 불일 치를 해결할 수 있다. 나는 기본적인 인식적 목표가 관련된 이 세번째 단계를 가치론적 수준이라고 부른다. 과학적 불일치에 대한 일반적인 철학적 관점을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요약해 볼 수 있다 : 사실에 관한 불일치는 방법론적 수준에서 해결될 수 있고 방법론적 차이는 가치론적 수준에서 걸러내어 질 수 있다민 가치론적 차이는 (과학자들이 동일한 목표 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데 기반해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되

3) 거팅 Gu tting, 函 3 은 방법과 목표의 관계에 관한 계층적 관점을 탁월하게 정리해 놓았다 . 계층적 관점의 전통 속에서 거팅은 분명하게 방법론 논 쟁이 〈기초적인 의도〉나 과학 공동체 구성원의 목표를 주목함으로써 해 결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 이것은 1) 그런 의도 자체가 일정치 않 다는 것 그리고 더욱 중요한 점으로 2) 과학자들이 종종 그 학문의 기 초적인 의도가 무엇이냐 하는 데 합의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이 런 상황에서 계층적 관접을 옹호하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거팅은 불일치의 중재를 위한 어떤 치유책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특히 Gutting, l'f7 3 , pp. 力 7 이 하 참조) .

거나, 혹은 그것이 존재한다면, 해결 불가능하다고 간주된다(도 표 l 참조). 이 장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널리 퍼져 있는 이러한 합의 형성 모델의 강점과 그에 대한 반박을 살펴보겠다.

불일치의 수준 해결의수준

사실적 방법론적 방법론적 가치론적 가치론적 해결불가 도표 l 합리적인 합의 형성에 관한 간단한 계층적 모델

사실적 합의 형성 계층적 관점의 한 가지 명백한 약점은 그 중심적인 가정에 놓 여 있다. 이 관점은 가능한 모든 대립적인 주장의 배제를 위 해, 방법론적 규칙을 가지고 최소한 원칙적으로나마 한 가지의 사실 주장을 그 규칙에 의해 유일하게 지지되는 것으로 골라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규칙과 유용한 증거를 통해 많은 사실 주장과 가설을 배제할 수 있다고 해도, 수많은 가설 들이 방법론적으로 수락 가능한 것으로 남기 때문에, 방법론적 규칙을 통해 사실 주장들 중 어느 것을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널리 인정되고 있는 사실이다. 수락 가능한 가설들 중에서 어떤 것들은 동일한 증거를 가지 고 있다 거기서는 어떤 증거를 가지고서도 구별이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파동역학과 행렬역학의 어떤 해석들은 관찰상으로는 동일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관찰을 통해서도, 그들 사이에

서 결정적인 선택을 내릴 수 없다. 수락 가능한 가설들이(그 가 설들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지지해 주는 증거를 생각할 수 있다는 의 미에서) 분명히 다른 증거를 가지고 있지만 현존 증거나 규칙이 선택의 근거를 제공해 주지 않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어떤 방법론적 규칙에 의해 지배되는 사실 주장의 집합이 언제 나 서로에 대해 몇 가지 반대되는 것들을 포함한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4) 적절한 규칙과 증거에 의한 이론의 미결정성은 (최소한 이론의 불일치에 관한 판정에 적용될 경우) 계층적 합의 형 성 모델을 흉내낸 것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공통적인 비판은 대체로 요점을 놓치고 있다. 합의 형성 의 사례에서 우리가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과학자들이 어떻게 해서 다른 가설들을 제쳐두고 어떤 특정한 가설을 수락하는 데 동의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런 것이 우리 설명 의 수수께끼라면 방법론적인 미결정성은 오히려 그에 대한 대답 울 방해한다. 마찬가지로 경쟁중에 있는 과학 이론의 옹호자들 이 지지 정도가 높은 이론을 찾아내려고 할 경우, 이런 종류의 미결정성은 약화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두 경우 모두 문제를 잘못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결정하고자 하는 것은 (그리고 우리가 앞에서 했던 재판의 비유는 특히 이 부분에서 찰 맞아 떨어진다) 그 이론들이 지속될 것인지 혹은 그 이론들이 모든 경 쟁 이론들과 겨루어 잘 버텨낼 수 있을지의 여부가 아니다. 과 학자들은 현재 개장된 과학 시장에서 어떤 이론이 가장 잘 팔리 느냐를 결정하려 한다. 나의 관점에서 볼 때 과학자들은 단순히 최상의 이론을 기대한다기보다는, 그들이 찾을 수 있는 것 중에 서 최상의 이론을 기대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나는 합의 형성

4) 미결정성에 관해서는 꾹J- 이하에서 자세히 다루었다

의 문제를 더욱 건설적이고 현실적으로 제기하기 위해서는 다음 과 같이 물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어떤 과학자들은 이 이론을 믿고 있었고 다른 과학자들은 그것과 대립하고 있는 이론을 받 아들이고 있었다면, 그들이 지금 모두 나중의 이론을 받아들이 는 이유는 무엇인가 ?5) 바꾸어 말해서 우리는 한정된 (그리고 보 통은 매우 좁은) 범위의 경쟁이론들 중에서 합의를 통해 한 가지 를 승인하게 되는 특정한 선호가 발생하는 이유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다. 한 때는 대륙이동설에 그렇게도 경멸적인 태도 를 보였던 지질학자들이 다른 구조틀을 받아들이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한때 빛의 입자설을 옹호했던 물리학자들이 결국 파 동설이 더 나은 이론이라고 믿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5) 나는 두 경쟁 이론 간의 선택에 대한 문제를 정식화할 것이다. 이것은 더 많은 수의 경쟁 이론에 적용시킬 수 있게 일반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식의 비교를 통해 합의 형성 문제를 살펴보게 되면 미결 정성의 논쟁에서 많은 어려운 점을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여러 사례에서 공유된 규칙과 현존 증거는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현 재의 이론들을 두 개의 집합으로 나누어 놓기 때문이다. 죽 규 칙에 따라 지지를 받는 이론과 그렇지 못한 이론이다. 대립하고 있는 두 입장이 자신들의 이론을 전자의 집합의 원소에서 이끌 어낸다면, 방법론적 규칙은 선호성을 부여하기에 불충분할 것 이고, 논쟁에 참여한 사람들은 더 많은 중거의 축적이 이루어지 기까지는 자신들이 의견을 달리 한다는 점에서만 의견의 일치를 보일 것이다 . 그런 (잠정적인) 미결정성의 경우는 매우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히 과학사가나 과학사회학자들의 가장 홍미있는 연구거리가 된다. 그러나 그런 오랜 기간의 교착 상태에 호소하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그것들이 극히 드문 사례

라는 것을 못 보게 해서는 안 된다. 논쟁이 이루어지고 있는 대 부분의 기간에도 사람들은 규칙이 현재의 경쟁 이론 사이의 선 호성을 보장할 때가 올 것이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혹자는 내가 규칙이 동시에 신념을 결정짓지 못하기도 하고 선호성을 결정하기도 한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의아해 할 것이 다. 이런 구분은 기본적인 것이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문 제에 대해 혼동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에 자세히 주목해 볼 필요 가 있다. 본질적으로 규칙은 (혹은 규칙의 집합) 가능한 신념을 두 가지 집합, 죽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받아들일 수 없는 것 으로 나눈다. 신념은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그에 대한 대안들 중에서, 최상의 경험적 지지도를 가지고 있을 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된다전 만일 우리가 받아들일 만한 신념을 이런 식으 로 한정한다면, 우리는 어떤 사실에 관한 몇 가지 경쟁적인 주 장들이 어떤 증거들에 직면해서는 모두 받아들일 만한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 죽 이들은 모두 동등한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 댜 그러나 여기에는 엄밀한 미결정성과 대조되는 점이 있다.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다른 것들 중에서 단 하나의 경쟁적인 이 론이 중거에 의해 두드러지게 지지받고 있는 상황이 있을 수 있 댜 이런 경우에는 그 경쟁 이론만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된 다. 잘 알려진 다른 경쟁 이론을 버리고 그것을 수락하는 것은

6) 완고한 마음을 가진 독자는 받아들일 수 있는 신념의 의미를 더 확장시 킬 것을 요구할 지도 모르겠다. 말하자면 경쟁하고 있는 신념들보다 규 칙에 의해 더 강한 지지를 받을 경우에만 그 신념이 보장되는 것으로 간 주하자는 것 둥이다 .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모순되는 신념이 모두 받아들일 만한 것이라고 하게 될 수도 있다. ) 나는 〈받아들일 만하다〉는 것에 관한 더 강한 성격 규정을 거부한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전개한 논의는 받아들일 만하다는 말을 어떻게 정식화하건 문제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밀집한 관련을 갖는 규칙과 증거에 의해 지시된 것이다 . 물론 선호된 경쟁 이론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완전히 결정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는 여전히 수락 가능하지만 수락되지 않은, 경쟁 이론들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한 규칙이 추상적으로는 선택을 충분히 결정할 수 없게 한 다고 하더라도, 그 규칙은 현재의 경쟁 이론들 사이의 상대적인 선호성을 분명히 지시해 준다는 점이다. 이런 일은 특히 우리가 (가장 단순한 경우) 하나는 (방법론적으로) 받아들일 만하고 다른 하나는 그렇지 못한 두 경쟁 이론 사이의 선택에 직면했을 때 일어난다. 예를 들어, 생물학의 규칙과 증거는 진화론만이 유일하게 옳 다고 주장하지는 못하지만 일례로 지구가 1-2 만 년 전에 만들어 졌다는 동의 다양한 창조론적 가설을 배제하고 있다. 그리하여 창조론적 생물학보다는 진화론에 대한 합리적 선택을 보장하고 있다. 만일 이론 평가가 상대적인 문제이며, 과학자들이 일반적 • 으로 가능한 최상의 이론에 대한 절대적인 판단보다는 유용한 경쟁 이론들 중에서 가장 적합한 것에 대한 상대적인 판단을 내 리고 있다면 상대적인 선호성온 가능한 최상의 이론에 대한 선 택을 정당화할 수 없을 때에도 보증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 진다. 이미 우리에게 친숙해진 이런 영역을 내가 살펴보는 이유는 최근의 몇몇 학자들이7) (내가 여기서 지적하고 있는) 선택과 선호 성의 차이를 무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 온 이론 선택이 방법론적 규칙에 의해 불충분하게 결정되기 때 문에, 경쟁 이론들 사이의 어떤 합리적인 선호성도 가능하지 않

7) Quine, Hesse, Bloor 동.

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바꾸어 말해서, 모든 이론이 다론 이론 들과 마찬가지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과학 논쟁에서의 모든 입 장이 따라서 다른 모든 입장들과 마찬가지로 합리적이라는 말이 댜 우리의 논의에서 분명히 해두어야 할 점은 실행 가능한 형 태의 미결정성 테제는, 모든 이론이 주어진 경험적 정보에 비추 어 볼 때 동등하게 확증되고 있으며 동등하게 합리적이라는 관 점에 대한 어떠한 정당화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이 함의하는 바에 관해서는 우리의 관심이 이론 평가의 논 리와 방법론에 한정되어 있다면 더 길게 논의할 수 있겠다 . 그 러나 여기서는 미결정성에서 우리가 인식론적 평동주의(죽 모든 신념이 인식론적으로, 혹은 증거에 비추어 볼 때, 그 지지 정도가 동 등하다는 테제)라고 부른 것으로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것을 거부 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왜냐하면 이런 태도는 우리의 규칙이 자신들을 만족시키는 유일한 이론을 골라내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을, 규칙을 가지고서는 여하한 이론의 구별을 할 수 없다는 주장을 보증하는 것으로 혼동하기 때문이다 . 극단적인 형태의 그러한 평등주의는 인식론적 상대주의의 급 진적인 해석으로 볼 수 있다 . 이런 정식화는 사회학자 해리 콜 린스印떠 Co llins의 다음과 같은 테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 죽 우리의 신념은 오로지 증거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증 거와 독립적으로 합리적으로 추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보다 덜 극단적이고 조심스러운 형태는 쿤의 최근 저작(특히 『본질적 긴장』)에 나타나는 과학에서의 규칙과 가치의 역할에 대한 논증 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과 마찬가지로 쿤은 과학적 선택에 있어서 어떤 알고리듬도 찾을 수 없는 많은 사실들이 있 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주어진 증거와 배경에 놓여 있는 가정에 기초해서 가능한 한 가장 좋은 이론을 골라낼 합의

된 규칙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규칙이 매우 애매해서 특정한 이론 선택에 실제적인 도움 이 거의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같다 . 쿤은 규칙을 부 인하거나 어떤 회의주의적인 사회학자처럼 그것을 전후 관계와 인과 관계를 혼동한 합리화로 간주하지도 않는다 . 오히려 쿤은 방법론적 규칙이 과학적 신념에서 인과적이고 정당화를 부여하 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쿤은 또한 평가의 규 칙이 너무 애매하고 유동적이라고 믿기 때문에(그는 평가 규칙을 〈잘 보고 뛰어라〉라는 소박하고 다소 무식한 속담에 비유한다), 거기 에 최소의 역할을 부여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그는 우리가 관 련 영역에서 다른 가능한 모든 이론을 제외하고 하나의 이론을 분명히 골라낼 규칙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두 이론 사이 의 선택은 우리가 이론이 성취하리라고 예상하는 것에 관한 가 치나 규범의 집합이 주어진 상태에서 언제나 이쪽이 아니면 저 쪽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쿤이 규칙이 행하는 과학 이론 선택 에서의 역할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그 본질적인 애매성이 공유된 방법론적 규칙에 기초해서 결정적인 선호성이 정당화될 가능성을 배제한다고 주장한다. 쿤은 〈그런 기준(그의 예는 정확성, 단순성, 일반성 둥이다)이 존재하며 발견가능하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이어서 〈그것 자체로는 개별적인 과학자 들의 의사결정에 불충분하다〉고 주장한다전 만일 쿤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규칙과 가치가 (위에서 언급한 엄밀한 의미에서의) 선택을 함에 있어서 불충분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라 면, 그의 주장에 시비를 걸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이어지는 그 의 논의에서 분명해지듯이 그는 내 식으로 말하면 선호성도 결

s) Kuhn. 1m, pp. 324 -32 5.

정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말하 고 있다. 〈경쟁 이론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개인적인 선 택은 주객관적인 요소, 공유된 기준과 개인적인 기준의 혼합에 기초하고 있다.〉 9 ) 쿤은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과학자 들에 의해 공유된 〈객관적인〉 기준이 다른 것을 배제하고 선호 성을 정당화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쿤이 잘 알고 있 는 바와 같이 과학자들은 사실 이론의 선호성에 관해 말하고 있 기 때문에 쿤은 이것을 과학자들이 공유된 기준을 능가하는 다 양한 개별적이고 독특한 기준을 가지고 활동할 수밖에 없는 증 거로 삼는다. 그는 그런 기준이 없다면 과학자들이 어떻게 선호 성을 가질 수 있겠느냐고 묻는 것 같다. 그렇지만 쿤뿐만 아니 라 그 누구도 과학자들 사이에서 공유되고 있는 규칙과 가치 평 가 기준이 다른 이론에 대해 어떤 특정 이론을 선호하는 데 대한 분명한 근거를 제시하기에는 언제나 일반적으로 불충분하다는 것을 사실의 영역에서나 또는 원칙적으로도 보여준 바가 없다. 쿤 자신의 몇 가지 기준을 사용함으로써 우리는 이제 합리적 인 기초를 가지고 있는 선호성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 어떤 과학자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과 뉴턴 물리학의 독특한 해석들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그리고 이 과학자가 관찰의 정확성을 제 1 의 가치로 생각한다고 가정하자 . 쿤에 따라서 〈정확성〉이 보 통 정확하게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하고, 과학자들이 정 확성의 해석에 미묘한 차이룰 보인다고 하더라도, 나는 뉴턴의 이론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보다 경험적으로 더 정확하다는 것이 17 세기 후반 경에는 논의의 여지가 없는 것이었다고 생각

9) 위의 책. p. 325 ..

한다. 뉴턴의 가장 솔직한 비판가들마저도 그의 이론이 고대 학 자들의 이론보다 경험적으로 훨씬 더 정확하다는 것을 인정한 다 마찬가지로 케플러의 법칙과 뉴턴의 천문학 사이에서 선택 을 해야만 한다면―~그리고 이것은 두 이론이 형식적으로 양 립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위와 같은 선택이 되는데 __ 그리고 우리의 제 1 차적인 기준이 적용(쿤에 의해 언급된 또 다른 인식 가 치인)의 범위와 일반성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선호성은 다시 한 번 우리의 가치에 의해서 지시될 것이다 . 케플러의 법칙은 기껏 해야 거대한 행성의 질량에만 적용이 되겠지만 뉴턴의 이론은 모든 질량에 다 적용된다. 이런 상황에서 〈더욱 큰 일반성을 가 진 규칙을 선호한다〉는 규칙은 분명한 안내자의 역할을 해준다. 물론 공유된 규칙이 결정적인 선호성을 형성하기에는 너무 애매 할 때도 있을 것이다 . 과학적 변화에 대한 쿤의 분석은 이런 사 례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 그렇지만 쿤이 논의의 여지가 있 는 그런 독특한 사례들로부터 공유된 규칙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경쟁 이론 사이의 모든 개별적인 선택〉에 관한 주장을 일반화 해낼 때, 그리고 쿤이 이어서 그 누구도 그의 설명이 〈이론을 선택할 때 과학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에 대한 단순한 기술〉 10 ) 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할 때, 쿤이나 그 누구 도 대부분은 이론 선택 상황이 〈공유된 기준〉이 선호성을 결정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10) 위의 책 , p. 325.

바꾸어 말해서, 쿤이 분명히 우리가 완전히 일반적인 확증논 리나 설득력있는 증거 이론을 갖지 못했음을 올바로 지적했다고 하더라도, 많은 규칙들이 애매하다고 말하는 것이 옳으면 옳은

만큼, 그런 사실을 근거로 공유된 과학적 규칙이나 가치를 특정 한 선택 상황에 적용하는 것이 언제나 애매하고 혹은 유용하지 못할 것이라고(또는 지금까지 그렇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 못된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이런 문제를 〈미결정성〉이라는 표제 어를 가지고 논의한 바 있다 . 그런데 쿤온 규칙과, 가치 평가의 기준 , 과학자들이 복종하는 가치들이 적용에 있어서 너무 애매 해서 실제로 어떤 이론도 그것들을 충족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는 주장을 증명하지도 않았고 설득력있게 제시하지도 못했다 . 우리는 이론이 일련의 규칙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고 하더라 도, 효과적인 규칙에 의해 배제되는 많은 이론들이 있을 것이라 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과학 논쟁에서 한 쪽이 그 런 규칙을 위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이론을 지지할 경우, 그 규칙은 그 이론을 고려에서 제의시킬 것이다. 이러한 분석으로 부터 계층적 모델은 (수많은 그 비판가들의 주장처럼) 미결정성에 관한 논쟁에 의해 효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반대로, 사실에 관한 많은 논쟁들이 공유된 절 차 규칙을 끌어옴으로써 종식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합리 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계층적 관점의 이러한 재정식화롤 통해 만들어지는 〈울타리〉가 어떤 것인지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 하다 모든 사실적인 불일치가 라이프니츠식으로 해결될 수 있 는 것은 아니다. 두 개 이상의 경쟁적인 입장들이 현존 규칙과 증거에 의해 동일한 지지를 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마 찬가지로(앞으로 간단히 살펴보자면), 어떤 증거 규칙들이 당면 사례에 적용되어야 하는가에 관해 의견을 달리하는 일도 있을 수 있다 계층적 모델에 대한 이러한 해석이 우리로 하여금 어 떤 상황에서만 합의를 예측하게 한다는 사실온 라이프니츠적 이 상에 대한 극단적인 합리주의적 옹호자들(원칙적으로 모든 사실

논쟁의 죽각적인 종식을 원하는)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극단적인 결 정불가능성의 옹호자들(모든 불일치가 계속 연장될 수 있다고 믿는) 도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러나 계층적 모델에 대한 이런 해석은 힘을 갖는다. 그것은 이 모델이 (미결정성을 주장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사실적 불일치를 합의로 이끌어갈 수 있다고 생각되는 상 황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라이프니츠적인 이상을 믿는 사람들과는 달리) 사실적 불일치가 계속될 것으로 생각되는 상황 의 범위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방법론적 합의 형성 지금까지 우리는 라이프니츠적인 모델에서 다른 것은 배제하 면서도 그 중심적인 특징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 그 이유 는 우리가 지금까지는 일군의 과학자들이 인식적 목표나 방법론 적 규칙의 집합은 공유하면서도 특정한 사실에 관해 불일치를 보이는 상황에 관해 논의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보다 깊은 수 준에서 불일치가 발생하기도 한다. 우리는 때때로 가설이나 이 론의 선택으로 나아가게끔 하는 적절한 방법론적 절차적 규칙에 관해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는 과학자들을 목도하게 된다. 예 롤 들어 어떤 과학자는 (포퍼와 같이) 이론이 합리적으로 받아들 이기 전에 놀랄 만한 심지어 기상천외한 예측을 하고 그것이 옳 온 것으로 판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과학자는 놀랄 만한 예측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폭넓은 현상 영역을 설명해 주기만 하면 가설을 받아들이고자 한다. 또 다론 제 3 의 과학자 는(나겔 N ag el 처럼) 어떤 이론도 다른 여러 종류의 지지 사례를 통 해 테스트되기 전에는 올바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또

다른 네번째 과학자는 많은 확증들이 그것이 보여주는 다양성에 상관없이 이론이나 가설의 시험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 다섯 번째 과학자는 이론이나 가설이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이전 에 가설에 의해 추정된 실재의 존재에 대한 직접적이고 독립적 인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친근한 이론 수락의 방법론적 원칙들은 서로 경쟁 관계에 있으며 각각은 최근의 과 학과 철학에서 탁월한 옹호자들을 보유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과학 게임의 규칙에 관해 불일치를 보일 때 우리 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 체계의 바깥에서 억지로 불일치를 종식시키는 것 말고, 과학자들이 합리적으로 자신들의 방법론적 불일치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을까? 혹은 과학자들이 합 리적인 해결을 허용하지 않는 고약한 규범적 불가공약성에 빠져 있는 것일까? 이와 같은 방법론적 논쟁은 계층적 모델에 따르면 인식적인 정당화의 계단에서 한 단계 높이 올라감으로써 해결될 수있다. 계층적 단계가 어떻게 개입되는지를 살펴보려면 규칙 일반의 기능, 규칙이 통용되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과학이나 체스 또는 의회의 논쟁에서도) 규칙을 통해서 행위의 목적을 한정하는 목표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그 특정 규칙의 집합에 따를 것에 동의한 댜 과학자들은 문제된 규칙에 따름으로써 그들의 인식적인 혹 은 주관인식 적 인 doxas ti c 목표의 실현을 이루거 나 거기 에 더욱 집 근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방법론적 규칙을 갖는다고 할 수도 있댜 그렇게 생각하면, 방법론적 규칙은 자신의 인식적 목표의 실현을 위한 순수한 도구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간단 히 말해서 과학의 규칙은 인식적 목표를 위한 수단이나 과제의 수행을 위한 도구로서 고안될 뿐이다. 규칙을 이런 식으로 생각

하면 규칙에 관한 논쟁의 해결 방식에 대한 우리의 질문에 답이 즉시 주어지고, 나아가 사람들이 동일한 규칙으로 게임을 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을 때 분명하게 나타나는 불가공약성에서 벗 어나는 길도 제시된다. 만일 두 과학자가 적절한 규칙에 관해서 는 불일치를 보이지만 보다 〈높은〉 인식적 가치나 목표에 관해 서 의견의 일치를 보일 때, 우리가 어떤 규칙의 집합이 공통의 인식적 목표 실현을 위해 가장 적합한지 결정함으로써 규칙에 관한 불일치를 해결할 수 있음이 명백해 졌다 . 일단 우리가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얻으면, 어떤 것이 적절한 방법론적 규칙들인 지를 알게 될 것이고, 최소한 그 방법론적 불일치가 공유된 가 치론 위에 합리적으로 기초하고 있는 한은 그것을 해결할 수 있 울것이다. 그러나 이런 대답이 일반적으로 그럴듯하게 들리는 만큼 (그 리고 나는 이 대답이 올바른 궤도에 올라섰다고 믿는다) 실제보다 문 제를 더 논리 정연한 것으로 보이게 하며 그래서 몇 가지 중요 한 문제를 빠뜨리게 된다. 예를 들어서 이 대답은 주어진 인식 적 목적이나 목표의 집합이 어떤 방법론적 집합과 결부되어 있 다고 가정한다 . 죽 어떤 특정한 규칙의 집합은 문제가 되고 있 는 가치의 실현을 위한 유일한 최상의 수단으로 입증될 수 있다 는 것이다. 어떤 특정한 규칙의 집합이 어떤 가치의 집합을 실 현하기 위한 최상의 가능한 수단이라는 것을 드러내 보이기는 일반적으로 어려운 일이고 어떤 경우에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 보다는 좀더 완곡하고 실질적으로 특정한 규칙의 집합을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 규칙이 우리가 원하는 가치를 달성하기 위한 최상의 혹은 유일한 수단인지 밝히는 것은 또 다 른 문제라 하더라도, 규칙에 따르는 행위를 통해 어떤 인식적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다는 것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리고

만일 우리가 인식적 가치를 논증할 수 없다면, 문제가 되고 있 는 가치의 실현을 위해서 다른 가능한 경쟁 규칙들을 버리고 어 떤 규칙을 선택하는 경우 그 규칙의 우월성을 논하는 것은 공허 한 일이 될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그리고 이 점이 중요한 데一一인식적 목표는 방법론적 규칙이 사실 선택을 충분히 결 정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방법론적 규칙을 결정할 수 없다. 어떤 탐구 절차가 요구된 인식적 목표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임을 밝 히려는 고전적인 철학자들의 탐구는 완전히 오도된 것이다. 우 리는 어떤 목표에 도달하는 가능한 모든 길을 검토하는 것은 말 할 것도 없고 열거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검 토가 없이는 하나의 방법의 집합이 다른 것들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을 할 근거가 없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지금까지 어떤 학자도 진리나 정합성, 단순성, 예측적 다산성 등 친근한 인식적 목표를 실현시킨다고 보이는 경험적 탐구 규칙의 어떤 집합도 밝혀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론과 마 찬가지로 규칙 역시 그에 관련된 제약에 의해서 충분한 결정이 이루어질 수 없다. 이것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만일 어떤 특정한 인식적 목표의 집합을 실현하는 데 단 하나의 규칙의 집합만이 있다 면, 우리는 과학자들이 공통의 목표나 가치를 가지면서도 그런 가치의 실현을 위한 적절한 규칙에 관해 의견의 불일치를 보이 는 것을 비합리적이라고 결론지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런 논쟁 은 과학과 철학의 역사에서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예를 들어 소위 선지시p redes ignati on 의 규칙에 관한 150 년간의 (그리고 여전 히 지속되고 있는) 논쟁을 생각해 보자.11) 이 규칙은 어떤 가설

11) 나는 Laudan, 1981 에서 선지시에 관한 초기의 역사를 논한 바 있다.

이 거기서 도출된 새로운 예측을 통해서만 테스트될 수 있는 것 이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에 의해 테스트 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수많은 탁월한 사상가들이 이 문 제를 둘러싸고 양 편으로 갈라섰다. (위웰 Whewell(1794-1866) 영국 의 철학자, 과학사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배운 후, 동 대학 광물학 및 도덕철학 교수. 과학사에 관한 연구로 유명하다. 주저로는 His to r y oft he bu iuc tiv e Sci en ces, 1837 이 있다 : 역주), 퍼스 Pe irce, 포퍼는 선지시 에 동의했고, 밀 M 비과 케인스 Ke yn es 둥은 반대했다 . ) 나는 이 논쟁 의 두 입장이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인식적 목표에 종속된다고 본다 이들은 참되고, 일반적이고, 단순하며 설명력있는 이론 을 추구한다. 그러나 아직 어느 누구도 선지시의 규칙이 그런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최상의 혹은 적절한 수단인지 밝힐 수 없 었다. 그러한 실패는 매우 전형적이다. 서로에 대한 일 대 일 관계 속에서 혼들리지 않는 것으로 드러난 인식적 가치와 그와 결부된 방법론적 규칙은 거의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보통 과학과 결부된 모든 인식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는 균등하게 실행 가능한 방법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과학적 방법〉 이 환영일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이다. 과학적 방법의 규칙을 찾는 것은 공유된 과학의 인식적 목표의 달성을 위한 단 하나의 정당한 수단이 있음을 전제하는 것이다. 우리의 인식적 가치를 마찬가지로 잘 실현시켜 줄 수 있는 방법론적 규칙이 여 러 가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른 탐구 방법의 공존이 과 학적 생활의 영원한 특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12)

12) 무엇이 과학의 인식적 목표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과학자들 사이의 충분한 합의가 없다는 사실은 아마도 극복 불가능한 과학적 방법의 탐구 에 대한 장애물이 될 것이다. 그런 의견의 일치가 없이는 우리는 방법 에 관한 어떤 불일치가 계속되더라도 개의하지 않게 될 것이다(그러나

pp. 61 이하에서 살펴보겠지만, 인식적 목표에 관한 합의의 결여가 적절 한 방법에 관한 어떤 불일치의 존재를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것은 아니라 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

그렇지만 회의주의자는 다음과 같이 물을 수도 있다. 우리가 어떤 방법론적 규칙이 어떤 인식적 가치를 실현하는 유일한 혹 온 최상의 수단이라는 것을 보임으로써 그 방법론적 규칙울 정 당화할 수 없다면, 어떻게――내가 주장한 것처럼 __- 과학의 목적이나 가치를 방법론적 규칙에 관한 논쟁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 공유된 목표는 받아들일 수 있는 규칙의 집합을 제약하기 때문에, 종종 규칙에 관한 논쟁을 중재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규칙이 어떤 가치를 실현하는 데 도움 이 되지 않거나 심지어 방해가 되는 경우를 보기도 한다. 우리 의 인식적 가치 중의 하나가 우리의 이론에 있어서의 일반성과 범위라면, 고도의 개연성을 가진 이론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 장하는 어떤 평가 규칙도 불충분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포퍼와 같이) 고도의 개연성과 폭넓은 설명 범위 사이에는 양립불가능성 이 있다는 것을 논증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성을 일차적인 인식 적 목표로 삼는 사람의 방법론의 레퍼토리에서 고도의 개연성을 이끌어내는 규칙은 얼른 배제시킬 수 있다. 방법론적 불일치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목적이 떠맡는 역할 중의 하나는 그런 목적 과 조화될 수 없는 특정한 방법론적 규칙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러한 배제의 기능 이의에도, 목적은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 예를 들면 우리가 어떤 방법론적 규칙이 어떤 인식적 가치를 조성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경우이다. 비록 일반적 으로는 특정한 규칙이 어떤 목적의 실현을 위한 가능한 한 최상 의 규칙임을 보일 수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때때로 다음과 같은 점을 밝힐 수 있다. 1) 그것은 특정한 목적의 실현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 2) 그것이 고려중에 있는 다른 모든 경쟁 규 칙보다 낫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는 방법론적 규칙에 관한 특정 한 불일치를 해결하는 데 충분할 경우가 많다 . 예를 들어 우리 가 어떤 특정한 규칙이, 주어진 인식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경 쟁 규칙보다 더 나온 규칙임을 보일 수 있다면, 그리고 논쟁이 특별히 인식적 목표의 집합을 공유하고 있는 그 두 규칙의 옹호 자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면, 우리는 그 논쟁을 합리적으로 종식시킬 수 있는 분명한 입장에 있게 된다.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에 호소하는 것이 방법론적 합의를 가능하게 할 때가 있긴 하지만 이것이 모든 방법론적 불일치에 대한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예를 들어서 논쟁을 벌이고 있는 양 쪽 입장이 모두 문제가 되 고 있는 인식적 가치의 실현을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방법론적 규칙을 옹호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더 심각 하게 (그리고 더욱 일반적으로) 우리는 폭넓은 영역의 인식적 목 표나 가치들을 동시에 안정하는 상황에 있을 수 있다(말하자면 단순성, 정합성, 경험적 정확성 등). 방법론적 규칙은 이 가치들 중의 어느 하나를 실현시키려고 하면서 다른 것의 실현은 방해 하려고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 규칙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그 대답온 부분적으로 우리가 인정하는 목표에 어느 정 도의 비중을 두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만일 그 규칙이 우리에 게 가장 중요한 목표를 실현시키려 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 규칙이 수락 가능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 그렇지만 동일한 인식 적 목표를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에 비중을 달리 두고 있는 사람 온 그 규칙을 수락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와 같 온 방법론적 불일치는 목적을 동원한다고 하더라도 판결이 나리 라는 보장이 없다• 규칙에 관한 불일치가 인식적 목표에 관한

더 심층적인 불일치에서 도출될 경우에도 동일한 문제 상황이 발생한다(이 점은 3 장에서 자세하게 다룬다). 그렇지만 기본적인 목표에 관한 불일치라는 까다로운 상황으 로 넘어가기 이전에 방법론적 불일치의 해결에 대한 우리의 설 명이 갖는 함의를 잠깐 생각해 보도록 하자. 여기서 간단히 언 급된 분석이 옳다면, 사실―규칙一목표라고 하는 수직적인 계 층이 도표 l 이나 우리가 앞서 암시한 논의보다 더 복잡한 구조 로 되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방법론적 규칙 을 그것이 인식적 목표를 실현하느냐의 여부를 묻는 것으로 평 가할 수 있다고 해도(정당화 단계의 상승을 암시하면서), 문제를 설정하는 요소는 종종 계층의 낮은 수준, 특히 사실적 탐구의 수준에서 도출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세계와 우 리 자신에 관해 관찰자의 입장에서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있기 때문에 사실적 정보는 방법론적인 주장의 평가에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 지식은 증거의 수집 과정이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다 는 것을 고려하는 이론 속에서 정식화된다. 기초적인 예를 들 면, 우리는 자연이 무작위적으로 혹은 통계적으로 표현할 수 있 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정보를 제공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세계 안에 중간 크기의 사물들이 아주 작고 아주 커다란 것들과 함께 가득 차 있는데, 우리가 일상적으로 세계 속에서 접하게 되는 실재와 과정들은 여러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그런 세계를 거의 나타내주고 있지 못하다. 이런 사실을 일단 알게 되면, 무차별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것보다는 증거가 표현하는 세계를 더 잘 알기 위해서 표본을 추출하는 기술을 발전시키는 일이 필수적안 것이 된다. 대중적인 통념과는 반대로 무작위적 으로 수집한 자료가 그렇지 않은 자료에 대해 갖는 우~ 모 든 가능 세계에 대한 탐구의 특징으로서 수학이나 형식논리학에

의해 만들어진 발견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특정 한 세계가 매우 비협력적인 것으로 판명되고, 어려운 경험을 통 해서만 배울 수 있게 되었듯이, 우리의 인식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서로 표본 추출에 관한 엄격한 규칙의 다양성을 주장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를 생각해 보자. 지난 50 년 동안 우리는 위약효과 p laceboe ffect에 관해 많이 들어 왔다. 간단히 말해서 많은 환자들 온 비록 (환자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약리학적으로 아무 효력이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현상적인 의료 행위를 받고 나서 나아졌 다고 말한다. 이 사실을 알기까지는, 간단한 실험이 치료 효과 에 대한 충분한 테스트로 여겨졌다. 약이 효력을 발휘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과학자들은 환자 집단에 그 약을 투여하고 비슷 한 증상을 가진 두번째의 (통제)집단은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약을 투여한 환자 집단이 후자보다 증세가 호전되는 비율이 높 을 경우, 이 테스트는 그 약이 효력이 있다는 것에 대한 좋은 증거로 간주되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위약효과에 대해 알게 되 었을 때, 다양한 새로운 치료 실험(실제로 모든 약품을 포함하는) 이 우리가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해야 한다는 것이 분 명해 졌다. 특히 과학자들은 그들이 거짓된 약효의 보고를 수락 하게 하는 소위 단일 맹시험(환자에게 약효를 알려주지 않는)에 의 존했음을 깨달았다(죽 효력의 보고는 대체로 나아질 것이라는 환자 의 예상에 근거하고 있었다). 일단 우리가 그런 약물 투여 실험이 종종 무의식적이라도 과학자들 자신의 치료에 대한 기대를 그들 이 실험하고 있는 환자들에게 이전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약 물 투여나 다른 치료의 이중 맹검법(시험하는 사람, 받는 사람 양 자가 그 내용을 모르고 하는 방식)을 위한 기술을 정식화할 필요가 생긴다.

이런 예들에서 세계를 탐구하는 적절한 절차에 관한 우리의 관점은 세계가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대한 우리의 유동적인 신념 에 상당 부분 영향을 받고 있다 .13) 따라서 사실적인 신념은 방 법론적 태도를 형성한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목표도 마찬가 지이다. 우리의 인식적 목표에 대한 선험적 반성은 무작위 추출 의 기술이나 단일 혹은 , 이중맹검법을 필연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것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 오히려 세계에 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주어진 상태에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의 인식적 목표가 그것의 도입과 정당화를 대신하게 하는 그런 기 술에 의존함으로써 더 효과적으로 달성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 이었다.

13) 우리의 평가 절차에는 악순환은 아니지만 중요한 순환이 있다. 우리는 세계를 탐구하는 어떤 방법을 탐구하고, 바로 그 방법은 처음부터 동일 한 방법의 약점을 폭로하는 진정한 발견에 봉사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제시된 것은, 다양한 탐구의 규칙과 정당성의 평가 에 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과학의 방법론과 인식론이 일반적 으로 생각되는 것보다 훨씬 더 경험적인 학문 분야로 받아들여 져야 한다는 것이다回 어떤 방법론적 규칙을 신뢰하느냐 불신 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우리의 인식적 목표 가 저것보다는 이 규칙을 따를 때 사실상 계속 이루어질 수 있

14) 이런 제안은 〈자연화된 인식론〉에 관한 콰인의 친근한 논증과 혼동되 어서는 안된다 . 콰인이 심리학과 인식론 사이의 밀집한 관계에 주목하고 있는 데 반해. 나는 그런 식의 환원프로그램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나의 주장은 제안된 인식적 방법과 목표에 대한 평가가 강도높은 경험적 탐구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 그런 탐구는 심리학적 현상과 특별한 관련이 없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 콰인이 분명히 자연화된 인식론을 심리학의 종속 분야로 본 데 반해 . 나는 경험적 인식론이나 방법론이 십리학의 일 부가 될 수도 없고 거기에 종속되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일반적으 로 그것은 심리학보다는 물리학이나 생물학에 더 가깝다.

는 그런 우주인가 하는 질문을 요구한다. 그런 질문은 선험적으 로 대답될 수 없다. 그것은 경험적인 문제이다. 과학적 방법론 은 그 자체 경험적인 학문 분야로서 그것이 그 타당성을 검토하 는 탐구의 방법 자체가 없이는 성립할 수가 없다 . 책상머리에서 이루어진 방법론은 책상머리에서 만들어진 화학이나 물리학처 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이와 같은 과학적 방법론의 성격 에 대한 생각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반세기 전에 이미 선험 적인 것을 자연화하는 데 전념한 존 듀이Jo hnDewey 는 방법론을 〈신스콜라주의자들이 기준론 c riteri olo gy이라고 부른 것의 ... … 확 실한 제일원리에 관한…… 것〉으로 보는 관점을 거부했다 .15) 여 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수많은 반증에도 불구하고 어떤 과학철 학자들은 여전히 방법론이 과학의 원형적인 형태p ro t os ci en tifi c, 죽 과학 자체가 보여주는 경험적 탐구에 앞서는, 그리고 그것과 독립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려 든다는 점이다.

15) Dewey, 1938.

최근에 인식론과 방법론이 더욱 경험적인 것으로 혹은 〈자연 화된〉 것으로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많은 사람들이, 인식론의 자연화가 필연적으로 그것의 규범적인 힘을 빼앗을 것으로 생각 하는 것은 유감이다. 그들의 생각은 주로 진정으로 경험적인 인 식론은 철저하게 기술적descripti ve 이어야 할 것으로 보는 데 근거 한다 규범적인 행위와 기술적인 행위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선 이 그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경험적인 인식론이 규범 적인 주장을 결여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넌센스이다. 일단 우리 가 (이 장에서 분명해진 것처럼) 방법론적 규범과 규칙이 경험적 으로 테스트 가능한 목적과 수단의 관계를 주장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조건명법(주어진 목적의 집합에 따라 조건적인)으로 해

석되는 인식론적 규범이 과학적 지식의 자연화 이론의 핵심을 이루어야 한다는 점이 명백해진다. 배리 반스 B arry Barnes 같은 이는 〈 인식론자들 사이에서 공통적인 규범적 관심은 과학에 대 한 경험적인 입장과 조화를 이루기 힘들다 〉 1 6) 고 쓰고 있다. 이 들은 인식론에 대한 경험적 접근이 과학적 합리성을 구성하고 있는 인식적 목표와 수단 간의 규범적 고리에 주목할 것을 요 구한다는 사실을 얼마나 심하게 오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줄 뿐 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여러 가지가 뒤섞인 결과를 얻게 되었다. 사실적 불일치와 방법론적 불일치가 모두 더 높은 수준의 공유 된 가정을 찾아봄으로써 합리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있 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실에 관한 일치는 이미 동일한 방 법론적 규칙을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는 생각은 너무 제한적인 것으로 보인다. 목적과 목표를 향한 한 단계 높은 계층으로 올라감으로써 규칙에 관한 의견의 불일치가 합의로 해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실패하기 때문이 댜 그리고 그러한 규칙에 관한 합의는 논쟁중에 있는 사실에 관한 불일치를 해결하는 데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많은 문제 사례들을 발견했다. 공유된 규칙이 사실의 선호성을 지시하는 데 실패할 때, 공유된 목표가 방법론적 선호성을 제시 해 주지 못할 때, 가치가 공유되면서도 그 비중을 달리 할 때, 그 리고 가치가 충분히 공유되지 않을 때, 우리는 해결 불가능한 불일치에 직면하게 되는 것 같다. 여기서 해결 불가능하다는 것 은 우리가 고전적인 계층적 모델의 제한된 차원에 매달릴 경우 그렇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점온 과학자들이 서로 다른 목표

16) Barnes, 1982 , p. 63.

를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은 과학이 합리적이고 진보 적인 것이라는 생각 자체에 근본적인 도전을 하기에 충분하다 . 우리가 3 장에서 살펴보겠지만 그런 도전은 겉보기처럼 강력한 것은 아니다.

제 3 장 평가에서 발생하는 순환의 종식 : 인식적 가치에 관한 불일치의 해결 우리가 살펴본 대로, 계층적 모델은 거기서 모든 과학 논쟁 을 종식시킬 수 있다는 웅장한 주장을 벗겨내버릴 때, 오히려 더 사실적 수준과 방법론적 수준에서의 불일치와 일치를 설명하 는 모델로서 신뢰가 간다. 특히 우리가 그 모델이 일방적으로가 아니라 양방향에서 정당화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고려해 볼 때 더욱 그렇다. 우리는 이미 계층적 모델이 판정을 내리는 데 실패한 상황을 살펴보았다. 그런 상황의 많은 부분은 일반적인 기준이나 정상적인 것에서 상당히 벗어나는 것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이 모델이 반복적으로 허물어지는 지점이 있다. 그것은 과학자들이 그들의 기본적인 인식적 목표나 목적(중의 일부)에 관해 의견의 불일치를 보일 때이다. 그런 목표들은 이 모델에서 정당화 단계의 정점에 놓여 있기 때문에, 과학자들이 가치론적 인 문제에 관해 의견을 달리할 경우, 개인적으로 호소할 만한 법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과학자들은 가치론의 문제에서 여 전히 의견의 불일치를 보이고 있다. 과학의 역사는 예를 들어

실재론자와 도구주의자, 환원주의자와 반환원주의자, 단순성의 옹호자와 그에 대한 비판자, 목적론의 지지자와 순수한 인과율 의 옹호자 간의 논쟁으로 가득차 있다. 기본적으로 이 모든 논 쟁은 우리의 이론이 가지고 있는 속성들(그리고 과학적 이론화의 목표들에 관한)에 관한 다양한 견해들을 낳았다. 그런 논쟁이 벌 어진다는 사실은 그것이 종종 궁극적으로 합의에 있어서 문제거 리가 된다는 사실과 더불어 계층적 모델의 핵심적인 약점을 노 정하는 것이다 . 왜냐하면 계층적 모델은 그런 상황에서 합의가 출현할 것을 예견하는 데 근거를 부여하지도 않으며 일단 구체 화된 그러한 합의에 대해 설명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 따라서 과학에서 일어나는 가치론적 불일치의 종식은 계층적 모델을 다 른 기제를 가지고 보충해야 할 긴급성을 보여준다. 이 장은 이 런 중요한 가치론적 수준에서의 합의 형성 기제를 논하는 데 초 점이 맞추어져 있다.

공변성의 오류 그렇지만 그 문제를 다루기에 앞서, 철저한 예비 작업을 거칠 필요가 있다. 한편에서는 목적과 목표의 관련에 관해 공통적으 로 이루어진 성급한 전제와, 다른 한편으로는 사실적 수준과 방 법론적 수준에서 이루어진 주장을 분명히 밝히고 넘어가는 일이 댜 규칙을 목적으로 받아들여진 어떤 인식적 가치룰 실현시키 기 위한 수단이나 도구로서 간주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또 이론 이 방법론적 규칙에 비추어 판정되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과 학과 과학적 방법에 관해 저술하는 학자들온 지금까지 상호관련 된 두 가지의 경향을 보여 왔다 . 비록 둘 다 자연스럽고 매력적

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목표에 관한 불일치가 어떻게 해 결되는지를 이해하기 전에는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 두 입장에서 일어나는 혼동은 우리가 다루어 온 계층적 모델의 성급한 외삽 lx tr a p ola ti on 에 의해 발생한다 . 이 양자를 나는 공변 성 ( 共變 性)의 오류th e cova rian ce fa llac y(여기서 공변성은 과학의 규칙 과 목적 등이 예 를 들면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 한꺼번에 동시에 변 한다는 것을 말한다 . 라우든은 그런 관점이 명백한 오류라고 보고 있 으며 그런 오류의 대표적인 사례 를 주로 쿤에서 찾고 있다 : 역주)라고 부른다 . 이런 오류의 각 사례는 사실 주장과 관련한 합의의 존 재 혹은 부재가 인식적 목적과 관련한 일치 혹은 불일치의 존재 를 추출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고 가정한다 . 이런 오류의 하나 의 형태는 (토마스 쿤의 저술에서 자주 나타나는데) 이론이나 가설 에 관한 과학자들 사이의 주요한 신념의 분화(즉 사실적 불일치) 가 궁극적으로 목적 혹은 목표의 수준에서의 차이룰 지적한다고 전제한다 . 쿤의 잘 알려진 패러다임 변화라는 개념은 이 점을 아주 잘 묘사하고 있다. (쿤의 분석에서는) 모든 패러다임이 자신 의 형이상학과 인식 기준이나 목적의 집합을 가지고 있기 때문 에, 두 명의 사상가가 다른 존재론을 옹호한다면―—그래서 다 론 패러다임을 옹호한다면-그들은 또한 다른 인식적 목표를 지지해야 한다. 반대로 두 과학자가 기본적인 세계관에 관해 의 견의 일치를 보인다면, 쿤온 그들이 동일한 인식적 목적의 집합 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 또한 두 과학자는 동일한 존재론과 동일한 가치론을 가지고 있을 경우 패러다임을 공유한 다. 내가 알기로는, 쿤온 동일한 인식적 목표를 가지고 있는 과 학자들 사이에 기본적인 존재론적 혹은 이론적 차이가 있으리라 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 쿤은 이 두 수준의 공변을 추정하고 작업을 하기 때문에, 대체로 기본적인 이론의 수준에

서의 차이룰 목적이나 가치의 근본적인 차이에 대한 증거로 간 주한댜 물론 쿤 이의에도 많은 사람들이 사실에 관한 의견의 불일치가 가치론적 차이의 가정을 보장한다고 전제하려는 경향 을 보인다. 4 장에서 나는 이런 공변성 테제가 어떠한 결함을 갖 는지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 . 여기서는 단지 공변성에 대 한 주장이 찰못된 결론으로 나아간다는 점을 언급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쿤이 다른 맥락에서 강조하고 있듯이) 인식적 가치는 방법론적 규칙을 충분히 결정하지 못하고, 그런 규칙은 다시 이 론의 선호성을 충분히 결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두 과학자가 동 일한 인식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우주의 모양에 대해 근본적으 로 다른 관점을 옹호할 수 있다는 것은 전적으로 받아들일 만하 댜 그들이 그럴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사실적인 혹은 방법 론적인 문제에 관한 모든 장기간의 의견의 불일치에서 목적에 관한 견해의 차이룰 읽어내려는 경향을 거부해야 할 것이다 . 공변성의 오류의 두번째 형태는 첫번째 형태의 거울상이다. 이런 형태를 취하는 사람들은 과학자들이 사실적이고 방법론적 인 문제에 관해 의견의 일치를 보일 때 그런 일치가 공유된 인 식적 목표로부터 결과되어야 한다고 전제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특정한 연결 고리가 종종 매우 강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 에, 이들은 과학과 같은 기획(이론과 방법에 관한 일치가 보다 평 범하게 발생하는)이 목적과 목표의 수준에서 합의가 있을 경우에 만 사실적이고 방법론적인 합의의 정도치를 높게 나타낸다고 가 정한다. 1 장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고전적인 과학사회학이나 과학철학에서 핵심적인 자극제의 역할을 한 것은, 과학자들이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활동해야만 한다는 확신이었다 . 그들은 〈사실〉에 관해 매우 빈번하게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 댜 지난 세대의 많은 사회학자들온 자신들의 주요 역할을 그런

사실적인 합의를 인정하는 규범을 찾아내는 것으로 보았다. 그 리고 그 시대의 철학자들은, 과학자들이 사실적인 수준에서 종 종 의견의 일치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일치를 인식적 목적이나 인식론적 유용성에 관한 선험적인 일치에서 발생하는 문제로 보아야 한다고 가정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가 치에 관한 합의와 다른 수준의 일치 사이의 연관은, 생각보다 훨씬 약하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예를 들어 기본적으로 다른 인식적 목적을 가지고 있는 사상가들이 유사한 (심지어 동일한) 방법론적 규칙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은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다. 각자는 자신이 옹호하는 규칙이 자신의 인식적 목 적을 실현시킬 것이라고 믿을 수 있고 그렇게 믿는 것이 전적으 로 옳을 수 있다. 동일한 규칙의 집합이 전혀 다른 인식 목적과 양립가능하기 때문에, 상이한 가치론을 가지고 있는 과학자들은 여러 가지 방법론적 규칙이 갖는 건전함에 관해 의견의 일치를 보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세계에 대한 진정한 설명을 목적으로 하는 과학적 실재론자들과 〈현상을 구출하는 데〉 더 관심이 있 는 도구주의자들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이론 평가의 방법론적 규 칙들을 옹호한다. 예를 들어 양 진영은 이론이 넓은 범위의 현 상을 설명해야 하고, 성공적이어야 하며, 이전 것보다 더 나온 새로운 예측을 해야 하고, 일반적으로 높은 수준의 경험적 지지 도를 보여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도구주의자들은 이런 테스 트를 통과한 이론들이 현상을 구출한다는 자신들의 목적을 실현 시킬 것으로 믿고 있다. 반면에 실재론자들은 (우리가 5 장에서 보 겠지만 다소 약한 논거로) 이런 특징을 보여주는 이론들이 진리에 접근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고 그래서 실재론자들의 목적을 실현시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나겔과 같은 철학자들 이 도구주의 논쟁에 실체가 없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은 실재론자와 도

구주의자들이 방법론적 규칙에 관해 의견의 일치를 보이는 일이 혼하 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추론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공변성의 오 류에 빠져드는 것이다).

l) 예를 들어 Na ge l, 1961 에 실재론과 도구주의의 논의롤 참조할 것 .

이런 논의에서 분명해지듯이, 적합한 탐구 방법에 관해 근본 적으로 의견의 일치를 보이는 사상가들에게 기본적인 인식적 가 치에 관한 일치는 불필요하다. 상이한 가치론을 가진 과학자들 이 방법론적 문제에 대해 의견의 일치를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과학자들이 서로 다른 인식적 목표를 가지고 있을 때조 차, 넓은 영역의 사실적 주장들에 관해 의견의 일치를 보이는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따라서 사실적인 혹은 방법론적인 합의가, 필연적으로 더 근본적인 방 법이나 인식 목표에 관한 합의에서 발생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 간단히 말해서 가치론적 차이는 시실적 수준과 방법론적 일치와 공존할 수 있다.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달리 설정해 볼 수도 있다. 계층의 낮은 수준에서의 일치가 인식적 목표에 관한 기본적인 일치를 나타낸다고 가정하는 것이 그럴듯 하게 들리는 한, 철학자나 사회학자들이 과학에서 발생하는 높 은 수준의 사실적 방법론적 일치를 과학자들이 동일한 목표와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는 테제에 대한 증거로 삼는 것도 그럴듯 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 목표들이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 가에 관한 잠정적인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여기서 과학에서의 산 발적인 논쟁의 돌연한 출현이 설명된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일반 적으로 사실에 관한 궁극적인 의견의 일치에 도달한다는 사실 온,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가치의 보편성에 대한 강력한 중거가 제시된 것으로 여겨졌다. 그렇지만 사실 수준의 일치가 전혀 다

른 가치론이 작용하는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고, 또 발생해 왔 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실제로 빈번히 일어나는 과학자들의 사실에 관한 의견의 일치를 공통 가치룰 옹호하는 것에 관한 주 장을 보증하는 것으로 간주하기 어렵게 된다. 나는 이 점을 통해서 가치론적 차이의 해결이, 필연적으로 계 층의 낮은 단계의 의견의 일치를 위한 선제 조건이 되지는 않는 다는 점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과학자들은 인식적 방법과 목적 에 관한 충실한 의견의 일치를 결여했을 때조차도 어떠한 사실 수준의 이 론을 받아들여 야 하는가에 관해 거의 만장일치 에 도달 할 수 있었고 또 그래왔다. 가치론적 합의는 따라서 사실적 합 의를 위한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니다(그러나 그것이 분명한 도움이 된다는 점은 덧붙일 수 있다). 과학 혁명이 빠른 속도로 일어나면서도 방법론적이고 가치론 적인 문제에 대한 재검토가 상대적으로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하나의 이유는, 때때로 당시에 널리 퍼진 방법론과 가치론과 관 련하여 지배적인 새 이론이 출현하기 때문이다. 만일 혹자가 상 이한 방법론의 옹호자들이 찾는 (아마도 매우 다른) 속성을 갖춘 더 나은 이론을 만들어 낸다면, 그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학 자들이 다른 것에 관해서는 거의 의견의 일치를 보이지 않는다 고 하더라도 보편적인 동의를 끌어낼 것이다. 이것이 받아들이 기 어려우면 또 다른 예를 생각해 보자. 한 과학자 집단은 경험 적인 정확성을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고, 다른 집단은 이론의 개념적 명료함이나 간결함에 가장 큰 비중을 두는 경우 를 가정해 보자. 선행 이론보다 정확하기도 하고 개념적으로 간 결하기도 한 새 이론이 나타났다고 가정하면, 그 이론은 곧 과 학자들이 그것을 평가하는 기준들이 매우 다르더라도, 과학자들 사이에서 폭넓은 동의를 얻게 될 것이다. 과학자들이 사실 주장

에 관한 의견의 일치를 확고히 하기 전에 먼저 가치론적이고 방 법론적인 합의에 도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람들이 같은 일을 하면서도 여러가지 이유를 가질 수 있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가치론적 차이의 해결이 언제나 다른 수준에서의 의견의 일치 에 이르기 위한 전제 조건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그와 같은 가치론적 차이가 해결되었 는지를 이해하는 일은 중요하다. 앞서 주장한 것처럼, 과학자는 과학 공동체의 지배적인 목표가 시대에 따라 때로는 깊이 있고 의미심장하게 변화해 왔음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과학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이해하기 원한다면, 탐구자 공동체로 하여금 그 들의 기본적인 목적과 목표를 바꾸게끔 하는 추론 과정을 이해 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과학철학 내부의 영향력 있는 목소리들이 목표, 특히 인식적 목표에 관한 의견의 불일치가 합리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고 주 징해 왔댜 예를 들어 칼 포퍼와 한스 라이헨바하H ansRe i chenbach 는 기본적인 인식적 목표의 채택(혹은 변화)이 합리적으로 극복 될 수 없는 주관적이고 정서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 합리성에 관 한 계층적 모델이 그동안 얼마나 영향력이 있었는지를 알고 있 는 사람은 이것이 별로 놀라운 말로 들리지 않을 것이다 . (전에 살펴본 것처럼) 계층적 모델은 정당화 단계의 정점에 위태롭게 자리잡고 있는 목표나 가치에 관한 기본적인 물음울 남겨두기 때문이다. 목표가 합리적으로 논의될 수 없다는 견해를, 패러다 임 갈등이 불가피하게 다른 목표를 가진 과학자들 간의 논쟁을 포함하며, 패러다임 변화가 언제나 인식적 목표의 변화를 포함 한다는 토마스 쿤의 테제에 결부시킨다면, 우리는 막다른 골목 에 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쿤이 주장하돗이) 대부분의

중요한 과학적 논쟁이 과학자들로 하여금 인식적 가치나 목표에 대해 갈등을 겪게 만들고 (많은 경험론자와 실증주의자들이 믿고 있듯이) 목표와 가치에 관한 의견의 불일치가 합리적으로 판결 될 수 없는 것이라면, 우리는 과학적 논쟁이 논쟁 참여자에 의 한 합리적 해결과 이후에 등장하는 역사가와 철학자들에 의한 합리적 재구성 모두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결론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2)

2) 소리높여 상대주의를 비난해 온 많은 철학자들이 (예를 들어 포퍼나 라 카토스) 목표와 방법의 선택이 대부분 불합리한 규약의 문제라는 견해 에 동의한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 목적에 관련된 상대주의는 최소한 지식에 관한 상대주의만큼 허약한 것이다(그리고 아마도 그 자 체 그런 상대주의도 포함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좀 잘못된 점이 있다. 과학사가 일반적으로 과학의 영역에서 임의로 추방된 사실의 역사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과학 논쟁에서 실패한 쪽의 지지자들이 궁극 적으로 그리고 종종 열광적으로 승리한 쪽의 관점을 수용하고 있으며, 심지어 목적까지도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 . 그들의 〈입장 전환〉이 강제된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최소한 우 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과학 논쟁이 과학의 목적과 가치에 관 한 상이한 관점에서 비롯되었을 때조차도 과학자들 스스로가 논 리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대부분의 논쟁이 해결된 것으로 받 아들인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의 이러한 인정의 근거를 이해하 고, 이런 인정이 과학 행위에 관한 규범적 설명에서 어떤 근거 룰 가지고 있는 것인지를 알아 볼 필요가 있다. 결국 우리는 이 렇게 강제되지 않은 입장 전환이 과학적 생활에서의 가치에 관 한 숙고의 편재성과 경쟁하는 가치에 근거한 불일치가 합리적으 로 해결될 수 없음을 동시에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룰

갖는지를 알고자 하는 것이다. 『과학 발견의 논리』에서의 과학적 목적 혹은 가치의 본성에 관한 칼 포퍼의 영향력 있는 논의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만큼, 이런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 같다. 다른 어떤 과학철학자들 보다도 포퍼는 맨처음부터 과학적 합리 성에 관한 설명에서 인식적 목표나 목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포퍼는 방법론적 규칙이, 과학의 목적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 에서 정해지는 목적에 대한 수단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목적이 그런 규칙의 정당화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된다고 보았다. 비록 포퍼가 인식적 목표에 관한 불일치가 일반적으로 어떻게 해결되는지의 문제에 관해 길게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당면한 문제의 중요성을 고려해 볼 때 다시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문제점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포퍼는 과학의 목적에 관한 자신의 관점(대략 인식론적 실재론 의 관점)을 도구주의, 규약주의, 프래그머티즘 등 비실재론자들 의 관점에 대조하곤 했다. 이런 대조의 본질적인 측면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 포퍼는 과학의 목적이 세계에 관한 더욱 참된 이 론을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믿었다. 어떤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은 이러한 가치를 부정하며, 과학은 (말하자면) 개념의 경제성, 예 측의 정확성, 조작의 단순성을 목표로 한다고 주장한다. 포퍼가 생각한 것처럼 실재론과 도구주의 사이에는 어느 것을 선택할 결정적이거나 합리적인 방법이 없다. 포퍼는 두 입장이 내적으 로 일관된 과학에 관한 설명이라고 믿었다. 각 입장은 자신의 방법으로 무장하고 있다.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중복되는 것도 있지만) 각각은 문제되고 있는 각각의 목적을 실현하려는 관점 에서 선택된 것이다. 포퍼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관점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목적이나 가치에 있어서의 내적인 무모순성을 논

증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 입장을 채택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떤 인식적 목표를 옹호하는 사람이 자신의 목표를 포기 하리라는 예측에도 어떤 합리적인 근거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다 . 3 ) 대부분의 논리 실증주의자들에게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포 퍼에 있어서도 이것은 궁극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기호(呼好)의 문제(또한 그가 그 이상 정의하지는 않았지만), 유용성의 문제로 환 원된다 . 포퍼에 있어서 방법론적 규칙은 단순한 규약이다 . 라카 토스가 올바로 지적하고 있듯이 〈포퍼는 결코 정합적인 규약에 관한 합리적인 비판이론을 내놓지 않았다〉 . 4)

3) 특히 포퍼의 1959 년 책의 앞부분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방법론적 규율과 규칙의 지위에 관한 그의 논의를 참조할 것. 4) Lakatos, l'T/ 8, P. 144.

포퍼와 동시대인인 한스 라이헨바하도 비슷한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 특히 그는 목적을 실현하는 데 실패함을 보임으로써 방 법론의 결함을 지적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는 포퍼와 같이 행위자의 의도나 목적이 그 인식적인 측면을 포함해서 합 리적으로 논의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 『경험과 예 측Exp e ri ence and Pre dictio 11s 』 에서 주장되 고 있는 라이 헨바하의 견 해에 따르면 어떤 사람들은 참인 신념을 받아들인다는 목표를 가질 수 있고 , 다른 사람들은 그들에게 좋은 것으로 여겨지는 신념을 채택한다는 주관 인식적인 목적을 가질 수도 있다. 라이 헨바하는 이 문제에 관한 자신의 관점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 〈만일 누군가가 즐기기 위해 과학을 연구한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그가 진리를 알기 원하고 있다는 이유에서 자신의 과학함과는 반대되는 주장이다)…… 그것은 언명이 아니라 결정에 불과하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권리가 있다 . (우리가 과 학에 어떤 목적을 제안할 때 우리는) 참이라고 증명한 언명에 대해

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그런 제안에 대한 동의를 요구 할 수는 없다 . 〉 5) 포퍼와 라이헨바하에서는 경쟁하고 있는 인식 적 가치와 거기에 따라다니는 방법론들 사이에서 선택을 위한 어떤 객관적이거나 합리적인 근거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하나의 다른 하나에 대한 무모순성을 논증할 수 없기 때문에).

5) Reic h enbach, 1938, pp. 10- 13 .

이와 같은 논증이 지적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어떤 인식적 목표나 가치의 집합이 내적으로 정합적이라고 가정하면, 다른 (정합적인) 집합과 그 목적을 비교해 볼 만한 합리적인 근거도 없고 그 목적에 대한 합리적인 평가의 전망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목표의 집합을 선호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그것을 공유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정서적인 문제이며 개인적이거나 성적인 선호성 이라는 주관적인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는 것이다 . 간단히 말해 서 포퍼와 라이헨바하는 (한 세대 전의 대부분의 과학 철 학자들과 마 찬가지로) 목적의 차이는 인식론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그 필 연적 결과와 더불어 단순한 계층적 모델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이러한 인식 목표에 대한 분석을 받아들이고, 다 론 학파에 속하는 과학자들은 일관되게 다른 인식 목표를 지지 한다는 쿤의 관점을 마찬가지로 받아들인다면, 과학에서의 지 배적인 목표의 다양한 변화가 추론에 근거한 합리적인 인간 사 고의 역사라고 하기보다는 기호와 유행의 역사의 일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더 곤란한 것은, 모든 과학의 정당화 구조 속에 인식적 목표가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면, 인식 목표의 선택에 영 향을 미치는 임의성이 그런 목표에 기생하는 과학의 사실 주장

에 대한 신뢰성에 관해 진지한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만일 어떤 (정합적인) 인식적 목표의 집합도 합리적으로 선호될 수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서로 다른 목적에 맞추어 만들어지고 자신의 입장에서 충분한 정당성을 갖추고 있는 무수히 많은 〈과 학〉의 대안 형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과학에 관한 극단적인 상대주의는 다음 세 가지의 불가피한 결과를 받 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1) 입장이 다른 과학자들은 다른 목표를 갖는다. 2) 다른 목표의 정합성에 관해서는 합리적 으로 숙고할 가능성이 없다. 3) 목표, 방법, 사실 주장 들은 언 제나 공변 집단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결함이 발생한다. 내적으로 정합적인 인식 목표의 집합들 사이에서 어느 것을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언제나 불가능하다고 가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 내 가 보기에 이 가정은 잘못된 것이다. 이 가정이 언제나 맞는 것 이 아니라 단지 그 가정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를 오도하기에 충 분할 정도로 폭넓은 사례가 있는 것에 불과하다 . 이 가정이 틀 린 이유를 다소 무리해서 간단히 줄여 말한다면, 우리가 일군의 인식적 목적이나 목표를 합리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비판적 도구가 무수히 많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그 도구 가 얼마나 많은지 깨달으면, 위에 제시된 결론들에 도달하게 되 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계층적 모델에 중요한 변화를 가할 때 이다.

그물형 모델과 목표평가의 역학 여기서 나는 제안된 인식적 목표나 목표의 집합을 비판하는

두 개의 일반적인 양태를 동일시함으로써(그것을 모순적이라고 비 난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 다소 야심에 찬 주장을 구체적으로 제 시할까 한다. 나는 먼저 어떤 목표에 대해 다음의 두 가지 근거 에서 논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이도록 하겠다. 1) 그 목표가 이 상주의적 이거나 실현성이 없다. 2) 그 목표가 우리가 지지하는 공통의 행위나 판단에 함축되어 있는 가치와 조화를 이루는 데 실패한다. 이런 전략을 통해서 가치론적 비판을 다 해낼 수 있 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런 전략은 가치론적 비판의 핵심을 드러낼 것이다. 이 두 가지 전략에 대해 어느 정도 논의하고 넘 어가도록하자.

1 이상주의적인 가치들 어떤 목표나 가치가 이상적 u topian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실현될 혹은 〈조작 가능하게 될 op erati o nalized〉 것 이 라고 믿을 만 한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목표로 설정된 상태를 실 현시키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전략을 채택해야 할 지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예가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어떤 사람이 자신의 기본 목표가 광속보다 빠른 속도로 여행하는 것 이라거나 동시에 두 장소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나의 대답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우리가 현재 세계와 그 가능성에 대해 알고 있는 정도의 지식으로는, 그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고 동시에 몇 군데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들 린다는 데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그 목표들이 우리가 원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 있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가 있고 그것들이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간주할 충분한 근거가 있다는 이유

에서 나는 그런 목표를 갖는 것이 합리적인 일이 아니라고 말한 댜 이런 평가에 함축된 것은 어떤 목표나 목적을 합리적으로 선택하려면 목표로 설정된 상태가 성취될 수 있다는 신념에 대 한 충분한 근거를 미리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합리적으로 수락가능한 목표에 대한 이러한 제약은-철학 자들에 의해 공통적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지만――크게 논의 의 여지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불가능하다고 믿을 만한 매우 충분한 이유가 있는 일에 진지하게 달려드는 사람들을 보 통 좀 이상하게 바라본다. 육체적인 영생을 목표로 샘물을 찾는 사람, 영구 운동 기계를 만들려는 사람, 그리고 그 밖에 이룰 수 없는 목표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비합리적인 괴짜들이라고 할 만하다. 물론 이런 판단은 다른 모든 판단이 그렇듯이 틀린 것 일 수 있다. 우리의 배경 지식에 결함이 있어서 나중에 가능한 것으로 알게 된 것을 논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 단했던 적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오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적 합한 의미에서 가능하기도 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가 가진 합리적이고 이치에 맞는 개념의 핵심이다. 우 리가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어떤 행위도 할 수 없는 특징을 가진 목표나 그것을 실현해도 실현했는지 알 수 없는 목표를 채 택하는 것은 그것이 근거없는 것이고 비합리적인 것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기본적인 관점을 인정하자마자 경 쟁중에 있는 인식적 목표나 가치를 합리적으로 평가할 다양한 기회가 열린다. 나는 어떤 가치의 실현 불가능성에 근거해서 그 가치에 반대 하는 이런 논증을 〈이상주의 전략〉이라고 부른다. 인식 목표에 관한 과학자들의 논증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이상주의 전략 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논증 가능한 이상주의에 대한 비판

이다. 우리는 때때로 어떤 인식적 목표가 우리가 알고 있는 논 리나 자연의 법칙의 수준에서는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밝힐 수 있다 . 이런 논증의 효과적인 사례는 19 세기에 있었던 오류 불가능한 지식이라는 목적을 둘러싼 논쟁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여기서는 과학 법칙과 이론을 특징짓는 보편 언명은 (원리적으로 라도)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사례에 적용되어야 한 다는 것이 지적되었다. 그러나 각각의 사례를 검토함으로써 보 편 언명의 진리를 확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가망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경험론자들이 과학이론을 증명 함에 있어서 경험에 의한 증명 이외의 어떤 방법도 용인하지 않 았기 때문에, 경험을 통해 이론을 검증할 수 없다는 명백한 사 실온 인식적 목적으로서의 오류 불가능성을 포기하게끔 했다. 이러한 가치론적 비판의 두번째 형태는 의미론적 이상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많은 과학자들은 비판적인 도전을 받으면서 간 결하고 설득력 있게 설명해 낼 수 없는 가치나 목표를 지지하고 있다. 그들은 정확성을 결여하고 있거나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단순성이나 간결함과 같은 흔히 인용되는 인식적 목표들은 종종 이런 약점을 안고 있다. 이런 목표를 옹 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에 대한 정합적인 정의나 설명을 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과학자들이 단순성이라는 가치 를 지지하는 데 드는 주된 이유가 그들 중에 마음에 별다른 것 을 품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올바른 지적이 아닐 것이다. 개념의 부정확성온 다양한 해석을 허용한 다. 그리고 그런 유동적인 상황에서 거의 누구나가 마음에 든다 고 생각되는 〈단순한〉이나 〈간결한〉이라는 말에 주석을 갖다붙 일 수가 있다. 의미론적 이상주의의 비난이 그 장점에 의해 보 중 경우 인식적이건 아니건 어떤 목표에 대한 심각한 비판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어떤 사람이 어떤 목적을 지지하 면서도 추상적이거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서 기술하지 못한다 면 그 목적이 언제 실현되고 또 언제는 실현된 것이 아닌지 확 증할 객관적인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가치는 합리적 인 행위 속에 위치하기에는 너무 임의적이다(잘못 정해진 목표가 합리적이건 비합리적이건, 객관적이건 주관적이건 어떤 행위 이론에서 어떻게 진정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살펴보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다). 이와 밀접하게 관련된 비판 형태로서 인식론적 이상주의가 있 다 이것은 행위자가 자신의 목표 상태에 대해 대단히 분명한 정의를 내릴 수 있고, 그 목표가 분명히 이상적인 것이 아님에 도 불구하고, 그 목표의 옹호자가 그 가치가 나타나거나 추구되 는 시기 그리고 그렇지 못한 시기를 결정할 기준을 설명할 수 없을 때 (그리고 어떤 함축적인 형태도 가지고 있지 못할 때) 일어난 댜 (5 장에서 자세히 논의하겠지만) 예를 들어 혹자가 참된 이론 체계를 세우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고 가정하자. 그 리고 그가 〈참인 이론〉――아마도 대응설이라는 고전적인 타르 스키의 의미론을 통해서-의 의미를 정합적이고 솔직하게 설 명한다고 해보자. 이럴 때 그의 목표는 의미론적 혼동을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을 필요가 없다 . 그렇지만 이 사람의 목표 구 조를 더 확장시켜서 그가 어떤 이론이 참이라는 것의 의미를 정 의할 수 있다고 해도, 어떤 이론이 실제로 참인 속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이렇게 될 때 그 런 가치롤 조작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더욱 일반화해서 우리가 제안한 목표 상태가 언제 실현되고 언제 그렇지 않은지 확증할 수 없다면, 우리는 그 목표의 실현을 위해서 합리적으로 정초된 일련의 행위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목표가 실현되는 (혹은 실현에 가까이 가는) 시기에 대한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는

그 목표 자체가 분명히 정의되고 매우 바람직한 것이라 하더라 도 그것은 합리적으로 제출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과학 논쟁에서 일정하게 발견되는 이런 논의들은 분명히 그럴 듯한 점들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진부하다는 것은 아니다 . 오 히려 이와 같은 비판들은 경쟁중에 있는 인식적 목표의 옹호자 들 사이의 의견 교환 과정에서 중심적인 매체의 역할을 하고 있 댜 우리가 한때 소중히 간직했던 과학에 대한 인식적 목표의 수정으로 이끄는 것은 그러한 비판과 그에 대한 응답을 통한 판 정이다 .

2 공유된 전형 : 이론과 실천의 중재 인식적 목표에 대한 비판은 실현 가능성이나 성취의 문제보다 는 우리의 명시적인 목표와 함축적인 목표 사이의 분명한 부조 화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경우가 많다. 양자의 차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행위자의 목표를 확인하는 데에 다양한 방법이 있다 는 진부한 합리성의 이론을 상기하기만 하면 된다. 아주 직접적 으로 말해서 우리는 행위자에게 그가 지시한 목표가 무엇인지 실제로 물어볼 수 있다. 그의 대답은 그의 명시적인 혹은 공공 연한 가치론적 구조를 보여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행동 이나 선택을 살펴봄으로써 그의 목표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이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알려주는 방법이 되거도 한다. 행위자가 어떤 궁극적인 결과를 산출하기 위해 일관되게 행위하는 유형을 발견하기만 한다면, 그리고 그런 일관성이 그의 행위에서 결과 된 것임을 행위자가 깨닫고 있다고 생각할 만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충분히 그 행위자가 그런 결과의 산출을 위해 의도적으로 행위하고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런 결과 자체는

(그것이 비록 행위자의 명시적인 목표 속에서 나타나지는 않는다고 하 더라도) 그의 함축적인 목표에 포함되어 있다고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행위자의 함축적인 목표나 동기를 그들의 행위의 결과를 관찰 할 수 있다는 것에만 의존해서 이끌어낼 경우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행위자는 어떤 행위나 행위 유형 의 결과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수가 있고 그래서 그의 동기로 가정한 것이 (죽 그의 행위의 결과가) 전혀 그의 목표가 아닐 수 있다. 실제로 어떤 행위는 수많은 결과를 낳기 때문에 그 결과 들 중에 어떤 것이 행위자가 실현시키려고 의도한 것인가 하는 것에 관한, 그리고 어떤 것이 그의 행위의 부수적인 요소에 불 과한 것인가 하는 것에 관한 의문은 언제나 남는다 . 그러나 그 의 행위를 분석하는 능력에 근거해서, 한 행위자의 목적이나 가 치를 끌어내는 문제는 다움과 같은 방식을 생각해 보면 별 문제 도 되지 않는다. 즉 그에게 그의 가치에 관해서 우리에게 보고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행위자는 자신의 목적이나 목표에 관 해 언제나 완전히 인식하고 있지 않으며, 행위자의 목표가 갖는 성격이 그렇기 때문에 그가 자신의 실제 목적을 잘 안다고 해도 우리에게 그것을 숨기게 될 때도 있게 마련이다. 또한 악명 높 은 논점을 남기고는 있지만, 행위자가 제 삼자가 그의 공공연한 행위를 면밀히 연구하는 것보다 그의 목표에 더욱 접근할 수 있 는 특권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 우리의 분석을 위해서 이런 문제를 분명히 해결하고 넘어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 다행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 명심해야 할 중 요한 점은, 행위자가 인정한 혹은 명시적인 목표와 그의 행위를 성격짓는 것으로 보이는 목표 사이에는 긴장이 있게 되는 경우 가 혼하다는 것이다. 그런 긴장이 있기 때문에 그의 행위와 실

제 판단을 분명히 떠받치고 있는 목표에 대해 그의 명시적인 목 표가 어떻게 모순되는 지를 지적함으로써 그 명시적인 목표를 비판할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별로 놀랄 만한 것이 없다. 통속적인 지혜를 통해서 우리는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는 소망과 표명된 소망이 갈등을 빚을 수 있는 가능성을 알고 있다. 〈가르치는대로 행하 라〉는 격언이나 〈내가 하는대로가 아니라 내가 말하는 대로 행 동하라〉는 오래된 부모님의 충고는 행위자가 지지한다고 말하는 목표가 분명히 그의 행위를 이끄는 목표와 맞지 않는다는 사실 을 깨닫게 한다. 우리의 명시적인 목적과 우리의 행위와 판단 속에 함축된 목적 사이에 긴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 우리는 둘 중의 하나를 바꾸거나 둘 다룰 바꿔야 한다는 중압감을 갖게 된댜 일관되지 못하다(위선적이라거나 부정직한 것은 말할 것도 없 고)는 비난에서 오는 고통을 감수하면서 합리적인 사람은 그가 가지고 있는 목표와 그의 행위를 지시하는 목표의 갈등에 직면 해서 양자를 조화시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과학에서도 이런 일 이 발생한다. 과학자들이 어떤 인식적 목적을 명백하게 옹호하 려고 하면서도, 일상적인 과학활동에서의 실제 이론 선택을 통 해서는 그 목적에 반하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 게 다가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전체 과학자 공동체가 이런 문제에 대해 명백한 설명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 공동체의 선택과 과학 자로서의 행위를 실제로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목표가 맞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어떤 과학자 그룹이 그들이 가르치 는대로 행하지 않는 경우가 가능할 때마다, 명시적인 가치와 함 축적인 가치의 변화에 대한 일차적인 기반이 마련된다. 물론 변 화는 각 영역에서 발생하는 수도 있고 두 영역 모두에서 일어나 는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공언한 목표를 유지하고 그

것에 의해 실제 판단이나 행위를 하려고 할 수 도 있고, 또 어 떤 사람은 자신의 행위나 실제 판단에 더 잘 맞아떨어지는 새로 운 명시적인 가치의 집합을 채택할 수 도 있다. 어느 쪽을 택하 든 가치론적 변화는 비평형의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작용하는 합리성의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인식적 가치에 대한 이런 식의 비판적 평가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의미 있는 역사적 사례를 듦으로써 이것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자세히 살펴보았으면 한다. 1700 년대와 1800 년대 에 활동했던 많은 과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관점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죽 관찰 가능한 실재와 과정에 관한 언명에 우리의 이론을 제한시켜야 한다는 관점이다. 이런 중요한 인식적인 방 향의 전환은 원자론이나 균일론, 자연도태와 같은 이론의 발전 에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것이었다. 18 세기 때에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이 과학이 직접 관찰할 수 없는 실재를 가정하는 것은 피 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한, 너무 작아 관찰할 수 없는 대상(예를 들어 원자 같은)을 언급하는 이론이나 너무 느리게 진행되어 관 찰할 수 없는 과정을 언급하는 이론(예룰 들어 균일론적 지질학이 나 자연도태)은 과학에서 허용되지 않았을 것이다 .6)

6) 이런 발달에 대한 긴 논의는 Laudan, 1981 을 참조 .

보이지 않는 실재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쪽으로 철학자와 과 학자들이 명백하게 태도를 전환한 주된 근거는 물리학 자체의 성격이 그보다 앞서 변했다는 것이다. 특히 1830 년대의 과학자 들은 이론화의 목적에 대한 자신들의 명시적인 설명과 배치되는 이론을 가지고 활동했다. 이들은 그런 사실을 뒤늦게 발견하고 나서 자신들의 명시적인 가치론을 궁극적으로 재평가 했다. 이 과정은 좀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뉴턴의 『프린키피아』가 동장한 지 거의 한 세기가 지나서야 과학자와 철학자들은 뉴턴의 성공에서 올바른 교훈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뉴턴을 곧바로 계승한 학자들에 의해 독해된 것처럼 그의 업적은 가설적 추론을 피하고 실험자료를 통한 귀납적인 일반화를 철저히 고집한 데 바탕을 두고 있다. 뉴턴 자신이 〈나 는 가설을 만들지 않는다 h ypoth eses non fing o 〉고 강조하고 있다 . 맥로린 Macla urin (1698-1746, 스코틀랜드의 수학자, 급수전개에 관한 맥로린의 정리로 유명하다 : 역주), 부르하페 Boerhaave(1668-1783, 네 덜란드의 의학자, 생화학자, 17()() 년 라이덴 Le i den 대학의 의학, 식물학 및 화학 교수, 스탈 G. E. S tahl의 플로지스톤설의 신봉자였으나 금속산화 물인 경우에는 의견을 달리했다. 주저로 Instit ution es medic a e, 1708 동이 있다 : 역주), 코테 Co tes 등의 저술을 살펴보면 순수하게 관찰에 근 거한 물리학, 화학, 생물학을 구성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고 이들의 핵심적인 가정은 경험에서 직접적으로 도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당한 이론화를 관찰 가능한 과정에 관한 언명에 제한시키려는 이런 노력은 당시의 과학철학과 인식론에서 자신의 대응물을 발견했다.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이론에서 관찰 불가능 한 실재를 삭제하는 동안 버클리 Bakel ey, 흄Harne, 콩디 야크Condillac 같은 철학자들은 경험론적 인식론을 설명하느라고 바빴다. 그러나 1750 년 경에 자연철학자들은 그런 식의 접근이 통하지 않는 많은 탐구 영역이 있음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18 세기 중엽 의 전기, 발생학, 화학의 성공적인 이론들은 결정적으로 관찰 불가능한 실재롤 가정하는 것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 그런 이론들은 사례의 성격상 관찰 가능한 것으로부터의 귀납적 인 일반화나 직접적인 외삽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 었다. 프랭클린 F ranklin의 전기 유체설 (전기를 물체 내부를 통하여 움직이면서 인력, 반발력 및 유도 동의 여러 현상을 일으키는 유체로

보는 설 : 역주), 부르하페의 열진동설, 부폰 Bu ffo n 의 유기분자이 론, 화학의 열소설 둥은 관찰 가능한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관 찰 불가능한 실재를 가정한 계몽주의 이론의 전형적인 표본 이 론들이다 . 이들 이론 중에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르사즈 Geo rg e Lesa g려 화학과 중력 이론 하틀리 Dav i dH artl e y의 신경생리학이론 그리고 보스코비치 Ro g erBosco vi ch 의 물질이론 등이다. 서로 독자 적으로 활동하고 본질적인 문제에 관해 의견의 차이룰 보이면서 도 이 세 사람의 사상가들은 중요한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죽 그들이 공표한 이론의 유형이 소박한 경험론의 가치론적 틀내에 서는 정당화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재빨리 알아차린 것이다 . 이들 은 각각 자신의 과학 이론이 올바른 자연 탐구의 목적과 양립할 수 없게 보인다는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예를 들어서 하틀리에 대해서는 신경계 속의 에테르의 흐름에 대한 그의 이론이 임의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많은 것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비난이 주어졌다. 보스코비치는 입자 주위의 힘들이 (그가 가정한대로) 접촉, 응집, 화학적 변화 등이 발생하 는 미시적인 거리에서 끌어당기거나 반발하는 데 대한 직접적인 증거를 얻지 못했다고 비판받았다. 르사즈에 대해서 비판가들 은 그의 초우주적 ul tram ondane 미 립자 이론(운동과 충돌이 중력을 설명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미립자)이 실험에 의해 귀납적으로 추론 될 수 없다고 불평했다. 명백하게 이들 과학자들이 직면한 것은 그들이 구성한 이론유 형과 과학의 〈공식적인〉 목적과 목표 사이의 분명한 갈등이었 댜 이들의 선택은 어려운 것이었다. 그들은 (경험론에 충실한 비 판가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미시적인 이론화를 포기하거나 직접적 인 관찰에 의해 보증받지 못하는 이론을 개념적으로 정당화해 주는 또 다른 과학의 가치론을 발전시켜야 했다. 이 세 사람은

후자를 선택했다. 간단히 말해서 그들은 그 움직임이 우리가 관 찰하는 것의 인과적인 원인을 제공하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가정 함으로써 가시적인 세계를 이해한다고 하는 목적을 정당화하려고 했댜 그러나 그들은 그런 목표가 관찰불가능한 실재에 관한 주 장을 보증하는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는 이해될 수 없는 것임을 알았댜 그래서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 그들은 새로운 과학 방 법론을 전개할 수밖에 없었다 . 그들이 옹호한 방법은 〈가설의 방 법〉(혹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듯이 가설-연역법)이라고 불렸다. 그런 방법은 이론적 실재를 지칭하는 가설의 정당성을 인정했고 폭넓 은 올바른 관찰주장들이 그런 가설에서 도출될 수 있었다. 로저 보스코비치는 예를 들어 가설의 방법이 〈물리학에 가장 적합한 방법이며〉 많은 경우 〈우리가 진리의 길을 추측하거나 예언할 수 있는 것〉은 검증을 수반한 추측에 의해서 뿐이라고 주장했다 .7) 하들리는 그의 『인간에 대한 관찰 Observa tion on f1UIJ'(』에서 다음과 같 은 주장을 했다 : 우리가 지식 획득의 발걸음을 빨리 하기를 원한 다면 귀납법은 다양한 가설법으로 보충되어야 한다 .8)

7) Boscovi ch De solis a Lunae Defe c tib u s, 1760, 스튜어 트 Du g ald · s te w art의 번 역 , 1854, 2 : 212 에서 인용 8) 특히 Hartley , 1749 l : 341-351 참조.

가설법을 가장 분명히 옹호한 사람은 르사즈이다. 그의 이론 온 반복해서 공격을 받았다. 예를 들어 오일러 Euler 는 르사즈의 물리학을 두고 〈그런 이상한 가설을 세우느니〉 9) 차라리 아무것 도 모르고 있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천문학자 베일리 B ailly는 귀납적인 태도를 뽐내면서 과학은 관찰가능한 〈자연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법칙〉 10) 에 한정해야 하며 직접관찰할 수 없

9) 프레보스트 Prevo st7} 출간한 편지 에서 인용, 1805, p. 390. IO) 위의 책 p. 300.

는 것에 관한 추측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르사즈는 관찰된 것에서 관찰되지 않은 것을 가설적으로 추론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귀납과 유비가 진리로 통하는 유일하고 정당한 길이 라는 〈거의 보편화된 편견〉을 개탄했다 .II) 그는 자신의 이론이 〈 가설에 불과하다〉 1 2) 는 이유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음을지적했다.

11) 위의 책 . p. 265. 12) 위 의 책 . pp. 464-465 .

그런 공격을 받고 르사즈는 인식론자로 나섰다 . 몇 개의 저작 을 통해, 특히 불어 로 쓰여 진 〈 Enc y lo perli e 〉라는 가설법 에 관한 논문에서 르사즈는 반격에 돌입했다. 간단히 요약하면 그의 전 략은 다음의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가설법이 과학의 정당한 목적을 실현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것을 보임으로써 그 방법에 대한 인식론적 신뢰를 쌓는다. 둘째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그들의 실제 행위에서는-관찰 불가능한 실재를 사용하 고 있음을 보인다는 것이다 . 간단히 말해서 르사즈는 그의 이론 이 가설적 실재를 요청하고 있다는 비판가들의 의견에 동의했 댜 하지만 그들과는 달리 그는 그것이 전혀 해로울 것이 없다 는 사실을 밝히려고 했다 . 그는 가설법과 그에 따른 검증이 일반적인 결론을 갖는 진리 룰 확립하기 어렵다는 데에는 죽각 동의했다. 그러나 그가 지적 한 대로 귀납과 유비――전통적인 경험론자들에 의해 선호되는 방법-도 비결정적이다. 이런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목적으 로 삼을 수밖에 없는 것은 고도의 개연성이다 . 그리고 그는 우 리가 신뢰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확증된 가설을 주장할 수 있 는 상황을 지적했다. 그는 계속해서 위대한 아이작 뉴턴도 귀납 주의를 그렇게 공표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가설법을 사용했다

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로 하여금――천체를 지배한 세 가지 위대한 법칙을 발견하게 한 귀납이나 유비의 요소가 없었다면 〉 1 3) 이라는 뉴턴의 구절이 가설이라고 말한다. 이 점을 일반화시키 면서 르사즈는 그 전제를 넘어서는 모든 귀납적 추론에는 추측 이나 가설의 요소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것이 없다면 소위 완전한 귀납이 될 것이다. 르사즈는 어떤 홍미 있는 과학적 주 장도 관찰된 것에만 자신을 한정시킬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제한 울 인식론적 목적으로 만드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한다. 르사즈가 죽은 지 반 세기가 지나자 과학 공동체의 〈 공식적 인〉 방법론은 관찰 불가능한 실재에 관한 가설의 정당성을 인정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를 이끈 것은 경험론의 명시적인 가 치론이 과학자들이 이론을 선택할 때 함축된 가치론과 근본적으 로 맞지 않는다는 인식의 확장이 었다. 이 런 인식 은 허 셀 Herschel 과 위웰 Whewell 의 저작에서 아주 분명해졌다.

13) 이 글은 유작으로 출간된 르사즈의 ‘Prem ier Memoir e cur Ia Meth o de d'H ypothese, inP revo st, 1801, par 23 에서 인용.

내가 이런 예를 이렇게 자세히 든 이유는 이것이 이론과 실천 의 일치를 위해 함축적인 가치론적 태도와 명시적인 가치론적 태도가 서로에 대해 결판을 내는 방식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 문이다. 관찰 불가능한 실재를 배제시킨 더 오래된 과학의 명시 적인 목적은 그런 실재를 가정한 이론의 분명한 성공에 대한 희 생양이 되었다. 이런 사례는 경쟁중에 있는 과학적 목표의 합리 적인 판정에 대한 공통적인 메커니즘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더 욱이 이런 에피소드는 어떤 이론이 최상의 과학적 이론인가 하 는 것에 관한 폭넓은 의견의 일치의 존재가 사상가들이 명백하 게 공표한 목표와 관련하여 그들 사이의 의견의 불일치를 해결 하는 데 어떻게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지 찰 보여준다. 서로

대립하고 있는 두 학파가 범례가 되고 있는 과학에 대해 의견의 일치를 보일 수 있는 한(그런 예에 관해 과학자들이 의견의 일치에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상황이 있겠는가?), 그런 예는 두 학파가 명 시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대립적인 목표들을 검토함으로써 유지 될 수 있다. 두 학파 중의 한 쪽이, 공유하고 있는 예를 통해 드러내 보일 수 없는 어떤 목표를 고집한다면 이것은 문제가 되 고 있는 목표를 거부하게 되는 분명한 경우가 될 것이다. 왜냐 하면 그 목표는 (두 학파가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는) 좋은 과학 이론에 의해서는 실현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함축적 인 목표와 명시적인 목표 간의 이런 갈등에 직면해서 어떤 과학 자가 자신의 명시적인 목적을 유지하는 쪽을 택하고 이전에 건 전한 과학적 실천의 이상적인 실례로 간주했던 것을 정당하지 못한 것으로 거부하는 일은 언제나 가능하다(위에 언급한 역사적 사례에서 18 세기 후반의 몇몇 사상가들은 뉴턴 물리학이 자신들의 명 시적인 가치를 예화하지 않기 때문에 그 상당 부분을 버리는 한이 있 더라도 그와 같은 일을 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과학자들이 그 정 도까지 가기 전에는 (그리고 대안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경우 선배학 자들의 주요한 과학적 업적을 모두 버리려고 하지 않았다) 어떤 학문 분야의 주요 이론이 인식적 목적을 예화하는 데 실패하느냐의 여부는 제안된 인식적 목적에 대한 강력한 논증으로 남게 된다. 과학적 기준이 합리적으로 포기되는 또 다른 방법으로는 싸워 보지도 않고 패하는 경우나 고의로 포기되는 경우이다. 그런 포 기는 과학자들이 끈기 있고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런 기준이나 이상을 예증한 이론을 만들어낼 수 없음을 발견할 때 일어난다. 예를 들어서, 뉴턴의 『프린키피아.!I가 나온 이후의 개 념의 이해 가능성이나 설득력의 요구가 겪은 운명을 생각해 보 자. 뉴턴 시대까지만 해도, 자연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우리의

설명 원리가 그 원리에 관한 개념적인 접근 가능성을 가지고 있 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과학적 설명의 요점은 이해하기 쉬운 것을 가지고 그보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설명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 불명료하게 이해된 가정된 실재와 과정 을 가지고 세계를 설명한다는 생각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서구 의 지적 전통에서는 이단시되었다. 뉴턴의 바로 전시대에 이런 설명 이상은 데카르트에 의해 어느 정도 기술되었다. 데카르트 는 우리의 설명 개념이 명석판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데 카르트는 원격 작용 ac ti on at a distan ce( 공간을 사이 에 두고 떨어 져 있는 두 물체 사이에 미치는 작용으로서 중간 매질의 상태의 변화를 수반함 • 이 없이 직접 전하여지는 것을 말한다. 현대 물리학에서는 기본적인 힘은 모두 원격작용이 아닌 것으로 보고 있는데 장의 이론 속에서는 상대론과 모순이 없는 형태로 원격작용적인 개념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현대에도 진행되고 있다. 라?든은 여기서 데카르트 물리학의 힘의 작 용을 접촉작용으로 뉴턴 물리학의 힘의 작용을 원격작용으로 예를 들 어 설명하고 있다:역주)의 개념을 불명료한 개념의 전형적인 예 로 보았다. 그에게 있어서 이 개념은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 과 학자의 설명 레퍼토리에서 자리를 차지할 수 없었다. 중력을 가 지고 행성계를 1 차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뉴턴이 동장했을 때 원격작용을 배척하는 태도는 거의 정통으로 여겨지 지 않았다. 데카르트주의자~ 대경실색했고, 그들 중 많은 사 람들이 수십년 동안 뉴턴 물리학이 명료성과 이해 가능성이라는 기본적인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근거로 그것을 배척하려 고 노력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호이겐스 Hu yg ens 와 베르누이 동 몇 세대에 걸친 데카르트주의자들은 중력과 같은 공격적인 개념을 피하면서 뉴턴 물리학과 같이 경험적으로 적합한 물리학 울 만들어내려고 노력했다. 주지하다시피 이들은 뉴턴 물리학과

같은 정도의 경험적 지지도를 갖추고 있는 순수하게 접촉작용에 입각한 물리학을 만들어 내는 데 거의 성공했다. 그러나 데카르 트 물리학이 쇠퇴하게 되는 데 있어서 경험적 정보가 부족하다 는 것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접촉작용과 같은 몇 가지 핵심적인 데카르트 물리학의 설명 개념이 중력이라는 것만큼 모호하고 이 해하기 힘들다는 인식의 확산이었다. 이런 인식은 로크와 모페 르튀 Mau pertui s (1 698-1759, 프랑스의 수학자, 천문학자, 지구 타원체의 형태에 관하여 이론적 해석을 하고, 1736 년에 라플란드냐p land 까지 가 서 위도의 길이를 측정함으로써 지구의 편평을 입증하여 뉴턴 역학이 널리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바탕을 만들었다 : 역주)에 의해 분명해졌 다 1740 년대의 데카르트주의는 대체로 기력이 쇠해졌고 영향력 있는 옹호자들도 거의 떠나갔다고 할 수 있다. 데카르트 물리학 이 뉴턴 물리학보다 더 이해하기가 쉽다는 주장이 더이상 설득 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이 해 가능성의 목표나 기준이 자기 자신에 대한 논박이 될 수 있 다는 것이다. 개념적으로 명료화하려는 진지한 노력에도 불구하 고 현존 물리학 이론의 그 어느 것도 그것을 거스르는 모든 개 념을 없애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소수의 과학자들이 이해 가능 성을 계속 이상으로 삼으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당시 물리학 가설에 부과된 적합한 요구가 될 수는 없었다. 잔존한 어떤 이론도 당시 이해된 개념처럼 완전히 이해 가능하게 되도 록 수정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비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우리의 최상의 (여기서는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이 론이 이룰 수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검토를 통한 목표 수정의 또 다른 과정일 뿐이다.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마치기 전에 이 장에서 개관된 목표 평가의 일반적인 두 양태가 과학적 목적에 관한 모든 의견의 불

일치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지 않 울 수 없다 . 이상주의적인 성격이나 공유하고 있는 사례의 양립 불가능성에 근거해 비난할 수 없는 목표 옹호자들 간에 논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충분히 합리적인 개 인들이 공유된 사례에 대해서는 의견의 일치를 보이면서도 목표 에 관해서는 다른 생각을 가지는 가치론적 불일치의 사례도 많 이 있다 . 그러나 이것은 이 장의 서두에서 제시한 인식 가치에 관한 실제상의 모든 불일치의 사례가 합리적인 해결을 넘어서 있다는 친숙한 주장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과학자들이 때때로 가장 기본적인 인식적 목적에 관해 생 각을 바꾸고, 그런 변화의 이유를 설명하는 강력한 논증을 제시 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목표에 관한 의견의 불일치는 사실적 방법론적 논쟁과 같은 수준에 놓여 있 댜 이런 불일치가 합리적으로 종식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 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런 불일치를 비판과 수 정으로부터 본질적으로 면역시키는 인식적 목표의 본성 같은 것 은존재하지 않는다 .

과학적 합리성의 그물형 모델 이제부터는 과학적 의사 결정에 관해 좀 달리 생각해 보도록 하자. 우리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고전적인 계층적 모델은 목적에서 방법, 사실 주장으로 나아가는 단선적인 정당화의 단 계를 가정했다. 이 모델을 통해서 우리는 과학자들에게 열려 있 는 논쟁 전략을 이해할 수 있었을 뿐이다. 2 장에서 분명해지듯 이 우리는 우리의 사실적 신념이 어떤 방법이 실행가능하고, 어

떤 방법이 어떤 목적 실현에 사실상 도움이 되는가에 관한 우리 의 견해를 철저하게 형성하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계층적 모델 올 변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의 우리의 논의가 보여주는 것은 더욱 철저한 논의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는 계층 적인 상을 그물형 모양의 정당화 모델로 바꿀 필요가 있다. 그 물형적 접근은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탐구 방법에 관한 지식을 제안된 인식적 목적의 실행 가능성을 평가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예를 들어 특정한 목적의 달성을 위해 알려져 있는 방법이 없고 따라서 그 목적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 또한 그물형 모델은 우리의 명시적인 가치 구조와 함축적인 가치 구조 사이의 긴장을 드러내기 위해 어떤 이론이 좋은 것인가에 관한 우리의 판단을 우리의 명시적인 가치론에 견주어 거기서 판결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물형 모델이 계층적 모델과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과학의 세 가지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상호 판정과 상호 정당화 의 복합 과정이 있다고 주장하는 점이다. 정당화는 목적과 방 법, 사실 주장을 연결시키면서 계층의 아래쪽으로 내려갈 뿐아 니라 위로도 올라간다. 우리는 이들 단계의 어느 것도 다른 것 보다 더 우월하다거나 일차적이라거나 기초적이라고 할 수 없 다 가치론, 방법론, 사실 주장은 상호 의존의 관계 속에서 불 가피하게 상호 관련되어 있다. 계층적 접근에 함축된 서열은 이 런 다양한 수준의 상호 의존성의 유형을 강조하는 일종의 평준 화 원리에 길을 내주지 않을 수 없다(도표 2 참조). 회의적인 독자에게는 그물형 모델에 제안된 목표에 대한 제약 이 매우 약해서 다른 여러 가지 인식 목표의 집합들이 이 모델 을 충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될 것이다. 의심할 바 없이 폭 넓은 인식 목표나 가치가 여기 제시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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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제약에 응할 수 도있다면, 그리二고 그런 진리들 이 합리성의 댜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좋은 일이다. 만일 하나의 집합만이 최소 형태를 정의하는 것으로 여겨진다면, 과학자들이 기준에 관해서 의견의 불일치를 보이는 것에 대한 정당화 근거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바꾸어 말해서 이것은 과거에 과학자들이 기준 에 관해 의견의 불일치를 보인 모든 사례들이 과학의 영역에 엄 청난 비합리성이 있음을 반영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몇 가지 다른 목표가 궁극적으로 양립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이런 제약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은 나쁜 소식이기도 하고 그래서 몇몇 사람들에 의해 고려되기도 한다 . 매우 야심에 찬 과학적 합리성의 이론을 원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다음과 같이 물을 것 이다. 〈그물형 모델을 통한 분석이 어떻게 살아남은 목표들 중 에 어느 것이 옳은지를 지적해 줄 수 있는가?〉 나는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단지 질문 자체가 옳지 않은 전제에 기초하고 있음을 덧붙일 수 밖에 없다. 탐구에 대한 유 일하게 〈올바른〉 목표는 있을 수 없다. 매우 다양한 이유에서 그리고 매우 다양한 의도를 가지고 탐구에 몰두하게 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자연에 대한 탐구를 인도할 수 있고 또 인

도해야 하는 유일한 가치론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탐구의 잠재적인 목적과 유용성의 다양함을 보지 못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합리성에 대한 요구가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 만일 우리가 그물형 모델을 통해서 과학적 합리성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것이 목적 지향적 행위에 그친다고 한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실패한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합 리성에 관한 우리의 직관적인 기준을 충족시키는 데 실패하는 의도적인 행위들이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의도적인 행위가 합 리적인 것으로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그 중심 목적 이 관련된 제약을 충족시키는지 면밀히-이것은 위에서 개략 적으로 설명했다-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 그러나 우리의 인 식적 목표가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그렇지 못한지에 관한 우 리의 최상의 신념을 반영해야 한다는, 우리의 방법이 우리의 목 적과 적합해야 한다는, 그리고 우리의 함축적이고 명시적인 가 치들이 일치되어야 한다는 요구를 넘어서서, 합리성의 이론이 요구하는 것은 거의 없다. 이런 제한이 실제로 심각한 제약들 을 배제시키기에는 너무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도록, 대 부분의 친숙한 인식적 목표들이 아마도 이런 온건한 요구들조차 도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서둘러 말하지 않을 수 없 댜 현대의 과학적 인식론의 가치론 중에서 이렇게 상대적으로 온건한 제약들을 가지고 검토해 보았을 때 실제로 살아남는 것 온 거의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이 점에 대해 의심이 남는다 면, 당시에 중심적이고 일반적이었던 인식적 목적들이 그 실현 불가능성의 증거에 직면해 포기되었던 역사적 사례들을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그런 역사적 사례들로도 미진하다면, 5 장에서 그물형 모델이라는 기제를 통해서 오늘날 우리가 찰 알고 있는 과학에 적합한 가치론에 대한 제안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지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변화하는 목적과 과학적 전보 이 장의 논증은 철저하게 헤라클레이토스적이다. 여기서 우리 는 이론의 변화, 방법의 변화, 그리고 중심적인 인식적 가치의 변동 등을 다루었다. 독자들은 만일 이 모든 요소들이 잠재적으 로 유동적이고, 과학에서 그 어떤 것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면 과학적 진보에 관해서 말하는 것이 어떻게 의미 있는 것이 될 수 있을지 의아해 할 것이다. 결국 진보는 어떤 목표나 목적의 충족을 향한 진보일 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목적 자 체가 변화한다면, 진보 자체는 이런 분석의 희생양이 될 것이 댜 어떤 목적의 실현에 도움을 주는 행위는 경쟁적인 목적의 실현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의 가치론 자 체를 이루는 목적이 변동을 겪는다면 과학의 진보를 말하는 것 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물어올 수도 있다. 이런 수사학적인 질문은 답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과학적 진보의 개념과 목표 변 동의 테제를 중재시키는 난점은 겉보기에 어렵게 보일 뿐이다. 진보에 관한 판단이 언제나 그래왔듯이 특정한 목표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언제나 해왔던 것과 같은 식으 로 계속해서 진보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어 떤 이론의 결과를 가지고 어떤 목표 상태를 실현시키는 쪽으로 더 가깝게 접근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된다면 (그 목표 상태에 대 해 상대적인) 진보가 이루어지게 된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진 보도 없다. 문제는 이처럼 간단하다. (예를 들어 쿤과 같이) 진보 개념에 대해 논한 사람들은 이점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진보가 언제나 어떤 행위를 수행하는 행위자의 목표에 대해 상대적으로

(죽 어떤 이론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과학자의 목표에 대해 상대적 으로) 판단될 수밖에 없다고 가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에 그런 선택을 한 사람들에 의해 받아들여진 과학의 목적에 대한 우리의 묵인에 의존한 이론 선택의 진보성에 대한 판단을 강제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뉴턴이나 데카 르트의 인식적 목적에 대해 알지 못하고서도 뉴턴의 빛에 관한 이론이 데카르트의 광학보다 진보된 면을 보여주는지 물어볼 수 있다 . 더욱이 우리는 (전형적으로) 과학의 목적과 목표에 관한 우리의 견해에 대해 상대적인 진보에 관해서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 .14) 이런 기술을 사용함으로써 우리는 과학 이론의 변화 에 대한 진보뿐 아니라 과학적 방법의 변화에 관한 진보도 판단 할 수 있다. 선행하는 방법론을 대체하는 어떤 방법론이 우리 자신의 목적을 실현시키는 데 더 좋은 것이라고 낙관할 수 있을 까? 만일 어떤 방법론이 그렇게 평가될 수 있다면, 그런 방법론 으로의 이행은 우리가 볼때 진보적이다. 이런 말은 다소 〈보수 적으로〉 들릴 것이다. 우리가 과학이 진보했느냐고 물을 때 이 것은 과학의 연대기적 발전이 우리가 가치 있고 바람직한 것이 라고 여기는 인식적 목표를 실현시키는 쪽으로 진행되었느냐고 물어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시대의 위대한 과학자들은 그 들의 이론 선택이 우리의 인식적 목표를 실현시킨다는 것을 확 신시키기 위해서 우리의 목적을 공유할 필요가 없다. 이런 이유 에서 목적과 가치가 둘 다 변화한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은 인식 적인 과학적 진보라고 하는 튼튼한 개념의 사용을 가로막지 않 는다.

14) 물론 우리는 그런 분석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고 하더라 도. 행위자나 관찰자로서의 우리가 진보를 판단하기 위해 받아들일 수 있는 목표를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분석이 과학이 진보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직접 적인 절차를 남겨둔다면, 진보는 언제나 〈어떤 목적의 집합에 대해 상대적인〉 진보라는 (처음부터 분명히 되었어야 할) 인식을 받아들일 것을 강요한다. 일상적인 사용을 통해서는 절대적인 의미의 과학적 진보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보통 손을 혼들어 대면서) 과학적 진보에 대해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 . 그러면서도 우리는 진보에 대한 판단을 궁극적으로 갤 수 있는 가치론을 자세히 설명하지 못한다. 과학을 그물형 모양으로 표 현하는 것은 그런 실수의 위험을 분명히 드러내보여준다. 또한 이런 분석은 과학의 어떤 부분은 진보적일 수 있고 (어떤 가치의 집합과 관련해서) 어떤 부분은 퇴행적일 수 있음을 (또 다른 가치 의 집합과 관련해서) 강조하고 있다. 진보에 대한 결정이 어떤 목 적의 집합에 대해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 유일하게 적합한 목적의 집합은 없다는 것은 회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

제 4 장 과학적 변화의 전체론적 상에 대한 분석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가 나온지 이제 20 여 년이 지 났댜 당시에 이 분야에 입문한 우리에게 이 책은 큰 충격을 주 었다. 그것은 우리가 그 책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서라거나 더 욱이 그 책을 받아들일 태도가 되어 있지 않아서 그런 것은 절 대로 아니었다. 이 책이 문제가 된 것은 우리가 헴펠, 포퍼, 카 르납 같은 사람들에게 배우고 있었던 경험론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을 생생하게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과학철학자들은 그 책이 공격하고 있었던 사람과 공격의 대상이 되었던 것에 관해 아무런 의심도 가지고 있지 않 았다. 만일 쿤이 옳다면, 당시에 지배적이었던 방법론적인 주장 들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었다. 쿤이 전하는 긍정적인 메시지 는 매우 불명확하다. 그것은 쿤의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너 무 충격을 받아 그 책을 자세히 읽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쿤은 이론이 언제나 불가공약적이라서 경쟁중에 있는 과학자들 이 서로간에 다양한 오해를 하게 된다고 말한 것일까, 아니면 경쟁 이론의 문제_해결 능력이 객관적으로 비교될 수 있다고

하면서 그런 것을 의미한 것인가? 쿤이 정말로 새로운 이론의 수락이 종교적 생활의 형태 속에서나 가능할 〈개종 경험〉이라고 믿었을까? 쿤의 폭탄선언에 대한 최초의 반격에서 그런 질문에 대한 답온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 1962 년 이래 쿤의 대부분의 철학적 저작은 『과학혁명의 구조』 초판에서 사용한 언어 때문에 야기된 애매성과 혼란을 명료화하 는 데 전념해 왔다. 대체로 쿤의 메시지는 회유적이었다. 후기 저작에 나타나는 어떤 구절들은 그가 마치 숨겨진 실증주의자인 것처럼 들리게 한다. 많은 주석가들이 후기의 쿤이 처음에 보여 준 홍미있고 자극적인 요소들을 후퇴시켰다고 비난해 왔다 .I )

1) 알란 머스그레이브시 an Mus gra ve 는 과학혁명의 구조 2 판과 관련하여 다 음과 같은 말로 쿤의 득자들을 대변했다 . 〈쿤은 최근의 저작에서 그의 비판가들이 그에게 돌린 도적적인 생각들의 대부분을 상실했다…… 새 롭게 나타난 쿤은 옛날의 혁명적인 쿤의 창백한 그림자일 뿐이다〉 (Musgr av e, 1980, p. 5 1 ) .

그러나 이것이 전적으로 옳지는 않다. 쿤의 명료화가 한때 쿤 이 취했던 입장의 날카로운 점을 제거했다 하더라도, 쿤이 분명 하기도 하면서 논쟁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몇 가지 문제점들 이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 특히 몇 가지 문제들은 이 책의 주제 에 대해서도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쿤 의 저작을 구실 삼아 앞의 두 장에서 제안된 그물형 모델이 쿤 이 특별한 과학 논쟁과 일반적인 과학적 변화에 대해 부여하고 있는 설명보다 어떻게 더 만족스러운 설명이 될 수 있는지 밝히 고자한다. 여기서 쿤은 나의 직접적인 표적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솔직 히 말해서 여기서 내가 논하는 관점은 쿤의 자료를 훨씬 넘어선 다. 1970 년대에 과학적 변화에 대해 글을 쓴 사람들은(현재의 동

료들을 포함해서) 거의 대부분이 내가 기술하는 혼란의 제물이 될 것이다. 이론 변화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려고 하면서 우리는 부주의한 언어 사용에 빠져들곤 했다. 그러나 과학적 변화에 관 한 가장 잘 알려진 설명이 쿤의 것이고, 쿤이 내가 논하고자 하 는 몇 가지 실수를 분명히 범하고 있기 때문에 이 장은 주로 그 의 관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푸코 Foucaul t, 라카토스Lakatos, 툴 민 To ulmin, 홀턴 Hol ton, 그리 고 라우든에 대해서 도 유사한 비 판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적 변화의 단위에 대한 쿤의 견해 패러다임이라는 쿤의 핵심적인 개념이 대단히 애매하다는 것 온 악명이 높다. 그 중심적인 의미 가운데 다음의 세 가지가 있 다 무엇보다도 첫째, 자연 대상을 분류하고 설명하는 개념적인 틀을 제공한다. 즉 패러다임은 어떤 경험 영역을 가능하게 한다 고 생각되는 실재를 일반적으로 설명해 준다. 그리고 패러다임 은 그런 실재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개략적으로 보여준다. 간단히 말해서 모든 패러다임은 세계를 가능하게 하는 것에 관 한 주장을 하고 있다 . 이런 존재론적 주장은 패러다임을 다른 것들로부터 구분해 준다. 각각의 패러다임은 그것을 다른 패러 다임으로부터 구별해 주는 실재와 그것의 상호작용의 양태를 가 정하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둘째, 한 패러다임은 관련된 적용 영역 안에서 대상을 연구하기 위한 적절한 탐구의 방법, 기 술, 도구를 지정해 준댜 다른 패러다임이 다른 존재론을 가지 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패러다임들은 근본적으로 다른 방법 론을 가지고 있다(예를 들어 행동주의와 인지심리학의 각기 다른 탐

구와 이론 평가의 방법을 생각해 보라). 이런 방법론적인 연관은 일관되게 나타나며, 한 패러다임의 역사를 설명해 준다. 마지막 으로 서로 다른 패러다임의 지지자들은 쿤에 따르면, 서로 다른 인식적 목표나 이상의 집합을 옹호한다. 두 패러다임의 지지자 들이 (통상적으로) 어떤 목표를 공유한다 하더라도, 쿤은 경쟁 패러다임의 지지자들 간에 목표가 완전히 중복되는 경우는 없다 고 주장한다. 쿤에게 있어서 한 패러다임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 떤 다른 패러다임의 지지자도 완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복합적 인 인식 가치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패러다임의 변화란 분명히 엄청난 단절을 표현하는 것 이다. 하나의 패러다임을 다른 패러다임으로 바꾼다는 것은 2 장 에서 언급한 세 가지 수준의 변화를 겪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하나의 존재론을 다른 존재론으로, 하나의 방법론을 다 른 방법론으로, 하나의 인식적 목표의 집합을 다른 인식적 목표 의 집합으로 대체시킨다. 이런 변화는 쿤에 따르면, 연속적이라 기 보다는 동시적으로 일어난다. 낡은 과학적 합리성 모델의 쇠 퇴에 대한 쿤의 통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계층적 모델의 고전 적 해석과 그에 대한 쿤의 대안 사이에는 몇 가지 분명한 유사 점이 있다. 양자 모두 사실적, 방법론적, 가치론적 수준에서 주 장들 간의 정당화의 상호작용을 중요한 것으로 강조하고 있다. 양자는 가치와 기준을 더 낮은 단계의 경쟁적인 관점 간에 선택 기준을 제공하는 것으로서 중요하게 평가한다. 쿤이 전통과 철 저하게 단절을 하는 곳은 합리성이 패러다임 간의 선택에 대해 서가 아니라 한 패러다임 안에서의 선택에 대해 상대화될 수밖 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지점이다. 계층적 모델이 일반적으로 핵심적인 가치론적 방법론적 연관이 한 시대의 과학을 관통하는 공통적인 속성이라고 생각한 데 반해, 쿤은 어떠한 두 패러다임

사이에서도 방법론적, 가치론적 균열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쿤의 입장이 갖는 핵심적인 결함 중의 하나 는 그것이 고전적인 계층적 접근을 충분히 내면화하고 있어서 (패러다임 간의 논쟁을 다룰 때나, 목표에 관한 의견의 불일치를 다룰· 때와 같이) 계층적 접근이 좌절될 때마다, 쿤의 접근은 합리적 선 택의 가능성에 관해서 아무것도 제시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2)

2) 인식적 목표와 가치에 관한 한, 쿤의 실증주의와의 단절이 어느 정도로 부분적인 것인지 충분히 주목되지 않고 있다. 내가 이하에서 자세히 밝 히고 있는 바와 마찬가지로, 이론의 비교 불가능성에 관한 그의 대부분 의 문제들이 발생하는 이유는 계층의 정점에 놓여 있는 인식적 가치나 기준이 근본적으로 합리적 협상에서 면제되어 있다는 실중주의의 주장 울 논증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쿤이 패러다임의 변화를 과학 공동체의 생활에서 일 어나는 돌연한 전체적인 단절로 보이게끔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대단히 큰 것이어서 쿤에 대한 몇몇 비평가들은 쿤이 표명하고 있는 의도와는 달리 그의 분석 이 과학적 변화를 비이성적인 혹은 비합리적인 과정으로 바꾸어 버렸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이런 인상을 주게 된 것 은 쿤의 적절치 못한 용어에도 이유가 있다. 특히 그는 과학 혁 명의 상을 별 설명이 필요없이 열정적으로 거듭난 기독교인의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수락을 〈개종 경험〉 3) 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때는 패러다임 변화를 〈비 가역적인 형태-전환 @s talt- s hift〉 4) 과 비슷한 것으로 놓고 있다• 그 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이지 않고 낡은 패러다임을 고집하 는 것이 〈비이성적인〉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선 이런

3) Kuhn, 1962. 4) 위의 책. 5) 위의 책, p. 159.

언어들은 패러다임의 변화가 각 경쟁 상대들의 역량을 조심스럽 게 평가한 결과라고 생각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쿤의 이런 언어에서 주어지는 인상온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사용된 몇몇 어휘둘을 명료화함으로써 수정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작업은 그 책이 처음 동장한 이후 쿤이 몰두해 온 일이기도 하다 .6) 그 렇지만 용어의 변경울 통해서 쿤의 과학 모델의 중심적안 특색 이 과학적 변화의 합리적 분석에 대한 심각한 장애물이 된다는 사실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이 장에서는 이런 장애물을 검토 해 보고자 한다. 그러나 그런 검토에 들어가기에 앞서 쿤에 대 한 나의 불평이 단지 그가 이론 변화에 대한 규범적으로 튼튼한 혹은 합리적인 설명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 앞으로 밝히겠지만, 그는 대규모의 과학적 충성 alle gi ance 의 변화가 일어 나는 방식 에 관해 올바로 기 술하지도, 이야기 하지도 못했다.

6) 쿤 자신이 말하고 있듯이. 그는 〈과거의 나의 수사가 부분적으로 무책 임한 것이었다는 오해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1 970, pp. 259- 260).

그러나 쿤의 집근이 이론 변화의 역학을 이해하는 데 장애물 이 되고 있는 더 근본적인 측면이 있다. 개별적인 패러다임이 전체적이고 정적인 성격을 갖는다고-변화가 패러다임 내부 에서가 아니라 패러다임 사이에서만 일어난다고-주장함으로 써 쿤은 하나의 세계관이나 패러다임에서 다른 세계관이나 패러 다임으로의 이행을 조정하고 합리화하는 과학의 특징을 빠뜨렸 댜 이 주제에 관한 쿤의 다양한 저술을 통해서 독자들은 그가 패러다임의 부분이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생각했다는 데 대 해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 패러다임을 학습하면서 과학자는 이론, 방

법, 기준을 한꺼번에, 말하자면 뗄 수 없는 혼합 형태로 획득한 댜〉” 분리 불가능한 패러다임의 요소에 관한 이런 주제는 쿤의 저작에서 일관되게 나타난다. 이 장의 주요 목적은 우리가 패러 다임적인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이해하기에 앞서 패러다 임의 퍼즐 조각들이 맞물려 있는 모양에 대한 쿤의 관점을 철저 하게 수정할 필요가 있음을 보이는 것이다.

7) Ku hn, 1962, p. 108.

퍼즐조각의 해체 우리는 대략 쿤의 세계관 모델을 다음과 같이 기술해 볼 수 있다. 과학 공동체 내의 한 집단이나 학파는 〈거대한 상〉을 가 지고 있다. 그것은 자연에 대한 어떤 존재론을 묵인하고, 자연 의 연구 방법에 대한 일련의 규칙을 받아들일 것, 그리고 자연 탐구의 목적론에 대한(죽 과학자들이 찾는 목표에 대한) 인식적 가 치의 집합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다. 이런 분석에서 대규모의 과학적 변화는 그런 세계관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것을 포함 한다 이 과정은 낡은 상의 핵심적인 요소들에 대한 동시적인 거부, 그리고 새로운 상의 그에 상응하는 (그러나 전혀 다른) 요 소들의 채택을 수반한다. 간단히 말해 과학적 변화는 도표 3 과 같이 보일 것이다.

세세계계관관 2l(( 존존재재론론2,」 1, 방방법 법론론2, 1, 가가치치들들1 2))

도표 3 쿤의 이론 변화상

과학적 변화가 그렇게 전체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어 떻게 개종의 경험이 아니라 다른 것일 수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작은 도전이 아니다. 여러 과학자들이 서로 다른 이론을 옹호할 뿐 아니라 서로 다른 평가의 기준을 가지고 있고, 그런 기준을 갈등을 겪고 있는 인식 목표의 서로 다른 체계 속에서 기초 지 우고 있다면, 과학적 변화가 변덕스러운 스타일이나 취미의 변 화 이의의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 한 패 러다임이 다른 패러다임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튼튼 한 기반은 있을 수 없다. 어떤 기준이나 누구의 목표에 대해 더 낫다는 것인가 하고 물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 더욱이 쿤은, 각 각의 패러다임이 경쟁 패러다임의 기준을 충족시키지는 못하지 만 그 자신의 기준을 충족시키는 일에 있어서 자동적으로 보증 을 얻기 때문에 과학에 있어서 일종의 자기 강화적인 유아론을 낳는다고 암시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과학에서 두 학파가 문제와 그 해결에 있어서 의견의 불일치를 보이고 있 는 한, 그들은 논쟁을 통해 자신의 패러다임의 장점에 대해 서 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부분적으로 순환적인 논증 울 통해서 각각의 패러다임은 경쟁 상대가 제시한 기준에는 못 미치면서 자신이 제시한 기준을 충족시키는 것으로 보일 것이 댜〉 8) 이런 식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과학적인 의사 결정이 기 본적으로 변덕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 틀림없다• 철학자들 이 쿤의 생각을 이해하기 시작한 1960 년대 중엽에 우리들 중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상 그 시기에 쿤의 저작에 나타나는 몇 가지 논의를 살펴보면, 이런 주제를 반복해서 찾아 낼 수 있다 거기서는 패러다임 변화가 이성적인 혹은 합리적인

8) 위의 책. p. 109.

과정이 될 수 없다고 이야기된다. 우리가 볼 때 쿤은 과학을 비 합리적인 〈괴물〉로 만들어버렸다. 쿤의 텍스트는 그런 구성을 시인하는 것으로 보임으로써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다. 예를 들어 프리스틀리의 화학에서 라 브와지에와 돌턴의 화학으로의 이동에 대한 악명높은 논의 속에 서, 쿤은 프리스틀리가 연소설( 燃素 說 p hlo gisto n th eo ry)을 고집한 것은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라브와지에의 산소설 쪽으로 태도 를 바꾼 것이 합리적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충분히 이성적인 것 이었다고 주장했다 . 쿤에 의하면 프리스톨리의 인식적 목적과 그 가 적합하다고 간주한 방법이 주어져 있는 상태에서 그의 이론은 여전히 좋은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프리스틀리가 연소설을 고집 한 것은 이성적인 것이었다. 프리스톨리가 라브와지에와의 싸움· 에서 진 것은 프리스틀리의 패러다임이 객관적으로 더 못한 것이 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당시 대부분의 화학자들이 중심적인 문제 에 관한 라브와지에와 돌턴의 견해에 동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쿤의 저작에서 나타나는 그런 구절의 분명한 함의는, 패러다 임 간의 논의가 필연적으로 결론을 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 문에 결코 합리적으로 종식될 수 없다는 것이다. 논쟁의 종식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논쟁 참여자의 쇠퇴나 과학 공동체의 제도 적 구조 내에서 권력과 보상의 지렛대를 조작하는 것 둥의 외적 인 요인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과학철학자들은 거의 예외없 이 여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철학자들이 이 천 년에 걸쳐 고통스럽게 쌓아올린 것을 직접적으로 논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 과학적 논쟁, 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사실에 관 한 모든 의견의 불일치는 원칙적으로 합리적인 명료화와 해결에 열려 있댜 내가 쿤이 상대주의, 주관주의, 비합리주의 등으로 비난받으면서 철학자들의 공격 대상자 명단의 상단에 위치하고

있다고 말하는 데서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바로 이것이다 . 쿤의 저작에 대한 이런 식의 비판은 정당성을 갖는다. (내가 1 장 에서 밝힌 바와 같이) 쿤은 지난 20 년 동안 합의 형성의 문제, 다 시 말해 과학자들이 어떤 하나의 세계관에 의견의 일치를 보이 게 되는 방식을 정합적으로 설명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 나 이런 결함은 심각하긴 해도 치료될 수는 있다. 쿤의 입장에 서 두 가지 근본적인 수정을 함으로써 합의 형성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3 장에서 논의한 것처럼), 정당화의 계 층적 관점을 그물형 모델로 대치시킴으로써 인식적 가치를 〈협 의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둘째, 쿤의 세계관이나 패러 다임의 전체론적인 성격을 거부해야 한다. 세계관의 다양한 구 성 요소가 개별적으로 협의가 가능하며 점진적으로 대체 가능하 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죽 한 요소를 대체하기 위해 다른 모든 구성 요소를 전체적으로 거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합의 형성의 문제 롤 해결할 수 있다. 물론 쿤 자신도 어떤 세계관의 구성 요소는 수정될 수 있다고 인정했다. 이것이 〈패러다임을 명확하게〉 하 는 일이다. 그러나 쿤에게 있어서는 라카토스나 푸코 같은 이론 가에게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전체 세계관을 거부하지 않는다 하 더라도 세계관의 중심적인 연관, (라카토스의 경탄할 만한 구절을 빌리자면) 그 〈중핵 Hardcore 〉은 수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 계관이나 패러다임의 중심적인 존재론온 그 방법론이나 가치론 과 더불어 싫으면 그만두라는 식의 기초 위에 서 있게 된다. 이 런 연관의 수준에서 쿤은 (라카토스 같은 그의 비판자와 더불어) 완고한 전체론자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을 생각해 보자. 〈경쟁 패러다임 간의 전환은 불가공약적인 것들 간의 전 환이기 때문에 형태-전환@stalt- s witc h 과 같이 시기에 따라 일어 나는 단계를 설정할 수 없다. 그것은 한꺼번에 일어나든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9 ) 쿤은 이 점에서는 분명했다 .

9) 위 의 책 . p. 149.

그러나 패러다임이나 연구 프로그램을 그렇게 완고하게 받아 들일 필요는 없다. 그리고 과학자들에 의해 그런 식으로 받아들 여지지도 않는다 . 잠시만 생각해 보더라도 그것은 그렇게 받아 들여져서는 안 된다. 내가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과학자의 존 재론, 방법론, 가치론 사이에서는 복합적인 정당화의 상호관계 가 성립한다. 만일 어떤 과학자의 방법론이 그의 존재론을 정당 화하는 데 실패하는 경우, 그의 방법론이 그의 인식적 목적을 실현시키는 데 실패하는 경우, 그의 인식적 목적이 이상주의적 인 것으로 드러날 경우,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세계관의 구성 요 소를 일을 더 잘 수행할 수 있는 요소로 대체시킬 충분한 근거 룰 갖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바꿀 필요는 없다. 더 정확히 말해서, 이런 식으로 세계관의 갈등을 빚고 있는 과학자가 직면한 선택이 3 장에서 개관된 것처럼(거기서는 자신이 최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바꾸지 않고 유지하거나 그것을 던져버리고 완전히 다른 것을 택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경직된 것일 필요는 없다. 다른 것은 유지하면서 핵심적인 요소를 수정하는 식의 선 택은 분명한 개선점을 가져다 준다. 도식화해서 살펴보면, 여기 서 선택은

존재론 1 & 방법론 1 & 가치론 I (I) 과 존재론 2 & 방법론 1 & 가치론 I (2)

혹은 (1) 과

존재론 1 & 방법론 2 & 가치론】 (3)

혹은 예를 더 들자면, (1)과 존재론 1 & 방법론 1 & 가치론 2. (4)

사이의 선택이 될 수 있다. 2장 에서 밝힌 바와 같이 (1)과 (2), 혹은 (1) 과 (3) 사이의 선 택은 강한 규범적인 제약을 받을 수 있다 . 그리고 3 장에서 우리 는 (1) 과 (4) 사이의 선택이 어떤 상황에서는 합리적인 분석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았다. 이런 사례를 통해 경쟁자들 사이에서도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게 할 〈아르키메데스적인 관점〉을 찾을 수 있다는 충분한 근거를 찾아 볼 수 있다. 그런 공통성이 존재한다면, 선택을 기 호나 취미의 문제로 볼 이유가 없다. 그리고 쿤이 하고 있는 것 처럼(라브와지에가 프리스틀리를 대체한 것에 대한 설명을 생각해 보 라) 선호성에 확고한 기반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할 이유도 없다. 어느 시기에 이론의 변화가 한 단계 발생했다고 가정하면, 그것 을 전적으로 합리적인 과정으로 간주할 여지가 충분히 있는 것 이다 . 그러나 핵심적인 문제는 변화가 실제로 이렇게 일어나느냐 하 는 것이다. 과학사에서 일어난 위대한 전환을 생각해 보면, 그 전환들은 이런 단계적 분석을 허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에서 뉴턴의 세계관으로의 전환은 분명히 세 가지 수준의 변화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19 세 기의 기계론적인 심리학에서 정신분석학이 출현하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적 변화의 전체적인 상을 성 급하게 받아들이기 전에 물어보아야 할 점이 있다. 우리가 그런

역사적 혁명을 설명할 때 (한 시기에 한 단계씩 이루어지는) 수많 은 점진적인 변화를 손쉽게 단절적인 전환으로 파악함으로써 그 런 상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과학적 변화에 대한 점진주의적인 상(그리고 이것이 역사적으로 더욱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한다)의 핵심적인 특색을 설명하기 위해 이론 변화에 대한 대단히 이상적인 해석을 해보려 한다. 그것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과학적 변화의 실제 사례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궁극적으 로 우리가 원하는 것은 경쟁하고 있는 전통이나 패러다임 간의 최초의 불일치의 상태에서 더 나온 것에 대한 합의의 상태로 나 아가게 되는 방법을 보여줄 수 있는 모델이다. 그러나 설명을 쉽게 하기 위해 좀 더 단순한 상태에서 시작하고자 한다.

한 세계관이나 전통에 대한 합의가 궁극적으로 다른 것에 대

한 합의로 나아가며, 여기서 과학자들이 전혀 다른 두 개의 경 쟁 패러다임 간의 선택을 해야 하는 경직된 상황에 직면하는 일 온 없다고 가정하자. 牛상에서 체계적으로 제시된 나의 〈엉뚱한 이야기〉는 디옴꾀- 같이 이야기될 수도 있다. 어느 시대에도 우 리가 과학의 어느 분야에서 작용하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 치, 방법, 이론의 집합이 최소한 하나는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집합 C1, 그 구성 원소를 T,, M,, Ai이라고 부르자. 이 구성 원소들은 2, 3 장에서 기술한(도표 2 에서 요약한) 복합적인 정당화 관계에 놓여 있다. 죽 A, 은 M 을 정당화하고, T, 과 조화 룰 이룬댜 M 은 T 울 정당화하고 A1 의 실현 가능성을 보여준 댜 T1 은 M 을 제약하고 A 울 예화한댜 누군가 T1 을 대체시킬 心를 제안했다고 가정하자. 규칙 M 려 논의되고 이것은 아마도 T, 보다는 T2 를 선호하는 근거를 제시해 줄 것이다. 그래서 우리 가 T1 을 T2 로 대체시켰다고 가정하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떤

변화하는 요소 판정하는 요소

M, Tl ◄ ► A, ---- ------ --- ------- ---- --- --- -- -- 방법론 M, T2 빽 ”으_」 &- --------------------목 적과 이론 T2~A, ---------( 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NL 실현 불가능성 혹은 이론에 대한 함축적인 선호성과의 불일치 T2 ◄ >·A2 도표 4 단일한 전통적 변화

과학자들은 M 에 대해 점차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그보다

더 나온 M 라고 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안하게 될 것이다. 이 제 M 과 M 사이에 선택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가 살펴본 대 로 이것은 M 이나 M 중 어느 것이 우리의 목적 실현을 위해 더 나은 전망을 제시하는지를 결정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 결정 은 경험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A, 과 일반화된 이론 T2 가 그 런 결정을 위해서 논의된다. 공유된 가치 A1 을 실현시킬 상대적 효율성을 비교함에 있어서 M 2 가 M 보다 낫다는 설득력 있는 논 증이 이루어졌다고 가정하자 . 이런 상황에서 과학자들이 합리적 으로 행동한다고 가정하면 M 2 는 M 을 대체할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이론 T3, T4… … Tn 이 나중에 나타날 때 M 보다는 M 폐 의해 평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 나아가 우리가 기본적인 가치 자체에 도전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예를 들어 A 의 어떤 요 소들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새로운 증거를 지적해 낼 수도 있다. 좋은 과학의 범례로서 과학 공동체에 의해 수락 된 이론이 실제로 A 에 표현된 가치를 예화하지 못한다는 것을 지적할 수도 있다 (A1 이 그것을 구성하는 목표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 지 못하는 정합적이지 못한 집합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 ~ AJ -~ 에서 과학자들은 합리적으로 A1 을 버리기로 결정하고, 유용하다 고 판단될 경우 다른 정합적인 가치의 집합 心룰 선택할 것이다 (피상적으로 계층적인 모델의 정당화의 순서에 따르는 연속적인 변화 ―이론, 방법, 목표로 나아가는-를 살펴보건 했지만, 계층적인 모델과 달리 실제로 이런 연속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이해하는 것 이 중요하다. 계층적 모델은 T: zMA ,c 개서 Ti MlAi.로의 이행과 같은 것을 합리적으로 숙고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계층적 모델은 앞 장에서 지 적된 바와 같이, 이론의 수준에서 방법에 대한 견해를 형성할 수 있다 는 것을 믿지 못한다. 그 모델에서의 정당화는 전적으로 방법에서 이

론으로 내려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

이런 가설적인 순서를 염두에 두고, 많은 세월이 지난 후에 이런 사례를 연구하기로 한 톰이라는 역사가를 가정해 보자. 그 는 틀림없이 한때 가치 A1, 규칙 M1, 이론 T 울 받아들였던 일 단의 과학자들이 10 년이나 20 년이 지난 후에 그것을 모두 버리 고 A, M 나 T 2 로 이루어진 새로운 집합 C 를 받아들인다는 사실 에 충격을 받을 것이다 . 톰은 아마도 G 의 옹호자들이 C 1 의 지 지자들과 거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할 것 이댜 모든 수준에서의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에 톰온 당 연히 거기서 과학 혁명이 일어났다고 추측할 것이다. 만일 톰이 과학자들이 도달한 관점을 〈패러다임 2 〉라고 부르고, 그들이 출 발점에 서 있었을 때의 관점을 〈패러다임 1 〉이라고 부르기로 했 다고 하면, 그는 개념적으로 동떨어져 있고 실제로 불가공-약적인 패러다임으로 보이는 것(우리와는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사이에 패러다임 변화가 일어났음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요점은 미시적인 수준에서 볼 때 신념 변화의 연속이 이 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건의 연속으로 보이는데, 시간적 거리를 압축시켜 크게 보았을 때는 세계관의 근본적이고 불가해한 변화 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 점진적인 변화의 연속을 단절된 기 적적인 변형으로 확대시켜 버리는 이런 관점은 역사가가 피해야 할 어리석은 관점이다. 그러나 그것을 피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과 실제로 그것을 행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 이런 오류를 알게 되면, 거대한 상을 만드는 전체론자의 모델을 선뜻 받아들 이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이야기가 진리를 담고 있다면(다시 말해, 변화가 전체론자가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점진적으로 일어난다 면), 방법의 변화와 인식적 가치의 변화를 과학 행위에 대한 합 리적인 설명 속에 포함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게 된다. 이 장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전체론자의 주장보다 낫다고 믿을 만한 몇 가지 이유를 제시해 보려 한다. 그러나 나의 이야기를 비신화화하는 데 필요한 증거를 제시하 기에 앞서, 이 이야기를 새롭게 고쳐볼 필요가 있다. 위에서 지 적한 대로, 이 이야기는 내가 〈단일한 전통적 패러다임 변화〉라 고 부른 것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원래 하나의 전통이나 패러 다임을 옹호했던 과학자들이 전혀 다른 과학관은 말할 것도 없 고 전혀 다르게 보이는 세계관을 받아들이게 되는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를 설명해 준다. 나는 그런 변화를 단일 전통 적unitraditi onal 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그것은 잘 설명된 경쟁적 인 세계관의 유용성에 의해 자극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단일한 전통적 상은 특정한 패러다임의 역학에 내재한 발전에 의해 패 러다임의 변화를 겪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더욱 홍미있고 도 전적인 사실은 다원적인 전통적 패러다임의 변화의 문제, 죽 경 쟁 패러다임 간의 경쟁에서 발생하는 기본적인 세계관의 변화의 문제이다. 이런 사례를 다루기 위해 우리의 이야기를 약간 복잡 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개의 복합체 (Cl 과 G) 가 이미 충분히 전개되

었으며 서로 전혀 다른 것이라고(죽 상이한 존재론과 상이한 방법 론, 그리고 상이한 가치론을 가지고 있는) 가정할 필요가 있다. 만 일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C의 옹호자가 그것을 버리고 G 를 받 아들이는 것이 합리적인 일이 되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을 얼른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C 의 중심적인 이론 이 C 의 기준으로도 G 의 이론보다 좋지 않게 보인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가 살펴본 대로 쿤은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부정했 댜 그는 특정한 패러다임과 결합되어 있는 이론은 그 자신의 기준에 의해서 경쟁 패러다임의 이론보다 좋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고 있다 .10) 그러나 우리가 이미 살펴본 대로 C의 방법과 기준이 언제나 그것에 결부된 이론을 인식론적으로 허용할 것이 라는 보장은 없다. C에 대한 경쟁 패러다임이 C1 자체 내에서 전개된 이론보다 C의 방법론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일을 더 잘 해낼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언제나 가능하기 때문이다(그리고 이 런 일은 가끔 일어났다). 또 C 의 목적을 실현시킴에 있어서 M, 보 다 더 나은 전망을 제시하는 방법의 집합 M 까 있고 그런 방법 이 C 의 이론보다는 G 의 이론을 인식론적으로 허용하는 길을 열어준다고 생각해 보자. 혹은 C의 목표가 (Cl 의 지지자들 자신 이 옹호하는) 주요한 과학 이론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오히 려 G 의 인식적 가치가 그 이론에 의해 전형화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C 의 중심적인 인식적 목적의 실현 불가능성과 G 의 목적 의 실현 가능성을 지적하는 새로운 증거가 출현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고 내가 자세히 설명하지 않은 몇몇 상황에서) 과학 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합리적인 행위는 C1 을 포기하고 C 를 받아들이는 일이 될 것이다.

10) 위의 책, p. 43 참조.

그러나 우리가 일단 그물형 모델에 의해 허용된 전환에 친숙 해지기 시작하면, 하나의 패러다임이나 세계관에서 다른 패러 다임이나 세계관으로의 이행이 쿤의 분석이 요구하듯이 모든 수 준에서의 전체적인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 단계적인 과정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C 의 옹호자는 C 의 방법론과 가치론을 당분간 유지하면서도 G 의 기본적인 이론들 을 상당 부분 받아들이기로 결정할 것이다. 그 다음 단계에서 그는 C 의 가치론을 유지하면서 G 의 방법론을 받아들일 수 있 게 해주는 논증과 증거의 연결 고리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G 의 가치들을 공유하는 단계까지 오게 될 것

이다. 윌리엄 위웰이 약 백 여 년 전에 보여준 바와 같이 이런 일련의 변화는 데카르트의 물리학이 뉴턴의 자연철학에 점차적 으로 항복해 가는 과정에서 찾아 볼 수 있다.11)

11) 위웰이 1851 년에 쓴 통찰력 있는 논문을 참조할 것. 여기서 그는 전체 적인 이론의 변화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변화는…… 전환 혹은 가설의 전환의 연속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이것을 통해서 점차 두 번째의 것 (죽 나중의 것)으로 다가가게 된다〉 (1859, p. 139).

사실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여러 개의 패러다임이 있는 상황에서 합의 형성 문제의 해결은 단일한 전통적 변화의 특별 한 혹은 변형된 사례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단일한 전통적 변화의 이야기를 적용시킬 수 있다면, 두 형태의 합의 형성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핵 심적인 문제는 내가 위에서 개관한 점진론자들의 신화가 쿤의 전체론적 상보다 역사적인 기록에 의해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 느냐 하는 것이다. 점진적인 모델과 전체론적인 모델을 대조시키고 양자 사이의 선택을 정식화해 볼 수 있는 분명한 방법은 역사적안 기록에 관 한 물음울 직접 던져보는 것이다. 과학의 방법론적 규칙과 과학 자의 인식 가치에서 발생한 주요한 역사적인 변화가 동시에 그 리고 근본적인 이론과 존재론의 변화와 더불어 일어난 것이 사 실인가? 전체론적 설명은 이 물음에 대해 분명히 긍정적으로 대 답한다. 이것은 규칙과 가치의 변화가 과학 혁명이 일어날 때만 죽 이론, 방법, 가치의 동시적인 변화가 일어날 때만 발생한다 는 쿤의 분석의 필연적인 결과이기도 하다. 기본적인 존재론의 변화와 결합되지 않은 가치의 변화는 쿤의 도식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12) 쿤에게서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없는 방법의 변화도

가능하지 않다. 쿤의 분석은 〈성숙한〉 과학의 가치와 규범이 혁 명이 없이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그러나 세 가지 수 준에서의 전환이 언제나 같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들 수 있는 예는 수도 없이 많다 . 그 중에 두 가지 사례만들어보자. 먼저, 잘 알려진 방법론적 수준에서의 전환을 생각해 보자. 베이컨 시대부터 19 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베이컨, 휼 뉴턴에 의한 귀납 추론의 다양한 규칙들에 동의하 고 있었다 . 일치법, 차이법, 공변법은 약 2 백년 동안 대부분의 과학자들의 기본적인 레퍼토리였다. 이런 규칙들은 어떠한 이론 적 혹은 가설적 실재의 가정도 미리 배제해 버렸다. 관찰 가능 한 물체만이 전통적인 귀납법을 적용시킬 수 있는 유일한 대상 이요 속성이었기 때문이다. 더욱 일반적으로 말해서 (3 장에서 언 급한 바와 같이)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관찰 불가능한 실재를 배 제하고 그들의 체계적인 정신을 한층 고양시켜 줄 탐구의 규칙 을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뉴턴의 유명한 철학적 추론의 제 3 규칙, 죽 저 악명높은 〈나는 가설을 만들지 않는다 hyp othe ses non fing o 〉는 이 런 철저 한 경 험 주의 의 간결한 정식 화에

12) 이 점에 대해서는 좀 부연할 필요가 있다. 쿤은 분명히 특정한 패러다 임을 넘어서는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그는 그런 예로서 정확성 . 일관 성. 단순성 둥을 들었다 이런 가치들의 운명은 특정한 패러다임과 연결 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그런 가치들이 변화한다면. 그 변화는 패러다임 의 변화와 독립적인 것으로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쿤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런 가치들은 17 세기 이후로 변하지 않았다 . 혹은 달리 말해서 과학자 들은 그 이후로 이들 가치들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그렇지만 쿤의 분석 에 의하면 이들 가치들은 끊임없는 변화 과정중에 있다 . 모든 과학자들 이 그것을 조금씩 다르게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공유되고 있 는 것처럼 보일 뿐인 가치들을 쿤이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자세히 살펴 보기 위해서는 이 장의 마지막 절을 참조할 것.

불과했다. 19 세기 말에 이런 방법론적 입장이 주요 과학자와 방법론자들 의 저작에서 대부분 사라졌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알고 있는 일 이다 위웰, 퍼어스, 헬름홀츠 Helmhol tz, 마하 Mac h, 다윈 O arwin, 헤르츠 He rtz 둥 많은 사람들이 1860 년대와 1870 년대를 전후해서 관찰 불가능한 실재를 가정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며, 대부분의 전통적인 귀납 추론의 규칙이 가설 연역법의 논리에 의해 파기 되었다고 믿기 시작했다 . 다른 곳에서 나는 이런 전환에 대해 자세히 기술한 바 있다 .13 )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런 일 이 일어난 사실과 그런 일이 일어난 시기이다 . 내 생각에는 기 록을 살펴본 사람이면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일이 1800 년에서 1860 년 까지의 시기에 일 어났다는 것을 가지고 시비를 걸 학자는 없겠지만, 그것이 일어 난 시기를 정확히 결정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 시 기를 분명히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의 논증을 이해하기 쉽게 해준다. 여기서 우리는 대단히 중요한 과학 공동체의 명시적인 방법 론의 역사적인 전환을 보게 된다. 매거법과 제거법은 버려지고 가설법이 동장했댜 이런 전환은 천체 역학에서 화학과 생물학 에 이르는 이론 과학 전반에 걸쳐 발생했다 .14) 그렇지만 이런 방법론적 전환이 동시에 발생하는 전체적인 과학 혁명은 어디에 서 찾을 수 있는가? 물론 이 시기에 중요한 혁명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방법론상의 변화는 당시의 혁명과 특별 히 연관지울 수는 없다. 가설법은 19 세기의 과학에서 정통이 되

13) Laudan, 1981 참조 . 14) 명시적인 방법론과 함축적인 방법론의 차이에 관한 논의는 3 장, w. 53 이하참조.

지는 않았다. 존재론이나 과학적 가치의 변화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알기에는, 이런 방법론적 혁명은 과 학의 특정한 연구 프로그램과 독립해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 이 과학적 탐구에 폭넓게 나타나는 일반적인 경향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방법론적 입장의 변화가 가치와 존재론 적인 변화와 불가피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믿도록 하는 전체론적 모델은 여기서는 명백히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방법론적 논의의 본질을 생각해 볼 때 우리가 잘못 생각한 것은 아닌 것 같다. 2 장에서 밝혔듯이, 방법론적 규칙은 합리적으로 비판될 수 있으며, 그것이 우리의 인식적 목표의 실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명되면 변경할 수도 있는 것이다. 쿤의 패러다임의 전환과 같이 우리의 목적이 전환된다면, 우리는 새로운 목표 실 현에 대한 적합성에 비추어 우리의 탐구 방법을 재평가할 것이 댜 그러나 우리의 목표가 전혀 변하지 않을 때에도, 우리는 지 금까지 사용해 온 방법이 의도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지적해 주는 논증과 증거를 발견하곤 한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없는 상 태에서 일어나는 그러한 방법론적 입장의 재조정은 내가 전에 기술한 그물형 모델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그러나 이것은 쿤의 분석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다. 규칙과 어긋나는 목적의 변화는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쿤 의 입장에 동조해서 인식적 가치의 변화가 언제나 폭넓은 패러 다임이나 세계관의 변화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그럴듯하 지 않을까? 여기서 다시 역사적 기록은 이런 생각을 반박한다. 과학의 인식적 목표로서의 〈오류 불가능한 지식〉의 폐기와 같은 간단한 예를 생각해 보자. 앞서와 같이 나의 역사적 설명은 간 결하게 〈요약된〉 것이다. 그렇지만 많은 연구들이 나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15)

15) 이 문제에 관한 목록을 보려면 Laudan, I968 참조.

그런 연구들은 19 세기를 거치면서 확실성을 추구한 과학의 관 점이 개연성이 높고 잘 테스트된 이론을 만들어낸다는 다소 완 화된 프로그램으로 바뀌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퍼스와 듀이가 주장한 바와 같이, 이런 전환은 과학철학사에서 확실성 의 추구에 대한 포기라는 중요한 분수령을 나타내준다. 대략 아 리스토텔레스 이후로 과학자들은 논증 가능하고 자명한 확실성 울 갖는 이론을 추구해 왔다. 경험론자와 합리론자들도 확실하 고 오류 불가능한 지식을 증명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의견의 불 일치를 보였지만 과학이 그런 지식의 산출을 목표로 해야 한다 는 점에서는 모두가 동의했다. 과학에 대한 이런 관점은 19 세기 초까지만 해도 일반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19 세기 말에 가서 이 러한 논증적이고 오류 불가능한 지식에 대한 이상은 막을 내렸 댜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과학은 기껏해야 고도의 개연성을 가 진 지식의 상태를 목표로 할 수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 다 확실성, 오류 불가능성, 해 체 불가능성 in de fe as i b ility온 20 세 기 과학자들의 중심적인 목표에서는 모습을 감추었다. 확실성에 대한 추구를 철저한 오류 가능주의로 대체하게 되 는 주변 이야기는 길고 복잡하다. 나는 이 이야기의 일부를 다 른 곳에서 개관한 바 있다 .16) 여기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 런 인식론적 혁명의 세세한 부분이 아니라, 이러한 심층적인 전 환이 어떤 새로운 과학적 패러다임이나 연구 프로그램의 출현과 특별히 결부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시기의 문 제이다. 이러한 심층적인 가치론적 정서의 변화가 과학적 세계 관이나 패러다임의 변화와 독립적이었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 중 요하기 때문이다. 19 세기의 어떠한 새로운 과학적 전통이나 패

16) Laudan, 1981 참조.

러다임도 특별하게 오류 가능주의적 가치론과 결부되어 있지 않 았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 오류 가능주의는 20 세기 중반이나 후반의 주요한 과학적 연구 프로그램과 연결되었다. 원자론자와 반원자론자, 파동론자와 입자론자, 다윈주의자와 라마르크주의 자, 균일론자와 변동론자 둥은 모두 과학이론의 오류 가능성과 논증 불가능성에 관한 새로운 합의에 도달했다. 인식적 가치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이해 가능성의 포 기, 자연 과정을 그림처럼 혹은 기계적으로 구성된 것처럼 설명 하라는 요구의 포기, 자연에 대한 〈완전한〉 기술의 포기 등은 모두 비슷한 유형을 보여준다. 이런 인식적 목표의 포기는 자연 에 관한 기본적인 이론의 변화와는 대체로 독립적인 것이었다. 다시 한번 전체론적 접근은 역사적 기록에 의해 논박된다 . 가 치상의 변화와 근본적인 존재론이나 방법론의 변화는 전혀 동일 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변화는 분명히 모든 수준에서 일어 난다 그리고 때때로 동시에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한 수준 에서의 변화와 다른 수준에서의 변화 사이에 분명한 공변성은 없다. 이런 사례들로부터 나는 과학적 변화가 전체론이 주장하는 것보다 본질적으로 훨씬 더 점진적이라고 결론 내린다. 가치의 변화가 언제나 과학적 패러다임의 변화에 수반되는 것은 아니다. 방법론적 규칙의 전환은 가치나 존재론의 전환과 결부되어 있을 수 있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세 가지 수준이 서로 관련 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통째로 버릴 수밖에 없는 분리 불가능한 꾸러미로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결론은 과학적 변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이런 변화가 언제나 동시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 문에 우리는 세 가지 수준 중에서 하나나 두 개의 수준을 확고 하게 유지하면서 문제되고 있는 수준의 수정을 결정할 수 있다.

이러한 (잠정적으로) 고정된 그래서 공유되고 있는 관점의 존재 는 중요한 삼각망의 형태를 제공한다. 이론, 방법론, 가치론은 일종의 정당화의 삼각형 속에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가 의 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남겨둔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 이 가능하다 . 논쟁에 붙여지지 않은 수준이 언제나 논쟁을 해결 하지는 않는다. 미결정성이 언제나 유효한 가능성으로 남아 있 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치의 수준이 때때로 논쟁을 끝내기에 불 충분하다는 사실온 그런 일치의 수준이 결코 논쟁의 해결에 충 분치 않다는 쿤의 주관주의적인 테제에 위안이 되지는 못한다. 논리학자들이 이야기하듯이 우리는 여기서 우리의 한량사 qu an tifi ers 에 매우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어 떤 사람들은 그런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쿤은 1) 과학자들의 공유된 가치가 어떤 상황에서는 두 개의 경쟁 이론 사이에서 분명한 선호성을 지시해 주지 못한다는 올바른 주장에 서 2) 과학자들의 공유된 가치가 경쟁 패러다임 간의 선호성을 보증하기에 결코 충분할 수 없다는 매우 잘못된 주장으로 어물 쩍 넘어간다 분명히 어떤 경우에는 공유된 규칙과 방법론의 기 준들이 효과가 없을 때도 있다. 그러나 쿤뿐 아니라 그 누구도 과학자들이 동의하는 규칙, 평가 기준, 가치가 어떤 이론이나 패러다임도 그것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애매 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론이 어떤 규칙의 집합이나 기준에 의해 충분히 결정될 수 없을 때에도 많은 이론들이 적절 한 규칙에 의해 배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과학 논쟁의 한 학파가 그런 규칙을 위반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론을 지지할 경우, 그 규칙은 그 이론을 고려의 대상에서 제외시킬 것이다. 전체론적인 이론가들이 다양한 변화의 관계를 이처럼 잘못 기

술하고 있는 주된 이유는 무엇일까? 한때 그런 설명의 옹호자였 던 사람으로서 나는 다양한 수준의 변화가 실제로 동시에 일어 났다고 생각하게끔 한 요소를 설명할 수 있다. 대부분의 과학철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과학에서의 정당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면, 내가 전에 사실적, 방법론적, 가치론적 개념들이라고 불렀 던 것들의 체계적인 고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 나아가 모든 수준에서의 신념이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에 주목 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양한 변화가 서로 관련되어 있다고 추측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특히 변화가 동시에 일어 난다고, 또는 최소한 서로 밀접한 의존 관계에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생각들은 몇 가지 친근한 과학적 사례를 분석 해 봄으로써 얻게 된다. 예를 들어 17 세기의 과학혁명이 이론, 존 재론, 규칙, 가치의 변화를 몰고 온 것은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통한 20 세기의 혁명은 이론 물리학자 들의 방법론적이고 가치론적인 입장에 변화를 가져 왔다. 그러 나 내가 앞서 지적했듯이 이런 변화는 동시적으로가 아니라 순 차적으로 일어났다. 더욱 정확히 말해서 내가 받은 인상은 과학 사에 나타나는 대부분의 이론 변화가(창조론적 생물학에서 진화론 으로, 물질의 본질에 관한 에너지론의 견해에서 원자론적 견해로, 지 질학의 변동론에서 균일론으로, 빛의 입자설에서 파동설로의 변화와 같은 근본적인 변화를 포함하는) 모든 수준에서의 동시적인 형태­ 전환을 통해 일어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종종 변화가 하나의 수준에서만 일어나기도 한다(예를 들어 다윈의 혁명이나 원자론의 승리 둥에서 변화된 것은 이론이나 존재론이었다). 때때로 변화는 두 수준에서 동시에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세 수준에서 단절적으로 전체적으로 일어나는 변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과학적 변화에 관한 이러한 사실은 과학적 논쟁의 이해를 위

한 중요하고 폭넓은 함의를 가지고 있다 . 세 가지 수준에서의 동시적인 변화라고 하는 (3 장에서 논의된) 비정형적인 사례는 별 도로 하고, 이 사실은 대부분의 과학적 변화의 사례가一~우리 가 과학 혁명이라고 부르는 사례를 포함해서――다양한 수준에 서 이루어지는 논쟁에 참여한 학파들의 어느 정도의 합의 속에 서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예를 들어 과학자들은 특정한 이 론에 대해서 의견의 불일치룰 보이면서도 이론 평가의 적절한 규칙에 관해서는 일치를 보일 수도 있다. 그들은 이론과 규칙 모두에 대해 의견의 불일치를 보이면서도 동일한 인식적 가치를 받아들일 수 있다. 또는 동일한 이론과 규칙을 받아들이면서도 그들이 지지하는 인식적 가치에 관해서는 의견의 불일치를 보일 수 있다 이런 모든 사례 속에서 (쿤과 같이) 〈불가공약적인 선 택〉, 〈개종 경험〉, 혹은 (푸코와 같이) 갑작스러운 〈사상의 단 절〉 같은 것을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각각의 사례 속에 불 일치가 합리적으로 종식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물 론 각각의 학파가 공유하고 있는 신념이나 기준으로 충분히 결 정될 수 없는 문제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합리적 판결의 메커니즘이 소용이 없는 특별한 사례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조차도 우리는 게임을 지배하는 합리적인 규칙이 있으며 게임의 규칙에 따라서 수를 둘 수 있다(죽 논쟁중 에 있는 신념이나 논증이 그 규칙에 맞는 것일 수도 있고 위반하는 것 일 수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전체론적인 변화의 사례가 과학적인 의견 의 불일치 속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댜 그런 사례들은 매우 비정형적이기 때문에, 완전히 통일된 세계관들(쿤이 『 과학혁명의 구조 』 에서 기술한 것과 같은) 사이의 해 결 불가능한 교착 상태가 편재해 있다는 데 자신들의 과학적 변

화와 인식에 대한 기초를 두고 있는 과학 철학자와 과학 사회학 자들은 경쟁 이론이 전형적으로 중요한 배경 전제를 공유하는 복잡한 방식을 이해하는 데 실패할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한다. 바꾸어 말해서 패러다임 간의 논쟁이 합리적으로 판결날 수 없 다는 것에 관한 전반적인 주장은(이런 주장들은 쿤과 라카토스의 저작에서 중심적인 것인데) 대부분의 과학적 변화 형태의 점진적 인 성격을 체계적으로 무시하고 그런 불일치를 종식시킬 합리적 인 숙고의 무력함을 과장하는 데 기반울 두고 있다. 나아가 설 사 패러다임 간의 충돌이 쿤이 말하는 것과 같은 성격을 갖는다 하더라도(다시 말해 세 수준에서 겹치는 부분이 거의 없다 하더라도) 경쟁 패러다임에 대한 비판적이고 비교적인 평가에 대한 합리적 인 근거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요약하자면, 경쟁하고 있는 과학적 진영 사이의 충돌이 결코 객관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고 하는 주장은 어떤 지지도 받을 수 없다. 내가 전에 언급한 위대 한 쿤의 수수께끼인 17) 합의 형성의 문제는, 과학이 쿤과 다른 전체론자들이 미처 보지 못한 정당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

17) 1 장 참조.

그러나 이론 변화에 대한 쿤과 전체론자들의 이론을 이렇게 만만하게 다루는 것은 큰 실수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아직 쿤의 저작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측면을 직접 대하지 못했기 때문이 다. 특히 (합의 형성과 불일치의 종식을 위한 도구로서 내가 여러 차 례 강조한 바 있는) 방법론적 규칙과 공유된 가치가 대규모의 과 학적 불일치를 해결하는 데 무력하다고 하는, 수많은 논증을 거 쳐 세련화된 그의 주장을 고려해야 한다. 이제 이 문제로 직접 들어가보자.

방법론에 대한쿤의 비판 (콰인, 헤세, 굿맨 등과 같은) 몇몇 학자들·은 규칙이나 과학적 평가의 원리가 이론 선택을 충분히 결정하지 못한다고 주장했 댜 다른 곳에서 분명히 밝힌 이유에 의거해서 18) 그런 관점은 많은 결함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학자들은 자료에 의한 이론의 논리적인 미결정성과 방법론적 규 칙에 의한 이론 선택의 미결정성을 혼동한다. (헤세나 불로어 Bloor 갇은) 다른 사람들은 이론의 미결정성을 우리에게 주어지 는 감각 증거에 의한 이론적 신념의 인과적 미결정성을 평가하 기 위한 허가서 정도로 찰못 받아들이고 있다 .19) 그러나 이보다 약하고 홍미있는 미결정성 테제에 대한 해석이 있다. 이런 해석 은 쿤의 최근 저작에서 가장 찰 나타나 있다. 미결정성의 사례 룰 〈지역화〉하고 구체화한 것은 전통적인 과학철학에 대한 쿤의 도전이 갖는 강점이다. 간단히 말하면 쿤의 견해는 다음과 같 댜 과학자들이 직면한 몇 가지 패러다임 사이에서 선택을 요구 받고 있는 상황을 검토해 보면, 적절한 증거와 방법론적 기준을 가지고서는 하나의 패러다임이 상대 패러다임보다 월등히 낫다 고 할 만한 점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상황을 〈지 역적인〉 미결정성의 사례라고 부른다. 이것은 더욱 전반적인 미 결정성의 형태(이것은 규칙이 자료에 의해 특별히 지지를 받고 있는 이론을 골라내는 데에는 불충분하다는 것이다)와 대조된다. 쿤은 지 역적 미결정성을 위해 네 가지 논증을 제시한다. 각각의 논증이 목표로 하는 것은 방법론적 규칙과 기준이 과학자의 선택을 제

18) 앞으로 나올 라우든의 책 참조 . 19) 위의 책에서 나는 이론의 미결정성을 둘러싼 문제를 다소 길게 다루었 다.

약하거나 제한하더라도, 그런 기준이나 규칙은 분명하게 패러 다임의 선택을 배제하거나 보증하는 데에는 불충분하다는 것 이다.

1 〈공유된 기준의 애매성〉에 관한 논증 방법론적 미결정성에 대한 쿤의 첫번째 논증은 경쟁 패러다 임의 옹호자들에 의해 공유되고 있는 방법론적 규칙이나 기준의 애매성에 관한 것이다. 이 논증은 『과학혁명의 구조』(1 962) 에서 처음으로 나타나고 그의 『본질적 긴장』(1

20) Kuhn, 1962, p. 159.

〈합리화〉하기 위해서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적용 가능한 평가 기준을 해석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과학의 방법론적 규칙이나 기준이 이론 평가의 과정에서 나온 산물과 결정적으로 다른 차이점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일 어 떤 규칙의 집합이 어떤 이론이든 모든 이론을 정당화하는 데 사 용될 수 있다면, 방법론은 장식물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 이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쿤의 의도와는 거리가 있다. 후기 저 작에서 그가 분명히 밝혔듯이, 쿤은 (전통적인 관점과 비교해서) 간단히 말하자면 과학적 선택의 방법론적 기준에 긍정적인 역할 을부여하고 싶어한다.

쿤의 생각은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이론이나 패러다임 선택을 정당화할 때 명시적으로 언급하는 공유된 표준이나 기준, 규칙 이 〈애매하고〉, 〈부정확해서〉 〈동일한 기준을 공유하는 개인들 이 구체적인 사례에 대한 적용에 있어서는 서로 의견을 달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1) 쿤은 과학자들이 어떤 인식적 가치를 공유하고 〈과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또 그렇게 해야 하긴 하지 만, 그들 모두가 그것을 똑같이 적용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이어서 그는 〈단순성, 전망, 생산성, 정확성 등은 여러 사람에 의해 다르게 판단될 수 있다〉(이것은 그들이 임의적으로 판단한다 는 말은 아니다 )22) 고 주장한다. 공유된 기준이 애매하기 때문에 두 과학자는 (말하자면 단순성의 기준 같은) 〈똑같은 기준〉에 동의 할 수 있지만, 대립되는 관점을 지지할 수도 있다.

21) Kuhn, 1977, p. 332. 22) 위의 책 . p. 262.

쿤은 공유된 기준이나 표준이 애매할 수 있다는 추측에서 많 은 것을 끌어내고 있다. 특히 그는 모든 이론 선택의 사례가 주 객관적인 요소의 혼합 형태일 수밖에 없다고 결론지었다. (쿤의

견해에 의하면) 공유된 그리고 아마도 객관적인 기준은 너무 무 정형하고 애매해서 특정한 선호성을 보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이 점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계속해서 개인의 알고리듬들이 주관적인 고려 때문에 궁극적으로 서로 다 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개별 과학자들은 어떤 계산이 이루 어지기에 앞서 객관적인 기준을 주관적으로 마무리지을 수밖에 없댜〉 23) 이러한 구절이 분명히 보여주고 있듯이 쿤온 공유된 규칙이 선택을 정당화하기에는 너무 모호해서, 그리고 그런 모 호함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이 그것을 가지고 선택을 하기 때문 에, 그런 선택은 그의 동료 과학자들의 선호성과 구별되는 개별 적이고 주관적인 선호성에 기초하지 않을 수 없다고 믿는다 . 그 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경쟁 이론 사이의 모든 개별적인 선택은 주객관적인 요소의 혹은 공유된 요소와 개별적인 요소의 혼합에 의존하고 있다 . 〉 24) 그리고 공유된 기준은 〈그 자체로서는 개별적인 과학자들의 의사 결정을 규정하기에 충분치 않다〉 . 25)

23) 위의 책, p. 3 29. 24) 위의 책 , p. 325 그리고 p. 324 참조. 25) 위의 책 , p. 3 25.

이런 야심적인 주장이 옳다면, 과학적 합리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주장은 모든 과학자 들이 이론 선호성에 대한 근거를 자신의 동료 과학자들과 다르 게 가지고 있다는 결론으로 우리를 몰고간다. 이런 관점은 물리 학자들이 뉴턴의 이론보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더 낫다고 생각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이 범주론적 오류라고 주장한 다. 쿤의 분석에 의하면, 물리학자의 수만큼 다양한 대답이 있 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쿤이 도달한 매우 역설적인 결론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주제에 대해 쿤은 그 누구보다도 과

학적 기획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공동체와 사회화 과정이 중요 하다고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쿤은 자신의 분석 논리에 따라 모든 과학자들이 이론 선호성에 대한 자기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있으며, 동일한 패러다임의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이론 선호성의 근거에 관해 실제적인 합의가 없다고 하는 개인주의적 인 관점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쿤온 내 가 앞서 문제를 사소한 것으로 만드는 전략에 의한 합의의 문제 라고 부른 것을 문제 삼고 있다. 만일 우리가 과학 공동체를 구 성하는 개인의 이론 선호성에 대해 각기 다른 설명을 할 수밖에 없다면一―이것이 쿤의 견해가 포함하고 있는 것인데_집합 적인 수준에서 우리는 엄청난 미스터리에 직면하게 된다. 주어 진 학문 분야에서 과학지들이 자기만의 기준을 사용하고 공유된 기준에 대한 서로 다른 〈핑계〉를 대면서 이론 선택에 의견의 일 치를 보이게 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론 선호성에 대한 개인의 변덕스러움에 대한 쿤의 견해와 과학에 관한 사회심리학울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문 제는 쿤에게 맡겨둘 수밖에 없는 문제다 .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쿤이 공유된 혹은 집합적인 기준이 개별적이고 주관적인 기준에 의해 보충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대해 그럴듯한 사례를 만들어냈느냐 하는 것이다. 첫번째로 강조되어야 할 것은 쿤의 테제가 단지 악명 높은 몇 개의 규칙이나 가치에 대해서가 아니라 경쟁 패러다임의 지지자 들에 의해 공유되고 있는 모든 과학적 규칙과 가치에 적용된다 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과학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어떤 규칙, 기준, 가치들이 쿤이 말하는 것과 같은 애매성을 보여주 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단순성이 그 대표적인 경우가 될 것이다). 그러나 공유된 규칙이 서로 다른 패러다임 내에서 활동

하고 있는 과학자들 사이의 의견의 불일치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쿤의 일반적인 논증은 우연적인 사례를 인용하는 것 으로 확립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쿤은 자신이 그렇게 주장하 고 있는 만큼, 과학자들에게 공유되는 방법론적 규칙의 본질 자 체에 그런 규칙이나 기준의 적용을 비결정적인 것으로 만드는 요소가 있음을 밝혀야 한다. 그는 이런 결론을 끌어내지 못했고 그것은 이유가 있다. 그가 틀린 것이다. 이것을 입증하기 위해 서 우리는 단지 과학자들에 의해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그 리고 근본적인 모호함이나 애매성이 없이 구체적인 사례에 적용 될 수 있는 방법론적 규칙을 만들어내기만 하면 된다. 예를 들 어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과학적 기준에 대한 쿤 자신의 사 례, 죽 수락 가능한 이론은 내재적으로 정합적이어야 하고 다른 분야에서 수락된 이론과 논리적인 일관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요 구를 생각해 보자(이런 방법론적 규칙에 따를 수도 있고 따르지 않 울 수도 있다. 내가 이것을 언급하는 이유는 이것이 대체로 이론 평가 에서 자주 역할을 맡게 되는 방법론적 규칙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가 이론이 내적으로 정합적이라는 것의 분명한 의 미를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는 이론이 수락된 신념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이해하고 있다. 더욱이 우리는 어떤 경우에 특정한 이론이 (내적이거나 외적인) 무모순성의 기준을 위반했는지 말할 수 있다. 쿤 자신도 이런 것을 인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쿤온 지구를 중심으로 한 천문 학과 태양을 중심으로 한 천문학의 상대적인 장점을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었다. 〈무모순성의 기준은 그 자체로서 분 명하게 지구 중심의 전통을 대변한다〉 .26) (쿤이 말하고자 한 것은

26) 위의 책, p. 323.

태양 중심의 천문학이 도입되었을 때 그것은 당시의 지배적인 천체물 리학과 조화될 수 없는 것이었던 반면, 지구 중심의 천문학의 가정은 당시의 천체물리학과 모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 ) 이런 사례에서 우 리는 어떤 이론을 선택하고 그 경쟁 이론을 버리는 데 있어서 〈분명 히 말한다 s peaking un eq w i vocall y〉고 하는 과학적 규칙 혹은 기준을 가지고 있음에 주목하자 . 쿤에 의해 제기된 불가피한 애 매성과 모호성이 과학 공동체의 모든 공유된 가치들을 괴롭히고 있는 곳이 도대체 어디인가? 무모순성의 개념에서는 어떤 점이 애매한가? 이런 수사학적 질문의 요점은 쿤에게 있어서 조차도 과학 공동체 안에서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어떤 규칙이나 기준은 쿤이 방법론적 기준의 전반적인 성격으로 기술하고 있는 의미의 다양성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하는 점이다. 이성적으로 명확하고 분명한 몇 가지 방법론적 사례를 들 수 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이론이 연역적으로 완결되어 있어야 한다거나, 통제된 실험을 거쳐야 한다는 둥의 요구가 완결이나 통제 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해 과학자들의 혼란이나 의견 의 불일치를 낳지는 않았다. 또는 이론이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결과에 대한 성공적인 예측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규칙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내가 아는 한, 과학자들은 이런 규칙의 의미에 대 해 크게 불일치를 보이지는 않았다. 많은 방법론적 개념이나 규 칙이 애매하지 않다는 것의 의미는 그 확실성이 쿤의 패러다임 의 비교 불가능성과 그 필연적 결과에 대한 논증, 죽 방법론이 과학적 합리성을 지도할 수 없다는 논증을 반박하고 있다는 사 실에서 찾을 수 있다. 최소한 많은 이론들이 그 규칙을 충족시 켜 주지 못한다는 것을 보일 수 있는 몇 가지 규칙이 존재한다. 우리는 어떤 이론이 그 규칙을 충족시키는지 결정하기 위해 우 리 자신의 사적인 개념을, 공유되고 있는 객관적인 개념의 내용

에 덧붙일 필요가 전혀 없다.

2 〈규칙의 집합적인 무모순성〉에 대한 논증 마치 기준의 애매성만 가지고는 만족을 못한다는 듯이 쿤은 이어서 공유된 규칙과 기준이 집합적으로 취해질 때 〈계속해서 서로 갈등을 겪는 것으로 드러난다〉 27) 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두 과학자는 경험적 정확성과 일반성이 이론의 바람직한 특징이 될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 . 그러나 한 이론이 다른 것보다 더 정확한 반면 일반성에 있어서는 떨어지는 한 쌍의 경쟁(따라서 양립불가능한) 이론에 직면했을 때, 어떤 이론을 받아들일 것이 냐에 대한 과학자들의 판단은 다를 수 있다. 한 과학자는 더욱 일반적인 이론을 택하고 다른 과학자는 더 정확한 이론을 택할 수 있다 . 쿤이 보기에 이들은 분명히 동일한 기준을 공유하지만 평가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끝내고 있다. 쿤은 다음과 같이 말한 댜 〈……구체적인 많은 상황에서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 서로 다른 가치들은 상이한 결론과 상이한 선택을 지시한다. 그 러한 가치-갈등(예를 들면 한 이론은 더 단순하고, 다른 한 이론은 더 정확한)의 사례에서 다양한 개인들에 의해 다양한 가치 위에 주어진 상대적인 중요성이 개인의 선택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28)

11) 위의 책 , p. 322. 28) Kuhn, 1'17 0 , p. 262

많은 방법론적 기준들이 다른 방향으로 끌어당기기 때문에, 쿤 은 과학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길을 마음대로 갈 수 있다고 생각 했다. 그러나 쿤의 자유로운 규칙에 의해서도 과학자는 자신이 원하는 아무 방향으로나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과학자

가 제약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이론(혹은 패러다임)을 선호 한다면 그것은 비합리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쿤의 견해에 의하 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특별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과학적 의견 의 불일치를 예상할 수 있다. 1) 어떤 유용한 이론도 모든 제약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2) 현존하는 모든 이론은 경쟁 이론 이 충족시키지 못하는 제약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다. 나는 과학 자들이 반대되는 기준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했다 . 3 장 에서 논증한 바와 같이, 이런 사실은 과학자들이 자신의 인식적 가치를 재조정하게 되는 첫번째 자극제가 된다. 그러나 쿤은 이 런 사실이 단지 우연적으로 일어난다고만 말하고 있지 않다. 그 는 그런 것이 합리적인 과학자 집단이 받아들이는 규칙이나 기 준의 집합이 갖는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쿤의 야심에 찬 주장은 결국 다음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방법론적 규칙 의 집합이 내적으로 일관되지 못한 이유를 결코 설명할 수 없다 는 것이다. 쿤은 자신이 그런 것을 그냥 그렇게 말하고 있을 뿐 이라는 식으로 자신의 말을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것 같다 .29) 나 는 쿤올 따라서 아주 적은 사례에서 그런 외삽을 할 이유가 없 다고 생각한다 . 오히려 일관된 방법론적 기준들이 많이 있기 때 문에 쿤의 의삽법을 거부할 만한 이유를 우리는 충분히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19 세기 과학 방법론의 가장 영향력있는 책 중 의 하나인 존 스튜어트 밀의 『논리학 체계Syste m of/...ogic 』 (밀은 자 연과학이 가장 정확한 지식을 제공하고 가장 빠르게 진보하는 학문이 라고 생각했다. 밀의 이 책은 자연과학의 방법론에 관한 연구서로서 자연과학의 방법이 어떻게 사회 제 과학에 적용될 수 있는지를 보이려 했다 밀은 이 책을 통해 베이컨의 귀납법의 논리를 완성시켰다는 평

29)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과학에서 이론을 선택할 때 일어나는 일을 단순히 기술한 것이다〉(Kuhn, Im, p. 325) .

을 받고 있다 : 역주)를 생각해 보자. 밀은 거기서 인과적 가설의 건전함을 평가하기 위한 규칙이나 기준의 집합을 제시했다 . 오 늘날 그런 규칙들은 여전히 〈밀의 방법 〉 이라고 불리고 있으며, 일 치법, 차이범, 공변법이라는 형태로·많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의 연구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내가 아는 한, 밀의 방법이 쿤 이 방법론적 규칙에서 전형적이라고 본 모순이나 갈등을 향한 잠재적인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밝힌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역 사적으로 좀 더 거슬러올라가 보면, 그 누구도 베이컨이나 데카 르트, 뉴턴이나 허셀의 유명한 추론의 공준이 내적으로 일관되 지 못하다고 보지 않았다 . 결코 모순적인 것으로 드러난 적이 없는 많은 과학 방법론들이 언급될 수 있다는 사실은 경쟁 과 학자에 의해 공유되는 어떤 방법론적 기준도 상호 간에 모순성 을 드러내보이게 될 것이라는 쿤의 주장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 한다. 쿤이 만일 방법론적 규칙의 집합 내부의 긴장에 초점을 맞추 는 대신, 하나 이상의 기준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가 몇 가지 방향으로 갈라질 수 있다는 점 에 주목했더 라면, 그의 논증이 한 층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주장은 기준이 서로 모순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상관없이 (그 사례들 간의 완전한 공 변성이 존재하지 않는 한) 옳다. 두 과학자가 두 개의 기준을 가 지고 이론을 판단하는 데 동의한다고 한다면, 두 기준에 주어지 는 비중에 따라서 이론에 대한 그들의 판단은 달라질 것이다. 동시에 제시된 몇 가지 기준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이해하려 면, 우리는 이런 기준들이 선호된 이론의 선택을 어떻게 통제하 는지 물어보아야 한다(쿤은 이런 질문을 결코 던지지 않았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알기 전에는, 과학적 선호성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기준이 전혀 소용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쿤은 단순하게 모든 가능한 선호성의 구조가(죽 적용 가 능한 기준의 모든 가능한 차별적인 비중) 활동하는 과학자의 선택 과정에서 실행 가능하거나 예화될 수 있다고 가정했다. 3 장에서 제시된 인식적 가치의 분석은 이런 가정이 잘못된 것임을 보여 준다. 지금까지의 논증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나는 모든 방법론적 규칙이 애매할 수밖에 없으며, 규칙의 전체 집합을 구 성하는 과학 방법론이 대개 높은 정도의 내적인 〈긴장〉을 보여 준다는 쿤의 주장이 옳지 않다는 것을 밝혔다 . 이 두 주장이 공 유된 규칙이 〈그 자체로서는 개별적인 과학자의 결정을 규정하 기에 충분치 않다〉 3 0 ) 는 쿤의 주장의 급소가 되고 있기 때문에, 우 리 는 지 역 적 인 미 결정 성 local underde terminati on 의 일반 형 태 를 확립 하려 한 쿤의 노력은 실패로 끝났다고 말할 수 있다.

30) Kuhn, 1977, p. 325.

3 변화하는 기준에 대한 논증 쿤의 방법론 비판에서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기준이 과학 자들에 따라 다르게 생각된다고 하는 일련의 논증이다. 이 문제 에 관한 쿤의 관점을 다루면서 나는 쿤의 입장을 탁월하게 설명 하고 있는 제 럴드 도펠트 Gerald Do ppe l t를 따르도록 하겠다. 31) 일 반적으로 쿤의 과학 모델은 기준에 관한 의견의 불일치가 과학 적 논쟁을 결정 불가능하거나 결론이 나지 않는 것으로 만들

31 ) Dopp elt , 1978.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이 문제에 관한 쿤 자신의 논의 는 대단히 장황한데 반해 , 도펠트는 쿤의 논증을 간결하게 정식화해서 보여주고 있다. 나는 몇 가지 중요한 점에 있어서 도펠트와 의견을 달리 하지만, 이 문제에 관해서 만큼은 그의 저작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게 되는 두 가지 독특한 길을 꾀하고 있다. 먼저, 상이한 패러 다임의 옹호자들은 상이한 방법론적 규칙이나 평가 기준을 가지 게 될 것이다. 여기서 〈가지게 될 것〉이라는 것은 아주 약한 의 미로 사용된 것이다.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쿤은 각각의 패 러다임이 모든 경쟁 패러다임의 방법론과 (최소한 부분적으로나 마)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방법론적 입장과 결부되어 있다고 믿 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패러다임 변화〉가 일어날 때마 다, 이 과정이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 개념, 설명을 지 배하는 기준의 변화를〉 32) 낳는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매우 강한 주장이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상이한 패러다임의 옹호자가 과학 적 설명의 의미나 설명해야 할 관련 사실(예를 들면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와 같은)에 관해서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질 수밖에 없음 을 함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쿤이 옳다면 두 경쟁 패러다임의 지지지들 간의 논쟁은 두 패러다임에 각각 결부되어 있는 서로 다른 규칙이나 기준의 집합에 호소하는 것과 관계된다. 논쟁을 벌이고 있는 한 쪽 입장이 자신의 기준에 의해 자신의 이론이 최상의 이론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반면, 상대방은 자신의 이론 에 의해 그것이 최악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된다 .

32) Kuhn, 1962, p. 104.

내가 이 장의 앞부분에서 자세히 밝힌 바와 같이, 과학자들 이 때때로 (설명이나 사실성에 대한 서로 다른 기준을 포함해서) 서 로 다른 방법론에 동의한다는 쿤의 주장은 옳다. 그러나 기준이 나 규칙에 관한 의견의 불일치가 과학적 존재론의 근본적인 문 제에 관한 의견의 불일치와 맞아떨어진다고 하는 그의 주장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 근본적으로 다른 이론이나 패러다임을 옹호하고 있는 경쟁 과학자들은 동일한 평가 기준을 가지고 있

는(그것을 동일하게 해석한다) 경우가 많다. 한편으로는 동일한 패러다임의 지지자들이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간단히 말해서 기본적인 이론에 관한 방법론적 불일치와 사실적 불일치는 패러다임 간의 논쟁의 본질적인 해결 불가능성에 관한 쿤의 논증을 유지하기 위해 요구되는 공변성을 보여주지 않는 댜 쿤의 해결 불가능성에 관한 주장이 왜 유효하지 않은가를 보여주는 것이 내가 앞서 설명한 〈점진적 변화〉의 요지이다. 그러나 쿤이 제기한 심각한 문제가 여전히 우리 앞에 놓여 있 댜 만일 서로 다른 과학자들이 서로 다른 평가의 기준에 동의 한다고 하면(그리고 그런 것이 사실이기도 한데), 그런 불일치의 해결이 결국 임의적인 해결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 겠는가?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내가 2, 3 장에서 무너뜨리 려고 한 과학상을 전제한다. 방법론적 규칙과 인식적 가치에 관 한 의견의 불일치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주 어진 상태에서 (3 장에서 이런 메커니즘에 관해 기술했다), 과학자들· 이 그런 규칙이나 가치에 관해 종종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한다 는 사실이 그런 불일치의 해결이 임의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질 필요도 없고 그렇게 여겨져 서도 안 된다 .

4 문제의 비중에 관한 논증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쿤온 비교를 통한 이론 평가의 합리성 의 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생각되는 또 다른 논증을 마음 에 품고 있다. 그는 경쟁 패러다임의 옹호자가 다양한 문제의 해결에 대해 여러 가지 다른 중요성의 정도를 부여한다고 주장 한다 그는 그들이 그렇게 하기 때문에 이론의 지지도에 관해

의견의 불일치를 보이게 된다고 말한다. 한 쪽에서는 이 문제를 푸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저 문제를 푸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고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쿤은 여 기서 발생하는 난점을 다움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만일 하나의 과학적 문제의 집합, 그 문제가 발생하는 하나의 세계, 그것의 해결을 위한 단 하나의 집합만이 존재한다면, 패러다임 경쟁은 각기 해결한 문제의 수를 헤아리는 것과 같은 과정으로 설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이런 조건은 결코 완전히 충족 되지 않는댜 경쟁 패러다임의 지지자들은 언제나 상반된 의로 룰 가지고 있다…… 이들은 종종 패러다임의 대안이 해결해야 할 문제의 목록에 관해 의견의 불일치를 보이게 된다.〉 33)

33) 위 의 책 pp. 147-148.

이런 구절에서 쿤은분분명히 나누어 볼 수 있는 두가지 문제를 동시에 다루고 있다. 하나는 (앞 절에서 방굽 언급한) 과학자들이 다른 설명의 기준이나 해결의 기준을 가지고 있느냐에 관한 문 제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여기서 문제삼고 있는) 서로 다른 패 러다임 속에서 활동하는 과학자들이 여러 가지 다른 문제들의 해결을 원하며, 그래서 이론의 장점에 대한 그들의 평가가 일반 적으로 다르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과학자들이 문제 해결의 설명을 위한 동일한 기준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떤 문제가 가장 중요하게 해결되어야 할 문제인가에 관해서는 의견 의 불일치를 보이는 사례를 다루어야만 한다. 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경쟁 패러다임의 옹호자들 간의 과학 논쟁은 다 음과 같은 질문과 관련되어 있다. 어떤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더 중요한 문제인가? 경쟁하는 기준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이러 한 가치의 문제는 통상적인 과학의 바깥에 놓여 있는 기준을 통

해서만 대답될 수 있다. 〉 34) 서로 다른 전체 이론이나 패러다임 의 옹호자들이 어떤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인 가 하는 데 대해 종종 의견의 불일치룰 보이게 된다는 쿤의 주 장은 물론 옳다. 그러나 그런 불일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경쟁 패러다임의 인식적 지지에 관한 패러다임 간의 논쟁이 불가피하 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것이라거나, 그것이 과학적 탐구의 통 상적인 자료를 벗어나 있는 요소들을 가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 임을 말해 주는 것은 아니다.

34) 위의 책 , p. llO.

얼핏 보기에 다음과 같은 쿤의 논증은 매우 그럴듯하다. 경쟁 패러다임의 옹호자들이 특정한 문제의 해결에 서로 다른 비중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나아가, 이들이 각각 가장 중요하다고 믿고 있는 문제를 정확히 해결해 준다는 이유에서 각자의 패러다임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는 것으로 연결된다는 것이 댜 쿤온 어떤 추론 형태를 통해서도 이런·상황에서 각각의 접 근 방식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약점의 두 측면을 모두 드러내보 일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 이런 특별한 사례에서 쿤의 논증이 길을 벗어나는 것으로 보 이는 지점을 찾기 위해 우리는 이것을 좀더 기본적인 수준에서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 특히 우리는 문제 해결이 중요하다고 이야기될 수 있는 두 가지의 의미를 구별해 낼 필요가 있다. 어 떤 문제는 과학자가 단지 그 문제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는 의 미에서 중요한 것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해야 하는 긴 급한 사회적 경제적 이유가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경우도 있다 . 이 두 가지의 고찰 방식을 통해 과학자들이 그것을 문제 해결에 긴급한 것으로 간주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이런 관심은 과학

자들의 동기를 설명하는 데에 매우 적절하다 . 그러나 이와 같은 문제의 중요성의 의미는 특정한 인식적 혹은 시험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어떤 이론에 대한 증거의 지지 정도를 평 가할 때, 유용한 자료를 통해서 그 이론이 얼마나 잘 지지되고 있는지, 혹은 찰 테스트되었는지 물어볼 때, 우리는 그 이론이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 주는지를 묻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논의에서 적절한 의미를 갖는 중요성 이란 우리가 인식적 혹은 시험적인 중요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말한다 . 어떤 문제가 다른 문제보다 우리의 이론을 더 효 과적으로 테스트할 때 그 문제는 더 큰 인식적 혹은 시험적 의 의를갖는다. 따라서 쿤의 관점이 과학의 인식론에 대해 어떤 의의를 갖는 것이라면(혹은 우리가 어떤 이론이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인지 묻고 있 는 것이라면), 우리는 서로 다른 패러다임의 옹호자들이 어떤 문 제의 해결에 대한 인식적 중요성의 정도를 각기 다르게 할당하 고 있는 상황을 설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보기에 그런 상황 에 대한 쿤의 테제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문제에 대한 인식적 비중의 할당에 관해서 누가 옳은지를 결정 할 수 있는 합리적인 기제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잘 못된 것으로 보인다. 설사 맞다고 하더라도 논증이 된 것은 아 니다. 과학철학자들은 오랫동안 과학적 인식론의 일차적인 기능 이 증거를 반증하거나 확증하는 부분에 관한 (인식적) 중요성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 과학자들은 임의적으 로 선택된 문제(그것이 아무리 주관적인 의미를 갖는다 하더라도)의 해결이 높은 시험적 가치를 갖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인 식론적으로 돌출해 있는 문제들이 실제적인 의의나 발견법적인 의의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도 있다(아인슈타인은 브라운

운동을 열역학에 변칙 사례를 제공하는 것으로 보여주었다 . 이것 이상 의 어떤 내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브라운 운동 은 고전 열역학을 허물어뜨리는 데 결정적인 인식적 의의를 가지고 있 었음을 생각해 보라). 증거 이론의 요점은 어떤 사례를 확증하거 나 반박하는 데 어느 정도의 인식적 중요성을 부여함에 있어서 정당하게 주어질 수 있는 근거를 지적함으로써 증거의 의의에 대한 평가를 탈주관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 는 어떤 이론의 능력이 다른 문제를 해결하는 그 이론의 능력보 다 훨씬 더 인식론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런 인식적 선호성의 근거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 틀림없다. 바꾸어 말해서, 어떤 종류의 시험적인 이론에 대해 어떤 문제가 갖는 인식적 의의가 다른 것보다 크다는 것을 밝힐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결과가 다른 결과보다 충격적이고 일반적이 라는 사실을 보임으로써 이런 일을 할 수 있다 . 우리는 적절한 인식적 방법론적 기준을 동원해서 두번째 문제보다 첫번째 문제 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선택권 이 없다면, 〈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저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냐?〉 하는 질문에 〈저 문제보다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내가 더 홍미를 느끼기 때문에〉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면, 유용한 중거를 가지고 합리적으로 신념을 형성한다는 주장은 포기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좀더 일반화해 보자. 어떤 문제에 시 험적인 의의를 어느 정도 합리적으로 부여한다는 것은 그와 같 은 정도의 중요성을 부여하는 데 대한 실행 가능한 방법론적 인 식적 근거가 있음을 밝힐 수 있을 때 가능하다 . 일단 이런 사실 울 알게 되면, 해결된 문제가 한 패러다임에 부여하는 경험적 지지의 정도가 단순히 그 패러다임의 지지자가 얼마나 정열적으

로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분명 해진다 쿤과 도펠트에 의해 인용된 돌턴의 화학 〈혁명〉이라는 사례를 사용함으로써 이 점을 확대시켜 보자. 도펠트는 다음과 같이 쿤 의 입장을 요약하고 있다 . 〈……돌턴 이전의 화학은 열소설과 친화력에 대한 이론을 가지고 돌턴의 새로운 화학이 포기한 문 제들에 대해 효과적이고 합리적인 대답을 제시했다.〉 35) 돌턴의 화학이 낡은 화학적 패러다임에 의해 대답된 많은 문제들을 다 루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쿤은 돌턴의 집근에 대한 수락이 〈화 학에서 실제적이고 잠재적인 설명력을〉 3 6) 빼앗았다고 생각했다. 19 세기에는 대체로 돌턴류의 화학자들이 낡은 화학 전통이 이해 하고 있었던 많은 것들을 설명해 낼 수 없었다고 본 쿤의 생각 은 옳은 것이다. 한편으로 쿤이 강조하고 있듯이 돌턴의 화학은 그 이전의 화학 이론이 이해할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설명할 수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두 패러다임은 전혀 다른 문제에 반 응하면서 전혀 다른 관찰 자료를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다〉 .37) 하나의 주요 이론에서 다른 이론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발생하 는 해결된 문제의 이러한 〈손실〉은 쿤의 예리한 통찰력에 의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5 장에서 나는 과학적 인식론에 대한 비누적적 이론 변화의 함의를 추적해 보겠다 . 그러나 패러다임 변화를 통한 문제 해결 능력의 손실은 쿤이 주장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결론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죽 낡은 패러다임의 지지자 와 새 패러다임의 지지자는 각각 자신의 패러다임이 얼마나 잘 테스트되었고 증거에 의한 지지를 받고 있는지에 관해 일치된

35) Dopp elt , 1978, p. 42. 36) Kuhn, 1962, p. lff l. 37) 위의 책 . p. 43.

평가를 결코 내릴 수 없다는 쿤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 쿤과 도펠트를 이렇게 생각하게끔 하고 있는 것은, 어떤 문제 가 중요하다고 할 때 우리는 어떤 이론이나 패러다임의 지지 정 도를 결정함에 있어서 그 문제에 대한 인식적 혹은 시험적 비중 을 높이 매긴다고 하는 전제 때문이다 . 그러나 이런 전제는 대 체로 틀린 것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이론을 특히 〈엄격하게〉 (포퍼의 말을 빌리자면) 테스트하는 경우, 합리적인 과학자는 최 고의 시험적 혹은 인식적 비중을 관찰에 부여한다. 과학사에서 가장 큰 시험적 비중을 가지고 있는 사례는 (예를 들어 〈구형(球 刑)〉 지구의 편구(偏球) 형태, 아라고샤理 0 (1 786-1853 , 프랑스의 천문 학자, 물리학자, 수정에 있어서의 편광면의 회전, 굴절 광선에 있어서 그 방향 분포가 일정하지 않음을 발견했다 . 프레스넬과 함께 결정의 복굴절에 의한 광선에 관하여 실험하여 빛이 가로파임을 실증하였다. 전자기 현상에 관하여 전류에 의한 철의 자기화 실험과 아라고의 회전 판 실험이 유명하다:역주)의 회전판 실험, 태양 근처의 빛의 굴절, 수 성의 근일점의 후퇴, 스펙트럼에서 백색 광선의 재구성 등) 일반적으 로 과학자들의 이론이 해결한 문제의 목록에서 윗자리를 차지하 지 못한다. 테스트 사례는 예를 들어 충격적인 혹은 직관에 반 하는 이론의 예측을 테스트할 때나 그것이 경쟁 이론 사이에 중 요한 실험이 되고 있는 경우에 높은 시험적인 중요성을 획득한 댜 요점은 어떤 문제나 사례가 어떤 이론을 테스트할 경우에 그 이론의 옹호자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를 원하기 때문에 큰 시험력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많은 과학자들과 철학자들 온 정반대로 말할 것이다. 어떤 이론이 그 일차적인 경험적 지 지를 그것이 설명하도록 고안된 상황 자체에서 끌어온다고 할 때, 그것이 찰 테스트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다 실험적인 고안물을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이론들은 쿤

의 생각과는 매우 대조적으로 단지 그것이 해결하도록 되어 있 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높은 지위를 얻지 못한다 는 사실을 보여준다. 찰 테스트되었음에 관한 과학자들의 이성 적인 판단을 지시해 주는 것은 과학자들 자신이 설정한 설명 예 정안이라고 주장하는 쿤과 도펠트는 이론 평가의 논리를 근본적 으로 찰못 보고 있는 것이다 . 잠시 쿤이 다루고 있는 돌턴의 예로 돌아가 보자. 내가 옳다 면, 돌턴온 그 이전의 화학이 자신의 이론이 다루는 데 실패한 많은 문제들을 해결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어야 한다 . 화 학적 시약의 성질에 관한 이론과 마찬가지로 그 이론들은 그들 의 유형을 통해서도 잘 지지되는 것으로 인정되었어야 한다. 그 러나 돌턴의 일차적인 관심은 다른 곳에 놓여 있었다. 그는 앞 선 이론들이 자신이 화학에서의 핵심적인 문제라고 생각한 것들 을 다루는 데 실패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것은 인식적인 판단 은 아니다 . 이것은 프래그머틱한 것이다 . 이것은 디옴·과 같이 말할 수 있다 . 〈이런 오래된 이론들은 화학적 변화의 어떤 특징 들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믿을 만한 이론이며 잘 테스토된 이론 이다 그러나 그런 특징들은 내게 별 홍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한 다〉 요약하자면 쿤과 도펠트는 어떤 패러다임에 대한 증거의 지지 정도에 관한 과학자의 판단이 그 자신이 홍미있는 것으로 본 문제에 관한 개인적 관점을 반영한다는 생각에 아무런 근거 도 대지 못했다. 이것은 다시 어떤 패러다임을 구성하는 이론이 잘 테스트되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를 결정하기 위해서 그 패러 다임의 설명 예정안에 대한 열정까지 공유할 필요는 없다는 것 을 의미한다. 나에게는 쿤과 도펠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과학 자들은 자신이 홍미있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다루어주는 패러다 임을 연구하는 데 노력을 쏟는 경향이 있다는 너무 뻔한 말로

들린댜 이것은 한 패러다임이나 이론이 경쟁 패러다임이나 이 론보다 테스트에 더 잘 견뎌 내고 더 많은 증거의 지지를 얻고 있는지를 물어보는 질문과 분명히 구별되어야 하는 주관적이고 프래그머틱한 문제이다. 쿤과 도펠트는 두 과학자가 각기 다른 문제의 해결에 각기 다른 홍미를 느끼고 있기 때문에 이론이 더 잘 테스트되었는지 그렇지 못한지에 대한 그들의 인식적 판단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전혀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했다. 우리는 이제 홍미있는 문제에 관한 과학자들의 견해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 과학자들이 해야 할 인식적 평가의 양립 불가능성이나 불가공약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결론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와 있다. 이것은 곧 경쟁하는 패러다임 옹호자 들 간의 문제 해결의 강조점의 차이가 비교적인 이론 평가의 방 법론이 실용적이라기보다는 인식론적으로 정초되어 있는 한 그 런 방법론의 실행 가능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음을 의미한다. 쿤 과 도펠트는 이 런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들은 다양한 과학 자들이 다양한 동기에서 문제를 다루게 된다는 것과 그 과학자 들이 문제에 부여한 시험적 중요성의 차이는 전혀 다른 별개의 것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쿤과 도펠트가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과학적 생활의 특징들에서 적절한 결론을 이끌어낸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죽 경쟁 패러다임을 연구하는 것(그리고 과학자들을 그쪽으로 모아 들이는 것)은 인식적 숙고에 의해서 뿐 아니라 프래그머틱한 숙 고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홍미있고 바람 직한 테제일 수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과학적 인식론의 핵 심 전제를 허물어뜨리지는 못한다• 특정한 패러다임에 한정되어 있지도 않고, 전적으로 모호하거나, 개인마다 다르지도 않은 경 험적 원리 혹은 증거에 의한 지지의 원리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원리가 때때로 우리의 선호성을 분명히 인도해 나가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 38 )

38) 그러나 프래그머틱한 수준에서조차도 쿤의 과학적 변화의 상대주의적 인 상에 대한 도펠트의 해석이 유지될 수 있는지는 불명확하다 . 도펠트 는 경쟁중인 가치론의 옹호자 사이에 단기적인 해결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때문이다 . 앞에서 한 논증들이 설득력이 있다면. 프래그 머틱한 상대주의는 그 인식론적 짝과 마찬가지로 논점을 선취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제 5 장 그물형 모델을 통한 실재론적 가치론과 방법론에 대한 비판 이 책에서 나는 본래 과학 이론이 어떻게 논의되고 평가되는 지를 다루려고 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과학에 관한 철학적 주장 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하는 것이 이 책의 주제가 되어버린 것 같다 . 과학자는 언제나 방법론적 규칙을 언급함으로써 이론 선택을 정당화하려 하거나 인식적 목적을 통해 방법론적 규칙을 이해하려고 한다. 과학자는 전통적으로 인식론과 결부된 철학적 작업에 불가피하게 빠져들게 된다. 과학자들의 일상이 이렇게 인식론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온 과학자들, 특히 자 연과학자들이 철학에 의지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말이 거짓임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내가 여기서 철학과 과학의 분명한 구분을 허물어뜨리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삼고 있는 것 온 아니다. 나는 이미 여러 가지 상황에서 양자가 결합되는 예 를 들었다 .1) 내가 이 마지작 장에서 하고자 하는 일은 인식적

1) Laudan, 1977, 1982 참조.

목적과 방법에 관한 제안을 우리가 어떻게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앞 장에서 간단히 언급한 과학적 변화의 모델을 구체화하는 것이 다. 나는 3 장에서 인식적 목표나 가치가 여러 가지로 비판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위에 제시한 비판의 형태는 다음과 같다. 1) 우리는 가치가 실현되었는지 확인할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 하다. 2) 〈좋은 과학 〉 의 모범적인 사례를 통해 문제된 가치를 예시하지 못한다. 앞 장에서의 나의 주된 관심은 과학에서의 인 식적 가치에 관한 논쟁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방법의 모델을 추 상적으로 기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앞에서 개관된 모델은 단 지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일을 기술하는 데 머무르는 것은 아니 댜 나는 그 모델을 통해 인식적 가치의 본질에 대한 논의 방식 에 규범적인 특징들을 부여하려고 했다. 나는 이 마지막 장에서 우리 시대의 가장 중심적인 인식론적 전통을 비판하는 데 노력 울 기울임으로써 앞에서 제시한 모델의 규범적인 힘을 드러내보 이고자 한다. 앞 장에서 나는 상당 부분을 다양한 인식론적 상대주의(예를 들면 인식적 목적이 합리적인 판결에 열려 있지 않다는 테제나, 패러 다임의 선택이 언제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신념의 비약〉을 포함한다 는 쿤의 생각 등)와 논쟁을 벌이는 데 할애했다. 그렇지만 이러 한 귀에 거슬리는 상대주의가 유일한 대중적인 과학철학이라고 는 할 수 없다. 이런 과학철학은 과학의 목적과 이론 선택의 역 학에 대한 부주의한 설명에 기초하고 있는 것 같다. 과학과 철 학의 영역에서 상대주의보다 더욱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과학의 가치론과 방법론에 대한 전혀 다른 해석, 죽 과학 적 실재론이라고 불리는 관점이다. 수많은 과학자와 그리고 아마도 (최소한 앵글로-색슨 전통의)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과학자들이 이론을 구성함에 있어서 물리 세계의 심층 구조에 대한 참되고 진리에 근접한 설명을 하는 것 올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재론자들은 특히 과학자 들이 참된 이론을 추구해야 한다고, 더욱이 실제로 참된 이론을 (최소한 그에 근접한 이론을 ) 종종 찾아냈다고 주장한다. 퍼트 남, 포퍼, 셀라스 Sell ars, 보이 드 Bo y d 같은 실재론자들은 과학의 목적과 가치에 대한 실재론적 관점이 현실성이 있는 유일한 관 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들은 과학의 가치에 관한 도구론 적 설명이나 프래그머틱한 설명을 반곤하고 부적절한 것으로 보 았다 . 이 장에서 나의 의도는 앞에서 전개한 분석적 기제를 가 지고 과학의 목적이나 가치에 대한 실재론적 상을 검토하는 것 이다. 현대의 실재론이 과학적 가치와 목적을 유효하게 설명해 내지 못한다는 것이 결국 내 논증의 요점이 되겠지만, 여기서 그것을 길게 논하려고 하는 의도는 앞서 기술한 모델이 현대 인 식론과 과학철학에서 도구로서 사용될 수 있는 길을 자세히 밝 히려는 것이다. 이하에서는 과학적 실재론의 입장을 정식화하는 데서 출발해 보도록 하겠다. 다음에 나는 과학의 목적에 관한 많은 실재론자 들의 제안이 과학적 가치로 삼기에는 너무 애매하다는 것을 밝 히도록 하겠다. 그들의 제안이 애매하다는 것은 우리가 한 이론 이 다른 이론보다 참되다고 할 수 있는 시점을 확실히 할 수 없 기 때문이다. 실재론자들의 가치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비난은 잠시 제쳐두고, 게속해서 나는 만일 우리가 과학적 탐구의 목표 와 가치에 대한 실재론자들의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경우, 과 학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성공적인 부분들을 (실재론자의 관점에 서) 비과학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이도록 하겠다. 나는 다음과 같은 주장으로 결론을 맺는다. 실재론 자체가 가진

모호한 장점과는 별개로 과학에 있어서 가능하고 유일한 가치는 자신들이 제안한 가치라는 실재론자들의 주장은 그릇된 결론이 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장의 표적은 과학적 실재론이 제안한 목적을 넘어 선다. 실재론자들은 자신들의 인식적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과 규칙울 옹호해 왔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 은 다음의 두 가지이다. 1) 〈 최상의 설명울 위한 추론〉의 방 법, 2) 수락 가능한 새 이론은 앞선 학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중 요한 이론 내용(혹은 외연)을 보존해야 한다는 방법론적 요구. 첫번째 규칙은 어떤 설명력이나 예측적인 가치를 갖는 이론은 참이라고 볼 수 있다(혹은 거의 참이다)는 주장을 통해 프래그머 틱한 성공을 인식론적 보증과 연결시키려고 고안된 것이다. 두 번째 규칙은 만일 그것이 바람직한 것이라면, 이론 사이의 관계 의 역학을 지배하는 매우 중요한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위에 언급한 기술을 사용함으로써 전형적으로 실재론자들에 의해 옹 호되는 방법이 실재론의 가치론에 적합한 방법론적 규칙을 정당 화한다는 실재론자들의 목적과 관계 없음을 밝힐 것이다 . 간단 히 말해서 실재론적 방법론의 두 가지 주요 규칙은 우리가 올바 른 과학 방법론에 대해서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요구를 충족 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

1 수령적인 실재론 다론 철학적 주의is m 와 마찬가지로, 〈실재론realis m 〉이라는 용 어도 많은 허물을 감추고 있다. 그 중에 많은 것들이 여기서는 다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의미론적 실재론(간단히 말 하면, 모든 이론이 참이거나 거짓이며 어떤 이론-우리가 어느 것

인지 모르는-은 참이라는 주장)은 논의되지 않는다. 의도적 실 재론(죽 이론은 일반적으로 그 이론 안에 있는 용어에 상응하는 실재 의 존재를 주장하는 그 이론의 옹호자에 의해 일반적으로 의도되는 것 이라고 하는 견해)이라고 하는 것도 다루지 않는다. 내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인식론적 실재론의 특정 형태이다 . 일반적으로 인 식론적 실재론은 어떤 형태의 증거나 경험적 지지가 인식론적으 로 매우 시험적이어서 그것을 나타내 보여주는 어떤 이론도 정 당하게 참으로 추정될 수 있거나, 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힐러리 퍼트남이 지적한 바와 같이, 그런 실재론이 매우 유행하긴 했지만, 〈실재론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언급된 바가 거의 없다〉. 이런 사실은 인식론적 실재론을 평가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인식론적 실재론을 정확하게 이해하기에는 지금 까지 나온 많은 정식화가 너무 모호하거나 개략적이기 때문이 댜 또한 실재론적 입장을 정확하게 정식화하려는 노력은 허수 아비를 세워두고 공격을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이 장에서 나는 실재론자의 테제를 몇 가지로 분류했다. 여기에 동 의하는 실재론자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이 테제들 대부분은 자 칭 실재론자들에 의해 옹호되어 온 것이다. 대략 이 테제들은 힐러리 퍼트남, 리처드 보이드, 윌리엄 뉴턴-스미스 W ` am New ton -S mith 등에 의 해 옹호된 실재론에 가장 가까울 것 이다. 내가 여기서 논의하고 있는 관점은 어떤 현대 철학자의 입장으 로 돌릴 수 있겠지만(그런 텍스트 자료는 자주 인용하도록 하겠 다), 그렇게 볼 수 있다 없다 하는 문제는 지금 그리 중요한 문 제가 아니다 .2) 나의 목적은 실재론자들로 하여금 받아들이도록 유혹할지 모르는 (어떤 경우에는 유혹해 온) 특정한 인식론적 주

2) 내가 지금 비판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복잡한 인식론을 정당화하려는 주 장은하지 않겠다 .

장이나 방법론적 규칙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다. 나의 논증이 옳다면, 실재론에 대한 가장 유혹적인 해석이 키메라(사자의 머 리, 염소의 몸, 뱀의 꼬리를 가진 불을 뿜는 괴수. 결국 여기서는 실 재론에 대한 그런 해석은 수미일관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 역주)임 이 드러날 것이다. 실재론의 핵심은 그것이 과학의 목적이나 가치가 어떠해야 하 는가에 관한 규범적인 주장이라는 것이다 . 특히 실재론자들은 과학의 목표가 자연 세계에 관한 더 참된 이론을 발견해 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근대의 실재론자들은 전형적으로 이 러한 가치론적 테제에 기술적인 d escripti ve 것을 결합시켰다. 죽 이들은 과학사, 특히 최근의 과학사는 실재론의 프로그램에 입 각한 이상의 예시로 볼 때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실재론자들의 규범적인 주장이 기술적인 주장과는 논리적으로 독립적이라고는 해도, 이들의 규범적인 주 장은 인식론적으로 기술적인 주장에 기생하고 있는 것이다. 기 술적인 주장이 찰못된 것으로 드러난다면(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데), 그 규범적인 짝에 관해서도, 그래서 과학의 목적에 관한 실재론자들의 견해가 건전한 것인지에 관해서도 심각한 의문이 생기게 될 것이다. 실재론의 기술적인 해석은 다음과 같은 주장으로 이루어진다 :

RI ) 과학 이론(최소한 성숙한 과학에서)은 전형적으로 참에 가까우 며, 같은 영역에서는 최근의 이론이 낡은 이론보다 진리에 더욱 가까이 있게 된다. R2) 성숙한 과학 이론 내부의 관찰 언명과 이론 언명은 실제로 지칭 을 하고 있다(우리가 가진 최상의 이론에 의해 추정된 존재론에 상응하는 세계 내의 실체가 존재한다).

R3) 성숙한 과학 안에서의 성공적인 이론은 그보다 앞선 이론의 이 론적 관계와 지시체를 보존하고 있는 이론이다(죽 앞선 이론은 나중에 나온 이론의 제한적인 사례가 된다 ).3)

3) 퍼트남은 보이드를 따라서 RI 과 R3 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R4) 새 이론은 성공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선행 이론이 왜 성공적 인 것이었는지를 설명해 내야 한다 .

이러한 의미론적, 방법론적, 인식론적 테제에 실재론이 어떻 게 평가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에 관한 중요한 메타 철학적 주장 이 덧붙여져야 한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주장된다 : R5) Rl 에서 R4 까지의 테제는 (성숙한) 과학 이론이 성공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포함한다. 게다가 이들 테제들은 과학의 성공에 대 한 유일하지는 않지만 최상의 설명을 이루고 있다고 말할 수 있 다 . 과학의 경험적 성공은 (자세한 설명과 정확한 예측을 부여한 다는 의미에서) 따라서 실재론에 대한 분명한 경험적 확증을 제 공한다. 나는 Rl 부터 R5 까지 묘사된 입장을 수렴적인 인식론적 실 재론 (CER) 이라고 부른다. 최근의 많은 CER 의 옹호자들은 RI, R2, R3, R4 가 경험적인 가설이며, 이것은 R5 에서 요청된 고리를 통해서 과학의 탐구 자체에 의해 테스트될 수 있다고 주 장한다. 이들은 두 개의 귀추법(歸推法, Abdu cti on) 의 논증을 제

안하고 있다. Rl 과 R2 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첫번째 논증 ( I )의 구조는다음과같다:

l 과학 이론이 참에 가까우면, 그 이론은 일반적으로, 경험적으로 성공적인 이론이다 . 2 과학 이론 안에서 중심적인 명사(名 辭 , te rm) 가 실제로 지칭을 하 고 있다면, 그런 이론은 대체로 경험적으로 성공적인 이론이다 . 3 과학 이론은 경험적으로 성공적이다. 4 (아마도) 이론은 참에 가까우며, 그 명사는 실제로 지칭을 하고 있다.

R3 과 관련된 논증 (Il) 는 다음과 같이 약간 다른 형식으로 되어 있다.

l 성숙한 과학에서 선행 이론이 참에 가깝고, 그 이론의 중심적인 명사가 실제로 지칭을 하고 있다면, 동일한 과학 내에서 더 성 공적인 계승 이론이 선행 이론을 제한된 사례로 보존하게 될 것 이다. 2 과학자들은 선행 이론을 제한된 사례로 보존하며 일반적으로 그것 울계승한다. 3 (아마도) 성숙한 과학 안에서의 선행 이론은 참에 가까우며 실제 로지칭적이다 .

현재와 과거의 이론의 성공을 주어전 것으로 보면서 CER 의 옹호자들은 만일 CER 이 참이라면, 과학의 점진적인 성공은 당

연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그들은 만일 CER 이 틀린 것이라 면, 과학의 성공은 기적 같은 일이 될 것이며 설명을 할 수 없 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4 ) (그들의 관점에서 볼 때) CER 은 과학이 성공적이라는 사실을 설명해 주기 때문에, CER 테제는 과학의 성공에 의해 확증되며, 비실재론적 인식론은 현재 이론의 성공 과 과학이 역사적으로 보여주는 진보를 동시에 설명할 수 없다 고 주장하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4) 퍼트남 (1975, p. 69) 은 예를 들어 이론이 지칭적이라는 것에 관해 실재 론자들이 틀렸다면 . 〈과학의 성공은 하나의 기적이다〉라고 말한다 .

퍼트남과 그 밖의 다른 사람들(예를 들어 뉴턴-스미스등)이 살 펴본 바와 같이, 지칭에 관한 언명(R2, R3) 혹은 진리에 가깝다 는 것에 관한 언명이 우연적인 사태에 관한 설명에서 기능한다 는 사실에서 <‘ 진리’ 와 ‘지창 의 개념은 인식론에서 인과적인 설명을 위한 역할을 한다〉 5) 는 것이 성립된다. 우리는 일거에 인 식론과 의미론을 〈자연화〉했으며, 게다가 과학의 성공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더욱이 실재론이 과학이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이유롤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온 과학이 참된(혹은 참에 가까운) 이론의 산출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실재론자들의 규범적인 주장 에 대해 강한 논거를 제공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5) Putn am, 1978, p. 21. 보이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과학적 실재 론은 이론적 실재에 대한 존재론적 관여의 정당성을 위한 설명을 제공 한다〉 (Pu tn am , 1978, p. 2, n. 10). 이들은 이론적 실재를 포함하는 이론이 왜 그렇게 잘 작용하느냐 하는 물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왜냐 하면 그런 실재가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에 .

우리 앞에 놓인 핵심적인 문제는 진리, 지칭, 성공 둥의 상 호관련성에 대한 실재론자들의 주장이 올바르냐 하는 것이다. 이 장에서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논증 (I )과 (Il )에 대해 의문 을 제기하는 것이다. 특히 내가 보기에는 위의 다섯 가지 전제

중 네 가지가 잘못되었거나 너무 애매해서 받아들이기 힘들다. 나는 그 전제들이 참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거기서 이끌어낸 실재론자들의 결론을 보증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힐 것이다 . 2 절 부터 4 절까지는 첫번째 논증을 다루고 5 절에서는 두번째 논증을 다루도록하겠다.

2 지칭과 성공 실재론에서 경험적 논증이 갖는 특별한 지칭적인 측면은 주로 퍼트남에 의해 전개되었다. 그는 어떤 실재론자보다 지칭에 관 해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부분의 실재론자 들이 〈세계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성공적인 이론에 의 해 요청된 것과 매우 유사한 실재를 포함할 것이다〉라고 하는 (궁극적으로 지칭에 관한) 테제에 동의하고 있기 때문에, 지칭 은 대체로 암묵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형편이다. 만일 R2 가, 지칭이 과학의 성공을 설명할 수 있고, 과학의 성공이 추정에 의거하고 있는 R2 의 진리를 확립해 준다고 하는 퍼트남의 생각을 만족시켜 준다면, 그는 아마도 다음과 같은 주 장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SI ) 진보한 혹은 성숙한 과학 안에서 이론은 성공적이다 . S2) 그 중심적인 명사가 실제로 지칭을 하고 있는 이론은 성공적인 이론일 것이다. S3) 만일 어떤 이론이 성공적이라면, 우리는 그 중심적인 명사가 실 제로 지칭을 하고 있음을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 . S4) 성숙한 과학에서 이론의 핵심적인 모든 명사는 지칭을 한다.

여기에는 복잡한 상호관련성이 있다. S2 와 S4 는 Sl 을 설명하 고, Sl 과 S3 은 S4 를 보증해 준다 . 지칭은 성공을 설명해 주고 성공은 지칭의 추정을 보증해 준다. 전제가 주어져 있는 상태에 서 이 논증은 그럴듯하게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문제가 있 댜 Sl 의 예의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들 전제 중의 어느 것도 받 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우선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실재론자들이 설명하려고 하는 성공의 본질을 해명하는 일이다. 퍼트남, 셀라스, 보이드 등이 특정 과학(예를 들면, 물리학이나 천문학)의 성공을 주어진 것으로 여기긴 했지만, 이들은 이런 성공이 무엇에 해당하는지 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한, 이 들은 작용 가능성이나 적용 가능성과 같은 말로 대치할 수 있는 프래그머틱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 이럴 경우 이론은 본질적으 로 올바른 예측을 하거나, 자연의 질서에 효과적으로 개입할 수 있을 때, 혹은 표준적인 테스트를 거쳤을 경우 성공적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성공적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에 해당하는 것인지 좀더 자세히 알았으면 좋겠지만, 확증에 관한 정합설의 결여와 실재론자들의 계속적인 침묵은 그 이상의 것을 알기 어 렵게 만들고 있다 . 실재론자들은一―초屋국한 그들의 의도를 위해서 -너무 강 한 성공 개념을 채택하게 되지나 않을까 우려하고 있음에 틀림 없다 . 성공에 대한 지나치게 엄격한 해석은 실재론자들의 의도 를 무산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실재론자가 설명하려고 하는 것 온 결국 과학이 일반적으로 잘 작용하는 이유이다. 만일 실재 론자가 우리가 방금 요구한 정도의 성공 개념을 채택했다면(귀 납 논리주의자나, 포퍼주의자에 의해 옹호되고 있는 것과 같은), 과· 학은 대체로 성공적이지 못한 것으로 드러날 것이고(왜냐하면

대부분의 과학 이론은 확증을 별로 얻지 못할 것이고, 포퍼주의자의 엄격한 테스토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재론지-들이 인 정하는 피설명항 ex p lanandum 은 사이비 문제가 될 것이다. 따라 서 나는 이론이 합리적으로 잘 작용하는 한, 다시 말해서 다양 한 설명 문맥에서 기능하며, 몇 가지 확증된 예측으로 나아가 고, 폭넓은 설명 범위를 갖는 한, 그 이론은 성공적이라고 가 정한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실재론자들의 관심은 왜 어떤 이 론이 이와 같은 식의 성공적인 이론이 되느냐 하는 것을 설명 하는 일이다. 우리가 성공을 이와 같이 해석한다면, Sl 은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성공의 기준이 폭넓은 설명 범위를 갖는 것이냐, 많은 확증 사례를 가지고 있는 것이냐, 아니면 조작적이거나 예측적 인 통제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냐에 관계 없이, 과학이 전반 적으로 성공적인 행위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S2, 죽 지칭적인 명사를 가지고 있는 이론이 성공 적인 이론이 될 것이라는 주장은 어떨까? 비록 이것이 〈지칭이 성공을 설명해 준다〉는 실재론자들의 주장에 대한 자연스러운 해석이라 하더라도 어떤 실재론자가 여기에 동의를 표할지 모르 겠다. 여기서 언급된 지칭이라는 개념은 매우 복잡하고 중요한 면에서 불만족스럽다. 이 개념에 동의하진 않지만 앞으로의 논 의에서 자주 이 개념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실재론자들의 지칭 의 의미는 좀더 자유스럽다. 그에 따르면 이론이 지칭하고 있는 실재에 관한 주장이 대부분 거짓이라고 하더라도 그 이론 내의 명사는 실제로 지칭적일 수 있다. 이론의 기술과 거의 맞아떨어 지는 실재가 있다고 가정하면, 지칭에 대한 퍼트남의 관대한 설 명은 한 이론의 명사가 실제로 지칭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 는 여지를 남긴다선 따라서 (다음은 퍼트남의 예인데), 보어의

6) 실재론에 관한 퍼트남의 초기 해석을 사용하느냐 아니면 후기의 해석을 사용하느냐 하는 것은 이 책의 중심적인 논증과는 상관이 없다.

〈전자〉, 뉴턴의 〈 질 량〉, 멘델의 〈유전자〉, 돌턴의 〈원자〉는 모 두 지칭적인 명사인데 반해, 〈열소〉와 〈에테르〉는 지칭적인 명 사가 아니다 . 7 )

7) Putn a m, 1978, pp. 20-22 .

실제로 지칭적인 이론(즉 그 이론의 중심적인 명사가 실제로 지칭 을 하고 있는 이론)이 S2 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경험적인 수준에 서 언제나 혹은 일반적으로 성공적인가? 분명히 그렇지 않다고 하는 증거가 있다. 18 세기의 화학에서 원자이론은 별로 성공적 이지 못해서 대부분의 화학자들이 그것을 포기하고 더 많은 현 상을 설명해 주는 친화력 이론을 택했다. 무거운 원소의 원자는 수소 원자로 되어 있다는 프라우트託꾀(윌리엄 프라우트는 1815 년 원자 구조에 관하여 소위 프라우트의 가설을 제안했다 . 그는 당시에 알 려진 원소의 원자량이 대부분 근사적으로 정수이었기 때문에 각 원소의 원자는 수소 원자로 구성된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 역주)의 이론은· 19 세 기 내내 별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심한 반대에 부딪쳤다. 지구 표면을 수평으로 움직이는 지표 밀의 거대한 물체에 의해 대륙이 이동한다는 베게너 We g ener 의 이론은 1960 년대와 1970 년대에 들어 수정을 거치면서 지질학의 정통 이론이 되기까지 약 30 년 동안 지질학사에서는 대단히 성공적이지 못한 이론으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이 이론들은 모두 (퍼트남의 〈자비의 원리〉에 따라) 실제로 존재하는 기본적인 실재를 가정했다. 지칭적인 이론은 경험적으로 성공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실재론자들의 주장은 틀린 것이다. 잠시만 생각해 보더라도 그 것이 틀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지칭적 인 이론을 갖는다는 것은 〈세계를 마디에 따라 나누는〉 이론, 죽

실제로 존재하는 실재를 요청하는 이론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 러나 실제로 지칭적인 이론이 그런 실재의 속성이나 상호작용에 관해 주장하는 것이 모두 참일 수는 없다. 돌턴의 이론에서는 원자에 관한 틀린 주장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고, 보어의 초기 전기 이론도 중요한 면에서 많은 결함을 안고 있다. S2 와는 반 대로, 실제로 지칭적인 이론이 반드시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그런 이론들은 틀릴 수 있기 때문이다(죽 진리 내용보다 훨씬 거 짓된 내용을 담고 있다). S2 는 분명히 옳지 않다. 실재론자의 입장에서 그것을 계속 붙 들고 있을 필요가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S2 를 버린다면 실 재론자들은 어떤 입장을 취할 수 있을까? (퍼트남과 같은) 실재 론자는 이론의 명사가 갖는 지칭을 그 이론의 성공을 설명하는 기능으로 보려고 한다. S2 는 그와 같은 주장의 가장 단순한 형 태라고 할 수 있다. 그보다 좀 약한 형태로서 디옴꾀- 같은 주장 이 가능할 것이다. S2') 지칭적인 명사를 가지고 있는 이론은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 지만) 보통은 성공적이다 . 성공적이지는 못하지만 개별적인 지칭의 사례를 담고 있는 이 론은 S2’ 에는 상처를 내지 않은 채 S2 를 거부하기에 충분하다. 그렇지만 폭넓은 지칭 영역을 가지고 있으면서 성공적이지 못한 이론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S2’ 를 반증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 런 이론은 마음대로 만들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실제 로 지칭적이라고 생각하는 명사의 집합을 생각해 보자. 어떤 언 어이든지 비실재하는 것들을 풍부하게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이 론의 기본적인 명사들이 실제로 지칭을 하고 있는 성공적이지

못한 이론을 구성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그러면 실 재론자들은 그런 이론은 진짜 이론이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런 이론은 진짜 이론이 보여주는 개념적인 조화를 결여한 개 별적인 언명들의 연언(連言)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진짜 이론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예 룰 들어서 진짜로 성공적인 이론이 출현하기까지 약 2 CXX)년에 걸쳐 얼마나 많은 잘못된 원자론이 나타났었는지를 생각해 보 라 . 1820 년대에 빛에 관한 성공적인 파동설이 최초로 출현하기 까지 얼마나 많은 파동설의 해석이 실패했었는가를 생각해 보 라. 17, 8 세기의 열운동론과 19 세기 말까지의 발생학의 발달 이 론도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S2' 도 S2 와 마찬가지로 역사 적안 기록에 부합하는 것 같지 않다. 리 처 드 부리 언Ri chard B uri an 이 내 게 지 적 해 준 바와 같이 (개 인 적인 서신을 통해서), 실재론지들은 7 이 테제들을 버리고 S3 만으 로 만족하려는 것 같다. S2 나 S2’ 와는 달리, S3 는 지칭적인 이 론이 종종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반박을 받지 않는다. 지칭적인 이론이 언제나 혹은 일반적으로 성공적이라고 주장하지 않기 때 문이다 그러나 S3 는 나름내로 난점을 안고 있다. 먼저 S3 는 상 대적으로 성공적인 많은 이론들(예를 들면 에테르 이론이나 열소설 등)의 중심적인 명사가 분명히 비지칭적이라는 사실과 조화되기 어렵다(이하에서 나는 이러한 긴장을 자세히 다루었다). 여기서 우 리가 볼 때 더욱 중요한 점은 S3 가 성공을 설명하기 위해 실재 론자들이 지칭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줄 정도로 충분치 못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칭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모든 혹은 대부분의 지칭적인 이론이 성공적이라는 것을 포함하지 않고서는, 어떤 이론의 명사가 지칭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이론의 성공을 설 명해 준다고 보기 어쉽다. 만일 S3 이 말하고 있는 대로, 많은

(혹은 대부분의) 지칭적인 이론이 성공적이지 않을 수 있다면, 성 공적인 이론의 명사가 지칭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어떻게 그 이 론이 성공적인 이유를 설명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겠는가? S3 는 참일 수도 있고 참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이든 그것은 실재론자에게 과학적 성공에 대한 설명력을 제공하지 못 한다. 지칭이 과학의 성공을 설명하는 데 역할을 한다는 퍼트남의 주장은 간접적인 논증의 형태를 취할 때 더욱 그럴듯하게 보인 다. (퍼트남도 이와 같이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론이 참이거나 참에 가깝다고 전제함으로써 그 이론이 성공적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이론은 그 이론을 구성하는 명사가 실제로 지칭을 하고 있을 경우에만 참이거나 참에 가까울 수 있기 때문 에(실재론자들이 생각하는 참의 의미에서), 지칭은 우리가 한 이론 의 진리 (같은) 상태를 통해 그 이론의 성공을 설명할 때, 어찌 되었든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지칭은 진리 근사치에 업혀 있는 셈이다. 이런 간접적인 접근의 실행 가능성 에 대해서는 3 절 이하에서 길게 다루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자세 히 다루지 않겠다. 다만, 만일 지칭과 성공의 유일한 접점이 진 리 근사치의 매개를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면, 지칭과 성공의 고리는 매우 보잘것이 없다고 할 수밖에 없음을 주목하고 넘어 가도록하자. 성공이 지칭에 관한 합리적인 추정을 낳는다는 실재론자들의 주장, S3 는 어떨까? 우리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S3 는 과학 의 성공을 설명해 주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나름대로의 장 점을 갖는다고 할 수는 없을까? 문제는 한 이론의 성공이 그 이 론의 중심적인 명사가 지칭을 하고 있다는 결론을 보증해 주느 냐 하는 것이다. 어떤 실재론자가 주장한 것처럼 이 질문은 경

험적인 만큼,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탐구를 요구한다. 즉 성공 적이었던 과거의 이론들이 실제로 지칭(지칭에 대한 실재론자들 자신의 설명에 따라서)을 하고 있는 명사를 중심으로 한 이론이냐 하는 것이다. 이 가설을 경험적으로 올바로 테스트하려면 엄청난 역사적 자 료를 조사해야 한다 .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한때 성공적이었지 만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 비지칭적인 이론의 범위를 밝히는 것이다. 이에 관한 자세한 목록은 나중에(꾹길에서) 제시된다. 지 금은 18, 9 세기의 물리학과 화학의 유체와 에테르 등 서로 관련 된 이론들 전체에 초점을 맞추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 특히 1830 년대와 1840 년대의 에테르 이론의 지위를 생각해 보 자. 일반적으로 물체의 작은 틈새로 스며들지 않고 표면에 축적 되는 실체로 가정된 전기 유체는 반대 전하가 걸린 물체가 서로 끌어 당기 는 현상이 라든가, 라이 덴 병 Le y den j ar( 유리 병의 밑 및 측 면의 안팎 양면에 주석종이룰 바른 축전기. 뚜껑의 중앙을 통하여 넣 은 금속 막대기의 끝에 금속 사슬이 달려 있고, 이것이 밑바닥의 주석 종이에 접촉되어 있음. 유리에는 절연성을 높이기 위하여 보통은 셰락 둥을 발라 둔다. 1746 년 라이 덴 대 학의 무센브뢰 크P. van Musschenbroek 가 처음으로 이것을 써서 방전 실험을 했고, 같은 시기에 독일의 클라 이 스트E. G. von Kleis t.5:. 이 장치를 고안했다 : 역 주)의 작용, 공중 전 기와 정전기의 유사점, 그리고 정전기에 관한 많은 현상을 설명 하는 데 이용되었다 . 화학과 열이론의 영역에서는 부르하페 Boer­ haave 이 래로(라브와지에, 라플라스 La p lace, 블랙 Black, 럼포드 Ru mford , 휴턴 Hu tton, 카벤디시 Caven dish 둥에 의해) 화학 반응에서의 열의 역할에서부터 열의 전도와 복사, 온도 측정학의 몇 가지 표준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설명하기 위해 열 에테 르가 사용되었다. 빛에 관한 이론의 영역에서는 반사, 굴절, 간

섭, 이중 굴절, 회절, 편광 등을 설명하는 데 광학 에테르가 중 심적인 기능을 했다(광학 에테르 이론은 놀랄 만한 예측을 하기도 했 다 . 예를 들어 프레스넬이 원형 디스크의 그림자 중앙에 있는 밝은 점 을 예측한 것은 테스트를 통해 입증됨으로써 놀라움을 안겨줬다 . 만일 그런 것을 경험적인 성공으로 볼 수 없다면 , 성공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또한 (르사즈 등의) 중력 에테르와 (하틀리 등의) 생 리학적인 에테르가 있었는데 이것들도 어느 정도의 경험적인 성 공을 거두었다. 이 시기에 에테르 이론만큼 성공적인 이론군은 찾기 힘들 것이다. 이와 비교해서 (예를 들어 실재론자의 입장에서) 실제로 지칭적인 이론인 19 세기의 원자론은 형편없는 실패작이 었다. 경험적인 성공을 어떻게 설명하건, 비지칭적인 19 세기의 에테르 이론은 같은 시대의 지칭적인 원자론보다 훨씬 성공적이 었다. 위대한 이 론 물리학자 맥스웰J. C. Maxwell 을 생각해 보더 라 도 에테르가 자연철학의 다른 어떤 이론적 실재보다 더 찰 확증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 세기의 에테르 이론을 통해서 우리가 직면하게 된 것은 한 때 성공적이었던 매우 다양한 이론들이 있고, 퍼트남은 그 이론 의 중심적인 설명 개념을 비지칭적인 것의 모범적인 사례로 골 라내고 있다는 것이다 .8) 이런 역사적인 사례를 실재론자들은 어 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여기서 실재론에 대한 두 가지 도전이 제기된다. 1) 이런 역사적인 사례는 비지칭적인 명사를 가지고 있는 매우 성공적인 이론이 있을 수 있다(있어 왔다)는 점에서 S3 가 모호한 주장임을 보여준다. 2) 이런 역사적인 사례는 과학 의 역사적인 성공의 일부가 비지칭적인 명사룰 가지고 있는 이 론에 의해 드러난 성공이었다는 점에서, 실재론자들이 과학의

8) 위의 책, p. 22.

성공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실재론자들이 성공적인 이론의 모든 중심적인 명사가 지칭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고 주장하면 공정치 못할 것이다. 예 를 들어 퍼트남이 〈성숙한 혹은 성공적인 과학 내부의 명사는 일반적으로 지칭을 한다〉 9 ) 고 했을 때, 이 말은 성공적인 이론이 나 과학의 어떤 명사가 실제로 지칭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 는 것일 수도 있다 . 이러한 주장은 어떤 성공적인, 성숙한 과학 (예를 들면 19 세기 물리학) 내부의 어떤 다른 명사(예를 들면 에테 르 같은)가 비지칭적이라는 사실과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 바꾸 어 말해서 실재론자는 어떤 이론의 성공이 최소한 그 이론의 어 떤 중심적인 명사(모든 명사는 아니더라도)가 지칭을 하고 있다는 주장을 보증해 준다고 주장하는 것일 수 있다.

9) 위의 책 , p. 20.

유감스럽지만, S3 의 이러한 약화는 실재론자들에게 별로 위 안을 주지 못하는 증거를 통한 지지 이론을 수반한다. 실재론자 를 실증주의자와 구별시켜 주는 것은 어떤 이론의 증거가 그 이 론이 주장하는 모든 것에 대한 증거가 된다는 실재론자들의 신 념이다 . 실증주의자들은 전형적으로 증거가 한 이론의 관찰 가 능한 부분만을 선별적으로 확증해 준다고 주장하는 데 반해, 실 재론자들은 (보이드의 말을 빌리면) 어떤 과학의 법칙이나 이론을 수락하는 데 중요하게 여겨지는 중거가, 문제되고 있는 법칙이 나 이론 안에서 양화된 실재 <‘ 관찰을 통한 실재이건 이론적인 실재이건’ > 사이에서 얻어지는 인과관계에 대한 설명으로서의 법칙이나 이론의 (최소한 근사적인) 진리에 대한 증거가 된다고 주장한다 .10) 보이드 같은 실재론자에게 있어서 어떤 이론의 모

IO) Boyd , l'T7 3 , p. l. 보이드는 또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p .3) . 〈어떤 이론의 실험적 중거는 비-관찰적인 법칙의 진리에 대한 중거가 된다. >

또한 Sellar s, 1963, p. (J'7 참조 .

든 부분(관찰적인 측면과 비관찰적인 측면 모두)이 성공적인 테스 트에 의해 확증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확증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일반적으로 실재론자들은 잘 테스트된 이론 의 낮은 수준의 주장뿐 아니라 그 심층적인 전제까지도 확증된 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다양한 전체론적 논증을 사용하려고 했 다. 이런 전술은 좋은 효과를 보았다. 실재론자들은 귀납적인 지지가 우리 이론의 가장 이론적인 부분을 확증하기 위해 〈 위 를 향해 올라간다〉고 주장했다. 위 에 언급된 S3 의 약화는 실 재론자에게 한 이론의 심층 구조에 대한 실재론적 해석을 보 증해 주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실재론 자체에 대한 파멸이 될 수도 있다 .11)

11) 나중에 등장한 (글리무어 Gl yrn our 같은) 실재론자는 이와 같은 전체론 적 구도를 깨고 이론의 어떤 구성 요소는 직접 테스트될 수 있다고 주장 했다 . 이런 접근은 그것이 어떤 장점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 실재론자들 이 가장 원하는 것을 근절해 버릴 위험을 안고 있다. 죽 우리가 심층 구 조 이론을 진지하게 다루는 근본적인 이유. 지칭과 성공을 연결시키는 것에 대한 정당화 작업을 무효화 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이론 에 대한 테스트가 그 이론의 부분에 대한 테스트에 그친다면. 매우 성공 적인 이론이라 할지라도 그 이론은 비지칭적인 중심 명사를 갖는 이론일 수가 있고. 테스트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진리에 가깝다고 믿을 만 한 정당한 근거를 댈 수 없는 주장을 담을 수도 있다 . 이런 상황에서 어 떤 이론은 대단히 성공적이면서도 분명히 거짓된 요소를 포함하고 있을 수 있다 이런 사태는 성공이 근사적인 진리를 나타내준다는 실재론자들 의 가정 (RI) 을 못 쓰게 만들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이론의 테스트에 관 해서 전체론자가 되지 않는 것은 실재론자들에게 많은 동기를 부여하고 있는 심층 구조에 대한 편애 자체를 위기에 빠뜨리는 것이다.

이렇게 인식론적 실재론을 약화시키게 되는 더욱 심각한 장 애물이 있다. S3 를 어떤 이론 내부의 특정 명사에만 적용시키는 정도로 약화시킴으로써 그것을 분명한 반증 사례로부터 벗어나

게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런 전술은 다른 중심적인 실재론적 테제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론간의 관계에서 나오는 보존적 성격에 관한 실재론자들의 테제 R3 를 생각해 보자(이것 은 이하에서 자세히 다루었다). 실재론자들은 7 성공적인 이론이 성 공적인 선행 이론의 중심 명사가 가진 지칭기능을 보존하는 이 론에 의해서만 합리적으로 대체 가능하다(대체되어야 한다)는 것 을 정책과 주장의 문제로서 그리고 사실의 문제로서 제시한다. 이런 주장의 규범적 해석에 대한 근거는 선행 이론의 명사가, 그 것이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틀림없이 지칭적이었을 것이며, 따 라서 그 이론을 계승하는 데 대한 제약은 그런 명사의 지칭 기 능이 보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공이 지칭의 추정에 대한 일괄 보증을 할 경우에만 이해된다. 그러나 S3 가 성공적인 이론 안의 어떤 명사들만이 실제로 지칭을 한다고 가정하는 것 이 합리적이라는 식으로 약화된다면, 실재론자는 수십 년 동안 이론 상호 간의 관계에 대한 실재론적 견해에서 중심적인 지주 역할을 했던 자신의 보존 테제 (R3 의 형태)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 를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12)

12) 여기에는 주의할 점이 있다. 어떤 이론의 모든 중심 명사들이 지칭적 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계승하는 모든 합리적인 이론이 선행 이론의 모 든 중심 명사를 보존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치 않다.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생각해 보자. 새 이론의 적용 범위가 선행 이론의 적용 범위보다 좁은 데도 불구하고 새 이론이 선호되는 경우이다. 법위가 그렇게 한정되어 있다면. 선행 이론에서 나타났던 어떤 실재들에 대한 지칭이 누락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

분명히 이야기해 보자. R3 를 허용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강한 R3 에 대한 해석은 많은 성공적인 이론이 비지칭적인 중심명사 룰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과 양립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 나 R3 를 약화시키게 되면, 이론 상호 간의 관계에 있어서의 수

렴과 보존, 대응에 관한 실재론적 주장의 힘을 희석화시키거나 근거를 없애버리게 된다 .13) 실재론자가 성공적인 이론의 어떤 설명되지 않은 명사의 집합이 지칭적인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 을 받아들인다면, 〈후보 이론의 집합〉을 선행 이론의 지칭적 명 사의 지칭 기능을 유지하는 이론에 제한시키자는 그들의 제안은 근거를 잃게 되는 것이다 . 1 4 )

13) 퍼트남과 보이드의 경우 롤 보면 다음과 같다 . 〈 T ' 가 다음과 같은 속성 울 가져야 한다는 것이 T'( 죽 어떤 영역에서의 새 이론)에 대한 제약 조 건이다. 죽 그것의 관점에서 우리가 T( 죽 같은 영역의 선행 이론)의 명 사에 대한 지시체를 할당할 수 있는 속성을 가져야 한다〉 (Pu tn am, 1978, p, 22). 보이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1 973 , p. 8) 〈새 이론은 이론 적 실재의 인과적 관계에 대한 설명에서 현재의 이론과 비슷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중요하다〉 . 14) Putnam, 1975, p. 22.

더욱 일반적으로 말하면, 지칭과 성공 사이에 놓여 있는 연 결 고리는 퍼트남과 보이드의 논의가 말하는 것보다 훨씬 애매 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실재론자가 CER 을 자기의 것으로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지칭 R2 보다는 근사적인 진리 Rl 에 달 려 있을 것이다. 3 근사적인 진리와 성공 : 아래로 향한 길 최근의 특정 실재론자들 사이에서 일어난 지칭에 관한 문제 룰 무시한 채, 대부분의 실재론자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 댜 기본적으로 인식론적 실재론은 성공적인 과학 이론이 완전 히 틀린 경우라 하더라도 〈근사적인 진리이거나〉, 〈진리에 가까 이 있거나〉, 〈거의 진리와 같다〉고 보는 관점과 연관되어 있다 는 것이다 .15) 이 주장은 다음과 같이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5) 이런 관점의 간단한 예를 위해서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해 보~t . 〈과 학에 관한 실재론적 존재론의 주장은, 과학의 모델이 성공적으로 기능하 는 이유를 설명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모델이 대상에 근접해 있다는 것이다 . 〉 (McM ullin , I

Tl) 만일 어떤 이론이 진리에 가깝다면, 그 이론은 설명도 성공적으 로 해낼 것이다 . 그리고 m) 만일 어떤 이론이 성공적인 설명을 해낸다면, 그 이론은 아마도 진리에 가까울 것이다 . 실재론자들이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물론 다음과 같을 것이다 . Tl') 만일 어떤 이론이 참이면, 그 이론은 성공적일 것이다 . Tl’ 은 자명한 만큼 매력적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실재론자들 은 Tl’ 은 피하려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떤 주어진 과학 이론 이 참이라고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단언하는 것을 꺼리 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실재론자들이 설명할 수 있는 모든 것 이 단순히 참인 이론의 성공이라면, 그의 설명 레퍼토리는 대단 히 제한될 것이다. 더 넓은 설명 범위를 향한 일보로서, Tl 이 더 호소력이 있다 . 우리가 틀렸다고 믿고 있는 많은 이론들(예 를 들어 뉴턴 역학이나 고전 열역학, 파동 광학 동)~ 생각 · 건대, 폭넓 온 적용 영역을 가로질러 대단히 성공적인 것이었다(그리고 지금 도 성공적이다).

실재론자는 그런 이론이 진리에 가깝다고 가정함으로써 그런 프래그머틱한 성공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같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술책에 조심해야 한다. 성공과 근사적인 진 리 사이에 관련성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관련성이 있 다면, 각각 독립적으로 논증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Tl 을 확 립하기 위해서 Tl’ 의 논증 불가능한 특성이 몰래 불러들여져서 는 안 된다. Tl’ 의 전건(前件)이 근사적인 진리를 말하는 것으 로 약화된다면, Tl 이 건전하다는 것도 결코 분명하지는 않다. 인식론적 실재론을 옹호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생 각한다 . 죽 만일 어떤 이론이 근사적인 진리라고 하면 거기서 연역적으로 그 이론이 객관적인 현상에 대해 상대적으로 성공적 인 예측을 하고 설명을 해준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 나 유감스럽게도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어떤 언명이나 이론 이 〈근사적인 진리〉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의한 사람은 거의 없다. 따라서 주장된 함의가 진짜냐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이러한 제한은 형식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론이 근사적인 진리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한 가장 잘 알려진 설명에 기초하더라도, 거기서 참에 가까운 이론이 성공적인 설 명을 해낼 것이라는 사실은 따라나오지 않는다. 예를 들어 포퍼주의자의 방법을 빌려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 해 보자. 만일 어떤 이론 Tl 의 참인 내포가 거짓 내포보다 크다 면, 다시 말해 만일

Ct(T ,)>> O (Tl)16)

16) 포퍼는 언제나 실제 역사적인 이론들이 언제나 늘어나기만 하는 진리 의 내포를 보여준다고 주장하지 않도록 조심했다(예외를 보려면 Pop per,

1%3, p. 2 20 참조) .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다지 주의깊지 못했다 . 뉴 턴-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성숙한 과학 의 이론의 연속은 거짓 내포의 증가 없이 참인 내포의 증가만을 가져오 는 성공적인 이론의 연속이다〉(근간 p. 2).

이면 Tl 은 근사적인 진리이다. 여기서 C t (Tl) 은 T1 에 의해 함의 된 참인 문장의 집합의 기수 (基數 )이며 C tr (Tl) 은 Tl 에 의해 함 의된 거짓인 문장의 집합의 기수이다. 근사적인 진리가 이런 식 으로 해석된다면, 이론의 함의에서 임의로 추출해 낸 집합(죽 관찰 가능한 결과의 집합등)이 참일 것이라는 사실은 논리적으로 따라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이론이 위에 지적된 의미에서 근사적인 참일 수 있지만 그것을 계속해서 테스트할 때 나오는 결과는 모두 거짓일 수 있다는 주장이 성립된다 . 17 )

17) 더 기술적인 측면에서. 니니루토 N iinil uo to는 이론의 확증 정도는 〈평가 상의 진리박진성〉에 따라 변한다는 것을 밝혔다(1 977 근간). 〈평가상의 진리박진성〉이라는 것은 한 이론(의 내용)이 우리가 지금까지 발견할 수 있었던 최상의 개념 체계라고 여기고 있는 것과 얼마나 밀접하게 상옹하 느냐에 대한 척도아다 (Ni inil uo to, 1980, pp. 443 이하) . 니니루토가 제시 한 척도가 옳다면 . 위에 언급한 공변성으로부터 경험적으로 성공적인 이 론은 높은 정도의 평가상의 진리박진성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 댜 그러나 평가상의 진리박진성과 실제로 진리에 가깝다는 것은 필연적 유인 용관한계 에개 념놓 체여 계있에지 의않존기하 고때 문있에다() 평. 가니상니의루 토진가리 박주진장성하듯온이 현 존찰 증확증거된와 이론의 지속적인 성공이 . 실제로 그 이론이 최소한 관련된 측면에서나마 진리에 가깝다는 가설에 의해 설명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남는다. 내 가 잘못 생각한 것이 아니라면. 이것은 (우리가 인식론적으로 접근해 들 어갈 수 없는) · 〈평가상의 진리박진성〉을 혼동한 것이다.

어떤 실재론자들은 자신들이 근사적인 진리나 진리박진성( 眞 埋 迫 眞 性, ve risimilitude)(이 개념은 특히 번역이 까다로운데 경우에 따라서 는 진리 근사성, 진리 접근성 등의 번역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실재론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인 진리에 계속 접근해 간다는 의미에서

얼마나 가까이 진리에 근접해 있는가를 말할 때 사용되는 개념이다. 여 기 서 근사적 인 진 리 app ro x ima te truth, 진 리 근접 성 truthlik eness 과 큰 의 미 차이는 없다고 본다 : 역주)에 대한 정합적인 개념을 내놓지 못 한다는 것을 시인한다 . 그러나 그들은 그런 실패가 Tl 의 실행 가능성을 손상시키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뉴턴-스 미스는 〈그 누구도 진리박진성의 개념에 대한 만족할 만한 분석 울 내놓지 못했다〉고 시인한다. 그러나 그는 〈당시에 그에 대한 철학적으로 만족할 만한 분석을 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18) 그 개 념은 정당하게 불러들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 그는 많은 과학적 개념들이 철학적으로 정합적인 분석이 주어지기 훨씬 전부터 성 공적인 설명을 해왔다고 올바르게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유비는 부적당한 것 같다. 여기서 문제되고 있는 것은 근사적인 진리의 개념이 철학적으로 엄격하냐 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설명하고 있는 것을 함의하고 있는지 우리가 확인할 수 있울 정 도로 분명하냐 하는 것이다. 이보다 더 분명한 근사적인 진리에 대한 분석이 나오기 전에는 진리 접근성이 성공을 설명해 주느 냐 하는 것은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뉴턴-스미스가 주장하고 있듯이 〈진리 근접성의 개념이 과학적 기획의 한 측면에 대해 성공적인 이론적 설명을 부여하려고 요구된 것이냐〉 하는 것도 더 말할 나위없이 불분명한 것이다回 과학의 성공에 관한 〈기 적〉(퍼트남)이나 〈신비〉(뉴턴-스미스 )20) 를 비신화화하려는 실재론 자에게는 언젠가 누군가가 어떻게든 참에 가까운 이론이 성공적

18) New ton-Smith, 근간. 19) 위의 책. 20) 뉴턴-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 시간의 경과에 따라 증가하는 과학의 예측적 성공은 〈이론이 세계에 관한 진리를 점점 더 많이 파악해 간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불가사의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근간 p. 15).

인 이론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밝힐 것이라는 약속어음 이상의 것이 요구된다 .2 1)

21 ) 내가 근사적인 진리와 예측적 성공 사이에 관련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해야 할 것 같다 . 나는 단지 실재론자들이 그 관련성을 밝히기 전까지는 실재론이 과학의 성공 울 설명할 수 있다는 그들의 주장에 관해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 이다.

진리에 가까운 이론이 성공적인(지금까지는 실패했지만) 예측을 할 수 있다는 것을 포함하는 근사적인 진리에 대한 정의가 있는 지 불분명하다 .22) 말할 수 있는 것은 아직 어떤 실재론자도 참 에 가까운 이론이 우리가 테스트하는 전영역에 걸쳐 성공적인 예측을 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포함하는 근사적인 진리에 대 한 정합적인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어려운 점은 많이 있다 . 실재론자가 근사적인 혹은 부분적인 진리에 관 한 의미론적으로 올바른 설명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의미론이 근사적인 진리 이론의 대부분의 결과가 참일 것이라는 것을 포 함한다 해도, 실재론자는 여전히 근사적인 진리의 원인을 이론 에 돌릴 수 있는 기준을 갖지는 못한 것이다 . 그렇기 때문에 실 재론자는 근사적인 진리에 관한 의미론이나 인식론은 결여한 채 직관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실재론자들의 의제에서 긴급한 항목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근사적인 진리에 대한 정합적인 설명을 얻기 전까지는

22) 비실재론자는 한 이론의 관찰 결과가 모두 참이거나 진리치에서 어느 정도의 간격을 두고 있을 때 그 이론은 근사적인 진리라고 주장할 것이 다 . 이런 의미에서 〈근사적인 진리〉가 되는 이론들은 성공적으로 논증될 수도 있댜 그러나 이론에 대한 이론적 주장에 진지하게 몰두하고 있는 실재론자는 이런 식의 근사적인 진리에 대한 해석을 사용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 실재론자는 관찰적인 결과뿐 아니라 이론적인 결과도 근사적인 진리라고 말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Rl, Tl, 12 와 같은 중심적인 실재론의 테제는 단지 뜻모를 말 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4 근사적인 전리와 성공:위로 향한 길 논증을 계속하기 위해서 3 절에서 제기한 의문을 잠시 접어두 고 한 이론이 근사적인 진리이면, 그 이론은 성공적일 것이라는 것을 일단 받아들이도록 하자. Tl 을 인정한다고 해서 설명의 성 공이 근사적인 진리의 판단에 대한 합리적인 보증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m 의 주장도 신빙성을 갖게 되는 것일까? 그 대답은 부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왜 그런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실제로 지칭적인g en uin el y re f­ ferring〉과 〈근사적 인 진리 appro x imately true > 사 이 의 연관성 을 간단 히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근사적인 진리라는 것이 양해된다 하더라도, 실재론자는 이론의 중심적인 명사가 지칭에 실패할 경우 그 이론이 근사적인 진리라고 말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원자와 비슷한 실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떤 원자론도 근사 적인 진리일 수 없다. 미립자가 없다면 화학의 어떤 양자 이론 도 근사적인 진리일 수 없다. 간단히 말해서―~ 과학적 실재론자에게 있어서――이론이 진리에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필요조건은 그 이론의 중심적인 설명 명사가 실제로 지칭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물론 도구주의자는 한 이론의 직접 테스트 가능한 결과가 관찰 가능한 값에 가까울 때 그 이론은 근 사적인 진리라고 하는 약한 주장을 용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실재론자는 이론의 관찰 가능한 차원과 심층 구조적인 차원을 다 언급하는 근사적인 진리에 관한 주장을 받아 들여야 한다).

과학사룰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중심적인 설명 개 념을 놓고 보았을 때 성공적이면서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한) 비 지칭적인 이론이 무수히 많다는 것이다. 앞에서 이런 식으로 기 술할 수 있는 특정 이론군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거기에 주요 한 몇 가지 사례를 덧붙이도록 하자.

―의학의 체액 이론 一정전기의 방출이론 — (노아의) 대홍수와 관련한 지질학의 변동론 ―—화학의 열소설 ―열의 칼로릭 이론 ―열의 진동 이론 ―생리학의 생명력 이론 一 ― -순환관성 이론 ―자연발생론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는 이 목록은, 한때 성공적이었고 잘 확증되었으면서도 (오늘날 우리가 보기에) 비지칭적인 명사를 중 심으로 하고 있는 이론들을 보여준다. 과학사에서 성공적이었던 이론이 그 중심 명사와 관련하여 실제로 지칭적인 이론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마도 대단히 편협한 과학사(죽 오늘날의 이론과 유사한 지칭 기능을 갖추고 있는 과거의 이론만 골라 놓은)만을 공부했을 것이다. CER 의 옹호자들이 자신들의 분석이 성숙한 과학에만 적용된 다고 암시함으로써 빠져나갈 구멍을 미리 만들어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 다(예를 들면 퍼트남과 크라제프스키 Kraj e w ski) . 성숙한 과학 과 그렇지 못한 과학을 이렇게 구분하는 것은 실재론자에게 매

우 유용하다. 실재론자는 CER 의 경험적 주장에 대한 반증 사례 가 나올 경우 그것을 성숙하지 못한 과학에서 도출해 낸 사례라 고 함으로써 물리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분리 전략 은 두 가지 점에서 불만족스럽다 . 먼저 이것은 CER 을 공허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이들은 대체로 일단 〈성숙의 문턱을 넘어 서면〉 어떤 성공적인 이론 사이에서도 대응이나 제한-사례의 관 계가 얻어질 수 있는 과학을 성숙한 과학으로 보기 때문이다. 크라제프스키는 이런 관점의 동어반복적인 성격을 다음과 같이 인정하고 있다. 〈성공적인 이론들 사이에 대응관계가 성립한다 는 테제는 분석적인 것이 된다.〉 23)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과 학사에 의해 테스트될 수 있고 테스트되어야 하는〉 성숙성 테제 에 대한 해석이 있다고 믿는다. 그 해석이란 〈모든 과학의 영역 이 어떤 시기에는 성숙성의 문턱을 넘어선다〉 24) 는 것이다. 그러 나 이런 가설의 테스트 가능성이야말로 모호하기 짝이 없다. 이 가설을 반박한다고 생각되는 역사적인 관찰은 있을 수 없다. 어 떤 과학도 아직 〈대응적인〉 이론을 갖지 못했다는 것을 발견했 다 하더라도, 모든 과학이 대응적인 것이 될 것이라는 주장은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확증하는 일도 마찬가지로 어 려울 수밖에 없다. 선행 이론과 나중에 나온 이론의 대응관계가 존재하는 과학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그 관계가 그 과학 내의 계속적인 이론 변화에 적용될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해서 실재론의 경험적인 테스트 가능성은 그것을 성숙 한 과학에 제한시킴으로써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된다. CER 을 성숙한 과학에 제한시키는 것은 또다른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 실재론자들이 인정하는 목표는 결국 과학이 성공적인

23) Kraje w ski, 1977, p. 91. 24) 위의 책.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이 비실재론자들이 설 명하지 않고 남겨두었다고 주장하는 기적을 설명하는 것이다. 사실, 성숙하지 못한 과학을 포함해서 과학 분야는 오랫동안 성 공을 거두어 왔다. 위에 언급한 많은 이론들이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어떤 기준에 의해서건(생산성, 직관적으로 높은 확증 정 도, 성공적인 예측 등등) 경험적으로 성공적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만일 실재론자가 성숙한 과학이 어떻게 작용하느냐 하는 것만을 설명하는 데 그치려고 한다면(그리고 실재론자들이 보는 것처럼 성숙한 과학은 아직 거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라), 과학 일반이 성공적인 이유를 설명하려 했던 실재론자의 야심은 철저 한 실패로 끝날 것이다. 더욱이 위에 인용한 몇 가지 사례는 지 난 세기의 수리물리학의 역사(예를 들면 전자기 에테르와 광학 에 테르 등)에서 가지고 온 것이다. 그리고 퍼트남 자신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만일 어떤 과학이 ‘성숙한’ 과학으로 여겨 질 수 있다면 그것은 물리학이 될 것이다.〉 25) 실재론자들은 위 에 열거한 이론들의 중심 명사들이 실제로 지칭을 하지 않는다 고 주장하려 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위의 이론 중 그 어느 것도 근사적인 진리일 수가 없다(전자가 후자의 필요조건이라는 점 을 생각해 보라). 따라서 이런 사례들은 T2, 죽 근사적인 진리만 큼 성공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주장을 근본적으로 의심하게 만든다.

25) Putn a m, 1978, p. 21.

우리가 오늘날 실제로 지칭적이라고 믿고 있는 과거의 성공 적인 많은 과학 이론들 중에서 본래는 지칭적이지 않으면서 성 공적이었던 많은 이론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CER 의 옹호자가 경험론자라면, 이런 사례에 직면해서 m 의 튼

튼한 기초를 주장하는 데 대해 망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반층 사례를 비지칭적인 이론에만 제한시킬 필 요는 없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과거의 많은 이론들이 실제로 지칭적이기도 하고 경험적으로 성공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럼 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근사적인 진리라고 보기에는 상당히 망설 여진다. 예를 들어 대륙의 수평이동을 부정했던 1960 년대 이전 의 지질학 이론들을 생각해 보자 . 그런 이론들은 어떤 기준으로 도 대단히 성공적이었다(그리고 지칭적인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오늘날 그들의 이론을 구성하는 명사가-수평이동이 가능한 대륙에 대해서 처럼-참에 가깝다고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 가? 1920 년에서 1960 년 사이의 지질학자들은 지각 변동 구조의 기본적인 메커니즘에 대해 근본적으로 잘못 알고 있었지만 당시 의 구조지질학은 성공적인 과학이었던 것이 사실이 아닌가? 원 자핵이 구조적으로 같다고 생각한 1920 년대의 화학 이론은 어떤 가? 또한 물질이 만들어지거나 소멸되지 않는다고 가정한 19 세기 말의 화학과 물리학 이론은 어떤가? 실재론자들이 말하는 근사적 인 진리란 이와 같이 성공적이면서 분명히 틀린 이론적 가정들이 진리에 가까운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실재론자는 자연의 심층 구조적 특성에 관한 정확 성의 증가와 현상적인 설명, 예측, 조작 수준의 향상 사이에 필 연적인 연관성이 없다는 주장에 반격을 할 필요가 있다. 새 이 론 Tn 의 이론적 메커니즘이 To 의 메커니즘보다 목표에 접근한 것일 수 있지만, To 가 테스트 가능한 예측의 수준에서는 더 정 확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관찰 불가능한 주 장의 수준에서 진리에 가깝게 대응한다는 것이 실험적인 수준에 서의 정확성으로 반드시 나타난다는 논증이 없이는, 증가하는 심충 구조적 엄밀성이 실험적 정확성의 형태로 프래그머틱하게

나타나게 된다는 실재론자의 직관은 여전히 설득력이 없다고 할 수밖에 없다(증가하는 실험적 정확성이 이론적인 죽 심층 구조적인 수준에서 진리 근접성을 나타내준다고 하는 거꾸로 된 논증도 마찬가 지로 문제가 된다) .

5 수렵과보존의 혼동 지금까지의 논의에서는 CER 에 대한 정적이고 공시적(共時的) 인 해석만을 다루었다. 이 해석은 진리에 가깝다고 하는 것에 관한 상대적인 판단보다는 절대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수렴, 대응, 누적 등의 개념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고 하겠다. CER 의 통시적(通時的)인 해석의 옹호자들은 위의 논 의 (Sl-S4 와 Tl-12) 를 다음과 같은 형태로 보충하고 있다: Cl) 만일 과학적인 영역에서 선행 이론이 성공적이고, 실재론자의 원리(예를 들어 위의 S3) 에 따라 근사적인 진리라면, 과학자는 선행 이론의 올바른 부분을 보존하고 있는 나중에 나온 이론을 받아들여야 한다. C2) 사실, 과학자들은 Cl 의 전략을 채택하고 있으며 새롭고 더욱 성공적인 이론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C3) 과학자들이 더욱 성공적인 이론을 통해 선행 이론의 올바른 부 분을 보존하는 데 성공한다는 사실은 선행 이론이 실제로 지칭을 했으며 근사적인 진리였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Cl 에서 제시된 전 략은 건전하다 .26)

26) 내가 실재론자에게 돌리고 있는 이 논증이 모호하게 보인다면, 독자에 게 이 보다 더 분명한 논증을 찾아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입장의 분명한 정식화는 퍼트남, 보이드, 뉴턴-스미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마도 여기서 지배적인 견해는 퍼트남과 포퍼의 입장이 될 것이다. 그들에 따르면 성숙한 과학에서 합리적으로 보증된 계 승 이론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울 포함해야 한다. l) 선행이 론에서 분명히 지칭된 실재에 대한 지칭(가설을 통해서 선행 이론 의 명사가 지칭을 하고 있기 때문에), 2) 제한 사려]로서 선행 이 론의 〈이론적 법칙〉과 〈메커니즘〉 . 퍼트남이 말하고 있듯이 실 재론자는 이론 To 에 대한 어떤 실행 가능한 계승 이론도 〈 T o 의 법칙을 제한 사례로서 포함해야 한다.〉 27) 수렴이론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존 왓킨스Jo hnWa tkin s 는 이 점을 다음과 같 이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지배적인 이론이었던 T 가 T' 에 의 해 극복될 경우, T' 는 T 와 대응관계에 있게 되는(죽 T 가 T' 의 제한 사례가 되는) 것은 과학사에서 일반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28 )

rt) Putn a m, 1978, p. 21. 28) Wa tkins, 1978, p. 373-3 7 7.

포퍼, 포스트, 크라제프스키, 코티지 Koe rtg e 등을 포함하는 최근의 많은 과학철학자들이 비슷한 견해를 보이고 있다 . 29) 실 재론자들이 이런 보존 형식만 논의해 온 것은 아니다 . 실재론자

29) 포퍼(1 959 , p. 276) 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잘 확 증된 이론이… … 그 이론을 포함하는 이론에 의해――혹은 최소한 그에 매우 근접한 이 론에 의해 극복될 수도 있다 . 〉 포스트(1 971, p. 229) 는 다음과 같이 말 한다 : 〈나는 계승 이론이 언제나 선행 이론의 잘 확증된 부 분 전체 를 설 명해 왔다는 것을 경험적이고 역사적인 사실로서 주장하지 않을 수 없 다 > 그리고 코티지 (19 73, pp. 17 6- 177) 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과학사에서 나타나는 거의 모든 계승 이론의 적이 대응관계에 있다…… 그리고 대응관계가 시작되지 않은 곳에서는 새 이론이 선행 이론과 대웅 관계를 맺게 되는 식으로 발전해 나온다 . > 이와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서 Fme( l96 7) , Ma rge nau( l95 0) . Sklar(l 96 7) 둥을 언급할 수있다.

들은 한때 성공적이었던 선행 이론 (To ) 에서 계승 이론 (Tn) 으로

무엇이 이전되어 보존되어야 하는가에 관한 주장에도 폭넓은 동 의를 보이고 있다. 가장 주요하게 다루어지는 실재론자들의 보 존 형식은 다음과 같다. l) T n 은 T o 를 포함한다(위웰) . 2) Tn 은 To 의 참된 결과나 진리 내용을 보존한다(포퍼). 3) Tn 은 T 의 〈확 증된〉 부분을 보존한다(포스트 코티지). 4) Tn 은 T o 의 〈이론적 법 칙과 메커니즘〉을 보존한다(보이三 맥멀린, 퍼트남). 5) Tn 은 T 。 를 제한 사례로서 보존한다(왓칸스 퍼트남, 크라제프스키). 6) Tn 은 To 가 성공적인 한 To 의 성공 이유를 설명한다(셀라스) . 7) Tn 은 To 의 중심 명사가 갖는 지칭 기능을 보존한다(퍼트남, 보이드). 문 제는 보존이 이런 의미로 이해되었을 때, 수렴과 보존에 관한 실재론자의 테제가 올바르냐 하는 것이다.

5-1 과학자들은 CER 의 보존 전략을 채택하고 있는가? 어떤 실재론자들은 과학자가 일반적으로 선행 이론을 계승 이론에 포함시키려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는 것을 논증하려 한 댜 퍼트남은 다움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선행 이론의 메커니즘 울 가능한 한 보존하려고 하는 것, 이것이 바로 과학자들이 하 려고 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이런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 은…… 사실이며, 이런 전략이 중요한 발견으로 이어진다는 것 도…… 또한 사실이다.〉 30) 이와 비슷하게 슈밀레비치 S zumil e wi cz 는(실재론을 강조하지는 않지만) 많은 탁월한 과학자들이 새 이론 이 선행 이론과 대응관계에 있다는 것을 자신들의 연구 프로그

30) Putn a m, 1

램의 주된 발견법적 요건으로 삼았다고 주장한다 .3 1 )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적 목표에 관해서 퍼트남 같은 보 존주의자들이 판단한 것이 옳다면, 우리는 역사적인 과학 문건 이 다움과 같은 것들로 가득 차 있음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1) 나중에 나온 이론이 선행 이론을 제한 사례로서 포 함한다는 것에 대한 증명, 2) 선행 이론을 포함하지 못하는 계 승 이론에 대한 즉각적인 거부. (주로 역학의 역사에서 나오는) 아 주 드문 예를 제의하고는 이런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것 이다. 예를 들어 내가 알기로는 그 누구도 빛의 파동설이 선행 하는 입자론의 이론적 메커니즘을 보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 것을 문헌을 통해 비판하지는 않았다. 그 누구도 뤼엘 Ly ell 의 균 일론이 변동론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인과적인 과정을 결여하 고 있다고 해서 비판하지 않았다. 다윈의 이론이 라마르크 진화 론의 메커니즘을 많은 부분 보존하지 못했다고 해서 비난받지는 않았다.

31 ) Szu milew i cz , 1'17 7.

과학에서 보존주의적인 가치가 일반적으로 퍼져 있다고 실재 론자들은 자신있게 주장하고 있지만, 과학에서 사용되는 평가 전략에 대한 그들의 가설을 일반적인 테제로 삼고 있는 역사적 인 연구는 발견할 수가 없다. 더욱이 퍼트남과 보이드가 〈과학 자들의 보존주의적인 행위에 관해 설명〉 3 2 ) 을 하고 있는 곳에서 는, 피설명항이 잘못 되어 있다. 과학에 폭넓게 퍼져 있는 전략 이 있다면, 그것은 〈선행 이론의 이론적 법칙과 메커니즘을 포 함하느냐의 여부에 관계없이 경험적으로 성공적인 이론을 수락 하라〉 33) 는 것이다. 실재론자의 C2 로부터 비약해서 다음과 같이

32) Putn am, 1'17 8 , p. 21. 33) 나는 전에 이런 전략에 대해 책을 쓴 바 있다 (Lauclan, 1'17 7 ).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선행 이론이 일반적으로 지칭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가정하는 전략의 성공이 선행 이론이 일반적 으로 지칭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참임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실재론자들은 자신들이 과학적인 다수를 대변한다고 자주 주장한 댜 어떤 근거에서 그런 주장을 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예 롤 들어 퍼트남은 〈 실재론은 ‘ 과학’ 의 과학철학이다〉, 〈과학은 ‘액면 가fa ce value’ 로 따져 볼 때 실재론을 말한다〉 안 후커 Hooker 는 마치 듀 엘 포앙카레 Po incare, 마하 같은 규약주의자, 도구주의자들이 과학을 . 진지하게 다루고 있지 않은 것처럼, 실재론자가 되는 것은 과학을 〈진 지하게 〉 다루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전 실재론자들이_실제로 과학적 실천을 인도하는 가치에 대한 경험적 탐구에 바탕을 두지 않고―一자 신들의 동기를 활동하고 있는 과학자들에게 부여하려고 하는 것은 그 둘이 인식론적 주장의 경험적 성격에 진지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인 지 심히 의심스럽게 만든다).

34) 지난 3 백 년간 과학을 둘러싼 인식론적. 방법론적 전투가 끝난 다음 에 과학이 그 액면가로 따져볼 때 특정한 인식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는 사실은 매우 분명해졌다. 35) Hooker, 1974, pp. 467-4 7 2.

5-2 계승 이론은 선행 이론의 메커니즘, 모델, 법칙을 보존하는가? 과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는 명시적인 전략과 관계 없이, 계승 이론이 전형적으로 선행 이론을 포함하며, 〈선행 이론은 계승 이론의 제한 사례가 되는 경우가 많다〉 36) 고 하는 퍼트남과 그밖 의 보존주의자들의 주장은 옳다고 할 수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이런 질문에 답하기는 매우 어렵다. 〈전형적으로〉라는 단어가

36) Putn am, 1978, pp. 20, 123.

말꼬리를 잡히지 않도록 얼버무린 말이기 때문이다. 나는 퍼트 남과 왓킨스가 〈거의 모든 시기에(그리고 아마도 대부분의 중요한 사례에서) 계승 이론은 선행 이론을 포함한다 〉 고 말하는 것으로 가정한다. 그렇게 보면 이 주장은 분명히 틀린 것이다. 코페르 니쿠스의 천문학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과 광학의 핵심적 인 메커니즘 전부를 담아내지 못했다. 프랭클린의 전기 이론은 그 선행 이론 Nolle t을 제한 사례로 포함하지 못했다 . 상대론적 물 리학은 에테르나 그와 결합된 메커니즘을 포함하지 않는다. 정 역학은 열역학의 메커니즘 전부를 구체화하지 않는다. 현대의 유전학은 다윈의 범생설(沮生說)을 제한사례로 가지고 있지 않 댜 빛의 파동설은 입자광학의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지 않다. 현 대의 발생학은 고전적인 발생학 이론의 메커니즘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내가 다른 곳에서 밝혔듯이 37 ) 손실은 실제로 모든 수 준에서 일어난다. 선행 이론의 확증된 예측이 계승 이론에 의해 설명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선행 이론에 의해 관찰 가능한 법칙 이라 하더라도 제한 사례로조차 유지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선행 이론의 이론적 메커니즘이 잡동사니 취급을 받게 되는 경 우도 있다. 요점은 실재론자들이 성숙한 과학에 연결시키려 한 누적론적인 혹은 보존주의적인 제약을 과학자들이 깨뜨리려고 했을 때 중요한 이론적인 혁신이 나타난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37) Laudan, 1 切 6.

수렴적 실재론이 이 문제에 관해서 옳지 못한 데에는 근본적

인 이유가 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과학에서의 존재론적 틀의 역할, 그리고 소위 제한 사례 관계의 본질과 관련되어 있다. 과 학자들이 〈제한 사례〉라고 할 때, To 는 다음의 두 경우에만 Tn 의 제한 사례가 될 수 있다. 1) To 에서 값을 갖는 (관찰 가능하고

이론적인) 모든 변항이 T에 의해 값을 갖게 될 때, 2) Tn 의 모든

변항의 값이, Tn 과 모순되지 않는 초기 조건과 경계 조건이 주 어질 경우 To 가 부여하는 변항값과 같거나 매우 가까울 때 .38 ) 이것은 To 에 의해서 가정된 모든 실재가 Tn 의 존재론 속에서 발 생할 때만 To 는 Tn 의 제한 사례가 될 수 있다고 요구하는 것으 로 보인다. T 지(적합한 초기 조건과 경계 조건과 결합되어 있을 때) To 의 존재론을 확보하지 못하게 되는 이론 변화에 부수하는 존 재론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To 는 Tn 의 제한 사례가 될 수 없 댜 Tn 과 To 의 존재론이 올바로 겹치더라도(죽 T의 존재론이 T~ 존재론을 모두 포함하더라도), To 의 모든 법칙이 적합한 제한 조건 이 주어진 상태에서 Tn 으로부터 도출될 수 있을 때만, To 는 Tn 의 제한 사례가 된다. 어떤 이론이 다른 이론의 제한 사례가 되기 위해서는 이들 조건이 (무엇보다도) 먼저 충족되어야 한다는 것 울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숨겨진 실재론자〉는 계승이론 Tn 에서 형식적인 수학적 관계나 T의 관찰 가능한 결과를 잡아내 는 데에 만족할지 모르지만, 진짜 실재론자는 To 의 근저에 있는

38) 〈환원〉이론과 일치하는 이런 제한 조건의 문제는 좀 이상하게 들린다.

제한 사례 관계에 관한 가장 잘 알려진 입장은(크라제프스키가 관찰한 것처럼) 계승 이론에 의해 분명히 부정된 제한적인 가정을 채택함으로써 만 선행 이론이 계승 이론의 제한 사례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테 의존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몇몇 교과서 편찬위원회는 c 가 무한대에 접근한다 는 가정하에 고전 역학(의 일부를) 특수상대성의 제한 사례로 보고 있 댜 그러나 특수상대성에서는 c 를 상수로 본다. 다른 이론을 이끌어내는 이론과 모순되는 가정을 포함하고 있는 이론에서 다른 이론을 도출해 낸 다는 것은 어딘가 이상하지 않은가? 다른 이론을 이끌어내는 이론이 옳 다면, 이것은 도출된 이론을 제한 사례로서 층명하는 데 공통적으로 사 용된 전제를 채택하지 않을 것이다 . 그런 증명이 반대할 수 없도록 재정 식화될 수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상대성의 경우 c~ oo 대신에 v~O 로 놓는 것이다.

존재론이 Tn 의 존재론 안에 보존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 틀

림없다. 그가 참에 가깝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엇보다 존재론이 기 때문이다 . 철학자들(그리고 물리학자들)은 Tn 과 To 사이의 제한 사례의 존 재에 대해 이보다는 덜 철저하게 추론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서 많은 사람들이 계승 이론에서 선행 이론의 법칙 중 어떤 것 만을 도출해 낼 수 있게 되더라도 한 이론이 다른 한 이론의 제 한 사례가 된다고 주장해 왔다. 또 존재론이 전혀 다른 데도 단 지 수학적인 법칙이 상동 관계에 있다는 이유로 제한 사례라고 주장되는 경우도 있다.

잘못 기술된 대표적인 사례, 즉 고전적인 에테르 이론에서 상 대성이론과 양자역학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생각해 보자. 고전 역학의 어떤 법칙이 상대론적인 역학의 제한 사례라는 것이 밝 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전 이론에 의해 이루어진 다 론 법칙과 일반적인 주장들(예를 들면 에테르의 밀도와 미세구조에 관한 주장, 에테르와 물질의 상호 작용의 특성에 대한 일반 법칙, 에 테르의 압축성에 대한 모델과 메커니즘)은 현대 역학의 제한 사례 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한 이론은 그 이 론의 언어 안에서는 값을 갖지 않는 변항값을 내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혹은 좀더 구어적으로 표현해서, 한 이론은 자신이 대면해 보지 않은 실재에 대해 속성을 부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전적인 에테르 물리학은 에테르를 통과하는 빛의 전도를 다루기 위해 요청된 수많은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그런 메커니즘은 특수 상대성이론 같은 계승 이론에서는 나타날 수가 없다. 특수상대 성이론은 에테르 같은 매질의 존재를 부정하며, 다른 메커니즘 울 통해 에테르에 의해 수행된 설명 과제를 완수하기 때문이다. 19 세기의 수리물리학은 이와 비슷한 수학적 이론의 예들로 가

독차 있다. 우리가 오늘날 부정하고 있는 실재를 지칭하는 변수 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시의 수리물리학 역시 오늘날의 물리 학의 제한 사례로 볼 수 없다. 아돌프 그륀바움 Ado lf Gruenbawn 이 설득력 있게 주장한 바와 같이, Tn 이 To 의 존재론 전부를 포 함하지 않는 양립 불가능한 두 이 론 Tn 과 T o 에 직 면하게 되 면, Tn 에 의해 가정되지 않은 실재를 포함하는 To 의 메커니즘과 이론 적 법칙은――제한 사례로서는 물론이고 _Tn 속에 유지될 수 가 없다 . 39) 이런 결과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수렴적인 혹은 보존적인 실재론이 그나마라도 그럴듯하게 보이는 경우는 그것 이 고전역학과 그 이후의 역학 그리고 중력이론 사이의 관계를 올바로 기술했다고 가정할 때이다. 실재론자에게 유리한 이런 경 우에서조차(선행 이론의 법칙이 실제로 계승 이론의 제한 사례인) 변 화하는 존재론과 개념적 틀이 선행 이론에 의해 가정된 중심적인 이론적 법칙과 메커니즘을 간직하게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 으면, 우리는 퍼트남의 다음과 같은 주장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 퍼트남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39) Gruenbaum, 1

〈과학자들이 하려고 하는 것은 가능한 한 선행 이론의 메커니즘 을 간직하고-혹은 선행 이론이 새로운 메커니즘의 ‘제한 사례 임을 보이는 것이다……〉 4 0)

40) Putn am, 1

선행 이론의 메커니즘이 계승 이론이 부정하는 실재를 포함 하는 곳에서, 선행 이론의 메커니즘을 완전히 버리는 데 대해 어떤 과학자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존재론의 변화가 없는 곳에서도, 많은 이론

들(물리학 같은 〈성숙한 과학 〉 에서조차)은 선행 이론의 성공적인 설명을 모두 유지하는 데 실패한다. 정역학이 거시 열역학의 비 가역성을 제한 사례로서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 져 있다. 고전 연속체 역학은 아직 양자역학이나 상대성이론으 로 환원되지 않았다. 현대의 장이론은 물리 법칙이 공간의 반사 속에서 불변이라는 테제를 반복하고 있다. 만일 과학자들이 새 이론이 낡은 이론을 제한 사례로 포함해야 한다는 실재론자들의 주장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면, 상대성이론이나 정역학은 실행 가능한 이론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 다음과 같은 말 은 앞서도 했지만 계속 반복해서 언급할 필요가 있다 : 두 이론 의 선택된 구성 요소 사이에 제한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증명은 한 이론이 다른 이론의 제한 사례라는 것에 대한 체계적 인 증명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이다 . 고전 물리학과 현대 물리학이 수렴적인 실재론자들이 찰못 생각하게끔 모양새를 하 고 있지만, 발전한 과학에서의 이론의 성공이 제한 사례 관계를 보여준다고 하는 그들의 성급한 일반화는 완전히 잘못된 것이 댜 4 1) 이런 사례가 보여주듯이 실재론자의 전형적인 사례조차도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지 못하는 것이다.

41 ) 마리오 번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9 70, pp. 3()()-310) : 〈모든 새 로운 이론이 그 선행 이론을 포함한다(그것이 외연으로 간주한다)는 이론간의 관계에 대한 일반적인 관점은 철학적으로 대단히 피상적인 것이다…… 과학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가설로서도 틀린 것이다〉.

이러한 분석이 강조하는 것은 수렴적인 인식론적 실재론이 얼마나 역행적인 형태를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현재의 (성 숙한) 이론을 지칭적인 것으로서 그리고 현존 법칙과 메커니즘 울 참에 가까운 것으로 보존하지 않는 새 이론은 버리라고 하는 CER 의 충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면, 우리 이론의 심층-구

조, 존재론적 변화에 대한 전망은 성급하게 닫혀버리고 말 것이 댜 또한 현재의 이론적 모델에 대한 유의미한 거부도 하지 못 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지식 성장 이론을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실재론자는 모든 미래의 이론이 현재의 (성숙한) 과학의 존재론 과 일치할 것을 강요하고, 다음과 같은 미래의 가능성을 닫아버 림으로써 과학을 현재의 상태에 무의식적으로 동결시켜버린다. 죽 미래의 세대는 우리가 가진 가장 잘 테스트된 이론의 중심 명사가 〈자연의 장소〉, 〈열소〉, 〈에테르〉, 〈열량〉 동과 같은 것 이상으로 지칭적이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5-3 실재론자가 생각한 것처럼 이론이 수령될 수 있는가? 실재론자가 요구하고 있는 연속성의 단절 사례는 수렴론적 실 재론자들이 설명하고 있는 과학적 성장의 형태가 성숙한 과학에 서조차 일어나지 않을 경우가 많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충분하 댜 그러나 우리는 이런 몇 가지 사례를 넘어서 원칙적으로 실 재론자들에 의해 요구되고 있는 누적이 성취하기 어려운 것이라 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데이비드 밀러 Da vi d Mill er 둥에 의해 확립 된 몇 가지 결과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이끌어 낼 수 있다.

1) 계승 이론 Tn 의 선행 이론 To 의 참된 결과를 참으로서 보존하고,

To 의 변칙 사례를 설명해야 한다는 요구는 모순된다. 2) Tn 이 선행 이론 To 의 존재론이나 개념적 틀내의 변화를 포함하고 있다면, To 는 Tn 이 가지고 있지 않은 참된 결정적인 결과를 가지 게 될 것이다. 3) Tn 과 T., 두 이론이 불일치를 보이고 있다면, 각각은 상대방에 의 해 드러나지 않는 참되고 결정적인 결과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이런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한 이론은 진술의 연언이며, 타 르스키 Tars ki를 따라 그 결과는 내포 집합을 통해 정의된다는 〈구문론적〉 관점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이것이 이론에 관해 생각할 때 필연적인 혹은 유일한 방법은 아 니다. 그러나 이것은 수렴과 보존에 관해 이야기 하는 대부분의 철학자들(포퍼, 왓킨스, 포스트 크라제프스키, 니니루토)이 이론을 받아들이는 방법이 되고 있다. 그들처럼 이론의 내포와 그 결과 에 대한 타르스키의 개념을 사용한다면, l) 에서 3) 까지 언급된 친근한 수렴론적 테제는 의미 없는 것이 될 것이다. 밀러의 분석이 가지고 있는 기초적이지만 효과적인 결과는 과학적 진보나 성장을 선행 이론의 타르스키적 내포나 논리적 결과 혹은 참된 결과나 관찰된 결과, 확증된 결과에 연결시키려 는 노력은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실재론자는 누적적 인 보존이 과학에 보편화되어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역사를 잘못 보고 있다. 더욱이 그들이 이론 변화를 통해 보존되어야 할 것 으로 보고 있는 것을 고찰해 보면, 그들의 모델이 요구하는 것 과 같은 역사 과정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간단 히 말해서 누적에 대한 실재론자의 집착은 역사적으로도 규범적 으로도 옳지 않다는 것이다. 다른 많은 실재론자와 마찬가지로, 퍼트남은 다음과 같이 주 장하고 있다. 〈성숙한 과학은 수렴한다…… 그리고 그 수렴은 과학 이론에 대한 큰 설명 가치를 가지고 있다.〉 42) 이 절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퍼트남과 그 밖의 실재론자들은 잘못된 논증 울 하고 있다. 포퍼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어떤 지식 이론도 사물을 설명하려는 시도에서 우리가 성공하게 되는 이유

42) Putnam, l'J7 8 , p. 37.

가 무엇인지 설명하려고 시도해서는 안 된다.〉 43) 이런 도그마는 지나치게 강하다 . 그러나 앞서의 분석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우 리의 성공에 대한 확실한 설명이 쉽고 간편하게 이루어질 수 있 으리라는 위험한 생각이 최근 인식론을 점령하고 있다는 것이다.

43) Popp er, 1963, p. 23.

6 새 이론은 선행 이론이 성공적이었던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가? 위에 언급된 것보다 다소 완화된 실재론은 (R4) 의 형태를 하 고 있는 셀라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그에 의하면 만족스러운 새로운 이론은 그것이 성공적인 한, 선행 이론이 성공적이었던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는 실행 가능한 새 이론이 선행 이론의 모든 내용을 보존한다거나 선행 이론을 제한 사례로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다. 단지 실행 가능한 새 이 론 Tn 은, 설사 To 가 틀린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낡은 이론 T。 에 따라서 세계를 받아들일 때 To 에 의한 예측이 올바르거나 참 에 가까운 것으로 드러나는 사례가 어떻게 있을 수 있는지 설명 해야한다. 이런 요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먼저 이것은 분명히 불필요 하다 만일 Tn 이 To 보다 잘 확증된 결과를 가지고 있다면(그리고 개념적인 단순성을 가지고 있다면), Tn 이 To 가 성공적이었던 이유 를 설명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Tn 이 To 보다 선호될 것이다. 거꾸 로, T지 To 보다 확증된 결과를 덜 가지고 있다면, Tn 이 To 가 성 공적이었던 이유를 설명해 낸다 하더라도, 합리적으로 Tn 이 T。 보다 선호될 수는 없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경쟁 이론의 성

공을 설명해 낼 수 있는 한 이론의 능력은 그 이론이 경쟁이론

보다 낫다는 것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될 수 없는 것이다.

새 이론이 선행 이론이 성공적이었던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또 다른 난점이 있다. 〈선행 이론이 성공적이었던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는 것의 개념 자체가 애매하다는 것이다. T가 성공적이었던 이유를 설명하는 한 가지 방법은 매우 성공 적인 이론 Tn 과 그것이 많은 확증된 결과를 공유하고 있음을 보 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과학적 실재론자가 받아들일 수 있 는 설명은 아니다. 이것은 아무런 지칭도 하지 않으며, 따라서 Tn 이나 To 의 인식론적 주장에 의존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만 일 Tn 이 프래그머틱하게 성공적인 이론이라면, Tn 과 T. 가 실험적으로 분리해 낼 수 없는 중복된 결과를 가지고 있는 한, T 。 또한 〈현상을 구 출하는 데〉 성공할 것이라는 주장을 도구주의자의 경우에는 기꺼이 받 아들일 것이다.)

설득력 있는 셀라스의 설명에 놓여 있는 직관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새 이론과 선행 이론의 각각의 결과에 대한 부분적인 비 교와 결합되어 있는 새 이론의 프래그머틱한 성공은 낡은 이론이 찰 작용하는 때와 실패하게 되는 때를 말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그런 비교는 새 이론이나 낡은 이론에 대한 인식론적 평가를 포함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런 비교의 가능성, 그런 설명의 가능성온 인식론적 실 재론을 지지하는 논거를 제공하지 못한다. 비실재론자도 성공에 관한 프래그머틱한 주장을 (한충 분명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재론자들이 여기서 원하는 것은 선행 이론의 성공에 대한 인식론적으로 탄탄한 설명이다. 그런 인식론적 설명은 다음과 같은 주장으로 시작될 수 있다. Tn 은 근사적인 진리이며 선행이

론 To 의 관찰 가능한 주장은 Tn 의 관찰 가능한 결과에서 약간만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T의 (추정된) 근사적인 진리와 To 와 Tn 의 부분적으로 중복되는 결과가 그것이 성공적이었던 한, To 가 성 공적이었던 이유를 설명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불합리한 추론이다. 위에 밝힌 바와 같이 Tn 이 근사적인 진리라는 사실은 T 기 성공적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 T n 의 근사적 인 진리가 T n 과 다른 어떤 이론의 성공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To 와 Tn 의 관계의 성격이 어떻든 간에(포함, 제한사 례 등) To 나 T 에 근사적인 진리를 인식론적으로 갖다붙이는 것 은 To 와 Tn 가 어떻게 성공적인 것일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는 전혀 답을 한 것이 아니다.

7 실재론자의 궁극적 인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 이제 실재론자의 구체적인 논증에서 한걸음 물러나 그들의 일 반적인 전략에 눈을 돌려보자.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실재론 자는 기본적으로 과학의 성공으로부터 과학이 근사적인 진리이 며, 진리에 가깝고, 지칭적이라는 결론으로 나아가는 귀추법식 의 추론에 의존하고 있다. 〈최상의 설명을 위한 추론〉으로 알려 진 이런 논증은 회의론자들에게는 이론이 부정이득이 아니라는 것을, 실증주의자에게는 이론이 관찰 가능한 결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것을, 프래그머티스트에게는 (예를 들면, 참이나 거짓 같은) 고전적인 인식론적 범주가 메타과학적인 담화의 일부라는 것을보여주려 한다 . 실재론자들이 그들의 비판가들이 이 논증을 설득력 있는 것으 로 보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좀 예외적이다. 내가 다른 곳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44) 고대 이후로 인식론적 실재론을 비판했던

44) Laudan, 1978.

사람들은 후건(後件) 긍정의 오류가 진정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에 자신들의 회의주의를 뿌리내리고 있었다. 섹스투 스 Sex tus 나 벨라르민 Bell armin e 혹은 흄이 현상을 담아내고 있는 어 떤 이론이 참으로 보증될 수 있디는· 것에 대해 회의했을 때, 이 들의 의심은 어떤 이론이 참된 결과를 가지고 있음을 밝히는 것 과 그 이론의 진리 상태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신념에 기초하고 있었다. 많은 비실재론자들은 참된 이론뿐 아니라 찰못된 이론 도 참된 결과를 가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비실재론자가 되 었다. 이제 인식론적 실재론이 참된 결과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합리적으로 참인 것으로 추정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새로 운 형태의 실재론자들을 (예를 들면 퍼트남, 보이드, 뉴턴-스미스 동) 생각해 보자. 그러나 이것은 논점 선취의 대표적인 사례이 다. 비실재론자는 과학 이론이 단지 참된 결과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참으로 판단될 수 있다는 주장을 거부한다. 그런 비 실재론자는 실재론과 같은 철학 이론이 참된 결과를 가지고 있 기 때문에 참으로 보증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는다. 스스로 참된 결론임을 자임하는 첫번째 귀추법식의 추 론에 대해 비실재론자가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면, 내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특히 전제와 결론이 불완전하게 결정 되어 있는 상황에서 두번째의 추론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실재론자가 완고한 회의주의자나 확고한 도구주의자 룰 전향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할 수도 있다 .45) 실재론자는 오히려 실재론이 다른 과학적 가설과 마찬가지로 테

45) 나는 이런 실재론자의 웅답을 앤드루 러그 AndrewLu gg에게서 받았다 .

스트될 수 있으며, 다른 과학 이론과 마찬가지로 잘 확증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할 뿐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런 분 석은 처음에는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자세히 검토해 보면 곧 유 지될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 나는 어떤 과학 이론이 계속되 는 테스트 결과가 참이라는 사실에 근거해서 참이라고 합리적으 로 추정될 수 있다거나 잘 확증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말 하는 실재론자를 보지 못했다. 실재론자는 오래전부터 그러한 애드혹 이론이나 전후관계를 혼동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이론에 맞서 왔다 . 실재론자는 과학적 가설을 받아들이기에 앞서서, 그 것이 처음에 의도되었던 것 이상으로 설명을 하고 예측을 했는 지 알 필요가 있다. 그는 그 가설이 통제된 테스트를 받아 왔는 지, 새로운 예측을 성공적으로 해냈는지, 그에 대한 독립적인 증거가 있는지 알 필요가 있다. 실재론 자체가 과학적인 가설일 수 있는가 ?46) 설사 우리가

46) 내가 보기에는 실재론의 경험적 혹은 과학적 성격에 대한 퍼트남의 견 해는 오히려 더 혼란스러운 것 같다 . 어떤 점에서 그는 실재론이 경험적 이기도 하고 과학적이기도 하다고 주장하려는 것 같다. 그는 다음과 같 이 쓰고 있다. 〈실재론이 이런 사실, 죽 과학이 성공적이라는 사실에 대 한 설명이라면 , 실재론은 그 자체로서 과학적인 가설일 수밖에 없다〉 (1

(내가 3 장에서 주장한 것과는 반대로) 실재론이 과학의 성공을 포 함하고 그래서 그것을 설명한다고 인정하더라도, 과학적 수락 가능성에 대한 실재론자 자신의 해석에 의한 그러한 (가설적인) 성공이 실재론의 수락을 보증한다고 할 수 있는가? 이런 형태의 실재론은 과학의 성공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기 때문에 그런 성공과 관련해서 순전히 임시 방편적인 것이다. 현대 실재 론의 문건을 통해서는 실재론이 어떤 새로운 예측을 하고 조심 스러운 테스트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명백한 모순의 위험을 무릅쓰고 실재론자는 실재론이 설명하려고 하는 바로 그 사실에 의해 확증된다는 명백히 도구주의적인 기반 위 에 서 있으면서, 〈현상을 구출하는〉 것이 증거에 의한 지지의 유의미한 형태라는 도구주의적 견해를 거부하고 있다. 어떤 실 재론의 옹호자도 과학적 이론을 평가할 때 실재론자 자신이 최 소 한도로 주장하고 있는 엄격한 경험적 요구를 실재론이 충족 시키고 있다는 것을 밝히지 못했다 . 최근의 실재론자들은 실재 론을 〈과학적인〉 혹은 〈잘 테스트된〉 가설이라고 부른다. 그러 나 이상하게도 이들은 경험적인 기반이 확실하다는 것을 주장하 기 위해 필수적이라 할 수 있는 통제에는 따르려고 하지 않는 것같다.

8 결론 이상에서 논의된 논증과 사례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1) 한 이론의 중심 명사가 지칭을 한다는 사실은 그 이론이 성공적이라는 것을 포함하지 않는다. 그리고 한 이론의 성공은 그 이론의 모든 혹은 대부분의 중심 명사가 지칭적이라는 것을

보증하지 않는다. 2) 근사적인 진리의 개념은 참에 가까운 법칙으로 이루어진 이론이 경험적으로 성공적인지를 판단하기에는 너무 모호한 개 념이댜 분명한 것은 한 이론은 그것이 근사적인 진리가 아니더 라도, 경험적으로 성공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최상의 설명을 위한 추론〉은 단지 인식론적인 술책일 뿐이다. 3) 실재론자는 근사적인 진리도 아니고 지칭적인 명사룰 가지 고 있지도 않은 많은 이론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경우 가 많았다는 사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4) 성숙한 과학은 통상적으로 계승 이론 속에 선행 이론의 법 칙과 메커니즘을 보존하거나 보존하려고 한다는 수렴주의자의 주장은 확실한 것이 아니며 틀린 것일 수도 있다. 그런 법칙이 성공적인 계승 이론 속에 보존될 경우, 보존된 법칙과 메커니즘 의 진리 근집성을 통해 선행 이론의 성공을 설명할 수 있다는 수렴주의자의 주장은 근사적인 진리에 관해서 위에 언급한 결함 들에 의해 손상을 입게 된다. 5) 지칭적인 이론과 참에 가까운 이론이 성공적일 것이라는 사실을 밝힐 수 있다고 하더라도, 성공적인 이론이 근사적인 진 리이며 실제로 지칭적이라고 하는 실재론자의 논증은 비실재론 자들이 부정하고 있는 것, 죽 성공적인 설명이 진리를 나타낸다 고 하는 것을 용인하게 된다. 6) 수락 가능한 이론이 선행 이론의 성공이나 실패 이유를 설 명하고 설명해야 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만일 어떤 이론이 그 경쟁 이론과 선행 이론보다 경험적으로 잘 지지되고 있다 면, 그 이론이 경쟁 이론이 작용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느냐 의 여부는 인식론적으로 결정적인 것이 되지 못한다. 7) 어떤 이론이 일단 반증되면, 그 계승 이론이 선행 이론의

내용이나 확증된 결과, 그 이론적 메커니즘을 모두 보존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은 불합리하다. 8) 공표하는 형식을 제외하고서는 어디서도 실재론자들은 비 실재론적인 인식론자들이 과학의 성공을 설명할 수 있는 자료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지 못했다. 이런 결론을 염두에 두고 우리는 더욱 넓은 영역으로 나아갈 수 있다 퍼트남, 보이드, 뉴턴-스미스 등의 노력에도 불구하 고, 실재론이 과학의 성공에 대해 부분적으로라도 설명해 낼 수 있다는 것이 아직 분명해지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실재론이 비 지칭적인 명사를 가지고 있는, 근사적인 진리가 아닌 이론적 법 칙과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는 많은 이론의 성공을 결코 설명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많은 실재론자들이 그런 기준에 의해 과 학의 작용 방식을 설명하려 하고, 그 인식론의 적합성을 평가하 려 하는 한,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불가피한 결론이 댜 그들의 인식론과 가치론은 그들이 다룰 수 있는 범위를 넘 어선 것으로 보이는 변칙 사례에 직면해 있다. 이런 결론을 이 책의 앞장에서 사용한 언어로 바꾸어 보면, 실 재론자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특칭을 갖는 과학의 목적을 제 시한다고 할 수 있겠다. 1) 우리는 그 목적을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보편적 주장의 진리 근접성을 보증할 방법론 이 없기 때문에). 2) 우리가 그 목적을 달성하더라도, 우리 자신 이 그런 사실을 알아차릴 수 없다(실재론자는 진리 근접성에 대해 의미론적인 것에 반대되는 것으로서의 인식론적인 중거를 보여주지 못 하기 때문에). 3) 우리는 그런 목적의 실현에 가까이 갔는지 말 할 수 없다(우리는 일반적으로 어느 두 이론에 대해서 한 이론이 진 리에 더 가깝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4) 과학사에 나타나는 대 부분의 성공적인 이론(예를 들어 에테르 이론 같은)은 그와 같은

목적을 예시하는 데 실패했다. 내 생각에는 이런 실패 중에 어 느 하나만 있어도 실재론자들이 과학에 제시하고 있는 가치론과 방법론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기에 충분할 것 같다. 이런 실패는 실재론자들로 하여금 역사적인 기록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는 인식적 가치의 집합에 직면해서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보다 훨씬 더 설득력 없는 기반 위에서도 과 거의 주된 인식론들(예를 들면 고전적 경험론, 귀납론, 도구주의, 프 래그머티즘, 무류주의i n falli b i lsm, 실증주의 등)은 가차없이 포기되 었다.

에필로그 지금까지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내가 어떤 것이 과학의 중심 적인 가치이고, 목적이며, 방법인가하는 것을 언급함으로써, 아 니면 최소한 어떤 것이 그러한 과학의 가치나 목적, 방법이 되 어야 하는가를 언급함으로써 약속을 지키기를 바라고 있을지 모 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런 기대를 깨뜨려야 할 것 같다. 인식적 목적이나 방법의 윤곽을 그려놓고 〈이것이 바로 과학이 하려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앞에서 한 분석을 상당 부분 허물어뜨 릴 것이다. 우리는 반복해서 과학의 목적이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넘어감에 따라, 과학의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넘어 감에 따라, 때로는 동일한 영역이라 하더라도 탐구자들에 따라 다양하게 변한다는 것을 살펴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한 동 일한 목적이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과학자라 하더라도, 그들의 방법은 완전히 다를 수 있음울 살펴보았다. 내가 여기서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제안된 목적과 방법을 평 가할 수 있는 분석적 기제이다. 또한 나는 예를 통해서 그런 기 제가 처음에는 그럴듯했지만 결국에는 불만족스러운 것으로 드 러난 과학의 가치론(예를 들면 과학적 실재론과 인식론적 상대주의) 울 비판하는 데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혹자는 여기서 개관된 방법론적 가치론적 비판의 모델이 도덕 이론과 같은 과학 외적인 가치론에 적용될 수 있을지 궁금해 할 수도 있다. 나는 인식적 가치에 관한 논쟁과 도덕적 혹은 정치 적 가치에 관한 논쟁 사이에서 비슷한 점을 이끌어내려는 유혹 은 단호히 물리쳤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 한 번에 한 가지 싸 움만 하자는 것이다. 여기서 전개된 인식적 가치에 대한 분석이 그것이 야기시킬 수도 있는 비판을 견뎌낸다면, 혹자는 이런 분 석의 적용 가능성을 다양한 비인식적 가치론에 넓히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식적 가치 변화의 역학에 관해서 우리가 분 명히 알게 되기 전에는, 도덕적인 가치론의 논쟁의 역학으로 옮 겨가는 것은 성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도덕적인 가치론의 논 쟁은 훨씬 더 복잡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덕철학 울 전공하는 동료들이 양해해 준다면, 나는 우리가 그런 메타 윤리학적인 작업을 하려들기 전에 메타 인식론의 가치론적 문제 롤 먼저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 행위에 대한 인식론 적 주장을 하는 윤리학자는 지식의 목적―이론적 구조의 선험적 인 명료화를 당연히 받아들이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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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해제 이 책의 저자인 래리 라우든Lany Laudan 은 1941 년 11 월 생으로 미국의 텍사스 주 오스틴에서 출생했다. 그는 프린스턴 대학에 서 역사와 과학철학을 전공하고 1965 년 동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I CJ7 2 년 이후 피츠버그 대학에 교수로 재직한 바 있다. 현재는 하와이 대학에 재직중이다. 그의 주저로는 Progr e ssandIts Problems, Berkeley, Los Ang el es , London : Un ive rsity of Californ ia Press, 1977, Sc ien ce and Hy po th e sis , Dordrecht : Reid e l, 1981, Sc ien ce and Values, Un ive rsity of Californ ia Press, 1984 등을 7 꼽을 수 있고, 최 근 에는 과학철학의 논쟁을 대화 형식으로 꾸며 저술한 Scie nce and Relativ ism, Un ive rsity ofC hica go Press, 1990 을 내 놓은 바 있다. 라? 든은 이 책에서 쿤 이후에 제기된 과학철학의 쟁점에 관 한 자신의 견해를 세심하고 체계적인 논증을 통해 제시하고 있 다. 이 책이 우리에게 홍미 있는 것은 그가 기존의 과학철학의 커다란 두 흐름 죽 포퍼나 퍼트남으로 대표되는 과학적 실재론 의 입장과 쿤과 파이어아벤트 등으로 대표되는 상대주의적 입장 의 어느 쪽에도 치우지지 않고, 자신의 독특한 관점을 일관되게 유지하면서 양자를 꼼꼼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라우든이 이러한 비판을 통해 우리에게 분명한 과학적 합리성과 과학적 가치의 목록을 제시해 주길 바라고 그의 논의를 끝까지 따라가는 독자는 약간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라우 든의 논증 작업은 처음부터 초역사적인 과학적 목표나 초역사적

인 과학적 합리성의 기준이 없다는 것을 밝히려는 의도를 가지 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쿤이나 파이어아벤트와는 달리 분명한 과학적 진보를 말할 수 있다는 점울 강조한다. 이 러한 라우든의 관점은 계몽주의적인 제 가치가 점차 사라져가 고, 어찌보면 상대주의적인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서양 현대 철 학의 분위기를 접한 우리에게는 오히려 신선한 느낌을 준다. 라?든은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 가 가져온 상대주의적 관점 에 대한 합리주의적인 해결책을 모색한다. 그러나 그의 해결책 은 기존의 합리주의적 관점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오 히려 그것에 대한 철저한 비판에 근거하고 있다 . 따라서 그의 논증은 이중적인 비판으로 일관된다 . 라우든은 이러한 이중적인 비판의 관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1 장 의 제목을 과학에 관한 두 가지 수수께끼라고 붙였다. 그가 말 하는 두 가지 수수께끼란 다시 말하면 그가 비판하고자 하는 과 학적 실재론과 소위 과학철학의 새一물결로 일컬어지는 상대주 의적 입장이 각각 딜레마로 안고 있는 과학적 불일치와 합의의 문제를 의미한다. 라우든이 보기에 자연과학에서 발생하는 높은 수준의 일치는 논리실증주의자나 포퍼와 같은 철학자에게 자연 과학의 특징을 설명해 주는 것으로 보였다. 다론 한편으로 그들 을 비판하고 나오는 상대주의자에게는 오히려 자연과학의 역사 가 주기적인 불일치의 사례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 으로 여겨지고 그런 불일치의 사례를 설명하는 문제가 과학철학 의 핵심적인 문제로 떠오르게 된다. 여기서 라우든이 논리실증주의자나 포퍼의 경우에 빗대어 문 제 삼고 있는 것은 이들이 과학을 합의된 행위로 설명하는 데에 는 나름대로의 논거를 가지고 있었지만 과학사에서 나타나는 다 양한 불일치의 사례에 대해서는 전혀 합리적인 설명을 해낼 능

력을 결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라우든은 이런 관점을 소위 라 이프니츠적인 이상이라는 것과 결부시키고 있다. 라이프니츠적 인 이상이란 사실에 관한 논쟁이 증거에 관한 규칙에 호소함으 로써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은 사실 주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과학에서의 의견의 불일치는 사실의 불 일치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과학자들 간에 의견의 불일치가 나 타난다면 그것은 더 많은 증거의 수집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라우든은 이런 관점이 나름대로 강점을 가지 고 있다고 본다. 이런 식의 설명은 흔히 과학자들 스스로가 자 신의 행위에 대해 부여하는 설명과 찰 맞아떨어지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과학사가 반드시 과학자들의 합의 행 위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과학사는 합의의 역사 못 지않게 끊임없는 논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라우든이 보기에 이 들의 관점이 옳은 철학적 설명일 수 있으려면 과학사에서 다양 하게 나타나는 불일치의 사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합리적인 설명을 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리 ?든은 이들이 그런 사 례에 대해 너무나도 빈곤한 입장을 드러내보이고 있다고 개탄한 댜 예상된 합의가 빨리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이들은 결정적인 증거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거나, 심지어는 과학자가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라우 든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들은 과학사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불일 치의 사례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을 포기한 채 그런 사례들을 도 외시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들의 입장은 올바른 철 학적 입장이라고 하기에는 심각한 난점을 안고 있다. 한편 상대주의 입장은 정반대로 불일치의 설명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전적인 과학관을 무너뜨린 이런 관점을 라우든은 네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과학적 탐구가 언제나 논쟁

으로 이루어진다는 것, 이론의 불가공약성 테제, 이론의 미결정 성 테제, 성공적인 반규범적 행위의 현상이 그것이다. 새겨줄결 의 과학철학의 입장으로 불리는 이들은 과학적 합의보다는 과학 적 논쟁과 불일치가 과학의 본질에 가깝다고 본다 . 라우든이 문 제 삼고 있는 것은 이들이 과학적 논쟁이나 불일치에 대해서는 그럴듯한 설명을 하고 있는지 몰라도 그런 과학적 불일치가 어 떻게 합의로 나아가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특히 쿤이 말하는 패러다임의 자기_강화의 성격이라는 것은 과학사에서 일어나는 합의의 사례에 대한 설명의 가능성을 처음부터 막아버린다는 것이다 . 쿤이 과학적 패러다임의 변화 과정에서 설명하고 있는 과학자의 종교 개종과 같은 새로운 패 러다임의 수락은 마치 합리적인 설명 자체를 포기하고 있는 것 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본다면 소위 새 - 물결의 과학철학적 입 장도 고전적인 입장과 같은 정도의 난제에 빠져드는 것으로 보 인다 이와 같이 문제를 설정하면 과학적 합리성에 관해서 우리는 마치 어떤 단서도 얻지 못한 채 원점에 서 있는 것으로 생각된 댜 라우든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는 지점은 바로 이러한 지 점이다. 여기서 리 ? 든 은 위의 두 입장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비판을 통해 나름대로의 새로운 대안을 찾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 이 책의 2 장에서 라? 든은 포퍼, 헴펠 , 라이헨바하 등의 입장을 소위 계층적 모델이라는 합의 형성에 대한 설명 모델로 놓고 그에 대한 분석을 하고 있다. 라우든이 정리해 놓고 있는 계층적 모델이란 사실과 방법, 목적이 단선적인 계층을 이루고 있으며, 사실에 관한 불일치는 방법론적 수준에서 해결될 수 있 고 또 방법론적 차이는 가치론적 수준에서 해결된다는 관점이 댜 라우든은 이런 관점이 방법론적 규칙을 통해 그것이 지지하

는 사실 주장을 골라낼 수 있다고 가정하는 데에 문제가 있다고 본댜 규칙과 증거에 의해서 다양한 사실 주장과 가설이 배제된 다고 해도 여전히 수락 가능한 가설이 존재하게 될 것이기 때문 이다. 이것은 소위 미결정성의 테제로 표현된다. 라우든이 여기 서 문제 삼는 것은 이론 선택에 있어서의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이론 선택의 선호성을 지시해 주는 규칙의 역할이다. 라우든이 이러한 관점에서 계층적 모델을 비판한다고 해서 쿤과 같은 상 대주의 입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기서도 라우든 은 이중적인 비판적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라우든이 보기에 이 론 선택이 방법론적 규칙에 의해 불충분하게 결정되기 때문에 경쟁 이론들 사이의 어떤 합리적인 선호성도 가능하지 않다고 보는 것은 선택과 선호성의 차이룰 무시하는 것이며, 일종의 인 식론적 평등주의로서 상대주의의 급진적인 해석으로 볼 수 있다 는 것이다. 따라서 라우든의 입장은 계층적인 모델의 완화된 형 태로 드러난다. 라우든은 이러한 입장이 사실적 불일치를 합의 로 이끌어갈 수 있다고 생각되는 상황을 설명할 수 있으며, 사 실적 불일치가 계속될 것으로 생각되는 상황의 범위를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강점을 갖는다고 평가한다. 리 ? 든 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계층적 모델의 방법론적 합의 형성에 관한 비판적 분석을 시도한다. 방법론적 논쟁은 계 층적 모델에 의하면 인식적인 정당화의 계단에서 한 단계 높이 올라감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 규칙을 어떤 목적의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보게 되면, 어떤 규칙의 집합이 공통의 인식적 목표 실현을 위해 가장 적합한지 결정함으로써 규칙에 관한 불일치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라우든은 이러한 관점 역시 중요 한 점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본다. 말하자면 방법론적 규칙 이 사실 선택을 충분히 결정할 수 없었던 것처럼 인식적 목표가

방법론적 규칙을 충분히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여기서도 계 충적 모델에 주어지는 라우든의 비판은 어떤 탐구 절차가 요구 된 인식적 목표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임을 밝히려는 경직된 태 도에 향해 있다 . 라우든은 우리가 어떤 목표에 도달하는 모든 방법을 검토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의 방법이 다론 방법과 비교 해 볼 떄 더 우월하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를 갖지 못한다고 주 장하고 있다. 라우든은 계층적 모델의 입장을 다소 완화시켜 목 적을 통해 그 목적과 조화될 수 없는 특정한 방법론적 규칙을 제거하거나 최상의 규칙은 아니더라도 그 목적을 실현시킨다고 생각되는 특정한 규칙을 선택하도록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라 우든은 고전적인 계층적 모델에 매달릴 경우 공유된 규칙이 사 실의 선호성을 지시하는 데 실패한다거나, 공유된 목표가 방법 론적 선호성을 제시하지 못할때, 가치가 공유되면서도 그 비중 울 달리 할 때 해결 불가능한 불일치에 직면한다고 본다 . 이런 진단에서 라우든은 계층적인 모델에 대한 근본적인 수정을 암시 하고있다. 그러나 라? 튼은 계층적인 모델에 대한 본격적인 수정에 들어 가기에 앞서 위의 두 입장에서 취하게 되는 근본적인 오류를 철 저히 분석함으로써 자신의 수정 작업이 가져올지도 모를 실수를 철저히 예방하려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 이 책의 제 3 장은 그래서 공변성의 오류에 대한 분석에서 시작한다 . 공변 성의 오류란 과학의 규칙과 목적 등이 예를 들면 패러다임의 변 화에 따라 동시에 변하게 된다는 관점이다. 물론 이런 오류의 전형은 쿤의 패러다임 변화에 대한 설명에서 우선 찾아 볼 수 있지만 계층적 모델을 주장하는 입장도 마찬가지의 오류를 범하 고 있다는 점에서 여기서도 역시 라우든은 두 입장을 모두 비판 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우선 라우든이 쿤에게서 지적하는 문제는, 공변성에 대한 주 장이 사실적인 혹은 방법론적인 문제에 대한 장기간의 의견의 불일치에서 목적에 대한 견해의 차이를 읽어내려는 입장으로 이 어지는 데 있다. 이와 같은 종류의 오류는 계층적 모델에서도 나타난다. 합의의 문제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 계층적 모델에서 는 예를 들어 과학자들이 사실적이고 방법론적인 문제에 관해 의견의 일치를 보일 경우 그런 일치가 공유된 인식적 목표에서 결과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태도는 라우 든이 보기에 쿤이 보여주는 공변성의 오류에 대한 거울상과 같 은 것이다 . 결국 라우든이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사실적인 혹은 방법론적인 불일치의 사례에서 목적의 불일치를 읽어내려 한다거 나, 사실적인 혹은 방법론적인 일치의 사례를 공통된 목적을 통 해 설명하려는 시도가 모두 일종의 동전의 양면으로서 같은 오 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이 문제가 있는 것은 과 학의 영역에서 나타나는 목표나 가치의 변화에 대한 합리적인 평가의 전망을 닫아버린다는 것이다. 두 입장은 모두 과학적 가 치에 대한 선호성의 문제를 인식론적으로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단지 개인적인 기호의 문제로 돌 려버리게 된다. 그러나 라우든이 보기에 이들이 인식 목표의 집 합들 사이에서 어느 것을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언 제나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은 찰못된 가정이다. 라우든은 인식 적 목적이나 목표를 합리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도구가 무수히 많이 있다고생각한다. 합리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목표에 대한 평가 전략으로서 라우든은 우선 두 가지 형태를 들고 있다. 첫번째 형태인 이상 주의 전략이 말하는 것은 실현될 가능성이 전혀 없거나 그 목표 롤 실현시키기 위해서 우리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전혀 모르는

가치나 목표는 합리적으로 배제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 바꾸어 말해서 어떤 목표나 목적을 합리적으로 선택하려면 목표로 설정 된 상태가 성취될 수 있다는 신념에 대한 충분한 근거를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전략의 구체적인 형태로 라우든은 논증 가능한 이상주의에 대한 비판, 의미론적 이상주 의에 대한 비판, 인식론적 이상주의에 대한 비판 등을 예로 들 고 있다. 두번째 형태의 전략은 명시적인 목표와 함축적인 목표 사이의 차이룰 끊임없는 이론과 실천의 중재를 통해 극복해 나 갈 수 있다고 하는 관점이다. 라우든은 과학의 영역에서도 과학 자들이 어떤 인식적 목적을 명백하게 옹호하려고 하면서도 일상 적인 과학 활동에서는 그에 반대되는 행위를 보이는 경우가 있 다고 말한다. 이것은 과학자가 표명하고 있는 명시적인 목표와 그가 은연중에 따르고 있는 함축적인 목표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 과학자들은 명시적인 목표와 함축적인 목표 중 어느 하나를 택하는 쪽으로 나아가거나 수정하는 쪽으 로 입장을 정하게 된다 . 리 ? 든은 여기서 발생하는 가치론적 변 화가 비평형의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작용하는 합리성의 이론에 기반올 두고 있는 것으로 본다. 이와 같은 전략을 통해 라우든 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식적 목표나 가치의 수준도 합리적인 비판과 수정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결국 사실과 방법론적 논쟁 의 수준과 같은 위치에 있다고 하는 점이다. 리 ? 든은 이와 같은 정도의 논의를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대 안을 내놓을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라우든이 제시하 는 대안은 과학적 합리성을 설명하는 그물형 모델이다(본문의 도 표 玲J조). 라우든의 대안은 그물형의 모델의 완화와 수정으로부 터 얻어졌다. 그러나 양자의 근본적인 차이는 그물형 모델에서 는 과학의 세 가지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판정과 정당화의 과정

이 단선적인 과정이 아니라 복합적인 과정이라는 것이다. 여기 서 정당화는 목적과 방법, 사실 주장을 연결시키면서 계층의 아 래쪽으로 내려갈 뿐 아니라 위쪽으로도 향한다. 이렇게 보면 이 세 가지 수준 사이에 더 우월한 것이나 일차적인 것은 생각할 수 없다. 라우든의 이러한 모델이 가져오는 중요한 수정은 우선 과학적 목표나 가치가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다는 관점을 열어 두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진보가 일어난다는 주장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물형 모델에 비추어 볼 때 과학적 진보는 변화 가능한 특정한 목표 상태에 대해 상대적 인 진보로 말할 수 있다. 라우든은 이러한 주장을 함으로써 과 학사가 보여주는 과학적 목적과 가치의 다양한 변화 과정을 포 함하면서 합리적인 진보의 개념을 살려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자신의 대안을 분명히 제시한 라우든은 제牛상에서 쿤 의 전체론적 입장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으로 들어간다. 일차적 인 비판은 쿤이 패러다임 간의 논쟁을 다룰 때나 목표에 관한 의견의 불일치를 다룰 때 쿤의 접근은 합리적 선택의 가능성에 관해서 아무것도 제시해 주지 못한다는 데 향해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수락을 개종의 경험으로 설명한다거나 새로운 패러 다임을 받아들이지 않고 낡은 패러다임을 고집하는 것이 비이성 적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과학적 변화의 합리적인 분 석에 대한 분명한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리 ? 든은 쿤의 입장에서 이러한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근본적 인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 첫째, 정당화의 계층적 관점 을 그물형 모델로 대치시킴으로써 인식적 가치를 협의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둘째, 쿤의 세계관이 갖는 전체론적인 성격을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수정을 가 하고 볼 때 과학적 변화는 쿤이 과학 혁명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과 같은 급격한 형태의 변화가 아니라 각각의 수준에서 점진 적으로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미시적인 수준에서 일어나는 점 진적이고 이성적인 과학적 신념의 변화 과정을 단순화시켜 혁명 적인 급격한 변화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 또한, 라우 든에 의하면 세 가지 수준의 변화가 한꺼번에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드물다. 세 가지 수준 중에서 하나 나 두 개의 수준을 확고하게 유지하면서 문제되고 있는 수준의 수정을 결정하는 일이 가능하다. 라우든의 입장에서는 이론이 어떤 규칙의 집합이나 기준에 의해 충분히 결정될 수 없을 때에 도 많은 이론들이 적절한 규칙에 의해 배제될 수 있기 때문에 점진적인 합리적 변화의 과정은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이어서 리 ? 든은 적절한 중거와 방법론적 기준을 가지고서는 하나의 패러다임이 상대 패러다임보다 월등히 낫다고 할 만한 점을 찾을 수 없다는 쿤의 주장을 지역적 미결정성의 테제로 놓 고 그것을 비판한다 . 라우든에 의하면 이러한 지역적 미결정성 울 위한 쿤의 논증은 네 가지로 정리된다. 공유된 기준의 애매 성에 대한 논증, 규칙의 집합적인 무모순성에 대한 논증, 변화 하는 기준에 대한 논증, 문제의 비중에 대한 논증 등이 그것이 댜 쿤의 이러한 논증에 대한 검토를 통해 라우든이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과학적 문제에 관한 과학자들의 견해 차이가 존재한 다는 사실이 그 과학자들이 해야 할 인식적 평가의 양립불가능 성이나 불가공약성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라우든은 특정한 패러다임에 한정되어 있지도 않고, 전적으로 모호하거나 개인마다 다르지도 않은 경험적 원리 혹은 증거에 의한 지지의 원리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하는 인식론의 핵심적인 전제가 쿤의 시도롤 통해서 전혀 손상을 받지 않는다고 본다. 더욱이 그는 그런 원리를 통해 우리가 과학적 규칙이나 목표를 선택할 때 합

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 마지막으로 라우든은 자신의 그물형 모델을 통해 실재론의 가 치론과 방법론에 대한 비판을 시도한다. 5 장에서 주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실재론의 수렴론적인 태도와 보존주의적 인 태도이다. 이런 태도는 간단히 말하면 과학 이론은 진리에 가까이 접근해 가고 있으며, 지칭을 하고 있고, 계승 이론은 선 행 이론의 성공 이유를 설명해 내야 하며, 그것을 제한 사례로 서 포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라우든이 일단 문제 삼는 것은 진 리, 지칭, 성공 등의 상호관련성에 대한 이들의 주장이 올바른 것인가 하는 점이다. 우선 알 수 있는 것은 지칭적이면서도 성 공적이지 못한 이론이 많이 있었고, 역으로 지칭적이지 않으면 서도 성공적이었던 사례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실재론자들의 주 장은 유지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또한 실재론자들이 진리근접성 이라는 대단히 애매한 개념을 사용해, 어떤 이론이 근사적인 진 리라고 하면 거기서 연역적으로 그 이론이 객관적인 현상에 대 해 성공적인 설명과 예측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계승 이론이 전형적으로 선행 이론을 제한 사례 로서 포함한다는 실재론자들의 보존주의적인 주장에 대해서도, 라 우든은 과학사의 다양한 사례 제시를 통해 그렇지 않은 경우를 풍 부히 밝히고 있으며 오히려 과학자들이 그런 보존주의적인 제약 울 깨뜨리려 했을 때 중요한 이론적 혁신이 나타났음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양분되어 있는 과학철학의 논의를 통일시키고자 하는 라우든의 시도에서 최근 영미 계통의 철학 전통에서 일어나는 탈실증주의적이고 후기 경험주의적인 경향 속에서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라우든의 이러한 접 근이 단순한 절충적인 입장에 머무르지 않고 애초에 목표로 한

것에 얼마나 다가갔는지는 그가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과학적 합리성의 그물형 모델에 대한 엄밀한 분석 작업을 통해 평가되 어야 할 것이다. 라우든의 이 책은 전통적인 인식론적 태도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에서 과학철학의 제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만큼, 현대 영미 철학의 새로운 경향에 대한 우리의 이해 지평 울 넓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

옮긴이후기 이 책 은 래 리 라우든의 Sci en ce and Values (Un ive rsit y of Califor n ia Press, 1984) 를 완역한 것이다. 고대 김용준 선생님의 독회에서 책을 읽을 때는 번역까지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뜻밖 에 좋은 기회를 얻어 힘에 부치는 줄 알면서도 달려들어 보았 다. 은사이신 신일철 선생님의 격려와 도움이 없었으면 번역은 몇 배 더 힘들었을 것이다. 두 분 선생님께 가슴 깊이 감사드린 댜 초고를 읽고 조언을 해준 고대 대학원 박사과정에 있는 우 정규, 박준용, 최준호, 이병철 선생께 감사드린다. 이런 좋은 기회를 허락한 대우재단에도 감사드린다. 이경열 선생님을 비롯 한 민음사의 여러분께도 감사드린다. 오역이 여기저기 숨어 있 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않다. 독자 여러분의 따뜻한 충고와 질 책을 바랄 뿐이다. 1994. 3. 이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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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설 -과 귀 납 100, -의 방법 (가설연 역법) 100, -로서의 실재론 210, 211 7 因 가치론참조 가치론 53, 54 一의 변화 虹 135, 138, 겨 합 의 78, 83, 84, _적 비판 90, 92, 216, -적 불일치 53, 80, 82-84, _적 정서 135, 계층적 모델에서의 _ 53, 66, 84, 88, 함축적 -과 명시적 - 96, 102, 107, 109, -과 패러다임 116, 117, 122, 135, 136, 려 1 대한 포퍼의 입장 86, 88, ....,과 실재론 163-215, 그물형 모델에서의 _ 108, 려 1 대한 사회학자들의 입

장 82, 려 1 서의 이론과 실천의 일치 102 ., 이 상주의 -9 0. 9'2 거팅, 게리 53 주 3) 경험주의 논리 - 15 , 16, 26, 27 계층적인 정당화 모델 49, 63, 65, 75 가치론적 수준에서의 -5 3, 54, 64, 65. -의 실패 77. -과 쿤의 모델 116, 117, -의 대체 106, 121 공변법 132 공변성의 오류 78- 80 , 82 공산주의 'l:I 과학 려 1 서의 유비 IOI , 102 ., 켜 1 서 의 근사적 전리 184 -19 0. 2 야 . -의 변화/혁명 9, 26, 35, 62, 113 -11 5, 117, 120. 124. 128, 140, 164, -에서의 대옹 93,

184, 192, 194, 195, -에서의 반규범적 행동 33, 38, 위기 39, 42, 누적적인 - 26, 려]서 의 의사결정 모델 21-4 8 , -의 구획 l6. 려]서의 인식론 163, 려 l 서의 반증 43, 성숙하지 못 한 - 192, 193, 려]서의 불가공 약성 33, 36, 39, 41-4 4. 65, 66, 161, -에서의 귀납 100, 101, 이해가능한 - 103, 104, -에서의 제한사례 196-200, 204, 2

방법론 / 방법론적 규칙 참조 과학적 변화의 전체론적 모델 128, 131, 134 과학적 합리성 8, 9, 18, 75, 86, 106, 168 광학 파동- . 입지_ 26 귀납 100, IOI -과 가설 100, 추론에 있어서의 - 102, 133 규범 머튼의 -2 7-29, 가치론 참조 그륀바움 . 아돌프 203 L 나겔 에른스트 64, 81 뉴턴, 아이작 98, 101, 175, -과 아리스토텔레스 61, -과 케 플러 62, 풍匡리학 61, 103, 1 야 뉴턴 - 스미스 , 월리엄 167, 171, 187, 188, 210, 214 니니루토, 일카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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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162. 지역적 _ 142-1 6 2, 방 법론에 있어서의 - 55, 142, 이 론의 -3 7, 55, 141 미트로프, 이안 38 밀 존 스튜어트 22, 68, 149, 150 밀러 , 데이비드 205, 206 닌 바바 버나드 29 반스, 배리 75 반증 50 방법론/방법론적 규칙 7, 21, 23, 44, 50, 51, 53, 67, @ , 81, 86 一의 변화 ll1, 115, 116, 127, 133, 136, 138, 이론의 확증 23, 려 l 있어서의 합의 31, 64, 70, 80, 82, 제약으로서의 - 50, -에서의 불일치 17, 23, 24, -의 기능 65, 려]서의 무모 순성 148-151, ~간한 쿤의 입 장, ro. 141-143, 146, 가치론에 의해 중재된 - 68-70 , 패러다임 과 관련하여 36, 39, 115, 134, 152, 려]서의 문제의 비중에 관 하여 153-162, 려] 관한 실재론

자의 입장 166, -의 미결정성 59, 60. 겨 1 의한 사실적 불 일 치의 해결 50- 52 버클리 조지 98 베이컨, 프란시스 22, 132, 149 베일리. J. S. 100 변화 9, 20, 26, 40, 62, 127, 128 가치론적 - 97, 135, 138, 려 l 대한 전체론적 관점 115, 116, 120, 124, 131, 139, 방법론적 - 131- 13 4, 136, 138, 패러다임 - 79, 84, 117, 120, 128, 129. 152, 158 보스코비치, 로저 99, 100 보이드, 리처드 165, 167, 173, 181, 184, 197, 198, 210, 214 보존주의 198 -20 0 보편주의 27 부르하페 , 헤르만 98, 179 부리언, 리처드 177 부폰, G. L. 99 불가공약성 33, 36, 39, 41-4 4, 65, 66, 161 불일치 16- 18 , 22, 23 가치론적 -5 3, 80, 82- 84 , 사실 적 - 50- 52 , 64, 75, 79, 153,

패러다임간의 - 36, 39, 116, 120, 125, 방법론적 - 52, 65, 66, 69-71, 75, 153, 철학에서 의 - 17, 23, 24, 과학에서의 - 17, 23, 24, 이론선호성에서의 - 145-151 A 사실적 - 선택 67, - 합의 50, 54, 83, - 불일치 50-52, 64, 75, 79, 153 사회학 가치론에 관한 - 80. -에서의 불일치 19, 27, 28, -의 규범 27-4 3 , 과학 - 9, 15, 27, 32, 46, 80 상대주의 85 주 2). 89 인식론적 - 59, 164 선지시 67 선택 사실- 54-64, 67, 이론_ 58 -64, 142- 14 7, 려]서의 미결정성 55- 59 성공 -과 근사적 진리 184, 186,

187, 189, 190, 193-195, 209, 213, 과학에서의 - 196, 197, 204, 2ITT-209, 212, 214 셀라스, 월프리드 165, 173, 1'!7 , 2ITT, 208 수렴 수렴적인 인식론적 실재론 참조. 슈밀레비치 . I . 1'!7 , 198 시 010 ~.§.CER 수렴적인 인식론적 실재론 참조 시험 19, 65 신념 59, 60 실재론 가치론에 관한 - 164 -21 5, 수령 적인 인식론적 _ 169 -17 1, 184, 191-193, 195, 1 였 가설로서의 _ 212. 의도적 - 167. -과 도구 주의 78, 81, 86, 190, 199, - 의 방법론 167, 의미론적 - 167. 과학적 - 164 -21 5 실증주의 215 。 아리스토텔레스 61 에너지론 34

에테르 이론 99, 180, 202 여L.... 0-4, 가설참조. 오류가능주의 135, 136 오류불가능 92, 134, 135 오일러, 레오나드 100 왓킨스, 존 196, 1 이 200, 206 원자론 24, 25, 34 위약효과 72 위웰 월리엄 68, 102, 131, 133, 1CJ 7 유비 101, 102 윤리학 7, 8 이상주의 90-93 , 106, 123 이해가능성 103, 104, 136 인식가치 가치론참조 인식론 73-75 인식론적 상대주의, 수렴적인 인식론적 실재론참조 일치와 차이 132, 150 : 접촉작용 104, 105 정당화

계충적인 정당화 모델 정당화 의 그물형 모델 참조 정 당화의 그물형 모델 106-109, 112, 122 켜]서의 가치론 108, 려]서의 제 약 107, - 에 서 의 상호의존성 , l07 존 XH 론 패러다임과 관련하여 79, 115, 116, 122 , 123, 사실적 참조 주커만 해리에트 28 지먼, 존 20 지칭 168, 170, 171 화학에서의 - 176, -에 대한 퍼트남의 입장 171, 172, 174 , 178, 181, -과 과학에서의 성공 172-184, 190, 191, 194 진리박진성 187 진화론 19, 58 文 차이 132, 150 창조론 34, 58 철학 려]서의 합의 84, 一 1l 서의 불

일치 17, 23, 24, 과학- 9, 15, 22, 32, 46, 80, 84, 141, 164, 165, 199 추론 귀납적 - 102, 132 겨 캠벨 N. R. 20 케인스, J. M. 68 케플러, 요한 62 코티지,노레타 1% 코페르니쿠스 대 프톨레마이오스 24, 25, 30 콜린스, 해리 45, 46 콩디야크, 에티엔트 드 98 콰인, W. V. 0. 37, 141 쿤, 토마스 8 -의 실증주의와의 단절 116, 117, -의 도전 113, -테제의 명 료화 113, 114, 합의에 관한 견 해 35, .42 , 43, 무모순성에 관 한 견해 145, 146, 려 1 대한 비 판 115, 117, 변화에 대한 전 체론적 관접 117, 119, 122, 131, 불가공약성에 관하여, 36 -

45, 113, 139, 패러다임간의 불 일치에 관하여 36, 39, 지역적 인 미결정성에 관하여 141-151, 방법론에 관하여 59-61, 141- 162, 통상과학에 관하여 39, 공 유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인 가치들 131 주 12), 패러다임의 개념에 관하여 40, 79, 115, 과 학적 합리성에 관하여 8-9 크라제프스키. w. 191, 192, 196, 1CJ 7, 206 E: 툴민, 슈테판 115 立 파이어아벤트, 풀 11, 33, 38, 43, 44. 46, 47 패러다임 명확하게 하기 122, -의 가치론 116, 122, 136, 145, -변화 79, 84, 117. 120, 128, 129, 152, 158, -합의 131. -의 땔 수 없 는 관계 118, 려 1 관한 쿤의 개

념 40, 79, 115, -의 개념 H5. I16, -의 방법론 116, 117, 152, -의 존재론 I16, 122, 131, 자체 증명되는 -4 0 퍼스. 벤자민 68, 133 퍼트남. 힐러리 165, 167, 173, 175, 176, 180, 184, 188, 191, 193, 196 -20 0, 203, 206, 210, 214, 지칭에 관한 입장 171. 172, 174, 178, 181 평등주의 인식론적 -59 포스트 . 하인츠 196, 197, 206 포앙카레 J . H. 199 포퍼 , 칼 15, 23, 27, 64, 68, 84, 113, 159, 165, 196, 197, 206, 과학의 목적 에 관하여 86- 88 풀라니 . 마이클 29, 31 표본추출 72 푸코, 장 B. L. 115, 122, 138 프랭클린 , 벤자민 98, 200 프리스톨리. 조셉 25, 121, 124, 142 ,. 프톨레마이오스 24, 25, 30, 34, 200 플랑크 원리 41

굼 하틀라 데이비드 99, 100, 180 합리성 계충적인 정당화 모델, 과학적 합리성참조 합의 18-33, 44, 131 가치론적 _ 78, 83, 84, 사실적 - 50, 54, 83, -형성 38-4 I , 49, 54-56 , 64, 78, 122, 131, 140 (계층적인 정당화 모델 정당화 의 그물형 모델 참조) 一 1l 관한 쿤의 관점 35, 38-39, 41, 방법 론적 - 64, 70, 려] 관한 철학 지들의 견해 81, 려] 관한 폴라 니의 관점 29, 31, 이론의 선 호성에 있어서의 _ 44-56 , 세계 관에서의 -1 26, 127 허셀 J. F. 월리엄 150 헤르츠, G. 133 헬름홀츠, 헤르만 폰 133 헴펠 칼 113 화학 려]서의 에데르 이론 179, 180, -에서의 프리스틀리국중턴크拉브 와지 에의 논쟁 25, 121, 142, 려]

서의 지칭이론 176 확실성 과학에서의 - 135 회의주의

유기적 -끄 30 주 3) 후커,클리포드 199 흄 데이비드 98, 132, 210

약력 소개 래리 라우든 L arry Laudan 지은이 1941 년 11 월 미국의 텍사스 주 오스틴에서 태어났다. 프린스턴 대학에 서 역사와 과학철학을 전공하고 1965 년 동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 댜 函 2 년 이후 피츠버그 대학에 교수로 재직한 바 있댜 현재는 하와 이 대학에 재직중아다. 주저로 Prog re ss and Its Problems(Berkeley, Los Ang el es, London : Univ e rsity of Califo rn ia Press, 1977), Sc ien ce and Hy po th e sis ( Dordrecht : Reid e l, 1981 ), Sc ien ce and Values(Univ e rsit y of Califo rn ia Press, 1984) 등을 꼽을 수 있으며, 최근에는 과학철학 의 논쟁을 대화 형식으로 꾸며 저술한 Sc ien ce and Relati vi s m (Un ive rsity of Ch ica go Press, 1990) 을 내놓은 바 있다. 그밖에 다수 의 논문이 있다. 이유선 옮긴이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 했다. 현재 고려대학교, 강원대학교 강사이다. 논문으로 「로티의 네 오프래그머티즘에 관한 연구」, 「가다머 해석학의 보편성주장에 관하 여」, 「정신과학의 방법문제」가 있으며, 번역으로 '『해석학과 과학』 (J.M . 커널리, T. 코이트너, 민음사, 1993) 이 있고 공동번역에 『이데 을로기로서의 가술과 과학』(J.하버마스, 이성과 현실, 1993) 이 있다.

과학과가치 과학의 목적과 과학 논쟁에서의 그 역할 대우학술총서 ·번역 69 1 판 1 쇄 찍음 1994 년 4 월 10 일 1 판 1 쇄 펴냄 l4 년 4 월 20 일 지은 o] 래리 라우든 옮긴이 이유선 펴낸이 朴孟浩 펴낸곳 (주)民音社 출판등록 1991. 12. 20. 제 1 6-4 90 호 135-120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506 강남출판문화센터 5 층 515- 200)(대표전화) 값 7, 야玲 Printed in Seoul, Korea ® 이유선, 1994 철학, 철학의 체계 • 과학주의 철학 KDC138 ISBN 89-374- 4069-5 94130 ISBN 8 9- 37 4-3000- 2( 세트)

대우학술총서(번역) 1 유목만족제국사 콴 텐 /송기중 38 텍스트 사회학 지 마/허창운 2 수학의 확실성 클라인/박 세 희 39 현대물리학의 철학적 테두리 3 중세철학사 와인 버 그/강영계 보음/전일동 4 日本語의 起源 밀러/김방한 40 과학과 가치관의 우선순위 5 칼古그代렌漢/ 최語영 音애 韻 學槪要 41 스신페화리의/ 이진남실표 휘브너/이규영 6 말과 사물 푸코/이 광 래 42 대폭발 실크/홍승수 7 수리철학과 과학철학 43 大同 書 康有爲/이성애 와일/검상문 44 표상 포더/ 이 영옥 정성호 8 기후와 진화 피어슨/김준민 45 과정과 실재 화이트헤드/오영환 9 이성진리·역사 파트남/김효명 46 그리스 국가 에 렌버그/검진경 10 사회과학에서의 場理 論 47 거대한 변환 풀라니/박현수 레빈/박재호 48 법인류학 포스피실/이문웅 11 영국의 산업혁명 49 언어철학 올스튼/곽강제 딘/나경수·이정우 50 중세 이슬람 국가와 정 부론 12 현대과학철학논쟁 램톤/김정위 쿤 外/조승옥 김동식 51 전 통 쉴즈/김병서·신현순 13 있음에서 됨으로 52 몽 골 문어문법 뽀뻬/유원수 프리고진/이철수 53 중국신화전설 l 14 비교종교학 바하/김종서 袁jij/전인초 김선자 15 동물행동학 하인드/장현갑 54 중국신화전설 l 〈근간〉 16 현대우주론 시아마/양종만 55 사회생물학 l 17 시베리아의 샤머니즘 윌슨/이병훈·박시룡 디오세지 ·호팔/최길성 返스 크 샘, 울

1 8 조형미술의 형식 윌슨 / 이 병 훈 · 박시룡

힐 데 브 란트 / 조창섭 57 일반언어학의 제문제 I 19 힐버트 리드 / 이 일 해 밴배니 스트 / 황 경 자 20 원시국가의 진화 하 스 / 최몽룡 58 일반언어학의 제문제 I 21 商文明 張光直 / 윤내 현 밴 베 니 스 트 /황 경자 22 마음의 생태학 배이 츤/ 서 석 봉 5 9 폭력과 성스러움 23 혼돈 속의 질서 지라르 /김 진식 ·박무호 프 리고 진 · 스텐저스 / 유 기풍 60 갑골학 60 년 24 생명의 기원 밀 라 오르켈但수 인 원 董 作 賓/ 이 형 구 25 일반언어학이른 야 콥슨 1 권재 일 61 현대수학의 여행자 26 마국이가 내권 케력 / 이의 광 주이 념사 62 피프터랑 슨스 /김 혁인 명수 의· 주 형지관적 기원 27 역사학 논고 브로델/ 이 정 옥 모 르네 / 주 명 철 28 유럽의식의 위기 l 63 커해널석 리학 · 코과 이 과트 너학 / 이유 선 아 자 르 / 조한경 29 유럽의식의 위기 [ 64 핀서리양 /고 지동대 식경 제 아자 르 / 조한경 333120 일일일반반반국체언어가계 학학이른강 켤의 전버 /를소J 쉬란 준 피르기 // 최현 승승 일언 6656 들베음앙 버뢰띠악 /즈 이사·오 건가회이 용따학디리 /푸 최스 명 관 33 현대문명의 위기와 기술 철 학 67 과학커뮤니케이션른 에거시/ 이 군현 프 라이 스^ 祚테우·정 준민 34 언어에 대한 지식 촘스 키 / 이 선 우 6 8 교양교육의 개혁 35 음운학원론 트 루베쪼 코이 /한문희 다니 엘 벨/ 송미 섭 36 우주의 발견 하위트 / 강용 희 37 수학적 발 견의 논리 라카토 스/ 우 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