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지마 Pete r V. Zim a 1946 년프라하출생 영국 에딘버러 대학에서 사회학, 문학 전공 파리 고급 연구학교에서 문학사회학 전공 서독빌레펠트대학, 네델란드그로닝엔대학등에서 강의 현재 오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 대학 일반문예학 및 비교문예학교수 저서 : 『문학텍스트의 사회학을 위하여 Pour une Socio lo g ie du Texte l itt era ir e 』 (1978), 『소설의 양가성 : 프루스트 카프 7}, 무질 L'Ambiv al ence romanesq,u e: Proust, Kafk a, Mus il』 (1980), 『소설과 이데올로기 Roman und Ideolo gi e』 (Munchen, 1986), 『이데올로기와 이론 ldeolo gi e'und Theor i e 』 (Tubin ge n, 1989), 『문예미학 Lit er arisc he As t he tik』 {Tubin g e n , 1991) 등
텍스트사회학
—E inTe ekxr tsi toiszci h oelo .E언ie n f i ihr ung
덱——스 비트판사적 회개론학
책 머리에 전통적인 문학사회학을 뛰어넘어 새로운 지평의 문예학을 지향하는 지마의 〈 텍스트사회학 〉 이 제대로 소화되어 우리말로 옮겨지기까지는 숱한 어려움이 뒤따랐다고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원 덱스트에 여러 의국어가 함께 뒤섞여 있었기 때문에 이 번역은 그야 말로 난산이었다 . 옆에서 세심하게 고쳐주면서 문서작성기에 입력까지 해준 김태환 군의 조력이 없었더라면 번역 기간의 준수는 어려웠으리 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번역의 성공 여부는 전적으로 그러한 도움 덕분이라고 여기면서 우선 이 결실에 갈채를 보내고 싶다. 체코 출신의 문예학자인 동시에 저명한 문학사회학자이기도 한 지 마는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네덜란드의 그로닝엔 대학에서 일반문 예학울 가르쳤지만, 현재는 오스트리아 케른텐 주의 클라겐푸르트 대 학에서 일반문예학과 비교문예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의 학문적 배경은 그야말로 다채롭고 광범위하다 . 그는 형식주의의 울타리를 뛰 어넘어 체코 구조주의자 무카로프스키]. Muka t ovsk y의 선구자적 인식 은 물론, 문학의 상대적 자율성론을 주창하면서 비판적 문학사회학의 기초를 마련한 아도르노 Th. W. Adorno 의 독보적인 술화비판적 성과들을 섭 렵 하는 한편, 마르크스주의 전영 의 루카치 G. Lukacs 와 알튀 세 L. Al- t husser 조차도 극복함으로써 기 호학에 기 반한 비 판적 텍스트사회 학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프랑스문학(예컨대 M.Prous t)과 독일문학(예컨대 R.M usil) 양쪽에 걸쳐 서 구체화되고 있는 그의 비판적 〈술화분석〉은 그 전문적인 깊이로 보나 學際的인 포괄성으로 보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전문서가 아님은 분명하다 하지만 제대로 된 입문서 하나 없는 우리의 현실에서 그나마 이 정도라도 전문 분야에 관한 착실한 개설서가 나와준다면 우리 지 성계의 지적 갈증도 어느 정도 해소되리라고 자위한다. 그러니까 황혼의 〈미네르바〉가 나래를 퍼덕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80 년대 중반이 다 되어 갈 무렵이었다고 기억한다. 대학 캠퍼스 내의로 질게 우울이 드리워져 항상 무거운 분위기가 주름잡던 때라서 그랬는 지 나 또한 무언가 새로운 인식을 찾아서 힘든 고행의 길로 나서고 싶은 충동을 느꼈던 것이다. 판에 박은 듯한 독어독문학의 정규 커리 큘럼에서 일탈하여 무언가 새롭고 참신한 지적 모험을 경주하고폰 갈 망이 이로써 기회를 잡은 것이다. 우연인지는 모르나 그때 내 손에 쥐어진 것이 바로 이 역서의 원본 이었고 또 때마침 지마의 불어본 논문집인 『문학덱스트의 사회학을 위하여』(이건우 譯 : 서울, 문학과지성사, 1983) 가 서적가에 선을 보였던 터 였다. 사실 지마의 명제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현대언어학과 기호학 의 기본인식들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필수적인 것이 사실인데, 다행히 역자에게는 현대언어학으로의 접근을 위한 일정한 기초작업이 이미 선행되어 있었으므로 이해에 큰 어려움은 없었던 셈이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해 지마가 견지하고 있는 바판적인 관점도 지당한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당시 우리가 처해 있었던 정치 • 사회적 상황이 부정적이었던 탓에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는 부분이 더욱 강렬한 호소력을 발휘했 던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이 책은, 출간된 지 10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커다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그의 비판은 마치 동구 체 제의 붕괴를 예견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주는 것이다 . 더구나 지마의 이러한 관점은 그 사이 다시 한 번 『이데올로기와 이론 ldeolog i e und The ori e 』 (Tobin g e n , 1989) 이라는 제명의 책으로 집대성되었고, 그의 성숙 한 문예학적 문학사회학적 성찰둘 또한 단행본 『문예미학 L it era ri sche As t he ti k 』 (T i.i b i ng en, 1991) 으로 구체화되기에 이르렀다. 모두의 예상을 깨 뜨리고 동서장벽이 일시에 허물어져 내렸는가 하면 어제의 적이 오늘 의 우방으로 돌변하는 등, 지마 자신의 말처럼 모든 절대적 이분법이 거짓임이 밝혀진 상황 속에서 출간된 그의 力著가 이번엔 어떤 날카 로운 통찰을 보여줄지 자못 궁금하기 짝이 없다. 남북간의 긴장을 해소하는 문제도 문제이거니와, 어이없이 일어난 걸프전쟁은 또 우리에게 무슨 문제거리를 안겨줄지 우려되는 詐今이 다. 이러한 현실을 앞에 두고도 90 년대 거대여당으로 정치적 안정세를 확보했다는 기득권자들의 미래지향적 비전이란 것이 과연 무언지조차
잘 알 수 없는 형편이다. 그저 〈 신사고 〉 니 〈 신시대 〉 니 하는 말만 읊고 있을 게 아니라 그야말로명실상부한 〈 신철학〉을 제시하고 실천에 옮겨 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러한 실천의 구체적 성과들을 직접 자신의 눈 으로 목격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여망이리라. 결코 평탄치만은 않을 우리의 앞길을 헤쳐가려면, 더구나 선전 열강들이 범했던 과오를 되풀 이하지 않고 직선거리로 그들을 따라잡으려면 그야말로 통합적인 전 망과 모든 역량을 다 규합할 수 있는 참신한 비전이 필요한 때라고 여긴다 . 문예학이나 문학사회학을 비롯한 각 분야의 학문들도 이같은 전망울 구축하는 작업에 동참하는 데 인색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또한 이것이야말로 이론과 실천의 통일로 가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보면서, 학술서의 번역사업을 그동안 꾸준히 지원해 온 대우재단에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드린다. 아울러 이 책의 한국어판 번역본에 대해 격려와 함께 동료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지마 Pe t er V. Zim a 교수의 친절에 대해 서도 심심한 사의를 표하고 싶다. 1991 년 정월 허창운
텍스트사회학 -
차례책머리에 • 4서설 • 텍스트와 콘텍스트——강령적 논평1. 〈문학사회학〉 112. 메타텍스트의 비판 133. 바흐친에 대한 부설 144. 합리주의 155. 술화비판 176. 허구성 Fiktionalitat 247. 양가성 Ambivalenz 301 경험적 문학사회학의 몰가치적 술화1. 대상영역의 정의 352. 두 개의 理念素 383. 몰가치성 : 이론과 실천 424. 몰가치성과 교환가치에 의한 매개 485. 목적합리성과 가치합리성 512 변증법적 제이론과 덱스트사회학1. 헤겔의 유산 572. 루카치가 말하는 본질과 현상의 변증법 : 총체성의 전형 613. 루시앙 골드만에 있어서의 세계관과 총체성 664. 알튀세에서 마셰리까지 : 헤겔의 목적론 비판 695. 텍스트사회학을 위한 구상들73
3 텍스트로서의 사회1. 사회언어학적 상황 : 두 개의 모델 892. 사회어와 술화들 963. 텍스트 상호성 1074 텍스트사회학의 모델 : 프루스트, 무질1. 언어의 양가성과 시장법칙 1152.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303. 로버트 무질의 『특성 없는 인간』에 대하여 1525 소설사회학에 대한 고찰1. 특수자에서 보편자로 1832: 카프카와 헤세에 대한 附說 1873. 프랑스 소설의 발전에 대하여 1976 술화비판1. 이론과 허구 2052. 이데올로기 비판으로서의 술화분석 2123. 아도르노의 〈비판이론〉은 反술화인가? 229해제 • 덱스트사회학과 술화비판 • 239인명색인 • 251서설 • 텍스트와 콘텍스트* —강령적 논평
* 〈콘텍스트 Kon t ex t〉는 우리말로 〈문맥〉, 〈맥락〉, 〈연관관계〉로 번역될 수 있는 동음이의어이기 때문에 덱스트와 연관되는 모든 주변 상황을 포괄적으로 표시 할 수 있게끔, 그리고 상황제약적인 위험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해서 외래어 그 대로 사용함이 효율적이라고 여긴다 -역주.
1. 〈문학사회학〉 경험적 문학사회학이건 변증법적 문학사회학이전간에 지금까지의 문학사회학의 제조류는 많은 경우 문헌학의 전래된 전제들에서 출발 했다. 마르크스주의적 연구자둘이 문헌학적 述話 D i skurs** 의 어휘목록 에 얼마나 큰 신뢰를 두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나면, 우리는 실로 놀라 게 된다. 죽 이 이론은 한편으로 시민적 제관계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 판에 토대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예술작품이니 창조 니 양식이니 장편소설이니 하는 개념들을 그냥 받아들임으로써 특정 용어들과 그 언어적 표현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看破하지 못하고 있 는 실정이다. 물론 술화분석과 술화비판의 문제를 단순히 어휘 차원으로 축소시켜
* * 이 개념에 관해서는 해제부분 참조.
모든 새로운 造語 에는 새로운 (혁명적) 이데 올로기 의 싹이 들 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진부하게 들릴 것이다. 많은 현대의 텍스트학에서 도움 말도 없이 독자들 앞에 제시되는 혁신적 용어들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空轉 을 거듭할 뿐인 현실은, 단순히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것만 으로는 언어적 상황을 변혁할 수 없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술화구조의 복합성은 그 어휘적 토대에 환원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루이 알뒤세와 그의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는 미셸 페쇠 같 은 논자들은 특정한 콘텍스트내에서는 새로운 단어의 출현이 동시에 과거와의 이데올로기적 단절을 지시하는 것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실로 이는 틀린 말이 아니다. 언어적, 이데올로기적 상황과 이를 구조 화하는 대립과 대립쌍둘이 · 문제의 핵심이 되고 있는 경우라면, 〈 계급 투쟁의 전체는 많은 경우 단어들간의 대결로 소급될 수 있다 〉 는 알튀 세의 명제는 타당한 것이라 하겠다 (P~cheux, 1975, S.1 9 4 ). 이 명제의 진리계기는 언어 자체가 이데올로기적으로 매개되어 있고 과학에서도 문학에서도 가치중립적 言表 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식에 근거한다. 이러한 인식은 문학사회학의 분야에서는 새로운 것이다. 이 는 경험적 방법들이 텍스트 구조의 연구를 포기하고 이를 노동분업에 따라 문학과 문학비평에 넘겨주고 있는 반면에(제 1 장 참조) 마르크스주 의자들은 문학이 텍스트나 언어적 기호체계가 아니라 단순히 〈 예술 〉 인 것처럼 말하는 데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한 태도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결과를 낳는다. 1. (많은 경험주 의자들이 거리낌 없이 연구대상에서 제의시키고 있는) 덱스.트 ` 구·조는· 기껏 해야 전승된 문헌학적 범주와 개념들에 의존하여 직관적으로 연구될 뿐이고, 최악의 경우엔 인지되지도 못한다. 2. 학문적 • 이론적 메타덱 스트는, 그 배경에 대한 질문은 유보된 채 그대로 〈이용〉되고 마는데, 이때 그 역사적 이데올로기적 位置價*는 계속 숨겨지는 셈이다.
2. 메타텍스트의 비판 변증법적 문학사회학은, 허구적 텍스트뿐만 아니라 이론적 메타텍스 트까지도 사회역사적 , 사회언어학적인 콘텍스트 속에서 서술하고 비판 할 수 있는 비판적 텍스트이론을 결여하고 있다. 변증법은 이제까지 술화 유형에 관한 관념을 마련하고 가치판단을 언어적 구조로 파악하 는 일 ( 그레마스)을 다소 형석적인 언어학 또는 기호학 (Z . 해리스, A.J . 그 레마 스 )에 미뤄 왔다. 그리하여 〈 비판적 합리주의 〉 측에서 제기한 메타 덱스트 차원의 비판, 즉 변증법적 문학이론은 그 개념둘을 정의하지 않았다(아니면 잘못 정의했다)는 논지의 비판에 대해서 〈비판이론 〉 을 제 의하고는 어떤 변증법적 사상도 반론을 펼 수 없었던 것이다 . 기호학의 영향 하에서야 비로소 알튀세적 마르크스주의의 옹호자들이 최근 이 데 올 로기의 언어적( 술 화적) 토대에 대한 연구에 착수하였다 (Al t husser, 197 6, 그리 고 Pecheux, 1975 참조) . 〈 비판이론 〉 의 자기이해에 따르면, 특히 『 계몽의 변증법』 (Ams t erdam, 19 47 ) 이 출간된 이래로 그것은 언제나 언어 및 술화비판에 몰두해 왔 다. 비판이론은 그것과 근친관계에 있는 비판적 기호학 없이도 합리주 의의 定 義 的이고 분류적인 술화가 지니는 이데올로기적 동기를 추적할 수 있었다. Th. 아도르노가 r 고유성의 은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야 스퍼스와 하이데거의 실존주의로부터 유래한 어휘들에 대해서, 그리고 (50 년대의) 특수한 사회언어학적 상황 속에서의 그 확산에 대해 연구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아도르노의 주요 논거 중의 하나는 존재론적 담화가 은폐하고 있는 언어체계의 역사성을 강조하는바, 이는 우리의 * 이 개념은 독일어 〈 S t ellenwe rt 〉 의 우리말 역어이다 . 우리 사전에는 이 개념표 시가 없기 때문에 일견 생소하게 여겨지나 〈 位相 가치〉라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 _역주 .
당면작업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아 점에서 바판이론은 개념 의 역사적 변화 가능성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 비판적 합리주의 〉 와 대결하는데 , 이는 필연적인 일이다 . 〈 은어 〉 에 대해서 아도르노는 다음 과 같이 적고 있다. 〈단어들이 실제로 말하는 것 이상으로 담지하는 의미는 결국 표현으로서 단어들에 귀속된다. 그리하여 변증법, 즉 단어 와 事象 사이의 변증법은 개개 단어들과 그들 관계 사이의 언어 내적인 변증법처럼 중지되는 것아다 〉 ( Adorno, 1964 , S.14). 3. 바흐친에 대한 부설 어휘 단위들의 역사적 피제약성과 개개 전술( 〈 slovo 〉,
전영의 구성원들도 〈비판이론〉의 정초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레마스적 기호학의 의미에서 술화분석을 구상하지는 못했다. 바호천 / 불로시노프 의 저서 제목 Marxiz m i filos ofi a j azy ka( 『마르크스주의와 언어철학』, 베를린, 1975) 이 보여주듯이, 언어학을 지향하면서 소쉬르와의 대결에서 형성된 소비에트 이론가들의 구상에 있어서조차 문제는 기호학이나 텍스트언 어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언어철학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은 오늘날의 논의에 대해 고도의 有關性울 지 닌다 . 왜냐하면 변증법적 이론에 기호학적 도구를 제공하고자 하는 학 자들이 장차 몰두하여야 할 문제가 여기에서 이미 제기되어 있기 때 문이다. 앞으로의 문제는 경험적 문학사회학과 마르크스주의적 문학사 회학이 과거에 태만과 부주의로 범했던 오류들을 시정하고 텍스트 구 조 자체를 〈사회적 사실 fait soc i al 〉로 인식하는 일일 것이다. 4. 합리주의 이론적(개념적) 술화를 이데올로기적 구성물로 간주하는 것은 오늘 날까지도 자명하게 받아둘여지지는 않고 있다. 영국에 기원을 둔 논리 실증주의 (Lo gi cal pos iti vism ; Ay er , 1967 참조)와 〈비판적 합리주의〉는 과 학적 논의와 사회적 관심을 상호 분리시키는 데 근본적으로 이바지했 다. 여기에서는 물리학과 형식논리학이 이상적인 인식모델로 작용했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이 그간 해석학 텍스트내에서도 시민권 울 지니고 있었던 간주관성 In t ersub j ek tivitat(간주관적 검증가능성)의 개념 이었다 (Habermas, 1973, S.389/3 9 0 참조). 그 개념은 원자화된 개인들이 자 기의 사회적(집단적) 관심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울바론〉 전술에 대한 보편적 합의를 추구할 수 있으리라는 합리주의적 환상을 부추기는 것 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합의는 알튀세가 주장하듯 각각의 언어기호가 이데 울로기의 담지자일 수 있는 사회과학(그렇다고 이 를 해석학적 관행에 따라 〈정신과학〉으로 치부해 버려서는 안될 것이다)의 영역에서는 이룰 수 없는 것처럼 보인댜 경쟁하는 집단이익과 점증하는 의미론적 양가성에 의 해 특칭지워지는 사회언어학적 상황에서 통일적인 용어와 통일적인 논의의 기준을 수립하려는 합리주의의 소망은 성취될 수 없었던 것이 다. 상황은 정반대였다. 술화, 어휘들의 분열은 최근 다름아닌 문예학과 사회학에서 오히려 더욱 심각해져 왔다. 이러한 비극적 사태는 불명료 한 사고, 〈선의〉의 결여, 제학설의 이데올로기 구속성에 대해 합리주 의가 유죄판결을 내린다고 수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데올로기적 단위들(理念素 Ideolo g em) 이 어떻게 술 화구조에 침전되어 새로운 의미론적 차이들을 낳는가 하는 질문을 제 기하여야 할 것이다. 어떤 이론적 술화가 몰가치성(탈이데올로기성)을 얻으려 노력한다고 해서 의미론적 통사론적 어휘론적 충위에서의 이 데올로기비판의 공격을 벗어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경험적 문학사회학 의 중심에 서 있는)몰가치성이란 개념을 발생론적, 역사적으로 비판해본 다면, 이 개념은 역시 베버의 개념으로서 그 중요성에 있어서 뒤지지 않는 목적 합리 성 Zweckrati on alirn t 개 념 과 근친관계 에 있음을 밝힐 수 있 울 것이다. 양가성이 심화되어 감에 따라 모든 가치평가적 이분법이 의심쩍고 자의적인 것으로(〈비판적 합리주의〉의 의미에서 〈이데올로기적〉인 것으로) 나타나 가치체계에 심각한 위기가 유발되고 있는 사회에서는 모든 실천적 이론적 목표설정을 목적합리성, 즉 기술적 이용가능성의 측면에 한정하려는 공리주의적 노력과 몰가치성의 이상은 서로 상응 하게 되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로서의 기술과 과학』에서 J. 하버마스가 제기하는 다 음과 같은 물음은 타당한 것이다. 〈과학과 기술의 합리성은 논리학 또 는 결과가 검증된 행동의 불변적 규칙에 근거하고 있다기보다는 오히 려 내용적이며, 역사적으로 발생하였기에 무상한 어떤 선험성 A p r i or i을
이 미 수용했음에 틀림 없지 않은가 ? >(H abermas,1 974, S.5 2 ) 우리 가 마르 쿠제와 함께 동의하는 이러한 물음은 다음과 같은 고찰에 연결되어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해서 바로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시대에 몽가치성과 목적합리성(기술주의)이 가치합리적 사고를 瞬 逐 해 버리고, 이러한 사고 의 과학적, 합리적 성격을 부인하기에 이르렀을까? 단순히 점증하는 기술의 중요성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 못된다. 이를 점점 더 정확한 계획에 따라 수행되는 자연지배와 연결시킨다 해도 마찬가지다. 기술의 진보와 병행해서 시장의 매개 메카니즘을 통한 사회적(시민 적, 자유주의적) 가치체계의 붕괴가 진행되는 것이다. 초기 르네상스 시 대에 유효하게 된 교환가치에 의한 매개는 독점주의 시대의 개막과 함께 모든 가치평가적 대립둘을 희생시키는 양가성을 상상 밖으로 급 등케 했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몰가치성을 향한 노력은 새 로운 〈기술주의적〉 가치 / 비가치의 이분법임이 확연해진다 . 즉 그것은 과학주의적 신화로서, 전래의 가치설정들을 賜逐하고, 그 자리에 기술 적 진보를 현대의 유일한 기준으로 대치시킨다. 그것이 결국은 파국으 로의 진보, 집단적 죽음으로의 진보를 의미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과 학주의적 신화에 맞선 많은 비판가들이 간파했던 바다. 5. 술화비판
〈비판적 합리주의〉와 〈해석학〉 사이에 논전이 진행되는 동안 해석 학적 텍스트 속에서 과학적 szie n ti sc h 방법의 결함을 판단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 結晶化되었다. 그것은 이론의 반성능력이다. 『인식과 관 심』, 『이론과 실천』에서 하버마스가 정신분석의 반성적 입장을 내세우 면서 그 속에서 과학주의의 대체물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Haber-mas, 1972, S.33~37), 하버마스와 같은 노선에서 부브너는 반성의 개념에 의지하여 해석학 (변증법?)을 형식논리학적 방향의 합리주의와 구분한다. 〈당면 문제들 을 가능한 한 구체적 제약조건에 대한 반성을 통해 인식하고 이로써 그러한 제약 조건으로부터 혼동을 일으키는 기능을 박탈하는 일만이 중요한 것이다. 이 일에 성공할 수 있는 것은 방법적 完備가 아니라 오직 해석학적 반성뿐이다〉 (Bubner, 1974, S.1 0 6). 하버마스와 부브너의 주장이 타당성을 지닐 수 있는 것은 자기자신 의 피제약성을 인식하는 사유를 옹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성의 개 념이 술화의 충위에서 엄밀화되지 않는 한 그것은 관념론적 철학에 사로잡힌 은유에 머무르고 말 것이다. 반성이 메타어들을 위계적으로 배열하는 작업과 동일시될 수 없다는 KO. 아펠의 지적은(이러한 맥락에 서 하버마스는 그를 인용하고 있다. Habermas, 1973, S.369) 문제의 핵심에 보다 접근한 것이다. 예컨대 타르스키가 정의한 대로 메타어는 대상어 의 의미론적, 이데올로기적 전제들울 폭로하고 의문시하는 것을 자신 의 과업으로 하지는 않는다(이 점에서 바호천의 메타술화 개념과 구별된다). 그것의 과업은 과학적 대상어의 개념적 도구들을 정밀화하고 위계화 하는 일이다 (Tarsk i, 1952, 1972, S.23 참조). 수많은(〈비판적 합리주의〉의) 분석적 시도에서 비롯하는 메타어적 작 업은 개념, 정리, 이론들을 정의하고 분류하는 데 그친다. 여기에서 논 의의 대상은 그 이념소가 아니라(예컨대 슈테그뮐러의 경우에서 보듯 위계 적 콘텍스트 속에서) 그들의 〈지위 S t a t us 〉다. 그래서 예를 들면 G. 파스데 르나크는 그의 저서 『문예학에서의 이론 형성』에서 이 분과에 쓸모 있는 시도란 기껏해야 그 이론들을 지위에 합당하게 배열하고 개념들 을 대체가능한 의미론적 단위들로 정의하는 것뿐이라고 주장한다. …… 해석다원주의에 따라 정리들을 이론적으로 專有하기 위해서는 상이한 이론들을 그 지위에 따라 구분하고, 이론 요소들을 위계적으로 조직화할 수
있게 함과 아울러, 기본 개념과 중십 범주 들 에 대한 이론 특유의 번역 내지 수용을 가능케 할 개념장치 를 포함하도록 이 분과를 보다 고도로 이론화할 것이 전제된다 (Pas t ernak , 1975, S.154 그리고 Gott ne r, 1973). 기호학적-변증법적 관점에서 볼 때는 메타어를 분류와 위계화를 위 한 도구로 파악하자는 제안 자체가 이미 하나의 이념소다 . 그것은 『 계 몽의 변증법』에서 비판당한 바 있는 합리주의의 노력, 즉 자연지배와 사회적 지배를 술화의 차원에서 완성시키는 노력의 연장인 것이다. 상 이한 이론에서 나오는 개개 개념, 정리들간의 호환성은 그 언어의 의 미론적 구성요소가 이들을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만드는 한 인정될 수 없다 (Pecheux , 1975 참조). (마르크스주의의 이원론적 승화를 국복한다고 하 는) 〈사회 계층 〉 이라는 기능주의적 개념은 〈 계급 〉 이라는 변증법적 개념 으로 번역될 수 없다. 사회적 제대립이 그러한 번역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를 가능케 하려는 모든 시도는 〈비판이론〉이 상세히 연구했 던 제 대 립 의 통제 (Adorno, 1975 참조) 에 크게 이 바지 하는 셈 이 다. A) 반성의 개념이 뜻하는 것은 메타어에의 의존이 아니다. 반성이란 술화적 구조의 의미론적 이데올로기적 토대를 상기한다는 것이다. B) 동시에 반성 개념은 사회과학에서는 (자연과학에서와 달리) 술화가 자신 의 대상을 (재)구성한다는 사실도 가리킨다. C) 그러므로 사회과학의 영역에서는 주체와 객체간의 부분적 동일성을 지적하는 것이 중요하 다. 이중 첫번째 사상은 A . J . 그레마스가 「사회과학에서의 과학적 술화」 라는 논문에서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두번째 것은 L. 프리에토가 『유 관성과 실제, 기호학에 관한 에세이』라는 저서에서 설득력 있게 옹호 하고 있으며, 세번째 것은 변증법이 늘상 주장하는 바로서 특히 L. 골 드만이 상세히 논구한 바 있다 . A 에 대하여 자연과학적 기술과 논증이 어떤 집단 특유의 동기도, 혹 은 이데올로기적인 동기도 지니지 않는 데 반해, 사회과학적 술화의 의미론적 통사론적 처리방식 Ver fa hren 은 주체의 이데올로기적 활동과
志向性 ln t en ti onal itat을 지 시 한다. 이 경 우에 그러 한 사실 이 명 백 하게 드 러나느냐의 여부는 상관 없다(밴베니 스 트는 문장초월적 구조로서의 술화개 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화자와 청자, 그리고 청자에 일정한 방식으로 영 향을 주려는 화자의 의도 를 전제하는 모든 진술 〉 )(Benven i s t, 1966, S.2 4 2 ) . 과 학적 이론적 반성에서 중요한 것은 말하는 주체가 자신의 의미론적 통사론적 활동에 관해 분명히 자각하고 그것의 이데올로기적 위치가를 정확하게 평가하는 일이다. 죽 자신이 술화적 처리를 통해 어느정도까 지 주체로서 구성되는지를 인식하는 것이 문제라는 말이다. 그럴 때 특정한 집단적 가치와 이데올로기들이, 말하는(개인적 또는 집단적) 주 체에 이미 주어져 있음이 명백해진다. 그레마스는(주체를 소여된 것으로 간주하는 벤베니스트와는 달리) 이 문 제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마지막 두 개의 고찰은 술화를 주체의 구성 장소로서 또 이 주체에 관한 우리 지식의 유일한 원천으로서 신 뢰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고찰을 끌어들인 것은 과학적 술화의 특수한 지위를 탐구할 수 있게 해줄 관점의 정초를 위해서다〉 (Gre i mas, in : Zim a , Hrsg. 1977, S.80) . 술화는 그 〈분류학적 작업 faire tax in o mi qu e> , 즉 구분 • 정의 • 선별 • 분류하는 작업을 통해서 전체 언어(랑그)로부터 떨어져 나오고 그 통 사론적, 조웅적 배치를 통해 주체의 형상을 취하게 된다. 이때 형성되 는(구성되는) 주체가 수행하는 의미론적 선별과 정의는 이데올로기적으 로 중립적이지 않다. 일상어의 어떤 개념이 선택되어 〈과학적〉 개념으 로 정의되는지의 문제는 사소한 일이 아닌 것이다. 또한 논의가 어떤 전체적인 의미론적 대립에 근거하고 있는가의 문제 역시 아무래도 좋 은 것이 아니다. 논의의 진행을 조종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대립이기 때문이다. 리얼리즘/자연주의와 같은 의미론적 이분법은 혁신/자동화 와 같은 대립과는 전혀 다른 술화를 낳는다. 통사론적 층위에서 이 대 립둘은 서로 전혀 다른(그레마스의 의미에서) 행위자와 행역자들의 조성 울 초래하게 된다.
행역자란 개념은 특히 문학기호학에서 인물과 〈등장인물 drama ti s pe rsona> (V. 프롭)의 개념을 대체한다. 왜냐하면 행역자의 개념은 인간존재뿐만 아니라 동물, 사물, 그리고 개념들까지도 지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인물 p ersonna g e 의 개념은, 행역자들의 공동작용으로 해석될 수 있는, 그리고 그속 에 통사론적 의미론적 제형태가 채워질 형상 F ig ur 또는 빈 자리로 정의되는 행위자 a ct eur 의 개념과도 부분적으로 일치하기 때문에 여전히 모호한 채로 남는다 (Gre i mas, AJ , Cour tes , J., S emi oti q u e. Dic ti o n nair e rais o nne de la the o rie du langa g e , Hachett e, 1977, S.3) . 그래서 자연주의 / 리얼리즘이라는 이분법(이에는 계열체상에서 추상적/ 구체적, 우연적 / 전형적 등등의 대립쌍이 상응한다)에 의거하여 연구하는· 루 카치 같은 이론가는 Th. 만과 F. 카프카를 〈행위자〉로, 죽 〈주체〉와 〈반 주체〉로 대립시키며, 그럼으로써 자신의 논의의 결말을 미리부터 결정 해 버린다(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그레마스의 행역자 모델 자체도 얼마나 심각하게 이데올로기적으로 제약당하고 있는가, 그리고 〈비판이론〉이 이론적 술화의 모델 자체에 대해, 그리고 서술 동사의 진행에 어떻게 의문을 제기하려 하는가를 지적할 것이다). B 에 대하여 사회 과학(사회 학, 문예 학, 심 리 학) 술화의 의 미 론적 통사론 적 처리방식은 여러 이데올로기와 집단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주체라는 심급의 형성뿐만 아니라 대상구성에 있어서도 결정적이다. L. 프리에토 가 최초로 기호학의 콘텍스트 속에서 파악한 바 있는 이러한 사상은 사회과학에서도 자연과학의 의미에서의 〈객관적 기술〉이 가능하다는 환상을 파괴하기 때문에 중대한 의의를 지닌다. 프리에토에 따르면 사회과학 sc i ences de I' homme 에서는 대상울 한 특 정한 입장에서 고찰하거나 기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여 기서는 대상 자체가 그 입장(술화)에 의해 구성되므로 양자는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이 자리에서 술화적 유아론에 빠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주체와 객체 사이의 부분적 동일성〉을 차제에 지적해두는 것이 대단히 중요할 것 0] 다). 프리에토는 언어학의 인식론에 대한 다음과 같은 소쉬르의 견해에 의거한다. 언어학에서는 …… 여러 입장으로부터 기술될 수 있는 〈하나의 사물〉을 대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 왜냐하면(여기서는) 입 장이 동시에 대상을 형성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Pr i e t o, 1975, S.7 8 ). 술화는 새로운 개 념 과 범 주들을 가지 고 새로운 유관성 p e rti nence 을 도입함으로써 정의, 분류, 포함, 배제하는 작업을 수행하기 때문에 자 기자신의 대상(내적인 지시체, 그레마스)을 창조하게되는 것이다. 그렇다 면 인식가능한 〈현실〉이란 술화적 구조들의 총체이거나(교조적인 의마 에서는) 다원성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자신을 현실 자체와 등치시키는 단 하나의 〈참된〉 술화(비판이론이라면 〈동일화하는 술화〉라고 말할 것이 다)에 다름아닐 것이다. 프리에토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경험주의 는 술화의 세계를 정의할 때 이러한 ‘총체적' 현실에 의거하면서 이를 모든 인식구성의 기초로 삼는다. 그러나 그런 현실이란 것은, 실은 주 체가 할 수 있는 모든 인식이 지시하는 술화적 세계들 des Univ e rs du D i scours 의 논리 적 총합에 지 나지 않는다〉 (Prie t o , 1975, S.94) . C 에 대하여 사회과학에서는 술화가 자기자신의 대상을 구성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없이 명백한 것이다. 또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새 로운 유관성을 도입하여 자기 고유의 대상(자본주의에서의 생산관계)을 산출한다는 프리 에 토의 주장 역 시 대 체 로 타당하다 (Pr i e t o, 1975, S.1 5 6~ 157 참조). 덧붙여 언급할 수 있는 것은 기능주의적 사회학이 프롤레타 리아트의 개념을 알지 못하며 그것의 지시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철 저히 부인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많은 비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둘이 거부하고 있는 잉여가치 개념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사회과학이 자기자신의 대상을 산출한다는 주장은 일면적인 것 같 다 . 사회학, 역사학, 문예학에서의 모든 대상구성은 모두가 인정 하는 어떤 지시체에 관련되므로 이런 의미에서 그것은 어느 정도 추수 행가능한 재구성이라는 사실이 여기서는 도의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 프리에토의 주장 속에는 전도된 헤겔주의로 전화할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여기에서도 주체와 객체는 동일하다. 그 이유는 현실(객체)이 주 체와 동일시되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주체가 자기자산의 대상을 산출 하기 때문이다 . 그 말이 사실이라면 술화간의 검증가능성과 합일가능성은 사라져버 리고 다만 수많은 〈 연금술적 言語遊戱〉 만이 남을 것이다. 그러나 검증 가능성이 유토피아적 공상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예컨대 정신분석학 적 , 기호학적, 사회학적 제이론을 하나의 허구텍스트에 적용하여 그 성 과를 서로 비교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비교가능 한 것은 물론 아니다. 더우기 어느 한 이론의 모든 개념이 다른 이론의 개념과 일대일 대응관계를 가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예를 들면 많은 경제학 이론들이 〈 잉여가치〉 개념을 알지 못하듯이, 프리에토의 기호 학도 〈 동위체〉 개념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술화간의 합의를 통해 상이한 이론들이 서로 결합될 수 있다는 사 실은 대상이 단순히 주체에 의해 조종될 뿐인 술화적 처리의 산물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그것이 동시에 다른 승화에 대한 대상이기도 하며 , 따라서(회의적인) 주체 스스로도 인정하는 객관적(대화적) 실존을 갖는 것이다. 그래서 주체와 객체간의 동일성, 이데올로기적 인식과 (재)구성된 현실 사이의 동일성은 다만 부분적인 동일성일 뿐이다. 주 체가 사유하면서 다른 주체와 대화를 추구하는 한 자기자신과 동일해 질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L. 골드만과 M. 바흐친이 각 기 상이한 역사적 맥락에서 개진했던, 변증법의 가장 중요한 사상 중의 하나다 (Goldmann, 1970, Zim a , 1973 그리 고 Gunth e r, 1980 참조) .
6. 허 구성 Fik t i on a li rn t 앞으로 허구적(=문학적) 덱스트와 이 덱스트를 대상으로 하는 미학 이론들을 논의할 것이므로, 위에서 개략적으로 서술된 콘텍스트 속에 서 허구·가 어떤 위치가를 갖는지 알아보는 것도 무의미한 일은 아닐 것이다. 허구성이란 텍스트의 한 속성으로서, 여러 이론적 술화에 의해 여러 가지로 정의되고 있다. 허구성에 대한 정의와 서술은(예술에 대한 서술이나 정의와 마찬가지로) 주로 자율성, 타율성, 혹은 그 밖의 미학적 기준들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편견에 좌우된다.
* 이 표현은 F ikti on( 獨), fi c ti on( 英)의 우리말 역어이다 . 일상어로서는 〈 거짓 〉 이라는 평하적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기 때문에 외래어로서 〈 픽션〉이라 표기함이 더 좋을 수 도 있겠으나. 이 책에서는 우리말 표기인 〈허구〉를 그대로 고수한다 .
이론가들은 허구성을 의미론적으로, 화용론적으로, 역사적으로 기술 하고 해석하려는 시도를 계속해왔다. 이 경우 규범미학은 규범의 변화 가능성을 〈간과하기 〉 일쑤였고, 그 결과 허구적 / 비허구적이라는 대립 을 실체화하는 경향에 빠져들곤 했던 것이다. 우선적으로 인정되어야 할 사실은 예술, 문학, 허구와 같은 개념들이( 〈 과학 〉 , 〈 이론 〉, 〈 이데응로 기〉 등의 개념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기원을 가진다는 점, 그리고 그 개 념의 기능성 여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사회적 사실로서 고려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이다 . 문학적/비문학적 , 허구적 / 비허구적 등과 같은 형태의 이분법은 봉건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많은 수 의 남미,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오늘날까지도 그와 갇은 이분법이 알려 져 있지 않은 상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예술의 자율성, 시민적 범주의 발생과 그 비 판에 대하여』 (Suhrkam p, 1972) 라는 編 書 에 실린 논문들의 중요성은 각 별하다. 그 논문들은 자율성 사상의 역사적 발전을 서술하면서 〈자율 성〉도 〈예술〉도 비발생론적인 관점에서 〈영원한 범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兩者는 특정한 의미론적, 이데올· 로기적 콘덱스트 속에서 득수한 유관성 p er ti nence 의 관접에서 정의된다). 그.중· 에서도 중요한 것은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궁정사회에서 발생한 자율 적 예술은 단순히 〈시민적〉인 부류에 포함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 M. 뮐러의 지적이다. 예술이 자율적인 것으로 정립된 것은 초기자본주의 생산양식을 토대로 한 궁정적, 인문주의적 意識의 이데올로기적 영역에서이긴 하다. 하지만 그러한 의식에서 발생한 藝術競을 좁은 의미에서 반자본주의적이라고 해석할 수는 없다. 차라리(소시민 계급-물론 몇몇 분파에 한정된 것이긴 하지만_과 관 련해서) 반부르주아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M. Muller, 1972, S.27). J u. 로트만은 「텍스트와 기능」이라는 논문에서 텍스트 개념의 역사적 사회문화적 피제약성의 문제를 다루면서 더욱 상세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덱스트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역시 선험적으로 해명될 수는 없 다 . 그 대답은 오직(이데올로기를 형성하는 특정한 유관성과 관련된) 사회적 콘덱스트를 고려할 때만 가능해지는 것이다. 또한 덱스트에 대한 물음 과 허구성에 대한 물음이 연결되는 것도 이러한 사회적 콘텍스트 속 에서다. 로트만은 글의 화용론적 기능을 근거로 하여 텍스트와 허구성 울 순전히 내재적으로(의미론적으로) 정의하는 것이 적절치 못함을 설 득력있게 입증한다. 傳言(=메시지) X 는 문화적 콘덱스트 A 에서는 텍스 트로서 읽혀지는 반면, 콘텍스트 B 에서는 그 의미가 근본적으로 바뀌 거나 심지어는 전혀 덱스트가 아닌 어떤 것 N i ch t -Tex t으로 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래서 문자문화의 출현과 더붙어 전언 이 음성적 단위를 거쳐 실현되면 사람들은 그 전언은 실현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기 시작한다〉 (Lo t man, 1977, S.150). 특정한 문화적 맥락에서는 어떤 전언이 허구적인지의 與否가 口述的 /筆述的이라는 이분법의 틀 속에서 결정된다. 로트만은 의사소통의 구
술적인 형식이나 필술적인 형식이나모두 〈허구적〉(비허구적)이라는표지 룰 얻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기에 〈‘그는 진정한 작가다. 그래서 그 의 책은 인쇄된다’라는 말과 ‘그는 전정한 작가다. 그래서 그의 책은 인쇄되지 않는다’ 라는 말이 똑같이 가능한 것이다〉 (Lo t man, 1977, S.152). 따라서 텍스트와 콘텍스트 사이의 관계가 전적으로 언어학의 영역내 에서만 다루어져서는 안된다는 앤 셔크만의 지적은 타당한 것이다. 〈이 덱스트를 순수히 언어학적 도구들만 가지고 연구할 수는 있다. 그 러나 ‘문학작품’은 텍스트뿐만 아니라 의부텍스트까지도 포괄하는 개 념이기에 언어학의 영역을 벗어나 있는 것이다〉 (Shukman, 1977, S.6 4 ). 문화기호학을 통해서야 비로소 동일한 작품의 기능이 끊임없이 변화 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게 된다. 현재의 발전단계에서 〈구술적 / 필술적〉이라는 이분법은 허구적인 것 을 정의하는 데 별로 유관성을 지니지 못한다 . 오늘날 대다수의 문학 이론가들은 이 현상을 의미론적으로, 역사적으로(화용론적으로) 가술하 는 데 몰두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U. 에코, Th . W. 아도르노, J.무카로프스 키, R. 바르트, J.크리스테바 등과 같이 상이한 입장의 여러 저자들도, 허구적(문학적) 텍스트에서는 共示義적* 처리방식으로 인해 언어의 外 示義적* 차원이 약화되며, 그 결과 언어의 지시적 기능이 의심쩍어진 다는 데에는 거의 동의하게 되었다. 기표가 기의에 비해, 즉 논리적으 로 적용할 수 있는 개념에 비해 강화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현대의 시적 언어는 모든 고전적(연극적 또는 소설적) 미메시스를 뛰어넘는다. 그것은 외시의(대상의 정립)뿐만 아니라 意義 (S i nn, 진술주체의 정립)조차 공격하기 때문이다〉 (Kr i s t eva, 1979, S.67). 아도르노 역시, 근거로 삼고 있는 미메시스 개념이 다르기는 하지만, 비슷한 견해를 피력한다. 〈새
* 이들 개념은 일반적으로 기초적 의미 Denota t io n , 부가적 의미 Konno t a ti on 로 사 용되고 있으나 학술어로서의 간명성에 문제가 있고, 이 개념들의 파생어 조어 상에도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이 개념들을 각기 〈공시의〉, 〈의시의〉 라는 한자어 조어로써 대용하기로 한다 -역주.
로운 예술은 의사소통적 언어를 미메시스적 언어로 변화시키려고 노 력 한다〉 (Adorno, 1970, S.1 7 1). 개념적 / 비개념적, 소통적 / 비소통적이라는 대립쌍들에 중요한 역할을 부여하는 것은 에코나 프라하 언어학파의 저작 (Travaux, in : Change 3, 1969) 뿐만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 대립쌍들을 순전히 언어학적 콘덱스 트 속에서만 해석해서는 안된다. 여기에는 내가 『문학사회학 비판』에 서 지적했던 대로 이데올로기 바판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허구적 덱 스트는 개념적 단의성을 추구하는 소통적, 이론적 지향을 의문시함으 로써 개념적(이데올로기적, 철학적) 술화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데올로기적 담화에 대한 허구적 텍스트의 비판적 자율성은 일차적으로, 기표를 강화하여 덱스트를 비개념적, 미메시스적(아도르노) 구성물로 나타내는 공시의적 처리방식에 힘입은 것이다. 개념적(소통적) 담화의 單義化 처리방식에 대한 허구의 저항을 문학 의 이데올로기비판적 계기로 간주한 이가 아도르노뿐만은 아니라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쥴리아 크리스테바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시적 실천에 의한 이데올로기의 파괴를 지적한다 . 〈동시에 미메지스와 시적 언어가 관여하고 있는 논쟁은 이데올로기 내적 논쟁 이상의 것이다. 즉 이들은(의의와 의미에 대한 전제인) 명제적인 것의 단일성을 해체시키고 이룰 신학화하는 경향에 거역함으로써 이데올로기적인 것의 원리 자 체를 의문시하는 것이다〉 (Kr i s t eva, 1979, S.7 0 ). 예컨대 바흐친과 크리스 테바가 다성성을 이데올로기비판의 조건으로 해석하는 데 반해 아도 르노는 이를 주제로 삼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에세이에 관해 서술할 때 이를 개방적인(대화적인) 구조라고생각한다는 점에서, 아도르노와 바호천의 모델이 근친관계에 있다고 추측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마지막 장에서 논의할 것이다. 사회비판적 이론의 술화는(마지막 장에서 지적하는 바대로) 허구 텍스 트의 미메시스적이고 〈에세이〉적인 처리방식과 다성성을 받아들인다 는 점에서 허구텍스트와 일치한다.복수술화적 배열법인 다성성과反
省 性은-무질의 『특성 없는 인간』에서 제시되듯――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다 . 술화간에 경쟁과 다성성을 허용함으로써 점증하는 양가성 을 포착해 내는 술화만이 자신의 언어적 상대성과 사회역사적 피제약 성을 자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어의 미적 사용을 소통적인 〈 정상태 〉 로부터의 일탈로 보는 허구 성에 대한 부정적이고 缺性的인 정의들(아도르노, 무카로프스키, 야콥슨 , 에 코의 정의 ; Eco, 1972, S.1 5 4 참조)은 허구적 글쓰기방식과 미적 인 것이 특 수성을 갖는다는 사상을 공통적으로 담고 있다. 이런 정의들에 비해 예의적으로 두드러지는 것은 허구 텍스트란 언어를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므로 언어적 〈보편태〉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외제니오 코제뤼의 주장으로서, 이는 생산적인 이단이라 할 만하다. 코제뤼는 자 신의 저서 『언어와 문학에 대한 테제들』에서 〈문학적 언어 〉 의 문제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따라서 문학적 언어는 여러 언어 용법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언어 그 자체 , 즉 모든 언어적 가능성들의 실현으 로 보인다〉 (Coser i u, 1971, S.184). 코제뤼의 고찰방식이 특히 생산적인 이유는 , 문학생산(과 덱스트생산 일반)을 텍스트 상호적 과정으로, 여러 종류의 텍스트들-역사상의 것이든, 말로 된 것이든, 글로 된 것이든――으] 가공으로 파악해야 한 다는 〈텔 - 켈〉 (Tel- Q ue!) 그룹의(특히 크리스데바의) 생각을 보완해 주기 때문이다. 이로써 문학은――무질의 소설에서처럼-모든 언어적 표 현들(신학적, 과학적, 허구적, 법률적 표현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하나의 실험 적 실천이 된다 (In t e rt e xt ua lit es, in Poetiq u e Nr. 27, 1978 참조 ) . 좀더 자세히 관찰해보면 코제뤼가 말하는 허구텍스트에 대한 보편 적인 정의가 아도르노, 무카로프스키, 에코의 서술을 배제하기보다는 보완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래서 1. 허구적 진술의 특수성은 제약당하지 않는 텍스트 상호성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죽 그것이 언어 자체를 위한 언어(언어실험)로서 씌여진 것이지 실제적인 이유 때문은 아니라는 점에 허구 텍스트의 특수성이 있디는· 것이다. 2.
또한 허구는 자기자신을 위해 실행되는 글쓰기이기에, 그것이 지시하 는 바는 다른 어떤 것(지시체)도 아니다. 허구는 오로지 자기자신만을 지시할 뿐이다. 에코가 『기호학 입문』이라는 저서에서(아도르노와 무카 로프 스키 에 따라) 예 술적 전언의 구조는 〈 자기반사적 〉 이라고 주장할 때 (S.154), 그 역시 바로 이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코제뤼는 자신의 정의가 프라하 학파의 정의와 반대명제로 보이는 것은 의관에 지나지 않으며 오히려 이와 일맥상통한다는 사실을 철저 히 의식하고 있다. 즉 〈 유사하게 우리는 시적 기능에 관한 야콥슨의 규정을 ‘전달' 자체에 관련된 기능으로 해석할 수 있다. 죽 시적 기능 을 , 말해전 것을 단순히 말해진 것으로만 간주하는 '언어사용'으로 해 석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해석이 사실상 의미하는 바는 문학적 발언이 란 바로 절대적인 ‘말 Sa g en’ 이라는 것 의에 아무것도 아니다〉 (Cose ri u, 1971, S.8 5 ). 이때 물론 〈절 대적 〉 이란 단어는 반드시 사회학적인 ;버락에 서 해석해야 할 것이다. 허구적 글쓰기방석이 자기자신을 지시하며 이 데올로기적 술화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공 시의적 처리방식에는 사회적 의미와 가치평가가 내재하고 있는 것이 다. 〈 문학텍스트들은 텍스트언어학의 모델로 간주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들이 바로 가장 풍부한 기능을 지니는 텍스트류이기 때문이다…… 〉 (Coseriu , 1971, S.1 8 5). 이러한 코제뤼의 생각은 텍스트사회학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그 때문에 이 책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무질의 『특성 없는 인간』에 대한 분석을 술화비판적 고찰에 앞서 제 시하는 것이다. 프루스트와 무질의 소설은 근본적으로 상이한――사교 적, 이데올로기적, 과학적 , 종교적, 허구적-텍스트류들이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가, 또 그것들이 양가적이고 다성적인 세계 속에서는 어떻 게 서로 상대화되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순서에는 또 하나의 근거가 있다. 승화비판은 〈비판이론〉의 새로운 구성요소로서, 다성성을 실천하면서 서술체계(체계 일반)에 근본적인 비판을 가하는 허구텍스트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질, 프루스트, 카프카의 텍스트 를 보면 〈 비판이론 〉 의 술 화 배열법 과 가치판단이 허구의 충위에서 먼저 실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성 성 , 병렬적(계열체적) 구조 , 자기반성, 그리고 소통적 이데 올 로기적 언 어에 대한 비판 등이 그 예다. 비판이론이(형식논리학이나 자연과학에서가 아니라) 허구적 글쓰기방식의 영역에서 합리성을 추구할 경우에는 궁 극적으로 아도르노의 다음과 같은 격률을 따르게 될 것이다. 〈 미메시 스 없는 이성은 자기자신을 부정한다. 〉 7. 양가성 Ambiv a lenz 아이러니, 다성성(술화의 다중성), 자기반성 및 연상적(병렬적) 글쓰기 방식의 기원은 의미론적 이데올로기적 兩價性이며, 이 양가성은 다시 점점 심화되어가는 교환가치에 의한 매개현상과 관련되어 있다. 루카 치, 골드만, 아도르노가 시민적 가치체계의 위기를 매개로부터 추론한 것은 타당하다. 대립들이 구분할 수 없도록 뒤섞이고 질적인 차이가 궁극적으로 모든 단위의 공통분모인 양에 환원될 수 있는 것처럼 보 이는 경우라면 〈모든 가치의 전도〉라는 말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양가성은 여기서 글자 그대로 이중가치성 Ambovalor , 죽 결합될 수 없 울 것처럼 보이는 두 개의 의미론적, 이데올로기적 가치들의 결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질과 양, 강한 것과 약한 것, 고귀한 것과 비천한 것, 선과 악이 통일을 이룰 때 이룰 양가성이라고 한다. 양가성은 시장사회가 발생하기 훨씬 이전부터 있었고, 많은 경우 교 환가치의 매개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사회 • 역사적 현상이다. 프랑스 와 미셸 -죠운즈는 자신의 저서 『도공에의 귀환』에서 양가성은 원시민
족에게서도 나타나며 특히 신화적 사고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M i chel- J ones, 1978, 제 3 장 참조). 그러나 우리의 경우에 다 루어질 것은 자본주의, 특히 독접자본주의 사회의 양가성으로서, 이는 역사적 발생론적으로 정의된 것이라는 점에서 미셸-죠운즈가 기술한 양가성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하겠다. 이와 비슷한 논리가 〈독재〉라 는 개념에도 해당된다. 독재는 고대의 소아시아에도 그리스에도 로마 에도 존재했다. 하지만 역사적 발생론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러한 독 재는 독점주의 시대에 발생한 파쇼적 독재와는 거의 아무런 공통점도 없으며 기껏해야 순전히 형석적인, 혹은 윤리적인 차원에서 비교될 수 있을 뿐이다. 카프카, 프루스트, 무질, 헤세, 조이스의 소설은 의미론적 이데올로기 적 양가성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양가성의 영향은 무엇보다 이들 텍스트의 서술구조에서 나타난다. 가치체계의 위기에 대한 모든 신화 적(교조적) 반응을 반어적이고 파로디적인 방식으로 거부하는 비판적 글쓰기방식은 양가성의 산물인 것이다. 이 책 제 4 장은 프루스트의 『잃 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무질의 『특성 없는 인간』에 대한 시론으로서 사회적 양가성에 대한 텍스트의 반응을 구체적으로 탐구하게 될 것이 댜 이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물음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이론적 술화는 重義性(매개)의 심화현상 앞에서 어떤 해답을 제시해야 하는가, 또한 그럴 경우에 허구적 글쓰기방식으로부터 배울 접은 무엇인가. 왜 냐하면 무질의 〈아이러니〉는 니체의 〈쾌활함 He it erke it〉이나 바흐찬의 〈카니발〉이라는 개념과 마찬가지로 양가성의 비판적 산물이자 그것에 대한 반응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는 自己反語이기도 한 까닭에 개념적 사유가 나아가야 할 길을 가리키고 있다. 죽 모든 신화적 이분법을 비켜가는 자기반어적이고 자기반성적인 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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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 ch el-Jo n es, F. : Reto u r aux Dog an , Paris , Le Syc a more, 1978( 저자는 도공의 계보에 있어 무엇보다도 아내라는 인물이 어머니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양가적이라고 지 적한다) Muller, M. : Kunstle risc he und mate r ie ll e Produkti on . Zur Auto n omi e der Kunst in der ital ie n is c hen Renais s ance, in : Auto n omi e der Kunst. Zur Genese und Kr itik ein e r burge r lich en Kate g o rie, Frank fur t, Suhrkamp , 1972 Paste r nack, G. : Theor ieb il d ung in der Lit era tu r wis se nschaft, Munchen, Fin k , UTB, 1975( H. Gntt ne r, Log ik der Inte r p re ta t io n , Munchener Univ e rsita t s s chrift en 11, 1973 도 참조) Pecheux, M. : Les V:函t es de La Palice , Paris, Maspe r o, 1975 Prie t o , L. : Pert ine nce et Pratiq u e. Essai de s 玩i olo gi e , Paris, Mi nu it , 1975 Shukman, A. : Lit er atu r e and Semi ot ic s. A Stu d y of the Wr iting s of Yu. M. Lo/man, Amste r dam, Nort h Holland Publish in g Co., 1977 Tarski, A . : The Semanti c Concep tion of Truth , in : Semanti cs and the Phil os o- phy of Langu age , Chic a g o, Univ e rsity of Illin o is Press, 1952, 1972 Travaux du Cerc/e Lin g u is tiqu e de Pragu e, Les Theses de 1929 (I, 1929) (특히 세 번 째 테 제 (c) : Sur la lang u~ poe ti qu e, jet z t in : Le Cerc/e de Pragu e, Chang e 3, Seuil , 1 969) Zim a, P. V. : Goldmann. Dia le ct iqu e de [' im manence, Paris, Edit ion s Univ e rsita ire s, 1973 Zim a, P. V.(Hrsg. ) : Texts em i ot ik als Jde olog iek ri tik, Frankf urt, Suhrkamp , 1977
1 경험적 문학사회학의 몰가치적 술화 1. 대상영역의 정의 알폰스 질버만, 한스 노버트 퓌겐, 로버트 에스카르피, 칼 에릭 등의 경험적 예술 / 문학사회학은 앙가지망적 사고방식과 그것이 설정하는 가치평가적 구별(의미론적 대립쌍들)을 거부한다. 이들 논자들은 한스 알버트의 〈 비판적 합리주의〉와 유사하게 막스 베버의 몰가치성의 기 준에 근거하여 〈합리적〉 예술/문학사회학이 미적 가치판단을 포기해야 함을 증명하려고 한다. 그와 같은 豫斷이 어떤 방법론상의 결과를 초 래하는지는 무엇보다도 대상영역의 정의에서 잘 나타난다 . 예술사회학과 미학(사회철학)을 분리시켜야 한다는 질버만의 공준은 예술작품(허구텍스트)의 구조와 생산과정을 사회적 콘텍스트로부터 분 리시키는 경계선을 전제로 한다. 질버만은 예술사회학의 대상영역을 예술작품의 의적인 제요인으로 한정하고 싶어한다. 죽 예술사회학아 다루어야 할 것은 작가, 독자, 출판제도, 기타의 의사소통 체계의 심급 둘이지 작품 자체의 구조는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작품 자체 와 그 구조에 관한 전술은 예술사회학적 고찰을 벗어난다〉 (S i lbennann, in : Burge r , Hrsg. 1978, S.1 9 3). 질버만의 경우 예술/문학사회 학의 고유한
대상을 이루는 것은 〈 예술체험 〉 과 그 체험이 낳은 〈 문화영향권 〉 이다. 경험적 조류의 다른 대변자들의 주장은 이보다 덜 급전적이긴 하지 만 본질적인 점에서는 질버만의 테제와 맥을 함께 하고 있다. 죽 사회 학적 방법을 미학과 혼합시키는 것을 막고 〈과학적〉 술화에서 가치판 단을 배제하는 일이 이들의 공통 관심사인 것이다 . K . E. 로젠그렌도 H. N . 퓌겐도 문학사회학의 〈과학성〉을 기초하고 미학적 • 문학비평적 논리 전개에서 이룰 분리시키기 위해 막스 베버의 몰가치성의 기준에 의존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 인용된 질버만의 논문과 거의 같은 시기에 출판된 로젠그렌의 저 서 r 문학시 스뎀 의 사회 학적 측면』 (Srockholm, 1968) 에 서 는 미 학과의 단 절로 인해 작품구조의 분석을 완전히 포기하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바아넷과 유사한 견해는 예컨대 랑엔부허 (1964) 와 퓌겐 (1964) 역시 독 자적으로 피력한 바 있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는 생각(예컨 대 Memmi , 1960 참조), 죽 문학사회학의 최상의 목표는 예술작품의 ‘더 나은 이해' 에 있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Rosen gr en, 1968, S.19). 변증법적 모델이 미학적 전제들에 근거하여 작품구조의 생성과 그 사회적 位置 價롤 묻는 데 반해(루카치, 골드만, 알튀세, 아도르노), 경험적 경향의 옹호 자들은 작품의 사회적 내용에 대한 물음은 비과학적인 것이므로 배제 해야 한다고(또한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같이 이데올로기적 동기를 지니고 있는 방법론적 처리방식으로 인해 퓌겐은 〈예술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을 불합리하게 분리하고 만다. 이런 생각은(퓌겐이 철학을 경험주의적 근거에서 거부함에도 불구하고) 〈예술작품〉이란 순수하게 자율적인 구조물이므로 사회적으로 매개된 구조나 사회적 관심의 표현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전통적 미학의 관념에 이미 내재하고 있던 것이다. 〈문학사회학에서는 문학작품을 예 술적 현상이 아닌 사회적 현상으로 고찰하기 때문에 미학적 가치판단 의 가능성은 배제된다〉 (Fu g en, 1964, S.4 1 ). 그러한 사고방식은 예술이 자율적인 존재로서 사회적 제관계 위를
浮遊 하고 있다는 전통적 관념을 정당화시킬 뿐 아니라, 비허구적 텍스 트 ( 예 컨 대 역사적 기 록물) 는 사회학적 분석으로 접근할 수 있지만 문학 은 그러한 분석에서 벗어난다는 기묘한 가정을 하지 않을 수 없게도 만든다 게다가 다음과 같은 중요한 문제가 해명되지 않은 채 남아 있 다 〈 문학적 〉 텍스트와 〈 바문학적 〉 텍스트롤 구분할 기준은 무엇인 가? 이와 같이 역사적이고 텍스트사회학적인 물음(로트만 참조)에 대 한 해답을, 로젠그렌은 〈스 웨덴 도서목록 〉 (Rosen g ren , 1968, S . 27) 에서, 퓌 겐은 R. 잉가르덴의 현상학적 이론에서 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명백해지는 점은, 술화비판으로서의 텍스트사회학이 목표로 하는 바, 죽 텍스트 구조를 대상으로 하는 비판적 과학에 정반대되는 것이 바로 경험적 문학사회학이라는 사실이다. 예컨대 M.C . 알브레히트 의 논문 「문학이 보편적 가치를 반영하는가? 」 (Albrech t, 1856 참조)에서 나 L. 코저의 논문 「문학을 통한 사회학」 (Coser, 1963 참조)에서처럼 경 험적 문학사회학이 문학덱스트의 기록적, 의시의적 측면만을 주시함으 로써 문학데스트를 부차적인 요소로 환원시켜 버리는 것은 더 이상 놀랄 만한 일이 못된다. 이에 반해 덱스트사회학은 허구성을 사회역사 적 현상으로 간주하면서(서론 참조) 개개 텍스트의 구조를 허구적 글쓰 기방식의 사회적 발전에 연관시킬 것을 꾀한다. 텍스트사회학은 경험 적 방법과는 달리 전통적 문헌학 (W. 카이저, E, 슈타이거)이나 잉가르덴의 관념론적 시도에서 벗어나 허구성의 개념을 사회적 콘텍스트내에서 정의하려고 하는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허구 텍스트류와 비허구 덱스 트류를 엄격히 분리하는 데(초현실주의의 혁명 이래 모든 전위적 예술은 이러한 분리를 백안시해 왔다) 이의를 제기하고, 덱스트의 사회학으로서 이론적 술화의 영역에서도 사회적 관심과 제모순이 그 의미론적, 통사 론적 구조의 층위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 밝히고자 한다. 사회학적 의미가 어떤 사회적 〈내용〉보다는(이는 잘못 정의된 주제설 정이다) 오히려 글쓰는 방식에 있다는 사실은 주로 이러한 충위에서 밝혀진다. 따라서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무질의 소설과 아도르노의
텍스트 사이에 존재하는 친화성을 추적하면서 그러한 친화성의 원천이 일의적인 이데올로기적 진술(내용)의 영역이 아니라 병렬적(계열체적) 이고 에세이적인 글쓰기방식을 발전시키려는 두 저자의 공통된 노력에 있음을 보일 것이다. 경험적 문학사회학은 텍스트의 방법 W i e( 그 구조) 의 문제를 제쳐놓는 까닭에 허구적 글쓰기방식을 사회적 맥락에서 설 명할 가능성을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 이론적 술화에 대한 사회학적, 발생론적 서술마저도 포기하게 된다 . 이론적 술화는 역시 다소간 일의 적인 몇몇 전술로는 환원될 수 없고, 오히려 의미론적 거시통사론적 구조물로서 그 전체 구조 속에서 비로소 의미를 지니는 것이기 때문 이다 . 따라서 진정한 텍스트사회학이라면 경험적 시론들이 동시에 술 화적(바로 그 때문에 이데올로기적인) 책략이기도 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 2. 두 개의 理念素 경험적 문학사회학이 지니고 있는 두 개의 〈이념소〉 (P.N . Medvedev) 에 대해서는 이미 과거에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 독자가 논의의 상황 울 쉽게 조망할 수 있도록 여기에서 그 각각에 대한 비판들을 간략히 개괄해 보도록 하자. 1. 먼저 비판적 반론은 경험적 논증의 토대가 되 는 노동분업의 원칙에 초점을 맞춘다. 이 원칙은 전통적 문헌학과 경 험적 사회학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상호보완관계를 맺게 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2. 두번째 비판은 경험적 방법에 의해 문학 텍스트가 물 화됨을 지적한다. 최근의 문학사회학에 대한 연구는 이 두 문제와 대결한다. B.J.바르 네켄은 「실증주의적 문학사회학 비판 : 퓌겐의 〈문학사회학의 주류들〉 에 근거 하여」라는 논문을 통해 (Warnecken, 1973 참조) 퓌 겐 의 경 험 적 방
법이 지니고 있는 보수적 성격에 주의를 환기시켰고, J.샤르프슈베르트 는 『 문학사회학의 근본문제』라는 저서에서 경험적인 대상영역의 정의 는 전통적 문헌학의 입지를 강화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사실을 지적했 다. 〈 그러나 문학작품 속의 현실은 오직 ‘작품내재적 척도'만을 따르 는 ‘자체 완결적인 존재'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척도에 의해, 말하자면 ‘문학의 내용을 문학 의적인 현실의 척도에 종속시키 는' 모든 시도는 거부된다. 이로써 독어독문학 스스로가 이미 50 년대 말에 의문시하기 시작했던 전후 작품내재적 문예학의 합법성을 오히려 사회학의 전영에서는 60 년대까지 승인해주었던 셈이다〉 (Schar f schwerd t, 1977, S.1 3 0). 바로 이 시기에 나 역시 「대상으로서의 텍스트 : 경험적 문 학사회학의 비판」(i n : L'Homme et la soc iete , Nr.43~44, 1977 ; dt. Ubers. in Zim a, 1978) 이라는 제하의 논문에서 퓌겐, 질버만, 로젠그렌 등이 내린 문학사회학의 대상영역에 대한 정의가 지니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기 능을 강조하면서 그것을 시장사회의 노동분업 원칙에 입각해서 설명 했던바, 이를 우연의 일치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로써 퓌겐이 『문학사회학의 주류들』이란 저서에서 왜 자신의 논 증의 근거를 잉가르덴의 현상학적 이론에서 구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잉가르덴은 〈언어예술작품〉을 〈순수히 志向的인 대상성〉(『문학예술작 품』, S.122) 이라는 점에서 자연 대상과 구분하고 있기는 하지만~후설 과 꼭같이__지향성의 개념을 사회기호학적 생산과정으로 보지 않고, 현상학적으로 정의하였던 것아다. 결국 〈작품〉의 의미가 정돈되는 것 은 전적으로 수용과 〈구체화〉의 영역에서이므로 〈작품〉 자체는 그 생 성과정과 사회적 의미가 밝혀질 수 없는 대상으로 간주되고 만다. 잉 가르덴도 퓌겐과 마찬가지로 작품구조 자체에는 어떤 사회적 의미도 내재하지 않으며, 허구의 생산과정을 사회적 과정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견해에 의존하고 있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사실이 밝혀진다. 경험적 이론들은 작품구조가 순수하게 내재적으로 분석되어야 한다는 문헌학의 견해를 뒷받침할 뿐
만 아니라 수용이론도 옹호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사회적 의미가 허구 텍스트(와 그 생산)에 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려면 반대로 사회적 의 미가 전적으로 문학을 통한 의사소통의 영역(역사적 구체화)에 속한다 는 접을 입증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허구는 의사소통을 위한 구실로, 사물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전락한다. 나는 위에서 언급한 논 문에서 이러한 물화 Verd i n g l ic hun g 현상을 지적하면서 이 현상을, 교환 법칙에 지배당하는 사회에서는 노동생산물이 상업적 교환행위의 단순 한 구실로 전락한다는 사실로부터 설명하려고 시도한 바 있다. 그 경 우에 생산과정은 주체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줄리아 크리스데바 는 좀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이와 유사한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이 러한 구조적 폐쇄성이 대상, 죽 소설을 중심으로 하는 ‘문학’의 가장 본질적인 특질의 하나로 된 이유는 우리의 문화가 이 대상을 완제품 (영향, 인상)의 상태에서 소비하면서 그것의 생산과정을 추적하기를 거 부한다는 데 있다〉(Kri s t eva, in : Zim a , Hrsg. , 1977, S.1 9 4). 아도르노 역시 이미 「문화산업에 대한 개관」이란 논문을 통해 이같은 예술작품의 물 화현상에 주의를 환기한 바 있다 (Adorno, 1967, S.63 참조). 경험적 문학사회학은 텍스트생산과 그것의 사회적 의미에 대한 물음 울 배제함으로써 〈작품 내재적 해석〉을 정당화할 뿐만 아니라, 〈낡아 빠진〉(마르크스주의적) 생산미학이나 記述美學과는 달리 연구영역을 문 학작품의 영향문제에만 한정시키는 수용 및 소통연구에도 길을 터주는 것이다(J au p, 1970 참조). 그러나 일관성 있고 구체적인 문학사 서술을 위해서는 생산과 수용을 함께 사회기호학적인 과정, 죽 이데옹로기형 성의 과정으로 보아 서로 연관시키고, 작가 역시 글쓰기를 통해서 자 신이 읽은(구체화한) 텍스트를 가공하고 변형시키는 독자이기도 하다는 사정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도대체 구체화하는(수용하는) 덱스트 만 의미를 지니고, 읽히는(수용되는-역주) 텍스트는 의미가 없다는 말 은 무슨 근거에서 나온 것인가? (KH. 바아크와 M. 나우만 갑은 동독의 문예 학자들은 텍스트의 생산과 생산관계들울 고려하지 않는 한, 덱스트의 〈수용〉과
사회적 영향이란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이는 타당한 견해다. Naumann, Hrsg. 1975 참조) 경험적 방법과 H.R. 야우스의 수용이론 및 작품 내재적 해석은 허구적 글쓰기방식의 사회적(가치평가적) 성격을 인정하고 그 생산과정을 사회 역사적 과정으로 해석하는 것을 이데올로기적으로 거부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이러한 태도는 교환가치에 의한 매개가 점점 더 심각해짐에 따라 예술작품도 더욱 물화되고 물신화되어 간다는 사실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경험적 문학사회학과 수용연구는 문학덱스트에 대해 시장에서 의 영향력과 판매가능성만을 염두에 두고 있는 상인과도 같은 태도를 취한다. 즉 〈대타존재성 Fur-e in -Anderes-Se in〉만이 문제인 것이다. 〈대타존 재의 원칙은 겉으로는 물신주의에 거역하는 듯이 보이지만, 실은 교환 의 원칙으로서 그 속에는 지배권이 감추어져 있다〉 (Adorno, 1970, S.3 3 7). 「예술사회학에 대한 테제」에서는 미학이론에서 인용한 위의 명제를 보 완하는 다음과 같은 견해가 제시되어 있다. 〈예술사회학은 그 말뜻 그 대로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규정하는 모든 국면을 포괄하는 것이다. 예 술사회학을 어떤 특정한 측면에, 예컨대 예술작품의 사회적 영향에 국 한시키는 것은 당치 않은 일이다〉 (Adorno, 1967, S.94). 문학사와 문학이론을 허구 덱스트의 영향영역에 한정하려는 시도가 ―一아도르노의 테제에서 지적되었듯이_수용미학과 수용연구의 발 전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수행된 것은 아니다. 문학작품의 물화현상 은 오히려 질버만과 퓌겐의 이론 (60 년대 중반의)에서 이미 중요한 기능 울 담당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지금의 의사소통 및 수용연구가 기능 주의적 사회학의 개념들(〈역할〉, 〈지위〉, 〈취미선도지표t as t e leaders> 등 등) (Wi en old, 1972, S.108 참조)을 차용함은 물론이려니와 경험적 문학사회학 의 소통이론적 시도에도 의거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오늘날의 소통이론들이 얼마나 사회적 관심을 도의시하고 있는가는 R. 에스카르피의 저서 『정보와 소통의 일반이론』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책에서는 〈글쓰기 ecr it ure 〉와 〈읽기 lec t ure 〉를-수용연구와 마찬가지 로-서로 분리시킨다. 〈부언해 둘 것은 글쓰기와 다시 쓰기I' ecr it ure et la recr it ure 는 서로 전적으로 독립적인 행위라는 사실이다. 저자와 독자는 서로 분리된 채 근본적으로 상이한 역사적 상황 속에 처해 있 는 것이다. 이는 그들의 개인적인 環 璟 史라는 관점에서 보든 그들의 인 간적 물질적 환경사라는 관점에서 보든 마찬가지다. 이런 까닭으로 그 둘은 기표-기의 관계에 서로 다른 공시의를 부여하게 된다〉 (Esca rpit, 1976, s.1 2 7). 이같은 서술의 皮相性은, 어떤 역사적 시기에 특정 텍스트가 전적으로 특정한 집단에 의해서만 읽히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사회학 적 물음을 던져 보면 당장에 드러난다. 브레히트는 왜 비용 V i llon 을 읽 었는가 ? 또 아도르노는 왜 프루스트를 읽 었는가 ? (Zim a, 1980, 제 7 장 참 조) 이는 아마 문화체계의 발전에도 불구하고(아니면 바로 그 때문에) 〈글쓰기〉와 〈읽기〉 사이에, 텍스트와 메타덱스트 사이에 하나의 관심 공동체가 형성되기 때문일 것이다. 3. 몰가치성 : 이론과 실천 한동안 몰가치성(〈가치평가의 배제〉, 퓌겐)의 개념이 문학사회학과 사 회학 일반을 둘러싼 방법론 논쟁의 중심주제가 됐었다. 마르크스주의 에 대한 퓌겐의 논박은 이 개념에 근거를 두고 있다 . 〈문학에 대한 마 르크스주의적 고찰방식은 당파성의 원칙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하고 실 제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 과학이 가치평가를 배제하면서 객관성의 이상에 바싹 근접해 갈 가능성을 부정해 버린다〉 (F ilg en, 1964, S.104). 반 면 마르크스주의 진영에서는 대개 몰가치적 사회과학은 불가능하며 베버의 몰가치성이론이란 구체적인 사회적 목표설정을 은폐하려는 이 데올로기적 연막에 불과한 것이라는 반대의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한 또는 그와 유사한 논거들이 M . 베버의 이론을 대상으로 몰가 치성의 문제를 세밀히 다루었던 제 15 차 독일 사회학자 대회에서 마르 크스주의자와 〈 비판이론 〉 의 추종자들로부터 제기되었다. 이 토론의 중 요한 논점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몰가치성의 개념은 과학 의 실천이 모든 사회적 가치평가의 부담에서 면제되어야 한다는 뜻으 로까지 해석되어선 안된다. 어떤 테마를 다룰 것인지를 선택하고 특정 한 문제를 중요한 것으로 부각시키는 연구자의 개인적 결정은 가치판 단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2. 그러나 이러한 가치판단이 몰가치적인(중 립적인) 대상서술을 목표로 하는 과학적 논증 속으로 유입되어서는 안 된다 . 탈콧 파슨 즈 는 이런 과정이 과학에 특유한 〈 중립적〉인 가치체계를 창출하면서 이를 조심스럽게 기존의 사회적 가치체계나 이데올로기로 부터 분리하려는 시도_알튀세라면 〈 인식론적 단절〉이라고 말할 것 이다一一라고 서술하고 있는바, 이는 타당한 지적이다. 과학의 가치를 혼미한 일반적 가치복합체에서 분리시키고, 또한 그런 분리 작업에도 불구하고 연구대상의 측면에서나 연구자 자신의 측면에서나 여전히 가치복합체에의 의존성이 어느 정도 온존한다는 점을 참작함으로써 결국 이 해를 통하여 연구될 사실들에 접근해야 한다면, 인식과정 전체는 자연과학에 서 개발된 돈리적 유형의 일반이론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Par- sons, 1965, S.5 2 ) .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베버는 영국의 〈공리주의〉 전통에 이어지고 마르크스의 이데올로기 비판과는 결정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파슨즈의 주장이다. 이처럼 순수과학적 가치체계를 이데올로기적 콘텍스트에서 뽑아내 고 〈 물가치적〉 논증의 결정적인 기준으로서 형식논리학의 인과울의 원 칙을 채택하려는 시도에 맞서 J.하버마스, M. 호르크하이머, P. 로시 등이
제기한 반론은 타당한 것이다 . 이에 따르면 베버는 사회학적 사고를 순전히 技術的인 것으로 (호르크하이머의 표현에 의하면 도구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로시는 〈 가치에 대한 기술주 의적 바판 〉 에 대해 논의하면서(앞의 책, S.8 9 ), 베버가 자신이 탐구한 가치체계의 타당성(합리성) 여부에 대한 입장표명을 유보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하버마스는 과학적 합리성을 수단의 합리성에(어떻게 특정가 치들이 실현되는가의 물음에) 한정하는 데 반대하면서 베버가 〈 기술적으 로 이용가능한 지식을 생산하는 데 사회과학의 인식관심을 한정하기 위해〉 (Habermas , 1965, S.7 8 ) 몰가치성의 공준을 이용하고 있다고 바난한 다. 그러나 아직 중요한 두 개의 문제가 남아 있다. 1. 베버의 경우 몰 가치성의 공준은 술화의 충위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되는가, 또 한 2. 어떤 특정한 사회언어학적 상황에서 몰가치성의 개념이 발생했 는가라는 물음이 그것이다 . 이 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경험적 문학사회학이 사회과학내에 질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데 대해서, 또한 미학적 사고를 도입하는 데 대해서 왜 그토록 논쟁적인 태도를 취하 는지를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며, 결국 경험적 문학사회학 자체도 이 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첫번째 문제는 좀더 긴 논문에서라야 충분히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이 장의 틀내에서는 개략적인 것일 수 밖에 없다. 볼가치성의 개념은 막스 베버의 「사회과학적, 사회정치적 인식의 객관성」 (1904) 과 「사회학적, 경제학적 제과학에서의 몰가치성의 의미」 (1917) 라는 두 개의 논문에서 상세히 해명된 바 있다. 그뿐 아니 라 이 개념은 베버의 주저 『경제와 사회』의 곳곳에서 언급되고 적용 되기도 했다 .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념의 적용이다 . 하나의 개념이 술 화적 콘덱스트에서, 의미론적 통사론적 충위에서 어떻게 기능하고 있 는지는 그 적용을 통해서 비로소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베버가 〈카리스마적 지배〉에 대해 기술하는 목적은 이 현상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이 수행하고 있는 기능에 대한 몰가치적 이해다. 베버의 관심사는 카리스마적인 권위가 〈카리스마에 의해 지배당하는 자들, 〈추종자들〉에 의해 실제로 어떻게 평가되 ...... >(W eber,1 976, Bd. I, S.140) 느냐를 알아내는 일이라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 그는 카리스마적 원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처 럼 순전히 경험적이고 몰가치적인 의미에서 얘기한다면 그것은 확실히 역사에 있어서 특별히 ‘창조적' 이고 혁명적인 힘이다〉 (Weber, 1976, Bd. II , S. 6 58) . 저자가(만년의 칼 슈미트처럼) 카리스마적 태도에 동화되거나 이를 정 치적, 윤리적 근거에서 판단하지 않는다고 해서 자연과학적 의미의 객 관적 술화가 확립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어떤 특정한 사회학적 술화는, 특정한 의미론적 선택을 하고 카리스마/관료주의, 카리스마/가 부장주의(전통주의)와 같은 대립쌍을 설정함으로써 자기의 고유한 대상 을 구성하며, 이때 새로운 의미론적 이분법과 새로운 〈범주 Klasse 〉(프 리에토) 또는 〈동위체〉(그레마스)를 도입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프리에토가 『유관성과 실제』에서, 새로 도입된 유관성은 특정 사회집 원단에될 (e귀s t속 ap되p o는 rt e 것 pa으r l로e su그je t ) 집 수단 의있 다이고해 를지 적대한변 것하은는 바주로체 의이 를활 동두에고 한환 말이다. 베버가(그리고 훗날 퓌겐과 로젠그렌이) 범한 오류는 본래적 형태의 가 치체계에 명시적으로 거리를 둠으로써 술화의 몰가치성이 보증될 수 있다고 가정한 데 있다. 하지만 술화 속의 이데올로기는 퓌겐이 비난 하는 〈당파성〉과 같은 형태를 취하기보다는(물론 그런 경우가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의미론적 선택 및 분류방식을 통해서 개입해 들어온다. 그 방식이야말로 술화구조의 행역자적 모델과 서술적(통사론적) 진행의 의 관을 궁극적으로 결정하는 요인인 것이다. 여기서 베버의 술화의 서술적 진행에 대해 논의할 수는 없다. 다만 『경제와 사회』에 나타나는 베버 술화의 행역자(앞을 참조할 것)에 관해
서는 어느 정도 말해 볼 수 있겠다. 위에 제시된 의미론적 대립쌍들과 특히( 〈경 이 〉, 〈영도자〉, 〈계시〉, 〈찬양〉, 〈 신뢰 〉 등의 개념을 포괄하고 있는) 카리스마의 개념은 가부장, 관료, 카리스마적 영도자가 지배권을 놓고 서로 다투고 있는 개인적 행역자 모델의 기초를 형성한다. 특히 카리 스마적 영도자는 언제나 집단, 집단적 행역자가 아닌 개인으로 해석된 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그 결과 베버의 텍스트에서 지배권의 개인화(인격화) 현상이 두드러 지며 역사적 사건은 개별적 행역자를 통해 〈 이야기 〉 되기에 이른다. 〈‘카리스마'는 비범한 것으로 …… 간주되는 인격의 특질을 가리킨 다……〉 (Weber, 1976, Bd. I, S.4 0 ). 따라서 위에서 언급한 바 있는 〈특별 히 ‘창조적'이고 혁명적인 힘〉은 오직 개인적 인물들의 전유물인바, 위대한 개인이 역사의 추진력이 된다. 사회학자는 자기자신의 가치판단을 사회적 가치체계의 분석에 개입 시켜서는 안된다는 베버의 주장은 물론 옳다. 그러나 개인주의적, 후기 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가 결정적인 지점에서 자산의 술화를 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간과하고 만다. 죽 특정한 이분법에 의거해 개념 들을 분류하고 의미론적 대립쌍들을 술화의 행역자(통사론)의 충위에 투사할 경우에 이데올로기는 이미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베버의 경우 엔 마르크스와는 달리 혁명적 전복을 낳는 자가 계급(집단적 행역자)이 아니라 개인이다. 이처럼 술화와 그것의 진행을 구조화하는 가치판단 의 비중에 비하면 그가 카리스마 혹은 관료제 개념에 대해 유지하는 이데올로기적 거리라는 것은 너무도 하찮은 것이다. 퓌겐, 로젠그렌, 질버만 등도 몰가치성의 기준을 다루는 태도는 베 버와 홉사하다. 퓌겐 같은 논자는 당파성이라는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원칙을 포기하기만 하면―~이를 포기하는 일이라면 〈비판이론〉 역시 언제라도 환영이다_자신의 사회학적 記述이 이데올로기적 편견의 영역에서 헤어나울 수 있으리라고 믿고 있다. 퓌겐 역시 베버와 마찬 가지로 이미 대상 영역의 정의에서, 또한 그후 이어지는 선택과 분류 과
정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이념소가 생성된다는 사실을 도의시했던 것 이다. 퓌겐의 경험적 시도가 전통적 문학이론과 그토록 잘 조화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해명해 주는 것은 결국 이러한 이념소들이다. 퓌겐이 자신의 저서 마지막 장에서 구분했던 세 가지 작가 유형은 대단히 모호한 의미론적 분절에 의거하고 있는 까닭에 이를 저자 자 신이 연구한 사회체제로부터 〈물가치적〉으로 추출해낸 것이라고 두말 없이 인정해 줄 수는 없다. 예를 들어 그가 작가 유형을 사회영합적 작가, 사회에 반항적인 작가, 사회를 등전 작가로 나눈 다음 이들의 주인공들이 각기 〈바범하다〉, 〈평범하다〉, 〈신체적으로도 비정상인 경 우가 많다〉는 따위의 주장을 펴는 경우에, 문학을 개인적 편견과 집단 의 통념 ide es re i;: ues 에 따라 분류하고 있다는 의혹을 떨칠 길이 없다. ―아울러 모든 도식화는 이미 그 자체가 이데올로기적이라는 사실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가치평가 배제〉의 원칙을 전혀 신뢰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 은, 사회영합적 유형의 글쓰기방식은 〈인습적〉이며 사회에 반항적인 유 형의 글쓰기방석은 〈독창적〉이고 사회를 등진 유형의 글쓰기방석은 〈밀교적〉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퓌겐의 주장이다. 사회를 등전 무질, 프 루스트, 헤세의 주인공들은 비범하지 않단 말인가? 이 작가들의 글쓰 기방식이 과연 밀교적인가? 퓌겐은 어떤 이론에서 하나의 글쓰기방식 이 밀교적인지 여부를 판단할 의미론적 통사론적 기준을 따오는가? 퓌겐의 저서를 텍스트사회학적으로 분석한다면 이러한 의미론적 구 성이 술화의 서술적 진행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밝힐 수 있을 것 이다. 우선적으로 확인되는 사실은, 몰가치성이란 개념은 이데올로기적 환상으로서 어떤 이론의 이념소를 폭로하려는 시도를 방해하고 있다는 점뿐이다. 그러나 이 개념이 가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만으론 만족 할 수 없다. 이 개념을 비판적으로 파악하고 베버의 사회학에 기초를 둔 경험적 방법을 보다 잘 이해하자면 이에 대한 발생론적 서술이 반드시 요구되기 때문이다.
4. 몰가치성과 교환가치에 의한 매개 베버의 사회학이 유럽 사회의 위기의 산물이라는 사실은 여러 차례 지적된 바 있다 (Bend ix, 1962, S.7 ~ 9). 베버 자신도 이 사실을 의식하고 있었다 . 그가 자신의 저서 『경제와 사회』, 그리고 정치에 대한 몇몇 논 문들 속에서 노동분업의 결과 전문인이 문화인(자유주의적 시민)을 구축 하기에 이른 사정에 대해 상세히 논술했던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닌 것이다. 오늘날 교육제도의 토대를 둘러싸고 이루어지는 모든 논의를 배후에서 조종 하고 있는 것은 전래의 〈문화인〉과 〈 전문인 〉 型 사이의 두쟁이다. 이러한 두 쟁이 이처럼 가장 친밀한 문화문제에까지 침두해 들어오게 된 것은 공적 사적 지배관계가 부단히 관료화되면서 전문적 지식의 중요성이 계속 접증해 가고 있는 현실이 그 조건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Weber, 1976, Bd. II, S.5 7 8). 베버는 헬레니즘에서 자유주의적 신사도 정신에 이르기까지 천년 동 안 지속되어온 전통에 단절을 가져온 노동분업의 제결과를 세세하게 기술한다. 물론 그는 노동분업을 부추기는 시장법칙과 , 교환법칙의 매개 의 제물이 된 자유주의적 가치의 위기 사이에 어떤 관련도 설정하지 않는다. 자유주의적 가치체계의 약화는 교양시민이 전문인에 대체된다 는 사실에 그 원인을 돌릴 수도 있겠지만 미적 , 윤리적, 인식적(질적) 가치들이 교환가치, 죽 양에 의해 매개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더욱 명 백하다. 매개는, 양과 질의 상호 이행을 허용하며 양을 질로 간주하는 의미론적 양가성을 낳는다. 제 4 장에서는 무질의 소설 『특성 없는 인간』 에서 나타나는 양가성(매개)의 문제를 다루면서, 교양시민인 파울 에른 하임의 〈인격〉이 의심쩍어지는 까닭은 그가 〈영혼〉(문화)과 〈금융자본 가〉처럼 서로 조화될 수 없는 가치들을 서로 결합시킴으로써, 후기 자
본주의 사회에 이르러 전문화 영역에 파급된 重義性에 스스로 통합되기 때문이라는 점을 보일 것이다. 양과 질의 결합이 의미론적 양가성에 얼마나 든든한 기초를 제공하고 있는가는 경험적 문학사회학이 어떤 대상을 선호하는지 보면 알 수 있 다. 그것은 베스트셀러다. 이 단어는 중의적이다. 그것은 출판업자가 특 정한 책으로 획득한 매상고를 지시할 뿐만 아니라 좋은 책, 심지어는 그 달의 가장 좋은 책 그 해의 가장 좋은 책 따위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질적인 명칭이란 경우에 따라서는 시장에서의 (양적) 성공에 수반되는 현상에 불과하며, 대량 판매를 통해 가상의 질 이 보장될 뿐이라는 사실도 이 단어는 폭로한다. 죽 그것은 베스트 셀러 인 것이다. 많은 소비자들은 이러한 양가성을 깨닫지 못한 채 의식적으 로 무의식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책을 가장 좋은 책과 동일시하려 든다. 이는 마치 소비자들이 많은 경우에 가격이 높으면 상품의 질도 높다는 가정을 받아들이는 것과도 흡사하다. 경험적 방법이 시장을 겨냥해 생산된 통속문학에 미학적(가치평가적) 기준으로 접근하기를 거부한다는 사실로 미루어보면, 몰가치성의 개념 울 모든 가치의 양가성, 죽 교환가치에 의한 매개라는 맥락에서 해명할 수 있으리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상인의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관용〉 이 시장의 가치중립성의 산물이라는 점은 자주 지적되어 왔다 (Gold mann, 1970, S.7 7 ~78).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원주의, 관용, 몰가치성 등과 같은 이데올로기적 제가치가 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으며, 이들이 모두 시장과 그 매개 메카니즘의 가치중립성에서 비롯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일일 것이다. 몰가치성을 근거로 삼는 여러 이론들은 과학적 술 화에서 모든 가치들이 同價이며 특정 가치를 여타의 것의 우위에 둘 수 없다는 것을 가정한다. 로시는 베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비판은 어떤 가치판단도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과학성을 완 전히 입증한다. 다시 말해 그 비판은 특정한 가치에 대한 입장표명을 하지 않으며, 특정한 가치를 제안함으로써 다른 가치를 부정하거
나 거부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지도 않는다. 문제되는 것은 오히려 상이한 제가치의 실현을 위한 조건들뿐이다〉 (Ross i, 1965, S.8 9 ). 경험적 문 학사회학자나 〈비판적 합리주의자들〉이 사회체제에 대하여 취하는 입장 이란 이데올로기적 차이룰 인식하고 이해하면서도 상업적인 이유 때문 에 특정 당파를 지지하기를 거부하는 상인의 입장에 비견될 만한 것이 다. 단지 양적인 차이만을 인정하는 교환가치가 모든 사물의 척도가 된 다. 시장에서뿐만 아니라, 〈경험적〉 또는 〈비판적 합리주의〉적 과학에서 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들의 이상은 양화가능성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프랑스에서 경험적 조류의 대표자들이 통속문 학을 순전히 양적으로 연구하는 데 찬동하면서 가치평가적인 기준들을 미학(철학)의 임무로 떠넘긴다고 해서 하등 놀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예컨대 H. 잘라만스키 같은 이는, 통속문학의 경우에 사회학자 의 관심은 오직 양적인 문제뿐이므로 이런 덱스트류에 질적인 척도로 접근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나의 작품을 연구하 고자 한다면 위대한 작품을 선택하는 것이 합당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비록 동시대의 작품인 경우에는 미학적 기준에 의한 선별이 매우 불확실한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에 반해 무엇이 집단의식에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내기 위해 다수의 작품을 분석하고자 할 때에는 미학적 기준 따위는 사용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때 우리가 다루는 것 은 양적인 문제이지 질적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Zalamansk y, in : Escarp it, 1970, S.1 2 7) 그런 이유로 상업화된 문학의 영역에서는 시장에 서도 통용되는 순 양적안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험적 (문학)사회학은 시장질서에 대한 相應物로서 시장질서의 척도에 따라 판단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제 확연해진다 . 그러나 U. 에코가 얀 플레밍의 소설을 분석하면서 밝힌 바처럼, 통속 문학의 문제를 양의 문제에 환원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오히려 제임스 본드 소설이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것은 이데올로기적, 문학적 상투어 와 서술적 고정형에 의존하는 글쓰기방식 덕택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Eco, in : Zim a, Hrsg. , 197 7 참 조 ) . 그 소설들을 순전히 몰가치적으로, 양 적으로 기술한다면 그 대중적인 성공도, 아울러 그 양의 문제에 대해 서도 피상적인 고찰밖에는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문학작품을 양화시켜 가치중립적으로 서술하려는 노력은-베버의 몰가치성의 공준과 더불어-가치평가가 점점 애매해지고 의문시되어 간다는 부르주아의 가치체계의 위기에서 비롯한다. 미학(철학)의 쇠퇴 도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아해할 수 있는데, 이 점은 잘라만스키의 서 술에서도 드러난다. 즉 한 사회에서 그 구성원들이 특정한(미학적) 근 본가치들에 대해 어떤 합의에도 도달할 수 없는 경우에는 특정 가치 체계의 합리성이니 과학성이니 하는 문제는 대개 무의마한 것으로 받 아들여지며 물가치성만이 유일하게 〈 합리적인 〉 탈출구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탈출구는 시장이 여러 사람들 , 여러 민족들을 결합시키 는 까닭에 그들간의 의사소통에도 이바지한다고 여기는 상업적인 편 견보다 더 합리적일 것도 없다 . 5. 목적합리성과 가치합리성 특정한 가치의 합리성 여부는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단지 양 적인 차이만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견해에 의하면-베버의 사회학과 같이-오직 시장사회의 목적합리성만이 타당한 것으로 간주된다. 목 적합리성은 전적으로 과학적 술화의 방법만을 , 죽 그 개념적 정의와 인과율적 과정만을 문제삼을 뿐이다. 이러한 생각을 따른다면 군사학 같은 학문은 그 정리들을 수리화하고 계량화할 수 있는 까닭에 완전히 합리적인 것으로 보일 것이다. 인류문제에 궁극적인 해결을 꾀하는 황당무계한 술화의 원천은 목 적합리성의 비합리적인 토대인바, 오직 어떤 가치의 理性性 여부에
대한 토론을 이론형성의 중심부에 두는 가치판단적 사고만이 이러한 토대를 폭로할 수 있다. 막스 호르크하이머가 가치중립적 이론들을 多 價的으로 사용(따라서 오용)할 가능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 것도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명령이 그 누구에게서 내려진 것이전간에 이를 수행하는 것은 그 명령과는 전혀 무관한, 최고로 발달한 규칙과 기술이다. 베버의 구상이 의도하는 바는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러나 무 엇이 옳으냐를 문제삼는 사회이론에서는 베버가 상투어로 격하시킨 가치개념의 의미가 인식의 모든 단계에서 중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Horkhe i mer, 1965, S.6 7 ) 자연과학의 목적합리성이 자립화할 기세를 보이면서 사회의 현존을 위협하는 사회역사적 상황 속에서라면 사회과학, 특히 (문학)사회학은 합리성과 가치판단 사이의 연관을 주시하여야 할 것이다. 물론 문학 텍스트에서 중요한 것은 글쓰기방식(형식)이지, 내용분석학 / 내용의 사 회학이 대상으로 하는 진술의 의시의적, 기록적 요소가 아니다. 그러나 이 글쓰기방식이란 자신을 낳은 사회언어학적 상황에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이 점은 수용이(동일한 혹은 다른 상황에서) 메타덱스트로서 글 쓰기방식에 반응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잃어버 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지막에서 예술은 〈삶의 가장 엄격한 학교〉이며 〈진정한 최후의 심판〉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가치평가적이다. 그의 가치평가 속에서는 참된 삶에 대한 물음이 기표들의 배열법(예컨 대 〈고장의 이름들 : 이름〉의 경우)에까지 침전되어 있다. 그러기에 이론은 이같은 프루스트의 가치평가에 대해 명백한 입장표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지 않는다면 이론은 모든 술화의 근저에 놓이기 마련인 자 기자신의 가치판단을 은폐하는 동시에 특정한 예술적 가치가 과연 이 성적인가라는 중대하고도 비판적인 물음을 제쳐놓는 셈이다. 오늘날의 문예학에서는 경험적 문학사회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론이 지니는 사회적 의의에 대한 문제를 배제할 뿐만 아니라 텍스트의 질과 그 의의의 문제마저 포기해 버리려는 경향이 점점 더 심화되어
가고 있댜 이는 점점 확산되는 목적합리성에 대한 갈망, 수단을 더욱 완벽하게 지배하려는 갈망의 표현이다. 베버 스스로도 「음악의 합리적, 사회학적 기초」라는 논문 (UTB, 1972) 에서 유럽 음악의 합리화의 전전과 그 의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는 한다. 하지만 이때 그가 사회적 의 마연관의 문제를 예술이론의 영역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잘못이다. 그런 점에서 정보미학의 툴내에서 예술작품을 그것의 技法에 환원시 키려는 막스 벤제의 시도는 최근의 발전에 대한 징후다. 그는 「미학의 기호학적 구상」 (L iL i, Heft 21/ s, 1977) 이라는 논문에서-『미학 Aes t he ti ca 』 (A gi s, 1965) 에서와 마찬가지로――헤겔과 하이데거의 형이상학적 미학과 절연하면서 물리학의 모델에 따르는 산술적인 미학을 통해서 사회적 의미 부여와는 상관없이 〈미학적 정보〉를 연구할 수 있다~ 것을 입증하려 한다. 벤제와 같이 예술작품을 물화하고 이론을 목적합 리성의 영역에 한정시키는 것만이 후기 자본주의시대의 과학주의적 미학에게 남은 최후의 수단이다. 그리하여 예술작품을 산출하는 사회 적 노동(생산과정)은 , 정치적 저술이나 에세이처럼 구체적 사회상황에 반응하는 예술작품의 비판적 의도처럼 더 이상 인식되지 못하는 것이 다. 프루스트, 무질, 카프카의 텍스트들이 〈물질적 소립자들〉(벤제)로 분해될 수 있는 미적 정보라는 식의 해석은 근본적인 오해의 산물이다. 목적합리성에 기초한 예술이론과 문학이론은 작품에서 사회적 의의와 비판의 차원을 구축해버리는 까닭에 예술을 부당하게 대우하게 된다. 그 점에서 이 이론은 〈시장의 확대〉와 소비증대라는 목적을 어떻게든 달성하려고 노력하는 여러 경제이론을 닮는 것이다.
참고문현 —Adorno:, T Thh. e Wse.n : URbeers udmiee KUubnesr tsd o ize i o Klo ugl iteu, r i ni dn u :s Otr hi en, e Line i :t bOil dh , n eP aLreviat b iA ld e .s t Ph ae triv caa, Aoeps. - the ti ca, Frankfu r t, Suhrkamp , 1967 cit. : Asth e tis ch e Theori e, Frankfu r t, Suhrkamp , 1970 Albrecht, M. C. : Does Lit er atu r e Refl ec t Common Values ? in : Ame rica n Soc io- log ica l Revie w , Bd. XXI, Nr. 6, 1956 Bendix , R.:M ax Weber. An Inte ll ect ua l Po rtra it, London, Meth u en, 1960, 1962 Coser, L. A. : Socio lo gy thr ough Lit era tu r e, Eng el wood Cliff s, Prenti ce Hall, 1963 Eco, U. : Erzl!h l str u ktu r en bei Ian Flemi ng , in : P.V. Zim aCHrsg. ), Texts em i ot ik als ldeolog iekr i tik, Frankfu r t, Suhrkamp , 1977( 최 초로 발표된 곳 : J. Vog tC Hrsg. ), Der Kr imi na lroman, Munchen, Fin k , UTB, 1971) Esca rpit, R . : The 函 e gen erate de I' inf o n nati on et d e la communic a ti on , Paris, Hache- tte, 1976 Esca rpit, R.(H rsg. ) : Le Lit ter air e et le soci al, P aris , Flammario n , 1970 Fog en , H. N. : Die Haup trich tu n g en der Lit era tu r sozio lo g ie und ihr e Meth o den, Bonn, Bouvie r , 1964(5. Aufl .) Fog en , H. N.CHrsg. ) : Wege der Lit era tu r sozio lo g ie, Neuwi ed und Berlin, Luchte - rhand, 1968, 1971 Goldmann, L. : La Phil o sop hi e des Lumi er es, in : ders., Str u ctu r es menta le s et crea_ti on cult ur elle, Paris, Anth r op os , 1970 Habermas, J. : Beit ra g zur Dis k ussio n Uber Wert frei h e it und Ob j ek ti v it덥t, in : Max Weber und die Sozio lo g ie heute , Verhandlung en des 15. deuts c hen Sozio lo g en ta - ges , Tobin g e n , J. C. B. Mohr, 1965 Horkheim er, M. : Beit ra g zur Dis k ussio n Uber Wert frei h e it und Obje k ti vi tl lt, in : op. cit. Jau ~. H. R. : Lit era tu r ge s chic h te als Provokatio n , Frankfu r t, Suhrkamp , 1970 Kris t e v a, J. : Der ge schlossene Text, in : P.V . Zim a(Hrsg. ), Texts e mi ot ik als ldeo- log iekr i tik, op. cit. Naumann, M. (H r sg. ) : Gesellschafi. Lit era tu r . Lesen, Berlin , Aufb a u Vig ., 1973, 1975 Parsons, T. : Wert ge bundenheit und Obje k ti vi tl lt in den Sozia lw i ss enschaft en ,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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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변증법적 제이론과 덱스트사회학 1. 헤겔의 유산 경험적 문학사회학은 스스로를 미학적 술화와 엄격히 구분하면서, 물가치적이고 실증적인 과학으로 자처한다. 이에 반해서 헤겔의 철학, 특히 그의 『미학강의』와 관련되어 있는 대부분의 변증법적 시도들(아 도르노, 골드만, 루카치, 알튀세, 코지크)은 사회비판적 이론으로 볼 수 있 다. 변증법적 이론의 논자들은 헤겔과 마찬가지로 〈예술작품〉이 철학 과 나란히 일종의 인식적 기능을 수행함과 동시에(긍정적이든 부정적이 든) 특정 가치체계를 표현할 것을 기대한다. 그들은 작품의 의의에 관 한 문제를 형이상학적 혹은 이데올로기적이라 하여 환상의 세계로 추 방해버리는 〈불가지론적〉 이론들에 맞서 예술작품은 제도, 정치적 강 령, 헌법 등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산물이기에 가치중립적일 수는 없 다는 반론을 제기하고 있는바 이는 타당한 주장이다. 루카치와 골드만은 헤겔처럼 문학(예술)이 철학의 추상적이고 개념 적인 인식을 감각적 지각을 통해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을 기 대한다. 사물의 본질이 직접적으로 주어지지 않는 세계에서는 예술생 산이 개개의 우연적 현상을 보편적인 것에 이어주는 교량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헤겔은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바로 이와 같은 보편적인 힘들을 지배하는 데서 예술이 부상하게 되는 것이다. …… 따라서 예술현상은 결코 단순한 가상이 아니며, 일상적 현실에 바해 한충 더 높은 실재성, 보다 참된 현존재가 여기에 귀속된다 하겠다.〉 (He ge l, Asth e ti k, Bd. I , s.2 2 ) 우리 는 이 러 한 명 제 들에 근거 해 서 루카치 와 골드만의 미학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미학 또한 위대한 (〈리얼리즘적〉, 루카치) 작품이란 우연한 사실들의 재현이 아니라 일관 성에 의해 현상들의 배후로부터 본질적인 것, 총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라는 가정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아도르노의 〈전리내용〉이란 개념 역시 본질적안 것에 대한 부정적인 변형태라는 점에서 보다 상 세히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헤겔적 사고방식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위험을 안고 있다. 1. 그것은 사회적 산물인 문학텍스트를 철학적(과학적) 메타덱스트의 가치체계와 동일시함으로써 이롤 실체화할 위험을 지닌다. 2. 이러한 방법은 다의적(허구적) 덱스트를 개념적인 것에 환원하도록 부추길 수 도 있다. 헤겔은 〈시문학〉에 대한 장에서 이마 이러한 환원의 대강을 제시한 바 있다. 형식주의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프라하 언어학파〉의 성원들은 시적 텍스트가 언어를 자기목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언어를 수단으로 삼는 의사소통적 전언과 구별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헤겔 은 이와는 반대로 〈담화예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신은 이 처럼 자기 고유의 지반 위에서 스스로를 대상화한다. 정신에게 언어적 요소란 그저 직접적인 의면성에 머무르는 의사전달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정신은 처음부터 단순한 기호로서의 외면성을 탈 피하여 자기자신에게로 물러나 앉아 있었던 것이다.〉 (He g el, Asth e ti k, Bd. Ill, 1970, S.229) 그러므로 헤겔은(이러한 〔신]풀라톤주의적 도식의 틀내 에서) 한 문학텍스트가 번역되더라도 어떤 손상도 입지 않으며, 또 그 텍스트가 읽혀지든 둘려지든 상관없으리라고 가정할 수도 있는 것이 다.
루카치와 골드만의 문학사회학은, 그들이 무엇보다도 예술 생산의 물질적 토대를 강조하기 위해 곳곳에서 헤겔과 거리를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학적(시적) 작품이란 〈 감각적 〉 , 직관적 묘사를 수단으로 궁 극적으로는 〈 제이념 〉 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헤겔주의적 편견에 사로잡 혀 있다 . 이러한 편견이 오래도록 다의적 글쓰기방석을 대상으로 하는 텍스트사회학의 전개를 가로막아 왔던 것이다. 그 대표격으로 발전한(예컨대 루카치의) 규범미학은, 작품이 일관성있 고 조화로운 총체성으로서 이념을 표현해야 한다는 헤겔의 공준에 근 거를 두고 있다 . 이 경우 어떤 사상이 표현될 가치를 지니는가는 메타 텍 스 트, 즉 루카치나 골드만의 철학적 술화에 의해 결정된다. 이같은 해석학적 실천이 경험적 방법의 옹호자들로부터 거부당했을 뿐만 아 니라, 야우스의 〈 수용미학 〉 도 이에 결정적인 異論울 제기했다는 사실은 오늘날 전혀 놀라운 일이 못된다(J au~, 1970, S.1 6 0 참조). 아도르노는 물가치성의 공준을 비판하면서도 가치들을 실체화시킬 위험에 대해 철저히 의식하고 있었다. 예술사회학에 대한 테제의 마지 막 두번째 명제에서 그는 가치의 위기와 그 신비화에 대해 다음과 같 이 지적하고 있다. 가치개념 자체가 이미 정신의 객관성에 대한 의식이 약화되어 버린 상황을 표현한다. …… 가치와 몰가치성을 분리시킨다는 발상은 그런 상황에서 비롯 된 것이다. 두 개념 모두 하나의 거짓된 의식에서 유래한 징표를 지니고 있다 . 하나는 거짓된 의식을 비합리적이고 교조적인 방식으로 실체화시키고 다른 하나는 무비판적으로 중립적인 위치에 서서 똑같이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문 제가 되는 것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다 (Adorno, 1967, S.99). 이같은 아도르노의 변증법적 입장을 이해하려면, 오늘날 교환가치에 의한 매개와 양가적으로 된 가치들로 특칭지어지는 사회적 상황 속 에서 어느 정도 과학적인 많은 이론들이 잃어버린 〈정신의 객관성〉을
단명하는 이데올로기적 신화로 대체하려고 시도하고 있다는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 바로 이러한 문제성을 다루고 있는 무질의 소설 『특성 없는 인간』은 한편으로는( 〈 비판이론 〉 과 나란히) 매개와 양가성에 의한 제가치의 파괴를 간파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데올로기적 신화의 교조적 요구에 대항해 중의성을 드러내려고 노력한다. 아도르노의 사회학적 미학은, 예술작품의 다의성을 고려하여 이를 개념적 체계(세계관 또는 이데올로기)로 고정해버리기를 거부한다는 점 에서 헤겔, 루카치 , 골드만의 이론과는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아도르노 는 부정적 방식의 정의를 통해 허구 텍스트가 어떤 점에서 이데올로 기적 술화와 뚜렷한 대조를 이루는지, 또 그에 대한 허구 덱스트의 비 판은 어디에서 이루어지는지를 밝히려고 한다. 이런 까닭에 아도르노 의 미 학은 헤 겔 의 〈모호성 에 대 한 배 척 int o l erence of amb ig u ity 〉 을 비 난하는 것이다. 〈이상에서 문제되는 것은 ‘모호성을 배척'하는 태도다. 죽 양가적인 것, 말끔히 포섭해버릴 수 없는 것을 용납 못하는 태도 말이다. 이는 결국 열려져 있는 것 , 어떤 심급에서도 미리 결정될 수 없는 것, 나아가 경험 자체를 용납 못하는 태도가 된다. 〉 (Adorno, 1970, S.176) 이렇듯 다의성을 배척하는 태도는, 루카치와 골드만이 이를 헤 겔로부터 물려받았던 반면, 아도르노가 이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을 통 해서 바흐친, 무카로프스키와 연결된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건대, 동일 화하는 체계사유의 산물이라 하겠다. 이러한 체계사유가 예술작품을 개념의 등가물로 해체시키는 것은 예술작품을 보다 쉽게 동일화하기 위해서, 죽 철학적 술화에 더 잘 통합시키기 위해서다. 칸트가 작품을 남김없이 개념으로 해소시키기를 거부했던 반면, 헤겔의 경우 〈예술 속의 정신은 정신의 현상방식의 한 단계로서 체계로부터 연역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모든 예술장르에서, 잠재적으로는 모든 예술작품 속 에서 일의적인 것이다 . 그 결과 다의성이라는 미적 속성은 희생당하게 된다 . 〉 (Adorno, 1970, S.1 4 0) 실제로 헤겔의 『미학강의』에서는 개념(정신)이 문학덱스트의 미메시
스적 계기와 다의적 기표에 대해 도처에서 공공연히 지배권을 주장하 고 있다. 거기서는 주체(정신)의 나르시즘적이고 지배자적인 입장이 전 면에 나서서 아도르노가 인용했던 헤겔의 명제, 즉 〈우리에게 더욱 필 요한 것은 예술 자체보다 예술의 과학이다〉라는 명제를 입증하는 것 이다. 헤겔은 〈담화예술〉뿐만 아니라 예술 일반까지도 개념의 파생물로 파악하며, 기표의 열린 사슬도 〈기의 구조 str u ctu re sig nifies >( B a rthe s, S/Z , S.12) 로 환원시킨다. 〈 그리하여 사상이 스스로를 의화하는 장소인 예술작품도 역시 이해하는 사유의 영역에 속하게 된다. 그리고 정신은 예술작품을 학적 고찰에 종속시킴으로써 단지 자기자신의 가장 고유한 본성의 욕구를 채울 뿐이다.〉 (He g el, Asth e ti k, Bd. I, 1970, s.2s) 이제부터 밝혀야 할 것은 루카치나 골드만이나 모두 헤겔의 동일화 하는 술화에 사로잡혀서 결정적인 지점에서 텍스트사회학의 전개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미 다론 곳에서 루카치와 골드만 (특히 골드만)의 문학사회학의 헤겔주의적 측면을 상세히 다룬 바 있으 므로 (Z i ma, 1978 참조), 여기서는 다만 (a) 총체성 개념의 실체화히는· 작 용과 (b) 작품을 자기자신과 동일화시키는 철학적 술화의 목적론적 메 카니즘에 대해서만 논의할 것이다. 2. 루카치가 말하는 본질과 현상의 변증법 : 총체성과 전형 전형적인 것(전형)에 대한 루카치의 이론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다음 두 개의 텍스트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헤겔의 『정신현상학』과 1859 년 마르크스, 엥겔스, F. 라살 사이에서 벌어진 이른바 지킹엔 논쟁이 그것 이다. 이미 헤겔의 경우에도 그랬지만, 후기 루카치의 관심사 역시 현 상의 배후에서 본질을 통찰케 하는 일이었다. 미학뿐만 아니라 과학
전체(인식론)도 이러한 결정적인 문제에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 헤겔은 이를 『정신현상학』 서문에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명제들로 요약한다. 〈전리는 전체다. 그러나 전체는 오로지 진리의 전개를 통해 스스로 완 성 되 어 가는 본질 이 다〉 (He ge l , Phanomenolog ie, 1970, S.2 4 ) . 여 기 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요한 요점을 확인할 수 있다 . 1. 구체적 인식을 가능케 하는 것은 오직 총체적 인식뿐이다. 2. 어떤 현상의 본질은 다만 전체 콘텍스트에서만 파악될 수 있고, 이러한 콘덱스트는 역사적 과정에 일 치한다. 현상과 본질의 변증법은, 동시에 마르크스 이론의 가장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루카치가 자신의 (후기)미학에서 마르 크스에 의존하여 헤겔의 입장을 유물론적 콘텍스트에서 입증하려 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닌 것이다. 실상은 직접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 . 이러한 사정을 무시하는 모든 인식은 조악한 추상이라는 판결을 모면 할 수 없게 된다. 과학의 주된 과업은(예술도 마찬가지다) 개별적 현상 속에서 보편적 법칙성을 명시하는 것이다. 〈사물의 현상형태와 본질이 일치한다면 어떤 과학도 필요치 않을 것이라고 마르크스는 서술한다〉 (Lukacs, Asth e ti k, Bd. 3, 1972, S .4 6)( 특기할 만한 점은 루카치가 이 명제를 자 신의 〈존재론〉에서도 인용하면서 그것아 〈사회적 존재의 존재론에 있어 특히 중요하다〉고 주장한다는 사실이다 )(Lukacs, Onto l og ie- Marx, 1972, s.22). 루카치도 헤겔, 마르크스와 같이 과학이 이러한 과업을 지니고 있다 고 확신한다. 그의 미학에서는 또한 예술에도 동일한 과업을 부여한다. 예술적 표현들은 〈의 인적 an t hro p homo rp h 〉(루카치)이고 〈감각적〉(헤 겔) 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이 과학적 인식으로부터의 후퇴를 뜻하는 것 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순수한 직접성과 개념적 추상화의 종합을 낳는다. 그래서 루카치가 말하는 〈새로운 직접성〉이란 삶 속에서와 같 이 그 스스로 〈기만적인 ‘자명성’이 아니라 오히려 일종의 기적이다. 물론 그것은 심오하고 전정한 삶의 연관을 드러내기 위해 인간에 의해 의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Lukacs, Asth e ti k, Bd. 3, 1972, S.4 6 ). 본질과
현상간의 상호관련을 중요시하는 헤겔 미학과 루카치 미학 사이의 찬 화성이 이처럼 뚜 렷이 나타나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예 술 은 과학과는 다른, 즉 비개념적인 수단을 통해 과학의 노력울 뒷받침하고 현실의 본질을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은 아러한 시 도에서 성공하는 경우에만 〈 리얼리즘적 〉 이라는 칭호를 받을 자격을 가 진 다. 이에 실패한다면 〈 자연주의 〉 라는 선고 를 받을 것 이다. 루카치 의 주장 에 의하면 오직 리얼리 즘 적 예술만이 현실을 구체적이고 적합 하게 반영 할 수 있다 . 리얼리즘적 예술은 현상을 전체 맥락에서 메어 내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 자연주의적 〉 반영은 총체성 범주를 토대로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것은 필연적으로( 졸 라의 묘사처럼) 추 상적인 채로 머무르게 된다. 자연주의적 반영을 좌우하는 것은 우연이 지 전리 를 내포하는 전체의 합법칙성이 아니다. 총 체성을 리얼리즘적으로 반영한다는 생각은 전형적인 것의 개념과 불가분적 관계 에 있다. 지 킹 엔 논쟁 중에 마르크스는 라살이 드라마의 주인공을 典型 즉 한 시대의 보편타당하면서도 개별적인(죽 특수한) 전 형적 현상으로 묘사하지 않고 자신의 이념의 대변자로 이용했다고 바 난한댜 세익스피어의 주인공이 행동과 진술을 통해 그둘이 속한 사회 의 문제성 전체를 표현하는 데 반해서 라살의 프란츠 폰 지킹엔은 조 야한 抽 象 化에 그칠 뿐이다. 따라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리얼리즘은 개별자의 충실한 재현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F. 엥겔스는 마가레트 하크니스에게 보낸(자주 인용되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 내 견해로는 리얼리즘이란 디데일에 대한 충실한 묘사 이상의 것입니다. 그것은 전형적인 상황에서의 전형적인 인물을 충실히 재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 문학(예술)의 전형적, 리얼리즘적 표현을 헤겔과 마르크스의 본질과 현상간의 변증법과 체계적으로 연관지은 것은 루카치의 공적이다. 그 러나 동시에 그가 예술에 부여한 인식적 과업이란 예술을 헤겔주의적 마르크스주의적 술화에 완전히 예속시킨다는 전제하에서만 이행될 수
있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본질적인 것 , 그리고 현실의 올바른 반영이 요구될 경우, 문제는 어떤 술화가 〈 현실 〉 (본질)을 정의하느냐 , 또 그 승 화가 자기자신의 정의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 하는 것이기 때 문이다. 루카치가 표현주의 논쟁에 부친 「문제는 리얼리즘이다」라는 제하의 논문을 보면 그가 자신의 술화를 현실, 죽 가능한 지시체의 전체와 동 일시하면서 다른 술화들(다른 정의들)은 배척한다는 점을 명백히 알 수 있다 . 현실의 객관적 실존이야 의심할 수 없겠으나, 하나의 술화가 〈현실이 실제로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가 〉 를 결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서는 의심해 보아야 할 것이다. 〈 문학이 사실상 객관적 현실을 특수한 형태로 반영하는 것이라면 문학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현실이 실제로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가를 파악하는 일이며 , 나아가서는 현실 의 직접적인 현상과 그 현상방식만을 재현하는 데 스스로를 한정시키 지 않는 일이 또한 중요하다〉 (Lukacs, in : Schmi tt, Hrsg. 197 3, S.198) 고 루 카치는 주장한다 . 표현주의도 역시 〈 본질의 표출 〉 을 강조하기는 한다. 〈그러나 이런 본질이란 현실의 전과정의 객관적인 본질은 아니다 . 그 것은 순수하게 주관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 (앞의 책, S.2 0 7). 여기에서 루카치의 술화는 통사론적 충위에서 그 지시체 , 죽 역사적 과정과 동일시되고 그 결과 〈본질〉이 실체화된다는 사실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특정한 목표설정과 가치들 , 즉 헤겔주의적, 마르크스주의적 변증법의 목표설정과 가치들이 현실 자체로 해석되는 것이다. 동시에 루카치는 자기자신의 의미론적 선택과 정의를 상대화하는 것도, 또 자 신이 본질, 혹은 현실이라고 부른 것이 단지 실재하는 세계에 대한 가 능한 모델 죽 프리에토가 『유관성과 실제』에서 지적한 대로 구성된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도 거부한다. 이러한 개념의 실체화는 필연적으로 특정한 예술작품을 실체화하고 正典化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루카치는 이렇듯 동일화하는 술화의 틀 속에 갇혀 있었던 까닭에 결국 리얼리즘을 토마스 만(발작, 톨스토이)의
글쓰기방식과 동일시할 수 있게 되었고, 토마스 만이 〈크리스챤 부덴 브로크, 토니오 크뢰거, 한스 카스토르프, 세뎀브리니, 나프타의 정체를 정확히 알고 있다〉(앞의 책, S.201) 고 서슴없이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이 다. 그러나 Th . 만이 그것을 정말 알고 있었더라면 모든 해석은 쓸모 없게 되었을 것이며 우리는 작가에게 해설을 청하는 것만으로 만족했 울 것이다. 〈현실의 전과정의 객관적 본질〉을 인식을 통해 전유하고 있다는 환 상을 품은 사람은 문학텍스트을 거대한 목적론에 끼워맞추려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 이같은 목적론은 헤겔이 최초로 구상한 바 있다. 그는 소아시아의 불완전한 상칭적 형태들로부터 출발하여, 고전주의적 이상 을 예술발전의 정점으로 파악하고 〈일반적 상황이 예술에 불리해전〉 근대에 와서는 예술이 과학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런 목적론적인 추론은 루카치의 경우에도 발견된다. 『소설의 이론』에서는 의식과 존재(주인공과 세계) 사이의 동일성을 재건하고자 하는 희망이 술화의 진행을 조종하고 있다는 접어 1 서, 그리고 후기의 저작들에서는 비판적 리얼리즘이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으로 교체되리라고 주장한다 는 점에서 목적론적인 것이다. 이때 결정적 인 사실은, 루카치가 허구 덱스트의 〈내용 Gehal t〉을 탐 색하여 그것이 〈리얼리즘적〉(구체적)인가, 〈자연주의적〉(추상적)인가를 분별하기 위해서는 허구 텍스트의 단의성을 가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는 점이다. 그리하여 그는 허구 덱스트를 개념적(과학적) 덱스트와 구 별짓는허구적 글쓰기방식의 결정적인 측면, 죽 다의성을 간과하게 된 다. 그러나 허구적 글쓰기방식의 다의성이야말로, 허구 텍스트의 여러 모순적인 수용이 그 이질적인 의미론적 잠재력에 각기 반응한 결과라 는 사실을 밝혀줄 뿐만 아니라, 허구적 글쓰기방식이 자신을 철학적 체계의 틀 안에서 〈리얼리즘〉이니 〈자연주의〉니 하는 상투어에 고정 시키려는 모든 시도에 대해 저항하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열쇠인 것이 다 (Z im a, in : Schmi tt, Hrsg. 1978) . 이 와 같은 이 데 올로기 적 대 적 이 며 역
사적으로 생동하는 허구적 실천의 메카니즘이 곧 텍스트사회학이 다 루고자 하는 대상이다. 3. 루시앙 골드만에 있어서의 세계관과 총체성 골드만의 세계관이라는 관념도一~그것이 비록 딜타이에게서 유래한 것 이 간 하지 만 (He y ndels, 1977 참조)-루카치 의 전 형 개 념 과 마찬가지 로 헤겔의 총체성 범주에 소급될 수 있다. 골드만이 루카치와 더불어 헤겔의 충실한 후계자라는 접은, 그 역시 허구 텍스트의 단의성을 전 제한 채 이를 개념적 등가물로 귀속시키는 데 문학사회학의 과업이 있다고 가정한다는 사실로도 알 수 있다. 아도르노가 로트만과 바슷하 게 단편적인 것, 모순적인 것이 지니는 의미를 중시하는 데 반해, 골 드만은 일관성을 작품의 미적 질을 판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간주한다. 유기 적 인 〈위 대 한〉 작품은 그 의 미 작용구조 str u ctu r e sig n if i- cati ve 속에서 개념적 체계, 죽 집단적 세계관을 표현한다. 골드만의 견 지에서는 이 세계관이 문학사회학의 고유한 대상으로 간주된다. 그것 은 인식적 기능과 이데올로기 비판적 기능을 동시에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관성있게 서술되는 것은 여러 면에서 루카치의 〈전형적인 것〉, 〈본질〉과 같은 개념을 연상케 하는 〈세계관 v i s i on du monde 〉으로 서, 이는 경험적 세계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작품이(루 카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경험적 직접성을 넘어섬으로써 비로소 생산해 내는 것이다. 허구 덱스트를 손상시키지 않고서 철학의 개념적 술화로 번역할 수 있다는 골드만의 생각은 헤겔적이다. 〈따라서 우리는 문학작품의 이해 를 돕기 위하여 이를 철학적 혹은 신학적으로 주조된 개념적 체계와 관련시킬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체계란 작가의 의식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작업은 비평가와 문학사가의 과업이라 하 겠다. 〉 (Goldmann, 1959, S.1 9 5) 이처럼 허구의 구조와 개념적 구조 사이에 상동성이 존재한다는 주 장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1. 작가가 흔 히 의도하는 허구 텍스트의 복수성(다의성과 다성성)을 위축시키며, 특히 일관성과 조화라는 고전주의의 요구에 반기를 드는 아방가르드의 덱 스 트들마저 억지로 헤겔주의적 이상에 예속시킨다 . 2. 개념적 술화에 의해 정의된 신학적 혹은 철학적 등가물(의미작용구조로서의 세계관)이란 기껏해야 메타텍스트에 허구텍스트를 의미론적 통사론적으로 동화시 킨 것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메타텍스트는 의미론적 선택을 통해서 대상 텍스트로부터 자신의 술화진행, 즉 자신의 목적론 울 정당화해 주는 의미론적 줄기를 찾아내기 때문아다(골드만이 허구의 언어적 특성을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R 카우어드와 J . 엘리스도 『 언어와 유물 론 』 이라는 저서에서 지적하고 있다). 〈 이러한 연구둘이 많은 것을 해명해 주기는 하지만 그런 종류의 상징적 의도는 너무나 무리없이 쉽게 역 사로 회귀하고 만다. 그것은 언어란 투명한 것이어서 그것이 덮고 있는 실재를 알아보기란 쉬운 일이라는 언어관, 그리하여 실재의 개념화란 말하자면 言 語以前的인 것이라는 관념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한 텍 스트가 어떻게 의미하느냐 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못된다. 그들(루 카치와 골드만)은 텍스트가(특정한 상황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 또 그 이유는 무엇인가를 알아보려고 할 뿐이다.〉 (Coward, · E lli s , 1977, S.3 4 ~35) 문학철학이나 문학사회학에서 술화에 의한 폭력이 행해질 위험에 대해서는 이미 무카로프스키가 「예술과 세계관」이라는 논문에서 지적 한 바 있다. 이 논문은 아직 번역되지도 않았고 인용되는 일도 드문데, 그 이유는 무카로프스키의 저술들이 독일어권에서는 수용미학의 색안 경을 통해 읽혀지는 데다가 수용미학은 세계관이니 반영이니 하는 개 념에 알레르기적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 하지만 무카로프스키는 바 로 이 논문에서 세계관이란 개념에 대하여 수용미학에게도 낯설지 않
울 반론을 전개하고 있다. 야우스가 골드만과 루카치를 비판하기 훨씬 전에 무카로프스키는 이미 어떤 예술작품도 개념적 체계 속에 해소되 어버릴 수 없다는 사실울 인식했던 것이다. 수용, 죽 끊임없이 갱신되 는 독서를 고려해 볼 때, 작품을 궁극적으로 하나의 세계관에 귀속시 키려는 시도는 수상쩍어 보인다 . 그러한 시도는 주관주의로 함몰될 위 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 이유는 〈특정 문학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철학 에 대해 고찰한다는 것은 기껏해야 작가의 덱스트에서 뽑은 인용문들 울 근거로 학자 자신의 철학을 설명하는 데 지나지 않기 〉 때문이다 (Mukarovsky , 1966, S.246) . 나는 「루시앙 골드만의 헤겔주의 미학」이라는 논문에서 〈 발생론적 구조주의〉란 것이 얼마나 심각하게 이러한 위험에 방치되어 있는가를 밝간적히 려공 동한체 바 (c o있m다m.u na휴ut머e 니 hu즘ma적in 이e , 며 사회주의적인 가치를 지니는 〈 인 골드만)〉를 목적 t elos 으로 삼는 이 러 한 술화는 칸트, 파스칼, 라신, 말로, 곰브로비취, 쥬네, 사르트르 등과 갇은 다양한 저자들을 개인/공동체/, 추상적/구체적, 단편 / 총체, 내재 성/초월성 등등의 특정한 의미론적 대립쌍들에 연결시켜 설명하려고 한다 (Z i ma, 1978 참조) . 라신의 연극에서도, A.말로의 소설에서도 개 인주 의(라신의 경우 개인과 주인공 사이의 비국적인 단절)로부터 인간적 공동체, 역사적 내재성으로의 이행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헌들에 대한 이같은 마르크스주의적, 휴머니즘적 해석이 물론 가능하고 또한 골드만이 때때로 매우 설득력 있는 해석을 제시하기는 하지만 편견을 갖지 않은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의문이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메타텍스트가 자기자신의 의미론적 통사론적 처리방식에 대해 명백히 자각하지 못한 채 대상덱 스트롤 자기 구미에 맞게 꾸며놓는 것은 아닐까? 〈발생론적 구조주 의〉의 근본적 약점 중의 하나는 덱스트와 메타텍스트의 관계를 반성 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를 자기 대상과 혼동한다는 점에 있음이 분명 하다.
두번째 약점에 대해서는 이미 지적한 바 있다. 즉 일관성의 공준 때 문에 골드만은 다의성(허구 택스트에서 일어나는 다수의 동위체들의 공동작 용)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헤겔주의적 미학의 틀 속에서는 텍 스트의 다성성(술화다중성 Plur i d i skurs i v itat)을 지각할 수 없는 이유 역시 일관성의 공준 때문이다. 골드만과는 달리 바흐친은 문학생산을 통해 여러 개의 서로 경합하는 세계관들을 각기 특정한 술화형식으로 표현 되도록 가공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Bach ti n, in : Zim a , Hrsg. 1977 참조). 이로써 바흐친은 헤겔주의 미학의 일원론을 파기할 뿐만 아니라 대상 에 대한 일의적 정의, 〈모호성을 배척하는 태도〉에 의존하는 목적론을 의문시하는 것이다. 4. 알튀세에서 마셰리까지 : 헤겔의 목적론 비판 알튀세의 마르크스주의는 흔히 구조문제의 관점에서 고찰되어 왔다. 이때 그것이 헤겔과의 단절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도 자주 지적된 바 있다. A. 슈미트의 논문 「역사에 대한 구조주의의 공격」에서나 U 예기 의 「이론적 실천 ; 구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의 제문제」라는 논문에서 〈구조〉, 〈역사〉, 〈인간주의〉의 개념은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프랑스의 바 평 가들, 특히 H 르페 브르 (Le f ebre, 1971 참조)는 알튀 세 가 헤 겔(마르크스)의 변증법을 배반했다고 비난했다. 아는 이 나라에서(서독 에서-역주) 알튀세주의자들(마세리, 페쇠)의 이데올로기 비판적, 덱스 트비판적 고찰이 주목받지 못한 중요한 이유의 하나다. 예기에 와서야 비로소 알튀세의 이데올로기비판의 중요성이 상론되었다. 그는 알뒤세 의 이데올로기비판을 역사적 목적론의 토대인 총체성 개념에 대한 거 부와 연관지어 설명했던 것이다 Oae ggi, 1976, S.58 • no • 169). 실제로 알뒤세 이론의 본질적 국면의 하나는 마세리의 저서 『헤겔
이냐 스피노자냐』에서 명명백백하게 표명된 대로 헤겔의 목적론에 대 한 비판이다. 동시에 마셰리는 자신의 논문집 『문학생산의 이론을 위 하여』 (Darms t ad t, 1974) 에서 반영의 개념을 본질 / 현상, 일관성 / 단편성과 같은 대립쌍과는 무관하게 새로이 정의하려고 시도한다. 그가 과연 목 적론으로부터 벗어났는지 또 반영개념을 어떻게 허구의 언어적 자율 성의 맥락에서 해명했는지는 이제 좀더 상세히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알뒤세나 마셰리가 문학의 기능을 그것의 특수성에 입각하여 정의 하지 않았다거나, 그들의 술화가 일차텍스트의 서술에는 아무런 영향 력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거나 하는 따위의 주장들은 온당치 못한 것 이다. 루카치와 골드만의 헤겔주의적 미학과는 달리, 그들은 자기자신 과 동일한 주체라는 헤겔의 이념에서 유래하는 목적론적인 논증을 회 피한다 . 알튀세의 저술에서는 헤겔의 목적론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는 스피노자의 몰주체적 철학에 근거를 두고 있다. 『자기비판의 요인들』이라는 저서에서 알뒤세는 자산의 주된 사상을 다음과 같이 총괄한다. 〈스피노자의 덕택으로 우리는 주체 / 목적이라는 관련쌍이 헤겔 변증법의 ‘신비화’의 핵심임을 간파할 수 있었다〉 (Al thu sser, 1974, S.76). 마세리도 『헤겔이냐 스피노자냐』에서 목적론의 문 제에 관해 비슷한 견해를 피력했다. 〈그(스피노자)는 사상의 운동을 절 대적으로 객관적인 것으로 파악함으로써 이룰 어떤 주체에 의한 속박 으로부터도 해방시킨다. 그 주체가 사상 자체일지라도 말이다. 그리하 여 모든 합리성의 토대가 되는 본질적 인과율이 목적론적 전제 없이 정 의 되 는 것 이 다.〉 (Macherey, 1979, S.75) 문학과 역사에 대한 술화에서 주체의(역사적인) 의도가 존재한다는 근본가정으로부터 출발하지 않는다면, 해석된 텍스트가 술화 도식의 구실로 전락하거나 헤겔, 루카치, 골드만의 경우에서처럼 특정한 의식 의 단계들(상징적, 고전적, 낭만적 단계, 비판적 리얼리즘 대 사회주의적 리얼 리즘, 개인주의 대 인간적 공동체)에 대한 〈상칭〉으로 환원되거나 할 위험 성은 사라질 것이다. 마세리의 경우 〈작품〉이란 더 이상 메타텍스트에
의해 결 정된 역사적 의도나 사회집단의 세계관을 표현하는 매체가 아 니다. 『 문학생산의 사회학을 위하여 』 에서는 오히려 허구를 통해 이데 울로기적 제모순이 어떻게 반영되고 가공되는지를 보이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 된다 . 헤겔주의적 미학이 고전주의적 일관성의 공준과 조화로운 예술작품 의 이상에 기초하고 있다면, 마세리는 이와 반대로 허구의 생산이란 지배적 이데올로기의 난점을 폭로함으로써 비판적 기능을 수행하는 자체내 모순적인 과정이라고 해석한다. 학자가 가정한 연관성들이 목 적론적으로 텍스트 속 으로 해석되어 들어가서는 안된다. 중요한 것은 오히려 그 덱스트가 〈 사회의 거울 〉 로서 어떤 사회적 모순들을 감당하 고 있는지 를 밝히는 일이다. ( 마세리의 저서에서) 발작을 다룬 장의 제목이 〈발작의 ‘농민들' : 이 질적 텍스트 〉 라는 사실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소설은 이 질성을 통해, 죽 차이를 드러내고 이데올로기적 부조화를 깨닫게 함으 로써 지배적 사상을 의심쩍은 것으로 만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비 판적 영향력은 작품의 조화로부터 나온다기보다는, 그것이 오히려 사 회적 불협화음을 울려퍼지게 한다는 데서 연유하는 것이다. 〈톨스토이 의 작품은 결코 동질적이지 않다.〉 이는 레닌과 톨스토이에 관한 장에 서 인용한 말이다. 이 장에서는 특히 조화로운 총체성이라는 이데올로 기적 이상이 청산된다. 그러나 문학이 사회적 모순을 직접적으로 재현한다는 식의 가정은 오류일 것이다. 이 모순은 오히려 문학생산을 통해 매개되는 것으로 보인다. 〈 이같은-결정적인一―사정을 근거로 볼 때 , 작품은 그 자체 모순적이다. 따라서 작품 속의 모순을 역사적 모순의 반영으로 간주하 는 것은 잘못이다. 그것은 오히려 반영하지 않은 결과다.〉 (Machere y, 1977, S.1 8 0) 텍스트는 사회적 갈등에 반응함으로써 자기자신의 (형식 적 ? )모순둘울 창출한다 . 그러나 이 모순들이 사회적 모순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마세리의 이론에서 문학의 이데 올로 기비판적 기능에 대한 서술은 아도르노의 부정의 미학을 상기시킨다. 아도르노의 미학 역시 다른 근 거에서이간 하지만 일관성의 공준과 거리를 두고 이데올로기적 모순을 미적인 것으로 간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의 의침은 자체 내에서는 언제나 완벽하고 정확하다. 그러나 그것이 소설 속에 나타나 는 순간, 이데올로기는 자신의 허점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한다.〉(앞의 책, s. 1 85). 이데올로기가 그 자체 허위라고는 할 수 없다. 그것의 허위 성은 그 한계와 모순이 가시화될 때 비로소 드러나게 된다. 알뒤세와 마세리에 따르면 문학뿐만 아니라 과학 역시 이러한 한계와 모순을 밝혀내는 것을 과업으로 한다. 마세리의 시도는 한편으로는(동독의 사회주의 리얼리즘과도 마찬가지로) 문학의 특수한 성격을 지적하고 그 언어적 자율성을 얘기하면서도 다 른 한편으론 (a) 허구성의 개념을 정의하거나 (b) 문학과 사회 사이에 존재하는 언어적인 연관에 대해 서술하는 일은 등한시하고 있다는 접 에서 약접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문학생산의 사회학을 위하여』의 첫 번째 장에서이 문제가 다루어지기는 한다(〈자율성과 독립성〉, 〈이미지와 개념〉, 〈미적 언어와 전리의 언어〉, 〈창조와 생산〉). 하지만 이 문제를 〈해 결〉하는 술화는 은유에 그칠 뿐이어서, 〈반영〉의 과정을 언어적인 것 으로 서술하는 데는 실패한다. 문학덱스트가 〈언어와 이데올로기를 …… 독창적 인 방식 으로 사용한다 fon t du lang ag e et de I' ide eolog ie… … un usage ine dit >( Macherey1 1966, S.66) 는 마세 리 의 주장은 물론 틀림 없다. 그러나 문제는~ 야콥슨, 코제뤼, 바흐친, 아도르노에 따르면-의시의적 전언에 대해 허구적 전언의 특질을 이루는 언어의 특수한 사용이란 과연 무엇인지 제시하는 일인 것이다. 마셰리는 한편으로는 이데올로기적 구조들이 언어적이고 술화적인 것이라고 생각할 줄 모르며 그런 까닭에 다른 한편으로는 이념소들이 문학텍스트의 서술, 문장, 의미, 음성의 충위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 는가라는 중요한 물음을 회피한다. 그는 그저 특수한 형식의 〈이데올
로기의 반영 〉 만 을 계속 얘기 할 뿐이다. 그러나 텍 스트 사회 학 이라민 허 구적 글 쓰 기방 식 의 내부에서 진행되는 통사론 적 서 술적 의미 론 직 과 정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와 아울러 문학텍 스 트에서 그것의 콘텍 스 트로 이어지는 다리를 놓고자 한다면 사회적 구조를 언어적인 것으로 서술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바로 이 마지막 과제 앞에서 이 제까지의 변증법적 문예학은 침묵해 왔던 것이다. 5. 덱스트사회학을 위한 구상들 텍스트-콘덱스트 연관의 문제는 반영이론과 같은 은유적 논술로는 접근할 수 없다. 〈 아무튼 〉 문학이 〈현실의〉 모상으로 생각되어야 한다 는 말에 지나지 않는 반영의 개념은(틀린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언어학 적, 기호학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텍스트구조의 충위 -서술통사론, 통사론, 의미론, 음운론_―에 연결될 수 없기 때문에 무용지물이 된다. 골드만, 마세리, R. 쇼버와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반영개념을 의시의 적으로 해석하여 가족, 계급, 국가 , 교회, 이데올로기에 대한 전술이 현 실을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동시에 의미구조를 형성하기도 한다는 식 으로 소박하게 생각해버리는 데 반대한 것은 전적으로 정당하다 할 수 있다 . 그러나 반영이라는 은유적 표현이 기호학적 언어로 번역되지 않 는 한, 이 또한 화려한 은유로부터 흘러나오는 마르지 않는 오해의 샘 으로 계속 남을 것이다. 〈거울에서 나타나는 반영의 형식에 있어서는 거울의 비밀이 규명되어야 한다〉 (Machere y, 앞의 책, s. 173). 이번 절에서는 기존의 문학사회학의 모델들 속에 이미 텍스트사회 학이 참작하고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유용한 단초들이 포함되어 있 다는 점을 밝힐 것이다. 루카치와 골드만은, 그들 이론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 덱스트의미론과 서술통사론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아도르노는 이미 이데올로기비판이란 언어비판이라는 점을 간파하였 다. 그리하여 마셰리가 논의하는 몇몇 주제들(예컨대 예술의 자율성 혹은 독립성)은 『문학에 대한 소견』과 『미학이론』에서 본질적인 면에서 더 욱 상세히, 더욱 날카롭게 포착될 수 있었던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특히 에리히 쾰러가 장르와 거시통사론의 사회적 의미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는 최근의 연구를 통해서 이데올로기적 의미론의 충위 와 텍스트의 음운론적 단위들 사이에 존재하는 연관성을 탐구하기도 한다. (1) 장르체계와 서술통사론 E 쾰러는 루카치나 골드만보다는 더욱 분명하게 문학생산의 자율적 합법칙성을 인식하고 있다. 그는 골드만의 상동성 개념을 비판하면서, 문학텍스트에 대한 서술은 우선적으로 〈문학적 전화〉의 내부에서 이 루어져야 한다는 형식주의적 사상에 주목한다. 〈 L. 골드만은 토대와 예 술적 상부구조의 일치가 내용의 상동성이 아니라 구조의 상동성이라고 봄으로써 반영이론의 중대한 약점을 극복하였다. 그러나 그의 발생론 적 구조주의는 문학전통에 의한 매개의 의미를 고려치 않고 있다.〉 (Kohler, in : Burge r , Hrsg. 1978, S.1 4 0) 쾰러의 문학사회학에서는 이러한 골드만에 대한 바판이 형식(장르) 과 사회적 내용 사이의 상호제약관계를 다루는 장르사의 출발점이 된 다. 쾰러 역시 마세리와 마찬가지로 형식(예컨대 소설의 형식)은 그 발 전과정에서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부여받게 되며 〈내용〉은 이러한 의 미와 일치한다는 가정을 논의의 근거로 삼는다. 하나의 장르를 둘러싼 투쟁은 __- P. 뷔르거도 『현실성과 역사성』이란 저서에서 지적한 바 있 듯이_대립적 집단이해 사이의 대결이라고 상정해 볼 수 있다는 것 이다• 쾰러는 「장르체계와 사회체계」라는 논문에서 루만의 체계개념을 장
르체계의 이론에 적용하여 한 장르에서 다른 장르로의 이행을 사회학 적으로 설명할 것을 제안한다. 기존의 사회질서내에서 지배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문학형식(서사시, 소설)이라도 역사적 발전과정에 따라 본 래의 기능연관이 변화되면 그 지위를 상실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규범시학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봉건시대의) 서사시는 시민사회에 이르 러서는 갱신될 수도 보존될 수도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체계라는 것은 〈어떤 장르 전체, 혹은 하위 장르가 새로운 기능을 수용할 수 없 게 되면 이를 제거해버리〉기 때문이다 (Kohler, 1977, S.1 4 ). 서사시의 몰 락에 대해서 쾰러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가장 두드러진 경우는 서사시다. 규범시학자들은 18 세기가 되도록 고집스 럽게 서사시를 체계내에서 지배적인 지위에 올려놓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 러나 끊임없이 개혁의 시도를 자극했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는, 서사시가 그 사회적 위세에 비해 너무나 무력하고 기생적인 존재임이 명백해진 계급의 영웅적 존재와 전쟁에 대한 찬양을 그치지 않는 까닭에, 이 장르를 버릴 수 밖에 없었다(앞의 책, S. 14) 쾰러가 체계내에서의 기능적 전이로 간주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a) 장르 내부의 변화들. 이는 새로운 주제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수용력을 확대할 수 있는 장르의 경우다. (b) 새로운 장르(예컨대 시민적 소설)의 발생. 그것은 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그 기능의 기반을 상실한 낡고 고 착화된 장르를 대체한다. (c) 혼합 장르의 발전. 쾰러의 견해에 따르면 이는 사회적 이행기에 두드러진다고 한다. (d) 마지막으로 전체 체계 (그레마스라면 사회문화적 〈인식소 e pis t eme 〉라고 할 것이다)가 새로운 체계 로 교체될 수 있다. 르네상스 문화에 나타나는 봉건적 규범과의 단절이 그 예이다. 문제는 장르개념을 의미론적 통사론적으로 엄밀하게 정의할 수 있 느냐, 또한 그 개념을 그레마스 등이 구상한 술화유형과 연관지을 수
있느냐 하는 것 이 다. 특히 오늘날의 아방가르드 (A.Schm i d t, ].Becker, M. Roche, P. Sollers) 를 서술하는 데에 전래되어온 장르개념들(노벨레, 단편 소설, 장편소설)을 적용한다는 것은 합당하지 못한 일로 보이기 때문이 다. 문학사에서 그 개념들이 지니는 유용성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소설의 개념은 너무 확장되어 괴테의 『베르데르』와 로 브-그리예의 『유령도시의 토폴로지』와 같은 전혀 이질적인 작품들을 포괄하고 있는 까닭에, 그것의 이론적 적실성은 부분적으로 상실되었 다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쾰러는 다름아닌 소설문학의 영역에서 소설형식 (서술구조)과 사회변동 사이에 상호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입증해 보이고 있다. 1200 년경의 봉건적 기사사회의 위기는 점차 기사 개인과 이제는 무기력해전 이상화된 신분공동체간의 단절을 심 화시킨다. 여전히 신성시되던 〈무훈시 chanson de g es t e 〉의 세계는 궁정 서사시에 이르러 파괴된다. 여기서는 두 개의 세계 사이의 대립이 나 타난다. 하나는 이상화된 봉건적 공동체, 아더 궁정의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고립된 채 방황하는 기사의 세계다. 쾰러는 이런 기사를 루카 치적인 의미에서 문제적 주인공으로 간주한다. 허구상에 묘사된 궁정 세계의 이원성은 크레티엥의 소설(『마차기사』, 『아방인』, 『獅子騎士』)에서, 그리고 특히 『파르치팔』 소설에서 두 개의 평행적인 이야기 가닥으로 표현된다. 첫번째 가닥은 이상적 공동체의 대표자 가바인에서 출발하고 두번째 가닥은 고립된 주인공에서 시작 한다. 서술심급(i ns t ance du recit, 그레마스)으로서의 주인공은 아더 공동 체의(그레마스의 말에 따른다면) 〈서술프로그램〉을 더 이상 넘겨받지 못 한다. 그 프로그램의 실현을 위임받는 자는 가바인이다. 이러한 아더류의 모범적인 기사의 모습을 통해서 이제까지 모범적이었던 공동체세계가 이질화되어, 대조를 이루는 또 하나의 자립적인 줄거리로 변한 다. 그리하여 구성 이 횡단적으로 양분될 뿐만 아니 라(두번째 아더 장면은 새
로운 줄거리의 시작이다) 종단적인 양분도 일어난다. …… 가바인의 일련의 행위들을 통해서 『파르치팔』 속의 공동체 세계는 자기자신에 대립하는 세계 로 된다. 즉 그것은 왕국을 파괴할 창을 추구함으로써 자기자신의 몰락을 자 초하는 것 이 다 (Kohler, 1970, S.246) . 쾰러는 『이상과 현실』이라는 저서에서 〈양분화의 형식원칙〉 (S.246) 이 사회적 변혁(기사 공동체의 몰락)의 결과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서술하 고 있다. 카린 보클룬트는 「궁정로망스의 공간적 문화적 특성에 대하여」라는 논문 (Bocklund, 1977, S . 32) 에서 쾰러의 연구가 덱스트와 그 서술구조를 다루는 사회기호학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이는 타당한 말이라 하겠다. 그러나 쾰러가 서술적 처리방식의 사회학적 분 석 에 주목한 최 초의 연구자라는 그녀 의 주장은 옳지 않다. 이 미 1936 년에 루카치는 자연주의와 형식주의에 대한 토론에 부친 「서술이냐 묘사냐」라는 논문에서 서술구조에 대한 사회역사적 해명을 시도했던 것이다. 루카치는 그전에도 노벨레에 대한 논문들, 특히 복카치오의 〈신분 적〉 노벨레와 근대의 노벨레를 비교한 한 덱스트에서 서술기능, 그중 에서도 〈중심사전〉 기능이 지니는 사회적 의미를 상론한 바 있다. 복 카치오가 속해 있던 신분사회에서는 전형적 줄거리와 인물들이 칙집적 으로 주어져 있기 때문에 작가는 인물의 성격, 그둘의 심리를 〈문학적 으로 도출하고 입증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있다 (Lukacs, 1967, s. 55). 그리하여 복카치오의 경우 노벨레의 구조는 〈확고한 사회적 전형〉 이 존재함으로써 성립하게 된다. 그러나 근대 노벨레는 그와 같이 직접 주어전 사회적 전형에 의지할 수 없다. 노벨레의 집약적 성격을 유지 하기 위해서 작가는 기이한 사건을 묘사하지 않으면 안된다. 〈간단히 말해서 티크의 변증법적 전환점이란 예의적인 특수 상황이 독특하게 첨예화되다가 놀랄 만한 계기를 통해서 사회적으로 전형적인 것으로
전도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예외적인 상황에서라야 비로소 감각 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법칙이 나타나며, 우연을 통해 필연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앞의 책, S.5 5 ) 루카치의 노벨레 형식에 대한 해석은, 비록 모든 면에서 본질적인 것 (총체성)을 표현해야 한다는 헤겔주의적 요구를 추종하고 있기는 하지 만, 문학형식을 사회학적으로 해명하려는 최초의 시도로서의 가치는 인정받을 만하다. 소설형식을 대상으로 한 논문 「서술이냐 묘사냐」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일보 전전한 것이다. 여기서 루카치는 리얼리즘적 구조를 자연주의적 구조와 구분하면서, 일관성있는 서술통사론이 리얼 리즘적 반영의 본질적 구성요소라는 점을 입증하고자 한다. 이에 반해 자연주의와 그 〈추상적 반영〉은 서술적 인과율의 붕괴를 특징으로 한 다. 〈스코트, 발작, 또는 톨스토이의 경우 우리가 경험하는 사건들은, 거기에 참여하는 인물들의 운명을 통해, 또 그들의 삶이 풍부하게 전 개되는 가운데 이 인물들이 사회적 삶에 대해 얻게 되는 의미를 통해 그 자체로서 중요한 것이 된다. 우리는 소설의 인물들이 행동으로 참 여하는 사건들울 관람한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이 사건들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Lukacs, in : Brin k mann, Hrsg. 1974, S.39) 반면에 풀로베르 나 졸라의 〈인물들은 약간의 관심밖에 지니지 않은 사건의 구경꾼에 불과하다〉(앞의 책, s.40). 독자는 사건의 목격자가 아니라 형상들의 관 찰자다. 이로써 〈서술t ell i n g〉과 〈묘사 show i n g〉의 차이점이 명백히 드러난다. 이 점은 W. 부스의 『소설의 수사학』이란 저서에서도 부각된 바 있다. 그러나 루카치는 부스와는 달리 소설의 서술구조(여러 줄거리가닥들의 공동작용)를 사회적 문제로 해석한다. 루카치는 플로베르와 졸라의 연 상적(계열체적) 처리방식-이러한 처리방식은 조이스의 『율리시즈』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이 확고한 구조를 지닌 전통적 소설의 거시통사론과는 전혀 다른 사 회적 가치와 문제들을 표현한다는 사실을 예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지적된 차이를 〈 리얼리즘 〉 이니 〈 자연주의 〉 니 하는 헤겔주의적 규범미학의 개념을 가지고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후반부의 장들에서는 프루스트, 무질, 카프카의 소설에서 서술통합체 가 붕괴된 것은 사회적 가치의 의미론적 양가성이 낳은 결과로서, 소 설작가들이 양가적 현실 앞에서 연상적이고 계열체적인 글쓰기방식으 로 반응하였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질 것이다 . 소설뿐만 아니라 이론도 심화되어 가는 양가성과 대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풀로베르와 졸라가 글을 쓰던 19 세기 후반기에 철학체계에 대한 쇼펜 하우어와 니체의 비판-이 비판은 무질의 『특성 없는 인간』에서 계 속된다―一이 시작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던 셈이다. 시민적, 자유주의적 가치체계의 위기는 소설의 서술통사론을 뒤흔둘 어놓았을 뿐만 아니라 거대한 개념적 체계의 사회적 기초마저 파괴시 켜버렸다. 『영혼과 형식』을 저술했던 청년 루카치는 이 체계를 여전히 동경하고 있었고, 노년에 이르러서 드디어 이를 완성했지만, 그것은 시 대착오에 불과한 것이었다. (2) 의미론적 구조 의미론적 층위는 사회와 이데올로기가 언어로 이행하는 경계선이자 언어학의 이데올로기적 전체가 전면에 부각되는 지접이기도 한다 (Pe cheux, 1975 참조). 그러기에 변증법적 문학사회학자들이 의미론적 문제 둘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다루었다는 사설은 더욱 놀랍다. 이 문제들에 좀더 주목했더라면 서술구조(〈줄거리〉)에 대한 그들의 분석도 인상주의 적인 차원에 머무르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의미론은-그레마스가 울 바르게 인석한 것처럼-텍스트의 이데올로기적 토대로서 통합체의 진행과 정체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제 6 장 참조). 골드만은 〈의미작용구조〉와 같은 개념을 만들어내기는 했다. 그는 이 개념이 예술작품의 거의 전부를 (Ia pre squ e-to t a lite du tex t e, Gold-
mann, 1970, S. 591) 해명해 주리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 신의 가장 중요한 연구에서조차도 이 개념을 의미론적으로 정의하지 못한다. 그 결과 〈발생론적 구조주의 〉 의 방법을 문학텍스트에 적용하 려고 하는 경우에는 흔히 어떤 요소가 유의미한지 (s ignifi ka ti O 판단할 기준을 알지 못하게 된다. 나는 『골드만 : 내재성의 변증법』 (1973, S.5 4 ~ 55) 에서 이미 아런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죽 일차텍스트에 적용된 이론에 의해 개개 요소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결정되는 경우에는, 사회 학적 의미작용구조뿐만 아니라 정신분석학적 의미에서의 〈 의미작용구 조 str u ctu r e sig nifica tif > 역시 상정해 볼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유관성의 문제를 해결할(또는 몇몇 신뢰할 만한 기준을 제시할) 의마론을 결여하고 있는 한, 어떤 이론도 직관적 처리방식을 좇아서(목적론적으로? ) 텍스 트의 특정부분들을 유의미한 것으로 간주하는 사고틀을 벗어날 수 없 울 것이다. 골드만 자신도 이러한 결함을 감지했음이 틀림없다. 그는 최근의(생 존 퍼스의 詩들에 대한) 분석에서 의미작용구조라는 개념을 특정한 구조 주의의 용어들을 이용하여 엄밀화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서정시 덱스 트 (Elo g es Ill) 의 구조는 레비 스트로스의 이분개념에 의해 해석되어야 한다고 한다. 골드만은 그 시를 우선 개략적으로 읽은 뒤에 그것이 〈정태적/동태적〉이라는 이분법으로 구조화되어 있다고 가정한다. 이러 한 기본가설에 입각하여 미시구조들을 연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골 드만은 이 구조들을 레비 스트로스에 따라 전체 텍스트의 〈축소모델 modeles redu it s 〉로 간주한다. 이때 그는 전체가 부분을 통해 재생산된 다는 변증법적 가설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 〈이 시의 세계는 우주적, 인간적 제가치가 의부에서 보아서는 부동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내적 으로 운동하고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관념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것 같다. 과거와 미래를 지배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오직 이같은 정 적인 것과 그 속에 내포된 동태적인 것의 종합뿐이다.〉 (Goldmann, 1970, S.37) 골드만은 이러한 생각이 시 전체뿐 아니라 그 부분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고 부언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주장들은 모호한 채로 남아 있다. 왜냐 하면 골드만에게는 기존의 의미론적 대립자들에 대한 보다 엄밀한 정 의를 가능케 할 개념장치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레마스적 의미 에서) 심층구조라고 할 수 있는 의미작용구조에 대해서는 골드만이 그 것 을 의 미 소적 동위 체 의 개 념 (iso to p i e sememi qu e, , S . 69~72) 에 연결시켰더라면 훨씬 더 정밀하게 기술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개념을 사용하면 시에 나오는 개개 〈단어들〉(의미소들)을 그때 그때의 문맥의소(〈정태적 〉 또는 〈동태적〉)에 귀속시킬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결정적인 기준은 단어기호에서의 해당 문맥의소의 회귀(잉여 Redundanz) 가 될 것이다. 텍스트에서의 의소회귀현상을 지시하는 동위 체현상의 개념을 적용했더라면 표충구조(의미소)를 심층구조(의소)와 결합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앞서의 경우에서 골드만이 이 작업을 순전히 직관적으로밖에 수행할 수 없었던 이유는 레비 스트로스의 신 화상의 이분법 개념이 언어적 덱스트의 기술에는 썩 충분치 못했기 때문이다. 동위체현상 : 동위체현상의 개념은 다음과 갇이 정의된다. <… ••• 진술로서의 술화의 동질성을 보증하는 분류소(문맥의소)의 동합체 축 위에서의 반복 (Gr eim as, Court es , 1979, S.1 9 7). 동위체현상을 구성하는 의소(분류소)의 반복―― 이때 최소한 두 개의 〈단어〉(의미소)가 동일한 자질(의소)을 나타내야 한다 一에 대한 예로 칼마이어와 크라인 등은 다음을 들고 있다. 〈그래서 예컨대 ‘추종자', ‘제거되다’, ‘국가원수’, ‘왕자’ 등의 집합으로 된 어휘소들은 ‘정 치적'이라는 자질을 지닌다 . 우리가 말하려 하는 것은 이들 어휘소내에서(그 집합내에서) 이 자질이――회귀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一모든 여타의 자질 을 지배한다는 사실이다〉 (Kallme y er, Klein , u.a 1974, Bd. I, S.144). 따라서 문맥의소(분류소)는 의미소들(콘덱스트내의 단어들)을 종속시키는 지배적 상
위개념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이러한 지배를 통해서 의미소적 동위체현상 이 발생 하는 것 이 다(J. Schulte - Sasse, R.W erner, Ein f u l mmg in die lit er atu n vis - se11schaft, Munchen, UTB, 1977 : 5.5. Der Isoto p i eb egr iff 또한 참조할 것) . 쾰러는 고대 프로방스 지방의 덱스트를 분석한 「음운론적 구조와 의 미 론적 구조의 관계 에 대 한 고찰 Can vei la Iauzeta mover 」 (in : Zim a, Hrsg. , 1980) 이란 논문에서 골드만보다 한걸음 더 나아간다. 분석된 시는 요벤의 가치체계를 표현하고 있다. 요벤이란 명예욕이 강한 일군의 젊은 기사 둘로서 낮은 층의 귀족에 속해 있지만 뿌리깊고 강력한 봉건귀족의 계 층으로 상승하려고 시도한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준거집단〉이라는 기능 주의적 개념을 이 상황에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Coser, Rosenberg, 1966, 제 3 장 참조)에서 음유시인(트루바두르)의 시가는 보다 높은 계층에 통합 되고 그와 동등해지려는 집단적 소망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것은 요벤에 게 합당한 지위를 부여해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상충과의 통합을 허구를 통해 묘사한다. 쾰러는 철저한 분석을 통해서 베르나르 드 방타두르의 노래에서는 기표와 기의간의 자의적인 결합이 사라지고 음운론적 계열이 의미론 적으로, 또 이데올로기적으로도 동기화되어 있음을 입증한다. 음운론적 요소들이 동기화되어 있다는 사실은 쾰러가 기술한 의사소통상황에서 특수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그 기능이란 요벤에게도, 상충귀족에게 도 익숙한 특정한 문화적 고정형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음유 시인의 서정시에 의해 창조된 새로운 관습(소쉬르)이 성립한다. 그것은 특정한 음운과 음운결합이 의미론적 이데올로기적 의미의 담지자로 된다는 관습이다. 덱스트사회학적 견지에서 볼 때 그러한 분석(여기서 이 분석을 세밀히 서술하지 못함은 유감이다)이 지니는 중요성은 대단히 크다고 하겠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허구 덱스트가 수용을 통해서야 비로소 하나의 의미구조에 편입되고 구체화될 수 있는 물질인 상칭이 아니라, 모든
충위에서 〈 동기화되어 있는 기호 〉 로서 그 생산울 조종하는 것은 사회 적 이데올로기적 관심이라는 점(이 경우 요벤을 〈 준거집단 〉 의 범주에 포함 시킨 것)을 이 분석은 밝혀준다. 2. 여기서는 대부분의 변증법적 분석 들과는 달리 언어학적, 기호학적으로 정의될 수 있는 텍스트 충위에서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다(쾰러는 동위체현상의 개념을 사용한다). (3) 텍스트의 이중적 성 격 사회적 제모순과 난제들을 언어의 충위에서 기술하는 일은 텍스트 사회 학의 주요 관심 사다. 그러 나 이 는 이 미 아도르노가 50~60 년대 에 고찰한 바 있는 것이다. 그는 마세리보다 훨씬 이전에 허구 텍스트들이 동질적 세계가 아니라, 사회적 갈등과 이행을 표현하는 언어적 대립이 나 타협의 구조라는 점을 지적했던 것이다. 자체내 모순적이고 다의적 인 이 텍스트들은 어떤 완결된 세계관도 지니지 않는다. 이둘은 세계 관이 자신에게 강제로 덮씌워져 있는 경우에조차 세계관에서 벗어나 있다. 아도르노가 찾아내려 하는 문학덱스트의 사회적, 역사적 의미는 단 번에 정의될 수 있는 개념체계 속에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특정한 시 대의 이데올로기(내지 이데올로기들)과의 대결로부터 산출된 언어적 문 체적 특수성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하나의 텍스트내에서는 둘 또는 그 이상의 결합불가능한 이데올로기들(바호천의 표현에 의하면 세계관들)이 충돌할 수 있는데, 그런 경우 충돌하는 이데올로기들은 언어적 문체적 적대관계에 놓여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렇다면 생산적인 덱스트요소들울 이데올로기적 요소로부터 분별 해내고 이를 통해서 시나 소설, 드라마의 전리내용을 해명하는 것이 이데올로기비판의 과제 가운데 하나라 하겠다. 사회전체가, 그리고 그 속에 살고 있는 개개인이 여러 모순으로 분열되어 있는 마당에 문학 작품이 疑古典主義的 의미에서 일관성 있고 조화로운 것이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는 도대체 무엇인가? 아도르노가 헤겔주의자인 루카치와 골드만에게 던졌던 이 물음은 (Goldmann, Adorno, 1973 참조) 그의 『서정 시와 사회에 대한 강연』에서 다시 상론되고 있다. 그러므로 서정시를 사회적으로 해석한다는 생각은 다른 예술작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작품이나 작가의 이른바 입장이나 그들의 사회적 이해관계를 직 집적으로 겨냥해서는 안된다. 해명되어야 할 것은 오히려 그 자체 모순에 찬 통일로서의 사회전체가 예술작품 속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현상하는가, 그리 하여 예술작품이 어디에서 사회에 순응하고 어디에서 그것을 넘어서는가 하 는 문제다 (Adorno, 1958, S.7 6 ).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갈등이 작품 자체내에서 언어적 충위로 분출 하는 지점에서 이데올로기비판은 시작되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진 리내용을 찾아나서는 도정에서 어떤 언어형식은 옹호하고 다른 편은 반대함으로써, 또한 특정 언표와 술화형식들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부각시킴으로써 수행된다. 게오르게의 경우 〈이데올로기와 사회적 내 용〉 사이에 큰 톰이 벌어져 있다는 아도르노의 서술은 고도로 양식화 된 ( ,A dorno, Note n ·· …. N, S.4 9 ) 지 배 이 데 올로기 와, 말라르메 에 게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는 순수한 언어, 죽 〈상업에 훼손된 언어와 거리를 유지〉 (No t en …… I, S.~01) 한다는 점에서 유별나 보이는 언어 사 이의 괴리현상을 두고 한 말이다. 모든 비체계적 술화를 비합리적이라고 비난하는 많은 비평가들의 생각처럼 게오르게와 말라르메에 대해 내세운 아도르노의 데제가 주관적이라는 견해는 그리 자명한 것은 못된다. 이는 H. 프리드리히 역시 말라르메에 대한 주석에서 그의 시가 교환가치의 매개에 대한 반란으로 읽혀진다고 말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 19 세기 이래 문학은 한편으론 상업화된 독자층에 저항하고, 다른 한편으론 과학에 의해 세계비밀이 폭로되어가는 데 반대해 왔던바, 말라르메는
이러한 과정을 계속 추진시칸다 〉 (Fr i edr i ch, 1970, S.1 1 3). 비판적 문학은 이데올로기를 넘어선다. 아도르노의 다음과 같은 서 술은 그가 마세리와 알뒤세의 이데올로기비판적 단초를 예견하였음을 보여준다. 〈 그러나 예술작품의 위대성은 오직 이데올로기가 숨기는 것 울 말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Adorno, 1958, S.7 ~ ). 예술작품의 이중적 성 격은(그것은 사회적 사실인 동시에 다의적 기표로 합성된 자율적 형성뭉이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해명된다. 즉 예술작품은 사회적인 제구조와 모순 에서 유래하지만 사회적인 것, 이데올로기적인 것 속에서 소전되어버 리지는 않는 것이다 . 예술작품은, 그것을 생산한 이데올로기에게나 후 에 수용하는 이데올로기에게나 다루기 힘든 촌재로 나타난다. 그러나 어떤 예술작품도 〈 이데올로기 속에 함몰될〉 위험으로부터 안전하지는 못하다. 그래서 아도르노는 『미학이론』에서 다음과 같이 회의적으로 말한다. 〈과거의 좋은 것들은 점점 줄어든다.〉 그러므로 〈예술의 이중적 성 격〉에 관한 그의 데제는 사회적 사실/ 자율성과 같은 대립에만 관련지울 수는 없다• 이 테제는 모든 문학작 품의 이데올로기적 양가성도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사회적인 모순과 단절이 텍스트에 의해 언어적인 것으로 가공되는 과정에서 생 겨난다. 이러한 텍스트 가공의 과정에 대한 서술은 한편으로 덱스트구 조 자체를(이 장에서처럼) 이념소들의 공동작용으로 인식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사회구조(이데올로기)를 언어학적(기호학적)으로 서술할 수 있 울 경우에 비로소 가능해진다. 즉 사회자체를 텍스트연관으로, 죽 사회 언어학적 상황으로 사고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는 여기서 언급된 여러 이론들이 (텍스트사회학으로서) 다루지 않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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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덱스트로서의 사회 1. 사회언어학적 상황 : 두 개의 모델 이제까지 허구 텍스트들을 사회적 맥락에서 설명하는 데에는 두 가 지 가능성이 있었다. 첫번째 가능성을 실현시킨 것은, 텍스트의 外示義 的 , 기 록적 기 능만을 다루는 〈내 용분석 conte n t analys i s / sogi olo g ie du con- t enus 〉이다. 두번째 가능성은 구조적 상동성의 형태를 가정하는 것이다 . 이는 특히 루시앙 골드만의 〈발생론적 구조주의〉와 게오르그 루카치의 몇몇 연구(이를테면 그의 노벨레 형식에 대한 연구)에서 채택되었다. 허구 적 구조가 사회구조(사회적 상황 그 자체 혹은 집단의식)와 〈相同的 homo- lo g)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되는 것은 대개 매우 총괄적인 역사 기술이 거나 아니면 집단에게 〈귀속된 의식〉(〈가능한 의식〉, 골드만)에 대한 고 찰이다. 그래서 예를 들어 골드만에 따르면, 법복귀족의 집단의식이 장 세니즘적 세계관에서(〈가능한 의식〉의 최대한으로서) 가장 적합한 표현을 얻었으며, 라신의 연극은 이러한 장세니즘이 중용에서 극단적인 것(비 국적인 것)으로, 다시 이것이 호전적인 장세니즘으로 急轉해 가는 과정 을 가공한 것이라고 한다 (Goldmann, 1959, 1973 참조). 이제 덱스트사회학은 다음과 같이 묻는다. 사회어 Soz i ole kt로서의, 죽
술화 구조의 앙상블로서의 장세니즘(뒤를 참조할 것)이 어떻게 해서 라 신의 드라마 글쓰기방식 속에 수용되어 들어오는가? 골드만의 경우 에는 이 물음은 필연적으로 해명되지 않은 채 남게 된다. 왜냐하면 〈발생론적 구조주의〉는 장세니즘도 라신의 드라마도 언어 현상으로 생각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라신이 『페드라』를 〈급전과 승인 을 지닌 비극〉으로 형상화함으로써 교회와 국가에 의해 시작된 장세 니즘의 탄압에 〈반응〉할 때, 작가는 무의식적으로 장세니즘적 의식의 발전을 드라마 사건 속에 이입시키게 된다는 것이 골드만의 가정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 중요한 것은 신학과 드라마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성 이지 이들간의 서술가능한 기능적 상호관계가 아니다. 이러한 유사성 을 기능적 상동성으로 파악하고 라신 연극의 의미작용구조를 장세니 즘적 의식에 대한 함수로 정의하자는 제안은 그것이 아무리 그럴싸해 보인다 하더라도 거의 사변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개인 적인, 집단적인 의식을 기술하는 일은 텍스트 요소에 연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를 덱스트로서, 또한 사회적 관심을 언어적 표현으로서 기술할 수 있게 될 때에야 바로소 텍스트와 콘텍스트간의 틈을 메울 수 있울 것이다. 이와 같은 텍스트사회학의 계획에 대해 중대한 의의를 갖는 것은 과거에 완성되었던 두 개의 모델이다. 첫번째 모델은 무카로프스 키의 논문 「시적 언어의 사회학에 대한 고찰 Poznamsk y k socio lo g ii ba sn i ckeho 」 (solvo a slovesnost I , 1935) 에서 명확한 윤곽울 얻었다 . 두번째 '모델은 20 년대에 레닌그라드의 바흐친 그룹의 멤버들이 구상한 것으로 우리의 논의의 중심을 차지하는 모델은 이것이다. 무카로프스키가 자신의 논문에서 탐구하는 문제는 사회적 구조와 허구적 구조 사이의 상호작용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그리고 사회적 문제를 어떻게 언어적 문제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기호 론적 사실로서의 예술작품」(〈미학의 章〉)이라는 논문에서 구체화될 수 있는 기표단위로 간주되던 〈물적 상칭〉이 이 논문에서는 철저히 사회
적인 구조로 이해되고 있다는 사실을 주의 깊은 독자라면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형식주의자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무카로프스키 역시 우선 글쓰기방식, 즉 덱스트의 방법의 문제를 다룬다. 그러나 그는 이 것이 사회적으로 매개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언어 자체가 사 회문화적 구조이기 때문이다. 모든 단어의 의미, 일반적으로 말해 어떤 언어의 모든 구성요소는 그 언어 의 의미론적 구조의 총체 속에 확고히 뿌리박고 있으며 이러한 총체내에서의 위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 또 이 구조는 다시 현실, 죽 특수한 가치체계와 특정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사회집단이 자신들의 발전의 한 시점에서 현실에 대한 입장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후자, 죽 이 특수한 가치체계를 통해서다. 따라서 시적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모든 것이 필연적으로 언어에 매개되어 있다고 주장한다면, 동시에 시적 작품은 언어라는 매개심급을 통해 사회와 국도로 밀접하게 얽혀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Muka f ovsk y, 1941, Bd. I, S.2 4 0). 여기에서 문학텍스트가 오직 언어학적 구조를 거쳐서만 사회역사적 발전과 연결될 수 있다는 형식주의의 사상이 개진되고 있다. 그러나 무카로프스키는 형식주의자들과는 달리 사회발전이 〈문학의 전화〉와 개별작품들 속에 내재하는 것이라는 점, 그리하여 이를 단순히 의적인 작용이나 〈영향〉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는 접을 인식하고 있다(티냐노 프만 해도 여전히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Ty nj a n ov, in : Str ied te r , Hrsg. , 1969 참조). 무카로프스키가 자신의 에세이에서 상세히 논한 바에 의하면, 얀 네루다의 글쓰기방식은 그 자체 하나의 〈사회적 사실〉이므로 이질적인 것의(정치적, 문화적, 종교적 요인의) 영향에 환원시켜 버릴 수 없다는 것 이다. 프라하 언어학파의 〈신형식주의〉는 〈문학의적 힘의 작용〉을 그 저 〈의부로부터의 작용〉으로 볼 뿐, 〈생동하는 토양, 문학적 사실에 최초로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매체〉로 파악하지는 못한다 (Konrad, in :
Gunte r , Hrsg. , 1976) 고 쿠르트 콘라트는 주장하고 있지만 이러한 비난이 무카로프스키에게는 해당되지 않음을 여기서 알 수 있다. 그러나 변증법적 관점에서 볼 때 사회와 〈사회적 텍스트〉에 대한 무카로프스키의 견해는 사회적 갈등을 고려치 않고 이것이 사회언어 학적 발전의 추동력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역사적이고 정적이다. 무카로프스키는 마르크스주의적 사회학과 〈비판이론〉과는 달리 사회를 뒤르켐적 의미에서 동질적인 집단으로 간주하려 드는 까 닭에 네루다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그 기초에 설정한 대립들도 특수한 집단의 관심에 연결시키지 못하고 만다. 그가 내세우는 근거는 계급대립이 1 차대전 이후에는 그 폭발력을 상실해 버렸다는 것이다. 그가 V.N. 볼로시노프의 논문 (Kons t rukc ij a vy skazan ij a” 와 Slovo i jeg o soc ial naja fu nkc ij a )에 공감하면서도 이 러시아 이념가의 마르크 스주의적 갈등모델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러한 그의 상황평가에 ―적어도 부분적으로는_기인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무카로프스키는 〈민중적〉 언어란 더 이상 지방주민의 언어가 아니라 이미 19 세기 전반기에 특히 도시(프라하)에서 혁신된 언어를 말한다고 주장한다. J.네루다는 그의 산문에서 도시적 대중적 약호의 언어적 특 성을 가공한다는 점에서 지방언어의 약호와도, K. I. 에르벤의 정선된 문 체와도 뚜렷한 대조를 보인다고 한다• 네루다의 작품에 대한 무카로프 스키의 고찰은 민족적인 콘텍스트 전체 속에서 이루어지고 그 속에서 독일적/체코적이라는 대립도 일익을 담당하고 있기는 하지만, 언어적 제구조가 역사과정에서 특정한 집단의 관심을 구성하는 방식이라든가 이렇게 구성된 집단의 관심이 네루다의 작품(이를테면 Malostr a nske po- vidk y 같은 작품)에 미천 영향이나 그 작품 속에 수용된 양상 등은 불 명료한 채 남아 있다. 바로 이러한 문제를 천착했던 이들이 바흐찬과 그의 동료인 메드베
데프, 볼로시노프였다. 이들의 연구는 텍스트사회학의 관점에서 볼 때 획기적인 것으로서 이 연구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다음 두 가지 사상은 앞으로도 더욱 전개되어 나갈 것이다. 1. 언어체계는 소쉬 르가 말하는 것처럼 가치중립적이고 정적인 총체적 구조가 아니라 대 립적 관심을 언어적인 표현 속에 머금고 있는 역사적이고 동적인 단 위라고 이해해야 한다 . 2. 문학작품은 이와 같은 언어적 표현에 반응하 는 것이므로 특정한 의사소통의 맥락내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 작품은 과거와 현재의(문학적 비문학적) 언어표현들에 반응하기 때문에(독백적 구조가 아닌) 대화적 구조를 지닌다. 바흐친 / 볼로시노프가 소쉬르의 共時的 언어학에 가한 역사적 비판의 근저에는 언어기호들이 이데올로기적이라는 생각, 언어가 이데올로기 적으로 매개되기 때문에 의관상 정적으로 보이는 언어체계에 발전이 일어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마르크스주의와 언어철학』의 불어판 역자인 마리나 야구엘로는 이러한 생각을 다음과 같이 간결하 게 요약하고 있다. 〈 모든 기호는 이데올로기적이다. 이데올로기는 사회 구조를 반영한다. 따라서 이데올로기상의 어떤 변동도 언어체계(랑그) 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Ya gu ello, in : Bakth i n e , 1977, S.1 3 ). 그와 같은 고찰방식에 의하면 소쉬르의 랑그/파롤의 이분법도, 개인 적인 것과 집단적인 것(개인의 심리와 〈 집단관심 habit ud e collect ive > ) 간의 분리도 의심쩍어전다. 이는 한편으로는 주체의 언어사용이 집단적 관 심이나 이데올로기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주체의 언어사용은 타인의 언어표현들(관심)과 대화적 관계를 맺음으 로써 언어체계에 영향을 주고 그것에 사회역사적 변동을 초래한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 소쉬르에 대한 찬반논쟁. 사회언어학에 대하여 』 라는 저서에서의 L.J . 칼베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대체로 타당한 것이다. 〈그(볼로시노프)는 소쉬르의 랑그/파롤의 이분법에 반대하면서 ‘파롤의 언어학을 구상해야 할 필연성’을 제기한다.〉 (Calve t, 1975, S.94) 언어를 이데올로기적으로 동기화된 여러 언어표현들(파롤들)간의 부단
한 대화로 파악하고 나면, 문학작품이 언어세계의 대화적 구조를 가공 한다는 점도 명백해전다. 또 이 경우에 덱스트와 메타덱스트, 서술되는 술화와 서술하는 술화간의 상호작용이 중심문제로 떠오른다. 게리 사 울 모르손은 『메 타의 이 단자.Jl (Morson, 1978, 5.4 0 7~427 참조) 에 서 메 타어 가 바흐친의 경우에 이데올로기비판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한다. 또한 이로써 언어란 독백적이고 가치중립적인 체계 라는 전통적(언어학적) 해석이 의문시되기에 이르렀다는 그의 지적은 올바른 것이다. I. R. 티튜닉 역시 바흐천 / 불로시노프의 『마르크스주의 와 언어철학』의 영역판 후기에서 이와 동일한 노선에 서서 〈서술하는 콘텍 스트와 서 술되 는 콘텍 스트 rep or tin g and repo r te d conte x ts 사이 의 상 호작용〉 (T it un i k, in : Volosin o v, 1973, S.195) 을 통해 텍스트를 대화적(술화 다중적) 배합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바흐친 스스로도 메타어의 기능과 그것의 전통적 언어학에 대한 관 계에 대해 다음과 감이 서술한다. 〈다른 한편 대화적 관계는 언어 문 체와 사회적 방언들 사이에서도 성립할 수 있다. 양자가 의미의 저장 소로, 정확히 말해 언어-세계관으로 파악되는 한에서, 죽 언어학적 고 찰방식의 한계 저편에서 파악되는 한에서 말이다.〉 (Bach ti n, 1969, S.105) 허구 덱스트가 사회언어학적 상황 속에 묻혀 있는 것이라는 정의는 이런 맥락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질 것이다. 죽 허구텍스트란 각각 하나의 세계관, 죽 하나의 가치체계를 표현하는 다양한 집단언어(사회 어 socio l ecte s , 그레마스)를 가공한 덱스트라고 본다는 말이다. 텍스트는 더 이상 골드만의 경우에서처럼 하나의 〈세계관 v i s i on du monde 〉에 의 해 그 동질성이 유지되는 單一石柱식 건조물이 아니라 집단간의 대결 양상이 언어의 형태를 취하는, 갈등과 모순에 찬 사회언어학적 상황에 대한 응답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바흐친이 허구적 구성물의 다성적이고 모순적인 성격을 강조한 반면 메드베데프는 『문예학에서의 형식적 방법들』아란 저서에서 작품의 유 기적 통일성에 집착함으로써 〈발생론적 구조주의〉에 접근하게 된다.
문학과 장르를 사회언어학적 콘텍스트내에서 서술해야 할 경우에는 그도 바흐친의 견해에 동의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 작품의 주제는 특 정한 사회역사적 행위인 발화 전체의 주제다. 따라서 주제를 발화 전 체의 상황과 분리시킨다는 것은 주제로부터 언어학적 요소들을 사상 해 버 릴 수 없는 것 과 꼭 마찬가지 로 불가능한 일 이 다 . 〉 (Medvedev, 1976, s.1 1 2)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는 예술작품이 완결된 전체라고 말함으 로써 자신이 내세운 정리들 중 많은 부분이 의고전주의적 미학에서 따온 것이라는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표현수단, 죽 ‘처리방식'은 자 립성을 지닌 어떤 예술 의적인 가치단위도 표현하지 않는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예술작품을 자체완결적인 것으로 구성한다.〉(앞의 책, S.59) 이러한 견해는 전위예술의 실제(와 그 이론)에 모순될 뿐만 아니라 비 판적 텍스트, 즉 〈다성적〉 소설이란 〈열린 대화〉를 실현하는 폐쇄시킬 수 없는 구성물이라는 바흐친의 생각에도 어긋나는 것이다(B ach ti n, 19 71 참조) . 문학작품(예술작품)이 자기자신의 콘덱스트를 창조해내고, 작품의 모 든 구성요소는 이 콘텍스트에 매개되어 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죽 고립적인 단위로(순전히 기록적, 주제적, 실재적인 요인으로) 이해될 수 없 다는 메드베데프의 주장은 물론 옳다. 〈문학이론가와 문학사가의 중심 적인 과제는 그것(소설)울 전체로서 분석하는 것이지 그 속에 내포되어 있는 개개 이념소들을 소설 속에서 이들이 행사하고 있는 예술적 기 능이란 측면과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다.〉 (Medvedev, 1976, S.2 9 ) 이 인용 문을 통해 메드베데프의 〈이차적 반영〉이라는 관념의 의미가 명백해 진다. 허구에 의해 가공된 언표들은 이념소로서도 이미 특정한 방식으 로 현실을 재현하고는 있다. 그러나 이 언표들은, 특별히 문학적인 기 능을 수행 하게 되는 순간(허구텍스트의 술화가 되는 순간) 현실을 2 차적 으로 재현하게 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언어학적으로 매개된 이러한 재현에서는 가공하는 덱스트의 공시의적 처리방식에 의해 언 표들의 본래 의미가 변화되고 이로써 언어기호의 다의성이 심화된
다는 것이다. 아도르노 역시 『미학이론』에서 이와 비슷한 말을 한다. 〈예술에 있어서는 아무리 승화가 잘 이루어진 경우라 해도 이 세계에 서 유래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또한 변화되지 않은 채 그대로 있는 것도 없다.〉 바흐친, 볼로시노프, 메드베데프의 시도에는 공통된 하나의 문제가 있다. 그것은 곧 언표 (slovo, utt er ence, enonce) 라는 문제다. 무카로프스 키와는 달리 이들 러시아의 저자들은 사회의 계급적 성격을 인식하였 고 이룰 사회언어학적 갈등모델을 통해 고찰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 도 덱스트국콘텍스트 연관에 대한 물음에 만족스러운 해답을 제공하지 는 못했다. 왜냐하면 〈언어적 상황〉이니 〈언표〉니 하는 개념들을 좀더 정밀하게 기술하고 허구적 글쓰기방식 속에서 비허구적 텍스트가 수 행하는 기능을 설명할 수 있게 해줄 술화의 기호학을 그들은 알지 못 했기 때문이다. 언표란 무엇인가? 〈이념소〉(메드베데프)는 언어의 충 위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 이것이 문제인 것이다. 2. 사회어와 술화들 사회언어학적 상황에 대한 서술을 전부한 것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이를 어휘단위의 서술에 국한시키지 말아야 한다. 여기 언급된 두 개의 모델(바흐친과 무카로프스키)에 근거해서 보더라도 어휘단위를 넘어서지 못하는 V. 스칼리치카의 경우와 같은 사회언어학적 고찰방식은 덱스트 사회학의 목적에는 전혀 불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왕〉, 〈부유한〉, 〈왕국〉, 〈내각〉, 〈체포하다〉 등등의 〈어휘단위들〉이 전적으로 특정한 사회역사적인 지시체들을 가리키고 있다는 스칼리치카의 말이 툴린 것은 아니다 (Skal i cka, 1974, S.86 참조). 하지만 이러한 확언은 결코 경험 주의의 둘을 넘어서지 못한다. 덱스트사회학자가 이러한 틀로부터, 허
구덱스트를 기록물로 간주하여 특정 사회언어학적 상황에 연관시키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 경우 텍스트의 이데 울로기적 위치가나 거기서 표현된 이데올로기적 제모순들은 드러나지 않은 채 남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어휘적 단위로 간주되는 언어기호는 의사소통 맥락에, 즉 사회언어학적 상황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 변증법이 말하는 의미에서 추상적인 상태에 머무르고 말기 때문이 다. 〈모든 단어들은-메드베데프는 이렇게 쓴다-의사소통에 참여 하고 있기에, 그 언어의 단어라는 속성을 잃지 않고서는 의사소통맥락 에서 분리되어 나올 수 없다〉 (Medvedev, 1976, S.122). 어휘론적 방법의 한계에 대해서는 일찍이 G. 마토레와 A .J.그레마스도 간파한 바 있으며 D. 맹게노 역시 『술화분석의 제방법에 대한 입문』이 라는 저서에서 그 약점을 지적하고 있다 (Ma i ng ueneau , 1976, S.122). 1952 년에 출간된 마토레의 저서 『루이 필립 치하의 어휘와 사회』는 언어의 어휘상의 변천(신조어, 의례어, 기술, 상업의 어휘)을 근본적으로 탐구한 것이긴 하지만 이를 7 월 왕정하의 사회언어학적 상황에 대한 서술로 볼 수는 없겠다. 그 책은, 예컨대 블룸필드의 구상하에 번스타인, 라 보프 같은 사회언어학자들이 적용시켰던 전통적 언어학의 단위를 넘 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토레는 사회적 관심을 조성해내는 문장초 월적 단위, 즉 사회어와 술화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에 주의를 돌린 그레마스는 〈구조 의미론〉의 구상에 몰두하면서 어휘론적(어휘場 이론의) 방법과 아주 결별해버린다. 그의 술화이론은 문장내적 언어학 의 한계를 뛰어넘을 뿐만 아니라, 술화기호학으로서 바흐천과 볼로시 노프의 언표 개념울 기호학적으로 해석하는 데 이바지한다. 그렇다고 그레마스의 술화기호학이 즉각 변증법적 이론에 통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이론은 무엇보다도 사회어를 정의할 때 기능주의 사회학을 따르고 있는 데다가 이데올로기학의 영역에서 신실증주의적, 몰가치적 입장과 이데올로기 비판적 입장 사이를 동요하고 있기 때문 이다. 『기호학과 사회과학』 (1976) 이란 저서에서 그레마스는 사회어의 개
념을 기능주의적 용어를 빌려 정의하면서, 이를 〈전문어〉, 〈은어〉로 보아 직업적 역할분담과 연관짓는다. 개개인은 〈다양한 기호학적 집단 에 소속되어 자신이 속한 집단에 상응하는 종류와 수의 사회기호학적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을 갖는다 (Gre i mas, 1976, S.5 4 ). 반면 변증법적 텍스트사회학의 관심은 사회어의 개념을 바흐찬, 볼 로시노프, 메드베데프가 말한 의미로 바꿔 해석해서 그들의 이론에서 〈언표〉란 개념이 지니는 位置價를 이 개념에 부여하는 것이다. 그럼으 로써 다음과 감은 새로운 개념이 성립한다. 사회어란 어휘적 층위와 숭 화적 총위(의미론적, 통사론적 층위)에서 구조화되어 어느 정도 유기적인 이데올로기를 표현하는 이념소로서의 구조를 갖추게 되는 언어단위를 말한다. 사회어의 개념은 근대사회의 계급적 성격을 고려하기는 하지 만(봉건사회에 대해서는 선분적 성격을 고려한다) 그렇다고(이를테면 마르가 말하는 의미에서) 계급어 (Gel g ard t, 1976 참조)와 동의어라 할 수는 없다.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이 개념은 그 유관성(프리에토)의 상당부분을 잃 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주의에서 구분하는 두셋의 대계급은 다시 각기 고유의 사회어를 갖는 적대적 집단으로 분열되기 일쑤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를 들면 프랑스 제 3 공화정하에서의 사교적 환담이 라는 사회어는 대부르주아와 귀족의 일부(〈유한계급〉)에 특징적인 반면 에 〈프랑스 행동파 A cti on fr an~ i se 〉의 정치참여적 은어는 급진적 소시 민계층 일부에서 두드러전다(그러니까 소시민층 전체 또는 시민 〈계급〉 전 체에 특징적인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사회어의 개념은 다음과 같은 본질적인 세 요소로 구성된다. 1 . 어휘 목록 2. 약호 3. 각기 사회어의 특수한 실현 (m i se en dis c ours, 그레마스)으 로 간주되는 술화적 제구조. 1 에 대하여 사회어의 어휘목록에는 경험적, 징후적 의미가 부여된다. 죽 어떤 사회어에 대한 경험적 인식은 특정한 〈어휘〉에 의해 성립한 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회어를 여타의 집단어와 구별해주고 그것 이 특정한 기호학적 집단에 소속되어 있을 개연성을 드러내는 것이 곧
이러한 어휘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집단의 구성원들은 지속적으로든 참정적으로든, 서로 부분적(일시적) 보완관계에 있는 둘 또는 그 이상 의 사회어를 사용할 수 있다. J .B. 마르셀레시는 A. 프로스트에 의거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우파성향의 선거구에서는 좌파 후보자도 일반 적으로 우파 후보자에게서 둘을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한다.…… 후보 자는 상이 한 술화를 구사하는 데 능통해 있는 것 이 다.〉(Ma ingueneau, 1976, S.44) 그러나 그와 같은 변칙은 주로 정치적 기회주의에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어의 상대적 안정성을 의심스럽게 만드는 것은 아 니댜 사회어의 상대적 안정성에 특칭적인 현상은 특정 의소들의 회귀 (잉여)다. 우리가 공식적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알아보는 것은 예를 들면 〈제 국주의〉, 〈계급두쟁〉, 〈민주집중제〉, 〈계급적대〉, 〈데카당스〉, 〈인민성〉, 〈문화적 유산〉 등등의 표제어를 통해서다. 이들에 의해서 마르크스 레 닌주의는 다른 마르크스주의 혹은 비마르크스주의적 〈언어〉와 구별되 는 것이다. 많은 점에서 유럽 파시즘 운동의 어휘를 선취했던 〈프랑스 행동파〉의 어휘도 같은 의미에서 특수하고 징후적이다. 죽 〈민족〉, 〈땅〉, 〈피〉, 〈부패〉, 〈퇴폐〉, 〈인종〉 등등의 어휘둘이 그 식별자질이다. 그러나 집단언어에서 어휘적 차원은 가장 표면적인 현상이다. 사회어 의 이데올로기적 〈의도〉를 전달하는 데 본질적인 것은 의미론적, 통사 론적(문장초월적) 구조인 약호와 술화인 것이다. 2 에 대하여 약호의 개념은 에코, 로트만(문화약호로서), 그리고 바르 트와 같은 기호학자들이 온갖 방식으로 정의 한 바 있다 (Eco, 1971 • 1975 참조). 다음에서 중요한 문제는 약호 개념을 유관성, 의미소적 동위체현 상의 개념과의 관련하에서 정의하고 그것이 사회어의 〈술화적 심충구 조의 목록〉으로 파악될 수 있음을 보이는 것뿐이다. 출발점으로서 중요한 것은 언어체계란 음운론적 의미론적 차이들의 체계로서만 기능할 수 있으며, 많은 차이들이 유관성이 있는가 하면 (예컨대 프랑스어에서의 s/z ) 그렇지 않은 차이들도 존재한다는 소쉬르의
생각이다. 구성된 사회어는 2 차언어로서(집단 특유의 언어로서) 자연언어 와 유사하게 새로운 의미론적 대립과 유관성관계들(차이들)을 도입한 다. 많은 기독교적 사회어에는 차안 / 피안, 육체 / 영혼, 시간 / 영원성 등 의 대립쌍이 공통적이다. 반면에 다른 사회어, 이를테면 급진적이고 현 세적인(클레망소, 아자나의) 사회어나 사회주의적 사회어의 경우에는 이 러한 대립들은 유관적이지 못하다. 이들은 변화된 어휘목록을 통해 다 른 대립쌍들로 대체된다(말하자면 내재성 / 초월성, 시민계급 / 노동자계급, 혁 명 / 개량주의 등등). 따라서 사회어의 약호란 새로운 유관성을 기초하는 의미론적 차이와 대립둘의 체계라 할 수 있다(그러나 모든 차이들이 대 립으로 간주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민주주의적 / 사회주의적). 이러한 유관 성을 통해 약호는(그리고 사회어 전체는) 경쟁관계 혹은 적대관계에 있 는 여타의 약호와 구별되는 것이다. 모택동주의자들이 사회주의 / 사회 파시즘이라는 낡은 대립을 다시 도입하면서도 이를 새로운 유관성의 기초로 삼고 그 약호를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혁명적 / 제국주의적, 반동적/전보적과 같은 다론 대립쌍들의 기능을 전환시켰기 때문이다. 죽 〈제국주의〉의 개념은 〈사회파시즘〉의 차원으로 확장되어 소비에트 이데올로기의 〈제국주의〉 개념에 대립하게 된 것이다. 문예학적 약호의 유관성 역시 이데올로기적 동기를 갖는다. 콘스탄 츠 학파가 만들어낸 작가/독자, 생산/수용이란 대립이 초래한 새로운 유관성과 특수한 약호는 특히 마르크스주의적 〈생산마학〉과의 결별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유관성이 프랑스와 이탈리아 기호 학에서는 아직 인정되지 않고 있지만 독일어권에서는_이전의 〈고유 성의 은어〉가 그랬듯이―—많은 문예학자들의 술화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은 팽창해 가는 이 사회어(그것은 포괄적인 신자유주의적 사회어의 구 성요소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가 어떤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추측케 한다. 하나의 약호를 단지 대립자들의 집합으로 간주하는 것은(로트만은 〈문화약호〉를이와같이 정의하는 데 그친다) 불충분초}고 단순한 생각이라
하겠다 (Shukman, 1977, S. 43 ~4 4) . 결정적인 물음은 의미론적 이분법이 하나의 약호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는가 , 죽 약호를 구조화하는 요소로 서의 기능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예컨대 자연 / 문화, 생산 / 수용, 사 회주의 / 자본주의 등등의 개념적 대립이 핵심적안 경우에는, 이러한 상 위개념 각각에 하나의 의미소적 동위체현상(앞을 참조할 것)이 귀속될 수 있다고 가정해 볼 수 있다. 이때 상위개념은 여러 의미소들을 포섭 하는 〈 문맥의소 〉 (seme con t ex t uel= 분류소 classeme) 가 된다. 〈 예컨대 의소 범주의 총목록은-의미소 구성의 규칙, 술화적 동위 체들의 윤곽과 아울러-의미론적 약호를 형성한다 〉 (앞의 책, S . 39) 고 그레마스와 쿠르테는 기호학 사전에서 서술하고 있는데, 이는 타당한 지적이다 . 모든 대립은 특정한 약호내에서 각기 등위체간의 대립을 하 나 씩 기초한다. 그리하여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같은 사회어에서는 〈리 얼리즘 〉 이라는 문맥의소가 다음과 갇은 의미소들을 동반한다. 〈전형 적 〉 , 〈 구체적 〉 , 〈 총체성 〉 , 〈 전망 〉 , 〈 긍정적 주인공〉, 〈 긍정적인〉 등등. 부정적 개념 안 〈 자연주의 〉 에는 〈 우연적〉, 〈 추상적〉, 〈 단편성〉, 〈 전망의 부재 〉, 〈 거부 〉 , 〈 데카당스 〉 등등의 의미소들이 포섭된다. 따라서 약호 란 2 차적 분류법(하위약호)을 제시할 수 있는, 다소간 엄격히 정초된 분류법으로 간주된다( 〈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 마르크스 레닌주의 〉 의 하위약 호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모든 사회집단어와 약호둘이 〈 프랑스 행동파〉나 〈마르크스 레 닌주의 〉 처럼 그렇게 이원론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또 텍스트사회학이 전적으로 그런 것들만 다루려 한다면, 문제를 지나치 게 단순화시키는 셈이 될 것이다. 하여튼 움베르토 에코 같은 기호학 자는 얀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 소설의 토대가 그러한 마니교적(이원론 적 ―一 역주) 틀이라는 점을 밝힌 바 있다. 그의(앞서 이미 언급된) 연구 는 풀레밍의 소설뿐만 아니라 시장을 겨냥한 그밖의 이데올로기적 덱 스트들 역시 서로 첨예하게 대립된 동위체들에 의해 구조화되어 있다 는 가정을 뒷받침해주는 것이다 . 예컨대 가난한/부유한, 향토적/이국적,
약한 / 강한 등등 (Rulo ff -Han y, 1976, S.53 참조). 그렇다떤 무질의 『특성 없 는 인간』이나 〈비판이론〉과 감이 마니교적 약호(그리고 이와 아울러 『구 조의미론』이 보이는 몇몇 편전들)를 교.란시키는 덱스트들은 어떻게 평가 해야 할지의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 좀더 상세히 논의하기로 하자. 3 에 대하여 메드베데프는 『문예학에서의 형식적 방법』에서 〈형식 자체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에 대해 말한다. 그는 훨씬 뒤에 그레마스 가 『의미론』 (1970) 에서 정식화한 다음의 명제를 이미 선취한 셈이다. 〈의미란 의미부여의 형식이기에 의미를 변형시킬 가능성으로 정의할 수 있다〉 (Gre i mas, 1970, S.15). 의미 변형의 가능성은 하나의 약호를 술 화상에 〈실현〉시킬 때 (m i se en dis c ours, 그레마스) 생겨난다. 이룰 동해 서 약호를 내포하는 특정한 의미론적 대립이 〈실현〉되어 전면에 나서 는 한편, 그밖의 것들은 잠재적인 상태로 남아 있게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마르크스 레닌주의〉라는 사회어 내부에서 하나의 술화가 〈사 회주의 리얼리즘〉의 하위약호에 속하는 자연주의/리얼리즘이라는 대 립을 실현한다고 하자. 이 경우 그밖의 유관적인 대립들, 즉 사회주의 /자본주의, 민주집중제/사이비 민주주의 등등의 대립둘은 함축적이고 共示義化된 대립으로서 背面에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술화는 여러 측면 에서 작가의 개인어 ld i olek 표나 1 작가 자신의 개인적 문화적 심리적 체 험의 자취를 지닌다. 그러나 《프라우다》, 《이즈베스치아》, 《신독일》 같 은 신문들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의미론적, 어휘적 동질성으로 미루 어본다면 정확히 약호화된 공통적인 사회어의 존재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다원주의적 상황이라는 데 차이가 있긴 하지만 FA.Z ., 《르 몽드》, EI Pais 등의 신문들의 이 데 올로기 적 응집 성을 유지 해 주는 것도 결국은 이러한 공통된 사회어인 것이다(《르 몽드》의 좌파자유주의적 틀을 종종 깨뜨려 버리는 〈견해 i dees 〉란을 도의시한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술화란 무엇인가?-술화는 어떻게 발생하는가? 어떻 게 술화를 약호와, 그리고 사회어와 연관지어 정의할 수 있겠는가? ―술화란 의소들(분류소들, 따라서 동위체 전체)간의 대립에 의해 형
성되 는 의미 론 적 심 층구조 와, 행익자 모델 을 통해 기 술될 수 있는 통 사 론적 진행을 갖는 문 장 초월 적이며 통사론적인 단위 를 말한다. 택 스 트 사회학의 틀 내에서는 그레마 스 의 술화이론의 수많은 측면에 대해 일 일이 상론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물며 Z 해리스, Ch . 모리스(그 의 술화 유 형 론에 대한 바 판 은 마지막장에 제시될 것이다), o . 뒤크. . £ 등·의 술 화기호학은 두말할 것도 없다 . 현재의 맥락에서는 의미론적 심층구조 와 행역자적 표충구 조 사이의 관계에 대해 서술하는 것만으로도 충분 하다(J . Cour t es, 앞 의 책 , S.62 참조) . 술 화의 주체는 쓰 거나 말하는 개인이 아니라 〈술화화 〉 (d i sours i v i sa tion , 그레마 스 )의 전전과 동시에 구성되는 술화의 심급이다. 주어전 약 호의 틀내에서 주체는 ( 〈 자연주의 〉 와 〈 리얼리즘〉과 같은 의소들간의) 특정 한 의미론적 대립과 차이돌을 선택하고, 사회어의 어휘목록을 통해 특 정한 의미소들을 이에 부속시키며, 술화의 심층구조를 형성하는 의미 론적 대립의 기초 위에 행역자 모델을 수립하는 것이다. 이런 행역자 모델은 심층구조를 의인화하고 극화시켜 표현한 것으로서, 술화의 통 사론적 진행에 대한 토대로 간주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그레마스가 프롭의 서술학*에 근거해서 허구뿐 만 아니라 비허구적 술화도 설명해 줄 수 있는 행역자 모델을 구상한 다는 사실은 기억해 둘 만한 중요성을 갖는다. 그레마스에 따르면 개 념적이고 이론적인 담화 역시 저승격 성격을 지닌다고 한다 . 이 가정을 근거 로 해 서 使役者 destin a te u r, 주체, 반주체 , 대 상, 担役者, 助役者와 같은 서술학의 개념들을 허구 덱스트에도, 비허구 텍스트에도 적용할 수 있 게 된다. 〈우리가〉_一그레마스는 『의미론』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__ 〈대립을 의인화해서 표현할 때 논쟁적 특성이 나타난다는 것을 인정 한다면, 이 경우 통합체상의 순서는 …… 의미론적 제한 res tri c ti ons se
* 원명 Narra tivik(獨) , Narra t olo gy(英)의 역어로서 일명 敍 事 學 또는 敍事論으로도 불리는 일반문예학의 한 새로운 하위영역이다.
man tiq ues 에 의해 대결 a ff ron t emen t과 두쟁 lu tt e 의 양상을 나타내는 서술 적 진술 enonces 의 순서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 (Gre i mas , 1970, S.I 7 2). 행역자 개념( 〈 ……이때 현실화과정인 행위는 기능 F 로 명명하고 이 과정에 내재하는 가능성인 행위의 주체는 행역자 A 로 명명한다 〉 )(앞의 책, S . 168) 은· 가치의 제약울 받는 분류법인 심층구조를 〈 서술적 통사론 〉 의 충위에 投射할 수 있게 해준다. 근본대립들의 계열체적 배치 상태 속에는 이미 행역자들간의 갈등이 계획되어 있는 것이다. 각각의 행역자들은 가치 판단하면서 사회적 가치를 놓고 투쟁하는 심급이기 때문이다(그레마스 는 〈계열체의 두사는 통합체의 전개를 내포한다 〉 고 말한다 )(Gre i mas, in : Cou- rtes , 1976, s.s) . 술화통사론은 여기서 행역자들간의 대결로 나타난다. 그리하여 사역 자(예컨대 동화에서의 왕)가 주체에게 사명을 주어 보내면 , 주체는 조역 자의 도움으로 반주체를 눌러 이기고 원하는 대상(공주든 진리든)을 얻 어내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실현되는 〈서술 프로그램 〉 이 〈사역자〉와 주인공(주체)의 것이지 〈反使役者〉 (Gre i mas, in : Maup as sant, 1976, S . 109) 와 그의 명을 받은 자, 죽 반주인공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술화의 심급으로서의 사역자에 대하여 그레마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역자(주인공에게 어떤 성스런 사명을 부여하는 사회적 권위)는· 주인공을 受任者의 역할로 옮겨놓는다〉 (Gre i mas, 1970, S.234). 이러한 정의로부터 명백해지는 사실은, 이론적 술화에서나 허구적 술화에서나 사역자는 이데올로기적 심급이라는 점, 그리하여 사역자는 〈반사역자〉에 대한 긍정적인 대립자로서 심층구조(약호)의 의미론적 이데올로기적 대립에 소급될 수 있다는 점이다. 『구조의미론』 (Braunschwe ig, 1971) 에서 그레마스는 최초로 행역자 모 델을 이용해서 〈고전 철학〉의 술화구조(I)와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 기〉의 술화구조 (II) 를 구별해 보려고 시도한다.
I II 주체… ... 철학자 주체… ..• 인간 대상 ...... 세계 대상 .... . . 무 계급사회 使役者·… •• 신 使役者……역사 受役 者……인류 受役者……인류 担役者……물질 担役者……부르주아 계급 助役者 ……정신 助役者……노동자 계급 이처럼 단순한 도식은 그레마스도 이젠 더 이상 사용하지 않을 것 이다. 더욱이 그는 『모파상』 (1976) 에서 〈반사역자〉란 개념을 도입하였 던 것이다. 이 도식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은 다만 이론적 술화의 서술 동학을 행역자 모델로 파악하는 방법뿐이다. 텍스트사회학은 그레마스같이 기능주의적 정리와 공리들을 근거로 하기보다는 바흐천, 볼로시노프의 전통에서 사회적 갈등을 사회어의 충위에서 파악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회어나 약호들간의 대결을 술화 구조 속에서까지 추적한다. 텍스트사회학이 시도하는 바는 다양한 술 화의 행역자들을 약호의 의미론적 근본대립(분류법)에 연결시키고, 어 떻게 하나의 술화 내부에서 사회어들과 그 약호들간의 대결(죽 결국은 동위체들간의 대결)이 일어나는-지 보여주려는 것이다. 동독의 《 통일》지 (제 3 권, 1967) 에 서 뽑은 다음의 인용문은 그 주장하려 는 바가 명백히 드러나 있다. 인간 노동의 인륜적 질을 판단하는 객관적 기준은 사회 바깥에 존재하는 절대적 정신의 원칙이 아니다(『가톨릭적 삶의 사전』, W. 라우흐 대주교 편, J .옴 감수, Freib u rg i. Br. 1952. S.644 ff.와 비교해볼 것. 〈인간은 자기 자신의 철대권으 로 세계를 이용해서는 안된다. 이는 오직 신의 의지에 따라 그 위임하에서만 허 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에 구속되어 있다는 것이 문화의 토대이다〉). 오히려
그것은 바로 사회 속에, 즉 사회적 인건의 방전과 완성에 관련된 생산간계의 객관적 작홍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매우 단순한 위의 예에서 명백히 드러나는 내재성/초월성이라는 이 분법은, 이 술화가 두 개의 사회어로부터(즉 기독교적 사회어와 〈마르크 스주의〉의 사회어로부터) 추출해낸 것으로, 결국은 마르크스주의의(현세 적인) 행역자에 의해 장악된다. 즉 사역자는 더 이상 신이 아니라 역사 (생산관계=내재성)라는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이때 인용을 통해 하나 의 술화가 그 적대자에 의해 가공되며(이는 이론적, 허구적 실천에서 늘상 일어나는 일이다) 그럴 경우에 본래 술화에서는 긍정적 의소(행역자)였 던 것이 부정적인 표지를 달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이 데올로기負荷적인 한 단어를 둘러싼 대결이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닐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구조의미론〉을 통해 얻은 인식을 무질의 『특성 없는 인간』이나 니체의 『도덕의 계보』, 또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단순히 적용하려 든다면, 상무적인 결론밖엔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문학 작품을 가치의 위기와 관련지어 해명한다는 우리의 관심사는 거의 고려되지도 않은 채 남게 될 것이다. 여기서 그레마스의 모델에 대해 서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 모델이(다른 기호학과는 달리) 덱스트사회학에 중요한 열쇠개념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기도 하 지만, 또한 그레마스가 의존하고 있는 가정이(그의 이론의 실증주의적 특 질이 여기서 나타난다) 현대 철학과 허구를 통해 근본적으로 의문시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그레마스에게 중요한 것은 의미론적 대립 뿐만 아니라 행역자들간의 직접적인 대립상태다. 그러나 니체, 바흐친, 데리다, 카프카, 프루스트, 조이스, 무질의 경우에는 로트만과 그레마스 가 〈문화약호〉를 구조화하는 요인이라고 말했던 의미론적 이분법이 의심쩍어전다. 그것은 善울 갑작스레 惡으로, 영웅을 배신자로 뒤집어 놓는 양가성, 죽 교환가치에 의한 매개의 희생양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 러힌 양 가성은 시장빕칙 에 서 비 롯한 것 이 므로 니 체 이 후 에야 비 로소 나타났다 고 할 수는 없 겠다. 하지 만 의미 론칙 심층구조( 분류 법) 와 그 로 부터 생성되는 서 술통 합체 를 뒤 혼들 어 놓을 정 도로 양 가 성 이 확 산된 것은 19 세기 후 반기에 이르러서다. 그레마 스 가 제시했던 구조 들 이 과거에 존재했던 이상 적 모델(서 사시, 동화) 아라면 이 책의 주요 데마는 이러한 이상적 모 델 이 근대에 들어서 맞게 된 위기라 하겠다. 가 치 체계의 위기는 의미론적 유관성, 집단언어 와 술 화의 분류법의 위기에 다름아닌 것아다. 어떤 대립도 의심받지 않은 것은 없으며 불신당하고 조 롱당하지 않은 것도 없다. 대립은 특히 광신 적 이데올로그들이 이에 고집 스 레 집착하면 할수록, 더욱 불신당 하게 되는 것이다 . 3. 덱스트상호성 사회를 더 이상 〈 현실 〉 이니 〈 존재〉니 〈사회적 현실 〉 이니 하는 개념 으로 지칭하지 않고 사회어와 승화등의 공동작용으로 해석하고 나면, 허구 텍스트를 問텍스트 In t e rt ex 루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바흐친은 허 구 를 그렇게 파악하려고 시도한 최초의 이론가다. 그러기에 택스트상 호성이란 개념을 제안한 크리스테바가 바흐친의 고찰방식에 대해 다 음과 같이 서술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바흐찬은 텍스트를 역사, 사 회와 연관지울 경우에, 역사 사회 그 자체가 이미 덱스트라고 생각한 다. 그리하여 작가는 그 덱스트들을 읽고서 다시 씀으로써 그 속에 얽 혀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Kr i s t eva, 1969, S.144) 크리스데바가 주체의 개념을 이데올로기적이라는 이유로 비판하는 것과는 달리, 나는 한 사 회의 덱스트구조들(사회어와 술화들)이 집단적 주체(사회기호학적 집단) 의 관심을 표현하고 있다고 가정한다. 주체 개념이 이데올로기적 요소
를 지니고 있음은 물론이다. 알튀세 역시 지배이데올로기가 어떻게 개 인들을 주체로 형성해내는가를 보임으로써 이러한 사실을 밝히고 있 다. 〈이데올로기는 개인들을 주체라고 불러준다.〉 아도르노도 비슷한 생각에서, 『미니마 모랄리아 M i n i ma Mora li a 』란 저서에서 〈개성이란 생 의 가식〉이라고 비판한 바 있으며 『계몽의 변증법』에서는 호르크하이 머와 함께 주관성과 지배 사이에 존재하는 연관성을 탐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여러 기호학자들(크리스테바, 그레마스)은 신중한 고려 없이 주체개념을 말소시켜버리는 심각한 오류를 저지른다. 즉 그들은 주체들에게 금치산선고를 내리는 기술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비변증법 적 태도로 추종하고 있는 셈이다. 사회가 곧 여러 텍스트들의 집합체라는 말은 잘못이다. 오히려 집단 적(주체의) 제관심이 덱스트구조로 표현될 수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허구와 비허구 텍스트들에 의한 사회적 관심의 수용, 가공은 오직 언 어적 기호체계를 통해서만 가능한데, 이 경우 다양한 텍스트상호적 연 관들이 발생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텍스트상호성의 수많은 형태를 분류하는 일이 아니다. 강조해 두어야 할 것은 작가란 본래적인 덱스트들을 개작하는 자라는 점, 그의 작업대상은 허구 덱스트 및 비 허구 덱스트라는 점, 나아가 구어든 문어든간에 모든 말은 문학생산 속으로 유입되어 들어간다는 점일 것이다(한 작품 내부에 나타나는 택스 트상호성-이를테면 횔덜린의 동일한 시에 대한 여러 초고들-은 작가가 자기자신의 독자이자 비평가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며, 읽기 lectu r e 와 쓰기 ecri- tur e 의 상호제약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또 〈수용미학〉이 얼마나 자의적 이고 비변증법적인 방식으로 기호학적 과정을 분리시키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텍스트사회학에서는 의부적 exte r n 텍스트상호성의 개념이 결정적으 로 중요하다. 그 개념은 비허구적 텍스트에 대한 허구 텍스트의 가공을 지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죽 사회적 덱스트, 사회언어학적 상황을 구 성하는 사회어와 술화들에 대한 가공이라는 말이다. 다음 장에서도 보 게 되겠지만, 가공되는 사회어와 술화는 문어적 표현일 수도 있고 구
어적 표현일 수도 있다. 이러한 표현들을 거쳐서 사회구조와 집단의 관심은 허구의 세계 속에 들어서게 된다. 허구는 이들을 긍정적으로 가공하기도 하고(예를 들어 플레밍의 경우), 비판적으로 가공하기도 하는 것이다(희화적 • 반어적으로, 예컨대 무질의 경우). 이러한 맥락에서는, 문학 작품의 요소들이 그것의 사회적 〈등가물〉과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메 드베데프의 주장은 기억해 둘 만한 중요성을 가진다. 죽 사회어(또는 그 술화들 중의 하나)가 허구의 영역 안에 발을 디디는 순간, 그 기능은 이 마 근본적으로 변화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특성 없는 인간』이 희화화 시킨 이데올로기적 술화들은 빈W i en 사회의 기독교, 사회주의, 대부르 주아의 〈언어〉들과는 다른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 어 버 린 시 간을 찾아서 』 에 나오는 〈환담 conversa ti on 〉도 사교적 사회 어 에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의사소통의 매체이자 〈파롤〉이라 할 환 담이 〈글쓰기〉(예술)에 대립되는 순간에 그것은 소설 바깥에서는 존재 하지 않던 부정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공시의를 안게 되는 것이다. 사회 어와 술화는 허구를 구성하는 재료가 된다. 그러나 언어적 구조로서의 사회어는 자기자신과 동등한 상태를 유지하는 반면, 한 작품이 표현한 다고 하는 〈세계관〉이나 〈이데올로기〉를 경험적이고 언어학적인 방법 으로 검증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허구 덱스트가 가공하는 것은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다양한 이데올로기적 언어들이다. 그런 까닭에 허구 텍스트는 코제뤼의 말처 럼 보편적 언어실험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텍스트상호성과 자율성 사 이에는 하나의 연관이 성립한다. 허구는 언어적 덱스트상호적 실험으 로서 자기자신을, 죽 언어를 지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이 자율성 미학을 정당화시켜 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비판의 의미를 지닌다. 덱스트가 언어현상으로서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한다면 그 추구하는 바는 이데올로기와 권력의 저 너머에 존재할 참된 언어일 것이기 때문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이론적 술화나 수사적, 정치적 술화와 마찬가지로
허구 역시 문학적 비문학적 텍스트를 模 作 Pas ti che, 파로디 , 반어적 맥 락을 통해 가공한다. 이에 대한 잘 알려진 예로 꼽을 수 있는 것은 프 루스트의 『모작』으로서 여기서는 발작, 풀로베르, 공쿠르 형제의 작품 이 일부는 파로디적으로 일부는 반어적으로 모방되고 있다. 또한 세르 반테스의 『동키호테』도 예로 들 수 있겠다. 여기서의 파로디는 아마디 스 드 골라와 〈편력기사 〉 문학 전체에 대한 사회비판적 평가를 표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동위체현상 개념을 사용하여 파로디, 트라베스티 (載作), 모작 등을 의미론적 처리방식으로 서술하자는 W. 카러의 제안은 특히 생산적인 것이다. 〈 그렇다면 파로디, 트라베스티, 모작 등은 덱스 트의 여러 동위체 충위들간의 간섭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Ka rrer, 1977, S.1 9 7). 〈문학적 진화〉(티냐노프)의 충위에 놓을 수 있는 〈내 적인 덱스트상호성 〉 에서는 파로디, 트라베스티 , 모작 등이 〈 의적인 텍 스트상호성〉에서보다 훨씬 더 빈번히 나타나는바, 이에도 의적인 텍스 트상호적 과정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의미를 완전히 파악하기 위해선 우선 의적 덱스트상 호성__사회어와 그 술화의 가공_~을 분석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예를 들자면 프루스트의(反생트뵈브에서의) 발작 비판은 오직 〈환담〉과 소통적 언어 일반에 대한 그의 비판을 함께 고려할 때에만 이해할 수 있다. 발작의 글쓰기방식은 사교적 사회어의 언어(파롤)에 가깝다. 이러한 양자의 친화성은 발작의 글쓰기방식이 곳곳에서 공허 하게 들리는 이유를 해명해 준다. 죽 그것은 〈의부〉 세계를 지향하며 공적으로 인정받기를 바라면서 〈내적인〉 무의식적 법칙, 프루스트가 말한 〈예술적 본능〉은 무시해 버리기 때문이다. 사회어와 의적인 덱스 트상호성을 통해서야 비로소 문학적 전화과정내에서의 덱스트의 位値 價도, 하나의 작품 자체의 발전과정도 해명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 아서』가 『장 상되이유』보다 훨씬 탁월한 작품이 된 이유 중의 하나는 프루스트가 자신의 두번째 소설에서는 사교적 사회어에 대한 비판에 중점을 둠으로써 소망하던 대안울 발견하였다는 데 있다. 그 대안이란
〈글쓰기〉였다. 무질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할 수 있다. 그의 첫번째 소설 『생도 퇴일레스의 혼란 』 에서는 아직 이데올로기라는 사회어에 대한 인식은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특성 없는 인간』에 이르면 그러한 인 식이 무대의 전면을 지배하게 된다. 물론 이데올로기적 술화 그 자체라 할 만한 것은 없다는 E. 베롱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이데올로기적 인 것이란 사회적 생산관계에 의해 주조된 모든 술화(그것이 어떤 ‘유 형' 이든간에)가 나타내고 있는 하나의 차원이다〉 (Veron, 1978, S.1 5 ). 그러 나 『특성 없는 인간』은(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는 달리) 무엇보다도 이데올로기적 술화 자체에 대한 텍스트 상호적 반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소설이 가공하는 사회어가 무엇이냐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를 취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점에서 무질의 덱스트는 『잃 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구별된다. 후자는 일차적으로 〈환담〉과 같은 소통적 언어에서 양가성으로 표현되는 교환가치에 의한 매개에 반응 한다. 『특성 없는 인간』이 절대적 이데올로기적 대립(의미론적 이집과 동위체들의 분리)을 이데올로기비판적으로 의문시하는 반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환담에 의해 부정된 절대적(의미론적) 대립을 찾아나 서는 것이다. 하지만 두 소설이 전적으로 상이한(혹은 전혀 상반된) 구조를 갖는다 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양자는 상호보완적이다. 교환가치에 의한 매 개(양가성)와 이원론적 신화이자 매개에 대한 반응이라 할 수 있는 이 데올로기가 이미 상호보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장에서는 교환 가치에 의한 매개가 언어의 영역에서 양가성을 낳는다는 것, 그리고 이데올로기는 시장사회의 양가성(〈불가지론〉과 〈데카당스〉)에 대한 신화 적이고도 권위적인 반응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밝힐 것이다. 정 치적인 것이든 종교적인 것이든, 이원론적 신화라 할 수 있는 이데올 로기는 스스로 양가적이고 타락해버린 시장체제의 현실에 대한 급전 적인 대안임을 자처한다. 그러나 사실상 이데올로기 역시 매개의 산물
로서 매개에 의해 주조된 것이다. 이데올로기 영역에서의(약호의 의미 론 , 그 유관성의) 부단한 분열과 이데올로기적 대치상황은 모든 가치의 양가성을 고양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프루스트와 무질의 소설은 텍스트상호적 충위에서 동일한 문제의 두 측면을 다루 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의미론적 가치평가적 차이가 봉착한 위기가 유관성과 약호의 위기로 되었다는 것이다 . 이는 다시 행역자적 인과율 적 구조인 서술통사론의 붕괴의 원인이 된다. 참고문현 —B—achti n.,: : PML ro'. bO:l eeLumivt eer er dadleuer rPF uoreantndi kq o K iDs a orRnsteaovb eae vlls,a kisiZ j su e, tr M lRat oincmuc alhtn eulnrh e,e opHroi apen u s lue anri,dr e 1La9a7u.1c h Mkouylt e un r , AMg ei . ient c hsoeuns, Hanser, 1969 la Renais s ance, Paris, Gallim ard, 1970 Calvet, L. J. : Pour et contr e Saussure, Paris, Payo t , 1975 Eco, U. : Tratt at o di semi ot i ca gen erale, Mail a nd, Bomp ian i, 1975 (특히 Kap. 3.9 . Ideolog ia e commuta z io n e die codic e , 이 텍스트의 첫번째 판 본이 실린 곳 : Le Forme del conte n uto , Mail an d, Bomp ian i, 1971, 독일어 번역이 실린 곳 : P. V. Zim aCHrsg. ) , Texts em i ot ik als Ideolog iek r itik, op. cit., Semi ot i k d- er ldeolog ien ) Gelga r dt, P.P. : Ni ek oto r e obste l in g vist i tes kie ide i i folk loris t i tes kie int e r esy akad. N. Ya Marra v osveste n ii naut no j kriti ki, in : Vop ros y jaz yk o znania , Izd. Nauka, 3, 1976( 저자는 최근 소련 언어학계에서 마르가 재발견된 것과 관련이 있다) Goldmann, L. : Der verborge n e Gott , Neuwi ed und Berlin , Luchte r hand, 1973 -———:::: SM LePmaehusei p odat ari qsce sq,ua eu n isite. n t L e:s atcR i ees!ncee chnseze sir ocp htsr ioqeo csju ie aedtl sei ,dsa ,lu e cPittn eiaqx r :uti e s eJ, s. : , C SePxeoeuuarirrclit , is se , es 1 s, 9 G 7pIa6nrl alt i trm ioq da uru edcs,t, io 1Pn9a 5r9ai s , laS euseiml , i 1o9t i7q 6u e Greim as, A J. : Du Sens, Paris, Seuil,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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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덱스트사회학의 모델 : 프루스트, 무질 1. 언어의 양가성과 시장법칙 제가치의 붕괴라느니 가치체계의 위기라느니 사회의 타락이라느니 하는 말들을 흔히 둘을 수 있다. 그러한 개념들은 대개 이데올로기적 이고 감정적인 성격을 띠는 데다가 규범적인 술화에 의해 오용되어 왔기 때문에 많은 언어학자, 역사학자, 사회학자들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었다. 〈붕괴〉니 〈문화위기〉니 하는 개념들은 말하자면 그 사회적 토 대를 파괴당한 사고방식이 느끼는 절망감의 표현이 아니겠는가? 순 전히 규범적인 방법 의에 이를 달리 정의할 방법이 있겠는가? 텍스 트사회학은 위기나 붕괴에 대해 일반적으로 얘기할 것이 아니라, 그러 한 개념에 미리 부정적인 표지롤 붙이지 않은 상태에서 도대체 무엇이 붕괴되었는가, 그리고 위기와 붕괴현상이 의미론적 통사론적 충위에서 는(죽 덱스트생산 내부의 과정으로서는) 어떻게 표현될 수 있겠는가라는· 문제를 추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결국 문제의 요점은 허구영역에서뿐 만 아니라 비허구의 영역에서까지도 낡은 체계를 대체할 새로운 구성 원리가 발생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아도르노, 골드만, A 존-레텔과 같이 교환가치에 의한 매개가 문학적
이론적 텍스트에서 근대의 중심적인 문제가 되었다는 가정에 의거한 다면, 중요한 것은 이 문제를 텍스트 구조의 충위에서 서술하는 일일 것이다. 매개가 실제로(예컨대 골드만이 『근대소설의 사회학』, Neuwi ed , 19 70 에서 주장했듯이) 가치의 위기를 초래했다면, 텍스트사회학의 틀내에 서는 이 위기를 의미론적 통사론적 과정으로 기술할 수 있어야 할 것 이다. 텍스트사회학은 전적으로 〈내용〉만 다루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 고 〈형식〉만 다루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텍스트사회학의 핵심은 기호 학의 대상영역(의미론, 통사론, 거시동사론)을 사회적으로 매개된 변수로 파악한다는 데 있다. 따라서 앞으로 밝혀야 할 것은 다양한 사회언어학적 상황에서 허구, 비허구의 텍스트류들이 교환가치에 의한 매개에 반응하는 양태, 그리 고 매개 자체가 의미론적 양가성으로 묘현되는 방식에 관한 문제다. 미하일 바흐친의 라블레에 관한 저서는 양가성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탐구한 최초의 연구서다. 그는 양가성을 카니발 제도와 관련짓는다. (1) 카니발의 양가성 : 바흐천에 있어서의 텍스트상호성 바흐친은 카니발적 양가성이 지니는 파괴적이고 혁명적인 효과를 명료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카니발적 양가성은 후 기중세와 초기 르네상스의 민중적 문화에서 민주주의적이고 반봉건적 인 비판의 도구가 되었다고 한다. 카니발 행사에서는 고귀한 것이 비 천하게 되고 지배자의 전지성이 조롱당하며 죽음에서 새 생명이 탄생 한다. 이는 양가적 구조를 보여주는 것이다. 카니발 왕이 고귀해졌다 비천해졌다 하는 양가적 풍속은 교체와 갱신의 불가피성과 아울러 그것이 지니는 생명력을, 그리고 모든 질서 • 권력 • 위계 의 유쾌한 상대성을 표현한다. 騰貴는 이미 다가울 卑下의 관념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애초부터 양가적인 것이다. 왕관을 쓰는 자는 현실의 왕의 대척
자, 죽 노예나 바보다. 카니발의 전도된 세계가 활짝 열린다 (Bach ti n, 1969, S.50 ~ 51). 카니발의 풍습과 시장의(상인의) 양가적 언어 사이에 연관성이 존재 함은 바흐친 스스로도 시사한 바 있다. 이러한 언어에서는 찬양과 비 난이 서로 결합됨으로써 봉건사회의 공식적 문화의 근본원칙에 입각할 때는 통합불가능(의마론적 이접)했던 대립자들이 뒤섞이게 된다. 바흐친 은(예컨대 〈 파리의 선전문구들 er i s de Par i s 〉과 같은) 대중적 광고는 대립 자를 결합시킴으로써 파괴적으로 작용하는 양가적 언어형태라고 생각 한다. 왜냐하면 그런 언어형태는 전적으로 이득과 기만술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교환가치에 의한 매개가 봉건적 가치들을 점차적으로 空洞化 시켜가고 있었다면 후기 중세의 시장사회에서는 이 과정이 이미 어느 정도까지 진척되었던가라고 물을 수 있겠는데 바흐친은 유감스럽게도 이에 대해서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고 있다. 그는 카니발적, 시장지향 적 언어의 양가성과 그 비판적이고 반봉건적 기능을 인식하고는 있지 만 이 언어의 파괴적, 반어적, 파로디적 요소들이 모든 가치 판단을 의심쩍게 만드는 상업화된 문화의 전조임을 깨닫지는 못하는 것이다. 바흐친이 주장한 대로 카니발과 그 언어가 시장에서 발전한 것이라 면 카니발적 양가성이 시장법칙, 즉 교환가치에 의한 매개나 상품형태 와는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가 하는 물음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흐친은 이 문제를 추적하지는 않고 카니발 제도를 절대화하 려는 경향을 보인다. 카니발 제도가 후기 중세에 지니던 역동성을 상 실해버린 지 이미 오래인 시기 (19 세기 말엽)에 나온 토마스 만과 도스 토옙스키의 소설을 설명하기 위해서조차 카니발제도가 원용되어야 한 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작가의 소설에 나타나는 양가성은 시장법칙 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을 뿐, 본래의 카니발 행사와는 더 이상 아무 런 관계도 없다. 바흐친이 라블레에 대한 저서에서 카니발과 시장법칙 간의 관계를 좀더 상세히 다루었더라면 카니발적 하위문화와 그것이
지니는 〈通風風俗〉 (Ven ti l-S itt e, 게오르그 짐멜)적 성격은 또 달리 조명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가 〈카니발적 양가성〉이란 표현으로 지칭했던 바는 도스토 옙스키의 〈다성적〉(술화다중적) 소설들에서뿐만 아니라 Th. 만, 무질, 프 루스트와 같은 작가들의 경우에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예컨대 그가 『도스토옙스키 창작의 제문제』에서 〈모든 현상의 심오한 중의성 과 다의성〉, 성격상의 〈이중분열〉과 〈모순〉을 얘기하고 (Bach ti n, 1971, S. 37) 대립자들의 통일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프루스트 소설의 후반부에서 벌어지는 카니발적 變轉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밖의 소설 속의 인물들과 아울러 아르장쿠르 씨, 샤를뤼스 남작, 게 르망트 공작부인 등이 이런 변전을 보여 준다. 그중에서도 게르망트 공작부인은 베르뒤랭 부인의 형상과 융합됨으로써―一카니발 왕처럼一 ―廢位룰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토마스 만의 〈펠 릭스 크룰〉에 대한 바흐친의 다음과 같은 서술은 타당하다 하겠다. 〈토마스 만의 작품이 심하게 카니발화되어 있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카니발화가 대단히 선명하게 표출된 것은 그의 소설 『사기꾼 펠 릭스 크룰의 고백』에서다(여기서는 쿠쿠크 교수의 입을 통해 일종의 독특한 카니발과 그 양가성의 철학이 기술되어 있다)〉(앞의 책, S.3 1 5). 실제로 세기전환기 이래 사회제도로서의 카니발이 프랑스와 라블레 의 시대에 담당했던 민중적이고 비판적인 기능을 잃어버린 지는 이미 오래다. 미하일 바흐친이 카니발적 사건이라고 해석했던 것(양가성, 가 면, 인간의 이중화)은 동일하지 않은 것을 결합시키고 대립을 가상적인 것으로 바꾸어버리는 매개가 가져온 직접적인 결과인 것이다. 그럼에도 덱스트사회학의 입장에서 볼 때 바흐친이 특별한 관심을 끄는 이유는 그가 특정한 특칭적 언표들을 통해 문학텍스트를 사회적 콘텍스트와 연결시키기 때문이다. 그는 『프랑스와 라블레의 작품』 (19 65) 에서 양가성이 카니발과 시장언어의 표현법을 매개로 해서 라블레 의 작품에 유입되어 이 작품의 비판적, 파로디적, 반어적 성격을 낳는
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 내 훌륭한 제자들이여, 그리고 그밖의 몇몇 거류민들이 여 〉 (Bach ti n , 1970, S.171) 와 같은 표현들은 이 작품에 특히 전 형적인 것이다. 텍스트상호적 연관에 대한 바흐친의 서술로부터 텍스트사회학이 습 득한 인식은 교환가치에 의한 매개를 언어현상으로, 죽 의미론적 양가 성으로 정의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시장사회의 생성기와 확립기(근대)에 허구 텍스트가 수행한 순기능 / 역기능을 해명할 수 있 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 당면적 연구에서 중심이 되는 가설, 죽 시장 메카니즘이 부르주아 시대의 실존적, 종교적, 정치적, 철학적, 미학적 제문제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가설은 단순히 검증을 통해 그 진위가 밝혀질 수 있는 공리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동시에 사회적 앙가지망의 근저에 깔린 가치판단이기도 한 것이다. 죽 개방적 인 이론적 대화를 결코 배제하지 않는, 오히려 그것을 추구하는 앙가 지망인 것이다. (2) 텍스트와 시장 언어와 시장법칙, 의미론적 가치와 교환가치 사이의 관계는, 존-레 델 아도르노, ]-] . 구 ,V 츠메가취 등의 중요한 연구가 있었음에도 불구 하고 여전히 거의 정의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이는 존-레텔과 구 (Freud, Marx, Economi e et sym boliq u e, Pa ris, 1973, 그중 Numi sm atiq u e” 와 L' ins crip tion du tra vail , 특히 s.1 2 5) 같은 저자들이 철학과 언어에 나타나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관계를 하나의 역사적 정세 속에서, 홉사 조감 도를 그리듯 제시하려는 태도를 취한다는 데서 그 부분적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럴 경우에는 텍스트생산과 텍스트구조화의 문제를 상세히 다루는 일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사유(내지 이론)가 상품형 태를 취한다는 존-레텔의 논평은 물론 타당한 것이긴 하다. 〈그것(분 석)은, 형이상학적 사유는 불가능한 것이라는 판정에 반해서 상품의 추
상화가 사실상 사유형식을 결정짓고 있는 시공간적 과정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는 것 같다〉 (Sohn-Re t hel, 1978, S.1 2 3). 하지만 문제는 상품교환의 추상화가 관념론적 사유의 개념적 추상화 속에 표현되어 있다는 사실만은 아니다. 존 - 레텔이 올바르게 지적한대 로 〈 상품교환이 상품을 등치시키는 것〉 (S . 123) 이라면, 이질적인 요인들 (가치들)이 하나의 공통분모(교환가치)에로 환원된다는 점이 교환사회 내부의 제관계의 특칭이 될 것이다. 존-레텔의 다음과 같은 주장은 아 도르노와 골드만의 견해와 일치한다 . 〈경제학상의 가치개념은 양적인 상이성 의엔 허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양적 피규정성은 다시 교환의 추상화에 대한 증거가 된다. 그것은 추상적인 양, 척도로서의 양이지 크기나 수로서의 양이 아니다. 그러한 양의 토대는 등치다.〉(앞의 책, S. 122) 질적인 상이성이 양척인 상이성에 환원되는 상황에서는 질적인 차이 그 자체가 의심쩍어지고, 절대적 대립(이는 바흐친과 크리스데바에 따르면 봉건적 문화, 서사시적 문화의 특징이다)은· 무상해져버린다. 교환가치의 내 적 논리는 질적인 차이와 대립을 부정하기에 이론다. 질적인 차이는, 양적인 것으로 해소되어버릴 가능성이 주어지자마자 〈무차별〉해지는 것이다. 양적이고도 질적인 명칭인 〈베스트셀러〉란 말은 이런 과정을 예증해주고 있다. 죽 좋은 책(좋은 텍스트)이란 가장 많이 팔린 책인 것이다. 이 경우 판매업자들에 의해 양화가능한 가상의 질이 결정된다. 좋은/나쁜이라는 의미론적 대립은(사이비 질로서의) 질의 양화가능성에 의해 무차별해진다. 부정적 가치들과 긍정적 가치들이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며 양이라는 공통분모에 의해 전환가능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 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요인을 갖는다. 그중 첫번째 요인에 대해서는 아도르노, J.보드리 야르, D. 프로코프, w. 하우크 등이 상론한 바 있다. 1. 교환가치는 사용가치로 위장된다. 이때 등장하는 가상의 질울 사 람들은 전정한 가치로 여기고 희구하게 된다. 〈사용가치가 .그 대립자 의 현상형태로〉 전도된다 (Proko p, 1974, S.150) 는 사실에 대해서는 프로
코프뿐 아니라 존-레텔도 말한 바 있다. 아도르노도 『불협화음』이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교환가치의 원리가 인간에게서 견딜 수 없으리만치 사용가치를 빼앗아가면 갈수록 교환가치 자체가 더욱 교 묘하게 향유의 대상으로 위장된다〉 (Adorno, 1956, S.1 9 ). 이러한 맥락에서 특히 주목을 요하는 것은 매개의 문제를 기호학의 총위(문화약호의 충 위)에서 기술하려는 J.보드리야르의 시도다. 〈교환가치를 통한 욕구충 족 〉 의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교환가치의 기호적 특성이다. 즉 그것은 시장법칙에 지배당하는 문화약호를 지향하고 있는 소비자의 행태를 설명해 준다는 것이다. 〈 마지막 단계에서 상품은 약호로 나타난다. …… > 그리고 〈 교환가치는 교환가치 기호로 실현된다〉( 〈 La valeur d'e chang e s' accomp li t dans la valeur d' echang e sig ne >, B audri lla rd, 1972, S.2 5 9) . 2. 교환가치라는 의적인 규정에 의해 주조된 , 가치들로 이루어전 문 화약호(언어적 약호, 비언어적 약호)에서는 양가성이 중심문제가 된다. 질 과 양(특수와 보편)이라는 일차적 대립이 해소되고 나면 다른 모든(절 대적) 대립들 역시 이에 영향받아 해체되고 마는데, 양가성은 이러한 과정의 귀결이다. 즉 A 가 동시에 A 의 대립자로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 다. 이처럼 의미론적 이분법이 해체됨으로써 약호와 유관성의 원리는 위기에 빠지게 된다. 교환가치(양에 의한 매개)의 관점에서는 모든 질적 인 차이와 가치설정들아 자의적인 것으로 보인다. 모든 가치는 동시에 그에 대립하는 비가치로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니체에게는 기독교적 도덕성이 허약함으로 간주되며 프로이트는 도덕적 〈순결성〉을 억압된 성욕과 관련시킨다. 또 헤겔이 말한 절대적 자유의 정체는 주관성의 완전한 포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비판이론을 통해서 드러난다 (몇몇 철학에 있어서의 양가성에 대해서는 앞으로 좀더 상세히 논의할 것이다). 광고덱스트에 대한 연구는 시장이라는 맥락 속에서 의미론적 차이 둘이 서로 동화되어버리고 통합불가능한 질들이 결국 하나의 공통분모 (교환가치)로 약분되고 만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광고덱스 트는 언어적인 것이든 비언어적인 것이든 (가치있는) 대상의 자질들을
광고되는 상품에 전용, 이질적인 것들을 등치시킴으로써 사회적 약호 와 하위약호(사회어)의 유관성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질적인 차이들을 뒤섞어놓는 작용을 한다. 그래서 예컨대 w. 뇌트는 「일차 덱스트류로서 의 광고」라는 논문에서 스카치 위스키 〈하일랜드 권 〉 이 〈인접관계〉에 의한 〈자질전이〉를 통해서 하나의 예술 작품과 近似해진다고 말하고 있다. 〈가치있는 예술작품이 상품의 지표가 된다. 그처럼 가치있는 그 림이 있는 곳이라면 술 역시 값비싼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기 때문이 다 . 〉 (Noth , 1977, S.9 7) 이때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 가치있는〉과 〈 값비싼〉이란 개념들 이 나타내는 양가성인 것 같다(뇌트는 이에 대해서는 상론하지 않고 있다). 군본적으로 상이한 두 개의 사용가치(미적인 것과 미각적인 것)를 상호 접근시키는 것은 오직 매상을 울리려는 상인의 의도뿐이다. 존_레텔이 말한 두 가치의 등치와 동화는 시장법칙의 지배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위의 두 개념이 나타내는 양가성의 직접적인 원인은 사용가치(예술, 음 료)와 교환가치의 결합에 있다. 특히나 〈 전귀한 고급 스카치 위스키〉 라는 광고텍스트 자체는 한편으론 예술작품의 희귀성을 공시의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진귀한〉 상품의 높은 가격을 정당화해 주는 것이다. 뇌트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타당하다. 〈차별을 없애버리는 것은, 상 품과 광고메시지에 의해 창조되는 그 상품의 〈이미지〉 사이의 격차를 지양하기 위해 광고가 애용하는 수단이다 〉 (No t h, 1977, S.9 9 ). 그러한 텍 스트 처리방석은 〈소비자의 분별력을 흐려놓을〉(뇌트) 뿐만 아니라, 덱 스트 자체의 의미론적 충위에서 약호의 유관성을 지탱하고 있는 질적 인 차이들도 의심쩍게 만든다. 이로써 현대사회의 많은 영역에서 예술 /비예술(좋은 예술/나쁜 예술)이란 구별이 사소한 것으로 간주되는 이유 가 명백해전다. 광고도 〈예술〉인가라는 물음이 논의의 핵심이 되는 것 은 혼한 일이다. L . 바르댕이 『광고의 이데올로기적 메카니즘』이란 저서에서 뇌트와는 전혀 독립적인 경로를 통해 이와 유사한 결론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광고는 〈혹과 백이 섞여 회색이 되는〉 타협이 아니라 〈대 립 자들의 결 합 une contr a cti on ou un contr e balancement> 이 라는 것 이 다. 〈간단히 말해서, 그것(광고)은 차이를 의도적으로 시사, 강조, 혹은 꾸 며낸 다음에 다시 이룰 제거해버린다〉 (Bard i n, 1975, S.2 3 4). 바르댕은 낡 은 것과 새 것을 결합하려 하는 다음과 같은 선전문구를 예시한다. 〈우리는 17 세기의 건축양식과 20 세기의 세련된 안락감을 함께 누린다〉 (앞의 책, S.2 3 5). 여기에서도 상호배제적인 두 개의 가치――현대의 안 락한 住居 때문에 17 세기의 〈순수성〉이 파괴당했으므로-가 상업적 인 이유 때문에 결합되고 있는 것이다. 광고라는 사회어에서는 의미론 적 가치뿐만 아니라 행역자들도 무차별하게 된다. 그리하여 기술과 자 동차가 한편으로는 인간(주체)의 조역자로 나타나 자연으로의 도피처 를 마련해 주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거역자가 되어 인간으로 하 여금 거기에서 벗어나 부동산회사에서 조립식 집을 갖추어 놓고 오라 고 손짓하는 시골로 도망치게 만든다. 양가성이 파괴적이고도 비판적인 기능을 수행한다는 사실은 바흐친 의 저작을 통해서 명백히 밝혀진 바 있다. 그러한 작용은 카니발행사 에서뿐만 아니라 개개인이 자신의 문화적대적인 충동을 마음껏 발산 하는 많은 욕설이나 재담에서도 드러난다.
욕설, 재담, 카니발과 같은 특정한 통풍풍속에서만 나타나던 의미론적 양가성이 시장에 연루된 모든 삶의 영역을 장악하고, 바흐친이 말했던 봉건주의에 해당하는 지배적 문화가 사라져버린 까닭에, 약호와 하위 약호들은 만성적인 위기에 빠지게 된다. 또한 이 위기는 교환가치에 의한 매개가 확산되어감에 따라 점점 더 심각해진다. (3) 양가성과 철학 : 니체에서 무질까지 나는 이 장에서 주로 프루스트와 무질의 소설에 나타나는 의미론적 양가성을 논할 것이므로 철학텍스트의 중의성에 대한 상론은 유감스 럽지만 보류해야 하겠다. 하지만 중의성이 지니는 의의가 지난 몇 세기 동안 소설에서뿐만 아니라 시민 철학에서도 눈에 띄게 증대되어 왔다 는 사실은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F. 니체의 〈모든 가치의 전도〉에 아르면 오랜 기간 지속되어온 그러 한 발전과정이 정점에 도달한다. 그 발전의 추동력의 하나는 시장이 갖는 중요성의 확대이고, 다른 하나는 부르주아(절대주의) 국가권력의 세속화라 하겠다. o. 로트는 「라 로쉬푸코 : 不平 黨 의 가치의식」이라는 논문에서 『참언집』에 나타나는 〈니체 以前的 악센트〉( 〈 accen t s pre nie t z s - cheens>, J .스타로빈스키)를 다루고 있다. 로쉬 푸코는 모든 가치 의 전도와 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다 . 〈로쉬푸코의 경우에는-니체 자신이 이렇게 쓰고 있다_~고상한 감정을 추동하는 본원적인 힘에 대한 의 식이 존재하며, 이러한 추동력에 대한 평가는 기독교적인 암울한 색조 를 띠고 있다〉 (N i e t zsche, in : Roth , 1977, S.4 9 2). 로트의 통찰로부터 알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은〈불평당의 간계〉와 (불 평당 일파의) 〈이중적 행동방식〉이 가치의 양가성을 고조시킨다는 것뿐 만이 아니다. 라 로쉬푸코의 사회에서 이미 매개의 파괴적인 작용이 나타난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 〈라 로쉬푸코가 표면상의 저항과 훗날 의 내적인 망명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한 그같은 가치 조작과 술책은
마키아벨리의 정신에서 영감받은 것으로, 근본에 있어 상업자본주의의 정신에 가까운 것이었다〉 (Ro t h, 1977, S.4 9 6). 『 잠언집 』 은 가치를 전도시 칸 것이라기보다는(불평당에 의한) 봉건적 가치체계의 붕괴를 근본적으 로 비판하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에 지배와 교환 가치 사이의 연관성이 드러난다. 〈왕들은 사람을 화폐조각으로 취급한 다. 왕들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발휘하는 만큼의 가치를 부여하는데, 이 경우 그들이 인정받는 가치란 유통에 따른 가치이지 그들 고유의 가 치일 수 없는 것이다〉 (La Rochefo u cauld, in : Roth , 1977, S.4 9 7). 〈고유의 가치 〉 는 자의적인 교환가치, 시장가치에 의해서 부단히 추방당한다, 교 환가치에 의해서 비로소 절대적 지배자의 자의적인 행동이 가능해전 다. 이는 봉건적인 질서 속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15, 16 세기의 시장사회의 생성에 대해 상세히 연구해 본다면 아마도 가치의 위기가 시민사회의 출발시기와 일치하며 이 위기로 말미암아 (예컨대 마키아벨리와 홉스의 경우에서 보듯) 〈몰가치적〉 술화가 발전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옳은 / 그론〉, 〈이성적인 / 비이 성적인〉과 같은 대립쌍들이 홉스의 경우에는 권력관계로 해소되고 상 대화되어 버린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어떤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서 올바른 이성을 요구한다고 하더라도 이때 그들이 말하는 이성 이란 실은 자기자신의 이성인 것이다. 하여간 확실한 것은 올바론 이 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특정한 사람(들)의 이성이 그 자리를 차지 할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사람(들)이란 다름 아닌 최고권력을 가진 자라는 사실이다〉(『법학 요론』, Eng lis h Works, S.150). 이러한 생각은 『시 민론』에서의 홉스의 간결한 논평에 의해 보완된다. 〈이성의 자리에 窓 意가 들어선다〉 (De Civ e , Eng li sh Works, S.1 9 5). 로트의 연구가 라 로쉬푸코의 『참언집』을 절대주의 치하에서의 권 력남용과 매개에 대한 반응으로 간주한 것이라면 홉스, 로크, 평등주의 자들에 대한 C. t!버퍼슨의 연구는 홉스의 철학을 생성중인 시장체제와 연결시켜 해석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McPherson, 1973 참조).
16 세기경에(추측컨대 15 세기에 이미) 시장에 의한 사회 변혁이 시작되었 다는 사실은 이 문제를 다룬 최근의 연구들을 보면 논란의 여지가 없 는 것으로 보인다 . V 츠메가취 감은 이는 통속문학에 관한 대단히 홍미로운 한 논문에 서 문학이 상업화되기 시작한 시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러나 통속화 경향의 단초는 이미 그 이전에 형성되었다. 최초의 것 은 아마도 16 세기의 민중、손일 것이다. 기능(목적으로서의 단순 한 〈 오락 〉 ), 타락한 덱스트형태, 상업적인 고려, 이 삼자의 공동작용으로부터 훗날 의 (통속문학- 역주) 생산의 요소들을 간취할 수 있다. 〉 (2me g a t, 1977, s.101) 여기에서는 〈미적 가치들이 …… 교환가치에 의해 완전히 구축 당한다〉는 것이다(앞의 책). 존-레텔은 사유형태와 상품형식 사이의 연 관에 대해 일반적인 수준에서 논의하고 있지만 통속적, 철학적, 허구적 텍스트의 사회학은 텍스트구조에 미치는 매개의 작용을 탐구함으로써 사회적 가치평가의 문제를 의미론적 통사론적 문제로 정의해야 할 것 이다(교환가치에 의한 매개와 기표―기의 연관에 대해서는 구 Goux 가 상론을 전개한 바 있다). 미론예적컨 대양 니가체성가과 에어떤세 이관이계즘가과 있경겠구는적가 글 ? 쓰-기 방체식계을적 (선헤겔호적한) 것술은화 를의 그가 거부한 사실을 양가성 현상과 매개에 관련시킬 수 있을 것인가? 이 자리에서 위의 물음에 대한 해답을 제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다 음과 갇은 점은 밝혀두어야 하겠다. 이러한 물음들이 니체의 덱스트에 대해 지니는 의미, 그리고 그의 텍스트가 의미론적 양가성을 가공함으 로써 무질과 프루스트의 계열체적, 에세이적 글쓰기방식의 전조가 되 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니체와 20 세기 초엽의 소설가들 사이에 존재 하는 근천성과 차이점에 대한 해명은 어떤 영향이론의 틀 (Dur i~i ns, 1976 참조)내에서보다는 변화해 가는 사회언어학적 콘텍스트의 연관하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는 이제까지 니체와 무질을 관련지으려 했던 이차문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생각이다 (G. Muller, 1971 참조).
니체의 『가치의 전도』에서는 양가성이 부르주아 시대의 여명기 때 처럼 〈무의식적으로〉 다루어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핵심적인 문제로서 논의의 중심부에 놓인다. 홉스가 〈스콜라 학자들〉과 논전을 벌였듯이 니체 역시 체계적 술화를 가지고 양가성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형이상학자들에 반대한다. 〈형이상학자의 근본적인 믿음은〉 __ 그는 r 선악의 피안』에서 이렇게 쓴다一―〈가치의 대립에 대한 믿음이 다〉 (Ni et z s che, 1968, Bd.3 , S.27) . 그는 절대 적 가치 대 립 에 맞서 서 가치 의 동일성(죽 가치의 양가성)을 주장한다. 〈저 훌륭하고도 고상한 존재들의 가치를 형성하는 본질이, 의관상 대립하는 듯이 보이는 조악한 것들과 실은 위험스럽게 관련되고 연결되며 뒤얽혀져서 아마도 그 근본에 있 어서 전적으로 동일해지기에 이르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앞 의 책, S.28). 니체 이래로 철학은 이 〈아마도〉라는 말과 대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것은, 수천년 동안 유지되어온 낡은 가치체계를 깨뜨 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스스로 위험스러운 과업을 짊 어지게 된 것이다. 그의 파괴가 낳은 결과는(홉스의 경우에도 이미 그러했듯이) 본능의 폭 로와, 바흐찬의 카니발적 웃음을 상기시키는 쾌활함이다. 이러한 쾌활 함은 또한 무질의 아이러니와 동일한 근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 인다. 그것은 곧 양가성이다. 물론 니체는 대립자들을 하나로 결합시킴 으로써 매개가 낳은 결과가 파괴적인 것임을 확인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의관상 신성한 듯이 보이는 사상도 허위라고 단죄한다. 그러한 사상은 세계가 질서잡혀 있고 가치들이 여전히 믿을 만한 것이라는 가상을 꾸며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그의 철학이 지니는 이데 울로기비판적 가치가 있다. 그것은 충동과 본능이 새로운 〈물가치적 가치〉라는 사실을 발견함으로써 훗날 프루스트, 헤세, 무질과 같은 작 가들이 걸었던 길을 가리켜 보였던 셈이다. 그들은 본능 속에서(〈예술 적 본능 inst in ct art isti q u e> , 프루스트), 無意識 속에서(「마술 극장」에서, 헤 세 ; 〈뜻밖의 추억 memoir e i nvolon tai re 〉에서, 프루스트), 〈자극받은 삶의 유
토피아적 공상〉 속에서(무질) 참된 상태를 추구하는 것이다 . 헤세나 무질, 프루스트에 미찬 니체의 영향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경제 • 사회적인(문화적인) 제약에 의한, 합일될 수 없는 의미론적 가치 둘의 상호결합이 이 작가들에게 주된 문제로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로부터 니체의 쾌활함도, 프루스트와 무질의 아이러니도 기원하고 있는 것이다. 『도덕의 계보』에서 그 철학자의 파괴적인 작업은 명백하 게 드러난다. 그는 다음과 같이 폭로한다. 〈우리의 낡은 도덕 또한 喜 로g l 에 하 자속면한,다 〉유 (쾌N i e한 t z sc학he,문 1이96란8, B하d.4나 , 의S . 3 3)보 . ―답―이〈다쾌. 활 즉함 이오 란랫, 동혹안은 용나감의하 게말 애써서, 남 모르게 진지함을 지켜온 데 대한 보답인 것이다. 이는 물론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앞의 책) 비천한 것과 고상한 것, 진리와 충동, 役我性과 에고이즘이 합류하는 경우에는-바흐천의 카니발에서처럼-먼저 웃음이 터져나오고, 쾌 활한 기분이 생겨난다. 또한 해방의 감정도 느낄 수 있게 된다. 이는 헤세의 「마술 극장」이나 프루스트의 「되찾은 시간」 마지막 부분에서 우상처럼 숭배되던 귀족이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띠게 될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무질이 남긴 단편적 덱스트들 중 하나는 『특성 없는 인간』에서 아이러니와 의미론적 양가성이 얼마나 심하게 뒤얽혀 있는 가를 밝히고 있다. 〈아이러니란 이런 것이다. 성직자를 그릴 때 그의 옆에 볼세비키도 같이 그려넣으며, 백치를 묘사할 때는 작가 역시 불 현듯 자기자신도 어느 정도는 백치라는 느낌이 들도록 만드는 것이 다.〉 (Gesammelte Werke, Hrsg. A.Fri se = GW, Rowohlt, Rein b eck, 1978, Bd.5, S.1939) 이 인용문의 후반부는 양가성이 주체 앞에서조차 멈추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준다. 양가성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훗날 데리다나 라 캉의 경우에서처럼) 주체 자체가 의심스러워지는 것이다. 그런데 술화의 주체가 술화의 정완 분류발 . 유관성 지정, 警句化하는 처리방식에 의해 술화 속에서 비로소 구성되었다가(양가성을 통해 다시 파괴되어) 의심스러워져 버릴 때에는, 기타의 술화적 심급들(행역자와
행위자들)마저 이중적으로 된다. 죽 그들은 일의적인 정의에서 벗어나 게 된다는 것이다. 이로써 니체의 경우에서처럼, 낡은 행역자 도식이 담고 있는 이데올로기를 꿰뚫어 보고 자산의 행역자들을 주인공과 反 주인공으로, 선과 악으로 양분하기를 거부하는 비체계적이고 에세이적 이며 경구적인 술화가 발생한다. 그리하여 〈새로운 철학〉에서는 일의 성의 원칙, 죽 절대적 대립에 대한 선앙과 더불어 형이상학적이고 체 계적인 사유의 서술적-통사론적 진행도 의문시되기에 이른다. 니체의 철학은(이 점에서 무질의 소설, 그리고 〈비판이론〉과 유사한데) 어 떤 결론도 맺지 않은 채 다음과 같은 逆說로, 즉 양가성으로 끝맺는다. 〈너희들의 영혼은 위대한 자에겐 너무 낯설다. 그리하여 超人의 善은 너희들에게 경의의 대상이리라.〉 (N i e t zsche, 1968, Bd.4 , s.215) 『이 사람을 보라』에서 ―一 이는 우연이 아니다 __ 〈심리학자〉로 등장하는 차라두 스트라는 완전히 중의적인 존재이다. 〈차라두스트라는 선의 최초의 심 리학자이기에 악의 벗이다〉(앞의 책). 물론 니체의 초인 속에서는 국가 사회주의자와 같은 비인간의 전조가 나타나기는 한다. 구러나 구 반대 의 모습 또한 나타나는 것이다. 니체의 〈이야기〉가 일의적인 결말을 갖지 않는 것은 의미론적 심층구조도, 행역자들간의 제관계도 일의적 이지 않기 때문이다. G. 루카치는 이 점을 오해하였기 때문에 이미 『영 혼과 형식』에서 양가성과 심리학에 비해 비극적인 양자택일을 더 우 위에 두었고, 『이성의 파괴』에서는 니체를 파시스트의 선구자라고 매 도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에 반해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요 인물 중의 하나인 생 루 후작은 『차라투스트라』의 이 데올로기비판적 영향력을 발견한다.
2.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이제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관련하여, 이제까지 는 대단히 개략적으로만 서술되었던 매개, 의미론적 양가성, 서술적 통 사론간의 상호관계를 보다 상세히 탐구해 보도록 하자. 이 자리에서는 우선 소설에서의 양가성이라는 나의 책의 본질적인 논점(『소설의 양가 성. 프루스트, 카프카, 무질』, Paris, 1980) 만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 나 여기서 문제삼는 것은 다만 프루스트의 소설뿐만이 아니라 텍스트 사회학적 개념의 적용, 그리고 매개와 텍스트 구조간의 관계이기도 하 다. 논의는 네 단계로 나누어전다. 1. 먼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사회언어학적 상황의 틀 속에서 問텍스트로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2.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그것의 언어적 특성을 양가성이라는 문제틀의 맥락에서 해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3. 결정적인 점은 의미론적 충위 를 서술 통사론에 결합시키는 일이다. 이로써 양가성이 새로운 소설의 위기와 재구조화를 초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질 것이다. 4. 마지막으로 이러한 위기로부터 발생하여 전통적 이 야기 도식을 구축해버린 새로운(계열체적) 글쓰기방식의 문제가 제기된 다. (1) 사회 • 언어학적 상황 M. 프루스트의 斷篇的 소설이 나온 시기인 세기전환기의 제 3 공화정 은 제 2 제정기의 격심한 경제적 성장이 자유주의적 정치와 입법을 통해 뒷받침되던 시기였다. 티에르 씨를 중심으로 한 동아리에서(특히 티에 르의 추종자들 사이에서) 일어난 자본의(특히 금융자본의) 집중은 자유주 의적 경제 형태로부터 독점화된 경제 형태로의 이행을 가시화하고 있
었다 . 이러한 경제적 조건하에서는 이마 오를레앙家의 군주 루이 필립 의 치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교환가치의 매개 (Ma t ore, 1951 참 조)가 특정한 사회집단의 주요 문제로 떠오르게 된다. 귀 족계 급과 대 부르주아의 〈금리 생 활자들 ren ti ers 〉로 구성 되 어 T. 베 블 렌 같은 사람이라면 〈유한 계급 le i sure class 〉이라고 불렀을 법한 마르셀 프루스트의 동아리에서는 다론 집단들의 경우보다 더 강하게 가치들의 매개의 문제가 실촌적인 문제로서 부각되었다 (Z i ma, 1980, Kap .2 참조). 생산과정(사용가치의 생산)과는 동떨어진 채, 주식과 債券으로 먹고 살 았던 이 사회집단이야말로 모든 질적 가치의 허무함을 감지할 수 있 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실존의 토대가 바로 교환가치 그 자체 였기 때문이다. 〈유한 계급〉(샤를 아스, 사강, 몽테스키의, 카스텔란, 그라몽) 이 의존하고 있는 제가치가 얼마나 십각하게 텅빈 껍데기, 가면으로 변해버렸는가 하는 데 대해서는 이미 w. 벤야민도 주목한 바 있다. 〈프루스트가 묘사한 계급은 모든 부분에서 자신들의 물질적 기반을 은폐하는 데 매달린다. 따라서 그들은 봉건주의에 길들여진다. 봉건주 의는 어떤 경제적 의의도 자체 안에 지니지 않지만 바로 그 점에서 대부르주아의 가면으로서 그만큼 유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Ben j am i n, 1969, S.81) 작위나 토지 소유와 같은 〈봉건적〉 가치는 살 수 있는 것이 되었고, 돈이야말로 많은 사람들의 눈에는 본래의 근본 가치로, 만물의 척도로 비친다. 엘리자베트 드 그라몽은 가치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쓰고 있는데, 이는 〈유한 계급〉의 〈물질적 기반〉을 폭로하는 셈 이다. 〈모든 가치가 전복되었다는 사실이 우리 시대를 특칭짓는다고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하나의 유일한 가치, 즉 돈에 의해, 한 번은 그것의 과잉을 통해, 또 한 번은 부족을 통해 지배당하는 아 시 대에 그러한 말은 순진한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Gramon t, 1935, s.11) 〈내용 분석〉이나 특정한 마르크스주의적 방법과는 달리, 텍스트사회 학은 프루스트가 기술한 사회적 삶을 그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 마찬 가지로 그것은 〈금리 생활자들〉(귀족과부르주아)의 세계관에서 출발하
여 이를 『잃어버린』의 덱스트 구조와 유사한 것, 혹은 상동적인 것이 라고 설명해버릴 수도 없다. 프루스트의 글쓰기방식에서 매개의 의의 롤 해명하려 한다면, 텍스트사회학은 오히려 간덱스트의 충위에서 소 설 속에 개입된 사회어와 술화들을 다루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개입을 통해 언어현장으로처의 시장법칙은 허구의 영역에 편입되는 것이다. 나의 책 『소설의 양가성』의 근본가정은 歡談(〈사교적 파롤 par ole mon- da i ne 〉)이 세기전환기의 살롱 사회(〈유한계급〉)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어 라는 점, 그리고 그것은 교환가치에 의해 매개된 구조로 파악될 수 있 다는 점이다. 이 사회어가 현존을 유지하고 점점 더 세련되어 갇 수 있었던 것은 〈금리생활자〉들이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어 주식 소유 를 기반으로 기생적인 생존을 유지하게 된 덕택이었다. 환담은 의적 규정에 의해 특칭지워진다. 광고업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담가에게 는 모든 질적인(인식적, 윤리적, 미적) 가치란 단지 자기자신의 사회적인 성공과 상승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 언어는 R. 카이저가 프루스트, 조이스, 무질에 대한 연구에서 지적한 대 로 소유물로, (또 이렇게도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교환대장으로 되어버 린다 (Ka i ser, 1972 참조). 한편엔 환담, 다른 한편엔 돈(소유), 이 양자 사이에 존재하는 관련은 사교계의 사회어에 대한 아벨 에르망의 서술에서 명백히 드러난다(「사 교계와 환담」). 위세를 업고 있는 특정한 의소들에 의해 지배되는 유행 어휘는 〈사람들〉이 소유하면서 어느 정도의 큰 성공과 맞바꾸는 대상 물이다. 〈그것은 철학자의 어휘를 포함하고 있었으므로 한담가에게 유 용했다•……〉 (Herman t, s.d., S.137) 한담가는 귀족, 봉건성, 학문, 예술, 명성 등과 같은 정평 있는 의소들을 共示義하는 〈단어들〉(의미소들)을, 그 말의 전리내용 여부에 개의치 않은 채 교환한다. 사교적 상황이 변 화하면, 그는 주저없이 자가당착적으로 애초에 자신이 주장했던 의미 론적 차이와 대립들을 부정해 버린다. 결국 그에게 중요한 것은 광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시장에서의) 성공이지 인식이나 美 따위가 아닌 것
이다. 광고와 마찬가지로 환담이라는 사회어는 의미론적 유관성에 대해 무관심하다. 그것은 진정한 차별(참 / 거짓 ; 선 / 악 ; 미 / 추)에 대해서는 거 의 개의하지 않으며, 이 술화내에서는 행역자와 행위자들이 교환 가능 하게 된댜 족보가 지니는 위세가 지성이나 예술적 재능을 대체할 수 있고 그 역도 가능한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일이 광고의 경우에도 일어 난댜 단일한 텍스트내에서 기술은 긍정적 심급으로서( 〈 조역자 〉 로서의 자가용 차) 인간(주체)이 바로 이 기술로부터( 〈 거역자 〉 인 도시의 소음으로 부터) 도피하는 것을 돕는 것이다 . 『 잃어버린』의 독자는 게르망트 공작네 사람들의 환담 속에서 숱한 부조리를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금세 〈전보적〉이고 〈지성적〉인 태도 로 브뢰테 씨의 봉건적 편견을 조롱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 자기 둘의 조상을 자랑할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사교상의 성 공을 위하여 문화약호의 결합불가능한 의미론적 단위들을 공통분모로 약분해 버린다. 샤를뤼스 남작은 유대인들이 봉건영지를 사들임으로써 그 가치를 박탈해 버린다고 비난하지만 그 자신이 〈수도원 Abba y e 〉, 〈소수도원 Prie u re>, 〈신의 집 La Mais o n D i eu 〉과 같은 수요가 많은 이름들을 자기 명성을 위해서 교환대상으로 사용하고, 바로 그럼으로써 그 역사적, 종 교적 의미를 제거해 버린다는 사실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라 코망 데리’ 라 불리는 모든 지역과 영지는 말테 기사단(나도 그 일원의 하나인 데)이 경작했던 것이거나 적어도 그 소유였죠.…… 유대인은 城 하나 를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을 갖게 되면, 당장에 〈프리의레〉, 〈아베〉, 〈모나스테르〉(역시 수도원의 뜻 ――역주), 〈라 메종 되〉라 불리는 영지 중 하나를 골라 잡는답니다〉 (S .I I, S.2 7 26). 이 텍스트는 한편으로는 한 담가가 전략적 근거에서 특정한 의소들(여기서는 〈봉건성〉)을 이용하는 방식을 보여주며 다론 한편으로는 문화적 대립들(기독교/유대교)을 융 합시키는 화폐의 〈카니발적〉 기능을 명백히 보여 준다. 제가치의 용광로
인 시장은, 남작의 〈봉건적〉 술화에서 본 바와 같이, 절대적 대립을 재건하려는 보수적 이데올로기의 등장을 초래한다. 이에 반기를 드는 무질의 (그리고 니체의) 아이러니는 양가성의 비판적 산물이라 하겠다. 프루스트의 소설에서 비판적으로 다루어전 환담이 〈미적인〉 술화라 는 것은 단지 가상일 뿐이다. 오직 가상적으로만 그 술화들은 언어에의 〈무관심적 만족〉이라는 동기를 가지는 것이다. 실제로 그것들은 시장 사회에서 유래하는 사교적 명예욕과 개인적 에고이즘에 봉사하고 있는 데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행동과 말들은 정의상 어떤 유용성도 추구할 수 없다. 그래서 이 행동들은 儀式에 지나지 않으며 말들의 교 환은 환담 이상의 그 무엇도 아닌 것이다〉(앞의 책, S.1 4 2). 아벨 에르망 의 이와 같은 언급들을 통해서 명백히 인식할 수 있는 접은 환담이 사회적 실천과 사용가치의 생산에 대해 거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죽 환담의 공허한 조작은 생동하던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의 몰락,· 주체 의 몰락에 대한 증거인 것이다. 그것은 가장 순수한 형식의 의사소통 인바 이 말은 환담이 인식적, 미적, 윤리적 제가치와는 전혀 동떨어져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환담에서 이들 가치란 한갓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타인(들)의 경탄을 불러 일으키고자 하는 욕구라 할 수 있는 환담에 대한 욕구는 교환가치를 은폐해 주는 가상의 가치(의사 사용가치)에 대 한 욕구이기도 하다. 의사소통 일반에 대한 아도르노의 다음과 같은 서술은 사교적 사회어에 대해서도 타당한 것이다. 〈왜냐하면 의사소통 이란 정신이 유용성에 적응함으로써 스스로 상품의 대열에 편입됨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날 의미라고 불리는 것은 이러한 비본질 에 연루되어 있다.〉 (Adorno, 1970, S.1 1 5) 프루스트는 사교적 사회어의 〈대타존재성〉을 비판함으로써 의사소통적 술화의 매개 메카니즘과 한 담가의 〈기회주의〉(〈몰가치성〉)에 반기를 드는 것이다. 〈대타존재의 원 리는 겉으로는 물선주의에 거역하는 듯이 보이지만, 실은 교환의 원칙 으로서 그 속에 지배권이 감추어져 있다〉(앞의 책, S.3 3 7). 실제로 프루
스트의 소설은 ___ 특히 환담의 풍자적 모방을 통해-(베르뒤랭 씨가 사니에트에게, 게르망트 공작이 프롱드 당 史家에게 하듯-이) 타인을 희생시 키면서 자신의 우월성과 권력을 추구하는 한담가의 사교상의 술책과 의사소통적 〈 파롤 〉 사이의 관련성을 새로이 조명해 준다. (2) 양가성 과 텍 스트상호성 아주 간략히 말해서, 프루스트의 소설은 환담이라는 사회어에 의한 약호의 교란(유관성의 위기)에 대한 반응이라 할 수 있다. 사교적 의사 소통의 세계는 확고한 의미론적 대립이나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 이다. 그와 같은 사교계는 제유적으로 현대 사회의 상업화된 문화에 대한 일종의 〈 축소 모델 modele redu it 〉 (Le vi- S t rau~) 로 파악할 수 있다. 아마도 이 점이 『잃어버린』에서 형이상학적, 실존적인 공시의가 〈환 담 〉 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하는 이유일 것이다 . 사교적 사회어는 단순히 여러 집단에 특유한 언어둘 중의 하나가 아니라, 허구의 영역을 통해 실존적, 사회적 제문제를 표현하는 언어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 실에서 프루스트의 글쓰기방식과 무질, 지드, 카프카의 글쓰기방식간의 상위점이 어느 정도는 해명될 수 있다. 이 작가들의 경우에도 양가성 문제가 중심적인 것이긴 하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다른 사회언어학적 상황에서는 다른 사회어의 매개를 거치기 때문에, 그 해결을 위해서는 다른 언어적 수단이 필요한 것이다-이 경우 작가의 개인어(특히 그 의 정신)가 이 해결책의 특수한 성격을 결정하는 데 중요하다 (Z i ma, 19 so, Kap. 6 참조) . 사교 환담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 프루스트의 화자는 이 세계 내 부의 특정한 차이들(변이들)을 안정적이고도 영속적인 것으로 고찰하 려고 시도하나 실패하고 만다. 그는 빌르파리지와 게르망트, 스완과 게 르망트, 알베르티느와 오데트, 스완 가족과 그들 주변 사람들 사이에 신화적인 경계선을 긋지만, 이는 결국 일시적이고 허망한 것이었음이
드러난다. 화자는 애초에는 이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사교세계의 기호체계가 낳은 차이와 가상들에 집착한다. 그러나 이는 幻影과 가면 으로 가득한 카니발적 장면인 것이다. 화자는 이러한 환영에 빠져들어 스완과 게르망트의 세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그들은 〈멀리 떨어져서, 서로를 알지 못하고 자신의 영역에 갇힌 채로 술한 오후의 나날들을 아무런 교류도 없이〉 지낼 것이라고(E d iti on de la Pleia d e=P I, S.135). 비슷한 생각 때문에 화자는 할머니와의 대화에서도 빌르파리 지네와 게르망트네 사이의 친화성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마찬가지 로 아버지와의 대화도 스완네 가족과 그들이 사는 거리가 다른 가족과 그들의 거리와 근본적으로 구별된다(비교조차 될 수 없다)는 화자의 환 상을 제거해 주지 못한다. 그 접에 대한 만족 때문에, 또 일말의 기사도적인 충정 때문에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이 거리에 대해 말을 꺼냈다. 그러자 아버지는, 어머니나 할머니 처 럼 나의 사랑에 대 해 알지 못하셨으므로, 마침 내 이 렇게 물으셨다 . 〈도대 체 왜 끊임없이 이 거리 얘기를 하는 게냐? 거기라고 해서 별다룰 게 없잖아. 물론 그곳 사람들은 편리 한 생 활을 하지. 두발짝만 가면 보아 Bo i s 니 까 말이 야. 하지만 그런 장점을 가전 거리는 최소한 열 개는 더 될 게다 (Suche, 1, s. 545). 閑談家인 아버지는 자기 아들이 찾으려 하는 차이, 특수성, 대립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샤를뤼스 남작이나 베르뒤랭 부인도 마 찬가지다. 베르뒤랭 부인은 〈지성인〉으로서, 비지성적인 데다가 얼빠지 고 재미 없는(〈 ennu y eux 〉) 귀족들과 자신을 분리하고 차단하려 하지만 결혼을 통해 게르망트 공작부인으로 〈신분상승〉할 수 있게 되자마자 그런 모든 생각을 내버리는 것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화자는 사교적 의사소통의 영역에서 중요한 것은 가상의 차이들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자 그는 스스로 사교적 양가성의 피안에 놓여있는
참된 질적인 구별을 찾아 나선다. 〈 진정한 차별성이란, 우리의 감각 영역, 즉 그것을 동화시켜 버리는 지각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지상의 어떤 나라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사교세계에 그것이 존재 하지 않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면 도대체 다른 어떤 곳에는 존 재할까? >(S uche,1 0, S.3 7 3) 발작이나 스탕달의 소설에서는 양가성이 아 직은 근본적 인 대립들(가상 / 존재, 선 / 악, 참 / 거짓)과 약호 전체를 장악하 지 못하고 있는 반면에, 프루스트의 『잃어버린』에서는 더 이상 직접적 으로 주어전 차이란 없다. 그 소설은 의미론적 가치 구별의 探索 recher che 이지만 그것은 양가성의 심화에 따라 의심받고 있는 구별인 것이다. 발작의 『잃어버린 환상.!I에서는 존재와 가상 사이의 질적인 구별(예 컨대 바르게통 부인과 이브 세샤르, 또는 루시앙 드 뤼방프레와 다니엘 다르데 사이의 구별)이 이야기의(인과적 진행의) 출발점이자 추전력이 되는 데 반해서,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경우에는 〈질적인 구별〉(프루스 트)의 발견이 맨 뒤에 온다. 그 발견은 숱한 담화, 독백, 만남, 숙고의 성과인 것이다. 이 모두는 양가적 현실과의 대결로 파악할 수 있다. 예술, 죽 문학에서야 비로소 〈질적인 구별 dif fer ence q ual it a ti ve 〉이 모습 울 드러낸다. …… 왜냐하면 작가에게 문체란 화가에게 있어서의 색채와 마찬가지로 기 법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관찰 방식이기 때문이다. 문체는, 세계가 우리에게 현현하는 양식의 질적인 상이성을 계시하는 수단이다. 이러한 계시는 직접적 이고 무의식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죽 이 상이성은 예술이 없 었더라면 모든 개개인에게 영원한 비밀로 남게 되었을 것이다 (Suche, 3, S. 308). 문학, 즉 독창적인 글쓰기방식이야말로 특수한 것, 이와 아울러 특 수한 구별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프루스트의 세계에 대한 미학적 고찰은 〈예술을 위한 예
술 〉 의 특수한 변종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고찰은 교환가 치에 매개된 사회적 현실 속에서는 미적인 영역이야말로, ( 〈 파롤 〉 에 대 립하는) 덱스트생산, 〈글쓰기〉라는 사용가치를 보존하고 있는 극소수의 (유일한) 영역이라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루스트의 『잃 어버린』*의 마지막에 나타나는 근본적 구별은 매개된 〈 몰가치적 〉 의사 소통(사교적 사회어)과 글쓰기 Schrift 사이의 구별이다. 바로 이 결정적 인 지점에서 프루스트는 서정시인 말라르메와 일치한다. 말라르메는 〈보편적 르포르타쥬 〉 의 비판에서 출발하여 근본적으로 다의적이고 기 표적인 글쓰기방식의 차원에서 새로운 가치척도를 수립하려고 시도했 던 것이다. 이 가치척도 위에서는 다의적이고 대체할 수 없는 기표가 개념의 일반성과 互換性에 대립하게 된다.
* 『잃어버린』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말한다. 지마는 이 소설을 Suche (獨), Recherche( 佛)(찾아서)로 줄여 부르고 있다 一一역주.
(3) 양가성과 서술 구조 V 프롭 이래로 敍述學은 공통된 자질로 구성된 특정한 도식에서 출 발하게 되었다. 즉 서술학이 근거로 삼는 가정은 서술 텍스트에 나오는 모든 인물, 줄거리, 사건, 사상 등이 어느 정도 일의적으로 규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정은 특히 프롭(아주 상이한 경향의 서술학자들 C l.브레몽, T. 토도로프, A .J . 그레마스 등이 모두 그에 의존하고 있다)이 그 서 술기능을 연구했던 텍스트류(러시아 童話)가 매우 뚜렷한 의미론적, 행 역자적 대립(주인공/반주인공, 조역자/거역자)을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대립과 차이들은 동화의 인과적 진행에 있어 결정적인 것이다. 예컨대 조역자의 몰락은 주인공이 약화되는 결과를 낳는다, 거 역자의 몰락은 주인공을 강하게 한다 등등. 특정한 인물성격은 특정한 줄거리, 혹은 줄거리 가닥을 낳거나(독자에게) 그렇게 된 근거를 제시
한다. 그러기에 T. 토도로프는 자신의 논문 「구성으로서의 독서」에서 다음 과 같이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물성격은 줄거리의 원인이다〉 (To dorov, 1975, S.4 2 1) . 그는 「 시 학」 (Todorov, in : Wahl, Hrsg. 1973) 이 라는 논 문에서 인과적 연쇄를 세 종류로 구분한다. 죽 〈심 리적 인과율〉, 〈사 건들의 인과율 causalite evenementi ell e> ,〈 철학적 인과율 〉 이 그것이다. 인 과율 개념이 거시통사론에 있어 중요함은 물론이다 . 그리고 브레몽의 〈 이야기 rec it〉의 인과적 진행의 논리에 대한 연구도 수긍할 만한 것이 다 (Lo giq ue du recit, Paris, 1973 참조). 하지만 덱스트내에서 양가성의 심 화로 인해 유관성 관계가, 죽 의미론적 차이와 약호 전체가 뒤흔들리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프롭과 같이 동화라는 문화적 고정형에 의존할 수 없는 경우, 죽 주인공과 반주인공, 조역자와 거역자 사이의 구별이 蒸亂 해져서, 조역자가 거역자로 돌변하거나, 한 사람이 동시에 조역자이기도 하고 거역자이기도 한 경우는 어떨까? 이는 프루스트 뿐만 아니라 카프카의 『심판 Der Proze~ 』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여 기서 나오는 여자 인물(법원 고용인의 아내 레니)의 양가성은 그녀를 일 의적인 배열 도석에 포함시킬 수 없게 만든다. 동시에 요제프 K. 의 유 무죄 여부도 해명되지 않은 채 끝난다. 이를테면 K 는 변장한 범죄자 인가, 아니면 법원이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는 마피아단인가? 카프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프루스트의 소설에서도 개개 인물들의 성격, 행동, 말들은 일의적으로 규정될 수 없다. 환담이라는 사회어(사 교적 술수) 가 낳은 이 러 한 서 술의 제 심 급(in s t ances du recit , Greim as) 에 서의 의미론적 양가성은 『잃어버린』의 서술적 진행을 가로막고 파괴 하는 것이다. 결국 이 장에서 개전된 논의에서는 사회 구조를 텍스트 구조에 옮겨 놓는 삼단계의 변형 모델이 중요하다. 그것은 매개라는 사회학적인 개념을 양가성이라는 텍스트이론상의 개념으로 번역하고 이를 다시 서술학(서술론)의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준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는 여러 인물들의 성격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말과 행동 역시 양가적이다. 이는, R. 바르트의 용어로 옮긴다 면, 〈지표 i nd i ces 〉뿐만 아니라 〈기능 fo nc ti ons 〉까지도 모순되는 의미론 적 자질들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분위기나 감정의 묘사(지표들)도, 행동이나 사건들(기능들)도 일의적으로 규정될 수 없는 것이다 . 생 루 후작은 한편으로는 존경할 만한, 고귀한 정신적 질에 대한 지 조 있는 찬미자로 보이다가, 다른 한편으로는 야비한 모략가로 나타나 기도 한다. 생 루의 애인인 라셀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그녀는 금세 재능 있고 헌신적인 여배우(예술가)로 묘사되다가도, 다시 창녀로 간주되는 것이다. 라셀에 대한 생 루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서 술되어 있다. <…… 다른 한편 이제·그는 갑자기 좀 떨어전 곳에서 또 하나의 라셀을 보았다. 작은 매춘부의 모습을 한 그녀(제 2 의 라셀)는 라셀과 같으면서도 전혀 달라 보이는 것이었다.〉 (Suche, 5, s.212) 여기 에서 E 제 2 의 double 란 말은 각별한 의미룰 갖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카 니발과 또한 도스토옙스키의 카니발적 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 하는 이중인격자에 대한 바흐친의 이론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셀보다 더욱 양가적인 인물은 화자의 애인인 알베르티느이다. 그 녀는 남자와도 여자와도 성관계를 맺고 있는 양성적인 존재로서 『잃 어버린』에 있어 특칭적인 특수한 양가성의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죽 동성연애의 양가성 말이다. 화자는 『소돔과 고모라』(『잃어버린』의 제 4 권 —역주)의 앞부분에서 동성연애에 대해 상세히 다루면서 그것은 이 중적 존재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화자는 이 존재를 〈남성-여성 ho- mmes- fe mmes 〉이 라고 명 명 한다. 알베르티느는 근본적으로 상이 한 두 개의 세계에 소속되어 있고, 이 양자의 경쟁으로 인해 그녀의 성격을 일의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해전다. 게르망트 공작부인의 성격은 소설의 마지막까지 이중적인 채로 남 는다. 소설 초두에서, 콩브레의 생틸레르 성당에서 애정을 말해주는 듯 한 이 귀족 부인의 눈길을 어린 마르셀은 에로틱한 사랑의 표시라고 생각한댜 훗날에야 그는 자신의 견해를 수정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사랑의 표시라고 생 각했 던 것이 단지 女主의 봉건적 의례에 따른 〈호 의 〉 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음을 〈 깨닫는다 〉 . 「되찾은 시간」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그럼에도 최초의 직관적인 평가가 유일하게 옳은 것은 아 니 었는가고 그는 자문한다. 소설의 주요인물들이 사랑과 교만함, 명망과 파령치함, 신뢰성과 사 기성,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을 한 몸에 지니고 있는 것과 유사하 게도 화자 역시 重義的 이며 多義的인 존재이다. 화자인 〈자아〉와 술화적 서술적 주체의 분열이 주제로 다루어전 것으로는 「도망한 여인 La Fu- giti v e 」에 나오는 다음의 삽화가 잘 알려져 있다. 〈 나는 단일한 인간이 아니다. 오히려 한 무리의 사람들, 다양한 존재들로 이루어전 군대이다. 그들 중에는 고뇌에 빠진 사람도, 냉담한 사람도, 질투심에 불타는 사 람도 있다. 질투하는 자들 중에서도 단지 한 여인에 얽힌 질투심만을 품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는 것이다 〉 (Suche, 11, S.105). 이 문장을 통해 서 허구 텍스트내에서 양가성과 행동적 심급으로서의 인물(주체) 사이 에 존재하는 연관이 명백해진다. 죽 줄거리의 전행은 주인공의 성격으 로부터 인과적으로 도출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성격은 상호배제적 인 줄거리를 동시에 허용하는 까닭이다. 이와 아울러 한 인물의 행동(예컨대 화자의 행동)은 다른 인물들의 성 격상의 양가성으로 인해 한충 더 곤란을 겪게 된다. 그리하여 화자는 알베르티느의 간계에 대응하기가 어렵게 느껴진다. 〈이 순간 알베르티 느의 두 가지 성격상의 특징이 내 머리에 떠올랐다. 하나는 나를 위로 해 주려 하고 다른 하나는 나를 완전히 파멸시키려 하고 있었다〉 (Su che : 10, S.5 2 7)(P III,S.390). 〈성격적 특칭이 행동(줄거리)의 원인이기는 하다.〉 하지만 알베르티느는 어떻게 행동했던가? 게다가 도대체 그녀 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_그녀 자신이 주장하듯 정숙한 연인인 가, 아니면 레즈비언의 취향을 지닌 不貞한 여인인가? 〈이야기 rec it〉를 일관성 있게 집약할 책임을 맡고 있는 화자는 이 물음에 일의적인 해답을 제시하는 데 실패한다. 서로 경쟁관계에 있는
상이한 가설들은 그저 가능한 해답으로 그칠 뿐이며, 서술적 구조는 평행선을 달리는 몇 가지 가능한 이야기들로 해체되는 경향을 보인다. 성격상의 다의성과 서술 통사론의 붕괴가 얼마나 밀접하게 관련된 현 상인가 하는 점은 「갇힌 여인 La Pr i sonn i ere 」에서 克明하게 드러난다. 여기에서는 화자가 관찰하고 꿈꾸며 열망하는 대상인 알베르티느의 불투명한 형상이 가능한 무수한 이야기들의 동기가 되는데, 이 이야기 들은 그 대상의 주위를 선회하긴 하지만 이와 동일시될 수는 없는 것 이다. 〈왜냐하면 나 자신의 마음 속에서 벌어지는 알베르티느의 모든 행동은 한갓 가능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 든 존재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말하자면 寫本 따위에 불과한 것 이 다〉 (Suche, 10, S.339) (P III , 252) . 알지 못했던 연인의 새로운 면모를 드러나게 해주는 모든 새로운 인식은 동시에 새로운 〈가능한 이야기〉를 낳는 새로운 비밀을 발굴해 내는 셈이다. 〈알베르티느가 그 당시 숙모에게, 매일 쇼몽 언덕에 간 다고 한 말이 거짓말이었을까, 아니면 훗날 나에게 이 지역을 알지 못 한다고 한 것이 거짓말아었을까 ?.>( Suche,1 0, S.525)(P III, 389). 쇼몽 공 원에 알베르티느와 앙드레가 함께 있었다. 이 새로운 현실이 일으키는 동성애의 共示義 때문에 화자는 경악한다. 그러나 이와 아울러(현실을 동사론적으로 파악하려는 시도, 무질적 의미에서 〈에세이〉인) 이제까지의 모 든 〈이야기〉들을 의심스럽게 만드는, 또는 최소한 전혀 새로운 조명하 에서 드러나게 하는 새로운 줄거리 진행이 가능하게 된다. 알베르티느와의 환담에서 새로운 발견을 할 때마다 그것은 하나의 가능한 이야기의 출발점이 된다. 그러나 새로운 疑似 고백이 앞의 것을 대체하고 사교계의 배우들이 가면을 바꾸어 쓰는 순간 이 이야기는 다시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되어 버린다. 결정적인 지점에서 화자는 자 신의 서술 구성 전부를, 즉 풍부한 내용의 〈알베르티느-소설〉을 무효 로 간주한다. 왜냐하면 환당중에 그는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배우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 배우는 레아였다.
〈 레아와 삼주일간 여행갔던 일을 숨긴 게 잘못이란 건 나도 안정해요 . 하 지만 그건 당신을 잘 알지 못하던 때의 일이예요 .〉 __. 〈 발베크에서 만나기 전에 ? 〉 ――〈예, 두번째 발베크 여행 전에요.〉 아침까지도 그녀는 나에게 레 아 를 알지 못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 나는 수만 시간을 들여 써온 소설 전 체가 한 순간에 화염 속에 던져지는 것을 보았다 (Suche, 10, S.4 7 4)(P 111, 350). 소설 속에서 발설된 말, 죽 〈 파롤 〉 의 관리자인 화자는 바로 이 〈파 롤 〉 의 양가성 때문에 파산하고 만다. 그것은 곧 환담으로서, 어떤 일 의적인 행위자나 행역자도 받아둘이지 않기 때문이다. 허용되는 것은 오직 가면뿐이다. 프루스트의 화자는 소설의 마지막에서 스탕달의 〈전 지적 화자 narra t eur inf o r me> (P i ll, 551) 와의 만남을 고대한다 . 〈그러한 화자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ma i s nous ne le rencontr o ns jam ais ) > (P 1 11, S.5 5 1). 다른 어디에서도 독자가 소설의 위기를, 죽 통합체원리와 자아 원리 의 위기를 여기서보다 더 분명하게 감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양가적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성격과 줄거리진행의 붕괴는 巨視統辭論의 붕괴 룰 초래하는 것이다 . 죽 거시통사론은 이미 『잃어버린』의 처음부터, 그리고 「스완의 사랑 Un amour de Swann 」에서는 좀더 심각한 정도로, 경쟁하는 〈가능한〉 이야기들로 해체된다. 그러나 이러한 통사론적인, 서술적 인 원리들의 붕괴로부터, 전통적(〈발작류의〉) 소설의 통합체적 구성을 비판하는 새로운 연상적이고 병렬적인..,글쓰기방식이 생성된다. 이러한 글쓰기방식의 관점에서 볼 때, 파괴적인 양가성은 새로운 양식 의 텍스트생산의 부정적인 출발점인 것이다. 현대의 전위 작가들(리카 르두, 뷔토르, 솔레르)에 의해 더욱 발전된 이 텍스트 생산양식의 추전력 은 연상과 다의성을 향한 노력이다.
(4) 계열체적 글쓰기 : 〈파롤〉에서 〈글쓰기 ecr it ure 〉로 〈이야기의 술화〉에서 G. 쥬네트가 『잃어버린.n에서 하나 이상의, 여러 개의 시작이 존재한다고 지적하고 이를 이야기의 〈제자리 걷기〉 기법 으로 해석한 것은 전적으로 울바른 파악이다 (Gene tt e, 1972, S.88). 그러나 그와 같은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진 시작(〈 ouve rt ure a str u ktu r e komp - lexe 〉)이 서술적 산문의 전통적 목록에 포함되어 있으며 이미 『일리아 드』에서도 발견되는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타당하다 할 수 없다. 그런 주장은 비사회학적일 뿐만 아니라 반사회학적이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예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 서술적 〈파롤〉이 스스로 통합되고 인과적 진행을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는가 하는 물음을 제기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즉 역사적이며 사회언어학적인 문제가 전적으 로 그것의 기술적인 구성요소에 환원되고 마는 것이다. 쥬네트의 서술 학은 규범의 파괴로서의 예술 기법(] . 무카로프스키) 그 자체가 하나의 사회적 사실이라는 프라하 언어학파의 인식을 무시하고 전적인 형식 주의로 전락한다. 프루스트의 계열체적인 글쓰기방식은 단순히 하나의 가능한 기법으로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제약된 통합체적 서술적 구 조의 위기에 대한 응답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그러나 쥬네트는 이 점을 거의 다루지 않는다. 떨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인간 희극』과 같은 의미의 연작 소설 도 아니고, 『잃어버린 환상』이나 스탕달의 『赤과 黑』 또는 괴테의 교 양소설에 가까운 전통적 유형의 소설도 아니다. 왜냐하면 이미 플로베 르의 『감정 교육』에서 눈에 띄기 시작한 서술적 인과율의 붕괴는 사 회의미론적 양가성의 심화와 함께 가속화되어 비인과적이고 비통사론 적인 새로운 구성원리를 추구하는 새로운 글쓰기방식을 낳았기 때문 이다. 철학체계의 위기가 청년헤겔주의, 궁극적으로는 〈비판이론〉의 〈체계적 사유〉에 대한 비판을 불러일으켰듯이 서술 통합체의 위기로 부터 그것에 대한 비판이 일어났던 것이다.
프루스트에게서 최초로 이러한 비판을 읽어냈던 사람은 아마 아도 르노일 것이다. 〈 프루스트의 경우 세부에 대한 전체의 관계는 건축술 적인 전체 계획이 특수자들에 의해 완성될 때 발생하는 관계와는 다 르다. 오히려 그 반대로 프두스트는 세부를 포섭하는, 위로부터 덮씌우 는 형식의 강압적인 비전리에 반기를 든 것이다 〉 (Adorno, 1961, S.9 5 ). 서 술 통합체의 위기가 닥치고서야 비로소 그것에 대한 비판이 가등해졌 다. P.D. 위에 Hue t의 소설에 대한 논문을 보면, 이 덱스트류가 17 세기 에는(또는 19 세기 후 반까지도) 전적으로 위계적인(종속적인) 구조 , 죽 본 줄거리의 개개 요소둘과 곁줄거리들이 하나의 지배적인 통사론적 단위 속에 포섭되는 체계로 이해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 …… 그리하여 다음의 결론이 도출된다 / 소설의 머리부분이라고도 할 / 고귀 한 행위나 줄거리는 / 단일하여야 하고 / 다른 부분들에 비하여 / 돋보여야 한다 / 그리고 부속하는 행위와 줄거리들은 / 四股에 해당한다 할 수 있으므로 / 이 머 리를 따라야 하고 / 미와 숭고함에 있어 그것을 앞질러서는 안되며 / 그것을 장 석 하고 / 그것에 복종하여 다론 모든 부속물과 함께 한 동아리가 되 어야 한다 / 그러지 않으면 소설이란 머리가 여럿 달린 시체요 / 괴물이며 악취를 풍기게 될 것이다 (Hue t, 1966, S.1 2 7). 위에로부터 프루스트에 이르는 소설의 발전은 다음과 같은 상호보 완적인 국면들을 시사하고 있다. 양가성이 심화됨에 따라 서술통사론 ( 〈 이야기 rec it 〉 의 인과적이고 위계적인 질서)이 허물어지고 글쓰기방식은 계열체적이고 병렬적인 새로운 텍스트의 일관성을 산출해 내는 것이 다 . 이러한 일관성은 인과적 진행보다는 오히려 의미론적(은유와 환유를 통한) 변형과 발전에 의해 유지된다 . 그러므로 『 잃어버린』은 새로운 의미론적(계열체적) 구성원리가 전통적 이야기의 인과적 진행을 점차적 으로 대체해 가는 과정에서 나온 과도적 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 이다.
이는 결코 프루스트의 소설 이 더이상 이야기로 (〈 re c it 〉 로, 쥬 네트) 간 주될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이 단편적 소설에서 통합체의 잔해를 다 시 모아 제시해 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 하지만 『잃어버린』 이 왜 소설의 역사에서 특별한 사건으로 취급되는가의 물음에 답하려 면 이제까지의 서술학의 범주들로는 불충분하다. 전통적 〈 이야기 〉 를 보는 관점으로 『 잃어버린 』 을 관 찰 하면 그것은 프루 스트 가 경탄했던 『감정 교육 』 이 이미 그러했 듯 이 덜 구조화되고 비인과 적 이며 전혀 일 관성이 없는 소설로 보일 것이다. 중요한 인물들, 예컨대 베르마 , 코타 르 교수, 쉐르바토프 공주 같은 이들의 죽음조차 슬쩍 지나치면서 언 급될 뿐이고 이후의 〈이야기 〉 전개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 . 어떤 인물들은 죽고 나서도 나중에 다시 등장하기도 한다 . 그러므로 이에 대해 텍스트사회학은 J.-Y. 타디에의 다음과 감은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들의 죽음은 매우 신중하게 다루어졌어야 했다 ! >(
정도까지는 타당한 말이다 (Gr i maud, 1978, S.98). 이러한 몽환적인 것에 대한 애착으로부터, 프루스트가 『 감정 교육』에 대해 그토록 경탄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된다. 프루스트의 견해에 따르면 그것은 逸話的인 것에서 해방되어 〈 음악으로 이행해 간 〉 최초의 소설들 중의 하나인 것이다 . 〈 풀로베르는 소설을 일화라는 기생적 존재로부터 해방 시킨 최초의 인물이다 〉(〈 Flaube rt le pre mi er …… les debarasse du par asti- sme des anecdote s >) (P roust, CSB, 1971, S.595) . 『잃 어버린』은 『 감정 교육』보다도 훨씬 더 심하게 환유적 대체와 은 유적 변형에 의존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잃어버린』에서는, 중요한 역 할을 담당하는 의미소적 동위체가 이것에서 저것으로 대체됨으로써, 소설이 지니는 전체적인 문제성의 새로운 국면이 드러난다. 하지만 유 감스럽게도 이 자리에서 가장 주요한 주제상의 동위체들, 즉 〈사교성〉, 〈 사랑 〉 , 〈 여행 〉, 〈 글쓰기 〉 등과 같은 동위체들의 전개 양상을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Z i ma, 1980, Kap .5 참조). 다만 〈 글쓰기〉 동위체 내부에 서 일어나는 의미론적 대체과정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명백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프루스트는 플로베르에 대한 논문에서 자신의 소설이 지니는 〈엄격 한, 그러나 숨겨진 〉 구성에 관해 지적한다. 또한 그의 말은 예술적 진 리 , 죽 궁국적인 대립의 추구에 대한 암시를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추구는 〈 글쓰기 〉 라는 동위체의 발전으로 표현된다고 볼 수 있울 것이 다. 그것은 제유(환유)적인 比'兪의 지배를 받는 세 단계로 나누어진다. 그 첫번째 단계는 「콩브레」 章으로서, 그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마르 텡빌르 종루 〉 의 삽화는 〈전체를 대표하는 부분〉이 되어 「되찾은 시간」 의 마지막에서의 뜻밖의 추억(무의식)의 발견을 예고하고 있다. 이어지는 「스완의 사랑」이라는 독립적인 텍스트에서는 한편으로 르〈 사티랑느〉-의텍 스동트위(체「갇가힌 지 배여인적」인(제 5의 권미 —론—적 역 주구),조 로「서도망 한두 개여인의」 (방제대 6 권한 _ _알 베역 주))를 환유적으로 암시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동위체 〈글쓰기〉는
동위체 〈 사랑 〉 에 억압당하고 대체된다 . 즉 스완은 사랑을 예술과 〈 혼 동하는 〉 것이다 . 이러한 의미론적 맥락만이 「스완의 사랑」이라는 텍스 트를 전체 텍스트의 튤 속에서 기능적으로, 위상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 왜냐하면 이 텍스트에는 그 앞장(「콩브레」)이나 그 다음 장(「고장의 이름들 : 이름」)과의 연결관계를 갖는 어떤 줄거리 가닥도 존 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완의 집 쪽으로」의 결말 부분을 이루는 텍스트인 「고장의 이름 들 : 이름」에서는 동위체 〈 글쓰기 〉 가 〈 이름 le nom 〉 이라는 개념 속에서 제유적으로 다시 나타난다. 이 과정이 커다란 중요성을 지니는 까닭은 동위체 〈글쓰기〉의 재현을 통해서 「콩브레」의 구조가 더욱 확대되고 더 포괄적인 맥락에서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계열체적 글쓰기방식의 제유적 표현으로서( 〈 이름 〉 은 동위체 〈 글쓰기 〉 의 의미소에 포함된다 ) 「고장 의 이름들 : 이름」은 「콩브레」에서의 〈 마르텡빌르의 종루 〉 에 대한 記 述, 그리고 「콩브레」의 마지막 부분 전체에 환유적으로 상응하는 것이 다. 동시에 이 텍스트는 이미 콩브레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러했듯이 멀어버린 』 의 마지막 단계, 즉 「되찾은 시간」(제 7 권 __ 역주) , 그중에서 도 특히 맨끝 부분을 예고하고 있다 . 그러므로 「콩브레」는 제 1 권의 ( r 스완의 세계』의) 〈전체를 대표하는 부분〉, 더 나아가서 소설 전체를 대표하는 부분으로 간주할 수 있으며 『스완의 집 쪽으로 』 (제 1 권-역 주)는 『잃어버린 』 의 일종의 〈모델적 이야기〉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왜 『스완의 세계』와 같은 텍스트가 독자적인 단위로 출간될 수 있었는가 하는 의문도 이러한 맥락에서 명백히 해명된다. 중요한 것은 삽화를 인과적 진행에 끼워 넣는 것이 아니라(『잃어버린 환상』의 한 장과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전체를 대표하는 부분〉으로서 다른 환유적 서술들과 함께 덱스트 모자이크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다. 프루스트의 덱스트에서 동위체들의 전개가 어떤 특정한 의미론적 구조 안에서(말하자면 동위체 〈글쓰기〉 내부에서) 일어나는 - 환유적 과정
이라고 한다면, 의미론적인 변환은 그 은유적인 변형을 통해 본질적인 변화 를 겪 게 되는 이 질적 인 제구조에 관련된다(쥬네트가 이미 r 프루스트 에 있어서의 환유』에서 지적한 바와 같 이 이 경우에 은유와 환유는 자주 서로의 경계 선 을 넘나든다). 『 잃어버린』 전체는 현상들의 근본적인 양가성을 통 해 가능해전 일련의 의미론적 변형들로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컨대 〈 에로틱 〉 이란 동위체에 속하는 의미소들은 사교성 의 동위 체 로 읽 혀 질 수 있고 후자는 다시 〈 글쓰기 방식 ecr it ure 〉 으로 읽 혀질 수 있는 것이다. 게르망트라는 〈 이름 〉 은 에로틱한 맥락에서도 또 한 사교적인 혹은 〈 예술적인 〉 맥락에서도 읽혀질 수 있다. 역으로 〈글 쓰 기 〉 에 속하는 의미소들도 〈 사교적 〉 이거나 〈 에로틱 〉 한 것으로(말하자 면 스 완이 생각하는 의미에서) 해석될 수 있다. 화자는 개개의 의미론적 구조들을 분리하여 세계를 질적인 관점에서 정돈하려고 시도하지만 이는 실패로 돌아가고만다. ( 〈 에로틱 〉 의 동위체 안에서) 샤를뤼스 남작이 체현하고 있는 〈 남성적인 것 〉 과 〈 여성적인 것 〉 사이의 구별이 무상해 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 사교 〉 의 동위체 안에서도 〈부르주아적인 것〉 과 〈 귀족적인 것 〉 사이의 구별은 허물어진다. 베르뒤랭 부인은 게르망 트 공작부인이 되며 , 질베르트는 화자에게 스완家와 게르망트 家 , 즉 이 두 신화적인 〈 곳 〉 의 지리적인 인접성을 깨우쳐 준다. 〈남성적인 것〉은 〈여성적인 것 〉 이며 〈 귀족적인 것 〉 은 〈 부르주아적인 것〉이고, 〈예술〉 (베르뒤랭 부인의 예술)은 〈 속물주의 〉 인 것이다. 의미론적 • 이데올로기적 과정으로서 모든 대립을 의심스러운 것으 로 만드는 동위체의 변형은 『되찾은 시간』에서 마침내 정지한다. 작가 가 된 화자는 거기에서 유일하게 가치 있고 항구적인 대립을 발견하는 것이다 . 그것은 의사소통적 〈파롤〉(인간 상호간의 모든 관계, 예컨대 〈에로 스 〉 나 〈 사교성 〉 은 이에 속한다)과 〈글쓰기〉, 죽 문학적 생산으로서의 〈예 술〉 사이의 구별이다. 이원론적인 신화에 근거를 마련해 주는 동시에 근본적으로는 시민적 예술관을 고착화시키는 데 기여하는 이러한 발 견은 〈사교성〉, 〈에로스〉, 〈여행〉에 속하는 모든 의미소들을 〈글쓰기〉
의 동위체에 입각해서 읽고 재해석하도록 만든다. 게르망트라는 〈이 롬〉은 순수하게 글쓰기와 관련된 의미만을 지니게 되고 더 이상 사회 적 〈의사소통〉의 영역에 두사되지 않는다. 이와 아울러 소설의 대화적 인 구조(소설의 〈다성성〉)는 〈글쓰기〉의 독백, 즉 예술의 〈최후의 심판 Jug e m ent dern i er 〉에 자리를 비켜 준다. 이 궁극적인 대립과 사회학적 차원에서 상응하는 것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사이의 대립이다. 작가는 교환가치에 의해 매개된 〈파롤〉의 양가성을 거부하면서, 글쓰기방석이 시장법칙의 지배를 받는 사회 속 에서의 사용가치의 생산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프루스트가 어떻게 다의적이고 고유한 기표인 이름을 교환가능한 개념, 죽 〈단어〉에 대립 시켰는가에 대해서는 『문학사회학 비판』(「미메시스적 술화」)이라는 나 의 저서에서 지적한 대로다. 동시에 그는 무의식(뜻밖의 추억과 몽환적인 대상들)과 결합된 〈글쓰 기〉를 자신의 소설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 점에서 그는 초현실주의의 선구자일 뿐만 아니라 〈누보 로망〉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프루스트 소 설에 대한 J리카르두의 다음과 같은 논평은 타당한 것이다. 〈프루스트 의 소설은 …… 모든 측면에서 말의 생산적인 역할을 지향한다. 이는 말이 지니고 있는 순전히 유용적인 성격에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R i- cardou, 1968, S.11). 프루스트의 소설에서는 무의식과 연상적인 것으로 흐르는 미메시스 적이고 계열체적인 덱스트생산 그 자체가 주제화되어 있다. 이 사실은 「고장의 이름들 : 이름」의 몇몇 문장에서 드러난다. 『잃어버린』에 매우 특칭적인 계열체적 구조를 가진 이 문장들을 통해서 화자는 글쓰기방 석의 연상적인 메카니즘에 대해 숙고하고 있는 것이다. 파르마(파르므) 呼 이름에 대한 묘사 Beschre i bun g는 프루스트의 술화의 연상적이고 자기반사적인 특성을 명백히 나타낸다. 〈파르므의 수도원〉을 읽고 나서 가장 가보고 싶은 도시 중의 하나가 된
파르므의 이름이 내게는 조밀하고 반들반들한 연보라빛을 띤, 그리고 보드라 운 것으로 느껴져서, 내가 묵게 될지도 모르는 파르므의 어느 집에 대한 얘 기가 나오기만 해도 나는 이음새도 없이 반들반들하고 조밀한 연보라빛을 띤, 보드라운 느낌아 드는 집에 묵게 되리라는 기쁨을 맛보았다. 하지만 그런 집 은 이탈리아의 어느 도시의 가옥과도 유사점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아무런 억양도 없는 파르므라는 이름의 묵직한 철자와, 스탕달풍의 우수와 오랑캐 꽃잎의 광택의 도움으로 그 집을 상상하였던 것이다 (Suche, 1, S.5 1 3). 위의 문장이 이렇게 늘어난 것은 엄밀한 개념적 정의를 하기 위한 철학적 노력 때문이 아니라, 은유와 환유의 도움으로 〈파르마〉에 대한 共示義를 전개시키는, 글쓰기방식의 연상적이고 계열체적인 필법 때문 이다(원문은 하나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번역에 서는 독립된 몇 개의 문장으로 나누었다- 역주). 이어지는 종속문들은 말 하자면 다음과 같은 연상의 사슬에 따르고 있다 : 〈파르므의 이름〉, 〈 파르므의 수도원〉, 〈조밀하고 반들반들한〉, 〈연보라빛을 띤〉, 〈파르므 의 어느 집〉, 〈이음새도 없이 반들반들한 집〉, 〈연보라빛〉, 〈아무런 억 양도 없는 묵직한 철자〉, 〈스탕달풍의 憂慈〉, 〈오랑캐 꽃잎의 광택〉(프 루스트 문장에 대한 좀더 근본적인 설명은 앞의 책 『문학 사회학 비판』과 특히 J. Mi lly , La Phrase de Proust, Paris 1975 f를 보라). 프루스트의 소설에서 계열체적 원리를 통해 크게 확장되어 그 통합 체적 구조 자체가 의문시되는 것은 개개 문장뿐만이 아니다(『잃어버린』 에서는 그 〈무한성〉 때문에 통합체라기보다는 계열체적 나열에 가까워지는 문 장들이 있다). 『잃어버린』 전체가 통사론적(서술적) 인과율과 계열체적 나열 사이의 긴장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작가 자신에 의해서 주제화되어 있다. 즉 〈아무런 억양도 없는 파르마라는 이름의 철자〉가 주는 〈표상〉에 대해 숙고하는 「고장의 이름 : 이름」에서 말고도 「콩브 레」, 「갇힌 여인」, 「되찾은 시간」의 여러 곳에서 계열체적 구성원리가, 거의 이야기되지 않는 이야기의 주제가 되는 것이다. 「콩브레」의 마지
막 부분에서 화자가 말하는 〈 회상의 결합 assoc i a ti on de souven i rs 〉 은 이 단편적 소설의 무구조성을 확증해 주기는 커녕 오히려 새로운 의미론 적 구성원리를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3. 로버트 무질의 『특성 없는 인간』에 대하여 이제까지의 문학사회학과 마찬가지로 텍스트사회학 역시 집단적(사 회적) 제문제에서 출발하여 특정한 텍스트류들과 개별 텍스트들의 공 통점을 제시하는 과업을 방기할 수는 없다. 그 때문에 덱스트사회학은 도석주의의 위험에 빠지게 된다. 많은 문학사회학적 연구와 기호학적 연구는 무질, 카프카, 프루스트, 조이스와 같은 작가들을 (개인주의, 혹은 소설의)위기의 증인들로 간주하기는 하지만 , 그 근본적인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글쓰기방식, 작품들이 지니는 공통접을 사회언어학적 인 툴 속에서 규명하지는 못하고 있는 듯하다. 헤겔과 루카치의 이론의 한계내에 머물고 있는 동구권의 규범적 미 학은 서술구조의 붕괴를 어령풋이 인식하고는 있지만 이를 덱스트 연 관 속에서 해명해주지는 못한다. 세계에 대한 인식의 선도자로 기능할 수 있는 유일한 모델인 〈사건과 그 경과 대신에 〉 프루스트, 제임스 조 이스, 로브-그리예 등은 〈사고와 연상의 흐름을 흐릿하게 〉 제시하고 있을 따름이라고 E. 프라흐트와 W . 노이베르트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그들의 저서 (1970) 에서 기술하고 있다 (Schul t e-Sasse, 1976, S . 165 에서 인용) . 그들의 이데올로기적 述話에서는 그 의미론적, 통사론적 강제 메 카니즘이 찾아 헤매는 주체성의 전개를 용납할 줄 모르기 때문에 새로운 글쓰기방식의 문제, 새로운 일관성의 문제는 아예 제기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카프카, 무질, 조이스, 프루스트 등은 후기 자본주의의 데카당스로 낙인 찍히게 된다 (1973 년 《의미와 형식》 25 호에
실린 B. 수취코프의 프루스트를 위한 호의적인 변호론조차도 〈 사회주 의의 리얼리즘 〉 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그러나 중요한 문제는 프루스트와 무질과 같은 두 작가가 어떤 점 에서 서로 근본적으로 다른가, 또한 어떻게 해서 그들의 근친성이 바로 이 차이점을 통해처 강화되는가 하는 물음일 것이다. 무질의 두번째 소설 역시 『잃어버린』과 마찬가지로 교환가치에 의한 매개에 대한 반 응이다. 그러나 그가 우선적으로 다룬 것은 환담과 같은 몰가치적이고 무관심한 사회어가 아니라 그 반대자, 즉 이데올로기였다. 그것은 교환 가치의 〈 허무주의 〉 를 극복해낸다고 하는 이원론적 신화로서, 의마론적 대립쌍둘을 수립함으로써 시장사회의 가치위기에 반응한다(대립자를 포 괄하는 신 coin c id e nti a o pp os it or i um 까지도 허용되는 고대 신화의 양가적 구조에 관해서는 미르세아 엘리아데가 상론한 바 있다 (El i ade, 1964 참조) . 현대 산업 사회에서 이데올로기적 신화가 이원론적 구조를 갖는 것은 아마도 대중을 현실 의 혹 은 허구의 적들과의 싸움에 동원하는 데 유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 (1) 사회언어학적 상황 : 이데올로기와 교환가치 이원론적 신화인 근대의 이데올로기가 시장법칙에 대하여 절대적으 로 대립하는 듯이 보이는 것은 단지 가상일 뿐이다. 이데올로기적 술 화는 특정한 집단의 아익과 권력욕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자의적으로 의미론적 구별을 설정하기 때문에 언어(전리)에 대하여 순전히 도구적 이고 공리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상업광고의 은어, 사교 적 〈 파롤 〉 과 아주 유사해진다 . 이데올로기적 술화는 스스로 절대적 전 리를(절대적 의미론적인 분리를) 소유하는 듯이 가장한다는 점에서만 후 자와 구별된다. 그러나 좀더 자세히 관찰해 보면 이 진리라는 것도 자의적이고 상 대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리하여 예컨대 Ch. 모라스가 두기꾼과 〈금권주의자〉들로부터 안전한 세습 군주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혈통〉
과 〈 돈 〉 ( 〈 le Sang > e t 〈 !'Ar g en t 〉 )을 구별한 것도, 세기전환기의 유럽에서 귀족과 군주들이 (미국의)백만장자들과 유착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밝 혀지고 나면, 단순한 선전술책이었음이 죽각 입증되는 것이다. 〈혈통〉 과 〈돈〉은 신화의 단위들이 되며 이를 엄격히 대립시키는 것은 단지 특정한 지배형태를 정당화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 환가치에 의한 지배 메카니즘의 매개에 대한 아도르노의 다음과 같은 서술의 의미가 명백해전다. 〈 대타 존재의 원리는 겉으로는 물신주의에 거역하는 듯이 보이지만 실은 교환의 원칙이며 그 속에는 지배권이 감추어져 있다. 그러한 원칙에 순응하지 않는 것만이 지배관계가 없는 상태를 대변해준다. 또한 무용한 것만이 위축된 사용가치를 대변해 준 다〉 (Adorno , 1970, S.3 3 7). 이데올로기적 사회어는 환담과 광고의 의미론 적인 무관심성을 철저히 배격하고 유일한 진리를 추구하는 듯이 가장 하지만, 이 역시 사교적 〈 파롤 〉 과 마찬가지로 〈 대타존재 〉 의 원리 , 즉 의적 규정에 복종하고 있는 것이다 . 그것이 〈 도구적 이성 〉 (호르크하이 머)에 맹종하며 언어를(의미론적 유관성을) 전적으로 수단시한다는 사실 에서 지배권력과 교환가치 사이의 연관성이 명백해진다. 이데올로기는 언어를 모든 차원에서(어휘적, 의미론적, 통사론적 차원에 서) 지배의 목적에 이용하기 때문에, 결국 모든 의미론적인 구별들을 믿을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민주주의 / 독재, 자유 / 부자유, 자본주의 / 사회주의, 정의 / 불의와 같은 대립둘은 너무도 남용되어서 그 말의 사 용은 단호한 거절의 표시만으로도 기각될 수 있는 공허한 문구를 낳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데올로기적 술화는 절대적 대립을 선포함으로써 도리어 가치의 위기를 일으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셈이다 . 그것 은 언어를 오용하므로(아무리 고집스레 부인한다 해도) 광고나 환담과 동 일한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죽 자신이 사용하는 의미론적 단위들의 가치를 박탈하는 것이다. 프루스트와는 달리 무질이 우선적으로 대결하는 것은 환담의 물가 치성이나 의미에 대한 적대성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언어사용이 가
져온 귀결이다 . 이때 그는 프루스트와 마찬가지로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댜 독단적으로 설정된 대립들은 단지 가상일 뿐이다. 왜냐하면 A 는 동시에 A 의 반대이기도 하며, 선과 악은 서로의 경계선을 넘나들 고, 고상한 것은 비천한 것으로, 카니발적으로 역전되기 때문이다. 『특 성 없는 인간』은, 언어를 오용함으로써 실존적 토대라고도 할 의미론 적 약호(유관성)를 교란시키는 이데올로기화된 사회어에 대한 파로디 로 읽혀질 수 있다. 무질의 주된 관심사는 이데올로기적 술화를 비판 하는 것이지 프루스트처럼 〈 참된 〉, 〈 타당한 〉 차이룰 추구하는 것이 아 니다. 그러므로 『특성 없는 인간』에서 (아이러니에서 비롯되는)양가성은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반면에 『잃어버린』에서의 양가 성은 부정적이고, 〈쓰 디쓴 전실 〉 로 나타나 화자의 천진난만한 환상을 파괴하며 「되찾은 시간」에서야 비로소 신화적으로 지양되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특성 없는 인간』은 이데올로기적 수사법의 가장 중요 한 변형태들과 대결하고 있다. 작가 스스로가 자신의 소설과 그 텍스 트상호적 메카니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기독교적, 사회주의 적, 국수주의적 이념의 그룹들이 발언의 기회를 얻는다〉 (GW 5, 1937)_ 무질의 수많은 경구와 전기적인 메모들을 보면, 빈번히 자신의 논거 로 삼았던 니체와 유사하게 그 역시 이데올로기적, 형이상학적 술화의 이원론적 신화에 맞서서 의미론적 양가성(매개)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무솔리니의 기회주의, 의견상 결합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개의 해결책 사이에서 그가 동요한 사실에 대해 무질은 다음과 같 이 논평한다. 〈이 시대의 이데올로기적 鑄亂과 그러한 착란의 중대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24 년 5 월 D.N. R . 에 실린 무솔리니의 변모 과정을 참조하라. 그는 실제로 상이한 양 극단 사이를 갈팡질팡했던 것이다〉 (GW 7, S.76). 무솔리니의 경우 대립자들의 통합으로 표현되는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착란〉에 대하여는 약 20 년 뒤에 『奧義 Arcane 17 』에서 앙 드레 브레통이 다음과 같이 언어적 차원에서 기술하고 있다.
옳음, 정의, 자유 등과 같이 가치를 나타내는 단어들은 자의적이고 모순적 인 의미들을 지니게 되었다 . 사람들은 여러 방면에서 그 말들의 탄력성을 계 산에 넣고 이를 임의적인 의미로 환원시키거나 확장하거나 마침내는 그 본래 의 뜻에 정반대되는 뜻을 부여하고 말 때까지 두기 행각을 벌였던 것이다 (Breto n , 1965, S.7 6 ) . 브레통의 이와 같은 이데올로기비판적인 논평은 결코 무질과 무관 하지 않다. 무질아 보여준 것은 그 자신이 처했던 사회언어학적 상황 에서 양가성에 의해 언어용법이 지배당하는 양상과 이데올로기에 의해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진 대립자들이 서로의 경계를 넘나드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유감스럽게도 무질의 에세이, 강연, 경구들에 나타 난 양가성의 문제를 상론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나는 몇 가지만을 시 사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무질의 논문 「작가의 인식 개요」에서는 양가성이 중점적으로 다루 어지고 있다. 거기서 사랑과 우정이란- 작가의 눈으로 볼 때――증 오와 결부되어 있다. 작가란 〈반세대 먼저 죽게 될 어른들에 대해 어린 아이가 느끼는 저 비겁한 우월감을 가지고 등장인물들을 嫌惡하는 자 이다. 그는 우정과 사랑 속에서조차 증오의 숨결을 느끼는데, 이야말로 모든 존재를 여타의 존재로부터 지켜주고 고통스러울 정도로 허무한 개체성의 비밀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GW s, S.1026). 양가성은 술화의 주체, 죽 언어의 주체로서 감정적인 측면과 욕구를 지닌 개인을 파멸시킬 뿐만 아니라 윤리의 영역 전체도 뒤흔들어 놓 는다는 사실이 계속되는 무질의 논의의 전개 속에서 드러난다. 〈아무 윤리적인 주장이나 예로 들어 보겠다 . ‘어떤 신념이라 할지라도 이를 위해 자기자신을 희생하거나 죽음의 유혹에 빠져 들어서는 안된다. ……' 윤리적 체험의 칭표에 능통하고 이를 잘 느끼는 사람이라면 누 구나 그 반대의 주장도 마찬가지로 가능하리라는 사실을 알 것이다. …… 이 영역의 사실들은 무한하고 계측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사실들 사이의 관계도 그러하다 〉 (GWs , S.1 0 2s). 양가성이 윤리의 의 마론적 약호를 뒤흔들어 놓는 경우에는 그 술화의 통사론적 흐름도 대체될 수 있는 불확실한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렇게 되면 윤리학 적 이론이 갖는 체계적인 일관성이란, 그것아 인과적 흐름으로, 죽 확 층을 제시하는 연관성으로 해석되는 한, 의심스러워지게 된다. 「오직 작가와 사상가들 중에서」라는 제목의 한 논문에서는 무질의 핵심 개념 중의 하나인 천재 개념이 양가성에 의해 어떻게 파악되는 지가 밝혀진다. 그러나 그것은 놀라운 방식으로 자신의 대립자와 결합하는 것이다 . 왜냐하 면 우리들은, 전정한 천재는 사라져버렸다는 한탄에 못지않게 자주 천재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주장에 접할 기회를 갖기 때문이다. 신문, 잡지들의 보도나 비평을 참깐만 들추어 보더라도 우리는 고작 몇달 사이에 충격적인 영 혼 의 예고자들 , 가장 위대하고 심오하며 완전한 거장들이 이렇게도 많이 등장했던가 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토록 짧은 기간 동안에 〈 마침내 또 한번 전정한 시인이〉 이 민족에게 이렇게 빈번하게 선사 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 (GW 7, 514/515). 여기에서 분명해지는 것은 휴머니즘적 이데올로기의 한 변종으.£, 〈천재적 / 평범한〉의 대립쌍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천재 신화가 선전을 위해서 희생당하고 퇴화해버린다는 사실이다. 결국에는 고전주의의 천 재와 반대되는 것까지도 〈천재적〉이라고 일컬어지기에 이르러, 『특성 없는 인간』의 화자는 〈천재적인 경주마〉라는 반어적인 말을 할 수 있 게 된다. 이때에는 〈천재적〉이라는 말과 〈동물적〉이라는 말이 한데 섞 여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언어적(윤리적, 미적, 정치적, 철학적) 양가성이 허구적인 글쓰 기방식이나 또한 이론적인 글쓰기방식에 대해 중대한(결정적인) 의의를 가진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間텍스트인 허구는 철학적인 술화뿐만 아
니라 정치적, 윤리적 , 미적 술화도 가공함으로써 전문화된 이론적 논문 보다도 더 포괄적으로 사회언어학적 스펙트럼을 묘사할 수 있다 . 무질 은 알프레드 되불린의 서사시 「마나」에 대한 논문에서 문학에서의 도 덕적 양가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바, 그 방식은 니체의 『도덕의 계보』 룰 상기시키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 이래(바흐천도 지적했다시피) 양가 적이고 병적인 본성이 문학을 지배하고 있다 . 그 이후로 문학이 〈 불건강한 〉 인물에 선호를 보여온 것은 사실상 작가의 감각이 사회적으로 선한 것과 악한 것 사이의 근찬관계를 밝혀내고 이러한 양극단이 보다 깊은 본질에 있어서는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는 상이한 가치들 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 뿐이다. 인간적 제현상의 상호 이행가능성에 대한 이러한 확신 , 도덕적 대립자들의 깊은 근친성이 바로 우리 시대 문학을 이전 시대와 구별해 주는 징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GW 9, S.1682). 무질의 주장은 적중한다. 도덕적인 대립뿐만 아니라 모든 대립에 존 재하는 이 뿌리깊은 근친성은 세기전환기에 먼저 니체에게서, 그리고 정신분석학에서, 카프카, 헤세, 프루스트, 무질의 소설에서 명명백백하 게 밝혀졌던 것이다 . 이 때문에 많은 철학자와 작가들이 사회의미론적 약호의 산물인 볼가치성의 여러 변형태들을 지지하게 되었고, 니체는 소설가들처럼 (비사회적인)본능, 〈본성〉, 무의식을 발견하기에 이르렀 다. 무질이 〈빈 Wi en 학파〉에 관심울 보였던 것 (Bouveresse, in : L'Arc, 1979 참조)은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몰가치적〉 담화를 추구하는 포퍼와 카르납(마지막으로 H.N. 퓌겐)의 노력 역시 가치의 위기라는 맥 락에서 고찰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기에 직면해서 〈몰가치적〉인 엄밀성에의 의지와 비합리적인 신비 주의에의 집착이 상호 보완관계에 놓일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B.-R. 휘파우
프 H tipp au f의 무질 연구에서 지적된 바 있다 . 하지만 여기서는 실증주의와 바합리주의의 현대적 제조류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사회 적 유토피아주의 에서 神秘主義까지. 로버트 무질의 『특성 없는 인간 』 에 대하여』, 뮌헨 , 1971). 무질의 경구에는 〈 수학적 도덕 : 니체의 유산 〉 ( GW 7, S.899) 이라는 대 목이 나온다. 무질이 다른 곳에서도(예컨대 GW 7, S.9 0 3) 언급한 일이 있는 이러한 도덕은 두 가지 측면을 지닌다. 그것은 일종의 〈 몰가치적 〉 도덕으로서(여기에서도 양가성이 모순의 모습을 하고 다시 나타난다), 무질 의 이데올로기비판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질적인 구별의 타당성도 허용치 않는 매개의 무관심성에서 발생한다. 결국 무질의 비 판은, 오늘날 데리다나 크리스테바의 비판이 그러하듯이, 그 자체가 이 중적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이데올로기의 신화를 파괴하지만, 다론 한 편에서는 모든 차이들을 평준화시켜버리는 시장법칙이 낳은 허무주의 롤 정당화할 위험에 빠지는 것이다 . 아도르노의 부정의 변증법은 위와 같은 難題를 의식하면서 이러한 냉담성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라 하 겠다. 무질이 양가성과 매개를 이데올로기적 담화에 대한 비판의 도구로 삼았던 것과는 달리, 칼 크라우스는 重義性울 자기 논의의 주요 논점으 로 하면서도 매개가 가져온 황폐화의 문제를 지적한다. 그는 무질보다 더 강하게 붕괴해가는 도덕에 의무감을 느낀다는 점에서 도덕가인 카 프카에 좀더 가깝다 . 그에게 대립자들의 근친관계는 눈에 가시일 뿐이 다. 왜냐하면, 『이피게니에』를 에스페란토어로 번역한다는 것은――「권능 없는 심리학」이라는 한 논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이 세상에서는 수 요와 공급을 재빠르게 중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장사꾼의 시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피게니에』를 정신분석학의 언어로 번역하려는 것은 좋은 와인이 필요할 때 태양과 함께 명성을 얻어보려는 포
도혹벌레의 시도일 것이다〉 (Kraus, 1971, S.5 5 9). 죽음과 매표소 를 뻔뻔스럽게 통합해버릴 수 있는 것은 오칙 대목場뿐이다. 죽 〈스 페인식의 儀式의 경계를 대목장을 통해 확장하고 왕위계승자의 稽울 역의 매표소에 전시하도록 내버 려두는 관용과 , 죽은 자의 고귀성과 아울러 죽음 자체의 고귀성까지 조롱하는 스캔들에서 …… 〉 (앞의 책, S.5 5 9). 칼 크라우스는 비록 대립자들의 통일에 대해 무질과 다른 반응울 보이기는 하지만 논쟁가이자 도덕가인 그의 술화에서 논의되는 것은 부르주아적(또한 〈사회주의적〉인) 근대성의 중심 주제, 죽 시장에 의한 모든 가치의 파괴이다. 이야말로 〈천재적인 말〉과 같은 잡종을 낳고 베르뒤랭 부인과 게르망트 공작부인을 혼합시킨 장본인인 것이다. (2) 현실의 이중화 : 텍스트와 간텍스트 『특성 없는 인간』의 遺稿 중 「젊은 사회주의자 슈마이써에게」(「슈마 이써와의 대화」)라는 제목의 章에서는 이 소설이 이데올로기적 사회어 들을 거의 극적인 방식으로 공연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 나 있다. 사회적으로 낙오되어 怨望울 품은 채 살아가는 슈마이써에 대한 울리히의 태도는 〈현실적 정치〉의 관점에서 볼 때 양가적이다. 라인스도르프 백작의 위임에 의해 그는 이 혁명가를 〈평행적 캠페인〉 에 끌어들이려고 시도한다. <…… 현실적 정치가라면 전보에도 국수주 의에도 반대하는 연대 세력을 형성하기 위해 사회민주주의의 대열에서 활동해야 할 것입니다. ……>( GW 4, S.1454). 진리를 알고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힌 슈마이써는 울리히에 반박하기 위해 〈사회주의적〉(마르크스주의적) 사회어의 온갖 상투어들을 다 늘어 놓는다. 이때 주목할 만한 것은 그의 술화가 거의 전적으로, 일의적으 로 정의된 집단적 행역자들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우리〉, 〈당〉, 〈부르주아〉(이는 반주체인 행역자이다) 등등의 행위자들로
표현되고 있다. 울리히의 현실정치적 제안은 결실을 보지 못한다. 〈그 (울리히-역주)가 말을 마치자, 슈마이써는 자기 말에 대한 만족감 때문에 입술을 거의 떼지도 못할 지경이 되어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은 그런 모험을 할 필요가 없소. 우리는 우리 식대로 목표를 향해 나아갈테니까 말이오!._그러니 그것은 부르주아나 할 일이라는 것이다 ! >(G W 4, S.1 4 55). 슈마이써의 흑백논리적 사고는 다른 많은 이데올로기적 신화와 마 찬가지로 절대적인 대립자들에 의존하고 있는 반면, 이에 대항하는 울 리히의 술화는 개별적인 행역자들로 작동하는 양가적인 술화로서, 의 문을 제기하는(개방적인) 상대화의 작용을 하는 것이다. 울리히의 친구 인 은행장 피셸은 슈마이써에게는 적으로 간주된다. …… 〈 그러나 그는 적어도 확신은 지니고 있소 ! 내가 아니라고 할 때 그는 그렇다라고 말하죠. 하지만 당신은 ? 당신의 경우엔 모든 것이 해체되어 버 렸죠. 당신의 경우엔 이미 부르주아의 거짓말이 파탄이 나기 시작했단 말이 오 ! >울 리히는 묵묵히 시인했다. 〈내 사고방식이 부르주아에게서 유래한 것 일 수도 있습니다. 부분적으로는 아마도 그 말이 맞을 겁니다. 하지만 이 비 천한 것들 가운데 있다고 해서(I n t er fae ces et urin a m nasc i mur) ――우리 견해 가 틀렸단 말인가요 ? 그 사실이 우리 견해가 옳지 않다는 것울 어떻게 증명 한단 말이 오 ? ' >(G W 4, S.1456) 고귀한 것과 울바른 것이 〈비천한 것〉, 〈조악한 것〉(부르주아적인 것) 으로부터 유래한다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슈마이씨의 이원 론적 도그마에 맞서서(그는 이데올로기의 변증법을 무시하기 때문에 실패한 다) 울리히는 사유와 현상들의 중의성을 주장하고 있다. 결국 화자는 〈의지와는 달리 멀리서 아가테에 찬탄을 보내는〉 혁명가의 양가성을 주제화한다 (GW 4, S.1455). 슈마이써라는 인물과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만이 양가적인 콘텍스트
속에서 묘사되고 비판당하는 것은 아니다. 프리델 포이어마울 , 파울 아 른하임, 디오티마, 슈툼 폰 보르트베어 장군과 같 은 인물들도 모두 이 중적 존재로 나타나며, 그들의 이데올로기적 중의성도 어느 정도는 언 어적으로 파악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인 프리델 포이어마울은 부차적인 등장인물이긴 하지만 양가성 울 특히 효과적으로 체현하고 있다 . 무질이 좀 덜 명시적이고 바유적인 이름을 선택했어야 했다고 생각하는 독자는 이 인물의 의미론적 기능 을 간과한 셈이다. 실업가이자 무기상의 아들이지만 시인은 마땅히 평 화를 위한 평행적 캠페인의 대열에서 활동하여야 한다. 하지만 바로 평화운동인 평행적 캠페인이 전쟁을 귀결시킨다는 점에 소설 줄거리의 역설이 있는 것이다. 대립자인 전쟁과 평화는 절국 상징적인 이름 프 리델 포이어마울(평화의 총구- 역주) 속에서 하나로 융합된다. 미완성 유고 중에서 무질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 모든 이데올로기는, 평화주 의적인 것이라 해도 전쟁을 낳는다 〉 고. 소설 줄거리에 대해_아니면 그 줄거리의 파탄에 대해서조차――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인물은 파울 아른하임이다. 그 이 유는 아른하임이 울리히, 디오티마, 아가테, 발터, 클라리세 등과 더불 어 허구 세계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는 오히려 아른하임이라는 인물 내부에서 서로 상종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개의 이데올로기가 맞부딪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인문주의적 교양 의 이상과 경제적 성공의 이데올로기가 그것이다. 아른하임은―― 여기 구성된 맥락에서 볼 때――절대적인 양가적 인물로 나타난다. 왜냐하 면 그가 제안한 〈정신〉과 〈시장〉의 종합이야말로 여타의 모든 종합과 양가성의 근거를 이루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 아른하임은 자 신의 논설과 저서들을 통해서 바로 영혼과 경제, 이념과 권력의 결합과 같은 대단한 주장을 펼쳤다. 다가올 일을 탐지하는 데 섬세한 후각을 타고난 예민한 정신의 소유자들은 세상에서 흔히 분리 닌 양극으로 이 해하고 있는 이 兩者가 그에 의해 통일될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리고
다녔다.…… 〉 (GW I, S.1 0 8 ). 아른하임이라는 인물에게서는 시장법칙에 제약된 양가성이 형식적인 면에서만 , 즉 대립자들의 통일이라는 형식 으 로 서만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내용적으로도 확인된다. 즉 무 질의 사회의 〈 타고난 정신의 소유자들 〉 이 탐지했던 〈 다가울 일 〉 이라고 하는 것은 매개에 의해 모든 가치의 상대화 현상이 더욱 심화되리라는 것이다. 아론하임에 의해 희화화되기에 이른 매개에 직면해서 전통적인, 혹 은 새로운 의미론적인 이분법을 고수함으로써 약호와 그 유관성 연관 울 구원해낼 수 있으리라는 이념가들의 주장은 파탄하고 만다. 대립자 둘의 통일을 추구하면서 자신의 종합이 낳을 파괴적인 영향을 알지 못하는, 아니 인정하려 들지 않는 아른하임이나, 독단적인 슈마이써나 모두 하나의 허구 세계 속에서 좌절하고 만다. 이 세계 속에서는 상대 주의든 그 반대이든 이룰 소박하게 긍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 다. 〈 이와 같은 모든 삶의 제형상이 지니는 섬세한 연관들은 오직 맹 목적인 이데올로기 추종자들만아 무시해버릴 수 있을 것이다. 아론하 임은 이를 통해서, 왕다운 상인의 모습에서 顧覆 과 지속, 권력과 시민적 교양, 이성적 모험과 대단히 개성적인 지식의 종합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는 그 상인에게서 준 비되어가는 민주주의에 대한 상징적 형상을 발견하였다 …… >(G W 2, S.2 38 ). 아른하임은 종합을 위한 자신의 시도가 그로대스크하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시장이 정신을 무가치하게 만들어버렸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 스스로 고도화된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풍부한 정신을 지닌 교양 있는 인간에 대한 戱 畵 로 전락한다. 그는 한 편으로는 〈 이념지배체제 Ideokra ti e 의 廢 位〉에 결정적으로 이바지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과정의 〈카니발적〉이고 파괴적인 측면을 알지 못 하는 것이다. 그러나 화자는――말하자면 아른하임의 등 뒤에서_ 이러한 측면을 반어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는 시대정신이 수요와 공
급으로, 즉 까다로운 사색가가 규율을 엄수하는 상인으로 대체되었다 고 생각했다……〉 (GW 2, S.4 0 9). 물론 『 특성 없는 인간』의 양가성 개념을 문화적인 제가치와 경제적 인 요인들 사이의 〈내용적인〉 관계로 축소하려는 시도는 진부한 결과 밖에 낳지 못할 것이다. 양가성은 의미론적 비-이접 N i ch t -D i s j unk ti on( 크 리스데바)으로서 단편적인 소설 전체를 구조화하고 있다. 이러한 양가 성은 전쟁과 평화, 경제와 영혼, 사회주의와 반동의 융합 현상뿐만 아 니라, 이중적 인물, 특히 半陰陽者와 같은 인물의 존재까지도 해명해 주는 것이다. 신화적인 카카니엔(소설의 배경이 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군주국- 역주)의 〈이중적 성격〉에 대한 시사는 이 허구 텍스트에서 양가성의 개념이 갖는 보편적 성격에 대한 증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쌍두 독수리란 뭐죠? 머리 두 개 달린 독수린가요? 그렇지만 세상 에는 머리 하나 달린 독수리만 날아다니고 있지 않던가요? 그러니까 전 당신의 軍刀에 바로 이중적 존재의 상징이 부착되어 있다는 말을 하는 거예요. 장군님, 반복해두겠는데요, 그 마법적인 물건들은 모두 다 태고적의 착각 때문에 생겨난 거랍니다 ! >(G W 4, S.1296) 클라리세의 이와 같은 논쟁적인 주장은 그녀 자신의 심리적 이중성 을 암시하고 있다. 이는 〈예언자〉 마인가스트(후에 린드너 교수)와의 한 대화에서 주제화된다. 여기서 마인가스트의 동성애적 담화는 샤를뤼스 남작의 담화를 상기시킨다. 클라리세는 스스로를 양성적인 존재로 규 정하는데, 이는 울리히가 겪는 성적인 변전, 죽 그가 자신의 〈샴 쌍둥 이 누이〉인 아가테와 장시간 대화하면서 자기 내부에 살고 있는 여성 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데 대한 의미론적 보완이다. 『잃어버린』에서와 마찬가지로 성격적인 이중화의 문제는 동성애의 문제로 이행한다. 목쉰 소리로 클라리세는 속삭였다. 〈난 여자가 아니예요, 마인가스트 ! 난 반응양자예요 ! >_ 〈당신이 ? ! > 마인가스트는 경멸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숨기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_一〈난 당신과 여행하고 있어요. 당산은 알게
되겠죠. 첫날밤에 당신에게 보여드리겠어요. 우린 하나가 될 수 없을테고 오 히려 당신이 둘이 될거예요.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빠져나울 수 있으니까 . 당 신은 두 개의 육체를 갖게 될거예요.〉 (1952 년 판 S.1380, 신판 1978, GW 5, S.1 5 38 : 여기서는 마인가스트가 린드너로 된다.) 주인공 울리히의 양가성과 아울러 그의 불가해성에 대해서는 이마 소설의 시작에서부터 암시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사람이란 결코 명백한 관심거리일 수는 없다〉 (GW 1, S.17). 울리히의 중의성은 「현실 감각이 있다면 가능성 감각도 있어야 한다」라는 제목의 장에서 현 실성 / 가능성의 대립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는다. 그리고 이 대립이 바로 화자가 주인공의 正體性의 위기를 연출하는 틀을 형성하는 것이 다. 울리히의 양가적인 성격에서, 즉 통합될 수 없는 〈성격 특칭들〉(토 도로프)에서 상호 배타적인 가능성들이 발생하며, 이는 주인공의 현실 감각과 경합을 벌인다. 이러한 가능성들에는-프루스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각기 이질적인 여러 줄거리가닥들이 상응하는바, 이로 써 빈번하게 상호 배타적인 〈이야기들〉을 지어내는 일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양가성은 의미론적 약호의 파괴로서, 또 의미론적 • 이 데올로기적 유관성 규정의 약화로서, 다음의 두 가지 결과를 가져온다. 1. 양가성은 주체의 위기를 낳는다. 주체는 중의적인 의미론적 단위에 근거하도록 강제당하기 때문에 더 이상 술화의 충위에서 통일적으로 구성될 수 없다. 2. 양가성은 서술통사론의 위기도 초래한다. 서술통사 론은 의미론적 중의성 앞에서(프루스트, 카프카, 조이스의 경우에서 보듯) 결국 좌초하고 마는 것이다. (3) 〈소설의 위기〉 서술통사론의 위기는 한편으로는 술화 속에서 구성되는 주체와 관
련되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 발화 enonce 〉 의 주체인 행역자의 양 가성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무질의 미완성 유고에서 나타나는 서사하 리라는 추측을 널리 확인시켜주고 있다. 수십 년 뒤에 T. 토도로프가 『데카메론의 문법』에서, -말하자면 『千 一 夜話』의 경우에-전심리학적이고 비심리학적인 줄거리의 인과 율( 〈 사건들의 인과율 causalite evenementi el le> )이 존재 하며 이 인과율에 의 해 이야기의 등장인물둘(행위자들)은 〈 이야기 인간 hommes-rec it s 〉 으로 규정된다고 확언했던 바와 마찬가지로 무질도 서사시에서의 인물들이 일의적인 줄거리 맥락 속으로 편입된다는 점을 상기하고 있는 것이다 . 소성에서는 이미 초기 시민사회부터 이러한 일의적인 콘텍스트는 사 라져버렸다. 〈문제는 물론 소설과 더불어 비로소 발생하였다. 서사시는 물론, 실질적으로 서사적인 소설에서도 성격이란 줄거리의 산물이다. 죽 성격은 줄거리가 보다 명백해질수록 줄거리 속에 더욱 더 움직일 수 없게 붙박히게 되는 것이다 〉 (GW 5, S.1 9 41). 이 덱스트에서 무질은 근대적 서술이론의 선구자의 면모를 보일 뿐 만 아니라 소설텍스트의 의미론적, 통사론적 일관성에 대한 결정적인 물음울 제출하고 있다. 즉 의미론적 양가성과 서술적 진행의 연관성에 대한 물음말이다(여기에서 형식과 내용 사이의 구별은 그다지 쓸모 있는 것아 못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왜냐하면 형식이란 결코 통사론과 그 행역자와 동 일한 것이 아니며, 마찬가지로 의미론과 내용도 서로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 문이다. 의미론적 대립자들의 배열이나 그 轉位~ 역시 형식적인 요소로 간 주될 수 있는 것이다). 『특성 없는 인간』에서는 통사론의 붕괴와 양가성 사이의 상호 작용 이 처음부터 명시적으로 드러난다. 주인공을 일의적으로 정의하려는 경우에 발생하는 어려움 때문에 이야기의 〈제자리 걸음〉이 초래되는 것이다. 처음 여덟 개 장의 의미에 대해서는 여기에서 더 이상 상론할 수 없으므로 일단 도의시하기로 하자(이 장들은 모두 주인공과 그의 주변 세계에 대한 관계, 현실에 대한 지론, 〈에제이〉로서 발작이나 스탕달의 인불성
격의 정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중요한 인간이 되려는 시도 〉 를 다루고 있는 세 개의 장 (9, 10,11 장)에서는 양가성이 서술적 轉位(데리다 라면 〈 이야기의 差延 d iff crance de I'h i s t o i re 〉이라고 말했을 것이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가 뚜렷해진다. 거기에서는 이야기가 아직(결코? 앞으 로도?) 시작조차 되지 못하는 이유가 설명되고 있다. 죽 주인공은 관 리로서 그리고 엔지니어로서(두번째 시도) 실패를 맛본 뒤에 결국 활동 적인 삶 v it a ak ti va 울 포기하고 현실과 양가적인 〈자아〉에 대한 근본적 인 의문을 제기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다소간 명백하게 기술되는 사실들, 인물성격, 상황들에 의존하는 서술통사론의 인과론적 연쇄가 의문시되기에 이르는 것이다 (루시앙 드 뤼방프레가 보트랭에게 굴복하는 것은 그의 성격 때문인바, 토도로 프가 말한 〈심리적 인과율〉을 분명히 보여준다). 울리히는 이러한 중의성이 지배적인 원리임을 인식하고서 과학자로서 이러한 원리를 부정해 보 려고 시도한다(세번째 시도). 〈그러나 과학에서도, 오류로 간주되었던 것이 갑자기 모든 관점을 뒤집어놓거나 초라하고 조소의 대상이 되던 사상이 새로운 사상의 왕국의 지배자로 군림하게 되는 일이 수년마다 일어난다……〉 (GW 1, S.4 o ). 〈카니발적〉 모티프들이 이 몇줄의 문장을 관통하고 있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즉 중의성, 고귀한 자(왕)의 폐위, 비천한 자(〈바보〉)의 상승 등. 마침내 앞서 인용했던 〈천재적 경주마〉라는 표현, 죽 고전주 의적 천재 개념을 동물적인 것과 결합시킴으로써 양가성을 과장된 형 태로 보여주었던 이 표현을 통해 〈특성 없는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 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제 13 장) . 이러한 인식은 이 미완성 소설에 고유하고도 역설적인 출발점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의 역설은, 그 출발점이 동시에 줄거리 (행동)와 서술적 인과율의 불가능성을 표현한다는 데 있다. 죽 이야기 가 시작되어야 하는 시점에서 주인공 (ac t or/ac t eur) 은 불투명하고 다의 적인 현실을 대상으로 학문적인 사변에 몰두하느라 어떤 적극적인 행
동도 포기해버리기 때문이다. 무질의 미완성 유고에 나오는 다음과 같 은 논평은 아마도 이러한 맥락에서 읽어야 할 것이다. 이에 따르면 『특성 없는 인간』에서는 이야기라는 것 자체가 문제시된다고 한다. 〈이 소설의 이야기는 그 속에서 이야기 되어야 할 아야기가 이야기되 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GW 7, S.8 2 6). 〈경구〉에는 이에 대한 보충적인 언급이 있다. 역 설 : 쓸 수 없는 소설을 쓴다는 것〉 (GW 7, S.826). 전통적인 이야기 도식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소설의 위가〉(무질)가 초래된 사회언어학적인 상황에서는 이대옹로기만이 서술 통사의 인과 적 진행을 고수할 수 있다. 무질은 통합체적 술화가 지니는 이데올로 기적 속성을 명백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현존하는 소설의 위기가 겉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으려 한다. 이야기란 단지 심심풀이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남아 있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들'은 아니라 해도 우리의 전문가들이 새로운 형태를 추구하고 있다. 우리에게 새 로운 이야기를 해주는 것은 신문이고, 재미로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우리는 키치(저급 문학――역주)로 간주한다.――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생각도 전 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공산주의자, 국수주의자, 카톨릭 교도들은 기꺼이 무엇이든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이데올로기가 확고한 경우에 그러한 필요가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즉 그 대상이 주어지는 경우에 말이다〉 (GW s, s.1412). 그리고 양가성이 권위적인 방식으로 부정되는 경우도 이에 덧붙여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비판적인 『특성 없는 인간』이 줄거리 없는, 인과 적 흐름이 없는 〈反이야기〉로서, 스페인의 코스춤브리스모(일상적 삶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리려는 스페인과 남미의 문학운동―― 역주)의 글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은, 장면들의 계열체적 나열의 일종이라고 주장하는 데 그친다면 이는 조야한 단순화라는 비난을 모면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상 이 미완성 소설의 줄거리는 곳곳에서 인과적 연쇄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므로 무질의 덱스트는 소설이 불가능해진 시대에 소설을 구 원하려는 시도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제 2 권의 처음 여덟 개 내지 열 개의 장 (GW 3,1~10 장)은 아버지의 죽음을 중심 적인 사건으로 해서 진행되는바, 이는 전통적인 소설에서 볼 수 있는 인과적 연속체 Se q uenz 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다. 아버지의 죽음은 남 매(울리히와 아가테)의 화해를 가져오고 그들의 장래에 대한 결속의 기 초를 이루는 것이다. 그로 인한 첫번째 사건이 유언장의 변조다(제 5 장 : 「그들은 부정을 저지른다」). 무질은 프루스트가 〈통사론적인 관계를 심리적인 작용에 의해 거의 해 체 시 켜 버 린〉 대표적 작가라고 얘 기 한 바가 있는데 (GW 8, S.1 2 11), 마 찬가지로 그 역시 서술 원리에 대해 양가적인 태도를 취한다. 즉 한편 으로는 그 원리를 떠나서 계열체적이고 에세이적인 글쓰기방석에 주 목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프루스트처럼, 자산의 글쓰기방식을 순수 히 연상에만 의존하지는 않는 것이다. 다음 절에서는 양가성이 무질의 경우에 문장 통사론의 영역에서까지도 입증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힐 것 이 다. 프루스트와 마찬가지로 그도 構文 Sa t z g e f u g e 을 해 체 시 켜 버 리 는 데는 반대한다.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에 대한 무질의 다음과 같은 논평은 이러한 배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조이스. 프로필 : 정신화된 자연주의. __- 아 미 1900 년에 완수됐어야 할 전 진. 그의 口讀法은 자연주의적이다. …… 조이스의 또 다론 특칭과 전체적인 발전 경향 : 해체. 그는 오늘날의 해체된 상황에 순응하며 이를 일종의 자유 로운 연상에 의해 재생산한다. 이로써 무언가 시적인 것, 혹은 그것의 가상이 생겨난다. 죽 교훈적이지 않은 어떤 것, 원시적인 선율의 再唱이 (GW 7, S.8 5 8). 무질은 조이스와는 반대로 〈영웅적인 예술관〉을 실천한다. 프루스트
와 무질은 〈해체된 상황〉에 순응하지 않으며, 특히 문장 통사론을 고 수한다. 그러나 통합체적 원리의 위기로 인해 그들의 경우에도 무의식 적인 것, 연상적인 것에의 경향은 심화된다. 이는 무질의 소설의 토대 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4) 무의식의 문턱에서 : 무질의 〈에세이이즘〉 『특성 없는 인간』의 두 개의 미결정판 (1952 년 판과 1978 년 판)을 비교 해보면 이 소설의 대부분은 인과적 구조로 간주될 수 없으며 그 결말 도 인과율적 관접에서 재구성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 이다. 위터스프로트 (1957) 가 구상한 카프카의 『심판』의 배열이 둘뢰즈 와 과타리 (Deleuze, Guatt ar i, 1975, S.81 참조) 에 의 해 반박되 었듯이 , 무질 의 텍스트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이본이 제시될 수 있으므로, 오랜 기 간을 두고 해석자들간의 반목은 그치지 않을 것아다. 그러나 여기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그러한 반목이 아니다. 오히려 이 미완성 소설의 맥 락을 어떤 기준에 따라 서술할 것인가 하는 물음이 우리의 관심사인 것이다. A. 프리제의 (경이적인)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대로 이 유고들이 위상적인 호환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한데 결집될 수 있는지를 밝히는 일은 상세한 분석을 필요로 할 것이다. 첫번째 판에서는 「한 여름날의 숨결」이라는 미완의 장이 단일한 텍 스트로 나타나지만, 1978 년 판에는 이 텍스트의 네 개의 異本이 포함되 어 있다. 프리제도 이들을 연대기적 순서에 따라 배열하고 있다. 〈나 머지 원고들은 생애 마지막 몇년 동안 (1939~1941) 에 나온 것이다. 완성 된 원고 「한 여름날의 숨결」의 직전 단계인 것이다. 교정쇄에 들어간 장들의 이본들〉 (GW 4, S.1240). 작가들이 자신의 덱스트를 개작하고 동 일한 텍스트를 여러 가지 판으로 출간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긴 하 다. 그러나 무질의 경우에는 그것이 자기 교정, 혹은 보다 더 나은, 보다 더 완성된 글을 위한 시도 이상의 의미를 갖는 듯이 보인다.
『특성 없는 인간』에서는, 「정원 울타리의 특별한 임무」, 「해는 정의로 운 자에게도 불의한 자에게도 비친다」, 「괴물을 사랑하려는 시도」, 「숙고」 (1952 년 판)와 같은 장들의 연속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유사한〉 여러 동위체들을 변형, 축약하는 계열체적 글쓰기방식이 중요한 것이 다. 여기서 하나의 동위체는 흔히 다른 동위체에 대한 은유적인 혹은 환유적인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한 여름날의 숨결」이라는 표제의 장은 〈에세이이즘〉을 의미소와 의소들의 대체, 동위체의 변형과 발전으로 이해할 수 있음을 가르쳐 준다. 처음 두 원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의소들(상위개념)은 〈황홀〉 (〈황 홀한 만남〉, GW 4, S.1325), 〈사랑〉, 〈믿음〉, 〈思考〉, 〈명상〉 등이다. 〈명상〉이란 개념을 좀더 상세히 규정하려는 시도들은 두 개의 원고가 의미론적으로 서로 어긋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제 2 의 원고 에서는 전혀 새로운 의미소들, 혹은 의소들이 앞의 것을 대체해버리기 때문이다 첫번째 판본에서는 울리히가 〈명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댜 〈 그것은 난 설명 못해요. 설명해본다면, 한마디로 예감하 는 사고라 할까 아니면 다시 말해서 그런 것, 우리가 행복할 때 생각 하는 것 같은 것 아닐까〉 (GW 4, S.1307). 〈아니면 다시 말해서……〉와 같은 표현은 하나의 의미론적 변형태를 이끌어내므로, 처음 원고에서 두번째 원고로의 이행을 정당화하는 것 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아는 무질의 소설에 나타나는 다른 많은 이행 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거기에서는 〈명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말 이 나온다. 〈나는 그것에 대해 당신에게 간단히 설명해 줄 수는 없어 요. 그렇더라도 한마디로 해본다면 예감이라 할까요. 그것은 육감이라 고 부를 수도 있겠지요. 그러니까 예감하고 육감하는 사고랄까〉 (GW 4, S.1 3 25). 〈예감〉이라는 단어가 자립하여 나타나고 〈육감〉이라는 의미소 가 새로이 도입 됨으로써 〈思考〉(개념적 사고)라는 의소는 약화된다. 그 리고 〈명상〉이라는 의소는 동위체 〈꿈〉, 〈사랑〉에 좀더 근접하게 된다. 또한 동위체 〈명상〉은 〈사랑〉이나 〈황홀한 만남〉(죽 〈황홀〉)에 대한
은유적 표현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 더 뒤에 나온 「한 여름날의 숨 결」의 판에서는 〈천년왕국 〉 이라는 표현으로 〈 황 홀〉, 〈 사랑 〉 , 〈 꿈 〉 의 개념, 그리고 〈동양적이고 非파우스트적인 것〉 (GW 4, S . 123 9 ) 에 대한 표 상이 총괄되고 있다. 그와 같이 의미론적 연상작용으로부터 영감을 받는 글쓰기방식은, 더 이상 사실 , 행동 , 사고에 대한 일의적인 규정가능성에 근거하고 있 지 않는 까닭에 양가성 현상에 밀접하게 결부된다. 무질 자신은 이러한 글쓰기방식을 〈 에세이적 〉 이라고 불렀다. 주체는 오직 사회의미론적 약 호를 통해서만 구성될 수 있으므로, 이 약호가 양가적인 성격을 떨 경 우에는 스스로를 〈에세이적〉이고 〈계열체적〉인 방식으로 정의하도록 강제당하게 되는 것이다. 〈에세이에서는 하나의 사물이 단락의 순서를 따라 여러 측면에서 고찰되긴 하지만 완전하게 파악당하는 일은 없다 . 왜냐하면 완전히 파악당한 사물은 단번에 자신의 몸뚱이를 상실하고 하나의 개념 속으로 용해되어 들어가버리기 때문이다. 그 역시 대략 이렇게 해서 세계와 자기자신의 삶을 가장 잘 관찰하고 가장 잘 다룰 수 있게 되리라고 믿었다〉 (GW 1, S.250). 이 문장은 울리히에 대한 것일 뿐만 아니라 무질 자신의 글쓰기방식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그의 굴 쓰기방식은 체계의 개념적인 강제력과 맞서 논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 이와 동시에 전동적 소설의 통합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견해가 제시된다. 죽 이러한 통합체는 이미 프루스트가 인식했던 바와 같이 양가성에 의해 의문시되며, 그것을 지키려는 시도는 시대착오와 이데 올로기로의 전락이라는 오명을 대가로 받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무질은 자기 소설의 주인공의 에세이적인 생활양식을 기술함으로써 프루스트, 카프카와 갇이 은유적인 방식으로 자기자신의 생산양석을 주제화한다 . 이 생산양식을 계열체적이고 연상적인 것으로 파악한다고 해서, 또 『특성 없는 인간』에서 서술구조가 파괴되었음을 지적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 소설이 전통적 소설구조를 의심스러운 것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문예학자
둘이 지적한 바 있다. 예컨대 서지오 케코니 같은 이는 자신의 무질 연구서에서 서술통사론의 붕괴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무질의 경우 에 서술통사론은 〈유토피아적 공상의 실험이라는 윤리적인 의미를 지 니는바, 이러한 공상은 소설구조의 새롭고도 자유분방한 형식에서 자 기자신의 시금석을 발견하고 있다〉 (Checcon i, 1969, S.139). __ 그러나 덱 스트사회학은 다음과 같은 보충적인 문제까지도 다루어야 한다. 죽 1. 어째서(어떤 사회적인 토대에서) 거시통합체가 와해되었는가 그리고 2. 새로운 텍스트의 일관성은 어떤 모습을 나타내는가, 죽 무질의 계열체 적이고 에세이적인 글쓰기방식은 양가성과 관련지어 볼 때 어떻게 서 술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 그것이다. 앞 절에서는 이 두 가지 문제 중 앞의 것이 중점적으로 다루어졌다. 하지만 거기에서는 소설 시작의 분열에 대해서도 논의한 바 있다. G. 쥬네트라면 『잃어버린』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이 경우도 〈반복적인 서술양식 〉 (I'i n fl a ti on de I'itera tif , 앞의 책 ,S . 153) 이라고 말할 것이다. 왜냐 하면 이 세 개의 시작은 불완전하고 불가능한 이야기로서, 의미론적 충위에서(역사적, 자유주의적 의미의) 〈시민적 경력〉 이라는 상위개념에 의해 구조화되는 의미소적 동위체의 변형태로 읽힐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각각의 〈시도〉(=글쓰기방식의 에세이)는 각기 이 동위체의 특 수한 측면을 발전시킨다. 말하자면 〈모험〉, 〈영웅성〉, 〈기술적 전보〉, 〈과학〉 따위의 의미소들이 그것이다. 한편으로 양가성과 거시통사론의 붕괴간의 관계, 또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계열체적 구성의 발전은 주인공의 이러한 세 가지 〈시도들〉에 서 가장 명료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에세이〉로서, 양가적인 현 실에 대한 시도로서 전통적인 이야기의 인과율적인 연쇄를 의문시할 뿐만 아니라, 의미론적 충위에서 에세이이즘이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잃어버린』과 마찬가지로 동위체의 발전과 변형(앞을 참조)에 의해 통 사론적 논리가 구축당하며, 이 경우에 환유적 • 은유적인 연관성이 텍 스트의 응집력을 유지하게 된다. 여기에서는 『특성 없는 인간』에 나오
는 〈천재성〉이라는 동위체의 발전과 변형에 대해 좀더 상세히 살펴보 기로 하자. 우선 이 동위체가 〈개성 Ind i v i dual i rn t〉이라는 보다 더 포괄적인 의미 론적 구조와 환유적, 제유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두는 것은 사소한 일이 아니다. 제 1 장에서는 화자가 활동불능상태에 빠진 평균적 시민을 암시하기 위해서 교통사고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바, 바 로 여기에서부터 개인주의의 몰락이 텍스트의 주요한 주제로 되고 있 는 것이다. 개개인의 개성이 의문시되는 콘텍스트 속에서는 천재개념 또한 문제성을 띠게 된다. 개개인들이 익명의 체제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는 시대(이 말의 이중적인 의미에서)에도 〈천재적인 인간〉을 운위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이는 시대착오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그러한 물음에서 외관상 화합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개의 동 위체 〈천재성〉과 〈동물성〉을 결합하는 식의 반어적인 술화가 발생한 다. 〈그밖에도 동물학은 보잘것없는 개체들의 총합이 하나의 천재적인 전체를 형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GW 1, s.32 ). 한때 위대한 개성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던 천재라는 개념이 새로운 콘덱스트 속에서는 동물학의 익명성과 결합되는 것이다. 소설의 가장 주요한 인물둘의 행동영역은 〈천재성〉이라는 동위체충 위에서 상호 결합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인물들간의 상호작용과 그들의 행역자적 기능은 부차적인 것이다. 그들이 서로서로 관련을 맺게 되는 이유는 이들이 〈천재성〉이라는 문맥의소에 대해, 상이하긴 하지만 상 호보완적인 여러 국면들을 드러내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고전적인(괴 데의) 〈천재성〉 개념은 양가성이 낳은 의미론적 轉位(변형)의 희생양이 된다. 이러한 전위는 문화적 약호의 타당성을 의심스럽게 만들기 때문 이다. 이 개념은, 울리히를 통해서는 반어적이고 비판적인 술화의 표적 이 되고, 발터를 동해서는 그 평범성과 지적인 무력함으로 인해 불신 당하며, 파울 아른하임을 통해서는 일종의 고등 사기술로 되락하고 마 는 것이다.
이 소설의 의미론적 응집성을 유지해주는 것은 특히나, 소설 속에서 천재개념과 이 세 사람 사이에 설정된 환유적인 연관성이다. 이들은 각기 〈 전체를 대표하는 부분 〉 으로서 一― 비록 부정적인 것이긴 하지만 一 천재의 문제 전체에 대한 몇몇 단면을 인식하게 해준다. 『 잃어버 린 』 에서와 마찬가지로 소설의 발전은 〈 내면화 〉 되거나(체라파의 말을 빈 다면 : Zeraff a, 1911 참조), 의미화되는 것이다. 〈 한 마리의 천재적인 경주 마가, 특성 없는 인간이 된다는 인석을 성숙시키고 있다 〉 (GW 1, S.4 4 ). 동위체에서 동위체로 운동해가는 비판적인 사색이 소설의 중요한 추 진력이 되어, 파국적 상황에 이르는 갈등을 빚어내는 전통적인 의미의 인물둘의 상호작용을 대체한다. 발터, 파울 아른하임, 디오티마가 울리 히와 동일한 의미론적 場 에 속하는 이유는 그들 역시 천재성(개성)의 문제를 〈풀 려고 〉 시도하기 때문인 것이다. 끝이 없는 소설, 결국 斷章 과 경구의 모음집으로 변화하고 마는 소설 (그 점에서 이 소설은 소쉬르의 개방적 계열체와 흡사하다)에서는· 위의 세 행위자들이 〈 등장 인물 drama ti s p ersonae 〉 이 아니라, 〈 현실 〉 에 대한 특 정한 술화를 지니는 〈세계관〉(바흐찬)으로 나타난다. 화자는 , 이 술화 들과 그 근저에 놓인 동위체들을 서로 경쟁시킴으로써 이들을 상대화 하고 미덥지 않게 만들어버린다. 고귀한 것과 하잖은 것, 고상한 것과 속된 것, 진지한 것과 그로데스크한 것이 『특성 없는 인간』에서는 카 니발적으로 서로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것이다. 무질의 아이러니는 이러한 카니발적 결합과 변형의 산물이다. w. 카 러가 〈파로디, 트라베스티, 모작 〉 에 대한 저서에서 이들 현상들을 동 위체개념을 통해 해명할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은 타당하다. 〈파로디, 트라베스티, 모작 등은 덱스트의 상이한 동위체 충위간의 상호간섭으 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Karrer, 1977, S.1 9 7). 이 말은 아이러니 개념에도 해당된다. 그것은 많은 경우에 하나의 술화를 통해 다른 하나의 술화를 거짓이라고 탄핵하게 하는 의미론적 대구법의 산물인 것이다. 그리하여, 예를 들면 아른하임과 디오티마 사
이의 플라토닉한 사랑(그리고 풀라토닉한 修辭)은 졸리만의 라헬에 대한 감각적인 사랑과 나란히 전개되며, 결국은 아른하임이 탐욕적인 매춘 부인 레오나에 매혹됨으로써 가차없이 부인되고 만다. 평행적 캠페인 의 평화주의적 술화(〈평화주의〉의 동위체)는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장관 과 장군의 입을 통해서 곧바로 미덥지 못하고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된다. 범죄자 모오스브루거의 책임의식을 둘러싼 법률가와 의사들의 술화는 양가적이고 다성적인 덱스트 속에서 서로를 웃음거리로 만든 다. 〈서로 대립관계에 있는 관념들이 특히 꿈 속에서는 동일한 요소를 통해 표현된다〉 (Freud, 1971, S.32). 이는 꿈의 양가성에 대한 프로이트의 서술이다 여기서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 주목할 만한 사실은 그가 바로 이와 동일한 콘텍스트 속에서(『꿈과 꿈의 해석에 대하여』, Frankfu rt, 1971, S.3 2 /3 3 ) 꿈에서의 인과율의 약화현상을 지적하고 이룰 꿈의 계열체적 인(라캉에 의하면 은유적이고 환유적인) 응축 메카니즘과 관련짓고 있다는 점이다 . 〈두 개의 사고 사이에 존재하는 인과관계는 표현되지 않은 채 로 남겨지거나 꿈 속의 서로 다른 두 개의 긴 부분들의 나열로 대체 된다.〉 또 〈논리적 관계 중에서 꿈의 형성 메카니즘에 상당한 정도로 관여하는 것은 오직 하나, 유사 • 공통성 • 상등의 관계뿐이다〉(앞의 책, S.3 3 ). 바로 이 유사관계(동위체간의 은유적이거나 환유적인 연관성), 공통성 과 상동의 관계(여러 개의 의미소들이 공통된 의미론적 자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문맥의소에 포섭될 수 있는 것이다)야말로 프루스트, 무질, 카프카, 헤세의 근대적인 소설텍스트의 생산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 울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무질이 마하에 대한 자신의 박사학위논문에서(「마하 학설의 평가를 위 한 논고」) 인과율의 문제를 천착하면서, 논문 제 4 장에서 인과율의 개 념은 더 이상 타당성을 지니지 못하며 함수의 개념으로 이를 대체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 주목할 만한 것 은 무질이 마하의 다른 사상들은 비판하면서도 유독 이 사상만은 수
용했다는 사실이다. 무질이 박사학위논문에서 정의한 의미에 따른다면, 『특성 없는 인간 』 은 비인과적이고 〈 함수적 〉 이다. 마치노 몬티나리는 이 박사학위논문의 이탈리아語 版 서문에서 무질의 예술세계에 대해 다 음과 같이 논평하고 있는데 , 이는 타당한 지적이다. 〈 결합과 (마하의 표현 을 빌리자면 ) ‘함수적' 연관이 풍부한 이 세계에서는 전정한 인과적 연쇄란 미지의 것이다. 그 대신 이 세계는 과학적 엄밀성으로 재구성할 수 있 는 상황과 ‘상태'만을 알 뿐이다 〉 (Mon ti nar i, in : Musil, 1973, S. XII). 꿈의 작업에 대한 프로이트의 견해도 이와 유사하다. 그렇다고 무질의 미완성 소설이 꿈과 같은 식으로 축조되었다고 주 장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울리히의 〈 에세이적 〉 태도와 마찬가지로 무 의삶에석 의대 한유 유토토피 피아 아적적 공공상상( 〉 ) 〈 다역른시, 상비태자에의 대적한인 유것토 피속아에적서 ,공 의상미 〉 , 론〈 적동기 연화된상 의 필연성 속에서 참된 것을 추구하는 글쓰기방식을 은유적으로 제시 하고 있는 것이다. 중심부에는 내가 동기화라고 부른 바 있는 그 무언가가 자리잡고 있다. 우 리가 일상생 활 을 영위하면서 따르는 것은 동기화가 아니라 필연성, 즉 원인과 결 과의 연쇄이다 . 이 연쇄 속에서는 언제나 어떤 일이 우리 자신으로부터 발 생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를 자유로운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러한 의지의 자유는 강제적으로 해야 할 일을 자발적으로 해내는 인간의 능 력이다. 그러나 동기화란 의욕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 그것은 강제와 자유 의 대립을 통해 나누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가장 심각한 강제인 동시에 至高 의 자유인 것이다 (GW 4, S.1 4 21). 비자의적 우연의 전실성( 〈 뜻밖의 추억 〉 )에 대한 프루스트의 서술이나, 〈객관적 우연 hasard ob j ec tif〉에 대한 브레통의 서술에서도 이와 바슷한 표현을 발견할 수 있다. 무질도 프루스트처럼 서술통사론, 더 나아가서 문장통사론을 해체시
켜 버리는 것은 반대했다. 그러나 『특성 없는 안간』의 구성에 있어서 은유적 等置와 환유적인 대체라는 몽환적이고 연상적인 원리의 역할이 중심적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새로운 소설의 계열체적 인 배열법은 『에세이와 에세이이즘 』 의 저자 D. 바흐만이 R . 무질과 H. 브 로흐에게서 발견한 서술에 대한 저항이라는 현상을 해명해준다 . 〈최상 의 요구를 충족시킨 서술작품들은 서술의 정당성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최대한의 유보적 태도를 취함으로써 성립한다 . 이러한 긴장으로 부터 생성된 작품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질은 에세이이즘이다. 서술에 대한 저항은 작품 자체 속으로 파고든다……〉 (Bachmann, 1969, S.1 9 4). 무질의 일기의 한 기록을 보면 그 자신도 문장구조의 해체라는 문 제에 주목하고 있었음이 명백해진다. 〈종지부를 지닌 문장으로 사고하 는 한, 어떤 특정한 사태는 말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그것은 기껏해야 어령풋이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지 않는다면 지금 아직은 무의 석의 문턱에 놓여 있는 어떤 무한한 전망들을 명백히 이해할 수 있도 록 해주는 표현법을 어쩌면 배울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Mus i l, 1971, S.19). 그러나 그가 다른 한편으로 그와 같은 통사론적 원리의 해체에 맞서 저항했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경구, (예컨대 조이스에 대한)논평, 기록들 도 많이 있다. 이에 대한 또 하나의 증거는 그의 소설구조 자체이다 . 그것은 『잃어버린』의 구조와 마찬가지로 통사론적 인과율과 그것의 계열체적 해체 사이를 동요하고, 결국 미궁에 빠지고 말기 때문이다. 프루스트와 무질은 자신들이 이 난문을 일방적으로 연상에 의존해서 해결한다면 반드시 술화상의 통사론적 구조와 분리될 수 없는 주체, 죽 자아원리를 희생시키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뒤 룰 이은 아방가르드 운동들이 전통적 형식을 상대로 전개했던 저항은 좀더 단호한 양상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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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소설사회학에 대한 고찰 1. 특수자에서 보편자로 소설사회학은, 그 대상이 되는 일차문헌과 이차문헌들이 워낙 방대 하고 포괄적인 데다가, 문학에 대한 전술은 검증 또는 반증이 가능해야 한다는 요구가 점점 더 명시적으로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특히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루카치나 골드만의 이론에서 보듯 소설사회학이 설정하고 있는 목표는 매우 거창한 것이기 때문이다. 죽 소설사회학은 근대 소설의 발전을 사회역사적인 툴 속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에 접근하는 데는 다음의 특정한 전제들이 충족되지 않 으면 안된다. 1. 덱스트 구조를 다루면서, 사회적 문제를 언어적인 것 으로 사고할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2. 하나의 모델 분석에서 출 발하면서도 한두 명 내의의 작가들에 적용될 수 있는 가설이 그밖의 다른 소설 텍스트에서도 그 타당성을 상실하지 않아야 하고, 또 이러한 여러 덱스트들의 공통점뿐만 아니라 차이점까지도 설명해 줄 수 있어 야 한다. 이 장의 고찰은 앞 장에 이어지는 에필로그로서, 이 두 가지 텍스트사회학적 모델의 몇몇 가설들을 정식화하고 이와 아울러 소설 사회학의 과제에 대한 개요를 제시하려는 것이다.
소설의 사회학에 대해서 텍스트기호학과 동일한 과제를 설정한다면 진부하고도 비생산적인 결과밖에는 얻지 못할 것이다 . 덱스트기호학은 단지 부분적인 몇몇 측면들만을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모파상 의 『두 친구』 에 대 한 그레 마스의 기 호학적 연구 (6 페 이 지 의 본문에 260 페 이지에 달하는 주석)에 비견될 만한 『특성 없는 인간』의 분석은 불가능 하다. 그러나 골드만의 『근대 소설의 사회학』을 보면, 텍스트구조의 특칭을 대강이나마 서술하는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작품의 특수한 성격과는 동떨어진 역사적인 도식을 내세우는 조야한 추상화로 빠져들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골드만의 역사적 서술에 따르면 소설의 발전은 다음과 같이 세 단계로 구분된다. 첫번째 발전 단계는 자유주의적 개 인주의의 단계로서, 그것이 지니는 〈문제성 있는 가치〉는―_·예컨대 스탕달 (Mou ill aud, 1972 참조)이나 발작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__전통 적 소설형식을 가능하게 한다. 두번째 단계는 독점 자본주의의 단계로 서, 이 시기에 진행된 정치적 • 경제적 집중화 과정은 개인의 창의성을 저하시키고 개인주의 이데올로기의 몰락을 초래한다. 소설의 위기, 〈소 설 형식〉과 주인공의 위기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발전 국면에 상응한 다. 주인공, 죽 개인의 통일성이 의문시되는 것이다. 개인주의적 가치 의식의 붕괴에 대한 증거로서 골드만이 제시하고 있는 예는 〈조이스, 카프카, 무질, 사르트르의 『구토』, 카뮈의 『이방인』〉 등이다 (Goldmann, 1964, S.298). 마지막 단계에서는 독점적 경제에 국가가 체계적으로 개입 한다는 사실이 특징적이다. 이제 개개인의 활동력은 자동적으로 통제 되는 체제 안에서 소멸해 버린다. 그 결과 〈누보 로망〉에서는(골드만은 단지 로브-그리예만 다루고 있다) 행동적 심급이었던 주인공이 무의미성 으로 전락하기에 이른다 (Vo~kam p, 1978, Zim a , 1978 참조). 이 장에서 설정된 맥락에서 볼 때 특히(全的으로는 아니지만) 홍미로 운 것은 〈두번째 단계〉, 죽 〈소설의 위기〉 속에 골드만이 뜻밖에도 카 프카, 사르트르, 카뮈룰 정신적인 이웃으로 함께 포함시켰다는 사실이
다. 텍스트사회학의 툴 안에서 생각한다면 ___ 특히 두 개의 모델에 대 한 분석을 고려할 때__그러한 근친관계는 거의 근거 없는 것이다. 그런 관계가 성립하기에는 『구토』와 『이방인』이라는 덱스트와 무질과 카프카의 덱스트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물론 프루스트, 무질, 카프카, 조이스의 각 소설들 사이의 차이점도 간과해 서는 안될 것이다. 그것은 조이스에 대한 무질 자신의 논평에서 주제 화된 바 있으며(앞을 참조할 것) 카프카가 몽환적인 것, 심리학 따위를 의식적으로 거부한 데서도 명백히 드러난다. 그러나 양가성의 문제에 서 계열체적 글쓰기방식에 걸쳐 나타나는 공통된 특질들은 결정적인 것이며, 이 소설들의 구조들이 발생론적으로 근친적인 것이라는 가정 울 입증해 주고 있다. 이에 반해 사르트르와 카뮈의 소설은 분명히 전혀 다른 사회언어학 적 상황의 산물이다. 이제 양가성과 그 결과들이 더 이상 문제시되지 않고 오히려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 온 것이다. 카뮈의 『이방인』에서는 양가적인 태도, 예컨대 어머니에 대한 애증의 감정이 주체의 동일성의 위기나 서술형식의 위기로 귀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고뇌) / 무관심이라는 대립 자체가 무차별하게 된다. 주인공이 자신 의 어머니에게 무관심한 태도를 취한다면 이는 하나의 〈우연〉, 교환가 치의 현상형태로서의 우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어머니를 사랑 할 수도, 미워할 수도 있는 것이다. 조이스의 『율리시즈』의 주인공인 스티븐 디덜러스는 이와 다르다. 그는 반종교적인 확신 때문에 죽어가 는 어머니를 위해서 기도하기를 거부한다(〈왜 ? 자네는 자네 속에 그놈의 저주받을 제수이트의 기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거야. 단지 그놈의 것이 엉 뚱하게 잘못 주입된 거지 . 〉 벅 멀리건은 이렇게 설명한다. Joy c e , 1971, S.14). 여기에서 가치의 설정은, 비록 부정되기는 하지만, 중요한 역할을 담당 하고 있다. 카뮈의 경우는 다르다. 그의 덱스트는 의무적으로 분노를 표시하는 도덕가들과 아울러, 뫼르소를 심판하는 시대착오적인 문화 약호의 수호자들도 희화화한다. 그는 무관심한 인간으로서 그들의 눈
앞에 가치체계의 붕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뫼르소가 사형선고를 받는 이유는 그가 한 명의 아랍인을 죽이고 자기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완전한 〈무관심〉, 제가치의 교환가능성이 새로운 서술적 인과율을 가 능케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 그러나 그러한 인과율 그 자 체는 〈가능한 이야기〉로서, 허구 세계 속에서의 가치와 그것에 대한 결정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아무래도 좋은 것, 우연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무질, 프루스트, 카프카, 조이스까지만 해도 다음과 같은 물음 들에 어떤 역할이 주어져 있었다. 알베르티느는 누구인가? 또 알베르 티느에 관한 이야기들 중 어느 것이 진실인가? 특성 없는 인간이란 누구인가? 또 그런 인간의 삶이 소설로 서술될 수 있는가? 요제프 K. 는 유죄인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의 유무죄 여부가 입증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카뮈의 경우 이러한 질문들은 더 이상 의미론과 거시통사론 사이의 관계를 결정짓는 요인이 못된다. 의미론적 무관심 의 문제가 양가성의 문제를 대신한다. 그러나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 의 초상』에서만 해도 양가성은 주체의 동일성을 위협하고 있다. 예수 의 인격의 이중성을 화제로 진행되는 대화에서 스티본은 친구인 크랜 리 에 게 이 렇 게 묻는다. <… …A re you trying to make a convert of me or a per vert of you rself? 〉(……년 나를 전향시키려는거냐, 아니면 스스로 타락하려 는거 냐 ? ) (Jo y ce , 1972, S.2 4 2)
때, 세기 전환기의 소설가들은 카뮈나 사르트르보다는 초현실주의자들 에 훨씬 더 가까운 편이다. 프루스트의 몽환적인 대상들과 브레통의 〈우연히 발견된 대상〉, 프루스트의 뜻밖의 추억과 브레통의 〈객관적 우연 〉 사이의 밀접한 연관에 대해서는 나의 다른 저서에 상세히 논의 되 어 있 다 (Z i ma, 1979 참조) . 보다 더 근본적인 비교를 해본다면 골드만이 인지하지 못했던 또 다론 차이점들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즉 그가 텍스트의 의미론적 토대, 의미론과 통사론 사이의 연관에 대한 논의는 하지 않은 채, 실 존적인 문제들(〈문제적 개인 〉 , 〈 전정한 가치 〉 )을 허구적 현실 속으로 직접 끌고 들어오는 바람에 간과했던 차이점들 말이다. 2. 카프카와 헤세에 대한 附說 무질과 프루스트를 한편으로, 카프카와 헤세를 다른 한편으로 하여 비교해 본다면 이와는 다른 결과에 도달할 것이다. 아들에게서는 오히 려 공통점이 지배적이고, 또 종종 나타나는 현저한 차이접들조차도 공 통된 문제들에 환원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카프카가 , 비록 전혀 상이한 방식으로이긴 하지만 무질이나 프루스트의 경우와 동일한 문 제들을 놓고 씨름했다는 것은, 언어와 의사소통에 대한 그의 견해만 보더라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의 작품 『혼례준비 』 에서는 언어적 영역에서의 〈자아〉의 이중성이 다루어지고 있다. 〈고백이나 거 짓말이나 다 감은 것이다. 사람들은 고백을 하려고 거짓말을 한다. 사 람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줄 모른다. 왜냐하면 사람이란 바로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전달하는 말은 실제의 자기자신이 아 니다. 죽 거짓말인 것이다. 聖 壇 所에서라면 어느 정도의 진실이 있을지 는 모르겠다〉 (K afk a , 1965, S.241). 오늘날의 이른바 〈사회적인 의사소
통〉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무질의 논평을 보면, 이 두 작가의 이념적인 근친관계를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 사이의 참된 전실이란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노력은 방해로 전화한다〉 (Mus i l, 1971, S.1 2 s). 〈참된 진실〉의 불가능성 속에는 〈거짓된 전실〉이라는 양가성이 내포 되어 있는바, 이러한 양가성은 프루스트의 화자와 〈고백하느라〉 거짓 말을 하는 양성적인 여인 알베르티느 사이의 대화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카프카의 사회언어학적 상황을 특징짓는 양가성은 언어를 거쳐서 『심판』과 같은 소설 속으로 파고 들어온다. 이 소설 속에서는 인물의 성격도 행동(〈기능〉)도 發話도 모두 불투명하다. 소설의 첫머리부터 역 설이 나타나는데, 이는 무질의 아이러니와 마찬가지로 양가성의 산물 이다. 〈누군가가 요제프 K 를 証告했음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는 아 무런 나쁜 짓도 한 일이 없는데도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체포당했기 때문이다〉(Kafk a, 1960, S.7 ) . K 가 아무런 나쁜 짓도 한 일이 없을 것이 라는 단정적 주장은 그가 체포당한 사실과 명백한 모순을 일으키며, 화자에게나 독자에게나 〈참된〉 전상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제기한 다. 이러한 미해결 상태의 물음은, 바흐친이 말하는 다성적(복수술화적) 텍스트의 기반을 형성하고 있기에, 소설 『심판』에서 역설과 아울러 가 장 중요한 구조화의 요소라 하겠다. 소설의 마지막 역시 다음과 같은 해명되지 않은 물음으로 마무리된다. 대체 누구일까? 천구일까? 좋은 사람? 동정해 주는 사람? 도와주려는 사람? 단 한 사람뿐일까? 모든 사람들일까? 아직도 구원의 손길을 기대할 수 있을까.? 잊혀져버렸던 반증이 있을까? 틀림없이 그와 같은 반증이 있을 것이다. 논리가 확고하기는 하지만, 살려는 욕망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 논리 도 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판사는 어디에 있을까? 그가 한 번도 가볼 수 없었던 그 높은 법정은 어디에 있는가? 그는 손을
들어 손가락울 전부 짝 펼쳤다(앞의 책, S.1 6 5). 이 텍스트에서는 양가성, 역설, 질문이 서로 대단히 밀접하게 얽혀 있다. 절대적인 대립자들이 한데 충돌하고 있지만, ――헤겔의 경우처 럼――종합으로, 긍정으로 융해되어 버리지 않는다. 물론 잊혀져버린 반증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K. 는 〈처형당한다〉(그가 처음에 죄도 없는데 체포당했듯이). 논리는 확고한 것이지만 살려고 하는 자에게는 당하지 못한다. 의미론적 이중가치성은 역설로서, 미해결 상태로 남는 무수한 물음들을 초래하는 것이다. 요제프 K. 의 유무죄 여부에 대해서는 독자 자신도 소설 끝까지 아무 런 결정적인 해답을 얻지 못한다. 성직자가 해준 다음과 같은 해명, 〈 적어도 현재로서는 자네의 유죄가 입증된 것으로 간주되고 있으니까〉 라는 말 역시 양가성의 각인을 지니고 있다. 이 말 역시 소설의 다음과 같은 물음들 속에 포함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제프 K. 는 유죄인가? 혹은 법정이 그에 대해서 편견을 지니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전적 으로 올바른가? 어디에나 편재하는 법정, 화가 티토렐리도 성직자도 모두 거기에 소속되어 있는 법정은 카프카의 『심판』 속의 〈현실〉 그 자체이다. 이러한 현실도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마찬가지로 다의적이고 불가해한 것이다. 〈착각하지 말게〉 하고 성직자가 말했다. 〈무엇을 착 각한단 말씀입니까?〉 요제프 K 가 물었다. 〈법정에 대해서 말야〉, 이 렇게 성직자가 대답했다……(앞의 책, S.1 5 5). 카프카 소설의 중의성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도덕적 기관, 죽 법정의 〈부도덕〉이다. 법정의 관리들은 의설 잡지를 읽는다. K. 는 법정 이 〈여자 사냥꾼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S.154). 화가 티토렐 리가 그린 〈정의〉의 여신이 결국 〈사냥〉의 여신을 상기시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리하여 여기에서도 의미론적 가치의 양가 성이 백일하에 드러난다. 이러한 양가성은 카프카의 경우에도 서술통사론을 파괴시키는 주범
이다. 양가성으로 인해 (〈전술의 주체〉로서의) 화자는 주체, 반주체, 조 역자, 거역자, 사역자 등의 서술 심급을 일의적으로 규정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T. 토도로프는 노벨레 『데카메론』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후기 봉건체제에서 바롯하는) 사회적 근거를 가진 특정한 행동은 전적으 로 특정한 인물만이 수행할 수 있는 것이라고 확언한다. 예컨대 〈공격 하다 an gre if en 〉라는 기능은 從僕의 성격뿐만 아니라 주인의 성격도 형 성하므로 양면적인 것으로 정의될 수 있지만, 〈해를 입히다 schaden 〉라 는 기능은 전적으로 사회적 상류층과 결부될 뿐이라는 것이다 (Todorov, in : Wahl, Hrsg. , 1973 참조) . 카프카의 『심판.Jl의 의미론적 양가성은 『데 카메론』의 빈틈없는 문화약호와는 날카로운 대립을 이룬다. 카프카의 경우에는 특정한 행동유형을 인물의 사회적 속성과 결합(이는 초기 부 르주아 시대의 소설의 경우에 해당된다)시킬 수 없음은 물론이고, 하나의 안물을 두고 그가 〈조역자〉인지 〈거역자〉인지, 〈주체〉인지 〈반주체〉인 지를 정의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돕다〉, 〈옹호하다〉, 〈공격하다〉, 〈해를 입히다〉와 같은 기능이나 성 격적 인 지표(바르트)가 소설 『심판』에서만큼 다의적으로 되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요제프 K. 가 계속 기대했던 여자들-말하자면 레니 혹은 廷吏의 아내-의 도움이 곧 그를 파멸시킨 것은 아닐까? 끝에 서 두번째 장(「대사원에서」)에서 성직자는 이러한 견해를 피력한다. 그 러나 그것 역시 텍스트내에서 가등한 하나의 인과적 맥락을 구성하는 하나의 〈견해〉일 뿐이다. 이와는 다른 맥락, 다른 인과적 진행도 마찬 가지로 생각해봄직하다. 계열체적으로, 다의적으로 구조화된 斷編的 소 설은 이를 배제하지 않는 것이다(그러기에 예컨대 들뢰즈와 과타리는 카프 카에 대한 저서에서 소설 『심판』의 마지막이 결코 앞서 제시된 장면들로부터 도출되지 않으며, 오히려 ―― M. 브로트가 주장하듯이 - 결말부로서의 필연성 울 갖추지 않은 또 하나의 몽환적인 장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던 것 이 다) (Deleuze, Guatt ar i, 1975 참조) . 해석자들간의 반목, 다의적이고 개방적인 텍스트 앞에서 나타나는
의혹에 찬, 절망적인 반웅들은 카프카 자신에 의해서 주제화되고 있다. 프루스트, 무질의 소설과 마찬가지로 『심판』 역시 허구덱스트 생산의 문제를 다룬 것으로 읽혀질 수 있는 부분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 ‘내 말을 오해하면 안돼' , 성직자가 말했다. ‘나는 사네에게 단지 이 이야 기에 대해 제기되고 있는 여러 가지 견해둘을 말해 주는 것뿐일세. 자 넨 여러 견해들에 지나치게 구애받을 필요는 없어. 변치 않는 것은 기 록뿐이고, 그 견해들이란 그저 이에 대한 절망의 표현에 지나지 않으니 말이야' 〉 (K afk a, 1960, S.1 5 8). (양가성의 산물인) 우화의 다의성을 대상으 로 하고 있는 이 문장은 그 시골사람이 속았는가 하는 요제프 K 의 물 음에 대한 〈 대답 〉 아다. 우화의 인과적인 맥락은 발견할 수 없으며, 그 시골사람이(K.처럼 ? ) 속아 넘어갔는지, 혹은 그가 자기 기만에 빠져버 린 것인지 하는 물음은 K 의 유무죄 여부에 대한 물음과 마찬가지로 대답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우화 자체는(그것이 놓인 콘덱스트와 관련지어 볼 때) 소설 속에서 아무런 〈 철학적 인과율 〉 도 기초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인과적이라 하겠다. K 의 해석은 우화의 다의성(몇몇 이질적인 동위체들의 합동작용)을 지양하지 못한다. 문예학자들의 신학적 , 사회학적, 심리학적 해석도 마 찬가지다.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역설적인 카프카의 텍스트는 무질의 반어화하는 『특성 없는 인간 』 과 유사하게 反理念素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양가성을 다의성으로 가공하여 개념적(철학적, 아데올로기적) 체계들을 의문시하는 개방적이고 다의적인 술화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 우화는 단편적 소설 속에서 하나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물론 그것은 인과적 , 통사론적인 기능이 아니라 연상적, 계열체적인 기 능이다. 그 우화는 제유적으로, 즉 〈전체를 대표하는 부분〉으로서 텍 스트 전체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기능적인 면에서 프루스트 의 「스완의 사랑」, 헤세의 「코요테(북미 대초원인 스텝 지역의 이리, 우리 나라에서 이 소설은 『황야의 이리』로 번역되어 있음―― 역주)에 대한 소.고.」 와 일치한다.
여기 구상된 텍스트사회학의 시론의 과업으로서 가장 중요하고도, 가장 생산적인 성과를 낳을 수 있는 것 중의 하나는 헤세의 작품에 있어서의 양가성과 그 기능을 서술하는 일이다. 여기서는 의미론적 대 립자들의 충돌을 한 인물의(주체의) 붕괴에 직접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다. 코요테, 즉 〈늑대 인간〉의 모습 속에서의 인간과 짐승의 결합뿐 만 아니라, 코요테의 분열울 예고해 주는, 소시민 클라인( 〈 작은 〉 의 뜻 _ 역주)과 범죄자(이자 작곡가) 바그너의 결합 역시 주체의 심리적 사 회적 이중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노벨레 『클라인과 바그너』 에 나타나는 양가성을 분석하는 작업은 『코요테』를 이해하는 데 필수 적인 것이다. 클라인은 선악의 피안에 존재하는 세계에 빠져든다. 〈이 곳은 더 이상 나의 예전의 세계가 아니다. 이곳은 더 이상 품위 있는 세계가 아니다. 이 세계에서는 품위니 비천함이니 하는 따위는 아무런 의마도 없다. 모든 사람은 스스로 고된 삶을 사랑하려고 애쓰고 있다〉 (Hesse, 1973, S.30) . 20 세기 초영의 다른 소설가들과 마찬가지로 헤세의 경우에도 대립 자들의 충돌인 양가성은 주체의 위기로, 정신분석학적 의미에서의 인 격의 분열로 귀결된다. 클라인에 대한 다음과 감은 언급은 뒷날 해리 할러에 대해서도 해당된다. 〈그는 자기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나고 있 다는 것을 찰 알아차리고 있었다. 다시 바그너가 나타났다. 다시 미의 세계가 나타난 것이다. 그 세계는 미적이지만 통제가 없고, 매혹적이지 만 비밀도, 紙惡도, 양심의 가책도 없는 곳이었다. 그때 그의 내부에는 이러한 낙원으로 가는 것을 금지하는 敵이 도사리고 있었다〉(앞의 책, S.4 1 ) . 헤세의 『코요데』에는 서로 화합할 수 없는 경쟁관계에 놓인 가치들 울 체현하는 행위자들이 단일한 〈인물〉 속에 참복하고 있다. 따라서 그러한 인물은 통일적 인 주체로서(〈하고 싶어함 voulo i re fair e 〉으로서, 그레 마스) 자신의 몰락에 맞서게 되는 것이다. 헤르미네의 〈소년 같은〉 이 중적인 모습은 무질의 兩性具有的인 꿈, 클라리세, 그리고 프루스트의
양성적인 존재를 연상케 하는데, 해리 할러는 그녀와 만나고 나서는 자신의 노년의 〈 자아 〉 로부터 도피하면서 다음과 갇은 인식에 도달한 다. <… … 내가 시민과 도덕 , 그리고 교양의 세계와 결별한 것은 코요 데의 완전한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 (Hesse, 1972, S.9 2 ~93). 이 지점에서 현대의 서술학이(특히 A. J.그레마스의 서술학이) 허구상의 〈 인물 〉 이라는 개념을 이데올로기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이유가 무엇인 지 명백해진다. 단일한 주체 내부에서 서로 다론 두 명의 행위자〈그리 고 / 또는 〉 행역자가 상호배타적인 두 개의 〈서술 프로그램 〉 을 실현시 키려 할 경우에는 주체 개념 자체가 수상쩍어지는 것이다. 서술학은 이러한 붕괴현상에 대처하여 〈 인물 〉 이라는 개념을 〈 행역자 〉 개념으로 대체하였다. 이처럼 문학이론은 허구텍스트 생산의 실제적 경험을 뒤 따르기 일쑤인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프루스트와 무질에서와 마찬가 지로 헤세의 경우에도 두 가지 상호보완적인 측면을 지닌다. 죽 (a) 약호와 의미론적 심층구조의 붕괴와 (b) 양가성을 수용 가공하면서 양 가성에 의해 뒤흔들린 인과율은 거부하는 계열체적 글쓰기방식으로의 이행이 그것이다. 헤세의 〈 마술 극장〉의 묘사는 과거로부터 갑자기 툭툭 튀어나오는 몽환적인 장면들의 나열로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의 마지막에 나오는 어린 시절의 회상과도 흡사하다. 차례대로, 그러나 인과적 순서 는 없이 깜빡거리는 〈 마술 극장〉의 광고판들 중의 하나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여져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예술의 총체. 음악을 통한 시간의 공간으로의 변환〉(앞의 책, s.208). 헤세의 덱스트 역시 『잃어버 린 』 과 마찬가지로 시간 감각과 연대기를 무시간적인 몽환적 연상으로 대체하고, 이로써 서술 통합체를 賜逐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서술 통합 체란, 바르트의 주장에 따르면 〈연대기적인 환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통합체와 그 십총구조의 몰락과 더불어 가치평가하고 판단하며 인 과율적 구성을 주재하는 심급인 주체 역시 해체된다. 동사론적인 구성
의 해체는 허구상의 〈 인물 〉 의 해체를 수반하는 것이다. 〈 그는 나에게 거울 하나를 내밀었다 . 나는 그 속에서 나라는 단일한 인물이 무수한 나둘로 분열되는 것을 다시 보았다. 그 숫자는 계속 늘어나는 것처럼 보였다〉(앞의 책, s.2 0 9). 초현실주의와 홉사하게 헤세, 무질 , 프루스트의 경우에도 〈문화의 자연으로의 회귀 〉 (G. Ste i n w achs) 현상이 일어난다. 이는 이미 헤세의 『요양객』에서 그 전조를 드러낸다. 이 텍스트에서는 니체와의 친화성이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 아직 담비와 , 원시 세 계의 이슬과, 본능과 자연이 존재했던 때까지만 해도 시인에게 세계는 아직 가능성 있고, 아름다우며 희망에 찬 것이었다 〉 (H esse , 1972, S.5 3 ). 이 점에서 볼 때 카프카와 다른 작가들, 헤세, 무질, 프루스트, 조이 스 등의 작가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확연해진다 . 카프카에게 나타 난 자연의 모습은 뭔가 위협적이고(경멸적인 의미에서) 동물적인 것이 며, 유아적 • 비인간적인 세계로의 퇴행이다. 카프카는 무의식으로의 도 피를 해방으로 간주하기를 거부한다. 특칭적인 사실은 그가 프루스트 처럼 보들레르의 類比룰 찬양하는 대신에, 은유란 자신으로 하여금 〈글쓰기에 대해 절망〉하게 한다고 주장하였다는 점, 그리고 〈내면〉의 무의식을 〈자아〉의 구원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악몽과 고통으로 받아 들였다는 점이다 (Falk, 1961, 참조). 카프카는, 조이스가 행한 문장 통사 론의 해체에 이견을 보였던 무질보다도 훨씬 더 명백하게 하나의 영 웅적 예술관을 표명한다. 그는 시장법칙의 몰가치성 , 가치의 무차별성 이 진정으로 관철되는 영역이 바로 무의식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 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프카의 화자는 꿈꾸는 자다. 카프카에게서는 〈꿈이 편재한다〉는 아도르노의 지적은 아마도 타당할 것이다. 〈敍事作 家 카프카는 꿈을 그 편재성을 통해 해체시킴으로써, 표현주의적 충동 울 급전적인 서정시인에게서나 기대할 만한 정도로 멀리까지 밀고 나 갔다. 그의 작품에는 극좌파의 어조가 깃둘어 있다……〉 (Adorno, 1976, S.3 2 7). 카프카가 다론 작가들과 구별되는 점은 무엇보다도 주체의 해
방이라는 문제의 아포리아적인 성격을 그가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 이다. 그 때문에 독점주의 시대의 〈 자아 〉 는 어떤 〈 구원 〉 도 기대할 수 없는 , 몰락을 선고받은 단위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을 통해서 카프카는 〈 비판이론 〉 과 결합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 비판이론 〉 에 대한 관계는 카프카가 무질, 프루스트, 헤세보다 더 밀접하다. 무질 등은__비록 회의적이긴 하지만――무의식의 세계 속에서 구원을 추 구하였고, 그 구원의 근저에 놓인 아포리아를 더 이상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더욱이 헤세는 일종의 정신분석학적인 자연상태에서, 가치와 편견의 극복에 주의를 집중한다. 그는 『 고집』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 이는, 나 역시 부분적으로 연루되어 있는 정신분석학이 요구하는 바 와 동일한 것이다. 죽 우리는, 적어도 단 한번만이라도, 모든 가치판단 으로부터 벗어나서, 있는 그대로의 우리 자신을 관찰하여야 한다. …… 거기서부터, 이 원점에서부터 우리는 실제의 삶을 위해 가치표를 새로 작성해야 할 것이다. 긍정과 부정, 선과 악을 구분하고, 계율과 禁制를 수립해야 한다 〉 (Hesse , 1972, S.1 3 8). 비록 회의적이고 자기비판적인 제한 을 덧붙이기는 하지만, 헤세가 정신분석적인 〈내면으로의 전향〉을 통 해, 무질처럼 〈 탈중심적상태〉(무질) 속에서의 〈 자아〉의 해방울 기대했 울 뿐만 아니라 , 프루스트(그는 프로이트의 저작에 집해 본 적은 없었지만) 처럼 새로운 참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희망하였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 동시에 헤세는 가치의 위기, 가치평가적 대 립자들의 위기를 한탄하면서, 이를 매개의 산물로 이해한다. 문학은 여흥, 유희, 사기다. 문학 전체는 상인들의 거래소, 無常性의 거래소 인 것이다 . 내가 한때 대단히 전지하게 받아들였던 좋은 문학과 나쁜 문학의 구별은 접점 허물어져가고 있다 그리하여 에른스트 찬과 토마스 만 사이에, 강호퍼와 헤르만 헤세 사이에 더 이상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는 구별은 존 재하지 않으며, 우리 시대에서 더 좋다는 것, 최선이라는 것조차 망상에 지
나지 않는 것이다. 도덕과 성스러움의 기반, 초개인적인 가치를 향한 진지한 노력을 위한 기반은 도처에서 무너지고 있다(앞의 책 , S.1 4 7). 세기전환기 소설의 난관이 이처럼 명료하게 드러난 글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선과 악, 미와 추, 참과 거짓이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전제 없이는(특수한 문화약호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시장법칙에 의해 이러한 가치들이 파괴되어버린 상황에서 자연, 무의식, 〈예술적 본능〉 으로 돌아간다고 이들이 복원될 수는 없으며, 찰 해야 파괴된 상황을 확인할 수 있을 따름이다. 프루스트는 이 점을 간과했기에, 예술이 〈뜻밖의 추억〉을 통해 정당화될 수 있고, 심지어는 구원받을 수 있다 고까지 생각했던 것이다. 훗날 초현실주의적 전위예술가들은 무의식의 실험과'사회적 사실, 제도로서의 예술은 화합할 수 없는 것임을 보여 주었다. 그들은 시종일관 제도의 폐기를 옹호했던 것이다 (Bur g er, 1974 참조) . 정신분석학은 양가성에서 비롯된 소설의 위기를 지양할 능력이 없 다. 정신분석학 자체가 양가성(매개)의 산물인 것이다. 또한 정신분석 학은 많은 세기전환기의 소설에 진지하게 수용되기도 하고, 반어적으 로 가공되기도 했는데, 이처럼 정신분석학이 많은 소설에 중요성을 지 녔던 까닭은 점점 심화되어가는 〈자아〉의 이중성 때문이라 하겠다. 이 제부터 〈자아〉는 〈이드〉와 〈초자아〉의 화합할 수 없는 요구들을 충족 시키기 위해 자기와 타인을 〈속이〉는 〈합리화〉의 심급으로 간주된다 . 의미론적 양가성은 약호에 작용하여 새로운 과학적 전망을 연다. 그 리하여 주체는 대립자들의 통일로, 양극화되고 분열되어가는 구조로 간주되는 것이다. Th. 만은 이 점을 인식하고, 〈프로이트와 미래〉라는 데마의 강연에서 다음과 감이 말한다. 무의식, 죽 이드는 원시적이고 비합리적이기에 순수하게 역동적입니다 . 그 것은 가치평가니, 선과 악이니, 도덕이니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게다가
시간도, 시간적 흐름도, 그 흐름에 의한 영적 과정의 변화도 이드는 알지 못 하는 것입니다 …… 대체로 자아 자체라는 것은 이에 대한 근심 때문에 거의 불안한 상태에 있습니다. 그것은 〈이드〉의 표면에 드러난, 개명되어 깨어 있 는 작은 부분인 것입니다. 흡사 유럽이 드넓은 아시아의 작은 지방인 것처럼 말입 니 다 (Mann, in : Freud, 1953, S.1 3 8~ 139) . 주체는 중의적이고 모순적인 것으로 정의된다. 즉 그것은 〈초자아〉 와 〈이드〉, 문화와 자연, 시간과 무시간,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것, 〈유럽〉과 〈아시아〉의 통일체인 것이다. 정신분석학이 20 세기 초엽의 소설과 동일한 사회언어학적 상황과 그 모순으로부터 유래한 것인 이상, 또 개인주의로부터 〈본질적인 것을 …… 구출해내야 한다〉 (Mus i l) 는(정신분석학과 프루스트, 카프카, 무질을 이 어주는) 요구에 따르는 이상, 정신분석학에 의한 소설텍스트의 해명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으니, 말하자면 이는 자기자신과의 유추에 그치기 마련이다. 따라서 텍스트사회학이 담당해야 할 과제는 소설의 허구적 구조뿐만 아니라 정신분석학의 이론적 구조 역시 설명할 수 있는 틀을 정립하는 일이다. 3. 프랑스 소설의 발전에 대하여 소설의 〈전화〉에 있어서 세기전환기의 소설들은 일종의 分水嶺울 형성한다. 덱스트사회학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하여, 한편으로 사르트르, 카뮈, 〈누보 로망〉에 이르는 발전을 탐구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 편으론 말하자면 회고적으로 자유주의와 초기 부르주아 시대의 소설에 나타나는 양가성과 서술통사론 사이의 관계에 대해 서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상세한 역사적 연구에서 다루어야\t 가설은 다음과 같다. 의
미론적 양가성이 점점 심화되어감에 따라 통사론적, 인과적 구조는 점 전적으로 약화되며, 풀로베르와 모파상 이후로는 〈소설의 위기〉라는 상황에 이른다• 심리학의 전개도 이러한 소설의 전개와 병행하는 것으로 서술할 수 있을 것이다. 얀 와트는 스탈 부인의 주장에 근거해서, 소설의 발전이 개인의 십리에 대한 철학적 관심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하려 한다. 그가 〈소설의 인물 성격에 대한 주관적이고 분석적인 접근〉 (Wa tt, 1974, S.200) 이 라는 말로 표현한 바는 17, 18 세 기 의 심 리 학적 제 이 론과 아울러 개인주의적 시장사회와 그 사회문화적인 양가성의 산물로 해 석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확연히 드러나는 것은 시학, 정치학, 심리학에 관한 크리스티안 토마지우스의 몇몇 저술에서다. 그는 인간의 〈격정 Affek - t en 〉과 〈침짓 점잔 빼는 속성 Aff ek ti e rt he it〉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 다 . 〈모든 격정이란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을 추동하는 인간 내부 의 가장 강력한 운동이다. 따라서 인간이 자신의 격정을 숨기려는 모든 말이나 여타의 행동은 정찬 빼든 것이고, 그러므로 억지에 지나지 않 는다〉 (Thomas i us, in : Warenburg, 1976, S.203). 숨겨진 것은 〈점잔 빼는〉 말이나 행동과는 반대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후대의 심리학, 심지어는 정신분석학의 주제까지도 예견케 한다. 심리학과 심리학적 소설들이 성격적인 이중성을 탐구하고 〈격정〉의 모순성을 서술하면서도 성격이라는 단위나 그것의 정의 가능성에 대 해서는 그다지 의심하지 않는 반면에, 정신분석학은 프루스트, 헤세, 무질의 소설과도 같이 〈카니발적인〉 이중적 존재, 가면들을 다룬다. 정신분석학에서 중의성은 주체와 서술 통합체의 통일성을 위협하는 극복할 수 없는 이 원론으로까지 상승한다. 지적해둘 수 있는 사실은 17. 18 세기의 소설들, 심지어는 19 세기의 소설까지도 이중성과 모순성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그 전제는 〈현실〉 이란 인식될 수 있고 정의될 수 있는 것이며, 가장과 촌재 (e t re 와 pa ra·
itre , 그레마스)의 구별은 유의미하다는 관념이었다는 점이다. 여기에 서는 주체와 그가 쓰고 있는 가면이 동일하지 않다. 라파예트 부인의 『클레브 공작』 (1678) 에 대한 연구에서 에리히 쾰러 는 이 심리학적 소설의 시작에서는 이중성의 문제가 지배적이라고 지 적한다 가상디 , 홉스 , 데카르트의 세속화된 철학에서와 마찬가지로 『클레브 공작』에서도 개 인은 격정 pas sio n 과 미덕 vert u 사이룰 동요하 는 이중적인 존재로 나타난다. 라파예트 부인의 소설과 데카르트의 『 情 念 論 』 을 비교하면서 쾰러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아울러 이러한 비교를 통해 추론해 본다면 , 격정을 이성과 의지에 의해서 통제할 수 있다는 데카르트의 확신이 라파예트 부인에게서는 혼들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Kohler, 1976, s.21).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양가성이 심리학적 소설(과 심리학)의 발생의 원인이 된 것으로 볼 수는 있지만, 아직은 서술적 인과율의 붕괴를 야 기할 정도로 심화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쾰러의 연구는 성격의 심 리학이 행동과 사건들을 ( 일의적으로) 해명해중으로써 〈심리학적 인과 율 〉 (
제약되는가도 알게 된다. 주지하다시피 프루스트는 발작의 명시적인 서술방식을 탐탁지 않게 여겼고 이를 환담, 의사소통적 담화의 〈문체〉와 비교하였다. 발작의 화자는 너무 많이 알고 너무 많이 설명해주며 암시나 다의적인 문체의 사용에는 너무나 인색하다. 〈그 문체는 아무것도 암시하지 않고 아무 것도 반영하지 않는다. 그것은 설명할 뿐이다. 더욱이 그 설명은 극도 의 감동을 주긴 하지만 여타의 형상들과는 융합되지 않은 채 그가 말 하고자 하는 바를 설명해주는 그러한 형상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마치 우리가 환담하면서 설명하듯이 말이다……〉 (Prous t, 1962, S.1 1 4). 여기에서의 본질적인 문제는 문체에 관한 문제 이상의 것이다. 발작 의 〈환담의 문체〉에 대해 가한 프루스트의 비판의 이면에는, 허구의 충위에서 인물 성격, 줄거리, 상황을 어느 정도 일의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두명하고 설명 가능한 제 2 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야기〉로서의 〈파롤〉, 서술적 담화에 대한 의심이 숨겨져 있다. 프 루스트와 무질이 허구 세계로서의 〈현실〉을 서술적으로 파악할 수 있 는 가능성을 의심하고 다의적이고 〈미메시스적〉(아도르노)인 글쓰기방 식을 선호한다는 사실은, 문학의 진화 과칭에서 가장 중요한 도약 중의 하나인 프루스트의 발작과의 단절 이유를 해명해 준다. 프루스트는 발작의 서술적이고 설명적인 글쓰기방식을 비판한 반면 에 구스타프 풀로베르, 특히 그의 『감정 교육』에 대해서는 경탄해 마지 않았는데, 이 두 가지 태도는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놓여 있다. 그것도 우연이 아닌 것이, 플로베르의 작품에서는, 프레데릭 모로의 친구 세네 칼과 갇은 분열적인 인물의 등장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시피, 서술통사 론에 대해 최초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 기에서 개전된 시론의 틀 속에서는 아마도 많은 작가와 문예학자들이 제시한 테제, 죽 플로베르는 프랑스 소설 발전에 있어 하나의 전환점을 예고하고 있다는 테제가 확증될 수 있을 것이다. 계열체적인 것에의 경향을 보이는 그의 구성법은 프루스트뿐만 아니라 조이스까지도 선
취하고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큰 홍미를 끄는 것은 풀로베르와 조이스간의 근찬관계에 대한 R. K. 크로스의 다음과 같은 논평이다. 〈우리가 전장에서 이미 암시한 바 와 같이 E.M. 포스터가 逸話의 강제’라고 불렀던 바로부터 픽션을 해방시킨 것은 풀로베르의 가장 큰 공적의 하나이다. 이는 결코 『보바리 부인』에 일화 와 줄거리가 전혀 없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풀로베르는 서술적인 필치를 자 기 책 전체에 걸쳐 관철하며 중요한 부분 중 5~6 군데는 줄거리를 추전시 키기 위해 폭발적인 극적 장면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 일화적인 것의 약화 현 상은 『율리시즈』에서 훨씬 더 명백히 나타난다. 여기에서도 극적인 성격의 발전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풀로베르 이후 서술적 요소가 더 이상 허구 세계의 핵심을 형성하지 못하게 된 것도 엄 연한 사실이다〉 (Cross, 1971, S.9 5 ~96). 풀로베르(와 졸라)의 경우에 나타나는 양가성과 서술구조 사이의 관 련을 근본적으로 연구하는 일은 시급하다. 이룰 통해서, 풀로베르의 〈제자〉인 모파상이 소설에 대한 논문(「 Le Roman 」)에서 전통적 인 〈음 모 In t r igu e 〉* 개념을 비판하면서, 〈삶의 위기 les cri se s de la vi e 〉를 서 술하지 말고 삶의 〈정 상적 인 상태 a l' etat normal 〉를 묘사하자는 제 안을 한 이유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Mau p assan t, 1959, S.10).
* 음모 In trigu e 란 드라마나 소설의 줄거리를 급변시키는 계기로 작용하는 음모, 간계, 책략 등을 가리키는 문학용어다. 줄거리 전개에 핵심적인 요소인 까닭에, 줄거리 또는 재미있는 이야기의 의미로 전용되기도 한다 一―역주.
또한 이러한 연구는 G. 루카치가 「서술이냐 묘사냐」라는 논문에서 풀로베르와 졸라를 거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밝혀줄 것이다. 그는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 형상이 획득하는 의미는 사건들의 내적인 인간적 무게로부터 도출된 것이 아
니 다 …… > (L ukacs, in : Brin k mann, Hrsg. , 1974, S.39) . 루카치 의 헤 겔주의 적이고 목적론적인 술화는 점증하는 양가성이 역사적 과정을 더 이상 유의미한 인과율로서, 거시통합체로서 서술할 수 없도록 만들어버렸다 는 인식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아도르노가 말한 바 있는 헤겔류의 〈모호성에 대한 배척〉(앞을 참조할 것)은 의미론적 약호의 위기로 인해 심층구조와 행역자에 대한 일의적인 규정이 곤란해진 시대에 통사론적 단위로서의 체계를 구출해내려는 시도이다. 여기에서 술화비판은 시작 된다 . 참고문헌 Adorno, Th. W. : Pri sme n, Kult ur kri tik und Gesellschaft, · Frank fur t, Suhrkamp , 1955, 1976(stw ) Burge r , P. : Theo rie der Avantg ar de, Frankfu rt, Suhrkamp , 1974 Cross, R K. : Flaube rt and Joy c e . The Ri te o f Fic tion , Prin c eto n , Prin c eto n Univ e rsity Press, 1971 Deleuze, G., Guatt ar i, F. : Kafk a. Pour une litt er atu r e mi ne ure, Paris , Mi nu it , 1975 Falk, W. : 됴 d und Verwandlung, Salzburg, O.Muller Vig ., 196l(Kap. ) Goldmann, L. : Pour une soc iolo g ie du roman, Pa ris, Gallim ard, 1964(dt. Obers -. : So- —————zio lo :::::g KKEDiUe il ulagey sdriesgn se n aKe s sss u ai,tnf ,mn k nL dFa,oo -r dnBaWF ednrumaoakcgnnfe hn u,nk, er f r PtuF,,R errtFnoSa, gmrnuaS ukhanuifrnn ukhk s,f rra ,u tkm1,rN a9tp,F6 e ,0i uSs, w1c u 91 hhi79eer27drk 1 , a um1n9p6 d,5 B19e7r3l in , Luchte r hand, 1970) Hesse, H. : Der Ste p p e nwolf, Fran kfurt, Suhrkamp , 1972 mp , 1972 Joyc e, J. : A. Po rtrai t of the Ar tist as a Young Man, London, Peng uin, 1972 Kaflca, F. : Der Proze~. Fran kfurt, Fis c her, 1960 Kohler, E. : Madame de Lafay e t t es 'La Pr inc esse de Cleves' . Stu d ie n zur Form des klassis c hen Romans, in : E. Kohler, Vennit tlu nge n , Munchen, Fin k ,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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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술화비판 1. 이론과 허구 허구 텍스트는 보편적 성격을 띤 언어 실험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의제니오 코제뤼의 사상은 「강령적 논평」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다 . 그러한 생각에 따르면 이론적 술화의 문제성이 허구 덱스트의 생산에 서 도출되나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 까닭을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어휘적 단위들의 단의화를 추구하는 이론적 , 개념적 담화조차도 (존-레텔과 아도르노가 지적한 대로) 매개와 양가성의 결과와 대결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소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동질적이고 개념적인 영역에 제한된다는 특성을 지닌다. 거기에는 허구 텍스트처 럼 언어 충위에서의 미메시스의 충동을 따라 구어, 문어적 형태의 다 양한 사회어와 술화들을 모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배제되어 있는 것 이다. 이론에서는 매개가 전적으로 개념적 담화와 그 담화의 모순된 정의 와 구별의 문제로만 나타나는 데 비해서, 소설 문학에서는 사교계의 환담(프루스트)으로도, 정치적 • 법률적 • 신학적 • 과학적 수사법(무질) 으로도, 광고 은어(조이스, J . 베커)로도 표현될 수 있다. 삶의 모든 영역,
모든 사회어들을 장악하고 있는 보편적인 문제로서의 매개의 문제는 철학의 개념적 술화보다는 허구의 모방적 표현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 타난다. 이론으로는 다른 낯선 언어적 표현을 인용의 형식으로밖에 수용할 수 없지만, 허구 텍스트에서는 인용뿐만 아니라 모방도 가능하다. 많은 경우에 그것은 모방하는데, 이때 사용되는 언어는 철학적인 것일 수도 있고 〈사교적〉인 것일 수도 있고, 심지어는 문예학의 언어일 수도 있 다. 무질의 『특성없는 인간』과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속에는 미학, 문예학, 철학 논문에 등장할 법한 구절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예 컨대 헤겔과 니체의) 철학의 근본문제인 양가성이 여기에서는 언어 일반 의 충위로 투사되는 것이다. 이 충위에서 보면 양가성이란(헤겔의) 철학적 체계를 뒤흔든 위기에 수반된 현상 이상의 것임이 분명해진다. 즉 양가성은 언어적 현상 그 자체로서, 역사적 • 사회적 체계인 언어가 위기에 빠져들었음을 추측하 게 해주는 것이다. 아도르노, 존-레텔, 로시구상디 등은 칸트와 헤겔의 관념론적 체계에서 극단에까지 치닫는 개념의 추상화 원인을 교환가 치에 의한 매개에 돌리고 있지만, 이러한 추상화 경향은 사회언어학적 발전의 한 측면일 뿐이다 . F. 로시국상디의 헤겔 철학에 대한 다음과 같 은 논평은 물론 옳은 말이다. 〈이념이 모든 영역을 장악한다. 그 이유 는 화폐가 모든 영역을 장악하고서 일반적인 교환가치에 제약된 중립 성을 통해 모든 임의의 상품, 즉 모든 임의의 사용가치로 전화하기 때 문이 다〉 (Ross i -Land i, 1978, S.186). 그러나 의미론적 영역에서, 개념적 사유의 중립성과 추상성의 심화 는 교환에 매개된 언어기호의 양가성의 심화를 조건으로 진행된다. 시 장 사회의 현상인 이러한 양가성으로 인해서 변증법적 철학은 결국 절대적 이분법을 극복하고 대립자들이 하나의 통일을 형성한다는 인 식에 도달한다 (K 뢰비트도 이미 알고 있었던 바와 같이 )(Low it h, 1977 참조) . 헤겔과 니체를 연결해주는 이러한 인식은, 한편으로 풀라톤, 스피노자,
홉스, 칸트 등의 근본적으로 상이한 철학들을 비교할 수 있게 해주는 헤 겔적 톡칭을 지닌 역사적 체계를 가능케 했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19 세기 말엽에는 국단적 양가성이 되어 개념적 체계의 붕괴를 초래한 댜 개념적 체계는 자신의 지시체들이 역사적 현상으로서의 모순성과 양가성에도 불구하고 일의적으로 정의될 수 있으리라는 가정에 기초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헤겔은(정신적 및 물질적) 현실의 인식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 의 철학은 현실을 의미 있는 역사적 총체로 서술하고 이를 투시할 수 있게 만들어 보려는 거창한 시도였다. 주체는 자신의 대상을 專有하고 이를 자신의 산물로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헤겔의(스피노자, 라이프니츠, 칸트의) 정의들이 일면적이고 〈희화〉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사회언어학 적 상황에서, 이같은 체계에 의한 현실 전유는 의심쩍어전다. 오늘날에 도 P. 마셰리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는(『헤겔이냐 스피노자냐』에서) 헤겔이 〈어려운 곡예〉를 하고 있다는 것, 또한 헤겔이 어떤 철학을 비판, 극 복했다고 주장하더라도 실은 이를 자기 구미에 맞게 수정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입증하려 한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헤겔의 체계 속으로 함몰되지도, 그것에 〈소화〉되지도 않으므로, 헤겔의 거시통합체의 환상 적 성격은 백일하에 드러난다. 그것은 현실을 포착할 수도(그자체 현실 일 수도), 양가성을 극복하고 종합을 통해 제어할 수도 없는 것이다. 니체, 무질, 카프카, 헤세에 있어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국단적 양가성의 본질은 더 이상 헤겔이 말하는 규정적 부정을 허용하지 않 는다는 점이다. 『대논리학』(제 1 권)에서는 여전히 다음과 같은 말이 나 온다 그리하여 요컨대 결과를 자아내는 것, 죽 부정은 곧 규정적인 부정인 까닭 에 이 부정은 내용을 지니기 마련이다. 여기서 부정은 하나의 개념으로서 동 시에 앞서간 개념보다는 좀더 고차적이며 좀더 풍부한 개념이라 하겠다. 왜 냐하면 지금의 이 부정은 바로 그에 선행했던 개념의 부정이며 동시에 그 대
립자이기도 하다는 접에서 그만큼 더 풍부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결국 이 새로운 부정은 선행했던 개념을 내포하면서도 또한 이보다도 더 많은 것을 내포하며, 그 선행했던 개념과 이 개념의 대립자와의 통일을 이루는 것이다 . _바로 이와 같은 도정 속에서 개념의 체계도 또한 형성되기 마련인바 __ _ 다시 말하면 단절이라곤 없는 순수한 상태에서 의부로부터 그 어떤 것도 받 아들이지 않는 의줄기 길을 따라 이 개념의 체계도 완성되는 것이다 (He g el, Log ik, Bd. 1, 1970, S.4 9 : S. de Beauvoir , 『중의 성 의 모랄울 위 하여 pou r une mo- rale de l' amb ig u iit ee 』 또한 참조할 것). 대립자들의 종합이 새로이 긍정적이고 일의적인 정의를 낳고 새로운 개념을 형성하는 경우에만 역사와 역사의 의식 상태를 대상으로 삼는 서술통합체의 형성이 가능해진다. 체계가 절대적으로 자기자신만의 법 칙을 따르며 다른 양태의 것은 자신과 동일한 것으로 정의해버리는 때에만 그 통일성은 보존될 수 있는 것이다. 니체와 청년 헤겔파들-그둘의 헤겔 비판에 대해서는(『헤겔에서 마 르크스까지』에서) 시드니 후크가 대단히 상세히 탐구한 바 있다 (Hook, 1962 참조)―一의 경우에, 이와 같은 개념의 종합을 통한 전전은 더 이 상 가능하지 않다(생각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극단적 양가성이 헤겔 류의 종합을 파괴시켜버렸기 때문이다. 니체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 〈요컨대 도대체 대립이란 것이 존재하는지조차 의심할 수 있다 ……>( Ni et z s che,1 968, Bd, 3. S.27). 설사 대립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보다 더 고차적이고 포괄적인 전리 속에서 통합되기는 커녕 전리를 추구하 는 술화의 영향을 벗어나버리고 만다. 알베르티느는 정숙한 동시에 부 정하며 정직한 동시에 거짓말쟁이다. 요제프 K. 는 유죄인 동시에 무죄 며, 인간이자 동물이다. 그 성격을 포괄하는 종합적 정의의 가망성은 사라져버렸다. 소설은 특정한 사회언어학적 상황 속에서 다양한 사회어들의 의미 론적 양가성을 가공하도록 강제당하는데, 이 경우 소설은 작가의 의
도와는 무관하게 자기자신의 서술통사론을 파괴하게 된다. 〈이 소설의 이야기는 그 속에서 이야기되어야 할 이야기가 이야기되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GW 5, S.1937). 소설과 보조를 맞추어서 무질(그의 화자)도 체 계적 사유를 비판하고 있다. 〈그는 철학자가 아니었다 . 철학자들이란 거느린 군대가 없어서, 그 대신 세계를 체계 속에 가둠으로써 자신에게 굴복시키려는 폭력배인 것이다〉 (GW 1, S.2 5 3). 말과 글로 된 술화들을 텍스트상호적으로 가공하는 무질의 허구 덱 스트는 의미론적 양가성과 서술 통합체(체계)의 위기 사이의 관련성을 확연히 드러낸다 . 이는 허구의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이론의 영역에서 보더라도 그렇다. 무질은 언어의 보편적 실험을 통해서 서술통사론의 붕괴를 철학적이고도 허구적인 문제로 서술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학 적 계열과 철학적 계열을 자율적인 과정으로 간주하는 역사적 관점에 서 본다면 이는 평행적으로 전개되는 두 갈래의 발전이다. 즉 소설의 서술통사론과 나란히 체계(그레마스라면 이론적 술화의 〈거시통사론〉이라고 말할 것이다) 역시 붕괴해가는 것이다. 발작의 『인간 희극』과 헤겔의 체계적 철학 사이의 술화적 근천관계 를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는다면 이는 철학적인 연구이자 문예학적인 연구로서, 아마도(아도르노, 존一레텔 로시홉其디와의 관련하에서) 허구 텍스 트뿐만 아니라 개념적 덱스트에서도 중의성이 공통점이 없는 것들을 서로 비쿄할 수 있게 하고, 그리하여 체계 형성을 조장한다는 사실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N y kro g, 1965 참조). 다음 단계에서는 같은 중의성 이 이번엔 극단적인 양가성이 되어 서술통사론이라 할 수 있는 체계를 의문시한다는 점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19 세기 말엽의 철학자인 니체는 (1844 년에서 1900 년) 풀로베르, 프루스 트, 지드, 무질, 카프카 등의 소설가들과 함께 현실에 대한 체계적이고 〈서술적〉인 기술로부터 등을 돌렸던 것이다. 그의 에세이적이고 단편 적, 경구적인 굴쓰기방식을 세기전환기의 소설과 연관짓는 것은 가능 할 뿐더러 필연적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니체가 프루스트, 지드, 무질
등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추측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니체 역시 의미론적, 이데올로기적 양가성을 수용, 가공해 야 했다는 점, 결국에는 이를 자신의 체계비판의(〈형이상학〉 비판의) 출 발점으로 삼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허구적인 덱스트뿐만 아니라 개념적인 텍스 트 역시 서술적, 통사론적 과정으로, 행역자적 구조로 표현할 수 있다 는 그레마스의 생각이 지니는 특별한 유용성이 입증된다. 이러한 통찰 은 이론과 허구 사이의 텍스트사회학적(구조적)인 비교를 가능케 하는 바, 이를 통해서 그들간의 근친성에 대한 진술은 단순히 주제적인 분 석이나 영향에 대한 추측을 근본적으로 넘어서게 된다. 여기에서 이제 개괄된 허구와 이론의 발전 사이의 비교는 술화비판 에 대해서 어떤 의의를 지니는가? 앞장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서술통 사론을 의문시하는 특정한 소설(풀로베르와 졸라의 소설)에 대한 루카치 의 비판이 이데올로기적 동기를 지니고 있음을 명백히 한 바 있다. 죽 미학적인, 〈문체적인〉 문제조차도 정치적 폭발성으로부터 벗어나지 못 한다는 것이다. 글쓰기방식은 그 자체가 하나의 〈사회적 사실〉이다. 양가적 현실에 대한 체계적 술화의 가능성에 대해서 허구 속에서 소 설가들이 품었던 의문은, 현실은 〈정의될 수 있고〉 규정적 부정은 여 전히 정당화된다는 체계적 사유의 확신에 도전하는 것이다. G. 루카치는 이미 『영혼과 형식』에서 단편적 에세이를 대체할 (S.29~ 30) 〈위대한 미학〉의 체계를 추종하고 있었으니까 아마도 『대논리학』 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헤겔의 말에 동감할 것이다. 〈나는 물론 이 논 리학의 체계 속에서 따르고 있는一―그보다도 차라리 지금의 체계가 자발적으로 따라가고 있는-바로 이 방법이 아직 갖추어야 할 미비 한 점을 많이 갖고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 방법만이 단 하나의 전정한 방법이라는 데 대해서는 추호도 의심치 않는다〉 (He g el, Log ik, Bd.1, S.50). 이 문장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정신은 훗날 문학 작품에 대한 발생론적 구조주의의 해석만이 그 결함에도
불구하고 작품 요소들의 의 미 있는 총체 성 (la pre sq u e-to t a l ite de I' oeu- vre) 을 설명해줄 수 있는 유일한 해석일 것이라는 L. 골드만의 믿음을 강화시켜주었던 것과 동일한 정신이다 . 이미 이전에 비판이론이 지적한 바 있는 (언어)현상의 양가성은 최근 들어서는 〈 수용미학 〉 에 의해 절충주의적 관념론이라는 이름으로 마르 크스주의 문학이론과의 대결에 동원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 단 하나의 전정한 〉 술화에 대해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게 하기 때문이 다 . 특히 현실의 본질, 아니 현실 자체를 구현하고자 하는 그러한 술 화의 요구를 의심케 하는 것이다.’ 아도르노는 게오르게의 서정시에 나 타나는 사회비판적인 요소와 신비화하는 요소들을 하나의 공통분모로 약분해버리려 하지 않는다. 그 요소들간의 적대적 관계는 〈 보다 높은 차원 〉 에서 의미있는 총체성이나 종합으로 지양되지는 못한다. 마찬가 지로 횔덜린 덱스트에 대한 루카치의 〈 쟈코뱅주의적 〉 해석과 하이데 거의 〈 존재론적 〉 해석은 단일한 의미론적 총체성의 틀 속에서 화합할 수 없다. (특정한 사회언어학적인 상황에서만 생각할 수 있든) 극단적 인 양 가성의 발견은 체계의 논리적 〈 자기실현 〉 을 방해한다. 체계의 붕괴는 종합을 향해 추동해가는 삼박자의 운동이 단절된 데서 비롯한다. 그것 의 잔해는 양가성의 산물인 모순으로서, 이는(아도르노의) 비판이론에 서도 , 카프카의 소설 『심판』에서도 前辨 證 法的인(파스칼적인) 역설만을 낳는다 (Goldmann , 1973, Zim a, 1974 참조). 술화에 대한 비판이론은 이러한 역설을 그냥 지나쳐버려서는 안된 다 . 술화비판이론은 무질, 카프카, 프루스트 소설의 상속자로서 의미론 적 양가성을 고려해야만 하고 스스로를 아론이자 이데올로기로서 인 석하고 의문시해야 하는 것이다. 자기자신의 가치평가적 선입견을(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언제라도 의심할 태세를 갖추고 있고, 그리하 여 진리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스스로를 포기할 수 있다는 데서 이 이 론의 역성적 진리는 성립한다. 이러한 진리는 실체화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순수한 형식이나 절대이념으로 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어떤 결론이 도출될지 미리(목적론적으로, 제 2 장 참조) 확 정해 놓지 않은 열린 대화에 참여하는 모든 합리적, 자기반성적 승화의 목표가 된다. 그것은 스스로를 선험적으로 〈참〉이라고 간주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는 도정에 있는 것으로 정의하기 때문에 절대적 대립, 이데올로기적 신화의 이원론도, 모든 가치의 호환성, 시장법칙의 무차 별성을 뜻하는 완전한 양가성도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헤겔 에 의지하여 대립자들을 상보적인 것으로 간주하려 한다. 하지만 그렇 다고 해서 헤겔류의 종합을 중시하지도 않는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사교적 의사소통 내부의 거짓되고 환상적인 대 립자들을 비판하면서도 스스로는 절대적 차이룰 찾으려는 신화적인(이 데올로기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이 두 가지 태도는 각기 전체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유의미한(조화로운) 총체성의 구성 요소로서가 아니라 『잃어버린』에서 고뇌의 원인이 되는 모순의 화해할 수 없는 한 측면으로서다. 마찬가지로 게오르게의 서정시에서도 신비 화하는 진술들과 사회비판적인 전술들은 분리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모순은(게오르게의 향가성은) 하나의 긍정적인 종합으로-골드만의 생 각으로는 〈일관성 있는 세계관〉으로_~부정, 지양되지 않은 채 그대 로남는다. 2. 이데올로기비판으로서의 술화분석 집단의 언어와 관심의 산물로서 술화의 특성을 제시하는 데는 아마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L 언어행동을 형식적이고 화용론적인 관점에서 분류하는 기능적 유형론과 2. 이데올로기비판적 인 처리방식으로, 하나익특정한 술화형태, 예를 들면 허구적 술화형태 나 이론적 술화형태 속에서 전형적인 측면이나 특질들을 분별해내는
유형론이 그것이다. (1) 형식적인 시론들에 대한 바판 술화형태를 순전히 형석적으로 기술하는 것은 L. 알튀세와 L. 프리에 토가 지적했던 대로 〈자연주의적〉인, 혹은 〈중립주의적〉인 태도로 간 주할 수 있을 것이댜 그 전제는 자연언어 내부에서 이상형으로서 어떤 임의의 사회집단이라도 사용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중립적인 특수어(그레마스가 말하는 〈 사회어〉, 앞을 참조할 것)가 도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은 바로 술화 속에 언어적 형태로 존제하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물음울 배제하고 술화의 몰가치적 분류작업에 몰두하도록 하는 데 있다. 그것은, 언어체계의 중립성과 자 연성을 전재하면서 사회적 갈등이 언어와 술화구조 내부에서 어떤 결 과물 낳는가 하는 물음은 도의시하는(예컨대 F. 드 소쉬르나 Z. 해리스의) 언어관의 산물이다. 이러한 언어관은 이미 20 년대에 바흐친과 볼로시 노프에 의해 근본적으로 비판받은 바 있으며, 최근에 이르러서는 특히 L. 프리에토, F 로시-랑디, L . 1,칼베 등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칼배와 로시 랑디가一_ 『이데옹로기』 s.165 / 166 에서一— 바흐천과 볼로시노프에게서 논거를 구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형식척 유형론의 양상은 어떠한가, 또한 그 근저에 깔려 있는 언어 행동관은 · 무엇인가 ? _— 최초로 술화의 유형론에 주목했던 아들 중의 하나는 『기호의 일반이론에 관한 논문들』 (De ri · Haag, 1971) 을 쓴 찰스 모리스이댜 〈술화의 유형들〉이라는 제목의 장에서 저자가 일차적인 관심을 두고 있는 문제는 언어 내부에서 진행되는 특수화의 결과를 탐구하고 〈특수한〉 언어둘을 체계적으로 기술하는 일이다. 〈시간이 흐 름에 따라 특정한 목적에 보다 잘 부응하기 위해서 이 공통 언어는 다양하게 특수화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특수화된 언어들을 술화의 유형 이 라 부를 것이다〉 (Morr i s; 1971, s. 203).
모리스의 분류는 기능주의적 의미에서 기능적이다 . 그 것 은 언어체계 도 사회체계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특수구조에 특수한 기능을 부여하는 동질적인 통일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한 분류 를 통해서는 언어 행동이 사회적 상호작용을 위해 어떤 사회집단이든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가치중립적 도구로 간주된다. 모리스는 결국 〈 양태 mode 〉 와 〈 용법 use 〉 이라는 두 범주에 의해 술 화유형을 . 16 가지로 구분한다. 양태는 4 가지로 구분된다. 지시적 desig - nati ve , 평 가적 app ra is iv e , 규정 적 pre scrip tive , 형 성 적 for mati ve 양태 용법 도 4 가지 다. 정 보적 inf o r mati ve , 평 가적 valuati ve , 선동적 inc it ive , 체 계 적 sy- ste m i c 용법. 〈지시적 〉 양태와 〈 정보적〉 용법이 결합하면 학문적 술화 가 발생한다. 반면 〈평가적〉 양태와 〈 평가적 〉 용법의 결합은 시적인 술화를, 〈규정적〉 양태와 〈 평가적 〉 용법의 결합은 도덕적 술화를 , 〈 평 가적〉 양태와 〈 선동적 〉 용법의 결합은 정치적 술화를 낳는다. 모리스가 기술한 〈 정치적 술화 〉 그 자체는 가치중립적이어서 보수적 집단의 이익에 사용될 수도 있고 진보적인 집단의 이익에 사용될 수도 있다. 모리스는 반동적 술화(예컨대 쥴 게드의 술화)를 구별하는 데는 무 관심하다. 그는 정치적 술화 자체를-이념형으로서, 비역사적인 구조 로서-정의하려 할 따름이다. 〈정치적 술화도 다른 대다수의 술화 유형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보수주의의 대변자일 수도 있고 사회 개혁 을 위한 대변자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의 적합성은 사용되는 목적에 도달하는 데 얼마나 효과적이냐 하는 관점에서 측정되어야 한다 〉 (앞의 책, S.2 2 4). 〈정치적〉 술화에 대한 이와 같은 서술에 대해서는 텍스트사회학의 입장에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1. 비 판적 술화분석의 관심사는 보수적 술화의 구조가 혁명적인 혹은 자유 주의적인 술화의 구조와 어떤 차이점을 지니는가 하는 물음이다. 게드 의 혁명적 수사법은 Ch. 모리스의 수사법과 무엇이 다른가 ? - 정치 적 술화 그 자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의미론적 통사론적 충위에서
각기 특정한(교환 불가능한) 사회적 관심을 조성하는 정치적 술화가 있 을 뿐이다. 여기에서 모리스가 제안한 유관성(프리에토), 즉 그 자신의 몰가치적 술확의 기초를 이루는 분류법은 의심받게 된다.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유관적 인 것은(이 말의 엄밀한 의미에서) 정치적 / 시적, 학문적 / 허구적 등 등의 구별이 아니라 자유주의적 / 전통주의적, 개량주의적 / 혁명적, 비판 적 / 이데올로기적 등등의 구별이다. 2. 한 술화의 〈효율성 eff ek ti ve ness> 이란 도구적 이성을 거부하고 목적과 수단을 철저히 분리하는 데 반 대하는 비판적 텍스트사회학에 있어서는 결정적인 기준이 되지 못한 다. 아무리 효율적인 술화라 할지라도 그릇된 목적에 봉사하는 것이라 면 이를 비판하는 일이 중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 초기 미국 기호학의 실용주의적 단초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Ch. 모리스의 유형론 (Morr i s, 1972, 제 5 장 참조)이 아직까지도 그 現實性을 잃 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G. 비놀트의 연구와 같은 근래의 연구들이 보여 주고 있다. 「텍스트 가공과 문학기호학의 개념」이라는 논문에서 그는 언어유형을 5 가지로 구분한다. 나의 견해로는 언어사용에 있어 적어도 다음과 같은 5 가지 유형이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대 화 Konversati on (언어의) 습득 Lemen 드라마의 낭독 (Rez iti eren, Deklami er en) 서술 Erzahlen 碑銘 Inschrift (W i en old, 1977, S.4 9 ). 이러한 분류법――이것이 불완전하고 그 관심이 허구에 강하게 지향 되어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은 비록 많은 측면에서 모리스의 분류법과 구별되긴 하지만 한 가지 점에서는 공통된다. 언어 유형을
이데올로기적 동기와 무관하게 〈 물가치적 〉 구조로 정의하려는 의도가 그 공통점이다 .. 모 리스의 유형론에 대해 제기했던 바판적인 논점은 비 놀트에 대해서도 타당하다. 결국 비놀트가 간과하고 만 것은, 그의 미 국인 선배와 마찬가지로, 언어란 어떤 가치중립적인 체계가 아니라는 사실, 사회적 관심과 제기능은 술화구조에 의면적이긴커녕 내면적이라 는 사실이다. 구술적 / 필승격이라는 대립을 유관적인 것으로 간주하면서 E . 벤베니 스트에 이어 술화 d i scours 를 이야기 h i s t o i re 와 구분하는 제니 시모닌-그 룸바하의 술화유형학 구상이 여타의 측면에서는 엄밀하고 주목할 만한 것이기는 하지만, · 그녀 역시 위의 사실을 도의시하고 있다 . 술화, 죽 말하는 주체(벤베니스트) 혹은 〈진술상황〉(시모닌-그뭄바하)에 대한 지시 를 내포하고 있는 언어구조와, 그러한 지시가 결여된 아야기와의 구별 이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지님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데올로기 비판에 생산적인 것은 못된다(특정한 이야기가 전술의 주체 를 숨기고 〈 객 관성 〉 을 가장할 때 그 이면에는 어떤 의도가 깔려있는가? 허구적 이야기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혹은 이론적인 〈 이야기〉에서조차 객관성의 가상이 생성 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는 누구에게 봉사하는 것인가? 저자는 이러한 문재들은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 반면에 L. 마랭은 자신의 저서 『이야기는 함정 이다ie Rec it est Uti . pi eg e 』)에서 이에 대한 상론을 전개한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무엇보다도 순수하게 형식적인 술화분석에 대한 로시-랑디의 비판이 심대한 의의를 얻는다. 『이데올로기 i deolo gi a 』에서 그는 사회가 언어에 대해 의면적이라는 이데올로기적인 편견을 반박 하면서 이러한 편견이 초래하는 다음과 같은 형식주의적 이분법을 비 판하고 있다. 1. 집단의 〈랑그〉와 개개인의 〈파롤〉의 분리, 2. 언어(랑 그, 언어체계)와 이데올로기의 분리, 3. 언어의 의미론적 통사론적 영역 과 화용론적(사회적) 영역의 분리, 4. 언어적 의사소통체계와 비언어적 의사소통체계의 분리, 5. 언어와 〈사고〉의 분리 등등 . 이러한 분리들은 유관성지표로서 하나로 연결되는 의미론적 틀을
형성할 수 있는데, · 이는 다음과 같이 정확히 정의할 수 있는 이데올로 기적 기능을 담당한다. 즉 이들은 모두, 언어와 사회가 상호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여전히 양자는 서로에게 의면적이라는(티냐노프의 문학적 진화라는 개념의 근저에도 깔려 있는) 형식주의의 단언 속으로 수령되는 것이다. 로시구상디는 전적으로 덱스트사회학적인 의미의 비판적 술화 분석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바, 여기에서는 언어의 통사론적 영역이 나 의미론적 영역이 이데올로기에서 고립되지 않는다. 〈통사론과 의미 론이 소위 이데올로기의 영향권을 벗어나 있는 데 반해, 아니면 적어도 벗어나려는 경향을 나타내는 데 반해(특히 전자가 그런 것으로 알려져 있 다), 화용론은 전적으로 그러한 영향에 연루되어 있다는 식의 대립설 정은 완전히 신화적 인 것이다〉 (Ross i -Land i, 1978, S.1 6 8). 로시구상디의 비판적인 논평이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명시적, 묵시적 으로 술화분석학 내부의 세 가지 이론적 단초와 관계하고 있기 때문 이다. 즉 Z. 해리스, E. 베롱, A. J.그레마스의 이론이 그것이다. 해리스 의 (『술화분석』 (Harr i s, 1952) 에서의) 시도는 문장초월적 언어학을 통사론 적 차원으로 협소화한다는 점에서 반박된다. (『이데올로기와 사회과학: 의사소통적 접근』 (Ver6n, 1971) 에서의) 베롱의 시도는 이데올로기비판적인 논의를 화용론의 영역으로 추방해버린다고 로시-랑디는 명시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로시-랑디의 논평에서는 마지막으로 술화의 의마론적 심층구조와 그 행역자(술화의 서술적 진행)간의 관계를 이데올로기형성 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A .J.그레마스의 몇몇 定理들을 승인한다. 하지만 베롱도 자신의 〈실용주의〉를 수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 로 로사랑디의 비판도 《의사소통 Commun i ca ti ons 〉 (28 호)에 발표된 그의 논문 (「이데올로기와 권력의 기호화과정 Semi os is de I'ideo log ie et du p ouvo ir e 」)에 대해서는 완전한 타당성을 지닌다고 볼 수 없다. 이 논문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 〈술화 메카니즘의 충위로 이동해가면, 우리는 사회적 세계의 한 가운데 서있게 된다. 술화적인 의미생산은(술화적이지 않은 의미생산이란 존재
하지도 않는다) 모든 측면에서 사회적인 것이다. 우리는 다양한 술화들과 대 면하는 것이지 술화 자체와 대면하지 않는다〉 (Veron, 1978, S.1 2 ). 여기에서 제기된 문제들은 모두 하나의 초점으로 수령된다. 죽 언어 적 구조는 사회적으로 매개된다는 인식으로 말이다. 이러한 인식은 이 책 제 3 장의 중심주제였다. 이제는 이러한 인석을 이데올로기바판적인 고찰과 이론적(개념적) 술화와의 연관에서 더 구체화시키고 완성시킬 것이다. (2) 이론적 술화에 대한 이데올로기비판적 분석 이제까지의 논의로부터, 술화비판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항울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1. 허구 텍스 트의 사회학과 마찬가지로 이론 텍스트의 사회학도 내재적인 처리방 식을 따라야 한다. 죽 사회적 관심과 이념소들을 (이론적)술화형태의 내무에서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도대체 이론적(정치적, 도덕적, 시적) 술화 자체라고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이데올로기적으로 제 약된 의미론적 통사론적 차별성을 지니는 특수한 언어구조들의 다양한 유형이 있을 뿐이다. 아상형으로서의 이론적 술화 자체라는 것은 사회 적 제모순과 대립을 은폐하려는 형식주의적 抽象에 지나지 않는 것이 다. 2. 술화비판은 프루스트, 무질, 카프카의 소설들, 그리고 비판이론의 전통에서, 양가성이 합리성을 판별하는 기준임을 확언할 수 있을 것이 다. 이 기준은 술화가 반성적 충동을 구축해버리고 명시적 묵시적으로 자신을 〈현실〉과 동일시하면서 다른 종류의 언어와의 개방적인 대화를 거부하는 데 이의를 제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1) 反省性 대 자연주의 서두의 논평을 통해 이미 하나의 이론의 의미론적 이데올로기적 전
제들을 반성하고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할 가능성이 논의된 바 있다. 형식적 시론들, 특히 모리스의 유형론에 대해 논의함으로써 뚜렷해전 사실은 학문적 분류법 Tax i nom i e 이라는 것이 결코 전적으로 기술적이거 나 형식논리적인 문제만은 아니며 오히려 이데올로기적인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모리스가 시적인 술화를 정치적 술화로부터, 도덕적 술 화롤 학문적 술화로부터 분리할 때, 이는 대상영역을 특정한 방식으로 분할하겠다는 결정일 뿐만 아니라 특정한 이념소, 죽 〈몰가치성 〉 이란 이념소를 지지한다는 결정이기도 한 셈이다(제 1 장 참조). 그가 구성한 이론적 대상(술화)은 E. 베롱이나 로시-랑디의 이론적 대상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왜냐하면 베롱이나 로시-랑디 같은 논 자들은――역시 이데올로기적인 이유에서――또 다른 의미론적 분할, 프리에토의 의미에서 또 다른 유관성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문제되는 것은 도덕적인 술화나 정치적인 술화가 아니다. 오히려 정치 적 혹은 도덕적 수사범내에서 등장하는, 서로 충돌하는 다양한 술화 형태들이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형태들에 필요한 분할 방식은 모리스 라면 〈 비과학적 〉 이라는 이유로 거부했을 것이다. 그에게 과학적 담화 란 (베버적인 의미에서)몰가치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모리스의 시도를 비판적 분석과 결합시켜야 한다는 반론은 임의로 조작할 수 있는 모순적인 절충주의에 문호를 열어주고 말 것이다. 반성적/자연주의 적, 독백적 / 대화적 등등과 갇은 비판적 대립쌍둘을 통해 술화 영역에서의 근 본적인 구조적 차이점을 실제로 해명하기만 한다면 〈정치적 술화〉, 〈시적 술 화 〉 따위의 명칭들은 마땅히 밝혀내야만 할 차이점들을 은폐한다는 바로 그 이유로 인해 수상쩍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몰가치적 / 가치평가적(과학적/비과학적)이라는 의미론적 이분법과 그 로부터 생성된 동위체는 모리스 기호학의 분류법뿐만 아니라 그 행역 자적 구조에도, 궁극적으로는 통사론적 진행, 죽 논증의 연쇄에까지도
그 영향울 미친다는 사실은 아마 밝혀질 수 있을 것이다. 이와는 반대 로 로시-랑디나 베롱 혹은 프리에토 등은 오히려 비판적 / 무비판적(이 데올로기적)이라는 이분법으로부터 출발하여 전혀 다른 분류법과 대상 규정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 〈서술〉 충위에서는 〈프롤레타리아 트〉(프리에토), 〈비판〉(로시-랑디), 〈생산〉(베롱)과 같은 행역자들이 〈부 르주아〉, 〈몰가치성〉(〈자연주의〉), 〈권력〉, 〈이데올로기〉 등의 행역자들 과 맞서는 형세를 나타낸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반성성을 술화의 속성으로 정의하고, 이룰 술화 적 〈자연주의〉와 분명히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알뒤세와 페쇠(앞의 책) 가 비판한 바 있는 자연주의적 술화는 음으로 양으로 몰가치적인 체 가장하면서 자신의 대상을 소여된 것, 죽 자연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동시에 그것은 자기자신을 단지 이성적인 정의와 비이성적인 정의, 논 리적인 논증과 비논리적인 논증 사이의 구별만이 타당성을 지니는 〈자연적〉 언어의 산물이라고 여긴다. 죽 자신의 대상을, 마치 지질학 자가 암석을 탐구하듯이 탐구하고 기술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술 화가 중요시하는 바는 가능한 한 정확하고 근본적인 처리방식으로 記 述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사회과학에 있어서 대상은 소여되 는 것이 아니라 이론적 담화에 의해(주체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러한 구성의 처리방식은 이데올로기적 동기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되고 만다(「강령적 논평」, 5 를 참조할 것). 그와 같은 술화의 〈자연주의〉는 사회과학의 대상이 모든 연구자에게 동일한 것이고 그것에 대한 기술이 〈간주관적〉으로 검증가능하리라고 가정하는 데서 비롯한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이 유지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자기자신의 아데올로기적인 전재가 분류법과 통사론적 진행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반성하지 않을 때,· 죽 그 이론의 사회작 역사적 제전제를 반성해보지 않을 때뿐이다. 그런 경우라면 정리의 〈간주관적 검증가능성〉이 비판을 위한 도구7 }’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의마론적 통사론적 단위인 이데올로기적 요소
룰 도의시한다면 이론적 차이와 논쟁의 원인도 소멸해버릴 것이다. 즉 집단적 사회적 관심이 소멸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관심이 더 이상 술화의 구성요소로 인지되지 않는 경우 과학자는 하나의 정리가 〈 참 〉 이냐 〈 거 짓〉 이냐를 판별하는 일이 형식논리적으로 훈련받은 동료집단 둘의 합의와 이의에 제약되는 순수히 개인적이고 〈 간주관적 〉 인 과정 이라는 환상 속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이제까지 논의된 바에 따른다면, 모리스의 유형론의 과학성 울 판정하는 일이 문제되는 경우에 〈 간주관성 〉 이라는 개인주의적인 범주는 그저 조악한 추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M. 벤제(그는 퍼 스 와 모리 스 에 근거하고 있다)나 G . 비놀트 같은 이론가라면 모리스의 분류법에 대해 원칙적으로 어떤 반론도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로시-랑디, 프리에토, 페쇠 동은 아마도 모리스의 분류법을 비 과학적이고 〈 이데올로기적 〉 이라는 이유로 거부하였을 것이다를 따라서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집단의 문제, 술화구조와 특정한 사회적 집단적 관심 사이의 관련성의 문제인 셈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론적 담화의 합리성을 판별하는 기준의 하나로 여기 제시된 반성성에 대한 요구는 다움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 다. 현상의 양가성은 일의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현실〉만이 존재한다는 가정을 더 이상 허락지 않는다. 이러한 제한에 의해 이론적 술화는 대상(대상들)을 실체화하지 않고, 대상의 서술을 제약하고 있는 자기자신의 의미론적 통사론적 처리방식에 대해 반성하도록 강제당한 다. 또한 이와 같은 자기자신의 언어적 전제들에 대한 반성은 자기자 신의 이데올로기적(사회적) 전제들을 발견하도록 해준다. 반성이 없이 는 자기비판도 있을 수 없고 따라서 변증법적인 의미에서 과학성도 생각할수 없는 것이다 . 세기전환기의 소설들은 자기자신의 서술적 처리방식을 주제화하고 문제시함으로써 술화비판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러나 반성성만이 프루스트, 무질, 카프카의 텍스트롤 비판적(변증법적) 이론과 이어주는
유일한 관심사는 아니다 . 서술통합체, 죽 체계에 대한 그들의 비판 역 시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다. 2) 계열체(병렬체) 대 통합체(종속체) 반성성에 대한 요구는 통합체적 원리 앞에서는 관철될 수 없다. 그 리하여 그것은 자연히 체계비판으로 이행한다. 양가적이고 모순적인 현실에 반응하는 자기자신의 이데올로기 구속성과 특수성을 인식하고 나면 과연 역사적 대상에 대한 체계적 서술이 가능한 것인가 하는 의 문이 제기된다. 일관성과 지배권을 획득하려는 이데올로기적인 열망이 아니고서야 그 무엇이 . 특정한 술화로 하여금 모순들을 동일하게 만들 고 언어의 양가성을 도의시하도록 부추기겠는가? 무엇 때문에 하이 데거는 횔덜린의 시에 나타나는 〈쟈코뱅적〉(정치적) 요소에 대해 침묵 하며, 아도르노는 아이헨도르프 해석에서 왜 다른 모든 동위체보다도 〈부정성〉과 〈미래〉의 동위체를 우위에 놓는가? 무질의 화자가 주장 하듯 철학자들이란 폭력배인가, 아니면 그들 역시 이론적 담화의 강제 앞에 숙명적으로 바쳐지는 희생양인가? 아마도 둘다 맞는 말일 것이다. 반성적 사유는 자기자신의 의미론적 이데올로기적 전제들을 의문시하면서 대개의 경우 다음과 같은 사실도 통찰하게 된다. 죽 의미론적 先決定에 제약되어 있는 통사론적 진행이 란 하나의 〈함정〉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구성의 완결성(크리 스데바라면 〈체계의 울타리 clotu r e s y s t ema ti_q u_e 〉·라무 불렀을 것이다)은 그것 이 지니는 가설적이고 부분적으로는 자의적인 성격을 은폐해버리기 때문이다. 의미론적 토대(기본 대립, 분류법)를 의심쩍게 만드는 양가성 에 대해 반성할 때, 체계적인 구성 전체도 의심스러운 것임이 드러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비판의 전제는 Z 해리스처럼 술화분석을 지레 문장초월 적 통사론으로 국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D. 맹게노가 〈의미론의 俺薇 occulta tion du semanti qu e> ( 앞의 책, S.76) 를 통해 언어 의 사회 적 요소를
더 이상 인지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해리스 를 비난한 것은 타 당하다. z. 해리스의 다음과 같은 서술은 이처럼 의미론적 영역이 배제 되어 있는 맥락에서만 가능하다. <… … 記述的 언어학에서는 사회적 상 황을 고려할 가능성을 지니지 못한다.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언어학적 요소들의 발생을 다른 언어학적 요소들의 발생과 연관지어 정의하는 일뿐이다 〉 ( Harr i s, 1952, S.6 ) . Z 해리스에게는 통사론적 원리가 아직도 〈 자연적 〉 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리하여 그것의 이데올로기적 인 기능은 미지의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다 . • 해리스가 표충구조의 분석을 넘어서지 못한 채, 심총구조는 무시하 고 있다는 N. 뤼에의 확인도 중요하다. <… … 해리스는 무엇보다도 의 미론적 화용론적 고찰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 또 <… … 해리스 는 덱스트구조화의 원리를 간단히 말해 표총구조라 부를 수 있는 충 위에서 찾으려 한다…… 〉 (Ru w e t, 1975, S.3 1 0). 그레마스가 술화의 거시 통사론과 연관지은 이데올로기형성적 심급이 바로 심층구조다 . 그는 거시통사론을 의미론적 선결정의 산물로 간주한 셈이다 . 거시동사론적 인과율의 문제성과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무질, 프루스 트, 카프카의 소설에서만큼 확연히 드러난 예는 어디에도 없다. 이 작 가들의 언어실험과 언어체험은 이론도-〈순수 언어학적 이론〉조차 —도의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 이론은 철학과 사회학(헤겔에서 파슨 즈까지)에서 이제까지 제출됐던 경쟁하는 체계들이 전리라도 되는 양 처신할 수는 없게 되었다 . 오히려 『잃어버린 』 과 『 특성 없는 인간 』 의 독서 이후로는 모든 체계적 논증의 〈전리성〉에 대한 의문이 생겨나는 것이다. 술화적 비판과 자기비판이 궁극적으로 제기하는 물음은 과연 통사 론적 진행 자체, 통합체 원리 자체가 이데올로기적인 것이냐 하는 것 이다. 이 물음에서 아도르노의 비판이론이 시도하는 전리 추구는 정점 에 이른다 그는 『미학이론 』 에 대한 주석에서 거시통사론적 인과율의 근거를 캐물을 뿐만 아니라 『부정의 변증법』에서 자신이 행한 모델분
석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의 사후에 발간된 이 저서에서 아도르노는 서술의 어려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러한 어려움의 원인은 한 권의 책에 거의 필수불가결한 순서, 죽 첫째로 그 다음으로 (Ers t -Nachher) 하는 식 의 순서 가 그 대 상과 도저 히 양립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 그리하여 나도 여태껏 지켜온(『부정의 변증법』에 서조차)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배열법은 더 이상 관철될 수 없는 것임이 입증 되었다는 데 있다. 책이란 말하자면 하나의 중심을 둘러싸고 동일한 중요성을 지니는 병렬적인 부분들을 동심원적으로 배열하는 방식으로 서술되어야 한다 . 이때 중심은 이 병렬적인 부분들의 구도를 통해서 표현된다 (Adorno, 1970, S. 541). 제모순을 무마하고 대상들을 지배할 수 있도록 구미에 맞게 수정하 는, 위계적이고 종속체적으로 구성된 술화에 대한 거부는 의미론적 이 데올로기적인 영역에 나타난 객관적인 양가성에 대한 인식의 직접적인 결과다. 이론적 술화는 이같은 인식을 도의시할 수 없다. 또 그것은 자신의 의미론과 통사론적 구조가 유일하게 가능한 것인 양, 그리고 다른 언어 관행과 무관한 자족적인 존재인 양 처신할 수 없게 된다(두 번째 태도는 특히 분석철학의 제조류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들은 바흐찬과 메 드베데프가 지적한 바 있는 언어의 대화적 구조를 우시하고 있다). 아도.르노.에 있어 병렬체적――통합체적이라기보다는 계열체적인――텍스트 배열 울 향한 노력은 대상과 술화를 동일화하는 대신, 대상에 에세이적으로 접근하고자 하는 소망의 표현이다. 왜냐하면 동일화하는 사유는 모순 적이고 양가적인 대상에 완력을 행사할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서 벗어 나 있는 다른 言表는 일찌감치 배제해버리기 때문이다. 3) 대 화 Polyl o g 대 독백 Monolog 의미론적 양가성과 소설의 〈다성적〉 구조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존
재한다는 견해는 바흐친의 저서 『 도스토옙스키 시학 』 에서 최초로 표 명되었다. 그 책에서는 양가성에서 비롯되는 카니발화에 대해서 다음 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 〈 카니발화는 위대한 대화의 열린 구조를 가능 케 했다…… 〉 (Bach ti n, 1971, S.200). 시장사회의(매개의) 양가성을 도의시 하고 이룰 비변증법적으로 부정해버리는 술화는 언제나 이원론적인 이데올로기로 타락할 조짐을 보인다. 이에 반해 비판적인 술화는(점근 적인 접근을 통해) 진리 자체에의 추구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대상에 나타나는 양가성의 심화현상을 고려하는 것이다. 비판적 술화는 통사론적인 완결성을 회피하는 계열체적, 개방적 구 조를 지니기에, 경쟁적인 술화들과 관계할 경우에 경쟁자로부터 (기생 적으로)특정한 인식을 수용하거나 (자기비판적으로)자기자신의 잘못된 가설과 정리들을 제거하려고 시도한다. 그럼으로써 모든 독백적 언어 구조를 지배하고 있는 동일성의 강제력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비 판적 술화는-무질의 『 특성 없는 인간』처럼 __ 자기반어를 통해 스 스로가 언제라도 〈거짓 〉 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아이러니란 이런 것 이다. 성직자를 그릴 때 그의 옆에 볼세비키도 같이 그려넣으며, 백치 를 묘사할 때는 작가 역시 불현듯 자기자신도 어느 정도는 백치라는 느낌이 들도록 만드는 것이다〉 (GW. s, S.1 9 39 ; 제 5 장 1 의 (3) 도 참조할 것). 만일 자신이 철멸시키고자 하는 종교적 도그마가 정작 자기자신과 얼마나 닮았는지 마르크스주의 술화가 깨닫게 된다면, 이러한 인석도 자기반어적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비판이론은, 자신이 〈해방이 라는 은어 〉 를 산출했고――이 점에서는 〈본래〉의 철학자들과 전혀 다 르지만도 않다-_-그것이 〈수용미학〉에서는 전혀 다른 이데올로기적 환경 속에서 번창하고 있다는 점을 체념적으로 고백한다면 더욱 비판 적으로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언표들을 그것의 전리내용에 상관없이 상대화시켜서, 마침내 교환가치의 완전한 무관심성(무차별성)을 이론의 층위에서 재생 산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타자〉에 대한 진리
뿐만 아니라 〈자기자신 〉 에 대한 전리까지도 수중에 넣는 일이다. 그것 만이 아마도 다음과 같은 상호보완적인 두 가지 환상을 제거할 수 있 울 것이다. 자기자신의 이데올로기바판은 평가되지 않으리라는 가정과 자기자신의 술화는 대상과 동일하리라는 확신이 그것이다. 동일화하는 사유(바흐천에 따른다면 독백적 사유)에 대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비판이 비판적 기호학의 主 導 思想의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이미 앞서 인용된 바 있는 논문에서 E. 베롱은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이에 반해 ‘이데올로기적 효과'란 專 制的인 술 화의 것이다. 즉 자기자신만을 그 대상에 관해 유일하게 가능한 것으로 자처하는 술화말이다〉 (Veron , 1978, S.1 6 ). 이와 반대로 학문적인 담화는 자신과 대상간의 관계에 대해 사유하고 반성하려고 하는 것이다 . 그럼 으로써 학문적인 담화는 (묵시적으로)스스로를 상대화하고, 타인의 담 화에게 동일한 대상과 관계를 수립할 권리를 인용해 준다. 동시에 그것은 모든 이론적 술화에게서 그 진리내용을 박탈하고 이 롤 비합리적인 것이라 매도하는 권력욕도 포기한다 . 학문적인 담화는 체계적 일관성을 희생하는 대가로 이제까지와 모순되는 새로운 안식 조차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된다 . 다른 술화들은 정치적 , 이데올로기적, 심지어는 〈과학적〉인 요구를 위해 이 능력을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 이와 같은 권력욕을 폭로하는 일이 술화비판의 과업이라 하겠다. 〈이러한 비밀을 폭로하고 권력의 술화에 대한 술화를 말하는 것, 이를 비판이라 부른다〉라고 L . 마랭은 『이야기는 함정이다』에서 쓰 고 있다 (Mar i n, 1978, S.1 0 ). 4) 다의성 대 단의성 〈 … …권력의 술화에 대한 술화를 말하는 것……〉이는 특히 〈마르크 스 레닌주의 미학〉의 언어적 메카니즘을 대상으로 내가 몇해 전에 썼 던 「단의성의 신화」라는 논문의 주요관심사였다. 이 논문에서 일차적 목표는 유일당의 권력욕과 그 수사법의 의미론적 통사론적 처리방식
사이의 관계를 해명하려는 것이었다 (Z i ma, in : Schmi tt, Hrsg. , 1975 참조) . 거기에서 드러난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이다 . 1. 〈 사회주의 리얼리 즘 〉 의 술화는 자신의 지시체 전체와( 〈 현실 〉 과) 동일시된다. 2. 대상과의 합일을 향한 열망에 의해 대상의 다의성은 부정되기에 이른다. 교환가 치에 의한 매개로부터 비롯되어 현대사회의 이데올로기적 논쟁을 통해 더욱 가속화된 양가성의 심화현상에 대한 〈 사회주의 리얼리즘 〉 의 반 응은 『 특성 없는 인간 』 에서 비판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담화들의 반 응과 홉사하다 . 그것은 고착화된 특정한 이분법-사회주의 / 자본주의, 반동적 / 진보적, 리얼리즘적 / 자연주의적 등등一一에 근거하여,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전제들을 반성하고 대화를 · 통해 의문을 제기하기를 철 저히 거부하는 것이다. 노 동계급의 세계관, 죽 黨 이데올로그들에 의해 구축된 술화에 대해 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그것은 철두철미 과학적인 최초의 세 계관이며, 그 자체 논리적인, 또 그래야 한다면 동질적인 유일한 세계 관이다.…… 따라서 그것은 오성과 이론적 인석의 관심사일 뿐만 아니 라 심오한 확신의 문제이기도 하다 〉 (Au t orenkollek ti v, 1974, S.3 9 4 ) . 그것이 굳건한 확신에서든 한번 장악한 권력에 대한 불안스런 집착에서든간에 자기비판과 자기반어를 배제하는 한, 술화를 대화적으로 개방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모반행위로 몰리게 된다. 술화의 토대(유관성)의 의 미론적 위계는 〈 영원히〉 고정적인 것이다.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떠오른다 . 예컨대 『특성 없는 인간 』 에서와 같이 허구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반어적인 텍스트가공이 정치가, 학자, 문예 학자, 철학자 등의 숱한 사이비 과학적 담화들보다는 인식가치가 더 크고, 따 라서 보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 말이다. 많은 문예학 자들이 자명한 것으로――알튀세가 말한 의미에서 자연적, 이데올로기적인 것 으로-받아들이는 과학적 / 허구적이라는 이분법은 의문시되어 마땅할 것이 다. R 바르트의 다음과 같은 서술은 아마 타당한 것일지도 모른다. 〈문필이
승리하는 경우에, 그것은 대상을 모사할 능력이 없는 과학을 대체한다. 은유 만이 정확하다. 이러한 음악적인 존재, 실체적인 환상을 완전히 과학적인 방 법으로 서술하는 데는 문필가이기만 하면 족한 것이다〉 (Bar t hes, 1975, S.224)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지배하고 있는 동일성의 강제는 미학의 영 역에서 〈모호성에 대한 배척〉(아도르노)을 불러일으키는데, 이러한 태 도는 문학텍스트를 단의적 구조로 서술하려는 시도에서 정점에 이른 다. 허구의 다의적인 〈형상〉둘은 일의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개념과 결부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이러한 의미론적 내용은 형상과 언 어 개 념 의 공통분모다〉 (Auto r enkollekti v, 1974, S.389) . 이 같은 확 언은 『 사회 주의 리얼리즘의 이론을 위하여』라는 저서의 저자들이 인용하고 있는 S.L. 루빈스타인이라는 사람의 말이다. 그것은 순전히 의미론적인(과학 적인) 판단인 듯이 보이지만, 이는 가상일 뿐이다. 문학적 형상들이 그 다의성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 술화로부터 벗어나지 못 하도록 배려하는 일이 그 판단의 이념소로서의 임무인 것이다. 그리하 여 문학적 형상들은 〈휴머니즘적-진보적〉인 부류나 〈모더니즘적_퇴 폐적〉인 부류 속에 일의적으로 배치되어야 한다. 결국 하나의 문학작 품이-〈사회주의 리얼리즘〉 자체도 그러하지만一―〈휴머니즘적이면 서 퇴폐적〉일 수도 있고 〈진보적이면서 반동적〉일 수도 있다는 〈카니 발적〉인 인식은 터부시되고 만다. 여기에서 지적할 수 있는 사실은 의미론적인 문제들이 결코 몰가치 적인 것이 아니며 그 해결책은 술화의 충위에서 이념소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한다는 점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복합적 동 위체〉(그레마스)와 같은 개념을 거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개념은 허구 텍스트의 의미소적 동위체들이 지니는 이질적인 특성을 지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동위체들은 하나의 일의적인 흥위체층위 구조(l so t s pi eebenen g e fiig e, Kallmey er , Klein u.a., 1974, Bd.1, S.148~160 참조), 즉 일의적인 傳言으로 환원될 수 없다. 그러나 허구텍스트가 이질적인
(심지어 모순적이기까지 한) 동위체들 사이의 합동작용이라는 정의는 〈 마 르크스―레닌주의 〉 미학에 있어서는 이데올로기적 아유 때문에 거부 당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마르크스-레닌주의 미학의 의미론적 토대를 형성하고 있는 고착화 된 이분법이 행역자적(거시통사론의) 충위에 영향을 끼친 결과, 술화의 진행은 주 인공이 반주인공에 대해 , 조역자가 거역자에 대해 승리를 거 두고, 사역자 Des ti na t eur 의 명에 따라 그들에게서 대상(전리)을 탈취한 다는 식의 이원론적 도식에 따르게 된다. 아직도 해명되지 않은 많은 문제들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술적 진술 enonce 의 주체, 죽 사회주의 미학은 조역자( 〈 마르크스-레닌주의 〉 철학)의 도움을 받아 자산 의 사명을 완수할 것이다. 〈 이 과학에 있어 부분적으로는 여전히 해명 되지 못한 문제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이 미 학에게 결정적인 도구를 마련해주었으므로, 이 문제들에 대하여 보다 훌륭하고 올바른 대답아 차례차례 제시되리라고 우리는 확신한다〉 (Au tor enkollekti v, 197 4, S.3 7 6 ) . 이 러 한 개 방성 이 란 가상의 개 방성 일 뿐이 다. 그것이 어떤 수사법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지는 서술의 이원론적 도 석(주체 / 반주체 , 조역자 / 거역자)에 비추어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3. 아도르노의 〈 비판이론〉은 反술화인가? 〈비판이론〉이 사회적인 참여성을 지니느냐 하는 문제는 관점에 따라 회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일단 이를 긍정해 놓고나면, 이 이론의 술화 배열법을 거짓된 사유에 대한 대안으로서 제시하는 일은 식은 죽 먹 기만큼이나 쉬울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루카치가 리얼리즘론에서 토마스 만에게 부여한 명예로운 자리를 술화비판의 분야에서 아도르 노를 위해 예약해놓은 일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오
히려 〈비판이론〉의 술화적 제문제의 발생을 덱스트사회학의 툴 속에서 개괄하고, 어떤 사회적 가치들이 아도르노의 에세이이즘, 〈 모델적 사 고〉 및 『미학이론』의 병렬적인 배치의 동기를 이루고 있는지 제시하는 일이다. 술화분석에서 〈비판이론〉의 몇몇 인식과 사회적 관심사(특히 지배원리에 대한 비판)가 어떻게 참작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앞절에서 간접적으로나마 다룬 바 있다. (1) 자유주의와 〈비판아론〉 지금까지 논의한 바에 따른다면 양가성과 개인적 자유 사이의 관련 성을 굳이 입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술화가 대상의 내적인 모순성을 용인하는 경우에는 이에 상응하여 술화 속에서 구성되는 주체(진술의 주체)는 자기자신의 특수성을 인식하게 된다. 동시에 이 주체는 다른 형태의 담화가 갖는 특수성과 존재의 권리도 인정할 것이다. 비판적 사유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이처럼 정치적 인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비판적인 인식이다. 비판적 사유는 스스로가 자유주의에 결 속되어 있음을 인식하면서도 동시에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적 이데올로 기를 신랄하게 비난한다. 자유주의적 가치체계는 그 자체가 양가적이 다. 요컨대 그것의 합리주의는 그 반대를 내포하고 있으며, 계몽의 원 리는 신화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합리주 의 속에는 훗날 산업자본주의, 독점자본주의로 돌입하면서 비합리주의 적 성격을 띠게 되는 그러한 경향둘이 이미 형성되어 있다〉 (Marcuse, 1965, Bd.1, S.27). 〈실업계의 거물ty coon 〉과 같은 인물 속에서는 파시즘 전야와 파시즘 당대의 권위주의적 인물의 전조가 이미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적 이데올로기의 파탄이 아도르노, 호르크하이 머, 마르쿠제에게는 〈개인〉, 〈주체〉, 〈관용〉, 〈계몽〉과 같은 자유주의적 개념에 대한 급진적 비판의 출발점이 된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자신의
역설, 자기자신의 양가성을 주제화하고 반성하는 비판이다. 계몽, 주체 , 개인과 같은 개념들은 단순히 부정되고 마는 것이 아니다. 이 개념들은 그들을 묶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 자유주의〉,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울 가미에서 풀려나야 한다는 것이다. 〈 비판이론〉의 논자들은 몰락해가는 자유주의로부터 거리를 취하면서 그것의 기본적인 가치들을 새로운 콘텍스트에 가져옴으로써 구원하려고 한다. R. 무질의 다음과 같은 말은 그들도 했음직한 것이다 . 〈개 인주의는 종말울 고한다 . 울리히는 아무렇 지도 않다. 하지만 올바른 것은 구제받을 수 있을 것이다.〉 〈 울바른 것 〉 이란 어떤 강요된 보편성에도 회생당해서는 안될 개안, 예술작품, 텍스트의 특수성이다. 오늘날의 세계에서 세계정신의 자리를 찬탈한 집단적인 힘들 앞에서 보편 적 인 것, 이성적인 것에 좋은 피난처를 제공해주는 것은 차라리 고립된 개개 인들이지 이보다 더 강력한 군대 따위가 아니다. 이런 군대는 이성의 보편성 울 순순히 포기해버렸다. 천 개의 눈이 두 개의 눈보다 더 잘 볼 수 있다는 말은 거짓이며 집단과 조직의 물신화에 대한 정확한 표현이다. 이같은 물신 화를 깨뜨리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사회인식이 완수해야 할 지고의 과업인 것이다〉 (Adorno, 1971, S.8 5 ). 특수자들 속에서 〈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지배.이데올로기들이 마치 일의적으로 규정될 수 있는 현실과 동일하기라도 한듯이 행세하면서 자신의 특수성을 은폐하고 있다는 통찰에 근거하고 있다. 비판이론은 비판과 진리가 살아남으려면 권력의 요구로부터(찰못 이 해된 실천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 안된다는 자유주의적 사상을 더욱 발전시킨다. 〈비판이론〉이 〈비판적 합리주의〉, 그리고 다양한 분석철 학의 조류들과 맞닿는 곳은 이 지점이다. 후자에게도 이론과 실천의 통일에 대한 요구란 언제나 눈의 가시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자신의 술화적 처리방식을 조종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전제
들을 반성하지 않은 채 자신의 대상에 대해 〈몽가치적〉으로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순간, 비판이론은 이들과 결별한다. (2) 특수성과 에세이 로버트 무질과 데오도르 아도르노가 에세이에 대해 각기 지니고 있 었던 관념들은 여러 측면에서 상통한다. 에세이는, 이를테면 자연과학 과 같은 체계적이고 이론적인 술화와는 반대로 자신이 추구하는 전리 를 하나의 가능한 진리, 특수한 진리로 해석한다. 에세이는 보편적으로 구속력을 갖는 진리를 전달해야 한다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R . 무질은 에세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에세이에서는 인물들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사고의 연결을, 그 러니까 논리적인 연결을 제시하는 것이다. 또한 에세이는 자연과학과도 같이 사실들에 근거하여, 이들을 연관짓는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들은 일반적으로 관찰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들의 연관도 유일한 것일 경우가 많다. 에 나세지이 가않 을제 시뿐하이다는. 것그은러 나총 체에적세 이해는결 책발이언 하아고니 탐라구 한일다련.의 —특—수 매한트 (해매결데책르에링크 )지 도 언젠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에세이는 하나의 진리 대신에 세 가지의 높은 개연성을 제시한다고 (GW 9, S.1335). 양가적 현실에 대한 인식과 자기자신의 특수성에 대한 반성간의 상 호작용으로부터 에세이적 글쓰기방식의 역동성은 발생하는 것이다. 에 세이적 글쓰기방식은 진리 자체, 죽 절대이념을 목표로 하지 않고, 오 히려 비개연적 가설로부터 개연적인 가설을 분리시키는 방식으로 대 상에 접근하려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것은 迷信과 사실조차 분간 하지 못하는 단순한 상대주의로부터 벗어난다. 이러한 글쓰기방식을 낳은 것은 체계의 위기다. 반면에 〈전리는 전체다〉라는 헤겔의 격률을
따라 전개되었던 체계의 종착역은 絶對知였던 것 이다. 에세이이즘이 체계와 총체성개념의 위기에 대한 하나의 해답으로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누구보다도 아도르노의 경우에서다. 아도르노 역시 무질과 마찬가지로 , 에세이가 스스로를 절대적으로 정립하는 체 계보다도 특수적 인 것( 〈개별적 인 것〉)을 더 고려한다는 사실에서 출발 하고 있댜 에세이는 술화를 동일성의 강제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 에세이의 총체성, 자체적으로 철저히 구성된 형식의 통일성은 총체적이지 않은 것의 통일성이다. 사유와 대상의 동일성이란 테제는 내용상으로 비난될 뿐만 아니라 이렇듯 형식을 통해서도 거부당하는 것이다〉 (Adorno, 1958, S.3 7 ).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바는 동일성의 강제 를 결정짓는 것이 어떤 〈 내용 〉( 의시체 Deno t a t um) 이 아니라 술화의 배 열법 자체라고 하는 전형적인 텍스트사회학적 사상이다. 이같은 술화 의 배열법아야말로 이데올로기비판적 술화분석이 다루는 중심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 계몽의 변증법』에 서 최초로 구상된 바 있다. 형식논리의 응용과 數理化의 요구는 이념소 로 간주된다. 〈형 식논리는 획일화를 위한 거대한 학교였다. ……시민 사회는 等價原理의 지배를 받는다. 이 사회는 이질적인 존재들을 추상 적 크기에 환원시킴으로써 비교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Adorno, Ho-rkheim er, 1947, S.17~18). 합리주의(분석철학)의 술화는 분류하고 수리화하는 작업에 매달리는 반면, 에세이는 지배욕을 포기하고 자신의 대상에 미메시스적으로 접 근해간다. 에세이는 그 미메시스적 충동으로 인해 허구텍스트(예술작 품)와 유사해진다. 아도르노의 글쓰기방식이 따르는 처리과정은 전적 으로 다음과 같은 격률에 근거하고 있다. 〈미메시스 없는 이성은 자기 자신을 부정한다.〉 그럼으로써 그는 전통적 이론의 거시동사론과 인과 율적 전행을 멀리하면서 허구에의 접근을 통해 새로운 이론화, 새로운 합리성을 정초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3) 에세이, 모델 , 병렬체 : 비이론적 이론의 역설 이론과 지배원리가 분리될 수 있으려면 아마도 술화의 거시통사론적 구조가 의문시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 자리는 대상과 대상의 특수성을 인정하는 병렬적이고 계열체적인 술화로 대체되어야 할 것이다. 술화의 거시통사론적 전행은 A.J.그레마스가 서술한 대로 (심층구조에서의)의미론적 이분법에 의해 조종된다. 즉 이러한 이분법은 행역자 충위에서 주체와 반주체, 조역자와 거역자, 사역자와 반사역자 간의 대결을 초래하는 것이다. 이처럼 어차피 주인공의 반주인공에 대 한 승리, 죽 긍정적 원리의 선포로 귀결되도록 정해져 있는 서술도식을 파괴하는 것이 비판이론의 목표다. 비판이론은 여러 가지 개연성들을 주시하면서, 가설적 연관을 세우려고 하지만 인과론적 진행과 체계의 위계적 구조가 형성되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그레마스는 거시통사 론의 원리를 설명하기는 했지만 비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조 명하에서 본다면 거시통사론의 원리 그 자체가 이념소임이 드러난다 (Greim a s, 1976) . 반면에 여러 에세이들을 연결시켜보면 병렬적이고 계열체적인(통합 체적아지 않은) 술화의 면모가 밝혀질 것이다. 〈에세이는, 스스로의 전 개를 통해서든, 다른 에세이와의 모자이크적 관계를 통해서든, 자신을 증폭시키고 확인하고 제한함으로써 자신의 인식에 존재하는 우연적이 고 개별적인 측면들을 수정해간다. 그러나 여러 에세이로부터 자질단 위를 추출하는 식의 추상화작업에 의존하지는 않는 것이다 (Adorno, 19 58, S.3 6 ). 에세이의 다른 에세이와의 모자이크적 관계라는 관념은, 계열 체적이고 연상적인 구조로 이론의 거시통사론에 고유한 인과율적 연 쇄를 대체하는 『미학이론』의 병렬적 배열법을 예고하고 있다. 위계적 원리의 극복으로서 병렬체가 얼마나 전지하게 연상적 계열체적 충동을 따르고 있는지는 횔덜린의 후기 시에 대한 논문에서의 아도르노의 논 평이 찰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서는 〈론도적 rondoh aft이고 연상적 인 문
장결합 〉 의 문제가 다루어진다 (Adorno, 1965, s.1 8 6). 이 같이 연상적으 로 결합된 문장들은 인과율적, 통합체적 원리의 강제력에서 벗어 나는 〈 나열식 처리방식〉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언어가 하나의 계열로 전화하면 음악적으로 된다. 언어 요소들이 판단의 경우와는 다 르게 연결되는 것이다 〉 ( Adorno, 1965, S.1 8 5). 병렬적이면서도 계열체적인 『미학이론』의 배열법은 동시에 아도르 노 자신의 술화에 대한 자기비판으로(반성성으로) 해석될 수 있다. 〈모 델적 사고〉는 『부정의 변증법』을 쓸 때까지만 해도 특수자(개별자)의 구원의 문제를 필두로, 술화의 전반적인 문제점을 해결해줄 수 있는 하나의 방책일 것이라는 생각이 아도르노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지만, 그것이 위계적이고 종속체적인 술화에 대한 대안으로 고려되기에는, 〈첫 째로 그 다음으로 〉 하는 식의 인과율적 진행(앞을 참조할 것)에 지 나치게 의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상이 그 특수성을 드러낼 수 있으 려면 술화통사론의 주체가 자기의 주관성을 포기할 정도로 멀찌감치 뒤로 물러서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이같은 주관성의 퇴각과 더불어 술화의 거시통사론은 해체될 뿐만 아니라 술화 자체마저도 해체되기에 이른다. 아도르노가 빠져들었던 아포리아는 바로 여기에 있다. 즉 그는 언어 속에서 지배원리를 의식하면서 하나의 술화를 말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술화가 아닌 것이다. 『미학이론』의 편자가 한 다음과 같은 지적은 타당하다. 〈그러나 形言할 수 없는 개체 ind iv i d u um ine ff a- b i le 에 대한 열정에 불타, 동일화하는 사유에게서 받은 상처를 반복될 수 없는 것, 비개념적인 것에서 보상받으려는 이론은, 그것이 이론이기 에 지닐 수밖에 없는 추상성과 갈등관계에 빠지기 마련이다〉(I n : Ado- mo, 1970, S.5 4 1~S.542). 이와 나란히 세기전환기의 소설들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즉 그 작가들이 양가성에 의해 뒤흔들린 서술통사론을 급진적 으로 비판함과 동시에 새로운 〈나열식〉 처리방식을 찾아내려고 시도 했다는 사실에 세기전환기 소설들의 아포리아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새로운 소설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소설을, 즉 〈이야기하기 Erzahlen 〉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소설의 역설이다. 이론 의 영역에서나 허구의 영역에서나 문제의 궁극적인 핵심은 시장의 양 가성을 이데올로기적 언어의 동일성의 강제에 맞서 대항케 하고 〈形 言 할 수 없는 개체〉를 위해 개방적인 계열체적 글쓰기방석을 통해서 궁 극적인 자유를 얻어내는 일이었던 셈이다. 참고문현 Adorno, Th. W. : Der Essay als Form, in : ders., Nolen zur Lit era tu r I, Frankfu r t, Suhrkamp , 1958 ———:::: ANK Pesrgtai thar iekat t.tii sv a Kexc h ilDsee . ii na T Zel he ukeSro tci rhski epr, , i덥 ftF tF eernrna a n nzkLkufyufr r u rir tkG ,t , e SHsSeu/oulh slhdcrr khekaaraflmtim,n p s p ,F, , r 1a19in9n6k76 0:f u dr et ,r sS., uNhrokleanm pz ,u r1 9L71it era tu r III, Frankfu r t, Suhrkamp , 1965 Adorno, Th. W., Horkheim er, M. : Dia le kti k der Aufk la rung, Amste r dam, Qu erid o , 1947 Auto r enkollekti v : Zur The 函 e des sozia l ist is ch en Realism us, Berlin , Die t z Vig ., 1974 Bachti n, M. : Prob/eme der Poeti k Dosto e vskij s, Mi inc hen, Hanser, 1971 Bart he s, R. : Rasch, in : Langu e, dis co urs, soc iete . Pour Emi le Benvenis te , Paris, GoSldemuial, n n1,9 7L5. _: per Verborge n e Gott , Neuwi ed und Berlin , Luchte r hand, 1973( 특히 —파스:칼 M 의a up역 a설s sa을n t. 장L세a 니sem즘i의 oti q 바u e극 d적u te의x t식e :으 ex로er ci설s e명s p한ra t데iq u e주s,목 P하a라ris) , Seuil, 1976 Greim as, A. J. : Semi oti q u e et scie n ces soc iale s, Paris, Seuil , 1976 Harris, Z. : Di sc ourse Analys i s, in : Lang u age , Bd. 28, 1952 Hege l , G. W. F. : Wis se nschaft der Lo 神 I. Frankfu r t , Suhrkamp , 1970 Hook, S. : From Hege l to Marx. Stu d ie s in the Inte ll ect ua l Develop me nt of Karl Marx, Ann Arbor, Univ e rsity of Mi ch ig an Press, 1962, 1966 Kallmeye r , Klein u. a : Lektu r ekolleg zur Textl ing u is tik I : Ein f u h rung, Frank fur 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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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 텍스트사회학과 술화비판 전통적인 문학사회학에 도전한다는 의미에서 그 명칭부터 다르게 〈 텍스트사회학 Tex t soz i olo gi e 〉 이라고 표기하고 있는 지마 Pe t er V. Z i ma 는 이 저서에서 자신의 문학사회학적 구상의 골격이 구체적인 예시를 통 해서 보다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시도한다. 일찍이 문학을 사회적 사실로서 관찰할 것울 역설한 바 있는 체코 구조주의자 무카로프스키 Jan Muka to vsk y의 선구자적 인식들을 수용함 은 물론이고, 나아가 문학의 상대적 자율성을 주창하면서 비판적 문학 사회학을 구축한 아도르노 Th . W.Adorno 의 독보적인 술화비판적 성과들 도 섭렵하면서 자기 나름의 비판적 텍스트사회학의 지평을 연 신예 문예학자로서의 지마의 입지는 이 저서를 통해서 더욱 공고히 된 것 으로 평가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연전에 『문학텍스트의 사회학을 위하여』(이건 우 역 : 문학과지성사, 1983) 라는 표제로 다방면에 걸친 그의 문예학적 논 술 여러 편이 한 권의 단행본으로 집대성되어 일차로 소개된 바 있다. 그러나 그 논문집은 일정한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연결된 글들이 아니 라서 일반 독자들에 의해서 수용되는 데는 얼마간의 어려움이 있지 않았나 여겨진다. 그에 비해서 이 저서는 새로운 성격의 문학사회학을 비판적으로 정초하려는 지향을 견지하면서 그동안에 다져전 문예학적 결실들을 수령하고, 특히 프랑스문학(예컨대 M.Prous t)과 독일문학(예컨 대 R. Mus il)에 걸치는 지마의 참신한 연구수확들이 기반이 되어 텍스트
사회학의 본령이 〈술화비판〉으로서 논술된 야십작이라는 평가를 추수 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문학사회학이 생소한 학 문계열에 속하는 편이기에 이 덱스트사회학이 충분히 소화되기에는 상당히 긴 수용과정을 필요로 할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이 분야에 관한 관심이 저조함은 어쩔 수 없는 실정이고, 더구나 〈述話批判〉이라는 개념 자체도 신조어이고 보면 이해의 난삽함을 문제삼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리라. 여하간 〈述話〉라는 용어는 독어 D i skurs( 불어 dis c ours, 영어 d i scourse) 에 대한 우리말 역어이다. 물론 이 원어는 사용문맥에 따라서 그 의미가 여러 가지로 달라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의미론적 차이를 대충 분 류한다면 다음의 두 가지로 대별시킬 수 있다. 따라서 동음이의어적인 이 원어를 우리말로 옮길 때에는 가능한 한 ®〈談論〉, @〈述話〉로 구분 해서 표기함으로써 학술적 의사소통에 따르는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줄이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여긴다. 이 점을 다시 한 번 부연한다면 ®토론상 대체로 한 논거와 그에 반하는 논거가 서로 교차하면서 하나의 합의가 도출되는 방향으로 구 조화된 제반 합목적적인 덱스트들을 통칭하여 학술적으로 〈담론〉이라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담화와 논의〉라는 사전적 의미의 토론이나 논술과 동일한 계열의 개념이다. 특히 이 개념은 예컨대 하 버마스J .Habermas 의 사회이론에서 핵심을 이루고 있기에 그 의미론적 내포를 좀더 명확히 하기 위해서 이를 〈언술변증〉으로도 표기할 수 있겠지만 학술어의 간명성에 비추어본다면 차라리 이미 우리말로 정 착된 담론(=담화와 논의) 개념이 보다 더 선호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술화〉개념은 주로 프랑스의 푸코 Foucaul t가 펼친 철학적 사유에 의거해서 최근의 문학이론이 부각시킨 용어이다. 물론 이 개념 은 우리말의 담화적 의미의 〈이야기〉로 이해된다면 크게 무리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것이 우리의 주변에서 위의 ®항에서 설명된 표기인 담론과 혼동되어 사용되고 있는 데서 학술적 의사소통에 적잖은 혼란
이 야기되고 있는 것 같다. 정의에 엄격하자면 이 개념은 제도화된 특 정 실천분야에서 일정한 규칙에 따라 생산되는 제반 덱스트들을 지칭 하는 것으로서 예컨대 〈 부르주아적 술화 〉 , 〈 법률적 술화 〉 , 〈 문학적 술 화 〉 등으로 사용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텍스트 생산에 기초가 되는 언어행위에 주목하여 이를 〈 언술 〉 이나 〈 담화〉로 표기할 수도 있다. 그 러나 이 언어행위가 표현하는 담화양태나 담화형식을 담아낸다는 의 미에서 기왕의 언어학적인 학술어와 구별하여 역시 문예학에서는 〈술 화 〉 개념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여긴다. 이처럼 새로운 학문의 수용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해당 학술어의 정립이 급선무임에도 불구하고 문학연구계에서는 아직도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더구나 문학사회학을 위한 이렇다할 찬절한 안내서가 많지 않아서 관심있는 자들로 하여금 안타 깝게 만들고 있던 차에 마침 이 책이 번역, 소개될 수 있게 되어 역자 로서는 여간 다행으로 여기지 않는다. 페터 지마(불어명 : 피에르 지마 P i erre Z i ma) 는 1946 년 체코의 프라하에 서 출생하여 영국 에딘버러 대학에서 사회학과 문학을, 그리고 파리의 고급 연구학교 Ecole des Haute s E t udes 에서는 문학사회학을 전공했으며, 현재는 오스트리아의 클라겐푸르트 대학에서 일반문예학과 비교문예 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이미 서독의 멀레펠트 대학에서 1972 년부터 1975 년까지 문학사회학을 강의한 바 있는데, 특히 이 대학은 저명한 구조기능주의 사회학의 권위자 루만 N ik las Luhmann 의 주도하에 본격적으로 학제적 연구가 활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여하간에 지금까지의 분화된 문학사회학적 조류들을 일별해보면, 그 것이 경험적 문학사회학이건 변증법적 문학사회학이건 많은 경우 그 것들은 문헌학의 전래된 제전제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스 스로 마르크스주의적 연구자라고 일컫고 있는 자들 역시 자기가 구사 하고 있는 어휘둘의 많은 부분이 자신도 모르는 사아에 문헌학적 〈述
話 D i skurs 〉 에서 유래하고 있는 어휘목록에 의존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될 페 우리는 실로 놀라게 된다. 예 컨대 〈예술작품 Kunstw e rk> , 〈창조 Schop fun g >, 〈양식 Sti l> , 〈장편소설 Roman> 같은 일련의 개념들이 물론 시민적 제관계에 가한 마르크스의 비판에 근거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역시 자세히 들여다볼 경우 그것들은 특정 용어들과 그 언어적 표현 들이 함의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간파하지 못하고 있는 한 특정이론에 귀속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본문 제 1 장 참조) . 〈물론 ‘술화분석 Dis k ursanalys e ’ 이나 ‘술화비판 Dis k urskriti k' 의 문제 롤 단순히 어휘의 차원으로 축소시켜서 모든 새로운 언어창조에는 새 로운(혁명적) 이데올로기의 맹아가 들어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실로 진 부하게 여겨질는지 모른다. 많은 현대적인 덱스트학들이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있는 생소한 혁신적 용어들은 제대로 전가도 발휘하지 못하 고, 공전만 거듭하고 있는 실정일진대 결과적으로 단순히 신조어들을 만들어내는 것만으로는 결코 언어상황에 혁명을 일으킬 수는 없을 것 이다. 결국 술화적 구조의 복합성은 단순히 그것의 어휘적 토대로 환 원될 수는 없는 문제 이 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루이 알튀 세 Louis Alth u s- ser 와 그의 이 론에 바탕을 두고 있는 미 셸 페 쇠 Mi ch el Pecheux 같은 저 자들은 하나의 새로운 단어가 어떤 특정한 콘텍스트 안에서 출현하게 되면, 그것은 동시에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데, 실로 이는 틀린 말이 아니다〉 (Z i ma). 왜냐하면 언어 자체가 이데올로 기적으로 매개되어 있고, 또 학문에서나 문학에서도 가치중립적인 언 술은 존재치 않는다는 인식이 그러한 주장의 전리계기를 담보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사실은 정녕 문학사회학 분야에서 하나의 새로운 인식에 해당된다고 지마는 강조한다. 우리는 경험적 방법들이 분업에 순종하면서 덱스트구조에 대한 물 음울 문헌학과 문학비평에게 넘겨주기 위해서 그러한 인식을 포기하고 있는 것을 자주 보아왔고, 또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와는 다른 측면에 서 문학이란 텍스트, 죽 언어적 기호체계라기보다는 단순히 〈예술〉인
것처럼 말하는 데 익숙해져 있음을 알고 있다. 따라서 지마가 스스로 자산이 귀속됨을 밝히고 있는 비판적 사회학 내지 술화비판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종류의 〈환원 Reduk ti on 〉에 대해서 분명히 거부입장을 밝 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거부입장 중의 하나는 문학을 철학이나 이 데올로기와 동류의 것으로 간주하려는 마르크시즘적인 계열의 기도가 되겠고, 또 다른 하나는 문학을 단순히 기호론적 언어로 축소시켜 자 율성이라는 악명 높은 부르주아적 아성에 유폐시킴으로써 문학을 기 법과 동일시하려는 형식주의 계열의 기도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시도 둘이 전적으로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그러한 자세가 극단화될 때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지마가 대변하고자 하는 〈술화비판〉은 부분적인 전리계기를 마치 전부인양 호도하고 있는 위험을 지적해내는 임무를 지닌다. 이를테면 우리가 지나간 제 5 공화국 시절의 전형적인 언술의 특징을 구체적 예시를 통해서 만약 〈훈시적 술화〉(서기원)로써 입증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지마류의 술화바판을 활용하여 당시의 언어사회학 적 내지 정치문화적 분위기를 웅변하는 한 술화유형을 적출할 수 있을 것이댜 아무튼 이러한 맥락에서 지마가 각별히 관십을 쏟고 있는 문제영역 은 다음의 세 가지로 대별될 수 있다. @ 언어란 이데올로기 저 너머에 위치하는 중립적 우주라기보다는 차라리 이데올로기들 가운데에서 양립할 수 없는 사회적 이해관계들이 서로 충돌을 일으키는 곳이라는 점, ® 사회경제적 문제점들은 텍스트의 차원과 텍스트 장호적 차원에서 언어학적 문제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 ®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철학적 표현으로 지칭되는 기호론적 장 치는 동시에 부르주아적 개인주의와는 떼어놓을 수 없는 사회적 장치 이기도 하다는 점들이다. 그러므로 만약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해 아무런 비판도 없이 접근한
다면, 그러한 태도는 필경 다음의 두 가지 절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 마는 경고한다. 첫째 많은 경험주의자들이 거리낌없이 연구대상에서 배제하고 있는 텍스트구조는 기껏해야 전승된 문헌학적 범주나 개념 들의 도움을 얻어 직관적으로 연구되고 말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전혀 지각되지도 않는다는 점과, 둘째로는 과학적 • 이론적 메타텍스트의 배 후는 더 이상 추궁받지도 않고 그냥 그대로 그 메타텍스둘이 사용되고 있는데, 이 경우 그것들의 역사적 • 이데올로기적 위치가는 계속 은폐 된 채로 남게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마의 견해에 의하면 문학은 단순히 사회적 산물로서만 간 주되어서도, 또 전적으로 이데올로기의 대용물로서만 기능해서도 안된 다고 한다. 극히 최근에 와서야 비로소 사회주의전영과 자본주의진영 으로 양분된 냉전체제가 유연하게 수령되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어 서 그 귀추가 자못 주목되고는 있지만 그래도 지구촌의 장래에 대해서 확실성 있는 예언을 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궁극적 으로 지마가 취하고 있는 兩非論的 입장은 분단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 에게는 매우 유혹적이기도 하다. 그는 어느 편에도 적극적인 가담을 유보한 채 각 전영이 자신들의 치부로서 드러내고 있는 구조적 모순과 갈등둘을 예리하게 분석하여 그 맹점들을 지적해 주고 있다. 예컨대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회주의 유일당이 지배하고 있는 체제 적 약점들을 문학적으로 〈단의성의 신화 Der My tho s der Monosem i e 〉라 는 범주로 묶어서(하기야 극히 최근에 이르러 격변의 와중에서 눈부신 자기 변모를 하고 있는 동구권의 미래는 매우 불두명한 것도 사실이지만) 극·명하게 표출시켰는가 하면, 또 자기 스승 중의 한 사람안 아도르노가 즐겨 사 용한 유명한 은유 〈보편적 현혹의 연관 Der allge m ein e Verblendungs z usa- mmenhan g〉이라는 개념에 입각해서 독점 대자본 내지 다국적기업이 지 배하고 있는 후기산업사회의 서구문명의 산물인 비인간적인 모순둘을 소설문학의 분석을 통해 날카롭게 해부해주기도 했다. 물론 그의 문명 비판적인 시각을 동반하고 있는 학문적 배경은 구조주의적 토대에 입
각하고 있는 기호학과 비판이론적 기반 위에 자리잡고 있는 포괄적인 이데올로기비판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는 해석학적 전통에 새로 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현대적 수용미학을 부르주아적 편향이라고 매섭게 매도함으로써 일대 논전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문예 학계의 보편적 인식으로서 자리를 굳힌 의사소통론적 관심의 이론적 재구성작업인 문학적 소통행위이론 계열의 성과들을 일방적으로 비난 한다고 해서 대세를 바꾸기에는 아직은 역부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필자로서는 이 부분에서만은 지마와 견해롤 달리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지마가 활용하고 있는 기호학적 인식모델 내지 기호모델이 만 약 전통적인 이원론적 기호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면, 역시 이 부분은 퍼스 Ch.S . Pe i rce 류의 삼원적 기호모델로 확장되어야 하겠고, 따라서 解 釋 素 롤 중요한 인식근거로서 끌어들이는 수정 • 보완작업이 병행되어야 하리라고 본다. 이렇게 될 때 그의 이론은 의사소통적 지평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고 다분히 생산이론에 거치고 있는 시각도 수용이론으로 연결되어 본격적인 문학적 의사소통이론으로 재정비되리라고 본다. 궁극적으로 본다면 덱스트사회학이 주로 관심을 갖는 분야는 문학적 의사소통체계(예컨대 독서대중, 출판업 , 도서시장 등)가 아니고 바로 텍스 트의 술화적 구조이다 . 따라서 이러한 입장표명은 분명 가치중립적인 자세가 아니다. 이는 덱스트생산을 사회학적 연구에서 제의시켰던 종 래의 시도들(예컨대 작품 내재적 문예학이나 경험적 .문학사회학 등)과 구분― 되는 자세이기도 하다 . 주로 영미계통의 문학사회학에서 시도되었던 수많은 〈 내용분석 conte n t anal y s i s 〉들은 허구적 덱스트들이 특정한 사회 적 상황이나 문화적 상황에 대한 역사적 문서가 됨을 입증하는 데에 많은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연구들은 사회를 보다 잘 이해 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적지않은 관심을 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둘은 한 작가의 기술방식, 죽 그 작가의 서술처리방식과 텍스트의 의미론적 구성에 관해서는 거의 아무런 이야기를 해주지 못한다.
이러한 문제들은 텍스트구조에 관한 모든 전술을 문헌학에 맡겨버 리고 싶어하는 내용분석의 경험적 방법들에 의해서 등한시되고 있을 뿐 아니라 또한 마르크시즘적 문예학도 역시 그러한 과오를 범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마르크시즘적 문예학은 문학적 생산물의 이데올로 기적 위치가나 이데올로기비판적 위치가를 규정하려는 시도는 하면서 도 그 이데올로기의 언어적 측면들(예컨대 의미론적, 통사론적 , 어휘론적 측면들)에는 관심을 쏟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보건대 많은 작가들이 경험적 유형의 문학사 회학이나 변증법적 형태의 문학사회학에 대해서 부분적으로 불신을 갖고 있음은 이해할 만도 하다. 그들은 문학사회학자들이 자신들이 만 든 텍스트들을 역사적 문서나 철학적 개념들로 축소시킴으로써 자기 둘이 제일 많이 정력을 쏟은 차원인 언어 문제가 간과되어버린다고 느끼고 있는데 이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작가의 그러한 입장을 섣 불리 문학적 생산의 사회적 연원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 형식주의 자〉들의 태도와 동일시하는 것은 잘못된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작가들은 그들의 글쓰기가 안고 있는 사회적 측면에 대해서 크게 관 심을 표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자신돌의 글쓰기를 일종의 이 데올로기비판적 활동으로 간주하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 누보로망〉의 작가들). 예컨대 〈참여문학〉이란 표현을 만들어낸 사르트르는 풀로베르 나 말라르메 같은 문호둘의 언어적 참여문제를 연구한 바 있으며, 또한 무질도 선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현대 프랑스비평계의 텔켈-그룹 동인 둘보다 훨씬 앞서서 서술적 구조들이 지닌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인식 한바 있다. 덱스트사회학의 분석작업은 따지고 보면, 〈반영〉이나 〈상동〉과 같은 개념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한 드라마나 소설이 어떤 종류의 구어적이거나 문어적인 비허구적 덱스트들을 가공처리하며 또 전자가 후자에 대해서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묻는다. 따라서 〈텍
스트사회학 〉 이라는 단어 결합은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하나의 관 찰방식임을 말해주고 있는데, 이 관찰방식 안에서는 사회가 여러 텍스 트들의 모순적인 앙상블로 화함으로써, 그 앙상블로부터 하나의 특정 한 문학생산이 산출되어 나오는 것이다. 왜 허구적 텍스트류가 사회언어학에서 우선시되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문학적(=시적) 텍스트가 지닌 보편적 성격을 지적하고 있는 코제뤼 Eug en io Coser i us 의 말로써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 문학(적) 텍 스트는 바로 기능적으로 가장 풍부한 종류의 텍스트라 할 수 있으므로 그것은 마땅히 덱스트언어학의 모델로 통해야만 한다 〉 는 것이다. 코제뤼의 명제는 무엇보다도 소설에 적용된다. 이미 코제뤼보다 훨 씬 앞서 서 바흐친 Mi ch ail Bach ti n 도 소설 속의 담화다종성 을 기 술한 바 있고 또 얼마나 다양하고 상호 경쟁적인 언어형식들이 이 장르에 의 해서 소화되어 상대화되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 소설은 예술적으로 조직된 다양한 담화이다. 때로는 언어다종성아요 개인적인 다양한 목 소리들이다. 〉 여기서 바흐친은 일종의 〈 언어의 사회적 대화〉를 말하고 있다. 그는 〈전통적 문체론은 이런 식으로 언어와 문체들을 하나의 보 다 고차원적인 단위로 조합하는 일은 알고 있지 못하며 또 소설 속에 서의 언어의 특수한 사회적 대화에 접근하지도 못한다〉고 했다. 또 다 른 곳에서는 〈 언어의식의 상대화 〉 가 거론되었는데, 이로써 소설의 다 성성은 모든 언어사용을 상대화함으로써 자기자신은 물론이고 또한 자신이 다른 것과 갖는 관계도 숙고할 것을 강요하기 때문에 그 다성 성은 이데올로기비판적 차원을 가진다는 점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 텍스트사회학에서는 소설의 다성성에 대한 논의가 문학의 이데올로 기비판적 관찰 속으로 수렴될 뿐만 아니라 또한 동시에 이론적인(문예 학적인, 사회학적인) 〈메타텍스트〉의 이데올로기비판적 분석으로도 이어 지게 된다. 한 가지 이론(대상에 대한 한 가지 담화)의 절대화를 예방해야 하는 이러한 분석은 오직 〈술화분석〉으로서만 수행될 수 있는바, 이는 덱스트사회학의 본질적인 두번째 구성성분이 된다.
이로써 텍스트사회학이 지닌 두 가지 프로그램이 대충 시사된 셈인 데, 특히 중요한 것은 기존의 문학사회학적 단초들과의 경계설정의 문 제이다.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일은 〈변증법적 문학사회학에서는 어쩌면 허구적 텍스트뿐 아니라 이론적 메타덱스트도 사회-역사적이고 사회-언어학적 콘텍스트 속에서 기술하고 비판할 수 있는 하나의 비 판적 텍스트이론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Z i ma). 예컨대 〈이데올로기〉의 문제만 하더라도 텍스트사회학의 기본입장 은 보다 분화적이고 진취적이다. 알튀세 류의 변증법적 문학사회학이 나 또는 우리나라의 80 년대에 급부상한 민주적 내지 민족적 민중문학 진영이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간의 극단적인 대립 및 시민계급이 동질적 집단으로서 학교와 그밖의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들(신문, 대학, 가정 등)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고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지 마식의 텍스트사회학은 오히려 문학사회학을 위해서는 부르주아와 프 롤레타리아간의(흔히 이데올로기화된) 모순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차라 리 부르주아내에서의 모순들이 더 중요하다는 가정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또 그것은 픽션의 세계 속에서뿐 아니라 또한 학교와 대학 속 에서도 자유주의적인, 급진적인, 기독교적인, 사회주의적인, 파쇼적인 또는 공산주의적인 〈사회어 Soz i olek t e 〉둘이 서로 대치하고 있음을 간과 하지 않는다. 따라서 문학적 실천은 이것들에 대해서 태도표시를 함으 로써 덱스트사회학은 특정 가치와 가치대립들을 긍정하는 결단을 내 리게 되고 스스로 의미론적-통사론적(서술적) 구조로서 구축된다고 본 다. 이로써 소설이라는 문학텍스트는 본질적으로 특수한 언어형식들과 관계하고 있는 것으로서, 결국 덱스트구조들(예컨대 서술구조)의 설명을 위해서는 이 언어형식들이 불가결하다는 점이 드러나게 된다. 그리하여 텍스트사회학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반복해서 문학적 텍 스트와 이론적 텍스트(메타덱스트)를 일종의 사회-경제적으로 매개된 구조로서 이해하는 일이다. 때문에 그것은 텍스트를 이데올로기비판에 대해서 면역화시키는 모든 시도들에 반기를 든다. 문학텍스트와 이룰
수용하는 메타덱스트가 갖는 이데올로기적 생산조건들을 도의시하는 전통적 수용미학뿐 아니라 또한 형식논리를 〈비평의 기구〉로 만들고 싶어함으로써 어휘적 레파토리나 적실성, 분류성이나 거시통사론의 사 회 一 경제적 매개를 간과하는 분석주의적 단초둘 역시 그러한 시도를 은밀히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관찰방식은 현재 그것들이 지닌 이념소들의 도움으 로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이 이념소들은 이데올로기비판이 술화비판 으로 화하면 금방 그것의 정체가 밝혀지게 된다고 지마는 장담하고 있다. 이처럼 확신에 찬 그의 첨예한 천착들은 최근 『이데올로기와 이 론 Ideologz ·e und Theori e.!l ( Tubin g e n , 1989) 이 라는 그의 논저 에 서 다시 한 번 〈술화비판〉의 형태로 포괄되고 있어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 어쨌든 지마가 전통적 문학사회학에 가한 신랄한 바판은 문예학계에 새로운 자극제가 되어 다양성의 미덕을 예찬하고 있는 현대적 풍조에 매우 창조적인 추동력을 발휘하고 있음은 확실하다. 그러거에 우리들 의 문예학계에서도 이러한 인식의 수용에 한번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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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딕 스 Bendix , R 48 벤 베 니 스트 Benveni st, E. 20, 216 벤야민 Benja m i n, W. 14, 131 벤제 Bense, M. 53, 221 보드리 야르 Baudri lla rd, J. 120, 121 보들레 르 Baudelair e, Ch. 194 복카치오 Bocca ci o, G. 77 보클룬트 Boklund, K 77 볼로시 노프 Volosin ov , V. N. 14, 15, 92~ 94, 96~98, 105, 213 부브너 Bubner, R 18 부브레 스 Bouvresse, J. 1 58 부스 Booth , w. 78 뷔르거 Burge r : P . 35, 74, 196 뷔 토르 Buto r, M. 143 브레몽 Bremon, Cl. 138 , 139 브레통 Breto n , A. 155, 156, 177, 187 브레히트 Brech t, B. 42 브로트 Brod, M. 190 브로흐 Broch, H. 178 브링크만 B rinlanann, R 78, 201 비 놀트 Wie n old, G. 41, 215 비 용 Vil lon , F. 42 人 사르트르 Sartre. J. P. 68, 184~ lrr !, 197 샤르프슈베 르트 Scharfschw erdt, J. 39 세 르반테 스 Cervante s, M de 110 셔크만 Shuk man, A 26,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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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194, 200, 202 아이 에 Aye r , A.J. 15 아이 헨도르프 Eic h en d orf , J. von. 222 아펠 Ap el, K O. 18 알브레히트 Albrech t, M.C. 37 알뒤 세 Alth u sser, L. 12, 13, 16, 36, 43, 59, 69, 70, 72, 85, 108, 213, 220, 227 야구엘로 Yag uel lo, M. 93 야우스J auss , H. R 41, 59, 68 야스퍼스J as pe rs, K 13 야콥슨 Jak obson, R 28, 29, 72 에 르망 Hennant, A. 132, 134 에 르벤 Erben, K I. 92 에 스카르피 Eska rpit, R 35 에 코 Ero, U. 23, 26, 28, 29, 50, 99, 101 엘리스 E llis, J. 67 엘 리 아데 Eliad e, M. 153 엥겔스 En g els, F. 61, 63 예 기 Jaeg g i, U. 69 옴 Hammes, J. 105 와트 Watt, L 198 위 에 Huet, P. D . 145 위 터 스프로트 Uy tter spr o t, H. 170 잉 가르덴 Ingarde n, R 37, 39 x; 조이 스 Joy c e , J. 31, 78, 106, 132, 152, 165, 169, 178, 184~ 186, 194, 200, 201,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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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라 Zola, E. 63, 78, 79, 201, 210 존 -레 텔 Sohn-Reth e l, A. 115, 119~ 122, 205, 206, 209 쥬네 Genet, J. 68 쥬네 트 Genett e, G. 144, 146, 149, 173 지드 Gid e , A 135, 209 지 마 Zim a, P. 20, 23, 39, 40, 42, 51, 61, 65, 68, 69, 82, 131, 135 , 184, 187, 211, 227 질 버 만 Silb e rmann, A. 35, 36, 39, 41, 46 짐 멜 Sim mel. G. 118 天 찰라만스키 Zalamansky , H. 50, 51 체 라파 Zera ffa, M. 175 츠메 가취 Zmega c, V. 119, 126 구 카러 Karrer, W. 110, 175 카르납 Carnap, R. 158 카뮈 Camus, A. 184~ 187, 197 카우어드 Coward, R 67 카이 저 Kaise r, G . B. 132 카이 저 Kay se r, W. 37 카프카 Kafka, F. 21, 30, 31, 53, 79, 106, 130, 135, 139, 152, 158 , 159, 165, 170, 172, 176, 184~ 191, 194, 195, 197, 207, 209, 211, 218, 221, 223
칸트 Kant, L 60, 68, 206, 207 칼마이 어 Kallmeye r , W . 81, 228 칼베 Calvet, L.J. 93, 213 케 코니 Checconi, S . 173 코저 Coser, L. 37, 82 코제 뤼 Coseri u, E. 28, 29, 72, 1()C ), 205 코지 크 Kosik , K 57 콘라트 Konarad, K 92 쾰 러 Kohler, E. 74~77, 82, 83, 199 쿠르테 Court es , J. 81, 101 크라우스 Kraus, K 159, 160 크 리 스테 바 Kriste v a , J. 26~ 28, 107, 108, 120, 159, 164, 222 클라인 Klein , W. 81, 228 E 타디 에 Tadie , J. Y. 146 타르스키 Tar ski, A. 181 토도로프 Todorov, T. 138, 139, 146, 165~167, 190, 199 토마지 우스 Thomasiu s , Ch. 198 톨스토이 Tolsto i, L 64, 71, 78 트르와예 Troye s , Chrestie n de 76 티 냐노프 Tyn jan ov, Ju. 91, 110, 217 티 에 크 Tie ck, L. 77 티듀닉 Titu nik, 1R 94 工 파스칼 pascal, B. 68, 211
인명색인
파스테 르나크 Paste r nack, G. 18 파슨즈 Parsons, T. 43, 223 팔크 Falk . W. 194 퍼 스 Peirc e, Ch. S. 221 페 쇠 Pecheux, M. 12, 69, 220, 221 포스캄프 Vosskarnp , W. 184 포스터 Forste r , E. M . 201 포퍼 Pop per, K 158 퓌 겐 FUg en , H. N. 35~39, 41, 42, 45~47, 158 프라흐트 Pracht, E. 152 프로스트 Prost, A 99 프로이 트 Freud, S. 121; 176, 177, 195, 196 프로코프 Prokop, D. 120 프롭 Propp , V. 21, 103, 138 , 139 프루스트 Proust, M. 29~31, 42, 47, 52, 53, 78, 79, 106, 109, 110, 112, 115, 118 , 124, 126~ 132 , 134, 135, 137~ 139, 143~151, 152~155, 158 , 165, 169, 172, 176~178, 185~18 8, 191~ 198, 200, 205, 206, 209, 211, 212, 218 , 221, 223 프리드리히 Fri ed r ich, H. 84 프리에토 P ri e t o, L 19, 21~23, 45, 64, 98, 213, 215, 219~221 프리제 Fris e, A 128~170 풀레 밍 Flemin g, L 50, 101, 105 > 풀로베 르 Flaubert , G. 78, 79, 198, 200,
201, 209, 210 o— 하버마스 Habe11 Tias , J. 16~18, 43, 44, 144, 147 하우크 Haug, W. 120 하이 데 거 Heid e gg e r, M. 13, 53, 211, 222 하인 델 스 Heyn d els, R 66 하크니 스 Harkness, M. 63 해 리 스 Ha rris, Z. 13, 103, 217, 222, 223 헤 겔 Hege l , G.W .F. 23, 53, 57~63, 65, 66, 70, 121, 152, 1 線 207~210, 212, 223, 232 헤 세 Hesse, H. 31, 47, 127, 128, 158 , 176, 186, 187, 191~195, 198, 207 호르크하이 머 Horkheim er, M. 14, 43, 44, 52, 108, 154 홉스 Hobbes, Th.' 125, 127, 199, 207 횔 덜 린 Holderlin, F. 108, 211, 222 후설 Husserl, E. 39 후크 Hook, S. 208 휘 파우프 Hup pauf, B. R 158
허창운 1963 서울대 독문과 졸업 1969/71 서독 뮌헨대학 석 • 박사 (Dr. Phil ) 1976/80 서독 A.V. Humboldt 재단 연구교수 현재 서울대 독문과 교수 역서 : 안더쉬의 『에프라임』, 『독일문학사』, 『니벨룽겐의 노래』 편역서 : 봐프넵스키의 『중세독일문학개설』, 『 17 세기 독일시』 저서 : 『현대문예학 개론』, 『현대문예학의 이해』 텍스트사회학 대우학술총서 • 번역 38 찍 은날 • 1991 년 2 월 20 일 펴낸날 • 1991 년 2 월 28 일 지은이 • 패터 지마 옮긴이·허창운 펴낸이·朴孟浩 펴낸곳·民音杜 출판등록 1966. 5. 19 제 1-142 호 은행 지 로번호 3007783 우편대 체 번호 010041-31-0523282 135-120 서울 강남구 신사동 506, 강남출판문화센터 5 층 515-2000~2( 영 업부) 515-2003~5( 편집부) 515-2007( 팩시밀리) © 허창운, 1991 인문사회 과학 • 문학 KDC/850 Prin t e d in Seoul, Korea 값 5,500 원
대우학술총서(번역) l 유목興재국사 룩판만·宋基中 옮김 2 수학의 확실성 묘 1 스 탉뾰J·朴번庶 옮김 3 증세철학사 J.R. 와인버그債英啓 옮김 4 日本1i의起源 R.A. 밀라金芳員옮김 5 古代漠屈音鼠學 鼠릎 버대三 말그렌•뿔鈴愛 옮김 6 말과 사물 미셀 푸코·李光來 옮김 7 쳅철학과 과학철학 해르만 와일·김상문 옮김 8 기粹진화 로널드 피야근·김준민 옮검 9 0 썹·진리·역사 힐러 21 파트남·金願ll§i길 10 사회과핵北1 의 楊理諭 쿠르트 테반박재호 옮감 11 영국의 산업혁명 필리스 단副툰洙·휘預i §i깁 12 현대과학철학논쟁 퇴마스문外·조승옥·김동식 옮김 13 있음이써 됨으로 일리야 또 1 고진·이철수 옮김 14 U 血종교학 요아힘 바하·검중서 옮검 15 동물행동학 뢰!i§. A. 하인드·장현감 옮감 16 현대우주론 D.W. AIOIDI·~ 뾰 懿 17 시베라車석 샤머나즘 V. 디오세 XI 外·죄길싱 옮김 18 조형 D !'A'의 형식 힐 Ci ~트·•昌燮 율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