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낭 브로델

Fernand Braudel, 1902-1986

브로델은1900년대초부터 움직임을 보여온〈새로운 역사학〉의 흐름인 아날학파의 주도적인 역사학자가운데 한사람이다. 그는 정치·외교사 중심의, 구체적인 사건들에만 치중하는 소르본느 대학 중심의 전통적 역사학자들에게 반기를 들고 보다 장기지속적인 전체사로서의 사회사를 강조하는 아날학파를 전후에 발전적으로 계승 주도하였다.『필립Il세 시대의 지중해와 지중해 세계』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400-1800』은 그의 대표적 저작인데, 이 망대한 저작들에 담긴 전체사에 대한 구상은 『역사학 논고』 속에 압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역사학 논고

Ecrits sur L'Histiore

Fernand Braudel

역사학 논고

페르낭 브로델 지음

이정옥 옮김

民音社

역사학논고

차례

서문 11

제1부 역사학의 시간

1 『필립 II세 시대의 지중해와 지중해 세계』: 서문의 발췌 I7

2 1950년에 있어서 역사학의 위치 21

제2부 역사학과 다른 인간과학들

1 역사학과 사회과학들 : 장기지속 47

2 인간과학들의 통일성과 다양성 85

3 역사학과 사회학 96

4 경제사를 위하여 122

5 계열사를 위하여 : 쎄빌르와 대서양 (1504-1650) 132

6 생물학적 인간에 관한 지리학이 존재하는가? 150

7 사회사의 개념에 대하여 169

8 인구학과 인간과학의 차원들 185

제3부 역사학과 현재시간

1 브라질 바이아네에서 : 현재는 과거를 설명한다 227

2 문명사: 과거는 현재를 설명한다 243

역자 해제: 『역사학 논고』에 반영된 브로델의 새로운 역사학관 297

브로델의 저작들 309

브로델의 연보 311

인명 색인 313

사항 색인 317

책명·잡지명 색인 319

서문

이 책 의 출발과 나는 무관하다. 2, 3 년 전에 나의 폴란드인 천구들과 스페인 찬구들이 내가 지난 20년 동안 역사학의 본질에 관해 발표했던 여러 논문과 논설들을 한 권의 책으로 다시 묶어 번역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불어판 책은 그러한 작업의 소산이다· 그런 사전 작업없이도 내 스스로 이 논문집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내가 그 책의 교정쇄를 읽는 순간에 제기한 질문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그렇듯이 나는 내 목소리를 녹음된 상태로 들을 때 알아채지 못했다· 당연히 알아차렸어야만 할, 과거의 나의 생각울 읽으면서도 그것을 즉시 알 수 있었다고는 확신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하나 하나 다시 읽어본 이 논설들은 내게 옛날의 상황을 일깨워준다· 나는 나 자신이 우리들의 끝없던 囹圄의 기 간 동안 양리 부륀슈빅Henri Brunschwig과 같이 뤼벡의 오두막으로 성큼 다가가고 있는 것을, 바노街에 있는 죠르쥬 귀르비치의 집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 것을, 그리고 더욱 자주는 쥐라에 있는 뒤씨앙 페브르의 집인 쏘제 sauget에서의 그날 밤처럼, 이미 오래전부터 드리위진 그늘 속에 우리 모두를 감쌌던 정원의 삼나무 아래에서의 그날 밥처럽, 페브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율, 아니 오히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등을 다시 보고 있다. 아미 들온 목소리로 자연히 생기를 떠게 되는 수많은메아리들을, 수많은 추억듈율 먹고 자란 사상이 나의 사상일까?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때부터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으며, 오늘날, 일마나많은새로운 일들이 나를 괴롭히고 있는가! 나는 논

쟁적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내 길, 내 유일한 길에만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또한 대화와 논쟁은 피할 수 없는 동전의 양면 이기 때문에―一나는 그것과 관련하여 대화를 하고 나 자신과 논쟁을 하느라고 자연, 명백히 내가 책임져야만 하는 책들로부터 나를 격리 시켜 왔다. 바로 이와 같은 과거의 감정에서 냐는 『지중해 세계 La Meifiterranee』*를 개작하게 되었다.

• F. Braudel, La Mediterranee et le monde mediterraneen a l'epoque dePhillippe II (A. Colin, 1949)를 의미함-역주. 이 책에서는 앞으로 역주는 *,**으로. 원주는 1),2) ...... 로 표시함.

이번에는 다시 쓰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최소한의 자로상의 수정 율 제의하고 몇몇 페이지들은 그 원래의 형석과, 그 원래의 순서에 따른다· 내가 그 페이지들을 약간 멀리서 전체 속에서 보아야만 한 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전체가논리 정연하다는 것은 나를 즐겁게 해 준다. 거기에서 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나로 하여금 역사학―우리 의 직무―을 인간에 관한 아주 활발한 다른 과학들과 대면시켜야겠 다는 생각들을, 즉 그러한 과학들이 우리의 연구 영역에 비춰주는 빛 들과 반대로 역사학자들은 아직 우리의 견해를 요청하거나 사실상 듣 는 것조차 주저하고 있는 우리 이웃들에게 가져다줄수 있는 것을 보 도록 하게 하는 그 생각들을 끊임없이 발견한다·

역사학의 본질적인 걷인 장기 지속에 대한 유용한 합의가 이루어져 야만 할 것이다(나는 그 접을 고집스럽게 말하고 도 말하는 바이다). 그것 만이 역사학의 유일무이한 길인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이 현재와 과 거의 사회구조들에 관한 큰 문제들을 제기하는 길이다· 그것은 역사 학을 사실상해체불가능한 전체안 현재에 연결시켜 주는 유일한 언어 이다· 아마도 나는 이 핵심적인 생각둘에 대해서, 우리 눈앞에서 새 로운 혁신이 구체화되고 있는 현실 사회에서의 역사학의 위치에 대해 서, 역사학자가 살고 있는 사회에 역사학이 뿌리 내리는 방법에 대해 서 설명할 기회를 가질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직무에서 나를 사 로잡는 유일한 것은 그것이 변동 또는 전통에 직면한 상태에서의 동 의와 망설임, 거부나 타협 또는 포기 둥에 입각하여 우리 눈앞에서 엮어지고 있는 인간 생활에 대해 설명해 준다는 접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책이 모든 문제들을 다 다루지는 않는다· 이 책은 단지 그 주변의 기초를 마련할 분이다· 나는 인간 과학들의 수령에 대한, 통

계학의 위치에 대한, 전자계산기의 역할에 대한, 사회심리학, 정선분 석학, 또는 아주 서서히 과학적이 되고 있는 정치학 등과의 타협 가 능성에 대한 최근의 내 강의록 책장 속의 빈 공간들로 빠져들어 가고 싶지는 않다· 문제는 부문들의 갱신이라기보다는 총체성의 갱신에 있다.

인간과학들 전체의 재건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언제나 과거와 미 래 의 온갖 사실둘로 가득찬 거 창하고 혼동된 과학인 사회 학과 우리 와 의 중요한 관계에 관한 것이다· 죠르쥬 귀르바치가 사라전 뒤부터 사 회학의 파편화는 일종의 상례 또는 풍조가 되었다· 그러한 파편화로 인해 그 고유의 연구들에 대해 문외한인 우리들은 그것에 대한 손쉬운 파악을, 또는 손쉬운 접근을 차단당하였다· 오늘날 어떤 사회학자가 죠르쥬 귀르바치의 〈전체 사회〉를 떠맡을 것인가? 이제 우리 이웃들 의 연구에 가능한 한 통합되기 위해서 우리는 그 개념들을, 그 도구들을 필요로 하게 된다· 나와 사회과학 분야의 전문가들이 대면한 최 근의 토론회一―내가 다시 한번 설망스럽다는 것을 알게 된――-에서 씨바 I. Chiva는 웃으면서 나에게, 역사학자들에게, 사회학자들이 우 리에게 이미 만들어전 것을 제공해 주지 못하기 때문에 역사학자들의 사회학을 만들 것을 제안하였다. 그리고 나서는 우리의 경제학, 우리 의 심리학 ……을 만든다. 그것이 가능할까?

이렇게 말한 뒤에, 만일 내가 엠마누엘 르 로이 라뒤리 Emmanuel Le Roy Ladurie 의 말에 꼬두리 를 잡아도 좋다면, 나는 그가 〈통계적 역사〉에 대해 언급하면서, 미래의 역사학자는 〈프로그래머가 될 것이 며, 그렇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안 될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데는 어떤 환상이나 어떤 위안이 있지는 않은지 우려하는 바이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바로 프로그래머의 프로그램이다· 당분간은 각 분야의 완 성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인간 과학들의 집결을 목표로 삼아야 할 것 이다(공통의 정보와공통의 언어 덕택에 그것을 이를 수 있을까?). 미래의 역사학자라면 그런 언어불 만들어낼 것이다. ―― 그렇지 않다면 그는 미래의 역사학자가 아닐 것이니까.

1969. 5. 16.

파리에서

제1부

역사학의 시간

『필립II세 시대의 지중해와 지중해 세계』*

― 서문의 발췌

* 이 책은 1946년에 완성되어 I949년에 출판되었다. La Mediterraneen et le monde mediterraneen a I'epoque de Phillippe II, Paris, Armand Colin, xv+ 116op. in-8° : 개정 · 증보된 제2판. 위의 책, 1966, 2Vol., 각각 589 및 629 p., in-8° 이 글은 초판의 p.xiii 및 xiv에서 따온 것임.

이 책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며, 각 부분은 그 자체로서의 설명에 대한 하나의 시도인 셈 이다.

첫 부분은 半不動의 역사를, 죽 인간을 에워싸고 있는 환경과의 관 계 속에서 인간의 역사를 문제삼고 있다. 그것은 흔히 계속되는 반복 들과 끊임없이 다시 시작되는 주기들로 만들어전, 서서히 흘러가고 서서히 변형되는 역사이다. 나는 거의 시간의 밖에 있는, 무생물과 접하는, 그러한 역사를 무시하고 싶지 않다. 또한 그것을 다루는 데 있어서, 나는 역사에 딸린 관례적인 지리의 도입에 만족하기를 바라 지는 않았다. 관례적인 지리의 도입은 광산들, 경작 방식들, 꽃들과

더불어, 다급하게 보이다가, 그리고 나서는, 이동 중에 있는 양떼들 이 정지해 버린 것처럼, 해마다 봄이 되면 꽃들이 다시 피지 않는 것 처럼, 배들은 계철에 따라 변화하는 실제 바다 위를 항해하지 않는 것처럼 그것들을 더 이상 전혀 문제삼지 않으면서, 수많은 책들의 서 두에 쓸모 없이 놓여 있다.

이 반부동의 역사, 완만한 리듬을 띤 역사 위에는――만일 그 표현 이 충분한 의미를 표현한다면――사회사, 집단 및 집단 형성의 역사 가 있다. 이 심의 파동들이 어떻게 지중해 세계의 생활 전체에 영 향을 미칠 수 있을까 ? 바로 그 점이 내 책의 제2부에서 내가 제기했던 질문이다. 그것은 경제들, 국가들, 사회들, 문명들을 연속적으 로 연구하면서, 마침내는 역사에 대한 나의 개념 설정을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해, 이 모든 심층의 힘들이 어떻게 전쟁이라는 복합적인 영역 에서 작용하게 되는지를 보여주고자 하면서 내가 제기한 질문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다시퍼, 전쟁이란 순수하게 개인들의 책임으로만 이루어전 영역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제 3부는 전통적인 역사학의 역사, 말하자면 인간 일 반 차원의 역사라기보다는 ·개인의 역사이다. 그것은 프랑스와 씨미앙 Francois Simiand*의 사건사이며, 표면의 동요, 조수가 그 힘찬 움직임으로 야기시킨 파동들이다. 그것은 짧고 급격하고 힘찬 진동을 띤 역사이다. 그것은 정의상 가장 민감하며, 가장 최소한의 움직임으 로도 모든 측정도구들을 간장시킨다. 그렇지만 본질적으로 가장 정 열적이고 가장 인간성이 풍부하면서도 가장 위험스럽다. 우리의 것 과 같이 짧은 그들의 생활 리듬에 따라 당대인들이 느끼고, 묘사하 고 체험한 그대로의, 이 격렬한 역사를 경계하라. 그것은 그들의 노 여움, 그들의 꿈, 그들의 환상의 차원을 지니고 있다. 실제 르네상스 후, 16세기에,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말하고 서로 이야기하고 글을 쓰는 데 열중한 가난한 사람들의, 비 천한 사람들의 르네 상스가 도래 했 울 것이다. 이 모든 귀중한 자료들은 너무 왜곡되어 있으며, 그것은 사라져간 시간을 지나치게 파고들어, 거기서 사실과 다른 위치를 차 지하고 있다. 필립 II세의 시대와 장소에 있는 것처럼 필립 II세의

* Francois Simiand : 프랑스의 사회학자이며 경계학자(1873~1935). College de France에서 노동의 역사 강의(I932~1935).

서류를 읽는 역사학자는 자신이 한 가지 차원이 결여된 기어한 세계에 옮겨와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세계는 우리의 작은 배가 만취된 기선과도 같이 간신히 그 위를 헤쳐 나가는 생생한 물결을 담은 심층 의 역사와는 무관한 세계처럼, 즉 완전히 살아 있는 우리가 살고 있 · 는 세계처럼 맹목적인 세계, 분명히 생생한 정열이 가득 찬 세계다. 그것은 위험스러운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미리 흔히 침묵을 지키는 심층의 거대한 흐름에 매임으로써 그 마법의 주문­ 과 주술을 모면할 것이다. 또한 그 전정한 의미는 거대한 시간의 경과를 파악해야만이 비로소 드러난다. 반향을 일으키는 이 사건들은순간들에 불과하며, 이 거대한 운명의 표상물에 불과하고 그 거대한운명 에 의해서만 설명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역사학을 및 段으로 된 도식으로 분해하기에 이르렀다. 말하자면 역사의 시간 속에서 지리적인 시간과 사회적 인 시간, 개인적인 시간을 구벌하기에 이르렀다. 또는 다시 말해 인 간을 일련의 성격돌로 해체하게 된 것이다. 바로 그 접이 아마도 나를 가장 용서해주지 않을 사항일 것이다. 비록 내가 전통적인 구분 역시 본래 하나인, 살아 있는 역사를 파편화한다고 주장한다 해도 랑케 Ranke 또는 칼 브란디 Karl Brandi 와는 반대 로, 이 야기 식 역 사는 객관적인 방법이 못 되는 것은 물론 한 가지의 방법도 될 수 없으며 단지 역사철학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해도, 그 도식은 표현 수단으­ 로서만 유효할 분이며 나는 이곳저곳으로 나아가는 길을 차단하지 않 았다고 주장한다 해 도, 나를 가장 용서 하지 않을 부분일 것이다. 그러니 변명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만일 이 책의 요소들을 잘못 조립했다고 나를 비난한다면, 이들 부분들이 우리 작업장의 규칙에 따라 편리하게 구축되는 것을 발견하게 되기를 바란다. 나는 또한 나의 지나치게 큰 야망, 나의 희망, 크게 보아야 한다는 나의 요구 등을 비난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마도 역사학은 담장이 잘 쳐진 정원만을 연구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지만 않는다 면, 현재의 고통스러운 문제들에 응답하면서, 또한 아주 젊지만 아 주 제국주의적인 과학들과의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현재의 임무들 중 어느 한 가지에서도 역사학이 실패하지 않게 될까? 1946년에 자신 의 의무와 막대한 능력을 의식한 야십만만한 역사학이 없이도 실질 적인 휴머니즘이 있을 수 있을까? 〈거대한 역사학을 · 사살한 것은 바

로 거대한 역사학에 대한 두려움이다〉라고 에드몽 파탈 Edmond Faral*은 1942년에 썼다. 거대한 역사학이 다시 부활되기를!

* Edmond Faral : 프랑스 교수단의 일원(1882~1958). College de France 교수. 중새문학연구.

1950년에 있어서 역사학의 위치*

오늘날 역사학은 무시무시하면서 또한 도전적인 책임에 직면하고 있다. 물론 그것은 역사학이 그 정지상태 및 번동상황에서 끊임없이 구체적인 사회적 조건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역사학은 그 시대의 아 들이다〉. 따라서 역사학의 불안은 곧 우리의 십장과 정신을 짓누르는 것과 같은 불안이다. 또한 만일 과거에는 가장 엄격하고 확실했던 그 들의 방법들, 그들의 프로그램들, 그들의 응답들, 그들의 개념들이 한꺼번에 부쉬진다면, 그것은 우리의 성찰, 우리의 연구 그리고 무 엇보다 우리가 겪은 경험들의 중압 때문인 것이다. 이재 지난 40년 동안의 경험들은 특히 모든 사람들에게 찬혹했다. 그 경험들은 우리를 우리 자신들의 가장 심층적인 곳으로 격렬하게 던쳐 넣고, 그것을 넘 어 인간 전체의 운명을 향하여, 말하자면, 역사학의 가장 중요한 문제 듈을 향하여 우리를 밀어붙였다. 우리 자신을 축은히 여기고 고통을

* 1950년 12월 1일에 College de France 에서 행해진 취임 강연.

당하고, 사색하고, 불가피하게 모돈 것을 문제삼아야만 하는 시기였 다. 더구나 역사서술이라는 연약한 기술이라고 해서 무엇 때문에 우 리 시대의 일반적 위기를 회피할 수 있게 될까? 언제나 우리가 그것 의 이접들, 오류들, 확실성들, 그것의 꿈둘을 파악할 또는 십지어 그 것들을 평가할 시간을 갖지 못했던 한 세계-20세기초의 세계라고 나 할까?――를 우리는 떠나고 있다. 우리는 그 제계를 떠나고 있다. 아니 오히려 그 세계가 막무가내로 우리 앞을 피해 가고 있다.

I

거대한 재난은 당연히 혁명의 실제 일꾼이 아니라, 필시 혁명의 불 가피한 예고자이다. 또한 그것은 전세계적인 것에 대해 생각해보도 록, 아니 오히려 다시 생각해보도록 재촉한다. 수년 동안 세계의 가 장 극적인 역사였던 프랑스 대혁명의 고봉으로부터 쌩 씨몽 백작의 사상이 나타났으며, 그런 다음에는 오귀스트 꽁트, 푸르동, 카알 마 르크스 등 반발적인 제자들의 사상이 나왔는데 그때부터 그것은 끓 임 없이 사람들의 정산과 논법을 괴롭혀 왔다. 우리와 보다 가까운 사소한 예를 들어보자. 도대 체 어떤 증인이 1870~1871년의 보불 전 쟁 뒤의 겨울 동안 자신이 아끼던 바젤 대학내에 있었던 야콥 부르크 하르트보다 더 나은피난처에 있을수 있었겠는가? 그럼에도.불구하고 초조감이 그를 찾아왔으며, 거대한 역사학에 대한 요구가 그를 압박 하였다. 바로 그학기에 프랑스 혁명에 관한 그의 강좌가 개설되었다. 프랑스 혁명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혁명들의 서1기의, 주기의 첫 순간 에 장막을 들어울리는 최초의 행위에 불과하다고 그는 그 후 아주 정확한 것으로 판명된 한 예언 속에서 선언한다. 그 세기는 사실상, 좁게는 유럽에, 넓게는 세계 전역에 걸쳐 그 붉은 자국을 드러냈던, 끝 없는 세기였다. 그렇지만 I87I년에서 1914년까지의 긴 유예기간이 서구에서 지속되었다. 마치 우리의 직무가 간장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 없이 인간의 고봉과 눈에 보이는 불안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비교적 평화롭고 거의 행복한 이 시기에 역사학의 야망이 점차 얼마나 축소 되어 갔는지에 대해 누가 말할 수 있으랴? 반쯤은 꿈속에 참겨 몽 상적이지만, <인간의 고통〉에 대한 많은 연민에 의해 나타난 예언적

인 처작인, 가스똥 루쁘넬 Gaston Roupnel*의 마지막 처작인 『역사와 운명 Histoire et Destin』을 1943년에 내가 어떤 감정으로 읽었는지를­

말할 수 있을까 ? 그는 월씬 뒤에 내게 편지를 써야만 했다. 〈1940년 7월초에 나는 시작하였습니다(이 책을). 제브레이 샹베르탱 Gevrey-Chambertin 마을**에서 나는 국도 위로 불쌍한 사람들의, 자동차들의, 마차들의, 걸어가는 사람들의, 비참한 사람들의 피난 대열을, 고통스런 피난 대일을, 거리의 모든 참상을, 이 대열에 뒤섞인 무기도 없는· 군인들을 보았습니다…… 이 거대한 고통, 그것은 프랑스였습니다! 빼앗긴 생활로 인한 어쩔 수 없는 불행을 띤 나의 말년에, 공적인, 민족적인, 불행의 감정이 덧붙여졌습니다……〉 그러나 불행이라는 바 람을 타고 가스똥 루쁘넬의 마지막 사상이 거대하고 대담한 역사학­

의 돛울 한껏 부풀리 면서 나타났다. 미슐레 Michelet***가 다시 그와 신이 되었다. 죽 그는 다시 내게 편지로, 〈역사학을 채우는 것은 내 가 보기에는 그 천분안 것 같다〉라고 썼다.

우리의 시대는 파국들, 혁명들, 사건의 급번들, 기습적 사건들만으 로 접철되어 있다. 사회적 사실, 인간의 기본적 사실들이 우리 눈앞 에 새로이 모습을 드러내고, 역사학자의 오래된 직무는 원하건 원하 지않전 간에 우리의 손안에서 끊임없이 싹이 트고 다시 꽃을 피운다. 그렇다. 얼마나 많은 년화가 있었던가 ! 모든, 아니 거의 모든 사화 적 상징들――과거에는 충분히 논의해 보지도 않은 채 우리가 그것 을 위해 죽으려 했던 것들-온 그 내용이 텅비게 되었다. 문제는 우 리가 그것들의 못말과 등대불빛이 없이도 살 수 있는가를 알아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없이도 평화롭게 살아가고 생각할 수­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지적 개념들은 훼손되거나 파괴되었다. 우리들 문의한들이 알지도 못하면서 의존했던 과학, 죽 19세기의 삶의 새로운 근거이자 피난처였던 과학이 하루 만에 급격하 게 변화되었다. 즉, 과학이 불안정하고 항상 움직이며 파악할 수 없 는 득권적인, 전혀 다른 생명을 떠고 다시 태어난 나머지, 분명 우­

리는 과학과 합당한 대화를 재정립할 시간도 그 가능성도 이제는 결

* Gaston Roupnel: 프랑스의 작가(1871~1946).

** Lavaux 골짜기 입구에 있는 포도재배로 유명한 면.

*** Jules Michelet: 프랑스의 역사학자이며 문필가(1798~1894),College de Franee의 역사학 윤리 교수(1838).

코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역사학을 포함한 사회과학들도 그만큼 거창 하지는 않지만, 그에 못지 않게 결정적인 방식으로 변화하였다. 새로 운 세계인데 새로운 여사학이 되지 말란 법이 있을까?

과거의 역사학계의 대가들을 정답게, 약간은 불손하게 상기해보자. 우리를 용서해 주기를! 여기에 1897년에 출간된, 오늘날에는 그 영 향력이 미치지 않지만 과거에는 오랫동안 결정적안 저작이었던 샤를르 빅또르 랑글로와 Charles Victor Langlois와 샤를르 쎄뇨보스 Charles Seignobos*의 『역사학 연구 입문 Introduction aux eludes historique』이라는 얄팍한 책 이 있다. 우리는 그것에 너무 놀란 나머지 멈 춰서게 될 것이다. 세세한 원칙들과 권고들이 곽 들어찬 이 오래된 책에서 금세기초의 역사학자의 초상화를 어렵지 않게 구해 볼 수 있 을 것이다. 화가, 즉 풍경화가를 상상해 보라. 그 앞에는 나무들, 집 들, 언덕들, 길들의 모든 고요한 풍경이 있다. 그것이 역사학자들 이 대면하는 과거의 실재-입증된, 먼지가 털려진, 재구성된 실재 이다. 이 관목들, 이 연기…… 이 풍경에서의 그 어느 것도 화가는 피하지 않아야만 한다. 화가가 자기 자신의 촌재를 망각하는 것을 제의한다면, 단 한 가지도 빠뜨리지 말라. 왜냐하면 마치 실재를 두 렵게 만들지 않으면서 기습해야만 하는 것처럼, 죽 마치 역사학은 우리의 재구성 밖에서 있는 그대로의 상태로, 죽 생경한 사실의, 순 수한 사실의 상대로 파악해야 하는 것처럼 관찰자를 억제하는 것이 이상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관찰자는 오류의 원천이며 비평가는 관 찰자에 대해 경계의 태세를 취해야한다. 〈물 속에서의 인간의 자연스 런 본능은 물에 빠지기 않기 위해 할 수있는한모든것을해야만하는 것이며. 수영을 배운다는 것은 자연발생적인 움직임을 억제하고, 그 웁칙임을 다론 방식으로 시행하는 습관을 얻는 것이다〉라고 샤를르 빅또르 랑글로와는 웃지도 않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비평가의 습 관은 타고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입되어야만 하며, 그것은 반복 된 연습을 동해서만 유기적 구성 부분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 학은 특히 비판적인 연구이다. 왜냐하면, 본능에 대항하여 미리 힘을 쓰지 않은 채, 거기에 전념하는 동안 거기에 빠져둘게 되기 때문이다.〉

역사학의 자료 및 기록물들에 대한 비판에 반대하여 말할 것은 아

* Charles Seignobos: 프랑스의 여사학자(1854~1942). 구체져 사건을 겨냥한 실증사학적 입장으로 L. Febvre와 Annales 학파의 비판의 대상이 됨.

무것도. 없다. 역사학의 정신은 기본적으로 비판적이다. 그렇지만 그­

정신은 그 자체로부터 나온 신중함 이상의 재구성, 죽 샤를르 쎄뇨보스가 날카로운 몽찰력으로 두세 차례 반복해 말할 수 있었던 것이기 도 하다. 그렇지만 수많은 신중함들 다움에 그 정신이 역사학에 필요한 도약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할까?

만일 우리가 뒤로 돌아서 훨씬 멀리 나가 본다면, 죽 만일 우리가 이번에는 아주 위대한 정신들, 꾸르노와 같은, 폴 라꽁브와 같은 선 구자들, 또는 훨씬 위대한 역사학자들인, 특히 미슐레와 같은, 랑캐 와 같은, 야콥 부르크하르트와 같은, 퓌스뗄 드 꿀랑쥬와 같은 역사­학자들에게 매달린다면, 우리는 분명히 그들의 재능 때문에 웃을 수 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그중에서 가장 위대하며 천재적인 예 감과 섬광이 번둑이는 미슐레의 경우를 아마도 제의한다면_그들의 응답은 우리의 질문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 또한 사실인 셈이다. 죽 오늘날의 역사학자들은 다른 시대에, 다른 정신에, 모험에 속하고­

있다는 느낌을 우리는 갖게 된다. 득히 우리가 보기에는, 우리의 직 무는 이제 더 이상 개인 혼자의 연구와 혼자만의 인내심에 주어지는· 정당한 상여금이 있는, 확보된 조용한 일은 아닌 것이다. 그것은 우­

리에게 역사의 전체 자료를 망라했다는 확실성을, 죽 우리들로서는· 이제 우리의 용기를 적용하는 것밖에는 기대할 것이 없게 될 만큼 역 사의 전체 자료를망라했다는확실성을 던져주지는 않는다. 분명히 펴 데에게 보내는 열렬한 서한에서 열정적으로 〈역사학의 견고한 영역〉 에 대해 이야기했던 1817년의 젊은 랑케의 그 구절보다 우리의 생각 에 더 낯선 것은 아무것도 없다.

2

우리의 연구 영역에서 참으로 무엇이 변화되었으며, 특히 그러한 변화가 어떻게, 그리고 왜 일어났는지를 단 몇 마디로 말한다는 것은 어려운 임무__수행해야만 하는――이다. 수많은 세부 사실들이 우 리를 부추긴다. 알베르 띠보데 Albert Thibaudet*는 진정한 大顧覆은

* Abert Thibaudet: 프랑스의 문학바평가(1874~1936). 베르그송의 영향하에 모든 독단을 벗어난 비평 개척.

그것을 파악하는 차원에서는 언제나 단순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렇다면 이 단순한 것, 이 효력 있는 혁신은 어디에 자리잡을까? 그것은 심지어 금세기초 이전에도 그 야심과 그 성급한 결론을 아무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고 오랫동안 미리 마련되었던 역사 철학의 실패 속에는 분명히 자리잡지 않을 것이다. 거의 기초가 마련되지도 않은, 역사 과학의 파산 속에는 더구나 자리잡지 않는다. 예전에는 예견할 수 있는 과학만이 촌재하였다고 한다. 즉 과학은 예언적이어야만 했 으며 그렇지 않으면 과학이 아니었다……. 오늘날 우리는 역사학을 포함한 어떤 사회과학도 예언적이 아니며 따라서 옛날에 적용된 규 정에 따른다면 그것들 중의 그 어느 것도 과학이라는 미명에 따르는 권리를 누릴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더구나 역사적 연속성이 있었 울 때 비로소 예언이 있을 수 있는데 그 접어1 대해 모든 역사학자들 이 아니라 사회학자들이 강력하게 의문을 제기한다는 접을 잘 주목해 보라. 그런데 과학이라는 이 말썽 많은 단어에 대해, 그로부터 파생 되는 잘못된 문제들에 대해 논란을 벌인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것은 훨씬 고전적이면서 훨씬 불모의 논쟁인 역사학에 있어서의 객관성과 주관성의 논쟁에 가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 이다. 그런데 우리는 철학자들이 아마도 습관적으로 그 논쟁에 몰두 하는 한, 철학자들이 가장 설제적인 과학은 객관저인 동시에 주관적 온 아니라는 접에 대해 감히 스스로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한 그 논 쟁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반명제 antithese의 의무를 쉽사 리 믿을 수 있는 우리들로서는 이 논쟁들로부터, 방법에 대한 우리의 해묵은 논쟁들로부터 기꺼이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역사학의 문제 가 자리잡는 곳은 화가와 그립 사이 또는 십지어 지나철 정도로 대담 하게 말해서 그림과 풍경 사이가 아니라 풍경 그 자체 속, 생활의 십 장부 속인 것이다.

내가 보기에 역사는 생활 그 자체처럼 백여 가지의 다양하고 상충 적인 면모를 차례로 땔 수 있는, 어쩔 수 없이 뒤섞여전 문제들의 얽 힘으로 이루어전, 움직이면서 사라져가는 한 경관으로 여겨진다. 이 복잡한 생활을 혹은 적어도 그 일부나마 파악하려면 어떻게 그것에 착수하며 어떻게 그것을 세분화해야 할까? 수많은 시도만으로도 우 리논 미리 기가 죽어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이런 저런 지배적 요인에 의한 역사의 설명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다. 단선칙인 역사란 없다. 그것의 갈등과 화 해가 인간의 모든 과거를 결정지은 바 있는 인종간의 갈등도, 진보 또는 패망의 요인인 강력한 경제적 리듬도, 끊임없는사회적 긴장도, 랑케와 같은 사람에게 있어서의 개인과 거대한 일반사를 승화시켜 주 는 것으로 여겨지는 확산된 정신주의도, 인구의 증대도, 죽 집합체 의 생활에 뒤늦게 영향을 미치는 이 식물적인 증대도…… 그 중 어느 것도 역사를 배타적으로 지배하지는 못한다. 인간은 유달리 복 잡하다.

그렇지만 다양한 것을 단순한 또는 거의 단순한 것으로 만들기 위 한 이 시도들로 인해 역사학은 한 세기 전부터 유례 없이 풍요로워지 게 되었다. 그러한 시도들은 접차로 우리를 개인과 사건을 초월하는 길로 인도했다. 그러한 초월은 미리 예감되고 제시된 오랫동안 입증 된 것이지만 그 완전한 형태는 우리 앞에서 비로소 이제 막 완성되 었다. 아마도 거기서, 모든 변동울 함축하고 요약하는 결정적인 발걸 음이 내딛여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사건들의 실재를 또는 개 인들의 역할을 부인하지 않으며 그렇게 한다면 유치할 것이다. ―― 더구나 역사에 있어서 개인은 아주 혼히는 추상체라는 접을 주목해야 만 할 것이다. 생생한 실재 속에서는 그 자체로 페쇄된 개인이란 결 코 없다. 왜냐하면 모든 개인적인 모험은 사회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보다 복잡한 실재, 사회적인 실재, 죽 〈교차된〉 실재에 근거하고 있 기 때문이다. 쟁점은 개인이 우발성에 좌우된다는 구실로 개인을 부 인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초월하는 것, 개인과 무관한 다론 힘들 과 개인을 구별하는 것, 순전히 영웅들의 역할에만 마음대로 귀착시 키는 역사에 대항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이 모돈 半神들의 교단을 신봉하지 않는다. 아니 보다 간단히 말해서, 〈인간〉이 역사를 만든다 는 트라이취케의 단선저인 교만한 말에 우리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인 간이 역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역사도 인간을 만들고 인간의 운명 울 형성한다.――익명적이고 심층적이며 혼히 침묵을 지키는 역사의 불특정하지만 거대한 영역을 이제 떠맡아야 한다.

생활, 제상의 역사, 모든 구체적인 역사는 일련의 사건들의 형태로, 즉 언제나 짧고 국적인 행위의 형태로 우리에게 제시된다. 전쟁, 정 치가들간의 만남, 중요한 연설, 중요한 편지 따위들은 역사의 한 순간 에 불과하다. 나는 바이아 Bahia* 근처에서 어느 날 밤 인광을 발하

는 개똥벌레의 기이한 불빛에 에워싸여 본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것 들의 창백한 불빛은 아주 환하게 밤을 꿰뚫지 못한 채 깜박거리다 스러지고, 다시 빛을 내곤 했다. 사전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죽 사건들의 섬광 밖에서 컴컴한 상태가 압도적인 것이다. 또 다른 추억 담으로 나는 나의 논법을 보다 간략하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약 20 여 년 전에 미국에서 오랫동안 예고되었던 영화 한 편이 유례없는 센 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대전쟁에 대한 최초의 전정한 영화라고들 했 는데 그 대전쟁은 그때부터 슬프게도 제 I 차 세계대전이 되었다. 한 시간 이상 동안 우리는 그 영화에서 갈등의 공식적인 순간을 다시 보 게 되며 50여 개의 군대 사열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 사열 중 어떤 것 은 영국의 조오지 V세에 의해, 다른 것은 벨기에의 왕에 의해, 또는 이탈리아의 왕에 의해, 독일의 황제에 의해, 우리의 대통령인 레이몽 프왕카레에 의해 통과되었다. 그 영화에서 우리는 거창한 의교적, 군 사적 회합의 출구에 참여하게 되며 옛날 영화의 斷續的인 면모로 인해 훨싼 더 유령 같고 비현실적인, 망각된 유명 인물들의 대열에 끼게 된다. 진짜 전두는 서너 가지 효과음과 인위적인 폭발, 죽 무대 장치 로표현된다.

그 사례는 교훈을 주려는 다른 모돈 사례들이 그렇듯이 물론 과장 된 것이다. 그렇지만 연대기가, 전통적 역사가, 랑케의 소중한 이야 기식 역사가…… 과거에 대해, 인간들의 땅에 대해 우리에게 제시해 주는 것은 바로 이 보찰것없는 영상이라는 접을 시인하라. 그것은­

광채가 없는 빛둘, 죽, 인간성어 없는사실들을 제시해 줄분이다. 이 야기식 역사는 〈과거에 실제 그러했던 대로의 사실들〉을 말하라고 언 제나 주장한다는 접을 주목하라. 탕케가 그 말을 천명했을 때, 그는 그 말을 마음속 깊이 믿었다. 사실상 그것은 은밀하게 일종의 해석 인 것처럼 전정한 역사철학인 것처럼 제시된다. 이야기식 역사에서 인간의 생활은 국적인 사건들에 의해 지배당한다. 죽 그것은 거기서 떠오르는 예외적인 존재들, 흔히는 그들 자신의 운명 및 우리의 운명 의 주인들에 의해 지배받는다. 또한 이야기식 역사가 〈일반사〉에 대해 말할 때에도 그대의 일반사는 결국 이야기식 역사가 생각하는 예의적인 존재들간의 교차에 대한 것이다. 왜냐하면 각각의 영웅들은 다론 영웅들에게 의존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 알다시피 그

* Bahia-브라질의 복동 지방의 한 주인 살바도르 주의 수도.

것은 허위에 찬 착각이다. 또는 그것은 보다 적절하게 말해서 너무­좁은 세계에 대한 환상이다. 이미 답사되고 문제삼아졌기 때문에 악 숙할 수밖에 없는 그 좁은 세계에서 역사학자는 그 세계의 제왕들을 빈번히 접촉하는 것으로 만족한다.――더구나 맥락에서 유리된 그러 한 세계에서라면 솔직히 역사학이란 언제나 장기패의 수천 가지의 그림들의 결합처럼 서로 다르지만 언제나 서로 비슷한 단조로운 놀이 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역사학이란 영원하고도 무자비한 회귀의 조짐 아래서 끊임없이 유사한 상황을, 언제나 같은 감정을 문 제삼는 작업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의 임무는 바로 역사학의 그 첫 경계선을 뒤어넘는 것이다. 사 회적 사실들을 〈그자체로서 그자체의 힘으로〉 다루어야만 한다. 사화 적 사실이란 모든 거대한 형태의 집합적 생활들, 즉 경제, 제도, 사­

회구조, 문명 등을 의미한다.――분명히 과거의 역사학자들이 모든 사회적 사실들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놀라운 칭후들을 제의하고는 혼히는 설명하기 위해서만 다뤄지는 배경으로, 또는 마치 역사학자 가 만족스럽게 그 주위에서 늑장을 부리는 예의적인 개인들의 행위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처럼 그것들을 파악했다.

그것은 관점 및 추론상의 엄청난 오류들이다. 왜냐하면 그런 식으로 같은 몰 속에 끼워 맞추고 새겨 넣으려 하는 것은 동일한 시간 지속도, 동일한 방향도 갖추지 않은 움직입둘이기 때문이다. 즉 어 떤 움직임들은 인간들의 시간, 즉 짧고 덧없는 우리의 생활의 시간 속 에 동합되며, 다론 움직임들은 사회들의 시간 속에 통합되는데 그 시간에서는 하루, 한해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때로는 한 세기 전 체도 시간 지속의 한 순간에 불과하다. 단 하나의, 단순한 흐름의 사 회적 시간이란 없다. 즉 전통적 역사학과 연대기에서 다루는 나날의 시간율 가지고는 거의 아무것도 파악할 수 없는 빠르고 느린 수천 가지 속도를 떤 사회적 시간이 있을 분이라는 접을 이해하자. 그러므 로 나는 아주 심층 속에, 지리적 구조적 특징들 속에, 득히 느란 문명사가 실재함을 믿는 바이다. 물론 가장 화려한 開花期라는 접에서 문명은 유한하다. 왜냐하면 만개된 꽃들은 팔시 시들고 나서는 스 러지고 다론 형태로 다시 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간극들 온 생각보다는 훨씬 드물고 간격이 떨어져 있다. 또한 특히 그것들이

모든 것을 다 똑같이 파괴하는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이런 저련 문명의 영역에서 사회적 내용은 두세 번 거의 전적으로 갱신될 수 있 지만, 그러한 갱신은 한 문명을 이웃 문명과 계속해서 확연히 구별시 켜 줄 구조의 심층적 특징들에까지 미치지 않은 채 이루어질 수 있 다.

더구나 문명사보다 훨씬 완만한, 죽 인간들을 낳고 키워준 대지와 관계를 맺고 있는 인간의 역사, 거의 부동의 여사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반복되어 지속되는, 표면적으로 변화될 수 있고 실제 변화하는, 그렇지만 마치 그것은 시간의 영향력과 폐해를 받지 않는 것처럼 끈질지게 유지되는 대화이기 때문이다.

3

내가 틀리지 않다면, 역사학자들은 오늘날 새로운 역사를, 즉 그 시간이 우리의 전통적인 척도에는 더 이상 맞지 않는 육중한 역사 를 의식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역사가 그들에게 손쉬운 발전물로서 제공되지는 않는다. 각각의 역사의 형태는 사실상 그에 상응하는 해 박한 지식을 함축하고 있다. 경제의 운명들을, 사회구조들을, 또한 세세한 홍미거리로서 문명들의 다양한 문제들을 다루는 사람들이 해 야 할 연구는 18세기, 십지어 19세기의 가장 유명한 석학들의 연구조 차도 그것들과 견준다면 놀라울 정도로 쉬워 보이는 연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새로운 역사학은 새로운 질문에 답변해 줄 방대한 자료 들을 조명함으로써만 비로소 가능해진다. 나는 역사학자에게 익숙한 수공업적 연구가 우리의 현실적 야망에 맞을까 하는 데 대해서도 의 혹을 품고 있다. 그 야망이 표출해 낼 수 있는 위험 및 그 해결에 따 르는 어려움 등 때문에 공동 연구의 방법 이의에는 구원의 길이 없는 셈이다.

그러브로 모든 과거는 재구성되어야만 하게 된다. 끝없는 임무가 집합적 생활의 가장 단순한 실재에 있어서도 우리에게 제기되고 부 과된다. 그런데 나는 집 합적 생활의 가장 단순한 사실을 국면 conjoncture 이라는 짧은 지속기간을 띠는 경제적 리듬의 의미로 쓰는 바이다. 여기에 1580년에서 1585년 사이에 플로렌스에서 급격히 파이다

가 단번에 메꿔진, 충분히 확인된 아주 생생한 경기 후퇴의 공황이 있 다. 플로렌스나 그 주변에서의 연구들은 그 공황을 당시 프랑스와 高地독일을 떠났던, 가끔은 토스카니에서 땅을 사기 위해 그들의 상점을 팔았던, 플로렌스 상인들의 귀환 등과 같은 명확한 징표들로 써 나타낸다. 일차적인 검전만으로는 아주 간단한 이 공황을 잘 검 전하고 가격의 체계적인 계열 ――그것 역시 지엽적이지만――에 의해 그것을 과학적으로 정립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공황이 토스 카니에만 있는 것인지 일반적인 것인지를 파악한다는 문제 또한 제 기된다. 우리는 그것과 베니스에서 재빨리 마주치게 되며, 페라르 Ferrare* 에서도 그것과 쉽사리 부딪치게 된다. 그렇지만 그. 위기는 그 급격한 폐해를 어디까지 느끼게 란들까? 그 정확한 영역을 모르 고서는 우리는 그것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 다면 역사학자는 유럽의 모든 고문서 보관소를 향해 길을 떠나고, 거 기에서 현학자들이 일반적으로 무시해 왔던 계열을 찾아내야만 할까? 그것은 끝없는 여행이다 ! 왜냐하면 해야 할 일이 그에게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인도와 중국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16세 기에 극동아 귀금속 유통을, 더 나아가 세계 전체의 경제 생활의 리 듬을 주도했다고 생각하는 역사학자, 그러한 역사학자라면, 향료와 후추 거래의 면에 국동의 불안정한 시기와 플로렌스의 곤궁한 시절 이 서로 상응함을 알아채게 된다. 향료와 후추 무역은 포르투갈인의 연약한 손아귀에서 벗어나 인도양과 선다 해협 la Sonde**의 오랜 거 류민인, 약삭 빠른 무어 상인들에 의해, 그 다음에는 인도의 隊商들에 의해 장악되었으며, 마침내는 중앙아시아와 중국에 의해 삼켜 졌다. 연구는 아주 단순한 영역에서조차도 세계 일주를 하였다.

마침, 나는 몇몇 젊은 역사학자들과 더불어 16세기의 일반적 국면 을 연구하는 데 몰두했는데, 나는 그것에 관해 가까운 시일 내에 여 러분들에게 이야기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 주제에서 우리의 주 의를 끄는 것은 역시 전세계라는 접을 여러분에게 말할 필요가 있을 까? 16세기의 국면은 베니스 또는 리스본, 앙베르 또는 쎄빌르, 리

* Ferrare: 포강 유여의 Emilie지방에 있는 이탈리아의 도시.

** la Sonde: 자바섬과 수마르라섬을 분리시키며 자바섬과 인도양을 연결시켜 주는, 희망봉을 거쳐 유럽으로 이어주는 해협.

용 도는 밀라노분만 아니라 그것은 또한 발틱해의 복잡한 경제,지중해의 오래된 리듬, 대서양의 주요 흐름들과 대평양의 주요 흐름 둘, 이베리아 반도의 주요 흐름들과 중국 범선들의 주요 흐름들이기 도 하다. 그런데도 나는 묘사해야 할 요소들을 아주 많이 잊고 있는 샘이다. 그렇지만 16세기의 국면은 15세기의 한 측면과 17세기의 다 른 측면을 다 떠고 있다고 말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 국면은 가격 전체의 흐름일 분 아니라 이들 가격들의 다양한 묶음들 및 가격들의 비교들――이것들은 저것들보다 더 또는 덜 오르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격둘의 규칙적인 경로에서는 포도주와 부동산 가 격이 다론 모든 것들에 앞서는 것 같다. 이렇게 해서 토지가 어떤 방 식으로 우리 눈앞에서 새로운 부의 動産을 스폰지로 닦아냈는지, 말 하자면 끌어당겼는지, 죽 부동산으로 만들었는지가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것에 의해 포도주 및 포도주 제조의 끈질긴, 침략적 인 문명 역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술통들을 싣고 포르투갈 해안의 쎄빌르로부터, 또는 지롱드*로부터 북쪽으로 가는 함대들이 늘어날 때 가격은 그 문명을 주도한다. 또한 二輪 짐마차들이 즉매년 독일로 프리울 Frioul**과 베네치아산 새로운 포도주를, 몽테뉴 혼자서도 즐겁게 즉석에서 다 마셔 버릴 이 탁한 포도주를 브뤼너를 경유하여 실어오는 이륜 짐마차들 Carretoni이 비숫하게 불어날때도 가격은 그 문명을 주도한다.

技術忠단순한 기술사도 방대한 경관을 발견하고 아주 거창한 문 제들을 제기한다. 죽 기술사는 그 실마리가 아주 흔히 우리의 손가락들 사이에서 끊어지며 또는 여러분이 원할 때 참조할 자료들이 갑 기 없기 때문에 끊입없이 중단되는 세밀하고 불특정한 연구를넘어 아주 방대한 겅관을 발견하고 거창한 문제들을 제기한다. …… 16세기 지중해 세계, 전체로 파악된 지중해 세계에는 일련의 기 술의 드라마가 있었다. 그때에 배의 좁은 갑판 위에 대포가 설치되 었는데, 더구나 그것은 아주 서서히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 비밀은· 그때 당시 나일강 상류지방까지 또는 근동의 내륙지방까지 전해진­다. 그것이 전해질 때마다 그로 인해 힘겨운 결과들이 도출된다. ……

* Gironde: 보르도 지방의 한 군.

** Frioul : Frioul-Venetie Julienne의 자치지역을 형성했던 이탈리아의 역사적 도시.

그때, 해상 적재량의 완만하고 기이한 감축이라는 보다 침묵에 찬, 또 다론 드라마가 생긴다. 선체는 접접 작아지고 가벼워진다. 베니 스와 라귀즈 Raguse*는 거대한 화물 정 박지 이 다. 죽 그들의 상선은 1,000톤 또는 그 이상까지 무게가 나간다. 그것들이 바다를 떠다니 는 거대한 선체들이다. 그렇지만 오래지 않아 바다의 거인들과 대항 하여 그리스의, 프로방스의, 마르세유의, 북유럽의 둠단배들이 거 둔 성공이 도처에서 나타난다. 마르세유에서는 작은 범선들 tartanes, 돛단배들 saete, 작은 군함들이 전성기를 구가한다. 이 작은 배 들 온 손아귀에 쥐어질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배둘은 거의 100톤 을 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작은 배들이 操業상태에서는 그 전가를 발휘한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배를 앞으로 진행시킬 수 있으며 어떤 항구에나 대고 들어간다. 또한 그 배들은 몇 낱, 몇 시 간 만에 짐을 싣는 데 비해 라귀즈의 선박들은 그 화물을 삼키는 데 몇 달, 몇 계절을 요한다.

이 라귀즈의 거대한 화물선들 중의 한 척이 우연히 마르세유의 가벼운 배를 접거하고, 그 화물을 경매에 붙이고, 그 승무원을 바 다에 처넣어, 경쟁적인 배의 모든 것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하는 것 등의 다채로운 사설은 작은 배들에 대항하는 큰 배들의 바다의 싸 움을 순간적으로 예시해 준다. 그렇지만 그러한 갈등이 내해 Mer Interieure에 국한된 것 이라고 믿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 이다. 큰 배와 작은 배는 세계의 일곱 大海위에서 서로 충돌하고 서로 아 귀다툼한다. 대서양에서 한 그들의 싸움이 당세기(16세기―역주)의 가장 큰 싸움이다. 이베리아 배들이 영국 배들을 침략하게 될까? 그­것은 무적함대 이전에, 그 동안에, 그 이후에 제기된 질문이다. 복 구인들은 그 반도를 공격하게 되는데, 그것은 까덕스 Cadix**에 대한 원정이며, 또한 그들은 이베리아 제국들을 공격하게 되는데 그들은 바로 드레이크***, 카벤디쉬**** 그리고 그 밖의 수많은 사람들이 다. 영국인들은 영불 해협을 고수했으며 이베리아 반도인들은 지브랄탈 해협을 장악했다. 이 패권들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유리할까? 그러

* Raguse: 시실리 지방에 있는 이탈리아의 도시.

** Cadix: 안달루시아 지방의 대서양 연안 편에 있는 에스파냐의 항구.

*** Drake : 영국의 뱃사람(1540~1596).

**** Cavendish: 영국의 뱃사람(1560~1592). 1586년 세척의 배로 마젤란 해협을 거쳐 남미 원정. 1588년 2차원정의 귀환 도중 사망.

나 특히 포르루갈의 대형 상선 caraq ue 과 에스파니아의 콘 범선 g al i ons,복구의 작은 옻단배들 중 어느 것이, 죽 한편에서는 I,000 톤, 다른편에서는 200 톤, IO0톤, 때로는 50 톤, 그중의 어느 것 이 승리를 거둘 것인가? 그들간의 전두는 종종 불공평한데, 그것은 구름매처럼작은 소인국의 배들에 에위싸인 이베리아의 큰 범선 한 척을 보여주는 당시의 조각들에 찰 나타나 있다. 작은 배들은 큰 배를 괴 롭히고타격을 주어 큰 배에 구멍을 뚫는다. 작은 배들이 큰 배를 접령하고는 그것들은 금과 귀금속, 향료 꾸러미 둥을 가져 가고, 그리고 나서논 그 거대하고 쓸모 없는 선체를 불태워 버린다.… ••• 그렇지만 역사의 숨은 뜻이 이 너무도 뻔한 줄거리 속에만 있는 걷까? 만일, 이베리아의 저항이 지속된다면 그것은 여하돈 서인도제도로 가서 은을싣 고 돌아오는 큰 범 선 gal i ons 의 수송대 가, 재 노아 사람들이 말하듯, 신의 손에 인도되어 거의 무사히 왕래하기 때문이며, 또한 신세계의 광산이 이베리아인 주인들의 휘하에 있기 때문이다.… ••• 선박둘의 역사는 그 자체만의 역사는 아니다. 그것은 그것을 에워싸고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다론 역사들 사이에 다시 위치지어져야 한다. 이렇게 해서 진실온 스스로를 부인하지 않고 우리 앞에 다시 한 번 옷울 벗게 된다.

연구되어야 할 모든 문제는 그 넓이에 있어서나 그 깊이에 있어서나 끓임없이 복잡해지고 확대되며 계속해서 연구의 지평을 다시 연다……는 접을, 나는 다시금 강조하는 바이다. 나는 여러분들에게,16 세기의 제국적인 임무에 대해서도, 그 점을 언급할 기회를 가지게될 것이다. 죽, 16 세기는 내가 여러분에게 그에 대해 언급해 주어야만 하는 시기인데, 그 시기는 여러분이 침작하는 것처럼 16 세기 그자체의 범위에 한정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어떤 문제도 단하나의 들에만 갇히게 되는 일은 결코 없다.

만일 문명의 영 역을 위해 경제적인 것의 영 역, 기술적인 것의 영 역울 떠난다면, 만일 한 세기 또는 두 세기 만에 십층적인 듬이 되어그것을 넘어서면, 인간 생활과 도덕의 모든 것이 변화하게 되는 이 온밀하고도 거의 보이지 않는 균열에 대해 생각한다면, 만일 이 귀중한 내부의 혁명에 대해 생각한다면, 그렇게 된다면, 지평은 서서히모습을 드러내고 훨씬 강도 있게 확장되고 복잡해진다. 한 젊은 이탈리아 역사학자는 끈질긴 탐색 끝에 죽음에 대한 관념과 죽음에 대한

묘사가 15 세 기 중반 무렵 완전히 변화된다는 느낌 을 갖게 된다. 그 시기에 깊은 참호가 파이게 된다――죽 인간 전체(인간의 영혼과 육체 거의 전부)가 미리 눈살을 찌푸리지 않고 동과할 수 있는, 활짝 열탄 문을 넘어가는 고요한 천상의 죽음에서, 이 평화로운 죽음에서, 이미 이성의 첫 조침 아래 인간적인 죽음으로 대치된다. 나는 그 열떤 논쟁을 찰 요약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전정한 면모를 서서히 드러낸 이 새로운 죽음은 라인강 연변의 복잡한 지방들에서 미리 나타났으며, 아니 나타난 것으로 여겨지는데, 바로 그것은 우리의 연구를 안내해 주며, 말이 없지만 어찌할 수 없는 문명사와 접하게 해준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종교개혁의 일상적인 겉치레를 넘어, 더구나 신중함과 끈질진 연구 덕분에 머뭇거리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신앙과 聖約에 관한 책들을 읽어야만 할 것이며, 고문서보관소의 훌륭한 보호자인 베니스와 같은 도시들에서 肖像기록물들울 모아야만 할 것이며, 도덕을 좌우하는, 형용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음울한 고문서 들〉인 反演神斜問官둘 Inqu i s itori con t ra Bes t emm i e의 문서둘을 참조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만 여러분이 알다시피 이 필수적이면서 끝이 없는, 새로운 자료에 대한 검토 속으로 도피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둘을 방법들에 맡겨 보아야만 한다. 물론 방법들은, 적어도 그중의 특정 부분은 나날이 변화한다. IO년 또는 20년 뒤에는, 경제학 분야의, 통계학 분야의 우리의 방법들 및 그것과 동시에 도전을 받게 되고 땅에 내동맹이쳐질 우리의 연구결과들은, 그 효력울 상실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죽 비교적 최근의 연구들은 바로 그 접을 우리에게 생생하게 말해 주기 위해 존재한다. 이 정보나, 이 자료들을 들추]내야만 하며 그것들을 인간의 차원에서 다시 생각해야만 하고, 또한 가능하다떤 그 제부 사항들을 넘어 생활을 재발견하는 것이 관건이 된다. 죽 그 힘들이 어떻게 연결되고, 어령게 인접하게 되며, 서로 충돌하게 되는지, 또한 아주 혼히 그 힘들이 그것들의 성난 물결을 어떻게 뒤섞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문재가 된다. 모든 것을 역사의 일반적 들에 재위치시키기 위해서는, 즉 근본적인모순, 이율배반, 어려움 둥에도 불구하고 생활의 통일성인 역사의 동일성이 존중받도록 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다시 파악되어야만 한다.

지나치게 막중한 임무라고 여러분은 말할 것이다. 언재나 우리는

직무의 어려움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런데 그 어려움을 부인하려 둘지 않은 채 단번에 그것 득유의 편리함을 강조한다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 한번의 겁토로 우리는 역사적 상황으로부터 그 미래에 관한 본질적인 것을 끌어낼 수는 없을까? 우리는 작용하는 힘들 중에서 중요한 사건들을 몰아울 힘들을 미리 알고 있으며, 우리는 미리 중요한 사건들을, 즉 궁극적으로 미래가 그것에 맡겨질〈중요성을 띠게 될 사건들〉을 판별해낸다. 얼마나 막대한 특권인가 ! 실제생활의 뒤섞인 사실들 속에서 누가 그만큼 분명하게 영속적인 것과 일시적인 것을 구별해낼 수 있을까? 이제 그러한 구벌은 사회과학의 중요한 문제들의 영 역에서 사회과학적 연구의 십장부에, 의식의 심장부에, 인간의 운명의 십장부에 자리잡고 있다. 우리 역사학자들은 이 논쟁에 어렵지 않게 가담하게 된다. 예를 들면, 사회학자들이 논의하는 사회적 운명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이라는 거창한 문제가 근본적으로는 역사학의 문제라는 접을 누가 부인하게 될까? 만일 거대한 간극이 인류의 운명을 토막낸다면, 그렇게 토막이 쳐진 다음날이면 모든 것이 새로운 차원에 놓여지고, 어제의 우리의 생각과 도구 중에 그 어떤 것도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다면, 이 단철이라는 실재는 역사학에 속하게 된다. 인간 생활의 모든 다양한 시간들 가운데 예외적이고 짧은 우연의 일치가 있을까 아니면 없을까? 그것은 우리가 대답해야 할 엄청난 질문이다. 아무리 완만한 진보라도 언첸가는 완성되며, 진정한 혁명의 시기는 또한 장미꽃이 만발하게 되는 시기이다.

역사학은 생활 그 자체에 의해 아마도 위험스러운 · 이 지경에까지 이끌려 오게 되었다. 나는 생활이야말로 우리의 학교라고 말한 바 있다. 그렇지만 그것의 가르침을 깨닫고 그것을 이해한 뒤에 그로부터 결과들을 끌어내는 것은 역사학만은 아니었다. 사실상 역사학은 무엇보다 현재의 국면에 대해 역사학보다 훨싼 더 파악 능력이 나온 젊온 인간 과학들의 의기양양한 대두로부터 혜택을 입은 바 있다. 우리는 50년 전부터 일련의 제국주의적인 인간 과학들이 태어나고, 다

시 태어나고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았는데, 그것들의 발달은 매번 우리들 역사학자들에게 있어서는 충격과 복잡화, 그 다음에는 엄청난 윤색을 의미하였다. 아마도 역사학은 이들 최근의 전보의 가장 큰 수혜자일 것이다.

역사학이 지리학 또는 정치경제학, 또한 사회학 등에 진 빛에 대해 장황하게 거본할 필요가 있을까? 역사학에 있어서, 아마도 십지어 다론 모든 것들에 있어, 가장 영향력 있는 저작들 중의 하나는 원래는 역사학자였지만 직업상으로 지리학자인 비달 드 라 블라슈의 저 작 이 었 을 것 이 다. 나는 에 른스트 라비 쓰 Ernest Lav isse* 의 (大) 프랑스사에 뒤이어, 1903 년에 출간된 『프랑스 지리부도 Tab/eau de la Geographique de la France』는 지 리 학파분만 아니 라 프랑스 역 사학파에 있어서도 주요 저작들 중의 하나라고 기꺼아 말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 목소리를 여기 꼴레쥬**에서 불행히도 극히 짧은 시기 동얀밖에 둘을 수 없었던, 경제학자가 된 철학자인 프랑스와 씨미앙의 처작에서 역사학이 얼마나 은혜를 입었는지를 나타내려면 한 마디면 족할 것이다. 그가 인간의 물질생활의 리듬과 위기에 대해 발견해낸 것 덕분으로, 지난 20년 동안 역사학에 끼찬 가장 새로운 공적인 에른스트 라브루쓰 Ernest Labrousse 의 훌륭한 저작이 가능할 수있었다. 꼴례쥬 드 프랑스의 진정한 명예들 중의 하나였던·마르셀 모스 Marcel Mauss***의 귀중한 가르침으로부터 문명 사가 보유하고 있는 것을 또한 살펴보라 ! 이 선덱된 자격을 갖춘 영 역――당대의 인기에 연연한 과거의 역사학이 너무 오래, 너무 배타적으.로 자족해 온 영 역-밖에 있는 문명의 기본적 실재들 속에서 그것들을 추적하여 문명들을 그들간의 교환과 취약한 측면에서 연구하는 기술을, 누가마르셀 모스보다 더 찰 우리 역사학자들에게 가르쳐줄 것인가? 마지막으로 죠르쥬 귀르비치의 사회학이, 그의 저서둘이, 또한 그의 눈부신 이야기 솜씨가 나로 하여금 새로운 방향으로 생각하도록 고무시켜 주었다는 접을 내가 개인적으로 말해도 좋을까?

지난 수년 동안 역사학이 그 이웃들의 수확물과 식량으로 어떻게

* Ernest Lavi sse: 프랑스의 여사학자 (1842~1922) , 쏘르본느 교수(1888) Ecole Normale Superi eure 교장(1904~1919) .저서 『프랑스사,I, r프랑스 현대사,I 등.

** 끌레쥬 드 프랑스.

*** Marcel Mauss: 프랑스의 사회학자이며 인유학자 (1872~195o)Ann6e sociologique창건에 기여 (1898), 꼴레쥬 드 프랑스 교수(1931).

살찌워졌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사례들을 더 나열할 팔요는 없다. 역사학은 그로 인해 진정으로 새로운 실체를 구축하게 되었다.

또한 자신들의 교육에 의해, 대로는 자신들의 편애로 인해 제약당하는 역사학자들 스스로로 하여금 그 접을 확신하도록 하게 해야만한다. 혼히 강력하고 풍부한 전동의 영향 아래, 한 세대 전체가 지적 혁명이라는 유용한 시기를 거기에 전혀 참여하지 않고 건너뛰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자신들 시대의 새로운 사상의 흐름을 감지하는데,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민감하게 되고 유능하게 되기도 하며, 거의 언제나 그렇게 된다. 프랑스 역사학에 있어서 1929년의 뤼씨앙 페브르와 마르크 불로흐에 의한 ((사회 • 겅제사 연보 Annales d'Hi stoi re Economique et Sociale )) 의 설 립 이 결 정 적 인 계 기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것들에 대해 내가 찬탄과 감사함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을 사람들은 허용해 줄 것이다. 왜냐하면 20년 이상의 노력과 성공으로 가득 찬 한 권의 학술지가 문제시되고 있고, 나는 거기서 단지 제 2 기의 한 일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그 운동의 출발 당시의 대담한 독창성을 강조하고 그 접을 믿게 하는 것보다 더 간단한 일은 없게 되었다. 뤼씨앙 페브르는 최근 호의 서문에서 다음과같이 썼다.〈역사학자들이 이미 시험을 거찬, 그들의 오래된 훌륭한 방법들을 과거의 자료들에 적용해 보고 있는 한편, 접접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은 때로는 열정적으로 당대의 경제와 사회에 대한 연구에 그들의 활동을 집중시키고 있다.…… 알다시피, 각자가 정당한 전문화를 실천하면서, 죽 자신의 정원을 공들여 가꾸면서, 그러면서도 이웃의 작업을 따라가려고 노력한다면 그 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 그렇지만, 벽들이 너무 높아 그것들은 흔히 시야를 차단한다. 이 다양한 집단들 사이에 보다 빈번한 지적 교환이 일어난다면, 방법과 사실의 해석 면에서 유익한 충고가 얼마나 많을 것이며 직관에 있어서 얼마나 많온 문화적 혜덱과 전전이 있을 것인가. 역사학의 미래는 또한…… 내일이면 역사가 될 사실들에 대한 공정한 파악에 달려 있다. 바로 이 가공할 만한 분파주의에 대항하여 우리는 자선율 일으켜 세우고자 하는 바이다……〉

우리는 오늘날, 모든 역사학자들에게 개별적으로 확신을 준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모든 젊은 세대에게 영향을 미찬, 그 말을 기꺼이 반

복할 것이다. 그 것은 그럭 저탁 영향을 미찬다. 왜냐하면 아날 Anna/es은 강력한 것은 무엇이냐 다 그렇 듯이 강렬한 열정으로, 또한 집요한 敵意로 받아들여지지만, 그 것은 언제나 우리의 직무에 대한 그 냐음의 논리를, 사실들의 근거를, 또한 어떤 연구가 아무리 모험에 찬것이라 해도 그 연구의 선봉에 있다는 필적할 수 없는 득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 역사학자들로 이루어전 청중들 앞에서 이 길고도 다양한 논쟁에 대해 언급할 필 요 를 느끼지 않는다. 더구나 나는 여러분에게나의 유명한 선임자의 저작의 상세함과 다양성, 풍부함 등에 대해 거론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나 뤼씨앙 페브르의 『필립 11 세와 프랑슈 꽁데 (BesanGon 을 수도로 하는 프랑스의 옛 주―역 주 : Philipp e JI etla Franche-Comte) .JJ , 『땅 과 인간의 전화 La Terre et l'evolu ti on humaine,ii, 『라인강 Le Rh i n』, 戶유러 Lu t her.JJ, 『타블레와 I6 세 기 의 의신론 (Ra ·belai set l' i ncroy ance r eligieuse a u XVI s ii!cle) .JJ 둥의 그의 걸작, 또한 시 기 적 으로 마지 막인 『나바르의 마르그리 뜨 Marguerite de Navarre.JJ 나바르는 프랑스 남서부 • 스패 인 복부에 걸친 옛 왕국―역주) 라는 섭 세한 연구 둥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대의 사상과 논의에 끼찬 가장막대한 인간적 • 지적 공로라고 내가 주저하지 않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수많은 논설들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편지들에 대해서일 것이다. 바로 거기에서 그는, 자신에게 전정으로접근해 오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그것에 대해 둔감한 채로 있을 수는 없는 것을 발견하게 하는데 따른 즐거움을 가지고, 모돈 주제를, 모든 논제를, 모든 관접을 자유롭게 시도해 본 것이다. 그 누구도 그가 그런 식으로 마구 제시해 놓고 홀뿌려 놓은 모돈 사상들에 대한 정확한 생각을 정립할 수는 없을 것이며, 또한 우리논 언제나 그의 예리한 항로에 동행할 수도없었다.

분명히 페브르 이외에는 그 누구도 역사학과 인접 사회과학들과의 갈등과 화해 가운데서 우리의 길을 잡아줄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의 직무와 그것의 효율성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시켜 주는 면에 있어서 그 누구도 그보다 나울 수 없었을 것이다. 「역사학에 생명을 부여하자 V i vre l' h is t o ire 」는 그의 논설둘 중 한 제목인데 그것은 훌륭한 계목이며, 훌륭한 강령이다. 그에게 있어 역사학온 결코 쓸모없는 지식의 유희, 일종의 예술을 위한 예술, 죽 그 자체로 자족적인 지식의

도하는 전정으로 자유로운 한 인간의 모습을 한 순간 제시하고자 한 것을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패브르는 독일의 운명과 그 제기의 운명이 루터에게 있어 다시 요지부동의 방식으로 차단될 때,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생활의 젊은 시절 동안만 루터를 추적하였다.

나는 뤼시앙 페브르에게 있어서 이러한 정신의 생생한 정열이 어떤 종류의 모순을 일으켰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서 역사학이란 엄청나게 개방된 작업이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새로운 풍부한 자료들의 묶음을 한데 엮어보려는 자연스러운 욕망에 대해 저항하였다. 구축한다는 것은 언제나 삼가는 것이 아닐까? 내가 만약 툴리지 않다면 바로 그 접 때문에 우리 세대의 위대한 역사학자들이, 가장 위대하며 따라서 가장 강력하게 개별화된 역사학자들이, 페브로의 사상의 열정과 그것이 내는빛 속에서 편안함을느끼게 될것이다. 나는 마르크 불로흐 Marc Bloch, 죠르쥬 르페브르 Georges Lefebre, 마르셀 바따이웅 Marcel Bata ill on 의, 에몬스트 라브루쓰 Ernest Labrousse 의, 앙드레 삐가니올 Andre P iganiol* 의, 오귀스멩 르노데 Augustin Renaude t**의 주요 저작들과 각자 그 나름의 방식으로 대립되는 접을 강조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 저작들이 노력하지 않고도 이 예감된 역사와 그 후 20년 이상 동안 의식적으로 제기되어 온 역사와 화해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은가?

오늘날 프랑스 역사학파에 그 힘을 부여해 주는 것은 아마도 이러한 가능성들의 다발일 것이다. 프랑스 학파라고? 프랑스인이라면 그 말을 감히 밸지 못할 것이며 그 말을 내뱉었다면, 여하튼 수많은 내부의 다양성을 느낀 나머지 그 말을 반복하기를 주저하게 된다. 그렇지만 의국인의 입장에서는 우리의 상황이 그만큼 복잡한 것으로는 여겨지지 않는다. 한 젊은 영국인 교수는 최근에 이렇게 썼다. 〈만일 우리의 역사학 연구에 새로운 영감이 관동해야만 한다면, 그 영감이 프랑스로부터 온다는 것이 가장 그럼직하다. 죽 프랑스는 독일이 전세기에 차지했던 역할을금세기에 메꿔 주어야만 할 것 같다.……〉 이린 부류의 판단만이 우리에게 용기와 자부십울 가쳐다 줄 수 있다

* Andre Piganiol 프랑스의 여사학자(18 g3~1968) .꼴레쥬 드 프랑스 교수. 로마사 전공. 문명, 종교, 경제 등의 사회학져 의미에 판십.

** Augus tin Renaudet: 프랑스의 역사학자(1880~1958), Hautes Et udes 의 교수(1942~1951). ' 팔레쥬 드 프랑스 교수 (1946~1951). Erasme와 Dante 에 관심

고 말할 팔요가 있을까? 그러한 평가는 우리에게 책임에 따른 업청난 부담, 그럴 만한 자격 이 없다는 초조감 동도 마찬가지로 제공하는 것이다.

내 강연의 마지막 순간에 내가 약간은 우연히 그 초조감에 부딪찬 태도를 취한다는 점을, 심지어 그에 관한 첫마디를 발설하기도 전에 그- 초조감이 내게 엄습했다는 접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다. 여러분들 가운데 자리잡은 사람이라면 누가 혼자서 초조해 하지 않을 수 있단말인가? 다행히도 전동은 훌륭한 충고자이다. 전봉은 적어도 세 개의 도피처를 제공한다. 첫째, 자신의 강연 내용을 읽는 것 인데, 그것은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단념한 내 인생 최초의 일이라는 접을 고백하는 바이다. 이것으로 내 고십에 대해 충분히 언급한 셈아 될까? 그 다음은 하나의 강령 뒤에 숨는 것, 자신이 가장 구]중히 여기는 사상이라는 안식처에 숨는 것인데 그것은 분명히 우리를 잘 숨겨주지 못하는 영사막이다. 마지막으로 혼자라는 것을 덜 느끼기 위해 자신의 우정과 교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러한 우정과 교감온 내가 감사하고 있는 회상 속에 제시되고 있다. 내가 거의 15년간 채 용되 어 있 었 던 고등연구원 Haut es E tudes 의 냐의 동료들과의 활발한 교감이, 특히 소르본느에서 내게 풍부했던, 나의 선배들 및 동년배 둥의 역사학 분야의 동료들――그들 덕분에 우리의 젊은 연구자들과 알게 되는 많은 즐거움을 누렸던 __ -과의 적극적안 공감이 있다. 그 밖에도 천애하는 여러분들이 나를 여기서 지켜보고 있다.

나는 오귀스팽 르노데와 마르셀 바다아웅의 크나큰 호의에 힘입어 이 집에 인도되어 왔다. 물론그것은나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내가 16세기라는 좁은 부분에 속하기 때문이며, 내가 순수한 마음으로 오귀스멩 르노데의 이탈리아와 마르셀 바따이응의 에스파냐를 몹시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나논 처녁의 방문객이기 때문에 그들은 나를 엄격하게 대하지 않았다. 필립 I 세의 에스파냐는 에타스무스의 에스파냐가 더 이상 아니며, 티티 앙 Titien과 까라바기 오 Caravage*의 이 탈리 아는 그것 을 밝히 기 위해 이제는 더 이상 로렌죠 대제 Laurent Magnifique**와 미첼란첼로의 풀로렌스가 지닌 잊을 수 없는 빛울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다.

16 세기의 석양이여 ! 뤼씨앙 페브르 는 1560 년 이후의 불행한 사람둡에 대해 말하는 습관을 지녔다. 분명 불행한 사람들이다. 온갖 충격울, 온갖 기습을, 다른 사람들의 온갖 배반을, 운명적으로 모든 고초를, 모든 쓸모없는 반역을 •••••• 접하는 불행한 사람들이다. 그들 주변의, 그들 자체의 수많은 용병의 난둘…… 불행히도 이 불행한 사람들은 우리와 형재지간처럼 닮았다.

나의 찬에하는 동료들인 여 러분들 덕 덱으로 1933 년에 복구된 근대문명사의 강단은 보존될 것이며, 그것의 지속성을 보장해야 하는 명예로운 일은 내 책임이다. 그것은 아주 무거운 명예이다. 자신이 심층에서 느끼는 일에 대한 열정도, 선의도, 공감도, 우정조차도 그의 저작의 여백에, 심지어 지칠 줄 모르는 그의 사상의 고랑에, 내가 규정했던 거대한 임무가 오늘날에도 달려 있는 사람을, 죽 우리의 위대한뤼씨앙 페브르를 진실하게, 거짓된 겸양 없이 계승하는 데 따르는 두려움을 제거해 줄 수는 없을 것이다. 바로 그 뒤씨앙 페브르가 이 기관의 영광으로, 수년 동안 결코 침묵 상태인 적이 없다고 믿어도 좋을쥘르 미술래 Jules M i chele t의 목소리를 다시금 들을 수 있게 해주었다.

* Caravag e: 이 말리 아의 화가(1571 또는 1573~I6IO).

** Laurent Magnifique: 베 니스의 군주 (1381~1,455).

제2부

역사학과 다른 인간과학들

역사학과 사회과학들:장기지속

여 러 안간과학 les Sci~nces de l'homme 전반에 위 기가 나타나고 있다. 비록 그 위기가 새로운 지식의 축적과 앞으로 적철하게 조칙되어야 할 공동 작업의 필요성에 기인하는 것이기는 해도 그들은 모두 스스로의 발전에 압도되어 있는 것이다. 제 분야 중의 어느 것도 원하건 원치 않건 또는 직접이돈 간접이돈 가장 활성적인 분야의 발전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고 배길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과학들온 그들의 연구를 위해 이제 더는 가치 있는 작업툴율 제공할 능력 이 없는 되보적이며 간교한 인문주의에 계속장악되어 있다. 모든학문이 과거와 현재에 이룩한 가공할 연구의 집대성이란 덩어리 속에서 자신의 위치가 어떠한가 하는 문제에 몰두하고 있고 이를 두시하는 정도는 저마다 다르지만 그 연구들은 이제 필연적으로 옹집되어야 한다는 것이 명확히 보이고 있다.

인간과학들은 정의에 대한 노력을 보충하거나 아니면 전보다 더 조

급한 성미를 부립으로써 빠져나울 수가 있을까 ? 어쩌면 인간과학들은그런 환상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인간과학은 과거보다는 묵히 오늘날 (낡아빠진 중언부언이나 가짜 주제로 되돌아갈 위험 을 무릅쓰고) 자신들의 목적 • 방법 • 우수성을 규정하는 데 전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접과학과 자신을 구분지어 주는, 혹은 구분을 짓치 않거나 잘못 구분지어 주는 접경선에서 앞을 다두어 분쟁을 일으니키고 있다. 각각의 과학은 각자의 영 역에 머물거냐 되돌아가기를 집요하게 꿈꾸고 있는 것이다…… 및및 학자들만이 홀로 여러 분야의 접 합을 이 루어 냈다. 죽 끌로드 레 바 -스트로스 Claude Lev i-S t rauss는 〈구조〉인류학 I) 을 언어학적 방법을 향해,〈무의식적인〉 역사의 지평을향해, 아직 풋내기인 〈질적〉 수학의 제국주의를 향해 밀고 나아갔다. 그는 〈커뮤니케이션 과학 Sc ience de la comrnun i ca ti on 〉이라는 이름 야래 인류학 • 정치겅제학 • 언어학…… 둥을 연결시킬 하나의 과학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누가 이러한 분파 경계의 돌파와 분야벌 과학의 재결집을 받아들이려 하겠는가? 지리학마저도 까닭없이 역사학과분리되려고 하는데 !

그렇지만 사태를 너무 일방적으로 보지는 말자. 그러한 다툼과 거부는 의미가 있다. 다론 것들에 대항하여 자기 주장을 하려는 욕망이야말로 새로운 호기심의 근원을 이루는 것이다. 죽 타자를 부정한다·는 것은 곧 이미 타자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사회과학의 각분야는 〈사회적인 것 le soci al > 전부를 〈전체성〉 안에서 파악하려는 경향을 띠고 있으므로, 그것을 분명히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쩔 수없이 서로서로의 영 역이 겹쳐지고 있다. 죽 각각의 과학이 자기 영역에 머무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실은 인접과학을 침범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학은 사회학이 자신의 주변을 에위싸고 있음을 발견하며, 인간과학들 중에서 가장 구조화되어 있지 않은 역사학은 여러 인접고卜학들이 주는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반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서로가 거부하고, 적대적 태도를 보이거냐 혹은 평온하게 모르는체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공동시장〉의 윤곽이 나타4고 있어 앞으로 몇년간 이러한 공동작업은 시도해 볼 만할 것이다. 비록 그 다음에는 한충 개별적인 접근이 각각의 과학에게 유리할지라도. 말이다.

1) An t hroPologie S t ructurale, Pari s, Pi on, 1958, 이 책 의 여 기처 기 , 록히 p. 329.

그러나 한데 모으는 것이 우선은 급선무이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재결합이 현실세계의 문화적 태도에 대한 집단적 연구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 러한 〈지 역 연구 area s t ud ies 〉는 특히 중국 • 인도 • 러시아 • 라탄아메리카 • 미국 둥 현대의 정치적 괴물들을 연구하는 일군의 〈사회과학자들 soc i al sc i en tist s 〉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 국가 또는 지역을 파악하는 것이 바로 생사를 가름하는 문제일전대 ! 더구나 이렇게 지식과 기술을 공유하게 되면, 개별과학들은 예전처럼 다른 사람둘이 말하고 쓰고 생각하는 것에 대하여 귀얻고 눈먼 채 자산의 특정 분야에만 머무를 수 없을 것이다. 아울러 사회과학의 통합은 완전해야 하며, 그토록 많은 것을 약속해 주는(반드시 그것을 실행하지 는 못할지 라도) 새 로운 분야들은 물론 아주 오래 된 분야들을 소홀히 해서도 안된다. 예를 들면, 이러한 미국의 통합시도에서 지리학은 거의 아무 지위도 차지하지 못했고 역사학이 할애받은 지위도 국히 미미하다. 게다가 그 역사학이 어떤 종류의 역사학인가도 문제이다.

지난 2,30 년 동안 역사학에 닥찬 위기에 대하여 다른 사회과학에서 는 충분히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동시에 여사학자들의 업적에 대해서분만 아니라 역사학이 항상 그것의 유능한 세일츠멘은 못 될지라도 충직한 십부름꾼으로 되어 있는 사회현실의 한 측면에 대해서도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즉 사회적인 시간지속이 (la duree : 베르그송의 철학에서 특히 강조되었듯이, 인간의 구체적 인 체험 속에 지속되는 시간을 듯함―역주), 인간생활의 다양하고 상충되는 시간들이, 과거를 구성할 분만 아니라 현재의 사회생활을 이루기도 하는 시간들이 혼히 간과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접에 비추어 모든 인간과학에서 제기되는 논의의 과정에서 역사학의 중요성과 유용성을, 아니 그보다도 특히 역사가의 방법 및 관찰에서 부각되는 시간지속의 변증법을 강조할 필요가 더욱 철실해진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기에는 순간과 완만한 흐름의 지간 사이에 나타나는 내밀하고 생생하며 무한정 반복되는 대립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현재를 문제삼돈, 과거를 문제삼든간에 사회적 시간의 다원성에 대한 명확한깨달음은 인간과학들의 공동된 방법론에 필수적인 것이다.

따라서 나는 역사학과 역사학의 시간에 대하여 길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러한 논의는 역사학 전공자들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경제학자냐 민속학자 • 민족학자(도는 인류학자) • 사회학자 • 십리학자 • 언어학자

인구학자 • 지리학자 • 사회수학자 • 통계학자 둥 인접 인간과학에 종사하는 독자들을 위한 것이다. 이 모든 인접과학들에 접근하거냐 그것들과 접촉함으로써 역사학은 새로운 각도에서 빛을 발하게 될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도 지금도 그렇게 여기고 있기 때문에) 팔자는 여러 해전부터 그들의 연구와 경험을 추적해 왔다. 아마 우리 쪽에서도 인접 과학들에게 줄 것이 있을 것이다. 최근의 역사연구 경험이냐 시도들에서는_―-의식적이돈 무의식처이돈, 받아들여지전 받아들여지지 않전간에――시간의 다양성에 대한 개념과 장기적 시간의 두드러진 가치에 대한 인식 이 부상하고 있다. 역사학 그 자체보다도_역사학에는 사실 수백 개의 얼굴이 있다一―바로 이 시간지속 개념이 우리의, 이웃인 여러 사회과학들의 주의와 홍미를 끌어 마땅하리라 본다.

1 역사와 시간지속

모든 역사연구는 어느 정도 의식적으로 연대기적인 사실들을 취사 선덱함으로써 지나간 시간을 분해한다. 전통적 역사학이 짧은 시간, 죽 개인과 사건에 초접을 두었기에 우리는 오랫동안 급격하고 극적이며 숨가쁜 역사서술에 익숙해 왔다.

새로운 사회경제사는 주기적 변동을 연구의 전면에 내세우고 ::::L. 주기적 변동의 지속에 관십을 둔다. 죽 사회경제사는 가격의 주기적인 오르내립이라는 신기루현상 또는 그 현실에 몰두해 왔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 이야기식 역사, 죽 전통적인 〈敍事的〉역사 이의에 IO년, 20년. 또는 50년의 큰 묶음으로 과거를 문제삼는 국면 (conj oncture :여러가지 요인들이 어느 시접에서 결합됨으로써 벌어지는 국면을 듯합―역주)·에 대한 서술이 발견된다.

이 두번째 종류의 역사서술 너머에는 보다 숨이 간, 세기 단위의. 장기적인 규모의 역사가 있다. 장기적인, 십지어는 대단히 장기적인 시간지속의 역사가 그것이다. 장기적인 시간지속 또는 장기지속 la longue duree 이 라는 말은 좋건 나쁘전간에 , 뿔 라꽁브 Paul Lacombe 이후 첫 세 대 에 드는 프랑스와 씨 미 양 Fran~ois Simiand 이 사건사 hist oire 탸nementielle 라고 이름지온 것과 반대의 것을 지칭하는용어로 나에계 천숙해졌다. 어구가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여하본 우리의 논의대상、

은 순간적인 것과 장기지속이라는 시간의 양극 사이에 위치할 것이다.

그러한 어구들이 어떤 절대적 확실성을 가진 것은 아니다. 사건 evenemen t이 라는 단어 도 마찬가지 다. 나는 이 단어 를 한정 하여 단기적 시간지속 안에 가두려고 한다. 하나의 사건은 폭발적이며 16 세기에 사람들이 흔히 말했듯이 • 〈순간의 일 nouvelle son r. an t e 〉인 것 이 다. 사건의 마취적 연기가 동시대인의 의식을 사로잡고 있지만, 사전은 그다지 지속적이지 못하고 그 불꽃도 거의 볼 수 없는 것이다.

철학자들은 분명히 그렇게 규정하는 것은 그 단어가 가지는 원래 의미의 폭을 줄이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할 것이다. 엄격히 말하면 하나의 사건에는 일련의 의미 및 연관관계가 담겨 있는 것이다. 그것은 때로는 심층의 흐름에 대한 증언이 되기도 하며 과거 역사가들?이 즐겨 쓰던 〈원인〉과 〈결과〉둘의 작용을 통해 그 자체의 지속을 넘는 훨씬 고차원의 시간과 연관을 맺기도 한다. 사건은 무한히 확장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은 다몬 온갖 사건들의 연쇄와, 죽 하나하나불 따로 가려낼 수 없어 보이는 일련의 저변 현실들과 관련된다. 이렇게 연쇄적으로 이어 붙이는 방법에 의하여 베네데또 크로체 Benede tt o Croce 는 어떤 사건에서든지 모든 역사가, 모든 인간이 통합될 수 있고 또 마음대로 재발견될 수도 있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에초에는 단편적 사건에 포함되지 않았던 것을 덧붙여 간다는 조전 아래서만, 즉 무엇을 덧붙이는 것이 타당한지의 여부를 알 수 있 다는 조건 아래 서 만 가능한 일 이 다. 싸르트르 Jean-Paul Sart re의 2)최근의 성찰이 제시하는 바도 바로 그러한 지능적이고 위험스러운 유회이다.

그러므로 좀더 명확을 기하기 위하여 〈사건사〉 대신에 개개인과 일상생활이라고, 우리의 환상과 그때그때 포착된 의식 둥에 걸맞는 〈단기적 시간〉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그것은 바로 신문기자나 연대기 서술자가 다루는 시간이다. 그런데 신문이나 연대기적 서술에서는 이론바 역사적 이라고 할 거 대 사건과 더불어 화재 • 철도사고 • 곡물가격 •범최 • 연국공연 • 홍수 둥의 평범한 일상적 사건들이 나열되고 있다. 따라서 정치적인 삶에 있어서는 물론이고 경제적 • 사회적 • 문학적 •제도적 그리고 십지어 지리적인(폭풍우와 같은), 모돈 형태의 삶에 있

2) Jean-Paul Sartre, "Ques tions de me t hode," Les Temps Modernes, 1957, 139 호 및 140호.

어서도 단기적 시간이 있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얼핏 보면 과거란 더러는 눈에 띄고 더러는 희미하게 감 춰 져 있거냐 무한정 반복되는 그러한 자질구례한 사전들의 덩어리인데, 실제로 그것이 바로 미시사회학이나 계량사회학의 일상적 성과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물론 미시역사학이라는 것도 있다). 그러나 그런 사건의 덩 어리가 현실 전부를, 죽 자유로운 과학적 사고 전개의 기반이 되는 역사의 깊이 전체를 구성하고 있지는 않다. 사회과학은 사전에 대해 거의 협오를 느끼는데 그것은 그럴 법한 일이다. 왜냐하면 온갖 시간지속 가운데서 가장 자의적이며 기만적인 것이 단기적 시간지속이기 때문아나.

우리 역사가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소위 사건사라고 하는 전동적 역사에 대하여 명백한 불신을 토로하며 이 이름표는 상당히 부정확하게 정치사와 혼동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정치사는 사건에만 한정되지도 않았을 분만 아니라 반드시 사건사여야 한다는 법도 없다. 그러나 시간적 폭은 거의 없이 이야기 중간에 끼여드는 부자연스런 파노라마와 구색을 갖춘 장기지속적 설명을 제의하고는 지난 100 여 년간의 역사서들(거의가 〈거창한〉 사건에 초접을 둔 정치사였던)은· 대 체로. 단:기적 시간의 차원에 머물러 연구되었던 것이 사실이다.3) 그것은 필겅 같은 기간에 이루어진, 독정한 도구와 엄격한 방법을 과학적으로 지배하는 능력의 발전에 따른 대가였을 것이다. 수많은 기록물의 발견으로, 역사가들은 문헌기록의 진실성 속에 모든 전실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루이 알팽 Louis Halphen 이 〈문헌기록들을 그들이 제시하는 대로 하나하나 읽어 나가면서 그 기록들이 우리를 끌고 가는 대로 자신을 거의 내맡겨 두기만 하면 우리는 사실들의 사슬이 거의 자동적으로 재구성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쓴 것은 바로 얼마 전의 일이다.4) 〈날 것 그대로의 역사〉에 대한 이러한 이상은 I9세기말에는 새로운 양식의 연대기로 귀결되었는데, 그것은 정확울 기하기 위하여 국회의 토론이나 대사의 서신에서 드러나는 것과 같은 사건사를 한걸음 한 걸음 추적했다. 18 세기와 I9 세기초의 역사가들은 이와는 다론 장기지속의 관접에 주목했었으나, 그 후로는 랑케 Ranke, 미슐레Mi chelet, 부르크하르트 Burckharte, 퓌스멜 Fustel 과 같은 몇 몇 위 대한 거장들만이 이를 재탈환할 수 있었다. 단기적 시간을 초월하는 것

3) 『1500년의 유럽』, 『1880년의 세계』. r개혁 전야의 로마J] 등등.

4) Louis Halphen, Int roduction a l'Hi stoire, Paris, P.V.F., 1946, p .50.

이 지난 100년간의 역사서술에서 대단히 드물었기 때문에 대단히 값진 것임을 인정한다면, 제도사·종교사·문명사의 탁월한 역할과 아울러 연대기의 방대한 확장을 요하는 고고학 덕분으로 고대사 연구가 차지하게 된 전위적 역할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얼마 전에 우리 역사학자들의 생업을 구해 준 것은 바로 그러한 연구들이었다.

최근에 이루어진 19 세기의 전통적 역사와의 결별이 단기적 시간과의 완전한 결별은 아니었다. 알다시피 최근의 결별은 정치사에 반대하고 사회경제사를 두둔해 왔다. 그것은 격동과 부인할 수 없는 부활울 초래했다. 또한 불가피하게 방법의 번화가 일어났고 계량사학의 도입에 따라 홍미의 중십이 이동했으며 그 계량사학은 분명히 결정적인 역할을 끝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전통적 역사의 시간에 변화가 있었다. 하루나 한해가 어제의 정치사가에게는 훌륭한 기준으로 보일 수 있었다. 시간이란 하루하루의 총체였던 것이다. 그러나 가격곡선, 인구의 변천, 봉급의 변동, 이윤율의 번화, 생산성 연구(실제 이루어졌다기보다는 바라고 있는 것에 가깝지만), 또는 자본순환에 대한 업밀한 분석을 하려면 보다 광범위한 척도가 필요하게 된다.

따라서 새로운 양식의 역사서술, 죽 10년, 25 년, 극단적으로는 콘드라티에프 Kondra ti eff의 고전적 주기인 반세기 동을 망라한 국면 및 주기, 십지어는 〈간주기 int ercy cle〉를 다루는 역사서술이 나타나고 있다. 예믈 들어 짧고 피상적인 변동을 무시한다면, 대체로 유럽의 가격은 1791 년에서 1817년까지는 오르고, I8I7년에서 1852년까지는 내려갔다. 이러한 완만한 오르내림의 움직임은 유럽의 시간, 그리고 거의 전세계적 시간에 하나의 주기 간격에 의해 측정된다. 물론 연대적인 그 시기가 절대적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경제성장·소득·국민총생산이라는 또 다론 쳐도에 의해 측정된, 아마 훨싼 쓸모 있는 범 주불 프랑스와 데 루 Francios Perroux 가 제 공해 줄 것 이 다. 5) 그러나 이 모든 논의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 분명한 것은 역사가가 새로운 시간 개념을 활용할 수 있고 그 시간이 역사 설명의 수준에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역사는 이 변동곡선과 그 곡선들이 호흡하는

5) 그의 Theorie Generate du Prog res economique, Cahiers de l' I. S. E. A,. 1957을 참조.

방식에 대응하여 새로운 준거지접에서 자선을 분리시킴으로써 스스로률 설명하려고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렇 게 하여 타브루쓰 Ernes t Labrousse 와 그의 제자들은 지 난번 로마 역사학대회 (1955) 에서 그들의 입장을 천명한 후 계량적 방법으로. 방대한 사회사적 조사에 착수했다. 이러한 조사는 결국 사회적 국면(십 지 어 사회 구조) 을 결 정 하게 -사회 적 국면 이 경 제 적 국면 con j onc t ure과 반드시 동일한 속도로 진전된다는 법도 없이_一될 것이라고 내가 말한다고 해서 그들의 의도를 왜곡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또 한편 경제적 국면과 사회적 국면이라는 두 거물들이 정확한 척도가 없어서 그 전전과정을 결정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또 다른 역사의 배역들을 보지 못하게 가려서는 안될 것이다. 과학, 기술, 정치제도, 정신적인 제도장치 그리고 (편리한 단어를 쓴다면) 문명 둥은 각기 그들 나름의 생활과 성장의 리듬을 가지고 있을 것이므로, 새로운 국면사 h ist o i re conj onc t urelle 는 그들 모두의 완전한 오케스트라를 이룰 때에만 제 구실울 하게 될 것이다.

어떤 논리에서 보아도 국면사는 그 자체를 극복함으로써 곧 장기지속에 이르렀어야 했다. 그러나 여러가지 이유로 해서 그러한 극복은 일반적으로 일어나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단기지속으로 되돌아가는 일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미지의 것을 향하여 계속 전전하는 것보다는 〈주기적〉 역사와 전동적인 단기적 역사를 한데 짜맞추는 것이 더욱 필요하거나 시급하게 생각되기 때문일 것이다• 군사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그것은 새로 획득한 거점을 공고히 하는 일이 되 는 셈 이 리 라. 그리 하여 I933 년에 나온 라브루쓰 Ernest Labrousse의 최초의 대작에서는 18 세기 프랑스에서의 전반적인 물가의 움직임, 죽 한 세기 동안의 움직임을 다루고 있었다 .6) 그런데 이 라브루쓰가 지난 25 년간 프랑스에서 간행된 가장중요한 역사서인 1943 년의 저서에서는보다덜성가신시간의 쳐도로 되돌아갈 필요성에 굴복하고말았다. I774년에서 l79I 년 사이의 경제 공황이 바로 프랑스 혁명의 촉진 요인 가운데 하나,즉 내리막길을 향한 하나의 層階站이라고강조했을때 그러했던 것 이다. 그러나 아직도 그는 상당히 큰 자인 반간주기 demi intercy cle를사용하고 있었다.그러다가 I948 년 파리 국제회의에서의 「혁

6) Esqui sse du mouvemen t des Pri x et des revenus en France au XVIII•si ~cle, z Vo l. Paris, Dalloz, 1933.

명 이 란 어 핑 계 일 어 나는 것 인가 ? Comment na i ssen t les revolu ti ons? 」라는 발표에서는단기지속적, 경재적, 감상적 오류(새로운양식의 여사적 분석)룹 혀명적 시기의 정치적, 감상적 오류(아주 낡은 양식의 역사적 분석)와 연결하려고 하였다. 이리하여 우리는 다시 단기적 시간 안에 되돌아와있음울 어느덧 깨닫게 된다. 물론 이러한 철차는 정당하고도 유용한 것이지만, 그것은 또한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말해주는 증상인가 ! 역 사학자는 무대 의 연출가 노릇을 즐겨 한다. 그가 짧은 서간의 드라마를, 퍽도 오래된 이 직업의 가장 튼튼한 조종범들을 포가하는 일이 어찌 쉬울 것인가?

주기 및 간주기들 이의에도 경제학자들이 세기적 추세라고 일컫는것이 있다――반드시 그것을 연구하고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극소수의 경제학자들만이 이에 관십을 두고 있으며, 구조적 위기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연구도 역사적 검증이라는 시련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시안이냐 가설-그것도 가까운 과거인 1929 년이나 기껏해야 1871>년 정도까지 밖에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로서 제시되고 있을 분이다 .7) 그러나 이들 시안이나 가설들이 어쨌든 장기지속적 역사에의 편리한 입문이 되어주는 것은 사실아다. 그것들은 최초의 관문이다.

두번째로 훨싼 더 유용한 것으로 〈구조 s t ruc ture 〉라는 단어가 있다. 좋전 나쁘건 이 낱말이 장기지속의 제반 문제를 지배한다. 사회과학자들이 쓰는 구조라는 말은 조직, 제반 현실과 사회적 집합체 사이애 세워진 일관성 있고 다분히 고정된 일련의 관계를 뜻한다. 우리 역사학자에게 있어서 구조란 조립이요, 건축물을 뜻하면서도 무엇보다도그것은 시간이 쉽사리 소모시키지 못하며 아주 느리게 운반하는 하나의 현실을 가리킨다. 어떤 구조는 오랫동안 살아 남아서 무수히 많은를 세대에 고정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그러한 구조들은 역사의 길을 막아서서 역사의 흐름을 방해하고 그럼으로써 지배한다. 그런가 하면 다론 구조들은 훨씬 빨리 소멀한다. 그러나 모든 구조는 역사의 받참대이자 동시에 장애물이다. 장애물로서의 구조는 인간 및 인간의 겅험 이 거 의 넘 을 수 없 는 한계 (수학적 으로는 포락선 des envelo pp es)을이문다. 예컨대 어떤 지리적 들이라든가 생물학져 사실, 생산성의 한廳

7) Rene Clemens, ProUg omenes d' une t Mori e de la s t r11c t ure lconom ique, Pari s, Domat -Mon t chrestien, 1952에 찰 요약 • 정 리 되어 있다. 또 Johann Akerman, "Cy cle et s t ruc t ure'', Revue lconomiq1111, x95z, I 호도 함께 찰조.

계, 심지어 여 러 가지 정신적 제약(심성의 몰도 또한 장 기간 지속되는 감옥인 것이다) 동을깨트리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안가 를 생각해 보라.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지리적인 제약인 것 같다. 여러 세기에 걸쳐 인간은 기후 및 식물군, 동물군, 특정한 경작물, 서서히 구축된 어떤 균형상태에 갇힌 囚人으로 살고 있으며 모든 것을 교란시키지 않고서는 이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산악지방 사람들에게 있어 가축이동의 진로를, 해안선의 굴곡에서 가장 유리한 지접에 자리잡고 있는 해안지방 사람들의 생활을 보라. 또한 오랫동안 지속되는 도시의 입지와 도로 및 교역망의 신속성을, 다시 말해서 지리적인 문명의 들이 놀랍게도 고정되어 있음을 생각해 보라.

마찬가지의 영속성과 지속성이 거대한 문화적 영역내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쿠르티우스 Ernst Rober t Cur ti us 의 명저의 불어 번역판이 마침내 간행되었는데 8) 이 책은 하나의 문화체계가 스스로도 무거운 유산의 점을 지고 있는 동로마 제국의 라탄문명울 어떻게 하여 지속시켜 왔는가에 대한(선택과 삭제로 왜곡시키기도 했지만) 연구서이다. 13 세기와 나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럽 여러 나라들의 국민문학이 탄생될 때까지, 지적 엘리뜨들의 문명은 동일한 주제, 동일한 비교, 동일한 상식과 구호를 먹고 살아왔다. 그와 유사한 사고의 흐름으로서 뤼씨앙 페브르 Luci en Febvre 의 연구서 『라블레 와 16 세 기 의 擬神論의 문제 Rabelai ee t le probleme de l' i ncroyance au XVI• s ie cle』9) 는 라블레 시 대 의 프랑스인의 사고에 접근할 수 있는 정신적 도구를구체화하려는 시도이다. 라블레 시대의 모든 개념은 라블레 이전에서 비롯하여 그 후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생활 및 사고, 믿음의 방식을 규제하고, 가장 자유로운 정신들의 지적 모험에도 처음부터 어떤 제약을 가하는 것이다. 알퐁스 뒤 프롱 Al phonse Du p ron t'”의 주제 또한 프랑스 사학계 의 가장 신선한 흐름의 하나로 보인다. 그의 글에서 십자군의 개념은 서구에서 14 세기 이후까지, 즉 〈진짜〉 십자군의 시대가 지나간 훨싼 뒤까지

8) Erns t Rober t Curtius, Europiiische Literat ur und latei ni sches M ittelalter, Berne, 1948 불어 판 La L ittera t ure E'uroptenne et Ie Mo:;en Age Latin, Pari s, P.V.F. 1956.

9) Pari s, Albi n Mi chel, 1943, 재 3 판, 1969.

10) Le m:; t he de croi sade, Essai de soc i ologie religieuse, 타자본 학 위논문, Sorbonne.

도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더없이 다양한 사회 • 세계 • 십리상태들울 가로지르고 그 마지막 남은 빛이 I9 세기의 사람들을 비추기도 하는, 장기간지속된 하냐의 태도로 검토되고 있다. 인접 영 역에서 삐에르 프드탕까스텔 P i erre Francast el 의 『미술과 사회 Pei n t ure e t soc iet e.!l ll) 라는 객은 피렌째의 르네쌍스에서 시작하여 금세 기초의 큐비즘과 주지적 경향이 나타나게 될 때까지의 〈기하학적〉 회화의 영속성을 강조하고노있다. 과학사에서도, 불완전한 설명에 불과하저만, 수세기 동안 지속되는 우주에 대한 모델들을 거듭거듭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오랫동안 사용된 뒤에야 비로소 버림받는다.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우주관은갈릴레오나 데까르뜨, 뉴턴의 시대에까지 거의 도전을 받지 않은 채 유지되었다. 그것은 기하학적인 우주관이 출연하면서 비로소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후자 또한 아인슈타인의 혁명으로 무너져 버리고 말지만 이는 훨씬 뒤의 일인 것이다 .12)

역설적인 것 같지만, 어려운 문제는 역사 연구가 분명히 성공을 거둔 분야인 경제 분야에서 장기지속을 드러내는 것이다. 주기, 간주기 및 구조적 위기 둥에는 체제들-어떤 이는 문명이라고도 부르는 것둘 13) _~의 규칙성과 영속성이 감추어져 있다. 즉 오래된 행동 및 사고습관, 때로는 온갖 논리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소멸하지 않고 견뎌내는 방식이 그것이다.

이제 쉽게 분석되는 하나의 예를 두고 따져보자. 바로 지척의 유럽이란 일반 경제체제가 있다. 그. 체제는 14 세기에서 18 세기, 보다 안전하게 말하자면 1750년경까지 거의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 기간에는 경 제 활동이 1350~ 1450 년과 또 물론 1630~ 1730년의 대 인구감소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14) 인구학적으로 취약한 인구에 의존하였다. 그세기에는모든 왕래에서 바다와 배의 우월함이 부각되었고 내륙에 입

11) Pi erre Francas t el, Pei n t ure e t soc iete. Nai ssance et destruction d' un espace Plas tique, de la Renai ssance au cuh i sme, Ly on, Audi n, 195 1,

12) 다몬 주장들, 즉 갈은 논지문 강력하개 전개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다음 논문운 가까이 문제삼을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의 사회사에 대해서는 Otto Brunner, Hi stor i sche Ze itschrift, 177 권 3호 : 휴머 니 즘에 대 해 서 는 R.Bul t mann, 갈은 책, 176 권 1호 ; 계몽 전제정치에 대해서는 Geor ges Le f ebvre, Annales his toriques de la Revolu tion, f ran f ai se 1949, II4집 과 F. Har t ung Hi s t ori sche Ze itschrift, 180 권 1 호.

13) Rene Courtin, La Ci vilisation econom ique du Brlsil, Pari s, Librairfe de Medi ci s, 1941.

지해 있다는 것은 장애나 열동함의 원인이 되었다. 이 시기가 시작될 무렵이면 이미 쇠퇴기에 접어든 상빠뉴 시장과 1 8 세기에 쇠퇴하게 되는 라이프찌히 시장의 경우처럼 결국은 일반론의 타당성을 확인해 주는 및 가지 예의들을 제의하고는, 유럽의 모든 跋躍處는 연안을 따라 자리잡고 있다. 이 체제의 또 다른 특성으로는 상업의 우선, 금·은 심지어는 구리 둥 귀금속의 역할 둥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의 끊임없는 충둘은 16 세기 말엽 신용 cred it의 결정적 발달에 의해 비로소 참참해졌다. 그 밖의 특칭으로 또한 계철적 농업 위기로 인한 피해의 반복, 겅제생활 기반 자체의 취약성, 한두 가지 대규모 대의 교역로의 지나친 역할_12 세기에서 16 세기에 걸찬 근동지방 무역과 18 세기의 식민지 무역――둥을 둘 수 있다.

이상이 장기지속의 과정인 서구 상업자본주의의 주요한 특칭들을 몇몇 다른 학자들의 뒤를 이어 내 나름으로 규정, 아니 제시하려고 한 바이다. 그 기간에 나타난 여러가지 명백한 번동에도불구하고, 이 4~5세기 동안의 경제생활은 18 세기의 대변혁까지 또한 산입혀명에 이르기까지 아칙도 우리는 그 와중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이논 어떤 일관성을 띠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독칭들은 그 독칭의 언저리에서, 또한 다론 지속성 가운데서 수많은 전복과 분열로 세계의 면모가 바뀌고 있는 동안에도 이 시기에 공통된 것이었고 불변의 상태로 지속되었던 것이다.

여러 종류의 역사적 시간 가운데 장기지속은 성가시고 복잡하며, 혼히는 잘 정돈되지 않은 모습으로 둥장한다. 우리 역사학 분야의 핵십부에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연구와 호기십을 상례적으로 확장하는 것처럼 간단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역사학만을 위한 어떤 단순한 선택의 문제만도 아닐 것이다. 역사학자에게 있어서 장기지속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문체나 태도의 변화 및 사고의 완전한 轉化, 사회적인 것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수락함을 뜻한다. 그것은 곧 때로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 아주 완만한 시간의 흐름에 익숙해지는 일이다. 바로 이 단계에서는――다른 단계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지며 그 문제는 나중에 다시 다루겠지만一―역사의 까다로운 시간에서 일단 벗어났다

14) 프랑스에 관한 한 그렇 다. 에 스파냐에 서 의 인구갑소 현상은 16세 기 말부터 두드러 진다.

가 또다론 고뇌와 질문이 담긴 새로운 눈으로 그곳에 되돌아가는 일이 정당화될 수 있다. 어떻돈 역사의 전제성은 마치 하나의 하부구조에 근거하여 보듯이, 이 느란 역사의 충에 견주어보아야만, 제대로 고찰된다. 역사의 모든 단계 , 그 수천 개의 단계들, 죽 역사적 시간의 수전가지 폭발은 모두 거의 부동상태에 가까운 이러한 심층에 기반을 두어야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모돈 것이 아 심층을 인력의 중십으로 하여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앞서의 논의에서 내가 역사학자의 직무를 정의했다고는 주장하지 않겠으나 단지 그 직무에 대한 하나의 개념은 규정했다. 최근 및 년간의 폭풍우를 겪고 나서도 우리가 전정한 원칙, 분명한 경계, 유일하게 훌륭한 학파를 찾아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행복하고도 어지간히 순진한 사람일 것이다. 여러 사회과학의 분야들은 모두 각기 그 분야 내부의 움직임과 사회과학 전체의 활발한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역사학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평온이라곤 찾아볼수없으며 신봉자가 나타날시각이 울리지도않았다. 랑글로와 Charles Victor Langlo is 로부터 쎄 노보스 Charles Seigno·bos를 거쳐 불로흐 Marc Bloch 에 이르는 길은 멀다. 게다가 블로흐이래로도 수레바퀴논 계속하여 몰아갔다. 내게 있어서 역사란, 있을 수 있는 모든 역사의 총체――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의 모든 과정, 모든 작업들의 총체이다.

내 생각에, 유일한 오류는 이러한 여러 역사학들 가운데 한 가지를 선 E비하면서 다른 모든 것을 배제하는 일이리라. 바로 그것은 역사주의적 오류였으며 앞으로도 그러한 오류가 계속될 것이다. 물론 모든 역사학자에게 그 사실을 납득시키기는 쉽지 않은 일이며, 더구나 우리들을 과거와 같은 역사로 되돌려 놓는 데 열중하고 있는 사회과학자불 설득시키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역사라는 낡은 표제 아래 이모든 번화와 쇄신을 수용하려면 술한 시간과 노고가 팔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하나의 역사〈과학〉이 탄생했고, 이는 계속해서 자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스스로를 변모시키고 있다. 프랑스에서 그것은 1900년부터 《사학종합잡지 Revue de synthese his toriq ue》와 더불어 , 그리고 1929년부터는 《아날 Anna/es》과 더불어 모습을 드러내었다. 역사학자는 모돈 인간과학들에 주의를 기울이고자 했다. 바로

이것이 역사학이라는 업무에 낯선 경계선을 설정해 주고 낮 선 호기상울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러니 역사학자와 사회과학자 사이에 놓였던 어제의 장벽과 차이를 생각하지 말자. 역사학을 포함한 모든 인간과 학은 서로서로의 영향에 젖어들어 있다. 그들은 모두 같은 언어로 말하고 있다. 아니면 적어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이다.

1558년을 택 하건, 1958년을 덱 하건, 세 계 를 파악하려 고 하는 사람이라면 개별적인 세력과 흐름과 통태들의 위계적 서열을 규정하고 나서 그 전체의 덩어리를 다시 포착해야 한다. 이러한 연구의 순간순간 마다 장기적인 움직임과 단기적인 사태둘을 구분해야만 하며 전자는 오랜 시간의 경과에 비추어, 후자는즉각적인 근원으로부터 탐색해야 한다. 프랑스로서는 매우 음울했던 155 8 년의 세계가 바로 :::z.. 매력 없논 해의 벅두에 탄생되었던 것은 아니다. 프랑스안에게 어려웠던 이1958년에도 그것은 마찬가지로 해당된다. 시사문제는 모두가 서로 다론 기원과 다른 러듬을 지닌 움직임들이 한데 합쳐진 것이며, 오늘이라는 시간은 어제, :::z..제 그리고 :::z.. 이전으로부터 동시에 유래된 것이다.

2 단기적 시간과의 다툼

이 사실은 물론 평범한 것이다. 사회과학자들은 종채로 잃어버린 시간을 연구하려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죽 사회과학자들이 역사 또는 시간지속을 그들의 연구에 필요한 차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해서 강경하게 비난하거나 항시 최를 지었다고 질타할 수는 없다· 사회과학자들은 겉보기에는 우리들을 환대하기조차 한다. 역사를 다시 도입 하고 있는 산공시 적 diachronique> 연구는 그들의 이 론적 사고에서 빠지는 법이 없다.

그러나 일단 이러한 합의를 젖혀놓았을 때, 사회과학은그취향이나 뿌리깊은 본능, 그리고 어쩌면 그 훈련방식에 있어서도 언제나 역사적 설명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사회과학이 역사적 설명을 회피하는 두 가지 태도는 거의 상반된다. 한 가지는 역사를 멀시하고 스스로를 단기적인 사실에 국한시켜 실생활의 조사에 치중하는 경험적 사회학에 힘입어 사회과학적 연

구를 지나치게 〈사건화〉하고 시사화하는 것이다 . 또 한 가지는 〈커뮤니 케 이 션 과학 Sc i ence de la commun i ca ti on 〉이 라는 이 름 아래 거 의 바시간적인 구조에 대해 수학적 공식을 상상함으로써 전적으로 시간을 초월해 버리는 것이다 . 최신의 방식인 이 두번째의 대도만이 우리의 깊은 관심거리가 될 수 있겠으나 사전적인 것의 신봉자도 아직 많기 때문에 두 가지 태도 모두를 차례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미 순전히 사건적인 역사에 대한 불신을 밝힌 바 있다. 그`렇지만 공정해지자. 만일 지나치게 사건에 치중하는 것이 잘못이라면 그러한 비난을 받고 있는 역사학만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회과학이 이러한 오류를 같이 법하고 있다. 경제학자· 인구학자 그리고 지리학자도 어제와 오늘 사이에 갈라져 있다(잘 못 갈라져 있긴 하지만). 현명하계 대처하려면 둘 사이에 공정한군형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는 인구학자에게는 쉬울 분만 아니라 의무적인 일이요, 지리학자에게는(특히 비달 드 라 블라슈 V idal de la Blache 의 전통을 이어받온 프랑스의 지리학자에게는) 거의 당연한 것이다. 그에 반해 가장 단기적인 현재에 얽매여 과거라면 1945년 이전으로 고개를 돌리는 일이 거의 없고 또 미래라면 및 달이나’ 및 년 정도밖에는 계획하지 못하고 예상치 못하는 경제학자들에게서는 매우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나는 모든 경제학적 사고가 이러한 시간적 제약에 매여 있다고 주장한다. 1945 년 이전으로 몰아가 옛날의 경제를 연구하는 것은 역사학자의 일이라고 경제학자들은 말한다. 그러나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그 가치를 부인하지는 않으면서도 스스로 훌륭한 관찰의 터전을 버란 것아다. 경제학자들은 시사문제와 행정부를 섬기는 습관에 젖어 있다.

민속학자나 민족학자의 입장은 그처럼 분명하지도 않고 그처럼 우려스럽지도 않다. 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분과내에 역사를 도입 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러나 모든 지적 탐구는 불가능한 것에 매료되지 않는가?), 쓸모 없는 일이라고 강조하였다. 역사에 대한 이러한 권위적인 거부는 말리노프스키 Ma li nowsk i나 그의 재자들에게는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로 인류학이 어떻게 역사에 관십을 갖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레비_스트로스가 준겨 말하듯이 15) 인류학과 역사학온 동일한 지적 모험인 것이다. 아무리 원시적인 사회라 하더라도, 〈사건의 상처자국〉을 남기지 않은 사회란 없으며 역사가 완전히 파산

15) Claude Lev i -St rauss, An tlzroPologie struc t urale, p.31.

하여 아무 흔적도 없는 사회도 없다. 이러한 측면에 대해 우리가 개탄하거나 고집을 세우는 것은 그릇된 일일 것이다.

반면에, 사회학이 관십을 두는 영역에서는 단기적 시간의 경계선상에서 벌어지는 우리의 다툼이 한결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현재 사실에 관한 사회학적 조사는 사회학분만 아니라 경제학 둥에서도 다양한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역사학의 분야에서도 접접 늘어날 것이다. 그러한 조사들은 현재 시간이 가지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 ' 그 〈화산과도 같은〉 열기와 풍요한 부를 두고 그들 나름의 방법으로 반복해서 거는 내기이다• 빈약해지고 단순화되고 침묵으로 황페해지고 재구성된――무엇보다도 재구성된-역사적 시간에 무엇하러 되돌아간단 말인가. 하지만 실제로 역사적 시간이 혼히들 말하는 정도로 그렇게까지 사멸해 버리고 재구성된 것일까? 분명 역사학자는 지나간 시대에서 너무 쉽게 그 전수를 끌어낸다. 앙리 삐렌느 Henr i P i renne 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역사학자는 힘들이지 않고 〈중요한 사건〉, 죽 〈결과를 낳은 사건〉을 찰 구분해낸다. 그것은 명백하고 도 위험스러운 단순화이다. 그렇지만 탐구자로서는 자질구레한 모습과 동작에 짓눌려 있기 때문에 파악하기 힘든 혼란두성이의 현재 생활을 밝혀주며 단순화 해줄 수 있는 그런 식의 뒷걸음질(또는 시간 가운데서의 전전)이 가능하니 그것을 우)해 무엇인들 못 내줄 것인가 ? 레비-스트로스는 고대 그리스 문명의 整合性과 부정합성에 대해, 플라몬의 동시대 사람과 한 시간 동안 담화하는 편이 우리들의 고전 연구보다 훨씬 많은 것을 자신에게 가르쳐 줄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16) 나도 그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침묵에서 구출된 수많은 그리스인의 목소리를 수년간에 걸쳐 이미 들었기 때문이다. 역사학자가 그의 항로를 준비해 두었던 것이다. 오늘날의 그리스에 한 시간 머무른다고 해도 그것은 현재 그리스 사회의 정합성과 부정합성에 대하여는 거의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못할 것이다

더욱이 현재 시간을 연구하는 사람도 스스로 〈재구성〉을 이룩함으로써만, 죽 가설과 설명을 제시하고 눈에 보이는 현실에 파묻히지 않고서 그것을 베어내기도 하고 넘어서기도 할 때 비로소 구조의 〈섬세한〉 결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작업들은 모두 주어진 사실을 더 찰 통제할 수 있기 위해 거기서 일단 벗어나는 일을 허용하고 있

16) "Dlogene Couche", Les Temps Modernes, 195 p. 17.

는데, 이 모두가 곧 〈재구성〉의 행위이다. 나는 현재에 대한 사회학적 사전이 , 과거 에 대 한 역 사학적 초상화보다 더 〈사실적 〉인지 참으로 의심스러우며, 전자가 〈재구성〉에서 더 멀리 떨어지기를 고집할수목 더욱 그렇다. 필리쁘 아리에스 Philippe Ar i es1” 는 역사적 설명에서의 낯섭, 놀라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6 세기에 대하여 16 세기 사람인 당신은 분명히 이질감에 부딪치게 된다. 왜 이러한 차이가 날까? 이제 대답해야 할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놀라움, 이질감, 거리감 둥 지식으로 가는 중요수단은 우리 주변의 것들, 즉 너두 가까이 있어서 명확하게 볼 수가 없는 것을 이해하는 데에도 마찬가지로 팔요 하다고 본다. 런던에 1 년간 살아본다고 해도 영국에 대해서는 잘 모를 것이다. 그러나 비교를 통하여, 당신이 체험한 놀라움울 통하여, 당신은 프랑스에 대해 너무 찰 알고 있기 때문에 전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것을, 프랑스의 가장 십충적이고 특칭적인 면모를 불현듯 이해하게 될 것이다. 현재와 대면하면 과거도 또한 거리감을 주는 것이 된다.

역사학자와 사회과학자들은 죽어 있는 기목과 너무도 살아 있는 증거, 즉 먼 과거와 대단히 가까운 현재를 두고 끊임없이 서로 티격태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것아 본질적인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와 과거는 서로서로에 빛을 비춰준다. 만일 현재라는 좁은 한계만을 관찰한다면 재빨리 움직이는 것, 거짓이돈 사실이돈간에 번쩍거리는 것, 이제 막 변화된 것, 큰 소리를 내는 것, 쉽게 눈에 띄는 것에 자연 주의가 쏠릴 것이다. 모든 사건은 역사적 사건과 마찬가지로 지루해 하며 다급한 관찰자를 기다리고 있다. 예컨대 석달 동안 풀리네시아 원주민 사회에 나와 사는 민족학자라든가, 상두적인 문구를 담은 최근의 설문조사를 배달하고 있거나, 능란한 질문지와 펀치 카드의 조합으로 사회의 메카니즘을 완벽하게 밝혀낼 수 있다고 믿는 산업사회학자들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진실이란 그보다 한결 영리한 천구이다.

사실 우리 인간과학이, 파리지역의 광범위하고도 훌륭한 조사연구가 말해 주는 바 파리 제 16 구(상층 부르조아지의 주거지一_여주)에 위치

17) Le Temp s de l' hi s t oire, Pari s, pion, 1954.

18) P. Chombart de Lauwe, Pari s et l' a gglomera tion p ari si enne, Paris, P. V. F., 1952, t. I. p. 106.

한 가정 , 음악 선생 님 , 정 치 학대 학 Ecole des sci ence pol itique 사야를 왕래하는 소녀의 움직임들로부터 무슨 이득을 얻을 수 있단 말안가? 그 조사에서 우리는 재미있는 地圖를 끄집어낼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소녀가 농학울 공부했다거나 수상 스키를 타러 갔었다면 이 삼각꼴의 여행방식은 완전히 뒤바뀌었을 것이다. 한 장의 지도 위에서 거대한 기업체의 피고용인의 주거지 분포를 살펴본다는 것은 홍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내가 그보다 이전의 지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 두 가지 지도 사이의 시간적 거리가 실제의 움직임을추적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하지가 않다면, 이러한 연구가 서간낭비가 안 되게끔 해줄 문제 자체가 어떻게 성립할 것인가? 연구자체를 위한 연구의 홍미는 찰해 보아야 자료수집에 불과한 것이다. 게다가 이들 자료 모두가 〈미래〉의 연구에 반드시 도움이 된다는 법도 없다. 예술을 위한 예술을 너무 믿지 말기로 하자.

마찬가지로 도시 연구에 있어서도 어떤 종류의 연구이돈간에 역사적. 시간지속 안에 대상을 설정하지 않고서는 가령 오세르 Auxerre19> 연구 또는 도피 네 Dauph i ne 지 방의 비 엔 V i enne20> 연구와 같은 사회 학적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모돈 도시는 위기, 이동·해체 및 필요한 계산을 함께 하는 사회로서, 그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인근 촌락의 복합체 , 그리 고 역 사가 해프케 R i chard Ha pke 가 누구보다도 먼저 말했던 인근 도시군의 복합체 속에서 그 본래의 자리를정립해야 한다• 죽 도시는 이 복합체 전체의 방향을 정하는 움직임에 ,비추어 연구되어야만 하는데, 그 움직임은 시간적으로 어느 정도 떨어쳐 있거나 때로는 매우 멀리 떨어쳐 있는 것아다. 만일 도시 • 농촌7J:의특정 교환이나 도시들간의 산업 및 상업적 경쟁 둥을 기록한다고할 때, 그것이 한창때의 새로운움직임인지 아니면 거의 끝나갈 무렵의 움직임인지, 아주 먼 간격을 둔 부활인지 아니면 단조로운 반복인지를 파악하는 일이 과연 대수롭지 않은 것인가? 오히려 그야말로본질적인 것이 아니겠는가?

19) Suzanne Frere e t Charles Be ttelhei m, Une Vi lle f ranf a i se moy enne, Auxerre en 1950, Pari s, Armand Co lin, Cahi ers des Sc i ences. Po litique, "'호. 1951.

20) P i erre Clement e t Nelly Xy d i as, Vi enne su-le-Rhone. Soci olog le d' une· c먀 f ranf a i se, Pari s, Armand Coli n, Cah i ers des Sci ences Politiques. 7I 호. 1955.

한마디로 컬론을 내려보자. 루]씨앙 페브르는 그의 생애의 마지막 10 년 동안 〈역사학은 과거에 대한 과학이자 현재에 대한 과학이다〉라고 되풀이 말하곤 했다. 시간지속의 변증법인 역사학은 사회적인 것의 현실 전체에 대해 그 나름의 설명을 하는 것이 아난가? 따라서 현재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설명하는 것이 아닐까? 이 접에서 역사학은 사건에 대해 경계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즉 단기적 시간 속에서만 생각하지 말고, 가장 소란을 떠는 행위자들만이 가장 전정한 행위자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역사에는 그들 말고 침묵을 지키는 행위자들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이 미 알지 못했던 사람이 어 디 있단 말인가?

3 커뮤니케이션과 사회수학

어쩌면 우리가 단기적 시간의 파란 많은 경계선에 오래 머문 것이 찰못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실상 이 방면의 논란은 그다지 홍미를 끌치도 못하고, 더구나 이렇다 하게 놀랄 만한 접도 제시해 주지 못하면서 전전되고 있다. 핵십적 인 논의는 다른 데에 있다. 죽 그것은 〈코뮤니케이션〉과 수학이라는 두 가지 표제 아래, 사회과학 중에서 가장 재로운 실험을 수행한 인접 분야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여기서는 우리의 입장을 옹호해 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적어도 겉보기에는 완전히 역사 밖에 자리잡고 있는 연구시도들을 놓고서 어떤 사회과학적 연구도 역사의 시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논의에서, 우리의 의견을 알고자 하는 독자라면(우리와 의견을 같이하기 위해서든, 혹은 우리의 관접에서 떨어져 나가기 위해서 든),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현재도 진행중인 새로운 논의를통해 재해석되고 재정의된 어휘둘을 하나하나씩 찰 처울질해 보아야 할 것이다. 사건이나 장기지속에 대해서는 물론 더 말할 것이 없다. -<구조〉라는 주제에 관해서도, 비록 〈구조〉라는 단어――그 내용 자체―가 불확실하고 여전히 논쟁의 전원지가 되고 있긴 하지만21》 별다

21) Le Collogue sur les St ructure, vr • Section de !' Ecole Pratique des Hautes E t udes( 타자본 개요, 1958) 참조.

론 언급이 없을 것 이 다. 〈공시 적 syncron ique>, 〈통시 적 d i achron iq ue 〉이라는 단어들을 고집하는 것도 벌 도움이 안된다.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에서 이들 단어의 기능을 가늠하거는 겉 보기보다 쉽지 않지만 어쨌든 그 말뜻은 쉽사리 정의되는 것이다. 정말이지 역사의 언어(내가 생각하는 한)에서 완전한 공시성이란 있기가 어렵다. 시간지속이 일체 보류되어 버란 순간적인 정지란 그 자체로 불합리하며, 같은 아야기가 되겠지만 지나치게 인위적이다. 마찬가지로 계속적으로 시간의 비탈길을 따라 내려오는 일은,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시간의 물줄기를 따라서 내려오는 여러 갈래의 내려움이라는 형태로밖에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이렇게 간단한 되풀이와 경고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러 나 〈무의 식 적 인 역 사 l'hi sto ire i nconscient e>, 〈모델 les modeles>, 사회 수학 les mathematiques sociales 에 관해 서 는 좀더 명 백 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게다가 이 불가피한 논평은 제반 사회과학의 공통의 문제거리로 합치될 것이다. 아니면 머지 않아 그렇게 될 것이 기대되는 바이다.

〈무의식적인 역사〉란 잘 알려져 있듯이 사회적인 것의 무의식적 형태들의 역사이다. 〈인간은 역사를 만들어 나가지만 그는 자신이 그것을 만든다는 사실을 모른다. >22) 마르크스의 이 러한 공석 은 바로 .::L 문제를 제기하기는 했지만 설명하지는 못했다. 새로운 이름 아래 우리에게 다가온 것은 바로 단기적 시간의 문제 , 〈미시적 시간 microtE.mps> 및 사건적인 것의 문제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네의 시간속에 살면서 하루하루 그 시간의 흐름을 포착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가져왔다.수많은 역사학자들이 이미 오랫동안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는 것처럼 이러한 의식적인 역사는 기만적안 것인가? 어제의 언어학자둘은단어에서 모든 것을 끌어낼 수 있다고 믿었다. 역사학 또한 게개의 사건에서 모든 것을 끌어낼 수 있다는 환상을 가졌었다. 우리의 동시대인들 가운데도 모든 것이 얄타회담이나 포츠담회담, 또는디 엔 비 엔 푸 Dien Bien Phu나 싸키 에 트나시 더 -유쎄 프 Sakheit-Sidi -Youssef의사건에서 연유했다거나, 그와는 다론 의미에서 역시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인공위성 스푸드니끄호의 발사 갈은 사건의 결과라고 믿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무의식적인 역사는 이러한 사건의 빛,.

22) Claude Levi-St rauss, Ant hropologie Structurale, pp. 30~I 에서 재 인용.

그것의 섬광의 이면에서 펼쳐진다. 따라서 우리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무의식적인 것이 우리 눈에 익숙한 표면적인 번뚝임보다도 과학적으로 훨싼 더 풍요한 것으로 간주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과학적으로 더 풍부하다는 것은, 발견하기가 보다 쉬운 것은 아니지만,훨씬 간단하고 활용하기가 더 쉽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환한 표충에서 어두운 십층으로 소음에서 경적으로 한 발 내딛는 것은 어렵고도 위험스러운 일이다. 마찬가지로 〈무의식적인 역사〉는 어느 정도 국연적 conj onc t ure 시간에 관련되고 거의 전적으로 구조적 시간에 속하는데,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흔히 훨싼 분명하게 식별된다. 우리들 모두는 각자의 일상생활 너머에 어떤 거대한 집단적 역사를 의식하고 있다. 비록 이 경우에 우리는 그러한 역사의 법칙이나 방향을 안다기보다 그것이 지니는 힘과 강제력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지만 말이다. 이러한 의석은 오늘날에 특히 접접 더 분명해지고 있지만 비단 최근의 것만은 아니다(경제사의 관심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러한 혁명은__사실 이것은 하나의 지적 혁명인데――이렇게 다분히 모호한 현실과 정면으로 부딪쳐서 사건사와 나란히, 십지어는 사건사를 버리고 접접 더 큰 자리를 그 현실에 할애하는 것을 내용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역사학만이 홀로 관여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닌(홀로이기는커녕 역사학은 새로운 사화과학들의 관접을 역사학의 분야에서 추구하고 적응시킨 데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탐사작업에서, 새로운 지식과 연구의 도구가 만들어졌다. 그리하여 어느 정도 완벽하게 다듬어지기도 했고 때로는 아직 수공업적 단계에 머무는 〈모델〉둘이 나타나게 되었다• 모델이란 이것은 저것과 같다거나 이것이 저것을 결정한다는 둥의 등식이나 함수로 굳건하게 연결된 설명체계 내지 가설일 따름이다. 이러저러한 현실이 나타날 때는 이러저러한 다론 현실이 반드시 따론다거나 전자와 후자간에는 항구적이고도 밀접한 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주의깊게 세워진 모델은 따라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원래의 모델이 제위전 근거로서 관찰한 사회환경을 떠나서 동일한 성격의 다른 사회환경도. 연구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러한 설명체계는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기질이나 계산, 목적둥에 따라 무한히 많은 종류가 가능하다. 단순하거 나 복잡한 것 , 질적인 것과 양적인 것,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 기계적인 것 또는

통계적인 것, 기타 동등. 기계적인 모델과 통계적인 모델의 구분은 레비 스트로스에게서 따온 것이다. 기계적 모델은 직접 관찰된 사실, 죽 매우 작은 집단의 사람들에게만 관심을 갖는 작은 차원의 사실(민족학자들이 원시사회를 다울 대의 방법)과 같은 차원의 것 이다. 많은 사람들이 개재되는 거대사회에서는 평균계산이 필요하게 되는데 평균계산은 통계적 모델을 구축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이런 정의 자체가 벌로 중요한 것은 아니며 더구나 이들 정의는 혼히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나로서는 사회과학의 공동 프로그램을 작성하기에 앞서, 오늘날 일부의 연구시도에 의해 지나치게 확대될 위험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모델의 한계와 기능을 규정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믿는다. 모델 또한 시간지속의 개념과 대면시킬 필요성이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왜냐하떤 모델의 의미와 설명적 가치는 내가 보건대 이들 모델이 함축하는 시간지속에 불가피하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해 역사적 모델 ,23) 죽 역사가에 의해 제위전 모델 가운데서 예를 들어보자. 그러한 모델은 거칠고 초보적이며, 대부분 전정 엄격한 과학적 법칙에는 이르지 못했고 혁명적인 수학적 언어에 도달하고자 하는 법이 없는, 어디까지나 역사학 나름의 모델이다.

앞에서 우리는 l4세기에서 18 세기에 걸찬 상업자본주의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그 문제에 대해서는 다론 여러 모델들보다도 마르크스의 저작에서 끌어낼 수 있는 하나의 모델이 있다. 그 모델은 비록 이것과는 유사한 다론 경우에 대해서도 문을 열어 두고 있기는 하지만, 특정 시기의 특정 사회들에게만 완전히 적용될 수 있다.

이 모델과 16세기에서 18 세기까지 이탈리아 도시에서의 경제발전주기에 대한 나의 초기 처작에서 24) 제시한 모델 사이에는 이미 차이가 있다. 이들 도시는 상업적인 도시, 〈산업적〉인 도시에 뒤이어 금융업 전문 도시로 되었는데, 이 마지막 단계는 가장 서서히 발달되어 가장 천천히 쓰러졌다. 사실 후자의 모델은 상업자본주의의 구조보다

23) 실재로 우리가 모방해온 경계학자둘의 〈모델〉에 관해서도 지면을 할애하는 것 여시 구미가 당기는 일일 것이다.

24) La Mediterranee et le monde mediterraneen a l' epoque de PhiliPPe 11, Pari s, Armand Colin, 1949 p. 264 이 하.

훨싼 폭이 좁지만, 전자보나 훨 씬 쉽게 시간과 공간 속에서 확대컬 수 있다. 이 모델은 여러가지 공동상황에서 끊임없이 일어날 수 있는 현상(어 떤 사람은 이물 동대적 구조라고 할 텐데, 사실 역사학상의 모든 구조는 적어도 기본적으로는 동태적인 것이다)을 기록한다. 16 세기 이전과. 16세기 그리고 그 이후· 동안의 귀금속의 역사에 대해서 나와 스푸너 Frank Spooner 가 기 목한 것 도 아마 이 모델과 마찬가지 의 것 이 될 것이다 .25l 죽 금·은·구리 그리고 매우 민활한 귀금속 대체물안 선용――이들 모두도 제각기의 역할을 해내었다. 앞서 나타난 〈전략〉은 그다음의 〈전략〉을 가늠케 한다. 이 모델을 우리의 관찰을 위해 선정한 그 득권적이고 격동스러웠던 16 세기의 바깥으로 옮긴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그. 나품의 모델인 낡은 수량적 화페 이론을 오늘날의 저발전국을 대상으로 하여 입증하고자 노력 하고 있지 않은가 ? 26)

그러나 이 모든 모델의 시간지속도 젊은 미국의 사회사가인 다이아몬드 Sigmund Diamond 가 상정 한 모델 27) 에 비 교하면 훨싼 짧다. 다이 아몬드는 모7J: Pi erpont Morgan 둥과 같이 현대 미 국의 거 대 한 금융가인 지배계급의 이중 언어, 죽 계급내의 언어와 대의적 언어에 충격을 받았다(후자는 실은 여론에 대한 변명인데, 금융업자의 성공을 〈자수성가〉한 사람의 전형으로, 그리고 국가의 번영을 위해 필요한 조건으로 내세우는 것이다). 이러한 이중인어에 강한 인상을 받은 다이아몬드는 모돈 지배계급은 자신의 권위가 위축되고 특권이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으레 그와 같은 반응을 보인다는 결론을 내렸다. 자신들의 입장을 은폐하기 위해 그들은 자신의 운명을 런던 금융가나 국가의 운명으로, 개인적인 이익을 공적인 이익과 혼동해 버란다는 것이다. 다이아몬드는 마찬가지 방법으로 영국의 왕조나 로마제국 둥의 왕조나제국 이념의 발전도 설명해 낼 것이다. 이렇게 명료하게 설정된 모델은 분명히 수세기나 동용될 수 있다. 그 모델은 특정의 사회적 조건을 전제로 하지만 그런 조건은 역사가 얼마든지 공급해 주고 있는 조건들인 것이

25) Fernand Braudel et Frank Spooner, Les metaux monet ai res et l' economie du XVI• si ecle. Rapports an Congres i nternational de Rome, 1955, Vol. N, pp. 233~64.

26) Alexandre Chabert, Structure economique et t heorie monetaire, Pari s, Armand Colin, Puhl. du Cent re d' Etudes economiques, 1956.

27) Sigmund Di amond, The Reputation of t he American Busi nessman, Cambridge(Massac'i.usetts), 1955.

다. 따라서 이 모델은 앞에서 들었던 모델들보다 훨싼 창기적인 시간 지속에 값하지만, 동시에 보다 정확하고 엄밀한 현실만울 문제삼는다.

이런 종류의 모델은 수학자들의 표현대로 국한에 이르면 사회수학자들이 즐겨 쓰는 거의 비시간적인 모델과 가까워진다. 거의 비시간적이라는 것은, 말을 바꾸면, 실제로는 아주 장기적인 지속의 어둡고 제대로 개척되지 않은 길을 멀리 돌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설명은 과학적 모델과 이론에 대한 불충분한 입문에 불과하다. 더구나 거기에서 역사학자가 전위적인 지위를 차지한다는 것온 어림도 없다. 역사학자의 모델은 거의가 엉성한 설명들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다론 분야의 우리 동료들은 이 방면의 연구에서 훨씬 야십적이고 진취적이며, 정보, 커뮤니케이션 및 질적 수학의 재이론과 언어를 결합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그들의 장접은-그것은 물론 대단한 장접인데――수학이라는 미묘한 언어를 그들의 분야에 흡수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조금만 방십하면 우리의 통제믈 벗어나 도대체 어디까지 가버렸는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버리게 될 위험율 무룹쓰는 일이다. 정보이론, 커뮤니케이션 이론, 질적 수학 둥은 모두 사회수학이라는 한층 내포가 큰 말에 충분히 포섭된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우리의 둥불을 밝혀 볼 필요가 있겠다.

사회수학 les mathematiques soc iales28) 이란 적어도 세 가지 언어로 이루어진 것이며, 또한 그 제 가지가 뒤섞여 그 이상의 다론 어떤 것이 될 여지도 있는 것이다. 수학자들의 창의성은 벽에 부딪치지 않았다. 어쨌든 〈하나의〉 수학, 〈유일한〉 수학이 있는 것은 아니다(있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주장에 불과하다). 〈대수- 기하라고 말하지 말고하나의 대수, 하나의 기하라고 해야 한다〉(Th. Gu i lbaud) 는 말은 우리의 문제만 아니라 수학자들 자신의 문제도 단순화시켜 주지 않는다. 세 가지 언어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필연적 사실의 언어(하나가 주어지면 다른 하나가 따른다)로서 이것은· 전동적 수학의 영 역이다. 둘째는· 우연적 사실의 언어 로서 빠스깥에 서 연원하는, 확률적 계 산의 영 역 이다. 마지막으로 조건적 사실의 언어가 있는데 이것은 결정된 것도 아

28) 록히 Claude Levi -St rauss, Bulletin i nt ernational des sci ences soci ales, UNESCO, 6 권, 4호와 전반적 으로는 Les Mat lz~matques et les sci ences sociales 라는 이몸이 불은 이 흥미있는 잡지 전부를 보라.

니고 우연한 것도 아니떤서 게임의 규칙에 걷부되는 어떤 구속 상대에 있다. 그 규칙은 폰 노이만 Von Neumann 과 모겐스탄 Mor g ens t ern29) 의 게임 전략의 軸인데 그 게임들은 창시자들의 최초의 대담한 원칙에서 부터 더욱 발전해 간 의기양양한 게임들이다. 게임 전략은 집합론, 群論및 확률론까지 활용함으로써 〈질적〉 수학으로의 길을 열어 주었다. 그때부터는 관찰에서 수학 공식에 이르기 위해 측정과 오렌 통계학적 계산이라는 고생스런 길을 경유할 필요가 없어졌다. 사회현실의 관찰에서 곧바로 수학공식으로, 말하자면 계산 7} 로 직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모든 것을 한번에 삼키지도 않고 분쇄하지도 않는 이 기계에 맞는 일감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한편 정보과학은 진짜 기계들과 그기계들의 작동 규칙에 따라 발달하고 기반을 다지게 됨으로써 가장물질적 의미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을 중전하게 되었다. 필자는 결코그 난해한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다. 멀찌감치서이지만 하여돈나도 뒤쫓 아가 보았던, 번역기계 제조에 대한 연구는 다론 사람에게나 나에게나 착잡한 생각을 일게 했다. 어쨌거나 두 가지 사실이 남는다. 하·나는 그러한 기계, 그러한 수학적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사회적인 것의 탐구가 가격 • 봉급 • 출생률의 변동곡선 동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수학이 아난 사회수학을 위해 준비되어야 한다는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수학적 메카니즘이 종종 우리의 아해를 벗어나고 있기는 해도, 그것이 이용하고 짜맞추고 잘라내도록 사회적 사실을 준비하는 작업은 우리 눈에도 역력히 보인다. 예비조치는 지금까지 거의 언제나 마찬가지였다. 죽 먼저 〈원시적〉 부족이나 인구학적으로 〈고립된 집단〉과 같이 그 안에서 거의 모든 것을 검토하고 직접 감촉할 수 있는 제한된 관찰대상을 선정한 뒤, 이처럼 식벌된 요소들 사이의모든 관계, 모든 가능한 게입을 정립하는 일이다. 업격하게 결정된 이 관계는 둥식을 만들어 주고, 수학은 바로 그러한 등식에서 가능한 모든 결론과 연장을 끌어내어 마침내는 모든 것을 요약하는, 아니 고려 하는 하나의 〈모델〉울 세우는 것 이 다.

29) The Theory of Games and Econom i c Behav ior, Pri nce t on, 1944. 또한 Fouras ti e, Critque, 동권 51호 (1951 년 10 월호)에 실린 Jean Fouras tie의 뮈 아난 요약문을 보라.

분명히 이 분야에 수천 가지 연구 가능성이 열려 있다. 그러나 길게 이야기를 끄느니 예를 한 가지 드는 편이 낫겠다. 우리는 훌륭한 안내자로서 끌로드 레비-스트로스를 알고 있으니 그를 따라가 보자. 그는 이 분야 중의 한 부문인 이른바 〈커뮤니케이션〉 과학으로 우리률 안내할 것 이 다 .30)

〈어떤 사회에서나 커뮤니케이션은 적어도 세 가지 수준에서 작용한다. 죽 여자의 교환, 재화와 용역의 교환, 그리고 메세지의 전달이다〉31l 라고 레바-스트로스는 말한다. 그것은 각각의 수준에서의 서로 다론 〈언어〉이지만, 모두 언어라는 접을 인정하기로 하자. 만일 그. 접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그것들을 언어들로서, 아니 십지어는 하나의 언어로 다룰 수 있으며, 이들을 직접 또는 간접으로 언어학의, 좀더 정확히 말해 음운학 Phonolo gie 의 괄목할 만한 발전과 연결지울 권리가 있지 않을까? 음운학을 두고 레비-스트로스는 그것이 〈예컨대 자연과학에서 핵물리학이 맡았던 것과 같은 혁신적 역할을 사회과학에서 수행할 것임에 들림 없다〉고 말한다 .32) 그것은 엄청난 말이지만 때로는 엄청난 말을 할 필요도 있다. 사전이라는 함정에 빠져 있던 역사학처럼 단어라는 함정(단어와 그 대상과의 관계, 단어의 역사적 변화 등)에 빠진 언어학도 음운학적 혁명에 의해 그 함정에서 빠져나왔다. 단어의 이 면에서 언어학은 음소 phoneme 라는 소리의 체계에 집착하여 , 이제 단어의 의미에는 무관십하며 그 대신 단어의 위치와 그 위치에 따라 나는 소리 및 이들 소리의 집합, 음소저변의 구조, 그 밖에 언어 밑에 깔란 〈무의식적인〉 현실들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세계의 모든 언어에 나타나는 수십 개의 음소를 바탕으로 새로운 수학적 연구가 시작되었고 그렇게 됨으로써 언어학, 혹은 적어도 언어학의 일부는 최근 20 년 사이에 사회과학의 세계에서 벗어나 〈정밀 과학의 고개〉뮬 넘어서게 되었다.

언어의 의미를 찬족관계 • 신화 • 儀式• 경제적 교환 둥의 초보적인 구조에까지 확장하는 것은, 힘들지만 넘어볼 만한 고갯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원시사회건 아니건 근찬혼, 즉 핵가족내에

30) 위 에 관한 이 하의 모든 인용문은 그의 최 근 작품 L' An tltroPolo gie s t ruc t urale 에서 따온 것입.

31) 갈은 책, p.326.

32) 같은 책, p.39.

서의 혼인이 금지되어 있지 않은 사회란 없다는 집에서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에 필수적인, 이 최초의 언어인 혼인상의 교환을 다루면서 그러한 쾌거를 달성했다. 혼인상의 교환도 따라서 하나의 언어이다. 이러한 언어의 저번에서 그는 말하자면 음소에 상응하는 기본 원~를 찾았다. 즉 찬척관계의 〈원자〉인 그 원소는 1949년의 그의 논문에서 33) 남자와 그 배우자, 그 자녀 그리고 자녀의 의삼촌 사이의 관계라는 가장 단순한 표현으로 제시됐던 것이다. 이 사각형의 원소와 수많은 원시사회에서 알려져 있는 모든 혼인제도에 입각하여 수학자는 있을 수 있는 모든 조합과 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수학자 앙드레 배일 Andre Weill 의 도움을 얻어 레비-스트로스는 인류학자의 관찰울 수학적 용어로 바꾸는 데 성공하였다. 그렇게 해서 나온 모델은 주어전 체제의 타당성과 안정성을 입증하고 그것이 뜻하고 있는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연구의 진행방법은 분명하다. 즉 무의식적이거나 거의 의삭되지 않는 元素帶에 도달하기 위해 표면관찰을 뛰어넘은 뒤, 다음에는 그러한 사실을 찰디찬 요소, 섬세하고 동일한 부문으로 축소하여 그 사이의 관계를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언어학자가 음소의 하위단계에서 구조적 법칙을 발견하고 물리학자가 분자의 하위단계, 죽 원자의 수준에서 구조적 법칙을 발견해내었듯이, 우리는 바로 이 〈미시사회학적 microsociologique> 단계에서(그것이 특정한 종류의 〈미시사회학〉임을 필자는 명시할 필요를 느끼지만) 가장 일반적인 구조의법칙을 찾으려 하는 것이다.〉34) 물론 이 작업은 여러 다론 방향에서도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레비-스트로스가 이번에는 신화, 십지어 요리 연구를 하는 것을 보는 것은 우리에게 더없이 많은 것을 일러준다. 그는 신화를 일련의 기본제포인 神話素mythemes 로 나누고, 요리책의 언어를(약간은 장난기를 섞어서지만) 味覺素gustemes로나눈다. 그때마다레비-스트로스는가장깊은, 가장무의식적인충울 찾아내려 한다. 우리는 말하는 동안 우리가 하는 말의 음소에는 유념치 않으며, 식탁에 앉았을 때도 아주 예의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미각소(혹시 그런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러나

33) Les St ruct ures elementai res de la parent e, Pari s, P. U. F., 1949. AntliroPologie struct urale, pp . 47~62를 합께 참조.

34) Ant hropologie .. ,, pp,42~3,

그것들간의 미됴하고 정확한 관계의 상호작용이 매번 냐를 따라다니고 있는 것이다. 이 단순하고 신비로운 관계 운 모든 언어의 저년에서 포착하여 일종의 모르스 부호로, 다시 말해 수학의 보편적 언어로 바꿔 놓는것이 사회학적 연구의 최종임무가될 것인가? 그것이 새로운 사회수학의 야십이다. 그렇지만 여기에야말로 또 하나의 역사학이 개재한다고 나는 정색하며 감히 말하고자 한다.

시간지속의 문제로 다시 돌아가 보자. 나는 모델이 다양한 시간지속울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델은, 그 모델이 기록하고 있는 사실의 시간지속내에서만 타당성을 갖는다. 그런데 사회과학자들에게는 이러한 시간이 철대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생활의 십총구조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이들 구조가 파멸되는 지점들, 죽 서로 상충되는 온갖 압력 때문에 서서히 또는 급속히 이들이 훼손되어가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때때로 모델을 배에 비유한 바 있다. 일단 배가 건조되면 그 배를 바다에 내보내 물에 드는지를 확인해 보고, 다음에는 내 마음대로 시간의 바다를 오르내리게 하는 것인데, 나의 관십사는 배가 더 이상 뜨지 않고 가라앉는 때이다. 이렇게 볼 때 귀금속들의 역할에 대한 스푸너 Sp ooner 와 나의 설명은 15세기 이전에는 벌로 타당하지 않다. 그 이전 시기의 귀금속간의 경쟁은 후대의 관찰과는 전혀 비견할 수 없도록 과격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 원인을 밝혀 보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일이다. 마찬가지로 이제 하류로 내려가면서는, 어째서 우리의 극히 간단한 배의 항해가 접접 어려워지고 드디어 18 세기에 와서 신용의 과다한 중가와 부딪치면 불가능해지는가를 규명해야 한다. 내 생각에 연구란 사회적 사실에서 모델로, 그러고 나서 모델에서 다시 사회적 사실로 꿇임없이 왕래하면서, 계속하여 재조정되고 끈질기게 재출발되는 항해를 의미한다. 그럼으로써 모델은 구조에 대한 설명의 시도가 되고, 주어전 구조의 견고성과 생명력 자체몰 입중할 수 있는 동제와 비교의 도구가 된다. 만일 내가 현재의 사실에 근거하여 하나의 모델을 만든다면 나는 그 모델을 즉각 현실에 되돌려놓고, 가능하다면 그러한 현재가 탄생된 지접까지 시간을 타고 거슬러 올라가개 하고 싶다. 그런 다음 나는 이에 수반되는 다론 사회적 사실들의 움직임에 따라, 그것이 다음번 붕괴될 순간까지 그 모델의 생명을 계

산해 볼 것이다. 내가 그 모델을 비교의 한 요소로 쓰면서 이 모델로 인하여 새롭게 조명될 다론 현실들을 찾아 시간과 공간 속을 돌아다니기까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질적 수학자둘의 모델은, 적어도 지금까지 우리에게 제시된 상태로 보건대 ,35) 그러한 항해를 잘 해내지 못하리라고 내가 생각한다면 들린 것일까? 무엇보다도 그 모델들은 무수히 많은 시간의 경로 가운데 단 하나의 길, 죽 수많은 사전과 국단 파열들로부터 면제된 장기지속__그것도 국도로 장기적인 지속――의 길만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한번 레비-스트로스에게로 되돌아가 보고자 한다. 그것은 내가 보기에는 그의 견해가 이 분야에서 가장 현명하고 명백하며 모든 것이 마땅히 그곳에서 출발하고 다시 되돌아가야 하는 사회적 경험에 가장 튼튼히 뿌리박고 있기 때문이다 . 그가 관심을 두는 문제는 번번히 매우 느리거나 거의 영구적인 현상임울 주목하자. 모든 찬족제도는 오래 지속되게 마련인데, 그것은 일정 비울의 혈족관계를 넘어서면 인간생활은 불가능하게 되므로 소수 집단의 사람들이 생촌하기 위해서는 집단 밖의 세계에 문호를 개방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친혼 금기가 장기지속적 사실이 되는 것이다. 서서히 발전하는 신화 역시 극히 장기적인 구조에 상응한다. 굳이 가장 오래된 것울 고르느라고 힘들이지 않고서도 우리는 오이디푸스 신화를 여러 형태로 모아볼수 있다. 이때 문제는다양한 여러 변형들을 분류합으로 써 이들을 지배하는 어떤 십충적 의미를 그 저번에서 밝혀내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동료는 하나의 신화에 관십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컨대 〈마키아벨리즘〉이 주는 여러 이미지와 연속되는 여러 해석들에 관십이 있으며, 이 다분히 직선적이면서도 광범위하게 퍼진 주장 속에 있는 기본 요소를 그 주장이 실질적으로 대두한 16 세기 중반에서 시작하여 연구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는 분열과 전복을 얼마든지 보게 될 것이고, 십지어는 마키아벨리즘의 구조 자체에서도 그것을 볼 것이다. 왜냐하면 마키아벨리즘은 신화와 같은 연극적이고도 거의 영구한 견고함을 가진 체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역사의 온갖 사건과 반응, 그 무수히 다양하고 불순한 기후에 민갑하다. 한마디로 말

35) 나는 게 임 의 전 략에 따라 그냥 〈질져 수학 ma t hematique qua lita ti ves〉이 라고 부론다. 고건져 모델이나 경제학자둘에 의해 이용된 모델에 대해서는 다은 종류의 논의가 요구되는 바이다.

해서 그 체계는 고요하고 단조로운 장기지속의 길에 서 있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수학화가 가능한 구조의 연구에서 레비-스트로스가 추천하는 과정은 단지 미시사회학적인 수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한히 작은 것과 국히 장기적인 지속과의 교차접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질적 수학의 혁명가들은 오직 극단적인 장기지속의 길만을 따라가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혹십한 두쟁울 하고 난 후에 우리가 찾아낸 진실이란 이른바 영원한 인간의 진실에서 너무나도 별로 새로울 바 없는 것이 될 것이다. 뻔한 진실이요 혼한 금연 정도라고 어떤 사람들은 실망하여 말할 것이다. 이에 맞서 우리는 기본적인 진실이요 모든 사회생활의 토대 자체를 새로운 빛으로 밝혀줄 수 있는 진실둘이타고 대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논쟁의 전부는 아니다.

사실 나는 이러한 시도, 혹은 이와 비슷한 시도들이 극단적인 장기지속울 떠나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질적 사회수학에 우리가 공급해 주는 것은 숫자가 아니라 연관관계이다. 즉 그것은 수학 기호로 바뀌기 전에 상당히 엄밀하게 규정되어야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것들이 대변하는 사회 현실에 더 이상 개의치 않고서 수학기호에 근거해서 그 기호들이 여는 모든 수학의 가능성을 연구할 수 있다. 따라서 정성수학의 결론이 갖는 가치는 애초의 관찰이 지니는 가치 및 관찰된 현실에서 핵십적 요소몰 분리해 내고 그 현실 속의 제반관계를 규정하는 선택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제 레비-스트로스가 기계적이라고 부르는 모델을 사회수학자들이 선호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기계적 모델은 말하자면 개개인이 직접 관찰될 수 있고, 대단히 동질적인 사회생활임으로 해서 간단하고 구체적이며 거의 변화하지 않는 인간관계를 분명하게 규정할 수 있는 그러한 한정된 집단에 근거하여 이루어전 모델이다.

반면 이른바 동계적 모델은 평군치, 다시 말해 전동 수학으로서만 관찰할 수 있는 거대하고 복잡한 사회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일단 평균치를 얻어낸 다음, 만일 연구자가 개인이 아닌 집단의 차원에서 앞서 말한 질적 수학의 세부작업에 필요한 처변의 관계들을 정립할 수 있다면, 이때부터 사회수학의 방법을 다시 이용하지 말라는 법은 아무 데도 없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아직은 이런종류의 시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실험을 시작하는 마당이다. 아직까지는

심리학 • 경제학 • 인류학 어디에서돈 모든 실험이 레비-스트로스에 관해 내가 지적한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질적 사회수학은 현대사회와 이 사회의 복잡다단한 문제들, 그 서로 다론 발전의 속도 등에 부딪쳤을 때 비로소 그 전가가 판명될 것이다. 나는 그러한 모험이 사회수학자들 중의 누군가를 끌어당길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또한 그러한 모임아 지금까지 새로운 수학의 방법에 불가피한 수정을 촉진시킬 것이타고 장담할 수 있다. 여기서는 새로운 수학이 내가 〈지나치게 장기적인 지속〉이라고 부르고자 하는 그러한 시간에만 국한되어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수학은 삶의 다양한 모습, 그. 모든 움직임과 모든 시간지속, 모든 단절, 모든 변형들을 재발견해야만 하는 것이다.

4 역사학자의 시간과 사회학자의 시간

비시간적 사회수학의 영역을 살펴보던 나는 어느덧 다시 시간 및 시간지속으로 되돌아와 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역사학자인 나는 사회학자들이 시간지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놀라웁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학자들의 시간이지 우리 역사학자의 시간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학자들에게 시간은 그리 절박하지도 않고 구체적이지 않으며, 결코 그들의 문제나 사고의 핵십에 있는 것이 아니다.

솔직히 역사학자는 결코 역사의 시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흙덩이가 정원사의 삽 끝에 달라붙듯이, 역사의 시간은 역사학자의 사념에 달라붙는다. 물론 역사학자는 시간에서 벗어나기를 꿈꿀 수 있다. 1940년에 우리가 겪은 정신적 고동도 한몫을 하여, 가스똥 루쁘넬36) Gaston Roupnel 은 이 문제 에 대 해 전지 한 역 사학자라면 누구나 고동스러워할 말들을(즉 시간-역주) 썼었다. 그것은 역시 뛰어난 역사학자인 뿔 타꽁브 Paul Lacombe 의 다음과 같은 오래된 성찰과 같은 것이다.〈시간은 그 자체 객관적으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시간이란 시간에 대한 우리의 관념 이의에 아무것도 아니다.〉37) ••• … 그러나 이 말이 진정으로 탈출구를 제공해 주는가 ? 나 자신 암울했던 독일군의 접 령

36) Hi st oi re et destin, Pari s, Bernard Grasset, 1943 의 여기처기. 무히 p.169.

37) Revue de synt hese hi st orique, 1900. p.32.

간기에는 그어려운 시절 (194c~45) 들의 연대기에서 벗어나려고 무척이나 에를 썼다. 사전 및 사건이 일어난 시간 들을 거부한다는 것은 무풍지대, 안전지대에 비켜서서 그것들울 보다 멀리서 바라보고, 보다 낫게 평가하며, 그리하여 전적으로 맹신하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단기적 시간에서부터 좀 덜 단기적인 시간으로, 그러고 나서 아주 장기적안 시간으로(이 마지막 것은, 그것이 존재한다면 확실히 賢者의 시간일 것임이 둘림없을 터인테) 옮아가는 것, 그래서 그· 종국에 도달하면 멈춰서서 주위의 모든 것을 다시금 새롭게 고찰하고 재구성하는 것, 모든 것이 자신울 중심으로 돌고 있음울 보는 것――이것은 역사학자라면 누구나 유혹을 느껴봄직한 작업이다.

그러나 이 계속적인 도피는 역전될 수 없거니와 또한 지구의 自轉의 리듬대로 흐르기 때문에 불가항력적인 세계의 시간, 역사의 시간 밖으로 역사가를 결정적으로 밀어낼 수 없다. 사실 우리가 구분하는 시간지속들이란 원래 상호 불가분의 것이어서, 우리들의 정신의 창조물은 지속 그 자체라기보다는 이 지속을 세분화한 편란들이다. 이렇게 쪼개졌던 단편들이 우리들의 연구작업의 종료시에 통합되는 것이다. 장기지속 • 국면 • 사건은 그 모두가 동일한 척도로 측정되기 때문에 벌 어려움 없이 서로 맞물린다. 마찬가지 이치로 이들 시간 중의 하나만이라도 상상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은 그 전부를 이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시간 개념의 내면적이고 주관적인 측면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들인 철학자들은 결코 이러한 역사적 시간, 구체적이면서 보편적인 시간-이를테면 온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그가 상륙하는 나라가 어디이돈, 그 나라가 표방하는 정치체제나 사회질서가 무엇이돈 동일한 제약을 부과하는, 항상 같은 모습의 여행자로서, 에론스트 라브루쓰가38) 그의 책 서두에서 묘파하고 있는 국면적 시간과 같은 시간――·의 중압을 느끼지 못한다.

역사학자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이 시간으로 시작되고 시간으로 끝나는데 그 시간은 웃어 넘기고 말기 쉬운 수학적이고 造物主적인 시간, 마치 인간에 의재하는 것처럼 인간을 움직이고 구속하며, 아기자기한 색조를 지닌 그들의 개별적 시간들을 앗아가 버리는 시간이다. 죽 그것은 현실의 불가항력적인 시간인 것이다.

38) Ernest Labrousse, La C,.i se de l' econom i e f rancai se a la ei lle de la vrancai se f ranca i se, Pari s, P. U. F. 1944, Int roduc tion.

사회학자들은 물론 아탄 너무나도 단순한 개념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그들은 가스똥 바슐라르 Gast on Bachelard 가 제 안하는 유의 『시간지속의 변증법 Di alec tique de la duree』39) 에 훨싼 더 찬숙하다. 사회적 시간 t emps social 이란 고찰대상인 사회 현실의 하나의 특수한 한 차원일 분이다. 시간은 마치 개인에게 내재할 수 있는 것처럼 사회적 현실에도 내재하며, 그 현실을 꾸미는 갖가지 기호들 가운데 하나로, 그- 현실을 하나의 독수한 존재로 부각시키는 여러 특칭들 가운데 하나일 따름이다. 사회학자들은 그들의 마음대로 차단시키기도 하고 동결시 키기도 하며 다시 작동시킬 수도 있는 이 만만한 시간에 의해 성가심을 당하는 일이 없다. 거듭 말하지만 역사학의 시간이라면 〈共時性〉과 〈通時性〉의 민첩한 이중놀음에 어색함을 느낄 것이다. 어떤 부동의 이미지를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 아무 때나 그 움직임을 멈출 수 있는 메카니즘으로 삶을 상상하는 것을 역사학의 시간은 허용하기 힘든 것이다.

이 불협화음은 얼핏 보기보다는 훨싼 십각한 것이어서 사회학자들의 시간은 역사학자들의 시간이 될 수가 없다. 역사학의 십총구조는 사회학자의 시간을 거부한다. 우리들 역사학자의 시간은 경제학자들의 시간처럼 일종의 척도이다. 어떤 사회학자가 우리들에게 하나의 구조는 새롭게 재구성되기 위하여 끊임없이 해체된다고 말할 때, 우리는 역사적 관찰에 의해서도 확인되는 이러한 설명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습관적인 요구에 따라, 긍정적인 것이돈 부정적인 것이돈 그런 운동들의 명확한 지속기간을 알고 싶어할 것이다. 경제적 주기나 물질적 생활의 浮沈들은 측정된다. 마찬가지로 사회의 어떤 구조적 위기도 시간 속에서 시간을 동하여 그 정확한 위치가 주어져야 하고, 그 자체로서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와 더불어 작용하는 여러 구조들의 운동과 관련시켜서 정확하게 그 좌표가 설정되어야 한다. 역사학자의 열정적 관십울 사로잡는 것은 이 운동들이 어떻게 서로 만나고 서로 작용하고 어떻게 파괴되는가 하는 접이다. 죽 이들 모든 현상들의 일반적인 척도인 역사학자의 일률적인 시간에 관해 기록될 수 있는 모든 것이지, 이들 현상들의 각각에 개별적으로 특유한 척도인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시간에 관해 기록되는 것들은 아니다.

39) Di alectique de la duree, Pari s, P. U. F. 제 2 판, 1950.

옳돈 그르돈간에 역사학자라면, 우리의 입장에 매우 우호적인 조 르쥬귀르비치의 사회학에 대해서조차 이렇게 대 립적으로 성찰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엔가 귀르비치를 가리켜 〈사회학을 역사학에 다 결박시 키는〉 장본인으로 규정짓는 철학자도 40) 있었다 . 그렌데 그러한 귀르바치에 대해서조차 역사학자는 그의 시간지 속들과 시간성들을 인정해 주지 못한다. 귀르비치에 의해 구상된 거대 한 사회적 체계(모델이라고 할까? )는 다 섯 가지 기본구조에 따라서 조직되어 있다 .4 1l 죽 底層p al i ers en p ro fo nd eur, 結社素so c i abilites, 사회 집 단 grou p es so c i aux,全臨社會soci e t es globales 및 시 간 ]es t emps 이 그것 인 데 , 그 마지막 발판인 시간성의 발판은 가장 새로우며, 또한 최종적인 형성물이고 마치 畵龍믿瞬 같은 것이다.

귀르비 치 의 시 간성 t emp oralites 은 다원적 이 다. 그가 구분하는 시 간성의 전계열을 보면, 장기지속적――緩步的 시간, 눈속임 같은 혹은덧없는 듯한 시간, 불규칙적 博動의 시간, 주기적 또는 현재 진행중인시간, 지 체된 시간, 지 체와 추월 사이룰 숨바꼭질하는 시간, :i. 자체를 추월하는 시간, 폭발적 시간 42) …… 둥둥이 있다. 어 떻게 역 사학자가이물 납득할 수 있겠는가 ? 그러한 色階를 가지고서는 역사학자에게 없어서는 안 될 단일한 흰색을 합성해내는 일이 도저히 불가능`할 것이다. 그는 또한 이 카멜레온처럼 변화무쌍한 시간이 실은 이미 전에 정립된 범주에 그저 색을 덧칠하거나 손질을 더해서 여전히 그것을 표시하고 있을 분임을 재빨리 알아차린다. 귀르비치가 설정한 도식에서 시간은 마지 막 주자로 들어와서 다론 모든 범주들과 자연스럽게동거한다. 그것은 각각 底層• 結社素• 집단 • 전체사회라는 그 소재지의차원과 그것들의 요구의 차원에 따라 자리하고 있다. 이는 방정식 자체는 바꾸지 않고 그 방정식의 미지수에다 때에 따라 다몬 숫 ·자를 대입시키는 것과 같다. 각각의 사회적 현실은 마치 달팽이 껍잘처럼 그의 독자적인 시간 또는 시간의 동급둘을 배 출해 낸다. 그렇지

40) Gill es Grang er, E 먀 nemen t e t St ruct ure dans /es sc i ence s de l' homm e, Cahi ers de I' Ins titu t de Sc i ence economique appliquee, • Se ri e M, 1 호, pp .41~2.

41) 너무 논쟁져인 논문이긴 하지만 필자의 "Geor ges Gurvitch et la d i scontinuite du Soc i al," Anna/es E.S.C., 1953, 3호. pp .347~61 참조.

42) Georges Gurvitch, D et ermi n i smes soci aux et Li ber t e, huma i ne, Pari s. P.U,F., 1955, pp.JS~40 및 여기저기 참조.

만 역사학도인 우리들이 거기서 얻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이 이 상도시의 웅장한 건축물은 부동의 것으로 남아 있고 거기에서 역사는 찾아볼 수 없다. 현실의 시간, 역사적 시간은 바람의 神아이올로스의 집에 있는 바람과 같이 羊皮속에 단단히 갇혀 있다. 사회학자들이 궁극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적대감을 품고 있는 것은 역사학 자체가 아니라 역사학의 시간이다. 사람들이 아무리 잘 정리정돈하고 변화시키고자 하더라도 여전히 거칠고 야생의 것으로 남아 있는 그 현실, 역사학자라면 결코 회피하지 못하는 그 구속으로서의 시간인 것이다. 사회학자들은 거의 언제나 그것에서 도피해 간다• 즉 그들은 마치 시간을 초월해서 정지되어 있는 것처럼 항상 현재적인 한순간으로나, 아니면 어떤 시대에도 속하지 않는 반복적 현상으로 도피해 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가장 협소한 범위의 사건, 아니면 국단적인 장기지속 안에 그들을 가두어 버리는 대조적인 정신적 태도로의 도피인 것이다. 그러한 도피는 정당한 것일까? 역사학자와 사회학자간의, 십지어는 서로 다론 견해를 가전 역사학자들간의 논쟁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무척 성글고 또 역사학자의 관례대로 여러 가지 사례에 근거하고 있는 이 논문이 사회학자나 다른 인간과학자들의 동조를 얻을 수 있을치 알 수 없다. 아마도 그것은 어려운 일일 게다. 어떻든 결론삼아 이제까지 거듭 설명해 온 이 글의 논지를 또 한번 되풀이하는 것은 그다지 쓸모없는 일이다. 만일 역사학이란 천성적으로 시간지속과 그 시간지속을 구성하는 모든 움직임에 각벌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소명을 받았다면, 이러한 일군의 시간지속들 가운데 장기지속이야말로 사회과학 공동의 관찰과 성찰을 위해 가장 쓸모 있는 지침이라고 생각된다. 우리의 인접분야에서 일하는 동료들이 그들의 논리전개의 어느 단계에서 그들의 주장이나 연구를 이 장기지속의 축에 갖다 대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지나찬 요구일까?

모든 역사학자가 나의 의견에 동조하지는 않겠지만, 역사학자들에게는 이런 작업이 진로를 반대방향으로 바꾸는 격이 될 것이다. 그들온 본능적으로 단기적 역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신성불가침시 되는 대학의 강좌도 이런 경향을 조장하고 있다. 싸르트르가 최근의 논문들에서 마르크시즘 내의 지나치게 단순하고 육중한 것

에 항의하면서 傳記및 사전적인 것의 풍성한 현실을 내세워 그러한 항의를 제기할 대, 그 역시 기성 역사가들의 관접울 한충 강화해 주었다.43) 플로베르 Flaubert 를 부르조아지의 자리에 앉히고 떤또례또T i nt oretto 를 쁘띠 부르조아지 에 놓는다고 해 서 도돈 것 을 다 말한 것은 아니다. 물론 나도 그 접에는 동감이다. 그러나 플로베르이건 발레리 Valery이전 지롱드당의 해의정책이전 간에 구체적인 사례연구는 매번 짜르뜨르로하여금 심층적이고도구조적인 맥락으로 되돌아가게 한다. 이 러한 연구는 역사의 표층에서 심층으로 나아가며 나 자신의 본래의 관십과 합쳐진다. 만일 모래시계를 두 방향으로 다같이 뒤집어 놓는다면 죽 사건에서 구조로, 그리고 다시 구조와 모델들로부터 사건으로 진행한다면 그러한 관십의 합치는 더욱 완벽해질 것이다.

마르크시즘이란 일군의 모델들이다. 싸르트르는 개일성과 독자성의 이름으로 마르크시즘 모델의 경직성 ·도식성 ·불충분성에 항의한다. 나도 싸르트르와 같이 항의하겠지만(어느 정도 뉘앙스는 다를지라도) 모델 자체보다 사람들이 그 모델을 이용해 왔고 또 그런 석으로 이용할 권위를 부여받았다고 믿어온 것에 대하여 반대를 제기할 것이다. 마르크스의 천재성, 죽 그의 광범위한 능력의 비밀은 그가 처음으로 진정한 사회적 모델들을 만들었다는 점과 이를 역사적인 장기지속에 입각하여 만들었다는 접에 있다. 사람들은 이들 모델에 모든 장소와 모돈 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선험적이고 자동적인 설명 내지 법칙으로 서의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자신들의 단순함 속에 그 모델을 고정시켜• 버렸다. 그 모델들을 변화무쌍한 시간의 강에 가져감으로써 튼튼하고 잘 짜여진 그 조직이 명백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다시 나타나게 될 것인데, 단지 그때 그때 뉘앙스를 조금씩 달리하고, :::L.. 자체가 다론 규칙, 따라서 다른 모델에 의해 규정되는 다론 구조듈의 존재에 의해 때로는 흐려졌다가 때로는 더욱 뚜렷이 돋보이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지난 세기의 가장 힘 있는 사회분석의 창조력울 제한시켜 버렸다. 그 분석은 장기지속 안에서만 활력과 젊음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한마디 덧붙인다면, 오늘날의 마르크시즘이 내가 보기에는 순수한 상태의 모델, 모델을 위한 모델에 사로잡혀있는 모든 사회과학에 따르는 위험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제시한다·

43) Jean Paul Sart re, "Fragment d' un livre a paraitre sur le Ti nt oret, " Les Temps Modernes, nov. 1957과 앞에서 인용한 싸르트르의 논문 참조.

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결론적으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장기지속은 사회과학과의 대턴을 위한 공통언어의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한가지 가능성일 분이라는 접이다. 그 의의 가능성도 물론 있다. 나는 잘했건 잘못랬전 새로운 사회수학의 시도에 주의를 환기했다. 새로운 수학은 내게 홍미전전한 것이지만, 인간과학 중에서 가장 발달한 분야인 경제학에서 당당한 성과를 과시했단 전동적 수학에 대해서 이제는 더 볼 것이 없다는 듯아 이러쿵저러쿵 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이 고전적 부문에서 여전하 방대한 계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 대신 나날이 완벽해져 가는 계산기와 계산전문가들의 장비가 있다. 나는 장기칙인 동계의 유익함을 믿으며, 우리의 연구와 계산이 하루하루 더욱 과거로 거슬러 올 라갈 필요성을 절감한다. 유럽의 18 세기 전역에 걸쳐 우리의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16 세기와 17 세기에서는 이 미 상당한 수확을 거두었다. 전례가 없을만큼 장기간에 걸찬동계가 그 보편언어를 동해 중국 역사의 십층을 우리에게 열어 주고 있다 .44l 물론 통계학은 좀더 분명한 인식을 위해 단순화를 추구해 간다. 그러나 모돈 과학이 그런 식으로 복잡한 것에서 단순한 것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한 가지 언어를, 좀더 정확히 말한다면 마지막 一群의 모델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죽 모든 사회적 현실은 그것이 차지하는 공간으로 불가피하게 환원된다는 것이다. 어휘의 차이에 연연하지 말고, 우리는 이를 지리학 또는 생태학이라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지리학은 종종 그 자체로서 하나의 세계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유감스러운 일이다. 지리학은 시간과 공간 대신에 이번에는 공간과 사회적 현실을 생각해 줄 제 2 의 비탈 드 라 블라슈 V idal de la Blache률필요로 하고 있다. 그리하여 지리학· 연구는 인간과학 전체의 문제에 새로운 진척을 이묵하게 될 것이다. 〈생태학〉이라는 단어는, 사회학자들이 항상 그 점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리학〉을 거론하지 않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며 결국 공간이 제기하는 문제들, 아니그보다도 세십한 관찰자에게 공간이 보여주는 문제들을 회피하는 방법이 된다. 공간적 모델이란 사회적 현실이 그 위에 두사되고 부분적

44) O tto Berkelbach, Van der Sprenkel, "Populati on St a ti s tics of M i ng Ch i na," B.S.0.A.S., 1953;-Mari anne Ri eg er, "Zur Fi nanz-und Agrarg eschichte der Mi ng Dy nas tie 1368~1643, " Si n i ca, 1932.

으로 설명되는 지도이며, 시간지속(목 히 장기지속)의 모든 움직임과 사회에 관한 모든 범주를 위한 진정한 모델이다. 그러나 사회과학은 놀라울 정도로 이들 공간적 모델을 무시하고 있다. 나는 사회과학에서 프랑스학계가 우월한 면 가운데 하나는 비달 드 라 불라슈의 지리학파가 있다는 접이라고 가끔 생각해 왔는데, 그의 정신과 교훈이 저버려지는 것을 본다면 그것은 우리에게는 결코 달렐 수 없는 손실이 될 것이다. 비탈 드 라 블라슈가 이미 I903 년에 요구했듯이 모든 사회과학은 그 나름대로 〈인류에 대한 접접 더 지리학적인 개념〉45) 에 자리를 마련해 주어 야만 한다.

실천적인 면에서――왜냐하면 이 논문은 실천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나는 사회과학이 참정적으로나마 서로간의 경계에 대해서 즉 무엇이 사회과학이고 무엇이 아닌지에 대해서 또는 무엇이 구조이고 무엇이 아닌지에 대해서 그렇게 왈가왈부 하는 것을 그만두기를 바란다. 그보다는 사회과학들이 역사 연구를 넘어서 집단적 연구에 방향을 잡아줄 선-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과 모든 인간과학이 최초의 수령에 도달하도록 해줄 주제들을 탐색해 나가기를 바라는 바이다. 이러한 선들을 나 개인적으로는 수학화, 공간에의 환원 및 장기지속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다른 전문가들이 어떤 방향을 제안해 올지를 나는 알고 싶다. 이 논문이 〈토론과 투쟁 Debats et Combat s>난에 46) 실리게 된 것이 우연한 일이 아님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논문은 문제를 해결한다기보다 제기하고자 하는 것인데, 이들 문제의 경우에는 불행히도 누구나 자기 전문분야에 관한 이야기 말고는 명백한 위험 부담을 안게 마련이다. 이 글은 공동의 논의를 촉구하는 하나의 호소인 것이다.

45) P, Vi dalde la Blache, Revue de synt hese hi s torique, 1903, p. 239.

46) .Annales (E.S.C) 의 널리 알려진 난.

인간과학들의 통일성과 다양성*

얼핏 보기에_적어도 그것들의 발전에 조금이나마참여한다면 __ 인간과학은 정립해내고 증진시키기 어려운 그들의 통일성에 의해서 보다는, 기본적인, 오래된, 확정된, 사실상 거의 〈구조적인〉 그들의 다양성에 의해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준다. 인간 과학들은 우선 좁게는 그것들 자체이며, 따라서 그만한 수의 국가들, 언어들, 그리고 정당화되기는 대단히 어렵지만, 각자의 규칙과 현학적인 울타리, 서로 서로에게 이해될 수 없는 상투어 둥을 지니고 있는 그만한 수의 경마장들처럽 제시된다.

분명히 하나의 비유는 주장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설명의 어려움을 간단하게 하고 그것의 약접을 감추기 위해 그 자체로 모든 설명을 대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간단히 말하기 위해, 인간과학들이 인간의 과거, 현재, 미래의 행위의 경관이라는 단 하나의 똑같은 경

* Revue de l' enseignement super i eur, 게 1 집 , 1960, pp. 17~22.

관에만 모두 다 관심을 기운이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러한 전경을· 마주하고 있는 인간과학들은 그들 나몽의 독수 한 관접둘, 다양한 전망의 초안, 그들 나름의 빛깔, 그들 나름의 연대기를 지니고 있는 그만큼의 관측소일 것이다. 불행히도, 각각의 과학이 잘라낸 겅관의 파편들은 하나의 전체라는 이미지를 팔요로 하고, 이 미리 설정된 이미지에 의해서만 의미를 지니는 어린이들의 조각 그림 맞추기 눈이처럼 접합되지도 서로 서로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매번 관측 지점에 따라 사람이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인다. 또한 이런 식으로 파악된 각 부분은 아무리 관찰자가 신중하다고 해도-또한 그는 실제로도 일반적으로 신중하다-전체 경관의 위업에 맞추어 격상된다. 그렇지만 그 고유의 설명들은 자신도 모르게 수행된 은밀한 작용에 의해 그를 너무 멀리 끌고 들어간다. 경제학자는 경제적 구조를 식별해내며, 겅제적 구조들을 에위싸고 그것들을 받쳐 주고, 그것들에 제한을 가하논 구조들을 경제적 구조가 아닌 것으로 여간다. 그것보다 더 대수롭지 않고 팔시 더 명백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는 결국 그림 맞추기 놀이를 자기 식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자신들만의 기준으로 모든 것을 制御하고, 십지어 설명한다고 주장하는 인구학자는 달리 행동하지 않는다. 그는 효율적이고 익숙한 자신의 기준을 지니고 있다. 그 기준들은 인간 전체를 파악하기에, 혹은 적어도 자신이 파악한 인간울 본질적이고 완결된 인간인 것처럼 제시하기에는 그에게 충분할 것이다. 사회학자들, 역사학자들, 지리학자들, 십리학자들, 인류학자들 역시 훨싼 피상적이다. 간단히 말해 다음과 같은 사실이 자명하다. 죽, 모든 사회과학은 제국주의적이 되는 것을 스스로 삼가한다 해도 제국주의적이다. 왜냐하면 각각의 사회과학은 자신의 결론을 인간에 대한 전체적 파악인 것처럼 제시하기 때문이다.

솔직한, 더 나아가 사전 경험이 없어 모든 편견에서 자유로운 관찰자라면, 각각의 과학이 자신에게 제공하는 관접들 사이에, 그에게 압력을 가하는 설명들 사이에, 또는 그에게 부과하는 이론들――초 섣명들_사이에 어떤 관계들이 있을 수 있는지를 반드시 자문할 것이다. 더구나 이 새로운 눈으로, 순전한 목격자로 혼자서 경관 속에서 一警울 던지게 될 수만 있다면 ! 그것이 합당할지도 도론다…… 그렇지만 인간과학들의 〈실재〉는 우리가 더 나온 비유가 없어서 언급한 그러한 경관은 아니며 또는 그것은 자연 과학의 동일한 경관처

럼 재창조된 경관이다. 생정한 상태의 사실은 정리되어야 할 관찰의 집적 물에 불과하다.

더구나 인간과학들의 관측소 를 떠난다는 것은 거대한 경험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혼자서 억지로 다시 해야만 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런데 누가 이런 밤중에 혼자서 길 을 갈 것이며, 오늘날 누가 자신의 고유의 방법으로 이미 얻은 지식을 초월하기 위해 그것을- 다시 파악하고, 그것에 생명을 부여하고, 그것에 또 하나의 언어 그것도 과학적인 언어를 부과할 수 있단 말인가? 이 기획에 문제를 제기하게 될 것은 축적 해야할 지식이라기보다는오히려 그 지식들의 적용이다. 우리문 각자가 그럭 처럭 자신의 직무 속에서만 혼히는 아주 간 수습기간을 바쳐 얻는 이 팔수적인 솜씨와 민활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들 중의 어느 누구도 다양한 분야에서 달인의 경지에 이르기에는 인생은 너무 짧다. 경제학자는 경제학자로, 사회학자는 사회학자로, 지리학자는 지리학자로 머물 것이다. 각자는 자신의 모국어로 말하고자신이 알고 있는 것, 즉 자신의 상접에 대해, 자신의 직무 둥에 대해 논의하게 되는 것이 더 낫다고 현자들은 말할 것이다.

아마도그럴 것이다. 그러나인간과학들은그들나름의 통제력을확대하고 완벽하게 만들어 감에 따라 그만큼 더 찰 자신들의 취약접을확인하게 된다. 인간과학들이 효율성을 열망할수록, 그것들은 더 쉽사리 적대적인 사회적 실재와 충돌하게 된다• 그들의 각각의 실패들은血 ―그것들의 적용이라는 설재적 영역에서의_그들의 유효성의, 사실상 그들의 존재근거의 입증 도구인 셈이다. 만일 이들 과학들이 완전하다면, 그것들은 더구나 그들의 진보라는 바로 그 사실로 인해 자동적으로서로 합치되게 될 것이다. 그것들이 구별해 내는 경향을 보.이는 규칙들, 그것들이 그로부터 끌어낼 수 있다고 믿는 그들의 계산과 예측들, 이 모돈 설명들은 인간적 사실들의 거대한 덩어리, 본질적인 같은 노선들, 십충적인 같은 움직임, 같은 경향 속에서 명확하게 되기 위해 서로 서로 덧붙여져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결코 그렇지 않으며, 우리를 에위싸고 있는 사회는 예측할 수·없는 수많은 동작들 속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도 않고 우리를 당혹시키고 있다는 접을 알고 있다.

여기 저기서 경계선을 넘어 시도된 대화들보다 인간과학들 서로서로에대한 일종의 비환원성의 실상을 더 찰 입증해 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나는 역사학은 이러한 대화와 만남에 기꺼이 응하는데, 그.렇게 하는 것은 특정의 역사학이라고 생각한다(우리가 더 이상 위험스러울 정도로 혁명적이 아니고 부르죠아화되면-왜냐면 정신상의 부르죠아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_~ 우리 앞에 개방될 제도둘과 나이돈 현 자들의 지지로 인해 지속적인 생명을 갖게 되고, 그에 대해 욕설을 퍼부을 수 있는 관성 때문에 우리의 교육을 지배하고 있고 앞으로도 오랬동안 지배하게 될 전통적 인 역사학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그-렇다, 역사학은 이 대화에 응한다. 역사학은 거의 구조화되지 않았으며, 인접 과학들에게 개방되어 있다 . 그러나 그 대화들은 흔히는 전혀 쓸모 없는 것으로 판명된다. 어떤 사회학자가 역사학에 대해 100 여 가지의 허위 사실을 말하지 않을 것인가? 그는 자기 앞에 뤼씨앙 페브르를 두고 마치 샤들르 쎄뇨보스가 문제시되는 것처럼 그를 십문한다. 역사학은 과거에 그러했던 것, 죽 우발 사건에 대한, 구체화된 이야기에 대한, 재구성된 시간에 대한 미미한 과학이어야 하며 또한 이런 저런 이유들로 인해 절반 이상 쯤온 이치에 맞지 않는 〈과학〉이어야만 한다. 만일 역사학이 과거의 연구에 의한, 현재의 연구에 대한, 시간지속에 대한, 아니 오히려 다양한 형태의 시간지속에 대한 탐구로 자처한다면, 사회학자와 철학자는 미소를 짓고 어깨를 으쓱할 것이다. 그것은 주의를 환기시키지도 않은 채, 실제 역사학의 추세들 및 이들 추세들의 중요한 선행 사례 동을 무시 하는 것 이 며 , 20 년 또는 30 년 전부터 얼마냐 많은 역 사학자들이 용이하고 짧은 범위의 지식과 결별했는지를 망각하는 것이다. 소르본느에서 한 논문(알퐁스 뒤프롱 Al phonse Du p ront의 논문)에 「십자군의 신화 : 종교 사회학론 Le mythe de Croi sade: Essai de so ci olo gie rcligie·use 」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는 사실은 그것만으로도 여하돈 사회적 십리 현상에 대한 이러한 연구, 십충의 사실에 대한, 〈깊은 충〉에 대한 이러한 연구, 한 마디로 말해서 누군가 〈무의식적〉이라고 한 이러한 역사는 단순한 이론적 프로그램은 아니라는 접을 보여준다.

또한 우리논 또 다론 실천 작업들을, 또 다른 혁신들을, 헤아릴 수없이 많은 증거둘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 그렇지만 너무 지나치게 불평하지는 말자. 다시 한번 더 강조하건대 문제는 역사학을 우리의 취향대로 이해하려 들지 않는 사람들의 촌재에도 불구하고 역사학을 규정짓거나 그들과 대항하여 끝없는 불편의 목록을 정리하타는 것 이 아니 다. 더 구나 찰못은 서 로에 게 있 다. <관점들의 상보성 〉은 자

명하다.

우리 여사학자들 역시 우리의 이웃인 이들 과학들을 분명히 뒤늦게, 최선은 아닌 우리의 방식으로 파악한다. 이렇게 해서 가까운 집에서 집으로 오해가 굳어져 간다. 사실상 이 다양한 연구들에 대한 효과적인이해에는 장기적인 찬숙함이, 적극적인 참여가, 편견과 습관의 포기 둥이 요구될 것이다. 그것은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서실상그것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순간적으로 그렇고 그란 전위적인 연구들에, 또는 사회학이나정치경제학의 연구에 가담하는 것――간단히 말해 그것은 너무 쉽다――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이들 연구들이 전체와 어떻게 관련되며, 전체의 새로운 움직임을 어떻게 나타내는지를 이해해야 하는데, 그것은 모든 사람이 다 감당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알퐁스 뒤프롱의 논문을 읽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그 논문을 루]씨앙 페브르와, 마르크 불로흐와, 브르몽 Bremond 신부와, 그 밖의 다른 사람들과 관련시키는 것 또한 문제시된다. 프랑스와 데루의 권위주의적인 사상을 추종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기 때문에, 그 사상을 정확하게 위치지우고 그 사상이 어디서 왔으며 수락과거절로 이루어전 어떤 연쇄적 맥락에 의해 그의 사상이 언제나 움직이고 있는 경제학 사상 전체에 어떻게 동합되게 되었는지를 파악하는 것 역시 문제시된다.

나는 솔직히 말해 일전에 바현실적인, 너무도 짧기 때문에 비현실적인, 현재의 생생한 수인들에 대한 사회조사를 반대했으며, 나는 또한 같은 기회에 정부의 한정된 임무에 지나치게 경도된 나머지, 죽의십스러운 현재 사실에 지나치게 경도된 나머지, 〈장기 지속〉1) 에는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정치경제학에 대해서도 반대한 바 있다. 그런데 생생한 현실에 대한 사회학이 사회연구의 선두에 서는 것은 아니라고 내게 타당하게 응답하고 있으며, W• 로스토우와 쿨라 W.Kula 는 가장 최초의 것들에 대한, 가장 가치 있는 것들에 대한 연구에서 겅제학은 장기적인 문제들을 통합시키려 하고 있으며 십지어 경제학은 그것으로부터 자양분을 얻고 있기까지 하다는 접을 내게 확신시켜 주었다. 이렇게 해서 문제는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 만일 우리의 울타리를 넘어선 이 토론에서 단순화에 따론 생략에, 그에 따

1) 내 논문 : “Hi s t oi re et sciences soci ales: la longue duree"(Anna/es, E.S. c., 1958와 MM. Rostow et Kula 의 웅답, i bi d., 1959 et 1960).

르는 지체에 유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외양에도 불구하고 당대인듄 사이에서 논의되지는 않은 것이 될 것이다. 우리의 대화들은 우리의 논의들은, 심지어 아주 문제가 많은 합의들은 정신의 시간에서 볼 때 뒤늦은 것일 것이다. 우리의 팔목 시계를 찰 맞추어, 부질 없고 터무니 없는 오해를 근절해야만 한다. 풍자희극에 기대를 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하돈 나는 만일 인간 과학들의 공동 보조가 일련의 쌍무적인 합의에 의해, 그 써클이 점차로 확장되어 갈 부분적인 관세 동맹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두 개의 인접 과학들은 같은 전국을 떤 것처럼 서로 밀쳐낸다. 과거에 이중의 영광을 이루었던 지리학과 역사학의 〈보편적인〉 결합은 팔연적인 분리로 끝장이 났다. 경제학자나 사회학자들로서는 역사학자 또는 지리학자와 더불어 논의하게 되면 그렇게 하기 전보다 훨씬 더 경제학자 또는 사회학자임을- 느끼게 된다. 사실상 이러한 제한된 결합은 지나찬 공동 보조를 필요로 한다. 현명한 길은 우리 모두가 우리의 전통적인 관세권을 낮추는 것에 있을 것이다. 사상과 기술의 순환은 그것에 의해 진작되며, 사상과 기술은 인간과학을 하냐씩 거치면서 수정될 것이지만, 적어도 공통의 언어를 창조하고 그 기초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만일 특정 단어들이 우리의 좁은 영역들 중의 하나에서 다론 영역으로까지 거의 같은 의미를, 또는 같은 반향을 가진다면, 거대한 전전이 이루어전 셈일 것이다. 역사학은 일상 언어―죽 문학의 언어――믈 사용하는 데 따르는 잇점과 결접을 다 지니고 있다. 앙리 피렌느는 종종 역사학이 이 득권을 유지하기를 권고하였다. 이련 사실로 말미암아 우리 분과는 가장 문학적이며, 인간과학들 중에서 가장 읽혀질 만하며, 대다수의 대중에게 가장 개방되어 있다. 그러나 공통적인 과학적 연구는 특정의 〈근간이 되는〉 어휘를 팔요로 한다. 오늘날보다 훨씬 더 우리의 단어들을, 원칙들을, 십지어 우리의 술로건을 이 분과에서 저 분과로 동과되게끔 함으로써 우리논 거기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끌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인간과학에서 사회수학(또는 질적인수학)의 개입, 즉 그언어, 정신, 기술의 개입이 가져올 것을 보여주려고 애썼다. 의십할 나위 없이 내일이면 전체에 대한 새로운 관접에서, 인간과학에서 수학화할 수 있는 것이 있는 것과 없는 것

울 구벌해야만 할 것이며, 그 누구도 이 두 가지 길 중에서 선택해야만 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덜 중요한, 또한 사실상 덜 국적인 사례를 들어보자. 오늘날 정치 경제학에서는 필수적인 것이 분명히 〈모델화〉, 죽 〈모델들〉의 구축이다. 중요한 것은 아주 복잡한 현실로부터 구조들의, 충분히 항상적인 관계들의 단순한 줄기들을 끌어내는 것이다. 처음에는 주의 사항들이 너무 많아서 모델은 단순화에도 불구하고 실제 사실 속에 뒤어들어가 그 연결 작용울 요약하고 당당하게 그 우발적 사실들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레온티에프 Leon tieff와 그를 모방하는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했다. 그렇게 되면, 이런 식으로 구축된 모델의 툴내에서 순수한 계산방법에 따라 추론하는 것보다 더 명백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델〉은 더구나 전혀 새로운 이름하에서 가장 고전적인 추론 방법의 구체적인 형식에 불과하다. 우리는 쥬르댕 M. Jourdai n 이 산문적으로 말한 것처럼 모델에 대해 충분히 알지도 못한 채 이 미 그것을 사용해 왔다• 사실상 모델은 모든 인간 과학들에서 발견된다• 지리학의 지도는 일종의 모델이다. 젊은 문학 비평가가 우리 문학의 거장의 작품들(미술레에 대한 몰랑 바르드의 정치하고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작은 작품을 보라) 아래로. 기꺼이 미끌어져 갔던 정신 분석가들의 격자 역시 〈모델들〉이다. 죠르쥬 귀르비치의 다채로운 사회학은 일종의 모델들의 집적물이다. 역사학 역시 자신의 모델들을 지니고 있다. 어떻게 역사학이 그 입구를 막아버릴 수 있을까? 나는 최근에 뉘렙베르그의 우리의 동료인 헤르만 첼렌벤쯔 Hermann Kellen·benz 의 15 세기에서 18 세기 사이의 남부 독일의 〈기업가들〉의 역사에 관한 뛰 어 난 논문――관대 하고 강력 한 아서 코울 Art hur Cole 의 개성이 활력을 불어 넣었던 하바드대학 기업연구소 Cen t re d'et udes des En trep r i ses 와 같은 노선에서 나타난 논문 __ 울 읽었다. 사실상 이 논문 및 아서 코울의 여러 저작들은 역사학자에 의한 숨페터 Q간일〉의 반복인 셈이다. 숨페터에 있어서 〈기업가〉란 가장 고상한 의미에서 〈기능공이며, 경제적 진보의, 자본과 토지 • 노동 사이의 새로운 결합의 창조적인 요소〉이다. 또한 그는 역사의 전시기에 걸쳐서 그러했었다. 〈슘페터의 정의는 무엇보다 일종의 모델, 일종의 이념형〉이라논 접을 H. 첼렌벤쯔는 지적한다. 그런데 모델을 다루고 있는 역사학자는 언제나 그 모델을 우발적 사건들에 되돌려 보내고 시간이라는

특수한 물 위를 떠다니는 배처럼 그 모델이 떠다니게 만드는 것으로 자족한다. 15세기에서 18 세기까지의 남부 독일의 기업가들은, 쉽사리 예측할 수 있듯이, 서로 다른 유형, 서로 다론 성격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을 하는 역사학자들은 꿇임없이 〈모델화〉의 잇접을 파괴한다. 죽 그는 배를 분해시켜 버린다. 그는 그 배를, 또는 다돈 배를 다시 建造해야만 바로소 규칙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여사학자는 역사학의 노선 속에서, 각각의 독독성 가운데서 식별되는, 결국 그 독특성들간의 연속성에 의해 그것들을 한꺼 번에 설명 . . . . . .해 주는, 그러한 서로 다론 〈모델들〉을 끼워 맞추게 될 경우에 비로소 그는 규칙에 이르게 될 것이다.

@델화〉 작업은 결코 충분치 않을 구체적 사실에 대한 우리의 기초로부터 우리 분과를 그런 식으로 끌어낼 것이다. 역사학 그 자체의 흐름도 거대한 설명의 대상이다. 예를 들면 만일 문학비평가와 역사학자와 사회학자 사이에 정신분석학자들의 격자라는 주제로 토론이 일어나게 된다면 우리는 그 격자가 모돈 시대에 대해 유효할까를 질문하려 들 것이다. 또한 만일 진보가 있다면 그것들의 전보가 들 그 자체만큼 연구의 주요한 노선이 되지 않을까?

나는 최근에 리옹의 문과 대학에서 「1874년에서 1902 년까지의 에스파냐에서의 학교와 교육 L'Ecole et L'Educati on en Espa g ne, de 1874 a 1902 」2) 에 관한 논문, 죽 19 세기가 우리에게 물려준 학교를 둘러싼 이 거대한 종교 전쟁에 대한 논문의 자기 변론(학위 논문 십사에서 필자의 이론적 입장을 개진하는 것―역주)에 참여 하였다. 에스파냐는 다른· 여러 가지 것들 중에서 그 전수로서 종교적인 다양한 갈등의 한 사례를 제시한다. 그 어느 것도 이 일군의 논쟁들에 대한 모델 정립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이마 실현된 일과 충분히 자리 잡은 요소들을 상상해 보라. 여기에는 대중 교육의 필요성이 있고 저기에는 생생하고 맹목적인 적대적인 감정이 있고., 또 거기에는 교회, 국가, 예산…… 동이 있다. 이 모든 것에 대한 이론적 정립은 우리로 하여금 장기적인, 분명히 아직도 종식되지 않은 위기의 통일성을 더 찰 이해하도록 하는데 이 용될 것 이 다. 만일 우리 가 이 모델로 무장하고 1874년과 1902 년 사이 의 에스파냐로 되 돌아간다떤 우리 역 사학자둘의 첫 번

2) These d' Yvonne Turi n, Presses Un i versitai res de France, Pari s, 453 pa ges, i n-8°.

째 책임은 그 모델을 구체화하고, 그 메카니즘을 분해하여 그것들을 입증하고, 득히 여유 있게 그것들을 첨가하며, 그것들을 다양하고구체적인 생활에 밀착시켜 그것들을 과학적인 단순화로부터 면제시켜 주는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만일 진보가 있다떤, 그 모델의 전보를 밝혀내기 위하여 그 모델에, 또는 다양한 모델들에 과감히 되돌아가는 것이 무슨 이득이 있단 말인가!

멈춰 보자. 그 중명은 이루어졌다. 즉, 그 모델은, 분명히 선험적으로는 그 모델에게 순조롭지 않을 것 같던 물 속에서조차도 유용한 방식으로 모든 인간 과학들을 거쳐 여행한다.

그와 유사한 여행들도 중가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기껏해야 여기 처기 매여 있는 실 및 가닥의 접근 및 합치라는 대수롭지 않은 방법들이다. 이제 인간과학들 전체의 들 속에 자리를 잡으면서 동지에 그 이상의 일을 하는 것이, 다시 말해서 전체의 움직임들-죽 모든 것을 혼란에 빠뜨리지는 않지만 문제제기 및 행동방식을 현처히 변경시킬 수는 있는 인간과학들의 융합――울 조직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우리의 폴란드인 동료는 이 타협된 움직임을 〈복합적 연구〉라는 평범한 이름으로 지칭한다. 〈이 명칭은 한 가지, 두 가지, 또는 십지어 세 가지의 사회 현상에 대한 분류 원칙들에 의해 한정된 주제, 즉` 지리적인 것, 연대기적인 것, 또는 십지어 그 주제의 성격에 따온 주·제에 관한 다양한 전문가들의 연구를 의미한다〉고 알렉산더 기에쯔토르 Aleksander Giey sztor 는 구체 적 으로 밝혔다. 이 런 식 으로 우리 의 미 국인 동료들의 〈지 역 연구〉는 바로 〈복합적 연구〉인 생 이 다. 그 연구의 원칙은 현대 세계의 거대한 〈문화적 영역들〉, 그리고 특히 감히 유럽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러시아, 중국, 미국, 인도라는 괴물들을 연구하고 규정하기 위하여 다양한 인간과학들을 재결합시키는 것에 관한 것이다.

인간과학들의 거대한 세계에서 이미 회합과 제휴, 공동 연구들이 협의되고 조직되었다. 또한 이러한 시도들은 완전히 새로운 것도 아니다. 나는 적어도 그러한 시도의 중요한 선행 작업을 7J:-파한다. 그.것은 앙리 베르의 『종합의 시 기 les Semai nes de sy nthlse』로서 , 그것은 수많은 현재의 흐름들의 전정한 선구적인 작업이다. 여하본 그것이

최근의 것이건 오래된 것이전 무슨 문제랴 ! 이러한 경험들이 추구되어야 하며 그것들의 성공――적어도 사회 과학들의 통합이라는 임무에 있어서――이 아주 논란이 분분한 것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경험들은 세밀한 검토 후에 반복되어야만 한다. 물론 지금부터 몇가지 중요한 규칙들을 지적할 수 있으며, 그 규칙들은 마리 그 논쟁들을 지배한다.

우선 이러한 시도들이 언젠가는 경계선들, 중력의 중심둘, 문제가 되는 것들, 전통적인 거의 정방형의 모양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정해야 할 것이다. 또한 그 접은 모든 인간 과학들에 있어서 예의 없이 적용된다. 그러므로 어디서나 〈민족주의적〉인 정신을 버려야만 할 것이다. 이 작은 성공에 풋대를 세울 수는 없다는 점을 인정하자. 폿대들은 미리 강조되어야 하며, 또한 집합과 재집결의 축둘, 즉 A. 기 에쯔토르 Gieysztor 가 말했 던 시 간과 공간으로분 아니 라, 수와 생물학적인 것으로의 환원을 표시해 주게 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접으로는 뇨i 인간과학들이 가장 고전적인 것들을, 가장 오래된 것들을, 가장 새로운 것들을 문제 삼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가장 새로운 것들은 오히려 사회 과학들이라는 명칭으로 지칭되며, 그것들은 우리 세계의 4 개 또는 5 개의 〈주요 과학들〉을 이루고자 할 것이다. 이제 나는 동일성을 구축하려면, 철학분 아니 라 그리 이 스의 碑銘學, 또는 앙리 로지 에 Henri Laugier 의 생 물학, 또는 라자스펠트와 같은 지성인에 의해 수행된다면, 여론조사 등의 모든 연구들이 그들 나름의 몫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우리에게도 萬國公議會가 필요하다.

〈지 역 연구들 area studies〉――규법 적 인 영 여 에 서 이 루어 진 것 을 의미하는데, 왜냐하면 그러한 연구들이 활력을불어넣고 찰 이끌어 나간 경우가 상당수 있기 때문이다――의 실패는 우리에게 교훈으로 이용되어야만 할 것이다. 하바드의, 콜롬비아의, 시애들의 대담한 대열의 우리 동료들은 아마도 그들의 소집 써클을 충분히 확장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이나 인도를 파악하기 위해 좁은 현실 속에서만 위험을 무룹쓰면서도 역사학자들에게는 거의 도움을 청하지 않으며,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지리학자들에게 도움을 청한 적은 전혀 없다. 사회학자들, 경제학자들(넓은 의미로), 십리학자들, 언어학자들만으로 인간과학의 전체를동원할 수 있을까? 나는그렇다고는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일반적인 동원이 적어도 이 순간에는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는 접을 냐는 강조하는 바이다.

나는 이미 이런 논지를 수차례 주장하였다. 나는 그 접울 다시금 강조하기 위해 『고등교육잡지 la Revue de l'enseignement superi eur』가 내게 제공해 준 연단을 이용하고 있다. 프랑스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경제학자들도, 가장 훌륭한 역사학자들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가장 훌륭한 일군의 연구자들을 보유하고 있다. 더욱이 C.N.R.S. *의 정책이 거둔 결실은 적어도 한 가지 접에서는 반박될 여지도 없다• 죽 우리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자신들의 열망과 훈련 때문에 연구에 몰두하는 젊은이들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그것은 참으로 즉흥적으로 만들어넬 수는 없는 유일한 것이다. 이제 곧 〈인간과학관 La Maison des Sciences de I' Homme 〉은 이 거 대 한 영 역 에서 모돈 聲價있는 연구소와 연구실둘을 파리에 단 하나의 전체로 재집걷시킬 것이다. 이 모돈 젊은 힘들, 이 모든 참신한 방법들은 손에 닿는 범위에 있으며, 한편 우리는 그것 이의에는 그 어느 것도 결정적일 수 없는, 세상에서 두 말할 나위 없이 유일무이하고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귀중한, 인간에 관한 고전적인 모든 〈과학들〉에 필수불가결한 틀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이 이중 또는 삼중의 기회를 회피하도록 방치하지 말자. 그것이 가능하고 지적으로 이익이 되기만 한다면, 세계 도처에서의 통일성을 향한 움직임을 재촉하고, 필요하다면 단계를 걸러 서두르자. 내일이면 이미 너무 눗울 것이다.

* Cent re National de la Recherche Scientifique(국립 과학연수센터 )의 略字

역사학과 사회학 1)

및 가지 서두의 말로써 이 글의 맥락을 잡아보려 한다. 통상적으로거의 언제나라고 할수 있을만큼 나는 〈사회학〉을금세기의 벽두에 에밀 뒤르깬 Emi le Durkhei m 과 프랑스와 씨 미앙 Fran~o i s S i mi and o j 의중에 두었던 바 총체적 과학――-아직도 그렇게 되고 있지 못하고 또 .한 거기에 완전히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마련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향하여 부단히 나아가고 있는 그러한 과학――으로 이해한다. 한편 내가 이해하고 있는 바의 〈역사학〉이란 과학적으로 수행되고 있는 연구인데, 부득이한 경우에는 과학이라 불러도 무방하겠으나 복합적 인 성격의 과학이다. 복합적이라는 것은〈하나의〉 역사, 〈하나의〉 역사가의 직무 meti er 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직무, 여러 종류의 역사가 있다는 것이며, 그것은 여러 지적 호기십과 관접과 가능성들의 총화

1) 이 글은 원태 Georges Gurvitch 주관으로 발간된 Traite de Soc i olo gie, 2vol. (Pari s: P.U.F., 1958~1960) 의 서론중의 제 4 장으로 처음 발표되었음.

로서 그 총화에는 다시 다른 호기심, 다른 관접, 다론 가능성들이 장차 추가될 것이라는 뜻이다.

현재에 대응하는 태도들만큼이나 많은 과거에의 접근방식들이 논의의 여지가 있거나 이미 논의된 채 존재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또한 역사학 그 자체가 현재에 대한 연구로도 간주될 수가 있다고 말한다면, 나의 입장을 사회학자――이들은 철학자들처럼 역사학이야말로 완전하고도 영구히 확정지어전 규칙과 방법들을 갖춘 분야로 보려는 경향이 있는데――에게 보다 잘 납득시킬 수 있을 것인지 ?

그런데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여러분은 여기서 역사학과 사회학간의 관계에 관한 습관적인 질문들에 대한 대답, 아니 대담의 시도조차도 기대하지 말기 바란다. 서로 묵살해 버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도 아니면서 논쟁시엔 각자의 개념을 정의한다 하더라도 일방적으로 규정지어 버리는 이 이웃들간에 끝없이 그러나 매번 조금씩 다르게 재연되고 있는 논쟁의 속편을 제공할 생각도 없다. 잘못 제기된 문제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도된 논쟁들도 있다. 어쨌든 사회학자와 역사학자간의 대화는 거의 언제나 겉돌고 있다. 프랑스와 씨 미 앙이 샤를르 쎄뇨보스 Charles Seignobos 와 논쟁을 벌이고 있었을 때 씨미앙은 자기가 역사학과 이야기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실은 앙리 베르 Henri Berr 가 〈역사화시키는 역사학 l'h i st oire .hist or i sant e 〉이라고 낙인찍었던 그렌 유의 역사학과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 었 음에 불과하다. 2) 같은 시 기 에 그가 앙리 오제 Henri Hauser 를 論敵으로 삼고 있었을 때, 그는 확실히 그의 세대에서 가장 재기발랄한 역사학자를 상대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때이르게 거둔 성공과 자기 직업의 고리타분한 규칙 속에 함몰되어 있는, 지나치게 총명하고 능란한 변호인을 상대로 하고 있기도 했던 것이다. 그가 호적수로 맞아 싸워야 마땅했을 이는 오히려 뿔 라꽁브였다. 그러나 바로 라꽁브와 그는 의견을 같이해 버릴 위험이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논쟁은 모름지기 논적들이 거기에 몰입하고, 한 역사학자,

2) 이 유명한 논쟁은 문만 아니타 Paul Lacombe 의 저서 De l' hi st oire consi deree comme sci ence (Paris, 1894) 의 주계와도 관련되고 있다. 기 실 Fran~oi s Simiand의 논문 ‘‘Methode· hi s t orique et science sociare," Rzvue de Sy nt hese hi st orique, 1903, pp. I~22 및 pp .129~57은 ‘Et ude critique d' apres Jes ouvrages recent de M. Se ignobos’ 라는 부재문 달고 있다. 그러나 실계로는 Paul Lacombe 의 저서는 거의 다무어지지 않고 있다.

즉 바로 뿔 라꽁브 자신이 일찍이 1900년도에 자기의 비판자에게 응수·하는 가운데 썼던 말울 빌려 표현한다면, 〈칼을 뽑아들고 맞싸울〉3) 태세가 되어 있는 한에서만 성립되는 법이다. 이 정열적인 역사학자는 〈역사과학 h i st r i oe·sc i ence 〉을 하려는 의욕에서 사회학자 프랑스와 씨 미앙과 쉽게 뜻이 동할 수 있지 않았을까 침작된다. 그 접은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보면 넉넉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해결불능의 역사학적 곤경과 난제들에서 벗어나려는 욕구에서 뿔 라꽁브도 시간으로부터의 도피를 꾀하기조차 하지 않았던가 ? 〈시 7J ! 그것은 그 자체 객관적으로는 아무것도 아니요,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다만 하나의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4) 〉라고 그는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프랑스와 씨미앙은 드물게 뿔 라꽁브를 문제삼았고 그대신 완강한 다론 논적들에게로 화살을 겨누었다. 사실 〈하나의〉 社會學像과 일치할 수 있는――그리고 물론 역으로 그와 더불어 서로를 참석해 버랄 수도 있는――〈하나의〉 歷史學像온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조르쥬 귀 .르비 치 Georges Gurvitch 는, 5) 역 사학 대 사회 학의 논쟁 에 대 해 서 쓴, 적어도내가 알기로는그방면에서 최신의 것인 그의 한 논문에서 앙리마루 Henri Marrou 와 의견을 같이하기를 거부하고 있는데, 그러나 나와는보다 쉽게 상호 이해가 가능할 것도 같다. 이제 문제를 좀더 자세히고찰해 보아야 하겠는데, 사회학자와 역사학자의 관계는 아마두쟁과 완전한 화합, 그 어느 쪽도 아닐 듯하다.

1 역사학의 정체와 역사학상

무엇보다 먼저 반드시 지적해 두어야 할 주의사항은, 역사학이 무~엇인지를 간략히 보여주되 그에 대해 내려진 최근의 정의들울 중십으로 진행해야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학문은 끊임없이 스스로를새롭게 정의하며 자신의 참모습을 찾아내려 하기 때문이다. 역사학자·

3) Xenopol, in Revue de Synt hese hi st orique, 1900, p .135호. 2호

4) "La sci ence de l' hi st oi re d' apres M. Xenopol, " Revue de Synt hese historique, 1900, p. 32.

5) "Continuite et di scontinuite en hi s toire et en soci ologie, " Annales E. S. C., 1957, pp, 73~84.

라면 누구나, 유연하고도 스스로 발전해 가는 그의 일에 대해 새로운 지석, 새로운 과제, 새로운 정열 둥의 압력 아래, 또한 인간과학의 일반적인 동향이라는 사실의 압력 아래 마지못해서일지라도 그가 일으키게 되는 변화에 민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모든 사회과학은 서로 감영시키며 역사학 또한 아 전염증세에서 벗어날 수 없다. 여기서 역사학의 정체나 촌재방식, 혹은 그 像의 변화가 생겨나는 것이다.

금세기만을 회고해 본다 하더라도 우리는 최소한 열 가지의 역사분석과 수많은 역사학상을 배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역사학자들의 역사책 자체에 함축되고 있는 입장들은 고려하지 않고서인데, 역사가들은 자기들의 생각에 대한 간명하고 형식적인 史論보다는 구체적인 역사의 처술에서 더 잘 그들의 해석과 관접율 표출해 낼 수 있다고 믿기 마련이다. 철학자들이 즐겨 역사학자를 비난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데, 그들이 보기에 역사학자들은 자신이 기술하고 있는 역사가 도대체 어떤 성질의 것인지불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20 세기에 나온 일련의 역사분석의 선두에는, 다론 사람들이 모두 그렇 게 하듯이 샤를르격七도르 탕굳르와 Charles-V ict or Langlo is 와 샤를르 쎄뇨보스의 고전적 저작인 『역사학 입문 /n t roducti on aux sci ences h i s t or iq ues.!] 을 둘 수6) 있다. 다음으로 소장학자 (1903) 뿔 망주 Paul Man toux 의 참신한 논문에" 주의를 환기시키기로 한다. 그러고 나면 한참 뒤이지만 역사에 대한 한 철학자의 관접인 례이몽 아롱 Ray mond Aron의 고전 『역 사철학 입 문 Int roduction a la p h i losop h/e de l'hi s t o ire.!]과81 뒤이어서(비극적인 최후가 처자에게 닥쳐오지 않았더라면 그가 완성시켜서 내놓았을 것하고 아마도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을) 마르크 불로흐.Marc Bloch 의 미완성 유작 『역사가의 직무 Me tier d'h ist or i en』(『역사를 위한 변명.!]으로번역된 바 있옵-역주)”에 이르게 된다. 계속해서 우리논 저자 자신이 선정한 주욱같은 논문집인 뷔씨앙 페브르 Lucien Febvre 의 『역사를 위 한 싸움 Combat s pour l'hi s t oire.!]lO) 에 이 르게 될 것 이 다. 그러

6) 덧붙여서 Charles Se ignobos, La Me t hode hi st orique appliquee aux sci ences, so ciales, Paris, 1901.

7) "H i s t oi re et soc i olo gie,11 Revue de synt hese hi st oriqu t, 1903, pp .121~40.

8) Paris, 1948, 2 판. 초판은 I938 년.

9) APologie Pour l' hi st oire ou me tier d' hi s t ori en, Paris, 1949. 이 훌륭한 책에 대해서는 J .St en gers 의 갑동져인 評文"Marc Bloch et l' Histoi re,11 Annales E. S. C., 1953, 329~37 을 불 것 .

10) Pari s, 1953.

는 가운데 우리는 루이 알펭 Lou is Halphen 의 매우 간결한 試論, 11) 필리쁘 아리에 Ph i ll ipp e Ar i es 의 생동감 넘치는 저작 ,12) 에릭 다르멜 Er i c Dardel 의 실존주의적 논저, 13) 앙드레 삐가니올 Andre P igan i ol 의 논문 14) 그리고 내가 읽어본 바로는 아마도 고대사 하나만의 여러 국면에 지나찬 관십을 쏟고 있는 것도 같으나 홍미진전하고 예리한 앙리 마루의 논저들 15)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도록 해야겠다. 마루는 막스 베버의 사상에 너누 십취한 나머지 모든 척도를 젖혀놓고 역사학의 객관성에 계속해서 집착하고 있다. 사회적 소재에 있어서의 객관성과 주관성의 문제는 과학적 방법의 발견자인 19세기를 온통 사로잡았던 문제인데 오늘날에는 그것이 그토록 근원적인 문제인지 의문아다. 또한 그것은 우리 역사학자에게만 특유한 문제도 아닐 것이다. 어쨌든 거기에는 신중성과 성실성을 배가시킴으로 써만 극복될 수 있을, 과학정신의 한 가지 취약접이 놓여 있다는 앙리 마루의 얘기는 온당하다. 그러나 대문자 H 를 쓰면서까지 역사학자 l'hi st ori en 의 역 할을 너 무 부풀리 지 는 말았으면 좋으련만 !

축약되어 있고 불완전하며 의도적으로 프랑스어 문헌에만 국한되고 있지만, 이 극도도 간략한 문헌목록은 그런 가운데서나마 이제껏 제기되었던 논쟁의 소용돌기물 침작하게 해줄 것이다. 즉 그것은 그러한 논쟁들을 비교적 상세히 반영해 주고 있다. 그러나 반면에 거론된 처작과 논문들이 역시학의 실제적이고도 근본적인 다양성을 말해 준다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그러나 이 역사학의 다양성이야말로 본원적인 것이다. 내가 찰못 생각하고 있지 않다면, 오늘날 역사학의 십충적인 동향은 상이한 노선과 관접둘 가운데서의 선택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 안에서 헛되이도 칩거하려 했던 잇다론 정의들을 수용하고 홉수하는 것이다. 모든 역사는 결국 우리들의 것이니까 말이다.

20 세 기 초에 사람들은 진정 미슐레 Mi chelet 를 본따, 역 사란 〈과거의 재현〉이라고 곧찰 말하곤 했다. 그럴싸한 주제요, 그럴싸한 프로그

11) Int roduction a l' hi st oi re, Paris, 1954.

12) Le t emp s de l' ll i s t oi re, Pari s 1954.

13) H i s t oi re, sci ence du concre t , Pari s, 1946.

14) "Q u' es t -ce que l' hi s t oi re?" Revue de me ta p hysique et de morale, 1955, pp. 225~47.

15) De la connai ssance hist orique, 1954. 이 는 Revue h i s t orique, 1953, pp. 256~70; 1957, pp .270~89 에 실린 역사서술에 판한 H. J. Marrou 의 연구보고서에 의해 보충되고 있다.

램이었다 ! 〈역사학의 임무는 과거지사, 실로 모든 과거지사를 되새기는 것〉이라고. 뿔 망누-는 1908 년에 썼었다. 게다가 사실상 사람들은 그 과거에서부터 무엇을 기억해 두는가타는 물음에 대해 1903년의 이소장 역사학자는 서슴 없이 대답하기를 〈독특한 것, 한 번밖에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 역사학의 본령이어야 마땅하다〉고 했다 .16) 무척 고전적인 대답이요, 철학자들과 사회과학자들이 다른 모돈 역사학상을 것혀놓으면서 즐겨 제시하는 역사학상이다. 철학사가 에밀 브레이어 Emile Brehier 는 1936년 브라질 로 항해 중이 던 배 위 에 서 이 문제 에 관한 우리들의 우정어린 토론중에 한사코 자기 입장을 굽히려 하지 않았다. 과거의 삶에서 반복되었던 일들이란 그에게 있어서는 우리 이웃가게인 사회학의 영업구역이어야 했다. 따라서 과거라고 해서 모두 역사가들에게 속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따지지는 말자. 나역시 다른 모든 역사가들처럼 일회적인 사건들, 너무나 빨리 시들어 버리기에 두 번 다시는 그 향기를 맡아볼 수 없는 하루살이 꽃들에 애착을 가전 적이 있다. 분만 아니라 나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이든 아니면 소텔해 버린 사회이돈, 거기에는 언제나 많은 일회적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그 사회를 총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면, 그것이 전체로서 견지했던 모습은 결코 반복되지 않을 것아라는 것, 즉 사회는 참정적이기는 하지만 독특하고도 고유한 하나의 〈평 형 체 e qu ili bere 〉로서 존재 한다는 것 을 우리는 수긍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필리쁘 아리에스가 각 시대와 사회적 현실간의 차이점들에 대한 재인식을 축으로 해서 그의 역사관울 전개시켜 간 것을 높이 사는 것이다. 그러나 여사가 오로지 차이성·일회성·참신성 __ 두번 다시는 볼 수 없는 것――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참신하고 기발한 것이라 해도 전적으로 그렇지는 않다. 그것은 반복되는 것 내지 규칙적인 것과 뒤섞여 있다. 뿔 라꽁브는 빠비아 Pavia 전두(1525 년 2 월 24 일 개전) 혹은 더 훌륭하게는 로크콰 Rocroi 회전 (1643년 3 월 19 일)을 논하는 가운데 이들 전쟁들의 어떤 삽화적 사건들은 〈그 시대의 많은 다론 전두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장비 • 전술 • 전두관행들의 체계에 영향받고 있다〉17) 고 말한 바 있다. 빠비아 전두논 어떤

16) Mant oux, "Hi st oi re et soci ologie," p.122.

17) 위의 주 4) 의 논문을 볼 것•

접에서는 近代戰의 효시로서 하나의 사전이지만, 그러나 하나의 〈事件族fa mi lle d'evenement s > 안에 포함되 는 것 이 다. 정 말이 지 독특한 사건들에 전적으로 국한된 역사를 어떻게 역사라고 믿겠는가? 프랑스와 씨미앙 18) 도 뿔 라꽁브를 인용하면서 그와 전적으로 의견을 같이하고 〈개인적 부분과 사회적 부분, 우발성과 규칙성의 부분을 분리해낼 수 없는 사건이란 없다〉는 라꽁브의 주장을 되풀이하였다. 이리하여 금세기가 시작되자마자 일회적 사건들에 국한된 역사에 대하여 그리고 그 매혹적 인 사실로부터 〈線形的〉역사 h i st oi re 'l i nea ire', 〈事件〉史h i s t oi re 'event uelle' ; h i st o i re evenemen ti elle에 이 르기 까지 에 대 하여 하나의 항의랄까 적어도 회의가 일어났고 그것은 뿔 라꽁브의 말로일단락지어질 것이었다.

사건을 넘어선다는 것은 그 사건을 머금고 있는 단기적 시간, 연대기 또는 신문기사적 시간――그 자취가 우리들에게 과거의 사건과 존재들의 그토록 생생한 온기를 전해 주는 당대인들의 의식의 그날그날의 신속한 포착-울 넘어선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또한 사건들의 너머에 어떤 무의식적인 역사,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얼마간은· 의식적이지만 그 책임자이건 희생자이건 행위자들의 이해력이 못 미치는 역사가 있는 것이 아닌가를 스스로 물어보는 일이었다. 행위자들이역사를 만들기는 하지만, 마침내는 역사가 그들을 실어가 버란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이러한 비사건사의 추구논 다론 인간과학과의 교류에서 절대적인 영향을 받고 뿌리를 박아갔다. 그것은 불가피한 교류였다(여러 논쟁둘이 그 중거이다). 프랑스에서는일찍이 1900 년울 고비로해서, 지금 나시 읽 어 도 그토록 감명 깊은 앙리 베 르의 탁월한 《사학종합잡지 Revuede s ynt hese h i st or iq u 에의 덕 택으로, 그리고 1929 년 이후에는 뤼씨 양페 브르와 마르끄 불로흐의 < 아날Annales d'hi st oire economique e t soi ale> 지의 정력적이고 대단히 효과적인 캠페인에 힘입어 이러한교류가조직화되어 나갔다.

그때부터 역사학은 일회적인 사실은 물론 반복되는 사실도, 의식적인 현실온 물론 무의식적인 현실도 똑같이 파악하는 데에 분주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역사학자는경제학자·사회학자·인류학자·인구학자 • 십리학자 • 언어학자가 되기를 회구했고 또 그렇게 되어갔다. 이

18) Si mi and, "Me t hode hi s t orique et sci ence so ci ale," p.18.

새로운 정신적 유대는 동시에 십정적 유대이기도 하였다. 《아날》지의 창간자요, 활력소인 뤼씨앙 페브르와 마르끄 불로흐의 동료들지리 학자 알메 르 드망종 Albert Demangeon 과 쥘르 씨 옹 Jules Sion 에서 부터 사회 학자 모리 스 알박스 Maurice Halbwachs 에 이 르기 까지 , 십리 학자 사를르 불롱멜 Charles Blondel 및 앙리 발몽 Henri Wallon 으로부터 철학자이고 사회학자며 정재학자인 프랑스와 씨미앙에 이르기까지-은 인간과학에 관한 영원한 대화를 이루어 나감직했다. 이들과 더불어 역사학은 좋건 나쁘진, 그러나 결연한 두로 모든 인간과학에다 손을 대었고, 그 지도자들과 더불어 역사학은 하나의 불가능해 보이는 총체적 인간과학이기를 괴했다. 이렇게 되자 역사학은 일종의 유치한 제국주의로 빠져들어가기도 했다. 그러냐 그것은 실상 약소국이 면서도 저마다의 요량으로는 모조리 집어삼키고 쳐부수며 그 모두를지배할 꿈을 꾸고 있던, 당시의 거의 모든 인간과학과 동일한 명분과 동일한 방식으로 그러했던 것이다.

그때 이래로 그와 동일선상에서 역사학은 다론 인간과학으로부터 계속해서 자양분을 섭취해 갔다. 그러한 동향은, 당연히 그러리라고 기대된 대로 수정이 되기는 랬울지언정 멈출 줄은 몰랐다. 마로끄 불로흐의 유작인 『역사가의 직무』에서부터 뤼씨앙 페브르가 사실상 단독주간으로 지도했던 전후의 《아날》지 사이의 거리는 실상 상당한 것아다.19) 방법과 지향에 대해 너무도 무신경한 역사학자들은 거의 그 점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1945년 이후에는 새롭게 질문이 재기되었다. 죽 역사학의 역할과 효용은 무엇인가? 역사학은 전적으로과거에 대한 연구이고 또 그래야만 하는가? 만일 지난 세월 동안 역사학이 인간과학 전부를 한 다발로 묶기에 전념했다면 그동안 역사학의 성격에 대해 피할 길 없는 결과들이 생겨나지 않았겠는가? 자·신의 연구영 역 안에서는 역사학이 인간과학 전부에 해당한다 할지라도, 역사학의 대상인 〈과거〉란 어디까지일까?

모든 것이 역사냐고 비웃듯이 말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최근에 들어 끌로드 레비-스트로스는 〈모든 것이 역사이기 때문에 어제 말해진 것도 역사이고 일분 전에 말해진 것도 역사이다〉20) 라고 쓰고 있다. 나

19) Jean Meuvret의 논문 “Histoire et sociologie," Revue historique, 1938.이 얼마나 古淡하고 今昔之感을 느끼게 하는가를 보라.

20) Ant hropologie Structurale, Paris, p.17.

라면, 말해졌던 것이나 생각되었던 것, 행동된 것, 아니면 그처 겪었던 것 모두가 그렇다라고 덧붙이겠다. 그러나 역사학이 종횡무진으로 활약하면서 사회적인 것울 그 전체로서 문제삼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언제나, 끊임없이 생명을 낳으면서 동시에 그것을 앗아가 버리고 생명의 불꽃을 꺼버리면서 다시 불붙이기도 하는, 바로 그· 시간의 움직입에 입각해서이다. 역사란 〈시간지속 la duree〉(베르그송의 철학에서 특히 강조되었던 개념으로 단순한 시간 le temes 과 구별하여, 구체적인 체험 속에 지속되는 시간을 가리킵―역주)의 변증법이다. 죽 그. 시간지속에 의하여 시간지속의 덕으로 역사학은 사회적인 것, 실로 모든 사회적인 것을 연구할 수가 있고, 따라서 과거와 동시에 현재-이 둘온 서로 불가분의 것이다_―에 대한 연구가 되는 것이다. 뤼씨앙 페브로가 그의 생애의 마지막 십년 동안에 되풀이했던 말_―〈과거학이요, 현재학인 역사학〉-온 그 접을 일컫는 것이었으리라.

마르끄 불로흐와 루]씨앙 페브르의 《아날》지의 편집후계자인 이글의 필자는 사회학자――자기처럼 생각하지 않는다거나 아니면 너무도 자기와 같이 생각한다고 필자를 비난할-와 〈칼을 뽑아들고〉 맞서기에는 매우 득이한 위치에 처해 있다고 스스로 느끼리라는 것을 사람들은 이해할 것이다. 내가 보기에 역사학은 사회과학의 한 차원일 분이고 사회과학과 더불어 한 몸을 이루고 있다. 시간 • 시간지속• 역사는 사설상 모든 인간과학에 뿌리박고 있고 또 그래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대립적 성질의 것이 아니라 수령적인 것이다.

2 역사학과 사회학의 합류지점

사회학과 역사학은 온갖 굵기의 실로 짜여전 한 장 천의 겉과 안이 아니라 바로 그 천 자체로서 같은 길을 걷는 지적 · 모험이라고, 약간은 G.귀르비치와 다르게 내가 이미 쓴 바 있다.21) 물론 이러한 나의 주장은 논의의 여지가 있으며, 철두철미하게 지켜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그것은 여러 인간과학들의 종합으로의 욕구―一설령 독선적인 욕구일지라도――에 대한 웅답이고, 그리하여 하나의 공동시장이타기보다는 공통적 문제의식에다 인간과학들을 내

21) Annales E. S, C., 1957, p . 13.

맡기려는 욕구에 대한 응답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부지기수의 그릇된 문제들과 쓸모 없는 지식으로부터 인간과학을 해방시켜 줄 것이다. 또한 급선무로서 지엽말단을 쳐내고 요접만을 추려내고 나면 생산적이고도 창조적일 수 있는 미래의 새로운 분야들의 갈립을 준바해 줄 것이다. 그것은 인간과학이 새로운 進境울 보일 것이 요구되고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역사학과 사회학이 빈번하게 서로 접합하고 일치하며 합류한다는것은 거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한편으로는역사학의 제국주의적 팽창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 역사학과 사회학은사회의 어떠한 측면에 대해서이전간에 곧잘 그- 호기심을 확슬장시켜 가려는 성향을 지닌 유일하게 〈총체적 g lobal 〉인 과학들이라는그 본질적인 동질성 때문이기도 하다. 과거라는 무궁무진한 영역에서 모든 인간과학을 포용하는 한에서는 역사학은 종합synthese 이,요, 오케스트라가 된다. 또한 내가 생각하는 바처럼 〈모든 형태의>시간지속에 대한 연구가 역사학에 대하여 현재에의 문까지 열어주 3L 있다면, 역사학은 모든 잔치마당에 참례하고 있는 셈이다. 아울러 이 마당에서 그 역시――그것이 원하돈 원하지 않든 상관 없이 __ -소명에, 따라서 종합일 수밖에 없고 시간지속의 변증법이 시키는 대로 과거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는 사회학이 늘 자신의 곁에 붙어다니고 있음·울 역사학은 보게 될 것이다.

해묵은 공석에 따라서 사람들이 사회학을 〈인간의 ‘집단적' 삶을이루고 있는 사실들의 총체에 대한 연구〉로 간주한다 할지라도 또한 사람들이 선입견에 의해 사회학을 〈현재적〉 삶의 열기와 복잡다단함· 속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되어가는 새로운 구조의 탐구로 여긴다손치더라도 어차피 사회라는 것은 사회학적 탐구와 평가에 의존하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집단적 삶이라 해도 그것은 개체적 삶과 분리시키든지 아니면 개체적 삶 가운데의 한 측면으로서 발굴해 내야만 보이게 될 것이다. 죽 집단적인 것과 개체적인 것의 이분법은 항상 되살·아나게 마련이다. 또한 〈갱신〉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다 할지타도, 그것은 모든 것을 태위버리며 묵은 장작이 새 장작보다 반드시 더 빨리 탄다고도 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불길 속에서 오래된 것이면서도. 항상 소멸되어 버리지마는 않는 것과의 관련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학자는 역사의 작업대 위에서와 일거리 앞에서 당혹감

을 느낄 팔요가 없다. 거기서 그는 시회 학의 자료 , 도구, 용어 문제, 심지어는 사회학 본래의 불확실 성 까지도 발 견 하게 컬 것 이다. 물 론사회학과 역사학의 일치 성 은 불완전하며 곧잘 와해되기도 한 다. 이논 그 교육, 수련, 경력, 유산, 일의 분위기, 다 채 로운 典股가 요구하는 상이한 자료수집기술(그러나 이는 역 사학 안 에서조차 마 찬가지이다 . 즉 중세연구와 19 세 기연구는 자료에 대한 상 이한 태도를 요구한 다.) 둥·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역사학은, 그렇 게 말하기로 한 다면, 사회과학 가운데 가장 덜 구조화되어 있고 따라서 가장 유연하며 가장 개방적인 학문이다. 사회과학의 여러 분야들은 그들 모두를 다 포함하는 것을 본분으로 삼는 사회학에서보다, 오히려 역사학에서 더 자주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경제사의 풍부한 성과는 빈약하기 이를데 없는 경제사회학으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느끼게 할 것임을 확신한다. 경단할 만한 地理史學과 활기에 찬 역사지리학은 사회학자들의 정묘법적인 생태학을 훨씬 앞질러 나간다. 사회형태학은 역사인구학(이것은 분명히 역사학이며 역사학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는다)에다 견줄 바가 못된다. 마찬가지로 사회사는 아직 그 성과가 빈약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사회적 사회학이라는동어반복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 쓰는 말로) 유형론적 사회학의 졸렬한 연구와의 교류에서 얻을 것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하겠다. 또한 에른스트 라르루쓰 Ernest Lahrousse 와 그 제자들 계열 (1955 년의 로마 역사학대회 를 상기하라)에 따르는 계량사학은 사회계급 연구의 영역에서도, 내가 보기에 마르크스와 그 추종자들의 사회계급 개념에 너무 치우치고 있는 추상적 사회학보다 확고한 우위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일단 여기서 멈추기로 하자. 사회학자들이 시도하고 있는 것과 우리 역사학자들이 하고 있는 것을 조목조목 대응시켜 보이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일 것이다. 죽 지식사회학과 사상사, 한편으로 미시사회학 및 쏘시오메트리 sociometrie 와 다른 한편으로 表面史histoire du surface 내지 이른바 사건사, 죽 잡다한 사실과 산발적이고 발작적으로 일어나면서도 한 국가나 전제계적 차원으로 확대될 수 있는__차라리 사회극 sociodrame 이 라는 명 칭 에 부합하는-―-사건이 혼재 하고 있 는 그 미 시 역 사학 micro-histoire, 이 런 식 으로 말이 다. 게다가 예술사회학과 예술사, 노동사회학과 노동사, 문학사회학과 문학사, 앙리 브르몽 Henri Bremond 의 수준에 서 의 종교사와 가브리엘 르

브라 Gabriel Le Bras 와 그 제 자들이 이 묵한 탁 월 한 수준의 종교사회학 등과 같이 사회학과 역 사학의 경계선상에 위치하는 분야들간에는 명 확한 구분을 짓지 못할 때조차 있다. 그리고 차이접들이 있는 경우에도 가장 탁월한 상대와 가장 미미한 상대를 병립시킴으로써 상쇄될 수 있는 게 아닐는지 ? 그리하여 역사학자는 아직 사회적 기호, 상칭, 규칙적이고 저변적인 사회적 역할들에 대해서 충분할 만큼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 못하지만, 조금만 노력하면 그들도 이러한 문제들을 그들 고유의 시각으로 찾아낼 수 있다는 증거를 허다한 사례들이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직무의 절대적 요구나 독접권의 문제가 아니라 관심의 어긋남이냐 무관십의 문제인 것이다.

사회학과 역사학의 합류에 대한 또 하나의 찬숙한 칭표는 그 용어가 서로 일치하는 경향이 있다는 접이다. 〈구조적 위기〉를 역사학자들은 crise structurale 라 표현하고 경 제 학자들은 crise structurelle 라 표현 하는데 , 레 비 -스트로스는 그의 최 근작 『구조 인류학 Anthropologie structurale』22) 에서 struct urale 로 되돌아왔다. 그와 똑같이 , 여 러 가지 요인이 결합된 하나의 국면을 가리키는 용어로서 우리라면 듣기 거 북한 conjonctural 을 쑬 것 인가 ? 아니 면 conjoncturel 을 쓸 것 인가 ? evenementiel 은 뿔 타꽁브가 만들어 내 고(그는 eventuel 과 evenementiel 을 놓고 어느 것을 쓸까 하고 망설였지만) 프랑스와 씨마앙이 사회학 용어 로 도입 했다가 l0 여 년 전에 역사학자들간에 다시 되돌아와서 그때부터 통용어가 되었다. palier(層)라는 단어도 조르쥬 귀르비치의 사색에서부터 출현하여 우리에게로 그럭저럭 이식되어 오더니 이제논 역사적 현실의 수준들 말고도 역사적 설명의 수준들, 역사적 ·사회학적 이해 또는 논쟁의 가능한 수준 내지 차원들까지도 언급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사람들은 논의의 수준 또는 차원을 바꿈으로써 상호 논박할 수도 있고 상호 융화할 수도 있다는 식이다.

그러나 수월하게 계속해 나갈 수 있는 이 유회는 그만하기로 하자. 그보다는 이러한 작업의 이접을 지적하는 것이 더 보람 있는 일일 것 같다. 문제의식이 접접 더 동일해쳐 가기 때문에, 〈모델〉과 〈구조〉라논 두 말이 당분간은 유행하는 가운데 용어도 동일하거나 동일해쳐 가고 있다. 〈모델〉은 역사학의 품안에서 〈작업도구〉로서 나타나가장 야심적인 과제 수행에 공헌했지만, 오히려 〈구조〉라는 말이

22) 앞의 책.

(정관사를 붙이기도 하고 안 봄이기도 한 모양으로) 온통 우리 를 휘감고 있다. 《아날》지에서조차도 사람들은 〈구조〉에 대해서 너무 왕가왈부한다고 뤼씨앙 페브르는 그의 만년의 어떤 글에서 말한 바 있다 .23) 사실 사회과학은 어떻든간에 사회에 대한 일반적 및 특수적 설명인 모벨을 구성해내어야 하고, 보다 명료하고 과학적으로 보다 잘 적용시킬 수 있을 이미지로 산만한 경험적 현실을 대체시켜야 한다. 사회과학은 갖가지 모순둘울 가려내, 가지를 쳐내고 재구성한 뒤 定性分析해서 모순은 모순으로 인정하고 심지어는 모순을 찾아 나가야 한다.

사회에는 이러한 충화된-루므게르 Roumeguere 박사의 말을 빌린다면 〈얇은 껍질이 겹쳐진 듯한〉24)_구조가 있는가 없는가 ? 현실은 각 단계 혹은 층palier 에 따라 변하는 것인가 ? 만일 그렇다면 현실은 〈수직적으로〉 불연속인 것이 된다. 현실은 그것의 모든 십도에 걸쳐 구조화되어 있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일정한 십도에서만 그러한가? 구조의 단단한 의피의 바깥에는 현실의 자유분방하고 비조직적인 영역들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구조화되어 있는 것과 그렇지 않온 것은 각각 사회의 뼈와 살이다. 그러나 사회를 이끌고 가는 운동 그 역시도 말하자면 어떤 〈역동적〉 구조의 설계에 맞추어 구조화되어 있는 것은 아난지 ? 혹은 모든 역사적 진화현상 속에는 필연적으로 반복되는 국면들, 말하자면 하나의 규칙성이 있는 것일지 ? 〈역사의 운동〉은 맹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터이니까…….

참으로 이들 문제들은 서로 접합하여 겹겹으로 중복되어 있기도 하고, 혹은 서로 접합하여 맞물려 있어야 합직도 하다. 역설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역사학자는 여기서 사회학자보다 한층 더 단순화시키는 사람이 될지 모른다. 사실 역사학자가 현재적인 것 역시 그의 연구영역에 속한다고 주장해서 안될 것은 없지만, 그는 열거할 필요조차 없는 술한 이유로 해서 현재적인 것보다는 한 차례 진행되고 나서 그가 곰곰 따져보고 단순화시킨 사회적 사건을 더 찰, 더 자주 연구하게 된다. 반대로 현재는 다양한 것, 복잡한 것, 〈다차원적인 것〉으로의 복귀를 의미한다. 이 소환율 여사학자는 격동하는 현실에 대한

23) Preface a Huguette et Pierre Chaunu, Seville et l'Atlantique, Vol. 1, Paris, 1959, p .XI. 〈그래 ‘구조'란 무엇인가? 유행되고 있는 말로 알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아날》지에서도 가끔씩은 다소 십하게 남용되는 감이 있다 . 〉

24) 구조에 대한, 高等硏究院제 6부 (I'Ecole des Hautes Etudes, VI Section) 의 토론의 要約打字本, 1958,

관찰자인 사회학자보다는 아마 덜 경청하고 덜 깨닫는 게 아닐까?

3 사회학과 역사학의 갈림길

이와 같은 개괄적 검토에서부터 여러분은 어떤 강력한 유사성 또는 일치성의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전체적으로 역사학과 사회학은 똑같은 지평과 똑같은 시야를가지고 있다. 여기서는역사학분야가, 저기서는 사회학 분야가 더 잘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약간만 더 주의와 노력을 기울이면 이 두 영역은 더욱 찰 부합될 것이고 벌 어려움 없이 똑같은 만큼의 성공을 거두게 될 것이다.

다만 이런 유사성은 역사학자들이 현재적 삶 속으로 진입해 들어오는 것을 사회학자들이 달가위하지 않는 한에서만문제시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역사학자와 사회학자의 대립으로부터 모든것을 〈어제〉 대 〈오늘〉의 미십쩍은 대치로 몰아가는 것이 있을 법이나 한일이겠는가? 두 이웃 중에 한쪽은 말하자면 〈반복〉이라는 명분으로 어쨌든 그의 고유한 영역이 아닌 과거로 들어가는 것이고, 다른 쪽 역시 구조화와 탈구조화를 일으키는 시간지속이라는 명분, 그리고 영속성이라는 명분 아래 현재 속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것이다. 한편에게는 반복과 비교, 다론 편에게는 지속과 동태가 현실파악을 위한 실마리요, 그들 각각이 활용할 수 있는 도구이다. 이미 살아온 현실과 이제 살고 있거나 살아가려 하는 현실 사이의 경계선이 그렇게도 선명한 것일까? 현재적인 것은 그들이 구성해내는 것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초창기의 사회학자들은 찰 알고 있었다. 〈인류의 과거의 관계 속에서 경험된 사실들과 사례들을 탐구하는 것〉이 유일할 것이라고 프랑스와 씨미앙은 말했었다 .25)

스타일의 대조는 더욱 믿을 바가 뭇 되는 것 같다. 역사학은 보다 더 연속론적이고 사회학온 보다 더 불연속적이란 말인가? 그렇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러한 질문이야말로 애당초 찰뭇 던져진 것이다. 전상을 파악하려 한다면 실제의 업적 그 자체들을 하나하나 견주어 보고, 그러한 대조가 사회학과 역사학에 내재적인 것인지 아니

25) Simiand, "Methode historique, " p. 2.

면 우연적안 것인지를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오눈날 에는 불연속성이 역사적 성찰로 하여금 명확성을 지니도록 해줄 따몸이타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마르 ]1 분로흐가 그 문제륭 2 차대전 직전 에 너무 때이르게 재기했을 때, 그는 역사학계에서 유례없이 공허한 논쟁둘 중의 하나의 단초를 열게 되었단 듯하다.

사실 역사학자라면 누구나 각 자 제 나품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고. 그 점은 사회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조르쥬 귀르비치는 복잡하고 극도로 경험적인 사회학――·그가 무한히 다양하다고 상당히 근거 있게 판단한 현실의 이미지에 따론 사회학 __ 心사의 열망을 과도할이만큼 그러면서 세십하게 밀고 나간다. 끌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인류사의 영속성의 십원하면서도 협소한 궤적을 발굴하기 위하여, 바로 그러한 무한한 다양성을 뿌리치고 말소시켜 버린다. 이 둘 가운데 누가 사회학자〈다운가〉를 기필코 가려내고 결정해야만 할 것인가? 거듭 말하지만 그것은 개인적 스타일의 문제이고 또한 기질의 문제이다. 뤼씨앙 페브르 역시 풍요성과 다양성을 소중히 여겼고, 마치 두 개의 음성을 지닌 돗했던 그의 스타일은 그 복잡다단한 묘사들을 자유분방하게 언제라도 해낼 태세가 되어 있었다. 퓌스멜 Fustel 은 그와 달리 소박한 편이어서 인간적 영속성의 퀘적을 단 한번의 손놀림으로 그려내려고 고십했다. 다양한 퀘적들은 미술레에게서도 쏟아져 나왔다. 삐렌느Pirenne 나 마르끄 불로흐는 뒤 씨 앙 페 브르보다는 훨싼 더 연속론자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이 연속론자였던 것은 그들의 기질에 말미암았던 것 못지않게 그들이 주시했던 역사적 국면, 죽 대다수의 문헌기록이 인멸되어 버린 서양 중세의 모습에 따랐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15제기, 그리고 더구나 16 세기와 더불어서야 우리가 그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하던 수많은 목소리들이 울려나온다. 근대 시기의 요란한 아우성들이 그때 비로소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요컨대 나의 견해로는 역사학의 스타일이란 거기서 이탈할 수 없게끔 한 가지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점은 사회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뒤르깽은 재단적이고 일칙선적인 단순성 쪽이었다. 분류에 열중해 있을 때 의 알박스 또한 그러 했다. 마르셀 모스 Marcel Mauss 는 보다 다원적인데도 우리들은 거의 그를 읽지 않고 있으니 그 이유를 돈다면. 우리가 그의 사상을 그의 제자들에게 반향되고 있는 채로, 그리고 오늘날의 연구계열 속에 찬존하여 그것과 뒤섞여 있는 채로 이해

하고 있기 때문이라 하겠다.

결국 사회학과 역사학의 중립적 위치에서 우리가 찾고 있는 차이접들은 이 렇듯 안이한 공식이나 구분에 의거할 것이 아니다. 이 토론이 ―우리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데 필요한 것이 논쟁이 아니라는 의미에서는 〈연 구〉라고 부르는 것이 낫겠지만__전개되어야 하는 곳은 바로 역사의 한복판, 즉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는 역사학적 인식과 역사학적 연구작업의 다양한 차원에서, 그리고 이어서 시간지속과 역사의 시간 및 시간성 temporalite 의 차원에서이다.

4 시간지속과 삶의 전체성

역사는 여 러 상이한 층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나는 내 임의대로 그.것을 세 가지로 말하려 한다. 그러나 이는 서술의 편의를 따라 많이 단순화시킨 것이다. 사설 문제삼자면 수십 • 수백의 층들과 수십 • 수백의 갖가지 지속들이 있는 것이다. 표충에는 사전사 histoire evenementielle 가 단기적 시간 안에 자리잡고 있는데 이는 일종의 미시적역 사이 다. 중간충에 는 국면사 histoire conjoncturelle 가 그보다는 광범하고 완만한 리듬을 좇아 전개된다. 여태까지 그것은 특히 물질적 생 활의 차원 , 경 제 적 주기 내 지 간주 기 i nt erc y cle 의 차원에 서 연구되 어 왔다(이 러 한 역 사의 걸작은 프랑스혁 명 받탈의 전주곡 구실을 했던 위기__사실은 半간주기 (1774~91) _一에 대한 에른스트 라브루쓰의 26) 저서이다)• 이 국면이타는 〈도입부〉를 넘어서면 전세기를 문재삼는 구조사histoire structurale 또는 장기 지 속사 histoire de longue duree 가 있 다. 그것은 동적인 것과 부동적인 것의 경계에 위치하는데, 장기간에 걷쳐 고정된 그 가치들로 인해 이 역사는 보다 활발하게 진행되고 완결되는 다론 역사들, 요컨대 그의 주위에 머물고 있는 다른 역사들에 비해 불변성의 면모를 떤다.

결국 세 계열의 역사적 수준이 있는 셈인데 유갑스럽게도 사회학은 여태껏 이들과 아무런 교류도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들 여러 수준들에서의 역사학과의 대화가 꼭 같은 보조, 하다못해 꼭 같은 활기

26) La crise de l'economie francaise de la veille de la Revolution, Paris, 1944.

라도 띠고서 진전되지를 못하는 것이리라. 확실히 이 들 세 수준의 각각에 대하여 역사사회학 및 역사적 지식의 사회학이 있을 터이지만 그런 사회학은 아직도 형성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다. 역사학자인 우리들로서는 그것이 어떠할 것인지를 마음속으로 그려볼 수 있을 따름이다.

사건사회학 sociologie de l'evenementiel 이 란 이 른바 전개 되 어 가고있는 그대로의 세계사一—그 안에서 사전들은 서로 꼬리를 물고 원인과 결과가 되어 일어나고, 위인들이 통상 오케스트라의 절대적 권위를지닌 지휘자처럼 일들의 됨됨이를 통할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부분적으로는 기만적인 역사__를 매일매일 기독해 가는, 항구적이고 여차하면즉각적으로 작동하게 되어 있으며 신경계와 같은 에카니즘들에 대한 연구일 것이다. 이 사전사회학은 또한(반복되는 것과 매번 새로운 것간의) 해묵은 대화의 재현일 것이고, 아울러 한편으로 전통적 역사학과 다론 한편으로 미시사회학 및 사회수학이 대결하는 마당이 될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에 미시사회학과 사회수학이 생각하듯이 표충적역사학보다 더 풍부한 성과를 기약해 주는 것일까, 그렇다면 어째서 그럴까? 시간과 다투는 한 사회라는 복합체 속에서 역사라는 이 널따란 盤面의 위치를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 내가 오해하고있는 게 아니라면 이 모두는 구태의연한 논쟁들의 울타리를 벗어난다. 잡다한 사실(사건 내지 사회국은 아니더라도)은 반복적이고 규칙적이따 대량적인데, 이러한 것들의 차원이 전혀 학문적인 풍부성이나 가치가없는 것이라고 단언할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 이 접을 면밀히 검토해 ,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건에 관해서는 우리들의 사회학적 상상력이 지철 줄 모르고 발휘되고 있다면, 그와 반대로 사회학에서 거의 완전히 무시되고 있는` 배역이탈 수 있는 국면 conjoncture 의 차원은 모든 것이 구성되어야할, 아니 어쩌면 창조해내어야 한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상태로 납아 있다. 이 〈국면〉이라는 배역은 사회적 관계들에 대해 십충적 영향을 끼치고, 집단적 유대를 조장하거나 억제하며, 그 중의 어떤 것온 공고히 하고 다른 것은 약화 • 해소시킬 만큼의 위력을 과연 갖고있는 것인가? 프랑스와 씨미양온 물질적 삶의 부침에 따른 국면적 시간의 사회학을 그윤곽만 그려주었울 분이다. 비약적 발전(국면 A) 과적어도 어떤 부문에선가는 그것이 제공해 주는 편의는 목전의 사회적

관계들과 구조둘을 유지시켜 줄 것인가? 매국면 B 의 침체와 함께 물질적 삶(뭉론 그것만은 아니지만)은 재구조화되고, 새로운 평형을 이루어내며, 민활한 힘들을 동원하거나 저어도 그 힘들이 자유자재로 활약할 수 있게끔 해준다. 그러나 이들 분야에서의 역사학자와 경제학자의 연구성과는 아직 프랑스와 씨미앙의 개략적 사업을 계승하거나 확대시키는 데 충분할 만큼의 작업가설을 세워놓지 못했고, 의미있는 준거틀을 설정해 놓지도 못했다. 게다가 경제적 침체나 발전에 수반되는 사회적 국면 및 그 밖의 국면들에 대한 연구가 경제적 국면의 연구에 부가되지 않는다면 국면사는 완성되지 못할 것이다. 각종의 동시적 국면들의 착종이야말로 의미 있는 사회학의 영 역이 될 테니까 말이다.

장기지속사의 차원에서는 역사학과 사회학은 접합되지도 않고 서로 도움이 되지도 못하고 있다. 그들이 뒤섞여 있다고 말하는 것도 벌의미가 없다. 장기지속, 그것은 구조와 구조군의 장구한 역사이다. 역사학자에게 있어서 구조란 단지 건축공학적인 짜임새가 아니라 영속적이기도 하며 혼히 세기 단위 이상의 것이다(시간 또한 구조다). 그래서 구조라는 이 중후한 배역은 스스로의 변신이 없이 광대한 시간의 폭을 넘나드는데, 만일 이 간 여정에서 쇠약해지게 되더라도 그는 중도에 자가정비를 하여 원기를 회복하고 결국 그의 속성들은 아주 완만뿌게밖에는 변화하지 않게 된다.

커뮤니케이션이론과 사회수학이 결합된 끌로드 레비-스트로스의 모돈 새로운 연구는 그의 O멱l 〉둘이 장기지속의 바다를 항해해 갈 때에만 성공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감히 증명했다고야 못하겠지만 보여주려 했었다 .27) 그의 학문적 행로의 출발접이 무엇이돈간에――미시사회학이돈 아니면 다론 수준의 사회학이돈-구조는 그가 반쯤은 참에 빠쳐 있는 시간의 바닥충에 도달했을 때에 비로소 드러나게 된다. 죽 원초적인 혈연관계 • 신화 • 의례 및 제도들은 여사의 가장 완만한 흐름에서 그 베일을 벗는다. 물리학자들은 〈무중력상태〉를 곧찰 들먹인다. 구조란 역사의 중력과 가속작용에서부터 이탈한몸체인셈이다.

그런데 뤼씨앙 페브르와 마르셀 모스의 가르침에 충실한 역사학자

27) F. Braudel, "Histoire et sciences sociales: la longue duree," Annales E.S. C., 1958. 4.

들은 언제나 총체 ensemble, 사회적 삶의 〈전체성 totalite〉을 포착하고자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상이한 층들, 시간지속들, 갖가치 시간둘, 구조들, 국면들, 사전들을 뭉뚱그려서 보게 된다. 이 총체는 일련의 계속적인 조정 • 충격 • 변용을 동해서만 유지될 수 있는 매우 참정적인 전체적 평형체를 이루게 되는 것으로 역사학자의 눈에는 비천다. 그 전체성의 맥락에서 볼 때에, 변천하고 있는 사회란 이상적으로 말해서 어느 순간에건 그 역사와 〈공시적〉 면모를 띠는 무한히 변동하는 이미지이다. 비록 그 이미지가 이전의 허다한 세부적 현실을노 반복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누가 그 접을 부정하겠는가? 1렇기 때문에 비록 총체적 구조와 총체적 현실간에 당연히 상당한 괴리가 개재함에도 불구하고, 한 사회의 총체적 구조의 개념이 역사학자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그를 괴롭히는 것이다. 이 싸움에서 역사학자가 구출해 내려고 하는 것은 대규모적 대중운동의 불확실성, 그것의다양한 변용 가능성, 순간의 산물들인 여러 가지 자유, 이른바 〈기능적〉이고 독수한 선명들의 가능성, 이런 것들이다. 이 〈전체성〉의 단계에서__감히 〈전체화 totalisation〉라고 말하지는 않으련다――,요컨대 최후의 한마디를 해야 할 순간에, 역사학자는 언제나 그의 스승둘의 反사회적인 입장으로 돌아가려 한다. 모든 사회는 각기 그 소.재의 많은 부분들이야 전부한 것이라 할지라도, 역시 독특한 것임에 들림없다. 그러하기에 그것은 그 고유의 시간을 넘어서 설명되기도하지만, 또한 자체의 시간의 맥락에서도 설명된다. 바로 앙리 오제오卜 에밀 뒤르쟁의 정신을 따르더라도 사회는 〈그 시간의 산물〉인데, 이는 물론 그 사회를 둘러싸고 있는 광활한 시간을 뜻한다. 각 사회는 이러한 시간의 함수이기도 하며 그 사회가 다론 사회적 경험들과 다불어 공유하고 있는 시간지속들의 함수만은 아닌 것이다.

5 불가항력으로서의 역사적 시간

나는 안이한 환상에 빠져 있는 것일까 ? 나는 그의 해북은 한계를넘어서며 사회과학의 기반 자체, 아니면 거의 그에 가까운 것을 문제 삼고, 자신의 지적 호기십을 모든 방향으로 밀고 나가게 하는 역사합자의 소임율 제시했다. 금세기의 시작과 함께 그것은 십리학 쪽으로壘

그 영 역 울 넓 혀 나갔다. 그때 는 베 르너 좀바로트 Werner Sombart 가자본주의는 뭐니뭐니해도 정신이라고 주장하던 시대였다(뒤늦게이지만 뒤씨앙 페브르도 줄곧 그와 동일선상에서 정신적 제도장치에 대해 말하곤 렀다). 그러더니 30 년대 무렵에는 프랑스와 씨미앙이 프랑스 역사학자들·에게 계시해 준 국면적 정치경제학 쪽으로 기울어 갔다. 그리고 꽤 오.렌 기간 동안 지리학 쪽으로도 시선을 둘렀다. 그런데 20 세기에는 역사학이 마르크시즘의 테두리 속에 들어 있는 정도가 얼마나 적은 것인가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그것의 침두 • 유혹 • 영 향은 여 러 갈래의 것이면서 강력한 것이었다. 다만 모델과 방향표지판 구실을 할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걸작이 20 세 기 전반기 에는 나오지 않았을 분야다. 우리는 지금도 그것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이 막강한 영향력은 역사학이 겪었던 수많은 변모 가운데서 한몫을 했 는데 그 변모들은 역사학자로 하여금 그의 관습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관습과 접촉하게 하며, 그 자신으로부터, 그가 받은 학문적 수련의 유산으로부터, 십지어 그의 개인적 성공으로부터도 벗어나지 않을 수 없게끔 하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러한 전이와 변신 가운데서도 한 가지 은밀하고.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 .28) 즉 여사학자는 결코 역사의 시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마치 흙더미가 정원사의 삽 끝에 달라붙듯이 역사의시간은 역사학자의 사념에 달라붙는다• 물론 역사학자는 시간에서 도망칠 것을 꿈꾸기도 한다. 1940년에 우리가 겪어야 했던 정선적 고통도 한몫울 하여 , 가스똥 루쁘넬 Goston Roupnel29) 은 이 문제 에 대 해 전지한 역사학자라면 누구나 고통스럽게 할 말들을 썼었다. 나는 또한 역사학자 뿔 라꽁브의 〈시간은 그 자체 객관적으로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오래된 성찰을 인용했었다 .30) 그러나 이 말이 전정으로 탈출구를 제공해 주는가? 나 자산 암울했던 독일군의 접령기간에는 그 어려운 시철 (1940~45) 들의 연대기에서 벗어나려고 무척이냐 애를 썼다. 사건과 그 사건이 일어난 시간들을 부인한다는 것은 그것

28) 이하 3 페이지 (6절 바로앞까지-역주)는 같은 해에 Annales에 실린, 장기지속에 관한 논문 ("Histoire et science sociales: la longue duree”를 말함-여주)의 일부를 전재한 것이다. 논의의 동일성을 지키기 위해 한 군데도 삭제하지 않았다.

29) Histoire et destin, Paris, 1943.

30) 주 4)를 볼 것.

들을 좀더 멀찍이서 바라보고, 그것들을 좀더 잘 평가하여 전적으로. 그것을 맹신하는 일이 없도록 무풍지대에, 안전지대에 비켜서는 것이었다. 단기적 시간에서부터 좀 덜 단기적인 시간과 그러고 나서 아주 장기적인 시간으로(이 마지막 것은, 그것이 존재한다면 확실히 賢者둘의 시간일 것임이 들립없을 터인데) 옮·아가는 것, 그래서 그 종국에 다다르면 멈춰 서서 주위의 모든 것을 다시금 새롭게 고찰하고 재구성하는 것, 모든 것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고 있음을 보는 것_―이것은 역사학자라면 누구나 유혹을 느껴봄직한 작업이다.

그렇지만 그 계속적인 도피도 결국에는 불가항력적인, 전전될 수 없고 마치 地般運動과도 같은 리듬으로 진행되는 것이기에 불가항력적인 현세적 시간, 역사적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서 그것을 부인하지는 못한다. 사실 우리가 구벌짓는 시간지속들이란 원래 상호불가분의 것이어서, 우리들의 정신의 창조물은 지속 그 자체라기보다 이 지속을 세분화한 편린둘이다. 이렇게 쪼개졌던 단편들이 우리들의 연구작업의 종료시에 통합되는 것이다. 장기지속, 국면 및 사건은 그 모두가 동일한 척도로 측정되기 때문에 벌 어려움 없이 서로 맞물란다. 마찬가지 이치로 이들 시간 중의 어느 하나라도 상상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은 그 전부를 이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시간 개념의 주관적이고 내면적인 측면에 주목하는 사람들인 철학자들은 결코 이러한 역사적 시간, 구체적이면서 보편적인 시간__이를테면 온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그가 상륙하는 나라가 어더이돈 그 나라가 표방하는 정치체제나 사회질서가 무엇이돈 동일한 제약을 부과하는, 항상 같온 모습의 여행자로서, 에른스트 라브루쓰가 그의 책의 서두에서 묘파하고 있는 국면적 시간과 같은 시간―~의 중압을 느끼지 못한다.

여사학자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이 시간으로 시작되고 시간으로 끝나는데 그 시간은웃어넘기고 말기 쉬운 수학적이고 조물주적인 시간, 마치 인간에 의재하는 것처럼 인간을 움직이고 구속하며, 아기자기한 색조를 지닌 그들의 개별적 시간들을 앗아가 버리는 시간이다. 죽 그것은 현실의 불가항력적인 시간인 것이다.

사회학자들온 물론 이런 너무나도 단순한 개념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그들은 가스똥 바슐라르가 제안하는 유의 『시간지속의 변증법 Dialectique de la durte』31) 에 훨싼 더 친숙하다• 사회적 시간 temps social

이란 고찰대상인 사회적 현실의 목수한 한 차원일 뿐이다. 시간은 마치 개인에게 내재할 수 있는 것처 럼 사회적 현실에도 내재하며, 그 현실이 관련을 맺고 있는 갖가지 기호들 가운데 하나로, 그현실을 하나의 특수한 존재로 부각시키는 여러 특칭둘 가운데 하나일분이다. 사회학자들은 그들이 마음대로 차단시키기도 하고 동결시키거도 하며 다시 작동시킬 수도 있는 이 만만한 시간에 의해 성가십을 당하는 일이 없다. 역사학의 시간이라면 〈공시성〉과 〈동시성〉의 민첩한 이중놀음에 어색함을 느낄 것이다. 어떤 영구불변의 이미지를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 아무대나 그 움직임을 멈출 수 있는 메카니즘으로 삶을 상상하는 것을 역사학의 시간은 허용하기 힘들다.

이 불협화음은 얼핏 보기보다는 훨씬 십각한 것이어서 사회학자들의 시간은 역사학자들의 시간이 될 수가 없다. 역사학의 십충구조는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니라면, 사회학자의 시간에 대립된다. 우리들 역사학자의 시간은 경제학자들의 시간처럼 일종의 척도이다. 어떤 사회학자가 우리들에게 하나의 구조는 새롭게 재구성되기 위하여 끊임없이 해체된다고 말할 때, 우리는 역사적 관찰에 의해서도 확인되는 이러한 설명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습관적인 요구에 따라, 긍정적인 것이돈 부정적인 것이돈, 그러한 운동들의 명확한 지속시간을 알고 싶어할 것이다. 그래서 경제적 주기나 물질적 생활의 부침들은 측정된다. 마찬가지로 사회의 어떤 구조적 위기도 시간 속에서, 시간을 통하여 그 정확한 위치가 주어져야 하고, 그 자체로서,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와 더불어 작용하는 여러 구조들의 운동과 관련시켜서 정확하게 그 좌표가 설정되어야 한다. 역사학자의 열정적 관십을 사로잡는 것은 그들 운동의 착종, 그들의 상호작용, 그들의 분기접, 즉 이들 모든 현상들의 일반적인 척도인 역사학자의 일률적인 시간과의 관련아래서만 기록될 수 있는 모든 것이지, 이들 현상들의 각각에 개별적으로 특유한 척도인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시간과의 관련에서 기록되는 것들온 아니다.

우리의 입장에 매우 우호적인 조르쥬 귀르비치의 사회학과 관련해서조차도 역사학자는 옳돈 그르돈 이러한 반대적인 성찰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얼마 전엔가 귀르비치를 가리켜 〈사회학을 역사학에다 결박시킨〉 장본인으로 규정짓는 철학자32)도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귀

31) 2판. 1950.

르비치에 대해서조차 역사학 자 는 그의 시간 지속들과 시간성 들 옹 인정해 주지 못한다. 귀 르비 치 에 의 해 구상된 거 대 한 사회 적 체 계 는 다섯 가지 기본구조에 따라서 조직되어 있다. 죽 底屈pailers aux profondeur, 結社素sociabilites, 사회 집 단 groupes sociaux, 전체 사회 societes globales 및 시간 les temps 인데 , 그 마지 막 발판인 시간성 의 발판은 가장 새로우며, 또 최종적인 형성물이고 마치 晶H U 點朗같은 것 이다.

귀르비치의 시간성 temporalies 은 다원적이다. 그가 구분하는 시간성의 전계열을 보면, 장기지속적一- 緩步的 시간, 눈속임 같은 혹은 덧없는 듯한 시간, 불규칙적 박동의 시간, 주기적 또는 목하 진행중인 시간, 지체된 시간, 지체와 추월 사이를 숨바꼭질하는 시간, 그 자체를 추월한 시간, 폭발적 시간 33) …… 둥둥이 있다. 어떻게 하면 역사학자가 이를 납득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色階률 가지고서는 역사학자에게 없어서는 안 될 단일한 흰 색을 합성해내는 일이 도저히 불가능할 것이다. 그는 또한 이 가멜레온처럼 변화무쌍한 시간이 이미 이전에 정립되어 있는 범주들에 그저 색을 덧칠하거나 손질을 더해서 여전히 그것을 표시하고 있을 뿐임을 재빨리 알아차란다. 구]로바치가 설정한 도시에서 시간은 마지막 주자로 들어와서 다른 모든 범주들과 자연스럽게 동거한다. 그것은 각각 저충 • 결사소 • 집단 • 전체사회라는 그 소재지의 차원과 그것들의 요구의 차원에 따라 자리하고 있다. 이논 방정식 자체는 바꿈이 없이 그 방정식의 미지수에다 때에 따라 다론 숫자를 대입시키는 것과 같다. 각각의 사회적 현실은 마치 달팽이 껍질처럼 그의 독자적인 시간 또는 시간의 등급둘을 배출해낸다. 그렇지만 역사학도인 우리들이 거기서 얻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이 이상도시의 웅장한 건축물은 영구부동의 것으로 존재하고 거기에서 역사는 찾아볼 수 없다. 현실의 시간, 역사적 시간은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의 집에 있는 바람과 같이 양피 속에 단단히 갇혀 있다. 사회학자들이 궁극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적대감을 품고 있는 것은 역사 자체가 아니라 역사의 시간이다. 사람들이 아무리 찰 정리정돈하고 다양하게 만들려 하더라도 여전히 거칠고 야생의 것으로 남아 있

32) Gilles Granger, "Evenement et structure dans Jes sciences de I'hornme," Cahiers de l'Institut de Science economique a pliquee, Serie M, no. I, pp .41~2.

33) Georges Gurvitch, Determinismes sociaux et liberte humaine, Paris, 1955, pp .38~40 여기저기를 볼 것.

는 그 현실, 역사학자라면 걷코 회피하지 못하는 그 구속으로서의 사간인 것이다. 사회학자들 자신은 거의 언제나 그것에서 도피해 간다. 죽 그들은 마치 시간을 초월해서 정지되어 있는 것처럼 항상 현재의 한순간으로나, 아니면 어떤 시대에도 속하지 않는 반복적 현상들~ 도피해 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가장 협소한 범위의 사건, 아니면 극단적인 장기지속 안에 그들을 가두어 버리는 대조적인 정신적 태도로의 도피인 것이다. 그러한 도피는 정당한 것일까? 바로 여기에 역사학자와 사회학자간의 논쟁의 핵심이 있는 것이다.

6 맺음말 : 우정의 충고

나는 역사를 비껴가는 것이 가능하다고는 믿지 않는다. 사회학자~ 그 접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그의 모태이자 체류지이기도 한 철학은여사에 대한 구체적 욕구를 느끼지 않도록 너무나 찰 다독거려 줄 따름이다. 실태조사방법마처 다분히 이러한 고립을 철처화할 위험성을 갖고 있다. 다소간 서두르기도 하고 그들을 고용한 사람들로부터 독촉을 받기도 하는 모든 현장조사자들은 신속하고 펴상적인 관찰을 약간은 불신할 줄 아는 것도 중을 것이다. 사건사회학은 우리들의 서제와 정부와 기업체의 서류철둘을 혼잡하게 만들고 있다. 이 풍조에 항변하거나 그것을 전혀 무익한 것이라고 못박아 말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만일 사건사회학이 모든 사회현상을 낳는 운동의 방향, 그 緩急과 부침을 기독하지 않으며, 만일 그것이 역사의 운동과 결부되지 않고 과거, 현재, 미래까지도 꿰뚫는 접화제적 변증법과 결부되지 않는다면 학문적으로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원컨대 젊은 사회학도들은 비할 데 없이 누추한 典籍庫안에서일지라도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역사적 문제일지언정 그것을 붙잡고 연찬할 기회를 그들의 수업시대에 필수적으로 가질 것이며, 그리하여 불모의 교과서적 지식을 넘어서서 본질적으로 소박하지만 그러나 오직 직접 해봅으로써 이해될 수 있는(이 접은 확실히 다른 모든 칙업에서도 마찬가지입이 분명할 대지만) 역사적 소임과· 단 한번만이라도 접촉해 보기를 바란다. 내가 의미하는 바로서의 사회과학온 우리들의 여러 직무들의 화해, 그 동시적인 실천 속에서만 촌재의 기반올 가지게 될

것이다. 그것들을 서로 반목하게 하는 것은 수월한 일이지만 그러한 논쟁은 어지간히 낡은 곡조를 타는 일이다. 새로운 음악이야말로 진정 우리가 펄요로 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1 나는 젊은 사회학도들에 게 , 역사학과 사회학간의 알력을 설명해 주고 있는 것으로서 이 논문에서 인용된 책 들보다는, 그들로 하여금 역사와-득히 그들의 학문적 소임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그러한 형태의 역사와-직접 접촉해 볼 수 있게 해줄 몇 가지 다른 처술들 을 읽기를 더욱 권장하 고 싶다.

아래에 예시되어 있는 書目둘은 각자의 취양과 지적 호기십에 따라 얼마든지 탈라질 수 있을 무수히 많은 選考중의 한 가지이다.

Vidal de la Blache, P., La France, tableau geographique, Paris, 1906.

Bloch, M, Les Caractereres originaux de l'histoire rurale francaise, Paris-Oslo, 1931 : La societe feodale, Paris, 1940, Vol. I et Il , 2• ed. , 1949.

Febvre, L., Rablais et les problemes de l' incroyance au XVI• slecle, Paris,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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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학에 대한 방법론적 연구들은 술하게 많다. 위해서 인용했던 몇 가지 처술들만을 들어 보겠다.

Aries, P., Le temp s de l'histoire, Paris, 1954,

Bloch, M., Metier d'historien, Paris,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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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iand, F., "Methode historique et sciences sociale," dans Revue de synthese historique, 1903, pp, 1~23, 129~57.

경제사를 위하여*

경제사 연구에 의해 얻어전 결과들이 이미 충분히 곽 들어차서, 적어도 생각으로나마, 그 결과들을 초월하고 구체적인 사례들을 떠나 그에 관한 규칙을 끌어내는 것이 당당하게 될 정도가 된단 말인가? 다시 말해서 거대한 전체나, 일반적인 것, 영원한 것에 관십을 기울이는 경제사의 초안이 경제에 관한 연구, 거창한 실제 문제들의 해결, 혹온 그보다는 오히려 그러한 문제들의 설정에 유용하게 될까? 물리학자들은 때때로 수학자들만이 그들 고유의 규칙을 가지고 그 해결책올 발견해 낸 수 있는 어려움과 마주친다. 우리 역사가들이 우리의 동료 경제학자들과 비슷한 교섭을 할 수 있게 될까? 의십할 나위 없이 그 비교는 너무 건방지다. 만일 보다 겸손하고 아마도 보다 공정한 비유를 원한다면 우리 역사가들을 길가의 우연한 사건들이나 경관의 빛깔들을 주시하고 그들의 의십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유사접과

* Revue economique 1950, I, mai 85, pp. 37~44.

차이접들에 의해 찬구인 지리학의 영역에 이르게 될 그런 여행자들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의 시간을 통과해 가는 우리의 여행 도중에 우리논 때로는 정태적이고 때로는 격동하는 리듬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는 경제적 사실들을 판별하였다는 느낌율 갖는다…… 이는 착각인가, 쓸모없는 확인인가, 아니면 오히려 이미 받아들였어야 할 만큼 가치가 있는 작업인가 ?

따라서 나는 다양한 인간과학들, 사회학, 역사학, 경제학 사이에 대화가 시작될 수 있고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 각각에게 혼란이 뒤따를 수 있다. 나는 우선 그중에서 여사학에 관련된 혼란을 맞아들일 준비믈 했으며, 따라서 그것은 두려움이 없지는 않은 내가 《경재평론 Revue economique)) 에 제 공하기 로 수락했 던 이 및 행 에서 내가 바랐던, 또는 규정지울 수 있었던 방법은 아니다. 기껏해야 나는 경제학자들에 의해 재검토되는 것을 지켜보고 싶은 및 가지 문제들을 알리고자 할 따름이며, 그것은 그 문제들이 변형되고 명확해진, 확장된, 아마도 그 반대로 무가치한 것으로 귀결된, 역사학으로 되돌려지게 하기 위함이다_그러나 십지어 이 경우조차도 전보, 앞을 향한 한 걸음이 문제가 될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나는 모돈 문제들을, 심지어 역사학적인 것과 경제학적인 것의 두 방법에 부닥친 시험을 견디어 내는 것으로부터 이득을 얻게 되는 본질적인 문제둘을 제기한다는 자만십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 외에도 수천 개 이상이 있을 것이다• 단지 나는 여기에서 개인적으로 나를사로잡은 것, 전적으로 역사학자라는 직무에 충실한 채 내가 가끔 생각해 보았던 것들을 거론할 것이다. 비록 우리의 관접이 내게는 서로 서로 아주 동떨어전 것처럼 보이지만, 아마 그것들은 어떤 경제학자의 생각과 합치할 수도 있을 것이다.

I

언제나 역사학자의 직무의 어려움에 대하여 생각키위진다. 그 어려움을 부인하려 들지 않고서, 그것의 대체할 수 없는 편리함울 한번 내세우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첫번의 검토로 미래에 있어서의 역사학의 상황에 관한 본질적인 것을 분별해낼 수 없을까? 우리는 다투는

세력들중 어느세력이 그것(본질적인 것 :역주)-울 가져갈 것인지 안다. 우리는 앞질러 중요한 사건들을, 중대성을 떠게 될 최종적으로 미래를 밝혀내 줄, 사건들을 분별해낸다. 얼마나 엄청난 득권인가 ! 누가 현실 생활의 뒤엉킨 사실들 속에서 그만큼 확실하게 지속적인 것과 순간적안 것을 구별해낼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당대인들에게는 사실둘은 아주 흔히 같은 정도의 중요성을 떤 것으로 제시되며 , 미래를 재작해내는 것인 아주 중대한 사건들은 너무 낮은 기척만 낼 분이어서 -그것들은 비둘기의 발로 다가온다고 니체는 말했다-그것의 존재를 거의 파악할 수 없다. 바로 그 때문에 콜린 쿨라크와 같은 경제학자의 노력은 주어진 경제적 사실에 미래를 향한 예언적인 연장을, 우리의 생활을 만들어내고 앗아가는 사전의 본질적인 흐름을 미리 식별해 내는 방법을덧붙이려는 것이다. 뒤집어전모든 것, 역사가의 한가닥 꿈! ……

따라서 역사가가 첫눈에 알아채는 것은 바로 생활의 경쟁 속에서 승리를 거둔 부대의 사전들인 것이다. 그러나 이들 사건들은 수많은, 서로 상충되는 가능성의 들 안에서 자리잡고 질서지워지며 그것들 중에서 삶이 최종적으로 선택하였다. 실현된 한 가능성에 대해 수십 수 백, 수천 가지가 스러져 있으며, 분명,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것들온 우리에게 너무 미미하고 너무 감추어쳐 있어 단번에 역사에 부과될 수 없다. 그렇지만 그것들을 여기에 재도입하려는 시도를 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 사라전 흐름들은 매순간 거대한 전화의 충동에 제약을 가했고 그것들의 滿開를 늦추었으며 때로는 그것들의 진행을 때이르게 종식시켰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파악한다는 것은 팔수적이다.

따라서 우리는 반대 측면으로 가는 것, 역사가들의 직무의 손쉬움에 반항하는 것, 전보 또는승리를 거둔사건들분 아니라, 그 반대의 것, 힘들이지 않고는 격파될 수 없었던 이 수많은 반대 경 험들까지도 연구해야 하는 것이 역사학자에게 필수적이타고 말할 것이다.__그렇고 그런 경 멀적 인 뜻을 담지 않고 〈관성 l'inertie〉이 라고 말할 수 있을까 ?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뤼씨앙 페브르가 그의 『라블레 Rabelais』에서 연구한 것과 같은 부류의 문제인데 거기에서 페브르는 거창한 미래가 그것에게 예약되어 있는 무신론이-그 예를 좀더 정확히 하기 위해 나는 지적 뿌리에 반영된 무신론을 말할 것이다 -16 세기 전반기

에서 가능한 사상인지의 여부, 그 제기의 정신적 장비(즉, .:J.. 관성이 무신론과 대면하는 것)가 그것의 탄생과 그에 대한 명확한 문제설정을허용하는지의 여부를 자문한다.

우리는 경제학의 영역에서 보다 명확하게 제시된, 그렇다고 해서 해결하기에 더 쉽지는 않은 이 관성, 제동장치에 관한 문제를 다시 발견한다. 자본주의, 국제경제, 세계경제 Weltwirtschaft (독일 사상에서 그 단어가 난접과 풍부함을 함축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라는 이름` 아래, 종종 첨단적인 전화, 최상의 것, 예의적인 것들을 묘사하지 않았는가 ? 고대 그리스에서의 곡물에 대한 방대한 역사에서, 알프레드 쟈르데 Alfred Jarde 는 곡물 상업의 〈근대적인〉 형대, 알렉산드러아의 ·무역상인들, 곡물 수송의 지배자들을 생각해 본 연후에 자신위 밭을 갈아 자신의 울리브로 살아가는, 축제날에 자기 소유의 가축몌 중에서 어린 돼지 한 마리를 도살하는…… 펠로폰네스의 혹은 에피루스의 그렇고 그런 목자를 상상한다. 당대의 국제경제의 밖에 있는 페쇄된 혹은 반쯤 페쇄된 경제의 수천 가지 사례들중의 한 예인데, 그런데 무엇이 그나름의 방식으로 그것의(국제경제-역주) 전개와 리듬을 억제시키는가? 관성인가? 또한 어느 시대에나 그 시대나름의 방법, 그것의 능력, 그 급격함, 혹은 오히려 그것의 상대적인 완만함 둥이 부과해 놓은 것들이 있게 마련이다. 과거에 관한 연구는 무엇이나 정확히, 그 시기에 분명히 그 생활에 압박을 가하는 것들, 지리적인 장애물들, 기술적인 장애물들, 사회적인 장애물들, 행정적인 장애물들…… 에 대한 면밀한 측정기를 반드시 포함해야만 한다. 내 생각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내가 한 연구를-즉, 종교전쟁 중에 있는 프랑스에 관한 내마음을 끄는 연구를 맡는다면, 나는 아마 처음에는 츠l의적인것으로 여겨지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접을 내가 확신하고 있논 한 인상으로부터 출발할 것이라는 것을 나는 털어놓을 수 있다. 그 당시의 프랑스를 넘어 내가 나가볼 수 있었던 몇 가지 경로들은 나로 하여금 그것을 양차 세계대전 사이의 중국과 같은 것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I6 세기의 프랑스에서는 양차대전 사이의 중국의 인구 과잉이 없다는 접에서 사람들이 훨씬 더 찰 길을 잃게 되는 거대한 나라, 그렇지만 내전과 의전으로 파괴된 거대한 지대의 이미지는 여전하다. 모돈 것이 여기서 발견된다. 포위당하고 겁에 질린 도시들, 도살장들, 지방 사이를 부동하는 군인들의 이탈, 지역의 붕괴, 재건, 기적, 기습

… 등 나는 그 비교가 오래 오래 내 연구가 끝날 때까지 지속될 것이타고 말하지는 않는다. 단지 바로 거기로부터, 생활 분위기에 대한 이 연구로부터, 이 거대함으로부터, 즉 정치, 경제 둥이 포함되는 나머지 모돈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붙들고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제동장치들로부터 출발해야만 한다는 점을 말할 따름이다.

이들 例話둘이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그 예화들은 그 문제를 중요한 설마리를 떤 것들 속에서 드러나게끔 만든다. 모든 존재, 모든 경험둘은 단번에 무너뜨리기에는 너무 두꺼운 의피의 수인이며, 특정의 움직임, 더우기 득정의 태도 및 특정의 이데올로기적 변혁만을 허용하는 기구의 용량에 한정되어 있다. 한 순간 도덕주의적으로 말하기 위한, 절망적인 동시에 타당한, 훌륭하면서 조악하기도 한, 더 나은 것, 더 못한 것을 막아주는 두터운 경계이다. 거의 언제나 그 경계는 가장 필수적인 사회의 진보에 대항하는 작용을 하지만, 그것은 전쟁을 억제하게 되기도 하며―~나는 휴식이 없는 숨악히는 전쟁중에 있던 16 세기에 대하여 생각한다__혹은 생산활동이 미세하고도 수많은 조직체들로 세분되어 공황에 대하여 놀라울 만치 저항적이었던 그 16 세기에 그 경계는 조업단축을 금지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계, 관성에 관한 연구 __ 팔수적인 연구 혹은 과거의 사실을 다루어야만 하고 그 과거의 사실에 그들의 빈틈 없는 조치를 취하도록 하게 하는 역사가들에게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필수적인 연구-가 가장 현실적인 것을 다루는 임무를 떤 경제학자의 영역에서도 역시 해당되지 않을까? 오늘날의 경제 문명은 그 나름의 경계, 그 나롭의 관성력을 지닌다. 의십할 나위 없이 이 문제들을 그것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으로부터 추출해 낸다는 것은 경제학자에게는 어렵다. 그렇지만 어떻게 그것들을 더 찰 정립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일러주는 것은 그에게 달려 있는 것이며 또한 그는 어떻게 해서 그것이 아무런 홍미도 없는 그릇된 문제들이 되게 되었는지를 우리에게 입증해야 한다. 내가 최근에 질문해 보았던 한 경제학자는 이 제동 장치, 이 접착성, 이 저항성 둥에 관한 연구에서는 특히 역사학자에게 의촌한다고 내게 대답하였다. 그것으로 충분히 안전할까? 반대로 경제학져으로 판별가능하고 측정가능한 요소들, 시간지속 속에서만 그렇게 되는 요소들은 거기에 없을까?

2

전통적인 역사학자는 역사중의 단기간 즉, 전기 및 사건의 역사에 관십을 기울인다. 그러한 시간은 경제사학자나 사회사학자의 관심을 거의 끌지 못한다. 사회 • 문명 :경제 및 정치제도 등은 덜 급한 리듬에 따라 작동한다. 우리 편에서, 그 단계가 5년에서 IO년, 20 년, 30년, 십지어 50년이나 지속되는 규칙적인 움직임의 주기들, 간주기들에 대해 우리가 이야기한다고 해도 우리에게 그 방법을 제공한 경제학자둘은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거기에서조차 우리의 관접에서 는 연재나 단파의 역사가 문제가 되지 않을까? 그 파동 아래에서 추세(경제학자들의 세기적인 추세)에 따른 현상의 영역 속에서, 변형되고 마침내는 관찰될 수 있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경사를 지닌 완만한 역사가 펼쳐진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우리의 불완전한 언어로 구조사라고 지칭하는 것, 죽 사건사라기보다는 일종의 국면사, 비교적 짧온 파동의 역사에 반대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러한 논의 I)와 이 및 줄에서 요구할 수 있는 독촉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논의를 넘어서서 이 십충적인 역사를 규정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충분히 이해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것은 또한 일종의 경제사이기도 하다(시간을 가로질러 원격조정을 할 수 있는 인구학은 그것에 대한 훌륭한 십지어 너무 훌륭한 실증일 것이다). 그로卜나 만일 우코리가 아주 장기적인 과거사에 대한 일련의 기록――특히 통계적인―一을 사용할 때에만 비로소 경제의 거대한 구조적 진동아 적절하게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며, 우리가 가격과 소득의 계열 등과 같이 비교저 짤막하고도 특수한 계열에 대하여 연구하고 기대를 건다는 접을 사람들은 더욱 찰 알고 있다. 그렇지만 충분히 또는 약간 알려진 과거를 수년 또는 수십년에 의해서가 아니타 수세기에 의해 시간의 거대한 단위에 의해 파악한다는 것에 어떤 이득이 없을 것인가? 꿈을 꾸는 상태인가 또는 유용하게 생각하고 있는 상태인가?

비교적 고정된, 경계가 쳐진 경제학의 지대,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죽, 지정학적인 관찰방법은 효과적이지 않은 것일까? 예를 들

1) 그것은 문법에 맞지 않을 것이다. 국면적 Conjoncturel 이며 구조져 Structurel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면, 자본주의의 사회적 단계보다는 앙리 삐 렌느 Henri Pirenne* 의 뒤어난 발표의 훌륭한 표제를 해설하기 위하여 자본주의의 치정학적 단계들을 기술하거나 또는 훨씬 거창하게 우리의 역사 연구 속에 겅제지리학의 연구들을 끌어들이는 것-한 마디로, 주어진 경제학의 영역 속에 역사의 파동과 돌발사건들이 어떻게 기록될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홍미움지 않을까? 나 혼자만이 그것에 내해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지만 나는 16 세기 말에 지중해인의 생활이 어떠했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우리의 건설한 연구자들 중의 한 사람인 레몽 M.A. Remond 은 18 세 기의 프랑스에 관한 연구를 마무리지으려하며, 프랑스 경제가 그 거래의 증대 에도 불구하고 대서양쪽으로 전환되기 위해 어떻게 지중해세계로부터 유리되는지를 보여주고자 하는데 그 전환은 도로, 시장, 도시 둥의 면에서 중요한 변화를 수반한다. 나는 또한 19세기 초에 대해서도 생각하는데 2)' 그 때의 프랑스는 잘 짜여진 그들의 생활권을 갖춘, 전체가 정치 및 교환에 의해 연결되어 서로 서로의 관계가 마치 우리의 교과서의 교훈에 따르는 규칙울 갖추고 수지 군형을 맞추기 위해 통화 조정을 하는 국민경제와 도 같이 구성된 프랑스 지방들의 계열이다. 변혁으로 가득찬 한 세기가 그에게 가져다 준 변형과 더불은 이러한 지리저 사항은 프랑스의 경우에 있어서는 귀중한 연구 영역인 동시에 더 나온 것울 기다리면서 그 거대한 변모와 위기들로 인해 우리에게 보이지 않았을 완만한 역사의 면을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이 아닐까?

더우기 역사에 대한 장기적 관접은 아마도 그릇된 방식으로 경제 생활은 거대한 리듬에 따른다는 접을 암시한다. 그 쇠되가 16 세기어l는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았던 중세 이탈리아의 찬란한 도시들은 혼히 처음에 육상 또는 해상 수송으로부터 언은 이윤에 의해 그들의 ;:,:l산을쌓았다 아스티, 베니스 제노아가 다 그에 해당한다. 상업활동이 뒤따랐으며, 그 다음에는 산업활동이 뒤이었다. 마침내, 뒤늦은 끝마무리로 금융 활동이 있다. 전도된 시험, 쇠망온 때로 아주 간 간격으로 연속적으로-__ 재발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수송, 상업 , 산업

* Henri Pirenne : 벨기에의 여사학자 (1882~1935), Gand 대학 교수, 중세의 도시, 엘리트, 제도, 도시인구, 고대산업 등에 관십, 실증학파와 결벌-여주

2) 여기서 이해를 돕기 위해. l'Ecole des Hautes Etudes 의 조교인 젊은 경계학자 M. Francois Desaunay의 진행 중인 연구를 보라.

등을 스치고, 은행의 기능은 월 싼 오랫동안 잔존하게 해준다. 18 세기에도 베니스와 재노아는 언제나 재정의 중십지였다.

그 도식은 너무 단순화된 것이며 나는 그것이 완벽하게 정확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며 나는 여기서 입중해 보인다기보다는 년즈시 제시하고자 할 따름이다. 그 도식을 복잡하게 만들고 그것을 실제 사실에 근접시키기 위해서는 매번 새로운 활동이 나타날 때마다 그것이 장벽의 전복, 부자유스러움의 극복과 상동한다는 접을 보여주어야만 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부침은 단순한 선들이 아니며, 그것들은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수천 가지의 고착적인 개입들에 의해 두1 범벅되어 있다는 접을 지적해야만할 것이다. 수송에서부터 금융에 이르는 이 연속적 단계들은 갑작스러운 단절에 의해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또한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어떤 도시경제돈지 출발지접에서는 마치 참재적인 식물을 함유하고 있는 씨앗과도 같이 다양한 단계들에서 모든 종류의 활동들을, 아직은 배아상태에 있는 것이 분명한 활동들을 함축하고 있다. 끝으로, 한가지 사례로부터 하나의 법칙을 끌어내고자 한다거나, 중세 이탈리아의 도시형태였던 축소판 국가(일종의 소규모 경재 ?)에 관한 주제에 대하여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노라고 생각하는 것, 오늘날의 경험을 설명하기 위해 그것을 선불리 이용하는 것둥에는 명백한 위험이 따를 것이다. 그것에 대해 두 번 검토해 보지 않기에는 도약은 너무 위험스럽다.

그렇지만 경제학자들이 한 번 더 우리를 도울 수 없을까? 우리는 수송과 그에 부수되는 것(가격, 도로, 기술)들 속에서 〈장기적으로〉 일종의 결정적인 원동력을 파악해 낼 권리가 있을까? 또한 주기 및 간 주기의 단하나 또는 좁은 시간지속에서가 아니라 아주 거대한 시기에 걸쳐 특정의 경제적 움직임이 다론 것들에 바해 어떤 여佑差〉 __ 천문학자의 용어를 빌리자면-가 있는 것일까?

3

우리에게 핵십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또 다론 문제는 사회학자의 용어를 빌려 말한다면 〈연속〉과 〈불연속〉의 문제이다. 그 문재가 제기하는 논란온 아마도 역사상의 시간의 다원성에 대한 고려가 거의 없

다는 접에 기인할 것이다. 우리문 데리고 가는 시간은 그 들의 삶의 지속기간이 우리들의 것보다 훨씬 길다는 점에서 , 그 조락을 향한 표지가, 단계가 그들 편에 있어서나 우리편에 있 어서나 절 코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접에서, 그 현실이 우리 를 넘 어서 있 는 사회 및 문명도 비 옥 다른 방식으로이건 하지만 우리 를 데리고 간다 . 우리들의 것안 시간, 우리의 경험에 의한 시간, 우리 생활의 시간, 계절을 되돌이 키 고. 장미 를 꽃피우게 하며, 우리의 세월의 흐음울 나타내 주는 시간은 다양한 사회구조의 촌속시간도, 전혀 다론 리 듬으로 셈한 다• 그 렇지 만 그것들이 아무리 천천히 나이 를 먹어간다 해도 그것들은 변화하며 그것들 역시 결국은 죽음으로 끝난다.

그것이 역사학적인 용어로 우리에게 일러준 구조적 간극둘, 심층적이고 고요하며 고동없는 듬들중의 하나가 아니라면, 그 렇 다면 사회적 〈불연속성〉이란 무엇이겠는가. 인간은 여러 세대들이 우리들에 앞서 알고 있었던, 그렇지만 우리의 생이 끝나기 전에 모든 것이 무너쳐 버리논 사회적인 상황(말하자면, 일종의 정신 풍토 , 둘 , 문명 그리고 목히 경제적 문명)과 더불어 태어 난다. 거 기서부터 교란과 기습이 있다.

한 세계로부터 다론 세계로의 변천은 우리가 조명해 주어야할 아주 방대한 인류의 드라마이다. 좀바르트와 째이우 Sayous 가 근대 자본주의가 언제 탄생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서로 다물 때 그 이름을 내세우지도 않았고 그 결정적인 날짜도 찾아내지 못하면서 그들이 찾아 헤멘 것은 바로 그런 부류의 간극이다. 나는 이러한 파국의(또는 독일 군인들이 칸느 전두에 대해 연구했듯이 사람들이 연구하게 될 로마세계의 멸망과 같온 부정학하게 전형적인 파국의) 철학이 우리에게 주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불연속성에 대한 다각적인 조명울 하는 연구를 바란다. 사회학자들은 이미 그것에 대해 논하며, 역사학자들은 그것을 발견해 낸다. 경제학자들이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까? 그들 역 시 우리 들처 럼 이 그나스 메이 어 슨 Ignace Meyerson 의 날카로.운 생각과 맞부딪치는 기회를 가질까? 이 십충적인 간극들은 인류의 거대한 운명, 인류의 본질적인 운명을 토막낸다. 그 충격 위에 실려간 것은 무엇이나 무너지거나 적어도 변형된다. 만일 우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들 결정적인 지대들중의 하나를막 가로질러 왔다면, 우리 도구들중의, 우리 사상들 중의, 어제의 우리 개념들중의 그 어느 것도 내일을 위해 더 이상 아무런 가치도 없으며, 낡은 가치에로의 환

상적인 복귀에 근거한 교육은 무효가 된다. 우리가 우리의 훌륭한 대가들의 교훈에 간신히 동화시켰던 정치경제학은 우리의 과거시절에 대해서는 이용될 수 없울 것이다. 그렇지만 경제학자들이 이 구조적 불연속성에 대하여 십지어 가설로서라도 정당하게 이야기할만한 것을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단 말인가? 우리에게 일러줄 것이 없단 말인가?

아다시피, 인간과학들의 새로운 전개를 위해 우리에게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그렇고 그런 개벌적인 거동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일반적이고도 거대한 토론――역사학의 역사학이 그에 포함되는 사상사 역시 그 고유의 삶을 영위 하는 살아있는 존재이며 십지어 그것에 생명을 부여한 촌재들의 삶과는 독립적이기 때문에 분명히 결코 끝나지 않는 토론――의 정립이다. 그토록 복잡하고 그토목 혼란스러운 사회적인 것들을 단 하나의 설명노선에 끌어 맞추려는 환상보다 더 유혹적이지만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없다. 사회학자들과 더불어 인간에 속한 모든 것을 주시할 권리를 가전 〈유일한 사람들〉인 우리 역사학자들에게 있어서, 다양한 시간들과 다양한 사실들의 질서를 가지고 생활의 통일성을 재구성해내는 것이 우리의 직무이자 우리의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뤼씨앙 페브르의 원칙에 따르자면 "여사, 그것은 인간이다.” 또한 우리가 인간을 재구성하고자 할 때 우리는 드러나고, 한데 합쳐치고, 같은 리듬에 맞춰 살아가는 실제 사실들을 한데 조합해야 한다. 구조사와 국면사를 맞대놓는다는 것은 설명을 왜곡시키는 것이며, 혹은사건사족으로 향하게 되면 그것은 한 가지 설명을 첨예하게 재단하는 것이다. 매 단계마다 바로 이 유사한 것들 사이에서 그 연관관계를 찾아내야 한다. 처음의 주의력, 최초의 연구, 최초의 성찰로써 해야만 한다. 이윽고 그렇게 해서, 단계 단계로 우리는 처택을 재구축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계열사를 위하여 : 쎄빌르*와 대서양 (1504 ― 1650)**

삐에르 소뉘 P i erre Chaunu 의 기념비적인 저작 l) 을 지칭하기 위해서는 그가 우리에게 제안한 역사가 지니는 모험과 새로움의 의미를 강력하고도 구체적으로 묘사하면서 규정지어 줄 표현이 필요하게 된다. 그것을 〈계 열사 l'hi s t o i re ser ielle 〉라고 해 보자. 왜 냐하면 삐에르 쇼뉘 자신이 지난 번에 그 개념을 사용한 바 있고 2) 또한 그 개념은 한 저작의 주요 관접을 조명해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처작에서 독자는 길을 따라가다가 제시된 길이 너무 다양한 나머지 이탈하게 되고 실마리를 잃고 그런 다음 실컷 헤메게 될 위험을 무릅쓰게 된다.

* Seville: 구아달끼비르에 있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수도 에스파냐 네번째 도시.

** Annales E. S. C., n°3, mai - juin 1963, 비판정둘, pp .541~553.

1) Siville et l'Atlantique (1550~1650), tome 1, 1212 p.,t. II, 2050+xv. Paris, S.E.V.P.E. N. , 1959.

2) "Dynamique conjoncturelle et histoire serielle," Industrie, 6 juin 1960.

나는 그 책을 한 번 읽고 나서 또 두번째 독서에서는 펜을 손에 쥐고 그것을 자세히 더 잘 이해하고 나서 그 노력의 집적과 뜻밖의, 그렇지만 일부러 계획된 침묵을 인정한다. 계열사라는 들 속에서 그 책은 계열사의 통일성, 그에 대한 정당화, 미리 수궁된 그것의 한계 동을 제시한다.

웅장한 차원의 저작도 일종의 선덱이다. 삐에르 소뉘가 그 내부로 도피해 들어간 계열사는 그 나름의 요구사항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개인적 사실에보다는…… 반복되는 요소들에…… 즉, 궁극적으로 계열의 분석이라는 고전적인 수학적 절차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동질적인 계열 속에 동합될 수 있는 요소에 관십을 갖는다.〉 따라서 그것온 하나의 언어, 죽 육신을 떠난, 아주 추상적인 언어이다.

그러한 역사는 그것에 그 이름과 그 촌재 근거를 부여해 주는 〈계열〉을 내세우고요구한다. 즉계열사는 계열이, 말하자면 서로서로 연관되는 측정치들로 이루어전 체계적인 연속체가, 아니 체계화된 연속체가, 역사적 시간의 함수일 것을 요구하는데, 역사적 시간의 자취가 때로는 확설치 않고, 처음에 조정한 계산이 그것을 미리 자동적으로 고정시키지 않기 때문에 역사적 시간의 전행과 그 의미를 끈질기게 정립해야만 할 것이다.

역사적 시간의 함수와 설명이라고? 그러한 이미지와 그러한 개념은 아마도 충분히 명확하거나 정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서로 연결된 타당한 측정에서 나온 수치들의 계열은 또한 우리의 불명확한 의식을 가로질러 구축된 도로, 단 한 가지의 선택받은 여행만을 허용하는 도로이기도 한 것이다 .

양과 질면에서 재편성된 1504년에서 1650년까지의 세벌르와 아메리카와의 거래야말로 우리의 의식에 제공된, 역사적으로 놀라운 힘을 가진 개인, 죽 〈주어전 수치들의 연속체〉이다. 그 계열을 정립하기 위해 위게드 Huguette 와 삐에르 쇼뉘는 1955년에서 1957년까지에 항구의 방대한 회계장부에 관한 7권의 책을 펴냈다.3) 그들은 계열을 구축해낸 동시에 〈발명해냈다〉. 그들에게 있어서 본질적인 것은 18세기

3) Huguette et Pi erre Chaunu, Seville et I'Atlantique, Premiere partie: Partie statistique (1504~1650), 6 volumes in-8°, Paris, S.E.V.P.E.N., 1955~1956, plus un Atlas, Construction graphique, i n-4•, 1957. 삐에르 쇼뉘의 논문은 소위 Seville et l'Atlantique 의 해석본인 계 2 부이며, 거기서 는 처음에 세권에 대한 명확치 않은 번호가 매겨쳐 있다. VII VIII,VII bis.

가 시작되기 훨씬 전에, 1 8 세기의 손쉬운 동계학이 시작되기 힐싼 전에 수치들로 이루어전 이 단단한 도로를 세우는 것, 죽 삐에르 쇼뉘가 쓴대로 〈극히 미미한 것에 불과하지만, 측정가능한 처축과 오로지 질적인 접근에 내맡겨야만 하는 저축의 경계지접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었다.

우리는 얼 해밀돈 Earl J. Hamilton 이래로 16 세기의 에스파냐의 웅대함은 〈측정가능하다는〉 접을 이미 알았으며 , 오늘날 우리는 그 접을 더 잘 알고 있다. 또한 그 반도.(아베리아반도, 죽 에스마냐 : 여주)에 대한 고문서둘의 풍부함에 비추어 볼 때, 계열이라는 이 선택받은 걷에서 의 진보가 아직도 가능하다.

따라서, 삐에르 쇼뉘는 바로 놀랍고도 참선한 노력의 결과, 이번에는 혼자서 3,000 페이지가 넘는 자신의 방대한 논문을 구축하였다. 그 논문은 우리에게 에스파냐의 웅대함에 대한 단 한 가지 노선만울, 세계경제에 대한 단 한 가지 노선만을 제시하고 있지만 바로 거기에 본질적인 주도적인 축이, 즉 수많은 기존의 지식과 개념들 가운데에 절대적인 질서를 도입하는 본질적인 축이 있는 것이다. 세계 최초의 근대성에 관심을 갖는 역사학자 및 경제학자라면 누구나 그 책을 읽고 자신들의 낡은 선명을 검토하고 뒤잎을 수 밖에 없게 된다. 역사학에 대한 열정울 가지고 있을 때, 그 책을 찰 위치시키고 그책이 할수있는것, 죽그책이 우리에게 제시하고자하는것 이상을 요구하지만 않는다면 그책은 가장 훌륭한 경관에 속하게 된다.

1 구조와 국면

삐에르 소뉘가 우리에게 제시한 쎄빌르의 대서양은 그의 습관적인 너무 지나찬 정중함과 더불어 그가 즐겨 인정한 명백한 상응성 및 연결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보다 IO년 먼저 1949년에 출간된 책인 『필립 II세 시 대 의 지 중해 와 지 중해 세 계 Le Mediterranee et le mondemediterraneen a l'epoque de Phillippe Il 』의 반복 또는 연장이 라고는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선 이 대서양은 그 전체로서 파악되지 않고, 양티유 les Antilles* 에서 구아달끼비르 Guadalquivir* *의 하구에

* les Antilles: 중앙아메리카의 군도로 카리브해와 대서양운 나누어줍. 복부는 쿠바,

자메이카, 산토 도밍고, 푸에르토 리코의 네 개의 섬으로구성된 대앙티유계도입.

•• Guadalquivir: 에스파냐 안달루시아 지방에 있는 길이 약 680km 의 강.

이르는 자의적인 특정 공간내에서, 저자가 실컷 말하고 또 말한 것―저자의 표현들 중에 및 가지를 취해 본다면, 〈중앙의 대서양〉, 〈이베리아 반도에 에워싸인 중요한 대서양〉 〈쎄빌르에만 한정된 대서양〉__ 이 다루어 지 고 있다.

문제시되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완결된 지리적 실재 속에서 파악된 공간이타기보다는 구축된 인간적 실재, 죽 쎄빌르로 귀착되는 항로. 체계, 〈병목을 동해…… 쎄빌르에서 모든 것이 모이고〉 쎄밀로에서 모돈 것이 흩어지는 항로체계이다•

삐에르 쇼뉘가 이내 파악한 명백하고 근본걱인 또다른 차이접은 모든 것이 과거인 그 당시가 (16 세기에) 그 위대함의 만기 상태인 인간에 의해 결코 파악되어 본 적이 없는 가장 오래된 해상공간__지중해 세계-과 급조된 빌려온 과거를 지닌 공간(대서양)을 대조하는 차이접이다.

분명히 삐에르 쇼뉘가 구조와 국면을, 부동성과 움직임을 구별할 때 그는 순간적으로 내가 일찍이 제시한 예를, 최근의 상당수의 논문에 영향을 미찬 것으로 밝혀진 예를 따른다. 따라서 삐에로 쇼뉘 역시 간 시간과 짧은 시간의 변증법적인 효능에 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의 의도는 나의 것은 아니다. 즉, 나는 『지중해세계』에서, 좋돈 나쁘돈, 부동성에서 인간 생활의 가장 빠른 움직임에 이르는 전체사를 생각하고 그것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삐에르 쇼뉘는 이러한 의도도 그러한 희망도 가지고 있지 않다. 삐에르 쇼뉘에게 있어서 주요 부동성들에 대한 묘사(그 책의 제 2 부)와 그 다음의 국면의 紋唱部(재 2 부)는 특정의 경제적 실재를 재구성하려고 할 다름인데 겅제적 실재는 그것을 망라하지만 모든 면에서 그것을 넘쳐나게 하는 전체사에서 도려낸 부분이다. 나는 십지어 삐에르 쇼뉘조차도 장기 지속이라는 추상을 통해서만 관찰가능한 구조적인 것보다는 국면적인 것을, 죽 살아 있는 역사에 더 가까운, 파악하기에 보다용이한, 만일 곡선 속에 페쇄되어 있다면 더욱 과학적인 국면적인 것을 의식적으로 선호했던 것아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사실상, 쎄빌르 지방의 우월함이 효력을 발하기 시작한 해이자 콜름부스의 항해 이후 I2 년 째인 1504 년을 기접으로 파악된 이 대서양

에는 아직 이렇다할 구조들은 없다. 결국, 그러한 구조들은 도입되고 구축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삐에르 쇼뉘는 장기지속과 파동간의 분리 속에서 자신의 국면에 관한 연구-그의 처작이 귀착되는 그 기획의 심장부인-를, 그것의 배열과 그에 대한 손쉬운 논평을 방해하는 것을 미리 완전히 제거해 버릴 보다 나은 기회를 보지 않았을까? 수학자가 모든 항수항을 방정식의 한 변으로만 모으거나 버릴 때 그는 탈리 조치하지 않는다.

보다 명확하게 말한다떤, 삐에르 쇼뉘의 논저의 제 1 권은 그것이 아무리 풍부하다고 해도 뒤이어 나올 계열 구축에 선결적인 것이다. 만약 우리가 그것을 그 자체로서 검토한다면, 우리는 거기에서 약접과 빈툼, 의의의 침묵 둥을 발견하게 될 것이지만, 그러한 것들은, 건축가의 의도에, 아니 오히려 그가 선택했던 의무에 해당하는 그 작품의 일반적인 관접에서라면 소믿되고 정당화될 수 있다.

2 중앙 대서양의 구조

나는 물론 삐에르 쇼뉘의 저작에 대한 첫 반응에서 그의 제 1 권을 그 자체로서 한 권의 책으로, 즉 그 나름의 요구사항과 특히 그 나름의 통합성을 갖추고 있어야만 할 한 권의 책으로 간주하려는 지나천 경 향을 보였 다. 이 책 이 에 매 모호하게 『지 리 적 구조 Les stuructures geographique』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는 점은 거 기서 아무것도 변화시켜주지 않는다. 이 제 1 권은 무시간적이 아니며 그것은 그 관접의 목수성이 무엇이돈 간에 지리학에, 뤼씨앙 패브르에 접근했던 역사학자들 누구나에게 있어서처럼, 피에르 쇼뉘에게 있어서는 과거의 경험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경험들을, 인간이 겪어온 모든 경험들을 다루는 것이다· 사실상, 여기서 지리학은 제한적이 아니라 지시적이다. 지리학온 공간상의 인접관계에 의하여 지역적 들을 제안하고 정당화한다. 그것은 너무도 단조롭고 손수1 운 톨이며 그것은 문제들을 모아 묶음으로 만들려하거나 또는 경관을 구성하기 위해 역사적 시간울, 여기서는 구조들의 제작자……물 도입하려는 데에는 거의 관십을 두지 않는 틀이다• 1야페이지부터 우리는 그 대응책을 십각하게 취할 수 없는 나열식의 프로그램에 맞추어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태연

히 나아가게 된다. 그것 은 호화찬란한 색 인표의 열거 를 가능하계 한다고들 말할 것이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만일 그가 구조들의 완만한 년동에 관심을 두고 있다 해도 그것들은 번화되고 혀선되기 몌문에, 그가 자신의 책의 서두에 십지어 자신의 기질에 따라 어떤 객인들 쓸 수 없을 것인가? 환동기의 고정된 영상보다는 술로우모션의. 영화가 더 선호되었을 것이 다. 더구나 삐에르 쇼뉘는 여 러 번 특수사둘을 중가시켰으며 더 나아가 그것들을, 국지적 사실을 초월하고 그것들을다시 모으는 유형론적 지리학에 예속시켰지만 애석하게도 그는다음 네이지에서는 그것을 내던져버란다.

제 1 부는 완만하고 세세한 여행으로 그 여행은 구세계에서 신세계로 가는 여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사학적으로나 지리학적으로 말해서 어떤 조건에서 아메리카대륙과의 교역에 대한 쎄빌르의 독접이 설정되었으며 그 한계 및 특히 그. 약접은 어떤 것일까? 그 십충성과 해안선에서 순간적으로 파악된 이베리아세계가 주도적인 특권의 배후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구성해 나가는가? 이러한 것들은 그에 대해 아주 훌류한 답변들로 재시되고 있는 일차적인 질문들이다• 그리고 나서 〈유럽의 섬들〉, 카나리아제도(장기적으로 연구된), 마데르. Madere, * 아조르 제도 les Acores** 둥이 덧붙여진다. 이들 섬들로부타 산토 도밍고, 푸에르토 리코, 자메이카, 버뮤다, 풀로리다 반도… ••• 둥의 신세계의 성들로 자연히 나아간다. 신세계가 제시해 주는 땅덩어리로부터 그는 地峽울, 특혀 우리의 저자가 이유가 없지는 않게일종의 〈쎄빌르의 지협〉이라고 주장한 파나마 지협을 염두에 두면서, 가벼운 땅덩어리들(대륙의 섬들)과 무거운 땅덩어리들(‘대륙들' :신에스파냐와 페루)을 구벌하고자 했다.

방대한 또는 한정적인 이 질문들에 대해 이 책은 종종 신선한 빛울 던져준다. 삐에르 쇼뉘는 거기서 寶庫를 과시했으며 따라서 그의 상거래 계열이 그에게 ·미리 그렇게 하도록 허용할 때마다 그는 결정적인 기호 표기를 증가시키고 교환율 고정시켰으며 가죽, 금, 은, 설탕, 담배…… 둥의 주요 생산의 성공을 눈에 띄게 하였다• 거기에는 생산력과 생산지에 대한 목록이 참조하기 쉬운 정보로 가득찬 완벽한 사전이 있다. 우리는 무엇에 대해 불평한단 말인가?

* Madere: 리 스본에서 대서 양으로 약 1,000km 떨어져 있는 작은 화산성 •

** les A(i ores: 대서양에 있는 군도, 1976년까지 포르무갈령.

이 제 1 권이 그 속에서 다루지 않았던 접에 대하여, 보다 정 확 하게 말해서, 제 1 권이 제시된 수많은 자료들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조정하고 제기했어야 할 구조들의 전체사와는 무관한 상대 로 있다는 접에 대하여 불평한다는 접을 재론해 보자. 삐에르 쇼뉘는 〈구조들〉이타는 처음 IO0 여 페이지 (40 페 이지에서 163 페 이지 까 지)에서 그 접을 잘 인식하고 있었는네, 기이하게도, 〈구조들〉은 종종 이야기, 특히 사전적인 이야기로 점철되어 거기에서는 콜롬부스가 정복이라는 大行程 다음에 거대한 위치를 차지하여 공간적 차원과 인간적 차원에서 〈정복 Conquista〉에 대한 새롭고도 중요한 고려를 하기에 이르 렀 다. (143 캐 이지에서부터 159 페이지까지) 그록읽지만 이렇게 쓸모있는 이야기도 내가 보기에 대서양구조들의 완만한 정돈에 따르는, 또한그것들의 휘문이에 따르는 어려움을 밝혀주어야만 했던 내가 생각한 그런 활력소는 아니다.

대서양은, 그것의 유럽대륙과 아메리카 대육의 연안은, 바다 한 가운데에 혹은 대륙의 경계선상에 있는 섬들은, 그것들을 연결시켜 주는 해상동로는 발견 당시에는 빈 공간이었다. 즉, 거기에는 사람이 없으며, 아니 오히려 드물거나 비효율적으로 존재했다. 백인이건 흑인이건 인디언이건 간에 사람들의 집적에 의해서만 여기 저기서 전설이 있게 된다. 즉, 선박, 재배작물, 가축 둥의 문화적 품목들의 반복된 이동과 주입에 의해서, 혼히는 가격의 변동에 의해서 건축이 있게 된다. 즉, 에른스트 라브루쓰 Ernest Labrousse 의 말을 빌리자면, 〈아메리카 대묵의 낮은 가격이 주도하였다.〉 모든 것은 선댁받은 중심부를 기접으로 조직 되 며 , 선덱 받은 중십 부는 종교 • 정 치 제 도 • 행 정 • 도시 의 골격,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위에, 이미 대양을 다스리고 뛰어넘을 수 있는 민첩하고도 교활한 구세계의 상업자본주의 둥의 기촌 구조들의 들에 뿌리박고 있다.

앙드레 쎄이우 Andre E . Sayous4) 는 오래 전에 쎄빌르에 관한 공증인의 고문서둘 Archivo de Protocolos 의 탐색을 동하여 제노아 상인둘의 대담하고도 혁신적인 행위를 강조하면서 이 거대한 모험에 열중하였다. 그때부터 세부 사실에 관한 수많은 연구들이 나타났다. 우리는 길레르모 로만 빌레나 Guillermo Lohmann Villena5) 의 결정적 인

4) "La genese du systeme capitaliste: la pratique des affaires et leur mentalite dans l'Espagne du XVI• siecle, " Annales d' Histoire economique et sociale, 1936, pp .334~354.

5) Sur les Espinosa, Pari s, S.E.V.P.E.N., 1968.

처작과 같은 것을 갈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앙리끄 오뜨Enrique Otte6)” 의 혁신적인 연구를, 또한 이용되기만을 바타고 있는7) 무역 업자 씨몽 뤼쯔 Simon Ruiz8) 의 편지들을, 대데리고 멜리스 Federigo Melis9) 에 의해 간행된 풀로렌스 지방 상인들의 귀중한 서류들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장황한 서론이 간헐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쎄밀르 지방의 교역의 원동기인 상인들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아무 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신세계 도시들의 모태인 이베리아반도의 도시들에 관해서도 대서양 이편과 저편의 도시의 유형에 관해서도 더 이상 단 한 마더도 없다. 결국 사실상 여러 병들의 〈목〉인 쎄빌르라는 도시에 대해서조차 단한마디도 없다. 쎄빌로는 인도 제도로 동할 분만 아니라, 지중해 지역으로 또한 에스파냐의 심장부어에르 쇼뉘가 훌륭하게 말해 준 것으로)로까지도또한 플랑드르, 잉글렌드, 발틱해 둥의 복부 지방으로까지도 통하는데, 그는 그 접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미리 준비된 대발견이라는 폭발을 허용해 준 것은 바로 에스파냐 주변의 죽 지부랄탈에서 영국과 브뤼지 Bruges*에 이르는 바로 그 연안 항로였다. 초기 아메리카를 대부분 설명해주는 것은 바로 쎄빌르의 국제 자본주의의 집중이다.

이렇게 해서 쎄빌르는 쎄빌르―베라크뤼즈 Sevill e ―la Vera Cruz 축 이의의 다론 해역 에, 다론 항로에, 다론 상품에, 다른 돈에 속하게 되었다. 〈이 베 리 아 해 양〉에 〈주도적 인〉(프랑스와 빼 루가 주도적 인 국지 , 주도적 인 경제라고 그 단어를 사용한 의미로) 공간인 한에 있어서는 쎄빌르해양의 우월함에 의해 해상통로의 다른 지여에서 나타나는 〈비대칭〉의, 불균형의 형태를, 현처한 열등성의 모든 복합체를 살펴본다는 것이

6) "La Rochelle et l'Espagne. L'expedition de Dieg o Ingenios a l'ile des Perles en 1528, " Revue d' Histoire economique et sociale. t. XXXVII. 1959, n° l.

7) Bennassar 에 의 해 이 용된, “Facteurs et Sevillans au XVI• Siecle, " Annales E. S. C., 1957, n°1, p. 60. 그리 고 브로델에 의 해 이 용된, "Realites economiques et prises de conscience. Quelques temoignagcs sur le XIV• siecle, " ibid, 1959, n°4, p. 732.

8) 북-히, H, Lapeyre가 그의 논문에서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A ffaires et gens d' Affaires, " Une famille de marehands, les Ruiz, Paris, S.E.V.P.E. N., 1955.

9) II Commercio transatlantico di una compagnia fiorentina stabilita a Siviglia, 1954,

* Bruges: 프랑스 보르도지방의 복서 쪽 변방에 있는 각온 마을.

중요하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삐에르 쇼뉘는 멀리 있는 필리핀 재도의 태평양에 대해서 10) 대서양이 그것을 자신의 탐욕스런 생활에 합병시켰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죽, 지리적 구조에 대해 언급하면서 복해에 대 해 서 , 또한 알리 칸트 Alicante*, 제 노아 그리 고 리 버 른 Livourne 둥의 지중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일별도 던지지 않을 수 있을까? 분명, 그 문제들을 명확히하고 고문서에 대한 연구를 확장하기 위해서라면 쎄 빌르에 대 해서 는 그 풍부한 준칙 들 Protocolos 을, 씨 만카 Simancas**에 대해서는 쎄빌르에 관한 또한 플랑드르에 대한…… 헤아탈 수 없이 많은 문서둘을 살펴보았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삐에르 쇼뉘는 현존하는 다른 계열에는 관십을 두지 않은 채, 자신만의 계열사의 내부에만 기꺼이 매달리고 있다.

여하돈 쎄빌르는 그 살아 있는 총체 속에서 제시되어야 할 의무를 지넜다. 또한 쎄빌르는 그것을 트리 아나 Triana 에 연결지어 주는 船橋의 하류에 있는 그 협로에서 분만 아니라, 죽 그 영광스러운 까사 드라 꽁트렉숀 Casa de la Cont ra t ac i6n(스페인 동인도무역청, 1503-1790―역주)과 같은 제도들 속에서분만 아니타, 경제의, 사회의, 도시의 실제 속에서도 한 무리의 상인들, 중개인들, 환금상들, 선원들, 보험업자들 속에서도 제시되어야 한다. 사실상, 번갈아 그 생활을 풍요롭게 해주고 또한 데마르게 해주며 따라서 당시의 기록에서 소위 자본의 〈넉넉함 largesse 〉과 〈빡빡함 l'etroitesse 〉이 라고 한 현상을 금융시장에 교대로 초래한 무리들에 의해 주도되는 그곳 생활의 아주 득칭적이고도 단속적인 움직임 속에서 제시되어야만 한다. 나는 씨망카에서 1561 년에 실시된쎄빌르의 주택과 주민에 대한 전수 조사인 쎄빌르의 빠드롱 〈Padron 〉울 일람하면서 , 피에르 소뉘가 상실당한 모든 것에 대해, 그가 우리에게서 앗아간 모든 것… ••• 에 대해 생각하였다.

3 계열의 승리

국면에 관한 두 권의 책(그 작품의 제 2 권과 3 권) 역시 목이한 것의

10) Pierre Chaunu, Les Philippines et le Pacifique des i /es i bcriques XVJ •-XVIII• siecles, Pari s, S. E. V. P. E. N. , 1960 i n-8°, 301p.

* Alicante: 에 스과니 아 Valence 지 방에 있는 도시 .

** Simancas : Vieille-Castille 에 있 는 에 스파냐의 도시 카스탈과 아라곤의 옛 유물을 많이 간칙하고 있음.

오만무도함에 의해 우리로 하여금 경계심을 품게 한다. 사실상 쎄빌르의 거래량의 기목 이상의 세계적 국제적 국면이, 〈세계경제 Weltwirtschaft〉의 리 듬들이 문제 가 되 는데 , 그것은 모든 거 대 한 문명 들과경제들에까지 펼쳐질 것이며, 나와 마찬가지로(그렇지만아주신중하게, t.II, p.43) 삐에르 소뉘는 그것이 세계경제의 리듬들 중의 〈하나〉타는 접울 주장한 바 있다. 그것은 아마도 15세기가 끝나가기 훨싼 전에 이미 그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즉, 오랫동안 주도적이었던 이슬람의 隊商들과 그들의 항해에 힘입어 유럽에서 중국에, °,1도에, 겁은 아프리카에 이르는구세계에 해당하는, 이 체계가 잡힌 별도의 세계에서 그것은 수세기 전부터 그 중의 하나였다. 그것은 경제사가가 아닌 여러 역사학자들이 수년 전에 이미 언급했어야만 했을사항이다……

16 세기에는, 그- 법위들이 확장되고 그 생활이 아주 힘차게 가속화·되던 16세기에 하나의 국면이 있다는 것은 훨씬 타당하다. 즉, 그 당시에는 〈쎄 빌로와 베라크뤼츠 사이의 어디서나 파동의 보편성이 ••• … 충분히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확실히 이 세계적 국면이 모든 것을 다 교란시키지는 않는다. 즉, 〈십충적인 의미에서의 세계 경제는 훨씬 늦게서야 비로소 가능했을 것이며, 19세기와 20세기의 O,l구 및 기술… ••• 의 폭발 이전에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삐에르 쇼뉘의 논거제시 과정에서의 그의 증언에 따돈다고 해도 결국 대서양의 선택은 〈겁 없는 선택이다. 죽 그것은 세계를 설명하려 돈다.〉 나는 그 무모한 말을 좋아한다.

여하돈 이 책에 대한 비평온 언제나 바로 이 세계적 국면의 수준에까지 다다르거나 혹은 되돌아가거나 발돋움해 가야한다. 만일 삐에르 쇼뉘가 에스파냐 제국에 대해 많은 것들울 말하려 한다면, (이미 자신의 제 1 권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그의 거대한 설명체계가 자리잡아야만 하는 곳은 우리가 그것에 대한 수많은 또한 혼히는 보다 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그 를 속은 아닌 것이다. 에스파냐 세계 밖에 있는 세계적 국면을 파악하는 것이 문제시된다•

따라서 중요하긴 하지만 이차적인 설명의 부담을 털어버란 다음 시간을 위해 공간을 유유히 방치해 두고, 바로 그때부터 여유 있게 쌔빌르의 船隊둘의 도착과 출발 시각에 따라 그 단계들만을, 그 기간들만을, 그 리듬들만을, 십지어 그 순간들만울 기입한다는 것은 홍미롭고 유익하다. 우리는 수하물의 양과 가치에 대한 추정치를 한꺼번에

다문다. 왜냐하면 가는 것과 오는 것이 별도로 또는 누적적으로 검토. 되며 또한 원래의 곡선은 여러가지 다른 방식으로 다루어지기 때문이다 (5 년간의 평균, 7 년 도는 13 년의 중위치) .

결국, 그 기록은 곡선들의 얽히고 설킴의 형태로 제시된다. 이 곡선들이 재구성되고 때로는 고안되기도 하고 혼히 수정되었다는 접은 바로 모든 계열적 자료들을 배열하는 데 선전되어야할 작업을 나타내 주는 셈이다. 가장 뛰어넘기 어려운 장애물은 토운타다 tonelada 의 추정 (변수)이 었다. 죽 그것 한 가지만으로도 받아들여 야만 할, 뒤쫓아야만 할, 여하튼 극복해야만 할 위험과 모험을 나타내주는 셈이다.

그러나 이 구성에 대한 비판은 전문가들에게만 관심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수효가 많을까?) 역사학자는 저자의 숫자상의 결론과 결정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큰 일을 감수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역사학자는 삐에르 쇼뉘가 2,000페이지 이상 태연자약하게 몰두한 분명히 지루한, 분명히 필요한, 건 작업에 아무 염려 없이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앙리 라메이르 Henri La peyre 는 일전에 삐에르 쇼뉘는 줄였울 수도 압축시켰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쓴 바 있다.I!)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쉬울까? 게다가 우리는 이 모든 페이지들을 동상 그러하듯 주의를 기울여 읽어야만 할까? 우리들 중에 가장 압박을 받는 사람이타면 이 책에 말려 있는 지리부도 l'A t las 를 참조할 수 있으며, 가장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에게 합당한 논의만을 선댁할 수 있다.

여하튼 천우신조로 전체로서의 결론은 명확하고 확고하다.

세 기적 인 〈추세〉는 1506 년에서 1608 년까지 의 상승기 인 A 단계와 1608 년에 서 1650년까지 의 하강기 인 B단계 동 두 가지 거 대 한 움직 임을 그려낼 수 있다.

그렇지만 삐에르 쇼뉘는 되도록이 면 자신의 年表와 관찰을 훨씬 짧은 측정치 및 움직임 에, 죽 기껏해야 20년에서 50년에 이르는 기간에(더구나 그것들 중의 하나는 훨씬 짧은) 붙들어매두고. 있는데, 그 기간들은 소위 부당하게 아니 오히 려 모호하게 〈간주기 들 inter cycles 〉이라고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반(半)-콘트라티에프 주기들이다. 그러나 그 용어는 그다지 문제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삐에르 쇼뉘가 〈10년 단위 의 주기 decennie> 대 신에 고집 스럽 게 사용한 IO년이 라는 용

11) Revue Historique, 1962, p.327.

어보다는 간주기라는 용어가 그에게 있어서 훨씬 쉽게 용납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속적이고 상충적인 간주기들이 도합 5 개가 있게 된다. 죽, 첫째, 1504 년에서 1550 년에 이르는 상승기, 둘째, 1550 년에서 1559~1562 년에 이르는 하강기(여기에서의 그것이 내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라부르쓰의 간주기가 될 수 있을까?), 셋째, 1559~1562 년에서 1592 년에 이르는 상승기, 넷째, 1592 년에서 1622 년에 이르는 소위 정지상태, 다섯째, 1622 년에서 1650 년에 이르는 적나라한 하강기 둥이 그것이다.

이들 간주기들의 내부에는 手相術로부터 조금도 따오지 않은 일종의 분석에 의해 다시 한번 IO 여년의 주기들의 연속이 제시된다. 또한 휠싼 짧은 움직임들인 〈키찬 kitchin〉둘을 밝혀낼 수도 있다.

나는 단 한 순간도 그렇게 률에 짜여전 날짜와 기간들이 주관적인 측정치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오히려 그것들은 소요된 시간 및 그 물질 생활을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유효적절한 측정치들이 기 때문이다. 체온이 환자의 질병에 대해 다 일러주지 않는 것처럼 그것들은 경과된 시간에 대해 더 이상 일러주지 않지만 그정도만으로도 그렇게 보잘것 없는 도움인 것은 아니다.

계열사의 방대한 노력은 이렇게 해서 그 배수와 약수를 갖추고 있는 연대기적 눈금의 정착으로 귀착되게 된다. 그 눈금은 그 주요 분절 지접에 있어서 우리를 놀라게 하지는 않는다. 세계의 호황은 1608 년의 이편과 처편으로 두 개로 잘리우는데, 죽 그 해에 세기적 〈추세〉의 소용돌이가 방향을 바꾼 것이다. 그런데 사실상 그러한 방향전환은 단 하루 만에 일 년 만에 이 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착각과 정체불명의 파국들이 유포되어 있는 장기간의 망설임을 거쳐 이루어진다. 우리의 팔수적인 시기구분(그것 없이는파악가능한 일반사란 없게 될)에 있어서 어떤 사람들은 말하자면 1590년과 같이 예고적인 해를 더 선호하기도 할 것이 며 다른 사람들은 결정적 인 해를 더 선호하기도 할 것이 다(예를 들면, 카를로 M. 시풀라Carlo M. Cipolla는 1619 년 도는 1620 년, 로마노 R. Romano 의 경우는 16 i 9~1623년, 최근의 나 자신의 경우는 1620 년).

• 논쟁이 여전히 개방된 상태라는 점은 죽 우리논 아직도 세기적인 죤추세〉의 방향전환이라는그 예의적인 사건들에 대해 논의하는 데(이미 최근의 해밀턴 Earl J. Hamilton 이 제시한) 거의 익숙해 있지 않다는 접은 자명하다. 그러한 사건은 우리 직무의 실제 논리 안에서 선명하는

데 있어 무적함대(삐에르 쇼뉘가 그 것에 내해 영국의 해적잘에 대해서처럼 우리가 이미 알고 있었던 바를 확신시켜 주었던)보다 또는 소위 30 년전쟁의 발발보다 훨씬 더 어려우며 그 자체로서 훨싼 더 중요하다. 세기적인 〈추세 〉는 고전적인 논의 주제가 아니라는 접은 사실이다. 엑스 A i x 에서 열린 I962 년 9 월의 학회에서 저자의 참석에도 불 구하고 그리지오떠 끄레 슈망 J. Griziot.ti·Kretschmann' 2) 여 사의 논제 는 논의 되 지 않 았다. 왜 냐하면 루기 에 로 로마노 Ruggiero Romano 와 프랑크 스푸너 Frank. Spooner, 그리고 나을 제의한 참석한 역사학자들 중 그 누구도 그녀의 지극히 희귀한 저작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I590 년과 1630 년 사이 에 엄 청 난 신회 가 일 어 났 다는 점 은 사실이 며 ,. 우리의 이성은 그렇지 않을지라도 우리의 상상력은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자유로운 여지를 갖고 있다. 그것은 아메리카 광산의 줄어드는· 수확고(에른스트 라부로쓰가 기꺼이 제시한 설명)가 원인일 수도. 있고 혹은 신 에스파냐 인더언의, 의십할 나위 없이 페루·… •• 둥의 인구의 급격한 감소가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서, 에스파냐―포르두갈인의, 아메리카의 팽창 일로에 있는 경제에 의한 은의 흡수가 원인이라거나 그 경제의 필리핀과 중국 둥지로의 방향 전환 또는 리오.드 라 팔라타 Rio de la Palata······ 방향으로 증대해 가는 밀수에 의한 그 경제의 사로잡힘 둥을 원인으로 돌리는 낡은 설명들은 버려지게, 되었다. 밀수, 방향 전환 둥은 정상적인 길에 해당하는 국면에 함몰되게 되었다는 점을 우리는 알고 있다. 나는 상업적이타기보다는 息利적이고 두기적인 특정 자본주의의 공황이 그 당시에 그 역할을 담당하였다는 접을 확신까지는 않더라도 기꺼이 제시할 것이다. I6 세기 말기에는 쇠퇴 일로에 있던 I8 세기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윤의 하락 현상이 있었다. 원인이돈 결과돈 그것은 사실인 것이다 !

그러나 분명히 찰 재기된 그 문제가 정확하게 해결되기에는 그 영역에서의 연구는 너무도 불충분하며 문제 제기도 아주 절망적일 정도로 빈곤하다. 십지어 첨단의 경제학적 사고조차도 아직은 우리에게 필요한 설명들을 제공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현명한 사람들이라떤, 그것은 지나치게 방대한 문재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한계가 분명한 문제들이라고 해서 언제나 우리 눈에 보.

12) II Problema del trend secolare nelle fluttuazioni dei prezz i, Pavie, 1935.

다 명확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그에 대한 훌륭한 본보기로는 우리가 제시한 1550 년에서 1562 년까지의 짧은 간주기인 삐에르 쇼뉘의 연구가 있다.

그것은 바로 경고조의 일격 이상의 쎄빌르의 〈주도적인〉 모든 경재의 엄청난 격동, 즉 내가 보기에 양지에 있는 샤를르 5 세의 시대로 부터 팔립 Il 세의 쓸쓸하고 음산하며 어려운 시대로의 우리 눈앞에서 벌어전 아주 국적인 전환이다. 프랑스에는 프랑스와 1 세의 치제로부터 앙리 Il 세의 움울한 시기·… .. 로의 전환이 있다. 프랑스 혁명 전야까지의 라부르쓰의 간주기는 그것들 역시 프랑스 혁명처럼 유럽 전체의 드라마에 해당하는 종교전쟁 전야까지의 그 〈공황〉에서 그 둥가물울 발견하게 될 것이타고 어떤 역사학자가 아마도 조만간 일러줄 것이다.

삐에르 쇼뉘가 그 주재에 대해 유럽 및 세계의 계열 차원의 역사를 도 심지어 진단의 가치를 지니는 記述적인 역사물, 죽 예를 들면 지중해행의 영국 항해의 갑작스러운 중단, 또는 복해에서 쎄빌르에 이르는 네덜란드 항해의 확정된 성공(아마도 1530년부터) 둥을 문제 삼기 위하여 자신의 쎄빌르 곡선을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는 접에서 우리는 유감스럽게 여길 것이다. 쎄빌르의 주기가 아메리카 대륙의 요구에 의해 좌우되었는지 또는 유럽 경제의 요구에 의해 좌우되었는지의 여부를, 또한 어떻게 그것이 (이번의 경우건 다른 경우이건) 유럽 전역으로까지 밀려나갔는지를 왜 연구하지 않았단 말인가?

4 내기 : 생산의 역사

이 끝없는 국면적 이야기의 풍부함에 대해 말하려면, 또는 그 주제에 대한 우리의 비판을 우리의 의십을 표명하려면 여러 페이지들이 소요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비판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세부 사실이 문제시되기 때문이다. 또한 삐에르 쇼뉘의 처작의 본질적인 핵십은 거기에 없다. 그렇다면 그 본질로, 죽 그의 저작이 우리에게 제시해 준 최후의 대논쟁으로, 비평가들이 아직 그것을 언급한 적이 없다는 접에 대해 내가 놀란 바 있는 그 대 논쟁으로 나아가보자.

항구의 거래 곡선은 상품과 자본의 유통에 대한 증거를 간직하고

있다.――그런데 오래 전부더 수리적 역사학이 추구해 온 그 유통은 분명히 우리의 범위 안에 있기 때문에 삐에르 쇼뉘는 그것이 에스파냐의, 더 나아가 유럽의 생산에 대한 중거도 간직하고 있다고 주장하었다. 늙은 학자들이 말한 것처럼 유봉은 생산을 완결지어 주며 생산의 비 약을 뒤 따라간다. 마지 막 독서 중에 득히 , 가스똥 엥 베 르 Gaston Imber t'”의 저작에 대한 독서 과정에서 나는 가격의 움직임의 속도와 생산의 움직임의 속도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접에 놀랐다. 16 세기에 관한 한, 우리는 단지 섬유 생산 곡선 및 개 (혼슈트 Hondschoo te, 라아도 Leyde, 베니스 Ven ic e) 만을 알고 있을 따름이 다. 그런데 그것들은 모두 포물선이라는 고전적인 외양을 떠고 있으므로, 그것들은 수직상테에서처럼 빨리 올라가고 다시 수직으로 빨리 떨어진다고 그것들에 관해 간단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장기간의 가격의 둥귀는 생산곡선들의 활발한 상승의 빗장을 열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언제나 가격의 둥구]보다는 늦게 일어난다. 또한 장기간의 낮은 가격으로 인해 생산 곡선들 또한 그 후퇴 상태로 서둘러 나아가지만 언제나 미리 나아간다.……

그런데 때마침 삐에르 쇼뉘의 곡선(쎄빌르의 거래)과 해밀튼의 가격 곡선간의 상관관계 역시 완벽하지 않다. 그 상관관계는 전체적으로 正의 관계이다. 그렇지만 얼마나 차이접들이 많은지 ! 〈1504년에서, 1608 년까지의, 또한 1608 년에서 1650 년…… 까지의 세기 단위의 가격 곡선은 전체적으로 같은 지향을 보이지만 적어도 3~4 번의 〈경사〉는 있다고 삐에르 쇼뉘는 쓰고 있다• 상승기에 있어서 가격의 둥귀는 무려약 5 배( ! )이며, 거래량에 있어서는 15~20배가 된다. 반대로 하강기에 있어서는 가격은 20~30% 7J-소하는 데 비해 거래량의 감축온 대략 2 배 이상이다.……〉 나에게 있어서 그것은 조금은 쎄빌르의 곡선은 생산 곡선처럼 처신한다는 것의 입증, 즉 입증의 개시와 같온 것이다• 증명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바로 거기에 중요한 목적이 있는 것이라고 내가 생각한다면, 또한 예를 들어 십지어 지오프리 무어 Geoffrey Moore 와 같은 학자의 이론적 실제적 연구가 주는 의미에 맞추어 새로운 변증법 속에서 비늘처럽 배열된 다양한 주기들을 지닌 역사가 명확해진다고 내가 생각한다떤 그것은 너무 성급한 판단일까? 주기적 진동을 프랑스 경재사가들

13) Des mouvements de tongue duree Kontratieff, Aix-en-Provence, 1959.

의 사상에서 그토록 우선시되는 가격의 움직임에만 한정하지 않는다고해서 무슨이득이 있을것이란 말인가? 빌바오 B i lbao 출신의 우리 동료 인 펠리 프 뤼 쯔 마르맹 Felip e Ru iz Mar ti n 의 I6 세 기 째 고미 Seg ov ie,* 꼬로듀 Cordoue,** 똘레드 Tolede, *** 꾸엔까 Cuenca**** 둥치의 섬유 생산에 관한 정리되지 않았지만 곧 간행될 예정인 연구들은 삐에르 쇼뉘의 연구를 보완해 줄 것이다. 죽, 그 연구들은 대체로 I58 0 년에 있어서 에스파냐가 대면한 국제 자본주의 특유의 변동을 나타내 주는데 그 시기에 대세에 밀란 만큼 또한 적극적인 에스파냐 제국주의는 거창한 청부업을 시도하려 했다. 또한 〈〈아날 Annales>지 에 실려 곧 간행 될 발렌시 아 Valence 출신의 우리 의 동료인 알바로 까스떨로 Alvaro Castillo 에 의한 까스떨로 왕조의 아씨엥또 Aslen t os (부채)에 대한 곡선 14) 도 내세워 보자. 세계사가 파악되기 위해서는 이 모든 계열들이 접근되어야 하며 그들 간에 집중되어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다론 정보들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또한 지금껏 우리가 기피해 왔으며, 지나치게 〈선험적인〉 설명에 의해 그에 관하여 우리가 진부한 것만을 들었던 생산울 측정하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가격 곡선으로부터 벗어나야만 하는 것이다•

5 길게 쓸까 아니면 잘 쓸까?

삐에르와 위계드 쇼뉘 Hugue tte Chaunu 의 악대한 작업은 업청난 성공을 거두었는데 우리는 그 점을 잇지 않도록 해야 한다. :i. 점에 대해서는 전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그 대양과 같은 책은 지나치게 길고, 지나치계 산만하며 한 마디로 너무 급하게 씌어지지 않았을까? 삐에르 쇼뉘는 말하는 것처럼 쓴다. 죽 그는 우리가 몇 가지 당연한 언쟁을 해야 마땅할 것에 대해 나에게 자신의 교재를 제출했다• 그러나 모든 단접은 그 장접을 내포하기 마련이다. 자유롭

* Se gov i e: Vi e ille-Cas till e 에 있는 에스파냐의 도시.

** Cordoue: 에스파냐 안달루시아 지방의 도시.

*** Tolede: 에스파냐 Castill e 지방에 있는 도시.

**** Cuenca: 에스파냐. Nouvelle Cas till e 치방에 있는 도시.

14) "Dette flottan t e et de tte -consoli dee en Es pagne de 1557 a 1600, 11 Annoles

E.S. C. , 1963, pp. 745~759,.

계 말하고 쓴 덕택에 삐에르 쇼뉘는 종종 명료하고 위어난 도식을 발견하는 데 성공을 거둔다.

그의 저서에는 운 좋은 의의의 발견들이 득실거리고 있다. 여기에(라스팔마스 밖에) 아무런 보호도 받지 않은 채 대 카나리아 섬Grande Canar i e* 의 순회 정박지들이 있다. 그 정박지둘은 〈연안항해를 하는 작은 배로만 접근이 가능하다〉고 그는 쓰고 있다. 우리는 여기 신 에스파냐라고 하는 거대한 대묵 안에서, 전지와 습지인 두 개의 멕시코의 접합지접에 자리잡고 있는 은광을 찾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그것 들은 시 에 라 마드레 산맥 la Sierra Madre 의 동편 기 슭에 자리 잡고 있는데, 그 입지는 논리적이다• 즉 〈광산은 사람을 필요로 하지만 물을 두려워한다• 침수는 사람들이 가장 우려하는(표면으로부터 약간이라도 멀어지자 마자) 위험이다• 왜냐하면 물의 배수라는 기술적 문제는 19세기에 증기 펌프가 일반화되기 전에는 전정한 의미에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광산업자들은 침수에 대한 보다 나은 보호책을 반전조 기후에서 발견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물의 부족, 식량의 부족…… 이라는 또다른 어려움에 부딪치지만 않는다면 사막으로 훨씬 더 파고들어 갇 것이다.〉 이 책에서, 또는 지리적 환경이 그리도 자주 우리 처자의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제1 권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다른 여러 곳들에서 무엇을 다시 시작할 것인가? 〈최근에 拓殖된 지역인 안달루시아**(16세기의)는 계속해서 복 에스파냐의 노론자위를 홉수하고, 그 자양분을 먹고 그로 인해 살짜고 있다〉고 그는 쓰고 있다(I, p. 29), 그런데 자신의 생 각울 따라간다면 그는 다움과 같이 훨씬 더 덧붙이게 될 것이다. 즉, 〈1500 년에서 1600년에 이르는 에스파냐는 내부적인 척식사업을 완수해 가면서 남쪽으로 비중이 옮겨지는 에스파냐이다〉(l, p. 246). 또는, 이번에는 신세계의 식민지화에 대해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한다. 〈에스파냐의 척식사업의 선두 주자는 밀(麥) 수입 업자이다. 그사업은따라서 무겁고터무니 없이 값비싼관개를필요로한다. 두번째의 척식사업은 같은 정도로 식량 수입업자들에 의촌하지 않는다 . 왜 냐하면 1520년과 1530년 사이 에 서 인도 서 도 Grands Antilles

* Grande Canarie: 카나리아 제도의 에스파냐의 한 화산성.

** Andalousi e : Almeri a, Cadi x, Cordoue, Grenade Huelva, Jaen, Melaga, Seville 등의 도시를 포괄하는 에스파냐 납부지방.

로부터 대륙의 사구지역으로 나아가떤서 인도제도의 중십부는 카사·아바 재배지역으로부터, 옥수수 재배지역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I, p. 518~519). 문화의 버팀목과도 같은 카사아바의 범상함과 문명의 버팀목과도 같은 옥수수의 화려함 ! 누가 그 접을 그렇게 잘 언급하였을까? 나는 또한 다음과 같은 구절도 좋아한다. 이를테면, 〈자신의 지중해에서의 과거에 완전히 옵아매인 돛단배 항해〉타는 구절이냐 또는 다음과 같은 대담한 귀철인 〈16 세기 말엽부터의 십대한 과도인 인구압은 기독교적인 서구로 하여금 지성을, 또한 새로운 해결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또는다음과 같은 힘 있고 간결한 언급인(Il. p. 51) 〈16세기의 거대한 가격혁명을 그 맥락 속에 위치지위 주어 야만 하며 , 1500년에 서 1550년에 이 르는 재 1 단계 는 우선, 14세기의 후반부와 15세기 전부를 뒤덮었던 장기적이고 국적인 파도가 만돈 구덩이를채우는 것으로만 이루어쳐 있다는 접을 놓쳐서는 안 된다〉 둥이 그것들이다.

만일 이 의의의 발견들이 지나치게 장황한 문두에 매몰되지 않았더라면, 만일 삐에르 쇼뉘가 자제하여 짧게 썼더라면, 말하자면, 초고위에 단지 형석적인 작업인 것만은 아닌 선택과 제거라는 노력을 다시 가했더라면 그는 젊은 프랑스 역사학자들 중에서 자신의 연구능력과 역사학에 대한 열정 면에서 자신에게 이미 그에 대한 마땅한 권리가 부여된 바 있는 그 제일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생물학적 인간에 관한 지리학이 존재하는가?*

막시 밀리 앙 쏘르 Maximilien Sorre** 의 훌륭한 저 작인, 『인문지 리 학의 생 물학적 토대 , 인간 생 태 학론 Les bases bi ologique de la g eog raph i e humai ne, essai d'une ecologie de l' homme』-뤼씨 앙 페브르가 『논총 Melanges.!l의 앞 권에서 그것에 대해 우리 독자들의 관십을 이 미 끈 바있는-온l) 그 제목이 미리 가리키는 것처럼 결론적인 저작은 아니

* Melang es d' hi s t oi re soci ale, t ome VI, 1944. pp. I~I2.

** Maximilien Sorre: 프랑스의 지 리 학자, I880~1962. 생 물학쳐 지 리 학에 관십 을 두고 양차 대전 사아에 지 역 연구에 몰두하여 중앙아메리카, 에스파냐에 주로 관십 올 보입 • 주요 처 서 둘로는 Ies Fondements de la geographie /iumai ne (1943~1952) ; I' Homme sur la Terre (19 요) ; les Rencontres de la GeograPhieet la Sociologie (1957) 등이 있옵

1) Pari s, Armand Colin, 1943, 44op. gr. i n-8° 31 figures dans le t ext-----그 부계는 내가 보기에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 간단히 말해서 자신의 사외져 실재와 고립된 채로 연구된 살아 있는 기계인 인간에 관한 생태학이 존재하는가? M. 쏘르는 그것 이 사실이 며 , 생 대 학 Ecologie 이 아니 라 일종의 생 대 학 une ecolo gi e이라고 쓰고 있다.-제목에 있어서, 생물학저이라는 i,J:어는 이중의 의미를 떤다.

그것은 . 물론 인간에 관한 생문학을 지칭하지만, 관습져으로는 일종의 생물학적 지리학, 식물의 지리학 또는 동물의 지리학에 관해 말하는 셉이 된다. 계 l 권에서는 두 가지 의미 중의 전자에 해당하는 인간의 생물학의 의미로쓰이며, 제 2 권과 3 권에서는, 두 가지 의미, 록히 후자의 의미로 쓰인다, 그러나 사실상 〈인간에 관한 지리학〉이라는 단어 자체가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운까?

며 전체겨으로 인문 치리학에 관한 저작도 아니다. 그 저작은 중요하고 아주 홍미로우며 수많은 문제들을 재기하지만, 모든 문제룹 한꺼번에 다 제기하지는 않는다. 그 작품은 일종의 정찰이며 온갖 세부 사항들-울 대면하고 있는 제한된 연구이며, 일련의 접촉 시도들이다. 바로 거기에서 그 신중함이, 그 진행절차가, 그 해결책이 나오는 것이다. 그것은 가능한 한 구체적이고, 산문적이며 확고하고 독창져인, 아칙도 더 묘사되어야 할 일반적인 인문 지리학의 특칭에 대한 일종의 입문이라기보다는 말하자면 최초의 시도, 예비적인 주제의 전개라고 할 수 있다.

이 입문서의 독창성은 인간의 문제를 생물학적 차원으로 체계적으로환원하는 데서 도출된다. 여기에서 인간은 그 전체 실체로서 연구되는 것이 아니라 그 여러 측면들 중의 하나로서, 죽 살아 있는 가계로서, 석물과 동물로서만 다뤄질 따름이다. 막씨밀리앙 쏘르처럼 표현하자면 인간은 〈벌거벗은 정은동물〉이라는 현실성 속에서 파악된다. 따라서 이 책의 중십부에는 아주 핵십적인 인간, 살아 있는 인간, 말하자면 사회 적 인 인간으로부터 도구적 인간 l'hornme faber 에 또는 호모 사피엔스에 이르는-인간적 현설을 또는 말하자면 민속적 현실을 망각하지 않는-존재들의 집합은 없을 것이다. 인간의 여 러 측면들 중 단 한 면(여러 영역들 중의 단 하나), 생물학적 존재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측면만이 고려되고 있다. 즉, 더위와 추위, 바람, 전조함, 일광, 고지대의 불충분한 기압 둥을 감지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먹이를 찾고 확보하는 데 급급한, 위험을 의식하게 되는 오늘날에는 득히 언제 어디서나 인상적인 행렬울 이루는 질병들에 대하여 결국 자신을 보호하는 데 여 념 이 없는 인간의 기본적 인 측면만이 고려되고 있다. 연구되고 있는 인간은 이렇게 해서 그 생활의 토대에, 그것의 원초적인 조건에 귀일되고 그렇게 되는 한에 있어서 거대한 세계의 지리적 조건 속에 위치지워지게 된다.

저자의 의도는 분명하다. 그의 의도는 자신의 연구를 훨씬 깊이 있고 효율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그것을 간추려보는 것이다. 자신

이 언제나 염두에 두고 있는 또한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들 중의 하나인 인문 지리학의 복잡한 문제들과 맞부딪치 기 전에 그는 그 문제들을 보다 찰 파악하기 위하여, 그것들의 장애물을 우회해 보기 위하여 인간의 생물학적 실재와 관련되면서 인간을 공간과 연철지어 주며 자신의 지리학의 상당 부분을 미리 설 명해 보고자 했다. 사실, 얼마나 거대한 문제인가 ! 그것은 바로. 예상되는 신중성 을 갖춘(득히 프랑스 학파의 지리학에 있어서) 생물학적 결정론의 연구, 적어도 그 결정론의 부인할 수 없는 한계들과 제약들이 아닐까?

이 연구가 전적으로 새롭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여하돈 특정 측면에서는 새로운 것이다.―—왜냐하면 그 연구가 막씨밀리앙 쏘르 이전에는 그만큼 체계적으로 다뤄진 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인간은 미지의 것이 아니며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또한 지리학 분야에서 신창자인 것은 아니지만, 그 분야에 과학적인 정확성의 취향이 잘 제기된 문제들에 대한 배려가, 모든 것이 길게 객관적으로 묘사되게 되고 주석이 붙게 되며 설명되게 되는 실험들처럼 봉제되고 명확하게 감지된 연구가 그렇게 세밀하게 도입된 적은 결코 없었다. 바로 거기에 이 책의 독창성분만 아니타 대단한 장점도 있는 것이다.

연구의 대상, 연구의 문제들에 대한 접근이 처음에는 박물학자들이나 생물학자들 및 의사들의 저작이나 연구에서 차용되었다. 그러나 막씨밀리앙쏘르에게 있어서는 타인의 연구를 요약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했다. 그는 또한 그것들을 옮겨 놓고 그것들을 계속적으로 〈지리학적 용어〉로 〈번역해〉 내야만 했다. 그런데 그것은 매번 선택이 가능했을 때마다 그 문제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정립되고 연구되기 위해 인간의 공간의 법칙 및 관접에 해당하는 지리학의 법칙 및 관접들에 맞추어 그 문제들을 지도 위에 기입한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의 연구는 경계획정선에까지, 분산 영역에 대한 설명에까지 파내려 간다〉고 막씨밀리앙 쏘르는 쓰고 있다. 나는 박물학자의 저작에서 따왔음직한 이 간명하고 예지에 찬 짤막한 구절이 우리를 그 연구의 십장부로 안내해 주리라고 생각한다. 요컨대, 저자가 의도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죽 마치 올리브나 포도의 생태학이 문제시되는 것처럼 우리가 인간의 생태학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거기에서

는 인간이 문제시되며 바 로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복잡해진다.

사 실상 , 생물학적 개인으로서의 인간에 관한 생태학이 그 자체로나아갈 수 있으며, 우리에게 수많은 복잡한 문제들에 대한 열쇠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초창 기의 생리학자가 고전적인 십리학의 문제들·에 대해 측 면 공격을 가하고 그 것들을 해결하려 했던 방식으로-기초적인 인문지리학이 있을까. 아니 있을 수나 있을까. 더구나, 이 기조적인 지리학이 그. 생활의 맥락으로부터 분리되고 고립될 수 있을~까 ? 참으로 쓸모 있기 위해서는, 그것이 우선 식별되고 규정될 수있어야만 하며 분 만 아니라, 그것 덕분으로 결국 인문지리학의 문재,둘 전체가 밝혀지게까지 되어야 한다는 접을 마지막으로 덧붙여 보자. 처음과 같은 장애물과 결국 맞부딪쳐야 한다면 현실을 파편화한다·는 것이 사실상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한 것이 바로 프로그램이다. __ -보다 쉽게 말하자면, 그러한 것이 이 책의 아주 대담한 두기 이다.

그 저작은 3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생물학적 인간은 자연 지리학의 물에서 ( 제 1 권), 생물 지리학의 불에서(재 2 권), 전염병의 지리학 들에서 (재 3 권) 연속적으로 연구된다.

그 세 권은 서로 서로 충분히 독립적이며, 그 제 권으로 제기된 주노제 전체를 망라하지 못하고 있다는 접을 찰 주목해 보자. 사실상 막씨밀리앙 쏘르는 설명의 교훈적인 특성 또는 명료함이 다론 면으로. 어떠하돈 간에, 우리에게 총괄적인 연구 또는 현학적인 교과서를 제시하고자 하지는 않았다. 그는 세 가지 서로 다론 길을 동하여 생물·학적 지리학의 토대적 사실 들 에 도달하고자 하였다.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며 그것만으로도 너무 많다. 만일 내가 오해한 것이 아니라면 가능한 모든 길이 아니라 및 가지 길을 열어주고자 하는 이 의도는· 언제나 명백한 방식으로는 아니라고 해도 종종 그의 연구를 단순화하게만들었다.

분명히, 그의 방법은 자신의 방대한 주제의 모든 문제들이 지난 한계들 및 가능성들, 풍부함 등을 조목 조목 세부적으로 파악하는 것은아니다. 신중하게 그는선택받은 지대, 죽 그가 대충, 아주 대충언급한 또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인근 지대라는 구별되는 지대에 대한 연구에 집중한다. 탐구의 여정에 착수하기 전에 막씨밀리앙 쏘르~ 매번 그의 독자들에게 뒤이어 올 여정의 과학적 조건에 대하여 자신야

알고 있어야만 하는 것을 설명해준다-그것이 그의 저작의 마지막 장접인데――는 접을 덧붙여 보자. 바로 거기에서 지리학적이건 비지학적이건 유용한 개념들의 장황한 소개 및 도입이 나타나는데 그것둘이 아무리 필요한 것이라고 해도 그것들은 때로는 고유하게 논의되는 연구 범위 밖에 있다는 인상을 던져준다. 이 렇게 해서 우리는 저자의 진행과정에서 아주 규칙적인 세 가지 활동을 보게 되는데, 고것들의 적정배치에 의해 그 책은 독특한 특징을 부여받게 된다. 그 세 가지 활동은 첫째 단순화(여정의 선덱이라 하자), 둘째 핵십적인 개념들의 도입, 셋째 선덱받은 지대에 대한 연구…… 둥이다. 이러한 언급은 약간 단순화된 고안물에 있어서, 혼자서 충분히 찰 버터내는 작품을 보다 훌륭하게 요약하는 데 있어서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제 I 권이 있다. 그것은 인간과 일반적인 자연 환경과의 관계가 아니라 인간과 기후와의 관계만을 다루고 있다. 비목 기후가 모돈 근거로 미루어 인간생태학의 본질적인 요인이라 할지라도, 단순화논 따라서 상당한 셈이다(제 I 단계). 제 2 단계에선 이렇게 제시된 생물학적 주제가 즉시 다뤄지지는 않을 것이다• 우선 기후 그 자체에 관한 모든 것이 설명되어야만 하지 않을까?

약 20 여 년 전부터 기후학자들과 지리학자들은 기후에 관한 그러한 연구들을 갱신하고, 종종 실제 사실을 왜곡시키는 이론의 평균적 효력 밖에 있는 기후에 관한 실제 사실들을 파악하고자 노력해 왔다. 제시 및 종합의 도표법이 완벽해졌다. 따라서 막시밀리앙 쏘르는 유용한 사실들 및 통찰들로 가득 찬 서문에서 이 중요한 연구들을 요약하논 편이 용이주도하다고 판단하였다. 그가 기후도, 微氣候, 날씨의 유형 둥에 대해 언급한 것을 아주 유익하게 읽을 것이다. 추구되고 있논 목표는 한편으로는 지역적 다양성을 괘념치 않기 위해 가능한 한좁은 공간에 한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기후사의 한 순간만을 또는 순간들만을__그 자체로 각기 연구되고 있는一―포착하면서 어떤 종류전 있는 그대로의 상태의 실제 기후를 파악하는 것이다. 자연 지리학의 문제들에 있어서 끝장을 낸 연후에야 비로소 막씨밀리앙 쏘르는 〈생물학적〉 인간에 미치는 〈실제〉 기후의 영향을 연구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쟁접은 기후에서 열의 영향력을 결정하는 것,

들인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인간 유기체는 정온의 기계이며 의부환경 에 따른 내 부 열의 창조자 또는 파괴자이 다. 죽, 약 16° 까지는 창조자이고 23° 이상에서는 파피자이며 두 온도 사이에서는 전자 또는 후자 쪽에 일률적으로 쏠리는데, 저자는 생리학적 관접에서 논의를 거찬 후에 그접을 가장 홍미로운 것으로 여긴다. 따라서 지도제작상의 轉寫에 나타나는 바람직한 모든 가능태들과 더불어 16° 이하의 한대지대와 23° 이 상의 열대지대가 있게 될 것이다. 기후의 그밖의 영향들도 차례로 연구되었다. 죽 대기압의 작용(고지대의 목별한 경우), 빛의 작용(피부 착색이라는 중대한 문제), 대기 습기의, 바람의, 대기의, 전기의, 심지어 현재 우리의 지석 수준에서 다소나마 설명되고 있는 복잡한 기상이번들의 작용 등이 그것이다.

제 1 권의 결말은 〈의쿠메네 cekoumene 〉(인구거주가능지역-역주)2) 의 형성 및 그 한계라는 특히 지리학적으로 중대한 문제이다. 그것은 인간의 〈생태적인 범세계주의〉에 방해가 되는 극지의 한계와 고도의 한계라는 두 가지 거대한 장벽을 조명해 보는 기회이다. 이 의쿠메네 내부에서의 기후에 대한 인간의 적응이 아주 다양했으며 지금도 다양한데 오늘날 연구하기에 가장 홍미로운 것은 아마도 백인의 적응일 것이다. 왜냐하면 백인은 식민지화에서 거둔 승리와 그 능력으로 인해 지구 도처에 존재하며, 그 밖의 것들은 차치하고라도 생리적인 위험과 재난을 무릅쓰고 전 지구상 어디에나 촌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학자라면 적도지방에서의 백인들의 풍토적응에 할애된 그 훌륭한 구철들(p. 94~106)을 참조하는 편이 나울 것 이 다. 참고문헌에인용된 처작들을 통하여 주제에 관한 풍부한 문헌에 유용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직접 간접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생물 지리학의 복잡한 문제들에 봉착하고 있는 제 2 권에서도 같은 방법이 적용된다. 여기에 어느 칭도는 그 기질에 따라인간과 대면하고있는동물들과 식물들의 제계가있다. 그런데 무력과 갈둥 또는 상부상조 중에서 어떤 관계가 설정될 것인가, 죽 지리적 특칭의 면에서 이 생물체들의 제계와 인간 생물학 사이 에 어떤 관계가 맺어질 것인가? 이 렇게 해서 재 2 권의 쟁접이 설정되는데, 그 쟁접은 일반적으로 파악된 것이지 저자에 의해 다워지게 될 것과 같

2) Ecolo gie와 Oekoumene 에 있어서 나는 그 책의 철자법을 그대로 따른다. 분명 그접에 대해 논쟁을 원할 것이다 !

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저자는 사실상 다른 것들은 다 제외하고 인간에 의해 재배되는 식물과 가축화된 동물에만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알려진 동물 총 2 백만 종과 식물 60 만종에서, 지오프리 쌩틸레르Geo ffro y -Sa i n t -H i la i re* 에 의 하면 동물 43 종, 바빌로프 Vav i lo f에 의 하면 식 물 Co0 종). 그 연구에 대한 이러한 안내는 일종의 상세하고 아주 새로운 소개의 형식을 떤 인간의 살아 있는 동료들에 대한 장구한 연구에 해당된다. 언제, 어디서 인간은 자신의 생활과 유사한 수많은 생활들과 관련을 맺게 되는가? 또한 만일 그질문에 맞는 해답이 없다면, 우리는 심지어 인간이 어떻게 거기에 출현하게 되었는가라고도물울 수 있을 것이다. 사육이타는 것이 자유로운 생활을 빼앗긴 존재들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까? 인간은 어떻게 그 〈협조자들〉을 번식시켰을 까? 왜냐하면 진보의 활력을 부여받은 자연의 제휴와 달리 인간의 제휴에서는 인간은 그 제휴를 위해 〈공간〉3) 의 정복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그런데 그것 또한 아주 중대한 문제인데―― 이 〈인간적 질서〉는, 즉 생활의 수많은 힘들과 다두고 있으며 그로 인해 끊임없는 변동 상태에 있는 인간의 협동들 전체는 무엇에 의해 위협당하게 되며 무엇에 의해 보호받게 될까? 막시밀리앙 쏘르의 선행연구들이 보장하는 명확성과 능력에 입각하여 그가 제시해 줄 수 있었던 문제들중의 몇 가지가 바로 거기에 있다.

끊임없는 갈등 상태에 있으며 흔히는 서로 서로 중첩되어 있는 생활환경에 대한 연구에서 저자는 마찬가지의 설명에 의해 다른 특정생활――강인한 만큼 수효도 많은 기생식물의 생활의 경우――에 대항하며 특정 생활(목화의 생활, 포도나무의 생활 등)을 옹호하여 수행되는 이 거대한 전두로부터 지리학의 십장부까지 아주 멀리 강력하게 끌려들어 갔다. 경단해마지 않울 문제들이다. 그렇지만 .::::Z.. 책에 있는 아주 뻑맥한 원문율 한 걸음 한 걸음 요약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적 협동체들의 기생상태가 몇 행으로 다루어지고 설명될 수 있을까? 또한 문화적 재앙둘 및 獸疾들에 대항하는 거대한 두쟁의 역사가 단몇 줄로 다루어지고설명될 수 있을까(포도나무뿌리 진디의 위기가 프랑스인의 생활에 있어서 몰고왔던 드라마에 대해 생각해 보자) ? 그-렇다꾹1 식물·과 동물이 고려될 때는 생물학적 문제이면서 인간이 개입되자마자, 죽

* Geoffroy Sai n t-Hil ai re: 프랑스의 박물학자 (1772~1884). 파리 국립 자연사 박물관의 동물학 교수. 모든 동물의 유기 져 구성 의 통일성 이 라논 관념 강조.

3) p .188.

사실상 인간 유기체에 있어서 가장 의 d1 심장한 온도들이 어떤 것 그. 질서의 현상태 또는 그것의 진보가 문제시되자마자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하는 〈인간적 질서〉의 모든 문제(pp . 214~215 의 결론을 보라)는 어떠한가? 그렇게 되면 〈사회적 인간〉으로 되돌아가게 되는데도 그렇게 되는 것을 언제나 피할 수 있었을까? 사회적 인간은 말하자면 가축의 사육과 농업의 성공의 여명기에 일어난 옛날의 농업 공동체이며 싸워내야 할 무시무시한 재앙들 및 속력의 규모에서는 말하자면 거대한 근대 국가들이며 십지어 전세계이다. 세계적인 연대성은 인간성의 생물학적인 풍부함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으며, 또는 주의를 기울이고자 애쓰고 있는데 막씨밀리앙 쏘르가 그것의 업청난 중요성을 보여줄 수 있었다.

이 장황한 예비적 설명을 하는 동안에 생물학적 인간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기꺼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z. 책의 제 2 부에서 그 권리를 재빨리 쟁취한다. 나는 제2 부가 가장 뛰어난 부분이라고는 말하지 않지만, 그것은 분명히 ::::z.. 통찰 및 새로운 정보의 면에서 전체 저작 중에서 가장 풍부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자신의 존재와 결부되어 있는, 살아 있는 세계에 페를 끼치며 먹고 살아가야만 한다. 인간에게 ::::z. 농작물과 가축을 공급해 주는 것에 비교하여 동물들 및 식물들의 야생제계에, 광물의 세계에 인간이 무엇을 요구하게 될까? 기본 필수품에 대한 연구는 여러 가지 문제들울 제기한다. 막씨밀리앙 쏘르는 우선 필수품의 목록을 나열하면서 거기에 답변한다. 그 다음 그는 그접에서 인간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수단들을 열거한다. 그런데 거기에서 가장 공통적인 부양 대책에 관한 건 패러그래프가 나타난다(왜냐하면 예외가 되는 대향연의 지리학은 없기 때문에). 거기에서 또한 십지어 식량의 역사에 관한 패러그래프도 나온다. 방침이 정해지면 연구의 핵십인 일종의 식량 체제의 지리학에 대한 시도(p. 264~290) 에 접근하게 되는데 그것이 너무 상세하고. 구체적인 사실들로너무 가득찬 나머지 그것만으로도 생물학적 인간의 문제에 분만 아니라 실제 인간의 문제에까지도 뒤어드는 셈이 된다. 식량에 관한 지리학이 찾아내고 있고 찾아내야만하는 것은 바로 복잡한 상태에 있는――그 역사의 무성함 속에 있는, ::::z. 사회체계 속에 있

는, 그 관행과 편견이 주는 제약과 더불어 있는――인간이다. 식량에 관한 지리학이 그와 다론 상태로 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p.273 이하에서 묘사된 도시의 식량체제는 만일 그것이 사회적 사실이 아니라떤 무엇이겠는가? 보리와 포도 울리브의 결합이, 고대 동양을 기접으로 지중해 전역에 걸찬 그것의 전파는 거대한 문화사적 사실이 아니고 무엇이 겠는가(p . 267 이하 참조) ? 식량의 지리학에 관한 이 페이지들중에 및 페이지가 독창적이고 새로운지에 대하여 말할 필요가 있을까? 불행히도 관례적으로 지리학자들은 인간이 먹을 수 있는 •••••• 것에 내해서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접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이 접에 대해 오늘날 프랑스에서의 역사학자들 역시 서로 부러위할 만한 대단한 것을 갖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그 이유 때문에 막시밀리앙 쏘르는 후자(역사학자들―역주)에게도 해당되는 충고를 전자(지리학자들-역주)에 대해서도 되풀이하는 걸까?

제 3 권이자 마지막권은 그 저작 중의 가장 뛰어난 부분이다. 살아있는 환경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지만 그것은 인간에 대항하여 싸우기도 하고 인간을 꿇임없이 위험에 빠드리기도 한다…… 여기서도 역시 우리는 전과 마찬가지의 단순화를, 마찬가지의 접근방법울, 마찬가지의 조십스러움을 예상해야 한다. 처자는 인간의 〈적대자〉들 중에서 선덱할 것이다. 그런데 그는 가장 거대한 것, 죽 육안으로 식별가능한 모든 것을 도의시하고 자선의 관심을 가장 작은 것에 그렇지만 가장 위험한 것들에――여과성 병원체인 미생물들로부터 다양한 박태리아에 이르는, 또한 동물의 영역과 식물의 영역 사이에 있는 그 어령풋한 경계선(박테리아-역주)을 넘어 결핵이나 나병, 鼻桓病등의 요인으로 여겨지고 있는 〈사상군류들 mycobact eriaci es>(우리의 과학적 모호성에 다분히 시사적인 명칭인)처럼 현미경 시야의 특정菌狀種에까지 이르는――집중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 마지막권에서는 이 무한히 작은 것들에 조명이 집중되고 있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당연히 제시될 것이며 그런 다음에는 그것들중에서 참으로 선취권이 있는 것들이 선번될 것이다. 사실상 전염병은 다양한 방식으로 전영된다. 예를 들면, 결핵은 개 인에서 개 인으로 직접 전영된다. 그러나 수많은 다른 질병들의 경우는 그 병원체가 원생동물이건 곰팡이류건, 그 고유의 생활 주기에 따라 그 질병의 〈숙주들 Vecteurs〉인 다른 생물체와 인간을 연결시킨다. 막씨 밀리

깡 쏘르가 자신의 연구 중십부에 둔 것은 바로 병원체와 숙주 그리고 인간이 이 〈病原복합체 Complexes pathog~nes> 속에서 서로 맺어지고 있다는 접이다. 왜냐하면 그가 다른 것들에 비해 우선적으로 분석하게 될 것은 바로 숙주가 있는 바로 그 질병들이기 때문이다.4)

병원 복합체 Complexe pat hogene? 구체적 인 예로 독자는 수면병의 경우를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p .298 아하 참조). 죽 수면병은 무한히 작은 원소인 주형충(住血蟲), 즉 감비아종 트리파조노마 Trypasonomagamb i ense와 쩨 째 파리 Glossina papal is 를, 또한 결 국은 인간을 연결지어 준다. 주혈충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물, .::z.. 발달과정 중 어느 단계에서 발견될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과 어떤 것들이 각 숙주에의 체류기간과 숙주의 변동과정에서 각기 특징적인 면모들인지를 파악한다는 것은 전문가들의 소관이다. 지도 위에 그 질병의 발생 지대를 기입하는 것은 지리학자의 소관이다. 수면병 못지않게 설명적인 사례는 훨씬 고전적 인 말라리아 병원 복합체의 경우이다(p .301 이하 참조). 여기서도 전영 요체는 역시 주혈충 hemat ozoaires 이지만, 말라리아병원충 plasmodium 과 숙주는 학질 모기 에 의 해 제 공되 는데 , 학질 도기중의 70 여 종이 말라리아 병군 p laud isme 을 운반한다• 패스트나 빈발하는 스피로해타병, 레슈마니아병 des leishmanioses 혹은 리켓챠증 r icekttsioses, 티 푸스, 인도 지 역 의 성 홍열 , 트라코마 trachome 및 기생충 학자의 찰 정리된 서가에서 나타나는 그 밖의 수많은 질병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언급을 할 수 있으며 마찬가지의 기재가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미 길어전 이 설명에다가 그 밖의 사례들을 덧붙인다는 것은 또한 저자가 제시하는 근거 자료들에 입각해서 병원 복합체들이 어떻게 서로 마주치게 되고 중복, 중첩되게 되논지를, 그것들이 어떻게 진.전되어 나가는지불 보여준다는 것은 쑬모 없는 일이다. 아 연구의 부록에서(p. 231) 병리학상의 몇 개의 중요 집단들에 대한 유용한 도표(도표 22) 를, 또한 황열, 페스트, 수면병, 샤가병 maladie de chagas, 야토병 tularemie 둥의 몇 몇 중요한 질병 의 위치와 그 질병들의 각각의 확장 영역 및 그 분산의 중십지 등을 나타내 주는 평면구형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도표와 지도로써 그렇게

4) Nicolle의 가설에 따라 결핵의 경우처럼 북정 질병에 있어 〈숙주〉가 여제되고, 병원균이 인간에서 인간으로 칙접 전달되는 경우가 있을까? cf. Sorre, p.293.

하는 것이 팔요하다면, 저자가 전념하고 있는 연구의 정확한 속성을강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병원 복합체들의 생활조건은 어떠한가一―병원체 및 숙주의 생태학은 어떠한가_-인간이 그것들에게 미치는 작용은 또한 어떠한가 둥의 질문들은 막씨밀리앙 쏘르가 그 습관적인 정확성에 입각하여 제시한 중요한 문제들의 일부이다. 그리고 나서 그는 그 마지막(다시금 가장 중요한) 장에서-특히 감탄스러울 정도로 연구된 지중해 세계의, 병리학에 관한 것에 있어서-――가끔 내미는 사례들을 가지고 전염병의 지리학을 구상한다(p .381 이하 참조).

앞서 제시된 분석이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그 정도로 새롭고 다양하며(적어도 세 가지) 치밀한 책이 완벽하게 될 수 있을까? 그 책을 잘 분석해내는 데, 또한 그 책을 한 걸음 한 걸음 뒤쫓아가는 데 우리가 성공하지 못한 것과마찬가지로우리는 그 세부사실에 있어서 그 책을 정확하게 비판할 수가 없다. 제약을 두는 어떤 필연성을 모두 납득하떤 서도 우리는 그 연구의 의도된 제약을 유감스럽게 여긴다는 접만을 지적해 보자. 막씨밀리앙 쏘르가 우리를 충족시키려 했다면, 사실상 그는자산이 썼던 그 방대한 분량의 적어도 두배는 써야만 했울것이다.

그는 제 2 판을 위해 그접에 대해 생각하게 될까?

나는 또한 제 I 권에서의 자연환경의 틀에 관한 연구가 기후를 다루는것에만 한정되어 있었다는 접을 아쉽게 생각하는 바이다• 죽 만일 인간 생태학에 대한 자연적 요인들의 〈직접적인〉 작용에만 한정하지 , 않는다면 〈기 후 복합체 〉와 나란히 토양 복합체 (표토, 심토, 지 표의 기복등)나 수자원 복합체 둥은 없단 말인가? 지리학은 더구나 아주 혼.히는 교대되는 영향력들에 대한 연구가 아니던가? 예를 들면, 기후는 식량과 질병의 문제들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단 말인가? 또한 반`향된 간접적인 .::i 영향둘을 추적하고 있는 그 처작은 실제 상태보다 는 머 연결되어 있었어야 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내 생각에는 그 저작이 우리가 제시한 연속적인 세 가지 연구들 사이에서 약간 지나치게 구분되어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제 2 권의 기획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유감이 있다. 여기에서는 o j::생식물에 대한 또한 야생동물에 대한, 인간에 의해 충분히 접유되지 않은 의쿠메네 지역이나 빈 지역에서의 야생동물의 군집에 대한――-

* E. F. Gau ti er : 프랑스의 탑험가이자 지리학자 (1864~1940). Uni vers ite

d'Al ger 의 교수, 마다카스카르 서쪽 탐험 (1892~1894), Sahara 의 지리져 연구 확장.

고티 에 E. F. Gau ti er* 가 즐겨 언급한 군집 에 대한――및 단락을· 환대했어야만 했을 것이다. 또한 산림에 관한 및 단락도 환대했어야만 앴다. 죽, 나무들은 생각하는 이상으로 인간의 예속하에, 통제하에 있기 때문에(심지어 열대지방에서조차도) 그것들은· 반쯤은 야생상대의, 반쯤은 예속상태의 관계를 맺고 있지만 그것들은 또한 막씨밀리앙 쏘르가 말한대로 〈인간적 질서〉에 통합되어 있다. 식량에 할애된 장에 있어서 저자는 우리에게 핵십적인 것울 일러주고 있지만 거기에는 전정한 독립 저서가 갖추어야 할 내용이 없었지 않은가? 진정한 독립 저서에서라면 의례적 차원에서 부과되는 일반적인 언급을 뛰어넘어 자세하계 연구된 목수 사례들을 늘란다는 것이 , 또한 예를 들면 프랑스에 있어서 제 1 회 프랑스 민속대회에 의해 주어전 요리 기술5) 의 메뉴만큼이나 홍미로운 기목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그 마지막 책에서 우리는 그 주제의 한 부분율 박탈당하지 않았던가? 기생충에 의한 질병들이, 그중에서도 특히 〈숙주〉가 있는 질병들이 지나치게 강조되지 않았던가? 지나치게 브렝쁘뜨 Brumpt*의 교과서를 통해 문제들을 파악했던 것은 아닐까? 요컨대 연구할 의학 내용을 너무 축약시켰던 것은 아니었을까? 결핵이나 암, 매독 등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언급되지 않고 있다.6) l6 세기 말엽 아메리카 대륙에서 발생하여“ 유럽에 도달한 이래 그 경력이 아주 화려했던 창백한 트레포네마군 trep oneme(매독의 병원체_역주) 조차도 단지 부수적으로만 제시되고 있다(p .194와 308). 의료 지리학의 (득히 독일의

5) 페르낭 브로델은 내가 생각해냈고 내 주도하에 이우어졌던 그 처각을 연상해내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더구나 「프랑스에서의 요리기름의 도표화에 대한 시도 Essai d' une cart e des g rai sses de cui si ne en France」라는 제 목 이 있 어 야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요리기술은 다른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z. 연구는 다른 훌륭한 연구자들에 의해 다시 수행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즉 일군의 지리학자들이 그것윤 다루고 있다. 더구나 그들의 연구는 지리학적인 동시에 여사학져아어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기름의 변천사는 아주 홍미로운 것이다. (Lucien Febvre)

• E. Brumpt: 프랑스의 의사이자 박물학자 (I877~I95I)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 탐험에 수차례 참가. 저서 Un Preci s de Parasitologie (1910).

6) 이들 질병듈이 인간에 대한. 인간의 작용에 대한 연구물 유도할 것아라는 정에 바추어 그것둘은 〈사회적인〉 연구일까? 결핵은 도시저인 질병일까?

7) 막씨밀리앙 쏘르논 자신의 근거도 재시하지 않은 재 아메리카 대북 기원설을 옹호하고 있다. p .342를 보라. 〈그것에 대해 가끔 무어라고 말해지건 간에 매독온 분명히 아메리카져 기원운 지닌 것으로 여겨진다.〉

Geomed i z i n 의) 모든 유용한 고찰들에 대해 여지가 마 전 되 었 다고도 냐는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질병은(도는 적어도 많은 전 병들의 경 우에는) 장소에 마라 변화한다. 어떤 질 병 들은 너무도 정확하게 한계 지 워진 영역에서만 나타난 나머지 그 지역이 그 질병을 설명해 주는 셈이 되는데 갑상선종의 경우가 바로 거기에 해당한다. 압은 인도 제도에서 는특수한 형태로나타난다. 또한 마그네슘영이 풍부한 지역인 프랑스령 적도아프리카 (A.E.F. )에서라면 암의 사례가 없게 될 것이 다 (Delb et의 이론).8) 분명히 영국과 미국에는 아주 위험한 성홍열과 유행성 감기의 형태가 있는데 프랑스에는 그것들의 둥가물이 없다. 마찬가지로 영국과 미국에서 페령의 독수형과 부딪치게 되는데, 그것이 아주 심각하여 페령군에 대한 연구가 아주 혼히는 엥굳로 색슨족의 당연문제가· 될 정도이다. 막씨밀리앙 쏘르는 자신의 연구를 단순한 의학 서적과구분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내가 방금 지적했던 문제들을 지리학 책에서 어떻게 제의시킬 수 있었는지가 찰 납득되지 않는 바이다.

역사학의 영역 위에 그 기초를 설정한다 해도 기꺼이 지탄의 대상아 될 것이다. 그 운제들을 역사학적으로 조명한다 해도 그것 역시 보나 덜 간략하게 되고 보다 더 체계적이 될 것이다. 우리의 이기적인 견지에서 볼 때 특히 우리는 그 접을 유감스럽게 여기게 된다. 이렇게 해서 수많은 연구들이 새로이 제기하고 있는 역사적 시대에 따른 기후 차이라는 문제가 제 I 권에서는 제기되지 않게 되었는데 그 문제가 그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부정적으로 답변되고 있는 것은 십지어 좀 성급하기까지 하다.9) 식품에 대한 장에서 역사적인 고찰이 없지는·

8) 우리는 Pierre Delbet의 책을 구할 수가 없었다 .

Pierre Delbet, Politique Preventive du Cancer, Paris, Denoel, 1944.

9) p.394, 마야족 최초의 제국의 멸망과 E, Hun ti n gt on 의 이론에 대하여 -기후가우리 눈 앞에서 변화될 수 있을까? 그질문은 여하돈 기후학자와지리학자의 흥미를 꿀만한 주계이다. 만일 변화가 있다면 그러한 기후 변화는 생활의 모돈 문계, 모든 질서, 모든 균형에 영향을 미치게 되지 않을까? 많은 학자들은 내가 생각하기에 아주 미십찍은 권위 및 증거라는 방패를 앞세우며 긍정적으로 답변한다. 그 변동들 중에서 가장 명백한 것은 건조하고 더운 시기로부터 덜 덥고. 묵히 더욱 습기찬 시기로의 번동, 죽 전체적으로 거의 문제시되지 않는, 기복이 있는, 아주 미미한 연속적 차이둘로 여겨지는, 한번에 수세기에 결찬 기후의 완`만한 변동들이 있게 질 것이다. 그 문계들 다루는 데 있어서, 그 문제를 제기하지도 않은 채 부정져으로 답변하는 것으로 충분할까 ? 그렇지만 알프스 산백(목히 코카서스의 경우)의 빙하의 융기와 침하의 사례들이, 19세기 말부터 분명히 나타난 러시아 연안과 시베리아 연안에서의 거대한 浮游빙산들의 침하 사례들이 있다. 소비에트의 복국에 대한 모든 정책은 국지방의 실재 기온상승이라는 가설에 기초를 둔 것으로 우리에게 계시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그겁에서 찰뭇

일까? 역사적으로 의십스럽지만 마 음옹 동요시키는 사례둥이 없지 않다, 9세기에 시신리에서 지표면의 생이 말라버린 것이 만지 인간 때문일까? Gast on Ro·u p nel 의 견해룹 따라 14 세기와 15 세기의 유럽의 재난은 결국 기후의 교란에 전가킬 수 있다고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감히 말한건대 16 세기 말엽에는 곡물 생산지인 Tosca ne 하류 지방에서 기후조건의 악화가 또는 여하돈, 파괴적인 홍수가 가끔 너무 혹독해서 올리브가 얻어버릴 정도로 추운 겨울 등이 확인된다· 마찬가지 로 Hun ti n gton 이 마야 제 1 제 국은 대홍수의 죽 기 후 변동의 회 생 물이라고 주장랬을 때 그가 여하튼 옳은 것아 아닐까? 그러한 것은 막씨밀리앙 쏘르의 견 해 는 아니 다. 즉 E, Hun gti n gt on 은 이 목이 한 사례 (P~ t en 지 방과 Usu·ma ci n t a 지방에서 번창했던 도시 공동체의 소멀)에 대한 설명울 전영병에 의한 사망운의 차이를 초레하는 기후변동이라는 가설에서 구하려 랬다고 그는 쓰고 있다. 〈그러한 가설은 필연저인 것이 아니다. 〉 나는 :::z. 구철을 강조하는 바이지만 그 사실이 그렇게 확실할까 ? 그와 유사한 사례 에서 Philippe Hi l t ebrand t는 16 세기에 이탈리아에서의(보다 일반적으로는 당시에 지중해 지 역에서) 말라리아의 창궐을 설명하기 위해, 아에리카 대륙에서 발생한 ?11alar i a t roPi ca /i s 라는 새로운 재앙의 병균의 급속한(십지어 초고속의) 도래를 가정한다 . Hun tin gt on과 같이(더구나 묵히 17 세기가 운재시킬 때는) 강수량의 약간의 증가에 대하여 마침내 학질모기 서식지의 증가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는 없을까? 그 밖의 그럴듯한 설명들울 고려하면서도 나는 그 생각에 동의하는 바이다 . 말라리아의 악화의 요인으로 이둘 위험지대에서 토질의 전체적 교란처럽 인구의 증가, 토질개선의 중대(토질 개선의 시초에 또한 토질 개선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겅우에는 나중에도) 등은 어떨까? 그밖의 수많은 사소한 사실둘이 인용될 수 있겠지만 그것들 역시 논의의 여지가 있으며 모호한 것들이다. 즉 그것들이 역사져 시기에 따른 기후의 불변성의 분파에 속하는 지리학자들의 견해에 맞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그렁게 하지는 않지만, 그것들은 내가 물리지 않다면. :::z. 문재를 훤씬 새롭게 계기해 준다. 참고: 이 문계에 대해서논 E, de Mar t onne, La France, (Geo g rap/iie Uni verse/l e, 1943), 제 I부, p. 313 의 신중한 주석을 보라 : 〈학자의 정신은 오히려 시대성이라는 가설쪽으로 전환된다.〉 또한 p .314 〈약 30 여년의 시차는 사실임직한 것으로부터 거리가 먼 것은 아니다.〉

않지만 10) 그러한 고찰이 충분히 많지 도 않은 상태이 며 여기서도 여하돈 충분히 파헤쳐진 상태도 아니타는 접을 우리는 알게되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이 분야에서 얼마 나 많은 역사적 사례들이 심지어 식품체제에 관한 사실들까지도 누설해 주는지 ! 11) 막씨밀리앙 쏘르가 한

10) 원시적인 식량 체계의 잔존물에 할애된 구철을 참조하려면 p. 236 과 각주를 보라. 곡물의, 목히 좁쌀죽의 가장 최초의 것에 대해서는 p .240 을 보타. 〈좁쌀의 시대에 대하여…… 언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1) 근대 유럽의 식품혁명이 몰고온 목정의 결과듈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면 그것온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Kuli scher 의 고건져인 경계사 교과서에 그 혁명에 대한 요약된 도표가 있다. 이러한 변화(커피, 차, 맥주 등에 대하여)의 사회적긴 측면에 대해서 는 Henri Brunschwig, La Cri se de I'Et a t Prussi en a la fin du XVIII• s. et a g enese de la ment a lite romantiq ue둔 보라. 오눈날의 프랑스 역사학자들은 식품사가 법 체계나 그 밖의 다몬 모든 고건져인 중대한 문계들 못지않게 흥미로움에도 불구하고 일만져으로 그것에 대해 거의 주의률 기울이지 않는다. 식품사문 아니 오히려 프랑스의 다양한 요리들에 대한여사를 우리는 가지고 있는가? 혹은 예들 들면 기름이나 버터의 -16 세기 지

중해 지역에서 배로 Bone에서 Al g er 로 D j erba 에서 Alexaudri e, 아마도 십지어 Cons t an ti nople 까지 운반해 왔던 써온 버 터의 역사와 갇온_여사를 가지고 있는가? 많은 여사학자둘은 가장 영광스러운 무져합대의 상황인 원형의배 및 거옷배 선상의 지중해에서의 비스켓 계조의 어려움을 알고 있을까? 밀에 대해서도합대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우연히 인용한 바 있는 15세기와 16세기에 통조립 산업이 재댁했던 비약에 대한 W. Sombar t의 시사(示凌)적인 주석을 알고 있을까? 또는 H. Hau·ser 가 자신의 강의에서 즐겨 설명했던 소금에 철인 쇠고기의 복해와 대서양의 여사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까?

가지 사례(말라리아 p laud i sme 와 역사, p. 392~400) 에 대해서 과거로의 복귀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었다는 접에서 우리논 전염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비판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분야에서 그것들의 위치를 제 3 권의 논술 속에서 어렵지 않게 칫아볼 수도 있는, 또한 만약의 경우 지도제작상의 해석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을 수도 있는 수백 가지의 역사적 사례들을 인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죽 예를 들면, 나는 지중해 의부에서의 또한 지중해 내부에서의 페스트의 재난에 있어서는 특히 우리가 그것에 관한 수많은 의학적 관찰 결과들을 가치고 있는 1500~1600 년 사이의 팔레르모 (Palerme, S i c illy섬의 옛 수도―역주)의 페스트에 대해 생각한다. 또한 나는 15 세기와 16 세기에 동쪽을 향해 팽창중이던 발트해 연안지방에서 기이하게도 멈췄던 〈영국〉의 유행성 감기라는 재난에 대하여 또는 동부 유럽과 중부 유럽전역에 퍼졌으며 자연히 독일 고지대 지방은 그에 대해 무사한 바있는 아시아 콜레라의 다망함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특히 오늘날의 역사학자들은 1812 년의 대패배가 겨울 때문이었을 분만 아니라 러시아에서의 풍토병인 티푸스의 침해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들 및 그 밖의 수많은 문제들이 그들 나름의 지리학적 관십을 갖고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 훌륭한 저작은 내부적인 문재들만을 또는 세부적인 문제들만을 제기한다. 그것은 그 전체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 책을 읽고 또 읽은 연후에 우리는 심지어 지리학 전체에 대해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것은 거기서 외부적인 문제들이다.

지리학자들은 지리학이 (역사학과 마찬가지로) 아주 미완성된 과학이라는 접을, 다론 사회과학들이 그러한 것보다 훨씬 더 미완성의 과학이라는 접을 알고 있다. 아마도 오래된 또다른 지적 모험인 역사학

만큼이나 미완성 상태일 것이다. 지리학이 완전히 인정받은 영역을 확보하고 있는 상태에 있지 않음은 물론 그것은 그 방법에 대해서도 충분히 확신할 수 없다. 심지어 막씨밀리앙 쏘르의 저작처럼 과학적 지리학은 일종의 〈주인 없는 땅 No man's land 〉에 대해서가 아니라 이 미 접유된 인근의 지역에 대한 원정에 의해, 측면 공격에 의해(병치상태에 의해) 설정되지 않는가? 막씨밀리앙 쏘르의 저작은 지리학에 의해 최근에 이루어진 또한 지리학에 의해 성공을 거둔 자연에 대한, 과학의 풍부함에 대한 거창한 정복과 흡사하다. 그렇지만 지리학을 최대한으로 풍부하게 만들고자 할 때 말하자면 지리학을 〈완성시키고자〉 할 때 또는 적어도 그 대상을 명확하게 하고자 할 때 측면공격이 정확하게 얼마나 더 이루어져야하는 걸까? 완결지어야할 정복, 즉, 역사학 및 선사학에 대한 정복은 지역 지리학의 연구 및 특정 논제 속에서 그 의 미로 이루어졌던(그것은 많이 이루어진 바 있다)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 완성시켜야할 정복은 또한 분명히 경제학자들의 ,12) 민속학자들의, 인종지학자들의, 인성학자들의 그리고 사회학자들의 연구 결과들을 일반적인 방식으로 지리학적 돌에 맞추어 변용시키게 될 정복들인 것이다.

이러한 변용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는 한, 그 방법에 대해 확신을 가전 실효성 있는 인문지리학이 전정으로 가능하겠는지에 대해 나는 의구십을 갖는 바이다. 비록 그의 시대에는 유용했을지라도 오늘날에는 이견이 제기될 만한 쟝 브뤼네 Jean Brunhes*의 시도를 다시 취해본다는 것은 무용한 일일 것이다. 또한 그 변용은 그것과의 관계에 의해 변용이 이루어지게 되는 노선들과 축들, 죽 지리학 자체의 주요노선들과 그것의 정리된 축들이 고정되게 될 때에만 비로소 가능하게 될 것이고 결실이 있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기 전에는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셈이다. 자신의 내용을 타자의 것에서 취한다는 것은 좋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단지 그것을 새로운 풍부함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것일 따름이다.

내가 막씨밀리앙 쏘르와 분리되는 때는 바로 그가 공간에, 말하자

12) 이 정에 대해서는. 프랑스와 빼루의 견해를 참조하라, Frani;ois P~rroux, Co·urs d' economi e politique, 1,. aunlle, p. 137 〈그것 은(지 리 학) 그것 이 사용하는 용어둘을 거의 규정하지 않고 있으며 찰못 규정하고 있다〉 등.

* Jean Brunhes: 프랑스의 지리학자(1869~1930).

Vi dal de la Blache 의 계자. College de France 인문지리학 교수.

떤 지도에, 또는 자신이 자처한 대로 확장의 영 역에 다다르게 되자마자 그는 다른 많은 사람들을 따라서 자신의 작업의 지리학적 목성에 대하여 안십한 것처럼 여기게 되는 때이다. 물론 내가 지리학은 무엇보다도 지역에 대한 記述13) 이라는 접을, 지리학은 그 나름의 방식에 따르는 공간에 대한 과학이라는 접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누가 그 접을 부인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 임무가 유일한 것일까? 아마도 지리학은 공간 속에서 목표와 방법을 즉 말하자면, 분석 및 통제 체계를 발견해낼 것이다. 사실상 지리학은 제 2 의 목적 제 2 의 질서를 가지게 될 것인데 그것은 인간 일반에가 아니라 인간들에, 즉 사회에 다다르는 것이다.

지리학은 내가 보기에는 그것의 완결상태에서는 사회에 대한 공간적 연구 또는 내 생각의 끝까지 가본다면 〈공간에 의한 사회에 관한 연구〉이다.

알베르 드망종 Alber t Deman g eon* 의 마지막 저서 에서 다음과 같은 권고를 발견하게 된다. 즉, 〈인간들을 개개인들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자. >14) 뤼씨 앙 페브르의 巨강과 인간의 진화 La Terre e t !'evoluti on humaine 』에서도 마찬가지의 또한 충분히 근거 있는 충고가 있다는 접을 알게 된다. 그렇지만 그 책은 너무 일찍 (1922 년에) 나오지 않았던가? 인간은 공간과의 관계에 얽혀 있는 만큼 사회적 환경이라는 그물에도 얽매어 있다. 따라서 만일 지리학이 역사학적 사실인 동시에 정치 경제학적, 사회학적 사실이기도 한 아다시피 다양한 그 사회적 실재를 충분히 파악하지 않는다면, 죽 만일 지리학이 〈인간의 자연물에 대한〉 노력 15) 의 거대한 흐름을 지상에서 혼히 눈에 보이는 집단 생활의 창조 및 제약들을 연구하지 않는다면 지리학이란 촌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따라서 내가 보기에는 인간적 사실들의 지리학적 몰로의 환원은 모두가 다 적어도 이중 작업이 되어야 한다. 즉 공간에로의 환원은 당연히 확실한 것이지만 사회적인 것에로의 환원 역시 필요하다. 그런

13) Andre Cholle y, Gui de de l' et udi an t en g eo g raP!tiq ue, Pari s, Presses Uni versitai res, 1943, p. 9, 그러나 〈인간 중십져인〉 記述온, p .121.

* Albert Deman geon: 프랑스의 지리학자(1872~1940) 쏘르본느 인문지리학 교수. 저서 un modele de mono grapllie geo g raphique (i on,): Problems de g eo g raph i e humai ne, 1942.

14) Alber t Demangeon, Problemes, p.28.

15) Maurice Halbwachs 의 표현에 따르자면.

데 그 사회칙인 것이 바로 막씨밀리앙 쏘르의 처서에서 회괴된 부분이며 그가 따라잡아야 할 부분이고 그가 자신의 주제 중에서 어쩔수 없는 살아 있는 전체로 인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경우에만 뛰어들게 되는 부분이다. 심지어 사실상 막씨밀리앙 쏘르의 선입견으로 인해 이 험난한 길위에 멈춰서게 되었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죽 이 렇게 해서 임시적인 미시적 기후들에 관련되는 것에, 즉 의복과 주거의 지리학이라는 중대한 문제들을 제기하는 것에 멈춰서게 되었다 .16) 또는 더욱이 그의 설명에서 거의 제시되지 않는 특정 전염병들에 대한 연구가 문제시될 때도 멈춰서게 된다. 그의 바람은 가능하다면 생물학적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생태학으로 만족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그 개인의 생태학이란 아주 흔히는 일종의 추상체가 아니라면 실현 불가능할 정도로 너무 좁은 또는 아주 어려운 길이 되지 않을까?

그렇지만 나는 막씨밀리앙 쏘르가 자신이 부과한 한계에 대하여 충분히 유의하고 있다는 접을, 또한 그는 자신의 서문과 결론에서 그에 대해 불충분하게나마 설명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우리가 그의 구상에 대한 비판을 가하기 위해 사용한 것과 같은 용어들울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으리타는 접을 언급해야만 한다. 다음과 같이 쓰고 있는 (p. IO) 것은 바로 그가 아닌가. 즉 〈인간에 관해 논한다는 것은 여전히 너무 단순하다. 언급해야만 하는 것은 현재의 인간들…… 과거의 인간들이다.〉 서문의 같은 페이지에서 아직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는 것은 바로 그이다. 죽 〈따라서 사회환경과 자연환경과의 상호작용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분리시킬 수 없는 영향력들이 있다.〉 위에서 강조한 〈일어나다 evo q uee 〉라는 단어는 다분히 시사적이다. 즉 결여되어 있는 것이 일어나간 했지만 주의 깊게 연구되지는 않은 것이다. 물론 이 책처럼 한 권의 저작이 여러분에게 아낌 없이 가쳐다주는· 풍부함만으로 만족해 하지 않는다는 것은 언제나 부당하다. 그렇지만 이 훌륭한 책이 보다 거대한 규모에서 파악되지 않았음을 또한 그 전체 둘 속에서 보다 일관성 있게 보다 명료하게 설명되지 않았음을 유감으로 여간다는 점을, 죽 내부에서 보다 간명하고 특히 보다 통일성 있고 보다 조직화되기를, 아주 간단히 말해서 아마도 보다 야심적

16) p. 37-38. M. S 가 도시의 기후 환경에 대한 연구를 곧 간행된 다몬 처작에 유보해 두었다는 사실온(p .10 참조) 아주 목칭쳐인 일이다.

이 되기를 바라게 될 것이라는 접을 말해 두자.

그러나 그 책은 불행히도 그 출판 시기가 아무리 찰못 선택되었다고 해도 그 자체로서 충분한 효과를 가지게 될 것이다. 훌륭한 미래가 그 책을 기다리고 있다. 지리학은――또한 모든 사회과학은――그 객을 이용하게 될 것이며 역사학이라고 해서 그 책을 참조할 자격이 없지는 않게 될 것이다. 쥘 로 씨옹 Jules Si o 군을 연상시키는 그의 글 쓰는 재질 덕분으로, 일련의 빠른 터치로 전세계에 걸쳐 퍼져 있는 경관들울 다루는 그의 재능 또는 지나간 시대의 기후를 파악 가능하게 햐 주논 그의 재능으로 인해, 그의 직접적인 경험 및 과학적 지식의 풍부함으로 인해, 사실들을 계열화하고 그것들의 전개과정을 연결지으며 역사적 세부사실이나 사례들 혹은 전설들을 배치해내는 그의 솜씨 덕분으로, 고전적인 지중해 연안으로의 끊임없는 회귀로 인하여, 그 저작은 그 정신에 있어서 또한 그 휴머니즘에 의하여 프랑스 지리학파의 찬란한 전통에 충분히 포함되게 된다. 지적 생활은 일종의 전두이다. 죽 이 저작은 우리에게 훌륭하고 장엄한 연구사례를 제시해 주는 것이다. 이 영역에서 즉, 인문 지리학이타는 아주 정열적이고도 아주 난해한 분야에서, 오래전 즉, 비달 드 라 블라슈 V idal de La Blache 의 『인문 지 리 학의 원칙 les p r i nciples de g eo g rap h i e huma i n 』이후, 뤼씨 앙 페 브르의 『땅과 인간의 진화 La Terre et !'evoluti on hum·a i ne』이후에 이만한 정점을 갖춘 그 어떤 저작도 제시되어 본 적이없다.

* Jules Sion: 프랑스의 지 리 학자(1879~1940) . 저 서 는 Pay san de la Normandi eOri en t ale (1909), Georaphi e Un i verselle 편찬에 협 력, 뭉텔리 에에서 교수.

사회사의 개념에 관하여*

I956 년에 출간되었지만, 이제야 《아날》지에 다다르게 된(다분히 우연적 인 착오를 거 쳐 ) 오토 브룬너 Otto Brunner 의 복잡하고도 날카로우면서 도 모호한 저작인 『사회사의 새로운 길 Neue Wege der Sozi algeschi chte.!I I) 에 대해 언급하기에는 내가 뒤늦은 감이 있다. 전반적인 요지문·울 훑어본 역사학자들은 이 책에 묶여 있는 IO편의 논문들 중에서 두편-그 중 한 편은 I954년에 《역 사학보 l' Hi stori sche Zeitschrift》”를 통해 간행된 유럽 사회사의 문제를 다룬 것이며 나머지 하나는 같은· 해 에 계 간 《사회 경 제 사학보 Vi ert elj ahrschrift f ur Sozi al-und Wirschaftsgeschi chte> 속에 서 간행 된 것 (러 시 아와 유럽 의 부르조아지 에 관하여 )”

* Annales E. S. C. , n°2, avril-juin 1959, D6bats et Combats p. 308~319,

1) Neue Wege der Sozialgeschi'chite. Vort r iize, und Aufs l tze Gocttingcn, Vandenhoeck u. Ruprecht, 1956, 256p.

2) Tome 177, 1954, p. 469 et suiv.

3) Tome, 40, 1954, p. l ct suiv.

―을 그것이 간행되었을 때 이미 읽었고 평가해 보았기 때문에 그것들을 잘 알고 있다. 그 두 편의 논문들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이 책에서 다시 다루고 있는 특정의 문제들을, 죽 궁극적으로는 전체적인 방법론을, 사실상 역사과학의 의미 자체를 다루는 아주 거창하고 복잡한 문제를 이미 제기한 바 있다. 그것은 십층의 차원에서의 몽일성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자료들로 구성된 한 권의 저작에 대해, 9편 심지어 10편의 일련의 논제들에 대해-왜냐하면 제 6 장은 비엔나에서의 또한 오스트리아 저지대에서의(중세에) 귀족과 부르조아지와의 관계에 대한 두 편의 연구를 그 한 장 속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정확한 요약을 제시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접을 나타내주는 셉이다. 연결되는 관접이 있지만 그 연결 자체가 너무 빨라서 성찰을 거쳐야만 비로소논리적안 것으로 여겨지계 되는 항해불 상상해 보라. 애석하게도 그 책의 말미에 몰아붙인 수많은 주석들에도 불구하고 그 독해가 간단해지지는 않는다. 죽 주석을 참조하노라면, 그 페이지를 놓쳐버리게 되며 그렇게 되면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 왕복온 아주 크나큰 정신적 줄거움을 동반하는 것이 사실이다.

오토 브룬너는 《아날》에 빚진 것이 전혀 없다. 그의 추론의 또는 그의 경험의 전제들 및 그의 근거사항들, 그의 결론 둥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바로 거기에서 그것들의 독보적인 중요성이 나타나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의 언어의 미묘함을 이해하고 여기 저기서 그것을 파악해내고 꿰뚫어보려면 우리들 편에서의 막대한 노력이 있어야만 한다. 여하튼 역사학의 현재의 혼란을 큰소리로 말하는, 또한 자신의 천직의 힘과 인접 과학의 도움으로 우리들이 대면하고 있는 불안정한 시간을 다스려보고자 하는 한 역사학자가 여기있다. 그는 자신의 동료들에게 의존해야만 하기 때문에 과거의 역사학자들이건 오늘날의 역사학자들이건 독일 역사학자들의 거의 완벽한 행렬이 그의 소집에 따라 처음 출발부터 구성된다. 비록 오토 브룬너가 그들 전체의 동의를 얻지는 않았지만――그렇게 했을 가능성이 훨씬 많은데-그는 그들과 동반하여 자선율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또한 이 책의 부가적인 매력이다. 우리들에게 있어 독서대상이였던 오랜 지 기 들이 여 기 에 있 다. 죽 베 르너 좀바르트 Werner Sombart, 막스베버, 젊은 마르크 불로흐를 어제만 해도 자신의 청중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여겼던 게오르그 폰 벨로우 Georg von Below,* 그의 사상이

우리의 시료편찬관에게는 부당하게도 낯선 채로 있는 혹은 거의 없는 채로 남아 있는 마이네케 Me i necke,* *중세 제도들에 대한 경단할 만앞 저 작의 처 자인 하인 리 히 미 타이 스 Hei nr ich M itteis, 만일 그의 완성 된 처작이 1941 년과 1942 년이라는 불운한 시기에 출간되지만 않았더라면 우리에게서 그가 당연히 받아야 할 위내한 위치를 부여받았을 오토 힌째 Otto H in t ze, 또한그 밖에 메이 어 Th. Ma y er .••.•• 눙이 그들이 다. 그 주석 또는 인용란에는 철학사의 새로운 전문가들의, 사회학자들의 경제학자들의, 그리고 마지막으로 역사학자들의 이름들이 적지 않다. 게르하르트 리 터 Gerhard Ritterl 베르너 콘쩨 Werner Conze, 빌헬름 아벨 Wilhelm Abel, 해르베르트 하씽 거 Herbert Hass i nger…… 둥이 그들이다 .4)

이렇게 해서 오토 브문너는 내가 보충적으로 말한다면, 독일 사료편찬관의 낡고도 새로운 길을 가로지르는 항로를 우리에게 자유롭게 제시해주고 있다• 그러나 너무도 기이하고 정열적인 나머지 모순이나 미완성의 논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 사상가의 참된 면모를 밝혀낸다는 것은 결국 한층 더 어렵게될 분이다. 독자들이 그의 진행절차에, 그의 과장에, 그의 방대한 요약에, 혼히는 아주 뛰어난 그의 설명에 조금씩 조금씩 익숙해지리라는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중세사가인 우리의 저자는 훌륭한 연결지접에 심지어 서구 문명의 연결 지접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유럽 중세의 관례적인 경계 안에서 또는 그것을 벗어나 그가 고대를 향해 또는 충만한 근대를 향해갈 기회는 얼마든지 있는 셈이다. 〈플라톤에서부터 풀로리스 Flore 의 요하임 J oach im*** 에 이르기까지 또한 보슈에 Bossue t에 이르기까지〉 혹온 마찬가지로 능히 호머 Homere 로부터 페넬론 Fenelon**** 에 이 르기까지〉 그는 논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아날 》지에서 이 큰 걸음에

* Georg Von Below: 독일의 사학자 (1858~1927). 국수주의져 보수적 관정에서 중세의 법과 경계에 관십

** F. Me i necke: 독일의 역사학자(1862~1954), 18세기 관념론으로 회귀 주장, 비스마르크정치에 비판져 입장.

4) 두세 가지 이유로 인해 내 마음운 사로잡은 이 인용문은 Hei nr i ch Frey er 로부터 인용한 것이다 (Max Weber 의 생각과 감은 의미로). 〈계몽 I' Au f klaru g의 시 대 란 우리 가 이 표현으로 공통적으로 지칭하는 계한된 영 여 의 여사현상 일문만 아니라, 근본저인 추세둘 중의 좀더 나아가게 된다면, 목히, 유럽 역사의 ‘주세'둘 중의 하나아다〉라고 그는 쓰고 있다.

*** Joach i m de Flore: 이 탈리 아의 신비 주의자 (1130~1202).

**** Fenelon: 프랑스의 대수도원장 (1651~1715).

대해 불평할 권리를, 또한 사건(단견 운 지닌 우리의 현학자 중의 한 사람이 말한 〈역사의 골격〉인)에서 지체하지 않고. 또는 개인들에 연연하지 않은 채 유럽을 사회 문화적 전체 들에 대한 대표 자격으로, 두터운 서열로, 집단으로 제시하면서 유럽에 관해 논하고 있는 한 역사학자를 탐탁치 않게 여길 권리를 가지고 있을까? 물론 우리는 그를 추종하고 있다 ... … 그러나 우리로 하여금 하나씩 하나씩 읽고 또 읽게 만드는 그 변설들로부터 벗어날 즈음에도 그 작업 중의 어떤 것도 업일하게는 우리들의 것이 아닌 문제들에 집착하고 있는, 죽 우리가 공유하지 않은 추억들과 경험들에 사로잡혀 있는, 오토 브룬너의 참된 사상을 파악했다고 확산하게 만들어 주지는 않을 것이다는 접을 주목해 보라. 결국 나는 우리가 그 연장선 상에서 현재 시간에까지 직접 안내몰 받게 될 그런처런 성찰들 앞에서 멈춰서지도 않을 만큼 아주 무관한 독자는 아난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어렵고 아마도 잘못된 이 들의 해석들에 연연한다는 것은 쓸모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거기에서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처자의 확고하고 치밀한 저작을 참조한다는 것도 또한 쓸데없는 일로 여겨진다(뒤에 내가 인용하게 될 그러한참조문울 제외하고) . 나의 제안은 조금 늦게 우리를 방문해준 지적이고도 미묘한 이 한 권의 책을 검토하고 이 책이 우리에게 제시해주는 것몽부학적 성찰이라는 차원에서만 파악하는 것이다.

1 〈모델〉로 환원된 서구 (11~18 세기)의 독창성

그의 첫번째 목표는 만일 내가 들리지 않다면, 자유롭고 탄력적이며 전화론적인 역사와 대립되는, 보수주의적이며 구조적인 사회사를 우리에게 제안하고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수용하게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장기 지속〉의 물결 속에서 l1 세기에서 l8 세기에 이르논 〈유럽 사회사의 구체화된〉 특정 〈모델〉을 제시받고 있는 셈이다. 이 모델은 지속성, 부동성, 구조 둥을 분명히 드러낸다. 그 모델은 사건을 던져 버리고 국면을 낮게 평가하며 양적인 것보다는 질적인 것 을 선호한 나머 지 불행 히 도 에 른스트 라브루쓰 Ernest Labrousse 의 수학적인 생각에는 참시도 관십을 갖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기획은 (중세적 맥락에 한정된)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런: 사회사 내에서, 죽 전

체사의 차원과 속도를 구비한 그러한 사회사 내에서 그다지 어렵지 않게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오토 브룬너의 사상의 윤곽울 드러내기 위해 내가 사용한 명사와 형용사들은 그것을 절반만 규정할 분이며 또한 그것을 왜곡할 수도. 있다. 내가 앞 패러그라프에서 강조한 단어들만이 우리가 그 단어들에 일상적으로 부여하는 의미로 그의 논지가운데서 발견된다. 그 귀절로 참시 되돌아가면 사실상 사회적 〈모델〉이 충분히 문제시 되게 된다. 그러나 진행되어 가면서 또 다른 연속성들이 그 논제에 부가된다. 오토 브룬너는 곧장 뚜렷한 지적 연속성을 들취낸다. 죽 지적 연속성들은 그 책에 시간을 가로질러 끝이 없는 선들을 그어덴다. 그는 또한 아무리 참신한 현재라도 먼 과거들 포함할 수 있다는 접을 즐겨 탐구해낸다. 즉, 예를 들면, 영혼과 육체라는 아주 오래된 중세의 개념 (근대 생물학에 의해 부여된 살아 있는 유기체라는 의미로서가 아닌 ) 이 오스발트 스펭 글러 Oswald Spen gler 의 사상과 어 휘 의 중심 에 있다는 접을 그가 감지할 때, 또는 그가 중농주의자들이나 십지어 마르크스까지도 그들의 설명에서 중세의 오래된 〈경제 Oeconom i e 〉의 이 런저런 사상들을 취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될 때 둥이 그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여기서 〈모델 설정〉의 중요한 대상온 무엇보다 II 세기와 18 세기 사이의 서구라는 구체적인 영역에서의 사회이다. 완결된 것은 여기에, 침체된 것이나 추월은사실상 혼란 둥은 저기에 벌도로 두게되 면 서구 사회는 도처에서 같은 들을, 같은 주된 부분들을 보여준다. 죽, 도시의 경우에는 도시의 부르조아지, 도시의 장인, 도시의 자치구역 둥이 있고 농촌의 경우는 붙박혀 있는 농노들(분명히 모험을 추구하는 다른 부류들도 있으나 그들은 권한이 막강한 전자의 존재 물 방해하지 못한다)과 영주들이 있는데 그들은 둘다 이윤과 경제에 대해 근대사회가 그것에 부여하고 있는 의미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그들의 〈집안 maison > 경영에 더 몰두한다. 왜냐하면, 경제는 무엇보다도, 오랜 세기 동안 집안 (Charles Es ti enne 와 Jean Li ebau t가 말한 대로 16 세기까지의 〈시골풍의 집 la Maison Rus tiq ue 〉)의 자급자족적 경 제 Oeconomie, 집 안에 대 한 염려와 겨정, 죽, 하인들과 노예들을 보살피고 어린애들을 양육하고 재배 작물들을 결정하는 것, 죽 일반적으로 도시의 시장이나 〈부의 생 산학 Chremati s tique* 〉에 는 별로 간여 하지 않는 것 이 었다. 자급자

족 경제 Oeconomie 에 관한 오래된 책들이 시장을 무지하지 않고 있긴 하지만 시장은 그 책들이 묘사하고 있는 생계 경제의 중심은 아니었다. 그들의 視界는 〈집 maison >, 〈집 전체 maison en ti ere 〉이 다. 그러 니까 그 책들에 도덕적 조언들이 , 실제적인 의약 처방이 , 때로는 요리법 모음 둥이 수록되어 있다고 해도 놀라지 말자. 독일의 역사학자들과 경제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이 풍부한 家長문헌 Hausvaterliteratur5'을 강조해 왔다.

이들 주요 부분들은모델 내에서 그 나몸의 자율성을, 그 나름의 빛깔을, 그 나름의 목유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그것들은 서로 조화몹게 작용한다. 그것들은 날카로운 모서리를 가진 수정유리지만 공통의 빛이 그것을 두과하여 나온다.

구획된 부분들은 그것들간을 교통한다. 죽, 농부는 도시로 간다(십지어 안정적인 도시조차 그 취약한 인구로 인해 끊임없이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거기에 신참자가 들어오며 머지않아 그의 아들은 장인이 되고 그 장인이 언젠가는 상인이 되며 , 상인은 영주로 면모한다. 모든 일이 일어나고 일어날 수 있으므로 단지 인내십의 문제, 세대간의 보살핌의 문제, 운 좋은 기회의 문재일 분이다. 대가족의 창립자이며 농노의 아들로 시골의 방적공인 한스 푸거 Hans Fugger 가 1367 년에 아우스부르그 Augsbourg에 왔다. 때로는 반대로 영주가 부르조아가 되고 싶어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변환이 아주 다반사로 일어난다고 주장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것들만으로도 간장을 완화시키고 사실상, 없애 주며 장기지속적인 균형을 유지시켜 주기에는 충분하다. 그렇지만 그러한 균형은 끊임 없이 위협받는다. 만일 그 변환이 가속화되면 처음의 수정 유리는 장기적으로 변모된다. 오토 브룬너가 자신의 객에서 내 생각에 가장 좋은 페이지를 할애한 비엔나의 사례(제 6 장)가 제시하는 바가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주변적인 사례일분이라는 것, 그 〈모델〉은 이 득벌한 물 위에서는 찰 뜨지 못한다는 것, 여기서 왕이 실제 변환 과정에서 일찍이 개입한다는 것 둥은 사실이다. 그는 부르조아지가 접차 자신의 힘과 뿌리와 치상의 현실을 상실해 가는 귀족으로 변환하는 것을 용이하게 해주었다. 아마도 이

* Chrematistique: 부의 생산에 대한 과학으로 여겨지는 정치경제학에 대하여 14세기의 북정 학자들이 부여한 명칭.

5) Gertrud Schroder-Lembke, "Die Hausvaterliteraturals agrargeschtliche Quelle", z. f. Agrargeschi chte und Agrarsozi ologie, 1953 참조.

자회적 상승기라는 물 속에서 오스트리아와 그 밖의 지역에서 국가는 그 나름의 바퀴를 굴렀을 것이다. 또한 중세 서구에서는 정치적인 것이 사회져 OJ. 것에 확산되어 거기에 스러쳐 버리지만(영주는 영주인 동시에 지주이다) 접차로 근대 국가의 압력에 의해 한편에서의 국가, 다른 편에서의 경제적 사회라는 식의 구별이 , 구분이 이루어치게 된다. 따라서 그. 낡은 모델은 죽, 여러분이 원한다면, 구체제 l'Ancien Regi me는 붕괴한다. 이 붕괴를 전력 을 다해 연대 기적으로 배열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1789년 8 월 4 일 밤이 거대한 종말로 제시된다. 바로 그때 봉권적 권리들, 촌락 공동체, 도시의 자치구역…… 둥이 페지 되 었다. 그것은 말하는 방법 일 분이 다. 그렇지 만, 프랑스 혁명은 갑자기 뚜렷한 모습을 떨 것이다. 또한 그 곁에 뒤섞여전 채로 그렇지만 그것의 대체물은~ 아닌 산업혁명이라는 또다른 음울한 저명 인사가 있다.

여하튼 서구사의 대단원들 중의 하나가 막을 내리는데, 그것의 기원은 I, 000년과 I, IOO년 사이 로 7 세 기 앞서 있는 것이 다. 이 먼 옛날에 서구는 세력의 상승과 장기에 길찬 인구압의 증대(종국에는 엘베강 동쪽을 향한 식민지화가 촉진되고 프랑스로부터 이베리아 반도로의 이주를 초래했다)를 경 험 했다. 앙리 삐 렌느 Henri Pirenne 와 그를 따르는 많은 역사학자들은 뒤이어올 도시의 갱신을 무역의 일반적인 발홍의 결과로 이해한다. 그렇지만 서구 농촌의 상승도 있었다. 농촌은 전보다 훨씬 풍부한 식량을 생산하고 훨씬더 많은 사람을 낳았다――식량과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분명히 상업에 자극받은 도시의 비약은 가능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들은 또한 유럽 농촌을 상대적으로 조밀하게 만들었으며 복부 지방에서는 삼포식 농업 덕분으로 그 밭에서 많온 생산물을 거뒤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때부터 계속 농촌의 집약적인 노동에 전적으로 매달리게 되어 농부는 전업 농부가 된다. 따라서 그것은 영주에게 있어서 그의 방어수단을 확보하고 그것을 몰수할 수 있게 해주는 셈이다.

농촌의 번영과 도시의 번영은 처음부터 서로를 지탱해 준다. 그것들이야말로, 분명히 새롭고도 지속적이 될 운명의 경제인 유럽 경재의 토대이다. 이전의 수세기 동안 〈떠돌이〉 상인들의 무역에 의해 회귀한 물건들이――질좋은 천, 향료, 노예 둥__또는 소금과 밀 따위의 필수품 등이 실려 왔다. 그때는 왕족과 부유충의 고객만이 거의 그들

만이 고려되었다. 그러나 II 세기부터는 재조업 품 부분이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유럽에서는 직물 수 출 업이 자리를 잡고 상파뉴 장날의 영광과 지중해 무역의 후광이 부각되고 기반이 다져진다. 상인들은 뿌리를 내란다. 도시의 수가 많아지며 그것들은 도시군과 도시들의 피라미드를 형성하는데 각각은 가장 꼭대기에 있는 도시들로, 상업의 중십지로 귀착된다. 이 모든 것은 이러한 성공을 위한 바옥한 토양이며 영원한 토대인 영주와 농노의 세계와 공생 관계에 있다.

이 도식은 분명 수정과 보완을 팔요로 할 것이다. 오토 브문너는 그에 대한 다론 방안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그의 논술은 걷고 종종 반복되지만 그의 결론은 언제나 짧고, 동일하다. 그 결론들은 일반적인 것을 목표로 한다. 농노, 영주, 귀족이라는 그의 모델의 두번째 〈죽 Pole〉이 죽, 보다 일반적으로 귀족세계 Adelswelt 가 문제시될 때에만 그 결론들은 약간 윤색된다. 이 귀족세계에 대해서는 그의 온밀한 찬절이 베풀어지며 그는 기꺼이 그 역할과 중요성을 확대하며 최악의 상태에서 정해전 자율성과 정해진 자유만을 누리는 밑바닥에 있는 농노와의 상호 책임이라는 맥락에서 그것을 보여준다. 그는 이 귀족세계를 중농주의자들에게까지 연장된 아주 장기지속적인 문명의, 죽 참되고 효율적인 자유의 정신에 의해 골수까지 관동당한 귀족 문명의, 폭력적이고 조잡하지만은 않고 섬세하고 명백한 미덕들로 가득찬 ―귀족들의(오스트리아와 그 밖에 지역들의) 장서들은 그 접에서 우리들을 위해 I5 세기부터 그것을 입증해 준다 ___ 문명의 중십에 둔다. 도시의 부르조아도 마찬가지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문명이다. 여기서 누군가 약간 다론 방향으로 거의 정 반대로…… 보지 말란법이 있는가? 그러나 논술은 논술이다.

2 서구와 러시아

내 의도가 이 억지스러운 요약문에 대하여 논평을 가하는 것이라가보다는 그것을 제시하려는 것이라는 접을, 그논문의 타당한 근거보다는 이면에 숨어 있는 의지를, 영갑을 파악하려는 것이라는 접을 독자는 이해한다. 그러므로 11 세기에서 18 세기에까지 걸친 이 거대한

설명체계를 받아들 여 보자.

이 세기들에는 분명히 공통적인 무엇인가가 있었다. 냐는 차라리 13~I8 세기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것이 무슨 상관이랴 ! 나는 아주 기꺼이 I,000년에서 I, 800년까지 일정한통일성, 장기간의 일정한 〈수평상대〉가 있었다는 접을 인정할 것이다. 지노 루짜또 Gino Luzzatto와 아르망도 사포리 Armando Sapori 는 13 세 기 와 l4 세 기 의 〈근대 성 〉을 주장하면서 각각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그 접을 언급한 바 있다. 아르망도 사포리 는 르네 상스의 빛 이 13 세 기 〈사람〉둘의 눈을 부시 게 하도독 방치하는 것을 거부한다. 앙리 오제는 특히 I3 세기와 대비하여 l4세기 〈사람〉들의 뚜렷한 근대성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런 연구는 오토 브룬너에게는 익숙치 않으며 그의 논지에 십지어 그의 논쟁 방식에 팔수적인 것도 아니다. 그의 연구는 보다 복잡하고 보다 자의적이며 십지어 감히 말하자면 훨썬더 위험하다• 그것은 아주 특벌한 하나의 변증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역사의 경관에서 계속 살펴보노라떤 그것들을 동합시켜 주었던 것이 이내 그것들을 다양화시켜 주는 것이 된다. 말하자면 전시판의 기호에 따라, 카드 놀이판이 열려지떤 그러면, 다양한 빛깔과 숫자를 지닌 온갖 모습들이 보이게 되고혹은 그것이 닫히면 모든 것이 한데 뭉쳐쳐 그것을 다루는 사람의 손안에 단 한 중이 될 분인 것과 마찬가지다. 오토 브룬너는 서구의 전반적인 독창성을 주장하기 위해서 수많은 카드들이 놓여 있는 카드판을 접어버 려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의 모델은 특히 독일의 도시와 토지에 맞기 때문이다. 그 모델이 이탈리아나 에스파냐에 대해서도 맞을까? 거기에서와 그 밖의 지역에서의 부합은 약간의 교묘한 방향 전환이 있어야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나는 아르망도 사포리가 일전에 베르너 좀바르트가 중세 경제에 대하여 제안했던 전체적 관접에 대하여 거부했듯이, 그는 분명히 이 단조로운 서구의 이미지에 대하여 처항감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어떤 역사학자가 여러가지 어려움과 사회 경제적 위기들로 난도질 당한 중세를 가로지르는 간 시간의 이 수평상태를 받아들일 것인가? 근대 국가는 15 세기, 아니 오히려 16 세기에 비롯되며 그 군열, 죽 〈국가-사회〉의 폭발적 대두는 프랑스 혁명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시장경제는 18 세기가 끝나기 전에 서구 사회에 깊숙히 파고들었다. 이러한 장애물들을 감추R 버리거나 뒤어넘기 위해서는 언제나 일정한

솜씨가 팔요할 것이다.

우리 동료의 재간은 처음에 우리로 하여 금 그의 처음의 단순화가 사설상 유럽의 본질적이고도 독특한 독창성 을 주의깊게 재인식시키는 것이라는 접을 맡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나서 이러한 주장을 넘어, 유럽이 아닌 것, 죽, 베버식의(물론 Max Weber 의) 거대한추상체-〈동양적〉이라고 하는, 이슬람과 인도 중국의 연결체 내에서 재통합되는 유럽의 독창성을 이 도시 지대와 대비하여, 부산하게 우리에게 입증해 보이기 위해 서구지 역 밖의 논의로 옮겨가는 것이다. 이범주의 통일성을 누가 믿을 것인가? 또는 막스 베버가 정말로 그 유명한 도시 사회학울 문제의 진상에 이를 때까지 밀어갔을까?

그렇지만 이 비판을 반쯤 형성시킨 채로 놔두자. 유럽의 동편 겅계선에 이르게 되면, 우리 독자들은 서구의 체계와 러시아의(사실상 동양의) 체계와의 차이접을 측정해볼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설중에 따르자면 특정의 역사학자들이 유럽이, 원한다면 서구가 일정하게 지체된 여사의 악천후와 장면의 거대함, 삼림과 늪의 적의 둥으로 왜곡된 상태의 특이한 색채를 떤 러시아의 상황에서 그 운명을 다시 시작하고 재정돈할 것을 열망했다는 사실 또한 부인된다. 그것에다 몽고족의 침입이 준 거대한 파국이 덧붙여진다.

오토 브룬너는 러시아의 특정 역사학자들과는 반대로 그렇지만, 다론역사학자들의 견해에 근거하여 이 파국 이전에도 이미 지체가 있었으며 더욱이 이 두 세계의 사회구조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노보고르드는 서구식으로 그 자체로 페쇄된 도시가 아니라 농촌에 개방되어 있는, 농촌의 생활에 통합되어 있는 〈고대적인〉 도시이다. 분명히 러시아의 도시들은 상당한 크기이며 사람들도. 많지만 그 수가 적고 서로서로 동떨어져 있다. 예를 들면, 키에프, 모스코바둥이 그러하다. 러시아의 도시들은 유럽의 경우가그러한 것처럽 작은 도시들의 그물망이나 피라미드에 의촌하지 않는다. 더욱이 러시아의 도시들은 장인 생활의 독접을 유지시켜 주지 않으려 하거나 혹은 유지시킬 수가 없다. 비참한 수공업자의 도시 산업과 나란히 농업적 산업이 도시의 동제 밖에서 강인하고도 다양하게 유지해 나간다. 러시아의 겨울에는 풍부한 노동력이 농촌에서 수개월 동안 일손을놓게 되며 따라서 그들과 맞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농부들로 말하자면 그들은 오랜 동안 찰 뿌리를 박지 못해 왔다. 그들의 재배 방식

온 돌려짓기인 상태이다. 그들의 경작은 삼림을 없애고 이루어지지만서구에서처럼 이 처녀지를 단번에 굴복시키고 거기에 견고한 밭 이랑을 만들고 거기에서 나무 그루터기들을 뽑아내 버리는 것은 문재가 안된다. 유럽의 농부들에게 보여진 아메리카에서처럼 공간의 낭비가일반적이다. 농노들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수공업자도 그 움직임에 있어 전적으로 자유롭지는 않다는 접을 첨가해 보자. 마지막 특칭으로 피터 대제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에서 상업은 소금, 모퍼, 꿀, 사치품, 노예 둥의 천연 생산품을 다루었다. 그것은 순회하는 像商에 근거한 것이다. 이 고풍스러운 특징들로 전체 도표가 완성된다. 반대로 유럽에는 반쯤 자유로운 농민층이, 독립적인 혹은 거의 독럽적인 도시들이 정착상인들과 더불어 이미 활성화된 상업 자본주의가 있다. 서구의 도시들은 단거리 혹은 장거리에 있는 자본주의에 대하여 자유로운 소군도들과 같이 국가의 통제 밖에 있는 수공업과 상업이 주축이 된다. 바로 거기에 막스 베버의 오래된 주장대로 중세 유럽 도시의 독창성이 있는 것이다. 〈고대〉 도시나 〈동양의〉 도시는도시와 농촌사이에 이러한 분열, 아니 오히려 이러한 구벌울――한마디로 말해서 도시의 과도한 충전상태를 파악하지 못하였다.

이 턴 식의 비교가 게르하르트 리터 Gerhard Ritter*6) 가 최초에 또다시 언급한 바 있는 〈러시아의 수수께끼〉를 밝히기에 충분할까? 또는 이 거대한 경관과 맞닥뜨린 독일 관찰자의 당혹감은? 독자는 답변을 해야만 할 것이다. 나는 이번에는 오토 브룬너가 해보았던 유럽과` 이베리아 반도인의 아메리카 식민지 (16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사이의 대차대조에 의해 제시되는 것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바이다. 15세기 말엽에 신대륙에서는 새로운 유럽이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다시 시작된다〉. 또한 새로운 유럽에서 〈도시들〉도 다시 시작된다. 이들 도시들은 구축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농촌에 앞서 생기기도 하고(리오데자네이로), 또는 인디언의 농촌에 의지하기도 한다. 그것들이 어디에 존재하전간에 그것은 농촌에 개방되어 있는 도시들에 의해 농촌의 대지주__예를 들면, 브라질 읍의 대표자들 homens bons, 또논에스파니아의 읍, 군, 떤 둥의 행정구역의 대표자를 hacendados des

6) Lebendige Vergangeheit, Muni ch, Oldenbourg, 1958. Das Riitsel Russland p.213 et sui v.

* Gerhard Ritter: 독일의 여사학자 (1888~1967). 함부로크에서 근대사 교수. 프레데 대왕에 임한 중요 연구 간행.

cab i ldes 둥과 같은-에 의해 지배되는 고대적 원칙을 갖춘 〈고대〉 도시들이다. 이 전체 중에서 기껏해야 두세 개 정도의 아주 근대적인 도시들이 〈러시아〉의 아주 거대하고 고립되어 있는 도시들인, 총독둘이 있는 멕시코시, 네덜란드 몽치기와 그 이후의 례씨프 Rec ife 설탕 수출상인들이 있는 바히 아 Bah ia, 포토시 Po t os i 둥이 있다. 이 목록에 노새를 탄 대상들을 추가해 보라, 그렇다면 그것이 II 세기 이전의 유럽이란 말인가? 또는 피터 대제 이전의 러시아인가?

3 사회사란 무엇인가?

이 문제접둘은 이 철반 정도의 비판은 사실상 이 야십적인 저작의 철반 또는 그것의 삼분의 일만을 다루고 있을 따름이 다. 오토 브룬너가 단지 서구 중세 특유의 독창성을 판별해내고 그 장접둘을 찬양하며 그 위대함에 대해 언급하고 그것의 〈기적〉을 주장하려는 의도만을 가진 것은 아니다. 만일 내가 잘못 보지 않았다면 그는 현재 시간으로 돌아가기 위해(강력하게 혹온 명확하게라기보다는 능숙하게)_돛·폭의 두번째 작동__또한 이전의 것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초월하는 역사가들의 직무상의 구조를 향한 선회―一세번째이자 마지막 작동――를 위해 이 장엄한 광경을 조명해 보고자 한 것이다.

사실상 18 세기 이전의 서구 중세는 다양한 장애물에 의해 우리 시대와 구별된다. 따라서, 18 세기와 19 세기의 단철과 변화에 의해 유럽의 먼 뿌리로부터 거의 단철된 시대에 속하는 20 세기 사람들과 역사학자들이 11 세기와 18 세기 사이의 유럽 사회사의 실재를 쉽사리 재발견할 수 있을까? 용어 그 자체 특히 경제, 또한 사회, 사실상 국가타는 단어들은 우리를 오류에 빠뜨린다. 우리가 정신적으로 모돈 것이 한데 어울려 있는 열어젖히기로돈l 커튼에 의해, 죽 이 데올로기 에 의해 (18 세기에 나타난), 실제이면서 동시에 환상에 담겨 있는 사상들에 의해, 고대적인 설명에 의해, 십지어 새로운 사회과학들의 노력듈 둥에 의해, 이 먼 경관이 대상으로부터 분리되어 버렀다는 접을 명심하라. 읽고. 또 읽고. 나서도 찰 이해가 되지 않는 한 장 un chapit re 에서 우리논 무정부주의에 대해서 현재-과거의 대화의 명백한 위험에 대해서 경계해야 하며 더욱이 우리는 역사학의 무거운 책임과 맞닥드리게 된

댜 그러나 사실상 그것은 칼 만하임이 말한 대로 이데올로기에 대한 추적은 결국 우리를 현혹시킨 마술이나 연기에 대한 추적 이 아닐까? 이데올로기들은속력을 상실한 상태안가 혹은 그렇지 않은 상태인가?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들의 장막의 이편과 저편에 대해 저자는 어떤 판단에 어떤 비교에 몰두하고 있는가?―一생소한 독자라면 그것을 단번에 파악할 수는 없을 것이다• 누가 판단의 대상이 되며 누가 저주의 대상이 되고 또는 더 좋아한다면 우리가 사랑하게 될 대상은 누구인가? 왜냐하면 이윤과 국가의 폭정의 밖에 있는 이 구체제에 대한 명 백한 찬미는 의미를 지 녀야만 하기 때문이다. 〈과거에 대한찬미 Le laudat or t empor i s ac ti> 는 결코 현재 의 속셈 이 없을 수 없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끊임없이 우리의 동료가 역사학의 운명에 대해 역사학의 존재 이유에 대해 제기한 바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우리의 답변을 앞질러 어렵게 하고, 그 답변을 약화시킨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제시된 길이 확실한 것인 양 나아가 보자•

오토 브룬너 는 《종합지 Revue de Sy n thlse 〉〉의 서 두에 서 의 1900 년의 앙리 베 르 Henri Berr 처 럼 처 음부터 독수사의 분과를 넘 어 올라가려 고 한다. 특수사들-법의 여사, 제도사,철학사,사상사,문학사,과학사, 예술사, 종교사, 일상생활사, 경제사등-은 아주 많다. 특수시들은 그 고유의 리듬, 그 고유의 숨결, 그 고유의 연대기적 척도를 갖추고 있다고 여겨진다 (Hei nr i ch Frey er 참조). 또는 이 특수사들은 정복되 고 해 체 되 어 야만 한다. 이 렇 게 해 서 문화사 Kulturgeschi cht e 제 국온 과장되고 기괴해진다. 비록 그것이 명확하게 언급되지 않는다고해도 한 부분에 불과한 경제사도 마찬가지로 과장이나 스캔들이 없이는 전체 역 사의 차원으로 부풀릴 수 없다.

간단히 말해서, 역사학은 정치의 영역과 사회의 영역이라는 두 개의 일반 영역만을 인정한다• 도형 기하학에서처럼 역사학 전체가 두사되어야 하는 곳은 바로 그 둘의 영역이다. 물론 이 논란거리가 될 만한 이미지를 개전한 사람은 바로 나다. 오토 브룬너는 사회사는 그에게 있 어 하나의 전문 영 역 Fach, 독수 부문 Sonder geb i et 이 아니 라

쓰고 있다. 이런 관접에서는 역사학은 모두 다 좁은 의미에서 정치사인 셈이다〉” 내가 그에 대해 질책하지도 않았는데 오늘날 그는 전혀 다론 정반대의 견해를 갖고 있다. 역사학은 언제나 대상으로서 인간율 포함하고 있지만, 그것을 다루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그는 개략적으로 말하고 있다.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는 사회사라는 거울 속에서 보고 나면 〈내부 구성, 죽, 사회 관계의 구조가 무엇보다도 부상되게 되는〉 방법이며 두번째 가능성은 정치사적인 의미에서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의미의 정치사의 가능성인데 이 경우에는 정치적 행위, 즉, 〈인간의 자동저 결정〉을 대상으로 파악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이다. 나는 그 두 영역 사이에서 모든 것이 분리되고 나누어질 수 있다는 접을 다시금 주장하는 바이다. 역사학자에 있어서는 그 둘을 혼동한다거나 심지어 그둘을 한꺼번에 제시하게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확정지으려 하고 결코 반론을 제기하지 않으며 따라서 준거점으로 이용될 수도 있는 부정적 사례들이 없는 이 책이 제시하는 정치사의 영역으로 되돌아간 역사학에 대한 암시적인 윤곽울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따라가 보는 것은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이다. 〈정치적 동물〉인 인간의 역사는 내가 올바르게 이해한 것이라면 어느 정도는 그 움직임의, 그 행위의, 그 자의적인 자유의, 십지어 때로는 권력정치 Machtpolitik 의 역 사이 며 , 따라서 인간사는 아주 혼히 전동적 인 역 사학을 지향하게 된다. 양면판의 다론 쪽 떤판에서는 사회사가 부동성과 장기지속에 의해 유리해지는 정도에 따라, 두텁고 중후한 사회적 사실은 악천후, 위기, 쇼크 등에 대해 저항하게 된다. 그것은 그 완만함, 그 강력한 관성에 의해 강하게 된다. 경제사의 부상은 이 거대한 것을 파헤치느라 이 두터운 갑옷을 꿰뚫느라고 기력을 탕진하고 만다•

더구나 중세에는 단 하나의 역사, 사회사만 있다는 점을 다시 생각해 보자. 사회사는 모든 것을 삼켜버리고 모든 것을 자기것으로 만들며 국가는 우리가 언급했던 다양한 영역들――도시, 영주, 촌락공동체-사이로 해체되어 버란다. 시장 경제도 물론 그 위기, 십지어 격 변을 겪 을 수 있지 만 자급자족 경 재 l'Oeconomie 는 스스로 버 탄다. 그것은 이 자찰한 풍랑들로부터의 피난처에 안주해 있다. 그 세

7) Otto Brunner, "Zum Problem der sozi al-und Wi r t schaftschi cht e," in Zeitschrift /Ur Nationa/iJkonomi e, VJI, 1936, p. 677.

기들은 경제에 소속된다. 국가와 경제는 훨씬 늦게 도래한다.

이 논문을 읽으면서 나는 단지 나 자신과 나의 프랑스 독자들에게 있어서 거의 생소한 사상을 명확히 밝히려고만 랬울 따몸이다. 독일 역사학자와 프랑스 역사학자 사이의 접촉이 너무 오랫동안 끊어진 나머지때로는 잘못 파악된 단 한마디로도 너무 빨리 던져진 주장만으로도그 논쟁은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기까지 한다. 서로에게 낯설게까지 된 사상을 덧붙여준다는 것에는 양편 모두에게 둑이 될 것이다. 따라서 나는 가능한 한 비평가로서의 심리적 태도를 자제하고 이 논도쟁의 우선권을 오토 브룬너에게 부여하고 있다.

이 대면이 끝날 무렵 나는 설득되게 될까? 그것은 별개의 문제야다. 나는 어느 정도 공감울 하면서도 간신히 할 말을 참고 있는 상테이다. 사실상 장기 지속의 사회사만이 내 마음을 끈다. 비록 그것아 다론 여러가지 중의 〈하나〉의 사회사, 즉, 완만함을 지닌, 영속성을 떤, 관성을 지닌, 구조의 사회사인 동시에 그 부동성을 넘어서 만만·치 않은 등장인물인 사회 국면을 배치시켜야만 할 그러한 사회사이지만 말이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적〉이건 아니건 간에 지난 세기의. 전통적 역사학을 결집했던 정치사에 반대하여 할 말은 더 이상 없다. 그렇지만 내 생각에 오토 브룬너의 권위주의적인 이분법, 즉, 그 얀에 역사학이 갇혀버리는 이 이중성에 반대하여 할 말은 아주 많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의 선택을 유도했던 이유나 속셈이 무엇이건간어t -그것들은 프랑스 독자들에게는 불확실한 상태인데 __ _나는 그 선택에 찬동할 수 없다•

각성 을 모르는 자유주의 라는 비 난을 무룹쓰고 나는 반대 로 모든鬱 출구가 내가 보기에는 역사학의 다양한 문지방울 넘어서기에 훌륭한 것처럼 보인다라고 말할 것이다• 불행히도 우리들 중에 그 누구도 그.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역사학자는 그가 가장잘 알고 있는 것으로서의 과거몰 향해 문을 연다. 그렇지만 만일 그가가능한 한 멀리 보고자 한다면 그는 반드시 다른 문을, 또 그리고 나서 다론 문을…… 두드려야 할 것이다. 매번 새로운 또는 약간 다른 경관을 다루게 될 것이며 그 경관들 중의 및 가지 죽 문화적 •사회적 경관, 문화적 • 정치적 경관, 사회적 • 경재적 경관, 경제적 •정치적 경관 둥을 배치할 줄 모론다면 그는 명칭을 받을 만한 역사학

자가 눗 될 것이다. 그러나 역사학은 그 모든 것을 한데 결집하며 역사학은 그 인접영역들, 그 공유 부분들, 그 두한한 상호작용들… ••• 의 총합인 셈이다.

오토 브룬너의 2차원의 도식은 따라서 나를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역사학은 N 차원에 의해서만 감처될 수 있다. 아러한 관대함은 필수적이다. 그것은 설명의 영역이나 문화적 직관 또는 유물론적 변증법 , 또는 그 밖의 다른 분석들의 외부에 있는 보다 열등한 영역으로 전가되지 않는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죠르쥬 귀르비치 Georges Gurvitch 가 말한 것 처 럼 〈다차원〉적 이 고 구체 적 인 역 사학울 규정한다. 이러한 다양성을 넘어서 분명히 각 영역은 자유로운 40태이다.――혹자는 심지어 역사학의 통일성을 주장해야만 하는 의무감을 느끼며 그러한 통일성이 없다면 우리의 직무는 생각조차 할 수 없으며 혹은 적어도 가장 귀중한 야십 중의 일부를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인생은 다양하며 또한 인생은 하나이다.

인구학과 인간과학의 차원들*

이 장에서 우리가 옹호하고 있는 여사학은 스스로 다론 인간과학들에 대하여 문호를 개방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의 관십을 끄는 것은 역사학 그 자체라기보다는 인간과학들 전체이기 때문이다. 나는 인구학적 연구의 기본적인 지향과 전제들을 역사학만의 관접에서가 아닌, 전체의 관접에서 고려하면서 그것들을 문제삼아 보고자 하·는 이 글의 서두에서, 이 접을 재삼 언급하는 것이 유용하리타고 생각하는 바이다.

그러나 안십할지어다. 내가 이 런 식의 핑계로 사회 현실에 대한 재국주의적이고 단선적이며 혼히는 조급한 설명이 되기 쉬운 〈인구학주의 demograph i sme 〉에 대 한 손쉬운 시 비를 가리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은 제각기 특히 그것이 나어린 상태이거나 또는 마찬가지로 일신

* Annales E .S.C. , n° 3, mai-jui n 1960, Chronique des sci ences soc i ales, pp. 493~523.

된 경우, 사회적인 것 전체를 문제삼으려 하고 또한 그것 을 그 분과만으로 실명해내고자 한다. 〈경제 학주의, 지리학주의, 사회학주의, 역사학주의〉 둥이 있어 왔으며 아직도 존속하고 있다. 그 모든 것은 치나치게피상적인 제국주의지만그자부심은 자연스럽고사실상필요한 것이다. 적어도 일정기간 동안은 그러한 적극성이 유리함을 띠기도 한다. 그렇지만, 아마도 오늘날에는 그것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것이다.

의심할 나위 없이 〈보조과학〉이라는 용어는 젊은 사회과학들을 가창 당혹시키고 격분시키는 용어이다. 그렇지만, 내 생각에는 모든 인간과학은 예외 없이 서로 서로에 대하여 차례로 보조적이며, 그것들 각자의 경우 다른 사회과학들을 각자의(각자의 것이며 각자의 것이어야만 하는 사사로운, 그러나 배타적이지는 않은 관접에 따라) 용-례에 맞추어 길들여야만 하는 것이 명명백백한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단번에 고정되어 버란 위계서열은 문제시되지 않으며, 만일 나로서는 내 관점이라는 자기중십적 관접에서 내가 주처하지 않고 인구학을 역사학의 보조과학들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한다면, 나는 인구학이 역사학을 다론 것들과 마찬가지로 그것의 보조과학들 중의 하나로 간주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본질적인 것은 전체에 대한 모든 설명이 조화를 이루고 서로 접합되는 것으로 끝맺음되어야 한다는 접, 죽 적어도 서로간의 만남에 기초를 닦아 두어야 한다는 접이다. 나는 바로 이러한 수준에서 우리의 동료들과 이웃 인구학자들과의 현재의 대화를 위치지으려 하는 것이다. 나는 방법에 대한 논의의 수준에서 루이 앙리 Lou i s Henry* 및 르네 베 텔 Rene Baehrel 과 보조를 맞추는 것 을 용납치 않는 바이다. 나는 한 순간도 방법 그 자체로서의 가치를 부인하지 않는 바이며, 또한 나는 방법들이 통상적으로 불러일으키는 끝없는 쟁론들에 대한 뤼씨엥 페브르1) 의 노여움울 철반만 나눠 가지고 있는 실정이다. 여하튼 〈정상에서〉 문제시되는 것은 방법이나 수단만이 아니라 오히려 그 결과들, 그 결과들의 처작에서의 적용인 해석인 것

* Loui s Henry: 프랑스의 인구학자, 인구통계분석 전문가. 저서 : Fecondite des mari ag es (1953), Domog raphi e anal ysi s et modele (1972),

1) 〈각자에게 그 방법을 만둘어내도목 해야 한다〉고 내가 눈앞에 두고 있는 노트에서, 그는 내게 써준 바 있다. 〈그 방면에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 만일 그 자신의 방법을 고안해내는 일에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다면, lascia la storia…>

이다. 한마디로 그것 을 통해 방법에서 기인하는 여러가지 오류들을 필요에 따라 수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이 글에서 쟁접이 될 것은 인간과학들의 일반적 지향에 관한 것이 다. 그러한 묵표 때문에 나는 나의 대화 상대자를 선덱해야만 하며, 실질적으로, 불충분하고 편협한 참고문헌들의 현실태로부터 절반 이상 벗어나야만 한다. 나는 이 란 식의 관접이 내게 부과해 주는 반성적 회고가 무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중요한 저작들에 대해 논하기에는 결코 너무 늦은 것이 아니다.

1 에른스트 바게만 Ernest Wagemann 의 〈문턱 들〉

미록 그것이 완전히 공정한 것도, 아주 일상적인 것도 아닐지 모르지만(내가 알기로는, 우리 중의 어떤 비평적 관접에서도 그것을 시도해 본 적이 없다.) 우선 권위가 있고 자국적인 에몬스트 바게만의 연구를 제시해 보기로 하자. 그 연구 저작들에 접근하는 데 따르는 첫번째 어려움만으로도 우리를 멈춰서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죽 그. 초판에서, 재판에서, 번역서에서, 증보판에서, 선별적인 요약문에서, 다른 식의 개작을 위해 IO 여 번이나 다시 택한 논문들에서, 전반적인 치환 또는 반복둘 2) 에서, 정확하게 파악되기란 쉽지않은 것이다. 그렇지만,이 중

2) 일찍 이 I' Ecole des Hau t es .Et udes 의 학생 이 었 던, Mme Ilse Deikt! 는 내 게 Ernest Wa g emann의 처 작들에 대 한 아래 의 목욕을 계 시 해 준 바 있 는데 , 나는 그것 을여기 제시하는 것이 유용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녀는저자의 다양한 간행물둘 'II 약간의 질서 뮬 잡았다 : D i e Nahnmg s-Wi r t schaft des Aus/andes, litrl i n, 1917 ; Allg emei ne Geldlelzre, I, Berl i n, 1923; Eillfiiknmg i n di e Konj 1mk t urle /z re, Leipz ig, 1929; St ruktll r tmd Rlz yt lmrns der Wel t wi· r t schaft. Gnmd/ag en ei ner wel t wi r t sc/z aftli chen Konj u11k t ur/ehre, Berli n, 1931 ; Geld Und Kreditref orm, Berlin, 1932 ; Was i s t Geld?, Oldenburg, 1932; Narrenspieg el der St n tis tik. Di e Umri sse ei nes S t a tis tischen Wel t bi ldes, l" ed ition, Hambour g, 1935; 2• edition, Hambourg, 1942; Wirtsc/zaftsp o/itische St ra t egie. Von den oberst en Grunds iit zen Wi rschaftlicher S t aa t sk1ms t, Jre editi on, 1937; 2• ed ition, Hambour g, 1943; D i e Zahl als De t ek tiv He itere Plauderei iiber g ewi c h tige Di 11 g e, I 『• ed ition, Hambourg, 1938; 2• edition, Hambourg, 1952; Der neue Balkan, 1939; Wo Komm t das vi ele Geld her?GeldscMPf ung i md F i nanzlenk tm g i n Kr i eg und Fri eden, Diisseldorf, 194o;Mensch· enzalzl und Volkerschicksal. Ei ne Lehre von den optima/en D i mens i onen Gesellschaflicher Gebi lde, Hambourg, 1948; Beriihm t e Denkf ehler der Nationalokonomi e, 1951; Eill Mark t der Z ttkunft. La t ei nameri ka, Diisseldorf, 1953; Wirtschaft ·bewundert und kritis i ert. Wi e i ch Deutschland

sehe, Hambourg, 1953; Wag en wiigen, Wirtsc/zaft en. ErProbte Faust regeln-neue Wege, Hambourg, 1945.

언부언들 가운데서의 일종의 시추작업으로 만족해야만 하며, 또한 그러한 시추작업은 여하돈 우리를 충족시킬 것이다. 나는 특히 내가 오래전에 칠레의 산티아고에서 알았던 두 권의 저작을 다룰 것인데, 산티아고에서는 1949 년과 1952 년에 그 두 책이 출간되자, 그럴 만하게 일정한 반향을 일으켰다. 첫번째 것은 독일어에서 스페인어로 번역된 것으로 『제 민족의 운명 에서 의 인구 La Population dans le des tin des f) CI'p les』”라는 제 명 이 붙어 있으며 , 두번째 것 인 『세 계 경 제 l'economiemondi ale』4) 도 스페인어로 첫 판이 나왔지만, 그 이전의 다론 간행물둘로부터분 아니라, 그 이전의 모돈 구절들에서 따온 것이다. 나는 노한 베를란에서 나온 서적상 프랑커] Francke 의 전집인, 『탐색으로서 의 수치 Di e Zalzl als Det ek ive』”에 실려 바게만이 죽기 직 전 (1956) 에 간힝된 소책자도 다뤄 볼 예정인데 그. 책 역시 재판이지만 빛나는 걸작이다. 이 책에서 셔얼록 홈즈는 자신의 절찬한 찬구인 왓슨 박사와 더불어 숫자들이나 통계치들을, 방대한 경제 범수들을 마치 범인이나 용의자들을 다룰 때처럼 다운다. 이 책은 다른 어떤 책보다도 사회생활의 복잡함을 꿰뚫고 발자취를 발견해내는 안내인의 정통함과 때로는 거침 없는 민첩성을 입증해 주고 있는데 아주 높은 관접에서 보떤 그 길에서부터 사물들은 오로지 지성과 계산의 연역에 따라 질서잡히게 된다. 우리의 소개를 마무리하기 위해 경제학자라면 누구나 다 알다시피, 에른스트 바게만이 제 2 차세계대전 전에 베를린의 유명 한 국면연구소 Konjunktur lnstitu t 의 소장이 었다는 접 을 덧붙여 보자. 독일의 패망 후에 그는 수많은 독일인들이 그랬듯이 자신의 원래 출신지였던 칠레로 가는 길을 택했다. 수년 동안 죽 1953 년에 이르기까지 그에게는 산티아고 대학에서의 자리가 제공되었으며 바로. 그 접이, 만일 필요하다면, 내가 앞서 지적했던 칠레에서의 출간을 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문제삼고자 하는 것은 인물이 아니타 그 저작들이다.

사실상 그 저작들은 조급하고 부랴부랴 쓰여진, 미완성 상태이며 열정적이고 흥에 취한 재미를 주는 것들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언제나

3) La poblaci on en el destino de los pueblos, Santi ago, 1949, 245 p. i n-8°.

4) Economia mundi al, Santi ago, 1952, I , 220, p. 11, 296 p. , i n-8°.

5) Sammlzmg Dalp, n° Bo, Berne, 2• edition, 1952, 187 p. , in-16.

지나치 게 합리적 이다. 역사학적 지평에서 보면 그 저작둘은 아주 일반적인 것이며 사실상 지극히 평범하지만 결코 권태를 불러일으키자는 않는다. 인용된 저작들 중의 첫번째 책인, 『제 민족의 운명에 있어 서 의 인구 La Population dans le destin des p euples』에 서 처 음 150 여 페이지는 일종의 장엄함과 품위를 견지하고 있다. 죽 거기에서 교육과정에 있는 이 경제학자는 인구학자를, 그것도 열정적인 초보적 인구학자를 팔요로 한다.

더구나 그의 첫목표는 오랫 동안 그들의 것이었던 경제학의 관접및 연구들로부터 벗어나는 것, 죽 그의 견해에 따르면 가장 뛰어난, 공간에 강력하게 뿌리박고 있는 경제학, 즉 뒤넨 von Th ii nen 의 겅제학으로부터 어떻게 해서든지 벗어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우러에게 〈아마도 두]맨이 칼 마르크수와 더불어 독일의 가장 위대한 경재학자일 것이다〉라고 털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뒤밴의 경제학으로부터 빨리 벗어나기 위해 그는 사변적인 방법으로 혹평과 부정을 중대시키고 통상 인정되고 있는 설명들을 밀쳐낸다. 이 모든 것들은 십각하다기보다는 홍미거리가 된다• 막이 오르면, 멜서스는 선택된 과넉들 중의 하나가 된다. 더구나 국면이 경제적 상승기인지 또는 하강기에 있는 지에 따라 비관론자나 또는 낙관론자가 되는 이 사이비 인구학자들을 믿을 수 있겠는가? 〈경제적 상황에 대한 인구학 이론이 존재하게끔 하는 아주 두드러지는 의존성은 그것만으로도 그 분과가 충분한 방법적 근거지를 규정하지 않는다는 접에 대한 중거를 제시해주는 셈이 된다.〉

바로 그것이 바게만이 구스타프 슈뮬러 Gustav Schmoller가 애용하는 지속적인 발전관을, 또는 인구용량 이론__독정 경제체계가 지탱해낼 수 있는 인구압_을, 프리드리히 리스트에게 해당되는 〈경제학의 경험주의자〉의 언급들에 대한 이론적 쟁접둘을――성공적으로 던져 버리게 될 때, 그가 끈질기게 추구하게 될 것을 말해준다. 죽, .::z...가 빌헬름 뢰프케 Wihelm Ropke나 구스타프 뤼벨린 Gustav Riimelin과 같은 경제학자들이 제시한 〈과잉인구〉 또는 〈과소인구〉 등에 대한 이런처련 규정들을(그렇지만 그 나름대로는 타당한) 버리게 될 때――간단히말해서, 경제학과 인구학 사이의 낡은 또는 새로운 모든 동아줄이 끊어져 버리게 될 때-그가 추구하게 될 것은, 내가 감히 말해 본다면, 자신이 생각하기에 어느 정도는 궁극적인 요인들의 영역이라

고 여겨지는 과학적 자율성의 영역에서, 별도의 서1 계에서 인구학의 구축인 것이다. 〈통속적인 정치 경제학이 즐겨 택하는 논지들 중의 하나는 근대에 나타나는 인구의 급속한 팽창은 당연히 왕성하게 팽창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성공에 기인한다는 점이다. 추호도 의심할 나위 없이 그 반대의 논지를 지지해 주는 것들이 훨씬더 근거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즉 19 세기와 20 세기의 경제적 • 기술적 진보는 당연히 인구의 급속한 증대에 기인한 것이다.〉 거기서 확정된 사실온 인구학이 관건이 된다는 접이다.

유용하건, 혹은 덜 유용하건 이러한 파괴는 이렇게 용감한 몸짓은 단지 막을 들어올리논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한 파괴에 과학적인 위엄을 부여해 주려면 인구학에 명확하게 규정된, 구체적인 임무를 할당해 주어야만 한다. 에른스트 바게만의 견해를 따른다면 인구학은 무엇보다도 인구의 동태에 관한 연구가, 인구 동태가 가져올 결과들에 관한 연구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구학은 홍미롭게도 국면적인 경제학을 모방한 국면에 관한 과학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 뻔한 모순에 대해서, 이 뒷걸음질에 대해서 도중에 비웃지는 말자.

여하돈 역사학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과거 인구의 거대한동태는, 장기적 파동을 떤 밀물과 썰물은, 그 본질적인 움직임은 바로 국면에 속하는 것이며 그 국면이야말로 에른스트 바게만이 그의 입장에서 인구학의 가장 고유의 영역을 구성할 만한 연구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대략적으로 그는 서구에서 다음과 같은 인구동태 리듬울 파악해내고 있다. l0 세기에서 13 세기까지의 상당한 인구중가, l4 세기의 혹사병으로 인한 파국적인 감소, 15 세기의 정체, 16 세기의 괄목할 만한 비약(바게만이 구체적으로 밝힌 대로 중부유럽에서), 17 세기의 정체 또는 감소, 18 세기의 상당한 중가, 19세기의 〈때 아닌〉 비약, 20세기의 또 한번의 그렇지만 아주 완만한 비약 둥이 그것들이다. 이렇게 해서 유럽의 시각에 의하면 세 번의 거대한 상승기가 있다. 첫번째는 십자군 전쟁전과 전쟁기간 동안이며, 두번째 것은 30 년 전쟁의 전야에까지 이르며, 세번째 것은 18 세기부터 우리 시대까지 이른다. 이 밀물이 전 세계에까지 확대된 것은 아마도 마지막 상승기 (18 세기, 19 세기, 20 세기의 상승기)와 두번째 (16 세기)의 상승기의 경우 분명하다. 첫 상승기 (10 세기에서 13세기)에 대해서 에른스트- 바게만은 좀 성급하게 추론하고 있다. 죽 그의 견해에 따르자면 장기간의 전쟁이 없으

떤, 안구 상승기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칭기스칸 (1152 도는 1164~1227) 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그 당시에 아시아 전체의 운명이 얼마나 교란되 었는지 를 알 수 있다. 그러한 사실로부터 아시 아 역 시 십자군 전쟁 지기 전 • 후에 거대한 인구 상승을 겪었다고추론할 수 있을까? 신중한 역사학자라면 비록 그가 극동과 서구 사이의 엄청난 유사성에 그것도 아주 합당하게 놀라게 된 경우라고 해도 그 누구도 그렇게 단정적인 결론에 가담하기 위해 우리의 안내인을 따라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징기스칸을 벌도로 한다면, 적도 지대의 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인구의 간장에 대해 우리가 엿볼 수 있는 모든 것이 역으로 바게만의 주장을 무력화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만일 16 세기부터, 확실하게는 18 세기부터, 인구 동태가 전 세계적 규모로 자리잡게 된다떤 그는 간단히 말해서 전 세계 인구가 다소 조급하고 장기적이지만 모든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그러한 파동에 따라 중가한다고 주장할 권리를 가지는 셈이 된다. 더구나 그 접에 있어서 그가 권위있는 주장과, 즉, 막스 베버의 주장과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역사인구학의, 그 의에도 인구학 그 자체의 관례적인 설명들은 모두 다 어느 정도는 관십 밖에 두고 있다. 18 세기에 그다음 19세기에 모든 것은 십각한 질병을 정복한 보전위생법이나 의학의 발달에 의해서 또는 기술의 또는 산업화의 진전에 의해서 주도된 것이라고는 우리에게 더이상 말하지 말라• 우리가 이미 지적했던 대로 이것은 사실들의 순서를 뒤바꾸는 것이다. 왜냐하면, 유럽, 또는 보다 정확히 서구의 들에 맞춰진 이 설명은 중국이나 인도 둥의 언 지역에는 잘 맞지 않는데, 그렇지만 그 지역들은 인구학적으로 선택받은 우리의 반도와 같은 리듬으로 진행된 것처럽 보인다. 여기서 에른스트 바게만은 역사학자들과 사회과학의 모든 책입자들에게 아주 훌풍한 교훈을 제시해 줄 근거를 갖는다. 죽, 세계적인 규모에서만이 본질적인 인간적 진실이 있다는 접이다.

따라서 비록 우리가 당분간 이 전체적 움직임으로부터 그럴 듯한 것들을 발견해내지 못한다고 해도 우리의 관례적인 설명으로부터는 벗어나야만 한다. 로베르토 로페스 Roberto Lop ez 는 나와 마찬가지로 기후에 대하여 생각한다. 얼마전만 해도 가격 전문가들 역시 그 원인을 발견하는 데 실패하고 일조시간의 주기들에 대하여 생각했다. 그러나 에른스트 바게만은-일단 인구학의 독립성이 확보되자―-그 자

연스런 십문에 답변해야 할 것을 거의 염려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는 보편적 현상들〉율 뽑아낸 다음 그것둘을 파악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비록 그가 그것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가능한 한 측정 가능한이라는 말을 덧붙이겠다. 에른스트 바게만이 스쳐 지나가돗 한 것처럼, 만일 과학적 성찰이 〈그. 근거에 있어서나 그 앞으로의 전개에 있어서 아직 우리가 모르고 있는 생물학적 법칙(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을 다루려고 하지 않는다면, 과학적 성찰은 더 나온 것이 없는 상대에서 거기서 더이상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는 거기에서(마찬가지로 우리가 잠시 후에 착수하게 될 〈교체〉에 대해서도) 단순한 작업 가설에, 말하자면 단지 일련의 알려진 사실들만을 고려하게 하고 보다 나은 연구를 위한 통로를 열어놓기 위해 팔요로 하는 이론에 자족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 기준은 효용성이다. 그 연구에서 교체라는 이름하에 다루고자 하는 것은 그 동태들의 목칭이라기보다는 그것들의 결과, 적어도 그것들의 특정 결과들이다.

나는 오히려 기꺼이 〈문턱들〉이라고 부르고 싶은 바게만의 〈교체들〉온분명히 비록 지나치게 단순하간 하지만, 역동적인작업 가설, 혹온 그의 표현대 로 인구동태 적 인 demod y namiq ue 매 력 적 인 가설 이 다. 그것을 간략하게 제시한다는 것은 그것을 왜곡시키고 또한 독자들을 기만적인 어휘의 함정에 빠뜨리논 셈이 된다. 왜냐하면, 여기서 과잉인구 및 과소인구라는 결정적인 단어들은 저자의 엄중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증가 또는 감소하는 수치들의 떨쳐낼 수 없는 이미지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그 단어들을 내가 충분히 논리적으로 생각해 본 바 있는 A 국면, B 국면이라는 중립적인 표현으로 대체하고 싶다• 왜냐하면 에른스트 바게만의 설명은 우리나라의 모든 역사학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프랑스와 씨미앙의 언어와 완벽하게 합치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관십을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집단 및 그것의 끊임없는 변화에 집중시키는 것이 관건이 된다.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수준에서 말하기 위해(편의상), 현실적인 시간과 구체적인 공간 밖에 있는 P 지방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가 우리의 취향에 따라 번화시킬 수있는 그 지 방의 인구가 증가상태 에 있다고 가정한다. 그것의 킬로미터당 밀도__다루어야 할 대상온 특히 바로 그것인데 __ -는, 따라서

계속해서 모든 값을 다 떤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연속체 가운데 및 가지 절정적인수치들을, 전정한황금의 수치늘을, 바게만이 실증한 수치 늘을, 죽 평 방 킬로미 터 당 IO 명 , 30 명 , 45 명 , 80 명 , I30 명 , 190 명 , 260 명 둥을 알게 될 것 이 다. 인구가 이 〈문턱 들〉 중의 하나를 넘어설 때마다 그것은 거대한 규모로 심층적인 물질적 변화를 초래하지만, 단순히 물질적인 닌화만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평방 킬로미터당 IO 명의 문턱에 들어서기 전에는, 우리의 P 지방은 과소 인구의 단계, 죽, A 단계에 있다• IO명에서 30 명 사이는 과잉 인구의 B 단계에 있는 셈이다• 30명을 넘어서면, 과소 인구로의 역행이 나타나며(바로 여기서 우리의 일반적인 관념을 버려야만 한다.) 이런식으로 차례로 교체가 된다. 그것은 〈과소 인구〉 〈과잉 인구〉라는 단어듈에게 일상 통용 언어의 범위를 벗어난 단력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는 접을 이해할 것이다. 분명히 이들 개념둘울 규정지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 첫번째의 선회에 대한 안내를 우리는 헛되이 기다리는 셈이 된다. 그는 경제학자들의 관례적인 모든 규정을 던져버릴 것을 선언하고, 제 1 단계로 아주 참정적인 규정으로 만족함을 천명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과학에서도 참정적인 것이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실례를 제시해 주고 있다.

사실상 이 교체 현상은 경제학적인 용어로 번역될 때에만 비로소 명확하게 이해될 수 있다. 관건이 되는 것은 본질적으로 인구와 경제적 재원과의 관계, 즉, 우리가 다시 되돌아가 보게 될 그 두 영역의 증대 사이의 관계이다. 에른스트 바게만은 그 점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언급한다. 중가되고 있는 사람들이 그에 비례해서 그들의 재원을 늘리지 않았을 때 〈과잉인구〉가 있게 된다. 그 단계에서의 관찰온 필시 다음과 같은 칭표들을 밝혀내게 된다. 죽, 1939 년 이전의 영국에서와같온 실업, 노동력의 불완전한 이용(같은 해인 1939년 동안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농업 생산의 수준을 낮추지 않은 채로 불가리아로부터 750,000 명의 노동자를 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화페 및 금융의 위기, 불경 기 둥둥이 그러한 칭표들이다. 두번째는 〈과소 인구〉의 경우이다. 만일 강력하게 그리고 처음부터 시장의 고질적인 협소합과 경제 순환의 불완전한 발달 등을 강조하지 않는다면, 그 상황은 지 나치 게 아름답게 채색되어 제시될 것이다. 그럽에도 불구하고, 상서로운 칭표들온 풍부하다. 노동력에 대한 수요는 항상 충족되지 않은상태이며, 비

옥하고, 비어 있는, 적어도 쉽게 얻을 수 있는 땅둘이 풍 부하게 널려있다. 인구의 유입이(자발적이전 유도된 것이전 간에) 팔연적이라고들한다. 겅제가 자리을 잡게 되고 자유의 기치 아래 번창하게 된다.

A 에서 B 로의, 혹은 B 에서 A 에로의 변천과정과 그러한 변천과정에 수반되는 상당한 번화들온 느리게 일어나게 될까? 또는 그것들은 충분히 장기적인 지속상태의 균형이라는 중계지를 가로질러야 하는걸까?아니면 그것들은 짧은 파국의 칭표 아래 급격히 번화할까? 그 두 가지 설명은 저자의 생각에서 그것이 가능한 것처럼, 하나를다른 하나에 덧붙여야 하는지 , 혹은 그 둘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식벌할 수도 없는 상태로 우리에게 차례로제시되고있다 .. 그러나 여기서전 그 밖의 다른 곳에서전 그에 따르는 모돈 책임은 그에게 미루어 놓아 보자.

이 〈참정적인〉 문제를 부분적으로만 밝혀내는 규정을 넘어서, 우리는 구체적인 〈근거들〉로 이루어진 급격한 계열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된다. 이번에는 모든 것을 완결지어 주고 실명이타는 왕관을 씌워 줄 이론적 기획은 복소리도 쟁과리 소리도 없이 내동맹이쳐질까? 수치들, 오로지 수치들에 대해서만 말한다. 마치 그것들 자체가 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 여하튼, 우리는 역사학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ilJ:.례적인 관접들과 돌발사태들을 발견한 나머지 기뻐하게 만들어 줄 수· 많은 사례들이 아난 확실한 실체와 접하게끔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논증은 거기에서 힘을 잃게 되고 여러 강들로, 그 다음에는 실개전들로 나뉘게 된다.

그런데, 첫 사례의 강이 거의 전세계를 다루고 있지만, 그것은 아 예의적인 범주 중의 유일한 것이다. 오늘날 인구 밀도에 따라 각 나라들을가능한 한 많은 수로 나눈다는 점을-즉, 그것은 〈문턱들〉(10 명, 30 명, 45 명 등) 이상 또는 이하로 그것들을 분류하는 것에 해당되는 것인데__또한 그것들 각자에 대해, 콜린 클라크의 수치들에 근거하여, 활동 인구 頭當그것들의 국민소득을 계산해내며, 그리고나서, 그수치둘을표본들로서 정당하다고 인정되는 유아사망의 수치들과마주 대하도록 한다는 접을 생각해 보라. 그 결과로 우리 심으로 재현해낸 그래프와 도표들을 얻게 된다.6) 인구 밀도의 증가에 따라 표기된 인구 일인당 의부와의 교역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의 도.

6) 이 그래프는 Annales E. S. C., 1960 n° 3, p. 501에서 보라.

표가 제공된다. 이 공간상의――시간상에서가 아니라_변화는 때로는 이런 의미로, 때로는 저런 의미로 선택된 여러 문턱들을 넘어, 복지 상태와의 공변성을 드러낸다. 만일 그 계산이 맞는다면,―一그 접에 대해 나로서는 단언할 수 없는 바이지만-그 황금의 수치들은 적어도 현실에 있어서는 그 기반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어서 이와 유사한 설중들이 항상 단순화된 통계적 도구와 더불어 우리에게 재시되고 있다. 즉, 미국에서의 다양한 주들(평방킬로미터당 밀노의 증대에 다라 구분된)에 대하여, 같은 방식으로 구역들이 구분되었 던 1925 년과 1933 년 사이 의 작센 동부지 방에 대 하여 , 1869 년과 1931:i년 사이 의 미 국의 국민 소득의 변화에 대 하여 , 1830 년과 1913 년 사이에서부터 프러시아가 평방 킬로미터당 80 명이라는 두터운 문턱을 넘어선 시기인 1 88 2 년에 이르는 시기에 프러시아에서의 혼인울에 관하여, 여러가지 실증듈이 제시되고 있다. 이 재미있는 그래프는 두 시기 동안의 상반성을 보여주고 있다. 즉, 1882년 이전에는 절박한 겅제 사정의 변동과 관련되어 혼인율의 국십한 동요가 나타나는데 그 이후에는 혼인율은 아주 규칙적인 곡선으로 나타난다. 바게만에게 있어서 동요상태에서 참참한 상태로의 변천은 과잉 인구 상태의 지방에서 〈군형 상태의 지방〉으로, 결국 과소 인구상태로의, 즉 편안한 상태로의 변천이다.

비록 전혀 홍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얄팍하고 거의 신빙성이 없는 사례들에 대한 끝없는 나열 가운데 어디에서 멈추어야 할까? 영국령 서인도 제도에서의 흑인 인구의 되조라는 사례에서 멈추]야 할까? 보다 시사적인 것은 1846 년의 위기에 이어 나타난 집단적 이출 이후 아일랜드는 지금은 인구의 간장상태가 참을 만한 정도로 복귀되었다는 접이다. 19 세기초인 1821년에 아일랜드는 영국 인구의 철반에 달했다. 영국은 이 지나치게 강대한 이웃을 지배함으로써만 그. oJ:정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 1921 년에 아일렌드 인구는 영국 인구의 1/10 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는 더이상 아일렌드에 있어서 정치적 독립울 주장하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은 없게 되었다. 영국인 인구학자 해풀드 라이트 Harold Wright가 이런 식으로 추론하고 있으며 우리의 저자는 그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을 다 분석해 볼 수는 없으니까, 아주 시사적인 마지막 사례에서 멈추어 보자. 1912년경에 수도를 빅토리아 항구

로 상고 있논 에스피리토 산토 주(리오데자네이로의 복부)에논 17,500 명의 독일인들로 이루어진 한 부락이 있었다. 그 부락은 5,oookm2 의 영토를 접유하고 있었다 (1912 년에는 17,500 명의 주민들에 대해 민도가 3.5, 1949 년에는 35,000 에서 40,000 명의 주민들에 대해 밀도가 7 명에서 8 명). 그-*온 분명히 후진적 아고 〈과소 인구〉 상태의 지 방이다. I949 년에 유일한 교몽수단으로 옛날 식민지 시대의 브라질에서와 같이 노새나 또는 기껏해야 나무로 된 침마차가 있었을 따름이다. 인간에게 활용되 는 유일한 기술은 커피의 껍질을 벗기는 수경성 시멘트였다. 커피는 그것의 수출로 건조육 le charque, 밀가루, 담배 , 알코올, 철물 •••••. 동의 외부로부터의 몇 가지 필수적인 구입품들울 보장해 주는 귀중한 농작물이었다. 그렇지만 본질적으로는 식료품은 농부들의 소유물이다. 또한 자급자족 경제의 다몬 여러 가지 칭표들이 우리에게 제시되고 있다. 이웃둘의 도움으로 지어진 작은 집, 가구들(누구나가 자신이 손수 만든 것들을 가지고 있다)이 그· 예이다. 물론 토양온 비옥하며 , 재배작물로 인해 지력이 쇠전할 때마다, 또수확량이 빈약해질때마다, 새로운 삼림지구를 공격해 댄다. 그로 인해 그 주민들 및 재배작물들의 이동성이 나타나게 된다. 1885 년에 300 세대믈 보유했던 싼타 레오풀더나는 그 후 30 년 동안, 그 철반 이상을 상실당하였다. 먹고 살아야만 하지만 학교들, 문명들은―一나는 삶의 즐거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떠돌이 생활에 찰 동반되지 않는다-벤하지 않은가 ! 그런데도 그것들은 번창한다. 그것에 부여된 그 거대한 공간에서 인구는 늘어난다. 사망울은 7%, 출생율은 48.5%, 그 사실을 믿기 전에, 두어 번 읽어야만 할 믿을 수 없는 수치들이다. 원시경제는 바로 그런 식으로 촌재하며, 또한 그것은 번창해 나가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18 세기부터 대목적으로 확정된 최초의 브라질 경제를 만들어내었던, 노새를 탄 대상들의 소유주들인 〈트로페이로스 tro p e iros 〉의 손에 좌우되는 상거래가 있는, 수공업충이 없는 고대의 생활에 대한 훌륭한 실증인 셈이다. 그러한 것으로부터 어떤 결론을 꿀어낼 수 있을까? 인구가 경제를 주도한다는 것, 즉 인구가 모든 것을 주도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요약문이, 이 표본집이 바게만의 사상의 주 관십을 찰 나타내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엄격하고 쓸데없논 증명을 하기 위해 그

주장들 및 연결과계 들 을 다시 득해 보라는 것은 여기서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저자가 이제 더 이상 그 자리에 임석하여 스스로를 번호할 수가 없다 __ -그는 용감하게 그것을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더욱이, 독자는 스스로 컬을 가면서 부과되어야 할 비판과 예의 사항들을 정리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특히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이렌 유의 사상온 세부 사항에 대한 트집이 아니라 전체에 대한 평가를 요구한다.

모든 경제학자들과, 지적인 작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에몬스트 바게만은 의십할 나위 없이, 어떻게 해서든지 그가 그것에 대해 연구해야만 하는 것을, 즉 현재 시간을 지나치게 살펴보았다. 그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수치들은 사실상 〈실제〉의 문턱에 풋말을 세우겠지만, 수치들의 연속이란 과거에 대해서는 사실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 사실상 〈자연 또는 기술 조건과는 별도로, 또한 역사의 구체적인 국면과는 별도로〉, 밀도를 나타내는 한꺼번에 제시된 일련의 수치들의, 또한 가장 단순한 접성술에서처럼 우리의 모든 운명이 새겨져 있고 판독이 가능한, 밀도를 나타내는 그런 일련의 수치들의 가치룬, 누가 믿는단 말인가? 1600년에 프랑스는 약 1 천6 백만명의 인구와, 평방 킬로미터당 34명의 밀도를 지녔었다. 불변의 척도로 재어보자면 그 당시는 과소 인구 상태였다. 그러나 당시의 생활에 대해 알려져 있는 모든 칭표들, 죽 에스파니아 쪽으로의 격십한 이출이라는 단 한 가지 칭표만으로도 그 당시의 프랑스는 다른 범주에 속했다는 접을 입증해 주는 셈이 된다. I.:

수는 번갈아 결정요인이 되 기도 하고 피결정요인이 되 기도 한다. 즉, 본질적인 것이 되기도 하고 또는 상대적으로 부차적인 것이 되기도 한다. 나는 〈전체적인 가치 〉로 아용될 수 있는 〈한 가지〉 설명을 또는 수 많은 인간들의 운명에의 궁극적인 요인을 믿지 않는 바이다.

이렇게 지나치 게 쉬운 비판에 입각해서 에른스트 바게만을 떠나지 는 말자. 독정 의 신화들을 살해 하고 알프레 드 쏘비 Alfred Sauv y*의 민첩한펜 아래, t:-J.:번에 우리가 재발견하게 될수많은문제들을 제기한그의 공로는 결코 저지 않다. 또한 우리가 인구의 증가에 비중을 둔 그의 교체 이론만을 간직한다고 해도,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완전히 허비한 셉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불변의 문턱들은 없겠지만, 분명히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다양한 인구의 수준에서 교체들이 일어난다. 이 교체는 역사적인 시간을 심층적으로 자른다. 그 교체들은 〈시대구분periodi sations〉이 라는 오래 된, 언제 나 유용한 작업 에 새 로운 가치 를, 보완적인 의미를 부여해 준다.

비록 최근 수년동안, 그 구축의 리듬에 박차를가하고는 있지만, 아上도 구축과정에 있는 한 분과를 보다 과학적으로 만들기 위해, 그것에 경계선을굿고보다전문화하려고한것 또한작은공로는 아니다. 그렇지만 에른스트 바게만이 한 것처럼 그것을 국면의 문제에만 가두어 두는 것이 현명한 일일까? 오늘날 의기양양하게 쓰이는 〈구조〉라는 단어가 그 상대적인 불특정성에도 불구하고, 아주 잘 지적해내고 있는 것을 포괄할 수 있는 설명이나 측정들의 범위 밖에 그것을 내던진다는 것이 현명할까? 인간생활의 토대에까지 나아가려는 데 그 역할과 야십을 설정하고 있는 과학에 있어서, 그것은 분명히 손실이 될 것이다. 바게만과 같이 십지어 역사학의" 힘을 빌리고자 할 경우에도 훨싼 더 신중하게 해야 할 것이며, 득히 서두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 Alfred Sauvy: 프랑스의 인구학자이자 경제학자 (1898~). 국립 인구학연구소 소장 (1945~1962), College de France 교수.몽계적 관찰에 근거한 경제연구로 현대 프랑스 경계학자들 사이에 독창적 위치문 차지합,

7) 역사학에 대한 이런 의촌은 그에게 있어 타당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해 보았자 무슨 이득이 있을 것인가 1 우리의 영역에 관해 그논 지나치게 피상져이어서 그것을 따라가거나 그것을 비판하는 것은 아무런 도웅도 되지 않는다·

2 알프레드 쏘비 Alfred Sauvy의 모델

나는 알프레드 쏘비의 고전적이고도 핵심적인, 二部f'F, 어쩌면 三部作이 되는 책에 이로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의 『인구의 일반 이론 제 I권 Theori e g enerat e de la population I : 경 제 와 인구 Econom i e e t popu·!a ti on 』(1952) 와 『제 2 권 : 사회 생 물학 Bi ologi e soci ale 』(1954)8) 두 권에다, 이미 그 주요 주제들을 발표했었던 그 이전의 책인 『부와 인구 Ri chesse e t Pop ula ti on 』(1943) 를 덧붙이는 것이 공정할 것이기 대문이다산 내가 이미 낡은 책들에 대해 너무 뒤늦게 언급하는 접에 대해 양해를 구해야할 것이지안 그것의 가치를 강조하기에 시기가 너무 지나버란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주는 가르침은 고갈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구학 전체에 관십을 두고 자신의 영역 위를 날아다니는 아 거대한 처작은 수많은 방식으로 파악될 수 있을 것이다. 알프레드 쏘비는 자신의 것을 경제적인 것에, 그리고 사회적인 것에 의존하고 있다. 나는 경제학과 사회학이라고까지는 말하지 않는다• 사실상 제 1 권~ 가능한 한 상세하게 〈모델 〉을 기초하기 위한 수리적이고 추상적인 구상에 대한 시도이다. 제 2 권에서는 이런 식으로 구축된 모델과 그리고 나서 경험적 실재들에 의해 서서히 복잡해지는 모델과, 아니 〈모델들〉과 대면하게 된다. 따라서 우선 문제 제기, 그리고 나서 경험적 검증이라는 두 가지 움직임 `이 있다. 그것이 그런 식으로 된다는 것은 옳 은 일이다.

처음에는, 따라서 우리논 실제의 복잡한 것들과 그것들의 한데 뒤 얽힌 우연적 사실들의 범위 밖에 있는 셈이다. 그 영역은 비어 있다. 계산과 추론은 구체적인 관찰의 신중함과 소십함의 범위 밖에서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실제 인구, 실재 지역, 시간, 재원, 실제 소득 둥은 문제시되지 않는다. 영소들과 늑대들…… 이 사는 섬을 상상해 보라고 알프레드 쏘비는 농담삼아 말한다. 또는 영국에 200 명의 주민둘이 있다고 상상해 보라고 다시금 제안한다. 바게만에 있어서처럽,

8) Presses Universitaires, t ome I., 37o p., t ome Il , 397 p., 2• ed ition, 1959.

9) 나는 1956 년에 춘간된 이 논란거리가 륄 만 하지만 활기찬 Na t ure Soc i ale 또는 몇 달전에 막 출판된 예리하고 지성저인 이 Mon t ee des j eunes 등도 더 멋붑여 야 한다고는 갑히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처음에 생물학적으로 또는 역사적으로, 또는 그렇고 그런 규칙에 따라서가 아니라, 오로지 우리의 취향에 따라 0부터 무한대까지 또는, 팔요하다면 다론 식으로 증가하기도 하고 또는 감소하기도 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계산에 의한 이상향에 이르게 된다.

해결되어야 할 문제는 단순하다. 아니 단순하게 제기된다. 즉 그 요소들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주어전 인구를 그 인구가 처분하는다양한 자원들과 끊임없이 관련되고 대립시키는관계를 밝혀내는 것이 문제이다. 한족 접시에는 인구를 담고 다른쪽 접시에는 그 역사의, 또는 여러분아 원한다면, 그것의 〈증대하는〉 매순간마다 그것들이 먹고 사는 다양한 자원들을 담은 아주 특별한 저울을 상상해보타. 재원들이 사람들보다 더 빨리, 혹은 더 느리게 늘어날 것이다. 계속적인 역행을 지켜보게 될 단계들이 이어쳐갈 것이지만, 그것이 좋은 의미로인지 아니면, 냐쁜 의미로인지 감히 말하지 못한다. 왜냐떤 그렇게 말하는 것은 과학적인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저울의 이미지 역시 과학적이 아니다. 그것을 젖혀 두고 알프레드 쏘비가 우리에게 제안한 곡선으로, 그가 그 곡선에서 묻어낸, 기꺼이 복잡하게 만들고 음영을 지운, 그의 관찰이 궁극적으로 의존하게 될 확고한 토대가 되어줄 모델들과 정리들로 넘어가 보라.

그 곡선들은 세 개아며, 거기에서 인구는 매번 횡좌표로 그려지며 증가하는 것으로 가정된다. 첫번째 곡선은 이 연속적인 인구들 각각의 〈총생산고〉 곡선일 것이며, 다론 두 개의 곡선은 〈평군 생산고와 한계 생산고〉 곡선일 것이다.

이 마지막 곡선이 우리의 의도에 가장 잘 부합된다. 인구라는 모든 X 값에 대해 그것은 한계 생산고 Y 값, 죽, 작업 과정에 개입하는 마지막 사람의 한계 생산고를 그에 상응시킨다. X=I,000 에 대해 Y는 우리의 중대해 가는 인구에 뒤어들 I,000 번째 사람의 생산고이다. x축은 I로 시작하는 것으로 상정된다. Y축에 기입되는 첫번째 사람의 생산고는 최처 생활 수준으로 상정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 첫번째 사람이 두번째 사람의 도착을 기다릴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중요한 도표를 약간 고쳐서 다시 만들어냈다.10) 거기에서 우선 한계생산고가 높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죽, I,000 번째 사람의 한계생산고는 바로 그 앞 사람의 그것보다 높고, 계속해서 제 1

10) Annales, E. S. C., 1960, n 。3, p,505 참조.

번까지 거슬러올라가 볼 때, 그런 식으로 나타난다. 사실상, 매번 새로 등장하는 사람은 그들이 애쓰는 가운데 앞선 사람들의 장비오)그들이 해 놓은 작업으로부터 혜덱울 입는다. 이런 식으로 한계 생산고는 그 장비가 자신의 최적의 인원을 확보하게 될 때까지 오랫 동안 증대되어 간다. 그 지접에서 생산고는 줄어들 것이다. 즉, 새로운 일꾼은 매번 어렵게 자리를 잡을 것이며, 또는 적어도 활동 인구의 서열에서 그 앞선 사람들보다 이득이 적은 방식으로 자리를 잡을 것이다. 이 역전이 m 에서, 죽 임의로 x=2,ooo으로 고정된 인구에서 일어난다고 가정해 보라. 하강하는 곡선이 최적 생활 수준과 마주치는, m p 1 의 지접에 임의로 x=6,ooo 의 인구가 해당된다고 가정해보라. 6,000 이라는 수치 이상에서는 한계생산고는 그때부터 최저생활수준까지 낮아지게 될 것이다. 최저생활수준부터는 최종적인 가담자의 유입은 더이상 공동체에 이득이 되지 않는다. 그는 부분적으로 꽁동체의 부담으로 살아갈 것이다.

이 〈한계 생 산고〉 곡선은 우리 에 게 또한 총생 산고의 증가를 가져다 주며-그것은 중요한 부분이다• 사실상 우리가 x=2,ooo 에 대한이 〈생산고〉를 계산하고자 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것은 또한 우리에게 x=2,ooo 에 해당하는 m 의 세로 좌표인 그 곡선과 두 개의 좌표축 사이 에 포함된 표면적 으로 제 시 된다. 우리 의 I, 000 명 의 일꾼들은 .z,1-각 그들이 작업에 전입할 당시의 개개인의 생산고를 이 표면 안에 다양한길이의 직선의 형태로 기입했다. 이 직선들의 총합은 검토된 표면이다(사실상, 한계생산고 곡선의 소위 〈적분된〉 함수이다).

이 런 조건에서 , 인구 x=6, ooo 에 있어서 총생산고는 그래프에서 빗금찬 표면, 죽 아래는 최저생활에 해당하는 직사각형 부분과, 위에는 알프레드 쏘비가 〈혹〉이라고 했던 부분, 또는 잉여부분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 표면으로 제시된다. 적합한 부분으로 된 우리의 인구가 이 사각형 부분만 소비할 것이고 나머지는 주인, 영주 또는 지배자의 처분에 따르게 된다고 가정해 보자.

나는 특히 독자가 이 설명 도식이 전제하고 있는 초보적인 수학~로 인해 혼란을 일으킨다면, 이 용어가 독자에게 명백한 명확성을 떤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두 번만이라도 읽는 독자의 경우에는 그 누구도 이 단순한 메시지를 해독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의구십을 표명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최적의 능력 !'optimum

de pu i ssance> 죽? 그 주 인에 게 가장 많은 〈잉 여 〉를 넘 겨 주는 인구는 인구 x =6,ooo 에 해당한다는 접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능력〉이라는 단어는 정확하지 않다. 왜냐하면, 〈능력 〉은 잉여를 만들기를 원하는지 혹은 잉여를 만들게 할 수 있는지의 용법에 달 려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여러가지 결정과 가능성들에 의해, 지배 계급의 사치, 왕의 낭비, 유리한 두자 또는 전쟁 준비·… •• 둥이 될 수도 있다. 이 잉 여 가치 , 이 〈플러 스 값 p lus values 〉에 대 해 알프레드 쏘비 보다 길게, 훨씬더 길게 논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의 물질적 중요성분만 아니라 사회 적 중요성 은 엄 청 나다. 마르셀 모스 Marcel Mausss 는 그의 조급한 방식으로 어느 정도 수수께끼 같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사회가 비약을 하게 되는 것은 소위 순수하게 생산에서가 아니다뺄… •• 사치는 가장 큰 촉진제이다.〉ll) 그렇다. 종종 분명히 사치의 이론 이 우리의 동불을 밝혀주게 되는한, 전보의 요인이 되었던 것은 혼히 〈사치〉이다. 좀바르트의 이론은 우리를 절반만 충족시킨다 •12)

그렇지만 알프레드 쏘비의 곡선들로, 그의 예비적인 논의로 되돌아가 보자. 이 첫 단계의 시도에서 그가 추구하는 바는 가능한 한 문제가 되는 용어들을 명백하고 받아들일 만한 공식으로 만들어 주는 명확한 수학적인 언어로 고정시키려는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이 본질적인 관계를, 죽 그 두 가지의 변수들을 끊임없이 고려해야만 하는 인구-물질 생활의 관계를 고정시키기 위하여 더 나은 방법을 찾아볼 수 없는 것 같다. 그 자체로서는 최적의 인구는 없지만 다양한 최적 상태가 있으며, 그것들 각각은 그 기준들에 웅답해 준다(특히 물질적 기준). 이렇게 해서 손에 넣은 곡선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최적의 능력에 대한, 완전하지는 않지만, 수긍할 만한 정의를확보하게 되었다. 다론 곡선을 가지고, 〈경제의 최적상태〉 혹은 그것을 고정해주는 기준들이 분명히 제시되기만 한다면 그밖의 다론 모든 것의 최적 상태를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저런 최적상태에 해당하는 이 다양한 공식들이 그 영역을 조직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영역을 치우는 방법이라는 접을 거론해 보자. 이 고정된 지접에 모든 것을 의촌한다는 것은 인구의 움직임을 부동상태로 만드는 셈이 될 것이다. 〈최적 상태라는 개념은 여러가지 실제 웅용 상황에 이용되지 않는다. 연구되

11) Manuel d' et hnograPhi e, Pari s, 1947.

12) Luxus und Ka pitalismus, Mun i ch, 1922.

어야만 할 사항은 움직이고 있는 인구이다〉라고 알프레드 쏘비 자신 이 그의 제 2 권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은 타당한 논평이다.

따라서 이 첫 번째 도식은 단지 기초적 인 모델을, 문제들을 단순화하 면서, 그것들을 다듬는 방법일 분이타는 접을다시금 언급하는 바이다. 예를 들면, 관념 상의 인구는0이나 1로시작할수없다. 처음부터 작은 집단, 스스로 생존해 갈 수 있는 가장 작은 집단, 즉 〈고립 집단〉13)이 어야만 한다. 또한 평군 생산고가 생존 수준과 합류될 수 있다는 것 이나, 모든 인구가 활동적이타는 것, 생산력의 곡선이 이런 초보적인 형태라는 것 둥도 다 사실이 아니다. 모든 생산력은 기술 수준에 의 촌하며, 이 기술 수준은 서서히 변화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변화하며 18세기 말엽에는, 그것의 변화는 높은 곳에서 인간의 모든 생활을 지 배하였다. 최저생활이 우리가 그렸던 이 단순한 평행선이라는 것 도 한 사실이 아니다. 소비, 입금, 실질임금, 식품의 구성요소들은 변 화하며,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우리의 곡선은 그려지자마자 지나 치게 경직된 것이 되어 버린다. 알프레드 쏘비는 모든 것을 단순화시 키고 난 후에, 모든 것을 복잡하게 하는, 즉, 지나치게 명확한 도식으 로부터 극단적으로 음영이 진 구체적인 상황으로 나아가는 줄거움을 억제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그의 제 1권은 비록 원칙적으로는 이 론적이지만, 사건들이나 일화들, 사례들로 가득차 있다. 실제 사례들 로부터 그것들을 해석해 주는 설명으로의 이 끊임없는 왕복 속에 는 구체적인 수많은 사례둘, 죽 4세기의 혹사병, 특정 인구의 연령 범주들, 활동의 세 영역(I차, 2차, 3차), 실업, 가격, 노.동력 비용…… 둥이 제시된다. 이 모든 것에는 활기와, 활동성, 지성이 가득하다. 이 책의 끝 무렵에서 독자는 망망한 바다에 도달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는 여전히 항구의 인공적으로 움직이는 물 속에 있을 따름이다.

『인구의 일반 이론』의 제 2 권은 『사회 생물학』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훌륭한 프로그램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나를 약간 놀라게 했다고. 말할 수 있다. 경험과 관찰로의 이 거대한 회귀, 일반적인문제들에 대

13) 간단한 정의를 위해서는, Louis Chevalier, DemograPhie generale, Paris, Dalloz, 1951, p .139를 보라·

* l'isolat: 다른 곳에 살고 있는 갈은 종의 군집 과의 교환이 전혀없이 고립된 생체의 서석처를 재공해주며 넘을 수 없는 장벽으로 경계가 설정된 작온 생태체계. 예를 들면 섬, 호수, 거대한 산, 오아시스 등이 있다.

해서보다는 그자신들에 대해 훨씬더 이야기해 주는 이 수많은 사례들,이 책의 생생한무질서 등, 이모든것들은테크닉을배우고자하는독자에게 있어서는, 불편하지 않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독자는약간 완곡하게 무시당하는 걸까? 처음에, 또는 제 1 권에서 알프레드쏘비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이 일이 발생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우리는 및 가지 〈참정적인 결론들〉을 얻은 채 그것을 떠났다. 두번째 또는 제 2 권에서는 모든 것은 경험, 실제의 것, 역사적인 것과 대면된다. 그리고 그 때는, 〈이론이 바라논 것울 역사(그는생활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는 거부한다〉 〈예전의 관습들이 인간에게서 볘앗았던 주도권이 인간에게 되돌아가게 되면, 이 참정직인걷론들 중에서 특정의 것들만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 〈이귀찮은 촌재〉, 〈이 영원히 망각된 존재〉라는 명목의 역사와 경험이라논 비호 아래 수행되는이 구체적이고 수많은 파괴는 뤼씨엠 페브르를기쁘게 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역사는 인간이다〉라고 그는 썼으며, 그것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은 돌발사태의 연속을 의미한다.

우리 동료에 의해 〈보존되는…… 참정적 결론들〉은 어떤 것들인가?어디에서도 그것의 정확한 목록을 발견하지 못했음을 나는 고백하는바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대수랴 ! 알프레드 쏘비가 이 양면판의다론 쪽면에서는 끈덕지게 상대주의적이고 신중하기를 원하고 있다.그것이 그의 권리라는 점을 단지 언급해보자. 가끔은 제기된 문제둘이 암시적이며 응답이 안된 상태로 남아 있다. 〈인구의 중대는 부의원인인가 혹은 그 역인가?〉에 대해 우리로서는 예 또는 아니오, 또는 대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침을 던져주면서 그는 묻고 있다• 나는 종종 간구되기는 하지만 결코 두드러지지는 않는, 특정의 집단심리란 그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더이상 명확하게 알 수가 없다. 언제나 정보와 재빠론 직관이 가득하고, 정동한 이 책의 가장 급경사전 흐름을 따라가면서 이 책을 덮고 나서 가장 강력하게 부각되는 것온 인구압과 인구에 대한 고려에 입각한 프랑스의 운명, 십지어 프랑스라는 실체에 대해 장기간 검토해낸 증거들, 죽 신중하고 신실하고정직하며 거의 언재나 신빙성 있는 증거들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는바이다. 우리들 중의 누가 냉담한 채로 있을 수 있을까? 그 자체로서제시된다고 여기게 되는 수많은 사례들은(16세기와 18세기 사이의 근대에스파냐의 사례, 과잉 인구 상대의 이탈리아의 사례, 폴란드의 사례) 이런

식으로 분명, 일반적인 설명의 실마리 안에 자리잡게 된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또는 은밀하게 그 사례들은 대비에 의해 프랑스의 사례를, 즉, 전형적인 〈멜더스류〉의 사례를 밝혀내게 된다. 이런 석으로 체계화된 적은 결코 없지만, 개략적으로 그려지는 사회학은 당연히 근본적으로 출생율의 처하로 인한 인구의 고령화에 대한 사회학이다. 따라서 그것은 자발적인 산아 제한이 18 세기부터 상류층에 퍼졌고 뒤이어 국가의 전 인구충에 퍼지게 되었던, 최초의 인구 사례를 제시한 바 있는 프랑스를 끊임없이 참조한다. 만일 인구학자가 우리나라의 인구상의 진보를 실제 있었던 것을 젖혀둔 채, 다론 상관계수들십지어 우리 이 웃들의 그것들_―-울 상상하면서 다시 계 산한다면 실제 우리의 운명이었던 것과는 너무도 맞지않은 나머지 찰못된 계산의 희생물이며, 편협하고 얄팍한 생각의 희생물인 정태적인 지역의 경우를 신봉하는 착오의 빛을 밝히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셈이다. 그러한 설명은 특별한 변호를 요청한다. 처자는 〈직접 개입하여〉십판을 내린다. 나는 이 개입이, 내가 개인적으로 알프레드 쏘비의 예리한 주장들에 반대하여, 죽 인구의 고령화에 대하여 그가 개진하고자 하는 것에 반대하여, 더욱이 불행히도 우리 사회와 같이 아주 보수적인 사회의 들에서 젊은이들과 그들의 혁신적인 충동을 선호하는 그의 입장에 반대하여 언급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과 완전히 일치함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자신의 자연스러운 취향에 몰두한 나머지 알프레드 쏘비는 부분적으로 그의 『일반 이론』의 제 2 권의 범위를 제한했던 것은 아닐까? 그 책은 그 논의의 중십부에 프랑스와 서구를 배치하고 저 발전국들의 경우, 특히 라틴아메리카나 국동의 경우를 그 격심한 인구 중가와 인종간의 혼합으로성급하게 다뤄버리는둥, 충분히 언급하지 않고 있으며, 세계 인구 전체라는 중대하고 막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14) 결국 그는 서구의 인구의 고령화와 프랑스의 경우와 같은 서서히 파괴되는 인구의 균형을, 지나치게 중십부의 경우에 의거하여 파악한 것이 아닐까? 더욱이 고령화현상은 세계적 인 수준에서 (왜냐하면, 그것은 바게만이 소중히 여긴 〈인구동태적〉 파동과 같이 일반화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또는· 내가 되돌아가게 될 역사적인 차원에서 충분히 측정된 것일까?

14) 다시 말해서, 제 11 장은 좀 짧은 것으로 여겨진다.

결국, 내가 의심을 품는 것은 인구에 관한 일반이론이 한편으로 겅제적 차원에서의 계산, 다른 힌편으로 경험적 차원에서의 관찰이라는 두 발로충분히 똑바로 버탈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하나의 모델의 구축은 한두 가지 영역만이 아닌 사회의 모는 방향으로 관철되어야만한다. 이렇게 해서, 고전 경제학이 아닌 경제학, 지리학, 인유학, 사회학, 역 사학, 앙리 로지에 Henri Laugier 의 강요하는 듯한 의 미 로서 의 인문 생물학등이 존재하계 되고, 십지어는 미시 인구학도 존재해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알프레드 쏘비의 사상온 내 생각에 이렇게 다양한 방면에 대해서 적극적 이 아니다. 〈외쿠메네 l'Oekoumene〉라는 단어나 인구밀도라는 용어 등이 언급되 었다거 나15) 일종의 도시 지 리 학이 제 기 되 었다고16) 나는 생 각하지 않는다. 인구에 대 한 일반이 론이 공간과 거 의 무관하게, 죽 어떤 경우에도 단한장의 지도도 없이, 적어도비달드라 블라슈 Vidal de La Blache 의 『인문 지리학의 제 원칙들 Princies de gfographie humaine』에 대 한 참조나 혹은, 오래 된 저 작을 인용하자면, 후고 하씽 거 Hugo Hassinger 의 저 작과 같은 것 에 대 한 참조도, 또는 아주 최근의 간행물로 돌아가 쿠르트 비트하우어 Kurt Witthaur 의 저작에 대 한, 또는 마담 쟈끄란느 보죄 가르니 에 Mme Jacqueline Beaujeu·Garnier 의 저작에 대한 참조도 없이 구성될 수 있을까? 마지막 두 권의 책들은 알프레드 쏘비가 아직 다룰 수 없었다는 접을 인정하겠지만, 그 책들의 촌재만으로도 내 비판은 지탱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나는 우리 동료에 의해 인류학중의 어떠한저작도 이용되지 않았다는 접을, 즉, 〈문명과 문화〉 등의 중요한 용어들이 그에게 낯선다는접 17) 등을 유감으로 여기는 바이다. 또한 그의 저작이 죠르쥬 귀르비치의 논총-『현대 사회 학의 문헌 Bihlioteque de sociologie contemporaine』에 끼어 있간 하지만, 그의 처작에는 사실상 사회학적인 접이 없다는__접을 애석하게 생각하는 바이다.

이 다양한 연구들 가운데 결국 역사는 필시 보찰것없는 역할을 맡고 있을 분이다. 알프레드 쏘비의 사상사에 대한, 특히 멜더스, 깡디옹 Cantillon 또는 께뜰레 Quetelet, 케네 Quesnay 둥의 인물들에 대 한 두드러진 관심이 그에게 알리바이로 쓰일 수는 없다. 내가 관심을 두

15) 그것은 제 14장이 나를 실망시켰음을 의미한다.

16) 제2권 p.236 의 단 몇 줄.

17) 불행하게도 그것들에 관한 색인이 없다.

는 것은 멜더스가 아니다. 그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언급되었다. 내 생각에 이 책에서 너무 적게 다루고 있는 마르크스도 내 관십을 끄는 바가 아니다.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그 시대의, 죽 멜더스 시대의, 혹은 마르크스 시대의 세계이다.

내 생각에는 알프레드 쏘비가 너무 자주 쉬운 역사에, 정치성이 부여된 사건사에 현혹되도록 방기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그것은 애석한 일이다 . 그의 민첩한 생각에 따라 그의 논의, 그의 사례들 그의 돌발 사태들과 우리의 찬란 둥이 자리잡고 있는 현재 시간은 세계적 생활의 한 순간에 불과하다. 그 순간을 포괄하고 있는 일반적인 운동의 속력과 의미를 주도하는 시간 지속에 그것을 되던져보지 않고서는 순간을 충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 이러한 역사의 시간 지속은 알프레드 쏘바에게는 너무 생소한 상태이다. 그가 때때로 역사를 더듬는다면, 그것은 결국 농담조로 삼기 위한 역사인 것이다. 〈클레오파트라의 코의 길이에 따라 역사를 재구성한다는 것은 쉽고도 엄청나게 어려운 작업이다〉라고 그는 쓰고 있다 . 분명 그렇다. 그렇지만 무엇 때문에 그렇게 애써야만 할까? 더구나 16 세기 전문가들의 늪에 던전 이 조약돌을 생각해 보라. 〈프랑스의 출산율 저하는 간단히 말해서 일종의 ‘억제된 개혁'의 결과이다……〉 심지어 어느 정도 지겨움을 감수하고, 새로운 〈야생의 과학〉이 아니라 이미 오래되고 잘 자리가 잡힌 연구 분야인 역사 인구학의 두품한 기록을, 이린자질을갖춘 인구학자라면 참조해 보았어야만 했을 것이라고 나는 주장할 것이다. 다니 엘레 벨트라미 Daniele Beltrami, 알프레 도 로젠불라트 Alfredo Rosenblatt, 마리 안네 리이거 Marianne Rieger, 또는 반 벤 스프렝켈 Van den Sprenkel…… 등의 최근의 연구들은 말할 나위도 없고, 울리우스벨로흐 Julius Beloch, 어셔 A. P. Usher, 알렉 상드르와 유진 쿨리슈어 형제 Alexandre et Eugene Kulisher, 외젠느 까베냑 Eugene Cavaignac 등의 역사적인 연구들에 대한 그의 견해를 나는 알고자 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여기서 역사에 대해서 너무, 또는 충분치 않게 언급하고 있다. 왜냐하면 만일 인용된 제목들이 구체적인 무엇인가를 전혀 제기하지 않는다면, 참고문헌의 열거에 의한 이런 비판은 너무 손쉽고 전부한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 인구학을그나름의 불에 합치시키려고 하면서 알프레드 쏘비 자신의 편에서, 그렇지만, 역사학자의 주장과 더불어, 역사 인구학의 명분을 옹호하는 편이 더 나을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 저자의 생각과 행 동의 중 심 부에 있는(이유가 없지도 않게), 이 장기 지속적인 프랑스의 고령화 현상을 살 켜 보자.

이 움직임을 작동시키기 위해 16 세기부터 로마에서의 및및 문란한 행위나 음험한 타락, 또한 계속해서 18 세기에 귀족층과 부르조아지들의 피임법이 접차로 전체사회로까지 확산되었음을 지 적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그는 정말로 믿는 걸까? 〈또한 그것은(그의 최근의 강 연둘 중의 하나에서 채택한 한 구철을 인용한다면) 세계적 팽창을 향한 대칭정이시작되었던 시기이다…… 프랑스의 모든 진행은 1 8 세기 말엽에 일어난 그 때부터, 이 중요한 사건의 영향을 받았다. 〉 그렇다면 프랑스는 고령화의 축떤에서, 한 세기 앞서 나 갔 던 것이다. 그 렇 지만 이 장기 지속적인 고령화 현상이 프랑스 자체의 과거에 장기적으로 준비되었을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까? 알프레드 쏘비는 약간 성급하게 〈18 세기에 서구 여러나라들의 전개과정에서 대응 현상이 있었다 〉.3L 말한다.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문화 또는 경제, 그리고 정치 생활의 영역에서는 그러하지만, 인구상의 과거를 생각한다떤 그렇지 않다.

18 세기에 프랑스는 13 세기부터, 아니 오히려 12 세기부터 고질적인 과잉 인구의 장기적 단계로부터 벗어난다. 4·5 백 년 동안 (1350~1450 년의 되 조를 제 외 한다면) , 프랑스는 현재 의 인도의 상황에 필적 할만한 상황울, 종종 식량 부족과 그에 따른 인구 이출을 동반하는 이 〈권력〉의 극에 가까운 그 자체의 출산률에 숨가빠하는 상황을 경험했다. 모돈 인구이출, 이 모든 정복, 이 게스타 다이 퍼 프랑코스 Gest a

지 않았거나, 혹은 영국은 프랑스와는 거꾸로, 참시 동안만 그러한 상태었다. 장기 지속적인 왕성한 상태가 끝날 무렵 , 고령화 현상이 세계 이 곳저곳에서 일어나게 된 것이 아닐까? 여러분둘은 내게 지난 I5 년간 프랑스는 급격한 재생을 하게 되었으며, 그것을 프랑스의 및 및 겅박한 정치 인들의 공로로 돌릴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것은 다시 〈사건에 의한 설명 〉이 되는 셈 이다 .18) 이전의 썰 물이 준비해두고 팔수적인 것으로 만들 었 던 밀물이 밀려들기 시작하며, 우리의 정치인들은 이 〈역사의 바람〉 속에 뛰 어 들 감각을_~그들이 그렇 게 해 야할 때- 갖 추고 있었다. 그러나 이 다행스런 상승제에 대한 원인이 그들 분이라면, 나는 머지 않아 그것이 역류되는 것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인구사의 거 대 한 파동이 보찰것 없는 이 유들에 좌우될 수는 없다.

나는 그 자체가 논란의 대상이 될 이러한 비판들로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편중되지 않고 유연하고 개방적인 사상이 나를 일깨워준 공감을 표 하고 싶다. 왜냐하면, 때로 사소한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정직하며, 그 결과 독자는 아주 풍부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인구학자는 무엇보다 자기 시대의 인물을, 죽, 자신을 에위싼 제계를 다각도에서 엄청나게 관심을 표하는 인물이다. 그가 배후에 신중하게 장벽을 쌓 는 일은 결코 없다. 알프레드 쏘비와 더불어 대화를 나누려고 애쓸만하다. 분명히 그는모든대화에 귀를 기울일 것이며, 겅멀스러운 지적 한계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3 루이 슈발리에 Louis Chevalier : 생물학적 역사학을 향하여

인구학에 관십을 갖는 역사학자인 루이 슈발리에가 막 치밀하고도 격 렬한 저작인 『19 세기 전반기의 파리의 노동계급과 범죄계급 Classes laborieuses et classes dangereuses a Paris dans la premiere moitie du XIX siecle』19) 을 간행했는데, 그것은 분명히 훌륭한 책이다. 나는 자료의 정확성과 기록의 확실성을 가늠해보기 위해서라기보다는-다론 사람들이 단호하게 이미 그 일을 착수하였다―一그 의도와 〈원칙〉

18) 내가 바라는 대로 이 재생이 장기 지속적이 되기만 한다면,

19) Collection: Civ ilisations d' hier et d' aujourd' hui Paris, plon, 1958, XXVIII-566 p., in-16.

울 구별해내기 위해, 그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우선 처음 보기에 어렵고 분산된 이 책 의 진가가 나타나는 것은 바로 이 차원에서라고 나논 생각한다• 또한 십지어 그 책의 풍부함과 의도의 다양성으로 인해 아주 복잡하고 종종 거의 명확하지 않는 이 책의 곧 바론 실마리를 찾아낸다는 것은 쉽지 않다. 게다가, 그 책은 쓰여전 것이 아니라 말해진 것이기 때문에 장황함, 반복, 불필요한 군더더기, 군데군데의 만용, 명확한 용어나 원칙에 대한 경멸감, 말끔하게 정돈된 논지에 대한 형오 둥이 나타난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또한 음울한 아름다움을 떤 귀절이 풍부하다는 접을 언급해 보자. 그 책 전체는――저자가 그것을 원하건 원치 않건 간에――더 구나 19 세 기 전반기 에 〈위험 하고불전전하고, 무시무시한〉, 〈잘 알려지지 않은〉 파리에 관한 음울한 책이다. 그 책의 고뇌, 형오감, 찬인성, 처주받은 광경들, 차마 말할 수 없는 비 참함 등은 음울한 낭만풍의 조각과, 미슐레 Michelet 의 통분과일치하며, 그 두 가지는 이 책의 명예가 된다•

그러나 그는 어떤 길을 따라가고 있는가? 너무 성급한 질문이 아닌가 ! 루이 슈발리에는 그에 대해 10 번이나 옹답하고 있지만, 이 계속적인 응답이 서로 어떻게 일치하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방대한 처작을 끝에서 끝까지 두세 번 관동해야만 할 것이다. 모든 것이 검토되고 나면, 손에 펜을 취고 다시 읽은 핵십적인 문귀들은, 마지막 두세 페이지에 담간 주장들――이 사실적인 페이지들―一은그나름의 〈진정한〉 의미를 떤다. 이 주장둘이, 우리를 당혹시키는이 거침없는 태도들이, 극성스러울 정도로 정당화되지만 처음에는 거의 이해불가능한 이 공언된 빈툼둘이 마침내는 체계적인 흐름 속에 정비되게 된다. 그 책은 무엇보다도 하나의 도전으로, 하나의 내기로, 일종의 〈선언〉으로 일종의 선구적인 저작으로 여겨쳐 왔다. 단한 순간도 처자는 그것의 독창성을 무시해본 적이 없다. 십지어 내가 개인적으로 그에 대해 부인하지 않는이 특질도또한인정되어야함을, 역사학자인 우리 직무의 단조로운 규칙에 대항한 그의 반란이 전지하게 여겨쳐야 함을, 그가 선택한 새로운 규칙들이 그 풍부함 가운데 받아들여져야합을 나로서는 안타깝게 바라마지 않는 바이다. 모든 것온 바로 이 여러가지 연구를 위해 바쳐졌으며, 그 책의 목적은 방법져인 것이다. 따라서 왕정 복고기와 7 월 왕정의 파리는 훌륭한 구실에 불과하다. 모든 것을 주도하는 것은 바로 내기이며 동시에 도전인

〈선언〉이다. 따라서 가능한 한 우선적으로 내가 분석해 보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별로 유쾌하지 않은 작업이지만, 본질적인 작업이다.

더구나 이 〈선언〉은 이제 더이상 사사로이 주장되는 도전이 되지 않고, 비록, 그 자체가 때로 우리를 혼돈시키긴 하지만, 최초의 귀중한 연구인 샘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역사학(엄밀하게 인구학자들의 그것에 한정된 부분의 특정 형태의 역사학)에 대하여, 단기적이고 쉬운 것으로여겨지는 경제학에 대하여, 인색하게 언급되는 사회학에 대하여, 단순히 무시되는 노동 사회학에 대하여, 최근의 파리에서의 법죄를 마치 그것들이 다론 모든 도시에서 다른 어떤 시기에도 그러한 것처럼 다루는 범죄학자들에 대하여, 통계학자들(오 배은망덕함이여 ! )에 대하여, 〈말하자면, 그 전문성에 있어서는 강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빈약해진……, 가장 불가해한 인물인 동계학자〉에 대하여 영향을 미친다.

내기의 측면에서는 아무것도 의십할 나위가 없다. 묵히 맞탁드란 경우와 결정된 시기에 있어서, 엄밀한 의미에서 그 접근 방법의 다양성으로 인해 인구학만으로, 파리의 인구 밀집지대의 노동하는 더우기 위험스러운 계급의 다양한 문제들을끌어내고, 설명해내는 데 충분하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되면, 인구학적 측정은 다론 모든 측정의 엄격함이 없이도 할 수 있는 득권적인 방식으로, 충분히 간여한다〉고 그는 쓰고 있다. 또한 훨씬 간명하게, 〈기록 (sic) 을 필요로 한다는 이유로 인해, 선두에 서는 것은 바로 인구학이다〉. 그이유는결코 기록 때문이 아니다. 왜냐하면, 존재하고 있는 관례적인 기목이나 법적 기록 둥은 쓸모가 없다는 이유로 권위적인 방식에 의해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공감에 차서, 그렇지만, 엄밀할 정도로 집요하게, 우리 의 동료는 단지 1952 년의 꼴레 쥬 드 프랑스 College de France 의 뒤어나면서 도도한 취임 연설에서 제시한 프로그램에 충실한 상태일 따름이다. 그에게 있어서 역사란 두 영역으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빛의 역사, 죽 의식되는 상태의 역사이며, 다른 하나는 모호한 상태의 여사, 즉 〈이 영역에서는…… 인간이 인간을 기피하며, 본능적이고. 초보적인 촌재 형태로 고립시키며, 그러한 형태는 더 이상 조직화된 도시의 형태를 떠지 않고 또 다른 필연적 형태인, 무리의, 공간의 형태를 떨 분이다.〉 이들 〈심층들〉온 인구학으로만 접근이 가능하며,

〈조직화된 도시〉와 관련되어 있는 역사학과 경제학으로는 접근 불가능하다. 인구학자들만이 혹은 적 어 도 인구학자인 루이 슈발리에 Louis Chevalier만이 이러한 참수를 감행하고자 한다.

나는 그것이 비록 내가 선호하는 노선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그 프로그램은 나를 매혹시칸다는 접을 고백하는 바이나. 반대로 나는 그것들 중에서 조십스럽게 연결되고, 중계되며, 관련된 기획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나는 그것들만으로효력을 발휘하리라고 믿는다. 그렇지만,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이 같은 모험의 우연과 그것이 가져오는 결과 앞에서 호기십에 가득차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인구학이 흉로 역사학과 다른 인간 과학들의 영역을 떠맡을 수 있을까? 그것에 대한 루이 슈발리에의 견해를 믿어야만 할까?

그것을 찾으려고만 하면, 저자의 도전, 내기, 입장에 대한전술둥의 면에서 인용문들은 이 설득력 있고 호전적인 책에서 쉽사리 발견된다. 그 참수가 휴식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그것들은 그것들 자체로 우리에게 부각된다. 즉, 저자가 표면으로 나타날 때마다, 잠시 젖혀두었던 어려움둘이 다시 재빠르게 나타난다. 따라서 빵값이나 범죄통계치, 또는 노동 상태에 대한 서술 둥이 서술의 실마리상 당연히 개재되어야할 때마다, 저자는 자신이 왜 그것들을 우리에게 거부해야 하는지, 또는 왜 우리에게 그것들을 인색하게 제시해야 하는지, 또한 우리가 왜 그런 의문에 충족되지 않은 상태로 있어야만 하는지를 우리에게 말해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지난 세기 전반부의 파리 노동자에 대한이와같은서술은 기이하게도 끊임없이 다론 사회적인설명들과이십각한분석을심층적으로구분해야할필요성에 입각하여, 신조, 정당화, 이탈 둥의 직무로 인해 차단당한다.

이 게임에서 목표물이 되는 것은 종종 역사학이다. 죽 그가 역사학울 버릴 때는 그는 그것을 범상한 것으로 여기며, 그가 그것을 다시 취할 때는 그것은 받아들일 만한 것이 되며, 그는그자신의 노작에 의해 역사학이 변화되었다고 판단한다. 〈이 동계치들은 역사학에 보완적인 측정치들을 도입해줄 분만 아니라…… 그것을 확장해주고 그것의 프로그램을 변형시키기까지 한다〉. 〈그러나 인구학자의 손을 벗어나면, 역사학적인 연구는 그 불완전한 프로그램과 융통성 없는 개념들로 인해 얼마나 보찰것없게 되는가〉 ! 루이 슈발리에(적어도 교육과정에서 여사학자가 아니었다는 접에서 핑계거리를 가지고 있는 수많은 사회

학자들 및 철학자들처럼) 는 역사학 의 개념들이 오래 전부터 변모되 어왔음을, 역사학의 프로그램이 완전하건 아니건간에, 오늘날에는 분명히 전통적인 설명은, 즉 그가 그것을 혼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연대기적인 서술〉은 더이상 아니라는 접을 모르고 있었을까? 프랑스에서조차 인구학에 대하여 널리 개방된 역사학이 있다. 나는 삐에르 구베르 Pierre Gaubert*의 17 세 기 의 보베 시 스 Beauvaisis**에 관한 아주 센세이션을 일으킨 논문과, 근대 시기의 오뜨 프로방스 Hau t e-Provence에 관한 르네 베 텔 Rene Baehrel 의 혁 명 적 인 논문을 생 각하고 있는데, 그 두 편의 논문들은 둘다, 이 처작에 필적할만한 활기를 띠고 있다. 개척자들은 혼자라고 믿으며, 혼자이기를 원한다. 사실상, 그들에게는 항상 동반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처자가 무시하고자 하는 것이 역사학만은 아니다(도한 제외되게 되는 것은 정치 경제학이다) . 그가 스스로에게 부과하고 있는 금지 조항들은, 그가 때로 전혀 불안이나 후회가 없지는 않게 제안하고 존중하는 금지 조항들은 수없이 많다.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서는 우리는 거의 다루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연구는 종종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단순한 핑계이다. 문제는 그러한 연구가 이루어졌는가의 여부를 파악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타, 그러한 연구가 우리가 다루고 있는 연구 또는 증명에 필수적 이냐아니냐의 문제인 것이다 . 〈경제적 위기와 법죄 행위 사이에, 그에 상웅하는 빵값의 상승과 범법 행위 숫자간에 설정될 수 있는 상관관계논 거의 문제시되지 않는다〉라고 그는 다시 말할 것이다. 사실상 무슨 문제가 되랴 ! 그렇지만, 그는 세 번 네 번 훨싼 침착하게 자신을 정당화할 것이다. 그렇다면 파리는 무엇보다 모든 것을 휩쓸고 지배하는 거대한 이민의 먹이, 죽 희생물인 셈이다. 이 이민은 결정적인 · (대수학상으로 가장 고도의) 변수이다. 다른 것들은 그 앞에서 스러져버린다. 〈경제적인 현상에 의해 야기된 인구 현상온 그. 나름의 움직임에 따라 전개되어 나가며, 그 순간부터 경제적 현상과 단철되어 ••• … 그것이 원인으로 작동될 정도로 중요해져서, 그 이상은 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경제 현상만큼은 주목을 받아야만 한다.〉 그러므로 거대

* Pierre Gaubert: 프랑스의 여사학자 (1915~) Paris I 대학의 근대사 답당 교수 (1969부터). 프랑스 구체재하의 사회겅계사에 관십.

** Beauvaisis ; ile-de France에 있는 지방. 도자기 산업 중심지.

한 인구 밀집지대를 향한 이민의 쇄도가 경제적 국면의 침체기에서 만큼 상승기에서도 찰 이루어지는 한, 그 작동인인 경제적 사실을 제거해보자. 독자는 그렇게 하자고 생각할테지만, 파리에서의 인구의 유입이 물질적 전공 상태에서 이루어전 것은 아니다. 부득이 하다면, 출발접이 되는 국면을 잊어 보자. 그것이 도달하는 국면이 남는다. 안구 현상이 〈원인으로서 작용하는〉 순간부터, 인구 현상, 죽 지나치게 좁은 벅둘 속의 인구의 집적은 경제적 충족상태에서나 혹은 극십한 빈곤과 실업의 국면에서나 마찬가지 결과를 초래할까? 그 응답은 자명하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는 금지된 영역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의심할 나위 없이 저자는- 그 접을 알고 있으며, 경제학적 설명에 대한 관십을 의면할 수도 없으며, 의면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는 적어도 그것의 가치에 제한을 가하려고 할 따름이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그것은 어느 정도 피상적일 수밖에 없는 단기적인 설명에 불과하다. 오로지 인구학적인 사실들만이 그 깊이에 있어서 또한 장기에 걸쳐서 유효하다. 오늘날의 전문 용어로 표현하자면, 경제학을 국면 속에 유페시키고 인구학을 구조를 위해 대기시키는 셈이 된다. 이제논 인구상의 국면도 있을 수 있으며 (내가 나중에 보여주겠지만, 사실상 이 책은 그 사례인 셉이다) 분명히 경제적인 구조 또한 심지어 경제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구조들도 있을 수 있다. 알다시피 자본주의가 유일한 것은 아니지만, 그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는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부유한 자들에 대해서도 이 책에서는 문제삼지 않을 것이다. 비록 그 제목_~노동하는 계급들, 범죄 계급들一_이 미리 그러한 것들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말이다. 루이 슈발리에가 편견으로 인해, 이 〈쉬운〉 설명을 거철하고, 의식적으로 그의 처작을 특정의 경제적 진공상태 위에 구축했다는 점을 충분히 강조해 보자. 그는 봉급에 대해서, 가격에 대해서, 노동자들의 가계부에 대해서, 도시의 총소득에 대해서, 식품과 식품 공급량에 대해서,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어쩔 수 없이, 펜 깃털이 불러일으키는 바람에 실려온 먼지들과 부분적으로제시된 몇 가지 특별 사례들만이 있을 따름이다(예물 들면 p,316, 〈4 파운드(당)에 12 에서 13 쏠 sol 이라는 가격은…… 실제의 ‘생리적인’ 한계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는 의식적으로 경제학적으로 취약한 자신의 저작을 구상했으며, 바로 이 취약성이 처음부

터 독자를 놀라게 한다. 의십할 나위없이 그는 재미삼아 쓰고 있다. 〈정 치 사와 경 제 사는 서 로서 로 (sic) 충분히 자족하는 훌륭한 부부관계를 종종 맺어서, 그들에게 있어서는 인구사가 재입하여 삼각관계륜 만들어야만 한다고는 결코 여기게 되지 않으리타는 접을 유의해보자.〉 그러나 모든 정황으로 보아 루이 슈발리에는 독선 생활에 최합한 사람이다.

이 주장들, 이러한 폐쇄는 단호하게 확정된 정책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태도의 윤곽을 잡은 것이다. 루이 슈발리에는 모든 사회적 설명으로부터 벗어나면서도 인구학적 지식에만 갇혀 있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않으며, 따라서 바로 그 접 때문에, 만일 내가 찰못보지 않았다면 수차례의 그의 입장에 대한 천명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이 충분히 명확하지가 않은 것아다. 여하튼 내 눈에는 그의 사상이 명확하지가- 않으며, 분명히, 훌륭한 산조를 가전 모든 독자의 눈에도 그러할 것이다. 그것이 비록 홍미롭기는 하겠지만, 나는 루이 슈발리에가 인구학에대해서도 도전하려 했다고 말할 정도까지 나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상 그는 소위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인구학이라고 할 만한 것을 뛰어넘고자 한다• 분명히 그는 자신둘의 칙무에 충실한 사회학자둘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측정치들과 격자틀을 도입하고자 하는데 그 중거로 알프레드 쏘비의 제자들에 대한, 또한그의 『인구population』20) 에 대한 뛰어난 검토, 즉, 이민 제한, 출산율, 결혼울, 사망율, 성별 연령별 구상… •• 이 있다. 그러나 이 일차적인 측정치들은그에 결부된 주석들과 마찬가지로 단지 예비적인 것, 죽 훨씬 비밀스럽 고 훨 싼 〈심층적인 생물학〉의 연구타는, 또다몬 연구에 필수적 인 해 명 에 불과하다. 〈생 물학〉과 〈생 물학적 인〉이 라는 단어 들은 루이 슈발리에의 펜에서는 지나찬 혜덱을 입고 있는데, 그것들은 거의 일종와 언어상의 습벽이다. 열 번 중에 아홉 번은 〈생물학적인〉이라는 단어 -는 그 단어가 도입되고 있는 구철에 따라 〈인구학적인〉, 〈인간적인〉, 〈사회적안〉, 〈사회학적인〉, 〈법률상의〉, 십지어 〈지리학적인〉이라는단어로 대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쓸데없는 논쟁에 매달리자 말자.

모든 과학에서 만일 발견한다는 것이 루이 슈발리에가 말한 것처럼

20) Editee par l'I. N. E. D., 23 avenue F.-D. Roosevelt, Paris, VII.

〈파악불가능한 것을 파악해내는 것, 죽 추론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잘 알려지지 않은 영역에 착수하는 것이다. 이제, 루이 슈발리에가 생물학적인 것으로 명명한 사실들과 구조들이 저자의 사상과 어휘 가운데서 찰 규정되지 않는다 해도, 그것들은 〈실존한다.〉 그것들은 죠르쥬 귀르비치가 말한 것처럼, 사회적 사실의 〈십충적인 충〉, 사실상 인간과학들 사이에 구축되고 파악되논 거대한 연결 마디를 이문다. 〈경제적 • 도덕적 (sic) 사실들의 거대한 침전물이 뒤덮고 있던 생물학적 사실들〉에 대한 연구를 슈발리에의 자상이 받아들이고 득히 그것을 제안하는 한, 그의 사상은 내 목전에서 설명되고 정당화되는 셈이다. 만일 내가 분리 가능한 〈생물학적 사실들>의 촌재를 믿을 수 있다면, 나는 십지어 그의 배타성조차도 받아들일 것이다. 사실상, 모든 인구학, 모든 역사학, 모돈 사회 생활, 경제 생활의 모든 면, 인류학적인 것 전부(나는 계속할 수 있다)는 생 물학적 이 며 , 그것 들은 〈과연〉 생 물학적 이 다. 생 물학적 〈기초 fondements〉가 문제시된다면, 우리가 이 책에서 다루지 않는 거대한 논의가 개재될 것이다. 막씨밀리앙 쏘르가 이미 IO 여 년 전에 인문 지리학의 〈생물학적 기초〉를 규정하지 않았던가? 루이 슈발리에는 파리의 사례가 너무도 시사적이어서 그 한 가지만으로도 논증이 된다고 생각한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한 처서와 선언문을 혼동하는 위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하돈, 우리에게 두세 번 제시된 그 정의가 만족스럽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 정의의 근거는 〈사회적 사실 가운데서 개개인의 육체적 특칭들과 밀접하게 관련된 모든 것〉이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행동 방식은 그들의 육체, 그 구조, 그: 옥구, 그 요구조건, 그 작동방식…… 둥과 간밀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분명히, 훨씬 상세하고 꼼꼼한 이 육체적인 역사에 관한 정의를 더 선호할 것이며, 내 생각에는 물질의 역사, 죽 욕구의 역사, 충족된, 충족되지 않는 욕구의 역사를나는덧붙일 것이다. 만일 그가 그것을 시도했다면, 우리의 동료가 이 십충적인 사실을 업밀한 의미의 인구사의 불에 유페시키기를고집하였을까? 나는 그것에 의십율 표명하는 바이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명백히 그 틀을 넘었기 때문이다. 비록 자살 현상온 분명히 그. 영역에(그가 어느 곳에서 언급한 대로 무시간적인 사회학의 영역이 아니라) 속한다고.해도, 범최, 축첩, 간음, 신생아의 유모에게의 위탁, 인기 있는극장, 인

기가 있거나 없는 문학작품, 생물학적 역사를 파악하기 위한 도구들은 사망이나 출생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모두가 다 인구학이라는 엄밀한 영역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도 철싼 더 확·대되는 생물학적인 것의 영역을 다 채우지 않은 채 이 모든 증거둘은그 영역을 넘어선다. 루이 슈발리에의 〈생물학〉21)은 분명히 지상의 식량에 대해서는 관십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것은 육체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는 인간의 이 〈행동 방식〉에 어떠한 영향도 미칠 수 없단 말일까? 말 장난의 차원에 있는 포이에르바하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그가 먹 는 것 이 다 der Mensch ist Was er isst>. 민속적 예지는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그것이 제기하는 논의들과 쟁접둘의 다양성을, 그러한 이몬 정립의 야십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 난접둘은 이 처작이 다루고 있는 사례가 안고 있는 난접들에, 즉 19세기 전반기 파리의 생물학적인, 사회적인 문제들 전체가 안고 있는 난접들에 덧붙여전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방대한 〈선언〉아 이런 식으로 엄청나게 복잡한 구체적인 역사적 사례와 뒤섞여진다는 사실은 분명, 아주 혼히, 이 거대한 비중을 지닌 처작에 대한 손수1 운 이해를 방해하는 것이 된다. 그 저작의 이론져주장을 생각하면, 그 책이 너무 장황하고 결코 유례 없는, 또한 1856 년의 경우를 제의하고는 미래에도 더이상 결코 나타나지 않을 인구중가의 가속화가 일어난 혁명적인 조침 아태에서의 반 세기 동안의 파리인들의 생활을 역사학자에게 제시해 주는 방대한 자료를 생각하‘면, 그 책은 너무 짧다. 이 복잡한 상황에서 루이 슈발리에는 끊입없이 다양한 관심사에 시달리며, 혼히는서로 상충되는 입장에 선다. 즉그는일반적인것과특수한것사이의, 연구의전동과혁신사이의, 명확한 역사(의식의 조명이 바춰진 역사)와 모호한 역사 사이의 ••• … 입장에있다. 이러한 관십과 관접의 다양성이 이 책울 가치 있게 만드는동시에 내재적인 어려움을 띠게 한다• 쓸모 있는 이탈은 그것을 무한히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그러한 이탈에 대하여 치하하는 동시에 불·평해야만 한다.

21) 루이 슈발리에의 「일반 인구학 Demographie generale」(1951) 이라는 논문의 색인에서 생물학적 구조에 관한 현재 연구의 항목을 발견할 수 없다는 접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제 1 권―一Le Theme criminel ――전부는 문학 자료들에 할에 되 어 있댜 얼마나 기이한 출발인가 ! 그것을 생략 랬 더라면, 그 책은 160 페이지 혹은 그 이상을 확보할 수 있었울 것이다. 그러한 기획을 주저하는 우리의 저자가 무엇 대문에 결국 이 〈질적인 사실들, 이 상상에 속하는 영역〉에 그렇게 많은 부분을 할에했을까? 나는 그 누구에게 도 어느 것도 신세지려들지 않기 때문에 루이 슈발리에는 사회과학이 아난, 혹은 적어도 사회과학으로 여겨지지 않는 문학에 대해서는 아무 거리낌 없이 의존하였다고 한 순간 생각하였다. 나는 또한 그가 연극 연출가처럼 굴었다고 생각했다. 즉 잘 알려진 배우들과 훌륭한 희곡들이다. 레미재라블은 다시 이야기될 수 있으며, 거기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다른 동기로 진행해 나간다. 그렇지만 사실상 발자끄, 위젠느 쉬 Eugene Sue, 빅또르 위고, 십지어 졸라의 작중 인물들이 과학적이고 혁명적이 되고자 하는 이 책을 지나치게 침범한 것은 아니라는 접을 그 누구도 내게 확신시컬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이 홍미진전한 분석이 그 자체로 별개의 책으百 묶였더라면 더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견해와 반대되는 주장도 그 나름의 비중을 지닌다. 이런 식으로 루이 슈발리에는 그의 처작에 〈질적인 부분〉울 도입했으며 그것이 없이는 완전한 사회사도, 사회에 대한 완전한 연구도 없다고 여기고 있는데 그 접에 대해 나 역시 동조하는 바이다(그렇지만, 다른 질적 인 자료들도 있으며 , 소설은 ..::z.. 중 가장 확실치 않은 것 중의 하나이 다). 또다론 공헌으로는 그가 그것이 없다면 역사학은 필연적으로 육신을 떠난 샘이 되는 의식에의 집착에 여지롤 부여랬다는 접이다. 나는 이접에도 완전히 동의하는 바이다. 무한히 주의를 기울여, 이 문학적 근거둘을 십층적으로, 사건의 하부 단계로 파악하면서 , 자신의 관찰과 발견의 주요 주제를 밝힐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발자끄에서 빅또르 위고에 이르는 동안, 〈예의적이고 기괴한〉 범최행위에서 〈사회적인〉, 일반화된 범죄행위로의 변화가 이루어진다. 〈법죄〉 계급에만 업밀하게 한정되지 않으며, 그 의미가 변화하면서 대다수의 사람에게로 죽, 노동하는 계급 대부분으로 확장된다. 이 후자(노동하는 계급-여주)에는 그들의 단순한 비중에 의해, 그 자체로 범죄의 뚜렷한 경계선이 그려지게 된다. 결국 이 한계선이 그들의 운명이다. 〈법최 는 빠랑-뒤샤뜰레 Parent -Duchatelet 가 쓴 것 처 럼 , 사회 의 질병 이 다. >

이 문학 자료들에 대한 분석과 파리 지역의 음산한 곳의 제시 둥, 이간 서두는 훌융하고 힘차게 펼쳐진다. 그렇지만 나는 이것은 그 자체로 한 권의 책이며, 그것은단지 자융성과 독립성을 연고자할 따름이라는 접을 반복해서 말하는 바이다. 왜냐하면, 이 문학 자료와의 힘찬(최 신적 인) 혼합은 그 자체 로도 그 나름의 문제 들을, 그 나름의 수많은 문제들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론 어떤 자료에 근거한 다론 어떤 연구보다도 훨씬더 주의를 요한다. 문제삼고 있는 사실들에 대해서분만 아니라, 모든 예술작품이 그 자체와 실제 사실 사이에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두는 거리에 대해서도 혹독한 비판이 가해져야 한다. 이러한 난접들이 우리의 안내서를 피해가지는 않았다. 이 어려운 지대에서, 그가 원격 조정을 동해 통계치를 통해 말한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또한 그가 문학 자료, 즉 〈영원히 촌재하지만 듣는 방법을 알아두어야만 하는 자료들〉에 대해서 쓴 것 역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있어서가 아니타, 그가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에 있어서 그러하다.〉

이렇게 비록 언제나, 특히 주요한 줄기에서 신뢰감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지만 분명히 홍미있는 이 건 제 1 권의 다양하고도 생생한 문제들을 다 그려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의 문제들은 제시된다. 루이 슈발리에는 〈사회적 범죄 행위〉에 대한 문학 작품의 때늦은 자각을 사실상 어떻게 설명할까? 레미제라블은 그 시대가 끝날 무렵에 나온 것이다.

제 2 권 __ 『그 원인별로 살펴본 범최, 죽 병리적 상태의 표출 Le Crime: expression d'un etat pathologique cnsidere dans ses causes』―온 고전적인 인구학적 측정치들과 더불어 주덱둘, 도시의 시설들, 인구밀집지대의 물리적 및 물질적 구조 등에 대한 연구를 제시한다. 도시에 운집하는 그 많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들의 분포 상황은? 그들의 연령은? 이 제 2 권은 치밀하고 견고하다. 단지 유감스러운 접은 책의 말미로 미뤄 놓은 지도와 도표들의 수가 너무 작고 참조하기에 불편하다는 접 분이다.

제 3 권은 『그 영향의 면에서 살펴본 범최, 죽 병리적 상태의 표출 Le Crime : expression d'un etat pathologique considere dans ses effets』이라는 제명이 붙어 있다. 루이 슈발리 에 는 이 마지 막 부분을 게재하고 두드러지게 하기 위해 그의 저작의 전부를, 아니 거의 전부

를 희생시켰다. 그는 그 부분에서 파리의 노동 인구의 인구상의 상황과 생물학적 정황이 얼마나 열악해지고 있는지를, 그리고 다시 좋전 나쁘건, 또는 서로 다론 방법으로 부르조아지의 관점에 따르건, 노동자의 관접에 따르건, 여론이 이 엄청난 번화를 얼마나 감지하고 있는지를 연구한다. 그러한 열악화를 나타내 주는 조침둘은 자살(노동자들의 자살), 영아살해, 매춘, 정산병, 노동자들의 축컵, 출 산력, 마지막으로 두드러진 불평둥인 사망, 그가 강력하게 말한 것처럼 〈모든 것을 부기계산하는 사망〉 둥이다. 문제는 그 수치돌과 그것들이 허용해 주는 상관관계, 가설들을 가지고 공식적이건 비공식적이전 극빈에 가까운 사람들(주민의 1/3과 1/2 사이)의 수를 추정하는 것이다. 그리고.나서, 그 실수를 계산해낼 수는 없다 해도, 그 어림수치를 산정할 수있게 해주는 이 위험한 부분에 대한 추정을 하는 것이다. 인구의 어떤 부분에서는 분명히 비합법적인 출생과 범최 추세가 관련이 있다. 사생아둘은 〈법죄 집단〉의 상당 부분을 구성한다. 또한 루이 슈발리에는 정상적인 노동자 계급보다 훨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 인구를 계산해내느라 무던히 에를 쓰고 있으며, 그 집단의 무리 중에서 그들의 사회생활은 자연히 가장 격십한 간장상태에 있다.

이러한 〈원인들〉을 살펴보았으므로, 그 결과들이 놀타운 것은 아닐 것이다. 노동자 집단은 모두 경사변의 끝에서 〈다양한〉 양상을 띠는 범죄의 분명하고도 끈덕진 영역으로 미끌어쳐 들어간다. 루이 슈발리에는 이 영역을 기술하기 위해, 그가 제시하고 있는, 또한 그가 암묵적으로 드러낸 이유로 인해 범최 통계치를 필요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첫번째 이유는 행정적으로 등록된 범최는 실제 범최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접이다. 그렇지만 판결 기록소가 분명히 범죄는 물론 〈경범최〉에 이르는 모든 것들을 기록하지 않는가?

두번째 이유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명확히 표명된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저자가 다시금 자기 고유의 측정치를 자선의 중명의 내부에 남겨두고 싶어한다는 접일 것이다. 이번에는 그의 통제방법이 그에게 충분한 자료의 획득을 가능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나는 그에 찬성하는 바이다. 질병, 사망울, 자살, 어린이 유기, 사생아 출생, 축첩, 병원, 양로원, 탁아, 이 모든 〈생물학적〉 칭표들은(비록 그것들이 단지 생물학적 인 것만은 아니라는 접을 지적한 것이 바로 나 자신이건 하지만), 유-례 없는 규모의 실험실적 연구를 가능케 해준다. 이렇게 해서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사회 병리학의 전모가 드러났다. 그러한 제시는 방법상의 귀중한 가르침을 준다.

루이 슈발리에는 자선의 연구의 일반적 의마에서 분명히 옳다. 좁·은 영역인 법죄에서, 넓은 영역인 사회적 위험에 이르는 연걷선이 드러난다. 그 그물망에 파리 인구 중의 그토록 많은 부분을 건져 올리 는 국빈층에 이르는, 마침내, 생물학적 • 사회적 법주인 노동하는 계급전체에 이르는 선이 드러난다. 이 마지막 부분을 〈십판하는〉 것이 문재가 아니라(더구나 책 전체가 다 그것에 대해서 호의적이다), 그-것의 다양한: 행동 양식을 좌지우지하고, 그 무자비한 운명에 갇혀 있는,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일련의 수치들을 하나의 전체로 연결시키는 것아 관건이다. 어떠한 계층 이동도 보상이 될 만한 상승의 수준까지 이루어지지는 않으며, 원칙을 확정시켜 주는 예의들만을, 사례들만을 O,l용할 수 있을 따름이다.

나는 이 어려운 책을 뒤쫓으며 요약하려고 했다. 파리에 관한 것에서 그 자료에 십판을 내리는 것이 내 의도가 아니라는 접을 나는 다시 부언하는 바이다. 위험 신호몰 무릅쓰고 있으며 또한 열정적인 모`돈 시도는 유보와 비판을 강력하게 불러일으키며, 불러일으킬 것이다. 내게 있어서 문제는 그 흐름을 부각시키는 것이었다. 내 자신이 위험을빼 무릅쓰고 나는 그렇게 하려고 했다. 그것들을 구체화하고 있논 사례들에 대한 그 원칙 또는 그 〈선언〉의 적용의 면에서, 분명히 끝없는 토론이 일어날 것이다. 지금 그것이 쓸모있는 일일까? 나는 루이 슈발리에가 새로운 책으로 그의 복잡하고도 권위있는 사상을 재발견할 기회를 내게 제공해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내가 지금 그런 종류의 논쟁에 가담하게 되면, 토론의 범위를 좁히게 되지나 않을까하고 나는 염려할 것이다. 인간 과학인 한, 사실상, 루이 슈발리에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파리의 사례에서 옳은지 아닌지, 그가 어떤 수치 또는 어떤 참조문에서 착오를 일으켰는지, 혹은 내가 염려하듯이 그의 논제와 밀접하게 들어맞지 않는 재판 기록부를 소홀히 여기는 찰못을 내가 생각하듯이 법하지나 않았는지 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학 자료에 그토록 집착을 보였다는 접에서 그가 잘못인지의 여부 역시 문제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의 빠리 연구의 특정의 빈듬은 그것들이 이 책이 취한

입장과 상충되고, 아니 오히려 그것을 제한한다는 접에서 내가 보기에는 아주 심각하다. 나는 왕정 복고기와 7 월 왕정기의 파리가 그 이전과 이후의 파리와 비교하여 보다 세밀하게 연구되지 않은 접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분석들, 풍부한 수치들, 인구학적, 생물학적 측정도구 둥은 우리의 등불을 밝혀줄 수 있었을 것이다. 나로서는 루이 슈발리에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파리의 사건은 불행히도 그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만큼 예의적인 것은 아니며, 예를 들면, 16 세기의 파리를 루이 13 세의 파리와 견주어 보면, 19 세기 전반기의 참상온 장마향수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내가 를렀다면, 내게 그것을 입증해보라! 마지막으로, 그리고특히 같은시기에 다론도시들에서, 심지어 프랑스의 시골에서논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또한 유럽의 다른 주요 도시들에서는? 나는 만일 파리의 인구가 1800 년에서 1850 년 사이에 두 배가 되었다면, 루이 슈발리에가 세 배가 된 (900,000 에서 2,500,000으로) 영국의 인구에 대해서는 실제로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곤혹스러워진다. 내 생각에 그 비교는 파리에 대한 진정한 면모를 파악하기 위해서, 또한 파리에서 일어나는 인구학적 경험의 전정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한 비교는 또한 이 책이 바라고 있는 대로 방법론적 가르침에 확실한 힘을 부여해 주기 위해서는 더욱 필수적이다. 루이 슈발리에식으로 말해서 한 사회의 생물학적 기초를 다루는 것은 그 구조들 중의 가장 십충적인 것에까지 가는 것이라고 나 역시 믿고 있는 바이다. 그렇지만 나는 완전히 국면적인, 십지어 아주좁은의미로 국면적이며,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건을 가지고, 파리인들의 생활 중에 예의적인 것을 가지고, 우리에게 제시되는 것에만 관십을 두며, 다론 한편 이 사건을 파리의 십충적 생활, 다론 주요 도시들의 십층적 생활, 유럽의 그것…… 등과 연결되어 있는 세기적인 흐름 속에 집어넣어 보려고는 전혀 하지 않는 연구에 의해 그것을내게 증명해보이고자하는점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루이 슈발리에가, 예를 들면 1832 년과 1849 년의 콜레라라는 재난과 같은 바늘 끝처럽 미세한 짧은 국면들에 몰두하는 것은 거의 당연하다.

그렇지만 토론과 유보 사항들의 중지타니 ! 문제가 되는 것은 더욱 이 제국주의적인 인구학을 확장시키기 위하여, 약간은 그 통로를 무너뜨릴 위험을 감수하고 이 책이 인간과학들 속에서 생물학적 구조

들과 사실들의 새로운 지평을 향하여 열어 놓았던, 혹은 열어 놓고자 하는 몸이다. 이 본질적인 장접을 파악하는 것이 분명히 이 호전적인 책에 대하여 정당한 경의를 표하게 하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다.

4

내가 다루었던 세 명의 저자들은 거의 서로 닮지 않았다. 만일 내가 그 세 사람을 여기서 통일시키려 했다면, 그것은 사회 과학들 전체와 마주 선 인구학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을, 죽 내가 이 전체 속에 인구학의 위치를 보다 높게 부여할수록 내 관십을 끄는 위치를 보다 잘 분석해 보기 위함이다. 말하자면 인구학에 경쟁적인 과학들에 대하여 가장 격렬하게 민족주의자이며, 십지어 외국인 배타주의자인 것이 바로 과거의 경제학자였던 에른스트 바게만이며, 루이 슈발리에 (과거의 역사학자였던 ? 여하튼 역사학 출신인)라는 접은 홍미로운 일이다. 반대로 알프레드 쏘비의 사상온 그로 하여금 지방주의를 억제시키는 보편적인 호기심에 자연히 겅도되어 있다.

이제 인간과학들이 허물을 벗어야 하는 대에, 그것들을 분리시킨 낡은 장벽둘이 모두 무너져야 할(또한 여기서 나는 내 나름의 호소를 하는 바아다) 순간에,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사소한 민족주의에 할애할 때는 아니며, 더이상 아닐 것이다• 혹은그렇지 않다면, 내가전적으로. 블 린 것이다. 인간 의식의 구조화되지 않은 이 거대한 영역에서 지배하는 〈하나의〉 과학, 하나의 경로란 없다. 선두에서 지휘하는 인구학, 경제학, 사회학이 없는 것은 물론, 〈선두에서 지휘하는〉 역사학, 또는 적어도 역사학적인 개념은 없다. 얻어전 방법, 관접, 정보 등은모돈 사람에게, 죽 그것을 이용할 능력이 있다고 입증된 사람은 누구에게나 속하게 된다. 이 방의 〈기술〉에 동화되는 것이 사회과학들의 공동 시장이 지닌 어려움이라고 내가 언급한 바 있다. 거기에 부질없는 경계선에 대한 논쟁이나 우선권 다품을 덧붙이지 말자. 모든 일방적인 설명은 내가 보기에는 가증스러울 분만 아니라 임무의 엄청난 법위에 직면한 오늘날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는 헛된 일이다.

그렇지만, 모든 학자들 특유의, 본질적인 것과 단순한 것을 겨냥하는 이 권위주의적인 희망을 품고, 생산수단의 착취에 관한 자신의 이론에서 사회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의 접합이라는 이중 노선(적어도 그것

은 이중이었다)을 시도해 본 바 있는 칼 마르크스는 모든 이들 중에 혁신자의 취기를띠는 것으로알려져 있으며, 그릴만한충분한권리가있는데도, 그는 1872 년 3 월 18 일에 모리스 라 샤뜨르 Maurice la Chatre*에게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과학에 있어서 왕도란 없다.〉 그것을 너무 망각하지 말자! 우리가 해쳐나가야만 하는 것은 수많은 어려운 좁은 길을 동해서인 것이다.

* Maurice la Chatre : 프랑스의 작가이며 편집자 (1814~ 1900), 생시몽주의 사회주의자. 파리꼼뮨에 가담. 추방으로 에스파냐, 벨기에, 스위스, 이태리 전전.

제3부

역사학과 현재시간

브라질 바이아네 Bahianais 에서 :

현재는 과거를 설명한다*

콜롬비아 대학의 마빈 해리스 Marrvin Harris 의 섬세하고 예지에 찬 책은 기꺼이 읽혀지고.또다시 읽혀지게 된다. 『브라질에서의 도시와농촌 Town and Country in Brazil』1)이라는 그 책의 제목으로 인해 그 책이 일반적이고 이론적이 아닐까 염려하게 되겠지만 아주 다행스럽게도 그 전조는 맞지 않게 된다. 그 책이 오로지 문제삼는 것은 여행에 대한것, 그다음은브라질의 작은도시에서의 체류에 대한 것이다. 첫부분이 시작되자마자 우리는 내륙 깊숙히 있는 바이아 Bahia주의 십장부인 미나스 벨아스 Minas Velhas 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볼줄 알고 이해할 줄 알며 이해시킬 줄 아는 안내원을동반하여 그. 책을 읽는 도중에 참시도 결코 지루해본 저이 없이 그 책을 마칠 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거기 있는 채이다. 더구나 묘사가 아주 생생한

* Annales E. S. C., n°2, avril-juin 1959, pp,326~336.

1) Marvin Harris, Town and Country in Brazil,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56, in-8°, X-302p.

나머지 그 책은 〈소설처럼〉 읽혀질 정도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내 생각에 그것은 예의적인 찬사이다. 왜냐하면 가장 엄밀한 객관성이라는 기치 아래 과학적으로 경도된 한 저작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현재 시간과 결별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은 또한 영화에서처럼 여러분을 실재의, 일종의 지나간 도시 〈문명〉의 원천으로 안내해가는-그것도 아주 생생하게-것은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역사학자라면 이런 종류의 경관에 대한 꿈을 꿀 수는 있겠지만 황폐하고 낡은 그것을 자기 나름의 눈으로 보고 그것을 손가락으로 만진다는 것은 유별나게 생생한 줄거움이며 또한 그것은 얼마나 교육적인가 ! 서둘러 그것을 즐겨 보자 ! 미나스 벨아스에서는 새로운 생활조차도 그 나름의 대력을 지닌다. 죽 언젠가는 거기에서 기적적으로 지탱되어 오던 불안정하고 낡은 그 모돈 질서를 그 새로운 생활이 떠밀어내 버릴 것이다.

I

절반 이상이 사막이며 산이 많은 볼모 상태의 지방 한가운데에 머나스 벨아스 -les Mines Anciennes __ 는 I8 세 기 의 까다로운 광산업 때문에 세워졌다. 죽 그것은 브라질 내륙의 거대한 중요 금광도시들 중의 하나였는데, 그것들 중의 일부는 17 세기 말엽부터 일찍이 나타났으며 훨싼 많은 수의 다른 것들은 I8 세기 처음 수십 년 동안에 세워졌다. 미나스 벨아스에서의 채광은 1722 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데 그것은 아마도 약간은 좀 이돈 편일 것이다. 여하돈 그 시의 도시 법 령 은 적 어 도 I725 년으로 거 슬러 올라가며 I726 년부터 는 그 도시 는 시청을 갖추어 거기에서 금이 용해되었으며 포르두갈 왕에게 바치는 1/5 세가 미리 칭수되었다. 1746~1747 년에는 I/5 세가 순금 I3 파운드.로, 죽 원광 65파운드로 올랐다. 거기에다가 분명히 사취의 몫과 떤제통과조의 금이 덧붙여졌다. 광맥상의 금과 사금이 풍부한 한에 있어서, 사실 말하자면 이 활기 있는 도시에 아무런 문제도 제기되지 않았다. 죽 식량이 도처에서 가끔은 상閃히 먼곳에서 그 도시로 풍부하게 밀려들어 왔다. 그러나 18 세기 말무렵 미나스 벨아스에서의 황금의 번영은 브라질의 다론 도시들에서처럼 사라져 버렀다.

그렇지만 그 도시는 본질적으로 덧없는 그 비정상져 상황에도 불구

하고 그러저러 그 재난을 겪고 살아남았다. 그 도시는 내찬 걸음에 밀고 나갔으며 그 다음에는 최근의 질서의 행정 중심이라는 평범한 행운을 차지할 수 있었으며 그것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그 도시는 수많은 쓴맛을 맛본 연후에 그렇게 해서 간신히 현재에 도달하게 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 도시의 행정적 우월성-그 도시의 제 2 의 부――은 너무도 빨리 도전받게 되었으며 그렇게 되자마자 그 〈관할지〉는 다시 손질되었고 철거되었으며 다시 재단되었기 때문이다. 1921 년에 거의 치 명적인 마지막 타격이 가해졌다. 죽 아주 번창한 이웃인 빌라 노바 Vila Nova 가 그 의도대로 구성된 관할지를 가지고 그 도시로부터 분리되어 나왔는데 그것은 알다시피 구 도시 및 그 경계 설정에 대한 또 한 번의 타격인 샘이었다. 이러한 타격에다가 미나스 벨아스가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 및 철도 둥의 선로에서 기회를 잡지 못했다는 접을 덧붙여 보라. 죽 지리적 여건이 그러한 기회와는 상반되게 작용하였던 것이다. 철로는 그 도시의 관문에서 아주 멀리 있는 브로마도 Brornado 에서 멈추며 또한 자동차 교통은 얼마 전에야 불편한 방식으로 그곳에 도달하였다. 죽 한 메의 승객과 잡다한 상품을 실은 하루 한 대의 트럭이 전부인 것이다.

더구나 누가 이 의전 도시까지 가는 데 관십을 가지게 된단 말인가? 마지막 산에, 죽 도로분만 아니라 전보의 결과(전기, 전보, 코카콜라……)가 미치는 분주한 도시인 빌라 노바에 도달하게 되면 여행객둘은 주저하게 된다. 그 여행객이 정보를 듣게 된다면 그는 나귀를 타고 리오 다스 페드라스 Rio das Pedras 의 협곡들(거대한 폭포가 다른 것들과 더불어 가로지르고 있는)을 지나 희귀한 풀들과 발육이 나쁜 작은 관목들이 십어 있는 바람에 내맡겨진 미나스 벨아스의 〈재레스 gerais> 평 원과 깊은 골짜기 까지 도달하려 는 용기 를 거 의 내 지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와 함께 머물러라 라는 충고를 저자는 받게 된다……우리는 전기와코코아, 콩, 풍부하고신선한 과일과 돼지고기 ...... 동을 갖고 있다. 미나스 벨아스는 세상에서 가장 침체된 곳이다. 200년 전부터 어떤 발전도 이루어지지 않아 왔다. 만일 당신이 찬 맥주를 원한다면, 당신은 우리와 함께 머무는 편이 나울 것이다. 미나스벨아스에는 바가 단 하나분인데, 냉장고를 갖추기에는 거래가 너무 적다.2) 거래는 가공스러울 정도로 낙후되어 있다. 거기에서는 상거래

2) 더구나 미나스 벨아스에는 전기도 없다.

는 극히 열악한 편이다. 그곳은 어떤 활동도 없는 쓸쓸 하고 춥 고 아주 황량한 곳이다.〉

자선이 〈문명〉을 떠났다고 생각하고 있는 여행 객 에게 있어서 전형적으로 도시적인 도시 안에 있는 미나스 벨아스에 당도 했 을 때의 놀라움은 그만큼 더 커지게 된다. 그는 거기서 오늘날에 만들어지고 있는 중인 브라질의 도시들이 거의 주지 못하는 인상을 받게 된다 . 죽 그곳은 기적적으로 포장된 도로듄이 있는, 흰색과 파란색으로 새로 칠해전 포도를 따라 늘어선 집들이 있는 ,3) 그것의 일반적인 청결함아 갖춰전 말쑥하게 차려 입은 주민들이 있는, 파란 셔츠와 흰 셔츠몰 입고 학교에서 나오는 어린이들…… 이 있는 도시인 것이다. 거기에는 돌로 된 다리, 출입문, 담장, 가상의 성벽, 최근에 새로 희고 푸르게 칠해진 몰로 된 높은 교회가 있는 대광장, 얽힘 장식이 있는 찬디발과 정원, 도시의 자랑인 처녁 산책길들의 만남의 장소 둥이 있다. 그 여행객은 이 경이로운 도시에 당도하게 될까?

2

그 다음에는? 최선의 것은 만남의 우연에 따라 도시의 현실에 대해 또한 경관들에 대해 관십을 갖게 되는 것이다. 문제점들은 조금씩 밝혀지게 된다. 아니, 미나스 벨아스는 이제는 더이상 그 근처의 아주 황폐하고 가난한 촌락들에 의존하여 먹고 살지는 않는다. 더구나, 쌔 라 도 오로 Serra do Ouro, 벡싸 도 감바 Baixa do Gamba, 그라바타오 Gravatiio, 길라오 Giliio, 바나날 Bananal, 브뤼마던호 Brumadinho 등의 촌락둘은 첫번째 것처럼 백인 농부들로 된 촌락인 경우도 있고 두번째 경우처럼 흑인 농부들로 이루어전 촌락도 있는데 그들 모두 다 비참한 상태이다. 왜냐하면 땅이 지나치게 조각난 상태인데다 평범한 정도로만 비옥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촌락둘은 도합 I, 250 명의 농부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 촌락둘의 면전에 있는 사실상 너무도 작은 미나스 벨아스에는 무려 거의 I,500 여 명에 달하는 도시민들아 무리지어 살고 있다. 한 명의 농부가 혼자서 한 명의 도시민의 하중울그어깨 위에 버터낼 수 있을까? 물론 그럴 수는 없다. 그수확

3) 햇볕에 말린 벽들과 몇 개의 돌들, 기와 지붕으로 지어진.

물의 잉 여분――야 채들과 말 들 , 설탕 , 쌀 , 공 , 메 니욕 , 약간의 옥수수. 양, 고구마, 커 피――이 그 도시의 시장으로만 가는 것 이 아니라는 접에서, 죽 파는 사람 들 이 밀 라 노바까지, 그루타 Gruta 까지, 포르미가 Formiga 까지 밀려가게 된다는 점 에서 그것은 그 농부에게 지나치게 요구하는 셈이 된다. 이 렇 게 해서 경쟁이 있게 되지만 보다 좋은 자리 를 잡고 있는 구 도시는 여하돈 세력을 잡게 된다. 그 구도시는 십지어 그 도시의 〈부르 조 아 〉의 부동산에 의해 그 권리를 옹호하기도 하는데 그 중 가장 거 대 한 것은 〈파젠다 fazendas〉* 로 그것은 사실 별로 넓 지 않지만 가 장 질 이 좋은 땅 위에 있는 리오 다스 페드라스의 겉울 따라가고 있다. 그 부동산 은 작전 보통이건 간에 도시와 농촌 사이의 최 대한의 연결대인 셈이다.

여하돈 바로 이 농부들과의 관계를 동해 미나스 벨아스의 주민은 런던 시민이나 뉴욕 시민들이 그 거대도시에 대해 부여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한 감정을, 죽 도시민이라는 감정을 뼈속까지 느끼게 된다. 도시민이 된다는 것 은 자기보다 더 불행하거 ·나 자기보다 덜 행복한 사람들에 대하여 우월한 상태에 있는 것이며 그 접을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고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농촌이란 얼마나 다론 곳인가! 그것은 고립이다. 도시는 소음, 움직임, 대화, 온갖 종류의 즐거움과오락이다. 전혀 다른존재 형태인것이다. 고립된집에 의따로 살고 있는 미나스 벨아스의 주민을 부러워하지 말라. 왜냐하면 〈진짜 〉 집은 그 이웃집들에 인접해 있고 서로 잇대어 있어 전체적으로 길 위에 같은 움직임으로 한 줄로늘어서 있기 때문이다• 만일이 거리가 조용하다면, 만일 〈당신이 아침에 외출할 때 소음이 없다면〉, 그 렇 다면 모돈 것이 엉망진창이 된다. 도시란 정답고 활기를 주는 다른 사람들의 소음인 셈 이다. 장날인 토요일의 주인인 이 농부들을 보타. 그들의 옷차림으로, 그들의 말씨로, 그들의 태도로, 십지어 그둘의 용모로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상접의 어리숙한 고객보다 우월하다고 느끼게 될 기회에 대해서도나는 언급한 바 있다. 그들을 비웃음의 대상으로삼는다는것은 얼마나 근사한가! 이 시골 사람들 자신들도 도시가 그들보다 훨씬우월하다고생각한다. 죽 도시에서는누구나 자신의 식량을 돈으로 산다고 생각해보라• 그들에게 있어서 도시란 꼬메르씨오 le Comercio 에 불과하다. 벡싸 도 갑바 Baixa do Gamba

* fazendas: 브라질에서 일반적으로 귀중히 여겨지는 대규모 농업 자산.

출신의 죠제가 설명하돗이, 〈꼬메르씨오 comercio 의 생활은 호주머니 가득 돈을 가전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4) 그의 아내는 〈꼬메르씨오 6)

이 사소한 득칭들은_그런 것들은 이 책에 산재해 있다――이 도시의 거만함을, 그 자존심을, 그것의 위엄에 대한 편향을, 그것의 소음에 대한 또한 소음의 최상급인 축제에 대한 에정을, 문화에 대한 사실상 라틴어에 대한 편향 __ 1820 년에 이미 두 명의 독일인 여행자들죽 박물학자인 폰 스픽 스 Von Spix 와 폰 마르티 우스 Von Martius 를 찬미했던――울 장시간의 토론보다 더 잘 말해준다. 그 두 여행객들 역시 그 소도시(당시에는 900 명의 주민)의 위엄에 또한 그 도시의 라탄어 교수의 우수함에…… 놀랐었을 것이다.

3

그러나 사람이 소음이나 자기 만족감만을――먹고 살지는 않는다. 주변의 촌락둘이 그 도시를 철반밖에 부양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그것도 무상으로가 아니라-그 도시가 소비하는 것에 대해 죽, 그 도시가 농부들로부터 사들이는 것에분만 아니타 빌라 노바로부터 그 도시로 오는 필수불가결의 밀가루, 등유, 연료 둥에 대해 지불

4) Marvin Harris, op. cit., p.145,

5) Ibid.

6) p.143.

을 하려 면 그 생활을 영위한다는 것이 무리가 되게 될 것이다. 이 문재에 대한 두 가지 해결책이 있다. 즉 그한 가지는 돈의 환류를 의미할수 있는 것과 더불어 일어나는 이민이며 나머지 하나는 수공업이다.

이 해결책들 중 전자는 젖혀놔 보자. 미나스 벨아스는 바이아주에 분만 아니 라 〈복동쪽〉의 브라질 전체 도시 와 농촌에 한꺼 번에 영 향을 미찬 이 거대한 움직임들 중의 수천 가지의 다론 움직임들 중의 한 사례이다. 전체적 관접에 의거해야만 죠르쥬 아마도 Jorge Amado 의 대하소설에서 그 무궁무진한 비극이 거론될 수 있었던 그 거대한 문제를파악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미나스 벨아스는 이 거대한 흐름·속에 휩쓸린 물 한방울이다. 분명히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이민으로. 인해 뒤죽박죽이 되 었다. 이 민은 젊은 사람들을, 때로는 가장 자질 있는 사람들을, 죽, 바이 아에서 또는 싸웅 파울로에서 가장 높은 급~를 받는 수공업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거기서부터 수많은 드라마~이 나온다. 죽 기다림의 드라마가-그 도시는 여성 초과의 인구를· 지니고 있다-귀환의 드라마가 나온다. 그렇지만 전정한 귀환이 있울까? 본질적으로 침체된 좁은 도시의 생활에 어떻게 해서 다시 적웅이 된단 말인가?

미나스는 살아가기 위하여 이민 이의에 오로지 수공업자들:의 노동에만의존할 수밖에 없다. 죽 구리 다루는 사람, 대장장이, 안장재 조자, 마구제조자, 짐꾸리는 사람, 레이스 만드는 사람, 조화 만드는사람, 벽돌 제조공, 양철 제조공, 옷 만드는 사람, 양복쟁이, 목수둥이 바로 그들이다. 그내부의 시장을위해 또한 능력이 미치면 멀리 떨어져 있는 시장을 위해 일하는 아주 작은 중세의 도시를 상상해 보라. 인근 시장이란 우리가 좀전에 언급한 바 있는 농부들, 죽 안장 • 마구 • 칼 • 채찍…… 둥의 구매자들이다. 결국 우리는 95명의 수·공업자들 중에서 39명의 제련공(만일 그렇게 말할수 있다면)과 28 명의 피혀곡을 꼽게 된다. 초보적인 풀무가 있는 철공소는 우리의 어린 사철에 보았던 프랑스 촌락의 그것에 아주 가깝다. 두세 명의 접원들야 상접에서 주인을 돕고 있는데 그들은 일반적으로 아듣 또는 젊은 찬척 혹은 주인의 아내이다. 구매자는 이렇게 해서 거의 그들이 보는· 데서 만들어전 생산품을 사게 될 것이다. 한 순간 우리는 18세기에 또는 훨씬 멀리 17세기에 서구에서라면 우리 취향에 따라 어디라도 있게 되는 셈이다.

인근 시장과 병행하여 노새가 다니는 통로 밖에 있는, 또한 숫자가 많지 않은 철로선 밖에 있는, 밀려들어오고 있는 트러의 통로 밖에 있는 먼 시장(브라질 내부 률 의미하는)이 있다. 그 시장은 서쏙으로 치끄 치끄 Chique Chique 까지 , 봄 지 저 스 드 타파 Born Jesus de Lapa*의 순례지 까지 , 순례지 인 동시 에 시 골장인 싸움 프란시 스코 Sao Francisco 까지 뻗찬다. 7 월에는 바로 거기서 순례자들과 갖가지의 상품을 실온 노새들을 이끌고 온 미나스 벌아스의 수많은 상인들이 복적되게 된다. 그들은 팔고 되팔고 교환하며 다시 판다. 상인들에게 칼 또는 구두를 위탁한 주인은 가격에 대해서는 상인들과 충분히 견해를 같이 하지만 거래는 주인의 위험과 모험을 무릎쓰고 전개되어 간다. 죽 소매상인온 그가 돌아오게될 때 자신의 계산에 의해 주인에게 팔리지 않는 상품을 반환한다. 아마도 조금쯤은 과장한다면 우리는 시간적으로 아주 먼 꼬멘다 le Commenda 의 시초에 또한 상인 자본주의의 대두상태에 있는 셈이다. 돌아가는 형편의 지배자는 생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운반하고 판매하는 사람인 것이다. 쉽사리 상상할 수 있듯이 이 원시적인 거래가 침두한 지역은 새로운 교통수단의 대치에 의해 또한 새로운 상품의 유입(전자는 후자물 초래한다)에 의해 끊임없이 위협당하고 번화된다. 페르남부끄 Pernambouc** 라는 인근 주에서 만들어 진 구두가 이미 빌라 노바에 들어오고 있다. 25 년 전만 해도 미나스 벨아스에서 시작되는 이 내륙로는 고야츠 Goyaz 까지 또한 심지어 싸웅파울로까지 닿았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그것은 더이상 문제시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자양분울 주는 축소된 지역에서나마 미나스 벨아스는 옛날의 교환, 판매, 또는 구매 동을 모두 다 유지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미 나스 벨아스는 찬절한 고물상을 동해 그 금속을 얻는다. 죽 고찰 오래된 선로, 부수]전 자동차 엔진의 아연, 오래된 항아리의 구라… •• 동 그 상인들은 원시적인 니첼도금에 팔요하면서도 찰 지탱하지 못하는 금속까지 그 도시에 가쳐온다. 물론 바이아로부터 판으로 된 니첼을 가쳐오게 하는 편이 훨씬더 나울 것이다• 그령지만 어떻계 그 값을 지불할 수 있단 말인가? 상인들은 오늘날 이제논 더 이상 주조되지 않지만 비록 동용정지 상태입에도 불구하고 이 원시적인 행상에서 통용되고 있으며 , 봄 지처스 드 라파 Born Jesus de Lapa 로

* Bom Jesus de Lapa: 바이아주 Sao Francisco에 있는 도시로 순례지임.

** Pernambouc : 브라질 Nord-Est에 있는 주로 수도는 Recife임.

부터의 동냥물들 가운대 계속해서 많이 나오는 400 라이스 reis 의 오래된 니깬 조각들울 꿀어 모은다. 물물 교환이 성공을 거두면 또한 7월이 지 나면 그들은 미 나스로 가는 길에 오르게 된다.

운송자듄의 우선권이, 또한 자본가들의 사업가들의 우선권이 있게 된다. 자본가들의, 사업가들의 우선권은 어평게 부상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우리의 안내인이 단번에 대답할 수 없는 또는 그가 너무 빨리 다운 문제 이지 만 자본가들은 비록 그 수는 많지 않아도 충분히 두드러진 양상으로 촌재하고 있다. 금속부분에서는 자본가들의 우선권이 거의 없다. 죽 여기 수공업계에서는 2류의 물품들을 빨리 재조함으로써 문제를 스스로 풀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장장이 죠아웅 셀레스티노 Joao Celestino 는 그 접을 잘 알고 있다. 죽, 〈대장쟁이는 그것을 조종하는 데 있어서 자신의 눈 이의에는 가진 것이 없다〉라고 그가 언젠가 선언한 바 있다. 그렇지만 정확한 눈을 가진 우수한 장인이 어디에 소용된단 말인가? 〈오늘날의 생활은 우리에게 접잖은 종류의 일을 할 기회를 더이상 주지 않는다.〉 자유와 비참함이여!

가죽 부문에서는 다른 식으로 진행된다. 죽 낮은 입금에 고무되어 성과급 노동이 등장하였다(기이하게도 수공업자들온 거기서 자유와 독립의 조짐을 보며 정규 봉급은 그들을 노예로 만들 것이라고 여긴다). 동시에 가내 작업이 사실상, 새로운 작업장에서의 전문화가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제조업〉이 서서히 자리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16 세기에 또는 17세기에 있는 셈이다. 주인은 이를테면 쎄노 브라울리 오 Senhor Braulio 와 같이 자신이 직 접 팔게 될 선발, 센들 구두안장들을 만드는 다론 사람들로 하여금 〈일하도록 하게 하는〉 사람, 즉 사업가이다. 간단히 말해 그는 초기 자본주의 시기의 서구 전역에 걸쳐 존재했던 것과 같은 아주 옛날의 상인이다. 죽 그는 원료를 구입하고 급료를 지불하고 판매를 보장한다. 따라서 미나스 벨아스의 수공업자들은 그를 비호자로 생각한다. 나도 그 생각에 동의하는 바이지만 얼마나 오래 그는 여전히 그 상태로 있게 될까? 분업과 아주 낮은 급료의 작용에 의존하는 체계가 존속되는 한에는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체계는 그것보다 훨씬 강한 것에 맞닥뜨리게 된다. 즉, 더구나 기계들이 있게 된다. 미나스에는 그러한 것들이 없으며 또는 말하자면 없는 셈이다. 십지어 근처의 농부들, 죽 따바로

tabareus 들조차도 그들의 구두, 채 척 , 가죽으로 테 두리 가 된 칼 둥을 머이상 거기서 사지 않게 될 날이 울 것아다. 왜냐하면 너무 혹사당한 과거의 브라질과 오만한 오늘날의 브라질 사이에서의 갈등이 거의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구도시가 수많은 역경에서 버터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아주 비참하고 고행에 가까운 절약 덕분이다. 그러한 리듬에 따라 그 도시에서는 부유한 사람들은, 소위 부유한 사람들은 간신히 살아나가고 그 도시의 가난한 사람들은 정말로 가난한 사람들은 훨씬더 어렵게 살아간다. 모든사람에게 몹시 부러운 것으로 여겨지는 위치인 방따 venta 의 상접 주인의 지위에 의거하여 이 일반적인 평범함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식품이나 야채, 과일 원당 la rapadura 브랜디 la cachaca 따위의 판매상이자 대금업자――왜냐하면 모돈 것, 아니 거의 모든 것이 의상으로 판매되기 때문에―一인 식료 잡화상 주인은 하루종일 의자에 앉아 전 도시의 고객들이, 소문들이 모든 움직임 le mouvimento 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는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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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주의깊게 밝혀낸 생생한 기록들에 대하여, 이 이미지들에 대하여 우리가 과거에 대한 더할 나위없이 중요한 증거의 값어치를 고집스럽게 부여했던 접을 마빈 해리스가 용서해 줄까? 중세의 상점 주인의 〈소규모〉 자본주의를 혹은 팔요하다면, 그들과 동시대인들의 원격지 자본주의를 어떻게 해서 거기에서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단말인가? 죽, 우리가 한 걸음 한 걸음 뒤쫓아온 그 책의 아주 풍부한 부분인제 1 장에, 즉 바로 우리 눈앞에 그두가지가 다 있는셈이다. 그 전에 마빈 해리스는 민족지학적 연구의 일반적 들에 따라 전행해가고 있다. 즉 그는 그 입지에 대하여, 경제생활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또한 그는 항상 정확하고 생생한 여러 장들에서 인종, 계급, 자치 정부, 종교, 민중, 신앙 둥을 연결짓고 우리로 하여금 그것들에 개입하도록 만드는데 그의 끊임없는 바람은 자신에게 그것이 가능할 때마다 도시와 그 인근의 작은 촌락들간의 조화 또는 부조화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이 모든 민족지학적 연구의 중요

한 연결 마더들 중의 하나라는 느낌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선험적으로〉 아주 전통적인 방식울 한번 더 적용해본 아관례적인 들에 대해서는 전혀 동조하지 않는다고 내가 말할 수 있을까? 소도시는 실제로 좋은 관찰터일까? 두말할 나위없이 그렇다. 즉 민족지학적 연구에 의해 너무 자주 실시된 규칙들에 따라 그 자체를 위해서만 또한 그 자체내에서만 연구되지 않고 시간과 공간이라는 다양한 비교톨로 끌어가야만 하논 증거로써 연구되기만 한다면 소도시는 훌륭한 관찰터인 것이다. 미나스 벨아스에 관한 것에 있어서는 그것의 과거를, 그 지역의 과거를 전체 속에서 파악된 브라질의 과거를 문제삼아야만 할 것이다. 그것의 실제 환경울 문제삼아야만 할 것이며 여행자가 이 책의 서두에서 한 것처럼 빌라 노바에서 멈추어 야만 할 것 이 며 , 또한 포르미 가 Formiga 까지 , 그루타 Gruta 까지 씬코라 Sincora 까지 밀고 나아가서 거 기 서 한가로이 머 물면서 바이 아주 전체에 대하여, 그 주의 도시들, 그 주의 촌락둘·…·에 대하여 탐문해야만 했었을 것이다. 물론 그 다음에는 훨씬더 멀리 브라질에까지, 아마도 그 이상으로 ••• … 까지 나아가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훨씬더 명확하게 설명해보자• 저자는 그 책의 첫 페이지부터 미나스 벨아스의 예의적인 특칭들을, 죽 득히 그 규모와 또한 그 빈곤상태와 찰 어울리지 않는 도시적인 의관 때문에 그 도시가 처음 방문한 사람에게 불러일으키는 놀라움을 우리에게 감추지 않는다• 그 다음부터 저자의 진행은 단순해질 것이다. 죽 미나스 벨아스의 생활율 그 모든 측면에서 또한 실제의 세부사실들 속에서 연구한 다음 사회학자들 또는 민족지학자들이 규정한 도시 생활의 기준과의 비교를 거쳐 미나스는 근본적으로 충분히 〈도시〉라고 결론짓는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과학적인 관접에서 내게 있어서 중요한 문제는 다론 식으로 제기된다. 즉 나는 왜 이 경우를 비정상이라고 하게 될까? 또한 어떤 척도에서 그것은 비정상일까? 그것은 유일 무이하고 예의적인 경우일까? 더욱이 그것은 상당히 유사한 상황에서 반복되게 될까? 어디서, 어떻게 ? 결론은 이 문제들을 거의 다루고 있지 않다는 접이며 다루고 있는 이 책의 유일한 페이지에서조차도 내 생각에는 회피적이고 부정확하게 다뤄지고 있다.

나로서는 모든 것이 미나스 벨아스 시에서 절대적으로 독칭적인 것온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나는 그 비정상성이 저자를 따라 내가 묘사한 바 있는 그 사회-경제적 구조에 귀착된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한마디로 처자의 총기있는 문제제기가 우리에게 제시해주는 것을 훨씬 넘어서서 내가 개인적으로 처자 대신에 나의 온갖 주의를 쏟은 두드러진 사항은 미나스 벨아스가금광의 파국 이후에도 살아남았으며 알다시피 보잘것없는 소득과· 평범한 인구를 가지고 옛날 도시로서 살아남았다는 그 자체로 놀라운 사실이다. 그러한 잔존은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옛 매카니즘 그것만으로도 거의 내 마음을 끌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들 자체로써 그것들을 보고 또 보고 분석했을 것이며 또한 유럽사가 우리에게 제시해 준 중세적인 또는 半근대적인 메카니즘에 비추어 그것들을 살펴보았을 것이다. 나는 이 연대기적인 輯寫를 측정했을 것이다. 나라면 우리 안내인이 한 것(주민 1 인당 총소득)보다 훨씬 더 거래 지역을 계산하고 생각하고 도표를 그리고 더 정밀한 방식으로 그것을 다루었을 것이다.

도시의 생촌에 있어서는 그 도시가 그 기록 보관소를 가지고 있으므로 나는 그것을 면밀히 살펴보았을 것이다. 나는 출발 지점을 충분히 드러내기 위해 금광 시절에 그 도시가 그 광부들과 그 수공업자들과 그 상접 주인들과 그 지주들과 그 흑인 노예들과 그 운송인들과 더불어 정말로 어떠하였는지를 파악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마빈 해리스는 그 도시가 I9세기에는 행정 중십지로서, 즉, 〈관리〉둘의 봉급이 금가루를 대체함으로써 살아남았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또한 그 관할지가 이 새로운 생활을 허용해야만 하며 그 관할지에는 부와 충분한 인구가 있어야만 하고 모든 교환 체계-오늘날 끊임없이 소멸할 위협을 받고 있는 것――가 유지되면서, 미나스 벨아스의 도시 작용을 떠 받쳐 주어 야만 한다. 부수적 인 질문을 제 기 해 보자면――왜냐면 I9세기에 새로운 부가 있었으므로-그 당시에 미나스의 새로운 부는 어느 영역으로부터 나왔을까?

1947년에 나는 거대한 브라질내의 전혀 다른 지역에서 마빈 해리스의 여행보다는 덜 시적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시사적인 여행을 했다• 산토스에서 그리 멀지 않는 싸웅 파울로 주의 대서양 연안에 있논 어바두바 Ubatuba 에서 1840년경 그 도시의 찬란한 시대를 식별해낼 수 있었다. 산토스가 그 당시에 아주 작은 소도시에 불과했던 싸

웅 파울 로와 연결 되어 있었 던 것처럼 어바두바는 노새를 탄 대상들의 활 발 한 교역 에 의해 타우 바 데 Taubate 와 연컬 되어 있었다 . 싸웅파울 로-산토스와 마찬가지 로 타우바테 ――어 바 투- 바는 해 안 과 내 륙 사이의, 거대 집산 시장과 그것 을- 전 세계에 걸 쳐 수출하는 항구 사이의 초 록의 장벽 인 험난 한 쎄라 도 마르 Serra do Mar*를 넘어선 결합, 교류이다. 이윽고 일어난 경 쟁에서 싸웅 파울로一서J:토스가 승리 를- 거두어 어바투바와 타우바테 사이에 놓아전 철도에서 그곳에만이 유일하게 정류장이 세워 졌을 정도가 되었다. 오늘날에도, 아무도 모르는 방 식 으로 노새가 다니기에 알맞는 옛길을 추적하는, 즉 두 도시 사이를 움 직여간 혼적을 추적하는 무훈을 세운 자동차에 의해 타우바테에서 어바투바까지의 연결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출발지인 타우바테에는 산업에 의해 새로운 생활이 부여되었는데 그 종착지인 어바투바는 비참한 상태에 있으며 져도의 식물 재배로 연명해 가고 있다. 이로 인해서, 벽들의 톰 사이로 내민 종려나무로 인해서 손괴되고 버려진 그렇지만 인상적인 형태의 그 도시의 낡은 고층 집들 les Sobrados 과 어 느 부유한 사람의 묘비 명 이 있 는 묘지 들만이 그· 작온 항구의 엣 영화를 말해주고 있다. 어바투바라는 도시는 살아남지 않았다. 그것은 까보끌로스 Caboclos** 들, 죽 농민들의 촌락이다. 나논 거기에서 프랑스인 기술자의 딸을 만났는데 그녀는 문맹이었고 모국어 는 더 이 상 한마디 도 모르는 상태 였으며 한 까보끌로 Caboclo와 이미결혼했는데 그녀와 모든 면에서 그럴 듯하게 어울렀다. 그렇지만 미나스 벨아스보다 훨씬 침체된 이 지 방에서 은둔하고 있는 싸웅 파울로 법대의 자격증을 갖춘 개명된 치안 판사도 있다. 저녁 내내 나는 그의 곁에서 비올라웅 violao(7 현을 가전 기타의 일종인) 연주자를 동반한 인기가수의 노래를 들었다. 모든 민요가 여기서 다시 주인이 되었으며 죽, 민요만이 자리를 잡았으며 옛날의 수법을 따라 즉흥적으로 불리위전 노래는 전기불의 도래에 대한, 즉, 쉐가다 다 뒤쯔Chegada da Luz 에 대 한 서 사시 의 내 용을 담고 있 었다. 죽 산으로부터 이어저 내려와 마울을 에위싼 숲 전역에 걷쳐 전선과 전봇대를 위하여 참호들 une picada 을 파야만 했지 않았을까 ? 죽 그 숲은 울창

* Serra do Mar: 브라질의 산백으로 그 급격 한 경사면은 Santa Catarina 주부터의 브라질 연안의 배면을 이우고 있옵.

** Caboclos: 원래는 인디언과 포르두갈인의 혼혈인둘을 뜻하는데 18세기에는 도시의 포루투갈인과 분립되는 브라질인의 혼혈인 일반을 뜻합.

한 숲이지만 처녀림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안내인인 판사가 우리에게 언급한 대로 그 굴의 여기처기서 커피 나무의 잔재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커피재배는 도시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사라 졌 다. 왜냐하면 그 도시에서는 그 도시를 근근히 살아가게 해줄 수도 있는 주변 관할지도, 적응할 수 있게 해주는 그 자체의 에너지도 찾아볼 수 없 기 때 문이 다. 미 나스 벨 아스는 노르데 스뜨 Nordcste 의 완만한 생활에 따르고 있는 주변 지역들 중에서 보다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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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핵심적인 문제와 비교해 볼 때 나머지, 죽 마빈 해리스가 우라에게 제시하는 누번째의 경관은 내가 보기에는 그리 대단한 관십거리가 아닌 것 같다. 사실상 나는 그것의 독창성에 대해서도 의십~ 품는 바이다. 신앙, 자치 정부, 정치적 열정 둥 무엇이 문제되전 간에 저자가 강조하는 모든 종류의 뉘앙스에도 불구하고 미나스는 내가 보기에 브라질의 일반적인 흐름에 따라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마반 해리스가 흑인 문제를 제시하는 방식 때문에 곤혹스러워진다. 흑인 문제가 그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제시한 만큼 그렇게 절실한 것일까? 대체로 일반적인 공식에 따르면 〈부유한 백인들〉이 한편에 있고 〈가난한 흑인들〉이 다른 편에 있는데, 아다시피, 전혀 부자가 아닌 백인들과 부유하고 교육받은 흑인들이 있으며 거기서부터 아주 특이한 계층 피라미드가 나오는데 즉, 계층이 수평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왜곡된 형태를 이루게 된다. 더구나 십지어 그 인근지역에서조차도 그런 식으로이루어져 있지 않는가? 인종간, 계충간 간장은 특히 가난한 백인들의 수준에서 그만큼 더 철실할 것이타는 점에 나는 동의하는 바이다. 죽 가난한 백인들의 아내는 손수나무를 하러 가거나 또는 물을 길르러 가거나 가까운 강에 빨래를` 하러 가는데 그것들만으로도 충분히 비참함의 근거가 된다. 그러한` 갇둥은 백인의 집에 초대받았지만 동동한 자격으로서가 아닐 때, 겁먹고 불쾌한 채로 접찮올 빼면서 너무 접찮을 빼면서 구석자리에 있논 부유한 흑인의 수준에서도 훨씬더 철실할 것이다. 그렇지만, 브라질문명의 를에서 아주 비정상적인 그 독특한 인종차별을 딱딱하고

페쇄된 생활이라는 이유로 미나스 벨아스에 전가해야만 할까?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피부 빛깔이 다른 사람들 사이의 찬밀함이 지배하고 있고. 이 미 오래 전에 길베 르도- 프레 이 어 Gilber to Freyre 는 그들간의 성적인 찬교관계를 강조한 바 있다. 분명히 그 소도시의 아주 너그러운 인종차별은 만일 그것이 존재한다고 해도 브라질 과거의 여사적 계보에 접맥되는 것 같지는 않다. 나라면 그 접에 대해 좀더 조명해 보고싶었을 것이라는접을 고백하는 바이다. 클럽들의 경쟁에 관한, 군악대에 관한, 피에스타 fiesta* 에서의 경매에 관한 연구들은, 또한 그 도시 의 유일한 흑인 고문관인 발데 마르 Waldemar 의 한 순간 돌출된 초상화는 나에게 철반 정도의 충족감만을 줄 분이다. 어떠한 비교 사항도 참조할 수 없는 마당에 무엇을 생 각하랴 ! 같은 문제들이 인근 지역에서는 죽 그루타, 포르미가, 빌라 노바 둥의 인근 도시들에서는 어떻게 제기될까? 미나스 벨아스에서의 계층간, 인종간 긴장이 유다르고 독별한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즉, 만일 그 도시가 모든 지방의 거대한 흐름과 구분된다면 누구의 탓인가, 흑인과 백인 또는 그 둘다 중에 누구의 탓일까? 그렇지만, 미나스벨아스의 혹인들이 더구나 그 독창성의 생생한 원천인 아프리카의 예찬과 더불어 완전히 무너졌다는 점을 생각해 보라. 이 단순한 사실이 엄청난 의미를 떤다…… 종교에 관한 것에 있어서도 또다시 마찬가지의 언급을 반대편에서 할 수 있다. 미나스 벨아스의 가톨릭교는 마빈 해리스에게는 형식적이고 의적이며 아주 공허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분명히 그가 옳다. 그렇지만 그가 그것으로부터 끌어낸 및 가지 결론은 분명히 툴렀다. 나는 유럽의 다양한 가톨릭교와의 접촉이 즉 예를 들면 프랑스인에게는 모두 형식적이고 의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이탈리아, 에스파니아, 포르두갈 둥의 가톨릭교와의 접촉이 그에게 있어서 결여된 것이 아닌지 염려스럽다. 바로 그러한보다 순수한 형태와의 말하자면, 기독교적인 것이 보다 없는 형태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미나스의 가톨릭교는 놀라움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또한 그 당시에 브라질 전체의 가돌릭교논 어떠했는가 ! 우리의 연구자가 서로 다론 시기의 책 속에서, 〈믿을만한 이야기들〉에서 찾아본 교권반대주의가 대단한 것을 입증해내지는 못하고 있다. 죽 솔직한 언사나 약간 추잡한 이야기를 개의치 않은 것은 바로 이 초기 기독교의 전통 속에서인 것

* fiesta: 활기찬 집단적 축제.

이다. 사실상 나는 부인할 수 없는 오유와 무지, 미적지근한 대도 등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그 낡은 도시에 심 어 졌 다는 점 에 대하여, 즉 기독교가 문명의 본절적인 구성요소가 되고 있는 브라질의 다른 지역에서처럼 그 낡은 도시에 충분히 자리를 잡았다는 접에 대하여 놀라웅을 금치 못하는 바이다. 나는 미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사항 을 말할 것이다. 죽 현대 브라질은 수년내로 마신을 없에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미신들은 미나스 벨아스의 소도십부나 그 인근의 농촌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주 대도시의 심장부에서도 살아 있다.

그러나 우리의 비판을 멈춰보자. 그러한 비판은 결국 우리가 그 책을 읽고난 후에 지니는 분명한 즐거움을 연장시켜주는 것이다. 마빈 해리스가 그 책을 다르게 방향지웠더라면 나는 분명히 좋아했을 것이다. 죽 그가 두세 번의 재개 기회에 눈앞에서 관찰하고 있는 보잘것없는 사람들의 과거와 대면하기 위해 그 자신이 방향을 돌릴줄 알았더라면, 또한 그가 이 몇몇 인물들의 독창적 증언 __ _미나스 벨아스.의 득이성 __ -과 브라질 내부의 일상생활의 평범한 중거를 구별할 수 있었더라면 더 좋아했을 것이다.그렇지만, 만일 내가 그접을 강하게 말한다면 , 그것은 그 섬세함과지성,

성실성에 대해 전혀 의십할 바 없는 작가에 대해서라기보다는직접적인 연구의 가치를 너무 과선하고 모든 실제 연구에 획일적인 처리를 부과하고 어떤 경우에나 제시되고 제기되어야만 하는 특수하고 명백한 시간적 연장을 연구하지 않는 인류학에 대해서이다. 방법상의 당연한 미흡성을 입증해내려 하는 것은――왜냐하면 저자가 그접울 문제삼지 않기 때문에――또한 그 주제가 무엇이건 그에 요구되는 특수한 전략이 무엇이전간에 뤼씨앙 페브르가 말한 바 있는 신뢰성있게 적용되는 〈걸작〉의 규칙들을, 그 위험들을 강조하는 것은 오`로지 이와같이 훌풍한 책에 대해서이다. 얼마나 유감스러운 일인가!7)

7) 이 책이 당연히 갖추어야할 삽화를 갖추지 않았다는 접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단 한 장의 사진도 없다니!

문명사 : 과거는 현재를 설명한다*

이 장에서 논의되는 문제는 아주 이채롭다. 18 세기부터, 죽 볼테르의 『풍속론 l' Essai sur les moeurs』 (1756) 으로부터 오늘날에 이 르기 까지 발달되어온 문명사가 현재시간, 또한 따라서 미래 시간에 대해 __ 왜냐하면, 오늘날의 시간은 미래 시간과 연결되지 않고서는 거의 이해될 수 없기 때문에 __ ·파악하는 데 빛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이 러한 계보의 학자들(역사학자들, 그들에게 있어서 역사학이란 과거와 현재 둘다에 대한, 즉 〈되어온 것〉과 〈되어갈 것〉 둘다에 대한 파악을, 어제건 오늘이건 매번의 역사적 시간 속에서 지속되고 있고, 지속되어 온, 기운차게 지속될 것과 참정적이고 사실상 순간적 인 것 사이의 구별을 의미한다) 이라면 기꺼이 현재를 파악하기 위해 동원되어야만 하는 것은 全역사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전체 직무 중에서 문명사를 정확하게 나타내는 것온 무엇일까? 그것은 사실상 독자적인 영역일까? 라파엘 알타미라

* Encyclopedie francaise tome XX, Le Monde en devenir(Histoire, eoolution, Prospective), Paris, Larousse dep. general, 1959. 제 5장.

Rafa el Altamira는 주저 하지 않고, 〈문명 울 말하는 것 은 여 사를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 가 된다〉라고 주장한다. 기 조 Guizot 는 이 미 〈이 러 한 (문명의) 역사는 모든 것들 중에 가장 거대하다. ……그것은 다른 모돈 것들을 포함한다〉라고 쓴 바 있다.

분명히 거기서는 우리 직무 중의 거대한, 그렇지만 쉽사리 범위를 확정지울 수 없으며, 그 내용이 해석에 따라, 세기에 따라, 나라에 따라, 역사학자나 수필가에 따라 변화했고 계속 변화될 그러한 부문이 문제시된다. 모돈 규정이 어렵고 위험스러운 것으로 판명된다.

우선, 인간성 전체를 문제삼은 개념인 문명 일반과 시간과 공간 속에 흩어져 있는 문명들이 있다. 더욱이 문명이라는 단어는 결코 혼자서는 여행하지 않는다. 그것은 반드시 문화라는 단어를 동반하는데. 문화가 단지 문명의 자매어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또 문화 일반과 문화들이 있다는 접을 덧붙여보자. 문화적이라는 형용사에 대해서 우리는 오래 전부터, 문화(어원적으로 그럴 만하기 때문에)의 영역 에서나 특별한 형용사가 없는 문명의 영역에서만큼 모호한 용도로 남용했다. 하나의 문명은 문화적 현상들을, 문화적 특칭둘을 합한 전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거기에는 상당수의 미묘한 차이들 및 혼돈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중십이 되는 단어가 무엇이건 간에, 이 특정의 역사가 문명이건 문화이건, 문명들이건 문화들이건, 그것은 우선 구체적인 역사둘, 죽 비록 드물게 연구되긴 하지만, 기호의 역사, 요리법의 역사는 물론이고, 언어의 역사, 문학사, 과학사, 예술사, 법의 역사, 제도사, 감수성의 역사, 풍습의 역사, 기술사, 미신의 역사, 신앙의 역사, 종교사(십지어 종교적 감성의 역사), 일상생활의 역사·… •• 의 행렬, 아니오히려 그것들의 합주이다. 이 하위 부문들(내가 지나쳐버린 것들도) 각각은 반드시 일반사의 그것은 아닌, 그나름의 규칙들을, 목표들을, 그 내부의 언어를, 특정의 움칙임을 구비하고 어느 정도 발달시켰다. 어려움은 그 모든 것을 합치시키는 것이다. 나는 꼴레쥬 드 프랑스 College de France 에서 1 년 동안 유럽의 16세 기의 과학 • 기술의 역사와 일반사의 다른 부문들 사이의 관계를 찾고자한 바 있었지만 그것은 허사였다. 그렇지만, 이들 역사들이 같은 리듬으로 진행되건 아니건 간에, 그것으로 그 역사들이 서로 무관하다고 말할 만하지는 않다. 레온 브된슈빅 Leon Brunschwicg과 에띠엔느 질송 Etienne Gilson*

에 반대하여, 죽, 자 율 적인 사상사에 반대하여, 뤼씨앙 페브르는 자의적이 아닌 그 어느 것으로도 분리시킬 수 없는, 생활 전체에 관십을 두는 일반사의 권리를 적절한 제명하에 주장하였다. 그러나 통일성을 구축하는 것, 그것은 끊임없이 불가능한 일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부문들 중의 하나에만 걸려 있지 않고 그 전체 속에 걸려 있는 문명사를 문제삼고 있을 경우에는 주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단 그것이 일반사로부터, 또는 혼히 말하듯, 전체사로부터 어떻게 분리될 수 있는지를 잘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만일 문명사가 일반적으로 단순화된 관접으로 확정된다면, 그것은 언제나 역사(Histoire: 대문자로 시작된)에 대한 해석과 지배의 시도인 채로 남기 때문이다. 그것은 실재의 특정 측면들을, 독정의 진실들을 장면의 전면에 내세우지만, 이 전실들과 실재들은 전체에 대한 설명으로 여겨질만하다. 이렇게 해서 매번 서로 다론 차원에서 비록 성급하긴 하지만 충분히 깊이 있고 따라서 모든 측면에서 팔연적으로 파악된 전체 덕사가, 또한 사회사나 경제사 동과 같은 전통적 역사도 문제시되게 된다. 또한 심지어 만일 문명사가 오늘날 도전받고 있는 일종의 우월성을 아주 오랫동안 지녀왔다면, 그렇다면 그것이 정치적 연대기의 불모성에 갇혀 있는 전통적 역사를 넘어서고 앙리 베르의 말처럼 그것을 ·〈확장하여, 거기에 정치적인 것이의의 사건들과 공식적인 안물 이의의 행위자들도 들어가게〉 할, 유일한 가능성을 제시할 것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새롭고 보다 확실한 길을 통해 보편적 역사의, 일반적인 설명의 지평에 도달할 가능성울 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문화사 Kulturgeschichte 를 옹호하는 칼 람프레 히트 Karl Lamprecht**의 지난날의 아주 생생한 투쟁에 그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이다. 아주 최근에 역사학 Histoire 은 사회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의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기 때문에, 문명에 대한 연구가 그것이 충분히 근거있게 고려되어야 할 예의적인 영역이라고 해도, 이제 더이상 그렇게 공격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없게 되었다.

* Etienne Gilson: 프랑스의 철학자 (1884~1978). 데카르트 사상에 입각하여 중세철학에 새로운 관정 개진. Lille (1913), Strasbourg (1919~1921), Sorbonne 와 Ecole pratique des haut es etudes (1922~32). College de France(1932-50) 교수.

** Karl Lamprecht: 독일의 역사학자(1856~1915). 겅계사의 거장 중의 한 사람. 저서로는 La Vie econmique allemande au Moyen Age(1886), Histoire d'Allemagne(1891-1901). 등이 있음.

그렇지만, 모든 것을 하면서 이 복잡하 고 아직도 불확실한 역사를 현재에 투영한다는 것은, 죽 그것 을 전혀 익숙지 않은 위치로, 오 늘날 소위 말하는 〈관망하는〉 위치로 데려가는 것은 , 길고도 어려 운 논쟁을 여는 셈이다. 이 장에서는 그 논쟁을 요약하거나 그것을 막으려는 것이 아니라 기껏해야 그것의 본질적인 사항들을 끌 어내려는 것분 이다.

더욱이 몇 가지 주의를 해두어야 할 것아다. 적어도 누 가지는주의해야 한다. 첫째 , 어휘에 대한 연구에 의존해야할 것 이다( 앙리 베르의 〈종합연구소 Centre de Synthese〉의 전통에 따라). 우리 의 주의 를 공고히 하기도 하고 분산시키기도 하는 이 단어들은 그 기원에서 파악되어야하며, 그 맥락에 던쳐 넣 어 보아서 그것들이 전정한 찬구인지 혹은, 나쁜 천구인지를 파악해야만 한다. 두번째 주의사항으로 문화 또는 문명이라는 어휘 아래, 솔직히 말하여 〈서로 연관된〉 요소들 을, 가치들울 특정 세력들의 집단화를, 특정 묶음을 가정해야만 할까? 여기서 의 규정은 명확하고 철대적이어야만 한다. 만일 우리가 가담하고 있는 영역에서 어떤 특정의 체계가 없다면, 모든 것에 대해 접근가능하고 선행적인 관찰이 〈과학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면, 만일 우리가 결정적으로 역사 Histoire 라는 형이상학의 손아귀 밖에 있지 않다면, 그렇다면 분명 우리의 시도는 미리 유죄 선고를 받는 셈 이다.

I 문명과 문화

이 용어들의 기원과 운명

우선 우리는 이렇게 방대한 영역을 지배하고 파악하는 데 있어 단 두 개의 단어, 죽 우리가 곧 알게 될 민첩하고 수상쩍온두 천구인 두 단어 분이 라는 접 에 놀란다(.:z. 단어 들의 복수로의 변형 은 .:z. 숫자가 아니 라 그 의미를 확장시킬 분이 다). 1900 년경 독일로부터 우리나라에 또는 그밖의 지역에 들어온 〈문화적〉이라는 단어로 말하자면, 그것은 읽고 쓰는 데 편리함을 덧붙여주었을 분 그 이상은 전혀 없다. 흔히 두 단어 중 하나만이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 한, 두 가지 단어가 있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이렇게 해서 1800 년에 이르기까지논 문화는 거의 중시되지 않게 되

었다. 그 후로 그 두 단어 사이에 겅쟁이 일어난다. 더욱이 그 두 단·어들은 혼동되거나, 그중 하냐가 다른 하나에 비해 더 선호되기에 이르렀으며, 이는 만일 내가 툴리지 않다면, 문명 또는 문화의 사상에 대한 일원적 개념을 재정립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동일을 향한~ 이러한 추세가 원칙은 아니다. 그 두 단어들 사이의 경쟁은 접접 더 가열되고, 그 경쟁은 필연적으로 분할에 이른다. 그래서 이 거대한왕국의 몽일성은 무너지고, 대규모의 문제들의 통합성은 나누어졌으.며, 그로부터 사상들의 그리고 오류들의 음험한 전두가 시작되었다. 간단히 말해서, 비목 이 논쟁들이 거기에 충분한 빛을 가져오기에는· 미흡하지만, 일견 지겨워 보이는 이 단어들의 다툼은 우리를 다시금` 논의의 핵십으로 이끌어 간다.

문화와 문명은프랑스에서 거의 같은시기에 나타난다. 이미 생겨난지 가 오래 된(시 세 로가 이 미 cultura mentis 에 대 해 언급한 바 있다) 문화는도 18 세기 중반 무렵에야 비로소 지적 문화라는 특정한 의미를 실질적으로띠게 되었다. 우리가 알기로는 문명은 l766 년에 출판된 한 책에서 최초로 나타났다. 물론 그것은 훨씬 일찍 사용된 바 있다. 여하튼 그것은 16 세기와 17 세기부터 발견되는 〈문명화하다 civiliser)는 동사와 〈문명화된 civilise〉이 라는 분사보다 훨 씬 뒤 에 나타났다. 〈문명 civilisation>·이라는 명사를 잘 창안하고 제조해야만 했다. 그것이 동장하면서부터 그것은 지적, 기술적, 도덕적, 사회적 전보에 대한 세속적 이상을 지칭했다. 문명은 〈광명〉이다. 〈문명이 지상에 퍼져나갈수록 전쟁과 정복, 노예제도, 비참함 따위가 사라침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꽁도르쎄도 1787 년에 예언한 바 있다. 이 러한 상황에서 ,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예절 바르고, 훌음하며 〈공손한〉 사회가 존재하지 않고서 그것이 상정될 수는 거의 없다. 그것과 대립되는 것으로 〈야만상태〉가 있다. 이 야만상태에 대해 문명은 어렵지만 필연적인 승리를 확정짓는다.여.하튼 야만상태로부터 문명에 이르는 것은 거창한 이행이다. 1776 년에 마블리 Mably 는 자신의 찬구들 중의 한 폴란드인 백 작에 게 〈지 난 섀기 동안 스웨덴이 구스타프 아돌프의 동치 아래 야만상태에서 벗어나는 동안 당신은 거대한 위험에 봉착했다〉라고 편지를 쓴 바 있다. 마·찬가지로 그는 또한 〈표도르 1 세는 자신의 조국(러시아)을 그것이 빠져 있었던 극단적인 야만상태로부터 구출해내었다〉라고 쓴 바 있다. 그러나 문명이라는 단어가 사제의 펜에서 ·또한 대구적으로 나타나자

않았다는 접을 주목해 본다. 그 단어의 운명은 이재 시작되게 되었을분이다.

그 단어는 찬란하게 될 것이며 유용하다기보다는 현란할 것이라는 점은 적어도 용감하고도 설득력 있는 책(1958) 에서의 죠셉 채피 Joseph Chappey의 견해이다. 반세기 동안 〈문명〉은 분명히 말과 글에서 거대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전적으로 과학적인 성공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 당시에 그 단어의 중요성을 감지하지 못했다〉고 죠셉 채퍼는 썼다• 우리의 비평가를 만족시키기 위해, 모든 새로 출발하는 인간과 학들은 새로운 단어와 그 단어가 가져다 주는 막대한 이득을 이용하기 시작해야만 했다. 그런 일은 어느분야에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인간과학들 역시 그 자신들을 탐구하는 유아상대에 있었다. 그 단어에 최초의 군형을 부여해 주었던 이 낙관적이고 〈공손한〉 사회는 변혁과 혁명들로 인해 너무 빨리 사라졌으며, 그 변혀과 혁명들로 인해, 혼히 말하듯, 18 세기는 극적으로 19세기에 접목되게 되었다. 아마 절호의 기회가 사라쳐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여하돈 충분한 부침을 겪고 난 1850 년 경에 문명(〈문화〉도마찬가지로)온 단수에서 복수로 변화된다. 일반적인 것에 대한 독수한 것의 아러한 승리는 19세기의 움직임에 아주 잘 들어 맞는다• 그렇지만 그 자체로 다론 사건들과, 다론 변화들을 반영하는 얼마나 중요한 사건인가 ! 복수로서의 문명들 혹은 문화들은 하나의 이상으로, 아니 오히려 일반적 이상으로규정될하나의 문명에 대한명백한포기이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그 단어가 처음 출발시에 함축했던 지적, 도덕적, 사회적, 보편적 특질들을 등한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인간의 모든 경험을· 공평하게 간주하려는 것, 죽 유럽의 경험을 다론 대륙둘의 겅험과 마찬가지로 여기려는 것이다.

〈문명이라는거대한제국으로부터 자치적인 지방으로의〉(위씨앙 페브로)분할에 대하여 1850년 이전부터 여행자들과 지리학자들, 인류학자들이 적지않게 기여하였다• 유럽은세계를발견하고또발견했으며, 그에 적응해야만 한다. 그 수준이 어떠하돈 인간은 인간이고문명은문명이다. 이렇게해서 〈장소에따론〉문명의다양화가일어났으며, 전문가들에 의해, 터무니없을 정도로 나누어전 역사적 시간속에서 시대의 〈악의에 찬〉 문명의 다양화가 이루어졌다.1) 이런 식으로 시간과 공간의

1) Joseph Chappey, p. 370,

각주의 형식 에 맞춘 참조사항은 간략하게 줄여졌다. 이 논문의 끌에 있는 참고문헌란은 인용된 각 저자의 이름에 따른 완전한 참조사항을 제공한다.

이중의 방향으로 문명의 파편화가 일어난다. 볼테르와 꽁도르쎄의 시대였다면 사람들은 에스키모의 문화에 대해, 혹은 더 나아가 알프레드 메 트로 Alfred Metraux 의 훌륭한 논문에 서 이 루어 전 것 처 럼 브라질의 인더언인 두피-가라니 Tupi - Guaranis* 의 문명에 대해 거론하였을까? 그렇지만 볼테르는 그 단어를 거론하지 않고 그의 『루이 14 세의 세 기 Sitcle de Louis XIV』(1751) 에서 일종의 〈시 대 의 문명 〉에 대해 거론한 최초의 인물이다. 19세기에 의기양양했던 〈복수의 문명〉은분명히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십성의, 새로운 사고의 조짐이다.

대략 I850 년경에 나타난 이 승리는 프랑스에서만 두드러진 것이 아니라, 전 유럽에 걸쳐 현저하였다. 다른 많은 것들과 마찬가지로이 핵십적인 단어들이 사실상 끊임 없이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한~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한 학자로부터 다론학자에게로흘러갔다는 접울 잊지 말자. 그 단어들을 공처럼 주고 받지만 그렇지만 그 공이 되돌아울 때 출발 때와 완전히 같게 되는 적은 결코 없다• 이렇게 해서 독일一一I9세기 전반기의 찬란할 만하고, 찬란을 받은 바 있는 독일一로부터 되돌아울 때, 문화는 새로운 의미와 특권을 떤 채 프랑스에 도달하였다. 곧바로 이 겸허한 두번째 용어는 서구의 모든 사상에서 주도적인 단어가 되거나 되려 한다• 독일어로 〈문화〉는 해로더.로부터 십지어 모든 사회적 맥락으로부터 자발적으로 분리된 지적 •과학적 전보를 지칭한다. 독일어로 〈문명〉은 일반적으로 단지 인간 생활의 물질적 측면만을 의미한다. 독일어는 한 단어를 격하시키고 나머지다른 단어를 격상시킨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당 선언 Manifeste du qarti communiste」(1848) 에서 , 〈오늘날 사회 에는 지나찬 문명, 〔말하자면〕, 지나친 생존수단, 지나찬 상업 둥이 난무한다〉라고 말했다.

문명과 문화에 대한 이러한 입장은 독일인의 사상 가운데서 끈질긴 방식 으로 유지 되 었다. 그것은 혼히 말하듯2) (1) 정 신과 자연 (Geist 와Natur) 사이에 본래부터 익숙한 이분법에 상응한다. 이와 마찬가지의 노선에서 페르디난트 되니스 Ferdinand Tonnies (1922) 또는 알프레드

* Tupi -Guarani-푸피어와 가라니어들 한데 묶어 남아메리카 인디언의 어법을쓰는종족.

2) Phillip Bagby, p. 160.

베버 Alfred Weber (1935) 둥은 또한 문명 이 라는 이 름 아래 실용적 안 또는 심지어 지저인 지식의 총체를, 간단히 말해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에 영향을 미치게 해주는 모돈 물질적 수단의 총체를 파악해내고 있다. 반대로 문화에서는 그들은 단지 가치들, 이상들, 규범적인 원칙들을 파악해낼 분이다. 토마스 만 Thomas Mann 에게 있어서, 〈문화는 전정한 정신성에 해당하는 반면, 문명은 기계화를 의미한다〉.3) 따라서 독일의 한 역사학자는 4) 1951 년에 특칭적인 방식으로 〈오늘날 문명이 문화를 파괴하지 않으며, 또한 기술이 인간을 그렇게 하지 않는 다는 접을 이해하는 것이 인간의 의무이다〉라고 쓰고 있다. 그 이상 명확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십지어 독일에서조차 이 용법이 유통되고 있는 유일한 용법 인 것은 아니 었다. 1918~1922 년에 오스발트 스펭 글러 Oswald Spengler 는 일상적 관계 를 약간 변형 시 켰다. 그는 문화 속에서 모든 문명의 시작을, 열렬한 창조를, 비옥한 봄을 본다. 반대로 문명은 만추이며, 반복, 쓸모없는 메카니즘, 피상적인 거창함, 경화중등이다. 스펭글러에게 있어서는그가부정하지 않고 있는 비국적인 위협과 구체적인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서구가 문명의 단계에 말하자면 살아 있는 죽음의 단계 에 도달했다는 단순한 사실 때 문에 서구의 〈몰락〉이 일어난 것이다. 독일인 역사학자인 쿤 G. Kuhn(1958) 이대침입 말엽에 독일 농부들이 늙은 로마에 대해 거둔 승리를 보여주면서 그 자체로는 대수롭지 않지만, 그의 펜 아래서 자연스럽게 훌러나온 최근의 단계가 설명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이다. 그것은 〈무사에 대한 농민의, 도시에 대한 농촌의, 문명에 대한 문화의 승리이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I848 년과 낭만주의로부터 비롯된 독일인들의 문화를 옹호하는 장기적인 편견으로 인해, 처음부터 개전된 논쟁이 거의 종식된 것은 아니다. 더구나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문명이라는 단어는 충분히 옹호를 받았으며 언제나 우선적 인 위치를 고수했다. I900~I9II 년에 그 당시에 혁명적이었던 라파엘 알타미타 Rafael Altamira 의 위대한 역사서 에 『에스파니 아 문명 에서 본 에스파니 아 역 사 Historia de Espanay de la Civilizacion Espanoa』라는 제명 을 붙이 고 있 었 던 에 스파니 아에서도 역시 그렇다. 이탈리아에서도 그 자체로 아주 오래된 〈씨빌타 civilita〉라는 단어가 수행하고 있는 두드러진 역할을 보라. 우리의

3) 인용문은 Armand Curviller, II, p. 670 에서 따온 것이다.

4) Wilhelm Mommsen, Chappey, p. 444 에서 인용.

경우, 나는 낡고 고전저 인 알프레 드 랑보 Alfred Rambaud 의 교과서 의 속편이 자 자매 편으로 등장한 『프랑스 문명 사 Histoire de la Civilisation Fracaise』(1958) 의 저자들이 5) 프랑스가 정신의 적인 물절 생활에 빠쳐 있으며, 처음부터 그것 없이는 어떤 창조도 불가능한 젊음의 원천과는 동딸어 져 반복과 늙음의 단조로움에 사로잡혀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는 바이다. 앙리 마루 Henri Marrou 는 이미 20 년 전에 프랑스에서 문화라는 단어를 〈정신 생활의 개인적 형대〉로, 문명을 사회학지 실재로 보촌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런 식의 분할에서 문명은 충분히 멋진 몫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상 나는 호이칭가 J. Huizinga 가 스펭글러의 실패(잠시 후에 나는 거기로 되돌아갈 것이다)에서 부가적인 이유를 파악할 때 그가 옳다고 믿는 편이다. 이독일인 비평가는 그가 신랄하게 공격한 문명이라는 단어를 과소 평가했다 . 죽, 말하자면 그는 그 단어의 독일 밖에서의 〈국제적인〉 세력을 과소 평가하였다.

그러나 문명이라는 단어(나는 그에 대한 옹호자도 적도 아닌데)에 있어서 만일 위험이 촌재한다면, 그위험은그자체로옹호될만한독일인 사상가들의 집착에서보다는 인류학자들과 민속학자들의 작업에의 침두에서 나온 것이다. 에드위드 버넷 타일러 Edward Burnett Tylor(1871) 의 결정적 인 저작 이래로 그들이 익숙하게 언급하는 것은 원시 문명에 대해서라기보다는 원시 문화에 대해서이며, 그것은 만일 오늘날 인류학자들과 민속학자들이 문명의 문제에 대해 1) 과학적으로, 〈객관적으로〉 말하는 거의 유일한 사람들만 아니라면, 역사학자들을 거의 괴몹히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저작을 읽어가면서 우리는 그들의 언어에 익숙해질 것이다. 어느 화창한 아침에 모든 것에 대해 강재하려고할 것이다.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니고서 어떤 결론에 도달할 수 있으랴. 문화와 문명은 사전 편찬자들이 우리에게 말해줄 수 있는 것보다 훨씬더 많온 세상울 가로질러, 훨씬 더 많은 세상의 상충적인 사상과 취향을넘어 어렵게 나아가며, 그로부터 수천 가지의 변형물들이 나타나는데,

5) Georges Duby 와 Robert Mandrou.

6) 문화란 말하자면 그것은 독정 집단 내에서 생물학져 유전이 아닌 사회져 유산에 의해 전수되는 것, 즉 사회져 행동의 모델, 목질적인 생활양식의 복합 이다. 이 주계에 관한 철학적 관정으로는 Pietro Rossi, "Cultura e civilta come modeli descrittivi" in Rivista di Eilosofia, juillet 1957.

그것들 앞에서 적어도 신중해지게 된다. 살아 있는 모든 단어들은 면화되고 변화되어야만 하며, 이것들도 다른 많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그령게 된다. 그것은 과학적 어휘의 팔연성 때문일 때, 문화적이라는 형용사의 은밀한 진보 때문일 때-중립은 언제나 행운을 얻는다――, 모돈 인간과학들이 안고 있는 방법과 의식상의 위기 때문일 때만 변화될 것이다. 미국의 가장 유명한 인류학자들 중 두 사람인 크뢰버A. L. Kroeber*와 쿨라이 드 클럭 크혼 Clyde Klukhohn** 의 최 근의 연구는 문화라는 단어에 관한 것에 있어서는 그것을 확고하계 정립하였다. 그 연구에서는 뒤이어올 것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 단어에 이미 주어쳐 있는 서로 다론 16I 가지의 정의가 망라되고 있다. 그의 『사회학 개 설 Manuel de sociologie』에 서 아르망 뀌 비 에 Armand Cuvillier***는 적 어 도 문명 에 대 해 20 여 가지 의 서 로 다른 의 미 를 고려 하고 있다. 그것은 많은 편이며 아마도 지나치게 많은 것일 것이다. 이 논쟁을 마무리지으려 하려느니 거기에 대해 생각도 않는 편이 낫다. 역사학 어휘 를 만드는 데 몰두한 종합연구소 Centre de Syntese 의 시 도와 유혹에 반대하여 앙리 삐렌느는 언젠가 (1931) 역사학자는 다른 것들은 배제하고, 통용되고 있는 언어의 살아있는 단어들을 사용해야 하며, 따라서 철학자의 그것들처럼 부동의 경화 상태의 어휘는(더구나 그것은 수학자의 그것이 그렇지 않은 것처럼, 그것 역시 누가 무어라 하건 끊임없이 변화·된다) 단호히 버려야만 한다고 말했다. 나는 기꺼이 피렌느의 견해 편에 있을 것이다. 단어들이 그것들의 살아 있는 의미로 우리에게 참정적으로 제시되는 그대로 그것들을 사용하자. 그렇지만 그것들이 제시하고 있는, 제시한 바 있었던 다른 가능성들에 대해서, 그것들이 우리에게 대비시킨 배반들에 대해 서로 주의를 기울이자.

왜냐하면, 누구나 이 길들여지지 않은 살아 있는 단어들을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한 젊은 인류학자인 필린바그비 Phillip Bagby논 공감이 가고 봉찰력있는 한 책 (1958) 에서

* A. L. Kroeber 미국의 인류학자 (1876~1960). Fsanz Boas 의 처자. Berkely 대학 인류학과 창설. Araphahos, 북아메리카 인디언이 초기 주관심 영역

** Clyde Klukhohn: 미국의 인류학자 (1905~1960). 뉴멕시코 아리조나 인디언의 Costume 연구. 주저 Navaho Witchcraft (1944). 심리학이론과 사회 구조에 관한 이론의 통합 모색.

*** Armand Cuvillier: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1887~1973). 쏘르본느에서 가르침 (1943~1953). 사회학을 자율적인 분과로 뿌리내리게 하고 확산시키는데 기여.

도시가 문제시될 경우에는 문명을, 도시화되지 않은 시골이 문제시될 때는 문화를 다루어야 할 것을, 그 결과 문명은 언제나 질적인 문화, 우월한 단계의 문화임을 우리에게 제안한다. 그 기원이 결국 그에개 귀착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그러한 해결이 아마도 훌륭하겠지만, 제시되는 관례의 또는 정의의 가치가 어떠하돈 간에 그 단어들을 단번에 참참하게 만들 수 있다고는 나는 생 각하지 않는다. 보다 덜 모호한형용사에 우리의 애매모호한명사를어울리게 하려는, 또한물질적, 도덕적, 과학적, 기술적, 심지어 경제적 (Rene Courtin 의 한 저서에는 La Civilisation Economique du Bresil 이라는 제 목이 붙어 있 다) 문명(도는 문화)에 대해 말하려는 변화는 우리의 실제적 시도라는 단순한 사실로인해, 십지어 우리 눈앞에서도 준비되고 있다.

그러므로 단어들간의 다툼이 종식된 것은 아니다. 아직도 수많은 의의의 용법이 위험해지면, 문화적이타는 형용사로 방향을 돌릴 것이다. 왜냐하면, 그 용법은 내가 보기에 〈야만적〉(Joseph Chappey)이 아니라 편리하기 때문이다. 선행하는 정의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지나치게 고려하지 않고 그 두 단어들을 무차별적으로 사용했던 크고 작은 위대한 학자들의 이름으로, 더구나 단지 헤겔까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서도 이 한 페이지를 나는 다 메꿀 수 있을 것이다. 각별히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인간과학들의 들꿇고 있는 영역에서, 우리는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싼더 변형될 만한, 다양한 의미들이 풍부한 관찰을 방해하지 않고, 관찰에(그 돌발 사태에) 적응될 수 있는 단어들을 아마도 필요로 할 것이다. 새로운 질서에 이를 때까지 나는 기꺼이 핵십이 되는 단어들을 구벌없이__그의미는 맥락에서 밝혀질 것이다__사용할 것을 고백하며, 그러한 혼한 편견이나 혼동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의에 대한 시도

그 단어들이 어떤 것들이건 간에, 여하돈 우리는 그것들에 대한 우리의 판단과 행동의 자유를 힘들이지 않고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일차적인 사항을 얻게 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칭하는 사물에 대해서는 보다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불행히도 사회의 다론 전문가들과 마찬가지로 문명에 관십을 두는 역사학자들도 문명이 의미

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를 거대한 불확실성의 복판에 내동맹이천다. 그들에게 〈문명〉은 명시적이전 아니건 역사 일반을 거대한 관접둘로 ―〈그들의〉 관접들로 __ 환원시키는 수단이다. 거기서부터, 그 자체로 정당화될 수 있지만, 문명의 영역을 파편화하고, 그 영역을 매번 단지 그 부문들 중의 하나로 만드는 권위적인 관접들과 선택들이 나온다. 부문이 선택 이 나의 도에 따라 학자마다 달라진다는 사실로 인해 결국 실제 세계의 파악을 위한 문명사의 유용성을 결정해야만 하는 임무가 단순화되는것은 아니다. 우리의 처자들 중의 그 누구도――십지어 아놀드 토인비조차도, 자선에게 있어서 문명을 구성하는 것의 총체에 관한 관접을, 정의를, 우리에게 제시해야할 팔요성을 증명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아주 명백하다. 그렇지 않은가? 너무도 자명하여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이 책 저 책에서 그것들의 내용에 입각하여 역사학자들이 그들의 임무물 어떻게 파악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우리들의 것을 어떻게 그려내고 있는지를 발견해내야만 할것이다.

기조 Guizot: 언제나 읽기 좋은 프랑스와 기조의 훌륭한 저작들인, 『유럽 문명 사 Histoire de la Civilisation en Europe』 와 『프랑스 문명사 Histoire de la Civilisation en France』 (1829~18 32 : 거 기 에 다 적 어도 이 책들 중 첫번째 것의 재판을 위해 1855 년에 다시 쓰여진 서문을 첨가해야 한다)를 우리는 출발접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저작들은 그들의 목적을 간명하게 구체화하지 않고 있으며, 그것은 아주 유감스런 일이다. 그렇지만 기조에게 있어서 문명은 무엇보다 18 세기적 의미로 진보이다. 사실상, 사회적인 면과 지적인 면의 두 차원의 진보이다. 이상적인 것은 조화, 즉 저울판 양극 사이의 평형이다. 영국은 오히려 사회적 전보를 실현했고, 독일은 지적인 진보를 실현한 반면, 프랑스는 양편 다를 공평히 실현하지 않았던가 ? 그렇지만 그것이 우리가 여기서 문제삼는 것은 아니다. 관전이 되는 것은 기조에게 있어서, 2차원의 운동을 하는 문명이 어떻게 한 민족_프랑스__ .속에, 혹은 유럽이라는 또다른 〈민족〉(루]씨앙 페브르) 속에, 간단히 말해서, 구체적인 한 육체 속에서 합체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위치가, 가장 최상의 위치가 국가에, 15세기와 16세기의 이탈리아의 국가들에게 부여된다. 그 다음, 문화의 예술적 가치가 취향과 분벌력에 맞춰 연구되고 있다(그에게 있어, 예술적 가치들은 모든 것을지배한다).

것이다. 불해히도그는그작용을특히 그 영역을축소시키는것인, 정치사의 유일한 물에 한정해서만 파악하고 있다. 더욱이 마지막 분석에서 기조에게 있어서는 분명히, 그.가 그접에 대해 지나치게 비난 받은 대로 정치적인 것이란 권위와 자유라는 두 가지 원칙간의 두정아래서, 즉 아마도 7월 왕정과 같은 어느 정도 현명하고 유용한 타협에 의해서만 전압될 수 있는 갈둥의 마니교도적인 조침 아래에서 자리를 잡게 된다. 현재 시간의 경관은 그가 역사학자이며 행위자라 하더라도, 동시대인에 의해 역사 일반의 차원에 입각하여서는 거의 과악되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인 한, 그것은 보찰것 없는 결과의 거대이론인 것이다.

〈권위와 자유라는 두 가지 거대한 힘들이, 두 가지 거대한 권리들이 인간 사회 내부에서 공존하고 서로 두쟁한다……나는 연구에서 보다 파란많은 현장으로 옮겨 가면서, 정치적 틀에서 권위와 자유의 적극적인 조화를 죽 합법적인 영역내에 포함되고 규제되는 공인되고 공개적인 그들간의 투쟁 속의 조화를 추구했던 사람들 중의 하나이다. 그것이 한낱 꿈에 불과한 것일까? ……> 라고 기조는 1855년의 서문에서 쓰고 있다.

부르크하르트 Bnrckhardt 의 경우-J. 호이 칭 가가 근거 가 없지 않게 -<19세기의 가장 현명한 정신〉이라고 했던,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저작인 『이 탈리 아에 서 의 르네 상스 문화 Die Kultur der Renaissance in Italien』는 1860년에 한정판으로 나왔다. 그 책을 펼쳐보자. 그 책은 우리를 기존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로 인도해 간다. 이번에는 그 전역에 걸쳐서도, 그 과거 전체에 걸쳐서도 다뤄지지 않는다. 서구문명의 거대한 앨범으로부터 아주 빛나는 단 한 순간만이 채택되었다. 미 술레 Michelet (1855) 를 따라 야콥 부르크하르트가 그 이 름을 불러 일으킨, 르네상스는분명히 현재의 석자들이 간과해버렸지만망각하계할 수는 없었던수많은 연구들과 세부사실들과 함께, 그 이탈리아적 원천에서 파악되고 있으며, 그 책의 파악능력은 명백하고도 현처하여, 언제나 과거의 관접이 허용했던 것을 눙가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의 생전에 야콥 부르크하르트는 역사 일반에 관한 그의 관접에, 죽 인간의 모돈 과거가관련된다고 그가 훨씬 뒤에 언급한 바 있었던, 국가, 종교 문화의 〈삼자관계〉로의 환원에 전적으로 사로잡혀 있었을까? 거대한

위치가, 가장 최상의 위치가 국가에, I5 세기와 16 세기의 이탈리아의 국가들에게 부여된다. 그다음, 문화의 예술적 가치가 취향과 분벌력에 맞춰 연구되고 있다(그에게 있어, 예술적 가치들은 모든 것을 지배한다). 대조적으로 종교는 가까스로 버티는 위치를 할당받는다. 이 〈삼자들〉외에는 롤랑 대제 Laurent le Magnifique 의 이탈리아의 사회적, 물질적 실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또는 거의 아무것도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언제나 눈부신이 책이 겨냥하고목표로삼는그〈상부구조〉는 그것을 부추기는…… 구체적인 것에 대한 취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중에 떠 정지 된 상태로 있다. 이 것이 납득할 만한 일일까 ?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역사학자들이 한 세기 후에는 그 무엇도 전정으로 대체할 수 없는 전체에 대하여 그때와는 다른 그런식의. 이미지를 그리고 있었다는 것이 납득할 만한 것일까? 라는 접이다. 헤르더 (I784~I79I) 로부터 시 작되 어 구스타프 쿨렙 Gustav Klemm(1843~I852) 의 저작의 동장으로 대중화된 야콥 부르하르트가 십지어 독일 〈문화사 Kulturgeschichte> 의 흐름에 서 어 느 정 도 위 치 에 자리 잡을 수 있는지를 이해한다는 것은 유용할 것이다. 스페인에서 번역되어 야주 대 단한 역 할을 담당한 방대 한 교과서 인 G. 베 버 의 『보편사 Histoire Universelle』(1853) 한 권에서만으로도 그접이 명 백하게 나타나는 것 처럼 I9 세기 중반의 독일 사료 편찬은 아주 위험한 이분법의 우월함울 인정해주고 있다. 베버의 교과서는 의적 역사(정치적 인 것)와 내적 역사(문학, 문화, 종교)를 구벌한다. 그렇지만 〈내적〉 역사가 그것만으로 그 자체의 실재를 구성할까?

스괭귤러의 경우-오스발트 스펭글러의 열렬하고 격렬한 저작인, 『서 구의 몰락 le Declin d'Occident』(I9l8~I922) 은 바로 그러 한 세 계 속에 우리를 이중으로 가두어누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그 책에서 충분히 오태 머물러야만 할 것이다. 나는 이 굳을 쓰기 전에 그 책을· 주의깊게 다시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뤼씨앙페브르와는달리 오늘날에는 그 책의 탄생을 둘러싼 상황들 밖에서 그 책을 판단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분명히 그 책은 그 론으로 인해, 그 관접의 방대함으로 인해, 그 이해하려는 열정으로 인해, 그 고고한 취향으로인해, 훌륭한 외관을 갖추었다.

스팽글러에게 있어서 각각의 문화는 독자적인 경험이다. 십지어 다

른 문화로부터 나온 문화가 문제시될 때조차도 그 문화는 조만간 나름대로 충분한 독창성을 확립하게 된다. 때때로 너무 늦게 그렇게 되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우리 고유의 서구문명에 있어서 〈우리 고유의 생각울 하게 되는 용기를 찾으려 면 오렌 시간을 팔요로 하게 된다.〉 말하자면 고대 문명 (그리이스, 로마 문명-역주)의 교훈에서 우리가 벗어나기 위해서는 오렌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결국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문화는 언제나 해방되며,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문화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문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술인 동시에 철학, 수학, 사고방식 그것들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정신이 없이는 결코 이해될 수도 없고, 유효하지도 않는 모든 실재들이다. 니체가 감지하고 제안한 것처럼 문화의 숫자들만큼의 도덕들이 있다고 스펭굴러는 말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문화들의 숫자들만큼의 철학들, 예술들, 수학들이 있다(미소를 지으면서, 문화들과 동수의 여사들, 사료 편찬둘이 있다고 말할 것인가?). 이런 식으로 해서 서구는 부인할 수 없는 수학적 독창성에 의해 즉, 서구의 수의一-함수의 발견에 의해 구별된다. 따라서 미적분의 위치는 십지어 그 책을 시작하는 패이지들에 설정되고 있다. 더구나 그 페이지들은 그 어느 것으로도 손상시킬 수 없는 아름다움을 띠고 있다.

문화는 및 가지 독창적인 노선들에 의해, 아니 오히려 이 독창성들의 구체적인 묶음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에 문명사가의 방법은 단순해질 것이다. 그것은 이 독창성들을 끌어내서 연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독창성들울 한데 모으고, 이들 문명들과 비교해보기 위해 그것들 자체들을 비교해 보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곧 우리는 거기서 수백 년, 수천 년을 가로지르는 시간을 따라가는 기이한 여행에 휘말려든다. 갑자기 중력의 법칙 밖에서 모든 침꾸러미들이, 모든 물건들이 그들의 자리를 떠나 기이하게도 나란히 자유롭게 떠다니는, 오늘날 우주여행에 해당하는 묘사들과 기대들을 연상시켜 준다. 이런 식으로 해서 스펭글러에게 있어서는 대위법을 쓴 음악, 루이 14세의 왕정, 라이쁘니쯔의 미분법, 유화와 원근화법의 바법, 도리끄식의 7] 등, 그리스식의 도시…… 둥이 서로 병행하기도 하고 충돌하기도 한다. 이 모든 침 꾸러미들은 그들의 역사적 중력을 잃었다.

기만시킬 수는 없는 이러한 작용에 대해 가장 비판받을만한 스펭굳

러의 사상은, 가장 평범한 혹은 가장 현명한 역사사상들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문화적 요소들간의 관계라는, 또한 더 나아가(그렇지만 여기서 그 누구도 스펭글러보다 신중할 수는 없 다), 그것들의 비문화적 요.소들과의 관계에 따른 어렵고도 자국적인 문제와 부딪치게 된다. 우리의 저자는 자신의 추론을 만 1 초 동안이라도 방해하게 될 것은 무엇이나 무시해버리는 것처럼, 이 마지막 사항(비문화적 요소들과의 관계―역주)들을 무시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해서 돈이란 단지 〈비유기적인 권세〉일 분이며, 또는 모든 경제사의 경우에도 거의 그러한 것이다.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사건들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아주 목이한 귀철에서, 그것을 어느것 못지 않게 민첩하게 제거해 버란다. 〈여사적 장면을 오페레타의 주제로 채우는, 알제리 태수의 부채와 그 밖의 그럴듯한 중국산 잡화품들(S i c) 에 대 해 생 각해 보라. > 그러 면, 오페 레 타논 없고, 정치적인 것이 단번에 사라져 버 렀다. 사회적인 것도 그에 못지 않게 빨리 진행될 것이다. 어떤 상태로 남게 될까? 〈문화들〉과 그것들간의 관계들의 묶음은 너무 뻔해서, 그것들을 분석하는 것은· 무용한 일이다. 그것들이 촌재한다. 마침표, 그것으로 끝이다. 예를들면,18세기에 음악이 서구의 〈발전〉의 핵십에 있었다는 접은 자명하지 않은가? 스팽글러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독일은 위대한 음악가들을 배출했으며, 그 결과 당시의 위대한 전축가들인 푀펠만 Poppelmann*, 숟뤼터 Schluter**, 배르 Bahr***, 노이만 Neumann, 피 셔드 에 르라흐 Fischer d' Erlach, 디 엔첸호퍼 Dienzenhofer**** 동도 배 출했다〉라고 쓸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각각의 개밀 문화는 보다 나은 질서에 속한 일원적 촌재이다〉. 죽 역사 일반에서 가장 중요한 등장 인물이다. 그렇지만 동장인물이라는 단어는 훌륭한 용어가 될 수 없으며, 유기체라는단어도 더 나온 단어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최근에 언급되었던 것처럽 1) 스팽글러의 사상에서 문화들은 존재들이지만 전혀 생물학적 의미에서는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중세 사상의 의미에서 만일 영혼이,

* M.D. Poppelmann: 독일의 건축가(l662~1736) . 후기 바로크 건축의 거 장.

** A. Schluter: 독일 단찌 히 출신의 조각가이 자 건축가 (1660-1714).

*** G. Bahr: 독일의 건축가 (1660~1738). 프로맨스탄트 종교 건축 ·의 거 장.

7) Otto Brunner, p. 186.

**** Dienzenhofer: 18세기 독일 납부지방과 보해미아 지방에서 바로크 스타일 확산에 주요 공로를 세운 유명한 조각가 집안.

활기 를 불어 넣 어 주지 않으면 (문화혼 la Kulturseele) 움직 이 지 않는 육 체 이다. 이 열정에 찬 체 이 서구문화라는 이름 아태 추구해 들어가는 것 은 결 국 신비한 촌재, 영 혼 이다. 거기서부터 다음과 같은 의식에 따르는 단언이 나온다• 〈문화는 거대한 영혼이 깨어나는 순간에 태어난다.〉 또는 마찬가지가 되는 것으로 〈문화는 영혼이 그 가능성 전부를 실 현 했 을 때 죽는다. >

우리는 그를 열광시키고 타오르게 한 설명에 직면한 오스왈드 스펭 굳러 사상의 핵십에 와 있다. 역사-아니, 한 문화의 〈운명〉은 연 결 맥 락 , 죽 오늘날 우리들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장기지속적이며, 역동적인 구조이다. 문화의 완만한 생활로 인해 문화는 정립될 수 있고 그런 다음, 오랫동안 두각을 나타내다가, 마침내 죽어간다. 왜냐하면 문화들은 죽을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각각의 문화는 첫 걸음부터 내포되어 있는 이상적 기 획 의 모든 가능성을, 죽 고대 문명 의 〈아폴론적 > 정 신, 서 구의 〈파우스트적 인〉 정 신… … 둥을 발전시키며, 발전시켜야만 한다. 일반적으로 서서히 진행되는데, 특정 시기를 지나면 모든 창조적 힘은 고갈되며 , 문화는 더이상의 프로그램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죽어갈 것이다. 〈문화는 갑자기 얼어붙고, 그것은 죽어 가며, 그 피는 새어 나가고 그 힘들은 파괴된다. 죽 문화는 문명이 된다.〉 따라서 문명은 피할 수 없는 결말로 규정되며, 그것은 음울한 빛깔을 떤 것으로제시된다• 문명은〈앞으로되어갈것 devenir>에가 아니라, 〈이미 되어진 것 dovenn〉에 속한다. 그것은 운명이 없논 상태이다. 왜냐하면 〈문명은 언제나 늙은 때문이다.〉 문명은 겨울이며 늙음, 산초 판쟈이다. 돈키호테는 물론 문화이다.

이 음울한 운명은 피할 수 없다. 그 단계들이 반복되고 서로 유사한 생활 주기처럼 그것은 조만간에 모든 문화에 다 부과된다. 그것들이 서로 너무도 유사한 나머지 스펭글러는 지제없이 그것들을 분리시키는 시간적 또는 공간적 영역을 가로질러 합치시키고 있지만, 스펭글러는 그것들을 사실상 〈당대상태〉와 쌍동이 상태로, 있는그대로 이해하고 파악하기 위해서는, 관념 속에서는 시 ·공간적 영역을 버려야만 한다고 확신하고 있다. 한 세기 이상 유럽의 면모를 갖추어준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과 더불어 서구 〈문명〉의 시간이 울리고 있다. 그. 사건은 알렉산더의 결정적 정복과 헬레니즘의 전성기와 더불어 나타난 사건과 마찬가지다. 즉 그리이스는 〈문화〉였으며, 얼마후 그것을

교대한 로마는 〈문명〉일 것이다. 그러므로, 알렉산더와 나폴레옹은 〈동시대인〉임을, 즉 그들은 둘다 〈문명의 문턱에 있는, 낭만주의자둘〉임을 인정하라. 혹은 유사한 원리로 〈페르가논 Pergame*과 바이로이트 Bayreuth**는 한 쌍을 이룬다〉고 말하라. 왜냐하면 바그너는 니이체의 노여움을 받을 만하기 때문이다. 죽, 바그너는 서구 옵문명〉에 속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다른 수많은 사람들을 따라, 지나치게 방대하고 나이브한 이 단순화된 도석들을 공격한다는 것은 헛된 일이 될 것이다. 무슨 소용이 있운까 ? 『서 구의 몰락』을, 그 객 과 그털듯한 한쌍인, 알베 르 드망중 Albert Demangeon 의 저 작인, 『유럽 의 몰락 le Declin de l' Europe』(1920) 과 바교한다는 것은 시와 산문을 대비시키는 셈이다. 다론 현명한 사람들에게 맡겨 두자. 그렇지만 요약해 보자면, 스펭굳러의 시도에서는 두 가지 작업이 구별된다. 그가 소위 말하는 역사의 잡다한 뭉치들, 즉 역사의 잘못된 뒤얽힘들 속에서, 그는 어떠한 댓가를 치르고라도 그에 의하면 문화와 문명이 귀착되는 정신적 가치들의 운명을 끌어내고자 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보다 어렵고 보다 논란이 이는 작업인데, 서서히 이루어지지만, 세상의 어떤 힘보다 더 강하고, 그렇지만 언젠가는 그것들의 과거의 질주 상태로는 더 이상 계속 살아갈 수 없는, 이 정신적 가치들의 만개를 〈하나의〉 운명으로, 하나의 체계적 단계의 연속으로, 〈하나의〉 역사로 체계화하려 했다. 내가 나중에 밝혀주겠지만, 처음부터 이 이중작업은 지각있는 역사학자에게 는 납득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다행히도 다른 사람들보다 덜 지각있는 여사학자들이 있다. 오스발트 스펭글러의 저돌성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아놀드 토인비도 그런 부류에 속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두가지 구체적인 사항들에 대한 그의 태도는 스펭글러의 그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토인비의 경우-나는 가끔은 열정적으로 아놀드 토인비의 명료한 처작들을, 능란한 변설들을, 예지에 찬 상상들을 읽고 또 읽었음을 고백하는 바이다. 나는 요컨대 아주 변덕스러운 체계를 어떤 댓가를 치

* Pergame: 소아시 아의 도시 Attalides 왕국의 수도. Pergame 왕국 (B. C. 282~B. C. 133).

** Bayreuth: 바이레론 주의 한 도시. 바그너 극장이 있음.

르고라도 구축해내고 그것을 옹호하는 그의 기술을, 즉 그의 계산된 완곡함을 좋아한다• 더욱이 나는 그의 사례들을(역사학자들은 누구나 사례들에 근거하여 추론한다), 혼·히는 그 취약접이 드러나지 않고. 십사숙고 끝에 만 나타나는 그의 문제 제 기 를 좋아한다. I500 년경 의 대 발견에 얽혀 일어난 혁명은 사실상 구세계의 대상들의 순회에 대한, 죽이 〈물 없는 바다 우1 의 〉 지상의 항해에 대한 유럽 선박의 승리였을까? 더구나 강력한 아랍인의 항해, 중국인의 항해…… 둥이 있다. 심 지 어 실수로, 또는 속마음으로 〈알비 주아파 les Albigeois 가 박살이나고 위그노파도 다시 동장했다 〉고 쓸 수도 있다. 그렇지만, 무슨 상관이랴 ! 한 권의 책이 거둔 업적들만이 둔재시되며 그러한 업적들은 수없이 많다. 경험 많은 안내인과 동행하여, 아놀드 토인비의 독자는 놀랄 만큼 풍부한 정보와 사색으로부터 도움을 얻게 된다• 그의 곁에서의 방대한 역사적 지평에 대한 조망은 유익하고 십지어 풍미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아놀드 토인비가 그의 길을, 또는 우리의 길은 밝히기 위해 그의 재능을 거의 낭비하지 않았다는 접을 인정하자. 그는 문명을 문화 대 신에 충분히 임 의 대 로 사용하는 사람들에 속하는데 (인류학자들이 그접에 대해 그를 비판하는 것처럼, 문화라는 단어는 그에게 있어서 인류학자들이 그 단어에 부여하고 있는 의미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저]게 있어 문명이란무엇을뜻하는가? 그렇다면, 그는문명울어떤 의미로쓸까? 뤼씨앙 페브르는 이미 20 년 전에 한 논문에서 그에게 그접을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그 뒤로 수많은 굴을 썼던 우리의 처자는 일시적 기분으로 이의에는그질문에 거의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우리가 알고 있는 문명은 어떤 상황이 아니라 움직임이다. 죽 그것은 항구가 아니라 항해이다〉. 〈결코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목표를 묘사할 수는 없다. 〉라고 쓰고 있다. 또는 〈문화는 각자가 하나의 전체이며, 그 부분들은 돌연히 상호의촌적이 된다〉, 그것은 핵과 전자들… •• 이 있는 하나의 원자이다. 우리는 충분히 나아가보았다 ! 또다시 그는 문명들은 그것들의 행위, 십지어 그것들의 움직임, 〈그것둘의 발생, 그것들의 성장, 그것들의 분열, 그것들의 쇠되, 그것들의 몰락〉 둥에 의해 파악될 수 있다고 암시한다. 문명들은 〈활동하기〉 때문에 〈촌재한다〉. 만일 문명들이 우선 먼저 촌재하지 않는다면, 그것둘이 어떻게 죽을 수 있단 말인가? 그렇지만 어떤 때는그문제에 정

면으로 착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을 끝내기 전에 (S i c.) 나는 내가 지금 (1947) 까지 해결했다고 여간 한 질문, 죽 문명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라는 질문에 한 마더 해야만 한다〉고 그는 쓰고 있다. 너무 빨리 기뻐하지는 말자. 이 뒤늦은 훌륭한 결십은 태연히 다음과 같이 그의 방대 한 저서 인 『역사의 연구 A Study of History』(1934) 제 1권의 반약한 반복적 설명 이상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것으로(문명―역주) 분명한 어떤 것을 의미한다고 토인비는 주장한다. 왜냐하면 심지어 그 의미불 규정하려 하기도 전에, 다음과 같은 인간적인 분류(문명들의 분류)-서구 문명, 이슬람 문명, 극동 문명힌두 문명 둥_―들이 우리에게 효과적으로 의미를 부여해 준 것처럼 여겨진다. 이 단어들은 우리의 마음속에 종교, 건축, 회화, 전통, 관습 둥에 대하여 뚜렷한 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여기 다음과 같온 증언이 있다. 〈문명이란, 자기 지방(나라)의 역사를 이해하고자 할 때 도입하게 되는 가장 최소의 역사 연구의 단위를의미한다.〉그리고나서 및 페이지에 걸쳐 영국과 미국의 과거에 대한 성급한 분석이 잇다. 만일 지나치게 모호하고 접근 불가능한 단위인, 인류의 모든 파거를 문제삼고자 하지 않는다고 할 때 우리는 어떤 경계선에서 멈춰야할까? 추론에 추론을 거쳐, 결정적인 역사적 시기를 매번 거슬러 울라가면서 토인비는 그것을, 여러가지 증거로 미루어 고전 고대적인 것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오는, 혹은 막 분리되어 나오려는, 우리 서구문명이 탄생될 츠음인 8 세기 말영으로, 죽 약 770년경으로 위치짓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이 서구문명은 짧은(상대적으로 짧은) 범위로 여겨질 만하다. 그것은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처럼, 이름있는 역사학자들이라면 오래 전부터 신뢰하지 않는 민족사의 관례적인 룰을 우리로 하여금 뛰어넘게 해준다. 그것은 연대기적인 틀, 작전지역, 설명의 수단, 분류 둥을 제시해주지만, 그 이상은 아무것도 제시해주지 않는다. 여하돈 나는 어떻게 해서 영국문명에서 서구 문명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데 관련된 태도가 제기된 질문에 응답해 주게 되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다. 토인비에게 있어서 〈문명〉과 그것의 내용은, 그럽에도 불구하고 규정되지 않은 상태이다. 더 나온 방법이 없으므로, 그 학자를 그 작품으로 판단하고 그가 제시하는 길을 따라가 보자.

시련을 견디어내는 이 길온 얽혀진 일련의 설명이지만, 나는 단 한순간만에 거기에 도달한다. 따라가기를 거부하는 길들 여시 따라가는

길들 만콤이나 중요하기 때문에 나는 그것들을 우선 보여줍 것이다. 토인비의 명확하게 표명된 입장보다는 그의 침묵이 자기 작품의 전정한 흐름을 더 잘 그려내준다. 모순둘이나 위험한 의혹둘로부터 벗어냐기 위해서는 혼히 한 마디의, 한 번의 기발한 생각이면 충분하다.

사건들을 무시 하라 ! A. 토인비 는 〈특출난〉 사건들만을 다루었다. 사건인 것은 거의 다 물에 빠뜨려 버리는 것은 내게는 언짢지 않은 하나의 방법이다. 그렇지만 사실상 어떤 것들이 물 표면에 떠오를 권리가 있는 〈특출난〉 것들일까?

지리적인 것은 그것을 문재삼는다면, 두번째, 혹은 세번째 차원에만 있게 될 것이다. 사실 문명을 휴七겅에 의해 감히 설명하려고 할 수 있을까? 그만큼 물질적인 그 어느 것도 문명들을 좌우할 수 없을 것이다. 자연 환경이 좋다고 말할 때, 죽 환경의 은총이 풍부히 넘칠 때一― 내가 참시 후에 그에 되돌아가겠지만__ 바로 그때는 문명은반응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연이 야생 그대로 적대적인 상태로 나타날 때, 즉 자연이 안된다고 말할 때, 바로 그때에만, 그것에 의해 일으켜진 〈십리적〉 반응에 의해 문명은 등장하게 된다.

서로 다론, 그렇지만 못지 않게 결정적인 이유둔 때문에 문화적 전이, 〈확산〉, 〈알파벨에서 성거 미성에 이르기까지의 수많은 기술, 솜씨, 제도, 사상둥이 한문명에서 다론 문명으로 전해질 수 있는 방법둥은 한 컨으로 젖혀질 것이다. 알파벳과 미성이 그토록 중요할까? 거기에 대해서는 더이상 생각하지 말자. 문제가 될 만한 유일한 것은· 한 문명에서 다론 문명으로 가는 종교적 파동들이다. 그것들의 교환, 충돌, 대화 의의 나머지 것은 부수적인 것이다. 이러한 제부 사실들에마음을 쓰는 대신 〈단 하나의 분리될 수 없는 실을 따라가면서 계속되는 여사로서의 그리이스와 로마의 역사〉물 연구하자.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그렇게 명백한 편견에 입각할 때 균열들, 변환둘, 불연속성들또는끌로드 레비-스트로스가 말하기 좋아하는 추문둘, 죽 예측과 계산, 규법에 대한 도전들은 정확하게 어떻게 될까? 우리는 지속적인 것에 대해서만 권리를 가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거대하고 장황한 작품에는 원시 문명에 대해서는 즉· 선사시대의 광활한 영역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아니 거의 단 한더도 없다. 문화들로부터 문명으로의 전이는 〈교체 mutation〉에 의해 이루어진다고들 한다. 이러한 개념에 입각하여 우리에게 차단되었던

설명을 시도하는 일은 우리에게 달린 일이다.

더욱이 나예계 있어서 사회 구조들을 뜻하는 국가, 사회동에 대해서는 십각하게 문제삼게 되지도 않을 것이다(문명을 만드는 창조적 소수들에 대한. 그리고 그 문명의 내부에 있건 외부에 있건 간에, 프올레타리아들에 대한 몇 가지의 독단적 성찰을 제의한다면). 기술이나 경제도 전혀 문제삼지 않는다. 그것들은 그만큼 단명하며, 너무 단명하다. 예를 들면 국가는 건 숨결을 지닌 문명에 비해 하찮을 정도로만 지속된다. 〈서구 문명은 그 뒤에 1,300 여 년의 역사를 지닌데 비해, 잉글렌드 왕국은 단지 1,000 여 년의 역 사만을 지 녔으며 , 영 국과 스코틀렌드 연합 왕국은 250년 이하의 역사를 지니며, 미국은 겨우 150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을분이다〉라고 토인비는 1947 년에 쓴 바 있다. 더욱이 국가는 〈단명함과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기 쉽다. 그러므로 빈약한 생명을 지닌 보찰것없는 존재인 국가에 우리의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또한 경제 또는 기술에 대해서도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침짓 고의로 반복되는 한두 개의 짤막한 구철둘로는 〈인간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 또는 〈인간은 기술만으로 살 수 없다〉 둥이 있으며 또한 그러한 표현법이 사용된다.

이 신중한 작업으로 모든 사회 경제적 토대를슬쩍 앗아다가, 그:부류의 범상함들 속에 던져 버란다. 두 문명이 부딪치게 되면 〈그 만남은 그로 인한 즉각적인’ 정치적 경제적 결과 때문이 아니라 장기적인 종교적 ' 결과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나는 그러한 사상들보다 승인할 만하게 만들기 위해 친숙한 두 단어를 강조하는 바이다. 아다시피 단기적인 종교적 결과도 있으며, 장기적인 경제적 또는 정치적 결과도 있다. 그렇지만 그 접을 인정한다는 것은 최종적으로 정립된 들을 무너뜨릴 위험을 무릅쓰는 것일 것이다. 만일 〈전체로서의 역사일반을 연구한다면 종교사에 우월성을 부여하기 위해, 정치 • 경제사를 종속적 지위에 두어야만(추방해버려야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종교야말로 인류에게 무엇보다 십각한 일이기 메문이다〉. 〈핵십적인 부분온 말하자면 종교이다〉라는 접을 다른 곳에서 읽을 수 있다. 더욱이 종교가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 견해가 일치해야만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처음부터 일련의 강요된 침묵을, 미리 짜놓은 배제를, 급전져인 입장을 은폐하려는 조십스러운 시도들이 있게 된다. 몇몇

페이지에서 내게는 거의 이해되지 않지만, 아놀드 토인비는 자신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문명이란 없다. 전보란 몽상이다타고 우리에게 말한다. 문명〈들〉이 있을 뿐이며 각 문명은 운명의 손아귀에 잡혀 있으며그 운명의 주요 노선은 반복되며, 어떤 식으로든 미리 정해지 있다. 누구전 이 접을 이해할 수 있다면, 문명〈들〉이 존재하지만 〈인간의 정 신적 본질〉은 유일하며 , 죽어 버 렀전, 더 나아가 살아 있건, 모돈 문명을 에워싸는 운명도, 반드시 같은 것이 되며 단 하냐분이다. 이렇게 파악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은 생각들을 배제한다. 죽 마로셀모스의 〈문명은 인간이 획득한 모든 것이다〉, 또는모든 문명은 〈일반적이고 접전적인 전보라는 유일한 움직임 속에서〉 파악된다는 알프레드 베버의 주장을, 또는 〈모든 민족은 자신의 문명을 갖는다• 따라서 서로 다른 수많은 문명들이 있다〉는 앙리 베르의 현명한 논평둘을 베제한다.

아놀드 토인비, 그로서는 제한된 수의 문명만을 고려한다. 장기 지속적이며, 아주 방대한 영역에 영향을 끼친 21 개 혹은 22 개의 문명들만이 그. 이름에 걸맞게 된다. 이들중국동문명, 인도 문명, 정통 기독교 문명, 이슬람 문명, 서구 문명 둥 5 개 문명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살아 있다. 그렇게 빈약한 무리를 유지하기 위해 있을 수 있는 수많은 후보자들을, 어떤 것은 불충분한 기간 때문에, 또 어떤 것은 독창성의 결여로 인해, 또 다른 것은 명백한 실패 때문에 버려야만 했다.

그러나 이렇게 줄어든 목록을 받아들이자• 만일 그것이 정확하다면 그 중요성은 업청난 것이다. 인간의 복잡한 역사가 이런 석으로 약 20여 개의 주요 경험둘로 요약되고, 만일 그것이 정당하기만 하다면, 얼마나 바람직한 단순화작업인가 ! 여하튼 아놀드토인비의 구조적인 사상과 초보적인 접촉을 해보면, 이렇게 나열되는문제들을접하게 되면, 나름대로 정리된 틀과 배타적 관계들을 갖추고 있으며 수많은 실제사실들을 권위적인 방식으로 그럭저러 대체해야만 하는 세계 체계를 추구하는 과학적 태도에 아주 가까운 그의 진행 방식을 이해하게 된다. 첫번째로 배려해야 할 사항은 역사 일반올 단순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규칙들을, 법칙들을, 일치 사항들을 꿀어내는 것, 죽 경재학자들 및 사회학자들의 의미로 서로 서로 연관되는 일련의 <모델들〉올 만들어내는 것이다. 문명은 인간들이 그러한 것처럼, 단 하나의

필연적인 운명만을 가 질 분이다. 문명은 태 어나고 성장해 가고 죽 는데 각각의 단계는 그것들로서는 다행히도 더구나- 아 주 장 기 지 속 적이다. 그것들은 끊임없이 언젠가 다시 오며 꿇임없이 꽃 피우고, 끊임없이 사라져간다……

그러므로 아놀드 토인비는 아주 자연스 럽 게 탄생의 모 델들 , 성장의 모델들, 퇴화, 쇠퇴, 죽 음의 모델둥 세 가지 부류의 모 델들을 구축하였다. 이 렇 게 긴 연구를 위해서라면 그는 수많은 시간과 인내와 민활함 둥을 바쳤어야만 할 것이다. 왜냐하면 매 순간 이 〈제계 〉둘은 엔진들처럼 불발일 수 있기 때문이다. 법칙, 주도적인 규칙 둥은 예외들로 인해 끊임없이 위협당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 체 계화되지 않은 것들, 성가신 것들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사람 들 이 던전 단순한 들멩이가 만들어낸 잘못된 움직임을 자신이 구축 한 세계 속에 가두1 놓는 데에 따르는 어려움을 보라. 그의 체계에서는 그러한 접이 예측되지 않고 있다. 아놀드 토인비의 정원에는 이런 종 류 의 수많은 돌뎅이들이 있다.

탄생, 성장, 죽음이라는 세 가지 부류의 모델들 중에서 처음 두 가지는 그다지 독창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마지막 것은 비록 그것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신빙성 있는 것은 아니지만, 비록 그것이 세 가겨 중 가장 취약하다고 해도, 가장 홍미를 끈다.

문명은 자연에 의한 것이돈 역사에 의한 것이돈 극복해야 할 난관에 봉착해야만 비로소 살아가게 될 것이다. 역사적인 것은 단기 지속적이지만 때로는 극도로 격렬하다. 지리적으로 환경이 난관 을, 장기 지속적인 도전을 부과한다. 만일 도전이 제기되고 지속된다면, 극복된 어려움은 승리에 찬 문명에 활기를 넣어주며, 그 문명을 그 들에 입각하여 유지시켜 준다. 아티카 L'Attique 는 본래는 가난했으며 그 때문에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스스로를 극복해야만 했다. 마찬가지로 브란덴부르그는 그 모래터와 늪지들로 인해 왕성한 활력을 가질 수 있었다. 안데스 산백의 고지는 그 자체만으로는 다행스럽게도 사람들에게 무자비했으며 일단 극복된 난관 그 자체는 잉카 문명인 셈이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도전하지 않았던, 수많은 훌륭한 도전들이 있노라고 리에르구루 Pierre Gourou 와 같은 지 리 학자들은 응수한다• 또한 게 타르 마쉬르 Gerhard Masur는 아주 최근에 소위 안데스 산맥 고지의 시 련은 아마존 유역의 정글에 비해 온화하고용이했을 것이라고주장하였다. 잉카족은 손수1 운 것을 택했을 것이다……만일 하이네 겔던 Heine Geldern 이 옳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처럼,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무엇보다. 아시아와 아메리카 사이의 반복되는 때늦은 접촉으로부터 이득을 얻었다는 접을 나는 부기하는 바이다. 전형적인 〈교차로〉인 복부 중국에 대한 삐에르 구루의 그러한 설명에서처럼, 이 관점에 입각하면 아놀드 토인비에 의해 거의 다루어지지 않은 〈문화 전파〉가 토인비에게 정당하고도 직설적인 복수를하게 될 것이다. 사실상 나는 예를 들불꽃을 떤 서구문명이돈 모슬램 문명이돈 문명은 그들의 계보를 따라서만 접화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낯선 것들 사이에서 자그마한 불씨도 거대하고 지속적인 큰 불을 낼 수 있다. 그렇지만, 아놀드토인비는 그것을 적용하는 데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라는 접을 파악해내기 위해서 그는 자신의 〈도전과 웅전〉에 대해 스스로 충분히 경계를 취했다. 인간의 힘을 능가하지 않는 도전들만이 문제시된다고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따라서 도전이 있고 또 있어도 이러한 주의사항이 선행되어 있는 한 모델은 구축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실상 민중의 지혜를 표현한 것 이상온 하지 않았다.

둘째, 모돈 문명은 창조적 소수 또는 창조적 개인들이 그것에 활기를 불어넣는 한도에서만 전보해 나간다. 이는 우리를 니이체, 또는 빠레도 .. … 둥에 가깝게 데려간다. 그러나 대중이 더이상 적극적인 소수에게 복종한 채 있으려 하지 않고, 이 적극적 소수가 자신의 〈생의 비약 elan vital>, 그의 창조적 험, 말하자면, 오스발트 스팽글러의 〈문화혼 Kuttzerseele〉울 어 느 정 도 상실하면, 그렇 게 되 면, 모든 타락이 확정되게 된다. 모든 것은 일반적으로그렇듯이 안에서부터 붕괴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쇠퇴의 모델들인 마지막 모델들에분만 아니라 그 체계의 십장부에 도달한 셉이 되었다. 왜냐하면 P. 쏘로킨이 농담조로 말한 것처럼, 아놀드 토인비는 문명의 대 학살자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문명의 죽음은 결정적이고 계시적인 시간이다.

아놀드 토인비에게 있어서 문명은 수세기 동안 존재하고 난 연후에야 비로소 죽지만, 이 죽음은 이미 오랫동안 내져, 의적인 끈질간 난

관들에 의해 칭표가 드러나며, 만일 해설자가 있다고 해도 그 역시 이 얽혀진 난관들을 더이상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이 난관들은 언젠가는 경찰력의 승리에 의해, 죽 거대한 제국의 수립에 의해 전정된다. 그러나 이 〈보편적〉인 제국은 문명의 시간의 틀 로 측정한다면 〈눈깜짝할 순간〉에 불과한, 2,3,4 세기 동안의 참정적인 해결책에 불과하다. 따라서 얼마 지나지 않아 재난과 야만적인 칭입 (우리 처자의 표현대로 ‘의적 프롤레타리아’의 도래 〉 가운데서 제국은· 무너진다. 그렇지만 동시에 보편적인 교회가 정립되어 그것이 구할 수 있는 것은 구해낼 것이다. 이런 식으로, 아니 거의 이런 식으로 토인비가 강압적으로 헬레니즘 문명이라고 한 그리이스· 라탄 문명이 끝장났을 것이다. 로마의 사례에 따라, 우리는 난관, 제국 아니 오히려 보편 국가, 보펀 교회, 야만 상태 둥의 4 단계를지니고 있는 한 문명의 죽음의 〈모델〉 도식을 갖게 된다. 금세기초에 독일의 장군들은 칸네 전두 (B. C. 216 년 한니 발과 로마군과의 전두로 한니 발의 압도적 승리 로 끝남―역 주) 로. 모-든· 것을 물렀다고들 한다. 아놀드 토인비는 모든 것을 이 종말에, 앙드레삐가니올 Andre P igani ol 이 말했듯이 로마 제국의 〈암살〉에 둘렀다.

지나간 각각의 문명에 대해 그는, 여기저기 약간의 무모함이 없지는 않지 만, 모델들의 모든 〈시 간〉을 하나하나 추구하고 파악하였 다(이렇게 해서 아케메니데스 제국,* 잉카 제국, 압바스 제국**, 굽 타 제국, 몽고 제국 ••••• 총 21 개 제국에 대해). 사소하지만 정확한 연대기적 측정치들에 익숙해 있는 역사학자들 중에 누가 아케메니데스와 거의 하루만에 세워진 바그다드의 회교국 사이에 1,000 여 년 동안 실질적 관계가 결코 끊어진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까? 분명히 얼마 지속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편 국가들의 목록에서 카롤링 제국, 샤를르 5 세의 제국, 루이 14 세의 정복, 나폴레옹 1 세의 제국 등을 삭제해 버리는 것이 수긍할 만할까? 더구나 토인비에 의해 제시된 목록, 문명 생활의 필수적인 요소들로 파악된 〈전정한 문명들〉인, 21 개의 새로운 목록들위에 모습을 나타내는 것들은 모두가 다 그것들이 어떤 것이건 어떤 관용이라도 다 받을 권리를 가지지는 않았다. 저자의 편견은 그들에게 불리하다. 로마 제국에 안배된 운명만으로 그것을 입증할 수 있는

*Achemenides 계국 :Cyrus II 에서 시작하여 페르시야제국을통치한 (B.C.556~B. C. 330) 왕조.

** Abbassides 제국―마호벳의 계승자 칼리프의 세번째 왕조. Abual-Abbasal-Saffah 에 의해 세워졌으며, 하룬 알타시드 시기 (786~809) 가 전성기.

것처럼, 거기서부터 자신의 전정한 면모를 훼손하기까지는 불과 한 걸음밖에 남지 않는다. 〈로마의 평화는 고갈된 평화였다〉고 그는 쓰고 있다. 거기에는 적어도 잘못 시작한 이야기가 있다.

성급하게 요약된 이것이 이 방대한 책의 틀이, 죽처자가 그 책에 부여한 반복되는 가치를 따라 다양하게 적용해볼수 있는 를이다. 그들온 과거에 대해서도, 또한 현재에 대해서도 유효하다. 살아 있는 서구문명은 아칙도 한 세기 훨싼 전부터 뒤얽혀 있던 난관들 속에서 분명히 〈무릎을 꿇고 Clough>, 고갈되 어 가고 있다. 서 구 문명 은 보편 제국의 덕분으로 유예를 얻을 것인가? 알다시피 러시아전 미국이전 세계 차원의 제국은 이번에는 우호저 관계에 의해, 또는무력에 의해 부과된다.젊은 역 사학자이자 인류학자 필립 바그바 Phillip Bagby 는 스펭글러 및 토인비와 공통되는 마찬가지의 추론의 노선에서, 우리가〈로마의 산문〉 전야에 있는지의 여부분만 아니라 사실상 아메리카 제국의 전야에 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도 자문한 바 있다. 우리논 미국 황제를 모시게 될까?

위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우리 나름대로 충분히 긴 질문을 제기해 보자. 1519 년과 1555년 사이에 아놀드 토인비의 글들에 활기를 불어넣어준 신념들이 풍부한 상태에서, 그 시대와 샤를르 5세 치세의 장기적인 경험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본 명철한 관찰자를 가정해 보자. 그는 자신을 에위싼 유럽에서 로마질서로의, 보편제국으로의, 십지어 보편 교회의 수립으로의 복귀를 및 번이나 보지 않을 수 있었을까? 왜냐하면, 마침내 트렌트*에서 변형될 교체는 여러 정황으로 혁신적인 만큼 승리에 차 있고 새로왔기 때문이다. 우리의 예언자들이 보다더 명철하고 미국의 황재가 샤를르 5세보다 더 많은 기회를 가졌을까?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미소를 떤 채, 아놀드 토인비와 작별하지는 말자. 역사학자들은 그들의 직무와 관련하여, 때로는 약간 공정치 않게, 및 가지 이유들로 인해 그를 환대하지 않았다. 만일 내가 규칙에 예외를 두지 않는다면, 나로서는 에른스트 뀌르티우스 Ernst Curtis 가 그의 처작을 열렬히 환영했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사실상 그것은 우리에게 아주 귀중한 교훈을 준다. 죽, 어떤 설명은 십지어 그와 상충되는 것에 대해서도 장접을 지닌다는 것이다.

* Trente : 1545~1549, 1551~63 년에 트렌트에서 개최된 (가톨릭 의) 만국공의회.

그가 단순화댔단 과거에서, 체계 구죽가들이 그 렇게 한 것처럼 유감스럽게도, 언제나 단순화라는 터무니 없는 짓거리로 회피하지 않고 아놀드 토인바는 본능적으로 핵심적이지만 위험한 장기 지속의 질을 알아냈다. 그는 〈사회들〉, 사회적 실재들, 적어도 계속해서 존속하는 사회적 실재들 중의 북정 부문에 탐닉했다. 그는 수세기의 거리를 넘어 격렬하게 반동윤 주는 사전들에, 예수건 석가전 마호맷이건, 평범한 사람들보다 훨씬 위에 있는, 역시 장기 지속적인 인물들에 관십을 둔다. 아케메니데스와 바그다드의 회교국 사이의 I,000 여 년에 대해서, 나는 뤼씨앙 페브르 또는 게라르 마쉬르가 랬던 것보다는 시비를 덜 걸 것 이 다. 에 밀-펠리 스 고티 에 Emile-Felix Gautier 는 자신의 집작으로 모그레브와 에스파니아의 아랍에 대한 정복 (7 세기 중엽에서 711년까지)은 대체로 약 1,000 여 년의 거리를 두고 고대의 카르타고인의 지배영역을 재확립했다고 주장하였다. 아놀드 토인비의 장접은 길을 잃을 위험을 무릅쓰고 이 거대한 양의 시간을 다루고, 이 경험둘을 감히 수세기의 거리를 둔 경험 들과 비교하고, 약간은 비현실적이지만 중요하고 거대한 길을 찾아내는 것이다. 내가 좀체 시인할 수 없는 것은, 십지어 내가 전혀 시인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비교가 계속해서 단지 유사한 것들만을 조명하고, 고집스럽게, 문명의 다양성을 유일하고 간단하며 적어도 이상적인 하나의 문명, 죽 어떤 문명이돈 하나의 문명에서 실현될 수 있는 모돈 인간적 노력의 팔연적 구조로 만든다는 접이다. 그것은 문명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그토록 번화시킨 단수의 문명과 복수의 문명을 화해시키는 다른 것과 마찬가지의 방법안데 나는 그 방법을 그다신 좋아하지 않는다. 〈문화들의 온갖 다양성을 넘어, 인간의 정신적 본성 속에는 통일성이 촌재한다〉라고 토인비는 쓸 것이다.

알프레드 베버의 경우-그것은 치밀하고 십도있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알프레드 베버의 저서인 『문화사회학으로서의 문화사 Kuzturgeschichte als Kultursoziologie』와 상충되지 않울 주장이 다. 1935년에 라이 드 Leyde에 서 출판되 어 , 『문화사 Historia de la Cultura』라는 제목으로 스페인어로 번역된 그 책은 194I 년에서 I948 년까지 이미 4판이 나왔다. 그것은 탄탄하고 힘 있는 책이다. 위대한 막스 베버 (1864~1920) 의 동생인 사회학자 알프레드 베버 (1868~1958) 는 이 경우에는

역사학자가, 그것도 아주 주의깊은 역사학자가 되었다. 스펭글러나 토인비의 경우에서보다는 날하지만, 그는 우리로 하여금 수많은 것들과 맞부딪치게 해준다. 그는 그들과 같은 섬광 같은 통찰력은 없었지만, 또한 그들의 무모함과 민덕스러움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들이 부탁찬 모든 어려움둘을 그는 거의 과격하게 다루지 않았던 만큼 그것들은 그에게 있어서도 그만큼 더 끈질기게 버턴다. 그는 자신의 설명을 선사학에, 인류학에, 지리학에, 사회학에, 경제학에, 그리고 마르크스의 사상에 널리 개방한다. 그리고 그것은 훌륭하다. 그의 책은 그로 인해 다몬 책들에는 결여되어 있는 견실성을 얻었다. 그렇지만, 자신의 설명의 시작 부분에서, 그가 최초로 분출된 문명들인 이집트 문명, 바빌로니아 문명, 인도 문명, 중국 문명둥울 경단할 만하게 보여주었다고 해도 그것은 그가 복합적인 서구(유라시아 블러에서 힌두쿠시 산맥의 정상들과 계곡둘의 서쪽에 있는 서구를 뜻하는) 문·명 을· 다·룰 때보다는 신빙성이 덜하다. 그는 복합적인 서구 문명에서, 제 2, 또는 제 3 세대의 문명의 발달을 마치 시간과 공간상으로 아주 멀리서는 유효한 종합적 설명이 현재 시간과 우리 고유의 문명에 가까이 접근할수록 그 효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처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나는 알프레드 베버가 자신을 위해서, 또한 우리들을 위해서 문명에 대한, 또는 그가 말한 대로 고고한 위치에 있는 문화에 대한 만족스러운(내 기준의 의미로) 정의를 정립하였는지에 대해 의문율 표시하는 바이다. 그는 그것들을 〈역사적 실체들〉로, 즉 십지어 역사일반의 흐름 속에서 스스로 규정될 것으로 파악한다. 그렇지만 인간 전체의 운명을 좌우하는 그러한 흐름은 정확하게 무엇일까? 또한 문명둘은 왜 그렇게 많은 〈실체들〉의 형태를 취할까? 만일 알프레드 베버가 초월적이고 〈객관적인〉 정신(그것만으로 자본주의를 설명할 수 있으며, 예를 들면 문명 일반 도는 문명들을 설명할 수 있을, 베르너 좀바르트에게 있어서의 정신과 감은)을· 바라지 않는다고 해도, 그는 그에 못지않게, 그의 사상과 설명의 이면에서 〈시간의 정신〉 〈인간의 정신(인간의 양십, 그의 자유에 대한 감정, 스스로로부터 초연해질 가능성, 그의 기술자, 죽 〈도구적 인간 homo faber〉의 소양 등)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것이 문명의 역사적 실재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정신일까?

필립 바그비의 경우 __ ·이마 충분히 길게 논의되었지만, 아직도 그치

럼 불완전한 그런 석의 개괄은 간단히 줄여보자. 한 권의 책이 이제 막 출판되었는데 (1958) 그 책에는 젊 은 역사학자이자 인류학자이며 더욱이 크뢰버의 제자인 팔립 바그바라는 이음이 찍혀 있다. 그는 우리가 앞서 그것들이 우리에게 결정적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는, 최근 의 인류학자들의 논의들의 흐름을 우리에게 맛보게 해준다는 적지 않~ 이득을 누리게 해줄 것이다. 필립 바그비는 역사학과 인류학을 결합시킬 것을 제안했는데 그것은 그에게 우리의 아날 역사학파와는 미목 다르지만 그에 가까운, 독창적인 위치를 부여해 준다. 아날학파에서 는 뤼씨앙 페브르와 마르크 불로흐의 노선을 따라 역사과학은 서서히 정립되고 그것은 인류학이라는 인간과학들 중의 하나에 대해서가 아니라 인간 과학들 전체에 의존하려 한다. 그런데 팔립 바그비가 생각한 것은 여사학과 인류학만의 결합이었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만일 역사 일반의 지나치게 다양화되고 지나치게 방대한 영역이 단순화되지 않는다면, 만일 거기에서 권위적인 방식으로 과학적 부문을 잘라낸 다음 인위적으로 고립시키고 그 렇지만 십지어 그러한 작업에 의해 다루기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역사과학이란 없는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그들의 〈객관적〉 세계에서 질량과 시간, 관성의 원리를 가지고 분리해내고 나서 설제 적용해 보면 유효한 것으로 나타나는 변형된 실제를 이용하는 그런 방식으로 진행해 나갔다. 따라서 역사학자들로 하여금 문명이라는 선택받은 작업영역을 향해 나아가도록 하자! 그 영역은 비교를 허용한다는 점에서, 선택받은 영역인 셈이다. 살아 있는 존재들의 세계에는 유일한 역사, 죽 인간의 역사만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인간에게 비교되어야만 하고 우리의 탐구는 하나의 경험에서 다론 경험으로, 하나의 문명에서 다론 문명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 이름으로 상호비교가능한운명들만을 지칭하는 조건에서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문명들 사이에는 선택이 게재된다. 꼭대기에는 가장거대한 〈주요 문명들〉이 있고, 그 다음에는 보다 덜 거대한 하·위 문명들이, 혹은 이차적인 문명들이 있다. 마지막으로 미묘한 차이들을 떤 문화들이라는 명목에서만 권리를 지니는가장작은 것들이 있다. 각 법주의 내부에서 그것들을 서로서로의 관계에 따라 비중을재는 것이 그것들이 공동의 운명에 따르는지의 여부를, 그것들이 유시한곡선들을 그리고 서로 서로를 유용하게 한데 모을 수 있는 규칙

적인 역동적 구조들을 허용하는지의 여부를 파악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이 거대한 임무에 착수하기 전에 환상에 의한 관접을, 죽 선행적인 형이상학적 설명을 제거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악의는 없지만 단호하지는 않게 인간주의적 전동에 속하며 따라서 인류학적 문화가 없는 역사학자라는 접에서 비난받은-그렇지만 얼마나 훌륭한 비난인가 ! ――아놀드 토인비에게 충분히 살아 있는 및 가지 비난이 가해졌다.

이 모든 것들은 주요 문명 들로 되돌아가기 위한 것이다. 그렇지만 어떻게 이 거창한 인물들을 내부로부터 이해할 수 있을까? 불행히도 팔럽 바그비 그·역시 그것들을십각하게 규정지으려 하지 않는다. 아놀드 토인바가 뽑아봐 21 개 또는 22 개의 문명들에 대하여 그는 거창한 문명들 중에서 단지 9명의 인물만을 보유한다• 그것이 전보인지의 여부는 나는 모른다. 나는 그것이 거의 같은 노래가 아닐까, 인간의 운명에 대한 똑같은 관념론적 문제 제기가 아닐까 두려워한다. 분명히 더 나은 것을 약속하는 이 책을 끝내면서 그가 힘들여 기초를 마련한 비교 연구로부터 사실상 무엇을 보유할 것인가? 문명은 그것들의 완만한 발달 과정을 통해 종교적 시대로부터 접접더 합리성을 수락하는 시대로 규칙적으로 나아갈까? 막스 베버는 유럽에 대해 이미 그 점을 언급한 바 있으며 베버 이전의 다론 수많은 사람들 예를 들면, 오귀스드 꽁뜨도 그렇게 했다. 최근에 하인리히 프타이어 Heinrich Freyer는 〈합리성은 서구 사상의 ‘추세'였다〉라고 주장하였다8) . 그것이 세계 사상의 추세일까? 기조의 이원론(종교성, 합리성)보다 훨씬 엄격한 이 이원론 앞에서 여사학자가 스스로 염려하는 한 나는 그 접을 기꺼이믿을 것이다. 종교와 이성은 밤과 낮처럼 그것은 언제나 대립적~계일까? 보다 공정해지기 위해, 〈이성의 왕국은 신의 왕국에서 시작된다〉9) 라는 하인리히 프라이어의 생각을 깊이 고려해보자. 후자는 끊임없는 세속화의 흐름을 통해 전자를 낳는다.

그러나 독자가 이 젊고 총명한 인류학자의 주장을 믿으려면 우리가 얼마나 높이 올라가야만 하는지를 이해한다. 반복된 수많은 상승은 우리에게 필요하다면 낮은 위치에 대한 취향울 주었다. 인간은· 기도와 사상만으로 살 수 없으며 인간은 또한 실질적으로 〈자신이 먹

8) Otto Brunner, p. 17.

9) H. Freyer. Weltgeschichte Europas, Il, p. 723.

는 것 der Menschist Was er isst〉이 다. 일종의 재 담으로 샤를르 쎄뇨보스는,언켄가이렇게 말했다 〈문명이란 도로, 항구, 부두… ••• 동이다.〉 그 말울 문자 그대로 믿지 말자. 그렇지만 이 평범한 말은 우리로 하여금 사물들을 한데 혼합시키게 하지 않고 그것들을 나누게 하고 개별화시키는 것을 보게 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것들을- 다시 굳어 내리게 하여 땅 가까이에서 파악하게 한다.

교차길에 선 역사학

독자는 내가 이 제목에서 끝어내고자 하는 관점을 이미 알았을 것이다. 나는 문명사가 사실상 아주 단기적인 역사와 마찬가지로 교차길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학은 그것을 원하건 원치 않전간에 비교적 최근에 출현한 다양한 사회과학들이 인간 생활이라는 무궁무진한 영역에서 이룩해낸 모든 발견들을 수용해야만 한다. 그것은 어렵지만 간급한 임무이다. 왜냐하면 역사학이 그것이 이미 가고 있는 그-.길을 단호하게 따라야만이 역사학이 실제 세계의 이해에 선두에 서서 이용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큰 행운으로 만일 순수하게 내 책임하에 『역사의 연구 A Study of Histories』또는 문명 일반과 문명들에 대한 그렇게 방대하고 간 작품을 내가 쓰게 된다면 내가 부과할 것으로 여겨지는 작품의 틀을 제시할 수 있을까?

첫번째 입무는 부정적이지만 필요한 일이다. 십지어 거기에 다시 되돌아가기 위한 것일지타도 내 생각에 처음부터 반드시 벗어나야만하는특정 습관들과 그것이 좋건 나쁘건 즉각 결별해야 한다. 두번째 임무는 우리의 연구를 더 찰 추구하기 위해 가장 나쁘지 않은 죽, 가장 평법하고 다루기에 가장 수1 운 문명에 대한 정의를 모색하는 것이다. 세번째 임무는 이 목적을 위해 역사학자 이의에도 인간 과학의 모든 전문가들울 한데 소집하여 ·문명들의 영역의 방대함을 입증하는것이다. 마지막으로 결론을 대신하여 연구를 제안하는 바이다.

필요한 희생들

처음부터 특정 어법들은 거부하자. 죽 존재로서의, 또는 유기체로

시의, 인물로서의, 또는 실체, 심지어 역사적 실체로서의 문명에 따해서는 더 이상 말하지 말자• 문명에 대해 인위걱이고 단선적이며 단·순한 운명을 제시해주게 된다는 접에서 문명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죽어간다는것에 대해서도 더이상 말하지 말자. 역사학자의 눈에 띄는그것의 불완전함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차라리 예를 들면 중세 서구의 전체 사회 또는 우리의 현실사회에 대한 죠르쥬 귀르바치의 성찰로 돌아가보고자 한다. 그는 그 양자의 미래가 아주 서로 다른, 있을 수 있는 여러가지 운명들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다고 보았으며, 바로 그 접에서 나는 십지어 생활의 다양성에 바추어볼 때에도 합당한 견해라고 생각한다. 미래는 단 하나의 길이 아니다. 그러므로 단선적인 것을 거부해야 한다. 하나의 문명이 독창적이라고 해서 그것들 각자가 대양 가운데 있는 하나의 섬을 나타내는 것처럼 폐쇄되고 독립된 세계라고는 더이상 생각하지 말자. 오히려, 그것들은 공통적인 풍부한 토대 전부 또는 거의 전부를 접접더 공유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들의 수렵, 그들의 대화는 필수적이 된다. 마가렛트 미드는 〈문명(내가 인용한 바 있는 모스가 그 단어에 부여한 의미로)이란 인간이 처휴; 더이상 망각할 수 없는 것〉 즉, 언어, 알파벳, 계산법, 비례법, 불, 서실상수의 함수, 증기 둥이라고 말했다. 전체적으로 그것들은 오늘날, 독정 수준의 모돈 개별 문화의 공통적인 물적 토대들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문명들 또는 문화들의 운명에 대한 주기적 설명을 사실상 그것둘이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는다는 아주 지속적이고 귀에 익은 귀철의 변형들을 거부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비코의 세 시대 (신의 시대, 영웅들의 시대, 인간의 시대)와 오귀스트 꽁드의 세 시대(선학적 시대, 형이상학적 시대, 실증적 시대)를., 스.펜서의 두 단:계(강제, 그 다음에 자유)를, 뒤르깽의 연속적인 두 가지 유대(외적 유대, 내적 유대)를, 박스바일러 Waxweiller 의 증대하는 협동의 단계들을, 힐데브란트, 프레데릭 리스트, 또는뷔허 둥의 경제적 단계들을, 르바쇠르 Levasseur*와 라첼의 증대 하는 밀도들을, 마지 막으로 원시 사회 , 노예 제 사회, 봉건제 사회, 자본주의 사회, 사회주의 사회 둥의 칼 마르크스의 연쇄를 던져 버릴 것이다. 나는 이 모든 설명들을 단체로 비난하려는 것도, 내 생각에 오히려 아주 유용한 모델이나 주기 둥의 설명 원칙을

* P. E. Levasseur: 프랑스의 경계학자 (1828-191I). 저서 Histoire des Classes Ouvrieres en France (1859~1869).

비난하려는 것도 아니며, 그러한 배제는 처음부터 필요한 주의사항으로서의 가치를 띠기 때문에 때로 후회가 없는 것도 아니며, 두1 에 거기에 다시 되돌아가게 되기도 한다. 찰 알다시피 스펭굳러와 토인바의 틀에서 윤곽이 잘 잡힌 이 배제의 장을 마무리짓기 위해 나는 우리에게 제시된 문명들의 한정된 목록들도 역시 단져 버린다. 나는 사실상 하나의 연구가 유효하려면 모든 것을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죽, 가장 보찰것없는 문화들로부터 〈주요 문명들〉에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접을, 또한 득히, 이돌 〈주요 문명들〉이 하우]_문화들로 나누어지고, 이것들은 훨씬더 작은 요소들로 나누어진다는 접을 강조하고자 한다. 한 마디로 미시一역사학과 전통적 구조의 역사학의 가능성을 다루자는 것이다. 사닥다리의 아래 부분에서 어떤 요소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를 알아낸다는 것은 아주 홍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여하튼 중간 단계쯤에서, 나는 특히 오늘날 국가, 민족, 나라들은 기술상의 획일화가 어떤 정도이돈 간에 그들 고유의 문명을 가지려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레텔을 부여하건 간에, 각각 나름대로의 색깔과 내적 갇둥이 있는 프랑스 문명, 독일 문명, 이태리 문명, 영국 문명 둥이 있다. 그것들 모두를 서구 문명이라는 일반적인 어휘 아래 연구한다는 것이 내게는 지나치게 단순한 것으로 여겨진다. 니이체는 그리이스 문명 이태 여러가지 근거로 프랑스 문명 외의 다론 문명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반대로 인해 타격을 입지 않는다.〉 그것온 아주 논란이 될 만한 주장이라는 접을 나는 인정하지만, 토인비의 분류에서는 프랑스 문명은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사실과 비교해볼 때 홍미로운 일이다.

마르크 불로흐의 사상온 내가 적철히 이해했다면, 한편으로 프랑스 문명을 유럽적 를 속에서 위치를 정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프랑스를 개벌적인 프랑스들로 해체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다론 나라와 마찬가지로 우리 나라는 아무리 미미한 빛을 내고 있다 해도 부리 깊은 문명들의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분석에서 중요한 것은 가장 작은 것에서 가장 거대한 것에 이르는 이들 요소들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 즉, 그것들이 서로 어떻게 중첩되며 영향을 주고 받는지를, 그것들이 전체를 어떻게 괴롭히는지 또는 우연찮게 그것들이 어떻게 번영해 나가는지 또는 아닌지를(유사한 번영의 철대적인 기준이 있는 조건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유지해야 할 기준들

깨끗이 치위낸 영역에서 우리는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문명이란 무엇인가?

나는 훌륭한 정의만을 알고 있는데 즉 훌륭하다는 것은 관찰에 쉽게 이용될 수 있고, 가치 판단을 충분히 배제한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연구자의 취향에 따라 그런저런 인류학자의 가르침 속에서전 마르셀 모스와의 그 같은 관계에서든 촌재하며 , 나는 얼마 전에, 마르셀 모스로부터 그것을 차용했으며, 그후 그에 대한 후회를 한 적은 없다.

문화적 영역들――문명이란 무엇보다 공감, 〈문화적 영역〉, 주거 장소이다라고 인류학자들은 말한다. 어느 정도 넓지만 결코 지나치게협소하지도 않은 이 장소 내부에서 집들의 형태, 그것들의 지붕, 화살에 것을 다는 솜씨, 방언 또는 일군의 방언들, 요리법, 구체적인 기술, 믿는 방식, 사랑하는 방식, 또는 나침반, 종이, 인쇄공의 인쇄둥의 형태를 떠논 문화적 특징들을, 〈상품〉둘의 아주 다양한 더미들을 상상해보라. 문화적 체계성의 최초의 칭표들은 구체적인 영역에서 특정 특칭들의 편재성, 그것들의 빈도, 규칙적인 분류 둥이다. 만일 이러한 공간적 체계성에 시간적 영속성이 첨가되면, 나논 문명 또는 문화를 전체, 속성들의 〈전체〉라고 부를 것이다. 이 〈전체적인 것〉이 바로 그런 식으로 파악된 문명의 〈형 식〉이다.

물론 문화적 영역은 인류학자들이 그 접을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지리에 의존한다. 더욱이 이 영역은 자신의 중십부, 〈핵〉과 그- 경계, 주변들을 지닐 것이다. 또한 혼히 가장 특유한 특징들, 현상들또는 간장들을 발견하는 것은 바로 이 주변에서이다. 때때로 이 경계들과 그것들이 에워싸고 있는 영역이 막대해질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들로서는 오래 전부터 태평양 연안과 태평양의 모든 섭둘로 이루어전 문명이 아주 옛날에 촌재했음을 믿을 수 있다고주장해 보자…… 사실상, 이 영역에는, 수많은 일치접들이 있다〉라고 마르셀 모스는 썼다. 수많은 차이접들도 역시 있으며, 바로 그것 때문에 그 거대한 지역을 분할해야만 하고, 그것의 대립적인 것들을, 미묘한 차잇접들율 분석해야만 하고, 그축들을, 〈벼슬〉들을드러내야만한다. 그러나

태평양 문명의 사례가 손수1 운 방식으로 분석될 수는 없으며, 그보다 덜 광범위한 다른 사례들 역시 마찬가지다. 홍미있는 일은 한 영역은 언제나 및 가지 사회들 또는 사회 집단들로 무리지어 있다는 접이다. 바로 그 점 때문에 가능하다견 가장 작은 문화적 단위에도 주의를 기웅여야만 한다는 접을 나는 강조하는 바이다. 그것은 여기저기서 공간들, 사람들 다양한 사회 집단들로부터 얼마나 요구받을까, 죽 그것의 초]처 생촌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차용-이들 문화적 품목들, 죽, 문명의 미시적 요소들은 끊임없이 움직여간다(바로 그 접에서 그것들은 일반적인 사회현상들과 구별된다). 문명들은 교대로, 동시에 그것들을 유출하기도 하고 차용하기도 한다. 차용한 것들은 게걸스레 먹어치우고 유출한 것들은 흥청망청 낭비한다. 또한 이 거대한 순환은 결코 중단되지 않는다. 비록 모든 문명이 이런 식의 교환에 대하여 비슷한 정도로 개방적인 것은 아니지만, 근대 과학, 근대 기술과 같은 특정의 문화적 요소들은 심지어 전염성을 따기도 한다. P. 쏘로컨이 제시한 것처럼 정신적 품목의 차용이 기술의 차용보다 훨싼 더 빠르게 이루어지는지의 여부는 두고볼 일이다. 나는 그 접에 대해 의혹을 품고 있다.

거부·――그렇지만 모든 교환이 다 곧바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사고 방석 또는 신앙의 방식이건 또는 살아가는 방식이건 십지어 단순한 작업 도구이건 간에 차용에 대한 거부가 있다. 이러한 거부들 중에 어떤 것들에는 십지어 일종의 양식과 날카로운 명민함이 동반되기도 하지만, 다론 것들은 통과를 차단하는 문턱이나 자물쇠에 의해 결정된 것으로 맹목적이기도 하다. 물론 매번의 거부가 의식적이고 반복되고 확정적일수록 그것은 독자적인 가치를 띠계 된다. 모돈 문명은 비숫한 경우에 결정적인 선택을 하게 되고, 그 선덱에 의해 그것은 확정되고 드러나게 된다. 토인비에 의해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은 〈확산〉 현상들이 내가 보기에는 한 문명의 독창성과 활력성올 판단하게 해주는 보다 나은 시금석들 중의 하나인 것처럼 여겨진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가 빌려온 정의에서 경계선을지닌 문화의 영역, 차용, 거부 등의 세 가지 요인들아 작용한다. 이 작동 요인들 각각은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이 세 가지 요인들에 의해 연구에 개방된 가능성들_~ 영 역들과 그 경계선들에 대한 연구는 라안강과 다뉴브강의 이중 경계선아라는 구체적인 사례에서 명백해질 것이다. 옛날에 로마는 거기에서 그 정복을 멈추었다. 그런데, 천여 년이 월싼 지난 뒤에, 이 옛 경계에을 따라 교회의 봉일성이 찢기워져 버 렀다. 한편에서는 종교개혁선 대한 적대감이 만연하고, 다론 한편에서는 닌J: 종교개혁에 대한 강력한 대응 이상의 로마에 대한 충성십이 만연하였다. 더구나 그 두강이현저하게 다른 정신적 경계선을 나타낸다는 접을 누가 모를까? 이태리로 가떤서 다뉴브강을 건너기 위해 라티스본에 다다랐을 때 과데는 그 접을 알았다. 스탈 부인도 라인강을 건널 때 그것을 알았다.

두번째 요인 : 차용. 모든 책들은 그것의 관심이나 그것의 엄청난 기목을 다 써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서구문명은세계를지배하였다. 죽, 그것은 〈경 계선이 없는〉 문명 이 되 었으러 그것은 좋전 나쁘진 천혜를 풍부히 받았으며 수많은 난관과 충돌들을 겪었다. 그렇지만그것은 일찍이 그0 주변에서 혹은 멀리서, 죽 이슬람에게서, 혹은 중국에게서,사실상 인도로부터…… 의식하지도 않은 채 차용하였다. 샤를르6 세 치세하의 약간 무모한 시기의 프랑스에 멀티 중국의 당나라로부터 〈뿔 달린〉 장식품들, 원뿔꼴의 여자용 모자, 가슴과 어깨 7}드러난 상의들이 들어왔는데 그것들은 그것들의 본 고장에서는 오태전에 사라진 양식 들이 었다. 이 약한 상품들은 〈500 여 년 동안〉 구세 계의 길을 가로질러 진행되어 I6 세기에는 사이프러스 섬과 루이지냥의 빛나는 궁전에 도달했다. 거기에서 지중해의 가장 분주한 교역이 순식간에이 낯선 여행객들을 책임지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좀더 가까운 사례들이 있다. 이런 식으로 브라잘의 사회학자이자 역사학자인 길베르또 프레이어 Gilberto Freyre는 18.세기와 19세기에 유럽에서 온 자기 나라의 모든 차용물들울 기꺼이 열거하였다. 그 목록은 우스꽝스럽다 : 영국또는 함부르그의 맥주, 흰린넨 옷, 의치, 가스불, 영국의 동나무집, 중기(증기선온 1819년부터 산살바도르 만 우]를 운항한다), 훨씬 뒤늦게, 실증주의, 훨싼 빨리, 비밀결사들(이것은 에스파니아와 포르두갈을 거쳐 프랑스로 온 다음 대서양 섭둘을 통한 일상적인 통로로 왔다). 물론 그 이야기는 끝난 것이 아니다 .. I945년 이후, 이번에는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 걸쳐 프랑스에서 온짜르트르 또는 메를로 뽕티의 실촌주의의 메시지가 유포되었다. 사실

상, 그것은 독일의 사상이지만, 우리나라(프랑스-역주)의 매개에 의해 윤색되고 확산된 사상이다. 왜냐하면 프랑스는 여전히 그 특권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논 문화의 전이와 교환의 복합적인 작용에서 세계적 팔요성에 의한 선백의 교차로인 셈이다. 프랑스의 교차로서의 이러한 개방성(지리학자들은 〈지현 l'isthme 〉이라고 말한다)은 두말할 나위 없이 우리 문명의 뛰어남에 대한 정표가 된다. 그것은 여전히 우리의 중요성과 우리의 영광을 만들어 주고 있다. 마리 뀌리는 바르샤바에 있는 폴란드의 신실함이 복구될 수 있는 오래된 마을의 작은 집에서 태어났다. 모딜리아니는 레그혼에서 태어났다. 반 고호논네덜란드에서 태어났다. 피카소는스페인에서우리에게로왔다. 폴발레리는 제노바인 조상들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세번째 요인, 우리를 역사의 구체적인 지접에 위치지워 주는 데 가장 시사적인 것 : 거부. 이렇게 해서, 종교 개혁에 대해 유럽의 결정적이고 심각한 분리가 일어났다. 이태리, 에스파니아, 프랑스(프랑스는 지독한 망설임 후에)는 종교개혁 일반, 종교 개혁둘을 거부하였다. 또한 그것은 광범위하고 엄청난 십도를 지닌 한 편의 드라마이기도 했다. 그것은 유럽문화의 밑바닥까지 영향을 미찬다. 또다론 예가 있다. 1453 년에 콘스탄티노플은 증오하는 이복 형제들인 라탄족에 의해 구출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것은 두르크족을 더 선호한다. 그것 역시 다시 살펴보는 것이 좋은 한 편의 드라마인데, 그것은 직관적이고 〈이단적이며〉 논란이 될만 하지만 명석한 터어키의 역사학자인 레치드 사페 아타비넨 Rechid Saffet Atabinen 의 주석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만일 내가 문명들에 대한 새로운 설명이 요구하고 있는 정신적 전두를 위한 하나의 사건을 선택해야만 한다면 내가 선덱할 것은 로마의 멸망이라기보다는 콘스탄티노플의 포기이다.

모든 것을 거부를 중십으로 구축하려 들지 않는다고 해도 오늘날 호전적인 마르크스주의의 국적인 경우에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그거부라는 접을 누군들 생각하지 않을 것인가? 앵글로 색슨의 세계는 그것을 아주 십충적으로 거부하였다.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는 그것에 대해 적대적은 아니지만 그들 역시 절반 이상이 그것을 거부하였다. 여기서는경제적 수준, 사회 구조들, 가까운과거와그것의 우발적 사태들 동만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들도 그 역할을 담당한다.

〈확산에〉 대한 나의 신뢰가 나를 어디까지 이끌어갈 것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다시금 분명히 꿀로드 레비-스트로스의 겉으로 가게 된다. 논쟁중에 있는 그에게 있어서 문명이란 거대한 카드놀이판을 둘러싸고 있는 카드놀이자들과 마찬가지인데, 왜냐하면 그들은 특정한 방식으로 카드놀이의 일반이론과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않았던가? 카드놀이자들이 서로 돕고 그들의 카드 또는 그들의 의도를 서로 전달하는 것을 상상해보라. 더욱더 공모하게 될수록 그둘중의 한 사람이 보다 쉽게 이기게 될 것이다. 서구는 다론 것들보다 수많은 문화적 흐름들의 교차지적인 그 위치로부터 이득을 얻었다. 그것은 스스로 주고 빛을 발산하기 전에 수세기 동안 온갖 방향으로부터 받아들였다.

역사학과 인간 과학들의 대화를 위하여

전 범위에 걷찬 〈문화적인 것〉을 파악해야 하는 것아 우리가 세번째로 취해야 할 행동이다. 그에 대해 역사학자만으로는 충분할 수 없마. 인간과학들 전체__새로운 것들과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것들도, 즉, 철학에서부터 인구학과 통계학에 이르는_를 한데 묶어줄 일종의 〈자문〉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독일에서 〈문화〉를 그 토대가 되는 〈문명〉으로부터 고립시키는 것은 사실상 기만적인 일이다• 상부 구조를 무시하는 것이 부당하다면 혼히 그렇듯이 하부구조를 무시하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부당하다. 문명은 지상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핵심적인 원칙을 감행하려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토인비 또는 한편으로 뤼씨앙 페브르와 다론 한편으로 사회학자들, 인류학자들 경제학자들, 마르크스주의자들 둥과 같은 보조를 취해야만 한다. 문명들에 대한 연구들-에 의해 거의 규칙적으로 제시되는 관념주의의 남용에입 각한 칼 마르크스에 대한 형오감은 일마나 유치한 것인가 ! 우리 역사학자들이 맡아야 하는 일은 인간 과학들의 거대한 부문들 각각과의 일련의 대화인 것이다.

우선 지리학과의 대화를 해야한다. 문명들의 입지는 우연에 다름 아니다. 만일 그것이 도전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그것은 반복적인, 장기 지속적인 도전인 것이다. 1950년 어느 날 저녁 《아날》에서, 문명이라는 방대한 주제에 대한 페데리코 샤보 Federico Chabod, 삐에르 르누벵 Pierre Renouvin, 죤 네프 John U. Nef, 뒤씨 앙 페브르 사이의 우

호적인 토론중에 지리가 문제시되었다. 루]씨앙 페브르는 모든 문명의 기저에는 그것이 창조해낸, 아니 오히려 그것이 그 운명을 따라 창조해야만 하는 환경과의 끊임없이 반복되는 결정적 관계들이 즉, 토양, 식물군, 동물군, 전염병 •••••• 둥과의 원초적이면서도 기본적인 관계들이 있음을 주장했다.

인구학과도 마찬가지의 대 화가 필요하다 : 문명 은 수의 딸이 다. 토인비는 어떻게 해서 그것에 대해 우발적으로만 다루게 되었을까? 인구의 증대는 각극들과 변화를 끌어 넣을 수 있으며 꿀어 넣고 있다. 문명은 인간들의 정상적인 부담 이상이기도 혹은 그 이하이기도 하다. 그것을 넘어서면 쿨리슈어 Kulischer 형제들이 설명한 대로 끊임 없이 역사의 표면 아태에서 흐르는 이 방대하고 지속적인 인구이동을 초래하게 된다.

사회학, 경제학, 통계학 둥과의 대화 역시 필요하다. 뤼씨앙 페브르가 그 접에 대해 나를 용서해주기를 바라며 나는 뤼씨앙 페브르와는 반대로, 비록 그의 지표둘이 문명에 대해 나쁜 측정 방법이타 하더라도, 알프레도 니스포로 Alfredo Niceforo 의 편에 선다. 사실 문명 에 대한 완전한 축정 방법 이 란 거 의 없다. 나는 또한 〈전체 사회 , Societes globale>, 문명들의 〈실체〉(그렇지만 이 단어를 내 석대로 사용할 권리가 있울까?)에 대한 죠르쥬 귀르비치의 〈접근 방법〉들의 편에 서는 바이다. 이들 접근 방법들이 내 취향에는 아직도 지나치게 소극적인 상태이지만, 그것들을 P. 쏘로킨의 열렬한 관념주의와 비교해볼 때 그것들온 실제와 얼마나 근접하게 파해치고 있는가 ! 더구나 모돈 논쟁은 문명과사회구조, 또는계급사이의 관계를결정짓기 위해 재개되고있다. 나는 결국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전 그것의 도덕적, 지적 생활 십지어 종교적 생활을 굴절시켜 주는 강력한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토대가 없는 문명이란 없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1945 년 이후 프랑스는 사라져간 영광을 넘어 지적인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나혼자만이 그와 다론 견해를 가전 것은 아니다. 힘만으로는 영향력을 보장하기에 충분치 않다. 그러나, 모든 것이 작용한다. 문명은 힘과건강, 권력 등도 역시 필요로 한다. 바로 그접 때문에, 내가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책에 대해 아직도 느끼고 있는 찬란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본질적인 한 가지 이유 때문에 그 책은 다시 씌어쳐야만 한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죽, 이탈리아의 르네상스에 그 〈물질적〉 실체를

회복시켜 주어야단 한다. 문화란 순수한 사상만으로 살지 않는다. 쉐파르트 반크로프트 Shepard Bancroft 는 옳았다. 죽 모든 문화에는 초과량이 죽, 경제적 잉여가 필요하다. 문화란 소비, 사실상 낭비이다.

전문가들 사이의 경계선을 부수는 것

그렇지만 주의사항들, 배제사항들, 지지사항들로 이루어전 이 논란이 분분한 전체를 시험하게 해주는 것으로, 또한 보다 거대하고 무엇보다 보다 견고한 관접에 다다르게 해주는 것으로 우리는 어떤 실질적인 프로그램을 생각해볼 수 있을까?

우선 내가 다다르게 될 것은 현명한 프로그램, 즉, 문화생활의 짧은 단계, 즉, 내가 기꺼이 그렇게 해온 것처럼 이 영역을 확장하고자 한다면, 지금까지 경제적 생활에만 적용된 표현인 문화적 〈국면들 Conjonctures〉이라는 접을 말해야만 할 것이다. 나는 세밀한 조명을 해줄 수 있는, 정확한 연대에 못말을 세워줄 수 있는 시대를 실재 접촉을 동해 훨싼 유리하게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유용하다고 해도 그렇지만 제발 수세기들 또는 수천 년둘의 척도를 망각하지 말자. 일단 시대적 공간이 선택되떤, 좁은 의미의 문화적 부문들(예술, 문학, 과학, 종교적 감성……)과 〈문화〉라는 위엄에 그것들이 부합될지 아닐지 모르지만, 그것은 문제시되지 않는 다론 것들, 즉 나로서는 경제, 지리, 노동의 역사, 기술, 관습 둥을 뜻하는 것들이 서로 서로 어떻게 관계들을 맺는지를 편견없이 살펴보는 것이다. 인간 생활의 이들 모돈 부문들이 전문가들에 의해 연구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견고한 경계선이라는 피난처가 있는 개벌국가들의 경우에 대해서처럼 전문가들에 의해 거의 배타적으로 연구되는 것은 좋지 않다. 이들 경계선들을 제거하는 것을 실현하려 하는 것보다는 그것을 희망하는 편이 훨씬 쉽다.

앙리 브륀슈빅 Henri Brunschwig은 독일 낭만주의의 사회적 기원에 대한 자신의 논문에서 그에 관한 훌륭한 사례를 제공해 주었다. 그는 거기에서 독일문명이 18 세기와 19세기 사이에 어떻게 거대한 모태시계와 같이 뒤집혀졌는지몰 보여준다• 프랑스식의 지성인 설명 Aufklarung의 기치 아태 〈그럴듯한〉 시작이었다. 그리고 나서 지금까지의 그것의 규칙이었던 것들보다 본능, 상상력, 낭만주의를 선호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모돈 행실, 모돈 사회 구조들 및 경 제적 관련성 둥울 가로질러 이 거대한 가치 전도에 수반되는 것을 근본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그것은 J. 호이징가가 서구 중세의 종말을, 〈가을〉울, 그가 훨씬 뒤에 말했던 문명의 〈임종〉을 연구할 때 그의 유명하고도 훌융한 저작에서 이루어진 것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니다. 사실상 만일 임종이 있다면 임종은 불치의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내 개인적으로 보기에는 서구 문명의 한 단계, 한 순간으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내가 J. 호이징가를 가장 비난하는 접은 눈을 너무 높은 수준에 고정시킨 나머지 그가 고집스럽게 경관의 마지막 단계만을, 즉 장작더미의 꼭대기만을 고려했다는 접이다. 15 세기의 서구의 강력한 퇴각에 대해 그가 오늘날 고전아 된 인구학적, 경제학적 연구들을 다루지 않았다는 접은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그 연구들은 그의 저서가 결여하고 있는 토대를 부여해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가장 고상하고 가장 비천한 거대한 감정들은 충분히 독립적인 생활을 결코 영위해 나가지 못한다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조차 없기 때문이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나는 뤼씨앙 페브르의 최근의 대작, 『라블레의 종교 La religion de Rabelais』의 감탄할 만한 제 3 부를 환호하는 바이다. 거기에서 그는 타블레와 같은 시대의 〈정신적 도구〉, 죽 그가 접근할 수 있는 단어들, 개념들, 추론들, 감수성들의 레퍼토리가 어떠했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거기서는 수평적인 단면이 문제시된다. 그렇지만, 그 교훈은 오렌 연구 생활의 종말 (1942) 에서야 비로소 주어지는 것이며, 뤼씨앙 페브르는 언제나 그가 그것을 완성할 것이라고, 죽 그것에 〈그것의 충분한 위엄〉을 부여해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이 단면, 즉 이러한 문제제기, 홍미롭지만 그 자체로 한정적인 라블레의 사례로부터 벗어나 조만간에 그와 같은 수준이 언제, 왜, 어디서, 어느 정도로 변동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규칙이 될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일이 아직도 그에게 남아있다. 16 세기 전반기의 이 지적 수준이 사실상 우리가 보기에는 쐐기가 박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 그런식으로 되었을까? 물론 지성은 그 안에 그것들 고유의 설명, 그것들 나름의 맥락을 지니고 있다는 접에 나도 동조하는 바이다. 그것들은 또한, 뤼씨앙 페브르의 전 처작이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사회생활, 경제생활의 관성에 의하여 또는 오래된 수많은 요소들이 미리 감지할 수 없는 거대한 비중을 띠고 있는 문명들 자체의

특유의 장기 지속적인 독특한 관성들에 의해서도 밝혀질 수 있다.

구조들에 대한 체계적인 추구-바로 그것이 내가 신중하게 진행시켜나갈 방법이다• 그리고 나서는? 그리고 나서는 구조들, 즉, 사실상 짧은 시간의 격동을 넘어, A. 토인비가 말한 〈도전과 웅전〉을 넘어 유지되는 것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에 따르는 팔수적이고도 걷정적인 위험둘이 다가올 것이다. 구조들에 대한 이러한 필수적인 연구를 제안하면서 나는 논리적으로, 모델들, 말하자면, 서로 서로 관련되는 설명 체계를 수립할 생각을 하게될 것이다. 우선은 독정한 문명에 대해서, 그리고. 나서는 다른 문명에 대해서 구축할 것이다. 그` 어느 것도 우리에게 미리 그것들이 비숫한 구조를 허용한다든지, 거의 마찬가지가 되겠지만, 그것들이 모든 역사에 걸쳐 동일한 맥락을 따를 것이라고 확신지켜주지는 않는다. 논리적이 되려면 오히려 그반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죠르쥬 귀르비치는 〈사실상 환원불가능한 상태에 있는 전체 구조(간단히 말하자면, 문명)의 유형들 사이의 비교가 능성과 지속성의 환상〉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나와는 달리 역사학자둘은 누구나, 이 점에 대해 귀로비치가 옳다고 아니 거의 옳다고도 하지는 않을 것이다.

3 현재와 직면하고 있는 역사학

이 필수적인 분석들, 이 신중함들을 마무리지울 즈음, 또 이 망설임들(왜 내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랴)이 끝날 즈음에도 나는· 아주 자신있게 결론지울 권리를 느끼지 못한다. 잘했건 못했건논의된 것을 요약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다. 이 마지막 페이지에서는 이미 어려웠던 추론들에 반론을 제기할 위험을 충분히 무릅써야만 하며 죽, 이 장분만 아니라 이 책 전체가 겨냥한 이면의 문제에 답변해야만 한다. 역사학은 그 장접, 죽, 현실적인 것, 따라서 그것의 영여울 약간 넘어서는 것에 대하여 지니는 유용성을 보여주라는 부름을 받았다. 나는 역사 일반을 말한다. 왜냐하면, 문명은 거의 역사 일반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죠르류 귀르비치의 효울적인 사회학의 최정상인 〈전체 사회〉와 거의 마찬가지다.

바로 그접이 내가 끈질기게 준비하지는 않았던 어려운 답번을 단순화시켜 주지는 않는다. 사실상 역사학자는 현재에 관십을 두는, 독특한 방법을 지닌다. 일반적으로 그것은 그것으로부터 격리되기 위한 것이다. 그렇지만 대로는 되돌아오는 것도 쓸모있다는 접을 어떻게, 그리고 어느 정도나 부인할 수 있을까? 여하튼 경험은 에를 써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현재 시간과 부딪쳐 본다.

문명의 장수

아마도 사회적인 관찰보다 우리가 더 잘 알고 있는 접은 세계의 기본적인 다양성일 것이다. 우리들 각자는 모든 사회, 모든 사회 집단이 멀거나 가까운 관계로하나의 문명에,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그것들 끼리 관련되고 충첩된 때로는 아주 다몬 일련의 문명들에 강하게 참여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것들 각자 및 그것들 전체는 각각의 사회에 대해 내적 논리의 원천이 되는, 수많은 모순둘이 되는, 아주 장기지속적인 거대한 역사적 흐름으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정확한 도구로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것, 죽 그 어휘둘을 정복하려고 하는 것은 누구나 경험을 해보아 알겠지만, 그것들을 수백 년 수천 년의 거리를 지닌 그것들의 뿌리둘, 그것들의 기원들에 입각하여 파악해야 하논 것이다. 그렇지만 이 언어의 사례는 그 밖의 100 여 가지의 다른 유효한 사례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또한 문명사가들이 다론 사람들보다더 주장할 수 있는 것은 문명이란 아주 장기 지속적인 실재들이라는 접이다. 뿔 발레리의 너무도 유명한 구절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온 특히 우리의 개인적 생활의 척도에서는 〈유한한〉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하는바는유한한 수명을 지닌 사건들이 만일 촌재한다면 _물론 그것들은 존재하며 그것들의 기본 좌표를 교란시킬 수도 있다――그것들은 혼히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그것들을 훨싼 덜내리친다는 접이다. 수많은 경우에 있어서 참을 재우는 것만이 문제시된다. 일반적으로 그것들의 가장 우아한 꽃, 그것들의 가장 희귀한 결과들만은 사라질 수 있지만, 깊은 뿌리논 수많은 난관과 겨울을 견디며 생존한다.

필연적으로 장기 지속적인 실재이며 끊임없이 그것의 운명에 재적웅하는 문명은 따라서 수명에서 볼 때 그 밖의 다른 집합적 사실들

을 능가한다. 죽 그것 들은 명 맥을 유지한다. 그것들이 공간적으로 구체적인 사회들의(언 제 나 그 것을 의식하는 것은 아니지만 충 격둘, 구체적 인 충격둘을 받아들이면 서 그 것들 자체보다 는 반드시 더 큰 세계 속에 참겨 있는) 경계를 넘어서는 것과 마찬가지로 토인비가 잘 지적해내듯이 그들 에게 기이한 유산 을 전해주고 좁은 의미로의 〈현재〉를 관찰하고 파 악 하는데 만족하는사람에게는 불가해한, 초월 의 시간 속에서 그것들 의 액 면 이상으로 확 정된다. 달리 말하자면, 문명은 정치적, 사회적 , 경 제져, 십지어 이데 올 로기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생촌하며 더구나 그 혼란들을 은밀히, 가끔은 강력하게 좌우한다. 프랑스 혁명은 프 랑 스 문명 의 운명 에 서 완전히 절단된 부분이 아니 며 1917 년의 혁명 역시, 러시아 、문명―― 혹 자는 그것을 확장하기 위해, 희랍 정교문 명 la Civilisation Orthodoxe Orientale 이 라고도 칭 하는――에 서 단철된 부분이 아니다.

더 욱 이 문명에 관한 한, 냐는 불치의 것이 될 만한 사회적 파국이나 단 절 이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샤를르쎄뇨보스가.이 계열의 처자와의 우호적인 논의 가운데 부르조아지가 없는 프랑스 문명이란 없다고 주장한 것처럼, 쎄뇨보스의 주장 을 쟝 꼭또 10) 가 자기 나 름 의 방식 대 로 옮겨 , <·….. 부르조아지 는 프랑스의 가장 위 대 한 기반이다 ...... 우리에게 있어 모든 중요한 작품의 뒤에는 집, 램프, 수프, 불, 포도주, 파이프 둥이 있다〉라고 표현한 것처럼, 너무 빨리, 너무 확 정적으로 말하지 말자. 그령지만, 다론 것들과 마찬가지로 프랑스 문명은 부득이한 경우에는 사회적 지지를 변화시킬 수 있으며 또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러한 부르조아지를 잃게 되떤, 그것은 다른 것을 내세울 수도 있다. 이러한 시련을 거쳐 그것은 그 자체와의 관계에 있어서 그 빛깔을 거의 다 변화시킬 수도 있지만 그것은 다론 문명과의 관계에서 미묘한 차이접들 또는 독창성들을 거의 모두 보촌할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것은 그 〈장접들〉과그〈오류들〉의 대부분에 있어서 지속적일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현실 세계를 이해하려는 사람, 득히 현실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세계 지도에서 오늘날 처해 있는 문명을 판벨해내고 그.

10) "Le Coq et Arlequin", in Le Rappel a l'Ordre, Paris, 1926, 7˚ ed ., p.17·

경계선을 결정짓고, 그 중심부와 주변부를, 거기서 호흡하는 공기와 지방울, 거기서 살고 거기서 관계를 맺는 일반적이고 구체적인 〈형식들〉을 결정지을 줄 아는 것은 〈댓가가 요구되는〉 임무이다. 그렇지 않다면, 얼마나 많은 관접상의 오류와 재난이 일어날 것인가 ! 50 년, 100 년, 사실상 2~3 세기 후에도 경제학자들이 현명하게 말했듯이, 다론 모든 것들이 다 같다면, 또한 불행히도 오늘날에는 그 수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만일 분명히 그 사이에 인류가 자멀하지만 않는다면,이들 문명들은 모든 그럽직한 것들에 따라 세계 지도상에 거의 같은위치에 있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일차적인 동작은 세계 문영의 다양성, 이질성, 그것들의 인물들의 지속성을 믿는 것으로, 그것은 완만하고 오래된, 거 의 의식되지 않는(정신 분석에서 인간 행동의 가장 십중부에 두는 선행적인 것) 역사만이 설명할 수 있는 십충적인 취향, 정해전 습관, 엄격한 태도, 후천적 반사운동 둥에 관한 연구를 최우선에 두는 것이다. 학교에서부터 우리로 하여금 거기에 관십을 갖게 해야 할 것이지만, 각 민족은 다론 것들은 배제하고 자기 고유의 거울 속에서만 살펴보는것에 지나치게 탐닉하고 있다. 사실상, 이 귀중한 지식은 거의 공유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것은-유효하지만단기적인선전을 넘어거의 서로서로에게 귀착될 수 없는, 서로 다른 입장들을 선호하고. 존중하는 수락할 만한 언어를 문명마다 찾아내야 하게 되는 필요성을, 문화적 관계들에 대한 모든 심각한 문제들을 고려해야만 할 것이다.

프랑스의 위치――과거에는 프랑스가 이 수락할 만한 언어를 지 녔었으며 프랑스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러한 상태이다. 프랑스는 과거에 회교도 세계의 〈근대의 헬레니즘 Jacques Berque>* 이었다. 프랑스는모돈 라틴아메리카의――그것 역시 아주 매력적인 그 밖의 아메리카의 교육자였다. 누가 무어라고 하건, 아프리카에서 프랑스는 효율적인 빛이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유럽에서는 공통적인 빛이다. 폴란드로, 또는 루마니아로의 여행이 그 접을 충분히 입증해주며, 모스코바, 또는 레닌그라드로의 여행은 그접을 설득력 있게 입증해준다. 만일 세계가 서로 파괴하지 않고, 서로를 동요시키지 않으

* Jacques Berque: 프랑스의 사외 학자이 며 동양학자 College de France 교수(1956~ ). 아랍세계 및 과학기술 문명의 변용에 대한 여러 저서 출간.

면서 서로 이해하면서 지내고자 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세계적 팔요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장기적인 차원에서는 이러한 미래는 우리의 기회, 즉, 거의 우리의 존재 근거가 될 것아다. 비록 근시안적안 정치가들은 그 반대 상황을 주장할테지만.

전 세계에 걸친 다양성과 통일성의 영속성

그렇지만 모든 관찰자들, 모든 여행객들은 신이 나서 또는우울하게 세계의 접증하는 획일화에 대해 우리에게 말한다. 지구 전체가 어디나 똑같은 면모를띠기 전에 서둘러 여행하자! 의견상으로는 이들주장에 대응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과거에는 세계는 그림 같은 것들이,미묘한 차이들이 풍부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모돈도시들이, 모돈 민족들이 정해전 방식으로 닮아 간다. 리오 데 자네이로는 20 년 전 부터 마천루의 침입을 받았다. 비행기, 트럭, 철도, 공장들로 인하여 모스크바는 시카고를 연상시킨다. 민속 의상둘은 하나하나 사타져간다…… 그렇지만 이 분명한 검증 이상의 지나치게 십각한 일련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 아닐까? 과거의 세계에도 그 획일성은 있었다. 기술_도처에 눈에 띠는 것은 그것의 면모, 그것의 특칭들이다 __은 분명히 인간 생활의 한 요소에 블과하며, 특히 다시 한 번 더 문명 〈일반〉과 문명〈들〉은 혼동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계는 끊임 없이 좁아지고 있으며 거기서 〈같은 지붕 아래 있는〉 (Toynbee)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서로 서로 의지하며 함께 살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접근에 따라 상품들, 도구들, 아마도 공통의 독정 편견들을 공유해야만 하게 되었다. 기술의 진보는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수단울 증대시켰다. 도처에서 문명은 그 서어비스, 그 재고품들, 그 다양한 상품들을 제공한다. 문명은 그것들을 항상 산출하지 않으면서도 그것들을 제공한다. 만일 우리가 눈앞에 이 거대한 공장들, 용광로, 발전소들, 미래의 원자력 공장들의 분배도, 더우기 현대 필수품의 소비 지도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논 쉽사리 이 부와, 이 장비둘이 세계 각 지역 사이에 아주 불평등하게 분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산업화된 나라들이 있고 저기에는 어느 정도 효율적으로 자신의 처지를 바꿔보려고 하는 저발전된 나라들이 있다. 문명은 평등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문명은 가능성과 약속

을 유포시켰으며 그것은 탐 욕과 야심 을 부 추 킨다. 사 실 상 하나의 강좌가 개설되면 그 강좌의 우수한 학생, 평 군 학 생, 낙 재생 들 이 있 을 것이다. 인간의 가능성이타는 부채 를 펴 면서 그 과정은 마찬가지 방석으로 다양성의 범위 를 넓혔 다. 만일 그 전 행 과정이 멈 추 게 된다면 부채살둘은 서로 다시 모이게 될 것아다. 그런 일이 발 생 할 것 같지는 않다. 사실상, 경쟁적인 문명들과 경재들만아 그. 경로에 들 어 있다.

간단히 말해서, 문명의 팽창이 충분히 있다고 해도 문 명 을 그 것 의 승리문 넘어 언제나 자리를、 차지하고 장기적인 생 활을 부여받은, 아진정한 등장 인물들을, 이 다양한 문명들율제거하면서 살 펴 본다는것은 유치한 일이 될 것이다. 전보에 대해 그 경주에 참 여하고 그들 의 어깨에 수행해야 할 부담을 지며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혹은 부여하지않는 것은 바로 그것들이다. 그 어떤 문명도 새 로운 상품들 전체를 거부하지는 않지만 각각의 문명은 그것 에 독 별한 의미부여 를 한다. 모스크바의 마천루는 시카고의 빌딩은 아니다• 외 관 상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중공의 용광로는 로레인의, 또는 브라질의, 미나스제라스의, 또는 볼타 레돈다의 그것과는 다르다• 인간적, 사회적, 정치적, 십지어 신비적인 맥락이 있다. 도구는 큰 몫울 하지만, 그것 을 사용하는 사람과 거기에 기울이기도 하고 기울이지 않기도 하는 정성도 역시 큰 몫을 차지한다. 세계의 거대한 이 변화의 비중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눈이 먼 것입에 들림없겠지만 그것은 어디서나 나타나는변화는 아니며, 거의 바슷하지 않는 인간적 방향과 범위를 지닌형태를 떤다. 그것이 기술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은 프랑스처럼 오렌된 나라는 물론 너무도 찰 알고 있는 바이다. 단수의 문명 의 승리 가 복수의 문명 의 참사는 아니 다. 단수의 문명과복수의 문명들은 대화를 나누고 서로 첨가하기도 하며 때로는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육안으로도 구벌된다• 타구아 Laghouat*와 가르다이아 Ghardaia** 사이에 있는 알제 리 아 남부의 텅 빈 끝없는 도로 위에서 정해전 시각에 자동차를 멈추고 승객들을 그들 멋대로 방치해두고 그들로부터 및 미터 떨어져 자신의 의식에 따돈 기,도를 드리는 아랍인 운전사에 대한 추억울 나는 간직하고 있다.

이런 이미지, 또는 또다른 것들이 증명으로서 효력을 발휘하지는 않

* Laghouat: 알제리아 사하라의 오아시스, 행정 상업중심.

** Ghardaiii: 알제리아 사하라의 오아시스 모자브강 서쪽 관광명소.

는다. 그렇지만 생활은 충분히 모순적이다. 세계는 통일성을 향해 격릴하게 치닫고. 있다. 그러면서도 세계는 근본적으로는 다양한 상태로 있다. 그것은 과거와 마찬가지 방식인 것이다. 즉, 통일성과 이질성이 그럭저럭 공존한다. 참시 문제를 옮겨보기 위해 많은 관찰자들이 오늘날의 통일성을 주장하는 만큼 단호하게 부인하는 옛날의 동일성울 강조해보자. 그들은 과거에는, 세계는 거리의 막대함과 그 어려움으로 인해 그 자체에 대하여 나누어져 있었다고 생각한다. 산, 사막, 광활한 대양, 삼림지대 둥은 그 만큼의 장벽을 이루는 셈이다. 이 칸막아된 세계 안에서 문명은 아주 다양했다. 분명, 그랬다. 그러나 이 지나간 시대에 관십을 두는 역사학자가 만일 시야를 전 세계로 확대한다면, 그는 수천 마일을 떨어져 있는 장소에서 아주 유사한 리듬율 울리는 유사성들도 못지 않게 감지하게 된다. 마오쩌뚱의 중국이 제 5 공화국의 프랑스와 그러한 것보다, 아시아의 전쟁에 적나라하게 시달린 명조의 중국은 분명히 발로아 왕조*의 프랑스와 훨씬더 가깝다. 더구나 이 시대에도 기술이 유출된다는 접을 잊지 말자. 사례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획일성의 위대한 창조자인 것은 아니다. 사실상, 인간은 언제나 그것으로부터 거의 달아날 수 없는 한계선의 수인인 상태로 있다. 시간 속에서 번화하는 이 한계선은 지구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여실히 마찬가지이며, 어떤 시대가 고려되건, 획일적인 도장으로 인간의 모든 경험을 나타내주는 것이 바로 이 한계선이다. 중세에는, 16세기에도 여전히 기술, 기계, 도구의 빈약함과 가축의 희소성으로 인해 모든 활동은 인간 자신에게, 그의 힘에, 그의 노동에 돌려지게 된다. 그런데 인간그 역시 어디서나 희귀하고 유약하며 짧고 동물적인 생활울 한다. 모돈 활동, 모든 문명이 이런 식으로 가능성의 좁은 영역 안에서 펼쳐진다. 이들 한계들은 모돈 활동을 에워싸고 그것에 미리 제한울 가하며, 그것에 시간과 공간을 넘어 십충적으로 유사성울 부여한다. 왜냐하면 시간은 서서히 그 경계선을 바꾸기 때문이다.

현재시간의 근본적인 혼란인 혁명은, 바로 옛날의 〈피막들〉, 다양한 제약들의 폭발이다. 이러한 혼잡을 그 어느것도피할수 없다. 그것은 새로운 문명이며, 그것은 모든 문명들을 시험해 본다.

* Valois : 1328~1589까지 프랑스를 통치한 왕조.

현대를 규정짓는 혁명들

그렇지만 현재 시간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견해를 같이 해보사. 현재 시간울 우리의 개인적 존재들이 나타내는 아주 얄팍하 고 시소하며 반두명한 나날의 단면들인 양 개인 생활의 차원에서 판단하지 말자. 그것을 이해하고 파악하기 위해서는 문명의, 또한 심지어 모든 집단적구축물의 차원에서 다른 측정 방법이 이용되어야만 한다. 오늘날 문명의 현재 는 거대한 시간의 궤적이어서, 그것의 새벽은 I8 세기와 더불어 나타날 것 이고 그것의 밤은 아직 가까이 오지 않았다. 1750 년경 그 다양한 문명들과 더불어 세계는 일련의 혼란, 연쇄적인 파국에 말려들었다(그것들은 서구 문명만의 속성은 아니다). 우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것들을 겪고 있다.

이 혁명, 이 반복되는 혼란은 산업 혁명만이 아니라 과학혁명 (그러나 객관적 인 과학들에게만 영향을 준, 그 결과 인간과학들은 그들의 효과적인 전정한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흔들거리는 세계가 나온)에도, 마 침내 여러가지 이유로 생물학적 혁명에도 영향을 주어, 그렇지만, 지구상의 유래가 없는 인구의 범람이타는 명백한, 항상 같은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윽고 30 억의 인구가 되 었다. 1400 년에는 겨우 3 억 이 었다.

역사의 흐름에 대해 감히 말한다면 그것은 이 복합적이고, 편재하는 조수들에 대해서일 것이다. 인간의 물질적 힘은 세계를 들어울리고 인간을 들어울리고 인간을 그 자체로부터 때어내고 그를 정해지지 않는 생활로 밀어간다. 비교적 가까운 시대-예를 들면 16 세기―에 익숙한 역사학자는 18 세기부터 새로운 세계가 시작된다는 느낌을 갖는다. 현대의 항공 여행으로 인해 우리가 언제가는 넘어선다는 접에서,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잘못된 생각임을 알게 되었다. 소리 속도의 한계, 지구를 8,000km 의 거리로 둘러싸고 있는 지자기의 한계가 그 사례들이다. 15 세기 말엽에 괴물들이 살고 있는 대서양의 정복되어야 할 공간들에 과거에는 그러한 경계선들이 쳐 있었다. 마치 인류가 항상 그것을 의식하지 않은 채, 18 세기부터 오늘날까지 세상이곳저곳에 아직도 그 앞에 쳐 있는 이들 장벽둘 중의 하나, 이들 어려운 지대들 중의 하나를 뛰어넘은 것처럽 모든 일이 일어나고 있다. 세일론은 의약의 기적으로 세계를 뒤혼돈 생물학적 혁명, 죽, 수명의 기저적인 연장을 이제 막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 혁명에

동반되는 출생율의 하락이 아직 그 성에서 영향을 미치지 않아, 그곳에서는 자연히 출산율이 아주 높은 최대치의 상태이다. 이 현상온 알제리와 같은 여러 나라에서 나타난다. 중국은 오늘날에야 바로소 대대적으로 산업적인 생활에 돌입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무턱대고 거기에 틀 어박혀 있다.

이 새로운 시간이 인간의 오래된주기들을, 전통져인관습들을파괴했 다고 말해야만 할까? 만일 내가 나를 스펭글러나 토인비의 사상에 대한 반대자로 내세 운 다면 그 것 은 그들의 사상이 인류를 이미 사라전, 이미 살펴본 옛날 의 시기로 끈질기게 데려가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문명들이 잉카 문명, 또는 그 밖의 다른 문명들의 주기를 반복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우선, 기술이나 경제, 또는 인구그 어느것도 문명과 대단한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접을 인정해야만 한다.

사실상 인간은 그 의관을 변화시킨다. 문명, 문명들, 물질적, 정신적 , 지적인 우리의 모든 활동은 그것의 영향을 받는다. 인간의 노동, 인간의 기이한 동맹관계, 인간의 여가 둥이 내일이먼 어떻게 될 것인지 누가 예측할 수 있을까? 인간의 전통 사이에 잡혀 있는 인간의 종교 , 이데올로기, 이성 둥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원칙을 넘어 내일에 대 한 객관적 과학들의 설명이 어떻게 될지, 또논 오늘날 아직도 유아 단계에 있는 인간 과학들이 어떤 면모를 띠게 될 것인지를 누가 예측할 수 있을까?

문명을 넘어서

따라서 아직도 진행중에 있는 거대한 현대에서 엄청난 〈확산〉이 작용하고 있다. 그것은 서로서로의 단계에 의해 옛날의 고요한 문명의 작용을 교란시킬 분만 아니라, 각 문명의 내부적 관계에 따른 작용도 교란시키고 있다. 우리 서구인의 오만에서, 우리논 이 확산을 우리 문명의 나머지 세계 전역에 길찬 방사타고 부른다.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뉴기니아 중앙과 동부 히말리아의 토착민들만이 이 방사에서여실히 제의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연쇄적인 확산에 대해 서구가 그 창시자라 해도 여러가지 근거로 그때부터 그것은 그것을 떠난다. 이제 이 혁명들은 우리의 법위 밖에 있다. 그것들은 세계의 기

본 문명을 엄청나게 크게 한 파동이다. 현재 시간은 이 문명의 팽창 앞에 있으며, 그것은 그 끝이 감지되지 않는 복수의 문명에 대한 단수의 문명의 복수처럼 보인다.

그렇게 보일 분이다. 왜냐하면一―이미 내가 말한 대로-아 새로운 제약 또는 이 새로운 해방, 여하튼, 이 새로운 갈등의 원천이자 적응의 필요성이 만일 세계 전역을 두드란다 해도, 거기서는 아주 다양한 움직입들이 야기되기 때문이다. 기술의 급격한 몰입과 그것이 몰고 오는 모든 가속화로 인해 각 문명의 내부 작용에서, 즉, 그것의 물질적 또는 정신적 경계선 내부에서 일어나게 되는 혼란을 쉽게 상상해봉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작용은 명확하지 않다. 죽, 그것은 각각의 문명에 따라 변화하며 각 문명은 그것들이 심지어 그 구조들이 기 때문에, 아주 오래되고 처항적인 실재들과 마주하여 독특한 위치에 자리잡게 된다. 옛날의 태도와 새로운 필요성 사이의 갈등을 또는 조화를 가지고 각 민족은 나날이 자선의 운명, 자선의 〈현실 actualite>울만든다.

칼 만하입이 1943 년에 감행한 명확하고 현명하며, 약간은 슬픈 그의 예언에서 대중 정부를 일으키고 필연화시켰지만, 위험스럽게도 인간의 인간에 대한 권력을 중대시켜 준다고 언급한 바 있는 이 사회적 기술을, 기계를 어떤 문명들이 길들이고, 사육하고 인간화시킬 수 있을까? 이들 기술은 소수 데크노크라트에게 봉사할까 아니면 전체, 죽 자유를 위해 봉사할까? 문명과 문명들 사이에 다양한 명목 아래 다양한 전선을 따라 강력하고도 맹목적인 전투가 일어났다. 문명 일반을 굴복시키고 운하를 파서 그것에 새로운 인간주의를 부과시키는 것이 문제다. 이 새로운 광대한 전두에서 소수의 귀족을 부르조아지로, 또는 옛날의 부르조아지를 거의 새로운 부르조아지로, 시끄러운 민족들을 현명하고 움울한 제국으로, 언제나 스스로를 옹호하는 종교를 보편적 이데올로기로 대체하는 것이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유태없는 전두에서는 수많은 문화적 구조들이 그것도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다. 그 혼란은 아주 오래된 것이건 아주 찬란한 것이건, 역사 일반이타는 거창한 곳에 세워진 것에서 가장 누추한 것까지 모든 문명에 아주 십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관접에서 정신적으로 가장 흥미를 끄는 경관은 물론 새로운 대서양, 오래된 인도양, 아주 오래된 사하라 사막과 남쪽으로 적도의

원시접 사이에 있는 거대한 검은 아프리카의 〈통과중에 있는〉 문화들의 경관이다. 이들 문명들이 P. 바그비의 의미로 〈문화들〉이타는 사실은 왜 스팽글러도 토인비도, 알프레드 베버도, 펠릭스 사르티오 Felix Sartiaux 도, 십 지 어 팔립 바그비 조차도 우리 에 게 그것 에 대 해 언급하지 않았는지를 설명해준다. 〈전정한〉 문명들의 세계는 이 런 배재에 속한다. 이집트와 지중해와의 옛 관계를 놓찬 이 검은 아프리카는두 말할 나위 없이 모든 것을 다시 한 번 확산으로 이끌어간다. 인도 양 쪽으로는 높은 산들이 서 있다. 대서양에 대해서는 그것은 오렌 동안 비위둔 상태였으며, 15 세기 이후에는 거대한 아프리카는 증여품~ 나쁜 짓을 얻기 위해 그 쪽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검은 아프리카에 및 가지 변화가 나타났다. 그것은 기계의 도입, 교육의 설치, 전정한 도시의 설립, 과거와 현재의 노력의 수확, 죽, 비록 분명히 골수에까지 파고들전 않았지만 대체로 툼을 만들어 놓은 서구화의 결살이다. 검은 아프리카에 반한 마르셀 그리올 Marcel Griaule* 과 같은 인류학자들은 그접 을 찰 알고 있다. 그러나 검은 아프리카는 스스로 자신의 행위, 자신의 가능성을 의식하게 되었다. 당신이 거기에 가계 되면, 어떤 조건에서 어떤 고통의 댓가를 지불하고, 또한 얼마나 기쁘게 그러한 통과가 일어나게 될지를 알게 될 것이다. 사실상 이 어려운 문화의 전보에 대한 보다 나온 이해를 추구해야 한다면, 나는 비찬티움 최후의 날을 전쟁터로 삼는 대신 검은 아프리카로 출발할 것이다.

현대 휴머니즘을 향하여――품든화와 문명 이 우리 에 게 유효한 틀을 만·들어 주기를 이제는 더 이상 바라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문화와 문명들 의에 새로운 것, 새로운 제 3 의 단어를 필요로 하게 될까? 20 세기중에는 우리는 18 세기에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있을 수 있는 위험과 재난을 몰아내고, 우리의 집요한 희망을 표현하기 위해 온연 중에 새로운 단어를 필요로하게 된다. 우리에게 현대의 휴머니즘이라는 단어를 제안한 것은 죠르쥬 프리드만 Georges Friedmann 혼자만이 아니다. 인간 문명은 인간을 강요된 여가상태로 몰아 넣는 기계, 십지어 기계제조__자동화-의 요청을 국복해야만 한다. 휴머니즘아

* Marcel Griaule: 프랑스의 인류학자 (I898~1956). 쏘르본느대학 교수, 중앙 아프리카 아비시니아에서 선교활동.

란 인간이 서로 서로에 대하여 형제애를 가지고, 문명들은 각기 게벌적으로 또는 전체로 스스로를 구하고 우리를 구해주기를 바라는, 희망하는 방식이다. 그것은 현재의 문이 이상한 예언자들이 예언한 (모든 음울한 문헌들로부터 나타난 예언들) 파탄, 쇠퇴, 재난 둥을 넘어 미래를 향해 넓게 열리기를 바라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현재는 영원한 비국으로 무거운 모든 세기마다 그 앞에 장애물로 여겼지만, 인간의 희망이 많은 사람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끊임없이 뛰어넝었던 그러한 한계선일 수는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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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yer (Hans), Weltgeschichte Europas, t, Il , Stuttgart, 1954.

역자 해제

『역사학 논고』에 반영된 브로델의 새로운 역사학관

이정옥

이 책의 저자인 브로델 F. Braudel은 1900 년대초부터 움직임을 보여온 〈새로운 역사학〉의 흐름인 아날학파의 주도적인 역사학자 가운대 한 사람이다.1) 그는 정치 • 외교사 중십의, 구체적인 사건들에만 치중·하는소르본대학중십의 전통적 역사학자들에게 반기를들고보다장·기지속적인 전체사로서의 사회사를 강조하는 아날 학파2)를 전후에 발

1) 포스터 R.Foster는 만일 야날학파에 하나의 패러다임이 있다면 그것은 브로델의 『지중해세계』의 패러다임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R. Foster, "Achievements of the Annales School," Jourual of Economie History, Vol. 38, 1978.

2) 아날학파의 간접적 기원은 Annales de geographie(1891), l' Annee Sociologique(1896~1898), Revue de Synteese historique(1900) 등의 학술잡지로 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보다 칙접저인 기원으로는, Annales d' histoire so ciale et cconomique(1929)를 들 수 있다. 이 잡지는 전후 Annales: Economies, societes, Civilisation으로 명 칭 이 바뀐 뒤 1957년에 서 1968년 까지 브로델이 편집 책입을 말고 있다· 브로델의 책입하에 아날르파는 고등연구원 계 6부를 실질져으로 주도하고 역사학 연구소 Centre de Recherches Historique를 설립함으로써 프랑스 전체분 아니라 국제져으로 영향을 미치는 학파로 발전

하게 되었다. Annales 학파와 Braudel 의 관계에 대 해서 는 F. Braudel, "Personal Testimony," Journal of Modern History, XIIV(December, 1972), pp.448-67.

3) F. Brandel, La Medt'terranee et le monde mediterraneen a l' epoque de Phlilipe Il, Paris: Anmand Colin, 1949.

4) F. Braudel, Civilisation Materielle et Capitalism ; 1400-1800, Paris Armand Colin, 1967.

5) P. Braudel, Ecrits sur l'hist ire (Paris: Flammarion, 1969).

전적으로 계승 주도하였다.

브로델의 연구는 그의 전체사 개념의 핵십인 시간과 공간의 변증법에 대한 구체적 시도이자 그의 대표작인 『팔 립 Il 세 시대의 지중해와 지 중해 세 계 La Mediterranee et le monde mediterraneen a l'epoque de Phillipe II 』5) 와 시 간과 공간의 변증법 에 입 각하여 구조와 변동을 다룬 『물질문명 과 자본주의 l400 ~ 1800 Civilisation Materielle et Capitalism 1400~1800』4)로 대표된다. 또한 브로멜이 방대한 위의 저작들을 압축적 으로 요약 소개 하고 있 는 『역 사학 논고 Ecrits sur l'histoire』와 『물질문명 과 자본주의 에 대 한 재 고 Afterthoughts on Material civilisation and Capitalism』에 는 그가 역 사학자들 및 사회 과학자들에 게 주고자 하논 충고 및 비판, 그의 전체사에 대한 구상, 서구자본주의에 대한 그의 인식 둥이 찰 나타나 있다.

이 책은 그의 전체사에 대한 구상이 압축적으로 표현된 『역사학 논고 Ecrits sur l'histoire』5) 륜 번역한 것이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브로델의 『역사학 논고』는 그가 지난 20 여 년 동안 역사학의 본질에 대해 발표했던 논문 및 논설들을 모은 것으로 스페인어 번역 출간이 계기가 되어 불어판으로 출간된 것이다.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계기로 각기 쓰여전 논문들의 기저에 흐르고 있는 주장은 역사학과 다론 인간과학과의 유용한 협동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한 유용한 협동을 통해서 역사학은 다른 인간과학에게 역사학 고유의 시간개념(목히 장기지속)을 제시해 주는 한편 여타의 인간과학이 세련시킨 이론 및 방법을 역사학 편에서도 적국적으로 수용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협동에서 브로델이 득히 강조하고 있는 것은 바로 부문들의 갱신이라기보다는 총체성의 갱신이며 그것을 위한 직접적인 수단은 인간과학들 공동의 정보와 공통의 언어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 누구보다도 다름아닌 미래의 역사학자에게 맡겨진 가장 중요한 임무인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의 구성은 이러한 주장을 다양한 방석으로

표현하기 위한 형식인 셈이다. 이 책 은 전체가 3 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 I 부에서는· 역사학의 시간을, 제 2 부에서는 역사학과 다론 인간과학들을, 제 3 부에서는 역사학과 현 재시간을 각각 다루고 있다.

역사학의 시간을 다루는 제 1 부에서는 브로델의 대표작인 『필립 2 세 시대의 지중해와 지중해세계』의 초판인 1949 년 발간판의 서문의 내용을 발췌한 것과 1950년 브로벨의 꼴레쥬 드 프랑스의 취임 강연인 「1950 년대에 있어서 역사학의 위치」로 구성되어 있다. 이 두 편의 논설들은 앞서 제시된 아날 학파를 대표하는 브로델의 새로운 역사학관이 압축적으로 요약 • 소개되어 있다.

『팔립 I1 세 지대의 지중해와 지중해세계』의 초판 서문에서 브로델은 역사학의 서로 다론 세 가지 시간지속을 소개하고 있다. 브로델은 바로 그 세 가지 서로 다른 빠르기의 시간지속에 입각하여, 필립 I1 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세 가지 시간지속이란 첫째 인간과 환경, 무생물과 접하는 반복된 주기의 지리적 시간으로 그것은 반부동의 역사를 구성하며 바로 『지중해 세계』 제 I 부는 그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번째는 십충의 파동이 집단 및 집단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는 사회적 시간, 즉 사회사이며, 『지중해 제계』 제2부는 바로 그러한 사회사로, 즉, 지중해 세계의 경제, 국가, 사회, 문명, 그리고 전쟁 둥을 다루고 있다. 세번째는 프랑스와 씨미양이 사건사라고 했던 영역으로 가장 위험하고 짧은 당대인들이 체험한 그대로의 개인의 역사이며 가장 맹목적인 역사인데, 그것의 위험에서 빠쳐나오려면 끊임없이 장기지속적인 시간과 조응해보아야 하는 것으로 『지중해 세계』 제 3 부는 바로 그러한 역사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필립 I1 세 시대의 지중해 제계를 세 가지 차원의 역사에 입각하면서 브로델은 좁고 지엽적인 전통적 역사학과 대조적인 거대한 역사학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브로델에게 있어서는 그러한 거대한 여사학만이 실질적인 휴머니즘을 부상시킬 수 있는 도구인 것이다.

「1950 년대에 있어서 역사학의 위 치 Positions de l'histoire en 1950』에서는 『지중해 세계』에서 제시한 브로델의 거대한 역사학을 전동사학과 대비시켜 당당하게 주장하고 있는 논설이다. 이 논설에서 브로델온 역사학도 필연적으로 그 시대의 아들임을 밝히고 시대적인 상황에따라 역사학도 달라지고 있다는 역사학의 역사를 개진하고 있다. 죽 거대한 재난의 지기에 일찍이 역사학은 전세계져인 것을 상기시키는

것이었던 데 반해 비교적 안정된 유예기간인 1871~1914 년 동안 역사학이 축소되어 왔음을 지적하고 오늘날 제기되는 질문에 답변해 줄 새로운 역사학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브로델에 의하면 역사학이란 시간에 근거하여 인간과 사회에 대한 설명율 제시하논 과학인데 시간은 단기적 일상적 시간, 국면적 시간, 육중한 십충의 장기 지속적 시간의 세 차원 또는 그 제 차원을 포함하는 무수한 차원들로 이 루어 져 있으므로 새로운 역사학은 바로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연구주제를 확대해야 하는 것이다. 브로델은 랑캐식의 역사나, 경제사 • 기술사 등에서 주로 다루는 국면사 동이 시간의 단일차원 속에서만 파악될 매가지는 한계를 풍부한 사례를 들며 예시하고 있다. 그러한 거대한 역사학의 프랑스적인 맥을 브로델은 쥘르 미슐레, 뤼씨앙 페브르에서 찾고 있다.

제 2 부는 브로델이 주장하는 새로운 여사학과 기촌의 다론 인간과학들과의 새로운 관계정립을 위해 역사학과 다른 인간과학들을 다루고 있다. 제 2 부에는 8 편의 논문들이 있는데 그것들 중 「역사학과 사회과학들:장기지속」 「인간과학들의 통일성과 다양성」등 두 편의 논문은 인간과학과 역사학의 관계를 명쾌하게 밝히는 한편 인간과학듈이 왜 서로 협동하지 않으면 안되는지를 규명하고 있는 논문들이다. 나머지 6 편의 논문들은 「역사학과 사회학」 「경제사를 위하여」「계열사를 위하여 : 쎄빌르와 대서양 (1504~1650) 」 「생물학적 인간에 관한 지리학이 있는가?」 「사회사 개념에 관하여」 「인구학과 인간과학의 제차원」 둥으로 새로운 역사학의 방법을 각 개별 인간과학들의 연구에 도입하지 않았을 때 지니는 연구의 한계를 그 방면의 대표적인 연구서에 대한 서평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다.

「역사학과 사회과학들:장기지속」은 역사학 고유의 시간 개념이 다론 인간과학들의 연구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 또한 사회과학들 각 분야의 논의가 역사학 연구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를 가장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는 논문이다. 현대 인간과학 전반에 걸쳐 현대와 고대를 총망라하는 거대 연구 속에서의 위치 설정 문제에 부딪혀위기를 맞이하고 있는데 브로델은 그러한 위기의 타결방안 중의 하나로 사회적 시간의 다원성에 대한 인식 및 그 중에서도 장기적 시간지속의 가치에 대한인식을 갖춘 역사학울 중십으로 한 인간과학들의 결집을 들고 있다. 왜냐하면 브로델이 보기에 사회과학자들은 공시적

통시적 연구라는 이름으로 시간을 어색하게 자의적으로 판단해 버리돈가 아니면 극히 단기적 사실에 국한하여 사회과학적 연구를 사전화하든지 혹은 비시간적 구조에 대한 수학적 공식을 상정하는 커뮤니케이션 과학을 제안하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또한 장기지속적인 역사학은 사회과학둘의 연구에서처럼 시간지속과 관련된 〈모델〉 구성에 관십을 두게 된다. 왜냐하면 장기지속적이고 무의식적인 것에 도달하기 위해서 역사학자들은 관찰의 표면을 넘어 사회적 관계를 분석해볼 수 있는 원소들인 수학적 부호로의 환원의 방법을 채택하게 되기 때문이다. 브로델이 보기에 역사학과 사회과학들이 합일될 수 있는 공동적 관십은 장기지속의 축으로 모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장기지속온 역사학과 사회과학들 사이의 공통어의 한 가지 가능성에 불과한 것이지 그것만이 유일한 가능성은 아닌 것이다• 브로델이 역사학과 사회과학들간의 또다른 공통언어의 가능성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사회적 현실의 공간으로의 환원이다. 즉 브로델이 이 논문에서 사회과학들의 집단적 연구의 방향을 잡아줄 수 있는 실마리로 제안하고 있는 것은 ® 수학화 ® 공간으로의 환원 ® 장기지속 둥이다•

「인간과학들의 통일성과 다양성」에서 브로델은 각 분과의 인간과학들이 전문분야에 집착함으로써 필연적으로 그 한계가 노정된다는 접울, 죽, 그 개별분과들이 자체적으로 완벽해지고 효율적이 되고자 하면 할수목 그것의 취약성만을 확인하게 될 분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인간과학들이 합치되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러한 협동연구의 한 예로 미국에서 한때 활발했던 지역연구는 역사학과 지리학을 배제한 좁은 써클 내에서의 협동이었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음을 지적 하고 프랑스의 국립 과학연구소 Center National de la Recherche Scientifi ue 및 인간과학관에 서 역 사학을 주축으로 하여 거둔 협동연구의 거대한결실을 강조하고 있다. 즉 CNRS 와 인간과학관의 연구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과 가장 새로운 것 모두를 다 문제삼고 있으며 시간과 공간, 생물학적인 것이라는 집합과 재결집의 축에 따라 기존의 경계선을 자유로이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접을 인정함으로써 그러한 결실을 거둘 수 있었다고 브로벨은 보고 있다.

「역사학과 사회학」에서 브로델은 두 학문이 총체적 과학이라는 접에서 거의 같은 지평과 시야를 지니고 있으나 역사학이 지속과 동태의 기법에 입각하여 연구하는 데 반하여 사회학은 반복과 비교의 방

법을 원용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브로델의 입장에서 사회란 시간의 산물이며 시간의 함수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학자들온 시간을 사회적 사실의 특수차원 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으로만, 죽 여러 독칭들 중의 하나로만 취급한다. 죽 역사학자들에게 있어서 시간은 척도 죽, 피할 수 없는 것인데 비해 사회학자들은 시간을 반복적 현상이나 가장 협소한 영역의 국단적인 장기지속에 유페시킴으로써 시간으로부터 쉽사리 회피한다. 따라서 브로델은 사회학이 사회적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역사학과의 제휴, 즉 장기적 시간지속과의 제휴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본다.

「경제사를 위하여」에서 브로델은 역사학이 중요한 것과 중요치 않온 것, 지속적인 것과 순간적인 것을 구벌해낼 수 있는 득권을 지녔으며 선택된 하나의 사건 아래에는 스러쳐 있는 수많는 사건들이 그것에 대한 관성, 제동정치로 작용하고 있다는 접을 파악해낸다고 보았다. 경재사의 영역 및 사회과학의 연구에서 연속 및 불연속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시간의 다원성에 대한 고려가 없는 데서 기인되는 문제로 브로델은 보고 있다. 즉, 자본주의의 대두와 같은 변천의 연구를 위해서는 불연속성에 대한 다각적 검토, 즉, 십충적인 인류의 거대한 운명과 조응시켜 보아야함을 브로델은 강조하고 있다.

「계열사를 위하여 : 쎄빌르와 대서양, I504~I650 」은 삐에르 소뉘Pierre Chuanu 의 저 작 『쎄 빌르와 대 서 양 Seville et l'Atlautique 1504~1650』에 대한 서평을 통하여 브로델이 계열사의 장접과 그 한계를 보여주고 있는 논문이다. 브로델은 삐에르 쇼뉘가 계열사에 입각하여 다루고 있는 대서양세계는 ® 전체로 파악된 것이 아닌 앙티유에서 구아달끼비르에 한정된 〈중앙 대서양〉만을 다루고 있다는 점 ® 가장 오래된 해상공간이 아닌 급조된 과거를 지닌 대서양을 다루었다는 접® 국면적인 것만을 선호했다는 접 둥에서 자신이 〈지중해제계〉를 다루는 방식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제 I권에서 다루고 있는 중앙대서양의 구조는 전체사와는 무관한 사건들로 접철되어 있으며 현촌하는 다론 계열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자신의 계열사의 내부에만 탐닉함으로써 쎄빌르는 살아 있는 총체 속에서 제시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생물학적 인간에 관한 지리학이 있는가?」는 막씨밀리앙 쏘르.Marimilien Sorre 의 Ii'인문지리학의 생물학적 토대, 인간생태학론』에

대한 서평에서 막씨밀리앙 쏘르석의 접근의 한계를 지적하고 새로운 인문지리학의 상을 제시하려는 논문이다. 막씨밀리앙 쏘르는 인문지리학의 복잡한 문제들과 맞부딪치기 전에 인간의 문제를 우선 생물학적 차원으로 환원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그러한 입 장에서 제 1 권에서 는 자연지리학의 틀에서, 제 2 권에서는 생물지리학의 틀에서, 제 3 권에서는 전염병의 지리학의 틀에서 생물학적 인간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들에서 한층더 좁혀 제 1 권에서는 인간과 기후와의 관계에 초접을 두고 국지와 고지라논 의쿠메네의 한계지역을 제시하는 것으로만 그 소임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여간다. 제 2 권에서도 인간에 의해 재배되는 식물과 가축으로만 관십을 한정하고 있으며 제 3 권에로도 숙주가 있는 병원 복합체만을 한정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러한 제한된 접근에 대해 브로델은 역사적 시대에 따른 기후, 질병, 식품의 역사를 보완했어야 할 것을 강조하는 한편 보다 관십영역을 확대할 것울 주장하고 있다. 죽, 브로델의 입장에서 지리학은 인간적 사실의 공간으로의, 또한 사회적인 것으로의 이중적 환원을 의미하는데 막씨밀리앙 쏘르의 저작은 공간으로의 환원에만 그치고 사회적인 것으로의 환원을 회피하고 있다고 브로델은 보고 있다.

「사회 사 개 념 에 관하여 」는 오토 브룬너 Otto Brunner 의 논문집 인 『사회 사의 새 로운 걷 Neue Wege der Sozialgeschichte』에 대 한 논평 을 주제로 한 논문이다. 오토 브룬너는 사건, 개인에서 지체하지 않고유럽을 사회 • 문화적 전체틀에 대한 대표자격으로 제시하는 보수적이며 구조적인 사회사를 제안하고 있다. 죽오토브룬너는 11~18 세기의서구사회를 도시는 부르조아. 장인, 자치구역으로 목칭지어지는 반복적인 틀로 설명하고 있으며 그 들은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으로 인해 붕괴된다고 보고 있다. 또한 그 들은 〈동양적〉인 것과 대비되는 서구의 독창성을부각시키는 불이다. 오토 브문너에게 있어서 역사학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되, 사회사라는 거울 속에서 사회관계의 구조를 파악하는 방법과 인간의 자동적 결정을 대상으로 파악하는 정치사적 방법이라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그러나 브로델이 보기에 오토 브룬너의 이분법은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이며, 역사학은 N차원에 의해서만 감지될 수 있다는접을, 역사학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관대함을, 인생은 다양하면서도 하나라는 접을 망각한 결과이다.

「인구학과 인간과학의 제 차원」에서 브로델은 에르네스트 바게만

Ernest Wagemann의 『제 민족의 운명 에서 의 인구 La Population dans le destin des Peuptes』와 『세 계 경 제 /'economie moniale』를, 알프레 드 쏘비 의 『인구에 관한 일반이론 I : 경 제와 인구 Theorie generate de la Population I: Economie et Population』(1952)『II : 사회 생 물학 Biologie Scoiale』(1954)『부와 인구 Richesse et Population』(1943)를, Louis Chevalier의 『19C전반기 의 파리 의 노동계 급과 불량계 급 Classes laborieses et Classes dangereuse a Paris dans la premiere moitie du XIX Siecle』을 논평함으로써 인구학이 다른 인간과학들을 어떻게 보조과학들로 이용할 수 있으며, 또한 다론 인간과학이 인구학울 여하히 보조과학 으로 이용할 수 있는지를 밝히고 있다.

우선 에르네스트 바게만의 입장에서 인구학은 무엇보다 인구동태에 관한 연구인 국면적인 과학이다. 그런데 바게만에 의하면 그러한 인 구동태들이 경제현상 및 모든 것을 주도한다고 본다. 브로델은 바게 만이 제시하고 있는 인구동태의 수치들, 특히 결정적 문턱들에 대한 시대적 의미를 고려하여 그것들이 결정요인이 되기도 하고 피결정요­

인이 되기도 한다는 점을 제시했어야만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그러한 제시는 인구동태현상을 국면의 문제로만 한정함으로 써는 해결될 수 없음을 밝히고 있다.

알프레트 쏘바논 제 I 권 『인구와 경제』에서 인구와 총생산고 곡선, 평군생산고 곡선, 한계생산고 곡선을 이용하여 수리적이고 추상적인 구상에 입각한 최적상태, 최적능력의 개념을 설정하고 제 II권에서 그­러한 개념을 경험과 관찰의 세계로 회귀시켜 특히 프랑스에서의 인구· 고령화 현상을 문제삼고 있다. 그러나 브로델의 입장에서는 인구에 대한 일반이론은 경제적 차원의 계산과 경험적 차원의 관찰만으로는­

불충분한 것으로 여겨지며, 특히, 인구에 대한 일반이론이 공간과 거 의 무관하게 다뤄지고 있다는 점에 강한 회의를 표명하고 있다. 분만 아니타 인구일반이론에 문명과 문화, 시대, 시간지속이 결여되어 있 다는 접에 결정적 한계가 있음을 브로델은 지적하고 있다.

Louis Chevalier 는 19세 기 전반기 의 파리 의 노동계 급과 범죄집단의 양상을 불평등 문제를 주조로 하는 종래의 정치경제학적 접근이나 전 통적인 역사학, 전통적인 인구학의 입장을 벗어나 이민이라는 변수를· 가장 우선져 요인으로 취급하는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 Louis Chevalier의 제 I 권은 문학작품에 의거하여 개인적 범죄가 사회적 범죄로

바뀌어 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제 2권에서는 도시시설, 주택, 인구밀 집지대의 구성 둥의 인구학적 측정치들을 치밀하고 견고하게 구성하여 보여주고 있다, 제 3 권은 자살, 영아살해, 매춘, …… 등의 지표를 통하여 파리노동인구의 인구학적, 생물학적 측면의 열악성을 보여주 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19세기 전반기의 파리 노동계급에 대한 Louis Chevalier 의 접근에 대해 브로델은 그것이 시기 적으로나 공간적으로. 확대되어 비교되지 않은 접에서, 죽, 파리를 비롯한 도시일반의 심층 적 생활, 세기적 흐름에 비추어 조명되지 않았다는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제3부는 역사학과 현재시간을 다루고 있는데 그것은 「브라질 바이 아네에서 : 현재는 과거를 설명한다」와 「문명사 : 과거는 현재를 설명 한다」의 두 편의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브로델은 이 두 편의 논문을 동해 과거와 현재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브라질 바이아네에서 : 현재는 과거를 설명한다」는 마빈 해리스 의 『브라질의 도시 와 농촌 Town and Country in Brazil』에 대한 논평 울 주내용으로 하고 있다. 마빈 해리스는 I8세기 브라질 내륙에 세워 진 주요 금광도시들 중의 하나인 바히아 주의 미나스 벨아스의 도시 성을 밝혀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즉, 마빈 해리스는 미나스 벨아스 가 그 인근 촌락과 조화를, 혹은 부조화를 어떻게 이루고 있는지를 파악해내려 한다. 그런데 브로델은 소도시에 대한 연구는 그것을 시 간과 공간이라는 다양한 비교들로 끌어갈 때 비로소 훌륭한 관찰터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마빈 해리스처럼 미나스 벨아스 의 생활을 세부적으로 연구한 다음 그것을 〈도시〉라고 결론짓기보다 는 오히려 미나스 벨아스의 상황이 어느 정도 예외적인지 혹은 아닌 지를 밝혀내고, 미나스 벨아스가 어떤 메카니즘에 의해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그것의 부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편이 그 연구를 훨씨 생생하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브로델은 말하고 있다.

「문명사 : 과거는 현재를 설명한다」에서 브로델은· 기존의 문명, 문화에 대한 정의, 또는기존의 문명사영역의 실례들을 제시하고 자신이 구축하는 새로운 불의 문명사를 보여주고 있다. 〈문화〉와 〈문명〉은 비숫한 시기에 출현하여 때로는 독일에서처럼 〈문명〉이 소홀히 취급되고 〈문화〉가 훌륭한 대접을 받게 되든가, 아니면 프랑스에서처럼 〈문명〉이

합당한 대접을 받게 되는 등 다양한 어법들이 공존하고 있다. 따라서 시간, 장소, 학자에 따라그것들에 부여하는의미가달라진다. 기존의 문명사적인 연구에서 〈문명〉은 존재, 유기체, 인물, 역사적 실체 등 의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브로델은 기존의 문명사 연구에서 버려야 할 것들로는 유기체로서의 문명의 생 · 사 개념, 단선적인 전 보개념, 폐쇄되고 독립된 체계 개념, 주기적 설명, 재한된 목록의 문명 둥이라고 보고 있다. 반면 문명사 연구에서 유지되어야 할 기준으 로 브로델은 지리에 의존하며, 여러 사회, 사회집단들을 포함하는 문화적 영역들이라는 개념, 끊임없이 움직이는 문화의 차용 개념, 차용 에 대한 거부의 개념 등을 들고 있다. 이렇게 가장 쉽게 문명을 규정 한 다음 문명사 구축에 팔요한 조건으로 브로델은 〈문화적인 것〉을 파악하기 위해 인간과학들 전체, 예를 들면, 지리학, 인구학, 사회학 경제학, 통계학 등으로부터의 자문을 강조한다. 죽, 브로델에 의하면 문명이란 아주 장기적이며 다양성, 이질성, 지속성을지니고 있다. 현 재든 과거든 문명에는 통일성과 이질성이 공촌하고 있으며 그 이면에 는 시 · 공간을 넘어 심층적으로 유사성을 부여하는 공통의 제약이 있 으며 그러한 제약은 아주 서서히 바뀐다. 따라서 현재를 이해하려면, 문명의 차원에서, 죽, 집단적 구축물의 차원에서의 측정방법을 이용 해야 한다. 브로델에 의하면 현재는 〈문명〉의 팽창기(‘문화’ 에 대하 여)이며 복수의 〈문명〉에 대한 단수 〈문명〉의 복수가 전행되고 있는 중이다. 현재의 가장 중요한 관련은 문명 일반 속에 새로운 인간주의 를 부과하는 것이다.

앞서 개략적으로 제시한 『역사학 논고』에 실려 있는 12편의 논설들 온 브로델의 일관된 주장을 담고 있는 다양한 容器들이다. 더구나 서 로 다론 계기에 쓰여진 글들이라 주장의 전부한 반복과 논리적 일관 성의 결여라는 취약성을 면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각 논문마다 브로 델의 박학다식함에 근거한 폭넓은 사례 제시와 그에 대한 논박은 그것만으로도 아직 수학중에 있는 학생 또는 학자에게 지식인의 풍성 한 지적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는 아주 일차적인 장 접을 지저할 수 있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브로델의 주장은 득히 ·「역사학과 사회 과학들 : 장기지속」과 「문명사 : 과거는 현재를 설명한다」라는 두 편의

논문에 집약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이 두 편의 논문을 통해 브로 델이 강조하는 시간쳐 공간적으로 확대된 전체사의 윤곽을 살펴볼 수 있을 분 아니라 그러한 전체사의 입장이 오늘날 다론 인간과학들에게 어떤 방향제시를 해줄 수 있는지를 보다 분명하게 알 수 있게 된다. 죽 브로델의 전체사는 구조· 국면 · 사건이 평형을 이루며 이루어진 전 체에 대한 역사를 의미한다. 따라서, 브로델의 전체사가 성립하기 위 해서는 가능한 한 많은 수의 부분사가 축적되어 부분사간의 연결과 비교접근이 가능해야만 비로소 그 의미를 확고히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브로델이 다양한 분야에서 이루어전 기존 연구들에게 전지하 게 제시하고자 하는 충언은 그것들이 장기지속이라는 축에 근거하여 조립될 대상이라는 접을 충분히 명십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브로델의 이러한 장기지속에 대한 강조는 한편으로 역사의 전개과정을 지나치 게 결정론(물론 브로델 자신이 가장 싫어한 어휘지만) 적으로, 즉 역사를 자연적 사회적 환경의 수인으로 파악하게 함으로써 일견 변동을 도의 시하게 할 위험을 안고 있다. 그러나 브로델의 가장 진정한 충고는 현대의, 다론 어느 시기보다도 사건으로점철된현대의, 즉, 사회학자 의 영역의 의미를 역사적으로 확장해서 파악하라는 것이지, 그것들의 의미 자체를 사상하라는 것은 아니다.

수록논문들의 출처

La Mediterranee et le monde mediterraneen a l'epoque de Phillipe 11. Extrait de la preface (Paris, Armand Colin, xv+ u6o p, in-8 ;, 1949)

Positions de l'Histoire en 1950, 1950년 12월 1일에 행해전 Collilge de France의 취임 강연.

Histoire et sciences sociales : la Longue duree (Annales E. S. C., n°, Octobre-Decembre 1958, Debats et Combats, pp. 725~753).

Unite et diversite des sciences de l'homme (Revue de l'enseignement superieur, n° 1. 1960, pp.17~22).

Histoire et Sociologie ( Traite de Sociologie 개 요의 제 4 장 Paris P. U. F., z vol,, 516 et 466 p., in-8, 제 I 판 1958~60, 제 3판 1967~19

68).

Pour une economie historique (Revue economique 1950, mai, 85, pp. 37~44).

Pour une histoire sevielle: Seville et l'Atlantique (1504~165o)(Annales E. S.C., n° 3, mai-juin 1963, Notes critiques, p. 541~553).

Y a-t-il une geographie de l'individu biologique? (Melanges d' histoire sociale, tome vi, 1944, pp. 1~12).

Sur une conception de l'histoire sociale (Annales E. S. C., n°2, avril-juin 1959, Debats et Combats pp. 308~319).

La demographie et les dimenision des sciences de l'homme(Annales E. S.C., n°3, mai-juin 1960, Chro_nique des sciences.

Dans le Bresil Bahianais: le present explique le Passe (Annales E. S. C., n° 2, avril-juin 1959, 325~336.

L'histoire des Civilisations: le passe explique le present. Encyclop edie franfaise 의 제 5 장. tome xx, Le Monde en devenir (Histoire, evolution prospective), Paris, Larousse dep. general, 1959.

브로델의 저작들

(1944~1963), 1969, Ecrits sur l'histoire, Paris: Flammarion.

(1949) 1972~73, The Mzditerranean ani the Medierranean World in the Phillip II., 2 vols, New York: Harper->불어 판 wp2 판에서 번역되어 1966년에 영문판으로 간행, La Medititerranee et le monde mediterraneen a l' epoque de Phillipe II.

1953 Presence de Lucien Febvre, Vol. 1. Hommage a Lucien Febvre, Paris: Colin pp. 1~I6.

(1958) 1972 History and the Social Sciences, Peter Burke (ed.), Economy and Society in Early Modern EuroJ1e: Essaes from Annales, London: Routledge & Kegan Paul, pp. II~42. 초판은 불어 로 간행 되 었 고 Ecrits sur l'histoire, 1944~1963, pp. 41~83.

1961 European Expansion and Capitalism: 1450~1650, vol. 1, Chapters in Western Civilization, 3d ed. New York: Colu· mbia University Press, pp. 245~288.

(1967) 1973 Capitalism and M.:iterial Life 1400~1800. New York: Harper. 초판은 Civilisation materielle et Capitalisme,XV•· X VIII0 siecle.

I約Braudel, Fernand and Spooner Frank, Prices in Europe from 1450 to 1750, Cambridge Economic History of Europe Vol. 4, pp. 374~486: The Economy of Expanding Europe in the Sixteenth and Seventeenth Centuries. eds. by E. E. Rich and C. H. Wi lson, Cambridge Univ. Press.

1968a Bloch, Marc.•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ies Vol. 2 pp. 92~95. eds. by David L. Sills. New York: Macmillan and Free Press.

1968b Febvre, Lucien. ·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ed. David L. Sills. New York: Macmillan and Free Press.

1972 •Personal Testimony, Journal of Modern History 44 : 448~ 467.

1976 "Foreword," French Historical Methods : The Anna/es Paradigm, Traian Stioinovich. Ithaca, N.Y : Cornell Univ. Press.

1977 Afterthoughts on Material Civilization and Capitalism, Baltimore: Johns Hopkins.

브로델의 연보

1902 동프랑스의 샹파뉴 지방과 바로와 지방 사이 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남.

1913~20 파리 의 Lycee Voltaire 에서 수학.

1920 쏘르본느 대학에 역사학 전공으로 입학.

1923 알재리아의 콘스탄틴에 있는 Lycee 의 역사학 교사가 됨.

1925~26 군복무, 독일여행.

1928 "The Spaniards and North Africa,” 라는 diploma paper 출간.

1927~33 『지중해세계·…』 주제 구상기.

1932 알재 리 아에서 돌아옴.

1932~33 뤼시앙 페브르와의 직접 접촉.

1935~37 브라질 상파울로에 교환교수로 가서 활발한 연구활동을 합.

1940~42 마 인쯔에서 독일군 포로로 수용됨 .

1942~45 위백에서 독일군 포로로 수용됨.

1947 『필립 lI 세 시대의 지중해와 지중해세계』로 프랑스 국가박사학위 취득.

1949 『'지중해세계』 출간.

1957~68 Annales 편집장.

1986 사망.

인명 색인

겔던, 하이네 267

고티에, 에밀-펠리스 270

구베르, 삐 에르. 213

구루, 삐에르 267

귀르비치, 죠르쥬 13, 37,80, 104, 107, 110, 117, 118, 184, 206, 216, 275, 282, 285

그리올, 마르셀 295

기 에 쯔토르, 알렉 산더 93, 94

기조, 프랑스와 244, 254, 255, 273

까베냑, 외젠느 207

까스딸로, 알바로 147

깡디옹 206

께뜰레 206

꽁도르쎄 249

꽁트, 오귀스트 22, 273, 275

꾸르노와 25

꿀랑쥬, 퓌스멜 드 25

뀌르티우스, 에른스트 269

뀌바에, 아르망 252

끄레슈망, 고리지오며 144

네프, 존. u. 281

노이만, 폰 71

니스포로, 알프레도 282

다르델, 에릭 99

다이아몬드, 시그문드 69

드망죵, 알베르 103, 166, 260

뒤르껨 에밀 96, 114

뒤르퐁, 알퐁스 56, 88, 89

띠보데, 알베르 25

라꽁브, 뿔 25,50,77,97,98, 101, 102, 115

라뉘리, 엠마누엘 로 로이 13

라 페 이르, 앙리 142

라브루쓰, 에 른스트 37, 41, 54, 78, 106, II I, II6, 138, 144, 145, 17 2

라비쓰, 에른스트 37

라이트, 해폴드 195

라자스펠트 94

라첼 275

람프레히트, 칼 245

랑글르와, 샤를르 빅 또르 24, 59, 98. 99

랑보, 알프레드 251

탕케 19, z5, 27, 28, 52

레비-스트로스, 끌로드 48, 61-77

여 기 저 기 에, 90, 103, 107, IIO, 263, 281

레온티에프 91

레몽, M. A . 128

로로마스노토,우 ,루 기w .에 로8 9 144

로젠불라트, 알프레도 207

로지에, 양리 94, 206

로페스, 로베르토 191

되프케 ,. 빌 헬름 189

두므게르 108

루브발 가스똥 23, 77, II5

루짜도, 지노 177

뤼쯔, 씨몽 I39

르노데, 오귀스멩 4I, 42

르누강 뻐에르 Z8I

로바쇠 로, P. E. 275

로페브르, 죠르쥬 4I

리 이거, 마리안네 207

리터, 게르하로트 I7I, I79

마루, 앙리 98, 100, 251

마르멩, 펠리프 뤼쯔 147

마르크스, 카알 22, 206, 224, 249, 271, 275, 28 I

마쉬 르, 게 라르. 267

마이네케, F. 17I

만, 토마스 250

만하임, 칼 181

말리노프스키 61

망두, 뿔 99, 101

맬다스 206, 207

메이어, Th. 171

메이어슨, 이그나스 130

에트로, 알프레드 249

엘리스, 뻬데리고 139

모젠스턴 71

모스, 마르셀 37, IIO, 113, 202

무어, 지오프리 146

미드, 마가렛트 275

미술레, 쥘로 23, 25, 43,52, 100, 110, 210,255

미타이스, 하안리히 171

바게 만, 에 른스트 I87-I98 여기저기에, 223

바그비, 필립 253, 269, 27I, 272, 273, 295

바따이옹, 마르셀 41,42

바슐라르, 가스똥 79, 116

박스바일러 275

발동, 양리 103

페렐, 로네 186, 213

페로, 앙리 93, 97, 102, 181, 245, 246

베버, G. 256

베버, 막스 100, 170, 177, 191, 270,

273

베버, 알프레드 250,270,27I,295

베일, 앙드레 73

벨로우, 게 오르그 폰 170

벨로흐, 울리우스 207

벨트라미, 다니엘레 207

보죄-가로니에, ;,:j::n.린느 (Mme.) 206

볼테르 243, 249

부르크하르트, 야콥 22, 25, 52, 255, 256, 282

뷔허, 칼 275

브라, 가브리 엘 르 106

브란디, 칼 19

브레이어, 에밀 101

브룬너, 오토 169-184 여 기 저 기에 .

브윈슈빅, 앙리 II,2B3

브뮌슈빅, 레온 244

브르몽, 앙리 106

불라슈, 비 달 드 라 37, 83, 168, 206

불로흐, 마르크 38, 41, 59, 89, 99, 102, 103, 104, llO, 170, 272, 276

블롱델, 샤를르 103

비코 275

비르하우어, 쿠로트 206

빌레나, 길레르모 로만 138

빠랑구 1 샤플레 218

빼 루, 프람스와 53, 89

뼈 가니올, 앙드레 41, 100, 268

삐 렌느, 앙리 62, llO, 128, 175, 252

사르티오, 펠릭스 I77, 295

샤드르, 모리스 라 224

샤보, 페데리코 281

쇼뉘, 삐에르 I32-I49 여기저기에

쇼뉘, 우]게드 133, 147

슈뮬러, 구스타프 189

슈발리에, 루이 209-223 여기저기에

슘패터 91

스펭글러, 오스발트 173, 250, 251,

256-260 여 기 저 기 에, 267, 269, 27 I, Z76, 293, 295

스푸너, 프랑크 69, 74, 144

스프랭켈, 반 덴 207

싸로트르, 장一뽈 51

쌩 씨몽 22

째뇨보스, 샤를르 24, 25, 59, 88, 97, 98,99, 274,287

쎄 이우, 앙드레 130, 138

쏘로킨, P. 267, 278, 282

쏘로, 막시밀리앙 150-168 여기저기에, 2I6

쏘비, 알프레드 198-209 여기저기에, 223

씨 미 앙, 프랑스와 18, 37, 50, 96, 97, 98, 102, 109, II Z, 115, 192

씨옹, 쥘르 103, 168

아롱, 레이몽 99

아리에스, 필리쁘 63, 100

아벨, 빌헬름 171

아타비넨, 레치드 사페 280

알박스, 모리스 103, 110

알 타미 라, 라파엘 243, 250

알팽, 두이 52, 100

앙리, 루이 186

어서, A.P. 207

엥겔스 249

엠베르, 가스똥 I46

오드, 앙리고 139

오제, 앙리 97

자르데, 알프레드. 125

좀바르트, 베 르너 I 15, 130, 170, 202

질송, 에띠엔느 244

채피, 죠셉 248

케네 206

켈렌벤쯔, 헤르만 91

코울, 아서 91

콘드라티에프 53

콘째, 베르너 171

쿠르티우스 56

쿤, G. 250

쿨라, w. 89

쿨리슈어, 알렉상드르 207

쿨리슈어, 유전 207

크로체, 베네데도 51

크뢰, A. L. 252, 272

클라크, 콜린 124

클럭 크혼, 물라이드 252

클램, 구스타프 256

타일러, 에드워드 버넷 151

토인비,아놀드 254,260-270 여기저기에 , 276, 278, 285, 293, 295

되니스, 페르디난트 250

뒤넨, 폰 189

트라이취케 27

파발 에드몽 20

페브르, 뤼씨앙 11, 38, 39, 40, 43, 56, 64, 89, 99, 102, 103, 104, 110, 113,

115, 124, 131, r36, 150, 166, 168, 186, 245, 248, 254, 256, 272, 281, 282, 284

포이에르바하 2I7

푸거, 한스 I74

푸로동 22

프라이어, 하인리히 273

프랑까스텔, 삐에르 57

프레이어, 길베르도 241,279

하씽거, 헤르베르트 171

하씽거, 후고 206

해리스, 마빈 227-242 여기저기에

해밀튼, 얼.J. 134,143,146

해프케, 리히아르트 64

해밀튼, 얼 J. 134, 143, 146

호이징가, J. 251, 255, 284

힌쩨, 오토 171

사항 색인

간주기 53, 55, 57, 111, 142, 145

개인사 40

객관성과 수관성 100

경제학주의 186

계 량사학 53, 105, I06

계열 31

계열사 132-149 여기저기에

공간적 모델 82, 83

공시성과 통시성 79, I17

공시적, 통시적 66

과소인구 189, 193, 195, 196, 197

과잉 인구 189, 193, 197

구조 55, 65, 82, 107, 108, II3, 134, 135, 198, 214, 222

구조사 111

구조인류학 48

구조화 109

국면 30, 31, 32, 36, 50, 54, 107, 111, 112, 134, 135, 136, 140, 198, 214, 222

국면사 54, 111

기계적인 모델과 통계적인 모델 68

기술사 32

단기적 시간 51, 53

단기적 역사 54

도전과 웅전 266, 267, 285

마르크스주의 역사학 115

모델 66, 67-77 여기저기에, 82, 107, 113, 172, 173, 174, 199, 266, 268, 275

모델화 91,92

무의식적인 역사 48, 66,67

문명 18, 30, 34, 54, 243-296 여기저기에

문명사 30, 43, 243-296 여기저기에

문화 243-296 여기저기에

문화사 181, 245, 256

문화전파 267

문화혼 267

미시사회학 73, 76, 106

미시역사학 276

미시적 시간 66

반간주기 54

반부동(半不動)의 역사 17, 18

보조과학 186

불연속성 (사회적) 130

사건사 18, 51, 52, 102, 106, 111

사건사회학 112, 119

사회병리학 221

사회사 18, 40, 105, 106, 169-184 여기저기에, 245

사회 수학 65-77 여기저기에, 90, 113

사회적 사실 29

사회적 시간 79, I16

사회적인 것 48

사회학수의 186

상승기, 하강기 142, 146

새로운 역사학 30

생의 비약 267

선형적 역사 102

세계경제 125, 141

세기적(인) 추세 55, 142, 143

시간성 80, 111

시간지속 49, 47-84 여기저기에, 104, 105, 109, 111

시대구분 198

심층적인 여사 127

아날학파 272

역사과학 98

역사인구학 191

역사학수의 186

연속과 불연속 129

외적 프올레타리아 268

외쿠메네 I55, 160, 206

이데올로기 181

이야기식 여사 28,50

인건과학 12,47-95 여기저기에, 103, 105

인구학 185-224 여기저기에

인구학수의 185

일반사 28

장기지속 12, 47-84 여기저기에, 136,172

장기지속사 111,113

전체성 48, 114

전통적 여사(학) 29,53

주기 17, 53, 55, 57, 111, 275

주기적 역사 54

지리학수의 I86

지여연구 49,93,94

질적 수학 48, .70

커뮤니케이선과학 48,61,72

탈구조화(구조해체) 109

통계적 여사 13

표면사 106

휴머니즘 295

책명•잡지명 색인

《경제평론》 123

《계간 사회경제사학보》 169

《고등교육잡지》 95

『공산당선언』 249

『구조인 류학』 107

『나바르의 마르그리드』 39

『땅과 인간의 진화』 39, r66, r68

『라블레와 16 세기의 의신론』 39,56

『라인강』 39

『루이 14세의 세기』 249

『루터』 39, 40

『문화사』 270

『문화사회학으로서의 문화사』 270

『보편사』 256

『부와 인구』 199

『브라질에 서 의 도시 와 농촌』 227

《사학 종합 잡지》 59, 102

《사회 경제사 연보》 38

『사회 사의 새 로운 길』 169

『사회학 개설』 252

『서구의 몰락』 256

『세계경제』 188

『시간지속의 변중법』 79, 116

『19 세기 전반기의 파리의 노동계급

과 법죄계급』 209

《아날 Annales》 39, 59 , 102 , 103, 104, 108, 147, 16 9, 170 , 281

『에스파니아 문명에 서 본 에스파니아 역사』 250

『역사가의 칙 무』 99, 103

『역사 를 위한 싸움』 99

『역사와 운명 』 23

『역사의 연구』 262, 274

『역사철학입문』 99

《역사학보 》 169

『역사학(연구)입문』 24 , 99

『유럽 문명사』 254

『유럽의 몰락』 260

『이탈리아에서의 르네상스 문화』 255

『인구』 215

『인구의 일반이론 1 : 경제와 인구』 199

『인구의 일반이론 1 : 사회생물학』 199, 203

『인문지리학의 생물학적 토대』 150

『인문지리학의 원칙』 168

『제민족의 운명에 서의 인구』 I88, I89

『종합의 시기』 93

『탐색으로서의 수치』 188

『프랑스 문명사』 251, 254

『프랑스 지리부도』 37

『필립 I세 시대의 지중해와 지중해 세계』 134

『필립 II세와 프랑슈 꽁테』 39

『현대사회학의 문헌』 206

이정옥

서울대학교 사범대 영어과 졸업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현재 효성여자대학교 사회대 사회학과 조교수

역서 『사회학과 역사학』(공역) 『사회학사』(공역)

논문 「브로델의 사회사 개념에 대한 바판적 고찰」 「알뛰세의 과학과 이데올로기」

역사학논고

대우학술총서 · 번역27

찍은날――1990년 2월 20일

펴낸날――1990년 2월 28일

지은이――페르낭 브로델

옮긴이――이정옥

펴낸이――朴孟浩

펴낸곳――民音社

출판등록 1966. 5. 19. 제1-142호

우편대체번호 010041-31-0523282

온행지로번호 3007783

110-111 서울 종로구 관철동 44-1

734-4234 · 6110(편집부)

734-2000 · 2101, 735-8524(영업부)

733-7010(팩시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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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 5,700원

© 이정옥, 1990

역사학•사회사 KDC/331.09

Printed in Seoul, Korea.

대우학술총서(번역)

1 遊牧民族帝國史 룩콴텐·床基中 옮김/값 6,500원

2 수학의 확실성 모리스 클라인·朴世熙 옮김/값 7,00O원

3 중세철학사 J.R.와인버그·康英哲 옮김/값 5,500원

4 日本語의起源 R.A.밀러·金芳漢 옮김/값 2,200원

5 古代漢語音韻學 槪要 버나드 칼그렌·崔玲愛 옮김/값2,500원

6 말과 사물 미셀 푸코·李光來 옮김/값 7,0OO원

7 수리철학과 과학철학 헤르만 와일·김상문 옮김/값 7,500원

8 이상·진리·역사 힐러리 파트남·金影月 옮김/값 6,0OO원

9 기후와 진화 로널드 피어슨·김준민 옮김/값4,000원

10 사회과학에서의 場理論 쿠르트 레빈·박재호 옮김/값 6,O0O원

11 영국의 산업혁명 필라스 딘·羅慶洙·李廷雨 옮김/값 4,700원

12 현대과학철학논쟁 토마스 쿤 外·조승옥·김동식 옮김/값 8,000원

13 있음에서 됨으로 일리야 프리고진·이철수 옮김/값 7,500원

14 비교종교학 요아힘 바하·김종서 옮김/값 4,600원

15 동물행동학 로버트 A. 하인드·정현갑 옮김/값 6,000원

16 현대우주론 D.W. 시아마·양종만 옮김/값 8,500원

17 시베리아의 샤머니즘 V. 디오세지 外·최길성 옮김/값 10,000원

18 조형미술의 형식 힐데브란트·曺昌堡 옮김/값 3,700원

19 원시국가의 진화 죠나단 하스·崔夢龍 옮김/값 5,500원

20 힐버트-數學과 삶 콘스탄스 리드·이일해 옮김/값 10,000원

21 商文明 張光直·尹乃鉉 옮김/값 9,300원

22 마음의 생태학 그레고리 베이즌·서석봉 옮김/값 10,000원

23 혼돈 속의 질서 I.프리고진·I.스텐저스·유기풍 옮김/값 12,000원

24 생명의 기원 밀러·오르겔·朴仁潭 옮김/값 10,000원

25 일반언어학 이론 로만 야콥슨·권재일 옮김/값 5,000원

26 국가권력의 이념사 F.마이네케·李光周 옮김/값 9,600원

27 역사학 논고 F.브로델·이정옥 옮김/값 5,700원

28 유럽에서의 의식의 위기 1. 위기의 시대 볼 아자르·조한경 옮김

29 유럽에서의 의식의 위기 2. 변화의 시대 근간

30 일반 국가학 한스 켈젠·関検基 옮김/값9,7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