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야프리고진
1917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벨지움으로이주 후 1942년 브뤼셀 자유대학에서 박사학위를받았고 1947년 이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1977년에는 그의 생애 전부를 헌신한비평형 열역학에 대한 연구 업적으로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였다.1962년 벨지움 솔베이의 물리 및 화학 •국재연구소장, 1967년부터 미국 텍사스주립대학교의 프리고진을 위한 통계역학 및열역학 연구소장을 역임하고 있다.주요 저서로는 『비평형 열역학 입문』(1967.『구조와 안정성의 열역학적 이론』 (1971),대평형계의 자가구성』 (1977).『있음에서 됨으로 』(1980) 등이 있다.
혼돈속의 질서
자연과 인간의 새로운 대화혼돈속의 질서
일리야 프리고진이사벨 스텐저스유기풍 옮김民音社혼돈속의 질서
차례앨빈 토플러의 머리말 : 과학과 변화 _II책 머리에 : 자연과 인간의 새로운 대화 33서론 : 과학에의 도전 • 39제 1 부 일반개념의 그릇됨제 1 장 추론의 승리 • 69| 새로운 모세 692 비인간화된 세계 一―--733 뉴톤의 통합 814 실험적인 대화 865 과학기원의 신비 906 고전과학의 한계 97제2장 실재의 인식 • 105I 뉴톤의 제법칙 1052 운동과 변화 1103 동력학의 언어 1194 라플라스의 비범성 -l27제 3장 두 개의 문명 • 131I 디드로와 삶의 이야기 -1312 칸트의 비판적 실증 ―――一1403 자연철학? 헤겔과 베르그송 144
4 과정과 실재 : 화이트헤드 1495 "무지한 자의 무지한 짓" : 실증주의자의 긴장 —1526 새로운 출발 155제 2부 복잡한 系의 과학제 4장 에너지와 산업시대 • I591 열, 중력의 맞수 1592 에너 지 보존원리—1643 열기관과 시간의 화살 -1694 데크놀지로부터 우주론으로 - 1735 엔트로피의 탄생 1766 볼츠만의 질서원리 1827 카르노와 다윈 186제 5장 열역학의 세 가지 단계 • 191l 플럭스와 힘 1912 선형 열역학 ――一-1983 평형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 2004 화학적 불안정성의 문턱을 넘어 2065 분자생물학과의 만남 2146 두갈래치기와 대칭성파괴 2217 단계적 두갈래치기와 혼돈으로의 전이 2308 유크리드에서 아리스토텔레스로 234제 6장 요동을 통한 질서 • 2411 요동과 화학 2412 요동과 상관관계 2433 요동과 증폭 2454 구조적 안정성 ——545 보급적 진화 ———257 6 진화적 되먹임 —2637 복잡한 계의 모델화 ——270 8 개방된 세계 ———_274
제3부 있음에서 됨으로제 7장 재발견되는시간. 2811 관심의 변화 2812 보편성의 종말 2863 양자역 학의 출현 2874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 관계 ____ 2925 양자계의 시간적 진화 2966 비평형 우주 301제 8장 이념 사이의 충돌 • 305 I 확률과 비가역성 ———-3052 볼츠만의 개가 _313 3 볼츠만 해설의 의문 —-317 4 동력학과 열역학 : 두 분리된 세계 ———-322 5 볼츠만과 시간의 화살 —329 제 9장 비가역성 __ ·엔트로피 장벽 • 3331 엔트로피와 시간 화살 333 2 대칭성파괴 과정과 비가역성 -336 3 고전개념들의 한계 _——-3384 동력학의 재음미 — 342 5 무작위에서 비가역성으로 ———-3506 엔트로피 장벽 3567 상관관계의 동력학 3598 선택원리와 엔트로피 -3649 활성물질 -366결론 : 지상에서 하늘로-자연의 새로운 매력 • 3711 개방된 과학 371
2 시간과 시간들 3743 엔트로피 장벽 3764 전화적 파라다임 3795 배우와 구경꾼 3806 격동하는 자연의 소용돌이 3837 학설 을 초원 하여 3888 시간의 창조적 경로 3909 인간의 조건 39410 자연의 재음미 396역자후기 -一-399찾아보기――― 411앨빈 토플러·의 머리말
* 1928년 미국 뉴욕에서 출생, 뉴욕 주립대를 거쳐 현재 코넬대 교수로 있으며 저서로는 『미래의 충격 (Future Shock) 』, 『제3의 물결 (The Third Wave)』, 『미래학』, 『예견과 전제』 등 다수.
과학과 변화
현대 서구 문명의 가장 완숙된 재능의 하나는 무엇이든 작은 부분으로 해체하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 고려하는 문제를 가능한 미소한 성분으로 조각을 내버리는 일이다. 우리는 이와 갇은 일에 익숙해져 있다. 너무도 익숙해져 버린 탓인지, 종종 해체하였던 미소 조각들을 다시 본래의 상태로 맞추어야 하는 일을 잊어버리고 만다. 이갇은 재능은 아마도 과학분야에서 가장 잘 숙련되어 있다고 믿어진다. 과학분야에서는 상례적으로 문제 대상을 마치 한입 크기나 이보다 더욱 작은 부분으로 분해해냄과 동시에 흔히 각각의 미소 부분을 사뭇 그럴듯한 재간으로 이를 에워싸고 있는 주위로부터 고립시켜 버린다. 일컬어 우리는 이를 모든 객체는 같다(ceteris paribus)고 말한다. 모든 다른 사물이 같아진다고 간주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관심을 두고 있는 계와 이를 둘러싼 나머지 우주와의 복잡한 상관관계를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일리야 프리고진 (Ilya Prigogine)은 비평형계의 열역학에 대한 연구 업적으로 I977년 노벨상을 수상하였으며 그저 단순하게 사물을 분리해놓는 일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는 수상 이후 생애의 보다 귀중한 시간을 ”이같이 작은 조각으로 분리 고립시켜 버린 부분들을 다시 조합"시키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 그의 경우에 있어서 미소한 조각은 생물학과 물리학, 필연과 우연, 그리고 과학과 인간애에 해당된다.
1917년 러시아에서 출생한 후 열 살이 되면서부터 벨기에에서 성장한 프리고진은, 회색의 머리결, 이목구비가 뚜렷한 용모에 레이저와 같이 강렬한 열정을 지닌 아담한 체구의 석학이다. 고고학, 예술,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는 경이스러울만치 다재다능한 재주를 과학에 쏟아부었다. 엔지니어인 부인 마리나, 아들 파스칼과 함께 브뤼셀에 살면서 여러 분야의 학자들로 구성된 연구 그룹과 함께 개미의 군거 습성, 화학계의 확산 반응, 양자장 이론의 소산과정 등 서로 근본적인 논리를 달리 하는 각 분야에 그의 이론적 개념들이 암시하고 있는 관계를 매우 분주히 탐구해 가고 있다.그는 매년 얼마간을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소재한 텍사스 주립대학의 "동계역학 및 열역학에 관한 일리아 프리고진 센타”에서 연구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비평형대상체계의 비선형적 변화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산 구조 (dissipa tive structure) *”에 관한 명쾌하고 놀라운 연구 업적으로 노벨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이 저서의 공동 저자인 이사벨 스탠저스 (Isabelle Stengers)는 오랜 동안 브위셀의 프리고진 연구팀에 관계하여 온 철학자이며 화학자요 또한 과학사가이다. 그녀는 현재 프랑스 파리에 살고 있으며 빌레뜨 박물관에서 일하고 있다. 『혼돈 속의 질서』에서 필자들은 우리들에게 새로운 역사상의 획기적인 이정표를 제시해 주고 있다 ―이 저서는 우리에게 異論을 제기하도록 하고 마음에 활기를 주고 있으며, 지금껏 그렇게 믿어 왔던 가장 근본적인 가정 및 믿음들을 뒤엎어 버리는 섬광이 번뜩이는 예리한 통찰들로 가득차 있으며 이에 관한 신선한 사고방식들을 가르쳐 주고 있다.*토플러의 권두언에서 인용하고 있는 소산구조는 프리고진의 이론에서 가장 핵심적인 용어이며 혼돈적 거동으로부터 질서에 이르는 경로에 있는 대상계의 생산적인 일시적 구조를 의미한다. 프리고진에 의하면 소산구조 개념은 열역학 제 2 법칙의 엔트로피 증가에 대한 지금까지의 비관적 견해를 불식시켜 주는 말이다.
『새로운 동맹 (La Nouvelle Alliance)』이라는 제목으로 I979년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출간되었던 이 저서는 이후 곤충학으로부터 문학비평에 이르는 수많은 분야에서 명성이 높은 지성인들간에 과학을 초월하여 그의 이론에 대한 놀라운 관심 및 흥미의 계기가 되는 교두보가 되고 있다. 이 작품은 연이어 I2개 국어로 이미 번역 출간되었거나 출간 직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오는 데 이같이 오랜 시간이 지연되었던 점은 아마도 미국의 고립성과 문명적 거만성의 탓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미국에서 출간이 늦어진 밝은 보상의 하나로 이 미국판 역서는 이후 프리고전의 새로운 발견들, 특히 열역학 제 2 법칙에 대한 새로운 시각에서의 개념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와 같은 여러가지의 이유에 연루되어, 『혼돈 속의 질서』 또 하나의 단순한 책의 관념을 초월한 작품이 되었다. 이 저서는 나날이 새롭게 변천해 가는 과학 자체의 척도이며 과학이 목표하는 것, 과학의 방법론, 과학의 인식론-과학의 우주관을 재고하지 않으면 안되는 당위를 제시하여 주고 있다. 실제로 이 저서는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무심코 무시해 버럴 수 있는 오늘날 과학의 역사적인 새로운 변혁에 대한 징표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어떤 학자는 과학은 자체의 내부 이치에 의하여 움직이며 과학을 에워 싼 외부의 주위 세계로부터 놀랄만치 고립된 과학 자체의 여러 법칙에 의하여 발전되는 것이라고 마음에 그린다. 그러나, 무수한 과학에서의 가설이론, 현상론 그리고 모델은(두말할 필요 없이 과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임의의 선택은 다양한 실제 현상을 고려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해 버린다) 실험실 밖에서 아루어지는 경제, 문화 및 정치적 여건에 의하여 구체화되기 마련이다.본인은 아주 안일하게 사회의 본질과 과학적 우주 견해 또는 "패러다임 (paradigm)" 사이의 평행적 관계를 제안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본인은 아직까지도 과학을 마치 맑스주의자들의 상두적 소행처럼 사회경제론적 기초 위에 있는 어떤 "초월적 구조”에 속하는 것으로 관계짓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과학은 어떤 독립변수”는 아니다. 과학은 사회 속에 새겨져 있는 계이며 사회와 대단히 농도 질은 되먹임의 루우프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과학은 의부의 환경 요인에 의해 지대한 영향을 받아 왔으며, 그리고, 일반적으로 과학의 발전은 과학의 지배적인 개념에 대한 문명적 수용에 의하여 그 양태가 결정되어 왔다.
17세기와 18세기에 걸쳐 소위 "고전과학” 또는 "뉴톤주의”의 이름 아래 발생하였던 과학적 개념의 일면을 훑어보자. 당시에 는 우주의 모든 사전 즉, 이벤트들은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정확성을 갖고서 결정할 수 있는 사건의 초기조건에 의해 이벤트 전체를 추량할 수 있는 세계를 그려 왔다. 이는 우연이란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는 세계였으며, 모든 미소 부분의 현상은 마치 한 우주기계 속의 톱니바퀴처럼 정확히 조합되어 있는 세계였다.이러한 기계론적인 세계를 보는 견해는 산업혁명의 출현과 동시대성을 갖는다. 그리고, 마치 점괘를 풀기 위해 주사위를 던지는 일과 같은 우연의 개념으로는 그당시 우주 전체를 마치 임의의 기계로 간주한 과학 이론을 열렬히 수용하였던 역사적 사실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우주를 이와같이 보던 견해는 라플라스 (Laplace)로 하여금, 주어진 충분한 사실만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과거를 연역해낼 수 있다는 유명한 주장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와같이 단순하고, 균등한 기계론적 宇宙化의 이미지는 당시 모든 과학 발전의 진로를 정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기계론적 견해는 또한 미국 헌법의 기초 입안을 하였던 이들로 하여금 사회 통치를 위한 기계적인 방안을 창출하게 했으며 미국 헌법을 마치 커다란 시계의 각 부분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것처럼 지나침 을 억제하고 법을 균형있게 집행토록 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하였다. 매터닉·이 유럽에서 균형있는 권력을 행사하기 위하여 이곳저곳을 다닐 때는 언제나 여행용 행낭에 라플라스의 작품을 지니고 다녔었다. 또한 산업혁명의 극적인 파급은 거대한 공장 기계 소리, 기발한 엔지니어의 획기적인 개가, 철도의 출현, 철강, 섬유 및 자동차와 같은 새로운 산업을 낳게 하였으나 이들 모두는 그저 단순히 우주를 어떤 엔지니어의 생각하는 장난감처럼 형상화해 온 사실과 잘 부합된다.* Prince Von Mattemich, 오스트리아 정치가 (1773-1859).
그러나, 오늘날 기계론적 시기는 날카로운 멈춤의 소리를 내고 있으며 아울러 시대가 이러할진대 우리의 생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산업 시대의 쇠퇴는 實在에 대한 기계론적 모델의 고통스런 한계에 직면토록 하고 있다. 물론, 이런 한계의 대부분은 현재까지 명쾌하게 밝혀지고 있지는 않다 . 우주는 시계 장치요, 혹성들은 쉬임없이 주어진 괘도을 선회하고, 모든 계는 평형 상태 아래에서 결정론적으로 돌아가며, 모든 것은 외부로부터의 관측에 의해 발견해낼 수 있는 보편적인 법칙에 따르기 마련이라는 관념은 역사를 통해 이들이 처음 발견된 이후 이미 꺼져 가는 불꽃처럼 소멸해 가고 있다.
19세기에 이르러 열역학은 우주에 대한 기계론적 이미지에서 암시되어온 無時間性에 처음으로 도전하기 시작하였다. 열역학자들이 공언하기로는 만약 이 세계가 거대한 기계였다면 이 기계는 필시 소모되어 갔을 것이며 그 속에서 유용한 에너지는 누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계는 영원히 작동될 수는 없었을 것이며, 이로 인하여 바로 시간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다. 다윈의 학설을 믿는 이들은 곧 정반대의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계란 기계는 수명을 다할 것이며 에너지나 기계조직은 상실되어 가지만 생물학적 체계는 적어도 전보다 더 개선된 조직으로 변형될 것이라고 상상하게 되었다.20세기초에 즈음하여 아인슈타인은 고려하는 계의 밖에 놓았던 관측자를 대상계 속으로 자리 바꿈을 해 놓았다 : 이때 기계는 전보다 다르게 보이며 모든 실질적인 목적에 대해서도 내부의 관찰자가 기계 내부의 어느 곳에 위치해 있는가에 의하여 계는 다른 양상으로 보인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방법 역시 결정론적인 기계에 불과하였으며 그리고, 하느님조차도 이에 관해서는 어떤 확증도 주지 않았다. 이후의 양자론이나 양자 이론에서의 하이젠베르그 불확정성 원리를 믿는 사람들도 기계론적 우주 모델에 대하여 곡괭이나, 모루채, 다이나마이트 봉 등으로 맹렬한 공격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물론, 이 모든 만약, 그리고, 그러나 등의 가설에도 불구하고-프리고진과 스탠저스 역시 그러하였듯이-기계론적 패러다임은 아직까지 물리학이나 과학 분야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모델의 “기준점“이 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진정으로, 이와 같은 기계론적 견해는 너무도 강력하여 여러 분야의 사회 과학, 특히 경제 이론 등 여러 분야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어 왔으며 지금도 효력을 지니고 있다.
이 저서의 중요성은 단순히 뉴톤의 모델에 도전하기 위한 근본적 논리의 제기에만 국한되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아직도 기계론적 세계관이, 상당히 제한적이긴 하지만, 어떻게 유효한가를 보여주고 뉴톤주의가 많은 실제 현실에 대하여 어떻게 조화있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있다. 필자들은 지금까지의 "보편적 법칙"은 완전하게 보편적인 것은 아니며 실제 사실의 제한된 국부 영역에만 적용할 수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우연하게도 이 제한된 영역은 과학이 이미 숱한 노력을 경주하여 온 영역이다.그러므로, 넓은 의미에서 프리고진과 스텐저스는 기계론이 지배하여 온 시대의 전통적인 과학은 안정성, 질서, 균일성 및 평형 등의 개념을 강조하는 경향을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제개념들은 대부분 고려하는 계가 주위와 폐쇄되어 있으며 대상계로 유입되는 미소한 입력이 이에 비례하여 균등하게 미소한 결과를 나타내는 線形的 關係에 관심을 두어왔다.에너지, 자본 및 노동의 막대한 유입량에 기조를 둔 산업 사회로부터 정보와 기술혁신이 결정적 수단이 되는 하이데크놀로지 사회로의 변환과 더불어 보다 새로운 과학적 우주 모델이 반드시 제시되어야 한다는 당위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특히 프리고전의 패러다임이 홍미와 관심을 주는 점은 오늘날에 이르러 가속되는 사회 변화를 특정짓는 실재의 양상들, 무질서, 불안정성, 다양성, 불평형, 대상 영역에 미소한 양의 유입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비선형적 관계,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극도로 민감한 일시성 등의 변화 추이에 관심을 두고 있는 접이다.소위 "브위셀학파”로 일컬어지는 일리야 프리고진과 그의 동료들의 업적은 과학이 자연은 물론이려니와 사회 자체와 새로운 대화의 장을 여는, 다가오는 새로운 과학의 혁명을 매우 잘 시사해 주고 있다.프리고진의 연구에 중요한 기초를 두고 있는 브뤼셀학파의 개념은 변화에 대한 참신하고 포괄적인 이론의 창출을 의미한다.
이를 종합하여 간단히 말하자면, 그들은 우주 내의 임의의 제한된 부분은 기계와 같은 기능으로 움직이게 된다는 종래의 과학적 견해의 타당성을 인정하고 있으면서 기계론적 견해는 오로지 폐쇄되어 있는 임의 영역에 제한적으로 적용이 가능할 뿐이며 이 폐쇄계들은 기껏해야 물리적인 우주에서 매우 작은 부분에 해당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 사실상 인간이 관심을 두고 있는 대부분의 현상은 고려하는 영역이 이를 에위싸고 있는 주위와 에너지 또는 물질(그리고, 혹자는 정보를 포함시키기도 한다)을 서로 교환하는 개방되어 있는 영역 또는 계일 것이다 . 분명히 생물학 그리고 사회학적 대상계들은 개방되어 있는 체계들이며 종래의 폐쇄된 기계론적 개념으로 이를 이해하려는 어떤 노력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더욱이 이와 같은 관접이 암시하고 있는 것은 대부분의 실질적 현상은 질서 정연하고 안정되며 평온한 상태에 있는 대신 변화와 무질서, 그리고 과정의 소용돌이 속에 부글부글대고 있다는 것이다.프리고진의 관점에 의하면, 모든 고려하는 계는 그 속에 보다 작은 체계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 미세한 체계는 계속하여 쉬임없이 "요동"* 상태에 있다고 한다. 이와 동시에 어떤 작고 단순한 요동 상태가 때로는 실로 가공할 만큼의 위력을 가질 수 있으며 이 위력의 陽性的인 되먹임 과정의 결과로 앞서 존재하던 구조 또는 조직조차 산산히 파괴해 버릴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대변혁의 순간에는-프리고진과 스탠저스는 이러한 변환의 순간을 "특이점 (singular point)” 또는 "두갈래치기 지점 (bifurcation point)”으로 부르고 있다-도대체, 변화에 앞서 어느 방향으로 변화가 일어날는지를 예견하기란 근원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 한다. 즉, 고려하는 계가 "혼돈”의 상태로 될는지 또는 보다 새롭고, 특수화되고, 보다 높은 수준의 "질서” 또는 구조 ___ 필자들이 도입한 용어로는 "소산구조"-로 변환될 것인지의 여부름 알 수 없다고 주장한*프리고전의 개념에서 요동이란 용어 역시 핵심적인 중요성을 갖고 있으며 정류상태에 있는 대상계에 내부 및 의부로부터의 미세 의란을 의미한다.
다(그와 같은 물리, 또는 화학적 구조를 소산구조라 정의하였는데 이는 보다 단순화된 구조에 비하여 변화의 추이가 나타나기 직전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많은 에너지가 소요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론을 둘러싼 가장 핵심적인 異見의 하나는 프리고진이 주창하는 질서나 조직은 소위 "自己-構成(self organization)" 과정을 통하여 무질서와 혼돈 상태로부터 "자발적"으로 벗어날 수 있다는 관점이다.이 점을 지극히 효력이 있는 개념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평형(equilibrium) ”에 있는 계, "평형근방 (near equi l ibrium)”에 있는 계 및 "평형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far from equilibrium)"계로 구분을 지을 필요가 있다고한다.한 원시시대의 종족을 상상하여 보자. 만약 그 종족의 출생 및 사망률이 거의 같다면 인구의 크기는 안정된 상태에 머물게 된다. 만약 종족에게 충분한 식량과 그 밖의 자원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 종족은 생태학적인 평형 상태의 국부적인 계의 일부분을 형성하게 된다.이제 출생률이 증가되는 경우를 생각하자. 어느 정도의 부가적인 출생(이에 상응하는 사망률이 없이)은 그 종족에게 거의 어떤 영향도 주지 않는다. 즉, 그 종족체계는 아마도 평형근방 상태로 변화되어 있을 것이다. 이때는 별다른 주목할 만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고려하는 계가 평형 상태에 있거나 평형 근방의 상태에 있을 때에는 어떤 커다란 결과를 초래하기 위해서는 또한 커다란 충격의 유입을 필요로 한다.그러나, 만약 출생률이 갑자기 급증할 때 계는 평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로 돌입하게 될 것이며 이 시점으로부터는 바로 비선형적 관계가 지배케 된다. 이와 같은 상태에서 대상계는 비정상적인 변환을 따를 수 있다. 고려하는 계는 의부로부터의 방해 요인에 극도로 민감한 상태가 된다. 아주 작은 원인이 거대하며 놀랄 만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게 된다. 고려하는 전체계가 아마도 상식적으로 보아 아주 기이하다고 할 수 있는 어떤 방법에 의하여 계 자체의 재구성이 이루어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이와 같은 자기-구성의 예증들이 본 저서 『혼돈 속의 질서』에서 충분히 그리고 적절하게 검토되고 있다. 열은 평정한 상태로 어떤 액체를 통하여 이동되다가 갑자기 어떤 분계점에 이르러서는 대류의 흐름으로 급전환하게 되고, 수백만 개의 분자로 이루어전 액체는 이러한 변화를 감지하게 되어 마치 어떤 암시라도 있었듯이 스스로가 육각형의 세포 형상을 이루게 된다.
더더욱 극적인 것의 하나는 프리고진과 스탠저스가 정의하고 있는 "화학시계 (chemical clock)”의 경우이다. 백만 개의 흰색 탁구공과 백만 개의 검정색 탁구공이 계의 의부로부터 내부를 엿볼 수 있는 유리창이 부착된 어떤 용기 속에서 무질서하게 서로 튀어오르는 경우를 상상하였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창을 통하여 볼 수 있는 내부 전체는 아마도 회색을 띠게 된다. 그러나, 가끔 불특정한 순간순간 창을 통해 보이는 시료는 창들의 인접 영역에서는 각 순간마다 그곳의 탁구공의 분포 상태에 의하여 희게 보일 수도 있으며 검게 보일 수도 있다.이제 갑자기 유리창을 통하여 볼 수 있는 색이 마치 시계가 똑딱이는 양상으로 정해진 시간 간격을 두고 모두 흰색으로 보이다 다시 모두 검정색으로 보이고, 다시 모두가 흰색으로 완전히 색깔이 차례로 변화되는 경우를 상상하여 보자.도대체 어떻게 모든 흰색 탁구공과 검정색 탁구공이 갑자기 교대로 색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그들 자신을 구성할 수 있는가? 모든 전통적인 법칙에 의하면 이러한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탁구공의 경우를 미궁으로 잊어버리고 어떤 화학 반응에 관여하는 분자들을 바라보면 고전 물리학이나 볼츠만의 확률이론이 말해 주는 고전적 법칙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의미에서 그와 같은 자기-구성이나 질서화가 일어날 수 있으며 또한 발생하고 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평형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 아래에서, 고려하는 시간과 공간 내에서 어떤 물질에 겉보기에 다른 자발적이거나 종종 아주 극적인 재구성이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만약 2차 또는 3차원의 견지에서 보면 그와 같은 가능한 구조의 수나 다양성이 훨씬 더 커진다.이제 필자들의 또다른 발견에 대한 이와같은 현상을 소개하자. 어떤 효소가 존재할 때 같은 종류의 효소 생성을 더욱 촉진하는 효소를 제조하기위한 반응을 상상하여 보자. 이는 컴퓨터 과학자들이 아마도 양성적인 되먹임 (positive- feedback) 고리로 부를 수 있는 것의 한 가지 예이다. 화학에서는 이를 “자촉매 작용(auto-catalysis)”으로 부 른 다. 이와 같은 상황은 무기화학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수십년간 분자 생물학자들은 그와같은 고리가(이와 아울러 억제작용이나 "음성적인 negative" 되먹임 작용 또는 보다 복잡다단한 "교차촉매 cross-catalytic" 과정이 수반되어) 생체의 가장 근원이 되는 본질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와 같은 과정은 어떻게 매우 작은 DNA 모임이 복잡한 생명이 있는 유기체를 형성하게 되는지를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므로, 보다 일반적으로, 평형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 아래에서는 대단히 미소한 섭동작용이나 요동작용이 거대한 위력으로 기존하였던 구조를 파괴하는 파상으로 증폭될 수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점이 모든 종류의 "질적"인 또는 "혁명적"인 변화 과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서광이 되었다.누구에게든 평형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와 비선형과정, 또는 이들의 매우 복잡다단한 되먹임 계에 대한 연구로부터 도출되는 새로운 식견을 조합함으로써 소위 딱딱한 과학 (hard science)을 생체 그리고 아마도 사회적인 과정을 포함하는 유연한 과학 (softer science)으로 연관지을 수 있는 새로운 접근의 소지를 제공하기에 이르렀다(그러한 발견은 적어도 사회, 경제, 또는 정치적인 정황에 대하여 유사한 의미를 갖는다. "혁명", "경제파산", “기술의 대변혁", 그리고 "패러다임의 변이"와 같은 단어들은 모두가 그와 갇은 말들을 요동, 되먹임 증식, 소산구조, 두갈래치기 작용 그리고 기타 프리고진의 관념적 전문용어의 관점에서 생각할 때 새로운 의미로서 풀이될 수 있다). 이는 파노라마식으로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전망들이 『혼돈 속의 질서 』에 의해 우리에게 개방되어 있음을 뜻한다.이 저술의 후반에서는 이보다 더 수수께끼같이 전개되는 시간에 관한 새로운 시각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금세기에 접어들어 과학과 문명의 광범위한 변혁의 물결의 한 부분은 시간개념의 재조명이며, 그리고 이에 대한 프리고진의 역할을 재론하기에 앞서 간략히 국부적인 문제를 소개하는일도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으로 믿어진다.
역사를 예로 들어보자. 역사 편찬에 가장 크게 기여한 개념의 하나는 시간을 세 가지 척도로 구분하는 브로델의 이론이다. 그 하나는 “지리적 시간"으로 영구한 시간에 걸쳐 어떤 변화가 진행되는 것, 다음에는 “사회적 시간"으로 경제, 국가 및 문명권을 추량하는 척도와 아보다 짧은 "개체적 시간" 척도로서 인류의 사전을 가늠해내는 것이다. 사회과학에서는 시간이란 대부분 이와같이 구획화하지 않은 어떤 영역으로 남아 있다. 어떤 문명에서는 시간이란 주기적이며 역사는 끊임없이 재연되는 것이며 인류가 포함되는 또다른 문명에서 시간이란 과거와 미래 사이에 훤히 뻗쳐 있는 고속도로와 같다. 인류 또는 모든 사회가 그 위를 행진해 나간다. 또다른 문명권에서는 인류의 삶이란 시간에 대하여 마치 정지하여 있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즉, 미래를 앞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각 사회집단은 본인의 한 작품에서 논의하였듯이 과거. 현재, 또는 미래 중 어느 부분을 강조하여 왔는가의 사회 자체의 특징적인 "시간의 편견(time一bias)”을 표출해내기 마련이다. 어떤 사회는 과거 속에서 살아간다. 또다른 사회는 미래에 사로잡혀 있을 수 있다. 더욱이 개개의 문명과 각 개인은 "시간의 지평선"의 관점에 의하여 思考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일부의 사람은 단지 임박한 목하의 현재만을 생각한다. 예를 들면, 정치가는 종종 바로 당면한 것이나 짧은 기간의 결과만을 추구한다는 비판의 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 그들의 시간 지평선은 다음 선거일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말할 수 있다. 또다른 어떤 이들은 이보다는 장기간의 계획을 구상할 수도 있다. 이렇듯 서로 다른 시간의 지평선은 사회, 정치적 마찰의 원인을 무시하게 되는 것으로 아마도 시간 지평선이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가 될 것이다.그러나, 시간의 문명적 관념 차이에 대한 점증하는 재인식에도 불구하고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시간에 대한 보다 일관성 있는 이론이 거의 개발되고 있지 않은 실정에 있는 듯하다. 그와 갇은 이론은 정치학으로부터 집단의 동력학, 그리고 개인간의 심리학에 이르는 여러 분야에 연장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면 나의 작품 중의 하나인 『미래의 충격(Future Slzock)』에서 소위 “지속적 기대감"으로 칭한 바와같이 어떤 과정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인가에 관하여 문명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가정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렸을 때 이미 경험하였던 것으로서 누구든 양치질을 할 때 고작해야 몇 분정도가 소요될 뿐 아침 시간 모두가 소요되지는 않는다든가, 또는 아버지가 일터로 출근하게 되면 대략 여덟 시간 정도 집을 떠나 있을 것이며, 또한 식사시간은 아마도 수분에서 한두 시간 정도가 필요하지 결코 한 해가 걸리지는 않는다는 기대감이다(텔레비전은 하루를 미리 지정된 30분이나 60분 간격으로 나누어 교묘히 우리의 지속적인 기대감을 메워준다. 따라서 우리는 통상 멜로드라마의 영웅이 마지막 5분 내에 소녀를 얻거나 돈을 발견하거나 또는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기대하기 마련이다. 미국에서는 또한 일정한 몇분 간격으로 선전을 하기 위하여 프로그램이 중단될 것이라는 것 을 기대하고 있다). 우리의 마음속은 그와 같은 지속적인 가정으로 가득차 있다. 어린이들은 충분히 사회적으로 성숙된 성인과 다르며 여기서의 기대 차이가 어떤 갈등의 진원이 된다. 더욱이, 산업화된 사회에서 어린이는 "시간에 숙달"되어 있다. 즉, 시계를 읽는 법을 배우고, 부모가 "3분 후에는 꼭 잠자러 가야 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비록 매우 작은 시간의 파편도 구분할 줄 아는 방법을 배운다. 우리들처럼 시간에 얽매인 사회보다 매일매일의 일과에 정확성이 다소 덜 요구되는 느긋하게 돌아가는 농촌 사회에서는 이처럼 예리하게 숙련된 짧은 시간에 관계되는 재주는 아마도 지극히 결여되어 있을 수 있다.
그러한 개념은 브로델의 사회 및 개인적 시간 척도 내에서만 부합되며 사회과학에서는 결코 어떤 체계적인 개발을 해본 바가 없다. 더욱이, 비록 그들은 물리적인 실재에 관하여 우리의 가정과 숙명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나 어떤 의미있는 방식으로도 시간에 관한 과학적 이론을 분명하게 발언하여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실이 소년 시절부터 시간의 개념에 대하여 매료되어 왔던 프리고진에 의해 비로소 재음미되기 시작하였다. 그는 언젠가 나에게 말하였듯이, 한 젊은 학생으로서 과학이 시간을 정의하는 방법에 대한 커다란 모순에 충격을 받아 왔으며 이러한 모순은 이후 그의 생애를 건 연구의 진원이 되게 되었다.뉴톤과 그의 이론을 추종하던 사람들에 의해서 형성된 세계 모델에서 시간이란 사후의 것에 불과하였다. 한 순간은 그것이 현재이든, 과거 또는 미래이든간에 어떤 임의의 다른 순간과 정확히 동일한 것으로 간주했었다 . 끊임없이 돌아가는 혹성은 실로 시계의 작동이나 단순한 기계처럼 원칙적인 면에서 고려하는 대상계의 기본 원리의 변모없이 시간에 대해 정방향 또는 역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아 왔다. 이러한 이유로, 과학자들은 뉴톤 체계에 있어 시간은 마치 "可逆的“인 것으로 가정했었다.
그러나, I9세기에 즈음하여 물리학의 주된 관심은 동력학으로부터 열역학으로 옮아갔으며 열역학 제 2법칙의 개념이 확립되기에 이르렀다.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하면 우주 내에는 어찌할 수 없는 에너지의 소멸이 불가피하다. 그 리고, 만약 우주기계가 정말로 마모되어 열적 쇠진상태(heat death)에 근접되면 이 때의 한 순간은 더이상 나머지 다른 순간과 도저히 동일할 수가 없다. 누구도 엔트로피를 보충하기 위하여 우주를 거꾸로 돌아가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오랜 기간에 걸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어떤 변화도 다시 동일하게 거듭될 수 없다. 이 점이 뜻하는 바는 모든 과정은 방향성이 있으며 또는 에딩턴이 정의한 대로, 이같은 방향성을 시간의 "화살”이라 할 수 있다. 전체 우주는 실제로 노화해 간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이라면 시간은 일방통행의 거리와 같다. 시간이란 더이상 가역적일 수는 없으며 비가역적이다.간략히 말해 열역학의 발전과 함께 과학은 시간의 중간을 쪼개어 버린다. 설상가상으로, 시간을 비가역으로 인정하는 이들도 곧 두 진영으로 갈라진다. 결국은 에너지가 고려하는 대상계로부터 누손됨에 따라, 계가어떤 조직화되어 있는 구조를 지탱할 수 있는 능력이 약화되고 이들은 다시 느슨히 조직화된 구조로 쪼개어지며 이와 갇은 양상으로 제멋대로 마구잡이격의 성분으로 변모된다. 그러나 이런 양태는 오히려 대상계에 내부적 다양성을 줄 수 있는 정교하게 이루어지는 구성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계 내의 에너지가 엔트로피로 누출됨에 따라 각 미소 분할간의 차이점을 계속 감소시켜 주는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열역학 제 2법칙은 균일성이 증가하는 방향, 또는 인간의 관접에서는 비관적인 미래의 방향을 지적하여 준다.다윈과 그의 이론을 추종하는 이들이 대두시킨 문제를 상기하여 보자! 진화의 경우에는 어떤 과정이 구조화된 조직이나 다양성을 감소시키는 변화의 방향을 지적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의 방향을 가르쳐 준다. 진화는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하등" 형태의 생명체로부터 ”고등” 형태로, 분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세분화되는 구조적 방향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이 모든 전화는 매우 낙관적이라 할 수 있다. 우주는 나이가 먹을수록 보다 진화된 구조적 조직을 갖게 되며 시간이 지나갈수록 보다 차원 높은 곳으로 쉬임없이 나아간다 .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시간에 관한 과학적인 견해는 모순을 낳는 모순으로 결론지을 수 있다.프리고진과 스탠저스는 이러한 역설을 명백히 규명하기 위하여 자신들에게 묻고 있다. "과거와 미래를 분별할 수 있도록 허용할 수 있는 동력학적 특정구조는 무엇인가?"필자들에 있어 이에 대한 대답은, 시간은 고려하는 대상계의 현상을 무작위성으로서 나타낼 수 있게 한다.” 고려하는 대상계가 충분히 무작위한 방법으로 거동할 때만 과거와 미래의 차이를 특징지을 수 있게 되며 비로소 비가역성을 이와 같은 묘사 속에 대두시킬 수 있다.고전 또는 기계론적 과학에 있어서 사전은 "초기조건”에 의하여 시작되며 그들의 원자나 입자는 "우주의 묘선 (world l ines)'. 또는 궤적을 따라 움직인다. 이때 이들의 자취는 과거로부터 거술러오거나 미래를 향해 추적할 수 있다. 이는 바로 어떤 화학 반응과는 정반대의 경우로, 예를 들면 두 액체를 같은 용기에 부으면 형성되는 혼합물이 균등하거나 균일하여질 때까지 확산 현상이 일어난다. 이들 액체는 스스로가 혼합 이전의 상태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역확산되는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 혼합이 진행되는 시간의 각 순간마다 혼합물은 서로 다른 상태에 있으며 전체 과정은 "시간 배향성"을 갖는다.고전 과학에서는 적어도 이의 초기 단계에서 위와 같은 과정은 지극히 부정확하게 정의된 초기 조전으로 인하여 야기되는 비정상이나 기현상으로 간주해 버렸었다.프리고진과 스탠저스의 명제는 바로 이와 같은 시간 의존적 일정 방향의 변화 과정은 시간이 가역적인 세계로부터의 단순한 착오나 벗어남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만약 어떤 것이든, 그 逆도 사실일 수가 있으며 가역적인 시간에 따르는 "폐쇄되어 있는 계"(만약 이러한 경우가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면)에 연관되어 있는 것이라면 이는 실재에 거의 있을 수 없는 현상이며 또는 착오적인 현상임에 틀림이 없다고 한다.
더욱이, 비가역적인 과정은 임의 질서의 근원이 되며 따라서 이 작품의 제목은 『혼돈 속의 질서』이다. 이 경우의 과정은 무질서 역시 개방성 등에 연관되어 있으며 소산구조와 같은 향상된 수준의 구성에 이르게 하는 변화이다. 정말로, 이 저서의 중요한 핵심적 테마 중의 하나는 열역학 제 2 법칙의 결정적인 재인식이라 할 수 있다. 필자들에 의하면, 엔트로피는 단순히 조직화가 어려운 쪽을 향하여 내림박질하는 함수가 아니다. 어떤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 엔트로피 그 자체는 질서의 어머니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필자들이 제안하고 있는 것은 가역과 비가역 개념의 시간 모두를 포괄하는 광범위한 통합의 논거로서 거시적인 현상은 물론이려니와 현상의 아주 미소한 수준에 이르기까지 가역과 비가역 시간이 어떻게 서로 연루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이 점이 서두에서 제기한 대로 “미세하게 해체해 버린 현상의 조각을 다시 본래로 조합하는” 경이를 금치 못하는 통합 해석의 시도라 할 수 있다. 그들의 논조는 매우 복잡 다단하여 때때로 비전문적인 독자의 이해 범위 이상에서 설명되고 있는 경우가 많은 점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저서는 매우 조리있는 방법으로 걷으로 보기에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거나 ―서로 모순되기도 하는一―-철학적인 개념을 명쾌한 통찰력으로 간파하고 있다.여기서 필자들이 제안하고 있는 귀중하고 기념비적인 통합이론(synthesis)을 한두 페이지에 걸쳐 대강 훑어보자. 그들은 비가역적 시간이란 단순한 상궤에서 이탈된 개념이 아니라 이 우주 현상의 상당한 영역을 특징짓는 개념이라는 주장과 아울러 고전적인 동력학의 개념에 반론을 던지고 있다. 프리고진과 스탠저스에 있어서는 이 점이 이것/저것의 경우가 아니다. 물론 가역성은 아직도 적용되지만(적어도 충분히 긴 시간에 대하여)-그러나 폐쇄되어 있는 어떤 계에 제한된다. 비가역성은이 우주의 모든 나머지 時空의 현상에 적용된다.
프리고진과 스탠저스는 또한, 비평형 상태 아래에서는 적어도 엔트로피는 질서, 조직화, 그러므로 생명체까지 를 포함하여 접증적으로 변질되기 보다는 아마도 생성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중으로써 열역학의 근본에 대한 지금까지의 비관적 견해를 종식시켜 버린다.만약 이같은 점이 사실일 때, 그렇다면 엔트로피는 역시 이것 / 저것의 양상으로 손실된다. 어떤 계는 엔트로피가 소멸되는 반면, 다른 계는 자발적으로 전화되고 보다 향상되는 방향으로 생장한다. 이러한 상호 보완적이고 배타적이 아닌 견해는 생물학과 물리학을 모순 관계에 놓기보다는 오히려 서로 공존이 가능토록 만들고 있다.이 저서는 마지막으로, 또다른 심오한 통찰로서 우연과 필연의 새로운 관계를 은유하고 있다.우주의 모든 사건에 있어서 우연성의 역할은, 의심의 여지없이. 구석기 시대의 전사가 우연히 바위덩이에 걸려 넘어전 이래로 계속적인 논쟁이 행해지고 있는 사항이다. 구약 성서에서는, 하느님의 뜻이 최상의 절대 통치권으로서 받아들여졌으며, 하느님은 궤도 운동을 하고 있는 모든 혹성을 통제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창조적인 만듬새로서 각개 또는 모든 개인의 뜻을 조정한다고 믿는다. 지고의 근본자로서 모든 재난은 하느님으로부터 비롯되며 우주상의 모든 사건은 하느님에 의해 운명이 결정지어진다.피비린내나는 처참한 무쟁은 신의 자유의지나 미리 예정된 숙명의 정확한 뜻에 의한 하느님의 격노하심으로 받아들였으며 이같은 사실은 아우구스투스 시대로부터 카롤린 왕조의 싸움까지 연결된다. 와이클리프, 허스, 루터, 캘빈 등 이에 대하여 수도없이 나타났던 해석자들 모두는 신의 자유의지와 함께 결정론을 그저 조화시키는 것에 그치고 만 것이 사실이다. 한 재치있는 견해로 신은 우주의 모든 사전을 사실상 결정지어 주지만 그러나, 그와 같은 신의 자유의지는 각 개인의 자유의지를 존중해 주며 신은 어떤 특정한 행동을 요구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다. 하느님은 단지 인간의 의사결정에 대해 가능한 선택의 범위를 설정하여 준다는 견해이다. 자유의지의 하부는 이미 결정된 상부의 메뉴 한계 내에서 단지 조작된다고 믿었다.
기계론적 문명 시대의 세속 문화에서는 하이젠베르그와 "불확정성을 주창하는 이들"의 도전 후에야 강경한 결정론의 주장은 다소간 동요하기에 이른다. 비록 오늘날조차도, 르네 몸과 같은 사상가는 우연성의 개념은 환상적이며 애당초부터 비과학적이라 하여 이를 믿으려 하지 않는다.그와 같은 철학적인 맹공격에 직면하여 자유의지, 자발성, 그리고 궁극의 불확정성 등을 옹호하는 몇몇 사람들, 특히 실존주의자들조차도 모두 아에 수긍하지 않으려는 자세를 취하여 왔다(사르트르에 있어 인간의 존재란 "완전하게 그리고 완전한 자유"였으나 사르트르조차도 어떤 작품에서는 이러한 자유의 실질적인 제한점을 인식하게 되었다).우연성과 결정론에 대한 현대적 개념에 있어 두 가지의 일이 일어나고 있다. 말하자면 그들은 점점 복잡해진다. 불란서의 권위있는 사회학자요 인식론자인 에드가 모링은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 "결정론의 문제는 한 세기의 역정을 통하여 이미 변모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 자연의 모든 삼라만상을 지배한다고 믿어 왔던 절대적, 불후의 영구법칙에 대한 아이디어에 대신하여 이재는 상관관계의 법칙에 대한 개념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또다른 변화가 일고 있다. 결정론의 문제는 우주의 질서에 대한 문제가 되어 버렸다. 질서란 “제법칙" 이외에 다른 무엇이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주에는 구속 조건, 불변성, 항시성, 규칙성 등이 존재한다……결정론에 대하여 종전까지 획일화되고 불후시되어 왔던 견해에 대신하여 결정 (determinations)에 대하여 보다 다양화되고 진화적인 견해들이 교체되어 가고 있는 게 오늘의 상황이다.”또한 결정론의 개념이 점점 더 완숙되어 감에 따라, 우연과 필연은 서로가 서로를 복종시키려는 것이 아니며 자발적으로 구성되거나 우주 자체가 비 구성되는 공간 내에서 서로 필수 불가결한 동반자의 관계로 공존하는 것이라는 새로운 인식이 이루어져 가고 있다.이 점은 프리고진과 스탠저스가 이 저서를 통하여 토론의 장에 발길을 들여놓는 근원이 된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토론을 한 발자국 멀리 앞으로 진전시키고 있다. 결정론과 우연 두 가지 모두의 조작을 논증할 뿐만 아니라 우연과 필연적 결정론을 어떻게 함께 조화시켜 나아가야 하는지를 보이고 있다(수학자 르네 톰처럼 비판자는 아니지만 나에게 크나큰 설득력을 주고 있다).
따라서, 소산구조의 개념이 암시해 주고 있는 변화의 이론에 의하면 요동의 힘이 어떤 기존의 계에 작용함으로써 계는 임계 순간 또는 두갈래치기 지점에 이르게 된다 . 필자들에 의하면 이 시점에서 고려하는 대상계에 대하여 다가오는 다음 상태를 미리 예견하는 일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우연성은 계의 모든 존재를 새로운 발전의 경로에 내려 놓는다. 그리고 일단 어떤 경로(여러가지 가능한 경로 중에서)가 선택되면 그 계가 어떤 다음의 두갈래치기 지점에 이르게 될 때까지 필연적 결정론에 의해 상태가 변화된다.여기서, 간략히 우연과 필연은 서로 正反의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이 한 운명의 동반자로서 역할을 맡게 되는 사실을 볼 수 있다 . 차례로 또다른 동합이 이루어진다.가역 시간과 비가역 시간, 무질서와 질서, 물리학과 생물학, 우연과 필연을 모두 동등한 새로운 공격에 놓고 이들의 상호 관계를 규정하려 할 때에는, 분명히 논쟁의 소지가 있는 대단히 중요한 논거를 제시하여야 하지만, 이 경우 서로 대비되는 각개의 경우는 모두다 너무도 위력적이며 웅대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이상은 『혼돈 속의 질서』에 의하여 계기가 된 흥분과 희열의 지극히 적은 부분을 고려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주장하였듯이 이 위압적인 필자들의 통합 개념은 강한 사회, 정치적 색조를 띠고 있다. 뉴톤의 모델이 정치, 외교, 그리고 겉보기에는 과학과 거리가 먼 듯한 분야에 서로 유사성을 연관시켜 주었던 점과 바로 마찬가지로 프리고전의 모델 역시 모든 분야에 유사한 연장 능력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질적인 변화의 모델링의 엄밀한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필자들은 개혁의 개념에 대한 새로운 서광을 발산해 주고 있다. 어찌하여 연속적인 불안정성이 변환적 변화를 야기시키는지를 설명함으로써, 필자들은 구조의 구성 이론을 개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비평형 상태 아래에서 유발될 수 있는 "비평균적" 거동과 연관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개혁과 같은 심리학적 과정에 의하여새로운 시각적 견해를 제시해 주고 있다.
아마도,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은 집단적 거동의 연구를 위한 함축적인 개념이다. 프리고진과 스탠저스는 마치 수수께끼를 푸는 일같이 규명이 어려운 사회적 거동에 대한 유전학 또는 사회 생물학적 설명을 제시하는 일에 매우 신중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생물학적으로 어떤 접합 이전 상태에 기인되는 많은 일은 사실, 어떤 이기적인 결정론자의 유전자에 의해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평형상태의 사회적인 상호작용에 기인된다고 한다(예를 들어, 어떤 최근의 연구에서 개미를 두 가지의 범주로 구분 분리하여 보았다. 한 집단은 열심히 일만 하던 개미군으로 이루어져 있고, 다른 집단은 "게으른” 개미만 모아 놓았다 . 어떤 이는 성급하게도 이 경우의 각각의 습성을 유전적인 특징으로 더듬어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만약 고려하는 집단이 서로 특성이 완전히 다른 집단으로 분리되어 버리면 상반되는 각 집단이 열심히 일하는 개미와 게으름뱅이의 개미를 각각 갖게 된다. 상당히 많은 퍼센트의 게으르던 개미가 갑자기 열심히 일하는 스타하노프 제도의 노동자로 변신한다).그러므로, 놀랄 만한 일이 아닌 것은, 이 기념비적인 저술의 이면에 깃들어 있는 개념은 경제학, 도시 인구, 인류 지리학, 생태학, 그리고 기타 여러 분야 연구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사실이다.이 저서의 필자들까지 를 포함한 그 어느 누구도 『혼돈 속의 질서』 처럼 그야말로 놀랍고 기발한 개념으로 북적이는 저술이 시사하는 함축적인 의미를 충분히 감지할 수가 없으리라 믿어진다. 각 독자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여러 문맥에서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으로 여겨진다(문맥의 일부는 과학적 분야에 익숙해 있지 않은 독자들에게 너무나 과학적 이다). 어느 문맥에서는 깜짝 놀라고, 또 다른 곳에서는 자극을 받고(그들이 함축하는 바가 너무도 적절하여), 때로는 회의적이고, 그러나, 이미 대부분 지적으로 매우 풍요롭게 된다. 그리고 누군가 이 저서를 단순히 훌륭한 의문을 야기시키는 정도에 머문다 지적할지라도 이는 분명히 독자에게 있어 매우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여기서, 나를 꼼짝달싹 못하게 하고 이 저서에 늘 불어 따라다니게 하였던 한두 가지를 더 소개하자. 어떻게 실험실 밖에서 "요동"을 정의할 수 있는가? 누군가가 "원인” 또는 "영향"을 의미할 때 프리고진의 용어로는 무엇에 상응하는가? 그리고, 필자들이 각 분자단위가 보다 짜임새있고 동시적인 변화를 이루기 위하여 분자들 상호간에 의사소통을 한다고 말할 때 누군가 분자들은 결코 인간처럼 사유의 능력을 가지지 못한다고 일축해 버릴 것이다. 그러나, 필자들은 나에게 고려하는 대상계를 에워싼 주위의 모든 공간이 끊임없이 서로 신호를 할 수 있는지, 또는 간헐적으로 신호를 주는지에 관하여, 한 분자 또는 어떤 한 개의 유기적 조직체가 필요한 감각 기관이 없이는 감지할 수 없는 신호에 대하여 조건 반사 반응을 주는 간접, 2차적 또는 n차 등의 의사소통이 가능한지 등에 관하여 매우 착잡하고 뒤얽혀 있는 문제를 던져 준 장본인이 되었다(주위로부터 보내어진 어떤 신호를 A는 감지할 수 없고, B는 수신할 수 있고, 그리고 B는 A가 적절한 장치를 장착함으로써 B로부터의 신호를 감지할 수 있는 다른 형태의 신호로 변형될 수 있다면 B는 신호기/변환기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으며 A는 2차의 의사소동을 통하여 주위로부터 전달되는 상황 변화에 적응할 수 있다) . 시간과 연관하여, 하버드의 천문학자 데이비드 레이저는 필자들의 개념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시간에 관한 개념을 개발, 제안하게 되었다. 즉, 인간은 아마도 세 가지의 서로 다른 "시간 화살"을 마음에 새길 수 있는바, 하나는 천지 창조 이래 계속적으로 팽창되어 온 우주에 근거를 둔 것, 하나는 엔트로피에 근거를 둔 것, 하나는 생물학 및 진화에 기조를 두고 있는 것이다.
다른 질문으로는, 뉴톤의 혁명이 어떻게 혁명적이었는가? 몇몇 역사가들과 이와 같은 문제를 취합함으로써 프리고진과 스탠저스는 아주 옛날부터의 점성술, 종교적 관념과 더불어 뉴톤 개념의 연속성을 말해 주고 있다. 몇몇 독자들은 뉴톤주의의 충현은 갑작스레 대두된 돌발적이었거나, 혁명적이지는 않았었다는 결론을 내릴는지 모른다. 아직도 나는 그와 같은 뉴톤주의의 브레잌스루 (break through)는 마치 이들의 태고적 개념과 비례적인 결과로 보아서는 결코 안된다고 생각한다. 사실상 나로서는, 『혼돈 속의 질서』에서 발전시킨 변화 이론은 어떤 "연속론자”의 견해에 맞서는 개념으로 보인다. 바록 뉴톤주의가 파생적이었다 할지라도 뉴톤의우주 모델의 내부 구조가 실제로 이를 둘러싼 의부 환경과 동일하다거나 동일한 상관 관계에 위치하여 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뉴톤 체계는 서부 유럽의 사회 체계가 봉건주의가 붕괴되어 가고 있던 소위 평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에 있을 때 출현하였었다. 과학자들에 의해 주창된 우주 모델은(바록 부분적으로 파생적이었으나) 새로운 분야에 유사하게 응용되었으며 아주 성공적으로 파급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이 당시의 정황은 그 모델이 지니는 과학적인 힘이나 "공정성"뿐만 아니라 혁명적 원리에 기초를 둔 절박한 산업 사회가 이를 수용할 수 있는 환경을 뒷받침하여 주었기 때문이었다.앞서 제안하였듯이, 만물의 우주적 질서 아래에서 당시 사회 자체에서 어떤 설명을 찾으려 했던 기계문명이, 뉴톤의 모델에 포위되어 있었고, 이 를 더욱 발전 시켰던 이들의 대가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저자들이 최초로 주장하게 된 자촉매를 발견한 화학 비이커에 한정되고 있지만은 않다. 이러한 연유로 해서, 본인은 뉴톤 지식체계 그 자체가 어떤 사회적인 요동아 탄생시키는 "문명적 소산구조"로서 간주하는 것도 그런대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아이러니칼하게도 내가 어디에선가 언급하였듯이, 필자들 자신의 개념은 과학의 가장 최근의 혁명에 대한 핵심으로 믿고 있으며, 나는 기계 문명 시대의 붕괴와 내가 소위 칭하는 문명의 “제3의 물결 (The Third Wave)”과의 상관관계로서 필자들의 개념을 볼 수밖에 없다. 필자들의 용어를 적용함으로써, 문명적 "두갈래치기”로서 오늘날의 산업이나 “제 2의 물결" 사회의 붕괴를 특정지을 수 있을 것이며 세계 규모로 보아 새로운 "소산구조"로 도약하기 위한 보다 복잡다한 “제 3 의 물결" 사회의 도래를 예측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리고 만약, 이와 갇은 비유론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동일한 방법으로 오늘날을 뉴톤주의로부터 프리고진주의의 도약으로 보아서는 안되는가? 의심할 여지없이 너무 단순한 비유이다. 그러나, 물론 황당한 속단은 아니다.마지막으로, 끊임없이 식을 줄 모르는 문제인 우연과 필연에 대하여 다시 거론하여 보자.만약 프리고진과 스탠저스가 옳고, 우연성의 개념이 두갈래치기 지점이나 그 인접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그 이후에는 결정론적인 과정에 의해 고려하는 계가 다음의 두갈래치기가 도래할 때까지 움직인다고 하면 결정론적인 틀 내에 우연성이 내포되고 있지는 않은가?
우연성에 대하여 어떤 특정한 역할을 지워주면, 그들은 다시 우연성을 필연성으로 만들지는 않는가? 그러나, 나는 이 질문에 대하여 프리고진과 함께 토의하는 즐거움을 맛보았는데, 그는 한때 나와 함께 저녁을 먹는 동안 미소를 머금은 채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그건 사실이지요. 그러나, 물론 우리는 대체, 언제 그갇은 다음의 두갈래치기 현상이 도래할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연은 다시 마치 불사조처럼 우리에게 나타날 것입니다.”『혼돈 속의 질서』는 빛나는, 뭔가 요구되는, 강렬히 눈이 부시는 저술로서, 사려깊은 독자들 누구에게나 도전하고싶은 의욕을 돋우워 주며, 이에 충분한 보상이 돌아올 수 있는 책임에 틀림이 없다. 이 책은 연구의 자세가 필요하며, 음미하여야 하고 읽고 또다시 읽어야 하는 책이며, 그리고 거듭 의문을 던져야 한다. 이 책은 과학과 인류애를 모든 삼라만상이 신화인 세계로 돌려 놓을 것이다. 그 세계는 여타 모든 사물이 거의 한결같거나, 대등하거나, 변하지 않는 거의 있을 수 없는 그러한 세계이다. 간단히 말하여, 이 저서는 과학을 현세의 불안정, 불평형 (disequilibrium) 그리고 섭동의 혁명적인 세계에 투영하여 주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책은 인류의 가장 고귀한 창조 기능을 제공하여 주며 우리가 신선한 자율적 질서를 창조하는 데 동반자가 되어 주는 저서이다.책 머리에
자연과 인간의 새로운 대화자연을 보는 우리의 시야는 다각성, 시간성, 그리고 복잡성을 향하여 그야말로 급변해 가고 있는 중이다 . 오랜 동안 기계론적인 우주견해는 서구 과학을 지배하여 왔다. 이와 같은 견해에 따르면 세계는 마치 거대한 기계 뭉치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인류가 이제 어떤 다원적인 세계에 살고 있음을 잘 이해하고 있다. 우주에는 마찰력이 없는 추의 운동이나 태양의 주위를 따라 돌고 있는 지구의 운동처럼 결정론적이거나 가역적으로 보이는 현상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가역적인 과정은 어떤 특정한 시간의 방향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주에는 어떤 특정한 시간의 화살(arrow of time)이 수반되는 비가역적인 과정이 존재한다. 만약 누구든, 물과 알코올과 같은 두 액체를 서로 접촉시킨다면,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시간의 前方向을 향하여 두 액체는 서로 뒤섞이게 된다. 가역적인 혼합 과정은 결코 관찰할 수 없으며 혼합 액체가 순수한 물과 알코올로 자발적으로 분리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이와 같은 혼합은, 따라서 비가역 과정이다. 화학의 모든 것에는 그와 같은 비가역 과정이 수반된다.분명히, 결정론적인 과정에 더하여, 우주에는 어떤 근본적인 과정, 예를 들면 생물학적인 진화나 인류 문명의 진화와 같은 과정에 수반되는 확률적인 요소가 존재한다. 결정론적인 묘사의 합당성을 확신하고 있는 과학자조차도 대변혁 (Big - Bang)의 바로 그 순간이나, 우리가 그렇게 알아온 우주의 창조 순간, 이 책이 출간될 날짜 등은 이미 자연의 법칙에 새겨져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아마 크게 망설이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고전적 견해에서는 자연의 기본적인 과정을 결정론적이며 가역적인 것으로 여겨 왔다. 무작위성이나 비가역성이 내재하는 과정은 단지 예외적인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 이르러 모든 곳에서 비가역 과정의 역할이나 요동의 기능을 볼 수가 있다 .비록 서구과학은 인간과 자연간의 지극히 결실 있는 대화를 자극하여 왔으나 이들의 몇몇 문명적인 결과는 아주 재앙스런 것이었다. "두 문명"간의 나뉨은 주로 고전과학의 순간성이 아닌 영원성의 견해와 사회과학이나인간성의 대부분에 기조를 이루고 있는 시간성이 연계되어 있는 견해 사이의 상충에 기인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 수십년간 과학 분야에 뭔가 극적인 것이 일어나고 있으며, 기하학의 탄생이나, 뉴톤의 연구에서 나타나고 있는 우주에 대한 괄목할 만한 시각처럼 무엇안가 예기치 못했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인간은 점점 더 기초 소립자로부터 우주론에 이르는 모든 수준에서 무질서도와 비가역성이 점증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되었다. 과학은 재발견의 시간에 있다. 바로 이 과학의 재발견은 이 책이 앞으로 다루려고 하는 개념적 혁명이라 할 수 있다.이 혁명은 모든 분야, 기초소립자 영역에서, 우주론에서, 그리고 소위거시적 물리학의 수준에서 일고 있으며, 물리학과 개별적 또는 전체적으로 취한 원자나 분자에 대한 화학을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면, 액체나기체의 연구 등이 이들에 해당한다. 아마도, 이 혁명은 과학의 재개념화가 가장 무난한 거시적 수준으로부터 가장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고전적인 동력학이나 현대화학은 그야말로 극적인 변화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는중이다. 누군가 수년 전에 어떤 물리학자에게 물리학이 우리에게 잘 설명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어떤 형태의 문제가 우리 앞에 열려 있는가고 물었다면, 그는 아마도 우리에겐 기초소립자나 우주론적 전화에 대하여 적합한 이해는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으나 그들 사이에연관된 사물에 대한 식견은 아주 만족스럽다고 대답하였을 것이다. 오늘날 그 수가 증가되는 소수의 사람들은, 우리도(필자들) 그에 포함되지만, 이같은 낙관주의에 수긍하지 않는다. 즉, 인간은 이제 기껏해야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의 수준을 이해하기 시작하였으며, 그리고 이것은 우리들이 이 책에서 관심을 쏟고 있는 영역이다. 오늘날 일고 있는 물리학의 재개념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적절한 역사적인 시각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 것으로 본다 . 과학의 역사는 어떤 본질적인 사실을 향하여 연속적으로 근사해가는 방법과 같은 선형적 전개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 과학의 역사는 모순으로 가득차 있으며 전혀 예기치 못하였던 전환점들로 충만되어 있다. 우리들은 이 책의 많은 부분에서 3세기 전에 뉴톤과 함께 시작하여 작금에 이르는 서구과학이 밟아온 역사적 형태를 다루었다. 우리는 어떤 개념의 역사에 대한 틀에서 과학의 역사를, 지난 3세기 동안의 서구 문명의 전보 속에서 통합되어 온 측면에서 검토하려 하였다. 단지 이러한 방법에 의해서만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유일한 순간을 옳게 평가할 수가 있다.
우리의 과학적 유산은 지금까지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는 두 가지의 기본이 되는 방정식을 포함하고 있다. 그 하나는 질서와 무질서 사이의 관계이다. 엔트로피 증가를 정의한 유명한 법칙은 어떤 질서로부터 무질서로 전화되는 세계를 묘사하여 주지만 아직도 생물학 또는 사회적인 전화는 어떤 간단한 것으로부터 출현되는 복잡다단한 과정으로 발전한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어떻게 무질서 상태로부터 어떤 구조가 자생되는가? 이 문제에 대하여 이미 상당한 연구가 이루어져 있다. 이제 우리는 비평형, 물질과 에너지의 흐름 등이 아마도 어떤 질서의 근원이 될 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그러나, 이제 더욱 근원적인 두번째의 의문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즉, 고전 또는 양자물리에서는 우주 또는 고려하는 체계를 가역적이거나 정적인 것으로 여긴다. 이러한 계의 묘사에서 진화개념은 없으며, 질서나 무질서란 의미가 없다. 아마도 동력학에서 정의할 수 있는 “정보"는 고려하는 시간에 대하여 어떤 상수로 머물고 있으며 동력학의 정적인 견해와 열역학의 진화적 파라다임 사이에는 분명한 모순이 남아 있다. 대체, 무엇이 비가역성이란 말인가? 무엇이 엔트로피인가? 몇가지 의문이 과학의 역사를 통하여 종종 토의되어 왔다. 사람들은 이에 대해 어떤 대답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질서와 무질서는 상당히 복합적인 관념이다. 즉, 동력학의 정적인 묘사에 수반되는 단위는 엔트로피 생성으로 표현되는 진화적 파라다임을 이루기 위하여 반드시 도입하지 않으면 안되는 단위와는 서로 같지 않다. 이러한 추세는 물질의 어떤 새로운 개념에 이르게 한바, 새로운 개념의 물질이란 물질이 비가역 과정 을 일어나게 하고, 비가역 과정은 물질을 구성하는 것처럼 "活性的"인 존재이다.
전화적 파라다임은 엔트로피 개념을 포함하며, 과학 그 자체의 영역을 초월한 여타 영역에 상당한 매력의 힘 을 발휘하고 있다. 우리는 동력학과 열역학의 통합이야말로 기계론적 우주 견해에 대한 엔트로피 개념의 급진보적인 새로운 시각이 될 것으로 믿는다. 시간과 실재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인류에 있어 어떤 실재는 시간의 흐름 속에 끼워진다. 뒤에 논의하였듯이, 시간의 비가역성은 그 자체가 엔트로피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시간의 흐름을 거꾸로 하기 위해서 인간은 아마도 어떤 무한의 엔트로피 장벽을 극복하여야 한다 . 전통적으로 과학은 보편화된 것, 특정한 것과 함께 인간다운 것을 취급하여 왔다. 과학과 인간다운 것과 서로 수령되는 개념이 우리의 저서 불어 제목의 『새로운 동맹 (La Nouvelle Alliance)』에서 특히 강조된 바 있으며, 1979년 파리의 갈리마르 출판사에 의해 출간된 바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제목에 상응하는 적절한 영어의 제목을 쉽사리 찾아낼 수가 없었다. 더욱이, 여기 제시한 이 책은 불어 출판본과는 서로 다르며, 특히나 제 7장에서부터 9장까지는 상당히 다르다. 비록 비평형 과정의 결과로서 자생하는 구조의 진원은 불어판 출간에서도 이미 적합하게 다루었으나(물론 이 영문판에서도 그 내용을 따르고 있지만) 제 3부는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쓰지 않으면 안되었고 우리는 그 부분에서 시간의 뿌리에 관한 새로운 연구 결과는 물론이려니와 물리적인 과학분야의 틀 속에서 진화적 패러다임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을 다루려 하였다.이는 모두가 아주 최근의 결과이다. 물리학의 재개념화는 오늘날까지 전혀 이루어져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까지 어느 정도 합당한 것으로 보이는 실상을 소개하기로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커다란 지적인 흥분감을 맛보게 되었다. 즉, 비로소 어떤 실재로부터 실체화에 이르는 길을 개략이나마 훑어볼 수 있기 시작했다. 우리 중 한 사람은 과학 생애의 대부분을 이 문제에 몸바쳐 왔으며, 아마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그만의 만족의 기쁨, 심미적인 성취감 등을 이 책에 표출함으로써 독자로부터 양해될 것으로 믿는다. 너무도 오랜 동안, 무엇이 영원한 것이며. 무엇이 시간의 밖에 있는 것이고. 무엇이 시간 속에 있었던 것인가에 대한 의견의 충돌이 출몰해 왔다. 이제 우리는 이 우주에 두 개의 시간과 영원성에 수 반되는 보다 더 미묘한 실재가 있음을 이해해 가고 있다.
이 책은 수많은 동료와 지성의 벗들이 함께 하여온 공동 노력의 대가이다. 그분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특히 불행하게도 우리와 더이상 생을 같이할 수 없는, 많은 도움을 주었던 젠츠, 카잘스키, 레지부아, 로젠펠드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우리는 그들을 기념하여 이 책을 바치기로 하였다.또한. 우리에게 끊임없는 성원과 격려를 해주신 솔베이에 의해 창설된 국제 물리 및 화학 연구소 (Instituts Internationaux de Physique et de Chimie)와 로버트 웰치 재단에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우리 인류는 전환의 시기에 있다. 과학이야말로 지구상의 폭발적인 안구 증가 국면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믿고 있다. 따라서 과거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과학과 사회가 의사소동의 동로를 활짝 열어 놓지 않으면 안된다는 당위이다.서구과학의 현재의 발전은 서구과학을 탄생시킨 I7세기의 문명적 환경을 벗어나고 말았다. 우리는 오늘날 과학이 서로 다른 문명적 전통이 서로가 서로를 수용할 수 있는 보편적 메시지를 지니고 있다고 믿고 있다.지난 수년간, 앨빈 토플러의 저술은 현시대를 특징짓는 “제3의 물결"의 몇몇 양상을 일반 대중이 접할 수 있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여 왔다 . 우리는 이 책의 영역본에 머리말을 써준 것에 깊은 사의를 표한다. 영어는 우리의 모국어가 아니다. 우리는 모든 언어는 다소간 마음에 새기고 있는 어떤 공통적인 실재를 묘사하는 방법의 차이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이러한 특성은 아마도 아무리 주의를 다한 번역의 경우에도 다소는 그 자취가 남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떤 경우이든, 이 영역판의 출간을 도와준 얼리, 맥길레이브, 터스돈 그리고 특히 루비노에 가장 큰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아울러 원고의 계속적인 번안을 사려깊게 타이핑하여 준 페이프양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서론
과학에의 도전I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가장 위대하였던 날의 하루는 1686년 4월 28일, 뉴톤이 런던의 왕립학회에 『프린키피아 (Prin cipia)』를 제출했던 바로 그 날이라고 말하여도 결코 과장되지 않을 것이다. 프린키피아에는 운동의 기본 법칙과 함께 오늘날까지도 사용하고 있는 물질, 가속도 그리고 관성과 같은 몇몇 가장 원리적인 개념의 명쾌한 공식이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가장 위대한 충격은 『우주의 체계 (The System of the World)』란 제목으로 의어진 3권으로서 중력에 대한 보편적인 법칙이 포함되어 있었다. 뉴톤 당시대 사람들은 곧바로 그의 연구의 획기적인 중요성을 파악하게 되었다 . 중력은 런던과 파리 두 곳에서 당시 지식인들 사이의 대화의 중요한 주제가 되기에 이르렀다.뉴돈의 『프린키피아』 이후 이제 3세기가 흘렀다. 과학은 믿기 어려운 속도로 성장케 되었으며 우리 모두의 생애에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우리의 과학적 지평선은 진실로 환상적인 정도까지 팽창하게 되었다. 미시적인 척도로 보아 소립자 물리학은 10-15 센티미터 수준의 물리적 차원과 10-22초 정도의 시간이 수반되는 과정을 다루게 되었다. 반면, 우주론에서는 “우주의 연대”로서 1010년 정도의 시간 개념을 취급하게 되었다. 과학과 테크놀로지는 예전보다 훨씬 더 밀착되게 되었다 . 그밖의 다른 요인중에서는, 새로운 생물 공학과 정보 기술의 진척이 인간의 생활을 급진적인 방법으로 변모케 하고 있다.
이러한 양적인 성장에 대비하여 심도깊은 질적인 변화는 그 반향이 과학 고유 영역을 훨씬 초월한 곳에까지 미치게 되었고 자연에 대한 이미지의 본질에까지 영향 을 미치게 되었다 . 서구과학을 위대하게 창안해 온 사람들은 자연 법칙의 보편성과 영속성을 강조해 왔다. 그들은 바로 이상적인 합리성과 일치하는 일반적인 계획을 세우고 풀어나가기 시작하였다.하우쉬어 (Roger Hausheer)가 베르린 (Isaiah Berlin) 의 저서 『시류를 거슬러 (Against the Current)』의 훌륭한 권두언에서 언급했듯이, “그들은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스키마 (schemas) 즉, 보편성 있게 모든 것을 동일할 수 있는 틀을 추구하여 왔으며, 그 체계 내에 존재하는 모든것은 체계적으로――즉, 논리적 또는 무의식적으로든――-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방대한 구조이다. 그와 같은 구조 속에서는 어떤 자발적인. 저절로 일어나는 발전에 대한 추호의 가능성도 열려 있지 않으며, 그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은, 적어도, 반드시 총괄적으로 불변하는 보편적인 법칙들에 의해서 설명해낼 수 있는 둘을 추구하여 온 것이다.”1)1) I. Berlin, Against the Current, H.Hardy의 편저에 포함된 작품에서 인용 (New York : The Viking Press, 1980), p .26.
이 탐구의 이야기는 정말로 극적인 것의 하나이다. 당시에는 이 야심에 찬 계획이 거의 완성되는 것으로 보이는 순간이 있었다. 물질의 가장 근본적인 단계에서 다른 모든 성질을 연역할 수 있는 가능성이 시야의 지척에 있었다. 그러한 순간은 보어의 갈채를 받던 원자 모델의 체계화와 연관지을 수도 있으며, 그 모델에 의하면 물질은 전자와 양성자로 구성되어 있는 간단한 혹성과 같은 체계로 단일화된다. 위대한 설레임의 또다른 순간으로는 아인슈타인이 모든 물리법칙을 단일한 함축된 의미를 지니는 "통일장 이론 (unified field theory)”으로 용해시켜 보려는 야망을 갖고 있었을 때였다. 사실상 위대한 진보는 자연에서 발견된 기본적인 힘의 일부를 동일해낼 수 있었던 점이다. 지금까지도, 그 원칙적인 단계는 미궁에 머무르고 있다. 곳곳에서 진화, 다양화, 그리고 불안정성이 발견되고 있다. 신기하게도, 이 점은 기초 소립자, 생물학, 천체물리 등 모든 분야
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우주는 팽창하고, 블랙홀이 형성되는 것도 사실이다.
"책 머리”에서 언급하였듯이, 자연에 대한 인간의 시각은 복합성, 시간성 그리고 복잡다단한 곳을 향하여 급진적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신기하게도, 전혀 예기치 못하였던 복잡한 상황이 자연에서 발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의 진보가 무뎌지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새로운 개념적 골격이 출현되었을 때와는 정반대로 지금은 이 구조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포함한 물리학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바로 근본이 되고 있다. 이는 어떤 새로운 상황이라 할 수 있으며 과학의 역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었던 상황이며 또한 이 책에서 우리가 분석하려는 상황이다.과학과 자연에 관한 시각의 변형을 이야기할 때 그 각각을 분리하여서는 거의 말할 수 없을 것이며 어떤 표현으로도 과학에 의하여 발생되는 느낌밖에 될 수 없다. 모든 임의의 새로운 지적인 구상이 있을 때마다 그곳에는 늘 새로운 희망과 공포와 기대감이 있기 마련이다. 고전과학에서 강조하여 온 것은 시간 독립적인 법칙이었다 . 나중에 볼 수 있듯이, 어떤 계의 특정한 상태가 일단 측정되면 고전 과학의 가역적인 법칙 등에 의해서 대상계의 과거를 결정한 바로 그 방법으로 대상계의 미래 를 예측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왔다. 변화가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설득력 있는 영원한 진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열성적으로 제기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으로 자연이 정의되는 것이 차차 퇴색되어 가는 충격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수도 있다. 과학의 성공 그 자체에 의해서 자연은 어떤 기계 장치나 로보트처럼 조명되었다.자연이 지닌 다양성을 어떤 환상의 거미집으로 간단하게 간주해 보려는 강한 의욕은 이미 그리스의 원자론자의 시대 이래 서구의 사고에 늘 있어 왔다. 루크레티우스는 그의 스승인 데모크리두스와 에피큐러스물 신봉하여, 우주는 "바로"원자와 빈 공간으로 되어 있다고 보았으며 어떤 자명한 실재 이면에 숨어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아직도 내 말을 불신하려 하지 말라. 왜냐하면 인간의 눈으로는 주체가 되는 어떤 실재를 지각할 수 없으며, 아직도 눈으로 볼 수 없는 어떤 입자가 이우주 내에 실재함을 인정해야만 한다 ."2)
2) Titus Lucretius Carus, De Natura Renm,, 1권 v . pp .267-270 및 C .Baily와의 대화 (Oxford : Oxford University Press 1947, 3 vols)를 참조.
지금까지도 그리스의 원자론자들의 연구 배경 이면에 자리했던 유도력은 자연을 변조시키려던 것은 아니며 인간과 자연 사이에 고려할 수 있는 질서를 초원해 있는 어떤 질서에 대한 공포나 초자연적 존재의 공포로부터 해방되기 위함이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수차에 걸쳐서 루크레티우스는 인간은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으며, 이 우주의 본질은 어떤 비어 있는 공간 속의 상변하는 원자의 집합일 뿐이라고 반복해 말하곤 하였다.
현대과학은 이와 감은 원조적 논리 자세를 임의의 기정화된 진리로 변질시켜 버렸고, 그리고, 자연을 원자와 이들이 들어 있는 빈 공간으로 간주해 버린 진리는 다시 레노블3)로 하여금 "현대인의 고뇌”로 칭하는 걱정 거리를 야기하게 만들었다. 원자들이 무질서하게 난무하는 우주 속에서 어떻게 인간은 그 자신을 알아차릴 수 있단 말인가? 과학이란 반드시 인간과 자연 사이의 단절의 견지에서 정의되어야 하는가? “모든 육신, 창공, 별, 지구 그리고 이의 왕국들은 저속한 인간에게는 동일하지 않을 것이다. 즉, 있는 그대로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존재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은 아무것도 아니다.”4)3) R. Lenoble, Histoire de /'idee de nature(Paris : Alvin Michel, 1969).
4) B. Pascal " Pensees. "frag, 792, in Oeuveres Completes ( Paris : Brunschwig -Boutroux-Gazier. 1904-14).파스칼은 그의 『팡세 』에서 모노와 같은 당시대 과학자 사이에서 의식되었던 동일한 소외 의식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인간은 마침내 그의 천년의 꿈으로부터 깨어났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완전한 고독과, 원천적인 고립으로부터 깨어났다. 마침내 인간은 깨달았다. 집시처럼, 그는 한 외계의 경계상에 살게 되었다. 인간의 음악에 귀머거리인 이 세계는 인간의 고통이나 죄악처럼 희망에 무관심한 바로 그런 세계이다 .5)5) J. Monod, Cluince and Necessity (New York : Vintage Book, 1972) , pp .172-173.
이것은 패러독스이다. 분자 생물학의 빛나는 개가, 유전학적 수수께끼의 해독, 이들에 모노는 활기있게 관여한 다음 그런 비극적인 비망록으로 끝을 맺었다. 우리가 언급하였듯이 바로 이 전보는 인간을 우주의 집시로 만들고 있다. 우리는 이 현실을 대체 어찌 설명할 수 있는가? 과학은 자연과 어떤 대화의 전달 방법이 될 수 있는가? 지난 과거 동안 인류의 우주와 상상하는 의계의 우주 사이에 어떤 분명한 구분을 종종 짓곤 하였다. 『새로운 과학 (The New Science)』이란 저술에서 비코는 이에 대하여 가장 생생한 유명한 문장을 남겼다.
...... 먼 옛날을 에워싸고 있는 칠흙의 캄캄한 밤은 우리들로부터 너무도 까마득하여, 그곳에선 모든 의문을 초월한 영원하고 결코 꺼지지 않는 진리의 빛을 비추고 있었다. 문명 사회의 세계는 분명히 우리들 자신인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이와 같은 세계의 원리는 따라서 인간 자신의 마음을 수정할 수 있는 테두리 속에서만 얻어질 수 있다. 그 누구든 이같은 사실을 재고해 볼 때 놀라운 일은 철학자들은 태고부터 있어 온 자연의 세계를 알아내기 위하여 모든 정열을 쏟아 왔어야 했다 . 자연적인 우주는 신이 창조한 것이기 때문이다. 신만이 유일하게 모든 것을 알고 있으므로, 철학자들은 인간이 스스로 알게 될 수 있는 문명세계 또는 문명국가에 대한 연구를 수행할 필요조차 없었다.6)6) G. Vico, The New Science, trans.T .G .Bergin and M. H. Fisch (New York: 1968), 단락 331.
오늘날의 연구는 점점 인간과 자연 세계의 대립으로부터 보다 먼곳으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또한 이 책의 주요목적 중 하나는 대립을 파괴시켜가는 대신 인간과 자연에 대한 인식의 점증하는 응집된 개념을 밝히는 데 두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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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과거 동안, 자연을 대상으로 제기되어 온 의문은 아주 다양한 형태를 취해 왔다. 수메르(Sumer) 사람들은 문자를 발견하였다. 수메르 성직자들은 미래는 아마도 오늘 그들 앞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건을 어떤 숨겨진 방법으로 문자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이 믿음을 어떤 마력과 이성적인 요소로 보다 체계화하기에 이르렀다 .7)7) J .P . Vernant et al. , Divination et rationalite, esp .J . Bottero, "Symptomes, signes, ecritures" (Paris : Seuil, 1974).
이런 측면에서 서구과학은, 17세기에서 그 원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며 인간과 자연 사이의 영원한 대화를 통해서만 새로운 장이 열려 있을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코이레 8)는 "실험"을 통해 현대과학이 가져다 준 혁신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현대과학은 자연과의 새롭고 특정한 형태의 대화 매체의 발견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것은, 자연은 인간의 실험적 질의에 반응을 보인다는 어떤 확신 위에 이록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보다 더 정밀하게 실험적 대화물 정의할 수 있는가? 실험이란 단순히 어떤 사실이 발생하는 것을 믿음 있게 관측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으며, 단순하게 어떤 현상 사이의 경험적인 연관성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론적인 개념과 관측 사이의 체계적인 상관 관계를 전제로 한다.
8) A . Koyre, Galileo Studies (Hassocks, Eng. : The Harvest Press, 1978).
수없이 많은 서로 다른 방법에 의하여 과학자들은 그들의 질문이 옳았었는가를 평가하면서 어떻게 수수께끼가 풀리고 있는지를 발견하게 될 때 경탄스런 환희를 표현하여 왔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과학이란 인간의 믿음과 상관이 없어 보이는 어떤 실재의 습성과 인간의 야심이나 희망을 추측하지 않으면 안되는 두 사람의 동반자 경기와 같다. 자연이란 자연이 무엇이기를 원하는 것을 말해야 하도록 강요될 수 없는 것이다. 과학적인 연구는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게임을 흥분시키는 수반된 무엇이든 위험 천만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서구과학의 고유함은 그와 같은 방법론적인 생각에 의해 결코소진되지 않는다. 포퍼가 과학적인 합리성을 어떤 규범적인 정의로 논의하였을 때, 최종 단계의 분석에서 이성적인 과학은 이의 존재가 성공스러울 때뿐이라는 점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즉, 과학적인 방법은 미리 구상하였던 모델과 실험적 결과 사이의 놀랄 만한 일치점이 있을 때만 단지 응용력이 있다. 9) 과학은 위험한 놀음이다. 그러나 과학은 자연이 일관성있는 대답을 줄 수 있는 질문을 발견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9) K . Popper, Objective Knowledge (Oxford : Clarendon Press, 1972).
서구과학의 성공은 역사적 사실이며, 미리 예측할 수 없고 또한 사실을 무시할 수도 없다. 현대과학의 놀라울 만한 성공은 자연과 인간의 비가역적 변환의 관계로 우리를 유도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과학적 혁명"이란 술어는 적법성 있게 사용할 수 있다. 인류의 역사는 어떤 전환점들과 비가역 변화에 이르게 하는 주위 사정의 연계에 의해 점철되어 있다. 그런, 결정적인 사전의 하나는, "신석기시대 혁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곳은 생물학적 진화의 기록과 같은 "선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단지 현단계로서는 추측밖에 할 수가 없다. 반면, 과학의 전화에는 결정적인 에피소드에 관한 풍부한 정보가 산재하여 있다. 소위 일컫는 "구석기시대 혁명"은 수천년이 걸렸다. 문제를 다소 간략히 한다면, 과학적인 혁명의 시작은 이제 고작 3세기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는 아마도 현재의 이 혁명을 시사하는 “우연”과 "필연”의 특정하고 지성적인 혼합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갖고 있다고 믿어진다.
과학은 자연과 성공스런 대화를 시작하였다. 그 반대로 이 대화의 가장 첫번째 결과는 고요한 우주의 발견에 지나지 않았다. 이 점은 바로 고전 과학의 파라독스이다. 인류에게 이와 같은 세계는 죽어 있고 수동적인 자연을 뜻하며, 이때의 자연은 한번 프로그램을 작성하여 주면, 그 프로그램에 새겨져 있는 법칙에 따라 연속적으로 거동하는 거대한 기계 장치였다. 이런 측면에서 자연과의 대화는 인간을 자연에 보다 가까이 갖다 놓기보다는 오히려 자연으로부터 고립되어 온 대화를 낳았다. 인간의 유추의 승리는 슬프기만 한 진리였다. 이렇게 보면 과학은 손에 닿는 무엇이든 변질시키기만 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현대과학은 과학 자체를 너무도 위험한 것으로 보고 있는 반대자들이나 어떤 이치를 알게 된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되는 것으로 과학에 의하여 "발견된” 인간의 고독감을 공감하고 있는 옹호자들 모두를 공포에 떨게하고 말았다.
고전과학에 연관된 문명적인 긴장은 적어도 얼마간은 한 사회 속에 차지하고 있는 과학의 불안정한 위치에 책임이 있다 : 이런 긴장은 자연에 대해 어떤 이치를 안 것으로부터 거칠게 무엇인가를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겁없이 속단하게 하였고 때로는 심하게 거절하게 하였었다. 오늘날의 반과학운동에 대해서는 후에 논의하기로 하자. 초기의 경우를 예로 들면 ― I920년대에 독일에서 시작된 반합리성 운동은 양자역학의 문명적 배경을 이루게 되었다.10) 과학에 대한 반대는 곧, 일련의 우연성, 결정론, 환원주의, 합리성 등의 개념들로 간주될 수 있으며, 이에 따라서, 과학에 의해 거부해 왔던 개념에 대한 재음미의 폭발적인 파도가 일게 되었으나 이는 또한 자연의 원천적인 비합리성의 어떤 구체적인 표현으로 보였다.10) P. Forman, "Wei mar Cul ture, Casuality, and Quan t um Theory, 1918 -1927 : 어떤 반대되는 지성적 분위기에 대하여 독일의 물리학자들과 수학자들에 의해 적용됨”. Historical Studies in Physical Sciences, Vol . 3(1971), pp . 1-115.
생명, 운명, 자유 그리고 자발성 등은 따라서 어떤 이성으로는 도저히 꿰뚫을 수 없는 그늘전 지하 세계의 표현이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어떤 격렬한 자연에 연계되어 있는 사회 정치적인 특정한 배경에 용해됨이 없이, 이 거부 반응은 고전과학에 연루되고 있는 위험성을 나타내 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이 대단히 의미가 있다고 믿고 있는 일련의 경험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만을 인정함으로써 과학은 이들을 비합리적인, 그러나 엄청난 위력을 부여하는 어떤 왕국으로 옮겨 놓는 위험을 무릅쓰고 말았다.
니담이 강조하였던 것처럼, 서구 사상은 계속적으로 어떤 거대한 기계로서의 우주와 신이 우주를 지배한다는 신학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아 왔다. 니담은 이를 일컬어 "특정한 유럽인의 정신 분열”이라 하였다 .11) 사11) J . Needham and C. A. Ronan, A Shorter Science and Civilization in China, Vol. I (Cambridge :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8), p. 170.
실상. 이러한 견해는 서로 관계가 있다. 한 거대한 기계 장치는 외적인 신을 필요로 한다.
인간은 진정 이와 갇은 비극적 선택을 해야만 하는가? 우리는 소외로 인도하는 과학과 자연을 비과학적인 형이상학적 견해로 보는 양자 중 어느 것인가를 택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이와 같은 선택은 더이상 필요 없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과학이 오늘날 밟고 있는 변화는 급진적으로 어떤 새로운 상황으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이와 같은 최근의 과학의 진보는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어떤 문명 내에서 과학의 위치를 재고할 유일한 기회를 부여해 주고 있다. 현대과학은 유럽인의 17세기의 어떤 특정한 맥락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이제 우리는 20세기 말엽에 이르고 있으며 그 메시지는 인간은 물론이려니와 인간과 자연의 호혜관계를 다루고 있다.3과학은 오늘날 과학 자체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는 우리들의 믿음에서 볼 때 고전과학의 가정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그와 같은 가정은 어느 수준에서 이 우주는 단순하고 시간의 가역적인 기본적인 법칙에 의해 지배받는다는 가장 근원적인 확신의 중심부와 또는 그 언저리에 머물고 있는 것들이다. 오늘날에 이르러 이와 같은 것은 너무나 지나치게 간단한 속단이 되어 버린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를 마치 건물을 블럭의 더미로 문제를 간략히 하는 것에 비유하고 싶다. 지금부터라도 그 동일한 블럭으로부터 인간은 공장이나 궁전 또는 성당을 축조할 수 있다. 이 건물의 수준은 대체로 우리가 기대하는 시간의 창조물, 문명과 사회와 어떤 스타일의 합성물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곳에는 부가적이며 분명한 문제가 남아 있는데, 아무도 자연을 축조하지는 못하였는바, 우리는 반드시 그 "블럭“ 자체에_자연의 미시적인 활성도――-건축 과정을 고려하는 의미를 부여해야만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고전과학의 의문은 그 자체 내에 서구 사상의 역사를 통하여 은유되고있는 二分해체법의 예증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단지 개념의 변치 않는 세계는 전통적으로 플라톤의 표현을 빌자면 "명쾌한 태양에 의해서 빛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같은 맥락에서, 유일한 영원 법칙은 과학적인 합리성을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시간성은 어떤 환상으로 업신여겨져 왔다. 오늘날 이는 더이상 진리가 아니다. 이제 우리가 발견한 것은 이 점이 환상이기는커녕, 비가역성은 자연 속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자기-구성의 대부분 과정의 근원이 되는 위치에 있게 되었다. 이제 가역성이나 결정론은 아주 간단한 경우에 제한적으로 응용될 뿐이며, 반면 비가역성과 무질서도가 현상의 대부분을 지배하는 규칙이 되고 있다.
시간과 복잡성의 거부는 고전개념의 과학적 행동에 의해 야기되는 문명적인 문제의 핵심이 되었다. 이와같은 개념의 도전은 우리가 정의하려고 하는 과학의 생태 변형에 또한 결정적인 것이었다. 에딩톤 12)은 그의 유명한 저서 『물리적 체계의 자연』에서 1차 및 2차 법칙의 차이점을 소개하고 있다. “1차 법칙"은 기본입자의 거동을 총괄하며 “2차 법칙"은 원자나 분자의 집합에 응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근본적인 거동을 묘사하는 것은 전체적으로 어떤 체계를 설명하기에는 너무도 충분치 못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2차 법칙을 고집하였다. 에딩톤의 견해로는 2차 법칙의 아주 좋은 예의 하나는 열역학 제 2법칙이라고 지적하고 이 법칙은 물리학에 "시간화살"을 이끌어들였다고 하였다. 에딩돈은 표현하기를, “나의 생각으로는 과학철학의 견지에서 볼 때 엔트로피에 연계된 개념은 19세기 과학적 사고에 위대한 공헌을 한 것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와 같은 개념은 과학이 관심을 둘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은 사물을 미시적으로 쪼개냄으로써 발견되는 것이라는 견해에 어떤 반향을 일으키게 되었다 .”13) 이러한 추세는 오늘날 극적으로 증폭되어 가고 있다.12) A . Eddington, The Nature of the Physical World (Ann Arbor :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1958), pp . 68-80.
13) 문헌 I2의 P. 103.현대 과학의 위대한 성공의 일부는 분자나 원자, 기초 소립자의 미시적 단계에서 발견된 것들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예를 들면, 분자 생물학
은 생태계의 메카니즘에 핵심적인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특정한 분자들을 분리시키는 가운데 엄청난 정도의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 사실상, 이와 같은 성공은, 에딩톤의 표현을 빌자면, 너무도 엄청났으므로 수많은 과학자들의 연구 목표를 어떤 “사물을 미시적으로 쪼개내는" 것으로 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열역학 제 2법칙은 자연의 개념을 복잡성을 피하면서 자연을 설명할 수 있도록 하였다. 오늘날의 관심은 물질로부터 시간, 관계, 의사소통 등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시각의 변화는 어떤 무작위적 결정의 결과는 아니다. 물리학에서는 이를 누구도 예견할 수 없는 새로운 발견이라고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누가 대부분의 (아마도 모든) 기초소립자가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 있는가? 팽창하는 우주를 실험적으로 증명함으로써 전체적인 우주의 역사를 상상할 수 있다는 점을 누가 믿을 수 있는가?20세기말에 즈음하여 인류는 현시대의 물리학, 양자역학 그리고 상대성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두 가지 혁명의 보다 명실한 뜻을 이해할 줄 알게 되었다. 그들은 고전역학을 수정하려는 시도로부터 출발하여 이를 새롭게 발견된 보편 상수에 혼성 결합하려고 노력했다. 오늘날 상황은 바뀌었다. 양자역학은 입자가 끊임없이 서로 다른 틀로 변형되어 가는 것을 정의하기 위한 이론적인 배경을 제공해 주었다. 이와 유사하게, 일반적인 상대성은 가장 기본적인 이론이 되었으며 이 이론에 입각하여 우주의 창조 단계부터의 熱的역사를 추측할 수가 있었다.인류의 우주는 어떤 복수적이고 복잡다단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어떤 구조는 소멸해 가고 또 임의의 구조는 다시 나타난다. 우리가 알고 있는한 특정 구조는 결정론적인 방정식에 의해 잘 정의될 수 있으나 대부분 다른 변환은 확률적인 과정이 수반된다.그렇다면 이들 개념의 자명한 모순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인류는 어떤 단일 우주에 살고 있다. 후에 거론되겠지만 우리는 이러한 근원적인 문제가 지니는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하고 있다. 더욱이, 우리가 관할하고 정의하는 여러가지 현상에 부여하고 있는 중요성은 고전물리학에서 제안되어 온 것과는 아주 다르거나 반대일 수 있다. 그곳에서는 이미언급한 대로 기본적인 과정을 결정론적이고 가역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무작위성이나 비가역성이 수반되는 과정은 어떤 예의 조항으로 여겼다. 오늘날 모든 곳에서 비가역적 변환이나 요동의 역할을 볼 수 있다. 고전 물리학에서 생각하여 온 모델은 의도적으로 어떤 물질을 상자 속에 넣고 평형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려서 창조해낼 수 있는 그런 제한적 상황에서만 단지 발생한다. 인위적인 과정은 결정론적일 수도 있고 가역적일 수도 있다. 자연적인 과정은 무작위성과 비가역성의 근본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점이 물질이란 결정론적 세계 견해에서 정의 한대로 수동적인 물체가 아니며 어떤 자발적인 활성에 연관되어 있는 물질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책 머리”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너무도 심오하여, 우리는 “인간의 자연과의 새로운 대화”에 대해 진실하게 무언가 말할 수 있으리라 믿어진다.
4이 책은 고전과학의 황금기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과학의 관념적인 변화를 다루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기술하기 위하여 우리는 여러가지 통로를 선택할 수 있다. 기초소립자의 문제를 연구할 수 있으며 천체 물리학의 문제를 연구할 수도 있다. 최근, 환상적인 속도로 발전해 가고 있는 천체 물리학의 문제를 다룰 수도 있다. 한계가 없는 첨단 개척의 주제들이 산재해 있다.그러나, 우리가 "책 머리”에서 언급하였듯이, 지난 수년간 우리의 수준에서 볼 때, 너무나 많은 자연의 새로운 모습이 발견되었다. 우리는 주로 거시적 체계의 중간수준의 토의에 관심을 두기로 하였으며 이는 원자, 분자 그리고 특히 생체분자의 수준을 포함한다. 아직도 과학의 진화는 모든 분야에 평행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며 이 평행선에는 기초소립자, 화학, 생화학, 또는 우주학의 분야 등이 포함된다. 모든 영역에서 자기-구성, 복잡성, 그리고 시간은 새롭고 예기치 못하였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그러므로, 우리들의 목표는 한정된 관점에서 수세기에 걸친 과학 전보의 중요한 의의를 검토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선택과 토론의 소재는 분명히 우리의 주관적인 요소에 의하였다. 시간의 문제는 우리 중의 한 사람이 모든 생애를 거쳐 추구하여 온 연구의 중심 과제이다.
그는 브위셀 대학의 젊은 학생으로서 최초로 물리학과 화학에 접하게 되었으며, 과학이 시간에 관해서 너무도 이야기할 거리가 없었던 것에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는 특히 대학시절 이래 역사와 고고학에 또한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 놀라움은 그에게 두 가지의 재능을 갖도록 하였으며 이 두 가지는 과거에 예증으로 거론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는 문제 자체를 무시해 버렸는데, 이는 고전 과학은 시간에 대하여 아무런 해답을 줄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또다른 하나는 자연을 좀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이 경우 시간은 보다 근본적인 어떤 다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세기의 두 철학자인 베르그송과 화이트헤드를 예로 들어 그 경로에 대한 그들의 언급을 인용하여 보자. 첫번째의 위치는 아마도 "실증론적"인 것이며 다음은 "현상학적"인 것이라 하겠다.그러나 거기에는, 제 3의 경로가 있었으며, 이는 물리학이나 화학에서 전통적으로 생각하여 온 시간적 전화의 단순성이 주로 간단한 상황에 관심을 기울여 온 탓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또한 우리가 암시했듯이 성당과 대조적으로 블럭을 더미로 쌓는 것에 관심을 기울여 온 탓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이 책은 세 개의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첫번째 부분은 고전과학의 승리와 이 승리의 문화적 결과를 다루고 있다. 초기에 과학은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그 다음에는 고전과학과 그것의 경이스런 성공 때문에 발생되었던 문명의 분극화를 다룰 예정이다. 이 성공은 그렇게 받아들여졌는가? 아마도 과학이 시사하는 바가 제한되었거나, 과학적인 방법 자체가 부분적이거나 환상적인 것으로 거부당하지는 않았는가? 이와 갈은 두 가지 선택은 모두 동등한 결과를 가져온다――즉 과학과 휴머니티의 "두 문명"으로 불린 것들 사이의 충돌을 의미한다.이러한 질문은 고전과학의 형성 이래 서구 사고의 근간을 이루어 왔다.반복적으로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가? ”의 문제에 이르곤 하였다. 베르린은 이 의문을 과학과 인간성 사이의 균열이 시작되던 처음부터 보아 왔다.
특정하고 유일한 것에 대한 반복적이고 보편적인 것, 일목 요연한 것과 추상적인 것, 영원한 운동과 정지해 있는 것, 내부에 대한 의부, 질에 대한 양, 문화의 경계에 대한 무시간적 원리, 정신적인 두쟁과 인류의 영속적인 상태의 자기변형에 대한 평화, 질서, 최종적 조화의 가능성 (그리고 욕망) 그리고, 모든 이성적인 인류의 소망의 만족은 위에서 지적한 충돌의 일면에 해당된다 .14)14) Berlin, 앞에서 인용한 문헌 1중에서 p. 109.
우리는 많은 지면을 고전역학에 할애하였다. 사실상, 고전역학을 먼저 다루려는 의도는 어떤 가장 유리한 고지에 선다는 느낌 을 갖고 있으며 이에 따라 오늘날 과학의 변화를 적절히 음미해 볼 수 있다고 본다. 고전동력학은 자연의 정지해 있는 관점을 아주 명확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다. 여기서 시간이란 자명하게 어떤 매개변수로 간단히 취급되며 미래와 과거는 동등하게 된다. 양자이론은 고전동력학이 닿지 못했던 많은 새로운 문제등을 잉태시켰으나 물론 고전동력학의 일련의 관념적인 위치를 그대로 포함하고 있으며 특히 시간과 과정에 관한 한 더욱 그러하다.
19세기가 시작될 무렵으로 거슬러보면 고전과학은 정확하게 대승리를 거두고 있었으며 뉴톤의 프로그램은 불란서 과학을 지배하였고 후에 유럽 전체를 석권하게 되었다. 동시에 이때부터가 뉴톤 프로그램 구축의 와해가 시야에 나타나기 시작할 때였다. 토의의 두번째 부분은 熱科의 발전을 더듬어보고 있는데 이는 뉴톤의 중력과학의 대 맞수였으며, 처음으로 후리어 (Fourier)가 열이 파급 확산되는 현상을 규명하는 법칙을 얻어내었을 때부터 볼만한 도전이 시작된다. 그것은 사실상 고전동력학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어떤 현상에 대한 최초의 정량적인 묘사로서 비가역 과정이었다.
열과학의 두 후손인 에너지의 보존에 관한 과학과 열기관에 관한 과학은 처음으로 "비고전 "과학_열역학을 낳게 되었다. 열역학의 가장 근원적인 기여는 축복받은 제2법칙으로서, 이는 물리학으로 하여금 시간화살 개념을 받아들이게 하였다. 이 받아들임은 보다 전세계적인 지성적 움직임의 한 부분이었다. 19세기는 진정으로 전화의 세기였다. 즉 생물학, 지리학, 사회 과학은 됨 (becoming)의 과정이나 복잡성이 증가하는 과정을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열역학은 두 가지 형태의 공정을 구분짓는 것에 그 토대를 두고 있는데 ; 가역 공정은 시간의 화살에 종속적인 과정이다. 뒷부분에서 몇 가지 예를 검토하자. 이는 앤트로피 개념이 포함된 두 가지 형태의 과정을 구분짓는 수인데, 엔트로피의 증가는 비가역 변환의 경우에만 해당되기 때문이다.19 세기에 있어서 열역학적 진화의 최종 상태는 과학적인 연구의 핵심 바로 그것이었다. 평형 열역학이 바로 그것이다. 바가역적 과정은 귀찮은 것, 방해 요인, 연구할 가치가 없는 주제로서 업신여기게 되었다. 오늘날 이러한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평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형태의 구조가 자발적으로 출현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평형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는 무질서, 열적 혼돈으로부터 어떤 질서적 구조로 변환될 수 있다. 물질의 새로운 동적인 상태가 자생되고, 이 상태는 주어진 대상계와 이를 에워싼 주위 사이의 상관관계 를 반영해 주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새로운 구조를 소산구조로 불렀으며 이 구조의 형성이 할 수 있는 어떤 건설적 역할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같이 불렀다.이 책은 최근 수년간 발전된 이와 같은 소산구조의 출현과 진화 상태를 규정하기 위한 몇 가지 방법을 기술하고 있다 .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중심 사상 (leitmotivs)을- 지닌 단어들을 말한다면, 이들은 비선형성, 불안정성, 요동이라 하겠다. 이 단어들은 물리학이나 화학 분야의 정통적 의미를 넘어서 자연에 대한 견해에까지 그 의미가 스며들기 시작한 용어들이다.과학과 인간성의 반론을 토의할 때 베르린을 인용하였다. 그는 반복적이고 보편적인 것에 대한 특정성 또는 유일한 것에 반대하였다. 놀라울만한 양상은 우리가 평형으로부터 소산구조적 평형 상태로 옮아갈 때, 반복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부터 특정하고 유일한 무엇으로 변형될 때의 새로운 견해이다. 사실상, 평형에 관한 법칙은 보편적이다. 평형 근방의 상태에서 물질은 "반복적"인 방법으로 거동한다. 반대로 평형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소산구조가 자생될 수 있는 가능성에 상응하는 여러가지 메카니즘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평형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매끈하고 리드미컬한 형상으로 거동하는 화학시계나 화학반응이 출현한다. 또한 비균일한 구조로부터 결정으로 유도되는 자기-구성 과정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미리 예견하기 어려운 거동특성에 관하여 강조하고 싶다. 우리 중 한 사람조차도 어떻게 화학반응이 일어날는지에 대한 직감적인 견해를 갖고 있지는 않다. 어떤 공간에 떠 있고 서로 충돌하고 매번 새로운 형태로 되나타나는 분자들을 상상하여 보라. 원자론자들이 공기 중에서 춤추고 있는 먼지를 이야기하기 위해 정의하였던 것과 유사한 혼돈적인 분자의 거동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화학시계의 경우 그 거동은 아주 다르다.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면 화학시계에서 모든 분자는 그들의 화학적인 주체를 규칙적인 시간 간격으로 변화시킨다. 만약 분자를 파랗거나 빨간 것으로 상상할 수 있다면 그들 색깔의 변화는 화학시계 반응과 같은 리듬을 따를 것이다. 분명히 그와 같은 상황은 혼돈적 거동의 개념으로는 더이상 설명할 수 없다. 새로운 형태의 질서가 나타난다. 우리는 이제, 분자간의 새로운 짜임새와, "의사소통"의 어떤 메카니즘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형태의 메카니즘은 단지 평형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상태에서만 야기될 수 있다. 이는 사실상 생체학 체계의 가장 기본이 되는 정의로서 받아들일 수 있다.부가적으로 소산구조의 형태는 어떤 구조가 형성될 때의 조건에 극단적으로 의존한다. 지구상의 자기장은 물론 중력장과 같은 외적 場(field)도 자기-구성의 메카니즘 선택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우리는 화학으로부터 출발하여 어떤 복잡다단한 구조를 형성하거나 생명체 이전의 존재와 같은 복잡한 형태를 구성할 수 있는 방법을 얻어내기 시작하였다. 확실한 것은 이와 같은 평형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의 현상은 물질의 핵심이거나 예기치 못하였던 어떤 성질을 입증할 수 있다는 점이며, 따라서 물리학에서는 그러한 구조를 어떤 의적 조건을 적응한 구조로 정의한다. 이보다는 어느 정도 단순한 화학계로서 생체 이전 적응 메카니즘을 접할 수 있다. 좀더 인류학적인 언어를 사용한다면 ; 평형상태에서 물질은 "장님"과 같고, 평형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물질은 지각할 수 있게 되기 시작하여 뭔가를 "고려"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방법으로 외부세계와 차이에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약한 중력이나 전기장처럼).
물론, 생명체의 기원에 관한 문제는 아직까지 대단히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으며, 또한 어떤 임박한 단순한 해답도 생각할 수 없다. 아직까지, 이와 같은 생체 근원에 대한 전망에 따르면 “정상적"인 물리학의 법칙에 의한 시도가 붕괴되거나 어쩔 수 없는 운명에 이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반대로, 생명은 우리의 생물권 (biosphere)에 새겨넣은 바로 그 조건에 따라 어떤 특정한 방법으로 영위되고 있는 듯하며 태양으로부터 복사 에너지에 의해서 생물권에 부과되는 평형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조건이나, 화학 반응의 비선형성에 의해 모든 것이 구체화되고 있는 듯하다.우리는 두갈래치기 이론과 같은 소산구조의 형성을 설명할 수 있는 몇 가지 개념을 기술하였다. 두갈래치기 인접 영역에 있는 계가 대단히 커다란 요동을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그와 같은 계는 가능하고 다양한 여러 방향의 전화방법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듯하며 이 순간에는 지금까지 유명한 법칙으로 알아 왔던 수많은 규칙의 상식적인 의미는 상실되고 만다. 대단히 작은 요동에 의해 거시적인 체계의 전체적 거동을 극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전연 새로운 전화가 시작될 수 있다. 사회 현상-과학을 포함한―의 예들이 지니는 유사성은 회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연성"이나 "필연성”이 반대되기는커녕, 이 두 가지 개념은 평형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에 있는 비선형적인 체계를 규정하는 데 있어 근본적인 양상으로 볼 수 있다.이 책의 처음 두 부분은 물리적인 우주의 상충되는 견해를 다루고 있다 : 고전 동력학의 정적인 견해와 엔트로피에 연루되는 진화적 견해이다.이 두 가지 견해간의 대립은 더이상 어찌할 수 없 는 것 이 되었다. 오랜 동안 이러한 대립은 비가역 현상을 환상이나 근사방법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하여 연기되어 왔다. 무시간성의 우주에 시간 개념을 끌어들인 것은 바로 우리 인간이다. 그러나, 비가역 과정을 어떤 환상이나 근사적인 것으로 단순화한 해답은 더이상 받아들 여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제 우리는 비가역 과정은 어떤 질서와 짜임새와 자기 - 구성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이와 같은 상충적인 대치를 더이상 피할 수가 없다. 이 점이 이 책의 세번째 부분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이다. 우리는 먼저 비가역성의 문제를 다루어 온 전동적인 방법을 고전 및 양자역학의 측면에서 다루었다. 이 부분에서는 볼츠만과 깁스의 선구자적인 연구 업적을 먼저 다루었다. 그러나, 이들만으로는 문제의 많은 부분이 풀리지 않고 있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 포퍼가 언급하였듯이, 이는 극적인 이야기이다 ; 먼저, 볼츠만은 열역학 제 2법칙이 암시하는 시간에 대한 새로운 개념에 대하여 무엇인가 객관적인 계통화를 이룩하였다고 여겼다. 그러나 제멜로와 같은 사람들의 이론과 논쟁의 결과로서 그의 초기 방정식을 다시 수정해야만 했었다.역사의 밝은 면을――-또는 역사의 어두운 면을 생각할 때 __ -볼츠만은 패배하였다. 물론 모든 개념의 표준적인 수용을 고려할 때 모든 이들은 한 물리학자로서 그의 탁월함을 인정한다. 그는 그의 H_ 정리의 지위를 결코 성공스레 증명하지 못하였으며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도 설명하지 못했다……그러한 것들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믿음을 잃게 하였던 압력이었다…… 15)15) K. Popper, Unended Quest (La Salle, Ill. : Open Court Publishing Company, 1976), pp. 161-62.
비가역성의 문제는 아직도 활기찬 논쟁의 주제로 남아 있다. 열역학 제 2법칙이 발견된 이래 150년이 지난 지금 대체 이게 무슨 온당치 않은 말인가? 이 물음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양상이 있는데 일부는 문화적인 것
이며 일부는 공학적인 것이다. 시간 개념의 불신에는 문화적인 요소가 내재해 있다. 우리는 여러 경우에 아인슈타인의 의견을 인용할 것이다. 그의 판단은 결정적이고 최종적인 것으로 들린다 ; 비가역성으로서의 시간은 어떤 환상이다. 아인슈타인은 브루노가 I6세기에 기록하여 수세기 동안 과학의 어떤 신조가 되어 왔던 생각을 다시 반복했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 : ”이 우주는, 그러므로 유일하고, 무한하고, 不動이며……국부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며……우주는 그 자체가 생성되지 않으며 ……부패해 가지 않으며……변할 수 없는 것……"16) 오랜 동안 브루노의 이같은 시각은 서구세계의 과학적 견해를 지배하여 왔다. 따라서 비가역성의 갑작스런 침입은 주로 공학이나 물리화학으로부터 왔지만, 어떤 불신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그 점에는 문화적 요인에 더하여 기술적인 이유도 있다.
16) G. Bruno, 5th dialoge, "De la causa," Opere Italiane, l (Bari: 1907) ; I. Leclerc, Tlze Nature of Physical Existence (London : George Allen and Unwin, 1972).
동력학으로부터 비가역성을 “유도”하려는 모든 노력은 비가역성이 어떤 보편적인 현상이 아니므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엄밀한 의미에서 가역적인 상황을 상상할 수 있는데 마찰력이 배제된 상태에서의 추의 운동이나 천체 운동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실패는 실망감과, 종국에는 비가역성의 전체 개념은 어떤 주관적인 근원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에 이르게 하였다. 우리는 이와 같은 모든 문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토론할 예정이다. 오늘날에는 서로 맥을 달리하는 종류의 동력학적 계가 존재하는 바를 알고 있으므로 보다 다른 관점에서 이 문제를 조명해볼 수 있다. 우주는 전혀 균일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입장에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는 것을 용인할 수 있는 동력학적 체계의 특정한 구조는 무엇인가? 수반되는 최소한의 복잡성은 무엇인가?
이와 같은 관점 아래 많은 진보가 이루어졌다. 이제 인간은 자연 속에서 시간의 뿌리에 대해 보다 엄밀하게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대단히 전도가 밝은 결과이다. 열역학 제 2법칙, 엔트로피 법칙은 비가역성을 거시적인 세계 속으로 끌어들였다. 물론 오늘에 이르러는 미시적 수준에서조차 비가역성이 시사하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중에 거론되겠지만, 열역학 제 2법칙은 어떤 초기 조전에 대한 제약이나 선택 법칙에 상응하며 동력학의 법칙에 의해 파급되어 간다. 그러므로 제 2법칙은 인간이 자연을 보는 시각에 더이상 다른 형태로 바꿀 수 없는 새로운 요소를 끌어들였다 . 반면, 이는 동력학에 일치하면서도 동력학으로부터 유도될 수 없는 것이다.
볼츠만은 이미 확률과 비가역성이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고려하는 어떤 계가 단지 충분히 무작위적으로 거동할 때에만 과거와 미래를 구분할 수 있으며, 그리하여 비가역성을 문제시할 수 있게 된다. 우리의 분석은 이 견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상, 자연에 대한 결정론적인 묘사에서 시간의 화살이란 무슨 뜻이 있는가? 만약 미래가 현재에 어떤 형태로든 이미 포함되어 있다면 현재는 또한 과거를 포함한다. 이때 시간의 화살이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간의 화살은 마치 프랑스 시인 발레리가 "시간은 구축된 것이다 (times is constrution)"17)라고 강조했던 것처럼 미래는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의 표명이다.17) P. Valery, Calziers(2, vols.), Mrs. Robinson-Valery 편저 (Paris : Gallimard, 1973-1974).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경험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 사이의 어떤 급전적인 차이를 표명하는 것이다. 우리는 공간의 한 점에서 다른 곳으로 움직여갈 수 있다. 그러나, 되돌아갈 수는 없다. 과거와 미래는 교환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나중에 볼 수 있지만, 이와 같은 불가능의 느낌은 이제 어떤 정밀한 과학적 의미를 얻고 있다. 어떤 허락된 상태는 무한의 엔트로피 장벽에 의한 열역학 제 2법칙에 의해 금지된 상태와 분리된다. 물리학에는 다른 형태의 장벽이 있다. 하나는 빛의 속도인데, 그것은 우리의 시야에 어떤 신호가 전달될 수 있는 속도를 제한한다. 이러한 장벽이 존재하는 것은 아주 본질적이다 ; 그렇지 않으면, 어떤 우연성도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같은 방법으로 엔트로피 장벽은 의사소통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데 필수 조건이다. 우리의 미래가 다른 사람들에게 과거가 되어 버란 수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는지 상상하여 보라! 이 문제에 대해 뒤에
다시 거론할 예정이다.
오늘날 물리학의 진화는 시간의 실재를 강조하고 있다. 과정이 일어나는 동안 시간의 새로운 모습이 밝혀졌다. 사전에 대한 모든 것에 관여케 되었다. 아인슈타인. 프로우스트, 프로이트, 테일하드, 페이어스 또는 화이트헤드를 생각하여 보자.I950년에 출간된 아인슈타인의 특정 상대성원리의 놀라운 결과의 하나는 각각의 관측자에 관계되는 국부적 시간의 개념이다. 그러나, 이러한 국부적인 시간은 가역적인 것으로 남아 있다. 특정 및 보편적 상대성 이론에서 아인슈타인의 문제는 주로 관측자 사이의 "의사소통"의 문제로 관찰자들간의 시간간격을 비교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는 시간을 이와는 다른 개념적 맥락에서 연구하고 있다.고전역학에서 시간은 특정 궤적의 한 점의 위치를 특정화하는 수의 개념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전체적인 수준에서 보면 다른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어떤 어린이를 쳐다보고 그 아이의 나이를 추측할 때 나이는 어린이 신체의 특정한 부분에 위치해 있는 게 아니다. 이는 총체적인 판단이다. 이와 같은 개념은 종종 과학이 시간을 공간화한다고 정의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또다른 견해가 가능함을 알아냈다. 어떤 풍경과 이의 진화를 생각하자 : 마을은 커가고, 교량과 도로는 서로 다른 지점을 연결하고 주민을 수송한다. 공간이란 따라서 어떤 시간적인 차원을 얻는다 ; 지리학자 베리 (B. Berry)의 말을 따르면 우리는 "공간의 시간화”를 연구하게 되었다.그러나 오늘날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진보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시각에서 구조의 문제, 질서의 문제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제 7장에서 거론되겠지만, 고전적이든 양자론적이든간에, 동력학의 견지에서 보는 시간 방향성 진화란 생각할 수가 없다. 동력학의 관점에서 정의되는 것처럼 “정보"란 시간 속에 임의의 상수로 남는다. 이는 마치 파라독스처럼 들린다. 두 액체를 서로 혼합할 때에는 의부로부터 어떤 장치의 사용 없이, 혼합 이전의 상태로 되돌릴 수 없는 한 "진화”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와는 반대로, 엔트로피 법칙은 혼합을 "무질서”를 향한 진화나, 가장 있음직한 상태를 향하는 과정으로 정의한다. 오늘날, 이와 같은 두 가지 묘사 사이에는 어떤 모순도 계류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지만, 그러나 정보라든가 또는 질서에 관하여 언급하기 위해서는 고려하고 있는 단위를 재정립해야 한다. 중요한 새로운 사실은 어떤 형태의 단위로부터 다른 형태로 바꿀 수 있는 정밀한 규칙을 확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제 2법칙으로 표현되는 진화적 통합의 미시적인 시각에서 체계화할 수 있게 되었다. 진화적 통합이 화학의 모든 것뿐만 아니라 생물학과 사회과학의 핵심적인 부분을 망라할 수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결과로 보인다. 이러한 통찰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물리학에서 일고 있는 재개념화 과정은 이제 그 초기 단계에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의도하는 바는 과학의 어떤 확정적인 획득에 대한 여명을 주는 데 있지 않으며 안정되고 잘 확립된 결과를 거론하는 점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과학적인 활동의 개념적인 창조성과, 미래에 대한 시각과 발생하는 새로운 문제에 대한 이론적인 창조능력을 강조하는 것이다. 어느 경우이든, 오늘날 우리는 고작해야 이러한 담구의 시작단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여기에서는 불확실하거나 위험한 부분에 대한 거론은 하지 않을 예정이다. 그러므로 현재까지 알려진 문제를 선정하여 우리의 해답이 얼마나 불완전한가를 충분히 인식하기를 바라는 점이 우리의 의도이다.
5슈뢰딩거는 언젠가 많은 과학철학자들의 분개함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한 바 있다:……언제부턴가 모든 과학은 일반적으로 인류의 문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과학적인 발견은 비록 그 발견이 처음에는 대단히 진보된 것이고, 비밀이 많고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문화적 배경을 떠나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었다. 이론에 배경을 둔 과학은 이들 이론을 세워나가는 것이 적절하고 중대한 것으로 여기나 종국에는 어떤 교육된 집단에서 잘파악되고 있는 개념이나 용어의 틀에 놓일 운명에 있으며 그 일부가 되어버리고 일반적인 우주 형상의 작은 자취가 되고 만다는 사실이다 ―내가 말하는 이론 과학은 이와 같은 사실을 무시해 버리거나, 기껏해야 어떤 여행의 동반자와 같이 작은 집단에 의해서 이해되는 견지에서 서로 머무르며 대부분의 문명화된 인간사회로부터 삭제당하기 일쑤이다. 결국에 가서는 제멋에 겨워 비밀스런 지껄임을 계속하게 되는 소의된 전문가 집단 사이에서 위축되거나 무시되어 갈 수밖에 없게 된다.18)
18) E. SchrOdinger, "Are there quantum Jumps?" The British Joumal for the Philosoplty of Science, Vol 3(1952), pp .109-110; 이 책은 P. W . Bridgmann이 그의 다음 저서에서 적개심에 차 인용했던 내용이다. Delenninism and Freedom in the Age of Modem Science, ed . S. Hook (New York ; New York University Press, 1958).
이 책의 주된 테마 중의 하나는 대체적으로 문명에 대하여 적절하게 강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 것이며 특히 과학의 내부적 개념화의 문제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과학 바로 그 심장부에서 시간에 관한 의문을 발견하게 되었다. 됨과 비가역성-이들은 몇몇 철학자 세대가 그들의 생애를 바쳐 온 의문이다. 오늘날, 역사가―――이는 경제학, 인류학, 또는 정치학적일 수 있는-전연 예기치 못하는 속도로 움직이고 있을 때, 새로운 의문과 관심이 대화의 마당 속으로 우리 자신을 들여놓지 않으면 안되게 하고 어떤 응집된 통합을 위하여 헌신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과학의 진보를 종종 어떤 균열의 측면에서 정의하거나, 점점더 파악하기 어려운 추상적 수준을 향하여 지금까지 우리의 견고한 경험으로부터 멀리 달아나도록 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이런 류의 해석이, 어떤 인식론의 수준에서, 단지 고전과학 자체가 토대를 세운 역사적인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며, 인류와 주어진 환경 사이의 광활한 관계 영역의 이론적 틀 내에 포함시킬 수 없었던 무능의 결과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의심의 여지없이 그곳에는 과학적 이론의 추상적 발전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의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하여 온 개념적인 혁신은 필시 이러한 형태를 취하고 있지 않을 것으로 믿어진다. 시간의 발견은 과학의 내부 역사와 오늘날 발견되는 과학 자체의 사회적인 맥락 모두에 동등한 뿌리를 갖고 있다. 불안정한 기초 소립자나 팽창되는 우주와 같은 발견은 분명히 과학 내부의 역사에 속하지만, 고려하는 계에 수반되는 비평형적 상황 속에서 일반적인 관심은 대체적으로 오늘에 있어 인간성이 어떤 변천의 추이에 있다는 우리의 느낌을 반영할 수도 있다. 많은 결과가 제 5장과 6장에서 거론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진동성 화학반응으로서, 이들은 훨씬 이전에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의 문명 및 이념적 관념에서 이에 관한 비평형 문제의 지속적인 연구가 억제되기에 이르렀었다.
우리는 이제, 어떤 문명적인 관념 속에 이와 같은 수용을 주장하는 일이 과학의 고전적 수용과는 반대로 되어 가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과학은 자연을 이해하는 구태의연한 형식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로 발전되고 있다 ; 과학은 어떤 이성의 에 비유될 수 있는 과정 속에서 그 자체가 순화된다. 그러나 또한 과학은 반드시 어떤 사회 집단이 살고 있는 것과는 떨어진 상태에서 진행되어야 하며 현세의 것들이 수반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전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상적인 과학 공동체는 사회의 압력이나 필요 또는 요구 사항으로부터 반드시 보호되어야 한다. 과학적 진보는 마땅히 본질적으로는 자율적인 과정에 의하여야 하며 어떤 "외부적"인 영향, 즉 문명, 사회 또는 경제적인 다른 분야의 활동에 과학자가 참여하는 일은 아마도 단지 방해가 되거나 지연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추상적 개념의 이같은 이상은, 과학자의 움츠림이며, 또다른 이상 속에 연합되어, 이는 “진정한" 연구 과학자의 천직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소위 말해, 세계적인 변화 추이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과학자의 의도라 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정의하기를 과학자의 어떤 부류는 ”과학의 신전"으로부터 부여되는 임무로서 後者인 의 천사”가 취향에 맞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 모두는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라 하였다 _이는 어떤 특정한 사람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일반적으로……오히려 기이하고, 좀체 말을 터놓지 않고, 고독한 사람들, 그들은 이와 같은 공통적인 특성에도 불구하고 추방되어 버린 무리들과는 거의 유사하지 않다.
우엇이 그들을 신전으로 인도하였는가? …… 인간을 예술과 과학으로 유도하는 강력한 동기 중의 하나는 고통스런 매일매일의 일과 견딜 수 없는 따분함의 일상생활과 누군가의 변화되고 싶은 욕망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것이다 . 섬세한 감수성을 가전 이는 어떤 개인의 존재로부터 탈출하거나 이런 객관적인 관찰과 이해의 세계 속으로 뻗어나가도록 만든다. 이와 같은 동기는 선량한 소시민이 그가 처한 북적이고 떠들썩한 마을에서 떠나 고요하고, 높은 산이 있는 그런 곳에서 정적과, 해맑은 공기와 어떤 영원에 이르는 듯이 보이는 조용한 등고선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주시하고자 하는 억누를 수 없는 동경에 견줄 수 있다.이러한 부정적인 동기와 함께 또한 그곳에는 긍정적인 동기도 존재한다. 인간은 그에게 어떠한 자질이 적합하든간에, 명료하고 투명한 우주의 이미지 (Bild der Welt)를 자신 속에 그리는 일을 추구하며, 자신의 경험 세계를 이겨나가기 위하여 이와 같은 경험으로 우주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어 나아가려는 데 정성을 쏟는다 .19)19) A . Einstein, "Prinzipien der Forschung, Rede Zur 60. Geburstag van Max Planck"(1918) in Mein Weltbild, Ullstein Verlag 1977, pp .107 -10, 번역, Ideas and Opinions(New York : Crown, 1954), pp .224-227,
과학에 의해 추구되는 심미적인 아름다움과, 반면에 아인슈타인이 그렇게도 예리하게 느꼈던 세속적인 경험의 사소한 소용돌이 사이의 일치되지 못하는 점은 또다른 불일치에 의해 보다 굳건히 되기 십상이며, 이와 같은 일은 과학과 사회 또는 엄밀히 말해서 자유스런 인간의 창조성과 정치력 사이의 개방적인 마니교도와도 같다. 이와 같은 일은 어떤 고립된 사회집단이나 또는 어떤 연구가 행해지지 않으면 안되는 신전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뒤렌마트가 그의 연극 시나리오의 하나인 "물리학도”20)
20) F. Durrenmatt, The Physicists (New York : Grove, 1964).
에서 마음에 그렸던 것처럼 어떤 요새나, 또는 정신병원에 존재한다. 연극에서는 세 명의 물리학자들이 물리학을 진보시킬 수 있는 방법과 수만을 말하고 있다. 그들이 도달한 결론의 유일한 가능한 방법은 물리학자 중의 하나가 이미 선택한 방법인데 : 그들 모두는 미친 척하기로 결심하고 어떤 광란자의 은신처에 숨어들어가는 방법이다. 연극의 종말에서 훼이트(Fate)가 행동하는 것처럼 이 최후의 은신처는 어떤 환상인 것으로 밝혀진다. 그 은신처의 책임자는, 부모님의 스파이 노릇을 하면서 연구 결과를 훔쳐내어 세계의 권력을 장악한다.
뒤렌마트의 연구는 과학적인 활동의 제 3의 개념에 이르게 한다. 과학은 실재의 복잡성을 숨겨진 단순성으로 간주하면서 진보된다. 물리학자 모비우스가 정신병동에서 숨기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가 성공적으로 풀어낸 중력의 문제, 기초 소립자의 통일장이론, 그리고 종국에는, 보편적 발견의 원리로서 절대 권력의 근본에 관한 사실들이다. 물론, 뒤렌마트는 관점을 단순화시키고 있으며, "과학의 신전" 속에서 추구되는 것은 단지 우주의 "공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상식적인 견해이다. 과학자는 일찍이 마치 금욕적인 사람으로 묘사되어 왔고, 이제는 일종의 마술사가 되었으며, 어떤 독특한 부류로 모든 물리적인 현상의 보편적인 열쇠를 잠재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이들이다. 따라서, 어떤 전지전능의 잠재력을 부여받게 되었다. 이와 같은 점이 바로 이미 우리가 제기한 문재로 우리 자신을 되돌려 놓는다. 과학은 단지 단순한 세계 속에 (특히 고전과학에서는 복잡성을 어떤 원천적인 단순성으로 덮어의운다) 있으며 존재 가능한 보편적인 열쇠를 제시하는 지식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우리시대의 여러 문제 중의 하나는 과학집단의 고립을 정당화하거나 더욱 굳건히 하는 경향의 특질을 극복하는 일이다. 인류는 반드시 과학과 사회 사이의 새로운 대화의 창구를 잊어서는 안된다. 이와 같은 정신적 개념이 바로 이 책을 쓰게 한 동기이다. 이제 인류는 그가 처한 자연적인 환경을 전례 없는 수준으로 변모시켜 가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모스코비치가 거론한 대로 인간은 "새로운 자연"을 창조해 가고 있다 .21) 그러나21) S. Moscovici, Essai sur l'histoire humaine de la nature, Collection Champs(Paris : Flammarion, 1977).
이러한 인위적인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떤 의부적인 관심의 단순한 복종적인 수단도 아니고 하류사회에서 돌이킬 수 없는 암적 종양으로 증식하는 것도 아닌 그와 같은 과학이 필요하다. 2,000 년 전에 莊子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
어떻게 하늘은 쉬임 없이 돌아가고 있는가! 땅은 안정되어 있는가! 해와 딸은 서로가 그들의 자리 를 다두고 있는가! 누가 이를 주관하는가? 누가 이를 질서 있게 유지하는가? 혹은 저절로 움직이며 스스로 멈출 수가 없는가? 누가 아무일도 하지 않고 즐기면서 이를 권장하는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22)** Needham 에 의해 영역된 내용은 子外 의 天運第 章을 이름인데 名은 本文첫 머리의 天 連 ,에서 따온 것으로 유위자연의 도를 말하고 유가의 仁義樂을 배척하고 있으며 자연을 근본으로 삼고 천지의 변화가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 옳음을 말한다. 애써 수고하는 자는 스스로를 지치게 하고 나아가 천하를 지치게한다.
蓮平地Jt處平 月爭於所平執主張是: 足 無 湘 ·是 洛其 有機紙而 已 意名. [連師而不 自』 雨各 菜 執隆施·是執 浮樂而觀是風起北方一西一東有上 妙追吸是 被挑 敗 故巫成招日來 ,昭女 天有六極Ji常, 王 傾之則凶 各之. 治, 德 監 下· 天.政之此 上 (하늘은 과연 움직이고 있는가. 땅은 안정되어 있는가. 해와 달은 자리를 다투고 있는가. 누가 이를 주관하는가. 누가 이를 질서있게 유지하는가. 누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이를 밀고 있는가. 혹은 어떤 기계 의 방아쇠 장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움직이고 있는가. 혹은 저절로 움직여 스 스로는 멈출 수가 없는가. 구름이 비가 되는가, 비가 구름이 되는가. 누가 구름 을 일으키고 비를 내리게 하는가. 누가 아무일도 하지 않고 즐기면서 이를 권장 하고 있는가. 바람은 북쪽에서 일어 서쪽으로 동쪽으로 상공에서 이리저리 분 다. 누가 이것을 내쉬고 들이쉬고 하는 걸까. 누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이 바람을 펄럭이게 하는가. 묻겠는데 대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무슨 까닭일 까 ? 무함소가 대답했다. 자, 내가 자네에게 말해줌세. 하늘에는 여섯 가지 벌 과 다섯 가지 화가 있지. 제왕도 이에 따르면 잘 다스려지고 이에 거역하면 좋 지 않네 . 구주낙서의 규범을 실현하여 정치가 잘 이루어지고 도덕이 잘 갖추어 지면 이 땅에 군림하여 온 천하가 그를 추대하게 되지. 이런 사람을 최고의 제 왕이라고 한다네).22) Ronan에 의해서 앞에서 인용된 문헌의 p .87.우리들은 새로운 통합, 어떤 새로운 자연주의를 향하고 있다고 믿는다. 아마도 우리는 실험과 정량적인 맥락을 강조하는 서구전통과 자발적이고. 자기 조직적인 견해를 중시하는 중국과 같은 전통을 언젠가는 서로 연합시킬 수 있게 되리라. 이와 같은 서설의 시작을 향하여 우리는 모노의 글을 이용하였다. 그의 결론은 이러하다 ; "태고의 동맹은 파괴되었다. 인류는 마침내 인간이 단지 우연에 의해서 출현되어 나온 이 우주의 냉담한 광활함 속에 고독한 혼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3) 아마도 모노가 옳았다. 태고의 결연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우리의 역할은 과거만을 한탄하는 것은 아니다. 역할은 과학의 엄청난 다양성 속에서 어떤 유일한 것으로 되는 실마리를 발견하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과학의 각각 위대한 시기는 자연에 대한 특정 모델을 만들게 되었다. 고전과학에서 자연은 시계와 같았다. I9 세기 과학, 즉 산업혁명의 시기에서 자연은 마모되며 돌아가는 기계였다. 이제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 상징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마음속에 기리는 것은 인디언이나 또는 콜롬비아 시대 이전의 예술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조각을 어떤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조각의 가장 아름다운 것 중 일부는, 아마 춤추는 시바나 구에레로의 축소 신전일 수 있는, 정적과 움직임, 잡혀 있는 시간과 지나가는 시간 사이의 연계성을 추구하려 하였음이 명백하다. 이 시대의 이와 같은 대립은 동시대의 유일성을 제시해 줄 것으로 믿어진다.
23) Monod, 앞에서 인용한 문헌 5의 p.180.
제 I 부
일반개념의 그릇됨제 1 장
추론의 승리새로운 모세자연과 자연의 법칙들은 어두운 밤 속에 숨어 있도다.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뉴톤이 있으라! 그리고 모든 것이 밝아지리라.—알렉산더 포우프, 1727년에 사망한 이삭 뉴톤의 묘비명에 부쳐서포우프에 의해 씌어진 극적인 어조에 이상한 것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I8세기를 맞게 되었던 영국에서, 뉴톤은 "법전"을 제시해 준 "새로운 모세"였다. 시인, 건축가, 조각가 들이 그의 추모비 작업에 참여하였다. 나라 전체가 이 유례없는 사건을 기념하기 위하여 운집하게 되었다. 이 사건은 자연과 대화하고 자연에 복종하는 언어를 발견한 이를 위한 것임은 두말할 여지가 없었다.자연은 제압당하고, 그의 눈부신 꿰뚫음에 복종되니, 기꺼이 그에게 모든 비밀스런 방법들을 보여주었다 ; "수학적 통찰에 자연은 방어할 힘을 잃고는, 그리고 실험적 결과들에 무릎을 끓었다 .”1)1 ) J. T. Desaguliers, The Newtonian System of the World, The Best Model of Government : an Allegorical Poem 1728, H. N. Fairchild,
ReligiollS Trends in English Poetry, Vol. l (New York : Columbia University Press, 1939), p.357.
윤리학과 정치학은 토론의 "근거"를 이루는 자료로서 뉴톤의 에피소드를 끌어내곤 하였다. 따라서 데사굴리에는 새로운 자연적인 질서의 의미를 정치적인 교훈으로 바꾸어 놓았다. 입헌군주 정치는 통치의 가장 합리적인 체계의 하나이며, 태양과도 같이, 임금은 그의 권력을 이에 따라 제약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모든 예식에 참석하여 기도하는 성직자들처럼, 여섯 세계는(혹성들) 신비로운 춤사위 속에 그들의 왕관 주위을 선회한다. 자연은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 경로로부터 여섯 세계가 정연히 운행토록 하였으며, 그리고 만유 인력에 의해 그들의 궤도를 따르게 하였다. 그의 위력은 법칙에 의해 제한되었으며, 여섯 우주를 아직도 자유롭게 놓아두고, 파괴하지 않고, 그들의 자유를 관장한다 .2)2) 앞서 인용한 문헌 I 의 P. 358.
비록 그 자신은 과학이 지녀야 할 윤리 영역을 잠식시키지는 않았으나, 뉴톤은 『프린키피아』에서 제안한 법칙들의 보편적 자연에 관한 한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자연이란 "스스로 조화되고 일치된다”고 그의 『광학(Opticks)』편의 유명한 물음 31에서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강렬하고 함축적인 언급은 어떤 광활한 이론들인 연소, 발효, 열, 옹결, 자장 …… 등을 묵시적으로 내포하고 있으며 ……우주 속에 어떤 형태의 자연적인 과정이든 이들의 활성적인 힘-인력과 반발작용-에 의해 모든 천체나 자유롭게 낙하하는 물체의 운동을 지배하는 근원이 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미 뉴톤은 사망하기 전에 국가적인 영웅이었으며, 사후 거의 한 세기 후까지 그는, 주로 라플라스에 의해 발휘된 강력한 영향력을 통하여, 유럽 전역의 과학혁명의 상징이 되게 되었다. 천문학자들은 하늘을 면밀히 조사하기 시작했고 수학적인 개념으로 천체를 규정하기 시작했다.뉴톤 체계는 당시의 모든 장애요인을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있었다. 더욱이, 뉴톤 개념은 궤도운동의 눈에 띄는 오차를 고려할 수 있는 수학적인 방법이나, 미지의 혹성이 우주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연역해내기 위해 도입될 수 있는 수학적 개념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혹성이나 해왕성의 존재에 대한 예견은 뉴톤 시각에 것들어 있던 예언능력의 화신이 되었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뉴톤의 이름은 어떤 이론적 본보기로 예상되는 모든 것을 대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서서히 그의 방법에 대한 상반되는 해석이 일기 시작하였다. 몇몇 사람들은 그의 방법이 정량적인 실험에 대한 수식화 표현의 청사진으로서 제시원 수 있음을 알았다. 화학분야에서는 라보아지에 이론 속의 뉴톤 체계를 발견하였으며 저울의 체계적인 사용의 선구자가 되게 하였다. 이와 같은 선구적인 저울의 발전은 정량화학의 개념을 수립하는 데 결정적인 단계가 되었고 물질보존을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처럼 보여줄 수 있었다. 또다른 사람들에 의하면, 뉴톤 전략은 어떤 핵심적이고 특정한 사실을 고립시켜 버리고 주어진 현상체계에 대한 모든 심도 있는 사실을 연역해내기 위한 기본으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이와같이 지각 있는 뉴톤의 재능은 그의 실용주의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는 중력을 설명하려고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 이를 주어진 사실로서 받아들인다. 유사하게, 각각의 분야는 해당분야의 출발점으로서 핵심적이나 규명되고 있지 않는 어떤 사실을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내과의사들은 뉴톤의 덕택으로 그들이 활력론자의 생명에 관한 관념을 재고해 볼 수 있도록 공인받은 것처럼 느끼면서 아주 독특한 "생명력”에 관해서 말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방법의 활용은 아마도 생명현상의 개념을 어떤 기대에 찬 체계적인 일관성으로 묘사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와 같은 일은 특정한 화학적 상관력으로서 정의하는 친화력 (affinity)이 담당하도록 요구되는 역할과 동일하다.*희랍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로 아리아드네 (Ariadne)는 Minos와 Phasiphae의 딸로서 미로 (Labyrinth)로부터 Theseus가 탈출할 때 그에게 실타레를 준 여인.
일부 전정한 뉴톤주의의 학자들은 이와 같은 힘의 증식 능력을 예외로 간주하고 중력과 같이 설득력 있는 보편성을 거듭 주장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노력은 이미 늦어 버렸다. 뉴톤이란 용어는 오늘날에 있어서 고려하
는 체계의 법칙들, 평형상태, 또는 한편으로는 자연적인 질서와, 다른 한편으로는 도덕적,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질서를 포용하는 조화의 견지에서 표현될 수 있는 상황을 취급하는 일련의 분야에 응용되고 있다. 로마 시기의 철학자들은 뉴톤 우주 속에서 자연적인 힘들에 의해 활기를 띠는 매혹적인 세계를 발견하게 하였다. 더욱이 “정설적인" 물리학자들은 뉴톤 체계 속에서 수학에 의해 지배되는 기계적인 세계를 창출하게 되었다. 실증주의 철학에 있어 뉴톤 체계는 발전적 절차의 성공을 의미하며 과학에 의해서 밝혀질 수 있는 비결을 의미하게 되었다.3)
3) Gerd Buchdahl은 문헌 The Image of Newton and Locke in the Age of Reason, Newman History and Philosophy of Science Series (London ; Sheed & Ward, 1961)에서 경험적인 것 (Opticks)과 체계적인 것 (Principia)의 두 차원에서의 뉴톤 모델의 문명적 영향에 대한 이와 같은 모호함을 강조함과 아울러 증명해 보였다.
그밖의 부분은 문헌적인 것이다――-종종 뉴톤의 문헌을 의미하는데, 천체의 사회를 지배하는 조화라든가, 화학물질의 “사회적 기능"으로부터 야기되는 선택적 친화력이나 적대감들은 인간 사회체계 속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과정처럼 보인다. 이 시기가 마치 고전과학의 황금기로 보이는 사실은 이상스러울 게 없다.
오늘날 뉴톤 과학은 아직도 어떤 고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뉴톤 과학이 소개하고 있는 기본 개념은 과학이 모든 변천의 과정을 밟아온 이래 살아남은 최후의 취득물임을 나타낸다. 오늘날 고전과학의 황금기는 이미 지나가 버렸음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뉴톤의 합리성에 대한 확신은, 비록 다양한 상반되는 해석들이 제기되고 있으나, 우리의 자연과의 대화에 일련의 가장 적합한 토대를 이루고 있다.이 책의 중심적인 주제는 뉴톤 체계의 승리를 다루는 일과 뉴톤의 생각이 올바르게 오늘날까지 이어져 연장되고 있는 새로운 분야의 연구의 계속적인 개방성을 다루는 일이다. 또한 이 승리로부터 야기되는 의구심과 두쟁을 다루는 일이다. 오늘날 인류는 보다 시원하게 뉴톤 체계의 합리성에 관한 제한점들을 보기 시작한 사실이다. 과학과 자연의 보다 일관성있는 개념이 출현하기 시작하는 듯하다. 이 새로운 개념은 지식과 문명의새로운 결연을 위한 통로의 포장 공사를 하고 있는 상황에 비유할 수 있으리라.
비인간화된 세계…… 신이여, 단일한 비전과 뉴톤의 잠으로부터 우리 를 지켜 주소서 !一월리암 브레이크, I802 년 II 월 22 일 토마스 버츠에게 보낸 서한아마도 과학과 문명의 연관성에 대한 유네스코의 한 세미나의 서론은 뉴톤 과학이 지니는 문명적 위치의 불안정성을 가장 잘 표현해 주고 있을 것이다.한 세기 이상 과학적인 활동의 영역은 이 를 에워싼 주위의 문명적 공간으로 연장되는 정도까지 증가되어 왔으며 오늘에 이르러는 문명 그 자체의 전체로 대치되고 있는 듯하다. 어떤 이는 이와 같은 일은 과학의 급신장 속도와 인류문명에 미치는 일련의 위력에 기인되는 환상으로 믿고 있으며 머지않아 과학 그 자체는 다시 인간의 심부름꾼으로 본연의 위치를 찾아 복귀할 것으로 재천명을 하고 있다. 또다른 이들은 최근 과학의 개가는, 더군다나 유일하게 과학적인 장치를 통하여 전달되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이와 같은 자격이 있다고 믿고 있음으로 해서 문명 전체를 지배하게 되는 위치를 마침내 얻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또다른 이들은 인류와 과학의 위험성은 만약 과학이 본연의 진로를 빗나갈 때 인위적으로 조작될 수 있는 위험성에 소름이 끼치고, 지척간에 문명적 재앙의 유령과 같은 운명을 감지하는 전율을 느낀다.4)4) La Science et la diversite des cultures (Paris : UNESCO, PUF, 1974), PP.15-16.
이와 같은 언급에서 보면, 과학은 문명이란 신체의 암으로 보이며, 이
의 확산이 문명적 생활 전체를 파괴하려고 위협하고 있는 듯하다. 문제는 인류가 과학을 지배하고 과학의 발전을 통제할 수 있는지, 또는 인류가 이의 노예가 되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 . 백오십 년 전부터, 과학은 서구 문명의 어떤 영감의 근원으로부터 위협적인 것으로 그 위치가 격하되었다 . 과학은 인류의 물질적인 존재를 위협하고 있을 뿐 아니라, 보다 미묘하게 우리의 문명적인 삶에 깊숙이 뿌리내린 전통과 경험을 파괴하려고 위협하고 있다. 이는 단지 몇가지 지탄을 받아온 과학적인 개가의 기술적인 오류가 아니며 "과학의 정신" 그 자체이다.
그 비난이 어떤 과학적 문명에서 스며나온 전체적인 회의주의이든지, 또는 과학적인 이론을 통하여 도달한 특정한 결론이든간에, 오늘날 과학은 우리의 세계를 말살해 가고 있는 것으로 자주 천명되고 있다. 기쁨과 환희의 근원이 되어 온 수세대가 이제는 닿는 대로 시들어 간다. 과학에 의해 손에 닿는 모든 곳이 잠식되어 가는 것이다.아주 이상스럽게도 과학의 진보에 의해 초래한 문명적인 환멸의 관념은 과학을 비판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과학을 옹호하고 융성케 하였던 이들 모두가 갖게 된 관념이다. 따라서 역사가 질레스피는 그의 저서 "객관적 실재의 가장자리 (The Edge of Objectivity)”에서 과학을 비판하는 이들과 또한 끊임없이 "객관적 실재의 절단되는 언저리"를 무디게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모두에 대한 동정심을 표현하고 있다.진정, 자연에 대한 주관적 접근 방법의 부활은 감상적인 테마를 만들어낼 뿐이다. 이 잔해의 흔적은 자연을 사회화하거나 윤리화하는 리센코주의*나 스타이너 강록 (anthroposophy)과 같은 낯선 모퉁이에 단지 그와 같은 부활이 소생하고 있을 때까지, 곳곳에 산재하여 있었다. 그와 같은 잔존물은 서구인의 가장 특징적이며 성공적인 운동의 결과로부터 탈피하려는 부단한 노력의 유물이며, 또한 반드시 정복되어야 할 숙명적인 일이다. 어떤 필연적인 믿음 앞에서처럼, 낭* Lysenkoism ; 1898년 러시아에서 충생한 생물학자 및 농경학자였던 T. D Lysenko의 유전 이론은 염색소나 유전자에 근거를 두는 것이 아니었다.
만적인 자연철학은 절망으로부터 영웅주의에 이르는 미묘한 기분을 야기시킨다. 추한 사람 앞에는 감상적이고 지적인 사람에게는 저속한 적대감이다. 고상한 사람에게 그것은 디드로의 자연주의적이며 윤리화된 과학을 괴에테의 의인화된 자연을, 워즈워어드의 시를, 알프레드 화이트헤드의 철학을, 또는 과학 속에서 자연에 대한 인류의 질적이고 심미적인 음미를 할 수 있는 여지를 발견케 하는 힘을 고취시킨다. 이는 식물에 꽃이 피는 이유와 석양이 지는 이유를 밝히는 기상학을 있게 한 사람들의 과학이다.5)
5) C. G. Gillispie, The Edge of Objectivity (Princeton, N. J : Princeton University Press : 1970), pp_ 199-200.
그러므로 과학은 비극적이며 형이상학적인 선택에 이르게 된다. 인류는자연 속에서 인류의 가치에 대한 확신을 추구하고 재확인하는 비이성적인 유혹이나, 근본적인 상호 관계를 지시하는 징표나, 또는 침묵의 우주 속에 그를 고립시키는 합리성에 대한 사실 사이의 무엇인가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
또다른 중심사상-지배의 메아리가 이들의 미몽과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다. 동시에 어떤 그릇된 시각으로 보는 세계는 통제와 조직을 회피 할 수 없는 세계이다. 어느 과학이든 우주를 마치 우주가 지니는 다양하고 풍부한 양상들을 보편적인 법칙의 단조로운 응용으로 단순화할 수 있는 보편적, 이론적인 방안에 의해 지배되는 것으로 보아 과학을 마치 지배의 수단으로 여겨 왔다. 그리고, 우주의 나그네인 인류는 그 자신을 마치 우주의 주인으로 고정시키려 하였다.이와 같은 망상적인 시각은 최근 수십년간 다양한 형태를 취하여 왔다. 이와 같은 체계적인 반과학의 형태를 논의하는 일은 이 책이 의도하는 바가 아니다. 제 3장에서 필자들은 뉴톤 이성주의의 놀라운 승리에 대한 서구 사상의 심도 있는 반응을 다루려 한다. 여기서는 단지, 오늘날에 있어서 과학과 "자연주의" 사이에는 근원적인 반목 감정이 존재한다는 널리 퍼져 있는 잘못된 믿음과 이와 결합되어 있는 자연에 대한 대중적인 태도가 변화하고 있음을 지적해 둔다. 적어도 최근 들어 일기 시작하는 반과학적 비판의 몇 가지 양상을 보기 위하여 다음 세 가지의 예증을 들어 보자. 먼저, 하이데거인데 그의 철학은 동시대 사상으로서 깊은 매력을 지니고 있다. 다음에는 코슬러가 주장한 비판주의를 언급하고 마지막으로 우리 시대 최고의 과학사가 코이레의 사상을 예로 들어 보자.
마틴 하이데거는 근원적으로 자연에 대한 지배라는 영원한 목표에 연루되는 과학적인 노력의 핵심 그 자체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그리하여 하이데거는 과학적 합리주의란, 고대 그리스시대 이래로 묵시적으로 존재해 왔던 그 무엇――즉 모든 합리적인 토론과 진취적 정신 속에서 작동하고 있던 지배에의 의지와 모든 능동적으로 전해질 수 있는 지식 속에 잠재해 있는 폭력一一-을 최종적으로 성취해낸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이데거는 그가 칭하는 기술적인 과학적 "틀 "6)이 우주와 인간의 일반적 관계를 제시하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이데거는 어떤 특정한 기술이 과학의 과정이나 수학에 대한 자세한 분석을 제시하지는 않는다고 믿었다. 그가 도전하였던 것은 테크놀로지의 본질이며, 그가 모색하고자 했던 것은 모든 개개의 사물을 고려하는 일이다. 각개의 이론은 서구의 역사를 이룩하는 마스터 플랜을 이행하는 일부분이다. 우리가 소위 칭하는 어떤 과학적 ”이론"은 하이데거에 의하면, 사물에 대한 임의의 물음을 제기하고 이에 따라 사물을 노예화하는 수단을 의미한다. 기술자와 마찬가지로 과학은 지식의 갈증을 느끼는 것처럼 변장된 권력을 지배하려는 의지를 가진 이들의 손 안에서 놀아나는 장난감에 불과하다 ; 그의 사물에 대한 접근 그 자체는 그들에게 치밀한 폭력으로 전락되기 마련이다:6) M. Heidegger, The Question Concerning Technology (New York : Harper & Row, 1977), p .20.
현대 물리학은 자연에 대해 제기된 의문을 풀어가는 데 실험적 도구들을 사용함으로 해서 실험 물리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가 사실이다. 물리학은, 이미 순수 이론과 같이, 인간이 자연에 대하여 예측할 수 있는 이론에 맞는 개념으로 자연 현상을 두드려 맞추려 하기 때문에, 물리학은 자연이 과학에 의해서 예견된 개념을 따
를는지 또는 어떻게 일치하는지를 묻기 위한 유일한 목적에 알맞도록 실험을 수행한다.7)
7) 인용문헌 6의 p .21.
유사하게, 하이데거는 예를 들면 산업 공해가 라인강의 모든 야생 동물의 생활을 파괴해 버린 사실에 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강이 인류의 공유물이 되어 버린 사실이었다.
수력 발전소는 라인강의 흐르는 뭉 속에 설치되어 있다. 수력 발전소는 라인강이 수압을 제공하고, 이 수압은 터어빈을 돌리도록 만든다…… 그 수력 발전소는 수백년 동안 강둑과 강둑을 연결하는 오래된 교량처럼 라인강에 설치되어 있지는 않다. 오히려 강이 발전소 속으로 댐을 이루고 있다. 물의 공급원으로서의 강은 이제 발전소의 핵심 밖으로 밀려났다 .8)8) 인용문헌 6의 p. 16.
라인강의 오래된 다리는 견고하게 시험된 능력과 힘들고 정교한 관찰의 증명으로서가 아니라 강을 “사용”하지 않는 것에서 그 가치가 주어진다.
하이데거의 비판은 우리가 서론에서 인용한 것에 대한 운동의 몇 가지 주제의 반향과 위협으로서 능동적이고 전해질 수 있는 이상 그 자체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과학과 지배하려는 의지 사이가 조화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은 인류의 오늘날 상황에 대해 완연히 다른 평가를 하도록 하고 만다. 예를 들면 "황금기의 도래 "9)라는 연상적 제목 아래에서 스텐트는 과학은 이제 그 한계에 다다랐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수익 체감의 지점에 근접되었으며 그곳에서 사물을 지배하기 위해서 사물 앞에 제기하는 물음은 점점 더 복잡다단해지면서 동시에 흥미가 없어진다. 이는 진보의 종말을 의미하지만, 또한 인류가 광란적인 노력을 그치고, 자연에 대한 오랜 투쟁에 종말을 고하고 정적이며 조용한 평온을 수용할 수9) Gunter Stent, "The Coming of the Golden Age," Paradoxes of Progress (San Francisco : Freeman & Company, 1978).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물에 대한 과학적 지식과 그 대상을 지배하려는 가능성 사이의 상대적인 분해를 피력하고 싶으며 이는 과학의 종말을 의미하기는커녕 일련의 새로운 관망과 문제 대상에 대한 신호에 해당된다고 본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는 이제 바로 시작에 불과하다. 그곳에는 아직도 잠재적으로는 불충분한, 소위 신비스러운 과학에 대한 매력으로 느끼는 또다른 과학의 관념이 있다. 이는 보동의 사람들이 단번에 도저히 근접할 수 없는 사유의 경로에 의하여 시간이나 공간, 우연성, 정산, 또는 물체와 같은 원천적 개념의 의미에 도전하는 결과를 낳게 하는 원류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신비과학”은 전통적 개념의 틀을 완전히 타파할 수 있는 것으로 상상되는 결과물이며, 이 신비과학은 상대성과 양자역학의 잇다른 새로운 신비의 파헤침에 의해 실제로 독려되어 왔다. 과거를 거슬러볼 때 아인슈타인의 중력을 공간곡면으로 설명하는 일이나 디락의 反입자 (antiparticle)이론 등과 같은 깊은 지극의 상상력을 동원한 단계들이 당시까지 굳게 믿어 왔고 잘 확립되었던 개념들을 뒤흔들어 놓았던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과학은 무엇이든지 창출할 수 있으리란 상상력과 일종의 현실적 실재론 사이에는 대단히 미묘한 균형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오늘날 그와 같은 균형은 그것이 언론미디어에서든 과학 그 자체에서든 특히 우주론자들 사이에서 새로운 신비주의의 부활 쪽으로 강력히 변화하고 있다 .10) 특정한 물리학자나 과학을 신봉하는 이들은 초심리학과 양자물리 사이에 신비로운 연관성이 존재한다는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코슬러의 말을 인용하여 보자.
1O) 예를 들면 P. Davies, Other Worlds(Toronto : J. M . Dent & Sons, 198o)을 볼 것.
우리들은 물리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물질은 죽었으며, 우연성도 죽었으며, 결정론도 죽었다고 말하는 합창의 소리를 들어왔다. 만약 이 점이 사실이라면, 그들을 명복을 비는 전자 음악의 미사곡과 함께 점잖게 장례를 치르어 주자. 이제는 21세기의 기계론적 과학 이후의 시대이며 그로부터 무언가 교훈을 얻어내고 인류의 철학적 예견에 쓰여진 19세기 물질주의의 죄수복을 훌훌
벗어버릴 때이다. 역설적으로, 그와 같은 철학적 관망은 현대과학 그 자체와 보조를 맞추어 왔으며 한 세기가 지연되기는커녕, 이미 오래 전에 그와 같은 죄수복으로부터 해방되어 버렸다…… 그러나 일단 그와 같은 것을 인식하게 되면, 우리는 물리과학의 편중된 중요성을 강조하는 주변의 현상에 대해 보다 수용적이 될 수 있으면, 대형 건물이 갈라져 버리는 재앙을 느낄 수도 있고 ; 집합적인 사건에 더욱 관심을 쏟거나, 우리의 정상적 개념에 초정상적 현상까지를 포함하게 되고, "눈먼 세상”에서 살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11)
11) A. Koestler, The Roots of Coincidence(London : Hutchinson, 1972), PP. 138-139.
우리는 미리 판단하거나 비난하고 싶지 않다. 오늘날 듣고 있는 새로운 지식의 씨앗의 일부에는 무엇인가 분명히 환상적인 전제조건들이 내재해 있을지 모른다. 물론, 상상할 수조차 없는 것 속으로 뛰어드는 일은 우리 우주 속에 실재하는 복잡다단함을 너무도 단순히 외면해 버리는 것이다. 개념적인 맹목성은 문제성에 대한 주된 이유가 아니며 우리 사회가 풀어 내지 못한 모순들이 아니므로 일조일석에 "눈먼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과학에 대한 비판이나 왜곡에 대해 의견을 같이하지 않는다 하여 모든 비판을 의면하자는 의미를 뜻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코이레의 위치를 보자. 그는 현대과학의 발전을 이해하게 하는 데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뉴톤 통합의 의미와 함축성에 대한 연구에서 코이레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아직도 뉴톤에 대해서-또는 뉴톤 혼자만은 아니라고 말하는 편이 좋을 ___ 무엇인가 남아 있다고 보며 이에 대하여는 일반적으로 현대과학이 아직도 책임을 져야 할 일들이 있다. 뉴톤주의는 우리의 우주를 두 개로 쪼개고 있다. 나는 현대과학이 하늘과 땅을 갈라 놓은 장벽을 허물어 버리고, 우주를 연합시키고 유일화시켰다고 말하여 왔다. 그리고 이는 사실이다. 그러나, 또한 지적하였듯이, 현대과학의 이같은 접근은 인간이 살면서 사랑하고 죽어가는 질적인 인식의 센스가 있는 우리의 세계와, 또다른 세계-양적이며, 기하학적인 세계, 즉 모든 일체가 실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아무런 장소도 부여해 주지 않는 그런 세계를 바꾸어 놓음으로써 가능하였다.
따라서 과학의 세계 ___ 실제 세계-는 낯설게 되고 과학은 이 우주를 "주관적인” 것으로 간주하면서까지 교묘한 수단으로도 설명해 낼 수 없는 생명의 세계로부터 완전히 떨어져나갔다.이러한 세계는 일상의 전리이며-오히려 점점 더――-관습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아직도 이론적으로는 그와 같은 세계는 어떤 끝없이 깊은 구령에 의해 분리되어 있다.두 세계 : 이는 두 진실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연 진실이 아니다. 이는 “우주의 수수께끼를 풀어갈“ 현대 정신의 비극이지만, 수수께끼 그 자체의 또다른 수수께끼를 일으킬 뿐이다 .12)12) A . Ko yre, Newtonian Studies (Chicago :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8), pp. 23-24.
그러나, 코이레의 결론은 파스칼이나 모노가 나타내었던 것과 똑같은 주제였음을 알 수 있다-이는 사이가 이간되는 것과 같은 비극적 느낌이다. 코이레의 비판은 과학적 사고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뉴톤 개념에 근거를 둔 고전과학이다. 더이상 인간을 미몽에서 깨어난 우주 속의 나그네로 전락시키는 과학과 반과학적, 비이성적 항변 사이의 선택의 딜레마를 가라앉힐 필요는 없다. 코이레의 비판은 어떤 '‘죄수복'’과 같은 이성 능력의 한계를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인류가 살고 있는 우주의 원천적 양상을 다루는 데 있어서 고전과학의 능력 부족을 탓하는 점이다.
이 책에서 우리의 입장은 코이레에 의해서 정의되는 과학은 더이상 우리의 과학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의 새롭고 상상할 수도 없는 대상, 이성보다는 마력에 가까운 것에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은 아니며, 과학자로서 인간에게 가장 익숙해 있는 우주 ; 즉 살아 숨쉬는 모든 창조물과 사회 발전적인 자연의 세계를 형성하는 복잡한 과정에 의한 방법론적 가능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오늘날 인류는 코이레가칭하는 양적 세계”로부터 질적 세계로의 변화를 초월하여 어떤 "됨"의 과정을 엿보기 시작했다. 이 책의 I, 2부에서 주된 주제는 바로 이 점이다. 과학의 역사에서 한 순간을 장식하는 새로운 개념의 변이는 실로 흥분을 감출 수 없는 것으로 믿어진다. 아마도 이 시기는 그리스시대의 원자론자들이나 또는 르네상스시기가 자연에 대해 새로운 견해를 잉태시켰던 때와 같다고 말해도 과장됨이 없다. 그렇지만 먼저 분명히 인류역사에 위대한 순간 중의 하나였던 뉴톤 과학을 살펴보자.
뉴톤의 통합뉴톤과 동시대 사람들이 우주의 신비와 자연의 진화가 마침내 노출되었다고 확신하였던 열광의 이면에는 무엇이 도사려 있었는가? 아마도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내재해 왔던 여러가지 생각이 뉴돈의 통합 속에 수령되었던 점이다. 무엇보다도 과학은 인간의 환경에 작용하는 임의의 방법이다. 뉴톤 과학은 사실상 능동적인 과학이고, 이 과학은 자연이나 우주에 대해 체계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자연 변화의 과정을 예견하거나 수정하고, 또는 자연의 물질자원과 힘을 이용할 수 있는 고안장치를 생각하게 하였다.이런 측면에서, 현대과학은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를 조직화하고 이용해 가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의 연속이다. 그러나 이 노력의 역사적 초기 상황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매우 적다. 그러나, 신석기 혁명이 발생하기 위하여 필요하였던 지식과 기술 수준을 평가하거나 인류가 서서히 자연과 사회환경을 조직화하고 자연을 이용하는 고도의 사회를 구성하기 위하여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게 되었던 시기로 거슬러울라감으로써 역사적 초기상황을 추측할 수 있다고 본다.신석기시대의 테크닉들-예를 들면 동식물의 종류를 선택하거나 사육하는 일, 옷감, 도자기, 대장간 일 등-이 아직도 사용되고 있거나 아주 최근까지 이용되고 있다. 우리의 사회 조직은 오랜 동안 신석기 국가들의 시민 계층의 문화나 구조화된 사회 집단을 조직하는 데 필요하였던 문학, 기하학, 산술의 동일한 데크닉에 근거를 두어 왔다 . 그러므로, 신석기시대의 기술과 과학, 그리고 산업혁명시대 사이에 존재하였던 연속성에 대하여 우리는 이를 감사하게 여겨야만 한다 .13)
13) MRace and History" (Slntclural Anthropology II , New York : Basic Books, 1976)에서, Claude Levi-Strauss는 신석기 및 산업혁명에 이르게 하였던 조건등에 대해 논의하였다. 그가 도입한 모델은, 연쇄반응과 촉매 (분계와 증폭현상에 의해 특징지운 수 있는 속도식을 갖는 입의공정)과정을 수반하고 있으며, 이 저서의 제 6장은 물론이려니와 인류학에서 "구조적 접근”의 특정 주기에 대하여 그 안정성과 요동 문재 사이의 찬화력을 실증하기 위하여 사용되고 있다.
현대과학은 따라서 이와 같은 옛날의 노력을 연장하여 이를 증폭하고 이의 리듬을 끊임없이 가속화시키고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일이 어느 면에서 뉴톤의 통합에 의해 주어진 과학의 중요성을 흐트러뜨리지는 않는다.
어떤 주어진 사회에서 사용되어 온 다양한 테크닉에 더하여 우리는 자연 속에서 인간의 위치를 이해하기 위해 추구하는 일련의 믿음이나 신화를 발견하고 있다. 신화와 우주론과 같이, 과학의 노력은 자연 세계와, 이를 조직화하는 방법과 그 속에서 인간의 위치를 이해하려는 것이다.우리의 견해로는 소크라데스 이전의 초기 생각들은 너무도 온당치 않게 헤시오드의 창조 신화――-이에 의하면, 하늘과 땅이 초기에 분국화된 것은 정의의 신의 지배 아래 마침내 안정에 이를 때까지 에로스에 의해 야기된 욕망이며 분화된 우주의 권능과 불협화음과 싸움, 증오와 복수를 형성하기 위하여 신들의 처음 세대가 탄생되었다-로부터 적용된 것처럼 보인다. 문제가 되는 것은 몇 세대를 동해 소크라데스 이전의 철학이 모으고, 토론하고, 비판하여 왔던 개념의 일부로서 오늘에 있어서도 아직도 있음에서 됨이나, 또는 분화 이전의 어떤 가정적 환경으로부터 임의의 질서가 나타나는 점을 이해하기 위해 사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개념이다.어떤 균일한 존재의 불안정성은 대체 어디서 오는가? 왜 그와 같은 존재가 자발적으로 분화하는가? 대체, 사물은 왜 거기 존재하는가? 그들은 임의의 불공평에 대한 연약하고 숙명적인 결과나, 서로 상충하는 자연의 힘들 사이에 존재하는 정적인 평행력 내에서 불평형이란 말인가? 또는 사물을 창조하고 유도하는 힘은 자율적으로 존재하며 임의의 사물이 출생하고, 성장하며 소되되어 소산되고 마는 사랑과 증오의 상호경쟁력인가? 이는 어떤 환상의 변화인가 또는 환상 그 자체인가? 그와는 정반대로, 모든 사물을 구성하는 극단 사이의 끊임없는 투쟁인가? 정상적인 변화는 진공 속에서 움직임으로 변모될 수 있으며` 이때 원자들은 단지 그들의 형태만 다른가, 또는 원자 자체가 질적으로 서로 다른 기원의 무리로 이루어져 있음으로 해서 서로 다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주의 조화는 수학적인가? 수의 개념은 자연의 열쇠인가?
피타고라스 학파에 의해 발견된 소리의 수치적인 규칙성은 아직도 반대 이론 중의 한 부분으로 남아 있다. 그리스 사람들에 의해 파헤쳐진 수학적 개요는 유럽인의 역사 속에 관념적 사고의 제일의 본체를 이루고 있다一이는, 모든 사유하는 인류에게 계승될 수 있고 다시 재현될 수 있는 사고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최초로 어떤 믿음, 기대 또는 열정에 의해 영향받지 않는, 심도 있는 확신이 것들어 있는 연역적 지식의 형태를 이룩하였다. 그리스의 사고와 현대과학의 가장 중요한 공통적 양상은, 종교적이거나 신비적 형태의 물음과는 대조적으로 바판적인 토론과 입증을 강조하는 점이다 .14)14) "각 사회 속에서, 신화의 질서는 대화를 배제한다 : 집단의 신화는 검토되지 않으며, 자신들이 반복된다고 생각될 때 변모된다.” C. Levi-Strauss, L' Homme Nu(Paris : Pion, 1971), p_585. 따라서 신화적 강론은 비판적 (과학 그리고 철학적) 대화와 구분되어야 하는데, 이는 곧, 신화적 강론의 재현의 실재적 조전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어떤 이성적인 방법으로 생각하려는 본질적 무능함 때문이다. 비판적 대화의 실행은 이의 극적인 진화적 가속의 진실성을 주창하는 우주론적 담론에 주어진다.
이오니아 시와 마그나 그레시아의 식민지에서 싹터온 이와 같은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에 대해서는 실로 아는 바가 거의 없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그 옛 도시들에서 꽃피워 왔던 이론과 우주론적 가설, 그리고 장인과 기술적 활약의 발전 사이에 존재하였으리라 기대되는 관계들을 다만 짐작할 수밖에 없다.
전통은 종교와 사회적 반응의 적대감의 소치로서 철학자들이 무신론의 죄목으로 유배되거나 처형된 사실을 말해 줄 뿐이다. 이와 같은 초기의 "질서에의 회상”은 옛날 인류 시조의 사회적 요인의 중요성, 무엇보다도 개념적인 혁신과 성장에 대한 상징의 구실을 하였으리라 믿어진다. 현대 과학의 성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의 토대를 이루었던 사람들이 당시의 사회적인 기대와 확신에 보다 일치하는 지식의 형태를 옹호함으로써 대체적으로 부당한 박해를 받지 않았고 그들의 이론적 접근이 억압되지 않았던 이유를 설명해야만 한다.
풀라톤으로부터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의 상황을 상상한다면, 한계는 지워져 있었고, 사고는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수로를 트고 있었다. 특히, 이론적인 생각과 기술적인 활동 사이에는 엄연한 구분이 확립되어 있었다. 우리가 지금껏 사용하는 단어들一―- 기계, 역학, 또는 엔지니어――-은 당시에도 유사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와 같은 말들은 이성적인 사고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교묘하고 편리한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와 같은 개념은 보다 더 자연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자연의 과정을 배우려는 것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자연을 기만하고 자연에 대해 "음모"를 꾸미는 것이었다 __ -이는 사물의 "자연적 질서"를 벗어난 의부의 경이로움과 창조의 영향을 밝히는 일이다. 자연을 실질적으로 조작하는 분야와 자연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분야는 따라서 엄밀하게 분리되어 버렸다. 아르키메데스의 지위는 단순한 엔지니어의 위치였다 : 평형에 있는 기계에 대한 그의 수학적 분석은 적어도 전통 물리학의 체계 내에서는 자연 우주에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반대로, 뉴톤 통합은 조작과 이론적 이해간의 체계적 결합으로 표현되었다.뉴톤 혁명의 표현에는 세번째의 중요한 요소가 있다. 아마도 우리 모두가 경험했을 것으로 보이는 별과 천체의 정적 세계와 인간을 둘러싼 덧없이 긴 소용돌이의 세계 사이에는 엄연한 대조가 있다. 엘리아드가 강조한 바와같이, 많은 고대의 문명 속에는 불경스런 세속의 공간과 신성의 공간 사이에 어떤 분리가 존재하였다. 세계를 구분하여 보통의 공간은 우연성과 변질성의 공간이며 신성의 공간은 우연성과 역사와는 독립적인 의미가충만된 공간이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별들의 우주와 지상의 우주간에 확립시켰던 구분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이와 같은 대조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의 정량적 묘사의 가능성을 판단하는 방법을 세우는 데 매우 중요하였다. 천체의 운동은 변하는 게 아니라 영원히 같은 "신성한" 상태이므로 수학적으로 보아 이상적인 것으로 간주할 수 있는 방법에 의해 규정될 수 있었다. 수학적인 정밀성과 엄밀성은 달 아래의 인간 세계에는 적합하지가 않다 . 부정확한 자연의 변화 과정은 단지 대략의 묘사에 의해서만 가능할 뿐이다.
어찌했거나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에서는 변화가 왜 일어나는가보다는 어떻게 일어나는가에 보다 큰 흥미를 가졌으며, 이와 같은 두 양상은 때어낼래야 때어낼 수 없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사고의 주요 근원 중의 하나는 태생학적 성장, 즉 비록 언뜻 보아서는 독립적인 것으로 보이나, 서로 맞물려 있는 사전들이 어떤 총체적 플랜의 일부로 참여하는 고도로 조직화된 과정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태아 (embryo)가 발전되는 것처럼 아리스텔레스 자연의 전체는 어떤 최종의 원인에 따라 구성되었다. 모든 변화의 목적은, 만약 그 변화가 사물의 본질을 계속 보존한다면 지적 본질이 완전히 실현되는 존재가 되기 위함에 있다. 그러므로 이 본질은 생명이 있는 창조물의 경우에, 동시에 그들의 최종적, 공식적, 그리고 효과적인 원인과 동일시되며 자연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현대과학의 탄생",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와 갈릴레오의 학문 사이의 충돌은 두 이성주의간의 충돌이다 .15)15) 이와 같은 일은, 물론 Alexandre Koyre의 주요 테마 중의 하나이다.
갈릴레오의 견해에서 "왜”의 물음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음이 지녔던 것처럼, 적어도 과학자에 대해서는 자연을 말하는 방법으로는 대단히 위험 천만한 것이었다. 따라서, 뉴톤 체계의 대두와 함께 새로운 보편성이 승리하게 되었고 그 당시까지 분리되어 있는 것으로 보였던 세계가 통합되게 되었다.
실험적인 대화
이미 현대과학의 본질적인 요소의 하나를 강조한 바 있다 : 이는 이론과 실제의 결혼이며, 우주를 구체화시키려는 의지와 이를 이해하려는 욕망의 혼합이다. 이 점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경험론자들의 믿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하게 관찰된 사실만을 믿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어느 점에서 는, 기계적 운동의 묘사조차 포괄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이 사실상 경험적 사실에 보다 용이하게 근접될 수 있음이 사실이다. 자연과의 실험적 대화는 현대과학에 의해서 수동적 관찰보다는 오히려 능동적 활약이 수반되어 발견되었다. 선행되야 할 일은 이론적인 묘사에 가능한 밀접하게 일치시키는 방법으로 물리적 실재를 조정하고 "각색“하는 일이다. 연구된 현상은 그 현상이 물리적으로 얻어낼 수 없으나 채대한 개념적 방안에 일치하는 이상적 상황에 거의 접근할 때까지 잘 정리해 두고 고립시켜 야만 한다. 한 예증적 방법으로서, 도르레로 구성된 임의의 대상계에 대한 묘사는, 아르키메데스 시대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고전으로, 이를 묘사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던 사유 방법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간단한 기계를 분석하기 위해서 현대 과학자들까지 연장하여 사용하고 있다. 현대적 설명에서 무시되어 버린, 적절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는 바로 그 배후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이 그 원리를 규명하기 위해서 도입한 개념, 즉 돌을 끌어당길 때 말이 소비하는 노력에 대한 돌의 "저항"과 도르레장치에 견인력을 적용하여 이 저항을 극복하려는 일은 매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갈릴레오에 따를 때, 자연은, 어떤 정보도 주지 않으며, 쓸데없는 짓은 결코 하지 않으며, 재주도 피우지 않는다. 교묘한 방법이나 책략을 사용함으로써 여분의 결실을 얻으리라는 생각은 불합리할 수밖에 없다 .16) 도르레의 유무에 관계없이 말이 해낼 수 있는 능력은 동일하16) 그와 같은 "분합리성”의 정의는 매우 교묘한 장치에 의해 누군가 자연을 속일 수 있도록 허용된다는 오래된 생각에 반대된다. A . Ord Hume, Perpetual Motion : The history of an Obsession (New York : St. Martin's Press, 1977)에서 소개하고 있는 영구기관의 축조를 위하여 20세기까지 엔지니어들에 의해 회생되었던 숱한 노력을 보라.
며 얻어지는 효과도 마땅히 같아야 한다. 이와 같은 사실은 기계적 설명의 출발점이 되며, 그리하여 그것은 어떤 이상화된 세계와 관계된다. 이러한 세계에서 "새로운" 영향 ―돌이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하는-은 2차로 중요한 사실이고 : 돌의 움직이지 않으려는 저항은 마찰과 열의 개념으로 정성적으로 정의된다. 반대로, 정밀하게 정의되는 것은 이상적인 상황인데. 그 상황 속에서는 원인과 말에 의해서 수행된 일과, 돌에 미치는 영향, 돌의 움직임이 동등하게 연결된다. 상관관계가 이상화된 것이다. 이와 같은 이상적인 세계에서, 말은 어느 경우에든 돌을 이동시킬 수 있으며, 도르레 뭉치는 돌에 전달되는 끌어당기는 노력을 바꾸어 가는 방법에 유일한 영향을 마친다. 거리 L 만큼 돌을 움직이는 대신, 거리에 상응하는 도르레의 밧줄이 이동되며, 말은 단지 돌을 임의 거리 L/n 만큼 움직인다 . 여기서 n은 도르레 수에 의존하는 값이다. 모든 종류의 간단한 기계들처럼, 도르레는 운동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운동을 전달하는 수동적 장치를 이룰 뿐이다.
그러므로 실험적 대화는 고도의 특정한 절차와 일치된다. 자연은 마치 법정에서처럼 미리 예견되는 원리의 이름 아래 실험을 통하여 교차로 심문된다. 자연으로부터의 응답은 매우 정밀하게 기록되지만, 그들 응답에 대한 적합성은 실험으로부터 인도되는 매우 이상화된 용어로서 평가된다. 모든 실제의 다른 상황은 정보로서 고려되지 않으며, 안일한 잡담이나 무시할 수 있는 차후의 영향들은 이들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응답의 중요성이나 함축하는 바를 추량하기 위한 표준으로 아직도 사용된다. 하이데거가 과학적인 합리성에 대한 논쟁에서 인용하는 것은 바로 자연에 대한 이와 같은 절대필요한 의문 제기의 방법이다.우리에게 있어 실험적 방법이란 사실상 임의의 예술이다――-이는, 일반적인 규칙이 아니라 특별한 재주에 근본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성공도 결코 확증할 수 없는 일이며 언제나 보잘것 없는 것이나 또는 어리석은 판단으로 남을 운명을 지닌다. 예를 들면 전혀 가망성이 없는 질문이었다는 위험성을 제거시켜 버릴 만한 어떠한 방법론적 원리란 기대할 수 없다. 실험적 방법은 흥미로운 질문을 선택하는 예술로서 채택한 이론적인 언어로 자연이 응답할 수 있는 모든 방법론이 시사하는 이론적 체계의 결과들을 면밀히 분석하는 것이다. 자연 현상에 실재하는 복잡성의 와중에서, 한 이상은 모호한 정의에 의해 이론이 시사하는 바를 가장 잘 구체화해 주는 방법으로 선택된다. 이 현상은 이를 에위싼 주위로부터 추출되고 선험적 이론을 재현 가능하며 의사가 소통될 수 있는 방법으로 시험하는 일이 용인되도록 "각색"된다.
비록 이와 같은 실험적 절차는 그 착수 시기부터 곧바로 비판되었고, 경험론자들에 의해 무시되었으며, 일종의 고문 행위와 같다는 배경 아래 다른 이들에 의해 비난을 받지만, 자연이 고문을 받는 같은 방법으로, 실험적 절차는 과학적 묘사의 이론적 내용을 수정하게 하고, 종국에는 현대 과학에 의해 채택한 새로운 연구방법으로 정의된다.실험적 절차는 순수한 이론적 분석에서조차 어떤 도구가 될 수 있다. 이는 소위 "머리속 실험 (thought experiment)”이 되며 완전히 이론적 원리에 의해 지배되는 실험적 상황을 이미지화함으로써, 주어진 상황에 대하여 이들 원리의 결과를 조사하게 된다. 그와 같은 머리속 실험은 갈릴레오의 업적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왔으며, 현대물리학인, 소위, 상대성과 양자역학의 개념적 격변의 결과에 대한 연구에서조차 그 핵심을 이루고 있다. 그와 같은 머리속 실험의 가장 유명한 것 중의 하나는 아인슈타인의 기차로서, 기차에 탄 어떤 관찰자가 임의의 제방을 따라 발산되는 광선의 전파속도를 측정할 수 있었고, 이는 속도 V로 이동하고 있는 기차에 대한 임의의 기준 체계에서 속도 C로 이동되는 것과 같다. 고전적인 추론에 의하면 기차에 탄 관찰자는 반드시 빛에 원인을 두고 있으며 그와 마찬가지로 같은 방향으로 속도 c_V로 여행하게 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고전적인 결론은 정밀하게 노출될 수 있도록 설계된 모순을 나타낸다. 상대성이론에서, 빛의 속도는 자연의 보편적 상수로서 보인다. 사용한 관성기준계가 무엇이든간에, 빛의 속도는 언제나 같다. 이후 아인슈타인의 기차는 이와 같은 근본적인 변화의 물리적인 결과를 조사하는데서 사라져 버렸다.실험적 방법은 현대과학에 의해 확립된 자연과의 대화에 핵심을 이룬다. 자연은 이 방법에 의해서, 두말할 나위 없이, 단순화되고 때로는 수족이 떨어져 나간다. 이와 같은 방법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대부분의가설을 논박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앗아 버리지는 않는다. 아인슈타인은 종종 의문이 제기된 물음의 대부분에 “아니다”라고 말하며 때로는 "글쎄요” 라고 대답한다고 말하였다. 과학자란 즐거운 것만을 추구하지 않으며, 단지 자연이 듣기를 원하는 것만을 말하도록 강요할 수가 없다. 적어도 종국에는, 그의 가장 열망하는 소망과 기대감을 조명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그는 실제적으로 상당한 위험을 무릅쓰고 더욱 위험한 게임을 하면서 그 를 에워싸고 있는 자연 속에 그의 책략을 구가하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된다 .17) 더욱이 대답이 "예"이든 “아니다”이든간에 의 문은 동일한 이론적인 언어로써 행하여집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언어는, 역시, 과거에 있어 온 자연의 응답과 다른 이론적 언어와의 연관성이 포괄된 복잡한 역사적 과정에 따라 발전된다. 더욱이 새로운 물음은 각시대의 변천하는 관심에 부합되게 된다. 이와같이 됨으로써 과학적인 게임의 특정한 규칙- 특히, 게임에 최대의 구속적인 역할을 하는 자연에 대한 실험적인 추론의 방법 -과 때때로 부지불식간에 과학자가 포함되는 문명적인 연결망 사이의 복잡다단한 관계를 형성케 된다.
17) Popper는 실험적 게임 속에 수반되는 위협성을 통하여 탄생되는 이 흥분을 어떤 규범으로 해석해 놓았다. 그는 The Logic of Scientific Discovery에서 주장하기를 과학적 당위성은 가장 "있을 수 없어 보이는” 가설을 탐색하게 한다고 말하였다-즉, 가장 위험한 것 중의 하나이다. 이 가선에 대해 논박하여 보려는 노력은 물론이려니와 어떤 이론에 대응시키려는 노력을 일컫는다.
실험적 대화는 인류문명의 어떤 번복할 수 없는 습득으로 믿어진다. 그것은 실제적으로 자연이 인간에 의해 탐험될 때 자연을 한 독립적인 존재로 취급하는 확증을 제공해 준다. 실험적 대화는 실험적인 결과에 의하여 전달될 수 있고 재현성이 있는 자연의 토대를 이루게 된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자연은, 한번 그 자신을 표현하기만 하면, 더이상 의견을 달리하지는 않고 있다고 말할 수 있도록 허용된다 : 자연은 결코 속이지 않는다.
과학기원의 신비
인간과 자연과의 대화는 자연의 명료성을 향한 제일보로서 현대과학에 공헌한 이들에 의해서 정확하게 파악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야심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갈릴레오와 그후에 나타난 이들은 과학을 자연에 관한 포괄적인 진실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으로 마음에 품었다. 자연은 실험에 의해서 판독될 수 있는 수학적 언어로서 나타낼 수 있 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실제로 그와 갇은 언어만이 유일하게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와 같은 원천적인 확신에 따라, 세계는 균일한 것으로 보여지고, 국부적인 실험으로 포괄적인 진실을 밝혀낼 수가 있다. 과학에 의해 시도된 가장 간단한 현상은 대체적으로 자연을 이해하는 열쇠로서 해석될 수 있다. 후자의 복잡성은 분명하지만 그 다양성은 갈릴레오의 경우에서처럼, 운동의 수학적 법칙으로 구현되는 보편적 진실의 견지에서 설명될 수 있다.이와 같은 확신은 수세기 동안 살아남아 왔다. 수년 전 영국의 BBC방송에서 행해진 우수한 연설의 한 대목에서, 훼인만 18)은 자연을 거대한 장기게임에 비유했었다. 그 복잡다단함은 명백하나 각각의 움직임은 간단한 규칙에 따른다. 초기의 현대과학은 분명히 포괄적 전실에 이르기 위하여 이와 같은 확신이 필요케 되었다. 그와 같은 확신은 실험적 방법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가치를 더해 주었으며, 그리고 어느 면에서는 이를 고무하게 되었다. 아마도 우주에 대한 혁명적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 세계의 "생물학적" 개념처럼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것으로서, 전통의 굴레를 벗어던지는 데 필요하였고, 실험의 챔피온에게 과거의 이성주의 형태에 맞서서 그들 자신의 것을 고집할 수 있는 확신의 힘과 논쟁의 위력을 갖게 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었다. 아마도 어떤 형이상학적 확신은 장인과 기계 제작자, 기술자의 지식을 자연에 대해 합리적인 탐구를 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으로 변모시키는 데 꼭 필요하였을 것이다. 또한 이런 종류의 "신화적" 확신의 존재가 함축하는 것이 현대과학의 최초의 발전이 사회적18) R . Feynman, The Clzaracler of Physical Law (Cambridge, Mass . : M .I. T. Press, 1967), 제 2장.
인 통념에서 받아들여졌던 점을 설명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이와같이 논쟁의 여지가 많은 문제에 대하여, 필자들은 문제를 정확하게 꼬집어내고자 하는 유일한 목적으로 임의의 아주 일반적인 특징에 대한 몇 마디 언급을 하는 데 그치려 한다-이는, 어떤 과학의 전보가 일부 사람들에게는 이성의 승리로서 느껴지나, 또다른 사람들에 의해서는, 환상으로, 자연이 로보트처럼 어리석다는 고동스런 발견으로 받아들여지는 문제이다. 사회와 경제적인 요인의 근본적인 중요성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수도원의 장인의 기능 발전에서 파괴된 세계의 나머지 지식은, 후에 부산스런 상인도시_실험적 과학이 탄생한-에까지 보존되어 왔고, 이는 바로 장인 지식의 체계화된 형태의 한 부분이 되었다.
더욱이 니담 19)에 의하면 이와 같은 비교 분석은 중세에 접어들면서 사회구조의 결정적 변모의 중요성을 나타내 주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처럼 장인사회나 잠재적인 기술적 발명가들을 양보지 않았지만, 그러나, 장인과 같이, 대개의 지성인들은 정부 관리와는 별개의 것이었다. 그들은 후원자를 찾는 자유기업가요, 발명가들이었으며, 신기한 것을 찾아 가능한 모든 기회를 다 쏟아 탐구하는 이들이었으나, 사회적 질서의 측면에서 볼 때는 가히 위험스런 사람들일 수도 있었다. 반대로, 니담이 지적했던 것처럼, 중국대륙의 과학자들은 국가의 관리들이었으며 관료주의의 규칙을 준수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들은 국가의 핵심적인 부분을 이루게 되었고, 그들의 주요 임무는 법과 질서를 지키는 것이었다. 콤파스와, 인쇄기, 화약 등 그 모든 것은 중세사회의 토대를 침식시키고 유럽을 현대의 기원으로 두사하는 데 공헌을 하였던 것들이나, 중국에서는 이보다 훨씬 앞서서 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회를 불안정하게는 거의 만들지 않았다. 번창하던 유럽의 상인사회는 그 초기시대부터 현대과학의 동적이며 혁신적인 성장을 자극하고 유지하는 데 아주 적합했다는 사실은 사못 대조적으로 보인다.19) J . Needham, MScience and Society in East and West,"The Grand Titration (London : Allen & Unwin, 1969).
그러나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다. 기계를 제작했던 이들은 수학적 개념
一기어의 비율, 다양한 부분의 움직임, 또한 상대적인 움직임에 대한 기하학―을 사용하였던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왜 수학이론의 연장은 기계에만 한정되지 않았는가? 이 질문은 시계와 연관지어 물어 볼 수도 있는데, 중세 장인정신의 개가 중의 하나는 비대한 중세 도시의 생활리듬을 제동할 수 있는 점이었다. 왜 시계가 곧바로 우주질서의 상징이 될 수 있었는가? 이 마지막 질문 속에는 아마도 한 개의 대답의 여러 요소가 깃들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시계는 시계의 외부에 있는 합리성에 의해 지배되는 한 고안장치에 불과하며, 맹목적으로 시계내부의 작동을 계속할 뿐이다. 시계의 세계는 신에 상응하는 시계추가 암시해 주는 어떤 묵계로 운전되는 것처럼 보이며 로보트와 같은 자연을 통치하는 이성적인 주인이 되어 버린다. 현대과학의 원류에서, 어떤 (resonance)”은 神的인 담론과 이론 및 실험적 활동 사이에 이미 이룩되어 버린 것으로 보이며-임의의 공명은 의심할 여지없이 과학자들의 “위대한 기계적 우주”의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에 존재한다는 주장을 증폭하고 공고히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공명이란 용어는 지극히 복잡다단한 문제를 포괄한다. 이는 언급할 의도도 없고, 주장할 어떤 근거도 없으나 종교적 담론은 어떤 경우에든 신적 과학의 탄생을 결정하고, 또는 실험적 활동의 추측으로부터 발전될 수 있는 “우주견해”의 탄생을 결정케 한다. 공명이란 용어를 사용함으로써-이는 두 가지 담론의 상호 증폭이다-조심스레 신적인 담론이나 아니면 "과학적 신화” 중 어느 것이 먼저이고 이로부터 어느 것이 나중의 계기가 되는지를 가정할 필요가 없는 중용의 표현을 선택하였다.
이제 몇몇 철학자들의, 서구 과학의 “기독교적 원류"에 대한 물음은 물론이려니와 히브리와 그리스를 이루어 온 서구 문명의 어떤 "본질적인” 연계로서 실험적 과학에 대한 물음에 대하여 언급하여 보자. 화이트헤드에 있어 이와 같은 연계성은 직감적인 확산에 처해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확신은 현대과학을 이루어낸 이들의 "과학적 소신’’을 고무하는 데 "필요”하였다 :모든 세세하게 발생되는 사건은 완전히 확실한 방법과, 일반적인원리를 예증으로 보임으로써 선례적인 사건과 상관지을 수 있다는 더 이상 논박할 수 없는 믿음을 뜻한다. 이와 같은 믿음이 없다면 과학자들의 믿기 어려운 술한 수고는 희망이 없는 것이 된다. 상상 이전에 생생하게 태세를 취하는 본능적인 믿음은 연구의 원동력이 된다. 어떤 비밀이 있으면, 그 비밀의 베일을 벗겨낼 수 있다. 어떻게 이와 같은 직감적인 확신이 유럽인의 정신에 그렇게 생동감 있게 심어졌는가?
유럽에서 이와 같은 시도의 색조를 그들대로 내버려 둔 다른 문명의 특징과 비교할 때, 그 원류에 대한 근원은 오직 한 개뿐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신의 합리성에 대한 중세인의 고집으로부터 나왔으며 여호와의 개인적인 에너지나 그리스 철학자의 합리성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합리성의 모든 상세한 것은 감독되고 질서를 갖는 것이었다. 자연을 탐색하는 것은 합리성의 믿음을 정당화하는 결과만을 초래할 수 있었다. 나는 몇몇 개인의 명백한 믿음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유럽인의 마음은 수세기 동안의 의문의 여지가 없는 믿음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이는 사고의 직감적 색조를 말하는 것이며 단순한 교리적 언어를 의미하지 않는다 .20)20) A. N. Whitehead, Science and the Modem World(New York : THe Free Press, 1967) , p . 12.
이와 같은 문제는 더이상 고려하지 않을 예정이다. 현대과학이 오로지기독교적 유럽에서 유래되었는지를 "증명"하는 것은 아마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현대과학의 토대를 구축했던 이들이 종교적인 논쟁으로부터 어떤 실질적인 영감을 도출하였는가에 대한 물음을 제기할 필요조차 없다고 본다. 이 점이 진실이든 아니든간에, 중요한 점은 그와 같은 논쟁이 바로 현대과학이 한 세기에서 또다른 세기로 변천하는 시기를 지나면서 신뢰할 수 있고 사회적으로 수용될 수 있었다는 기대를 할 수 있는 점이다. 종교적인 기준은 아직도 I9세기의 영국의 과학교재에 자주 인용되고 있다 . 신화론에 대한 관심이 오늘날 부활하고 있다는 사실 속에서 논쟁의 방향이 현저하게 전도되어 버린 것 같다. 오늘날 과학은
신화적인 공정적 주장에 신뢰성을 부여하는 듯이 보인다.
여기서 직면하는 문제는 분명히 神的이며 그리고 과학적인 이슈들이 ”의적인” 과학의 역사와 뒤엉켜 버린 복잡한 무수한 문제들을 향해 나가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이와 같은 상관관계의 정의가 사회, 경제, 그리고 인습적 맥락에 사용되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바대로, 우리가 지금 관심을 두고 있는 유일한 점은 바로 과학적인 의견의 특정한 성격과 함축성이 詩的인 담론과 공명에 의하여 증폭되는 사실이다.니담은 21) 18세기 중국의 지성인들이 현대과학의 승리에 대한 예수회원의 선포에 귀기울이는 아이러니를 말하고 있다. 자연은 단일한 감득할 수 있는 법칙들에 의해 지배된다는 개념은 중국인들에 있어 인간 중심의 어리석은 아집의 완벽한 실례로 보인다. 니담은 이와 같은 "어리석음"은 깊은 문명적 뿌리를 지니고 있다고 믿고 있다. 서구인과 중국인 사이에 존재하는 엄청난 차이를 보여주기 위하여, 중세기에 있었던 동물의 시련을 인용한다. 여러 경우에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알을 낳을 수 있는 수탉처럼 변덕스런 생각을 지닌 자들은 자연의 법칙을 어긴 죄로 사형이나 화형같은 엄숙한 벌을 받았으며 이 자연의 법칙을 곧 신의 계율로 여겼다. 니담은 중국에서라면 이와 같은 수닭은 십중팔구 단지 조심스레 스스로 사라져 버렸을 것이라는 점을 설명한다. 이와 같은 변덕스런 행위는 어떤 죄목으로든 유죄가 아니며 자연과 사회적인 조화에 부딪치는 것이었다.21) Needham, 앞에서 인용한 문헌 19의 p_308.
어떤 지방자치 관료나 또는 황제라 할지라도 만약 수탉과 같은 무례함이 알려지는 미묘한 상황에서 그들이 처신해야 할 바를 잘 알고 있었다. 니담은 중국을 지배하는 철학적 관념에 따르면 우주는 자발적인 조화 속에 있으며 현상의 규칙성은 위력을 지닌 권능자에 기인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안정적이고 독립적으로, 그들은 서로가 일종의 타협하지 않는 조화로 공명을 갖는다. 만약 어떤 법칙이 수반된다면, 이는 필시 신도 인간도 그 누구도 상상해낼 수 없는 법칙이다. 그와 같은 법칙은 인간에 의해서 판독될 수 없는 언어로 표현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며 인간 자신의 이미지 속에 그리고 있는 어떤 창조자에 의해서도 설립된 법칙이 아니다. 니담은 다음의 질문과 함께 결론을 맺는다 :
현대과학을 조명해볼 때, 물론 자연 "법칙"의 지배와 의무에 관한 관념의 찌꺼기는 없다. 마치 피어슨이 유명한 구절에서 정의하였던 것처럼 자연법칙의 관념은 이제 단지 주어진 시간과 장소에서만 유효한 통계적 규칙성으로서 처방이 아닌 묘사로서의 사고이다. 과학적인 법칙의 형성에서 정확한 주관성의 정도는 마하로부터 에딩톤에 이르는 오랜 시기 동안 뜨겁게 토론되어 온 것이며 그와 같은 질문은 여기서 더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그와 같은 통계적인 규칙성과 그들의 수학적 표현의 인식을 서구과학이 실제로 걸어 온 길이 아닌 어떤 다른 길에 의해 다다를 수 있는지 없는지의 일이다 . 아마도 알을 낳을 수 있는 수탉 속에 도사린 마음의 상태가 주어진 문명에서 필요했던 법을 시행하는 데 필요하였을 데지만 이는 후에 케플러를 낳는 속성이 되었을 것이다.22)
22) Needham, 앞에서 인용한 문헌 19 의 P. 330.
과학적인 담론은 결코 전통적 종교적 견해의 변환이 아니었음을 꼭 강조하고 싶다. 분명히 고전물리에 의해 정의된 우주는 하느님이 빛과, 하늘과, 땅, 그리고 생명을 갖는 모든 것을 창조한 창세기의 우주가 아니며 그 우주는 전지전능의 신이, 그의 구원이 위대하게 되는 역사를 향하여 인간을 선동 자극하는 행위를 결코 멈춘 적이 없는 우주이다. 고전물리학의 세계는 한 엔지니어가 혼자 제기능을 할 수 있는 바로 직전까지 만들어 놓은 로보트를 창조하는 것처럼이나, 반드시 창조되었을 그러한 일시적인 세계이다. 이런 측면에서 물리학은 종교나 전통적인 철학과 반대의 입장에서 발전되었다. 아직도 우리는 기독교의 신은 실질적으로 우주의 명료성의 토대를 제공하기 위해 구성되었음을 알고 있다. 사실상 오늘날 혹자는 우주는 신에게 절대복종합으로써 신의 전지전능함에 감사해야 한다는 신학자의 관십과 수학화할 과정을 추구하는 물리학자의 관심 사이에 일종의 "수령"을 말할지 모른다.
어쨌거나, 현대과학에 의하여 파괴된 아리스토텔레스 세계는 이들 신학자와 물리학자들 모두에게 수용될 수 없었다. 이 질서 있고, 조화 있고, 계측적이며, 그리고 합리적인 우주는, 지극히 독립적이며, 군생하는 모든 존재는 너무도 위대하고 활동적이며 절대적 존재에 대한 그들의 추종은 많은 신학자들이 갈망하는 것에 비하여 의구적이고 제한되어 있다 .23)반면, 이 우주는 자체를 수학화하기에는 너무도 복잡다단하게 질적으로 복합되어 있다.
23) R. Hooykaas는 Religion and the Rise of Morden Science(Edinburgh and London : Scottish Academic Press, [972), 특히 PP.14-16에서 기계론적 세계에의 기독교적 은유법에 의한 이와 같은 "비신격화“한 세계를 강조하고 있다.
절대적으로 군립하려는 어떤 계획에 따라 창조되고 지배되어 온 현대과학의 “기계화"된 우주는 알게 모르게 창조자의 영광을 찬미하고. 그리하여 물리학자나 신학자들 모두의 필요를 놀랍게 충족시켜 주었다. 비록 라이프니쯔는 수학이 활력과 질적으로 복합화된 거동을 나타내는 우주에 적합하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려고 분투하였으나, 과학자와 신학자들의 연합세력은 자연을 인류정신의 자유와 목적과는 근본적으로 이단시되는 무심하고, 수동적인 기계로 정의한다. 화이트헤드에 의해서 언급된 것처럼 “자연은 무료하고, 소리가 나지 않고, 무취, 무색, 무한. 무의미만을 단순히 재촉하는 물질”이다 .24) 이같은 기독교적인 자연은 옛날의 자연적인 "됨”의 조화에 인간 자신을 확인해 보려는 어떤 속성도 인간으로부터 빼앗아 버리고, 인간을 홀로 버려두고, 신 앞에 오로지 무릎꿇게 함으로써 라이프니쯔가 귀로 들어 왔던 수천의 수학적 음색이 아닌, 유일한 언어로 묘사하는 자연에 인간을 포함시켰다.
24) Whitehead, 앞에서 인용한 문헌 20 의 P.H.
신학은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을 열심히 판독하며 애쓸 때의 인간의 묘한 위치에 대한 비판을 도와줄 수 있다. 인간은 단호히 자연의 일부가 아닌 객관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그는 자연을 위로부터 지배한다. 사실상 갈릴레오에 있어서 신의 이미지로 창조된 인간의 영혼은 신의 창조 구상에 깔려 있는 지성적인 진실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직감적이고, 충분하고, 순간적으로 신이 지닌 인식의 세계에 근접할 수 있다 .25)
25) 수학적 표기에 의해 쓰여진 자연에 관한 유명한 교과서는 II Saggiatore에서 찾
을 수 있다 . 또한 Tlze Dialogue Concerning llze Two Chief World Syslenzs, 2nd rev . ed . (Berkelely : University California Press, 1967)을 참고할 수 있음.
무신론의 배경으로 처단되어 갔던 고대의 원자론자들이나, 종종 신의 은총이나 인간의 자유의 천부적인 존재를 부인하기를 의심하였던 라이프니쯔와는 달리, 현대과학자들은 문명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분야에 조화롭게 이른다. 인간의 마음은,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신체와 잘 부합하여 실험적인 장치와 고안을 수단으로 하느님 자신이 우주를 관장하는 것으로부터 이 우주는 어떤 神的인 구상의 가시적 표현으로 이어지리라는 유리한 위치에 근접케 된다. 물론, 정산 그 자체는 성취의 결과 밖에 머무르고 있다. 과학자들은 자연을 이루는 색조나 향수처럼 조직을 구성하는 모든 것을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정신에 의해 자연에 비추어지는 제 2의 재질로 규정한다. 자연을 되락시키는 것은 신과 인간을 제의한 모든 것을 찬미하는 것이다.
고전과학의 한계지금까지 과학적인 실천과 형이상학적 확신은 매우 밀접한 관계로 연계되어 있는 유일무이한 역사적 상황을 규정하려고 시도하여 왔다.갈릴레오와 그 이후에 나타난 사람들은 중세를 이룩해간 이들로서 같은 문제를 야기시켜 왔으나, 경험적 지식으로부터, 신에 압도되어, 실험적인 방법이 가정되고 비밀이 판독되는 보편적인 언어와 우주의 단순성을 주창하는 일을 중단하고 말았다. 이와 같은 방법에서 현대과학에 깔려 있는 원천적 신화는, 중세기가 끝나갈 무렵에서부터 경제, 정치, 사회, 종교, 철학 및 기술적 요인들 사이의 공명과 상호간의 증폭의 여건을 이루는 특정한 복합적인 산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복잡성의 빠른 분해는 변천된 문명 속에서 고전과학이 궁지에 빠져 고립된 채 남아있게 만들었다. 고전과학은 신적인 질서와 자연적인 질서 사이의 중도에 위치한 인간과, 우리 자신의 이미지로 상상해 온 합리성과, 지적인 입안자요 동치의 확립자인 신 사이의 연합에 의해 지배된 한 문명 속에서 잉태되었다. 철학자와 신학자들을 과학에 종사하게 하고 과학자들로 하여금 신의 지혜와 창조하는 전능에 대한 의견을 찾아내고 표현토록 만들었던 그 문명적 협화음의 순간은 상당히 오래 지속되었다. 종교와 철학의 지지와 함께 과학자들은 그들의 진취적 정신을 자기 충만된 것으로 믿게 되었으며 자연적 현상에 대한 합리적 접근의 가능성 을 남김없이 추구하게 되었다. 이런 측면에서 과학적 묘사와 자연적 현상 사이의 연계성은 정당화 될 수 없었다. 과학과 철학은 서로 수령하였고 과학이 어떤 진정한 자연 철학의 원리를 발견하게 된 점은 아주 자명한 것으로 보여질 수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과학자에 의해 경험된 자기 충만은 중세의 신으로부터 오랜 동안 벗어나 있었고 신학에 의한 제시된 인식론적 확증을 움츠려 들게 하였다. 최초의 활기차고 분방한 내기를 거는 것 같은 방법은 18세기의 승리에 찬 과학이 되었는데 26) 천체와 지구상의 물체의 움직임을 지배하는 법칙을 발견한 과학은 다람베르와 오이러가 완전하고 일관된 계로 구체화시킨 과학이며 이의 역사는 라그란지의 완전성을 향한 이성적 성취로 규정하였다. 이는 루이나세, 프레데릭 2세 그리고 캐더린 대제 27) 등의 절대군주들이 세운 대학들에 의해 환영을 받았던 과학이며 뉴톤을 국가적 영웅으로 만든 과학이었다. 다시 말해서, 성공스런 과학이었으며 자연은
26) 적어도 이는 불란서, 프러시아 그리고 러시아 등에서 설립된 대학들에서는 절대 지배적인 승리의 개가였다. The Scientists Role in Society (Englewood Cliffs, N. J. : Foundations of Modern Sociology Series, Prentice - Hall, 1971)에서 Ben David는 매력적이고 순수하게 이론적인 과학으로서의 문리학에 헌신하였던, 이들 국가의 물리학자들과, 경험적이거나 기술적인 문제의 풍요로움 속에 빠져들었던 영국 물리학자들 사아의 구분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Ben David는 이론적인 과학에 대한 매료와 "과학적 운동"을 지지하는 사회계층의 정치력으로부터 멀리 있는 과학의 예속 사이의 연계성 을 재한하기에 이른다.
27) d'Alembert에 대한 그의 전기, Jean d'Alembert, Science and Enlightenment (Oxford : Clarendon Press, 1970)에서 Thomas Hankins는 세칭 현대적인 맥락, 이름하여, 18세기의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의 최초의 과학적 집단이 얼마나 폐쇄되어 있었고 얼마나 그 크기가 적었는가를 강조하였으며, 절대적 통치에 대한 그들의 관계가 얼마나 친밀하게 밀착되었는가를 설명하고 있다.투명하게 증명되었다는 확신을 주었던 과학이었다. “나는 그와 같은 가설이 필요치 않다 (Je nai pas besoin de cette hypothese) ”라는 말은 나폴레옹이 라퐁 라스에게 그의 우주 체계에서 신의 위치가 되어 달라는 부탁에 대한 라플라스의 대답이었다.
현대과학의 이중적 함축성은 생존 자체의 당연한 요구였다. 여러 측면에서, 오늘날 여전히 과학의 고전적 개념이 되고 있는 라플 라스의 과학 세계에서, 어떤 사실의 기술은 어느 정도까지 관찰자가 배재되고 있는 객관적인 것이며, 사물의 묘사 그 자체는 어떤 우주 밖의 관점에서, 신의 이미지 속에서 창조된 인간이 태초에 접근한다는 신적인 관점에서 이루어 지고 있다. 그러므로 고전 과학은 아직도 우주에 대한 유일무이한 진실을 탐구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으며, 우주 전체의 비밀을 파헤칠 수 있는 유일한 언어를 추구한다-오늘날에는 이를 묘사의 원천적 수준(fundamental level of description)으로 부르며 이로부터 존재하는 모든 것을 연역해낼 수 있다.이와 같 은 본질적인 점에 대하여, 현대과학의 근저를 이루고 있는 기본적인 신화로 칭하는 것들을 정밀하게 현대적 용어로 바꾸어 놓은 아인슈타인의 논술을 인용하여 보자 :이론 물리학자들의 우주의 영상은 이 모든 가능한 영상 가운데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 그것은 오로지 수학적 언어의 사용만이 제공할 수 있는 것처럼, 관계를 기술하는데 있어 가장 엄밀한 정밀성의 표준을 요구한다. 반면 그의 주제에 관해서 물리학자는 자신 을 극단적으로 제한해야만 한다. 우리의 경험 영역 내에서만 이야기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사건을 묘사하는 일에 만족해야만 하며 ; 보다 복잡한 질서의 모든 사건은 이론 물리학자들이 요구하는 난해한 정확성과 논리적 완전성으로 재구축하려는 인간의 지적 능력을 초월해 있다. 지고의 순수, 명료, 그리고 확실성은 완전성의 대가이다. 그러나, 무엇이 자연의 미소한 부분을 충분히 알고 싶도록 잡아끌 수 있을까? 다른 한편 모든 난해한 것과 보다 복잡한 것은 부끄럽고 두려운 것으로 홀로 내버려 두면서 말이다. 그와 같은 겸손한 노력의 산물은 우주에관하여 어떤 이론의 자랑스런 이름으로 정의될 가치가 있는 것인가?
내가 믿기로는 그 이름은 옳다고 인정된다 ; 이론 물리의 구조가 근본이 되고 있는 보편적 법칙은 자연적 현상이 무엇이든간에 합당해야만 한다. 이들과 함께 현상의 묘사에 마땅히 이를 수 있어야 하며, 말하자면 이론, 생명을 포함한, 모든 자연적 과정은 만약 연역의 과정이 인간은 지적 능력을 그리 크게 초월하지 않는다면 순수한 연역의 수단에 의해서 이론이나 생명을 포함하는 모든 자연적 과정에 대한 묘사를 마땅히 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주관에 있어서 물리학자의 완전성의 포기는 근원적 원리의 문제는 아니다 .28)28) Einstein, 서론 부분에서 이미 인용한 참고문헌 19의 pp .225 ~26.
언젠가 중력의 법칙으로 표현되는 형태의 인력은 자연에 대한 고유의 생명력에 기인되는 어떠한 것도 정당화할 수 있으며, 이 법칙은 인간 사회를 구성하는 상호인력을 포함한 특정한 활동의 형태를 설명하고 일반화할 수 있다는 현상을 주창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희망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과학이 발전된 정치, 경제 및 관습적 배경에 의해 발생되는 요구의 결과로서 곧 붕괴되고 말았다. 이는 매우 중요한 사상이지만 우리는 이같은 문제의 형태는 검토하지 않으려 한다. 여기에서 우리의 요점은 바로 이와 같은 실패가 고전적 견해의 일관성을 확립한 것 같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며, 한때는 고무적인 확신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 이제는 어떤 서글픈 진실이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사실상, 과학의 이같은 해석을 분명히 반대할 수 있는 유일한 해석은 따라서 우주를 이해하려는 구상 자체의 실증적 논박이었다. 예를 들어 젊은 아인슈타인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던 영향력 있는 철학자이며 과학자인 마하는 과학적 지식의 임무를 가능한 질서 있는 경제 속의 정돈된 경험으로 정의한다. 과학이란 사실의 가장 간단하고 경제적으로 중요한 표현보다 더 의미있는 목표를 가질 수 없다 :
이제 우리는 과학의 근저를 이루었던 모든 신비스런 것들의 실체를 벗겨낼 수 있는 실마리를 갖게 되었고 이 실마리의 힘이 진정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다. 이로부터 얻어지는 특정한 결과에 대해서 특정한 방법이 없이도 충분한 오랜 시간을 통해 근접될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그 자신의 노동의 결실에만 전적으로 제약을 받는 어떤 개인적 존재도 결코 재산을 모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많은 사람들의 노동의 축적은 누구의 수중에든 부와 권력의 토대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또한 어떤 개인적인 인간의 마음에 축적될 수 있는 이름할 수 없는 가치의 지식은 한 사람의 일생에만 제한되거나 한정된 힘만을 타고 나지는 않는다. 물론 이는 가장 정교한 思考의 경제나 수천명의 협력자들의 경제적으로 정돈된 경험의 축적은 제외한 경우이다 .29)
29) E. Mach, WThe Economical Nature of Physical Inquiry, " Popular Scientific Lectures (Chicago : Open Court Publishing Company, 189,) , PP.197-98_
그러므로 과학이 유용한 것은 그것이 思考의 경제로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말에는 어느 정도 진실의 요소가 있으나 전체 이야기를 말해 주지는 못한다. 뉴톤, 라이프니쯔 그리고 서구과학의 기초를 세운 사람들, 그들의 야망은 물리적인 우주의 지적 틀을 제공하였던 이들로부터 얼마나 진전되고 있는가? 과학은 행동의 흥미 있는 규칙에 이르게 하지만, 그 이상에 이르게 하지는 못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출발점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그것은 상당히 오랜 시간에 걸쳐 문명적 통합의 상징 자체로 여겨져 온 고전과학의 개념이지 지금까지 기술하여 온 문화적 위기로 이끄는 그런 과학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과학적 신비”의 천둥과 "과학적 심각성" 사이에서 눈이 먼 채 갈피를 잡지 못하며 과학적 진실의 절대적이며 전체적인 본질을 확인하는 것과 자연적인 변화에 있어 효과적인 조정을 위한 임의의 실용성 있는 처방으로서 과학적인 이론의 개념 속으로 물러서는 것 사이에서 망설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는 고전과학은 이미 그 한계에 다다랐다는 견해에 동의한다. 이와 같은 변화의 한 양상은 "있는 그대로”의 우주에 대한 자식이 가능하다고 암시한 고전적 개념의 한계를 발견하는 것이다. 과학적 추론에 막대한 기여를 하였던 전지전능했던 존재들, 라플라스나 막스웰의 非凡, 아인슈타인의 신과 갇은 존재들은 물리학자들이 생각해낼 수 있었던 外括法의 종류들을 구현하고 있다. 능동적인 지식의 대상과 같은 무질서, 복잡성, 비가역성 등이 물리학에 영입되면서 우리들은 인간에 의한 우주의 묘사와 있는 그대로의 우주 사이를 직접 연결하는 보다 소박한 가정에서 이미 탈피하고 있다. 이론 물리에서 객관적 실체는 보다 미묘한 의미를 나타낸다.
예기치 못했던 발견들이 추가로 행해지면서 빛의 속도와 같은 보편적인 상수들의 존재가 자연을 조종하는 인간 능력을 제한하고 있음이 드러났는데, 이로 인해 발전은 불가피했던 것이다(이와 같은 예기치 못한 상황은 제 7장에서 논의할 예정임). 그 결과 물리학자들은 보다 복잡다단한 것에 대한 지각과 해석을 연관지을 수 있는 새로운 수학적 지식을 도입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우리는 실재가 무엇을 의미하든간에, 어떤 능동적인 지적 확립에 늘 일치되어야 한다 . 과학에 의해 행해지는 묘사는 더이상 물음을 제기하는 인간의 행동으로부터 인연을 끊을 수 없으며, 그러므로 어떤 전지전능한 존재의 탓으로 돌릴 수가 없다.뉴톤의 통합에 임박하여, 돈느는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파괴된 아리스토텔레스 우주의 종말을 애동해 한 바 있다 :그리고 새로운 철학은 모든 것에 의구심을 갖고,불의 근원이 완전히 꺼져 갔으며, 태양은 사라지고, 그리고 지구는, 그리고 인간은 지혜를 잃었다.이를 찾을 수 있는 곳으로 인간을 잘 인도할 수 있는가.그리고 자유로이 사람들은 이 우주의 소멸을 자백할 수 있으며,천체와 창공 속에 있을 때, 그들은 너무나 많은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그리고 본다. 이것이 다시 그의 골격처럼 무너져 버리는 것을.모두가 조각들이 나버리고, 모든 짜임새는 사라져 버렸다 .30)30) J. Donne, An Anatomy of World에서…… 전체우주의 덧없음과 쇠태를 언급하고 있다 (London, catalog of the British Museum, 1611).
우리 현대문명의 부서진 블록과 돌멩이는, 돈느의 시대처럼, 새로운 "짜임새”로 재건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 고전과학은, 수동적이고 단순한 우주의 신화적 과학이며 이미 지나가버린 것에 속하고, 철학적인 비판이나 경험론자의 퇴진이 아닌 과학 자체의 내부적 발전에 의해 죽어 버렸다.
제 2장
실재의 인식뉴톤의 제법칙갈릴레오, 뉴톤 및 이들 후학들의 업적으로부터 나타난 기계론적 우주견해를 보다 면밀히 들여다보자. 그것의 장점과, 그것을 명료하게 설명해 내었던 자연의 양상을 기술하고 동시에 그것의 제한점을 드러내 보이고 싶은 것이 우리의 의도이다. 갈릴레오 이후, 물리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 중의 하나는 가속도를 묘사하는 것이었다. 놀라운 사실은 어떤 물체의 운동상태에서 진행된 변화를 간단한 수학적 용어로 체계화할 수 있었던 점이다. 물론 오늘날에는 이 사실은 거의 하찮은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도, 여러 분야에서 놀랍도록 성공적이었던 중국의 과학도 운동법칙의 정량적인 공식을 얻지 못했던 점을 유념하여야 할 것이다. 갈릴레오는 어떤 움직임이 균등할 때 운동상태의 원인을 물을 필요가 없으며 더욱이 정해져 있는 상태의 이유를 문제시할 필요가 없음을 알아냈다. 항속운동이나 정지해 있는 상태는 이들을 뒤엎을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무한히 안정된 상태로 남아 있는다. 핵심이 되는 문제는 정지상태로부터의 움직임은 물론이려니와 움직이고 있는 상태에서 정지할 때, 보다 일반적으로는 속도가 수반되는 모든 변환에서의 변화에 대한 물음이다. 이와 같은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가? 뉴톤의 운동 법칙은 두개의 서로 수렴된 개념의 개발을 가능하게 하였다. 물리학에서의 하나는 천체운동에 대한 케플러 법칙과 낙하하는 물체에 대한 갈릴레오의 법칙이며, 수학에서의 다른 하나는, 미분 또는 "미소(infinitesimal)" 대수의 발전이다.
연속적으로 속도가 변하는 과정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위치나 속도, 그리고 가속도와 같은 여러가지 에서 순간적 변환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어떤 주어진 순간에서 고려하는 물체의 상태를 우리는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 이와 같은 물음에 대한 대답을 제시하기 위하여 수학자들은 미소량의 개념을 도입하게 되었다. 임의의 미소량은 제한된 과정의 결과이다 : 두 순간 사이에 경과된 시간의 폭이 영 (zero)에 가까워질 때 두 연속적인 순간 사이에서 발생되는 양이 그 대표적인 변화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변화하는 무한히 미소한 변화가 일련의 무한한 변화의 연속으로 해석된다.각 순간에서 움직이고 있는 물체의 상태는 이의 위치 r, 속도 V에 의해 정의될 수 있으며, 그 속도를 바꾸려는 "순간적 성향"은 가속도 a에 의해 표현될 수 있다. 순간적인 속도와 가속도는 두 무한소량 사이의 비율을 측정하는 제한적인 양이다 ; 한 순간의 시간간격 t동안 r( 또는 v)의 변화와 t가 0으로 근접될 때의 t의 간격을 말한다 . 그와 같은 양은 시간에 대한 도함수이며, 라이프니쯔 이후에 그들은 v=dr/dt, a=dv/d t로 쓰고 있다. 그러므로, 가속도, 즉 어떤 도함수의 도함수, a=d2r/dt 2은 “제2차 도함수”가 된다. 뉴톤 물리학에서 집중하였던 문제는 이와 같은 2차 도함수의 계산으로, 임의의 계를 형성하는 점의 각각 순간에서 행해진 가속도이다. 어떤 주어진 시간 간격에서 이들 각 점의 운동은 무한소양의 적분에 의해서 계산할 수 있으며 이 시간 간격 동안 발생하는 무한소량의 속도변화를 합함으로써 계산된다. 가장 간단한 경우는 a가 상수인 경우이다(예를 들면, 자유로이 낙하하는 물체의 a는 중력속도 상수g이다). 일반적으로 말하여 가속도 자체는 시간에 따라 변화하며, 물리학자의 임무는 이 변화의 특징을 엄밀히 결정하는 일이다.뉴톤의 언어에서, 가속도를 연구하는 것은 고려하고 있는 계 내의 임의의 점에 작용하는 여러가지 "힘 (force)”을 결정하는 것을 의미하나 뉴톤의 운동제2법칙 F=ma는 어떤 점에 작용하는 힘은 그 점에서 생성되는 가속도에 비례하고 있음을 정의한다. 물질적인 점을 다루는 계의 경우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는데, 이는 주어진 물체에 작용하는 힘은 고려하는 계내의 두 물체간의 상대적인 순간적 거리에 의해 결정되며, 따라서, 물체 자체가 생성하는 운동의 결과로 각각의 순간순간마다 변화되는 복잡성이 따른다.
동력학의 한 가지 경우는 일련의 “미분" 방정식의 형태로 표시되는 문제이다. 고려하는 임의의 계 속의 각 물체의 순간적인 상태는 한 점으로 정의되며, 이 점의 위치는 물론, 속도와 가속도에 의해 정의되는바, 위치에 대한 I차 및 2차 도함수로 묘사되어야 한다. 각 순간에서, 일련의 힘은 고려하는 계 내의 점들 사이의 거리의 함수이며 (r의 어떤 함수) 각 점에 대한 정밀한 가속도 를 제공하며 가속도는 이들 점을 메어놓은 거리의 변화를 초래하고. 이리하여 수반되는 각 순간에서 작용하는 일련의 인력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미분방정식은 동력학의 문제를 성립시켜 주는 반면, 그들 방정식의 "적분"은 고려하는 문제의 해답을 나타낸다. 이는 궤적, r(t)의 계산으로 된다. 이들 궤적은 동력학에서 합당한 것으로 인식된 모든 정보를 수반한다 : 동적 상태에 있는 계의 완전한 정의를 제시한다.따라서 묘사는 다음의 두 요소를 암시 한다 ; 흔히 "초기 순간 (initial instant)”으로 부르는 한 순간에서 각 점의 위치 및 속도와, 가속도에 대한 동력에 관계된 운동 방정식이다. 동적인 상태의 방정식의 적분은 연속적인 상태를 전개하는 "초기상태”로부터 시작되며, 이는 구성 물체의 일련의 궤적을 나타내 준다.뉴톤 과학의 개가는 단순한 힘, 중력으로 천체나 혜성의 운동과 지구를 향해 자유낙하하는 물체의 운동을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의 발견에 있다. 어떤 형태의 짝을 이루는 두 물체를 고려하더라도 뉴돈의 계는 동일한 인력으로 연결되어 있는 점을 시사해 준다. 뉴톤 동력학은 따라서 복합적으로 보편성을 지니는 것으로 보인다. 물질이 어떻게 서로 접근되는가를 규정하는 중력법칙의 정의는 어떤 규모의 현상이어야 한다는 기준이 없다. 이 법칙은 공히 원자운동이나, 천체 은하계의 별들에 대해서 적용될 수 있다. 모든 물체는, 그 크기가 어떠하든간에, 질량을 지니며 뉴톤 인력의 근원으로서 행동한다.중력이란 임의의 두 물체를 연결해 주는바(질량 m과 m’ 의 두 물체가 거리 r만큼 떨어져 있을 때, 중력은 kmm'/r2이며 k는 뉴톤 인력상수로서 6.67cm2/g • sec2과 갇다), 가장 진실한 동력학적인 계는 일반적으로 우주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천체계와 같이 어떤 국부적인 동적 계는 앞서 고려하였던 영향에 비하여 사소한 다른 힘을 무시함으로써 근사적으로 정의가 가능하다.
선택한 동적 체계가 무엇이든간에, 운동의 법칙은 언제나 F=ma의 형태로 표시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 중력에 의한 힘과는 다른 형태의 힘도 발견될 수 있고 실제로 발견되어 왔다-예를 들어 인력과 반발력의 전기력 이론으로부터 운동법칙의 경험적인 내용을 수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구든 그들 법칙의 형태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 . 동력학의 세계에서는 변화는 가속도나 감속도로 밝혀낼 수 있다. 운동법칙의 적분은 따르는 입자의 궤적에 이르게 한다. 그러므로, 변화의 법칙이나 자연에 대한 시간의 충격은 상궤적의 특성적인 용어로 표현될 수 있다.궤적의 기본적인 특성은 운동법칙에 부합하고, 결정론적이며 가역적이다. 운동법칙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덧붙여 필요로 하는 어떤 궤적을 계산하기 위해서 보아 온 것은 고려하는 임의의 계의 어떤 단일한 순간적 상태에의 경험적 경우이다. 보다 일반적인 법칙은 시간이 진척됨에 따라 고려하는 계가 통과해 가는 상태의 "초기상태"로부터 연역되며, 이는 어떤 기본적 전제조건으로부터 임의의 결론을 연역해내는 논리와 같다. 놀라운 점은 일단 수반되는 일을 알면, 어떤 단일상태가 고려하는 미래는 물론이려니와 과거를 포함하여 완전하게 계를 정의하는 데 충분하다. 그러므로 각 순간마다 모든 것은 주어진다. 동력학은 모든 상태가 동등한 것으로 정의한다. 그들 각각은 그들이 미래이든 과거이든 모든 상태를 연결해 주는 궤적을 따라 다른 모든 것들을 계산할 수 있도록 하여 준다.“모든 것은 주어졌다.” 고전동력학의 이와 같은 결론은, 베르그송이 반복적으로 강조하였던 것처럼 동력학이 정의하는 실재를 특정지어 준다. 모든 것은 주어졌다. 그러나 모든 것은 또한 가능하다. 어떤 동력학적인 계를 동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전 한 존재는 임의의 선택된 시간에서 선택된 상태에 고려하는 계가 "자발적으로” 근접될 수 있는 그러한 올바른초기상태를 계산해낼 수 있다.
동력학 법칙들의 보편성은 초기상태의 임의성과 잘 부합된다. 동력학적 궤적의 가역성은 동력학의 토대를 세워간 사람들에 의해 공공연히 언급되었다. 예를 들면 갈릴레오나 후이겐 (Huyghen)은 원인과 결과 사이에 존재하는 동일성의 함축적 의미를 운동에 대한 수학이론의 기본으로 가정한바, 지면에 튕기는 탄성을 갖는 공에 관한 머리속 실험의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이와 같은 순간적인 속도전환의 결과로, 그와 같은 탄성체는 이의 초기위치에 되돌아갈 수 있었다고 믿었다. 동력학은 가역성의 성질을 모든 동력학적 변화에 부여한다. 이와 같은 초기의 "머리속 실험"은 동력학적 방정식의 일반적인 수학적 성질을 입증해 준다. 또한 이와 같은 방정식의 구조는 만약 고려하는 계의 모든 점들의 속도를 반전시키면, 그 계는 “시간에 대해 거꾸로” 갈 수 있다. 고려하는 계는 앞서 변화를 통해 지나온 모든 상태를 되밟아 처음으로 갈 수 있다. 동력학은 t→―t와 같은 시간반전이 가능하다. v→-v와 같은 반전속도가 수학적으로는 동일한 변화로서 정의된다.어떤 한 가지 동적인 변화가 이루어지면, 다른 변화는 반전속도에 의해 정의됨으로써 또다른 상태를 알 수 있고, 이와 같은 역설로 최초의 조기 조건을 정확하게 회복해낼 수 있다.그러나 이와 같은 동력학에서 가역성의 성질은 양자역학의 도입이 갖는 전체의미를 깨닫는 데 현격한 어려움을 유발하게 된다. 조정이나 측정은 본질적으로 비가역적이다. 그러므로, 보다 생동력 있는 과학은, 정의에 의해서 활동적인 과학이 정의됨과 아울러 이상화되고, 가역적안 세계와는 별개의 것이 된다.보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볼 때, 가역성은 동력학에 의해 정의된 세계의 “기묘함"의 상징 그 자체로 볼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영화 필름을 거꾸로 돌림으로써 보이는 말도 안되는 효과에 익숙해 있다. 한번 켜 버린 성냥의 모습은 다시 불꽃으로 피고, 깨져 버린 잉크병은 원상태로 되어 책상 위로 되돌아가고 잉크는 다시 병 속에 채워지며, 나뭇가지는 가늘어지고 새싹으로 되어 버린다. 고전동력학의 세계에서 그와 같은 사건은 아주 정상적인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우리는 어릴 적부터 학교에서 배워 온 고전동력학의 법칙에 너무도 익숙해 있어 종종 그들 법칙이 근거하고 있는 가정들의 뻔뻔스러움을 망각해 버렸다. 모든 운동의 궤적이 가역적인 세계는 정말로 이상한 세계이다. 또하나의 놀라운 가정은 운동의 법칙으로부터 조기조건이 완전히 독립적이라는 사실이다. 단지 누군가 신체적인 힘에 제한받는 조기의 속도로 한 개의 돌을 집어던질 수 있으나 대단히 많은 입자로 이루어진 기체처럼 아주 복잡한 임의의 계의 경우는 어떠한가? 분명한 것은 더이상 초기조건을 부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초기조건이란 반드시 동력학적 혁명 그 자체의 산물이다. 이 점은 우리가 이 책의 세번째 부분에서 재론하게 될 중요한 점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제한사항이 무엇이든간에 수세기가 지난 오늘날, 고전동력학의 토대를 세워냈던 사람들에 의해 발견된 방법의 논리적 정연함과 그 위력에 경단할 뿐이다.
운동과 변화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을 변화의 척도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연 변화의 질적인 복합성을 충실히 인식하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동력학에서 살아남아 있는 유일한 형태의 변화가 있는데, 이는 한 개의 "과정"이며 운동이다. 자연의 질적인 다양한 변화는 질량을 갖는 물체의 상대적 이동을 연구하는 것으로 집약된다. 시간이란 이와 같은 이동을 정의할 수 있는 견지에서 볼 때 매개변수이다. 동력학의 세계에서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공간과 시간은 떼어낼래야 떼어낼 수 없도록 함께 연결되어 있다(제 9장을 참고할 수 있음).뉴돈이 그의 법칙들을 체계화할 당시까지 상당한 지지를 받아 왔던 원자론자의 변화의 개념과 동력학적 변화를 비교하는 일은 흥미있는 일임에 틀림이 없다. 실제로 데카르트, 가센디, 그리고 다람베르뿐만 아니라 뉴톤 자신도 단단한 원자들 사이의 충돌을 아마 유일하거나 궁극적인 운동 변화의 근원으로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1) 물론, 동력학과 원자론적 정의1) 이 점에 관해서는 T. Hankins, "The Reception of Newton's Second Law
of Motion in the Eighteenth Century," Archives Intemationales d' Histoire des Sciences Vol. 20(1967), pp . 42-65 및 I. B. Cohen, "Newton's Second law and the Concept of Force in the Principia," " The Annus Mirabilis of Sir Issac Newlon, Tricentennial Celerbration," The Texas Quarterly, Vol. X, No. 3(1967), pp .25-157를 참고할 것. 원자론과 보존이론에 관한 한 W. Scott, The Conflict Between Alomism and Conservation Theory (London : Macdonald, 1970)에서 연속된 4개의 단락을 참조할 것.
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실상, 동력학 방정식은 단단한 입자 사이의 불연속적이고. 순간순간적인 운동과는 아주 현격한 대조를 이룬다. 뉴톤은 어떤 비가역적인 손실이 단단한 원자들 사이의 충돌에 수반되고 있다는 동력학적 모순을 알고 있었다. 유일한 가역적인 충돌은-이는 유일하게 동력학의 법칙과 일치되는 것으로서-운동량이 보존되는 ‘‘탄성"충돌뿐이다. 그러나 자연의 가장 근본요소인 원자들에 복잡한 ‘‘탄성력"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가?
반면에. 다소 기술적 측면을 제쳐놓고라도, 동력학적 운동의 법칙은 원자들간의 충돌로부터 일반적으로 야기되는 무질서 성향과는 아주 모순되는 것으로 보인다. 고대의 철학자들은 어떤 형태의 천연적 변화도 원자들 간의 충돌과 운동의 측면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해석해낼 수 있는 사실을 지적하여 왔었다. 이는 원자론자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주된 의도는 인간이 자유롭고 어떤 神的존재나 천연적 질서로부터 벌을 받지도 않고 보상을 받지도 않을 수 있는 신이 없고, 법칙이 없는 우주를 규정하려는 데 있었다. 그러나 고전과학은 엔지니어와 천문학자들의 과학이었으며 행동과 예측의 과학이었다. 가설적인 원자들에 근거한 어떤 모험적 추측도 이와 같은 필요를 만족시켜 줄 수 없었다. 대조적으로 뉴톤의 법칙은 예측하고 조정해내는 수단을 제공할 수 있었다. 자연은 따라서 혼돈적이거나, 무법천지요, 확률적 세계인 대신 법칙에 준수되고, 유순하며 예측가능한 세계로 투영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원자들이 끊임없이 합성되고 분리되는 불안정하고, 죽어감을 면치 못하는 세계와, 임의로 중복되는 미래를 향해 펼쳐지는 영원한 진리에 일치되는 뉴톤의 단순하고 수학적인 공식에 의해 지배되는 불변적 동력학 세계 사이의 연계성은 무엇인가?20 세기에 이르러 인류는 다시, 코이레가 보여주었듯이, 데카르트를 고뇌케 하였던 법칙인 무질서한 사건 사이의 충돌 을 목격하게 되었다. 2) 19세기의 종말 이후, 기체의 동력학 이론과 함께, 원자들의 혼돈적 무질서 상태는 물리학의 재구성을 난망하게 하였으며, 동력학의 법칙과 통계학적 묘사에 연계되는 문제가 물리학의 핵심 그 자체 속으로 침투하게 되었다. 이는 오늘날 동력학의 새로운 부활의 열쇠가 되는 요소 중의 하나이다(제3부를 참조).
2) A . Koyre, Galileo Studies (Hassocks, Eng. : The Harvester Press. 1978), pp .89-94
그러나 I8세기에, 이와 같은 모순은 과학자들을 막다른 골목에 머물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아마도 뉴톤의 동력학적 묘사의 중요성에 관한 I8세기 물리학자들의 회의론을 부분적으로 대변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충돌은 운동의 소멸에 이를 수 있는 점을 인정한 바 있다. 그와 같은 개념으로, 비이상적인 기체의 경우, ”에너지”는 보존되지 않고 비가역적으로 소멸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제 4장 3절 참조). 그러므로 원자론자들은 동력학을 임의의 한계치의 理想化로서 간주할밖에 없었다. 유럽대륙에 살았던 다람베르, 클래로 그리고 라그란지와 같은 물리학자나 수학자들은 오랜 동안 뉴톤주의의 유혹적인 매력에 거리 를 두게 되었다.
뉴톤의 변화 개념의 뿌리는 어디에 놓여 있는 것이었을까? 이는 이상적인 기계 장치에 대한 과학의 통합으로 보이며3) 여기서 운동은 서로 접촉하는 부분 사이의 마찰이나 충돌이 없이 전달되며, 천체에 대한 과학은 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 상관관계를 갖는다. 이미 언급한바 이는 무질서한 충돌개념에 근거를 두어 온 원자론과 상반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역사를 볼 때 이와 같은 모순은 뉴톤 동력학이 思考의 역사와, 혁명적으로 기발한 이론의 균열을 대변한다는 사실을 믿어 온 이들의 견해가 정당함을 보이고 있는 것인가? 이 점은 바로 실증주의 역사가들이 뉴톤이 어떻3) 그의 역학의 역사 -The Science of Mechanics: A Critical and Historical Account of Its Development (La Salle, Ill. : Open Court Publishing Company, 1960)에서 -Ernest Mach는 궤적의 과학과 엔지니어의 계산 모두의 현대동력학의 이와 같은 이중의 여과에 대해 강조하고 있음.
게 보편화되었던 관념으로부터 교묘히 벗어나 용감하게 천체의 운동이나 자유낙하 물체의 "보편적"인 힘의 개념을 수학적인 연구로부터 추론하게 되었는가를 서술하려 할 때 주장하여 왔던 것이다. 반대로 I8세기의 합리주의자들은 뉴톤의 "수학적" 힘의 개념과 신비적인 성질 사이의 자명한 유사성을 강조하였음을 알고 있다. 다행히도 이들 비판은 뉴톤 힘의 개념 이면의 묘한 이야기를 알지 못하였다! 뉴톤의 조심스러운 힘의 개념에 관한 선포는――-"나는 아무 가설도 날조해내지 않는다”―연금술사들의 열정을 잠들게 하였다 .4)
4) 이와 같은 일은 적어도 오늘날까지도 "비과학적“인 것으로 무시되었거나 경멸되어온 뉴톤의 "연금술 논문”의 인상적인 부분등에 대한 새로운 연구릅 시작했던 오늘날의 역사가들의 결론이다. 더 자세한 사항은 B. J . Dobbs, TheFoundation of Newton's Alchemy (Cambridge :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5) : R . Westfall, "Newt on and the Hermetic Tradition in Science, " Medicine and Society, ed. A. G. Debus(London : Macmillan, 1972) : and R . Westfall, "The Role of Alchemy in NeY1ton's Career, " Reason, Experimen t and Mysticism, ed. M. L. Righini Bonelli and W. R. Shea(London : Macmilli an, 1975)를 참조할 것 . 이와 같은 논문의 수집에서 결정적인 부분을 담당했던 Keynes 경이 요약하고 있듯이 (위에 언급한 Dobbs의 문헌 P.13에서 인용), 뉴톤은 최초의 논리적 시도를 폈던 사람이 아니다. 그는 Babylonians:;'-!- Sumerian~ 최후의 사람이며, 역사를 통하여 1,000년 이상 걸쳐 우리의 지적 유산을 구축하기 시작했던 선조들과 똑같은 시각으로 현시적이며 지적인 세계를 관조하였던 위대한 사람들 중의 최후의 위인이다.
뉴톤은 수학적 연구와 나란히, 약 30 년 동안이나 고대 연금술을 연구해온 바 있으며 금을 합성해내는 위대한 일을 성취하는 방법에 대한 피나는 실험실의 연구를 수행하여 왔음을 알고 있다.
최근 몇몇 역사가들은 하늘과 지상의 뉴톤의 통합은 천문가가 아닌 화학자로서의 성취였다고 주장하기에 이르고 있다. 뉴돈 힘으로서 ‘‘생기 있는" 물체는, 강한 전문용어의 견지에서 보면, 자연의 활성 자체를 이루고 있으며 아마도 화학자로서 뉴톤이 물체의 모든 새로운 조합체를 형성하거나 파괴시키는 화학적인 "친화력"을 관찰하고 조작하였던 힘의 원천이 되었을 것으로 믿어진다.5) 천체궤도를 움직이는 힘을 정의했던 뉴톤의 결5) Dobbs는 앞에서 인용한 문헌 4의 저서에서 두 물질을 서로 "교제”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중재인”의 역할을 검토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괴테의 Elective Affinilies(Engl. trans . Greenwood, 1976) 에서 중재자의 중요성을 상기할 수 있다. 화학에 관한 한 괴테는 뉴톤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는 입장이 아니다.
정적인 공헌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 그 당시 약 1,679년경부터 시작된 천문학에 관한 그의 심도 있는 연구를 시작할 때부터, 뉴톤은 분명히 어떤 화학적인 힘과 유사하고 아울러 아마도 수학적으로 보다 연구하기가 쉬운 힘처럼 천체 사이의 새로운 인력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6년후쯤 그의 이와 같은 수학적 연구는 전연 예기치 못하였던 한 결론을 얻게 되었다 : 천체 사이의 힘이나 자유낙하하는 물질의 가속도와 같은 힘은 단순히 유사한 것이 아니라 아주 동일하다는 결과였다. 인력은 각 천체에 한정되어 있지 않으며, 태양계를 통과하는 혜성들에조차 마찬가지라는 결론이다. 뉴톤은 화학적인 힘을 발견하던 개념과 유사한 방법으로 천체의 힘에 관한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되었다. 특정한 찬화력은, 서로 다른 화합물에 따라 다르며 각 화합물은 정성적으로 서로 다르게 세분화된 것임을 알아냈다. 그가 실제로 발견한 것은 어떤 보편적인 법칙이었으며, 이는 그가 강조한 대로, 모든 현상에 적용할 수가 있었다-화학, 기계 또는 자연의 천체 현상을 모두 포함한다.
그러므로 뉴톤 통합은 어떤 경이로움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통합은 오늘날 과학적 세계가 뉴톤을 현대과학의 상징으로 추앙케 하였던 전혀 예기치 못한 놀라운 발견이었다. 특히 놀라운 것은 자연의 기본적인 비밀이 하나의 단순한 창조적인 행위로 모두 파헤쳐진 것으로 보였던 사실이다.상당히 오랜 동안, 이갇은 자연에 대한 갑작스럽고 떠들썩한 발견은, 뉴톤, 즉 영국의 모세의 개가로서, 유럽대륙의 모든 이성주의자들의 지적인 스캔들의 한 근원이 되었다. 뉴톤의 업적은 경험적으로 그릇된 것으로 반증될 수 있는 것과 꼭같은 순전히 경험에 바탕을 두었던 발견으로 비유할 수 있게 되었다. I747년, 의심할 여지없이 그 당시 위대한 과학자 중에 속하였던 오일러, 클레로 그리고 다람베르는 갇은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 뉴톤은 옳지 않다. 달의 운동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인력에 대하여 보다 복잡한 수학적 형태가 반드시 주어져야 했으며, 두 인력을 합한 개념에 이르러야 했다. 그후 2년간 그들은 자연이 뉴톤의 오류를 입증해주고 있다고 믿게 되었으며, 이와 같은 믿음은 실망이 아니라 흥분의 원천이 되었다. 뉴톤의 발견을 물리적인 과학 자체의 동의어로 간주하기는 커녕. 물리학자들은 스스럼없이 뉴톤의 개념 모두를 물리학에서 삭제시켜 버릴 계획을 하기에 이르렀다. 다람베르는 뉴톤 개념에 반대하기 위한 명쾌한 증거를 추구하는 면밀한 연구를 수행하기에 이르게 되었으며 그를 저항할 수 없는 자에 대한 비겁한 짓 (le coup de pied de l'ane)으로 말하기까지 하였다.6) 불란서에서 단 한 사람만이 이와 같은 판단을 반대하는 용기 있는 발언을 제기한 예가 있다. 1748 년 뷔퐁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6) Hankins의 Jean d'Alembert, pp .29-35에서 그는 뉴톤의 "실수”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
어떤 물리적인 법칙은 단지 측정하기 쉽다는 사실 덕택에 한 가지 법칙이 되며, 그 법칙이 적용될 수 있는 범위는 언제나 같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유일하다…… 클레로는 뉴톤 체계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나섰으나, 이는 기껏해야 어떤 반대일 뿐이며 한 원리가 되어서도 안되며 될 수도 없는 일이다. 어떠한 반론이든 원리를 이룩하려는 의도가 극복되도록 행해져야 하며 단순한 계산에 의한 한 가지 완전한 결과로부터 반론의 이론을 이루어서는 안된다. 본인이 언급한 바, 누구든 계산의 방편에 의해서 어떤 견해를 나타낼 수 있는 것 외에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다. 그리고 만약 인력의 법칙과 갇은 물리적인 법칙에 한두 가지 항목을 첨가할 수 있도록 허용될 수 있다면, 실재를 나타내는 임의성을 더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7)
7) G . L . Buffon, "Reflexions sur la Joi d'attraction, " Introduction a l' histoire des mi nera1a(1774), Tome IX of Oeuvres Completes(Paris : Garnier Freres), pp .75-77의 부록.
그후 뷔퐁은, 비록 짧은 기간 동안이었지만, 화학의 한 가지 연구 프로그램이 되었던 견해를 발표하였다 :
서로 분리되어 있는 다른 성분을 이루고 있는 부분이 균일한 새로운 물질을 형성하는 수단으로서 친화력의 법칙은 서로 다른 모든 천체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지배하는 보편적인 법칙과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그들은 같은 방법으로 작용하며 질량과 거리의 동일한 비율로 작용한다 ; 한 작은 물방울이나, 모래나 금속의 덩어리는 달과 지구가 상호작용하는 것과 똑같은 형태로 다른 방울이나 덩어리끼리 작용하며, 만약 친화력의 법칙이 중력의 법칙과 다른 형태로 간주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였거나, 완전하게 파악을 하지 못한 때문이며, 문제의 전체 범위를 포괄하지 못하는 데 기인된다. 천체의 경우에는 대단히 먼 거리가 수반되므로 두 천체 사이의 인력의 법칙에 천체의 형태가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거나 아주 없으나, 그와는 반대로, 일반적인 물체를 이루는 성분 사이에는 고려하는 두 물체간의 거리가 매우 짧거나 거의 없으므로 물체의 형태가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의 후예들은, 계산에 의해서, 이와 같은 새로운 분야의 지식에 근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이는 즉, 고려하는 물체의 형태로부터 두 기본 물체 사이의 인력의 법칙을 연역해 내는 일이다) .8)
8) G. L. Buffon, Histoire naturelle. De la Nature, Seconde Vue(1765), H . Metzger, Newton, Stahl, Boerhaave et la doctrine chimique (Paris : Blanchard, 1974), pp.:57-:58에서 인용.
역사는 자연주의자들의 정당함을 입증해 주고 있는데, 그들에게 있어 힘은 수학적인 책략일 뿐만 아니라 자연에 대한 과학 자체가 되었다. 물리학자들은 그후 그들의 오류를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후 50년이 지난 후, 라플라스는 그의 『우주체계 (Sys teme de Momde)』를 저술할 수 있었다. 보편적인 중력법칙은 모든 형태의 실험에 성공적으로 들어맞는다 : 분명하게 이 중력법칙의 그릇됨을 입증하기 위한 숱한 경우들이 바로 이 법칙의 적합성을 명쾌히 입중해 주는 결과로 변모되어 버렸다. 동시에, 뷔퐁의 영향 아래, 불란서 화학자들은 물리적인 인력과 화학적인 친화력 사이의 기이한 유사성을 재발견해내었다.9) 다람베르, 콘디야크, 콘도르세
9) A .Thackra y ., Atom and Power : An Essay on New tonian Matter Theory and the Development of Chemistry (Cambridge ; Mass. : Harvard University Press, 1970), PP.199-233에서 블란서 화학이 Buffon의 개념으로 되어 버린 방법을 기술하고 있다 . Berthollet의 Stalique chmique는 Buffon의 프로그램을 완성하였으며 또한 이를 폐쇄시켰는데, 그 이유는 그의 제자들이 뉴톤개념에 일치하는 관점에서 화학반응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였기 때문이다.
의 빈정거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굽히지 않던 합리주의는 이같은 추상적이고 버려진 “유사성”에 적용될 수 있었으며, 반대 방향에서 뉴톤이 걸어 갔던 경로를 터얼거리며 걸어왔을 뿐이었다 -바로 별들로부터 물체로 19세기초에 이르러 뉴톤의 구상은― 모든 물리화학적 현상을 고려하는 개체간의 작용력으로 단순화하는 것(중력과 같은 인력에 부가하여, 이 경우에는 별이 밀치는 힘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로부터 물체의 전기 및 자장은 물론이려니와 팽창하거나 서로 용해되는 현상이 설명될 수 있었다) 一라플라스학파의 공식적인 교육 프로그램이 되었으며, 나폴레옹이 유럽을 지배하였던 시기에 유럽의 과학적인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10)
10) 우리들은 여기서 블란서에서 뉴톤의 승리의 이유, 또는 이의 쇠퇴 이유를 설명하고 싶은 의도는 없지만, 적어도 이들 사건과 과학의 전문화 과정의 재단계 사이의 시대적 연계성을 강조하고 싶다. 더 자세한 사항운 위해서는 M. Crosland, Tlze Society of Arcueil : A View of French Science at The Time of Napoleon(London : Heinemann, 1960)은 물론이려니와 그의 Gay Lussac (Cambridge :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8)을 참조할 수 있음.
19 세기 초는 유명한 불란서 학교들이 나타나게 된 시기이며 여러 대학의 재조칙화가 일었던 때였다. 당시는 바로 과학자들이 교육자나 직업적인 연구원이 되어 그들 후예의 훈련의 임무를 담당하기 시작한 때였다 .II) 또한 당시는 지식의 어떤 통합을 추구하고, 이를 모아 교과서나 민중에 보
11) Thomas Kuhn은 미래 과학자의 형성에 인계되는 과학기관의 역할을 하였다―이는 그들 스스로의 생성을 인식시켜 주면서,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것과 같은 과학적 활동의 주요 특징을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이 문제는 또한 M. Crosland, R . Hahn, and W. Farrar의 The Emergence of Science in Western Europe, ed. M. Crosland(Macmillan, 1975)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급하기 위한 책들에 포함시키기 시작한 때였다. 과학은 더이상 어떤 제한된 집단의 살롱에서만 토론되지 않고, 가르치고 일반화되기에 이르렀다 .12) 이는 직접적인 콘센서스가 되어 갔으며 교사등의 권위가 되어 갔다. 최초의 콘센서스는 뉴톤 체계에 집중되었다 : 불란서에서 뷔풍의 확신은 마침내 계몽적인 이성적 회의 를 넘어 승리의 개가를 이루게 되었다.
영국에서 뉴톤의 숭배가 있기 시작한 지 100년이 지나서 다음과 같이 암페어의 아들에 의해서 언급된 몇 줄의 호언장담의 내용은 교황의 비문에까지 인용되게 되었다 .13)l2) 불란서에서 Gaston Bachelard와 같은 철학자들에 의해서 그렇게도 경멸되었던 "현세적" 흥미의 역할은 18세기 과학의 개방적 특성의 징후로서 받들여져야만 한다. 어느 면에서 우리는 적어도 과학적 문명이 관심을 두었던 것에 대한 18세기 동안의 어떤 퇴보에 대하여 진실되게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날 과학적인 일등이 비전문가들에 의해서 토의되었던 각지역 및 지구 반구의 여러 대학에서의 중복성을 인식하여야만 한다.
13) J. Schlanger, Les metaplwres de l'organisme(Paris : Vrin, 1971). p. 108과학의 메시아, 그 도래를 알리면서 케플러는 창천의 먹구름을 일소해 버렸다. 연후에 말씀은 인간을 만드시고, 인간은 하느님을 예언하는 말씀을 창조하였다. 플라톤을 존경하였던 인간은 뉴톤을 신으로 부르게 되었으니, 뉴톤은 신처럼 지극과, 영원과, 보편, 유일의 원리를 말씀하게 되었고 모든 우주가 침묵할 때, 그는 인력을 말씀하였다. 이 말씀은 창조 그 자체의 말씀이었다.*
* 필자들의 영문 번역 내용임 .
참시 동안, 이같은 장담은 지워지지 않는 표징으로 남아 있었으며. 과학은 정치적 세력을 떨치던 나라에서 찬양받았고, 인식되고, 명예롭게 되었으며 일관성 있는 우주개념의 교수로서 갈채를 받게 되었다. 라플라스에 의해 숭배된 뉴톤은 이 황금기에 보편적 상징이 되었다. 이는 행복의 순간이었며, 실로 과학자들은 자신들뿐 아니라 일반인들로부터 진보의 선두주자로서 사회에서 융성하고 지속된 진취적인 정신을 수행하는 이들로
여겨지게 되었다. 장(field) 이론, 상대성원리, 양자역학이 도래한 오늘날 뉴톤 통합의 중요한 의미는 무엇가? 이는 대단히 복잡한 문제이며 우리가 계속해서 재음미해야 할 문제이다. 이제 자연이란 언제나 “그 자신 편안하고 조화되어” 있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미시수준에서, 고전역학의 제I법칙은 양자역학의 제I법칙으로 대치되어 버렸다. 아울러, 우주의 차원에서 상대성 물리학은 뉴톤 물리학을 바꾸어 놓았다. 고전물리학은 두말할 나위 없이 자연적인 기준접으로 남아있다. 더욱이 이같은 기준점으로 정의한 맥락에서-이는, 결정론적이며, 가역적이며, 정적인 궤적을 의미하는데 뉴톤 동력학은 아직도 물리학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물론, 뉴톤이 고전적인 동력학을 확립한 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이는 해밀톤과 뿌앙카레와 같은 위대한 몇몇 수학자나 물리학자들의 연구 업적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요약하여, 두 시대를 구분할 수 있다. 첫째로 는 일반화와 명료화의 시기였다. 다음으로 두번째의 시기는 초기조건이나 궤적의 의미와 같은 고전동력학의 핵을 이루는 개념들 자체가 고전동력학이 적용될 수 있는 분야에서 (양자역학이나 상대성 원리와는 대조적으로) 어떤 면밀한 재고가 진행된 시기이다. 이 책이 씌어지고 있던 순간이나, 20세기가 끝나는 때에, 우리는 아직도 이 두번째의 시기에 머무르고 있을 것이다. 이제 19세기 과학자들에 의해서 발견되어 온 동력학의 언어에 다시 관심을 환기시켜 보자(제9장에서 필자들은 간략히 현시대의 고전동력학의 부활을 언급할 예정이다).동력학의 언어오늘날 고전동력학은 함축성 있고 또한 일목요연하게 공식화될 수 있다. 나중에 언급되겠지만, 동적인 계의 성질은 소위 해밀돈의 단일한 함수로 요약할 수 있다. 동력학의 언어는 놀라울 정도의 일관성과 완벽성을 나타낸다. 어떤 명확한 공식을 각각의 “정당한 문제에 부여할 수가 있다. 동력학의 구조가 I9세기 이후 인류의 상상력을 옳은 것으로 매료시키기도 하였고 간담을 서늘케 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동력학에서 이와 같은 서로 다른 견해는 임의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수들이 변해 가는, 변환의 측면에서 볼 때 동일하다. 동력학의 제법칙의 적용이 적합할 때 상응하는 다양한 의사를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다양한 그러나 서로 상응하는 의사의 표시들이 동력학의 일반적 언어를 형성한다. 이와 같은 언어는 임의의 체계를 정의하는 데 영향을 주는 고전적 동력학의 정적인 특징을 명확하게 나타낼 수 있다 : 여러 경우의 동력학적 계에서, 시간이란 단순히 우발적인 것으로 나타나며 이로써 고려하는 계의 정의는 서로 간섭되지 않는 기계적인 계의 정의로 단순화될 수 있는 점이다. 보다 간단하게 이와 같은 개념을 소개하기 위하여 먼저 에너지 보존의 원리로부터 토의를 시작하여 보자.마찰이나 충돌의 효과가 전혀 배제되어 있는 동력학의 이상적인 세계에서 기계는 효율치가 l이 될 수 있다―동력학적인 계는 기계들이 단순히 의부로부터 받아들인 운동량의 전체를 전달하는 기능으로 구성되어 있다. 임의의 양의 위치에너지를 받는 한 기계는(예를 들면, 어떤 압축된 스프링이나, 치켜 올려진 무게, 그리고 압축된 공기 등) 같은 양의 운동에너지에 상응하는 움직임을 얻어낼 수 있으며, 이는 정확히 고려하는 기계장치가 어떤 움직임을 얻어내기 위하여 쓰여진 위치에너지를 회복하는 데 소요되는 양이 된다. 가장 간단한 경우는 고려하는 힘이 단지 중력인 경우이다(이 힘은 도르레, 지렛대, 맞 따위를 감아올리는 기구 등 간단한 장치에 적용된다). 이와 같은 경우에서 움직임의 원인과 결과 사이의 상응된 전체의 관계를 쉽게 세울 수 있다. 어떤 물체가 낙하하면서 통과하는 높이 (h)는 전적으로 그 물체가 낙하하는 동안 얻어진 속도로 결정된다. 질량 m의 물체가 수칙으로 낙하하든, 경사진면을 굴러내려오든, 또는 로울러 코우스터의 경로를 따르든, 얻어진 속도 V와 운동에너지 (mv2/2)는 떨어진 준위 h(v= )에 의존되며 고려하는 물체를 원래의 높이로 환원시킬 수 있다. 이같이 위쪽으로 환원하는 움직임에 대해 소모된 일의 양은 위치에너지, mgh로 회복하게 되며, 이때 위치에너지는 고려하는 계가 낙하하는 동안 잃었던 에너지이다. 또다론 예로서는 추의 운동을 들 수 있는데 이때의 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는 연속적으로에너지 형태가 변환된다.
물론, 지구를 향하여 낙하하는 임의의 물체 대신에, 만약 물체 사이에 서로 상관작용이 있는 대상계를 취급한다면, 상황은 위의 경우보다는 생생하게 마음에 그리기가 다소 어려울 것이다. 여하간, 각 경우에 운동에너지의 전체 변화는 위치에너지의 전체 변화를 보상케 된다(고려하는 계내의 두 점간의 거리의 변화에 제한된).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중요한 사실은 고립되어 있는 임의의 계내에서 에너지는 역시 보존된다는 사실이다. 위치에너지 (통상 V로 표기한다)는 고려하는 입자의 상대적인 위치에 의존하며, 이는 임의의 기계를 제작하는 엔지니어가 기계의 공간 배열의 변화의 결과로서 얻어낼 수 있는 운동량을 측정하는 힘을 보다 일반화시킨 양이 된다(예를 들면, 기계의 한 부분에 해당하는 질량 m의 물체의 높이 변화는 바로 위치에너지 mgh를 제공하는 개념이다). 더욱이, 위치에너지는 정의하려고 하는 계의 서로 다른 지점간의 각 순간에 적용할 수 있는 힘의 집합을 계산할 수 있도록 하여 준다. 각 지점에서, 임의의 공간좌표 q에 대한 위치의 미분값은 동일좌표 방향의 각 점에 적용된 힘을 나타낸다. 뉴톤의 운동법칙은 따라서, 주된 양으로 힘 (force) 대신 위치 함수를 사용함으로써 체계화할 수 있게 된다. 각순간 어떤 질량점의 속도의 변화는(또는 운동량 p로서 질량과 속도의 곱으로 표시된다) 질량의 좌표 q에 대한 위치의 미분값에 의해 측정될 수 있다.19세기에 있어서 이같은 공식은 해밀톤(H)이라고 하는 새로운 함수의 도입을 통하여 일반화되었다. 이 함수는 단순히 전체에너지로서 고려하는 계의 위치 및 운동에너지의 합으로 표시된다. 그러나, 이 에너지는 더이상 위치나 속도의 항으로 표시되지 않으며, 통상 q와 dq/dt로 표시되나, 소위 정준(canonical)변수――-좌표와 운동량――로서 표준적인 표기는 q와 p로 나타낸다.자유입자와 같은 간단한 경우에는 속도와 운동량(p=m dq/dt) 사이의 간단한 관계가 성립되나, 일반적으로 상관관계는 더욱 복잡하다. 단일함수, 해밀톤H(p, q)는 고려하는 계의 동적 상태를 완전히 정의하여 준다. 모든 경험적 지식을 H의 형태로 나타낼 수 있다. 원리적으로는 적어도, 일단 이 함수를 알게 되면, 모든 가능한 문제를 풀어낼 수 있다. 예을 들어, 좌표와 운동량의 시간에 대한 변동은 단순히 p 또는 q에 대한 H의 미분값으로 주어진다. 이와 같은 동력학의 해밀톤 체계화는 과학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취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이 개념은 전기나 자장이론까지를 포괄적으로 설명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양은 또한 양자역학 분야에서 지금껏 폭넓게 쓰여지고 있다. 나중에 언급되겠지만 해밀토니안 H의 의미는 물론이려니와 양자역학에서의 의미를 보다 더 일반화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사실이다 : 그때에 가서 H는 더이상 단순한 좌표와 운동량의 함수가 아니며 새로운 종류의 구성요소인, 임의 연산자 (operator)가 된다(이에 관한 의문은 제 7장에서 다시 언급된다). 해밀톤 정의는 문제의 성격에 따라서 오늘날까지도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남아있다. 해밀톤의 미분값을 동한 좌표와 운동량의 시간 변동의 세부를 제시하는 이 방정식은 소위 정준 방정식으로 부른다. 방정식은 모든 동적 변화의 일반적 성질을 포함한다. 여기서 우리는 자연의 수학화라는 승리를 구가하게 되었다. 고전동력학에서 적용되는 모든 동적 변화는 이상의 간단한 수학 방정식의 표현으로 단순화된다. 이들 방정식을 이용함으로써, 위에서 언급한 고전동력학에서 의미하고 있는 일반적 성질을 입증할 수 있다. 정준 방정식은 가역적이다 : 시간의 반전은 수학적으로 속도의 반전에 상응된다. 그들은 또한 보존적이다 : 고려하는 계의 에너지를 정준변수―좌표와 운동량―로 표시하는, 해밀토니안은 그 자체가 시간의 경로에 관한 변화로부터 보존되는 양이다.
앞서 주지한 바와 갇이 운동방정식의 해밀토니안 형태가 지켜지고 있는 다양한 견해나 "표현 (representa ti ons)”이 존재한다 . 그들은 다양한 좌표와 운동량의 선택에 해당할 뿐이다. 동력학의 가장 근본적 문제 중의 하나는 고려하는 계의 동적 묘사를 가능한 가장 간단하게 얻어내기 위해서 적철한 쌍의 정준변수 p와 q를 어떻게 정밀하게 선택하는가를 결정하는 일이다. 예를 들면, 경우에 따라서는 해밀토니안이 운동에너지만으로 단순화되어 단지 운동량(그리고 좌표에는 독립적인)에만 의존하는 정준변수를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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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I. 동일한 동력학계의 두 가지 표현.
(a) 일련의 상호작용하는 접둘의 집합으로서의 표현 . 각점간의 상호작용은 과상의 선으로 표시하였다. (b) 각점이 서로 독립적으로 거동하는 집합으로 표시하고 있다. 위치 (potential)에너지는 제외되었고 각각 움직임은 그들의 상대적 위치에 명확히 의존되지 않는다.이와 같은 경우 놀라운 사실은 운동량은 운동의 상수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사실상,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운동량의 시간변동은 정준 방정식에 따라 좌표에 대한 해밀토니안의 미분값에 의존한다. 이같은 미분값이 사라져 버릴 때, 운동량은 진실코 운동에 상수가 되어 버린다. 이는 임의의 "자유입자” 계에서 발생하는 변화와 유사하다. 자유입자 계를 취급할 때 수반되는 것은 어떤 변화를 표시하는 데 있어 일체의 상관성을 “제거시키는 점이다. 계는 "적분 가능계"로서의 정의가 가능한 것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적분이 가능한 한 계는 고립된 상태에서 각 변화하는 상태가 다른 모든 물체와는 독립적인 집합의 합으로 표시될 수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가 영원과 불변의 운동을 천상의 천체의 탓으로 돌린 연유를 설명해낼 수가 있다(그림 I).
이미 주목하였던 대로 동력학에서는 “모든 것이 주어진다.” 이 문장이 뜻하는 바는, 임의의 초기순간으로부터, 운동의 다양한 불변량의 값은 고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 어떤 변화도 “우연히 발생하거나 일어나지” 않는다. 여기서 바로 자연을 정의하는 데 임의의 靜的인 그립으로 단순화한 과학의 역사상 가장 극적인 순간의 한 시기에 이르게 되었다. 사실상, 변수의 교묘한 변화를 통해서, 모든 상관성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자유입자로 단순화할 수 있는 적분이 가능한 체계는 바로 동적인 계의 본보기가 될 수 있는 것으로 믿었다. 수세대에 걸찬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은 고려하는 임의의 계에 대해서 그속에서 존재하는 물체 사이의 상관성을 제거시킬 수 있는 적합한 변수를 찾아내려고 무던한 애를 써 왔던 점이 사실이다. 폭넓게 검토되어 왔던 예 중의 하나는 三 문제로서 아마도 동력학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지구와 태양 모두에 영향을 받는 달의 운동은 이와 같은 문제의 한 예이다. I9세기 말엽에 브런스와 뿌앙카레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한 시기까지 이 달과 지구와 태양의 문제를 어떤 적분 가능한 계의 형태로 표현하기 위한 무수한 노력이 경주되었다. 이 사건은 사실상 매우 놀라운 것이 되었으며 적분가능한 계라는 가정을 근본으로 하는 동력학의 모든 단순한 연장의 종말을 선포하는 결과가 되었다. 브런스와 뿌앙카레의 이 발견은 서로 다른 동력학적 계라 할지라도 서로 동일구조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단순히 적분 가능한 계는 상관성이 없는 단위로 단순화할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상관성은 도저히 제거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당시 그와 갇은 새로운 발견은 명백하게 이해되지는 못했으나, 동적 세계는 균일하며, 적분 가능한 체계로 단순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불식시키게 되었음을 시사하여 준다. 진화가 수반되고 다단하게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 자연을 무시간적이며 보편적인 체계로 단순화하려는 인간의 노력에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동일한 방향을 가리킨다 할지라도 그곳에는 다른 형태의 암시가 존재한다. 궤적은 결정론의 법칙에 상응한다는 점을 언급한 바 있다 : 일단 초기 상태가 주어지면 운동에 대한 동력학의 법칙은 미래 또는 과거 임의의 각 점에서 궤적을 계산하는 일이 허용된다. 그러나 어떤 궤적은 임의의 특이접에서는 원천적으로 결정할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단단한 추로 이루어전 계의 운동도 질적으로 다른 거동의 형태를 나타낼 수 있다-――추는 매달려 있는 각점에서 진동하거나 추의 운동 방향과 다른 움직임을 계속적으로 할 수 있다. 만약 처음 추를 당겼다 밀치는 것이 속도가 0인 수직위치로 충분히 갈 수 있도록 주어졌다면, 추의 운동은 자유낙하의 양상을 갖게 될 수 있으며, 따라서 추의 운동의 특성은 결정할 수 없게 된다. 임의의 무한소의 요동은 추를 회전시키거나 진동시키기에 충분할 수 있다(운동의 "불안정성”에 대한 이같은 문제는 종합적으로 제9장에서 토의된다). 막스웰이 일찍이 이같은 특이점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면화약의 폭발을 정의한 후에, 그는 다음과 x은 말을 하게 되었다:
그와 같은 모든 경우에는 공통적인 한 가지 부대상황이 존재한다 ―계는 운동으로 변환될 능력을 지니고 있는 임의의 양의 위치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고려하는 계가 어떤 특정한 배열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운동으로 변환될 수 없으며, 그와 같은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일정량의 일에너지의 지출이 필요하게 되는데, 어떤 상황에서 소요되는 일량은 무한히 작을 수 있으며, 일반적으로는 그와 같은 결과로서 발전 생성되는 에너지에 대하여 특정한 비례관계는 성립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동절기 서리에 의해 느슨해진 산기슭의 임의의 특이점에 간신히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바위덩이나 작은 불씨가 큰산 전체를 불태우게 되며, 단 한마디의 말이 인간세계를 전쟁의 도가니로 휩쓸어넣는다거나, 작은 망서림이 한 인간의 어떤 의지의 행위를 못하도록 하기도 하며, 작은 균 포자가 감자밭을 고갈케하고, 작은 말투 하나가 인간을 철인이나 바보로 만드는 일이다. 임의의 계급 이상의 모든 존재는 그 자체의 특이점을 갖고 있다 : 신분이 높으면 높아질수록 그와 같은 특이점이 많아진다. 이와 같은 특이점에서 물리적으로 중요성을 갖는 영향은 어떤 특정한 존재를 고려하기에는 그 효과가 너무도 미미하지만, 때로는 엄청나게 중요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인간의 노력에 의해 얻어지는 모든 위대한 결과는 이와 같은 단일상태들이 발생될 때 이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크게 의존된다 .14)14) J . C . Maxwell, Science and Free Will, in Campbell and Garnett의 앞에서 인용한 문헌 443페이지 . L. Campbell & W. Garnett, The Life of James Clerk Maxwell (London, Macmillan, 1882)
이와 같은 개념에는 특이점을 포함하는 계를 식별하기 위한 적절한 수학적 테크닉이 결여되어 있었으며, 후에 언급되겠지만, 오늘날 그와 같은 특이점이 진실로 본질적인 기능을 하는 데 대한 깊은 통찰력을 제공해 주고 있는 화학 및 생물학적 지식이 없었던 관계로 더아상의 정교한 진전을 기대할 수 없었다.
어쨌든 라이프니쯔의 단자론(4절의 결론을 참조할 수 있음)으로부터 오늘날까지 예를 들면(보어 모델의 전자의 정지되어 있는 상태-제7장을 참조할 것), 적분 가능한 계는 동력학의 말 그대로 최고의 모델이 되어 왔으며, 물리학자들은 사실상 해밀톤 방정식의 특별한 종류의 성질을 모두 자연적인 변화를 해명하는 데 연장시키려는 노력을 경주하여 왔다. 이는 참으로 이해할 만한 일이다. 적분이 가능한 계의 부류는 단지 유일하며, 이에 대해, 바로 최근까지, 철저히 탐구되어 왔다. 더욱이 임의의 모든 문제를 의미가 없는 것으로 규정하지 않는 한 폐쇄시켜 버린 계는 모든 문제를 취합할 수 있는 매력적인 가능성을 늘 지니고 있다. 동력학은 그와 같은 임의의 언어이다. 완전하기 위하여, 동력학의 언어는 그 개념 자체가 동력학이 정의되는 세계와 시간과 공간의 맥락을 같이한다. 동력학에서는 모든 문제를, 단순하든, 복잡하든간에, 일반적으로 동일한 언어로 나타낼 수 있는데 모든 문제는 서로 유사한 것으로 나타내어진다. 따라서, 모든 문제는 그 문제의 해답의 견지에서 볼 때 서로 동일하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는 유혹에 잠길 수 있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문제를 적분하는 절차상의 복잡성의 다소의 경우를 배제하고는 어떤 새로운 결과도 표출되지 않는 것으로 묵살해 버리는 경향을 갖고 있다. 이 점은 오늘날 어떤 오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본연의 균질성이라 하겠다. 더욱이, 기계적 우주견해는 모든 측정 가능한 변수를 한 가지 방법이든 또는 다른 방법이든간에 운동을 의미하는 한 수용이 가능하였다. 이제 이같은 상황은 더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예를 들면, 불안정한 입자는 운동에 연루될 수 있는 임의의 에너지를 포함하고 있으며 제4장 및 5장에서 언급될 비가역과정에 보다 밀접하게 관계된 임의의 전혀 다른 형태의 측정이 가능한 양의 시간 길이를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갖는다. 이론과학에 새로운 측정 가능한 변수의 도입 필요성은 옛날에도 있었으며 오늘날까지도 같다. 이는 인류가 기계적인 견해를 넘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유도력의 하나이다.
라플라스의 비범성앞서 언급했던 동력학적인 묘사로부터의 연장은 임의의 상징-라플라스에 의해 상상하였던 非凡-을 가지고 있으며 우주의 한 부분을 형성하고 과거나 미래 양편을 향하여 전화됨을 의미하는 각 질량의 위치 및 속도를 주어진 순간순간에 측정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아무도 라플라스의 비범한 생각에 내포되어 있는 지식으로부터 어떤 물리학자가 어느날 큰 도움을 얻게 되리라는 사실을 꿈꾸지는 못했다. 라플라스 자신도 이와 같은 허구를 인류가 무시하는 가능한 정도까지 입증하고 어떤 과정의 통계적 묘사의 필요성으로서 사용하였을 따름이었다. 라플라스 비범의 문제성은 사건의 경위를 임의의 결정론으로 예견이 가능한지 여부에 대한 문제, 즉, 적법성 (de jure)의 문제이다. 이와 같은 가능성은 동력학의 법칙과 초기 조건에 근거를 둔 2원성의 특성을 갖는 기계론적 묘사에서 암시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동력학적 계가 어떤 결정론적 법칙에 지배된다는 사실은, 비록 실제에 있어서 초기상태에 대한 우리의 무지가 결정론적인 예견의 어떠한 가능성도 배제케 한다 할지라도, 마치 라풀라스의 비범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고려하는 계의 객관적 진실은 우리들의 무지에 기인하는 경험적인 제약과는 분별된다. 고전동력학의 맥락에서, 임의의 결정론적인 묘사는 실제로 얻어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 물론, 일련의 접증되는 정확한 묘사를 정의하는 제한점으로 대변된다. 이는 고전역학의 부활의 측면에서 도전되어 오는 동력학 법칙과 초기조전에 의해 형성된 이원성과 엄밀한 일치를 나타내며, 이에 대해서는 제9장에서 언급될 예정이다. 그곳에서 다시 볼 수 있듯이 운동은 너무도 복잡하고, 궤적은 너무도 가변적이 될 수 있는바, 아무리 관찰이 정밀하다 할지라도 정확하게 그에 대한 초기조건을 결정할 수 있는 관찰이란 가능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상황에서는 고전역학에서 토대를 이루었던 이원성은 붕괴되어 버린다. 우리로서는 기껏해야 숱한 궤적의 무리에 대한 평균적 거동만을 예측할 수 있게 된다.
현대과학은 모든 사물이 영혼이 있을 수 있다는 소위 물활론적인 인간과 자연의 결연을 타파함으로써 탄생케 되었다. 인간은 소위 아리스토텔레스 우주에서 의미하는 생활과 지식장조의 공간을 소유하고 있는 듯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는 그의 추량에 의해 만들어졌다. 최초의 실험적 대화는 또다른 동맹 (alliance)-이 경우는 기독교 정신에서의 이성적인 신- 으로부터 사회적으로 철학적으로 어느 정도 합당한 대우를 받게 되었다. 동력학의 이와 같은 역사적 상황의 함축성이 오늘날 우리 시대까지 존속되고 있기 때문이다.과학은 아직도 어떤 神 인 또는 악마와도 같은 견해로부터 우주에의 묘사에 대한 예언적인 알림으로 남아 있다. 우주에서 진실을 벗겨낸 모세, 이는 뉴톤의 과학이다. 이는 계획적인 과학이며 인류사회 활동의 결과로서 간주되는 사회 역사적 맥락과는 다른 성질의 것이다. 이와 같은 형태의 계시적 강론은 물리학의 역사 전체를 통하여 발전되고 있다. 이 점은 각각의 관념적 혁신을 수반케 되었으며, 각개의 경우는 물리학이 통일의 시점에 있거나 실증주의의 사려 깊은 가면을 벗어 버릴 때에 나타난다. 매 경우마다 물리학자들은 암페어의 아들이 너무도 명백히 언급하였던 바를 반복한다 : 이 말씀은-보편적 인격, 에너지, 장이론, 또는 기초소립자――-바로 창조의 말씀이다. 매번마다-19세기 말영의 라플라스의 시대 또는 오늘날에조차__一물리학자들은 물리학이란 어떤 폐쇄된 책 또는 그렇게 되기 직전에 있는 것이라는 점을 말하여 왔다. 자연이 계속해서 저항하여 온 유일한 최후의 요새가 존재하여 왔으며, 종국에는 이와 같은 저항의 요새는 방어력이 없어지곤 하였고, 정복되었고 인간의 지식에 의해 복종되었다. 따라서 부지불식간에 태고적 신앙의 향연을 계속하여 오고 있다. 물리학자들은 새로운 모세의 도래를 알리게 되었고, 그와 함께 새로운 과학의 구세주적인 시기를 체험하였다.누군가는 이와 같은 예언적 주장을 봉식해 버리기를 원할 수 있으나, 그렇다면 그것은 다소 연약한 열정에 불과할 것이며, 확실한 것은 자연과의 대화는, 늘 새로운 이론적인 언어와, 질문과, 그리고 새로운 해답을추구하는 점에 있어 언제나 같은 노력이 경주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과학자들의 "실제적인” 업적과, 그가 판단하고, 해석하고 연구 결과를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추는 것 사이의 어떤 경직된 분리를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이를 수용하는 것은 과학을 역사성을 배제한 결과만의 축적으로 만드는 것이며, 과학자들이 추구하고 얻으려고 노력하는 이상적인 지식과 과학자들이 때때로 다두거나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상태로 남이 있게 되는 이유에 전연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만든다.15) 다시 한 번, 현대과학의 신화에 의해 발생된 수수께끼를 풀어내어 체계화한 사람을 칭하자면 바로 아인슈타인이었다. 그는, 단 하나의 전실로 놀라운 양태의 기적이란, 바로 과학이 존재토록 하는 것이며, 자연과 인간 정신 사이의 수령을 발견할 수 있는 힘이 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와 비슷하게, 19세기말에, 레이몽은 라플라스의 비범을 현대과학의 논리의 화신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는 "무지한 자의 무지한 짓”이라고 덧붙였다 : 인간은 과학의 세계와 이 과학을 알고, 지각하고, 창조한 정신 사이의 관계에 대해 전혀 무지할 따름이다.16)
I5) 이 문제는 불란서 철학자 Michel Serres의 주요 테마 중의 하나이다. 예를 들면 그의 La naissance de la physiquedans le texte de Lucrece (Paris : Minuit , 1977)에서의 “조건을 보라. M. Serres의 몇몇 교과서는 Johns Hopkins University의 불문학과의 경이스런 열성의 덕택으로, 영역판이 출간되었다. M . Serres, Hermes, Literature, Science, Philosophy. (Bait-imore :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82)를 예로 들 수 있다.
16) 라플라스 비법의 운명에 관해서, E. Cassier, Determinism and Interdeterminism iModern Plzysics (New Haven, Conn . : Yale University Press, 1956), pp.3-25를 볼 것.자연은 수천의 음성으로 말하며, 인간은 이제 겨우 듣기 시작하였다. 물론, 거의 두 세기에 걸쳐 라플라스의 비범은 우리의 상상 속에 새겨져 있으며, 모든 사물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어떤 악몽을 가져다 주고 있다. 만약 우주가 바로 어떤 귀신-결국은 우리들과 같이, 과학을 소유하는 어떤 존재이지만, 그러나 계산의 보다 날카로운 감각과 위대한 힘을 지닌 존재-이 어떤 순간에 관찰을 시작하여, 이의 미래와 과거를 계산하는
게 정말로 진실이며, 만약 어떤 비범이 필요한 보다 복잡한 체계로부터 정의될 수 있는 단순한 계에 대해 정성적인 분해도 가능하지 않다면, 이 때 우주는 단지 끝없는 반복에 불과하다. 이 점은 바로 과학이 도전하고 있는 것이며 우리의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며, 오늘날 우리가 몰아내야 할 악마에 대한 주문일 것이다.
제3장
두 개의 문명디드로와 삶의 이야기전보 개념의 역사성에 대한 홍미 있는 저서에서 니스베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아마도, 거의 삼천년간이나 서구문명이 지녀 온 단일의 관념으로 "진보의 개념” 보다 중요한 사상은 없었다.I)1) R. Nisbet, History of the Idea of Progress (New York : Basic Books, 1980), P.4.
서구문명에서 진보의 개념이 지식의 축적보다도 더 강력하게 지지받은 때는 일찌기 없었다. 이와 같은 지식의 점증적인 증가의 웅대한 장관은 정말로 어떤 성공적인 인간집단이 지녔던 습성의 찬연한 예증이라 할 수 있다.
I8세기 말엽과 19세기초에 성취되어 온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발견을 회상하여 보자 : 열, 전기, 자력, 그리고 광학의 이론들. 이미 I8세기에 명쾌히 체계화된 과학적 진보 개념이 19세기를 지배하게 된 사실은 놀랄 만한 것이 아니다. 이미 지적하였듯이, 아직도 서구문명에서 과학의 위치는 불안정한 상태에 머물고 있다. 이와 같은 점은 합리주의철학이 한창꽃피던 때로부터 진보 개념의 역사에 대한 국적인 양상을 지니게 되었다. 이미 그에 대한 대안을 언급하였듯이 이 대안은 과학적 의견을 달리하는 견해로 미루어 생각되는 것과 함께 수용하거나 반과학적 형이상학으로 돌려 버리려는 대안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또한 파스칼이나, 키에르케고르, 또는 모노 등이 정의하였던 의로움과 같은 현대인들이 느꼈던 고독을 이미 강조한 바 있다. 하이데거의 형이상학의 과학적 함축성을 언급한 적도 있다. 이제 우리는 서구의 지적인 역사, 디드로, 칸트, 그리고 헤겔로부터 화이트헤드와 베르그송에 이르는 석학들의 공통된 양상을 보다 폭넓게 토의하고 싶다. 그들 모두는 현대과학에 급진적으로 상충되는 것으로 비춰진 새로운 시각을 여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현대과학을 분석하고 한계 범위를 정의하려는 시도를 추구했던 사람들이다. 오늘날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것은 그와 같은 노력의 대부분이 실패의 오류를 낳았다는 사실이다. 극소수의 사람은, 예를 들어, 우주를 현상적인 것과 실체적 우주로 생각한 칸트의 개념, 또는 과학의 의미와 평행되는 의미를 갖는 어떤 지식으로의 제2의 경로라는 생각을 지녔던 베르그송은 직관 등을 받아들였다. 아직도 그와 같은 시도는 인류의 유산의 일부분을 차지한다. 개념의 역사는 그들에 대한 어떤 기준이 없이는 이해될 수 없다. 우리는 간략히 과학적 실증론을 언급할 테지만, 이는 과학적으로 유용한 것으로부터 진실인 것의 분리에 근거를 둔 것이다. 최초의 이와 같은 실증주의적 견해는 이미 언급한 형이상학적인 견해, 베르그송이 반계몽으로서 규정하고 있는 견해와는 분명히 반대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근본적 결론은 같다 : 비록 과학의 중요성을 인식하거나 또는 동시에 실증주의자들이 그러하였듯이, 다른 인식할 수 있는 진취성의 가능성을 부정한다 할지라도 진실된 지식을 토대로 하는 과학을 우리는 거부해서는 안된다. 이와 같은 발전은 무엇이 위태로운 상태에 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기억해야만 한다. 과학은 인간을 포함하여, 어느 정도까지 자연의 명료함을 이해하기 위하여 기본이 되어야 하는가? 오늘날 진보 개념이 뜻하는 바는 대체 무엇인가?
계몽의 선각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디드로는 확실히 반과학사상의 대변인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지식의 가능성 속에서 과학의 확신이 그가 지녔던 사상의 전부였다. 이는, 아직까지, 디드로 이후부터, 왜 과학이 자연에 대한 일목요연한 시각을 성취하려는 희망을 갖기 이전에 생명을 이해해야만 하는가 하는 이유의 전부이다. 이미 언급한 바 현대과학의 탄생은 생명론자의 영감과, 특히, 아리스토텔레스 철학론의 최후의 주장을 포기한 것으로부터 특징지을 수 있다. 그러나 생명을 갖는 사물의 조직에 관한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었으며 고전과학의 도전분야가 되었다. 뉴톤의 놀라운 개가가 최고의 상승분위기에 있었을 당시, 디드로는 이 문제는 바로 물리학에 의해 억압당하여 왔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 문제를 꿈속이 아닌 맑은 정신 아래에서는 생명에 관한 문제를 상상할 수 없었던 물리학자들의 어떤 꿈으로서 상상하고 있었다. 물리학자 다람베르의 꿈은 이러하였다:
어떤 생명이 있는 점 ……아니다. 그것은 잘못되었다. 우선, 생명이 있는 점이란 전연 아무 존재도 아니다. 이 생명점은 서로 연합되며 연속적인 조합에 의해 유일한 존재가 탄생하게 되며, 따라서, 나는 어떤 유일한 존재이며, 이로부터 확실한 존재이다…… (그가 말하듯이 이 점은 그 자신의 모든 면에서 느꼈던 사실이다.) 그러나 어떻게 이와 같은 단합이 일어났는가?철학자여 들으라, 이제 나는 어떤 작은 덩어리, 감각을 갖는 작은 집합의 한 개 세포를 이해할 수 있으나, 어떤 한 개의 동물은!…… 전체요, 한 개의 체계는 한개의 단위요 그 자체의 개별적인 의식은 하나인데, 나는 그것을 도대체 볼 수가 없다.2)2) D. Diderot, d'Alembert's Dream (Harmondsworth : , Eng. : Penguin Books, 1976) , pp. 166-67.
다람베르와의 한 상상적인 대화에서, 디드로는 기계론적 해설의 부적합성을 제일 처음 입증해 보이고 있다 :
이 달걀을 보십시오 : 이와 함께 당신은 신학의 모든 종파를 뒤엎을수 있으며 이 세상의 모든 교회를 전복시킬 수 있다. 이 달걀은 무엇인가? 어떤 유전세포에 앞서 임의의 무감각적인 물체가 그 달걀에 포함되어 있다…… 어떻게 하여 이 무감각적인 물체가 감각이 있고. 생명력을 지니는 새로운 조직으로 전화되는가? 열을 통하여 보자. 열은 그 달걀 속에서 무엇을 생성해낼 수 있단 말인가? 운동의 연속적인 영향은 무엇인가? 내게 답하기에 앞서, 대좌하여 한순간 한순간을 우리의 눈을 통하여 이와 같은 영향을 따라가 보자. 최초로, 그곳에는 매우 작은 한 점이 움직이기 시작하여, 한 실과 같은 것이 자라고, 색상을 띠게 되며, 살을 형성하고, 부리, 날개짓, 눈, 다리 등이 시야에 전개되게 될 것이며 감겨 있거나 들어져 있지 않은 노란색을 띠는 물체가 창자가 되고-연후에 당신은 어떤 살아 있는 창조물을 갖게 될 것이다……이제 달걀의 껍질을 깨고 새가 나와 걷고, 나르고, 고통을 느끼고, 달아나고, 되돌아오고, 불평하고, 고통을 겪고, 사랑하고, 갈망하고, 줄기고, 그 새는 당신의 모든 애정과 당신이 해 주는 모든 일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고도, 당신은, 데카르트와 더불어, 이를 순수하고 단순한 어떤 흉내내는 기계로 믿고 있을것인가? 철학자들이 만약 그와 같은 달걀이 단순한 한 개의 기계와 같다면 당신도 한 개의 기계에 불과하다고 말할 때 아주 어린 애들조차 당신을 비웃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만약에 당신이 당신과 한 동물과의 유일한 차이는 단순한 조직체의 차이라는 점을 시인할 때, 당신은 지각과 이성을 보일 것이며 진실한 믿음 속에서 행동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당신이 말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게 될 것이다 : 활력이 없는 물체로부터 일련의 방법에 의해 배열되고 또다른 활력이 없는 물체를 잉태하고, 열과 운동을 하게 됨으로써, 당신은 지각과 생명, 기억, 의식, 열정, 생각 등을 얻게 될 것이라는 결론을 말입니다……바로 당신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때 그들이 얼마나 가련한가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설명하는 - 감각은 모든 물체가 갖는 공통적인 어떤 성질이며, 물질을 조직화한 결과라는-――단순한 가정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게 됨으로써, 비로소 어떤 상식적인 것으로부터 자유로이 비상하며
신비와, 모순과, 어리석음의 균열 속으로 빠져들어감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입니다.3)
3) D. Diderot, "conversation Between d'Alembert and Diderot, 앞에서 인용한 문한 d'A lembert's Dream, pp, 158-159.
이성적인 기계나 물질적인 자연이란 단순히 활력이 없는 물체요 운동이라는 주장에 반대하여, 디드로는 물리학의 가장 오래된 태고적부터의 영감의 원천이었던, 이름하여, 성장, 세분화, 그리고 생식세포의 구성 등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동물에 있어 살점은 소위 부리와, 눈과, 창자를 형성한다. 이는 어떤 생물학적 공간에서의 점증적인 자기 -구성이 일어나는 것을 의미하며 겉보기에 균일한 환경으로부터 벗어나 정확한 시간에 세분화되는 형성이 진행되며 복잡하고 대등한 과정의 영향을 통하여 발생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비록 뉴톤의 물질이 중력의 상관작용에 의해 활력을 갖는다 하더라도, 어떻게 불활성 물질이 생동력 있는 부분적 구조를 구성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뉴톤 체계는 어떤 커다란 우주 체계임을 보아 왔다. 어떤 신체들의 부분적인 배열이 특정한 개체를 나타낸다고 말할 수가 있다. 일반적인 관계에 의해 연계된 물체 사이의 혹 있을 수 있는 근접된 관계 이상은 아무것도 없다.그러나 디드로는 실망하지 않는다. 과학은 단지 시작이다. 이성적 기계란 단순히 지나친 추상적인 접근이다. 생식세포의 상관관계는 바로 보편성의 주장을 논박하기에 충분한 사실이다. 이 점이 바로, 디드로가 오일러, 베르누이, 그리고 다람베르와 같은 위대한 "수학자”의 업적을 이집트인의 피라밋에 비교하여, 그들을 세워낸 사람들의 위대한·천재성에서 경건한 영감을 목격하였으나, 이제는 생명력이 없는 유물이며, 외롭고, 버려진 것들이라 하는 이유이다. 전정한 과학은, 살아 있고 그리고 결실을 맺으며, 어느 곳에선가 진행되어 갈 것이다.4)4) D . Diderot, Pensees sur L 'Interpretation de la Nature (1754) , Oeuvres Completes, Tome II (Paris : Gamier Freres, 1857) , p, 11.
더욱이, 디드로는 조직화된 살아 있는 물체에 대한 새로운 과학은 이미
시작되어 가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그의 친구 돌바크는 화학을 열십히 공부하고 있었으며 디드로 자신은 의학을 선택하였다. 의학은 물론 화학의 문제는 불활성의 물체를 그 자체가 조직화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며 생명력을 지닌 존재를 형성하는 활력이 있는 물체로 대체하는 것이다. 디드로는 물질이란 지각적인 것을 지녀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록 어떤 돌멩이라 하더라도 이를 구성하고 있는 분자들은 다론 것들보다는 오히려 동종의 분자와의 조합을 추구하고 그들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에 의해 지매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임의의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전체 오가니즘의 감각은 단순히 이를 구성하는 부분들의 총화이며, 마치 임의의 벌 떼가 전체적으로 지니는 동일적인 습성은 개개의 한 벌과 다른 벌들 사이의 상관관계로서 볼 수 있다. 그리하여 디드로는, 인간의 영혼은 벌집처럼 영혼 이상의 아무것도 지니지 않았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5)
5) Diderot는 이 견해를 Dream에서의 의사 Bordeu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디드로의 생명론은 물리학과 운동의 보편적인 제법칙에 대한 반항이며 이로부터 어떤 형태의 이원적 유심론에 대한 거절이 되어 버렸다. 자연은 반드시 인간의 존재 자체가 이해될 수 있는 방법에 의하여 정의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는 기계론적인 우주의 견해에서 발생하는 것과 같이 자연의 과학적 정의는 어떤 정신을 부여받은 한 개의 기계로서, 그리하여 자연과는 조화되지 않는 것으로 대응되는 인간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디드로가 살았던 시대의 물리학에 대항하기 위해 사용하였던 기계적 유물론의 이중적 토대, 즉 화학적인 것과 의학적인 것이 I8세기에 다시 일기 시작하였다.
생물학자들이 동물-기계나 생식세포의 존재 이전의 유전자라든가, 생명력이 있는 창조물의 연쇄—-_모든 문제는 신학에 밀접되어 있던 6)一에 관하여 고려하는 동안 화학자나 물리학자들은 화학과 생명 두 가지 범주 내에서 실제과정의 복잡성의 문제에 직접적으로 직면하게 되었다. 화학과 의학은 I8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자연적인 과정의 다양성을 고려6) 예를 들면 • A . Lovejoy, The Great Chain of Beings (Cambridge, Mass . : Harvard University Press, 1973)을 볼 것.
하였던 과학을 지지하면서 물리학자의 옹고집에 대항하여 싸워온 사람들을 위한 어떤 특전을 부여받은 과학이 되었다. 어떤 물리학자는 순수한 정신을 지닐 수 있는 조숙한 아이였던 반면에, 의사나 화학자는 반드시 경험을 지닌 사람이어야 하였다 : 그는 어떤 조짐을 해독해낼 수 있어야 했으며, 임의의 실마리를 짚어내야 하였다. 어느 면에서, 화학과 의학은 예술이었다. 그들에게는 판단과 그리고 집요한 관찰이 요구되었다. 화학은 어떤 미친 사람의 열정으로, 베넬이 디드로의 자서전을 위해 쓴 글에서 결론을 맺기로는, 뉴톤의 추상적 제국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화학의 감동적인 방어였다.7) 디드로의 시대에서는 물리학자들이 생명이 있는 물체의 과정은 평온한 메카니즘이나 밝혀져 있는 보편적 법칙에 의해 단순화시키려 하였던 방법에 대항한 화학자나 의사의 이견을 제시하였던 일이 아주 상식이었던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활성론의 아버지요 최초로 일목요연한 화학의 체계론을 발명한 스탈의 탁월한 사상을 다시 거론하여 보자.
7) 역사가 Gillispie는 Encyclopedie에서 Diderot에 의해 보급된 수리물리학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과, 학술원의 폐쇄와 Lavoisier의 죽음에 의해서 분명해진 이와 같은 공식적인 과학에의 혁신주의적 적대감 사이의 임의의 상관관계를 제안하였다. 이것은 아직도 논쟁의 쟁점이 되고 있으나, 확실한 것은 불란서에서 뉴톤이론의 승리는 장인을 능가하는 국립학술원의 최후의 승리로 점철된 나폴레옹시대적 학교기관들과 일치되고 있다(C. C. Gillispie, MThe Encyclopedie and the Jacobin Philosophy of Science : A study in Ideas and Conse- quences, Critical Problem in the History of science, ed . M. Clagett (Madison, Wis. : University of Wisconsin Press, 1959), pp.255-89를 참조.
스탈에 따르자면, 보편적인 법칙은 단지 이 법칙에 의해 유기체를 죽게하고 부패케 하려는 의도의 관점에서 생명력을 갖는 존재에 응용된다 : 살아 있는 유기체를 이루고 있는 물질이 너무도 연약하고, 너무도 쉽게 살해되므로, 만약 이들이 물질의 보편적 법칙에 의해 지배된다면, 아마도 부패를 견디지 못하고 당장 용해되어 버릴 것이다. 만약, 생명을 지닌 창조물이 물리학의 보편적 제법칙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수 있다면, 비록 그 생명이 바위덩이나 불활성 물체에 비교할 때 매우 짧은 생명의 순간을
지닌다 할지라도, 이 유기체는 그 자체의 신체 조직이나 세포의 조화 있는 평형을 유지하는 "보존의 원리”를 소유하게 되어야 한다. 유기체를 구성하는 물질의 극단적인 부패성의 견지에서 그와 같은 생명을 갖는 유기체의 놀라운 장수의 문제는 임의의 불활성 무기체에 적용되는 법칙과는 상이한 특별한 원인의 자연적, 영구적, 그리고 어떤 내적인 원리를 나타내 주는 것이며 이와 같은 법칙이 어쩔 수 없이 적용되어야 하는 쉬임없는 활발한 부패작용의 끊임없는 두쟁의 가능성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8)
8) G. E. Stahl, Veritable Distinction a. effitablir entre le mixte et le vivant du corps humain, Oeuvres medicophilosophiques et pratiques, Tome Il(Montpellier : Pitrat et Fils, 1861), 특히 pp.279-82.
우리에게 있어서 생명의 이같은 분석은 가깝고도 아주 먼 것처럼 들린다. 생명의 기묘함과 불확실성에 대한 예리한 인식의 면에서 보면 이같은 일은 우리에게 매우 가깝게 들린다.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스탈이 생명을 됨 또는 진화의 측면에서가 아니라 정적인 측면과 보존의 측면에서 정의하고 있다는 데서 매우 먼 것으로 들린다. 아직도, 스탈이 사용했던 용어가 최근의 생물학 자료들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어떤 책에서 는 효소는 부패에 무쟁하고 구성물체는 물리학에 의해 냉혹한 운명에 있는 죽음에 방어할 수 있도록 허용된다는 내용을 읽을 수 있다. 여기서 또한, 생물학적 조직은 자연적인 법칙에 항거하며, 유일한 “정상적 추세는 이와 같은 투쟁이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사실로 정의되는 대부분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제5장 참고).
사실상, 스탈의 활성론은 물리학의 제법칙이 부패와 해체로의 진화를 입증해 보이는 한 적합한 개념일 수 있다. 오늘날 생명의 원리는 생체 구조를 지배“하는 유전자 전달이 유지되는 믿기 어려운 변화의 연속 개념으로 대신되어 버렸다. 물론 분자생물학으로부터 출발하는 외삽적 연장은 생명을 자연의 한계 속으로 분류하여 버린다―~이는, 생명이란 물리학의 제법칙과 양립되지만 또한 혹 있을 수 있는 우연이라고 귀결된다. 이 점은 모노에 의해 명백히 언급되었던 접이다. 생명은 물리학의 제법칙에 따르지 않으며, 제법칙에 양립될 수도 있다. 생명은 인류가 반드시인식하여야만 할 어떤 특이성을 갖는 사건이다.” 그러나 물체로부터 생명으로의 전환은 또다른 임의의 방법으로 견주어 볼 수 있다. 뒤에서 언급되겠지만, 평형으로부터 멀리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자기-구성 과정이 발생한다(이들 의문은 5장 및 6장에서 보다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이와 같은 방법에서 생물학적 조직은 자연적인 과정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근의 발전 훨씬 이전에, 생명의 근원에 관한 불확실한 문제는 변천되어 오기 시작하였다. 정치적으로 변혁의 물결이 일기 시작한 유럽에서 지성적인 견해는 낭만주의운동으로 재조명되기 시작하였으며, 반합리주의철학 또는 반계몽운동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었다.스탈은 인간의 기계론적 비유는 생명이 있는 존재와는 달리, 기계론적 인간의 목적은 그 자체 내에 놓여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서슴없는 비판을 해댔다 : 기계론적 인간의 조직은 이룰 만들어낸 사람에 의해 부과되기 때문이다. 디드로는, 생명의 연구는 과학의 범위 밖의 아주 요원한 곳에 위치해 있으며, 이에 관한 연구는 과학의 미래를 대표하는 것으로 보았고 현재로는 아주 미흡한 초기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수년 후에, 그와 같은 관점이 도전받기 시작하였다이 기계적 변화는 운동의 법칙에 의해 정의되는 활동으로서 이제 와서는 인위적인 것과 죽음과의 동의어가 되어버렸다. 이와는 반대로, 현재 우리에게 아주 익숙해져 버린 임의의 복잡성 내에서 결합되는 것은 생명, 자발성, 자유, 그리고 정신의 개념들이었다. 이와 같은 반대는 한편으로는 계산과 조작 사이의 반대와,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의 추론적 활동의 자유와 병행되어 있다. 철학자들의 추론을 통해서 정신적인 활동은 자연의 핵심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과학자로서, 자연에 대한 그의 관심은 아마도 자연을 일련의 조작이나 추량이 가능한 물체로서 간주하는 식으로 단순화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아마도 자연을 소유하고, 지배하고 통제할 수는 있었을지 모르나 자연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따라서 자연에 대한 명료한 이해는 과학의 파악범위를 초월해 있었을 것이다.9) Stahl과 낭만주의자들 사이의 “조직”의 의미의 변천에 대한 정의를 위해서는 J. Schlanger, Les metaphores de l'organisme을 참조할 수 있음
여기서 우리는 철학역사의 관심뿐만 아니라 과학의 철학적 비판이 이
시대에 있어 더욱 거칠어 가고 반과학의 현대적 형태와 의형을 함께하는 정을 우려하고 있다. 이는 이제 더이상 -- 디드로의 언어를 빌어 - 어린이들조차 비웃게 하기 위하여 소리높여 반복해야만 하는 다소간 연약하거나 안목이 결여된 일반적 논박의 문제는 아니며, 자연에의 실험이나 수학적 지식에 의해 얻어진 접근형태를 논박하는 문제이다. 과학적 지식은 이의 제한점 때문에 비판되고 있는 것은 아니며, 이의 성격과 그리고 또다른 근접방법에 근거한, 반대의 지식이 공표되는 것 때문에 비판된다. 지식은 어떤 의문의 두 가지 상반되는 형태로 갈라져 버린다.
한 철학적 견해로서, 디드로로부터 낭만주의로의 전환, 보다 엄밀히는, 과학을 향한 두 가지 형태의 비판적 자세를 칸트의 초월철학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칸트비판의 본질적인 점은 일반적으로 뉴톤 실험에 의한 과학임이 입증되고 있다. 그러므로, 과학 자체의 반대가 아니었던 고전과학의 어떤 형태의 반대도 불가능한 것으로 인상지워진다. 뉴톤 물리학에 반대하는 어떠한 비판도 임의의 다른 형태의 지식을 바라는 자연의 이성적 이해에 대한 격하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칸트의 접근은 엄청난 반향을 일게 하였으며, 이는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따라서 그가 『순수이성비판(Crtique of Pure Reason)』에서 언급하고 있는 견해를 요약하여 보자. 이는 계몽주의가 규정하고 있는 과학에 대한 폐쇄되고 제한된 개념만을 나타내는 진보주의자들의 견해에 반대된다.칸트의 비판적 실증과학과 자연을 연결하는 이성적 원칙으로서 믿어져 왔던 신의 존재가 자취를 감춰 버린 혼란 속에 남겨진 인류 지성의 풍경은 어떻게 질서를 회복할 것인가?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접근하여 왔던 우주의 전리에, 어떤 은유적인 방법을 제의하고는, 이제는 더이상 단언할 수 없게 된 과학이 창조의 말씀을 해독하는 새로운 우주의 진리에 어떻게 근접할 수 있는가? 신은 이제 침묵하고 있거나 적어도 더이상 인류가 사유하는 것과 동일한 언어로 말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더욱이, 시간이 제거되어 버린자연 속에서, 남아 있는 인류의 주관적 경험은 무엇인가? 자유와, 운명과, 윤리적 가치의 의미는 무엇인가?
칸트는 그곳에 실재의 두 가지 차원이 있다고 주장하여 왔다. 현상적 차원은 과학에 상응하며, 본체적 차원은 윤리학에 일치한다. 현상적 질서는 인간의 마음에 의해서 창조되었다. 본체적 차원은 인간의 지성을 초월한다. 이는 인류의 윤리와 종교적 삶을 유지시켜 주는 영적인 실재에 상응된다. 어느 면에서, 칸트의 해답은 윤리적 실재와 고전과학에서 나타나는 객관적 실재의 양면성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유일한 해답일 수 있다. 신의 존재 대신, 이제는 자연 속에서 그가 지각하고 있는 질서의 근원은 바로 인류 자신인 것이다. 칸트는 과학이 규정하는 현상적 세계로부터의 인류의 소의와, 과학적 지식과 현상 모두를 정당화하고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칸트의 철학은 고전과학의 철학적 내용을 보다 자명하게 해주고 있다.칸트는 비판철학의 주제를 어떤 초월적인 것으로 정의한다. 칸트 철학은 경험의 대상을 상관하지 않으며 이들 대상에 대한 임의의 체계적 지식이 가능하며 (그에게는 이 점이 물리학에 의해 증명되고 있다), 이와 같은 형태의 지식에 대한 가능성의 선험적 조전을 언급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어떤 의부 세계로부터 받는 직접적인 감흥과 객관적이며 "합리적"인 지식의 형태 사이에 분명한 구분을 필요로 한다. 객관적인 지식은 수동적이 아니다. 객관적인 지식은 그것의 대상을 형성한다. 어떤 현상을 경험의 대상으로 취할 때, 인간은 이 현상이 주어진 일련의 원리를 따르고 있다는 것을 실제로 경험하기 이전의 선험적 사실로서 가정한다. 그렇게 하는 한 현상은 어떤 가능한 지식의 대상으로 생각되어 버리며, 인간의 총체적 활동의 소산이 되어 버린다. 인간은 그 자신이 지식의 대상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며, 과학자들 자신은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 속에서 발견하는 보편적 법칙의 근원이 되어 간다.경험의 선험적 조건은 또한 경험 대상의 존재를 위한 조건이다. 이 경탄할 문구는 칸트의 초월적 물음에 의해 성취된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을 말해 준다. 주체는 더이상 대상의 주위를 윤회하지 않으며, 이를 지배하는 법칙이나 비밀을 탐독할 수 있는 언어를 발견하기 위해 추구된다. 이제 주체 자체는, 이의 법칙에 의해 중심에 있게 되었으며 인간이 지각하는 우주는 바로 그 주체의 언어로 말을 한다. 그렇다면, 뉴톤 과학이 우주를 의부로부터, 거의 神的인 견해로 정의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별로 이상하지 않다. 모든 생각할 수 있는 현상이 인간의 마음에서 나온 법칙에 의해서 지배되는 일은 대상의 어떤 확실한 지식이 무용지물임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 칸트에 따르면 과학은 자연과 대화를 하려 하지 않으며 단지 자연에게 인간의 과학적 언어를 부과할 뿐이다. 앞으로 인류는 각각의 경우에 대하여, 이와 같은 보편적인 언어 속에서 특정상황에 대한 메시지를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선험적 개념에 대한 어떤 지식도 그 혼자만으로는 소용이 없고 알멩이가 없을 뿐이다.
칸트 철학의 견해로 볼 때 과학적 신비의 상징으로서 라플라스의 비범성은 단지 환상일 뿐이지만, 그러나 이는 이성적인 환상이라 할 수 있다. 비록 불합리적일 수 있는 제한적인 과정의 결과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적법적인 확신의 표현이며 바로 과학의 유도력이 되어 왔다. 그 확신은 자체가 완전한 것으로서 자연은 과학자들이 성공적으로 해독해 가고 있는 제1법칙에 올바르게 부합되어 왔다. 어느 곳을 가든가, 무엇을 묻든간에, 과학은 언제나, 같은 대답은 아니나, 적어도 비슷한 부류의 대답을 늘 얻게 될 것이다. 그곳에는 모든 가능한 대답을 포함하는 유일하고 보편적인 구문론이 존재한다.따라서, 초월철학은 물리학자들이 모든 긍정적 지식의 규정적 형태를 발견하여 왔노라고 주장하는 내용을 실증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초월철학은 과학에 대한 철학의 지배적인 위치를 확보하게 되었다. 과학적 행동의 결과에 대한 철학적 중요성(의미)을 더이상은 추구할 필요가 없어졌다. 초월적 견해로부터 그와 같은 결과는 전실로 새로운 어느 상황에도 인도될 수 없었다. 철학의 주제는 과학 자체이며 과학의 결과는 아니다. 과학은 초월적 회상을 위한 안정적 토대를 제공해 주는 반복적이며 폐쇄적인 행위로 택하였다.그러므로, 초월철학은 과학의 모든 주장을 실중하는 반면, 칸트의 비판철학은 실제로 과학적 행위를 쉽거나 소용이 없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는문제로 제한시켜 버린다. 칸트의 과학철학은 인간의 운명의 문제, 인간이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반드시 해야 할 명제는 무엇인가, 무엇에 희망을 두고 있는가, 등의 문제 자체를 방치해 두면서 현상의 단조로운 언어를 해독해내려는 지리한 과업으로 비난된다. 과학에 의해 연구된 우주, 실증적 지식으로 근접될 수 있는 세계는 "단지” 현상의 세계일 뿐이다. 과학자들은 사물 자체를 알아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묻는 의문조차도 인류의 실질적 문제에는 적합치 않다. 아름다움, 자유, 그리고 윤리는 실증적 지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와 같은 것은 가상적인 세계에 속하며. 철학의 영역이며, 현상적 세계와는 전연 어떤 연관성도 지니지 못한다.
우리들은 칸트의 출발점인 과학적 묘사에서 인간의 능동적인 역할에 대한 강조를 받아들일 수 있다. 실험이란 고려하는 문제에 대하여 임의의 법칙에 의해 가설적으로 지배되는 상황을 선택하며 명쾌한 실험적 해답을 제시하는 예술로서, 실험에 대해 이미 많이 언급한 바 있다. 각각의 실험에 대해서 임의의 원리는 미리 가정되며 따라서 그 실험 자체에 의해서 확립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앞서 보아 왔듯이, 칸트는 그와 같은 현실 이상을 다루고 있다. 칸트는 가능한 과학적 견해의 다양성, 미리 가정된 원리의 다양성을 부정한다. 고전과학의 신비에 일치하며, 칸트는 과학이 자연과 속삭이는 유일한 언어를 추구하고 있으며 물리학이 근거를 두고 있는 선험적 원리의 유일한 집합을 찾고 있는데 이는 곧, 인간이해의 범위 속에서 입증되어야 하는 것으로 믿고 있음이다. 그러므로 칸트는 과학자의 능동적인 선택의 필요성, 명확한 질문을 할 수 있고 실험적 해답을 추구할 수 있는 특정 언어와 일치하는 문제적 상황의 선택에 대한 필요성 등을 부정한다. 칸트의 실증적 비판은 과학적인 노력을 그 자체 내에서 침묵하면서 체계적으로 폐쇄되어 있는 것으로 정의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철학은 자체가 자연과는 무관한 것으로 생각하는 자유와 윤리의 영역을 포합시켜 가면서, 틈새가 생겨 버리고, 타락되고, 굴종적이며 실증적인 지식의 전체 영역을 과학으로 양도하고 영속화시킨다.자연철학 ? 헤겔과 베르그송
과학과 철학 사이의 칸트 휴전은 매우 깨지기 쉬운 것이었다. 칸트 이후의 철학자들은, 과학과 실재로 과학을 적대시하는 것과 구분되는 지식의 새로운 통로를 전제하는 새로운 과학철학을 지지하면서 이같은 휴전을 붕괴시켜 버렸다. 실험적 대화의 제한 사항으로부터 기인되는 예측은 과학자와 철학자들 사이의 대화의 재앙적인 결과를 절대적으로 통제한다. 대부분의 과학자에 있어서 자연철학은 어떤 사실을 짓밟고 일어선 거만스러우며 불합리한 공론과 동의적인 의미가 되었으며, 사실상 상식적인 사실에 의해 오류임을 증명해 보였다. 한편으로, 대부분의 철학자에게 자연을 다루거나 과학과 경쟁하는 것은 위험의 표정이 되어 버렸다. 과학, 철학, 그리고 인류학 연구의 균열은 더욱더 상호간의 불신과 공포를 조장하는 결과를 낳았다.이와 같은 자연에 대한 사색적 접근의 한 예로서, 먼저 헤겔을 이야기해 보자. 헤겔의 철학은 우주적 차원을 갖고 있다. 그의 체계 속에서 복잡성은 그 증가되는 정도가 자세히 기술되고 있으며, 자연의 목적은 자연의 정신적 요소의 영원한 자기실현이다. 자연의 역사는 인간의 출현과 함께 이루어져 있다. 이는, 자연 자체를 파악하고 있는 영적인 혼의 도래와 함께 성취되어 왔다.헤겔의 자연철학은 뉴톤 과학에 의해 부정된 모든 것을 체계적으로 통합한다. 특히, 역학에 의해서 정의되는 단순한 거동과 생명체와 같은 보다 복잡한 존재의 습성간의 정성적 차이에 기초를 두고 있다. 헤겔의 자연철학은 복잡스런 정도를 감소시켜 갈 수 있는 가능성도 부정하며 그와 같은 차이점은 단순히 외관상의 것이며 자연은 근본적으로 균일하며 단순한 존재라는 개념적 생각을 거부한다. 또한 헤겔 철학은 계급사회의 존재를 인정하며 각 계급 이전의 것을 전제로 받아들인다.뉴톤 시기의 마티에르소설의 저자들처럼 중력장으로부터 인간의 열정까지를 포함하는 파노라마의 세계와는 달리, 헤겔은 계층간의 구분은 당시대 자연에 대한 수학적 과학과는 상충되고 있음을 완벽하게 잘 인식하고 있었다(계층간의 구분은 그 자신의 해석과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으며,우리로서는 그의 구분을 자연 속의 증가 일로에 있는 복잡성에 대한 개념이 각기 새로운 단계에 대해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 시간의 관념과 상응하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 . 따라서, 그는 이와 같은 수학적인 묘사는 가장 사소한 상황에 제한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과학의 중요성을 제한하고자 하였다. 동력학은 물체의 공간과 시간에 관여하므로 수학적 표현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한 개의 블록은 단순히 한 개의 블록이기 때문에 사람을 죽일 수는 없으며, 이 블록이 속도를 얻었기 때문에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이 점이 뜻하는 바는 인간이 공간과 시간에 의해서 살해되었음이다.”10) 그 사람은 소위 말하는 운동에너지 (mv2/2)에 의해 죽었을 뿐이다. 질량과 속도를 서로 교환가능한 것으로 정의하는 추상적인 양에 의해서 동일한 살인 결과는 질량과 속도 중 하나를 감소시키고 다른 것을 증가시킴으로써 실현할 수 있다.
10) 앞서의 인용 문헌, Philosophy of Nature, p.261.
이는 헤겔의 상호교환성과 정확히 같은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서, 수학적 묘사의 조건은 묘사의 역학적 범위가 물리적 성질의 광범위한 스펙트럼이 수반되는 보다 높은 차원”의 묘사에 더이상 만족할 수 없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어느 면에서 헤겔의 체계는 시간과 복잡성의 핵심적인 문제에 대한 일관성 있는 철학적 반응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러나, 몇 세대에 걸친 과학자들에게 있어 헤겔의 체계는 협오와 경멸의 축도였다. 몇년 후에, 헤겔의 자연철학의 원초적인 난제들은 그의 체계가 근거를 두고 있는 것에 대한 과학적인 배경이 쓸모없이 되어 감으로써 더욱 악화되었다. 물론, 헤겔은 그 시대의 과학적 관념인 뉴톤 체계의 거부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II) 그리고, 정확하게 그와 같은 관념은 놀라울만치 빠른 속도로 망각의 피안으로 멀어져 가고 있었다. 고전과학의 새로운 대안을 위한 실험 및 이론적 근거를 추구해 가고 있던 19세기초의 시간 상황보다 더 적절하지 않았던 시대를 상상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비록 이 시기는 뉴톤 과학과 상충되는 것으로 보이는 과학의 실험영역의 놀라운 확장과 이론의 확대에 의해 특징지울 수 있으나 대부분의 그와 같은 이론
11) 이것은 The Emergence of Science in Western Europe의 The Germall Science in Romantic Period, 속에서의 Knight의 결론이다.
은 불과 몇 년 이내에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19세기말에, 베르그송에 의해서 당시 과학에서 받아들일 만한 대안을 추구하는 일이 진행되고 있었을 때, 그는 공통적인 지식의 형태로서 직감에 관심을 돌리게 되었으나, 낭만주의의 형태와는 전연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명백하게 언급하기를, 직감에 대해서 어떤 체계화를 이룩하기란 불가능하며 직감은 늘 부분적이거나 보편화되지 않거나 또는 대단한 주의를 기울여 체계화하여 나아가야 하는 결과를 얻어낼 뿐이라 하였다. 그와는 반대로, 보편화는 "才 ”에 기인되며 가장 위대한 보편화의 성취는 고전과학이라 할 수 있다. 베르그송의 직감은 아주 농축된 관심이나, 사물이 지니는 특성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어가기에는 더욱 더 어려운 노력이었다. 물론, 대화를 위해서 직감은 언어로 재변화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___"전파되기 위해서 아이디어는 전달매체로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12) 이는 끝없는 인내와 숙고를 뜻하며 동시에 실체를 파악13)하기 위해서 상상과 비교가 축적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일반적 용어나 추상적 아이디어의 수단으로는 의사소통이 될 수 없는 것으로 보다 정밀도가 높은 방법을 제안하는 것이다.12) H. Bergson, La Pensee et el mouvant in Oezwres(Paris : Editions du Centenaire, PUF, 1970), p.1285 ; 번역서, The Creative Mind(Totowa, N. J. : Littlefield, Adams, 1975), p_42.
13) 인용문헌 12의 p.1287 : 번역서, P.44.과학과 직감적인 형이상학은 정확하고 명확히 같거나 같아질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자체가 실체를 담고 있다. 그러나, 만약 사고행위의 분산되는 방향을 표시하지 않았을 때 각각은 단지 실체의 반 정도를 포함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들 속에서 서로를 볼 수 있다. 만약 누군가 원한다면 그들은 과학의 부분화와 현상학의 두 갈래의 분야를 볼 수 있다.”l4)
14) 인용문헌 12의 p.1286 ; 번역서, p.44.
이같은 두 개의 분산된 방향의 정의는 과학적 진보의 역사적인 결과로서 생각될 수 있다. 베르그송에 있어, 이 문제는 더이상 당시 물리학의 과학적인 대안을 추구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화학과 생물학은 동력학을 모델로 선택하였다. 디드로가 화학과 의학의 미래에
대하여 꽃피웠던 희망은 무산되고 말았다. 베르그송의 견해에 의하면 과학은 전체이며, 따라서 전체로서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이는 그가 과학의 목적이 사물을 지배하기 위한 실용적인 재능의 산물로 보고 있으며 이와 같은 지배를 성취하기에 필요한 지적 영역의 추상화 및 보편화에 의해 발전된다고 보고 있다. 과학이란 우주를 이용하기 위한 인류의 절실한 필요의 산물이며, 이의 개념은 대상을 조정하거나, 예측을 하며 재현성 있는 행위를 달성하기 위한 필요에서 결정된다. 이 점은 바로 합리적인 역학이 과학의 본질 자체를 나타내며 과학의 실질적인 구현이 되는 이유이다. 역학 이외의 과학이란 모두가 성공스러울수록 이에 비례하여 보다 활성을 잃거나 과학이 실현되는 그 영역의 조직을 붕괴시켜 버리는 모호하거나 서투른 접근방식의 표출밖에 되지 못한다. 베르그송에 있어 과학적 합리성의 모든 제한성은 하나의 결정적인 것으로 단순화시켜 버릴 수 있다. 이것은 시간의 지속성에 관한 이해를 해낼 수 없는데 시간이란 결정론적인 법칙에 의해 연결되어 있는 순간순간 상태의 연속으로 단순화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시간은 발명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시간은 전연 아무것도 아니다.”15) 자연은 변화한다. 자연은 늘 새로운 것의 영속적인 정교함이며, 미리 정의된 모델이 없는 근본적으로 개방된 발전과정 속에 전체로서 창조된 것이다. “인생이란 시간 속에서 전행되며 지탱된다.”16) 지성이 파악할 수 있는 이 진행의 유일한 부분은 조정할 수 있고 계산할 수 있는 성분의 형태로 고정된 상태 아래에서 그리고 시간을 순간의 빗나간 평행선으로 보는 가운데 계속된다.15) H. Bergson, L'evolution creatrice in Oeuvres, p.784 : 번역서, Creative Evolution (London : Macmillan, 1911), p. 361.
16) 인용문헌 15의 p.538 : 번역서, P.54.그러므로, 물리학은 시간으로 채우고 있는 사건과 사건의 궤적 위에 움직이고 있는 위치 T 사이의 동시성을 결합하는 데 제한되고 있다. 물리학은 전체로부터 임의의 사건을 때어내며, 각 순간 새로운 형태에 조합시키고 각 사건과 무언가 색다른 것으로 의사를 교환한
다. 물리학은 사건을 말할 때 공간 내에 전개되어 있는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전체와 격리되어 있는 추상적인 것으로 간주해 버린다. 물리학은 단지 사건의 미소체계를 지니고 있으므로 이를 변형시키려면 아주 심도 있는 현상에 초연하게 고립되어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방법만이 물리학이 지니고 있는 방법을 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리학의 기원은 그와 같은 체계를 고립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 날부터 시작되었다.”17)
17) 인용문헌 15의 p,784 ; 번역서, p,361.
지속성 자체를 이해하게 될 때 과학은 위력을 상실하게 된다. 필요한것은 직감으로서, “마음에 의한 마음의 직접적인 시야이다.18) 순수한 변화와, 실재의 지속감은 정신적인 것이다. 직감은 정신, 지속감, 순수한 변화에서 이룩되는 것이다.19)
18) Bergson, La Pensee et el mouvant, p. 1273 ; 번역서, P.32.
19) 인용문헌 12의 p.1274 ; 번역서, P.33.우리들은 베르그송이 칸트 이후 자연철학이 실패하였던 동일한 방법으로 실패하였노라고 말할 수 있는가? 베르그송은 그가 창출하기를 갈망하였던 직감에 근거를 두고 있는 형이상학을 실질적으로 형체화시키지 못한 것으로 보는 한에서는 실패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헤겔과는 달리, 베르그송은 실패하지 않았다. 그는 운이 좋게도 과학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였는데 이와 같은 이유는 대체적으로 과학은 당시 기반이 견고히 구축되어 있었기 때문으로 믿어진다. 고전과학은 당시 신 이상으로 받들어 숭배된 절정에 있었으며, 따라서 과학의 문제점은 사실상 여전히 인간의 문제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칸트 이후의 비평가들처럼 베르그송은 당시의 과학을 대체로 과학과 함께 인식하려 하였다. 따라서, 그는 과학을 단지 사실상의 (de facto) 합법적인 (de jure) 제한사항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결과로서 베르그송은 과학의 영역과 그밖의 지성적 활동에 대한 각각의 현상(statu quo)을 명확하게 하려고 애썼다. 따라서 그에게 열려 있는 유일한 시각은 어떤 맥을 달리하는 반복적인 접근방식이 단순히 공존할 수 있는 방법론을 도입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비록 베르그송이 고전과학의 개가를 취합해 보려 하였던 방법이 아직까지도 어느 정도 받아들여질 수는 있으나, 오늘날 이 점을 과학적 활동의 영원한 제약에 대한 언급으로는 더이상 용인할 수 없다. 우리는 이를 현상학적인 과학에 의해 프로그램 이상의 것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운동과 함께 연계되어 있는 시간은 물리학에서 시간의 의미를 고갈시키지는 않는다는 점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하여 베르그송이 비판했던 한계는 과학적 접근이나 추상적인 생각을 포기하지 않고 고전적 동력학을 이해하고 보다 보편화된 상황에서 새로운 형식체계를 발견함으로써 서서히 국복되기 시작했다.
과정과 실재 : 화이트헤드앞서 강조하였듯이, 칸트나, 헤겔 그리고 베르그송 사이의 공동적인 요소는 실재에 대하여 고전과학의 접근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접근방식을 담색하려는 것이었다. 이 점은 화이트헤드 철학의 가장 근본적인 목표였으며, 명백히 칸트 이전의 개념이다. 화이트헤드의 가장 중요한 저술인, 『과정과 실재 (Process and Reality)』에서, 그는 우리를 고대시대의 위대했던 철인들과 그들의 관념적 실험을 위한 의문과 다시 접하게 하고 있다.화이트헤드는 인간의 경험을 신체적인 존재로, 자연에 속해 있는 과정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경주하였다. 한편 이와 갇은 추구는 주관적인 경험을 인식, 사고, 그리고 지각의 감지 등의 개념으로 정의한 철학적 전통『 거부하는 도전으로 나타났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신체적인 경험을, 즐거움, 느낌, 식욕, 그리고 동경 등의 견지에서 규정하도록 만들어 버렸다-이는 그가 칭하는 I7세기에 탄생한 과학적 유물론”과 맞붙어 싸우게한 것이 되었다. 베르그송과 마찬가지로, 화이트헤드는 I7세기 과학에 의해 발전된 이론적 체계의 기본적인 부적합성을 지적해내는 노력을 계속하였다:17세기는 마침내 수학자들의 요구에 따라 수학자들에 의해 틀이 짜여진 과학적 사고체계를 만들어내었다. 수학적 사고의 위대한 특성은 추상적인 것을 취급할 수 있는 사고능력이다. 그리고 추상적인 것으로부터 명확한 추론의 예증을 이끌어내는 능력이며, 추상적인 것이 당신이 생각하기를 원하는 것인 한 아주 만족스럽게 유도해낼 수 있는 것이다. 과학적 개념의 무수한 성공은, 한편으로 물질이란 시간과 공간 내에서 물질이 갖는 단순한 소재에 의해 밝혀전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정신은 자각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사유하나 방해받지 않는 것으로서 그들을 수용하는 책무는 사실에 대한 가장 구체적인 것으로서 철학의 문제를 돌려 버렸다.
그러므로, 현대의 철학은 파괴되어 버렸다. 현대철학은 세 가지 극단 사이의 복잡한 양상으로 요동하게 되었다. 이원론자들은 물질과 정신을 동일한 기초로 받아들였다. 일원론자에는 두 부류 사람들이 있는데, 정신을 물질의 내면으로 놓고 있는 부류와 물질을 정신의 내면으로 놓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추상적인 재간을 피우는 것만으로는 결코 17세기의 과학적 체계에 잘못 놓여진 구체성에 의해 도입되는 원천적 혼동을 극복해낼 수가 없다.20)20) A. N . Whitehead, Science and the Modem World, 제 1장 인용문헌 20의 p.55.
그러나, 화이트헤드는 이를 단지 일시적인 상황으로 여겼다. 과학은 혼동 속의 죄수로 머물러야 할 운명에 처해 있지 않다.
우리들은 이미 자연주의철학이 과학에 상반되지 않는 형태로 체계화할 가능성은 없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화이트헤드의 우주는 그와 같이 하기 위한 가장 야심적인 시도였다. 화이트헤드는 과학과 철학 사이에는 어떤 근본적인 모순도 내재하고 있지 않음을 보였다. 그의 목표는 관념적인 영역을 정의하려는 것이었으며 그 속에서 인류의 경험과 물리적인 과정의 문제를 일관성 있게 취급하고 또한 문제가 풀릴 수 있는 조건을 결정하려는 것이었다. 그가 성취한 것은 존재의 모든 형태를, 즉 바위덩이의 존재로부터, 인간 존재의 형태를 특징지워 주는 데 필요한 원칙을체계화한 것이었다. 이 점은 바로 화이트헤드의 견해로 보아 "철학”으로서 행위를 규정하는 보편성이다. 각각의 과학적 이론은 우주의 복잡성으로부터 특이한 일련의 관계를 선택하고 추상화시키는 데 반하여, 철학은 인간경험의 특정한 영역만을 선호할 수는 없는 일이다. 관념적인 실험을 통하여 경험의 모든 차원, 그들이 물리학에 속하든 생리학, 신학, 생물학, 윤리학 등에 속하든 이와 무관하게 수용할 수 있는 일관성을 구축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화이트헤드는 아마도 자연에서 창조적 진화는, 만약 이를 구성하고 있는 성분이 모든 변화나 상호작용을 통하여 존재를 유지할 수 있는 영원한, 개개의 요소로 정의된다면 이와 같은 창조적 진화란 상상할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예리하게 간파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영원한 환상을 만들기 위해서, 연속적이고 늘상 변화하는 플럭스란 함정 속으로 떨어져 간다는 것을 뜻하는 모든 존재를 거부하기 위해서 철학은-“그들을 설명해내는 명쾌한 공적을 베풀기 위하여-언제나 대기하고 있음을 이해하고 있었다.21)21) A. N . Whitehead, Process and Reality : An Essay Cosmology (New York : The Free Press,1969), p. 20.
따라서 화이트헤드에게 철학은 영원함과 변화를 중재하고, 사물을 과정으로 생각하고, 됨은 존재를 형성하며, 개개의 존재가 낳고 소멸되는 것을 증명해내기 위한 것이었다. 화이트헤드의 체계에 대한 보다 자세한 논의는 이 책의 영역을 넘어선다고 믿어진다. 여기서는 그가 증명해 보였던 관계의 철학 ___ 자연의 어떤 요소도 변화하는 관계를 영구히 지탱해줄 수 없다. 각각의 관계는 다른 관계와의 관련으로부터 존재를 부여받는다 ―一과 혁신인 됨의 연계성만을 강조하기로 하자. 창세기의 과정 속에서 각각의 존재는 우주의 다양성을 동일하게 되며, 다양성에 여분의 관계를 가산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존재가 창조될 때 “다수는 하나가 되고, 새로운 존재가 하나 더 증가될 뿐이다."22) 이 장을 결론지으면서, 독자들은 또한 화이트헤드의 영구성과 변화의 문제에 다시 부딪치게 될테지만, 이때의 의문은 물리학에서 야기된 것이다 : 우리는 우주와의 비가역
22) 인용문헌 21의 p.26.
적인 상호관계에 의해 형성된 임의의 존재에 대하여 언급할 것이다. 오늘날 물리학은 구성단위와 관계 사이의 구분과 상호 의존성 모두를 단언하기 위한 필요성을 발견하였다. 이제 인식하는 것은 상호관계가 사실이기 위해서, 사물에 관계된 “자연은 이와 같은 관계로부터 반드시 도출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반면에 그 관계는 사물의 “자연으로부터 유출되어야 한다(제 10장을 참고할 수 있음) . 이것은 예를 들어, 기초소립자 물리학에서 모든 소립자의 보편적인 연계성을 주창하는 소위 구두손잡이 (bootstrap) 철학에 의해 표현되는 것과 같은 "자치적 일관성"을 갖는 논리의 최선두 주자에 해당한다. 그러나 화이트헤드는 과정과 실재에서 언급하기를, 물리학에서 상황은 전혀 다르며, 화이트헤드의 철학은 단지 생물학분야에서 어떤 반향의 메아리를 발견한다.23)
23) Joseph Needham과 C. M. Waddington 모두는 전체로서의 유기체를 보다 긍정적인 방법으로 정의하기 위하여 그들의 노력을 경주하게끔 인도하였던 Whitehead 영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베르그송은 물론이려니와 화이트헤드의 경우는 오로지 과학의 개방된 광범위한 특정만이 과학과 철학 사이의 톰바구니를 메워 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도록 해준다. 과학의 폭넓은 개방성은 딴지 인간의 시간에 대한 재조명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시간을 부정하는 것은 시간을 가역적인 법칙의 단순한 전개로 간단히 만들어 버리는 것이며 자연은 생명을 지닌 존재를, 특히나 인간을 생성시킨다는 가설에 일치하는 개념을 정의하는 가능성을 포기해 버리는 것과 같다. 이제 우리는 반과학적 철학과 과학을 이단시하는 것 중에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할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
"무지한 자의 무지한 짓" : 실증주의자의 긴장고전과학에서 시사되어 온 고전적 합리성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또다른 방법은 과학적 견지에서 가장 수확이 있었던 것과 "진실"인 것을 분별하는 것이었다. 이는 칸트 철학에서의 균열에 대한 또다른 형태이다. 1865년 "자연과학의 목표에 관하여"란 연설에서, 키르호프는 언급하기를, 과학의 궁극의 목표는 운동의 모든 현상을, 이론 역학에 의해서 정의되는 운동으로 단순화하는 것이라 하였다. 유사한 견해가 화학자요, 의학자, 물리학자, 생리학자로서 그 당시 유럽과학의 중추적 기능을 맡고 있었고 독일대학의 학문을 좌지우지하고 있었던 헬름홀쯔에 의해서도 언급된 바 있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자연의 현상은 변화하지 않지만 움직이는 힘을 보유하고 있는 물체입자의 운동으로 거슬러 생각할 수 있으며, 공간 자체의 제한사항에 의존된다."24)
24) H. Helmholtz, Uber die Erhaltung der Kraft(1847). S. Brush의 번역서, Kinetic Theroy, Vol. I, The Nature of Gases and Heal (Oxford : Pergamon Press, 1965), p.92. 또한 Y. Elkana, The Discovery of the Conservation of Energy(London : Hutchison Educational, 1974)와 P. M . Heimann, Helmholtz and Kant : The Metaphysical Foundations of Ober die Erhaltung der Kraft, Studies in /he History and Phylosoplzy of Sciences, Vol. 5(1974) pp. 205-38을 참조하고 있음.
그러므로 자연과학의 목표는 모든 자연의 관찰을 뉴톤에 의해서 체계화되었던 제법칙과 라그란지, 해밀톤, 그밖의 실증주의적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에 의해 연장된 법칙에 짜맞추는 것이었다. 우리는 왜 그와 같은 힘이 존재하며 그것이 뉴톤의 방정식 속에 들어 있었는지에 대해 묻고 싶지는 않다. 어떤 경우에도, 물질과 힘을 "이해"할 수 없으며, 비록 이들 개념은 동력학의 법칙을 세우는 데 지금까지 이용되고 있지만 도우지 알 수는 없는 일이다. 힘과 질량의 원천적 성격이 왜 우리들로부터 숨어 있는 상태로 남아 있는가. 레이몽은 앞서 언급하였듯이, 인간의 지식의 한계를 매우 간략하게 표현하였다 ; 무지한 자의 무지한 짓.(Ignoramus lgnor-amibus). 과학은 우주의 신비에 근접할 아무것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대체 과학이란 무엇인가?
*Ignoramus는 영국의 극작가 George Ruggle(1622)의 작풍 중에 나오는 무지한법률가의 이름으로 법정에 서면으로 제출한 법적 중거의 불충분이 무지에 기인되고 있다는 말에서 인용되고 있음.
이미 우리는 마하의 중요한 견해를 언급했었다 : 과학은 살기 위해 투쟁하는 다원이론의 일부분이다. 이는 인류의 경험을 조직화하는 데 도움을 주며 사유의 이코노미에 이르게 한다. 수학적 법칙은 단지 가능한 실험의
결과를 요약하기 위한 유용한 발명에 지나지 않는다. 19세기 말엽의 과학적 실증주의는 위대한 지적 감흥을 주는 결과를 제기한 바 있다. 프랑스에서 과학적 실증주의는 듀헴이나 뿌앙카레와 갇은 뛰어난 석학의 업적에 영향을 주었다. "경멸할 만한 형이상학”의 진일보한 제거를 위하여 우리들은 비엔나 스쿨에 접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과학은 실증적 지식의 질서를 지키기 위하여 요청되는 모든 실증적 지식과 철학에 대해 관할권을 허가받았다. 이것은 모든 합리적 지식과 의문을 급진적으로 과학에 종속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저명한 급진 실증주의 철학자였던 라이헨바크는 "시간의 방향”에 대한 저술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 물리학을 통한 방법 의에 시간의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어떤 방법도 없다. 어떤 다른 과학 이상으로, 물리학은 시간의 성격에 대해 관심을 두어 왔다. 만약 시간이 객관적일 때 물리학자들은 반드시 사실을 발견해야만 한다. 만약 그곳에 됨이 존재할 때, 물리학자는 반드시 이를 알아야 한다. 그러나, 만약 시간이 단순히 주관적이며 있음이 무시간성일 때, 물리학자들은 실재를 설정하고 우주를 정의하면서 시간을 무시해야 한다…… 물리학의 연구 없이 시간의 성격을 알려는 어떤 노력도 희망 없는 일이다. 만약 시간의 철학적 문제에 어떤 해답이 가능하다면, 이는 수학적 물리학의 방정식으로 기술할 수 있을 것이다.25)
25) H . Reichenbach, The Direction of Time (Berkeley :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56), pp.16-17
라이헨바크의 업적은 시간이란 주제에 대하여 물리학이 무엇인가를 언급할 수 있기를 바라는 어느 누구에게도 매우 중요한 흥미일 수 있으나, 철학자가 아니라 과학자가 도전하는 시간의 문제에 대한 접근방법을 설명하는 자연철학에 관한 중요한 업적이라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대체 철학의 기능은 무엇인가? 종종 언급되어 왔듯이 과학 중의 과학이 되어야 한다. 철학의 대상은 과학의 방법을 분석할 수 있을 것이며, 사용된 개념을 요약하고 해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와 같은 기능은 아마도 앞서의
과학의 여왕을 하녀들과 같은 어떤 것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개념의 분석은 보다더 발전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며, 철학은 과학의 지식과 비교될 수 있는 새로운 지식을 얻어낼 수 있는 다른 방법-논리 및 의미학-을 통하여 이와 같은 방법을 이해한다.
이같은 소망은 앵글로아메리칸 대륙에서 크게 유행하던 분석철학” 속에 지속되고 있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질의의 관심을 최소화시키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여기에서 관심을 두고 있는 문제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기존의 지식을 해명하고 분류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기보다는 이같은 지식의 근본적인 듬을 보다 면밀히 검토하는 데 있다.새로운 출발이 책의 첫번째 부분에서 우리는 한편으로는 고전과학이 가능하게 만들었던 자연과의 대화에 대해,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의 불투명한 문명적 위치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그곳에서 어떤 출구가 가능하였었는가? 이 장에서 우리는 지식의 또다른 방법에 이르기 위한 몇 가지 시도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또한 실재로부터 과학을 구분해내려는 실증적 견해를 고려했었다.과학적인 모임에서 가장 위대했던 흥분의 순간은 과학자들이 어떤 실용적 효용성이 없어 보이는 것 같은 의문, 또는 살아남을 가치가 없어 보이는 질문 - 양자역학의 가능한 해석과 같은 주제나, 금세기 시간의 개념에서 팽창하는 우주의 역할-에 대한 토의를 할 때 종종 일어난다. 만약 실증주의적 견해에서 과학을 임의의 십봉을 사용하는 대수학으로 단순화시키는 것이 받아들여졌다면 과학은 그 자체로서 대부분의 흥미를 잃었을 것이다. 이론적인 개념과 활력 있는 지식 사이의 뉴톤의 통합은 아마도 산산조각이 났으리라. 우리들은 그리스나 로마시대로부터 익숙해져 버린 한편으로는 기술적이며 실용적 지식과, 다른 한편으로는 이론적 지식 사이의 줄일 수 없는 듬새에 대한 상황을 더듬어볼 수 있다.고대사람들에게 있어, 자연은 지혜의 근원이었다. 중세의 자연은 신을말해 주었다. 현세기에 있어 자연은 너무도 침묵함으로써 칸트로 하여금 과학과 진실을 마땅히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간주하게 만들었다. 인간은 지난 두세기 동안 이와 같은 해체된 상황 속에 살아 왔다. 이제 이같은 상황의 종말의 시간에 이르게 되었다. 과학에 관한 한, 시간은 이와 같은 사건이 발생하도록 분위기를 우르익게 만들었다. 우리의 현재의 전망으로부터 지식의 어떤 가능한 재통일을 향한 첫걸음은 열과 열역학에 대한 19세기 이론의 발견이었다. 열역학은 복잡한 체계의 과학”의 최초의 형태로 보인다. 이는 우리가 열역학의 체계화 시대부터 최근의 발전까지를 기술하려 의도하고 있는 과학이다.
제2부
복잡한 系의 과학제4장
에너지와 산업시대열, 중력의 맞수불은 물질을 변질시킨다(lgnis mutat res). 영원의 지혜는 언제나 화학을 "불의 과학”으로 연계시켜 놓는다. 불은 I8세기 동안 실험과학의 한 부분이 되어 왔으며, 과학이 기계론적 우주견해의 이름 아래 당시까지 거부되어 왔던 비가역성이나 복잡성과 같은 주제를 재고하도록 강요하는 개념적 변환의 출발점이 되어 왔다.불은 물질을 변환시 킨다 ; 불은 화학반응에 이르게 하고, 용융이나 증발과정에 이르게 한다. 불은 연료를 태우게 하여 열을 발산한다. 이와 같은 모든 통상적인 경험적 지식에서 벗어나 I9세기 과학은, 연소는 열을 발생하며 열은 부피의 증가에 이르게 한다는 단순한 사실에 대하여 열중하게 되었다 : 결과로서, 연소는 일을 생성한다. 그러므로 불은 열기관이라고 하는 새로운 종류의 기계에 이르게 하였으며 기술적 혁신은 산업사회의 토대를 이루게 되었다.I)1) 이와 같은 문제들의 진기함에 관하여는. W. Scott, The Conflict Between Alomism and Conservation Theory, II권을 참고할 수 있으며, 이와 같은 개념이 창출된 산업적 맥락에 관해서는, D. Cardwell, From Wall lo Clausius (London, Heinemann, 1971)을 참고할 수 있음. 이와 같은 관점에서 특히 관심이 있는 것은 한편으로는 산업적 문제에 의하여 결정된 필요와, 다른 한편으로는 조작적인 정의에 의해 실증주의자들에 의해서 간단화된 것 사이의 수렵과정이다.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 대한 연구와 산업사회 성장의 장래의 가망성과 결정요인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 연구하고 있을 때 같은 대학에서 제임스와트는 증기기관의 끝손질을 마치고 있었다는 사실은 매우 주목할 만한 흥미이다. 스미스가 발견할 수 있었던 석탄의 용도는 기껏해야 노동자에게 열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18세기에 바람, 물, 그리고 동물, 이들에 의해 작동하는 단순한 기계야말로 힘을 얻어낼 수 있는 유일한 거시적 에너지원이었다.
영국의 증기기관의 급속한 파급은 열의 기계적 영향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이와 같은 관심의 산물로서, 열역학은 열에 대해서 라기보다는 “기계적 에너지”를 얻기 위한 가능성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복잡한 계의 과학”의 탄생일로서 우리는 I8II년, 아이서 (Isere)의 지방관이었던 바론 후리어가 고체 내에서 열의 확산에 대한 수학적 정의의 연구로 프랑스 학술원 과학상을 수상하였던 날을 추천하려 한다.후리어가 언급한 결론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며 대단히 세련된 것이었다 ; 열의 흐름은 온도구배에 비례한다. 이 단순한 법칙은 물체의 상태가 고체, 액체, 기체이든 상관없이 놀랍게 잘 적용된다. 더욱이, 이 법칙은 철이든 금속이든 물체의 화학조성이 무엇이든간에 유효하다. 각 물질에 대한 고유한 확산속도의 차이는 단지 열의 흐름과 온도구배 사이의 비례상수이다.분명히, 후리어 법칙의 보편적 특성은 뉴톤의 법칙에 의해서 표현되는 역학적 상호관계에 직접적으로 관계하고 있지 않으며, 그 체계화는 과학의 새로운 추이의 출발접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사실상, 열확산에 대한 후리어의 수학적 정의의 단순성은 분자의 차원에서 생각한 물질의 복잡성에 철저히 상반되는 견해이다. 임의의 고체, 기체 또는 액체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분자로 형성된 거시적인 체계이나, 아직도 열전도는 단일한 법칙에 의해 정의된다. 후리어는 라플라스의 학파가 유럽의 과학을 지배하고 있을 때 그와 같은 결론을 내렸다. 라플라스, 라그란지, 그리고 그의 후학들은 헛되이 후리어의 이론을 비판하는 세력에 합류하였으나, 곧 후퇴해야만 했었다.2) 그 영광의 절정에서 라플라스학파의 꿈은 최초의 좌절에 부딪쳤다. 이제 물리적인 이론이 창출되었고 이 이론은 운동의 역학2) J . Herivel, Joseph Fourier, The Man and Physicist (Oxford : Clarendon Press, 1975) . 이 전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신기한 정보를 알게 되었다 : Fourier는 아마도 Bonaparte로부터 Egypt에 걸친 그의 여행에서 계속적인 열손실을 유발하는 질병에 감염된 채 귀향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법칙처럼 수학적으로든 어느 양상으로든 엄밀하였으나 뉴톤 세계의 그것과는 완전한 이방의 것이었다. 이 시기 이후부터, 수학, 물리학, 그리고 뉴톤 과학은 더이상 동의어가 아니었다.
열전도 법칙의 체계화는 당시 서구과학에 지속적인 파급을 주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프랑스와 영국에서 그것은 오늘날 우리 시대에 이르는 서로 다른 역사적 경로의 출발을이었다.프랑스에서는 라플라스의 꿈은 좌절되고 실증주의자들이 과학을 콩트에 의해 도입된 잘 정리된 구획으로 분류케 하였다. 과학에 대한 콩트의 구획화는 세레스에 의해 잘 분석되었다- 동력, 두 보편성은 물리학에 공존한다. 콩트가 후에 언급한 것처럼, 두 가지 보편성은 더욱더 서로를 적대시하게 되었다. 중력은 불활성의 질량에 작용하여 질량을 중력에 따르게 하지만 이는 운동에 의해서 중력이 얻어지거나 전파되는 다른 방법에 의해서 영향을 받지 않고도 가능하다. 열은 물질을 변환시키고, 상태의 변화를 결정하며 고유한 성질의 변화에 이르게 한다. 어느 면에서, 이는 I8세기의 반뉴톤 화학자들에 의해서, 또한 질량과 물체의 특정한 활동에 기인되는 순수하게 공간적으로 존재하는 시간의 차이를 강조하던 이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주장과 일치한다. 이와 같은 차이는 과학자들을 분류하기 위한 콩트 이론의 기초로 사용되었으며, 모든 과학은 어떤 보편적 잘서――-이는 곧, 평형이다―아래 놓이게 되었다.3) 더욱 특정한 것을 위해서는 Comte 개론, Philosophie Premiere(Paris : Herman, 1975), Auguste Comte auto-traduit dans l'encyclopedie in La Traduclion (Paris : Minuit, 1974)와 "Nuage", La Distribution (Paris : Minuit, 1977)을 참고할 수 있음.
영국에서는, 한편으로, 열확산의 이론은 지식의 제분야를 통합하려는 노력을 포기해야 하는 것을 뜻하지는 않았으며, 새로운 의문선 상에서, 비가역적 과정의 이론에 대한 진보적 체계화에 이르게 하였다.
후리어의 법칙은, 비균일한 온도 분포를 갖는 고립되어 있는 물체에 적용될 때 열적 평형의 점중적 달성을 정의해 준다. 열확산의 영향은 어떤 균일성에 이를 때까지 온도의 분포를 점증적으로 동일하게 만든다. 우리 모두 이 과정이 비가역과정임을 잘 알고 있다 ; 한 세기 전에, 보어는 열은 늘 퍼져나가며 동일한 균형을 맞게 됨을 강조한 바 있다. 복잡한 현상의 과학-매우 많은 입자 사이의 상호작용이 수반하는――-과 일시적 비대칭성의 발생은 따라서 그 시작부터 서로 연계되어 있다. 그러나 열전도는 공학적인 견해로 볼 수 있는 열소멸의 관점으로 연계되가 전에는 비가역성의 성격을 연구하기 위한 출발점이 되지는 못했다.4)
4) C. Smith, "Natural Philosophy and Thermodynamics : William Thomson and Dynamical Theory of Heat, The British journal for the Philosophy of Science, Vol. 9(1976), pp.293-319와 M. Crosland and C. Smith, WThe Transmission of Physics from France to Britain, 1800 -1840, Historical Studies in the Physical Sciences, Vol. 9 ( 1978), pp . 1-61
이제 I9세기초에 그 형태를 취하기 시작한 새로운 열의 과학”의 구조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관찰하여 보자. 동력학과 마찬가지로, 열의 과학은 물리적인 물체의 원래 개념과 기계나 기관의 정의 모두를 함축하고 있다. 이는, 기계적인 일을 생성하는 특정한 형태의 원인과 결과의 입증과 같다.
열을 수반하는 물리적 공정의 연구에는 대상계를 정의해야 하는 필요성이 따르나 동력학의 경우처럼 대상계를 이루고 있는 구성단위 (이 경우는 1평방 센티메터 차원의 고체나 기체부피에 IO23)개 정도의 분자가 존재한다)의 속도나 위치에 의해서가 아니라 온도, 압력, 부피 등과 같은 일련의 거시적 매개변수들에 의해서 정의된다. 더욱이 대상계와 이의 주위상태 사이의 관계를 정의해 주는 경계조건들을 고려해야만 한다.한 예로서 거시적 대상계의 특징적 성질의 하나인 比 에 대하여 관찰하여 보자. 비열이란 고려하는 대상계의 부피와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시키면서 대상계의 온도를 1도 올리는 데 필요한 열량의 척도이다. 비열을 고찰하기 위해서는――-예를 들면, 일정부피에서 -- 대상계는 반드시 주위와 상호작용을 하도록 접촉시켜야 한다 ; 대상계는 일정량의 열을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며 동시에 대상계의 부피는 일정하게 유지시키나 반면에압력은 변화하도록 방치하여야 한다.
보다 일반적으로, 임의의 계는 기계적 작용(예를 들면, 피스톤 장치를 사용함으로써 압력이나 부피 중 어느 하나를 고정시킬 수 있다), 열적 작용(일정량의 열을 대상계에 제공하거나, 때앗아 버리거나, 또는 계 자체가 열의 교환을 통해 주어진 온도에 머무르게 할 수 있다), 또는 화학작용(계와 주위간의 반응물이나 반응 생성물의 플럭스)을 하게 되어 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압력, 부피, 화학조성 그리고 온도는 임의의 거시적 대상계의 성질을 정의하는 측면에서 볼 때 고전 물리화학적 매개변수이 다. 열역학은 이와 같은 성질 사이의 변화하는 양에 대한 상관관계에 이 르게 한다. 이론의 목표는 입자간의 상호작용의 견지에서 대상계 내의 변화를 예측하는 데 있지 않으며 ; 이론은 의부로부터 대상체계에 대하여 어떤 변화가 주어질 때 대상계가 어떻게 응답하는가을 예견한다.임의의 기계적 기관은 외부세계로부터 받은 위치에너지를 일의 형태로 전환하는 기능을 한다. 원인과 결과 두 가지는 모두 같은 성격을 갖고 있으며, 적어도 이상적으로는 서로 동일하다. 반대로 열기관은 대상계의 기계적 성질, 팽창, 확산 등의 변환을 포함하여 상태의 물질적 변화를 함축하고 있다. 생성된 기계적 일은 어떤 움직임의 전달로서뿐만 아니라 실제의 변환과정의 결과로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열기관은 단순한 수동적 고안 장치가 아니며 엄밀히 말해서 운동(motion)을 생성한다. 이 점이 바로 새로운 문제의 발단이다. 운동을 생성하기 위한 대상계의 능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대상계를 반드시 초기의 상태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따라서 임의의 제2의 과정이 필요하며, 상태의 제2의 변화는 운동을 생성하기 위한 변화를 보충하여 준다. 이와 갇은 제2의 과정은 초기과정에 대한 반대과정으로 대상계의 초기온도, 압력, 부피를 얻어내기 위해서 대상계를 냉각시키는 공정이 수반된다.열기관의 효율의 문제, 즉 생성된 일과 대상계의 두 상호 보충과정을 생성하기 위해 대상계에 반드시 제공해 주어야 하는 열의 비율은, 비가역적 과정의 개념이 물리학에 도입되었던 바로 그 이유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후리어 법칙의 중요성에 대해 뒤에서 다시 언급할 예정이다. 먼저 에너지 보존의 원리가 담당하였던 핵심적 역할에 대해 살펴보자.에너지 보존원리
필자들은 이미 고전동력학에서 에너지의 중심적 위치를 강조한 바 있다. 해밀토니안(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의 합)은 기본적 변수―좌표와 운동량―로 표현되었으며 운동을 통해서 이의 변수의 합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이들 변수의 변화에 이르게 하였다. 동적 변화는 단순히 그들의 합을 보존하면서 위치와 운동에너지의 각각의 중요성만을 변모시킨다.19세기 초기는 유례없는 실험적 열광의 시기로 특징지을 수 있다.5) 물리학자들은 운동이란 공간 속에서 물체의 상대적 위치의 변화 이상의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실험실에서 밝혀지는 새로운 과정은 점차로 어떤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되었으며 궁극적으로는 모든 새로운 물리학의 분야와, 보다 전동적 분야인, 역학과 같은 분야와 연계시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연관성 중의 하나는 갈바니가 실수에 의해서 발견한 것이었다. 갈바니 이전에는 단지 정전기적 전하만이 알려져 있었다. 갈바니는 개구리 몸체를 이용하여 최초로 실험적으로 전기의 흐름을 알아냈다. 볼타는 곧 개구리의 "갈바닉” 수축이 사실상 이를 통과하는 전류의 영향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1800년에, 볼타는 화학전지를 만들어내었다 : 전기는 따라서 화 학반응에 의해서 생성해낼 수 있었으며 이후 전기분해를 알게 되었다. 전 류는 화학적 친화력을 변화시켜 화학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이 전류는 또한 빛이나 열을 생성할 수 있다. I820년에, 오르스테드는 전류 에 의해 생성하는 자기장의 영향을 발견하였다. I822년 시백은 반대로 열은 전기를 생성할 수 있음을 입증하였고, I834년에는 어떻게 물질이 전기에 의해 냉각될 수 있는가를 보였다. I831년 당시, 파라디는 자기력5)후속되는 것으로는, Y. Elkana, The Discovery of the Conservation of Energy Principle은 물론이려니와 Thomas Kuhn의 유명한 논문, Energy Conservation as an Example of Simultaneous Discovery”로서 Critical Problems in the History of Science의 형태로 처음 출간된 것과, T. Kuhn의 The Essential Tension (Chicago :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7)을 참조할 수 있음.
의 영향에 의해서 전류를 유도해내었다. 이 새로운 분야의 전체 조직망이 접차로 밝혀져 갔으며 과학적 수평선은 유례없는 속도로 팽창해 갔다. 1847년에는 쥴에 의해서 획기적인 첫발을 믿게 되었으며 화학과, 열의 과학, 전기, 자기. 그리고 생물학의 연계성은 “전환(conversion)”으로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전환의 아이디어는, 무엇인가” 정성적으로 변환될 때 또한 무엇인가 정량적으로 보존된다는 사실을 연역할 수 있었으며, 기계적인 운동이 있을 때 무언가 발생하는 것을 일반화시킬 수 있었다. 앞서 보았듯이, 위치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변환되거나 그 반대의 경우에도 전체에너지는 보존된다. 쥴은 물리화학적 변환의 일반적인 동등성을 정의하였으며. 이렇게 하여 보존되는 양의 측정을 가능케 하였다. 이 양은 후에6) ”에너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임의의 주어진 양의 물을 1도 올리는 데 필요한 기계적 일을 측정함으로써 에너지의 동일성을 최초로 확립하였다. 새로운 발견의 당황스런 다양성의 와중에서 어떤 통합적 요소를 발견한 것이다. 에너지의 보존은, 물리, 화학, 그리고 생물학적 대상계에 의해 수반되는 다양한 변환을 통해서, 새로운 과정을 이용하는 데 주도적인 원리가 되었다.
6) Elkana는 에너지 개념의 느린 결정화를 추종하였다 ; 인용문헌 5에 소개한 그의 저서와 Helmholtz's Kraft : An Illustration of Concepts in Flux," Historical Studies in the Physical Sciences, Vol. 2 ( 1970) , pp . 263-98을 참고할 수 있음.
에너지 보존 법칙이 19세기 물리학자들 사이에 매우 중요했던 역사적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들 대부분의 경우 에너지 보존의 원리는 자연 전체의 단일화물 뜻하는 것이었다. 쥴은 이같은 확신을 한 문장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사실상 자연의 현상은 그것이 기계이든, 화학이든 또는 생명에 관계되는 것이든간에 대부분 전적으로 공간, 생명력 (지적하자면 운동 에너지) 그리고 열을 통하여 연속적인 상호인력으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따라서 전환은 곧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것이며 __ 혼란되거나 영원히 상실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우주 전체의 기구는 이처럼 복잡하지만 서로 독립적으로 조화있게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즈키엘(Ezekiel)의 경외감을 갖게 하는 견해처럼, 우주의 바퀴는 회전의 와중에 있으며, 그리고 모든 것은 복잡하게 보이고 분명한 혼돈과 분규를 수반하고 있어 자연은 대부분 끝없는 다양성의 원인, 결과, 전환, 그리고 재배치의 와중 속에 있으면서, 아직도 가장 완전한 규칙이 보존되는 것은-전체 존재는 신의 통치 의지에 의해 지배되기 때문으로 믿어진다.7)
7) J . Joule, Matter, Living Force and Heat, The Scientific Papers of Ja mes Prescott Joule, Vol. 1(London : Taylor & Francis, 1884), pp. 26,-76(인용 p,273).
독일의 헬름홀쯔, 마이어, 그리고 리빅의 경우는 一―-세 사람 모두는 엄밀한 실증주의 실천의 배경에서 아마도 줄의 확신을 부정하는 문명 속에 속한 이들이다-더욱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그들이 발견을 성취하였을 당시, 세 사람 모두는 엄밀히 말해서 한 사람의 물리학자였다. 반면에 세 사람 모두는 호흡생리학에 홍미를 갖고 있었다. 이들의 결과는 라보아지에 이후, 하나의 대표적인 문제모델이 되었으며 이로써 생명이 있는 존재의 기능작용을 산소의 연소와, 열의 발산, 근육일과 같은 물리화학적인 용어로 정밀하게 정의할 수 있었다. 이 점은 또한 낭만주의적 사색을 적대시하고 실험적 과학에 공헌하기에 열심이었던 생리학자나 화학자를 매료시키는 문제였다. 그러나 이 세 과학자들이 호흡작용과 그리고 자연 전체가 근본적으로 동등한 작용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결론을 어떻게 얻었는가를 참작하는 견지에서 판단하여 볼 때, 아마도 독일의 철학적 전동이 그들로 하여금 실증주의자의 위치에 대해서 사실상 새로운 개념을 불어넣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주저함이 없이 그들 모두는 자연 전체는, 이를 구성하는 각각의 세부 속에서, 이 같은 단일한 에너지 보존 법칙에 의해 지배된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었다.
마이어의 경우는 가장 놀라운 것이었다.8) 자바의 네델란드 식민지에서8) Mayer의 두 가지 위 대 한 논문의 영 역 판. On the Forces of Inorganic Nature”와 The Motion of Organisms and Their Relation to
Metabolism은 R. B. Lindsay 편저의 Energy : Historical Development of a Concept (Stroudsburg, Pa . : Benchmarks Paper on Energy, Dowden, Hutchinson & Ross, 1975)에 소개되고 있다.
젊은 의사로 일하고 있던 그는 어떤 한 환자의 혈관의 피가 선홍색임을 알았다. 이 사실은 그로 하여금, 따뜻한 적도 기후에서 사는 주민들은 육체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보다 적은 양의 산소를 태울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하였다 ; 그들의 피는 맑은 선홍색이라는 것이다. 마이어는 에너지의 원천이 되는 산소의 소모와 피부를 동한 열손실, 근육 노동에도 불구하고 신체의 온도를 유지하는 데 수반되는 소비에너지와의 균형 관계를 확립하려는 노력을 계속하였다. 이는 아주 도약적인 것이었다, 즉 피의 색깔은 물론, 환자의 "게으름”에도 관계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이어는 더 나아가 산소의 소비와 열의 손실 사이의 균형을 단순히 모든 현상에 연루되는 파괴될 수 없는 힘”의 존재에 대한 특별한 인식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와 같이 자연적인 현상을 어떤 변화과정을 통해 상수로 머무르고 있는 연루된 실재의 사물로서 간주하려는 경향은 분명히 칸트의 잔재와도 같다. 칸트의 영향은 또한 일련의 생리학자들에 의해서 주창되어 온 철학적 사색으로서 활력소와 과학적 방법론의 문제 사이를 구분하려던 또다른 아이디어로 인식될 수 있다. 생리학자들에게는 비록 생명이 있는 존재는 기본적 기능에 관계되는 생명력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생리학의 문제는 두말할 여지없이 자연 속의 물리화학적 대상이었다.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측면으로부터 칸트주의는, I8세기 동안 취했던 체계적 형태를 표출하는 것으로, 또한 I9세기의 물리학의 새로운 사조의 뿌리의 하나로 여겨질 수 있다9) 헬름홀쯔는 공공연히 칸트의 영향에 아주 감사하고 있었다. 헬름홀쯔에게는 에너지 보존의 원리는 단순히 모든 과학이 근거를 두고 있는 일반적인 선행적 요구사항을 구현한 물리학이었다 - 자연적인 변화에는9) E. Benton, MVitalism in the Nineteenth Century Scientific Thought : A Typology and Reassessment, Studies in History and Philosophy of Science, Vol. ::;(1974)1 pp.17-48
근본적인 무변화성이 존재한다는 가설이다 :
과학분야의 문제는, 먼저, 독정한 자연과정에 관계되는 법칙을 추구하며, 그로부터 일반적인 규칙을 연역해내는 것이다. 자연 속의 모든 변화는 반드시 임의의 충분한 원인을 갖고 있다는 확신에 의해서 우리들은 정당화되고 사실상 이와 같은 과정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현상이라고 인용할 수 있는 임박한 원인은, 그들 스스로가 변화하는 것이나 변화하지 않는 것 중의 하나이다 : 전자의 경우 앞서 언급한 확신에 의해서 어떤 변화를 고려할 수 있는 원인을 찾도록 강요되며, 이와 갇이 합으로써 더이상은 변화하지 않는 최종의 원인에 어느 정도 다다를 때까지 나아간다. 그리하여 모든 경우 외부적인 조건은 반드시 같으며 더이상은 변화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낳는다. 이론적인 자연과학의 최종목표는 따라서 자연현상의 궁극적이며 불변하는 원인을 발견하는 일이다.10)10) H . Helmholtz, Uber die Erhaltung der Kraft," 앞의 제3장에서 인용한 문헌 24의 pp.90-91.
에너지 보존의 원리와 함께, 물리학의 새로운 황금기에 대한 아이디어는 이제 특정한 형태를 지니기 시작하였고 역학의 궁극적인 일반화에 이를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 문명적 암시는 광범위하였으며, 그 암시는 에너지의 변환기관으로서 사회와 인간의 개념까지를 포함한다. 에너지전환이 이야기의 전체는 될 수 없다. 이는 자연의 양상이 평화롭고 통제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나, 그 이면에는 보다더 "활성적인” 어떤 준위가 존재한다. 니쯔시는 창조와 파괴의 메아리는 단순한 전환이나 보존의 차원을 훨씬 초월한다는 사실을 감지하였던 사람이었다. 사실상, 온도나 위치에너지의 차이와 같은 하나의 차이는 또한 여러 차이들을 낳는 결과에 이를 수 있다.11) 에너지 전환은 단순히 또다른 차아의 창조와 함께 임의의 차이를 파괴한다. 자연의 위력은 이같이 동일한 것의 사용에 의해 그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러나, 자연의 또다른 양상으론 증기기관의 보일러, 화
11) G. Deleuze, Nietzsche et la Pltilosopie(Paris : PUF, 1973), pp_48-55.
학 변환, 삶과 죽음 등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은 등가의 것들이나 에너지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12) 여기서 우리는 열역학이 가장 원천적으로 공헌한 비가역성의 개념에 이른다.
12) Zola의 Docteur Pascal, Fettx et signattx de bmme Paris : Grasset(1975)에 관한 연구논문 109 페이지에서. Michel Serres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 "금세기는 그 작품이 출간되었을 때 실질적으로 종말을 고하게 되었으며, 장엄한 태양계의 안정성의 문제를 시야에 전개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금 세기는 이재 불에 대한 너무도 무모한 변질에 의하여 경악과 놀라움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 찌꺼기 없는 완전한 순환, 영원하고 공정적인 가치, 즉 태양계의 우주론 : 그렇지 않으면 길잃은 순환, 차이의 상실, 비가역적, 역사적 그리고 경멸적인 가치체계만을갖게 되었다. 어떤 대책도 없이 반드시 소화하거나 파괴되어 야 하는 붕의 우주론을 의미한다. 하나는 Laplace의 꿈이고, 반면에 Carnot나 다른 사람들은 아늑하고 기분좋은 장소, 활동 장소를 영원히 깨뜨려 버렀고, 그곳에서 누군가는 평화롭게 잠들고 있다 ; 누군가는 꿈을 꾸고 있다 : 그 후에 문명적 복고주의는 또다른 문을 통해, 같은 문의 또다른 개방을 통하여 되살아나 고, 강력하게 잠에서 깨어난다 : 불후의 불꽃, 정화된 화영. 또는 사악한 불꽃인가?
열기관과시간의 화살
예를 들어 빨갛게 달아오른 보일러나 전동차처럼, 기계적 고안장치와 열기관을 비교할 때, 한 눈에 고전적 시기와 19세기 기술의 현격한 차이를 추량할 수 있다. 아직까지도, 물리학자들은 이와 같은 차이점은 무시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열기관은 기계적 기관과 유사하게 정의할 수 있으며 증기기관이 써 버리는 연료는 영원히 사라져 버린다는 엄청난 사실을 무시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안일한 대안은 곧 불가능하게 되었다. 고전역학에서 자연의 상징은 시계였다. 산업시대에 있어서 자연은 에너지의 저장소이며 항시라도 고갈될 위협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세계는 용광로처럼 타 버리고 있다. 에너지는 비록 보존되고 있지만, 동시에 소산된다.열역학 제2법칙의 체계화는, 이같은 비가역성에 대한 최초의 정량적 표현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서, 마이어 (1842)나 헬름홀쯔(1847)의 에너지보존 원리의 일반화된 체계화 이전, 1824년 카르노(Sardi Carnot)에 의해 시작되었다. 카르노는, 기계적 엔진의 중요한 해석을 이룩하였던 아버지, 라자르 카르노(Lazare Carnot)의 연구에 뒤이어 열기관을 분석해냈다.
기계적 기관의 묘사는 움직임이란 주어진 것으로 간주한다. 요즈음의 기술용어에 의하면 이는 에너지와 운동량의 보존에 해당한다. 운동은 단순히 전환되고 다른 대상 물체로 이동된다. 그러나 싸르디 카르노에 있어서 기계기관과 열기관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다는 암시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고, 그는, 당시대 대부분의 과학자들처럼, 기계적 에너지는 물론 열에너지도 보존되는 것이라고 가정해 버렸다. 임의의 준위에서 다른 높이로 낙하하는 물은 방앗간을 돌릴 수 있다. 유사하게 싸르디 카르노는 두 개의 원천을 가정하였다. 이 중의 하나는 엔진 계통에 열을 제공해 주며, 또다른 것은 다른 온도에서 앞에서 주어진 열을 흡수하는 원천이었다. 이는 엔진을 통한 열에너지의 이동을 의미하며 서로 다른 두 온도―이는, 곧 불에 의한 유도력이다 - 사이에서 엔진이 가동할 수 있음을 말한다.카르노는 그의 아버지의 의문을 반복하였다.13) 어느 엔진이 가장 높은 효율을 가지고 있을까? 손실의 출처는 무엇인가? 일을 생성하지도 않으면서 열이 전파되어 버리는 과정은 무엇인가? 라자르 카르노는 기계적 기관으로부터 가장 높은 효율을 얻기 위해서 기계의 기능이 최소의 충격과 마찰 또는 속도의 불연속적인 변화 - 간단히 말하자면,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들이 갑자기 접촉할 때 원인이 되는 - 를 줄일 수있도록 제작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단순히 그시대에 유행하는 물리학을 적용하였다 : 연속적인 현상만이 보존적이다.13) Carnot 부자간의 연속성은 Cardwell(From Watt to Clausius)과 Scott (The Conflict Between Atomism and Conservation Theory)에 의해 강조되어 왔다.
모든 급작스런 움직임의 변화는 "생명력”의 비가역적 손실의 원인이다. 유사하게 이상적인 열기관은 서로 다른 힘으로 움직이는 물체 사이의 모
든 접촉을 피할 수 있도록 하는 대신 서로 다른 온도를 갖는 물체 사이의 모든 접촉을 피해야만 할 것이다.
따라서 순환 주기는 서로 다른 온도를 갖는 두 물체 사이의 직접적인 열의 흐름으로부터 어떤 온도의 변화도 발생하지 않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그와 같은 흐름은 아무런 기계적 영향이 없으므로, 단순히 효율의 누손에 이르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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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카르노 순환주기의 압력-부피 도해 : 임의의 열역학적 엔진은 두열원 사이에서 작동하며, 이때 한 열원은 온도 TH의 뜨거운” 열원이며, 다른 하나는 온도 TL의 차가운 연원이다. 상태 (a)와 상태 (b) 사이에는 등온변화가 존재한다 : 온도 TH로 유지된 대상계는 연을 흡수하고 팽창한다. b와 C 사이에서, 계는 연적 고립상태를 유지하면서 계속 팽창한다 : 계의 온도는 TH로부터 TL로 떨어진 다. 이들 두 과정은 기계적 에너지을 생성한다. c와 d 사이에서는 제2의 등온변화 일으킨다 : 계는 압축되고 온도 TL을 유지하면서 열을 내놓는다. d와 a 사이에서, 계는, 다시금 고립되고, 계의 온도읍 TH로 끌어윤리면서 동시에 압축된다.
이상적인 카르노 순환기관은 따라서 서로 다른 두 온도 대상 사이의 직접적인 접촉이 없이 다른 두 온도 사이의 열전달을 야기하는 모순되는 결과를 달성할 수 있는, 보다 교묘한 고안장치라 할 수 있다. 이 장치는 4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 두 개의 등온단계 동안에, 장치는 두 열원 중의 어느 하나와 접촉하도록 되어 있으며 해당 열원의 온도와 같도록 유지시킨다. 높은 온도와 접촉하여 있을 때 기관은 열을 흡수하여 팽창한다 ; 낮은 열원과 접촉하여 있을 때 기관은 열을 잃어버리고 수축한다. 두 등온단계는 두 개의 단계와 연결되어 있으며 여기서 기관은 그 열원으로부터 고립된다 - 열은 더이상 기관으로 유입되거나 유출되지 않으며, 후자의 온도는 각각의 팽창과 압축의 결과로서 변화된다. 기관의 부피는 한 열원의 온도로부터 다른 열원의 온도를 동과할 때까지 연속적으로 변화된다.
이같은 이상적인 열기관의 설명이 비가역과정을 이해하는 데 핵심이 되는 비가역과정 자체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다. 석탄이 연소되는 용광로에 대한 언급도 없다. 모델은 단지 연소의 결과에만 관심을 두고 있고, 열의 제공원 및 흡수원 사이의 온도차이의 유지만을 허용하고 있다.I850년에 클라우시우스는 카르노 순환기관을 에너지 보존의 새로운 측면에서 설명하였다. 그는 두 열원의 필요성과 카르노가 언급한 이론적인 효율공식은 열기관의 특정한 문제만을 나타내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엔진을 전환시킨 후에 초기의 기계 및 열적 조건으로 원상복귀시키기 위해 보상해 주어야 하는 공정의 필요성이다(이 경우, 온도가 낮은 열원과의 접촉에 의해 기관을 식혀 주는 일이다) . 에너지 전환을 나타내는 수지관계는 고려하는 계의 상태에 대한 두 과정의 영향, 죽 열원 사이의 열플럭스와, 열과 일로의 전환 사이의 새로운 동등한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열역학이란 새로운 과학은 기계 및 열적 영향을 규명하게 해주었다.클라우시우스의 연구는 분명히 자연이 제공해 주는 언뜻 보아 고갈해 버릴 수 없는 에너지 비축량이 임의의 제한이 없이는 사용할 수 없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모든 에너지 보존과정이 가능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에너지 차이는 적어도 동등한 에너지 차이의 파괴 없이는 창출해낼 수없다. 따라서 이상적인 카르노 순환기관은, 일을 생성하는 대가가 열에 의해서 지불되며 에너지가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바뀌어 가는 것이다. 한편에서 얻어지는 기계적인 에너지로 표현되는 것과 다른 한편에서의 열전달의 과정은 서로 동등한 것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와 같은 동등성은 두 방향 모두에 대해 효력을 갖는다. 반대 방향으로 작동될 때 같은 기계는 생성했던 일을 소비하는 반면 초기의 온도 차이를 재생시킬 수 있다. 어느 열기관도 단일의 열원만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없다.
클라우시우스는 모든 실제 기관은 이론에 의해서 예측할 수 있는 손실의 이상적인 값보다 낮은 효율을 가질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 카르노보다 더 큰 관심을 갖지는 않았다. 카르노와 같이 그의 설명은 어떤 이상화에 일치한다. 이는 곧 열기관의 수율에 부과되는 한계성향에 대한 정의에 도달케 한다.그러나, I8세기 이래, 이상화의 척도는 계속 변천되어 갔다. 이상화는 에너지 보존의 원리에 근거를 두었던 것처럼, 새로운 과학은 이상화 개념뿐만 아니라 손실을 포함하는 성향 자체를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로써 새로운 문제가 야기되었는데, 이로부터 물리학에 바가역성이 영입되게 되었다. 실제로 엔진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에너지 수지개념에 그같은 손실을 어떻게 포함시킬 수 있는가? 손실요인은 어떻게 효율을 저하시키는가? 이와 같은 의문이 열역학 제2 법칙에 이르는 여정에 포장되어 있는 것들이었다.테크놀지로부터 우주론으로지금껏 보아 왔듯이, 카르노와 클라우시우스에 의해서 제기되었던 의문은 보존과 보상에 근거를 둔 이상적인 엔진의 묘사에 이르게 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엔진의 마모와 갇은 새로운 문제를 다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되었다. 톰슨은 후리어의 업적에 위대한 존경을 보냈던 사람으로 문제의 중요성을 즉각적으로 파악하게 되었으며, 1852년에 처음으로 열역학 제2법칙을 체계화하였다.카르노가 열기관에서 일의 손실요인으로 보았던 것은 바로 후리어의 열의 확산이었다. 카르노의 순환기관은 더이상 이상적인 순환기관이 아니라 실제 순환기관이었다. 따라서, 곧바로 I9세기에 발견된 두 보편성_ 에너지 전환 및 열확산이 함께 수령되는 경로가 되어 갔다. 이 두 가지 발견은 톰슨으로 하여금 그의 새로운 원리 ; 기계적 에너지의 소멸을 향한 보편적 성향이 자연에 존재한다는 이론을 체계화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보편적"이라는 말을 살펴볼 때, 이는 분명히 우주적인 함축의미를 갖는다.
라플라스의 세계는 영원한 것이었으며, 이상적인 영구작동 기계였다. 톰슨의 우주관은 새로운 이상적인 열기관의 발명뿐만 아니라 에너지가 보존되는 우주 내의 비가역적 열의 확산 결과를 포함하는 것이다. 우주의 열은 오로지 비가역적 쓰레기나 쓸모없는 소모의 대가로 일로 전환되는 엔진으로써 설명된다. 자연에서 결과를 초래하는 차이는 점증적으로 소멸 되어간다. 우주는 한 전환에서 다른 전환으로 움직여 감에 따라 차이점을 소비해 가며 궁극적으로는 열적 평형의 상태, 즉 "열적 쇠진(heat death)”의 상태를 향하여 나가는 경향을 지닌다. 후리어 법칙에 합치하여, 종국에는 어떤 기계적 결과를 발생시키는 온도의 차이도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톰슨은 엔진 테크놀로지로부터 우주론에 이르는 비약을 이룩해냈다. 열역학 제2법칙에 대한 체계화는 당시의 과학적 전문용어들을 잠재우게 하였다 ; 에너지보존, 엔진, 후리어 법칙. 더욱이 명백히 중요한 사실은 문명적 맥락에서의 기여이다. I9세기 동안 시간의 문제가 새로운 중요한 문제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사실상 시간의 핵심적 역할은 모든 분야―인류의 사회적 진화는 물론이려니와 지리학, 생물학, 그리고 언어학에서 새로운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어떤 균일성과 죽음을 향하는 경향으로서 물리학에 도입된 시간의 특정한 형태는, 우리로 하여금, 생물학이나 사회과학에 의해서 정의되는 점증적으로 복잡하게 되거나 매우 다양해지는 경향보다도 고대 신화론적 또는 신앙적 원류를 연상케 한다는 점에서 매우 홍미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고대사회 테마로의 복귀는 그 시대의 사회 및 경제적 격변의 문명적 반발로 볼 수 있다. 자연과의 상호관계에 대한 기술적 형태의 빠른 변환이나, 19세기에 경험하였던 끊임없이 가속되어 온 변화의 국면은 뿌리깊은 고뇌를 창출케 하였다. 이 걱정거리는 아직도 우리와 함께 있으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를테면, “제로성장”의 사회에 대한 반복되는 제안이나 붕괴해 가는 우주에 대한 과학적 진실”의 발표에 이르게 하는 연구의 지불유예 같은 것이다. 천문학에 관한 지금의 지식은 아직도 매우 미흡하고 대단히 불확실한데, 이 분야에서는 동력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면서, 제반문제는 열역학과 상대성의 동시 사용의 당위성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 분야에 관한 대부분의 책은 최후의 운명을 예견하는 데 모두가 일치된 견해를 피력할 뿐이다. 최근의 어떤 책의 결론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감지하기 어려운 진리의 하나는 우주의 점차적 붕괴가 피할 수 없는 것처럼 투영되는 점이다. 인간으로부터 은하계까지, 질서 정연한 활동을 지탱하는 조직은 서서히 그러나 피할 길 없이 소모되어 가고 있으며, 전체 중력의 충돌에 이르는 망각의 시기가 갑자기 닥쳐오리라는 추측이다.14)14) P. Davies, The Runaway Universe(New York : Penguin Books, 1980), p.197 페이지
다른 책에서는 보다 낙관적이다. 우주의 에너지에 관한 유명한 기사에 서 다이슨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러나 추측컨대 생명은 아마도 인류가 최초로 상상하여 온 것보다는 보다 더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생명은 우주가 자체의 목적으로 이루워진 과정 속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기이함에 맞서 계승된다. 그리고 활력이 없는 우주의 설계는 20세기 과학자들이 생각하려고 해온 생명과 지적 존재의 가능성으로부터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으리라.15)15) F. Dyson, "Energy in the Universe," Scientific American, Vol. 225 (l97l), pp.50-59.
호킹과 그밖의 사람들에 의해서 이록된 중요한 진보에도 불구하고, 우주의 거대한 규모의 변환에 대한 안간의 지식은 매우 부적합한 부조리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
엔트로피의 탄생I865년에 데크놀로지로부터 우주론으로 비약해야 할 차례는 클라우지우스의 것이었다. 그 시점에서는 단지 초기결론을 다시 체계화하였으나, 그는 그 과정에서 엔트로피 (entropy)란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였다. 그의 첫번째 목표는 보존개념과 가역성개념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것이었다. 기계적인 변환과는 달리, 그 경우는 가역성과 보존성이 일치하지만, 물리화 학적 변환은 순서를 거꾸로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에너지량을 보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마찰의 경우처럼 운동이 열로 변환되는 경우나, 후리어에 의해서 정의된 것처럼 열전달의 경우에 그러하다.우리는 이미 에너지에 익숙해 있는데 그것은 고려하는 체계의 상대함수 (압력, 부피, 온도)의 값에만 의존적인 함수이다.16) 그러나 반드시 에너지 보존원리 이상으로 나아가 카르노 순환기관에서 에너지의 “유용한 교환과 비가역적으로 폐기되는 소멸된” 에너지의 차이를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만 한다. 이는 정확하게 일반적으로 S로 표시하는 클라우시우스의 새로운 함수, 엔트로피의 역할이다. 분명히 클라우시우스는 단순히 어떤 기관이 순환 최종단계에서 다시 초기의 상태로 복귀되어야 하는 분명한 요구사항을 새로운 형태로 표시하고자 하였다. 엔트로피의 최초의 정의는 보존성에 중심을 두었다. 각 순환의 최종단계에서, 이것이 이상적이든 아니든, 계의 상태를 나타내는 함수인 엔트로피는 그16) 특히 중요했던 것은, 역학에서 발생되는 것과는 달리, 상태”로서 특징지을 수 있는 임의의 열역학적 체계의 어떤 상황도 아니라는 사실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 아주 반대이다. E. Daub, Entropy and Dissipation, Historical Studies in the Physical Sciences, Vol. 2(1970), pp.321-54를 참조할 수 있음.
초기값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엔트로피와 에너지의 수평선은 이상화 개념을 포기하자마자 끝장이 난다.17)
17) 그의 자서전. Scientific Autobiography (London : William & Norgate, 1950)에서, Max Plack는 그가 처음으로 열의 목이성과, 비가역적 문제를 야기하는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열은 변형된다는 접을 지적하였윤 때 어떻게 다른 사람들부터 의연당했는가운 회상한 바 있다. Ostwald와 갇은 에너지학자는 에너지의 모든 형태가 갇은 지위로 주어지기을 원했었다. 그들에게 있어, 서로 높이가 다른 두 위치 사이에서의 물체의 낙하는 서로 다론 온도에 있는 두 물체 사이의 열의 통과와 같은 종류의 생산적 차이의 덕택에 발생하는 것과 갇았다. 따라서, Ostwald의 비유를 통해 기계적 운동과 같은 이상적인 가역과정과, 열화산과 같은 본질적인 비가역과정 사이의 핵심적 구분은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우리들이 Lagrange의 탓으로 듄렀던 상황과 유사한 위치를 실제로 차지하게 되었다 : Lagrange는 에너지 보존은 단지 이상적인 경우에 속하는 성질로 생각하였고 또한 이와 유사하게 에너지 문제를 취급하려 하였던 Ostwald는 에너지 보존을 어떤 자연적인 변환으로 생각하고, 에너지 차이의 보존을(오직 어떤 차이만이 또다른 차이를 생성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변환에서 필요하다) 어떤 추상적인 이상의 것으로서 생각하고, 합리적인 과학을 위한 유일한 대상으로 삼았었다.
짧은 시간간격 dt 동안 엔트로피의 변화량 dS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 때 상황은 이상적 기관과 매우 달라진다. 먼저의 경우, dS는 완전히 주위와 엔진 사이에 교환된 양으로 정의된다. 열이 대상계 속으로 유입되는 대신 계에 의해서 발산되는 실험을 해볼 수 있다. 상응되는 엔트로피 변화에서는 단순히 이 값의 부호만 바판다. 엔트로피의 이와 갇은 기여를, deS로 부른다면, 이 값은 값을 가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가역적이다. 실제기관의 경우 상황은 엄청나게 틀린다. 가역적인 교환에 더하여, 여기서는 열의 손실이나 마찰 등과 같은 비가역적 과정이 대상계 내에 존재한다. 이들 요인은 대상계 내에서 엔트로피 증가나 엔트로피 생성을 창출한다. 이와 같은 기여를 diS라 부른다면, 외부세계와의 열교환의 역변환을 통해서 이의 부호몰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모든 비가역과정과 같이 (열전달과 같은 것) 엔트로피 생성은 언제나 동일한 방향으로 진행한다. 다시 말해서 d,S키 양수부호는 단순히 편리함 때문에 선택한 것이다 : 이는 물론 음수로 선택할 수도 있다. 변화가 한결같을 때 엔트로피 생성은
시간이 경과됨에 따라 그 부호가 바뀔 수 있다.
deS와 dIS의 표기는 독자둘에게 첫번째는 의부세계와의 교환(exchange,e)을 시사하고, 두번째항은 대상계의 내부 (inside, i)의 비가역과정을 떠올리게 하기 위해 선택되었다. 엔트로피의 변화량 dS는 따라서 서로 완전히 다른 물리적 개념을 갖는 deS와 diS 항의 합이 된다.18)18) I. Prigogine, Etude thermodynamique des Phenomenes irreversible, These d'agregation presentee a la famlte des science de I' Universite Libre de Brnxelles 1945 (Paris : Dunod, 1947) 에서 그는 엔트로피의 변화는 두 가지 서로 다른 항으로 쪼개어 생각할 수 있다고 정의한 바 있다.
이같이 엔트로피 변화량을 두 부분으로 분해하는 특별한 양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 공식을 에너지에 적용하여 보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에너지를 E라 표시하고 짧은 시간 사이의 변화량을 dE라 보자. 물론, 필자들은 dE를 에너지 교환에 기인되는 deE와 에너지의 “내부생성”에 연계된 dI.E 항의 합과 갇은 것으로 사용할 것이다. 그러나, 에너지 보존원리에 따르면 에너지는 결코 생성되지 않으며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질 뿐이다. 에너지 변화량 dE는 이 경우 deE로 간단히 된다. 반면에, 만약 임의의 용기 속에 들어 있는 수소분자의 양과 같은 비보존적 양을 취할 때는, 이 양은 용기 속에 수소를 더해 주는 결과나 용기 내에서 화학반응의 발생을 통해서 변화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생성”의·부호는 결정되지 않는다. 여건에 따라서는 수소원자를 다른 화학성분으로 전달시킴으로써 수소분자를 생성하거나 파괴시킬 수 있다. 제2법칙의 특이한 양상은 생성되는 항 diS가 언제나 양수(always positive)라는 사실이다. 엔트로피 생성은 대상계 내에서 비가역변환의 발생을 표시한다.
클라우시우스는 엔트로피 흐름 deS를 정성적으로 대상계에 의한 열 흡수(또는 방출)의 값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가역개념과 보존개념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이 점은 그의 주된 관심이다. 엔트로피 생성을 수반하는 비가역과정에 관해서, 그는 단순히 diS/dt>o이라는 부동호의 존재를 언급하였을 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중요한 진보를 이룩하였으며 만약 카르노 순환기관을 덮어놓고 다른 열역학적 계를 고려한다면, 엔트로피의 흐름이나 엔트로피 생성의 차이를 여전히 구분지울 수 있다. 주위와 아무런 형태의 교환이 없는 고립되어 있는 계에 대하여 엔트로피 흐름은 정의에 의하여 0이다. 단지 생성항만이 남아 있으며 대상계의 엔트로피는 증가하거나 상수값으로 머문다. 그렇다면 여기서 가역적 변환의 근사치로 생각한 비가역적 변환은 더아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증가되는 엔트로피는 대상계의 자발적 진화에 상응된다. 엔트로피는 따라서 "진화의 인디케이터” 또는 에딩톤이 쉽사리 칭하였던 "시간의 화살"이 되어 버린다. 모든 고립된 계에 대하여 미래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이다.
대체 우주보다 더 잘 "고립"되어 있는 체계는 무엇인가? 이와 같은 개념은 1865년에 큘라우시우스가 정의한 열역학의 두 법칙의 우주론적 체계화의 토대이다 :우주의 에너지는 일정하다 (Die Energie der Welt ist Konstant) .우주의 엔트로피는 최대가 되려 한다 (Die Entropie der Welt Strebt einem Maximum Zu). 19>19) R. Clausius, Ann. Phys., Vol. 25(1865), p.353.
고립되어 있는 계의 엔트로피는 최대로 증가한다는 문맥은 열역학에서 야기되는 기술적 문제를 초월한다. 증가하는 것은 더이상 결손되는 것과 동의어가 아니라 이제는 고려하는 대상체계 내의 자연적인 과정 (natural process)을 의미한다. 이는 곧 최대 엔트로피 상태에 상응하는 열역학적 평형의 상태로 대상체계가 궁국적으로 인도되는 과정이다.
제1장에서 필자들은 뉴턴의 동력학에 대한 보편법칙의 발견에 연계된 놀라운 요소들을 강조하였다. 여기서 또한 놀라운 요소들은 자명하다. 싸디 카르노가 이상적인 열기관의 제법칙을 체계화할 때, 그 일이 물리학의 개념적 혁신에 이르리라는 점은 상상도 못했었다.가역적 변환은 임의의 대상계에 작용하고, 이를 통제하는 가능성의 측면에서 볼 때 고전과학에 속한다. 동력학의 대상은 그 대상의 초기조건에의해서 제어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대상의 가역적 변환의 견지에서 정의될 때, 열역학적 대상은 고려하는 경계 조전에 의해서 제어될 수 있다. 열역학적 평형에 있는 어떤 대상체계도 이의 온도, 부피, 또는 압력이 일련의 점증적인 평형상태를 통과하면서 변화될 때, 또는 이의 역으로의 조작도 대상체계의 초기상태로 되돌아간다. 그와 같은 가역적 성격이나 이의 경계조건을 동한 대상의 제어는 서로 의존적인 과정이다. 이런 맥락에서 비가역성은 "음수”이다 ; 이같은 양상은 대상계가 어떤 통제를 교묘히 벗어나자마자 발생하는 "비통제 (uncontrolled)”의 형태로 보인다. 그러나 반대로, 비가역적 과정은 임의의 실험을 위한 고안장치가 이 비가역 과정에 갑옷을 씌워 버릴 때 자연에 의해서 전개되는 자발성이나 고유의 활동도의 마지막 유물로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 소산 (dissipation) 의 "음수"적 성 질은 동력 학의 대 상과는 달리, 열역학적 대상은 단지 부분적으로밖에 통제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때때로 그들은 자발적인 변화 속으로 “느슨히 부서져" 간다. 임의의 열역학적 계에 대한 모든 변화는 서로 동등하지 않다. 이는 바로 dS=deS+diS 표현의 의미이다. 평형을 향한 diS의 자발적 변화는 경계조건 (예를 들면, 임의의 주위온도)의 수정에 의해서 결정되거나 제어될 수 있는 deS의 변화와는 전혀 다르다. 고립되어 있는 계에 대해서, 평형은 비평형상태의 “유인자(attractor)”로 보인다. 필자들의 초기 주장은 따라서 유인자의 상태를 향한 진화는 다른 모든 변화, 특히나 경계 조건에 의해서 결정되는 변화와는 전혀 다르다고 말함으로써 일반화시킬 수 있다.플랑크는 종종 자연에서 발견되는 두 가지 변화의 형태 차이를 강조하여 왔다. 플랑크는 언급하기를, 자연은 어떤 상태를 선호한다. 엔트로피 diS/dt의 비가역적 증가는 임의의 대상계를 "잡아끄는” 선택적인 상태로의 접근을 정의해 주며 대상계는 자체의 자유의지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 ”이와 같은 관접에서 볼 때, 임의의 최종상태가 그들의 초기상태 보다 덜 매력적인 상태로 가는 과정을 용인하지 않는다. 가역적 과정이란 매우 제한된 경우이다. 그 속에서 자연은 초기나 최종상태에 동일한 버릇을 갖는다. 이는 바로 그들 사이의 의사소통을 두 가지 방향 모두에서 해낼 수 있는 이유이다."20)
20) M . Planck, "The Unity of the Physical Universe, A Survey of Physics, Collection of Lectures and Essay (NewYork : E. P. Dutton, 25). p. I6.
동력학의 언어와 비교해 볼 때 어떻게 그같은 이상한 언어가 소리를 내는가! 동력학에서 임의의 대상계는 일단 주어진 궤적에 따라 변화하며 그 변화의 충발점을 결코 망각하지 않는다(초기조건은 시종일관 궤적을 결정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의의 고립된 계 내에서 모든 비평형 상황은 같은 종류의 평형상태를 향하여 진화한다. 평형에 즈음해서 고려하는 대상계는 그 초기조전을 망각한다――-이는 바로 평형의 채비를 갖추고 있는 통로이다.
따라서, 평형 아래 있는 임의의 대상계의 비열이나 압축률은 대상계가 이루워진 방법에 무관한 성질이다. 이같이 다행스런 여건은 물질의 물리적 상태의 연구를 크게 단순화시켜 준다. 사실상, 복잡한 대상계는 엄청난 수의 입자로 구성되어 있다.* 동력학의 관점으로부터 실제로 그와 같은 계의 상태는 발생할 수 있는 무한히 가능한 동력학적 상태의 다양성의 견지에서 재현하기란 불가능하다.*물리화학은 종종 아보가드로 수(Avogardro's number)를 사용한다-이는 물질의 I "몰" 속에 들어 있는 분자수이다(I몰은 언제나 같은 수의 입자, 수소 I몰내에 들어 있는 원자의 수). 이 수는 6x 1023 제곱의 수이며, 고전열역학의 제법칙에 의해서 지배되는 대상 체계를 이루는 입자수의 크기를 나타내는 특정값이다.
이제 우리들은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가지 묘사방법에 의해 도전받고 있다 : 동력학은 움직이는 운동의 세계에 적용되고 있으며, 열역학은 복잡한 계, 이의 고유한 진화의 방향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쪽으로 이르는 계에 대한 과학이다. 이와 같은 두 갈래는 어떻게 이 묘사 방법을 서로 연관지을 수 있는가의 의문과, 열역학의 제법칙이 생겨난 이래 계속 논의되어 왔던 문제를 다시금 즉각적으로 야기시킨다.
볼츠만의 질서원리
열역학 제2법칙은 두 가지의 근간이 되는 성분을 포함하고 있다 : (I)임의의 과정이 불가능한 것을 표현하는 "음수"적인 것과(뜨거운 열원으로부터 차가운 열원으로의 열의 흐름과 그 반대의 불가능성) 그리고 (2)양수적이며 건설적인 것이다. 두번째 것은 첫번째의 결과이다. 임의의 과정의 불가능성은 우리들로 하여금 고립되어 있는 대상체계의 균일하게 증가되는 함수, 엔트로피를 도입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어떻게 열역학의 체계화를 동력학과 연루시킬 수 있는가? 19세기말까지,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열역학의 원리는 고전적인 물리학으로 단순화시킬 수 없는 새로운 과학의 토대를 이루는 새로운 법칙이었다. 정상적인 에너지의 다양성과 소산해 버리는 경향 모두가 새로운 정리로서 받아들여졌다. 이 점은 - 복잡다단한 자연적인 현상을 운동의 법칙에 의해서 표현되는 기본적인 거동의 단순성으로 간단하게 처리하려는 ___ 원자론자들이 물리학의 핵심적 임무로 생각했던 사항을 포기하기를 거부하였던 이돌에 대한 반대 견해로서 ”에너지론자들"이 취한 논거가 되었다.실제로, 미시적 크기로부터 거시적 준위로 전이시키는 문제는 대체로 물리학의 발전에 예외적으로 결실이 많은 것임을 증명하려는 것이었다. 볼츠만은 그 도전에 뛰어든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는 궤적의 물리학을 열역학에서 정의되는 상황까지 취급할 수 있는 영역으로 연장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새로운 개념이 발전되어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막스웰의 발자취를 좇아서, 볼츠만은 확률이론으로 이와 같은 개념적 혁신을 추구했다.확률이 복잡한 현상을 규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는 생각은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막스웰 자신은, 사회학에서 보통사람을 찾아낸 쿠에를레의 업적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혁신은 물리학에 근사 방법의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설명적 원리로서 확률을 도입하려 했던 것으로, 하나의 대상계는 동계학의 법칙이 적용될 수 있는 커다란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는 관계로 새로운 형태의 거동을 나타내 보일 수 있는 임의의 대상계를 보이는 데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먼저 물리학에서 확률개념의 응용에 관한 간단한 경우를 생각하자. N개의 입자로 이루어져 있는 임의의 앙상블이 동일한 크기의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 상자 속에 들어 있다. 문제는 칸막이 사이에 여러가지 가능한 입자의 분포확률을 알아내는 것이다. 이는 첫번째 칸 속에 들어 있는 N1입자들을 발견하는 확률이다(그리고 N2=N-N1이 두번째에 들어 있다).
조합적 분석을 사용하여, N개의 입자들이 이룰 수 있는 서로 다른 분포를 갖는 방법의 수를 계산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만약 N=8이면, 여덟 개의 입자를 한 칸막이 내에 놓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 그렇지만 한 칸에 한 개의 입자를 놓으려면 여덟 가지의 방법이 있으며 다른 칸에 대하여는 일곱 가지 방법이 가능하다. 이때는 고전물리학에서 가정하는 것처럼 각각의 입자들이 서로 식별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였을 때이다. 더욱이, 두 칸 사이에 여덟 개 입자가 동일하게 분포하려면 8!/4!4!=70가지의 서로 다른 방법으로 수행할 수 있다(여기서 N!= I • 2 • 3 • • • (n-1) • n이다). 이같이 N의 값이 어떻든간에 물리학에서 樣相의 수(complexion)로 부르는 상황의 수 P는 주어진 분포 N1, N2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의 수로서 곧바로 정의된다. 이때 양상의 수 P=N!/N1! N2!로 표현된다. 주어진 집단에 대해서, 양상의 수는 N1과 N2 사이의 차이가 작을수록 큰 값을 갖는다. 더욱이 N의 값이 클수록 서로 다론 분포방법에 상응하는 양상의 수 사이의 차이는 더욱 커진다. 거시적 대상계에서 발견되는 1023개 차원의 N값에 대해서 가능한 분포의 지배적 다수는 N1=N2=N/2의 분포에 해당한다. 엄청난 수의 입자로 구성되어 있는 대상계에 있어서 동등한 분포에 상응하는 상태와 다른 모든 상태는 거의 있을 수 없다.볼츠만은 비가역적 엔트로피의 증가는 점증하는 분자간의 무질서, 어떤 주어진 초기 대칭성을 점차로 잊혀져 가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실증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비대칭성은 P의 최대값을 갖는 상태에 비교하여 양상의 수를 감소시킨다. 볼츠만은 따라서 양상의 수로서 엔트로피 S를 밝혀내는 데 목적을 두었다. 엔트로피는 거시적인 상태에 다다르는 방법의 수의 차원에서 볼 때 각각의 거시적인 대상계를 특정지워 준다. 볼츠만의 유명한 방정식 S=klogP*는 정량적인 형태로서 이*대수 표현에 따르면 엔트로피는 가산적인 양임을 나타낸다(S1+2=S1+S2). 반면 형편의 수는 승법적이다(P1+2=P1XP2).
와 같은 아이디어를 나타내 주고 있다. 이 공식에서 비례상수 k는 볼츠만 상수로 알려진 비례상수이다.
볼츠만의 결과에 의하면 비가역 열역학적 변화는 확률이 증가하는 상태를 향하여 변화하며 매력있는 상태는 최대확률에 일치하는 거시적 상태이다. 이 점은 바로 우리들로 하여금 뉴톤 개념을 넘어서게 해준다. 최초로 물리학적 개념이 확률로써 설명되었다. 이의 효용도는 곧바로 자명해진다. 확률은 모든 초가의 비대칭성 : 모든 특정한 분포를 망각해 버린 임의의 대상체계를 적절히 설명해 준다(예를 들어, 일련의 입자들이 대상체계의 국부영역에 집중되어 있거나, 온도가 다른 두 기체가 섞일 때 생성되는 속도의 분포) . 이와 같은 망각은 고려하는 대상계에의 특정한 전화가 무엇이든 가능하며, 대상계는 최대 대칭과 거시적 무질서 상태에 상응하는 미시적인 상태 중의 하나에 궁극적으로 아르게 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거시적 상태는 가능한 미시적 상태의 지배적 다수에 상응하기 때문이다. 일단 이와 같은 상태에 이르면, 대상계는 짧은 시간 간격의 짧은 거리로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움직이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단순히 매력있는 상태의 주변을 섭동하게 된다.볼츠만의 질서원리는 임의의 대상계에 가장 가능한 확률적 상태는 대상계 내에서 동시에 서로 다른 상태를 통계적으로 보상해 주기 위해서 엄청난 수의 사건들이 발생하는 것과 같다. 첫째 예의 경우에서는 초기분포가 어떠하였든간에 대상계의 진화는 궁극적으로 N1=N2인 동등한 분포상태에 이르게 한다. 이와 같은 상태는 대상계의 바가역 거시적 진화를 멈추게 할 것이다. 물론 입자들은 한쪽 칸에서 다른 칸으로 쉬임없이 이동하지만 어떤 주어진 시간의 평균은 각 방향으로의 움직임이 동일하게 된다. 그 결과 그들의 움직임은 N1=N2의 평형상태 부근에서 대단히 작고, 생명이 짧은 요동만을 일으키게 된다. 볼츠만의 확률적 해설은 따라서 평형열역학에서 연구된 유인자의 특정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이 이야기가 전부는 아니다. 이 책의 제3권에서 보다 자세한 토론에 지면을 할애할 예정이다. 여기서는 몇 가지 사항만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고전역학에서 (그리고, 뒤에서 볼 수 있듯이 양자역학은 물론이려니와) 모든 것은 초기의 상태와 운동의 법칙으로 결정되었다. 그렇다면 확률이 자연을 묘사하는 데 들어간단 말인가? 여기서는 대상계의 정확한 동적 상태에 대한 우리들의 무지를 자극하는 일이 상례이다. 이는 엔트로피의 주관론적인 해설이다. 그와 같은 해설은 비가역 과정을 단순히 열기관이 작동될 때의 마찰 또는 보다 일반적으로 손실에 상응하는 뉘앙스로 간주할 때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상황은 변하였다. 나중에 보겠지만 비가역과정은 엄청난 생산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생명은 그들없이 가능하지 못했을 것이다. 주관론적 해설은 따라서 지극히 의문스럽다. 우리 자신은 단지 우리의 무지의 결과인가, 또는 인간이 거시적 상태만을 관찰할 수 있는 사실의 결과 때문인가?
더욱이, 열역학과 이의 확률적 해설 모두는 물론, 시간에 대한 어떤 비대칭성으로 볼 수 있다 : 엔트로피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의 방향으로 증가된다. 동력학적 방정식이 시간의 반전에 대하여 불변이라 할 때 이같은 일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뒤에 언급하겠지만 제2법칙은 동력학에 버금가는 선택의 원리이며 이로부터 연역할 수는 없는 법칙이다. 이 법칙은 임의의 동력학적 체계에서 가능한 초기조건에 한계를 부여한다. 제2법칙은 따라서, 고전 또는 양자론적 동력학의 기계론적 세계로부터 급진적으로 벗어난다. 다시 볼츠만의 위업으로 되돌아가자.지금까지는 고립되어 있는 대상계에 관하여 토의하였으며 이때 전체 에너지는 물론 입자의 수가 경계조건에 의해서 고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볼츠만의 설명은 대상계가 주위와 상관관계를 갖는 개방된 대상계로 연장이 가능하다. 닫혀 있는 대상계에서, 주위와 열을 교환하면서 계의 온도 T와 같은 경계조건을 등온으로 유지시켜 준다고 할 때, 평형은 엔트로피 최대의 경우가 아니라 유사한 함수, 자유에너지의 최소값의 관점에서 대상계가 정의된다 : F=E-TS, 여기서 E는 대상계의 에너지, T는 온도이다(소위 말하는 켈빈 Kelvin척도에 의해서 측정되며 물이 어는 점은 273·K 그리고 끓는 점은 373·K이다).이 공식은 평형이란 에너지와 엔트로피 사이의 경쟁의 결과임을 의미한다. 온도는 두 인자의 상대적 무게를 결정한다. 낮은 온도에서는 에너지가 지배적이며, 이때는 결정체와 같은 정돈되고(약한 엔트로피) 낮은 에너지 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이들 구조 내에서, 각 분자는 주위의 분자와 상호작용을 하며, 각 분자와 이웃분자간의 인력으로부터 기인되는 포텐셜 에너지에 대하여 운동에너지는 매우 낮다. 각 입자는 주위와의 제한된 상호작용에 갇혀 있는 것으로 상상할 수 있다. 고온에서는, 그러나, 엔트로피가 지배적이며 따라서 분자들은 무질서하다. 상대적으로 운동의 중요성이 증가되며 결정의 규칙성은 파괴된다 : 온도가 증가됨에 따라 결정은 액체상태로 되고, 다시 기체상태로 된다.
고립되어 있는 대상계의 엔트로피 S나 온도가 고정되어 있는 대상계의 자유에너지 F는 "열역학적 포텐셜”의 예이다. S나 F와 같은 열역학적 포텐셜의 극단의 경우는 이와 같은 포텐셜의 정의에 상응하는 경계조건을 갖는 계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매력적인 상태를 정의해 준다. 볼츠만의 원리는 狀의 공존관계나(액체상과 고체상과 같은) 결정화된 생성물과 용액 내의 동일한 생성물 사이의 평형관계의 연구에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중요한 점은, 평형구조는 분자수준에서 정의된다는 것이다. 분자들이 10-8cm 정도의 범위에 걸쳐 서로 작용하고, 분자들 내의 원자도 흡사한 범위의 상호작용을 갖게 되며 이같은 작용은 결정구조를 안정하게 하거나 전체 결과로서 거시적 성질을 부여해 준다. 반면 결정 크기는 구조의 고유한 성질이 아니다. 결정 크기는 평형상태에 있는 결정 상의 물질의 양에 의존적이다.카르노와 다윈평형열역학은 엄청난 수의 물리화학적 현상에 대하여 만족할 만한 설명을 부여해 준다. 그렇다면 평형구조는 우리가 자연에서 접하게 되는 또다른 구조들까지를 총망라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자문해 볼 수 있다. 명백히 대답은 “아니요“다. 평형구조는 미시적 성분의 (분자나 원자들) 활동에 대한 통계적 보상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정의에 따라 그들은 전체 범위에서볼 때 활성이 없다. 이 같은 이유로 그들은 또한 죽지 않는다 (immortal)." 일단 형성되면 고립되고 주위와 더이상의 상호작용 없이 무한한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들이 생체세포나, 어떤 한 도시를 관찰할 때 상황은 전혀 다르다 : 그 대상계는 개방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개방적이기 때문에 존재한다. 의부세계로부터 제공되는 물질과 에너지의 플럭스를 먹는다. 한 결정체는 고립시킬 수 있으나 도시나 세포를 주위와 단절시켜 버리면 죽고 만다. 우주의 한 부분을 형성하며 그로부터 생존하며, 끊임없이 변모케 하는 플럭스들을 분리해 버릴 수 없다.
그러나 열역학적 평형모델에 크게 이방인격인 대상은 살아 있는 자연체에 국한되지 않는다. 유체역학과 화학반웅은 언제나 외부세계와 물질과 에너지의 교환을 수반한다.볼츠만의 질서원리를 그와 같은 상황에 어떻게 응용시키나 하는 문제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임의의 대상계는 더욱 균일하게 되어 버린다는 사실은 양상의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균일한 상태에서, 초기조건에 의해 도래하는 "차이점”을 망각하게 될 때, 양상의 수는 최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관점으로부터 자발적인 대류(convection)현상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대류의 흐름은 응집상태의 이해와 무수한 숫자의 분자에 대한 협동을 필요로 한다. 이 경우는 무질서의 반대 상황이며, 선택된 상태로서 양상의 수가 비교적 작은 경우에 상응한다. 볼츠만의 표현에 의하면, 이 경우는 설상가상”의 상태이다. 만약 대류작용을 어떤 “기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면, 이제 가장 간단한 유기체로 존재하는 고유한 특성을 갖는 생명에 관해서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평형모델의 적법성을 반전시킬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평형에 도달하기 위해서 임의의 대상계는 자연을 구성하고 있는 플럭스로부터 반드시 보호? 되어야 한다. 소위 말해 "통조림화”되어 있거나, 또는 괴테의 파우스트 작품의 난장이처럼 그를 창조한 연금술사에게 다음과 갇이 말하며 병 속에 들어 있어야 한다 : ”이리 오십시오, 당신의 가슴으로 저를 부드럽게 눌러 주십시오, 그러나 너무 세게 누르지 마세요, 유리가 깨질지도 모르니까요. 이것은 바로 모든 것들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세상 전체는 무엇인가 당연한 것만으로 충분치 못합니다. 인위적인 것은 닫혀 버린 공간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익숙해 있는 세계에서 평형은 거의 없으며. 대단히 불확실하다. 비록 평형을 향한 진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다소 암시는 해주지만 상상할 수 있는 우주체계의 부분적 고립을 위해서 태양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태양의 온도에서 통조림화”는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임의의 우주, 평형과 비평형이 공존하는 "미온적인” 세계에서는 비평형이 지배자로 남는다.
오랜 동안 물리학자들은 물리학의 기본적인 법칙으로부터 연역해낼 수 있는 전화개념만으로, 예측할 수 있고, 재현시킬 수 있으며 평형에 접근하는 유일한 물리적 질서만으로 활성이 없는 결정체의 구조를 정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열역학적 정의로부터 외삽되는 어떤 시도도 생물학이나 사회과학에 의해 정의되는 진화의 종류는 매우 드물고 예측이 곤란한 것으로 규정해 버리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어떻게 다윈의 진화론-거의 희박한 동계적 선택-을 볼츠만에 의해 정의되는 특이한 것, 거의 희박한 모든 배열 구조의 통계적 소멸에 조화시킬 수 있는가? 케이오21)의 질문처럼 ; 카르노와 다원 모두가 옳을 수 있는가?21) R. Caillois, La dissymetrie, Coherences aventurezlSes, Collection Idees(Paris : Gallimard, 1973), p, 198,
다윈의 접근이 볼츠만에 의해 탐험된 경로와 본질에서 어떻게 유사한가롤 살피는 일은 홍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아마도 우연의 일치 이상일 것이다. 볼츠만은 다윈을 지극히 숭앙하였음을 알고 있다. 다윈의 이론은 種의 자발적인 요동이란 가정으로부터 시작된다. 선택은 비가역적 생물학적 전화에 이르게 한다. 그러므로 볼츠만처럼 무질서도는 비가역성에 이른다. 아직도 그 결과는 대단히 다르다. 볼츠만의 해설은 초기조건의 망각을 암시하며 초기구조의 파괴를 시사하는 반면 다윈의 전화론은 자기-구성과 쉬임없이 전화하는 복잡성에 연루되어 있다. 지금까지의 토의를 종합하여 볼 때, 평형열역학은 자연의 복잡성의 문제에 대한 물리학의 최초의 반응이었다.
이 반응은 에너지의 소산, 초기조건의 망각, 그리고 무질서를 향한 진화의 관점으로 표현되었다. 고전동력학은 영원의 과학이며, 가역적 궤적의 과학으로 19세기에 직면하였던 문제, 진화의 개념에 의해 지배된 시대의 이방인이었다. 평형열역학은 시간에 대한 관점을 다른 과학의 관점에 반대되는 위치에 두었다. 열역학의 경우에 시간은 변질과 죽음을 시사한다. 앞서 보았듯이 디드로는 이미 질문했다 : 감각을 부여받은 조직화된 존재, 인간은 동력학에 의존되는 활성이 없는 이 우주의 어디에 서 있는가? 그곳에는 또다른 질문이 있으며 무려 한 세기 이상 우리를 괴롭게 하였다. 열역학에 의해 정의된 세계, 상증하는 무질서의 세계에서 살아있는 존재의 진화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열역학적 시간과 평형을 향하고 있는 시간, 그리고 증가 일로의 복잡성이 발생하고 있는 쪽을 향한 전화가 포함되는 시간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베르그송이 옳았는가? 시간은 혁신의 와중에 존재하는가 또는 시간이란 아무것도 아닌가?제5장
열역학의 세 가지 단계플럭스와 힘앞장에서 설명한 열역학 제2법칙의 정의로 다시 돌아가자.1) 엔트로피 개념은 진화를 정의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미 보았듯이 엔트로피의 변화는 두 가지 항의 합으로 쓸 수 있다 : deS 항은 고려하는 대상계와 나머지 우주 사이에 교환되는 임의의 양에 연결되어 있는 양과 생성항, diS는 대상계 내의 비가역 현상으로부터 기인되는 항이다. 이 항은 열역학적 평형상태에서 0이 되며 이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양수의 값이다. 고립되어 있는 대상계에 대하여 (deS=o) 평형상태는 최대 엔트로피 상태에 상응한다.I) 이 내용과 다음 장에서 다루고 있는 세부 내용에 관해서는 P. Glansdorff와 I. Prigogine의 Thermodynamic Theory of Strnchtre, Stability and Flucluations(New York : John Wiley & Sons, 1971)과 G. Nicolis와. I. Progine의 . Self-Organization in Non-Equilibrium Syslems (New York : John Wiley & Sons, 1977)을 참고할 수 있다. 이들 문헌에서 보다 더 포괄적인 참고 문헌을 찾아낼 수 있다.
물리학에서 제2법칙의 중요성을 피력하기 위해서는 엔트로피 생성, d, S나 또는 단위 시간당 엔트로피 생성 P=diS/dt가 수반되는 다양한 비가역 현상의 자세한 정의가 필요하다.
우리에게 화학반응은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열전도와 함께, 이들은 비가역과정의 원형을 이룬다. 이들의 원천적인 중요성에 더하여 화학공정은 생물학에서 근본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살아 있는 세포는 끊임없는 신진대사 작용을 담당한다. 세포들이 맞아들이는 물질은 근본적인 생물분자로 합성변환하거나 폐기생성물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수천 가지의 화학반응이 동시에 발생한다. 세포 내의 서로 다른 반응속도 멋 서로 다른 반응위치 모두에 관해서 이 화학작용은 지극히 대등한 중요성을 갖는다. 생물학적 구조는 따라서 질서와 작용을 통합해 준다. 반대로 평형상태는 예를 들어 결정체처럼 어떤 구조를 이룬다 할지라도 활력이 없는 채 남아 있다. 화학반응과정은 결정체의 거동과 세포 거동의 차이에 결정적인 열쇠를 부여해 줄 수 있는가? 따라서 화학반응은 속도론과 열역학 모두의 양면적인 견해로 생각하여야 한다.
속도론적 입장에서, 근본적인 양은 반응속도이다. 화학반응 속도의 고전적 이론에서 화학반응의 속도는 반응에 참여하는 생성물의 농도에 비례한다는 가정에 기초를 두고 있다. 사실상 화학반응이 일어나고 있는 분자들 사이의 충돌에 의해 반응속도는 결정되며, 충돌의 횟수는 반응하는 분자의 생성물 농도에 비례한다.예를 위해서, A+X-B+Y가 되는 간단한 반응을 택해 보자. 이 반응식은 성분 A의 분자가 X의 분자를 만날 때는 언제나 화학반응이 일어날 것이고 B의 분자와 Y의 분자가 생성될 임의의 확률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분자가 수반되는 변화를 초래하는 충돌은 반응성 충돌”이다. 모든 충돌의 대단히 작은 분율(예를 들어 IO-6)만이 반웅에 참여한다. 대부분의 경우에 분자들은 그들 고유의 성격을 유지하면서 단순히 에너지만을 교환한다. 화학 속도론은 임의의 반응에 수반된 서로 다른 생성물의 농도 변화를 취급한다. 이 속도론은 운동이 뉴론방정식에 의해 정의되듯이 미분방정식에 의해 정의된다. 그러나, 이 경우, 가속도를 계산하지는 않으며 농도의 변화속도를 계산하며, 이 속도는 반응뭉 농도의 함수로써 표현한다. X의 농도 변화율, dX/dt는 용액 내의 A와 X의 농도의 곱에 비례하며 dX/dt=-kA • X이며, 여기서 k는 비례상수로 온도나 압력과 같은 양에 연계되어 있으며 A+X-Y+B의 반응에 이르는 반응성 충돌의 발생분율의 척도를 제공해 준다. 그러나, 앞의 예에서, X분자 한 개가 사라질 때는 언제나 A분자 하나도 역시 함께 사라지고, Y분자 한 개와는 다B :분 d자X /한dt =개d가A /d형t성=된 —다dY. /농dt도=의 — d변B화/d속t. 도는 다음과 갇은 관계를 갖 그러나 만약 X분자 한 개와 A분자 한 개 사이의 충돌이 화학 반응에 이르면 Y분자 한 개와 B분자 한 개 사이의 충돌은 그 반대의 화학반응에 이른다. 두번째의 반응 Y+B-X+A는 X농도의 부가적인 변화에 의하는 화학반응 dX/dt= -k' • Y • B를 유발한다 . 임 의 의 화합물의 농도의 전체변화는 정방향 및 역방향 반응 사이의 균형에 의해서 주어진다. 즉, dX/dt(=-dY/dt= • • • ) =-kAX+k'AB이다.
만약 의부의 간섭이 없으면, 고려하는 대상계에서 화학반응은 화학평형 상태를 향해서 진행되는 경향을 나타낼 것이다. 화학평형은 따라서 "유인자” 상태의 대표적인 예이다. 대상계의 초기화학 조성이 어떠하였든, 대상계는 자발적으로 이 최종단계에 이르며, 그곳에서는 통계적으로 보아 정방향 및 역방향 속도가 서로 상쇄되어 더이상 농도의 전체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dX/dt= o) . 이 와 갇은 보상은 평 형농도의 비율이 AX/YB=k'/k=K임을 시사한다. 이 결과는 질량작용의 법칙” 또는 굴드베르그(Guldberg)와 바게 (Waage)의 법칙으로 알려져 있으며 K는 평형상수이다. 농도간의 비율은 온도의 균일성(고립되어 있는 계의 경우)이 열적 평형에 상응하듯 화학평형에 상응하는 질량작용에 의해서 결정한다. 상응하는 엔트로피 생성은 사라진다.화학반응에 관한 열역학적 정의를 취급하기 전에, 속도론적 정의의 부가적인 목칭을 간략히 고려해 보자. 화학반응속도는 반응하는 분자의 농도와 열역학적 매개변수(예를 들면 압력과 온도)에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화학반응 동안 그 자체의 변화없이 화학반응 속도를 다르게 하는 화학물질의 존재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이와 같은 물질은 “촉매”로 알려진 물질들이다. 촉매는 예를 들어, 속도상수 k나 k' 값을 다르게 하거나 대상계가 새로운 "반응경로”에 따를 수 있게 한다. 생물학에서, 이 역할은 "효소”라고 하는 특정한 단백질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와 같은 고분자들은 주어진 반응의 속도를 다르게 하기 위한 임의의 공간배열이 허용된다. 이와 같은 공간배열은 종종 매우 특정하여 오로지 한 가지 반응에만 영향을 미친다. 효소들의 촉매 역할에 대한 가능한 메카니즘은 다른 반응자리”를 제공하여 반응에 참여하는 다른 분자들이 그 자리에 달라붙게 함으로써 반응물이 접촉하여 반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증가시켜 준다.
특히 생물학에서 촉매의 중요한 형태의 하나는 생물의 존재가 촉매 그 자신을 합성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종류아다. 다시 말해, 분자 X를 생성하기 위해서는 이미 X가 존재하는 대상계와 함께 개시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분자 X는 효소가 활성을 갖도록 해준다. 반응물이 효소에 달라붙게 함으로써 반응자리가 가능한 특정 배열로 안정화된다. 그와 같은 자촉매과정은 A+2X-3X 같은 반응기구에 상응한다 : 분자 X의 존재 아래 분자 A는 X 분자로 전환된다. 그러므로 더 많은 X를 생성하기 위해서 X가 필요된다. 이 반응은 다음의 반응 ”고리”에 의해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A 三x
이와 같은 "반응고리”를 따르는 대상계의 중요한 특징의 하나는 그들 내에서 발생하는 변화를 설명하는 속도방정식이 비선형 미분방정식들로 표시되는 점이다.
위와 같은 방법을 적용하면, A+2X-+ 3X의 반응에서 얻어낸 속도방정식은 dX/dt=kAX2이며, X의 농도 변화율은 이의 농도제곱에 비례한다.생물학에서 대단히 중요한 또다른 종류의 촉매반응은 교차촉매의 경우이다. 예를 들면, 2X+Y-+3X나 B+X-Y+D와 갇은 반응을 그림 3의 반응고리에 의해 나타낼 수 있다.이는 교차촉매의 경우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X는 Y로부터 생성되고 동시에 X로부터 Y가 생성된다. 촉매는 반응속도를 증가시킬 필요를 갖지 않는다 ; 반대로 반응억제를 유도하며, 적당한 되먹임 고리에 의해 표
A--x
그림 3. 이 그립은 브위셀레이터 반응에 대한 반웅경로를 나타내고 있으며, 본문에서 자세히 선명하였다.
현할 수 있다.
촉매과정과 함께 화학과정을 정의하는 비선형 미분방정식의 특이한 수학적 성질은, 후에 언급되겠지만, 평형으로부터 멀리 있는 상태에서 운전되는 화학공정의 열역학적 연구에 대단히 중요하다. 또한, 이미 언급한 대로, 분자생물학은 이와 같은 고리가 신진대사 기능의 핵심적인 부분을 담당하고 있음을 알아내었다. 예를 들어 핵산과 단백질의 관계는 교차촉매 영향의 관점에서 정의될 수 있다 : 핵산은 단백질을 생성할 수 있는 정보를 포함하고 있으며, 교대로 단백질은 핵산을 생성한다.화학반응속도에 부가하여, 열전달이나 물질의 확산과 같은 다른 비가역 과정의 속도를 반드시 고려하여야 한다. 비가역과정의 속도는 또한 플럭스(flux)로 부르며 기호 J로 표시한다. 속도나 플럭스의 형태를 도출해낼 수 있는 일반화된 이론은 아직 없다. 화학반응에서 속도는 분자 메카니즘에 의존하며, 이미 나타냈던 예제에 의해서 증명해낼 수 있다. 비가역과정의 열역학에서는 제 2형태의 양을 도입한다 : 속도나 풀럭스, J에 대하여, “일반화된 힘” X를 사용하며 이는 플럭스를 가능하게 하는 "원인”이다. 가장 간단한 형태는 열전도이다. 후리어의 법칙에서 열플럭스 J는 온도구배에 비례함을 알려 준다. 이 온도구배는 열플럭스의 원인이 되는 "힘”이다. 정의에 의해서, 플럭스와 힘 두 양은 열적 평형에서 사라진다. 뒤에 언급되듯이 엔트로피생성 P=diS/dt는 플럭스와 힘으로부터 계산할 수 있다.화학반응에 상응하는 일반화된 힘의 정의를 고려해 보자. 반응 A+X-+Y+B를 재음미해 보자. 평형에서 각 성분의 농도간의 비율이 질량작용법칙에 의해서 어떻게 주어지는지를 살펴보았다. 돈더가 보인 것처럼, 임의의 "화학적인 힘”으로서 온도의 구배가 열이 흐를 방향을 결정해 주듯이 화학반응속도의 방향을 결정해 주는 친화력 (affinity), A를 도입할 수 있다. 우리들이 고려하고 있는 반응의 경우에, 친화력은 대수 KBY/AX에 비례하며 K는 평형상수이다. 곧바로 분명한 것은 친화력 A는 질량작용 법칙에 따라 평형에서 사라져 버리는, AX/BY=K가 된다. 친화력은 고려하는 계를 평형으로부터 멀리 두었을 때 증가한다(절대값으로) . 이같은 결과는 만약 A+B-Y+B의 반응을 통해서 생성되는 B 분자의 일정 분윤을 대상계로부터 제거시켜 버릴 때 나타난다. 친화력은 대상계의 실제 상태와 이의 평형상태 사이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더욱이, 앞서 보았듯이, 이의 부호는 화학반응의 방향을 결정해 준다. 만약 A가 양수이면 B와 Y의 분자들이 "너무 많이" 존재하며 순수 화학반응은 B+A-A+X의 방향으로 진행한다. 반대로, 만약 A가 음수이면 B와 Y가 너무 적어” 순수반응은 반대방향으로 진행한다.
앞서 정의한 천화력은 화학물질-이는 분자들의 “同種과 異租간의 인력_-―간의 선택적 관계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하여 연금술사들에 의해 정의됐던 고대 친화력보다 더욱 엄밀히 화학반응에 적용되는 함수이다. 화학적 활동도는 기계적인 궤적으로 단순화시킬 수 있으며, 동력학적 법칙의 단순한 적용에 의해서 간단히 할 수 없다는 아이디어는 그 시작부터 강조되어 온 점이다. 우리들은 디드로의 주장을 보다 장황히 인용할 수 있다. 후에, 니쯔시는, 다른 맥락에서, 비록 도덕적 법칙과 유사한 법칙들에 의해서 화학물체가 지배되었다 할지라도 화학 법칙을 운운하는 일은 우스광스런 일이라 주장하였다. 그가 주장하였듯이 화학에서는 아무런 제한 사항이 없으며 각 물체는 그가 원하는 것에 따라 행위한다. 이는 "존경”의 문제가 아니라 힘의 두쟁이며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무모하게 지배하는 것과 같다.2) 화학평형은 천화력이 사라지면서 야기되는 모순에2) F. Nietzsche, Der Wille zur Macht, Samtliche Werke (Stuttgart : Kroner, 1964) , 격언 630.
찬 투쟁적 해결과도 같다. 따라서 이같은 관점에서 볼 때 열역학적 친화력의 특정성질은 오래된 문제를 현대적 언어로 재현한3) 것으로서, 동력학 법칙에 무관한 합법적인 세계와 화학반응이 포함되는 자발적이며 생산적 활동도의 세계 사이의 구분에 관한 문제이다.
3) 엔트로피 성장의 일반적인 법칙에 어떤 엄밀한 내용운 재시해 중 수 있는가? de Donder와 같은 이론물리학자에 있어, 화학적 활동도는, 추상적으로 보이고, 역학의 이성적인 방법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것으로서, 비가역과정의 동의어가 되기에 충분할이만큼 신비스런 값이었다. 따라서, 화학은, 이에 대한 대답을 물리 학자의 입장에서는 결코 진실되게 할 수 없는 것이며, 비가역성의 새로운 수수께끼는 더이상 무사되어서는 안되는 어떤 도전에 속하게 되었다. 더 자세한 사항을 위해서는 Th. De Donder, L'Affinile(Paris : Gauthiervillars, 1962)와 L. Onsager, Phys. Rev, 37, 405(1931)을 참조할 수 있음.
물리학과 화학의 기본적인 관념적 차이를 강조해 보자. 고전물리학에서 우리는 적어도 마찰이 없는 추의 운동과 같은 가역적인 과정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동력학에서 비가역과정을 무시해 버리는 일은 임의의 이상화에 상응한다. 그러나 적어도 몇몇 경우에서 이는 의미있는 일이다. 화학에서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여기서 화학을 정의하는 과정은-반응속도에 의해서 특징지워지는 화학변환――-비가역적이다. 이와 같은 연유로 화학은 과거나 미래가 동등한 역할을 이루는 고전 또는 양자역학의 기초에 깔려 있는 이상화로 간단히 될 수 없는 사항이다.
기대한 바 모든 가능한 비가역적 과정은 엔트로피 생성에 포함된다. 그들 각자는 속도의 곱이나 또는 플럭스 J와 대응하는 힘 X를 곱한 양으로 포함된다. 단위시간당 전체 엔트로피 생성, P=diS/dt는 이와 같은 요인들의 기여도의 합이다. 그들 각자는 JX의 공급을 동해 엔트로피 생성에 기여한다.우리들은 열역학을 세 가지의 큰 분야들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들에 대한 연구는 열역학이 발전되는 세 가지의 단계에 상응한다. 엔트로피 생성, 플럭스, 그리고 힘들은 평형에서 0이다. 평형에 인접한 영역에서, 열역학적 힘들은 "약"하며 속도 Jk는 힘에 선형적 함수이다. 세번째 영역은 "비선형" 영역으로, 이곳에서 속도는 힘에 보다 복잡하게 얽혀 있다. 먼저 평형에 인접한 상황에 적용하기 위한 선형 열역학의 몇 가지 일반적인 특징을 강조하여보자.
선형 열역학I93I년에 온사거는 선형, 평형 근방 영역에 대한 비평형 열역학의 일반적인 관계를 처음으로 발견하였다. 정리는 그 유명한 상보 관계 (reciprocity relation)”이다. 이를 테면 정상적으로 보아 이 관계는, 마치 어떤 힘 "하나"(예를 들면 온도 구배에 상응)는 플럭스 "둘"(예를 들면 확산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이때 힘 "둘”(어떤 농도구배)은 풀럭스 “하나"(열흐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사실은 실제로 증명된 사실이다. 예를 들어, 어떤 열구배가 물질의 확산과정을 유도하게 되는 경우에, 농도의 구배는 대상계를 통한 열플럭스를 발생하게 할 수 있다.온사거 관계의 일반적 성격은 꼭 강조하여 짚고 넘어가야만 한다. 예를 들어 비가역과정이 기체, 액체, 또는 고체 매체 내에서 일어날지 아닐지는 전혀 추량이 안된다. 상보관계 표현은 어떤 미시적 가정에 대하여 독립적으로 성립한다.상보관계는 잘못된 무인도가 아니라 이의 유용도가 평형 열역학과 비교할 수 있을 만치 연구의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 보이기 위한 비가역과정에 대한 열역학의 최초의 결실이었다. 평형 열역학이 I9세기의 위대한 성취라면 비평형 열역학은 20세기에 발전되었으며 온사거의 관계는 관심이 평형으로부터 비평형으로 향하는 추이의 결정적인 지접을 표시해준다.선형성의 분야에 대한 제2의 결과로 비평형 열역학의 평형 근방에서의 특징은 여기에서 언급하는 바와 같다. 앞서 말했듯이 열역학적 포텐셜의 국단적인 값은 비가역적인 열역학적 진화가 일어나려고 하는 방향을 향한 평형상태와 상응한다. 포텐셜은 고립되어 있는 계에 대한 엔트로피 S이거나 주어진 온도에서 닫혀 있는 대상계의 자유에너지 F와 같다. 평형 부근에 있는 계의 열역학 또한 이와 동등한 함수개념을 도입시킨다. 그와같은 포텐셜은 자체가 엔트로피 생성 P라는 사실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사실상 최소 엔트로피 생성이론은 온사거의 관계가 유효한 영역에서―― 즉, 선형적인 영역-고려하는 대상계는 그 계에 부과된 제한 사항에 버금되는 최소 엔트로피 생성에 의해서 특징지워지는 임의의 정류된 상태를 향하여 진화된다. 이와 같은 제한사항들은 경계조건에 의해서 결정된다. 예를 들어, 대상계 내에서 서로 다른 온도를 유지시키고 있는 두 점에 상응하거나 연속적으로 반응이 진행되고 생성물이 제거될 수 있도록 물질의 플럭스를 유지시키는 경우가 될 수 있다.
대상계가 진화되기 위해 향하고 있는 정류(stationary)된 상태는 필연적으로 비평형상태이며 소멸되지 않는 속도를 갖는 소산과정이 발생되는 상태이다. 그러나 이 상태는 정지되어 있는 상태이므로 그 대상계를 정의하는 모든 양, 즉 온도나 농도는 시간 독립적인 양이 된다. 이와 유사하게 대상계의 엔트로피는 시간에 독립적으로 된다. 따라서 이의 시간 변화는 dS=o이 된다. 그러나 앞서 보았듯이 엔트로피의 시간 변화는 두 가지 항으로 이루어져 있다-엔트로피 흐름 deS와 양수의 엔트로피 생성 diS이다. 따라서 dS=o이 시사하는 바는 deS=-diS상태로 옮아갈 것이다.
선형 열역학은 따라서 임의의 대상계에 공급되는 플럭스에 따르는 최소한의 활동도를 향하여 옮아가려고 하는 대상계의 안정하고, 예측이 가능한 거동을 정의한다. 선형 열역학은 평형 열역학처럼 포텐셜이나 엔트로피 생성의 관점에서 정의될 수 있다는 사실은 평형을 향한 진화나 초기조건을 망각해 버린 정류상태를 향한 진화 두 가지 모두를 시사하고 있다. 초기조전이 무엇이든 대상계는 경계조건에 의해 부과되는 값들에 따라 최종으로 이르게 될 상태를 결정해 준다. 결과로서, 그와 같은 대상계의 화학반응이 주어진 경계조전 아래에서 어떤 변화도 완전히 예측가능하다.선형영역에서 대상계의 상황은 근본적으로 평형의 상황과 같음을 볼 수 있다. 비록 엔트로피 생성은 없어지지 않지만 일반적인 보편법칙들만으로 연역해낸 수 있는 상태를 향한 진화로써 밝혀낼 수 있는 비가역적 변화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 ‘됨'은 피할 수 없이 어떤 차이와 특정성도 파괴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카르노인가, 아니면 다윈인가? 제4장에서 언급한 모순은 그대로 남아 있다. 아직까지도 한편에서 자연적으로 조직된 형태의 도래와, 다른 한편으로, 결과론적인 비조직형태를 따라서 초기조건을 "망각"하려는 경향 사이에는 아무런 연결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평형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비선형 열역학이 놓여 있는 그 시작부터 뭔가 아주 놀랍고 제일 먼저 부각된 일은 실패뿐이었다 :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플럭스가 더이상 힘(force)의 선형함수로 정의될 수 없는 대상체계를 최소 엔트로피 생성원리로 일반화하기란 불가능하였다. 평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대상계는 아직도 임의의 정상상태로 전화될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이 상태는 뭔가 적절히 선정된 포텐셜(평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의 엔트로피 생성과 같은)의 견지에서 더이상 특징지을 수 없었다. 임의 포텐셜함수의 부재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시킨다 : 대상계가 진화되려 하는 방향에 대한 상태의 안정성에 관해 대체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사실상, 유인자 상태를 엔트로피 생성과 같은 포텐셜의 최소에 의하여 정의할 수 있는 한, 대상계 상태의 안정성은 보장된다. 그러나 어떤 미세요동이 대상계를 엔트로피 최소로부터 멀리 있게 이동시킬 수 있는 점도 사실이다. 그러나 열역학 제2법칙은 유인자를 향한 되돌림을 강요한다. 대상계는 따라서 요동에 대하여 "면역"되어 있다. 임의의 포텐셜을 정의할 때는 언재나 안정한 세계를 정의하며 그 속에서 대상계는 진화를 따라서 영원히 확립될 수 있는 어떤 정적인 상태로 이르도록 만든다.
임의의 대상계에 작용하는 열역학적 힘이 그와 같은 선형영역을 초과하도록 할 때에는, 정류된 상태의 안정성, 또는 대상계의 요동에 대한 독립성 등은 더이상 당연한 것으로 간주할 수 없게 된다. 안정성은 더이상 물리학의 보편적인 법칙의 귀결이 아니다. 반드시 어떤 정류된 상태가 대상계나 주위에 의해서 발생되는 서로 다른 요동의 다른 형태에 반응하는 방법을 검토해 보아야 한다. 이 분석은 어떤 상태는 "불안정"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그런 상태 아래에서, 특정한 요동은 감쇠되는 대신, 증폭되어 전체대상계에 침범할 수 있으며, 대상계를 최소 엔트로피 생성에 따르는 정류된 상태와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어떤 새로운 영역을 향하여 전화되도록 강요해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열역학은 대상계에 관해서 평형을 지배하는 질서의 형태로부터 탈피하기 쉽다는 초기의 보편적인 결론에 이르게 한다. 이와 같은 대상계는 평형으로부터 멀리 있는 상태를 가져야만 한다. 불안정성이 가능한 경우에 있어서 반드시 불안정성의 문턱이나 분기영역, 평형으로부터의 거리, 평형이나 평형 근방에 있는 대상계의 “정상적인 안정된 거동 특성과는 개념을 달리하는 새로운 거동에 이르게 하는 요동에 관해서 면밀한 확인이 따라야 한다. 이 결론은 왜 그다지 흥미로운가?이같은 현상은 유체역학이나 유체흐름을 다루는 분야에 매우 잘 알려져있다. 예를 들어, 일단 어떤 특정한 플럭스의 유속에 다다르면 유체 내에서 난류(turbulence)가 발생할 수 있다. 세레스4)는 최근 초기 원자론자4) M . Serres, La naissance de la physique dans le tezte de Lucrece, 제 2장 에서 인용한 참고문헌 15.
들이 난류흐름에 대해 깊게 관심을 가졌었고 루크레티안 물리학*의 영감의 근원으로서 난류를 매우 합리적인 것으로 간주하였었다는 사실을 회상한 바 있다. 우리로서는 그 시간 및 장소가 확실치는 않지만 언젠가 루크레티우스는 원자의 영원한, 보편적인 움직임은 대단히 미미한 빗나감―"클라이나멘(Clinamen)”에 의해 방해받는다고 쓴 적이 있다. 결과적인 소용돌이는 우주와, 모든 자연의 사물에서 야기된다. 클라이나멘의 자발적 예측불허의 편차는 루크레티우스 물리체계의 주된 약점으로 무리하게 도입한 것의 하나로서 종종 비판되어 왔다. 사실상 그 반대가 사실이다-클라이나멘은 층류(laminar flow)의 안정성이 멎어 가고 자발적으로 어떤 난류로 전환되는 것과 같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시도된 개념이다. 오늘날 유체역학의 전문가들은 평균적 유체흐름에 가산되는 분자들의 무질서의 영향을 말해 주는 섭동(perturbations)의 도입에 의해서 유체흐름의 안정성을 시험한다. 우리들은 루크레티우스의 클라이나멘으로부터 그리 멀리 있지 못하다.
*카루스 루크레티우스(Carus Lucredius) B. C. 55년경의 로마의 철학 시인 : 그에 의해 시작된 에피큐리안 철학체계의 특성을 갖는 학설.
오랜 동안 난류현상은 무질서나 잡음으로 알려져 왔다. 오늘날에 와서 이는 사실이 아니다. 사실상 난류운동은 거시적 차원에서 볼 때는 정교히 조직화되어 있다. 난류운동에 수반되는 여러 겹의 공간과 시간척도는 수 백만, 그리고 수백만 분자의 짜임새있는 거동과 일치한다. 이같은 견해에서 볼 때, 층류로부터 난류로의 전이는 자기-구성의 과정이다. 대상계 에너지의 일부분은, 층류에서 분자의 열적 움직임에 관계된 것이며, 거시적으로 조직된 운동에 전달되어 버린다. ‘‘베나르(Benard) 불안정성은 정류된 상태의 불안정성의 또하나의 예로서 자발적인 자기-구성 현상을 야기시킨다. 불안정성은 임의의 수평액체충 내에서 수직적인 온도구배에 기인된다. 온도가 낮은 쪽 표면이 주어전 온도로 접근될 때 위쪽 표면의 온도보다 높게 된다. 이와 같은 경계조건의 결과로서 영원한 플럭스가 이루어져 바닥으로부터 꼭대기 쪽으로 이동된다. 부여된 온도구배가 어떤 분계값에 다다를 때 유체의 정지된 상태――-대류의 영향 없이 열전도 혼자
만에 의해서 열이 전달되는 상태 - 는 불안정해진다. 대류는 분자 앙상블의 짜임새 있는 움직임과 열전달 속도의 증가에 상응된다. 따라서, 제한 사항이 주어진 값에서 (온도구배), 대상계의 엔트로피 생성은 증가된다 : 최소 엔트로피 생성원리와 대조를 이룬다. 베나르 불안정성은 실로 장관이다. 실제 야기되는 대류운동은 대상계의 복잡한 공간적 조직으로 구성된다. 수백만의 분자들이 일목요연하게 움직이고 특정한 크기의 육각형 대류세포 형태를 이루게 된다.
제4장에서 볼츠만의 질서 원리를 도입하였는데, 이 원리는 양상의 수P로 표시함으로써 엔트로피를 확률로 관계짓고 있었다. 이 관계를 여기서도 응용할 수 있는가 ? 분자들이 갖는 속도의 분포는 양상의 수와 상응한다. 이 수는 분자들이 갖는 속도 분포에 의해서 알아낼 수 있는 속도분포를 추량하게 하여 준다. 이야기는 제4장의 토론과 평행의 관계에 있으며, 제3장에서는 양상의 수를 두 상자 사이의 분자의 분포의 관접에 의해 나타내었다. 여기서도 역시 양상의 수는 무질서도가 존재할 때 매우 커진다-속도의 폭넓은 분산상태를 의미한다. 대조적으로 짜임새있는 운동이란 많은 분자들이 거의 동일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음을 뜻한다(속도의 작은 분산) . 그와 같은 분포는 양상의 수 P가 너무도 낮아 자기_구성 현상이 일어날 기회가 거의 없는 경우와 일치한다. 하물며 그와 같은 일이 발생한다니! 따라서, 양상의 수를 계산하는 것은, 개개 분자들이 갖는 상태에 대하여 선행적으로 동등한 확률을 갖는 것이라는 가정을 부여하는 것으로, 잘못되어 있음이다. 이의 부적합성은 새로운 거동의 창출에 관심을 두고 있는 한 특별히 명백해진다. 베나르 불안정성의 경우에 새로운 거동은 요동이나 미시적 대류 흐름으로서 볼츠만 질서원리를 적용할 때 감쇠되어 버리는 운명에 처하게 되지만, 반대로, 요동이나 대류흐름은 계속적으로 전체 대상계에 침범하게 될 때까지 중폭된다. 부과된 구배의 임계치를 초월할 때, 새로운 분자의 질서는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점은 바로 대상체계가 거대한 요동이 외부 세계와의 에너지 교환을 통해서 안정화되는 것에 상응한다.고려하는 대상계가 평형에서 멀리 떨어진 조건에서, 볼츠만 질서원리에 깔려 있는 확률 개념은 더이상 유효하지 못하며, 관찰되는 구조는 최대양상의 수에 일치하지 않는다. 또한 최소 자유 에너지 F=E―TS에 관계되지 않는다. 준위가 동동해지려거나 초기조건을 망각하려는 경향은 더이상 보편적인 현상이 아니다. 이같은 맥락에서, 생명의 근원에 대한 오래된 문제는 전혀 다른 시야로 조명된다. 생명은 볼츠만의 질서원리에 부합될 수는 없으나 또한 비평형의 조건에서 발생될 수 있는 종류의 거동이 아니다. 고전열역학은 결정체와 같은 "평형구조” 개념에 이르게 한다. 베나르 세포들은 그갇은 구조일 수 있으나 전혀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이 점이 바로 "소산구조”의 개념은, 언뜻 보아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구조와 질서, 다른 한편으로는 소산과 낭비 사이의 밀접한 연합관계를 강조하기 위해서 도입한 이유라 할 수 있다. 제3장에서 열전달은 고전열역학에서 낭비의 근원으로서 간주하였음을 보았다. 베나르 세포에서 이는 질서의 근원이다.
고려하는 대상계와 의부세계의 상호작용, 이의 비평형조전의 삽입은 물질의 새로운 동적 상태의 형성에 대한 출발점이 뭘 수 있다(소산구조). 소산구조는 실제로 초분자적 조직의 어떤 형태와 상응한다. 비록 결정구조물 정의하는 매개변수는 그들을 구성하고 있는 분자의 성질, 그리고 특히 끌어당김과 서로 밀치는 힘의 범위로부터 유도될 수 있으나, 베나르세포는, 모든 소산구조와 감이 본질적으로는 그들을 생성하는 비평형의 전체상황의 반영이라 볼 수 있다. 정의하는 매개변수는 거시적이다. 결정 내의 분자 사이의 거리처럼, xo-5cm 크기가 아니며 수센티미터 크기이다. 이와 유사하게, 시간 척도 또한 다르다-분자준위의 시간(약 IO-5초에 상응하는 각개 분자의 진동주기와 같은)에 일치하지 않으며 거시적 시간에 상응한다 : 수초, 수분, 또는 수시간. 화학반응의 경우로 되돌아가자. 이 경우는 베나르 문제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베나르 세포에서 불안정성은 단순한 기계적 원류를 지니고 있다. 액체충의 아래쪽으로부터 가열할 때, 낮은 쪽에 있는 유체부분은 덜 밀집되고, 중력의 중심점은 위로 올라간다. 따라서 대상계의 유체가 어떤 임계점을 지나서 파상과 대류현상이 시작된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그러나 화학적인 대상계에서 이같은 기계적 양태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자기-구성을 기대할 수 있는가? 화학반응에 대한 우리 머리속의 형상은 공간을 통과하는 분자의 빠르기와 혼돈적인 방법으로 무질서하게 충돌하는 것에 견줄 수 있다. 그와 갇은 인상은 어떤 자기-구성의 여지를 남겨놓지 않으며, 아마도 화학적인 불안정성이 최근 들어 관심의 대상의 하나가 된 이유일 것이다. 또한 또다른 차이점이 있다. 모든 흐름은 평형 (분계점은 레놀즈Reynolds의 수와 같은 무차원의 수에 의해서 정해진다)으로부터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난류로 바핀다. 이같은 상황은 화학반응에는 들어맞지 않는다. 평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음은 필요한 조건이나 충분한 요건은 아니다. 많은 화학반응에서, 부과된 제한 사항이나 생성되는 화학변화의 속도가 어떠하든, 정류된 상태는 안정된 상태로 남아 있고 임의의 요동은, 평형근방의 경우에서처럼 감쇠된다. 이는 A-.B-.C-.D··…·의 사슬처럼 변환되는 특정한 대상계에 대하여 사실이며 선형 미분방정식에 의해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임의의 화학대상계에 섭동하고 있는 요동의 운명은, 대상계가 진화될 수 있는 일련의 새로운 상황의 화학반응 메카니즘에 의존한다. 반대로 평형근방의 상황에서, 평형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상태에 있는 대상계의 거동은 매우 특정한 형태가 된다. 그곳에는 더이상 대상계의 전체적인 거동을 연역해낼 수 있는 보편적으로 유효한 법칙이란 존재할 수 없다. 각 대상계는 분리되어 있는 경우이다 : 각 화학반응을 연구하지 않으면 안되며 질적으로 전혀 다른 습성을 낳을 수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일반적인 결론, 즉 화학적 불안정성의 필요조건이 얻어진다 : 대상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화학반응의 연쇄에서, 특정한 조건이나 여건에서, 정류상태의 안정성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반응단계는 엄밀히 말해 “촉매고리”이다-~화학반응의 생성물이 그 자신의 합성에 수반되는 단계 . 이는 매우 흥미 있는 결과인데, 현대 분자생물학의 근본적인 달성의 일부에 우리를 보다 가깝게 인도하기 때문이다 (그림 4를 보라).
D
그림 4. 촉매고리는 비선형 항에 상응한다. 단일 독립 변수의 문제의 경우에, 이는 적어도 차수가 I보다 높은 독립변수가 나타나는 항이 하나 이상 발생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갇이 단순한 경우에서는, 그와 같은 비선형 항들과 정류상태의 잠재적 불안정성의 관계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독립변수 X에 대하여 시간진화 dX/dt=f(X)를 택하여 보자. f(X)는 언제든 이득과 손실을-나타내는 두 개의 함수f.,. (X)와 f_(X)로 분해가 가능하며. 이들 각자는 양수이거나 또는 0이며, 이로부터 f(X)=f.,.(X)一L(X)로 표시할 수 있다. 이와 갇은 방법에서 정류상태 (dX/dt=o)는 f+ CX) =L (X)인 값에 대응된다. 그들 상태는 f+와 f-를 도시한 두 그래프의 교차로 주어진다. 만약 L와 f-가 선형이면 한 개의 교차만이 발생한다. 다른 상황에서 교차의 상태는 정류상태의 안정성을 추론할 수 있도록 해준다. 4가지의 경우가 가능하다:SI : 음수적인 요동에 대하여 안정하며, 양수적인 것에 대하여 불안정하다 : 만약 대상계가 SI의 왼쪽으로 약간 벗어나면, L와 f-의 양수적인 차이는 이와 같은 벗어남을 SI로 되돌려 놓을 것이다 ; 오른쪽으로의 벗어남은 불안ss: 정양성수에 또 대는응 음하수는적 증 요폭동을에 초 대래한하다여. 안 정하다. IS: 양수적 요동에 대해서만 안정하다. II : 양수 또는 음수적 요동에 대하여 모두 불안정하다.화학적 불안정성의 문턱을 넘어
오늘날 화학적 불안정성의 연구는 통상의 일이 되어 버렸다. 이론 및 실험적 연구가 많은 수의 연구소 및 실험실에서 수행되고 있다. 사실상, 앞으로 명백해지겠지만, 이갇은 연구들은 넓은 영역의 과학자의 관심의 대상이다-――수학자, 물리학자, 화학자, 생물학자는 물론이려니와 경제학자나 사회학자들을 포함한다.
평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조건에서는 다양한 새로운 현상이 화학적 불안정성의 문턱을 넘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을 보다 일목요연한 방법으로 정의하기 위해서, 지난 몇 십년간 브뤼셀에서 개발한 방법의 하나인 단순화된 이론적 모델로부터 출발하는 게 유용하다고 본다. 미국의 과학자들은 이 모델을 브위셀레이터 (Brusselator)”라 칭하며, 이 이름은 또한 과학문헌들에서 사용되고 있다(지리학적 연관성은 이 분야의 규칙이 되어 버린 것 같다 : 브위셀레이터 의에 오레고네이터 Oregonator”와 가장 최근에는 "팔로알토네이터 Paloaltonator”가 있다!) 간략히 브뤼셀레이터를 정의해 보자. 불안정성에 관계되는 단계들은 이미 언급하였다 (그림 3을 볼 것) . A로부터 합성되어 X의 형태로 갈라지는 생성물 X는 생성물 Y에 대한 교차촉매의 관계에 따라 연결되어 있다. X는 3분자 단계 동안 Y로부터 생성되지만, 거꾸로, Y는 X와 생성물 B 사이의 반응에 의해서 합성된다.
x
그림 5. 이도해는 X 성분의 농도에 대비한 Y 성분의 농도를 나타내고 있다. 주기의 초접 (S접)은 정류상태이며, B> (1+A2)일 때 불안정하다. 모든 궤적들은(도시한 5개), 그들의 초기상태가 어떠하였든간에, 같은 주기에 이르게 된다.
이 모델에서 생성물 A, B, D 그리고 E의 농도는 주어전 매개변수이다(“제어물질") . 대상계의 거동은 A를 상수로 남겨 놓고 B의 값을 증가시키는 데 이용된다. 대상계가 진화할 것으로 보이는 방향을 향한 정류상태는――-dX/dt=dY/dt=o인 상태――X。=A와 Yo=B/A의 농도와 일치한다. 이 결과는 운동방정식을 적고 정류상태를 살핌으로써 쉽게 증명할 수 있다. 그러나, 정류상태는 B의 농도가 임의의 임계적인 문턱 (다른 모든 것은 상수로 유지시키며)을 초과하자마자 안정한 상태를 멈추게 한다. 일단 임계적인 문덕에 도달하면, 정류상태는 어떤 불안정의 초점이 되고 대상계는 이 초점을 임의의 국한주기 (limit cycle)”에 이르게 한다.
정류상태로 머무르는 대신, X와 Y의 농도는 잘 정의된 주기성으로 파상운동을 시작한다. 진동주기는 대체로 반응속도 상수를 특징지워 주는 운동상수와 대상계에 부과된 경계조건에 (온도 A, B 등의 농도)의존된다.임계적인 문턱을 초월하여 대상계는 자발적으로 요동의 결과로서 Xo=A, Yo=B/A인 정류상태로 남아 있다. 초기조전이 무엇이든, 대상계는 국한주기에 접근되며 안정된 주기적 거동을 나타낸다. 따라서 주기적 화학과정-화학시계를 갖게 된다. 잠깐 토론을 멈추고 그와 같은 예기치 못한 현상이 왜 일어나는가를 강조하여 보자. 빨간색과 파란색 두 종류의 분자들이 있다고 가정하자. 분자의 혼돈적 움직임 때문에, 주어진 순간에, 이를테면, 용기의 좌측 부분에 빨간색의 분자들이 더 많다고 상상해 보자. 그런 후에, 잠시후 파란 분자들이 더 많이 나타나고 이같은 움직임이 반복된다고 하자. 그 용기는 아마도 때때로 불규칙한 빨강 및 노랑빛을 내며 자주색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화학시계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 여기서 대상계는 모두 파랗고, 다시 빨강으로 색이 변화되고, 그런 후 다시 파랗게 된다. 왜냐하면 이같은 모든 변화들은 규칙적인 시간간격에 따라 발생되는 일목요연한 과정을 갖고 있다.수억개 분자들의 활동으로부터 도래하는 그와 같은 질서 수준이란 실로 믿기 어려우며, 사실상, 만약 화학시계들이 관찰되지 않았다면 아무도 그와 같은 과정이 가능하리라고는 믿지 않을 것이다. 단번에 색깔을 바꾸기위하여, 분자들은 반드시 ”의사소통”의 방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대상계는 반드시 전체로 거동하여야 한다. 우리들은, ”의사소통”이라는 열쇠가 되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할 것이며, 이는 화학으로부터 신경생리학에 이르는 수많은 분야에서 대단히 중요한 용어이다. 소산구조는 아마도 의사소통을 위한 가장 간단한 물리적 메카니즘의 하나로서 도입된 말이다.
가장 간단한 종류의 기계적인 진동자, 스프링, 그리고 화학시계 사이에는 홍미로운 차이점들이 있다. 화학시계는 임의의 궤적을 따르는 극한주기에 상응하는 잘 정의된 주기를 갖고 있다. 반대로 스프링은 증폭 의존적인 진동수를 갖고 있다. 이와 같은 관점으로부터 화학시계는 스프링보다는 시간을 지키는 견지에서 보다 믿을 만하다.그러나 화학시계는 자기-구성의 유일한 형태는 아니다. 지금까지 확산은 무시되었다. 모든 물질은 반응공간에 대하여 균등하게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이는 이상화에 불과하다 : 작은 요동은 농도차를 유발하고 확산현상을 갖게 한다. 따라서 화학반응 방정식에 확산의 영향을 부가하여야 한다. 브뤼셀레이터의 확산반응 방정식은 이와 같은 대상계에 가능한 놀라운 거동의 범위를 나타내 준다. 사실상 평형이나 평형근방에서 대상계는 공간적으로 균일하게 남아 있는 반면, 대상계가, 평형에서 멀리 떨어진 영역에서는, 초기공간 대칭을 파괴시키는 요동의 중폭을 포함하는 새로운 형태의 불안정성의 가능성을 유발하는 화학확산의 상태에 머물 수 있다. 시간에 대한 진동 및 화학시계는 대상계에 가능한 유일한 요동의 구조를 멈추게 할 수 있다. 요동 구조로부터 멀리 있을 때 : 진동은 발생할 수 있으며 이제는 모두 시간―그리고 공간-의존적이다. 그들은 대상계를 통해서 주기적으로 변화하는 X와 Y의 농도의 화학적 파도에 상응한다. 이에 더하여, 특히나 X나 Y의 확산상수가 서로가 확연히 다를 때, 대상계는 정류된, 시간 의존적 거동을 나타낼 수 있으며 안정한 공간구조가 나타날 수 있다.여기서 다시 토론을 멈추고, 이번에는 얼마나 많이 평형 물리학과 볼츠만의 질서원리에 모순되는 공간구조를 자발적으로 형성하는가를 강조해보자. 다시금, 그와 같은 구조들에 사응하는 양상의 수는 균일한 분포의수를 비교할 때 대단히 작을 것이다〈 아직도, 비평형과정은 고전적 견해로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 이를 수 있다.
X, !갓) t=O 68
그림 6. 컴퓨터에 의해 모사한 화학적 파동을-나타내었다 : 즉 "브뤼셀레이터" 3분자모델에서 X성분 농도의 공간분포의 연쇄적 진화단계들을 도시하였다. 시간 t=3.435에서, 시간 t=o과 동일한 분포로 원상복귀되었다. A와 B의 농도는 2와 5.45(B>[I+A2])이다. X와 Y의 확산계수는 8x 10-3과 4X 10-3이다.
x4
그림 7. 컴퓨터 모사에 의해 얻어낸 기본축에서의 정류상태를 나타내었다. X의 농도는 수평면의 기하좌표 p, 의 함수이다. 균일하게 불안정한 해 (Xo, Yo)에 작용된 섭동의 위치는 화살표에 의해 표시하였다.
주어진 일련의 경계조건에 부합되는 서로 다른 소산구조의 수는 문제가 단일 차원이 아니라 3차원에서 연구될 때 훨씬더 증가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2차원 공간의 원 안에서 공간적으로 배치된 정류상태는 선택된 좌표의 여하에 따라 특징지워질 수 있다.
이는, 어떤 새롭고, 지극히 홍미로운 대칭 파괴과정에 상응하며 특히나 애벌레의 형태형성에서 첫번째 단계는 대상계 속에서 어떤 구배형성의 하나라는 점을 상기항 때 더욱 흥미롭다. 이 문제들은 이 장의 뒷부분과 제6장에서 다시 언급될 예정이다.지금까지 “제어물질”(A, B, D 그리고 E)은 반응 계통을 동해서 균일하게 분포되어 있다고 가정하였다. 만약 이와 같은 단순함을 버리면, 부가적인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예를 들면, 대상계가 "자연스런 크기”를 갖는다면, 이 크기는 대상계를 정의하는 매개변수의 함수이다.이와 같은 방법으로, 대상계는 그 자신의 고유한 크기 - 즉, 공간적으로 구조를 갖는 영역이나 주기적 파상 농도가 겹치는 영역-를 결정한다.
X(t,.T)
그림 8.
(a) 시간 t,와 t;+T에서 벨루소프-자보민스키반응의 Bromide 이온의 농도이다(R. H. Simoy : A. Wolf, and M. L. Swinney, Physics Review Letters, vol. 49(1982), 245 페이지 및 J. Hirsch, Condenced Matter Physics, and on computers, Plzysics Today (May 1983) , 44-52 페이지 참조).(b) 브위셀레이터와 X성분의 외부로부터의 주기적 공급에 대한 Hao Bai-Jin이 계산한 유인자의 선분들.이와 같은 결과는 아직도 평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현상의 불완전한 그림만을 제공한다. 먼저 평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복합적 상태의 가능성에 대하여 언급하여 보자. 주어진 경계조건에 대해서 한 개 이상의 정류상태가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면 하나는 화학종 X가 풍부하고, 다른 하나는 부족한 경우이다. 한 상태로부터 또다른 상태로의 이동은 생물학적 대상계에 대하여 정의하였던 것처럼 제어 메카니즘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리아프노프와 뿌앙카레의 고전적 업적 이래 초점과 같은 특정한 점, 극한주기와 같은 선분들은 수학자들에게 안정된 상태의 “유인자”로 알려져 왔다. 새로운 것은 그들의 화학적 대상계의 응용이다. 반응-확산계의 불안정성을 취급한 최초의 논문이 투링에 의해 1925년에 발간된 사실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최근 새로운 형태의 유인자가 밝혀졌다. 그들은 독립변수의 수를
증가시킬 때만 유일하게 나타난다(브위셀레이터에는 X와 Y 두 개의 독립변수가 있다) . 특히 우리들은 주기적 거동에 일치하지 않는 ”이상한 유인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림 8은 바이린 (Hao Bai-lin)이 행한 몇 가지 계산결과를 요약한 것으로서 외부로부터 X의 주기적인 공급을 첨가한 상황을 통하여 브위셀레이터를 일반화하는 모델에 대하여 계산한 대단히 복잡한 유인자 선분들의 아이디어를 제시해 주고 있다.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우리가 정의한 가능성의 대부분은 여러 경우의 생물학적 상황은 물론이려니와 무기화학에서조차도 관찰된 바 있다.
우기화학에서 잘 알려진 예제는 I960년대초에 발견된 벨루소프-자보민스키 (Belousov-Zhabotinsky)반응이다. 이에 근간을 이루는 반응 경로인, 오레고네이터는, 노이에스와 그의 동료들에 의해 도입되었으며 본질적으로는 비록 더욱 복잡하지마는 브위셀레이터와 유사하다. 벨루소프 -자보민스키 반응은 적절한 촉매, 세리움, 망간 또는 훼로인 촉매의 존재 아래 브롬화 칼리에 의한 유기산(말로닉산)의 산화반응으로 이루워져 있다. 다양한 실험조건들은 같은 대상계 내에서 서로 다른 자기-구성 형태를 나타나게 할 수 있다――-화학시계, 안정한 공간구조, 또는 거시적 거리을 넘어선 화학적 파상의 형성 등이다.5)
MALO드NIC 온도 T
그림 9. 벨루소프-자보민스키 반응에서 진동을 연구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던 화학반응기 개요(장치에는 계를 균일하게 유지시키기 위하여 교반장치가 선치되어 있다) 반응은 30가지 이상의 최종 생성물과 중간 반웅문운 유발한다. 서로 다른 반응경로의 진화는 점프에 의해 제어되는 유입량에 대해 의존된다(다른 많은 요인 중에서)
5) 화학적 전동에 대해 보다 자세한 사항을 위해서는 A. Winfree, MRotating Chemical Reaction, Scientific American, vol, 230 ( 1974) , pp . 82-95를 참조할수 있음.
이제 최대의 관심사에 관심을 돌려 보자 : 생명을 갖는 대상계를 이해하기 위한 이와 갇은 결과의 적절성의 문제이다.
분자생물학과의 만남이 장의 앞부분에서 평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조전에서는 다양한 자기-구성 과정이 발생할 수 있음을 보였었다. 그들은 화학적 진동이나 공간적 구조의 출현에 이를 수도 있다. 그와 갇은 현상이 나타나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은 촉매존재의 영향임을 살펴보았다.비록 비선형 반응의 영향(반응 생성물의 존재)은, 그들의 "원인”에 되먹임 작용을 갖고 있으며 무기화학적 세계에서는 비교적 드문 일이라 할지라도, 분자생물학에서 그들이 실제로 살아 있는 체계에 관심을 두고 있는 한 지배되는 규칙이다. 자촉매 (X의 존재는 그 자신을 합성하기 위해 필요한 촉매작용을 가속화한다), 그리고 교차촉매 (두 개의 서로 다른 반응에 속하는 두 생성물이 서로의 합성에 활성을 준다) 작용은 신진대사 작용의 구조를 보장하는 대표적인 조철 메카니즘을 제공해 준다.한 가지 흥미 있는 차이를 강조하여 보자. 무기화학에서 알려진 예 중에서, 수반되는 분자들은 간단하지만 반응 메카니즘은 복잡한 벨루소프 -자보틴스키 반응에서도 약 30개 이상의 화합물이 있음이 밝혀졌다. 반대로, 우리가 언급한 많은 생물학적 예들에서 반응구조는 간단하지만 분자들(단백질, 핵산 등)은 매우 복잡하고 특정한 것이다. 이 점은 우연은 아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물리학과 생물학의 차이점을 표시해 주는 중요한 인자를 만난다. 생물학적 체계들은 과거를 지닌다. 그들을 구성하는 분자들은 임의의 진화의 결과이다 : 자기-구성 과정의 대단히 특정한 형태를 생성하기 위한 자촉매 메카니즘에 참여시키기 위해 선택된다.신진대사를 위한 활성화나 억제화의 연결망의 정의는 생물학적 대상계의 기능적 논리를 이해하는 핵심적인 단계이다. 이는 그들이 필요하게 될 때 합성을 촉진시키거나 반응생성물이 소비되지 않고 세포 내에 계속 축적될 수 있는 화학반응의 억제작용 등을 포함하고 있다.
분자생물학에서 유전적 정보를 전달해 주거나 활용하는 기능을 설명해 낼 수 있는 기본적인 메카니즘은, 그 자체가 되먹임 고리이며 "비선형" 메카니즘이다. 디옥시리보핵산(Deoxyribonucleic acid, DNA)은 세포 증식 및 기능에 필요한 다양한 기본적 단백질의 합성을 위해 요구되는 모든 정보의 연속된 형태를 포함하고 있으면서 이와 갇은 정보가 다른 단백질 연쇄체의 형태로 옮아가는 동안 연속적인 반응에 참여한다. 합성된 단백질 중에서, 몇몇 효소는 다른 변환 단계뿐만 아니라, 세포가 증식되는 비율과 같은 속도로 유전적 정보를 복사해내는 DNA 복제의 자촉매 메카니즘을 활성화하거나 억제하는 되먹임 작용을 촉진시켜 준다.여기서 두 과학의 수령에 관한 놀라운 경우를 체험하게 된다. 하나는 복잡한 것을 지향하고 다른 하나는 기본적인 것을 향하는 물리학과 생물학의 상호보완적 발전에 필요한 사항들이다.사실상, 물리학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지금 평형 열역학의 관점에서 정의할 수 있는 이상적인 상황으로부터 멀리 위치하고 있는 "복잡한 상황"을 검토하고 있다. 한편으로, 분자생물학은 생명이 있는 구조를 비교적 작은 수의 기본적인 생물분자로 관련짓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 화학적 메카니즘의 다양성을 연구함으로써, 신진대사반응 사슬, 신기하고 복잡한 각 신진대사 사슬의 임계적인 단계에 관계되어 있는 효소의 촉매 기능에 대한 제어, 억제. 그리고 활성작용의 복잡다단한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와 갇은 방법으로 분자생물학은 평형으로부터 멀리 있는 조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안정성의 미시적인 토대를 마련하게 해주었다.어느 면에서, 살아 있는 대상체계들은 잘 조직된 공장으로 간주할 수 있다. 한편으로 그들은 복합적인 화학적 변환의 공간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생물화학적 물질의 높은 비균일 분포로 이루어져 있는 놀라운 "공간 -시간" 구성을 나타낸다. 우리는 이제 기능과 구조를 연결할 수 있다. 지난 수년간 광범위하게 연구된 두 가지 예를 간략히 소개하여 보자. 먼저,포도당 분해과정을 생각한다면, 이는 일종의 포도당이 분해되면서 에너지가 풍부한 물질 ATP (아데 노신 3인산염 , adenosine triphosphate)가 합성되는 연쇄 신진대사 반응으로, 모든 살아 있는 세포에 공통적으로 본질적인 에너지원을 제공한다. 한 개의 포도당 분자가 해체됨에 따라 두 분자의 ADP (아데노신 2인산염)가 두 분자의 ATP로 변한다 . 포도당 분해 과정은 생물학의 분석적인 접근과 평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조건에서 안정성의 특성이 어떻게 서로 보완적인가를 말해 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6)
6) A. Goldbetter and G. Nicolis, "An Allosteric Model with Positive Feedback Applied to Glycolytic Oscillations," Progrss in Theoretical Biology, Vol. 4 . ( 1976) , pp . 65-160 : A . Goldbetter and S. R. Caplan, Oscillatory Enzymes, Annual Review of Biophysics and Bioengineering, Vol. 5 ( 1976) , PP . 449-73.
생물화학적 실험을 통하여 포도당 분해 주기에 관계되는 농도의 일시적 진동의 존재를 발견하였다.:)-·진동은 ADP에 의해서 활성화되고 ATP에 의해서 억제되는 단계인 반응연쇄 주요단계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 예는 신진대사 기능을 조절하는 데 적합한 전형적인 비선형 현상의 하나이다.
7) B . Hess, A . Boiteux, and J . Kruger, MCooperation of Glycolytic Enzymes, Advances in Enzyme Regulation, Vol. 7 ( 1969) . pp . 149-67 : 또한 B . Hess, A . Goldbetter and R . Lefever, MTemporal, Spatial and Functional Order in Regulated Biochemical Cellular Systems, Advances in Chemical Physics, Vol. X X X ( 1978) , pp 361-413dmf을 참조할 수 있음.
사실상 세포가 이의 비축된 에너지를 끄집어내는 각 단계에서, 인산염의 결합을 활성화하고, ATP는 ADP로 전환된다. 세포 내의 ADP의 축적은 따라서 엄청난 에너지 소비를 나타내 주며 이를 다시 충전해야 할 필요를 갖게 된다. 한편으로는, ATP의 축적은 포도당이 느린 속도로 분해될 수 있음을 시사해 준다.
이 과정의 이론적인 연구에 의해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이와 같은 메카니즘은 사실상 화학시계와 갇은 진동현상을 발생하기 쉽게 한다. 진동과 주기적 순환을 생성하는 데 필요한 화학적 농도의 이론적인 계산값은 실험 자료와 잘 일치한다. 포도당 분해 진동은 ATP의 농도와 아울러 수많은신진대사 반응연쇄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모든 세포의 에너지 공정을 조절하는 기능을 발생케 한다.
우리는 더 나아가 포도당분해 반응경로는 몇몇 핵심적인 효소작용에 의해 재어되는 반응이 평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일어남을 보여줄 수 있다. 그와 같은 계산은 헤스8)에 의해 보고된 바 있으며 이후 다른 대상계에 연장된 바 있다. 정상저인 조건에서 포도당 분해 주기는 화학시계와 상응하지만, 이들 조건을 변화시킴으로써 기존하는 이론적 모델에 의해 예측한 값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공간적 배위형성을 유출해낼 수 있었다.8) B. Hess, Ciba Foundation Symposium, Vol. 31 (1975), p_369
살아 있는 대상은 열역학적 관점에서 볼 때 매우 복잡하게 보인다. 특정한 반응은 평형에 밀집되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또다른 특정한 반응은 그렇지 않다. 임의의 살아 있는 대상 내의 모든 것이 생명을 갖고 있지는 않다. 대상계를 통과하는 에너지의 흐름은 마치 강물이 흐르는 것과 유사하여 보통은 평범하게 홀러가다가 때로는 폭포에 첨벙 떨어져내리기도 하며, 이와 같은 때에는 에너지를 방출해 버리게 한다.
이제 또다시 안정성의 관점에서 연구되어 온 다른 생물학적 과정을 고려해 보자 : 점질의 곰팡이 집합인 무유주자류(Acraciales) 아메바(Dictyostelium discoideum)에 대한 과정9a)은 단세포와 다세포 생물학 사이의 경계상에 있는 재미있는 경우이다. 이들 아메바가 살고 증식되는 환경의 영양소가 부족해질 때 그들은 볼만한 장관의 변환을 시작한다(그림 A를 보라).9a) G . Gersch, "Cell Aggregation and Differentiation in Dictyoselium," in Developmenal Biology, Vol. 3(1968), pp.157-197
세포단위의 점질곰팡이 집합은 화학시계가 핵심적인 기능을 맡고 있는 생물학적 체계 내의 자기-구성화 현상의 특별히 놀라운 예를 마련해 주고 있다 . 그림 A를 보라.
포자! 0 o0 ~ C。D菱 A0\1 六01 -
그림 A
포자를 나올 때 아메바는 단세포 유기체로 성장하고 증식된다. 이와 같은 상황은 주로 박테리아에 의해 제공되는 양분이 부족해질 때까지 계속된다. 이후 아메바는 복제를 멈추고 약 8시간 정도가 지탱되는 내부상황으로 돌입된다. 이 시기가 끝날 즈음 아메바는 세포들 주위에 응집하여 집합의 중심으로 거동한다. 집합작용은 그 내부로부터 발산되는 화학적인 신호들의 응답으로서 발생된다.따라서 형성된 집합은 원하는 최종적 크기까지의 형성조건이 만족될 때까지 이동하게 된다. 이후 세포집단은 포자물질 위에 줄기를 형성하면서 해체되어 간다.무유주자류 아메바(Dictyostelium discoideum)에서, 응집 현상은 어떤 주기적인 양상으로 진행한다. 응집과정의 영사 촬영에 의하면 수분 간격의 주기를 가지며 중심을 향하여 움직이는 아메바의 동심형 파상의 존재가 나타난다. 화학적 성격의 요인은 다음과 같이 알려져 있다 : 이는 싸이클릭 AMP(cAMP)로서, 내분비물 조절과 같은 수많은 생화학 과정에 수반되는 물질이다. 응집 중심체는 cAMP의 신호를 주기적인 양상으로 발산한다. 다른 세포들은 중심을 향하여 이동하거나 응집체 영역 주변에 신호를 전달하는 반응을 나타낸다. 화학신호를 연결해 주는 메카니즘의 존재는 각 중심이 약 105 아메바 집합의 크기를 제어하게 된다.응집 과정모델의 분석은 두 가지 형태의 두갈래치기 점이 존재함을 말해 준다. 첫째, 응집 자체는 어떤 공간 대칭 파괴를 나타내 준다. 둘째 두갈래치기는 일시적 대칭형성을 파괴한다.처음 상태에서 아메바는 균일하게 분포되어 있다. 그중 일부가 화학신호를 비밀로 감추기 시작하면, cAMP 농도의 국부적인 요동 작용이 나타난다. 대상체계의 몇몇 매개변수(cAMP의 확산계수, 아메바의 이동도 등)가 어떤 임계값에 이르면. 요동은 크게 증폭된다. 균일한 분포는 불안정해지고 아메바는 공간상의 비균일 분포를 향하여 진화하게 된다. 이와 같은 새 분포는 응집 중심에의 아메바의 축적에 상응한다.
D(discoideum) 응집의 주기성의 근원을 이해하기 위하여 화학신호의 합성메카니즘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실험적 관찰을 토대로 누구든 그림 B의 구조에 의해 이와 같은 메카니즘을 정의할 수 있으리라.
) cAMP
그림 B
세포의 표면에서, 수용체 (R)는 cAMP 분자들을 결합시켜 준다. 수용체는 세포 밖의 매체에 접하게 되며 세포 내부의 ATP를 cAMP로 변환시켜 주는 효소, 아데닐 사이클라제 (Adenylate Cyclase)와 기능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합성된 cAMP는 세포격막을 롱하여 세포 밖의 매체로 전달되며, 그로부터 아메바에 의해 숨겨져 있는 효소, 인산2에스데라제 (phosphodiesterase)에 의해 전화 변질되어 버린다. 실험에 의하면 세포 밖의 .cAMP의 격막 수용체에로의 결합은 아데닐 사이클라제, c의 활성을 갖게 한다(가산적 되먹임은 +로 표시하였다).이와 갇은 자촉매적 조절의 토대에서, cAMP합성의 모델분석은 응집과정 동안 관찰된 서로 다른 부분의 거동의 통합을 가능케 하였다 .9b)9b) A. Goldbetter and L. A. Segel, Unified Mechanism for Relay and Oscillation of Cyclic AMP in Dictyostelium Discoideum, Pre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Vo].74(1977), pp, 1543-47.
모델의 두 주요 매개변수는 아데닐 사이클라제 (s)와 인산2에스테라재 (k)이다. 그림 C(골드베터〔A. Goldbeter]와 시겔(L. Segel)의 문헌, 미분화〔Differentiation] .17권 . 127-135페이지〔1980]의 문헌으로부터 인용하였음)는 s와 k에 의해 이룩된 공간 내에서 모델화한 대상계의 거동을 나타내고 있다.
s
그림 C
서로 다른 S와 k 값에 따라 세 가지의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영역 A는 안정하며, 활성화가 없는 정류상태에 일치한다. 영역 B는 안정하지만 활성을 가질수 있는 정류상태를 나타낸다. 대상계는 맥동형태로 cAMP농도의 작은 섭동을 증목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다(그리고, 따라서, cAMP의 신호를 전달한다). 영역 C는 불안정한 정류상태 부근에서의 진동현상을 보유하고 있는 진영이다. 화살표시는 인산2에스테라재 (k)와 아데닐 사이클라재 (s)의 상승에 일치하며, 이와 같은 상승작용은 기근현상이 시작된 후에 발생한다. 영역 A, B 그리고 C의 교차는 거동의 관찰된 변화에 상응한다. 세포들은 처음에는 세포 밖의 cAMP의 신호에 응답할 능력이 없다. 그후 그들은 이 신호를 전달하고, 최종적으로는, 어떤 자동적인 방법에 의해서 그들을 합성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게 된다. 응집중심은 따라서, 기근이 시작된 후에 영역 C 내부에 위치한 임의의 지정에 신속히 도달할 수 있는 매개변수 S와 k의 최적값에 이르게 된다.고립되어 있는 임의세포 군집단으로 시작하여, 그들은 수천 수만의 세포로 이루위전 물체를 형성하는 작용에 가담하게 된다. 이 ”가변형체(pseudoplasmodium)”는 이후 미분화가 시작되며, 계속하여 모양이나 형체를 바꾸어 나간다. 어떤 "발”과 같은 형태들은, 그 크기의 1/3 가량
의 세포로 이루워져 있으며 충분한 셀루로우즈를 포합하고 있다. 이 발모양은 포자들의 둥근 물질모양을 지탱하여 주며, 그들 자신을 때어내어 적당한 영양소 매체와 접촉하자마자 증식되어 번져 나아가며, 새로운 아메바의 식민집단을 형성한다. 이는 환경에 적응하는 놀라운 예라 할 수 있다. 군겨집단은 한 영역에서 가용의 자원이 고갈되어 버릴 때까지 생을 영위한다. 연후에는 다른 환경으로 침입하는 이동성을 얻어내는 수단으로 변태단계에 들어간다.
응집과정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그 첫단계는 자발적으로 생성하는 것으로 보이는 “인력중심"을 향한 아메바의 맥동 형태의 수령운동과 함께 집단 속의 파상적 자리바꿈의 개시와 동시에 응집현상이 시작됨을 알 수 있다. 실험적 연구나 모델화에 의하면 이동은 핵심이 되는 물질, 주기성 AMP 내의 농도구배를 갖는 환경 속에 존재하는 세포들에 의한 응답이며, 이때 AMP는 아메바에 의해서 주기적으로 생성되며 연후에는 연결메카니즘에 의해 다른 세포들도 유사한 응답에 의한 이동현상을 갖게 한다. 여기서 또다시 화학시계의 놀라운 역할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앞서 이미 강조한 대로, 새로운 의사소동의 수단을 제공한다. 지금의 경우에, 자기-구성 메카니즘은 세포 사이의 의사소통에 이르게 한다.그갇은 현상에는 강조하고 싶은 또다른 양상이 있댜. 응집곰팡이 집합은 "요동을 동한 질서”의 관점에 일치하는 대표적인 예이다 : AMP를 발산하는 유인자 중심으로의 이동 개시는 신진대사에 필요한 환경의 진영이 정상적인 영양소가 불안정해진 상황에 일치한다. 죽, 영양소 환경은 고갈되버어렸다. 그와 같은 식량부족의 조건에서는 어떤 주어전 아메바도 먼저 주기성 AMP를 발산할 수 있으며 따라서 요동의 무질서한 거동에 상응하는 유인자 중심이 되어 간다. 이 요동은 따라서 증폭되고 매체를 재구성 한다.두갈래치기와 대칭성파괴이제 자기-구성의 출현과 이 분계를 초월해 갇 때 나타나는 과정에 대해 보다 면밀히 살펴보자. 평형이나 평형근방에서는, 임의의 제어매개변수의 특정한 값에 의존하는 한 개의 정상상태가 존재한다. 우리는 제어매개변수를 로 칭하는데, 예를 들면, 이는 제4절에서 정의한 브위셀레이터의 물질 B의 농도일 수 있다. 이제 B의 값이 증가함에 따라 대상계의 상태가 변화하는 과정을 살펴보자. 이와 갇은 방법으로 대상계는 평형으로부터 멀리, 더멀리 밀쳐 나아간다. 어떤 지점에서 "열역학적 가지”의 안정성의 분계에 이른다. 그후에는 소위 "두갈래치기 지점”이라는 일반적으로 칭하는 지점에 도달한다(이 점은 막스웰이 결정론과 자유선택〔제2장 3절을 볼 것] 사이의 어떤 상관관계에 대한 그의 생각에서 상관관계의 역할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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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0. 두갈래치기 도해. 두갈래치기 매개변수의 함수로서 X의 정상상태 값을 도시하고 있다. 연속된 선분들은 안정한 정류상태이다; 점선은 불안정한 정류상태이다. 줄기 D에 있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줄기 E에 대응하는 X의 값보다 높은 어떤 농도 Xo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몇몇 전형적인 두갈래치기 현상을 나타내는 그림을 생각해 보자. 두갈래치기 지점 B에서 열역학적 가지는 요동에 대하여 불안정하다. 제어매개변수 의 임의 값 c에서, 대상계는 서로 다른 세 가지의 정상상태에 있을 수 있다 : C, E, D. 이 상태 중 둘은 안정하고, 하나는 불안정하
다. 그와 같은 대상계의 거동은 그 이전 역사에 의존적이라는 사실은 대단히 중요하며 강조해 둘 필요가 있다. 가령 제어변수의 값을 천천히 증가시킨다고 가정해 보자 ; 그림 IO에서 대상계는 A, B, 또는 C의 경로를 따를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대상계가 농도 X의 큰값에서 출발해서 제어 매개변수의 값을 상수로 유지하면서 점 D에 도달하기 쉽다. 이 상태는 대상계의 이전의 역사에 의존한다. 지금까지 역사는 통상 생물학이나 사회적 현상을 해석하는 데 쓰였지만, 단순한 화학과정이 전연 예기치 못한 상태로 변화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림 II에 나타난 두갈래치기 그림을 검토해 보자. 이 그림의 경우는 앞서의 그림과 다르며 두갈래치기 지점에서 두 가지의 새로운 안정한 해가 나타난다. 따라서 새로운 문제가 야기된다 : 두갈래치지 지점에 이를 때 대상계는 어디로 갈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두 가능성 사이의 "선택"을 갖는다. 그들은 그림 12와 13에 나타난 것처럼 공간상에 화학종 X의 두 가지 비균일 분포 중 어느 한 형태를 나타낼 것이다. 두 구조는 서로가 거울상의 관계에 있다. 그립 12에서 X의 농도는 왼편에서 높다 : 그림 13에서는 반대로 오른편이 높다. 왼편과 오른편 사이에서 대상계는 어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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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Il. 대칭성 두갈래치기 도해. X는 의 함수로서 도시하였다. < c에 대하여는 단지 1개의 정류상태가 존재하며, 안정하다. > c 경우는 의 각개 값에 대한 두개의 정류상태가 존재한다(앞서 안정했던 상태는 불안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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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2와 13. 그립 II에서 두 개의 가지 각각에 상응-하는 화학성분 X의 두 가지 가능한 공간분포이다. 그립 I2는 X 성분이 왼쪽 부분보다 높은 농도를 지니고 있운 때의 "왼쪽" 구조에 상응한다 : 유사하게 그림 13은 "오른쪽" 구조에 상응한다.
게 선택할 것인가? 그곳에는 더이상 중일 수 없는 무작위 요소가 존재한다. 거시적 방정식은 대상계가 취할 임의의 경로를 예측할 수 없다. 거시적 방정식으로 전환 역시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 그곳에는 또한 왼편과 오른편의 구분이 없다. 사건들은 주사위를 던지는 것과 매우 흡사한 기회나 우연에 부딪치게 된다.
우리들로서 기대할 수 있다면 아마도 실험을 수차례 반복할 때 대상계는 두갈래치기 지점을 초월하는 상태에 이를 수 있고 대상계의 절반은 왼편의 배열을 이룰 것이며, 다른 절반은 오른편 배열에 해당할 것이다.여기서 또다른 흥미 있는 의문이 발생한다 : 우리 주위의 세계에서, 몇가지 기본적이며 간단한 대칭이 파괴되는 것으로 믿어지는 예들을 발견할 수 있다.10) 사람들은 조개 껍질이 종종 선호성 나선 구조로 되어 있음을 관찰한 바 있을 것이다. 파스테르는 비대칭성, 대칭의 파괴, 생명의 특성까지를 관찰한 바 있다. 오늘날 DNA는 가장 본질적인 핵산으로, 왼손 방향으로 굽어가는 나선의 형태를 취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어떻게 이같은 비대칭이 발생하였는가? 한 가지 상식적인 대답은 그와 같은 비대칭의 발생은 두 개의 가능한 과정 중의 하나를 선호하게 되는 우연성을 갖는 유일무이한 사건으로부터 도래한다는 것이다. 그후 자촉매적 과정이 시작되고, 왼손 방향으로 향한 구조가 개시되고 이로부터 다른 오른손 방향을 향한 구조가 생성한다. 다론 것은 왼손 방향과 오른손 방향 구조 사이의 “전쟁을 상상할 수 있으며 그중 하나는 다른 하나를 전멸하게 만든다. 이들은 아직도 만족스런 대답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이다. 유일무이한 사건을 말하는 것만으로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 보다 "체계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10) M. Gardner, The Ambidextrous Universe(New York : Charles Scribners Sons, 1979)을 참조할 수 있음.
필자들은 평형에서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 물질이 취득하는 근본적인 새로운 성질의 놀랄만한 예를 발견하였다. 동력장과 같은 외부장은 패턴 선택의 가능성을 창조하는 대상계에 의해 "감지”될 수 있다.
임의의 외부장― __ 중력――-이 평형 상태에 있는 상황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 그에 대한 대답은 볼츠만의 질서원리에 의해 제공될 수 있다 : 수반되는 기본적인 양은 포텐셜 에너지/열에너지의 비율이다. 이는 지구의 중력장에 대해서는 매우 작은 양이다 : 압력 또는 대기 조성의 상당한 변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높은 산을 울라야 한다. 그러나 베나르세포를 상기하자. 기계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의 불안정성은 열적 팽윤의 결과로서 중력 중심의 상승이다. 다시 말해서, 중력은 여기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베나르 세포가 단지 수 밀리미터 정도의 두께를 지니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어떤 새로운 구조에 이르게 한다. 그와같이 얇은 충에 대한 중력의 영향은 평형에서 무시할 수 있지만, 온도 차이에 의해 유도된 비평형의 영향으로 중력에 기인되는 거시적 영향은 비록 이같은 얇은 층이라 할지라도 현격해진다. 비평형은 중력의 영향을 확대시킨다.11)
중력은 분명히 임의의 반응 확산 방정식 내에서 확산 흐름을 변모시킬 것이다. 보다 자세한 계산에 따르면 이는 비섭동 대상계의 두갈래치기 지점 부근에서 대단히 극적일 수 있다. 특히, 대단히 적은 중력장이 임의의 패턴 선택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다시금 그립 II에 나타난 바와 같은 두갈래치기 그림에 상응하는 임의의 대상계를 생각해 보자. 중력이 없는 경우. g=o을 생각할 때 그림 12와 13에서와 같이. “아래/위”의 거울상의 관계는 물론 “위/아래”의 대칭패턴을 가질 수 있다. 두 가지 모두는 동등하게 가능하지만. g를 고려할 때는 두갈래치기 방정식은 g에 비례하는 항을 포함하고 있는 확산 흐름에 의해 변모된다. 결과적으로, 그림 14와 같은 두갈래치기 그림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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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나. 입의의 외부場의 존재하에서 도움을 받은 두갈래치기 현상을 나타내었다. X는 매개변수의 함수로 도시하였다. 외부장이 배재된 상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대칭성 두갈래치기는 정선에 의해 도시하였다. 두갈래채기 값은 λc이다 ; 안정된 중기 (b)는 줄기 (a)로부터 무한히 먼 거리에 위치한다.
11) D. K. Kondepudi and I. Prigogine, Physica, Vol. 107A(1981), pp.1-24 ; D. K. Kondepudi : Physica, Vol. 115A(1982), 552-66페이지 화학은 약한 상호간의 인력 내의 균형의 파괴현상을 거시적 차원으로 옮겨놓을 수도 있다 ; D. K. Kondepud and G. W. Nelson, Physical Review Letters, VoJ.50, NO. 14 (1983), pp.1023-26.
본래의 두갈래치기는 사라졌다一-―이는 영향을 주는 場의 값의 다소 여하에 관계없이 사실이다. 한 개의 구조 (a)가 두갈래치기 매개 변수가 성장됨에 따라 연속적으로 나타나며, 반면 다른 구조(b)는 단지 어떤 확실한 섭동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따라서, 만약, 경로 (a)을 따른다면, 예견되는 것은 대상계가 연속적인 경로를 따르리라는 점이다. 이와 같은 기대는 두 줄기 사이의 거리 s가 X의 농도에 열적 요동에 대해서 큰 값으로 머무르는 한 옳다. 그곳에서는 거들어 준(assisted) 두갈래치기로 칭하고 싶은 현상이 발생한다. 앞에서와 같이 매개 변수가 부근에서 어떤 자기-구성 과정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이재는 두 개의 가능한 패턴 중의 하나를 선호하게 될 것이다.
중요한 점은, 두갈래치기에 책임이 있는 화학적 과정에 의존되는 것으로, 이와 같은 메카니즘은 예의적 민감도를 나타낸다. 물질은, 이 章의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평형에서는 아마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길 수 있는 차이들을 감지한다. 그와 같은 가능성은 박테리아와 같은 가장 단순한 유기체를 생각하도록 하며, 이들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전기 또는 자기장에 대한 반응이다. 보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평형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외부 조건들에 대한 화학적 과정의 가능한 "적응”에 이르게 하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평형의 상황과는 커다란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커다란 섭동이나 경계조건의 변경이 하나의 구조에서 다른 구조로 전이하는 현상을 결정하는 데 필요하게 된다. 외부의 요동에 대한 평형에서 멀리 떨어진 상태의 민감도는 임의 대상계의 주위 환경에 대한 자발적인 "적응적 구성”의 또다른 예의 하나이다. 이제 의부 조건들의 요동함수로서 자기-구성의 예를 들어보자.12) 상상할12) R. Lefever and W. Horsthemke, Multiple Transitions Induced by Light Intensity Fluctuations in Illuminated Chemical System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Vol. 76 ( 1979) , pp.
2490-94 참조 . 또한 W . Horsthemke and M . Malek Mansour, Mlnfluence of External Noise on Nonequilibrium Phase Transitions," Zeilschrif1 fur Physik B, Vol. 24 (1976), pp.307-13 ; L. Arnold, W. Horsthemke, and R . Lefever, "White and Coloured External Noise and Transition Phenomena in Nonlinear Systems," Zeitschrift fur Physik B, Vol. 29 (1978) , pp. 367-73 ; W. Horsthemke, "Nonequilibrium Transitions Included by External White and Coloured Noise," Dynamics of Synergetic Syslenzs, ed. H. Haken (Berlin : Springer Verlag, 1980) : 생물학적 대상계의 적용 예에 대해서는 R. Lefever and W. Horsthemke, MBistability in Fluctuating Environments : Implication in Tumor Immunology, Bulletin of Mallzemalic Biology, Vol. 41 (1979) 를 참고할 수 있음.
수 있는 가장 단순한 화학 반응은 A=B 변화의 異性體化반응이다. 모델에서 생성물 A는 아울러 또다른 반응에 인도될 수 있다 : A+빛 →A*→A+열. A는 빛을 흡수하고 이의 활성화된 A*로 머무르는 동안 열로 되돌려 놓는다. 이와 같은 두 가지 과정이 어떤 닫혀 있는 대상계 속에서 진행되는 경우를 생각하자 : 단지 빛과 열이 의부 세계와 교환되는 양이다. B로부터 A로 변환될 때 열을 흡수하기 때문에 대상계 내에는 비선형성이 존재한다 : 온도가 높을수록 A의 형성이 빨라진다. 또한 A의 농도가 높을수록 A에 의한 빛의 흡수가 높아지며 온도가 높을수록 열로의 변환이 높아진다. A는 그 자신의 형성에 촉매 노릇을 담당한다.
예견되는 것으로 정류 상태에 상응하는 A의 농도는 빛의 강도에 따라 증가한다. 이는 실제의 경우와 갇다. 그러나 임계점으로부터 시작해서 표준적인 평형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현상의 하나가 나타난다 : 중복적 정류상태의 존재이다. 동일한 값의 빛의 세기와 온도에 대하여, 대상계는 A의 서로 다른 농도에 대하여 두 가지의 다른 안정된 정류 상태에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제3의, 불안정한 상태가 앞서 두 가지 상태 사이의 분계를 구분지어 놓는다. 그와 같은 정류 상태의 존재는 잘 알려진 자기적 흥분 상태, 즉 히스테레시스(hysteresis) 현상의 탄생을 가져온다. 그러나 이같은 사실이 현상의 전부는 아니다. 만약 빛의 세기를, 상수값으로 있는 대신, 무작위의 요동 상태에 있게 할 때, 상황은 크게 변화한다. 두 개의 정류상태 사이의 공존 영역은 증가되며, 매개 변수들의 특정한 값에 대해서 세 가지 정류 상태의 공존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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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I5. 이 그림은 두갇래치기 매개변수 b가 처음에는 성장하다 나중에는 감쇠하는 값을 지닐 때 어떻게 "히스데레시스” 현상이 발생되는가를 보여준다. 만약 대상계가 처음에 낮은 가지에 속하는 정류상태에 있을 때, 계는 b가 성장하면서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게 된다. 그러나 b=b2이면, 어떤 불연속이 발생한다. 대상계는 높은 줄기물 향하여 Q로부터 Q’로 뛰어오른다. 반대로, 높은 가지상의 임의 상태로부터 출발할 때, 대상계는 b=b1이 원 때까지 그곳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며, P'로 뛰어내리게 된다. 그와 같은 형태의 이중안정성 거동은 레이저, 화학반응, 또는 생물학적 격막과 같은 여러 분야에서 이미 관찰된 바 있다.
그와 같은 경우에, 종종 “잡음으로 이름하는 의부 플럭스의 무작위적 요동은, 귀찮은 것이기는커녕, 새로운 형태의 거동을 초래하며, 아마도, 어떤 결정적인 플럭스 아래에서는, 보다 더욱 복잡한 반응 계통의 발생을 암시한다. 플럭스 내의 무작위적인 소음은 어떤 자연적 대상계”에 대해서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은 꼭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항이다. 예를 들어, 생물학적 또는 생태학적 대상계에서 주위와의 상호작용을 정의해 주는 매개변수는 일반적으로 보아 상수로 생각할 수는 없다. 세포나 생태학적 지위는 그들과 접해 있는 주위 환경으로부터 생존을 촉진케 해준다 : 영구히 요동하는 주위환경의 습도, 산도(pH), 염의
농도 및 그리고 영양소를 말한다. 대상계의 내적 작용에 의해 발생하는 요동이나, 그들 내부로부터 유입되는 요동에 대한 비평형 상태의 민감도는 생물학적 의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암시해 준다.
단계적 두갈래치기와 혼돈으로의 전이지금까지는 대상계를 안정성의 문턱을 넘어가도록 조작할 때 발생하는 첫번째 두갈래치기, 또는 수학자들이 정의하는, 초보적 두갈래치기 현상만을 취급하였다. 그러나, 나타날 수 있는 새로운 해답들이 거의 고갈되어 버리기는커녕, 이들 일차적 두갈래치기는 단지 임의의 단순한 특정시간(극한 주기) 또는 단순한 특성길이만을 도입했을 뿐이다. 화학 또는 생물학적 대상계에서 관찰되는 복잡한 공간적, 시간적 작용을 창출해내기 위해서는 두갈래치기 그림을 보다 더 깊게 관찰해야만 한다.이미 유체역학 또는 화학적 대상계에서 수많은 진동들이 상호작용하는 복잡한 상태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암시해 왔다. 베나르의 구조를 생각할 때, 이 구조는 평형으로부터 어떤 임계거리에 있을 때 나타난다. 열적 평형으로부터 멀어져 갈 때, 대류흐름은 시간에 따라 진동하기 시작한다 : 평형으로부터의 거리가 멀어져 감에 따라, 더욱더 진동 주파수가 크게 나타나며, 결국에는 평형으로의 전이가 완결된다.13) 주파수간의 상호작용은 커다란 요동의 가능성을 초래한다 : 매개변수를 그와 같은 값으로 정의한 두갈래치기 그림에서 해당 "영역"은 종종 "혼돈적"이라 부른다. 베나르 불안정성과 감은 경우에 있어서 질서 또는 짜임새는 열적 혼돈과 비평형적 난류의 혼돈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워져 있다. 사실상 만약 온도구배를 계속 증가시키면, 대류의 패턴은 더욱 복잡해진다. 전동이 개시되고, 대류의 질서적 양태는 대부분 파괴된다. 그러나 "평형의 열적 혼돈"과 "비평형 난류 혼돈”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모든 특성공간과 시간척도가 분자영역에서 본, 평형에서 열적 혼돈은 실현되지만, 반면에 충분한13) H. L. Swinney and J. P. Gollub, WThe Transition to Turbulence, Physics Today, Vol. 31, No. 8 (1978) pp.41-49.
거시적 시간과 길이척도를 가질 때 난류혼돈에서 대상계는 혼돈적으로 보인다. 질서적 (전동적) 상황의 연속적인 진영은 혼돈적 거동의 진영을 따라간다. 예를 들면, 이와 같은 사실은 벨루소프-자보민스키 반응에서 유속의 함수로서 관찰된 바 있다.
Br-농도의 자취
그림 16. 멜루소프_자보민스키 반응에서 Br-이온의 순간적 진동을 나타내었다. 그림은 질적인 차이에 상옹하는 영역의 연속을 표시하고 있다. 이는 개략적 도시이다. 실험 데이타에 의하면 더욱 복잡다단한 연속이 존재한다.
여러 경우에서 "질서”와 혼돈”과 같은 語義의 엉킨 뜻을-풀어해치기란 어려운 일이다. 적도지역의 숲은 질서적 또는 혼돈적 대상계인가? 어떤 특정한 동물종의 역사는, 다른 종족이나 환경적 사건에 의존적으로, 매우 불확실하다. 물론, 種의 다양성에 의해 표충되는 적도지방 숲의 전체적
패턴은 질서의 원형에 상응하리라는 느낌은 지속된다. 이와 같은 전문용어에 궁극적으로 부여하려는 정확한 의미가 무엇이든간에, 어떤 경우에 두갈래치기 현상의 연속적인 발생은 특정한 주파수의 결정론이 그와 같은 주파수의 중복성으로부터 유래하는 무질서도를 증가시키는 비가역적 진화몰 이룩하게 됨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미 숱한 관심을 모아온 "혼돈”에 이르는 놀라울 정도로 간단한 길은 "화이겐바움 연쇄 (Feigenbaum sequence)”이다. 화이젠바움 연쇄는 대상계의 거동이 대단히 보편적인 사항에 의해 특징지워지는 계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다. 즉, 결정된 범위의 매개변수 값에 대하여, 대상계의 거동은, 주기 T를 같는 주기적 거동을 갖는다 ; 이 범위를 넘어서 주기가 2T가 되고, 또다른 임계적 분계를 넘어설 때, 대상계는 그 자신이 반복하기 위해서 4T의 주기가 필요하다. 따라서, 대상계는 연쇄적인 주기의 배가와 더불어 두갈래치기의 연속에 의해 특징지워진다. 이는 바로 단순한 주기적 거동으로부터 주기가 무한으로 배가될 때 발생되는 복잡한 비주기적 거동으로 옮아가는 전형적 경로를 구성한다. 화이겐바움이 발견한 것처럼, 이와 같은 경로는 대상계가 주기적 배가의 정성적인 성질을 보유하는 한 수반되는 메카니즘에 독립적인 보편적, 수치적 양상에 의해 특징 지워진다. “사실상, 비주기적 제약 내에서 그와 같은 대상계의 측정이 가능한 성질들은 특정한 대상계를 지배하는 방정식의 세부풀 본질적으로 우회하는 방법에 의해 결정할 수 있다……14) 그림 16에 나타난 바와 같이, 그밖의 경우에서, 결정론적인 요소와 통계적인 요소가 대상계의 역사를 특징지워 준다.14) M . J . Feignbaum, Universal Behavior in Nonlinear Systems, Los Alomas Science, No. 1 (Summer 1980), PP.4-42.
그림 17의 두갈래치기 현상과 λ6의 제어매개변수 값을 염두에 둘 때, 대상계는 이미 풍부한 여러가지 가능한 안정한 상태와 불안정한 거동을 지닐 수 있다. 매개변수 값이 성장함에 따라 대상계가 전화하는 "역사적" 경로는 결정론적인 법칙이 적용되는 안정된 영역과 대상계가 하나 이상 여러 종의 가능한 미래 중에서 "선택”될 수 있는 두갈래치기점 부근에서 불안정한 영역의 연쇄에 의해 특징지워진다. 일련의 가능한 상태와 안정
성이 계산될 수 있는 운동방정식의 결정론적 성격과, 두갈래치기점 주위의 두 가지 또는 그 이상의 영역에서 "선택"되는 무작위의 요동 모두는 헝클어진 실뭉치처럼 연결되어 있다. 이와 같은 필요와 기회는 대상계의 역사를 구성하게 된다.
解
그림 17. 두갈래치기 그림. 정상상태의 解들을 두갈래치기 매개변수 λ에 대해 도시하였다. λ<λ1에 대하여 A의 각각의 값에 대해 단지 1개의 정류상태가 존재한다 : 상태의 이와 갇은 집합은 줄기 a를 형성한다. λ=λ1에 대해서는 정류상태의 서로 다른 두 가지 집합이 가능하게 된다(줄기 b와 b').
b'의 상태는 불안정하지만 λ=λ2에서 안정하게 되며 반면 줄기의 다른 값은 불안정해진다. λ.=λ1에 대해서 줄기 b'는 다시 불안정해지고, 두 개의 다른 안정된 줄기가 나타난다.λ=λ4 대해 불안정한 줄기 a는 두 개의 새로운 중기가 가능한 어떤 새로운 두갈래치기 지점에 이르며, λ=λ5나 λ=λ6가 될 때까지 불안정한 상태에 머물러있게 될 것이다.유크리드에서 아리스토텔레스로
소산구조의 가장 흥미있는 양상 중의 하나는 그들의 치밀한 짜임새이다. 대상계는 전체로 거동하며, 마치 장거리에 걸찬 힘에 의해 지배되는 듯하다. 분자들 사이의 상호 작용은 I0-8cm 정도의 범위를 념지 않는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마치 각 분자들이 대상계의 전반적 상태에 관해 "알고 있는” 것과 갇은 구조를 이루고 있다.종종 언급되어 왔듯이-우리도 이미 반복한 것으로서――고영감의 근원이 생물학적 두갈래치기의 조직과 결속이 되어 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공간이, 유크리드의 균일한 동위공간으로 바뀌었을 때 현대과학은 탄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소산구조는 우리를 아리스토텔레스 개념에 더욱 가까이 놓는다. 화학시계, 농도의 파상, 또는 화학 생성물의 비균일한 분포 중 어느것을 다루든간에, 불안정성은 시간 공간직 대칭성을 파괴하는 효과를 갖는다. 임의의 극한주기 내에서, 두 순간은 동일하지 않다 : 예를 들어 화학반응은 빛의 파장을 특정짓는 것과 유사한 국면에 따라 진행한다. 다시금, 불안정성의 결과로서 임의의 방향을 선호하게 될 때, 공간은 이를 구성하는 동등한 위상성을 멈추게 된다. 인류는 유크리드론으로부터 아리스토텔레스론으로 이동하고 있다!공간과 시간 대칭성의 파괴는 형태 변형의 회한한 현상에서 중요한 부분을 맡고 있으리란 생각을 해봄직하다. 이 현상에는 어떤 내부적 목적이 반드시 수반되고 있으며, 씨눈의 경우 그 자신의 성장이 완전히 이루어졌을 때 씨눈에 의해서 감지하게 되는 어떤 계획이 포함되고 있다는 확신에 이르게 한다. 금세기초에 독일의 발생학자 드리스히는 어떤 비물질적인 무형의 엔텔러키 (Entelechy)”가 씨눈의 발전에 책임을 지고 있다고 믿었었다. 그는 씨눈이 그 초기 단계에서는 극심한 섭동에도 살아 지탱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섭동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기능적 유기체로 성장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반면에 필름 영상으로 발생학적 발전을 관찰해 보면, 보다 "잠잠한" 양적 성장의 주기가 뒤따르는 급진적 재구성에 상응하는 도약을 볼 수 있다. 이같은 사실에는, 다행히도, 몇 가지 오류가 내재하고 있다. 도약은 재현성 있는 양상으로 수행된다.누구든 진화의 메카니즘은 개발의 기구로서 두갈래치기 현상과 어떤 특정한 궤적을 안정화시키는 화학적 상호작용의 선택 사이의 국적인 작용에 기초를 두고 있으리라 상상할 수도 있다. 약 400년 전에, 생물학자 와딩턴은 그와 같은 생각을 도입하였다. 그가 발전의 안정화된 경로를 정의하기 위해서 도입하였던 크리오드(Chreod)”는 유연성과 안전의 이중적 당위의 결과로 생성되는 가능한 일련의 개발에 상응한다.15) 문제는 복잡하여 여기서는 단지 간단한 것만을 취급하려 한다.
15) 크리오드(chreod)개념은 이미 약 25년 전에 Waddington이 재안한 것으로 발생학상의 발전의 정성적 묘사의 한 부분을 뜻한다. 이는 진정으로 임의의 두갈래치기적 진화이다 : 안정된 선분들이 공존하며. 여러 종의 발전적 경로 중의 하나의 선댁이 가능한 선분을 갖는 "후생발전적인 공간" 속에서 태아가 성장하는 곳을 따라 진행되는 진보적 이용을 의미한다. 보다 자세한 사항운 위해서는 C. H . Waddington, The Strategy of the Genes (London : Allen & Unwin, 1975)를 참조할 수 있다. C. H. Waddington의 크리오드는 Rene Thom의 생물학적 연구에서 핵심적인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들은 따라서 두 접근에 마주치는 지정이 된 수 있다 : 하나는 우리가 다우고 있는 것으로서, 국부적 메카니즘으로부터 시작하여 그둘이 유발시킬 수 있는 집단적 습성의 스적트럼을 이용하는 것이다 ; 그리고 Thom의 경우에는, 전체적인 수학적 존재로부터 시작하여 정성적으로 구분되는 형태와 그등의 형태변이의 현상학적 묘사를 암시해주는 변형운 서로 연결시키는 접근방식을 일컫는다.
수년전 발생학자들은 형태 변이적인 의 개념을 도입하게 되었으며 세포의 미분화는 그 장 내의 위치에 의존한다는 가설을 설정하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임의 세포가 그의 위치를 “인식"할 수 있는가? 종종 토의된 아이디어에 의하면 하나 또는 그 이상의 형태변이 인자(morphogens)"인. 특별한 물질의 "구배"일 것이라는 개념이다. 그와 같은 구배는 평형에서 멀리 떨어전 조전에서 대칭파괴의 불안정성에 의해 실제로 생성될 수 있다. 일단 생성되면, 화학적 구배는 각 세포에 서로 다른 화학적 환경을 재공할 수 있으며, 각각은 특정한 형태의 단백질을 합성하도록 유도한다. 이 모델은, 현재 널리 이용되고 있으며, 실험적인 입증과 잘 일치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초파리에 대한 카프만의 연구16)를 인용할 수
16) S. A. Kauffman, R. M. Shymko, and K. Trabert, "Control of Sequential Compartment Formation in Drosophila," Science, Vol. 199 (1978), pp.259-69페이지.
있다. 임의의 반응-확산계는 초기 씨눈 내의 서로 다른 세포 집단에 의해서 발생되는 것으로 보이는 대체개발계획에 의한 실천에 원인을 제공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각 부분은 두 가지 선택의 고유한 조합에 의해서 규정지을 수 있으며, 각각의 선택은 공간적인 대칭-파괴 두갈래치기 현상의 결과를 초래한다. 모델은 초기 및 최종 영역에의 차이의 수――-영역 사이의 "거리”의 함수로서 이식 결과를 성공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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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8. 연속적인 이중 선택의 결과로 발생되는 초파리 태아의 구조에 대한 개요를 나타내었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본문에 기술하였다.
그와 같은 아이디어나 모델은 발생학적 대상계에서 씨눈이 겉보기에 대칭적 상태 (예를 들어, 자주색 운모, 해조류)로 발아되기 시작하는 생물학적 계에 대하여 특히 중요하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만약 씨눈이 시작의 태초에 정말로 균일할 것인가? 그리고 만약 작은 비균일성이 초기 발전단계에 존재한다면, 주어전 구조로의 전화에 대한 원인 또는 동로가 되는가? 그와 갇은 의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은 현재로는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은 설정되어 있다 : 화학 반응과 전달을 연결해 주는 불안정성은 초유의 균일한 상황의 대칭을 파괴할 수 있는 유일하고 일반적인 메카니즘으로 여겨진다.
그와 같은 해답의 유일한 가능성은 우리를 물질주의자와 이상주의자들사이에 존재하였던 오랜 투쟁을 초월하여 보다 먼 위치로 인도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우리는 또한 스탈, 헤겔, 베르그송, 그리고 그밖의 이상주의자들을 인용한 바 있다), 똑같은 확신이 표출되었다 : 복잡한 조직의 개념은 다양한 차원의 정의를 서로 연계시킬 필요가 있으며 전체와 부분이 지니는 거동 사이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유일한 원인 또는 조직은 단지 부분에 내재하리라는 물질주의자들에 대한 대답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조물주와 함께, 헤겔은 자연 속의 영혼의 출현과 함께, 베르그송은 단순하고, 억누를 수 없는 조직창출 작용과 함께, 전체가 지배적이라고 주장하였다. 베르르송을 인용한다면, 일반적으로. 동일한 대상이 한편에서는 단순해 보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무한히 복잡한 것으로 보일 때, 두 양상은 결코 동일한 중요성이나, 또는 같은 정도의 실재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와 같은 경우에, 단순성은 대상 자체에 속하며, 무한히 복잡한 것은 우리가 주시하는 시야에 속하고, 우리가 감지하거나 또는 표현하는 지적 능력, 보다 일반적으로는, 인위적으로 모방하려 하거나, 서로 다른 자연의 추량할 수 없는 존재로 남아 있는, 어떤 다른 질서의 구성 요소에 의한 상징에 속한다. 천재적인 예술가가 그의 화폭 위에 그림을 그렸다 하자. 우리는 그의 그림을 수많은 색상을 갖는 작은 크기의 모자이크에 의해 모방할 수 있다. 또한 모자이크의 크기를 더욱 줄여나가고, 수없이 다양하게 모자이크의 색조를 바꾸어 중으로써 모델의 곡선이나 음영을 보다 생생히 재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예술가가 단순한 것으로서 상상하고, 화폭에 전체로서 이동해 놓으려하였던 그립과 정확히 똑갇은 그림를 재현해내려면 무한히 작은 무한 갯수의 성분, 무한의 음영의 표시가 필요하게 될 것이며, 더이상 구분해낼 수 없는 직감의 투영까지를 나타낼수록 더욱 본래 것에 가깝게 된다.17)
17) H. Bergson. 제3장의 인용문헌 ,15, CreativeEvolution의 pp.94-95
생물학에서, 물질주의와 이상주의 사이의 갈등은 종종 외부적인 목적과 내부적인 목적 사이의 모순으로 나타내어졌다. 내재적 구성의 지적 능력에 대한 아이디어는 따라서 자주 시간의 테크놀로지 (기계. 열, 인공지능적 기계)로부터 빌려온 구성 모델에 의한 반대에 부딪쳐 왔으며, 곧바로 다음과 갇은 반박을 유발시킨다 : 누가 그 기계를 제작하였으며, 자동기계장치가 의부적인 목적에 따르는가?
금세기초에 베르그송이 강조했던 것처럼, 기술적인 모델과 내부적 구성 능력의 활력론자의 생각 모두는 진화적 구성을 어떤 존재 이전의 목표로 곧바로 간주함이 없이는 이 진화적 구성을 생각할 수 없었던 무능력의 표현이다. 오늘날, 분자 생물학의 놀라운 성공에도 불구하고, 관념적인 상황은 그대로 똑같이 남아 있다 : 베르그송의 주장은 조직자(organizer), “조절자(regulator)". 그리고 “유전학적 프로그램"과 같은 현시대의 은유 언어에 적용할 수 있다. 와이스와 와딩턴18)과 같은 비정통적 생물학자들은 각개 분자가 생물학에서 이해하려고 목표하고 있는 전체적 질서를 생성한다고 믿었던 부류의 생각을 비판하기에 이르렀고, 그와 같이 함으로써, 문제에 대한 해답을 체계화하는 데 오류를 범했노라 비판하였다.18) C. H. Waddington의. The Evolution of an Evolutionist, (Edinburgh : Edinburgh University Press, 1975)와 P. Weiss, MThe Living System : Determinism Stratified, Beyond Reductionism, ed . A . Koestler and J. R. Smythies(London : Hutchinson, 1969)를 참조할 수 있음.
생물학에서도 기술적인 것과 유사성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님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유사성의 일반적인 타당성은, 예를 들면, 전자회로와 갇이, 분자간의 상호작용이나 전체적인 거동의 묘사 사이에는 어떤 본질적인 균일성이 있음을 암시하는 점이다 : 임의의 회로의 기능은 회로 릴레이의 성격과 위치로부터 연역해낼 수 있다 : 이때 성격과 위치는 같은 척도를 가지며, 릴레이는 전체 기계를 제작한 동일한 엔지니어에 의해서 설계되고 설치된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정황이 생물학에서 지배적인 법칙은 될 수 없다.
박테리아 물질주성 (chemotaxis)과 같은 생물학적 체계에 관여하는 한수용체, 감각 및 조절 작용체, 모타 적응으로 구성되어 있는 분자기계를 언급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대략 20 또는 30개의 수용체가 고도로 특정한 종류의 화합물을 감지할 수 있으며, 이로부터 박테리아가 서로 끌어당기는 매체와의 공간적인 구매나 서로 밀치는 매체의 구배를 둥둥 떠올리거나 가라앉게 하면서 헤엄쳐 다닐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습성"은 처리하려고 하는 대상계로부터 유출변수에 의해 결정된다 - 즉, 박테리아의 방향의 변화를 유도하는 공중 재어의 스위치 개폐와 같은 조직이다.19)
19) D. E. Koshland, "A Model Regulatory System : Bacterial Chemotax- is, "Physiological Review, Vol. 59, No . 4, pp . 811-62.
그러나 그와같이 환상적으로 보이는 경우가 전체 내용을 말해 주지는 못한다. 사실상, 그들을 개방성과 적응성에 대한 안정성과 재현성을 갖는 거동을 강조하는 특정한 부류의 선택적 친화의 최종 생성물과 같은 제한된 경우로 보려고 하는 유혹이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기술적인 은유의 관련성은 원리의 문제가 아니라 기회의 문제이다.
생물학적 질서의 문제는 분자 준위의 활동으로부터 세포의 초분자적 질서로의 전이가 수반된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어내기에는 아직도 까마득하다. 종종 생물학적 질서는 막스웰의 논증과 꼭 닮은 효소, 논증을 위한 대상이 유지하고 있는 온도와 압력 차이와 동일한 방법으로 대상계의 화학적 차이룰 유지해 준 효소에 의해서 창출되고 유지되는, 있을 법하지 않은 물리적 상태로 간단히 기술된다. 만약 이같은 사항을 받아들인다면, 생물학은 스탈에 의해서 정의된 위치 내에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자연의 법칙은 오로지 죽음만을 허용한다. 영혼의 구성 작용에 대한 스탈의 관념은 핵산 내에 포함된 유전적 정보에 의해서 대치되고 생명이 영구히 될 수 있는 가정을 허용하는 효소의 형성으로 표현된다. 효소는 죽음과 생명의 사라짐을 보류한다.비가역 과정에 대한 물리학의 맥락에서, 생물학의 결론은 명백히 서로 다른 의미와 함축성을 갖고 있다. 오늘날 생물권의 구성성분은 물론 그 전체 생물권은 평형에서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 살아 있거나 죽어 있음을 알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생명은, 자연적인 질서 밖에 있기는커녕, 발생하는 자기-구성 과정의 궁극적인 표현으로 보인다.
일단 자기-구성을 위한 조건이 만족되면, 생명은 베나르 불안정성이나 낙하하는 돌맹이가 될 것이라는 말을 감히 하고 싶다. 최근에 발견된 생명에 대한 화석의 모양은 최초로 바위가 형성된 시기와 거의 동시대로 여겨진다는 사실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오늘날 알려진 가장 오래된 미세 화석은 그 연대가 3.8xl09년으로 짐작되며, 반면에 지구의 나이는 아마도 4.6x109년으로 추측된다. 최초의 바위의 형성은 역시 3.8xl09년으로 생각된다) . 생명의 최초 출현은 생명이란 탄생을 위한 조전이 허용될 때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자발적 자기-구성의 결과라는 개념의 편에서 볼 때 확실히 어떤 논쟁의 대상이다. 그러나, 현재 인류의 능력은 정량적인 이론의 제시에는 너무도 무력하고 거리가 멀다는 상황을 반드시 인정해야만 한다.생명과 진화의 이해를 재론하기 위해서 물질주의에 대한 어떤 탄핵에 의해 암시되어 온 위험을 피할 수 있는, 보다 나은 위치에 서 있다. 평형에서 멀리 떨어진 임의의 대상계는 그 계가 기본의 활동 또는 그를 초월하는 과정에 대해 조화되지 않는 임의의 계획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반대로 동등하게 가능한 수많은 다른 경로를 동해 선호하는 임의의 반응경로의 결과로부터 생기는 최적의 순간에 발생하는 미시적 요동의 증폭 때문에 구성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러므로, 특정한 여건 아래에서, 각각 개체적 거동에 의해 작용하는 역할이 결정적일 수 있다. 어쨌든 보다 일반적으로는, “전체적" 거동은 이를 구성하는 기본적 과정에 의해 지배되는 것으로는 간주할 수가 없다. 평형에서 멀리 떨어진 조건에서 자기-구성 과정은 우연과 필연 요동이나 결정론적 법칙 사이의 미묘한 상호작용에 상응한다. 기대되는 것으로서, 어떤 두갈래치기 근방에서, 요동이나 무작위적 요소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만, 반면에 두갈래치기 지점간의 영역에서는 결정론적 양상이 지배적으로 된다. 이들은 이제부터 보다 더 자세히 연구할 필요가 있는 의문점이다.제6장
요동을 통한 질서요동과 화학우리는 서론에서 오늘날 물리과학 분야에서 재개념화 운동이 일고 있다고 하였다. 그들은 결정론적, 가역과정으로부터 통계적이고 비가역적인 과정으로 이동되어 가고 있다. 이와 같은 추세의 변화는 치명적인 양상으로 화학에 영향을 주고 있다. 제5장에서 언급하였듯이, 화학적 과정은, 고전 동력학의 궤적에 대조적으로, 비가역 과정에 해당한다. 화학 반응은 엔트로피 생성을 유발한다. 반대로, 고전화학은 계속적으로 화학적인 전화의 결정론적 묘사에 의존하고 있다. 제5장에서 보아온 것처럼, 화학 반응에 대해서는 다양한 화학 성분의 농도를 포함하는 미분 방정식을 세울 필요가 있었다. 일단 초기시간에서 농도를 알면(확산과 같은 공간 의존적 현상이 수반될 때의 적절한 경계 조건은 물론) 임의의 시간이 경과된 후에 농도가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를 계산해낼 수 있다. 화학의 결정론적 견해가 평형에서 멀리 떨어전 상태에서의 과정이 수반될 때 실패하게 되는 사실은 흥미 있게 주목해야 할 상황이다.요동이 갖는 역할을 반복적으로 강조한 바 있다. 여기서 몇 가지 현격한 양상의 일부를 요약해 보자. 어떤 두갈래치기 지점에 이를 때는 언제나, 결정론적 상황은 파괴된다. 대상계 내에 존재하는 요동의 형태는 대상계가 따라갈 가지의 선택에 이르게 된다. 두갈래치기의 교차는 동전을던지는 것과 같은 통계적 과정아다. 화학적 혼돈은 또다른 예를 제시해 준다(제5장을 참조할 것) . 여기서는 개별적인 화학적 궤적을 더이상 따르지 않는다. 시간적 진화에 대한 자세한 사항도 예측할 수 없다. 다시금, 오로지 통계적인 정의만이 가능하다. 임의의 불안정성의 정의는 대상계의 미소 부분에 최초로 편재해 있다가 퍼져나아가 새로운 거시적 상태에 이르게 하는 요동의 결과로 여길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은 분자나 원자에 의해 정의되는 미시적 수준과 농도와 같은 전체적 변수로 규정되는 거시적 수준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한 전통적 견해를 바꾸어 놓는다. 여러 상황에서 요동은 단지 작은 교정에 상응한다. 예로서, 부피 V의 용기 속에 밀폐된 분자 N개로 구성된 기체를 취해 보자. 이 부피를 크기가 같은 두 부분으로 나누자. 두 부분의 하나 속에 들어 있는 입자의 수 X는 무엇인가? 여기서 변수 X는 "무작위"의 변수이며, 아마도 부근의 값을 지닐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확률이론의 기초 정리인, 무한수의 법칙은, 요동에 기인되는 "오차"의 추산 방법을 제시해 준다. 본질적으로 이 법칙이 시사하는 바로는 만약 X를 측정하면, 반드시 N 수준의 값을 예상한다. 만약 N이 크면 요동( )에 의해 유입되는 차이 또한 큰값이다(만약 N=1024, N= IOl2) . 그러나, 요동에 의해 도입되는 상대오차는( )/(N/2) 또는 I/ N이고 충분히 커지자마자, 무한수 법칙은 평균값과 요동 편차 사이의 분명한 구분을 할 수 있게 해주며, 편차는 무시할 수 있게 된다.그러나 발견될 수 있는 임의의 비평형 과정은 그 반대의 상황이다. 요동은 전체적 과정의 결과를 결정한다. 따라서, 평균값에 대한 교정 대신, 요동은 평균값을 변화시킨다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우리는 새로운 신조어를 도입하고 있으며, 요동의 결과로 발생하는 상황을 요동을 통한 질서”로 부른다. 이에 대한 예를 언급하기 전에, 상황의 개념적인 진기한 면을 언급하기 위한 일반적 사항을 논하여 보자.독자들은 아마도 양자역학의 통계적 양상을 적절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 원리에 익숙해 있으리라 믿는다. 고전적 결정론의 붕괴의 측면에서 볼 때, 양자이론에서는 더이상 위치와 좌표를 동시에 측정할 수 없게 된다. 이같은 사실은 살아 있는 대상 체계와 같은 거시적대상의 묘사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믿어진다. 그러나 비평형 대상계에서 요동 역할의 경우 상황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무질서도는 물론 거시적 수준에 대해 본질적인 것으로 남아 있다. 모든 기초소립자에 대한 파동적 거동으로 나타내는 양자이론과의 또다른 유사성을 언급하여보자. 뒤에서 언급되듯이, 평형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화학적 대상계는 일목요연한 파동적 거동에 이르게 할 수 있다 : 이들은 제5장에서 논의한 화학시계이다. 다시. 미시적 수준에 대한 양자역학의 몇 가지 성질이 거시적 수준에도 나타난다.
화학은 과학의 재개념화에 능동적으로 동참하고 있다.1) 우리는 지금 아마도 연구의 새로운 방향의 출발선상에 위치했다고 볼 수 있다. 최근의 몇 가지 계산 예들이 암시하듯이, 반응 속도의 아이디어는 몇몇 경우에 대해서 반응의 확률 분포가 포함되는 어떤 통계적인 이론에 의해 대치될 수 있다.2)1) G . Nicolis and I . Prigogine, Seif-Organization in Nonequilibrium Systems (New York : John Wiley & sons, 1977).
2) F. Baras, G. Nicolis, and M. Malek Mansour, MStochastic Theory of Adiabatic Explosion, Journal of Stalistical Physics, Vol. 32. No.1 (1983), P.1.요동과 상관관계
재5장에서 논의한 몇 가지 형태의 화학 반응에 대해 재론하여 보자. 한 가지 예로서, A x F와 같은 반응연쇄를 생각해 보자. 제5장에서 속도 방정식은 평균 농도를 의미한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서 X 대신란 그리 어렵지 않다. 평형에 있는 대상계나 정상상태에 있는 계에 대해 이와 같은 계산을 수행해 보자. 먼저 평형에 있는 계로부터 얻어지는 결과를 언급하자.
평형에서는 고전적 확률분포-대부분의 확률론을 다루는 교과서에서 정의하고 있는, 전화 통화수의 분포, 식당에서 기다리는 시간. 기체나 액체내 입자 농도의 요동 등 다양한 상황에 잘 들어맞는, 뿌아송 분포가 실재로 적용된다. 이 분포 함수의 수학적 표현은 여기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단순히 이 분포의 두 가지 양상을 강조하고 싶다. 먼저 이 章의 첫번째 절에서 언급하였던 무한수 법칙에 이르게 한다. 따라서, 요동은 대단히 커다란 대상계에서 사실상 무시된다. 더욱이, 이 법칙은 임의의 거리 r만큼 떨어져 있는 공간상의 두 집에서 입자 X의 수 사이의 상관관계를 계산해줄 수 있게 한다. 계산 결과 평형에서는 아우런 상관 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할 수 있다. 서로 다른 두 점 r과 r’에서 두 분자 X와 X’를 발견할 수 있는 확률은 분자간의 거리 범위에 대해 보다 떨어진 거리로 생각할 수 있는 r에서 X와 r’에서 X’를 발견할 수 있는 값의 곱이다.최근 연구의 예기치 못했던 결과의 하나는 이와 갇은 상황이 대상계를 비평형의 상황으로 옮겨 놓았을 때 극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먼저, 두 갈래치기 지점에 근접될 때 요동은 비정상적으로 높아지고 무한수의 법칙은 빗나간다. 이는 예견되는 것으로서, 대상계는 다양한 진영 중에서 임의의 영역을 "선택“하게 된다. 요동은 거시적인 값의 평균값과 같은 수준의 값에 도달될 수 있다. 이후 요동과 평균 값의 차이는 없어진다. 더욱이, 제5장에서 논의한 비선형 형태의 화학 반응의 경우에, 장거리에 걸친 상관관계가 나타난다. 거시적인 거리만큼 분리되어 있던 입자는 서로 연결된다. 국소적인 사건은 전체계를 통해서 되밀침 작용을 지니고 있다. 흥미로운 것3)의 하나로 그와 갇은 장거리의 상관관계는 평형으로부터 비평형으로 전이되는 정밀한 지점에서 나타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전이3) 예를 들면. M . Malek Mansour, C. van den Broeck, G. Nicolis, and J. W. Turner, Annals of Physics, Vol. 131, No. 2(1981), p,283을 참조할 수 있다.
는 狀의 전이와 서로 흡사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장거리 인력 작용의 증폭은 최초에는 작지만 평형으로부터 거리에 따라 증가하며, 두갈래치기 지접에서 무한한 값이 되어 버린다.
이와 같은 거동의 형태는 매우 흥미로운 것으로, 화학시계에 관하여 우리의 토론에서 언급한 의사소통의 문제에 대한 분자 수준의 토대를 제시해 준다. 거시적 두갈래치기 이전에서조차, 대상계는 장거리 인력작용을 통하여 구성된다. 다시 이 책의 주된 아이디어의 하나로 되돌아가자 : 질서의 근원으로서 비평형 . 여기서 상황은 특별히 명료하다. 평형에서 분자는 본질적으로 독립적인 존재로 거동한다 ; 그들은 서로를 무시해 버린다. 우리는 그들을 "최면에 걸린 대상(hypnons)" 또는 "몽유병자”로 칭하고 싶다. 각각은 비록 우리와 같이 복잡한 존재일 수 있으나, 서로를 무시한다. 그러나, 비평형은 그들을 일깨우고 평형에서는 아주 이방인격인 어떤 조화있는 일치감을 도입케 한다. 제9장에서 발전시킨 비평형 과정의 미시적 이론은 물질에 대한 유사한 영상으로 표현된다.물질의 활동도는 그 자신이 생성할 수 있는 비평형의 조전에 관계된다. 거시적 거동과 똑갇이, 요동과 상관 관계는 평형에서 보편적이다(뿌아송 형태의 확률 분포를 발견할 수 있을 때) . 그들은 평형과 비평형 사이의 경계를 교차할 때 수반되는 비선형성의 형태에 매우 특징적인 의존성을 갖게 된다.요동과 증폭먼저 두 가지 예를 들어 요동의 성장이 새로운 구조의 형성에 이를 수있는 경우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자. 첫째는 응집 곰팡이 집단이 기근으로 위협받을 때 단일한 초세포적 질량체로 회합하는 경우이다. 이미 이같은 예는 제5장에서 언급한 바 있다. 요동의 역할에 대한 또다른 예증은 흰개미 둥지틀기의 초기 단계이다. 이는 최초로 그라스에 의해 기술되었고, 우리가 여기서 관심을 갖는 측면에서 디노보르그가 탐구한 바 있다.4)4) J. L. Deneubourg, "Application de l'ordre par fluctuation a la
description de certaines effitapes de la construction du nid chez les termites, btsectes Socia1tx, joumal J11tematio11al pour /'elude des Arlltropodes Sociattx, Tome 24, No. 2(1977), PP.117-30_ 이와 같은 최초 의 모델은 현재 새로운 실험적 연구들에 연계되어 그 적용성이 확장되고 있는 중 이다 : O . H . Bruinsma, "An Analysis of Building Behavior of the Termite macrotennes subltyalinus", Proeceedings of the Ⅷ Congress IUSSI (Waegeningen, 1977).
곤충무리 속에서 자율 집합화 과정
어떤 갑충류의 애벌래 (Dendroctonus micans)가 2mm 믿어져 있는 두 수평 유리판 사이에 무작위로 분포되어 있다. 그 경계는 개방되어 있고 표면은 400cm2이다.자율적인 집합화 과정은 두 가지 인자 사이의 경쟁의 결과로부터 생겨나는 것으로 보인다 : 애벌레의 무작위적인 이동과, "페로몬(Pheromon)”이란 화학물질에 대한 그들의 반응의 경쟁이다. 이 페로몬은 나무에 들어 있는 테르펜으로부터 합성하며 애벌레들이 집어삼키고, 자신의 영양상태에 의존하여 일정 속도로 말산해낸다. 페로몬은 공간에 확산되고, 애벌레는 이 페로몬의 농도구배를 갖는 방향으로 이동한다. 그와 같은 반응은, 그들이 서로 군집됨에 따라, 애벌레가 동일 영역에의 끌어당기는 마력을 증강시키는 자촉매적 메카니즘을 제공한다. 이 영역에서 애벌레의 국부적 밀도가 높운수록 농도구배가 세어지며 군집되어 있는 지점을 향해 이동하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실험에 의하면 애벌래 인구의 밀도는 군집속도뿐만이 아니라 이의 유효도까지를 결정해 준다-즉, 최종으로 군집된 집합의 일부분이 되는 애벌레의 수이다. 높은 민도에서 (그립 A) 군집된 애벌레는 실험장치의 중앙에서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대단히 낮은 밀도(그림 B)에서는, 아무런 안정한 군집도 나타나지 않는다. 더욱이, 다른 실험에서는, 대상계의 주변 영역에 인위적으로 만든 "핵"으로부터 출발하여 점점 발전되어 갈 군집덩이의 가능성을 확인해 보았다. 이때 그 초기의 핵내의 애벌래 수에 따라 다른 해답이 나왔다. 만약 이 숫자가 애벌래 전체의 수에 비하여 작응 때 애벌래의 군집덩이는 생기지 않는다(그림 D) . 만약 이 숫자가 클 때에는, 집단이 성장된다(그림 E) . 이 초기핵 내의 애벌래의 숫자가 중간 정도인 때는 새로운 형태의 구조가 발전원 수 있다:등, 셋 또는 네 개의 다른 집단이 나타나 공존하게 되며, 이 경우 생명을 유지하는 시간은 적어도 관찰시간보다는 큰 상황이었다(그림 F와 G) . 초기에 균일한 조건등에서 행한 실험에서는 그와 같은 복수의 집단구조는 관찰되지 않았다. 이들은 아마도, 두갈래치기 그림에서, 안정한 상대에 상응하며 대상계를 특징짓는 매개 변수의 값에 부합된다. 그러나 이 대상계에서는 균일한 초기조건들로는 그와 같은 값을 얻을 수는 없다. 핵은 대상계를 촉진하는 데 필요한 유한한 값의 섭동의 기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그들을 다중해의 집합에 상응하는 두갈래치기 영역 속으로 밀쳐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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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A. 고밀도에서 자치집단화. 시간은 각각 0분과 21분에서 나타낸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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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B. 저밀도에서 자치 집단화. 시간은 각각 0분과 22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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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C. 중앙 뭉치에서의 애벌레 전체수의 백분윤을 서로 다른 세 가지 밀도에서 시간의 함수로 나타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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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D. 10개의 애벌레가 초기뭉치에서 믿어져나갔다. 전체애벌레수는 80이다. N : 뭉치 내의 애벌레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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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E. 초기뭉치에 20과 30마리의 애벌레가 성장되었다. 전에 애벌레수는 8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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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F. 여러 뭉치에 애벌레 뭉치의 초기값은 15마리이며, 전체 애벌레수는 80마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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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G. 애벌레 뭉치의 성장(l). 언저리를 따라 유입시켰으며, 이는 제2의 작은 뭉치 (II)의 형성을 촉발시킨다.
흰 개미의 둥지틀기는 과학자들이 곤충 집단 속의 "집단적 성향”에 관한 몇 가지 추측을 가능하게 하는 짜임새 있는 활동의 하나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사실상 흰개미는 보금자리로서 그와 같이 거대하고 복잡한 건축을 세우는 데 참여하기 위해 거의 어떤 정보도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라세에 의하면 거대한 건축물을 구축해 가기 위한 초기단계의 토대를 세우는 활동은 흰개미들 사이의 무질서처럼 보이는 거동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 단계에서, 그들은 작은 흙덩이를 무작위적인 형태로 이동하여 떨어뜨리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떨어진 흙덩이에 다른 흰개미를 유혹하는 호르몬을 스며들게 한다. 따라서 상황은,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 : 초기의 요동은 흙덩이의 농도가 약간 높은 것일 것이며, 고려하는 면적 내의 임의의 지접에 각 순간 발생한다. 이와 같은 사건의 증폭은 동일 영역에서 흰개미 밀도의 증가에 의해 발생되며, 이때
흰개미의 밀도는 약간 높은 호르몬 농도에 의해 이끌린다. 임의의 영역에 흰개미의 수가 엄청나게 될 때, 그곳에 흙덩이를 떨어뜨릴 확률은 증가되며, 차례로 다소 높은 호르몬의 농도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에 의해서 "집의 기둥”이 세워지고, 호르몬이 번지는 지역까지 일정한 거리로 분리된다. 이와 갇은 유사한 예가 최근에 발견된 바 있다.
비록 볼츠만의 질서원리는 차이가 없어져 가고 초기조건을 망각해 가는 화학 및 생물학적 공정을 정의할 수 있으나, 불안정한 상황 아래서 몇몇 "결정 (decision)”이 어떤 전체적 구조를 향한 많은 수의 실재 존재가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형성되는 대상계를 변화시켜 가는 상황을 설명할 수 없다.일련의 유한한 섭동의 결과로 새로운 구조가 생성될 때, 한 영역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유도하는 요동은 단일한 움직임만으로 초기 대상계의 상태를 전복할 수는 없다. 요동은 먼저 그 자체가 어떤 제한된 영역에 부어 전 후 전체 공간으로 침범해 가야 한다 : 그곳에는 핵생성 메카니즘이 존재한다. 초기 요동 영역의 크기가 임계값의 아래 또는 위에 놓이는가에 따라(화학적인 소산구조인 경우 이 분계점은 특정한 속도상수와 확산계수에 의존한다), 요동은 점멸되거나 전체 대상계로 번쳐나아간다. 우리는 狀變化에 대한 고전적 이론의 핵생성 현상에 익숙해 있다고 본다 : 예를 들어, 기체의 경우 응축된 방울이 끊임없이 형성되고 증발한다. 온도와 압력이 어떤 지점에 도달할 때, 액체의 상태가 안정해전다는 의미는 액체 방울의 임계 크기를 정의할 수 있음을 뜻한다(이 크기는 온도가 낮을수록, 압력이 높을수록 작아진다) . 만약 한 개 방울의 크기가 이같은 "핵생성 분계"를 초과할 때, 기체는 거의 순간적으로 액체로 변화한다.더욱이 이론적 연구와 수치 모사에 의하면 임계 핵의 크기는 대상계의 모든 영역을 연결하는 확산 메카니즘의 효력에 따라 증가한다. 다시 말해, 대상계 내에서 신속한 의사 소통이 발생하며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요동의 분율이 증가하고 대상계는 보다 안정해진다. 임계 크기 영역의 주위는 늘 요동을 감쇠시키는 경향을 나타내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는 요동의 영역과 외부세계 사이의 의사 소통의 유효도에 따라 붕괴되거나 증폭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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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9. 임의의 과포화 증기에서 액체 방울의 핵생성 . (a) 방울 크기는 임계 크기보다 작다 ; (b) 방응은 임계 크기보다 크다. 분계점의 존재는 소산구조에 대하여 실험에 의해 입증된 바 있다.
이와 같은 모델은 암 종양의 발생에 대하여 최근 유리 속에서 수행한 연구 결과에 응용되었다.5) 각각의 종양 세포는 어떤 "요동"으로서 관찰되었으며, 통제할 수 없이 영구히 나타날 수 있으며 계속적인 증식을 통해 번져간다. 그러다가 일단의 독작용 세포, 즉, 암세포를 파괴하는 데 성공하거나 또는 실패할 수 있는 면역체와 대치하게 된댜. 암세포의 증식과 파괴 과정을 특정짓는 서로 다른 매개변수의 값에 따라서, 종양의 점멸이나 증식 여부를 예측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중식 속도론의 연구는 면역세포와 암 세포 사이의 상호 작용에 있어서 예기치 못한 양상을 인식할 수 있게 해주었다. 면역체 세포는 암 종양 세포의 살아 있는 것과 죽어 있는 것을 혼동할 수 있는 것으로 관찰되었다. 그 결과 암 세포의 파괴는 점점 더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5) R . P . Garay and R . Lefever, A Kinetic Approach to the Immunology of Cancer : Stationary States Properties of Effector Target Cell Reactions, journal of Theoretical Biology, Vol. 73 ( 1978) , pp .417-38 및 필자들과의 개인적인 대화내용을 토대로 하고 있음.
복잡성의 한계에 대한 의문은 종종 제기되어 왔다. 사실상, 대상계가 더더욱 복잡할수록, 더많은 무수한 형태의 요동 현상이 대상계의 안정성
을 위협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생태학적 또는 인류의 조직처럼 그리도 복잡한 체계가 어떻게 감히 존재할 수 있는가의 의문이 제기된다. 어떻게 그들은 영원한 혼동을 관리해내는가? 의사 소통이나 확산 과정의 안정화 효과는 이와 같은 의문의 부분적 해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복잡한 대상 체계에서, 모든 종이나 개체는 수많은 서로 다른 방법으로 상호 인력을 지니고 있으며, 대상계의 여러 부분 사이의 확산이나 의사 소통은 보다 더 효율적일 것으로 보인다. 그곳에는 의사 소동을 통한 안정화와 요동을 통한 불안정성 사이의 투쟁이 존재한다. 그와 같은 투쟁의 산물은 안정성의 분계를 결정할 것이다.
구조적 안정성언제 우리는 본래의 의미로서 "진화"에 관한 말을 시작할 수 있는가? 앞서 보아 왔듯이, 소산 구조는 평형에서 멀리 떨어진 조건을 필요로 한다. 지금까지 반응 확산 방정식은 매개변수를 포함하고 있으며 평형근방 조건으로 되돌아 이동될 수 있다. 대상계는 두 방향을 갖는 두갈래치기 그림을 따라 임의의 방향으로 답사할 수 있다. 비슷하게, 액체는 충류흐름으로부터 난류흐름으로 이동될 수 있다. 아무런 특정한 진화적 패턴이 수반되지 않는다.두갈래치기 매개변수와 갇은 대상계의 크기를 수반하는 모델에 있어서 상황은 판이하게 다르다. 여기서, 시간에 대해 비가역적으로 발생되는 성장은 비가역적 진화를 창출해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황은 형태변이적 발전과 같은 경우에 매우 적절하다 할지라도, 매우 특정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해당된다.생물학, 생태학, 또는 사회학적 진화의 경우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서로 상관하는 일련의 단위의 특정한 수나 단위간의 특정한 수의 변환 모두가 이미 주어진 것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따라서 대상계의 정의는 이의 전화에 의해 변모되기 쉽다. 이와 같은 부류의 진화에 대한 가장 간단한 예는 구조적 안정성 개념에 관계가 있다. 구조 개념은 주어진 대상계의 어떤 반응에 대해서 대상계의 과정에 배가되어 참여할 수 있는 단위의 도입 여부에 관심을 둔다.
이와 같은 종류의 변화의 상대역으로서 임의의 대상계에 대한 안정성의 문제는 다음과 같이 규정할 수 있다 : 매우 작은 양으로 유입되는 새로운 성분은 대상계 성분과 일련의 새로운 형태의 반응에 이르게 한다. 이와 같은 새로운 반응은 대상계의 바로 이전의 기능 형태와 경쟁의 국면에 돌입된다. 만약 대상계가 이와 같은 침입에 관한 한 구조적으로 안정된 상태에 있다면, 대상계가 지니는 기능의 새로운 형태는 그 스스로가 지탱할 수 없게 팔 것이며, "개혁자들"은 살아남지 못한다. 그러나, 만약 그와 같은 구조적 요동이 성공스럽게 자신을 지탱할 수 있다면-예를 들어 만약, 배가된 속도론, 즉 개혁자들'’이 파괴되는 대신 대상계의 바로 이전의 성분보다 대상계로 침입하기에 충분히 빠른 속도를 갖고 있을 때―전체 대상계는 기능의 형태를 채택하게 될 것이다 : 이의 활동은 새로운 "구문(syntax)”에 의해 지배될 것이다.6)6) P . M . Allen, Darwinian Evolution and a Predator-Prey Ecology," Bulletin of Matlzematica/ Biology, Vol. 37(19n), pp,389-405 ; Evolution, Population and Stability, Proceedings of llz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Vol. 73, No. 3(1976), pp,665-68 또한 R. Czaplewsk : .. A Methodology for Evaluation of Parent-Mutant Competition, journal for Theoretical Biology, Vol. 40(1973), pp.429~39 참고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의 가장 간단한 예는 單 . A와 B가 공급되는 대상계 내에서 고분자화에 의해 재생되는 고분자의 무리이다. 고분자 반응 과정이 자촉매적이라 가정하자 - 즉, 이미 합성된 고분자는 즉은 형태를 갖는 사슬을 형성하기 위한 모델로 사용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종류의 합성은 복제할 모델이 없는 경우의 합성보다 매우 빠르게 일어난다. A와 B의 입자 연쇄에 의해 특징지워지는 각 형태의 고분자는 복제할 모델이 되고 합성의 촉매 노릇을 하는 반웅의 속도, 복제 과정의 정밀성, 합성된 고분자 자체의 평균수명 등을 측정함으로써 얻어지는 일련의 매개변수에 의해 기술할 수 있다. 어떤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 이를테면 ;
ABABABA ••• 의 연쇄를 갖는 단일 형태의 고분자가 고분자의 집단을 지배한다고 할 때, 그 밖의 다른 연쇄를 지닌 고분자들은 먼저 것에 비하여 그저 단순한 요동임을 증명할 수 있다. 구조적 안정성의 문제는 복제시 "오류”의 결과로서, 아직까지 알지 못하던 연쇄 구조에 의해 특징지을 수밖에 없는 새로운 고분자와, 대상계 내에 나타나는 새로운 일련의 매개변수들에 의해 가능한 경우에 야기되며, 배가하기 시작하고 가용의 단량체 A와 B의 지배적 종류와의 두쟁을 시작한다. 여기서 고전적 다윈의 개념인 "적자생존”의 근본적인 경우와 만난다.
그와 같은 아이디어는 아이겐과 그의 동료들에 의해서 발전시킨 생물체 이전의 전화모델의 토대를 이루게 되었다. 아이겐의 논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른 문헌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7) 간략히 말하여 아이젠 모델은 자촉매적 집단에서 연속적으로 범하는 오류를 제지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계로 돌연변이 고분자”에 대해서도 구조적으로 안정하다. 이와 같은 대상계는 두 종류의 고분자로 구성되어 있다. 첫번째 부류의 고분자는 "핵산”의 형태이다 : 각 분자는 스스로를 재생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두번째 부류의 고분자, 단백질 형태의 고분자를 합성하는 데 촉매로서 행동한다, 이 두번째 부류의 분자는 첫번째 부류의 고분자의 자치 재생을 촉진시킨다. 이와 즉이 두 부류 고분자의 자치 재생 사이의 초월 촉매적 연관은 어떤 주기의 과정으로 바뀔 수 있다(각 핵산은 "단백질”의 도움으로 그 자신을 합성한다) . 이후에는 높은 재생 효율을 갖는 새로운 고분자의 계속적 출현에 대하여 안정되게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하게 된다 : 사실상, 단백질”과 핵산”에 의해 이룩된 자치적 복제 주기에 침입될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새로운 부류의 진화는 유전학적 신호를 전파하는 안정된 토대 위에서 성장을 개시할 수 있을 것이다.7) 이와 같은 연구의 최근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M. Eigen and P. Schuster, The Hypercycle(Berlin : Springer Verlag, 1979)를 예로 들 수 있음.
아이겐의 접근은 분명히 대단한 흥미를 지니고 있다. 믿음직한 자치 재생에 대한 다윈론적 선택은 제한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주위 환경 속에서 분명히 중요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현상이 지구상의 생물학적 존재 이전
의 전화에 수반되는 유일한 양상만은 아니라는 견해를 믿으려는 추세에 있다. 임계양의 에너지와 물질의 흐름에 관계되는 "평형에서 멀리 떨어진” 조건이 또한 중요하다. 생명을 향한 첫번째 단계의 상황은 화학적 에너지를 흡수하거나 변환시킴으로써 대상계를 "평형에서 멀리 떨어진" 조건으로 밀어넣는 능력을 보유할 수 있는 메카니즘의 형성에 관계된다고 가정하는 것은 그런대로 합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 같은 단계에서 생명, 또는 생명 이전은 아마 너무도 희석되어 있는 관계로 다윈론적 선댁은 생명의 나중 단계에서처럼 핵심적인 역할은 하지 못한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은 미시적인 것과 거시적인 것과 관계 있는 사항에 관해 초점을 두어 왔다. 진화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는 거시적인 구조와 미시적인 사건 사이의 궁극적 되먹임 작용이다 : 미시적 사전으로부터 출현되는 거시적 구조는 미시적인 메카니즘의 변화에 이르게 될 것이다. 신기하게도, 현재로, 보다 잘 이해된 경우는 사회적 상황에 관계된 것들이다. 도로나 교량을 세울 때, 해당 인구의 습성에 어떻게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점을 예상할 수 있으며 이는 해당 지역에서 의사소통 형태의 다른 변화를 결정해 줄 것이다. 그와 같이 상호 관련이 있는 과정은 어떤 부류의 모델화 이전에 이해할 필요가 있는 대단히 복잡한 상황을 창출한다. 이는 바로 우리가 이제 기술하려는 사항이며 단지 매우 단순한 경우만을 취급할 수밖에 없는 변명의 이유이다.보급적 진화사회적인 경우에 구조적 안정성의 문제는 엄청난 응용성을 지닌다. 그러나 꼭 강조해야 될 사항은 그와 같은 응용성은 단지 필요한 근원의 매우 제한된 양만이 존재하는 주위 환경 내의 자기복제 과정들 사이의 경쟁이란 맥락에서 단순히 정의한 상황의 극적인 단순화를 암시한다는 점이다. 생태학에서, 그와 같은 문제에 대한 고전적 방정식은 "보급(logistic) 방정식"으로 불리워진다. 이 방정식은 출생률, 사망률, 고려하는 인구에 가능한 자원의 양을 고려한, N개의 개체를 담고 있는 인구에 대한 진화를 기술한다. 보급적 방정식은 dN/dt=rN(K-N)-mN으로 쓸 수 있고, 여기서 r과 m은 특정한 출생과 사망 상수, K는 주위 환경의 "지지능력”이다. N의 초기값이 무엇이든간에,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사망 및 출생 상수비와 지지 능력의 차이에 의해서 결정되는 정상 상태값은 N= K―m/r에 이르게 될 것아다. 이와 같은 최종값에 이르렀을 때 환경은 포화되고, 임의의 순간마다 탄생하는 많은 사람들은 사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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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0. 산정곡선에 따론 시간 t의 함수로서 집단 N의 전화. 정류상태 N=0은 불안정한 반면 정류상태 N=K-m/r은 N의 요동에 대하여 안정하다.
보급 방정식의 단순성은 수반되는 메카니즘의 복잡성의 일면을 감추어 버린다. 예를 들면 잡음은 특히나 단순한 의미를 갖고 있다. 분명히, 기후의 요동 때문만이라면, 계수 m 그리고 r은 상수로 간주할 수 없다. 그와 같은 요동은 생태학적 평형을 완전히 부수어 버리거나, 인구 전체를 아주 멸종케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물론, 새로운 과정인 식량의 비축이나 새로운 식민지의 형성과 갇은 변화가 시작될 것이고 결국에는 진화되어 감으로써 의부의 요동의 영향을 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앞에 언급한 것 이상이다. 시간에 연속적인 것으로 본 보급 방정식을 쓰는 대신, 주어진 고정된 시간 간격 (예를 들면, I년 동안을 구분하여)에서의 인구를 비교하자. 이와 같은 "이산된(discrete)" 보급 방정식은 N1+1=N,[r+r(r-Ni/K)]로 쓸 수 있으며, 여기서 Nt와 N,+1은 1년 간격에 의해 분리된 인구이다(여기서 사망에 관계된 항은 무시하였다) . 메이8)에 의해서 지적된, 놀라운 현상의 하나는 그와 같은 방정식은 그들이 갖는 단순성에도 봉구하고, 당황할 만한 엄청난 수의 解를 허용한다. 매개변수의 값이 0 r 2에서는 연속적인 방정식의 경우처럼, 평형에 균일하게 근접하는 해를 갖는다. r의 값이 2.444보다 낮은 값에서는 어떤 국한주기가 개시된다 : 이제는 매2년의 간격으로 주기적인 거동을 갖는다. 4년, 8년 등의 연도 주기는 거동이 혼돈적인 (만약 r이 2.57 보다 클 때) 것에 의해 정의될 때까지 연속된다. 여기서도 제5장에서 기술했던 것처럼 혼돈적인 거동으로의 전이 현상을 갖는다. 이와 같은 혼돈이 자연에서 출현하는가? 최근의 연구9)에 의하면 자연적인 인구를 특징지워 주는 매개변수들이 그들을 혼돈적인 영역으로부터 지켜 주는 것으로 보인다. 왜 그렇단 말인가? 여기서 컴퓨터 모사에 의해서 얻어진 진화론적 문제와 수학과의 연합에 의해 창출되는 대단히 흥미로운 문제의 하나에 접한다. 지금까지는 靜的인 관점을 취해 왔다. 이제부터는 관심을 메카니즘에 돌려, 그로부터 매개변수 K, r 그리고 m이 생물학적 또는 생태학적 진화 동안 변화될 수 있는 경우를 취급해 보자.
8) R. May, in Science, Vol. 186(1974), pp.645-47과 또한 R. May의 "Simple Mathematical Models with very Complicated Dynamics," Nature, Vol. 261 ( 1976) , pp _459-67을 참고할 수 있다.
9) M . P . Hassell, The Dynamics in Arthropod Predator-Prey Systems (Princeton, N . J . :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8).진화 과정 동안에 생태학적 매개변수들 K, r 그리고 m의 값이 변화될 것이라는 상황을 기대해야만 한다(그밖의 많은 다른 변수나 매개 변수는 물론이려니와, 그들을 추량할 수 있을지 없을지 관계없이). 살아 있는 사회는 계속해서 기존하는 자원을 활용하거나 새로운 것 (즉, K가 증가하는)을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을 도입하며 계속해서 삶을 연장하거나 보다 더 빠르게 증식하는 방법을 발견한다. 보급 방정식에 의해서 정의되는 생
태학적 평형은 따라서 일시적이거나 또는 보급적으로 정의된 생활 범위가 어떤 종에 의해서 계속적으로 또한 연속적으로 차지하게 되고, 각 종은 K一m/r로 표현되는 양의 측정으로서 생활 범위를 활용하는 "성향"이 커질 때 (그림 21을 참조할 것) 앞서 존재하던 종을 추방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 따라서, 보급 방정식은 "적자생존”에 대한 다윈론적 개념을 정량적으로 체계화할 수 있도록 해주는 대단히 간단한 상황에 이르게 한다. 생존의 "최적자”는 주어진 시간에서 K-m/r 양이 가장 큰 종에 해당한다.
만약 보급 방정식에 의해 기술되는 문제처럼 제약을 주면 두말할 필요없이 자연이 지니는 창의력의 풍부함에 대한 몇 가지 예에 이르게 된다.벌레 유충을 예로 들면, 움직임이 느린 관계로 도저히 도망갈 수 없어 필시 멸종되어 버렸을 것이다.
x
그림 21. 시간의 함수로서 전체 집단인구 X의 전화 ; 種X1, X2, X3 의해 이루위져 있는데, 연쇄적으로 나타나며 K-m/r 값의 증가에 의해 특징지워진다 (본문 내용).
독작용이나 따갑게 만드는 털, 가시 등은 물론이려니와 상대로 하여금 위협을 느끼게 하는 자세 등을 사용하는 진화된 전략은 새나 그밖의 약탈자를 추방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그러나 이들 전략이 모든 시간, 모든 약탈자에 언제나 효과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특히나 임의의 약탈자가
아주 배고플 때는 더욱이 무력할 뿐이다. 가장 이상적인 전략은 전연 발각되지 않는 상태로 있는 경우이다. 몇몇 유충은 이같은 이상적인 상태에 근접해 있으며, 수백종의 나방류가 약탈자에게 발각되지 않기 위해서 사용하는 다양하고 복잡한 묘책들은 19세기 저명한 자연주의자 아게시즈의 말을 연상시키게 한다 : "존재의 가능성은 너무도 엄청나 자연을 이해하는데 이례적인 개념이란 거의 생각할 필요가 없다.”10)
10) B . Heinrich, "Artful Diners, Natural History, Vol. 89, No . 6 (1980) pp.42-51. 특히 p.42를 인용하고 있음.
러브가 발표한 예를 소개하지 않을 수가 없다.11) 면양의 장디스토마는 개미로부터 면양으로 숙주를 옮기지 않으면 안되며, 그로부터 마침내 자신이 증식된다. 양이 감영된 개미를 집어삼킬 기회는 대단히 낮지만 개미는 실로 놀라운 방법으로 거동한다 : 개미는 면양과 마주칠 확률을 최대로 만들기 시작한다. 디스토마는 숙주의 "몸을 탈취“한다. 디스토마는 개미의 뇌 속으로 잠복하여 숙주가 자살적인 방법으로 거동하도록 강요한다.
11 ) M . Love, "The Alien Strategy, Natural History, Vol. 89, No . 5 (1980), pp.30-32.
이를 지니고 있는 개미는, 땅바닥에 머무는 대신, 풀줄기 꼭대기로 기어오르게 되고 그곳에서, 꼼짝않고 면양의 먹이가 되기 위해 기다린다. 이는 사실상 기생 동물의 문제 해결에 믿기 어려운 영리한 방법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이같은 일이 수수께끼로 남아 있도록 선택되었는가.
생물학적 진화에서 다른 상황은 보급 방정식과 유사한 모델로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전쟁의 임무나 비생산적 활동(예를 들면, 일하는 곤충 사이의 "병정")을 맡고 있는 집단의 무리에게 유리할 것으로 여겨지는 같은 곤충 사이의 두쟁 조건 등의 계산이 가능하다. 또한 특정한 種이 분화되어 있거나 그 종의 식량 자원의 범위가 제한되어 있는 환경에 있을 때, 넓은 범위의 자원을 소비할 수 있는 분화되어 있지 않은 종보다 더 쉽게 생존할 수 있으리라 기대되는 주위 환경을 결정할 수 있다.12) 그러나 여기서 몇 가지 대단히 다른 문제에 접하게 되는데 내부적으12) J . L . Deneubourg and P . M . Allen, MModeles theoriques de la division du travail des Jes societes d'insectes, Academie Royale de
Belgique, Bulletin de la Classe des Sdences, Tome LXII ( 1976) , pp. 416 -29 ; P. M. Allen, MEvolution in an Ecosystem with Limited Resources" 위 인용문헌 pp . 408-15.
로 세분화되어 있는 집단의 조직에 관한 것이다.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구분이 절대적으로 요청된다. 한 집단에서 개체는 서로 바꿀 수 없는 것이며 각각은 그 자신의 기여, 성명, 그리고 경험과 함께, 단일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요구되며 보급 방정식의 적절함, 보다 보편적으로는, 단순한 다원론적 추론도 아주 상대적이 된다. 이 문제로 다시 되돌아가자.
그림 2I에서 나타낸 곡선의 형태는 K一m/r이 증가되는 주어진 보급 방정식군에 의해서 정의된 성장 및 절정의 연속이 특정한 기술적 묘책이나 산물의 복합된 상황을 기술하는 데 이용되고 있음을 흥미롭게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역시 여기서 기술이나 생성물의 발견이나 도입은 일종의 사회, 기술, 경제적 평형을 파괴시킨다. 이와 같은 평형은 기술이나 생성물의 성장 곡선에 의해 도시한 상황의 경쟁이나 유사한 기능을 하게끔 된다.13) 따라서, 또다른 예를 들어 보자면, 증기선의 번져 가는 유행은 대부분의 노젓는 배를 사라지게 할 뿐만 아니라 증기선의 속도와 수송에 필요한 경비를 줄임으로써, 해상운송의 수요("K")를 증가시켜야 하는 원인을 낳고 결과적으로는 증기선의 수를 증가시켜야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13) E. W. Montroll, "Social Dynamics and the Quantifying of Social Force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Vol. 75, No. 10(1978), pp.4633-37.
여기서, 이 문제는 분명히, 가설적으로 순전히 경제적 논리에 의해 지배되는 지극히 단순한 상황을 나타내고 있다. 사실상, 이 경우에 혁신은, 비록 다른 방법이기는 하지만, 단순히 불변의 상황으로 남아 있는 존재 이전의 필요를 만족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간사회에서처럼 생태학에서도, 많은 혁신이 그와 같은 존재 이전의 활동 범위 없이도 성공적인 경우가 많다. 그와 같은 혁신은 그들에게 나타나는 환경을 변화시키며 번져나감에 따라, 자신의 중식이나 활동 범위에 필요한 조건을 창출해낸다. 사회적인 상황에서는, 특히 "수요”의 창출, 또는 이와 같은 수
요를 이루기 위해 요청되는 "필요"도 종종 그와 같은 수요를 만족하는 상품 또는 기술의 창안과 서로 상관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진화적 되먹임진화과정을 고려하기 위한 첫 단계는 대상계의 지지 능력을 주어진 것으로 간주하는 대신 이를 이용하는 기능적 방법을 만들어냄으로써 성취될 수 있다. 이와 같은 방법에 의해서 경제적 활동의 몇 가지 보충적인 차원, 특히 "증식 효과" 등을 표현할 수가 있다. 따라서 대상계의 자기촉진적인 성질이나 서로 다른 차원의 행동 사이의 공간적 세분화 등을 기술할 수 있다.지리학자들은 이미 경제적 활동 중심의 최적의 공간분포를 정의함으로 써 이들 과정을 상관시켜 주는 크리스톨러 (Christaller) 모델을 확립하였다. 중요한 중심점은 임의의 육각 네트워크의 교차점이며, 각 중심은 그 다음의 가장 작은 크기, 角의 중심 …… 등 마을의 동근 데두리로 둘러싸여져 있다. 분명히, 실제 경우에 있어서, 그와 같은 규칙적 계층 분포는 대단히 드물다 : 대단히 많은 역사, 정치, 그리고 지리학적 요인이 그와 같은 공간적 대칭을 파괴해 버린다. 비록 모든 중요한 비대칭적 발전의 근원이 제외되거나 균일한 경제적 • 지리적 공간으로 출발한다 할지라도, 크리스톨러에 의해서 정의된 것과 같은 분포의 창세기적 모델링은 일종의 靜的인 최적화가 가능하면서 아주 판아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과정을 확립하여 준다.문제의 모델14)은 크리스톨러와 갇은 계산에서 암시되듯이 최소한의 변수만으로 시작된다. 보급 방정식을 연장한 일련의 방정식이 세워지고, 경제적 활동의 지역적 정황의 함수로서 이동하려는 경향을 띠고 있는 집단14) P. M. Allen and M. Sangler, "Dynamic Model of Urban Growth," Journal for Social and Biological Structures, Vol. 1 (1978) , pp. 265-80, 그리고 "Urban Evolution, Self-Organization and Decision-Making," Environmental and Planning A, Vol. 13(1981), pp . 167-83.
의 근본적 가설로부터 출발하여, 국부적 “지지 능력"을 정의하게 되며, 이들은 여기서 어떤 “고용" 능력으로 단순화되어 버린다. 그러나 국부적 인구는 국부적으로 생산된 상품의 유력한 소비자가 된다. 사실상, 어떤 국부적인 이중의 가산적 되먹임을 갖게 된다 : 국부적 인구와 이미 기존하는 활동의 크기에 의해서 생성되는 경제적 내부 구조는 이와 갇은 활동의 증가를 촉진시킨다. 그러나 각 단위의 활동은 구조 및 크기가 비슷한 중심과의 경쟁에 의해서 결정된다. 생산된 상품의 판매나 사후 봉사는 소비자에게 공급하기 위한 수송 경비와 “기업”의 크기에 의존된다. 그와 같은 각 기업의 팽창은 이와 같은 팽창 자체가 수요를 창출하거나 경쟁력을 지니는 필요 여하에 의존한다. 따라서 각개의 인구, 제조 또는 사후 봉사활동의 성장은 강력한 되먹임과 비선형 등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6•5 6•6 6•9 6•4 6•6
그림 22. 도회지화”의 한 가지 가능한 역사. •는 단지 함수 I개문 갖고 있다;•는 함수 I과 2를 갖는다; A는 함수 1, 2 및 3을 갖는다. 는 가장 큰 중심이며, 함수 I, 2, 3 그리고 4를 갖는다. 시간 t=o(그림에 나타나지 않았다)
에서, 모든 점들은 67 단위의 “인구”를 갖고 있다. C에서 가장 큰 중심은 그 최대 (I52인구단위)를 경험하고 있다 : 이는 위성도시의 파생과 함께 도시의 마구잡이 발달 경로를 따르게 된다 ; 또한 제2의 중심구역에서 또다시 발생되기 시작한다.
61• 66• 67•
62• 65•
73•
비록 초기상태가 아주 균일하다 할지라도, 모델은 대칭 파괴를 생성할 수 있기에 충분한 기회 요인의 역학을 나타내 준다-모델에 의해서 제어되지 않는 요인, 예를 들면 다른 기업이 시작하는 시간과 장소와 같은 것이다. 활동이 매우 집중된 지역이 출현하며 반면에 다른 활동들은 경제적인 활동의 감소를 겪고 있거나 인구가 격감되는 따위를 의미한다. 서로 다른 전산모사에 의하면 성장과 후되, 포위와 지배, 대안의 발전에 대한 절호의 기회 등이 기존하는 지배 구조의 침체 다음에 연계된다.
크리스톨러의 대칭 분포는 역사를 무시하고 있는 반면에, 이와 같은 각본은, 적어도 최소한의 맥락에서, 순수한 경제적 성격의 "법칙”과 개시의 연속을 지배하는 "기회"사이의 상호작용을 고려에 넣고 있다.복잡한계의 모델화우리가 언급한 앞서의 모델은 단순성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대상계의 몇 가지 진화적 성질, 특히 복합적인 상호작용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발전을 “지배“하는 난관에 대한 성질을 성공스럽게 나타내 주고 있다. 개별적 행동 또는 각 국부적 중재는 전연 예기치 못했던 전체적 변화의 결과를 초래향수 있는 집합적 양상을 지니고 있다. 와딩턴이 강조하였듯이, 현재로는 복잡한 대상계가 주어전 변화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종종 이와 같은 반응은 우리의 직감과는 반대로 발생한다. "반직감적"이란 개념은 MIT공대에서 우리의 이와 같은 당황을 나타내기 위하여 도입되었다 : "꼭 그러하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제길할 것!” 와딩턴에 의해서 인용되었던 고전적 예를 보면 빈민가를 깨끗이 없애 버리려던 계획은 전보다 더욱 고약한 결과를 낳게 되었다. 새로운 건물은 그 지역에 많은 수의 사람을 끌어들였지만, 만약 그들을 위한 충분한 직장이 없다면, 가난한 채로 남아 있고, 주거지는 보다 더 과밀되어 북적댈 것이다.15) 어떤 선형적인 사고의 맥락에서 생각하는 데 익15) C . H . Waddington, Tools for Thought (St. Albans, Eng : Paladin, 1976), p.228.
숙해 있지만, 보다 새로운 “사고의 수단"이 필요하게 되었다 : 모델의 가장 유익한 사항의 하나는 이와 같은 수단을 발견하도록 도와 주는 일이며 그들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미 강조한 바, 보급 방정식은 결정적 차원이 동물이든, 활동이나 습관이든간에 집단 크기의 성장인 경우에 가장 적절히 들어맞는다. 마리 예상했던 것은 주어전 집단의 각 구성원은 그밖의 다른 집단의 구성과 동등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는 사항이다. 그러나 이와 갇은 일반적 동등성은 그 자체가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임의의 집단이 굴복하게 된 제한 사항이나 입력 및 대상 집단이 직면하는 전략에 의존된다.
예를 들어, 생태학자들이 가정하였던 전략의 K와 r 사이의 차이를 생각해 보자. 바록 이와 같은 차이는 단지 상대적이지만, 특히나 먹이一약탈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갖는 두 집단 사이의 체계적 상관관계의 결과로부터 발생하는 분계를 특정지을 수 있을 때 더욱 명백해진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먹이 집단에 대한 전형적 진화는 재생융 r의 증가일 것이다. 약탈자는 먹이를 잡을 수 있는 보다 효율적인 방법을 향하여 진화될 것이다 ―이를테면, K의 개정을 향한 발전을 말한다. 그러나 논리적 틀에 의해 정의된 개정 (amelioration)은 보급 방정식에 의해 정의된 상황을 초월하여 나아가는 결과를 갖기 쉽다.굴드가 언급한 것처럼,16) K의 전략에 따르면 각 개체가 경험으로부터 점점더 많은 것을 배우기 시작하며 기억을 축적할 수 있게 된다 - 즉, 개체는 성숙과 견습기간이 갈수록 더욱 복잡하게 되어 간다. 아울러 이와 같은 상황은 개체들이 보다 "가치있는" 커다란 생물학적 투자를 나타내는 —그리고 보다 긴 공격받기 쉬운 기간에 의해 특징지워진다는 두 가지를 뜻한다.16) S. J. Gould, Ontogeny and Phylogeny(Belknap Press, Harvard University Press, 1977).
“사회적" 그리고 "가족적" 유대의 발전은 따라서 K의 전략의 논리적 상대수로 보인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집단 속의 단순한 개체 구성원 이외의 다른 요인이 점점더 적절하게 되고 보급 방정식은 잘못 인도되는 개체 구성원에 의한 성공을 추량해 줄 수 있게 된다. 여기서 모델화를 그다
지도 위태롭게 만드는 특별한 경우를 생각해 보자. 복잡한 대상계에서, 존재의 정의와 상호관계 모두는 진화에 의해 변모될 수 있다. 대상계의 상태뿐만 아니라 모델화된 것처럼 대상계의 바로 그 정의는 일반적으로 불안정하거나, 또는 적어도 준안정 상태에 있게 된다.
이제 방법론이 연구되는 대상의 성격에 대한 의문과 구분할 수 없는 문제에 부딪친다. 하루살아의 무리가 그들의 경험으로부터 분명히 무엇인가 배우거나 또는 경험을 넓혀감이 없이 수백만 마리씩 생겨나고 죽어가는 사실과 각 개인이 자신의 경험과 삶을 영위하고 있는 집단사회의 전통과 얽혀 있는 영장류의 집단에 대해서 똑같은 질문을 할 수 없게 되었다.또한 인류학 그 자체 내에서 기본적인 선택을 집합적 현상의 다양한 접근 방법 중에서 취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어 구조인류학은 논리이고 유한한 수학의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사회의 양상, 기본적 혈족의 구조나 결정체의 성장에 종종 비유되는 신화 분석의 변화 등의 양상에 특권을 부여해 주고 있다.불연속적 요소가 헤아려지고 조합된다. 이와 같은 사실은 진화를 거대하고 부분적으로는 혼돈적인 집단이 포함되는 과정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접근 방법과 대조를 이룬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전망과 두 가지 형태의 모델을 취급하고 있다 : 레비-스트로스는 그들을 각각 “기계적"인 것과 "통계적"인 것으로 정의하였다. 기계적 모델에서 "성분 요소는 현상과 같은 크기의 척도를 가지며" 각개의 거동은 구조적 조직을 규정하는 처방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인류학자는 이와 같은 거동의 논리를 명확히 하고 있다. 반면에 사회학자는 거대한 집단의 통계적 모델을 다루고 평균과 분계점을 취급한다.17)17) C. Leffivi-Strauss, "Methodes et enseignement, Anlhropologie structurale (Paris : Pion, 1971 ) , pp . 311-17.
기능적 모델에 의해 전적으로 규정된 사회는 아마도 자연적 계층이나 질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데아에 상응한다. 각각의 관료는 그에게 부여된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임무는 각 단위에 대해 전체로서 사회적 조직의 서로 다른 양상으로 옮아갈 것이다. 임금은 건축가에게 명령을 부여하고, 건축가는 하청인에게, 하청인은 잡역부에게 명령을 옮길 것이다. 모
든 곳에서 주도자는 배후에서 조종한다. 반대로, 흰개미나 다른 사회적 곤충은 "통계적” 모델에 근접하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보아 왔듯이, 흰 개미가 둥지를 짓는 배후에는 어떤 주도자도 없어 보이며, 각각의 개체간에 상호작용이 어떤 정황에서 특정한 집합적 거동을 낳게 할 때에도 상호작용이 전체적 임무를 나타내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존재는 순전히 국부적일 뿐이다. 그와 같은 규정은 어떤 평균을 암시해 주고 안정성과 두갈래치기에 대한 의문을 재차 일게 한다.
어떤 사전이 감쇠되어 버리고, 어떤 것이 전체 대상계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는가? 선택의 상황은 무엇이며 안정성의 진영은 무엇인가? 대상계의 크기나 밀도가 두갈래치기 매개변수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진대, 얼마나 많은 순수한 성장이 질적인 새로운 선택에 이를 것인가? 이와 같은 부류의 의문에는 정말로 야심적인 프로그램이 요청된다. r과 K의 전략의 경우처럼, 사회적인 거동과 역사에 대한 어떤 좋은 모델의 선택으로 연계되도록 이끈다. 임의의 집단의 진화가 어떻게 진화를 더욱 “기계적"으로 만들게 할 수 있는가? 이와 같은 질문은 생물학에서 이미 접했던 의문과 평행을 이루는 듯하다. 예를 들어, 신진대사 반응의 속도나 조절을 지배하는 유전적 정보 선택이 어떻게 발전의 목적에 부합하거나 또는 "메시지”의 통역으로 보이는 특정한 경로를 선호할 수 있는가?"요동을 통한 질서”의 개념에 고무된 모델은 이와 같은 질문에 유익하고, 임의의 상황에서는 거동의 개인적인 것과 집단적 양상 사이에 상호작용하는 복잡성에 대하여 보다 엄밀한 체계화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게 되리라 믿는다. 한편으로는, 물리학자의 관접에서 볼 때, 이는 모든 개인적 진취성이 무의미해지는 운명에 있는 대상계의 상태와 다른 한편으로는, 개체적 아이디어나, 전체 상태를 뒤엎을 수 있는 새로운 거동이 의미를 갖는 두갈래치기 영역 사이의 구분이 수반된다. 그들 영역에서 조화, 증폭은 분명히 개체적인 아이디어, 또는 거동과 함께 발생되지 않지만, 그러나 "위험스런” 것一이를테면, 그들의 장점, 앞서 전영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비선형적 관계를 이용할 수 있는 것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똑같은 비선형성은 기본적 과정의 혼돈을 동하여 질서를 창출할 수 있울 것이며, 다른 상황에서는, 이와 똑갇은 질서의 파괴에 책임이 있을 수있고, 종국에는 또다른 두갈래치기를 초월하는 새로운 짜임새에 이를 수 있으리라는 결론을 지을 수 있다.
"요동을 통한 질서” 모델은 작은 원인이 엄청난 영향을 가져올 수 있는 불안정한 세계를 도입하고 있지만, 그러나 이와 같은 세계가 임의적인 것은 아니다. 반대로, 작은 사건의 증폭작용의 추리는 이성적인 의문에 대한 적법한 사항이랄 수 있다. 요동은 대상계 활동의 변화를 유발하지는 않는다. 명백히, 막스웰에 의해 창안된 이미지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성냥은 산불에 책임이 있으나 성냥에 대한 참고 자료는 붕을 이해하는 데 충분하지 못하다. 더욱이, 요동이 제어를 피해가는 것으로 불안정성의 증폭의 원인을 찾아낼 수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개방된 세계여기서 제기된 의문의 복잡성에 견주어볼 때, 생물학적이고 사회적인 진화에 대한 전동적인 해석은 불행하게도 물리학으로부터 빌어온 개념이나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무엇인가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다.18) 이와 같은 개념이나 방법이 유효하였던 물리학의 영역은 대단히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더욱 불행하였고, 따라서 그들과 사회, 경제적 현상 사이의 유사성은 완전히 밝혀낼 수 없기 때문이다.I8) 예를 들면. C. E. Russet, The Concept of Equilibrium in American Social Thought (New Haven, Conn : Yale University Press, 1966)을 참조할 수 있음.
이와 같은 관점의 가장 중요한 예는 최적화의 파라다임이다.
분명한 것은 선택적 압력의 작용은 물론 인류사회의 경영은 어떤 양상의 거동이나 연계의 형태를 최적화하려는 경향을 보이지만 어떻게 임의의 집단이나 개체가 살아남는가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로 최적화를 생각하는 것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다.최적화 모델은 급전적인 변환의 가능성 _ 이를테면, 문제의 개념과 추구하는 해답의 종류를 변화시키는 변화一과 관성적 제한사항으로 결국에는 고려하는 대상계에 재앙적인 방법으로 기능하는 가능성 모두를 무시한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또는 최대화나 최소화 기준의 관점에서 다른 진보의 정의와 같은 이념들처럼 이는 전능하고 합리적인 계산기로서, 그리고 전체적 전보에 의해 특징지워지는 짜임새 있는 역사로서 확실한 자연의 표현을 제공한다.
관성적인 것과 예기하지 못했던 사건 모두를 회복하기 위해서-즉, 역사의 개방적 성격의 회복-우리는 반드시 이의 원천적 불확실성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여기서 어떤 상징으로 포유류의 발전과, 쥐와 같은 창조물의 작은 집단의 생존 경로를 뒤흔드는 위대한 백악기의 멸종에 대한 분명한 재앙의 특징을 사용할 수 있다.19)19) S . J . Gould, The Belt of an Asteroid, Natural History, Vol. 89, No. 1 (1980), pp.26-33
이와 같은 일에는 일련의 “조감도’', 즉 보다 일반적인 표현이며 아주 지대한 관심윤 지니는 많은 주제가 생략되기 마련이다 : 불꽃, 프라스마, 레이저는 중요한 이론 및 실제적 관심을 갖는 비평형 불안정성을 나타낸다.
우리가 주시하는 모든 곳에서 다양성과 혁신으로 충만되어 있는 자연을 발견하게 된다.언급한 관념적 진화 그 자체는 보다 폭넓은 역사, 시간의 진보적 재발견의 역사 속에 끼워져 버렸다.우리는 이미 시간의 양상들이 진보적으로 물리학 속에 짜넣어져 버렀음을 보아 왔으며, 반면에 고전과학 속에 도사리고 있던 고유의 전지전능한 과학의 야망은 진보적으로 거절하게 되었다. 이 章에서 우리의 관심을 생물학이나 생태학을 동한 물리학으로부터 인류사회로 옮겨 갔으나, 실제의 경우는 반대순서로 진행되어 갔다. 사실상, 역사는 주로 인류사회에 관심을 집중시킨 채 시작되었고, 그후의 관심은 생명과 지리학의 일시적 차원으로 옮아갔다. 물리학에 시간의 짜넣음은 진보적 역사의 재삽입의 최종단계가 자연스럽게 사회과학으로 옮아가는 것으로서 보여진다.신기하게도 과정의 모든 단계, 이와 같은 역사화”의 결정적 양태는 일시적 바균일성의 발견이었다.르네상스 이래 서구 사회는 발전의 서로 다른 단계에 상응되는 것으로 보여지는 집단과 접촉하게 되었다 : 19세기의 생물학과 지리학은 화석을 발견하고 분류하는 것, 과거의 기억과 공존하는 풍경을 인식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마침내, 20세기 물리학은 일종의 또다른 화석, 흑체의 복사를 발견하였고 그로부터 우주의 시작에 관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은 서로 다르게 맞물린 시간과 많은 과거의 화석과 공존하는 세계 속에서 인류가 삶을 영위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이제 반드시 다른 질문으로 넘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생명이란 “낙하하는 물체처럼 자연스런" 것으로 보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고 있음을 언급한 바있다.자기-구성의 자연적 과정과 낙하하는 물체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동력학, 즉 힘과 궤적의 과학, 그리고 복잡성과 됨의 과학, 즉, 살아 있는 과정의 과학과 자연적인 과정의 한 부분인 두 가지 과학 사이의 가능한 연계는 무엇인가 ? 19세기 말엽에, 비가역성은 마찰, 점도, 그리고 가열현상과 관계를 갖고 있었다. 비가역성은 에너지의 손실과 낭비의 근원에 깔려 있다. 그 당시, 비가역성은 단지 우리의 어리석음, 복잡하지 않은 氣 의 실험결과로서 발생하는 가공의 것으로 명명할 수 있었으며 자연은 근본적으로 가역적이라고 믿을 수 있었다. 이제 이와 같은 일은 더이상 가능하지 않다 : 오늘날에 이르러 물리학조차도 비가역 과정이란 건설적이며 필수불가결의 기능을 담당한다고 말하고 있다.따라서 우리는 더이상 회피할 수 없는 의문에 이르게 되었다. 이와 같은 새로운 복잡한 계의 과학과 단순하고 초보적 거동의 과학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자연의 이같은 반대되는 견해 사이의 상관관계는 무엇인가? 두 과학 사이에는 단일의 세계에 대한 두 가지의 진실이 존재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그 점이 어떻게 가능한가?어느 측면에서, 현대과학의 시작으로 되돌아가 버렸다. 오늘날은, 뉴톤의 시대처럼, 두 개의 과학이 머리를 맞대게 되었다 - 중력의 과학은 법칙에 종속되는 불변의 자연을 기술하고 있으며, 그리고 불의 과학, 즉 화학의 과학이다. 이제 인류는 과학에 의해 창출된 최초의 동합, 완전한 뉴톤의 동합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 동력학에 의해 기술되는상호작용하는 힘은 물질의 복잡하고 동시에 비가역적인 거동을 설명할 수 없다. Ignis mutat res . 이 옛 말에 따르면 화학적 구조는 불의 창조이며, 비가역과정의 결과이다. 어떻게 있음과 됨 사이의 듬 위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가-두 견해는 서로 상충되며. 두 개념 모두는 인류가 살고 있는 이 낯선 세계의 어떤 일목요연한 묘사에 이르는 데 필요한 개념이다.
제3부
있음에서 됨으로제7장
재발견되는 시간관심의 변화화이트헤드는 “理念의 충돌은 재앙이 아니며, 기회이다”1)라고 쓰고 있다. 만약 이와 같은 진술이 사실이라면 과학의 역사에서 한두 가지 기회는 미래가 약속되는 것이었다 ; 두 세계-동력학의 세계와 열역학의 세계 - 는 머리를 맞대게 되었다.1) A. N . Whitehead, Science and the Modern World, p , 186.
뉴톤 과학은 이론적 연구의 한 점에 모이는 선분은 물론이려니와 수세기 동안에 걸쳤던 실험의 최고의 합성이자 산물이었다. 열역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과학의 성장은 서로 다른 과학 분야의 균등한 전개와는 아주 다르며, 각 분야는 마치 배의 수많은 防水 선칸의 구획처럼 격리되어 버렸다. 정반대로, 서로 다른 문제나 견해의 수령은 이 칸막이를 부수어 열고 과학적인 문명을 자극하게 된다. 이들 전환점은 과학적 문맥을 초월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전체로서 지성적인 과학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거꾸로, 전체적 문제는 종종 과학적 영감의 원천이 되어 왔다.
이념의 충돌, 있음과 됨 사이의 맞서기는 어떤 새로운 전환점에 도달하였음과 새로운 통합이 필요하게 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와 같은 통합은 오늘날 그 고유의 형체를 이룩해 가고 있으며, 모든 면에서 뉴톤 과학이나 열역학에서처럼 예기치 못하였던 것이었다. 사람들은 다시 놀라운 연구의 수령을 발견하고 있으며 이 모두는 과학적 이론의 뉴톤 개념에 바탕을 이루는 원초적 난제들을 밝혀내는 데 공헌을 하는 것이다.
뉴톤 과학의 야심은 아마도 보편적이고 결정론적이며, 관찰자에 대한 어떤 기준도 배제되어 있는 객관적인, 묘사의 차원이 시간의 포로 상태로부터 도망쳐 버리듯이 완전한, 자연의 시각을 제시하려는 것이었다.이제 문제의 핵십에 이르렀다. 시간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고전과학에서의 정적인 시간과 일상 생활에서 경험하는 존재론적 시간 사이의, 칸트 이후의 전동적인 상반됨을 어떻게 할 것인가. 카르납에 의하면 :언젠가 아인슈타인은 그를 심각하게 고뇌하게 만드는 지금(Now)의 문제에 관해서 말했다. 그가 설명하기로는 지금의 경험은 과거나 미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무엇인가 특별한 것을 뜻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중요한 차이는 물리학에서 존재하지 않으며 그런 일은 발생할 수가 없다. 이같은 경험도 과학의 힘으로는 파악될 수 없는 것이었고 고통스럽기 그지 없으나 회피할 수 없는 체념이었다. 나는 객관적으로 발생하는 모든 것은 과학으로 서술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에서 사건의 일시적 연속은 물리학에서 정의된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시간에 대한 사람의 경험에 대한 특질, 인간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서로 다른 습성은 심리학에서 (원칙적으로는) 정의되고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과학적 정의는 인간의 필요를 만족시켜 줄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아마도 지금에 관해 무엇인가 본질적인 것은 과학의 영토 밖에 있는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2)2) The Philosophy of Rudolf Carnap, ed . P . A . Schilpp (Cambridge :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63).
어느 면에서는 반대의 길을 추구하였던 베르그송 역시, 이중적인 결론에 도달했었음을 흥미있게 주목해야 한다(제3장을 볼 것) . 아인슈타인과 같이, 베르그송은 주관적인 시간으로부터 출발하였으며 그후 우주 속의
시간, 즉 물리학에 의해 객관화된 시간으로 옮아갔다. 그러나, 이 객관화는 시간을 변조하는 결과에 이르렀다. 내재적 존재의 시간은 과정중에 손실되는 정성적 특질을 갖고 있다. 이런 이유로 베르그송은 물리학적 시간과 존재적 시간을 의미하는 개념으로서, 시간적 지속의 구분을 도입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프레이저가 말했듯이, 느끼는 시간과 이해하는 시간의 차이의 단절은 과학적인 산업 문명사회의 품질보증서와 같으며, 일종의 집단적 정신 분열증이다.3) 앞서 강조하였듯이, 이제 사람들은 영원성을 강조하기 위해 고전과학을 사용하는 곳에서 변화와 전화를 발견할 수 있다 ; 더이상 하늘에서 칸트의 가슴에 지녔던 도덕적 규칙처럼이나 똑같은 숭앙으로 가득차 있던 궤적을 볼 수 없다.3) J. Fraser, "The Principle of Temporal Levels : A Framework for the Dialogue?" Scientific Conceptions of Time in Humanistic and Social Perspectives(Bellagio, July 1981) 학술회의에서 필자들과의 대화 내용을 인용하고 있음.
이제 우리는 뭔가 낯선 대상들에 대해 언급할 수 있게 되어 가고 있다 : 폭발하고 떨어져나가는 퀘이서 (quasars), 펄서 (pulsar), 은하계들, 올가미 챌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비가역적으로 집어삼켜 "블랙홀” 속으로 붕괴시키고 합체시키는 별들을 말한다. 시간은 생물학, 지리학 그리고 사회과학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배제되어 왔던 두 가지 차원, 미시적인 준위와 우주차원 속으로 침식해 들어갔다. 생명뿐만 아니라 전체로서 우주 역시 역사를 지니고 있다 ; 이는 매우 깊은 함축적 의마를 갖고 있다.
보편적 상대성의 관점으로부터 우주론적 모델을 다루고 있는 최초의 이론적 논문은 1917년 아인슈타인에 의해 발간되었다. 이 상대성의 원리는 정적이며, 우주의 무시간적 견해, 스피노자의 시각을 물리학에 옮겨 놓았다. 그러나 그후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명백하게도 아인슈타인의 우주론적 방정식에 대한 다른 시간 의존적 해답이 가능케 되었다. 사람들은 이 발견을 러시아의 천문학자 프리드만과 멜기에의 천문학자 르메트르의 공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동시대에 허블과 그의 동료는 은하계의 운동을 연구하였고, 멀리 떨어져 있는 은하계의 속도는 지구로부터의 거리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프리드만과 르메트르에 의해 발견됐던 팽창하는 우주와의 관계는 분명했다. 그러나 수년동안 그와 갇은 우주전화의 "역사적인” 개가를 물리학자들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아인슈타인 자신은 이같은 상황을 걱정하고 있었다. 르메트르가 종종 언급하였던 것으로 아인슈타인과 함께 우주의 보다 정밀한 초기조전을 확립하고 혹시나 宇宙線(cosmic ray)에 대한 어떤 설명을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하여 토론하려 애를 썼을 때, 아인슈타인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늘날에 이르러, 유명한 혹체 복사,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그로부터 유래하였던 초고밀도의 큰 별똥별의 폭발에서 반짝였던 광선, 그들의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고 있다. 이야기 전체는 역사의 또다른 아이러니로 보인다. 어느 면에서 아인슈타인은, 그의 의지와는 상반되게, 다윈의 물리학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다윈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를 인간은 생물학적 전화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하였다 ; 아인슈타인은 가르쳐 주기를 인류는 어떤 진화하는 우주 속에 끼워져 있다고 하였다. 아인슈타인의 생각은 그로 하여금 아메리카가 콜롬부스에게 전연 예기치 못했던 것처럼 어떤 새로운 대륙으로 이르게 하였다. 아이슈타인은 당시의 다른 많은 물리학자들처럼, 자연에는 어떤 근본적이며, 단순한 차원이 존재하리라는 깊은 확신에 의해 인도되었다. 오늘날까지도 이와 같은 차원은 실험으로 구체화될 수 있는 접근 가능성조차 더욱 희박한 채로 남아 있다. 우주 거동의 "단순하고” 유일한 진정한 대상은 거시적 차원의 인간 자신의 세계 속에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고전과학은 대상을 이와 같은 중간 범위에서 선택하였다. 뉴톤에 의해 선택된 최초의 대상은 실로 간단한 것들이다 —낙하하는 물체, 단전자, 그리고 천체운동. 이제 단순성은 근본적인 것의 이정표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다 : 나머지 우주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이것으로 충분한가? 안정성과 단순성은 이례적인 것들로 알고 있다. 실제로, 총력화하는 전체주의가 단지 단순하거나 안정한 대상에 적용하는 관념화의 주장을 무시해 버려야 하는가? 왜 동력학과 열역학 사이의 양립할 수 없는 상반의 문제를 걱정해야 하는가?화이트헤드의 말을, 역사에 의해서 쉬임없이 입증되어 왔던 과학의 말을 잊어서는 안된다 : 이념의 충돌은 기회이지 재앙이 될 수 없다. 도구화하기 어려운 이상화에 기조를 둔 바탕에 대한 실질적 합리성에 대한 특정 문제가 그저 단순하게 무시되고 있다는 사실이 종종 암시되어 왔었다. 금세기초에, 몇몇 물리학자들은 실제 경험에 의해서는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결정론을 포기해야 한다고 제안하였었다.4) 사실상, 이미 강조하였듯이, 커다란 대상계 속에서 분자의 정밀한 위치와 속도는 결코 알 수가 없다 : 따라서 대상계의 미래 진화에 대한 정확한 예견이란 불가능하다. 좀더 최근에, 브리오인은 정확한 예측은 초기조건의 정확한 지식을 필요로 하며, 이 지식은 반드시 대가가 지붕되어야 하는 상식적인 진리에 호소함으로써 결정론이 붕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 정확한 예측을 위해 결정론적 연구가 행하여지기 위해서는 무한대의 대가가 지불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4) 이 점에 대해서는, S. Brush, Statistical Physics and Irreversible Processes 중, 특히 pp. 616-25를 참조할 수 있음.
이와 같은 반대 의견은, 한편으로 합당하기는 하나, 동력학의 개념적 세계에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그들은 실재에 대해 어떤 새로운 서광을 비추지는 못했다. 더우기 데크놀로지의 개선은 고전 동력학에 의해 시사되어 왔던 이상화에 더욱더 가깝게 우리를 옮겨 놓았다.
대조적으로, "불가능성”의 입증은 어떤 근본적인 중요성을 갖고 있다. 그들은 지성적인 노력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있는 예기치 못한 실재의 원천적 구조의 발견을 암시하고 있다. 그와 같은 발견은, 종전까지만 해도, 원칙적으로는 충분히 실현 가능한 것으로 상상할 수 있었던 가능성을 배제할 것이다. "효율이 1보다 큰 엔진은 제작될 수 없다”, 두 열원의 접촉이 없이 유용한 일을 생산해낼 수 있는 열기관은 없다”란 의미는 심오한 개념적 혁신에 이르게 하였던 불가능성 정의의 한 예이다.열역학, 상대성, 양자역학은 모두가 고전 물리학의 야심에 대한 불가능성 또는 제약성의 발견에 그 뿌리를 십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한계에 이른 고전 뭉리학의 종말을 기록하고 있는 분야들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과학적인 혁신을 다른 시각에서 주시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는 곧 종말이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며, 새로운 기회의 전개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제9장에서 만날 수 있듯이 열역학 제2법칙은 어떤 불가능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비록 미시적 차원에 대해서도, 새롭게 발견되는 불가능성은 새로운 개념의 출현의 출발점이 된다.
보편성의 종말과학적 묘사는 이를 서술하고 있는 사람이 속하고 있는 세계에 가능한 자원에 대해 반드시 일치하고 있어야 하며 어떤 "외부로부터”의 물리적 세계를 생각하는 존재에도 맡길 수 없다. 이는 바로 상대성 이론의 근본적인 구비조건의 하나이다. 신호의 전파에 연관하여 예상되는 한계라 하더라도 임의의 관찰자에 의해 그 한계을 넘어설 수는 없다. 사실상 진공 상태에서 빛의 속도, C(C=300,oookm/sec)는 모든 신호의 파급에 대한 한계 속도이다. 따라서 이 한계 속도는 어떤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이는 임의의 관찰자가 위치하고 있는 점에 영향을 중 수 있는 공간 내의 영역을 제한해 준다.뉴톤 물리학에는 어떤 보편 상수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점은 바로 뉴톤 물리학이 보편성을 지닌다는 주장의 근거이며, 대상의 척도가 무엇이든간에 갇은 방법으로 응용될 수 있는 이유이다 : 원자, 혜성, 그리고 별의 운동은 한 개의 단순한 법칙에 의해서 지배된다. 보편 상수의 발견은 실로 급진적인 변화를 파급시켰다. 비교의 표준을 위한 빛의 속도 상수의 사용으로, 물리학은 늦은 속도와 빛의 속도에 근접되는 빠른 속도간에 구분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유사하게, 플랑크 상수 h는 대상 질량에 따른 자연적인 척도를 확립해 주었다. 원자는 더이상 작은 천체계로 간주할 수 없게 되었다. 전자는 혜성과 다른 척도에 속하며 인간 자신을 포함하여 다른 모든 느리게 움직이는 거시적 대상과 척도를 달리한다.보편 상수들은 다양한 거동이 정성적으로 다르게 되는 물리적 척도를 도입함으로써 우주의 균일성을 파괴시켜줄 뿐만 아니라, 아울러 어떤 새로운 객관성의 개념에 이르게 한다. 어떤 관측자도 진공에서 빛의 속도보다 빠른 속도로 신호를 전파할 수 없다. 이로써 아인슈타인의 놀라운 결론이 도출된다 : 인류는 더이상 서로 떨어져 있는 두 사건의 절대적 동시성을 기술할 수 없다. 동시성은 주어전 기준적인 틀의 관점에서만 정의될 수 있다. 이 책의 범위는 상대성 이론의 포괄적 내용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여기서는 그저 뉴톤의 법칙은 관측자가 어떤 "물리적 존재"였다고 가정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하자. 객관적 묘사는 이를 수행하는 사람에 대하여 어떤 기준도 배제된 상태에서 정밀하게 정의된다. 임의의 무한 속도에서 의사 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한 비물리적 지능적 존재에 대해서, 상대성의 제법칙은 아마도 부적절할 것이다. 상대성은 단지 물리적으로 편재해 있는 관찰자, 주어진 시간에 단번에 모든 곳에 있지 않으며 오로지 한 공간에만 있을 수 있는 존재에 적용할 수 있는 구속 조건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사실은 물리학에 "인간적" 성질을 부여한다. 그러나 이같은 사실이 어떤 "주관적" 물리학, 사람들의 선호와 확신의 결과임을 뜻하지는 않는다 : 정의하고 있는 물리적 세계의 한 부분으로 인지되는 본래의 구속 조건에 종속적인 상태로 남아 있음을 의미한다. 즉, 관찰된 세계 속에 위치해 있는 관찰자의 존재를 미리 가정하는 물리학이다. 자연과 인간의 대화는 자연 속에서 이루어질 때에만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양자역학의 출현상대성은 고전개념의 객관성을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또다른 고전물리의 본질적 특성, 이름하여, 자연의 완전한 묘사를 달성하려는 야망은 불변의 상태로 남아 있다. 상대성 이론 이후, 물리학자들은 외부로부터 완전하게 우주 전체를 관찰할 수 있는 비범에 더이상 호소항 수 없게 되었으나, 그들은 아직도, 마치 아인슈타인이 주장한 것과 갇이, 속이지도 않고 동시에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 최고 지성의 수학자적 존재를 상상하고 있다. 이 수학자는 우주의 모든 공식을 소유하고 있을 것이며, 아마도 자연의 완전한 이해를 갖고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상대성은 고전물리학의 연속으로 머물러 있다.
반면, 양자역학은 진실로 과거와 단절된 최초의 물리적 이론이다. 양자역학은 자연 속에 우리와 함께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거시적 수의 원자로 이루어진 무거운 존재로 우리에게 징표를 제시해 주고 있다. 보편적 상수로서 빛의 속도에 대한 결론을 보다 더욱 분명하게 구체화하기 위해,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임의의 양자 위에 타고 있는 상황을 마음에 그렸다. 그러나 양자역학에 의하면 사람들은 너무나 무거워 양자나 전자를 탈 수 없음을 발견하였다. 감히 그와 갇이 공기와 갇은 존재가 되어 그들과 함께 있는 자신을 감지하고, 사색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다. 만약 사색할 수 있었고, 무엇인가 느낄 수 있었다면 대체 무엇을 경험할 수 있었는가?양자역학의 역사는, 다른 모든 개념적 혁신처럼, 복잡하고 예기치 못했던 사건으로 가득차 있다 ; 임의의 논리의 역사와 그것이 함축하는 바는 실험의 긴급한 필요성을 마음에 새기기 훨씬 이전의 어려운 정치적 문화적 환경 속에서 발견되었다신 이와 갇은 역사를 여기서 깊게 관여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단지 우리의 주된 과제인 있음에서 됨으로의 교량을 놓기 위하여 이 양자역학의 역할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5) Feuer는 Bohr의 유년기에 대한 문명적 맥락이 원자의 비역학적 모델을 찾으려는 그의 결정에 어떻게 도움을 주고 있는가를 확신을 갖고 피력하고 있다 ; Einstein and the Generation of Science (New York : Basic Books, 1944)를 참조할 수 있으며, 또한 W. Heisenberg, Physics and Beyond(New York : Harper & Row, 1971)와 D. Serwer, "Unmechanischer Zwang" : Paul, "Heisenberg and the Rejection of the Mechanical Atom 1923 -1925,"Historical Studies in the Physical science, Vol. 8 ( 1977) , pp . 189 -256에 잘 기술되어 있음.
양자역학의 탄생은 그 자체가 위에서 말한 교량의 필요성의 한 부분에 입각하고 있다. 플랑크는 물체와 복사 사이의 상호 관계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의 연구의 근저를 이루고 있는 것은 소위 볼츠만이 물질-물질간의 상호 작용을 해석하였던 것처럼 물질-빛 사이의 상호관계를 규명하려는 것이었으며, 이름하여, 평형에 이르는 비가역 과정에 대한 속도 모
델을 발견하려는 것이었다.6) 그 자신도 놀랐던 것처럼, 열적 평형에서 효력을 갖는 실험적 결과에 도달하기 위하여, 그는 이산된 단계에 의해 발생하는 물체와 복사작용 사이의 에너지 교환을 다루기 위해 새로운 보편 상수를 수반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가정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이 보편상수 "h"는 각 단계에서 "크기"를 측정해 준다.
6) Black-Body Theory and the Qztantum Discontinuity, 1894-1912 (Oxford : Clarendon Press and New York : Oxford University Press, 1978) 저술에서. Thomas Kuhn은 Planck가 그 자신의 연구에서 비가역성에 대한 Boltzmann의 통계적 처리를 얼마나 밀접하게 추종하였는가를 아름답게 묘사해 주고 있다.
다른 모든 경우처럼, 이 경우에 비가역성의 도전은 우리로 하여금 물리학의 결정적인 전보에 이르게 하였다.
이와 같은 발견은 아인슈타인이 처음으로 플랑크 상수에 관한 일반적 해설을 발표하기 이전까지는 고립된 채 남아 있었다. 그는 이 상수가 빛의 성질에 대한 지극히 중요한 함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이해하였다. 그는 어떤 혁명적인 개념을 도입하였다 : 빛의 파동-입자 이중성이다.I9세기가 시작된 이후, 빛은 회절이나 간섭과 갇은 현상에서 입증된 파동적 성질에 관련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I9세기말에 이르러, 빛의 광전 효과라고 하는 중요한 새로운 현상이 발견되었다-즉, 빛의 흡수 결과로 발생하는 전자들의 방출이다. 이와 같은 새로운 실험 결과 빛은 고전적인 파동 성질의 관점에서 설명이 매우 어려운 것이었다. 아인슈타인은 빛은 파동과 입자 성질 모두를 지니고 있으며 이들 두 가지 양상은 플랑크 상수로 관계지을 수 있다는 가정을 도입함으로써 그 수수께끼를 풀 수 있었다. 보다 엄밀히, 빛은 파동의 주파수 v와 파장 λ에 의해 특징지을 수 있다 ; h는 주파수와 파장으로부터 에너지 E와 운동량 P와 같은 역학적인 양들로 변환을 가능하게 해준다. 한편에서 V와 λ의 관계와 다른 한편에서 E와 P의 관계는 대단히 간단하다 : E= hv, P= h/λ 그리고 둘 모두는 h를 포함한다. 20년이 지난 후 드브로이는 파동-입자 이중성을 빛으로부터 물체로 연장하였다 ; 따라서 현대적 의미의 양자역학 체계의 출발점이 되었다.1913년 보어는 새로운 양자물리학을 원자의 구조에 (후에 분자 구조까지) 연장하였다. 그는 파동-입자 이중성의 결과로 원자 구조에는 불연속적 연속의 전자 궤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임의의 원자가 활성화되었을 때, 전자는 해당 궤도로부터 다른 궤도로 뛰어오른다. 바로 그 순간 원자는 양자를 방출하거나 흡수하며 이의 주파수는 두 궤도의 각각의 전자 운동을 특정짓는 에너지 준위차에 상응한다. 이와 갇은 준위차는 에너지를 주파수에 관계짓는 아인슈타인 이론의 관접에서 계산된다.
따라서 우리는 1925-1927년의 결정적인 기원에 도달하게 되었으며 물리학의 "황금기"를 맞게 되었다.7) 이 짧은 기간 동안 하이젠베르그, 본, 조르단, 슈뢰딩거 그리고 디락은 양자물리를 새로운 이론 체계로 이끌어 놓았다. 이 이론은 동력학의 새롭게 일반화된 틀에 아인슈타인과 드브로이의 파동-임자 이중성을 합성 도입해 놓은 것이었다 : 즉, 이것이 양자역학의 개념이다. 이 책에서 우리의 목적은, 양자역학이 지닌 개념적 기발함의 핵심적인 사항을 소개하는 일이다.7) J . Mehra and H . Rechenberg, The Historical Development of Quantum Theory, vol. 1-4 (New York : Springer Verlag, 1982).
무엇보다 먼저, 고전물리에서 알지 못했던 가장 중요한 새로운 이론 체계를 이론적 언어와 조합시키기 위하여 "양자화(quantitization)" 개념의 도입을 불가피하게 허용해야 했다. 다시 말해 근본적인 사항은 다양한 전자 궤도에 상응하는 불연속적 에너지 준위에서만 원자가 발견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 접은 에너지 (또는 해밀토니안)는 더이상 고전역학의 경우처럼 위치와 운동량의 단순한 함수 관계가 아니다. 위치와 근소하게 서로 다른 운동량 값을 제공해 줌으로써, 에너지를 연속적으로 변화하게 조작할 수 있다. 그러나, 관찰된 바에 따르면, 에너지는 단지 불연속적인 준위로 존재한다.
따라서 해밀토니안 에너지는 위치와 운동량의 함수라는 통상적 아이디어를 무언가 새로운 것으로 교체할 수밖에 없었다 ; 양자역학의 기본적인 아이디어에서 좌표 q 또는 운동량 p와 같은 고전역학의 양둘은 물론이려니와 해밀토니안 에너지 양의 개념이 이제는 연산자(operators)가 되는 점이다. 이 사실은 과학에서 도입한 개념 중 가장 과감한 아이디어의 하나이다. 이 점에 대해 보다 자세히 논의하고 싶다.
비록 연산자 개념은 언뜻 보아 추상적으로 보이나, 매우 단순한 개념이다. 먼저 연산자-수학적 연산과 연산자가 연산하려는 대상-함수를 구분해야 한다. 예로써, 수학적 연산에 대하여 d/dx로 표시되는 수학적 미분 "연산자”와 함수―이름하여, x2에 작용하는 경우를 생각하자. 이 연산의 결과는 새로운 함수를 낳으며, 이 경우는 “2X"이다. 그러나, 특수한 함수들은 미분에 대하여 특이한 방법으로 거동한다. 예를 들면 e3X'’의 미분은 3e3 ..... 이다 : 여기서 미분의 결과는 단순히 어떤 수, 여기서는 3을 곱해 준 초기함수로 되돌아간다. 주어진 연산자에 의해 단순히 원상복귀되는 함수들은 이 연산자에 대한 ”고유함수(eigenfunctions)”로 알려져 있으며, 연산자의 적용 후 곱해진 고유함수는 연산자의 “고유값 (eigenvalues) ”이 된다.각 연산자에 대하여, 이에 상응하는 임의의 앙상블, 즉, 수치값의 "저장소”가 있기 마련이다. 이와 같은 앙상블은 그 자신의 스팩트럼”을 형성한다. 이들 스펙트럼은 고유값이 어떤 이산적 시리즈를 형성할 때 불연속적”이다. 예를 들면, 고유값들로서 모든 정수 0,1,2 • .• • • 에 대하여 임의의 연산자가 존재한다. 한 개의 스펙트럼은 또한 연속적일 수 있다 - 예를 들면, 수 0과 I사이의 모든 수로 이루어져 있을 때이다. 따라서, 아마도 양자역학의 기본적 개념은 다음과 같이·표현할 수 있다. 고전역학의 모든 물리적인 양에 대해 양자역학에서는 이에 상응하는 연산자를 갖고 있으며, 이 물리적인 양이 지닐 수 있는 수치값은 연산자의 고유값이다. 아주 핵심적인 점은 물리적인 양의 개념(연산자에 의해 나타낸)은 이제 이의 수치적인 값과(연산자의 고유값에 의해 나타낸) 다르다는 사실이다. 특히, 에너지는 이제 해밀톤 연산자로 나타낼 수 있으며 에너지 준위 - 에너지의 관측된 값――-는 이의 연산자에 상응하는 고유값으로부터 알아낼 수가 있다.연산자의 도입은 물리학으로 하여금 의심의 여지가 없는 풍부한 미시적 세계가 전개되게 만들었다. 우리로서 안타까운 점은, 창조적인 상상력과 실험적 관찰이 너무나도 성공리에 접합되었던, 이 매력을 지닌 주제에 대해 더이상의 지면을 할애할 수 없는 형편임을 독자들께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단순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미시적 세계는 새로운 구조를 갖는 법칙에 의해 지배되게 되었다는 사실과, 모든 형태의 상황 묘사에 공동적인 어떤 단일의 개념적 체계를 발견하려는 희망이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는 점이다.
놀라움과, 이의 최초의 창안자들의 기대를 초월하는 개방된 의문의 영역이 실제로 가능한 특정한 상황을 다루기 위하여 새로운 수학적 언어가 발명되었다. 이와 같은 점은 미분학의 경우 특히 그러하였으며, 바로 이 연산 분야는 고전동력학의 체계에 뿌리를 이루고 있는 수학 체계였다. 아울러 연산자 대수학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예기치 못했던 실험적 발견의 결과로 그 요구가 일게 되었던 양자이론은, 곧이어 새로운 개념을 잉태하게 되는 상황을 겪게 되었다.오늘날, 양자역학에 연산자 개념이 도입된 후 50여 년 이상이 지나간 지금까지도, 그들의 중요성 및 영향은 아직도 활발한 토론의 주제로 남아있다. 역사적 관점으로부터, 연산자의 도입은 에너지 준위의 존재에 연결되어 있지만, 연산자는 고전물리학에서조차 그 응용성을 지니게 되었다. 이같은 사실이 시사하는 바 그들의 중요성은 양자역학의 창시자들의 기대를 훨씬 초월하여 발전되어 왔다는 점이다. 연산자 개념은 이제, 이런저런 이유로, 동력학적 궤도의 관념을 버려야 하는 실정에 이르게 되었고, 이와 함께 궤적이 암시하는 결정론적 묘사에 중요한 역할을 갖게 되었다.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 관계양자역학에서 각개의 물리적 양은 함수에 작용하는 연산자에 상응한다는 사실을 앞서 보아 왔다. 특별히 중요한 사실은 고유함수와, 고려하는 연산자에 상응하는 고유값이다. 고유값은 물리적 양이 취할 수 있는 수치값에 엄밀하게 상응한다. 양자역학에서 관계되는 좌표 q와 운동량 P의 연산자에 대해 보다 자세히 관찰해 보자 ; 그들의 좌표는 제2장에서 보아온 것처럼 정준적 변수이다.고전역학에서 좌표와 운동량은 어떤 좌표축에 기인되는 수치와 운동량에 기인되는 것으로 보이는 수치가 서로 독립적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독립적인 값으로 간주할 수 있었다. 그러나, 플랑크 상수 h의 존재는 독립변수의 수를 감소시켜 버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만약, 앞서 보았듯이 파장을 운동량에 연결해 주는 아인슈타인-드브로이 관계λ=h/p를 보면, 곧 그와 같은 가능성이 자명해진다. 플랑크 상수 h는 길이 (좌표의 개념에 밀접하게 관계된)와 운동량과의 관계를 나타내 준다. 따라서 위치와 운동량은 더이상 고전역학에서처럼 독립적인 변수가 아니다. 위치와 운동량에 상응하는 연산자는 양자역학을 다루는 모든 교과서에 어느 정도 설명되고 있듯이, 좌표나 운동량 하나만으로 나타낼 수 있다.
중요한 사실은 모든 경우에 단지 한 가지 형태의 양만이 나타나며 (좌표 또는 운동량), 두 가지 양 모두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양자역학은 고전역학의 변수의 수를 2개의 인자로 구분해 버린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양자역학에서 연산자 사이의 관계로부터 발생되는 한 가지 원천적인 성질은 다음과 같다 : 두 개의 연산자 qOP와 p0P는 가환(commute)되지 않는다-즉, 동일한 함수에 적용한 q0P pOP와 pOP qop의 결과는 서로 다르다. 가환되는 연산자는 공통적인 고유함수를 인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이 결과는 매우 심오한 함축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좌표와 운동량 모두의 고유함수일 수 있는 임의의 함수는 알아낼 수가 없다. 양자역학에서 좌표 연산자와 운동량 연산자의 개념의 결과로, 물리적인 양, 좌표 q와 운동량 p 모두가 잘 정의된 값을 갖는 상태란 존재할 수 없다. 고전역학에서 알려져 있지 않았던, 이와 같은 상황은 하이젠베르그의 유명한 불확정성 관계에 의해 나타난다. 사람들은 임의의 좌표와 임의의 운동량을 측정할 수 있다. 그러나, △q △p로 표현하는 가능한 예측의 분산값은 하이젠베르그의 부등관계 △q △p h에 의해 연관지을 수 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가능한 작게 △q를 조절할 수 있으나 △P는 무한대로 갈 것이며 △p에 대해서는 △q가 무한대가 되는 결과가 될 것이다.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 관계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이들에 의해 수많은 문헌에 쓰여지고 있는바 우리의 토론은 의도적으로 매우 단순화된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에게 연산자의 사용으로부터 기인되는 새로운 문제의 이해를 언급하고 싶다 :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 관계는 인과율 개념을 수정하도록 만든다. 좌표의 엄밀한 결정은 가능하다. 그러나 운동량에 대해 그렇게 할 때, 운동량은 임의의 값을 지닐 수 있어 음수 또는 양수값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하면, 특정 순간에 대상 물체의 위치는 임의의 거리가 될 수 있다. 편재화의 의미는 손상된다 : 고전역학의 토대를 형성했던 개념이 크게 변모된다.
이들 결과는 아인슈타인을 포함한 많은 물리학자들의 양자역학의 체계에서는 용인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들의 불합리성을 증명하기 위하여 많은 실험이 고안되었다. 한 가지 시도는 수반되는 개념적 변화를 최소로하기 위해 이루어졌다. 특히, 양자역학의 토대는 어느 정도 관측의 과정으로부터 유래되는 섭동량과 관계된다는 생각이 재기되었다. 대상계는 좌표와 운동량처럼 찰 정의된 역학적 매개변수를 본질적인 면에서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들의 일부는 측정에 의해서 보다 어렵게 되었을 뿐이고,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 관계는 단지 측정 과정에 의해 발생되는 섭동만을 나타낼 수 있었다. 따라서, 고전적 사실주의는 근본적 차원에서 손을 댈 수 없는 상태로 남아 있었으며 단지 실증적 해석만을 덧붙이는 결과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와 같은 해설은 너무도 편협해 보인다. 결과들을 방해하는 것은 양자역학적 측정만이 아니며, 그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이다 : 플랑크의 상수는 좌표와 운동량의 관계를 재정립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강요했다. 이와 같은 결론은 고전적 결정론을 되살리기 위해서 도입했던 국부적 숨은 변수 (hidden variable)의 가정을 시험하는 실험 과정에서 확인되었다.8) 실험의 결과는 양자역학의 중요한 결과를 확증해 주는 것이었다.8) 양자역학에서 숨겨진 변수들을 찾아내기 위한 최근의 실험적 노력의 개념적 틀에 관해서는. B.D'Espagnat의 Conceptual Foundations of Quantum Mechanics 2nd aug. ed. (Reading, Mass. : Benjamin, 1976)를 찾아볼 수 있음 . 또한 B . D'Espagnat의 The Quantum Theory and Realty," Scientific American, Vol. 241 (1979), pp. 128-40을 참고할 수 있음.
그와 같은 이유로 양자역학은, 보어가 종종 강조했던 것처럼, 고전물리학의 사실주의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이 암시해 주는 대상의 위치에 관해 절대적으로 말할 수 없도록 한다. 보어에게는, 플랑크 상수는 대상 양자계와 측정 장치 사이의 상관관계를 정의해 준다. 이와 분리될 수 없는 측정의 상호작용을 포함하는 전체의 양자현상에 대해서만 어떤 수치를 관련시킬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정의는 측정 장치의 선택과 질문하려는 의문의 종류의 선택에 있음을 암시한다. 이런 맥락에서 측정의 결과와 해답은 우리가 주어진 실재에 접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람들은 대상계에 대하여 어떤 종류의 측정을 수행할 것이며 실험을 통해 어떤 의문의 해답을 구할 것인가를 결정해야만 한다. 주어진 계에 대하여 이를 표현할 때 더이상 줄일 수 없는 표현의 다중성이 존재할 것이며 각각은 결정된 연산자 수에 연결되어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실험을 통해서 도입되는 정량적 선택의 경험을 늘 강조하여 왔다. 물리학자는 그의 언어를 선택하여야 하며 거시적인 실험 장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 보어는 이와 같은 아이디어를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 원리의 확장으로 간주할 수 있는 상보성 원리로써 나타내었다.9) 사람들은 좌표나 동량을 측정할 수 있었으나 이 두 양을 동시에 측정할 수는 없었다. 어떤 단일한 이론적 언어와 아무리 잘 정의된 값이라도 대상계의 물리적인 상황을 완전히 규명해낼 수 있는 변수로 명료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대상계에 관한 가능한 여러가지의 언어와 견해는 서로 보완적일 수 있다. 모두는 동일한 실재 상황을 다루고 있으나 이들을 한 가지 단순한 점으로 간단히 나타내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더이상 줄일 수 없는 절대적 견해의 불가능성으로부터 전체 실재의 상황이 시야9) 보완적 원리에 대한 보다 자세한 검토를 위해서는, B. d'Espagnat의 앞에서 인용한 문헌과 ; M. Jammer, The Philosophy of Quantum Mechanics(New York : John Wiley & Sons, 1974) ; 그리고 A. Petersen, Quantum Mechanics and the Philosophical Tradition (Cambridge, Mass . : MIT Press, 1968) . C. George and I. Prigogine, Coherence and Randomness in Quantum Theory, Physica, Vol. 994 ( 1979) , pp . 369-82를 참고할 수 있음.
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상보성 원리의 교훈은 후퇴의 교훈은 아니다. 보어가 늘 말해 왔던 것처럼 양자역학의 중요한 결론은 늘 그를 어지럽게 만들며, 사람들도 상식의 편안한 경로로부터 벗어져 나와 진정으로 현기증을 느낀다. 상보성 원리로부터 배워야 할 실재의 교훈과, 또한 다른 분야의 지식으로 옮겨 버릴 수 있는 교훈은, 실재의 풍부함, 어떤 단순한 언어로 표현하기엔 너우도 풍부한, 그리고, 단순한 논리적 구조로 나타내기엔 너무도 큰 풍부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언어는 단지 실재의 제한된 부분만을 표현할 따름이다. 예를 들어, 음악은 바하로부터 쇤베르크에 이르기까지 작곡의 형태나, 깨달음으로도 고갈되지 않는다.
우리는 연산자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이들 연산자가 물리학에 의해 연구되는 실재가 또한 어떤 정신적인 구축임을 말해 주기 때문이다 ; 연산자는 단순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연산자에 의해 수학적으로 나타내는 좌표와 운동량의 추상적 관념과 실험을 통해 도달할 수있는 수치적인 나타냄과의 관계를 구분하지 않으면 안된다. "두 문명" 사이의 반대에 대한 이유 중의 하나는 인문과학은 실재의 관념화, "공상”에 상응하지만, 자연과학에서는 객관적 실재를 표현하는 것으로 보는 믿음이었다. 양자역학에서는 실재상황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다. 모든 차원에 대하여 실재란 관념화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임을 암시해 준다.양자계의 시간적 진화이제부터 양자 체계의 시간적 전화에 대해 검토하려 한다. 고전역학에서처럼 해밀톤 개념은 근본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앞서 보아 왔듯이, 양자역학 분야에서는 해밀돈을 연산자 Hop로 대체하여 놓았다. 이 에너지 연산자는 핵심적 역할을 말고 있다 : 한편에서 연산자의 고유값은 에너지 준위에 상응하며 다른 한편에서는, 고전역학에서처럼, 대상계의 시간적인 전화를 결정해 준다. 양자역학에서 고전역학의 정준 방정식에 의해 수행되는 역할은 파동함수 (물론, 여기에서 기술하지 않는 그 밖의 공식이 있다)에 대한 연산자 Hop의 적용의 결과로 생기는 양자 상태를 특징짓는 함수의 시간에 따른 전화를 표현하는 슈뢰딩거 방정식이 대신한다. "파동함수"란 용어는 다시금 모든 양자물리학에서 너무도 핵십적인 파동 -입자 이중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선택된 개념이다. 는 임의의 파동진폭으로 해밀톤에 의해 결정된 방정식의 입자 형태에 따라서 진화된다. 슈뢰딩거 방정식은. 고전 물리학에서 정준적 방정식과 같이. 가역적이며 결정론적인 진화를 나타낸다. 파동함수의 가역적 변화는 임의의 궤적을 따르는 입자의 가역운동에 상응한다. 만약 주어진 순간에서 파동함수를 알면, 슈뢰딩거 방정식은 직전이나 직후 순간에 입자의 진화를 계산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견해로부터, 상황은 고전역학의 체계와 지극히 유사해진다. 양자역학에서 불확정성 관계의 경우 시간을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은 임의의 숫자로 남아 있고, 임의의 연산자가 아니며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 관계에 나타낼 수 있는 유일한 연산자일 따름이다.
양자역학은 고전역학에서 야기되는 변수 중 그 반만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고전적 결정론은 응용성을 상실하며, 양자역학에서는 통계학적 고려만이 핵심적 역할을 맡는다. 이는 통계적인 정의와 연계되도록 하는 파동의 세기, 2 (진폭의 제곱)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이루어 진다 : 임의의 연산자-이름하여, 에너지 연산자 Hop의 고유함수와 대응되는 고유값을 생각하자. 일반적으로 Hop파동함수 는 에너지 연산자의 고유함수는 아닐 것이지만, 그러나 이는 고유함수의 중첩으로서 표현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중첩에서 각 고유함수의 중요성은 고유값에 대응하는 다양한 확률적 출현 가능성을 계산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다시 고전적 이론으로부터 근본적인 벗어남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단지 확률을 예측할 수 있을 따름이지 단일의 사건을 예측할 수는 없다. 이같은 사실은 과학의 역사를 더듬어 확률이 자연의 어떤 기본적인 양상을 설명하기 위해 쓰여진 두번째의 시도이다. 첫번째의 상황은 엔트로피에 대한 볼츠만의 해설이었다. 그러나, 그의 경우에는 주관적인 견해가 가능한 채로 남아 있다. 이와 같은 견해에서, 고려했던 대상체계의 복잡성에 직면한 "유일한" 인간의 무지함으로 어떤 완전한 묘사의 실현을 방해했을 뿐이다(오늘날에 이르러 이와 같은 자세는 극복될 가능성이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앞에서처럼, 여기서도 확률은 많은 물리학자들 —아인슈타인을 포함하여一-_즉, 어떤 "완전한" 결정론적 묘사를 성취하려 했던 이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비가역성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무지에 호소함으로써 벗어날 수 있는 출구가 제공되는 듯 하였다 : 사람들의 무지한 자세는 마치 비가역성에 대한 자세가 그러하였던 것처럼 양자 세계에서 동계적 거동에 대한 태도를 갖도록 하였다. 다시 한 번 숨은 변수의 문제에 접하고 말았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그와 같은 변수의 도입을 정당화시킬 수 있을 만한 실험적 증거가 없었으며, 확률의 역할은 외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슈뢰딩거 방정식이 어떤 결정론적 예측에 이르게 한 가능한 경우는 단한 가지 상황이었다 : 이는 고유함수가 중첩되는 대신, 가 단일한 것으로 줄여질 수 있는 때이다. 특히, 어떤 이상적인 실험 과정에서, 임의의 대상계는 주어진 실험의 결과가 예측될 수 있는 방법으로 계산 조작된 경우이다. 이때 사람들은 대상계가 대응되는 고유함수에 의해 정의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로부터, 대상계는 실험적 측정 결과에 의해 나타난 고유 상태의 존재로서 확신을 갖고 정의된다.양자역학에서 측정 과정은 오늘날 상당한 관심을 끌고 있는 특별한 중요성을 갖고 있다. 측정 과정을 파동함수와 함께 시작했다고 생각할 때, 그 결과는 사실상 고유함수의 중첩이 될 것이다. 실험적 측정 과정의 결과로서 동일한 파동함수에 의해 표현된 모든 대상 체계의 단순한 집합은 측정이 가능할 수 있는 다양한 고유값에 상응하는 파동함수의 집합으로 대체된다. 기술적으로 말하자면, 단일의 파동함수(어떤 순수한 상태)로부터 얻어진 임의의 실험적 측정으로부터 혼합상태에 이를 수 있음을 말한다.보어나 로젠펠드1O)가 수차례 지적하였듯이 화학 변환과 갇이 비가역성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모든 실험적 측정이나, 비가역적 현상을 유발하10) L. Rosenfeld, "The Measuring Process in Quantum Mechanics," Supplement of the Progress of Theoretical Physics(1965). p.222.
도록 하는 노력은 "데이터”의 기록에 상응한다. 기록은 임의의 증폭을 수반하게 되며 그로써 미시적 사건은 거시적 차원에 대하여 임의의 결과를 낳는다-즉, 분석장치로부터 읽어낼 수 있는 수준에서 . 실험적 측정은 비가역성을 미리 가정하게 된다.
이와 같은 점은 어느 면에서 이미 고전 물리학에서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실험적 측정의 비가역성 특성의 문제는 양자역학에 대하여 더욱 절실한데 이는 바로 양자역학의 체계화 단계로부터 야기되었던 의문이다.이 문제에 대한 통상적 접근은 다음과 갇이 언급할 수 있다. 양자역학은 선택의 여지없이 슈뢰딩거 방정식에 의해 기술되는 가역성과 연속적 진화, 두 상호 양분할 수 없는 과정의 공존을 가설에 도입할 수밖에 없었으며, 파동함수의 비가역성 및 불연속적 상황을 실험에 의한 측정이 이루어지고 있던 시간에서 고유함수의 하나로 보았던 가정이다. 따라서 다음의 모순을 낳았다 : 가역적 슈뢰딩거 방정식은 오로지 비가역적 실험 측정에 의해서 시험될 수밖에 없으며 그 방정식은 정의에 따라 비가역적 측정을 정의할 수 없다. 따라서 양자역학은 어떤 폐쇄된 구조를 도저히 짜맞출 수가 없다.이와 갇은 난제에 직면하여, 몇몇 물리학자들은 다시금 주관론에서 그 피난처를 찾았고, 우리가 행하는 실험적 측정이나, 나아가 우리의 정신이 一자연적 "객관적" 가역성의 법칙을 파괴하는 대상계의 전화를 결정한다고 말한다.11) 다른 사람들은 또한 슈뢰딩거 방정식은 "완전한" 것이 아니었으며, 실험적 측정의 비가역성을 고려에 넣기 위해 새로운 항을 반드 시 첨가해야만 한다는 결론을 얻기도 하였다. 또다른 이들은, 에버렛의 여러 세계 가설(데스파나, 문헌 8을 참조할 것)과 같은 더더욱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해답을 제안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어 양자역학의 가역성과 비가역성의 상호존재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동력학의ll) 양자역학의 패러독스들에 관해서는, 고전적인 생각에 대한 악몽들로 말할 수 있는데. 이는 그들 모두(Schrodinger의 고양이, Wigner의 친구, 중복된 우주)는 어떤 폐쇄된 객관적 이론(Schrodinger 방정식의 의관에서)의 피닉스 아이디어에 대하여 다시금 생명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D'Espagnat와 Jammer의 책들(인용문헌 8-9)을 참고할 수 있다.
세계를 미시적 수준에서 정의하기 위한 고전적 이상화 작업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바로 보어가 말한 임의의 양자계를 기술하기 위해 채택하는 언어는 바로 그 실험적 측정 및 분석장치의 기능을 정의하는 거시적인 개념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슈뢰딩거 방정식은 실재의 어떤 분리되어 있는 차원을 정의하지는 않는다 : 오히려 인간이 속해 있는 거시적 세계를 미리 가정하고 있다.
양자역학에서 실험적 측정의 문제는 따라서, 바로 이 책이 다루려고 하는 문제 중의 하나의 양상에 속한다 - 해밀톤 궤적과 슈뢰딩거 방정식에 의해 정의되는 단순한 세계와 복잡한 거시적 세계의 비가역적 과정 사이의 연계성을 이룬다.제9장에서 보게 되겠지만 비가역성은 궤적의 개념에서 수반되는 이상화 개념이 부적합하게 될 때 고전물리학에 영입시킬 수 있다. 양자역학에서 실험적 측정의 문제는 고전역학과 동일한 형태의 양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12) 사실상, 파동함수는 임의의 양자계의 최대한의 정보를 나타낸다. 고전물리학에서와 같이, 이 최대 지식의 대상은 가역적 진화 방정식을 만족시켜 준다. 두 경우에 있어, 비가역성은 최대 지식에 대응하는 이상적 대상이 보다 덜 이상화된 개념에 의해 대체될 수 있다. 그러나, 언제 이같은 상황이 일어날 것인가? 이 점은 바로 우리가 제9장에서 다루려고 하는 비가역성의 물리적 메카니즘의 의문이다. 우선 현대과학에서 새로이 부각된 양상에 관해 요약해 보자.12) B. Misra, I. Prigogine and M. Courbage, Lyapounov Variable : Entropy and Measurrnent in Quantum Mechanic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 Vol. 76(1979), pp.4768-4772. I. Prigogine and C. George, "The Second Law as a Selection Principle : The Macroscopic Theory of Dissipation Process in Quantum System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 Vol. 80 (1983) pp.4590-94 기술 내용.
비평형우주
이 에서 기술한 두 과학적 혁명은 고전역학의 틀에 보편상수 C와 h를 통합시키려는 시도로부터 출발하였다. 이와 같은 시도의 결과는 엄청난 변화를 도모하게 되었으며, 그중 일부를 여기에 기술하였다. 다른 관점에서 볼 때, 상대성과 양자역학은 뉴톤 역학에서 표현한 기본적 우주견해에 아주 밀접하게 밀착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시간의 기능이나 의미에 관여할 때 이 점은 사실이다. 양자역학에서, 시간 0에서 파동함수를 알면 미래나 과거 모두에 대한 (t)의 값은 결정된다. 똑같이, 상대성 이론에서 시간에 대한 정적인 기하특성은 흔히 4차원의 도시에 의해 강조된다(공간에 대한 3개의 차원과 시간에 대한 I개의 차원). 1908년에 민코프스키에 의해 간결히 표현된 것처럼, 공간 그 자체와 시간 그 자체는 단순한 그림자로 사라져 없어질 운명에 있을 뿐이며, 이 둘의 유일한 종류의 연합은 임의의 독립적인 실재를 보존할 것이며 …… 단지 임의의 세계 자체를 존속시켜 줄 따름이다.”13)13) H . Minkowski, "Space and Time," The Principles of Relativily( New York : Dover Publications, 1923).
그러나 지난 50여 년간 이와 같은 상황은 급진적으로 변화되었다. 양자 역학은 기초소립자나 그들의 변환을 다루는 주요 수단이 되어 왔다. 지난 수년간 출현된 당혹할 만큼의 다양한 소립자를 기술하는 문제는 이 책의 영역 밖의 일이다.
우리는 그저, 디락이 양자역학과 상대성 원리를 사용함으로써, 질량 m의 각각의 입자, 같은 질량을 가지며 반대 전하를 같는 반입자 (antiparticle)의 전하 e에 언급했던 내용을 회고해 보고 싶을 뿐이다. 반양성자(antiproton)는 물론이려니와 전자의 반입자, 양전자 (positron) 등은 오늘날 소립자 물리학에서 통상적인 연구과제가 되었다. 입자들과 이에 대응하는 반입자는 그들이 충돌될 때 절멸되며 빛에 대응하는 질량이 없는 입자, 양성자를 생성한다. 양자이론에서 제 방정식은 입자-반입자의 교환에 대하여 대칭관계에 있으며, 보다 엄밀하게는, CPT 대칭으로 알려진 더 약한 구비조건에 대하여 대칭적이다. 이와 같은 대칭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에워싼 세계에서 입자와 반입자 사이에는 놀라운 비대칭성이 존재한다. 인간은 입자(전자, 양성자)로 만들어져 있으나 반면 반입자는 귀한 실험실 생성물로 남아 있다. 만약 입자와 반입자가 똑같은 양으로 공존한다면 모든 물질은 절멸하였을 것이다. 우리의 은하계 내에서 반물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유력한 증거는 있으나 멀리 떨어져 있는 은하계에 이것이 존재할 수 있으리란 가능성은 배제해 버릴 수가 없다. 사람들은 입자와 반입자를 분리시키고 반입자를 어느 곳엔가 숨겨 버리는 우주 속의 임의의 메카니즘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물질이 반물질을 완전히 지배하는 비대칭성 우주 속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찌하여 이와 같은 일들이 가능한가? 이와 같은 상황을 설명하는 모델이 1966년 사하로프에 의해 발표되었으며, 오늘날에 이르러 많은 일들이 이 상황을 따라 진행되어 오고 있다.14) 모델의 한 가지 핵심적인 요소는, 물질이 형성되던 시간에, 우주는 필시 비평형 조전에 있었을 것이라 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평형에서는 제5장에서 토론된 것처럼 질량 작용법칙은 동일한 물질과 반물질을 필요로 할 것이기 때문이다.14) A. D. Sakharov, Pisma Zh, Eksp. Teor. Fiz., Vol. 5, No. 23 (1967).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으로 비평형은 이제 새로운 우주적 차원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비평형이 없이 그리고 비가역 과정의 연계됨이 없었다면, 아마도 우주는 완전히 다른 구조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 우주에는 상당량의 물질은 없었을 것이며, 단지 국부적으로 반물질에 대하여 물질이 초과되도록 하는 요동 또는 그 반대 상황의 요동만이 가능하였으리라 믿어진다.
보편 상수 h의 존재를 고려에 넣은 역학이론으로부터, 양자이론은 기초 소립자들의 상호변환의 이론으로 진화되었다. “기초 소립자의 통일장 이론”을 체계화하기 위한 최근의 시도를 통해 제안된 것을 보면, 양성자를 포함해서 물질의 모든 입자는 불안정하다는 가정이 있다(그러나, 양성자의 수명은 엄청나, 1030년 정도에 해당한다) . 움직임의 과학인, 역학은 임의의 대상의 묘사를 위한 원초적인 차원 대신, 단순한 근사방법이 되었으며, 양성자와 같이 오랜 수명을 갖는 기초소립자에 대해서만 유용할 뿐이다.
상대성 이론은 똑같은 변환의 상황을 경험하였다. 언급하였듯이, 이 이론은 무시간성 상황을 강하게 강조한 기하적 이론으로부터 출발하였다. 오늘날, 이 이론은 우주의 熱的역사를 연구하는 데 주요수단이 되었으며 현재 우주의 구조를 해명하는 메카니즘의 실마리를 재공하는 중요한 방법이 되었다. 시간의 문제, 비가역성은 따라서 새로운 긴박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응용 화학이나 엔지니어링 분야로부터, 이 이론은 최초의 체계화를 이룩하였으며 소립자로부터 우주론에 이르는 물리학 전체로 파급되었다.이 책이 의도하는 관점으로 보아, 양자역학의 중요성은 미시적인 물리학에 확률개념을 도입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사항은 제5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화학반응을 정의하는 추계적 과정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양자역학에서 파동함수는 실험적 측정공정을 제의하고는 결정론적인 양상으로 진화한다.이미 보았듯이 양자역학이 체계화된 지 50년이 지난 지금 비평형과정의 연구는 미시적 척도에 대해서도 요동이나 추계적 요소들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언급한 것으로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물리학의 재개념화는 결정론적이며 가역적인 과정으로부터 추계적이며 비가역적인 과정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양자역학은 일련의 중간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믿는다. 양자역학에서 확률은 나타나지만 비가역성은 나타나지 않는다. 기대하여, 우리는 제9장에서 이에 관한 몇 가지 이유를 제시할 예정이다. 그 다음 단계는 미시적 차원에 근본적인 비가역성을 도입하는 일일 것이다. 숨은 변수나 그밖의 수단을 통하여 고전적 정통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에 대비하여, 우리는 다음을 주장할 따름이다. 이제는 자연의 결정론적 묘사로부터 아주 멀리 나아가 통계적, 그리고 추계적인 묘사를 시도해야 할 필요가 있다.제8장
이념 사이의 충돌확률과비가역성마치 단일방향의 시간개념은 물리학의 이상적인 개념들과는 전혀 다른 인간의 형상에 일치하는 요소들을 도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거의 모든 곳에서 물리학자는 그의 과학세계에서 단일방향 시간개념의 사용을 제거해 가고 있다. 물론, 여러 중요한 경우 단일방향 시간과 단일방 향성 인과율을 불러내고 있으나, 항상, 이와 같은 일이 진행되면서도, 무엇인가 어리석은 이념을 신봉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루이스(G. N. Lewis)1)1) G . N . Lewis, "The Symmetry of Time in Physics," Science, Vol. 71 (1930), P.570.
본인의 견해로 보아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는 법칙-열역학 제2법칙은 자연의 여러 법칙 중에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귀하의 우주에 대한 소중한 ·이론이 막스웰 방정식과 위배된다고 지적하면 당신의 이론은 막스웰 방정식보다 훨씬 미흡하다. 만약 당신의 이론이 실험에 의해 관찰된 결과와 모순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면 ―글쎄요, 이 실험을 수행한 사람은 사물을 때때로 서물게 만들어 버릴 수 있다. 그러나 귀하의 이론이 열역학 제2법칙에 위배된다면 당신에게 어떤 희망도 줄 수가 없다. 오로지 심한 오류의 심연으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에딩톤 (A . S .. Eddington) 2>
2) A. S. Eddington, The Nahtre of the Physical World (New York : Macmillan, 1948), p. 74.
열역학 제2법칙의 클라우시우스 공식과 함께, 열역학과 동력학 사이의 갈등은 분명해진다. 물리학에서 열역학과 동력학 사이의 관계보다 더 자주 그리고 왕성하게 토론되어 온 어떤 주제도 찾아볼 수 없다. 클라우시우스 이후 15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와 같은 주제는 커다란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실재와 시간의 의미가 수반되는 논쟁에 누구도 중립적일 수가 없다. 현대과학의 어머니인, 동력학이 열역학의 몇 가지 정황으로 인하여 필시 포기되어야 한단 말인가 ? 그와 같은 견해는 I9세기에 위대한 공헌을 발휘하였던 “정력적인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동력학을 "구할수 있는", 뉴톤과 그의 후계자들에 의해 구축된 엄청난 학문 체계를 포기함이 없이 열역학 제2법칙과 새로 벌충될 수 있는 길은 없는가? 동력학에 의해 정의되는 우주 속의 엔트로피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이미 언급하였듯이 볼츠만에 의해 그 해답이 제안되었다. 볼츠만의 유명한 방정식 S=k logP는 엔트로피와 확률을 관계짓는다 : 엔트로피는 확률이 성장하기 때문에 증가한다. 거리낌없이 강조할 수 있다면, 이와 같은 관점에서 제2법칙은 실질적 면에서 매우 중요할 데지만 어떤 이론적인 중요성도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가드너는 그의 유명한 저술 『양수잡이 우주(Ambidextrous Universe)』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 어떤 사건은 다른 길로 갈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거의 되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오로지 한 길로만 진행된다.3) 거의 일어날 것 갇지 않은 사건을 측정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개선함으로써 열역학 제2법칙이 그 본래의 기능을 거의 해낼 수 없는 상황에 이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3) M . Gardner, The Ambidextrous Univer.se : Mirror Asymmetry and Time-Reversed Worlds(New York : Charles Scribner's Sons, 1979) , p, 243.
이와 같은 생각은 오늘날까지 종종 취하여 온 견해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 견해는 플랑크의 관점이 아니었다 :
열역학 제2법칙의 합당성이 관측하거나 실험하는 물리학자나 화학자의 기술에 의존되리라는 가설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열역학 제2법칙의 요점은 실험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 제2법칙이 간결히 주창하는 것에 따르면 자연에는 모든 천연적인 과정과 유사한 맥락으로 항상 똑같이 변화하는 임의의 양이 존재한다. 이와같이 일반적인 형태로 언급할 수 있는 제2법칙의 위치는 옳을 수도 있고 그를 수도 있다 : 그러나 사실이 어떠하든간에, 생각하거나 실험하는 존재가 지구상에 있든지, 또는 없든지에 상관없이, 그들이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든간에, 그들이 우리들보다 더 정밀하게 소수점 하나, 둘 또는 수백 이하로 어떤 화학 또는 물리적 과정을 자세히 측정할 수 있다 하더라도 매양 마찬가지일 것이다. 만약 어떤 제약이라도, 제2법칙에 제약이 있다면, 자연 속에서 관찰된 본질적인 아이디어로서 동일한 영역에 놓여 있으며 관측자 속에 놓여 있지는 않을 것이다. 제2법칙의 연역과정에서 요구되었던 그같은 경험은 아무런 중요성이 없다 ; 사실상 그같은 방법은 자연의 법칙이 어떤 지식에 이르는 유일한 인간의 방법이기는 하지만 말이다.4)4) M . Planck, Treatise on Tlzennodynamics (New York : Dover Publications, 1945), p.106.
그러나 플랑크의 견해는 무시된 채 남아 있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제2법칙을 근사방법, 물리학의 정확한 우주 속에 침투된 주관적 견해의 결과로부터 도래한 것으로 생각한다. 예를 들면, 본의 유명한 문장처럼 "비가역성은 물리학의 근본적인 법칙에 무지를 도입한 결과이다."5)
5) K. Denbigh, wHow Subjective Is Entropy ?, Chemistry in Britain, Vol. 17(1981), pp.168-8, 내용에서 인용하고 있음.
이 장에서 필자들은 제2법칙의 해석적 발전에 대한 몇 가지 기본적인 단계에 대하여 기술하고 싶다. 우선 꼭 이해하여야 할 일은 이 문제가 난
해해 보이는 이유이다. 제9장에서, 우리가 희망하는 제2법칙의 급전적인 창의력과 객관적 의미 모두를 명쾌히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 방법에 대해서 계속 언급할 예정이다. 우리의 견해는 플랑크의 견해와 일치될 것이다. 우리는 제2법칙이 동력학이 구축한 엄청난 구조를 파괴시키기는커녕, 동력학에 핵심적인 새로운 요소를 첨가시키게 된 상황을 보여줄 수 있었다.
먼저 볼츠만의 확률과 엔트로피의 관계를 명료히 해두고 싶다. 두 사람의 에른훼스트(P.and T.Ehrenfest)6)에 의해서 제안된 항아리 모델(Urn model) ”로부터 기술해 보자 . 두 개 의 용기 A와 B에 분포되어 있는 N개의 대상물(예를 들면, 공)을 생각하자.6) 예를 들면, M. Kac, Probability and Related Topics in Physical Sciences (London : Interscience Publications, 1959)를 볼 것.
무작위적이지만 규칙적인 시간 간격으로(예를 들면 매초마다) 임의의 공이 선정되며 한 용기에서 다론 용기로 옮겨간다고 보자. 시간 n에서 A용기에는 k개의 공이, B에는 N-k개의 공아 들어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시간 n+r에서 A에는 k—[ 또는 k+[개의 공이 있을 것이다. 이때에는 k→k-1로 되는 k/N의 전이 확률과 k→k+1이 되는 r-k/N 확률
시간n曰 曰
그립 23 . 에른체스트의 항아리 모델 . N개의 공이 두 용기 A와 B에 분포되어 있다. 시간 n에서 A에는 k개의 공이 B에는 N-k개의 공이 들어 있다. 일정한 시간간격에 따라 공 1개가 무작위적으로 A로부터 B로 옮아간다.
을 갖는다. 이와 같은 놀음을 계속한다고 보자. 공의 교환의 결과로서 볼츠만 견해에 있어서 가장 확률이 높은 분포에 이를 것이라는 점을 예상할 수 있다. 공의 수 N이 클 때 이 분포는 각 항아리 속의 공의 수 N/2에 상응할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기초적인 대수 계산이나 실험을 통해 증명할 수 있다.
k 선
그림 24. 에른훼스트의 항아리 모델(개략도)에서 평형 (k=N/2)으로의 접근.
에른훼스트의 모델은 "마르코프 과정 (또는 마르코프 사슬)”의 간단한 예의 하나로, 그와 같은 과정을 최초로 정의하였던 사람 중의 하나였던 (뿌앙카레의 모델은 또다른 것 중의 하나) 러시아의 유명한 수학자 마르코프(Andre Andrevitch Markov, 1856-1922)의 이름을 따 명명한 모델이다. 간단히 말하면, 그들의 특징적 성격의 하나는 대상계의 이전 역사에 독립적으로 찰 정의된 전이 확률의 존재이다.
마르코프의 사슬 모델은 놀라운 성질을 갖고 있다 : 그들은 엔트로피의 관접에서 기술할 수 있다. P(k)를 A 항아리 속에서 공 k를 발견할 수 있는 확률이라 부르자. 그렇다면 이 값은 임의의 "H ”에 관련지을 수 있으며 이 양은 제4장에서 토의한 엔트로피와 똑같은 성질을 갖고 있다. 그립 25는 이 양에 대한 진화의 한 예이다. H 양은 고립된 대상계의 엔트로피가 그러하듯이 시간에 대해 균일하게 변화한다. S는 증가하는 반면 H는 시간에 따라 감소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단순히 개념적 정의의 문제이다 : H는 -S의 역할을 담당한다.
夕/
그림 25. 에론훼스트 모델에 대응하는 H 양(본문에서 정의)의 시간 진화. 이 양은 조롭게 감소하며 오랜 시간이 경과된 후에는 사라져 버린다.
이 "H양”의 수학적 의미는 보다 자세히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 주어진 시간에서 평형상태의 확률(각 항아리의 공의 갯수가 N/2인)에 있을 때 확률의 차이를 측정해 준다. 이로써 에른훼스트 모델에서 채택한 논거를 일반화할 수 있다. 정사각형의 분할을 생각하자 - 즉, 사각형을 여러 개의 뒤죽박죽된 영역으로 구분하자(그림 26을 참조). 이제 사각형 내입자의 분포를 생각하고 P(k, t)를 영역 k에서 임의의 입자를 발견할 수 있는 확률분포라 하자. 이와 비슷하게, 어떤 균일한 상태에 도달했을 때의 량을 Peqm(k)라 칭하자. 항아리 모델에서처럼 이 경우에도 잘 정의된 전이확률이 존재한다고 가정하자. H양의 정의는 아래와 같다.
H=l: P (k, t) lpg P(k, t)11 • Peqm (k)위의 공식에서 p(k, t)/Peqm(k)의 비가 나타남을 주목해 두자. 만약8개의 상자가 있다면 Peqm(k)=1/8 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첫번째 상자에 모든 입자들이 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대응되는 P(k, t)의 값은 아마도 p(1, t)이고 다른 모든 것은 0이다. 결과로서 H=log (I/[I/8)=log8 이다.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입자들은 균일하게 분포될 것이고 P(k, t)=Peqm(k)=1/8이다. 결과로서 H양은 사라진다. 그림 25에 따르면 H의 값은 균일한 양상으로 감소됨을 볼 수 있다(이에 대한 증명은 추계적 과정에 대한 이론을 다루는 모든 교과서에 주어져 있다). 이 점은 바로 왜 H가 -S 엔트로피의 역할을 맡고 있는가의 이유이다. H의 균일한 감소는 대단히 간단한 의미를 갖고 있다 : 대상계의 점증적 균일화를 측정해 준다. 초기 정보는 손실되고, 대상계는 "질서”로부터 "무질서”로 진화된다.
그립 24에 보인 바와 갇이 마르코프 과정은 요동을 암시하고 있다. 만약 충분히 긴 시간을 기다린다면 초기상태를 회복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들은 평균을 다루고 있다. HM양은 균일하게 감소되는 양으로 확률분포의 관점에서 표현되었지 각개 사건의 관접에서 표현되지 않는다. 비가역적으로 진화하는 것은 확률분포이다(에른훼스트 모델에서, 분포함수는 균일한 이항분포의 경향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분포함수의 차원에서, 마르코프 사슬은 시간에 대한 단일 방향성에 도달하게 한다. 이같은 시간 화살은 마르코프 사슬과, 양자역학에서 일시적 진화는 비록 확률에 관련을 갖고 있긴 하지만, 파동함수가 가역적으로 전화하는 상황 사이의 차이를 나타낸다. 시간의 단일 방향성은 마르코프 사슬과 같은 추계적 과정과 비가역성과의 밀접한 관계를 입증해 준다. 그러나, 엔트로피의 증가는(또는 H의 감소는) 자연의 제법칙에 존재하는 시간 화살 개념에 기초를 두고 있지 않으며 미래 (그러나 과거가 아닌)의 거동을 예측하기 위하여 현재의 지식을 사용하는 인위적인 결정에 토대를 두고 있다. 깁스는 이같은 상황을 그의 통상적인 보석처럼 간결한 문체로 나타내고 있다:그러나, 수학적인 허구에 대하여 선행적인 것과 이의 연속되는 사건들 사이의 구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반면에 실제 세계의 사건에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실제 세계에서 사건의 확률을 증명하기 위해 어떤 앙상블을 선택하는 경우에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연속되는 사건의 확률은 선행된 사전의 확률로부터 결정할 수 있는 반면에, 선행된 사건의 확률을 연속되는 사건의 확률로부터 결정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희박한데, 그 이유는 선행된 사건의 앞선 확률의 재고를 배제하고는 도저히 증명해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7)
7) J . W . Gibbs, Elementary Pnnciples in Statfstical Mee/zanies (New York : Dover Publications, 1960) , 재 XII장.
이는 매우 중요한 논점으로 수많은 토론을 유발시키는 동기가 되었다.8) 확률대수 계산은 사실상 시간 배향적이다. 미래의 예측은 과거로부터의 회상과는 다르다. 이 점이 이야기의 전체라면, 비가역성에 대한 주관적 해석을 받아들여야만 하도록 강요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미래와 과거의 구분은 오로지 우리 인간에 의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비가역성의 주관적 해설(더욱이 정보 이론의 모호한 유사성으로 더욱 보강되어 버렸다)에서, 관측자는 대상계의 발전을 특징짓는 일시저 비대칭성에 책임을 지고 있다. 관측자는 임의의 복잡한 대상계를 구성하는 모든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언뜻 보아 모두 결정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동시에 대상계의 과거와 미래가 포함된 순간적 상태를 알아낼 도리가 없으며, 대상계가 한 순간으로부터 다른 순간으로 발전하는 양상을 예측할 수 있도록 하는 가역적인 법칙을 파악해낼 수도 없는 일이다. 또한 그는 빠르거나, 느리게 움직이는 입자를 분리해내고 임의의
8) 예를 들면, S. Watanabe 관찰되어야 할 세계와, 어떤 활성제로서. 우리가 연구하는 세계간의 임의의 단호한 구분을 도입하고 있다 : 그에 따르면 만약 우주에 대한 인간의 행동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 엔트로.피 중가에 대해서 어떤 일관성 있는 방법으로도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인류 모두의 물리학은 사실상 작용되어야 할 우주에 관한 것이며, Watanabe의 구분은 따라서 “미시적 결정론적 대칭”과 거시적 확윤적 비대칭성 사이의 상관관계물 뚜렷이 하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질문은 대답이 없는 채로 남아 있다. 어떻게 우리들은 태양은 비가역적으로 불타고 있다고 의미있게 말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에 관해서는 S. Watanabe의 Time and Probabilistic View of World, The Voice of Time, ed. J. Fraser(New York : Braziller, 1966)을 참고할 수 있다.
대상계에 점증적으로 보다 덜 균일한 온도 분포를 갖는 방향을 향하여 반열역학적 전화가 발생하도록 하는 막스웰의 비범처럼 대상계를 조작할 수도 없는 일이다.9)
9) Maxwell의 비범은 J. C. Maxwell의 Theory of Heat(London : Longmans, 1871), 제X장에 기술되고 있다. 또한 E. Daub, "Maxwell's Demon”과 Molecular Forces, Statistical Representation and Maxwell's Demon”에서 소개되고 있으며 이 두 저술은 모두 Studies in History and Philosophy of Science, Vol. 1에 들어 있다 ; 이 권은 완전히 Maxwell을 기념하기 위해 모든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열역학은 복잡한 대상계의 과학으로 남아 있다 ; 그러나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복잡한 대상계의 유일하고 특정한 양상은 그들에 대한 우리의 지식의 한계와 시간에 따라 증가되는 불확실성이라 할 수 있다. 관측자에게 자연을 연결해 주는 비가역성을 인식하는 대신, 과학자는 자연이란 단순히 그의 무지의 거울이라는 접을 인정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자연은 침묵하고 있다. 비가역성은 물리적 세계 속에 사람들로 하여금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기는커녕, 단순히 인간의 노력과 제한성에 대한 메아리만 울리게 할 뿐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반대 의견을 제기할 수 있다. 그와 같은 해설에 따르면, 열역학은 마땅히 인간의 무지에 대하여 보편적이어야 한다. 단지 비가역 과정만이 존재하여야 한다. 이 점은 바로 초기 (또는 경계) 조전에 대한 우리의 무지에 관심을 쏟아 왔던 엔트로피에 관한 모든 보편적 해설에 대한 비틀거리는 장애물이다. 바가역성이란 보편적 성질이 아니다. 동력학과 열역학을 연결하기 위하여 어떤 물리적인 표준이 가역 및 비가역 과정을 분별하기 위해 요구된다.이 문제에 대하여는 제9장에서 다시 거론할 예정이다.볼츠만의 개가볼츠만의 근본적 공헌은 마르코프 사슬이 발견되 기 30여 년전인 1872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그의 야심은 엔트로피에 대한 "역학적" 해설을도출하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마르코프 사슬에서 전이확률은, 예를 들면, 에른훼스트 모델처럼, 의부로부터 주어지는 데 반하여 그에 있어서 전이확률은 대상계의 동적 거동으로 연관지으려는 것이었다. 볼츠만은 이 문제에 너무도 매료되어 과학에의 생애 전부를 그 문제에 헌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대중적 글(Populare Schnften)」10)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 누군가가 나에게 현세기에 대하여 어떤 이름을 매길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다윈의 세기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볼츠만은 진화의 개념에 너무도 깊숙이 이끌렸으며, 그의 야심은 물질 진화의 “다윈“이 되는 것이었다.
10) L. Boltzmann, Populare Schriften, new ed. (Braunschweig-Wiesbaden : Vieweg, 1979) . Elkana가 Boltzmann's Scientific Research Program and Its Alternatives," Interaction Between Science and Philosophy (Atlantic, Highands, N . J . : Humanities Press, 1974)에서 강조하고 있듯이, 전화의 Darwinian개념은 과학적 지식에 관한 Boltzmann의 견해에서 대부분 명쾌히 표현되고 있다-즉, 에너지 학자들에 대한 역학적 모델의 그의 방어 속에 나타난다. 예운 들면 1886년 그의 강의 The Second Law of Thermodynamics, Theoretical Physics and Philosophical Problems, ed. B. McGuinness(Dordrecht, Netherlands : D. Reidel, 1974)를 참조할 수 있다.
엔트로피의 열역학적 해설을 향한 첫단계는 물리적 묘사에 분자 또는 원자의 "충돌” 개념을 재도입하는 것이었으며, 그로부터 통계적 묘사의 가능성을 검토하려는 것이었다. 이 단계는 또한 클라우시우스와 막스웰이 취한 방법이기도 하였다. 충돌은 불연속적 사건이기 때문에, 이들을 헤아릴 수 있으며 평균주파수를 추량할 수 있다. 또한 충돌을 분류할 수도 있다 __- 예를 들면, 주어진 속도 V를 갖는 임의의 입자를 생성하는 충돌과 속도 V를 갖는 임의의 입자를 파괴하는 충돌의 차이, 서로 다른 속도와 함께 분자를 생성하는 충돌("직접" 및 " ”의 충돌) 사이의 차이를 분별하는 것을 의미한다.11) 막스웰이 물었던 의문은 기체의 상태를 분자들이 끊임없이 변화되는 충돌에 의해서 정의할 수 있는지 아니면 속도의 분포
11) 최근의 이론에 관해서는 I. Prigogine의 From Being lo Becoming-Time and Complexity in the Physical Sciences (San Francisco : W. H . Freeman & Company, 1980)을 참고할 것.
에 대한 어떤 진화도 - 즉, 각 속도값에 대한 입자의 평균수에 대해 더이상 결정할 수 없는지의 가능성 여부에 관한 것이었다. 다른 충돌의 영향이 집단의 규모에 따라 서로 보상할 수 있는 속도 분포란 무엇인가?
막스웰은 이와 같은 특정한 상태는 즉, 열역학적 평형상태로서, 속도분포가 잘 알려진 "鍾모양의 곡선”이 될 때 발생한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이 곡선은 “사회물리학”의 창시자였던 꾸에틀레가 무질서도의 표현 그 자체로 여겼던 "가우시안(gaussian)" 분포를 갖는 상태를 말한다. 막스웰 이론은 기체의 거동을 규정하는 몇 가지 기본적 법칙에 대한 간단한 해설을 가능하게 한다.온도의 증가는 분자의 평균속도 증가에 상응하며 따라서 에너지는 분자의 운동상태에 연계되어 있다. 많은 실험이 막스웰의 법칙이 매우 정확하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었으며, 지금까지 물리화학 분야의 수많은 문제에 대한 해답의 기틀을 마련해 주고 있다(예를 들면, 반응 혼합물의 충돌수의 계산).그러나, 볼츠만은 더 나아가기를 바랐다. 평형의 상태뿐만 아니라 평형을 향한 진화-즉, 막스웰 분포를 향한 전화-를 모두 정의할 수 있기를 원했다. 그는 엔트로피의 증가에 대응하는 분자 단위의 메카니즘을 발견하기를 바랐고, 이때 메카니즘은 대상계의 평형’을 향한 임의의 속도 분포를 도출해내는 것이었다.특징적으로 볼츠만은 물리적인 진화의 문제믈 각각의 궤적 차원이 아니라 분자의 집단 밀도 차원에서 접근해 갔다. 볼츠만이 느꼈듯이, 이는 바로 그 시대 물리학에서 다윈의 위업과 같은 성취에 상응하는 것이었다 : 생물학적 진화 - 자연적 선택-의 배경을 이루는 유도력은 한 개 객체로서 정의할 수 없으며 커다란 집단에 대해서만 가능하다. 이는 따라서 통계적 개념이다.볼츠만의 결과는 비교적 간단한 개념으로 기술할 수 있다. 시간 t와 공간상의 임의 영역에서 속도 V의 분포함수 f(v, t)의 진화는 두 결과의 합으로 보인다 ; 주어진 시간 t에서 속도 V를 지닌 입자의 수는 입자의 자유운동의 결과와 입자 사이의 충돌의 결과로서 변화된다. 첫번째 결과는 고전 동력학의 관접에서 쉽사리 계산될 수 있다. 볼츠만 방법의 독창성은두번째 결과, 즉 충돌에 의한 영향에 관한 연구의 기여이다. 궤적을 추적하는 데 수반되는 난관에 봉착하여 (상호작용을 포함해서), 볼츠만은 제5장에서 그 윤곽을 설명한 방법과 유사한 개념을 사용하도록 하였으며 속도 V에 대응하는 분자의 생성 및 파괴적 평균 충돌수를 계산하는 상황에 직면하였다. 여기서, 또다시 서로 반대되는 영향을 갖는 두 가지 과정이 야기된다―一-"직접적" 충돌은 속도 v'와 v"를 갖는 "역" 충돌에서 속도 V의 분자가 속도 v'"를 갖는 분자와 충돌하여 파괴되는 경우이다. 화학반응에서처럼 (제5장 I절을 볼 것), 그와 같은 사건의 빈도는 이들 과정에 참여하는 분자수의 곱에 비례하는 값으로 계산할 수 있다(물론, 역사적으로 말해서, 볼츠만의 방법[1872]은 화학반응 속도론보다 앞선다).
볼츠만에 의해서 얻어낸 결과는 마르코프 사슬로부터 얻어낸 결과와 매우 유사하다. 다시 임의 양 H를 도입하고 있으나 이때에는 속도 분포 f를 의미한다. 아마도 H= Jf log f dv로 쓸 수 있다. 다시금, 이 양은 평형에 도달될 때까지 시간에 따라 감소될 것이며 속도 분포는 평형 막스웰분포가 된다.최근, 시간에 따른 H의 균일한 감소 작용에 대하여 수많은 수치적 증명이 시토되었다. 모두 볼츠만의 예견을 확인하는 결과였다. 오늘날까지 그의 속도 방정식은 기체 물리학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 열전도나 확산을 특정짓는 전달계수는 실험 데이터와 잘 일치하는 값을 계산해낼 수 있다.그러나, 볼츠만 업적의 가장 위대한 점은 개념적 관점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 가역과 비가역 현상의 구분은, 이미 보아 왔듯이, 이제는 미시적 차원까지 포괄하는 제2법칙의 토대를 이루는 현상의 구분이다. 자유 운동에 기인한 속도 분포의 변화는 가역 부분에 상응하지만, 반면에 충돌에 기인하는 기여는 비가역 부분에 상당한다. 볼츠만에 있어 이같은 구분은 엔트로피의 미시적인 해설에 열쇠가 되는 부분이 되었다. 분자 진화의 원리가 창안되었도다! 이 발견이 플랑크, 아인슈타인, 슈뢰딩거12)를 포함하여 볼츠만 이후의 수많은 물리학자들을 자극했던 환상적 매12) 그의 Sdenlific Aulography에서, Planck는 Boltzmann과의 관계 변화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Boltzmann은 Planck에 의하여 도입된 가역과 비가역과정
사이의 현상학적 구분에 최초로 반기를 들었던 사람이다) . 이 점에 관해서는, 또한 Y. Elkana의 앞서 인용한 문헌과 S. Brush, Statistical Physics and Irreversible Process, PP.640-51을 참조할 수 있다 : Einstein에 대해서는 앞서 인용한 동일문헌 pp,672-74를 : Schrodinger에 대해서는, E. Schrodinger, Science, Theory and Man (New York : Dover Publications, 1957)을 참고할 수 있다.
력이 되었던 상황은 쉽게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볼츠만의 개가는 과정을 다루는 물리학 분야의 방향 설정에 결정적 단계가 되었다. 볼츠만 방정식에서 시간적 진화를 결정해 주는 것은 더이상 힘의 형태에 의존되는 해밀톤일 수가 없다 : 이제는 반대로, 과정에 관계된 함수-~예를 들며, 분산의 단면도-는 운동을 유발하게 된다. 사람들은 이제, 볼츠만의 이론이 엔트로피를 동력학의 문제로 단순화시킨 비가역성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가? 대답은 너무도 자명하다 : "아니오" 아직 풀리지 않았다. 이 문제를 보다 자세히 언급해 보자.볼츠만해설의 의문볼츠만의 중요한 논문이 1872년에 발표되자마자 많은 반대 의견이 일어났다. 볼츠만은 진정으로 동력학으로부터 비가역성을 "연역"해냈다는 말인가? 어떻게 궤적의 가역적인 법칙으로부터 비가역 진화에 도달하였는가? 어쨌든 볼츠만의 속도 방정식은 동력학에 조화될 수 있다는 말인가? 볼츠만 방정식에 나타나는 대칭성은 고전역학의,대칭성에 모순되고 있음은 쉽사리 간파할 수 있다.이미 보아 왔듯이 고전 동력학에서 발생하는 속도의 반전(v→-v)은 시간 반전 (t→―t)과 동일한 영향을 나타낸다. 이는 고전역학의 기본적인 대칭성이며, 분포함수의 시간 변화를 기술하는 볼츠만의 속도 방정식은 이같은 대칭성을 서로 공유하고 있으리라 예견할 수 있다.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 볼츠만에 의해 계산된 충돌항은 속도 반전에 대하여 불변의 상태로 남아 있다. 이에 대한 간단한 물리적 이유가 존재한다. 볼츠만의 구상에서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충돌과 과거를 향하여 진행하는 충돌에 대해 아무런 구분을 짓지 않는다. 이는 바로 볼츠만의 유도에 대한 뿌앙카레의 반대 의견의 기초이다. 어떤 형태의 정확한 계산도 볼츠만 구상이 설정하는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13)14) 이미 보았듯이, 분포함수에 대하여 볼츠만이 얻어낸 속도 방정식의 대칭 성질은 동력학에 대해 이방인격인 뭔가를 도입하였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그의 결과는 기껏해야 현상적인 모델을 나타낼 수 있을 뿐이며, 비록 유용하기는 하지만, 동력학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이 점은 또한 볼츠만에 반기를 들었던 제멜로(1896)의 항변이다.
13) H . Poincare, La Mechanique et l'expeffirience, Revue deffl Metaphysique et de Morale, Vol. 1(1893), PP.534'-37. H. Poincare, Lefons de Tlzennodynamique, ed . J . Blondin ( 1892 ; Paris : Hermann, 1923).
14) Boltzmann의 엔트로피 개념을 둘러싼 반론적 연구들을 관찰할 수 있으며. 이 점에 관해서는 S. Brush의 The Kind of Motion We Call Heat의 앞서 인용한 문헌과, Planck가 그의 자서전에서 남긴 말들을 관찰하라(Loschmidt는 Planck의 제자였다).반면에 로슈미트의 반대는 볼츠만 속도 모델의 효용성의 한계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사실상 로슈미트는 볼츠만의 모델이 속도 v→-v 변환에 대웅하는 반전 이후에는 더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관찰하였다 (1876) . 한 가지 머리속 실험에 의해 이 상황을 설명해 보자. 비평형에 있는 임의의 기체로부터 시작하여 시간 t0까지 진화되도록 방치해 두자. 그후 속도를 거꾸로 해보자. 대상계는 그 과거 상태로 되돌아갔다고 보자. 결과적으로, 볼츠만의 엔트로피는 시간 t=o와 t=to에서 똑같다. 그와 갇은 머리속 실험을 중복해서 수행할 수 있으리라. 수소와 산소의 혼합 기체로부터 시작하자 :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 물이 발생될 것이다. 만약 속도를 반전시킨다면 물이 없는 수소와 산소가 존재하는 초기상태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홍미있는 것은 실험실이나 컴퓨터 모사 실험실에서 실제로 어떤 속도의 반전을 실행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그림 26과 27에서 보는 바와 같이 볼츠만의 H양은 모든 방향에 대해 속도 분포가 같은 격자 모델의 지정 위치상에 있는 디스크형 입자로부터 출발하여, 2차원 상의 가상적 쇠공처럽 단단한 입자(또는 디스크 모양)의 분포에 대하여 계산한 결과이다. 이들 결과는 볼츠만의 예측과 잘 일치된다.
만약, 밀도가 몸은 기체 속에서 약 IO-6초에 상응하는 시간에 대한 분자들의 충돌 횟수와 엇비슷한 50 또는 IO0회의 충돌 후에 입자들의 속도를 반전시켜 새로운 앙상블을 얻었다고 하자.15) 이제 속도가 반전된 후에, 볼츠만의 H양은 감소하는 대신 증가하였다.15) I. Prigogine, C. George, F. Henin, and L. Rosenfeld, A Unified Formulation of Dynamics and Thermodynamics, Chemica Scripta, Vol. 4(I973), pp.5-32.
첫번째충돌
그림 26. 컴퓨터 모사에 의한 N개의 "단단한 구형들”에 대한 시간에 따른 H양의 진화 ; (a) N= 100, (b) N= 484, 그리고 (c) N= 1225.
유사한 상황을 스핀의 반향이나 플라스마 반향 실험에서 얻어낼 수 있다. 이들 경우에서는 대단히 짧은 시간에 대하여 볼츠만의 개념에 의한 "반열역학적" 거동을 관찰할 수 있다. 그러나 주목하지 않으면 안되는 점
J'' N=100
그림 27. 50 또는 100번의 충돌후에 속도가 반전되었을 때 H양의 진화. 100개의 "단단한 구형”에 대한 모사결과임.
은 속도 반전 실험은 반전이 발생한 후 시간 간격 to가 증가함에 따라 점증적으로 더더욱 어렵게 된다.
대상계의 과거를 거슬러올라가기 위해서, 기체는 시간간격 t=o에서, t=to 동안 대상계에서 발생했던 모든 상태 변화를 반드시 기억하지 않으면 안된다. 반드시 정보의 '‘보관”이 있어야 한다. 이와 갇은 비축은 입자 간의 상관 관계로서 표현할 수 있다. 제9장에서 상관 관계의 문제를 다시 거론하도록 하자. 여기서는 단순히 볼츠만의 생각에서 빠져 버린 요소가 바로 상관 관계와 충돌 사이의 이와 같은 업밀한 관계임을 지적해 두자.이 문제에 대해서 로슈미트가 그에게 도전하였을 때, 볼츠만은 어떤 방법도 나로서는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반대 방향으로 발생하는 충돌은 앞서 해버린 일이 하지 않은 상태로 되돌아가 초기 상태로 전환된다. 따라서, 함수 H는, 이 값이 초기값에 도달할 때까지 또한 반드시 증가하여야 한다. 속도의 반전에는 따라서, 볼츠만의 추론이 적용되는 상황과 그렇지 못한 상황의 구분이 요청된다.일단 문제가 제기되면(1894), 이와 갇은 제약의 성격을 증명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16)17) 볼츠만의 통계적 절차의 유효성은 입자들이 충돌하기 전, 분자들은 서로 독립적으로 거동한다는 가정 여하에 좌우된다.
16) D. Park, The Image of Eternity : Roots . of Time in the Physical World (Amherst, Mass. : University of Massachusetts Press, 1980).
17) 이 점에 관해서는 S. Brush의 The kind of Motion We Call Heat, Book I, Physics and the Atomists, Book II. Statistical Physics and Irreversible Processes (Amsterdam : North Holland Publishing Company, 1976)은 물론이려니와 그의 名詩選集에서 피력한 Kinetic Theory, Vol. I, The Nature of Gases and Heat, Vol. II. Irreversible Processes (Oxford : Pergmon Press, 1965 및 1966)를 참고할 수 있다.이와 같은 상황은 바로 초기 상태에 대하여 "분자의 혼돈적 거동”의 가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속도 반전에 따라 창출되는 초기 조전은 이와 같은 가정에 일치되지 않는다. 만약 대상계를 시간에 대해 거꾸로 전행하도록 한다면, 어떤 "비정상적"인 상황이 창출되고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특정한 분자들은 미리 결정할 수 있는 순간과 만날 "운명"에 있을 것이며 이 순간에 미리 결정된 속도로 변화가 진행될 데지만, 속도 반전의 순간에서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이다.
따라서, 속도 반전은 고도로 조직화된 체계를 창조하게 되며, 분자의 혼돈적 거동이란 가정은 맞지 않는다. 다양한 충돌은 마치 미리 설정된 화음에 의한것처럼, 분명히 의도적인 거동을 낳는다.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질서로부터 무질서로의 전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에른훼스트의 항아리 모델 실험에서 보면, 이 점은 명백하다-대상계는 균일성에 이를 때까지 진화할 것이다. 그러나 그밖의 상황은 그리 명료하지 않다 : 사람들은 컴퓨터 모사 실험을 해볼 수 있으며, 이로부터 서로 상호작용하는 입자들은 초기에 무작위로 분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시간에 맞게 격자가 형성된다. 아직도 질서로부터 무질서로 이동하고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분명하지 않다. 질서와 무질서를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이들 개념을 사용하는 관점에서 대상을 정의해야만 한다 : 동력학으로부터 열역학적 대상으로 관심 대상의 이동은 희석되어 있는 기체의 경우에는 다소 쉽다 - 그러나, 볼츠만의 연구에서 볼 수있듯이. 분자들이 서로 상호 인력을 지니는 것처럼 밀도가 높은 대상계의 경우에는 그리 쉽지가 않다.
그와 같은 어려움 때문에, 볼츠만의 창조적이며 선구자적인 업적은 불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다.동력학과 열역학 : 두 분리된 세계이미 언급하였듯이 궤적은 비가역성의 개념과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궤적의 연구만이 동력학의 체계화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경로는 아니다. 여기에는, 깁스와 아인슈타인18)에 의해 도입된 앙상블 이론이 있으며, 이 이론은 매우 많은 수의 분자로 이루어진 대상계에 대해 특별한 관계가 있다. 깁스-아인슈타인 앙상블 이론에서 핵심적인 새로운 요소는 초기 조건의 엄밀한 정의에 관계없이 동력학적 이론을 세울 수 있는 점이다.18) J . W . Gibbs, Elementary Prindples in Statistical Mechanics ( New York : Dover Publications, 1960), 제XII장. 역사적 관접에 대해서는 J. Mehra의 Einstein and Foundation of Statistical Mechanics, Physica, Vol. 79A, No,5(1974), p,17을 참고할 수 있음.
앙상블의 이론은 “위상공간" 내의 동력학적 대상계를 나타낸다. 어떤 점입자의 동적 상태는 위치 (3성분을 갖는 I개 벡터)와 운동량(역시 3성분을 갖는 I개 벡터)에 의해 설정된다. 사람들은 이와 갇은 상태를 두 가지 관점에서 나타낼 수 있는데, 이는 3차원 공간의 2점이나 좌표와 운동량으로 이루어진 6차원 공간의 한 점으로 나타난다. 바로 위상공간이다. 이와 같은 기하학적 표현은 n개의 입자로 이루어전 임의의 대상계로 연장할 수 있다. 이때에는 대상계의 상태를 규정하기 위하여 nx6 배수가 필요하거나 또는 이 대상계를 6n-차원 위상 공간 내의 한 접에 의해 대체시켜 나타낼 수 있다. 그와 같은 대상계의 시간에 대한 진화는 위상공간 내의 임의 궤적에 의해 나타낼 수 있다. 이미 언급하였듯이 한 거시적인 대상계의 정확한 초기 조건은 결코 알 수 없다. 물론 이 대상계를 점들의
"앙상블”에 의해 나타내는 데는 아무것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이름하여, 여러가지 동적 상태에 대응하는 점은 대상계에 관계했던 정보와 짝을 이룰 수 있다. 위상공간의 각 영역은 무한수의 대표적인 점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의 밀도는 이 영역에서 대상계를 실제로 발견할 수 있는 확률을 측정해 준다. 불연속적인 점의 무한수를 도입하는 대신, 위상 공간상의 대표적인 접의 연속적인 밀도분포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 보다 편리하다. 위상 공간 내의 이 밀도분포 p를 p(q1, • • ·, Q3n, P1, • • ·, p3,,)이라하면 여기서 q1, q2, • • • , q311은 n점의 좌표이며, 유사하게 P1, P2, • • • , P3n은 운동량이다(각 점은 3개의 좌표와 3개의 모멘트를 갖고 있다) . 이 밀도는 위상공간 상의 점 q1, • • • , Q3,i, P1, • • • , P3n 주위에서 임의의 동적인 대상계를 발견할 수 있는 확률분포를 측정해준다.
이와 같은 방법의 전개에 의하면, 밀도함수 p는 인위적으로 설정하는 이상화로 보이며, 반면에 위상공간 상의 임의의 점의 궤적은 자연스런 거동을 "직접적으로” 정의하는 것에 상응한다. 그러나 사실상 이는 점이며, 어떤 이상화에 상응하는 밀도는 아니다. 실제로, 위상공간상의 임의의 영역을 단일한 점으로 간단히 할 수 있는 무한한 정도까지의 초기 상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 우리들은 단지 대상계의 초기 상태에 관하여 알고 있는 것에 상응하는 대표적인 점의 앙상블로부터 출발하여 궤적들의 앙상블을 결정해낼 수 있을 따름이다. 밀도함수 p는 대상계에 관한 지식을 나타내며, 이같은 지식이 정확하면 할수록 밀도 함수가 0이 아니며, 대상계를 발견할 수 있는 위상공간에서 해당 영역은 점점더 작아진다. 모든 곳에서 밀도함수가 균일한 값을 가져야 한다면, 대상계는 대상계의 동적 구조에 조화되는 어떤 가능한 상태 중의 한 가지 상태에 있게 된다.이와 같은 관점에서, 한 개의 점이란 어떤 대상계에 관해서 사람들이 알 수 있는 최대의 지식을 나타낸다. 이는 어떤 제한된 과정의 결과이며 늘 성장하는 정확성의 결과이다. 제9장에서 볼 수 있듯이, 근본적인 문제는 그와 같은 제한된 과정이 실제로 가능할 때 계의 상태를 결정하는 일이다. 점증되는 정확도를 통하여, 이 과정은 바로 밀도함수 p가 0이 아닌 영역으로부터 다른 영역으로 옮아가는 것을 뜻하며, 옮아가기 이전 영역 속의 보다 작은 영역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일은 대상계를 포함하고 있는 영역이 매우 작아질 때까지 계속할 수 있다. 그러나, 뒤에서 볼 수 있듯이, 다음과 같은 주의를 요한다 : 아무리 작다 할지라도 0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선험적으로 이와 갇은 제한 과정이 어떤 단일한 잘 정의된 궤적을 일관성 있게 예측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확실히 이르게 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깁스와 아인슈타인의 앙상블 이론의 도입은 볼츠만 업적의 자연스런 연속이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위상 공간상에서 밀도함수 p는 볼츠만에 의해 사용한 속도 분포함수 f와 대치된다. 그러나, p의 물리적 의미는 f의 것보다 더 폭이 넓다. f처럼, 밀도함수 p는 속도분포를 결정해 주지만, 어떤 특정한 거리로 떨어져 있는 두 입자들이 만날 수 있는 확률과 같은 다른 정보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입자 사이의 상관관계는 앞절에서 거론된 것처럼, 이제는 밀도함수 p에 포함된다. 사실상 이 함수는 n -물체 대상계의 모든 통계적 양상에 관한 완전한 정보를 포괄하고 있다.이제부터 위상공간상의 밀도함수의 진화를 기술하여 보자. 언뜻 보아, 이는 볼츠만 자신이 속도 분포함수에 대해 지녔던 야심보다도 더욱 야망에 찬 작업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지 않다. 제2장에서 토의된 해밀돈 방정식은 어떤 더이상의 근사적인 조작 없이 정확한 전화 방정식을 도출해낼 수 있게 해준다. 이는 소위 리오빌 방정식으로 부르며, 이에 관해서는 제9장에서 다시 거론하기로 하자. 여기서는 그저 단순히 해밀톤 동력학의 영역에 따르면 위상공간상의 밀도함수의 전화는 비압축성 유체의 전화를 암시하고 있음을 지적해 두자. 일단 위상공간상의 부피V의 임의 영역을 대표적인 점들이 차지할 때, 이 부피는 시간에 대해 상수로 남아 있다. 영역의 모양은 제멋대로 변형될 수 있다. 그러나, 부피의 절대값은 동일한 상태로 남아 있다.앙상블에 대한 깁스 이론은 통계적 관점 (p에 의해 정의되는 "집단" 밀도의 연구)과 동력학의 제법칙들 사이의 결합을 가능케 한다. 또한 열역학적 평형 상태에 대한 보다 정확한 표현을 허용한다. 따라서, 어떤 고립되어 있는 대상계의 경우에, 대표적인 점들의 앙상분은 동일한 에너지 E를 갖는 모든 대상계에 대응한다. 밀도는 위상 공간상의 특정한 에너지값에 상응하는 "미시정준 표면 (microcanonical surface)" 상에서만 0이 아니다. 처음에, 밀도는 이 표면에 무작위로 분포되어 있다. 평형에서 p는 더이상 시간에 따라 변화되어서는 안되며 특정한 초기 상태에 독립적 이어야 한다. 따라서 평형을 향한 근접은 p의 전화의 측면에서 볼 때 단순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p
그림 28. 임의 대상계의 대표점들이 들어 있는 "부피”의 위상공간에서 시간진화 : 이때 부피는 보존되는 반면 모양은 변형된다. 위상공간에서 위치는 좌표 q와 운동량 p에 의해 규정된다.
p의 분포함수는 미시표준 표면을 통하여 균일하게 된다. 이 표면상의 각 점은 실제 대상계를 대표할 수 있는 동일한 확률을 갖고 있다. 이는 “미시정준 앙상블”에 상응한다.
앙상블 이론은 비가역성 문제를 해명하는 데 보다 가까이 우리들을 데려다 주었는가? 볼츠만의 이론은 열역학적 앤트로피를-속도 분포함수 f의 관정에서 서술한다. 그는 결과를 HG 양의 도입을 동하여 이룩하였다. 이미 보아왔듯이, 대상계는 시간에 대하여 막스웰 분포에 이를 때까지 진화하는 반면, 이 진화 기간 동안 H 양은 균일하게 감소한다. 이제 우리는, 보다 보편적 양상으로, 위상 공간상의 분포의 진화를 엔트로피 증가의 기초로서 미소정준 앙상블에 대해 예측할 수 있는가? 아마도 f함수로 표현하는 볼츠만의 H 양을 정확히 똑같은 방법으로 정의한 "깁스”의 H양으로 바꾸어 줌으로써 충분할 것이지만, 이 경우 p의 함수를 사용해서가능할 수 있다는 뜻인가? 불행히도 그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이다. 만약 리오빌 방정식을 사용한다면, 이는 위상 공간상의 부피의 보존을 고려하고 있으나, 결론은 자명하다 : Hc는 상수이며 따라서 엔트로피를 표현해 줄 수 없다. 볼츠만에 대해 본다면, 이는 한발짝 앞으로 나아가기보다는 오히려 한발짝 뒤로 물러선 것처럼 보인다!
비록 부정적이지만, 깁스의 결론은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남아 있다. 이미 질서와 무질서 개념의 모호함에 대해 토의하였다. HG의 항시성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데 따르면 동력학적 이론의 틀이 어떠하든간에 질서에의 변화란 없다! Hc에 의해 나타낸 “정보’’는 상수일 뿐이다. 이는 다음과같이 이해할 수 있다 : 이미 보았듯이 충돌은 상관관계를 끌어들인다. 속도의 관점에서 볼 때, 충돌의 결과는 무작위화이다. 따라서 이 과정을 질서로부터 무질서로의 전이로 정의할 수 있으나 반대 방향의 충돌의 결과로서 상관 관계의 출현이란 무질서로부터 질서를 향한 전이로 간주할 수 있는가!깁스의 결과로는 이 두 가지 영향은 서로가 정확히 상쇄된다. 따라서 한 가지 중요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어떤 표현을 사용하든간에, 이것이 궤적의 개념이든 또는 깁스-아인슈타인 앙상블 이론이든간에, 고전 (또는 양자)동력학의 제법칙을 만족시키는 모든 대상계에 대하여 효력을 지닐 수 있는 어떤 비가역 과정의 이론을 결코 연역해낼 수 없다는 결론이다. 질서로부터 무질서로의 전이라는 말조차 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어떻게 이들 부정적 결과를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 비가역 과정에 대한 어떤 이론도 동력학(고전 또는 양자)과 완전히 상충되는가? 종종 제안된 것으로 운동 방정식에 대하여 팽창하는 우주의 영향을 나타내기 위한 일련의 우주적인 항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주론적 항은 궁극적으로는 시간의 화살을 제시해 줄 수 있으리라. 그러나, 이와 같은 일은 용인되기가 어렵다. 한편, 어떻게 이들 우주론적 항을 첨가시켜야 할지가 분명치 않다. 또 한편으로, 정밀한 동력학적 실험은 그와 같은 항의 존재를 기각시켜 버리는 듯하다. 적어도 여기서 관심을 갖고 있는 지구상의 척도에 대해서 말이다(예를 들면, 우주 실험 여행의 정밀성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로써 뉴톤의 방정식은 매우 정확한 수준으로 확인된다). 반면에, 이미 언급하였듯이, 우리는 가역 및 비가역 과정이 공존하고, 이 모든 것들이 팽창되는 우주 속에 새겨넣어져 있는 다원론적 세계에 살고 있다.
더더욱 성급한 결론은 비가역성으로서의 시간은 물리학의 세계에서 그 거처를 결코 발견할 수 없는 환상이라는 것을 아인슈타인과 같이 확인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다른 분출구가 존재하며 제9장에서 다루게 될 것이다. 반복해서 언급하였듯이 비가역성은 어떤 보편적 성질이 아니다. 따라서 동력학으로부터 비가역성에 대한 어떤 보편적 도출도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깁스의 앙상블 이론은 궤적의 동력학에 대하여 단지 한 개의 여분의 성질을 도입하고 있지만, 이는 매우 중요한 것의 하나이다-엄밀한 초기조건에 대한 무지이다. 이와 같은 무지 하나만으로 비가역성에는 도달할 수 없다.따라서, 이같은 실패에 관해 놀라서는 안된다. 임의의 동력학적 대상계가 소지하여야 하는 특정한 양상이 비가역과정에 이르기 위한 어떤 체계화 작업도 다루지 않았다. 어찌하여 그다지도 많은 과학자들이 비가역성의 주관적 해설을 쉽사리 받아둘이게 되었는가? 앞서 보아 왔듯이 아마도 그렇게 받아들이도록 이끌렀던 것은 사실상 엔트로피의 비가역적 증가는 처음에는 사람들의 불완전한 조종과-~이상적으로는 가역적인 조작에 대한 - 동제력의 결핍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이다.그러나 이와 같은 해설은 기술적인 문제와 부적합한 연관을 곁에 그대로 제쳐놓자마자 그릇되고 말았다. 자연의 시간 화살로서 제2법칙이 지니는 함축 의미를 주었던 배경 및 맥락을 잊어서는 안된다. 주관적 해석에 의하면 화학적 친화력, 열전도, 점도, 이들 모든 성질은 비가역적 엔트로피 생성에 관계되어 있는 것이며 아마도 관측자에 의존되는 양이다. 더욱이, 생물학에서 핵심적 역할을 말고 있는 비가역성으로부터 유래되는 자기-구성 현상의 문제로의 연장은 주관적인 해설을 사람들의 무지에 기인되는 단순한 환상으로 도저히 간주할 수 없도록 한다. 우리 자신들은 ―관찰하고 교묘히 조정할 수있는 능력을 지닌 살아 있는 창조물――단순히 불완전한 지각능력에 의해 발생되는 허구에 불과한가? 살아 있는것과 죽음 사이의 구별은 어떤 환상이란 말인가? 따라서, 열역학적 이론의 최근의 발전은 동력학과 열역학 사이의 갈등의 횡포가 증가되는 결과가 되었다. 열역학의 결과 우리의 불완전한 지식의 탓으로 돌려 단순한 근사방법으로 간단히 해버리려는 노력은 엔트로피의 건설적인 역할이 이해되고 요동의 증폭의 가능성이 발견됨으로써 방향이 잘못 설정되어 버린 것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비가역성의 미명 아래 동력학을 거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 임의의 이상적인 단전자의 운동에서 비가역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분명히 두 개의 모순되는 세계가 존재하고 있는바, 궤적의 세계와 과정의 세계이며, 한 세계를 주장함으로써 다른 세계를 부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와 같은 상충되는 두 세계 사이에는 어느 정도 유사성이 존재하며 그 하나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출현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제5장 및 6장에서 기술하였듯이 자연을 어떤 "역사적인” 것으로 부르는 것이다-발전과 혁신의 능력을 지닌 세계이다. 유물론의 주요 부분으로 자연의 역사에 관한 아이디어는 맑스에 의해 주창되었으며 더더욱 심도깊게 엥겔스에 의해 간파되었다. 현대물리학의 발전, 비가역에 의해 기능하는 건설적 역할의 발견은 자연과학 사이에서 유물론자들에 의해 오랜 동안 제기되었던 의문을 다시 일게 하였다. 그들에게 있어 자연의 이해는 인간을 존재케하는 능력과 인간 사회를 생성할 수 있는 능력의 이해를 의미한다.더욱이, 엥겔스가 그의 저술 『자연의 변증법 (Dialectics of Nature)』을 썼을 당시, 물리과학 분야는 우주의 기계론적 견해를 거부하였으며 자연의 역사적 발전 개념에 보다 밀접하게 위치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엥겔스는 세 가지의 근본적 발견을 언급하고 있다 : 에너지와 이의 질적변환을 지매하는 법칙들, 생명의 본질적 성분으로서 세포, 그리고 종의 진화에 관한 다윈의 발견이다. 이들 위대한 발견의 견지에서 볼 때, 엥겔스는 기계론저 우주 견해는 죽었다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계론은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직면하는 근본적인 난제로 남아 있다. 변증법의 보편적인 법칙과 기계론적 운동에 상응되는 보편적 법칙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후자는 어떤 특정한 단계에 도달된 후에는 더이상 응용력을 "상실"하거나, 또는 그들은 단순히 잘못되었거나 불완전하다는 의미인가 ? 앞의 질문에 되돌아가기 위해서, 과정의 세계와 궤적의 세계는 어떻게 함께 연계될 수 있는가? 19).
I9) 많은 맑스주의적 철학자들은 Engels(Lenin이 그의 Plzilosop/zic Notebooks에서 인용했던)가 그의 저술 Anti-Duhring(Moscow : Foreigh Languages Publishing House, 1954)의 I67 페이지에서부터 기술하고 있는 다음의 문장으로부터 감화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Motion is a Contradiction : 어떤 위치의 단순한 역학적 변화라 할지라도 한 개로 존재하는 하나의 문체와 한 장소나 또다른 장소 모두에서 시간의 동일한 순간을 몽하여 발생할 수 있으며, 하나 속에 존재하는 물체라 하더라도 갇은 장소에서 또한 그 장소에 속하지 않는 순간을 통해서 변화된다. 이와 같은 모순의 연속적 연립적 해답이 엄밀한 의미에서 운동을 의미한다.”
그러나, 비가역성의 주관적 해석을 바판하고, 그 유약한 점을 공격하기는 쉬운 일이지만, 이같은 상황을 초월하고 비가역 과정의 객관적 이론을 체계화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주제에 대한 역사는 몇 가지 극적인 부대적 의미를 갖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믿기로는 이는 바로 수반되는 기본적인 어려움의 인식 자체이며, 이 상황은 1906년 볼츠만을 자살하도록 강요한 장본인이다.
볼츠만과시간의 화살이미 언급하였듯이, 볼츠만은 처음 시간의 화살은 동력학적 대상계가 보다 높은 확률의 상태 또는 높은 수치의 양상을 향한 전화개념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었고 이를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 시간에 따라 양상의 수는 한 방향으로 증가할 것이다. 우리는 또한 뿌앙카레와 제멜로의 반대에 관해 토의한 바 있다. 뿌앙카레는 시간에 대해 반전하는 모든 닫혀 있는 동적 체계는 바로 직전의 상태로 향한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였다. 따라서 모든 상태는 영원히 부활된다. "시간의 화살”로써 어찌하여 그와 같은 일이 엔트로피 증가와 상관이 가능한가 ? 이 사실은 볼츠만의 생각을 극적으로 바꾸어 버리는 결과에 이르게 되었다. 그는 시간의 객관적 화살이 존재한다는 가설을 증명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고 그 대신,어느 면에서는, 엔트로피 같은 말의 반복(tautology)으로 단순화하려는 아이디어를 도입하게 되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시간의 화살이란 단순히 우리들(아마도 살아 있는 모든 창조물)이 과거와 미래 사이에 어떤 객관적 구별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 도입한 규약이었다. 제멜로에 대한 볼츠만의 답신을 인용해 보자 :
우리들은 두 가지 그림의 선택권을 갖고 있습니다. 그 두 가지 모두가 전체 우주는 현재 있을 법하지 않은 상태에 있다고 가정하는 것 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또한 가정하기를 이갇이 있을 법하지 않은 순간이 지속되고 무한히 간 영겁의 시간, 그리고 지구로부터 천랑성 (Sirius)까지의 거리는 우주 전체의 연대나 크기에 비한다면 어떤 촌음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와 같은 우주, 전체로서 열적 평형에 있고 그러므로 죽어 있는 세계는 우리들 은하계의 아주 작은 영역의 여기 저기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 이들 작은 영역은(사람들은 이을 “우주들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들 "영겁”의 시간의 바교적 짧은 간격에 대해 열적 평형으로부터 상당히 벗어나 있을 수 있습니다. 이들 우주에서 상태 (즉, 엔트로피)는 그들이 가끔 감소하였던 것처럼 증가할 것입니다. 전체 우주 속에서 시간의 두 방향은, 마치 우주공간에서 위 아래가 없는 것처럽, 도저히 구분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치 지구 표면상의 특정한 위치처럼 사람들은 지구중심을 향하여 “아래 쪽에 있다고 부를 수는 있으며, 어떤 특정한 시간에 그와 같은 세계에서 그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는 임의의 살아 있는 유기체는 시간의 방향을 덜 있을 법한 상태로부터 보다 있을 법한 상태로(전자는 "과거"일 것이며 후자는 “미래"일 것이다) 옮아가는 것으로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며, 이와 같은 개념의 덕택으로, 사람들은, 나머지 우주로부터 고립되어 있는 자신의 작은 영역이, "초기에는" 언제나 있을 법하지 않은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사물을 보는 이같은 방법은 열역학 제2법칙의 효용성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되며 또한, 각 세계가, 어떤 특정한 초기상태에서 최종상태로 전체 우주가 단일 방향으로 변화한다는 구상 없이, 열적 죽음의 상태에 이르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가능한 방법의 하나로 예견됩니다.20)
20) L. Boltzmann, Lectures on Gas Theory (Berkeley :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64) , p446f . K. Popper의 Unended Quest (La Salle, Ill. : Open Court Publishing Company, 1976), p. 160에서 인용되고 있다.
볼츠만의 생각은 포퍼 (그림 29)가 제안한 그립을 봄으로써 보다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시간의 화살은 중력장에 의해 결정하는 수직 방향처럼 임의적이다.
왼쪽으로만뻗어가는 오른쪽으로만뻗어가는
그림 29. 볼츠만의 시간 화살의 우주론적 해설에 대한 포퍼의 개략적 표현(본문 참조).
볼츠만의 저술에 논평하면서, 포퍼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 나의 생각으로는 볼츠만의 아이디어는 실로 대담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가득 차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역시 나의 생각으로는 적어도 현실주의자로서 더이상 이를 지탱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바로 히로시마 대재난의 환상을 연상케 합니다. 따라서 그와 같은 아이디어는 우리의 우주를 어떤 환상으로 만들어 버리며 또한 이와 함께,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에 관해 무엇인가 보다 더 알아내려는 모든 노력을 가
능케 합니다. 이는 따라서 자기 패배입니다(모든 이상주의처럼). 볼츠만의 이상적인 설상가상의 가설은 그 자신의 현실주의와 충돌하며 거의 열정적으로 반이상주의적 철학을 유지시켜 주었으며 보다 많이 알려는 열정을 지켜준 것입니다.21)
21 ) Popper, 앞에 인용한 문헌 20의 p . 160으로부터.
포퍼의 논평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볼츠만의 업적을 다시 한 번 화제로 삼아야 할 시간이라고 믿어진다. 우리가 말했듯이 20세기는 이론 물리학에 엄청난 개념적 혁명을 가져왔으며, 이로부터 동력학과 열역학의 통합을 위한 새로운 희망을 낳았다. 이제 역사적 시간의 새로운 기원에 돌입하였으며, 있음과 됨 모두가 내재하는 그 기원은 어떤 단일의 비모순적인 견해와 병합될 수 있다고 본다.
제9장
비가역성―엔트로피 장벽엔트로피와 시간 화살앞 절에서 우리는 바가역 과정의 미시적 이론이 지니는 몇 가지 어려움을 기술하였다. 그것이 고전적이든, 양자론적이든 동력학과의 관계는 간단할 수 없으며, 그와 갇은 측면에서 비가역성과 이에 대응하는 엔트로피 증가는 동력학의 보편적 결과가 될 수 없다. 비가역 과정의 미시적 이론에는 보다 부가적인 특정한 조건이 요구될 것이다. 우리는 가역 및 비가역 과정이 공존하는 임의의 다원론적 세계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물론 아직까지 그와 갇은 다원론적 세계는 받아들이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볼데르는 그의 저술 『철학자전 (Dictionnaire Philosophique)』에서 운명에 관해 아래와 같이 기술하고 있다 : ……모든 것은 불변의 법칙에 의해 지배된다…… 미리 짜여져 있고 …… 원인이 필요하다…… 세상에는 이 진실에 놀랄 사람들이 많다. 채권자에게 빚의 반만을 갚게 해 달라는 채무자처럼, 나머지 모두를 갚을테니 시간을 더 달라는 사람들처럼, 그 진실의 반을 인정한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세상에는 필요한 사건과 그렇지 않은 사건이 있다고 한다. 이미 발생된 것의 임의 부분은 반드시 발생했어야 했었고 다른 부분은 발생하지 않았어야 한다고 하면 이는 매우 낯설기 짝이 없다…… 필시 나는 이같은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쓰지 않으면 안되고, 당신들은 나를 꾸짖어야 하는 열정을 반드시 지니고 있어야 한다 ; 우리는 모두가 똑같이 어리석고, 그 두 가지 장난감 모두는 운명의 손에 쥐어져 있다. 당신의 본성은 악하지만, 나는 진실을 사랑하며 당신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출간해야 한다.I)
1) Voltaire, Dictionnaire Philosophique(Paris : Gamier, 1954).
그와 같은 선행적 논거는 아무리 설득력 있게 들린다 할지라도 사람들을 방황하게 할 것이다. 볼테르의 추론은 뉴톤에 해당한다. 자연은 항상 그 자체에 순응한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오늘날 우리는 자신이 볼테르에 의해 나타나는 질적인 다양성을 발견케 되는 데 대하여 깜짝 놀라고 말았다.
사람들이 두 가지 극단 사이에서 망설이고 있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 이미 언급하였듯이,2) 그 두 극단은 아인슈타인에 의해 주창된 물리학으로부터 비가역성을 배제시키는 것과, 반대로 과정에 대한 화이트헤드의 개념처럼 비가역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국단이다. 비가역성은 거시적 차원에 존재하고 대단히 중요한 건설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은 이미 제5장 및 6장에서 보았던 것처럼 의심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세상에는 미시적 세계 속에 거시적 비가역성이 반드시 존재할 것이다.2) 제7장을 참조할 수 있다.
미시적 이론은 두 가지 서로 밀접하게 관계된 성분을 반드시 고려에 넣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시간에 맞추어 균일하게 변화하는 엔트로피(볼츠만의 H함수)에 대한 어떤 미시적 모델을 설정하기 위한 노력도 볼츠만 개념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와 갇은 변화는 우리들의 시간의 화살을 정의하도록 만든다. 고립되어 있는 계에 대한 엔트로피의 증가는 대상계의 늙어가는 상태를 나타내야만 한다. 종종 우리는 고려하는 과정의 형태와 함께 엔트로피에 관계짓지 않은 상태에서 시간의 화살을 가질 수는 없는 일이다. 포퍼는 단일 방향성 과정, 그러므로 시간의 화살을 나타내는 임의의 단순한 대상계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
초기에 정지해 있는 넓은 물의 표면에 한 개의 돌이 떨어질 때의 표면을 촬영한 필름을 생각해 보자. 필름을 거꾸로 돌릴 때, 증폭이 증가되면서 수축되는 동그라미 모양의 파동을 볼 수 있다. 더욱이, 파동의 최고 절정 직후에, 방해받지 않은 물의 동그라미 영역은 중심을 향해 근접해 가고 있을 것이다. 필름에서 볼 수 있듯이 한 개의 중십접으로부터 유발되는, 또한 설명이 가능한, 파동의 연속을 짜임새있게 될 수 없는 거리로 유발하는 유도체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은 만약 감겨진 필름을 거꾸로 돌린다면, 똑같은 어려움을 야기시킨다.3)
3) K. Popper, The Arrow of Time, Nature, Vol. 177(1956), P.538.
사실상, 기술적인 수단이 무엇이든간에, 중심으로부터 일정한 거리가 존재한다. 그들 과정에는 단일 방향성 과정이 존재하는데, 그 중심을 초월해서는 수축되는 파동을 촉발할 수 없다. 포퍼가 발표한 형태의 다른 많은 과정을 상상해 볼 수 있다 : 모든 방향으로부터 오는 에너지가 이를 흡수하는 반대방향으로 치닫는 핵반응과 함께 어떤 별 하나에 집중되는 상황을 결코 무시해 버릴 수 없다.
부가적으로, 세상에는 다른 시간의 화살이 존재한다-예를 들면 우 주 화살이다(가드너의 우수한 논증을 보라) 4) 만약 우주가 어떤 대변혁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가정하면, 이는 분명히 우주론적 차원의 순간적 질서임을 암시한다. 우주의 크기는 계속해서 증가하지만, 엔트로피로 우주의 반경을 입증해낼 수는 없다. 사실상, 이미 언급한 바, 팽창하는 우주 속에서 우리는 가역 및 비가역 과정 모두를 발견한다. 비슷하게 기초소립자 물리학에서는 소위 T-위배로 칭하는 현상적인 과정이 존재한다.4) M. Gardner의 The Ambidextrous Universe, p.271-72를 참조할 수 있다.
T-위배에서 시간 +t에 대해 대상계의 진화를 정의하는 방정식은 시간―t에 대한 진화를 규정하는 방정식과 서로 다르다. 그러나 이 T-위배는 통상적인 동력학(해밀톤)의 체계에 이들 개념을 포함시키는 데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는다. T-위배의 결과로서 어떤 엔트로피 함수도 정의될 수 없다.
우리는 1905년5) 아인슈타인과 리쯔 사이에 행해졌던 유명한 토론을 상기시키고 싶다. 이 토론은 반 페이지도 안되는 대단히 짧은 아주 기이한 논문으로 남아 있다. 이 논문은 불일치에 관한 단순한 언급일 따름이다.
5) A. Einstein and W. Ritz, Phys. Zsch., Vol. 10(1909), p.323.
아인슈타인은 비가역성은 볼츠만에 의해 도입된 확률개념의 결과일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반대로, 리쯔는 "퇴화된" 파동과 "전진된" 파동의 구분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구분은 우리로 하여금 포퍼의 논거를 회상케 한다. 연못에서 관찰하는 파동은 “퇴화"된 파동이다 ; 그들은 돌을 떨어뜨리는 것에 따른다.
아인슈타인과 리쯔 모두는 비가역성의 토론에 서로 핵심적인 요소를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각각은 단지 이야기의 한 부분만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제8장에서 이미 다루었듯이 확률은 시간의 방향을 미리 가정하고 있으며 따라서 시간의 화살을 유도하는 데 사용될 수 없다. 또한 우리가 언급한 것처럼 전전된 파동과 같은 과정을 재외하여도 제2법칙의 체계화에 필연적으로 도달될 수는 없다. 우리는 두 가지 형태의 논거 모두가 필요하다.대칭성파괴 과정과 비가역성비가역성의 문재를 토의하기에 앞서, 어떻게 또다른 형태의 대칭 파괴과정인 공간대칭 파괴를 도출할 수 있는가에 관해서 기억해 두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된다. 반응 확산계를 기술하는 방정식에서 왼쪽과 오른쪽은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공간 반전 r→-r을 수행할 때 확산 방정식은 불변의 상태로 남는다) . 앞서 보았듯이, 아직까지도, 두갈래치기 현상들은 이와 같은 대칭이 파괴된 해답에 이를 수 있게 한다(제5장을 보라). 예를 들면, 몇 가지 성분의 농도는 오른쪽보다 왼쪽에서 보다 높아질 수 있다. 방정식의 대칭성은 단지 대칭 파괴의 해답이 짝으로 나타나는 경우만 요구된다.물론, 여러 종류의 반응-확산 방정식들은 두갈래치기 현상을 나타내지않으며 그 결과 공간대칭을 파괴할 수 없게 된다. 공간대칭의 파괴에는 고도로 특정한 조전들이 요구된다. 이와 같은 일은 시간에 따른 대칭-파괴를 이해하는 데 소중한 것이며 이 점은 바로 여기서 우리들이 주로 관심을 갖고 있는 사항이다. 우리들은 운동 방정식들이 낮은 준위의 대칭을 이룰 수 있는 대상계들을 알아내야만 한다.
위에 언급한 운동 방정식들은 시간 반전 t→-t에 대하여 사실상 불변의 상태로 남게 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방정식들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것은 대칭성을 잃어버리는 전화에 상응되는 것이다. 방정식의 대칭에 의해서 부과되는 유일한 조건은 그와 같은 결과가 짝으로 나타나야 하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만약 우리들이 멀리 떨어져 있는 미래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과거가 아닌)에 평형에 도달하게 되는 한 개의 해를 얻게 되면, 우리들은 또한 반드시 멀리 떨어져 있는 과거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미래가 아닌)에서 평형에 이르는 나머지 해를 반드시 발견하여야 한다. 대칭이 파괴된 해둘은 짝으로 나타난다.일단 그와 같은 임의의 상황을 발견하기만 하면 우리들은 열역학 제2법칙의 본래의 고유한 의미를 표현해낼 수 있게 된다. 열역학 제 2법칙은 우주 내에서 위에 언급한 두 가지 형태의 해 중에서 어느 하나를 달성할 수 있거나 또는 관측할 수 있으리라는 사실에 관하여 무엇인가 언급할 수 있는 임의의 선택 원리가 된다.언제든지 제 2법칙을 적용할 수만 있다면 제 2법칙은 우주가 본질적으로 두 극단으로 분국되어 있다는 사실을 표현해 준다. 제 2법칙은 결코 동력학 자체의 산물일 수는 없다. 열역학 제 2법칙은 동력학에 의해 파급되어 이룩된 보충적인 선택 원리의 하나로 나타내야만 한다.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그와 갇은 구상을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간 동력학은 괄목할 만한 진전을 이룩하였으며, 이제 사람들은 어떻게 이들 대칭-파괴 해들이 "충분히 복잡한" 동력학적 체계에서 출현될 수 있는가를 보다 면밀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미시적 수준의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해 표현되는 선택 규칙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점은 바로 우리가 이 장의 다음 부분에 보이려는 주제이다.고전개념들의 한계
고전역학으로부터 출발하자. 이미 언급한 바, 만약 궤적이 근본적으로 더이상 간단히 할 수 없는 요소가 된다면, 이 세계는 아마도 궤적이 형성되는 결과처럼이나 가역적이었을 것이다. 이와 갇은 정의에서 엔트로피나 시간의 화살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예기치 않았던 최근의 발전의 결과로서, 궤적 개념의 유효도는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보다도 훨 씬더 제한되어 있다. 제7장에서 소개한 깁스와 아인슈타인이 많은 수의 입자로 구성되어 있는 대상계의 초기조전의 알 수 없는 상황을 고려해 주기 위하여 물리학에 위상공간을 도입하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에게는, 위상공간의 분포함수는 합법적으로(de jure) 잘 정의된 임의의 상황의 실제적인 (de facto) 무지를 표현하기 위한 유일한 보조함수였다. 그러나, 전체 문제는, 마치 어떤 특정한 부류의 대상계에 대해서 무한히 정밀하게 조기조전을 결정하는 것은 자기 모순적 단계에 이르게 한다는 사실을 보였던 것처럼 새로운 차원에 서게 되었다. 일단 문제가 이러할진대 집단이 아니고서는 그 집단을 이루는 어떤 단일한 궤적도 결코 알 수 없다는, 위상공간상의 궤적의 앙상불만이 가능하다는 전제는 우리들 지식의 한계에 대한 어쩔 수 없는 표출이다. 이 점은 바로 새로운 방법으로 동력학을 연구하는 출발점이 된다.
v
b)
그림 30. 임의 공간 내의 단전자의 운동을 나타내며 여기서 V는 속도. 는 편향각도이다. (a) (v. ) 공간상의 대표적인 궤적들 ; (b) 빗금친 부분은· 진동에 해당한다 : 그 밖의 영역은 회전에 대응된다.
단순한 경우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점은 사실이다. 단진자의 예를 들어 보자. 단전자는 초기조건에 따라서 진동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축 주위를 회전할 것이다. 회전하고 있으므로, 운동에너지는 충분히 커서 단전자가 수직의 위치에 도달하기 전에 "뒤로 밀칠 것”이다. 이와 같은 두 가지 형태의 운동은 위상공간상에 두 개의 서로 소격된 영역을 정의한다. 이와 같은 이유는 대단히 단순하다 : 회전은 전동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립 30을 보라).
만약 대상계가 처음에 어떤 주어진 영역에 있다는 사실을 측정할 수만 있다면, 단전자에 의해 나타나는 운동의 형태를 완전하게 예측할 수 있다. 우리들은 측정의 정확도를 증가시킬 수 있으며 단전자의 초기상태를 최초의 운동에 의해 선회한 작은 영역으로 편재화시킬 수 있다. 어느 경우에든, 모든 시간에 대한 대상계의 거동을 알고 있다 ; 어떤 새로운 것이나 예기치 못한 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20세기에 성취한 가장 놀라운 것 중의 하나는 그와 갇은 묘사는 일반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것아다. 반대로, “대부분”의 동력학적 대상계는 아주 불안정한 양상으로 거동한다선 한 가지 종류의 궤적 (예를 들면 진동의 것)을 +에 의해, 또다른 종류를(예를 들면 회전에 대응하는 것)*로 나타내자. 두 개의 영역이 분리되어 있는 그림 30 대신, 일반적으로 특이점의 전이를 모호하게 만드는 상태의 혼합을 발견한다(그림 3l을 볼 것).
6) H . Poincare , Les methodes nouvelles de la mecanique celeste (New York : Dover Publications, 1957) ; E. T. Whittaker, A Traetise on the Analytcal Dynamics of Particles and Rigid Bodies (Cambridge :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65).
만약 영역 A에 있는 대상계의 초기상태만을 알고 있다면. 이의 궤적이 +의 형태일 것이라는 사실을 연역해낼 수는 없다 ; 아마도 * 형태도 똑같이 가능하다. A로부터 영역 내의 보다 작은 영역으로 옮아감으로써 그 정밀도를 증가시킨다 할지라도, 불확실성은 그대로 남아 있가 때문에 아무것도 성취할 수가 없다. 비록 작기는 하지만 모든 영역에서는 언제나 궤적의 두 가지 형태 중 어느 하나에 속하는 상태가 존재한다.7)
7) J . Moser, Stable and Random Motions in Dynamical Systems (Princeton, N . J . :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4).
그와 같은 계에 대해서, 궤적은 관측할 수 없게 된다. 이와 같은 불안 정성은 뉴톤의 이상화 개념의 한계를 나타낸다. 뉴톤 체계의 동력학적 법칙과 초기조건의 두 가지 기본적인 요소의 독립성은 파괴된다 : 동력학적 법칙은 초기조건의 결정과 상충되는 상태에 돌입한다. 우리는 아낙사고라스(Anaxagoras)가 생각했던 풍부한 자연의 가능성과 같은 다른 방법을 상기할 수 있다. 그에게 있어, 모든 대상은 이를 이루는 부분에 무한히 중복되는 질적으로 완연히 다른 씨앗을 포함하고 있다. 여기서 또한, 위상 공간의 각 영역은 질적으로 서로 다른 여러가지 양태의 거동을 충분히 유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결정론적 궤적개념은 제한된 응용력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이론뿐만 아니라 실제에 있어서도 궤적의 수단에 의해서 대상계를 정의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만큼, 위상 공간상의 특정영역 (그러나작은)에 대응하는 분포함수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되는 관계로, 우리는 고작해야 대상계의 통계적 상황만을 미리 예측할 수 있을 뿐이다.
V
그림 31 . 동력학적 불안정성을-나타내는 임의의 대상계에 대한 위상 공간 V의 임의 영역, 또는 임의의 작은 구역에 대한 개략도. 단진자의 경우에서처럼, 두 가지 형태의 궤적이 존재한다(여기서는 +와 *로 표시). 그러나, 단전자와는 대조적으로, 두 가지 운동 모두는 임의의 작은 모든 영역에서 나타난다.
우리의 친구인 로젠펠드는 언제나 개념은 오로지 그들이 지니는 한계점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우리는 이제 제대로 고전역학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보이며, 이에 대한 체계는 현대과학의 경로에 찰 포장되어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와 같은 새로운 견해가 출현하게 되었는가? 여기서 금세기 동안 이루어진 동력학의 극적인 변화를 기술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록 이는 완전하고, 폐쇠되어 있는 지식분야, 그 자체의 원형으로 생각된다 할지라도, 동력학은 사실상 완전히 변모되어 버렸다.
동력학의 재음미
이 책의 첫번째 부분에서, 우리는 동력학의 정의를 이 분야가 I9세기에 체계화된 그대로 제시했었다. 이는 바로 많은 교과서에서 아직까지도 기술되고 있는 방법이다. 임의의 동력학계의 원형은 어떤 통합될 수 있는 체계였다. 운동방정식을 풀어내기 위해 우리는 단지 운동량이 움직임에 대해 불변인 것에 대응하는 "올바른" 좌표를 발견해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방법에서 움직이는 존재 사이의 상관관계는 소거된다. 그러나 이와 갇은 프로그램은 실패하고 말았다. 이미 언급하였듯이 19세기 말엽에 브런스와 뿌앙카레는, 유명한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대부분의 동적 대상계는 통합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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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2. 위상공간 P, q상의 임의의 세포에 대한 시간적 진화. 세포의 부피와 이의 형태로 시간에 따라 유지시킨 경우이다 ; 더욱이, 대부분의 위상공간은 대상계로 근접될 수 없다.
반면에, 앙상블 이론의 견지에서 평형에 근접되는 아이디어 자체는 우리로 하여금 통합 가능한 대상계의 이상화 개념을 초월할 필요를 제기했
다. 제8장에서 보았듯이, 앙상블 이론에 의하면, 임의의 고립되어 있는 체계는 어떤 “미소 정준적 앙상블”에 의해 나타낼 수 있을 때와 주어진 에너지 표면의 모든 점이 동일한 확률을 갖고 있을 때 평형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평형으로 진화되는 대상계에 대하여, 에너지는 계의 진화 동안에 보존되어야 하는 유일한 양이다. 에너지는 반드시 유일한 "불변”의 것이다. 초기조전이 무엇이든간에, 대상계의 진화는 그 진화가 주어진 에너지 표면의 모든 점에 이를 수 있도록 허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통합이 가능한 대상계에서, 에너지는 오로지 유일한 불변이 아니다. 사실상, 각각 보편화된 운동량은 상수로 남아 있으므로, 자유도에 상응하는 만큼의 불변의 양이 존재한다. 따라서 그와 같은 대상계는 모든 불변하는 양의 표
p
그림 33. 에르고드 대상계에 상응하는 입의 세포의 위상 공간상의 전형적 진화. 시간이 지날수록, "부피”와 형태는 보존되지만 세포는 위상 전체를 통하여 소용돌이친다.
면 사이의 상관관계에 의해서 형성하는 일정에너지 (그림 32를 보라) 표면의 대단히 작은 "분율” 내에 "갇혀" 있으리라고 예상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어려움을 피하기 위하여, 막스웰과 볼츠만은, 새롭고 전혀 다론 부류의 동적 대상계를 도입하였다. 대상계에서 에너지는 아마도 유일한 불변의 양이다. 그와 같은 계를 "에르고드(ergodic)" 대상계로 부른다(그림 33을 볼 것).
에르고드 대상계에 대해 위대한 공헌을 했던 많은 사람들 중에서 비초프, 노이만, 호프, 콜모고로프, 그리고 시나이 등 몇몇을 꼽을 수 있다.8)9)10) 오늘날 이와 갇은 에르고드계에 해당하는 많은 형태의 동적 (비록 해밀톤은 아니지만) 대상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또한 비교적 간단한 계조차도 에르고드性(ergodicity)보다 더 강한 성질을 가질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들 계에 대하여, 위상 공간상의 운동은 극도로 혼돈적으로 된다(반면 제7장에서 언급한 리오빌 방정식과 일치하는 일정 부피는 언제나 보존된다) . 가령 초기조건에 대한 지식이 위상 공간상의 작은 세포영역 내에 대상계를 국한시킬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 경우를 생각하자. 이 대상계의 전화단계 동안 관찰할 수 있는 점은 이와 같은 초기세포는 아메바처럼 뒤를리고 엉키면서 모든 방향으로 "의족(pseudopods)”을 뻗어가며, 점증적으로 번져나가 얇아지고, 종국에는 전체공간을 침범할 때까지 점점더 뒤틀린 필라멘트가 되어 간다는 것이다. 어떤 그림도 올바르게 상황의 복잡한 실재를 묘사할 수 없는 일이다.8) 일반적인 총선에 대해서는, J. Lebowitz and O. Penrose의 Modern Ergodic Theory, Physics Today (Feb, 1973) , pp . 23-29를 참조할 수 있다.
9) 보다 자세한 연구결과를 검토하기 위해서는, R. Balescu의 Equilibrium and Non-Equilibrium Statistcal Mechanics (New York : John Wiley & Sons, 1975)을 참조.10) V . Arnold and A . Avez, Ergodic Problems of Classical Mechanics (New York : Benjamin, 1968).사실상, 혼합계의 동력학적 진화과정 동안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위상 공간상에 점점더 밀집되는 두 가지의 점을 생각할 수 있다. 비록 대상계에 관해서 충분히 많은 정보를 갖고 있어 세포의 대표점에 의해 형성되는 초기세포는 대단히 작다 할지라도, 동적 진화는 이와
같은 세포를 위상공간을 통하여 필라멘트 조직망을 펼쳐가는 기하학적 "괴물”로 바꾸어 놓는다.
p
그림 34. 혼합 대상계에 상응하는 임의 세포의 위상 공간상의 전형적 진화. 부피는 아직까지 보존되지만 그 형태는 보존되지 못한다 : 세포는 점증적으로 전체 위상 공간을 통하여 번져 나아간다.
그림 35는 이와 같은 조작을 정사각형에 대하여 적용했을 때 발생하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들은 몇 가지 간단한 예와 함께 안정한 것과 불안정한 대상계들 사이의 구분을 증명해 보이고 싶다. 2차원의 위상 공간을 생각해 보자. 어떤 규칙적인 시간 간격에 대하여, 수평축상의 새로운 점은 p-q이며, 새로운 세로 좌표는 p이다.사각형은 변형되었지만, 그러나 여섯 번의 변환 후에 최초의 사각형으로 복구되었다. 그 대상계는 안정하다 : 인접하는 점은 또다른 인접하는
(0,1)
그림 35 . 불연속변환에 의해 유도된 위상 공간상의 임의부피의 변환 : 횡좌표 P는 p-q가 되고, 종좌표 q는 p가 된다. 변환은 주기적이다 : 6번의 변환 후 세포는 원상복귀된다.
점으로 변환되었다. 더욱이,이는 어떤 주기적 변환에 상응한다(여섯 번의 변환 후 초기사각형은 다시 나타난다).
이제 두 경우의 매우 불안정한 대상계를 생각해 보자-첫번째는 수학적인 것이고, 두번째는 분명히 물리적으로 적철한 것이다. 첫번째 대상계는, 분명한 명분 아래 수학자들이 반죽 변환"9)10)으로 부르는 변환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정사각형을 취하여 장방형을 평평하게 한 후, 장방형의 한쪽의 반과 다른 한쪽의 반을 각각 접어 정사각형을 만들자. 이와 같은 일련의 조작을 그림 36에 보였으며 누군가 원하는 만큼 여러 번 반복해도 좋다. 각 경우 사각형의 표면은 깨어지고 다시 재배치된다. 정사각형은 여기서 위상공간에 상응한다. 반죽 변환은 각점을 임의의 잘 정의된 새로운 점으로 바꾼다. 비록 이같은 방법에 의해서 얻어낸 일련의 점은 "결정론"적이나, 대상계는 덧붙여 더이상 간략히 할 수 없는 통계적 영향
q=1' \ q=1-=1
그림 36. 반죽 변환(B)의 시행과 이의 반전(B―). 두 지점의 경로는 변환의 개념을 제공해준다.
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사각형의 A-영역이 처음에 균일한 방법으로 대표적인 점들로 채워져 있는 것과 같은 초기조건에 의해 정의할 수 있는 대상계를 취하여 보자. 무수한 횟수의 변환을 반복한 후에, 이 세포는 크기 및 국부화가 어떠했든간에 조각으로 쪼개져 버릴 것(그림 37을 참조 바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다. 핵심적인 점은 이것이 크기가 어떻든간에 어떤 영역에든 존재할 것이고, 이로부터 서로 다른 조작에서 분산되는 다른 궤적을 언제나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비록 한 점의 진화는 가역적이고 결정론적이지만, 임의 영역의 정의는, 아무리 작다 하더라도, 원천적으로는 통계적이다.
쇠구슬과 같이 단단한 구형의 흩어짐도 이와 유사한 예에 속한다. 한 집단의 크고, 무작위로 분포된 구형들에 되튀는 작은 구형입자들을 생각할 수 있다. 큰 구형은 고정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를 네델란드의 유명한 물리학자 로렌쯔의 이름을 따 로렌쯔 모델”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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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7. 불안정한 대상계의 시간전화. 시간이 지날수록 영역 A는 A’와 A"영역으로 쪼개지고, 차례로 다시 나뉜다.
작은 움직이는 구형입자들의 궤적은 잘 정의되어 있다. 그러나, 초기조건에 아무리 작은 불확실성이라도 도입될 때면 언제나, 이와 같은 불확실성은 연속적인 차이에 의하여 증폭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주어진 공간상에서 작은 구형입자를 발견할 수 있는 확률은 균일해전다. 변환의 횟수가 어떠하든간에, 결코 초기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다.
이 두 가지 예에서 우리는 대단히 불안정한 동력학적 대상계를 경험하였다. 상황은 그들이 열역학적 대상계 (제5장을 참조할 것)에서 나타난 것처럼 불안정성에 대한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초기상태의 아무리 작은 차이라 할지라도 증폭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더이상 위상 공간상의 앙상블로부터 개별적 궤적의 전이조작을 이목할 수 없다. 앙상블의 관점에 의한 묘사는 마땅히 어떤 출발점으로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 통계적 개념은 더이상 객관적 진실”에 대한 단순한 근사개념일 수 없다. 이와 같은 불안장한 대상계에 직면할 때, 우리들처럼 라플라스의 비범성은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아인슈타인의 "신은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는 말은 잘 알려져 있다. 같은 뜻으로 뿌앙카레는 지고의 수학자의 입장에서 세상에 확률이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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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8, 커다란 공에 되뒤는 작은 구형의 궤적이 지니는 불안정성의 표현. 작은 구형의 위치에 대한 최소의 부정확성은 최초 충돌 후에 어떤 커다란 공을 때릴는지 예측이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
땅은 없다고 언급하였었다. 그러나, 뿌앙카레 자신은 이 문제에 관한 대답에 이르는 경로의 지도를 작성하고 있었다.11) 그에 따르면 사람들이 주사위를 던지고 확률대수를 즐길 때, 이는 동력학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의미는 아니었다. 확률개념을 적용하는 데 바로 초기조건의 각각의 간격이, 아무리 작다 하더라도, 주사위의 각각의 면에 이를 수 있는 "많은" 궤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불안정한 동력학적 대상계에서 발생하는 것과 아주 흡사하다. 신은, 그가 불안정한 동력학적 세계 속에서 궤적을 계산하기를 원했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다. 그는 아마도 우리가 사용가능 하도록 허용된 확률대수 계산의 결과와 똑갇은 결과를 얻었을 것으로 보
11) H . Poincare, "Le Hasard," Science et Methode (Paris : Flammarion, 1914), p.65.
인다. 물론, 그는 절대적인 지식을 사용하였을 것이고 모든 무작위성을 배제할 수 있었을 것이지만 말이다.
결과적으로, 불안정성과 확률간에는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점이며, 이제 이에 관해 토의하고 싶다.무작위에서 비가역성으로반죽 변환에서 사용했던 정사각형의 연쇄를 생각하자. 이와 같은 연쇄를 그림 39에 나타내었다. 빗금친 영역은 잉크로 채워져 있고 빗금치지 않은 부분은 물로 채워져 있다고 상상하자. 시간 0에서 우리는 분할개시 (generating partition)로 부르는 선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은 분할선으로부터 시작하여 미래로 진행될 때는 수평분할을, 또한 과거로 나아갈 때는 수직분할을 연속적으로 이루어 간다. 이때 이같은 분할은 기본적 분할이라 말할 수 있다. 정사각형 내의 잉크분포는 기본적 분할의 중첩으로 정의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분할개시점으로부터 고려하는 구간으로 진행하도록 하여야 하는 반죽 변환의 수인 “내부적" 시간을 각각의 기본적 분할로 관계지을 수 있다.12) 따라서 대상계의 이와 같은 형태는 일종의 내부연령을 인정하고 있음이다.*내부시간 T는 대상계의 전체위상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통례적인 역학적 시간과는 다르다. 이를 "공간의 시간화”라고 말할 수 있고, 따라서 최근에 지질학자들이 도입한 "측시 지질학(chronogeogrphy)"13)의 개12) B . Misra, I. Prigogine and M . Courbage, "From Deterministic Dynamics to Probabilistic Descriptions," Physica, Vol. 98A ( 1979) . PP. 1-26. *T라고 표기할 수 있는 이와 같은 내부적인 시간은 사실상 양자역학에서 도입하는 연산자와 같다(제7장 참조) . 실제로 사각형의 임의의 분할은 잘 정의된 시간을 갖 지 못하여 기본적 분할로부터 이루어지는 중첩에 상응하는 "평균적" 시간을 갖는 13다) .D .N.Parks and N.J.Thrift, Times, Spaces and Places : A Chronogeo-graphic Perspective(New York : John Wiley & Sons, 19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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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9. 시간0에서 분할개시”로부터 충발하여 반복적으로 반죽 변환을 적용하였다. 이와같은 방법에 의해 수평적 띠를 생성해낸다. 유사하게 과거로 진입함으로써 수직적 띠를 얻는다.
념에서 더 앞으로 나아간 아이디어에 근접된다. 우리가 어떤 마을이나 풍경을 바라볼 때, 상호작용하고 공존하는 일시적 요소를 볼 수 있다. 브라질리아 또는 폼페이는 아마도 잘 정의된 내부연령에 상응할지 모르며, 어느 면에서는 반죽 변환에서 기본적 분할에 버금갇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전혀 다른 시기에 축조된 빌딩을 갖고 있는 현대의 로마는 서로 다른 내부시간에 대응하는 성분으로 분해할 수 있는 분할로서, 엄밀한 의미의 평균시간에 상응할 수 있다.
다시 그림 39를 주시해 보자. 만약 멀리 떨어져 있는 미래로 계속 나아가면 무엇이 발생되겠는가? 잉크의 수평띠는 점점더 인접할 것이다. 측정의 정밀도가 어떠하든간에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에는 잉크가 전체부피에 균일하게 분포되어 있으리란 결론을 얻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접근방식에 의한 평형으로의 진행을 제7장에서 정의한 마르코프사슬과 같은 확률적 과정으로 짜맞출 수 있으리란 가정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최근에 이와 갇은 상황이 수학적으로 찰 해석되었으며14) 그 결과는 우리에게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시간이 경과됨에 따라 잉크의 분포는 평형에 이르고 제7장에서 토의한 항아리 실험에서 공의 분포와 똑같은 결과를 나타낸다. 그러나 과거를 바라보면, 다시금 시간 0에서 분할개14) M. vCerosuibriblaitgye iann dC lIa.s sPicraigl ogDiynnea, mMiclnatlr inSsyics teRmasn, do mPnroecsese dainndg s Inotfr intslizc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8o(April 1983).
시로부터 시작하여 똑같은 현상을 볼 수 있다. 이제 잉크는 폭이 수축된 수직영역을 따라 분포되어 있고, 다시금 과거 속으로 충분히 멀리갈 때에 균일한 잉크의 분포를 관찰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공정을 마르코프사슬로 모델화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으나, 이때에는 과거를 향하여 위치하고 있다. 불안정한 동력학적 과정에서 탈피하여 미래 속으로 평형에 도달하는 것과 과거 속으로 평형에 도달하는 두 개의 마르코프 사슬을 얻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같은 현상은 매우 재미있는 결과로 믿어지며, 이에 대해 무엇인가 언급을 하고 싶다. 내부시간은 우리에게 어떤 새로운 "바편재된" 묘사방법을 제공해 준다.우리가 대상계의 "연령"을 알고 있다 할지라도(즉, 분할에 대응되는) 아직도 이를 잘 정의된 국부적인 궤적으로 연관지을 수 없다.단지 대상계가 빗금천 구간에 있으리란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그림 39) . 비슷하게, 만약 대상계 내의 임의점에 상응하는 어떤 정밀한 초기조건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이에 속하는 분할이나, 대상계의 연령을 알 수가 없다. 그와 같은 계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두 개의 보완적 묘사이며, 이같은 상황은 제7장에서 기술했던 양자역학적 상황의 하나를 연상케 한다.이와 같은 새로운 대안의 비편재화된 묘사 가능성의 존재 때문에 우리는 동력학으로부터 확률로의 전이를 알아낼 수 있다. 우리는 그와 같은 대상계를 감히 본질적으로 무작위적인 체계로 부른다.고전적인 결정론적 대상계에서, 어떤 퇴화의 측면에서 한 집에서 다른 점으로 옮아가는 전이확률을 생각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전이확률은 만약 두 점이 동일한 역학적 궤적 위에 놓일 때 I이며 그렇지 않으면 0과 같게 될 것이다.대조적으로, 전통적인 확률 이론에서, 0과 I 사이의 양의 수가 되는 전이확률이 필요하다. 어떻게 이같은 일이 가능한가? 여기서 확률의 주관적 견해와 객관적 주장 사이의 상충됨을 밝게 비추어 볼 수 있다. 주관적 해설은 개별적인 궤적을 모르고 있는 상황에 대응한다. 확률(그리고 결국에는, 이미 밀접한 관계를 갖는 비가역성)은 사람들의 무지로부터 유래되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또다른 객관적 해설이 존재한다 : 확률은 동력학의 대안적인 정의요, 지극히 불안정한 동력학적 체계에서 야기되는 비편재화된 정의의 결과로서 발생된다.
여기서, 확률은 동력학의 내부로부터 도출되는 객관적 성질이 되며, 소위 말해. 이는 동력학적 대상계의 본질적인 구조를 나타낸다. 우리는 볼츠만의 기초이론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왔다 : 엔트로피와 확률 사이의 연계성을 의미한다. 본래가 무작위한 체계로부터 비가역적인 체계로의 전이를 이행해야만 한다. 이미 보았듯이 불안정한 동력학적 과정으로부터 벗어나 두 개의 마르코프사슬을 얻을 수 있다.서로 다른 측면에서 이와 같은 양면성을 관찰해 볼 수 있다. 직선상에 집중되어 있는 어떤 분포를 고려하자(어떤 표면에 분포된 것 대신에)이선은 수직 또는 수평일 수 있다. 이제 미래로 옮아가는 반죽 변환을 적용하였을 때 이 선상에서 발생하는 것을 관찰해 보자. 그와 같은 결과를 그림 40에 나타내었다. 수직선은 연쇄적으로 조각으로 찰리고 미래 속으로 멀리 가 버리면 한 점이 되어 버릴 것이다. 수평선은 반대로.복제되고 미래로 멀리 가 버릴 때 표면 전체를 균일하게 “싸 버릴” 것이다. 분명히, 과거로 나아간다면 반대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수직선을 수축섬유, 수평선을 팽윤섬유라 부르자. 이제 두갈래치기 이론과 완전한 유사성을 볼 수 있다. 수축섬유와 팽윤섭유는 동력학에서 두 개의 상황에 대응되며 이때 각 상황은 대칭파괴와 두갈래치기의 출현을 수반하는 경우이다. 수축섬유는 과거로 멀리 떨어져 있는 거리의 평형에 상응한다. 또한 팽윤섬유는 미래에 상응한다. 따라서 반대 시간방향으로 위치한 두 개 의 마르코프사슬을 갖는다.이제 본래가 무작위한 체계로부터 비가역적인 체계로 전이되는 상황을 다루어 보자. 그와 같은 과정에서 우리는 보다 엄밀히 수축과 팽윤섬유의 차이를 반드시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반죽 변환처럼 불안정한 또다른 계로서 강체구의 흩어짐을 보아 왔다.여기서 수축과 팽윤섬유는 단순한 물리적 해설을 지니고 있다. 수축섬유는 강철공의 집합에 대응하며 이들의 속도는 무작위하게 멀리 떨어져 있는 과거에 분포되어 있으며, 모두가 멀리 있는 미래에서는 평행이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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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0. 반죽 변환에서 섬유의 수축 및 팽윤 :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축성유 A는 짧아지고(Aa, B1, C1, 연속), 반면에 팽윤섬유는 복제된다(A2, B2, C2, 연속).
다. 팽윤섬유는 반전된 상황에 대응하며, 여기서는 평행속도로부터 출발하여 속도의 무작위적 분포에 이른다. 따라서 차이는 포퍼에 의해서 제시되었던 예제의 경우처럼 유입되는 파동 및 유출되는 파동과 아주 흡사하다. 수축섬유를 제거시키면 마치 실험하는 사람의 천재성이 어떠하든간에, 임의의 갯수 충돌 후 평형의 속도를 생성하는 대상계를 결코 통제할 수 없는 실험적 사실과 대응한다. 일단 수축섬유를 제거시키면 도입한 두가지 가능한 마르코프사슬 중의 오직 한 가지만 남게 된다. 다시 말해서, 제2법칙은 초기조건의 선택원리가 되어 버린다. 미래 속에서 평형에 이르는 유일한 초기조건이 존속되어 있다.
분명히 이와 같은 선택 원리의 효력은 동력학에 의해 유지된다. 반죽변환의 예에서 쉽게 불 수 있는 것은 수축섬유는 언제나 수축섬유로 남게 되며 팽윤섬유인 경우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두 가지의 마르코프사슬 중의 어느 하나를 억누름으로 해서 원천적인 무작위 대상계로부터 원천적 비가역계로 옮아간다. 비가역성을 묘사하는 데 세 가지 기본적인 요소를 발견한다;원천적 비가역성은 가장 강력한 성질이다 : 이는 무작위성과 불안정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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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재하고 있다. 14),15)
15) I . Prigogine and C . George, The Second Law as a Selection Principle : The Microscopic Theory of Dissipative Processes in Quantum System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 Vol. 80 ( 1983) , pp . 4, 590-4, .594
어떻게 이와 같은 결론을 동력학에 짜맞출 수 있는가? 앞서 보았듯이, 동력학에서 정보는 보존되며, 반면에 마르코프사슬에서 정보는 상실된다(따라서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 제7장을 참조) . 그러나, 여기에는 아무런 모순도 없다. 반죽 변환의 동력학적 정의로부터 열역학적 정의로 옮아갈 때, 언급한 분포함수는 수정되어야 한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관점에서의 “대상"은 동력학에서 말하는 것과 다르다. 새로운 함수, p는 동력학적 대상계의 원천적인 시간 배향적 정의에 상응한다. 이 책에서 이와 같은 변환의 수학적 측면에 깊이 관여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이 변환은 필시 비표준적 (제2장을 볼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반드시 열역학적 정의에 이르기 위한 통계적인 동력학의 공식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와 같은 변환이 존재한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것이며 그리고 결과로서 "있음”의 물리학과 "됨”의 물리학인, 동력학과 열역학을 통합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이들 새로운 열역학적 대상에 관해서 이 章의 뒷부분은 물론이려니와 결론부분에서 다시 다룰 예정이다. 여기서는 단지 평형에서, 엔트로피가 최대값에 이를 때, 대상은 반드시 무작위적으로 거동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두고 싶다.또한 진실로 놀라운 것은 비가역성은 소위 말해, 불안정성으로부터 도래하며, 이는 임의대상을 묘사하는 데 더이상 어찌할 수 없는 통계적 양상을 도입하게 한다. 사실상, 미래와 과거 모두가 현재 속에 내재하는 결정론적 세계에서 시간의 화살은 가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래는 현재에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우리는 현재로부터 미래로 나가고 시간의 화살은 현재로부터 미래를 향한 전이에 연계되어 있다. 무작위성으로부터 비가역성에 대한 이와 갇은 구축은, 우리가 믿는 바로는, 과학적인 맥락을 초월하는 숱한 중요한 결과이며 이에 관해서는 결론을 맺는 章에서 다시 상기하도록 하겠다. 이제 제2법칙에 의해 허용되는 상태와 금지되는 상태의 차이를 식별하여 보자.
엔트로피 장벽시간은 과거로부터 미래로, 단일 방향으로 흐른다. 사람들은 시간을 조정할 수 없으며 과거로 거슬러 여행할 수 없는 일이다. 시간을 통과하는 여행은 이에 몰두한 문인을 낳았으니 『천일야화(The Thousand and One Night)』로부터 웰즈의 『타임머신 (The Time Machine)』에 이른다. 우리 시대에서 나보코프의 단편소설, 『어릿광대를 쳐다보라!(Look at the Harlequins!)』16)는 “시간을 빙빙 돌리는것"처럼 공간의 한 방향에서 다른 방향으로 스위치를 자동으로 조절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는 한 해설자의 동탄을 서술하고 있다. 『중국의 과학과 문명』의 제5권에서 니담은 고대중국 연금술사의 꿈을 기술하고 있다 ; 그들의 지고의 목표는 쇠분이를 금으로 바꾸는 일이 아니었으며 시간을 조정하여, 천연적인 노쇠과정의 급전적 속도의 제동을 통하여 영원불멸에 이르는 것이었다.17)16) N . Navokov, Look at the Harlequins! (McGraw-Hill, 1974).
17) J . Needham, "Science and Society in East and West, The Grand Titration (London : Allen & Unwin, 1969).이제 우리는 나보코프의 표현을 빌어 왜 우리들이 "시간을 빙빙 회전시킬 수” 없는지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어떤 무한의 엔트로피 장벽은 가능한 초기조건과 금지된 조건을 분리시킨다. 이와 같은 장벽이 무한하기 때문에 기술적인 어떤 전보도 이를 결코 극복할 수 없다. 언젠가 우리는 과거 속으로 여행할 수 있게 되리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상황은 어느 면에서 보면 마치 빛의 속도에 의해서 표현되는 장벽과 매우 유사하다. 기술적 진보는 사람들을 점점더 빛의 속도에 가깝게 접근시킬 테지만, 물리학의 현재의 관점으로는, 사람들은 결코 이를 지나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장벽의 원류를 이해하기 위해서. 마르코프사슬(제4장을 볼 것) 이론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H 양의 표현으로 되돌아가자. 각 분포를 어떤 수와 관계시킬 수 있다. 마르코프사슬은 H의 대응되는 값을 갖는다. 각 분포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분포는 잘 정의된 정보 내용에 상응한다는 점이다. 정보 함유량이 높으면 높을수록, 대응하는 상태를 이룩하기가 점점더 어려워진다. 여기서 우리가 언급하고 싶은 것은 제2법칙에 의해서 금지된 초기분포는 어떤 무한한 정보 내용을 지닐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바로 우리가 그와 같은 상황을 이룩할 수 없는 이유의 하나이다.
먼저 제8장에서 언급한 H의 의미로 되돌아가자. 우리는 적절한 위상공간을 어떤 부분이나 상자로 쪼개내어야만 한다. 각 상자 k와 함께, 평형에서의 확률 Peqm(k)는 물론 비평형 확률 P(k, t)의 관계를 갖는다. H는 P(k, t)와 Peqm(k)의 차이를 추량해 주고 이들 차이가 사라질 때인 평형에서 없어진다. 따라서, 반죽 변환과 마르코프 사슬을 비교하기 위해서, 대응하는 상자의 선택을 보다 엄밀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 시간이 2에 있는 어떤 대상계를 생각하고(그립 39), 이 대상계가 시간 ti에서 유래되었다고 생각하자. 그렇다면, 동력학적 이론의 결과는 시간 ti와 t=2 사이의 분할된 구간 사이의 모든 가능한 상관관계에 상응하는 상자가 된다.만약 지금부터 그림 39를 다시 고려하면, 시간 t,가 과거를 향하여 퇴각할 때, 상자들은 접접더 많은 수직분할을 해야하는 것처럼 점점더 얇아지게 된다. 이와 갇은 결과를 그립 4I에 나타내었다. 정상으로부터 밑으로 옮아가는 B의 연속의 경우 우리는 ti= I, O, -I 그리고 종국에는 ti=一2를 갖는다. 실제로 이와 갇은 방법으로 증가하는 상자의 수는 4로 부터 32로 증가한다.일단 이와 같은 상자를 가지면, 각 상자에 대하여 비평형분포와 평형분포를 비교할 수 있다. 현재의 경우에 있어서, 바평형분포는 팽윤섬유(A사슬) 또는 수축섬유(C 사슬) 중의 어느 하나이다. 주목해야 할 중요한 점은 ti가 과거로 돌아갈 때, 팽윤섬유는 증가되는 큰 수의 상자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 ti=-2 의 경우는 4개의 상자를 차지하고 ti=2일 때 8개의 상자를 차지하며 이와 같은 양상으로 계속된다.
결과적으로, 제7장에 주어진 공식을 응용할 때, 어떤 특정한 결과를 얻으며, 비록 상자의 수가 ti→-∞에 해당하는 무한대로 옮아가더라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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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I . 팽윤(A 연속)과 수축(C 연속)은 반죽 변환의 상공간을 세분하는 상자들의 수를 교차한다. 주어진 경로의 모든 “사각형들"은 t=2의 동일한 시간을 의미하지만 각 4 각형을 세분하는 상자의 수는 대상계의 초기시간 t,에 의존한다.
대조적으로, 수축섬유들은 ti가 무엇이든간에 4개의 상자에 편재되어 있는 채로 항상 남아 있다. 결과적으로 수축섬유에 적용할 때, H는 ti가
과거로 후퇴할 때 무한대로 발산한다. 요약해 보면, 동력학적 대상계와 마르코프사슬과의 차이는 동력학계의 상자수가 무한대로 간주되는 사실이다. 이는 바로 선택 원리에 이르는 상황이다. 단지 측정한 것과 확률은, 다시 말해 무한수의 상자에 관한 제한이 한정된 정보와 한정된 H의 양을 제공하는 것은, 의도적으로 준비되거나 관측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수축성유를 배제시킨다.18) 똑갇은 이유로 우리는 어떤 단순한 점에 집중된 분포를 재외시켜야만 한다. 불안정한 대상계에서 어떤 단순한 점에 상응하는 초기조건은 다시금 우한한 정보에 대응될 것이며 이들은 의도적으로 수행되거나 관측되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다시 한 번 제2법칙은 선택의 원리로 예상된다.
18) 보다 자세한 이해를 위해서는 B. Misra, I. Prigogine and M. Courbage, From deterministic Dynamics to probabilistic Description, Physica 98A(1979), pp.1-26 : B. Misra, I. Prigogine, Time, Probability and Dynamics, in Long-Time Prediction in /)ynamics, eds. C. W. Horton, L. E. Recihl and A. G. Szebehely(New York, Wiely 1983) 을 참고할수 있다.
고전개념에서, 초기조건은 임의적이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은 불안정한 대상계에 대해 더이상 그렇지 못하다. 여기서 임의의 정보내용은 각각의 초기조건에 연관지을 수 있으며, 이 정보내용 자체는 대상계의 동력학에 의존한다(반죽 변환에서처럼 정보내용을 계산하기 위해서 연쇄적인 세포의 쪼개짐을 사용하였다) . 초기조건과 동력학은 더이상 독립적이 아니다. 선택 규칙으로서 제2법칙은 우리에게 너무도 중요하며 상관관계의 동력학에 기초한 또다른 예를 소개하고 싶다.
상관관계의 동력학제7장에서 속도반전 실험에 관해 간략히 논의한 바 있으며, 아마도 어떤 희석기체와 이의 시간에 따른 진화과정을 고려해 봉 수 있다. 시간 t。에서 각 분자의 속도반전을 시행할 수 있다. 이때 기체는 이의 초기상태로 되돌아갈 것이다. 이미 언급하였듯이 과거로 되돌아가는 기체에 대하여 필시 어떤 정보의 축적이 가능할 것이다. 이 축적은 입자 사이의 "상관관계”의 견지에서 정의될 수 있다.19)
19) I. Prigogine, C. George, F. Henin, and L. Rosenfield, A Unified Formulation of Dynamics and Thermodynamics, Chemica Scripta, Vol. 4(1973), PP.5-32.
먼저 어떤 표적(무겁고 정지해 있는 입자)을 향하고 있는 입자 구름을 생각하자. 이와 같은 상황을 그림 42에 정의하였다. 이제 제7장에서 정의하였듯이 산란은 두 가지의 영향을 나타낸다. 산란효과는 입자를 분산시키고(속도분포를 더욱 대칭으로 만든다), 이에 더하여, 산란된 입자와 산란인자 사이의 상호관계를 창출한다. 그 상관관계는 속도반전 (즉, 구형의 거울을 도입함으로써)을 시행함으로써 더욱 명백하게 할 수 있다. 그림 43은 이와 같은 상황을 표시해 주고 있다(파상성분은 상관관계를 나타낸다) . 따라서, 산란의 역할은 다음과 같다 : 정상적인 직접과정에서, 속도분포를 더욱 대칭으로 만드는 상관관계를 창출한다 ; 반전과정에서, 속도분포는 보다 덜 대칭적이며 상관관계는 사라진다. 상관관계에 대한 고려는 정방향 및 반전방향 과정사이의 근본적인 어떤 구분을 도입하게 해줌을 볼 수 있다.
•-•• o••• ..
그림 42. 입자들의 흩어짐 . 처음에 모든 입자는 같은 속도를 지니고 있다. 충돌 후. 속도는 더이상 동일하지 않으며, 흩어진 입자들은 흩어지게 하는 인자와 상관관계를 갖는다(상관관계는 언재나 파상의 선분들로 표시된다).
우리는 이와 같은 결론을 다입자 대상계에 적용할 수 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두 가지 형태의 상황을 생각할 수 있다 : 먼저 상관관계가 없는 입자가 유입되어, 산란되고, 상관관계를 갖는 입자가 생성된다(그림 44를 보라) . 그 반대 상황에서는 상관관계를 갖는 입자가 유입되고 상관관계는 충돌을 통하여 파괴되며, 상관관계가 없는 입자로 되는 결과를 낳
는다(그림 45를 볼 것) . -。_
그림 43 . 임의 충돌후 속도반전의 영향. 새로이 "반전된” 충돌 후, 상관관계는 억압되고 모든 입자는 동일한 속도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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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4. 파상의 선분들에 의해 나타낸 충돌 후 상관관계의 창출 : 자세한 내용은 본문을 참조 바람.
이와 같은 두 상관관계는 충돌과 상관관계의 순간적 질서의 차원에서 서로 다르다. 첫번째 경우에는, "충돌 후”의 상관관계 측면을 영두에 두고 이제 다시 속도반전 실험으로 되돌아가자. 시간 t=o에서 시작할 때 초기상태는 입자간에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것과 같다. 시간 O→to 동안에는, “정상적" 진화를 갖는다. 충돌은 속도분포를 막스웰 평형분포에 더욱 밀착시킨다. 이들은 또한 입자 사이의 충돌 후 상관관계를 창출한
다. 속도반전 후 시간 to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상황이 야기되고 충돌 후 상관관계는 이제 충돌 전 상관관계로 변환한다. 시간간격 to와 2t0에서 이와 같은 충돌 전 상관관계는 사라지고 속도분포는 덜 대칭적으로 될 것이며 시간 2t0에서 상관관계가 없는 상태로 되돌아간다. 이와 같은 대상계의 역사는 따라서 두 가지의 단계를 갖고 있다. 첫번째 단계에서, 충돌은 상관관계로 변환된다 ; 두번째 단계에서, 상관관계는 다시 충돌로 복귀된다. 이들 두 형태의 과정은 동력학의 제법칙에 들어맞는다. 더욱이, 제7장에서 언급하였듯이, 동력학에 의해 정의된 전체 “정보"는 상수로 남는다. 또한 볼츠만의 정의에서 시간 0으로부터 to까지의 진화는 통상적인 H의 감쇠에 상응되는 반면, to로부터 2t0에서는 비정상적 상황을 갖는다 : H는 아마도 증가하고 엔트로피가 감소되는 사실을 관찰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와 갇은 상황을 실험할 수 있는 장치를 실험실이나 컴퓨터에 의해 수행할 수 있으며, 그로부터 제2법칙이 들어맞지 않는 경우를 경험할 수 있으리라! 시간 O→ to 동안의 비가역성은 시간 t。→2t1 동안의 "반-비가역성”에 의해 "보상”될 수 있다.
戶前。。
그림 45 . 충돌을 통한 충돌전 상관관계 (파상선분)의 파괴.
이는 아주 만족스럽지 못한 귀결이다. 이와 같은 모든 어려움들은, 반죽 변환에서처럼, 동력학이 마르코프사슬과 갇이 추계적 과정이 될 수 있는 점에서 어떤 새로운 열역학적 표현을 도입할 때 사라진다. 또한 속도반전이란 천연적인” 과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반드시 고려에 넣어야 한다 ; 이때에는 외부로부터 분자들에 대하여 주어진 “정보가” 그들의 속도를 반전시키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속도반전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일종
의 막스웰적인 비범이 필요하며, 막스웰의 비범은 그만큼의 대가를 갖고 있다. 이재 H 양(확률적 과정에 대하여)을 시간의 함수로 나타내 보자. 이를 그립 46에 나타내었다. 이와 같은 접근에서, 볼츠만의 개념과는 대조적으로, 상관관계의 영향이 H의 새로운 정의에 대해서도 보존된다. 따라서. 속도반전 지점 t,에서 H 양은 점프를 하게 될 것이고, 이는 후에 필시 파괴되어야 할 급작스런 비정상적 충돌 전 상관관계를 창출하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뛰어오름은 반드시 지불하여야 하는 엔트로피나 정보의 대가에 상응한다.
이재 제2법칙의 믿음직스런 표현을 나타낼 수 있다 : 각 순간에서 H의 양은 감소한다(또는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 시간 to에서는 한 가지 예외가 존재한다 : H는 위쪽으로 뛰어오르지만 이는 대상계가 열려 있는 매순간에 대응한다. 속도를 반전할 수 있으나 단지 외부로부터의 작용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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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6. 속도반전 실험에서 H-함수의 시간변화 ; 시간 to에서. 속도는 반전되었고 H는 불연속성을 갖는다. 시간 2to에서 대상계는 시간 0에서와 동일한 상태에 놓인다. 그리고 H는 초기에 지녔던 값으로 원상복귀한다. 모든 시간에서 (t。제외), H는 감소한다. 중요한 사실은 시간 to에서 H-양이 서로 다른 두 값을 취하게 되는 점이다(본문창조).
여기에 하나의 핵심적인 사항이 존재한다 : 시간 to에서 새로운 H 양은 서로 다른 두 가지 값을 갖게 되는데 하나는 속도반전 이전의 대상계에 대한 값과 속도반전 후의 대상계의 값이다. 이와 같은 두 상황은 서로 다른 엔트로피를 갖는다. 이는 바로 반죽 변환에서 수축 및 팽윤섬유가 서로 속도가 반전될 때 발생하는 것과 흡사한 상황이다. 이제 속도반전을 시행하기 이전에 충분한 시간을 기다린 경우를 상상하자. 충돌 후 상관관계는 임의의 범위를 지니게 될 것이며 속도반전에 대한 엔트로피 대가는 너무나 높게 된다. 속도반전은 너무도 엎청나게 높은 엔트로피 대가를 지불하여야 하며 따라서, 배제시켜 버릴 수 있다. 물리적 용어를 빌자면, 제2법칙은 오랜 범위의 충돌 전 상관관계의 지속을 배제하고 있음을 뜻한다.
제2법칙의 거시적 묘사의 유사성은 이제 현격하다. 에너지 보존의 관점으로부터 (제4 및 5장을 참조), 열과 일은 똑같은 역할을 담당하지만, 제2법칙의 관점에서 볼 때 더이상 그와 같은 상황은 통하지 않는다. 간략히 말해서 일은 보다 짜임새 있는 형태의 에너지아며 언제나 열로 변환시킬 수 있으나, 그 반대는 그러하지 못하다. 미시적 차원에서는 바로 충돌과 상관관계 사이의 유사한 구분이 존재한다. 동력학의 관점에서 볼 때 충돌과 상관관계는 충돌의 영향을 파괴시킬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어떤 핵심적 차이가 도사리고 있다. 우리는 충돌을 제어하고 상관관계를 창출할 수 있다. 그러나 상관관계는 대상계에 충돌의 영향을 초래한 결과를 파괴하는 양상으로 제어할 수는 없다. 이같은 사실은 동력학에 결여되어 있는 핵심적 차이지만 열역학에서는 통합시킬 수 있는 차이이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일은 열역학은 어느 면에서든 동력학과 상충되는 관계에 있지 않다. 이는 물리적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부가적이며 핵심적인 요소를 더해 주고 있다.선택원리와엔트로피비가역과정의 미시적 이론이 전통적인 거시적 이론과 아주 밀접해 있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두 경우에서 엔트로피는 초기에 부정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거시적 측면에서 엔트로피는 찬 곳에서 뜨거운 곳으로 열의 흐름과 같은 과정을 엄금한다. 미시적 측면에서, 엔트로피는 초기조전의 특정형태를 금지시켜 버린다. 허용되는 것과 금지되는 것 사이의 구분은 동력학의 제법칙에 의해 적당히 시간을 맞추면서 유지된다. 엔트로피의 부정적 측면으로부터 긍적적 측면이 표출된다 : 엔트로피는 확률적 해설과 함께 존재한다. 비가역성은 더이상 어떤 거시적 차원에서 임의의 기적처럼 표출되지는 않는다. 거시적인 비가역성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우주의 시간-지향적인 분극화성향을 분명하게 만들어 줄 뿐이다.
반복적으로 강조했던 것처럼, 자연에는 가역적으로 거동하고 고전 또는 양자역학의 제법칙에 의해서 충분히 정의할 수 있는 대상계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관심을 끄는 대부분의 대상계는, 모든 화학적 계와 이로부터의 생물학적 대상계를 포함하며, 거시적 차원에 대하여 시간 지향적이다. 이는 ''환상”이기는커녕 마시적 차원에서 파괴된 시간 대칭을 나타낸다. 비가역성은 모든 차원에서 사실이든 또는 모두가 진실이 아니든 둘 중의 하나에 해당한다. 비가역성은 마치 기적처럼, 한 차원에서 다른 차원으로 옮아가는 것처럼 표출될 수 없다. 이미 주목해 보았듯아, 비가역성은 다른 대칭파괴의 출발점이다. 예를 들면, 오로지 비평형의 세계에서만 야기될 수 있는 입자와 반입자 사이의 차이는 대체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수용은 많은 다른 상황으로 연장시킬 수 있다. 비가역성은 적당한 두갈래치기 선택을 통한 공간대칭의 출현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오늘날 가장 활발한 연구주제 중의 하나는 비가역성을 물질의 구조 속에 "새겨넣을" 수 있는 방법의 모색이다.독자들이 이미 간파하였으리라 믿어지지만 우리는 미시적 비가역성의 유도과정에서 고전동력학에 관심을 집중하였다. 그러나, 상관관계의 개념과 충돌 전 및 충돌 후 상관관계의 구분은 또한 양자역학에도 적용시킬 수 있는 사항이다. 양자계의 연구는 고전적 대상계의 연구보다 훨씬 복잡하다. 이에 대한 이유는 자명하다 : 고전역학과 양자역학간의 차이이다. 몇 개의 강체구 입자로 이루워진 계처럼 아무리 작은 체계라도 본질적인비가역성을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양자역학적 대상계에서 비가역성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액체, 기체 또는 장 이론에서 다루는 것과 같은 커다란 체계를 필요로 한다. 커다란 체계의 연구는 수학적으로 보아 분명히 더욱 복잡하며, 이 점은 바로 비가역성을 물질내부 속으로 새겨넣을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러나 양자 이론에서 상황은 본질적으로 똑같다. 또한 양자이론에서는 양자계의 불안정성 형성에 기인하는 파동함수 개념의 제약의 결과로 시작된다.
더욱이, 충돌과 상관관계의 아이디어는 양자 이론에서도 사용될 수 있다. 따라서 고전 이론에서처럼 제2법칙은 오랜 범위의 충돌 전 상관관계를 금지시킨다. 확률과정으로의 전이는 새로운 존재량을 도입시키며, 이와 같은 관점에서 제2법칙은 질서로부터 무질서로 진화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한 결론이다. 제2법칙은 새로운 물질의 개념에 이르게 한다. 이와 같은 개념을 이제부터 기술해 보고 싶다.활성물질일단 엔트로피를 임의의 동력학체계에 관련지으려면, 우리는 볼츠만의 개념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 확률은 평형에서 최대가 될 것이다. 따라서 열역학적 진화를 정의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단위는 평형에서 혼돈적으로 거동할 것이다. 대조적으로, 평형근방 조건에서 상관관계와 짜임새(coherence)가 나타날 것이다.이제 우리는 주된 결론의 하나에 이르게 되었다 : 모든 차원에서, 이것이 거시적 물리의 차원이든, 요동의 차원이든 또는 미시적 차원이든, 비평형은 질서의 근원이다. 비평형은 혼돈을 통한 질서를 가져온다. 그러나 언급하였듯이, 질서(또는 무질서)의 개념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더욱더 복잡하다. 회석기체처럼 몇몇 제한된 상황에는 질서의 개념이 비교적 간단하며, 볼츠만의 선구적 업적에 일치하는 단순한 의미를 지닐뿐이다.다시금 힘과 이의 場의 관점에서 물리적 세계의 동력학적 묘사와 열역학적 묘사를 대비하여 보자. 언급한 바. 우리는 컴퓨터에 의한 모사실험 방법을 세울 수 있으며 이로부터 임의의 공간격자에 초기의 무작위로 분포되어 있는 상호작용을 갖는 입자를 생각할 수 있다. 동력학적 해설은 입자 상호간의 힘의 균형을 통하여 질서의 출현을 가능하게 한다.
반대로 열역학적 해설은 무질서 (대상계가 고립되어 있을 때)의 접근방식에 의하지만, 이때 무질서는 전혀 다른 단위로 표현되며, 대단히 많은 수의 입자를 수반하는 집단적 모드에 해당한다. 다시금 대상계가 평형에서 짜임새를 지니고 있다는 관점 아래 새로운 단위를 정의하기 위해서 제7장에서 사용한 신조어를 재차 도입하는 것이 나름대로 의미가 있어 보인다 : 우리는 이를 "최면에 걸린 사람” 또는 몽유병자로 칭하였는데, 이는 평형에서 서로를 무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 각자는 원하면 얼마든지 복잡할 수 있으나(효소처럼 복잡한 분자를 생각하라), 평형에서 그들의 복잡성은 “내재적인 것으로 바핀다. 다시금, 분자 내에서는 강력한 내부 전기장이 존재하지만 이 전기장은 희석기체에서 다른 분자의 영향에 관한 한 무시될 수 있다.오늘날 물리학에서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는 기초소립자의 문제이다. 그러나, 기초소립자는 기본이기는커녕 훨씬 그 이상이다. 에너지가 점점 높아갈수록 구조의 새로운 껍질이 벗겨진다. 어쨌든 기초소립자란 무엇인가? 천체와 지구는 기초입자인가? 분명히 그렇지 않은데, 에너지의 일부는 태양, 달, 그리고 다론 천체들과 상호인력에 포함되어 있다. 기초소립자 개념은 동상의 개념만으로는 정의하기가 매우 어려운 어떤 자율성을 필요로 한다. 전자와 양성자의 경우를 보자. 우리는 딜레마에 봉착해있다 : 두 가지 모두가 잘 정의된 입자들이 아니며 (에너지는 전자와 양성자 사이에 부분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는 만약 상호작용을 제거시킬 수 있다면 비상호작용하는 입자들이 존재할 뿐이다. 비록 어떻게 그와 같이 할 수 있는가를 알고 있다 할지라도, 이는 너무도 급진적인 방법으로 보인다. 전자는 양성자를 흡수하거나 방출한다. 해결방법으로 과정의 물리학으로 옮아갈 수 있다. 기초소립자인, 그 단위는 평형에서 독립적으로 전화하는 양으로서 최면에 걸린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가설을 시험할 수 있는 실험적 방법이 곧 존재하기를 희망하고 있을 뿐이다 ; 만약 원자론자들이 이미 자연의 총괄적 진화를 표현하는 시간의 화살을 지니는 양성자(또는 불안정한 입자들)와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면 너무도 큰 흥미를 유발할 수 있으리라 본다.
오늘날 폭넓게 토의되는 한 가지 주제는 우주론적 진화의 문제이다. 창세기 순간 우주는 어떻게 그다지도 질서적이었을까? 만약 우리가 질서로부터 무질서로의 집중적 움직임으로 우주적 진화를 이해하기를 원한다면 아직까지도 이 질서는 꼭 필요한 개념이다. 만족스런 대답을 얻기 위해서 어떤 부류의 몽유병자 개념“이 초기 우주를 특정짓는 온도와 밀도의 극단적인 조전에 적절하였을 것인가를 알 필요가 있다. 열역학 단독으로는 이와 같은 문제를 풀 수 없다 ; 물론 동력학만으로는, 아무리 잘 정의된 형태의 場이론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역시 불가능하다. 이 점은 바로 동력학과 열역학의 재통합이 왜 우리들 앞에 새로운 기대를 개방해 놓고 있는가의 이유이다.어떤 경우에서든, 이미 150여 년 전 열역학 제2법칙이 체계화된 이래 어떻게 상황이 변화되었는가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처음에 열역학 제2법칙은 엔트로피개념에 위배되는 원자론적 견해와 같았다. 볼츠만은 제2법칙을 실제적으로 엄청난 중요성을 지니나 원천적인 문제에서 아무런 중요성을 찾을 수 없는 확률론적 정의로 단순화시키는 대가를 지불하면서까지 기계론적 우주견해를 유지하려고 애를 썼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무엇이 결정적인 해답일는지 모르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상황은 급진적으로 다르게 되었다. 물질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물질은 양자장의 견지에서보다 원천적 개념으로부터 생성되었다고 본다. 이와 같은 물질에 관한 기본구상에서 열역학적 개념 (비가역성 엔트로피)은 맡아야 할 제역할을 지니게 된다.여기서 이미 달성된 것을 요약해 보자. 거시적 체계의 차원에서 제2법칙의 (또한 비가역성의 상관관계적 개념) 핵심적 역할은 이미 이 책의 제I 및 제2부에서 다루어 왔다. 제3부에서 소개하려고 노력했던 것은 이제 사람들은 거시적 차원을 초월해, 비가역성의 미시적 의미를 발견해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경우는 물리학의 원천적 제법칙으로 여겨 왔던 방법의 기본적 변화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원천적 무작위성이나 원천적 비가역성과 갇은 말을 언급할 수 있는――-충분히 불안정한 대상계의 경우에서처럼-경우는 바로 우리가 고전적 견해를 잊어버릴 때에만 가능하다.
또한 시간 연산자 T의 관점에서 시간에 관하여 새롭게 확장된 정의를 도입할 수 있는 대상계의 경우이다. 반죽 변환의 (제6장의 "무작위성으로 부터 비가역성”에서) 예에서 이미 언급하였듯이, 시간 연산자는 위상 공간의 고유함수의 분할 의미를 갖는다(그림 39를 볼 것).따라서, 양자역학의 경우룰 연상케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우리는 사실상 두 가지의 가능한 묘사방법을 갖고 있다. 위상 공간상에 한 점으로 우리 자신을 간주하고, 한 점이 속해 있는 분할영역을 알지 못하며, 따라서 한 점의 내부적 연령을 모르거나 ; 그렇지 않으면 내부적 연령을 알고 있고, 분할영역을 알 수 있으나 한 점의 정확한 위치를 모르는 것, 두 가지 상황 중의 한 가지 묘사가 가능할 뿐이다.일단 우리들이 내재적 시간 T를 도입하면, 어떤 분포함수 p에 의해 정의할 수 있는 임의 대상계의 초기묘사로부터 열역학 제 2 법칙을 만족하여 원천적인 시간 화살을 갖는 새로운 분포함수 p로 바뀌어 가는 현상에 대한 선택 원리로서 엔트로피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P와 h의 근본적 차이는, 이들 함수가 연산자 시간 T의 고유함수의 관접에서 확장해석될 때 나타난다(제7장 양자역학의 출현올 보라) . p에서, 모든 내부연령은, 그들이 과거로부터, 또는 미래로부터 시작되었든지 여하튼 대칭으로 보인다. 대조적으로 h에서, 과거와 미래는 서로 다른 역할을 담당한다. 과거는 포함되어 있으나, 미래는 불확실한 채로 남아 있다. 이는 바로 시간의 화살개념이다. 흥미있는 양상은 이제 초기조건과 변화의 제법칙 사이에 어떤 새로운 상관관계가 나타나는 사실이다. 시간의 화살을 지닌 임의의 상태는 어떤 한 법칙으로부터 도래하며 이 또한 시간의 화살을 지니게 되고, 이 시간의 화살을 유지하면서 상태를 변환시킨다.우리는 대부분 고전적 상황에 관심을 두어 왔다.20) 그러나 우리의 분석20) M . Courbage, Intrinsic Irreversibility of Kolmogorov dynamical Systems," Physica 1983 ; B. Misra and I . Prigogine, Letters in Mathemalical Physics, September 1983.
은 양자역학에도 해당되며, 여기서 상황은 보다 복잡하게 되는데, 이는 플랑크 상수의 존재로 이미 궤적의 개념은 파괴되고, 위상 공간 개념의 비편재화된 결과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에서, 우리는 양자론적 비편재화와 비가역성에 기인되는 비편재화를 중첩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제7장에서 강조하였듯이, 금세기 물리학에서 두 가지 위대한 혁명은, 물리학의 기본 공격 속에, 고전역학에서는 이방인격인 불가능성을 연계시킨 것이다 : 빛의 속도보다 빠른 속도로 파급되는 신호의 불가능성, 그리고 좌표와 운동량을 동시에 측정할 수 없는 불가능성이다. 제2원리, 물질을 조정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 한계를 제공하는 원리는 또한, 물리학의 기본적인 법칙의 구조에 깊은 변화를 초래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그리 놀랍지 않다. 이 책의 本章에서는 다음과 같은 조심스런 말로 결론을 맺고 싶다. 비가역 과정의 현상적 이론은, 현단계로서는 그런대로 잘 확립되어 있다. 대조적으로, 비가역과정의 기본적인 미시적 이론은 전연 새로운 이론이다. 이 저서에서 다루어 온 제반 증명들을 교정할 수 있는 때가 되었을 때, 실험방법은 이와 같은 견해를 시험할 수 있도록 마련될 것이다. 그와 같은 실험적 방법이 시행될 수 없는 한, 어떤 현상에 관한 해석에 추론적 요소를 배제시킬 수는 없다.결론
지상에서 하늘로―자연의 새로운매력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에서 정신적 경험의 영역과 물질 영역 간에 다리를 놓으려는 어떤 노력에서도, 시간은 그 핵심적 위치를 차지한다.―에딩톤1 ) A . S . Eddington, The Nature of the Physical World ( New York : Macmillan, 1948).
개방된 과학
과학은 확실히 자연의 조작을 수반하고 있으나, 이와 같은 모든 노력은 자연을 이해하기 위함이며, 한 세대로부터 또다른 수세대에 걸쳐 의문시되어 왔던 질문 속으로 접점 깊게 파헤쳐 들어가는 것이다. 이들 질문 중의 하나는 그 중심 사상으로 위치하면서, 거의 강박 관념으로, 마치 과학과 철학의 역사에 흐르고 있는 사상처럼 이 책의 전체에 펼쳐져 있다. 이는 있음과 됨의 관계에 관한 질문이며, 영원과 변화 사이의 의문이다.우리는 소크라데스 이전의 사상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 변화란 사물이 탄생되고 죽어가듯이 의부로부터 일종의 불활성 물질에 대해 부과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물질의 원천적이며 독립적인 활성의 결과인가? 어떤 의부적인 유도력이 필요한 것인가? 또는 유도력은 물체 속에서 고유한 됨의 것인가? 17세기 과학은 천연적인 존재의 자발적이며 자치적인 구성에 대한 생물학적 모델에 반기를 들었었다. 그러나 이는 또다른 대안의 원천적인 문제와 대치되는 것이었다. 자연이란 원천적으로 무작위적인가? 질서적 거동은 단순히 원자들의 충돌의 기회와 그들의 불안정한 관계의 순간적인 결과로부터 기인되는 것인가?현대과학이 지니는 매력의 주된 근원의 하나는 자연의 변환에 대한 핵심에서 영원한 법칙을 발견할 수 있으리란 느낌과 그로부터 시간과 됨을 몰아내려는 것이었다. 자연의 질서에 대한 이와 같은 발견은 불란서의 사회학자 레비 브럴에 의해 기술된 知的안정성의 느낌을 낳게 하였다 :
지적 안정성에 대한 느낌은 우리 자신 속에 너무도 깊숙이 닻을 내리고 있어 어떻게 이것이 뒤흔둘리는가조차도 볼 수가 없다. 비록 외관상으로 보아 신비스럽게 보이는 어떤 현상을 관찰할 수 있으리라고 가정하더라도, 우리는 자신의 무지가 딴지 임시적일 것이라는 감상에 젖어 있고, 이 현상은 반드시 우연성의 보편적인 법칙을 만족할 것이며, 그와 같은 이유로 조만간 현상이 결정되리라 믿는다.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자연은 질서적이고 합리적이며 인간의 마음과 아주 일치된다. 일상의 활동은 자연법칙의 보편성에 모종의 완전한 확신을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2)2) L. Levy-Bruhl, La Mentalite Primitif(Paris : PUF, 1922).
자연의 "합리성’’에서 이와 같은 확신의 느낌은, 우리 시대 과학의 격동적 성장의 결과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책 머리에서 언급하였듯이, 우리의 자연에 대한 시야는 중복성, 시간성, 그리고 복잡성을 향해 급진적으로 변화되고 있다. 이들 변화의 일부분만이 이 책에서 설명되었다.
우리는 어떤 영원한 법칙의 관점에서 표현될 수 있는 보다 보편적이며, 폭넓게 수용할 수 있는 복안을 추구하여 오면서, 시간과, 사건과 전화하는 입자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또한, 대칭성의 존재를 찾아 나섰으나, 여기서도 역시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도, 모든 차원, 기초소립자로부터 생물학, 우주론에 이르기까지 대칭 파괴과정을 발견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 책에서 시간적 대칭성이 시사하는 동력학과 단일 방향으로 배향된 시간개념의 열역학 제2법칙과의 충돌을 언급한 바 있다.새로운 동합이 나타나고 있다 : 비가역성은 모든 차원에서 질서의 근원이다. 비가역성은 혼돈으로부터 질서를 도래케 하는 메카니즘이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견해에 대하여 그와 같이 급진적인 변화가 어떻게 지난 수십년 간의 그 짧은 기간 동안에 발생할 수 있었는가? 우리는 지적인 구성이 실재에 대한 개념 속에서 차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비가역성이 보여주고 있다고 믿는다. 이와 같은 사실은 크론베르그 의 모임에서 보어가 하이젠베르그에 관해 언급한 표현에서 너무도 적절히 드러나고 있다 :
누군가가 햄릿이 여기서 살았었다고 상상하자마자 이 성곽이 변해가는 사실은 너무도 이상스럽지 않은가? 과학자로서 우리가 믿기로는 성곽은 단지 바위덩이로 구성되어 있으며, 우리는 그들을 함께 모아 축조한 방법에 경단할 뿐이다. 돌멩이, 녹청으로 고색창연한 지붕. 교회 안의 나무조각은 전체 성곽을 구성한다. 이 모든 것이 햄릿이 이곳에 살았었다는 사실로 변화되지는 않지만, 모든 것이 완전히 변해 버렸다. 갑자기 성곽과 누벽은 완전히 다른 언어의 소리를 낸다…… 아직까지도 햄릿에 관해 진정으로 알고 있는 모든 것은 그의 이름이 l3세기 어느 사국의 연대기에 나타난다는 점이다…… 그러나 누구든 세익스피어가 그에게 물었던 질문, 그로 하여금 들추어내도록 하였던 인간의 깊이를 알고 있으며, 그리고 지상에서 여기 이 크론베르그城의 한 장소에 살지 않으면 안되게 하였다는 사실이다.3)3) G. Mills, Hamlet's Castle(Austin : Universty of Texas Press, 1976).
p실재의 의미에 대한 질문은 아인슈타인과 타고르4) 사이의 놀라운 대화의 주된 과제가 되었었다. 아인슈타인은 과학은 어떤 관찰자의 존재에 독립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하여 말했다. 이같은 사실은 그로 하여금 비가역성으로서, 진화의 시간에 대한 실재문제의 부인에 이르게 했다. 반대로 타고르는 비록 절대적 진실이 존재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는 인간의 심성으로는 근접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을 지켜나갔다. 신기스럽게도 현재의 과학의 진화는 위대한 인도의 시성이 언급했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
4) R . Targore, "The Nature of Reality" (Calcutta : Modern Review XLIX, I93I), pp.42-43.
다. 실재를 무엇으로 일컫든간에, 사람들이 참여하는 활동적인 구상을 통해서만 단지 나타내어진다. 코타리가 간결히 표현하였듯이 분명한 사실은, 어떤 합당한 이론적인 틀이 없이 가능한 측정, 실험, 그리고 관찰이란 없다.5)
5) D. S. Kothari, Some Thoughts on Truth(New Delhi : Anniversary Address, Indian National Science Academy, Bahadur Shah Zafar Marg, 1975), P.5.
시간과 시간들
시간이란 전개되지 않은 동적 상태의 연쇄과정을 따를 뿐인 근본적으로는 어떤 기하학적인 매개변수라는 개념은 물리학에서 무려 3세기 이상 주창되어 온 이야기이다. 메어슨은 현대과학의 역사를 소위 그가 인간 이성의 기본적 범주로 간주하여 온 것의 점증적 시행으로 정의하려 애를 썼었다 : 다른 것과 변화하는 것은 동일한 것과 영원한 것으로 간단히 하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시간은 제거되어야 한다.6)6) E. Meyerson, Identity and Reality (New York : Dover Publications, 1962).
우리 자신의 시간에 보다 밀접하게 관여할 때, 아인슈타인은 비가역성이 원천적인 차원에서 쓰여질 수 있는 어떤 기준도 배제된 물리학의 체계화를 향한 이와 같은 움직임의 화신으로 보일 수 있다. 한 가지 역사적인 사건이 1922년 4월 6일 파리에서 개최된 철학학회의 장소에서 발생하였다.7) 베르그송은 아인슈타인에 반대하여, 공존하여 "영위된“ 시간의 중복성의 원인을 옹호하기에 이르렀다. 아인슈타인의 대답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 그는 절대적으로 "철학자의 시간"을 거부하였다. 체험된 경험은 과학에 의해 부정된 것을 살려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7) H. Bergson, Melanges(Paris: PUF, 1972), pp.1,340-1,346.
아인슈타인의 반응은 정당화되는 것 같았다. 베르그송은 분명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입장
에는 어떤 편견이 도사리고 있었으며 : 지속감(duree) 그리고 베르그송의 “영위된 시간"은 됨의 기본적인 차원을 뜻하고 있었고 아인슈타인이 단지 현상학적 차원에서 기꺼이 인정할 수 있는 바가역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미 카르납(제7장)과 아인슈타인의 대화를 인용한 바 있었다. 그에게 있어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구분은 물리학의 범위 밖의 것이었다.
아인슈타인의 청년기 쥬리히 시절 아주 천했던 천구 베소8)와의 서신 내용을 소개하는 일은 매우 흥미 있는 일이라 여겨진다. 비록 베소는 엔지니어와 과학자였으나 생애 후반 점점더 철학, 문학, 인간존재의 핵심을 둘러싼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지칠 줄 모르게 같은 질문을 물어 왔다 : 비가역성이란 무엇인가? 비가역성과 물리학의 법칙과의 관계는 무엇인가? 또한 아인슈타인은 지칠 줄 모르고 이 죽마고우에게만 유일하게 보여 온 인내와 함께 대답하곤 했다 : 비가역성이란 단순히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초기조전에 의해 창출된 단순한 환상이다. 이 대화는 아인슈타인보다 여덟 살 많은 베소가 아인슈타인이 죽기 몇달 전, 먼저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수십 년간 계속되었다. 베소의 누이와 아들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 “미셸 베소는 내 앞에 이와 같이 이상스런 세계를 남겨 놓았다. 이것은 물론 중요하지는 않다. 확신을 지녔던 물리학자에게 있어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는, 비록 고집스러운 것이었다 할지라도 어떤 환상이었다.”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의 기본적인 법칙을 지각하기 위한 노력은, 지성적인 것과 불변의 것을 동일시한 것이었다.8) Correspondence, Albert Einstein-Michele Besso, 1903-1955(Paris : Herman, 1972).
왜 아인슈타인은 그다지도 물리학에 비가역성을 도입하는 것에 강력히 반대하였는가? 우리는 이에 대해 단지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아인슈타인은 매우 고독한 사람이었다 : 그는 한두 명의 천구와, 극소수의 동료와 학생을 갖고 있었다. 그는 비극의 시기에 살았다 : 두 차례의 세계대전, 반유태인 운동의 시기이다. 아인슈타인에게 있어 과학은 소용돌이치는 시간을 넘는 승리에 도달하는 유일한 경로였다. 그러나 그의 과학적 업적과
삶은 대조적인 것이었다. 그의 우주는 대상계가 그들의 중력장과는 다른 여러 다양한 별들 사이에 위치한, 대상계들이 서로 움직이는 상태에 있는 다양한 좌표계에 위치한, 관찰자와 과학자로 가득찬 세계였다. 이 관찰자는 모든 우주를 통하여, 신호를 동하여 정보를 교환하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이 가장 지키고 싶었던 것은 이와 같은 의사소통의 객관적 의미였다. 그러나 우리가 아마도 말할 수 있다면 아인슈타인은 의사소통과 비가역성이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받아들일 바로 직전에서 멈추고 말았다는 점이다 : 의사소통은 가장 그럴법한 토대에서 가장 비가역적인 과정으로 인간의 마음에 접근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며, 진보적으로 지식을 증가시켜 주는 토대이다.
엔트로피 장벽제9장에서 우리는 제2법칙을 선택의 원리로 기술하였다. 각 초기조건에 대하여 이에 상응하는 “정보"가 존재한다. 이와 같은 정보가 유한한 모든 초기조건은 허용된다. 그러나 시간의 방향을 거꾸로 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무한한 정보를 필요로 한다 ; 우리 자신의 과거 속으로 진화하는 상황을 창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는 우리가 소개한 엔트로피 장벽이다.신호가 전달되는 최대속도로서 빛의 속도 개념과 엔트로피 장벽 사이에는 흥미로운 유사성이 존재한다. 제7장에서 보아 왔듯이, 이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가장 근본적 가정의 하나이다. 빛의 속도에 관한 한계 장벽의 존재는 인과율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필요한 개념이다. 과학적 공상으로 우주선을 타고 빛의 속도보다 빠른 속도로 지구를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는 빛의 속도를 추월하고 이와 같은 방법으로 자신의 과거 속으로 되돌아 행진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엔트로피 장벽은 의사소통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필요하다. 이미 언급하였듯이 비가역성과 의사소동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비너에 따르면 시간에 관한 두 가지 방향의 존재는 아마도 재앙스런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의 잘 알려진 저서 『인공두뇌 (Cybernetics)』로부터 한가지 문맥을 인용하는 것은 여기서 상당히 가치있는 일이다 :
진정으로, 인간의 시간개념과 다른 의미의 시간개념을 지니는 환상적, 지적 존재를 만들기 위한 가상적 실험을 할 수 있다면 이 또한 흥미 있는 일이다. 그와 같은 존재와 우리와의 모든 의사소통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가 우리 인간에게 보낼 수 있는 어떤 신호도 그의 관점에서 보면 후속적인 논리적 흐름에 해당할 것이고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선행적 논리 흐름으로 우리에게 도달할 것이다. 이와 같이 선행적인 것은 이미 우리 자신의 경험에 내재하고 있는 것이며, 그의 신호의 자연스런 설명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할 것이며 신호를 반드시 보내야 하는 어떤 지적 존재도 미리 전제하지 않는다. 만약 그가 우리에게 한 개의 정사각형을 그려 주면, 사각형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사각형의 전조로 보아야 할 것이며 이 사각형은 이들 나머지 부분의 진기한 결정체-언제나 완전하게 설명할 수 있는-일 수 있다. 이와 같은 의미는 우리들이 산등성이와 낭떠러지를 주시하는 얼굴처럼 예기치 않은 것일 수 있다. 사각형의 그림은 사각형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 수 있음으로써 우리에게 어떤 대재난으로―一-갑작스런 그러나 자연의 법칙에 의해 설명할 수 있는一보일 수 있다. 우리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어떤 세계 속에서도, 시간의 방향은 균일하다.9)9) N . Wiener, Cybernetics (Cambridge, Mass . : M . I. T . Press and New York . : John Wiley & Sons, 1961).
시간의 고유한 방향성, 시간방향을 한 방향에서 다른 반대방향으로 교체할 수 없다는 불가능성을 보장하는 것은 바로 무한의 엔트로피 장벽이다.
이 책의 여러 곳에서, 불가능성에 대한 입증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사실상 아인슈타인은 빛의 속도보다 빠른 속도에서 정보를 전파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의 상대적 동시성의 개념에 기초하여 불가능성의 중요성을 최초로 파악했던 사람이었다. 상대성 이론의 전체 이야기는 관측될 수 없는 동시성을, 배제시킨 언저리로부터 구상되었다. 아인슈타인은 이 단계를 열역학에서 영구운동을 배제시켰을 때의 단계와 어느 정도 유사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몇몇 그와의 동시대 사람들은一―-하이젠베르그를 예로 들면 - 이들 두 가지의 불가능성 사이의 중요한 차이점을 강조하였다. 열역학의 경우에, 어떤 특정한 상황은 자연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정의된다 : 상대성의 경우에, 불가능한 것으로 정의한 것은 바로 어떤 관측이었다―즉, 어떤 대화의 형태, 자연과 이를 정의하고 있는 인간 사이의 의사소통일 수 있다. 따라서 하이젠베르그는, 자신이 아인슈타인의 회의론에도 불구하고, 양자론적 불확정성 원리가 관측될 수 없는 것으로 정의하였던 배제개념을 양자역학의 기초로 삼았을 때, 바로 아인슈타인의 예를 좇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열역학 제2법칙이 단지 실질적 불가능성을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되는 한, 이 법칙은 어떤 이론적 관심도 거의 지니지 못한다. 당신은 언제나 충분한 기술적 숙련에 의해 이같은 불가능성이 극복되기를 바랄 수 있다. 그러나 이미 경험한 것과 같이 사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이 법칙의 뿌리에서 볼 때 가능한 초기상태의 선택이 존재한다. 오직 이와 같은 상태가 선택된 이후에야 확률적 해설이 가능하게 된다. 사실상, 볼츠만이 처음으로 언급하였던 것처럼, 엔트로피의 증가는 확률과 무질서도의 증가를 나타낸다. 이갇은 대칭성 파괴 이후에야 어떤 류의 확률적 해설도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우리는 상당량 볼츠만의 엔트로피 해설을 보상하였던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의 제2법칙에 대한 해설의 토대는 다음과 같은 연속단계 때문에 판이하게 다르다.제2법칙에 과학분야의 진화적 파라다임으로서 법칙의 근본적 중요성을 제공하는 새로운 선택원리의 도입을 통할 때만 동력학과 열역학의 동일이 가능하다. 이 점은 너무나도 중요하므로 보다 자세히 생각하여 볼 예정이다.대칭성을 파괴하는 선택원리로서의 제2법칙
↓확률적 해설↓무질서도 증가로서의 비가역성진화적 파라다임동력학의 세계는, 이것이 고전적이든 또는 양자론적이든간에, 가역적인 세계이다. 제7장에서 강조하였듯이, 이 세계에서는 어떤 전화도 거론할 수 없다 : 동력학적 관점에서 표현된 “정보"는 상수로 머물러 있을 뿐이다. 따라서 물리학에서 이제 어떤 진화적 파라다임의 존재를 확립할 수 있다면 이는 매우 중요한 일일 수밖에 없다-거시적 묘사의 차원뿐만 아니라 모든 차원에 대하여 마찬가지이다. 물론, 그곳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 이미 보아 왔듯이, 어떤 최소의 복잡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비가역과정의 이 엄청난 중요성은 이와 같은 요구사항이 관심을 두는 거의 모든 대상계를 만족시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놀랍게도, 배향된 시간의 인식은 생물학적 조직화의 차원이 증가할수록 증가하며 아마도 인간의 의식속에서 이의 절정에 다다를 수 있다.이와 같은 진화적 파라다임이 얼마나 일반적인가? 이는 무질서로 전화하는 고립된 대상계와 점점더 고도로 복잡한 쪽으로 진화하는 개방된 체계물 포함한다. 그리 놀랍지 않은 것은 엔트로피 은유법을 수많은 저자들이 사회, 경제적 문제를 취급하기 위해 시도되었다는 사실이다. 분명히, 여기서 우리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 : 인간의 존재는 동력학의 대상이 아니며, 열역학의 전이는 동력학에서 지켜 가고 있는 선택원리로서 체계화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인간의 차원에서 비가역성은 보다 근본적인 개념이며 우리 자신의 존재 의미로부터 분리시킬 수 없는 개념이다. 아직도 이와 같은 관점에서 핵심적인 것은 비가역성의 내재적 느낌을 의부세계로부터 아주 이방인격인 주관적 느낌으로 봉 수 없는 일이며, 전화적 통합에 의해 지배되는 한 우주 속에서 우리 스스로의 참여를 표시해주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우주론적 문제는 지독히도 어려운 문제이다. 우리는 아직까지 초기의 우주에서 중력의 역할이 무엇이었는가를 알지 못하고 있다. 중력은 어떤 형태의 제2법칙을 포함할 수 있는가, 또는 열역학과 중력 사이에는 일종의 변증법적 균형이 존재하는가? 확실히 비가역성은 어떤 시간 가역적 세계에서 갑작스레 나타날 수 없다. 바가역성의 근원은 우주론적 문제이며, 그 첫단계에서 임의의 우주의 분석을 필요로 할 것이다. 여기서 목표는 보다 조심성 있는 것이다. 오늘날 비가역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떻게 비가역성은 우리가 서술하고 있는 세계 속의 인간의 위치와 관계가 있는가?배우와 구경꾼물리학에 의한 됨의 부정은 과학과 철학으로부터 멀어전 과학 사이의 깊은 듬을 낳게 하였다. 최초에는 강력한 아리스토텔레스 전동에 대한 겁없던 경쟁자였던 것이 접차로 자연 속에 질적인 다양성으로 존재하였던 이들(화학자, 생물학자, 의학자) 모두에 반대되는 독단적 주장으로 변해갔다. I9세기말에 이와 같은 상충은 과학의 내부로부터 "과학”과 나머지 문명, 특히 철학 사이의 관계로 옮아갔다. 제3장에서 기술하였듯이, 서구사고의 이와 같은 역사적 정황은 계속되는 두쟁과 함께 지식의 새로운 통합을 달성하려는 것이었다. 현상론자들의 영위된 시간, 과학의 객관적 세계에 반대하는 논거는, 아마도 과학의 침입에 대항하는 요새를 견고히 하려던 필요성과 관계를 지을 수 있다.오늘에 이르러 확정성의 시대와 이에 관한 절대적인 반대는 그 종지부를 찍었다고 믿는다. 물리학자들은 어떤 종류의 치의법권에 대해서 어떤 특권도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그들이 문명 속에 속하는 한, 나름대로의 어떤 근본적인 기여를 해내야만 한다. 이제 우리는 사회학에서 오래전에 인식화된 상황에 근접하고 있다 : 메를로-퐁티는 이미, 그가"상황 속의 진실”로 칭한 말을 꼭 명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해 놓았다 : 절대적 관측자의 사상, 어떤 견해도 배제된 지식을 지탱하고 있는 한, 나는 단지 어떤 오류의 근원으로서 내 자신의 상황을 주시할 뿐이다. 그러나 일단 이를 동하여 내가 인식할 수 있다면 나는 모든 행동과 내게 의미가 있는 모든 지식에 박차를 가하게 될 것이며, 차차나 자신을 위한 것일 수 있는 모든 것으로 채울 수 있을 것이며, 내 상황의 한계 속에서 사회와의 접촉은 어떤 진실의 아이디어를 갖고 있으므로, 진실 속에 있고, 이를 밖으로 박차 버릴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것아 내게 출발점으로 보여질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어떤 진실을 정의하는 일이다.10)
10) M . Merleau-Ponty, Le Philosophe et la sociologie, Eloge de la Philosophie, Collection ldees(Paris : Gallimard, 1960) , pp . 136-137.
이는 바로 우리가 이 책을 통하여 다루어 온 객관 및 참여로서 지식의 관념이다. 『테마(Themes)』II)란 작품에서의 메를로-퐁티의 주장에 따르면 과학의 철학적 발견의 기본적인 관념적 변환은 종종 부정적 발견의 결과이며, 또한 이로부터, 반대되는 견해의 구실과 출발점이 제시된다.
11) M. Merleau-Ponty, Resumes de Cours 19,2-196o(Paris : Gallimard, 1968), p.119.
불가능성의 입증은, 이것이 상대성이든, 양자역학 또는 열역학이든, 자연은 마치 구경꾼에 의한 것처럼 외부세계로부터 정의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묘사는 대화, 의사소통이며, 이 의사소통은 우리가 물리적인 세계 속에 끼워넣어진 거시적 존재라는 점을 입증하는 제한사항에 대해 수동적으로 의존된다. 오늘날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다음 도식으로 요약할 수 있으리라.
우리가 관찰자의 위치로부터 출발한다면, 좌표와 운동량을 측정하고 시간에 대한 변화를 조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불안정한 동적 체계 및 제9장에서 토의했던 것과 같은 원천적 무작위성과 원천적 비가역성의 다른 개념을 발견하도록 인도한다. 일단 원천적 비가역성과 엔트로피를관찰자 동력학
i소산구조들I비가역성 -무작위성 <—— 불안정한 동적 체계지닌다면, 우리는 평형에서 멀리 떨어진 체계로부터 소산구조로 옮아가며. 이로부터 관찰자의 시간 배향적 활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시간 배향적이 아닌 과학적 활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실험을 위한 준비는 "전”과 "후”의 구분이 요청된다. 이는 바로 가역적인 운동을 인식할 수 있는 비가역성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나타낸 위의 도식은 이제 완전한 순환주기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우리가 정의하는 우주의 한 부분으로서 우리 자신을 볼 수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여기서 나타낸 도식 (Scheme)은 어떤 선행적 도식이 아니다―-―어떤 논리적 구조로부터 연역해낼 수 있다. 사실상 자연에 실제로 존재하는 소산구조에 대한 논리적 필요성은 없다 : 평형에서 멀리 떨어진 한 우주의 “우주적 사실은 거시적 세계가 관측자들이 살 수 있는 세계이기 위해 필요된다. 즉, 살아 있는 세계이기 위함이다. 우리의 도식은 따라서 어떤 논거나 이론상의 전실에 상응하는 것이 아니며 평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세계 속의 거시적 존재로서 우리 자신의 조건을 의미한다. 더우기 도식의 한 가지 본질적 특성은 어떤 묘사의 원천적 형태를 가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 각각 묘사의 차원은 다른 것에 의해 암시되고 또다른 것을 암시한다. 서로가 연결되어 있는 차원의 중복이 필요하며 자기만이 탁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미 비가역성이란 어떤 보편적인 현상이 아님을 강조하여 왔다. 공간의 제한된 부분에서 열역학적 평형에 상응하는 실험을 수행할 수 있다. 더욱이, 시간척도의 중요성은 변화한다. 한 개의 돌멩이는 지리학적 진화의 시간척도에 따라 진화된다. 특히 우리 시대에 있어서 인간사회는 보다 짧은 시간척도를 갖고 있다. 이미비가역성이란 수반되는 동적 대상계의 최소한의 복잡성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을 언급한 바 있다. 복잡성의 증가와 함께, 돌맹이로부터 인간사회로 옮아갈 때, 시간화살의 역할, 진화적 리듬은 증대된다. 분자생물학은 한 개 세포 내의 모든 것은 같은 방법으로 살아남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몇몇 과정은 평형에 이르고, 다른 과정은 평형으로부터 멀리 있는 조절효소에 의해 지배된다. 비슷하게, 시간화살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우주 속에서 전연 다른 역할을 담당한다. 이와 같은 관점으로부터, 인간의 조건은 시간 배향적 활동의 측면에서 볼 때 유일한 것으로 보인다. 제9장에서 말한 것처럼 비가역성, 시간화살은 무작위성을 암시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시간은 구축된 것이다.” 발레리12)가 독립적으로 이르렀던 이와 같은 결론은, 과학의 맥락을 초월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12) P . Valery, Cahiers, La Pleiade(Paris : Gallimard, 1973), p.1303.
격동하는 자연의 소용돌이
인간 사회에서 사회가 갖는 인식기술의 광범위한 스펙트럼과 함께, 과학은 어떤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시인은 하나의 “제작자" 활동적이고, 조작하고, 이용하는――-라는 어의적 맥락에서 자연을 시적으로 취조해 가는 위치에 서 있다. 더욱이, 과학은 이제 연구의 대상인 자연을 존경할 수 있는 능력조차 갖추게 되었다. 자연을 마치 거대한 기계뭉치로 견주는 고전과학에 의해 개시되었던 자연과의 대화로부터 벗어나, 전연 다른 견해로 성숙되었으며 이로 인해 자연에 의문을 제기하는 활동조차 현대과학의 고유한 활동의 일부가 되고 말았다.이 章의 서두에서 기술했던 것과 갇이 지적 안정감의 느낌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이제는 비논증법적 형태로서 과학과 철학과의 관계를 음미하게 되었다. 이미 아인슈타인-베르그송 사이의 충돌을 언급한 바 있다. 베르그송은 분명히 몇몇 기술적인 면에서 "틀렸었다.” 그러나 철학자로서 그의 임무는 과학에서 무시되고 있는 시간의 양상을 물리학 속으로명쾌히 도입시켜 보려는 것이었다.
과학적인 것과 철학적인 것 모두에서 나타난 원천적 개념의 함축의미와 짜임새를 들추어 보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겠으나, 과학과 철학의 대화에서 매우 소득이 큰 것일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라이프니쯔, 페이스, 화이트헤드, 그리고 루크레티우스를 간략히 참고함으로써 입증해 보자.라이프니쯔는 낯선 단자(monad)개념을 도입하고 있는데 이때의 단자는 무엇이든 들어오거나 나갈 수 있는 창이 없는, 의사소통이 가능하지 않은 물리적 존재를 나타낸다. 그의 견해는 종종 미친 짓으로 묵살되었고, 이미 제2장에서 보았듯이, 아직까지도 서로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관점에서 정의될 수 있는 변환이 존재하는 모든 통합 가능한 대상계의 한 가지 핵심적인 성질이 되고 있다. 이들 존재는 자신의 초기상태를 그들의 움직임을 통하여 변화시킬 수 있으나, 동시에, 단자들처럼 “미리 확립"된 조화 속에서 모든 다른 것과 공존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표시에서, 각 존재의 상태는, 비록 완전하게 가치적으로 결정된다 하더라도, 전체 대상계의 상태가 세부단위까지 전달되고 있음을 반영한다.모든 통합이 가능한 체계는 따라서 단자적 체계로 견주어 볼 수 있다. 거꾸로 라이프니쯔의 단자론을 동력학적 언어로 옮겨 놓을 수 있다 : 우주는 한 개의 통합이 가능한 체계이다.13) 따라서, 단자론은 모든 됨이 제거된 우주의 가장 중요한 체계화가 될 수 있다. 물질의 활성을 이해하기 위한 라이프니쯔의 노력을 생각할 때, I7세기와 우리 시대를 분리시키는 틈의 폭을 추량할 수 있다. 이를 위한 수단은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다. 순수한 역학적 토대 위에서, 라이프니쯔가 물질의 활성을 고려하기란 불가능하였다. 아직까지 그의 아이디어, 즉 물질은 활성을 지닌다는 개념은 우주는 한 개의 뒤엉킨 상관관계를 갖는 단위라는 의미로 우리와 함께13) d연y속na되m는iq u토e 론d으e 로L는ei b또ni한z aI. LPurcigrocgein, e, CI.r itSiqteuneg eMrSsp, eac niadl SS. erPraehs,a u t, VMoLla. n(Jan. 1979), pp.34-35 및, 영문판 번역서 : Dynamics from Leibniz to Lucreh.'lS, ”에 서 M . Serres2l 발문, Hennes : Literature, Science, Plzilosophy(Baltimore: Johns Hopkins Univ. Pr., 1982), pp,137-55를 참고할수 있다.
머무르고 있으며 오늘날에 와서 또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다.
우리는 피어스의 업적을 충분히 소개하지 못함을 유감으로 생각하며, 주목할 만한 그의 문맥을 인용하여 보자 :그대들 모두는 에너지 소멸을 들어 본 적이 있다. 에너지의 모든 형태변환에서 그 일부는 열로 전환되고 열은 언제나 대상계의 온도를 균등히 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다. 결과는 우주의 에너지가 이에 대한 필요한 법칙의 덕택으로 죽음을 향하여 소멸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우주에의 힘은 없어질 것이고 모든 곳에서 열과 온도는 똑같이 ……그러나 어떤 힘도 이와 같은 경향에 반작용은 할 수 없다 할지라도, 우연은 있을 수 있고 그 반대되는 작용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험도 결국에는 소멸된다. 우연은 결국에 가서 농축된다. 자연의 통상적인 법칙에 의한 에너지의 소멸은 주위환경에 의해 수반되는 법칙 자체에 의해서 점점더 기회에 의한 재농축이 가능하게 될 수 있다. 따라서 우주에는 이들 두 가지 경향이 균형을 이루는 점이 존재할 것이며 의심의 여지없이 이는 바로 현재 시간에서 전체 우주의 실재적 조건임에 틀림이 없다.14)14) C. S. Peirce, The Monoist, Vol. 2(1892), PP. 321-337.
다시 한 번, 피어스의 우주철학은 실재로부터 벗어난 철학의 또다른 한 가지 예로 여겨진다. 그러나, 사실상, 오늘날 피어스의 개념은 물리적 제법칙 속에 수반되는 다원론의 이해를 향한 선구자적 첫발의 디딤으로 보인다.
화이트헤드의 철학은 우리를 또다른 스팩트럼의 가장자리로 인도한다. 그에게 있어서 있음은 됨으로부터 분리할 수 없는 것이었다. 화이트헤드는 다음과 갇이 기술하고 있다 : ‘모든 것은 흐른다’는 문장의 의미를 명료히 하는 것은 우주철학 또는 현상학의 주된 임무의 하나이다.15) 물리학과15) A. N. Whitehead, Process and Reality, pp,240-41, 이 주제에 대하여는 I . Luclerc의 Whitehead's Metaphysics (Bloomington : Indiana University Press, 1975)를 참조할 수 있다.
현상학은 오늘날 우주의 한 가지 관념 속에 함께 위치하고 있으며 여기서 됨의 과정은 물리적 존재의 가장 주요한 형태이며, 우주에는, 라이프니쯔의 단자들과는 달리, 존재하는 실재는 서로 상호작용을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출생되고 죽어 간다.
고전물리의 질서정연한 우주 또는 평행적 변화의 단자론적 이론은 똑같이 평행하고, 질서 있고, 그리고 무한한 공간을 통한 루크레티우스 원자의 영원한 와해와 흡사하다. 클라이나멘과 층류 흐름의 불안정성을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보다 더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세레스16)가 지적한 것처럼 무한한 와해는 다시금 어떤 모델을 제시해 주고 있으며 사물이 이 우주 속에 탄생하는 동기를 유발시키는 혼란의 자연적 발생개념의 기본을 이루게 된다. 만약 수직 와해가 클라이나멘에 의해 “아무런 이유도 없이 혼란하게 되지 못하면, 이 와해는 균일하게 이해되는 원자들과 맞서게 되거나 서로 상관관계를 맺게 되며 어떤 자연도 창조되지 못했을 것이다:16) La Naissance de la physique dans le texte de Lucrece, p . 139.
아마도 생성될 수 있는 모든 것은 운명의 제법칙(운명의 약속, foedera fati)에 의해 지배되는 동등한 운명과 결과 사이의 반복적인 연결로 점철될 뿐이리라.
만일 모든 변화가 언제나 서로 연계되어 있고 새로운 변화는 그 이전의 변화로부터 야기되며 그리고 모든 변화의 원천을 변화시킴으로써 운명의 약속을 깨뜨리고, 새로운 출발이 시작되고 영원으로부터 변화될 이유가 없고 자유로이 ……?17)17) Lucretius, De Natura Remm, Book II, “또다시, 만약 모든 운동이 언제나 서로 연계되어 있다면, 결정론적 질서 아래에서는 오래된 것으로부터 새로운 것이 발생한다――-만약 원자들이 운명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원인과 결과가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어떤 새로운 운동을 유발하기 위하여 결코 벗어나지 않으리라—지구 전체를 동해서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들이 소유할 자유의 근원이란 무엇인가?
루크레티우스는 마치 고고학적 유물이 "발명된"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클라이나멘을 발명하였을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갇다. 하나의 "추측"으로는 유물이 누군가 파헤치기 전부터 그곳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우주에는 균일한 가역적 궤적만이 존재하였다면, 우리가 창출하기도 하고 몸소 체험하기도 하는 비가역과정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가? 궤적을 결정하는 일을 그만두는 지접에서, 운명의 약속은 결정론적 변화가 붕괴되는 질서 있고 단조로운 우주를 지배하게 되고, 자연의 시작을 나타낸다. 이는 또한 자연의 모든 존재의 탄생, 증식, 그리고 죽음을 설명하는 새로운 과학의 시작을 나타낸다. "낙하, 반복, 그리고 엄밀한 연속의 물리학은 변화여건의 창조적 과학에 의해 대치되고 있다.”18) 운명의 약속은 연합된 자연으로 대치되며, 세레스가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이는 자연의 법칙1―一국부적, 단순한 역사적 관계_과 자연과 계약의 형태인 "동맹" 모두를 나타낸다.
18) M. Serres, 앞에서 인용한 문헌의 p_ 136_
루크레티우스 철학에서 또다시 물리적 규정의 근저를 이루는 선택과 자연 속에 인간의 상황을 관련짓는 철학적, 윤리적, 또는 종교적 관념 사이의 연계된 관계를 현대적 지식 속에서 발견한다. 보편적 연관성의 물리학은 더이상 혼란과 무작위성과 두쟁하지 못하는 법칙과 지배의 이름으로 일컫는 또다른 과학에 반론을 제기한다. 아르키메데스로부터 클라우시우스에 이르는 고전과학은 난류와 두갈래치기 변화와 같은 과학에 반대하는 것들이었다.
여기서 그리스의 지혜는 그 절정에 이른다. 인간은 우주 속에 있으며, 물질은 우주 속에 있고, 인간은 이방인이 아니라 벗이요, 가족의 한 존재이며, 평등하다. 인간은 사물과 계약을 맺고 있다. 반대로, 다른 많은 체계나, 다른 많은 과학은 이와 같은 계약을 파괴하는 것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인류는 우주에 대하여, 새벽에 대하여, 창공에 대하여, 모든 사물에 대하여 나그네이다. 인간은 이들을 증오하고 이에 대항하여 투쟁한다. 주위환경은 싸움에 대하여, 노예를 지키는 데대하여 위험스런 적이다……에피큐러스와 루크레티우스는 화합된 우주 속에 살고 있었다. 그곳에서 사물에 대한 과학과 인간에 대한 과학은 서로 조화된다. 나란히 섭동하는 자연 속에서 나는 한 개의 혼란이요, 소용돌이일 뿐이다.19)
l9) M. Serres, 앞에서 인용한 문헌의 162 페이지 및 pp.85-86과 Roumain ec Faulkner traduisent l'Ecriture, La Traduction (Paris : Minuit, l974)를 참조할 수 있다.
학설을 초월하여
고전과학의 우주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유일한 사건은 대상계의 순간적 상태로부터 연역해낼 수 있는 세계이다. 신기하게도 갈릴레오로부터 뉴톤으로 거슬러울라갈 수 있는 이 관념은 당시 새로운 것이 결코 아니었다. 사실상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명의 관념, 불변하는 하늘의 관념과 같아 증명할 수 있는 것들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에서 어떤 정확한 수학적 정의를 적용하기를 바라는 것은 오로지 천국의 우주였다. 서론에서 우리는, 과학은 “미몽에서 깨어난" 우주를 갖게 되었다는 점에 대한 불평을 반증한 바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깨달음은 독설적으로 지상을 찬양하는 것에 기인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늘의 것을 추구하였던 지성으로서 가치평가를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고전과학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지상의, 즉 내부에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던 됨과 자연적 다양성 모두를 부정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고전과학은 하늘의 것을 지상의 것으로 변모시켜 놓았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일은 분명히 현대과학의 아버지로서의 의도는 아니었다. 수학은 자연이 시작되는 곳에서 종말을 고하게 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 도전하여, 그들은 변화 이면에 숨겨진 불변의 것을 찾아내려고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변화하고, 쇠퇴할 수 있는 자연을 자연의 경계로서 연장하려 하였다. 『두 우주체 계 에 관한 대 화 (Dialogue Concerning the Two Chidf World Systems)』란 저술에서 갈릴레오는, 우주는 만약 노아의 홍수가빙해만을 남겨 놓았거나, 또는 지구가 녹색의 장식석인 재스퍼 보석과 같이 부패할 수 없는 견고함만을 남겨 놓았다면 지구는 보다 더 고상한 장소가 되었으리라는 관념에 젖어 있기를 즐겼다. 아마도 지상은 메두사의 주시에 의해 변모된 한 개의 결정체 구형이나 다이아몬드상으로 변환된 후에 보다 더 아름답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맡겨 두자!
정량적 묘사의 유효성을 시험하려던 최초의 물리학자들에 의해서 선정된 대상은_즉, 운동보존의 이상적인 단진자, 단순한 기계, 천체궤도 등등_아리스토텔레스의 천상의 물체들의 신앙적 사상을 실제로 재현하는 어떤 유일한 수학적 묘사와 상응한다.아리스토텔레스의 신처럼, 고전동력학의 대상은 단지 그 대상 자체의 신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둘은 의부세계로부터 아무것도 배울 수가 없었다. 어떤 순간에도, 대상계의 각 점은 이 각각의 점들이 언제나 알기를 원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_즉, 공간상의 물체와 속도의 분포이다. 각개의 상태는 다른 모든 가능한 상태에 관계된 전체 진실을 담고 있으며, 각각은, 시간축상의 각각의 위치가 무엇이든간에 다른 것을 예측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묘사는 다시금 어떤 반복적 수식어에 이르게 되는데, 이는 미래와 과거 모두가 현재 속에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현대과학의 앞으로의 전망에 대한 급전적인 변화는, 또한 일시적 중복된 현상의 전이에 대한 변화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하늘이 지상의 것으로 옮아온 움직임의 반전으로서 비유될 수 있다. 이제 사람들은 지상의 것을 천상의 것으로 옮겨 놓았다. 기초소립자로부터 천문학적 모델에 이르기까지 시간과 변화의 중요성을 발견해 가고 있다.미시적 그리고 거시적 차원 모두에서 자연을 다루는 과학분야는 불변의 보편적 법칙의 미명 아래 부정하여 왔던, 신비성과 다양성을 암시하고 있는 객관적 실재의 관념으로부터 그들 자신을 제거시켜 버리게 되었다. 이제 폐쇄된 것으로 간주한 어떤 합리성과 거의 성취된 것으로 보아 온 지식의 매료로부터 그들 자신을 격리시키게 되었다. 자연과학의 제분야는 이제 예기치 못한 것에 개방되어 있으며, 이는 더이상 불완전한 지식 또는 불충분한 통제의 결과로서 규정할 수 없게 되었음을 말한다.이와 같은 과학의 개방은 모스코비치의 "케플러적 혁명"으로 잘 기술되어 왔으며, 이 혁명은 절대적 견해가 유지되어 온 아이디어를 지니고 있는 코페르니쿠스적 혁명과 구분되는 것이었다. 이 책의 서론에서 인용한 많은 문맥에서, 과학은 우주에 대한 “미몽에서 깨어남”으로 간주되어 왔다. 이제 오늘날 과학에서 진행되는 변화의 정의를 인용하여 보자 :
과학은 접촉하고 있는 모든 것을 새롭게 하기 위한 모험에 휩싸이게 되었고 또한 과학이 침두하는 모든 것을 따뜻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점은 인간이 살아 가고 있는 지구와 우리들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모든 진실을 말함이다. 각각의 접촉은 죽음의 메아리가 아니며, 멀리 퍼져 나가는 종소리가 이니라 덧없는 영원 속에 고정된 한 순간에 다시 태어남과 시작, 인류와 일체사물을 일신하는 목소리일 따름이다. 이 점은 바로 위대한 발견이 코페르니쿠스의 우주와 같은 죽음 위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케플러의 꿈과 열정 위에 제시되는 것들이다.20)20) S . Moscovici, Hommes domestiques et hommes sauvages, pp . 297-98
시간의 창조적 경로
종종 일컫는 말로 바하가 없었다면 우리는 성 마태의 열정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며 상대성은 아인슈타인 없이도 발견되었으리란 가정이 있다. 과학은 예술의 역사 속에 수반되는 예측불허와는 대조적으로 결정론적 경로를 따르게 되어 있었을 것이다. 과학의 낯선 역사를 회고해 볼 때. 우주의 윤곽을 밝히려고 애를 썼던 지난 3세기 동안 우리는 그와 같은 주장의 효력을 의심할 수 있다. 과학의 역사 속에는 문명적 기후가 이들을 일관성 있는 체계로 수용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고 있지 못한 이유로 무시되어 왔던 몇 가지 중요한 예를 밝혀낼 수 있다. 화학시계의 발견은 19세기로 거슬러울라가지만, 그들의 결과는 평형이 균일하게 감쇠되는 개념에 모순되는 것으로 비추어졌다. 별똥별들은 태양계를 설명하는 데 필요가없다는 이유로 비엔나 박물관으로부터 내던져졌다. 문명적 환경은 우리가 탐구하는 의문에 매우 활력이 넘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나 물질의 양태나 과학의 수용을 초월하고 있었으며, 일련의 의문은 다가오는 각세대에 의해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시간의 문제는 확실히 이와 같은 문제상황 중의 하나이다. 여기서 쿤의 “정상적 과학의 형성에 대한 분석21)과 어느 면에서 일치하지 않고 있는데, 과학적 활동은 이들 연구와 미래의 연구인력의 훈련아 복합되어 있는 현세대 대학의 관점에서 생각할 때 쿤의 견해와 가장 잘 상응된다. 쿤의 분석은, 일반적으로 과학의 정의로 생각할 때, 지식은 반드시, 그리고, 이름하여, 특정화와 세분화 경향을 지니고 있는 과학적 발전의 실증주의적 관념의 새로운 심리 사회학적 맥락으로 간략히 할 수 있으리란 결론에 이르게 한다 : “정상적" 과학의 습성과 "심각한" 과학의 그것과 동일시하는 것은 연구의 총체적 중요성에 관해서 “일반적" 질문을 하기 위해 소비할 시간이 없고 특수한 문제에 집착하는 "고요한" 연구자들이다. 그리고 문명, 경제, 및 사회적 문제로부터 과학적 발전은 본질적으로 독립적이다.21 ) T . Kuhn, The Stmcl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2nd ed . incr. (Chicago : Chicago Universiy Press, 1970).
쿤에 의해 정의된 “정상적인 과학”에 내재하는 학문적 구조는 I9세기에 실체화되기 시작했다. 쿤은 강조하기를 학생들이 연구의 근거가 되는 개념을 배우는 것은 전세대의 모범적인 문제의 해답을 반복하여 연습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그들은 홍미롭게 어떤 문제를 정의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해답을 정의하는 표준을 제공받는다. 학생 신분으로부터 연구자로 발전되는 것은 점중적으로 이루어진다 ; 과학자들은 문제를 유사한 테크닉으로 계속해 풀어간다.
비록 우리 시대에 있어서, 쿤의 정의는 가장 위대한 적절성을 지니고 있으나, 과학적 활동의 한 가지 특정한 형태만을 의미한다. 이 형태의 중요성은 개인적인 연구자와 연구기관의 성격에 따라 변모한다.쿤의 견해에서, 파라다임의 변환은 어떤 위기로 보인다 : 이 침묵은, 거의 볼 수 없는 규칙으로, 말하지 못한 채 머물러 있는 대신 그 그품의 각구성원들은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그들 방법의 적법성에 도전하고 있다. 그룹은 훈련에 의해 균일하게 되었으나 이제는 제각기 다양해진다. 다른 관점에서 문명적 경험 및 철학적 확신은 이제 제각기 표출되고 어떤 새로운 동합을 발견하는 데 종종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새로운 동합의 충현은 격렬한 토의를 보강시켜 준다. 상반되는 파라다임이 설정되고 대학 세계가 승자를 결정할 때까지 시험된다. 새세대의 과학자들의 출현과 함께, 침묵과 만장일치는 다시금 바뀌어 간다. 새로운 교과서들이 쓰여지고 사물은 말할 필요도 없이 다시금 다루어진다.
이와 같은 견지에서 과학적 혁신의 배후에 깔린 유도력은 과학적 집단 사회의 강한 보수적 거동을 나타내며 같은 기술, 같은 개념, 그리고 자연으로부터 동등하게 대치되는 고집스런 저항에 부딪쳐 언제나 끝장이 날 때까지 자연에 집요하게 적용된다. 결국 자연은 그 스스로가 받아들였던 언어를 거부하는 것으로 비춰질 때, 위기는 어떤 믿음이 깨어진 결과 생겨나는 일종의 폭력으로 터져나간다. 이 단계에서, 모든 지성적 원천은 새로운 언어를 찾아 관심을 집중시킨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그들의 의지에 대항하여 부여되는 위기를 다루지 않으면 안된다.우리가 탐구하여 온 의문은 쿤의 정의가 적용되었던 것과 상당히 다른 양상을 강조하도록 이끌어간다. 연속성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여 왔으나, 이것은 분명한 연속성이 아니다. 숨겨져 있는 것이었으며 이에 수반되는 난해한 의문은 불법적이거나 어리석은 것으로서 많은 사람들에 의해 거부되어 왔으면서 또한 수세대에 걸쳐 그대로 지켜내려온 것들이다. 복잡한 계에 대한 동력학, 화학과 생물학의 비가역적 세계와 고전물리학에 의해 제시되었던 가역적 정의간의 관계와 갇온 의문이다. 사실상 그와 같은 의문의 관심은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다. 문재는 오히려 디드로나 스달, 베널, 그리고 많은 다른 사람의 업적 이후부터 어떻게 그들이 무시되어 왔는가를 이해하는 것이다.과거 100년은 쿤에 의해 주어진 정의와 밀접하게 상응하는 여러가지의 위기들을 기록하고 있다__一이 중 어느 것도 과학자에 의해 탐구되지 못했다. 예를 들자면 기초소립자의 불안정성의 발견 또는 진화하는 우주의 발견이 그것이다. 그러나 최근 과학의 역사는 그 의문이 과학 및 철학적측면 모두를 담고 있음을 알아낸 과학자들에 의해 재기되어 온 신중하고 아주 선명한 의문의 결과로 또한 특징지울 수 있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몽유병자”와 같은 운명에 처해져 있지는 않다!
우리가 기술했던 새로운 과학적 발전은, 물리학에 비가역성을 연합시키는 것으로서 일종의 계시나 그가 살고 있는 문화적 세계로부터 떨어져 있는 우주의 소유주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으면 안된다. 반대로, 이 발전은 명쾌하게 과학의 내재적 논리와 우리시대의 문명 그리고 사회적 맥락을 반영하고 있다.특히, 어찌하여 우리는 물리학에서 시간의 재발견을 인류사회의 극단적 가속화로 사회가 발전될 때 발생한 우연한 사고로 간주할 수 있는가? 문화적 맥락은 완전한 대답이 될 수 없으나 또한 부정될 수도 없는 것이다. 과학적 개념의 탄생에 대한 “내재적" 그리고 "외부적" 결정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연합시켜야만 한다.이 책의 서론에서, 우리는 불어판 제목(새로운 동맹, La nouvelle alliance)은 두 문명의 연합을 나타내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아마도 그 합류점은 우리가 다루었던 제3부의 비가역성의 미시적 기초의 문제에서 가장 명료히 나타내고 있다고 본다.수차례 언급하였듯이, 고전 및 양자역학 모두는 임의의 초기조전과 결정론적 제법칙 (궤적이나 파동함수)에 기초를 두고 있다. 어느 면에서 법칙은 문제 대상의 초기조건에서 이미 나타난 것을 보다 단순히 명쾌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갇은 점은 더이상 비가역성이 고려되었을 때의 경우가 아니다. 이같은 관점에서, 초기조전은 바로 이전의 진화로부터 대두되며 연속적인 진화를 통한 동일한 종류의 상태로 옮아간다. 따라서 우리들은 서구사회의 존재에 대한 중심적인 문제에 근접하게 되었다 : 있음과 됨 사이의 관계이다. 우리는 제3장에서 이 문제에 대한 간략한 논의를 다루었다. 금세기의 가장 영향력이 지대하였던 연구 업적의 두 가지 모두가 엄밀히 이 문제에 바쳐졌음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우리는 화이트헤드의 과정과 실재 그리고 하이데거의 시간과 존재를 영두에 두고 있다. 두 경우, 목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서구철학의 가장 영예로운 방법 (Voie Royale)을 따르는, 무시 간성 과 함께 있는 확증을 초월해 나아가는 것이었다.22)
22) A. N. Whitehead의 앞에서 인용한 문헌, Process and Reality와 M. Heidegger의 Sein und Zeit (Tulbingen : Ni emeyer, 1977)을 참고할 수 있음
그러나 명백한 것은, 있음을 시간으로 간단히 할 수 없으며 어떤 시간적 함축 의미가 결여된 "있음"도 다룰 수가 없다는 점이다. 비가역성의 미시적 이론이 취하고 있는 방향은 화이트헤드와 하이데거 사상의 새로운 접근을 제공하여 준다.
이와 같은 문제를 보다 상세히 발전시키는 일은 이 책의 의도를 벗어난다고 볼 수 있다 : 우리는 어디서인가 이 문제를 다루고 싶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계의 상태를 다루었을 때 나타내었던 초기조전은 "있음’’과 연관을 맺고 있다는 점이다. 대조적으로, 시간적 변화에 수반되는 제법칙은 정과 연관되어 있다.우리의 견해로는, 있음과 됨은 서로 반대 개념이 아니다 : 그들은 실재의 두 가지 연관된 양상을 나타낸다. 파괴된 시간대칭의 상태는 파괴된 시간대칭의 법칙으로부터 야기되며, 이는 같은 범주에 속하는 어떤 상태로 파급되어 간다.최근의 다른 책 『있음에서 됨으로(From Being to Becoming)』에서, 필자 중의 한 사람은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결론을 맺었다 : ”고전과학의 터전을 닦았던 모든 사람들에게_아인슈타인에게 있어서조차――-과학은 현상의 세계를 초월하여 지고의 이성을 갖는 무시간성의 세계_스피노자의 세계_에 도달하려는 시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법칙과 놀이, 시간과 영원, 모두를 포함하는 보다 오묘한 형태의 실재가 존재하였다.” 이는 필시 비가역 과정의 미시적 이론이 취하여 오고 있는 방향과 엄밀한 의미에서 부합된다.인간의 조전우리들은 헤르만 와일의 견해와 완전히 일치한다 :과학자들은 이론적인 구상만이 생명현상에 근접할 수 있는 유일한 접근방식이란 사실을 무시한 점에서 오류를 범하였을 수 있다 ; 또다른 방법으로는, (해석) 그 자체 속에서 이해가 우리 앞에 열려 있다 ……자신의 지각과, 사고, 의욕, 느낌, 행위 그리고 움직임에 대하여, 나는 상징 속의 "평행적" 두뇌작용을 나타내 주는 이론적 지식과는 완전히 다른 어떤 직접적인 지식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은 자신의 내재적 인식은 내가 대하는 동료들의 이해와 나와 같은 부류의 존재로서 인식하고, 나와 함께 그다지도 친분을 갖고 기쁨과 슬픔을 나누면서 서로 의사를 교환하는 사실을 이해하는 토대가 된다.23)
23) H . Weyl, Philosophy of Mathematics and Natural Science (Princeton, N . J . : Princeton University Press , 1949).
그러나 최근까지, 이같은 관념에는 아주 현격한 대조를 이루는 사항이 존재하고 있었다. 영원의 우주는 결정론적인 보편 법칙을 따르는 거대한 기계뭉치로 보였으며. 우리가 경험하는 자발적 행동이나 비가역성과는 대조를 이루는 것이었다. 두 세계는 이제 서로 긴밀해져 가고 있다. 이는 자연과학에 대한 어떤 손실인가?
고전과학은 물리적 우주의 어떤 두명한” 견해에 목표를 두고 있었다. 각 경우에 우리는 임의의 원인과 결과를 증명해 보일 수 있었다. 확률적 묘사가 필요하게 되는 모든 경우는, 더이상 우연성을 거론할 수 없다 ; 단지 확률적 우연성만을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사실상 이같은 상황은 양자역학이 출현된 이후로부터 유래되며, 이같은 확률적 우연성은 최근에 연구되는 고전역학 및 화학에서조차, 무작위성과 확률이 핵심적 역할을 담당함으로서 크게 발전 증식하게 되었다. 따라서 고전적인 것에 비교한 현대의 경향은 고전적 사고의 두명성에 비할 때 일종의 불투명으로 옮아가고 있다.이같은 추세는 인류의 정신에 대한 일종의 패배인가? 매우 어려운 질문이다. 과학자로서, 우리는 선태의 여지가 없다 ; 우리는 독자들이 보고 싶어하는 세계를 정의해 줄 수 없으며, 단지 실험적 결과의 충격과 새로운 이론적 개념의 결합을 통하여 볼 수 있는 사항만을 정의해 줄 수 있을 뿐이다. 또한, 이같은 새로운 상황은 우리 자신의 정신적 활동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상황을 반영해 주고 있다. 고전적 심리학은 의식의 두명한 활동 주변에 관심을 집중시켜 왔다 ; 현대심리학은 무의식의 불두명한 기능에 더욱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아마도, 이같은 상황은 인류존재의 기본적인 특징에 대한 한 가지 잔상일 수 있다. 스핑크스 앞에 설때 정신이 아주 맑아지고 그 자신의 존재기원에 직면하였을 때 불투명으로 눈앞이 캄캄해지던, 외디푸스를 기억해 보자. 아마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우주, 우리 속에 있는 우주에 관한 다가올 인간의 통찰 모두는 필자들이 기술하려고 노력하였던 과학분야의 최근의 진화에 대한 일종의 만족스런 대답을 가져다 준다.
회피할 수 없는 인상은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 비가역적인 것, 그리고 반대로, 시간 밖의 것, 영원한 것 사이의 구분은 인간의 상징적 활동의 원류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와 같은 일은 예술적 활동에서 어찌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사실상 자연적인 대상, 하나의 돌멩이를 일종의 예술적 대상으로 변환시키는 한 가지 특징은 물질에 대한 우리의 충격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예술적 활동은 대상의 일시적 대칭을 파괴시킨다. 예술적 활동은 시간적 비대칭성을 대상에 대한 일시적 비대칭으로 변모시키는 표시를 남겨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가역적이며 주기적인 소음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은 확률적이며 또한 시간 지향적인 음악을 유발시킨다.자연의 재음미인류가 이제 인구 폭발의 결과로서 야기되는 자연의 과학적 개념과 인간사회의 구조에 대한 두 가지 심각한 변화의 순간에 위치해 있음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결과적으로, 이제 인간과 자연의, 인간과 인간 사이의 어떤 새로운 관계를 정립할 필요성을 갖게 되었다. 더이상 과학적인 것과 윤리적 가치 사이의 오랜 선행적 구분을 인정할 수 없게 되었다. 이와 같은 일은 외부 세계와 인간의 내재적 세계가 상충하는 것으로 보이거나, 거의 직교하는 것으로 보일 당시에나 가능하였다. 오늘날 시간은 한 개의 구축된 것이며 따라서 윤리적 책임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책에서 많은 부분을 할애했던 아이디어들이-불안정성, 그리고 요동의 개념――-사회과학으로 스며들고 있다. 이제 인간사회 집단은 인류역사의 비교적 짧은 기간 속에 포함되는 다양한 문명에 의해서 예증화 된 잠재적으로 무수한 수의 두갈래치기 현상을 수반하는 엄청나게 복잡한 체계로 되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와 같은 체계는 요동에 대하여 극도로 민감하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은 희망과 공포 모두에 이르게 하고 있다 : 비록 대단히 작은 요동이라 할지라도 성장할 수 있고 전체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는, 희망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각개의 활동은 더이상 전체에 대해 보잘것 없는 운명에 있지 않다. 반면에, 이는 또한 공포가 될 수 있는데, 인간의 우주 속에서 안정되고 영원한 규칙에 대한 우리의 안도감이 영원히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어떤 맹목적 확신에도 고무될 수 없는 위험하고도 불확실한 세계 속에 살고 있으나, 또한 아마도 이에 대응하는 탈무드의 유대교 율법서들이 신의 천지창조에 이바지하였던 것과 같은 정돈된 희망의 느낌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스물여섯의 노력이 지금의 창세기에 앞서 있었으나, 그 모두는 실패의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 인간의 세계는 앞서간 잔재의 혼돈적 영혼으로부터 유래하였다:그는 역시 실패의 위험을 무릅쓰게 되었고,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돌아갔다. 하느님은 그가 창출한 우주를 보며 자 이제는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기를 기도하자[Halway Sheyaamod]라고 의쳤으며, 우주와 인류의 모든 연속하는 역사와 함께 붙어다니는, 이 희망은 역사가 급전적 불확정성을 표출하기 시작함으로써 오명을 띠게 되던 바로 그 시작부터 강조되어 온 것이다.24)24)A. Neher "Vision du temps et de l'histoire clans la culture juive," Les cullres et le lemps(Paris: Payot, 19n), P.179.
역자후기
오늘날 우리들은 자연과학 분야의 엄청난 전보를 목격해 가고 있다. 현재 인류가 다루고 있는 현상세계의 차원은 실로 환상적인 정도까지 확대되고 있다. 미시적 차원에서 기초 소립자 물리학은 IO-15cm나 10-22초의 물리적 차원을 다루게 되었다. 반대로 우주학에서는 우주의 연대로서 I0-10년이나 1028cm 이상의 먼 거리를 취급하게 된 것도 사실이며 최근에는 우주의 본질적인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들을 발견해 가고 있다.고전물리학은 안정성과 영원성을 강조하여 왔다. 이제 사람들이 파악하고 있기로는 그와 같은 특성은 기껏해야 매우 제한된 문제에만 적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어느 곳을 바라보든 다양성과 중가되는 복잡성에 이르는 진화론적 과정들을 발견하게 된다. 물리적 우주에 대한 인간의 시야의 이와 같은 변천을 일찍이 간파하고 있던 저자들은 이에 대한 새로운 물리학과 수학의 분야에 열정을 쏟기에 이르렀다. 특히 프리고진은 물리 또는 생물학적 대상계에서의 자기-구성 (self-organization)의 문제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분야를 간결한 그러나 너무도 난해한 논조로 소개하고 있다.고전역학은 궤적들에 관련된 문제를 매우 성공적으로 다룰 수 있었다. 고전역학의 영역은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의 체계화에 의해 그 취급 영역이 크게 확대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적합하게 일반화하더라도 동력학의 표준적인 체계로는 미래와 과거의 시간 개념 사이에 아무런 구분도 할 수가 없다. 시간의 관점에서 봉 때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이나 거꾸로 나아가는 방향 모두가 가능하다. 시간의 방향성 개념을 도입하지 않고는 진화가 수반되는 어떤 과정도 정의해낼 수가 없다. 명백히, 새로운 물리학 및 수학적 도구가 요청될 수밖에 없었다.
동력학 개념과는 독립적으로, 진화의 개념은 소위 열역학 제2법칙을 통하여 19세기 물리학에서 그 고유 영역이 이루어지지 시작하였다. 현상학적인 수준에서 시간의 ”가역적인 것과 비가역적인 과정들 사이를 구분짓는 뭔가 새롭고 본질적인 개념이 필요하게 되었다. 프리고진의 『혼돈속의 질서』에서 충분히 그리고 매우 적철히 소개되었듯이 비가역 과정의 한 예로는 열의 전도를 들 수 있으며 이와 같은 변환의 결과는, 적절한 경계 조건들에 부합하는 한, 온도의 균일한 분포에 이르게 된다. 가역변환의 한 가지 예로는 마찰과 에너지 손실을 무시할 수 있을 때의 파동의 파급이다. 열역학 제2법칙은 이를 해석하기 위하여 새로운 함수, 엔트로피를 도입하고 있으며 이 함수는 비가역 변환의 결과로서 증가되는 함수이다.『혼돈 속의 질서』에서 언급되고 있듯이 클라우시우스는 우주의 엔트로피는 증가한다”는 말로써 열역학 제2법칙을 그야말로 극적으로 체계화할 수 있었다. 이 문장에 따르면, 우주는 열적 쇠진 상태를 향하여 달음박질 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에겐 아무리 과거로부터 귀납적으로 생각하여도 그와 같은 말이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이 작품에서 이미 언급하였듯이 인류는 계속적인 다양화와 복잡성을 향한 진화를 관찰할 수 있을 뿐이다. 놀랍게도 19세기에 이르러 열역학 제2법칙을 통하여 물리학에서 나타난 진화 개념은 생물학과 사회학에서 동시에 체계화되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이 번역서에서 다루워진 것처럼 이들 개념의 해석이 또한 각기 다양한 분야들에서 서로 다른 맥락에서 진행되어 오고 있기 때문이다.2앞에서 이미 다루었던 열역학의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몇 가지 단계를 간략히 논의하여 보자. 열역학 제2법칙에 의하면 주위 세계로부터 고립되어 있는 임의의 대상 체계는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소위 열역학적 평형상태"에 이르게 되며 이와 갇은 상태는 엔트로피 함수의 최대에 상응된다. 가장 보편적인 맥락에서 제2법칙은 평형 및 비평형의 상황 모두에 적용된다. 물론 19세기에 발전하였던 고전열역학의 가장 중요한 대부분의 결과들은 평형 상태의 상황을 암시한다. 가장 잘 알려진 예의 하나는 깁스(J. Gibbs)의 상규칙과 질량 작용의 법칙으로 대부분의 이공학계 물리화학 교과서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되어 왔다.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유들을 들 수 있다. 비평형이란 평형상태에서의 질서를 밝혀낼 수 있는 구조의 출현을 방해하는 일시적인 섭동 현상으로 간주되어 왔다. 아름다운 결정 구조를 이루기 위해서는 평형 근방의 조건들이 요구되며 임의의 열엔진으로부터 높은 수율을 얻기 위해서는 소위 마찰이나 열손실과 같은 비가역적 변환들을 최소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나 온사거 (L.On-sager, 1931)의 상보관계 (reciprocity relations)”의 발견과 함께 여러가지 종래의 견해가 바뀌게 되었다. 상보관계에 의하면 적어도 평형의 인접 영역에서는 선형 열역학적 방법들이 비가역 변환들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와 같은 상보관계의 발견으로 고전열역학은 "선형적 비평형 열역학"영역까지 확장되게 되었으며, 이와 갇은 영역은 비가역 변환의 흐름이나 속도는 "열역학적 힘 (예를 들면, 온도나 농도 구배)”과 선형 함수의 관계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은 선형적 비평형 열역학이 적용될 수 있는 대표적인 상황은 열 확산의 경우이다. 서로 다른 두 종류의 기체로 이루어진 기체 혼합물에 임의의 열구배를 제공할 때, 두 기체 중의 한 성분이 뜨거운 기벽에, 다른 나머지 성분이 온도가 낮은 기벽에 농축되는 현상을 발견하였다. 결과로서, 엔트로피는 초기 균일한 혼합물의 경우보다 낮아질 수 있음을 관측할 수 있었다. 『혼돈 속의 질서』에서 검토되고 있듯이 볼츠만의 질서 원리는 질서 있는 구조에서는 낮은 엔트로피가, 무질서적 상황에서는 높은 엔트로피가 연루됨을 말해 주고 있다. 따라서, 우리들은 비평형은 질서의 근원이 될 수 있는 상황의 한 가지 예를 경험할수 있었다. 바로 이와 같은 관찰이 프리고진과 브위셀 학파로 하여금 선구적 연구의 첫발을 들여놓는 계기가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선형적 비평형 열역학의 틀만으로는 어떤 새로운 구조들에 관하여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다. 그와 갇은 상황에서는 고려하는 대상 체계가 평형에 이를 수 없도록 제동을 갖는 구속 조전들에 의하여 평형 구조가 변모될 뿐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바로 프리고진 연구담이 평형으로부터 아주 멀리 있는 상황들에 관하여 연구를 시작하게 된 동기이며, 동시에 종래의 거시적 열역학적 변수들이 적용될 수 있는 평형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에 대한 가능성 타진의 계기가 되었다고 봉 수 있다.이미 이 저서에서 경험하였듯이 프리고진 연구담의 연구 결과들은 전혀 예기치 못했던 것들이었으며 실로 장관의 것들이었다. 가장 홍미있던 한가지 상황은 화학반응의 경우이다. 화학반응 속도는 일반적으로 수반되는 변수들, 농도나 온도 등에 바선형 함수이다. 결과로서 화학반응에 참여하는 혼합물은 일반적으로 한 가지 이상의 해를 갖는 비선형 방정식들에 의해 기술된다. 상황은 경계 및 초기 조건들을 적절히 고려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앞서 보았듯이 주어진 온도 및 부피에서 최대의 엔트로피나 최소의 헬름홀쯔 자유 에너지 값을 갖는 평형 조건에 상응하는 해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프리고전은 이와 같은 해를 "열역학적 가지”로 부르고 있다. 대상계의 구속 조건을 강제로 변화시켜 고려하는 대상계를 평형으로부터 멀리두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검토하였다. 이와 같은 조건이 만족되지 않을 때 열역학적 가지는 불안정해지고 대상계는 짜임새 있는 거동을 수반하는 새로운 구조를 향하여 전화될 수 있었다. 그와 같은 거동은 앞서 프리고진에 의해 다루어졌던 것처럼 유체역학에서 오래전부터 경험하여 왔던 경우이다. 온도 구배가 어떤 특이 값에 대하여 보다 낮게 유지될 때, 열은 전도에 의해 액체를 통과한다. 그러나 가열시키는 정도를 증가시켜 갇수록 어떤 특이한, 그러나 잘 정의된 온도 구배에서는 순간적으로 규칙적인 세포들의 모양을 이루는대류 작용이 나타난다. 이들은 고도의 조직화된 분자 준위의 자기-구성에 상응하며 열적 움직임으로부터 거시적인 대류 흐름으로 에너지 전달을 동하여 가능하게 되는 상황이었다.여기서 거론하고 싶은 문제의 초점은 열역학적 가지의 불안정성의 문턱을 넘어설 때 고려하는 대상 체계 내부에서 동력학적 변환들(화학 반응 속도나 대류 작용)에 대한 짜임새 있는 공간-시간 거동을 연관지을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구성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적절한 되먹임 조전들이 만족될 경우에만 열역학적 가지는 평형으로부터 충분히 먼 거리에 위치해 있을 때 불안정해진다. 이와 갇은 개념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구조들은 충분한 양의 에너지나 물질의 흐름이 존재하는, 평형에서 멀리 떨어진 비평형 조건들에서만 지탱될 수 있다.
프리고진에 의하면 그와 같은 경우의 한 가지 예는 어떤 대도시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식량, 연료 그리고 생활필수품들의 유입과 그 도시에서 생산되는 상품이나 쓰레기의 유출의 활발한 중심지가 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비유할 수 있다. 프리고진의 개념에서 도입하였던 가장 중심적인 용어의 하나는 평형 구조들과는 판이하게 대조되는 소산 구조들이다. 소산 구조는 질서의 근원이 될 수 있으며 비평형 상황의 이와 같은 구조의 예증들이 다양한 상황에 대해 제시된 바 있다. 더욱이, 소산 구조 형성의 메카니즘은 볼츠만의 질서 원리에 근거를 두었던 평형 구조와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안되었다.엔트로피는 무질서 정도를 추량하는 척도이며 앤트로피 증가법칙은 단순히 비조직화의 증가법칙이라고 결론지었던 최초의 학자는 사실상 볼츠만이었다. 볼츠만은 이 역서에서 다루었듯이 엔트로피를 양상의 수(Number of complexions, P)로 보고 S=k log P라는 정량화된 체계을 제시하였다. 여기서 k는 볼츠만의 보편 상수이다. 이 관계에서 고립되어 있는 대상 체계의 열역학적 평형은(엔트로피 최대) 바로 양상의 수가 최대인 상황에 상응한다. 주어진 온도 아래에서 이와 같은 상황을 외부 세계와 열에너지는 교환될 수 있으나 물질의 교환을 허용할 수 없는 폐쇄된 체계에 연장시켜 생각할 수 있다. 이때의 상황은 엔트로피 (S) 대신 헬름홀쯔 자유에너지 (F)를 사용하는 것의에 나머지 상황은 고립되어 있는 경우와 동일하다.자유에너지〔(F)=대상계 내부에너지 (E)-절대온도X엔트로피 (TS)]는 평형에서 최소값에 이른다. 위의 공식에 의하면 고려하는 대상계의 자유에너지는 내부에너지와 엔트로피 사이의 경쟁 관계를 시사해 준다. 온도가 낮을 때 두번째 항(TS)은 무시될 수 있으며 최소 자유에너지는 최소에너지와 낮은 엔트로피에 상응하는 구조에 머무르도록 강요된다. 그러나 온도가 높아질수록 대상계는 점증적으로 엔트로피가 증가되는 구조로 옮아간다.
프리고진의 여러 실험에서 밝혀진 것처럼 온도가 낮을 때 고체 상태는 낮은 엔트로피의 질서적 구조에 의하여 특칭지을 수 있는 반면 고온에서는 높은 엔트로피의 기체 상태가 지배적 구조가 된다. 그렇다면 평형 구조들은 볼츠만의 질서 원리에 의하여 지배된다는 결론에 도달된다. 그러나 볼츠만의 질서 원리는 소산 구조들에 관하여 아무런 말을 할 수 없다. 다시금 베나르 불안정성을 생각해 보자. 볼츠만의 질서 원리는 무려 1020개 이상의 분자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임의의 짜임새 있는 대류 세포 형상의 발생에 관해서 거의 0에 가까운 확률로 표현된다. 그렇다면 전혀 다른 접근을 도입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떤 평균적 상태에는 언제나 마치 작은 요동으로 나타나게되는 대류의 흐름이 존재하게 되지만 온도 구배의 특정한 임계값 이하에서 이들 요동은 감소되거나 사라져 버린다. 반대로 임의의 특정한 임계값 이상에서 특정한 요동들은 증폭되고 임의의 거시적인 흐름을 유발시키게 된다. 나타나는 임의의 새로운 분자 준위의 질서는 근본적으로 의부 세계와의 에너지의 교환에 의해서 안정화되는 거시적인 요동에 상응한다. 이는 곧 소산 구조의 나타남에 의해 특정지워질 수 있는 질서라 할 수 있다. 프리고진 개념에서는 이와 같은 질서를 평형 구조들을 이해하는 데 원천이 되었던 볼츠만의 질서 원리와는 대조적으로 "요동을 통한 질서”로 불렀다. 이와 같은 주제의 연구는 현단계에서 이미 화학으로부터 생물학 그리고 사회학, 인구 동력학 등 거의 모든 자연과학 및 사회과학에서 그 폭이 확대되어 가는 연구 물결의 진원이라 할 수 있다.3브위셀 대학 시절 젊은 프리고진은 물리과학 분야에서 가역 시간 개념또는 무시간성에 의해 자연 현상을 규명하는 오류에 크게 당황하였다고 회고하고 있으며 이후 그는 줄곧 위에서 언급하였던 시간의 방향성과 이의 규명을 위한 비평형 열역학에 대한 연구에 열정을 쏟기 시작하였다. 첫번째의 결실로 그는 1945년 브위셀 대학에서 수여한 박사 학위 논문, "비가역 변 환의 열 역 학 (Elude Thermodynamique des Processus Jrreversibles, Desoer, Liege)”은 이미 유럽의 지성인들 사이에 엄청난 반향의 초점이 되기에 이르렀다. 그후부터 모두 나열할 수 없는 엄청난 학술 논문의 발표가 지금까지 줄을 잇고 있는 실정이며 『혼돈으로부터의 질서』에 이르기까지의 그의 주옥 갇은 과학 저술의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비 가역 현 상의 열 역 학 ( Thermodynamique des phenomenes irreversibles, Liege, 1947)』에서 그는 비평형 문제의 현상학적 접근을 다루고 있으며 그후 드페이 (R. Defay)와의 공저 『화학열역학 ( Thermodynamique Chimique, Desoer, Liege, 1951)』을 간행하였다. 이 저술은 영문판으로 번역된 후 이미 7판의 개정판이 출간되고 있는 고전연역학 분야의 중요한 문헌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여기서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저명했던 물리학자 돈더 (De Donder)와 그의 브뤼셀 대학 연구덤에서 개발된 새로운 고전열역학적 방법론을 다루었다. 1967년까지 3판이 출간된 r비평형 열역학 개론(Introduction to nonequilibrium thermodynamics, Elesvier. New York)』과 글랜스도르프(P. Glansdorff)와의 공저인 『구조, 안정성, 요동의 열역학적 이론 ( Thermodynamic Theory of Stntcture, Stability , and Fluctuations, Wiley, New York, 1971)』은 이후 불어판(French ed. Masson Paries, 1973), 러시아판(1976) 및 일본어판(1976)이 연차로 간행되었다. 특히 이 저서에서는 평형으로부터 출발하여 비선형 상황들과 불안정성을 포함하는 모든 영역에서 거시적 묘사로서의 비평형 체계의 열역학적 이론을 다루고 있다. 특히나 이 저서에서 프리고전은 유체역학이나 화학에서의 비교적 단순한 상황은 물론이려니와 소산 구조들의 출현에 대한 열역학적 평가 방법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후 이와 같은 소산 구조의 형태에 대한 계속적인 연구를 동하여 위의 저술에서 다루지 못하였던 문제들이 니콜리스(G. Nicolis)와의 공저, 『비평형계의 자기
-구성 : 소산 구조로부터 요동을 통한 질서 (Self-organization in Nonequilibrium Systems : From Dissipative Stn,ctures to Order througlz Fluctuations, Wiley, New York, 1977)』에서 명 쾌 히 그리고 보다 포괄적인 과학적 논조로서 다루어지고 있다. 이 책을 통한 프리고진의 주된 연구의 방향은 다음과 같았다. 열역학적 가지의 불안정성의 문턱을 초월할 때 무엇이 발생되는가? 짜임새 있는 거동의 형태는 무엇이며 어떻게 이들을 대상계에 적용되는 구속 조전들이나 수반되는 분자준위의 메카니즘으로 연관지을 수 있는가? 소산 구조들의 성장에 대한 속도론은 무엇이며 어떻게 요동 이론을 비선형, 평형에서 멀리 떨어진 상태에 접목시킬 수 있는가? 등등. 이들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한 프리고진의 관심은, 일체의 비선형 화학반응, 생태학, 사회생물학, 화학시계, 인구학, 생체학, 분자 생물학, 곤충사회학 등의 모든 분야를 포괄하고 있다.
사회학에 대한 그의 지대한 관심과 연구 결과의 일부는 또한 헤르만(R. Herman)과의 공저 『교동 수송의 메카니즘 이론(Kinetic Theory of Velzicular Traffic, Elsevoer, New York, 1971) 이 있으며 이 저서 또한 그의 무한한 범주의 학문 체계를 홍미롭게 소개한 저술의 하나이다. 젊은 시절부터 고고학, 인류학 등에 관심을 두어 왔던 프리고진은 이제 더이상 그의 아이디어를 과학 이론의 국한된 영역에만 둘 수 없었다. 위에서 언급하였던 글랜스도르프와의 공저 및 니콜리스와의 공저를 바탕으로 그가 비평형 열역학으로부터 도출되는 그의 무궁한 이론들과 과학철학 및 인류학에 접목시킨 결과가 저술로서 출간되었는데, 바로 1979년의 불어판 『새로운 동맹 (La nouvelle Alliance)』과 1984년의 개정 영역판 『혼돈 속의 질서 (Order Out of Chaos)』이다. 그는 또한 이와 비슷한 시기에 『있음에서 됨으로 : 시간의 의미와 물리과학(From Being to Becoming : Time and Complexity in the Physical Scienes, Free man Co, USA 1980)』을 출간하게 되었다. 『있음에서 됨으로』는 대우학술재단의 지원으로 고려대학교 이철수 교수(대우학술총서, 번역 I3, 민음사, 1988)에 의해 우리말로 번역되어 국내에 소개된 바 있다. 이 저술을 통해서 프리고진은 시간의 방향성, 대칭성 및 자기-구성 이론 등을다룬 바 있다.
4『혼돈 속의 질서』에서 강조하고 있듯이 프리고진의 접근 방법은 거시적 대상계의 시간 진화 개념은 결정론적인 것과 확률적인 성분 모두가 결합되고 이들이 어떻게 조화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두갈래치기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점에서는 결정론적인 방정식둘로 충분하지만, 반면에 두갈래치기 근방에서는 인과율의 개념에 상응하는 확률적인 성분이 핵심적인 상황이 된다. 이와 갇은 문제는 문명 속에서의 정량적인 것과 정성적인 성분의 차이를 구분짓는 것과도 비유할 수 있다. 새로운 문명적 특질은 문명적 성장으로부터 도래되고 형상화된다. 프리고진의 용어에 의하면 문명적 발전은 확률적 효과들이 기본적 역할을 담당하는 불안정성에 상응하며, 반면에 문명적 성장은 결정론적 발전에 상응한다. 평형 질서에 버금할 수 있는 일반성 있는 기능적 질서의 해석 이전에 생체”의 과정들은 어느 면에서 자연이나 물리적인 법칙 밖으로 밀려나 버렸다. 사람들은 살아 있는 유기체에 대한 근원적 성격을 규명하려고 시도하여 왔으며 생명의 근원을 극도의 있을 법하지 않는 사건들의 연속의 결과로서 상상하여 왔다. 고전동력학에서는 사건과 규칙성 사이의 분명한 구분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동력학의 재법칙들은 사전 사이의 규칙을 다루고 있을 뿐이며, 사전 자체를 다루지는 않는다. 사건 자체는 고전동력학이 아무런 언급도 해낼 수 없는 초기 조건과도 같다. 기껏해야 우리들은 어떤 사건자체에 대하여 각각 가능한 초기 조건에 대한 임의의 확률을 규명하기 위해서 볼츠만의 열역학 제2법칙의 확률적 해설을 접목시킬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일단 초기 조건이 정의되면, 고려하는 대상계는 임의의 특정한 비가역 과정을 통하여 가장 있을 법한 상태에 이르게 될 따름이다.생명이란 가장 있을 법하지 않은 초기 조건들의 결과로서 생각하여 왔던 물리학의 제법칙에 부합되지만(초기 조건들을 인위적으로 선택할 수 있으므로) 그러나 물리학의 제법칙을 따르지는 않는다고 믿어 왔다. 생명은 초기 조건들을 전제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노(J. Monod)는 그의저서 『우연과 필연 (Le Hasard ed la Necessite, Seuil, Paris. 1970)에서 이와 같은 견해를 다룬 바 있다. 더욱이 생명의 유지는 아마도 이와 같은 관점에서 봉 때 생명의 존재를 허용하는 가장 있을 법하지 않은 초기 조건들을 지탱하기 위한 물리학의 제법칙에 대항하여 싸우는 격렬한 투쟁과도 흡사하다. 프리고진에 의하면 그러나 생체의 과정들은 자연 밖에 밀려나 있기는커녕 특정한 비선형적 상관 관계와 평형에서 멀리 떨어진 조건에 의한 물리법칙에 의한다는 견해이다. 이미 독자들이 경험하였듯이 이와 같이 자기-구성에 관한 제현상들의 특질을 규명하기 위해서 그의 논조는 피할 수 없이 난해하고 국도로 다양화되어 있다. 그러나, 『혼돈 속의 질서』에서는 보다 서술적인 접근 방식으로 열의 대류흐름, 화학시계, 자촉매 작용, 개미의 군거 습성 등, 숟한 자기-구성의 예증들이 충분히 그리고 적절히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이미 독자들이 체험하였듯이 그의 이론은 매우 복잡하고 다단하다. 때때로 역자의 이해 범위 이상에서 설명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와 같은 어려움이 이 번역서의 도처에서 의미가 명쾌히 전달되지 않은 번역으로 나타났으리라 믿어진다.
5『혼돈 속의 질서』의 머리말을 썼던 토플러 (A. Toffler)가 서두에서 언급하였듯이 오늘날 서구 문명의 가장 완숙된 재간의 하나는 무엇이든 작은 부분으로 해체해내는 일이었다. 그들은 그와 같은 일에 너무도 익숙해져 버린 탓인지, 종종, 해체하였던 미소 조각들을 다시 본래의 상태로 맞추어 전체의 혼돈적 거동으로서 질서를 파악하려는 과제를 잊어버리곤 하였다. 프리고진은 서양 문명이 그저 단순하게 사물의 현상을 세분하여 놓는 일에만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는 이같이 작은 조각으로 분리 고립시켜 버린 부분들을 다시 조합시키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 그의 경우 통합은 있음과 됨, 무시간성과 시간 방향성, 우연과 필연의 동반자로서의 역할이며 혼돈과 무질서와 질서의 통합이었다.동양에서는 무려 2,000년 전에 장자 사상이 체계화되어 갔다. 道(질서)는 인간 존재의 근원이며, 혼돈이 도이며 생명의 근원이라 믿어 왔다.오늘날 서구 과학에서 재인식되는 있음에서 됨으로의 통합적인 접근은, 오히려 옛날 동양적 접근 방법과 맥을 같이하며 그와 같은 방법을 접어둔 채 오늘날까지 서구의 해체해내는 재간의 습득에만 허덕이는 동양의 접근을 볼 때 다음과 같은 비유론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서구의 문명은 무려 장자 이후 2,000여 년을 거친 후 프리고진 파라다임에 의하여 동양의 통합적 해석 방법에 근접할 수 있었으며 동양은 그와 같은 주옥 같은 우리의 사상을 외면한 채 무려 2~300여 년을 뉴톤 파라다임의 추종자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되는가?
마지막으로 번역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끝까지 관심을 갖고 쾌히 워드프로세싱 작업을 맡아 주었던 역자의 연구실 대학원생 식구들 김선영, 노승욱 제씨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1989년 4월 30일옮긴이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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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드너 (Gardner, Martin) 306, 335가속 (Acceleration) 105-107가역 성 (Reversibility)궤적 (of trajectories) 109-110열역학적 변환(thermodynamictransformation) 53, 170-171, 179정준 방정식 (of canonicalequations) 122갈릴레오 (Galileo) 85, 86, 96, 97,388갈바니 (Galvani, Luigi) 164객관적 실재의 언저리 (Edge of Objectivity, The, Gillispie) 74객체적 시간(Individual time) 21거센디 (Gassendi, Pierre) 110거시적 대상계 (Macroscopic System)162-164결정론(Determinism) 30, 50, 109,127, 232-233, 240, 241, 285, 296,3o3, 342, 347-35o, 387개념 (concepts of) 26-27경계조건 (Boundary Conditions) 162,179-180, 185, 186, 198-199, 202,207, 212계몽 (Enligtenment, the) 115, 131,132, 140고유값 (Eigenvalues) 291, 292해밀토니안 연산자(Hamiltonianoperator) 296, 297고유함수 (Eigenfunctions) 291-293곤충, 자치집단(Insects, self-aggrega-tion of) 245-251
골모고로프 (Kolmogoroff) 344공간(Space)난류에 수반된 (involved in turbulence)201신성한 것 대비 치욕적인 (sacred vsprofane) 80시간적 차원 (temporal demensionof) : 또한 위상공간(phase space)을 볼것 59유크리드와 아리스토텔레스적(Euclidian vs Aristotelian) 234공간 대칭파괴 (Spatial Symmetry-breaking) 336꽁트(Comte, Auguste) 160-161과정 (Process)물리학(physics of) 53, 161, 164,317화이트헤드의 개념 (Whitehead's conceptof) 334, 386과정과 실재 (Process _and Reality,Whitehead) 149, 152, 393과학적 혁명 ("Scientific Revolution)44, 45관계, 철학의 (Relation, Philosophyof) 151괴테 (Goethe, Johann Wolfgangvon) 188구약성서 (Old Testament) 26구조적 안정성 (Structural Stability)254-257국부론, 스미스(Wealth of Nations.Smith) 159
굴드(Gould, Stephen J) 271굴드베르그와 바게의 법칙 (Guldbergand Waage's Law) : 이에 대해서는질량작용 법칙 (Mass action, lawof) 133을 볼 것 I93궤적 (Trajectories) 108-109, 116,180, 241개념의 한계 (limits of concept of)338-342변화(variations in) 127불안정한 대상계 (in unstable systerns)348-350원천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intrinsicallyindeterminate) 124위상공간(in phase space) 322-323그라세 (Grasse) 245, 251기계 (Machines)수학 (mathematics and) 91아르키메데스 (Archimedes's) 86열이용(using heat) 159이상적 (Ideal) 111, 117~118기관(Engines) 53, 159, 161-164, 169-173기독교 정신 (Christianity) 91, 92, 96,128기초소립자 물리 (Elementary ParticlePhysics) 34, 39, 40, 50, 51, 61,78, 302, 364-368우연 (Chance) 또는 인과율 26-27, 55,233, 240, 270개념 (concept of) ; 또한 무작위성(Randomness)을 볼 것.
깁스(Gibbs, J. W.) 56, 310, 322-327, 338ㄴ나보코프 (Navokov, Vladimir) 356-357나이트 (Knight) 145나폴레옹(Napoleon) 98, 115낙하하는 물체 (Falling bodies,Galileo's laws for) 105, 112난류 (Turbulence) 201난류적 혼돈 (Turbulent Chaos) 230-231내재 또는 내부시간(internal time) 350-351, 369노이만(Neumann, Von) 344노이에스(Noyes) 213뉴톤 과학 (Newtonian Science) 14,15, 23, 30, 31, 81-85, 281디드로(Diderot and) 133, 135문명적 위치의 불안정성 (instabilityof cultural position of) 73변화의 개념 (concept of change in)111-116보편상수의 부재 (absence of universalconstant in) 296볼테르(Voltaire and) 334불안정성 (instability and) 342불완전성 (incompleteness of) 276세계견해 (world view of) 301실증주의 (positivism and) 152예언적 위력 (prophetic power of)
70운동법칙 (lows of motion of) 105-108칸트의 비판 (Kantian critique of)140-142코레이 (Koyre on) 79-81한계 (limits of) 72-73확산 (spread of) 70-72뉴톤 (Newton, Issac) 15, 34, 53, 69-71, 113, 128, 154, 160, 179,184, 306, 388기계론적 세계견해 (and mechnisticworld view) 105변화 (on change) 110, 111I8세기의 반대 (eighteenth-centuryoposition to) 113연구를 위해 선택한 대상(objectschosen for study by) 285연금술 (alchemy and) 112왕립학회에서 프린키피아의 발표(presentationof Principia to RoyalSociety) 39운동법칙 (laws of motion) 121정의된 객관성 (objectivity definedby) 287제2법칙 (second law) 107뉴톤 과학 (Newtonian Science)을볼 것니담(Needham, Joseph) 45-46, 91,94, 95, 152, 357니스베 (Nisbet, R) 131니츠키 (Nietzsche, Friedrich) 169,
196ㄷ다윈 (Darwin, Charles) 15, 24, 188,200, 284, 313, 314, 327다윈론적 선택 (Drwinian selection)256, 257, 260, 261다원우주의 가설 (Many-Worldshypothesis) 299다이슨(Dyson, Freeman) 176단순성 , 고전과학의 (Simplicity, andClassical Science) 46, 63, 93, 97단일 방향성 과정들 (Unidirectionalprocesses) 334-335두갈래치기 (Bifurcations) 221-223,240, 354단계적 (cascading) 230-233반응확산계 (in reaction-diffusionsystems) 336사회적 (Social) 397요동 (fluctuations and) 241, 244우연의 역할(role of chance in) 31,233, 240이론 (theory of) 55진화(in evolution) 234-235통계모델 (and Statistical model)272-273단자 (Monads) 126, 385-386단진자 (Pendulum) 58, 125, 285, 338-339닫혀 있는 체계 또는 대상계 (ClosedSystem) 161, 185
달랑베르 (Jean Le Roud D'Ambert)98당분해 과정 (Glycolysis) 217-218대류 (Convection) 187대변혁 (Big-Bang) 33, 368“대상계의 지지능력"(Carrying Capacityof Systems) 258-264대칭파괴 (Symmetry-breaking) 221-230비가역성 (irroversibility and) 337-338태아 또는 씨눈발전 (in embryodevelopment) 237대화 (Dialoge) 388두 개의 우주체계 (Comcerning theTwo Chief World Systems,Galileo)데모크리무스(Democritus) 41데사굴리에 (Desaguliers, J. T.) 69데이빗 (David, Ben) 98데 카르트 (Descartes, Rene') 109, 110,I33도르레 대상계 (Pulley Systems) 86-87도시화, 모델 (Urbanization, modelof) 265-269돈느 (Donne, John) 103돈더 (Donder, Theophile de) 197돕스 (Dobbs, B .J. ) 113동력학 (Dynamics) 52, 55-56, 107-110, 164가역성 (reversibility in) 179기본대칭 (basic symmetry of) 317
대칭파괴 (symmetry-breaking in)336-338라문라스 비범성 (and Laplace'sDemon) 127-129반죽 변환 (baker transformationin) 355-356변화(changein) 110-116복잡한 계 의 과학 (and science ofcomplexity) 275-276비가역성 원리 (and theories ofensembles in) 327상관관계 (of correlations) 359-364생성된 확률 {probability generatedin) 352앙상블 이론 (theory of ensemblesin) 322-327질서의 개념 (concept of order in)367연산자 (operators in) 292열역 학과의 부조화 (incompatabilityof thermodynamics and) 285연역학의 조정 (reconcilation ofthermodynamics and) 18120세 기 재 음 미 (twentieth-centutyrenewal of) 342-250동시성, 정의의 (Simultaneity, definitionof) 287되먹임 (Feedback) 214과학과 사회 간의 (between scienceand society) 14생물학적 대상계 (in biological sys-tems) 215
진화 (in evolution) 257, 263-270뒤렘마트 (Duerrematt, F. ) 63듀헴 (Duhem, Pierre Maurice Marie)I53드너보르그 (Deneubourg, J. L.) 245드리치 (Driesch, Hans) 234디드로(Diderot, Denis) 131-139, 146,196, 392디락 (Dirac, Paul) 78, 290, 301디옥시리보 핵산 (Deoxyribonucleicacid, DNA) 216ㄹ라그란지 (Lagrange, Comte, Joseph,Louis) 98, 152, 160, 177라보아지에 (Lavoiser, Antoine Laurent)70, 166라이프니쯔(Leibniz, Gottfried von)96, 102, 385, 386단자의 (monads of) 126속도 및 가속도 공식 (formulare forvelocity and acceleration) 106라이헨바크 (Reichenbach, H. )153라플라스 (Laplace, Marquis PierreSimon de) 14, 70, 98, 102, 114,115, 169, 174비판된 후리어 (Fourier criticizedby) 160라플라스의 비범 (Laplace's demon)127-129, 142, 349러브 (Love, Milton) 261레노블(Lenoble, R.) 41
레놀즈의 수(Reynolds' number) 204살아있는 우주 (Levenswelt) 380레비-브럴 (Levi-Bruhl, L.) 372레비-스트로스 (Levi-Strauss, Claude)83, 272레이몬드(du Bois Reymond) 129,153레이저 (Layzer, David) 30로렌쯔( (Lorentz, Hendrik, Antoon)348로슈미트 (Loschmidt) 318, 320로젠펠드(Rosenfeld, Leon) 342, 298루이스(Lewis, G. N.) 305루이스 XIV (Louis XIV, King ofFrance) 98루크레티우스 (Lucretius) 42, 201, 385-388루터 (Luther, Martin) 26르메뜨르(Lemeaitre, Georges) 284리빅 (Liebig, Baron Justus von) 166리아프노프(Lyapounov) 212리쯔(Ritz, W.) 335ㅁ마르코프 사슬 (Markov Chains) 309,311, 313, 316, 351-355,상관관계 동력학 (and dynamics ofcorrelations) 362엔트로피 장벽 (and entropy barrier)357마르크스 (Marx, Karl) 328마이어 (Mayer, Julius Robert von)
166, 170마하(Mach, Ernst) 95. 101-102, 153막대한 수(Large numbers, law of), 242. 244막스웰 (Maxwell, James Clerk) 102,124, 181, 221, 313, 314, 344막스웰 비범 (Maxwell's demon) 239,312매터닉 (Metternich, Clemens WenzelNepomuk Lothar Furst von) 14머리속 실험 (Thougt experiment) 88볼츠만의 엔트로피 (Boltzmann'sentropy) 318동력학 (in dynamics) 109-110멀로우-폰티 (Merleau-Ponty, M. )380메이어슨(Meyerson, Emile) 373모노 (Monod, Jacques) 42-43, 64,8o, I3I. 138모린 (Morin, Edgar) 26-27모스코비치 (Moscovici, Serge) 64,389-39o몰(Mole) 181몽유병자 (Hypnons) 244, 367, 368묘사의 근본적 차원 (Fundamental levelof description) 328-329무작위성 (Randomness) 24, 49, 50,186, 303-304, 308무작위 성 (Randomness)으로부터의 비가역성 (to irreversibility from) 350-356무질서 (disorder) 33, 60, 184, 186,
202, 310, 320, 326, 365-367, 373물리적 우주에의 자연 (Nature of thePhysical World, The, Eddington)49물리학 (Physics)객관성 (objectivity in) 103거시적 (macroscopic) 13 과정 (of processes) 317디드로 (Diderot on) 132-136루크레티우스적 (Lucretian) 201베르그송 (Bergson on) 147, 148변화개념 (concept of change) 111변화되는 기대 (Changing perspectivein) 49-50시간 (time in) 175신학 (and theology) 95생물학과의 상보적 발전 (complementarydevelopments in Biologyand) 216실증주의적 견해 (positivist view of)153운동의 법칙 (and laws of motion)105진취된 강론(inspired discourse of)128진화로의 개념적용(application ofconcepts to evolution) 274-276진화적 파라다임 (evolutionary paradigmin) 378-379화이트헤드(Whitehead on) 197화학과의 개념적 구분 (conceptualdistinction between Chemistry
and) 197확윤의 도입 (introduction of probabilityin) 182활성론 (vitalism and) 137물리학자 (Physicist, The Duerrenmatt)63불질 또는 물체 (Matter) : 활성 (active)50, 365-370, 385디드로(Diderot on) 135반물질 (anti-matter) 302-303복사의 상호작용 (interaction ofradiation and) 289새로운 견해 (new view of) 50생명으로 전이 (transition to lifefrom) 138성질 (Properties of) 40스탈 (Stahl on) 138-139열의 영향 (effect of heat on) 161유도된 비평형 (nonequilibriumgenerated by) 245차이의 지각 또는 인지 (Perceptionof differences by) 225, 227파동-입자 이중성 (wave-particleduality of) 291평형에서 멀리 떨어진 조건 (in far-from-equilibrium conditions) 55미소정준적인 앙상블 (Microcanonicalensemble) 343민코프스키 (Minkowski, H.)302밀도함수(density function) 322-326,338, 342분포함수 (or distribution function)
369시간의 화살 (with arrow of time)356, 369위상공간(in phase space) 343-350,352, 358ㅂ바쉐라르드 (Bachelard, Gaston) 118바이스 (Weiss, Paul) 238바하(Bach, J. S.) 390박테리아 케모탁시스(BacterialChemotaxis) 239반응-확산 대상계 (Reaction-diffusionsystems) 337반직감적 반응 (Counter intuitiveresponses) 270반죽 (Baker transformation) 347, 350-354, 355-356, 362, 369반환원주의자 (Antireductionists) 237-238발레리 (Valery, Paul) 58, 383요동을 동한 질서 (Order throughfluctuation) 220, 242c토o대nc륜ep t 둔o f) 모2델73 (models based on요동 (Fluctuations) 16, 28-30, 33,184-185, 200-201, 203증폭(amplification of) 201, 203,245-254화학(and Chemistry) 241-243상관관계 (and correlations) 243-245마르코프 사슬(in Markov process)
311미시적 척도(on microscopic scale)3o3-3o4백과자전 (Encyclopedie) 136버르쵸프(Birchoff) 344버트츠(Butts, Thomas) 73베나르 불안정성 (Benard instability)202-204혼돈으로의 전이 (transition to chaosin) 230-231베넬 (Venel) 136, 392베르그송(Bergson, Henri) 51, 131,132, 146-150, 152, 189, 237-238,383-384베르누이 (Bernoulli, Daniel) 135베르린 (Berlin, Isaiah) 40, 52, 54,132베르토레 (Berthollet, Claude LouisComte) 117베리 (Berry, B.) 59베소 (Besso. Michele) 374벨루소프-자보딘스키 반응(Belousov-Zhabotinsky reaction) 212-214,231변화(Change)상태 (of state) 162열역학적 대상계 또는 체계 (in thermodynamicsystem) 179-181운동 (motion and) 110-116자연 (Nature of) 371화이트헤드(Whitehead on) 151보급적 진화 (Logistic evolution) 258 -263 보르드(Bordeu) 136 보상 (Compensation) 164 클라우시우스적 카르노 순환(Clausiu
sian Carnot cycle) 172 동계적 (Statistical) 184, 193, 313 보어 (Bohr, Niels) 40, 126, 290, 294 -295, 229-301, 372-373 보어하브(Boerhave, Hermann) 161 보존 (conservation) 138 보편상수 (universal constants) 286 -289, 301 복사 (Radiation) 276, 284 복잡성 (Complexity) 동력 학과 과학 (dynamics and science of) 275-276 모델화 (modelizations of) 270-275 한계 (limits of) 253-254 본 (Born, Max) 290, 307 볼츠만 (Boltzmann, Ludwig) 20, 56 -58, 182-187, 289, 297, 306-309, 334, 335, 352, 365-367, 378 시 간의 화살 (and arrow of time) 329-331 에르고드대상계 (on ergodic systems) 344 평형을 향한 진화(on evolution toward equilibrium) 313-317 볼츠만 상수 (Boltzmann's constant) I84 볼츠만 질서 원리 (Boltzmann's orderprinciple) 182-188, 202, 203, 211,
224, 252이론에 대한 반론 (objections totheories of) 317-320앙상블이론 (and theory of ensembles)323. 326볼타 (Volta, Count . Alessandro) 164-165볼테르 (Voltaire) 333-334분자생물학 (Molecular Biology) 43,49평형에서 멀리 떨어진 (far-from-equilibrium conditions in) 214-220활성론 (vitalism and) 138분자준위 혼돈의 가정 (Molecular Chaosassumption) 320분포함수 (Distribution function) 밀도함수을 참조할 것불가능성 (impossibility) 입증 (demonstrations of) 59, 285-286, 376,380-382분모 (sterility) 198, 199, 204-205불안정성 (Instability) 동력 학적 또는 동적 (dynamic) 124, 346-350, 355,382분계, 문덕 (threshold) 206, 207,22I화학(Chemical) 204-215열역학(theermodynamic) 201-202불안정한 입자 (unstable particles)126, 303, 368브런스(Bruns) 123, 343
브로델 (Braudel) 21, 29브로이 (Broglie, Louis de) 290브루노 (Bruno, Giordano) 56브르쉘레이터 (Brusselator) 206, 208,212, 213, 22l브르쉘학파(Brussels school) 18브리오원 (Brillouin) 185브릿지만(Bridgemann, P. W.) 61브크달 (Buchdahl, Gerd) 72뷔풍 (Buffon, Georges Louis Leclercde, Comte) 115, 116블레이크(Blake, William) 73비가역성 (Irreversibility) 24, 25, 33,34, 46-50, 111, 174물리학에 의한 수용 (acceptance byPhysics of) 275-276고전적 개념의 한계 (and limits ofclassical concepts) 338-342대칭 파괴과정 (as symmetry-breakingprocess) 337-338무작위성으로부터 (from randomnessto) 350-356물리학의 연합에 대한 문명적 맥락(cultural context of incorporationinto Physics of) 392~393물체 -빛 상호작용 (and matter-lightinteraction) 288미시적 이론(microscopic theory of)316, 333-335, 364-365, 368-370,393상관관계 동력학 (and dynamics ofcorrelations) 359-364
상보관계 (in reciprocity relations)198생물학 (and Biology) 188, 239속도(rate of) 195아인슈타인 (Einstein on) 374-375앙상블 이론 (and ensemble theory)326열역학(in thermodynamics) 또한 시간의 화살 (arrow of time) 엔트로피(entropy)을 볼 것 53이론 (controversy over) 56-68이론의 체계화(formulation of heoryof) 161, 164, 176-181주관적 해설 (subjective interpretationof) 327-328정량적 표현 (quantitative expression of) 169진화 (in evolution) 188, 254질서의 근원 (as source of order)56, 372측정 (measurement and) 299화학 (in Chemistry) 191, 197, 241확률 (probability and) 58, 184, 185,305-313비너 (Wiener, Norbert) 375-376비대칭 (Dissymmetry) 184, 225시간(in time) 185대칭파괴 (Symmetry-breaking)를 볼것비선형성 (Non-linearity) 55, 194,214, 216-217, 264촉매(catalysis)를 볼 것
비선형 열역학(Non-linear thermodynamics)197, 200비엔나 학과(Vienna school) 153비열 (specific heat) 162비코(Vico, G.) 43비평형 (Nonequilibrium)구조의 원천 (origin of structures)29요동 (fluctuations in) 242-243입자와 반입자와의 차이 (differencebetween particles and antiparticlesin) 364우주적 차원 (cosmological dimensionof) 303질서의 근원 (as source of order) 또한 367평형에서 멀리있는 상태 (far-from-equilibrium)를 볼 것빛 (Light) ; 속도 (velocity of) 59,103, 286-289, 357, 375, 376파동-입자 이중성 (wave-particleduality of) 288-290ㅅ사하로프 (Sakharov, A. D . ) 302사회과학 (Social sciences) 396-397시간 (time in) 175진화 (evolution in) 188사회적 시간 (Social time) 21사회적 진화 (Social evolution)되먹임 (feedback in) 264-270모델 (models of) 271-273
보급 방정식 (logistic-equations in)258-260적용된 물리학에 의한 개념 (conceptfrom Physics applied to) 274산업시대 (Industrial Age) 169연소 (combustion and) 159상관관계 (correlation) 243-245, 359-364상대성 (Relativity) 50, 78, 284, 390기초소립자 (and elementary particles)302뉴톤 동합 (and Newtonian synthesis)115, 116, 301머리속 실험 (thought experimentsin) 88보편상수 (and universal constants)282-283불가능성 입증 (demonstrations ofimpossibility in) 282, 376빛의 속도, 광속 (and velocity oflight) 375시간의 정적 기하학적 특성 (staticgeometric character of time and)302아인슈타인의 특정이론(Einstein'sspecial theory of) 59우주의 열적 내력 (and thermalhistory of universe) 303천체물리학(astrophysics) 175상변화 (phase changes) 252상보관계 (Reciprocity relations) 197-198
상호보완성 (Complementarity) 295싸르뜨르 (Sartre, Jean Paul) 26새로운 과학(New science, The.Vico) 43생명 (Life) ; 베르그송(Bergson) 498근원 또는 원천 (origin of) 55낭만적 개념 (Romantic concepts of)I39스탈의 정의 (Stahl's definition of)I38시간적 또는 잠시적 차원 (temporaldimensions of) 또한 분자생물학(Molecular biology)을 볼 것275자기 -구성의 표현 (as expression ofself-organization) 239-240질서원리 (and order priciple) 187-188평형에서 멀리 믿어진 조건과의 일치(Compastibility with far-from-equilibrium conditions) 203특성으로서의 대칭 -파괴 (symmetry-breaking as characteristic of)225생물학(Biology) 40, 51기술적 유사성 (technological analogiesin) 238-239물리학으로부터의 개념 (conceptsfrom Physics applied to) 274보급 방정식 (logistic equation in)259-263분자(molecular) 또한 분자생물학란
을 참조 (see Molecular biology) ;환원주의와 반환원주의간의 갈등(reductionist-antireductionist conflictin) 238분자들간의 "의사소통 또는 커뮤니케이션" (communication among moleculesin) 54시간 (time in) 175전환(and conversion) 165진화 (evolution and) 53, 188촉매 (catalysts in) 193-194화이트헤드(Whitehead on) 152화학반응 (chemical reactions in)191-192생물 이전진화 (prebiotic evolution)255-257생태학 (Ecology)보급 방정식 (logistic equation in)258-259, 263, 271선형 열역학(linear thermodynamics)197-200세레스(Serres, Michel) 160, 201,386, 387三體문제 (Three-body problem)123, 343세익스피어 (Shakewperare, Michel)373세포(cells)베나드 (Benard) 203화학반응 (Chemical reactions within) 191-192소산 (Dissipation) 또는 손실 (loss)
111, 170, 173, 176, 179, 185,189, 384-385소크라테스론 이전 (pre-Socratics) 83-84속도론, 화학 (Kinetics, chemical)192-194속도반전 실험 (velocity inversionexperiment) 359-363속도분포 함수 (velocity distributionfunction) 316-320, 323-326속력 (velocity) 105-108광속 (of light) 59, 103, 286-289,357, 375, 376분포(distribution of) 313-316순간적 반전 (instantaneous inversionof) 110, 317-320, 359-364유체역학 또는 수동력학(hydrodynamics) 187평형에서 먼리 떨어진 조건하의 현상(far-from-equilibrium phenomenain) 201수학화 (Mathematization) 91라이프니쯔(Leibniz on) 96운동(of motion) 109해밀톤 함수 (in Hamiltonian function)122헤겔의 비판(Hegel's critique of)146순수이성 비판 (Critique of PureReason[Kant]) 140슈렝거 (Schlanger, J. ) 139슈뢰딩거 (Schrodinger, Erwin) 60 -61,
290, 316슈뢰딩거 방정식 (SchrOdinger equation)296~301스미스 (Smith, Adam) 159, 274스코트 (Scott, W . ) 159스탈 (Stahl, George Ernst) 136-139,237, 239, 392스피노자 (Spinoza, Baruch) 284, 393시간 (time) 20-25, 51개념의 재고 (revision of conceptionof) 152난류에 수반된 (involved in turbulence)201내재적 (interanl) 350-351, 369동력학 (in dynamics) 110, 117물리학에의 의미 (as meaning of, inphysics) 149베르그송(Bergson on) 148변화의 척도로서 (as measure ofchange) 110비대칭 (dissymmetry in) 185소산구조 (in dissipative structures)204실증주의적 견해 (positivist view of)15319세기 물리학(in nineteenth centuryPhysics) 176, 375-376아인슈타인 (Einstein on) 282-284,327, 356-357양자역학(in quantum mechanics)301-302열역학 (in thermodynamics) 53,
189인류의 상징적 활동(and humansymbolic activity) 396일상생활 (in everyday life) 58-59의존된 진동 (oscillations dependenton) 208자연속의 뿌리 (roots of, in nature)60재발견의 사회적 맥락 (social contextof rediscovery of) 61점진적 재발견 (progressive rediscoveryof) 275창조적 경 로 (creative course of)380-393척도의 변모되는 중요성 (varyingimportance of scales of). 또한 시간의 화살 (Arrow of time) 및 비가역성 (irreversibility)란을 볼 것 383총체적 판단(global judgements of)59해밀톤 함수(in Hamiltonian function)121, 122헤겔 (Hegel on) 146편도함수 (derivatives with respectto) 107시간성 (temporality) 또한 시간(Time)을 볼 것 48시간의 화살(Arrow of time) 24, 33,49, 58기초소립자 (and elementary particles)368담당하는 역할 (roles played by) 383
레이저 (Layzer on) 30볼츠만(Boltzmann on) 329-331엔트로피 (and entropy) 178, 333-335열기관(and heat engines) 169-173의미 (meaning of) 369확률 (and probability) 311-312시계 (Clocks)발명 (invention of) 91자연의 상징 (as symbol of nature)또한 l69화학시계 (chemical clocks)을 볼 것시나이 (Sinai) 344시류를 거슬러 (Against the current,Berlin) 40신석기 혁명(Neolithic revolution)44-45, 81신앙, 종교 (Religion)고대 그리스 (ancient Greek) 82-84과학사이의 공명 (resonance betweenscience and) 91-97신호, 파급의 (signals, propagationof) 286-287실재, 관념화(Reality, conceptualizationof) 295-296실존주의 (Existentialism) 26실증주의 (Positivism) 132, 152-154독일철학(German philosophy and)166백작(Comte and) 160-161실험 (Experimentation) 44, 86-89가정된 언어의 보편성 (universality
of language postulated by) 97총체적 사실 (global truth) 89-90칸트 (Kant and) 143ㅇ아르키메데스(Archimedes) 84, 86,387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84, 85,122, 139, 237, 388, 389공간의 관념 (notion of space of)234물리학 (Physics of) 84-86변화 (on change) 110신학 (Theology) 95-96아메바(Amoebas) 218-221앙상블 이론 (Ensemble theory, Einstein-Gibbs)322-327, 338평형 (equilibrium and) 343아이겐 (Eigen, M.) 255-257연산자 시간 T (of operator time,T) 369중첩 (superposition of) 297-298해밀톤 연산자(of Hamiltonianoperator) 297아인슈타인 (Einstein, Albert) 15,128, 316, 349, 383, 390, 393과학의 고유신화(on basic myth ofscience) 99-101거부된 확률의 이용(use of probabilityrejected by) 297마하의 영향(Mach's influence on)99
머리속 실험 (thought experimentsof) 88불가능성의 입증(demonstration ofimpossibility by) 376비가역성 (on irreversibility) 56,334, 335, 374-375시간 (on time) 282-284, 327신 (God of) 102앙상블 이론 (ensemble theory of)322-327, 338양자역학 (and quantum mechanics)287-290, 294중력 (on gravitation) 78타고르와의 대화(dialogue withTagore) 373"통일장 이론" (unified field theoryof) 40암종양 (cancer tumors), 개시 (onsetof) 253암페어 (Ampere, Andre Marie) 115,128약 또는 의학 (Medicine)디드로(Diderot on) 135, 136베르그송 (Bergson on) 147양성자 (photons) 302, 368양성적 되먹임 고리 (Positive-feedbackloops) 33양수잡이 우주 (The AmbidextrousUniverse, Gardner) 306양자역학 (Quantum mechanics) 50,52, 57, 78, 287-292가역성 (and reversibility) 109
뉴톤 통합 (and Newtonian synthesis)115-116머리속 실험 (thought experimentsin) 88문명적 배경 (cultural backgroundto) 45불가능성의 증명 (demonstrations ofimpossibility in) 286, 376-378비편재화 (delocalization in) 369상관성 (correlations in) 365시간적 진화 (temporal evolution in)296-301, 311우연성 (casuality in) 394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 관계(Heisenberg's uncertainty relationsin) 292-296해밀톤 함수(Hamiltonian functionin) 121확률 (and probability) 185, 241-243양자화 (Quantization) 290어넥사고라스 (Anaxagoras) 342에게시즈 (Agassiz, Louis) 261에너지 (Energy) 164고갈되는(exhaustible) 169, 172기초소립자 (and elementary particles)367불안정한 입자 (unstable particles)126불변량 (as invariant) 343살아 있는 세포(for living cells) 217소산 또는 소멸 (dissipation of) 384
-386양자역학 (in quantum mechanics)290-291에너지의 보존 (conservation ofenergy)을 찾아보기 것엔트로피 (and entropy) 177-178우주 (of universe) 176에너지론자(Energeticists) 306에너지보존 (Conservation of energy)164-169엔트로피 (and entropy) 176, 177원리 (principle of) 117-122카르노 순환 (and Carnot cycle)172, 174에너지전환(Energy conversion) 53,I65. I72에딩톤 (Eddington, Arthur Stanley)24, 48, 95, 178, 305, 371에르고드 대상계-(Ergodic systems)344에른체스트 모델 (Ehrenfest model)307-311, 313, 320에브렛 (Everett) 299에스파나(Espagnat, B. d.) 295에피큐러스(Epicurus) 42, 388엔텔러키 (Entelechy) 234엔트로피 (Entropy) 23-24, 53, 55-60,176-182, 187기계적 해설 (mechanistic interpretationof) 313-317머리속 실험 (thought experimenton) 318
생성 (production of) 178, 191,193, 195선형 열역학(in linear thermodynamics)198-199선택원리 (as selection principle)364-366시간의 화살 (and arrow of time)30, 329-330, 333-335원자론(and atomism) 368일반적 해설 (universial interpretationsof) 312장벽 (as barrier) 356-359, 375-378증가의 법칙 (law of increase of) 35주관적 해설 (subjective interpretationof) 185, 308, 327-328진화 (in evolution) 191질서의 조상(progenitor of order)25-26확률 (probability and) 184, 186,202, 306, 308, 310-311, 353플럭스와 힘 (flux and force and)195, 197엘리아드(Eliade, Mircea) 83-85엘캐나(Elkana, Y.) 165, 314엥 겔스 (Engels, Friedrich) 328-329역사 (History), 개념 (of idea) 131개방성 (open character of) 274과학 (of science) 390우주론 (cosmology) 275, 284재삽입 (reinsertion of), 자연 및 사회과학(into natural and socialsciences) 275
지리학(geology) 175, 180, 275역학 (Mechanics) 52, 57동력학, 양자역학 (Dynamics, QuantumMechanics)을 볼 것보편화 또는 일반화(generalizationof) 169헤겔 (Hegel on) 146확률 (and probability) 185연금술(Alchemy) 112중국 (Chinese) 357친화력 (affinity in) 196연산자(operators) 291-292, 295교환 (commuting) 293열 (heat) 53, 131, 159물질의 변환 (transformation ofmatter by) 161밀치는 힘 (repelling force of) 114생성된 전기 (electricity producedby) 165시간의 화살 (arrow of time and)169-174열기관(and heat engines) 53, 159,162-164전도 (conduction of) 160, 195파급 (propagation of) 160-161특정한 (specific) 162열역학 (Thermodynamics) 15, 23-24,53, 159-164, 281동력학과의 부조화 (incompatibilityof dynamics and) 285, 304-306,328-329두갈래치기 (bifurcation in) 221-230
반죽 변환 (and baker transformation)355-356불가능성의 발견 (discovery of impossibilitiesin) 286-376비선형 (nonlinear) 197, 200살아 있는 대상계 (of living system)217-218상관관계 동력학 (and dynamics ofcorrelations) 362-364선형 (linear) 197-200에너지보존(conservation of energyin) 164-169우주론(and cosmology) 173-176자기구성 (self-organization)제2법칙 (second law of), 또한 엔트로피(entropy)와 열(heat)을 볼 것질서원리 (order principle in) 182-186, 366천체물리학 (in astrophysics) 175플랑크 (Planck on) 306-308평형 (equilibrium) 185-189, 198평형에서 멀리 믿어진(far-from-equilibrium) 200-205플럭스와 힘 (flux and forces in)l9l-l97열적 혼돈 (Thermal chaos) 229-231오스트발트 (Ostwald, Wilhelm) 177오에르스테드(Oersted, Hans. Christian) l65,오일러 (Euler, Leohard) 98, 113,135온사거 (Onsager, Lars) 197, 198
옵틱스 또는 광학(opticks, Newton)70옹고집장이 또는 물에 박힌 사람 (Espritde Systeme) 136와다나베 (Wadanabe, S. ) 312와딩톤 (Waddington, Conrad H . )152, 236, 235, 238, 274와이클리프(Wycliffe, John) 26와트 (Watt, James) 159우주 (Universe)노화 (aging of) 23-24뉴톤 동력학(Newtonian dynamics)108다원적 특성 (pluralistic characterof) 50붕괴 (disintergration of) 175비평형 (nonequilibrium) 299-304시간 배향적 분국화된 자연의 (time-oriented polarized nature of) 36에너지 (energy of) 176엔트로피 (entropy) 177역사 (history of) 284연대 (age of) 39열적 내력 (thermal history of) 50팽창하는(expanding) 40, 61, 284,335피어스의 (Pierce on) 384-385우주론 (Cosmology) 34, 39, 51시간(time and) 284, 335신비주의 (mysticism and) 78엔트로피 (entropy and) 176열역학 (and thermodynamics) 174
-176화이트헤드 (Whiteheads) 150우주체계, 라풀라스의 (Systeme duMonde, Laplace) 114운동에너지 (kinetic energy) 117-120,145, 338운동 또는 움직임 (Motion)실증주의적 관념 (positivist notionof) 152변화 (and change) 110-116보편적 법칙 (universial law of) 또한동력학을 볼 것 105-110, 136복잡성 (complexity of) 127불안정성 (instability of) 125역학적 기관 대 열기관(in mechanicalengine vs heat engine) 170열기관에 의한 생성 (production of,heat engine) 164운명 또는 숙명 (Destiny) 45, 333원자론자 (Atomists) 41, 80난류 (turbulence) 201변화개념 (concept of change of)110, 111원천적 무작위 대상계 (Intrinsicallyrandom systems) 352-355, 369원천적 비가역 대상계 (Intrinsicallyirreversible systems) 353-356, 369양성적 되먹임 고리 (Positive-feedbackloops) 20웰즈(Wells, H. G.) 355위상공간 (Phase space) 322-326, 338,342
비편재화 (delocalization in) 369불안정한 대상계 (unstable systemsin) 344-350유인자(attractor) 180, 193, 200, 213유문론적 자연주의 (Materialistic naturalism)136유체흐름 (Fluid flow) 201유클리드 (Euclid) 234이상화 (Idealization) 85-88, 117, 170-172, 174, 179, 285, 323, 328,387-399이성질화 반응 (Isomerization reaction)227인간성 (Humanities), 과학과 균열(Schism between science and) 52,55인공두뇌 또는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Weiner) 375-377일반화된 힘 (Generalized forces) 195-197임계적 분계 (Critical threshold)를 볼것불안정성 분계 (instability threshold)를 볼 것있음과 됨 (Being and Becoming) 393ㅈ자기 구성 (self-organization) 18난류(in turbulence) 201-202동력학(and dynamics) 275두갈래치기 (and bifurcations) 221-230
베나르 불안정성 (in Benard instability)202요동하는 외부조건들의 함수(as functionof fluctuating external conditions)227-228점질 곰팡이 군거 (in slime-moldaggregation) 218화학시계 (in chemical clock) 208화학반응 (in chemical reaction) 204-205표현으로서의 생명 (life as expressionof) 239-240자연법칙 (Natural laws)뉴톤 (Newton on) 70보편성의 믿음 (belief in universalityof) 39-41사회적 구조와 견해 (social structureand views of) 93-94수학적 개념 (mathematical conceptsof) 91시간 독립적 (time-independent) 40,46일차와 이차 (primary and secondary)48 훼방에 의한 동물들의 수난 (trials ofanimals for infringements of) 93자연의 변중법 (Dialectics of nature,Engels) 329자유의지 (Free Will) 26자유입자(Free particles) 121-123재머 (Jammer, M.) 299잔류적 혹체복사 (Residual blackbody
radiation) 276, 284장 (Zhang Shu-yu) 212장자 (Chuang Tsu) 64"제로성장” 사회 (WZero growth society175제르멜로(Zermelo) 57, 318, 329, 330"적자생존”("Survival of fittest") 258,260전이확률 (Transition probability) 352전자 (Electrons) 367, 368정류상태 (Stationary states) 126정준방정식 (Canonical equation) 296정준변수 (Canonical variables) 121,122, 164, 292정류상태 (Stationary state)불안정성 (instability of) 200-202진화 (evolution toward) 198-199정보 (Information) 59-60, 326, 357-358, 362, 375, 377-379조르단 (Jordan) 290조직화 이론 (Organization theory) 29조합적 분석 (Combinatorial analysis)183존재와 시간, 하이데거 (Sein und Zeit,Heidegger) 393졸라 (Zola, Emile) 169중국 (China) I05과학자의 사회적 기능 (social role ofscientists in) 90-91, 93연금순 (alchemy in) 357중국의 과학과 문명, 니담 (Science andCivilization in China, Needham)
357중력 (Gravitation)백작 (Comte on) 161보편적 법칙 (universal law of) 39,53, 114아인슈타인 해설 (Einstein's interpretationof) 78운동의 결정 (and determination ofmotion) 108초기우주 (in early universe) 379해석능력 (explanatory power of)70, 71평형에서 멀리 떨어진 조전 (in far-from-equilibrium conditions) 225-227중실맥 파열 (Dictyosteliumdiscoideum) 218, 219쥴 (Joule, James Prescott) 165-166지리연대학(chronogeography) 350지리학 (Geography) 264내재적 시간(internal time in) 350지리학적 시간(Geographical time) 21지상(sublunar World) 85, 387지속적 기대 (Duration) 34-35베르그송 개념 (Bergson's conceptof) 148, 374지질학(Geology) 180-181시간 (time in) 175, 275직감 (Intuition) 132, 147, 148진동 (oscillations)당 분해 과정의 (glycolytic) 217시간과 공간 의존적 (time and space
dependent) 208진동성 화학반응 (oscillating chemicalreactions) 61, 207-209진화 (Evolution) 24, 53, 188구조적 안정성 (structural stabilityin) 254-257다원론 (Darwinian) 188두갈래치기 (bifurcations in) 234-236되먹임 (feedback in) 263-270무질서로부터 질서 (from disorder toorder) 35보급적 (logistic) 258-263, 271볼츠만 ( Boltzmann on) 313생물학적 (biological) 214시간화살 (and arrow of time) 30양자역학 (in quantum mechanics)296-299, 311엔트로피 (entropy in) 178, 191우주의 (cosmic) 284, 368적용된 물리학으로부터의 개념 (conceptsfrom Physics applied to)274-276정류상태 (toward stationary state)198-199화학적 (chemical) 241파라다임 (paradigm of) 377-379평형 (toward equilibrium) 314-317질리스피 (Gillispie, C. C. ) 74, 137질량작용 (Mass action, law of) 193,196, 303질서 (order) 53, 60, 186, 191, 203,
235-239, 311, 320, 325-327, 365-367집단적 현상 (Collective phenomena)29곤충 (in insect) 245-251사회 인류학 (in social anthropology)83, 272아메바(in amoebas) 218-221인류지리학(in human geography)264-270ㅊ천일야화(Thousand and one nights,The) 356천체운동(Planetary motion)뉴톤 동력학 (in Newtoniandynamics) 108, 112케플러 법칙 (Kepler's laws for) 105철학자전 (Dictionnaire philosophique,Voltaire) 333초기조건 (Initial conditions) 또는 상태(or state) 109, 116, 127, 180,184, 189, 199-200, 202, 207, 323,338-345, 348-349, 355, 357-358,375, 393촉매작용(Catalysis) 193-195, 205,214최소엔트로피 생성, 정리의 (Minimumentropy production, theorem of)198-201최적화(optimization) 264, 272충돌(collisions) 111, 117, 192, 313
-316층류 흐름(Laminar flow) 201-202,385친화력 (Affinity) 71, 196ㅋ카드웰 (Cardwell, D . ) 159카르냅 (Carnap, Rudolf) 283, 374카르노 (Carnot, Lazare) 170카르노 (Carnot, Sadi) 169-174, 176,179, 188, 200카르노 주기 (Carnot cycle) 170-172,176카이랄 대칭 (Chiral symmetry) 364카프만 (Kauffman, S. A. ) 236칸트(Kant, Immanuel) 131, 132,139-144, 149, 155, 283캐더린 대제 (Catherine the Great) 99캐 이오 (Caillois, Roger) 188캐터필라 또는 유충(caterpillars)약탈자를 퇴치하기위한 전략(Strategies for repelling predatorsof) 260-261캘빈 (Calvin, John) 26커뮤니케이션 또는 의사소통(Communication)묘사 (description as) 382분자 차원의 기초. 토대 (molecularbasis to) 30비가역성 (and irreversibility) 375소산구조 (in dissipative structures)54, 208
안정화 영향 (stabilizing effects of)254엔트로피 장벽 (and entropy barrier)375-376요동 (and fluctuations) 252-253케인즈(Keynes, Lord) 113케플러 (Kepler, Johannes) 95, 105,II5, 390코에슬러 (Koestler, Athur) 76, 78-79코이레 (Koyre, Alexander) 44, 75,79-80, 110코타리(Kothari, D. S.) 373코패 르니 쿠스 (Copernicus) 390콘도르세 (Condorcet, Marie JeanAntoine Nicolas Caritat, marquisde) 114콘디 야크 (Condi llac, Etienne Bonnot,de) 114꾸에틀레 (Quetelet, Adolphe) 183,314쿤 (Kuhn, Thomas) 390-392크리스몰러 모델 (Christaller model)264, 270"크리오드"("Chreod") 236클라우시우스 (Clausius, Rudolf. Julius Emanuel) 172, 173, 305, 306, 313, 386 정의된 엔트로피 (entropy described by) 176-178 클라이나멘 (Clinamen) 201, 385, 386 클레로 (Clairaut, Alexis Claude)110, 113
키르호프 (Kirchoff, Gustav) 152키에르케고르 (Kierkegaard, Soren)131ㅌ타고르 (Tagore, Rabindranath) 373타임머신. 웰즈의 (Time Machine,The, Wells) 356태아 또는 씨눈(Embryo)내재적 목적 (internal purpose of)234-237발전 (development of) 133-135형태변이의 구배계통 형성 (formationof gradient system inmorphogenesis of) 211태크레이 (Thackray, A.) 117테마, 멀로우셔폰티의 ( Themes,Meleau-Ponty) 380테일하르드 (Teilhard du Chardin,Pierre) 59데크놀로지 또는 기술(Technology) 39그리스 (Greek) 84기초를 둔 생물학의 유사성 (analogiesin biology based on) 238-239동력학 (and dynamics) 285I9세기 (nineteenth-century) 또한 기관(engines)을 볼 것 I69하이데거 (Heidegger on) 76톰 (Thom, Rene) 26, 27톰슨(Thomson, William) 173-175"통일장 이론” (unfied field theory)40
통합 가능체계 (Integrable systems)122-123, 126, 342-343, 384투링 (Turing, Alan. M.) 213티 또는 T-위배 (T-violation) 335ㅍ파동습성 (Wave behavior) 243화학시계 (chemical clock)를 볼 것파동입자 이중성 (wave-particle duality)289-290, 296파동함수 (wave functions) 296-299시간(time and) 301-302파동함수의 환원 (Reduction of thewave function) 297-299파라데이 (Faraday, Michael) 165파스칼 (Pascal, Blaise) 42, 80, 131파스퇴르 (Pasteur, Louis) 225파우스트 (Faust, Goethe) 188패턴 선택 (pattern selection) 225,226팽창하는 우주 (Expanding universe)40, 61, 284, 335패이어스(Peirce, Charles S.) 59, 384-385평형 (equilibrium) 17반축 변환(and baker transformation)351화학적 (chemical) 193화학반응 (chemical reactions in)243-244엔트로피 (and entropy) 179, 191진화 (evolution toward) 314-317
플럭스와 힘 (flux and force at) 195-197미래 (in future) 354-355물체 및 상호작용 (and matter-lightinteraction) 288최대확률 (maximum probability at)365앙상블 이론 (and theory of ensembles)343열적 (thermal) 161, 175열적 혼돈 (thermal chaos in) 231열역학(in thermodynamics) 53,54, 185-189, 198상태하의 속도분포 (velocity distributionin state of) 314평형에서 멀리 떨어진 (far-fromequilibrium)및 비평형 (nonequilibrium)을 볼 것포이어 (Feuer) 288포텐셜 (potential)동력학적 (dynamics) 117-121열역학적 (thermodynamic) 186,198-200포텐셜에너지 (potential energy) 117-121, 124, 164포퍼 (Popper, Karl) 44, 56, 330-331, 334-335, 355포풀레어 스크리프튼(PopulareSchriften, Boltzmann) 313플랑크(Planck, Max) 180, 289, 316열역학 제2법칙 (on second law ofthermodynamics) 306-308
플랑크 상수 (Planck's constant) 286,288, 290, 293, 294프레데릭 (Frederick II. 프러시아 왕)99프레이저(Fraser, J. T.) 283프로스트 (Proust, Marcel) 59프로이드 (Freud, Sigmund) 59프리드만 (Friedmann, Alexander)284프린키피아(Principia, Newton) 39,70뿌아송 분포 (Poisson distribution)243-245뿌앙카레 (Poincare, Jules Henri) 116,153, 212, 309, 317, 329, 343,349풀라톤 (Plato) 46, 84, 115플럭스(Fluxes) 195-197무작위 소음 (random noise in) 228-230상보관계 (in reciprocity relations)197-198피어슨(Pearson, Karl) 95ㅎ하이데거 (Heidegger, Martin) 75-77,87, 131, 393하이젠베르그(Heisenberg, Werner)26, 290, 372, 376하이젠베르그 불확정성 관계 (Heisenberguncertainty relations) 242, 292-296
하오배이-린 (Hao Bai-tin) 212, 213하우쉬어 (Hausheer, Roger) 40할레퀸을 보라, 어릿광대 (Look at theHarlequins, Nabokov) 356합리성 (Rationality) 39, 72, 75, 80,85, 87, 148, 388항아리 모델(Urn model) 307-311,320, 351해밀톤 ( Hamiltonian)방정식 (equation) 324T-위배 (T-violation) 335함수(function) 116, 121-122, 126,164, 290-291연산자(operator) 291, 296-297해밀톤 ( Hamilton, William Rowan)또한 해밀토니안(Hamiltonian)을 볼것 116, 152핵생성 (Nucleation) 252, 253핸킨스(Hankins, Thomas) 110허블 (Hubble, Edwin Powell) 284허쉬 (Hirsch, J.) 212허스(Huss, John) 26헤겔 (Hegel, G. W. F.) 131, 144-146, 148, 149, 237헤리벨 (Herivel, J.) 161헤스(Hess, Benno) 217혁명, 개념(Revolution, concept of)28혁신, 심리학적 과정 (Innovation,psychological process of) 28혁신적 됨의 철학(Innovation becom-ing, philosophy of) 150
형태변이 (Morphogenesis) 236, 254양상의 수 (complexions) 183, 184,187, 211베나르 불안정성 (Benard instability)202-203호이 겐스 (Huygens, Christiaan) 109호킹 (Hawking) 176호프 (Hopf) 344호흡작용, 생리학의 (Respiration,physiology of) 166홀바크 (Holbach, Paul Henri Thiry,barond') 135화이겐바움 연쇄 (Feigenbaumsequence) 232화이트헤드 (Whitehead, AlfredNorth) 51, 59, 92, 96, 131, 149-I52, 280, 285, 334, 384, 385,393화학 (chemistry) 12, 51뉴톤 방법 (Newtonian method in)70디드로(Diderot on) 135, 136무기 (inorganic) 213, 214물리학과의 관념적 구분 (Conceptualdistinction between Physics and)197베르그송(Bergson on) 147"불의 과학” (and science of fire)159비가역성 (irreversibility in) 276뷔풍(and Buffon) 113, 114찾아보기
전환 (and conversion) 165
시간적 또는 잠시성 진화 (temporalevolution in) 51-52요동 (fluctuations and) 241-243화학반응 (chemical reactions) 188생물학(in biology) 191-192속도론적 정의 또는 묘사(kineticdescription of) 192-194연역학적 묘사(thermodynamicdescriptions of) 또한 특정 반응(specific reaction)란을 볼 것 I93-197요동과 상관관계 (fluctuation andc01 relation in) 243-245자기-구성 (self-organization in)204-205확산(diffusion in) 208-210화학시계 (chemical clock) 19, 54,207-208, 243, 390의사소통 (communication in) 244당분해 과정 (glycolysis) 217점질공팡이군(in slime-mold aggregation)220확률(Probability) 182-184불안정한 체계 또는 대상계 (unstablesystems) 349-350비가역성 (and irreversibility) 305-313아인슈타인 (Einstein on) 335양자역학 (in quantum mechanics)297엔트로피 (entropy and) 202, 352,378
요동 (fluctuations) 242, 243주관적 대 객관적 해설 (subjective vsobjective interpretations of) 352평형 (at equilibrium) 365평형에서 멀리 떨어진 조건 (in far-from-equilibrium condition) 203확산 (diffusion) 208-209, 241환원주의 (Reductionism) 237-238활력론(Vitalism) 13:z, 136-138과학적 방법론 (vs scientific methodology)168효소(Enzymes) 193-194되먹임 작용 (feedback action of)216당분해 작용 (in glycolysis) 217막스웰 비범성과의 비유(resembling.Maxwell's demon) 239후리어 (Fourier, Baron Jean Joseph)53, 160, 161, 164, 173-176훼인만(Feynman, Richard) 89흄(Hume, A. Ord) 86흰개미 (Termites)둥지틀기에서 방황변이의 역할(roleof fluctuations in construction ofnest of) 245, 251-252통계모델 (and statistical model)272히스데레시스 또는 자기이력 (Hysteresis)329힘 (Forces)보편화된 (generalized) 195-197
유기풍
고려대학교 공대 화공과 졸, 1977한국 종합 에너지 연구소 연구원, 1980미국 코넥티컷 주립 대학교 대학원 화공과 졸, 1983공학박사, 1983서강대학교 이공대 화공과 부교수(현재)혼돈속의 질서대우학술총서 • 번역 23찍은날 __- I990년 I 월 5일펴낸날-I9앗년 I 월 IO일•지은이 _일리야 프리고진 • 이사벨 스텐저스옮긴이―一유기풍펴낸이――-朴孟浩펴낸곳 ___ 民 社•출판등록 1966 5 .19 제 I-I42호우편대체번호 010041-31-0523282은행 지 로번호 3007783110-111 서울 종로구 관철동 44-1734가234 • 6I IO (편집부)734-2000 • 2101, 735-8524(영업부)733-7010(막시밀리)파본은 바꾸어 드립니다 .•값 12, 000원©유기풍, 1989자연과학 • ~물리학 KDC/420대우학술총서(번역) I 遊牧民族帝國史꾹력만렀基中 옮김/값6.500인 2 수학의 확실성 모리스 길라인사世熙 옮김/값7,000인 3 중세철학사 J. A. 와인버그·頂英감 옮김/값5,500인 4 日찌답의起潭 A.A. 일러·金芳濱 옮깁/값2,200인 5 古代屈音鼠學槪롬 버나드 믿그렌·I&!汀量 옮김/값2.500인 6 맡파사물DI셉푸코·후光來옮김/값7,000인 7 수리철학과과학철학헤르인 와입·김상문 옮김/값7,500인 8 이상진리·역사 밉러리 파트남·숲峻明 옵김/값6.000인 9 기후와 진화 로널드 피어슨· 검준민 옮김/값 4. 000인 10 사회과학에서의 場폄編 쿠르트 태반박재호 옮김/값6,000인 11 영국의 산업혁명 팝라스 단買慶洙·후H雨 옵검/값4,700인 12 현대과학철학논쟁토미스은外·조승옥검동식옵검/값8,000인 13 있음에시 됨으로 일리아 프리고진·이질수 옵김/값7,었)인 14 비교종교학 요아힘 바하· 김중서 옮김/값 4, 600인 15 동물헵동학 로버트 A. ~I인드·장현갑 옮김/값6.000인 16 현대우주론 D.W. 시OIDI•밍증만 옮깁/값8,500원 17 시베리아의 사머니즘 V··디오세지 外적길성 옮김/값 10,000원 18 조형미술의 형식 밉데브란트·민昌꽃 옮검/값3,700인 19 원시국가의 진화죠나단하스·崔夢鼠 옮감1값5,印)인 20 힐버트-數學과 십 큰스탄스 리드·이밀해 옮김/값 10,000인 21 商文明댔光만尹乃E 옮김 값9,lX)인 22 마음의 생태학 그태고리 베이존·서석봉 옮김/값 10.000인 23 혼돈속의질서 프이고진· 스먼저스·유기퐁옮검/값12,떠范 24 생명의 기원 멀라오르길사仁丙 옮김/값10/m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