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콜롬 비아대 학교에 서 석사 ·박사 학위를 취 득 하였으며, 북인도 티벳 등에서 티벳어 를 연구했다. 동경 국제기독교대학, 예일대학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위싱톤주립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이다 . 저서로는 r 일본어 독본 A Jap e n e se Re ad er J (19 6 1) , r 일본어 The Jap a n e se la ngu a g eJ (1967) , 『일본어와 그 밖의 알타이 ;m 語 Jap a n ese and the Oth e r Alta i c Lan g ua g es 』 (1971) 등 이 있다.

日本語의 起源

R. A. 밀 러 • 金芳漠 譯 民音社

『日本뜸의 起源 』 의 韓國語譯版에 불이는 序文

번역판 없이는 本밤에 집하지 못했을 독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本 만몰 한국語로 번역하는 어려운 일을 말아 준 金芳漢 敎授에게 필자의 심심한 사의물 표하는 동시, 또한 抽著의 한국語 譯 版에 이 새 序文을 쓰도록 친절히 권유해 준 데 대해서도 목히 사의를 표한다. 그리고 이 새 序文에 의해서 필자에게는 보몽 이상으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몇 가 지 言語 문제에 관해, 한국의 독자들과 특히 직접 커뮤니케트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 데 대해서도 사의를 표한다. 抽著의 한국語 譯版 出刊온 목히 필자 개인의 한 이유 때문에 기쁘게 생각한다. 당초 英語로 씌어지고(뒤에 또한 日本語로 번역된) 抽著는 전문적인 저서는 아니었다. 대부분은 本 합 의 기초가 된 1977~78 년 日 本에서 행한 公開 講演 당시, 보다 전문적인 논저에서 이미 이용된 자료

와 개념을, 학생들과 비전문가들에게 칙접 평이하게 풀이해서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이 총괄적인 말에는 한 가지 중요한 예의가 있다. 이론 바 빗살무늬토기의 新石器時代 한국의 예를 韓 半島 및 日本列島 양방 에서 일어났을 言語변화의 포괄적인 역사와 관련지으려는 本간의 시도 @文版 p.1 2off . 또한 p.1 22ff . 및 도표 2), 그리고 독히 이 빗살무늬 토기가 日本의 토기 유적에 침입한 것을, 日本列島에 있어서의 이 른 言 語발달과 관련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抽 著 의 가설은 抽著의 刊行 전에 는 어디서도 제시되거나 공표되지 않은 독창적인 가설의 양면이다. till 著의 이 한국 語譯 版 出刊은, 필자가 이 가설에 처 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과 필자가 한국의 빗살무늬토기에 관해서 처 음으로 알게 된 것은, 지금도 찰 기 억하고 있는 1970 년대초 서울의 國立博物館울 및 차례 방 문한 것에 의한다는 사실을 밝히는 적절한 기회가 될 것이다. 필 자는 그 기회에 硏究할 수 있었던 이론 한국考古學 자료의 흉륭한 진열이 득 히 기억에 생생하며 또 극동의 토기의 年代몰 비교해서 명확하게 전시 한 것을 보고 뒤에 本 밤 에서 발전한 빗살무늬토기의 침입 가설의 가능 성이 처음으로 필자의 마음에 떠오른 것을 기억하고 있다. 필자의 한국 토기考古 學 에 관한 관십은 서울의 國 立博物 館 방문에서 직접 비롯된 것이다. 빗살무늬토기의 日本 토기 유적에의 침입이 言語 에 관해 서 시 사하는 것에 관한, 本 합 에서 불 수 있는 바와 갇은 필자의 가설 전체도 또한 그렇다. 그러나 위에서 詳述한 독수한 항목 이외에, 金敎授가 本占풀 한국 독 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을 기뻐하는 데는 다른 더 일반적인 이 유가 있다. 그것은 필자가, 대부분 한국 학자에 의한 旋史 -比 鼓言語學 的 硏究에 미래의 가장 큰 潛 在力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목히 한국語의 이론 단계에 관한 硏究와 대체로 束아시아에 있어서의 言語 의 起源 決定에 관한 역사가 포함된다. 특 히 이 새 序文율 쓰는 기회를 얻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장차 한국 학자 편에서 이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중요한 발견이 있기를 필자는 바 라고 있다는 정이다. 그리고 그렇게 바라는 이유는 金敎援가 지금 번역 한 抽 著을 읽은 뒤에 분명해지리라고 믿는다. 이 번역을 읽는 한국 독자들은 곧 다음과 갇온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많온 日本 學者들 이 불행히도 아칙 :::z..둘의 言語 와 :::z.. 역사의 硏究에 끌 어들이고 있는 많온 특수하고 룩이하고 편협한 문제들에 관해서 이를

논의하고 거부하는 데 本합의 많은―一너무도 많은-부분을 할애하자 않을 수 없었다. 예를 들면, 日本語에 목수한 〈 靈 〉 혹은 〈 言~ koto d ama> 이 있다는, 이상한 해로운 神話가 있다(英文原~ p.1 74~5). 또한 목히 오늘날 日本 학자들은 진정한 rrt 史言語學과 이른바 〈日本人 論 〉에서 요 청되는 것을 계속 혼동하고 있다(英文原 01 pp. 17~22). 겉으로는 本 : 因에서 다루고 있는 종류의 답語 문재윤 硏究하 려고 하는 너무도 많은 日 本 학자들이 신재로는 답겁吾限者 도 아니요 또한 言 語문제에 대한 진지 한 관심조차 없다 . 오히 려 그들은, 〈日本 人 孟f tr〉에 관해서 말하고 쓸 때, 日本人이 생각하고 있는 국민적 自區確認을 찾는 이상한 탐색의 仲介 A 밖에는 되지 않는다 . 抽著는 〈 言싹 〉神話와 국민적 自體確認을 찾는 〈日 本人 g;fu 〉 양자가 대부분의 現代 日本 남語母者 에게 마친 대단히 有害한 영 향을 분명히 찾으리라고 믿는다. 이와 더불어 이들 두 불행한 생각은 실 질적으로 이둔 문재에 관한 거의 모든 現代 日本 학자를 침체 상태로 물 고 갔다 . 견과적으로 1945 년 이래 日本 t}!界가 향유한 수십 년의 학문 적 자유가 적어도 읊;욥[상 의 분야에서는 무위로 돌아갔고 거의 아무것.5:... 달성된 것이 없다. 한국인과 한국 학자들은 다행히도 이런 두 문재에 관심을 갖지 않았 다. 필자 가 알기로는 , 한국인은 〈 言函 〉 神話 의 거의 맹목적인 견해와 유사한 어떤 관접에서 그들의 言 語룹 불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고, 한 국민으로서 그들은 국민적 自體確認에 관여하지 않았다. 소위 〈日本人 論 〉을 영원히 되풀이할 것으로 보이는 日本人과는 달리, 한국인은 이미 자기가 누구인가를 알고 있다. 그리하여 한국인은 또한_적어도 이론 적 으로는__脈史 言語學 의 문제 에 직 접 그리 고 효과적 으로 정 근할 수 있는 다행한 위치 에 있다• 따라서 또한 필자는 장래의 이 분야의 한국 학자에게 크게 기대하고 있다. • 抽著를 읽은 독자가 곧 알 수 있는 바와 갇이, 日本의 言語學 에서 느 끼는 〈日本人論〉의 최대 약접의 하나는, 日本의 대중이 국민적 自體確 認을 찾는 方法이 , 대 부분의 日 本 言語學者 로 하여 금 오늘날 日 本人이 즐겨 말하는

올 우리 앞에 놓여진 사실로서 설명하는 것이다• 이 설명은 젊은이文法 L對 派 의 比 校 方法을 적용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 方法은 다음에는 이른 言語 관계를 가상 혹은 가정하고 이 가설적인 관계에 의해서 입증된 言 諸 자료 를 설명한다 . 이해 해 두어야 할 중요한 것은, 이 들 .줍 語의 親近 관계는 그 성격상 〈증명〉 된 수 있는 명재가 아니라는 접이다. 言語 의 親 近관계라는 것은 理論的 구성물이며 또 항상 그러한 것이 될 것이다. 때로는 親 近관계가 대단히 설득력이 있어서 학자들에 의해서 인정되기 도 한다(예룹 들면 , 초기의 印 敗語 統一體 가설에 의해 印歐諸語의 관련 성읍 설명하는 것). 그럼에도 그것은 역시 가설이다. 이 접은 本깁t에서 강조 된 , 필자 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되며 단순하고본전적인 것이지만, 목히 現代日本에서는 자주 오해되고 있다. 따라서 tllt著의 새 한국 독자을 위한 이 序文에서 그 접융 다시 강조하 고자한다• 이것과 관련해서 그리고 本 : B 의 이 중요한 중심 개념을 더 설명하는 데 있어서, 이 기회 물 빌 어, 本 ·占r 에서 간단히 언급한 및및 낱말, 즉 英文 原뱌 II5 페이지와 199 페이지에서 간단히 언급한 '‘이끼' 도를 의미하는 낱 말을 좀더 자세하게 선명하려고 한다 • 이 목 수한 낱말은 歷史 言 語 8l 에 있어서 比 岐 方 法 의 진정한 역 할을 설명하는 기회가 뮐 뿐 아니라, 여러 상이한 그리고 아직도 크게 硏究되지 않은 諸方向융 고려하면서 한국語 와 알타이語와의 관계 를 탐구하는 기회도 될 것이다. 그러나 本占 의 英 文原 잡는 원래 日本人융 위한 것이었지 한국인 을 위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金敎授가 번역한 原반에는 이들 낱말의 語源的 가능성 을 자세 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따라서 아 직 도 이 들 문제에 관심이 있는 한국 학자문 기다리고 있는 歷史言語 8표 의 자료 가운데서 실재로 한 예를 둘 어 논증하는 기회 문 가지게 된 것을 목히 기뻐하는 바이다. 동시에 팔 자가 이 목수한 예률 선덱한 데는 다음과 7같 은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이 복참한 낱말들이 필 자가 위에서 강조한 접, 죽 한국語이든 日本語 이든 또는 어 떤 言語 이 든, 歷史 -比 紋 言 語學的 硏究의 궁극적 목표는 諸言語간 의 계몽관계 를 실재로 확정하는 것이 아니라(더구나 국민적 혹은 민족 져 起源 이 아니라), 現代 語 나 혹 은 이론 문헌에서 입증된 형태에 의해 서 그 言語 의 사실둘을 합리적이고 역사적으로 선명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本 書 의 JJ5 , J 99 페이지에서 中期한국語의 낱말 뎅!」에 관해서 논의한

바 있다. 이 낱말은 『訓蒙字會』(束洋學革전} 第一輯, 1971, A4v) 에서 입 증되는 것으로서 W, 苦, 孫 , i}:l 등의 여러 의미가 있다. 팔자는 또한 거기서 이 中JtJJ한국語의 낱말에 관해서 두 가설을 제안한 바 있다. (a) 中期한국語 「잇」은 ”이끼 를 의미하는 * i su( 죽 「異j妃)로 재구되는, 新 羅語 에서 입 증되 는 古代한국語의 형 태 와 語源 이 갇다. 『三國 史 記』 에 6 세기의 유명한 武將 〈異斯夫〉의 이 름 에 관한 기사가 있는데, 그 이 름을 〈 或云苦宗〉이 라고 말하고 있다( 朝鮮史穆 會版, 1941, p. 445; 『 三國史記』 卷 44). 여기서 꾸분에 대한 탭멉tJi 」 를 얻개 되는 것이다. (b) 中期한국 語 「잇.J .. 苦과 古代한국 語 댕셰 k 」 *is u .. 苦”는 滿洲語 1lis i k t c 이 끼 , 地衣, 이끼 류 의 식물’’와 語源 이 갇다 . 本간에서는 이 들 낱말에 관해서 여 기까지 소급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語의 초기 역사까지 소급한다 면, Mk.or . 「잇」에 관해서 알 아야 할 것이 많 이 있다. 本맙에서 재시한 기본적 개념을 상기한다면, 脈史 言語年 의 比 校 方法에 의해서 이 들 言 語 자료의 역사에 더 깊숙 이 소급할 수 있게 되며 또 그 과정에서 한국語 의 내부 역사에서 중요한 요소 를- 밝힐 수 있게 된다. 첫째 , 한국 독자들은 Mkor. 「잇」 을 계승한 近代(現代)한국語 「이끼.J 에는 분명히 어떤 形態論的 변칙이 있는 것을 이미 깨달았을 것이다. 적어도 Mkor. 영.J과 아마도 여기서 파생했을 Nkor. 「이끼」를 비교해 보면 분명해지는 변칙이다. 실재로 現代한국語 「이끼」는 Mk.or . 「잇」에 서 직접 파생한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 만일 그 렇다면 現代한국語의 語 形에 있는 「 11 」을 선명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경우, Nkor. 「이 끼」의 역사는 Mkor. 영」에서 직선적으로 계승되었다기보다는 더 복잡 한 것이었다고 가정해야 한다. 죽 한국語에는 이전에 * i s ik 라는 형태가 존재해야 하고 또한 뒤에 -i-와 -k 의 轉倒 가 일어났다고 보면, 「이끼」 <* is k i <* is i k 로 실 명 된 다. 이런 가정은 滿洲語 n i s i k t e 와의 비교에 의해서 지지된다. 한국語의 세 語形(中期한국語, 現代한국語, 古代新 羅 語)의 零내願朗윤 은, 찰 입증 된 다른 많은 한국語의 낱말에서와 갈이 규칙적인 변화로 설명되는 것 이다. 죽 i가 후속하는 零 - 語頭昔 은 그 전단계의 * n i-에서 변화한 것이 다. 이것은 이들 세 낱말에 관해서 한국語에서 재구되는 最古形이 原始 한국語 * n i s i k- 와 같은 것이었음을 의미한다. 이 재구의 기저에 있는가 정 은 또한 퉁구스諸語__그 중의 한 言語 가 滿洲語 __의 形態論에 관 한 지식에 의해서도 지지된다. 이들 言語 에는 複合접미사 -k t a~-k t e 가

있는데, 이것은 개별적으로는 크지 않은 것, 성질상 뭉쳐 있는 것, 따 라서 조각조각으로 나뉘어지면 쓸모가 거의 없는 것을 의미하는 목 수한 범주에 속하는 名詞의 지표로 사용되는 것이다. 여기 덧붙여 많은 등구 스 諸 ;E 의 다른 비교에 의해서 1) 알 수 있는 것은, 이 접미사 -kta ~-kte 가 복합정미사라는 것, 죽 별개의 두 요소로 이 루 어 진 것인데, 원래는 접미사 * -k 에 접 미사 *-t a 가 첨가된 것이라는 접이다. 그리고 우리가재 구할 수 있는 동구스語 의 最古단계에서도 원래의 *-f l 접미사 는 후대 의 복합집미사처럼 사용되고, 조각조각으로 분리되면 쓸모 없는 것이 되는 것의 표지로서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것은 「이끼」라는 낱말과 그 개념 에 잔 어윤리는 접미사이다.

1) Joh annes Benz~, Di , tun g u sis c h11n Sp ra chen, Versuch ein e r V11rg l1 1i ch 11nden Grmnmati k (Malm. 19,,), §78 , p. 1016, §79, p. 1019, ·§ Bo, p. 1020.

몽구스諸語의 亞史形態論에서 얻은 이 지식은, 곧 中期 한국語 , 現 代한국語, 古代新 羅語 , 滿洲語의 비교에 입각해서 재구한 原始한 국語 *n i s i k- 의 * -k 에 관한 대단히 그럴듯한 根源운 시사한다. 이 목수한 경 우, 정확한 方向으로 집근하고 있다는 신념은 中j비한국語의 겹갑욥 자료 에서 이용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부수적 자료에 의해서도 한 충 강화 ­ 된다. Mkor. 「잇」은 소수의 그러나 중요한 부류에 속하는데, 그 格접 미사 형태는 中期한국語에서 놀라운 목칭을 가진 言語 변칙을 유지하고 있다. 이 목수한 부류에 속하는 名詞에는 한국語의 다른 名詞에는 없는 현저 한 形熊論的 목칭 이 있다. 죽 主格, 屈格 , 處格, 對 r6, 叔述 r6 의 형 태 에서는 이 名詞 자체와 그 뒤에 오는 위에서 든 格의 접미사 사이에 軟 口蓋停止 音 이 나타난다 .2) 그리하여 Mkor. 「잇」 먼f에 대한 對格形 「잇 글.J이 또 같은 부류에 속하는 「숫」 입암에 대한 「숫기, 숫기라, 숫근」 등이 나타난다. 이와 갇온 中期한국 語 名詞는 다시 두 下位부류로 나 뉘어진다. 그 중 하나는 위에 인용한 Mkor. 영.J과 「숫」으로 대표된다. 여기서는 문제의 格접미사 형태가, 단순히 名詞의 引用形, 죽 %|I I 蒙字 會.!]와 갈은 辭典에 나타나는 語形에 -k- +보몽 格접미사를 불이는 것으. 로서 예축된다. 다른 하나는 그러한 辭典에 나타나는 名詞의 引用形이 附加的 語末母音 「오」 혹온 「으」를 가지고 있고 -k-+ 格접미사 앞에서 는 달락한다(예. Mkor. 「나모.J .. 木”에 대한 r 납기, 납기 라.J 혹은 Mkor.

ll) *嶺• • f'ij:,flt 國區 文法. _”世紀 語를 主로 하여-• 197 ... §173, pp.1 30 -34 .

며느」 (也”에 대한 「년기, 년기 라」 등). 3)

3) 兩廣福 미 'rr 古 語辭典* ”73, s.v.v., 특히 여.J에 판빼서 pp.4 07•-408• 및 p~ 548 -9.

Mkor. 「잇」이 이 목 수하고 形熊論的으로 변칙적인 부류의 名詞에 속 하는 것을 안다면, 어느 의미로는 歷史言語學 의 참다운 목적을 이미 달 성한 것이 된 다. 다른 言語 의 아마도 同源語로 생각되는 낱말과의 비교 에 입각해서 임중된 言語 형대(이 경우, 中J비한국語 名詞의 이 목수한 부류에 속하는 巧나)에서 관찰된 변칙을 설명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재구형 *ni s i k - 의 -k- 와 Nkor. 「 11」 <* -sk -를 다음과 갇이 설명 할 수 있다. “이끼''는 식물 그 자체로서는 성격상 크기가 없고 개별적인 구성요소. 가 원래 뭉쳐 있는 것이고 또 (뭉구스族과 다른 北方民族의 自然 經濟 에 서는 대단히 중요하지만) 조각조각으로 분리되면 목별한 의미가 없어지 는 것이다. 초기의 둥구스語 統一監와 또한 /京始한국語에서 이끼를 의미하 는 낱말 은 접미사 * -ll 윤 붙여 서 사용되었다. 이 * -k 는 兩 言語 얘 서 이 목유한 의미 를 가진 名詞의 일반적인 形熊論的 표지인 것이다. 이 形態論的 표지 는 中期한국 語 시 기 까지 존속했다. 그것은 Mkor. r')! .J. 이 어떤 格접 미사 앞에서는 -ll- 가 끼어드는 목별한 名 詞曲用에 속한~ 는 뜻에서이다. 이 접미사는 또한 先滿洲語에도 잔존했는데, 그러나 뒤 에 는 접 미 사 *-t a 가 다시 접 미 해서 2 차적 접 미 사 *-k ta 를 형 성 하고 滿洲t 語 ,z i s ik t e 이끼에서와 갇이 -k t c 로 나타난다(本 :; !} 199 페이지에서 설 명한 바와 갇이 이 滿洲語 낱말 그 자체는 어떤 다른 뭉구스語 에서 차 용된 것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차용이 한국語에 있어서의 同源~ 의 역사운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아 뭏든 여기서 비로소 이 들 낱말에 관한 기본 문제에 대해서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왜 그 言語형 태가 그러한 音韻形狀과 形熊論的 특 징율 · 가지게 되었는가? 이들 낱말에 관해서, 왜 Mkor. 「잇」과 Nkor. 「이끼J , 그리 고 古代新羅語 「 異斯 」의 語根 요소가 그러 한 음성 적 형 상을 취 하게 되었는가 를 原始한국語 * n is i k- 의 재구에 의해서 설명할 수 있게 되었 다. 동시에 몽구스語의 歷史形熊論에 의해서 그리고 몽구 스 語 歷史形1!.목 論의 의미에 관련된 것을 고려함으로써, 왜 Nkor. 「이끼」에 r17 」이 있 으며 또 Mkor. 「잇」이 어떤 格형태에서는 *-가 끼어드는 목수한 形慮 論的 名 詞 부류에 속하는가를 충분히 선명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가정이 갖는 說明力에 대한 信頓는 , 中期한국語의 갇온 부류에 속하는 다론 名詞룹 조사해 보면 더 높아진다. 그 의미 범위는 갇은 * -k- 를 가진 原始한국語 名詞에서 기대되는 의미 범위와 가끔 정 확하게 일치하는 것을 보게 된다. 다시 말하면, Mkor. 「잇」과 같이 이 둘 名詞 또한 성격상 뭉쳐 있으며 또 조각조각으로 분리하면 중요성이 거의 없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Mkor. 「나모」 木, Mkor. · 「숫」 ”炭 등이 다. 이 들 두 中期한국語 名詞는 위 에 서 고찰한 특수한 부류에 속하는 것이다. 죽 어떤 格정미사 앞에 -k 가 끼어들며 또 이들 두 경우에도 현실적인 대상의 의미는 起源的인 *- ,,_에 관해서 확립 한 바 있는 전체적 의미 범주와 완전히 일치한다. 이 *- k- 는 中期한국語의 목수한 曲用올 구별하는 -k- 와 동일한 것임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끼와 갇이 또한 “木, ”炭''도 조각조각으로서는 의마가 없 다. 그들은 한 집단의 한 성원으로서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물론 中j비한국 i검 의 이 목수한 形態論的 부류에 속하는 모든 낱말의 의 미 가, Mkor. 「잇 , 나모, 숫」과 같은 낱말의 中j U] 한국語 形態겁삶을 구 별짓는 -k- 의 역사적 起源-읍 설명하기 위해서 위에서 든 의미 범주와 맞 는 것은 아니다. 전혀 다른 차원의 의미를 가진 다른 낱말도 동일한 形 惡論的 부류에 속한다. 그러나 그러한 독징을 語源的 으로 설명하기 위 한 廊史言語學의 方法과 原理룰 확립했기 때문에, 이들 다른 名詞에도 나타나는 -k-또 한 親近관계가 있다고 생각되는 다론 言 語와의 비교에 의해서 동일하게 선명되는 것을 곧 알게 될 것이다. 예 를 들면, 이 부류에 속하는 다른 名詞는 Mkor. 며느」 (也”이다. 이것은 목 수한 형태로서 現代 語 까지 직접 존속하고 있지 않는 이유도 있어서 硏究하기 어려운 낱말이다. 그러나 Mkor. 「녀느」는 여러 둥구 스諸語에 있는 3 인칭의 뜻으로 사용되는 찰 임중된 형태와 계몽관계가 있는 것이 확실하다. 예, Ev. 1moan, Neg d . 1wo•a1t , Oroch. 1moa•~ nua•, Udh. nua, Orok. 11011i, Olcha. nan, Nanaj. ftoa li i4> . 복잡한 이 모든 몽구스語形에 대한 單 一形 운 재구하는 것은 용이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러한 準代名詞形온 가끔 강한 類推의 힘에 의해서 語形변화 (곡용)계 열 내에서 정상적인 昔韻변화에서 벗어난 상당한 변화를 하기 때문인 것이 다. 그러 나 이 들 입 중된 몽구스語形은 모두 起源形 * r,血g a- 에 충

4) V.L lsin t s i us , Sravnil e l'na ja f on eli ka lung u so- ma n'li ursk i:z : jaz y k ov, 1949, pp. lo-5·

분히 소급할 것이며, 이 형 태 자체는 더 오랜 *rzurzka -5)로 더 소급되어 야 한다. 그리 고 Mkor. 며 느」의 格曲用 에 서 끼 어 드는 -k-는 *fltdi k a -에 있는 -k-에 소급하고(둥구스語의 先史에서 *-11-다 음에 있는 *-k -는 *-g- 로 유성화한다), 또 그것에 의해서 中j비한국語의 -k- 가 설명된다. 다시 말하면, Mkor. 「너느」는 格접미사 형성에서 -fl - 가 나타난다. 그것은 Ev. 1111oa11, Neg d . 1zoo1all 둥의 기 저 가 되 는 原始몽구스語 *fz u fl k a-와 語源이 갇은 낱말이기 때문이다• 바로 위와 갇은 경우, 脈史 言 語穆의 比救方法에 의한 설명은, 전적으 로 만족스런 것이지만, 또한 다소 一方的인 것이 되기도 한다. 왜냐하 면, 여기서는 中期한국 語 語 形융――죽 그 格접미사 形態論 ·다 그 語根 의 형상을-그 렇 게 만 선명할 수 있을 따 름 이지만, 문재의 중요한 형 태 소, 죽 中J미한국 語 가 계 승했을 原始몽구스語 *fzu fl ka -에 있 는 *-k -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설명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形態論 的으로 변칙적인 부류에 속하는 中期한국語 名詞의 다른 예에서도, 이런 부류의 표지가 되는 -k- 의 역사적 起源을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中j비한국語에 계승된 원래의 알타이語形의 의미 가치도 밝혀 준다. 그리고 또한 이렇게 해서 한국語 자체에 있어서의 그 의미도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이 후자의 범 주에 속하는 예 로는, Mkor. 「불무.J 쟈압, Mkor. 염은.J 개ff'', Mkor. 「밧」 까이 있다. 이들 名詞는 위에서 말한 -k- 가 끼어드 는 名詞 부유에 속하는 것이다. 각자의 경우, 形熊論的으로 변칙적인 名 詞룹 결정하는 -k- 가 알타이語 起源임을 자신있게 지적할 수 있다. Mkor. 「불무」의 경우에는 실재로 하나가 아닌 두 形態論的 변칙이 있다. 이 中j비한국語 名詞는 -k-부 류에 속할 뿐만 아니라, 여기 해당 하는 Nkor. 「풀무」는 유성語頭音이 있다는 접에서 또한 변칙적이다. Mkor. 「불무」는, 지적할 필요도 없지만, 中 1 비한국語의 動詞 타불다.J .. ~에서 과생한 2 차적 名詞이다. 이 語形변화에서 나타나는 -k- 는 原 始알타이語 집미사 * -gu 의 잔존형으로 실명되어야 한다. 이 *-g u 는 도 구, 기구, 기계장치의 명칭에서 사용되는 것이다(예. Trk. b i.t-댑 D, h i.t ru 小刀 ''6)). 이와 동일한 집미사는 목히 몽구스語 영역에서 장 나

S) G.J. Ramste d t, Ei nf i ihr ung in die alta i s c hen Sp ra chwi ss enschaft , I , Lautl e hre, 1957, §69. p.1 27, Benzin g , op. cit ., §122, p ,1057 는 더 만족스럽지 않은 다른 계 6) G구. J를, R시a사ms하te고 d t , 있。으p.나 .ci t .,그 것n,울 F o주rm강e하n지leh는re ,않 1는9다52., §ss, p. 92.

타나는데, 여기서는 * -kU 와 갇은 형상으로 변화했다.7) 그리고 이 목 수 한 한 국 語 낱 말도 原始알타이 語 의 * -g u 를 계승한 것임을 보게 된다(이 와 꼭 갇 은 형 성은 떄읽’ 를 의미하는 日本 語 fu ig o 인데, Ju i- 는 動詞 fu k - 불다 에서 유래한 것이고 -g u 는 위와 같 은 *- g u 접 미사 물 日本語 ­ 가 계승 한 것이다). Mkor. 「 붉 글, 옮 기라」 등에서 이 들 語形웅 변칙 적 인 것으로 만드는 - k- 는 갇 은 * -gu 의 形 熊論 的 잔 존형 이며, 原始한 국 語 多 *p u l-m- gu 로 재 구되 어 야 하 는 형 태 에 있 는 末位 요소 -gu 에 소 급한다 . 그 러나 * -g u 에서 번 화 한 이 -k- 는 近代한국 語 까지 존속하지 않 기 때 문 ­ 에, 現 代 語 에서 는 語頭 의 무기음 다j.J 자리에 유기음 타도 이 나 타난다 . 그리하여 이 現代語頭움 은 古 代 의 動詞派生 名 詞 형 성 에 서 한때 나타 났 ­ 던 * -gtt의 * g의 역사적 흔 적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 하 여 現代 語頭 컵f 「 고 」은 또한 대부분의 다른 알타이 諸語 에서와 갇 이 한국語에서 도 ­ *-g it 이 지 (일 반적 으로 몽 구스 語 에서 와 7같 이 ) *-Im 가 아니 었 음을 보 여 ~ 고 있다(fu ig o 와 갇은 日本 語 의 語形 成에서도 보여 주 고 있 다) .

7) J. Beru :ing, 。p. cit ., §75b, p. 1011.

알타이 語 의 比 設 는 또한 Mkor. 「 불 무」에 있 는 -1 11 - 운 선명해 준 다. -m(- )에 의한 動詞 에서 파 생한 名 詞는 原始 알타이 語에서 가장 널 리 파 진 형 성이다. 이 들 은 한국 語물 포 합 한(예. 「그리다」 一 「그 림 」 등) 모든 ­ 알타이 諸語 에서 찰 입 증 되는 것이다. 그리고 Mkor. 「 불 무」의 경우 와 같 이 다 른 名 詞 파생 접 미사 를 가진 動詞 에서 파 생한 2 차적 형 성 에 있어 서 첫 요소로 자주 사용된다. 8) 다시 말 하면, Mkor. 「 불 문 봅글 」 및 Nkor. 「 풀 무.J는 모두 動詞 「: 불 다」에서 파생한 * -m -g ll( * 기 /F 는 動詞에 서 파생한 名 詞 에, 또 *- g u 는 도구 혹은 기구 물 의미하 는 名 詞 에)가 침 가된 動詞 에서 파생한 名 詞 인데, 풀 무 ' ' 물 의미하는 이 낱 말 의 궁극적 인 역 사적 起源 올 증명 한다. 죽 Mkor. 「 불 무」와 Nkor. 「 풀 무」의 역 사 적 起源 은 原 始한국 語 *p u /-m-gu 에 있 다.

8) G.J. Ramste d t, Forme n leh rt, §58, pp. 104- 사

Mkor. 「돗.J 情과 Mkor. 「밧.J ‘가의 경우에는, 바로 가까이 있는 . 몽구스 語 자료에 의해서 -k- 형 대 를 아주 만 족 스럽게 역사적으로 실명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알타이 語域 에서 몽구스 語 한 부분으로 제한 壘 한 것온, 몽골 語 와 뒤르크 語 갈은 다른 言語 가 이 낱말 둘 의 硏究에 관계 가 없어서가 아니라, 다만 지면웁 절약하기 위한 것이다. Mkor. 「돗컬, 돗그로.J 등의 -k 는 우이 구르 Uig h ur 및 챠가타야

Chag a ta i 뒤 르크語 tiisii k, 現代뒤 르크語 db.5ek (침 대 용의 ) 매 트리 스 ’'9) 에 보이는 접미사 -k- 에 의해서 설명되어야 한다. 이 뒤르크語의 -k- 는 動詞 t b ' 5a- (마소의) 깔집을 펴다 ''10) 에서 名詞룹 형성하는 접미사 이다. 金敎授 가 번역한 本밥에서 지적하려고 하는 가장 중요한 접의 하나는, 위에서 와 같이 말할 때, 한국 語 의 어떤 목 수한 형태가 〈뒤르크 語에서 왔다〉 혹은 〈뒤르크語와 같다〉 또는 이와 유사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t o 경ii k 등에 있는 뒤르크 語 접미사 *-와 「돗결, 돗그로 」 등에 있는 中 W J한국語의 -k- 가. S} 타이語 統一體 에서 공동된 역사적 起源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따라서 득 히 形熊論에 관한 한, 이 들 형태 는 안 타이 語 에 공동된 語源울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Mkor. 댄t」에서도 갇다. Trk._ baska 외부, 국외자와의 비 교는 곧 이 낱말의 曲用에서 끼어드는 中期한 국 語 -fl - 의 궁극적인 역사 적 語源의 起源융 보여준다 . 여기서 이 比 校낸쭙史 的 지식은 목히 중 요하다. 왜냐하면 , 뒤르크語穆者에 의하면, baska 의 -ka 는 오랜, 소위 化石化 된 與格집 미사이며 baska 는 名詞 bas 頭 '’에 -ka 가 침가된 것이 기 때 문이 다 . 11) 따라서 Mko r. 덴t」의 역 사적 起源을 이 해 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原始알타 이 語 統 一 監 에서 임중되는 가 강 이 론 접미사에 의 한 格형성 의 하나, 죽 * -lw 가 첨가된 與格에 관한 증거 를 한국語 내에서 이 낱말 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이와 갇이 또 한 日本 語 ,Ioka” 外(공간적, 평면적으로 어떤 범위나 구획 • 한계 등의 바깥 부분. 國語 大 事典 , 束京 : 小 穆館 , 1982, p. 2185), {也도 궁국적으 로는 위에 말한 낱말들과 관계가 있어 보인다). 歷 史 言語[후 에 관해서 가장 홍 미있는 것의 하나는-그리고 本 따 에서 강조하려고 한 또 다 든 접은 __· 比 校 方 法을 적 용해서 어느 한 목 수한 문제 물 해명하면, 이 것이 다음에는 전 혀 다 른 문재 물 해명하도록 유도하는 일이 자주 있는 점이다. 바로위에서 논의한 두 語源 도 또한 한국語 語源 의 다론 문제들 에 빛을 던져 준다. 그것은 이 양자가, 추상적인 재구-표기 * h( 本 라 에 저 논의 된 것 英文原 깁 f pp. 69-70, 72, 75, I 13-4, 161) 로 기 호화한 중요

9) M19a6r9t, t i pR, 4a9s.as n•.e n, Versuch ein e s etym olog isch en Worte r buch der Ti irk sPrachen, 10) G.J. Ramste d t, Formenlehre, §66, pp. 135ff . ; C. ' Br ockelmann, Ostt (irk is c he Gram mati k d er isl ami sc hen Li ttera tu rspr a chen Mi ttela sie n s, 1954, II . Nomi na , :z : • Nom ina lfo r mati on , §64, pp. 109 -11 • .i 1) M Rasanen, op. cit . , p. 65•.

하고 특유한 알타이語 音韻의 한국語에 있어서의 反射形을 포함하고 있 기 때 문인 것이 다. 어 떤 한국 학자는, 지 금으로서 는 분명 히 불충분하고­ 피상적인 증거로 보이는 것에 입각해서, 이 原始알타이語 *h 가 中期 . 및 現代한국語에서 「근」로 나타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12) 그러나 필자는 글 수년 전 이런 견해가 옳지 않음을 증명할 수 있었다. 많은 낱말과 형태 에서 *h 가 古代한국語의 그 규칙적안 反射形으로서 「己」이 아니라 5 혹 ­ 은 s 와 같은 어떤 음이었던 문헌상의 증거를 알고 있다. 아뭏든 이 音 · ­ 韻온 鄕歌에서 규칙적인 表音文字 「尸」로 표기되는 것이다 .13) 다시 말 ­ 하면, 古代한국語는 적어도 *h 에 대해서 뒤르크語에서와 같은 反射形 ­ 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데, 그것은 原始알타이語 *h 가 뒤르크 ­ 語에서 항상 5 로 나타나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

12) 李基文, II'改訂 國語史槪說,D, 1972, p. 18. 13) R.A. Mille r, Old Korean and Al taic , Ural-A lta is c he Ja hrbii ch er 51, 1979, 1-54 -

Mkor. 「돗」과 Mkor. 「밧」에도, 古代新 羅語 에서와 같이 中期한국語에 서 때로는 原始알타이語 * l2 가 5 혹은 s 로 나타나는 중거가 있다. 이것 은 다음에 필자가 수 년 전 최초로 제안한 古代한국語 表音文字 댜킹에 관한 해석의 정당성을 더 높여 주는 사실이다. 이렇게 해서 歷史-比軟方­ 法은 가끔 한 번에 한 문제 이상을 해명하기도 한다. 中期한국語의 몇몇 변칙적인 名詞의 曲用에서 끼어드는 -k- 의 역사적 起源의 탐색에서 시작하여, 이들 자료를 硏究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 한 상관관계를 발견하게 . 되었는데, 그것은 전체 한국語史에서 가장 먼 어떤 단계가 알타이語와 관계가 있음을 다시 밝혀 주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語의 영역에서 뒤르크語型의 反射形, 죽 原始 *h 에 대한 5 혹은 S 의 反射形이 일찍 존재했음을 지적하는 증거를 더해 주는 것이다. 이 새 序文에서 논의 하고 있는 것이 약간 길을 잃은 듯이 보일는지 모 른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l2 의 한국語 反射形의 성격을 고찰 · 하게 되면, 과학적인 탐구의 영역에 접근하게 되는데, 여기서 金敎授가 · 번역한 本書는, 日本語에 관해서 말한 것과는 별도로, 한국語 歷史言語 ­ 學의 미래의 世代에게 특별한 가치가 있다고 필자는 믿는다. 鄕歌에 있 어서의 다리와 같은 表音文字의 표기 증거는 명백하고 자명한 것이어서 그것을 정확하계 역사적으로 설명한다면, 本 書 의 독자는 다음과 갇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자명한 것인데, 왜 이들 문제 에 관해서 학자들은, 지금위에서 내린 단순하고 명백한결론에 도달하는 데 그렇게 ,

오랜 시간이 걸렸는가 하는 생각이다. 결론은 , 지금 말한 바와 갇이 명 백하고 단순한 것이지만, 그것은 전체 한국語史에 대해서 중요한 뜻이 있다. 예 를 들면, 現代한국語가 中j비한국語에서 직접 유래했으며 또 中 .· 期한국語는 古代한국語의 新羅語 변종에서 직접 유래했다고 가정하는 것은 한국 言 語學界에 서 상식이 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政治史 . 나 社會史의 사실에 입각한 것이지 言 語 의 중거에 기초를 둔 것은 아니 다. 鄕歌 의 表 音 文字 중거를 고려한다면, 다음과 같은 것을 알게 된다. 죽 原始알타이 語 *h 가, 中期한국語에서 비 록 많은 낱말에서 巨타로 나 · 타나고 따라서 現代한국語에서도 댜타로 나타나지만, 古代新羅語를 !f.. 함한 古代한국語에서 는 자주 5 혹은 s 로 나타난다. 다시 말하면 , 우리가 알 수 있는 言 語자료에 비 추 어 볼 때, 古代한 · 국 語에서 中j비한국語 물 거쳐 現代한 국 語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역사적으 ­ 로 일어났던 것으로 생각되는 일들의 실제 연속은, 대단히 많은 경우에 中期한국語와 現代한국語가 단순히 新羅의 古代한국語 혹은 古代한국~ 의 어떤 변종에서 직접 파생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中期한 국語(그리고 여기 따른 現代한국語)에는, (아직은 부분적으로만 식별되 지만) 다른 言 語가 한국語의 영역에 대량 침입한 중거를 많은 낱말에서 보유하고 있다. 이것은 한 가정이지만, 중거에 의해서 뒷받침될 수 있 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高句麗 의 古代한국語 「加尸」 ( * kas)” 梨 ''14)7}­ 있고, 반면 中j비한국語 「 : 갈다」 윙t ( 『訓蒙字會』 C3r) 와 現代한국語 「갇 다, 가래」가 있는 것을 선명할 길이 없을 것이다. 이와 갈이 『朝鮮館譯 語』에 있는 「別 思 」 내g''와 『三國史記』에 있는 古代한국語 「波尸」 (37 地노 4 : 桃城本波尸忽 )15) 는 中期한국語 「예」 내합(태 Ill 蒙 字會』 A7r; A12r) 와 분리하기 어 렵다. 그러나 동시에 또한 이 兩語와 Mkor. r tii-리」 . 갱 R( 댜 lII 蒙 字會』 A13r) 와의 관계가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原始알타이 ' 語 *ba/z 頭”는 많은 해 답을 준다. 죽 原始알타이 語 *ba lz 는 Trk. bas. “頭 및 Trk. basak ' 塀[ (指小 語 ) , 죽 穀物 의 귀 (頭) ”와 관계 가 있는 것 으로 선명하는 것이다. 古代한국 語 「·베」는 모두 각기 다론 계승을, 따라서 原始 * balz 에서의 각기 다몬 변화 를 보여주고 있다. 이돌 유사 -

14) R.A. Mi ller , loc. cit. , pp. 13-4, no. 7; Werner Sasse, ”尸 as a Phonog r am in Early. 15) KWoerrenaenr WSar sistien, g,'b yLo i' n g (r ui ics e t ik cse r inne l)t hae n dM tohre n iQn ug e sCtia olnm o, f 1尸98 i2n, Oplpd. K70o9r -e1a0n , Wnor .i 3ti.n g,• 《國語學》 10, 1981, pp. 127-34 -

한 관련 있는 형태의 변화물 밝히는 것은, 결국 문자 그대로 한국語史 몰 기술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다음에는 이 다양한 言語 증거가 왜 오랫동안 간과되었는가를 물어보지 않운 수 없다. 그 해답은 단순하고 목별히 계몽적인 것은 아 니다. 이 言語 증거가 오랫동안 간과된 데는 주로 다음과 갈은 이유가 있다. 이 분야의 硏究者가 歷史 言 語學의 原理에 익숙하지 못했고 또한 어떤 초기 硏究(지금은 시대에 뒤밀어진)의 헛된 권위에 끌리고, 日本 과 불행히도 한국에서도 같은 시대의 여러 학자의 그러한 경향 때문에, 그들 초기 학자의 가설이 단순한 作業假說이 아니라 실제로 사실인 것 처럼 그들 가설을 다소 기계적으로 답습한 데 원인이 있다. 鄕歌의 表音文字 「尸」를 뎌타로 잘못 읽고 있는 전동, 많은 現代 한 · 국 학자가 아직도 아무런 문제없이 따르고 있는 그 전봉은 그다지 오 래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小倉進平의 硏究 이전으로 소급되는 것이 아 니다. 그의 1-Jtj拓 89 인 1929 年版의 댜邱歌 및 吏값의 硏究 』 에서 小倉은 이 表音文字의 사용에 당황하고 있음을 솔직하개 告白한 바 있다. 그러나 鄕歌 의 어떤 낱말에서는 「尸」가 中J U] 한국語의 댜간과 대응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상당히 의심하면서도 마지못해 「尸」를 巨티로 참정적 으 로 결정했던 것이다 .16) 그러나 그가 의도한 것은. 더 만족할 만한 해결 이 있울 메까지는, 그 결정은 작업가설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 나 불행히도 우 뒤의 鄕歌룹 硏究하는 한국 학자는 거의 모든 상세하고 목수한 점에 이르기까지 小倉을 비판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지만, 表皆 文字 「尸오 1 음가에 관한 이 문재 물 포합한 많은 중요한 문제 에 관한 작업가설에 대해서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가 다킨를 댜타로 읽은 것 온, 아무런 문제 없이 다음 世代의 학자에 의해서 계승되고, 참정적인 작업가설로 시작된 것이 지금은 고정된 설이 되고 말았다. 실재로 학문 이 발전하려면, 초기 학자에 의해서 발전된 모든 가상과 가정은 끊임없 이 硏究되고 음미되고 재조사되어야 한다. 이러한 정신을 脈史 言 語學의 제문계에 적용합으로써 比校方法이 方法論的 安全性을 얻게 되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인데, 이 정은 金敎授가 번역하여 이용할 수 있게 된 本 畵 에서 한국 독자들이 얻게 되는 것 중의 하나가 되기률 바란다. 기본적인 言語學 서적의 이러한 한국語 번역이 필요함은 의문의 여지

16 ) r J‘歌 r 讀 0 硏究... p. 127 ff.

가 없다. 本압의 言 語學的 견해와 개념은 단순하고 기본적안 것이지만, 그 많은 것들이 특히 국동에서는 아직도 널리 이 해되고 있지 않다. 예를 들면, 두 학자__한 사람은 한국인인데 兩人은 이상하게도 言 語學의 기본 原理에 어둡다一一는 최근 주장하기를, 문헌의 중거에 비추어 古 代한국語는 原始알타이語 * l2 에 대해서 § 혹은 s 를 가지고 있는 言 語라 고 제 안한 것조차 〈이 런 종류의 불합리 함〉에 지 나지 않는다고 했다 .1 7) 金敎 授 가 많은 고생을 해서 이 책을 한국語로 번역했기 때문에, 견식 없는 그 두 사람의 비판자 중 적어도 한 사람은 이 번역본을 읽게 될 것이다. 그가 읽게 되면, 지금은 〈불합리〉하다고만 볼 수 있는 것 배후 에 있는 方法 論 과 가정에 관해서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抽著 의 이 새 한국語 譯 版에 대신하여 필자에 대해서와 같이 金敎授의 노력 에 대해서 보답하는 것이 될 것이다. R.A . 밀러 I984 년 7 월 3I 일 시애윤

17) Juh a Jan hunen and Kho Song m oo, Is Korean Relate d to Tung us ic • • 《한글》 177. 1982, p. 181.

머리말

日本國深交流基金의 전문가 硏究費 지원을 받아서 1977~78 년도 학기 의 대부분을 日本에서 지내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z.동안 필자 는 日本語의 起源에 관한 일반적 논제로 네 차례 公開講演울 하도록 위 촉을 받았다 . .::z. 강연 초청은 각기 다른 단체에서 각각 다른 때에 받았 으며, 처음에는 각 강연마다 7같 거나 혹은 적어도 일부는 같은 내용의 강 연을 하여 의무 를 완수하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 한 관십과 배경을 가진 청중에게 이 논제로 이야기하는 것이, 비목 포 괄적인 것은 아니지만, 여기 관련된 일련의 견해물 개관한다는, 필자에 게는 줄거운 기회가 되리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리고 .::z. 논제는 또 한 필자가 硏究하려고 관십을 가진 것이기도 했다. 따라서 필자는네 차 례의 각각 다른 강연 원고를 대충 준비했다. 本 書 는 출판~ 위해서 그

원고을 수정하고, 또 구두로 발표할 때 미처 모르고 넘겨 버린 중복이 나 불명확한 접 몇 가지를 수정하여 편집한 것이다. 미국 대학에서 과거 IO 여 년 동안 日本語史물 강의해 온 경험에 비추 어 불 때, 특히 미국 학생이나 英語를 사용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한 전 문적이 아닌 평이한 日本語史槪說이 필요합을 확신하게 되었다. 日本語 와 다른 言 語와의 계동관계에 관련된 言語 史 硏究의 중요한 부분에서는 독히 그러하다. 日本語史에 관한 문헌, 독히 日本 語 와 다른 諸 言 語 와의 계동관계를- 다룬 문헌은 있다고 할지라도 英語룹 사용하는 학생들 에게 는 이용될 만한 것이 거의 없다. 실제로 강의에 필요한 〈추가 참 고서〉 로 지정된 소수의 英語 문헌은, 그 대개가 日本 語 原占에서 서 두 르게 번 역된 것으로서 추천할 수가 없다. 비록 학생이 日本語의 原古룰 읽을수 있을지라도 그러하다. 이 일반적인 문제에 관한 최근의 더 중요한 문헌 은 그 대부분이 독일語나 러시아語로 씌어져 있기 때문에, 이 들 言 語를 용이하게 읽을 수 없는 학생은 이용할 수가 없다. 本 합 의 토대가 된 강연은 원래 日本의 大學 청중, 대부분 학생을 위 해서 씌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청중의 관심과,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 강의를 수강하는 미국 학생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日 本학생들또한독일語나러시아語를용이하게 읽을수없다. 그리고그 둘은 英語도 찰 읽을 수 없는 言 語 상의 핸디캡이 있다. 그리하여 이 분 야의 日本語로 씌어진 문헌밖에 읽을 수 없는데, 그 대부분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전에 日本에서 강연했을 때, 日本 학생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던 것처럼 미국 학생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강연을 필요에 따라서 고쳐야 하는 노력이 필요해졌 다. 여기서 강조해 두어야 할 것은, 本밥는 日本語 계통관계의 일반적 주 제에 관한 간단한 入門 困 라는 접, 그리고 日本語의 硏究에 관심이 있는 미국의 학생에게 이러한 형태로 제공되는 것이라는 정과, 또 동시에 최 근의 정확한 지식을 포함하고 그들이 읽을 수 있는 言語 로 씌어졌다는 것 이상의 것이 아니라는 점 등이다. 이와 갈은 생각에서―一미국 학생들에게 되도록 유용하도 록 -문헌 예 관한 정보와 3 장의 지도 를 붙였다. 문헌에 관한 정보는 卷末 의 「 參 考文獻」이라는 章 에 있다. 목 히 미국 학생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駐는 이용 가능한 그리고 英語로 씌어진 논저가 있을 때는 그것에 중접 올 두었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해서 英語의 문헌에는 다룬 것이 없는

경우나, 혹 있다고 하더라도 추천할 수 없는 경우에는필요에 따라서 다 론 言語 로 씌어진 논저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또이 章에서는 최초로本 만에서 설명한 여러 의견이나 주장, 아직도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 그리고 어떤 다른 이유에서 고증이 필 요한 것에 대해서는 필요한 문 헌을 제시했다. 그 문헌은 주로 전문가에게 홍미가 있을 것이다. 英語 이외의 言 語로 된 문헌에 관한 언급은 최소한 줄였다. 그러나 英語 이 외의 言語 로 씌어진 기본적인 몇 가지 문헌의 그 言語몰 硏究해 보고 싶 온 생각을 적어도 몇 사람의 학생이라도 하게 된다면, . 그 문헌에 관한 目的을 달성한 것이 될 것이다. 參考 文獻에 관한 章 온 이 분야 전체의 일반적인 설명부터 시작되고 있다. 여기에 이어서 여러 논제가, 本바에 나타나는 강연의 순서에 따라서 논의되고 있다. 이 렇게 이 루 어진 本앉는 본질적으로 전문적이 아닌 일반적인 것이~ 일반적 독서로 의도된 것이다. 이 분야의 학자나 전문가가 아닌, 목히 학생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本古는, 원래 日本에서 행한 강연 을 토대로 한 것이기 때문에, 모체가 된 강연의 원래의 목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다음과 갇온 스케 줄로 , 세 강연은 원래 日本語로 써서 日本語로, 또 한 강연은 英語 로 씨서 英語로 발표했다. I. 日本에 있어서의 言語學 의 장래의 과제에 관한 私見 제 74 차 日 本 言語學 會大會에 서 강연 東京女子大學 (1977 年 6 月 19 日) 2. 日本語의 起源 : 누가, 언제, 그리고 무엇이 ? 國際基晋敎 大 學 집 회 강연 (1977 年 10 月 20 日 ) 3. 日本語는 어디서 왔는가? 日本語敎育國際會議에서 강연 靑 山 學院 大 學 에서 (1978 年 3 月 18 日) 4. 왜 日 本語의 起源울 모르는가 ? 日本語敎育國際會議에서 강연 千里, 質讀文化센터에서 (1978 年 3 月 20 日) 이들 강연 자료는 지금까지 출판되지 않았는데, 첫번째 강연 후, 大 修縮 맙 店으로부터 日本 言 語學台大會에서 필자가 지적한 몇 가지 중요한 문제를 요약한 논문을月刊 《 言 語》에 기고해 달라는원고청탁을받았다. :::z. 결과 발표된 논문, r 무엇이 日本語의 계몽을 不明하게 했는가?J (《 言

語》, 제 6 권 9 호, 1977, pp. 71-81, 109) 는 그 강연 에 서 말한, 갇은 문 제 몇 가지를 고찰했다. 그러나 本합에서 직접 그것과 중복되는 것은 전 혀 없다(또 言語學會大會에서 필자가 강연한 것은 같은 호의 《言 語》 p. 82 에서 보고되고 있다) . . 本랍의 원고를 준비하기 위해서, 세 강연의 경우, 원래 日本語로 쓰 고 日本語로 발표했던 日本語 原文에서 필자의 견해를 英語로 번역할필 요가 있었다. 이 복잡한 절차는 이로운 접도 있었으나, 아직도 잘 이해 되지 않는 구절이 있다면 저자나 독자에 의해서 역자가 책망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역자는 다름 아닌 필자이다. 이 번역의 실제 작업은 별문제로 하고, 本밥의 원고를 준비하는 데 있 어서 대체로 두 가지 다른 과정이 필요했다 . 첫째 과정은 강연에서 발 표한 자료 몇 가지를 문자 그대로 옮기는 것보다는 더 유효한 순서로 제 정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네 章은 각각 전체적으로 보아 그 순서와 내 용이 갇지만, 단순하게 네 강연을 각각 보고한 ' 것은 아니다. 득 히 제 3 장은 배열을 대폭 재정리하고 두번째 강연에서 많은 견해를 도입했다. 몇 가지 설명적인 주석과 특히 독자에게 낯선 日本語의 전문적인 용어 나 표현은 日本語강연의 번역에 붙인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本占에 나 오는 歷史言語學의 전문적인 용어와 문제의 설명은 거의 강연의 일부임 을 강조해 두고자 한다. 이들 설명은 일반적으로 청중에게는 친숙하지 못한 학문 분야와 관계가 있으며 또 필자의 견해와 접근方法을 되도록 충분히 설명함으로써 최대한 공헌할 수 있다고 느껴지는 분야이기 때문 이다. 두번째 과정은, 1978 年 9 月에 출판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하고 원고를 제출한 후, 워싱돈州立大學校의 國際硏究學部 出版委員會가 필자의·원 고를 독자의 입장에서 검토해 준 것이다. 필자의 원고를 검토해 준 워 싱돈州立大學校 내의의 5 명의 상세한 비평은, 대단히 유익한 助言이었 다. 그 결과 원고의 일부를 수정하고 정정하여 전체적으로 개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최종 원고에 반영할 수 있었던 것은 다행 한 일이었다. 이 두 가지 과정에 관해서 필자 자신은 다행이었다고 생각 한다. 원고를 겁토하는 과정에서 本 함 의 질과 효과를 높여 준 다섯 분에게 사 의를 표하고자 하지만, 필자에게 전달된 그들의 보고는 무기명으로 되 어 있기 때문에, 여기 이름을 들어 사의를 표할 수가 없다. 그러나 出

版委員會의 委員長인 Jac k Dull 敎授와 다른 委員둘 그리 고 大學出版 편집자 Marge ry Lan g女史의 많은 도움에 감사한다. 이들은 인쇄중의 本맙를 보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독자의 입장에서 비평해 주고 그 질과 표현방식을 개선하는 데 협조해 주었다. 또 本합의 장정과 지도 작성 올 담당해 준 Cy n th ia Louie 女史에 개 도 감사한다. 이 네 강연을 준비하고 발표한 기회 이외에, 1977~78 年 학기에 京 都産業大學 학부 학생 클라스에서 日本語의 역사에 관해서 매주 1 희 강 의할 기회가 부여되었다. 득히 이 귀중한 뜻있는 경험에 대해서 감사 한다. 本얀에서 말하고 있는 많은 생각은, 京都産業大學에서의 수요일 오후 장시간에 걸친 강의에서 처음으로 시안으로서 제시되었다. 학생들· 의 부드럽고 우호적인 태도에서 필자는 다음 강연할 때의 청중들의 더 의례적인 태도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되었다. 國閑交流基金의 원조가 없었다면, 강연을 할 기회도 또 강연을 하기 위해서 硏究하고 준비하는 자유로운 시간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필 자는 또 京都産業大[요의 村山七郞 敎授 에게 독히 깊은 사의를 표하고자 한다 . 그동안 필자를 격려해 주고 도와주고 지도해 주었고 또 그의 學 科와 大卑의 학문적 편의풀 베풀어 주었다 . 다른 여러 日本 학자와 친 구들에게도 감사해야 하겠지만, 공평을 기하기 위해서 모든 이름을 들· 지 않는다. 그러 나 적 어 도 泉井久之助 , 奧津敬一郞, 吉田金彦 諸敎授 의 이름은 들지 않을 수 없다. 또 필자의 강연을 日本語보다 더 널리 西洋 학자에게도 익힐 수 있는 言語 로쓰도록최초로 제안한 분은, Columbia 大學 名 용敎援 이 며 현재 Wi en 大學 束洋硏究所에 있는 Karl H. Meng e s 敎授이었다. 끝으로 두 학기 동안 이들 주제와 여기 관련된 강의에 매 주 출석해 준 50 여 명의 京都産業大學 학생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 다. 日本과 미국에서의 30 年 가까운 大學敎授룹 봉해서 필자의 강의에 출석한 모든 수강생 중, 그들은 가장 보람있고 예의밝은 학생들이었음 올 알리고싶다. R.A. 밀러 1979 년 7 월 31 일 시애뭉

日本語의 起源 • 차례

『日本語의 起源』의 韓國語譯版에 붙이는 序文

머리말

제1장 起源의 探索

제2장 比穀方法

제3장 알타이諸語

原住地와 移動 69

言語的다양성 73

動詞형태와 범주 89

基礎語 97

퉁구스語와 日本語 100

先史時代와 考古學 113

大陸으로부터 의 侵入에 관한 言語증거 138

日本語와 韓國語149

中國語, 말레이 - 폴리네시아語, 〈混合言語〉 158

제4장 日本학계의 상황

참고문헌

역자해제

일반색인

語形색인

제 1 장 起源의 探索

서양에서 Menc i us( 『孟子』)로 알려지고 있는 中國의 {젊敎古典 서두에, 자주 인용되는 유명한 이야기이지만, 古代中國의 梁의 王과 哲人 孟子 가 만나는 이 야기가 있다. 『孟子』의 내용은 오늘날 低敎와 그 문헌이 인 정되고 있지 않은 현대 中國보다 日本에서 더 잘 알려지고 있울 것이다. 王은孟子에게 말한다. 〈先生께서 千里길을 멀다 않고 찾아오셨으니, 역시 우리나라에 이익 율 주시 려 는 것 입 니 까 ? 〔斐不遠千里而來 亦將有以利吾國平)〉 孟子는 대 답하기를, 〈王께서는 하필이면 이익융 말씀하십니까. 오직 仁과 義가있 올 뿐입 니 다 CE 何必曰利 亦有仁義而已矣〕〉. 日本에서 이들 강연을 하도독 초청을 받고서 필자는 다소 孟子와 같 온 기분을 느꼈다. 분명히 필자는 , 日本에 가는 것을 힘겨운 큰 여행~

로는 생각하지 않았던 점, 적어도 이런 뜻에서 孟子와 비슷하다. 또 내 강연을 듣는 사람을 놀라게 하거나 혹은 이롭게 할 어떤 목별한 비밀이 나 큰 발견의 뉴스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孟子와 비슷하다 할 것이다. 梁의 궁정에서의 孟子와 같이 필자가 할 수 있는 것은, 日 本語가 어디서 그리고 어떻게 日本에 왔으며 또 역사적으로 세계의 어 떤 言語 와 관계가 있는가에 대해서, 지금 日本語의 起源을 연구하고 있 는 필자와 다른 학자들의 가선을 제시하려는 것 뿐이다. 안名은 槪要처럼 연구方向울 시사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 方向울 결 정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떤 학문적 혹은 知的 연구 를 시작할 때는 古名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여기서 필자 7}­ 〈日本語의 起源 Or igins of the Jap a nese Lan g ua g e 〉이 라고 부르는 것을 ­ 연구한다면, 그 문제 자체 를- 다루기에 앞서, 간名 이 의미하는 것을 필 요하면 상세하게 고찰하고 또 가능하면 간名 의 낱말 하나하나가 의미궁卜 는 것에 대한 필자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 맙 名 중 〈日本語〉는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 〈日本 語〉 가 의미하는 · 것은 물론 本州, 九州, 四國, 北海道의 네 〈本島〉와 오끼 나와 (沖 繩 ) 및 그 南쪽에 있는 다른 여러 작은 섭에 살고 있는, 오늘날 거의 1 억 1 천 5 백만 명에 이르는 住民이 사용하고 있는 言 語 이다. 이 言 語는 또 하~ 이의 많은 日人 係胞와 많은 日人 移民이 있는 브라질과 7같 은 세계의 다 · 른 곳에서도 일상, 득히 가정에서 사용되고 있다. 오늘날 세계를 누비 프 있는 많은 日人 여행자와 실업가를 생각한다면, 세계의 모든주요도. 시에서 어떤 目的으로든지 日本語가 사용되고 있다. 적어도 이런 의미 에서 日本語는 오늘날 國際語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고사하고 를 도, 세계의 중요 工 業國 의 한 言 語로서 또 목히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文學과 傳統文化를 전해 주고 있는 言語 로서 日本語는 분명히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뜻에서 처음부터 변함없는 섭나라라는 좁은 地理的 제약을 훨씬 벗어나고 있다 . 日本語의 가장 초기의 기목은 5 세기 후반의 碑文에 보이는 몇몇 人 . 名이다. 그러나 日本에서 실질적으로 文 學 문헌이 나타나는 것은 8 세 기부터이다. 그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日本의 文學은 그 방대한 産 은 말 할 것도 없고 그 내용의 다양성과 우수성이 주목된다. 日本語는 물론 그 긴 역사들 통해서 한결같지는 않았다. 변화하지 않 는 言語 는 없다. 더구나 모든 言語 는 시간과 더불어 여러 가지 변화를

입는다 . 言語學者 는 이 言語 변화의 현상에 주목하고 言語 史의 여러 시 기에 자의적인 명칭을 붙 인다. 그러한 간결한 명칭이나 술어가 없으면, 日 本語 처럽 (혹은 어떤 人間 言語 처럼) 단순히 수백 년이 아니라 천 년이 넘는 변 화 의 역사 를 알기 쉽게 다 루 기가 어 렵 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대체로 8 세기부터 시작되는 日 本 의 가장 이론 문 헌 에 나타 나 는 言 語롤 古 代 日 本語 라고 흔 히 부 른 다. 794 年 平安 京 (오 늘 의 京都 市)으로 首都 물 옮 긴 후 어느 기간 동안 사용된 言 語를 〈 後 期日本 語 〉라 고 부를 수 있다. 그 言 語 는 古 代日 本語 에서 약간 변화한 것 인데 특 히 母 音 의 수와 독 성에 차 이가 있다. 日本 文 따 에서 가장 위대한 기념비적 作 品 의 하 나인 「 源 氏物語 」( 源 氏의 이야기)는주로 1001-1010 年 에 씌어 진 것 인데 이 言語 는 後 期日 本語 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3 세기 초두 부터 거의 16 새 기 말 까 지는 中世日本 語 로서 이것은 古代日本 語 및 後 J !J.1 日本 語 와 는 분명하게 구 별 되는, 日本 語 史 에 있어서의 다른 단계이다. 1600 年 이 후부터 言語 學者 가 近 世 日 本 語 ( 혹 은 現代日本 語 )라고 부르는 단 계 의 문헌 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近世 日本語 에도 많은 다양성이 있지 만 , 東京과 大阪 그리고 日 本 의 다른 중요 도시에서 현재 사용되고 있 는 言語 와 크 게 다 르며, 위에서 말한 古 代日 本語 , 中世日本 語 의 두 단계 브다 는 現 代 日本語 에 가깝다. 그러나 言 語 史의 각 단계에 古代日本 語 , 中 世日本語 와 갇 은 술 어 를 사용한다고 해서 각 단계 사이에 급격한 변 화 나 추 이가 있었다고 생각해서 는 안된다. 言 語 의 변화는 연속적일 뿐 만 아니라 지 속적 이며――적어도 어느한시기에는 __조 L 것을 느끼지 못 할 정도로 미세하다 . 言 語 변화는 氷河의 흐 름 에 비유될 수있을 것이다. 言 語 변 화 와 氷河 의 움직입은 대단히 느리면서도 끊임없고,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야만 言語 가 변 화 하고 氷河가 움직인 중거 를 용이하게 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言 語學者 가 古代日 本語 , 中 世 혹 은 現 代 日 本 語 라고 부르는 술어의 기 준은 모 든 言 語 에서 봅 수 있는 것으로서 두 府位 에 있어서의 차이 에 입 각한 것이다. 죽, 시기에 따른 발 음의 차이와 낱말의 語 形과 의미의 차 이이다(보 등 전문 용어로는 전자의 충 위 를 〈 昔 韻論 〉, 후 자의 충 위 를 q杉 態 論 〉과 〈 意味 論 〉이 라고 한다) . 예 를 들 면, 古代日本 語 는 現代 日 本 語. 나 中 世日 本語 와 발 음상에 큰 차 이가 있다. 그 한 예로, 古代日本 語 에서는 8 母音 이지만 中世 日 本 語 에 저 는 6 母 音 이 고 現代 東京 의 표준어 에 는 5 母音 만이 있다. (現代의 5 母

音에는 長短이 있어서 그 길이에 의해서 낱말의 의미가 달라지는 데 古· 代日本語에서는 8 개의 母音의 길이에 의한 그러한 의미의 차이가 없었 다.) 또한 古代日本語는 몽일된 단일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알고 있다. 束西 古今의 모든 人間 言語 가 그러하듯이 古代日本 語 에도 많은 方 言 이 있어 서 발음상의 차이에 의해서 方 言 이 서로 구별되는가 하면 때로는 方 言 에 따라서 어휘에 차이가 있거나 혹은 발음은 같으나 의미가 다른 경우 도 있었다. 이들 方 言온 日本語의 모든 역사적 시기 를 동해서 잔존하고 있 다. 오늘날 학자들은 現代日本語의 方 言 을 세 개의 큰 그 룹 으로 구분하 는 것이 일반적인데, 죽 東日本方言(束京 및 그 주변) , 西日本方 言 (大 阪 및 다른 옛 文化中心地), 고립된 섭인 九州의 方 言 이다. 지금까지 납 아 있는 몇몇 現代 方 言 은 아직도 발음, 어 휘 , 의미 면에서 차이가 있어 서 인정해 있는 方 言을 사용하는 사람, 목 히 東京方 言 을 사용하는 사 람 은 다른 方 言 올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큰 方 言 差 는 現代日本 語 에서는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부분적으로는 東京方 言 울 표준어로서 전국의 학교에서 가르치고 또 한편 전국적인 국영 텔레바전 과 라디오 방송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오 늘 날 라디 오와 TV 에 의해서 이 束京의 표준어가 가장 먼 곳에까지 침두하고 있다. 그 결과, 東京에 가 본 일이 없는 사람도-혹 한평생 가 보지 못할 사람도一一어려서부터 東京의 표준어 를 이해하고 또한 유창하게 말굽l­ 게 된다. 地方의 方 言 은 가정이나 천한 친구들 사이에서 계속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젊은 日本人은 자기 方 言 뿐 만 아니라 束 京의 표준어도 상당히 유창하게 말할 수 있기 때문에, 연설이나 강연과 · 갇온 公的 혹은 의례적인 경우에는 方 言울 접점 적게 사용하고 있는 것 올 보게 된다. 아무리 먼 시 골 에서 온 사람일지라도 束京 의 표준 어 률 사 용하는 사람과 말할 때 큰 어려움이 없는 것 갇다. 言 語 상 황은 1 세기 이전과 전혀 다르다. 日本 語 의 역사를 몽해 서 이 런 일은 없었다. 이처럼 畵 名에서 〈日本 語 〉가 의미하는 것에는 크게 문제된 것이 없다. 그러 나 선컵源 o rigin s 〉 은 무엇 을 의 미 하며 또 硏究課 題 로서 이 제 목웅 · 다 를 때, 연구해야 할 어떤 사실과 개념을 시사하는가? 불행 히도 〈 起 源〉은 이해하기 어렵고 위협한 용어가 될 수도 있다 .. 〈 起源 〉이라는 말 온, 학술 용어 로 만들어 낸 〈形 態論 〉 혹은 〈 音韻論 〉과 같이 , 목수한 한 정된 의미 를 가진 전문 용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 or ig ns( 起 源 )〉는 JL

몽 英語 낱말이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업밀하게 정의된 의미로만 사용 · 되는 것은 아니다. 〈상식〉적으로는 起源은 起源이고 과학적인 정확성을 기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할 뿐더러 또한 여기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 혹 起源울 상식적인 의마로 사용한다면 -흔히 있는 일이지만_一 찰 못일 것이다. 日本人 학자 혹은 때때로 日本語로 말하고 쓰는 우리와 같은 외국인 · 학자에게는 용어와 그 정의에 있어서 여기 다소 다른 문제가 있다. 여 기서 사용하고 있는 의미의 〈 or igi ns 〉에 해당하는 日本語는 〈起源〉이다. 이 日 本語 낱말은 英語의 〈 or ig ns 〉와 같이 많은 문제 를 내 포하고 있다. 英語의 용어 처 럼 日 本語의 〈起 源〉 은 歷史言語學의 문제 들을 다루기 위 ’ 한 전문 용어로서 독수하게 정의되어 있지 않다. 그 결과, 이 起源이라 는 낱말이, 本앉 와 같은 주제에 관한 저서의 만名이나 게요에 나타나지 만, 그 정확한 의미 혹은 좁은 의미의 과학적 용법이 넓은 의미의 〈상 ­ 식〉적 용법과 어떻게 다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주의를 기울아 지 않고 있다. 日本 語의 〈起源〉이라는 용어에는 말해 두어야 할 또 하나의 문제가 있 ` 다. 日本語의 모든 名詞처럼 이 起源이라는 名詞에는 단수인지 복수안 지 명확한 표지가 없다는 것이다. 日本語에서는 數라는 文法범주가 반 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日本語에는 복수를 표시할 필요가 있거나 혹은 그것을 표시하고 싶으면, 그것을 표현하는 여러 가지 方法 이 있다. 또 名詞가 복수가 아니라 단수임을 강조하고자 할 때도 그 方 · 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보통은 日本語의 어떤 名詞도 경우에 ' 따라서 英語의 복수나 단수로 정확하게 번역될 수 있다. 말하자면, 日 本 語 의 名詞가 복수인가 단수인가 하는 것은 語學 선생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문맥에 의한다. 처 음부터 혹은 〈 o rigin s 〉이 다. 日 本語의 〈起 源 〉은 물론 단수도 아니고 복수도 아니 다. 英語에서 혹온 〈 o rigi ns 〉라고 하여 단수형 아니면 복수형을취하는 것은 다만 英 語의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인 것이다. 日本 학자 혹온 日本語 , 로 쓰거나 강연하는 사람은 단수와 복수를 선택할 필요가 없댜.

그러나 대체로 自由는 거기 상옹하는 책입을 져야 한다. 그런데 일반 적으로 日本의 학자는 적어도 이 구체적인 예에서 선명되는 바와 같은 단 • 복수의 문제에 관한 日本 語 의 관대한 自 由에 따르는 책임을 충분히 지지 않고 있다. 〈日本 語 의 起 源 〉은 이 주제에 관한 중요한 책 의 간名 이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와 유사한 표현 은 이 분야의 수백의 최근 연구의 題 目이나 개요에도 나타나 있다. 〈 日本語 의 起源 〉 을 논제로 했 올 경우, 과연 저자들이 言語年 의 전문 용어로서 〈 起源 〉을 진지하게 생 긱하고 정의하고 있는지 혹은 일반적인 뜻 의 〈 起源 〉과 의식적으로 구별 하며 사용하고 있는지 그 방대한 문헌에서도 찾 아보기 어렵다. 논문을 쓰거나 연구하는 것이 言語 의 〈 or igin〉인지 〈 or igi ns 〉인지에 대해서 충분 한 주의 를 기울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I 억 1 천 5 백만 명 이상이 사용하고 있는 日 本語 에 대 해서 처음부터 단일의 유일한 〈or igin〉을 추 구하는가 혹은 다양한 복 수적 안 〈 or igin s 〉 를 추구하는가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죽 어느 쪽 으로 정하 는 가는 연구 성과나 여기서 유도되는 결론의 성격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의 의가 있다. 英 語 에서는 형태적으로 절대적인 文 法 상의 數의 재약에서 벗 어 날 수 없다. 따라서 〈 or igi n 〉과 중에서 어 느 쪽을 추구하는 가 를 결정해야 한다. 뒤에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文 法 的 속박의 이 득 수한 경우는 아마 다 행한 경우일 것이다. 西洋의 연구가들은 日本 학자가 대상으로 삼는 범 위보다 처음부터 더 주의깊게 한정된 관련범위 속에서 연구하기 때문 에 그만큼 더 이론적이고 文法 論 的인 결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 나 그렇게 함으로써 오히려 이 문제에 관한 연구 를 더 용이하게 진행할 수 있다. 어떤 言 語라도 그 文法상의 사실이 자의적이고 우연적인 것이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이 자의적인 文法的사실은 어느경 우에는 학문의 발달에 기여하기도 하고 또 어느 경우에는 학문의 발달 에 방해가 될는지도 모른다. 단수와 복수의 사용이 자유로운 日本 語 의 〈起源〉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英 語 에서 아니면〈 or igin s 〉 어느 한쪽을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것과는 대단히 다르며, 英 語 와 갇 온 업격한 구별은 학문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필자는 現代日本語의 학문의 어휘가 빈약하고 또 용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日本 학자가 사용할 수 있는 어휘에 어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온 결코 어휘의 부족에 기인한 것이 아니

다. 英語의 중 어 느 편 에 해 당하는가에 대해서도 일정한 견해가 없다. 그러므로 엄격하게 논의해 나아가기 위 해서는, 이 들 용어 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 먼저 그 의미영역의 한계 를 정해야 한다. 〈 起源 or igi ns 〉에 관해서 논의 할 때는 日本語의 경우나 또는 어느 言 語 의 경우라도 이 〈 起源 o rigi ns 〉이 란 말이 의 미하지 않는 것을 명 백히 해 두는 것부터 시작하는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는 日本語가人「버의 고유한 활동 으로서 어 떻게 생겼는가 룹 연구하는 의미에서 日本語가 실제로 어 떻 게 시작되었는가 를 밝히려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뜻에서 어떤 言語 혹

은 모든 人間 言語 의 〈 起源 or igin s 〉을 고 찰 하 는 것은 1 세 기 전 에 인기 를 끌었던 것이다. 言語 가 어 떻 게 해서 생겨났 는 지에 관 해서 홍 미있고 독창 적인 여러 이론이 발표된 바 있다. 그 중 어느것은 言語 의 〈 起源 orig in> 이 자연의 소리 물- 모방하는 데 있다고 보는가 하면(〈멍멍〉 說 ), 또 어느 것은 人 間 의 행동에서 시작했다고 보는 그 럴듯 한 것도 있다. 또는 접차 발달해 가는 경제상 황 속에서 거짓말 을 하고 납을 속일 필 요가 있었다 는 데서 言語 의 〈起 源 or igin〉을 찾으려는 사 람 도 있었다. 그것은 경제 적 去來가 言語 없이는 순조 롭 게 이루어 질 수 없고 또 거기에는 거짓말 이 수반 될 수도 있는 유일한 인간사라는 데 이유가 있다. 前세기의 이러한 몇 가지 추 측 은 오 늘날 도 홍 미있 는 읽 을 거리가 되 고 있지만, 현대 言語學者 에게는 그 대부분이 한 낱 골동 풍적 가치밖에 는 없다. 이러한 뜻의 言語起源 문제는 최근에는 言語學者둘 사이에서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지 않다. 그것은 우리 들 의 이 론 을 뒷 받침해 줄 만 한 구체적인 증명 자료가 없을 뿐 아니라, 이러한 이론을 평 가 할 만 한 方法 論 이 없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중명 자료가 없고또가설을입 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그러한 추 측 은 그러한 것을 생 각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의 발명의 재간이라고 하겠다. 비교적 최근, 다시 이 문제에 신중하게 관심올보이는 기미가 보인다. 1975 年 뉴요크 科 學 아카데 미 New York Academy of Scie n ces 는 한 회 의 를 개 최 했는데 (어 느 批 評家 는 〈와그너 풍의 규모 Wag n eria n pro p o r- ti ons 〉라고 평했다), 여기서 言語學者둘 은 哲 學者 , 心 理毋봐q , 生物穆 者, 人 類穆者 , 神經學者 들과 만나서 이 분야에 관한 새로운 고찰을 진 지하게 시도했다. 그러나 이른바 言 語의 起 源 에 관한 분야의 학문적 부 홍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하겠다. 그리고 人間이 최초에 어 떻 게 말하기 시작했는가에 관한 추 축 이나 혹은 人「버의 言語 가 어떻게 해서 나타났는 가에 관한 이 론은, 日 本 語 의 起源 (orig in 혹은 ori gins ) 을 연 구할 때 는 전혀 관계가 없는 문재이다. 그러 면 우리 들 이 日 本 語 의 〈 起源 or igi ns 〉아 라는 논재 하에 고 찰 하려 는 것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서 本간 에서 〈 起源 or igin s 〉이 의미하는 것 _ 또한 底 史급 語뚜 의 전문 용어로 적 확 하게 · 사용 했을 때의 산起 源 o rigin s 〉이 의미하는 것은 문제의 言語 의 역사 를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 의 목표는 言 語의 역사 를 될 수 있는 한 과거로 거슬러울라가 추구하는 것이다. 言 語 學 , 특히 比 紋 方法으로 알려지고 있는 言 語 學 분야의 가정

과 方法 論에 의해서, 言 語자료가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는 옛 文戱에 재 한되고 있지만, 우리들의 硏究는 그 재한된 時間的 한계 를 훨씬 넘어서 까지 추구할 수 있다. 이 比校方法의 적용은 言語起源 의 연구에 전혀 새로운 차원을 부여하 는 것이다. 比 岐 方 法 이 없다면, 우리들의 연구는 가장 이론 시기의 문 헌자료에 한정되고 말 것이다. 日本語의 문헌은 가장 이론 시기의 것 일지라도 인류와 그 文明의 역사 전체에서 본다면, 실로 국히 새로운 것 이다. 日本에 이 比校方法 論 이 처음 알려진 이후 1 세기가 지났으나, 오. 늘날 日本 학자는 아직도 이 方法울 日本語의 起源 연구에 적용하기~ 주저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日本 학자들은 가장 이른 문헌 의 시기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주된 원인이 되어서, 전 후 30 년 동안 학문적 자유 를 누리면서 이 분야의 연구가 행해졌으나, 日本 語 의 起源 에 관한 연구가 실질적으로 발전하지 못했던 것이다. 西 洋 학자가 日本의 학자보다 더 통찰력이 있고 또 더 부지런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적어도 다음 한 가지 접에서만은 보다 행운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죽 西洋학자는 다른 言語 의 起源 연구에서와 같이 日本語 ­ 의 起源 연구에도 比 校 方 法을 주저하지 않고 적용했기 때문에, 단순한 문헌조사에 의한 좁은 연구영역을 훨씬 넘어서 그 역사를 추구할 수 있 었던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 日本語 혹은 어느 다른 言 語의 〈起源 orig ins > 연 구는 :::z. 言語 의 역사적 연구의 목 수한 일면에 지나지 않는다. 言 語는 고도로­ 목수화된 人 r버 의 일련의 행동양식이라는 의미에서 言 語는 人rid]의 한 制 ` 度인 것이다. 고도로 목 수화된 人間의 다른 행동양식에는 결혼 , 습관, 친족 체계 , 정치재도, 稅制 동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制度 가~ 데서 연구하기 위해서 다른 制度에서 용이하게 분리할 수 있는것 중言 語는 가장 복잡하고도 가장 목 수화된 현상이 다. 言 語는 또한 〈호모 서· 피엔스〉 그 자체와 더불어 가장 오랜 것임에 몰림없다. 마치 개인, 가 족, 국민, 국가에 역사가 있는 것과 갇이 人間행동의 모든 체계에도 역 사가 있다. 또 국민과 국가의 역사 를 연구할 수 있는 것과 갇이 결혼, 습관이나 친족체계의 역사도 연구할 수 있고 또한 연구하고 있다. 그 리고 우리는 人「버의 모든 행동양식 가운데서 가장 복잡하고 가장 고도 로 목수화된 言語 의 역사를 연구 할 수 있고 또한 연구하고 있다.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言 語에서 출 발하여 이론 단계몰 향해서 더욱더

욱 소급해 갇 수 있다. 자료와 方法論이 허용하는 한, 과거로 거슬러울 라가 어떤 言 語의 起源웅 연구할 때一一가능한 한 시간상 과거로 멀리 거슬러울라가 어떤 言語 의 역사를 연구할 때――그 言語 의 〈 or igi ns( 起 源 )〉 혹은 〈 or igi n( 起源)〉에 관해서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 리가 문재삼는 것은, 우리들의 지식과 腐史言語禁의 현 상태에서 日本語 의 역사를 어디까지 거슬러울라가 추구할 수 있는가에 있다. 또한 자 료와 方法 論 이 밝힐 수 있는 가장 먼 과거까지 소급했을 때 우리는 무 엇을 발견하게 되는가? 만일 우리 硏究에 의해서 인류가 최초 分節 言語룹 어 떻게 개발하는지 밝혀지기를 기대한다면, 〈 or igi ns( 起 源)〉 또는 〈 or igi n( 起源 )〉을 위 에서 와 갇이 정의하고 한정할 경우 다소 실망할 것이다. . 그러나 여기서 정 의되고 한정된 의미의 言語 起源 연구는, 人rp1 이 최초 〈멍멍〉과 7같 이 동 물의 소리 를 모방해서 말하기 시작했다든지 혹은 물건을 사고팔 때 그 물건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기 위해서 말하기 시작 했다든지 또는 다른 단 순하고 순전한 억 측 보다는 결국 보다 감동적이고 생산적 임을 알게 될 것 이다. 우리들은 물론 言語學者 로서 그러한 억 측 은 창작이나 文慕의 영 역에 속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가 문제삼는 것은, 역사 자체를 실정하고 연구하고 추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이 어느 사람에게는 〈상식〉에 위배되는 것처럼 보일는 지 모른다. 言 語의 연구, 득히 言 語史의 연구에서 는 , 분명히 고찰 대상 이 言語 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과학적 연구의 모든 일반적 규범에 서 스스로 벗어난다고 생각하는 의견이 강한 것 같다. 이러한 〈상식〉적 가정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 단 지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것을 추축함으로씨 나 폴레옹 시대의 프랑스의 역사적 사건을 연구할 수 있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역사적 인물의 生卒 年月 日울 가능성 혹은 그렇게 보는 것이 편 리 하다든가 또는 그러리라는 추축에 의해서 결정하려고는 아무도 생각하 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일들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잔존하는 증거 를 몽 해서 알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言 語 역사의 연구는다른역사의 연 구와 다룰 바 없다. 만일 연구상의 용어를 위와 갇이 정의한다면, 日本語의 먼 과거의 역 사에 관해서 현재 알고 있는 것과―一적어도 지금은-모르고 있는 것 올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끝없는 상상의 나래를 타고 창의적인 새로

운 〈가능성〉을 생각해 내는 것보다는 위와 갇이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 의 우리에게는 보다 바람직스럽다. 이 렇게 본다면, 어 떤 言 語의 〈起 源 or igi ns 〉은 ::z. 言 語의 @戈立〉과 〈系 統〉과 칙 접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리하여 여기서 日本語 ­ 의 起 源 울 연구한다는 것은, 자료와 方法이 허용하는 한, 과거로 거슬 러울라가 그 역사 를 추 구하는 것으로 알게 될 것이다. 이 起源의 연구 는 〈成立〉이라는 용어에 반영되어 있는 言語 연구의 개념과 밀접한 관련 이 있다. 죽 과거에서 현재로 내려오면서 言語 의 〈成立〉에 관한 연구 를 생 각할 수 있는데, 한편 言語 의 〈起 源 orig ins > 연 구도 그 순서는 반 대이 지 만 대체로 같 다. 자료와 方 法 이 허용하는 한, 될 수 있는 대로 과거로 멀리 거슬러울 라가 言語 의 역사와 그 成立 과정을 추적하려고 하면, 〈系統〉의 문제에 당면하게 된다. 그것은 〈系統〉이라는 용어가 갖는 言語學 的 개념이 ~ 리가 연구상 접 근 할 수 있는 言語 의 가장 이론 단계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 단계에서는 그 言語 는 이미 우리들이 연구하고 있는 ­ 言語 가 아니라,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親近)관계〉가 있다고 말하는 실 질적으로 다른 言語 인 것이다• 日本語의 系統 연구에서, 日本語와 다른· 言 語와의 系統관계 문제에 당면할 때, 그 가장 이른 시기의 단계는 여 러모로 가장 중요하며 또한 우리들 대부분에게 가장 홍미있는 것임이 들립없다. 우리들이 지금문터 연구하고자 하는 것을 분명히해 두고 우리들이 연 구상 관여하지 않는 몇 가지 일들을 강조해 두는 것이 아마 좋을 것이 다. 이 〈관여하지 않는 것〉을 간단히 요약할 수 있다. 죽 우리가 연구 하려는 것은 言 語의 역사이지 민족이나 인종 혹은 그 밖의 다른 것의 역 사가 아니라는 접이다. 이들 모든 문제에 대한 〈상식〉적인 연구方法은, 선의에서일망정, 그 많은 용어와 개념이 극히 위험하게 혼동되고 있어 서 종종 애매하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서 어느 정도 주의를 기울여 야 한다(日本이나 西洋에서도 대부분의 학교와 大 學 에서 그 혼동이 그 이상 증가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 혼동을 명백히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言 語는 人間의 행동양식 중에서 가장 복잡한 체 계이다. 그러나 言語는 민족과도 다르고 또 인종, 혈통, 국민성, 물질 문화와도 다르다. 言 語는 가장 복잡한 유일한 행동양식의 체계로서 ~

化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인간행동의 모든 면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言語 없이 人間생활의 중요한 면을 생각한다는 것은, 비록 불가능하지 는 않더라도 어렵다. 그러나 言語가 본질적으로 造傳혹은 민족적 목칭이나혈통의 발달또 는 역사와 관계가 있다는 증거가 없다. 言 語에는 言語 의 역사가 있다. 부족이나 가족과 갈은 소집단처럼 민족과 국민에도 그 역사가 있다. 그 러나 言 語와 人「버의 造傳的 집단 사이에는 본질적인 인과관계가 없다. 위에서 정의한 바와 같은 言 語의 起源 연구는 言 語에 관해서는 많은 것 을 말해 주겠지만, 人「口 1 의 造傳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 주는 것이 없 을 것이다. 이와 같이 人 間의 造傳의 역사를 동한 증거 , 목히 체 질 인류 학의 증거를 言語 의 起源 연구에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한 중거는 그 분야에서는 중요하겠지만, 우리들의 연구와는 관계가 없다. 言 語의 증거와 여기에 입각한 言 語연구물, 다른 여러 가지 人[-:.i1 의 경 험, 목히 민족의 인종적 起 源 에 관해서 알고 있는 것과 엄격히 구별 할 필요가 있는데, 이렇게 양자 를 구별한다면 이둘 문제에 관심이 있 는 사 람둡온 놀랄 것이다. 물론 〈상식〉적인 생각에 지나지 않으나, 言語 는민 족이나 인종의 起源的 배경과 밀집한 관계에 있어서 어느 한 쪽 을 연구 하려면 반드시 다른 쪽도 연구하게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 나 이러한 가상온, 그 이론적 근거와 이것에 관한 것들을 고찰하면 분 명해지겠지만, 전혀 그릇된 것이다. 言 語는 시간과 더불어 변화할 뿐만 아니라, 말하는 사람에 의해서도 변화를 입을 수 있다――代四된다는 뜻에서 , 어떤 言隨 를 말하면서 성 장한 뒤에 다른 言 語를 배우고 그 새 言語를 사용하개 되는 사람은 뒤 에 가서는 첫 言 語를 말하지 않게 되고 이해조차 하지 못하게 된다. 이 것을 전면적 혹은 완전한 言 語변화 一― 죽 어떤 言 語가 다른 言 語로 완 전히 代證되는 변화-로 생각하고 있다. 만일 그것이 전면적 혹은 완 전한 言 語변화라면 특히 홍미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여러 가 겨 역사적 言 語번화와는 달리, 그것은 한 개인의 생애에서 수 년 동안에 급격하게 일어나는 변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면적 혹은 완 전한 言語 변화는 대단히 드물다는 것을 경험에 의해서 알고 있다. 만일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7,8 세 이전에 일어나는 것이고 그 뒤에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그 시기가 넘으면 새로 습득 한 言 語를 자기 言 語로 바꾸고 그 言 語에 대단히 숙달해지지만, 그 변

화가 전면적 혹은 완전한 경우는 드물다. 아뭏든 言語 가 민족이나 迫傳的 목 칭과 본질적으로 1 대 I 의 관계에 있다면, 개인의 모든 言語습득 과정이나 言語代四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아무도 그들의 민족적 목성 이나 造f8 09 성격을 바 꿀 수 없는 것 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言語 는 人 r내 행동의 모든 면과 갇이 매우는 것이 다. 죽 幼兒가 성장하면서 오렌 시간을 두고 서서히 言語를 습득하든가 혹은成人이 된 뒤에 인위적으로 비교적 짧 은 기간 동안에 言語률 습득 하든가, 아뭏든 모방에 의해서 言語룹 배우는 것이다. 言語 는 다시 배우 고, 바꾸고, 변화시키고, 버리고, 代匠할 수 있는 행동양식의 한 체계 인 것이다. 그 러 나 민족적 혹은 迫傳的 성격은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것을 강조해 둘 필 요가 있다. 日本語의 〈起源 or igi ns 〉 에 관해서 우리가 무언가물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日本民~ 의 起源 문제 혹은 日本民族 이 어 떻게 탄생했는지 또는 日本民族이­ 種族, 民族迫傳的 실재로서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중요 한 것도 발견하지 못할 것 이다. 여러 사람이 실망할 것이다. 실망하는 이유는 이해할 수 있으나 그렇 다고 사실을 바 꿀 수는 없다. 또한 t對버的 硏究의 규칙을 께뜨릴 수도 없다. 또한 다른 분 야에만 유효한 중거나 발견에 입각해서 체질인류학, 인간유전학, 인종기원론 등 또 다른 분야에서 어떤 結論을 내리려는 것 도 옳 지 않다. 득히 日本에서 많은 사람이, 言語 史와 言語硏究몰 民族 이나 種族 의 起源 문제와 엄격히 구별할 필 요가 있다고 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그 실망의 가장 큰 원인의 하나는 오늘날 日本人의 生活의 여 러 면에서 볼 수 있는 현상으로, 國民的 自體確認 nati on al i den tity울 추구하는 데 있는 듯하다. 日本社會의 어느 부분을 보더라도 日本人 자 신이 〈日本人 論 〉이라고 부르는 것과 관계가 없는 것은 거의 없다. 〈日 本人論〉이라는 간결한 용어는 英語로 번역하기는 어려우나 설명하기는 쉽다. 그것은 現 代 日本社會가 처하고 있는 自體確認이라는 중요한 모 든 문제를 가리킨다. 現在의 日本人口 중, 太 平洋 전쟁 전에 태어난 사람은 반수가 못 되며 오늘날 전쟁의 참화를 직접 희상할 수 있는 사람은 더 적다. 日本온 다 론 나라 시장에 경제적으로 진출한 그 活力에 힘입고 世界 무대에 뛰어 든 것이다. 모든 年 齡 , 직업올 가진 모든 日本人은, 묵히 1970 年代초 이래 〈日本人 論 〉을 깊이 생각하고 그 가운데서 그들의 民族的 自體確認,

족 〈우리들은 누구인가?, 우리들은 어디서 왔는가?, 어떻게 해서 오늘 에 이르렀는가?, 그리고 지금부터 우리는 어디로 갇 것인가?〉를 진지 하게 생각 할 만한 여유와 충분한 동기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의문의 대부분은, 日本이 世界경제에 진출함에 따라서, 世界 의 다른 國民 이 처 음에 日本人에게 묻는 것이다. 처음에는 日 本 人은 外 國 시장에 그 들 의 새로운 발판을 유지하기에 바 빠 서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을·생각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처음에는 이러 한 의문에 전혀 관십 . 이 없었고 또한 어떤 해답 이 있 을 성싶지도 않았다. 물론 나이가 많 은 日本人은 옛 팟쇼-국수주의가 이 들 문제에 대해서 정해 놓 은 해답을 알 고는 있었다. 그러나 오 늘날은 분명히 그러한 해답이 인정되지 않고 있 다. 한편 젊 은 충에개는 당장 해답이 없었고 처음에는 그러한 의문 에 관십이 없었던 것이다. 1970 年{t에 들어서면서 상황은 일변했다. 새로운 해답 이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日本人 스스로가 같은 문제 를 물었던 것 이다. 그 의문은 日 本社슝의 모든 충 에 침두하고 그 度 에 있어서는 이상 할 이만 큼 강렬하게 긴급한 문제로 나타났다. 결국 日本 학자는 동속적 인 서적이나 저널리 즘 과 더 불 어 이 문제를 들고 가능한 모든 해결方法을 모색하기에 바빠 겼다. 그러나 그들은 그 과정 중에서 알기 쉽고 곧 이용 될 만한 해답을 얻으려고 열중한 나머지 종종 穆 間的 硏究의 가장 기본적인 규 칙을 깨 뜨리고 있다. 日本에서는 이들 문재에 관해서 학문적이고 동속적 인 것 까지 를 포합해서 수많은 論짠 가 나타났는데, 이 들 은 監質 人 類學 이나 迫 傳學의 자료 를 言語 史의 자료와 혼동하는 기본적인 方法論的 과오를- 법 하고 있고 또한 言語 의 起源 문제에 해답하기 위해서 盟買 人 類學 동 다 른 분야의 자료에서 얻은 발 견을 이용하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알기 쉽고 당장 이용될 만한 해답을 얻으려고 열중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日本에서는 일간신문이나 주간지에 日本語가 어떤어떤 言語 와 친근 관계가 있다는 〈발견〉을 〈발표〉한 기사-그 중에는 正統的인 권위 를 자랑하는 大 學 교수의 글도 가끔 있다 __를 거의 빠침없이 볼 수 있 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그들이 日本 語 와 친근관계가 있다는 言語 는 地 理的으로 日本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日本語와 관계가 있을 만한 가 능성이 없는 言語 이다. 그리고 항상 그 센세이셔널한 발표에는 때로는 암암리에 그러나 종종 명백한 주장으로 다음과 같은 말이 포함되어 있다. 죽 日本語가 X 라는

言語와 관계가 있다고 증명되었기 때문에 日本人 또한 起源的으로, A 種的으로, 人類穆的으로, 그 言語풀 사용하는 사람들과 관계가 있다~ 주장하는 것이다. 비록 처음 주장이 옳다 하더 라도 (그럴 리도 없지만), 여기서 論理的 으로나 必 然的 으로 다음 주장이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 런데 不 幸 히도 저널리즘에서 항상 주목을 받는 것은, 근거도 없고 지지 할 수도 없는 후자 의 주장이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누구이고 또 어다 서 왔는가룹(日本人이 어디로 갇 것인가에 대해서는 새로이 덧붙이겠지 만) 말해 줄 수 있는 〈日本人 論 〉의 自體確認의 요구에 대 해서 가장 잘 대답 해 주는 것이 후자 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日本語의 역사 문재에 관한 現代 日本人의 강한 관심은, 일간신문에 발표되는 헤 아 릴 수 없는 기사나 주간지의 센세이셔널한*題 그리고.i!} 店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역시 센세이셔널한 표제의 책에서 충분히 그. 증거 울 찾 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결국 自體確認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言語 는 그 起源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 은 日本民族과 그 起源 그리고 그 구성에 대한 관심보다는 크지 않다. 言語룹 人 種 및 그 발생적 배경과 혼동하는 것은 現代 日本人돌 사이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그리하여 日本語와 日本語의 역사 각 분야에 관한” 기사와 서적을 열심히 읽고 있는 수십만의 독자들은, 여기서 자기들이 누구이고 또 어디서 왔는가에 관해서 알고자 하는 것을 찾을 수 있으리 라고 믿고 있다. 결국 그들도 言語 와 民族융 同一視하는 상식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그러한 同一視가 그릇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확신 또한 빗나간 것이다. 民族과 言語풀 同一視하는 과오가 야기시키는 문제 물 이렇게 상세하· 게 지적하는 것은, 다만 우리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을 항상 경계해야 하 기 때문인 것이다. 言語 자료와 여기에 입각한 結論을 人類學이나 迫傳 學의 자료 및 그 結論과 구별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에 두는 것은 어렵 지 않다. 現代 日本처럼 民族과 言語 가 대단히 동질적인 社會에서일지 라도, 言語 가 民族과 갇은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어느 것을 안다고 해서 이것에 의해서 또 다른 어느것을 반드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날마다 얼마든지 있다. 필자처럼 어떤 言語 (독일語)를 사용하며 성장하다가 다음에는 다른 言語 @t語)로 완전 히 代固되고 또 그 사이 세번째 言語 (日本語)로 강의할 수 있도독 고생 한 사람은, 言語 와 民族은 근본적으로 무관하다는 가장 구체적인 중거

를 가지고 매일 살아온 샘이다. 무엇보다도 독일語몰 사용하지 않게 되 고 英語만을 사용하게 되었을 때도 내 人 種 이나 迫傳子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또 日本語로 강의하기 위한 태세를 갖추고 있을 때도 내 人種 이나 造傳子에는 변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상식적인 대도와 方法이 때로는 그것이 전혀 그릇된 것임을 知性的으로 알수있을 경우라도, 역 시 사고 과정 중에 완고한 요인으로 남아 있기도 한다. 그러므로 뿌리 깊은 오류의 회생이 되기보다는 그 그롯된 성격을 강조하는 위험을 무 몹쓰는 편이 오히려 낫다. 言 語學과 言 語자료를 다른 분야의 자료 및 硏究와 구별 할 필 요성은, 오늘날의 〈日本人 갑삶 〉 __ 적어도 오늘날 日本의 많은 동속적인 저 널 리 즘 에서 불 수 있는 것과 갈은――만이 당면한 가장 중요한 유일한 문재는 아니다. 이와 갇은 필요성은 모든 言 語硏究 .에 서, 때와 장소와 관계없 이 혹은 문제의 독정 言 語가 무엇이든, 기본적인 작업의 하나이며 또한 분명히 가장 곤란한 문재의 하나이다. 美國 의 위대한 言語[상者 례 오나 드 불뭄필드 Leonard Bloomf iel d 는 가끔 다음과 갇이 말 했 다. 효i E 學 의 모든 분야에서 가장 곤란한 것은 言語룹 硏究하는 것(이것이 곧 言 語 學 의 주재이다)을 결심하는 것이며 다음에는 그 결십을 관찰하는 것이 다. 바꾸어 말하면, 사상적 패턴, 知的 조류, 社會學的 경향과 같은, 또 는 言 語硏究의 말이 나오자마자 사람을 끌어당겨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여러 가지 홍미있는 外部 H9 이며 非 言 語年的 고찰을 위해서 言 語 그 자체의 硏究를 등한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言 語의 科學的 硏究, 죽 言 語 學 처럼 어렵고 또 보람있는 卑 問은 없는 것같이 생각되는 때도 있다. 日本語와 그 起源에 관한 관심융 日本民族과 그 시작에 대한 관 심과 구별해야 하는 것은, 現代 日本의 지식인이 1970 年代초부터 당면 하고 있는 어려운 문제로서, 바로 블룸필드가 설명한 것이다. 本 書 에서 다무려는 것에 대한 개념이 분명해졌으나, 또한 마지막으로 서론적인 문제가 하나 남아 있다. 그것은 〈日本人 論 〉에서 받는 대단히 목수한 知的 자국은 별문제로 하고, 西洋 학자들이 日本語의 起源에 관 심을 가져야 할 어떤 좋온 혹은 그럴 만한 理 由가 실제로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 . 참시 이 문제들 생각해 보면, 그것이 중요한 문제인 것을 알게 될 것 이다. 〈日本人 論 〉은 당연히 日本人만이 관계되며 現代 日本人의 自 體 確 認에서 자국되어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西洋人에게는 그러한 것과 관

계가 없다. 現代 日本人은, 마법의 트랜지스터와 小型 TV 가 든 알라 딘 백 Aladdin bag 을 들고 世界시 장에 뛰 어 들 때 自 假確認을 찾으려 고 했는데, 그들은 지금 전반적으로 自 盟 確認이라는 중요한 문재에 당 면하고 있다. 그러나 世界市民으로서의 自 盟 確認에 대한 어떤 실마리가 그들의 言 語 에 숨 어 있다고 믿는 식자들에 의해서 日本人이 찰 못 인도 된다면, 自 曲確認 이라는 중요한 문제는 더욱더 커질 것이다. 우리는 모 두 이것을 동정 할 수 있으나 우리는 그 문재와는 관계가 없다. 따라서 먼저 外 國 人이 이 문제에 관여하는 것에 어떤 의의가 있는가 물 물어보 아야 한 다. 우 리 들 이 日 本語 의 起源 에 관해서는 무언가 물 배워 알게 되 더 라도, 개 인 으로서 혹 은 人 類 의 一員으로서 日 本人이 〈어 디 서 왔는가〉 에 관 해서는 L:l本에서 온 친구에개 별로 말해 줄 것이 없다는 것을 지적 해 두었기 때문 이다. 우리 들 의 서 론적 문제 중에서 이 마지막의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한 해답은 다 행히 무 조 건 긍정적인 것이다. 현실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日 本 語 의 起 源 이 라 는 문제 만이 다. 이 문제 는 옳 고 그르고간에 日 本 語 의 起 源 문제와 〈 日本 人 i ;ftr 〉을 관련시키는 어떤 시도보다도 훤 씬 중요하다. 日 本 語 의 起源 문제는 진정 知的으로 중요한 문제이며 우리들이 日本人이 건 아니건 진지하게 고찰해 불 만한 가치가 있다. 이 문재 를 해결하려 고 할 때, 분명히 우리는 〈日本人이 어디서 왔는가〉에 관해서 구체적인 정보 를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적어도 〈日本人 論 〉이 찾으려는 自 體 確認 에 대한 확실한 해답을 찾으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만일 그러한 해 답이 필 요하다면, 그것은 日本人에게만 필요한 것이다. 日本語의 起源 문재 를 硏究하고 있는 우리 外國人 학자에게는 日本語의 起源 문제만이 홍미있고 중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의 표명은 日本 학자의 그것과 다르다. 그러므로 여기서 이 문제물 간단하개나마 깊이 고찰해 볼 가치 가있다. 日本 語 의 起源 문제는 비단 日本 학자뿐만 아니라 i!t界의 학자에게 도 의의 있는 학문적이고 知的인 문재인 것이다. 그것은 日本 語 가 日 本列島에 존재하고 적어도 千年 동안 거기서 사용되어 왔다는 단순하지 만 깊은 理 由에서이다. 日本語가 어디서 왔는가?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유일한 方法은, 될 수 있는 한 과거로 소급하여 그 역사 를 추구한 다는 뜻에서 言 語의 起源 융 硏究하는 것이다. 日本語는 오늘날 日本에서 사용되고 있다. 어딘가에서 여기로온 것이

들립없다. 이것은 단순하고 분명한 사실이지만, 대단히 중요한 사실아 다. 이것은 또 人間生活의 여러 기본적 사실이 그러한 것처럼, 이 역시 단순하지만 대단히 중요한 자연의 지리적 조건에 기인한다. 日本列島는 지질상의 기원이 주로 火山에 있다. 本島와 南쪽 으로 뻗은 긴 小列島는 사실상 광대한 火山지대의 上部 선단이 표면에 나온 것이다. 따라서 日 本列島는 火山들의 정상인데 그 火山둘이 지금은거의 왕동하고 있지 않 다. 그러나 최근 商船이나 沿岸巡視月 B 이 日本近海의 海底火山 이 완동 하 는 무서운 광경을 때때로 보고하고 있다. 그것은 폭발해서 海面까지 분 출 하든가 때로는 새로운 섭을 형성할 정도로 강 렬한 것이다. 이러한 사 실은 많은 섭둘이 아득히 먼 과거에 어 떻 게 해서 형성되었는 가 를 눈앞 에서 보여주는 한 예라고 하겠다. 이처럼 日本列島는 아시아大 陸에서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비교적 후기의 陸地形成 활 동으로 생긴 것이다. 따라서 오 늘날 이 들 섭에서 불 수 있는 것 또는 歷史時代 에 존재했던 것은 모두, 이 들 섬에서 독자적 으로 진화한 것으로 가정하지 않는 한 , 어딘가 다 른 곳에서 온 것이 둘 림없다. 또 日本列島의 형성 과정으로 보아 여기서 고등식물이나 동뭉 이 오랜 진화 과정을 거쳤을 만한 충분한 시간이 없다. 이들 섬에서 볼 수 있는 식물, 동물, 민족, 言 語 등 모든 것은 어디선가 온 것이어야 한다. 모든 고동동물 중에서 그 진화가 가장 복잡하고 시간이 걸린 〈호모 사피엔스〉는 말할 것도 없고, 수천에 달하는 동식물의 종의 진화가 日 本에서 독자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울 진지하게 논의한 사람아 거의 없기 때문에, 이들 모든 것이 어단가다른 곳에서 왔을 가능성만울 고려할만 하다. 그리고 日本列島에서 다른 형태에서 진화한 것이 아니라는 뜻에 서 日本에 고유한 것일 수 없다(다른 형대에서 진화했다고 보더라도 이 다른 형태가 어디서 온 것인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이 이상 문제 를 복잡하게 하지 않아도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할 것이다). 人間온 주로 言語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고등동물과 구별되는 最高의 동물인 것이다. 言語 는 행동양식의 가장 정교한 체계이며 ~ 人猿 등이 사용하는 커뮤니케이선 체계보다 더욱 복잡하다. 또 人間의 진화의 역사에 관해서 거의 모르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몇 번에 걸쳐 人 類 ―一〈호모 사피엔스〉__가 진화했는지(혹은 갇은 어려운 문제야 지만, 世界 몇 군데서 진화했는지)의 질문에 대답할 수가 없다 .

하등동물에서 人rJ1으로의 진화 과정은 대단히 복잡하고 대단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전혀 다른 환경에서 일어난 그 변화는 극히 먼 과거에 일어났던 것으로 생각된다. 모든 神話에는 진실 의 핵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神話가중요할수록그근거가되고있는진 실 또한 중요하다. 한 장소에서 단 한 번만의 人間創造라는 극히 인상적 인 神話 -가령 『 구약성서삼나 다른 古代종교의 창조신화에도 보인다 一는, 바꾸어 말한다면, 모든 것이 일어난 것을 비교적 충실하게 전해 주는 것일는지 모른다. 죽 모든 人 類 가 한 장소에서 단 한 번에 탄생했 다는 것이다. 그러나 人間이 한 번만 진화했는지 여러 차례 진화했는지는 여기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 뭏든 , 훌륭한 학자라면 日本列島에서 〈호모 사 피엔스〉의 진화가 일어났다고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비교적 뒤에 기록 된 日 本 最古의 문헌 인 『 日 本因紀』와 『古事記』 에 는 民族的으로 가장 오 랜 기억을 민족 특 유하게 해석하고 있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데, 日本神 話의 실체나 정신도 진화는 한 번만 일어났는지 여러번 일어났는지 말 해 주고 있지 않다. 神話 의 독 성과 기능은 合理的으로 이해할 수 있는 어떤 구조를 설정 하는 것인데, 관찰된 기본적인, 때로는 무서운 생활 사실이 神話의 구조 속에 잘 맞게 수용된다. 그런 구조가 없다면 神話의 作家나 신봉자에 게 불가사의한 日常生活의 사실로 그쳐 버리겠지만, 그런 구조에 의해서 여기 어떤 질서와 어떤 이유 를 발견하게 된다. 日本의 神話에는 到來 arr i vals 와 出現 adven t의 이야기가 가득 차 있다. 하늘에서 내려온 神 둘, 섭으로 온 神들, 정복의 사명을 띤 半祠’의 인쳐들을섭 곳곳으로보 내는 神들 . 日本神話울 역사와 혼동해서는 물론 안 되지만, 모든 참다운 神話 와 갇이 그것은 또한 反歷史的인 것이다. 日本神話에서 새로운 낯 선 곳-매로는 敵 地-에의 到着, 旅行, 위험한 出現이 〈의미하는 것〉 을 선명하는 것이 神話 의 기본적인 目的에 맞는다. 日本에 온 것이 누구이건 또 어디서 왔건, 이 日本神話는 아득한 옛날부터 全日本民族 에게 공통적으로 찰 기억된 경험담인 것이다. 그들이 누구이건, 그들이 어디선가 온 것은 확실하다. 따라서 이 섭의 民族의 言語 또한 어디선가 온 것이어야 한다. 만일 고동동물이 〈호모 사피엔스〉가 된 시접을 한정해야 한다면, 그 시정이 人rJ.I의 分節 言語 의 발달과 관계가 있다고 주저 하지 않고 생 각하는 사람

은 거의 없을 것이다. 言語는 바로 :::z.. 성격상, 古生物이나 考古學이냐 또는 관련 科學에 대해서 확실한 중거를 납겨주지 않고 있다는 것은 Al - 실상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言語는 文字체계가 발명될 때까지 눈으로 볼 수 있는 명확한 중거를 남긴 것이 없다. 또 古代 中束의 最古文字를 비못해서 모든 文字체계는 言語 :::z.. 자체의 발달에 바한다면 훤씬 후기 의 것입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人間이 속하는 種 이 〈호모 사피엔 스〉라고 불리우는 것은, 言語를 가지고 있다는 단 한 가지 이유에서이 다. 그런데 그 人間 자체가 日本列島에서 진화했다고 믿을 수 없는 것 . 과 같이 人間 言語 가 日本에서 독자적으로 발달했다고는 믿기 어 렵 다. 이 렇게 해서 日本語는 어 딘가에서 日本列島에 온 것이 어 야 한다. :::z... 것은 위에서 본 바와 같다. 그러나 ::.z. 어디라는 곳이 어디이고 또 어떻 게 그러한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문제는, 日本人이 아닌 사람, 죽 現代. 日本人의 自體確認이나 〈日本人論〉과 관계가 없는 사람에게도 과연 중 ­ 요한 것이 되는가? 이 문재는 처음 문제보다는 대답하기 어려우나 :::z... 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또한 대단히 긍정적으로 ::.z. 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우리가 누구이고 어디 살고 있든지, 日本 語 가 우리 전체의 現代生活 이나 역사의 진로를 決定하는 5 혹은 6 大國의 하나인 日本의 言語 라는 ` 대단히 단순한 理由 때문에 그 문재가 중요한 것이 다. 그러 나 이들 5 혹 ­ 은 6 大國 중에서 :::z.. 言語 의 起源이 확실하지 않은 것은 日本 語뿐 이다. 오늘날 世界의 다른 大 國 의 言語 는 그 起源이 확실하다. 英語, 독일 語 , 러시아語 그리고 프랑스 語 , 아탈리아 語 , 포르 두 갈 語 갇온 로망스 諸 語는 그 起源이 찰 알려져 있고 :::z.. 역사도 대단히 먼 과거까지 소급해 서 추구할 수 있다. 그리고 여러 가지 方法으로 또 여러 가지 계몽에 따 라서 이돌 모든 言語윤 言語穆者 가 印 歐祖語 라고 부르고 있는 原始言語 統一體에까지 관련시킬 수 있는 것이다. 중국語의 경 우는 사정 이 약간 다르다. 중국語와 다른 語族과 의 역 사 적 관계에 대해서 믿을 만한 言語的 층거가 아칙까지 제시된 바 없다. 그렇다고 중국語의 起源에 관해서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온 아니다. 이것온 분명히 逆說的이지만 다음과 같은 사실에 의해서 설 명된다. · 죽 중국 語 에 관해서 말할 때는 실제로 親近言語 로 이루어진 대 단히 큰 語族울 말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여러 지역에서 사용되고있 는 많은 상이한 言語돌 은 모두 상호 계몽적 친근관계에 있다. 西洋에서

는 흔히 불확실하게 오해하여 그 들웅 方 답 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사 도 실이 인식되면서 言 語年者 는 전적으로 중국語의 言 語領域 자체 내에서 중국 語 의 起源 硏究룹 추진하게 되었다. 또 그 과정에서 言 語學者 는 중 국 語 의 바교적 초기의 단 계에 관해서 중국에서 文字가 사용되기 이전의 아득히 먼 시대의 言 語에 관해서도 많 은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해 서 중국 語의 起源에 관해서는 잘 알고 있다. 한 大 國 의 言語 , 죽 日本語만이 오늘 날 그 起源 이 밝혀지지 않은 것 을 의미 한다. 日本語의 起源 이 밝혀지지 않는 한 , 日本人 자신이나 i!t 界의 다른 모든 사람에게 日本과 現代世界 에 있어서의 그 역할을 충분­ 히 이 해하기 위한 어떤 본질적인 것이 어 둠 에 싸여 있는 것이다. 日本人 자신 들 은 , 그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또 다론 이유에서 그것을 ­ 알고 싶어 하고 있다 . 日本 人온 現代 世 界에 서 국제적 소임을 다할 충분­ 한 역 할 을 맡기 시작하면서 자기자신을 알고 싶어하는 자국을 받게 된 것이다. 여기서 日本 人이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와 다르다. 그러나 비 록 다른 이유에서일지라도 우리도 갇은 것을 알고자 하는 비슷한 필요 성에 당면하고 있다. 外園人아라고 해서 西洋의 우리들이 日本과 :::Z.. 文 化 를 모르고 있을 수는 없다 . 한 나라의 言 語는 분명히 그 나라의 文化 L 와 文明의 가장 중요한 일면이기 때문이다. 日本은人沮 ( 가 족 의 일원이고 장차도폴립없이 그 럴 것이다. 日本 은世 界를 리드 하는 工業力과 經 演力올 가진 나라 중의 하나이다• 어떤 의미 에선 우리 모두의 운명이 고도의 先進 國 에 의해서 支配되기 띠:문에 어 느 정도는 日本에 의해서도 支配된다고 할 수있다. 利己的으로 자기 生 ­ 活만을 위해 서 이 民族, 文化 , 文明울 모르고서는 아무도 살아갇 수 없 다. 日本語와 그 起源 에 관한 지식은 우리들이 日本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이다. 그 렇 지 않으면, 앞으로도 과거에 흔 히 그러 했듯 이 표 면적이고 平凡하게만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렇게 말한 다고 해 서 日本 人이 아닌 言語穆者 가 왜 그런 硏 ; 究 뮬 할 필 요가 있는가 하는 문제에 칙겁 대답하고 있지는 않다. 西洋 학자가, 지금 우리가 중요하다고 인식하고있는 이 둘 문제에 관해서, 다 만 日本 학자의 硏究결과나 結論울 硏究하는 것만으로 만족 할 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 들 문제에 관해서 日 本 학자들 이 상당한 의견에 도달했고 또 그런 方向으로 硏究 뮬 추진사 키고 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이 경우도 〈상식〉적 견해는 찬

혀 그롯된 方向으로 유도한다 . 분명한 사실은, 오늘날의 日本 학자가 日本語의 起源 문제에 관해서 우리에게 아무것도 말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西洋 학자들이 이 문재에 관해서 진정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 스스로 그 것을 탐색해야 한다. 놀랍게도 이 硏究분야에서는 日本 학자들에게서 거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몇百年 전 西洋에서 近代敎育制度 를 도입한 이래, 日本에는 高等敎 育이 급속히 보·금되고 또한 모든 분야의 科學硏究기관이 급증 했 다. 이 컨 사실을 찰 아는 사람이 위에서 말한 대단히 否定的인 말을 들으면 慈 : )i-일 것이며 또한 믿기 어려울 것이다 . 日本에는 數千의 전문학교와 敷 百의 大學이 있고 또 技師, 전문가, 設計者 에 의해서 때로는 놀랄 만한 · 정확성과 能力울 가진 모든 종류의 과학적 기계장치 를 생산 할 수 있고 고도로 발달된 工業力이 있다. 그런데도 그들 자신의 유산인 言語 에 관 한 硏究가 그렇게 뒷전에 처져 있을 수 있는가? 모든 敎育기관에 종 사하고 있는 많은 日本人이 매년 유럽이나 美國 에 유학을 간다. 그럽에 도 日本人 자신에 의해서 발견되지 않은 무언가가 남아 있다고 할 수 있 는가? 아뭏든 〈상식〉적인 대답은 부정적이다. 확실히 先進國인 日本이 이 문 제를 이미 오래 전에 모두 해결했으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 온 확실히 日本 학자가 이미 만족할 만한 상당히 決定的인 해답에 도달 했다고 당연히 생각할 만한 문제인 것이다. 다시 말하건대, 아 뭏든 사 실온 그렇지 않다. 日本 학자가 日本語의 起 源 에 관해서 만 족할 만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50 年 전이나 百年 전이나 거의 갇다. 이것은 실로 놀랄 만한 逆說이다. 어떤 逆說도 그 렇 지만 , 이 상황 자 체 또한 조사해 볼 가치가 있다 . 그렇게 함으로써 日本文化에 관해서, 목히 日本 학계와 知性人界에 관해서, 많은 것을 알 수 있다(이 학계 와 知性人界는 다른 큰 나라에서처럼 調和되지 않고 있다). 本간의 뒷부 분에서 오늘날의 日本 言語學 界가 벽에 부딪히고 있는 몇 가지 중요한 理由가 고찰될 것이다. 여기서는 다만 막다른 골목에 처해 있다는 것, 그리고 이것이 이 분야의 거의 모든 日本 학자 앞에 가로놓인 진정한 그 리고 가장 큰 장애가 되고 있다는 것만을 말해 둔다. 日本 학계는 이른바 〈定說〉에 따라서 硏究하고 생각하고 말하기 를 좋 아하는 것 같다. 이 定說이라는 낱말은 日本에서는 (책이나 그리고 大

學 강의 등에서도) 자주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日本人에게는 대단히 일반적인 여러 낱말처럼 그것은 의외로 英語로 번역하기가 어렵다. 英語 로는 대 체 로

는 것융 마치 자랑할 만한 이유가 되는 日本 語 의 독징인 것처럼 생각~ 고있다. 이러한 학자에게는 이 문제에 관한 定說이 없다는 것이 거의 학문적 인 맹목적 崇拜對象 feti sh 이 되고 있다. 몇몇 학자는 이 문제에 관해서 는 아무것도 알려져 있지 않다고 몇 번이고 되풀이하고 있을 뿐만 야 니라, 아는 것이 없다는 것 자체가 실은 중요한, 또 日本民族이 자랑할 만한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을 강조하고도 있다. 이 문제에 관해 서는 오늘날 아는 것이 없다고 주장 할 뿐만 아니라, 또 이러한 상황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고 자기들을 포함해서 누구도 이 문제에 관 해서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으리라고 자신있게 예언하는 학자도 때때 로있다. 따라서 歷史言語學의 진지한 硏究者는 그러한 견해에는 관심을 갖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한 견해는 脫史言語學 의 관심을 끌지 않고 오히려 오늘날 社會病理學者의 한 목 수한 분야가 된다. 現在 알고 있는 것에서 결론지어 버리려는 것, 그리고 現在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은 항상 밝혀지 지 않은 채로 납을 것이 라고 주장하는 것은, 학문적 일반 규범 에서 이 탈하는 것이다. 다행히 그러한 이탈을 더 조사할 방도가 많으나, 역시 다행히 어떤 방도도 言語學者 의 직접적인 관십 대상이 되지 않는다. 따 라서 우리는 이 학문적 규범에서의 기묘한 이탈을 추구하는 짐을 기꺼 이 다른 사람에게 말기기로 한다. 모든 학문과 모든 硏究의 본질은 알고자 하는 욕망이며 의지이다. 이 욕망과 의지는, 열심히 硏究만 한다면 이 世界에 존재하는 것에 관해서 적어도 의의 있는 중요한 사실이 발견될 수 있으리라는 신념에 입각한 것이다. 日本語의 起源 문제가 이러한 규칙의 예외이며 그리고 배울 보 람도 없는 데마라고 쳐 버리는 것은 학문과 학문硏究를포기하는것과도 같다. 동시에 지적되어야 할 것은, 알 길이 없다고 예언하는 사람은 반 드시 그렇게 되리라고 믿는 예언을 강요하는 것이다. 허무주의와 학문 적 不可之 論 에 선 그러한 전재하에 硏究한다면, 어떤 테마에 관해서든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 확실하다. 바꾸어 말하면, 日本 학계는 日本語의 起源에 관해서 아칙 定說에 도 달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둘은 이 문제에 관해서 日本 학계에만 의지할 수 없고 또 어렵지만 중요한 문제물우리가힘써 硏究해야 한다. 그것온 日本 학계가 지금까지 이 문제에 관해서 우리에게 말해 줄 유익

한 것을 발견한 것이 없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日本 학계가 그것 올 자랑삼아 주장하지는 않아도 그들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다. 日本에 관해서는 이 정도로 해두고 다음에는 西洋에서는 어떠한가? 日本 語 의 기원에 관해서 西洋 학계에 눈을 돌리면, 지금까지 日本 학계 에 관해서 말한 상황하고는 정반대임을 알 수 있다. 西洋에서는 이 문 제에 관한 定說 consensus 이 있다(여기서 〈 consensus 〉라는 용어는 물 론 위에서 본 목수한 의미의 日本語 〈定說〉과 꼭 맞지는 않는다. 그러 나 설명 과정에서 consensus 와 〈定說〉과의 의미상의 간격과 또 두 용어 의 배후에 있는 두 개념 사이의 간격을 적어도 일부는 메꾸려고 한다). 西洋 학계에서는 日本語가 어디서 왔는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 다소 권 위있개――독창적인 학문과 학문硏究의 권위 __- 말하는 입장에 선 시· 람들의 일반적으로 일치하는 견해, 죽 consensus 가 · 있다. 이것만도 꽤 놉라운 일아지만, 西洋 학계의 consensus 가 日本에서 거 의 알려지지 않고 있는 것도 또한 놀라운 일이다. 日本에서는 이 문재 에 관해서 모든 방면의 사람들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西洋의 定說은 거의 주목되고 있지 않다. 외국 학자의 硏究가 日本의 보­ 도기관에 깊이 알려지지 않고 또 여기에 의해서 광범위한 日本 독자들· 에게 알려지지 않는 것을 설명하기는 어렵지 않다. 外國의 硏究成果가 오늘날 日本에서는 主로 英語로 읽히고 있다. 그런데 英語보다 널리 읽 히지도 硏究되지도 않고 있는 유럽의 言語 , 득히 독일語나 러시아語로 外國의 硏究成果가 자주 발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英語 로 발표된 硏究가 왜 日本에서 일반적으로 무시되고있는가를설명해 ~ 는 것이 못된다. 또한 日本語 자체-홍 전문적으로 硏究 조사하고 日本語 의 起源 문제를 가장 깊이 硏究하고 있는 日本의 전문 학자둘에게조차 널리 알려지고 있지 않다는 가장 놀란 만한 사실도 선명해 줄 수 없는 것이 확실하다 . 만일 학자가, 득 히 갇은 분야의 학자가 어 떤 言語 로 발 표되었든지 그들이 전공분야와 관련이 있는 世界 각곳의 문헌을 조사하 고 정리하려 하지 않는다면, 신문이나 싸구려 주간지에서 그것을 얻지 못하리라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이것은 실로 이상한 逆 說 이다. 한편에는 日本語가어디서 왔는가에 관 한 定說 consensus 에 도달할 수 없다고 거 듭 주장하는 日 本 학자가 있 는가 하면, 또 일각에서는 현재 이 문제에 관해서 알고 있는 것, 죽 아 무것도 모른다는 것 이상으로 앞으로도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을 것

이라고 자랑삼아 말하기도 한다. 한편 西洋 학계는 이 문제에 관한 定 說 consensus 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더구나 이 두 그 룹의 학자들 사이에 학문적 교류가 거의 一方通行 09 이라는사실은그逆 說올 더욱 복잡하게 한다. 西洋 학자는 日本 학자의 硏究를, 유익한 것 이라면 무엇이든지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日本 학자는 西洋의 硏究는 거의 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 중요한 문제에 관해서 대부분 의 外國 학자들 사이 에 定說 consensus 이 있다는 것을 거 의 모르고 있 다. 그들은 이 문제 에 관한 外國 原만에 정 동하지 도 못하다. 이것은 목히 필자가 물으려는 이상하고도 실망을 안겨주는 상태이다. 필자가 이 문제를 든 것은 이 분야의 학자에개 도웅이 될 다른 학자의 硏究成果와 견해물 알리는 것이요 또한 필자에개 강연를 의뢰한 분들은 먼저 이런 점을 마음에 두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초대되었다는 것 자체가, 일부 日本 학자 자신들도 우리와 갈이 日本人 의 硏究가 西洋人의 硏究에서 고립해 있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찰 말해 주는 것이다. 많은 日本 학자는 西洋 학자와 갇이 日本 학 자와 西洋학자 사이에 놓여 있는 不必要하고 실망적인 분열을 가급적 속히 종식시키려고 열망하고 있을 것이다.

제 2 장 比紋方法

日本 語 의 起源에 관한 西洋 학계의 현재 定說을 요약하기에 앞서, 이 문제의 연구가 日本에서보다는 西 洋 에서 좀더 긴 역사를 가지고 있음이 지적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홍미있고 또한 유익한 일일 것이다. 이것은 중요한 사실이지만, 日本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지도 않:;J... 또한 이해되 고 있지도 않다. 그러므로 이런 사실온 日本 語 의 起源 문제 를 논의하는 데 있어서 그 나 름 의 가치 를 가지게 된다. 日 本 학계에서 이 문제에 관한 최초의 진지한 학문적 연구가 나타난 것은 1908 年의 후지오까 가쓰지 ( 藤岡勝 二, 1872~1935) 의 논문에서 있 었다. 후지오까는 유럽, 목 히 독일에서 1901~05 年동안 比紋 • 歷史言 語學울 연구하고 귀국 후에는 이른바 束京帝國大學의 교수가되었다. 후 지오까와 그의 새로운 지위는 帝國大 學 그 자체와 더불어 1868 年의 明

治 維新 이후 日本이 유럽과 美國 에서 교육, 연구, 기술의 근대적 시설 올 도입하기 위해서 이 루 기 시작한 거대한 발 전의 중요한반영이라고하 겠다. 日本 語 의 起源에 관한 1908 年의 후지오까의 논문은 日本 학계에 서 나타난 최초의 공헌이었다. 그것은 후 지오까 이전에는 日本 학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후지오까가 태어나기 15 年 전에 그리고 근대 日本이 세계 사 회 에 참여하게 되는 明治維新의 11 年 전에 안 돈 불 러 Anto n Boller 라는 비 엔 나 Vi en na 의 학자는 이 미 日 本語의 起源에 관한 긴 논문윤 발표했 다. 물론 불러의 연구에는 많은 결접과 부적질한 점이 있으나, 그 논문 이 발표된 시기 (1857) -롭 고려한다면 이 해할 만하다. 불 러가 이용한 많 온 言語 자료는 그 자신이 日本語에서 얻은자료와 다른 아시아 諸닙값i 에 서 인용한 많 은 語形 이 었 는데 그 들은 불완전하고 부정 삭 한 것 이 었다 . 따 라서 그가 얻은 결론 은 그 자료의 수준윤 기의 넘웅 수 없는 것이었다 . 그 럽에 도 1857 年 에- 최초의 美國 총영 사 타우센드 해 리스 Towsend Harr i s 가 비참한 시 골 祿 (村 시모다(下田)에 상 육한 다음 해 에-비엔나 의 불러는 日本語 의 起源 연구에서 여러 구체적인 성과 룹 얻을 수 있었 고. 또한 오 늘날 에도 우리 들 의 주목을 끌고 존경할 만한 여러 사 실을 입 증할 수 있었다. 불 러의 선구적인 노력 이 후 西洋의 둡 .語 연구가 힘차 게 출 발한 것운 고려한다면, 이 문제에 관한 日 本 의 연구가 늦은 것을 어느 정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불러의 시대 이래 120 年 이상이 지났기 때문에, 그보다 더 많 은 것을 발견했고 또한 그의 선구적 연구 당시 그가 이용 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확실한 자료를 言 語學 의 모든 관련분야에시 얻을 수 있어서 여기에 입 각한 논증과 중거를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럽에도 西洋 학자의 定 說 온, 오 늘 날도 I857 年 불러의 연구가 지적한 日本語의 起源 에 관한 기 본적인 方向과 갇다. 1857 年 불러는 日本語가 우 람-알 타이 Ural-Alta i c 라고 그가 부르는 語族 과 계 통 적 관계가 있다고 결론 지었다. 이 비엔나 학자가 말하는 우 랄-알타이라는 용어는, 한편으로는 핀랜드語, 헝가리語 및 다 른 우 랄 諸語 또 한편으로는 뒤르크語 , 몽골語 및 다른 알타이 諸語뮬 포함하는 큰 語族율 의미한다. 오 늘날 西洋 학계의 定說은 그의 견해 를 약간 수 정하여 日 本語를 다만 알타이 諸語 의 하나로 본다__다시 말하면, 日 本 語를 지금온 없어져 버린 아득한 옛 시기의 알타이 祖諸 (Al tai c 혹은

Pro to- Al t a i c) 와 계동적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알타이祖語와는 또 한 뒤르크語, 몽골 語 , 만주 語 그리고 아마도 한국語와 갈은 言 i 5 도 관 계가 있다고 본다. (알타이 諸語 가 의미하는 것 그리고 〈계 몽관 계〉라는 용어와 개념이 갖는 의미에 관해서는 뒤에 선명된 것이다 . ) 불러 자신은 자기의 연구결과를 확산하고 있었다. 사신상 그의 논문 에는 Nachw eis 또는 〈증명〉이라는 표재가 분여 있다. 그것은 분러가 日 本語와 日本語룹 역사적으로 관련시키려 한 다른 諸 첩 갑꼽와의 친근관계 을 완전히 입증했다고 믿었기 때문인 것이다. 文法과 統辭論이 구조상 어떤 型 이든 또 세계의 어디서 사용되고 있든 님넘 용 산의 역사적 관계에 대한 오 늘날의 관접은 다소 다르며 또한 보다 신중하게 정의되고 있다. 諸 旨 語가 서로 어떠한 역사적 관계에 있 는 가에 대해서는 불러보다 우리 가 더 잔 알고 있다 . 이 문재에 관해서 오늘날 우리 가 이해하고 있는 바 로 는 , 그러한 문재에 관한 〈증명〉윤 논의하거나 혹은 쓰려고 하는 사람 은 오 늘날 거의 없을 것이다. 어떤 言 語가 다른 言 語 와 역사적 관계가 있다는 것-바꾸어 말하면 , 여러 言 語 사이에 계동관계가 존재한다 는 문재 그리고 필자가 여기서 답 語의 起源 이라고 부르는 문재는 실제 로 증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문제는, 어느 누구도 이의 를- 재 기 할 수 없는 견칭적 인 중거읍- 최종적 으로제시한다는 의미의 〈증명〉 가 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 혹은 그 이상의 답 語 사이에 역사적 관계가 있다는 것은, 우리가 지금 이해하는 바로는, 중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 는 것은, 그러한 결론의 方向으로 보다 잘 유도해 주고 더욱 설득력 있 는 자료와 더욱 믿음직스러운 중거운 계속해서 수집해 가는 일이다. 어 느 言語 와 어느 言 語 와의 계동관계는 증명할 수도 또 반중할 수도 없 는 것이다. 어떤 言語 의 起源 에 관해서도 7같 다. 起源이라는 것은 다만 우리가 다루고 있는 言語 의 계동관계를 의미할 뿐인데, 먼 과거로 거 슬러울라가면서 그것을 추구 하는 것이다. 그러나 명백한 최종적 증명이 불가능하다할지라도, 이것온실제로크 게 문제될 것이 없다.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먼저 합리적인 가설을 설 정하고 다음에는 중거에 의해서 그 가정윤 뒷받침할 수 있는가 를 겁토 해야 한다. 만일 그 가정이 옳다면, 증거가 늘어남에 따라서 더욱 설득 력을 갖게 될 것이다. 만일 그 가정이 옳지 않다면, 그 가정을 전적으 로 포기하고 새로운 가정을 선정하든지 혹은 그 가정을 수정해야 한다.

충분한 자료가 ` 수집되고 연구 • 업선되고 분석될 때, 그러한 자료를- 평 가할 수 있는 학자들에게 확신을 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학자는 歷

史 言 語[성의 훈련을 받고 또 다루는 諸言語에 관한 지식을 갖추고 있어 야한다. 그리하여 불러는 〈중명〉에 관해서 썼지만, 그 대신 우리들은 오늘날 日本語의 역사적 起源에 관한 더욱 믿음직스러운 중거를 수집하고 있다 고 하겠다. 그리고 우랄-알타이 語 族에서 그러한 起源울 찾으려 하지 않 고 오히려 알타이語族에서만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불러의 용어에 두 가지 큰 기술적인 수정을 가했지만, 1857 年의 그의 학문적 업적은 아 칙도 놀랄 만한 유효성을 지니고 있다. 1 세기가 넘는 이 비엔나 학자 가 오늘날 유럽에서도 찰 알려져 있지 않고 日本에서는 거의 알려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日本語의 起源 문제에 대해서 처음으로 의의 있는 현 대적인 공헌을 한 것은 의심할 마 없다. 불러의 커다란 공헌을 평가하고 독히 · 日本語의 알타이 起源에 관한 현 西洋 학계의 定說웅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다른 알타이諸 語 에 관한 몇 가지 기본적인 사실을 분명히하고 또 言語 간의 〈계동관계〉의 성격과 그 개념을 간단히 설명하기로 한다. 이 문제가 일단 검토되면, 日本語가 알타이諸 i E 와 어떤 역사적 관계가 있으며 또한 넓은의미로 日 本語가 알타이諸語의 하나라고 하는 단순하게 보이는 말이 무엇을 의미 하는가물 보다 찰 이해하게 될 것이다. 먼저 本간에서 사용되는 알타이語라는 낱말이 어떤 단일 言 語의 명칭 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날 알타이 i E 라고 지 칭할 수 있는 현재 사용되고 있는 言 語는 없다. 우리는 먼 과거의 대단 히 목수한 言 語 실체를 알타이 i E 로 보고 있으나, 이것은 자기들을 알타 이人 그리고 자기 言 語룹 알타이語라고 부르는 집단이 언첸가 존재했다 고 알고 있고 또 그렇게 믿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 서 목수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알타이語라는 용어는전문용어이며 그 것은 日本語가 다른 여러 言語와 더불어 형성하고 있는 語族울 지칭하 는 편의상의 명칭으로서 歷史言語學者가 만들어낸 것이다. 이 알타이 Alta ic 라는 낱말은 원래 言語상의 명 칭 이 아니 라 地理學에 서 사용되는 명칭이었다. 그것은 中央아시아의 알타이山脈을 가리키는 形容詞이다. 알타이山脈의 주된 산줄기는 몽골의 南西물 가로질리 몽골 과 中國의 新疆 사이를 · 몽하여 소련 영토까지 뻗어 있다. 알타이語族의

가장 이른 시기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가 한 言語 로서 어디서 사용되고~ 있었는지는 확실히 모른다(혹 존재했다고 하더라도 자기들 스스로를 또 자기 言語풀 어떻게 불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문제의 여러 연 구가 들은 , 이용 할 수 있는 중거에 의해서, 그 원래의 위치_一가장 이 론 알타 이 語물 사용하는 사람 들의 〈原住地 Urheim at> _ _ 가 알타이山 脈의 어딘가에 있었다고 오 랫동안 생각해 왔다(뒤에 보는 바와 같이 오히 려 南쪽 丘陵地帶로 보인다). 그러므로 여기서 다 루 고있는 語族 전 체에 대한 편의상의 명칭으로 이 알타이라는 形容詞 룰- 오랫동안 사용해 온 것이다 . 또한 현재 西洋에 서 이 문제 를 연구하고 있는 우리 들 대부­ 분이 日本語가 역사적으로 관계가 있다고 믿는 것이 바로 이 알타이語 族인 것이다 . 알타이 語族온 대단히 방대하고 또 住民의 분포와 역사 그리고 광대한~ 아시아 대육 모든 곳에서 행해진 것으로 생각되는 이른 이동을 이해하 는 데 있어서 중요하다. 알타이語族은 3 대 분파로 나누어지는데, 죽 ­ 뒤르크 諸語 , 몽골諸語 , 몽 구스 諸語 이다. 이 세 각 語派 에는 서로 상이 한, 그러나 계동관계가 있는 많은 言語 가 포합된다. 이 들 言語 는 각 3 대 분파 내에서 서로 계동관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분파의 모~ 言語 와도 계동관계가 있다. 그것은 이 들 모든 言語 가 어느 한 最 古 알 ­ 타이 님검 臥社會 공동체의 原始言語 에서 후 기에 변화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 그 가장 이 른 言語 社會 공동체는 아시아의 어딘가에 있었을 것이다. 오 늘날 세계의 많은 중요 言語 중에서 역사적으로이 알타이語族에 속 ­ 하는 것은 터어키의 현대 터어키 語 , 몽골 인민공화국의 몽골語 그리고 嗣 -세번 째 분과에 속하며 西洋의 비전문가에게는 낯선-이른바 뭉구 스 諸i갑 이다( 등 구스 諸語 중 라무트語 Lamut, 에벤키 語 Evenki, 골디語 Gold i와 같은 言語 는 아직도 소련의 극동지역의 일부에서 사용되고 있 는 소수 民族의 言語 이 다. 이 소수 民族은 아직 까지 도 분명 히 文化的, 言語 的 독칭을 어느 정도 찰 보유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는 이 들 몽구스諸語 중에서 近世中國~ 에 있어서의 중요성 때문에 한 言語 가 주목된다. 그것은 滿洲語 이다. 滿 洲語는 한 몽구스語로서 오 늘 날은 거의 소멸했으나 17 세기 明朝말 中 國올 정복한 滿洲族 의 言語 이다. 滿洲族 은 明에서 지배권을 때 앗고 1912· 年 中 華民國 이 건국될 때까지 약 3 세기 동안 淸朝로서 中 國을 지배했 다. 淸朝 초기 에는 外來 지 배자인 滿洲族의 原 言語 , 죽 滿洲語가 中 國語

와 더불어 국무, 행정의 言語로서 사용되었으나, 淸朝후기에 오면서 中 國語가 정접 더 많이 사용되고 滿洲語는 접차 경시되었다. 이 짧은 설명에 의해서도, 알타이諸 i · 1:t가 광대한 지역에 분포하 고 있 다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 수 있다. 그들 딤 . ~.E 는 터어키에서 滿洲 人 의 原住地 인 〈 滿洲 〉(현재의 中國 吉林省)의 북부 연안 지 대에 이르는 아시아 진역에 분포하고 있다. 대부분의 西洋 학자의 定 짊1 에 따라서 위 에 말한 알타이諸 語 에 한국語__알타이 諸 :E 의 하나로 충분히 생각되는 ―와 日本 語룹 추가한 다면, 그 광대한 지리적 범위는 더욱 인상적이 다. 전몽적으로 안타이 諸語 로 생각되고 있는 · 꿉蓋 R l 한국, i{i 와 日本語물 포합시키면, 이 語族의 지리적 분포는 아시아 대육옹 넘어서 韓 半島뿐 아니라 日本列島까지 포합하게 되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모든 알타이諸語―一이미 死 語 가 되었거나 소 멸하 고 있 는 滿洲語용 제외하면 __ 는 오 늘날도 사용되고 있는 言 語 이다. 따라서 칙집 (::::z.. 나라에 가서 그 칩 ·語를 배운다) 혹은 간접적으로( 직접 연구할 수 있는 학자의 辭典 이나 文法에 의하든가 혹은 그 言語물 사용하는 토 박이의 도움울 얻어서 연구하든가) 과학적으로 연구 할 수 있다. 이 두 번째 간접적 方法온, 예윤 들면 현재 소련 내에서만 사 용되고 있는 대 부분의 둥구스諸語 및 많은 뒤르크 諸語 에 대해서 필요하다 . 그것은 일 반적으로 소련 학자들만이 그 연구 목적을 위해서 접근하 는 것이 허용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일반적으로 그러한 言 語 에 대한 정 보 를 얻기 위해서 소련 학자가 마련한 사전이나 文法에 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현대 뮈르크諸語의 여러 方 담 과 몽골語__물 은 日本語와 한국語까지 포합해서__는 보다 용이하게 직접 연구하고 관찰할 수 있 다. 그러나 言語 간에 있을 수 있는 역사적 관계를 조사 할 때는 , 현재 사 용되고 있는 言語 의 형태뿐만 아니라, 그들 言語 의 엣 형태가 남아 있 ’ 는 문헌기 목올 언제나 참고하려고 할 것이다. 가령 여러 로망스諸語 Romance l anguag es 의 역사적 관계를 연구할 메, 우리는 현대 프랑스 , 현대 이탈리아 語 , 현대 스페인 語 에만 재한하지 않고, 그들 각 言語 의 이론 형태가 기 목되 어 있는 옛 문헌기록뿐만 아니라, 득 히 라틴 語 의 옛 문헌기 목 도 연구한다. 왜냐하면 비 목 ::::z.. 라틴 語 가 문헌기록에 납 아 있는 古典라틴語와 반드시 정확하게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의미로든 모든 로망스 諸語 는 라틴語의 여러 方 言 이 변화한 형태이기 때

문이다. 알타이諸語의 여러 語派 의 경우에는, 대단히 오래된 옛 문헌을- 찾으 려면 실망하게 될 것이다. 가령 古代 中束의 어떤 言語 , 중국語 혹은 수 千年까지 소급되 는 산스크리 트語와 갇온 이 른 印歐諸語 의 어 떤 言 ;E 에 는 대단히 오랜 문현기록이 있 는대, 알타 이 諸語에는 그 칭도로 오래된 문 헌기록이 없다 . 알타이諸語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문선은, 우연히도 가장 西쪽에 있는 뒤르크 語派에는 마교적 적고, 알타 이 i검 을 사용하는 사람 둘 이 최후로 지배하게 된 광대한 유라시아의 가장 束쪽 에 있는 日 本語에 많다 . 뒤르크 衍函 5 에서 보면, 가장 오래된 문현기목은 오르콘 Orkhon 강변 에서 발견된 여러 비문인데 , 이 들 은 前세기에 유럽 학자에 의해서 해독 되었다. 그 미문은 오늘날 학자들 이 古代튀르크語라고 부르고 있는 뒤 르크 諸i 5 중 한 言語 의 엣 형태로 기목된 것이다. 오르 몬 강변의 이 들 기념 비적 비문은 뒤르크諾語 중 어느 한 言 語 의 가장 오래 된 형태를 보 여주고 있기 대문에, 이돌 비문의 言 語룹 古代뒤르크語로 부르고 있다. ’ 이 문헌은 상당한 言 語限的중거를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 다. 服 史 言語穆 의 전문 용어로서 〈古代〉라는 용어는 절대적인 것이 아 니라 상대적인 것이다 . 그것은 기 록된 중거가 있는 어떤 言 語 의 가장오 래된 형대에 대해서 사용된다. 古代인도語(산스크리트語)의 경우, 이 言 語는 3 千年 전에 쓰이던 형대 로 기 록되 고 있다. 한편 古代英語는 12 세 기의 비교적 새로운 것이다. 古代뒤르크語의 이 들 기 목 과 같은 시대의 것은 日本語의 가장 이론 시 기의 문헌기목인데, 이것은 이미 위에서 古代日本語라고 지칭하면서 언 급한 바 있는 나라( 奈良 ) 시대의 言語 이다. 또한 한국語에도 옛 문헌이 있는 데 , 이 들은 확실히 이 시기 혹 은 아마 古代뒤르크語와 古代日本語 보다 수 세기 앞선 것일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 도 한국語의 이들 옛 문 헌기목은 幹 半島의 생활을 목 징짓는 정치 및 사회의 역사적 와중에서 그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역사가 우리에게 납겨준 한국語의 귀중한 몇 몇 옛 문 헌 기 록은 , 분명히 오래된 것이지만, 그것을 기 목한 言語는 불 행히 도 脈史 言語 쌉的 연구에 도움이 될 만하게 충분 히 이해되고 있지 않 다. 古代한국 語 는 약간의 단편을 제의하고는 실질적으로 연구 할 수 없는 데 , 알 타이 諸語 에는 지리적으로 한 흥 말단에 있는 古代뮈르크 語 와 다른

한쪽 말단에 있는 古代日 本語 에만 옛 문헌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 두 言語 도, 그 글자 를 사용한 民族의 오래됨과 또 특 히 원시알타이語 자 체에 관해서 - 우리가 가지고 있는 중거로 미루어 본다면 , 목별히 오래된 것은 아님이 확실하다. 그밖에 대 부분의 알타이 諸 SE 의 最 古문헌 중거 라 할 지 라도, 약간의 단 편적인 기록을 제외한다면, 그다지 먼 과거로 소급되 는 것이 아니다 . 몽 골語 의 옛 문현도 그 대부분이, 西洋 학자 들에게 『元朝秘史』 로 알 려지 고 있는 준역사적이고 준신화적인 문헌보다 새로운 것 이다(이 기묘한 占名 중 〈秘〉라는 낱말은 실제로 〈私的〉 혹은 〈사사로운〉을 의미한다. 이 낱말은 다음과 갇은 사실 을 의미하는 것이다. 죽 이 문헌 은 기록되 기 전부터 구두로 전승되어 왔는데 여기에는 옛 몽골人의 古代신화 적 자료가 포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적대관계에 있던 중국 人 울 포합한 인접민족에게는 비밀로 해두고 싶었던 지매자의 계보와 다 른 민족적 전승을 포함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헌의 言語 는, 여 러 다른 후기 몽골 諸語 의 역 사와 또한 일 반적 으로 알타이 諸· 語 의 역사에 대단히 중요하지만, 그 言語 的 목 칭이 몽골語 의 가장 이론 형태에 가까운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 言語를 中J UJ 몽골i E 라 고 부론 다. 많은 몽구스 諸語 에서도 문헌기목에서 옛 증거를 거의 찾 아볼 수 없 다 . 몽구스諸語률 사용했거나 오 늘날 도 사용하고 있는 사 람들 은 지구상 의 가장 살기 어려운 곳에서 살고 있다 . 그 들 이 살고 있는 불리한 경제 적, 생태적 상황에서 비롯된 그들의 경제적, 사회적 생활의 무서운 환 경 속에서 그들은 文字체계 를 발달 시킬 만한 여유가 거의 없었을 것이 다. 대부분의 경우, 정치적으로 소련에 합병된 후 현대에 와서야, 이~ 소수민족의 言語를 연구하는 소련의 言語學者 에 의해서 文字化되었다. 단 하나의 현저한 예의는 滿 洲語인데, 16 세기 후반 몽골人에게서 차 용한 文字에 의해서 처음으로 씌어지게 된다(몽골人은 또 이 文字 를 다 론 민족에게서 차용하는데, 긴 人間역사에서 言語 그 자체와 갇이 文 字 또한 전혀 독자적으로 발명되는 예는 비교적 드물다). 전문적으로 말 한다면, 가장 이른 문헌의 만주語 를 古代만주 語 혹은 古代몽구스 語 라고 까지 부를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 문헌은 시기적으로 최근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용어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이들 最古 의 滿洲語 문헌보다 약간 이론 시기의 것으로 몽구스 語 의 또 다른 옛 형

태인 女眞語의 문헌자료가 있는데 이것은 해석하기가 어렵다. 滿洲族 은 女眞族을 자기들의 선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言語 상으로는 女傾 語 가 滿洲語보다 약간 오랜 것이지만, 滿洲語와 밀집한 관계에 있는 것이 확실하다. 이들을 제외하면, 알타이語 중에서 전체 뭉구스語派에는 옛 문헌이 전혀 없다. 그러므로 현재 사용되고 있는 言語 중거에 전적으로 의지 할 수 밖에 없다. 歷史 言 語學的 자료 를 수집 하는 方法과, 여 러 言語 간의 역 사적 관계 에 관해서 최종적으로 중요한 발언을 하게 되는 더욱더 믿음직스러운 중 거 를 수집하는 方法은 전적으로 혹은 원칙적으로 엣 문헌의 중거에 의 존한다. 따라서 지금까지 알타이諸語에 관해서 본 바에 의하면, 분명히 이 方法은 알타 이 諸語의 계동관계 연구에는 유효적절하게 적용될 수 없 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묵히 옛 문헌자료가 거의 없는 둥구스諸語 와 한국語의 경우, 엣 문헌기록의 존재 혹은 여러 가지 古代 문헌기록 에 의존하는 어떤 區史言語限的 연구도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들의 연 구는 전혀 진행될 수 없을 것이다. 뒤르크語나 日本語의 경우라 할지라도, 옛 형태를 보여주는 最 古 문 헌들-달리 말하면, 우리가 古代뒤르크語와 古代日本語라고 부르고 있는 그 시기의 言 語룹 입증하는 문헌-은 시기적으로 비교적 새로운 것이다. 古代뒤르크 語 나 古代日本 語 에서 현재에 이르는 기간은, 그 言 語 자체의 기원에서 古代뒤르크語나 古代日本 語 에 이르는 기간에 비한 다면, 역사상 한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 문헌이 오래된 것 이고 또한 우리들의 연구에 귀중한 것입을 잘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여 기에 의해서 이들 言語 의 역사 를 대단히 이른 시기까지 거슬러울라갈 수는없다. 日本 語 나 다른 알타이語의 역사 를 다만 문헌에 의해서만 추구한다면, 그 起源에 관해서 거의 아무것도 해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 히도 그렇지는 않다. 옛 문헌이 중요하고 귀중한 것이지만, 그것은 言 語起源에 관한 역사적 연구에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또 옛 문헌이 보 다 오래된 것이고 그리고 풍부하게 이용될 수있을 경우라도, 그것은각 言語 의 역사를 추구하기 위해서 필요한 만큼 과거로 거슬러울라갇 수 있는__바꾸어 말하면, 日本 語를 포합한 각 言語 의 起源율 연구하는 데 충분한 만큼 멀리 거슬러울라갇 수 있는 方法論的 도구가 될 수 없다. 이러한 연구의 중요한 方法은 다행히, 비교적 옛 문헌이 있는 言語 에

서도, 그러한 문헌 을 조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들의 가장 중 요한 方法온 言語를 서로 比{友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자세히 설명할 수 없으나 상당히 복잡한 절차에 따라서 비교하면, 그들 言語 에 공통적으 로 나타나는 요소 를 곧 알게 된다. 그러한 공동된 요소는 공동祖語 에서 이어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렇게 해서 言語[.상 的 比岐方法에 의해서 그 言語 의 역사에서 아득한 옛 단계-문헌이 있으리라고는 기대되지 않는 먼 옛 단계에 관한 지 식을 얻게 된다. 그러한 比岐를 할 때, 옛 문헌을 이용 할 수 있으면, 그 자료에 항상 〈주의 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다행하게 옛 자료룹 이~ 할 수 있는 경우라도, 그 言語의 역사가 起源 문제을 연구하는 데 있어 서 어떤 중요성을 가질 정도로 먼 과거로 거슬러울라가러면, 관찰할 수 있고 입증되는 살아 있는 諸言語의 比紋에 항상 의거해야 한다. 이 比校方法-일반적으로 比 軟 方法 혹은 때로 比鼓文法이라고 불라 어지는 言語 硏究의 목수한 전문적 데크닉_―에 의해서 우리들은 어떤 人間 言語 라도 그 문헌이 남아 있는 시기보다 훤씬 먼 과거로 거슬러울 라가 言語 의 起源을 추구할 수 있다. 比校方法에 의하면, 中國이 나 ~ 론 극동 지역을 포함한 세계의 여러 지역의 言語 보다 더 오랜 문헌으­ 로 입증되는 古代 中東의 諸言語 의 시기보다 더 먼 과거로 소급할 수 ­ 있다. 比紋方法은 19 세기부터 20 세기 초에 걸쳐 유럽과 인도 그리고 페르 . 샤의 言語 __이론바 印 歐語族 - 를 연구하던 주로 독일 학자에 의해 서 최초로 발견되고 그 뒤 상당히 정확하게 정밀화되었는데, 이 比校方 法의 데크닉율 적용해서 우리는 알타이諸語의 먼 과거의 역사물 상당히 알 수 있게 된다. 또한 이 方 法올 적용해서 알타이諸 i융 에 日本 語 가 포 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믿을 만한 지식을 얻게 된다. 이러한 생각 온 현재 西洋 학자의 定說에 찰 반영되고 있다. 이 方法은 본질적으로 1857 年 불러가 그의 독창적인 논문에서 이용한 것과 갈은 것이다. 볼 러 뒤에 더 많은 것이 알려지고 또 많은 수정이 가해진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比 粒 方法이 현대 日本에서는 거의 사용 되 고 있지 않 다. 比粒方法이 日本의 大 學 에서 연구되고 교수되고 있지만, 거의 항상 의국의 한 새 학설치럽 다루어지고 있으며 또 日本語의 起源 문제에는 맞지 않고 다만 유럽의 言語 나 言語史 의 연구에만 맞는 것으로 다루어 겨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진실과 너무도 먼 것이다. 比 校 方法은 원대

유럽의 言語 -그러나 또 아시아의 言語 인 산스크리트 語 와도 깊은 관• • 계가 있다_一의 역사운 연구하는 言語淨者 에 의해서 수립된 것이지만, 미국 南北 의 인디안의 言語 , 티베트語, 중국語, 샘諸語 등 세계의 모든` . 言語 에도 훌륭 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어떤 言語 이고 또 어떤 言語型 이 든, 그 들 言 語 간에 친근관계가 있다면, 그 方法온 유효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日 本의 학계 가 証史 言 語學 의 이 데 크닉 에 충분히 숙달하지 못하고. 또. . 日本 학자가 이 方法을 모국어에 적용하는 데 소국적인 것은, 日本에 있 는 日本 학자가 日本語 의 起源 문재를 밝히는 데 있어서 커다란 두 가 ~ 지 장애가 되고 있다. 특히 이 점 에 관해서 西洋 학자들은 ~스로를 다 _ 행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도 無力을 자초하는 위에 t 말한 두 가지 장애가 없기 때문이다. 比鼓方 法 혹은 比校文法은 작업가설의 원리를 가설 입증의 데크닉과 一 연결시 킨다 . 이 경우 , 입증은 연구 대상인 자료에 方法 그 자체를 적용­ 한 결과 얻어지는 더욱 설득력 있는 증거로제시되는 것이다. 간단히 말 해서, 이들 자료는 문제의 言語 의 모든 형태 혹은 낱말, 음성, 어미변 화, 구 • 절 • 文에 보이는 어순, 의미 그리고 그밖의 모든 기본적 요소 ­ 를 포함하고 있다. 方法 그 자체는 여러 복잡한 테크닉을 필요로 하자 만, 다 행히 그 기본적 원리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도 또 특히 이해하기 ; 어려운 것도 아니다. 比 毅方法에 관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토대가 되는 두 定理, 죽 7l- 정이다. 이 두 가정은 〈직선은 두 접 사이의 최단거리이다〉와 같은 기 하학의 定理와 대단히 유사하다. 이들 가정은 아직 아무도 그 전리를 〈중명〉하기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옳다고 가정할수밖에 없다. 또~ 시에 그 가정은 완전히 자명하고, 비목 칙집 증명할 수는 없더라도, ::z.. 것이 옳지 않다고 진지하게 논의된 바도 없다. 比 紋 方法에는 기본적인 두 가지 가정이 있다. 죽 (1) 言語 는 변화한 다는 것과 (2) 그 言語 변화__첫 가정에서 가정된 것과 갈은 변화 현 상 __- 는 규칙적이라는 정이다. 歷 史 言語學 의 모든 발견과 결론온 이 두 가정에서 나타난다. 이 어느 가정도 이미 입증된 중거에 의해서 직접 증명될 수 없다. 우 리들의 수명은 言語 가 변화한다는 가정을 데스트하거나 혹온 증명하가 에 충분한 기간이 못 되지만, 시간에 따라서 言語 가 변화하는 사실을 와

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두번째 가정은 〈상식〉으로는 알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두번째 가설 또한, 너무도 복잡해서 여기서는 간단 히 설명할 수 없지만, 음성에 관한 이론적 토대에 입각하고 있다. 이 가 정도 歷史 言 語學에서 기본적인 것이다. 만일 言語 가 규칙적으로 변화하 지 않는다면, 言 語의 옛 단계에 관해서 어떤 역사적 고찰도 불 가능하다. 言 語가 변화하는 것 혹은 두 정 사이의 최단거리가 적선이라 는 것울 증 명할 수 없는 것과 갇이, 言語 가 규칙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중명 할 수 는 없다. 그러나 수많은 言語 의 연구 를 동해서 두번째 가 설 이 옳 으며 또 言 語변화는 실로 규칙적이라는 믿을 만한 결 론을 내 릴 수 있는 중 요한 경험적 증거가 있다. 다만 言語 변화가 돌발적이거나 예 측할 수 없 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예의로서 규칙에서 벗어난 것이다. 歷史 言 語學에서 이 두 가정은, 어느 言 語 를 다른 言 語 와 比 設 하는 이 론적 근거가 되는 것만은 아니다(처음에는 항상 比 紋 되는 두 言語 가 역사적으로 관계가 있다고 가정하고 또 그렇게 가정하는 것이 옳 다고 가 정한다). 그들 가정은 또한 두 言語 의 역사적 관계 혹은 계 몽 적 관계 를 명백하고 정확하게 선명하는 데 필요한 이론적 물 도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言語比設의 方法論에서 이 두 기본적 가정에 의하여, 西洋 학 계가 日本語의 起源에 관해서 현재의 定說에 이돈 것을 선명할 수 있다· 는것이다.

제 3 장 알타이諸語

지난 반 세기에 걸쳐 주로 몇몇 유럽 학자에 의해서 이목된 방대한협 든 연구에 의해서, 알타이祖語룹 말하던 사람들의 가장 이론 시기의 역 사에 대해서 상당히 폭넓게 그 윤곽을 개관할 수 있다. 이 알타이祖語 에 대해서, 후기의 역사적 중거가 남아 있는 다 른 모든 알타이諸語_ 一­ 日本 語 도 포합해서-에는 本만에서 〈후기, 변화형〉이라고 부룹 수 있 는 역사적 관계가 있다. 〈후기, 변화형〉이 라는 표현은 言語 의 상호 계 동적 관계의 역사적 현상으로서 이미 설명한 것을 바꾸어 말한 것에 지 나지 않는다. 지금부터 알타이諸語의 역사에서 가장 이온 단계문 일반적으로 개관 하려고 하는데, 그 근거가되는 중거는 그 성격상 대단히 복잡하다 . 알 타이語뮬 사용하는 사람들의 역사에서 그 가장 이른 단계가 오늘날치럽

이해되기까지에는, 학자들의 많은 노력과 또한 比毅方法뿐만 아니라 ~ 헌이나 考古學的 발견 에서 얻은 방대한 중거가 철저하게 조사되고 분석 되어야 했다. 장차 考古學的 자료와 言語學的 중거에서 새로운 것이 발 견된다면, 학자들의 定說이 여러 면에서 수정되고 보강 될 수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다음에 개관하는 거의 모든 역사적 설명의 근 거가 되는 중거는, 대단히 복잡해서, 그 結論 이 입각하고 있는 중거에 관해서 전문적으로 언급하면서 설명하기는 本안 와 갈 은 책에서는 거의 불 가능하다. 이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대단히 먼 과거의 일이든 비 교적 최근의 일이든, 여러 가지 역사적 경험의 개략적인 설명은, 그 근 广 거가 되는 여러 가지 구체적인 증거의 유형에 관한 적어도 몇 가지 기 본적인 것이 함께 제시되어야만 비로소 한충 설득력을 가지게 되기 때 문이다. 그러한 목수한 참고자료는 물론 여러 전문적인 考古學的, 言 語學 的 연구에서 이용할 수 있다. 다음에 설명하는 것을 따르거나 혹은 입증하려고 하는 사람은 그런 考古學 및 言語學 의 연구를 이용하는 것 이 바람직스럽다. 왜냐하면, 여기에 관해서 다음에 개 략적 으로 선명하는 것에는 포함시킬 수 없는 많은 것이 알려지고 있음 을 차차 알게 될 것 이기 때문이다. 알타이 諸語 및 그 言語를 사용하던 사람들의 가장 이른 역사에 관한 西洋 학계의 定說을 개관하기에 앞서 간단히 말해 두어야 할 또 한 가지 점 이 있다. 앞으로 〈알타이 祖語〉, 〈알타이 祖語룹 말하는 사람 들 〉과 갇 은 표현을 자주 사용하게 되는데, 우리가 여기서 문제삼고 있는 것은 바 로 이 言語 와 이 言語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가장 이론 역사에 관한 것 이다. 그러나 言語 문제, 특 히 言語史 의 문제 를 논할 때 자주 있는 일 이지만, 용어의 개념을 정확히 하기 위해서 참시 이들 용어를 정의해 두 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알타이祖 語 orig ina l Alta i c lan g ua g e 〉에 관해서 쓰거나 말할 때. G悟 lan gu a g e 〉라는 낱말을 사용하곤 하는데, 이것은 現代의 現行語 혹은 옛 역사적 문헌의 言語 에서도 같이 그리고 갈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미 강조한 바 있지만, 그 역사 를 봉해서 발음, 어휘, 文法 동 모든 면 에서 전혀 변화하지 않는 인간의 言語 는 없다. 말하는사람자신이나言 語學者 도 동일한 言語 률 사용하고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같은 것에 대 해서 사람둘은 저 마다 다른 말을 사용하고 또 다르게 표현하며 다르게

발음한다. 또 서로 아무런 지장 없이 사회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 일한 사회집단 속에서 서로 의사소동이 가능하다는 것이 분명하다(동 일한 사회집단 속에서 상호 의사소동이 가능하다는 것은, 〈동일한 言 語〉가 사용되고 있다는 유효한 정의가 된다). 우리들이 〈동일한 言語 〉 혹은 〈단일 言語 〉로 인정하며 정의하려고 하는 言語 에 보이는 다양한 言 語현상에 관한 구 체적 인 예는, 우리가 어떤 言語를 사용하든지 또 어디 에 살고 있든지, 우리들 가까이에 있다. 옛날의 발달된 文化에서나 또 日本에서처럽 다소 엄격한 계충을 이루고 있는 사회에서 사용되고 있는 言語 에서는 특 히 그러한 내부적인 차이가 현저하다 . 왜냐하면, 그러한 환경에서는 言語 의 내부적 차이가 사람들의 사회적, 경재적, 문학적 다 양성과 상관관계가 흔 히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모든 인간의 言語 는, 비록 대단히 느리기는 하지만, 항상 변 화하며 유동상태에 있다. 그러나 (일정한 시기 를 대상으로 하는) 〈共嗣 時的〉인 것과 (시간을 동해서 일어나거나 또는 어느 시기의 중거와 그 다음 시기의 증거와의 比岐에서 바롯되는) 〈通時的〉인 것으로 분류되는 어느 관접에서 보더라도, 言語 는 완전하게 단일하고 한결같은 현상은 아니다. 이것은 現代日本語에서도 그렇고, 古代日本 語 에서도 그러했% 것이 분명하며 또 〈알타이祖語〉라고 불리는 것에서도 그러했을 것이 다. 言語 가 다양하다는 사실――그러나 사회적 협동의 · 도구로서 그 言 語가 의사소동에 지장 없이 사용될 만한 정도의 다양성-은 現代~ 의 경우에는 용이하게 증명될 수 있다. 또 古代日本語와 같이 옛 문헌 이 풍부한 言語 도 옛 시기에 그와 갇은 다양성이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 다. 그러나 알타이語의 가장 이론 시기 정도로 거슬러울라간다면, 言· 語 內部의 그러한 다양성을 직접 증명할 수 없다. 물론 그러한 言語 의 기목이 없다. 그런 기목은 지금까지 없었다. 알타이語族 혹은 다른 어느 語族도 그 가장 이른 단계의 言語 的 중거 는 比紋方法에 의해서만 나타난다. 죽 言語 변화는 규칙적이라는 가정에 입각해서, 변화한 후세의 言 語에 남아 있는 요소가 공몽 起源에서 계승 된 것입울 말해 주는 중거만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또 그 方法에 의 해서 오늘날은 역사적 혹은 문헌적 중거가 칙접 남아 있지 않는 이미 소 멸해 버린 옛 言語 의 많은 목징을 재생시키고 〈再構〉할 수 있게 되는 것 이다. 알타이祖 語 內部의 言語的 으로 다양화된 현상에 관해서는, 그것을 직

집 관찰할 수도 없고 또 옛 문헌에 의할 수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理 論 과 方法 論 에 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祖語 가 다른 人rJ:J1 言語 와 실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가정하고 있기 때문에, 祖語 에도 그러한 다양성이 있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祖語 의 內部에도 그러 한 다 양성이 있었던 것이다. 祖 語 는 그 역사의 어느 시접에서도한 결같지 않 았고. 또 어느 다론 言語 와도 같이, 항상 변화상태 에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목히 중요하다. 알타이 祖 語 의 후기 의 역 사 는 , 뒤 에 분열 하여 별개의 여러 다른 言語 로 변화해 가는 分 裂 과 分 4 t의 역사 이기 메 문이 다. 몽골語와 뒤르크 語 는 오 늘 날도 다르지만, 안 타 이語族 중 이 두 語 派의 역사 를 가능한 한 멀리 거 슬 러울라간 과 거 에 도 또한 서로 달랐 던 것이다. 뒤르크 語 용말하는사 람들 은, 그 답 語 만 을 알 고 서는 , -몽 골 言 語 社會에서 충분한 의사소동이 불 가능 했을 것 이다. 따라 서 만일 커 뮤 니케 이선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어느 쪽 인가가 자기 귈값 }을 다른 갑i E 로 바 꾸어야만 한다. 그러나 比紋方 法 의 가정에 의 해 서나, 또는 이 두 답.i E 의 比紋에서 나타나는 발견에 의해서나, 혹 은 안 타이 語族의 다른 분파에 보 이는 유사한 증거에 의해서나, 言 語을 바꾸 지 않 았음 운 알 고 있 다 . 뒤 르 크語와 몽골 語 의 역사에서 대단히 이론 어느 시기에 이 들 두 겹갑 욥물 사 용하던 사람들의 먼 조상은――現代 日 本語 와 現 代 몽 구 스語 또 아마도 한 국語몰 사용하는 사람들의 먼 조상들과 더 불 어 ―― 한 공 동 된 날語社 會 에서 살고 있었다. 우리가 〈알타이祖 語 〉라고 말하는 것은 이 공 동 담語 社會 몰 말하는 것이다. 이 祖 語 ―一바꾸어 말하면 알타이祖 語 -내부에는 분명히 답 語 的 다 양성이 있었다. 이 알타이祖 語 에서는 갇은 것에 관해서 말 할 때라도, 반 드시 祖 語 에 있는 동일한 낱말을 사용하거나 정확하게 같은 발음울 하 거나 또는 갇은 표현을 하거나 같은 文法형태 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 言 語 의 내부에 이런 差異가 있었으나, 역시 단일 言語 이었다. 다른 모든 人間 言語 와 갇이 알타이祖語에도 내적 다양성이 있었고 또한 항시 변화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내부의 다양성이, 뒤에 서로 다른 言語 가 되어 최종져으로는 개별 言 語(뒤르크語, 몽골語, 여러 뭉구스 諸語 )가 되어 버린 그런 語 派의 성립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 수 없다. 또 이들 후 기 言 語가 성립하게 되는 자세한 역사적 변화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둘 言 語의 역사에서, 어디선가 그리고 어떤 이유에 의해서 든가, 처음에는 낱말, 의미, 발음 등의 내부적으로 다양했던 차이가 점

정 커쳐서 끝으로는 상호 커뮤니케이선에 지장을 가져오기 시작하였다. 이 시접에서 복잡한 단일 言語 내부의 다양성은 별개의 言 語로 변화하게 된 것이다. 알타이祖語社會-바꾸어 말하면 알타이祖語-내부에 모든 言語 사용에 걷쳐 여러 가지 면에서 서로 다른 하위그룹이 듄립 없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또 이 들 하위그룹은 대체로 뒤르크語, 몽골語 등과 갇이 뒤에 분열한 개변 言語철- 사용하는 사람들의 이른 시기의 선조이었 던 것도 확실 하다. 그러나 言語 學的 중거에 의해서 이둘 言語的 차이가 내부적 다양성에 머물러 있던 대단히 이 른 단계가 오랫동안 지속되었 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러 한 이유에서 그리고 지금까지 실명한 개념과 용어의 의미에 따라 서 알타이 祖語룹 고 찰 하기로 한다. 日本語는 알타이祖語가 상당히 변화 한 후기 형 태이지만 역시 알타이祖語와 계통적 관계가 있다. 알타이祖語 의 가장 이른 시기의 역사에 관해서 발견되는 것은 그 어느것이나, 직 접적이고 실 제적인 뜻에서 , 日本 語 의 起源 문재에 대한 구체적인 해답 이 된다. 실로 그러한 역사가 日本語 起源의 역사인 것이다.

原住地와 移動

알타이祖 語 에 관해서와 같이 그 言語를 사용하던 사람들의 原住地얘 관해서도 말할 수 있고 또한 그것을 말해 두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原 住地란, 우리가 추적할 수 있는, 祖語몰 말하던 사람들이 살고 있던 가 장 이른 地理的 강소 룹 의미한다. 물론 그보다 앞서 어느 다른 곳에서 그 장소에 왔운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考 古 學과 比校 言語平 의 연구 를 종 합해서 결정한 바로 :::t.. 위치에서 그둘이 호모 사피엔스에서 진화하지 않 았다면(특히 알타이語의 경우에는 그런 일은 없겠지만), 아마 다른 곳 에서 그곳으로 왔을 것이다. 비록 그보다 앞선 原住地가 있었다고 하더 라도, 우리가 다음에 사용하는 야辻住地〉라는 용어와 그 개념은, 우리가 추적할 수 있는 어느 言語 社會에서 그 言語물 사용하던 사람들의 가장 초기의 장소인 것이다. 가능한 한 먼 과거로 거슬러올라가서 言 語의 起源을 추구한다고 해 도, 그 역사가 감자가시작하는 시점과 또 갑자기 중단하는 시접이 없

음을 알게 된다. 어떤 연구에서나 〈여기서 모든 것이 시작하고 그 이전 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시접에는 도달할 수 없 는 것이다. 言 語의 起源울 추구하는 데 있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더욱 과거로 소급하는 것이다. 가까운 장래에 새로운 발견이나 더 신중한 연구에 의해서 한충 더 멀리 거슬러울라갇 수 있을 것이다. 그 러나 지금은 알타이祖語를 말하던 사람들의 역사를 地理的으로 또는 時 間的으로 가장 멀리 거슬러울라갇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를 설명하기 로 한다. 이것은 또한 오늘날 日本語의 起源을 추구할 수 있는 가장 먼 장소를 설명하는 것도 된다. 알타이 祖語와 그 말을 사용하던 사람들의 역 사는, 기 원전 약 6, 7 千 年경 카스피海 束部의 스템 0 여떄;{) 지대에서 시작된다. 그둘이 어느 정 도 오래 이곳에 살고 있었는지 혹은 어디서 그곳으로 왔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카스피海의 束北으로 뻗고, 西쪽으로는 볼가 Vol g a 江 유 역, 우랄山脈 南部에서 束쪽으로 天山山脈의 方向으로 뻗은 이 지역에 오랜 기간을 살고 있는 동안에, 그들이 다른 계몽의 言 語를 사용하던 사 람들과 접촉을 가지게 된 것은 상당히 확실한 것 같다. 알타이語를 사용하던 사람들의 이 言 語접촉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은, 우랄語族一一그 변화한 후기의 言 語에는 핀랜드 語 와 헝가리 語 등이 있다 __을 말하던 사람들과의 사이에 때때로 있었던 밀집한 관계이었 다. 이들과 접촉하는 사이에 알타이祖 語 를 말하던 사람들은 우랄 語 族을 말하던 사람으로부터 낱말과 文法요소들을 모방 혹은 借用했다. 한편 우 랄語族의 화자들도 알타이語의 화자들로부터 借用했을 것이다. 이론 시 기의 이러한 상호 借用 관계를 보여주는 言 語상의 중거와 言語 간의 계 통관계윤 보여주는 言 語 증거물 구별하기는 항상 어렵다. 어떤 학자는 우랄語와 알타이語가 동계 言 語이고 두 言語 간의 유사성은 위에서 설명 한 바와 같은 초기의 言 語접촉이나 ::::z. 결과 일어난 상호 借用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불러가 1857 年에 쓴 것안데. ::::z. 는 日本語물 다만 알타이語族만이 아니라 더 큰(더 오래되었다는 뜻도 있다) 言 語社會인 우랄-알타이語族의 후기의 발달한 言 語로 생각하고 日本語의 계몽에 관한 선구적인 증명을 시도했다. 현재의 연구 단계에서 불러의 생각이 옳지 않다고못박아 버리기는 어 려우나, 이용할 수 있는 자료를 충분히 해석해서 우랄語族과 알타이語 族울 분리하는 것이 현재의 定說이다. 다시 말하면, 우랄語와 알타이語

는 동계 관계라기보다는 초기의 言 語접촉 혹은 상호 借用에서 비못된 言語관계의 예로 생각되는 것이다. 그리고 日本語의 起源울 연구할 때, 알타이 祖語 및 카스피海 束部의 스텝 지대에 있었던 :::Z.. 原住地에 관해 저 논의하게 된다. 대략 서기 2 千 年 전에 알타이祖語의 화자들은, 西쪽에서는 토이기로 부터 束쪽으로는 太平洋 연 안에 이 르는 아시 아大 陸 에 알타이 諸語률 분 포시킨 일련의 오랜 移動 중에서 최초의 移動을 시작했다. 결국 그들의 移動)은 日本列島에까지 이른 것이다. 알타이民族이 더 뒤에 日本列島로 이동하면서 日本語를 日本까지 가지고 왔는데, 그들의 대단히 오랜 移動 의 역사에서 본다면 한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알타이祖 語 의 화자들은 최초 한 무 리 를 지어 또 사회적으로 기능을 하는 한 言 語社會 로서 카스 피 海 束部의 스텝 지대에서 재 2 의 原住地로 移動한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서 그들은 단일 言 語社會로서 오랫동안 살기 시작했다. 아마 다시 많은 方 言 으로 分化했을 것인데, 적어도 처음에는 아직도 한 言語 라~ 부 를 수 있는 것이었다. 뒤르크語派, 몽골語派, 퉁구스語派 동 중요한 語派가 형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알타이祖語의 화자들이 뒤에 분열한 것 은, 제 2 의 原住地였고 또 제 2 의 사회생활의 중심지에서 몇 차례에 결 쳐 移動하는 동안이었다. 따라서 이 제 2 의 原住地에 온 후에, 별개의 알타이 諸語가 따로따로 나타난 것이 다. 알타이民族이 최초의 原住地에서 移動한 이유는 상당히 확실하다 . 기 원전 2 千年경, 印歐人이 급격하게 移動하여 확산하는 큰 변화에 의해서 全유라시아의 주민의 분포가 크게 달라졌다. 印歐人은, 言語學者 가 印 歐語族이 라고 부르는 대 단히 이 론 시 기 의 또 하나의 言語윤 사용·하는 화· 자들이었다. 印歐祖 語 의 후기의 변화한 言語 에는 독일語, 英語, 프랑 스語 및 로망스 諸語 등의 현대 유럽에서 사용되고 있는 거의 모든 言語 가 포함된다. 또 페르시아語(이란의 言語 )와 산스크리트語라 일컫는 印 度文明의 古代語(그 한 형태가 佛敎의 원래 言語 이다)에서 힌디語 Hindi 나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에서 사용되고 있는 다른 많은 現代語에 이르 기까지 계속되고 있는 印度亞大陸의 거의 모든 言語 도 포합된다. • 거의 이 시기에, 印歐人은 세계의 人口地圖몰 장기간에 걸쳐 변화시 켜 버린 移動과 征服의 길을 떠난 것이다. 그리하여 당시 그 주변에 있 던 民族도 따라서 移動하게 된다. 알타이祖語社會와 갇온 주변에 있던 民族온 대개 印歐語와 다른 계동의 言語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둘이 印

歐人의 급격한 征服에서 피하기 위하여 移動하게 된 것은 당연하다. 印歐人의 진 출 에 따른 반응은 그 시기와 지역에 따라서 다르다. 알~ 이祖 語 의 화자들의 반응은, 카스피 海 束部의 스텝 지대에 살고 있던 제 l 의 原住地룝- 바꾸는 것이었다. :::z. 견 과, 그 들은 中央아시아에 있는 알 타이山 脈 最南端 의 방향으로 거 주 지 물- 바꾸고 여기 를 제 2 의 原住地로 삼았다. 오 늘날 학자들에게 알려지고 있는 이 祖語 와 그가장초기의 화 자 물 지칭하는 알타이라는 용어는, 이미 말한 바와 갇 이, 이 지역 목히 알타이山脈의 명칭에서 ’님캡 욥먀者가 借用한 것이다. 우리 들 은 다시 알타이祖語의 화 자 들 이 궁극적으로 中央아시 아 의 原住 地에서 분산한 사실을, 당시의 다 른 民族의 移動 이라는 外的 요인과 어 느 정도 자신있게 연관시 킬 수 있다. 역사상 훈族 (Huns, ~奴)으로 알 려지고 있는 활동적 인 이 중요한 民族은 , 기 원전 3 세기경부터 유라 시 아의 지도 운 혼란 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훈族의 여러 가지 활동과 여 기 선행한 人口변동에 의해서 파급적으로 알타이祖 3 E 의 화자들은 제 2 의 原住地에서 일련의 移動울 하기 시작한 것이다. 훈族은 유라시아의 역 사에 큰 영 향을 미천 古代民族 중에서 가장 중요한 民族 인데 그 言 語의 起源에 관해서는 거의 모르고 있다. 그러나 적 어도 言語學的 으로 現代 헝가리 語 와 관계가 없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그 뒤 수 세기 동안 훈族 이라는 명칭은 유럽에서 포악한 호전적인 유목민과 同義語가 되었다. 이 명칭은, 헝가리人이 유 럽의 역사 무대에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 헝가리 人의 적이 붙 인 것이다. 물론 敵意몰 표시하는 것은 아니다). 알타이祖語의 화자둘이 주로 印歐人의 침입 융 피하기 위해서 최초의 原住地몰 떠난 것처럽 다만 훈族에게 서 피하기 위하여 재 2 의 原住地룹 떠 난 것은 아니 다. 당시 의 유라시 아의 역 사는 中國의 漢 王 朝 의 군사 활 동에 의해서 한층 복잡해졌다. 이 王 朝 가 中國의 변경에서 훈族 의 군대 몰 격되하고 국동에서 그 대부분을 유럽 방향으로 쫓 았을 때, 훈族의 移 動 과 관계가 있는 긴 전무 역사는 최고조에 달하게 된다. 이때 다시 계 속해서 移動이 일어났다. 훈族의 힘이 소멸한 뒤, 中國의 전두 활 동과 훈族이 西쪽으로 도망쳐서 주민이 없어진 곳으로, 알타이民族은 부분적 이긴 하지만 다시 移動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言語的 다양성 알타이 民族의 두번째 大 移動 은 첫 번째 移動과는 그 자극이 나 동기 7} 달랐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言 語的 차이도 있었다. 우리들은 물론 言 語的 차이에 보다 관심을 갖는다. 알타 이 祖語의 화자들이 최초의 原~ 地픕 떠났옹 때 , 분명히 그들은 모두 거의 동시에 그리고 동일된 단일 言語 社會로서 移動했 다 . 그둘 이 中央 아시 아의 재 2 原住地에 이 르러 거 주하기 시작 했을 때 , 그 내부적 言 語상황은 , 카스피海 束部 의 스텝 지 대이었던 첫 原 住地에 있을 때에 비 해서 처음 에는 그다지 다 르 지 않았 다. 어느 경우에도 言 語 의 내부적 차이가 있었던 것은 확실하지만, 사 최적 커뮤니케이션 이 방해되는 정도는 아니었다-죽 그 言語 사회가· 사 회집단으로서 기능을 하는 데 장애가 되지는 않았다. 알타이祖 語 의 화 ­ 자 들은 첫 原 住地에 서 는 言 語的 으로 통 일된 협력적인 사 회 집단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집단을 이 우 고 다음 原住地에 移動하여 그 뒤 참시 그러 한 상태가 계속되었 다. 그러나 그 뒤 머지않아 무언가 중요한 일이 일 어났다. 알타이祖語社會의 言 語的 성격과 사 회 적 성격을 완전히 바꾸어 버린 일련의 言 語변화 가 일어난 것이다. 최초 그러한 변화가 언재 일어났으. 며 또는 왜 그런 변화가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변화가 일어 난 것만은 확실하 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알타이祖語社會가 分裂 하고 또 뒤에 알타이語族의 중요 語派 가 핀 가장 초기의 형태로 分裂하게 된 결 과에 이 른 것이다. 그 뒤 이 둡 分裂한 업 .語들은역사적으로 입증되는가 강 이 론 문헌의 알타이諸語로 발전하고 다시 오늘날 現行語로 알려지고_ 있는 이 語族의 여러 言語 가 되었다. 알타이民族과 그 言語 의 역사에서 이 시접에서 일어 났던 일은 다음과 갇다. 이미 강조한 바와 갇이 알타아祖 語 가 모든 면에서 완전히 봉일된 때는 없었다. 인간의 실재 言語 는 모두 그렇다. 祖語사회가 아직 첫 原 住地에 살고 있던 기간과 새로 두번째 原住地에 거주하기 시작했을 사 기에는 화자들이 저마다 약간 다르게 말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집단 내 의 커뮤니케이선이 방해되는 정도는 아니었다. 바꾸어 말하면, 그러~ 차이는 알타이祖語의 화자둘이 구성하고 있던 원래의 言語 的 봉일을 까

뜨릴 수 있는 정도로 큰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는 또한 그둘이 카스피海 束部의 스텝 지대에서 새로운 中 央아시아의 땅으로 큰 移動을 했을 때의 그들의 言語 상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단 新 天地에 이르렀을 때, 그때까지는 단일 言語 의 내부적 차이였던 차이가 접접 빈 번하게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시접에서 알타이 祖語 사 회를 형 성해 오던 집단 전체의 커뮤니케이선이, 처음에는 그다지 심하지 않았으나, 그 뒤로는 접점 저해받게 되고 끝으로는 완전히 불가능 하게 될 정도로 현 저한 분화의 결과 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것은 알타이 祖語 가 최종적으로 알타이 諸語 로 변화 하기에 이 론 결 정 적인 과정이었다 . 만일 우리 들 이 日 本語 가 탄생한 날과 장소 를 가 리키 는 것을 탐색한다면 , ::J... 장소는 中央아시아의 알타이 民族 의 原 住地이고 또 역사적인 시기는 알타이 言語 사회 내의 내부적 차이가 단순한 내부적 인 차이가 아니라 , 言語 내의 현저한 차이의 뭉치 를 형 성하기 시작 했 던 예라고 말할 수 있다. 결 국 ::J... 차이의 뭉치는 알타이 祖語 사 회 의 사 회 적 협력, 죽 커뮤니케이션이 불 가능하게 될 정도로 강력한 것이 되었다 . 그 리하여 日本 語 의 起源올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러한 中央아시아에 있어 서의 사건들을 들 수 있다. 中 央아시아에 있어서의 이러한 사건 들 은 日 本語 뿐만 아니라 모든 알타이 諸語 에도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가능 한 변화과정을 좀더 자세히 조사 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시 정까지는, 모든 화자가 같은 言語를 사용하고 있지만, 낱말이나 그 의 미 또는 발음에 있어서, 그리고 句나 文을 그보다 더 긴 것으로 구성하 기 위해서 낱말을 서로 연결시키는 方 法 에 있어서 차이가 있었다. 그러 나 그 차이는, 말하고 듣는 사람에게는 분명했지만 그 렇 다고 의사소동 에 방해가 되는 정도로 큰 것은 아니었다. 비록 갈은 표 현 혹은 정확하 게 갈은 낱말 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이 무엇에 관해서 말을하 고 있으며 또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를 누구나 알 수 있었다. 후기의 言語 的 중거에 입각해서 그리고 比 毅 方法울 적용하여 알타이 祖語 사회 내부에 존재하던 초기의 言語 的 차이 문 어느 정도 발견할 수 있댜 祖語 사회가 첫 原 住地에 있던 때나그후 카스피 海 束 部의 스텝 지 대에서 최초의 큰 移 動 울 한 시기 또는 그 뒤 제 2 의 原 住地에 거주하 기 시작한 시기에도 그 言語 的 차이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數詞 “1 에 관해서 보면, 祖 語 사회 내에 적어도 세 개의 다른 낱말 이 있었다. 사람에 따라서 *b' ir , *n ik en , *iim i in 이 라는 낱말을 사용하고 있

었다. 이 세 낱말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 발음도 달랐고 語源도 다 른 것이었다. 적어도 현단계에서는 알타이祖 語 내에서 敷 “I 에 대한 세 개의 다른 敷詞가 어떻게 해서 사용되기에 이르렀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사회에서 여러 화자들에 의해서 세 낱말이 사용된 것은 알고 있다. 몇몇 다른 敷詞 에 관해서도 같다 . 가령 4 는 화자에 따라서 각 각 *tllr t , *d llrben, *d ug in 이었다. 이것은 戱詞 “I 의 경우와는 약간 다 르다. 4 의 경 우에 는 화자들이 각기 다른 낱말을 사용했지 만, 그 낱말 둘은 전혀 다른 것이 아니라 음성적으로 유사한 것이었다(예를 들면, *t llr t의 어두 *t-는 다른 두 낱말의 어두 *d- 와 다소 유사하다. 또 처 음 두 낱말에는 첫 음철에 갇은 母音 - * ll- 가 있다. 이 母音온 세번째 날 말의 첫 음절에 있는 母音 -*ii-와 대단히 유사하게 발음되었을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4 를 의미하는 알타이 祖語 의 세 낱말은, “1 의 경우처 럼 서로 전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어느 경우에도 이 들 낱말 그리고 유사한 낱말의 차이는 言語 사회의 커 뮤니케이션에 방해가 되지 않았다. 발음상의 차이가 비교적 작은 4 의 경우(그런 예는 많 았을 것이다)나 화자에 따라서 전혀 다른 낱말을 사 용하는 “I 의 경우(이러한 예는 비교적 적었을 것이다)나 커뮤니케이선 에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이 다양한 言語 중거가 보여주는 역사적 단계에서 두 가지 다른 현상 이 言語 내부에서 작용했다고 가정해야 한다. 그 중 첫 현상, 죽 言語 的 다양성에 관해서는 이미 강조한 바 있다. 즉 각 화자가갇온것을저 마다 다른 낱말로 표현하거 나 혹은 분명 히 같은 낱말을 다르게 발음하 · 여 표현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현상도 여러 알타이諸語가 알타이祖語 에서 어 떻게 분화했는가 를 섣명하는 데 있어서 중요하다. 두번째 현상 은, 화자의 기분이나 감정 혹은 이미 알기 어렵게 된 다른 요인에 의해 서, 한 화자가 갇온 것을 몇 가지 다른 낱말로 표현하거나혹은전혀 갇 거나 또는 거의 갈은 낱말을 몇 가지 다른 발음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죽 어 느 화자는 I 올 *bi r 이 라 하고 또 다른 화자는 *n ik e n 이 라고 하며 또 제 3 의 화자는 * ii. mun 이라고 말했을 뿐만 아니라, 한 화자도 . 어느 경우에는 * bi r 이라 하고 또 어느 경우에는 *nik e n 혹은 * ii m ii n 이 라고 했다 . 이런 경우, 그들은 우리가 英語의 one 을 번역할 때 생각하 는 낱말과 같은 의미영역 내에서 이들 낱말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비록 우리들이 이들 모든 낱말을 단일용어로 본다고 하더라도,

화자가 일정한 사회상황에 따라서 약간 의미가 다른 혹은 다른 社會言 語的 함 축을 가진 각 낱말 을 선택해서 사용했 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을 것이다. 이 들· 각 낱말이 one 하나로 번역된다고 해 서 그 들 의 의미가 완 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底史 言語學 의 연구에서 는 어떤 言語 에서이 든 지 어느 낱말 의 의미 물 英 語 나 독일 語 혹은 다 른 言語로 간단 히 번역되 는 의 미 와 항 상 주 의해 서 구 별해 야 할 필 요가 있다. 우리 듄 이 낱말을 英語 나 독일諸로 번 역 하는 것은 이 낱 말을 논 의 할 때 나 혹 은 문 재 의 言i E 에 있어 서의 그 낱말의 역 할을 논의 할 때 편리하기 때 문인 것이다. 그 言語 에 있어 시의 낱말의 의 미와 英 語 나 독일 語 로 번역된 것의 의미는 결 코 갇온 것이 아니 다 . 어느 言語형 태라도 그 의미가 방대하고 미묘하기 때문에 , 그 것을 유 효하게 기술하거나 설명 할 수 있는 데크닉 과 方 法 이 아 직 없 다. 의 미는 화자가 어형, 날말 혹은 다론 言語후 的 단위 융 사용 할 때 의 중요한 문 맥 전체의 총 화인 것이다. 言語 의 초기 단계의 의미 ·울 파 악 하 기 는 목히 곤란하다. 알타이 祖語 의 *ni k e n, *ii mi in, * b 'i r 가 “I 을 의미 한다고 해 도 이들 어형이 알타이祖 語 에서 가지고 있던 의미가 꼭 그 렇 다고 는 할 수 없다. 이 경우 英語로 번역되는 것 을 붙 였 웅 따 름 이다. 초 기 의 言語 형 태에 이렇게 간편하고__또한 대단 히 필 요 한 ―一식 별 의 표지를 붙 이는 것은 일반적으로比 紋方 法 에 의한다. 比 ili2 方 法 에 의 해 서, 그 들 중 거 를 , 초기의 형태 를 재구하기 위한 자료의 일부로서 얻게 되는데, 실 재 의미 를 재구 할 수 있는 경우는 드 물 다. 납語 의 역사 몰 연구한 경 험 이 없는 사람은 번역된 식별표지 물 그 들 이 연구하고 있는 言語형 태의 의미로 찰 못 보는 경우가 많 다. 이 럴 몌, 연구하려는 많 은 문제 들 이 흔 히 그 릇 된 그리고 지나치게 단순 화 된 견론 에 이르개 된다. 아 뭏 든 이 제 2 의 변 종 의 알타이 語 화 자 __ 죽 경우에 따라서 이 어 형이나 저 어 형 올 선 택 하여 사용하는 화 자__가있었기 때문에, 言語的 몽일체가 봉일체로서 기능 운 할 수 있었다. 이 들 화자들은, *b' ir , *ni k e 11, *ii miin 중 어 느 하나만 을 사용하는 제 한된 화자들 사이 에 있던 커 뮤니 케이선의 갭울 메우고 모 든 화자들의 커뮤니케이선을 효과적으로 기능 울 할 수있게 했다. 그러면 어떤 륙 별한 자국이 있어서· 祖語 사회 를 그렇게 조각조각으로 분리해 버렸는가? 왜 祖語 사희가 뒤에 작은 그룹으로 分裂했는가? 만 일 역사적 言語 사회의 구조 속에서 그러한 변화의 이유를 정확하게 찾

올 수 있다면, 우리들은 인간 言語 의 성격 및 그 역사적 본질 속에 있는 가장 기본적인 몇 가지 문재를 이해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 게도, 盛史言語學 의 현상태에 서는 그러한 변화와 분열의 근저에 있다고 생각되는 구체적인 원인이 과학적이며 엄밀하게 거의 확인되지 않고 있 다. 인간 言語 의 역사에서 확실히 어떤 역할을 했던 다른 많은요소의 경 우와 갇이, 그 원인과 자국에 관해서 여기서는 또한 추측만이 가능할 따 름이다. 먼저 分 裂 의 첫 단계 룹 선명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는 원인을 제안할 수 있다. 또 실재로 일어난 번화를 촉 진한 듯한 중요한 . 줍語 기 구도 흔히 확 인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학문의 연구에서와 갇이 우리 들이 하고 있는 것은 실제로 신중하게 정돈된 일련의 계획적인 추측을 모으고 있다 는 것을 기억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들은 항상 가장그 럴듯하게 생각되는 범위 내에서 추축하고 있다. 둘 이상의 다른 원인 이 재안될 수 있는 경우에는 , 다만 가능성으로만 생각되는 것보다 蓋然 선이 대단히 높은 것을 댁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러한 方 法 論的 수단이 있다고 할 지라도,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추축 一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지식에 입각하고 또한 현실적인 것으로 하려 는 추 축 ――에 지 나지 않는다. 이들 문재 물 연구하고 있는 대부분의 현대 연구가들은, 祖語사회가~ 열하는 주된 요인을 사회경제의 영역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죽 혼 히 新天地로의 진출로 일어난 생태학적 지매와 適應 이라는 새로운 다른 문제 윤 그 사회의 화자들이 당면하게 된 문제들과 어떻게든가 관련이 있 다고 보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서는 많은 보충실명이 필요하 다. 어떤 言語 사회라도 일상의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목히생태학적 生 存 현실에 대처하는 새로운 다른 方法을 발달시키지 않을 수 없었기 때 문에, 집단이 집단으로서 社會 言語學 的으로 기능해 가기 위해서는 필연 적으로 言語 的으로 새롭고 다르게 대처해 나가는것을강구해야만했다. 이 렇게 불 때, 言語 사회가 分裂하는 주된 원인이 생태학적 변화에서 오는 사회경제적 필요성에 있다고 보는 것은 대단히 그럴듯하게 생각 될는지 모론다. 그러나 가장 이른 시기__유감스럽게도 이 문제 전체 뮬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_一에 관해서는, 그 변화의 증거 가, 言語 的 증거 자체가 보여주는 것을 제의한다면, 생태학적인 것이든 혹은 사희경제적인 것이돈 거의 없다는 것을 엽두에 두어야 한다. 따라 서 초기의 言語 사회가 왜 分裂했는가에 대해서 너무 많온 상세한 문제

뮬 제기한다면, 우리들의 분석은 곧 순환 론 에 빠 지고 말 것이다. 문재 윤 제기하는 것이 찰못된 것은 아니지만, 다만 너무도명 확한해답을 얻 으려 할 몌 문재가 생기는 것이다. 歷史言語學 의 체계는, 그러한 변화의 근저에 있는 최초의 혹은 중요 한 자극에 관해서 우리가 전개할 수 있는 어떤 설명보다도 명확하다. 新 天地로의 진 출 에 의해서 자주 일어나 는 사 회경제적 변화나 생태 학적 조 건의 차이에 의 해 서 祖語 사회는 곧 새로운 그리고 대단 히 다 른 현 상에 당면하게 된다 . 이 현상은 재 2 의 화자 그 룹 이 사 실상 소 멸 하고 그들이 言語 사회에서 그 들 의 역할을 잃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한 변화 과정에서 言語 사회는 그때까지 크게 의 존하 고 있던 社會 言語穆 的 수단을 잃게 된 것이다. 제 2 그 룹 의 화자들은 모든 言語 형 태 몰 자유로이 구사 할 수 있었는데, 결국 사회경제적 자 극과 社會 言 語的 자극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 제 2 그 룹 의 화 자가 소멸하고 여기 따 라서 알타이 祖語 사회가 후 기의 분리된 개별 言語 로 分裂하는 것을 촉 진 시켰던 것이다. 제 2 의 原住地로 移動한 뒤 어느 시접에서, 그 때까지 몇 가지 어 형 울 서 로 바꾸어 사용하고 (가령 , *bi r 를 *,z ik e n, *ii mi 'in 으로) , 또 발음 이 다론 것 (가령 , *tor t 를 *do rbe11, *d il gin 으 로) 을 서 로 바꾸어 사용하 던 화자들은 그들의 言語행 동을 크게 바꾸었다. 그 들 은 한 어형만 을 사 용하게 되고, 말할 몌 다른 어형이나 다른 발음을 같 은 것으로 받아들 이지 않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그 들 은 “1 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bi r , *n il le n, *ii mi in 중 어 느 하나만을 사용하게 된 것 이 다. 이 과정은 일종의 言語 分 極 化 po lariz a ti on 혹은 어 휘分區化라 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이 진척됨에 따라서, 전에는 같은 화자가 많 온 어형을 비교적 자유로이 서로 바꾸어 쓰다가 ::z.. 용법을 업밀하게 구 분하게 된 것이다. 자유로이 바꾸어 쓰지 않게 되고 그때까지 다른 어형 과 다른 발음을 자유로이 바꾸어 사용하고 있던 화자들은 言語 的 分 桓 化가 진행됩에 따라서 역사적으로 발 전하여 여기서 알타이 語 의 下位 語 族(뒤 르크 語 , 몽골 語 , 뭉구스語 등) 이 발달하고 그 뒤 에 역 사적 으로 확 인되는 諸言語 (古代뒤르크 語 , 現代뒤르크語, 中期몽골語, 古代日本語 등)가 발전하게 된다. 이때부터 .. 1 에 대해서 *bi r , *nik en , * ii m ii n 을 자유로이 바꾸어 쓰 고 또 4 에 대해서 *to r t, *dorben, *d ug in 어느 하나 를 자유로이 발음

하는 화자는 없어졌다――여기서도 l 과 4 의 예를 계속해서 들었는 E 데 그것은 수천 수백의 다른 낱말을 대표하는 것이다. 화자들은 더 업 격 하게 分極化된 그룹으로 바꾸어 지 고 각각 *bt r , *ni k e 11, *ii mi in 중 어 느 하나만을 사용하개 되었다. 그러한 그룹은 그들의 言語 사용에서 더 욱 엄밀한 分極化가 일어났기 때문에, 알타이民 1m 의 생활을 -특 징짓던 社會의 자유로운 言 語的 커뮤니케이선은 종말에 가까와졌다. 이 시기부 터는 알타이祖 語 사회 혹은 알타이祖語에 관해서 말할 수 없개 된다. 여 기서부터는 주된 알타이 語派 혹은 여기서 발전한 여러 개별어에 관해서 말해야 한다. “1 에 관해서 b t r 만을 사용하도 록 言語 용법이 分極化한 화자들은 이론 바 뒤르크語族의 가장 이론 대표자들이고 그 言 語를 言語學 者둘은 자주 原始뒤르크語라고 부른다. “1 에 대해서 전적으로 *n ik en 만을 사용하게 된 화자들은 몽골語派 혹은 原始몽골語로 생각되고 있다. 또한 *a ,11l.in 을 사용하던 사람 들은 알타이語의 둥구스語派 혹은 原始퉁구스語의 가 ­ 강 이론 대표자들이다. 이 原始 p ro to-라는 접 두사를 포함한 言語學 的 표현 에 있 어 서 그 술어 의 배후에는 이 렇게 확인된 형태에 관해서 두 가지 다른 면융 강조하는 의도가 있다. 죽 이들 言語 형태는 정의상 대단히 먼 역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인식 그리고 여기 못지않게 중요한 사실로서 이들 言 語형태 나 그것을 사용하는 화자의 그 룹 에 관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것은오로­ 지 比校方法의 엄밀한 적용에 의한다는 것이다. 原始뒤르크語, 原始몽 골語 혹은 原始알타이語라는 술어 중에서 原始라는 접두사물 사용할 때, 그것은 그들 言 語가 原始的이고 불충분하며 불완전하게 발달했다는 것 윤 의미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이 이른바 原始言語는, 역사상 어느 시점에서 어느 言語 든지 항상 ::L 러했던 것처럽, 발달되고 복잡한 것이었다. 原始뮈르크語 혹은 原始알 다이語와 같은 言語 실체에 관해서 불완전하고 또 어느 의미로나 原始的 이라는 것은 거기에 관한 우리들의 지식만이다. 이들 言語 에 관해서 알 수 있는 목수한 상황, 일련의 言語 자료와 그 체계로서 이들 言 語몰 다무 는 것은 단편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여되고 불완전한 것은 우리둘· 의 지식문이지 言語 그 자체는 완전하고 言語 체계로서 충분히 기능을 하 고 있었다는 것을 항상 유념해야 한다. 比紋方法율 적용하더라도 인간 言語의 발달에 있어서의 原始的 단계 혹은 형성 단계까지는 소급할 ~

없다 (1 세기 전에는 때때로 가능하다고 잘못 생각한 적도 있다). 지금까지 이 言語的 分極化의 업격한 성격을 강조했는데, 그것은 그 러한 현상 면을 이해하는 것이 알타이祖語에서 다른 語派로 分裂하고또 뒤에 여러 言語 로 발전하기에 이른 여러 종류의 변화를- · 실명하는 데 필 요하기 대문이다. 그러나 엄격한 分梧化라 할 지라도, 이들 엣 語派물- 서 로 완전무결하게 갈라놓는 뭉샐룹 없는 한계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 는 것은 아니다. 分藍化가 상당히 진행된 후 에도 또 집단 내의 커뮤니 케이선이 상당히 방해를 받개 된 후에도, 초기의 비교적 자유로 왔던 言 · 語 상황의 흔적을 아직도 각 語派 에서 어느 징도 분 수 있 을 것이다. 이 것은 알타이祖語의 “I 에 해당하는 日本 語물 보면 장 선명된 수 있을 · 것이다. 위에서 든 I 을 나타내는 세 낱말 중에서, 첫번째 것과 세번째 것이 (물론 후기의 변화한 어형으로서) 日本語에 남아 있다. 알타이祖J E 의 * b i r 가 많은 변화(그 변화는 산발적인 것도, 여기에 한한 것도 아니고, 알타이祖語와 日本 語 사이에 보이는 다른 규칙적인 변화型과 관계가 있 을 것이다)물 거쳐서 “I 을의미하는 日本語의 보몽 낱말 /1 ito ls tt의 /1i ta- 라는 요소가 되 었다. 그리 고 dm i in 은 주된 , 주요한 , 중요한을 의 미 좌는 日本語 01110 가 되었다. * ii 1111,·11 은 그 어형과 의미가 시간과 더불어 변화한 예로 들 수 있다. *ii mi in 이 라는 형 태는 01110 로 변화했을 뿐만 아니라, 그 의미도 또한 변화했다. 물론 이돌 어형의 의미가 그것을 다른 言語 로 번역한 의미와 같은 것 이 아님은 이미 강조한 바 있다. 그럼에도 번역 할 때 꼭 맞지는 않지만 적당히 변경하면, 우리가 추적할 수 있는 의미변화의 주된 方向을 찾 윤 수 있다. 이 목수한 경 우, 처음 하나라는 번역 과 두번째 주된, 주 :.a.한, 중요한이라는 번역의 차이를 몽해서 의미변화 를 지적 할 수 있 다. 의미 문 직접 다 물 수 있는 효과적인 方法이 없지만, 이 둔 번역은, 광범위하고 포괄적이며 파악하기 어려운 의미내용을 편리하게 지시해 주는 것으로서 이용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의미내용을 식별할 수 없고 기술하지도 표현하지도 못한다. 낱말의 역사적 의미변화는, 음성이나 어형 자체의 변화와 갇이 言語 변화의 모든 현상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면이다. 지금의 경우는 “1 의 의미에서 주된, 주요한, 중요한의 의미로 변화한 것으로 상칭되는 의 이변화인 것이다. 그러나 이둘 역어는 간략하게 번역한 것에 지나지 않

으며, 원래 言語형태 의 실제적이며 기본적인 의미는 결코 아니라는 점 올 항상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이 단순하게 번역한 것도 우리가 다루고 있는 言語 史의 시기 에 일어난 의미변화에 관해서 어느 정도 가르쳐 주는 것이 있다. 적어 도 이 겅우, 대부분의 脈史 言語[JJ 학도는 “I 에서 주된, 주요한, 중요 한으로의 의미변화가 그것을 이 해하고 설명하기에 그다지 어려운 변 화는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 결국 I 은 어떤 계산 체계에서도 주된, 주요한 그리고 중요한 敷이다. 이와 같은 의미변화물 보여주는 낱말의 유사한 예 를 많은 言語 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言語 에 있어서의 의미변화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계동관계가 없는 言語 에서 갇온 의마변화 물- 보여주는 유사한 예가 과연 어느 정도 참고될 만 한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言語球 者간에 전반적으로 일치된 견해 가 전혀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러한 유사성온, 역사상 어형의 의미에 일어났 을 여러 가지 것을 분류 정리하려고 작업에 착수할 때 크게 참고 가 될 것이다. 유념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의미변화를 아무리 상 세하게 설명하더라도 그들 변화는 발음의 변화-_-그것은 연구하기도분 류하기도 더 쉽다-~와 같이 장기간에 걸쳐, 대부분의 경우 敷千年에 걸쳐서 일어난 것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이 목 수한 경우에는 日本 語 가, 알타이諸語의 세 語派 중 두 語派, 죽 뒤르크語派와 몽구스語派까지 소급되는 알타이 語 의 유산을 보여주는'중 거-뒤르크 語 ( * b i r 와 hit ots t t 1) 및 몽구스語(*ii m ii n 과 omo)- 를 보존하고 있다. 그러나 祖語社會 의 가장 이른 단계에서 역시 널리 사 용되던 “I 을 표시하는 또 하나의 어 형 은 日本語에서 그 흔적조차 찾아 불 수 없다. 中央아시아를 제 2 의 알타이民族 原住地로 했던 바로 직후 에, 그 어형은 몽골語派의 선조가 된 화자들 사이에서 “I 을 의미하는 낱말이 되었다. 이러한 예물 더 많이 연구하면, 이 목 수한 변화型이 상당히 빈번했던 것을 알게 된다. 日本語는 알타이語의 두 語派 , 죽 뒤르크語派와 뭉구 스 語派에서 어 휘 자료(독정된 의미 를 가진 어형, 일반적으로 시간이 경 과합에 따라서 어형과 의미가 변화했을 것이지만) 윤 이어받았으나, 동 시에 후 기에 몽골語派에서 사용되어 分極化된 어휘자료는, 어떤 변화 한 형태로든, 이어받지 않은 것을 종종 보여주고 있다. 日本語가 이어 받은 어휘에 관해서, 지금까지 연구된 많은 중거로 보아, 日本語와 붕

구스語派가 공몽적으로 이어받은 것이 많고 또 그 정도는 아니지만 日 本語와 뒤르크語派에도 공통된 것이 적지 않다. 한편 日本 語 와 몽골語 派가 공통적으로 이어받은 유산의 중거는,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다지 현저하지 않다. 위에서 개관한 일반론의 근거가 된 言語 的 층거물 여기서 상세하 게 제 시할 수는 뭉돈 없다. 그러한 증거는 전문적인 논문이나 학술논문에서 만 제시할 수 있고 또 그것이 자료르서 유 효하며 중거로서 유력하다면, 그 상세한 연구는 전문적인 논문에 기대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 이 루 어진 정도와 범위 내에서, 구 들의 연구의 결 돈과 여기 입각한 정의을 재시하는 것이다. “1 과 4'’ 를 의미하는 낱말의 여러 語 形에 일어난 듯한 변화의 脈史 言語學 的 처리에 관한 기술은, 다소 단순화된 경우인데, 그 의미가 분 ­ 명하고 구체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선택한 것이다. 그와 갈은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들 수 있는 유사한 예는 그 밖 에도 많이 있다. 지금까지 설명한 변 화 의 과정과 용법의 분화는 “1 과 4 와 ?같은 數 詞 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그것은 祖語 사 회의 모든 어 휘에서 일어 났던 것이다. 여기서 戱詞융 선 택한 것은, 이들 낱말은 확인하고 설명 하기가 쉽고 또 모든 言語 에서 사회경제적인 활동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점에서 본다면 어느 言語 의 어느 낱말도 또한 중요하다. 알타이祖語사회 내부에 원래 존재했 던 내부적 다양성 을 보여주는 또 한 예는, 比鼓方法이 言語 起源에 관한 모든 문재와 관 련해서 제시할 수 있는 증거 를 찰 설명해 줄 것이다. 이 예는 동시에 후 기의 여러 語派에 서 일어난 祖語 에 있어서의 다양성의 分極化를 설명해 주고 또 日本語가 알타이 祖語 내의 다양성율 이어받은 것도 설명해 줄 것이다. 그것은 또 比 毅 方法이, 대단히 먼 과거의 일이지만, 言語 와그용법에 있어서의 역 시적 변 화 의 작용 융 밝혀 주는 것 을 보여 줄 것이다. 이 예는, 이미 살펴 본 “1 을 의미하는 낱말의 다양성 (“1 을 다른 단 어 로 표시 한다)과 4 을 의 미 하는 낱말에 보이 는 다양성 (같은 낱말을 상이 한 그러나 상당히 유사한 발 음으로 표현한다)운 합한 祖語 내 의 다 양성 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 두번째 예 를 설명하는 낱말둘 온, 모두 asto ne~), a rock( 岩) 와 같은 일반적인 의미 를 가지고 있다. 그 의미는, 다음 논술에서, 목 히 알타이 祖語 의 역사에서 그 가장 이론 단계 를 밝혀 갈 때, 이들 알타 .

이語 낱말에 붙 인 英 語 번역인 확인표인 것이다. 또 이들 확인표 자체 는 실제로 語 形의 〈의미〉가 아니라 그 낱말의 의미상의 주요 범위 를 이 해하기 위 한 한낱 편 의 상의 수단에 지 나지 않는다. 알타이 祖語 사 회 는 제 1 의 原 住 地에서 사 회 적 으로 동일한 言 語물 사용하 던 가 장 초기 의 단계와 아마도 그 뒤 참 시 동안, ” 石 , 岩 ”이라 는 일반적 의 미영역을 표시하 기 위 해 서 원 래 전혀 다 른 , 관계가 없는 두 낱말 을 사­ 용 했다 . .:::z.. 하나는 알타 이 祖 語 * g oro· 로 재구 되 고 또 다른 하나는 * ty균 / z 로 재구되 는 것이다. 이 문제 를 논의 해 가기 전에 , 먼저 그 명 백한 語 形 및 .:::z.. 의미와 관련해 서 이 들 낱말 을 간단히 선명해 두어야 한다. 이 재구된 낱말 의 語 形울 보 면 , 그것 을 표 기하기 위해서 사용된 각기 호는 比 校 方 法 의 데크닉 에 의 해서 재구된 , 알타이祖 語 에 있어서의 원래 의 유의 적 음성 ( 음 소) 을 표시하 는 것 으로 우리는 이해한다. 이들 음은 ­ 祖語에서 확실히 발음되 었으리 라 고 생 각 되는 것을 엄밀하게 표시하는음 _ 성기 호 로 표기되고 있다. 각 語形 앞에 붙 이는 기호 * 는, 그 낱말이 재 구형이지 문 헌 에서 그러한 語形 으로 입 증 되는 것이 아님율 표시하는 것 이다(대단히 이 른 시기의 문헌이 이용 될 때에는, 재구형에 대단히 가 · 까운 형 태 를- 보유하고 있을 만 큼 오래된 것도 때로는 있다). 위의 두목 ­ 수한 語 形 을 표시하기 위해서 사용된 기호 중에서 설명을 요하는 것~ h 라 는 기호 뿐 이다• 알타이 諸語 의 역사 물 연구하는 학자들은, 역사적으 ­ 로 입 증 된 후 기의 諸 言 語를 비교하여 확 정된 대웅관계 몰 중거로 해서 알타이 祖語 에 존 재 했 다고 생각되 는 유의적 단일음(음소)을 표시하기 위 해서 이 기호 를 사용하고 있다. 이 음소가 l 과 같 은 음이었던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그것은역시 갈 은 言 語 에 존 재했던 다른-~그리고 더 일반적인__단순히 * l 로 씌어 지는 1 과는 다소 다른 음이었음이 률 립없다. 祖 語 의 가장 이 론 단계에 서 이 두 음의 발 음이 원래 어 떻 게 달랐는지는 정 확 하게 알 수 없다. 그 러나 두 낱 말 가운데 다른 음소는 모두 갈고 * 1 과 *l2 만이 물 리면 전혀 다 른 것 을 의미 할 수도 있기 때 문에, 그 음의 차이 물 염두 에 두기 위한 편 리 한 기 호 로서, 두번 째 l 에 2 라 는 수자 불 밀에 문 여서 *h 라고 쓰는 것이다. 가장 이 론 알 타이 語 에 있어서의 이 들 낱말의 의미에 관 해 서 중 요한것 울 어느 정도 상제히 . 알고 있다. 후 기의 입증된 諸 합 語를 비교해서 얻 온 증거에 의해서 * g 6r5 로 재구하는 낱말은 일반적으로 작은, 작온 돌

과 갇은 岩石 혹은 때로는 작은 岩石과 작은 돌을 의미했던 것을 알고 있다. 초기의 알타이民族온 이들이 어떤 鉉物을 포함한 것, 득히 철광 석 혹은 다른 금속의 광석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 ty alz 로 쓰는 형태 는 대조적으로 분명히 보다 일반적인 용어로서 岩石이나 돌에 대해서 중 요한 의미의 차이 없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때로는 작은 岩石과 구별해 서 큰 岩石울 표시하는 데 사용된 것도 같다. 초기의 의미는, 초기의 語形처럼 , 입증되는 후기의 諸 言 語 의 比鼓에 서 유도되는 중거에 의해서만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가 지금 다루고 있는 알타이語의 가장 이론 단계에 이와 같은 의미의 차이가 있 었다고 하면, 그것은 지나치게 정밀한 것이라고 비난 할는지 모른다. 그 러므로 여기서는 양자의 초기 語形의 의미 를 다만 ”石, 岩 만 을 들 어 둔다. 동시에 초기의 양자의 의미 차이룰 보여주는 중거에 유의하고 적 어도 양자가 알타이諸語의 역사에 있어서 이른 시기에 의미상 다소 다 른 뉴앙스몰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된 듯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함 은 물론이다. 이 두 語形 중, 알타이諸語의 역사에서 큰 음운변화를 입은 것은 *tya/ 2 이 다. 알타이 諸語의 역 사에 서 초기 에, 中央아시 아로 移動하는 동 안이 아니면 그 종반에 혹은 아마도 제 2 의 原住地에 거주하기 시작했을 때, 祖語의 화자 중 어 느 사람은 *ty a lz -:을 약간 다르개 발음하기 시 작 했다. 그 새 로운 발음으로 *tyal z 의 말음 *l2 가 英語 ship 의 sh-처 럽 발음되었다. 여기서는 그 음을 5 로 표기한다. 이때부터 알타이祖語사회에는 일반적으로 같은 것(“石, 岩石)을 의미 하는 語形이 2 개 가 아니 라 3 개 가 존재 하게 되 었다. 죽 *g b .r6, *ty5 l2, *ty as 이다. 제 2 의 原住地에 도착한 후 곧 일어난 言語 의 分 區 化 이전 에, 어느 화자는 이들 語形 중에서 첫번째 것(다른 두 語形 과 전혀 다 르다)을 사용하고 또 어느 화자는 두번째 낱말을 사용하는가 하면 또 다 론 화자는 세 번째 낱말을 사용했다 (제 2, 제 3 의 낱말은 동일한 낱말이 지만 발음이 약간 달랐다). 의미의 뉴앙스의 어떤 중요한 차이가 그 발 옵변화의 발전 및 확산에 동반해서 일어났는지에 관해서는 알 수 없다. 의미는 항상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으며 따라서 찰 알 수 없는 言語 史 의 한 영역이다. 이 分振化가 확고하게 고정 된 후, 뒤 에 몽골語派가 된 화자들은 ”石, 岩石을 표시하는 세 낱말 중에서 첫번째 것에서 유래한 후기의 변화한

語形을 계속해서 사용했다. 더 뒤에는 이 낱말이 음성과 의미 면에서 더 한충 변화하여 현재는 작은 돌이나 철광석이라는 의미가 몽골文語 · 의 giirii , 칼카 Khalkha 및 칼목크 Kalmuck 몽골語의 giir 와 갇은 날 말로 입 증되 고 있다. 동시에 뒤에 뒤르 크 語派가 된 화자는 새 낱말 ~ 에서 세번째 것이 변화한 후기의 語 形을 계속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결국 古代뒤르크語 tas , 現代터 어키 語 tas 및 이와 유사한 다른 뒤 르크 語派의 語形 이 되 었다. 그 러나 후기 의 알 다이 諸語 에서 이 들 낱말의 역사와 관련해서 일어났 던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초기의 몽골語派는 * g b.r0· 라는 형태만 아 니라 동시에 *ty a lz 도 계속 사용했다• 이 *ty a / 2 이 뒤 에 몽골文語에서 cila rtm 石 , 岩 ”이 라는 낱말이 되 었다. 이 낱말의 말음절 -run 은 접 미 사이며 뒤에 부가된 것으로서 알타이祖語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다. 그 러나 처음 두 음철 c i la- 는 祖語 의 * ty a/2 가 후에 변화한 형태이다. 죽 * ty는 t-로, * / 2 는 -/-로 변화한 것이다(子音은 역사적으로 설명하 기가 비교 적 용이하기 메문에 우리는 子 音 을 강조한다). 물론 母音 도 이들 낱 말의 역사에서 홍 미있고 중요한 것 이다. 그리고 그들 母音 의 음운변화 도 규칙적으로 논할 수 있다• 둥구스語派 또한 이 들 세 原語形 중 두번째 *ty a /2 만을 사용하여 어 사의 용법을 分極化했다. 이 두번째 낱말은 만주 語 에는 남아 있지 않으 나, 다 른 모든 동 구스 諸語 에는 남아 있다. 가령 라무트 語 Lamu t의 jol , 에 벤 키 語 Evenki, 골 디 語 Goldi, 오로치 語 Oroch 의 jo/ o 등 놀라울 정 도로 많은 다 른 現代語나 方 言 에 보인다. 소련의 학자 들 이 편찬하여 최 근에 출판한 사전 ( 『몽 구스-만주 諸語 比 鼓辭典 』 I (1975), II (1977) )에 의하면, 9 개에 이르는 주요 둥 구스 諸語 의 여러 方 .급 에 나타나는 이 낱 말의 57 개 異形 과 형태가 실려 있다. 이 낱말 에 관해서 특히 우리들의 주목을 끄는 것은, 日本語와 한국語 가 “石, 岩”이라는 의미의 알타이祖語에 존재하던 세 낱말(그것은 뒤에 알타이語族의 주요한 어사에서 分桓한 것이다) 중 어느것에 소급하는 몇 가지 다른 語形을 이어받은 것이다. 알타이 祖語 의 낱말을 이어받은 日本 語 와 한국 語 에 남아 있는 중거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現代日本 語 의 i sh i와 koro 이 며 또 中期한국語 to/ I i 에 소급하는 現代한국 語 의 tol “石이다. 現代語와 이용 가능한 문헌의 중거에 의하면, 이론 시기에도 日本 語

의 i sh i와 한국語의 t ol 은 石”을 의미했다. 現代日本語의 koro 라는 날 말은 단독으로는 사용되 지 않고 石, 小石을 의 미 하는 islz ik o ro 라는 複 合名詞 속에 나타난다. 물론 그 낱말의 첫 요소는 이 미 말한 islz i 와 갇 은 낱말이 다. 日 本語 islz il w ro 의 -koro 는 알타이 祖語의 *g 0 .rb · 가 뒤 에 변화한 語 形이 다. 이 *g o ·ro 가 변화해 서 몽골文語의 giirii , 칼카 및 칼 묵크方 합 의 gii. r 이 되었다. 이 . 낱말의 경우, 형태변화는 대단히 적고 의미변화는 우리가 의미를 연구하고 논의할 수 있는 한,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것은 다음과 갇온 홍미있는 사실에 의해서 입 증 된다 . 죽 koro 라는 日 本語는 , 알타이 祖語의 가장 이 른 단계 의 *g o ·ro 에 대 해 서 우리가 추정한 의미(작은 돌, 자갈)의 뉴앙스 를 가지고 있다. 現代日 本 語의 仮 合語 i s /zi koro 와 초기의 알타이 語 에서 몽 골語 가 계 승한 두 낱말을 결 합한 몽골文語의 giirli C i/ a run ”山石”이 라는 仮合 ,? E 사이 에 명화한 유사성이 있다는 것도 중요하다. 몽골 語 가 알타이 祖語 에서 이어 받은 두 낱말을 사용해서 複合語룹 만든 것과 갈은 방식으로 日本語 도 알타이 祖 법에서 이 어 받은 두 낱말을 사용해서 is/z iko ro 라는 仮合i몹물 형 성한 것윤 알 수 있다. 유일한 차이는, 祖語 에서 이어받고 각 仮合 5읍 을 형성하는 요소의 순서가 日本語와 몽골語에서 반대되는 것 뿐이다. 그러 나 日 本語의 ish i 와 한국語의 tol 은 사정 이 다르다. 의 미 변화는 역시, 적어도 우리가 연구하고 거슬러울라가서 조사할 수 있는 범위에 서 보면, 대단히 적어서 거의 문재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녀 5 을 의미 하는 알타이祖語의 語形과 日本語 및 한국語의 낱말의 語形 사이에 보이 는 변화는 중요하며 놀랄 만한 것이다. 여기서 설명하기에는 너무도 복참한 다른 중거에 의해서 現代日本 語 i sh i가 古代日 本 語에서는 i s i로 발움되었고 그보다 더 이른 先古代日 本語 pre -o Id -Ja p a nese 에 서 는 *yisi 로 표시 할 수 있 는 형 태 가 있 었음을 알 수 있다. 日本語뮬 比校할 때 , 또 i slz i라는 낱말과 이 의미와 유사 한 다른 알타이 諸 語의 낱말을 比紋하거나 혹은 확실히 관계가 있어 보 이는 낱말을 比紋할 때, 가장 직접적으로 유효한 것은 先古代日本語의 吾形이다 . 그러나 比 校 하는 데 있어서 적절한 것은 古代日本語만도 아니요 또한 先古代日 本 語 의 溫 形만도 아니 다. 古代日本語에 는 石올 의 미하는 몇 가지 약간 다른 형태가 있었다. 그러나 그둘은 서로 관계가 있는 형태 가있었다. 그러나그들온서로관계가있는형태둘이었지만, 그들은日

本語에서 나타나는 환경에 따라서 발음상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그 낱 말이 古代日本 語 에서 단독으로 나타날 대는 독립형 i s t이었다. 또 우리 가 이미 재구한 바와 같이 그보다 조금 앞선 형태는 * yi s i이다. 그러나 다른 낱말과 複合語를 이 문 때는 이 古代日 本 語 낱말은 단독형 i s i의 말 음 -i 대신에 그 위치 에 母뜹 -5(- )나 -a(- )가 때때로 나타난다. 예로서 地名에 iso 뼈 kaII1 t라는 표 현 이 있는데 이것은 나라( 奈 良)市 근방에 있는 현재 의 댄리 ( 天 理 )市 주변의 地名으로서 원래는 바위(.i s6) 의 위 (kam; ) 와 7같 은 것을 의미 했 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홍미있 는 것은 그것이 古 代 日本語 의 노태 문현에 i so 가 아니라 i su 로 나다나 는 것이다. 母音 -a( - )로 끝 나는 낱말에 는 古代日 本語 i sa g o f&, 小石”가 있고 또 이 것과 의미상 관 련 이 있 는 또 하냐의 古代日本 語 i so 를 상기 시킨다. 이 낱말은 古 代 tE 에서 독 히 海片泡 k 에 있는 돌이 나 바위를 가리 키는 것이다. i s o 는 複合語 나 큰 동사적 구조의 일부로서가 아니라 단 독으로 사 용원 때도 語末 母 昔 이 - o 이다. “石에 대 한 둥 구스 諸語 의 낱말은, 일반적으로 I 음절뿐만 아니라 2 음절(이 경 우는 문재의 형태가 다음질이다)에도 母音 -o- 물 가지고 있 다. 또 여기서 관계가 있다고 생각되는 뒤르크 諸 語의 語形에 모두 母音 -a- 가 있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왜 古代日本 言 의 i s i만이 아니라 다른 -o(-), -a(- )로 끝나는 語 形도 여기 역사적으로 관계가 있는가를 곧 이해 하게 될 것이 다(母 音 -o-가 위 에 말한 한국語의 語 形이 나 뭉구스諸語의 경우와 관계가 있는 것은 다시 논의될 것이다). 여기서는 알타이 諸語 의 이들 낱말에 있는 모든 母音의 語源的인 연관 성에 관한 역시 대단히 복잡한 문제는 뒤로 미루고, 古代日本語의 isi , iSO (-) 혹은 isa -그 어느것을 연구하든 古代日本語의 이들 語形의 어두子 昔에 관해서 각각 재구해야 하는 것은 어두 * y-이다. 죽 *y isi, *yiso (-), *yisa- 이다. 그 어두 *y -는, 日本語 i sh i의 역사와 관계가 있는 알타 이 祖語 의 낱말의 어두 * ty-가 뒤에 변화한 형이다. 물론 이 알타이祖 語 의 낱말은 위에 말한 새번째 형태 * ty as 이다. 이 경우 日本語는, 위 에서 본 제 낱말 중 두번째 것에 포함되어 있는 *l2 라는 기호로 표시되 는 l 와 같은 음이 아니라 5 와 갈은 다 른 발음융 사용하고 있는데, 이 접얘 있어서는 뒤르크 語 派에서와 같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語나 많은 퉁구스 諸 語에 계승되고 변화는 했지만 아직도 용이하게 알 수 있는 語形은, 세 낱말 중 두번째 것이다. 한국

語의 tol 은 *tya l 2 의 후 기 변화형 이 다. 몽골 語 의 cil a rum 에 있는 cil a 와 더불어 에벤키, 골 디, 오로치方 言 의 몽구스 語 形 j o/o 도 같 다. 이 경우 는 言 語的 증거로서 목 히 유익한 실례이며 또 言語 比 敍 의 方法論에 의 해서 개개의 납엷 많프의 가장 이 른 단계를 발견하는 데 있어서 言語 的 중 거가 보여주는 역할을 설명하기에 목 히 유익한 예이다. 우리는 몽골 語 와 갇이 日本語가 ”石, 岩”에 대한 두 낱말을 알타이 祖語 에서 계승한 것 을 주목한다. 더구나 알타이 祖語 * ty as 의 후기 변화형인 日本語 i s /ii의 경우, 日本語는 祖語에서 뮈르크 語 派와 같은 異形을 이어받은 것이다. 여 기 대 해 서 한국語는 둥구스 t b업 tE 와 갇 이 다른 語形 *ty al 2 를 이 어 받았 다. 그러나 여기서 더 중요하고 복잡한 사 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들 알타이 祖語 의 두 異形 * ty al2 과 * ty as 는 다만 초기의 발음상 의 변종이 었다는 접이다. 이 들 변종은 알타이祖語社會의 초기 단계에서 이 렇게 해 서 나타난 것이며 또 동시에 단일 原形에 소급되는 것이다. 이렇게 比 救 方法의 성과에 의해서, 비록 대단히 오 랜 문헌이 없더 라 도, 먼 과거까지 거슬러울라가서 개개의 言語 사실의 역사 를 추구할 수 있다. 또 우리는 특히 앞에서 설명한 용어와 이미 일치된 그 들 용어의 정의에 구체화되어 있는 脈史 言語[용 의 개념과 가정에 포합된 의미 를 추 구합으로써, 더 먼 과거로 거 술러울라가 言語 起源을 탐 구 할 수 있다. ”石, 岩”을 의미하는 세 語形 이 존재했던 알타이 祖語 의 시기는 대단히 먼 과거의 일이다. 제 2 의 原住地에 移動하 여 그곳에 정착한 뒤, 알타 이 語族 의 주요 語派 의 핵이 된 祖語 내의 각 집단, 죽 몽골 語 派, 둥구 스 語派 , 뒤 르크 語派는 각기 이 들 세 낱말 중에서 어 느 하나 물- 택하게 된 것이다. 세 낱말 중 하나는 몽골 語 가 이어받고, 또 하나는 둥 구스 語 (및 몽골語와 한국語)가, 그리고 제 3 의 것은 뒤르 크 語 (및 日本語)가 이어 받았다. 이 낱말의 첫번째 것은 다른 두 낱말과관계가 없었지만, 이 다 른 두 낱말은 더 오랜 語形 에서 뒤에 변화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대단히 먼 과거의 祖語를 재구함으로써만 알 수 있는 ~ 形의 起源울 역사적으로 깊이 고찰할 수 있게 된다. *ty alz 과 *ty as 라 는 두 異形의 발음 차이는, 적어도 알타이 語 가 제 1 의 原住地에서 사용 되던 먼 시기-::z.. 이전은 아닐지라도__까지 소급되는 것이 불 림없 다. 이러한 역사적 시간의 깊이 풀 고려한다면, 문헌의 중거에만 입각한 歷 史 言語學 의 성과와 比 紋 方法에 입각한 결과의 중요한 차이를 한충 찰 이해할 수있다.

문헌에 의해서 比校方法 정도로 먼 과거까지 거슬러울라갇 수 있는 지역은 극동에도 중국에도 없다. 중국을 제의하고, 주목할 만한 古代문 헌이 있는 言 語 영역은 국동에는 없다. 만일 日本語나 다른 알타이 諸語 를- 연구하기 위해서 문헌에 의한 중거에만 입각한다면, 대략 서기 700 年전의 言語 史에 관해서는중요한것을거의 알수없을것이다. 그~ 헌에 의한 중거는 , 그들 言 語 의 起源을 알기에는너무도새로운것이다. 그러나 比救方法울 적용하고 比校方法의 가정에 입각해서 가정의 論理~ 的 결론을 추구한다면 , 역사적 전망이 열리는 것을 알게 된다. ”石, 岩”을 의미하는 낱말의 경우, 祖語에 경합하며 존재하던 세 낱 말 중에서 日 本 語는 어말에 子音동가 있는 형태을 택했으며 또 뒤르크 語와 갇은 길을 결은 것은 이미 본 바와 같다. 이 *ty as 는, 더 거슬러 울라가면, 그보다 이론 형대는 이미 말한 *- /2- 가 있는 異形과 역사적인 관계가 있다. * -h 가 있는 異形 온 몽골語派와 몽구스語派가 덱한 것이 다. 죽 여기서 日本語는 몽구스語派와 보조 를 달리하고 오히려 뒤르3.. 語派 와 갇은 보조를 취한 것이다(또한 日本語는 *g 6rb. 를 이어받은접에 서 몽골語派와 보조 물 같이했다).

動詞형태와 범주 그러나 많은 言語 중거물 고 찰 하면, 다른 많은 예에서, 알타이祖 語 iitf: 會에서 최초의 日本語 화자들이 사용했던 몇몇 異形 중에서 어느것을· 특히 선택한다는 점에서 日本語는 몽구스語와 보조 를 갇이한 것을 알 게 될 것이다. 이와 갇이 日本語와 등구스語가 역사적인 言語 선택에서 공동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動詞의 形態論에서 분명히 불 수 있으며 또 ­ 두 言語 의 역사 연구에서도 독히 중요하다. 動詞形線論온, 動詞가 미 묘한 의미의 차이를 표현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로변화하고屈折하는것 이다. 그것은 보통 어떤 동작이 행해지는 方法이나 양태와 관계가 있::;L 특히 動詞가 표시하는 동작이 완전히 수행되었는가 혹은 그 동작이 未 完了로서 따라서 적어도 참재적으로는 아칙 진행중에 있는가와 관계가 있다. 알타이祖語는 다른 많은 言語 와 갈이 動詞의 屈折에 의해서 이돌 모 든 미묘한 의미의 차이를 표현했다. 이러한 차이는 알타이語의 動詞얘

처 대단히 중요하지만, 우리 들 은 이 들 모 든 차이에 익 숙하지 않 다. 우 리에게 익 숙 한 動詞屈 折의 범주 는 보 몽 잘 연구되고 있 는 英 語 , 프랑스 語 , 독일 語 혹 은 러시아 語 와 같 은 유 럽 듬넘吾 의 그 것에 불과하다 . 대 개 動詞 라 하면, 본질적으로 어떤 동작이 행 해지는 〈 때〉를 표현하는 것 과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 몽 이다. 이 런 의마의 때는 일 반적으로 〈 時 制〉라고 일컫는 文 法 범 주 이다. 그러나 유럽의 많은 現 代 語 (이들은 印 歐祖語 에서 변화한 후 기 형 태이 다 )에서도 動詞는 어떤 동작 이 행해졌던가 혹은 어떤 일이 일어났 던 @l 〉 웅 표시하기 위해서만 사 용되지는 않았다. 죽 動詞 의 〈 時制 〉 -를 표 시하 기 위해서 사용되었을 뿐 만 아니라 어떤 행 동이 행 해 진 양 태 도 표 시 한다. 이 범주는 러시 아 語 와 다른 술라브 諸語 에서 대단히 중 요 한데 , 어 떤 행동이 완전히 수행되 고그 시접에서 완료되었는지 혹 은 완 료 되 지 않고 따라서 참재적으르 계속 되 고 있는지 룹 표 현 하는 것이다. 어 떤 동작 이 완료되 었 는지 않았는지에 관 한 이러한 범 주물 言語學者 는 일 반 적 으로 〈 相〉 이 라 고 부르고 있 다. 우리 들 은 유럽의 言語 에 접한 경험 에 의 해 서 〈 熊〉라는 또 하 나의 文 法범주 를 찰 알고 있는데 이것은 能!f!b 1l ffi. (I kil led the bea r ) 와 受動 娘 (I was kil led by th e bear) 몰 구 별 하 는 것을 말한 다. 態는 알타 이 祖語 에서도 動 詞 의 중요한 形 態論 的 범주이다. 그러나 알 타 이 諸語 에서는 이 런 종류의 熊 이의에 약간 다르지만 역시 중요한 또 다 른 態풀 더욱 자 주 볼 수 있다. 그것은 어떤 행 동을 하는 데 있어서 자기 가 원해 서 혹 온 자기 의사에 의해서 했는지 혹 은 다 른 사람의 강요나 다 론 사 람 의 의 사에 의해서 했는지에 관한 구별 을 , 動詞 의 屈 折에 의해서 표현 하는 것 이다. 이것은 言語學者 가 〈使 役 形〉이라고 부르는 文 法 범주이다. 물론 알 타이 語 의 使役形과 갇은 개념 을 원한다면, 英 語 나 다른 유 럽 의 言語 로 도 표현할 수 있다. 能動 f藍 와 受動惡 의 차이는 대체로 I was kil led by th e bear (受 動 ) 와 I was made to kill the bear (使役) 의 차이 인 데 이 두 표현에 대해서 단순한 能 動 的 표현 I kille d the bear 가 있다. 그러나 알타이 諸語 에서 이러한 使役 動詞 의 형 태는 대단히 중요한 形 態論 의 법 주이다. 그것은 英 語 에서는 보동 사용되지 않는 미묘한 의미차이 를 표 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우1 에서 든 많 은 英 語 의 예에서와 같아 상 이한 낱말 울 句로 연결시켜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動詞 자체에 어떤 요소 를 불 이든가 혹 온 약간 변화시켜서 사용한다. 現代日本 語 에 익숙한 사람은, 日本語가 이 使役을 이어받고 있는 것

올 물론 인정 할 것이다. 따라서 日本語에서 이 使役動 詞 가 대단히 다양 한 의미상 황 에서 사용되는 데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가는 이 이상 설명 할 필요가 없 을 것 이다. 여기서는 다만 자주 들윤 수 있는 nomaseraret a 쓰 I was made to dr i nk 와 갇 온 現代 日 本語 의 목징 적 인 動詞형 태 를 상 기하면 된다(이 표현은 누군가가 내게 마실 것을 자꾸 권하여 예의상 거절하 지 못하고 결국 마시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現代日本語의 動詞는 , 그 목징적 인 알타 이 語的 의미와 더 불 어, 알 타이 祖語에 존재했던 것과 같은 종류의 動詞形成法을 정확하게 보여주 고 있다. 그것은 動詞 어 간 nom- 마시다”에 작은 몇 가지 접미사가분어 서 건 형 태 의 연 쇄 체 -a-se-rar -e -ta 가 형 성 된 것 이 다. 여 기 서 하이 폰 으 로 분리해서 쓴 각 부분 은, 이 文 전체의 의이내용울 전달하는 데 있 어서 각기 역할을 하고 있다. 이 動詞形온 모든 알타이語 動詞에서 전 형적인 것이다. 그것은 形f原論 的으로는 복잡하지만(죽 여러 가지 작은 부 분 이 모여서 한 낱말을 형 성한다), 그 動詞形 에 관계된 의미범주는, 그 動詞가 의 미 하는 동작 ___ 이 경 우는 마신다는 동작 __· 이 어 떻게 행 해지고 또 어 떻게 행해졌는 가 하는 양태와 주로 관계가 있는 것이지, 이 동작이 행해졌던 혹은 행해지 고 있는 때와는 별로 관계가 없다. 이 動 詞形의 예에서 -se- 는 그 動詞形이 使役(누군가의 의사에 의해서 혹은 강제로 행해지는 동작을 표현한다)임을 표시하며, -rar- 은.::z.행동이 能 動이 아니라 受動임을 표시한다. 또 -t a 는 그 행 동이 현재 행해지고 있 는 것 혹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행해지고 완료된 것을 표시하고 있다(母 昔 -a- 와 -e- 도 動詞形 전체 물 형성하기 위해서 역할 을 하고 있으나, 日本語의 動詞形 형성에 있어서의 이러한 요소의 역할 온 너무도 복잡해서 간단히 설명할 수 없다). 이 들 모든 의 미 범 주와 文法범 주는, 現代 日 本語의 nomaserarct a 와 갈 은 動詞形에 보이는 動詞 의 屈折과 형성의 일반적인 형과 더 불 어, 알타 이 祖語 에서도 중요한 것이었다. 이 言語 의 다른 요소도 모두 그러하지 만, 대부분의 이러한 動詞屈折 에도 몇 가지 이형이 있었다. 제 2 의 原 住地로 移動한 후 , 言語 가 分 裂하 여 개별 言語 로 발전하면서 動詞 屈折 영역에서도 개 별적 인 言語 선택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많은 名 詞 , 목 히 앞에서 예시한 바 있는 動詞 에서 행해 진 言語 선택과 갈은 것이다. 전 체 적으로 보아, 日 本語 와 다른 言語 와의 친근관계에 관한 가장 믿

을 만한 중거는, 日本語動詞의 形態論(語形成)과 屈折에 있어서의 動 詞구조의 세밀한 점이 보여주고 있다. 이 중거가 믿을 만한 것임은, 日 本語를- 포함한 알타이諸語 사이에서, 존재했으리라고 생각되는 형태와 의미의 많은 제부 사항이 대웅하며 또 규칙적으로 대응하고 있기 때문 이다. 이러한 중거의 항목은 많은 수에 아르며 또 형태와 의미가 세부 에 이르기까지 대응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불 수 있는 유사성은 우 연이나 借用의 결과일 가능성을 배제한다. 借用의 가능성은 여기서 문 제가 되고 있는 言語둘 의 역사와 지리적 분포로 보아 더 희박해진다(예 물 들면, 日本語가 어렇게 해서 아시아대 륙을 가로질러 수천 킬로미터 멀어진 古代뒤르크語에서 借用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사실은 이들 모 ­ 든 言語 의 친근관계가, 비록 먼 것이라 할지라도, 확실하다는 것을 설 명해 주고 있다. 그리고 문제의 자료는 지금 실명한 이유 때문에 대단 히 설득력 있는 중거를 제시하고 있다. 알타이祖語의 形娘論에서 보면, 名詞에서 動詞풀 형성하는 一~ 名 詞派生動詞 __- 정 미사와 또 간단한 動詞에 서 더 복잡한 (2 차적 派生) 動 詞를 형성하는 점미사가 상당히 있었다. 알타이祖語에서 2 차적 派生動 : 詞語幹울 형성하기 위해서 사용된 접미사 중 가장 중요한 것에는 다음 과 같은 것이 있다. *- ll -는 名 詞 에 붙어서 動詞을 형성하고 그 名詞가 의미하는 동작을 표현한다든가 혹은 그 名詞와의미상 밀접한 관계가있 는 동작을 표현했다. *-g-도 名詞에 사용되었는데 他動詞性의 의미목 칭을 더 갖게 된다(복잡한 動詞몰 형성할 때, 이 접미사는 새로운 使 役動詞를 형성한다). * -t-는 名詞와 動詞에 묻 어서 他動 詞를- 파생시키고. 원래의 名詞나 動詞에 관계가 있는 동작이 갑자기, 충격적으로 혹은 결 정적으로 행해지는 것을 표현한다. *-r 는 名詞나 動詞에 붙어서 의부적 원인 없이 자연히 일어나는 動詞물 형성한다(자주 ” ••• 이 된다”로 번역 된다). *-l- 는 動詞와 名詞에 붙어서 他動詞룹 형성하는데, 그 동작은 외부의 動作主에 의해서 행해진다(자주 …하다”로 번역된다). 그리고 목히 몽구스諸語에서는 * -p-문 접미시켜서 많은 2 차적 動詞물 형성하는 데. ::z. 일부는 受動이나 2 차적으로 일어나는 동작을 표현하고 또 일~ 는 그러한 受動的 동작에서 비롯된 계속적, 지속적 상태나 동작을 표현 한다. 2 차적 動詞語幹울 형성하는 이둘 모든 접미사는 몽골, 뒤르크, 룽 구스諸語를 포합한 여러 알타이諸語에서 충분히 확인되는데, 이러한 접

에서 이들 言語 가 알타이祖語에서 분화한 것을 가정할수있다. 이들대 부분의 집미사는, 일반적으로 형태와 의미가 상당히 변화했지만, 한국 語 動詞의 形態論에서 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알타이諸語 사이에 역사적 관계가 있다는 가선-그것은 이들 諸 言語 의 比 鼓 연구에 의해서 발견되는 言語 자료 중 형태와 의미 양면의 대응 예 를 이 론적 으로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가선이다__은 오 늘 날 문 헌의 확증 이 있 는 후기 의 諸言語 와 알타이 祖語 사이에 대단히 긴 시간 이 개재하 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最古 의 알타이 語 문헌기록을 가 진 言語는 古代뒤르크 語 인데 겨우 8 세기 초로 소급한다. 이 시기가 奈 良의 宮廷言語 인 데 古代日本語의 방대한 문헌 시기와 일치하는 것은 대 단히 홍미가 있다. 原始 알타이語에서 뒤에 각 독립된 諸言語 가 分裂하 는 오랜 역사적 과정에서 어느 言語 는, 예컨대 2 차적 動詞語幹派生 중 에서 어느 특징을 보유하고 또 다른 言語 는 다른 목 징을 보유하게 되었 다. 그러므로 뒤에 分裂한 모든 言語 에 알타이祖 語 의 모든 체계가 그대 로 남아 있다고 보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또한 言語 의 역사적 변화에 관 한 가정에도 위배되는 것아다• 그러나 알타이祖 語 의 最古形에 원래 존재했을 이 派生複合動詞의 原 始 체 계의 중요한 부분은 후기의 모든 言語 에 남아 있다. 그리고 그와 같 은 派生法 의 중요한 부분이 日本語에 남아 있는 것을 보여주는 중거는, 日本語가 다 른 알타이諸 語 와 친근관계가 있다는 가설을 발전시킬 수 있 는 논중 가운데서 가장 믿을 만한 것이다. 알타이 祖 jE 에서 이 動詞派生法이 어 떻 게 작용했는가를 설 명 하기 위 해 서 후 기의 言 語 에서 몇 가지 형 태 를 들어 불 필요가 있다. 名詞에서 動 詞를 형 성 하는 데 사용되 는 *-k -는 , 예 를 들면 Tk. ta ryq - 오르다” 에 보 이”內는 部데 에-(서y,) q-ta는s y名q - 詞 떠t a나r다 山”는에 t a불s 은外 것部이다에.서 또또 ib ci ir ki-k 들 동어합오하다다는는 ibcii r- “I 에서 형성된 것이다. 갇온 접미사는 또 다른 의미 ” ••• 되다 를 의미하는 데 Tk. jaz l 앙 에서 형성되는 jaz yq - 봉이 되다와 su, sttb 水”에서 형 성되는 suq- 젖 다에서 봉 수 있다. 알타이 祖語 접미사 * -r-와 * -l- 의 原 형태와의미의 구별은다음몽골 語 의 예에 의해서 찰 선명된다. 몽골 語 에 副詞的 名詞 suru ..... 에서(속에서 밖으로’')에서 派生한 세 가지 2 차적 動詞 surul- 대 다”, surura- 마지 다, suruci- 뽑 다”가 있다. 이 중 최 후의 動詞는 원래의 집미사 *- t-가 -c i-로 변화한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것은 돌연한그리고단호한他動 詞 的 동작을표현하는목징적인 알타이語 的 의미를 가지고 있다. 몽꿈語의 이러한 세 가지 2 차적 動詞에서 surul- 은 日本語 動洞 stt g1 1r-‘ 칼라내다, 버 를 벗기다와 대단히 유사하다. 이 . 증과거 갇 에이 의알 해타서이 이祖 ;日5 의本 語옛 動. 形詞成는法 형에 태소와급 의하 미는 면것에으서로 대 추응징하 할 는 수M o있. 다s.ur c原ll- 始알타이語에서는 名詞에 접미사 *- l- 윤 붙 여서 動洞옵 형성했기 때문이 다. 日本 語 는 有史 이진에 이미 알타이 祖語 에서 별개의 웅이었던 r-2 }- l 의 원래의 音韻 상의 구별을 잃었는데, 日本語의 動詞形態 孟 u 에 있어서 의 이 예나 다른 많은 예물 보면, 日本 語 의 r 는 원래의 r 이 아니면 l 에 소급하는 것으로 결정할 수 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위의 예에서와 같 이) 의미룰 고려해서 결정할 수 있고 또 한편으로 는 다음에 선명하는 증 ‘ 거에 의해서 선명할 수 있다. 日 本語에 는 原始알타이 語의 접 미 사 *-k-, *-g-물 이 어 받았음을 보여 주戶 는 名詞에서 派生한 動詞가 많이 있어서 주목된다. 이런 형성은 다음과 · 같은 낱말에서 분 수 있다. 名詞 wana 덫”에서 형성된 wallak- 목을 조 . 르다, sit a 下”에서 형성된 sit ak - 짓밟다, malwra 베개에서 형성 된 makurak- 무언가를 베개로 삼다, kab11 頭”에서 형성된 lt a bllk-‘' 머 리 를 수그리 다, mi du 水” 에 서 형 성 된 111i du k- 적 시 다” 등과 갇다 • 이 최후의 예는 목히 중요하다. 原始알타이語에서 이어받은 같은 形成法이 한국語의 mul 水”에서 형성된 mulk- 붉다에서도 보이기 때문이다. ~ 한 친근 관계가 있는 다른 形成法을 뒤르크 語 의 s iiq- 젖 다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은 이미 언급한 바 있다. 日本語의 派生動詞에는 또한 알타이語 起源의 접미사 -k- 가 있는데 이 것은 使役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harItk - 넓게 열리개 하다는 har- 새 로 토지몰개간하다에서 형성되고 ma t all- 기다리게 하다는 ma t-기다 리다”에서 형성된 것이다. 이와 갈이 日本語 s i r- 알다”에서 2 차적 형성 s i ral‘ 성- 홍이 깨지다, 참윤 깨다 , sir a g a lz- 눈에 띄게 행동운 하다”가 형성된다. 이것온 알타이 祖語 에서 이어받은 몽 골語의 s ere- 깨 다, 눈 뜨다와 serge -- 취기가 가시다와 갇온 語形成과 징확하개 평행하는 것이다. 알타이祖語에서는 이와 유사한 使役形윤 형성하 기 위해서 *-g- 가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다음의 日本語 動詞에도 보인다. ·'n a ta ”가랑 이에서 형성된 mat ag -두 다리를 벌려 넘다?, ha 羽”에서 형성된 /za g - .. 화살에 새털을 달아서 활올 만들다, lzuta -.. 뚜껑에서 형성된 huta g ·

꼭 닫다, tun a 냉 직 , 참피나무 껍질로 만든 밧줄에서 형성된 tun ag - “사냥에서 발자국을 따라 사냥감을 쫓다 , una 목덜미에서 형성된 unag - 목(덜미)에 걸다와 갇다. 日 本語가 알타이 祖 語에 서 動詞語幹윤 형 성 하는 새 집 미 사 *-r-, *-I-, *-t - 물 형태와 의미 면에서 이어받은 것은 목히 잔 확인된다. 알타이祖 語에 있던 ” ••• 되다”의 의미 를 가진 * -r- 에 의한 形成法은 日本語의 다 음과 같은 낱말 에 보인다. alw i/ft, 明”에시 형성된 akar- 빨개지다, 밝 아지다, tak a r% 에서 형성된 tak ar- 높다, 높아지다 , 111asa ”正”에서 형성되는 111asar-• 도·보다 능가하다 , saka 坂”에서 파생된 sakar-' 도·에 反하다, 반항하다 . 알타이 祖 語의 하다” 혹은 수행 하다''물 의 미 하~즌 *- !-도 日 本語 에서 -r- 로 나타나는데. 이때 기저가 되는 名詞의 무성정 지음이 유성정지음이 되는 큰 차이가 있다. 따라서 日本語에서도 알타이 語의 원래의 - * /-와 * -r- 를 식별할 수가 있다. 日本語의 ttIk a (칼 따위 . 의) 손잡이에서 형성되는 tttga r- 이어 붙이다, moto 5G 에서 형성되 는 111odor- 돌아오다, kaki t합 에 서 형 성 되 는 kag ir- 제 한하다, saka 갱i에서 형성되는 sa g ar- 매달려 있다 등은모두 原始알타이語에서 이 어받은 옛 語 形成 원칙이 日本語에서 유효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알타 ­ 이祖語의 접미사 * - l- 와 - * r- 는 日本語에서 갇은 r 로 나타나지만, 알~ 이 祖語의 * -1- (*-r- 가 아닌)이었던 접미사에 의해서 형성된 日本語의 2 차적 動詞 중에는 * -k- 가 -g-가 되고 또 * -t-가 -d- 가 되는 形態論的型 이 보이는데, 이러한 것이 존재하는 것은 日本語의 계동윤 중명하는 데 있어서, 죽 日本語가 알타이語 起源임을 증명하는 가장 유력한 중거가 된다. 또한 日本 SE 의 起源울 논의하는 데 있어서 확신울 굳히는 것으로. 주 목되는 것은 日本語가 알타이 祖 語의 접미사 * -t- 윤 이어받은 것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이것온 돌연한 그리고 신중한 행동윤 표시하는 他動詞 . 윤 형성하는 집미사 인데, 목히 이 접미사는 형태와 의미 면에서 * 구-나 * -l- 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가령 日本語에는 알타이祖 ;담 에서 이어 받은 두 가지의 다른 2 차적 形成法이 있는데, 單純動詞 wak- 分”에서 파생 된, 원래의 *-r -가 있는 wakar- 갈라지다와 -t-가 청가된 wakat- .. 갈라 놓다”가 있다. waka t-는 원래의 접미사의 * -t-의 형태만이 아니라 ::z. 의 미도 이어받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갈이 日本語 sak- 들로 찢다 에서 sakar- 멀리 떨 어지다와 sakat- 도살하다, 죽이다”가 派生되는데 ..

이것도 알타이起源의 집미사가 日本語에 계승되었을 때의 의미기능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이 형성된 다른 낱말로 ha g-(가죽 • 껍질을) 벗 기다”에서 형 성된 hag a t- 파괴하다”가 있다. 또 이 집미사에 의 해 서 형 . 성된 名 詞派 生動 詞 로 ira ”가시 , 고동에서 형 성된 irat - (마음이) 뒤 흔들 리 다, tak i 폭 포, 격 류 에 서 형 성 된 tag it- 세 차게 흐르다, 거 칠 게 일 다”가 있다(t a git-의 -g- 는 , t aIa- 에서 t a g i r- (뭉이) 끓 다 ” 가 형 성되는 것과 같은 알타이 語 的 動 詞 形 成 에 유추되어 나타난 것이다. t a g i r- 에서 日本 語 접미사 -r- 는 原始 알타이 祖語 의 *-l -에 소 급 하 는 것이기 때 문에 .· ± a gi r- 의 -g-는 규칙적인 것이다) . 알타이祖 語 의 動 詞語幹 접 미사는, 이러한 접미사가 두 개 혹 은 그 이 상이 결합해서 *-J za r-, * -g al- 와 갇은 형태로도 널 리 사용되었다. 독 히 몽구스 諸語 에서는 뒤에 이 形成 法 이 잘 발달하여 많 은 2 차 적 派生 動 詞 몰 형성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日 本 語 와 한국 語는 이 목 징 에 관 해 서 몽구스 諸語 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두 言語 는 그 역사 를 동해 서 이 러한 複 合접미사 를 상당히 이용했다. 이러한 複 合 접 미사는 그 것을 형성 하는 개개의 접미사보다 형 태가 걷고 그 의미가 복 참하기 때문에 많은 상이한 그리고 널리 분열한 言語 간에 그러한 것이 확 인된다면, 그 들 言 語 의 친근관계 를 증명하는 유력한 중거가 된다. 여기서 는 예 를- 둘 여 유가 없으나, 日本 語 의 다음과 갇 은 複 合집미사에 의한 2 차 적 派生 動 詞 의 형성을 보면 알타이 學者 는 곧 알타이 起 源 임 을 알 수 있다. tuk ar- ... 지치다에 複 合접미사 -kas- 가 붙 어서 tu karalzas- 지치게 하다”가 형성 되는데, t ukar- 는 t uk- 지치다”에 -r - 가 붙 어서 형 성된 派生 形이다(뒤 르크 語 의 tiikii 지 치 다에 -t-가 집 미 한 tiikii t - 지 치 다와 -,i-가 붙은 .ti iki i n- 지 치 게 되 다'' 참조) . 日本 語 가 목 히 몽구스 語 와 관계가 있는 것 을 보여 주 는 것은, 많 은 動 詞 에 보이는 계속과 진행의 의미 률 가진 語幹 末의 -IL- 이다. 이 日 本語 접미사는 原始알타이 語 와 原始 둥 구스 語 에서 갇은 의미와 기능 을 가진 * -p-의 변화형인 것이다. 日本 語 에서는 이 접미사가, sit a 下”에서 형 성 된 sit a-g a h- 복 종 하다”의 -ga Ii- 와 갇이 複 合접 미 사의 두번 째 子 昔 으로 나타나는 것이 목 칭 이 다. 또한 알타이 起 源 으로서 動詞語幹 末 -r-와 -s- 의 대립에 의한 日本 語 의 他 動詞 와 自動詞 의 구별이 있다. 예 를 들면, ta r-• ‘충분하다”에 대한 tas - 충 분하게 하다, 채우다”가 있다. 原 始 알타 이 語 에는 이것과 역사적으로 적 확 하게 관계가 있는 형태가 있다. 뒤르

크語의 tol -‘ ‘충분하다와 to5 - 가득 채 우다”를 참조. 이 와 같이 상이 한 言語 간에 그 형태와 의미가 세밀하게 대응하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문 제의 이들 言 語 가 친근관계에 있다고 설명할 수 밖에 없다. 죽 이들 言 語는 오래 전에 소멸한 공동祖 語 에서 分裂했다는 가설에 의해서만 선명 되는 것이다.

基礎語 萊 위에서 본 바와 갇이 語形成 의 세부 사실 을 포합한 자료는 言 語 의 起 源을 논의하는 데 있어서 가장 믿을 만한 중 거가 된다. 그러나 名詞와 助詞처럼 屈折 하지 않는 형태도 포함해서 다른 듬 · 語層 位의 형태와 의미 면에 있어서의 규칙적인 대응도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증거에 의 해서 옛 言 語동일체 (이 경우, 알타이祖語)의 많은 공동 어휘 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런 증거는 日本語에도 상당수가 있다. 득히 名詞와 같 이 屈折하지 않는 형 태의 연구에서, 많은 선의의 아마 츄어 言 語穆者 -그리고 교육 을 받은 言語史 연구가로 생각되는 사람 까지도 놀라울 정도로 많이-는 흔히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죽 모든 言語 에는 다른 형태보다 역사적 변화물 입지 않은 어떤 형태가 있는데, 이들 형태는 人 r口 1 의 生存에 〈基 本的 〉인 개념이나 사물을 가리키는 것이 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추측에 입각해서 다음 과 같은 그 릇된 주장을 하게 된다. 죽 여 러 言 語 에 서 〈 基礎語萊 〉로 생 각되는 공동된 항목이 확 인되는 것은 문제의 言 語 의 친근관계 를 설득력 있게 입증하는 불가결한 부분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言語 에는 다른 낱말보다 역사적 변화를 입지 않는 어떤 낱말이 있다 든지 혹은 그런 낱말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포함한 〈基 礎語萊 〉에 관 한 모든 제안은 脈史 言 語學者 가 받아들이기 어렵고또한중명할 수도없 고 비과학적이다. 抵史 言 語學 에서 基礎語적강군 가장 중요한 문제로 삼는 과오는, 옛부터 그리고 근절하기 어려운, 낱말과 낱말이 의미하는 사물 올 혼동하는 데 기인한다. 먹는 것, 마시는 것, 性交하는 것은, 그 어 느 활 동이 오래 중단된다면 人間生活이 곧 끝난다는 뜻에서, 人間의 기 본적인 기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활동과 그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신체의 부분 __ 다시

말해서 해당 낱말이 표시하는 실재 세계의 사물――이 바로 이러한 살 제상의 의미로 〈基本的〉이라는 것과 이들 활동을 자의적으로 표시하는 낱말이나 신체의 부분을 표시하는 낱말 자체가 또한 基本的이라고 결정 하는 것은 전혀 다론 문제이다. 따라서 이러한 낱말이 言語 의 歷史에 관 해서 다른 종류의 낱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 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목 히 찰못이다. 人 F네 의 生存에 基本的인 것은 먹는 것, 마시는 것, 생식 하는 것 그리고 이와 관련된 활동이지 그러한 활동에 관해서 말 할 때 Al - 용되는 낱말은 아니다. 〈基礎語 菜 〉 를 본질적으로 그롯되 개 이해하고 그 룻되게 적용했기 때문에, 득히 일부 학자가 基礎語染물 擬似동계학적 〈 言語 年代 學 〉 또는 〈 語染統計學〉 목적 으로 이 용했기 때 문에 底史 言語學 ­ 이 입은 피해가 컸다. 그러나 여러 言語 의 친근관계의 문제는, 〈증명〉에 의해서라기보다 는 다소 설득력 있는 중거를 축적하는 것에 의해서 생각되어야 할 문제이 기 때문에, 신체의 부분이나 중요한 신체의 기능과 같은 단순하고 일상 적인 〈基本的〉인 항목을 직접 표시하는 낱말의 대응이, 추상적이고 또 ­ 한 때로는 확실하게 한정하기 어려운 생각이나 개념을 표시하는 낱말의 대웅보다 명백한 심리적 이유에서 더 설득력이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또한 이러한 의미에서만 이른바 基礎語染에 관한 고찰은 우리들의 脈史 言語學 的 증명에 한충 설득력을 가해 준다. 그리고 日本語와 다른 알타 이諸語를 比紋할 때, 이들 모든 言 語률 연결시켜 줄수있는 그러한 〈 基 礎語萊〉의 대웅이 없지 않음을 보게 된다. 다음의 간단한 예 리스트에서, 지면울 고려해서, 日本語의 語丞 항목 하나만을 들고 다음에 알타이 諸語 중에서 한 낱말(혹은 많이 해서 두 낱 말)울 들기로 한다. * 여기서 유의할 것은, 다음 比 紋 는 실재로 인용한 둘 혹은 세 낱말간의 比校가 아니라, 이들 모든 경우에 문제의 日本語 날말은 지면이 허용한다면 둘 수 있는 다른 모든 알타이語形과도 比紋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음 간단한 낱말 比 紋 의 리스트에서 든 예들은 모든 알타이 諸話 의 語菜 중 〈 基礎 〉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확인하기 쉽고

• 약호 Tk ., Mo . 는 자각 몽골iili와 뮈 르 크 語윤 표시 . 인용 건 갑따형대에 대 해 서 몽공 교 와 튀르크 霜를 표 시한 것은 일반적 인 표시이겨 문계의 面形 이 어 떤 몽꾼 沮 이고 또 어떤 뮈르크 語 인지 를 한정한 것은 아니다. r 西표 시는 다몬 문헌웁 참조. 만주 語 (Ma.), 에 벤키 區 (Ev.) . 골디酉 (GL)- -나나이 語라 고도 함 - __는 몽구스 i 8 i 6 의 명칭. 약호 M 온 어느 言區 의 한 이 른 단지인 <中 期 〉 를 표시하는데, 中期 語 는 現代려보 다는 이른 言 霞 이지만 의고 의 문현보다는 세로운 것이다.

또한 중요한 항목이기 때문에 선택된 것이다.

日 本 語 ag o 預 , Tk . aryz 口 hara 腹, Tk . b 町露 :ui- 있다, Ma . bi- , Mo. bii - 이다, 있다 iro 顔 色(古代日本 語 ), 色(古代日 本語 이 후 ), Tk. jiiz 顔 面 , Mo. dti ri 용모 tab - 먹 다, Ma. jef - 먹 다 /zi r- 切, Tk. qyr- q- ( 털 을) 깎다, Mo.llir - ga - 자르다 kokoro 心 , Tk. koriiz , Mo. kolzii r 꿔乳廊 lmri '’ 要 , Ma. kuri 반접 이 있는, 얼룩진 natt t 夏 , Tk. jaz 春 , Mko. ny o l- rl /ze ta 과 일 의 열 매 꼭지 , lze so 배 꼽, MMo. lzesi 손잡이 lzokuro 사마귀 , Ma. /ttltt t 학 huru 古 , MMo. lmrttt , Tk. ttztt- 長 (古日) Fb.tb . 女 陰 , MMo. lui tiig1, 11 id. , Ma. f01 1t olz o 작은 구멍 sik ( k)o 小 便 , sik - 적 시 다. 축축하게 하다” Tk. sig - 오중 누다, Ma. sik e ,J、便'’ sir i 궁둥이, Ma. sil i 목덜미, 등 ketu 엉 덩 이 , Tk. kad 뒤 , 끝 sig u re 가을이 나 겨 울 가랑비 , Mo. sir u rga u 눈보라, Ev. sig ir 바람을 동반한 비 , 폭풍” sim o f-J , GI. semata id.

이런 比 紋 예는_一이용할 수 있는 증거 중의 한 예에 지나지 않음아 다시 강조되어야 하지만__대단히 광범위한 것이다. 신체의 부분과 그 기능, 기 후 와 계절적 현상 등을 포함한 대단히 광법위한 〈 基本 的〉인 人 間의 활 동, 필 요, 환 경 에 관한 낱말옵 포함하고 있다. 여 기 못지 않 게 더 설득력 있는 증거는 後匠詞 와 갈은 文法사항과 다 른 統 辭 的 표 지의 比 紋 硏究에서도 예시 할 수 있다. 여기에는 複數몰 표시하 는 접 사(日 本 語 +a 는 알타이 語 , 특 히 몽 구스 語 * -la 를 계승한 것)와 古 代日本 語 에 있어서 알타이 祖語 에서 이어받은 人 稱 代名 詞 와 疑 問 詞 가 보여주는 명 확 한 語 形변화(특히 現代 語 에서는 그러한 형태의 흔 적이 대부분 소 멸 했지

만) 등이 포합된다.

퉁구스語와 日本語 日本 語 와 몽구스諸語가 알타이祖語의 動詞屈折의 여러 가지 異形 중에 서 동일한 것을 선택한 중거는 목히 놀랄 만하다. 이것은 뒤에 日本語 물 사용하게 되 는 日 本人의 先祖와 또 뒤 에 몽구스諸語를 사용하게 되 는 先祖가 제 2 의 原住地에서 상당한 기간 동안 밀접한 집촉이 있었음 올 보여주는 것이다. 動詞의 形態論에 관한 한, 둥구스tE 와 日本語가 많 온 특징을 共有하고 있는 칙집적인 여러 중거는 최근에 와서야 발견되 었고 그 대부분은 아직도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아 뭏든 그러한 중거가 있는 것을 안다면, 日本語의 起源에 관심이 있는 사 람은 또한 둥구스語 의 起源에 관해서도 비상한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日本 語 와 퉁구스諸語의 가장 이른 諸言語둘은 알타이祖語사회의 어디에선가 그리고 먼 역사의 어느 시기에 긴밀하게 共存했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 다. 日 本語의 起源울 硏究하는 데 있어 서 둥구스 'E 의 起源울 고려 해 야 한 다는 데는 보다 명백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오 늘날 이 들 言語 가 地理 的으로 分布하고 있는 것이 보여주는 중거이다. 極束 의 지도를 펴놓 고 아시아大陸과 日本列島 사이의 대부분의 지도에 나타나는 束海를 끼고 있는 地域을 잘 살펴보면, 動詞의 屈折이나 形態論 동 확실한 言語 的 증거에 의하지 않고서라도 뭉구 스 語 와 日本語가 밀집한 관계에 있는 것 을 추축할 수 있다. :::z. 이유는 물론 이들 言語 가 오 늘날 地理的으로 서 로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도표 I 참조). 日本列島는 아시아大 陸 의 沿海岸 束쪽에서 느릿한 곡선을 이루며 존 재하고 두 지점에서 아시아大 陸 에 가장 가까이 점근한다. 南쪽 에서는한 국이고, 北쪽에서는아시아의 몽구스語 分布 지역이다. 아시아大陸의 뭉 구스 語 가 아직도 사용되고 있는 지역과 日本列島와의 거리는 日本과 한 국과의 거리에 비해서 확실히 더 멀다. 그러나 득히 지도의 北쪽을 더 살펴보고 소련의 사할린과 갇온 最 北 端 의 섬들과 大陸 사이의 좁은 해 역을 생각한다면, 日本과 大陸과의 간격이 더 좁 은 것을 알수있다. 日 本語의 起源올 탐구하는 데 있어서 한국語만이 아니라 몽구스諸語에도

\'’

소린 Ma0f ... Na/ ,f t '. •』:n• . / /,,J 산 라디보스 목 중국 l` ><

도표 I. 日本연도와 공구스語 지역. 뭉 구스 語群 은 다음과 갑다. Ev=Even ki, La=Lamut, Na=Nanai, Ma=Maochu, Or=Orok, Ud=Udehei, Or= Oroci , Ul=Ulci, Ne=Neg ida l.

특히 주의 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原始뭉 구스 語 에는 사용빈도가 높고 중요한, 動詞派生名詞률 형성하는 두 가지 접미사(이들은 아마 서로 관계가 있을 것이지만)가 있다( 몽 구 스 語 에 관해서 그리고 日本 語문포함한 모든 알타이 諸語몰 다무는 데 있 어서 항상 유의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 動詞 〉나 〈名 詞 〉와 갈은 文 :

法用 語문 사용하는 것은 편의상 학문적인 관례에 따른 것이지 엄밀하게 확립된 범주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는 접이다. 本얀 에서도 이 분야의 문 헌에 보이는 관례에 따라서 이들 用 語를 사용한다. 이 들 用語 는 대체로 印 歐諸i E 로 번역했 을 때의 역어에 입각한 것이지 알타이 諸語 의 구조와 는 본질적으로 무관한 것이다). 이 두 접미사 중 하나는 몽 구스 祖語 의 * -ra- 로 재구되는 것인 데 時 制 와 관계가 없는 일종의 動 詞 派生名 詞물 형 성 한 다. 그리고 그 動詞 가 의 미하는 행위 혹은 행동이 되풀이해 서 행해 지는 습관적 혹은관습적 인 성 격 인 것 임 을 나타낸다. 이 둥 구스 ;E 의 소 위 慣用名詞 nom en us u s 가 의 미하는 행위 혹은 동작은 어느 일정한 시간 과 관 련 이 없다 는 뜻에 서 〈未 完 成 〉 혹 은 〈未完了〉라는 목 히 중요한 의미 를- 가지고 있다( 되풀 이되 는 습관적 혹 은 관 습 적 인 것으로 정 의 했 으므로 〈 未完成〉 혹은 〈 未完 了〉 라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서 그 런 동 작이 過去 , 現在 혹은 ―~이 들 형태 뮬 이어받은 여러 닮i E 에서 자 주 그러한 것 처럼 __ 未來에 행해 지는 경우도 있 을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목히 日本語 에서는 가 정과 否 定의 의미 롭 표 현 하기 위 해 서 이 형 태가 자 주 사 용된 다. 그러나 정의상 행 위나 동작의 시간은 중요하지 않 다. 두번째 접미사는 몽구스 祖語 * -r f-로 재구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위에 말한 것과 대조되는 단 하나의 動 名 詞 verbal noun 물 형 성한다. 첫번째 * -r a- 와는 목 히 다음과 갇은 정 에서 다르다. 두번째 접 미사는 원 래의 動 詞 가 의미하는 동작이 현 재 행 해지고 있는 혹 은 그 의미구성의 중요한 요소로서 적어도 現在라는 개념이 있기 때문이다(이 렇 게 형 성된 動詞 形온 몽구스 語 의 소위 現在名 詞 nomen pra esens 이 다) . 몽구스 語 에 목 유한 이 動詞形 成 法 은 日 本語 에서 도 ::z. 흔 적 을 찾 아볼 수 있다. 原始 몽 구스 語 에서 이어받았다는 사실에 의해서 日 本語 자 체 만 으로는 해명 할 수 없었던 형태와 그 의미 를 역사적으로실명 할 수있다. 예 물들 면, 알타이 祖語 의 動詞 * a- 있다”가 日本 語 에서는 역사적으로 動 詞派 生名 詞 인 형 태로 나타나는데, 이 형태는 두 접미사 물 보여주고 있 댜 두번 째 접 미사 를 가진 * ii-rf-가 日 本語 의 ar i 인데 이것은 정 확 히 ” 存在 ”의 의미 윤 가진 動詞派 生名 詞 이다. 한 편 같은 語根 * a- 와 첫번째 접 미사에 의한 *a - ra- 는 日 本語 ara-인 데 이 動詞 形은 準條 件 的 假 定 (araba) , 否定 (a r azu) , 그밖에 몇 가지 목 수한 표현에 사용된다. 마치 a 本 語 ari가 풍 구스 語 의 現在名 詞를 이어받은 것과 갈이 日本 語 文法의

소위 未然形인 ara 는 몽구스 語 의 慣 用名 詞를 이어받은 것이다. 때로는 단일 動 詞語 根이 日本 語 에서 두 개의 다른 偵用名詞形으로 나 타나기 도 한다. 이 것은 접 미 사 *-r a-의 *-r -와 그 動詞語 根의 子 音 이 서 로 다른 두 가지 형의 同化作用을 하기 때문이다. 예 물 들 면, 動 詞語 根 sak- 피 다”에 는 sakura 벗꽃라는 名詞 와 saka-(sakazt t- 피 지 않다에 보이는 것 과 갇은 )라는 未然形 두 형을 볼 수 있다. 이 sakura 와 salw-양 쪽에 둥 구스 語 의 * - ra- 가 계승되어 있 는 데, 두 형 의 다 른 音韻 변화의 결 과 sakura 에 는 s a k a- 보다 더 확실 한 형 태 로 그 접 미사가 남아 있다. saka - 라 는 動詞 形 은 초 기 의 *sa k-ra-라 는 형 태 가 뒤 에 수 축한 것 이 다. 갇 은 관 계 는 maku ra 갸 t 와 動詞形 ,naka - 의 두 낱말 에 도 보인 다. 양자 는 動詞 語 根 ,nak- 베 개 로 베다와 관계가 있다. 때로는 日 本語 가 뭉구 스 語 에서 이어 받은 이 두 * -ra- 에 의 한 動詞派生名詞 가 외견상 동일한 · 낱말처 럼 변 화 하기 도 한 다. 예 를 들면 , 11ar- 소 리 를- 내 다 는 *n ar-ra-에 서 독립된 動 洞 形 11ara - 와 방 구 를 의미 하는 動詞派生名詞 ?Iara 를 형 성 한 다. 또 古 代 日本 語 의 Fug u r i 衆 丸와 Fukura 부 풀 어 오른 곳, 팽 창한 것도 홍 미가 있다. 이 양자 는 둥 구스 語 起源 의 動詞派生 名 詞를 형 성하는 두 접 미사에 의 해서 動詞語根 Fuk- 부 풀 게 하다, 불 다(吹)”에서 형 성된 것이다. 이러한 자료에 비추어 봅 때, 여기서 지적해 두어야 할 특 히 중요한 일이 있다. 그것은 日 本語 의 形 熊論 과 그 알타이 起源 의 言 語 的 중거가 없다고 할 지라도 이것과는 다 른 이유에 의해서 다음과 갇이 믿어지는 것 이다. 죽, 알타이 祖語몰 사용하던 사 회 집단이 中央아시아의 제 2 의 原

住地로 이동한 뒤, 알타이族의 두번 째 대이동에서 첫 발을 내디딘 것은 뒤에 최초로 등 구스 語률 사용하는 사람이 된 알타이祖 語 공동체의 내부 집단이었다는 것이다. 사실상 뭉 구스 語률 사용하는 사람들이 최초로 이 동하기 시작했 을 때는, 古代 中央아시아의 民族學 的 分布 圖를 혼란시킨 何奴族 의 이동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고 믿어진다. 그 句 奴 族 의 이동 이 원인이 되어 나머지 알타이 族 이 그 제 2 의 原 住地에서 분산한 것으 로 생각된다• 이것이 의미하 는 것은, 몽 구스 語 화 자 들 -~정 확 히는 몽 구스 語를 말 하는 사람들의 칙집 先 祖둘 __이 제 2 의 原 住地 룹 떠난 최초의 알타이 族 下位집단이라는 것이다(물론 뒤에 좀 더 자세하게 설명 할 때 강조 하겠지만, 그둘이 최초에 原 住地 를 떠난 것이 한 번 뿐 이었다는 것을 의

미하는 것은 아니다. 동일하거나 혹은 서로 밀집한 관계에 있던 집단~ 이 계속해서 분열했고 또 천천히 이동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들은 최초로 原住地를 떠났을 뿐만 아니라, 최종적으로는 다론 알타이族의 집 단 이상으로 첫 출발접 에서 먼 곳으로 이동한 것이다-다만 日本人 과 한국人의 先祖는 둥구스族보다 더 먼 곳까지 이동 했지만 . 日本人과 한국人의 先祖 중에서 중요한 부분은 몽구스族이 최초로 이동 했을 때와 때 를 갇이하여 알타이族의 原住地몰 떠났을 가능성이 높다. 日 本 人과한 국人은 최종적으로 몽구스語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정착한 지역보다 제 2 의 原住地에서 더 먼 곳에 정착한 것이다. 몽구스語를 사용하던 사람들의 先祖-그리고 그들과 동행했던 다른 집단-가 일단 제 2 의 原住地룹 떠나자 알타이祖語사회의 나머지 사 람들과 단절되었고 그들의 힘겨운 여행은 용이한 것이 아니었다. 또 여 행을 시작한 사람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많은 사 람들이 죽고, ::z. 여정에서 새로 태어난 사람 들로 대치되었다. 최초 原 住地 를 떠났을 때부터 최종적으로 이들이 새로운 거주지에 도착하기까 지에는 여러 세대를 거쳤을 것이다• 그리하여 北아시아 멀리 그리고 太 . 平洋의 海岸과 성으로 훈 어지게 되었다. 中央아시아의 제 2 의 原住地에서 알타이語族이 최초의 큰 이동 을 하 는 데 필요했던 긴 세월은 유념해야 할 중요한 요인이다. 言語는 대단 히 느리게 변화하지만 역사 를 통해서 일어난다. 이 거창한 대이동에 많 온 시간이 걸리면 걸릴수록 여기 관여한 사람들의 言語 또한 크게 변화 했을 가능성이 높다. 최초에 이들 화자들이 알타이祖語사회에서 분열했 을 때, 이미 크건 작전 ::z. 공통 알타이祖 語 에 있던 어떤 특정한 言語 변 종윤 선택했을 것이다. 이렇게 한 변종을 선택함으로서 알타이族의 다 론 인접인에게서 言語 的으로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에 일어난 것은, 다소 과장해서 표현한다면, 逆行할 수 없는 이 동의 여행이라고 부를 수 있다. 몽구스語의 화자들이 일단 ::z. 이동의 여 행길에 오르게 되고 다른 알타이族의 공동집단에서 완전히 분리되면, 言 語사용에 관해서 공동된 기준에 맞추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어진다. 다 른 알타이語 화자둘과 사회적으로 협력할 필요가 없어진다. 어떤 낱말 올 선택해서 사용하건, 혹은 어떤 낱말에 대해서 가능한 여러 발음 중 에서 어느것을 사용하건 이미 문제가 되지 않는다. ::z. 여행에 가남한 몽구스語 화자들이 서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이해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제 2 의 原住地로부터의 이동이 오래 걸릴수록 전에 다른 알타이族과 의 관계를 분리하는 원인이 된 言語 차이가 더욱 뚜렷해졌다. 그 이동의 여행길에서, 알타이族의 原住地에서의 生活 경험이 전혀 없는 世代가 계 속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한 사람들은 자기들이 모르는 낱말을 사용한 다거 나 또는 語形 이 나 발음이 다른 方 言 을 사용하는 다른 알타이 族과 집 촉하는 문제도 없어졌다. 몽구 스 語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中央아시아에 서 최종적으로 아시아大 陸 의 東北 海岸지대 까지 아동하는 사이, 그 집 단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z. 여행 도중에 완전하게 그 言語률 사용하는 사 람 이 되기 메문에 이 새로운 집단사회의 구성인이 알게 되는 유일한· 言語사회는 자기들과 갇 이 이동하는 그 言語 사회이었다. 그렇지만 言語 的, 社會的 환 경에서 이 집단은 머지 않아 원래는 공동된 알타이祖語의 한 변 종이었 으나 제 2 의 原住 地에 남은 사람들의 言語 와는 대단히 다른 ­ 言語룹 사용하게 되었음 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附 言 할 필요도 없으 나, 여기서 〈머지 않아〉라는 의미는 상대적인 의미로의 시간의 길이라 고 이 해되 어야 한다. 절대적인 시간으로 말한다면, 그 과정은 아마도 ::z. 이동 자 체 만큼이나 대단히 오랜 시간이 걷렀어야 할 것이다). 이 몽구스祖語 사회-~알타이族의 제 2 의 原住地에서 최초로 이동하­ 기 시작한 집단을 이 렇게 부른다-는 인접한 다론 알타이族과 떨어져 서 이동하면서 여러 地形웅 몽과했다. 이 몽구스祖語사회는 그들의 역 사에서 오랫동안 타이가 Ta ig a 라고 부르는 시배리아 일대의 유목민~ 로 생 활을 영위한 것 같다 . 타이가라고 하는 것은 러시아 語 로 시베리아 에 있는 濕 地가 많은 針葉樹林 지대 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스텝 ste p p e * 과 문드라 t undra 지대의 사이에 있는 지역을 말한다 . 또 문드라는 北t 極 지방에 있는 경사가 완만하며 나무가 없는 平原융 가리키는 러시아 語 이다.

• s t e pp e: 東 南 유럽과 시에리아 등에 있는 大草 原 지대.

이 타이가에 거주한 등구스祖語사회의 사람들은 몇 가지 새로운 경재 적 활 동에 종사하면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는데, 목 히 수렵과 어로 그 리고 순목 사육 둥 그 지역의 자연환경과 생태에 적옹하면서 생활하게 되었다. 이 사회의 사람들은 최초 바이칼湖 邊 으로부터 아무르江 유역에 이르는 지역에 주로 살고 있었는데, 그 동안에 이러한 생활양식을 취하· 게 된 것으로 믿어진다. 그리고 다시 최후의 이동을 시작했을 때, 이러

한 기술을 계속해서 이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아시아大陸의 太平洋 海岸까 지 이동하게 되었다. 가문비나무와 전나무의 숲 그리고 광대한 濕地帶 가 있는 타이가에서 수렵과 어로와 같은 생활활동은 이들 알타이語풀 사용하던 사 람 들이 최 초에 살고 있던 原住地에서 익숙했던 생활환동과는 퍽 대조적인 것이었 다. 이것은 묵히 뭉구스語률 말하는 사 람들이 고도로 발달시킨 순록 사 육에 있어서 그러하다. 그리고 결국은 그 순록 사육을 중심으로 경제활 동을 하고 사회생활을 유지해 간 것이다. 이 뭉구스族의 아동에 있어서 自 然 地 理 的으로 독히 중요한 두 측 면이 있다. 그것은 알타이 語族 에 속하며 새로이 분열한 이 語派 내에 서 그 言 語변화의 과정을 결정했을 뿐만 아니라, 이 알타이 語族 중에서 둥 구스 語派가 왜 다른 語派-목히 뒤르크語派나 몽골語派-에 보이는 것 과 갇은 알타이祖 語 사회와 동일한 역사적 관계읍 가지고 있지 않은가를 이해하는 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祖語에 대한 관계의 차이는 그 역사적 관계의 타입의 문제가 아니라 정도의 문제이다. 그리 고 그 러한 차이가 생긴 것은 먼저 몽구스語사회가 이동하는 과정에서 당면한 地理的 自然조건 및 生態的 조건과 관계가 있다. 地理的인 두 측면에서 첫째 것은 그둘이 서서히 이동하면서 그 지역 에서 당면한 전혀 다른 自然조건 그리고 기후 또는 풍토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자기둘의 경제적인 生活울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방식이 필요해 진 것이다. __ 여기 附 言 해 둘 것은, 그러한 자극에 대해서 대 단히 찰 순옹했다는 것이다. 목히 복잡한 사회경제적 행동양식을 발전 시키면서 귀중한 순록의 사육과 이용에 중접을 두게 되었다. 이 자국에 의해서 이 새로이 분열한 사회에서 중요하고 지속적인 言 語변화가 촉진 되어 간 것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東北아시아에서 生活을 유 지하기 위해서 더욱더 기술을 개발하고, 독히 그들의 生活의 원천이 된 순복의 사육과 보호의 方法울 개발해 가면서 필연적으로 새로운 낱말과 용어, 그리고 표현이 일상 言語 生活에 들어오게 되었다. 역사적 자료가 많은 言語 의 경우에는 그 역사를 동해서 言語 의 변천 과정율 소상하게 알 수 있는데, 여기에 서로 다른 두 과정이 작용하고 있었음을 추축할 수 있다. 하나는 물질문화에 있어서의 새로운 발전에 대처하기 위해서 새로운 言 語結合, 때로는 새로운 言語형태 조차 내부적 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言語借用 으로서 대단히 중요한 또 다

론 言語 변화의 일면이다. 言語 借 用 은 세계의 어느 言 語의 역사에서도중 요한 역 할 을 한다. 여기에 관해서는 뒤에 좀더 자세히 고찰하겠지만, 言 語借用은 본 질 적으로 言語 的 모방의 목수한 경우로서 인접해 있는 집단 의 言 語 , 사 회 , 문화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는 用 語 와 표현을 모방해서 받아 들 아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말이 個 用 語 인지 그렇지 않으면 起源 的으로 관련 이 있는 공 동 적 言 語 요소 를 계승한 同源語 인지 를 구별한다 는 것은 간단 한 문 제가 아니다. 목 히 그 借用 이 옛 시기에 일어나서 옛 기 록 이 없는 경우 에는 양자의 구 별 이 어 렵 다. 다른 집단에 이미 있던 말이 모방에 의 해 서 들 어오 게 된 과 정 을 정확 하게 추 적하기 위해서는 문 헌적 기 목 이 대만히 중요하 기 때 문이다. 이 모든 것 에 의 해 서 그 집 단의 言 語 에 큰 변 화룹 가져오게 된 것을 용이하 게 상상 할 수 있다. 예 를 들 면, 한 제대 전에 자동차가 발명되고 보 급 되었 는 데 여기에 맞추 어서 수 많 은 新語 와 표현이 英 語 에 도입된 것 을 생 각 해 보 면 된 다 . 또 明治維新 이 후 급 격 한 近代化의 시기에 여러 言語 에 서 홍 수처럼 日 本 語 에 도입된 수 많 은 新語를 생각해 보면 된다. 만일 비 행기 와 우주 여 행 은 뭉온 자동차도 모르는 할 아버지보다 앞선 시 대의 사 람 과 말해 야 한 다면, 우리는 어떤 곤란에 봉착하게 될 것인가? 또 明治 이 전 의 s a mura i( 武 士)나 京都 의 궁정의 귀족이 現代日 本 人 두 사 람 이 말 하 는 것 을 듣 는다면, 얼마나 당 황할 것인가? 그렇게 옛날 사 람이 아닐지라도 전형적인 現代日本 語 회화 를 듣는다면 어느 정도 이해 할 수 있 을 지 짐작이 간다. 現代日本 語 의 회화에서 사용되는 수많은 新 語 와 用語 그리고 표 현 은 과거 2~30 年 동안 近代化의 산물로서 그리 고 나날이 높아 가는 기 술 에 대한 사 회 적 관심에 의해서 日本 語 에 도입 된 것이다. 이 가까운 주 변의 예 몰 보면, 큰 이동운 한 原始 몽구스 語 사회의 言語 가 이 집단의 모 체 가 된 사 회 의 言 語 , 죽 알타이 祖語 와 전혀 다르게 발 전한 것 을 이 해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순 록을 사육하고 이용하는사 회 경제적 文化 __· 가장 인상적이고 가장 중요한 것이건 하지만-_-는 일 상생 활 에서 일어난 수 많 은 새로운 변화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 하나하나의 새로운 사태에 대해서 새로운 낱 말과 용법이 발전한 것이다. 그러한 새로운 言 i E 형 태와 용법은 정차 수가 늘 어나고 몽구스族사회의 言 語 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이러한 言語 변 화 가 쌓이고 쌓이는 과정 에서 몽구스 語 사회는 결국 알타이 祖語 물 정접 변화시켜 가는 결과가 되

었다. 강조되어야 할 것은 그러한 변화가 접전적으로 누적된 과정이라는 참 이다. 어느 만큼 새로운 어휘가 생겨나면 그 言 語가 祖語에서 분열했 다고 불 수 있는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이 문제는 더 복잡하다. 왜냐하면, 새로운 어휘의 도입―~그 사회 내에서 생겨나든 또는 外部 에서 伯用되든-은 고립해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항상 다른 言 語 변화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言語 가 복잡하게 변화하는 과정의 어 느 시점에서 새로운 낱말이 추가되든지 혹은 다른 言語 변화가 일어나면 그 言語 사회는 분명히 분열하게 된다. 그리고 한 言語 가 다음에는 두 言 語 가 되는데 이들 두 言 語는 계몽은 갇지만 다른 言語 인 것이다. 이렇 게 변화의 오랜 누적 과정의 결과, 言語 변화가 여러 충 으로 쌓이고 쌓여 서 그 몽구스語사회의 言語 는 제 2 의 原住地에 남은 다 른 알타이語 화 자들과는 서로 말이 몽하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분열한 새 집단의 言語 는 원래의 알타이祖 語 와 친근관계가 있 다는 뜻에서 역시 알타이 語 이다. 그것은 알타이 祖語 의 후기에 변화한형 태인 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가 더 커지고 복잡해진 결과, 갇은 사회집 단 내에서 커뮤니케이선에 지장이 생기고 드디어는 의사소동이 전혀 불 가능하게 되었다. 이 시접부터 몽구스語와 알타이祖語와의 관계는 다만 역사적 사실이 되어 버리고 둥구스諸語의 起源만이 문제가 되기에 이돈­ 다. 뭉구스語의 화자들이 모체인 알타이祖語사회에서 일찍 분열한것과관 련해서 대단히 중요한 生活의 두 측면 중 두번째 것은, 몽구스族 집단 이 이동하면서 동과한 지역을 다시 되돌아 이동할 수 없었던 접이다. 束 北으로 이동하면서 칙면한 地理的조건은 다른 중요 집단, 목 히 뒤르크 族과 몽골族이 조금 뒤에 中央아시아의 제 2 의 原住地를 떠나 이동하면 서 동과한 지역의 自然的 조건과는 전혀 달랐다. 이것과 관련해서 〈되 돌아 이동할 수 없다〉는 뜻은 몽구스語의 화자들이 놓인 地理的 조건 때 문에 제 2 의 原住地에 납온 알타이族의 친척들과 커뮤니케이선이 불가 능해졌다는 것이다. 이동중에 몽구스語 화자들 앞에 가로놓인 山과 숲 그리고 광대한 濕 地帶는 여간 힘둘고 어려운 곳이 아니었다. 여행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자가 생기고 경재적 자원을 잃기도 했다. 미친 사람이 아니고 서는 한 발자욱이라도 뒤돌아가려고는 감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따

라서 地形的조건과 自然的 조건 때문에 되돌아갇 수 없는 여행이 된 것이다. 둥구스祖語의 화자들은 일단 이동하기 시작하면, 앞으로만 진 군하고 돌아실 수 없었고 한 발자욱이라도 왔다갔다 할 수 없었던 것 이다. 이와 유사한 예는 그렇게 멀리 역사를 거술러올라가지 않아도 봉 수 있다. 美合衆國 束部의 居住地를 떠난 개척자들도 같은 험한 곳을 동과했던 것이다. 그들 앞에도 山과 숲과 다른 自然조건이 가로놓이고 큰 장애가 되었다. 가능하면 극복할 수 있었으나 두 번 다시 도전할 수 는 없을 만큼 가혹한 것이었다. 東北 아시아의 自然的 地理조건 때문에 둥구스語의 화자들이 한 方向

으로만 이동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은 言語 에 대해서도 분명히 중요한 뜻이 있다. 만일 이 알타이族의 일파가 原住地에 납은 사람들과 밀집한, 적어도 적당한 커뮤니케이선이 가능한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 있었다면 ―혹은 수 세대 뒤에도 왕래하는 길이 열려 있어서 그러한 커뮤니케 이선이 가능했더라면一·―둥구스諸語의 言 語변화는 다른 알타이諸語와 비교해서 최소한도로 억제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경우, 몽구스諸語는 알 타이語 가운데서 다소 목수한 言語 로 납아 있겠지만, 다른 알타이 諸語 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 늘날 뒤르크語와 몽골語라 불리우는 語派 의 先祖또한 뒤에 제 3 의 原住地에서 이동하기 시작하는데, 그들은 다른 方向으로 이동을 시작했 다. 그들의 이동에서는 몽구스語 화자둘이 만난 것과 7같 은 험난한 自然 的 조건은 없었다. 뮈르크語와 몽골흡표의 화자들은原住地에서 대체로束 쪽 혹은 束南쪽 또는 다른 方向으로도 이동했는데, 일반적으로 자기들 이 익숙했던 곳과 다르지 않은 지역으로 이동해 갔다. 그것은 束北으로 향한 사람들이 만난 것과 같은 험난한 곳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이들 집단도 일단 이동을 시작하면, 그것은 되돌아갈 수 없는 한 方向으로 만 이동하는 것이었다. 가장 이른 단계의 알타이祖語에 遊牧하다문 의미하는 한 쌍의 同源 語 ( 雙語 , double t)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어 휘 의 중거가 있다. 이들 날 말은 후기의 여러 言語 에서 意味와 形態가 변화 했 음을 보여줄 뿐만 아 니라, 그 의미를 보면 가장 이론 알타이族의 이동의 · 성격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알타이祖語의 두 語根 * ne g u- 와 * nu g-이 다. *nug -은 보통 후기의 言語 에서는 2 차적 動詞語幹派生 정미사를 동

반하고 때 로는 語末 의 *g -가 무성 화하여 11ukte - 와 같은 형 태 로 나타난 다. 또 語末音이 뒤 바뀌 어 서 ( 音韻轉位 ) nulg' i-와 갇은 형 태 로 나타나기 도 한다. 이들 祖語의 語根은 이동하다, 이주하다, 이곳저곳으로 居住 地를 바꾸다 를 의미했다. 후기의 각 言語 에서는 이들 두 語根 중 어느 하나에 의해서 낱말을 형성했는데, 몽골語에서는 nc gii- 遊 牧하다, 牧 草地를 이동하다”이고, 만주語에서는 11eo- 放浪하다, 집에서 나와 放 浪하다”이다. 또 몽구스語 의 에벤키方 言 에는 121dg T - 遊 牧하다, nu!g tll- tgjg- 항상 遊 牧하다”와 같은 낱말이 있 다. 뒤 르크 語에 는 여 기 대 웅하 ­ 는 낱말로서 中期뒤르크語 j oll- 오르다, 울라가다, 現代뒤르크語의 名 詞 y oku5 오름, 울라감가 있다. 그러나 한국 語 와 日本語에서 이 語根의 원래의 의 미가 발전한 것은 목 · 히 흥미롭다. 이 原始알타이 i검 의 語根에 대응해서 日 本語에는 두 낱밀­ 이 있다. 죽 nig -c - 상대방의 험이나 영향에서 달아나다와 nog -c:‘ 도망 가다”이다. 한편 한국語에는 두번째 알타이祖語의 語根과 같은 語源 와 動詞 noh-” 놓다〔=놓아주다J''가 있다. 이 動詞가 한국 ig 의 mok.i- (동물 을)기르다와 더불어 現代한국語의 合成動詞 nolz.a mok. i-놓아 기르다 . 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炫味변화가 이 문재 전체에 관련이 있 는 것을 알 수 있다. 힘겨운 여행과 이주에 관한 이들 어휘의 중거에 의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알타이族온 이동중에 때로는 힘센 적에게서 달아나 야 했고 위험한 곳에서 도망쳐야 했을 것이다(日 本語의 同源語가 강조 하고 있다). 그러나 보동은 단지 居住地를바꾸고牧草地를 바꾸었다(日 本語에는 遊牧한다는 의미가 없으나 .:z. 의미가 알타이祖語의 중십적 의 미였다). 그러나 뒤르크語의 예 를 보면, 도피한다는 동작이 低地에서 만 난 적에게서 도망친다는 것과 관계가 있고 그리고 이둘이 높은 산악지 대로 피난하여 문계룹 해결하려고 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한 地 理 的 조건이 피난하는 사 람들 에게 보다 안정성 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이 이미 자세히 설명한 도피와 이주, 한국語의 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의 의 를 부가한다. 그러한 모든 이주의 계기 문 이루는 중요한 이유 였던 한 요인온 비교적 안전하게 자기들의 가 축을 방목할 수 있는 장소 몰 찾 는 것이었다. 이미 한국語의 意味발전 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여기서는 정착 하여 농업경제로 바뀌었던가 혹은 자기들의 가축융 방목하는 목표에 도 달한 집단을 불 수 있다. 그들은 적의 침입에 대한 두려움 없이 안전하

게 방목할수있게 된 것이다. 한편 약간의 사람들은 때로는 · 제 2 의 原住地에 돌아가서 알타이 住民 ` 둘 사이에서 생활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 原住地가 아직도 있 었고 그 住民둘이 서서히 이동하기 시작하기 이전의 일이다. 이러한 산 발적인 왕복이 바록 한 세대에서만 반복되었다거나 혹은 각 여행 사이 에 자주 있었다고 할지라도, 뒤르크 語 派나 몽골 語 派 동 다른 語 派둘은 뭉구스語派보다 더 밀집한 言語 的 접 촉 을 가졌다. 그렇게 왔다 갔 다하 는 대는 엄청난 노력을 요했읍 것이고 또 귀중한 물자를 소비 했을 것인대 왜 그러한 현 상이 일어났는지 그 이유는 추측 ­ 해 볼 수밖 에 도리가 없다. 그 물자의 적지않은 부분은 그 사회가 공급 · 한 귀중한 식 량 중 의 일부 풀 용의주도하게 비축한 것일는지도 모른다. 주기적으로 행해진 어떤 의식이 있었고 여기 참가하기 위해서 전에 살 ­ 던 居住地에 정기적 으 로 돌 아오는 일이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 러한 일은 추축 에 지나지 않는다. 장차 모든 알타이民族에 관한 民族誌 . 學的 그리고 民族學 的인 확실 한 자료 몰 얻게 된다면, 그런 자료는 다른 · 더 확실한 이유 를 시사 할 는지도 모른다. 아뭏든 이 왔다갔다하는 이유가 무엇이든, 이 밀집한 言語 접촉에 의 해서 새로운 낱말과 표현이 이동하는 동안에도 뒤 에 남은 原住地의 화도 자들에개도 또한 전 해 졌던 것이다. 그 새로운 낱말과 표현은 아동하는 동안에 필연적으로 생겨난 것이며, 또 도중에서 직면하게 되었던 새로 운 社會 言語댜 09, 社會 經濟學 的, 生應 學 的 환경 에 대 한 言 語的 대 웅인 것이다. 결국 둥구스族 집단의 言 語에서 일어난 것은 몽골族과 뒤르크族 집단 의 言 語에서도 일어났다. 몇 세대 뒤에는 결국 이들 집단 사이 또는 이 들 집단과 原住地에 아칙은 이동하지 않고 남은 알타이語 화자둔 사이 에 言 語에 의한 의사소몽이 어려워지고 끝내는 불가능해졌다. 그러나비 교적 뒤에 분열한 집단과 재 2 의 原住地 사이에 상당히 오랫동안 왕래 가 있었운 가능성이 있기 메문에――뒤르크族과 몽 골族 의 화자들이 롱 과한 지역의 地 理 的 목 징 을 고려하면, 그 가능성온 높다 __· 커뮤니케이 선이 단절된 것은 상당히 뒤의 일이었던 것 같다. 이 왕래가 단전된 뒤 에도 뒤르크 族 과 몽골族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계속되었다. 따라서 퉁구스語와 뒤 르크語, 몽골 語 사이 보다 뮈 르크語와 몽골 語 사이 에 더 많은 言 語的 목칭이 공유되어 왔다. 이둘 집단이 이동하면서 칙면했던

개개의 환경을 고려한다면, 그 이유는 분명하다. 이들 환경은 주로 아 지아大陸과 개개의 장소의 地理的 自然조건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었 다. 이와 같이 많은 조건과 환경을 전제로 해서 뒤의 퉁구스諸語의 특질, 득히 몽구스諸語와 다른 알타이諸語와의 과거와 현재의 친근관계에 관 한 목수성을 가정할 수 있게 된다. 또 둥구스諸語의 발전이 그 言語 의 . 화자들이 발을 들여놓은 新天地의 自然조건에 의해서 얼마나 영향을 받 았는가 하는 것도 명확하게 알 수 있게 된다. 그 화자들은 그 지역의 自 然 조건의 자극을 받고 社會經濟的으로나 文化的으로 반응했을 뿐만 아 니라, 言語 면에서도 거기에 대응하여 적응해 가는 것이 필요했 다. 이 반응의 성질에 의해서 이들 言語 의 內的 변화가 크게 결정되고 , 그 결 과 여러 목수한 낱말과 표현 그리고 이들 言語의 현저한 독징 이 생겨났 다. 그리고 동시에 이들 言語 와 알타이祖 語 그 자체와의 궁극적 인 역사 적 관계의 성격이 형성된 것이다. 지금까지 개관한 이 들 요인을 두루 살 필 때 다음과 갇이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뭉구스諸語와 알타이祖語와의 친근관계에 대한 분명한 중거가 있지만, 그 관계는 뒤르크語나 몽골 語 갇온 다른 주요 語派 와 알타이祖語 사이에 보이는 성격과는 그 정도와 범위에 있어서 항상 다소 다른 접이 있다. 이러한 설명이 우리에게 목히 홍미가 있는 것은 물론 日本語의 起源 과 목별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言 語의 자료가 없을지라도 地理的인 떤울 고려한다면, 몽구스諸語의 이론 역사에 목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 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言語 자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그 言語 자료는 地理的 사실이 가리키는 方向과동일한方向울가 리키고 있다. 죽 日本語는 알타이諸語 중에서 특히 뭉구스諸語와 중요 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몽 구스 諸語 가 祖 語 에서 발전해 가는 각 단계 를 이해한 뒤에, 日本열도의 여러 섭에 人 問文明이 최초로 도입된 것에 관해서 현재 가지고 있는 증 거 를 가강 유 효하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文明과 더불어 이른 형태의 알타 이語-이미 〈後期의 그리고 변화된 것〉일지라도-또한 열도에 들어 온것 같다.

先史時代와 考 古 學 日本列島에 호모 사피엔스와 그 言 語 가 최초 에 유입된 시기에 관해서 «日 本의 考古學 자료 를 개관해 보면 먼저 가장 확실 하게 할 수 있는 것 이 있다. 그것은 다양한 자료 를- 정리하기 위해서 발전된 年 代체계 전체 를 과거로 더 끌 어울 릴 필 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분야의 많 은것을 알 면 알수 록 日本뿐 만 아니라 다른 아시아 지역―一특히 한국과 아시아大 陸 束北의 둥구스語回 ――에 대한 거의 모든 年代 결정 이 항상 낮게 책 정되고 있다 는 인상 을 강하게 받는다. 日本의 경우도 목 별한데 , 소급 할 수 있는 옛 시기 물 낮게 책 정하는 일 관된 경향이 있으며 그 대체적인 이유 를 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日本 의 학자 들은 , 1945 年 太平洋전쟁에서 페매한 뒤, 학문적 自由룰 누리 기 시작하 기까지에는 , 考古[' 의 자료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없었던 것 이다. 『日本古紀』의 年代 편찬에 맞추어서 전혀 비현실적이고 인위적인 엄격한 年代체계 의 윤곽이 책 정되었는데, 日本文化의 발원에 관한 자료 중 이에 맞지 않는 年 代의 중거는 어떤 것이든 인정되지 않았던 것이 사 실이다. 이 『日本간紀』에서 이용 할 수 있는 자료는, 『 古 깁닳 값의 더 어 려운 자· 료와 더불어, 紀元前 660 年 이전에 日 本 에서 일어난 것에 관해서는 아 무런 준비가 없었던 것 같다. 오늘날 알고 있는 것은, 紀元前 660 年까 지 敷 千 年 동안 日本에 호모 사피엔스가 살고 있었다는 것과 그때까지 日本의 文化와 文 U1 이 이미 성장, 발전, 발달의 중요한 시기 를 거쳤다 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실온 1930 年代에서 4o 年代초의 상당히 많 은 총명한 日本 학자들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들은 문헌비판에 관 한 서구의 方法울 충분히 알고 있었으며 또 서구에서 유사한 역사적 문 제에 관한 탐구가 어떻게 행해지는가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러 한 좁은 年代의 둘 에 의해서는 日 本 의 考 古 t担 的 자료-그 당시는 많 지도 않았지만__조차 설명 할 수 없었고 또 비판적이고 공평한 학문적 인 안목으로 읽으면 확실해 지는 초기 日本 史料에 담겨 있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단 日 本 의 독재적 군국주의자들이 그 年代를 국책적으로 결정하고 나서는, 이러한 견해 를 공표한 학자는 직 강을 잃어야 했고, 개인의 자유 물 잃어야 했으며 또 가문의 명성을 잃

어야만 했다. 1945 年 이전에는 日本역사가 紀元前 660 年부터 시작굴l­ 는 것이 아니라고 공표한다면, 不忠의 화-흥 면할수없었고 제국주의 노 선을 불신하는 것이 되고 국가에 대한 반역죄가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엄격한 사상적 동제 때문에, 학문의 자유 없이 日本 학 자들은 日本의 국가와 文明의 발달 초기에 관한 모든 자료 를 비현실적 인 좁은 시각 속에 한정시켰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I945 年 연합군 의 日本 접령에 의해서 자유로운 硏究가 보장된 뒤에도 전과 갇이 생각 하고 硏究하는 경향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습관에 젖 어 있다. 새로이 얻은 自由를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自由풀 행 사하 는 것을 배우기 는 반드시 용이 하지 는 않다. 日 本文化 발전의 중요한 단계 가 紀元前 660, 年보다 數千年 전에 이미 시작했다고 재안한다고 해서 그 학자에 게 최 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日本을 패전으로 몰 고간 독재적 국수주의자 들의 업격한 思想的 통제는 여러 조작 중에서도 가장 영속적으로 남아 · 있다. 思想과 硏究에 대한 그러한 재한이 없어진 뒤에도 오 랫동 안 日本 학 자둘은 초기 日本의 年代 를 아직도 과소평가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또. 전후에 홍수처럽 쏟아져 나온 考古序의 증 거 __ 초기 문헌의 새로운 비 판적 硏究에서 밝혀진 사실들과 더불어__ 룹 국도로 좁 은 시간의 물 에 집어넣으려고 했다. 이 年代는 뭉론 전쟁 전의 관료적으로 정해진 紀元

前 660 年처럼 제한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역시 거의 갇은 정도로 제 한되어 있었다. 적어도 모든 자료의 실제 증거가 요구하는 대단히 넓은 시간의 폭을 인정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학문의 자유를 얻고 30 年이 지난 오늘날, 그리고 日本의 역사에서 독 재적 국수주의의 시대를 모르고 자란 젊은 세대의 日本 학자의 시대가 열리면서 그러한 경향은 드디어 변하기 시작하고 있다. 日本 학자는 적 어도 이 문재에 관해서는, 硏究의 자유 문 방해해 오던 정신적인 장해에 서 벗어나기 시작하고 있다. 그것은 日本의 과거 를 自由로이 硏究하는 것을 판권으로 금지시켜 온 시대가 패전에 의해서 종식을 고한 1945 年 으로부터 상당히 뒤의 일이다. 학문적 전봉이 무엇이든? 이러한 年代 제한이나 그 영향에서 벗어나려 는 의식적인 노력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그릇된 전재 에 입각한, 그리고 찰못된 목적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自由로운 硏究에 장애가 된다는 것을 지금온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노력이 없다면 ..

지금 가지고 있는 중요한 자료의 어느 하나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 자료는 호모 사피엔스가 日本열 도에 거주한 年代문 결정 하는 대 관계가 있고, 또 日本語의 起源과 도 관계가 있다. 다음부터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전문적 인 용어-홈 피하고 , 원한다면, 단순하게 〈사 람 〉 이라고 부 을 수도 있다 . 적어도 이 시기에 생존한 것은 사람이었고 또 지금도 그러하기 때문 이다. 그러나 이 다양한 모 든 자료가 여과되어야 할 비교 적 좁은 한계가 있다는 점융 주의하도록 , 그것은 공연한 바 람일 는지 모르지만, 호모 사피엔스라는 용어가 계속 사용 된 것 이다. 사 람들은 항상 최초의 시접부터 시작하기룹 원한다. 그러나우리의 경 우에는 次 랩려 方法으로 우리가 가장 얼 리 소급할 수 있는 :::z. 시점에서 시작하 는 것이 필요하다. 한편 현재 증거가 있는 最古 단계 이전에도또嗣 한 硏究되지 않은 더 옛 단계가 납아 있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지 금의 경우, 우리가 가지고 있는 最古의 증거는 사실상 어떤 年代기준에 의할지라도 대단히 이 른 시기의 것이다. 근래 考古[상은 구석기人이 日本에 최초로 정착한 것에 관해서 접접 상 ­ 세히 고증하게 되었다. 구석기인이 아시아大 陸 에서 최초로 日本의 성에 건너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2 만 5 천년 혹은 그보다 더 이전으로 생 각되고 있다. 이것이 考古學的 硏究의 현단계에서, 日本에 있어서의 호. 모 사괴엔스-혹은 호모 사피엔스에 가까운 것-으로 인정될 수 있 는 最古 의 중거인 것이다. 日本에 있어서의 구석기인의 생존과 그 완동은, 수백에 이르는 考~ 學的 유적에 의해서 고증된다. :::z.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주목되는 것은 나가노( 長野 ) 縣 의 노지리 (野尻) i月j)¥ 에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1962~ 부터 거의 정기적으로 매년 고오하라 야스마사(鄕原保 (ft ) 敎援의 지도하 에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 있다. 이 유적에서 매년 대단히 이론시기의 주 목할 만한 중거가 발굴되고 있는데, :::z. 시기를 日本文明의 여명이라고 “ 불러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노지리 湖 의 유적은 구석기 시대의 중요한 수렵장의 흔적 으로 생각되 고 있다. 지금까지의 발굴에서 인 유 ( 혹은 原人)가 활동한 층거로서 槍 끝과 사 람 모양의 조각이 발굴되었다. 이 조각은 세계의 다른구석기 시 대 유적에서도 발굴되어 찰 알려져 있는 祭祀用 조각 혹은 渡身符 와 대 단히 유사하다. 이둘 조각은 考 古 學者둘 이 보통 구석기 시대의 비너스 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z. 용도와 의미는 물몬 오늘날 확실히 알 수 ·

없으나, 이들 비너스像은 祭祀, 무속, 종교적 대상이었다고추정하든것 이 타당할 것 같다. 또 그러한 것은 수렵이나 出産의 縱身符로 사용되 었을 가능성도 높다. 노지리湖에서 그러한 조각이 발견된 것은 그 유적 에 관해서 硏究하고 있는 考古學者둘이 〈中部府〉이 라고 보고 있는 곳에 서이다. 그 발굴 지충은 현재 대체로 2 만 5 천年 전의 시기로 추정되고 있다. 더우기 여기서 발견된 것 중에는 나우만 Nauman 코끼리라는 學 名으로 알려지고 있는 동뭉이 있다. 이 코끼리는 아시아전역에 걸쳐 구 석기人이 자주 수렵한 털이 많은 혹은 北方 맘모스와 관계가 있는 독특 한 지방적 변종이다. 그러한 구석기 시대의 중거가 日本에 존재한다는 것은 몇 가지 이유 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첫째 들어야 할 사실은, 그러한 증거는 日本文 化의 발달을 1945 年 이전에 설정한 年代的 둘 속에 한정시킬 수 없음 올 입중하는 것이다. 둘째로 중요한 것은, 이 考古穆的 자료에 의해서 日本이 일찍 아시아大陸의 文化와 文明에-~그 文化와 文明이 무엇이 든-관여했음이 입증되는 것이다. 이 접에 있어서는 다만 아시아에 한 정할것이 아니라오히려 유라시아전체에눈을돌려야한다. 그것은日 本에 있어서의 구석기 시대 인류(혹은 原人)의 활동 에 관한 증거가 아 시아의 다른 지역과 또한 유럽의 구석기 시대의 중거와 완전히 일치하 기 때문이다. 노지리湖呼에 있는 수렵지 유적의 소위 中部府의 年代가 , 위에서 설 명한 바와 같이 , 지금으로부터 약 2 만 5 천年 전이었다면, 다음에는 日 本의 구석기 시대 연대와 유럽의 구석기 시대 연대물 관계지을 수 있다. 오늘날 日本에서 나온 중거에 의해서 밝혀진 구석기人의 활동은 유럽 쪽 의 후기 구석기 시대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 차이룰 제외한다면, 발굴 된 것에는 목별히 중요한 차이가 거의 없다. 아시아大陸에서 日本에 건 너온 구석기 시대의 수렵인들은, 日本에 남아 있는 유물을 보는 한, 아 시아와 유럽의 다른 구석기 사회의 사람들과 본질적인 중요한 차이가 없 다. 그 수렵인이 日本에 왔을 때도 이전과 갇이 활 동하고 갇은 동물을 수렵했다. 그리고 이동하기 전과 같은 생활을 했으며 뒤에 남은 다른구 석기人이 계속 생활해 온 方法과 거의 갇은 방식으로 생활했다. 日本의 석기 시대 文化는 大유라시아 文化의 일부이다. 그 文化는 세 계의 다른 구석기 文化와 현저히 다른 것이 없고 日本에만 목유하고 득 별한 것도 아니다. 굳이 차이을 든다면, 年代상의 차이뿐이다. 日本의

구석기 시대는 다른 곳보다 약간 늦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日本열.5:.. 의 地理的인 위치 때문이며, 또 지금도 그 렇 지만 지구의 다른 곳의 발 달과 발전 이 그 섭에 도달하기에는 다소 시간이 걸렸기 대문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중요한 점을 이 해한다면 , 日本의 구석기 시대에 관 해서 더아상 고찰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우리들이 日本語의 起源 에 관 해서 논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比設方法을 최고도로 이용한다 해 도, 구석기 시대의 사람 혹은 여기 가까운 사람들의 言語 에 관한 증거 가 전혀 없다는 것은 불행한 사실이다. 만일 지금부터 약 2 만 5 천年 전 에 노지리 湖]il'유 에서 나우만 코끼리물 추적한 구석기人이 실재로 호모 사 괴엔스 종 이었다면, 그 경우에는 (정의상) 言語률 사용하고있었다고 추 ­ 축된다 . 그러나 불행히도 그 言語 가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 있는 方法 論 도 없고 자료도 없다. 比校方 法에 정동한 歷史言語學者 의 견해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그 比 校 方 法에 의해서 도달할 수 있는 最古 시기는 후기 신석기 시대이다. :::::z. 리고 그 比校方法의 가정에 입각해서 행해지는 再t lYi 에 의해서 알 수 있 는 것은 대체로 그 시기에 言 語社會가 존재했다는 것과 그것이 어떤 성 질의 것 이었는가 하는 접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오랜 시기는 알 수 없 다. 이 후기 신석기 시대라는 시기는 印歐語族과 알타이 語族 양쪽에 해 당된다• 이 두 語族은 지금까지 歷史言語學 의 比校方法을 적용해서 많 고 적고간에 이미 再構된 바 있는 엣 언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英語, 프랑스語 또는 힌두語와 같이 문헌상 입증되는 어느 印 歐言語 도 그 起源 이 신석기 시대 후 기까지 소급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상온 소급할 수 없다. 이것은 알타이諸語에 관해서도 갇다. 이미 본 것처럼, 알타이祖語라고 부르는 言語동 일체는 __ 比設 言語學 의 과정과 方 法에 의해서만 가능한, 그리고 再 1 첩i 라는 硏究절차에 의해서만 입증 되는 것인데__후기 신석기 시대에 존재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뒤르 크 語 , 몽골語, 만주 語 또는 日本語와 갇이 문헌에 의해서 입증되는 각 言語 의 역사도 후기 신석기 시대까지 소급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 나 여기서도 그 이상의 옛 시기는 알 수 없다. 歷史 言 語學_._적어도보. 몽 의미의 그리고 比敍方法의 가정과 再構 方法에 입각한-~ 구석기 시대 文明과 신석기 시대 文明 사이의 공백을 매울 수 없다. 분명히 구 석기 시대의 言 語에 관해서는 전혀 알 수 없고 신석기 시대의 言語 에 ~ 해서는 약간만 알 수 있을 따름이다.

이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보 몽 구석기 시대와 관련해서 생각되는 사람 혹은 사람과 같은 原人 __ 하이델베르크 He i delber g人, 北京原人, 네안데르탈 Neander t hal 人, 끄 로마농 Cro-mag no n 人과 갇은 〈사람〉_一의 득칭 에 관해서 알 수 있는 것과 이들 사람이 발달시킨 文化에 관해서 알고 있는 것은, 후기 신석 기 사대에 살고 있던 사람에 관해서 알고 있는 것과 또 그 들 이 발전시 킨 文化와는 현저하개 다르다. 인류 역사에 있어 이 두 시기 사이의 차 이는 너무 크다. 그 사이에 무엇인가 일어난 것이다. 그 시기는 세계의 지역에 따라 달랐을 데지만, 대단히 중요한 무엇인가가 일어난 것이다 . 그 〈무엇〉인가가 답 話에 대해서 어떤 의미가 있었 는지는 추축조차 할 수 없다. 다만 답語 와의 관련성이 지대 했던 것만은 확실하다 . 구석기人이 진화해서 신석기人이 되었든 혹은 신석기人이 구석기人과 교체되었든__더한충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는 것이지만, 진화와 교 체의 두 과정이 몇 번이고 되 풀 이되면서 대단히 복잡한 발전운 했든 ―一 日本열도 전체에 걸쳐 신석기 文化가 퍼져 있었던 것을 증명하는 좋 은 자료가 구석기 시대의 자료보다 더 많이 발견되고 있다. 그리고 다음에 눈을 돌려야 하는 것은 그 신석기 文化와 그리고 확 인 할 수 있는 한의, 독히 言語 와의 관련성 이 다. E 本에 관한 어떤 硏究분야에서도 무언가 화재에 오르면, 반드시 용 어의 문재가 괴롭힌다. 〈 起源〉 , 〈系統〉, 〈( 言語 의) 친근관계〉 등의 용 어에 관해서는 이미 약간 언급한 바 있다. 생각한 대로, 日本의 考 古學 과 先史硏究에도 그러한 귀찮은 문제가 목히 많다. 어떤 사물을 가리키 는 데 어떤 낱말을 사용하고, 또 어떤 말이 사용될 때 그것이 실제로무 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日本 학자둘은 〈신석기 시대〉에 관해서 저술하고 논의하고 있는데, 이 용어는 新造語, 죽 日本에서 새로 만들어낸 말이다. 그것은 英語 의 Neoli thic p e ri od 문 직 역 한 것 이 다 (Neo- 新, -lith ic 石, pe rio d 시 대). 그러나 이 학술용 어의 구성요소 각각에 그런 뜻이 있다 해서, 日 本 학자가 이 용어를 사용할 때, 英語 Neo lit h i c 의 의미 뮬 반드시 정확 하게 뜻한다고 할 수 없다. 또 우리 가 英語로 Neoli thic 라 고 하는 모든 경우에 日本 학자둘이 〈신석기〉 혹은 〈신석기 시대〉라는 용어 를 사용한 다고도 할 수 없다. 日本 학자둘은 보몽 東北아시아의 考古學과 先史시 대 전반에 걸쳐 Neo lithi c 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것과 일치해서 신석기

라는 용어 를 사용한다. 東北아시 아 考古限의 Neolit hi c 라는 용어 는 다 만磨製石器와土器의 존재를 가리키는 것이지__일반 독자가 생각하는 것처럼――·음식을 만들기 위한 石製 도구의 사용운 의미하는 것은 아 니다. 日本 학자들이 〈신석기 시대〉라는 용어를 적용하고 있는 유적은 많 은 경우에, 이 용어 를 더 일반적인 뜻으로 사용하는 西洋 학자들이 硏究하 고 命名한다면, 中石器 시대라고 命名할 것이다 . 이것은 다음과 같은 것 . 을 의 미 한다. 印歐語 로 쓴 考古球 문헌에 서 사용되 는 Neolit hi c 는 日 本 語 문헌에서 사 용되는 그 직역인 〈신석기 시대〉와는 약간 다론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 그러 나 이 용어는 일본의 문 헌 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 고 있고 또 이 분 야의 학술서적이 日本語로 번역된 매도 보동 직역해서 사용 되고 있기 메문에 本간 에서도 日本 ;5 의 〈신석기〉융 Neol it h i c 로 직 역 해서 사용하기로 한다. 그러한 기계적인 직역 의 의미차이가 日本 학 계의 用例에 따라서 겁토되 어야 할 경우라도 그대로 직역하고 또 이 분 야의 日本의 용법응 따르며 日本語로 〈신석기〉 혹은 〈신석기 시대〉라고 부르는 것은 아무 런 수정 을 가하지 않고 다만 Neoli thi c 라고 했다. 이렇게 이 해할 때 , 日本의 신석기 시대는 韓半島 의 같은 시기와 대단 히 유사하다. 아주 갇거나 혹은 거의 갇온 특징이 일본에서는 韓半島 에 서보다 조금 늦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조금 늦다는 것은 분명히 이 동에 필 요한 시간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지금 구석기 시대와 그 文化 에 관한 많은 중거 자료가 계속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最古 시기의 유물과 그 다음에 계속되는 신석기 시대의 유뭉 사이에 현저한 차이가 있어서 이 두 시기 사이에 어떤 결정적인 단절 혹은 중단이 있 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 . 韓 半島에서는 신석기 文化가 네 가지 중요한 型 에 의해서 목칭 지어진 다. 한 型온 다소 거친고 장식이 없는 토기로서 平底 인 것이 목 칭이다. 이러한 종뮤는 韓半島 의 상당히 내부 지역의 신석기 유적에서 가장 많 이 발견되고 있다. 그리고 그 토기는 때때로 신석기 시대의 농기구 유 물과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 메로는 이 종류의 토기 운 사용 한 것과 관 련이 있는 사람들이 . 이미 초기의 금속성 무기나 장신구 윤 사용 한 흔 적 도 있다. 두번째 종류는 보다 세련된 고도로 발달한 형으로서 일반적으 로 색깔이 붉 고 광택이 있으며 얇다. 이 두번째 종류의 한국 신석기 토 기는 한국 밖의 지역의 모델을 原型으로 해서 여기시 그 형태가 거의 바

뀌어지지 않고 유래한 것으로 학자들은 생각하고 있다. 이것이 北方의 등구스 • 滿洲 지역――혹은 이 北方 지역을 동해서 한국에 들어왔다면 결국은 中國에서 들 어온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의 신석기 시대 토기의 새번째 형태는 두번째 형의 한 변종이라 고 할 수 있다. 두번째 종류 와 갇 이 그것은 찰 완성되고 상당히 세련된 토기로서 단단하고 튼튼한 것이다. 이 종류도 또한 아마도 北方융 경유 해서 中國文化回에서 혹은 둥구스 • i衍 ll i 루트룹 동해서 의부로부터 한 국에 들어온 것 갇다. 이런 종류의 토기가 발견되는유적에서는득히 철 기 도구가 사용된 것과도 관련해서 그것은 한국의 文化史에서 대단히 중 요하다. 그것은 특히 역사시대부터 찰 알려지고 있는 몇 가지 유명한 도 자기, 특히 新羅의 도기의 原型으로 생각되기 때문인 것이다. 이것은 또 한 日 本의 古坦時代 tu mulus pe ri od * 에 埋葬用 또는 의 식 용으로 사용된 목 수한 硬質의 토기의 직접적인 原型안 것 갇다. 日本 의 그 토기는 스 에( 須惡 ) 토기로 알려지고 있다. 日本의 어느 지역에서는 이 스에 .토 기 가-日本의 철기 시대 文化에 특 칭적인 것으로서, 日本語의 신석기 시 대라는 어려운 용어가 의미하 는 뜻의 신석기 시대룹 가리키는 것이 아 니지만 __역 사시대까지도 상당히 생산되었다.

• (ID Tumulus pe ri od 라는 용어 는 日 本의 史[J.!과 古考[}의 용 어 로는 〈 古坦時 ft〉로 번 역되어 사용되며 , 4 세기경부터 7 세기 초까지 의 짧 지만 대단히 중요한 초기 日本文化 의 한 시기 윤 가리킨다. 이 文化의 나칭은 거대하고 사치스러운 坦.Ii:윤 구 속하는 데 있 으며 • .:z. 坦丘는 보 공 泣 로 둥러싸여 있고 목유한 열쇠구멍 모양(日本 考古묘에 서는 前 方後圓形이라고 한다)윤 하고 있다. 이 古坦時ft에는 무기나 의식용의 유문에 많은 쇠 와 靑銅 이 사용되고 있는 것 윤 봅 수 있고 말( 馬 ) 윤 대단히 중히 여긴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副葬品으로 馬具 가 埃 .Ii:에서 출토되 는 것에 의 해 서 안 수 있는 사신 윤 제의한다 면, .:z. 動物울 어디에 이용했는지는 .:z.다지 분명하지 않다. 스에 토기는 輯鍾 (오지그 릇 을 만 둘 때, 발로 듄 리며 모양읍 뜨는 데 사용되는 문레)로 모양 읍 뜨고 가마 속에 서 高熱로 구어낸 얇은 독목한 로기이다 . .:z. 제조는 大 陸 의 도기제 작 기술의 도입 운 반영 하고 있다. 스에 로기는 보몽 5 세기부터 8 세기까지 재각되고 日本의 우기 古坦時代의 壇에서 많이 출토되 는대. 곡히 한국의 것과 제작기술문 아니라 .:z. 모양과의상까지도 유사한것이 많이 있다.

이들 세 가지 형의 한국 신석기 토기는 어느 것이나 학자에게 귀중하 고 흥미로운 것이지만, 日本語의 起源웅 생각할 메 특 히 중요한 것은 네 번째 종류이다. 지금까지 여러 알타이族 집단이 中央아시아의 재 2 의 原 住地에서 이른 시기에 분산한 데까지 고 찰했 기 때문에도 그 렇다 . 이 네 번째 종류는 실은 네 가지 형 가운데서 最古 의 시기의 것으로 생각되고 있으며 보동 빗살무늬토기로 불리 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빗살무늬토

기에는 독목하고 목이한 무늬가 있는데, 그 무늬는 토기를 굽기 전에 벗 살을 눌러 찍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어지고 있다. 이 토 ­ 기의 목징인 무늬가 실제로 벗을 이용해서 이루어진 것인지 아닌지는물· 론 중요하지 않다. 아 뭏 든 이 무늬는 빗과 갇온 어떤 도구에 의해서 이 루어진 것이 들림 없다. 그것은 이 무늬를 찍기 위해서 발달된 목수한도­ 구였을지도 모른다. 이 중요한 한국의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늬토기는 일반적으로 밀이 둥 글고 平行線과 점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 토기는 한국의 신석기 시대 유 적 중에서 목 히 강변을 따라서, 그리고 해안 바로 옆에서 발견된다. ::::z.. 리고 骨器, 석기와 함께 자주 나타난다. 이런 도구가 이 토기와 관련해 서 나타나는 것은, 이 토기를 만들어서 사용한 것이 기본적으로 어로에 의해서 식량을 얻은 신석기人이었음을 분명하게 말하는 것이다. 목히 중 요한 것은 최근 한국의 考古 L’ 者둘이 위에서 말한 考古學的 관련성에서 그 유적에서 출토된 이 빗살무늬토기와 유라시아의 스텝 지방에서 출 토되는 어떤 신석기 시대 토기와의 사이에 현저한 양식상의 유사접이 있 는 것에 착안한 점이다. 유라시아의 스텝 지방에서 출토된 토기도 또한 巳 한국의 토기와 같이 면밀하개 눌러 찍은 장식무늬가 있기 때문에 빗~ 무늬토기로 알려지고 있다. 알타이 語룹 사용하던 민족의 일부가 韓半 島 일대에 도달하고, 또 ::::z.. 일부가 日 本열 도에 힘겹게 이동했는데, 그들의 社會經 濟 的 활동에서 무 엇보다도 어로가 중요했던 것을 입증하는 중요한 言語 상의 중거를들~ 있냐 日本語의 動詞 i zar- 바다에서 고기를 잡다와 동일한 語源 의 날 말이 알타이 酉감욥 사회 의 한쪽 국단에 있는 뷔 르크 J E 와 또 한쪽 국단에 있 는 한국 J E 에서 발견된다. 뒤르크 語 와 한국 3E 에서는 단순히 일을 의미 한다. Uig . ys, is, Tkm. zs 와 한국語 zl 이 다. 이 들 낱말은 모두 위 에 서 든 日本 語 의 動詞와 더불어 알타이祖語의 名詞 *z/ 2 일을 반사하고 를 있다(뒤르크 :E 와 한국 語 처럼 地理的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言語 에서 낱말의 母音의 길이까지도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주목할 만한 중요한 사실이다. 뒤르크語와 한국語가 다같이 長母音융 보여주고 있다. 日本 語의 動詞는 名詞로부터의 派生形이고 원래는 * i sa -r-이었다. 이 原形에 서 *-s-는 日 本語의 石”을 의 미 하는 낱말에서 그러 했듯이 알타이 祖語 의 *h 에 대응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뒤에 日本語의 접미 A 1- ..,.-의 영향을 받고 규칙적으로 -z- 로 변화했다. 이 -r-온 이미 언급~

바와 갇이 기초가 된 名詞가 의미하는 행동이나 동작을 수행하는 것 을 의미하는 알타이祖語의 접미사 *-l- 에서 유 래한 것이다). 공동사회의 주된 식량을 바다에서 얻는다는 작업은 초기의 日本人에게 대단히 중요 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런 작업에 관해서 말할 때 다만 “일하다”을 의 미하는 낱말을 사용했던 것이다. 죽 그 사 회집단 내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던 그 동작을 수행한다는 뜻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러한 중거 를 모두 고려해서 한국 考古냐의 전문가들은 다음과 갇은 섣울 전개하고 있다. 한국의 신석기 토기 중에서 네번째 형인 빗살 무늬 토기는 紀元前 3000 年부터 100 年경 사이의 어느 시기에 幹半島 에 도입 되었다. 그리고 그 토기를 가져온 것은 北方에서 이 지역에 온 새로운 신석기人으로 그들은 江 과’ 海岸을 따라서 수럽과 어로에 중점을 둔 社 台經濟的 패턴과 더불어, 오 늘날 이 들의 존재를 종명하는 考古[상 的 중 거가 되는 이 독목한 빗살무늬토기의 재작 기술웅 전해왔다는 것 이다. 이처럽 考古쏴者둘 은, 다만 발굴에서 얻은 구체적인 층거와 또 ::r.. 유 물을 목 징짓는 文化的 맥락융 통일적 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한 것에 지나 지 않으나, 이 考古[}.\t':1 9 측 면에서의 가설이 위에서 개관한 알타 이族 재 집단의 분열과 이동에 관한 구상-그것은 전적으로 남語 사실의 증거 에 기초 를 두고 比救方法의 가정에 따라서 얻은 것이다―一과 꼭 일치 하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이 考古製的 가설은 위에서 말한 言語學 的 가설과도 다음과 갇온 정에서 일치한다. 죽 알타이諸語의 뭉 구스語派에 속하는 화자들의 先祖가 대단히 이론 시기에 분열하여 그제 2 의 原住地인 中央아시아로부터 유라시아의 東北部를 통과하여 최종적 으로 太平洋의 해안지대까지 대이동을 했다는 점이다. 이 이동은 地理 的으로나 시간상으로 큰 규모의 힘겨운 것이었고 되돌아갈 수 없는 목 칭을 지닌 대이동이었다. 이 대이동이 일어났을 때의 조건에 의해서 뭉 구스語 화자둘은 다른 알타이 語 집단보다 약간 다론 상황에 놓이개 되 었다. 그것은 가령 몽골語나 몽구스諸의 先祖의 경우와는 상당히 다른 것이었다. 이 몽구스語 화자들의 先祖돌이 그 이 동의 한계 접 인 아시 아大 陸 의 東 北 端 에 도달하기까지 그리고 독 히 太平洋 연안지대의 가 혹한 生態學的 환경 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될 때까지 그 일상생 활 , 사회경제, 생활습관, 그리고 言語 는 모두 큰 변화 뮬 입었다. 이 대부분의 변화는 새로운 환 경의 自然조건에 의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새로이 발전시킨 순록의 방

목과 더 불 어 그 들 은 곧 江이나 湖水의 풍부한 자원에 순응하고 목 히 그 들이 직면하 게 된 바다에 적응해 갔다. 束 北유라시아의 地理的 또는 기 후의 조전 때 문에 그 들 은생존을위해서 가혹한시련을겪어야 했 다. 그 러나 그 환 경은, 여기 순응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일단 습 득 하고 나면, 생존 을 유지 하는 데 도 움 이 되는 자원 을 공급하는 것이 되었다. 그 지 역의 대부분 의 땅에서 나는 것은 많 은 종류 의 이끼와 地 衣 (지의 류에 속하 는 식물의 충칭 )만이었는데 순 록 과 갇 이 사 람들 도 그것 을 영 양의 근 원 으 로 이 용 하 기 시작 했 다. 食用의 이끼와 地 衣룹 의미하는 낱 말의 言 語的 중거는 그 것을 알타이 祖語 의 한 낱말로 再tIY)할 수 있을 만 콥 충 분 한 것은 못된다 . 그러 나 후 기의 言 語 는 이 의미와 같은 공 동 된 몇 가 지 형태 설- 공유하고 있 다 __- 이 들 낱 말은 어민 관계가 있었 을 것 이지만 오 늘 날은 자세한 것옹 알 수 없다• 예 를 들 면, 中期한국 語 에 이 끼 를 의 미 하는 i s 이라 는 말 이 있다. 이것은 틀 림없이 古代한국 語 까지 소급 할 수 있 는 비교적 소 수의 中期한국 語 낱말 중의 하나이다. 다행히 도 문 헌학적 조 사 에 의해 서 古 代 新羅 의 言語 에서 i s i로 입증되기 때문이 다있(다 .『 三 國여 史기 記서 』 이卷 끼 4 ''- i 을, 列「 異傳斯 第 」 라4 고에, 표〈기 異 한斯 夫것 을或 云알 수苦 있宗 다〉)이 .라 그는러 구나절 이이 끼 를 의미하 는 엣 한국 語 의 두 낱말은 더 오래된 * ,l i s i로 소급되며 이 것은 만주 語 의 11i si . k te ”이 끼 , 地衣'’와 동일 語源 이 다. 어 말의 .ktc 는 뭉 구스 語 의 菜合 名 詞 접 미사이며, 그것은 그다지 크지 않고, 원래 하나로 뭉친, 조각조각으로 분리되면 쓸 모없는 것이 되어 버리는 것과 관련이 있는 名 詞 에 붙 는 접 미사이다. 이것은 “이끼, 地衣“ 룹 의미하는 낱말 에 확 실히 어울리는 접미사이다. 한국 語 와 몽 구스 語 의 이 들 낱말과 古代 日 本語 ,ldri i每苦 '' 및 現 代 日 本 語 ,zor i와의 ; 吾源 的 관계는 확 실하지 않으나, 이 日 本語 낱말은 古代 이 동의 역사와 北아시아의 식량 사정에 관해서 무엇인가 물 말 해 주고 있 다. 목 히 표준 日 本 語 의 'ri 와 동일한 語源 인 琉球語 의 낱말은 ?Iuuri 인 데, 이 nuur i의 의미는 海苦 가 아니라 이끼라는 것 윤 고려 해 야 한 다. 그 들 낱말의 話源을 밝 히는 데 필 요한 中間形 윤 알 수 없어서 현 시 짐 에서는 한국 語 와 뭉구스 語 의 낱말 융 칙접 日 本語 의 낱말과 연관시킬 수 없지 만, 적 어 도 琉球語 의 1luuri 이 끼 와 日 本語 의 ’zori 海若 ”는 형 태 와 의미 면에서 상당한 역사적 변화 풀 보여주는 것 갈으며, 또 한 民族 이 오랜 이동의 역사에서 당면한 여러 生 態學 的 환 경율 반영하고 있다

고 생각된다. 중요한 것은 물론 中央아시아와 內 陸 아시아의 原住 地에 있 을 때는 알 고 있었으리라고 거의 생각되지 않는 어로기술 을 익히고 江과 바다에서 노련한 고기잡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 퉁 구스 族 의 오 랜 이동중에 살아 남은 한 집단은 더 멀리 南쪽 으로 진 행 方向 울 새로이 바꾸고 여행을 계 속했을 때, 이때는 江과 湖水와 바다에서 많은 식량 을 얻는 기술을 익 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비교적 온화한 기 후 의 韓半島 에 이르러서는 ::z. 기술을 새로이 구사했던 것이다. 그들이 진행方向을 南쪽으로 돌린 것은 다만 그 민 족 이 살 고 있던 지 역의 地理的 조건 때문이다. 그때 혹은 그보다 조금 늦게 東 北아시아와 · 日本열도 사이에 있는 좁은 해협 을 넘어서 자기 들 의 토 기 文 化와 수렵, 목히 어로에 의한 환경 이용의 기술, 그리고 무엇보다도 言語물 이 日 本의 섬에 가져온 것이다. 인간생활을 유지하는 데 적합한 新 天地 룹 찾 아서 제 2 의 알타이 原住地에서 갇라진 것이다. 이 들 초기의 뭉구스語 화자들은 두 方向 이의에는 갇 곳이 없었다. 아마도 紀 元 前 3000 年부 터 2000 年 사이에 南쪽의 韓 半島로 향한 집단과 여기서 다시 좁은 해 협을 넘어서 日本으로 향한 집단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제 2 의 原住地 를 떠난 초기의 뭉 구스 族 이 달리 갇 곳 이 없었기 때문에, 幹 半島에 들 어오고 日本열도로 건너갔다고 강조하는 것은, 그 민족이동에 대한 동기로서는 너무 단순하다. 확 실히 그러한 면이 있기는 하다. 아시아의 地理的 조건에 몰 려서 갈 곳이 없다면 한 국과 日本으로 향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적극적으로 생각한다면 이들의 이동은 새로 기다리고 있던 自 然 환경-한국과 日 本 ―~내부에 서 자기들의 활동운 적극적으로 넓혀 간 사람 들 의 이동이기도 했다. 우리둘의 日本 語 起 源 탐구 를 위한 이질적인 두 硏究가 드디어 여기서 한 정으로 일치하기 시작한다. 죽 하나는 주로 문헌으로 입증되는 알타 이 諸語 의 자료에 比 紋言語年 의 方法을 적용해서 얻은 초기 알타이民 族 의 이동에 관한 지식과, 다른 하나는 考 古 學 的 증거의 발견과 그 분석 에 의해서 얻은 지식이 한 점으로 집중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한국의 신 석기 유적에서 확인된 빗살무늬토기는, 한국에 침입한 다른 民 族 의 충 현으로 일어난 한국文化史에 있어서의 급격한 단절 혹은 변혁을 보여주 는 것인데, 이 토기는 또 日本의 신석기 시대에도 갑자기 나타난다. 여 기서도 역시 어느 일정한 文化史의 흐름이 중단되고 급격하고 현저한 변

혀이 나타난다. 日本에서는 이 빗살무늬토기 이전에 확립된 文化양식으로서 考古浮 에서 繩文토기라는 용어로 알려지고 있는 새끼무늬가 있는 토기의 文 化형식이 있다. 이 繩 文이라는 용어는 日本의 考古學 용어로서 새끼윤 눌러서 찍은 무늬를 의미한다. 이런 무늬가 있는 비교적 무겁고 두꺼운 그리고 낮은 온도로 구운 토기가 日本의 신석기 시대 敷千年에 걸쳐서 제작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거의 역사시대가 되면서 이 토기는 얇고 표 면이 매끄러운, 그리고 높은 온도로 구어낸 토기로 대치된다. 후자는 분 명히 위에서 언급한 한국 토기의 原型에서 직접 유래한것이다• 물론오 늘날 繩文 이라고 부르는 것을 日本의 신석기人이 어떤 이름으로 불렀는 지 알 수 없다. 또 자기들의 토기에 대한 어떤 독자적인 용어가 있었는 지도 알 수 없다. 繩文文化라고 부르고 있는 日本의 신석기 文化는 紀元前 5000 年보다 더 이전부터, 적어도 日本의 어떤 지역에서는 紀元前 400 年경까지 촌 재했다. 日本의 考古學과 先史學은 오랫동안 이 대단히 긴 繩文 시대를 너무도 좁은 年代의 툴 속에 넣으려는 경향이 강했다. 그것은 주로 日 本古代史에 관한 1945 年 이전의 정책에 기인하는 좋지 못한 영향인데, 이 불합리한 繩 文 시대의 年代 설정을 고집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아마 日本 학계에서 농경을 모르는 문헌기 이전의 사회를 경시하는 경 향에서 비 못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편견을 가진 학자는 日本文化의 最古시기를 수렵과 어로에 종 사하며 文字룹 갖지 않은 民族과 연결시키기가 곤란했다. 그들은 훤씬 후기에 속하는 증거에 의해서 日本文化의 위치를 정하려 하고 또 전체 적 年代의 룹을 보다 낮은 시기로 잡으려고 했다. 그리고 그 시대를 佛 敎와 관계가 있는 읽고쓸수있는 고도로 발달한 안정된 농경사회의 시 대로 끌어내리려고 했다. 야요이( 彌 生) 시대는 이러한 조건에 맞을지 라도 繩 文 시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繩文 시대와 관계 지으려면, 그 年代의 폭운 국도로 압축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日本의 학자들이 학문硏究의 自由뮬 얻고 日本古代史몰 硏究 하기 시작하면서 繩 文 시대가 시작한 시기를 더 오랜 시대로 잡아야 한 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1945 年 이후도 잠시 日本 학계에서는 繩文 시대 의 상한선을 紀元前 3000 年경으로 생각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러나 곧 紀元前 5000 年전후로 수정되었다. 그러나 이 年代설정조차도 日

本文 OO 의 발달에 관해서 모든 것을 紀元前 660 年 이후의 시기로 압축 z 하려는 독재적 국수주의 사상에 의한 것과 크게 다 물 바 없다고 할 수 있다. 日 本 의 신석기 유적의 상대적 府位-롭 고려해서- __ 죽 여러 가지 유뭉 이 발견되는 충 상호간의 관계, 이들 유 물과 그것이 발견된 유적의 年 代的 상관관계 물 고려해서-繩文文化의 유물에 대한상대적 年代몰추 정할 수 있게 되었고 전체 紀文文化로 보아 어 떤 유적 윤 전기 , 중기 , 후 기로 분류하고 있다. 繩文 시대의 발굴물의 수가 늘어나고 또 釋 文 유적에서 출 토되 는 유 물이 다양한 것이 알려지며, 출 토된 토기의 제작 기술이나 무늬에 의해 서 유적의 충위의 전후관계가 보다 확실히 알려지게 되자 , 그 3 분류 보다 더 정밀한 분류법을 고안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에 따라서 日本의 考古學者둘온실로복잡한용어체계를발전시켰다. 죽초강 기, 早期 , 前 期, 中JtlJ, 後期, 晩期라는 6 가지 구분이다. 그리고 이들 각 시기 물 전 반과 후반으로 구별해서 말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그 전체 체계는 상대 적 年代로는 때로는 혼동을 가져올 수도 있는 서로 연속성이 있는 단 계 를 차례로 늘 어놓은 것이 된다. 그리고어느유 물 이나 유적이 가령 前 期 繩 文 시대 전반 또는 繩 文 시대 초창기 후반에 속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충위 年代체계의 각 구분은 전적으로 상대적인 것이다. 그 체계의 구분이 아무리 정밀하고 또 그 분류의 원리가 아무리 정밀하 더라도 상대적인 것임에는 변함이 없다. 어느 것이 다른 것보다 오래된 것, 혹 은 다른 것은 또 다 른 것보다 더 후 기의 것이라는 것은 알 수 있 다. 그러나 여기에만 의해서는 그것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전혀 알 수 없 다. 이렇게 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대단히 귀중한 것이지만, 그러한 지 식에 입각해서 체계 전 체를 ::z.. 체계 밖의 절대年代 와 관계지으려는 것 은 무리다. 죽 무엇인가가 일어난 ::z.. 시기가 언재인지 는 전하 알 수 없 는것이다. 다 행히 放射性炭素 x4(carbon-x 4 ) 에 의 한 年代결정법 이 도입되 면서 사정온 달라지고, 繩 文 시대의 몇 가지 考古 # 자료의 절대年代릅 - 알수 있게 되었다. 이 方法은 放射性炭 素 의 규 칙적 인 감소·윤과 일정한 기간 동안에 질반씩 감소한다는 가정에 입각 해서 考古 ij! 8 ~ . 유 물 의 절대年代 를 결정 하려는 것이다. 이 方法에 의해서 文字기목이 없어서 절대年代 를 알 수 없는 지역의 考 古 學 的 유 물과 록 히 近東과 中東 등 세계의 댜

른 지역에서 발견된 유물과의 일치를 확정할 수 있다. 목히 古代 近束과 · 中東에 있어서와 갇이 대단히 이른 시기의 유물이 존재하고 또 역사적 문헌을 가지고 있는 지역의 유물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放射性炭素에 의한 年代측정법도 상대적이고 동계적인 한 수단이며, 가 령 古代의 年代나 月 日이 기록된 것을 조사하여 지난 과거의 年代풀 밝 히는 것과 갇은 절대年代 측정법 이 아님이 강조되어야 한다. 放射性炭 素에 의해서 측정된 어느 年代에도 셋 중 하나는 풀라스-마이너스의 요 인이 있다. 또 紀元前 3000 年까지 소급하면, 이 炭素 -I4 측정 법 에 의 한 年代와 이른바 曆年 (수목의 年論에 관한 硏究에서 알 수 있다)과의 사이에 700 年의 차이가 생긴다. 炭素-다에 의한 年代가 보다 젊은 것 . 이다. 수많은 方法論상의 가정과 전제를 내포한 科學的인 기술일수목 그러하지만, 炭素 -14 에 의한 측정법 에 있어서도 先史시대 硏究에 관한 그 가치를 과대평가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 자료의 한계를 이해해 두는 ­ 것이 중요하다. 이 放射性 炭;% 의 年代측칭법움 繩文 유물에 적용해 보면, 日本의 신 석기 시대의 상한이 더 과거로, 1945 年 직후의 日本 문헌에서 자주 보­ 이는 紀元前 3000 年보다 확실히 더 먼 年代로 끌어울려져야 하는 것이 곧 증명된다. 전형적인 中期 繩文 시대의 유적――위에서 말한 충위 분­ 류에서 中j비로 생각되는 유적-에서 발견된 유물에 대해서, 炭素-J 4 의 측정법은 紀元前 254o 年 전후로 소급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中 期 繩文 시대 최초의 어느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에 대해서는 실로 紀元 前 3120 年이라는 年代름 보여주었다. 여기서의 결론은 확실하다 . 죽 紀元前 3000 年이 라는 年代까지 는 繩文文化가 성 장하고 발전한 건 시 기 몰 이미 거쳤다는 것이다. 따라서 日本의 신석기 시대 전체에 대한절대 年代는 이런 사실과 관련해서 선정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日本의 신석기 시대의 상한선을 紀元前 5000 年 훤 씬 이전으 로 잡는다면, 繩 文文化의 건 발전 시기에 맞는 시간의 폭운 겨우 얻게 된다. 그 시기는 炭素-J 4 年代측정법에 의해서 분명해진 中期 繩文 시 대에 선행하는 것이었다고 가정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절대年代 에 의해서, 大陸의 빗살무늬토기를 日本에 가져온 사람둘이-_-알타 이 語 사회의 몽 구스族 집단으로 생각된다-日本의 신석기 시대에 갑 자기 나타나서 그때까지의 文化의 흐름을 단절한 시기는 繩文 시대 中 期 또는 다른 곳에서는 中期 이 후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갑다. 이 서

기는 대체로 紀元前 3000 年에서 2000 年 사이의 千年 초기이다. 이 빗살무늬토기의 제작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갑자기 침입했기 때문 에, 繩文文化를 가진 사람들의 오랜 신석기 文化가 중단되고 새로운 목 유한 文化와 또 그들의 言 語(물론 그 직접적인 구체적 증거는 없지만) 가 나타났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러한 침입에 의해서 繩文文化가 단 결되는 대표적인 증거로서 지리적으로 중요한 두 지접을 둘 수 있다. 이들 두 장소 중에서 첫번째 것이 보다 옛 시기의 것이다. 현재의 九 州, 구마모도(熊本)縣에 있는 소바다(曾畑)貝 塚 이 그것이다. 여기서는 아시아大陸, 득히 韓半島의 빗살무늬토기와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을 보 여주는 인상적인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되어 주목되는데, 韓半島와 九州 가 바다를 사이에 두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을 생각하면 이상할 것 · 이 없다. 曾畑 유적에서 발견된 이 토기를 충위 면에서 불 메, 상대적 年代가 繩文 시대 제 3 기의 말엽에 위치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曾 畑貝塚에서 출토된 이 토기의 상대적 年代는 紀元前 4000 年부터 3000 年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하는 것이 된다. 千年은 더 소급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런데 J. 에드위드 키더 J. Edward K i dder 에 의하면, 침입자 예 의해서 도입된 曾畑貝塚에서 출토된 빗살무늬토기의 年代는 紀元前 · 5000 年 전후가 사실에 가까울 것이라 한다. 키더 敎授는 20 年 이상 직 집 繩文 시대 유적과 유물을 硏究하였고, 그의 硏究가 계기가 되어 繩

文 유적에서 필요한 자료를 얻어 그 炭素 -14 年代측정에 전념한 연구가 도 적지 않다. 여기에는 아직도 몇 가지 미해결의 문제가 있는 것은 분 명하지만, 위에서 지적한 기본적 경향, 죽 日本의 신석기 시대에 관해 저__실온 日本의 先史시대 어느 부분에 대해서도 그러하지만-많 온 것을 알게 될수록 절대年代를 과거로 더 끌어울릴 필요가 있는 구체 적인 실례의 하나를 여기서도 불 수 있다. 미해결의 문제는 독자도 이미 주목했을 것이지만, 曾畑 유적의 빗살 무늬토기가 한국의 갇은 토기의 충현보다 상당히 이른 시기에―一아마 도 千年 이상 이전에-나타난다는 것과 관계가 있다. 이것은 이상하 고 분명히 年代的으로 작은 문재가 아니다• 아무리 先史시대의 한계 넓게 잡고 그 안에서 생각하더라도 그렇다. 그러나이 절대年代의 모 순은 사실적이라기보다는 표면적인 것입이 거의 확실하다. 이 모순온 日本축의 年代와 한국축의 年代 사이에 보이는 것으로 다음과 같은 것 율·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日本에서는 전체 신석기 시대의 年代가 조

정되고 있는 중이다. 그것은 炭素-J 4 측정법과 더불어 이미 확정된 자 료를 새 체계에 맞추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年代체계보다 더 넓은 시 간폭을 고려할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에서는 불행히도 日本에서 지금 炭素-다에 의해서 측정하는 것과 같은 전대年 代에 관한 확고한 자료가 아직 없다. 바꾸어 말하면, 日本의 考古母 자료에 의해서 확립된 年代가 한국의 年代체계보다 더 정확할 가능성이 늪고, 또 장차 한국 자료에서 더 많 온 것을 알게 된다면 , 현재 인정되고 있는 한국의 신석기 시대 年代 의 태반을 과거로 더 끌어윤려서 조정할 필요 가 있 을 가능성도 있다. 이것 은 이미 日本에 관해서 언급한 것과 갇다 . 또 한국의 학자들도 日本의 학자와 같이 先史시대의 年代체계에 관해서 그 시간적 폭을 좁 게 보 는 경향에서 아 직 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한국은 I945 年까지 日 本 의 식민지였다. 그리고 日本의 식민지 동치에서 해방 되면서 한국의 학자 들 은 그 古代史 硏究룹, 득 히 最古 시기에 관해서는 거의 無에서부터 시작해야만 했 다. 한국이 日本의 식민지였던 한, 日本 의 官學的 물 에 맞지 않는 한국의 중거는 공적으로 도저히 승인받지 못 했다. 이러한 사정은 日本 本島 에서도 같았다. 日本의 考古學者와 같이 한국의 考古學者들 도 학문의 自由를 얻고 나서는 30 年이라는 짧은 기 간 동안에 괄목할 만한 발전을 거듭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日本에서와 같이 종래의 생각과 점근方法을 극복하기가 어려웠다. 록 히 양국에서는 아칙도 考古[상 이 나 여기 관련이 있는 硏究에서 기조 뮬 결정하는 것은 대 개 구세대의 학자들이다. 한국 先史시대의 발전단계를 해명하는 데 있어서 硏究 발전운 방해 하고 있는 또 다른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韓半島 의 현재 의 정치 적 상황으로서 목히 나라가 南과 北으로 분단되 어 있는 것과 관련이 있 다. 많 은 중요한 考古穆的 유적이 北 §? 에 있는데, 古代한국의 文化와文 明의 발달에 관한 年代욜 수정하고 이해하는 데 대단히 유익한 유물을 여기서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日本이나 西洋 의 학자뿐 아니라 한국의 학자들조차도 그 유적에는 전혀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학자둘의 자유로운 왕래가 허용되는 정치적 긴장의 완 화와 출판 의 자유 그리고 南 北 韓 사이 또는 韓半島 전체와 세계의 다 른 곳과의 자료의 교 환 은 학계의 가장 큰 관심사일 것이다. 이 렇 게 되면 한 국의 신석기 시대의 발달에 관한 그 질대年代뮬 이해하는 데 급격한 발

전이 이루어지리라고 예상된다. 이것은 비단 한국에 관한 硏究만이 아 니라 日本의 古代文明 硏究에도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 학문상 필요한 정치적 완화가가까운장래에 이 두어질 칭조가 거의 없다. 日本에 빗살무늬토기를 가져온 사람들의 침 입 年代와 한국의 신석기 文化에 같은 단절이 있던 年代와의 차이는­ 그 차이는 표면적인 것이겠지만-동시에 日本측의 증거에 가까운 것 일는지도 모른다는 것만을 말해 둔다. 이러한 견해는 日本측의 年代가 炭素 -14 측정법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을 중요시한 것에 지나지 않 지만. 日本의 신석기 文化에서 빗살무늬를 가져온 사람에 의 해서 繩文토기 가 갑자기 중단된 것을 입증하는 最古의 유적은 九州에 있는 曾畑貝~ 이다(도표 2 참조). 그러나 아시아大陸에서 日本에 이 文化를 가져온 사람들이 여기 정착하게 되자――이 지역이 실제로 日本에 침입한 최초 . 의 유일한 지접이었다고 한다면, 이것은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해명해 야 할 중요한 문제이지만-그들의 영향은 비단 이 유적이나 혹은 九 · l11 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고 또 그 들 의 최초의 영향이 대단히 이론 시기에만 한정되었다고도 할 수 없다. 考古學者와 古代日本 연구가 들은, 繩文 시대의 말기에서 역사시대 초에 걸친 과도기적인 文化 시기 몰 편의상 彌生이라는 용어로 부르고 있다(彌生이라는 용어는 繩文이라 는 용어와는 달리 어떤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후기 古代日本 語에서 “春“ 혹은 한 해의 처음 기 간을 의 미하는 yay o Fi 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이 용어가 그 시기에 대한 호칭으로 선덱된 것은, 다만 考古 學에서 이 시기에 목유한 표준이 될 만한 토기를 최초로 발견한 장소가 東京 인근에 있는 彌生이라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文化的으로 日本의 彌生 시대는 아시아大陸, 목히 韓半島와 밀집한 관계가 있는것이 그목 징이다. 벼농사, 철기와 청동기의 수입과사용――뒤에는 국내에서도제 조 __그 리고 직물의 생산은 모두 彌生 文化의 목칭인데 이들은 이 시기 에 日本의 西쪽에 있는 선진 주민들과 밀집한 교류가 있었다는 생생한 중거가 되는 것이다. 日本의 考古學界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年代에 따른다면, 中 期 彌生 시대의 상대적인 시기는 紀元前 JO O 年부터 紀元後 J OO 年 사이 가 된다. 여기서도 또 이 年代몰 더 끌어울려야 한다고 생각되는 여러 이유가 있다. 역사시대에 가까와지면서 日本의 발전은 아시아大陸의 ~

//

> `、 d4 c 0 /J • 輝g;유적 •

도표 2. 曾畑 유적 ULHi ), 韓半島 의 동유의 토기 유적, 빗산무늬토기 사한 발전과 접접 밀집한 관련성을 가지게 되며 따라서 ~ 조정이 용이해질 뿐 아니라, 더 과거로 끌어울리기가 어렵게 되지만 , 역시 日 本의 彌生 시기의 年代는 더 끌어울려야 한다고 생각된다.

中期 淵生 시대의 더 정확한 절대年代가 최종적으로 제안된다고 하더 라도 아 뭏 든 日 本 의 기나이 ( 畿內 )라는 지역에서 그때까지 한결같이 일 관해서 발전해 오던 彌生文化가 빗살무늬의 출현에 의 해 서 중단된다. 幾 內는 日本의 전동적인 地名으로서 오 늘날의 용어로는, 적 어도 대 부분의 서 양인에게 는, 교또-나라 ( 京都 - 奈良) 지 방이 라고 부르는 것 이 좀 더 핀 리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기나이 지역은 日本의 역사시대 초 기에 日本文化의 중심지이었고, 또 先史 彌生 시대부터 다소라도 확실한 문 헌의 중거가 있는 시대로 넘어가는 시대에도 이 지역은 日本文化 발전 의 중십지이었다. 요컨대, 級內 는 日本文化의 역사적 증심부인 것 이다. 사실상 초기의 역사시대 를 동해서 이 지역은 日本文化의 발전과 대 단히 밀접한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日本 학계에서는 다음과 갇은 의견 이 상당히 지배적이다. 모든 日本文化의 근원은 이 지방 이었고, 日本 列 島 내의 다른 지역의 日本人의 생활과 文化의 발달은 그 유일한 중십이 었던 이 畿內 에서 뒤에 지역에 따라서 분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설 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와 갇은 견해와 날카롭게 대립하는 설 도 유력하 다. 이에 의하면, 日本文化의 근원적 중심지는 九 ) · I1 의 南部 어 단가 이었 으며 京都-奈良 지방을 포함한 모든 지역은 이 南 九 )서 에서 2 차적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 들 의 硏究에서는 日本文化의 最古 中 心地가 地 理的 으로 어 느 곳이었는가에 관한 이와 갇온 대 립하는 견해에는 주 의 할 필 요가 없 다. 그 주된 이유는, 그러한 모든 이론이 服史 답 窟廷g 의 문재를 전혀 고 려하지 않거나 혹 은 日本語의 역사와 起源 에 관한 문재를 전혀 고려하 지 않고 발전했고 지금도 그 렇 게 논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京都 - 奈良 지방과 南 九州의 어느 곳을 日本文明의 발상지로 보는 것이 타당한가에 관한 대부분의 논쟁은, 言語學 의 중거에 전 혀 입각하고 있지 않다. 그 뿐만 아니 라, 대 단히 중요한 考 古 # 의 자료 를 대 부분 무시 하고 中 國 의 史 占 에 보이는 대단히 난해하고 빈약한 구절에 의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한 구 결 이 3 새기경의 日本 本島 어단가의 地 埋 自然的 목 칭, 人口에 관한 記述 인 것은 분 명 하다(따라서 年 代가 정 확 하다면, 이들 中 國 의 古代 史料는 신석기 시대 말기의 日 本 , 혹 은 주로 의리 1 의 청동기文 化 몰 가지고 있던 초기 彌 生 시대로 넘어가는 당시의 日本울 記述 하고 있는 것이 된다). 불행 히도 日本文化의 발생지몰 京都 - 奈良 지방과 南 九州 중에 어느 쪽 으로 불 것인가에 관한 논쟁은, 머지않아 독재적 국수

주의 사상과 목히 菓겐t一系라는 天皇家의 권위를 보이기 위해서 조작된 사상에 말려들게 되었다. 독재적 국수주의자들이 날조한 이 교묘하고도 有법:한 神話는, 明治天 皇과 그 이 후 의 권력과 권위와 神들린 역할을 먼 과거로 끌 어울리려는 것으로서, 역사물 전혀 무시한 시대 착 오 적인 것이었다. 명백한 역사적 중거를 도외시한 이 神 話몰 옹호하는 대 있어서, 日本文化의 iJ古 中心 地와 그 위치철- 확정하는 것은 국수주의자들의 이데운로기에서 화급히 요구되었던 중대사였던 것이다. 그 결과 日本古代史에서 이 문재를 硏 究하는 것조차 엄격히 규재되 고 이 방면의 硏究는 학문적 自由가 없는 상황에서 최악의 탄압을 각 오하 지 않으면 硏究할 수 없게 되었다. 日本文 明의 발상지가 九 1 사인가 京都一奈良 지방인가 하는 논쟁은, 오 늘날 우리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皇室 과 天모의 옛 권위와 역할 온 우리에게는 흥미거리가 못된다. 엣날의 皇室 및 天皇의 권위와 역할 은 1867 年의 明治 維 新 이후의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는 증거가 아주 많 이 있다. 古代日本文化의 중요한 중심지가 南 九州이었다고 보는 견해는 거기서 발견된 考古 [園 的 중거와 한국 및 아시아大 陸과 의 거리물 고려한 다면, 분명하게 부정하기가 어려 운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이러한 설을 주장한다고 해서 반드시 南九 1 서와 병행해서 대단히 이론 시기에 __- 아 마도 거의 같은 엣 시기에- 京都 - 奈良 지방에도 日本文化의 중심지 가 존재했으리라는 생각을 배제 할 수만은 없다. 이와 갈은 가능성 중 에서 어느 하나만을 댁하고 다른 하나를 전적으로 고려에서 제외할 필 요는 없다. 무엇보다도 다행스러운 것은 古代中國의 문헌을 고증해야 한다는 지두한 문제에 깊이 관여할 핀 요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이 문 헌에는 言語學的 으로 유익한 자료가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고, 또한 ~ 리 들 이 갖고 있는 硏究과제인 日本語의 起源과는 거의 관계가 없는 자· 료이기 때문이다. 古代日本文化의 중심지로서의 九州와 京都-奈良 지방에서 古代人이 활동했던 중거, 이 양면을 동시에 고려해야 할 중요성은, 빗살무늬토 기의 文化가 日本에 널리 분포하고 있는 것에 관해서 이용할 수 있는 자 료가 찰 설명해 주고 있다. 목히 그 文化물 가진 사람들이 日本에 널라 분포했다는 증거에 목히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는 위에서 이미 선명한 바 있다. ::z.. 이유는 그 文化문 가진 사람둘융 알타이族의 일파로 보기 때문이다. 이 알타이語의 화자들은 큰 집단을 이두고 대단히 이론 시가

에 먼저 韓半島를 경유한 후에 日本열도로 침입했다. 그리고 알타이語 族의 뭉구스語派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알타이語룹 가져온 것이다. 적어도 이 빗살무늬토기의 文化를 가진 사람들은 九州와 京都-奈良 지방의 사람들과 갇은 계열의 사람아었던 것은 확실하다. 이 토기는 九 1 tl의 신석기 시대 유적의 중간총에 갑자기 침입한다. 그리고 여기서부 터 서서히 상당한 시간을 거쳐서 日本의 다른 지역에 이동한다. 京都­ 奈良 지방에 도달하는 것은 훤씬 뒤의 일인데 대체로 紀元前 JO O 年부 터 紀元後 J OO 年 사이의 시기-일반적인 日本의 年代와 용어로는 彌 生 시대 中期-이다. 그러나 이 年代도 더 옛 시대로 끌 어울려질 가 능성이 있다. 아뭏든 彌生文化는 대 략 西紀초에 는 日 本의 京都-奈良 지 방에 거 의 확 립되었다. 이 지역에 보이는 中期 而生文化의 考古[상 자료가 증명 하는 바와 갇이 이 지역에는 상당히 균일적인 文化가 보급되었다. 물론 지방 에 따라서는 독자적인 발전의 흔적 이 이곳저곳에 있다. 이와 같이 당시 京都-奈良 지방의 文化는 균일성을 유지하고 있으나, 더 폭넓 은 年代 에 걸친 증거를- 고려해야 할 균일성은 보다 엣 시대부터 계승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대부분의 지역에서, 繩文 에서 彌生 시대로 옮겨가는 시 대까지도 :::r.. 균일성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 갑작스런 변 화를 가져온 것이, 이 中期 彌生 시대에 갑자기 京都-奈良 지방에 침입 해 온 빗살무늬토기의 사람들이다. 이 새로운 토기는 九州의 曾畑 유적에서뿐 아니라 한국을 위시한 유 라시아의 다른 지역에서도 잘 알려지고 있는데, 京都 - 奈良 지역에서 최 초로 많이 출토된 것은 상당히 제 한된 지 역 _一야마도 (大和) 江 유역 에 서이다. 이 江은 야마도 분지에서 출발하여 가와치 (河內) 평야를 거쳐 서 大阪 洞 으로 흘러내리는 두 큰 江 중의 하나이다(또 하나는 요도 (泥)江이다). 이 빗살무늬토기를 가져온 사람들이 강변이나 해안을 따 라서 사회생활을 유지하는 경향이 있었음은 이미 설명한 바 있지만, :::r.. 침입한 곳이 河川지대였다는 점에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r.. 침입시기는 늦으나. 이에 의해서 그들의 특 유한 文化가 그때까지 균일 적인 文化형태를 보이던 京都-奈良 지방의 彌生 文化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또 다론 중거에 의해서 그 지역의 文化와 생 활 에 큰 변화가 있 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것도 빗살무늬토기를 가지고 온 사람들의 침 입에 의한 것인데, 日本語 起源울 탐색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중거가 되

는 것이다. 京都-奈良 지역에 있어서의 빗살무늬토기의 침입과 관련 이 있는 유적에서 石器가 갑자기 증가하는데, 어느 日本 考古穆者 는 이 것을 생 산의 폭발적 중가라고 표현했다• 석 기 사용의 이 폭발적 중가는 大和江과 그 유역에 가까운 곳에 한정되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다시 여기서 주의해 야 할 것은. 이 빗살무늬토기를 가져온 사람들이 자기 들의 경제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강변의 生熊限的 환경이 부여하 는 것과 밀집한 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그 환경에 익숙해졌 던 것이다. 京都-奈良 지역의 이 새 근거지에서 이들 빗살무늬토기의 文化와 文 明이 계속해 서 日本 각지에 확산한 것도 알 수 있다. 이 새로이 침입~ 文化는 문자 그대로 모든 方向으로 침두해 간 것이다. 그것은 또 최초 의 출발접으 로 보이는 方向 __ 죽 九사 1 의 방향 __ 으로 되돌아 흉 러간 것도 확실 하다. 목 히 九州의 北 部 에서는 많은 해안지대가 京都-奈良 지방의 빗살무늬토기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그동안 이 토기 文(七는 급 속도로 발전을 거듭했는데 그 발전 시기는 彌生 中J비의 후반으로 생각 된다. 빗살무늬 文化가 분명히 그 2 차적 중심지였던 京都-奈良 지역에서 九j · I1 로 대단히 빠른 속도로 다시 되 돌 아 유입했기 때문에, 考古學者둘 은 이 이동이 畿內 세력의 어떤 계획적인 침입 혹은 군사적 九州 침입 과도 관련이 있지 않은가 하고 추정했다. 그렇다면 문헌에도 언급되어 있는 바와 같은 이들 畿內 세력 혹은 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실 은 여기서 특히 문제되고 있는 빗살무늬토기를 가진 몽구스族의 직접 적인 文化的 후계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九州에 있 던 유력한 세력에 대한 침공과 京都-奈良 세력이 日本의 다른 지역으 로 확장한 것은 日本民族과 국가의 형성에 있어서 그 이후의 발전을 이 해하는 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古代日本열도에 알타이i E 몰 사용하는 사람들이 최초로 침 입한 年代와 상황에 관해서 설명했는데, 이것 을 요약하기 위해서는 이 것과 관련이 있는 몇 가지 논제와 문제에 관해서 간단히 언급해 둘 필 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여기서 설명한 것보다 더 상세하게 다루어 쳐야 할 만한 것들이다. 첫째, 日本의 先史文化에 있어서의 〈연속성〉에 관한 문제이다. 維 i文 文化 유적과 뒤의 彌生文化 양쪽에 걸쳐서, 따라서 거의 역사시대에 결

쳐서 일반적으로 완만한 변화가 보이고 역사적 변화의 한 시기에서 다 론 시기로의 변화가 서로 겹친다. 그러므로 발전 과정에서 혁신을 가쳐 오는 급격한 둔발적인 변화의 증거가 없다. 이러 한 일반적인 상황에서 빗산무늬 토기가 {i 土 Z • 5겹 生文化에 침입한 것은 예외적 이라고 하겠다. 이것은 우리들이, 이 침입과 관련이 있는 자료듄이 비교적 새로운 세대 에 직접 대 육 의 영 향 옹 받은 중 거를 반영하고 있는 것을 중요시하는 한 이유인 것이다 . 대 육 에서 유래한 것 응 증 명하는 자료도 있다. 다른 발 전단계 에서는 일반 적 인 상 황 이 있 을 따 름 아다 . 죽 어느 역사적 발전 단 계는 원 활 하게 다음 단계로 융합 되 고 年 代 구분응한선으로 업밀하게 :::z. 운 수가 없다. 동시에 대부분의 중거 를 동해 봉 때, 거주자가 중단되 지 않고, 또 강기간 변화가 없는 생환을 계속했으며, 아 울 러 그 文化型 도 일련의 성장과 발전율 되 풀 이한 것으로 해석 할 수 있다. 동시에 이 연 속 성의 패턴과 정반대되는 경우도 있다 . 이것은 다음과 7같 은 뜻 에서이다. 목히 繩 文文化의 초기 단계에는(그러나 또 日本 의 先 史시대 전체에 걷쳐서도 그러하지만) 개개의 독자적인 지방 적 목 색을 가진 많 은 유적이 있 다 . 독 히 눔라운 것은 지역 전체에 걸쳐 일정한 경 향올 보여주는 증거 가 없는 사실아다. 만일 일정한 경향이 광범위 하게 존재했다면, 많은 지방 적 변종이 없어졌웅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 다. 목히 羅 文文化의 年代충에는 많은 지방적 양식과 지 역화한 文化가 있었음 윤 보여주는 증거가 남아 있다. 그 형태를- 보면, . 별개의 독특 한 지방적 답i E 사 회 가 수많이 존재했다는 가설 을 세울 수도 있다. 뭉론 그것은 가설의 범위룹 넘지 못한다. 이미 말한 바와 갇 이 여 기서 문제삼고 있는 시기에 관해서는 言 話的 자료가 없기 때문 이다. 또 比 校 言 話學 의 方法에 의해서도 그 先史시대까지 再構울 확대 시킬 수가 없다. 이러한 文化(또한 言 語 )의 分布 패턴을 설명하려고 할 때, 가장 만족 스러운 가설은-가장 경제적으로 그 자료 융 설명하기 때문에_~대단 히 이 론 시기에 大陸에서 日本에 여러 집단이 따로따로 건너왔다고 보 는 것이다. :::Z. 시기는 빗살무늬토기 를 가지고 온 주된 침입보다 훤 씬 이전의 일로서 알타이 語몽 일체의 몽구스語派의 最 古 단계와 관련이 있 다. 日本의 구석기 시대에서 이 른 바 繩文 초창기 를 거쳐서 繩文 시대로 이 어지는 연속적인 지방적 발전을 가정하는 것도 아마 가능할 것이다. :::z..

러나 繩文 시대의 많은 중거의 分布풀, 독히 그 강한 지방적 文化의 경 향을 가장 적절하개 섣명하기 위해서는, 古代에 따로따로 日本에 도착 한 수많은 집단이 있었다고 가정하는 것이 오히려 좋을 것 갇다. 이러 한 가설은 考 古 [요 의 자료와 일치할 뿐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답 ·語 穆的 증거――日本語에서 의 중거뿐 아니라 大陸의 言語 에서의 중 거­ 와도 가장 장 관련지을 수 있다. 이러한 이유에 의 해서 옛부터 상당히 빈번히 따로따로 日本에 도착했다고 생각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렇 게 日 本에 온 사람들은 어느 먼 곳에서 왔을 것 이다. 그리고 그들이 호모 사 ­ 피엔스이었음이 확실 한데,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言語풀 사용하고 있었 을것이다. 대단히 이론 시기에 日本列島에 침입한 이 돌 집단은 알타이祖語의 어 느 옛 변 종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고또한그러했을 것이다. 그리고이 둘의 言語 는 당연히 그 原住地의 言語 와 밀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z.. 러나 여기 서 도 人 類史 상 대단히 언 시대의 言語 와 그 이동에 관해서 아 는것이 거의 없다. 뭉돈오늘날까지 직접 전해지고있는 言語 자료가없 고 따라서 어떤 층거 도 얻을 수 없기 메문이다. 그리고 또 比校方法에 의해서도 아무런 효과를 기대 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구석 기人이 그 들 의 후대 자손과 같 이 상당한 거리를 이동했으리라는 것은가 의 의심 할 여지가 없다. 구석기人이 신석기人보다 더 광범위하게 이동 했으리라고 믿어지는 이유가 있다. 구석기人은 永住地풀 마련하려고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 오히려 짐승을 쫒 으며 뒷시대 사람들보다 더 넓 은 지역을 이동 했을 것이다. 그들은 급속도로 이동하지 않았지만, ::z. 힘 겨운 여 행과 이동 에 많은 시간과 많은 정력운 아끼지 않았을 것이 확실 하다. 풀 리네시아 Pol y nes i a 에서는 여러 면에 걸쳐 신석기 文化가 技~ 면에 . 서 석기 시대 물 넘는 발달을 보여주지 않고 유럽人에 의한 탐험과 식 민지화의 시기까지 잔존했다. 이 폴 리네시아의 섭에서는 거창한 航油 H 를 시도하고, 예물 들면 古代타이티人 Th iti ans 은 하와이와 갇온 멀리 떨 어진 섭에 침입하여 정착하기도 했다. 폴 리네시아의 석기 시대 航海民 이 성공적으로 감행한 거창한 이동-그러한 航海는 역사시대까지도 행해져서 칙집 확인된다 __과 비교한다면, 유라시아大陸의 구석기人 이 유라시아를 왔다갔다 이동할 때 당연한 곤란은더 십하지 않았을 것 이다. 물론 환경에 도전하는 인간의 적옹력이 기술 발달의 수준 이상의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사회조직의 혁신, 협동 작업에 맞는 효과적인 집단의 규모을 정하는 方法, 독히 집단의 의사를 결정하는 재도를 발전시킨 기술은 古代人이 용이하게 지구물 돌아다니 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술 발달의 물적 증 거는 대부분의 경우 考古學者의 발견과 硏究에 맡겨지고, 그 때문에 사 회생활의 다른 중요한 혁신의 중요성이 경시되는 경향이 생겨났다. 이 러한 사회생활의 혁신은 불행히도 탐색할 만한 〈물적 중거〉를 납겨 주 지 않는다. 빗살무늬토기룰 가쳐온 사람들을 득히 중요시하고 또 그 文化가, 繩 文 中期 것이든 彌生 中期 것이든 혹은 九j 11 이든, 갑자기 日本 의 文明 에 침입한 의의 물 강조한 것은,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아시아大陸 목 히 한국에 있어서의 중요한 발전과 직접 관련이 있고 또 알타이族이 그 제 2 의 아시아 原住地에서 큰 분열을 시작했 을 最古 단계, 특히 原始알 타이 語몽일체 에서 몽구스語派가 분열한 것과 직접 관계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이들 알타이語의 화자들이 日本에 도 착했을 때, 거기에 는 호모 사피엔스가 있었다. 증명할 수는 없으나, 그 들 보다 더 이론 시 기에 日本에 이미 와 있었던 집단 중에 적어도 몇몇은 알타이語를- 사용 하고 있던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 古代日本文明의 발전 패턴을 설정했는데, 목히 아시아의 다 른 지역과의 접촉 면에서 고찰했다. 이 패턴은 외국으로부터의 이주와 영향의 계기적인 府位가 쌓인 것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더 간단 히 말한다면, 알타이族의 이주의 연속적인 역사충이 쌓인 것이라고 표 현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패턴이 여러모로 변화하면서 數千年에 걸쳐 계 속해서 日本의 文明과 그 발전을 목징지 었던 것이다.

大陸으로부터의 侵入에 관한 言語중거 日本語의 起源을 포괄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大陸으로부터 파상적 으로 침입해 온 침입자들의 뭉결을 고려해야 한다. 외국으로부터의 계 속적인 침입자의 물결에 대한 가장 인상적인 증거는 다름 아닌 言語 이 며 독히 그 어휘와 形態를 분석하고 比 救 하는 데서 얻을 수 있다. 다론 어떤 전제에 의해서도 日本語에 보이는 많은 현상을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그러한 현상 은 日本語에 들어온 것을 중명하는 증거와 大臨 의 言語 에 있어서의 유사한 중거를 比 校해 보지 않으면 설명할 수가 없 고 또 과거의 어느 한 시접에서 단 한 번만 도착했다거나 혹은 침입했 다고 생각한다면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인 것이다. 이 접에 관한 言 語的 중거는 국단적으로 복잡한 성격을 띠고 있으며,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한 적 절한 낱말을 몇 개만 들 어도 아마 얻는 것이 있을 것이고, 또 이 점에 관해서 比紋 言 語[흡이 제시하는 증거가 어떤 성질의 것인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먼저 우리들이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설명해 두는 것이 중요하 다. 그리하여 우리는 보고 확 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찾는 것 은 日本語 내부에 있는 言 語的 중거__여기서는 간단히 낱말의 語形이 라고 해두자-이다. 이것은 日本語가 알타이祖 語 에서 둘 이상의 역사 적 단계 를 이어받았고 또 한 言語특 징이나한요소에서 여러 역사적 발 전을 이어받았음 을 보여주는 중거가 된다. 이린 자료를 확인한 뒤에 다음과 같은 추정 아 가능하다. 現代日本語에서 그러한 상이한 발전단 계와 변화가 확인되는 것은 그것을 日本열도와 日本語에 가져온 집단이 각각 다론 물결을 타고 大陸에서 침입했기 때문이라고추정하는 것이다. 이것을 중명하는 日本語에 있어서의 내적 증거는 雙語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斐語란 한 言語 ―一여기서는 日本語-에서 형태와 의미 양면에서 밀집한 관계가 있지만 서로 다른 형태와 의미를 가진 한 쌍의 낱말을 가리키는 것이다. 알타이 諸語 의 比紋歷史音韻論 硏究에 의해서 알타이祖 語 의 子昔 * d 가 母昔 사이에 나타날 매, 그 祖語사회 내부의 지역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昔韻변화를 입었다. 그러나 많은 경우 후기의 몇몇 言語 에서는 이 子音 이 母音 사이에서 비교적 큰 변화 물 일으키지 않고 그대로 -d- 로 남아 있거나 또는 무성화하여 -t-가 되든지 혹은 유성파열음 -J~(英 語 의 jus t, j ee p의 j와 갇은)로변화했다. 예를 들면 알타이祖 話 의 낱말 * p ad,- 구 별하다, 다른 것에서 자신을 분리시키다는 Mo. aji ra- 주의하다, Go. p'iiJila- 분리 하다에 반사되 어 있으며 古代 日 本語 Fadi- r - 자기 가 납보다 못하다고 느끼다”에서 변화한 現代語 lzaj i부끄러움에 반사되고 있다. 또 알타이祖語 *g¢d ¢, g¢ d i등, (목히 신체 부분의) 후부는 Mo. ge de ... 목덜미, Ev. g~ dim uk i d.” 으로 변화하고 日本語에서는 kita 北(南

윤 기준으로 한 方位체계에서는 〈뒤〉가 되는 方向)에서 ke tsu 궁동이 로 변화하고 있다. 日 本語 의 낱말 중 -d- 와 -t-의 차이는 알타이 祖 語에 있던 차이 를 반사하 는 것이 아니라, 전 적 으로 日 本 語 내부에서 일어난 일련의 변 화 이다. 최초 에 는 * -d- 가 모 든 경 우 에 日 本語 에 서 -d-로 나타 났다. 그리고 알타이 祖語 의 낱말 의 語頭音 이 무성子 昔 일 경우에는 日本 ;E 에서 부 끄 러 움 옹 의미 하는 낱말에서와 갇 이 번 화 하지 않 고 -d- 그 대 로 이 다. 그 러 나 알타이 祖語 의 낱말 의 語頭音 이 유성 음일 경 우 에 는 kit a. ke ts u 에서와 갇 이 무성 화하 여 -t - 로 변했 다. 日 本語 의 후 기 단계 에서도 이러 한 변화에 관 해 서 고 찰하 면, 규칙 적 인 親 近관계의 예가 된 다는 확 신을 갖게 된다. 그러나 알타이 語族 의 다 른 語派 , 특 히 뒤르 크 語 派에서는 이 祖 語 의 *- d- 가 母音 사이에 있 을 때, 일련의 더 큰 음운 변화를 입는 다. 이 일 련 의 변 화 는 뒤 르크 語派 내의 역사적 관계 를 밝히는 것이어서 찰 알려 지고 있고, 또 찰 硏究되고 있으나, 이 복잡한 昔韻 변화 가 뮈르 크 語 派 이의의 후기 言 語 에서도 그 흔 적을 남겨 주고 있 는 것은잔 이 해되 지 않 고 있다. 이들 音韻 변 화 는 알타이 祖語 의 세부 사 실을 再構할 때 발 견되 는 여러 대옹관계 물 추적 하 는 데 있어서 귀중 한 실 마리 가 되는 것 이다. 뒤르크 語 의 어떤 方 言 에서는 알타이 祖語 의 *- d- 가 母 音 사이에서는, 위에 말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다 른 여러 方 言 에서는 뒤에 유성 마찰음 S-@ 꽈吾 의 th is , the m 의 th 와 비 슷한 音 ) 로 발 음되 었다. 또 다 른 方 言 에서는 * -d- 가 - y -로 변 화 하 든 지 더 구-로 변 화 한다. 이처 럽 원래 한 子 音 이었던 * -d- 가 여러 가지로 변화 했 기 때문에, 이 * -d- 가 뒤에 어 떻 게 변화했 는 가 를 기 준 으로 해 서 역사적 단계 를 정하고 또 여 러 方 言 으로 크게 분 류 하는 데 좋 은 근거가 된다. 그리하여 모든 뒤 르 크 語몰 祖語 의 *-d -가 어 떻 게 나타나 는 가에 따라서 뒤 르크 語 내의 <-y- 言 語 〉 혹 은 〈 8 기言語 〉 혹 은 〈 -F 言 語 〉로 부 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이 祖語 의 * -d - 의 여러 발전이 日 本語 에서는 어 떻 게 나 타나며 또 이 여러 가지 발전이 日 本語 내에서 확 인되는 것에 의해서 日 本 語 가 알타이祖 語를 계승한 것도 입증된다는 사실이다. 이들 言語 는 大 陸 에서 몇 개의 다론 물결-다시 말하면 계속적인 침입――에 의해서 日本에 둘어온 것이다. 이것은 다음과 갈은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알타이 祖語 의 *-d- 가 日 本 語 에서 비교적 변화하지 않고 규칙적으로 -d-또 는 -t-로 나타날 뿐 야

니라(위에 인용한 /zaji , kit a, ke t su 에서와 갇이), 또 日本語에서 이 *-d - 의 다른 두 변 화형 이 보유되고 있는 중거로서 斐語가 있기 때문이다. 이 것은 알타이 祖語 의 * -de- 에서 발전한 뒤르크語의 독칭적인 세 子音 중 두 개, 죽 -y-와 -r- 이다. 이러한 중거는 다만 역사적으로 다론 시기에 다른 사 람들에 의해서 알타이 語 의 낱말이 日本에 도입되었음을 가리키 는 것이다. 그들 낱말을 日本에 가져온 사람들이 日本에 도 착했을 때는 이미 그 言語 는 알타이祖語 의 전체 발전단계에서 2 차적인 단계에 있 었다―一이 2 차적 단계는 득히 뮈르크語派 내부에서 입중되지만, 이 日 本 語 의 증거가 보여주는 바와 갇이 결코 순수하게 뒤르크 語 내부에서 만 일어난 변화가 아니다. 그 중거룹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알타이祖 語 *p a dak 발, 끝이 라는 낱말을 이어받고 있는 몇 가지 日本 語 낱말이다. 이 낱말은 祖語 에서는 사 람 이나 동뭉 의 몸의 일부와 地形, 목- 히 江의 下流 를 가리키는 것이었다(다시 여기서 유의해야 할 중요한 것이 있다. 이 알타이語의 낱말을 발이나 다군으로 풀이하고 번역했는데, 그것은 그 낱말의 의미 가 아니라 그 의미의 대체적인 윤곽을 이해시키기 위한 몇 가지 최소. 번 역어에 지나지 않는 다. 이 단순한 원리를 이해하지 않고 言語몰 비교하 는 아마 뮤 어 들은 , 어느 言 語 에서 발'’을 의미한다고 믿어지는 낱말이 왜 다른 言 語에서는 ”江口''와 같은 의미 를 가진 낱말과 역사적으로 관계가 있는가 를 이 해할 수 없을 때가 있다• 〈 意味 〉와 〈번역〉을 혼동하면 이런 문제가 생긴다). 상당수의 규칙적인 音韻 변화에 따르면, 이 알타이祖 語 의 낱말은 다음 과 같은 후 기의 메로는 큰 변화 몰 입은 낱말에서도 추적할 수 있다. Mo. adar 꿀 河口, 江의 下流, 한국 語 pa ta k 밑바닥. (발)바닥, (河 의) 바닥, 古代뒤르크語 ada q발''. 이들 낱말은 모두 母音사이에 祖語 의 * -d- 을 유지하고 있는데, 몽골 語 와 古代뒤르크 語 의 예처럽 전혀 변 화하지 않거나 혹 은 한국어처럼 규칙적으로다만무성화하여 -t-로 변화 했 다. 그 러 나 뒤르크語派의 중요한 한 方 言 인 츄바시 Chuvach 語 에서 는 祖話 의 * -d- 가 이 낱말의 음성적 환 경에서 국단적으로 변화하여 -r~ 가 되었다. 그리고 이 변화와 더불어 다른 부분이 또한 규칙적으로 변 화 하여 츄바 시 語 에서는 ura 발이 되었는데 이것은 물론 알타이祖 語 *p a dak 과 同源語 이 다(이 츄바시 語 의 낱말에 보이 는 다론 변화, 죽 語 頭의 *p -가 소멸 하고, 母 音 *-a -가 -u-로 변화했는데 이 런 변화는 츄바

시語에서 또한 규칙적이고 예상되는 변화인 것이다). 이 츄바시語의 낱 말을 日 本語 ura 밑 바닥, 안쪽, (발) 바닥와 관계 짓 기 어 렵 지 않다. 이 日本 語 의 낱말은 古代日本語 시기부터 이러한 의미로 문헌에서 임중 되는데 여기서는 츄바시 語 에 보이는 * -d- 에서 -r- 로의 변화와 동일한변 화를 볼 수 있다. 또 다른 부분에서도 뒤르크語에 보이 는 것과 꼭 갇은 발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뭉론 이 日本語 낱말은 츄바시 語 나 혹은 다른 뒤르크語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오히려 이 낱말에 의해서 다음과 갇은 것을 알 수 있 는 접이다. 죽 알타이語派 중 뒤르크語派의 先츄바시語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형의 音韻 변화가 대 단히 이른 시기에 大陸에서 日本으로 알타이語 화자들에 의 해 서 도입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日本語 ura 밑바닥, 속는 日本 語 에서 알타이祖語의 * p adak 를 이어받은 유일한 형태가 아니다. 뒤르크 語 에 보이는 * -d- 에 서 -y-로의 초기 알타이 語 에 있어서의 音韻변화가 또 日本語 의 動詞 ay um-( 한 번에 한 걸음씩) 걷다에서도 확인된다. 이밖에 日本語에는 이 動詞와 더 불어 -r-를 가진 斐語가 있다. aruk- (일 반적 으로) 걷 다와 ar i k- i d.” 이다(現代 語 에서는 ar i k- 는 사용되지 않고 aruk- 만이 사용된 다. 平安時代에는 aruk- 는 男性에 의한 사용이 가장 많고 일면 arik - 는 女性 語 로서 사용되었다. 이런 社會 言語學 的 차이 이외에는 aruk-, ar ik - 의 意味 영역은 거의 갇았다). 日 本語 ayu m-, aruk-, arik - 는 모두 名 詞 에 서 형 성 된 動詞 (名 詞派生動 詞 )이다. 名 詞 에 알타이 語 起源의 動詞語幹形成 접미사 -m-, -k- 가 불어 서 형성된 것이다. 이들 두 접미사는 名詞에서 動詞를형성하는것인데, 알타이祖 語 에서는 약간 다른 의미 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후기의 諸言 語 나 日本 語 와 같이 祖語에서 멀리 떨어진 言語 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접미사 -k- 는 목히 많은 動詞 語 幹形成에 사용되었는데, 이미 예 를 들어 설명한 바와 갇이 이 정미사에 의해서 형성된 動詞는 “기초가 되는 名 詞 와 관계가 있거나 혹은 직접 관계가있는동작을 하다라는 의미 를 가 지고 있다. 접미사 --n 1- 은 -k- 보다 많이 사용되지 않으나, 적어도 日本 語 에서는 신체의 부분의 기능이나 활 동에 관계가 있는 動詞派生名詞문 형성하는 데 한정되어 있다. 어느 경우에는 문자 그대로 신 체 의 부분의 기능 율 표시하거나 또 어느 경우에는 추상적 혹은 감정적인 의미로 확 대되 어 사용되 기 도 한다(예 , 名 詞 kokoro 心” 에 서 動詞 kokorom- 사

도하다”가 형 성 된 다) . 여기서 논의하고 있는 세 名 詞派生 動 詞 에서 집미사 -k- 와 - IIl- 를 메어 내면, 그 기초가 된 名 詞 *ayu - , *ar u-, * ar i-가 남는다. 이 들 세 名詞는 어느 하나도 日本語 에서 독립 해 서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k- 와 ~111- 의 ’ 의 미 상의 기 능과 세 派生動詞 의 '‘걷 다 라는 意味 에 서 *ay u -, * ar t ,-, *a ri~ 는 모두 발 혹은 ( 발 )바 닥”을 의미하 는 名 詞 였다고 가정 할 수 있다. 발 혹은 ( 발 )바닥' ’ 은 본 질적 으로 步行 하는 동작과 관계가 있는 인체 의 부분이다. 日本語 ar i k- 와 aruk- 는 실제 로 ar i +ll- 와 aru+k- 로 이 루어져 있고 발 을 의미하는 名 詞 에 접 미사 -k- 가 첨 가된 것이다. 이 것은 kabu- 머리에 갇은 접미사 -k- 가 붙 여서 Jw buk- 머리 를 숙이다', . 라는 名 詞派生動詞룹 형 성 하 는 方 法 과 같 다 . 이 와 같이 動 詞 ayt UI 1-는 ay u +m-으 로 소급된 다. 그리 하여 *ay u -, *ar u-, *ar i- 는 모두 발 '’ 을 의 미 하는 名 詞 이 고 이 들 · 은 각각 알타이 祖語 *pa dak 발 의 각기 다른 역사적 발전단계 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들의 語 根이 된 名 詞 의 첫번째 형태는 祖語 의 * -d- 가 -y- 로 변화한 것이고 다음 둘 은 * -d- 가 -r- 로 변화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 ­ 세 변화형은 알타이 語 族의 뒤르크 語 派에서 갇은 낱말로 중명될 수 있는 정 확 하게 동일한 변화 형 과 대응한다. 바꾸어 말하면 다음과 7같 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죽 이들 낱말이 日 本列島에 도입되어 日本 語 에 들 어온 것은, 여러 시기에 알타이 語 몰 사 용하는 사람 들 이 서로 다른 물결을 이루고 日本에 건너온 결과라는 것 이다. 이러한 嬰語 가 존재하는 言語 的 중거에 의해서 여러 차례의 日* 침입을 상정할 수 있다. 이 침입에 의해서 알타이祖 語 내부의, 처음에 는 국부적이었던 서로 다른 변화에 직접 관계되는 몇 가지 낱말이 日本 . 語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동시에 가장 중요한 것은, 親 近관계가 있는 다른 言語 와의 比 敎 硏究에 의해서, 비로소 日本 語 ura, ay m n-, arul,-, ar i k- 동 일련의 낱말에 있어서의 상관관계를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다. 日本 語 의 言語 자료만을 硏究 해 서든 그러한 일련의 낱말융 설명할 수가 : 없다. 比 敍硏 究에 의한 중거만이 그들 낱말이 이루어진 것을 밝혀 줄수 있는 것이다. 古代日本 議 tad u, tur u 鶴 ”와 같은 豊語 도 日本에의 알타이 語 의 계속 적인 침입 물결을 말해 주는 귀중한 言語 的 중거가 된다. t adu 는 古代 ­ 日本 語 에서 詩語 로만 사용되었고 t aru 는 분명히 古代日本 語 의 國語 로서

일상용어 인데, 現代日本語 tsu ru Im 의 기초가 된 것이다. 이 두 낱말 은 뒤르크; i ,'.i의 tur (u)fza 鶴와 어단가 관계가 있다. 古代日本語에 嬰語 가 존재했음웅 신명하려면, 알타이祖語의 발전에서 상이한 지방화 단계 에 소급하는 그들의 낱말이 각각 다른 시기에 차례차례 日本에 둘어왔 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낱말을 중요한 예로서 들수 있는데, 그것은 古代日本의 식 량경재에 있어서의 역할 때문에 목히 중요한 것이다. 日本語 kur i栗”이 다. 그 語源온 위에서 말한 것처럼 알타이 祖語 의 *k ii r2- 질은 갈색에 · 소급한다. 이 音韻환경에서 日本語의 -r- 은 알타이 祖語 에서 * m 로 표기 되는 昔韻의 규칙적인 변화형이다(츄바시語 는 예외로서 -r-가 되었다). 다라서 古代日本語의 적어도 한 문헌에서이지만 lwz i 栗” 라는 변칙적인 · 이상한 형태가 기록되어 있다고 해서 놀랄 것이 없다. 이 古代日本語의 .k uz i栗”라는 낱말은 /' r i라는 낱말이 日本에 건너온 시기와는 다론 시 기에 日本에 도입된 것이다. 그리고 이 변칙적인 낱말은 알타이祖語의 다른 方 言 에서 계승된, 갇은 語源 이지만, 다른 語形 의 예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 침입의 가장 이론 물결이 언재 日本에 밀려왔는지 추축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바와 갇이, 구석기人이 어떤 種 에 속했고 또 오늘날의 인간에게 어느 정도 가까운 것이었든 아득히 먼 시대에 거주 하며 비너스像을 만들고 野尻湖呼에서 나우만 코끼리을 쫓 고 있었던 것 이 알려지고 있다. 이 구석기 시대가 시작하면서 호모 사괴엔스 種 과 관 계되는 것은 확실하다. 호모 사피엔스種은 확실히 몇 번이고 日本열도 에 건너오고 그때마다 자기둘보다 먼저 도착한 무리를 만나서 거기 정 착하게 되면 또 다른 침입이 계속되었다. 대단히 먼 시기에 이루어진 이 런 패턴은 역사시대 초기까지 계속 日本 생활의 목 징을 이루었다. 여기에 관해서 두 가지 점을- 목히 언급해 둘 필요가 있다. 하나는 有 史이전 및 역사시대 초기에 大陸에서 건너온 많은 집단과 침입자 이외 에 非알타이系의 인간, 따라서 非알타이語도 때로는 日本에 건너왔을 것이라는 가능성이다. 이 가능성은 높지만, 이둘 非알타이語의 화자들 의 수는 결코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수에 관 해 서 말한다면, 어 느 시기의 침입에 있어서도 알타이 話률 사용하는 사람둘도 결코 많지는 않았다. 다만 빗살무늬토기 를 가쳐온 사람의 최초의 물결만은 예의이 다. 그러한 非알타이語의 화자둘이 도착 죽시 알타이人의 침입자에 의

해서 조칙적으로 멸종되지 않았다면, 그들은 살아남았을 것이고 그들 의 言語 또한 어떤 형태로든 日本에 살아남았다고 추정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작은 집단이라도 그들울 전멸시킨다는 것은 인류의 역사상 옛 시기에 는 있기 어려운 가설이다. 그러한 인간의 학살이 가능해지는 것 은 흰씬 뒤의 시대, 과학기술의 시대까지 기다려야 한다. 1940 年代 유 럽에서 있었던 저 무서운 학살 사건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다음 과 같 이 추측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죽 非알타이語의 화자들이 얼마나 많이 古代日本에 왔든지 그 중 어느 집단의 일부는 日本열도에서 만난 알타이系의 집단과 대결해서 살아남았을 것이다. 따라서 또 그들 · 이 어떤 형태로든 日本 人에게 유전적 영향윤 미 천 것과 갈 이 日本語의 발전에도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침입의 뭉결 이 밀려왔든 日本 語 의 형성에서 중 요한 역 할을 한 것은 분명히 알타이語系의 言語 였다. 초기 日本의 이러 한 言語 상황은 세계의 다른 곳에서 일어난 유사한 社會 言語學 的 상황 에 대단히 가까운 것이었음이 틀 림없다. 그러한 지역에서는 문제의 사 태가 역사시대에 일어났기 때문에 문헌에 의한 중거를 불 수 있다. 침입자의 言語 가 먼저 있던 사람들의 言語몰 밀어낸 예는 많은 역사 자료에서 볼 수 있다. 또 침입한 사람들이 장기간 침입한 곳에 머무르 고, 독 히 침입자의 文化가 토착인의 文化보다 수준이 현저하게 낮을 경 우에는 정복자의 言語 가 피정복자의 言語 로 대치되는 경우도 있다. 만 주族이 中國울 지배하고 있을 동안, 사실상 만주 語 는 소멸하고 만주族 의 귀족들은 일상생활에서도 中國語룹 사용하게 된 것은 좋 은 예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정복자의 言語 가 우세하다. 그것은 다만 그들이 우 세하다는 이유에서이다. 이 렇 게 해서 로마의 병사와 이주민의 라틴 語 가 뒤에 프랑스가 된 지 역 의 古代골 語 Goli sh lang ua ge 에 대 치 하게 된다. 더 소급하면 라틴 語 자체도 원래 티베르 Tib e r 강변의 조그마한 촌락 의 首語 였으나, 이탈리 아 반도 전역 으로 확 산되 어 에트루스크 語 Etr u scan 와 갈이 그 지 방에 서 오래 사용되고 있던 다른 言語 에 대치되었다. 목히 갇은현상으로분 명한 중거물 보여주는 예는, 멕시코문 비못하여 中南美에서 볼 수 있 다. 그곳을 탐험하고 정복한 이주자들의 言語 인 스페인 語 -이것 자체 가 라틴 語 에서 변화한 한 言語 이다_ 문 그 지역에 있던 대부분의 민 족이 사용하게 되었다. 원주민의 자손 중에는 정복되기 이전의 자기들

의 言語룰 계속 사용하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자기들의 言語를 버리고. 정복자의 言語인 스페인語물 사용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 정복자의 스 페인語 자체가 또한 新j야선에서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그 변화의 양상은 모국의 스페인語와는 다른 것이었다. 죽 역사적 사실을 충분히 검토해 보면, 침입이나 정복에 의해서 토착 민의 言語를 몰아낸 경우라도, 言語 의 계동적 주류를 확 인하는 데 어 려움이 없다. 멕시코의 스패인 語 는 스페인의 스패인 語와 다르며 또 브 ­ 라질의 포르두갇語도 유럽의 포르두갈 語 와 다르다. 로마에 속해 있던 골 · 지방에서 사용되던 라틴語는 분명히 로마의 라틴語와는 대단히 다른 言 語이었다. 그리고 現代프랑스語, 現代이탈리아語, 現代스페인語는 모두 라틴語에서 변화한 言語 인데, 예 를 들면 프랑스語는 이 탈리 아 語 나 스페 인語와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 言語 의 어느 하나도 많 온 변화를 입었지만 그들 言語 간의 親近관계물 임중하기에는 어려움이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중거가 확실한 言語 의 대치 그리고 정복 민족의 言 語가 최종적으로 우세해지는 중거가 뚜렷한 사례에 입각해서 日本語의 起源처럽 상세한 문헌적 중거가 없는 言語 상황을 논리적으로 유추하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해서 日本語 이외의 다른 言語 가 어렇게 형성되고­ 발전했는가 하는 지식에 입각해서 日本語 또한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했 는가 하는 문제에 관한 가설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日本語도 본질적으로 다른 言語 와 다 를 바 없고 다른 모든 인 류의 言語 와 같은 言語 이며, 인류의 다른 言語 구조와 다른 목이한 것 이 아니라는 전제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전제 을 日本의 많 은 동료학자들은 받아들이기 를 꺼려하는 것같이 생각되나, 西洋 학자에 게는 그 전제 없는 言語硏 究는 불가능하며 그만큼 명백한 것이다. 日本語가 다른 言語 와 갈이 형성되고 발전한 한 言語 라는 전처卜_-죽 조건이 동일하면 다른 言語 에서와 같은 원인에 의해서 갇은 결과가 생 긴다는 전제 __를 인정한다면, 英語史의 지식도 이용할 수 있다. 英語 의 역사에서는 역사적 문헌이 놀라울 정도로 완벽하다. 따라서 英語史 에 관한 지식도, 정 확 하게 言語변화뮬 문헌에 의해서 입증 할 수 없는 日 本語의 경우라도 .:z, 역사에서 일어난 많은 사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英語도 오늘날은 日本語처럽 중요한 言語 이지만 원래는 大 陸에서 떨어진 작은 성에서 거주하던 소수민족의 한 言語 였다. 이 英

語의 역사가 日本 語 의 起源에 관한 전반적인 문재에 접근하는 데 깊은 ­ 관련이 있는 言語 변화의 많은 方向과 경향에 관해서 시사하는 것이 있 올것이다. 英語의 경우, 예를 들면 그 계몽에 관해 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英 語는 한 게르만語 이고 다른 모 든 게르만諸語 와 더 불 어 印歐語族 중의 한 言語인 것이다. 그러나또한 英諸는 그 어 휘 면에서 여러 가지 다른 言語 요소 로 이루어진 여 러 충을 포합하고 있음운 알고 있다. 득 히 借用語는 라틴 語 , 노르만 • 프랑스語, 스 칸디 나비 아 諸語 의 이 른 형 태 에서 들어 온 것이 많다 . 이 러한 借用語의 충은 英語史 초기의 복잡한 발전단계를 반 영하 는 것이며 때로는 借用語 가 서 로 겹치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경우도 ­ 있다. 다행히 英語 의 경우에는 여러 다른 言語 에서 유래한 어휘의 많은 충 을 이 루는 言語발 전이 대부분 역사시대에 일어났다. ::z. 결과 이 상 · 당수의 많 은 낱말에 관해서 그 借用語가 도입된 言語 접촉이 어떻게 언 제 일어났는지에 관한 매우 상세한 자료 를 얻을 수 있다. 때로는 이들­ 言語접촉 이 단순히 文化的 접 촉 의 결과인 경우도 있다. 유럽의 역사에 자주 있는 국가간의 교류 과정에서도 英 語 는 다른 言語 에서 借用語를• • 받아들이고 있다. 득 히 그리스도敎의 전파 후, 또 西洋文化에서 가톨릭 敎會가 중심적 역할울 한 시기에는 국가간의 文明 교류가 활발했다. 이 런 접촉에 의 협 1 서 英語에 도입된 借用語의 대부분은 라틴 語 및 다른 言· 語 , 목히 프랑스 語 로부터의 것이다. 이둘 言語 는 로마帝國의 옛 라틴 語 P 에서 변화한 것이다. 로마帝 國 의 라틴 語 는 로마敎會와 유대가 있던 유럽 의 그리스도 敎國 전역에서 현대까지 사용되고 있는 라틴 語 와 갇온 계몽 이지만 물론 다른 言語 이다. 그러나 英語 의 긴 역사를 보면, 平和 로운 집 축 만이 英 iE 에 新語몰 가 져온 것은 아니다. 北유럽에서 침입한 스칸디나비아 族 도 또한 古代英 語 에 새로운 낱말을 가져온 것이 알려지고 있다. 그둘 新語중 몇 가지~ 英語에 이미 있던 낱말과는 다르나 同源語이고 ::z. 이 후 이 새로운 借用 語 와 원래 있던 英語 의 낱말이 공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예로서 現代英語의 shir t 샤쓰와 skir t 스커어트라는 낱말을 들 수 있다. 이 skir t 라는 낱말은 古代英 語 의 scy rte 가 뒤 에 변화한 형 태 인 데, skir t .x.. shir t 와 대 단히 복잡한 관계 를 가지고 있다. 現代英 語 skir t 는 古代노 르드 語 sky rl a 의 뒤 에 변화한 형 태 이고 이 skyr l a 라는 낱말온 아마도 지 금으로부터 千年 전에 스칸디나비아族의 침입에 의해서 英國의 성에 돌노

어온 것이다. 기원적으로는 古代英語의 sk y r t e 나 古代노르드語의 sky r ta 나 더 오래된 어떤 한 낱말에서 뒤에 변화한 것이다. :::r.. 기저가 된 낱말 은 게르만 祖i꿈 에서 사용된 것이고 그 게르만祖語는 더 오랜 시대에 印 歐祖語에서 분열한 것이다. 그 게르만 祖語의 낱말 이 유럽의 여러 곳에 서 여러 가지로 변화하여 어느 곳에서는 古代英語 sc y r t e 가 되고또 어떤 곳에서는 古代노르드 語 sky r t a 로 변화했다. 그리고 現代英語 shir t , skir t 의 궁극적 인 語源 이 되 었다. 그러 나 skir t 라는 낱말은 역 사적 으로 보아 s hir t와 관계가 있기는 하지만, 英語의 역사에서 비교적 후기에 英語에 借用되어 여러 변화를 입었기 때문에 그 역사는 한충 복잡하다. 이 낱 말은 본디 英語와 다른 변화를 입은 게르만語系의 것으로서 이것은 더 印 歐語 系의 낱말에 소급하는 것이다. 위에서 든 예는 다음과 갇온 접에서 가장 중요한 예의 하나이다. 이 예에서 언급된 모든 言語 , 죽 古代英 語 , 現代英語, 古代노르드語는 서 로 親近관계가 있다는 점 그리고 모두 印歐語族에 속하며 印歐語族 중 의 게르만 語派 중의 한 言語라는 접이다. 그리하여 여기서 언급한 모든 言語 가 親近관계가 있다는 것은 상당한 확신을 가지고 증명되지 만, 역 사적 접촉-유럽의 그리스도敎 국가 사이에 보이는 借用과 7같 은 平和 로운 접촉과 古代英國에 있어서의 스칸디나비아族의 침입과 갇은 전쟁 으로 인한 접촉-에 의해서 言語 상황이 대단히 복참해진 것을 알고 있다. 여러 借用語의 충이 생겼기 때문에 歷史 言語年者 는 그러한 借用 語 의 충을 구별해야 할 뿐만 아니라, 借用語 와 借用에 의하지 않는 고 유한 낱말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祖語에서 이어받은 이 순수한 非借用語만이 言語 의 親近관계 문계와 관계가 있고 그것만이 言語 의 起源 문제에서 인용되어야 한다. 또이 순 수한 言語 자료에 의해서만 英語가 게르만 語 의 한 言語 라든가 혹은 프랑 . 스 語 가 로망스語派 중의 한 言語 라고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 시정에서 여러 가지 상황하에 많은 借用語가 다른 言語 에서 借用되기 때 문에, 日本語의 역사가 英語의 역사처럼 대단히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 지만, 借用 이의의 祖語에서 이어받은 言語 자료에 의해서 日本 語 가 한 알타이 語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또한 중요한 것온 英語史의 경우, 위에서 개관한 거의 모 든 변화가 역사시대에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r.. 결과 이러한 변화의 상 황을 역사적 자료에 의해서 알 수 있고 또 言語 변화 자체도 여러 言語

로 기록된 문헌에 의 해서 확인할 수도 있다. 이 접 에 있어서, 日本과 ~ 사하고 또 다른 접에서는 日本語의 역사와유사한 英國史나 英語史는찰 맞지 않는다. 그러나 이 두 지역__日本과 英國-을 함께 고찰함~ 로씨 日本語의 역사에서 일어난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 는 유익하고도 많은 실 마리 를 얻을 수 있다. 앞에서 말한 日本語와 英語의 유사접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맞지 않 는다. 첫째는 日本語가 많은 종류의 言語 요소를 다른 言語 에서-어느 것은 알타이語에서 또 어느 것은 전혀 계몽이 다른 言語 에서 __- ff r用하 는 원인이 된 사건이 일반적으로 日本의 역사에서는 英語의 역사에서 일 어난 같은 사전보다 흰씬 엣 시기에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 이 유는一― 첫 번째 이유와 직접 관계가 있지만-英 語 에는 日本語에서와 갇은 발전을 밝혀 주는 역사적 문헌이 있으나 日本語의 경우에는 이런 중거가 거의 없다는 접이다.

日本語와 韓國語 日本 語에 이러한 문헌적 입증 자료가 없다는 것은, 日本語의 대단히 이른 형태와 古代한국의 여러 言 語의 역시 대단히 이른 형태 사이의 言 語접촉에 관해서도 독히 사정이 같으며 그것은 또한 불행한 일이 다. ::i. 런데 한국語 자체가 한 알타이語이고 계몽적으로 日本語와 동일한 語族 에 속한다고 믿을 만한근거가 있다(古代英 語 와 古代노르드 語 가 함께 印 歐語族 에 속하는 것과 갇다). 한국 語 와 日本 語는 역사적으로 목히 밀 집한 관계에 있을 뿐 아니라, 또한 兩 言語 는 알타이 語族 의 뭉구스語~ 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이것 또한 古代英 語 와 古代노르드語가 印 歐語 일 뿐 아니라 게르만 諸語 인 것과 거의 같다). 우리는 또한 古代한국의 諸王國과 古代日本 사이에 광범위한 文化的관계가있었음을 알고 있다. 그것은 목히 대 부분 한국올 몽해 서 大乘佛 敎 Mahay a na Buddhis m 가 日本에 도입되었기 때문이다(도표 3 참조). 佛敎는 日本의 文明과 文化의 형성에 지대한 역할을 했는데, 그것은~ 마치 그리스도敎가 英國의 文明과 文化의 발전에 기여한 것과 같다. 이 두 세계의 종교는 각각 섬나라에 있어서의 생활과 인접한 大陸에 있어 서의 생활이 영속적인 밀접한 관련성을 갖게 되는 요인이 되었다. 라틴

三〉/~

/ . 3iLs 해 \\..., 一

는 西유럽의 그리스도敎와 로마 敎會 의 言語 이었다. 라틴 語 는, 敎會 의 로서 또한 西유럽의 로마 帝國울 계승한 몇몇 나라(가령 노르만 프 랑스)의 言語 __곡 1 에 변화 했 지만__로서, 英 語 에 지 워질 수 없는 자 국 을 납겼다(브리 튼 Bri tain 섭 은 물론, 그리 스도 敎 로 개 종 하기 전에 라 틴 語률 사용하던 로마 군대에 의해서 접령되었지만, 그 言語 상의 영향 을 뒤에 그리스도 敎 시대의 言語 집 축 에 의한 대량 借 用에 비하면 사소 한 것이었다). 古代한국의 어느 言語 가 古代의 佛敎國 인 日 本 에, 마치 라틴 語 가 그

리스도敎 國 인 英國에 대한 역할과 거의 갇온 역할웅 한 것은 의십한 여 지가 없다. 日本에 大 乘佛敎룹 최초로 전한 言語 는 百濟에서 사옹되던 古代한국 語 의 목이한 변종이었다고 생각된다. 古代한국은 세 나라로 나 뉘어져 있었는데, 百濟는 그 중 한 나라이다. 이 百 濟 가 日本에 佛敎를 전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울 한 것이다. 이 傳道 상황에 관해서는 많 은 것이 알려지고 있는데, 이 百 濟語 가 佛敎률 최초로 日本人에게 전한 매개 체 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또 우리는 日 本 人이 百河와의 관계 를 역 사시대까 지 계속 했던 것도 알고 있다. 百演 가 唐 과 新羅의 연합군의 공 격을 받은 7 세 기에는 百消의 王을 돕기 위해서 한국에 군대를 파견한 일조차 있었다. 日本의 원정군은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紀元 663 年의 白村江 전두 에서 lE 과 新羅의 연합군에개 크게 패배하고 말았다. 그러나 百斜 와 日本의 文化 및 정치적 유대가 공고하여 되각하는 日本 軍은 수천에 달하는 百濟의 피난민을 日本으로 데리고 왔다. 百濟人은 본국에 남아서 승리한 적군의 손에 죽음을 당하는 것보다는 퇴각하는 日 本軍올 따라서 새로운 미지의 나라로 위협을 무릅쓰고라도 피난하는 편 올 택했던 것이다. 또한 난을 피해서 살아남은 많은 百泊 피난민이` 日本에서 그 민족성 올 잃지 않고 수 새기 동안 생 활해 온 것도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역 사문헌에서 밝힐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에 의해서 古代한국과 13 本과의 言 語접촉, 목히 百濟와의 접촉이 日本 語 의 발전에서 중요한 역 할윤 했다고 믿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英 語 의 발전에 있어서의 라 틴 語 및 뒤의 로망스 諸語 의 역할과 같은 중요성이 있었다고 생각되는것 이다. 그런데 이 古代百 濟語 그 자체에 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 따 라서 日本 語 의 경우에도 세부적인 것을 보충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거의 알 수 없다. 百 濟 王 國 과 같이 이 古代百 濟語는 __ 다른 중요한 두 古代한국 語 인 古代新 羅語 와 古代 商句麗語 와 갈이 ―一중요한 중거 문 남겨 주지 않고 역 사에서 거의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리하여 여기서 고찰하고자 하는 문제에 관한 硏究가 대단히 어려워지고, 다른 정에서는 유익한 古代英 語 의 言語 상 황 과의 유사접도 이 정에서는 소용이 없다. 英語의 발전에 서 역할울 한 라틴 語 에 관해서는 뭉론 그 모든 형 태에 관해서 많은 것 을 알고 있다. 古 典 라틴 語 에 관해서는 古代 로마시대부터 문헌이 있고 또 유럽 전역의 敎會 와 국가에서 사용되던 후기 라던 語 의 풍부한 기특

도 있다. 로망스諸語(이탈리아 語 , 프랑스語, 스페인語 등 여러 言語 ) 자 체의 역시 중요한 증거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이 살아 있는 로망스諸語 에 比設方法웅 적용해서 문헌의 중거가 없는 죽 라틴 語 의 중요한 형태와 직접 관련이 있 는 담겁 吾자료를 재구 할 수 있다. 로마帝國과 그 병사들이 사용하던 라틴口 語 인 것이다. 라틴 ~. E 는 이 口i· 5 에 의 해 서, 로마의 군대 와 이주자 를 동해서, 西유럽 전역과 아 프리카에까지 전파되었던 것이다. 물론 英國도 예외가 아니다. 이 풍부한 자료에 의 해서 比 炫言 語學者 는 古代英 語 와 라틴 語 간에 있었던 言 語접촉의 정확한 성격을 상당히 자신 있게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古代한국語, 특 히 古代百演語가 마치 라틴語가 英語의 발전에서 역할 울 한 것처럼 초기의 日本語 발전에서도 거의 갇은 역할을 했다 고 추정 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 이 양 言語 간에 차이가 있다면 英語의 경 우에는 英 語 의 역사에서 중요한 라틴語의 여러 형태 에 관해서 많은 것 올 알고 있는 데 대해서, 日本語의 역사에서는 그 정도로 중요했던 古 代한국 語 의 형태에 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접이다. 古代百 濟語 는 ::z.. 좋은 예이다. 百濟가 古代日本에 佛敎물 전파시킨 역 할은 역사적 자료에 · 의해서 분명히 증명된다. 또 百硏의 피난민과그가 족이 日本에 정착하여 수 세대에 걸쳐 日本에서 중요한 역 할 응 한 것도 분명하다. 古代百濟 語 는 다른 古代한국 iE 와 같이 알타이 語 이고, 百 演語 는 계동적으로 古代日本 語 와 親 近관계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동 시에 이 두 古代국가 사이에 文化的, 목히 종교적으로 밀집한관계가있 었기 때문에, 古代百 濟語 는 日本 語 에 도입된 수많은 借用語의 원천이 되 었고, 또 두 나라의 文化的 접촉의 과정에서 言語 的 모방에 의해서 百 濟語의 낱말이 . 日本 語 의 어휘에 침두하게 되었던 것이다. 두 言 語는 계 몽적인 親近관계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에서 古代日本 語 에 借用된 百濟語의 낱말 중에는 그 당시 古代日本語에 이미 있던 낱말과 語源이 같온 것도 때로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借用된 同 源 語는 日本 語의 ::z.. 同源語와는 아마도 의미도 형태도 달랐을 것이다(이것과 유사 한 예는 위에서 든 英語의 sk i r t와 sh i r t이다. 여기서는 英語 이의의, 그러나 계몽이 갇온 言語 에서 차용된 날말-~이 古代英語에 차용되어 옛부터 있었던 원래의 英語 낱말 __ 과 공존하게 된다. 이 英語 낱말은 의미와 형태 면에서 借用語와 유사하고 다같이 계동적으로 親近관계가 있다).

이렇게 해 서 日本과 한국 사이의 이른 言 語 접 촉 에 의해서 상이한 여 、 러 借用語府 이 형 성되었으리라고 생각된다. 최근까지 借用 方向온 항상 한국 語 에 서 日本語 로 향 했 다. 그 반대 方向의 借 用이 행해진 것은 근대 의 日本 식 민지 시대에서만이다. 日 本語에 유 입 된 모 든 한국 語 伯用 i읍 의 言 話 기반이었던 원래의 실제 한국 語에 관해 서 는 알 려 진 것 이 극히 적 기 메문에, 이러한 대단히 이른 借用 語 와 양言語에 공통된 同源i E 를 구 별 하기가 어려 울 메가 많 다. 가 령 古 代百 濟 :E 에 관해 서는 오 늘날 알 수 있는 낱말은 겨우 IO 여 개뿐 · 이다. 高句 k- i i E 와 新 羅i갑 에 관 해 서는 조금 더 알려지고 있으나 월동굴l­ 개 많은 것 은 아니다. 이처 럼 한국 語 의 자료가 국단적으로 빈약한 데는 두 가 지 원 인이 있다. 하나 는 韓半 島의 역사시대의 태반이 정치적으~ 나 사 회적 으 로 불 안정한 상태에 있었다는 접이다. 이러한 변화는 대단 히 심 각 해서, 모 든 古代文化와 모든 言語 가 흔 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두번 째 원인은 古代한국人의 생 활 에 中 國 文化가 침 두 하여 古代 솔 한국文 nJ l이 고도로 中國 化했다 는 점이다. 득 히 最 古 시기에 __- 이 시기 가한·일 양 言語 의 접 족 과 伯用 과정을 추 적하기 위해서 대단히 중요 ­ 한데――한국에서는 고유한 한국 語 그 자체로 기록된 것이 거의 없다. 거의 모 든 목적 으로 淡 文이 사용 되 었던 것이다. 歷史比 救言語學 의 硏究 P 에 이 용원 수 있는 한국 語 로 기 록된 最 古 문 헌 은 1445 年 이전에는 없 다. 이 시기 는 실재 로 답語 史 전체 곱 통해 서 본다면 대단히 새로운 시 기인 것이다. 이미 본 바와 갇이 다 른 알타이 諸語 가 가장 조건이 좋 을 경우라도 상당히 이 른 시대의 문 헌을 갖지 못하고 또 거의 대부분의 문 느 헌이 대체로 새로운 것이지만, 여기에 비교하더라도 한국의 문헌은 대 단히 새로운 시기에 속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모든요인은, 古代 한·일 양 言語 의 言語 접 촉 의 맥락 속에서 볼 때, 古代한국 語 에서 日本 語 에 들어간 借用 語 와, 또한 동일 距 源이기 때문에 양 言語 에서 의미 • 형태 양면에서 같거나 혹 은 거의 갇은 낱말 -양 言語 가 따로따로 공몽 祖語 에서 이어받았기 때문에 의미 • 형태 면 에서 유사한 낱말-과 를 구 별 하기가 대단히 곤란하다는 것을 말해 ~ 는것이다. 그러나 한국 語 의 대단히 먼 단계 를 입증하는 확 실한 문헌이 없윤 경 우라도 때로는 다행히도 한국 語 와 日本 語 의 어떤 어휘의 유사성이 親 近 ' 性의 결과인지 혹은 借用에 의한 것인지 문 상당히 확실하게 판단할 ~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러한 경우는 언제나 상당히 홍미롭다. 왜냐하면, 그러한 예에 의해서 자료가 그다지 많지 않은 다른 경우도, 유사한 言 語발전이 룰림 없이 일어났고 또 어떻게 일어났는가 를 알 수 있기 때문 이다. 이것은 득히 외국에서 들어온 裁培植物에 관한 지식과 같은 言語 外的 자료가 이러한 문제와 관련되는 경우이다. 예를 들면, 한국語와 日本 語 에서 宅i와 “朝'' 물 의미하는 낱말 사이 에 의미와 형태 양면에 걸쳐 많은 유사성이 있다. 宅i를 의미하는 現 代한국語는 sam 이고 現代日本 語는 asa 이다. l Jj-강의미하는 한국語는 .ac hi m 이 고, 日 本語는 asa 이 다. 血 라는 식 물은 옛 부터 韓半 島릅- 비 롯 한 아시아大陸에서 재배되었고 아시아大 陸에 서 이 른 시기에 日本에 도 입된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 명칭도 그 식물과 더불어 日本에 도 입되었고 오 늘날 日本語에서 asa 라 하는 낱말은 언첸가 한국語에 존재 했던 이 론 형태룹 차용한 낱말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 원래의 낱말의 형태가 어떠했고 또 古代한국 語 의 어느 言語 에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現代한국語의 sam 이라는 형태뿐 이 다. 이것은 日本語가 차용한 古代한국 i E 의 원래의 낱말과 꼭 같은 형태 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 한국 語 낱말의 형태는 아마도 뒤에 변화한 것일 것이다. 이 자료와 그 역사적 분석에 의해서 다음과 갇은 상당히 확 실한 결론 율· 내 릴 수 있을 것이 다. 죽 “朝 뮬 의 미 하는 現代한국 語 achin t 과 日 本語 asa 의 의미 • 형태 면에 있어서의 유사성이 단순한 우연의 견과인지 一우연한 유사성이라면 이 유사성온 어느 쪽의 言語 史에서도 중요하 지 않다――아니면 옛 공통祖語에 존재했던 한 낱말을 한국 語 와 日本語 가 따로따로 이어받았다고 설명하든지 해야 할 것이다. 親 近관계에 의 한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양 言語 에서 慣t 를 의미하는 낱말(이미 말한 바와 같이 이 재배식물의 역사에 입각해서 日本語의 그 낱말은 古代한 국語에서 차용된 것이라 결론짓는다)에 동일한 s 라는 子音이 있는 반면 가月를 의미하는 두 낱말에서는 양 言語 가 다른 자음올 가지고 있는 사 실(한국語는 겁 r, 日本語는 -s-)을 설명하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차용 이라는 것온 다만 흉내내거나 모방하는 목수한 형태에 지나지 않으며 어 느 言語 의 화자가 다른 言語 의 낱말을 될 수 있으면 정확하게 재현하려 고 할 때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言語에서 다른 言語에 차용되 는 경우, 원래 의 낱말과 借用語가 같거나 혹온 거의 같은 菩올 가지고

있을 때가 많다. 그러나 한편 同源語 의 경우에는 개개의 言語 가 비교되 는 시접과 그들 言 語 의 근원이 되는 祖語 가 존재했던 시점과의 사이에 오랜 시간의 경과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긴 시간의 경과중에 여러 원인 에 의해서 발음이나 의미 혹은 그 양자가 변화하는 것이 보 동 이다. 그리 하여 한국 語 achim i月과 日本語 asa 朝”는 同源語라고 결론 지 어도 무방할 것이다 . 죽 이 들 낱말 은 이미 소멸한 어떤 공동祖語의 낱말 이 뒤에 변화한 형태인 것이다. 語中 의 子昔(한국mt -ch-, 日本語 -s-) 의 차이 는 , 지금은 소 멸 한 원래의 엣 낱말 속에 있던 어느 子音이 한국 語 에서 는 어느 音 으 로 번 화 하고 한편 日本語에 서는 또 다 른 音 으로 변화 한 것이라고 설명 할 수 있다 . 이 소멸한 과거의 子昔의 정확한 발음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証史 言 語浮 의 比 校方法은 그것이 어 떤 음이었는지 신중하게 추 정 할 수 있는 많은 기술을 재공한다. 이와 같 은 역사적 추리에 의 해서 한국語와 日本語의 J:月 ” 를 의미하는 낱말에 나 타나 는 母 音 의 차이융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갈이 비 록 古代의 문 현 이 없는 경우라도 필 요하면 祖語 내의 지금은 없어진 낱말의 형태 를 재발견하거나, 혹은 言 語學 에서 말하는 것처럼 再構할 수 있는 것이 다. 그 祖語 형태는 여러 言語 에서 볼 수 있는 형태와 의미의 유사성에 기초 를 둔 것이다. 그러나 가끔 한국語와 日本 語 의 낱말 사이에 의미와 형태 면에서 현저 한 유사성이 있는 경우가 있으나, 그 대부분은 아직도 해결올 보지 못 하고 있는 문제들이다. 그 결과 뒤의 借 用 語 와 同源語몰 구별하기가 대 단히 어려운 경우가 많다 . 확실한 것은 借用語 와 同源語가 존재한다는 사실이지만, 양자 를- 구분해 낸다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그리하여 現代한 국 語 mal 곡식이나 물을 되는 용량의 단위 또는 되는 용기이 의미와 형태 면에서 日本語의 두 낱말, 죽 古代日本 語 의 mar i술 이나물을 넣 는 컵 모양의 용기와 現代日本語의 masu 곡식이나 액체의 양을 다는 사각형의 되와 어떤 역사적 관계가 확실히 있어 보인다. 그 러나 이 세 낱말 중에서 어느 것이 어느 것과 어떤 관계에 있 는 지 를 확 실하 게 해명 하기 어렵다. 이 들 형태 의 音韻 면에 관한 한, 古代日 本語 의 ,nar i는 입증 할 수는 없지 만, 現代한국語 mal 의 기 저 가 된 어 떤 古代한국 語 의 날말과 차용· 관계가 있음직하다. 그러나 意味 면에서 본다면, 日本 語 masu 는 現代 한국語 mal 과 서로 가깝다. 그리하여 지금까지의 문헌에서 이 두 낱말

이 관련지어졌다. 그러나 借用語라는 것이 한 言語 의 형태 를 다른 言~ 의 音체계로 모방한 것이라면, 한국 語 ,nal 의 昔形이 日本語 ,nasu 에서 와 같이 -s- 로 모방된 것을 설명하기 어렵다. 日本 語 -r-로 한국語 ]을 모방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 새 낱말의 意味룰 본다면 상 당히 후기의 文化的 借用 語 로 생각되지만, 형태와 意味 를 분리해서 차 용의 경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日本語와 한국語의 比 敎 硏究에서 당면하게 되 는 문재 는 maI, mari, masu 와 7같 은 낱말에 한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낱 말을 그것이 지시굴l­ 는 실제적 사물의 성질 면에서 볼 때, 옛 文化的 伯 用語로볼 만하다 . 때 로는 아주 평범한 일상 어휘――평범한 일상 낱말, 때로는 오해를 사기 쉬운용어인 〈기초 어휘〉로 불려지기도 한다―一 -g- 비교 할 때도 같은 문 제 가 더 복잡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면 , 現代한국 語 의 낱말 tal k 災0 은 갇은 의미의 中期한국語 tal k 에 소급하는 것인데, 古代日本 語 to ri, 現代日 本語 to r i n 와 어떤 가역사 자적주 관 계닭가” 을있 의는미 것하으고로 또 오 束랫京동方안 言 생 에각서되 어닭 '’왔을다 .의 미現하 代는日 本낱 語말 의이 tor‘ .- i iua to r i (직역하면), 뜰(혹은 정원)의 새''임을 생각한다면, t alk 와 tor i 가 어떤 역사적 관계가 있으리라는 생각이 깊어진다(이 예에서도 言語 · 형태의 〈의미〉와 편의상 번역어로 표시되는 것과의 사이에 중요한 차이 가 있는 것을 상기시킨다. 번역어는 다만 그 낱말을 확인하기 위해서 형태에 적당히 붙인 표지에 지나지 않는다). 이 문제 에 관해서 많은 연 구가들은 단순히 日 本 語 to ri 와 한국語 tal k· 이 同源語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두 낱말은 이미 소멸한 입증되지 않은 어떤 原形으로 소급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한국어의 語形이 日本語보다 복잡하기 때문에, 그 소멸한原形을 再構하면 日本語보다한 국語의 형태에 가까운 것이 될 것이라는 가정을 하고, 다시 말하면 13 本語의 낱말은 복잡한 옛 語形에서 변화하여 단순화했다고 가정합으로 써, 한국어 t alk 의 語末 -/k 에 보존되어 있는 子音연속과 갈은 子音연 쇄울 가진 낱말이 再構된다 . 그런데 이 문제와 관계가 있는, 그러나 문헌에서 일반적으로 간과되 고 있는 또 하나의 日本語 낱말이 있다. 그것은 t ok i라는 낱말이다. 이 것온 깃털이 있는 따오기로서 아름다운 희귀한 새인데, 애국적인 學名 Ni ppo nia n ipp on 이라는 이름으로 자랑스럽게 불리어지고 있지만, 오 늘

날 日本에서는 멸종의 위기에 놓여 있다. 만일 일본어 to r i가 한국어 tal k 과 어떤 역사적 관계가 있다면 이 日本語 to k i와는 어떠한가? 이 t alk 과 t ok i의 관계는 t alk 과 t or i의 경우처럼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 옛 語末音 *-lk 가 日本語에서 단순화하여 이 경우에는 -k 가 아니 라 -1 가 소 멸했다고 설명되는 것이다. 이 두 설명이 동등하게 가능하다. 그러나 이 중에서 어느것을 덱하는가에 대해서는 과학적인 근거가 없 다. 만일 日本語의 두 낱말 중에서 어느 하나가 한국語의 낱말과 同源 語라면, 다른 하나는 借用語 이어야 할 것이다. 서로다른 音韻변화 가보 이기 메문이다. 어느 하나가 同源語라면 다른 것은 借用語인데, 어느 것 이 어느 것인지가 문제인 것이다. 이것은 英語의 sh i r t와 sk ir t 를 상기시키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갇온 복잡한 문제 가 또 있다. 한국語의 tal k 과 日 本語 to ri, tok i 를- 비 교할 때 , 이들 세 낱말 사이에 관계가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생각되지만, 그것 이 어떤 성질의 것이고 또 개개의 낱말이 서로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여기서는 古代한국語에서 日本語에로의 차용 가능성만을 말 했는데, 그 반대 方向의 차용도 생각되는 경우가 있다. 日本과 한국의 古代史에 있어서의 文化的 관접에서 불 때, 古代日本語에서 한국語로의 차용은 일반적으로 있을 성싶지 않다. 또 있다 하더라도그가능성은낮 다. 그러나 가능성은 잊어서 안 된다. 言語 의 이른 발전단계의 역사를 추척해 보면, 실재로 불가 능하다고 제외뮐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어 떤 종류의 변화도 가능하다. 脈史言語學者의 과제 의 하나는, 어 떤 변화 와 발전을 일으키는 원인으로서 가능성이 높고 확실성이 높은상황과조 건을 확정하는 것이다). 한국語와 日本語의 낱말에 의해서 제기되는 문제는 위에서 든 語 形에 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뒤르크諸語의 어떤 言 語에서 얻을 수 있는 중 거에 의해서 뮈르크祖語 * to rra 를 再構할 수 있는데, 이것은 많은 종류 의 작은 새를 표시하는 데 사용된 것 갇다. 이 뒤르크祖語가 지금 논의 하고 있는 現代, 中期한국語의 낱말과 대단히 유사할 뿐 아니라, 이 祖. 語形은 古代의 어느 시기에 헝가리 5공 개 借用되 어 tyu k 닭''이 되었다­ 만일 日本語 to k i를 한국語 tal k 또는 뒤르크祖語의 * to rra 와 관련시키 려 한다면, 위에서 추정한 바와 꼭갈은 단순화의 과정을 여기서도 추 정할 수 있다. 이와 같이 日本語에 서로 관계가 있다고 생각되는 두 動詞 tak - 무언

가를 태우다, 무언가에 불을 놓다와 y ak- 굽다”가 있다. 이 日本語의 燮語가 現代한국語에 t lza- 와 어던가 관계가 있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그 리 고 이 tlz a-는 中期한국語 thi i - t' d 에 소급한다. 그러 나 여 기 서 도 문 제되는 것은 어떻개 관련짓느냐 하는 것이다. 中 1 미한국語 t lz ii-는 더 이 론 형 태 인 *tak -에 소급한다고 생 각된 다. tlii i -의 語頭音 tlr 와 같은 ‘ 한국 語 의 유기 頭音은 한국 語 내에서 일어난 비교적 새로운 변화로 생 각되며 이 변화에 의해서 원래 음철말에 있던 子音이 그 위치와 발음이 변화하여 * t ak- 이라는 古形에서 tlz a- 가 되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日本 語 t ak- 은 祖語에 서 이어받은 것이 되고 한국 語 의 낱말과 同 源語이 다. 한편 日 本語 ya ll-는 한국語의 어 떤 古形 *d all- 가 대 단히 이 론 시기에 日本語에 차용되어 그 語頭 * d- 가 차용 후 규칙적으로 y- 71-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설명의 중요한 이점은, 日本語 tal l-, y ak- 의 斐語 의 존재를 설 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두 낱말과 한국語 t lza- 와의 관계도 설명 할 수 있는 데 있다. 또 토기 울 굽다와 갇이 전문적인 용어로서의 yak - 를 목수하게 사용하는 점도 밝혀 준다. 고열로 가마 속에서 토기를 굽 는 기술은 한국에서 日本으로 들어온 古代文化에 있어서의 한차용인 것 이 명백하다.

中國語, 말레 이 -폴리 네 시 아語, 〈混合 言語 〉 日本 語 의 발전에 이처럽 복잡하게 기여한 外 國語는 확실히 한국語만 은아니다. 한국語가기여한 목 수한 정은 한·일 양 言語 의 차용 원인 이 된 古代의 言語집촉 이지만, 이것을 별문제로 하고 한국語 자체가 거 희 확실하게 日本語와 親近관 계가있다는접이다. 따라서오늘날한·일 양 言語 에 존재하는 다양한 관계를 구별하기가 때로는 어려운 경우가 있 냐 한편 日本語와 이론 言語 집촉이 있었던 한국語 이외의 外國語는 日 本語와 親 近관계가 없었다고 생각된다. 그리하여 日本 語 에 대한 그 들 言 語 의 공헌을 借用語로 보기에 어려움이 없다. 이들 言語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온 중국 語 와 말레이국문리네시아 語 族에 속하는 諸言語 의 많은 古形이다. 이둘 言語 는 日本 語 와 親 近관계 는 없으나 日本 語 의 역사적 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한다. 중국語 또는

말레이-풀리네시아諸 語 의 어느 言語 도 日本語와 親近관계가 있을 가능 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그러나 古代의 言語접촉 에 의해시 중국語나 말 례이-풀리네시아 諸語 가 각각 日本語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日本 語에 대한 중국語의 공헌은 지대한 바 있으며, 그것을 비교적 용 이하게 입증할 수도 있다. 그것은 문한에 의해서 임중되는 중국i君의 이 른 단계에 관해서 많 은 것융 알고 있으며 (이것은 英語史에서 특히 현 저한 공헌을 한 라틴 i E 의 초기 발전단계에 관해서 많은 것윤 알고 있는 것과 거의 같다) , 또 日本語의 어 휘에 기여하는 중국語의 차용 과정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기 메문이다. 日本에서는 중국 語 의 語根울 기초로한 新語가, 목히 과학기술의 분야에서 학술용어로서 거의 매일같이 만들 어지고 있다. 오늘날의 이러한 과정을 보면, 과거에 淡字에 의한 新語 가 어떻 게 만들-어졌는지에 관해서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분명한 학문적 차용을 별문제로 하고라도, 日本語에 보 . 이는 중국 語로부터의 차용은 극히 예사로운 일로서 일상생활의 많은 사 물에 대 해서 도 사용되기 때문에, 日本語가 알타이祖語에서 이어받은 본• . 래의 옛 낱말과 대치되는 경우도 자주 있다. 예를 돌면, 佛敎에 의해서 肉食이 금지되고 그것이 생환의 일부가 되기 전까지는 日本人은 일상식 . 량의 일부로서 멧돼지와 사슴 같은 동뭉의 고기 를 먹었다. 食肉울 의미 하는 古代日本語의 낱말은 s i s i이다. 이 語 形은 문헌에도 기록되어 있고 ­ 또 여러 알타이諸語의 다른 낱말과도 역사적으로 관련지을 수가 있다. 그러나 이 낱말은 日本에서 곧 사용되지 않게 되고 오늘날은 廢語가 되었 . 다. 여기에 대해서 중국語로부터의 갈은 의미률 가진 借用語 ,l i ku 댜 3 가 오늘날 사용되고 있다. 이밖에도 다른 많은 예를 둘 수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數詞체계일 것이다. 日本語에서는 중국 語 에서 차용 한 數詞가 알타이 祖 ;E 에서 이어받은 일련의 옛 낱말과 대치되었다. 목 히 큰 수에 관해서는 중국語에서의 차용의 영향이 대단히 크다. 그러~ 로 43 이나 58 과 같은 큰 수군 古代日本 話 에서 어떻게 말했는지 확실히 알 수 없다. 문헌에서 입증 할 수도 없다. 몇 가지 예외를 제의하고는 10 이상을 세는 데 있어서 중국語로부터의 차용이 원태의 日本 語 의 數詞형 성과 대치되고 큰 수 를 · 표시하는 日本 語 고유의 낱말이 日本 語 의 역사 에서 사라쳐 버리는 정도로 칠저한 것이었다. 말레이국 E 리네시아語로부터의 이른 차용도 日本語의 발전에서 중요 를 한 것입온 또한 확실하다. 그러나 이돌 借用語는 중국 語 의 借用語보다 -

떠 증명하기가 어렵다. 말레이-풀리네시아語는 알타이祖語나 印歐語祖 語와 갇이 지금은 없어진 言語 동일체에 대한 言語學 의 용어이다. 그 없 어진 言語 동일체에서 뒤에 변화한 言語 가 太 平洋 전역에 분산되어 현존 하고 있는 대단히 많은 言 語이며, 한편으로는 인도네시아, 대만에서 다 론 한편으로는 타히티 Tah iti섬, 하와아 섭과 갇은 지역에 이르는 큰語 族을 이루고 있다. 현재의 이러한 분포로 보아, 原始말레이 -폴리네시 아語를 사용한 사람들은 정력적인 교묘한 航海人이었던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그 항해술에 의해서 먼 섭으로까지 확 산한 것이다. 그 최후의 대 · 이동의 하나는 역사상 대단히 늦개 일어났던 것인데, 말레이-풀리네시 아語의 화자들을 타히티 섭에서 하와이 섭까지 확산시켰던 것이다. 따 라서 그들의 古代 항해가 어떻게 달성되었는지에 관해서 상당히 구체적 으로 알 수 있다. 이 古代말레이_풀리네시아族의 뛰어난 항해술을 강조하기 쉬우나 우 리들의 硏究目的으로 보아서는 위험하기도 하다. 분명히 뛰어난 航海 民도 있었겠지만 모두가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 말레이-풀리네시아族 중에서 束아시아 혹은 束南아시아의 여러 섬에 있던 집단이 그 긴 항해 예 성공했다는 확고한 중거가 없는 것 갇다. 대중소설이나 영화가 이 모 든 문제에 관해서 지나치게 열광적인 생각을 심어 놓은 것은 돌 림없다. 최근 日本 학계에서도 때때로 주장되고 있는 바와 같이 古代말레이국운 리네시아人이 용이하게 日本열도나 韓半島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는 도 저히 생각할 수 없다. 그 民族과 言語 가 日本 語 에 영속적인 흔 적을 납 긴다면, 많은 이주가 있었어야 하는데 그만큼 많은 집단의 이주가 있었 다고는 도처히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먼 과거에, 아마도 역사시대 초기에 소수의 말레이국伊리네시아人이 日本列島에 여러 차례 들어왔다 고 생각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리고 太平洋에 산재하는 먼 성까지 그들의 言語 와 신석기 文化 를 전파시킨 것과 같이 日本列島에도 그둘의 言語 와 文化 률 가져왔다고 생각하는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日本의 경 우에는 그 사람의 수도 적고 또 그들의 침입도빈번하지 않았을것이다. 그러한 말레이-풀리네시아人이 일단 日本에 도착하면 거기에 정착했 을 것이다. 그것온 따로 같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그들이 원래 살 먼 곳으로 되돌아 항해해 가기에도 지쳐 있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는 적어도 수 년 혹은 수십 년에 걸쳐 힘과 人力올 회복했어야 했을 것 이다. 이 말레이국 E 리네시아人이 日本에 도착하자 곧 日本에 미리 살

고 있던 사람들에 의해서 모두 살해되지 않았다면, 그들은 거기서 생활 했을 것이다 . 그리고 그들의 迫傳子와 감 이 그 들 의 言語도 당연히 日本 語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말례이-풀리네시아語와 日本語의 言語집축 의 결과로 보이는 많은 古 語가 확인된다. 예상했던 것과 갇이 이들 낱말은 대부분이 바다나 어 로에 관계가 있으며 여러 魚類에 대한 목수한 용어와 해년의 생환에 관 한 낱말웅 포함하고 있다. 여기서 상기되는 것은 大陸에서 침입한 빗살 무늬 토기을 가져온 사 람듄 이다. 이들의 日本 침 입은 분명히 알타이語 윤 말하는 사람둘이 日本列島에 도래했옹을 말하는 것인데一~이것은 입 증되는 최초의 중요한 도래이다 _, 이 둘 은 또한 말레이- 문 리네시아 人의 文化와 갇이 상당히 발달한 고기잡이 기술윤 발전시켰다. 이 둥구 스$f의 빗상무 늬 토 기人 둘 은 江이나 해안에서 이 기술을 발전시키 고, 한 핀 말레 이 국문 리네시아人듄은 오렌 항해에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 기 술움 익섰던 것이다 . 그러나 이런 차이룰 빌문제로 한다면, 이들 두 文化는 적 어도 바다와 江이 중십이었고 여기서 그둘의 생 활양 식이 형성 되었다는 접에서 거의 갇 은 경향옹 띠고 있다. 이처럼 두 文化가 같은 경향을 띠고 있기 때문에, 이 분야의 뭉질문화에 관계가있는 言語 的 독 칭 혹은 어떤 낱말이 알타이 語 起源 인지 (그 중에서도 뭉구스語 起源인 지) 아니면 말레이-풀리네시아語 起源 인지 읍 구별하기가 반드시 용이 하지 않다. 바다 절- 중심 으로 한 海洋冠硏 에 관한 모든 日 本語의 목 칭 이 말레이-풀리네시아語에 기원이 있다고 일반적으로 추정되 고 있으나, 이 것은 확실히 사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다. 이미 고찰한 바 있으나, 日本 語 의 動詞 i zar- 바다에서 고기 몰 참다 는 두 요소로 형성된 名 詞派生動詞 이다. 알타이祖語 *tl 2 “일에서 이어 받은 名詞에 역시 알타이 祖語 의 * -l- 라는 名詞派生動詞의 語幹융 형성하 는 요소가 붙은 것이다. 이 日本語 動詞는 초기의 語 形成 과정에서 비 못된 것인데, 알타이 諸iE 에서 확립 된 모든 昔祖法貝 1l 과 일치 한다. 여기 의하면 * h 는 -s- 와 대웅하고 이 -s- 는 다음에 집미된 *- l- 의 영향에 의 해서 뒤에 -z- 로 변화했다. 접미된 * -l- 는 물론 日本語에서 +-로 나타 난다. 다시 말하면, iz ar- 온 古代日本 語 의 중요한 社會經濟的 용어인데 그 語源 으로 보아, 죽 낱말의 역사에 있어서 전적으로 알타이 語 계룡이 다. 말러 1 이겨 E 리네시아語 起源으로 생각되는 낱말을 가끔 불 수 있는 데, 그것은 오히려 잡힌 것율 표시하는 여러 가지 날말 가운데 있다.

::::z. 한 예는 日本語 ika 오칭어이다. 이 낱말은 피지語 Fij ian ::,i ka 주 몽가語 Tong a 및 푸두나語 Futu na cik a c 와 같은 단순히 였{ 를 의 미 하는 낱말과 語源상분리할 수 없다. 이 피지語, 동가語 , 푸두나語의 낱 말은 갈은 의 미 를 가진 말러] 이 -풀리 네 시 아祖 語 의 *cik a n 에 소급한다. 물론 알타이語의 화자들이 아시아大裁에서 오징어라는 의미의 낱말을 가져왔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말레이국문리네시아語의 言語 증거가 이 러한 칙감을 뒷받침해 준다. 그러나 다른 경우에는 〈상식적〉으로 말레 이一 폴리네 시아 語의 起源으로 생각되는 용어라도 그것이 알타이語 起源. 일 때가 종종 있다. 이 점에 관해서 가장 유익하고 대표적인 예는 갱f를 의미하는 낱말 이다. 갱f를 의미하는 日本語 kan i와 한국 語 ,,5 i는 어 떤 관계가 있는 것으로 오랫동안 생각되어 왔으며 그 관계를 다음과 갇이 설명한다. 즉 現代한국語 k5 i는 아마 옛 단계의 *ka fzi에서 뒤에 변화한 것이라고 실 명하는 것이다. 先한국語에서 母音간의 -n- 가 소멸하고 다음에는 語末. -i-의 영향에 의해서 첫 音節의 *-a- 가 -5- 로 변화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낱말-더 정확히 말한다면, 지금은 없어져 버린 한국­ 日本祖語 *kan i幾”는 어디서 왔는가? 말레이_폴리네시아語에 의해서 이 낱말의 語源을 선명할 수 있을 것 같으나 그렇지 않다. 이 낱말은실 온 알타이語 起源이다. 이것은 뒤르크祖語에서 여러 가지 종류의 기생동 물, 목히 진드기 ”를 의 미 하는 낱말 * ,,a 뼈 와 語源이 같다. 이 낱말은 뒤르크語派에서 束뒤르크語群 ka,la 여러 종류의 기생동물, 現代뒤르 크語 kena 및 카자크語 Kazakh kenii 진드기 , 그리 고 오스만-뒤 르크 語 Osmanli ge ne 진드기 로 나타난다. 이 言語 증거로 보아 日本語 kan i와한국語 ko i는 왔와 기생동물을의 미하던 알타이祖語의 낱말이 뒤에 의미를 확장하여 바다에 관계되는 용 어가 된 것이 분명해진다. 한국-日本祖 語문 사용하는 사람들이 처음으 로 太平洋 연안에 도착했을 때, 그 이상한 바다의 동물을 보고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를지 당황했을 것이다. 결국 알타이祖語에서 이어받은 그 러한 날말을 사용하여 알타이族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그 새로운 동 물을 부르게 된 것이다. 발과 가위을 가진 게의 모양에서 알타이語 화 자들은 이미 찰 알고 있는 해로운 기생동물을 상기한 것이다. 또 語源的 비유도 여기서는 복참하지 않고, 게와 유사한 이 OO 를 바다나 江의 식 용 게와 같은 것으로 본 것은 결코 한국語나 日本語의 역사에서만 불 수

있는 현상은 아니다. 보기에 대단히 유사하기 때문에 동일시했으며 다 른 여러 文化를 가진 사람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낱말이 한 국-日 本語 및 알타이 語 의 言語 중거로서 독목한 것은, 語源 的 비유의 발 전 方向-이(風)에서 바다의 동물로. 그 반대는 아니다-에 관해서 상당히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접이다. 이러 한 語源 문제를 고찰하는 데 있어서 다행히도 말레이-풀리네시 아 語의 초기 형 태에 관 해 서 자세한 것이 많 이 알려지고 있다• 이것은 목 히 前세대의 몇몇 독일 학자의 硏究에 의한 것이다. 이런 업적과 관련 해서 볼 때, 日本 語 와 말레이_ 풀 리네시아 語 사이에 보이는 의미와 형 태 양면의 유사성은 古代의 차용이지 親近관 계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는 결론을 확신 시켜 준다. 현존하는 수백에 이르는 말레이-풀리네시아 諸語에 比校方法을 적용해서 얻은 말레이_폴리네시아祖語의 再t 1YJ 는 日 本語의 最古 형태 및 다른 알타이諸語의 最古 형태와는 전혀 다른 것임 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에는 音韻 의 목록과 그 구조의 근본적인 차이를 비롯하여 形態論과 統辭論에 있어서의 대단히 다른 체계 등이 포합된다. 만일 둘 이상의 言語 가 동일 계몽이라면, 그 역사 를 소급해 울라갇수목 그들 言 語 의 형태 는 서로 유사해질 것이다. 이것은 〈계동적 親近性〉이라는 정 의의 논리적인 귀결이다. 그러나 日本 語 와 말레이-풀리네시아語를 比 紋硏究해 보면, 정반대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과거로 소급하면 할수록 日本 語 는 모든 면에서 알타이 諸語 와 가까와진다. 이러한 중거에 비추어 볼 때, 日本語와 말레이-풀리네시아語 사이에 보이는 낱말의 형태와 의 미 양면에 걸친 유사성은 차용의 결과라고 결론지울 수 밖에 없다. 日本이나 西洋의 학자는 때때로는 日本 語 가 〈混合 言語 〉라는 가능성을 생각하기도 한다. 이 용어와 그 독목한 개념을 최초로 日本語에 적용 한 것은 소련의 言語學者 폴리 바노프 E.D. Poli va nov (1890-1930) 이 다. 1914 年부터 1930 年까지에 발표한 몇몇 논문에서 그러한 · 생각을 불 수 있다( 폴리바 노프는 그의 학문이 크개 기대되었으나 그것윤 이루지 못하 고 세상을 떠났다. 분명히 스 탈린 에 의한 많은 소련 지식인 숙청의 한 희생자이었다). 풀 리바노프의 湜合言語 라는 개념에 의하면, 日本 語 는 알 타이 語 도 아니요, 말레이-풀리네시아語도 아니고, 이 두 言語 의 요소 가 대단히 먼 시기에 혼합되어 日本語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그 시기 가 너무나 먼 과거의 일로서, 그후의 역사적 변화와 발전의 과정에서

그들 두 言語의 요소가 복잡하게 서로 엉켜서 현존하는 言語 중거에 의 해서는 그 요소몰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다. 만일 日本酒가 그러한 言語 라면 混 合 言語 혹은 混種言語라 고 불러도 될 것이다. 그러나 풀리바노프의 견해 를 무조건 받아들이든지 또는 日 本語가 적어도 풀 리바노프가 말하는 의미 의 〈混合교교i〉 라고 가정하는 데 는 많은 큰 문제가 있다. 풀리바노프 자신의 견해는 국히 짤 막하게, 그 것도 겨우 몇 가지 예를 둘어 설명하고 있는 것에 지 나지 않는 다. 더구 나 이들 예가 정밀한 것이 못된다. 자료가 정확하지 않 기 때문에 그의 주장이 효과를 잃을 때도 있다. 폼리 바노프가 알타이 ; 표 의 자료룹 다루 는 것은 말레이-풍리네시아語룰 다루는 것보다 다소 정확하다 고는 할 수 있으나, 알타이語의 자료 자체에도 문제가 있고 또한 광범위 한 자료 라고도 할 수 없다. 이 점에 관한 한, 풀 리바노프의 생각은 기껏해야학 자의 상상을 직관적으로 제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硏究 도중에 일찍 타계 했 기 때문에, 그의 짊 었 을 때의 생각을 더 광범위하게 입증할 수 없었던 것이다. 풀리바노프의 日本語 混合 言語說 을 받아둘이기 어려운 또 다른 십각 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적어도 풀 리바노프가 말하는 의미의 混合言語 가 실제로 세계의 어단가에 존재하며 또 지금까지 존재했다는 것을 득 히 歷史言語學者들이 인정하기 를 꺼려하고 있다는 접이다. 그러한 견해 를 지지할 만큼 충분한 중거가 없는 것 갇다. 사실상 우리가 가지고 있 는 중거는 정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 있다. 言語 가 집촉 하면 여러 가지 일 이 일어난다. 그러나 言語 의 混合혹은 混合 言語 는 분명히 생성되지 않 는다. 言語 는 서로 차용될 수 있다. 그러나 日本語의 경우, 풀 리바노프 가 말한 것처럽 알타이 語 와 말레이-풀리네시아語가 混合한 것 갈지는 않다. 이 문제에 관해서도 역사적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구체적인 예부터 시작하는 것이 온당하며, 그리고 나서 그러한 중거가 없는 다른 상황에 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를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와 반대되 는 순서로 논의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예 물 들면 스페인 語 가 맥시코 에 들어갔을 때, 무엇이 일어났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유럽人이 멕 시코를 정복하고 식민지화한 결과, 인종이 混合하여 민족의 混合온 있 었다. 그러나 言 語의 混合온 없었다. 뒤에 납은 言語 는 지금도 스페인 語이다. 이 스페인語는 물론 오늘날의 유럽의 스페인 語 와는 다르지만 混

合 言語 혹은 混種言語는 아니다. 유사한 예는 세계의 다른 곳에도 있다. 많은 混合 인종을 볼 수는 있다. 실재로 모든 인종은 混成된 것이고 〈순 수한 인종〉이라는 것은, 인 종적 광신 자 들 의 위태로운 상상 이외에는 존 재하 지 않는 다. 그러나 역사적 증거에 의 해 서 입증할 수 있는 混合言語 의 예는 찾아볼 수 없다. 이 러한 사정울 고려한다면, 대단히 이 론 시기의 역사적 문헌이 없는 日 本語에 대해서 적 어 도 풍리 바노프와 그 계승 자 들 이 그 용어를 사용하 려고 있던 그런 목수한 뜻의 混合言語 혹은 混種言語는 선례가 없으며 또한 理論的 으로도 건전하지 못할 뿐 아니라 方 法論的 으로도 현명 하지 못하다. 이것은 사실에 비 추 어 확인하지 않고 未知의 중명할 수 없는 것 에 관한 논의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例外에서 시작하 여 그 例外물 규칙화하려는 것이다. 日本 語를 混合言語 혹은 混種 言 語로 보려는 것은 또 다른 중요한 접 에서 西洋 학계의 일치된 견해와 반대된다. 이미 강조했지만, 목히 西 洋에 있어서의 日本語 起源에 관한 최근 硏究에 보이는 가장 중요한 方 向과 동향에서 알 수 있는 것은, 日本語의 역사적 발전에서도 日本 語 가 다 른 어떤 人 間더훑i 와 갇은 言語 이고 또 같은 言語체 계 를 가지고 있다 는 접 이다. 그리고 그 起源은 다른 많 은 아시아 및 세계의 言語 에서 공 몽적으로 보이는 같은 역사적 발전 과정에 입각해서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문 리바노프의 〈混合 言語 〉 가설은 이것과 정반대되는 方向울 취 하고 있다. 만일 그 선이 성공적으로 인정된다면, 日本 語 는 유일하고진 정한 混合言語 의 예가 된 것이다. 이것은 또한 日本語가 세계의 목 이한 言語가 되고, 人 間旨語 의 공몽된 역사적 흐름에서 예외가 된다는 것울 의미하는 것이다. 아마도 풀 리바노프의 이러한 실에 내포되어 있는 言 語발전에 있어서의 고립성과 목 이함에 의해서, 現代 日本 학계에서 이 설이 부활되고 있는 데 흥 미 를 느끼는 사람도 있는 것을 설명한 수 있 을것이다. 그러나 말이라는 것은 생각 나 름 으로 용이하게 사용 할 수 있다. 言語 學 의 용어나 다른어떤 科學의 · 용어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둘의 생각과 方法 論율 풀리바노프의 대단히 목 이한 용어 해석과 신중하게 구별만 한 다면, 日本 語 의 분류에서 〈混合 言語 〉라는 명칭을 사용해도 무방 할 때가 있율것이다. 순수한 인종이 확실히 없는 것처럽-풀리바노프의 해석과는다른일

반적 의미로-또한 混合言語가 아닌 言語는 없다. 칙집적인 중거가 있 는 다른 모든 言語처럽, 日本語도 그 긴 역사와 발전 과정에서 많은 다 른 言語 에서 차용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이돌 言 語 중에는 日本語 처럼 알타이祖 語 와 親近관계 가 있는 것도 있으나, 그렇지 않은 言語 도 있다. 이들 言 語는 모두 日本語의 발전에 여러 가지로 공헌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日本語는, 英語와 中國語와 러시아語가混合 言 語 인 것처럼, 분 명히 混合言語이다. 日本語史의 이러한 면을 강조하기 위해서 〈 混合〉이라는 용어물 사용 하는 것도 아마 유익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로 사용함으로써 日本語의 역사 전체에서 강조하고자 했던 것, 죽 日本語가 세계의 다른 言 語 와같 온 변화와 발전을 겪었다는 것을 강조하게 된다. 만일 日本語가 이러한 일반적인 의미의 混合 言 語 가 아니라 순수한 言 語라면, 이것 또한 세계 의 言 語 에서 유일한 존재가 된다 .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사 실 이 아니다. 동시에 강조되어야 할 것은, 이 런 종류의 〈混合〉-풀리바노프와 그 의 학설에서 말하는 混合과는 다르다-은 모든 言 語에 공몽된 현상 이 라는 점이다. 또 그 현상 자체에 의 해 서 해당 言 語의 계동적 親近관계가 애매해지는 것이 아니다. 로마의 군대와 이민이 古代 골 Gaul 에 가져온 라틴語는 거기서 골語와 混合하여 〈混 種 〉 言 語 가 되지 않았다. 골에 있어 서의 라틴 語 는 로마帝 國 의 다른 지역에 보이는 변화와는 다르게 변화했 지만, 이 言語변화 에 의해서 프랑스 語 가 로망스諸語 중의 한 言 語 ­ 라틴 語 가 뒤에 변화한 형태-라는 사실이 애매해지지는 않는다. 모든 言語 의 이러한 混合__주로 전역사물- 몽해서 言 語 사이에 일어난 言語 요소의 차용을 의미한다__이 만일 言 語의 계몽 을 애매하게 한다면, 세계의 어느 言語 도 :::z. 계동을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이 일 반적인 의미에서__폴리바노프가 말하는 의미가 아니라__세계의 모 든 言語 는, 모든 인종이 混合된 인종인 것처럼 또한 混合 言 語 이기 때문 이다. 英語에는 여러 충의 많은 借用語가 있다_一때로는 英語와 계몽이 갇 온 言語 에서도 차용한다-는 의미에서 英語 가 다른 言 語 와 갇이 〈混 合 言 語 〉라는 사실이, 英語가 게르만 語 위 하나이며 印歐祖語로부터 변 화한 言語라 는 사실을 갑추지도 못하고 또 부정하지도 못한다. 러시아 語는 몇 세대에 걸쳐 여러 알타이 諸語 의 화자들과 접촉했기 때문에, 많 온 借用語 가 둘어왔다. 그러나 이 借用語에 의해서 러시아 語 가 슐라브

語의 하나이고 또 印歐諸語의 한 형태라는 사실을 바꾸지도, 애매하게 도 하지 않는다. 이 계동적 親近관계에 대한 중거는, 그 긴 역사에 있 어서 많은 言語 요소가 〈混合〉하고 차용되었기 때문에 복잡해졌으나, 그 때문에 그 親近관계 가 감추어지거나 또는 애매해지지는 않는다. 日本語 에 들 어온 이들 言 語는 한국語와 같은 다른 알타이諸語로부터의 차용이 아니면, 中國語나 말레이-풀리네시아語와 갇은 非알타이語로부터의 차 용일 것 이다.

제 4 장 日本 학계의 상황

日本語의 起源을 고찰하는 데 있어서 日本 학계가 당면하고 있는 문 제, 목히 硏究의 自由풀 얻은 과거 30 여年 동안에 당면한 여러 가지 문 제에 어느 정도 주의몰 기울이지 않으면 완전하다고 할 수 없다. 日本 에서 거의 매일감이 출판되는 이 분야에 관한 대중적인 서적이나 학술 져 문헌을 읽는사람 혹은 日本 학자의 硏究에 뒤지지 않으려고하는사 람온 누구나 곧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다. 하나는 방대한 문헌이 있다는 것과 이 문제의 硏究에 바친 日本 학자 의 대단한 노력이다. 日本에서는 日本語의 起源에 관해서 너무도 많온 서적이 출판되고 있다. 따라서 누구나-록히 日本에 거주하고 있지 않 는학자나 日本의 책과 논문을 입수하기가어려운학자는-어떤 중요한 출판불을 보지 못할 수도 있고 또 불충분한 증거에 입각해서 결론을 내

리는 경우 가 있다. 그러나 책 망 할 수는 없다. 너무나 많은 硏究자료가 발표되었 기 때 문에, 한 학 자가 여기 관련된 모든 문헌에 완전히 정동~ 다는 것은 바 랄 수 없는 일이다. 또 하나 의 중요 한 사 실 은, 이 문재 물 硏究 하고 있는 그 많은 학자들 이 지 금도 19-+5 年 이전의 독재적 국수주 의자 들 이 선정한 낡은 年代체계 에서 비 못된 불필 요한 재한밑 에서 硏究롭 게속 하고있는접이다. 이 분· 야의 진 지한 모든 硏究를 지금도 방 해하 고 있 는 것은 전 적으로 믿을 수 없는 초기 日 本文 化 의 年 代 체계라는 것 이 일반적으로 인식되지 않 고 있 다. 日本 語 의 起源 문제 에 관해 서 日本에 서 이 루 어진 대표적인 硏 究 ~ 주의 깊개 살펴 보 면 , 日本 의 모 든 脈史 - 比敍 言 語淨者 의 노 력을 이처럼 억제하 고 있 는 요인이 따로 없다 는 견해를 많 은 西洋 학자 들 은 가지게 된 것이 다 . 오 늘날 日 本 에 는 紀元 mI 660 年 부터 현 재에 이르는 짧은 기간 속에 日 , 本의 文)] 과 文 化의 역사적 발 전 전 체를- 압 축 하는 것이 필 요하다고 진 지하 게 말 하 는 사 람 은 없 겠 지만, 1945 年 이전의 文敎 當 局온 이 접을 강· 하게 고 취 했 다. 이 인위 적 이고 속 이 들 여다보이는 非歷史的 규범에서 ~ 금이 라도 벗 어난다면 엄벌에 처 했 다. 자유로운 학문硏究에 대한 이러 한 재한 아 철대된 후 30 年 이 지난 오 늘 에도 그런 억제는 분명히 남아 있다. 많 은 日 本 학자 들 은 日 本語 의 起源 문제에 접근할 때, 마치 紀元 . 前 6 세기 동 안에 모 든 것이 일어났다고 확 신하고 있는 것처럽 이 문제 률- 다 루 고 있다. :::z. 결 과, 이 600 年 이라는 짧 은 기간 내에서 필 요한 발 전 을 설명할 수 있는 체계 몰 설정하기 위해서 __필 자가 보기에는 헛 된__노 력을 불필 요하게 쏟고있다. 이 렇 게 볼 수 없는 여러 이유 물 우 리는 이미 보아 왔다. 그 중요한 이유는 그러한 체계로는 考 古 [안 의 중거 몰 설명하기에 충 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또 日本에서 확 실하게 증명된 발견을 아시아大 陸 에서 역시 확 실하게 증명된 발견과 연결시킬 수 있~ 여유도 없다. 紀元 前 7 세기까지는 日本의 文明, 文化, 言語 의 형성 단계가 모두 끝· 났다. 紀元 前 7 세기 이전에 人間文明의 이러한 독 특 한 발전 을 가쳐오고 또 日 本 文化의 발전 方向율 결정하는 것은 무엇이돈 이미 일어났던 것 이다. 이 日 本語 起 源 문제에 관해서 日本 학자들이 GE 說 〉 을 세우자 못하고 있는 중요한 이유의 하나 폴 들어야 한다면, 전혀 믿 을 수 없는 I 엇 5 年 이전의 초기 日本史의 年代체계가 불행히도 日本 학자 들 의 사고鵬

속에 끈질기게 남아 있다는 점을 들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은 공적으로 이 체계를 진지하게 거론하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것을 잊 온 것은 아니다. 그것은 지금도 日本 학자의 배후에 숨어 있는 강한 참 재력이 되어 있으며, 지대한 장해 요인으로 남아 있다 (1945 年 이전의 믿을 수 없는 年代체계가 납아 있는 다 른 이유는, 이미 지적한 바와 같 이 기록이 없던 시대의 非裝耕文明과 민중에 대한 학자들의 전동적인 편 견이다). 다른 어떤 이유보다도 이 年代체계의 전통주의가 남아 있기 때문에, 〈騎 馬民族 〉(北民族)에 의한 日本校入說이 日本의 일반 독서계와 또 古 代日本史의 진지한 硏究者둘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이 〈 많삶 馬民族 〉 說 의 전개와 더불어 日本 대중의 상상력은, 사실의 온당한 고찰을 가로막 고 있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것처럼 보이는 매력적인 해결方法 을 얻게 된 것이다. 〈 騎馬民族〉說 에 의해서 先史시대의 年代체계를 펀 리하게 세울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騎馬民族〉說은, 잡다한 민중과 人間文化의 초기 단계――여기 대해서 日本 학자는 전동적인 편견을 가 지고 있다__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하는 불쾌한 필요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편리하고도 줄거운 수단__이런 수단은 지지할 수 없지만 __ 운 제공하는 것이었다. 이 〈 騎馬民族 〉이 누구이었는지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고 또 오늘 날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의국의 일종의 엘리트-보몽 사람이 아 닌 중요한 무시할 수 없는 사람 __- 이었다는 생각을 강하게 풍기고 있 다. 그들에 관해서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그들이 우수한 민족이었 고, 따라서 日本의 先史에 포함될 만하다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죽 〈 騎 馬民族〉은 잡다하고 非裝耕的이고 大陸 혹은 韓半島에서 넘어온 기목 이 전의 未知人보다 日本의 先史에 포함될 만한 . 것이었다. 학문의 탈을 쓴 끊임없는 추적의 흐름을 타고 日本의 대중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 기에 이르렀다. 자기들의 조국이 先史시대에 침략되고 점령되었다고 생 각해야 한다면__마치 이러한 추적이 한참 유행했을 때, 다시 한 번 의 국의 엘리트에 의해서 점령된것처럼__그둘이 생각할수있는것은적 어도 침략자가 포악한 형의 민족이 아니라, 〈우리들과 같은 사람〉, 죽 엘리트인 騎馬貸族 이라고 가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가정은 先史 學者 , 考古學者, 言語學者 의 진지한 흥미몰 끌 수 없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社會病理學을 硏究하는 사람은 이런 추축에서 많은

硏究자료 를 발견할 것이다. 아 뭏든 日 本語 의 起源에 관한 우리 들의 硏究에 서 〈 騎馬民族 〉과 日 本 에의 침략과 관련해서 중요한 것은, 그러한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는가 하 는 것보다는 언제 일어났으며 또 日本 語 의 발전 과 起源 에 어떠한 形 成的 역할을 했는가 하는 접 이다. 초기 日本의 文化 , 國家 , 文明 발전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사 건이 아시아 大陸에서 건너온 〈 騎馬民族 〉에 의한 적어도 한 차례의 大良 入이었다 는 가설은 그 자 체가 여러 문제룹 내포하고 있다. 다행히 그러 한문제의 대부분은 本암 의 범위 밖의 일이다. 이러한 가설의 중요한 이 정은, 초기 日本 의 외적 영향의 중요 성 을 인 정하는 것인데, 또 日本에 있어 서의 발전을 초기 아시아, 목히 한국에 있어서의 정세와 관련시키 는 접 이다. 이 두 가지 정은 분명히 옳 은 方向이라 하겠다. 이 가설의 중요한 약점은 이 가설이 발전한 것과 관계가 있다. 특히 전적으로 증거의 결 여에 대한 반응으로서 나타난 사실이다. 眞空 을 싫 어하 는 것은 自然 만이 아니다. 학문도 그 렇다 . 〈 騎馬民族 〉 說 이 널 리 퍼 진 다 름 아닌 이유는, 분명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려고 하는 데 있었다. 증명할 자료가 없으면, 이러저러한 일이 튤 립없이 일어났으 리라고 간단히 주장하고 또 착 입자가 騎馬民族 이 든 外界에서 비행접시 를 타고 날라온 사람이든 그 들 의 영향을 받았다고 간단히 말해 버릴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가선은 考古&園的 자료 를 다루는 데 있어서 약접이 있다. 그러나 〈 騎馬民族 〉 說 의 이러한 내부적 약접을 별문제로 하 더 라도, 日 本語 의 起源 에 관한 한, 言語 까지 포함한 日 本文化의 모든 면 의 形成j바운 역사시대 초기로 정하려는 것이 그 주된 한계이다. 〈 騎馬 民 族 〉 說 이 드는 침입은 4 세기 말에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r.. 시기에 그러 한 침입이 있었을는지 모른다-이 설의 신봉자들이 마음에 그리는 큰 규모의 파괴적인 그런 침입이. 그러나 침입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數千 年간 호모 사피 엔스 種 이 살고 있던 나라에 들어 온 것이 다. 〈 騎馬民族 〉이 실존했다고 하더 라도, 참다운 形成期에서 이 미 數千年이 지 난 文化的, 言語 的 상황에서 들어온 침입자이었던 것이다. 4 세기 말. 日 本 의 생 활 에 어떤 중요한 일이 일어난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어느 중요한 일이란, 大陸으로부터의 침입일는지도 모른다. 그러 나 실제 그러한 일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l 아.5年의 패전 이후 연합군이 E 本울 접령했다고 해서 言語 와 文明에 큰 흔 적을 납기지 않았던 것처

럽, .言語 와 文化에 큰 흔적을 남겼다고는 할 수 없다. 日本의 文化와 言­ 語는 , 그 궁극적인 起源 이 어떠하 든 , 紀元 500 年경까지는 이미 형성과 어 있었다. 言語 발전에 있어서의 필 요한 모든 단계 를 역사시대에 포함 시키거나 ­ 혹은 기껏해야 그 시기보 다 약간 소급시키려는 日 本 학계 의 강한 참재 적 경향은 여러 가지 문헌 이나 추축에 나타나고 있다 . 예 를 들 면, 최근 ­ 어느 日本 학자는 日本 語 와 티배트-버마"염가 親近관계가 있다 고 주장 했다 . 얼론 보기에도 사실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 이 가설의 전개와 方 法 論 으로 보아 결론에 신빙성이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 학자는 대부분 · 의 학자와는 달리 日 本語 가 다른 어느 한 言語 혹은 諸급i E 와 親 近관계 가 있 음 가능성읍 고려하려고 하고, 그 이상으 로 중요한 것은 , 이러한 · 親近관계 가 언젠가는 충분한 설득력운 가지고 중명원지도 모른다는 것 을 고려하려고 한 접은 滿患k 울 받을 만하다. 그럼에도 이 학자는 日本-티베트-버마 言語 사회가 彌生 시대에 존재 한 것을 증명하려 함으로써 1945 年 이전의 正統 的 年代 재한 이 지금도 ­ 남아 있음을 무의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의 설에 의하면 , 티베트­ 버마 語 의 화자들이 彌生 시대에 그 言語을 大 達 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1945 年 이 전의 낡은 年代 체 계 인 紀元前 600 年으로 ` 年代 를 한정한 것이다. 물론 오늘날은 日本의 考 古 學 的 증거와 유라시아의 다른 지역의 많은 言語 증거를 충분히 이 해하 고 있기 때문에, 이 중요한 발전 年代몰 그 렇 게 재한하는 것온 전혀 비현실적인 것입을 곧 이 해 하 게 된다. 日本 語 와 티베트-버마 語 와의 親近관계 에 관한 이 학자의 선융 받 아 돌 이기에는 또 ­ 다른 심각한 문제가있다. 그러나 이 문제가 어 떻게 해서 해결된다 고하 · 더라도, 그렇게 역사적 발전을 彌 生 시대 이 후 의 짧 은 年代로 제한하려 는 노력은, 낡은 개념과 한계가 학문硏究를 끈질기게 억제하고 있는 것 율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낡은 개념과 한계는 1945 年 이 후 에 일소 되 었어야 했다. 그러나 낡은 태도와 접근方法이 아칙도 존속하고 있는 것 을 별문계 로 . 하더라도, 日本의 言語學 界가 日本 語 의 起源 문제 를 다루기 를 꺼려하는 데는다른이유가있다. 그이유는상당히 복잡해서 여기서 엄밀하고철 처하게 다 를 수 없지만, 이러한 상황올 가져온 주된 요인으로 西洋 학· 자의 눈에 비친 것을 열거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먼저 日本의 현대 言語學者둘 이 日本語의 起源 문재에 관해서 〈定說〉 이 라는 것에 도달하지 못한 것은, 적 어도 이론적으로는 다음 새 가지 이 유 중 어느 하나에 기인한다고 상기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 日本 語 자체의 탓일는지 모른다. 日本語는 다른 人間 言語 와 어 던가 다 릅- 지 모르며, 어느 면에서는 유일무이한 독목한 존재로서 그 역 사 는 다른 많 은 言 語의 역사을 해명하는 데 유효한 方 法 으로는 硏究할 수 없을는지 모 른 다 . 日本 語 에는 독 득 한 정신적 본질 이 있어서 이 러한 신 비로 운 요 소 를 :::z.. 구성 부분으로 갖 지 않은 言語 와 다를지도모른다. 그 리고 이 러한 신비로운 성분이 있기 매문에 日本 語 의 역사, 죽 日本語의 起源에 관 해 서 우리 둔 이 현재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硏究할 수 없운지 도모 른다 . 日本 학 자 등 은 때메로 이 문재에 대한 그러한 생각을 진지하게 발전 시켜 왔다. 그리고 그것을 진지하개 되풀 이 해 서 쓰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볼때 실망하게 된다. 오늘날 日本의 일부학자들은 日本語에 참재해 있 으리 라고 생각되는 이 신비로운 혹 은 정신적인 목질 -__이것이 있기 때 문에 日本 話 룹 단순히 인 류 의 한 言語로 다울 수 없다고 그들은 말한 다―― 룹 표현하는 古代日本語의 한 낱말을 부환시켰다. 그것은 고또다 마( 답호 ) 日本語의 }표 라 는 용어이다. 말한 김에 언급되어야 할 것은, 〈 듭요 〉 -을 이 목수한 의미로 사용하는 것융 日本i E 와 日本文化 내부에 있 어서의 이 낱말의 역사를 모독하 는 것이 되는 접이다. 〈 言 函 〉神 話 와 그 신빙성 을 현대 에 부활시킨 것은 言語學융 짓궂게 혼란하게 할 뿐만 아 니라 日本의 古代 룹 의식적으로 왜곡하는 것이 된다. 아 뭏든 日本語에 관해서 어떤 수준이든 과학적 硏究룹 해야 하고 또 목히 日本語 의 역사 설- 硏究하 고 그 起源융 추구하려면, 이러한 모든 설 이 거 부되 어 야 한다. 〈 言 요 〉 信 仰의 새 로운 부활과 古代 日 本 의 사상과 文 化를 왜곡 시키는 모든 것이 단호히 거부되어야 한다. 단순히 〈 압盆 〉이 있기 때문에 日本語의 起源울 알 수 없다고 믿 을 수는 없다. 그러나 현 재 日本에서는 많은 학자들이 분명히 그 렇게 생각하고 있다. 둘째, 현재 日本 語 의 起源 이 애매한 이유로서 자료 부족의 결과 일 가 능성을 고려 할 수 있을 것이다. 日本語의 이 론 형태 혹온 日本語와 親 近관계가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한국語와갈은 다론 인접 言 語 의 이 론형 테에 관한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日本語의 학자둘이 日 本語 의 起源 에 관한 G 컵節 에 의견의 일치 를 보지 못하고 있고 또 의견의 일치 를 꺼려

하고있는데는분명히 다른이유가있음 을 이미 언급한바있다. 더 중 요한 것은 한국 tE 와 뭉구스 語 의 경우, 옛 기 록 은 없으나 歷 史 言語學 의 比 軟方法윤 現代 tE 에 적용 함 으로써――그것은 충분히 가능 하다 __- 그결 함 을 보 충할 수 있 는 것이다. 죽 자료 부 족 이라 는 구실은 이 문제에 관 한 현 재 日本 의 많 은 논문에서 〈 言죠 〉 다음으로 유 력한 구실 인데, 역시 옳 지 않다고 판 단되 어 야 한 다. 세번째 이유, 첫 번째와 두번째 이유는 분 명히 크게 주목할 만한 것이 못 되며 또 탓 할 바도 못 된다 . 言語 자 체 의 탓 도 아니요 또 이용 가능 한 자료 부 족 의 탓도 아니라면, 단 한 가지 가 능 성이 있 을 따 름 이다. 그 것은 학자 들 의 행 동양식이다. 다시 말하면, 발 전 을 가 로 막고 있는 것은 문제 물 硏究하는 방식이지 문제 자체가 아닌 것이다. 다른 모든 이유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이런 결론에 이르러서, 日本 語 의 起源 에 관한 최근의 많 은 학자들의 方法 젊삶 과 접근에 관한 여러 문재 들 을 확 인 할 수 있다. 여러 학자의 행 동양식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다음에 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 는 10 개 항목을 들어 보기로 한다. 이것은 묵 히 日本 에서 194 .5年 이후 이들 硏究진로 몰 결정하는 데 있어서의 역 할 에 따라서 대충 정리한 것 이다. 첫째, 먼저 들어 야 할 것은, 日本 학계가 아직도 歷史言語[} 의 比 校 方法과 이 方法 論 이 言語 史 를 추 적하는 데 있어서 제공하는 가능성에 익 숙하지 않다는점이다. 日本의 대학에서 이 方 法울 가르치고있고 또 硏 究하고 있지만, 그 대상이 제한되어 있어서 西 洋 의 言 語 硏究에 한정되 어 있다. 그리하여 日本 학계에서는 이 方法이 다만 西洋 의 言語硏 究에 는 유효하지만, 日本 語 의 硏究에는 효용이 없다는 그 릇된 생각 을 하게 되었다. 물 론 이것은 옳 지 않다. 두번째 범주는 첫번째 범주와 밀집한 관계가 있고, 첫 번 째 범주에서 자연적 인과관계에 의 해 서 생기는 것이다. 比 紋 方 法 의 硏究문 무시하는 결과로서, 日本 語 와 다른 諸言語 와의 比 校 가 진지하게 행해 지는 경우라 도__그런 경 우는 드 물 지 만-항상 〈유사하게 보이 는〉 낱 말 의 대 비 에 서 그친다. 그리하여 사소 하 고 중요하지 않은 어 휘 比 校 수 준 에서 벗어 나지 못하고, 일반적으로는 比 陵 方 法 의 핵 심인 比 校 文 法 의 수준에 이르 지 못하고 있다. 文法 충위에 있어서의 참다운 비교가 없는 것은 무엇 보다도 比 紋 方法의 硏究가 없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比 校 方法이 실제로

무엇이고, 比紋方法은 무엇을 달성할수있는가를 이 해하지 않고, 또 학­ 자들은 불행히도 比鼓文法의 진정한 문제는 다루지 않으면서 다만 어휘 비교에 그치고 있다. 이것은 日本語의 起源 이 계속해서 애매한 커다란 원인이 되고 있다. 세째, 日本語의 구조, 특히 日本의 학교에서 보몽 가르치고 있고 공 부하고 있는 日本語文法에 관한 전통적인 접근方法은 文字체계에 구속 되어 있어서 日本語의 구조를 밝히기보다는 오히려 애매하게 만들고 있 다. 따라서 이 전동적인 方法은 다른 諸 言 語 와의 역사적 관계를 애매하 · 게 하기 쉽다. 그렇지 않았 다면, 다른 言語 와의 역사적 관계가 오래 전 에 눈에 띄게 되었을 것이다. 比 救 方法이 처리할 수 있는 것은 확실한 一 言語자료만이 다. 전동적 인 日 本 [잦校文法 의 접 근方法, 목 히 日 本語의 굴 절 형태에 관한 學校文法 의 설명은 言 語사실을 文字체계의 규범에 종속 一 시키고 있다. 이 복잡한 [.장校文法 체계를 어린 시절부터 암기해 온 학 · 자둘은 이 부자연스런 제약에서 벗어나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네째, 1945 年 이후 日本에서는 英語 이의의 외국어 공부가 동한시되 고있다. 득히 日本語와 親近 관계가 있는것으로 무리 없이 기대되는 아 · 시아의 諸言語 -한국 語 와 알타이諸 語 같은-의 原語에 의한 硏究가 놀라울 정도로 등한시되고 있다. 比 救 方法을 적용하고 진정한 比校文法 . 올 가지기 위해서는 비교되는 모든 言語 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흔히 日本 학자들은 다른 言語 에 관한 言語 자료 를 두 다리 세 다리 건너서 간접적으로 인용하는 데 만족했다. 日本 語의 起源문제물다문 학문적인 硏究의 여러 경우에도, 다론 言語 의 분~ 명히 부정확한자료가 이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십 년 동안 계속해 서 부정확하게 이용되고 있다. 또 책의 경우에도 語形과 意味 면의 :::L 러한 찰못이 수정되지 않은 채 版이 거듭되고 있다. 다른 言語융 직접 알지 못하기 때문에 言語 자료 를 그렇게 조십성 없이 다무게 된 것이다. 조심성 없는 자료 처리와 語形 의 잘못된 인용이 존속한다면, 日本 語 의 起源 문제 를 해명하는 데 공헌할 수 있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 다섯째, 이것은 네번째 문제와 밀집한 관계가있다. 여러 학자둘은 다 론 言語 의 자료를 두 다리 세 다리 건너서 인용하는 데 만족할 뿐만 아니 라, 다른 言語 의 직접적인 자료에 생소하기 때문에, 日本 語 와 몇몇 의 국어와의 몇 개 안 되는 낡은 어휘비교를 되풀이해서 인용하고 있으다 자기 자신의 새로운 비교는 제시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 문제는 룩하

召本語 와 한국語의 比校에서 중요하다. 여기서는 일련의 찰 알려진 낱 칼의 比紋―一그 중에서 몇 개만이 표면적인 〈유사어〉 수준에서 벗어나 고 있다_一가 거의 1 세기 동안 계속되고 있으며, 각 저자들이 되풀이 해서 인용하고 있다. 그동안 日本語와 한국 ,: 5 의 바교에서는 , 日本語와 다른 알타이 諸語 와의 미교에서와 갇이, 풍부하고 새로운 참재적인 比紋 자료의 원천에는 손을 못 댄 채 硏究되고 있지 않다 . 실제로 比鼓文法의 고려가 포합되고, 따라서 日本 諸 의 起源을 밝히는 데 중요한 도움이 되는 이 둡 모든 言 語의 比鼓에서 참재적으로 이용 가 능한자료가 득-히 풍부하지만 거의 모든 경우에 손 응 대지 못 하고있다. 여섯번째 요인은 위의 것과 밀집한 관계가 있다. 그것은 日本語와 다 른 言語 와의 비교에서 지금까지 알 수 있는 것 이상은 알 수 없을 것이 라고생각하는 경향이다 . 또 日本의 문헌에 과거 수 세대 동안 자주 인용 되고――혹은 잔못 인용되기도 하는-그리 많지 않은 〈유사한 〉 어휘 의 비교가 신제로 인용할 수 있는 증거 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다. 日本 ;5 와 한국t E 사이에는 및 개의 〈비교예〉 만이 있다든가 또는 日本 語 와 어느 답 ,: 5 사이에는 〈대단히 소수〉의 유사어밖에 없다든가 하는 것을 놀랍게도 日本의 책이나 잡지에 서 자주 읽개 된다. 또 이것과 유 사한 단정적인 그리고 일견하여 최종적 인 단안운 내리는 것도 붕 수 있 다. 이러한 주장은 이 문제에 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이용 할 수 있는 자료가 빠침없이 조사되었다는 가정에 서 있 는 것이다. 이러한 터무니없는 주장이 다른 곳에서는 책임 이 있는 학 겨돌에 의해서 언급되고 있다. 따라서 일반 독자들이 그것이 사태운 사 실대로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 러나 물론 그러한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먼 것입을 우리는 알고 있다. 日本에 있어서의 日本語의 起源 硏究는 이용 가능한 言語 중거에 의한 硏究몰 시작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 정에 있어서 西洋에서는 日本에서 보다 많은 것을 했다 . 그러나 西洋에서도 지금부터 해야 할 것이 대단 히 많다. 日本語와어느 言語 사이에는어느만큼의 비교만아 확정될수 있다든지, 혹은 日本語와 이러저러한 言語 와의 비교는 가치가 있거나 혹은 흥미 있는 것을 밝혀 주지 않을 것이라든지, 이렇게는 일반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못 된다. 그것은 거의 모든 경우, 그러한 硏究에는 포 괄적인 결론을 내리기에 필요한 엄밀성이 전혀 없기 때문인 것이다. 硏 究는 아칙 끝나지 않았다. 따라서 그 결과도 아직 나오지 않은 것이다.

이 분야의 많은 日 本 문헌에 생소한 사람에게는 위에서 말한 비평의 몇 가 지 혹 은 그 전부가 다소 센세이셔널한 고발로 보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日 本 의 문 헌을 오 랫 동안 읽고 있는 사람은 위에서 든 6 개 조항 에 관계가 있는 많은 논 문 과 책을 상기 할 것이다. 위에서 든 6 개 조항 의 하나하나에 대한 많 은 예 를 드 는 것 은 어렵지 않으나 유쾌한 일은 아 니다. 다 행 히 그 럴 필 요가 거의 없다. 문헌 에 어두우나 이러한 일에 호 기심 을 갖는 사 람 은 불과 몇 페 이 지 안에서 그러한 문재 하나하나를 동 시 에 보 여 주는 한 예 물- 볼 수 있다. 그것은 오노 스스무(大野 晋 )의 『 日本 語 의 起 源』 이다. 이 분 야의 표 준적인 책 으로서 1957 年에 初版이 간 행된 이 후 계속해 서 版을 거 듭 하고 있다. 1976 年에는 23 版에 이르렀 고 그 이 후 에도 重版 이 나온 것으로 생각한다. 홍 미 를 느끼는 독자는 170 패 이 지을- 보 는 것 이 좋 다. 여기서는 몽 골語 로 인용한 것이 실온 몽 골 語 가 아 닌 만 주語 이 다. 동시 에 츄바시 Jli. 뒤 르크 語 에서 두 낱말을 인 용하 고 있 는데 천 자가 물 리며 또 古代뒤르크 語 에서 인용한 語 形도 들 린 댜 125 패이지에는 있지도 않은 한국 語 낱말, 죽 〈유령〉 낱말을 적어 도 하나 들 고 日 本語 와 바교하고있다. 168-9 페이지에서 뒤르크 語 -日本 語 비교예는 대단히 적다고 단언하고 더 많은 것을 발견하려 했지만 실 패 했 다는 뜻을 비치고 있다. 외국어의 자료 룹 잘못 인용한다든가 또는 일반 독자의 표준적인 책에 서 학자의 입장을 이렇게 잘못 전하는 데 문재가 있을 뿐 아니라, 30 版 가까이 版을 거듭하면서도 수정되지 않은 채 있는 데도 문재가 있다. 이 분야의 日 本 학자들을 괴 롭 히고 있는 이들 목 수한 모든 문제을 구체적 으로 보여주는 것으로서 이 책을 능가할 만한 것이 다시 없다. 大 野 敎 投의 책은 우리들의 일곱번째 문제, 축 日本 학자가 외국에서 발표된 학술논문 을 연구하고 인용하기 를 꺼려하는 것올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이것은 이 분야에서 목 히 해로운 결과 몰 안겨다 준다. 이미 본 바와 갈이, 日本 語 의 起源 연구는 言語 硏究의 한 분야이며, 그 몇 가지 중요한 硏究는 겹語 밖에서 이루어졌다. 불 러가 지금으로부터 120 年 전 에 비인 V i enna 에서 그의 硏究 룹 발표한 이래 그렇다. 日本 이의의 나라에서 나온 출판물을 무시합으로써 日本 학자들은 그 돌이 이 분야에서 이목할 수 있는 공헌을 불 필 요하게 제한하고 있다. 예 들면, 大野 敎 授는 위르크語와 日本 語 의 비교예의 수가 대단히 적다 는 1957 年의 주장을 1975 年에도 되 풀 이하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2 年

앞서 1974 年 소련 학자 아재르바예프 Azerba j ev 는 소 련 카자크共和國 科 學 아카데 미 《通 報 lzvas tj a 》 에 , 日 本語 와 몇 몇 튀 르크諸語 의 자료를 그 자신이 비교한 것에 입각한 중요한 硏究 룹 발표했 다. 日 本語 와 뒤르 크 諸語 사이에 성립 될 수 있는 比 鼓音韻論 이라는 재한된 분 야이지만 아 제르바예프는 상당한 수의 신빙성 있는 비교예 을 재 시 하 고 규 칙 적인 音 韻 法則을확립했다. 大野 敎 授 의 책 에서 日 本語 와 뒤 르 크 i E 의 비교에 관 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1957 年의 初 版 에서 는 옳을수 도 있고 옳 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1976 年 l lti에서는 확실 히 옳 지 않게 되었 다. 版을 거듭하 면서 이 옳 지 않은 정보 를 되 풀 이하고 있 는 것은 , 이 방민의 중요한 문 헌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러 한 상 황 에서 는 底史 言 語댜을 포함한 어떤 科 學 이라도 발전 할 수 없다. 日本 학자가 외국의 학술문헌 을 우시하 는 데서 비 롯되는 예 를 또 하 나들수있다. 이 예는다론모든예 플 대표 할 뿐만아니라, 그자체 도 또한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1975 年 세계적으로 저명한 뒤르크 語 학자인 멩 게스 Karl H. Meng e s 敎 授 는 서 독의 비 스바덴 W ies baden 에서 日本語와 다른 알타이 諸語 와의 관계에 관한 중요한 硏究 룹 발표했 다. 이 硏究는 日本 語 의 起源에 관한 모든 문제 를 다 루 고 있는데, 지금 까지 日本 학자들에 의해서 전적으로 무시되고 있다• 그런데 그 내용과 발견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반 독자충에 알려지지 않고 있 을 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硏究에서조차도 이 훌 융한 유럽의 학자가 이 문제에 관해서 말하고있는것을배우려는관심은고사하고호기심올보 인 흔적조차 없다. 이 몽단할 사태가 가시지 않는 한, 이 분야에 관한 日本의 硏究가 어떤 중요한 발전을 하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적어도 간단히 언급할 필요가 있는 위에서 지적한 마지막 세 가지 문 제영역은 어느 것이나 일반적이고 理 論 的인 성격조차 띤 것이지만, :::J.. 렇다고 위에서 열거한 더 구체적인 다론 문제보다 중요성이 덜한 것은 아니다• ::z. 몇 가지에 관해서는 本 꼽 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다. 먼저 위 에서 열거한 여덟 번째 사항이 문제 인데, 比 紋 方法이 할 수 있는 것에 관 해서 어느 정도의 오해가 있는 정이다. 물론 일반적으로 이 方法에 관 한 칙집적인 지식과 경험이 없다. 日本 학자둘은 方法 자체 를 충분히 모 르고 있기 때문에 이 方法의 목표와 가능성이 찰 이해되고 있지 않다. 이 方法은 〈 諸言語 가 관계가 있는 것을 증명〉하는 方法이라는 일반적인 오해가 있다. 사실온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이 方法의 목표에 관한 그러

한 오해는 그 方法과 발견에 관한 오해 물 가져오게 된 것이다. 둘째로, 이것은 위에서 말한 것의 직접적인 결과인데, 比鼓方法에 의 해서 발견되는 것의 성질에 관한 이해가 없다. 목히 이돌 발견된 것은· 증명이 아니고 또 증명하려는 의도도 없는 것이며, 다만 硏究 자체가 다 루는 親 近관계에 대한 독창적인 가선 또는 추정을 지지할 수 있다. 설 득 력 있는 층거를 축적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고 있는 것이 다. 그롯된 기대는 실망운 안겨다 줄 따룹이다. 比救方法 혹은 脈史言 語年의 테크닉 이 증명하는 것이라고 오 해한 다면, 그러한 중명을 할 수 없을 때 실망하고 만다. 이런 오해와 실망은, 方法과 그 본질적인 가정 과 그 硏究原理룹 이론적으로 건전하게 이 해 합으로써만 극복될 수 있는 것이다. 끝으로 이 분야에 관해서 日本 학자가 쓴 많은 논저에는 어떤 이유 때 문에 敗北主義 정신이 퍼쳐 있다. 여러 논저를 보면, 日本語의 起源에 관해서는 오 늘날 중요한 것이 아무것도 알려져 있지 않다든지 (확실히 옳지 않다). 또 장래에도 아마 중요한 것이 알려지지 않으리라는(앞의 가정처럼 분명히 진실이 아니다) 盧無主義를- 전제로 단정하고 있는 것 갇다. 이러한 敗北主義의 태도 배후에는 많은 이유와 원인이 있다. 이 둘 이유와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 이유와 원 인이 日本語의 起源에 관한 과학적인 지식의 발전을 억제하고 있는 것 이다. 日本 語 의 起源에 관한 문재는, 어느 한 곳 혹은 어느 한 학문적 전동 내에서 硏究하는 학자에 의해서만 충분히 硏究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日本 학자들이 만일 외국 학자의 노력과 고립해서 硏究률 계속한다면, 자기들만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이고 또 크게 발전시킬 수도 없을 것이 다. 이와 함께 분명한 것은 西洋 학자도 日本의 동료로부터 도움~ 지 지뮬 얻지 못한다면 이 문제에 공헌할 수 없다. 오늘날은 日本語의 起 源 에 관해서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것보다 많은것올알고있다. 그 러나 그 중요한 문제에 관해서 우리가 알고있고 이해하고 있는 것은 충 분한 것이 못 되며, 이 문제에 관심이 있는 日本 학자나 西洋 학자나 우 리 모두가 그 해명을위해서 노력할때, 언젠가는 달성할지도 모르는것 의 한 단편에 지나지 않는 것도 확실하다.

참고문헌

日本 語 와 다른 言語 와의 계동관계 문제에 관한 일반적 지침서로는, 抽 著 The Jap a n ese Lang u ag e (Ch ica g o : Univ e rsit y of Chic a g o Press. 1967) 의 제 2 장 Geneti c Relati on ship (pp. 59 -89 ) 이 유 익 한 入門이 될 것이다. 다만 그 뒤의 硏究에 의해서 몇 가지 선, 목 히 Samuel E. Martin (Lang u ag e 42 [1966] : 185-251) 이 가정한 한국-日本 祖語동일체 에 관해서는 수정 이 필요해졌다. 抽 著 Jap a n ese and the Ot/ 'zer Alta i c Lang u ag e s (Chic a g o : Un ive rsit y of Ch ica g o Press, 1971) 에서는 좀 더 자세히 다루었다. 여기서도 또한 한국 語 와 日本 語 의 比校에는 상당한 수 정을 요한다. 일반적인 문제 몰 다룬 것으로서 크게 추천할 만한 것은, Karl H. Men g es 著 Altaj is ch e Stu d ie n, II. jap a n is c h und Alta j i sch (알 타이硏究, n. 日本 語 와 알타이語], Abhandlung e n fiir clie Kunde des

Morge nlandes, XLI, 3 (Wi es baden: Franz Ste i n e r, 1975) 이 다y 이 저 자 의 중요한 견 해 에 대 한 유익 한 入 F 맑은 抽著, Jap a n ese and tlze Ot he r Al tai c Lang u ag e s 에 대 한 그의 맙評 (Centr a l Asia t i c J ou rnal 18 ( 1974) : 193-201 ) 이 다. Meng e s 의 Jap a 11 i sc h wzd Al taj i sch 에 대 한 古評 에 는, Ni ch olas Pop pe 가 jo urnal of Jap a n ese Stu d ie s 2 ( 1976) : 470 -74 에 발 표한 것과 Theodora By no n 의 Bulleti n of tlze School of Orie n ta l a11d Af ri c a n Stu d ie s 41 (1974) : 196 에 발표한 것 그리 고 필자가 ]ournal of the Americ a n Orie n ta l Socie t y 99 (1979) : 120-2 1 에 발표한 것이 있다. Charles Hag ue nauer, Orig iue s de la civ i l is a t i o n jap o1 1ai se , Intr o ducti on a l' elude de la pra lzis t o i r e dtt jap o1 1, pre mi er e par tie [ 日 本文化 의 起源, 日 本先史硏究序說 제 I 부〕 (P aris : Imp r im erie Nati on ale, 1956; 제 I 부 만이 출판되 었다) 는 이용하기 어려우나, 日本語와 다른 言i E 와의 역사적 관련 및 계통관계에 관한 중요한 관찰을 많이 포합하고 있다. Hag ue- nauer 의 迫著, Nouvelles reclzerclzes comp ar ee s sur le jap o n ais et les Lang u es alt a'iq u es [ 日 本語와 알타이諸語에 관한 새 로운 比鼓硏究], Bib l i ot h e q u e de l' Insti tute des haute s etu d es jap o nais e s, Colleg e de France (Paris : L'asia t h e q u e, 출판일 불명. 1975 年의 序文 이 있음)는 내용이 대부분 논쟁적이고 이 중요한 선구적 학자의 업적으로서는 크게 신용 할 만한 것이 못된다. 과거 I 세기 동안 이 분야에 대한 日本 이의 의 학자의 중요한 기여물 강조하는 전문적이 아닌 간단한 소개로서는 抽 璃 The Orig in of the Jap a nese Lang u ag e , Jap an Foundatio n Newslett er 6, no. 6 (February -M arch 1979) : 6-12 가 있다. 英語 독자를 위한 日本 語 의 起源 문제 전체몰 다 문 가장 좋은 入門 . 는, Sy m p o siu m : Jap a nese Orig ins , Jou rnal of Jap an ese Stu d ie s 2 (1976) : 295-4 3 6 이 라는 표제 의 논문집 이 다. 이 심 포지 업 의 네 논문은 先史學, 考古學 , 比校(歷史) 言語學 과 갇은 학문과 더 불 어 言語믈 포함한 起源문제를 다 운 신뢰할 만한 入門 홉 이다. 이 들 논문은 이 분야의 많 온 중요한 硏究문헌을 둘 고 있다. 英語로 된 저서 중에서, 大野 晋 의 『 日 本語 의 起源』 (岩波新 홉 289, 1957) 을 英 譯 한 The Orig in of tlie Jap an ese Lang u ag e 凍京 : 國際 文化振興會, 1970) 는 가장 손쉽게 이용 할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英譯 온 原 書 (이것또한문제 두성이이지만)를 정확하게 번역하고 있지 않다(필자는 Monumenta Nip po nic a 26 [1971] : 455-69 에서 英 譯 의 書評올 발표한 바 있다). 따라서 이 英譯온 무조건

일반 독자에게 권할 수 없다. 日 本語 로 쓴 충판물은 방대한 수에 이르 며 玉石混沿 의 감이 있다. 현재로서는 이 문재물 포 괄적 으로 다룬 것으 로서 조건없이 추천할 만한 것이 없다. 최근 日本에서 출판된 이 분야 의 많은 출판물에 관한 개요로는 필 자의 논문, Recent Works on the Jap a n ese Lang u a g e, jo urnal of Jap a n ese Stu d ie s 4 (1978) : 427-45 가 있다. 이것은 최근 출판된 상당히 많은 일련의 硏究문헌을 포합하고 있 다. 전 문가에 게 는 계 획 시 리 즈, Al tai c Elements ill Old Jap a n ese 가 日 本溫의 알타이語 起源과 관계가 있는 개개의 語源운 포괄적으로 다루기 시 작했다 . 지금까지 두 권이 출판되 었다. Joh n S t ree t와 Roy Andrew Mi lle r 共著의 I 部 (Madis o n, 1975) 와 Joh n Str e et 의 2 部 (Madis o n, 1978) 이다. 이 시리즈가 계속되면, 日本語의 起源 에 관한 문재 전체운 일반적 으로 이 해하는 대 큰 발전운 가져올 것이다. 동시에 歷史言語學者에게 도 도움이 될 것이다. 알타이諸語의 성질과 역사에 관해서 필요한 지식을 얻고자 하는 독자 에 게 는, 다음 두 일 반적 入 I 먀 lt 가 크게 도움이 될 것 이 다. Ni ch olas Popp e 著 , bztr o ducti on to Alt ai c Ling u is t i cs, Ural-Alta i s c he Bib l i o- the k, vol. 14 (W ies baden : Ot to Harrassowi tz, 1965) 및 Karl H. Men- ge s 著 An bztr o duc tion to Turllic Stu d ie s , Ural-Alta i s c he Bib l i ot h e k, vol. 15 (Wies baden : Ot to Harrassowi tz, 1968) 이 다. . 이 두 책 은 주제 에 관한 독창적인 몽찰력을 보여주며 중요한 참고문헌을 들고 있다. Nic h olas Pop pe 의 최 근 두 논문은 크게 추천 할 만하다. Alta i c Lin - guist i cs -An Overvie w , Scie n ces of La11g 11 ag e (Toky o) 6 (1975) : 130 - 86 및 Remarks on Comp a rati ve Stu d y of the Vocabulary of the Alta i c Lang ua g es , Ural-Al tai s c lze ]alzrbii c/z e r 46 (1974) : 120-34. 전 자는 日本 語 의 알타이諸語와의 계통관계에 관한 Po pp e 의 견해를 요약 하고있기 때문에 (180 페이지 이하) 묵 히 중요하다. 전문적인 입장에서 알 타이 祖語 , 音韻재 구의 현황을 다룬 것은 Po pp e 著 , Verg/ e ic l zende Gra-mmati k der alt ais c lzen Sp rac lze11, Tei/ I, Vergl e ic /z e 11de Lautl eh re, Port a Lin gu arum Or ien ta l iu m , Neue Seri e, W 〔알타이 ?섭語 比校文法, 제 I 부, 比校 音韻論 , 束洋語入 F1, 新시 리 츠 W] (Wi es baden : Ot to Harra- ssowit z, 1960) 이 다• 그 재 구형 의 색 인 은 Joh n Str e et 의 On t/UJ Lexic o n of Proto -A lta i c : A Partia l Index to Reconstr u cti on s (Mad iso n, 1974) 가 크게 참고가되며, 필자도 本합에서 알타이祖語의 語 形과 意味를 여러번

St re et 의 이 책 에서 인용 했다 . Pop pe 의 Vergl eic l zende Gram,nati k 는 알타이 ,1E 昔韻論 의 재 구만을 다루고 있다. Pop pe 는 많은 논문에 서 알 타이諸i 5 의 形態 &삶 을 다루고 있 는데 , 알타이語 形態 젊f i 의 포괄적 인 재구 로 정리되기를 바란다. 한편 좀 오래되었으나 音 韻 論 과 形態論을 포 합한 알타이 祖 5건 의 모든 분야에 걸 친 아 직 까지 도 유익 한 硏究로 G.J. Ramste d t 署 Ei nf i ihru ng in die alt ai s c lza Sp ra chwi ss enschaft , I , Lautl c hrc, II, Formcnlchrc. m, Rcg istc r [알타이 님 ·語學槪說 재 1 권 音韻臨 재 2 권 形態論 제 3 권 索引〕 ed. Pentt i Aalto , Memo ir e s de la Socie t e Fin n o-oug r ie n ne, vol. 104, pa rts 1, 2, 3 (Helsin k i : Suomal-ais - Ug rila rin e n Seura, 1952, 1957, 1966) 이 있으며, 이 방면을 더 硏究 하려는 사람에게는 불가결한 문헌이다. G.J. Rams t ed t 갭 Stu d ie s in Korean Et ym olog y, vol. 1, Memoir e s de la Socie t e Fin n o-oug r ie n ne, vol. 95, pa rt 1 (Helsin k i : Suomalais - Ug r ila in e n Seura, 1949) 도 중요 하며 , 목히 Pentt i Aalto 가 보충한 Addit ion al Korean Et ym olog ies , .. S11omalais - Ug 1· il a i1 1 en Se11ra, Helsi11 g fors , Ai ka ka11sllir ja 57 (1954) : 1-23 온 귀중하다. 유감스럽개도 Rams t ed t의 E i nf iilzrt m g의 대부분은 造 稿에 의한 것이다. 또 他界하기 전년에 출판된 S t 11d i es 의 원고를 Ram- s t ed t는 완벽하게 정리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가 있다고 할지 라도 Rams t ed t의 두 저서는 알타이諸語의 역사나 또 日本語와 알타이 諸語와의 관계 를 硏究하는 사람에게는 획기적인 硏究가 된다. 歷史言語 學의 일반 原理, 특히 日本語의 起源 硏究에 관한 일반 原理에 관해서 는 필자의 논문, The Relevance of Hi st o r ic a l Ling u is t i cs for Jap a nese Stu die s , Jou rnal of ]apa 1 1ese Stu d ie s 2 ( 1976) : 335-88 가 참고가 된 다. 이 밖에 Leonard Bloomf iel d 著 Lang u ag e (New York : Henry Holt, 1933) 의 관련 부분, 목히 제 18 장의 The Comp a rati ve Meth o d, .. pp. 297f f. 는 原理와 이와 관련이 있는 문제 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모 든 지식을 제공하여 크게 추천할 만하다.

제 1 장

日 本語의 정 의 , 범 위 , 분포에 관해 서 는 抽著, Tlze Jap an ese Lang trog e . 특 히 제 1 장 pp.1 -58 참조촐 最古의 日本語 기록에 관해서는 村山七郞 •

Roy Andrew Mi lle r 共짠 , The Inariy am a Tumulus Sword Inscrip - tion , Jou rnal of Jap a nese Stu d ie s 5 (1979) : 4o5-38 참조. 이 i땄센은 1968 年에 발굴 된 것인데, 1978 年 9 月에 銘文이 발표되었다. 古代日本 語 의 昔탸 댜 및 音韻論 에 관한 良:;!,t로 추천할 만한 것이 지금은 없다. Rolan d A. Lang e 著 , The Plzo110/og y of Eig l z llz-Ce,zlttr y Jap a nese (To-

ky o : Sop h ia Univ e rsit y, 1973) 는 이용하기 쉬우나, 그의 硏究에서 발 견한 것은 우리들이 다 른 方法으로 古代日本 ;;참 에 . 관해서 알고 있는 것 과 상반된다(간 評 참 조. Jou rnal of Orie 1 1la/ Stu d ie s (Hong Kong ) 13. [19 7 키 : 19+- 20 0) . 그러므로 이 책은 주 의 해서 참고해야 한다. 한편 필 자의 ]apa n ese and the Ot he r Al tai c Lang u ag e s (pp. 62 ff.) 및 필자의 모노 그라프 Tlze Footp r in t s of the Budda''. : A11 Ei glz l/z - Cenlttr y Old Jap a ;1e se Poet i c Sequ e nce, Americ a n Orie n ta l Serie s , vol. 58 (New Have n : Am eric a n Orie n ta l Socie t y , 1975), pp. 56 ff. 에 서 古代 日 本語의 音聲댜과 音韻論 에 관한 간단하지만 비교적 신뢰할 만한 기술을 불 수 ­ 있 옹 것 이다. 〈 起源 , 系統〉과 같은 日 本語 의 言語 學 용어의 意味와 용법 에 관해서는 필 자의 논문, The Orig ins of Jap a nese, Momm1e11ta · Nip po1 1i ca 29 (1974) : 93-102 를 참조. 이 른바 〈 言語 의 起源〉 문제 에 대 한 관심이 최근 부 활 한 것에 관해서는 Frits S t aal 著, Orie n ta l Ideas on the Orig in of Lang u ag e , Jou rnal of the Americ a n Orie n ta l Socie t y 99 (1979) : 1-14 에 선명이 있다. 있음직하지 않은 日本 語 의 계몽을 말 하는 日本 학자의 예는 日本 語 문헌에 대단히 많아서 그 대표적인 예를 · 들 수조차 없다. 다행한 일은 英 語 나 다른 西洋 語 로 번역되지 않아서 日 本 이외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이 방면에서 과거 수년 가장­ 활 동적이었던 학자는 江實과 西田 龍雄 이다. 江온 많은 논문과 신문기 A 1- 몰 발표했다 • 뉴 • 기니아 New Gu in ea 의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言語 에서 〈日本 語 와 동일한 말〉을 발견했다고 말하고 있다. 江의 硏究몰 대 표하는 것 은, Ni ho ng o wa doko kara kitak a-kit a to mina mi kara mi ta Ni ho ng o [ 日 本語는 어 디 서 왔는가 .- 北과 南에 서 본 日 本語], Nih o n Btm ka no Genryu [ 日 本文化의 源流 ]에 수목(束京 : 新人物往來 社, 1974, pp. JJ- 42). 그는 이에 이어서 신문에 많은 논문융 발표했 는데, 언젠가는 책으로 나울 것이 확실하다• 江의 硏究는 歷史 言語學 의 原理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 눈에 핀다. 독자에게나 그에게 분명하지 않 온 言語 에서 전혀 원칙 없이 語形을 인용하고 있는 것이 록 색이다. :::L.

가 이용했다고 주장하는 자료에서 인용한 것을 확인할 수가 없다. 西田 는 日本 語 가 티베트 - 버마 語族과 계 동관계가 있다고 보려고 한다. 그의 硏究는 조십성 없이 日本語의 語形 과 ?. .구.. .味물 인용하고 있고 또 言語學 에 있어서의 史的 原理풀 전혀 무시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 필 자의 다 음 논문에는 西田가 발표한 것에서의 인용 과 그의 견해에 대한 비판이 있다. Is Ti be ta n Geneti ca lly Relate d to Ja p a nese? pp. 295-312. 이 논문은 다음 논문집 에 수 록되 어 있 다. Pr oceedin g s of the Csoma de Koro·s Me11wria l Sy m p o siu m He ld at Matr a[ i ired , Hung a ry, 24 -30 Sep tem ber 1976, ed. L. Lig e ti, Bib l i ot h e ca Orie n ta l is Hung a ric a , vol. 23(Budap e st : Akademi ai Ki ad 6, 197 8). 납語硏究 -이 것이 바 로 답語學 의 주제이다 __ 룹 추구 하는 데 있어서의 곤란성에 관해서는 Bloomf iel d 가 Lang u ag e (pp. 3-4 ) 에 서 예 리 하게 언 급한 바 있 다.

제 2 장

후 지 오까 가쓰지 ( 藤岡勝二 )의 논문은 원 래 Ni ho ng o no ich i [ 日 本語의 位固]라는 재목으로 《國學院雜誌》 다, no. 8 (1908) : 1-9; no. 10 (1908): 다 -23; no. II (1908) : 12-20 에 발표되었다. 당시의 많은 日本 학술 출 판물처럼 公開 講演을 필기한 형식으로 공표되었다. 파澤 ]의 논문의 중 요 부분은 부정적인 기준에서 이 루 어진 것인데, 그런 부정적인 기준 이 학문적 으로 성 립 할 수 없는 것은 필자의 논문, The Orig in of the Jap a nese Lang u ag e , Monume11ta Nip po nic a 26 ( 1971 ) : 455-69 에 서 논 의 되 었고 이 어 서 村山七郞의 Ni ho ng o 110 Ki gen [ 日 本語의 · 起源] (東京 : 弘文堂, 1973) 에 서 도 논의 되 고 있 다. Anto n Boller 著 Nachweis , daB .da s Jap a nis c he zum ural-alta isc hen Sta m me ge hort [ 日 本語 가 우랄-~ 타이 語族 에 속하는 것을 중명 ], Sit zu ng s beric h te der ph i/ o s.-his tor . C/a-sso der kais . Akademi e der Wi ss e11schaft e11 , Wi en 23 (1857) : 393-4 8 1 온 적어도 日本에서는 자주 이용되고는 있으면서도 그만큼 硏究는 안되 고 있는 논문이 다. Boller 의 독창적 인 日 本語-알타이 語 語源例 는 지금 도 대단히 건전하다. 그의 논문을 조사하지 않는 대부분의 학자는 무시 하고 있으나, 이둘 예는 용이하게 확인된다? 예문 들면, Boller(p .4 67) · 가 다룬 否定-缺如形온 필자의 Jap a nese 따 d the Ot he r Alta i c lAn gua-

_ge s (p. 13) 에 서 재 발견 되 고 또 Meng e s 도 ]apa nis c h tm d A/ taj i sch (p. 99') 에 서 옹호하고 있 다. 또한 Boller, p. 477, Meng e s, p. 121 참조. 알타이 諸語 의 몽골語群과 뒤르크語群에 관해서는 신뢰할 만한 두 入 門압가 있어서 크게 참고가 된다 . 두 책 이 다 英語로 씌어졌고 이 분야 의 전문가에게도 도움이 되고 있는 독창적 인 硏究 •.. !J 이다. 뒤르크語에 관 해 서 는 Karl H. Meng e s 著 The Turkic La;zg u ag c s and Peop le s : An J11 t ro d11c tio11 to Turl lic Stu d ie s , 몽골語에 관해 서 는 Nic h olas Pop pe ~. 111tr od 1 1ct io11 to Mo11g o lia 1 1 Comp a rati v e Stu d ie s , Memoir e s de la Socie t e Fi nn o-oug r ic n ne, vo l. 110 (Helsin k i : Suomalais - U g r ila in e n Seura, 1955). 古代뒤르크 ; E 에 관해서 英語로 씌어진 유일한 文法잡는 , Talat Tekin 著 , A Gr ammar of Orll/1 01 1 Turl,ic , India n a Univ e rsit y Pub li ca - tion , Uralic and Alta i c Serie s , vol. 69 (Bloomi ng ton : India n a Uni- versit y, 1 968) 인데 , 이 책은 유 감 스 럽 게도 세부적으로 많은 점에서 신 뢰할 수 없다 . Tek i n 이 부정확하게 자주 인용하는 原典 이나 다른 유럽 語로 씌어진 硏究占픕 혼자 협으로 조사할 수 없는 학생은 이용해서 안 된다. 중요한 몇 가지 뒤르크語-日本語 比 校 에 득히 역효과 를 가쳐울 만한, 신뢰 못합 많은 예 에 관해서는 Men g es 의 ]apa 1 1i sc h und Al taj i sch (pp.6 +-65, 110- 1 1) 참조 . 여기서

語 와 알타이 諸語 의 몽구스語群과 의 史的 硏究에 대 단히 중요한 자료-~ 포함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 Men g es 가 硏究한 動詞形 이 日本語에 찰 보존되어 있으며 또 용이하게 확 인 할 수 있 는 同源語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논문은 초보적인 것이 아니라, 뭉구스語와 그 역사의 여러 문 제에 관해서 상당한 지식 을 미리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러한 入 P1 1 B 로 서는 한 권의 책 이 될 만한 Men g es 의 논문, Di e tu ng u sis c hen Sp r achen [둥구스 諸語〕 이 있 다. 이 논문은 다음 책 에 수록되 어 있 다. Ha11db11cl1 de r Orie n ta l is t i k, 1. 5 . 3 (Le id e n and. Colog n e : E.J. Brill , 1968), pp. 21- 246 . 몽구스i君의 사전으로서는 오랫 동안 기다리던 방대한 比 紋검目源辭典 이 소련 동료 들의 여러 해에 걸친 준 비 끝에 출 판되 었다. V.I. Cin c iu s (Tsin t s i u s )e 편 , Srav11it el'1 1y j slovar' tun g u soman'czurskix jaz y k ov: Mate r ia l y I, timo log ices ko mu slovarju [몽구스-만주 語 比紋 辭典 : 語源辭 典 켰料] 2 vols. (Lenin g rad : lzda- tel 'stv o Naulca,1975, 1977). 이 사전은 앞으로 뭉구스諸語 의 脈史 言 語 學뿐만 아니라 알타이 諸語 일반의 硏究룹 매우 용이하개 할 것이다. 原 始몽구스語의 재구에 관해서 유익한 입문서로 foh aones Benz i n g 著 , Di e ttm g u sis c lzen Sp ra c/z e n, Versuc/z ei1 1 er vergl e ic h e11den Grammati k, , r [몽구스 諸語 , 比紋文法 試論] Abhandlung der ge is t e s -u nd sozia l wi ss en-schaft lic h en I

금도, 오래 된 硏究 이지만 다음 책부터 시작해야 한다. W ilh elm Grube, Di e Sp r aclze wzd Sclzrif t der Juc en (Leip z ig : Ot to Harrassowi tz, 1896. 1940 年頃 中國 과 日 本 에서 많은 복사본이 나왔다). 이것을 보충하는 것 이 Ka rl H. Meng e s 著 Di e Sp r ache der 3iir ce 1Z (Ha11db11ch der Orie n - tal is t i k , 1.5.3, pp .245 - 56 에 수 록 )이다. 이 중요한 言 語에 관해서 英 語로 씌어진 유일한 硏究는 다음 책 인데, 유감스 럽게도 거의 모든 면에 서 신 빙 성 이 없 어 서 추천 할 수가 없 다. Gi sa buro N. Ki yos e ~. .fl Stu d y 아 tlze Jur clzen Lang u ag e and Scrip t : Re co nstr u cti on and De cip h er m ent @璋 F : 法律文化社 , 1977). 한 알타 이 語로서 의 한국語 硏究는 日本語에 관한 유사한 硏究보다 한 걸음 더 앞서 있다. 그럼에도 이들 硏究 또한 독 수한 문제들을 제기하 고 있으며 주의 해 서 문헌을 다 루 어 야 한다. Bruno Lewi n 著, Ja p a nese .an d Korean : The Problems and Hi st o r y of a Li ng u is t i c Comp a ris o n, Jou mal of Jap a 11ese Stu d ie s 2 (1976) : 389-412 는 이 분야의 대 부분의 문제 에 대 한 신뢰 할 만한 훙륭한 개 론이 다. Samuel E. Marti n 의 Le-xic a l Evid e nce Relati ng Korean to Japa nese, Lang u ag e 42 (1966) : 185-251 는 발표 당시는 중요한 발전이었으나, 그 뒤의 硏究에 의하면 많 은 상세한 접, 득히 한국語-日本語 동일체의 기계적인 재구 를 받아들 일 수 없게 되었다. G.J. Rams t ed t의 Stu d ie s in Korean E ty molo gy는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은 많은 문제접이 있으나,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것 이다. 소련 학자들은 이 책을 무비판적으로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 예 룹 들 면 , 위 에 서 든 Sravnit el' ny j slovar'tzm g u soman'czurskix jaz y k ov 의 몇몇 항목이 그러한데 이것을 이용할 때는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 한국 語 와 주요 알타이 諸語룹 포합한 다른 言語 와의 어휘비교의 대부분· 은 日本 학자 白島庫吉의 독창적인 硏究이다. 이 일련의 논문은 《東 洋 學報》 4 권 2,3,5 호; 5 권 I,2,3 호; 6 권 2,3 호 (191 4- 16) 에 발표되었 다. 이 들 논문은 『白鳥庫吉全渠』 제 3 권 여꽈〔 : 岩波困店, 1970, pp. J- 208) 에 수 록 되어 지금은 손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는 처음 발표되었을 때의 誤植 이 수정되고 색인도 불어 있다. Rams t ed t는 白鳥 의 논문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분명한 것 갇다. 白 鳥 의 많은 비교는 Rarnste d t 의 노트에 기 목되 어 여 기 서 Stu d ie s in Korean Et yn wlog y 에 이 용된 듯하다. 만일 Rams t ed t가 생존중에 자기가 원했던 대로 손질해서 그의 S t ud ie s 가 출판되었다면, 그의 硏究에서 白 鳥 의 논문이 큰 역할을

한 것에 사의를 표명했을 것이다. 이와 함께 李基 文의 A Comp a rati ve Stu d y of Manchu and Korean, Ural-a/ta isc he ]ahrb1i·c h er 30 (1958) : 10 4- 20 도 白島의 硏究에 힘입은 바 크다. 한 국 ;:;·용ii\~i김사 ,J g 의 비교에 관 한 그의 논문에서 白 X. - 5 가 최 초로 발 견하지 않은 것융 찾 기는 어렵다. 한국 語 와 日 本語룹 포 함 한 다 른 言語 와의 비 교에서 미해결 의 주요 문 제는 時 間 差 의 문제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바교 는 現 代 한국語 가 아니면 기껏해야 이른바 中期 한 국 語 만을 다 루 었다. 그 러 나 中j비한 국 語 는 겨우 15 세기 중엽의 것이고, 모든 면에 걸쳐 한국語의 역 사 에서 現 代 i E 형태 보다 더 멀 리 소급 할 수 있는 것 이 못된 다. Marti n 의 Le x ic a l Evi- dence… ... 도 現 代日 本語 形과 現代한국 語 , 어느 경우에 는 中 j 비 한국語와의 비교에 입각해서 재구했던 것이다. 現代日本 語 대신 古 代日本語 와 한~ 語 를 비 교한 것 이 필 자의 Old Jap a nese Phonolog y and the Korean- Ja p a nese Relati on ship , Lang u ag e 43 (1967) : 278-302 이 다. 古代한국 語 의 압記 문헌은 상당한 양을 이용할 수 있지만, 다른 알타이 語 派에서 당면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문헌학적 문제가 있다. 그리고 古代한국語 에 남아 있는 중거에서 직접 한국 語 의 계몽 문재로 접근하기에는 더 시 . 간이 절린다. 그러한 硏究는 겨우 시작되었다. 필자의 두 논문, “Some - Old Paekche Frag m ents , Jou rnal of Korean St ud ie s 1 (1979) : 3-69> 및 Old Korean and Alta i c , Ural-A/ tai s c he jah rbii ch er 51 (1979) : 1- 맛을 참조. 여기서 최초로 古代한국語의 言 語 중거가 歷 史-比鼓 수준 에서 이용되었다. 것 우이 다랄.諸 語Bj와 or n그 C o比ll紋in 에d e r, 관A심n이 bz있tr 는o d u학ct생i on에 게to는 t il다e 음U r책al이i c L참an고g 가u a g될 e s (Berkeley and Los Ang e les : Univ e rsit y of Califo r ni a Press, 1965).

第 3 章

최 초의 알타이 民 族 移 動 에 관한 이 설 명 은 Karl H. Meng e s 의 硏 究에 힘 입 온 바 크다. 묵히 그의 저 서 , Ttt rk ic Lang u ag es and Peop le s 의 해 당 부분, 록히 l6 페이지 이하참조. 특히 뭉구스族의 移 動 문제에 관해서 더 상세한 것은, Karl H. Me ng es 의 모노그라프, Tung usen und Lj ab [통구스人과 遼], Abhandlun g fur die Kunde des Morge nlandes , voL

38, pa rt 1 (W ies baden : Franz Ste i n e r, 1968) 에 있다. Karl Jet t m ar 著 .. Zurn Problem der tun g us is c hen 'Urheim a t' [ 등구 스族의 〈原住地〉 문 재 에 관하여] , Wi e1 1er Be it rii g e zztr Kult ttrg e schic lz tc tm d Li11g u is t i k 8 (1952) : 484 -51 1 은 공헌한 바 적으나 , 뭉구 스族의 〈原住地〉를- 다 룬 실 질적 으로 유일한 硏究로서 주목할 만하다 . Meng e s 는 이 문제 의 해 명 에 공헌한 바 있는데 , 그것은 문헌에 입각해서 諸原住地의 계속을 시사한 ­ 점에 있다. Meng e s 이전의 학자들이 原住地로서 한곳울 덱하려고 한 것은 문재윤 해결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더 많은 문재철- 야기시켰다. 예 를 들면 , Rams t ed t의 Ei n /iih r ung .… .. (1 : 15) 은 알타이族의 〈原住地〉 · 를 , 내몽고에서 北만주로 뻗 어 있는 興安山脈으로 보았다(cf. Meng e s, • Turkic Lang u ag e s and Peop les , pp. 55-6; 村山七郞 Ni ho og o no tao jo , [日 本語의 誕 生][東京 : 筑序맙房, 1979], pp. 10-11). “I 을 의미하는 여러 낱말 및 다른 수에 대한 낱말의 역사적 관련성 올 검토해 보면, Gehard Doer fe r 가 다음 硏究에서 피력하고 있는 견해 는 받아들일 수 없 다. Gehard Doerfe r 著, Tii rk is c lze u,zd Mong o li sch e· Elemente im Neup er sis c lzcn, tm t er besonderer Berii.c k sic / z tigu ng alte r er 11e11p er sis c he r Geschic h ts q t tel len, vor al/ em der Mang o /en-tm d Tim urid e n- zeit [近代패르샤語에 있어서의 뒤르크語와 몽골 語 의 요소―近代古J UJ 페르 . 샤 語 의 史料몰 독히 참조한]. Akademi e der W iss eoschaft en uod der Li- ter atu r , Veroff eo tl ich uog e o der Orie o ta l i sc hen Kommi ss io o , 4 vols .. (Wi es baden : Franz Ste i n e r, 1963-75), 1 : 80 ff. Doerfe r 는 인용된 자 료가 알타이諸語의 親近관계에 유리하지 않고 오히려 불리하다고 보고 있다. 그보다 전에도 數詞가 알타이諸 語 의 親近관계를 부정하는 자료로 찰못 이용되는 경우가 때로는 있었다. 알타이 語 의 歷史-比紋言語學的 . 硏究에 日本 語 가 도입된 중요한 결과의 하나는, 日本 語 와 한국語를 포 . 합한 여러 言語 의 數詞가, 이둘 言語 의 가장 이론 역사적 관련성에 대 한 중요한 중거를 제시하는 것이 증명되었다는 정이다. 이에 관해서는, . Jap a n ese and the Ot he r Alta i c Lang u ag e s, § 5. 3, pp. 219 ff. ; Meng es,. Centr a l Asia t i c Jou rnal 18 (1974) : 197-8 ; Meng e s, Jap an is c h und Altaj i sch, pp. 92-6 참조.

이와 갈이 여 러 言語 에서 “石, 岩올 의 미하는 낱말을 조사해 보면 .. A. R6na-Tas 의 Obsceje naslec lije ill za ims tv o va nija ? (k pro bleme - rodstv a alta jiskix jazyk ov) [공통 유산인가 借用인가? (알타이緖 語 와 ·

親近관계 문제에 관하여)], Vop ro sy Jaz y k oznanij a, 1974, no. 2, pp. 31- 45 , 득 히 p .33 의 견해가 잘못인 것을 알 수 있고 또 그가 부정확하 게 든 몽골語의 語形과 意味도 수정 되 어 야 한다. R6na-Tas 는 Mo. kb.rii (이 語形은 정 확하지 않다) 와 Mo. cila rzm 이 〈 갈 은 것을 의 미 〉하 기 때문에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필연적 으로 c i larzm 은 뒤르크語에서 몽 골語에 들어온 옛 借用語이며 이 몽골語形의 토대가 되고 있는 것은 뒤 르크 語 의 t55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그릇된 자료와 그 릇된 논리를 결부시키는 것은 어 떤 사람에게는 호 의적인 인상 울 주었 다 (예 물 들면 , Larry V. Clark 署 Jou rnal of tlze Americ a n O고r ie또 n t a l MSooncige ot yl E9l8e m[1e9n7t8s ] i:n 1O43ld 에 T서u 는rk i c이? 선jo을 ur n〈a l 높 d은e 수la준 S〉o이ci e 라t e고 F in했 - .11 0-oug r ie m ze 75 [1977] : 129 에서는 R6na-Tas 의 설 이 마치 借用語와 借用語가 아닌 것을 기계적으로 결정하는 자동 적 인 규칙인 것처럽 말하 고 있다). 이것은 알타이語 歷史言語學의 분야에서 기초적인 硏究가 아 직도 불충분한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다. ‘ T i 을 의 미하는 모든 등 구스 語 의 語形 이 Cin cius 의 Sravnit 'n y j slovar' 1 : 263b 에 있고 J0/ 0 I 예 편리하게 정리되어 있다. 여기에는 Ev. Jol o 큰 돌 , 玉石 Lam. Jol . ”石, Goldi Jo/ o id. 등이 포함되 어 있다. 日 本語 i slz i와 문제의 알타 이 語 語根 과의 역사적 관계에 관한 상세한 점은 本文에서 설명한 것보 다 더 복잡하다. 관련된 다른 중거, 특 히 이 들 낱말의 첫째 음절의 뭉 구스祖 語 母音 *-a- 와 日 本語 語 形과의 관계 에 대 한 설 명 은 필 자의 Old Korean and Alta i c , Ural-Alta i s c lze ]alzrbii clz er 51 ( 1979) : 4o, 社 160 참조. 알타이祖 語 의 두 音韻 *h 및 * m의 재구와 그 의미에 관한 문헌은 방 대하며, 日本 語를 제외한 거의 모든 言語 에서 중요한 공헌을 한 논문이 있 다. 학생 을 위 한 좋은 入門은 Er ic P. Hamp 著 , The Alta ic Non- obs tru en t s” 이 며 다음 논문집 에 수목되 어 있다. Researches ill Al taic Lang u ag e s, ed. L. Lig e ti , Bib l i ot h eca Or ien ta l is Hung a ric a, vol. 20 (Budap e st : Akad~m iai Kiad 6, 1975) , pp. 67-70. 알타이語의 2 차적 動詞語幹派生 체계가 日本語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것은 Hag u enauer 가 최 초로 그의 Orig ine s de la civ i li s a ti on jap o n ais e -····· 'pp . 503 ff. 에 있는 「日本語의 몇 가지 派生接辭에 관한 比 紋 겁토」 러는· 제목의 節에서 인정하고 예비적인 硏究를 했다. 그러나 日本 학가

둘은 日 本語 의 先史에 대 한 이 중요한 h !j챠& i 原 울 무시 했다 . 복잡한 派生 체계의 共 時的 설명조차 거의 없는데, 아마 吉 田金 彦 의 Ni l10 11g o go g e 1z- ga ktt 110 hoh o [ 日 本語 語源 [; ! 의 方 法 〕 ( 束京 : 大修館 , 1976) 가 예 외 일 것 이다. 이 책 의 목古 ] 제 2 절, 85 페 이 지 이하에서 派生체계에 관한 및 가 지 정 보 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派生과 形態論에 관한 표준적 인 硏究 , 애 물 들면 阪倉篤義의 Colloz o 1/0 lw1k yi i UM,\跋 t 의 硏究] ( 東京 : flJ 川 _曲 璃 1 9 66 ) 는 이 문재에 언급조차 하지 않 고 있다. 알타이 語 의 원시 적 체 계 는 , G.J. Ra m ste d t 의 Zur Ve rbs ta m mbil d ung s leh re der mon- go lis c hti irk is c hen Sp ra chen 〔몽골 - 뒤 르크語 의 動詞語幹形成論” 에 관· 하여 〕 , Jou rnal de la Socie t e Fi1 11 10- 011 g r ie m ze 28, no. 3 (1912) : 1-86 에 서 최초로 硏究되고 재구되었다. 그러나 한국語와 日本語의 중거는 제 외되어 있다 . Ni ch olas Po pp e 의 최근의 중요한 공헌은 재구 룹 한충 · 명 확하 게 하고, 득 히 재구에 있어서의 둥 구스 語 자료의 역할을 상세하게 밝힌 데 있다. 예 를 들면 , Uber ein i g e Verbalsta m mbil d ung s suff ixe in den alta i s c h en Sp ra chen [알타이 諸 : E 에 있어서의 몇 가지 動詞 語幹 形 ­ 成接 gf 에 관하여], Oria n ta l ia S11eca11a (Up ps ala) 21 (1972) : 119-41 참 조. 지금까지 日本 語 에 있어서의 이 체계의 반사에 관해서는 그다지 발 표가 없 었 다. 다만 팔 자의 논문, The Orig in of the Jap an ese Lang u -ag e , The Jap a tz Foundati on Newslett er 6, no. 6 (February- M arci l. 1979) : 6-12 가있다. 알타이 祖語 의 2 차적 動詞接尾辭 * -l- 와 * -r- 의 日 本語에 있어서의 중 거에 관해서는 필 자의 논문, Nani ga Ni ho ng o no• keit o wo fum ei ni shit a no ka? [무엇 이 日 本語의 계 몽운 不明하게 했는가 ? ], 月刊 《言語》 6, no. 9 (1977) : 76-81, 109 및 Some Old Paekche Frag me nts , Jou rnal of Korean Stu d ie s 1 (1979) : 58 참조. 〈 言語年 代 學 〉과 〈어 휘 몽계 학〉의 사이 비 과학적 테크닉 이 日 本에서 는 계속 인기가 높다. 이러한 생각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유일한 반 박은 日 本 학자 泉井久之助의 다음 논문이 다. Suri to iw ay ur u ge ng o nendair on no yu lcosei ni t s 떠t e” [數理와 소위 言語年 代論의 有效性에 관하여 l 이 논문은 Geng o 1UJ k5z5 [ 言語 의 構造] (束京 : 紀伊國屋 할 店, 1967), pp .153-74 에 수록되어 있다. 이 논문과 갈이 결정적인 것은 t:J- 음 논문의 견 해 이 다. L. Lig e ti , La th& >r ie alta l qu e et la lex ico-st a - tisti q u e, (Researches in Alta i c Lang u ag e s, ed. Lig e ti , pp. 99-115 에 수 록).

本草에서 재시한 日本語 낱말과 다른 알타이 ; 5 의 同 源i E 와의 모든 比 敦 에 관해서 더 상세한 것은, (다 른 알타이語形과 여기서 인용한 日本語 이외의 모든 語形윤 형태 와 의미 면에서 입증하는 완전한 전문적 문헌 을 포함해서) 필 자의 다음 논문에서 볼 수 있다. “The Relevance of Hi st o r ic a l Lin g u is t i cs for Ja pa n ese Stu d ie s , jo urnal of Jap a n ese St1 1- die s 2 (1976) : 376-8. 이 논문에서는 또 같은 형 의 語源 이 추가되 었다. 日本語 복수형 -r a 의 諸源的 기원에 관해서는 , Men g e s 의 Di e tun - gu sis c hen Sp ra chen [ 등 구스 諸語]. pp. 57-8 및 Turl lic Lang u ag e s a11d Peop le s, p. 1 I I 참조. 알타이 祖 g E 에 는 복수집 미 사가 풍 부하다. 그 하나 가 * -I 이고 日本語의 -ra 에 보존되어 있다 . 이것은 또 한 原 始몽구 스 語 의 복수형 * -l 이기도 하다. 7같 은 접미사는 뒤르크 諸 에도 있는데 , 일반 적 으로 복합적 인 접 미 사 *-1 -a r 로 나 타난다 . -ar 은 알타이 祖 語 의 4 표合 접미사을 계승한 것이다. 몽구스語의 不定過去의 原形 *-ra- 및 *-r f- 에 관한 최 초의 중요한 공 헌이며 지금도 이 방면의 가장 중요한 논문의 하나가 되 어 있는 것은 Karl H. Meng e s 著 , The Functi on and Orig in of the Tung u s Tense si태cnh 에c-1r 1a ,관 S p한L raa cn추hgc u 가n ag적 e[ 인등1 9구 중(스19요諸4語3 )] 자:의 료2 3는7,여- 5 러 I M이곳며u ,r에a y서 a이 n보것a 충은S되 hi그 c고 h의 i r o있 D (다.村i e 山 이t七11 郞들 ng) 1 1 의형si- Tung u sic a -J a p o nic a , Ural-Al tai s c h c ]ahrbu c her 48 (1976) : I86-7 의 간결한 발표이고, 그의 Ni ho ng o Ke it o 110 tan l,yi i [日 本語系統 의 探究] (束京 : 大 修館 바店 1978), pp. 259-92 에는 더 자세한 설명이 있는데 이들 형태가 日本語의 動詞 의 역사에서 중 요 합운 더한 충 깊이 구명하고 있다. 이들 몽구스語의 형대는, 전동적인 日本語 學校文法 의 動詞活 用 올 그 알타이 起源과 연결시키는 중요한 실 마리가 된다. 여기 관해서 필자는 Alta ic Orig ins of the Jap a n ese Verb Classes” 에서 선명 했 는데, 이 논문은 I980 年 5 月 간행 예정으로 인쇄중인 다음 品念論文菓 에 수 목 되 어 있 다. Bono Homi tzi Donum: Essays on Hi st o r ic a l Lmg u is tics in Me,nory of ]. Alexander Kenzs, eds., Yoel Arbeit ma n and Allan R. Bombard (Amste r dam : Joh n Benja mins ) . 이T s분un 야gu에s u-관M해ok 서o s日h o本g語 o 로ni 씌어진 가장 중요한 공힌으로, 山本 謙吾 의 -ok eru me ishi go kan ke ise i go bi -ri ni tsuite” [몽구스옹골諸語에 있 어서의 名詞語幹形成語尾 -ri에 관하여], 《言語硏究》 다 (I98) : 49-62

몰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논문은, 불행히도 일찍 요절한 이 유능한 학 자가 더 오래 살았다면, 알타이語 硏究의 이 분야에서 이 룩했을 지도 모 르는 큰 업적응 상기시킨다. 〈 遊 牧〉이라는 낱말에 관해서 더 자세한 것은 Po pp e 의 Verg/ ciclz c11de Gra111111at ik, pp. 38, 189 (cf. 또한 재구에 관해서는 Str e et 의 011 the Le- xic o1 1.… . . p. 20) 참조 . 둥구스語의 모든 語形은 Cin c iu s 편, Srav11it cl' - ny j s/ovar’ …… I : 609b-6 IOb 의 IIII Ig I 항목 참조 . 여기서 고찰한 문제·문 硏究하는 학생을 위한 先史學 및 考古[》 에 관한 유익하고 신뢰할 만한 개선서는, Ric h ard Pearson 의 The Contr i b u ti on of Archaeolog y to Jap a nese Stu d ie s , ]011rnal of Jap an ese Stu d ie s 2 (1976) : 305-33 이다 . 野尻湖의 비너스像 발굴에 관한 신문 보도는 Asahi Et· C Ilt.1 I g Naus, I 975 iF 3 月 29 日 호 ; Jap a n Ti me s, 1975 年 3 月 30 日 호 ; 《 每日新 1 씨 》 1975i p 3 月 3I 日호; 《 京都新llfl 》 1975 年 4 月 I7 日(夕 刊)에 있다. 1, 대原체始로 및 이 古접代에 I 』관 ( 東해京서 : 本岩占波에 1 困서店 ,선 명197한5) 에것 은있,는 『 鎌岩木波義講昌座 , 著日 , 本 歷K史y u , - sekk i jida ir on [til石器時代論 ] (pp. 35-74, 목 Bl 48 패 이 지 이 후와 67 페 이 지 이 후 )에 힘입은 바 크다. 〈빗살무늬토기〉와 그 중요성에 관해서는, 田 返 : Irg 平의 Nazo no joo , Hi m i ko , Yama t떠 koku to sono jida i [수수께 끼의 女王, 卑彌呼, 邪馬台國과 그 시대] 밖版(東京 : 德間꿉店, 1974, 득히 I42 페이지 이하) 를 많이 이용했다. 日本 학자들은 言語 사실을다른 학문의 발견과 그다지 연결시키려 하지 않는다. 이 접에 있어서 德 川宗 땄 의 논문, Tozai DO koto b aarasoi [束西의 말다품] (阪倉 篤義 편, 日 本酒 i 梅~ Ni lzo ng o 110 Rekis h i [ 日 本語의 역 사], 東京 : 大 修館항店 , 1977 에 수록) 은 목히 환영 할 만하다. Rich ard Pearson 의 Ja p a n, Korea, and Ch ina : The Problem of Defi ning Conti nuities , Asia n Perspe c ti ves 19, no. 1 (1978) : 176~89 는 言語學的 증명 자료 률 先史學과 考 古 學 의 발견과 찰 연결시켜서 가장 유익하며 학생들에게 크게 추천할 만하다. “고기뮬 잡다” 를 의미하는 낱말의 중요성에 관해서는, Men g es 의 Ja- panisc h und Alta j i sc h, p. 53 물 참조. 여 기 서 말하기 를, 뒤 르크語의 語形은 Martti 惡 sanen 편, Versuch ein e s ety m o/og isch en Worte r buchs'd e r Tii rk spr ac hen (뒤르크語 語源辭典 試論], Lexic a Soci 11-

tat i s Fenno-ug r ic a e, vol. 17, pa rt 1 (Helsin k i : Suomalais - Ug r ila in e n Seura, 1969), p. 174b 에 보인다. 한국語의 語源은 Ramste d t 에 의했다 (Rasanen 도 인 용하고 있 다) . Ramste d t 의 Stu d ie s i1z Korean Et ym olog y, p. 69 에 있는 항목 il 에

語에 서 는 -ha/-ho/-he 이 어 야 하기 때 문이 다 (Benzin g , Di e tu ng u sis c hen Sp ra chen § 80, p. 1020) . Ot to Karow 의 su yu, s11 yu e in der alta j a - pa nis c hen Lit er atu r : Hochspr achc und Mundarte n der Narap c rio d e 〔古代日本文穆에 있어서의 s11 yu , s11 y1 !c : 奈郞 시대의 표준 어와 方 날 ], Mommza11ta Ni ppo1 1i ca 6 (1943) : 164- 5 는 ?/ori 라는 낱말에 내한 가장 이 른 日本語 의 증명웅 유익하게 硏究하고 있다. 이 논문은 다음 論 文朱 에 수목되 어 있 다 . Ott o Karow Op er a 1Wi uo ra, Zum 65. Ga b1 1rts t a g des Vcrfa s scrs ausg c IUdhlt und cin g e lcit ct FOi l Hans Adalbcrt Dc tt m cr w1d Gc rhi l d Endre/3 (W ies baden : Ot to Harrassowi tz, 1978), pp. 174 - 75. 竹畑 유적 에 관해 서 는, Ni lIO Il 1/O rcim ci [ 日 本의 黎明] ( 京都 : J K{ i I; 國 立i混琦 %'ii . 1974, p. 24) 및 139 페 이 지 의 中j~j 웅ifil 文 시 대 의 年代表 참조. 한국에 있어서의 빗살무늬토 기의 최근 발견에 관해서는, 三上 次男 著 Chosen hanto no kokog a ku, Seng o no chosa WO chushin to shit e [朝 詳半島 의 考古淳 , 전후의 조사윤 중심으로 하여](日本底史먀會 編, Ii'日 本考古[상 의 現狀과 課返』 , 吉 川弘文 館 , 1974, pp. 453-67) 참조. 목 히 4 5 4- 5 패 이지의 유적 일람표문 참조하기 바라며, 한국의 관계 문헌을 들고 있다. 掛J西 의 문헌에서는 九州의 유적지 명칭을 〈 Soba t a 〉로 읽는 것이 표준 이 되어 있으나, 및및 다 른 문헌 자료에서는 〈 Soha t a 〉로 읽고 있 는 것에도 주의. 문제의 貝塚은 熊本縣의 熊本 가까이에 있는 宇 土 부근에 있다. 빗살무늬토기 (r通 描旅狀文, l 面目文토기 혹은 楠描文토기) 와 목 히 九 ) · I1 의 曾畑 유적에서 출토된 빗살무늬토기물 여기 대웅하 는 한국의 토 기와 갇온 계몽으로 보는 것에 관해서는 다음 것을 참조. Pearson Contr i b u ti on of Archaeolog y, p. 317 및 pp. 328-9 도표 1, Comp a rati ve seq u ence of Ceram ic for ms in Ky u shu and th e Korean Penin s u la : Jam on and Comb Patt er n ; Pearson , Ja p a n, Korea and Chin a , p. 181 [ fl畑 토기 에 대 한 한국 영 향 ) ; Pearson , Paleoenvir o n-ment and Human Sett lem ent in Jap a n and Korea , Scie n ce 197 (1977 年 9 月 23 日) ; 1239-4 6 , 목히 p.1 24o. 여기서 다음과 감이 말하고 있 다. 〈九 )i 1 의 답畑型 초기 繩 文토기와 동시대 (대체로 B.C. 4ooo 年 내지 3000 年)의 한국빗살무늬 혹온 기하학적 무늬 토기와의 밀접한유사성.〉 이것과 관련해서 〈중가하는 어로 활 동의 발달은 九州와 한국 사이의 움 칙임을 자국 했을 지도 모른다.〉 繩 文 시대의 海洋 이변이 低地의 면적을

좁히고 海岸線을 바꾸어서, 좁혀진 육지에서의 식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하여, · 종전보다 생활조건이 어려워침에 따라서, 그 결과 人口의 이동 과 이주를 가져왔다. 〈요컨대 빗살무늬토기 혹은 付畑토기, 異色硏磨 토기와 無裝飾토기는 모두 물질문화가 확산하는 양식적 차이의 경우이 며, 유사성의 記述的 기준과 分布상의 기준에 맞는 것이다. 또 日本열 도와 韓半島 의 文化가 갇은 계동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 다〉 (Pearson, Ja p an , Korea, and Chin a , p. 185) . 갇온 節에 서 Pearson 은 다음과 7같 이 말을 계속한다. 〈만일 헛된 추측이 허용된다면〔왜 헛된 ? Mi ller ], 遼홉滿洲 지역은 M ill er(1967 年 , pp .45-7) 가 가정하는 北 方 알타이 諸i E 와 半島 알타이諸語의 〈 言語의 共生 lin g u is t i c sy m bio s is > 지역 이었을지도 모른다 [1967 年은 1971 年의 오기. 필자의 책은 Jap a1 1ase and tlza Ot h er Al tai c La11g 1 1ag e s, p. 45-7. Mi ller ]. > 한편으로는 考 古 學과 관제없이 독자적으로 개발된 답語자료 와 또 한편으로는 考古學 의 발견 사이에 이처럼 전반적인 상관관계가 발견되는 것은 줄 거운 일 이다. 양자 를 종합하면 단순히 부분을 모으는 것보다 전체적 설득력이 더 높아진다 . 考古穆의 증거는 또 本文에서 제시한 바와 갇 이 여러 차 례의 이동과 침입의 물결이 계속해서 일어났다는 선운 지지해 주는 증거 윤 제공한다. 〈彩刻토기의 이동은 제 4 千年代에, 異色硏磨토 기의 이동 은 제 2 千年代와 재 I 千年代 초기에, 無裝飾祖토 기의 이동은 최후의 千 年代 후반에 일어났다〉 (Pearson, p. 185). 이것은 알타이語 諸語形 의 전달에 관해서 本文에서 가정한 줄거리와 꼭 갇다. 이 강연 후 l977 年 10 月 20 日 東京에서 J. Edward Ki dd er 敎援 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 는데, 이때 曾畑토기와 그 토기의 型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 윤 받았다. 여기 사의를 표한다. 알타이祖語의 * -d- 가 뒤르크語에서 어 떻 게 발달했는가에 관 해 서는 Meng e s, Turkic Lang u ag e s and Peop le s, pp. 87 궁 I 참조. *-d -에 대한 츄바시語의 -r- (소위 츄바시語 〈r 音 化 rho t ac i sm 〉)에 관해서는 갇은 책 97 페 이 지 참조. 日 本語 ya r- 주다”는 이 목수한 츄바시 語 변화와 같은 日 本 語 에 서 의 또 다른 예 이 다 (cf. Old Korean and Alta i c , Ural-Al tai- scli e Jah rbii ch er 51 [1979] : 51, note 183). 이 변화에 관한 더 자세한 설명은 Ramste d t, Ein / 17/z r zmg .… .. , I : 21-2 및 I : 87 에 있다. 알타이祖語 *p ad6k 과 이 재구의 토대가 된 여러 확인된 語 形에 관해 서는 다음 문헌을 참조. Str ee t, On the Lexic o n ... … , p. 22; Pop pe Ver-

_gle ic l zende Grammati k.… .. , pp. 52, 124; Ramste d t, Ei nfiihn mg .. …. , 1 : 52, 1 : 130 ; ·Ra mste b t, Stu d ie s i11 Korean Et ym olog y, pp. 180-81 ; Cin c iu s , Sravnit cl' 11 y j slovar' … ... , 2 : 318a-b. Cin c ius 의 Sravnit el 'ny j slovar’ ……에는 둥 구스 語 의 語形 이 정리되어 있다. 예 물 들 면, Ev. at 토대 , (山이 나 낱말의) 幹部 . 이것은 Aalto 가 Rams t ed t의 Ei 1k Jiilm mg …… I : 52 脚社 에서 말한 이 語根 에 대한 둥구 스 語 중거의 성 질에 관한 의문 을 해명해 주고 있다( 몽 구스 語 의 同源 語 의 의미는 알타이 祖 55 로 재구한 낱말의 의미와 일치한다). * -d- 의 전형적인 변화를 보여 주는 뒤 르크語의 語形 은 Uig . adak, MTk. aoak, Modern Tk. aya k 足 /迎 ” 이 다 (이 들에 관해 서 는 Rasanen, Versuch ...... , p. 5a 참조) . 이 들 뒤 르 크語形의 키하중 -k 는 動詞派生名詞룹 形成 하는 접 미 사이 다 (l'vl e ng e s, Ttt rl lic Lang u ag e s and Peop le s, p. 162). 따라서 -fl 가 츄바시 語 와 日 本 語웅 포합한 다른 言語 에서 없다고 해서 놀랄 것은 없다. 알타이 祖語 재 구 형 을 末tr- *·ll 가 없 는 *pa d a 로 보는 것 이 좋을는 지 모른다. *pa d ak 의 末昔 *- k 는 뒤르크語의 중거를- 중요시해서 붙 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 하여 우리 들이 *ay t t-* a ri-, *an ,-와 갇이 재 구하는 語根온 動詞語 根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들 재구형이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단 계에서는 動詞語根과 名洞語根의 구별은 중요하지 않다 . 목히 둥구스語 派에서 그리하다. 이 접에 관해서 더 상세한 것은 Meng e s, Problems of Tung u s Lin g u is t i cs , pp. 371, 37~-4 목히 pp. 389-90; Meng e s, Die tun g u sis c hen Sp ra chen, p. 79 참조. 이 목 징 에 대 해 서 村 山七郞는 기 호 土 룹 사용한다. 예 풀 들면 , 그의 Ni ho ng o keil o 110 ta1 1!,y' ii [ 日 本語 系統의 探究 〕 pp .261,268 에서 +는 名詞 語幹 또는 語根 에 붙 이고 -는 動~~J,;[i幹 혹은 語根 에 붙 인다. 그러나 알타이 語 , 목히 몽구스 : E 의 초기 단계에 대해서는 土룹 붙 인다. 이 단계에서 名 詞 , 動詞의 구벌은 뒤르 크 語 와 몽골語의 후기의 현저한 목 칭과는 대조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 言語 比 鼓 의 아마 듀 어들은 語 形의 〈 E. 味〉 융 그 語 形에 대한 譯i `5 와 혼 동하는데 Gehard Doerfe r 가 바로 그 렇 다. 예 물 들면, 그의 Ti irl, is c / zc U1l d mong o l chc Elcmentc im Neup er sis c hen 에 서 실질적 으로 이 간단한 원칙웅 이해하지 못하고, 그럴듯한 語源 해석윤 무수히 하고 있다. 제 3 권 646 패이지에는 * p adak 과 알타이 諸語 의 대웅어의 意味몰 포합한전 형적 인 예 가 있다. Popp e 는 Centr a l Asia t i c Jo urnal 12 (1968) : 157 에 저 Doe rf er 의 견해를 거부하고, 史的 言語 比紋의 과정을 오 해하고 있을

뿐 아니 라 종래의 너 막학한 학자 의 견해롭 곡해 하고 있다고 말하 고 있다. 古代日 本語 k tt z i栗”는 塩 土記 』 일문에 기목되어 있으며 KaroW 가 Hochspr a chc und Mundarte n ...... , pp. 153, 168 (혹은 복사판, pp. 163, 178) 에서 인 용하고 硏究하고 있다 . 긴세대의 이 독일 학자가 설명 하고 있는 것은 이 중요한 ,- I E j杉윤 기목하고 논 의 한 유일한 문현 이라는 접에서 日 本語 어 휘 硏究의 실상운 말해 주는 것 이 라 하겠다 . 古代日本 人의 식 품 으로서 밤 이 중요했 던 것 에 관해 서 는 , Pearson 의 Paleoenvir o nment and Human Sett le ment, 북-히 pp. 1240-4 1 참조. 그는 쩌生文化 人이 日 本의 생환환경에 나타났 을 때는 밤이 가강 중요했는데 , 밤의 종유 자체 는 이미 彌 生 시대 이전의 거주지에서 삼럽 식 문의 일부였다 고 말 하고 ­ 있다. 이른 시기의 日本에 있어서의 밤의 역 할에 관한 중요한 자료는. Pearson 부처 의 Some Problems in the Stu d y of Jom a n Su bsis t e n ce, Anti qu it y 52 (1978) : 21-7 이며, 밤이 8 述 文 시 대의 중요한 생활 필 수 식 물의 하나였음을 확중하는 참고문헌을 들고 있다. 堅果가 여 는 나무 물 이 른 시기의 日本에서 어 떻게 불렀는 지에 대한 문재는 Karl H. Men g es 의 Ural-Al tai s c /zc ]alzrbii c/ze r 49 (1977) : 165 의 注 가 상당히 귀 중하다. 古代百 濟語 에 관해서는 위에서 든 필자의 Some Old Paekche Frag - ments 및 Old Korean and Alta i c 참조. 한국 ~ 5 mal 과 日 本語 ,/taS l t 의 관계 에 관한 문재 는 처 음 Jou rnal of Jap an ese Stu d ie s 2 (1976) : 349-51 에서 다부었는대, 이 것은 그 뒤 Ural-A/ tai s c /1e Jah rbti' ch cr 51 ( 1979) : 48 에 서 다시 논의 된 건 지 에 서 다시 硏 究되.. n어 야와 한” 鷄다률 . 의미하는 낱말 은 흔히 간과되는 Ot to Karow 의 다음 논의 문起에源 서 ) (O포p 괄e r적a 으l\로1i n o硏 ra究 복되 사고 판 있 , 다p.p . 8D2-e3r 로U rs이p r용u n g가 능de)s .T o原ri始 i위 〔 [르.M 居크 語 재 구는 Doerf er , Ti irk is c lze tm d mong o li sc/ 1c E/cmc11tc im Ncup cr si- schc1 1 , 2 : 482-3, 887 절 참조. 日 本語 ya k-, tak -의 語源 에 관한 설 명 온 전 에 Jap an ese and the Ot he r Alta i c Lang u ag e s 에 서 설 명 한 것보다 좋 다고 생각된다. 日本 語 에 있어서의 말레이 겨문 리네시아 語 요소의 문제에 관한 개설 서 . 로서 는 村山七郞의 The Malay o -Polyn e sia n Comp o nent in th e Jap an ese - La ngua g e , Jou rnal of Jap a n ese Stu die s 2 (1976) : 413-36 가 학생들에 게 참고가 될 것이다. 이 多作의 학자는 최근 수년 사이에 日本 語 에 있

어서 의 말레 이- 풀 리네시아 語 요소의 硏究와 그 확인을 위한 일련의 책 을 출판웠 으며 또 여기서는 인용 할 수 없는 많은 짧은 논문을 발표했다. 이 주재에 관한 그의 중요한 저서는 다움과 같다. ' (1) 大林太良와 共 著 , Ni lzo ng o 1:0 Ki gen [ 日 本語의 起源 ] (東京 : 弘文堂 1973) ; (2) Ni ho ng o 110 go g c n [ 日 本語의 溫源 M 束京 : 弘文堂 1974) ; (3) Ni lzo ng o ,zo lic n ky ii gh5c1 h16 lw i[ 日[ 本國 語語球 의 의硏 究限方界法] ](기 I()束KJ R : 弘: 弘文文堂堂 ,1 917957) 4; ) ; (5)( 4)N iK lzoo kngu go o glw a il mto 111100 - ta1 1ky ii [ 日 本語 의 探究] (束 京 : 大 修縮 ..占 店 , 1978) ; (6) Ni lzo ng o no ta11 j o [日 本語의 誕生] (東京 : 筑 f .? 죠引 店, 1979) ; (7) 國分直 一와 共著, Gcnsl zi Ni lzo ng o to 111i 11 zoku bun lw [原始 日 本語와 民族文化] (束 京 : 三一 古店 , 197 9). 이 문재웅 硏究하는 사 람에게 이 들은 모두 중요하다. 다 행 히 이들 책 에는, 日 本 의 대부분의 학술서적과는 달리 引用 및 硏究된 語形의 색 인이 붙 어 있어서 이용하기에 대단히 편리하다. 말레이- 풀 리 네 시 아 祖 ;5 의 재 구는 Ot to Demp w olff 가 Zeit sc /z r if t fiir E i ng e bore11e11- Sp ra clze1 1, Berlin , vol. 15, 17, 19 에 1934 年 -1939 年에 걸쳐 발표한, Verg/ c ic l zcndc Lautl c/z r c des a11str o 11esis c / z e 11 Worts c lzatz e s [오스토로네 시아 語 g·: 比救音韻論]에서 주로 달성되었다. 최근 英語로 저술된 다음 저서는 학생들에게 대단히 유익한 入f 1 간 가 될 뿐 아니라, Demp w olff 의 독창적인 재구 이후 이 방면의 발달에 관한 신뢰할 만한 정보 를 제 공한다. Ot to Chri st i an Dahl, Proto -A uslro11csia 1 1, Scandin a vi_a n Insti tute of Asia n St ud ie s , Monog r ap h Serie s no. 15, 2d rev. ed. (Lund : Stu d entl itter atu r , 1977) . 말레 이 국문리 네 시 아 ,1 E 요소 이 상으로 日 本語 가본 질적 으로 알타이語的이라는村山의 최근주장에 관해서도, Nih o ng o kcit 5 ,l0 tan ky E [ 日 本語 起源 의 探究] p. 291-2 참조. 알타이 祖語 *si .h 의 語源 은 Jap a1 1csc and the Ot he r Al taic Lang u ag e . p, ll9 에서 논한 바 있다. 本文의 日本語 kani 盤 ”의 語源은 원래 Joh n St re et 의 의견이 며 (1975 年 3 月 19 日 의 私信) , 그는 Al tai c Elements in Old Jap an ese 의 속편 에서 더 상세하게 다룬 것이다. 이 語源 에 관한 뒤르크語의 자료는 Rasanen, Versuch… .. . p. 251b 에처 인용했다. 日本 語 의 역사와 계몽관계에 관한 선구적 여 러 硏究 운 포합한 E.D. Poli - vanov 의 중요한 論 文 選渠 이, ::::z..의 사후 ::::z..에 대한 정치적 복권이 있고 나서, St at ' i po obscej jaz yk o znanij u [ 一般 言語學論集 ] (Mo scow : Aka-

demi ja Nau! {, 1968) 라는 서명으로 출 판되었다. 日本 語 硏究者에게 가 강 유익한 한 권은, 日本 語 에 관한 Pol i vanov 의 중요한 논문 전부를 모 아서 번 역 한 村山七 郞 의 Ni ho 11g o keaky ii [ 日 本語 硏究 끄東京 : 弘文堂, 1976) 이 다. 모스크바의 /J K 本을 夕꽈강한 Arti cle s on Gene ra l Lmg u is t i cs, Jan ua Li ng u arum, Serie s Majo r , vol. 72 가 Monto n 社 (The Hag ue , 1968) 에 의해서 출 판되었는데 번역이 그다지 좋 지 않다. 현재 日本에서는 日本 語 를 〈混合 言語 〉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이것은 핑가하기 어 렵다. 西洋의 言語[요 에서 〈混合 言語 〉라고 하는 것은 오늘날 일반적으로 말하는 〈피진 語 pidg ins > 또는 〈크 러 1 운 語 creoles 〉 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M i schs p rache( 混合 言語 )라는 용어 는 원래 Hug o Schuch- ardt (1842-1927) 가 硏究한 피진 語 또는 크레 올語 와 관계가 있으나, 日 本 이외에서는 言語[강 에서 중요한 설이 되지 못했다. 日 本 이외에서는 인종의 혼합은 있으나 言語 의 혼합은 없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이 문 제에 관심이 있는 학생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다음 책이다. Pi dg i11i z a ti o11 a11d Creoli za ti o11 of Lang u ag e , ed. Dell Hy m es (London : Cambrid g e Univ e rsit y Press, 1971), 목히 역사적인 의미에서 〈混合 言語 〉(모든 言 語가 현재를 포함한 임의의 단계에서 〈混合的〉이다)로서의 日本 語 의 문 재 에 관한 것은, David Decamp 의 논문 Intr o ducti on : The Stu d y of Pid g in and Creole Lang u ag e s (위 의 Hy m es 논문집 , pp. 13-39) 이 다. 득히 피진語와 크러 1 을 語 의 硏究가 〈기초어휘〉의 개념과 픕엷 i年代學의 데크닉에 깊은 의문을 던진다는 것, 그리고 〈역사 를 모르는 言語 가 피 진-크레올 사이클을 몽과했는지 알 方法이 없다〉(p. 25) 는 것을 논증하 고있다. 日本 語 의 역사를 전적으로 〈混合 言 語〉로선명하려는 日本에 있 어서의 시도의 난점은 바로 여기 있으며, 이 난정은 해결되지 않고 있 다. 日本語는 〈과거의 피진語이다〉라고 주장하는 것 (Frank li n C. Sou- th worth , Dete c ti ng Prio r Creoliz a ti on , Hy m es 편 논문집 , p. 270) 은 未知의-日本語 몰 〈混合 言 語〉로 보려는 사람들에게 未知의 __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서 이전의 피진語-크레올 言 語化의 가정을 이용하는 점에 서 순환론에 빠지기 마련이다. 한편 초기의 言 語史를 확실히 알고 있을 때만 피진語化와 크레올語化의 가정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현대의 피 진語 및 크레올 語 硏究를 참고해서 日本의 〈混合 言 語〉說울 재평가하는 것은 긴급한 과제로 납아 있다.

第 4 范 江上波夫의 견해 는 다음 英譯으로 자세하게 조사할 수 있다. The Formati on of the Peop le and the Orig in of the Sta t e in Jap a n, Me- moir s of the Toy o Bmzko 23 (1964) : 35- 70 . 이것은 널리 읽히고 있는 그의 저 서 , Ki ba mi 11 zok11 lwkka, Ni lw n kodais lz i e 110 ap ur oclzi [騎馬民 族國家 , 日本古代史에의 어 푸로치 l 中公新 : ~. 147( 東京 : 中央公 論 社, 1967; 1974 年에는 다) 版)물 정확하게 재생한 것이다. 江上 說 의 요약은英 文으로는 51 페이지 이하, 日本語 原文 으로 는 171-3 페이지. 江波가 言語 자료 룹 무시하고 또 그가 도입하려는 言語 자료 -흉 부적절하게 다문 대표적 인 예 는 英文 40, 56 페 이 지 기 타 日 文 , 210, 221-2 패 이 지 및 그밖에 보인 다. 예를들면 英文에서 〈인도네시아의 民族-중국人이 들어오기 전에 중국 南部에 살고 있었다고 추정된다-―_이 사용하는 言語 에서 ‘다 를 의미하 는 및몇 낱말 1lep, 1li, 1IIUl 은 日 本語 의 i ne 와 음성 면에서 어느 정도 유사하다〉(p .4o) 고 말한다. 또 〈이들 모든 경우에 日本 語 로 이해하 기 쉬운 낱말은 한국語로도 쉽게 그리고 합리적으로 이해된다〉(p .56) 고 말하고 있 다. Gari Ledy ar d 의 Gallop ing Along wi th th e Horserid e rs : Lookin g for the Founders of Jap a n, jo urnal of Jap an ese St ud ie s 1 (1975) ; 217-54 는 江波 說 에서 구제 할 부분을 구재하러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Ledy ar d 자신은 言語 중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고 인정 하고 있으며 (p. 220 注 9) 江波說의 이 약접 에 대 해서 속수무책 이 다. 티베트-버마 h.. E 와 日本語의 親近관 계의 가능성에 관해서 또 이것과 관 련된 西田 nu 旦t의 硏究에 관해서는 위에서 인용한 것을 참조. 言죠 현상은 필 자의 논문 The 'Sp irit' of th e Jap a nese Lang ua g e , Jou mal of Jap a n ese Stu d ie s 3 (1977) : 251-98 에서 계동 문제와는 관계 없이 다 두 었다. 뒤르크語와 日本 語 사이에 많은 同源語가있다고 시사한것은 다음 논 문이 다. . E. Azerbaje v , Nekoto r y je vop r osy jap o nsko-tj ur ksk ix jaz y - kovy x svja z ej [ 日 本語―뮈 르크 語 의 言語 관계 의 몇 가지 문제 ], Izve-sti ja AN Kaz. SSSR, Serij a F il o log ice skaja 4 (1974) : 42-8. 단 한 사람의 日本 학자가 Meng e s 의 ]apa n is c lz und Alta j i sch (four -nal of Jap an ese Stu d ie s 4 [19 i8] : 432 에 인용) 윤 본 것 갈다. 그러 나 내용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다.

역자해제

본서 는 밀 러 Roy Andrew Mi ller 敎授의 新著 Orig ins of the Jap a n ese Lang u ag e , Seatt le and London : Univ e rsit y of Wash ington Press, 1980 停 言 . vii-x ii i, 本文 3 -206 면, 索 引 207-217 면)의 全譯이다. 밀러 敎授의 이 책이 出版되자, 워싱돈大學 出版部로부터 역자에게 評 用으로 한 권이 보내져 왔다. 역자는 이 책을 받아 보자, 다음에 설명 하는 몇 가지 이유에서 많은 관십울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서 울大學校 大 學 院( 言語學科 )의 〈特殊 言語 硏究〉의 강의에서 이 책을 敎 材 로 사용하기도 었다. 그러던 중 필 자는 이 책을 한국 語 로 번역하여 우 리 학계에 紹介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역자는 당 시 준비중에 있던 抽 著 『韓國語 의 系統』이 出版되면서 곧 번역에 착수 하고 밀러 敎授에게도 韓國語譯 版의 出版계획을 알리는동시 關譯 版 出

版에 따른 밀러 敎授의 허가를 요청했다. 이런 일들이 진 행되던 중, 우 연히도 大宇財固에서도 1983 年度 絲譯 支 援 계 획 의 하나 로 밀러 敎授의 이 책이 선정되었다. 그리고 필자의 綴譯 계획을 안 岳j l 버 씨 에서는 필자 : 를 지원 대상자로 결정해 주었다. 이 렇 게 해서 필자의 번역 작업은 순 조롭게 진행되고 이 磁譯 版이 빛을 보게 되었다. 역자가 밀러 敎授의 이 책에 많은 관심을 갖 고 또 그 것을 번역하게 된 데는 다음과갇온 몇 가지 이유가있다. 첫 째 는 우리나라에 는 아직도 日 本語의 系統에 관한 전문서적 이 한 권 도 없다 는 접 을 들 어 야 하겠다. 우 리 학계에서도 우리말의 계몽 硏究와도 관 련 해서 日 本語 의 계동 문제에 적지 않은 관십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 실 이지만, 지금 까 지 이에 관한 한 권의 책도 出版되지 않았다는 것은 다소 기이한 현 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득히 근래 여러 大穆에 日本 語 文 學科 가 설치되고 日本 語 를 전공 하는 학생의 수가 급속히 중가한것을 고려 할 때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든 다. 또 한편 한국語의 계몽 문재와 관련해서 한국 語 와 日本 語 의 관계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가지개 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그러면 서도 여기 대한 硏究가 그다지 활발하지 않다. 이러한 접에서 필자는 밀러 敎授의 이 책을 번역하여 우리 학계에 紹 介하려고 한 것이다. 이 러한 뜻에서 그리고 이러한 시접에서 이 國譯 本의 刊行은 의의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 둘째 이유는 다음과 갇다. 이해하기 어렵고 복잡한 학 설이나 이론을 알기 쉽고 평이하게 풀이해서 설명한다는 것은 결코 용 이한 일이 아니다. 言語 의 계몽 문제도 예외가 아니다. 이러한 점에서 밀러 敎授의 이 『日本 語 의 起 源 』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보아야할 것이다. 原著의 序 言 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바와 갇이, 이 책은 日本 語 의 계몽 문제에 관심이 있는 학생을 포함한 넓은 일반 독자충윤 대상으 로하고 있다. 따라서 本 由 는 일반독자충을 비못하여 日本 語 의 계몽문 제에 관심을가지고 그것을 硏究하고자하는 사람에게 좋 은 入 r閉 5 가될 것이다. 세째 이유는 이미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으나, 한국 語 의 계몽 올 硏究하는데 있어서 日本 語 와의 관계에 관한 硏究는 중요한과제의 하 나라는 점이다. 이러한 접에서 本 한 는 한국語의 계몽을 硏究하고자 하 는 사람에게도 필요한 참고서가 될 것이다. 네째 이유는 세번째 이유와 관계가 있는대, 著者인 밀러 敎授는 한국語의 계몽 硏究에도 납다른 정 력을 쏟고있다는 점이다. 日本語의 계몽을硏究하는 데 있어서 한국語와 日本語의 관계에 관한 硏究가 필수적인 중요한 과제의 하나입은 재론와

필요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밀러 敎授의 日本語 계몽 硏究에서도 한~ 語 와의 관계에 대해서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을 그의 여러 논· 처에서 불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밀러 敎授는 근래 한국 語 자체에 관 한 중요한 논문을 발표하고 있 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문재 를 제기하기 도 했다 . 그런데 그의 이 러한 硏究가 우리 학계에 별로 알려져 있지 않 다. 우리는 외국 학자들의 硏究에도 좀더 많은 관심 을 가질 필요가 있 다. 밀러 敎 授 가 발표한 한국語에 관한 중 요한 논문 중에는 다음과 같 은 것이 있다. 먼처 Some Paekche Frag m ents (Jou rnal of Korean Stu d ie s vol. 1. 1979, pp .3-69) 에서 『三國史記』 所載 百濟地名과 『日本 간紀』 에 보이는 百 濟語 그리고 다 른 자료에서 IO 개의 낱말을 들어 상세하게 고 찰 하고 있 다. 다음에 Old Jap an ese and the Kog uryo Frag m ents : a re-s u rvey (Ex pl o rati on s in Ling u is t i cs, Papa r s in Honor of Kazuko bzott e, Toky o, 1979, pp .348-68) 에서는 『三國史記』의 高句麗 地名에 보이는 댜킹字가 실재로 어떤 昔윤 표기한 것인가에 관한 중요한 문재 를 제기하고 있다. 종래 우 리 학계에서는 「也尸」 孤”의 경우에는 * y as i로 읽어 다=」 를 s 로 터 읽기도 하고 또 다른 대부분의 경우에는 l 로도 읽고 있다. 이에 대해서 밀러 敎授는 야컵의 音價表 aB 에 관해서 새로운 견해 몰 피력하고 있다. 우리 학계에도 이 「尸」 를 어 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이미 오래 전 부터 문제가 되고 있다. 李崇寧 先生은 여기에 관해서 다음과 갇이 말한 바 있다. 〈이 尸字가 -l- 로 읽올것이라는 주장에는 아칙 未解決의 난정 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우선 尸字의 「尸」가 語源 的으로 무엇 융 나타 낸 것인지 不分明한 것인데 -l- 이니 합에는 아칙 조십이 필요하다〉(「新 羅時代 의 表교體系 에 관한 試論 」 『國語學 硏究選합』 1, 1978, p. 71 f.) . Old Korean and Alta i c (Ural-Alta i s c /ze Jalz rbii ch er 51, 1979, pp. 1-51) 에서는 위에서 말한 다킵 문재윤 다시 논하면서 地名 등에서 추출되는 낱말에 대한 새로운 해석올 시도하고 있다. 여기서는 이 돌 硏究 에 관해 서 상세히 언급 할 여유가 없으나, 여기에 관해서는 밀러 敎援 의 韓國語 譯版에 불 이는 序文에 서 한두 문재가 언급되고 있다. 日本 語 의 계몽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여러 說 이 발표된 바 있다. 알타 이 諸語 와의 동계설, 말레이―폴리네시아語와의 동계실, 한국語 와의 동 계선, 알타이 語 와 말레이 국문 리네시아 語 와의 混合言語說 등이 있고 최 근에는 티베트-버마 語 와의 동계설 동도 있다. 이둘 여러 견해 중에서

일찍부터 가장 유력시되고 있는 것이 알타이諸 語 및 한국 語 와의 동계설 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밀러 敎授은 日本語와 알타이諸 語 와의 親近 관계 를 주장하며 알타이 諸語 에서 득 히 퉁 구스 語 와의 밀집한 관계를 강조하 고 있다. 그의 이러한 견해에는 다시 다음과 같은 특칭 이 내포되어 있 다. 日本의 騎馬民族說 에 의하면, 4 世紀末부터 7 世紀에 걸친 後期 古坦 時代의 文化는 이에 앞선 彌生文化와 그 延長線상에 있는 前期 古埃文化 와 ::::z. 성격이 본질적으로 다 른 데, 그것은 北方에서 알타이語系 의 言語 물 사용하는 騎馬民族 이 韓 半島 을 동해서 日本에 침입하였고 그들이 가 져온 文化는 그 들 이 日本에 침입하기 전부터 있던 文化와 그 성격이 전 혀 다른 데 기인하 는 것이라고 선명하고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 이 騎 馬民族의 침입에 의해서 4 世紀末에 알타이 語系 의 日本語가 형 성되는 것 이 된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서 밀러 敎授는 거부 반응 을 보이고 있다. 밀러 敎授에 의하면, 4 世紀末경에 日本 에 어떤 중요한 일 이 일어난 것 갇고 또 그것은 大陸으로부터의 침입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과거의 한 시 점에서 단 한 번만의 침입이 있었다고 가정하는것은 선명 이 불 가능한현 상이라고한다. 이미 4 世紀 末 이전부터 大陸으로부터 침입한 집단의 여 러 차례의 물결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日本 語 의 起源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이것 을 입 증하는 것이 日本語 에 있는 斐語 이며 또 그러한 嬰語 의 존재는 大陸으로부터의 여러 차례에 걸 친 전후의 물결을 고려합으로써만 선명이 가능하다고 밀러 敎援는 본다. 그리고 말레이-풀리네시아語의 요소가 日本 語 의 형 성 과정에서 흡수 되었지만 그것은 日本 語 의 계몽 그 자체와는 무관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필 자는 당초 魏譯 後 : a 에서 「尸」字에 관한 밀러 敎授 의 견해와 또 中 期한국 語 의 「잇」에 관해서 비교적 상세하게 보충 설명을 했으나, 밀러 敎授 의 「한국 語譯 版에 붙이는序文」의 원고 를 받아읽고필자의 보충실 명을 모두 삭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밀러 敎授가 ::::z. 序 文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었고 따라서 서로 중복되는 부분이 많았기 페문이었다. 그러나 역자는 밀러 敎授의 새 序文을 읽으면서 새삼 느끼 는 것이 있어서 이것을 간단히 설명해 두고자한다. 역자는새 序文을 읽 으면서 밀러 敎授 가 本文에서 다음과 갇이 말하고 있는 것을 상기했다. 다소 길지만 강조하는 뜻에서 그대로 引用한다. 〈여러 학자둘은 다른 言 語 의 자료를 두 다리 세 다리 건너서 인용하는 데 만족할 뿐만 아니라 다

른 言 語 의 직접 적인 자료에 생소하 기 메문에 日本語 와 몇몇 의국어의 몇 개 안 되는 낡 은 어 휘 비교 를 되 풀 이 해 서 인용하고 있으며, 자기 자신의 새 로운 비 교는 재시하 려 고 하지 않는 다. 이 문제 는 목 히 日本語 와 한국 語 의 比 1 校 에서 중요 하다. 여기서 는 일 련 의 잘 알려진 낱말의 비교­ 그 중에 몇 개 만이 표면적 인 〈유사어〉 수 준 에서 벗어나고 있다-_-가 거 의 I 새기 동안 계속되 고 있으며, 각 저자 들 은 되풀 이해서 인용하고 있 다. 그 동 안 日 本語 와한국語 의 비교에서 는 , 日本語 와 다 른 알타이 諸語 와 의 미교에서와 7같 이 , 풍부 하고재 로운 참 재적 인 비교 자료의 원천에는손­ 을 못 댄 체 硏究되 고 있 지 않 다〉( 本文 pp. 175-6). 역자도 t U1 챔 『韓國語 의 系 統 i ( pp. 246 - 7 ) 에서 밀 러 敎授 가 지적 한 바와 같은 말 을 한 적이 있 다. 〈그러 나 여기 서 문제가 되 는 것은 우리의 연구가 람 스데트나 포페 의 연구범 위 에서 벗 어나 어 느 정 도 발 전 했 는가 하는점이다. 우리는 이 접을 냉 정 하게 반성하지 않 으면 안 、 된 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람 스 테 트 나 포페가 제시 한 어 휘 비교 이외에 우리들의 연구에서 어느 정도. 의 새 로운 대 응 에를 찾 았는가 하는 접 이다(……)이러한 점에서 필 자는 한 국 語 의 계 몽 연구, 다시 말 하 면 한국 tE 와 알타이 諸語 와의 비 교연구가 현재 큰 빅 에 부딪치고 있다고 표 현 했던 것이다.〉 우리들에 의해서 새 로운 대 응예 를 찾 지 않고서 는 우리 들 의 硏究에서 더이상의 발전을 기 대 할 수 없다.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 밀러 敎授 가 새 序文에서 제시한 ­ 몇 몇 어 휘 비 교 는 주 목 할 만하다. 특 히 中 j비한국 語 「잇 J ‘宅f과 만주 語 nis ik t e 苦 와의 비 교 또는 原 始한국 語 *ni s i k - 문 재 구한 것은 타당하다 고 생각된다(밀러 敎授 는 다 른 논저에서도 여러 새로운 어휘비교 를 보. 여주고 있다). 위와 같은 접을 강조한 밀러 敎 授의 견해는 전적으로 옳 다. 이밖에 밀러 敎授 는 日 本 학계에 대해서 기단없는 비판을하고있다. 그 중에서 위에서 지적한 정은 우리의 입장에서도 귀담아들어야 할 필 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 疏譯 版의 出版 을 快諾 해 주시고 韓國語譯 版에 불 이는 序文 융 보내 주신 밀러 敎授 에게 深基 한 謝炫룹 표한다. 그리고 역자의 번역 계 획을 도와주신 大宇財 團 에도 깊은 사의 을 표한다. 語 例와 복잡한 부호 몰 하나하나 原맙 와 대조하며, 까다로운 校正 을 도맡아 협 조해 준 言語學 科 博 士 課程 의 金 重 瑞 君 에게 깊은 사의 를 표한 다. 또한 原稿 정리 를 도아준 言 語學科 大 學 院生 金 慶 一 君 , 言 語學科 生 柳 蘭智 양에게도 사의 를 표한다.

끝으로 私的인 일이지만 한 가지 附言해 두고 싶은 것이 있다. 지난 해 번역이 진행되고 있을 때, 너무도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KAL 기의 격추 사건이었다. 그 항공기의 조종실에는 역자의 둘째 아들 이 항공 기관사로 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엄청난 일은 역자에게 큰 충 격을 주었으며 그로부터 수 개월 동안 번역의 봇을 놓고 말았다. 그뒤 어떤 不幸한 일 때문에 번역 계획이 늦어졌음을 밀러 敎授 에게 알렸다. 여기에 대해서 밀러 敎授는 따뜻한 위로의 말융 전해 왔으며, 역자가 다시 번역의 붓울 드는 데 큰 격려가 되었다. 그리고 그 사건이 있던 꼭 1 년 만에 이 번역이 모두 완료되었다. 이러한 일을 겪으면서 이 번역 이 완료된 것이다. 1983 년 9 월 1 일 이른 새벽, 사 할 린 상공에서 순직한 둘 째 아들, 義 東의 명복을 빈다. 親譯 後記에 이 私的인 일을 적은 역자의 심정을 밀 러 敎授는 이해해 주리라고 믿는다. 1985 년 4 월 老石山房에서 金芳漢

93 x ��� �� @f;

0�\���I I .

�@�X� (�lgQ) ��5-6, 144 |� 134 ���� 12

_lN�l+Y

203 �N��^29 �|q .

}33, 37, 181 ��5 C: U15

S [ ;!113 1 �̹ 16o -38 ؚ�S���n153 ��*XN[ONeI49

�ȹ( ��ID 173-4 ନ� X� |� |Ť �ȹ�� ( ��S�Ow )II .,1

5 �SfBfW �N120" 'Y*� cp134| ����x ��� � ()Yt) , 120( ^78 �

�� ) �SR^�89-

�N�l4 .5, 113 �94 T�T\O

ɯ 166 qQBf�v67 Ox}1 l (u103 q

T ^�102-3 P��-��gwm100 �]���D

|�(�N �� HY-o)���q� 90 ���ƀ� ܴ 42 \�

� )� I32 l�ȹݹ�� ���� 71 �% й�

��ij(1H�,g) #~ It�-@֬�$�

28 l��0��D� J58

� ��� II .5-, I60-6

8 ]�N]8,2 132-32, J|� .J

0���t� ( ug )3QI267 _[P

0� �� 28[27 i����

� I78 T^ �

ij�94 T ^�>mu�R^�J42 f�lĖ

�l�e�� 170-71 �e53-4, 107

w��n30-39, 118, 133 ��

�Wy��11'97-8,I 5 . 6 0� �謞� 54-5,

I37- L.8

��60, 78� �YS ��̹ TN79 -Ng__ �|��� n78 ��N謺 6

6, I" ��|�(0 4�1�T

HYo�) 87,� JJO �e[W60

번역 J4 J 復數 99 。 本 1 tl 28 아무르江 IO5 분 가江 70 i의 꺾임 196 봉러 54, 56, 70, 177 아 재르바예프 178 北 海道 28 -r-< *-/- 161 佛敎 125, 149 *r, 144 브라전 28 알타이山 脈 72 比 校 文 法 63 알타이 語 56, 84, 138, 141, 143, 152 比 校 方 法 62-3 原始_ 60, 93-4, 96, I 10 비너스像 JJ6 , 144 알타 이 祖語 9:z , 139-44 벗살무늬 토기 120-21 안타이 語 의 下位話族 78 알다 이 酒 몽-일체 136 ).. 알타이 어 휘의 증 거 109 四 國 28 안타이 諸語 54, 75, 98 사슴 159 야마도(大 和)江 134 사할린 IOO 야요이 ( 彌生 )시 대 125, 130-31, 172 社會病理學 I70 약호 98( 주 ) 산스크리 트語 59, 63, 71 梁 28 生態的 조건 Io6 어로 105, 125 石 器 I35 語源 161- 2 先史時代 II3-38 語源 的 비유 163 成立 33, 37 알타이 祖語 의 共通어 휘 98 소바다( 답畑 )貝 塚 I28, I30, I97 어휘의 중거 no 수렵 105 어휘자료 81 數詞 74-82 語菜統計[}! 98 순 목 IO5-6, I23 言語 40-41 스칸디나비아族의 침입 147-8 言語 年代~ 98 스텝지대 70-74, 121 言語 변화 29 슐라브語 90, 166 言語 접 촉 70-71, 147, 1.5 0 -.51 , 1.5 8 , 161 繩 文토기 I25 言語 의 계 몽관 계 .55 -6 新詩 語羅 II2430 言s 語8 4증 , 거87 138 신석기시 대 117-20 에트루스크 語 I45 新造語 n8 *-l- I22 雙語 m9 •12 83-.5 女 眞語 61

오끼나와(沖 繩 ) 28 定 說 48-5I 오노스스무 (大 野晋 ) I77-8 助 詞 97 요도(泥)江 I34 중국 話 46, 59, 145 우 만 山 脈 70 中東 46 우 랄諸族 70 中 石 器 시대 II9 原始급語 79 증명 I79 源 氏 物諾 29 地 理 的 自 然 조건 J06 元?麻窮 e 60 地名 87 原住地 .57 칙 문 I30 t I J敎 27 진화 44, IIB 琉球諸 I23 유라시아 72 天 옵소 83 借用 70 音韻論 29-30 天山山脈 70 숍韻잽 位 IIO 천기 120, 130 疑 問 河 99 청동기 130, 132 의 미 30,76 體땄人類휴 40 意 味 論 29 校入 138 移動 7I 이 란語 7I 구 印 歐 亞大 陸 7J 카스피 海 70 印 歐語 7I, I I9, I49 카스피 海 東 렵 :의 스텝 지 대 7o-74- 印 歐諸語 .59 , 102, 167 키더 128 印 歐祖語 46, 71, 90, 102, 160 人 稱 代名 詞 99 드 日本 간紀 45, IJ3 타우샌드 해리스 54 日本 語 28 타이가 105-6 古代 __- 29, 59-6J , I59 타히티성 I37, J6 0 中世―― 29 炭 素 -I4 年代 측 정 법 127, 129-30 , 現代―_. 29, B.5 - 6 土器 119-20 日 本人 論 39, 41-3, 46 로이기 71 日本학계 J2 5 롱가 語 162 通時的 67 自然환’ 경 J2 4 문퉁드구라스지 諸대語 51075- 8,85,87-8,109 再 構 67 뒤 르크 諸語 57-9, 157, 178 裁植物 J있 터대트-버마語 172

터베트語 63 한국語 古代 __ 59 포 中期._ 85, 99, 156, 158 派生 動詞 94, 143 現代- 8;, 110, 154-8 , 162 페르시아 語 71 韓 半島 134 平安 時 代 I42 淡王朝 72 풀리네시아 137 헝 가리 語 .54 , 7°, 7 그, I.57 퐁리바노프 164-6 現在名 詞 IO2 푸 두 나 語 J6 2 形態論 29 피지 語 I62 混合갑語 [58. [64-7 핀랜드 語 54,70 混合 인 종 I65 환경 I06 굴 후지 오까 가쓰지 G 針岡勝二) 53 하와이 28, 137, 16o 後四詞 99 學 校文法 J7 5 훈族 72 칸국 신석기 토기 119 --21 힌디語 7I

語形색인 일본어 ag o ·;-J i 99 IIIIta 뚜껑 95 aka ?k . Jl 95 lmt ag 꼭 닫다 95 a/1a r - 만 개 지 다, 밝 아지 다. 95 ari 存在 102 i- 있다 99 ariI' - • ; 길 다 l42 -3 ika 오칭 어 162 aruk- ? 깊 다” 나 2-3 inc 며 203 aassaa ·},:g았r 115544 -5 iirraa t - 가 (시마 . 음고 이 몽 ) 두 1 흔9들6 리 다 96 aza r - 해 산 용 운 잡 다. 모으다 I96 iro 顔 色(古代日 本語 ), 色(古代日本 語 ay IiI I I- 한 번 에 한 걸 음 씩 걷 다” 이 후 )” 99 I42-3 isa g o 砂, 小石 87 isl: i 石 85-7 F1 1k- 부‘장 개 하다 , 붕 다 (吹) IO3 ish ik o ro 겨:i. 小石 86 Folo (O J ) 정 r F숙 99 is6 (0J ) 해 변의 바위 87 Fug 11 ri ( OJ ) ” 쭈 丸 103 isu (OJ ) is6 참조 F11k11ra(OJ )부 풍 어 오른 곳, 팽창한 iza r- 바다에서 고기 윤 참다• mI. 것 103 161, 196 -g a h-( 정 미 사) 96 kabu 머 리 94, 143 kab11k- 머 리 윤 수그리 다 94, I43 J1a 羽 94 kag ir- 제 한하다 95 J1a g둘 - 다 화 살9에4 새 털 을 달아서 활윤 만 kkaankii M垣 .. 9156 2, 201 hag -(가죽 • 껍질 을 )벗기다 96 -kas-( 접 미 사) 96 hag at - 파괴 하다” 96 ket .. ' 엉 덩 이.. 99, 140 JIa ji 부끄러 움.. 139 · kir - .. 切 99 har- 새 로 토지 문 개 간하다 94 kit a 北.. 139 hara .. 腹 99 kokoro 心 99, I42 haruk-.. 넓 게 열 리 게 하다 94 kokorom- 시 도하다.. 142 上 o 배꼽 99 !,oro ish ik o ro 참조 .heta 과일의 열 매 꼭지 • 99 k .. 栗 99,1 서 Jtitot s u .. I 80 -81 kuzi ( OJ ) ,. 票 1 사, .20 0 lwlruro 사마귀 • 99 쇼 .. 古· 99 血*:‘베개로 데다. 103

mak11ra 배 개 94 saka 坂 9.5 mak11ral,- 무언가융 베개로 삼다 94 sakar- ~에 反하다 , 반항하다 95 mari ( OJ ) 순이 나 뭉윤 넣 는 컵 모양의 sakar- 멀리 연 어 지 다 95 용기 155-6 sakat - 도살하다, 죽 이 다 95 masa 업 E 95 sakura ”벚 꽃 103 masar- ~보다 능가하다 95 shi k- 적 시 다. 축축하게 하 다 99 mas t, • ‘ 곡식 이나 액체의 양운 다는 사 shi k ( I,) o 小使 99 각형 의 되 “ 155- 6 , 200 shim o A-T I 99 mat - 기 다리 다 94 shi r- 안다 94 ma t a” 가랑이 94 shi ra g a h- 눈에 퍼 게 뎅 동운 하다 94- mata g - 두 다리 문 벌 려 넘 다 94 shi ra /w- 홍 이 깨 지 다. 참이 깨 다 94- mata k- 기 다리 개 하다 94 shi ri 궁등이 modor- 듄 아오다 95 shi ta 下 94, 96 mot o - 元“ 95 sh itag a h- 복종하다 96 mi z11 71'. 94 sh itak - 짓 밟다 94 mi z1 1k 적 시 다 94 sis i ( OJ ) 가바참 159 s11g 1 1r-껴 E 라내 다, 버 윤 벗기 다 94 nar- 소리 물 내 다 103 nara 방구 103 ta b- 먹 다 99 nats t‘ 강 l 99 tad 11 (0J ) 情 9 J4 3 n igc-상대방의 힘이나 영향에서 달아 tag ir- ( 웅 이 ) 끊다 96 나다 IIO tag it-" 세 차게 흐르다. 거 칠 게 일 다- 11i ku ~ 159 96 niw a to r i .. 담' 156 tak -' 냉선” 158, 200 nog e- 도망가다 JJO tak a ?갑 95 nom- 마시 다 91 ta kar- 높다, 높아지 다 95 nomaserar- 술윤 마시 도 목 강요되 다 ta ki 폭포, 져 류 96 91 ta r- 충분하다 96 nori .. 海苦“ 123, 197 ta s- 충분하게 하다, 채 우다 96 tok i 따오기 (새의 일종)” J.56 -7 omo 주된, 주요한, 중요한 80-81 to ri A 1.5 6 -7 tsi,ga r- 이 어 불이 다 9.5 ...,a( 복수정 미 사) 99 tsi1k - 지 치 다” 96 tsu ka (칼 따위의) 손참이 9.5 sag a r - 매 달려 있 다 95 tsu kar - 지 치 다 96 sak- 들로 찢 다 95 tsu karakas- 지 치 게 하다 96 sa k- (꽃이)피다 103 tsu na 綱 . 참피나무 껍질로 만든 밧

줄 95 wak- 分” 95 ts1 mag - 사냥에 서 발자국윤 따라 사냥 wakar- 갈 라지 다 95 감운 쫓다 95 wakat- 7J - 라놓다” 95 tsu ru \U) 143 wa11a 덫 94 wanak- 목 윤 조르다 94 tII Ia 목( 덜 미) 95 iu i- (O J ) 있 다 99 tII Iag - 목에 건 다 95 1ir a 밑 바닥, 속 I42-3 ya k- 토기 윤 굽다 158, 200 ya r-" 주다 198 한국어 .ac him ~M 154-5 11111/k- 움다 94 ii 인 I2J 'Ioh- 놓다[=놓아 주다]” JJO is( MK) ”이끼 J2 3 isi (OK- Silla) ”이 끼 , 地衣 I96 pat a k 밑바닥, (발)바닥, (河口의)마 닥 I4I koi 갱! 162 sam u~ 154 11w또l 는곡 식되 이는나 용 문기운 ” 되15는4- 5,용 2량00의 단위 tal k m• 156-7 '5hi- (동뭉운) 기 르다 I IO tJ,a - 燒“ 158 111111 水 94 tol 石 85-6

金芳漢 서울대 문리대 언어학과 준업 (문학박사) 미국 하버드대학교 객원교수 한국언어학회 희강 저서 『言語學論政』 『韓國語의 系統』 II'一般 言語學』 (共 著 ) 번역 『-般잡語槪要』 『言語學史』 현재 서운대 언어학과 교수 -

\~y \

日本語의 起源 I985 년 4 월 I5 일 찍 음 8 .5년 4 월 30 일 펴냄 겨온이 R.A . 밀러 옮 긴이 金芳漢 펴낸이 朴孟 浩 펴 낸곳 民 誓社 우편대재게좌번호 010 이 F3F . 7000N,O 7 서 자울 시2 졸 ”로 구' J판첼O, 툴 7 3팩 ,-a ,가J 출판“ 66. ,.19. 계 J -1 호 * 따츠 모립니다. 값 2. 200 휠

대우학술총서 印 E” 밑 - 7 韓國語의 系統 金漢/값 2,200 원 2 文學社會學 김현/값 2,200 원 3 商周史 尹乃鉉/값 4. o00 원 4 시開의虹能 黃禎奎/값 4, 800 원 5 中國古代文學史 金學主값 2,200 원 6 B 本의 萬葉集 7 錢現烽代/값意 2昧,200論 원 李값 4,200 원 8 베트남史 討仁善/값 3, 200 원 9~ p度哲學史 吉熙星/값 3,200 원 10 韓國의風水思想 崔昌祚/값 4, 000 원 11 社會科學과數學 李承勳값 2,300 원 12 重商主義 金/값 2,100 원 13 方言學 李翊윗 /3,000 원 14 蘇構斗造永 /主2,4義00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