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모리스 클라인 Morris K li ne 은 현재 뉴욕대학교쿠란트수리과학연구소 명예교수로있으며 〈수학잡지 Math e mati cs Ma gaz i ne 〉와 〈정밀과학사 기록 Archiv e for His to r y of E xact Sc i ences 〉의 부편집인 수학사가로명성이 높으며, 구겐하임 학자 Gu gg enhe i m Fellower 와 독일에서 풀브라이트 강사 Fullbrig h t Lec tu rer 를 지냈다. 주요한 저서로는 『서구문화 속에서의 수학 Math e mati cs Weste r n Cul tu re 』 『고대로부터 현대까지의 수학사상 Math e mati ca l Thoug ht from Ancie n t to Modern T i mes 』r 왜 자니는 덧셈을 못하는가? Why Joh nny Can't A dd 』 • 『왜 교수는 가르치지 못하는가 ? Why the Profe s sor Can't T each 』 몽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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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 헬렌 만 큘라인에게
수학의 확실성
서문 이 체에서는 인간이 수학의 본질과 역할을 이해하는 데 겪어야 했던' . 근본 적 인 변화를 다루고 있다. 오늘날 우리 들은 수학이 과거 에 보편적 . 인 존겅과 찬사를 받았던 목 색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수학은 정말 . 한 추론의 극치로서, 그 자신 전리의 구현이며, 또 자연의 설계에 대한 진리로 간주되었었다. 이러한 가치관 둘 이 잘못이라는 것을 어떻게 깨닫 게 되었으며, 오늘날에는 무엇을 이해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 이 체의 주제이다 . 서론에서는 이같은 주제에 대하여 간단히 언급하기로 한다. 자료의 어떤 것은 전문적으로 상세히 기술된 수학사로부터 얻을 수 있 었다. 그러나 주로 과거에 일어났던 극적인 변화들에만 관십이 있는 사 람에게는 직접적이고 미전문저인 접근이 좀 더 이해하기 쉽고 종 더 많 · 은 것을 알게 할 것이다. 아마도 많은 수학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수학의 현재의 지위에 대하 여 말하기를 제한하는 쪽을 택할 것이다. 이러한 고충을 대중들에게 털 어 놓는 것은 결혼 생활의 어려웅을 두던대는 것만큼이나 악취미인 것 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적으로 무장된 사람둘은 그들이 가지 고 있는 도구의 눙력을 잘 알고 있어야만 한다. 재능과 마찬가지로 이 성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은 맹목적인 신뢰보다 원씬 유익한데, 후자는 잘못된 관념 십지어는 파멀로 유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옥스포드 대학교 출판부의 직원 여러분이 이 객을 사려 깊게 다 · 루어준 데 대하여 감사를 표하고자 한다. 특히, 이같은 계몽적인 체의 중요성 운 인식 하여 준 할핀씨 Mr. W ill ia m C. Halpi n 와 메 이 어 씨 Mr. Sheldon Mey e r 와, 가치 있는 제 안과 비 판을 하여 준 케 이 풀리 스양 Ms . Leona Cape le ss 과 처 어 추] 씨 Mr. Curti s Church 에 게 감사를 드린 다. 나의 처 헬렌 Helen 에게는 원고의 개선과 교정윤 보아준 도움을 받았 다.
또, 미 국수학협 회 The Math emati ca l Associa t i on of Americ a 가 11 장에 실려 있는 미 국 수학월 보 The Americ a n Math emati ca l Month ly 의 논문들을 인용한 것 을 사용하도록 허 락해 준 데 대 하여 감사를 드리 고자 한다. 브룩클란, N.Y. I980 년 I 월 M. K.
수학의 확실성 • 차례
서론 : 주제, 11 1 수학적 진리의 창세기, 17 2 수학적 진리의 꽃이 핌, 42 3 과학의 수학화, 64 4 최초의 붕괴 : 진리에 대한 믿음의 사라짐, 85 5 논리적 주제의 비논리적 전개, 121 6 비논리적인 전개 : 해석학의 수렁, 153 7 비논리적 발전 : 1800년경의 궁지, 182 8 비논리적 발전 : 낙원의 문에서, 204 9 닫혀진 낙원 : 이성의 새로운 위기, 234 10 논리주의 대 직관주의, 257 11 형식주의 기초론과 집합론적 기초론, 292 12 여러 재앙, 308 13 수학의 고립화, 330 14 수학은 어디로 가는 것인가?, 362 15 자연의 권위, 387 참고문헌, 418 역자 해설, 423 색인, 430신 들 은 태초부터의 모든 것들을 드러내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찾고 또 찾아 세월이 흐듬에 따라더 찰 알게 되었다. 우리 모두 이러한 일들이 진실이라고 가정하자. 그러나 신에 대한 진실과 내가 말하는 모든 것을 아무도 모르거 나 아무도 알려 하지 않음은 분명 하다. 왜 냐하면, .::z.가 완전한 전리 를 말하게 될지 라도 그는 그것을 알고 있지 못하나, 마치 모돈 것 위에 자리잡은 것처럽 나타나기 때문아다. -크세 노파네 스 Xenop h anes
서론 : 주제 수학의 장래운 내다보기 위한 참된 방법은 그것의 여사와 현상대에 대하여 공부하는 것이다. ―프앙카레 Henri Poin c ar~ 전쟁 • 기근 • 유행병 등에 의해서 생기는 비극둘이 있다. 또한 인간 정 선의 한계에 의해서 야기되는 지적인 비극도 있다. 이 책은 인간의 가 장 효과적이고 견줄 데 없는 성취이며, 인간의 이성을 이용하기 위하여 기울인 부단하고 강력한 노력이었던 수학에게 닥쳐온 재난을 다루고자 한다. 바꾸어 말하면, 이 책에서는 수학의 촌업의 흥망울 전문적이 아닌 수 준에서 다운다. 오늘날 거대한 영역에 걸쳐, 수학적인 활동의 증가와 번 영으로 매년 수천에 달하는 연구 논문이 발간되고 있고, 컵퓨터에 대한 급격한 홍미가 증대되고 있으며, 또 묵히 사회과학과 생물과학에서의 양적인 관계의 광법위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마당에, 어떻게 수학 의 쇠되를 논할 수 있겠는가? 비극은 어디에 있는가? 이러한 의문에 답하기 위하여 우선 어떠한 가치로 해서 수학이 막대한 명예 • 존경 • 영 광을 얻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고대의 그리스인들로부터 시작된 지식의 한 독립체로서 수학이 탄생 한 바로 그 때부터 2 천년 이상에 걸쳐 수학자들은 진리를 추구하였다. 그들의 성취는 장려한 것이었다. 수와 도형에 관한 수많은 정리들은 .:z.. 자신 확실성이 거의 영원한 것으로. 전망되어 왔다.
실제로 참된 수학의 영역 을 넘어서 , 수 학 적 인 개 념 과 그 카생 물들 은 중요한 과학적 이 론 의 정수 를 재공하였다 . 비 록 이와 같 은 지 석은 수학 과, 물 리학의 원리 를 사용한 과학의 협력 에 의하여 얻어진 것이었지만. 천문학 • 역학 • 광학 • 유체역학에서 수 학적 이 론 의 예 측 이 관 찰 및 실험 과 대단히 정확하게 일치하였으 므 로, 이 같 은 지 석은 순 수수학의 원리만 큼이나 안전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하여 수학 은 자 연 을 아 주 진 · 파 악 하 ` 게 하였으며, 신바를 깨뜨리는 이해 력을 재공하였고, 또 그것 을 규칙과 질서로 바꾸어 놓았다 . 사람은 그의 주 위에 있는 세상 을 자 랑스란1 개 둘 러볼 수 있었고; · 본질적으로 일란의 수학적 법 칙 인 우 주 의 비밀 울 상당 히 알아냈다고, 자만 할 수 있었다. 수학자 들 이 진리 를 확보하려 하였다 는 확신은. 우주는 단 한 개 있고 뉴 돈 New t on 은 .::z.. 법칙 들을 발견하였 으므로 뉴 돈 이야말로 가장 행운아였다고 말한 라 준 라 스 La p lace 의 말로 요약된다. 놀랍고도 강력한 결과 를 얻기 위하여, 수학은 공리 ( ax i om) 라고 불리우 는 자명한 원리로부터 연역적인 증명을 하는 것과 같은 목 수한 방법에 의촌하였는데, 이런 방법은 아직도 고등학교 기하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壘 것이다. 연역적 추론은 본질지으로 공리들이 참일 매 연역된 걷과가 참 임을 보장하는 것이다. 일견 명백하고 확실하며 잘못이 없는 이같은 논 리를 이용하여 수학자들은 명백히 의십할 바 없고 반박할 수 없는 결론 을 생산해내었다. 수학의 이러한 목색은 오늘날에도 아적 거론되고 있 다. 그리하여 확실한 예와 추론의 정확성을 원할 때에는 언재나 수학에 호소하게 되는 것이다. 수학과 .::z.. 방법론이 성취한 성공은 위대한지성인들의 주의를 끌었다. 수학은 인간의 이성의 역량, 원천, 또 강력함을 과시하였나 왜 이같은 방법론이 철학 • 신학 • 윤리학 • 미학 • 사회과학과 같은 분야에서처럼 권 위 • 관습 • 습관에 의해서 지배되는 분야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데 이용되 어서는 안 되는가라는 의문이 일어났다. 인간의 이성은 수학과 수리물 리학에서 그토록 명백히 효과적이었으므로, 이성은 위와 같은 서로 다 · 론 분야에서의 사고와 행동을 조정할 수 있으며, 그들 분야에서의 전라 의 아름다움과 아름다움의 진리를 얻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여명기 또 는 이성의 시대라 블리우던 시기에, 수학적인 방법론과 십지어는 수학 · 적인 개념과 정리들이 인간의 일에 적용되었다. 동찰력의 가장 풍요한 원천은 목전의 것을 못 보는 데 있다. 19 세기,
초의 이 상한 기 하학과 이 상한 대 수학의 창조는 수학자 들 로 하여 금 마음 에 내키지는 않 으나, 수학 자체와 과 학 에서의 수학적인 법칙 들 이 진리 가 아니라는 것 을 께 닫게 하였다 . 예 를 둘 면, 그 들 은 및 개의 서로 다 론 기 하 학 들 이 각 각 공간적인 경 험 과 잘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물 기하학 이 모두 진리일 수는 없 었다 . 확실 히 수학적인 설계는 자연 얘 고유 한 것이 아니며, 만약에 고 유 한 것 이라면 인간의 수학은· 그설계 의 팔 연 적 인 선명 이 되지는 못하 였 다. 현실을 파 악 하는 열쇠 를 잃은 셉 이 다 . 이러 한 인 석 이 수학에 닥쳐운 최초 의 재난이었다. 새 로운 기 하학 과 대 수 학의 창조는 수학자들에게 또다론 성격을 가진 충걱울 깅험하게 하였다. 그 들 은 전리 를 획 득하고 있다는 신념 때문에 건 전 한 추론운 써서 얻어진 진리인 것 처 럼 보이는 이 들을 지키기 위하 여 대단 히 과 감하 게 돌 진하였던 것이다. 수학이 진리의 체계가 아니다 라는 인 식 은 수 학자 들 이 만 들 어 온 것 에 대 한 신뢰 를 뒤 흔들었으므-로, 그 들은 자신의 창조물들을 재 검 토하기 시 작하였다 . 그리 하여 수학의 논 리가 비 참 한 꼴 이었음 을 발견하고는 당황하게 되었다 . 사실 수학은 비논리적으로 발전하여 왔다. 그 비논리 저 안 발전은 단지 그 릇 된 증명 을 포함 할 분 만 아니라, 추론의 오류와 더 많은 주의를 기 울 였더라면 피 할 수 있었을 부주의한 찰못도 포함하는 것이었으며, 이 러한 실수는 많아 있었다. 비논리적 인 발전은 또한 개 념의 불충분한 이 해, 요구되는 논리의 모든 원리들에 대한 몰이해, 증명의 부적당한 엉 밀성에도 관련되어 있었다. 죽, 논리적인 논의 대신에 직관, 물리학적 인 설 명 , 기하학적인 도식에 호소한 것 등이었다. 그러나, 수학은 여전히 자연을 효과적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수학 그 자체는 확실히 지식의 한 매력적인 부분이었고, 묵 히 풀라돈 학파를 미 못 한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귀중하다고 생각하는 실체의 한 부분이 수학이었다. 따라서 수학자 들 은 빠드린 논리적 구조를 보완하고 결정이 있는 부분을 재건하기로 결정하였다. 19 세기 후반에 수학의 업밀화라 고 흔히 불리우는 이러한 운동이 매우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 1900 년까지 수학자들은 그들의 목표 를 달성하였다고 믿었다 . 비록 자연을 근사적으로만 설명하는 수학으로 만 족 할 수 밖에 없었고, 많은 사람들이 자연이 수학적으로 선계되었다는 믿음을 버리기조차 하였지만. 그들은 수학의 논리적 구조를 재건한 것을 흡족하게 생각하였다. 그러 나 그들이 생각한 성공에 대하여 축배를 끝내기도 전에, 재전된 수학에
모순이 발견되 었다. 흔히 이 러 한 모 순 (co ntr a dic t i on ) 울 역 리 (p a radox) 라 고 부르는데 , 이 는 모 순 이 수학의 논리 를 훼 손한 다는 사실에 직 면하는 것을 피하기 위한 오J· 곡한 말 로 생각된다. 모순의 해 결 은 그 시대의 지도적인 수학자들과 철학자둘에 의해서 즉 시 시도되었다. 실질적으로 수학 에 대하여 네 가지 서로 다른 접근법 이 구상되었고 체계화되었으며 진전되었는데, 이 들 각 학파는 많은 지지자 들을 모았다. 이 들 기 초론 의 학파들(f ounda ti onal sc hool s) 은 모두 이 미 알 려진 모 순들을 해결 할 뿐 만 아니라 다 른 새로운 모 순둘 이 절대로 일어 나지 않음을 확실하게 하기 위 하여 , 죽 수학의 무 모 순성 (co nsis t e ncy ) 을 확 립하려 시도하였다 . 기초룹 세우기 위한 노 력에서 다론 문제들 이 생 겨났다. 어떤 공리와 연역적 논리의 어떤 원리를 받아둘일 것 인가 하는 것도 또한 다 른 입장에 있는 및 학파들간의 논쟁의 씨앗이 되었다. 1930 년까지 도 수학자는 및 가지 수학기 초론 (t h e fou ndati o n s of math e- mati cs ) 중 하나 이 상을 받아 들 이 고 자기 의 수학적 인 증명 은 적 어 도 그 학 파의 주장에 일치한다고 선언했던 것 같았 다. 그러나 또다 론 재난이 괴 델 Kurt Godel 에 의해서 씌어전 유명한 논문의 형 태로 나타났는데, 이 논 문의 여러 개의 중요하고 곤 혹스 러 운 결과 중 에서 그는 여러 학과들이 받아들인 논리학의 원리로는 수학의 무모순성 울 증명할 수 없음 울 증명 하였다. 괴델은 논리의 원리를 문제로 삼지 않는 한 대단히 모호해져서 무모순성을 해결할 수 없음 을 보였다. 괴델의 정리 들 은 대붕괴 를 촉발 시켰고, 그에 따른 사태의 진전은 훨씬 더 복잡해졌 다. 에 를 들 면, 과 거에는 정확한 지석에 도달하는 방법으로 높이 평가되던 공리에 입각한 연역적인 방법조차 결접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러한 보다 새로운 발 전을 위한 알맞은 노력이 수학에 이르는 다양한 가능한 방법에 더하여 졌고, 수학자들은 더 많은 수의 서로 다론 분파로 나누어졌다. 오늘날의 수학의 궁지는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수학이 존재한다는 것과, 또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서로가 반대되는 학파의 구성원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 때문이다. 1800 년의 위업있는 수학과 인간의 자 랑이었던 이성의 의십할 여지없는 실체로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져 왔던 개념들이 이제는 커다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 자명해졌다. 과거에는 확실하다고 믿고 자기만족에 빠졌으나, 미레의 수학에 관하여는 이제는 불확실하며 의십스러운 것이 되었다. ”가장 확실한 과학의 기초에 대 한 의견의 차이는 놀라운 일인 동시에 온화하게 표현하자면 당황스러운
일이다. 수학의 현황은 지금까지 뿌리깊게 널리 진리로 알려져 왔던 것 과 그 논리적 완벽성에 대한 조 롱 이다. 많은 수학자 들 이, 전전한 수학으로서 무엇이 받아들여질 것인가에 관 한 서로 다른 견해가 언젠가는 조 정원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 들 중 저 명한 것은 부르바키 Ni ch olas Bourbaki 라는 팔명을 사용하는 프랑스의 지 도적인 수학자 들 의 집단이다: 엣부 터 , 모 순 이 나다나거나 모 순운 해전하 여야 한 불 확신성의 시대에는 수학 전체나 또는 수학의 어느 분야이 든 그 원리에 내 한 중 대한 수 정 이 거의 변함 없이 뒤 따랐다 .••• 25 세기 동안이나 수 학자 등은 그 둘 의 오 류등 윤 시정하여 옹 으로씨 수 학의 내용 윤 빈 약 하게 한 것이 아니라 풍 부하게 하여 왔다; 이같 은 사선 은 수 학자 둘 에 게 수학의 앞난에 관한 밝은 전망 을 주고 있 다. 그러나 더 많은 수학자 들 은 비관적이다. 금세기 최고의 수학자 중 한 사람인 바일 Hermann Wey ! 은 1944 년에 다음과 감이 말하였다: 기초론에 대한 의문과 수학의 궁극적인 의미는 마해진인 재로 납아 있다; 우 리는 그것의 최종적인 해답이 어느 방향에서 찾아질 것인가 또는 최종적인 객 관적 해답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하여조차 조금도 아는 바가 없다.수 학화한다는 것 은 언어 나 음악과 갇이 인간의 창조적 활동인 것 이 며 , 근원적 으로 독창적인 것으로서, 그것을 역사적으로 견정한다는 것은 완전한 객관적 이성론을 무시하는 것이다. 괴 테 Goeth e 의 말에 따르면, 과학의 역 사는 과학 그 자신이 다라는 것 이다. 올바론 수학이 무엇인가에 관한 의견 차이와 서로 다론 기초론의 다 양성은 수학 그 자체문 아니라 물리과학에도 가장 치명적인 영향을 준 · 다. 앞으로 우리가 보는 바와 갇이 가장 찰 전개된 물리적 이론은 전적 으로 수학적이다. (그러한 아론둘의 결과는 감각저이거나 실질적인 물리져 머 상으로 해석되며, 사실 라디오 전과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전혀 물리저인 이해가 없어도 우리는 라더오의 목소리문 듣는다.) 따라서, 직접 기초론적인 문제 를 연구하지 않는 과학자들도 불완전한 수학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려 한다면 어떤 수학이 믿고 사용할 만한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진리의 상실, 끊임 없이 증대되는 수학과 과학의 복잡성, 그리고 수학
에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안전한 것인가에 대한 불확실성 등이 대부분의 수학자둘로 하여 금 과학을 포기 하게 하여 왔다. 그들은 말하자면 “모든 집에 우환이 있는 상대에서 수학의 분야 중 증명 방법이 안전한 것치 럼 보이는 전공 분야로 후되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자연에서 일어나는 문제보다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전 머 호소력이 있고 다루기 쉬운 문제 둘을 찾는다. 건전한 수학이 무엇인가에 관한 위기와 갇둥은 철학 • 정치학 • 윤리학 • 미학과 같은 문화의 많은 영역에 대한 수학적 방법온의 적용 또한 저 해시켰다. 객관적이고 절대적으로 옳은 법칙과 기준을 발견하려는 회망 은 사라졌다. 이성의 시대는 지나간 것이다. 만족스럽지 못한 수학의 상태, 다양한 접근 방법, 받아들일 수 있는 공리에 대한 의 견 차이, 만약 발견된다연 수학의 많은 내용을 무효화시 킬 수 있는 모순이 나타날 위험 둥에도 불구하고, 어떤 수학자들은 아 칙도 물리적 현상에 수학을 적용하고 있으며, 실제로 경제학 • 생물학 • 사회학에도 그 적용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수학의 꾸준한 유효성은 · 두 가지 주제를 제시해 준다. 그 첫째는 유효성을 정확성의 판정법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판정법은 물론 일시적인 것이다. 오늘 날 옳다고 생각되는 것도 그 다음의 응용에서는 잘못된 것으로 증명월 지도 모른다. 그 둘째 주제 는 불가사의 (my st e ry) 를 다루는 것 이 다. 전전한 수학이 무엇인가 하는 의견 차이에도 분구하고외] 그것은 전적으로 유효하게 쓰 이는가? 불완전한 도구로써 기적운 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만약 인간이 기만당하고 있다면, 자연도 인간의 수학적 독재에 양보함으로써 기만당할 수 있을 것인가? 분명히 아니다. 그러나 수학에 크게 의존하 는 기술에 의하여 가능했던 달로의 성공적인 여행과 화성 • 금성의 탑협 은 우주에 관한 수학적 이론을 확신시켜 주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는 수학의 인위성과 다양성에 대하여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마 음과 정신이 어지러워져도 육체는 살 수 있는가? 분명히 이것은 인간 에지도 또 수학에게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불확실한 기초와 수학자들 의 대립되는 이론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수학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유효한 것인가를 배울 의무가 있는 것이다.
1 수학적 전리의 창세기 에우 축 복 받은 영혼 둘 이여 ! 그 둘 에게 주어졌나니, 이 듄 과 갇온전리 문 과, 빛나는하 늘 에 대한 몽찰이 ! 그 들 에 의 해 머나먼 빌 둘 은 가장 두 럿이 보여지고 그 들 의 생각의 중들 로 하 늘 은 엮어졌다. 그래서 하 눈 에 도달했다-엣날에 그 들 이 애썼던 것과는 달리 그 들 의 긍지 속의 산 위에 또 산율 운려 쌓음으로써. ―오비드 Ovid 문명이라 이름이 붙은 것은 모두 진리 를 추구하였다. 사려 깊은 사람 은 다양한 자연현상을 이해하려 하고, 인간이 어떻게 지구에 살게 되었 는가 하는 신비를 해결하려 하고, 인생의 목표 를 알아보려 하며, 인간 의 운명 을 찾아내기 위하여 노력한다. 가능하지는 않았지만. 모든 고대 문명 중 단 하나만율 제외하고는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이 종교적 지 도자에 의해서 주어졌고, 그 해답은 널리 받아들여졌다. 고대 그리스의 문명은 그 예외이다. 그리스인들이 발견한 것은, 인간에 의해서 얻어진 가장 위대한 발견인 이성 (reason) 의 힘이었다. 기원전 600 년에서 기원전 300 년 사이에 절정을 이루었던 고전기의 그리스인들은, 인간이 때로는 관찰 또는 경험의 도움으로 전리를 발견할 수 있는 정신, 죽 지성을 가 지고 있음을 알아냈다. 무엇이 그리스인으로. 하여금 이러한 발견을 하게 했논지는 쉽게 대답 할 수 없는 의문이다. 인간의 일과 관십사에 이성을 적용할 계획을 처 음으로 시작한 사람들은 소아시아의 그리스 식민지 중 하나인 이오니아 Ion i a 에 살았는데, 많은 역사가들은 정치져 사회적 여건에 근거를 두고 거기에서 일어난 일에 대하여 선명하려 하여 왔다. 예를 둘면, 이오니 아인들은 유럽의 그리스 문화를 지배하였던 종교적 신앙윤 쉽게 경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원전 600 년경 이전의 그리스 여사에 대한 우리
들의 지 식 은 매우 단편적이어서 전정적인 설명을 할 수가 없다. 시간이 지나강에 따라 그리스인들은 이성을 정치 체재 • 윤리 • 재판 ` 교육, 그리고 인간의 여러 관심사에 적용하였다 . 그 들의 주된 공헌 이며 그 뒤의 모든 문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이성에 직면한 가장 당당 한 도전이라 생각되는 자연의 법칙운 담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 그. 리스인물이 이러한 공헌을 하기 이 전에는 , 그물이나 다 몬 고대 문명 이 나 모 두 자연을 무질서하고 변덕스러우며 두렵기조차 한 것으로 여겨 왔다. 자연의 활동 이 란 설명할 수 없거나 신의 종잡을 수 없는 의지의 탓으로 물렀는데 , 이 메의 신은 기도와 회생과 그밖의 의식에 의해서만 이 누그러뜨랄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바빌로니아인과 이 집트인들 은 기 원전 3000 년으로 거 슬러 을-라가는 판목할 만한 문멍 을 이 루었는 데, 그듄은 해와 달의 움직임에서 어떤 주기성을 알 아냈으며, 실제 로 그 들 의 달력은 이 같은 주기성 에 근거를 둔 것이었으나, 이 같은 주기성 의 머 깊은 의미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이러 한 및 가지 막원한 관찰 도 . 자연에 대한 그 둘 의 자세에 아무런 잉항울 주지 못하였다. 그리스인 들은 감히 자연에 정면으로 대 립하여, 비록 대다수의 사람 들은 아니었 을 지라도, 지도적인 지성인들은 전동적인 교리, 초자연적인 . 힘, 미신, 독단 동 올바론 사고의 방해물들을 배격하였다. 그 들은 처음 으로 잡다하고 신비스러우며 복잡한 자연의 동태를 관찰하고, 그것 을 이 해하기 위해 노 력하 였다. 그들은 우 주 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것 갇은 동 태에 대하여 정신을 집중함으로써 이성의 빛을 비추기 시작하였다. 꾸준한 호기십과 용기 를 소유한 그 들 은 의문 을 제기하고 해결하였는 _ 데, 이 들 의문은 많은 사람 들 에게 일어나지만탐구하는 사람은 소수이며 최고의 지성을 가진 사람들에 의하여서만 해결되는 성질의 것이었다. 가 령, 우주 전체의 일에 근본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어떤 방식이 있는 · 가 ? 식 물 • 동물 • 사람 • 행 성 • 빛 • 소리 는 단지 물리적 인 현상에 지 나 지 않는가 또는 거대한 설계의 한 부분에 불과한가? 그리스인 들 은 새 로운 관접 에 충분히 도달한 몽상가 들 이 어 서 그들은 뒤 의 모든 유럽 사상 을 지매하는 우주의 개념을 정립하였다. 그리스의 지성인들은 자연에 대하여 전적으로 새로운 자세를 취하였 었는데, 이것은 합리적이고 비판적이며 비종교적이었다. 신바주의나 신 들이 인간과 물리적 세계를 그들의 변덕으로 조종한다는 신념은 배격되. 었다. 그리하여 자연은 질서정연하며 거대한 설계에 따르는 영원불변의t
기능을 가졌다는 생각에 결국 도달하였다. 행성의 운행으로부터 나뭇잎' 의 흔들립에 이르기까지 감각에 느껴지는 모든 현상온 실제적이고 몽일. 성있는 알기 쉬운 괘턴으로 짜 맞출 수 있다. 요약하면, 자연은 합리적 으로 설계되었으며, 비 록 인간의 활동에 의한 영향을 받지는 않지만 아 설계는 우리의 정신으로 이 해원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인은 대담하게도 혼란한 현상 안에 있는 규칙과 질서를 생각한 최초의 사람들이었을 문 아니라, 자연이 따르는 근본적 인 패턴을 몇 가 · 지 밝힌 비범한 사람둘이었다. 그리하여 그 둘은 인간이 보는 일대 장 관, 빛나는 대양의 운동, 여러 가지 빛깔을 미는 달의 변화 상태, 행성 의 맑은 정도, 별 하늘로부터의 빛의 거대한 파노라마, 그리고 기적으 .. 로 보이는 일식 • 월식에 관한 근본적인 설계에 대하여 감히 의문을 제기 하고 또 발견하기도 하였다. 기원전 6 세기의 이오니아 철학자들은 또한 자연과 우주의 기능에 대 하여 합리적인 설명을 처음으로 시도한 사람들이다. 이 시대의 유명한 철학자로는 탈레 스 Thales, 아낙시 만드로스 Anaxi m ander, 아낙시 매 네 스 Anoxim enes, 헤 라큘리 두스 Heraclit us , 아낙사고라스 Anaxag o ras 둥이 있 는 데, 그들 각자는 우주의 구성을 설명하는 데 한 물질을 택하였다. 예를 들면, 탈레스는 모든 것이 물로 이루어졌다고 논하였는데, 물은 °식채 • 기체 • 고체 상태의 어느 하나로 촌재한다. 탈레스는 많은· 현상을 물을 써서 설명하려고 하였다. 그런대 이는 미합리적인 선택이라 볼 수는 없 다. 왜냐하면 구름 • 안개 • 이슬 • 미 • 우박은 물의 여러 형태이며, 물은 생명에게 팔수척이고, 곡식에 양분울 공급하며, 많은 동물의 생명을 유 · 지시켜 주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인체의 90% 는 물로 이루어쳐 있다. 이 오니 아의 자연철학은 광범 위 하고 주의 깊은 과학적 탐구의 소산이 라 기보다는 일련의 대담한 사색, 날카로운 추축, 훌공한 직관이었다. 이 둘은 아마도 전체 상황을 보기 위하여 약간 지나치게 연정적이었던 나 · 머지 폭넓은 결론으로. 미 약했던 것 같다. 그러 나 그들은 낡고 널리 퍼 져 있는 신화적 요소를 배져하고. 그 대신 우주의 설계와 작용을 물질 적 객관적으로 선명하려 하였다. 그둘은 환상적이고 무비판적인 요소를 ~ 대신하여 타당한 접근책율 제시하였으며, 그들의 주장을 이성적으로 옹 호하였다. 그들은 대담하게도 그둘의 정신으로써 우주를 탐구하였고. 신 • :성령 • 유령 • 악마·천사 등 자연의 현상을 유지하거나 중단시킬 수-
있었던 다론 신화적인 요소에 의지하기 물 거부하였다. 이러한 합리저 설명울 하려는 정신은 아낙사고라스의 ”이성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 로 표현할 수 있었다. 신비주의와 자연의 움직임에서의 무질서한 것처럼 보이는 것을 배재 하고 그 대신에 이해가능한 패턴으로 바꾸는 결정적인 단계가수학의 응 용이었다. 여기에서도 그리스인들은 이성의 힘의 발견과 거의 마찬가지 로 의미십장하고 독창적인 그둘의 통찰력을 보여 주었다. 우주는 수학적 . 으로 설계되었으며, 수학을 동하여 사람들은그설계를 꿰뚫어 볼 수 있 는 것이다. 자연의 수학적 풀렌울 주장한 최초의 주요 그룹은 피타고라 스 학과 th e Py tha g o reans 인데, 이 학과는 피 타고라스 Py tha g o ras (c.5 8 5- c. 500 B. C .) 의 지 도 아래 이 탈리 아 납부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이 영 혼을 정 화하고 영 혼을 타락과 육체의 감옥으로부터 구제 하는 것 에 주력 히는 당시에 성행하던 그리스의 종교로부터 영감과 독트린을 이끌어내 는 동안은 피타고라스 학파의 자연철학은 대단히 합리적이었다. 그들은 많은 여러 가지 현상들이 양적인 관접에서는 동일한 수학적 성질을 가 진다는 데 충격 을 받았다. 따라서 수학적 성 질이 야말로 이 러 한 현상들 - 의 본질이어야만 한다. 자세히 말하떤, 피타고라스 학파는 수와 수적인 관계에서 이러한 본잘울 발견하였다 .. 수는 그들이 자연을 설명하는 데 첫째 원리이었다. 모든 사물은 물질의 기본입자들, 죽 ‘'존재의 단위들 의 여 러 가지 도형 에 대 웅되 는 조합 (comb i na ti on) 으로 이 루어 진다• 실제 로 단위의 전체 수는 그 물질을 나타낸다고 보았다. 수는 물질이었고 우주의 모습이었다. 그러므로 피타고라스 학파의 독트린은 “모든 것은 수이 다. 수는 모돈 사물의 본질이 었으므로 자연 현상의 설명 은 수를 써서만 가능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같은 피타고라스학과의 주장은 이해하기 어려운데, 그이유는 우리 에게는 수가 추상적인 개념이고 사물은 물리적 대상이거나 물질이기 때 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찌기 피타고라스 학과가 하지 않은 수의 추상 화를 해 놓았다. 그들에게는 수는 정이거나 입자이었다. 그들이 삼각수· 사각수·오각수등을 말할때 그들은 정이나조약돌과같이 접과같은 꿀울 가지는 대상들을 그와 같은 꼴로 나열하여 생각하였던 것이다(그 립 1. 1-1. 4). 단편적인 역사 때문에 실재적인 연대순의 데이타는 없지만, 의심할나 -위 없이 피타고라스 학파가 그들의 주장을 발전시키고 세련시켜 갑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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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 1.3 오각수
訂
라, 그들은 수를 추상적인 개념으로 이해하기 시작하였고, 반면에 물질 은 수의 구체적인 표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러한 차이 접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5 세기의 저명한 피타고라스 학파의 일원인 팔 몰라우스 Phil o laus 의 다 음과 같은 말을 이 해 할 수 있 다 : 만약 수와 수의 성질이 없다면, 어떤 사물이나 또는 그 것의 다 른 것과의 관계로서 아무 에게나 분명한 것은 없다 .••• 여러분은 인간의 행동과 사고 안에서 또 모든 솜씨와 음악에서조차 ••• 수가 행사하는 험을 볼 수 있 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음악을 수들 사이의 간단한 관계로 단순화시키는 것은 피 타고라스 학파가 다 음 두 가지 사실을 발견함으로써 가능해졌다: 그 첫 째는 현을 뜯음으로써 냐는 소리는 현의 길이에 의존한다는 것이고, 그 둘째는 길이가 서로 정수의 미로 주어지는 같은 정도로 팽팽한 현들을 동시에 뜯음으로써 화음이 얻어진다는 것이다. 예 를 들면 , 같은 정도로 팽팽한 두 현 중, 하냐의 길이가 다른 것의 2 배일 때, 이 현들을 동시 에 뜯음으로써 화음이 언어진다. 이 매 이 두 음 사이에는 I 옥타브의 차이가 있다. 또 다른 화음은 두 현의 길이를 3:2 로 하는 것인데, 이 때에는 간 현에서 나오는 음보다 짧은 현에서 나오는 음이 5 음 높게 나온다. 실제로 두 현이 화음을 이루는 경우는 이들 두 현의 상대적인 길이룰 정수의 비로 나타낼 수 있다. 피타고라스학과는 또한음계를만 돈 것으로 유명하다. 비록 우리는 그리스 시대의 음악에 지면을 할애하 지 는 않겠지 만, 유클리 드 Eucli d 와 볼레 미 Pt o lemy 를 비 못한 많은 그리 스 수학자들이 화음을 얻는 비와 음계의 작성에 관하여 처술한 것이 있 음을 덧붙이고 싶다. 피다고라스 학과는 행성의 움직임을 수의 관계로 바꾸었다. 그들은 . 0_간을 움직이는 물체는 소리를 낸다고 믿었는데, 아마 이것은 줄 끝에 매단 물체를 돌릴 때 소리를 내는 것에서 암시를 받았던 것 같다. 더구 나 그들은 빨리 움직이는 물체는 천천히 움직이는 물체보다 더 높은 소 리를 낸다고 믿었다. 당시의 천문학에 의하면 행성과 지구 사이의 거리 가 더 멀면 멀수록 행성온 더 빨리 웅직이므로, 이들에 의해서 나는 소 리는 지구로부터의 거리에 따라 다르고, 이 모든 소리들은 화음을 이루 , 는 것이었다. 그러나 모돈 화음과 마찬가지로 이같은 천체의 음악도 수들의 관계로 바꾸어졌다. 우리는 이 음악을 듣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페어날 때부터 우리는 이 소리에 익숙해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연의 다른 현상도 수로 변형 시 켰다. 수 1, 2, 3, 4 는 네 수(th e tet r ac ty s )
라 하며 목벌히 평가되었다. 사실 피다고라스 학파의 선서는 다음과 같 다고 한다: “나는 우리의 영혼에 수여된 네 수의 이름울 걷고 맹세한 다. 자연을 항상 꽃피우는 원천과 근본은 그 네 수에 있다. ” 자연이 점 • 선 • 연 • 입체의 네 가지 기하학적인 원소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자연 은 네 개 로 구성 되 며 ; 풀 라돈은 후에 흙 • 공기 • 물 • 불의 네 원소를 강 조하였다. 네 수 는 합이 10 이 되며. 그레서 IO 은 이상적인 수이었으며 우주를 나타내었다. 10 은 이상적이었으므로 하늘에는 10 개의 천체가 있어야만 랬고, 이 수 물 제우기 위해서 피타고라스 학파는 한가운데 불 (a cem. -~ J fi re ) 을 도입하고, 그 둘레 를 지구 • 해 • 달과 당시에 알고 있던 다섯 개의 행성이 도는 것으로 생각 했 으며, 한가운데 불 반대편에 반지구 (coun t er earth ) 가 있다고 하였다. 우리는 이 한가운데 불과 반지구물- 볼 수 없는 데. 이것은 우리가 살 고 있는 지구의 면은 그것 들 을 향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세한 것은 추구할 가치가 없는데, 중요한 접은 피타고라스 학과가 수치 관계에 근거 를 두어 천문학적 이론을 새우려 앴 다는 사실이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천문학과 음악운 수로 “전환''시켰으므로, 음악과 천문학은 산수와 기하학에 연계되었고, 이들 네 과목을 수학이라고 생 각하였다. 그 네 과목은 학교 교과과정의 한 부분이 되었고, 이것은 중 제 까지 도 지 속되 어 네 과 (qu adriv iu m ) 라 블리 었 다. 아리 스토텐 레 스 Aris t o t l e 는 그의 《형 이 상학》 Meta p h y s ic s 에 서 수와 실 제 계 에 관한 기 타고라스 학과의 동일 시 (ide nti fica ti on ) 를 다움과 같이 요 약하였다: 수 속에서 그들은 촌재하거나 존재하게 원 사물과 닮은 것을 찾았던 것 같다. 불 • 흙 • 물에서 갖은 것이 아니다. (수의 이러이러한 변형은 정의이고, 다른 변형은 영혼이며 이성이고, 또 다론 변형은 기회이다-와 감이 거의 모든 다 론 대상윤이 수치져으로 표현월 수 있었다.) 다시 이갇은 변형이나 음계의 미 는 수로 표현되고, 따라서 모돈 사물도 그 전체적인 성잘이 수들을 본받아 얻 어지고, 또 수문이 전제 자연의 첫째 사물이므로, 그둘은 수의 원소가 모든 사 물의 원소라 생각랬고, 또 하눙 전체가 한 음계이며 한 수인 것이라 생각했다. 피타고라스 학과의 자연철학은 거의 비실제적이었다. 십미적인 고려가 수적 관계를 발견하려는 망상과 두 1 법벅이 된 채로 관측에 의한 근거를
초월한 결론을 이꿀어냈음이 확실하다. 또 피타고라스 학파는 물 리과학 의 어느 한 분야도 크게 발전시키지 못하였던 것이다. 혹 자는 그 들 의 이 론을 모]상적 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생 각할는지 모론다. 그러 나 행운 OJ . 지 천부적으로 타고난 직관에 의해서인지 피타고라스 학파는후에 그 중 ` 요성이 입증된 두 학설을 이꿀어냈다: 첫째는 자연은 수 학적 원리에 의 해서 구성되었다는 것이고, 둘째 는 수적 관계가 자연 질서의 기 초 가 되 며 이룬 동일하고 이 를 탐구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오 늘날 의 과학은 나중에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이 피타고라스 주의의 좀더 기교 적인 형태이건 하지만 피타고라스학파가 수에 대하여 강조한 것과 매우 , 밀접하다. 연대적으로 보아 피타고라스 학파 울 계승한 철학자들은 실제의 자연 과 그 근간을 이루는 수학적 설계에 더 큰 관십을 보였다. 레우키푸스 . Leuccip u s (c. 440 B.C . ) 와 데 모크리 두스 Democrit us (c. 460-c. 370 B.C . ) 는 원 자론을 가장 뚜렷하게 단정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들 의 공동적인 철학 은 우주는 무한히 많은 간단하고도 영원한 원자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 은꼴·크기 ·단단합·순서 ·위치에 따라 다르다· 모든 물체 는 이 들원 자들의 어떤 조합으로 이루어쳐 있다. 비록, 선분과 갇은 기하학적 크 기는 무한히 여러 번 나눌 수 있으나 원자는 궁극적이며 나눌 수 없는 입자라는 것이다. 모양 • 크기나 방금 말한 바와 같은 것은 원자의 성질 이기도 하다• 맛· 연 ·색깔 둥의 다른 모든 성질은 원자에 있는 것이 아 니고, 여러 원자들의 효과에 의해서 감지할 수 있다 . 이러한 감각적 지 식은 느끼는 자에 따라 다르므로 믿 -을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파타고라 스 학파와 감이 원자론주의자도 끊임없이 변하는 물리적 세계의 다양성 의 근원을 이루는 실체는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으며. 더구나 이 세상의 일들은 수학적 법칙으로 정확하게 결정된다고 하였다. 피타고라스 학파 이후에 자연에 대한 수학적 선계를 자세히 설명하..:iL 전파시킨 가장 유력한 그 룹 은 풀라돈 Pla t o(427-347 B.C.) 이 이끄는 풀라 돈 학파이었다. 비록 약간 피타고라스학설의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플 라돈은 기원전 4 세기의 중요한 그리스 사상을 지배한 거장이었다. 그는 아테네의 아카데미의 설립자이었는데, 이곳은 그 당시의 지도적인 사삼l 가들을 꿀어들이는 중십이 되었고 약 900 년간이나 촌속되었다. 우주의 합리 성 에 대 한 풀라돈의 신념 은 그의 대 화편 《필레 부스》 Phil ~ bus 에 가장 잘 표현되어 있다:
프로타르쿠스 : 질문이 무엇이오? 소크라데스 : 우주라 불리우는 이 모돈 것은 미이성적이며 그때 그때 잡다한 겅우에 따라 웅칙이는지, 아니면 반대로 선조들이 말한 것처럽 눈라운 지능 과 지해에 의해서 다스럽울 받는지요. 프로다르구스 : 저명한 소크라네스여 ! 그 두 주장은 너무나 상반되어 있어 당 신이 방금 나에게 말한 것은 신에 대한 불경으로 보입니다. 정신이 만사를 지배한다는 또 하나의 주장은 세상이라든지 태양 • 달 나선 그리고 하늘 전체 의 운행에 알맞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전코 그에 반대되는 말을 하거나· 생각하거나 하지 않-을 것입니다. 후기의 피타고라스 학파와 플라돈 학파는 사물의 세계와 이데아의 세 ' 계를 뚜럿이 구년하였다. 물질세계의 물질과 관계는 불완전하고 변화하 며 쇠되하기 쉬우므로 궁극적인 전리를 나타넬 수 없는 반면에, 철대적 이고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는 이상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리들이 철학자들의 참된 관심사이다. 물리적 세계에 대해서는 우리는 단지 및 가지 견해를 가질 분이다. 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세계는 이 상적인 세계를 공허하고 흐릿하고 불완전하게 표현한 것이다. “사물은 경험의 장막 위에 던져진 이데아의 그립자이다.” 실체는 감각적이며 물 리적인 대상의 이데아에서 찾아져야 한다. 따라서 풀라돈은 한 마리의 말, 한 건물, 한 아름다운 여자에게는실체가없다고 말했을 것이다. 실 체는 말 • 건물 • 여인의 보편적 형대 또는 이데아인 것이다. 철대로 확 살한 지석은 순수한 이상적 형태에 관하여서만 얻어질 수 있고, 이러한 이데아는 실제로 일정하고 변함이 없으며, 그에 관한 지식은 견고해서 깨뜨려지지 않는다. 폴라돈은 물리적 세계의 실체와 그 명료성은 오직 이상적 세계의 수 · 학을 통해서만이 아해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는데, 이 세계가 수학적으 로 구성되었다는 데 대해서는 이론이 없었다. 푼르타르크 Plu ta rch 는 푼 라돈의 유명 한 '‘신은 영 원히 기 하학(적 원리 로 일을) 한다”는 말을 기 록 하고 있 다. 문라돈은· 그의 《공화국》 Rep u bli c 에 서 기 하학이 목적 하는 바 지석은 영원한 지식이며, 멸망하며 일시적인 그 어떤 것도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수학적 법칙은 실제의 본잘일 문만 아니라 영원하고 불변인 것이기도하다. 수적인 관계 역시 실체의 일부분이며, 사물의 모입은· 수 의 모방에 불과하다. 반면 일찌 기 피 타고라스 학파에 있어 서 수는 사물· 에 내재하였는데, 풀라돈 학파에 있어서 수는 사물을 초월하여 있다.
풀라돈은 피타고라스 학과보다 진일보하여, 단지 수학을 동해서만이 자연을 이해하려 했을 분 아니라 자연 그 자체 를 수학으로 대체하려 하 였다. 그는 의적 세계 를 뀌 H 끊어 봄으로써 기본적인 진리를 암시받을 수 있고, 그 뒤에는 그것만을 써서 다른 것의 도움 없이 이성만으로도 진 행해 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한 관접에서 바로 수학이 존재해야 했 다. 죽 물리적 연구 를 수학이 대신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풀루타르크는 《 마르셀루스 Marcellus 의 생애 》 에서 풀 라 돈 과 동시대인 인 유명 한 유독소스 Eudoxus 와 아르키 타스 Archy tas 는 수학적 결과 를 증 명하는 데 물리적인 논증을 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플 라 돈 은 이에 분개하여 그러한 증명은 기하학의 타락이라고 비난하였다. 그 들 은 순 수 한 추론 대신에 감각저인 사실 을 이용했던 것이다. 풀라돈의 천문학에 대한 자세는 그가 추구했던 지식에 대한 그의 입 장을 말해 준다. 그는 말하기 룬 , 이 과학은 볼 수 있는 천체의 움직임 과 관계가 없다. 하늘에 있는 뗄의 매치와 그들의 명백한 웅직임은 실 로 놀라움고 아름답개 보이지만, 단순히 움직임을 관찰하여 설명하는 것 온 진실한 천문학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것아다. 우리는 이 진실한 과 학을 얻을 수 있기 이전에 하늘을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 하면 참된 천문학은 수학적 하늘의 참된 벌의 운동 법칙을 다루는 것인데, 눈에 보이는 하늘은 불완전하게 표현펄 뿐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론적인 천문학을 장려하였는데, 이 분야의 문제는 눈이 아닌 정신윤 즐겁게 해주며, 또 그 대상은 보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성에 의해 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하늘이 우리의 눈에게 보여 주는 여러 가지 모 습은 고도의 진리를 찾는 데 도움이 되는 도표로서만 사용하여야만 하 는 것이다. 우리는 천문학을 기하학과 마찬가지로 일련의 눈에 보이는 것에 의해서 제기되는 문제로서 다루지 않으면 안 된다. 항해나 날짜를 계산하고 시간을 측정하는 데 천문학을 사용하는 것은 풀라돈의 관심밖 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록 풀라돈의 제자로서 그에게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지만, 실세계의 연구와 실체와 수학과의 관계의 연구에 있어서 매 우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풀라돈의 초세속적인 면과과학을 수 학으로 전환시킨 것을 비판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확한 의미에서 물리학자였다. 그는 물질이라는 것을 실체의 근본적인 본체이자 원천으 로 믿었다. 물리학 및 보다 일반적인 과학은 물리적 세계를 연구하여야
하며 그곳에서 진리를 얻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참된 지식은 직관과 추상화에 의해서 감각적인 경험으로부터 얻어지는데, 이러한 추상화는 인간의 정신과 무관하게 촌재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제 사물로부터 추상화된 보편성을 강조하였으며. 이러한 것을 얻기 위해서 는 ‘‘알 수 있고 관찰이 가능한 사물에서 시작하 여 그 본성을 좀더 명백히 더 많이 알 수 있는 사물을 향해서 나아가라 고 말하였다. 그는 대상의 분명히 감각되어치는 성질 을 본질로 생각하였 고 정신적인 개념과는 무관하게 그것들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울렀다. • 아리스 토델 레스의 사물의 도식 (scheme) 에서 수학은 어디에 놓여 있는 가? 물리적 과학이야말로 군본적인 것이고, 수학은 자연을 연구하는데 형태나 양과 같은 형식적인 성질을 기술함으로써 도움울 주며, 또한 수 학은 물질적 인 현상에서 관찰되는 사실에 대해서 논리적 설명을 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기하학은 광학과 천문학에서 제기되는사실에 관한설 명울 주는 것이며, 산수적인 미는 조화의 기본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수학적인 개념이나 원리는 결정적으로 실세계의 추상화이다. 그 둘 은 실 제계로부더 추상화된 것이므로 실세계에 웅용이 가눙한 것이다. 감각으 로부터 물리적 대상의 이들 이상화된 성질을 이끌어내는 정신적인 능력 이 있으며, 이같은 추상화는 판연적으로 참이다. 그리스의 지적 세계를 단련시키고 그것을 형성시컸던 철학자들에 대 한 이같은 간단한 개관은, 그들 모두가 근본을 이루는 실체를 파악하고 이 해 하고 감상하기 위 하여 자연의 연구를 강조하였음을 아는 데 도움이 될것이다. 더구나, 피타고라스 학파 시대 이후 실제로 모든 철학자들 이 자연은 수학적으로 설계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고전기의 말연까지 자 연이 수학적으로 만들어졌다는 학설이 정립되었고, 수학적 법칙의 탐구 가 이루어졌다. 미록 이러한 신념이 그후의 모든 수학의 동기가 되지는 못하였지만, 받아들여진 이후로는 대부분의 위대한 수학자들이 그같은 신념에 따랐고, 더구나 그러한 신념과 접해 보지 못한 사람조차도 그러 하였다. 그리스인의 사변적인 사고의 모든 승리 중에서도 가장 참되게 귀한 것은 우주의 운행이 인간의 사고에 의해서 발견이 가능한 수학적 법칙과 일치한다는 개념이었다. • 그리고 나서, 그리스인들은 진리 묵 히 자연의 수학적 설계에 관한 진 리를 추구하기로 결정하였다. 사람들이 어떻게 진리를 추구하며 그것이 진리라는 것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여기에서도 역시 그리스인들은
계획을 세웠다. 비록 이것이 기원전 600 년부터 기원전 300 년까지의 샤 대를 동하여 접전적으로 전개되었고, 또 언제 누구에 의해서 처음으로 인식되었는가 하는 의문은 있지만, 그것은 기원전 300 년까지는 완성되 었다. 수와 도형을 사용한다는 것만이 수학이라면, 수학은 고대 그리스인문 보다 수천 년 전에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의 수학은 많은 고대 문명의 공헌을 포함하는데, 그 중에서도 이집트인과 바빌로니아인이 아 주 탁월하다 . 이들 모든 문명 중에서 그리스 문명을 재외하고는 수학을 독립된 과목이라 보기는 어렵다. 왜냐 하면, 그것에는 방법 론 도 없었고 또 직접적인 실제적 목표 이외의 것을 추구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것은 일종의 도구였고 달력 계산 • 농업 • 상업 등 일상 생활의 문재에 답 할 수 있는 정도의 일련의 연결아 없는 단순한 규칙 들 이었다. 이러한 규 칙은 시행과 착오, 경험 그리고 간단한 관찰에 의해서 얻어졌으며, 또 ~ 대부분이 단지 근사적으로만 정확하였다. 이러한 문명의 수학에 대하여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은, 비록 업밀한 사고는 아니었다고 하 더라도 활기찬 것이며, 총명했다기보다는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는 첩이 다. 이러한 수학은 경험적이라는 말로 목칭지어지는데, 바빌로니아인과 이집트인들의 경험적 수학은 그리스인들의 수학의 서곡이 되었다. 그리스 사상가들이 이집트와 바빌로니아로 유학하였으므로, 그리스의 문화가 전적으로 의부의 영향을 안 받은 것은 아니고, 또 현대적인 의 미의 수학이 그리스의 지적 분위기와 동질의 잉태기룬 가지기는 하였지 만, 그리스인들이 창조한 것은 주석 속의 황금 만큼이나 그들이 계승한 수학과 독이하다 . 수학적 진리를 탐구하기로 결정하자, 그리스인들은 목히 이집트인가 바빌로니아인들이 쌓아올란 조야하고 경험적이며 한정적이고 연결되어 있지 않으며 대부분 근사적 인 앞선 결과들을 써서 수학을 건설하려 하 지는 않았다. 수와 도형에 대한 기본저인 사실인 수학 그 자체는 진리 의 체계이어야 하며, 예를 들어 천체의 운동과 갈은 물리적 현상에 관 · 한 전리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 수학적 추론은 의십할 여지가 없는 걷론을 이끌어내어야만 한다. 이러한 목표에 어떻게 도달했는가? 첫째 원칙은 수학이 추상적인 개념을 다루는 것이다- 그리스의 수학을 쌓아올린 철학자들에게는 진리 그 자체의 의미는 항구적이고 불변인 대 : 상과 그들 사이의 관계에 관한 것이어야만 했다• 다행하도 물체가 주는-
갑각적인 인상윤 받아들일 때 인간의 지성은 보다 높은 개념을 얻을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이데아이며 영원한 실체이고 사고의 참된 대상인 것이다. 추상화를 선덱한 또 다론 이유가 있었다. 만약 수학이 강력하 여야 한다면, 하나의 추상 개념 안에 그 개념에 해당하는 모든 물리적 사건의 본질적 인 양상윤 포함해 야만 한다. 그러 므로, 수학적 인 칙 선은 팽팽한 현, 자의 가장자리, 들판의 가장자리, 광선 동의 개념을 포함하 지 않으면 안 된다. 마라서 수학적인 직선은 두께 • 빛깔 • 분자 구조 또 는 장릭 둥을 가져 서 는 안 된다. 그리 스인들은 그들의 수학이 추상적 개념을 다루었다고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기하학자에 대하여 준라돈은 그의 《공화국 ))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돋이 미목 눈에 보이는 형대물 아용하고 그것에 관하여서 추론하지만, 그둘 은이것문만 아니라 이것과 닮은 관념에 관하여도 고찰하며, 그들이 그리는도 형이 아니라 절대저인 정사각형과 철대적인 지음에 대하여 고찰한다 .••• 그 둘이 정신의 눈을 몽해서만 봉 수 있는 사물 자체의 본질을 보.기 위해서 실제 로 노력합을 너는 모르느냐? 그러므로 수학은 무엇보다도 먼저 접 • 칙선 • 정수 같은 추상적 개념을 다루려고 하였다. 그 뒤에 삼각형 • 정삼각형 • 원과 같은 그 밖의 개념 들은 기본적인 개념을 써서 정의될 수 있었으며, 아리스토텔레스가 지 적한 바와 갇이 기본적인 개념은 정의되지 않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 면 시발겁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인이 날카롭다는 것은 정의 된 개념이 논증에 의해서이돈 작도에 의해서이든 실세계에 대응되는 것 이 있음을 보여야 한다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한 각의 삼등분선을 정의할 수 없고 그것에 관한 정리를 증명할 수도 없다• 그 것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며, 실제로 그리스인둘은 작도하는 데 부과 · 도J. 제한하에서 는 각을 상등분하지 못하였으므로, 그둘은 이 러 한 개 념 을 도입하지 않았다. 수학의 개념에 관한 추론에 있어서 그리스인듄은 어느 누구도 의십하 지 않을 정 도로 자명 한 진리 인 공리 (axio m ) 들로부터 출발하였 다. 확실 히 그러한 진리논 있을 수 있었다. 풀라돈은 그의 회상 (anamnes i s) 의 이 론에 의해서 공리의 인정을 정당화하였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그에게 는 전리의 객관저인 세계가 촌재하였다. 인간은 태어나기 이전에 영혼 으로서 다른 하나의 세계를 경험하였지만, 그. 영혼은 기하학의 공리가
진리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 전세의 경험을 기여해내는 데 자극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지구에서의 어떤 경험도 팔요하지 않았다. 아리스토델 레스는 그것을 달리 보았다. 공리란 의심의 가능성을 넘어서 정신에 호 ` 소하여 이 해 되 는 원 리 이 다. 《후 기 분석 )) Poste rio r Analyt ics 에 서 아리 스토 델레스는 공리는 우리의 뮴림 없는 직관에 의해서 참이라고 알려진 것이 라고 말하였다. 더구나, 우리는 이들 진리를 우리들의 추론의 근거로서 가져야만 한다. 그 대신 추론의 중간에 참임이 밝혀지지 않은 어떤 사 ~ 실을 써야 한다면, 이갇은 사실을 정립하는 대 또다몬 추론이 팔요해지 고; 이 과정은 한없이 되 풀 이월 것임에 물립 없다. 그렇게 되면 무한히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공리 가운데에서도 그는 보편 개념 (commo n. no ti ons) 과 공준(p os t ula t es) 을- 구、밀하였 다. 보편 개 념 이 란 사고의 모든 분 야에서 참인 것으로서, 같은 것에 동일한 것을 더하면 같다와 같은 진 술을 포함한다. 공준은 기 하학과 같은 독 정 한 주재 에 적 용되 는데 , 두 * 접은 단 하나의 직선을 결정한다”는 것 둥이다. 아리스토델레스는 말하 기를 공준은 자명할 팔요는 없지만 그것으로부터 밝혀지는 견과에 의해 서 옳은 것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수학자들은 자명함을 요구하였다• 공리로부터 추론에 의해서 결론이 얻어진다. 여러 형태의 추론이 있 는데, 예를 들면, 귀납법, 유추에 의한 추론, 연역법 둥이 있다. 이같 은 여러 형태 중 단 하나만이 결론이 옳음울 보증한다. 천 개의 사과가 붉다는 사실을 발견하고서 모돈 사과는 붉다라는 결론윤 내리는 것은 귀납법이고, 따라서 이 방법은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아니 다. 마찬가지로 존J ohn 과 갇은 능력을 가진 그의 형이 대학올 졸업할 수 있었으므로 존도 그럴 수 있다라는 주장은 유추에 의한 추론으.로서, 믿을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반면에 연역적 추론은 비록 여러 가지 형대가 있지만 결론을 입증한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죽는다, 소크라 테스는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는 사실 울 인정해야만 한다. 여기에서 사용한 논리의 원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삼단논법이라 부론 것의 한 형태이다. 연역적 추론의 다른 법칙으로. 야 리스토텔레스는모순울(한 명계가 동시에 참이면서 거짓일 수는 없다)과 배 중문(어먼 명게이돈 반드시 참이거나 거짓이다)을· 도입하였다. 그와 세상사람들은 대체로 이러한 연역져 원리둘을 임의의 전제에 적 용했을 대에 얻어지는 걷론은 전계만큼이나 신뢰할 수 있다고 의십없야
받아들였다. 그래서 만약 전제가 참이면 결과도 참이 원 것이다. 우리 가 나중에 논의하는 바와 같이 , 아리스토텔레스가 수학자들이 이미 시 행한 추본들로부터 연역적 논리의 원리를 추상화하여 냈음은 특 기할 만 하다 . 실제로 연역적 논리야말로 수학의 자식인 샘이다. 비 목 연역적 추돈이 진 리 를 얻는 신뢰할 만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거의 모든 그리스 철학자들이 주장하였지 만, 풀라돈 의 견해는 약간 달랐다. 그는 연역적 증명울 반대하지는 않았으나, 불팔요하게 지나치다고 생각 하였다. 왜냐 하면 수학의 공리나 정리는 사람과 독립적 인 어떤 객관칙 세계에 존재하기 때문이며, 풀라몬 의 회상의 원리에 따르면, 인간은 의 삼항 여지 없는 진리 룬 인정하기 위해서는 그 것들을 기억해내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풀 라돈의 《 데 아에데두스 》 Theae t e t us 에 있는 비유를 인 용하자면. 정리는 새장 안에 있는 새와 같 은 것이다. 그것은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 을 잡기 위하여는 가까이 가기만 하면 된다. 학문은 단지 회 상 을 해 내 는 과정 에 불과하 다. 풀 라 돈의 대 화 《 에 노 》 Me1w 에 따르면. 소크라데스는 기교적인 질문을 써서 젊은 노예로부터 이등변칙각상각형 의 빗변에 세운 정사각형이 직각을 7Jl. 한 번 위에 새운 정사각형의 2 배 의 면적을 가짐을 이 꿀 어내 보였다. 그때 소크라네스는 의기양양하게 기 하학을 공부하지 못한 노예가 적절한 암시 룹 받은 연후에 그것을 기억 해 내었다고 결론을 내렀다. 연역적 증명을 고집하는 것이 얼마나 혁신적이었는가 하는 접을 이해 하는 것은 중요하다. 한 과학자가 다론 장소에 있는 각각 다론 크기 오 l 다몬 꼴을 가진 백 개의 삼각형의 내각의 합을 측정한다고 가정하고, 실 험적인 오차의 한계내에서 180° 입을 발견하였다고 가정해 보자. 확실히 그는 임의의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 라고 결론을 내랄 수 있을 것이 다. 그러나 그의 증명은 귀납적이지 연역적이 아니므로 수학적으로는· 인정 되 지 않을 것 이 다. 마찬가지 로, 원하는 만큼 많은 짝수를: 조사하연 그 각각은 2 개의 소수의 합입을 발견한다. 그러나 이러한 테스트는 연 역적인 증명이 아니므로 그 결과는 수학의 정리가 아니다. 연역적 증명 은 매우 업격한 요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철학자들인 그리 스 수학자들은 연역적 추론이 영원한 진리를 꿀어내기 때문에 연역적 추론만을 사용할 것을 주장하였다. 철학자들이 연역적 추론을 좋아하는 또 다론 이유가 있다. 철학자둘 온 인간과 물리적 세계에 대한 폭넓은 지식에 관십을 가지고 있다. 인
간은 근본적으로 착한 손재이다, 세계는 선계 되어졌다, 인간의 삶은 목 적을 가진다 둥의 보편적인 전리 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연역적 추론은귀 납법이나 유추법보다 인정할 수 있는 최초의 원칙으로서 인싼 적철하다. 고전기의 그리스인 들 이 연역 법을 종 아 했던 또 다몬 이유는 그 들 의 사 최 조직 안에서 발견할 수있을지도 모 몬다 . 철학적 • 수학적 • 예술적인 활동은 부유한 계층에 의해서 이 루 어졌는데 이 들은 노동을 하지 않았 다. 노예, 비시민 (me ti cs), 자유시민인 적공은 사업이나 가사에 고용되었으며 때로는 가장 중요한 전문직에 종사하기조차 하였다. 교육받은 자유인은 노동을 하지 않았으며, 상업에 종사하는 것도 드문 일이었다. 풀 라 돈 은 상업은 자유인을 타락시킨다고 말하였고 그러한 일에 종사함을 법죄로 다루어 처벌하기를 원하였다. 아리스토 델레스는 완전한 국가에서는 어 떤 시민(여기서는 노예가 아닌 사람)도 육재적 노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 다. 그리 스 종족 중의 하나인 비 오우셔 0,1 Boeoti an 둘은 상업 으로 자 신윤 더럽헌 사람을 IO 년 동안 모든 관칙에 취임함을 금지하기조차 하 였다. 그러한 사회에 사는 사상가 들 에게는 실험과 관찰은 성미에 맞지 않는 일이었을 것이다 . 따라서 어떠한 과학적 또는 수학적인 견과도 실 험이나 관찰로부터 얻어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스인들아 연역적 증명을 고집하던 많은 이유가 있지만, 어떤 컬 학자나 철학자 그룹이 이러한 요구 조건을 처음으로 확립하였는지에 관 하여는 약간의 의문이 있다. 불행히도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가르 침과 저술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단편에 불과하고, 수많은 해답이 이에 대하여 주어졌지만, 보편적으로 인정된 것은 없다. 아리스토델레스 시 대까지는 이러한 요구 조건이 확립되어 있었는데, 왜냐 하면 그는 무정 의 용어의 필요성과 추론의 법칙과 같은 엄밀성의 기준에 대해서 분명 히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우주의 수학적인 법칙을 얻으려는 계획을 실행하는 데 있어서 그리스 인들은 일마나 성공적이었는가? 유클리드 Euc li d, 아풀로니우스 A po lo- .•n ius , 아르키 메 데 스 Archim edes, 몰 레 미 Claudiu s Pto l emy 와 같은 사람들에 의해서 얻어진 수학의 정수는 다행히도 우리에게 전해졌다. 연대적으로 보아 이들은 그리스 문화의 두번째 위대한 시기인 헬레니즘 또는 알렉 산드리아 (300 B.C.-A. D . 600) 시대에 속한다. 기원전 4 세기에 마케도니 ·아의 팔립왕은 메르시아를 정복하려 하였는데, 페르시아는 근동울 지배 하고 있었으며 유럽의 그리스인의 오랜 숙적이었다. 팔립은 암살당하였
고 그의 아들 알렉산더가 계승하였다. 그는 패로시아를 패배시켰고, 확 대된 그리스 제국의 문화 중십지를 자신의 이름을 따라 명명한 새로운 도시로 옮겼다. 알렉산더는 기원전 323 년에 죽었으나, 새로운 센터를 발전시키려던 그의 계획은 몰 레미라는 왕조 이름을 택한 이집트에 있는 그의 계승자에 의해서 계속되었다. 아마도 유 클 리드는 문 라본의 아카데미에서 교육받은 것으로 보이며, 그가 기원전 300 년경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살았었고 그곳에서 학생들을 교육시켰 음 은 아주 확실하다. 그런데 이것이 유클리드의 개인적인 생애 에 대하여 우리가 아는 바의 전부이다. 유 클 리드의 업적~ 체계적이고 연역적인 형태 를 취하였으며 고전기의 그리스인들의 독립적인 발견들을 광범 위 하게 동 합하였 다. 그의 주된 저 작인 《원론》 Elements 온 공간과 공 간도형의 법칙 들 을 망라하고 있다. 유클리 드의 《 원론 〉〉 이 공간의 기 하학에 관한 그의 공헌의 전부는 결코 아니다. 유쿨리드는 원뿔곡선을 주제로 한 책을 썼는데 오늘날 남아 있 지 않으며 , 소아시 아의 패 르가뭄에 서 출생 하여 알렉 산드리 아에 서 수학을 배 운 아 폴 로니 우스 (262-190 B.C. ) 가 포물선 • 타원 • 쌍곡선에 관한 그 연 구를 계 속하여 《원뿔곡선론》 Conic Secti on s 이 라는 고전적 저 작을 썼다. 이 순수기하학적인 지식에 덧붙여, 알렉산드리아에서 교육받고 시실 리에서 생활한 아르키메데스 (287-212 B.C. )가 《구와 원기둥에 관하여》, 《원뿔곡면체와 구면체에 관하여》, 《포물선의 구적법》 둥 몇 개의 업적 올 더 하였 는데 , 이 모두는 유독소스 Eudoxus (390-337 B.C.) 에 의 해 서 도 입된 방법으로 복잡한 떤적과 체적을 구한 것이다. 유독소스의 방법은 뒤 에 착출범 (meth o d of exhausti on ) 이 라 불리 우게 되 었 다. 오늘날 이 러 한 문제논 미적분학의 방법을 써서 해결된다. 그리스인들은 공간과 공간도형에 관한 연구로서 매우 중요한 삼각법 울 도입 하였 다. 이 연구의 시 조는 히 파르쿠스 Hi ppa rchus 인데 , 그는 로 우드즈 Rhodes 와 알렉산드리아에서 살았으며, 기원전 125 년겅에 죽었 다. 이것은 메넬라우스 Menelaus(c . A. O.98) 에 의해서 확장되었으며, 이 집트사람이고 알렉산드리아에서 연구한 쿨라우디우스 몰레미 (A.O . 168 사망)가 완전하고 권위있는내용울 남겼다. 그의 주요」서술은 《수학적 구 성 >M ath emati ca l Comp os it ion 인데 아라비 아 제 목인 <알 마게 스트》 Almag e st 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삼각법은 삼각형의 변과 각 사이의 양적인 관 계를 다루었다. 그리스인들은 주로 구면 위의 삼각형을 다루었는데, 이
때의 삼각형은 대원 (구와 같은 중십을- 가지는 원)의 호로 이 루 어진 면을 가진 것이다. 그리스의 천문학에서는 행성과 뗄둘이 천공의 대원 을 마 라서 웅칙이는 것으로 생각렀으므로 그 강은 운동에 주로 웅용하기 위한 것이기 대문이었다. 그러나 번역하연 갇은 이몬이 쉽게 평면삼각형 에 응용되는데, 이것이 오늘 날 학교에서 다루는 삼각법이다. 삼각법의 도 입은 그 이용자들로 하여금 보다 고등한 산수와 약간의 대수학윤 요구 하게 하였다. 그리스인 돌 이 이 문 분야물 바로 어 멍게 운용하었는가 하 · 는 접은 나중에 살피기로 하자 (5 장). 이와 같은 발견 때문에 수학은 혼미하고 겅험적이며 연전이 안 된 단 편들로부터, 빛나고 거대하며 체계적이고 깊은 지직 산물로 면해갔다. 그러나 공간과 공간도형의 성질 을 다 운 유클리드, 아 폴로니우스 , 아르 ` 키메데스의 고전들( 울레 미의 《일마게스트》는 예외로 바고)은 그 영역이 제 한되어 보이며, 그들이 다문재료의 큰 중요성을거의 알려 주지 못하였 다. 이러한 업적들은 자연의 왕동에 대한 진리 품 밝히는 대 거의 관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이 고전 작품들은 단지 형식적이고 잘 다 듬 은 연역적 수학을 줄 분이다. 이와 감은 접에 있어서 그리스의 수학 교과 서는 오늘날의 수학 교과서나 논문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란 체들 은 이미 얻어진 결과를 조직적으로 전해줄 분이며, 수학적인 동기, 정 리에 대한 실마리나 암시 및 수학적 지식의 사용처와 같은 접은 빠드란 다. 그러므로 고대 그리스 수학에 대한 굳울 쓴 많은 사람들이 그 시대 의 수학은 수학 그 자체에만 관심을 가졌다고 주장하고, 그 시대의 2. 개 의 가장 유명 한 편찬물인 유문리 드의 《원론〉〉과 아폴로니 우스의 《원뿔 곡선론》을 예를 들어 이러한 주장에 도달하고 또 그 주장을 뒷받침한 다. 그러나 이들 필자들은 시야가 좁은 것으로, 《원론〉〉과 《원뿔곡선론》 만을 보는 것은 마치 이항정리에 관한 뉴몬의 논문을 보고서 뉴돈이 순 수수학자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과 다음이 없다. 참된 목표는 자연의 탐구였다. 물리적인 세계를 탐구하는 한, 기하~ 의 진리조차도 고도로 중요하다. 그리스인둘에게 있어 기하학적 원리는 ` 우주의 전체 구조내에 구현되었음이 확실한테, 우주의 구조에서는 공간 이 기본적인 요소이었다. 그러므로 공간과 공간도형의 연구는 자연의 담 구에 팔수불가결의 공헌이었다. 사실, 기하학은 우주의 보다 폭넓은 연 구의 일부분이었다. 예컨대, 구의 기하학에 대한 연구는 천문학이 풀라 · 돈의 시대에 수학적이 되었을 때 수행되었다. 실재로 구라는 그리스야
는 피타고라스 학파가 말하는 천문학을 의미하였다. 그리고 구의 기하` 학을 다룬 유 클 리 드의 《키 노메 나 》 Phae11ome11a 는 묵 히 천문학에 사용하 려는 의도로 씌어진 것이다. 이 같은 증거와 또 최근에 수학이 어떻게 발 전하었는가에 대한 보다 충실한 지석에 미추어, 우리는 과학적 탐구가 수학적 문제를 제기하였 음 에 듄 림없으며. 수학은 자연의 탐구의 일부였 다고 확신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깊이 생각할 팔요는 없다 . 우리는 단지 그리스인 들 이 자연의 연구에서 성취한 것과 여기에 관련된 . 사람이 누구인가름 알아보기 만 하면 된다. 실로 물 리과학의 분야에서의 가장 곤 성공은 천문학에서 성취되었다. 바 록 바빌로니아인과 이 집드 인에 의한 칼목할 만큼 많은 천문학적 관 측 에 대 하여 충분히 알고는 있 었으나. 플 라 본 은 행 성 들 이 불 규칙 적 으로 웅 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데 대하여 그 둘 이 근본적이거나 동 일적인 이론도 없고 또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음을 강조하였다, 유독소스는 아카데 미의 학생이었으며, 그의 순수한 기하학 적 연구는 유클 리드의 《원론》 5, 권과 7 권에 들어 있는데, 그는 “겉보기의 운동'’을 알아내려는 문제에 도전하였다. 그의 해답은 역 사적으로 알려진 최초의 합리적으로 완전한· 천문학적 이론이다. 우리는 유독소스의 이론이 전적으로 수학적이었고 구 사이에 작용하 는 움직임과 관련된 것이라는 사실 외에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으려 한 다. 이 구들은 고정된 벌들이 속해 있는 구 를 재의하고는 실체가 아니 고 수학적인 작도인 것이다. 그는 구 들 이 회전한다고 말하면서도 그 구 들을 회전하게 하는 힘을 선명하지는 않았다. 그의 이론은 전적으로 현 대적인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오놀날의 과학의 목표는 수학적 설명이 . 지 물리적 설명이 아니기 메문이다. 이 이론은 유독소스 이후의 가장 위 대 한 세 이 론천문학자인 아풀로니 우스, 히 파르쿠스, 물레 미 가 공현한 이론으로- 대체되었으며 몰레미의 《알마게스트》 안에 둘어 있다. 아풀로니우스의 천문학적 입적은 오늘날 남아 있지 않다. 그러 나 그. 의 공헌은 롤레미가 《알마게스드》 (7 권)에 써 놓은 것을 미못한 그리스 . 사람들의 처술에 인용되고 있다. 그는 e( 잎신런) 이라는 벌명을 얻었을 ` 정도로 천문학자로서 유명하였는데, 그것은 그가 달의 움직임에 관한 많은 연구를 하였고 e 은 달을 나타내는 기호였기 때문이다. 히파르쿠 스의 업적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하나만이 남아 있는데, 그것 역서. 《알마게스트〉〉에 인용되었다.
P
오늘날 볼 레미 천문학이라 알려져 있는 것의 기본적 스 킴 s c heme 이 유 독소스와 아 폴 로니 우스의 시 대 중간에 그리 스의 천문학에 도입 되 었다. 이 스킴에서는 S 가 지구 E 를 중 십으로 하는 원 위 를 일정한 속 력으로 칙움 직인다일( 그때립 행 성1, 5 ).P 는s 가S 를움 직중 이십 는으 로원 을하 는종 원원 ( 주de f e위re를n t )일이 라정 한부 속르력고, 으 로P 가웅 웁칙이는 원을 주전원 (e pic y cle) 이라고 부른다. 어떤 행성의 경우에는 정 : S 는 태양이었고, 어떤 경우에는 수 학적인 정일 분 이었다. P 가 움직이 . 는 방향은 S 가 움직이는 방 향 과 일치할 수도 반대방향일 수도 있는데. 후자논 해와 달의 경우였다. 롤 레미는 또한 어떤 행성의 웅적임 을_ 그리 기 위하여 이 스킵의 변형 을 사용하였다. 주전원과 종원의 반지 음 , 주 전원 위의 물체의 속력, 종 원 위에 있는 수전원의 중십의 속력윤 적절 히 취함으로써, 히파르쿠스와 -볼 레미는 그 시대의 관측과 전적으로 일 치하는 움직임윤 기술할 수 있었다. 히파르쿠스 시대 이래, 월식은 한 두 시간의 오차 내에서 예측할 수 있었으며, 일식은 보다 덜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다. 이같은예축은 몰 래미가삼각법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가능하였는데, 그는 천문학을 위하여 삼각법을 창조했다고 말하였다. 진리를 추구한다는 견지에서 볼 때, 유독소스와 마찬가지로 몰레미도 그의 이론이 관측과 일치하는 편리한 수학적 표현일문 이것이 팔연적으 로 자연의 참된 설계일 수는 없다는 것을 충분히 깨달았다는 사실은 특
기할 만하다. 그는 어떤 행성에 대해서는 다른 스킹을 취하였고, 수학· · 적으로 보다 간단한 것을 댁하기도하였다. 둘레 미는그의 《알마게스트》 I3 권에서, 천문학에서는 사람들이 가능한 한 간단한수학적 모델을 찾 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몰 레미의 수학적 모델은 기독교 세계에 아르러시는 전리로 받아들여졌다. 톨레미의 이론은 자연의 군등성과 불번성에 대한 최초의 합리적이고 완전한 증거가 되었고, 천체의 겉보기의 운동윤 합리화하려는 풀라돈의 문제에 대한 그리스의 최종적인 해답이다. 그리스 시대 전체에 걸쳐서 나타난 어떤 이론도 《 알마게스트〉〉에 비견되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우주 의 개념에 관하여 강력한 영향을 주었다는 정에서, 또 유클리드의 《원 론〉〉운 재외하고는 아무 것도 그러한 의십할 바 없는 권위에 도달하지 못 했기 메문이다. 그리스 천문학에 관한 이같은 간단한 소개로는 물론 그. 주제에 대한 수 많은 다른 공헌을 전부 둘 수도 없고, 사람들이 다루었던 연구의 깊 이와 넓이조차도 보여주지 못한다. 그리스 천문학은 의연하고도 포괄적 이었으며 대단히 많은 양의 수학을 이용하였다. 더구나, 대부분의 그리 스 수학자 들 이 천문학에 종사하였는데 여기에는 유클리드와 아르키메데 스와 갇은 거 장도 포함된다 . 물리학적인 진리의 획득이 공간에 대한 수학과 천문학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리이스인들은 역학도 역시 창시하였다. 역학은 입자로 간 · 주할 수 있는 대상의 운동, 큰 물체의 운동 및 이러한 운동을 일으키는 J 힘 등을 다룬다. 《물리 학》 Phy si c s 에 서 아리 스토델레 스는 그리 스 역 학의 최고겁에 이르렀던 운동의 이론을 함께 다루었다. 그의 물리학 전체와 마찬가지로 그의 역학도 완전히 관찰과 일치하는 합리적이고 자명한 원 리에 바탕을 두었다. 이러한 이온은 비록 2 천여년을 지탱해 왔지만, 뒤 ’ 에 뉴돈의 역학으로 대체되었으므로 이곳에서는 취급하지 않기로 한다. 금상침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론에 물체의 무개중십과 지렛대의 원’ 리에 관한 아르키메데스의 연구가 더하여졌다. 이들 모든 업적과 관련 되 는 사실은 수학이 주된 역 할을 수행 함으로써 수학이 자연의 설계 를 살 피는 데 기본적이라는 확신을 주었다는 접이다. 천문학과 역학 다음으로 광학이 가장 꿇임없는 연구 대상이 되었다. 이 수리과학도 역시 그리스인에 의해서 창시되었는데, 피타고라스 학파 · 로부터 시작하여 대부분의 그리스 철학자들이 빛 • 시각 • 색깔의 본성에 .
대하여 사색하였다. 그러나 우리들의 관심은 이 분야에서의 수학적 업 ’ 적에 관한 것이다. 그 첫째 것은 선형적인 근거에 입각하여 아그리겐툼 · (시실리에 있었음)의 엠패도 쿨 레스 .Em p edocles of Ag r ig e ntu m(c. 490 B.C .) 가 주장한 빛은 유한한속도 를 가지고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가 치고 있는 빛에 관한 초]조의 재계적인 연구는 유 클 리드의 《광학》 Op ti cs 과 《거 울의 이 론》 Cato p r ic a 이 다. * 《 광학》은 시 각의 문재 와 물체 의 크기 를 결정하는 데 시력을 이용하는 것을- 다루고 있다. 《 거 울의 이 론》 에서 는 빛이 평면거울 • 오목거울 • 볼록-거울에서 반사 킬 때 어 멍개 진행하 는가와, 우리 가 보는 이 런 진행 의 효과는 어 떠 한가 물 보여 준다. 《 광학》 과 마찬가지로 실제로는 공준인 정의로부터 시작한다. 정리 I (현대의 교 과서에서의 공리)은 기하광학의 기본이 되는데, 반사의 법칙으로 알려져 있다. 그 내용은 7 접 P 로부터 거울에 입사하는 입사각 A 는 반사각 B 와 동일하다는 것 이 다(그립 1, 6). 유클리 드는 또한 오목 또는 볼록거 울 에 반사하는 빛에 대하여도 같은 법칙을 증명하였다(그랍 '·7). 이메 그 는 거울 대신에 접접에서의 접선 R 을 생각하였다. 위의 두 책은 모두 내용면에서나 체계면에서 철저히 수학적인데, 유클리드의 《원론〉〉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의 • 공리 • 정리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거울의 이온》 색은 아마도 유클리드의 업져윤 포합한 잊 가 지 겨각을 편집한 것으로 보인다.
수학자이며 기술자였던 헤론 He ron( A. D . 1 세기)은 반사의 법칙으로부 터 중요한 결과를 이끌어내었다. 죽 만약 P 와 Q (그립 '·6) 가 적선 ST 의 한편에 있다고 하면, P 로부터 직선까지, 다시 그곳에서 Q로 가는 모든 길(p a t h) 중에서 가장 짧은 길온두선분 PR 과 Q R 이 직선과 동일 한 각을 이루는 점 R 을 경유할 때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광선이 택
Q
하는 정확한 길이다. 그러므로 광선은 P 로부터 거울로 가서 다시 Q로 가는 가장 짧은 거리를 택한다. 분명히 자연은 기하학을 찰 알고 있어 시 그 잇접을 충분히 이용하고 있다. 이감은 주장이 오목 • 볼록-거울과 거울의 여러 조합을 다운 헤론의 《거울 의 이론 〉〉 에 실려 있다. 수많은 연구가 여러 가지 형대의 거울에 의한 반사에 관하여 씌어졌 는데, 이 가운데 없어진 것으로는 아르키메데스의 《거울의 이론〉〉과 아풀 로니우스의 《 대우는 거울에 관하여 》 On th e Burnin g M irr or (c. 190 B.C . ) 같은 것이 있고, 현존하는 것으로는 디오 쿨레 스 D i ocles 의 《대우는 거울 에 관하여 》 ( c. 190 B . C . )가 있다. 태우는 거울이 란 구면 • 포물면(포문선을 그 축에 관하여 회전한 것), 타원연의 일부 형태릅 취하는 오목거울을 가 리킨다. 포물면은 촛접에서 나오는 광선을 거울의 축에 평행하도록 반사 하고, 역으로 축 과 나란하게 오는 빛은 반사 후에 촛접으로 모인다는 사 실을 아폴로니우스는 이미 알고 있었고, 디오클레스의 책에 증명되어 있 다. 그러므로 이렇게 집중된 태양광선은 촛접에서 강한 열을 내는데, 이렇게 해서 “대우는 거울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 로 아르키메테스가 자신의 도시 시라큐스 를 포위한 로마의 배에 태양광 선을 집중시켜 불태웠다는 것으로 알려진 포물면경의 성질이다. 아풀로 니우스 역시 다른 원뿔곡선의 반사성을 알았는데, 예를 들면 타원연경의 한 촛접으로부터 발사되는 모든 빛은 다몬 촛겁으로 모인다는 사실과 갈은 것이다. 그는 자신의 《원뿔곡선온》 3 권에서 타원과 쌍곡선의 이 와 관련된 기하학적 성질을 밝히고 있다. 그리스인들은 묵히 지리학 • 유체정력학 등 다른 과학도 많이 창시하 였다. 키 레 네 의 에 라토스데 네 스 Erato s th enes of Cy re ne (c. 284-c. 192 B.C.)
`二`
는 고대의 가장 해박한 학자의 한 사람인데, 알렉산드리 아에 있는 도서. 관의 관장이었다. 그는 그리 스 인 들 이 알고 있던 지구상의 지역의 중요 한 지접 둘 사이의 거리 를 수없이 계산하였다. 그는 또한 지구 둘레를 아 주 정확하게 계산한 것으로 유명하며, 《지리학》 이 란저서에서는 그의 수 학적 방법 분 아니라 지구 표면 에서 일어나는 면화의 원인에 대하여도 설명하였다 . 지리학에 대한 가장 광범위한 연구는 물 레미의 8 권으로 이루어전 《 지 리학》이 있다. 몰레 미는 에라토스데네스의 연구를 발전시컸 울 분만 야 니라, 우리가 사용하논 것과 완전히 같은 위도와 경도룹 이용하여 지상 의 8,000 여개의 장소의 위치룹 정하였다. 또한 몰래미는 지도를 만드 는 방법 을 보였는데, 그 중 일부는 지금도 사용되고 있으며, 묵- 히 입체 두영법이 바로 아것이다. 지리학의 이러한 모든 연구에는 기원전 4 세 ’ 기 이후 이용된 구면도형의 기하학이 기본 적 이었다. 유체정 력학은 수중에 있는 물체에 미치는 압력을 다우는 학문으로, 아 르키 메 테 스의 책 〈〈떠 있 는 물체 에 대 하여 > On Floati ng Bodie s 가 기 초가 되었다. 지금까지 설명한 모든 연구와 마찬가지로, 이 객은 여러 가지 결과의 도입과 점근하는 방법이 완전히 수학적이다. 복-히 아르키메데스 의 원리로 알려진 물에 참간 물체는 그 물체에 의하여 배제된 물 의 무 게와 같은 힘으로 떠 받쳐진다는 사실 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 이 어멍게 물에 떠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설명은 아르키매데스의 덕이다 . 수학의 연역적 접근과 자연의 법칙을 수학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알렉 산드리아의 그리스시대 를 지배하였지만, 고전기의 그리스인 들 과는 달리 알렉산드리아인들은 실험과 관찰에도 의촌했음을 주목하여야 한다. 알 렉산드리아인들은 바빌로니아인이 2 천년 이상을 해왔던 대단히 정확한 천문학적 관찰을 받아들여서 이용하였다. 히파르쿠스 H ipp archus 는 그의 시 대 에 관찰 가능한 별들의 목록을 만둘었다. 발명 으로는 (아르키 메 데스 와 기술자 해온에 의한 것이 유명한데) 해시계와 벌의 높이 둥을 측 정하는 기계 둥이 있었으며, 또 증기와 물의 힘을 이용하였다. 이집트에서의 알렉산더의 후계자인 물-레미 소터 Pt o lemy So t er 에 의해 서 시 작된 알렉 산드리 아의 박물관은 북- 히 유명 하였다. 그 박물관은· 학자 둘의 안식처였으며. 약 40 만 권의 책을 소장한 유명한 도서관을 가자 고 있었다• 모돈 원고를 수용할 수 없었으므로 나머지 30 여만 권은 세 .’ 라피 스 Serap is 사 원에 소장되 었 다. 학자들은 학생 을 교육하기 도 하였 다~
수학시 연구와 과학적인 탐구로써 그리스인들은 우주가 수학적으로 . 설계되었옵울 본질적으로 보여 주었다. 수학은 자연에 내재하는 것으로 자연의 구조에 관한 진리이며, 플라돈이 말한 것처럼 물리적 세계에 관 한 실체이다. 우주에는 법칙과 질서가 있는데, 수학은 바로 이 질서의 연쇠인 것이다. 더구나 인간의 이성은 그 계획을 꿰뚫어 불 수 있고 수 학져 구조를 알아낼 수도 있다. 자연에 관한 논리적이고 수학적인 접근울 한다는 관념이 축전된 것은 주로 유 클 리 드의 《 원론》의 공적 이 라 보아야 한다. 이 책 이 물리 져 공간 에 대한 연구를 위하여 의도된 것이기는 하나, 그 체계성 • 정밀성 • 명 료성은 정수론과 같은 수학의 다론 영여분만 아니라 그밖의 모든 과학 에 공리적 • 연역적인 접근 방법을 불어 넣었다. 이 책을 뭉-하여 수학에 기초한 모든 물리적 지식을 논리적으로 체계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적 세계에 둥장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인들은 수학과, 현대 과학의 기초가 되어 왔던 자연 의 설계의 연구 사이의 공동성을 창시한 것이다. 19 세기 후기까지 수 학적 설계에 대한 연구는 진리의 탐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수학적 법 칙아 자연에 관한 진리라는 신념은 가장 심오하고 가장 고귀한 사상가 둘을 수학으로 이끌었다.
2 수학적 전리의 꽃이 핌 외부 세 계에 관한 모 돈 연구의 주된 욱적 은, 하 나 님 이 부과 하셔 서 수학의 언어 로 우 리 에게 나타내 보 인 외부 제 계 의 합 리저 질 서와 조 화 윤 발 견하는 것 이라야 한다. ― 커 ] ·강 러 Joh a n nes Kep le r 장업한 그리스 문명은 및 가지 힘에 의하여 파괴되었다. 첫 째는 로마 인 들 에 의한 그리스 • 이집트 • 근동의 정진적인 정 복 이었다. 로마인 둘 의 목적은 정치적 지배권을 확 장하려는 것이지 그 들 의 물 질적 문 화를 퍼뜨 리고자 함이 아니었다. 정 복 된 지역은 징발과 과세로 막대한 재 물을 꿀 어내는 석민지로 화하였다. 기 독교의 일어 남은 이 교도인 그리 스 문화 를 강타하는 또 하나의 요인 이 되었다. 비록 기독교의 지도자들이 개종자 들 로 하여금 기독교 를 좀더 용인하기 쉽 게 하기 위 하여 , 그리 스와 동방의 신화와 풍 속을 많이 받아 둘이 기 는 하였지 만 그래 도 이 교도의 학문을 반대 하었고, 수학 • 천문학· 물리 과학을 조롱하기 도 했다. 로마의 찬인한 박해 에 도 불구하고 기 독교 의 세력은 확장되었고, 마침내 로마의 콘스탄틴 대제가 서기 313 년 밀 라노 칙령에서 국교로 공인할 정도로 강력해졌다. 그 뒤, 테오도시우스 Theodosiu s(A.D. 379-396 몽치) 는 이교도의 신앙을 금지하고, 392 년에는 · 이교도의 사원들을 파괴하였다. 수천 권의 그리스 서적들이 로마인과 기독교도에 의하여 불태워졌다. 기원전 47 년에 로마인둘은 알렉산드리아 항구에 있던 이집트 배들에 불 올 질렀는데, 그 불은 크게 번져서 고대 도서관 중 가장 규모가 컸던 알 백산드리아의 도서관을 태웠다. 테오도시우스가 이교를 금지하던 해에 기독교도는 알렉산드리아의 세라피스 사원을 파괴하였는데, 그곳은 유
일하게 남아 있던 상당한 양의 그리스의 저작들올 보관하던 곳이었다 . 양피지에 씌어전 다론 많은 처술들도 기독교도들에 의하여 지워져서 그 들의 성경울 기록하는 데 사용되었다. 로마 제국의 후 기 역사도 여기에 관련이 된다.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광대한 제국을 그의 두 아들에게 분할해 주었는데, 호노리우스 Honoriu ~ 는 이 탈리 아와 서 유럽 을 동치 하게 되 었고, 알카디 우스 Archndiu s 는 그리 스 • 이집 트 • 근동 지역을 동치하게 되었다. 서쪽 지역은 5 세기에 고트 족에게 정복되었고, 그 이후의 역사는 중세 유럽의 역사에 속한다. 동쪽 지역 은 독립을 유지하였는데, 미찬탄 제국으로도 알려진 동로마 재국에 그리 스 본토와 이집트가 속하였기 때문에 그리스 문화와 그리스의 책들 은 어느 정도까지 보촌될 수 있었다. 그리스 문명에 대한 아지막 강타는 서기 640 년에 성난 파도와 갈 이 일어난 회교도에 의하여 이집트가 정복당한 것이다. 그매에 나머지 책 둘이 소설되었는데, 그 구실은 아 랍의 정복자인 오마르 Omar 가 내던전 말처럼 “그 계들 이 코란에 있는 대용을 포함한다면 우리는 그 책들을 읽 을 팔요가 없으며, 그 책들 이 코란에 반대되는 내용을 포함한다면 우리 는 그 체들을 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 그래서 6 개월 동안 알렉 산드리아의 목욕탕둘은 연료로 양피지 두루말이들을 사용하였다. 회교도들에 의해 이집트가 정복당한 후 , 대다수의 학자들은 동로마 제국의 수도가 되었던 콘스탄티노풀로 이주하였다. >1];산티움의 미우호 적안 기독교적인 분위기에서 그리스적인 사고 방식에 따른 활동이 전혀 왕성해질 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학자들과 그들의 처술둘이 유입침으로써 보물같은 지식들이 증대되었는데, 이 돌 이 800 년 후에 유 럽에 들 어오게 된다. 인도와 아라미 아는 수학적 활동이 많이지 않게 하는 데에 공헌하였고, 후에 콘 역할을- 하게 된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제공하였다.* 서기 200 년 경부터 1200 년경에 걸쳐, 인도인들은 그리스 저술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아 산수와 대수학에 독창적인 기여를 하였다. 아랍인들은 최고조에 있던 그들의 제국이 지중해를 경계로 근동까지 확장되고, 모하매트교로 동합된 여러 인종을 포용하고 있던 때, 그리스와 인도의 업적운 받아둘 여서 그들 나름의 것울 발전시컸다. 그들의 업적은 알렉산드리아 시대 의 그리스인의 정신에 따라서 연역적 추론과 실험올 혼합한 것이었다.
• 인도와 아라미아의 업처에 대하여는 게 5 장에서 좁더 다무기로 한다.
아랍인은 대수학 • 지리학 • 천문학 • 광학에 기여앴다. 그 둘 은 지식의 찬 달을 위한 대학과 학교를 세우기도 했다. 아람인 들 이 훌 융하였던 정은. 자신들의 종교의 확고한 지 지 자였 음에 도 불구하고, 종교적 교리 로 수학L 적 과학적 탐구를 제한하지 않았던 데 있다. 인도인이나 아랍인이 모두 그리스인들이 이 룩 한 훌풍 한 토 대 물 이용 할 수가 있었으며, 또 그리스의 수학과 과학을 보다 더 진보시컸옵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우주의 구조 를 이해하는 대 있어서 그리스인만큼 연 중하지는 않았다. 아람인은 그리스 처술에 관하여 광법위하개 또 미판 적으로 번역을 하고 해설을 했으나,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 들 에 비하여 크게 첨가하지는 못했다. 서기 1500 년까지는 그 들의 재국은 서방에서 는기독교도에 의해, 동방에서는 내분으로 인해 멀망하였다. 아랍인이 그의 문명 을 발달시키는 동안 또다론 문명이 서유럽에서 창 조되고 있었다. 서유럽에서는 대체로 서기 500 년경부터 1500 년까지에 이르는 중세기에 높은 수준의 문화가 발달되었다. 이 문화는 카 톨릭 교 회가 지매한 것인데. 그 가르침은 깊고 가치가 있는 것아었지만 물 리적 세계에 대한 연구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기독교의 하나님이 우 주를 다스리 고, 인간의 역 할은 그에 게 봉사하고, 그 를 기 쁘게 함으로써 구원운 얻는 것이었으며, 그로 인해 그 영혼은 기쁘고 영화로운 내세를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서의 생활 환경은 중요하지 않았 고, 어려움과 고동은 견뎌내야 할 분 아니라 실재로 하나님에 대한 인 간의 믿음의 시험으로서 겪어야 할 것이었다. 그리스 시대에 물리적 세 계에 관한 연구 때문에 조성되었던 수학과 과학에의 관십이 최저 상태 가 된 것은 당연하였다. 중세 유럽의 지식인들은 진리의 헌신적인 탐구 자였으나, 그들은 계시와 성경 연구에서 진리를 찾았다. 따라서 중세 철학자들은 자연이 가전 수학져 설계에 관한 새로운 층거를 찾으려 둘 지 않았다. 그러나 중세 후기의 철학에서는 자연의 움직임의 규칙성과 균등성에 관한 신념이 지지되었으나,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에 마르는 것으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중세 후기의 유럽은 및 가지 혁신적인 영향으로. 크계 동요되었고 변 호낸 받았다. 중세 문명을 근대의 것으로. 전환시킨 여러 요인 가운데 우 m 리가 다루고 있는 문계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 저작의 획득과 연구 이었다. 이들은 아랍인의 번역물과 비찬탄 계국에서 손상되지 않고 보 촌되어 있던 그리스 저술들을 동하여 알려졌다. 실제로 터키가 1453 년
예 재국을 정복하였을 때 , 그리스의 많은 학자물이 그둘의 책을 가지고 서쪽으로 도피하였다 . 그리스 저술들을 동하여 유럽의 지적 부흥의 지 도자 들은 자연이 수학적으로 설계되어 있고 이 선계는 아- 름답게 조화룹 이 운다는 것과 자연에 내재하는 진리를 알게 되었다 . 자연은 합리적이 고 잘서 정연할 뿐 아니라 준엄하고 불변 인 법칙에 마라 움직인다. 유 럽의 과학자둘은 고대 그리이스의 어 란아이와 갑은 위치에서 자연에 대 한 연구룬 시작랬다. 그리스 사상의 부흥이 및및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의 연구에 착수 하게 한 사설 은 의십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수학과 과학이 부흥한 정도와 속도는 많은 다론 요인에 기인한다. 한 문화룹 머리게 하고 다몬 새로 운 문화의 발전윤 조장한 힘은 다양하고 복잡했 다. 많은 학자들이 과학 의 발생에 대해 연구해 왔으며, .::z. 원인을 지적하기 위해 않은 역사가 둘 이 몰두랬다 . 여기서 우리는 그것윤 말만 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자유 장인 계급의 출현과 그로 인해 일어난 불질 • 기능 • 기순에의 관 십은 과학적인 문재들을 재기했다. 원료와 금옵 갖기 위해 성행했던 지 리상의 탐험으로 낯선 대 욱 에 관한 지식과 중세 유럽의 문화에 위협적 인 관습둘이 도입되었다. 프로데스탄트 혁명은 카물럭 교리의 일부 조 항을 받아들이 지 않움으로써 반목과 두 교파에 대 한 회 의 주의 까지 조장 하게 되었다. 청교도가 노동과 인류에 대한 지식의 효용성운 강조한 접. 포탄의 운동과 갇온 새 로운 군사상의 문제 가 뒤 따르게 된 화약의 도입 , 그리고 미지의 땅으로의 수천 마일의 항해에 킬요한 문제둘, 이 모두가 자연 을 연구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 또, 인캐술의 발명으로 교회가 재 · 어해 운 수 있었던 지식의 보급이 보다 용이해졌다. 이 들 하나 또는 여 러 세력이 자연의 탐구에 이찬 잉향릭의 정도에 관하여는 학자들에 따 라 견해가 다르지만, 위와 같은 요인들의 대세 ·문 살펴보고, 과학의 추 · 구가 현대 유럽 문명의 두드러진 목 징이라는 일반적으로 인정된 사실을 지적하는 것만으로 우리의 목적에는 충분하다. 일반적으로 유럽인들은 새로운 세력과 영향에 즉 각적으로 반-홍하지는 않았다. 인문주의 시대라고 불리우는 기간 동안에는 그리스 저순을의 연 구와 흡수가 그리 스인들이 목표한 실재 적 인 추구보다 핀 싼 더 두드러 져 보였다. 그러나 서기 1500 년경까지는 그리스인의 목표 __- 자연의 연구 와 근원적인 수학적 설계에 대한 탐구에 이성을 적용하는 것_에 고취 된 사람들이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들은 곧 십각한 문제에 부
딪혔다. 그리스인들의 목표는 당시의 문화와 갈둥이 있었다. :.Le , . . ·- ., 이 어떤 이상적 계획에 변함없이 부합되는 자연의 수학적 설계 룹 믿었 던 반면, 중세 후기 의 사상가들은 모든 계 획 과 안동의 근원윤 기 독교와 하나님으로 보았다. 그가 선계자이고 창조자아며, 모든 자연의 움직 임 은 하나님이 내리신 계획에 따르는 것이었다. 우주는 하나님의 손으로 . 창조되었고 그의 의지에 따른다. 르네상스 시대와 그 후 여러 세기의 수 학자 • 과학자들은 정 동적 인 기 독교인이 었고, 마라서 이 교리 를 받아 들 였 다. 그렇지만 카몰락의 가르침은 결코 자연의 宁합 켜 설계에 관 한 그리 스의 이론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면, 하나님의 우 주를 이해하 를 려는 시도가 어렇게 자연의 수학적 법칙의 탐구와 조화 를 이 루 게 되었 는가? 그 답은 새로운 원리, 죽 기독교의 하나님이 우주 문 수학적으 . 로 설계하였다는 원리 룹 덧붙이는 것이었다. 이처럼 카 풀 릭의 교리는. 신의 의지와 그의 창조 물 들의 이해 를 추구하는 것에 최고의 중요성운 두고, 자연에 관한 신의 수학적 설계의 탐구라는 형식 을 취있다. 실재 로 곧 자세히 애기하겠지만, 16, 17 세기와 대부분의 18 세키 수학자 들 의 업적은 종교적인 담색이었다 . 자연의 수학적 법칙의 담구는. 신이 손수 만든 창조물의 영광과 위대함올 드러내려던 헌신적인 행동이었다. 수학 적 지식 즉 우주에 대한 신의 설계에 관한 전리는 성겅의 아무 구 1 절 과 마찬가지로 성스러웠다. 인간은 신성한 계최 윤 하나님이 아는 만큼 알 려고 할 수는 없었으나, 겸손한 담구로 적어도 신의 마음에 근접할 수 있었고, 따라서 신의 세계를 이해할 수가 있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이 매의 수학자들이 자연현상의 믿어 1 깔란 수학 적 법칙의 존재를 확신하고 있었으며, 선협적으로 신이 이같은 법칙을 써서 우주를 건설하였다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같은 법칙의 탐구 를 계속하였다고 단언할 수 있다. 자연 법칙의 발견은 모두 연구자가 아닌 신이 훌융하다는 증거로서 환영을 받았다. 수학자와 과학자둘의 신념과 대도가 르네상스 시대의 유럽을 휩쓸었던 주된 문화적 현상의 예가 된다. 그때에 재발견된 그리스의 처술둘은 경건한 기독교 세계와 맞서는 것이었으며, 그리스 문화에서 태어나 기독교에 매력을 갖거나 또는 그 반대 입장에 처했던 지적인 지도자들은 그 두 가지 교리를 혼 합했다. 아마도 자연의 수학적 설계 에 관한 그리 스의 학설이 . 그 설계 가 신의 } 업적이라는 르네상스 시대의 믿음과 하나가 되어 유럽에서 받아들여졌\
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가장 인상적인 증거가 되었던 것은· 코패로니쿠스. Ni co laus Cop e rnic u s (1473-1543) 와 캐 풀러 Joh annes Kep le r (1571-1630) 의 업 적일 것이다. 16 세기까지도 가장 그런 듯하고 유용한 천문학의 이돈은 히파르쿠스와 폴레 미의 지구 중십설문 이었다. 이것은 전문적인 천문학 자들에 의해 인정된 이 론 으로서 난짜 계산과 항해에 쓰여졌다. 새로운 찬문학 이 론 에 관한 업적은 코패르니쿠스에서 비롯된다. 그는 1497 년에 입학한 불로냐 대학교에서 찬문학을- 공부했으며, 1512 년에 동프러시 아 의 프 라우엔 메 르그 Frauenberg 대 성 당의 평 의 원 직 책 을 맡았다. 이 일은 · 코페르 니 쿠스에게 천문관측을 하고 그에 관련된 이 론을 생각할 수 있는 풍부한 시간을 수있다. 수년간의 숙고와 관측울 한 후 , 코패로니쿠스는 그가 고전적 저 서 《 천구의 운행 에 관하여 >> On th e Re -z,•o l ut io11 of th e I-lea - venly Sp her es 에 삽입한 행성 운동 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진개시켰다. 그. 는 이 것을 1507 년에 썼으나, 그것이 교회의 반감을 살 것이었으느로 출 판윤 두려우]했 다. 그 객은 그가 사망한 1543 년에 간행되었다. 코페르니쿠스가 천문학에 대하여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볼레 미의 이 온은 다소간 더 복잡해졌다. 주로 아랍인이 방대하게 집대성한 관측 자· 료에 부합되게 하기 위해시 물 레미가 도입한 주전원들에 더 많은 수전 원둘이 첨가되었다. 코페르니쿠스 당시에는 해와 달과 그때까지 알려졌 단 다섯 개의 행성의 운동을 선영하가 위해 그 이론에 총 77 개의 원이 팔요했다 . 코패르니쿠스가 그의 서문에서 말했듯이, 그 이론은 많은 천. 문가 들 에게 아연할 정도로 복잡했다. 코패 르니 쿠스는 그리 스의 저 술들을 공부했고, 우주는 수학적 이 며 조회 몹-게 설계되었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그 조화는 올 레미 이돈의 복잡한 확장보다 좀더 만족스러운 이론을 요구했다. 그는 묵 히 아리스타르쿠스 Aris t a r chus (B. C. 3 세 기 ) 와 같은 그리 스의 저 자들이 태 양이 고정 되 어 있 고 지구가 태양 둘레를 회전하면서 동시에 지구축을- 중십으로 자전한다 는 가능성을 암시했다는 사실을 읽고, 이 가능성을 조사하기로 마음먹 었다. 그의 추론의 결과로서 그는 천체의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대양이 각 종원의 중십이라는 가장 중요한 차이겁만을 제외하고, 몰레미의 종원과 주전원 (1 장)의 스킵을 이용했다. 지구도 자전하면서 주전원 위를 움직 , ’ 는 한 행성이 되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상당히 단순화시키는 대 /6 공했다. 그는 원들(종원과 주전원)의 갯수물지구중십설에서 요구되었
던 77 개 대신에 34 개까지 준일 수 있었다. 더욱 관목할 만한 단순화는 케풀러가 이루어 놓은 것인데, 그는 과학 사에서 가장 호기십을 불러 일으키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케풀러는 종 교적 정치적 사건돌에 의해 야기된 많은 개인적인 불행과곤란으로 정 철 된 생애를 보내면서도 1600 년에 유명한 천문학자인 브라해 Ty c ho Brahe 의 조수가 되는 행운이 있었다. 그때 브라해는 광법위한 새 관 측윤 하 는 데 연중하고 있었는데, 그 일은 그리스 시대 이 후 로 최 초 의 수 요한 작업이었다. 이러한 관측과 케 풀- 러 자신아 직접 시행한 또다른 관 측 은 그에게 매우 귀중한 것이었다 . 브라해가 죽던 1601 년에 케컬- 러는 오스 트리아 황재 루돌프 2 세의 왕실 수학자의 자리 를 계승하였다. 케플러의 과학적 추론은 매 혹 적이다. 코페르니쿠스 처 럼 그도 신미 론 자였으며, 코페르니쿠스처럼 그도 세계가 간단하고 아 음 다운 수학적 계 식에 맞게 신에 의하여 설계되었다고 믿었다. 그의 저서 《 우 주 의 신미 》 My s te ry of th e Cosmos ( 1596) 에 서 창조자의 마음 속 에 있 는 수학 적 인 조 화가 왜 천체의 수 • 크기 • 운동이 현재의 상대와 감은가” 하는 이유가 된다고 말했다. 이 믿음은 그의 모든 사고 를- 지매했다 . 그러나 케 플 러 역시 현대의 과학자가 가져야만 하는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냉정 하게 이성적일 수 있었다. 그의 풍부한 상상력이 새로운 이론적 체계의 개념을 사로잡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론이 관 측 과 부합되어야 한다 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그의 노년에는 겅험적 자료가 과학의 기본 원리 를 실제로 암시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더 명확히 알 수 있었다. 그레서 그는 가장 애 용하는 수학적 가정 조차도 그것 이 관 측 자료에 맞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과감히 포기하였다. 그로 하여금 급진적인 과학 적 아이디어를 주장하게 한 것은. 바로 그 시대의 다른 과학자들이라면 소홀히 했을 모순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이와 같은· 줄기찬 인내였다. 동시에 그는 겸손 • 인내 그리고 위인들로 하여금 미법한 일을 수행하게 하는 에너지도 갖고 있었다. 신앙으로써 존재를 확신하계 된 자연의 수학적 법칙의 탐구에 있어서 케풀러는 잘못된 길을 따름으로써 수년간을 허비했다. 그의 처서 《우주 의 신비》의 서문에서 다음과 갈이 말한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하나님 이 우주를 창조하고 우주의 질서를 조정할 메, 피타고라스와 풀라돈의 시대 이후 알려진 것과 같은 기하학의 다섯 가지 정다면체를 염두에 두 셨으며, 또 그들의 차원에 따라 찬구의 수 • 크기 그리고 운동의 관계를
정하섰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을- 시작한다. 그러나 다섯 개의 정다면 체에 기조해서 이몬을 정립하려는 그의 시도는 고J:축과 일치되지 않았고 수정된 형태에 그것을 적용하려는 미상한 노력 끝에 이 접근 방식을 포 기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 후에 조화로운 수학적 관계를 발견하는 데 탁월한 성 공을 거 두 었다. 그의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결과는 오늘날 행성 운동에 관한 개실러의 새 법칙으로 알리전 것이다. 처음 두 가지는 1609 년에 긴 재북의 객으로 출판되었는데, 그 채의 제목은 첫 부분을 따서 《새 천문학 》 The New Astr o nomy 이 라 부르거 나, 또는 끝의 부분을 따서 《화 성 의 운동에 내 한 수석 >C ommenta ries 011 th e Mot ion of th e Planet Mars 이 라고 부몬다. 제 1 법칙은 묵히 주목할 만하다. 왜냐하면 천체의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원이나 구가 사용되어야 한다는 2000 년간의 전동을 겠 기 때문이다. 물 레미와 코페르니쿠스가 임의의 행성의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했던 종원과 주전원 대신에, 케풍러는 단 하나의 타원으로 충 분하다는 것울 발견했다. 케플러의 제 I 법칙은 모돈 행성은 타원 위를 움직이고, 대양이 이 타원(그립 2.l) 의 한 (공동) 촛접에 위치한다는 것 이다. 타원의 다른 촛접은 .:z.. 위치에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단지 수 학적인 접일 문이다. 이 법칙은 행성의 궤도를 즉시 이해하는 데 큰 가 치룬 가진 것이다. 물론, 코페르니쿠스와 같이 케풀러도 지구가 ERi 궤도를 따라 운행할 매 자전도 한다는 사실을 덧붙였다. 그러나 천문학이 유용하게 되려떤 찬씬 더 진보했어야만 했다. 죽 우 리에게 행성의 위치문 예측하는 방법을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관측을- 동해 한 행성이 목정한 위치, 가령 그립 2. I 의 접 P 에 위치하고 있움을 발견했다면, 그는 언제 그 행성이 예를 들어 하 지 또는 동지가 되는 접이나 춘분이나 추분이 되는 점과 같은 다론 위 치에 운 것인가문 알고 싶어할 것이다. 팔요한 것은 저마다의 궤도를 따라 운행하는 행성의 속도이다. 이 점에 있어서도 캐물러는 급격한 발전운 이루었다. 코케르니쿠스와 그리스인들은 항상 속도를 일정하게 두었다. 행성은 .:z.. 주전원을 따라 같은 시간에 같은 거리의 호만큼 웅적인다고 생각했으며, 또 각 주전원 의 중십도 일정한 속도로 다른 주전원이나 종원 위를 움직인다고 랬다. 그러나 캐킬-러는 관측 결과 타원 위를 움칙이는 행성이 일정한 속도를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속도에 관한 정확한 법칙을 알아내는 어
P
렵고도 간 연구에 성공랬다. 그가 발견? 한 사실은 만일 한 행 성 이 한 달 동안 . 에 P 에서 Q까지(그럽 2.2) 움직인다면 PSQ 의 면 적 과 P'SQ ’ 의 면적 이 갇울 때 그 행성은 · 한 달 동안에 P' 에서 Q'. 까지 운행한다는 것이었다. 정 P' 보다 접 P 가 대 양에서 가깝기 때문에 PSQ > 와 P'S Q'의 면적이 같다면 호 P Q는 호
PI Q 1 보다 더 길다. 따라서 행성은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지는 않으며,
울 확실하게 해 주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좀더 포착하기 어려운 방법을 사용하였으나, 수학의 법칙은 행성이 움직이는 속도 를 명확히 밝혀냈다 . 또 다른 주요 문제가 남아 있었다. 어떤 법칙이 태양으로부터의 행성 까지의 거리를 줄 수 있겠는가? 이제는 그 문제는 대양으로부터 행성 까지의 거리가 일정하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복잡했다. 따라서 케플러 는 이 사실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원리를 추구하였다. 그는 자연이 수학적일 분만 아니라 조화돕게 만들어졌다고 믿었고, 글자 그대로 화 음아라는 단어룬 댁랬다. 이처럼 그는 실제적인 소리는 아니지만 행성 운동에 관한 사실을 음부로 번역 함으로써 지 각할 수 있는 조화로운 음향 효과물 내는 천구들의 음악이 있다고 믿었다. 그는 이 방향으로 나아가 · 서, 수학과 음악을 교묘하게 결합하여 다음과 같은 법칙을 얻었다: T 는 · 행성의 공전 주기, D 는 태양으로부터의 평군거리일 메 석 T 포 =kD3 이 성립한다. 이 매 k 는 모든 행성에 대하여 성립하는 상수이다. 이것이 행성 운동에 관한 케플러의 재 3 법칙으로서, 그의 처서 《세계의 조화》 711e Harmony of th e World (1619) 에서 의 기 양양하게 발표된 것이 다. 그의 제 3 법칙을 서술한 뒤, 케플러는 ,tJ.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찬양 · 을 퍼부었다: 태양 • 달 • 행성둘이 당신의 말로 할 수 없는 언어로 하-
나님 을 영 화롭게 한다. 하나님 의 놀라우선 업 적 인 하늘의 조화를 이 해 `· 한 모돈 이들이 그 를 찬양한다. 그리고, 그대 냐의 영혼이여, 그대의 창 조자 를 찬양하라 ! 모든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았으며, 그의 내부에 있다. 우리가 가장 잘 아는 것은 우리의 헛된 과학과 마찬가지 로 하나님의 일부분일 분 이다.” 하나님이 세계를 조화 롭 고 단순하게 창조하셨음에 룰 림없다는 코페르 r 니쿠스와 케 풍 러의 신념의 힘은, 그들이 논쟁해야 랬던 반대 이론에 의 해 판단원 수 있다. 다 은 행성들이 몰 레미의 이론에 맞도록 움직인다는 · 사실은 그리스 학 선 에 마르면 행성들이 톡나밀 히 가벼운 물질로 이루어졌 고, 따라서 쉽게 움직이는 것으로 설명되어져 왔다. 그러나 어떻게 이 무거운 지구가 움직여 질 수 있겠는가? 코페르니쿠스나 케풀러도 이 의 문에 답 을 내리지 못하였다 . 지구의 자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회전하- · 논 원판 위의 작은 물 체가 날아오르듯이 지구 표면의 물 체가 공간 속으 로 훈 날탈 것이라고 주 장했다. 어떤 사람도 이 의견을 논박하지 못했 다. 자전하는 지구 자체가 산산히 홍 어질 것이라는 더욱 심한 반대 이 론에 대해서 코패르니쿠스는 지구의 운동은 자연스러워서 그 자체를 파 괴할 수는 없다고 약하개 대답했다. 그리고 나서 오 1] 하늘은 지구 중십섣 에서 주장하는 매일 매일의 빠른 운동에도 불구하고 분리되어 떨어지지 않는가 하는 물음으로 응수했다 . 또 다른 반대 이론은 만일 지구가 서 에서 동으로 자전한다면 공중으로 던진 물체는 그 물체가 공중에 있는 동안 지구는 움직이므로 원래 위치에서 서쪽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것이 다. 더 군다나, 지 구가 대 양의 주위 를 공전한다면, 그리 스와 르네 상스 시 대의 물리학에서 주장하듯이 물체의 속도는 그 무게에 비례하므로, 지 구상의 가벼운 물체는 뒤에 남겨질 것이라는 것이다. 공기조차도 뒤에 남겨져야 하는 것이다. 이 논의에 대해서 코페르니쿠스는 공기는 토양 성이므로 땅과 융화되어 움직인다고 답했다 . 이러한 반대 이론들의 내 용은 걷국 자전 • 공전하는 지구는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의 시대에 공 인되어 있던 아리스트델레스의 운동의 이론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태양 중십설에 반대하는 또 다른 류의 과학적 논의는 천문학 자체에 서 나왔다. 가장 십각한 이의는 태양 중십설이 벌을 고정된 것으.로 생 각한 것에서 나타났다. 그런데 지구는 6 개월 동안 약 3 여 km 나 공간 에서 위치가 바뀐다• 따라서 어떤 시각에, 그리고 다시 6 개월 후에 곡 . · 벌한 항성의 방향을 주시한다면, 방향의 차이를 관찰할 수 있어야만 한 2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차이는 코케르니쿠스나 케플러의 시대에는 관측 되지 못했다. 코패르니구스는 항성은 너무 먼 곳에 있어서 방향의 차이 는 관측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작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은 미판자듄 을 만족시키지 못했는데, 그 들은 만일 항성이 그렇게 먼 거리에 있다면 그 항성도 명확히 관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반박랬다. 이 경우에 코페 르니쿠스의 대답은 정확했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항성에 있어서 6 개월 간의 각도 변화는 o. 31 초인대, 중은 망원겅운 마 음 대 로 쓸 수 있게 된 후인 :838 년에 수학자 메 셀 Frie d ric h W ilh elm Bess el 에 의 해 최 초로 발견된 것이었다. 전동주의자들은 더 나아가서 만일 지구가 초속 약 29km 로 태양 주 위를 움직이고, 초속 약 o . 5km 로 자전하고 있다면, 왜 우리는 어떠한 움직임도 느끼지 못하는가라고 질문했다. 사실, 우리의 감각은 대양이 하놀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느낀다. 케풀러 시대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천 문학에 의하여 높은 속도로 웅직이는 것을 우리 스스로 느끼지 못한다 는 설명은 논쟁의 여지가 없었다. 지구의 운동에 대한 이러한 과학적인 반대는 모두 중대했으며, 진실을 알고자 하지 않는 고지식한 저항자둘 의 완강함으로 돌릴 수는 없는 문재였다.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는 매우 신앙심이 깊었으나, 기독교의 유력한 교리 한 가지는 둘 다 부정했다. 그것은 인간이 우주의 중십에 있으며, 하나님의 주된 관십이라는 확신이었다. 이에 미하여, 대양이 우주의 중 십에 있게 되는 태양 중심선은, 이같은 교회의 안정된 독단을 손상시키 는 것이었다. 그것은 인간을 차가운 창공을 표류하는 방랑자의 한 무리 중 하나로 보이게 했다. 인간이 훌뮴히 살기 위해 또 죽음 뒤에는 천국 울 얻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보일 것 갇지 않았고, 또 인간이 하나님의 역사의 목적인 것 같지도 않았다. 코패르니쿠스는 우주의 크기는 너무 거대해서 우주의 중십울 논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라고 지적하며, 지 구가 우주의 중십이라는 교리를 공격했다. 그러나 이 반론은 그 당시의 · 사람둘을 납득시킬 힘이 없었다.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는 대양 중십설에 대한 이같은 모든 반대에 대 항해서 압도적으로 반박할 것이 단 한 가지 있었다. 둘 다 수학적으로 단순하고 좀더 조화봅고 미학적으로 탁월한 이론을 얻는 데 성공한 것 이었다. 만약 좀 더 훌뭉한 수학적 설명이 가능하다면, 신이 세계를 만 드셨고 분명히 훌륭한 이온을 사용하셨을 것이라는 견지에서 볼 때, 태
앙 중십설이 정확합에 등람없 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천 구 들 의 회전에 관하여〉〉 와 케컬- 러의 많은 저숟 가 운대는 그들이 올 바 론 이 론을 발견랬 다고 확신한 명백한 증거 룬 담은 많 은 구전들 이 있다. 그 예로, 캐강리는 그의 운동의 타원 이론에 대하어 “나는 나의 영혼 깊숙이 그 것 이 진실이라는 것을 입증하였으며, 믿을 수 없윤 정도로 황홍한 기 쁨 으로 그 것 의 아 곱 다 움윤 관조 하었다'’라고 말했 다. 1619 년의 케플러의 저서 《 세계의 조화〉〉 의 제목 그 자체와, 그리고 하나님의 수학적 설계의 위대합에 대한 -- 유족감을 표 . 현하는 하나님께 항 : 한 꾼 없는 찬양이 그의 확신 을 보여 준다 . 조기에는 수학자들만이 새 로운 이 몬을 지지있다. 이 것은 눈 라운 일이 아니 다. 우주가 수학적 으로 그 리 고 단순하게 만 둘 어 졌 다는 것 을 확신하` 는 수학자만 이, 정신칙으로 끗끗하게 당시에 만연하던 철학적 • 종교적 • 과학적 반론 을 무시하고, 혁신적 인 천문학에서의 수학의 전가를 인정했 을 것 이다. 우 주 의 설계에 서의 수 학의 중요성에 관해 흔 들 리지 않는 확 신 을 가전 사람만이, 강력한 만대 집단에 대항해서 새 이론을 긍정하는 ` 것 을 두 려워하지 않았 을 것이다 . 기대하지 않았던 발전에서 새로운 이 론 에 대한 뒷받침이 생겼다. 17· 세기 초에 망원경이 발명되었다. 이 소식을둘은 갈탈레이 Galil e o Galil e i, 는 그 스스로 망원경을 만둥어 하 늘운 관측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그 시대 사람들을 눈라게 랬다. 그는 목성의 4 개의 달을 발견했는데 (현재 는 12 개운 관 측 할 수 있다), 이 발견은 움직이는 행성이 위성운 가질 수 ·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갈릴레이는 달의 웅둥봅뭉한 표면과 산들, . 태양의 혹겁, 그리고 도성의 적도 부근의 팽창된 부분(현재는 토성환이라\ 한다)윤 보았다. 이로써 행성들은 지구와 미슷하며, 그리스와 중세 사상 · 가들이 믿었던 것처럼 에테르와 감은 목`선 한 물질로 구성된 완전한 입 체가 아니라는 것이 확실히 입증되었다. 그 매까지 빛으로 된 넓은 따 로 보여졌던 은하수는 망원경 을 용해서 수천의 년들로 이루어졌다는 것 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다른 태양 둘 이 있었고, 하눈에는 다몬 행성계 가 있을 범했다. 코케르니쿠스는 만약 인간의 시력이 강화된다면 멘눈` 으로 달의 형 상(초승달, 반단, 만원 등)을 구번하는 것 처 럼 금성 과 수성 의 ; 형상운 관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견했었다. 갈란데이는 망원경으로 금 성의 형상을 살펴 보았다. 그는 이 관측들로 코페르니쿠스의 학선이 옳 다는 것을 확신하고, 그의 고전적인 《위대한 세제의 체계에 관한 대화》 ·
.Dial og u e on th e Great World Sy st e m s(1632) 에서 그것을 강력히 옹호랬다. 새로운 이론은· 천문학자 • 지리학자 • 항해사둘의 계산을 천씬 단순화시 컸기 때문에 더욱 인정을 받았다. 17 세기 중반까지 과학계는 태양 중 십설을 기초로 하여 연구해 나가기 시작랬으며, 수학적 법칙을 진리로 승인할 것이 강력히 요구되었다. 17 세기 조의 지적인 분위기에서 지구의 공전과 자전 이론이 유지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이단십판소에서의 갈릴레이의 재판은 유명하다. 겅건한 카톨릭 신자였던 파스칼 Pascal 은 그가 대담하게도 그 의 《교구 서 신》 Provin c ial Lett er s 에 서 다음과 같이 단언함으로써 예 수회 를 검도 없이 무시하였다는 이유로 그의 저서들이 금서목록에 오르기도 하였다. 여러분이 지구의 운동에 언급한 갇랄레이의 의견이 유죄라는 판결을 로마로부터 얻었다 해도 역시 헛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지 · 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와 캐컬-러는 자연이 수학적으로 설계되었다는 그리스의 학설과 신이 우주를 창조하고 설계했다는 카볼릭의 주장의 혼합론을 주 저 없이 받아들였다. 데카르트 Ren~ Descar t es(1596-1650) 는 새로운 과학 철학을 체계적으로 명백히 그리고 강력하게 수립하기 시작했다. 대카르 트는 먼처 철학자였고, 다움에 우주론자, 세째로 물리학자, 내째로 생 물학자였고, 그가 비목 수학의 왕관에 박산 보석 중의 하나로 여겨졌다 할지라도 다섯째에야 미로소 수학자였다. 그의 철학은 17 세기의 사상 - 을 지매하였고 뉴돈과 라이프니츠와 같은 위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의 기본적인 저서 〈〈이성을 바르게 지도하고 과학에 서 의 진리 를 발견하는 방법 에 관한 논문》 (1637) 에 서 그는 그의 우선적 목표인 모든 분야에서 진리를 확립하는 방법을 발견하는 것을추구했다. 데카르트는 그에게 있어 의십할 수 없는 사실만을 받아들임으로써 그 . 의 철학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는 어멍게 받아들일 수 있는 증 거와 그렇지 않은 것을 구벌하였윤까? 그의 저서 〈〈정신 지도의 규칙〉〉 Rules for th e Di re cti on of th e M ind (1628 년에 씌 어 지 고, 사후에 출판되 었 다) 에서 그는 다음과 갇이 말하였다: 연구를 계획한 대상에 관해서, 우리 는 다론 사람이 생각했던 것이나 우리 자신이 추축한 것이 아니라 명백 히 직관할 수 있는 것, 또는 확실하게 연역할 수 있는 것만을 조사해야 한다. 왜냐 하면 지식을 얻는 다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정신이 기 선본적 이고 명백한 개개의 진리를 곧 이해하는 것―_칙관력_과 결과
를 연 역 하는 것은 그의 인식론의 본질이다. 마라서 데카르트에 따르면. 어떤 오 류에 빠질 걱정없이 지식에 도달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직관과 연역의 두 가지 정신적 활동분 이다. 그러나 그는 《 규칙 〉〉 에서 칙관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 ”칙관은 순수하고 주 의깊은 정신의 의심 할 여지없는 개념이며, 그것은 오로지 이성의 빛에서부터 떠오르며, 연역보다 더 확 실한 것이다.” 그의 《 논문 》 에서 그는 정신과 그 것 이 소유하고 있는 확실하고 의십할 나위없 는 지식의 존재성을 옹호했다 . 거기에서 데카르트는 기본적인 직 관에 의지함으로써 신의 촌재를 증명하려고 서둘렀다. 그리고 난 뉘, 분 명 히 순환논법 을 포함하는 논의로써, 신이 우리 를 속 이지 않을 것이므 로 우리의 직관과 연역법이 유효한 것임을- 다시 확실히 했다. 그가 얘 기하는 선은 무한 • 영원 • 불변하고 독립적 이며 전지전능하고, 그로 인 해 자신과 다 몬 모든 것 이 ••• 창조된 본체'’를 말한다. 고유한 수학의 진리에 관해서는 그의 저서 《명 상 록》iv led it a ti ons(1641) 에서 “나는 도형 • 수 그리고 그밖에 산수와 기하학, 보다 일반적으로 순수한 주상수학에 속하는 내용 둘을 생각하듯이 명백히 이해되는 진리 는 가장 확실한 것으로 간 주랬다 . ” ‘ 1 수학 자 들은 가장 쉽고 간단한 것에 서 출발했기 메문에, 그들만이 확실성과 중거를 얻을 수 있었다.” 수학 의 개념과 전리는 감각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그것은· 태어날 때부터, 그. 리고 신에 의하여 우리의 정신 가운데 내재되어 있다. 구체적인 삼각형 을 감각으로 인지하는 것은 우리의 정신에 관념적인 삼각형의 개념을 부각시키지 못한다.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 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 도 마찬가지로 정신에게는 분명하다. 데카르트는 이어서 물리적 세계로 관십을 둘렀다. 그.는, 정신으로 명 확히 인정되는 직관과 그것으로부터 얻어지는 연역이 물리적 세계에 적 용 원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하였다. 그에게는 산이 이 세상을 수학적 으로 설계하였음이 분명하였다. 그의 《논문》에서 그는 신이 자연에 확 립한 어떤 법칙 들 과 신이 우리의 영혼에 새겨 넣은 개념들의 촌재를 믿 는다고 주장하고, “그래 서 우리 는 그 존재 를 충분히 숙고하기 만 하면 세 상사 모두가 정확히 관측되어지는 것을 의십할 여지가 없다”고 주장하 · 였다. 더 나아가시 데카르트는 자연의 법칙들은 철대 불변인데, 그것둘은미 . ; 리 정 해 진 수학적 패 턴의 일부분에 불과하기 때 문이 라고 주장하였다. 그.
의 〈(논문》이 출간되기 이전인 1630 년 4 월 I5 일 그는 수학자이며 신학 자인 메르센느 Mar i n Mersenne 신부에게 다음과 감이 편지를 썼다: 왕이 자기 왕국에 법을 확립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AJ .이 자연에도 이러한 법 둘을 만드셨음을 아무데서나 선언하는 것을 두려우]하지 마시오 .••• 왕이 그 의 신하에게 던 알려질수록 더 많은 위엄을 가지듯이, 우리는 AJ .의 위대합을 찰 알 수 없는 것으로 판단하며, 왕이 없는 것 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만 약에 신이 이러한 진리 들융 만 문 었다면, 마치 왕이 자신의 법을 바꾸듯이 신도 역시 그러한 진리 를 바꿀 수 있지 않느냐고 혹자는 이야기할지 모 섭· 니다 . .:i.. 러나 내가 신 을 판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진리는 영원 문면의 것 이라 고 나는 생각하고 있소. 여기에서 데카르트는 우주의 기능을 신이 계속하여 조정하고 있다는 일 반적인 믿음을 부정하였다. 그는 물리적 세계 를 연구하는 데 수학만을 사용하티 고 하였다. 왜냐 하면, 그가 〈(논문》에 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재 까지 과학에 서 진리 를 탑 · 구하여 온 모든 사람 중에서, 명확하고 확실한 추론에 의한 증명을 얻 는데 성공한 것은 수학자분이기 메문이다. 물리적 세계 를 연구하는 데 는 수학이 면 충분하다고 데 카르트는 확신하였 다. 그는 《철학 의 원리 > Prin c ip le s of Phil o sop h y (1644) 에서 다음과 같이 이 야기 하였다: 나는 형대가 있는 사물에 관하여서는, 기하학자들이 양운 정의하고, 그듄의 중 · 명의 대상으로 덱한 것 이외에는 모르고 있다고 송직히 고백한다. 대상운 다루 · 는 데 있어 나는 단지 분할과 짤과 운동만을 생각할 문 이다. 그리고 곧 수학 · 척 증명에서 보는 바와 갇온 명백성운 가지고, 이 돌 보편 개념(의십한 나위없 는 진리)으로부터 연여되어지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감이라고 받아들이지는 · 않는다. 그리고 이와 갇은 방식으로 모든 자연 현상윤 선명한 수 있으므로, ••• 우리는 그밖의 어떠한 물리져 원리올 허용해야 한다든가 또는 다 론 원리움 찾 아야 한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데카르트는 그의 《원리〉〉에서 과학의 본질은 수학이라고 명백히 말하 · 였다. “모든 자연 현상온 수학에 의하여 설명되거나 논증 가능하기 때 문에 기하학이나 추상수학 이외의 원리를 물리학에 허용하지도 않으며 회망하지도 않는다”고 말하였다. 객관적인 세계는 고체화된 공간이거나 구체화된 기하학이다. 그러므로 그것의 성질은 기하학의 첫째 원리들로-
부터 추론인 수 있다. (그의 시대에는 수학의 수요한 부분이 기하학이었기 따 문에 그나 다른 사람이나 수학과 기하학을- 동의어로 사용했다.) 데카르트는 왜 세계가 수학으로 접근되어져야 하는가에 대하여 상세 히 설명했다. 그는 물질의 가장 기본적이고 확실한 성질들은 형태, 크 기 (ex t ens i on ) , 공간과 시간에서의 운동인데, 이들 모두는 수학적으로 기 술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 형대는 크기로 환원되므로 데카르트는 “나에게 크기와 운동을 주연 우주 윤 창조하겠다”고 말하였다. 그는모돈 불 리적 현상은 험을 받은 분자들의 역학적 운동의 걷과라고 부언하였다 그리고 힘도 역시 불변의 수학적 법칙윤 만족한다고 실명하였다. 물 리적 세계가 단지 운동하는 물질로만 구성되었다면, 맛 • 냄새 • 색 깔 • 옵 질 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서 데카르트는 오래된 그리 스 철학자인 데 모크리 두스 Democrit us 의 일차와 이 차적 인 성 질에 ~ 한 설운 받아들였다. 일차적인 성질인 물체와 운동 동은 물리적 세계에 존재하고, 이차적인 성질들인 맛 • 냄새 • 색깔 • 따뜻함이나 소리의 아름 다움과 거침은 일차적인 성질들이 인간의 감각 기관에 일으키는 결과일 문인데, 이는 외부의 원자가 이들 기관에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 실세 계는 공간과 시간에서의 물체들의 수학적으로 표현 가능한 운동의 총체 이며, 전 우주는 아주 거대하고 조화있게 수학적으로 찰 설계된 기계오) 도 같다고 생각했다. 과학이나 실제로 질서나 계량적 관계를 추구하는 어떤 학문도 수학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신 지도의 규칙〉〉의 네 번째 규칙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질서나 계량적 관계를 구하는 것이 목적인 모든 과학은 수학과 관계되어 있으. 며 , 이 갇온 계 량져 관계 가 수 • 형 태 • 멀 • 소리 또는 그밖의 다론 대 상에 있어 서 구해져야 하는가는 벌로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질서나 계량져 관계에 대 하여 알려쳐 있는 모든 것윤 설명할 수 있는 일반저인 과학이 촌재하여야만 한다. 죽 독정한 과학에의 저용을 독립져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일반적인 과학 이 있어야 하는데, 이 과학이 오태 동안 관용되어 오던 수학이라는 고유의 이 룹으로. 불리어야 한다 .... 그리고 수학이 그것에 의촌하는 가학의 유용성과 중 요성 을 연마나 능가하는가는, 수학이 다론 과학이 져 용되 는 모든 대 상문 아니 라 그밖의 많은 사물들을 포용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데카르트는 수학그자체에 새로운 전리로 공헌하지는 못했지만, 오늘 날해석기하학이라고 불리우는 아주 강력한 방법론윤 수학에 제공하였다
(5 장). 전문적인 입장으로 보아, 해석기하학은 수학적인 방법온에 일대 혁명을 가져왔다. 과학 분야에서도 역시 데카르트의 업적들은 코케르니쿠스, 케풀러, 뉴 -t_. 의 업적만큼 위대하고 중요하지는 않지만, 무시하고 넘어 갈 수는 없 다. 그의 소용문이 이론 (3 장)은 17 세기의 지배적인 우주론이었다. 그는 또 기재본적 철학을 창시하였는데, 이는영혼을제외한인체 물 포함하여 모 · 도 자연 현상은 역학의 법칙을 만족하는 입자의 운동으로 이해하는 철 학이있다. 또 고전역학에서 오눈날 운동에 관한 뉴돈의 제 l 법칙으로 알려진 관성의 법칙 을 발견하였다. 죽 , 정지하고 있는 물체에 아무 험 도 가해지지 않으면 그 물체는 정지한 채로 있고, 또 운동하고 있는 물 체에 아무 함도 가해지지 않으연 그 불체는 직선 위를 일정한 속도로 계 속하여 운동하게 된다. 광학, 특 히 렌즈의 고안은 데카르트의 또다른 주된 관십사였다. 실재 로 그의 《논문》의 부록이 었 던 《기 하학 》 의 일부분과 〈〈 굴절 광학 》 Di oJ , tr ic s 의 전부는 광학을 다 루었다. 그와 스넬 W ill ebrord Snell 은 둘 다 빛의 굴절에 관한 정확한 법칙을 발견하였는데, 이는 빛이 공기로부터 유리 나 물 등으로 들어갈 메와 같이, 매체가 갑작스럽게 변할 메 빛의 겅로 는 어 멍 게 달라지 는가를 보인 것 이 다. 그리 스인들이 광학의 수학화를 시작하였지만, 데카르트는 광학을 수학적인 과학으로 확립시컸다. 그는 도한 지질학 • 기상학 • 식물학 • 해부학 (r·- 히 동물의 해부) • 동물학 • 십리 학 • 의학 둥에서 중요한 기여 를 하였다. 비록 데카르트의 철학과 과학의 학선 들 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중세 스콜라 철학을 뒤엎은 것이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관정에서 그논 스콜 라 철학자였다. 즉, .::z..는 자연의 실존과 실체에 관한 명재를 그 자신의 정신으로부터 이끌어낸 것이다. 그는 선협적인 전리가 있다고 믿었고, 지성 그 자체의 힘에 의하여 만물에 관한 완전한 지식에 도달할 수 있 다고 믿었다. 그레서 그는 선협적인 추론을 근거로 하여 운동의 법칙들 을 설명하였다.(실제로 생물학과그밖의 분야에서 그는 실험윤 하였고, 그실험 으로부터 중요한 결론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자연현상을 순전히 물리학적 인 현상만으로 이해합으로써 신비주의와 초자연적인 것으로부터 과학을 크게 해방시켰다. 17 세 기 의 위 대 한 수학자의 한 사람인 파스칼 Blais e Pascal (1623-62) 온, 비록 그의 수학이 그의 철학만큼 영향력이 크지는 않았지만, 수학과
과학의 수학적 법칙이 전리라는 신념을 지지하였다. 직관은 정신에 의하 여 명 확히 받아들여 진다고 말한 데 카르트와는 달리 . 카스 칸은 직 관이 감 성에 의하여 받아 들 여진다고 말했 다. 진리는 감성 에 의하여 분명하고 T 럿하게 받아 들여 지돈가 또는 그같은 진리의 논리적 절과이어야만 한다는 것 이 다. 그의 《수상록》 Pen se e s 에 서 파스칸은 다음과 감 이 말랬 다 : 공간 ·시 간 · 운동 · 수와 간은 일차적 원리의 지식은 수론에 의하여 얻어진 우 리의 지식만큼 확신하다 . 사 실 우리의 감성과 본능으로 얻어전 지식은 이연 진 몬을 얻기 위한 우리의 추론의 기초로서 전요하다. 일사석 원리 · '.1 · 받아둘이기 전에 즉 이성에 의하여 받아둘여진 명재의 직관운 감성으로 맡아문이기 전에 인자처 원리의 층영웅 구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몽 수 있다. 파스칸에게는 과학이란 신의 세계에 관한 공부었 다. 단순히 준 기기 위하여 과학을 탐구하는 것은 잔못된 것 이다 . 즐 기기 위하여 한 다면 과 학의 주된 목표는 연구를 타락시키는데, 배웅에 대한 욕십 이나 지식에 대한 방당한 욕십을 유발하기 메문이타는 것 이다. “그러한 연구 태도 는 주위의 모든 자연 현상, 신의 촌재 및 신의 영광의 한가운데에서, 자 기 자신을- 연구되어야 할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사물의 중십 으로 보는선 험적 관십으로 부터 일어난다.” 근대 수학과 과학울 창시한 선구자 중 에는 갈릴레 이 Calic o Galil e i (1564 - 1642 ) 가 데카르트와 마 찬가 지로 평가되어진다. 그도 역시 자연이 신에 의하여 수학적으로 선계되어져 있다고 확신했다. 1610 년에 씌어진 《시 도자》 The Assay e r 에 는 다움과 7같 은 유명 한 전술이 있 다 : 천학[ 자연]이 우리의 눈 앞에 놓 여전 이 위대한 체 속 에 있다. -이 객이란 우주룹 뜻한다.- 그러나 먼저 거기 씌어진 언어 윤 매우지 않고 기호 문 과 악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 을 이해할 수 없 운 것이다. 그 객은 수학저인 언 어로 씌어져 있고 기호는 삼각형 ·원 또는 다론 도형 들 이다. 이 문 의 도웅없이 는 단 한 단어조차도 이해할 수 없고, 이 듄 없이는 우리는 어두운 미로에서 허 망하게 방황할 따 몸 이 다. 자연은 단순하고 질서가 있으며 자연의 움직임은 규칙적이고 팔연적이 기도 하다. 자연은 완전하고 불변인 수학적 법칙에 의하여 운영된다. 신의 이성은 자연에서의 합리성의 원천이 된다. 신은 업정한 수학적 뭘 연성울 이 세계에 부여하였는데, 비록 인간의 이성이 신의 이성과 관련
되어 있다 할지라도, 인간은 그 같은 원연성을 고생꾼에 알아멜 수밖에 l 없다. 그러므로 수학적 지식은 절대적인 전리일 뿐 아니라성서의 한 구 철과 마찬가지로 신성한 것이다. 더구나 자연에 대한 연구는 성깅의 연 구와 마찬가지로 겅건한 것이다. 신은 성서의 신성한 말에서보다 더욱T 훌융하게 자연의 행동 속에서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보여주신다.” 갈린레이는 그의 《위대한 세계의 체계에 관한 대화 》 ( 1632) 에서 수학을 · 동해서 인간은 신의 지성이 가지고 있는 지식에 버금가는 모 든 가능한 지식의 최정접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신의 지성은 인간 이 알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무한하고 거대한 만 콤의 수학직 전리·읍 가 지고 있지만, 객관적 확실성에 관하여는 인간이 알고 있는 약간의 진설 들은 신이 알고 있는 만큼 완전히 인간도 알고 있 는 것 이라 생각랬다. 갇릴레이는 수학 교수였고 궁정의 수학자였지만, 그의 주된 입적은 가 학적 방법론의 많은 혁신에 있었다. 그 중 특 히 주목할 만한 것은 아리 스토텐레스가 과학의 참된 목적으로 여겼던 물 리적 설명을 포기하고. 그 대신에 수학적 묘사 를 택하였다는 대 있다. 이 두 목표의 차이는 쉽게 예시할 수 있다. 지상으로 낙하하는 물체는 실재로 정정 속도가 커지면 서 떨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방법론을 추종한 중세의 과학자 들 온 낙하의 이유 를 역학적인 것으로 설명하려 노력하였다. 그러나 갈랄레 이는 단지 낙하현상을 현대의 기호로 d=4.7 t2 이라는수학적인 법칙으로 만 서술하였다. 여기에서 d 는 t초 동안의 낙하 거리 를 m 로 나타낸 수 이다. 물론 이 공식은 떨어지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고, 그 현상에 대 한 정확한 설명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갈탈레이는 우리 가 찾아야 하는 자연의 지 식 은 서 술적 (descrip tive ) 이 어 야 한다고 확신했 다. 그는 《두 개 의 새 로운 과학 》 Two New Sc ien ces 에 서 '다체 의 속도가 가속되는 원인은 연구의 팔수적인 부분은 아니다라 썼다. 더 일반적으` 로 그는 궁극적인 원인이 무엇인가를 고려치 않고 운동의 및 가지 성질 에 대하여 연구하고 증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발전적인 과학적 질문이 란 궁극적인 원인에 관한 의문과 분리되어쳐야 하며, 물리학적 원인에 대한 서색은 포기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갈릴레이는 과학자들에게 이 유를 생 각하기 보다는 수량화 (qu ant ify) 하여 야 한다고 했음직 하다. 갈밀레이의 프로그램의 이같은 접에 판한 첫째 반응은 오늘날에 있어 서와 마찬가지로 부정적이었다. 수식으로 현상을 서술하는 것은 첫 단 계보다 다 나아간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 • 과학의 진정한 기능은 실제로
왜 현상이 일어나는가 를 실 명하리는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에 의하여 잘 파악되어졌다고 보여진다 . 네카르트조차도 서술적인 수식을 추구하려던 갈릴레이의 생각을 배 척하고 있다 . 데카르트는 빈 공간에서 낙하하는 물체에 대하여 갇탈레이가말한 모든 것은 아무 근거 없는 이야기이다. 그는 우선 질량의 본성 윤 결정하여야만 한다”고 말하였다. 더우기 그는 강탈레 이는 궁극적인 이유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 러나 우리가 현재 알고 있 듯 이, 그 뒤의 계 속적 인 발전으로 보아 서 술적 인 목표를 가진 갈릴레이의 방식은 과학적인 방법 론 에 관하여 어느 누가 만든 것보다 가 장 심오하고 유효한 개혁을 가쳐 왔다 . 그 후에 더 욱 충실 하게 뚜렷해 진 그 중요성은 과학을 수학의 방패 아래 아주 똑바 로 놓았다는 것아다. 갈릴레이의 다 음 원칙은, 과학의 모든 분야가 수학윤 모델로 상아 이 루 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두가지 본질적 단계가 있다. 수학은 명백히 자명한 진리인 공리로부터 시작한다. 공리로부터 연역적 추론을 마라서 새로운 진리 들 이 형성된다 . 따라서 모돈 과학 분야에서도 공리 또는 원 리로부터 출발해 서 연역적인 추론울 하여야 한다. 더우기, 공리 로부터 가능한 한 많은 결과를 이끌어내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계최은 아리스 토텔레 스에 의하여 발전되었는데, 그도 역시 수학적인 모델을 유 념한 과학에 있어서의 연역적인 방법을 목표로노 삼았었다. 그러나 갈탈레이는 첫째 원칙을 얻는 방법에 있어서 그리스인, 중세 인이나 데카르트와는 급진적인 다른 생각을 가졌었다. 갈릴레이 이전의 학자 들 이나 데카르트는 정신이 근본 원리를 재공한다고 믿었다. 정신은 단지 여러 가지 현상에 대하여 생각하여야만 하고, 또 곧 근본 진리물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정신의 이러한 능력은 수학에서 분명한 증거물 보였다 . 같은 것에 같은 것을 더하면 같아진다는 공리나 두 정이 일직 선을 결정한다는 공리는 수나 도형에 관한 생각에서 곧 얻어지며 의십 할 바 없는 전리이다. 그리하여 그리스인들은 같은 정도로 공감이 가는 물리적인 원리를 찾아냈다. 우주에서 모든 물체는 자연의 위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제논 맞지 않는 말이다. 또 휴식 상태는 운동 상태보다 분명히 더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물체물 운동시키거나 운동 중에 있는 물체를 계속 운동시키려면 힘이 작용되어야 한다는 것도 의심한 바 없었다. 정산에 의하여 기본원리를 얻는다는 것은 이러한 원리를 구 하는 데 관찰의 도움을 받는 것을 배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관찰은
단지 옳은 원리들을 환기시켜 줄 따품인데, 이는 마치 낮익은 얼굴을 봅으로씨 그 사람에 관한 사실들을 정신이 상기해 내는 것과 같다 . 이같은 대학자들은 첫째로 갈릴레이가 한 것처럼, 세계가 어멍게 미 리 예정된 원리들에 마르는 기능을 수행하는가를 결정하였다. 갈릴레이 는 물리학에서는 수학과 반대로 첫째 원리들을 경험과 실험으로부터 얻 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정확하고도 근본적인 원리를 얻으려면 정신 이 원하는 것보다도 자연이 어 망개 보여주고 있는가에 더욱 관십을 가 져야 한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자연이 움직여야만 하는가에 대하여 그 둘이 가진 그롯된 선입견과 일치하는 법칙만을 받아들인 과학자둥과 철 학자둘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였다. 그는 자연이 인간의 두뇌를 멘처 -3 에 만돈 것이 아니며, 그 다 음에 인간의 지성에 잔 받아들여지도록- 세계가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고 말하였다. 아리스 도델레스 의 학설만을 만복하 여 공부하고 그가 말한 바만을 도론하던 중세의 학자들에게. 갇민례 이 는 지석은 관찰로부터 얻어지는 것이지 객 으로 부터 얻어지는 것은 아니 라고 미판하였다. 또 아리스도 델레 스에 내하여 토론하 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 이니이드 》 Ae11eid 나 《 오딧세이 》 Ody ss ey 나 교 과서 를 연구하는 것처럼 하는 것이 과학을 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을 종이 과학자(p a p er sc i en ti s ts)라고 불렀 다. “우리가 자연의 섭리 를 이해하면 권위는 사라전다'’고 그는 말했다. 물론 및 사람의 르네상스 시대의 사상가와 갈릴레이의 동시대인이었 던 메 이 컨 Francis Bacon 도 역 시 실험 이 팔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였 다. 갈릴레이의 새 방법의 이같은 북 정한 강령에 있어서 그 자신이 선도적 인 위치는 아니었다. 근대론자인 데카르트는 이처럼 실험에 의존하는 갇탈레이의 방식에 동조하지 않았다. 데카르트는 감각에 의하여 얻어진 사실은 단지 착각만을 얻울 분이며, 이성은 그러한 착각을 알 수 있다 고 이야기했다. 그는 정신으로 얻어지는 본래적인 일반적인 원리로부터 우리는 묵-정한 자연 현상운 연역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고 하였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실재로 데카르트의 대부분의 과학적 업적 에 있어서 그는 실험저인 방법에 입각했고 이론이 나타난 사실과 합치 . 원 것을 요구했으나, 그의 철학에 있어서는 그는 아직도 정신적인 진리 에 얽매어 있었다. 및 사람의 수리물리학자들은 이성만으로 정확한 물리적 원리를 얻을 수 없다는 갈릴레이의 생각에 동조하였다. 호이켄스 Chr i s ti an Hu yg ens 는
실재로 데카르트를 비판하였으며, 영국의 물리학 자 들 도 역시 순수 이상 주의 를 공박하였 다 . 후크 Robert Hooke (1 6 35-17 03) 는 런던의 왕립 학회 회 원들 이 단지 인간의 이성의 강항만을 믿었기 메문에 대 부분의 인간이 방황해야만 했던 찰못과 어리석 움을 지지르는 많은 숙명적인 깅 우 룹 훈 히 보 아왔기에, 이재 부터는 모 든 가정을 감성 에 의하여 수정해 나가기 시작했다”고 말하였다 . 물론 갈탄레이는 , 실험으로부타 잔못된 길과를 얻을 수 있으며, 또 그 로부터 잔못된 추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 그래서 ::i. 는 추론 의 걷과가 맞옵울 확인하기 위해 서나, 기본 원리들을 얻기 위해 서나, 실험을 할 것을 주장하고 또 실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재 로 갇런레 이가 얼 마만큼의 실험을 하였는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그 가 하였 다는 및 가지 실험 은 때 로 사고 (Gedanken, 영 어 의 th oug h ts ) 실험 둘 이라 고 불리어지는대 , 그것은 그가 반드시 일어날 것만을 실험해야만 한다고 생각했기 대문이다 . 그 망지만 , 물 리합적 원리가 반드시 실험과 깅힘에 입각한 것 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혁명적 이며 결정적이다. 갇탈레 이 자신은 우주를 만드는 데 신이 사용한 참된 원리 중 및 가지는 아직 도 정신 에 의하여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의십하지 않았으나, 실험의 역 할에 중접을 두는 길을 엷으로써 의문의 여지 를 받아 들 인 셉이다. 만약 과학의 기본 원리가 실험부터 얻어지는 것이라면, 왜 수학의 공리는 얻 을 수 없는 것인가? 이러한 의문은 1800 년까지도 갈릴레이와 그의 후 개자들에게는 문재가 되지 않았다. 수학은 아직도 목 권적인 위치 를 누 리고 있었던 것이다. 갈릴레 이의 주된 과학적 업적은 물체 와 운동에 집중되어 있다. 그는 데카르트와 독립적으로 뉴 돈 의 운동의 제 l 법칙으로 알려져 있는 관성 의 법칙을- 명백히 알고 있었다. 또 수직으로 상승하였다가 낙하하는 물 채 , 비 탈연에서 미 끌 어져내리는 물체. 포탄 둘 의 운동에 관한 법칙을 얻 는 데 성공 앴 다. 그는 포탄의 운동이 포물선을 그립을 보였다. 요컨대 . 그는 지상의 물체 의 운동의 멉칙을 얻은 것이다. 이 모든 발견들은 선행 자 들도 발견할수있었던 것이었지만, 어느누구도 갈릴레이만품 과학저 탐구의 길로 인도하는 개념과 원리블 명백히 하지 못했고, 어느 누구도 그 응용면에 서 그만큼 간단하고 효과적 인 방법 윤 보이 지 못했 다. 그의 시대에는 매우 급진적인 개혁이었던 갇탈레이의 철학과 과학의 . 방법론은 그가 죽은 해에 대어난 뉴돈의 업적의 서곡이 되었다.
3 과학의 수학화 임의의 무정한 이돈에서도, 수학이 둥어 있는 만큼의 실재 과학이 들어 있읍 문이다• ―칸트 Immanuel Knn•
과학의 수학적인 법칙들이 신의 우주 설계 속에 반영되어 있는 진리 라고 여기는 신념은 뉴몬 경 Sir Isaac New t on(1642-1727) 에 의하여 더 욱 강화되었다. 뉴돈은 캠브리지 대학교의 수학 교수였으며 위대한 수 학자로 인정받았는데, 물리학자로서는 더 높이 평가되고 있었다. 그의 업적은 수학의 여할을 증대시키고 심화시키는 과학의 새 시대와 새 방 법론을 열었다.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데카르트, 갈릴레이, 파스칼 둥의 업적은 사 실상 수학적 법칙에 따라 일어나는 자연 현상들을 설명한 것이었고, 그 둘은 모두 신이 우주를 그명게 선계했을 분만 아니라 인간의 수학적 사 고가 신의 설계와 일치되어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17 세기 에 널리 퍼져 있던 철학 또는 과학의 방법론은 데카르트에 의하여 형성 되고 전보하였다. 데카르트는 물리학의 모돈 것은 기하학으로 환원된다 고 밀했는데, 이 기하학이라는 말은 데카르트와 그 당시의 사람들이 수 학의 동의어로 흔히 사용하단 말이었다. 그러나 뉴몬 이전의 대부분의 사민들, 묵히 호이겐스가 채택했던 데카르트의 방법론은 자연 현상의 작 용의 물리학적 선명을 제공한다는 과학의 부가적인 기능을 요구했다.
물리학적 용어 를 써서 설명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는데, 그 들 의 주된 이 론은 모 돈 물질 이 흙 • 공기 • 물 • 불의 네 원소로 이 루어 져 있으며 , 이 둘 은 무거움 • 가벼웅 • 건조항 • 습항 중의 하나 또는 몇 가지의 성질을 가진다 고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성질 들은 물질 이 겉으로 보이는 것처 럼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한다 . 죽 불은 가법기 때문에 운 라가고, 흙 과 같은 물질은 무겁기 때문에 떨어진다. 이러한 성질둘 의에도 중세 철학 자들은, 쇠붙이와 자석과 같 이 다몬 물체 사이의 인 력을 설명하는 동갑 (sym p a th y ) 와 두 문체 사이 의 쳐 력 을 선 명 하는 반감 (anti pathy ) 등 많은 다 론 성질 물 을 첨가하였다 . 한편. 데카르트는 이러한 성질들을 모두 무시하고, 모든 물 리적 현상 은 물질과 운동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물질 의 본질적인 속 성은 크기 (exte ns io n ) 인데 그것은 측 정 가능하며 따라서 수학에 귀착컬 수 있다. 더우기, 물질 없이는 크기란 있 을 수 없다. 그러므로 진공이 라는 것은 분가능하다 . 공간은 물질 로 가득차 있다. 더구나 물질은 다 론 물질에 직접 닿읍으로써 작용한다. 그러나 물질은 , 작고 보이지 않으 며 크 기와 꼴과 여러 성질이 다 론 여러 가지 입자 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입자들은 너무 작아서 볼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이 관찰할 수 있는 보다 큰 현상들을 설명하 기 위해서는 그 입자 들 이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관한 가설들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접에서 공간 전체는 입자들 로 충만되 어 있는데, 이 입자 들 은 태양 둘레의 이갇온 입자의 큰 덩어 리인 행성들울 휩싸 면서 웅칙인다. 이것이 데카르트가 주장한 소용돌이 이론의 본질이다. 데 카르트는 기계 론 의 창시자이며, 이 이론을 계승한 사람 들 로는 철학 자이며 신부인 삐에르 가쌍디 Pie r re Gassendi (1592~1655), 영국의 철학자 홉스 Thomas Hobbes (1588-1679), 네 델란드의 수학자이 며 물리 학자인 호 이 겐스 Chri~ t i an Huy ge ns (1629-95) 가 있다. 그리 하여 호이 겐스는 그의 처서 《빛에 관한 연구》 Treati se on Li gh t (1690) 에서 공간은 빛의 운동을 전달해 주는 에데르 eth er 입자로 가득차 있다는 가정에 따라 빛에 의 한 여러 가지 현상을 설명하였다. 실제로 그 책의 부제는 반사와 굴철 이 생기는 이유에 관한 선명이라고 되어 있다. 호이겐스는 그 체의 서 문에서 그의 철학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람 들 은 모든 자연져 결과의 원인을 기계적 운동으로 상상해 낸다. 내 생각으로.는 우리는 마 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물리학에서 설명하던 모든 것에
대한 희망을 포기해야 한다.” 가쌍디는 한 관접에서만 견해가 달랐다 죽, 그는 원자가 진공 상내에서만 운동 한다 고 일었다. 미소한 입자 들 이 어 떻 게 움 직 이는가에 관 한 물 리칙 가 설둘 은 적어도 자연의 총재적 웅직임윤 내체적으로는 선 명 해 준 다. 그 러 나 그 것둘 은 정 신의 소산이다. 더우기 데카르 드 나 그 후 계자 들 의 물 리 학적 가설들 -은 질적 ( q uaI itati ve ) 인 것이었다. 그 들 이 실명할 수 있었 던 것 은 질적 인 것 이었기 때문이었으며, 그 둘 은 관 찰 과 실험 에 의하 여 무 잇 이 밝 혀질 것 인 가에 대하여는 정확히 예견하지 못 했 다. 라이 프 니 츠 Le i bn i z 는 이리한 물리학적 가선 들을 하나의 아 롭 다 운 로 멘 스 라 고 불렀 다. 갈란레이는 과학에 대하여 다 몬 철학적 견해봅 주장하 기 시 작했 다 . 가 학은 물 리학적 설 명 보다는 수 학적으 로 기 술 되도 록 수 구 해야 한 다. 다우 기 기 초 원리 들 은 실험과 실 험 에 의 한 귀납 적 절 과로부 터 유 도되어 야 만 한다. 바로우 Isa a c Barrow 의 제 자 로 서 스승 의 영 향 윤 받 은 fr 돈은 이 러 한 철학에 따라 물리적 가 선 대신에 수 합겨 전제 물 계덱함으로써 과학 의 진로 문 바꾸었으며, 질과적으로 매이컨이 요구하 였던 확 실 성 이 있 는 예언이 가 능해졌다. 더우기 이 전재 들 은 실험 과 관 갈로부터 추 론 되었다. 칼럼레이는 물 체의 낙하와 포탄의 궤도 를 다 움 에 있어서 뉴 돈 보다도 . 한 걸음 앞서 있었다. 뉴돈은 1650 년겅의 과학자 들 의 마 움을 가장 사로 잡고 있던 한 큰 문제에 도전하였다. 죽, 지상 운 동 에 대 한 칼 란데이의 . 법칙과 천체 운동에 대한 케플러의 법칙 사이에 어떤 관계 룹 세울 수 있 는가? 운동의 무등 현상 들 이 일련의 원리에 따라 일어난다는 생각은 상 · 당히 과장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17 세기의 신앙십 깊은 수학자들 에 게 는 아주 자연스럽 게 받아들여 졌 다. 신이 우주 를 설계 했으며 마라서 자연의 오돈 현상은 하나의 마스터 풀렌에 따라 일어 난다고 생 각되 어 졌 다. 우주를 설계한 신은 관련된 현상 들 을 지배하기 위하여 일련의 기초 원리를 사용해 왔음에 뮬립없다. 신의 자연 설계에 대한 탐구에 참여하 고 있는 17 세기의 수학자와 과학자물-에게 있어서는 지상 및 천계의 각 종의 운동들 믿어] 깔려 있는 동일성을 찾아야 한다는 것은 매우 당연한 생각이었다. 운동의 보편적 법칙을 제시하려는 계획을 실행하는 과정에 있어, 뉴튼 은 대수학, 기하학, 그리고 묵히 마적분학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6 장). 그러나 이것들은 단지 그의 과학적 목표를 위한 보조물이었다. 실제로 그는 본래의 수학이 란 무미전조하고 무익한 것으로서 단지 자연 법칙의 .,
실명을 위한 도구일 분 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지상과 천체의 운동에 고& . 한 이 론을 동일하게 킬 과학적 원리 들을 찾 는 일에 몰두하였 다. 디 드로 Denis Di de rot 가 말 했듯 이 , 뉴 튼은 다행 히 도 자연의 비 밀한 곳으로 들어 ! 갈 수 있었다. 물론 뉴튼은 갈란레 이가 세 운 원리에 대하여도 잔 알고 있었다. 그라 나 그 것들은 충 분히 많은 것을 망라하고 있지는 못했다 . 행성들이 대앙 으 로부 터의 인 력 에 따라 운동해 야 한다는 사설은 운동의 재 l 법칙으오 ` 부터 분명하다. 왜냐하면 아 무 힘도 작용하지 않는 다면 행성 들 은 직선 운동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뉴돈기 본겨적인 연구를 하기 이전에도 코 . 페 르니 쿠스 , 캐 칸러 , 유명 한 실 성 상 리 학자였 단 후크. Robert Hooke, 물 리 학자이며 아 름 있는 건축가였단 렌 Chris t o p h er Wren, 엔 리 Edmund Halley 동 의 많은 사람 들은 행성이 계속해서 대양으로부터의 인력 을 받는다는 도 생각 을 해 왔었 다. 또한 멀 리 있는 행성에 미치는 힘은 가까이 있는 행 성에 미치는 힘보다 작으며, 이 힘은 거 리의 재공의 증가에 이례하여 , 작아 진 다고 추측 되어 왔다. 그러나 뉴돈의 연구가 있기 전까지는 인력 : 에 관한 이러한 생각 둘 이 추축 의 법주 를 벗어나지 못했다. 뉴돈은 그의 시대의 사람 들 의 추축을 받아 들 였다. 즉, 거리가 1· 만큼 ` 떨어져 있고 질량이 각각 m,M0J_ 두 물체 사이의 인력 F 는 다음 식으` 로 주어진다는 것이다: F = G 프브r-- . 이 식에서 G 는 m,M,r 에 관계없는 상수이다. 이 때, 이 상수의 값은 질량 • 힘 • 거리에 사용된 단위에 의하여 결정된다. 그는 또한 갇탈레이 의 지상 운동의 법칙을 일반화하였다. 이 일반화는 오늘날 뉴돈의 세개 의 운동의 법칙으로 알려쳐 있다. 데카르트와 갇란레이가 이미 주장한 ` 바 있는 제 I 법칙은 ‘‘물체에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정지해 있는 물체 는 그대로 정지해 있고 운동 중에 있는 물체는 일정한 속력으로 직선을 • 따라 운동한다는 것이다. 제 2 법칙은 질량이 m 인 물체에 힘 F 를 가 하면 물체는 가속도 a 를 얻는대, 힘은 질량과 가속도를 곱한 값과 갇` 다는 것이다. 이것윤 기호로 나타내면 F=ma 가 된다• 제 3 법칙은 물 체 A 가 물체 B 에 힘 F 를 가하면 B 는 크기가 갇고 방향이 반대인 힘 ; 올 A 에 가한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법칙과 만유인력의 법칙으로부`
더 뉴돈은 지상의 물체의 운동을 연역해 내었다. 우주의 운동에 관한 뉴돈의 실로 위대한 업적은, 수년간의 관측과 시 행착오로부터 얻어진 케플러의 법칙이 만유인력의 법칙과 세 가지 운동 의 법칙의 수학적 결과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 그러므로 뉴돈의 연구 이전에는 지상 운동과는 관계 없는 것처럽 보이던 행성 운동의 법칙들 ·이 지상 운동의 법칙을 유도해 내는 것과 같은 기초 원리에 의하여 유 도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런 관접에서 뉴돈은 행성 운동의 법칙을 설명하였다. 더우기 만유인력의 법칙으로부터 유도되는 케플러의 법 칙들이 관측과 일치한다는 것은 만유인력의 법칙이 완전하다는 훙풍한 증거가된다. 운동의 법칙들과 만유인력의 법칙으로부터 추론된 앞서 말한 것들은. 단지 뉴든이 무엇을 성취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견본에 불과하다. 그는 그때 까지 아무도 이 해 하지 못했 던 현상인 밀물과 씰물에 관하여 만유인 력의 법칙을 적용하여 설명하였다 . 이 현상은 거대한 양인 바닷물에 미 치는 달에 의한 인력과 그보다는 작은 대양에 의한 인력에 기인한다. 달에 의한 만조에 대한 자료로부터 뉴돈은 달의 질량을 계산하였다. 뉴 돈과 호이 겐스는 지 구의 적 도 둘레 의 편도 (bul g e) 를 계 산하였 다. 뉴돈과 및및 과학자들은 혜성의 궤도가 만유인력의 법칙과 일치되어 있다는 것 ·올 설명하였다. 그리하여 해성도 또한 대양계의 합법적인 구성원으로 · 인식되었으며, 해성의 출현을 문발적인 사전이나 신의 분노에 의한 과 괴의 의도로 보내지는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그후 뉴돈은 지 구의 자전축이 항상 한 년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볼록한 져도 지역에 대한 달과 대양의 인력에 의하여 26,000 년울 주기로 한 원뿔을 . 그란다는 것을 선명하였다. 지구의 자전축의 이러한 주기적 변화 대문 에 춘분과 추분이 매년 시간적으로 조금 달라지는데, 이것은 1800 년 전 히 파르쿠스 Hi ppa rchus 에 의 해 이 미 관측된 것 이 다. 이 와 갇이 뉴돈은 세차운동에 대하여도 선명하였다 . 뉴돈은 근사계 산법 을 사용함으로써 마침 내 달의 운동에 관련되 는 많 은문제둘을 해결하기에 이르렀다. 예를 들면, 지구가 웅직이고 있논 평 면에 대하여 달이 움직이고 있논 평면이 다소 기울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현상이 중력의 법칙에 마론 대양 • 지구 • 달 사이의 상호작 용에 기인한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 뉴돈과 그의 후계자들은 행 성 ·혜성 • 달· 바다의 운동에 대하여 이와 갇이 중요한 많은 결과를 연
역하여 얻었으며, 그 후 200 년간 그 들 의 업 적은 세계의 체계의 해석' : 으로 평가되었다. 이 모 든 업적에 있어서 뉴 튼은 물 리적 설명 대신 수학적인 표현을 추 · 구하고자 하는 칼랄레 이의 재안 을 채택하였다. 뉴튼은 'f l] 절- 러, 갈릴레 이, 호 이겐스의 방대한 실험적 이고 도 이 론적인 전과들을 동 일하였울 문 만 아니라 수학적'' 표현과 연역법을 과학적 설명과 예 축 의 최선봉으로 세워 놓은 것이 다. 꼭 둥 어 맞는 재 목 인 그의 처서 《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M ath emati ca l Pri11 c iple s of Natu ral Phil o so p hy (1 687 ) (약칭 〈( 프린키 피 아 》 )의 서 문 에서 그는 이 탕개 말하고 있다: 고대인읍 (카푸 스가 말 한 바 에 따 르 면 ) 은 자연의 연 구에 있어시 여학운가장중 요 한 것으로 여 겼 고, 본진저인 형체나 신미 스러운 성진듄운 거부 하는현 대인들 은 자연 선 상윤 수학저 법칙에 종속 시 키 려고 노력해 왔기 매문에, 나는 이 논 문 에 서 건 학 [ 과학 ] 과 관련되어 있는 한도까지 수학을- 개치해 나갔다 .••• 그 리 하여 나는 이 연구릉 칠학의 수학적 원리로 제시한다 . 왜냐 하면 이 연구는 운동 권상으로부더 자연의 힘운 연구하는 데 천학의 모 든 문 재가 이 책 안에 다 루어진 것 으 로 보 이기 메 문 이다. 그란 목적으로 재 1 권. 2 권에 들 어 있는 일 만지인 영재·홍윤 이 꾼어 내었다 .••• 그리고 이 힘들로부 터 여시 수학적인 다론 · 명재 · 뜹윤 씨서, 나는 행성 • 해 성 • 말 그리고 바다의 운동운 연여해 내었다. 수학은 확설히 주된 역할을 하게 되어 있었다. 뉴 돈 이 물리학적인 설명에 반대되는 양저인 수학적 법칙을 강조하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천체역학의 중십 개념인 중 력의 작용이 물 리학적 용어들로는 설명원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수백 만 마일이나 빈 공간을 사이에 두고 서로 떨어쳐 있는 두 질량체 사이에 작용한다는 만유인력의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 학파나 중세 철학자둘이 과학적 현상운 선명하기 위하여 고안해 낸 많은 성질들만큼이나 믿을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개념은, 역학적 설명을 고집하며 힘윤 한 물체가 다른 물체를 ‘‘인다”는 정에서 두 물체의 정축의 효과로 보는 동시대의 사람들로부터 묵 히 반갑을 샀다. 수학적 묘사의 편에 서서 물 리학적 수법을 포기한다는 것은 가장 위대한 과학자들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다. 빈 공간을 사이에 두고서는 어떠한 힘의 작용도 있을 수 없다 · 는 생각 때문에 호이겐스는 만유인력의 개념을 불합리하다고 생각하 였다. 만유인력의 수학적 원리 외의 아무 기초도 없이 수많은 힘돈 계
산을 해내기 위하여 뉴 돈 은 · 애 를 먹었 을 것이라고 호이겐스는 놀 라움을 금치 못했다. 라이프니츠 룹 포함한 다론 많 은 사람들도 인 력 에 대한 순 수수학적인 설명을 거부하였다. 뉴 돈 의 《 프린키키아 》 Pr i ,zc ipi a 룹 읽은 뒤인 1690 년에 라이프니츠는 그것 을 이판하기 시작하여 죽 는 날까 지도 계속했다. 1727 년 뉴 돈 의 장례식에서 돌 아 온 볼데르 Vo l tai re 는, 뉴튼은 런던에는 진공 을 남겼고, 데 카르트 의 철학 이 여전히 지배적인 프랑스에 서는 물 질이 충만한 공간을 찾았 다고 말했 다. “걱리된 물재 사이의 작 용을 설명하고자 하는 노력은 1900 년 대까지도 계속되었다. 그러나 뉴돈의 놀 라운 공적은 물리학적 이 해가 전혀 없는 데 에서조차 수학쳐 표현에 의존하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이다. 뉴 돈 은 물 리학 적 설명 대신 인력의 작용에 대한 양적인 공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대단히 중요하고 유용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 프란키키아 》 의 서두 를 다음과 갇이 시작하고 있다. ”이 책은 이 둘 힘에 대한 물리적 원 인과 소 재 를 고려하지 않고 단지 수학적 개념 을 수 기 위하여 쓰어졌기 때문이 다.’' 그리고 그는 책의 꾼까지 다 음 과 감 이 그의 견해룹 반복해서 기 록 하였다: 그리나 우리의 목져온 현상문로부터 이 힘의 크기와 성 질옹 규 명 하는 것과, 또 단순한 경우로부터 발견한 것 들 에 수학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이 것들 로부터 더 복잡한 경우에 있어서의 전과물- 예 측할 수 있는 원리로 적용하는 것 분이다. 、 .. 어떤 가설로써도 이해하거나 전정할 수 없는 이 힘의 본질이나 목 성에 관 한 의문들을 피하기 위하여 우리는 수학적 방법 〔뉴돈은 이 술어문이덴럭으로 나타냈다]으로 이 재윤 서순랬다. 1692 년 2 월 25 일에 맨 을 리 신부 Reverend Dr. Ri ch ard Bentl e y 에 게 보 낸 편지에서 뉴몬은· 다음과 같이 썼다: 만유인력이 물체에게 본래적 • 고유저 • 본질저인 것이어서, 한 물체가 전공을 동하여 떨어진 거리에 있는 다론 물체에 작용하는 데 있어, 한 물체로부터 다 론 물체로 옮겨 주는 아무런 매개체도 없이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은 대만히 불 합리하다고 생각되는데, 그것은 철학적인 문재에 있어서 충분한 사고의 능력을 가진 사람은 철대로 그런 생각을 할 수 없다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만유인력 이란 어떤 법칙에 따라서 일정하계 작용하는 어떤 요인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 이 릅립 없는데, 이 요인이 물질져인 것인지 미-물질저인 것인지에 대하여는 독 자의 생각에 맡겨 두기로 한다.
뉴돈이 수학적으로는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은 물리학적 메 카니즘의 결여 때문에 계속 골치를 않아 왔으며, 이것을 보완하려는 노 력 들은 무위 에 그치 고 말았다. 버 클 리 주교 Bis h op George Berkeley 는 그 의 대화집 《 알시프 론 》 Al c ip hro11 ( 1 732) 에서 이 접을지적하고 있다: 유프라노 : 알시프론 , 용어에 대하여 재미있어 하지 말기윤 간청하네. 입이라 는 망어만을 생각하고 다은 생각은 모 두 지워 버탄 때 자네가 힘 에 대해 갖 게 되는 바로 그 아이디어는 무엇인지 말해 보게. 알시프론 : 협 이라는 것은 군 2I1 안에 있는 것으로 운동 이나 다은 감각적 인 효 과문 만등어 내는 것이다. 유프라노 : 그러면 그 효과와 다론 무엇이라는 말 인가? 안시프온 : 그멍 다네. 유프라노 : 힘의 원인이나 효과는 생각하지 말고, 힘운 그 자체의 아이디어대 로 찰 생각해 파 . r겠나 ? 안시프은 : 그것은 긴코 수 1 운 일 이 아님 윤 고백하네. 유프라노 : 자 네도 나도 개념의 윤곽운 잡을 수 없는 듯하고, 또 자네 말대로 모 돈 사람의 생각 이나 능력 이 빈 차 이가 없으니, 다론사람문도 우리보다 나 은 아이디어 를 갖고 있지 못할 걸세. 뉴돈은 만유인력의 본성이 연구되고 매웅 수 있게 되기 를 기대랬었 다. 뉴 돈 의 기대나 많은 사람 들 의 확신과는 달리, 아무도 인릭이 어떻 개 작용하는지 선영하지 못했으며, 그 험의 물리저 실체는 전혀 입증되 겨 않았다. 그것은 힘을 유효하게 쓰는 인간의 능릭에 의하여 제안된 과학적인 허구이다. 그러나 양적인 법칙으로부터의 수학적 추론은 대단 히 효과적이어서 이러한 접근 방식은 자연과학에 있어서의 팔수불가결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져 오고 있다. 그리하여 과학에 있어서는 수학적 표현이나 수학적 예측을 위한 물리적인 이해가 회생되어져 왔다. 혼히 17 세기의 업적은 수리물리학자들이 세계를 하나의 기계처럼 작 동하는 것으로 보는 역학적 세계관을 세웠다고 하는 말로 요약된다. 역 학적이라고 하는 말이, 입자들이나 큰 물체들에 작용하는 무거웅 • 가벼 웅 • 동감 (s y m p a t h y) 등과 같이 이 미 알려 진 바와 같은 힘 에 의 한 운동을 설명하는 것을 뜻한다연, 아리스도덴레스나 중세 과학자들의 물리학도 물론 역학적이었다. 그러나 17 세기의 사람들. 북-히 데카르트 학파의 사 람들은 그 아전 사람들이 운동, 물질에 제한된 힘, 물체를 던지기 위하 여는 무게 또는 힘이 팔요하다는 명백한 사실 둥을 선명하기 위하여 가
정 했 던 성 질의 다중성 (mul tip l i c ity)을 부인 했 다. 혹 자 는 뉴 몬 이 전의 묻 리학을- 물질물리학이라 부 문 수도 있겠다. 수학은 묘사 할 수는 있었지 만 근본적인 것은 아니었다. 물체의 움직임을 묘사하기 위하여 수 학 을 도입 했 다는 것 이 뉴 돈 의 역 학과 그 이전의 역학과의 본질적인 차이는 아니다 . 수학 이 물 리 학 에 준 도움은 편리하고, 보다 간결하고, 보다 명백 하 고 , 보다 일반 적 인 언어 라는 면에시분 아니라, 기 초 개념 을 재공해 준다는 데 있 었 다. 만 유 인 력이라는 것은 수학적 기호의 이 몸 에 불 과 할 뿐 이다. 뉴 돈 의 운동 의 재 2 법칙 (F=ma 죽 협은 질량과 가속도의 곱 으로 표 시된다는 것)에서와 마 찬가 지로, 힘은 질량에 가속도 를 주는 것을 가리키는 것일 문 이다. 험 자재 의 본성은 꿉- 리학적으로 알아내기가 함-들 것이다. 그러므 로 뉴문 은 구 십력이나 원십력의 매카니즘에 대해서는 몰랐 지만 이 함듄 에 관 하여 이 야기하고 또 사용하였다. 뉴돈의 역학에 있어서의 질량이라는 개념조차도 허구일 분 이다. 과연 질량이란 물질이며 물질이란 사뮤엘 촌슨이 문 을 발 로 참으로써 층명 한 바와 같이 실재하는 것이다 . 그러나 뉴 돈 의 생각에 있어서는 질 량 의 원초적인 성질은 관성인데, 이것은 뉴돈의 운 동 의 재 1 법칙에 나타나 듯이, 아무 힘을 받지 않았을 메 정지해 있던 물 체는 그대로 정지해 있 고, 움직이던 물체는 둥속으로 직선을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다. 왜 직 선을 마라야 하는가? 왜 원이 욀 수는 없는가? 사실 갈릴레이는 관성 운동을 원운동으로 믿고 있었다. 또 왜 둥속으로 운동해야만 되는가? 힘이 가해지지 않았을 때 왜 정지하거나 등가 속 도 운동을 하지는 않는 · 가? 관성이라는 성질은 가상의 개념이지 실험으로 얻어진 것은 아니 다. 질량이라는 것은 힘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뉴돈의 운동 법칙 둘 중에서 문리적으로 실재하는 요소는 가속도분이다. 우리는 물체의 가 속도를 관찰하고 측정할 수 있다. 뉴돈은 마지 못해 물리적인 설명을 포기하기는 하였지만, 수학적인 개념들, 그들의 양적 공식화, 그리고 얻어진 공석들로부터의 수학적 연 역운 받아둘임으로써 17 세기 물리학의 전모를 새롭- 게 하였다.* 뉴돈의 위대한 언적에 의하여 온 인류는 새로운 세계의 질서를 알게 되었다. 죽, 우주는 수학적으로만 표현 가능한 일련의 보편적인 물리학적 원리
* 뉴분은 《 광학 》 O p l i ck s 에서 문리지 선명운 하었다· 그러나, 그 선밍듄은 빛의 움직입어 k 관한 전모윤 선명하는 대는 부져당하있다.
에 마라서 움직인다는 것이다. 문 이 밀어지는 것이나 대양의 조류 · , 행성 과 .:z. 위성들의 운동, 갑작스런 해성의 ·츈물, 찬란하고 장엄한 천구의 움직임을 지매하는 웅대한 스킴아 여기에 있다. 이같 은 뉴튼의 스컴에 따르면, 자연계는 수학적으로 선계되어졌고 진정한 자연 법칙은 수학적 이라는 확신이 더욱 확고하여진다. 뉴돈의 저서 《프린키피 아 》는 물리적 설명의 묘미가 된 것이다 . 라준라스는, 세계는 하나뿐인데 뉴돈은그 법 칙들윤 찾는 대 성공했으니 가장 행운인 샘 이라고 말했다 . 18 세기 에 들어 와서도 위대한 과학자들이었던 수학자들은 뉴튼의 생 각을 .:z.대 로 따 랐다. 1788 년에 라그랑즈 Lag r ang e 가 발표한 《해 석 역 학》 A11alyt ica l lvlecha11ic s 은 뉴돈의 수학적 인 접 근법 의 으뜸가는 본보기 로 간 주된다 . 이 체에서는 역학이 완전히 수학적으로 취급되고 있으며, 물리 적인 과정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사실 라그랑즈는 물리적 인 과정이 나 또는 기하학적인 도해조차도 밀요없다고 장담하였다. 물리학의 새로 운 분야인 유체역학 • 단성 • 전기 • 자기 둥이 연구됨에 따라, 이들에게 도 역학과 천문학에 사용되었던 뉴돈의 방법이 채덱되었다. 양적, 수학 적 방법은 과학에 있어서 팔수 요소가 되었으며, 진리는 수학 안에서 가 장 안전하게 존재할 수 있었다. 격 동의 17 세 기 에 사람들은 수학적 표현의 도움으로 연구하게 되 는 질 적(q ual it a ti ve) 인 세계룹 발견하였고, 물 리적인 세계의 구체성 대신에 수 학적 공식들로 대신하개 되는 수학적, 양적 세계를 후 대에 물려 주었 다. 그것은 오늘날 번영하고 있는 자연의 수학화의 시작이었다. 진스 겅 Sir Jam es Jea ns 은 그의 저 서 《산 미 한 우주》 The M yst e rio u s Univ e rse (1930) 에서 “우주의 위대한 건축가는 순수한 수학자임이 드러나고 있다 고 말했는데, 그는 적어도 200 년은 시대에 뒤떨어진 이야기 를 하고 있 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뉴돈 자신이 물리적 선명의 뒷받침 없이 오 직 수학의 공식에만 의촌하는데 불안해앴읍에도 불구하고, .:z.는 자연철 학(물리과학)에 대한 그의 수학적 원리들을 주장하였을 분만 아니라, 그 것들이 그가 묘사한 현상들을 바르게 설명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 다. 어디서 그런 확신이 온 것일까? 그것은 그 시대의 모든 수학자나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뉴돈도 신이 수학적 원리에 따라서 새계를 설계 했다고 믿었기 때문이 었다. 뉴돈은 .:z.의 저서 《광학》 Op tick s (1704) 에서 우주의 설계자로서의 신의 존재에 대한 고전적인 논거를 다음과 갈이
웅변으로 말하고 있다: 자연철학에서 주로 하는 일이란 가선을 꾸며대지 않고 현상 들 운 논하며, 전과 들로부터 분명히 역학적이 아닌 최조의 원인에 도달해 나갈 때까지 추 론윤 해 나가는 것이다 .••• 물질이 거의 없는 공간에는 무엇이 있으며, 어찌해서 대 양과 행성들은 그들- 사이에 조밀한 물 질이 가 득 차 있지도 않은대 서로 인력 울 주고 받는 것인가? 어짜해서 자연은 우위한 인을 하지 않으며, 우리가 보 는 이 세상의 모든 질서와 아 몹 다움은 어디서 오는 것인까? 해성이 가 닿는 끝은 어디이며, 왜 행성들은 모두 동십궤도 융 그리고 둔여, 왜 항 성 들 은 개 자 리운 지키고 있는 것일까? 동분의 신채는 어렇개 그영개도 많은 기능을 갖도 목 만들어져 있으며, 그 신체의 각 부분이 가진 역한은 무엇인가? 광학의 기 술 없이 눈이 만들어지며 소리에 대한 지식 없이 귀가 만 둘 어지겠는가? 어망 개 해서 몽은 생각한 바 대로 웅직이며, 동물의 본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 그리고 이런 일들이 신속 정확히 이루어지는 것윤 봅 때, 무한한 공간 안 에시 마치 우주가 그의 감각기관 안에 있는 것처럽 모든 사물 자체윤 아수 가 까이에서 보고 그것들을 완전히 인식하며 한 눈에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엉 척이며 살아 있으며 지적이고 또한 편재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가?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의 제 3 판에서 뉴돈은 자신의 물음에 스스 로 답하고 있다: 태양·행성 ·혜성 들 이 이문 가장 아 -뮤 다운 세계는 오직 지적이고 능력있는 신 의 계외과 뭉치하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었다 .••• 이 신은 우주의 영혼으로서 가 아니라 오돈 것의 주인으로서 만불운 다스리고 있다. 뉴돈은 또한 신은 능숙한 수학자이 며 물리 학자라고 확신했 다. 그 자신 '.16 92 년 12 월 10 일 벤를리 신부 Reverend Ri ch ard Bentl e y 에 게 보 낸 굴에 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대양계을 이 모돈 운동과 합께 만듈기 위해서는, 태양과 행성둘 윤 이루는 물질의 양과 거기에서부터 유래되는 인력들을 이해하고 서로 미교하 는 근거가 팔요했다. 대양으로부터 행성들까지의 거리, 토성 • 목성 • 지구로부 터 그들의 위성까지의 거리, 행성이나 위성둘이 공전운 할 수 있는 속도, 그 리고 수많은 변화무쌍한 물체듄율 비교하고 조정하는 일들은 이 근거가 맹묵 저이거나 우연이 아니며 역학과 기하학에 아주 능숙합운 말해주고 있다. 과학은 신의 영광스러운 설계를 드
은 벤물리에게 보낸 위의 편지 서두에서 다음과 갇이 나타내고 있다: 내가 우리의 대양계에 대한 나의 논문[자연 철학 의 수학적 원리]을 집팔 할 매, 깊이 생각하는 사람에게 신에 대한 믿음을 갖도록 해 주는 원리 들을 보는 안목이 나에게 있었다. 그리고 나의 안목이 이러한 목적을 항하여 유용하다는 것을 알았울 메보다 더 줄거 운 저이 없었다.’' 뉴돈 의 서신 중에는 이와 같은 편지가 많이 있다. 뉴돈의 종교적 관심은 그의 수학적 과학적 입적의 전정한 동기가 되 었다. 그는 무엇보다도 기독교의 모든 교리는 신으로부터의 계시라고 믿 었다. 산은 모든 자연의 힘과 현촌하고 발생하는 모돈 것들의 근원아었 다· 모든 현상들 가운데에 산의 계회 • 인도 • 조정이 나타나고 있었다. 젊은 시절부터 뉴돈은 종교 서적들을 미판적으로 연구하고 해석했으며, 만년에는 전적으로 신학에 몰두하였다 . 그의 처서 《 다니엘의 예언과 요 한 묵시 록에 대 한 고찰〉 〉 Observati on s 011 th e Prop h ecie s of Danie l and th e Ap o ca l yp se of St . Jo/ 111 (1 733 년 출간)과 《수정 된 고대 왕조들의 연대 기 >T he ·Ch ronolog y of A11cie n t Ki ng d oms Amended (간행 되 지 않음) 가, 성 경 의 사건 둘의 연대룹 확정하기 위해 노력했던 수백 매의 원고지와 함께 전해지 고 있다. 올바론 과학의 연구는 신미칙이거나 초자연적인 힘을 배제해 야 하는 것이었지만, 당시에는 과학이란 일종의 신앙이었다. 뉴돈 자신 은 그의 업적들이 전눙하신 신의 손길을 드러 낸다는 것울 기뻐하였다. 그는 신앙의 기반 을 든돈히 하는 것이 과학적 • 수학적 성취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이런 것들이 자연계에 대한 신의 설계 만을 보여주는 데 국한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과학의 연구가 우주에 있는 신의 질서의 증거를 제공함으로써 종교를 뒷받침한 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렵고 때로는 따분한 과학의 연구를 정당화하기 도 하였다. 그것은 성경의 연구와도 같은 경건한 추구였다. 신의 지혜 는 우주의 구조 를 드러냄으로써 밝혀질 수 있었다. 신은 또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원인이었다. 그러므로 기적이란 우주의 일상 기능에 대하 여 신이 때때로 간섭하는 것이다. 시계를 만드는 사람이 시계를 수리하 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은 또한 찰못된 기능을 수정하기 위하여 때메로 간섭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신이 우주를 설계했으며 수학과 과학의 역할은 그 선계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는 신념은 라이프니츠 Go ttfri ed W ilhe lm Leib niz (1646-1716) 예 의하여 강화되었다. 데카르트와 마찬가지로 라이프니츠는 원래는 철
학자였으나 더 다재다능하였다. 수학 • 과학 • 역사 • 논 리 학 • 법률 • 의 교 • 신학에 대한 그의 공헌은 일 류급 이다. 뉴 돈처럼 라이프니즈도 과학 이란 과학자둡이 수행해야 하는 종교적 임무라고 생각했다. 1699 년 또 는 1700 년에 쓴 난짜 가 안 적힌 한 편지에서 그 는 다움과 같 이 말하고 있다; “전인 류 가 추구해야 할 주된 목표는 신 이 만든 겅 이 로운 세계 를 알고 그것을 발 전시키는 것 이며, 이 것이야말로 신이 인류에게 지 구의 동치권을- 준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그의 저 서 《 신의 론에 대 한 시 론 》 Es sa is de T 辰 od i cee (1 7 1 0) 에 서 , 신은 신중히 설 계된 세개운 창조한 지적 존재라는 당시의 일반적인 생 각 을 주장하고 있다. 이 세계와 신이 이 루는 동일성 이라 는 것은 실세계 와 수학적 새계의 조화에 대한 그의 선밍 이며, 실세게에 대한 수 학의 적 용 가능성 에 관한 그의 궁극 적 번호이 다. Cum De u s calculat, fit 1111111d11s (신이 계산하는 대로 이 세계는 만설· 어진다). 수학과 자연 사이에는 머리 세 위진 조화가 있다. 우주는 생각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완\석하며 , 가 능한 세계 중에서 가 장 최선의 것이며, 합 리 적 인 사고는 그 냅칙을 드 러나게 한다. 풀 라 돈 의 생각과는 반대로, 참된 지식이란 우미의 마움 속 에 다고 나 는 것이지 그보다 앞선 어떤 것에 의 한 것이 아니다. 신이 존재한다는 것이나 모든 직각은 같다는 것 과 같은 팔 요한 진리들은 갑각 에 의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수학의 공리 둘 은 역학· 광학 과 같은 연역적 과학의 근본 원리 등 과 같이 본래적인 전리이다. “그민대 그 들 과학에논 과연 사 물 에 대하여 느낄 만한 어떤 생각을 하기 위한 감각 이 매우 팔요하며 사실을 정립하기 위한 실험이 팔요하다 .••• 그러나 논증의 위력은 명료한 개념 들 과 전리에 의촌하는데, 이것 문 만으로도 우 리는 무엇이 팔요한지 인식할 수 있다.” 라이프니츠의 수학적 • 과학적 업적은 광법위하고 귀중한 것인데, 이 에 대해서는 뒤에서 더 다루기로 한다. 그러나 데카르드와 다소 미숫하 게, 그의 공헌은 기술적인 것이었다. 미적분학과 미분방정식에 대한 초 기의 그의 업져과 오늘날 운동 에너지라고 불리우는 것과 같은 새로운 개념 들의 중요성에 대한 그의 인식은 최고 수준급이다. 그러나 라이프 니츠는 자연의 새로운 기본 법칙에 대하여는 공헌한 바가 없다. 그러나 그의 과학철학은 수학의 역할이 기본적이라는 것이었으며, 인간의 전라 탐구에 박차를 가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미목 18 세기 사람둘이 수학과 수리과학울 광범위하게 확장 시키기는 랬지만, 수학과, 과학의 수학적 법칙둘이 전리라는 사실을 지식인들에 게 납득시키는 일에 관한 한 그들의 연구는 대체로 앞의 것의 반복이다. 베 르누이 Bernoulli 집 안의 제 임 스. Jam es (1665- 1 705) 와 촌 Joh n (1667-1748) 형제, 존의 아 둘 다니엘 Danie l (1700-82), 그리고 오일러 Leonhard Euler (1707- 8 3), 말랑메 르 Jea n Le Rond d'Alembcrt (1 717- 83), 라그랑즈 Jos ep h - Louis 냐g ran g e (1 736-18 1 3) , 라풀라스 Pi er re-S i m on Lap la ce (1 749 - 1827) 와 그밖의 많은 학자둘이 자연에 관한 수학적 연구를 계속하였다. 수학 그 자재에 관하여는 이 모든 사람들이 미적분학의 기술윤 계속 발전시컸으 며, 전혀 새로 운 분야 특히 상미분방정식 • 편마분방정식 • 미분기하학 • 변분학 • 무한급수 • 복소변수함수 둥을 개척하였다. 이것둘은 그 자체로. 서 전리로 받아 -동 여졌지만, 또한 자연에 관한 연구 를 위한 한충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 1741 년에 오일 러는 이 항 기 1 말겠다: 수학의 기초 분야 에 있어서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수학의 유용성은 고동수학에도 있을 분 만이 아니라 사실상 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더욱 커진다.” 이러한 수학적 노 릭 의 목표는 자연의 법칙을 더 많이 얻는 것이며. 자연의 설계를 더 깊이 동찰하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많은 강력하고 성공적인 질과들이 얻어졌다. 그 노력의 결과중가장 큰 것은 천문학에 있어서 뉴돈의 법칙들을- 한충 발전시켜 천재의 움직임을 묘사하고 예언 하는 것이었다. 행성의 궤도가 타원형이라는 뉴돈의 주요한 이론적 성 과는 그가 잔 알고 있었던 것처럼, 태양과 한 행성에 대해서만 옳은 것 이었다. 그러나 뉴본의 시대로부터 18 세기 전만에 걷처 6 개의 행성이 알려지게 되었는데, 이들은 서로 꾼어당기면서 태양으로부터의 인력을 받고 있다. 더우기 지구 • 목성 • 토성은 위성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타 원형의 궤도는 섭동되어 있다(p er t urbed). 정확한 궤도는 무엇인가? 18 세기의 대수학자들은 이 문재에 대하여 연구하였다. 이 문재의 핵십은 셰 개의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상호 인력의 효과에 관한 의문이다. 세째 물체에 작용하는 섭동의 효과룹 결정하는 절차룹 알 수 있다면, 이 절차는 네째, 다섯째, ••• 물체에 대한 섭동운 결정 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세 개의 물재의 운동에 대 한 일반적인 문제의 정확한 해답이 얻어지지 않고 있으며, 그 대신에 정정 더 근사한 절차가 고안되고 있다. 근사법을 사용한 것이기는 하지만 18 세기에 얻어진 결과는 팔목한 만
하다. 천문학에 있어서 수학적 연구의 정확성을 가장 국적으로 입증한 것 중의 하나는 클레 로 Alexis Claude-C l air a ut (17 13- 65) 가 멜리 해 성 이 문 · 아운 것에 대하여 예언한 것이었다. 이 혜성은 여러 사람에 의하여 관 축 되었으며 1682 년에 앤리 Halle y가 이 혜성의 궤도 를 구하려고 시도했 었다. 그는 그것이 1758 년에 물- 아오리라고 예언했었다. 1758 년 II 월 14 일, 푼례로는 카리 과학학 순원 의 회합에서 1759 년 4 월 중순 에 멘리 혜성이 네양에서 가장 가까운 지정으.로 돌 아웅 것이라고 발표하연서 30. 일 정도의 오차는 있을 수 있다고 말랬다. 그 혜성은 한 달 일찍 나타 났다. 혜성은 기껏해야 수일 동안밖에 관찰 할 수 없으며, 또 헨리 혜성 이 77 년 동안이나 보이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한 탄이라는 오자 는 대단한 것이 아니다. 천문학에 있 어 서 의 또다론 위 대 한 성 공은 라그랑즈와 라 꿉- 라스의 업 저이었다. 달과 행성둘의 운동에 있어서 여러 가지의 불규칙성아 관찰 되었는데, 이 불규칙성둘은 행성이 태양으로부더 정접 먼어지거나 또는 대양에 가까아 갈 수도 있음을 뜻할 수도 있다. 라그랑즈와 라 -강 타스는 목성과 토성을 관찰할 매 얻은 속도의 불규칙성은 주기적이어서 사신상 그 운동이 안정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1799 년부더 1825 년에 걷 처 5 권으로 나뉘 어 출간된 과학의 결작으로 꽝히 는 라 풀 라 스 의 저 서 . 《천체 역 학》 Celesti al Mechanic s 에 l8 세 기 의 업 적 이 담겨 져 있다. 실제 로 라플라스는 천문학에 전생 애 를 바쳤으며 , 그는 자신이 연구한 · 수학의 모든 분야블 천문학에 응용하려고 하였다. 그가 그의 저서들에서 수학적인 어려운 과정을 흔히 생략하면서 ” ... 인 것은 쉽게 알 수 있 다”고 한 것은 찰 알려진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의 욧정은 그가 자세한 · 수학적인 설명을 싫어했으며 그 응용운 전쳐시키려 했다는 데 있다. 그 . 가 이룩한 수학의 많은 기초적 업적은 그의 자연철학에 대한 우]대한 업 적의 부산물이며, 그 후에 다몬 사람들에 의해 발전되었다. 종종 입에 오르내리게 되는 해왕성의 발견에 관한이야기도매우극적 이다. 그 발견은 1846 년의 일이지만, l8 세기에 이록된 수학적 업적에 근거를 둔 것이었다. 1781 년 허앤 W illiam Herschel 이 고성능 망원경을 사용하여 천왕성을 발견하였다. 그러나천왕성온 예상된 궤도를 따라웅 칙이지 않았다. 또 하나의 미지의 행성이 있어서 천왕성의 운동을 교란 시키고 있다는 가설이 부바르 Alex i s Bouvard 에 의하여 제기되었다. 이 , 행성의 가능한 크기와 가능한 궤도에 대한 계산 및 관측을동하여 이 행;
성을 찾아내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다. 1845 년 캠브리지 대학의 26 세아 던 학생 애 덤 스 Joh n Couch Adams (1 819-92) 논 이 가상의 행 성 의 질 량 • 우 1 치 • 궤도를 매우 근사하게 계산해 넬 수 있었다. 그리니취 천문대장 이었던 유명한 에어리 겅 Sir George A i r y은 이 연구에 대한 소식을 듣 고도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독자적으로 이 l 담스 와 같은 걷과를 얻은 프랑스의 젊은 천문학자인 르브리에 Urbain ].]. Levcrr i er ( 1 8 11 -77) 는 이 행성의 위치를 찾는 일련의 지침을· 독일의 천문 학자 갈레 Joh ann Galle 에게 보냈다. 갈레는 이 소식을 1846 년 9 월 23 - 일에 받았는데, 바로 그 난 방 르브리에 가 예언한 방향에서 만 55 분의 각도만큼 떨어전 곳에서 해왕성을 발견하였다 . 이와 같은 눈 라운 예언. 실로 및 만분의 일이라는 정확도 플 가전 예언 을 가능케 한 천문학적 이 온의 진리성 을 누가 의십할 수 있으 -~1:? 천문학 의에도 광학은 이미 그리스 시대부터 다소간 수학적으로 다루 어 졌었 다. ,7 세기 초에 발명된 현미깅과 망원경은 광학에 관한 지대 한 관십을 불러 일으컸으며, 그리스 시대와 마 찬 가지로 17, 18 세기의 모 든 수학자 들 은 이 분야를 연구했다. 앞에서 말했듯이 17 세기에 스넬 과 데카르트는 몹레 미가 연구했지만 실패랬던 굴절의 법칙, 즉 빛이 공 기에서 물로 들 어갈 때와 감이 갑자기 매질이 바뀌었울 메 어떻게 움직 이는가에 대한 법칙을 발견하였다. 빛이 유한인 속도를 가진다는 것은 로이머 Olaus Roemer(1644-1710) 가 발견했고, 백색광은 빨강색에서 보라 · 색까지의 모돈 색이 합성된 것이라는 뉴몬의 발견에 따라 광학에 있어 서 의 수많은 부가적 인 관심 이 생 겨 났다. 뉴돈의 저서 《광학》 (1704) 은 이같은 발전에 십대한 영향을 주었고 현미겅과 망원경의 개량에 공헌하 였다. 수학은 이 분야에서도 주된 도구였다. 광학은 18 세기에 들어와서 컬처히 연구되었고, 오일러가 쓴 3 권으로 된 광학에 관한 책은 또하나 의 이정표였다. 빛의 물리학적 성질은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뉴튼은 빛을 입자 운동 이라고 생각했고, 호이겐스는 파동 운동――파동이라는 느낌은 거의 둘 지 않지만――이라고 말한 반면에, 오일러는 처음으로 빛의 전동을 수학 적으로 다루었으며 운동방정식을 유도해 냈다. 빛의 파동성에 대한 주장 을 함으로써 그는 홀로 뉴몬의 이론에 반대했으며, 그의 주장은 19 세 기 초 프레 스넬 Aug us ti n- Je a n Fresnel 과 영 Thomas Young 의 연구에 의 해 입증되었다. 그러나 그 때까지도 빛의 성질은 조금도 명백해지지 않았으-
며, 수학적 법칙들만이 대 들 보로 납 아 있 었 다 . 현재 널리 인정되고 있 는 빛의 이론인전자기 론 이 나오기 까 지는 50 년이나더 기다려야만 했 다. 18 세기 중에 몇 가지 새로운 연구 분 야 들 이 개척되었고 . 적어도 부분 척으로는 성공이 있었다. 그 중의 하나 는 음 악소리에 대한 수학 적 표현 과 분석이었다. 이에 관한 다 움 이 야 기 는 다 소 진 편이다. 바이 운 린의 현과 감 이 진 동 하는 현이 내는 소 리에 관한 연구 로 부 터 이 이야기 는 시 작된다 . 해석학의 분야에서 다니 엔 매르 누 이, 달 랑메 르 , 오일러, 라 그 랑즈는 각기 공 헌 한 바가 있지만. 어 떤 문재 에 관 하여는 날카몹 - 게 대립 되어 있었다. 19 세기 초 푸 리에 J ose p hFour i er ( 1768~1 83 0 ) 의 연구가 있 기까지 이 갇 온 대립이 계 속 되었 지 만, l8 세기에 수많은 발전 이 있 었 다. 모든 음악소리는 기음과 매 음(주파수가 기음 의 주카수 의 매수 인 음 ) 들로 구 성되어 있다는 현재의 지 식 은 18 세기 대 가 들 의 연 구 진 과로 확럽되었 다. 이 지식은 오 늘 날 전화 • 전 축 • 라디오 • 덴레미 전과 같은 모 든 음향 기기 선계의 기초가 된다. 수리 물 리학의 또 다른 분야 로 서, 유 체 ( 엑 체 또 는 기 체 ) 의 흐몸 이나 유 체 안에서의 물 체의 운동에 대한 연구는 적어도 18 세기에 비 못 되었다. 뉴 돈 은 물체가 어떤 모양 을- 가져야 유체 속 에서 전진 할 때 최소의 처항 을 얻 을 것인가 하는 문제 륜 이미 다 루 어 왔다. 아 분야의 시작이 되는 고전으로는 다니 엘 메 르누이 의 《 유체 역 학 》 Hy d rody n ami ca (1 738) 이 있 는데, 그는 이 저서에서 이 이론이 사람의 동맥과 정맥의 흐 몸을 설 명하 는 데 쓰일 수도 있다고 하였다. 그 후 에 오일러는 .:::z.의 기초적인 논문 (1755) 에서 압축시킬 수 있는 유체의 운동에 대한 방정식 을 유도해 내었 다. 그 논문에는 다음과 갇이 씌어 있다: 만일 유채의 운동에 관한 완전한 지식 윤 우리가 안아낸 수 없다면, 그 원인은 역학 때문도 아니고 또한 운동의 원리에 관한지식의 불 충분합 대문도 아니다. 유체의 운동에 관한 모든 이론이 해석학 적 공식 들 의 해 를 구하는 것으로 전환 되 어 왔기 대 문에 우리 들이 여 기 에 서 단념 하게 되 는 것 은 해 석 학 (math e mati ca l analys i s ) 그 자체 때 문이 다. 실제로, 오일러가 당면했던 유체이론보다 더 많은 내용이 약 70 년 후 에 첨가되어졌다. 오일러는 접성 (v i scos ity)을 무시했었다. (물은 갇 흐르 고 정성이 없는 반면에, 기름갇은 것은 천천히 흐르고 정성이 있다.) 그룬}에·도. 불구하고 현재 배나 비행기의 운동에 져용되는 유체역학의 이돈은 오일
러에 의해 세워졌다고 말할 수 있다. 18 세기 사람 들 이 이 세계는 수학적으로. 더구나 가장 효과적으로 설 계되었으며, 신은 실로 모든 자연 현상의 건설자라는 데에 대한 추가적 인 증거 를 찾으려 했다면, 그것은 또 다른 수학적 발견에서 이루어졌다. 헤론은 빛이 거 울 에 만사하여 정 P 에서 접 Q까지 갇 메에 가장 짧은 경로 를 동하여 간다는 것울 증명하였다 (I 장). 빛은 이런 상황에서는 일 정한 속도로 나아가기 메문에 최단 거리는 최단 시간을 뜻-하게 된다. I7 세기의 위대한 수학자의 하나인 캐르마 P i erre de Fermat (1601-65) 는 다소 재한된 증거에 근거를 둔 최소 시간의 원리를 주장했는데, 그 것은 빛이 한 지접에서 다른 지접으로 전파원 때는 항상 최소의 시간을 요하는 경로 를 덱한다는 것이었다. 신은 빛이 단순히 수학적 법칙을 따 르지 않고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되도록- 조정했음이 명백하다. 패르마는 스넬과 데카르트가 앞서 발견한 빛의 굴철의 법칙을 자신이 세운 원리 로부터 유도해 내는 데 성공했을 때, 이 원리의 정확성을 더욱더 확신 하게 되었다. 18 세기 초까지 수학자들은 자연이 어떤 중요한 양을 최대화 또는 최 소화하려는 사실의 및 가지 인상적인 예를 알고 있었다. 처음에 패르마 의 원리를 반대했던 호이겐스는 연속적으로 성질이 달라지는 매질 안에 써의 빛의 전과에도 그 원리가 성립한다는 것을 밝혔다. 운동 중의 물 체가 아무 험도 받지 않는다면 가장 짧은 경로인 칙선을 따라 움직인다 ·고 하는 뉴돈의 운동의 제 l 법칙도 자연의 경재성의 한 실례이다. 완전한 세계에 닝 · 미란 있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의 움직임은 그 목적운 이루기 위한 최소한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18 세기의 과학자듈 은 일반적인 원리를 갖기 위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원리들의 첫째 공석화는 모메르두 l Pi er re-Louis Moreau de Moup e rtu is (1698-1759) 의 시도에 의해 얻어졌는데, 본래 수학자이었던 그는 자오선상의 위도 1 도 ·의 건이룹 측량하기 위한 스칸디나비아 북부 라풀란드냐p land 지방의 담 험을 지휘했었다. 뉴돈과 호이겐스가 이론적 논증으로 결론지었던 지 구는 국지방에서는 편평하다”는 것을 그는 측량으로 밝혀냈다. 오메르 뒤 의 발견은 카씨 니 Jeo n-Domi n iq u e Cassin i 와 그의 아둘 쟈크 Jac q u es 의 반대 주장을 사라지 게 했 다. 모데 르두] 는 지 구를 납작하게 만든 사 람 〈 ear t h- fl a tt ener) 이 라는 칭 호를 받았으며 , 볼테 르가 말한 대 로 그는 지 구 오} 까씨 니 집 안을 납작하게 만들어 버 렸다.
1744 년 빛의 이론을 연구하는 동안에 모 데 르뒤는 ”이재까지 상반되 :. 는 것으로 보였던 서로 다론 자연 법칙 들 간의 조화라 는 제목의 논문 에서 그는 유명한 최소 작용의 원리 를 재안 하 였다. 모대르뛰는 패르 마의 원리 를 써서 연구하였지 만, ( 대카 르트 나 뉴돈 이 믿었단 대 로) 빛 의 속 도는 공기 중에서보다 물 속 에서 더 빠 르다거나. (페르 마가 일 었 던 대로) · 더 느리다거나 하는 당시의 논란을 본 그는 최소 시간이라 는 생각을 버 리고 그 대신 작용 (ac ti on ) 이라 는 개 넘 을 도입하였다. 모메르 뛰 는 말하 기 를 작용이란 질량· 속 도·운 동 거리의 곱 의 적분이 며 , 자연 에 서 일어 나는 모든 것은 이 작용을 가장 작게 하도 록 되어 있다고 했 다. 모 메 르 뒤의 이 론 은 다소 모호한 데가 있는데, 그것은 위 에서 말 한 질량 • 속 도 • 거리의 곱을 어느 시간 구간에서 취하느냐 를 명 백 히 하지 못 했 다는 것과. 그가 광학이나 다 론 역학적 문 제에 적용한 작용이라는 것의 의미 가 각각 다르게 부여되었다는 것이다. 그가 그의 원리 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및 가지 물 리 적 인 예 를 들 기는 하였지만, 그는 그것 을 역시 신학적인 아유로씨 주장하 였다. 물체 의 운 동 의 법칙은 신의 창조라고 말 할 만한완전성 을 가져야 랬 고, 최소 작 용 의 원리는 자연계가 경제적이라는 것 을 보여주기 메문에 이러한 기준을 만 족 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오 대 르두]는 그가 발 견 한 원리가 자연계의 보편적인 법칙이며, 신의 존재와 지해에 대한 최초 의 과 학 적 증명이라 고 주장하였다. 1740 년부터 1744 년 사이에 이 주제에 관하여 모 에 르 두 ]와 편 지 를 주 고 받았던 18 세기의 가장 위대한 수학자인 오일러는, 신이 이와 같은 기본 원리에 따라 우주 를 지어냈으며, 이 원리의 존재로 해서 신의 손 길이 더욱 확실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에 대하여 모메르두]와 의견의 일치 를 보았다 . 그는 다음 말로써 그의 확신을 표현하였다: “우주의 구조는 · 너무나도 완벽하며 가장 지혜로운 창조자의 작품이기 때문에, 최대 또 는 최소의 법칙이 나타나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자 않는다 . ” 오일러는 모데르뚜]보다 한 길음 더 나아가, 모든 자연 현상은 어떤 기능울 최대 또는 최소화하도록 움직이고 있으며. 그러므로 물리적인 기 본 원리둘은 최대 또는 최소화되는 기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신은 확실히 I6, I7 세기의 사람들이 알고 있었던 것보다 더 지 , 혜로운 수학자였다. 오일러는 그의 종교적 확신에 따라, 신이 인간에게·,
신의 법칙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인간의 능력을 사용하도록 하는 임무를 . 맡겼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자연이라는 책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으. 며, 그것은 첫눈에는 이해 할 수 없지만. 그러나 끈기와 사모하는 마음 과 고생과 연구 를 동 하여 이해 할 수 있는 언어로 씌어 있다. 그 언어는 ,. 바로 수학이다 . 이 세 계 는 있 출 수 있는 최선의 것이기 때문에. 그 법 칙 또한 아 음 다운 것임에 들 립없다. 최소 작용의 법칙은 라그랑 즈 에 의하여 더욱 명료해지고 일반화되었 다. 작용이 란 본질적으로 에너지 를 가리키는 것이 되었고 이 일반적안 . 원리에 마라 더 많은 역학적 문 제 들 의 해답을 얻어낼 수 있게 되었다. (아 원리는 오일러의 조보적인 연구 운 이용하여 라그랑즈가 세운 새로운 수학의 분야인 변분학의 핵심이다.) 이 원리는 영국의 제 2 의 뉴든이라 불리우- 던 해밀돈 W i ll i am R. Ham i l t on(1805 - 65) 에 의해서 더욱 일반화되었다. 이것은 오늘날 역학의 믿받침이 되는 가장 포괄적인 원리이며, 물리힉 의 다몬 분야에 있는 유사한 원리의 모범이 되었고, 변분 원리라 불리 · 운다. 그러나, 뒤에 보는 바와 같이 신이 우주의 설계에 있어 이 원리 로 조직하였다는 모에르두]와 오일러의 결론은 해밀돈의 시대에 와서는 2 -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것의 중요성에 대한 해석에 변화가 있 었을 것이라는 암시는 볼테르가 신의 촌재에 관한 이같은 논증을 조롱 一 한 처 서 《아카키 아 박사의 역 사》 Hi st o ry of Docto r Akakia 에 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18 세기의 사람들은 이와 같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원 리논 제계가 그것에 따르도록 신에 의해서 선계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 수 있다고 여전히 굳게 믿고 있었다. 18 세기의 위대한 지석인들은 확실한 말로써 수학의 군립운 단언하였 다 . 프랑스의 《백과전서》를 집팔하는 데 디드로 Denis Di de rot (1718-84) 의 주된 협 력자였던 유명한 수학자인 달랑베르가 말했듯이 세계의 참 · 된 체계는 인식되었고 개발되었으며 완벼해졌다.” 자연 법칙은 확실히· 수학적 법칙이었다. 더 유명한 것은 라플라스의 다음과 갇은 말이다: 우주의 현재 상태는 우주의 과거의 견과이며 미래에 대한 원인으로 생각할 수· · 있다. 자연에 생명력을 붕어 넣는 힘과 자연운 이무는 존재들 간의 상호 위치 문 어느 때에라도 알 수 있는 한 지식인이 분석을 위한 자료윤 재공한 만콤충 분히 방대한 지식운 가졌다면, 이 지식인은 이 큰 우주의 운동가 가장 가벼운 원자의 운동윤 하나의 공식에 축약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 하면 그 지석 '
' 인에게는 모든 것 이 망박겠을 것 이머, 미 대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바 로 눈 앞 에 있었 운 것이기 때문이다. 제 임 스 W illia m Jam es 는 그의 저 서 《 실용주의 >P rag m ati sm 에 서 당시 의 수학자들의 태도 를 다 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수학적 • 논리 적 • 자연적 군등성윤 보여주는 최초의 법칙들이 말건되었운 매, 사람들은 그 법치에서 얻어지는 명료합과 아 읍 다 웅-과 안순성에 도취된 나머지 자신 들 이 전능자의 영원한 생각을- 확산히 해독해 냈다고믿 어버 렀다 . 전능자의 생각이 논리져 전개 속에시 노]성윤 발하고 메아리 쳤 다. 그는 원문곡선 · 재꿈· 제곱근 • 비 례윤 생각했으며 유 클 리드처럼 기하학 을 하였다 . 그는 행성등 이 따 라야 한 케춘러의 법치옵 만들었고, 낙재의 속도는 시간에 미배 하 여 말라 지도 목 하였으며, 빛이 굴절할 때 따라야 할 사인 법칙을 만들어 냈다 .••• 그는 모든 것의 원형을 생각했으며 그것둥의 변 형운 고안랬다. 그리고 우리가 이 와 감은 눙말만한 재도 윤 중의 하 나 운 재맙견할 에, 우리는전능자의 생각운 바로 문자 그대로 그의 의도 로 카악한다. 자연계가 수학적으로 설계되었으며 신에 의하여 설계 되었다는 확 신은 지인들에 의하여서조차 죠현되 었는데, 예 를 들 면, 죠셉 에디슨J ose p h -Add i son 의 《찬송시》 Hy m11 에는 다 음과 같 이 나다나 있다: 푸르고 신미로운 모돈 하눈을 둘러 싼 저 높고 광판한 창고 눈부신 하늘, 빛 나는 우주는 그 위대한 원래의 모 순을 선포카는도다. 날마다 솟아오르는 지철 중 모르는 지 대양은 그의 창조주의 능력을 드러내며. 또 모든 땅에 알리도다. 전능한 손이 이루신 일운 하늘에 웅칙이는 모든 행 성 둘 이 그 운행 중에 소식듄윤 전하며 진리 문 망의 이 끝 에 서 저 꾼 까지 건파하도다. 18 세기 말에 이르렀을 매는, 수학은 마치 실체라는 대지 위에 굳전히 저고, 2000 년간 돈돈히 뿌리운 내리고, 웅장한 줄기를 가지고, 지식의 모든 다른 분야에 가지를 뻗은 나무와도 같았다. 이와 같은 나무는 참으 로 영원히 살아갈 것으로 보였다.
4 최초의 붕괴 : 전리에 대한 믿음의 사라잠 모든 시대에는 그 나 등 의 신화가 있고 그것 윤 보 다 높은 진리라 부른 다. ―상 명 19 세기의 시각은 희망적이었다. 이 매 라그랑즈는 아직도 활약 중이 i 었고, 라 플 라스는 그의 전성기에 있었다. 또 푸리에 (1768- 1 830) 는 그의 ' 고전 《연 에 관한 이 론》 Theory of Heat ( 18:i 2 ) 으로 완성 되 어 진 그.의 1807• 년의 원고에 연중하고 있었고, 가우스 Karl Frie d ric h Gauss (1777-1855) 는 . 정 수론의 이 정 표가 원 《산 술 논고 》 Di sq u is i t io11 es arith m ati ca e (영 어 Arith - meti ca l Di ss erta ti on s, 1801) 을 막 출 판하였고. 골 수학의 군주라는 칭 호몰 · 얻을 정도로 수 많은 공적을 이 무 게 된다. 가우스와 쌍벽을 이루는 프 랑스 수학자 코우수 l Aug u sti n -L o uis Cauchy (1789-1857) 는 1814 년의 논문 에서 그의 비상한 정신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들 수학자들의 업적에 대하여 및 마디 해 두는 것이 19 세기 초반 에 자연의 설계를 더 깊게 파해치는 데 이바지한 거대한 발전에 관한 약 · 간의 시사가 될 것이다. 비 록 - 가우스는 수학 그 자체에 빛나는 공헌을 하였지만(곧 우리는 이 공헌 중의 하나운 논하게 된다) 그는 대부분의 생애 룹 물리학의 연구에 바쳤다. 실재로 그는 수학 교수가 아니라 거의 50. 년간 괴팅겐에서 천문학 교수와 천문대 대장윤 지냈다. 그는 주로 천문 · 학을 연구하였는데, 천문학에 대한 고占심은 괴 탕겐에서의 1795-98 년 사 · 이의 학생 시철로 거슬러 운라간다. 1801 년에 그는 첫번째 수목할 만한 :
성 공을 거 두었다. 그 해 1 월 1 일에 피 아찌 Gi us ep pi Pi az zi (1746-1826) 는 소행성 시어리즈 Ceres 를 발견했다. 그 소행성은 겨우 및 주 동안만 관 측 가능했지만, 24 세에 불과했던 가우스는 관 측 에 새로운 수학 이론 을 응용하여 그행성의 진로 물- 예 측 하였다 . 그 소행성은 그 해 말에 가우스 가 예 측 했던 곳과 아주 가까운 곳 에서 관 측 되었다. I802 년 운버스 W i l 『 helm Olbers 가 또 다 몬 소행 성 펠 레 스 Palla s 을 발견 하였 을 메 가우 스 는 또 한번 성공적으로 그 진로 를 결정하였다. 천문학에 관한 이같은 초 기 . 의 모든 업적은 가우스의 주 저서 중의 하나인 《 천체의 운동에 관한 이 론 》 (1809) 에 요약되 었다. 가우스는 뒤 에 하노버 공 작의 요청 에 마라 하노버 의 측량윤 주 도하였 . 고, 축지 학 (scie n ce of ge odesy ) 을 창시 하였 으며 , 거 기 에 서 미 분기 하학의 씨앗이 되는 아이디어 를 얻었다 . 1830 년부더 1840 년까지 10 년 동 안 가 우스는 이론적이고 실험적인 자기 ( ma g ne ti sm ) 이론에 관한 물 리 연구에 서 큰 명성을 얻었다. 그는 지구의 자장을 측 정하는 방법을 창안겠 다. 전자기 이 론의 창시 자 백 스엔 Jam es Clerk Maxwell 은 그의 《 전기 와 자기 > .E lectr i c i t y a11d 1vf ag 11 et is111 에 서 , 가우스의 자기 이 론은 과학 전체 , 사용된 도구, 관측 방법, 길과의 계산을 재구성하였다고 말했다 . 지자기에 관한 가우스의 논문들은 물리 연구의 모델이 된다. 이 업적으로 인하여 자기 의 단위를 가우스라 부르게 되었다. 가우스와 베버 W ilh elm Weber(1804-91) 가 전신을 창안한 것은 아니지 만(이미 많은 시도가 있었다), I833 년에 그들은 전선을 흐르는 전류의 방 향에 따라 좌측 • 우측으로 회전하는 바늘을 가전 실용적 기구를 만들었 다. 이 것은 가우스의 발명 품 중 하나에 불과하다. 또한 그는 오일러 시 . 대 이후로 경시되어 온 광학에 인중하여, 1838-41 년의 그의 광학 연구 는 광학적 문제를 다루는 데 전적으로 새로운 기반을 세운 것이다. I9 세기의 수학에서 가우스와 같은 수준의 지도자 노릇을 한 사람은 코우수 1 일 것이다. 그도 또한 넓은 법위의 관십울 가졌다. 그는 수학에 서 700 편이 넘는 논문을 썼는데, 수져으로는 오일러 다음이었다. 그의 업적의 현대판은. 26 권의 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수학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그는 복소함수론의 창시 자였다 (7, 8 장). 그러 나 코우쉬 는 적어도 거의 같은 정도로 그의 정력을 물리학의 문제에 바쳤다. I8I5 년에 그는 물의 파동에 관한 논문으로 파리 과학 학술원의 상을 받았다 . . 그는 금속박과 같은 탄성막과 막대의 평형에 관한 것과 탄성매질에서의
파동에 관한 관한 기본적인 업적이 있으며, 그같은 분야의 수리물리학 의 창시 자 중의 하나이 다. .:::z..는 또 프레 스넬 Aug u sti n- Je a n Fresnel 이 재 기한 및의 파동의 이론에 십취하여 빛의 편광과 산란에 그 이론을 확장 하였다. 코우쉬는 뛰어난 수리문리학자였다. 비목 푸 리에는 가우스와 코우쉬에는 못 미치지만, 열전도라는 또하나 의 자연 현상윤 수학의 영역으로 들 여온 업적으로 묵 히 유명하다. 푸리 에는 이 주재 볼 가장 중요한 우수론 연구의 하나로 간주하였는데, 왜냐 하면 지구 내부의 언전도에 관한 이론은 지구가 녹아 있던 상태에서 식 어 왔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지구의 나이도 대 략 알 수 있게 되었다. 열 전도에 관하여 연구하는 과정에서 오늘날 푸리에 급 수라 불 리우 는 무한 삼각급수의 이론윤 발전시켜서 그것을 응용수학의 많은 다론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게 하였다. 푸리에의 업적을 및 마디 로 찬양하는 일은 부당하다. 가우스, 코우쉬, 푸 리에와 그밖의 수백명의 업적은, 자연의 참된 법 칙이 더욱 더 깊이 과해쳐지고 있다는 사실에, 논의할 여지조차 없어보 ·이는 새로운 증거가 되었다. 참으로 이 새기를 동하여 수학의 거인둘은 과거의 그들 선조가 정해 놓은 길을 계속하여 추구하였고, 더 강력한 수 학적 도구를 창출하여 그것을 써서 자연에 관한 더 깊은 탐구를 성공적 으로 수행하였다. 마치 그들수학자는 신의 설계를 발견하는 구세주라는 믿음에 최연된 것처럼 자연의 수학적 법칙의 탐구를 전전시켜 나아갔다. 만약 그들이 어떤 다른 수학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면 그들은 곧 닥칠 재앙에 대미하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근대 초기에 매이컨 Francis Bacon 은 그의 《새 도구》 Novum Orga 11um (영 어 New Instr u ment [of Reaso- .ni ng ], 1620) 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종족의 우상은 인간의 본성에 내재한다. 그것은 바로 인간 종족윤 말한다. 왜 냐 하면, 인간의 감각이 사물의 기준이 된다고 거짓되게 주장된다. 그와는 달 리, 감각과 정신의 양쪽에 의한 감지는 모두 인간 자신에 관련된 것이지 우주 에 관련된 것은 아니다. 인간의 마음은 고르지 못한 거운과 유사하다. 그 거 울은 광선윤 보내는 서로 다론 사물들에 그 거울 자신의 속성윤 덧붙여서 :::1.. 것 둥을 왜 곡하고 흉하게 한다. 같은 책에서 베이컨은 경험과 실험을 모든 지식의 기본으로 삼으면서, ’ 디옴과 같이 말했다:
논증에 의하여 설정된 공리는 새로운 업적운 발견하는 대 충분하다고 할 수 없 다. 왜 냐 하면 가연의 섭제성은 논증의 섬세성보다 수만배 더 미묘하기 때문 이다. 고의는 아니지만, 가장 신앙이 깊은 자들조차도 우주의 설 계에서의 신의 ! 역할을 배제하는 결과로 점차 이꿀어 가는 업적 을 이 우 기 시작하였다.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의 태양 중십설에 관한 업적은 신의 수 학적 자 혜의 증거로서 둘 다 환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서에서 말하는 인 간의 중요성과는 모순되는 것이었다. 7갈 란레아, 보일 Robert Bo 사. 뉴 돈 은 그둘의 과학적 연구의 목적이 신의 선계와 현재성을 명 증하려는 것 이라고 주장하였으나, 그들 자신의 과학 적 업적은 신 을 포 합하고 있지, 않았다. 신재로 갈란례이는 .:z.의 한 편지에서 “나에게는 성서에 관한 어 떤 논쟁도 영원히 잠자고 있어 야만 하는 것으로 보인다 . 운 마 본 한계에 머문 어떤 천문학자나 과학자도 그런 일에 관여한 역사가 없다 고 썼다. 물론 우리가 알다시피 갇탈레이는 신의 수학적 설계 불 믿었다 . 앞의 문 장에서 그가 뜻하는 것은 자연의 웅적임을 설명하는 대는 어떤 신미적 •• 초자연직 힘에 의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갇랄레이의 시대에는 전지 전능한 신은 그의 설계를 바꿀 수도 있다는 믿음아 아직도 지매직이었 다. 그토목 신앙십이 강한 데카르트도 자연 법칙의 불변성을 주장하였 으며 은연중 신의 능력을 재한했다. 뉴문도 또한 고정된 질서의 촌재를 · 믿었으나, 계획에 따라 세계가 계속 작동하는 것에 대하여 신에 의촌했 다. 그는 시계 제작자가시계를 계속하여 수리하는 것으로 미유앴다. 뉴 돈에게는 신의 간섭을 기원하는 훌풍한 이유가 있었다. 어떤 행성의 퀘 도가 완전한 타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너무나 잔 알고 있었지만(다 론 행성이 그 행성의 진로에 섭동을 주기 때문에), 그수는 타원 궤도의 이탈 또 . 는 불규칙성이 다론 행성들의 인력에 의한 것임을 수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대양계의 안정성은 계획에 따라 잘 움직이 도록 신이 계속적으로 간섭윤 하지 않는 한 파괴월 것이라는 두려웅을 壘 가졌던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이에 반대하였다. 철학자이며 뉴튼의 옹호자인 쿨라크 Samuel Clarke 에게 쓴 1715 년 II 월의 견지에서, 라이프니츠는 신은 때 때로. 시계를 수선하고 태영을 다시 감는다는 뉴몬의 견해에 관하여 다음 · 과 같이 말하였다. 신은 세계 가 영원한 운동운 하게끔 충분한 선견지 명 윤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 나의 의견으로는, 불변의 힘과 정학
이 세계에 존재하고 그것은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여 물질의 한 부분에 서 다 본 부분으로 옮겨가는 것 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라이프니츠 는 뉴는이 신의 눙력이 좋지 않다고 본 것을 고발하였다. 실제로 라이 프 니 츠는 뉴돈이 영국에서의 종교의 쇠되에 기여했다고 공격했다. 라이프니츠는 몰 리지 않았다. 뉴돈의 업적은 고의는 아니었지만 신학 으로부터의 자연철학의 걷벤 내지 는 해방을 유발하였다. 우리가 말했듯 이, 갇릴레 이는 물 리과학은 신학과 구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돈 은 그의 《프린 키피아 》 에서 이 주장을 고수하였고 자연 현상에 대한 순수 수학적 설명에 커다란 진전운 보였다. 이와 같이 신은 과학적 이론의 수 학적 선명에서 차차 배제되어 나갔다. 실로 뉴튼이 설명하지 못했던 행 성의 이탈은 본질적으로 그 누 1 의 연구자들에 의해 설명되어진다. 천재와 지구상의 운동을 포판하는 보편적 법칙들은 지적 분위기를 지’ 매하기 시작했고, 예 측과 관측의 계속된 일치는 그 법칙들의 완전성을 대변했다. 이 완전성은 신의 설계에 대한 입증이라는 믿음이 뉴 튼 7 시대 이 후 에도 계속되었지만, 신은 뒷쪽으로 물러 나고 우주의 수학적 법칙이 . 솟 정이 되었다. 라이프니츠는 뉴 몬 의 《프린 키피아〉 〉 가 은연중 신의 존재 에 관계없이 어떤 계획에 마라 작동하는 세계를 뜻하고 있음을 보고는· 그 제을 반기독교적이라고 공격하였다. 순수수학적 결과를 얻으려는 관 십은· 차차 신의 계획에 대한 관십을 대신하게 되었다. 오일러 이후의 많은 수학자들이 신의 현촌성, 세계에 대한 신의 설계. 신의 계획을 해 석 하는 도구 를 제 공하는 것 을 주된 기 능으로 하는 과학으로서 의 수학울 믿어 왔지만. 18 세기에 수학의 발전이 더 진행되고 그것의 성공이 많 아질수록 수학적 업적에 관한 종교적 영감은 더욱 사라지고 신의 현촌 은 흐려져 갔다. 카볼릭 혈통이면서도 라그랑즈와 라문라스는 분가지론자였다. 라플라 스는 신을 우주의 수학적 선계자로 보는 믿음을 완전히 버렀다. 그에게 는 다음과 같은 찰 알려 진 일화가 있 다. 라풀라스가 그의 《천체 역 학》 한 권운 나폴레옹에게 헌정했을 때 나꿉- 레옹은 다음과 갈이 말했다. ”라 플라스씨 ! 당신이 우주의 체계에 대한 이 거대한 재을 썼다는데. 그 우· 주의 창조자에 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고 둘었오.” 이때 라푼 라스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전해진다. “나는 그같은 가정을 할 팔 요가 없읍니다. 자연이 신을 대신하게 되었다. 가우스가 말했돗이 당 AJ . 자연은 나의 여신이오, 나의 봉사와 현신은 당신의 법칙에 얽매어 있
읍니다.” 실제로 가우스는 영원히 존속하고 전지전능한 신의 존재성을 믿고 있었지만 신에 대한 생각은 수학 또는 자연의 수학적 법칙의 담구 와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최 소 작용의 원리 (3 장) 에 관한 해 밀는 Hami lt o n 의 언급 또한 정 신적 장노의 변화물 말해준다. 1833 년의 논문에서 그는 다음과 같 이 말랬다: 키소 작용의 맙칙이 불리학에서 최고의 홈융한 정리 중 하 나가 되었지만, 우 주 에서의 경재성윤 근거로 하는 우주은적 판연성 이라고 보는 거짓 수장은 이재 일반적으로 매쳐되고 있다. 그 매쳐은 여러 가지 이유 중에서 도 바로 깅재와 되었다고 주장되는 양온 종종 실재에 있어 낭비적으로 소모되는 일이 있기 메 문 이었다 .••• 그러므로 우리논 이 양의 겅재성이 우주의 신성한 이념에서 선 재되었다고 가정할 수는 없다. 미 목 어연 고도의 단순성이 그 이 남에 포합되 었다고 '김윤 수 있을지라도. 회고해 보면 신이 자연을 수학적으로 설계하였다는 신조는 바로 수학 자 자신둘의 업적에 의해 손상되고 있움을 누구나 알 수 있다. 지성인 둘은 인간의 이성이 최고의 강력한 능력이라고 차차 믿게 되었고, 그것 에 대한 가장 좋은 증거는 수학자들의 성공이었다. 그 렇다떤 기촌의 종 교와 윤리의 유력한 신조 를 정 당화하기 위해 이성이 적용원 수는 없는 것일까? 비록 그 신조들을 강화하는 것보다 더 전전하고 유익한 일은 아닐지라도 이성으로 정당화시키는 일은 가능한가? 다행히도 또는 불 행히도, 종교적 이념의 기초에 이성윤 적용하는 일은 많은 정동성을 손 상시켰다• 종교적 신념은 정몽성에서 벗어나 이성적 초자연주의, 자연 신론, 불가지론, 대답한 무신론에 이르는 많은 중간적 단계를 거치면서 표류하였다. 이 경향은, 18 세기에는 넓은 교양의 소지자였던 수학자들 에게 그 영향을 끼쳤다. 합리주의자이며 반교회적이면서 시대를 이꾼었 먼 지성 인인 디드로 Denis Di de rot 가 말했듯이 당신이 내가 신의 존재 를 믿기물 원한다면 당신은 내가 신을 만질 수 있게끔 해야만 한다.” 19 세기의 모든 수학자들이 신의 역할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독실한 카 홀릭 신자인 코우쉬는 계시된 진리와 모순되는 어떠한 가정도 주처 없 이 버려야 한다”고 말했지만, 우주의 수학적 설계자로서의 신의 존재의 믿음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런 믿음의 약화는 곧 자연의 수학적 법칙이 왜 팔연적으로 진리였 던가라는 의문을 수반했다. 진리를 부정하는 첫번째 인물은 《자연의 해
석 에 관한 고갈 》 Thoug h ts o n th e Inte rpr e ta ti on of Natu re (1753) 윤 쓴 디 드 로였다. 그는 수학자는 도박꾼과 같다고 말했다. 수학자나 도박꾼은 그. 둘 이 만 들어낸 추상적 규칙에 따라 게임을- 풀어 나간다는 접에서 그러하 고, 그들의 연구 주재는 실재하는 근거가 없는 단지 약속의 문재분이라 는 것 이 다. 마찬가지 로 지 성 인이 었 던 퐁- 데 네 유 Berna rd Le Bouvie r de Fon- ten elle ( 1657-17 57 ) 도 그의 저 서 《세 계 의 복수성 >P lurality of l-V orlds 에 서 비판 적 이었다. 그는 장미가 기억하는 한 어떤 정원사도 죽지 않았다 는 사실처럼 관측 으로 천체의 운동의 법칙의 불변성을 믿는 것 에 공격 윤 가했다. 수학자들은 자산들이 철학자듄 이 먹고 살 양식윤 창조겠다고 믿는 낀 이었다. 그러나 18 세기에 철학자들은 불리적 세계에 관한 전리물 부정 하는 데 선구자 역한을 하였다. 우리는 홉스 Thoma s Hobbes (1 56 8- 1679), 로크 Joh n Locke (1632-1704), 버 윤리 주교 Bi sh op George Berkeley (1 685- 1753) 의 주장을 생 략하기 로 한다. 그 이 유는 그 주장들이 쉽 게 반박킬 수 있어서가 아니라 급전론자 흄 Dav i d Hume ( 1711-76) 의 주장 만큼 잉향력 이 있지는 않아서이다. 흄은 실재에 있어 버 클러 의 주장을 시인하였을 분 아니라 더욱더 진전시켰다. 흉은 그의 《 인간 본성에 관한 고찰》 Trca- .tis e of Human Natu re (1739-40) 에 서 우리 는 정 신도 물질도 알지 못한다, 그 둘 다 허구라는 대도를 유지하였다. 우리는 감각을 느낀다. 이미지 • 기억 • 생각과 갇은 단순한 아이디어들은 단지 감각의 희미한 효과에 지 나지 않는다. 정 신은 우리 의 감각과 아이 디 어 의 집 합재 와 둘었합(i den ti cal) 것이다. 우리는 칙접 체험으로 테스트할 수 있는 것 이외에는 어떤 실 채의 촌재도 가정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경험은 오직 감각만 남길 뿐 이다. 흄은 물질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로 의십랬다. 이 구체적인 대상(선진) 둘로 된 영원히 존재하는 세계가 있다고 누가 보장하는가? 우리가 압구 있늪 것은 모두 그러한 세계에 대한 우리 자신의 감각분이다. 의자에 대 한 반복된 감각은 의자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공간과 시간은 아이디어가 우리에게 떠오르는 방법과 순서에 지나지 않 는다. 마찬가지로 인과율 역시 아이디어들의 습관적 연결에 지나지 않 는다. 공간이나 시간이나 인과율은 걷코 객관적 실재가 월 수 없다. 우 리는 우리 감각의 능력과 굳은 결의에 의해 그러한 실재를 믿도록 현혹 된다. 고정된 성질을 가진 의부 세계의 존재성온 실재로 근거없는 추돈
이며, 우리 감 각의 근 원 은 섣명 되어 질 수 없다. 그 감 각 이 외 부 의 대삼F 으로부터 또는 정 신으로부 터 또 는 신으로 부 터 일어 나 는 지 는 우리 는 알 수 없다. 인간 자신은 지각 즉 감 각과 아이디어의 고립된 집 합 체에 지나지 않 . 는다. 그는 단지 그 렇 게 촌 재 한 다. 자아 는 여 러 가 지 다 본 지 각들 의 다 발 (bundle) 이다. 자기 자신 을 지 각 하 려는 어 떤 시도 도 지 각만으로 이 끌 어 갇 분 이다. 다 론 모든 사 람과 외 부 세계 는 단지 어 느 한 사 람 의 자 . 각에 지나지 않고, 그것 둘 이 촌 제 한 다 는 보장은 없다. 그러므로 영원하고 객 관 적인 산리적 세 계 에 관한 과학적 법칙은 있 철 · 수 없다. 그러한 법칙 은 오직 감각들 의 편 리한 요 약을 의미 한 문이다. 더구나, 인과..,운의 개념은 과 학적 증 명 에 의한 것이 아니라. “ 사전 둥의 보동 순서가 흔히 일어나는 데서 얻어진 마음의 습 관에 근 거 한 것 일 문 이므로, 우리논 과거에 지 각 된 사건 들 의 순 서가 미래에 도 재 발하 리라 는 것을 알 수 있는 방법 을 가지고 있 지 못하다. 이와 같 이 흄은 자연 법 칙 의 불가피성 • 영 속 성 • 신성 불 가칭성 을 벗겨버렀다. 외적 세계가 고정된 수학 적 법칙 을 마 른 다는 주장을 과 거함으 로써 흄 온 실재 를 표현하는논리적 연역구조의 가치 를 무산시켰다. 그 러 나 수 학 에는· 수나 도형에 관한 가정된 진리 (공리)로부 터 팔 연적으로 유도 되 는 수와 기하학에 관한 정리가 있다. 흄온 공리들 을 배 척 하지는 않았으나. 공리나 연역에 의해 얻어진 정리 를 과소평가했다. 공리에 관하여는 가정 된 물리적 세계에 관한 감각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라 했다. 정리 들 은 실제로 공리의 팔연적 걷과이기는 하지만, 그것 들 은 공리 들 의 교묘한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 들 은 연역된 것이지만 오직 공리에 이미 암 시된 진술의 연여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들은동어반 복 (ta u t olo gy)인 것 이다. 이와 같이 공리와 정리에는 어떤 전리도 없다. 그 뒤에 흉은 진리의 존재성 을 부 정함으로써 인간이 어맣개 전리 를 얻을 수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답했다. 인간은진리에 도달할수 없다는 것이다. 흉의 업적은 과학과 수학의 노력과 견과를 평가 절하갱 을 분만 아니라, 이성 그 자체의 가치에도 도전한 것이다. 인간의 최고. 의 능력을 이같이 부정한 것은 대부분의 18 세기 사상가들의 비위를 거 스르는 일이었다. 수학과 인간 이성의 또다른 발견(과학)은 소용없다고 버리기에는 너무나 많은 업적을 이루어 놓았던 것이다. 흄의 철학은 대 부분의 18 세기 지성인 들 에게는 너무나 상반되고 형오스러운 것이고,:도
한 수학과 과학이 이루어 놓은 뚜럿한 성공과는 너무나 어긋나는 것이 었으므로, 그에 대한 반박이 요구되었다. 모든 시대를 동하여 가장 존경받고 아마 가장 십오한 철학자였던 칸 트 Immanuel Kant 가 그 도전에 응하였다 . 그러 나 면밀히 조사해 보면 칸트의 사색의 결과도 그리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저서 《미 래 의 오돈 형 이 상학에 관한 서 설》 Proleg o mena to Any Futu re Meta p h y si c s <1 783)에 서 칸트는 수학자오} 과학자의 편을 드는 것처 럼 보였다: “우리 는 확신을 가지고 어떤 순수하고 선형적인 종합적 인식인 순수 수학과 순수 물리학 이 실제적으로 주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 하면, 둘 다 절대적으로 확실하다고 전적으로 인정되는 명제를 포함하기 때문이며, ••• 또한 그 명제는 경험과 분리되어 있다. 그의 저서 《순수이성비판》 Criti qu e of Pure Reaso n (1781) 에서 칸트는 훨씬 확신을 주는 말로 시작 랬다. 그는 수학의 모든 공리와 정리는 진리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그 논 자신에게, 왜 기꺼이 그는 그러한 진리를 받아들이는가 물었다 . 확 실히 경험만으로 그 들이 옳다고 할 수는 없다. 더 넓은 의미의 의문으 . 로 수학이란 학문 자체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답할 수 있다면 그 질문 에 답할 수 있다. 우리의 정신은 공간과 시간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이 칸트의 답이었다. 공간과 시간은 지각의 양식 (칸트는 이것윤 직관이라 불렀다)이며, 그것을 동해서 우리의 정신은 경험을 관조한다. 우 리는 이러한 정신적 형식에 따라경험을지각하고, 조직하고, 이해한다. 첫물이 주형에 맞추어지듯 경험은 그 형석 (시간과 공간)에 맞추어진다. 정신은 받아진 감각인상에 이 양식을 부과하고, 이 감각둘을 미리 세워 전 패턴에 맞추어간다. 공간의 직관은 정신에 그 근원이 있으므로, 정 신은 이 공간의 어떤 성질들을 자동적으로 받아들인다. 직선이 두정 사 이의 가장 짧은 경로라는 원리, 세 접은 평면을 결정한다는 원리, 유클 리드의 평행선 공리 등을 칸트는 선험적 종합적 전리라 불렀는데, 이들 은 우리의 정신적 도구의 한 부분이다. 기하학은 단지 이둘 원리들의 논리쳐 귀걷을 탐구할 분이냐 정신이 경험을 정신의 공간적 구조에 비추어 관조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경험은 기본 원리와 정리에 부합원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외져 세계에서 우리가 감지한다고 생각하는 순서와 합리성은 우리의 정신과 우리의 사고 방식에 의하여 외적 세계 예 부과되어지는 것이다. 칸트는 인간의 뇌세포에서 공간을 구성했기 매문에. 그는 그 공간을
유쿨리 드적 으로 만 들-지 말아야 한 어떤 이유도 없는 것으로 보았다. i 는 다른 종류의 기 하학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다른 종류의 기 하학이 존 재할 수 없다고 확신하였다. 이와 같 이 유클리드 기하학의 법칙은 우주 에 내재하는 것도 아니고, 우주가 신에 의해 그 멍게 설계된 것도 아니 다: 그러한 법칙은 자신의 감각을 조직하고 합리화하기 위한 인간의 매 카니즘에 지나지 않는다. 신에 대해서는 칸트는 신의 본성은 합리적 지 식에서 벗어나고 있으나, 우리는 신의 촌재를 믿어야 한 다고 말랬다 . 그 의 기하학에 대한 경 솔한 생각은 철학에서의 과감성윤 훨씬 능가한 다. 왜냐 하면, 동 프러시아의 그의 고향 쾨니히스매르크로부터 40 마일 이 상 나가 본 일이 없었음에도 불구 하 고 , 그가 세계의 기하학을 결정한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과학의 수학적 법칙에 관해서는 어 떻 게 생각겠는가? 모 든 겅험은 공 간과 시간의 정신적 구성의 관정에서 파악되어지므로, 수학은 모든 깅 항에 적용원 수 있음에 동림없다 . 그의 저서 《자연과학의 형 이상 학적 기 초》 Meta p hy si c a l Foundati on s of Natu ral Scie n c es (1 786) 에서 칸트는 뉴 돈의 법칙과 그 모 든 견과들운 자명한 것으로 받아 들 였다. 그 는 뉴튼의 운동법칙은 순수이성에서 이꿀어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 다고 주장했 다. 그는 뉴돈이 우리에게 영원 불변으 로 남을 우주의 구조에 대한 동 찰을 명쾌하게 주었다고 말했다. 보다 일반적으로, 칸트는 논하기 룹 과학의 세계는 감각인상의 세계인 데, 이 세계는 선천적 범주인 공간, 시간, 원인과 결 과, 실체에 일치하 도록- 우리의 정신에 의해 매연되고 조정되는 것이라 하였다. 정신은 손 님 들 이 마땅히 적 응해 야 하는 가구 들을 가지 고 있다. 감각인상은 바로 실세계에 근원운 가진 것이지만, 불행히도 이 세계(실세계)를 알 수는 없다. 실재성은 감지하는 정신에 의해 제공된 주관적 범주로써만 알려 질 수 있을 뿐이다 . 따라서 유클리드 기하학과 뉴 돈 역학 이의에는 겅 험을- 조직하는 다른 방법이 있지 못할 것이다. 경험이 확대됨에 따라 새 로운 과학이 형성되지만, 정신은 이 새로운 겅협으로부터 일반화된 새 로운 원리문 설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새로운 경험을 해석하기 위해 서 그 때까지 사용되지 않았던 정신의 한 부분이 사용될 것을 요구받는 것이다. 몽-칼에 대한 정신의 능력은 경험에 의해서 개발된다. 이 사실 은 어떤 진리들이 비교적 늦게 인식된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예 를 들어 여러 세기 동안 알려진 다론 법칙에 비하여 역학의 법칙은 나중에 인산
된 것이다. 여기에서 대충 설명한 바와 같이, 칸트의 설학은 이성을 찬미했다. ::r... 러나, 그는 이성의 역할을 자연을 탐구하는 것에 둔 것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내부를 탐구하는 것에 두었다. 외적 세계로부터의 감각은 정산 이 조직할 원료룬 재공하기 때문에, 겅험은 지식의 팔연적 원소로서 합 당한 인식을 받게 된다. 그리고 수학은 정신의 팔연적 법칙운 드러내는 자로서의 위치를 가자게 되었다. 수학자들은 수학이 선형적 진리의 집합체라고 들었울 메는 홉족했 다. 그러 나 대부분의 수학자들은 칸 드 가 어 멍게 이 란 결론에 도달했는가에 대해서는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 수학이 주장하는 것은 물리 적 세계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안간 정신으로부터 기인된다는 칸트의 주장을 모든 수학자둘은 충분히 생각할 여유문 가졌어야 했다. 우리들 ~ 모두의 정신이 우리의 감각들을 동일하게 조직하도록 미리 만들어처 있 으며, 공간적 감각의 조직은 팔연적으로 유클리드적인가? 우리는 어떻 게 이것 을 아는가? 칸트와는 달리, 수학자와 물리학자는 아직도 인간 · 정신과는 독립된 법칙에 따르는 외적 세계의 촌재성을 믿고 있었다. 세 게는 합리적으로 설계되었고, 인간은 단지 그. 설계를 밝혀 내고, 외칙 시 1 계에서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를 예측하는 데 그것을 사용-하였다. 칸트의 사상과 영향은 해방적이고도 또 구속적인 효과룹 가졌다. 우 리가 진실로 알 수 없는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경험을- 조직하는 정신의 능력을 강조항으로써, 그의 시대에 그토록 확고히 유지되던 구조와는 싱 반되는 새로운 구조에 대한 건을 일었다 . 그러나 정신이 팔연적으쵸i 유 쿨리 드 기 하학의 법 칙 에 마라 공간적 감각윤 조직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 그는 모돈 반대 견해물 받아돌이는 데 방해룹 댔다. 칸트가 그 시대의 수학의 입적에 좀 더 주의룹 기웅였다면, 그는 적어도 정신이 공간적’ 감각을 유문리드적으로 조직해야 한다는 주장울 먼 했을 것이다. 우주의 법칙 제조자로서의 신에 대한 무관십과 그보다 더한 부정 및 그들 법칙이 인간 정신에 내재한다는 칸트의 관정은 신성한 전축가로부 터 의 반동옵 일으컸 다. 신은 칸트주의 자들과 육밀 히 이 기 적 이 고 자만하· 며 자신 과잉인 수학자들을 벌하리고 전정한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인 간의 그 런 듯한 자기 만족인 전능의 이성의 업적을 횡페케 할 창조물인 비유 클리드 기하학을 격려하기 시작했다. 1!!00 년까지 신의 존재는 차차 희미해졌고, 흉과 감은 및및 급진적 철
학자들은 모든 진리를 부정하였지만, 그 시대의 수학자들은 아직도 수 학 그 자체의 전리와 자연의 수학적 법칙의 진리를 믿었다. 수학의 분 야 중에서도 유클리드기하학이 가장 존경을 받았는데, 그것은 유클리드 기하학이 처음으로 연역적으로 새워진 체계일 분 아니라 2000 년 이상 이나 그 정리들은 물 리적 사실들과 완전히 부합된다고 알려졌기 때문이 다. “신이 공걱한 것은 바로 그 유클리드 기하학이었다. 유클리드 기하학의 한 공리는 수학자들을 다소 괴롭혔다. 그것은 그 들의 마음 속에서 그 공리의 진리성을 의십한 것이 아니라 , 그 공리의 표현 (word i n g) 때문이었다. 이것이 바로 평행선 공리 또는 혼히 유큘리 드의 제 5 공리 라고 불리 우는 것 이 다. 유클리 드는 그것 을- 다음과 갇 이 기 술하였다: 두 칙선과 만나는 한 적선 [그립 4. I] 의 동축- 내 각의 합이 2 직 각 (180°) 보다 각을 때에는, 두 직선 을 연장할 때 두 지선은 그 두 내각의 합이 2 직각보 다 각은 쪽에서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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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각 l 과 각 적문 합하여 180° 보다 작을 때 직선 a,b 를 충분히 연장 하면 만날 것이다. 유큘리드가 그의 공리를 이런 방법으로 기술한 데에는 그나름의 좋은 이유가 있었다. 이 대신에 각 l 과 긱 . 2 를 합하여 180° 가 되면 두 직선 은 전코 만나지 않는다, 죽 평행하다고 기술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러나 유클리드는 결코 만나지 않는 무한 칙선이 있을 수 있다고 가정하 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으로 보인아. 확실히 겅험은 무한 직선에 대해서 는 어떤 보장도 주지 못하며, 그 반면에 공리는 물리적 세계에 대한 자 명한 사실이라고 생각되었기 매운이다. 그렇지만. 그는 평행선 공리와
그밖의 공리들윤 사용하여 평행선의 촌재를 궁영했다. 유클리드가 서술한 형테의 평행선 공리는 약간 복잡하다고 생각되었 다. 그것은 다 론 공리들과 같은 단순성이 결여되어 있다. 유클리드조차 도 평행선 공리에 대한 자신의 표현을 좋 아랬던 것같지는 않아 보인다. 왜냐 하만 그 공리 없이 증명할 수 있는 모든 정리 들울 증명할 때까지 는 그것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에 관련된 문제 로서 많은 사람들을 괴 봅- 히 지 는 않았지 만 궁극적 으 로 활말한 관십의 전면에 나타난 것은 물리적 공간에서 무한 직선의 존 재성을 확신한 수 있는가 하는 문재이다. 유클리드는 유한 선분을 팔요 한 만큼 멀리 연장할 수 있다고만 가정하는 신중성을 보였으러, 따라서 연장된 선분도 역시 유한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 클 리드는 무한 적 선의 존재성을 암시하고 있는데, 왜냐 하면 직선이 유한이면 어떤 경우 에라도 팔요한 만큼 멀리 연장욀 수는 없기 메문이다. 그리 스 시대에 이미 유클리드의 평행선 공리가 제기한 문제를 풀려는 · 노력이 시작되었다. 그런 시도는 두 형태로 나타났다. 첫째 시도는 평 행선 공리 대신 겉보 기에 더 자명한 명제를 택하는 일이었다. 둘째 시 도는 그 공리를 유클리드의 다론 9 개의 공리로부터 이끌어내는 일이었 다. 이 일이 가능하다면, 평행선 공리는 정리가 되고 더 이상 의문이 없 게 된다. 2000 년 이상에 걸쳐, 주요하지 않은 수학자는 대놓고도, 주요 한 수학자들이 그 두 시도에 참여했다. 그 역사는 길고도 전문적인데, 그 대부분에 관한 언급은 여기에서는 피하기로 한다. 왜냐 하면 그 역 사는 곧 찾아볼 수 있으며 목벌 한 당면 과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 역사에 관하여는 보눕: 4 Rober t o Bonola 의 《미유칼리드 기하학 》 에시 갓아분 수 있 다. 이 객은 1906 년 이안리아어로 처옵 숭판괴었고, '5 년의 영역판이 도버 Dover 출판사에서 복사되어 있다.
이와 갇이 대치된 공리들 중에서 아마도 하나만을 꼭 주목해야만 하 는데, 오늘날 고등학교에서 혼히 배우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 이 다. 이 것 은 1795 년 플레 이 패 어 Joh n Plny fair (1748-1819) 가 재 안한 다 음과 같은 평행선 공리이다: 한 적선 l 위에 있지 않은 주어진 정 P 를 지나 직선 l 과 만나지 않는 직선은 l 과 접 P 로 이루어진 평면에서는 유일하게 존재한다(그립 4.2). 이같이 대치된 공리들은 모두 겉보기에 유 쿨리드의 것보다 간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면밀히 조사해보면 유클리 드의 것보다 더 만족할 만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컬-레이페어
P
의 것을 포함한 많은 대치 공리들은. 공간에서 무한히 먼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를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 반면에 무한'’을 직접 포함 하지 않은 대치 공리, 예 를 들면 , 서로 다론 두 개의 닮은 삼각형은 존 재한다는 공리와 같은 것은, 가정이 더 복잡해지고 결코 유 큘 리드의 평 행선 공리보다 나을 것이 없다. 평행선 공리의 문제 를 풀려는 두번째 시도, 죽 다온 공리들로부터 평 행선 공리 를 유도하려는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파미아 Pav i a 대학 · 교수이며 예수회 신부인 사케리 Gerolamo Saccheri (1667- 1 733) 가 만든 것 이다. 그의 생각은, 유 클 리드의 것과 본절적으로 다른 공리 를 댁하면 유 · 쿨리드가 얻은 정리와 모순되는 정리 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모순은 문재가 되는 유일한 공리인 유 클 리드의 평행선 공리 를 부정하는 · 공리는 거짓이고, 따라서 유클리드의 평행선 공리는 진리임에 들 림없다,. 죽 다른 9 개의 공리들의 결과임이 된다는 것이다. 유클리드의 공리와 동치인 풀레 이페어의 공리의 관정에서, 처움에 사스 케리논 점 P 를 지나 직선 l 과 평행한 적선은 없다고 가정했다*(그람
그립 4.3
* 이 귀의 기순은 사케리의 과정윤 약간 변형한 것이다.
4, 3). 그리고 아 공리와 유클리드가 채택한 다른 9 개의 공리로부터 사 케리는 모순을 이끌어냈다. 그 다음에 남은 유일한 가능성은 접 P 를 지 나 적어도 두 직선 p,q가 있어 아무리 확장하더라도 칙선 l 과 만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가정한 사케리는 많은 홍미있는 정리물 중 명하여 나가다가, 나중에는 너무나 이상하고 협오스러운 정리처럼 보이 : 는 결과에 이르자, 그는 이미 있었던 유 칼 리드의 질과와 모순된다고 걷 정랬다. 그러므로, 사케리는 유 찬 리드의 평행선 공리가 다른 9 개의 공리 ! 의 결과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의 저서 를 《 모든 실수로부터 옹호받는 유 쿨 리 드 》 Euclid e s ab omni 11ae vo vi1 1 dic a tu s ( 영 어 Euclid Vi n dic a te d fro m All Fault, 1733) 라 이 몹붙 였다 . 그밍지만 후세의 수학자들은 사케리가 실재 로 두번째 경우에는 어인 모순도 얻지 못하였고, 마라서 평행선 공리의 , 문재는 해 결 되지 않은 계 남아 있다 는 것운 알았다. 유 클 리드의 평행산 공리에 대치할 받아 들일 만한 공리 를 갖는 노력과, 유클리드의 9 개의 공리로부터 평행선 공리 운 이꾼어내는 노력은 너무나 많았고 또 모두가 ` 소용이 없어, 1759 년 달랑'비르 D'Alember t는 평행선 공리의 문재를 기. 하학의 기본의 스캔들이라고 불렀 다. 정차로 수학자들은 유 큘 리드의 평행선 공리의 지위를 올바르게 이해하· 기 시 작하였 다. 나중에 헬옵쉬 타 트 대 학교의 교수가 된 물루 1 갤 Georg S. Klo g el(1739-1812) 은그의 1763 년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유클리드의 평 · 행선 공리를 받아들이는 확실성은 겅힘에 근거하고 있다는 주목할 만한· 주장을 했다. 그는 사케리의 제과그밖에도 평행선 공리를 옹호하는수• . 많은 시도룹 알고 있었다. 이 주장은 자명한 것이라기보다는 경험에 의 . 해 공리가 설정된다는 생각윤 최초로 도입한 것이었다.* 큘위겔은 유클 리드의 공리가 증명원 수 있다는 데 의혹을 표명하였다. 더구나, 그.는 ` 사케리가 모순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단지 이상한 결과에 도달했음을 인식랬다.
* 뉴본도 이 주장을 했으나 그것윤 강조하지는 않았고 나중에는 겅시되었다.
클위 겔의 논문은 람베 르트 Joh ann Hein ric h Lambert (1728~77) 로 하여 금 평행선 공리에 관한 업적을 얻게 랬다. 람메르트는 그의 저서 《평행선 에 관한 이 론》 Theory of Parallel Li ne s (1766 년에 씌 어 졌고 1786 년에 숭판되 었다.)에서 사케리와 약간 미슷하게 두 가지 선택 가능성울 고찰했다. 그 또한 접 P 를 지나 직선 l 에 평행인 직선이 없다고 가정하는 것 (그립 4.3) 은 모순에 이른다는 것을 알았다. 그렁지만 사케리와는 달리 •.
정 P 를 지나는 적어도 두 개의 평행선이 있다고 하는 가정으로부터는 어떤 모순도 얻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더구나, 그는 모순에 이르지 않는 가정들의 모임은 가능한 기하학을 재시한다고 인석했다. 그 기하 학이 비록 물리적 도형과는 밀로 관련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타당한 논 리져 구조를 이물 것이기 때문이다. 가우스의 선생 이 며 괴 탕 캔 대 학 교수인 캐 스트너 Abraham G. Ka stn er (1719-1800 ) 와 같은 수학자들의 업적은 람 1 세르트의 업적과 함께 강조원 필요가 있다. 그들은 유칼리드의 평행선 공리가 다른 9 개의 공리로부 터 증명될 수 없다는 확신을 가졌다. 죽 그 공리논 유쿨리드의 다론 공 리와는 독립이라는 것이다 . 더구나 람메르트는 유클리드 공리와 모순되 는 대치 공리물 채덱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신했고 , 미목 그러한 기하학의 응용성에 대하여는 언명하지 않았으나 , 논리적으로 무모순인 기하학의 구성윤 확신했다. 이와 같이 하여 그듈 새 사람은 미유 칼 리드 기하학의 존재성을 인식했다.
유클리드의 평행선 공리가 재기한 문제에 인중한 가장 처명한 수학자 는 가우스였다. 가우스는 유쿨리드의 평행선 공리를 증명하려는 노력이 헛된 것임을 찰 알고 있었다. 왜냐 하면, 괴팅구센에서는 이 사실은 상석 ·이었다. 실재로 가우스의 스승 캐스트너는 이와 같은 시도의 역사를 충 분히 잘 알고 있었다. 및 해 후인 I8 얏 년에 가우스는 그의 친구 슈마케 르 Schumacher 에게 1792 년에 이미(이때 가우스는 15 살이었 다.) 자신이 유 큘리드의 평행선 공리가 성립되지 않는 논리적인 기하학이 촌재할 수 있 다는 생각을 포착하였었다고 만했다. 그러나 1799 년까지도 가우스는다 론 가능한 가정들로부터 유칸리드의 평행선 공리를 이끌어내려고 애썼 . 으며, 비록- 다른 논리적 미유 큘리드 기하학 을 생각할 수 있었옵에도 불 구하고, 물리적 공간의 기하학은 유큘리드 기하학이라고 여전히 믿고 있었다. 그러나 1799 년 12 월 l7 일에 가우스는 그의 찬구이며 동료수 학자였던 보요이 Wolf ga ng Bol y a i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나로서는 나의 일에 약간의 진전을 이미 보았다. 그령지만, 내가 선댁한 방법 은 전혀 우리가 찾 으려 하는 목적 〔평행선 공리의 유도]에 다다르게 하지 못랬 는데, 당신은 나에게 그 전과에 도달랬다고 말했다. 그 사실은 나로 하여금 기 하박 그 자체의 전리응 의십하게끔 하는 듯하다. 많은 사람둘의 많은 층명 [다 온 공리듄로부터 유 클리드의 평행선 공리를 유도하는 것]윤 내가보았다는 것 온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그것은 거의 아무 것도 증명윤 못한 것이다. 예운 듄 어, 어떤 임의의 주어진 면적보다 큰 면적운 가지는 삼각형이 있 다는 것운 보일 수 있다면, 그때 나는 [유클리드〕 기하학 전체운 업지히 철대 져으로 증명할 수 있는 준미가 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 -문은 확신히 이란 가정 운 공리로 덱한 것이다. 그러나나는그. ' . 러하지 않는다 ! 삼각형의 세 꼭 지접이 아무리 멀리 멀어져 있더라도 그 면적 은 항상 어떤 한계읍 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가능한 텐데 말이다. I8I3 년 경부터 가우스는그의 비유클리드 (non-Eucl i dean) 기하학을 발전 시켰는데, 그는 처음에는 반유쿨리드 (an ti -Eucl i dean) 기하학이라 불렀고, 뒤에 밀물 ( as t ral) 의 기하학, 끝으로 미 유클리드 기하학이라 불렀다. 그는 그것이 논리적으로 무모순이며 적용성도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1824 년 I2 월 8 일에 그의 찬구 토리 누스 Franz Adolf Tnurin u s (1794- 1874) 에게 가우스는 다음과 갇은 편지문 썼 다: [삼각 형의] 내각의 합이 180° 보다 작다는 가정은 유쿨리드 기하학과는 전혀 다 론 이상한 기하학 윤 이 꿀 어낸다. 그러나 내가 전개한 그 기하학은·완전히 논 리적으로 무모순이며, 나는 .::z.. 사신에 만 족한다 . 이 기하학의 정리둘은 궤변 • 처럽 보이고 문외한에게는 부당하게 보.이나, 차분하고 끊임없는 사색을 해보 떤 그 정리-등이 전혀 분가능한 것을 포합하지 않았옵을 알 수 있다. 1829 년 I 월 27 일에 수학자이 며 천문학자인 메 셀 Frie d ric h W ilh elm Bessel 에게 쓴 편지에서. 가우스는 평행선 공리가 유쿨리드의 다른 공리를 써 서 증명킬 수는 없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우리는 가우스가 만든 북벌한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관하여 논하지 않 을 것이다. 그는 완전한 연역적 논증을 보이지 않았고, 그가 증명한 정 리들은 우리가 곧 논하게 원 로바챕스키와 보요이의 업적의 것들과 매 우 유사하다. 메셀에게 쓴 편지에서 가우스는 아마도 이 주제에 관한그. . 의 발견을 결코 출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왜냐 하면, 그는 남들 이 바웃고 조롱'할 것이 두려웠고, 그가 말했듯이, 그.는 속담으로 전해지 는 머 리 가 둔한 그리 스 종족을 의 미 하는 비 오우셔 사람들 (Boeoti nn s) 의 소란한 고함소리 (clamor) 를 두려 워 했 었 기 메 문이 다. 미 목 및 및 수학자둥스 이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완성 단계에 정차 접근하고는 있었지만, 대체로 지성인의 세계는 아직도유클리드 기하학이 유일한 가능한 기하학이라는 신념에 지배받고 있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비유클리드기하학에 관한 가 우스의 업적에 관하여 우리가 아는 것은 그가 찬구들에게 쓴 편지와, .
갱 16, I822 년의 《괴 팅 켄 학계 보고》 Gott ing isc he gc lehrte Anzeig e n 에 재 출 된 두 편의 짧은 평론과, 그가 죽은 뒤 그의 서류에서 발견된 1831 년의 및 개의 노트에서 수집된 것들분이다. 비유 클 리드 기하학의 창시자로서 가우스보다 더 큰 명예륜 얻은 사람 은 로바쳅스키와 보요이이다. 실재로 그 들의 입적은 앞서의 혁신적 사 상에 대한 결론이었지만, 그 들은 연역적이고 체계적인 책을 출판 하였기 때 문에 흔히 그 들을 미 유 쿨 리 드 기 하학의 창시 자로 부른다. 로바쳅 스키 .N i k olai lvanovic h Lobatc h evs ky (1793-1856) 는 러 시 아인으로 카찬 Kazan 대 학에서 수학하고, 그곳에서 1827 년부터 1846 년까지 교수와 총장을 지 냈 다. 1825 년부터 많은 논문과 두 책 으로 기하학의 기 조에 관한 그의 견해 를 제시하였다· 요한 보요이 Joh ann Bolya i (1802-60) 는 봅프강 보요아의 아 들 로서 항가리의 육군 장교였다. 그는 자신이 철대 기하학이라 불렀던 미 유물리드 기하학에 관한 263ll 이지의 논문 《철대공간의 과학 》 The Sc ie1 1ce •of Absolute Sp ac e 을 그의 아버 지 의 두 권으로 된 객 〈(학 구적 젊 은이 를 위 한 수학 기 초에 관한 소고》 Eassa y 011 the Eleme11ts of Math e mati cs for St u dio 1 1s Yout h s 중 첫 권의 부록으로 발표하였다. 비록 이 책은 1832-33 년에 출판되어 로바챕스키보다는 뒤졌지만, 보요이는 1825 년에 이미 비유큘리드 기하학에 관한 .::J...의 생각을 완성시컸던 것같고, 그 때 이미 그 새로운 기하학이 자기 모순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신하였던 것이다 . ..i8 23 년 12 월 23 일에 그의 아버지에게 쓴 편지에서 보요이는 나는 깝 짝 놀라 정신을 잃을 정도의 눈- 라운 발견을 했읍니다라고 썼던 것이다. 가우스, 로바샘스키, 보요이는 유클리드의 평행선 공리가 다몬 9 개 ·의 공리로부터 증명될 수 없다는 것과 평행선에 관한 어떤 또다론 공리 가 유클리드 기하학울 세우는 데 팔요하다고 인식했었다. 이 평행선 공 리가 독립적이타는 사실 때문에, 그에 모순되는 명제 를 채택하는· 것과 새로운 공리 체계로부터 결론둘을 이꿀어 내는 것이 적어도 논리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들이 만둘어낸 것의 전문적 내용은· 오히려 단순하다. 이 세 사람들 은 동일한 것을 연구했으므로, 로바챕스키의 업적을 살피면 충분하다. 로바쳅스키는 유클리드의 평행선 공리를 과감히 버리고 결과적으로. 사 케리가 만든 가정을 채덱했다. 주어진 칙선 AB 와 검 P 가 있을 때(그 립 4.4) 검 P 를 지나는 모든 직선은 칙선 AB 에 관해 두 종류로 나누 ·어진다. 죽 직선 AB 와 만나는 직선들과 그렇지 않은 직선들이다.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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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의 직선둘의 경계가 되는 두 직선 P 와 q는 직선 AB 와 만나지 않 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정 P 가 적선 AB 로부터 수직거리 a 인 접이 라면, 예 7- f A 가 촌재하여 수선 PD 와 이루는 각이 A 보다 작으면 직선 AB 와 만날 것이고, A 와 같거나 크면 직선 AB 와는 만나지 않는다. 이 때 직선 PD 와 각 A 를 이루는 두 직선 p,q 를 평행선이라 부르고 A 룹 평행각이라 부른다. 직선 AB 와 만나지 않는 점 P 를 동과하는직 선(평행선 p.q룹 재외)을 비교차 적선이라 부르는데, 유클리드적 의미로 는 그것들은 평행선이다. 이런 의미에서 로바쳅스키의 기하학은 접 P 를 동과하는 무수히 많은 평행선을 인정한다. 그리고 나서 그는 몇 개의 중요 정리를 증명했다. 각 A 가 m/2 (90°) 이 면 유클리드의 평행선 공리가 성립된다. 각 A 가 예각이면 a 가 감소하 면서 0 으로 잡근함에 따라 각 A 는 증가하면서 떠 2 에 가까이 간다. 또 a 가 무한대로 커짐에 따라 각 A 는 감소하면서 0 에 접근한다. 삼각형 의 내각의 합은 항상 180° 보다 작으며. 삼각형의 면적이 감소함에 마라 180° 에 가까와전다. 더구나 두 개의 닮은 꼴의 삼각형은 팔연적으로 합 동이다. 수학의 임의의 주요 분야나 목 장한 주요 걷과마처도 한 사람의 업적 일 수는 없다. 기껏해야 어떤 결정적 단계나 주장만이 어떤 개인의 것 일 분이다. 확실히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이갈이 쌓아운틴 수학의 발전 의 하나임에 들림없다. 만약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유클리드의 평행선 공 리를 대치한 공리계로부터 얻어진 결과들을 전개한 것이라면 대부분의 공적은 사케리의 것이다. 그러나 그도 유클리드의 평행선 공리에 대치 할 합당한 공리를 찾으려고 노력한 수많은 사람들의 업적에 힘입었다. 또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창조가 유쿨리드 기하학에 대신하는 기하학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면, 쿨뷔첼과 람베르트가 비유윤리
드 기하학을 창조한 것이 된다. 그평지만 바유 클 리 드 기하학에 관한 가 장 중요한 사실은 그것 이 유클리 드 기 하학과 마찬가지 정 도 로 정 확하계 물리적 공간의 성질을 기술하는 데 사용원 수 있다는 것이다. 유 클 리드 기하학은 물리적 공간의 팔연적인 기하학은 아닌 것이다 . 그것이 물조 리 적으로 참이라는 것은 어떤 선협적 근거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 이란 인식은 전문적인 수학의 발달이 없이도 알 수 있는 것 으로서, 가우스가 계일 먼처 이 사실을 인식하였다. 한 전기 작가에 따르면 가우스는 이 신념을 실증하리 시도 랬 다 . 그는 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 이고 미유 찬 리 드 기하 학에서는 그것이 180° 보다 작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하노버 왕 국을 축 량하는 데 몇 년을 보냈는대, 그때 그 데이터 를 기 록 해 두 었다. 그는 이 것 을 이 용하여 삼각형 의 내 각의 합을 축 정 할 수 있 었 다. 1827 년에 씌 어 진 유명 한 논문에 서 브로캔 Brocken, 호해 하겐 Hohehag en , 인 젠 베 르크 Inselber g의 세 산봉우리로 전정되는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 보다 15,,. 만큼 더 크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그런데 실험적 오차가 그 초 과보다는 천싼 크기 때문에 실재로 옹-바론 내각의 합은 180° 와 같거나 작 을 수 있어서 이 사실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했다. 가우스는 이 삼각형이 걷 정적 정보를 주기에는 너무 작다는 것을 인식랬었음에 듄 림없다. 왜냐 하면 그의 미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180° 와의 편차는 그 삼각형의 면적 에 비례하기 메문이다. 천문학 연구에서 나타나는 것과 감은 큰 삼각형 만이 내각의 합이 180° 로부터의 의미있는 편차 를 나타낼 수 있을 가능 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우스는 이 새로운 기하학이 유클리드 기하학만큼 응용원 수 있으리라 확신하였다. 로바챕스키도 그의 기하학울 물리적 공간에 적용하려 생각했고, 매우 큰 도형에 적용길 수 있음을 논증했다. 이와 갇이 1830 년대에는 비유 큘리드 기하학이 몇몇 수학자에 의해 받아들여졌을 분아니라 그것의 물 리적 공간에의 응용이 적어도 가능하다고 생각되기에 이르렀다. 주로 가우스의 업적에 의해 제기된, 어느 기하학이 물리적 공간에 적 합한 것인가 하는 문제는 또 하나의 새로운 기하학을 창조하게 랬는데. 그것은 불리적 공간의 기하학이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월 수 있다는 믿음 의 새로운 동기를 수학의 세계에 주었다. 그 창조자는 가우스의 제자이 고 나중에 괴 탕 겐의 수학 교수가 된 리 만 Georg Bernhard Ri em ann (1826- 66) 이다. 리만은 로바쳅스키와 보요이의 기하학을 알지는 못했지만, 7}-
우스 는 그것을 알고 있었고, 리만은 확실히 유 윤 리드 기하학의 팔연적! 적용성에 대한 가우스의 의 혹을 알고 있었다. 가우스는 리만에게 기하학의 기초에 관한 주재를 연구 과제로 주었는 데, 그것은 사강사 ( Pr i va t dozen t ) 자격을 획득하기 위하여 리만에게 요 구된 강연의 주제였던 것이다. 1854 년 리만은 가우스가 참석한 가운 데 괴딩거J.의 철학부교수회 에서 이 강연을 하였고, 그 내용은 I868 년 《 기하 학의 기초에 놓인 가정에 관하여〉〉라는 재목으로 출판되었다. 거기 에서 리만은 공간의 구조에 관한 전반적인 문재를 재론하였고, 물리적 공간에 관해 확실한 것이 무엇이냐는 의문을 첫째로 취급했다. 우리가 겅 협에 의해 물 리적 공간에서 어떤 성질이 성립한다고 결정하기 이전에 공간의 개님 그 자체에 어떤 조건이나 사실이 미리 가정되고 있는가? 이 조전 이 나 사실 을 공리 로 취 급하여 그.는 더 깊은 성 질들을 유도하려 계최했다. 그러면 그 공리들과 논리적인 결과인 정리들은 선험적이고 . 판연적으로 진리일 것이다. 이매 공간의 그밖의 다론 성질들은 경험적 으로 배위야만 하는 것이 된다. 리만의 목적 중의 하나는 유클리드의 공리는 자명한 진리이기보다는 실제로 경험적이라는 것을 보이는 것이 었다. 기하학의 증명에서 우리는 명백히 인식되지 않은 사실들을 가정하 논 우리의 감각에 의한 착오를 법한 수 있으므로 그는해석학(미적분학과 그 확장)적 접근을 채덱했다. 리만의 공간 구조에 대한 접근법은 매우 일반적인데, 여기에서 그것 올 자세히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선협적으로 주장될 수 있는 것을 연 구하는 동안, 리만은 나중에 더 중요해전 구벌윤 하였다. 그 구면온 공 · 간의 경계없음과 무한성의 구면이다(구면은 경계가없으나무한하지 않다). 그는 무한성보다는 경계가 없다는 것이 훤싼 더 경험적 신되성운 가진 다고 지적했다. 무한하다기보다는 오히려 경계가 없는 공간의 가능성에 관한 리만의 생각은. 또하나의 기본적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암시했다. 지금은 이 가 하학을 이 중타원 기 하학 (double ellip tic ge ometr y ) 이 라 부본다. 처 옵·에 . 리 만 자신과 벨트라미 Eug e nio Beltr a mi (1835-1900) 는 이 새 로운 기 하학 이 어떤 곡면에 적용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예룹 들면, 구연에서 대원 은 직선이 된다. 그러나 나중에 케일리 Ca y le y와 다른 수학자들의 압 적은 수학자들로 하여금 가우스, 로바챕스키, 보요이의 기하학과 마찬 ` 가지로, 이중타원 기하학은 우리의 3 차원 물리져 공간을 기술할 수 있
다고 믿게 하였다. 그 공간에서 직선은 자의 가장자리 (ruler's ed g e ) 이다. 이중타원 기하학에서 직선은 경계가 없으나 길이가 무한하지는 않다. 더구나, 평행선은 없다· 이 새로운 기하학은 유클리드 기하학의 몇 개의 공리 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및몇 정리 둘 은 유클리드 기하학의 정리와 같 다. 대응되는두변과 사잇각이 같은 두 삼각형은 합동이라는 정리는 이 새로운 기하학에서도 성립한다. 그 밖의 잘 알려진 합동 정리도 마찬가 지이다. 그러나, 이 기하학의 주된 정리는 유물 리드 기하학 또는 가우 스, 로바챕스키, 보요이의 기하학의 정리들과는 다르다. 그 중 한 정리 는 모든 직선은 같은 유한의 길이 를 가지며 두 접에서 만난다는 것 이다 . 또 다론 정리는 한 직선에 수직인 모든 직선은 한 정에서 만난다는 것 이다 .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항상 I80° 보다 크고, 삼각형의 면적이 0 에 수령하면 180° 에 가까이 간다. 두 닮은 삼각형은 반드시 합동이다. 이 같은 이중 타원 기하학의 적용성에 관하여는 그에 앞선 비유 클 리드 기 하학, 죽 오늘날 쌍곡 기 하학 (hy pe rbolic g eome t r y)*이 라 볼 리 우는 것 의 적용성에 관한 모든 주장과 함께 동동하게 적용된다 .
• 나중에 큘라인 Fe li x Kle i n 은 어만 두 칙선도 한 정에서 만난다는 또 하나의 기본처 미 유ge 산om리e드tr y 기) 이하라학 이붑 렀있다옵. 윤 지지했다· 그는 이 기하학운 ,:.J:일타원 기하학 (s i n g leell ipti c
처 음 생 각에 는 이 이 상한 기 하학의 어 느 것도 유 클 리 드 기 하학과 견줄 수 있다거나 또는 대치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부당한듯이 보였다. 그 러나 가우스는 이 가능성에 직면앴다. 1827 년의 그의 논문에 기록된 축 정치 를 사용하여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적용성을 실증했돈 안 했든간에. 그는 그 적용성운 확증했을 분만 아니라 이재 더 이상 유 클 리드 기하학 의 질리성에 관해 확신할 수 없다는 수장울 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가우스가 흄의 저서에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는지는 확인할수 없다· 가우스는 칸트가 흉울 반박한 것을 겅멀했다. 그러함에도 분구하고 가 우스는 수학적 법칙이 도전받고 있는 시대에 살았고, 우리 모두가 우리 수위의 공기를· 호흡하듯이 확실히 가우스는 그 지저 분위기를 훈수했음 에 들림없 다. 비록 느끼지는 못할지라도 새로운 지적 양상이 일어난다. 사케리가 100 년 뒤에 태어났다면, 그도 역시 가우스와 갇은 결론에 도 달했을 것이다. 치음에 가우스는 모든 수학에 진리 가 없다는 결론을 내 렸던 것처 럼 보 인다. 181I 년 11 월 21 일에 베셀에게 한 편지에서 그는 다음과 갇이 썼
다: “모든 수학적 건설과 같이 [복소변수] 함수도 우리 자신의 창조일 분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며, 시작할 메의 정의가 의미를 지니지 못 할 때, 그것이 무엇인가 묻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의미있게 남으리면 무엇을 가정하는 것이 편리할까를 생각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보물을 쉽게 얻지는 못한다. 가우스는 수학의 전리 성의 문제 를 다시 생각했고, 그것을 지탱할 기반울 보았다. I8I7 년 운 버스 Hein ric h W .M . Olbers (1758-1840) 에게 쓴 편지에서 그는 나는 [유 쿨 리드] 기하학의 [물리적] 팔연성이 적어도 인간의 이성에 의해서 또는 인간의 이성 을 위해서 증명 월 수 없다는 것을 정접 확신하게 되었다. 아 마도 지 금 은 얻 을 수 없는 공간의 본질에 관한 통찰력을 다음 세대에는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까지는 우리는 기하학을 순전히 선형적 인 산수(정 수 론 )와 같은 종류로 생 각할 수 없고, 역 학과 같은· 종류로 다 루어야 한다고 썼다. 칸트와 달리 가우스는 역학의 법칙울 진리로 받 아 둘 이지 를 않았다. 오히려 그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법칙들이 경험 에 기조 몰 두고 있다는 믿음울 가전 갈릴레이를 뒤따랐다• I830 년 4 월 ·9 일에 가우스는 베 셀에 게 다음과 같은 편지 를 썼다: 나의 가장 진지한 신념에 따르면, 공간의 이론은 순수 수학 [수에 기초한 수 학] 이 차지하는 지식에서의 위치와 전혀 다론 위치운 차지한다. 우리의 공간 에 대한 지식에는 순수 수학에 공동되는 팔연성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걷여되 어 있다. 따라서 수가 완전히 우리의 정신의 산물이라면, 공간은 우리 정신 오 1 부에 있는 실재이며, 그것운 완전히 법칙으로 기숟할 수 없는 것임을 우리는 겸손하게 덧문여야만 한다. 산수에 관한 전리는 우리 정신에 명확하기 때문에 산수와 산수에 기초 한 대수학과 해석학(미적분학과 그 확장)에는 전리가 있음을 가우스는 주 장하고 있는 것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이 물리적 공간의 기하학 죽 공간에 관한 진리타는 생각은 사람들의 마음에 너무나 깊이 박혀 있어, 가우스의 생각과 같이 반대 되 는 사상은 여 러 해 동안 배 척 되 었 다. 수학자 칸토르 Georg Canto r 는 무지 (ig norance) 의 보존 법칙이라는 것을 말했다. 한번 잘못된 걷돈 에 도달하여 그 결론이 널리 인정되면 그것은 쉽게 재거되지 않으며, ·그것에 대한 이해가 적을수록 머 집요하게 주장된다. 로바챕스키와 보 요이의 책이 출판된 후 30 여년간 소수의 수학자 이의에는 모두 미유칼
리드 기하학을 무시했다. 그 기하학 들은 호기십으로 간주되었다. 및맞 수학자들은 그것의 논리적 무모순성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다른이들은 그 기하학이 모순을 포함하고 있고, 따라서 가치가 없다고 믿었다. 대 부분의 수학자 들 은 물 리 적 공간에 관한 기 하학은 유클 리 드적 이 어 야 한 다는 생각 을 견지했다. 불행 히도 수학자는 신을 버렸고, 그래서 신은 우주 를 설계하는 데 및 가지 대립되는 기하학 중에서 그가 어느 것을 사용했는지 보여 주는 것 울 거부했다, 수학자 들은 그 들 자신의 성취 물 에 열중하였다. 그 렇 지만 가우스의 노트에 들어 있었단 재료 둘은 그의 명 성이 드높았던 1855 년 에 그가 죽 은 후 에 얻어 볼 수 있었고, 리 만의 1854 년의 논문이 1868 년에 출판 되 면서 많은 수학자들은 미 유쿨리 드 기 하학이 물리 적 공간 의 기하학이 될 수 있고, 우리는 어느 기하학만이 진리라고 말할 수 없음을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선맥가능한 기하학이 있 을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 도 그 자체가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더 큰 충격 은 어느 기하학이 진리 인지 를 또는 그 중 하나의 기하학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이제는 더 이상 확신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수학자둘은 제한된 경험에 근거하여 옳다 고 여겨지는 기하학의 공리 들을 채택하였으며, 이것 둘 이 자명하다고 생 각하는 환영에 빠져 왔다는 것이 명백하여졌다. 수학자 들 은 마크 트웨 0J _ Mark Twain 이 말한 상황에 놓여졌다: “인간은 종교적 동물이다. 그 는 여러 개의 종교 중에서 진실한 종교 를 가전 유일한 자이다.” 비유클리드 기하학과 기하학의 진리에 관하여 그것이 뜻하는 바는 접 차로 수학자들에 의해 받아 들 여졌다. 그러나 그 이유는 그것의 적용성 에 관한 논의가 여러 가지로 강화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이 유는 양자역학의 창조자인 플랭크 Max Plank 에 의하여 1900 년대 초기에 주어졌다: 새로운 과학적 진리가 승리하는 것은, 그 반대자들에게 확신 시키고 그들에게 빛을 보여중으로써 아니라, 도리어 그 반대자들이 걷 국 죽고 그 새로운 전리에 찬숙한 새로운 세대가 자라남으로써이다.” 전체로서 수학의 전리성에 관하여 몇몇 수학자들은 가우스의 입장을 취했다. 전리는 수에 있다. 수는 산수 • 대수학 • 미적분학 • 해석학의 고 등한 여 러 분야의 기 초이 다. 야코비 Karl Gusta v Jac ob Jac obi (1804-51) 가 말했듯이 ‘‘신은 항상 산수화한다.” 풀라돈이 주장했듯이 신은 영원 히 기하학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리 하여 수학자들은 산수에 근거 한 수학의 분야믈 진리 로서 구원하-
iy
고 보촌하려 노락했던 것처럼 보이는대, 산수는 1850 년까지는 몇몇 기 하학보다는 낀싼 더 광범위해졌고 과학을 위해 더 필수불가결한 분야가 되었다. 불 행히도 다른 충겨적인 사건이 뒤따랐다.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약간 뒤로 돌아가야만 한다 . • 16 세기 이래 수학자들은 백터의 개념을 사용하여 왔다. 흔히 유향선 분으로 표시되는 벡터는 방향과 크기 를 가진다(그립 4,5). 벡터는 힘 • 속 도 등의 양으로서 방항과 크기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나타내는 데 쓰인다. 한 평연 우 1 의 벡터들은 기하학적으로 걷합할 수 있어 덧셈 ...l 셉 • 곱셈 • 나눗샘 둥의 보동 연산울 시행한 결과도 또하나의 벡터가 된 다. 같은 세 기 에 a+bi (a, b 는 실수, i= F1) 인 꼴의 수인 복소수가 도입 되었다. 이 수둘은 수학자들에게 조차도 종 신비한 양으로 생각되있다. 그러므로 1800 년 경에 베셀 Cas p ar Wessel (1745-1818), 아르강J ean - Rober t Arga nd (1786-1822), 가우스 갇은 수학자들이 복소수 를 평 면에서 유항선 분으로 표시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을 때, 그것은 콘 은혜로 받아들여 졌 다 (그립 4. 6). 이 수학자들은 동시 에 복소수는 평 면에 있 는 우戶강선분 을 나타내는 데 사용원 분만 아니라 벡터의 사칙 계산윤 복소수운 사용 하여 행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마지 자연수와 분수가 예 문 듄 어 상업 거래에서 사용되듯이, 복소수는 벡터들의 대수로서 사용된다• 그러므로 벡터의 연산을 기하학적으로 행할 팔요가 없고 단지 그것들을 대수저으로 다물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이 두 벡터 OA 와 OB 가 벡터 합에 관한 평행사변형의 법칙에 따라 더해지면, 그 합은 백터 OC 가된 다(그립 4.7). 이것을 대수적으로 하여, 벡터 OA 가 복소수 3+:z i, OB
.zy 5+.& .1
가 2+4 i라면 그 합 5+6 i는 백터 oc 를 나타낸다. 이 와 같이 평 면에 있는 벡 터 와 그들의 연산윤 복소수로 나타낸다는 것i 은 I830 년까지는 잘 알려져 있었다. 그렇지만 한 물체에 여러 힘이 가 해질 매, 이 힘들과 그 벡터 표현은 일반적으로 한 평면 위에 있지 않을 · 것이다. 편의를 위해서 실수를 1 차원의 수, 복소수를t 2 차원의 수라 부 · 른다면, 공간에서의 백터와 삐터 연산을 나타내는 데 팔요한 것은 어떤 종류의 3 차원의 수가 칠 것이다. 복소수에서와 같이 이 3 차원의 수에 관한 바람직한 연산은 덧셉 • 멜셉 • 곱셈 • 나눗셈을 포함하는 것이며, 더 구나 실수와 복소수의 보동 성질들을 마품으로씨 대수적 연산을 자유스 . 럽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게 되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수학자들은 3 차원 복소수와 그 대수라 볼리우는 것에 대하여 탐구하기 시각했다• 많은 수학자둘이 이 문제를 풀려고 노력했다. I843 년 해밀돈 W i ll i am : R. Hami lton 은 공간에 서 복소수와 유사한 유용한 것 을 만들었다. I 5 년 동안해밀은은좌철을당했다. 이 당시 수학자에게 알려진모든수는곱 생의 교환 법칙, 죽 ab=ba 를 만족시키는 것이었다. 해밀돈이 3 차원수 또는 세 성분을 가진 수는 실수와 복소수가 가지는 다론 성질분만 아니 라 이 곱셉의 교환법칙도 만족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자연스럽다. 해 밀몬은 두 가지 타협 끝에 성공했다. 첫째로 그의 새로운 수는 4 개의 성분으로 이무어지고, 둘째로 곱셈의 교환 법칙은 포기해야만 했다. 대 ’ 수에서 이같은 두 양상은 혁명적이었다. 그는 그 새로운 수를 사원수-
(qu ate r nio n ) 라 불렀다. 복소수가 a+bi oJ _ 형대인 데 비하여, 사원수는 a+bi+ cJ+ dk 인 형대이고 i,j ,k 는 J二 T 과 감은 성질을 가진다. 죽, i2= } 2= k 2= - I, 두 사원수가 7같 을 팔요충분조건은 재 수 a, b, c, d 가 각각 같은 것 아 다. 두 사원수의 합은 각각 계수의 합을 계수로 가지는사원수가된다. 곱 울 정의하기 위해 해밀돈은 i와 j, i와 k, j와 k 의 곱이 어떤 사원수 가 되는가를 명시해야 했다. 곱한 결과가다시 사원수가되고, 칠 수 있 으면 실수와 복소수 의 성질들 을 되도록 많이 만족하기 위해, 그는 Jk =i, kj= -i, ki= j , ik = -j, ij=k , Ji= -k 로 정의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약속은 곱셈의 교환 법칙을- 성립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이와 같이 P 와 q가 사원수일 메 pq와 qp는 같 을 팔요가 없다. 또한 한 사원수를 다론 사원수로 나누는 것에도 영향 울 줄 것이다. 그러나 꼽샘의 교환 법칙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 원수 P 를 q로 나눈다는 것을 p=qr 또는 P=r q률 성립시키는 사원수 r 을 구하는 것이라 보게 한다. 두 겅우에 몫 r 은 같은 수일 팔요가 없 다. 미록 사원수가 해밀몬이 예상한 만큼 널리 유용하다는 것이 판명되 지는 못했지만, 그는 그 수를 상당수의 물리학과 기하학의 문재들에 적 용할 수 있었다. 사원수의 도입은 수학자들에게는 또 하나의 충격이었다. 실수 • 복소수 의 기본적 성질 ab=ba 를 만족하지 않으면서도 물리학적으로 유용한 대 수가 있었던 것이다. 해밀돈이 사원수를 창조한 지 오레지 않아, 다른 분야에서 일하던 수 학자들이 더 이상한 대수를 만들었다. 유명한 대수기하학자였던 케일리 Arth u r Cay )e y (1821-95) 는 행 렬 (matr i x ) 을 도입했는데, 행 렬은 수들을 정 사각형 또는 직사각형꼴로 나연한 것이다. 이 행렬들 역시 대수의 보몽 연산의 성질을 만족하지만, 사원수와마찬가지로 곱의 교환 법칙윤 성럽 시키지 못한다. 더구나 어느 두 행렬이 0 이 아닌 데도 곱은 0 이 컫 수 가 있다. 사원수와 행 렬은 더욱더 이상한 성질을 가지는 많은 새로운 대
수의 선구자일 분이 다. 그라스만 Herm. in n G( in th er Grass m a n n (1 809 -77) 은 다양한 여러 가지 대수 를 창조했다. 이 것들은 해밀돈의 사원수보다 더 욱 일반적이다. 그라스만은 고동학교 교사여서 그의 책 이 정당한 평가를 받 기까지는 여러 해가 지나갔다. 어 펑돈 그라스만의 입적은 오 늘날 다원 수 (h yp ernumber ) 라 불리우는 새로운 형 태의 다양한 대수 를 도입시 컸 다. 목벌 한 목저울 위한 새로운 대수의 창조는. 그 자체가 보 몽 의 산수 와 대수학이나 해석학에서의 그것의 확장의 진리성을 뒤엎지는 않았다 . 걷 국 보동의 실수와 복 소수는 그 적용성이 의심할 여지 가 없는 경우 에는 전혀 다론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 운 대수 가 출현했다는 사실 자체가 잘 알려져 있던 산수와 대수의 전 리 성을 의 십하게 하였다. 마치 이상한 문명의 관습에 관하여 알게 된 사람 들 이 그 들 자신의 관습을 의십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다. 산수의 진리성에 관한 가장 예리한 공격은 위대한 의학자 • 불리학 자· 수학자였 던 헬음훈츠 Hermann von Helmholtz (1821-94) 에 의 하여 이 루 어 졌 다. 그는 《제 산과 측정 >C ount ing and Measurin g (1887) 이 란 체 에 서 산 수의 주된 문제는 물 리 현상에 대한 산수의 자동 적 적용의 정당화라고 생각했다. 그의 결론은 단지 겅 협 만이 산수의 법칙이 적용원 곳을 우리 에게 알려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법칙들이 어느 주어전 상황에서 적 용원 수 있다는 것을 선협적으로 확신 할 수는 없다. 헬 몸흉 츠는 많은 적절한 주장을 했다. 수의 개념 자체는 경험으로부터 얻어진다. 어떤 종류의 경험은 수의 보동 형태인 정수 • 분수 • 무리수와 그 성질을 얻게 해 준다. 이같은 경험-들에는 이와 같이 잘 알려진 수 둘이 적용된다. 우리는 실제적으로 동등한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 식하고, 그에 따라 예 를 들면 두 마리의 소에 관해 얘기할수있다는것 도 인식한다. 그렇지만 이 대상 들 은 사라지지도 합해져도 나누어져도 안 된다. 빗물 한 방울이 다른 빗물 한 방울과 합쳐서 두 방울이 되지 는 않는다. 같다는 개념조차도 자동적으로 경험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 다. 대상 a 와 b 가 갇고 b 가 C 와 같을 메 a 가 C 와 같아야 한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러나 두 개의 소리의 높이가 어떤 재 3 의 소리 와 같을 수 있지만 귀는 처음 두 소리 를 분간해낸다. 여기서 두 사문이 한 동일한 사물과 같으나그들은 서로 다 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 지 로 색 깔 a 와 b 는 같아 보이 고, b 와 C 도 같아 보이 지 만, a 와 C 는 구빈 가능한 경우가 있다.
많은 예들에서 산수의 순진한 적용은 터무니없는 것 임 을 알 수 있다. 가령, 7같 은 제적의 물을 더할 때, 하나는 섭씨 40 0 이고 다론 하나는 500 라면 전코 합의 두 체적의 물 은 얻지 못한다. 만약 매 초 당 100 싸이클 과 200 싸이클의 소리가 저치면 걷코 진동수가 300 싸이클인 소리가 나 오지 않는다 . 실재로 합성움은 매초당 100 싸이 클 의 진동수를 가지게 된 다. 두 저항재의 저항이 RI, R 2 일 때 전기회로에서 이 들을 병 탄로 연결 하면 그 저항은 R,R z/( R1 + R 2) 가 된다. 더구나 르벳구 Henr i Lebesg u e 가 익살맞게 애기했듯 이, 한 우리에 사자와 토끼를 넣으면 연마 후 에는 동물 한 마리만 남을 것이다. 화학에서 수소와 산소를 더하면 물을 얻는다는 것을 우리는 배웠다. 그러나 만약 수소 2 체적과 산소 나]]적운 더하면 셋이 아니라 두 체적 의 문의 중기-홍 얻게 된다. 마찬가지로, 1 체적의 질소와 3 체적의 수소 를 더하면 2 채칙의 암 모니아가 발생된다. 우리는 이 놀라운 산수적 사 실을 물 리 적 으로 설명한다 . 아보가드로 Avo g adro 의 가설에 의하면, 같 은 조건의 온도와 기압 밀에서는 7같 은 체적의 기체는 같은 수의 업조} 를 포함한다. 그렇다면, 만약에 10 개의 분자를 가지는 산소의 체적과 같 온 체적을 가진 수소는 역시 IO 개의 분자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때 그 체적의 두 배는 20 개의 수소 분자를 포함한다. 이제 산소 분자와 수소 분자는 원자를 2 개씩 가지고 있고, 20 개의 수소 분자 각각은 10 개의 산소 분자의 한 원자와 결합 하여 20 개 의 물 분자를 만들고 그 수증기 의 체적은 2 체적이지 3 재적은 아닌 것이다. 이와 갇이 기체의 합을 체적 으로 나타내는 데는 산수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보동의 산수 법칙은 액체의 합을 체적으로 나타내는 데에도 적용되지 않는다. 만약에 한 퀴트의 전 gi n 과 한 쿼트의 버머쓰 vermou t h 를 합치 떤 두 퀴트의 혼합물 이 생기지 않고 약간 양이 작아진다. 1 구1 트의 알콜 과 1 구1 트의 물을 혼합하연 약 1.8 퀴트의 보트카 vodka 륭 얻는다. 이 것은 많은 알콜 액체의 혼합물에 대하여 사실이다. 세 숟갈의 설-과 한 숟갈의 소금은 네 숟갈의 소금물이 되지는 않는다. 어떤 화학적 혼합물 은 체적이 더하여지지 않을 분 아니라 폭발하기도 한다. 많은 물 리적 상왕에 자연수의 성질이 적용되지 않을 분만 아니라, 분 수의 성질도 달리 적용해야 할 실제 상황이 있다. 우리가 혼히 관십을 갖는 야구 경기봅 생각해 보자. 한 선수가 한 게임에서 타석에 3 번 들어섰고, 다른 게임에서 다석에
4 번 나섰다고 가정해 보자. 모두 합쳐 얼마나 많아 타석에 들 어섰나? ` 여기에는 어려움이 없다• 그는 타석에 7 번 들 어 섰다. 만 약 첫 게임에 서 2 개의 안타와 두번째 게임에서 3 개의 안타 를 쳤다고 하자. 여기에 서 안타 를 쳤다는 것은 일루 또는 그 이상 진 출 했다는 것으로 보자. 전 부 5 개의 안타 를 쳤 다. 그 렇지만 관중이나 선수자신이 흔히 관십을 가 지는 것은 타윤이다. 죽 타석수에 대한 안타수의 비율인 것이다. 첫 게 임에서 이 미윤은 2/3 이고 둘째 게임에서는 3/4 이었다. 이재 야구선수나 팬이 두 비윤 을 가지고 전 계임의 평균타율을 계산하려 한다 하자. 이때 보동의 분수 계산처럼 두 분수를 합치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즉 _32 +•' — 43 =- —1172 • 물론 이 결과는 터무니 없다. I2 타석에 I7 개의 안타가 나운 수 없다. 명백히 분수를 더하는 보통의 방법은 두 게임 전체에 대한 타운을 계산 : 하는 대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 각각의 게임에 대한 타운 을 가지고 두 게임에 대한옳은 타율을어 떻게 구한 수 있을까? 이 해답은 분수를 더하는 새로운 방법을 써서 얻 어진다. 우리는 동산 타율은 .71 __'이 고 각' 게·임-의· 타·윤~이· 그3홉 }' 오4_ 인 것 을 안다. 만약 분자는 분자대로 분모는 분모대로 더하여 우리는 올바론 정답을 얻게 되는 것을· 안다. 죽 스3- +_l_4= ..1.7.. • 0] 몐 물론 +논 분자는 분모는 분자끼리 분모끼리 더한다는 의미이다- 분수를 이와 같은 방법으로 더하는 것이 다론 상황에서도 유용하다. 어떤 판매원이 어느날 5 집울 방문하여 3 개의 문건을 팔았고, 그 다음날 7 집윤 방문하여 4 개를 팔았다면, 그의 모든 방문수에 대한 성공의 횟 수의 미윤을 계산하기 위해 타율이 더해지는 방법과 마찬가지로 3/5 과 4/7 을 더해야 할 것이다. 이 물 동안의 일에 대한 그의 기록은 12 집을 방문하여 7 개의 성공을 거두었으므로 7/12=3/5+4 /7이다. 물론 이 때 에도 +는 분자는 분자끼리, 분모는 분모끼리 더한다는 의미이다. 또 다른 응용은 훨씬 흔히 있는 일이다. 한 자동차가 2 시간에 50 마 일을 주행하고, 3 시간동안에 100 마일을 주행했다고하자. 두여행에서
그 자동차의 평군속력은 o_ i가일까? 우리는그 자동차가 5 시간 동안어 r I50 마일 을 주행했으므로 평균 속력은 시간당 30 마일이라 할 수도 있운 것이다. 그러나, 각각의 여행의 평군 속력을 써서 전체 여행의 평균- 속·· 력을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유용한 때가 있다. 첫째 여행의 평균 - 속력은/ 50/2 이고 둘째 여행에서는 100/3 이다. 만약 분자는 분자끼리 분모는 분 모끼리 더한다면, 전 여행에서의 평균 속력 의 정답을 얻는다. 보통 4/ 6 = 2/3 이다. 그 렇지 만 위에서 논한 방법의 분수 계산에 따라- 2/3+3/5 를 계산할 때 2/3 을 4/6 으로 대치시키면 담은 7/1I 이 되고원 . 래의 답은 5/8 이다. 이 두 값은 같 지가 않다. 더구나, 보통의 산수에서 5/1 과 7/1 은 아치 정수 5 와 7 처럼 작용한다. 그렇지만 만약 5/I 와 r 7/1 을 지금의 계산 방법으로 더하면 12/2 이 되어 5+7=12 를 얻지 못 한다. 야구 산수라 부를 수 있는 이같은 예 들을 동하여, 우리는 잘 알고 있 는 계산법과는 다른 연산울 도입함으로써 유용한 산수를 만들 수 있다. 실제로 수학에는 많은 다 론 산수가 있다. 그렇지만 건전한 수학자들은 제멋대로 산수를 창조하지는 않는다. 각 산수는 물리적 세계의 어떤 종· 류의 현상을 표현하도록 만 둘 어진 것이다. 두 타율을 더하는 분수 계산 에서와 같이 어떤 종류의 현상에 적합한 연산을 정의함으로써 물리적으 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편리하게 연구하는 데 그같은 산수를 사용 할 수 있을 것이다. 겅험만이 보동 산수가 어떤 주어진 물리 현상에 적 용원 수 있는가를 우리에게 말해줄 분이다. 이와 갇이 산수는 물리 현’ 상에 팔연적으로 적용되는 진리의 집합체라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물· 론 대수학과 해석학은 산수의 확장이기 메문에 이들 역시 진리의 체계 는 아니다. 이와같이 수학자들이 이끌어내야 할 숟픈 결론은 수학에는 진리가 없 다, 죽, 실세계에 관한 법칙이라는 의미에서 진리가 없다는 것이다. 산 · 수와 기하학에서의 기본 구조의 공리들은 경험에 의해 얻어지며, 그 걷 과로 나타난 구조들은 제한된 적용성만 가진다. 언제 어떻게 그것문이 적용되느냐는 것은 오직 겅험에 의해서 결정원 수 있윤 분이다. 자명한 진리로부터 시작하여 연역적 증명만을 써서 수학의 진리문 보장하려는 · 그리스인의 시도는 쓸모없는 것이 되었다. 수학이 진리의 체계가 아니라는 사실은 많은 사려깊은 수학자들에게 는 쓰디쓴 일이었다. 마치 신이 바벨 Babel 의 사람들에게 여러 언어물 ·
주어 혼동시킨 것처럼 신은 수학자들에게 여러 기하학과 대수학을 주어 혼동시키는 것같다. 그러므로 그 들은 새로운 창조를 받아들이기 품 거부 랬다. 분명히 뛰어난 수학자의 한 사람이었던 해일 돈 은 1837 년에 비유클리 · 드 기하학에 대한 그의 만대 운 표 명랬다: 송직 하고 총명 한 사 람 이 라면 2000 년 전에 유 문 리 드가 그의 《 원 론 防 에 시 재 기 한 영햏섬의 주된 성질이 진리임윤 의십 할 수는 없디. 미 목 그 성 진윤이 디 명백 하고 디 좋은 방법으 로 신밍되어지는 것윤 마 안 수는 있지만, 미 목 논 리 전개 의 개선 응 위해 정교한 기교가 유용하게 사용칠 수 있윤지라 도 , 그 수장 자체 는 사고의 혼동이라돈가 오호성을 포함하지 않윤 문 디러 의십 할 이성적 근거옵 남기지 않는다. 영국 과학 진보 협회 의 회장 연설에서 아더 케일리는 다움과 갇이 주 강 했 다: 나 자신의 의견은, 유쿨리드의 12 만째 공리 [보동 재 5 공리 또는 평행선 공리 라 부론다]의 갈-레 이매어의 표현은 중명윤 전요로 하지 않을· 분더러 그것 은 겅 험 에 의해 친숙 한 물 리 저 공간으 1 개념의 인부분이고, 우리의 모 든 외져 겅협 익 기초 윤 이우는 표현 양식이다 .... 기하학에서 명계가 단지 근사적 으로 전 리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겅협의 불 리적 공간으로 오 랫 동안 간수 되어 은 유 픕리 드 공간에 관하여 그 영 재 들은 철대저으로 진리인 것이다. 쇠근의 참으로 위 대한 수학자 중 한 사람인 큘 라인 Felix Klein (1849 - 1925) 도 같은 견해 봅 표명했다. 케일리와 큘라인은 그 둘 자신이 비유 윤리드 기하학 을 연구하였지만, 그 들은 미유 물 리드 기하학이 유클리드 기하학에 새로운 인위적 거리함수 를 도입하였을 때 얻어지는 신기한 착 상으로 간주했다. 그들은 미유클리드 기하학이 유클리드 기하학만큼 기 본적이고 응용성이 있다는 것을 부인했다. 뭉론 상대성이론 이전 시대 에는 그들의 위치는 견고하였다. 럿 셀 Bertr a nd Russell 은 수학의 진리 성 운 어 떤 면에 서 는 제 한하기 는 앴 으나 믿고는 있었다. 1890 년대에 그는 공간의 어떤 성질이 팔연적이고. 겅험 이전에 가정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었다. 즉, 만약 이 같은 선협적 성질들의 어느 하나라도 부정된다면, 겅험은 무의미한 것 이 되어 버탈 것이다. 그는 《기하학의 기초에 관한 소고》 Essa y on the
Foundati on s of Geome t r y ( 1897 ) 에서 유클리드 기하학이 선형적 지식은 아 니라는 데 동의하였다. 오히려 기본적인 질적기하학인 사영기하학*이 모 돈 기하학에 대하여 선형적이라고 단정하였다. 1900 년경의 사영기하 학의 중요성에 미추어 보면 이해할 만한 견론이다. 그리고 나서, 그는 선협적인 사영기하학에 유클리드 기하학과 모든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공 -성되는 공리들을 첨가하였다. 공간의 동질성, 유한차원성, 거리의 개념 에 관한 이 공리들은 측정을 가능하게 한다. 럿셀은 또한 질적인 사고 가 양적 사고보다 신행되어야 한다고 하여, 사영기하학의 우위성에 대 한 주장이 한 충 강화된다고 지적 했 다.
* 사영기하학온 한 평면에서 다몬 팡연으로 도형듄운 사영시킴으로써 얻어지는 도형문의 공몽 성질윤 연구한다. 이 갇이 , 만약 원이 전등 ·성· 앞에 놓여 있어 그 그립자가 스크란 또는 벅에 나타난다면 그 원이 연칙선에서 인마나 기울어져 있느냐에 마라 그 그립자의 모양이 변한다. 그런대도 그 원가 여러 가지 그립자외 모양온 공몽의 기하학저 성전운 ;, 가지고 있다 .
거리기하학 죽 유클리드와 및 개의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사영기하학 으로부터 독벌 한 거리 개념 을 도입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럿셀은 철학적 의미 를 가지지 않는 기술적 성과로 보았다. 어떻든· 그 목. 정한 정리 들은 선협적인 전리가 아니다. 몇 개의 기본적인 거리기하학에 , 관하여 케 일리 와 쿨라인과는 달리 , 럿 셀은 모든 기 하학은 동일한 논리 . 적 기초 위에 있는 것이라 간주했다. 위와 같은 선험적 성질들 ·울 가지, 는 거리공간은 유클리드적, 쌍곡적, 단일과 이중 ERl 적이기 때문에 이 1 둘 기 하학만이 가능한 거 리 기 하학이 고, 물론 유클리 드 기 하학만이 물리 : 적으로 적용가능한 기하학이라고 럿셀은 주장했다. 다른 기하학들은 이 , 둘 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임으로써 철학적 중요성을 가진다. 이재, 럿셀이 유클리드적 편견을 사영기하학의 편견으로 대치하였다는 것을 은. 연중에 알 수 있다. 여러 해 뒤에 럿셀은 그의 《소고》가젊은시절의 제 이고 더 이상 옹호받을 수 없다고 인정했다. 그렇지만 나중에 우리가 ` 알 듯이 그와 다몬 이들은 수학에서 진리를 확립하는 데 새로운 근거를 세웠다 (10 장). 어떤 기본적인 전리를 찾으려는수학자들의 고집은 이해할 만하다. 물 노 리적 현상을 기술하고 예측하는 데 빛나는 성공을 거둔 및 세기가 호른` 뒤, 수학이 다이아몬드의 집합체가 아니라, 인조석의 집합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며, 묵히 그들 자신(수학자)의 창조의 자만에 눈멀 수도 있는 사람둘에게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그 렇지만, 정차로 수학자둥은 수학의 공리와 정리가 문리적 세계에 관한 팔연적 진리는 아니라는 것을 인정했다. 경험의 어 떤 영역은 목밀 한 공리계를 주게 되며, 그 공 리 들과 그 결과들이 이 영 역에 충분히 정확하게 적용되어 유용한 표현을 주게 된다. 그러나 만약 에 이 영역이 확대되면 그적용성을 잃을 수도 있다. 물 리적 세계의 연 구 에 관한 한, 수학은 이 론 이나 모델만윤 제 공할 분 이다. 경험 또는 실험 을 동해 어떤 수학의 새로운 이론이 옛것보다 디 가까운 대응을 준다는 것을 알았을 때 새로운 이론이 옛것을 대치할 수도 있다. 1921 년에 아 인쉬 타인 Ei n ste in 은 수학과 불 리 적 세 게 의 관제 믈 다 움과 같이 말했 다: 수학의 명재가 신재윤 선명하는 한에 있어 그 것은 확실하 지 않다. 그리고 그 것이 확실한 한에 있어 그 것은 산재윤 기순하지 않는다 .••• 그러나그 반면에 인반적인 수학과 유히 기하학 은 신계 대상의 성전에 관하여 무엇인가 알아내 려는 우리의 욕구 때문에 촌재하는 것이 확실하 다. 수학자들은 신을 포기겠고, 그레서 그 등은 인간 을 받아 둘 여야만했다 . .그 리고 이것이 그 들 이 했던 일이었다. 자신 들 이 만 든 것이 산의 설계가 아니라 인간의 업적이라는 것을 인석하면서 수학자들은 수학을 계속 말 전시켰고 자연의 법최윤 찾 으려 계속 노라겠다. 그 들 의 과거의 성공은 그들이 하고 있는 것에 확 신을 주었고, 다행히도 그들의 노력의 전과로 수 많은 성공이 뒤따랐다. 수학의 생명윤 보촌시킨 것은수학자재가꾸 머 만들어 낸 강력한 약――천체역학 • 음성학 • 유체역학 • 광학 • 전자기 론 • 공학에서의 거대한 업적-과 수학에서 얻어지는 예측의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정확성 덕분이었다. 수학은 진리라는 불굴의 깃빨 아래 싸 위 왔지만, 수학에는 어떤 본질적인-아마도 마술적인――힘이 있어, 실제로 그 힘이 어떤 내적인 신비적 강릭성을 동하여 승리를 거두게 앴 읍에 몰립없다 (15 장). 그래서 수학의 창조와 과학에의 적용은 천씬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수학이 진리의 집합체가 아니라는 인식은 충격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 컸다. 먼처 과학에 준 영향에 대하여 살펴 보자. 갈릴레이 시대 이후로 비목 적어도 2 세기 동안 과학자들은 그들이 발견한 원리들이 자연의 설 계에 들어 있는 것이라 믿었지만, 수학과는 반대로 과학의 기본 법칙은 경험으츠나杓터 산출된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러나 19 세기 초에 이르러 과 학적 이돈은 진리가 아님을 인식했다. 수학조차도 그 원리를 경험으로
부터 얻는다는 것과 수학이 진리라는 것을 더 이상 주장할 수 없다는 것 을 알게 되 자. 과학자들은 그들이 수학의 공리 와 정 리 문 사용하는 한에 있어 그들의 아몬은 그만큼 취약하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자연의 법 칙은 인간의 창조이다. 신이 아닌 우리가 우주의 법칙을 부여하는 자 (la wg ive r) 이다. 자연의 법칙은 인간의 서술이지 신의 규정은 아니다. 이러한 재잉의 반향은 문화의 거의 모든 분야에 미쳤다. 수학과 수리 물리학에서의 명백한 진리의 획득은 진리가 지석의 모든 다론 분야에서 도 얻어 질 수 있다는 기대불 복돋아 주어 왔던 것이다. 1637 년에 그의 처 서 《 방법 서 선 》 Di sc ourse 011 Meth od 에 서 데 카로트는 이 기 대 에 관하 · 여 주장하였다: 기하학자 등 이 .::z.. 둘 의 가장 어려운 증명둥의 전론에 도달하는 데 익숙하게 써 왔던, 단순하고 쉬운 추론의 간 연캐룹 생각하면, 인간이 다울 수 있는 지식 의 모돈 것 등 은 갇은 방법으로 서로 연전되어 있고, 만약 우리가 전리에 대하 · 여 거짓은 받아들이지 않고 항상 하나의 진리로부터 또다른 전리문 연역해 나 가는 데 판요한 순서 운 생각하기만 한다면,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쳐 우리가 도단한 수 없거나 감추어져 있어 발견원 수 없는 것은 없다는 생각을- 나는 하 게 된다. 수학적 탐구의 성공이 아직 드물던 시절에 데카르트는 위와 같이 썼 다. I8 세기 중엽에 이르러 성공의 사례는 수가 많아지고 십오해져서 지 도적 지성인은 수학과 이성을 적용함으로써 모든 분야에서 진리폴 보증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졌다. 달랑메르는 그의 시 대를 다음과 같이 대 변한다: 우주의 장관이 우리에게 준 개념의 어떤 환회는 ••• 정신의 생기있는 흥분윤 가져 왔다. 냄 움 부수는 강과 7같 이 자연을 몽-하여 모든 방향으로 퍼 져 나가면서 이 흥분은 그 방해가 되는 모든 것윤 져런하게 청소해 버렀다 .••• 이갇이 속 세의 과학의 원칙으로부터 종교져 계시의 근본에까지, 형이상학으로부터 취미 의 문재까지, 음악으로부터 도덕까지, 신학자들의 학문져 논쟁으로부터 상업 의 문제까지, 군주의 법에서 민중의 법으로까지, 자연 법칙에서 국가의 임의의 법으로까지, 모든 것이 토돈되었고 분석되었거나 저어도 거론되었던 것이다. 진리가 모든 분야에서 발견되리라는 이갇온 신념은 수학에는 진리가 없다는 인식에 의해 분쇄되어쳐 버렀다. 정치학· 윤리학· 종교 • 겅재학,
그밖의 많은 분야에서 진리가 얻어 질 수 있다는 희망 이나 아마도 신념 조차 인간의 마음에 아직도 존속할지도 모르나, 그 희 망에 대한 가장 종 은 지지 기반 을 잃은 것이다. 수 학은 인간이 진 리 를 구 할 수 있다는 증 명을- 세상에 알렀고 그 증명 을 파괴랬다. 둘 다 이성의 승 리로 알려졌 던 미유 큘 리드 기하학과 사원수가 이 같은 지 적 재앙의 길을 언었단 것 이다. 제임스 W i ll i am J ames 가 말했듯이 인간의 지적 생활은 그의 경험이 ’ 원초적으로 대어나는 지 각적 질서를 개념적 질서로 대치하는 데 전적으 ` 로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개 념적 질서는 지각 적 질서에 대한 전신성 있 는 설명이 아니다. 진리의 상실로 말미 암아 인간은 그의 지적 중십, 그가 기본적으로 의 촌할 지석 체계, 모든 사상에 대한 확립된 권위 를 잃었다. “인간 이성 의 자부십은 추락하였고, 그 추락과 함께 진리의 집은 붕괴되었다 . 역 사의 교 훈 은 우리의 가장 확고한 신념마저도 독단적으로 주장되 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 신념 들 이 가장 의십스러우며, 그 둘 은 우 리의 승리의 표시가 아니라 우리의 한계와 우리의 속박운 나타낸다는 것이다. 수학의 전리성에 대한 믿음의 역사는 위즈위드 Wordswor t h 의 《불멀성의 암시》 Inti ma ti on s of Immor t a lity의 말로 요약 원 수 있다. 1750, 년의 수학자 들 은 그의 창조물에 대하여 다음과 갇이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영광의 구몸을 뒤따르며 우리는 대어났으니 신으로부터, 그는 우리의 고향이려니 1850 년에 이르러 그들은 슬프게도 다음과 같이 인정해야만 하) 다: 그러나 내가 어디로 가든지 나는 아직 알고 있네 지상으로부터 영광은 사라져 버렀다는 것윤 그러나 역사는 너무나 암담한 것이어서는 안된다. 갈르와 Evar i s t e Galois 는 수학에 관하여 말했다. ”이 과학은 인간 정신의 소산으로서 그것을 알기보다는 오히려 연구하는 운명이 지워진 것이며, 진리를 찾기보다는 추구하는 것이다.” 아마도 교묘히 빠져나가기를 바란다는 것이 전리의 본성에 존재한다. 또한 로마 철학자 세네카 Lu ci us Seneca 가 말했듯야 자연은 한꺼번에 그 모돈 신비를 풀어해치지는 않는다.”
5 논리적 주제의 비논리적 전개 우리논 비단하지 않고오히려 내재하고 있는 힘을 발견할 것이다. —위 즈워 드 \Vordsw orth 2 천여년간 수학자들은 자연의 수학적 설 계 봅 밝히는 데 매우 성공적 이라고 믿어 왔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수학적 법칙들이 진실이 아니 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 또한 이 2 천여년 동안 수학자들은 전리 에 도달하는 데 있어서의 그리스인둘의 계획을 고수해 왔다고 믿었다. 죽 수학적 공리들에게 연역법을 적용합으로써 공리들만큼이나 믿을 수 있는 결론을 얻으려는 것을 말한다. 과학에 있어서의 수학저 법칙은 뚜 럿이 정확하였으므로, 어떤 수학적 추온의 정확성에 관하여 나타나는 및 가지 의견 차이는 무시되었다. 가장 예리한 수학자들조차도 추론에 있어서의 어떠한 결함도 미리 제거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IS > 세기에 그들의 추론에 관한 수학자들의 마음의 편안함은 사라졌다. 무엇이 수학자들의 눈을 뜨게 하였는가? 어떻게 그들은 그들이 건전 한 추론을 하지 않았음을 인식하게 되었는가? 몇몇 소수의 사람들은 I9 세기 초에 이미 만족스럽지 못하게 나다나는 해석학의 확신성이 공 각운 받음으로써 당황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학자들자신으.로하여금그. 둘의 진리에 관한 주장을 포기하게 한 것은 바로 그들 자신의 창조물 ―비유쿨리드 기하학과 사원수-이었으며, 이 창조물이 수학자문운 논리적으로 비참한 상황으로 몰아갔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업적은 유클리드 기하학의 유사한 정리나 증명 과 항상 대조해 보는 것 이 자연스러웠는데, 놀라운게도 결과적으로 2 천 년 동안 전문가들에 게 엄 밀한 증명 의 전형 으로 환영 받아오던 유클리 드 기하학이 논리적 관접에서 십각한 결함이 있다는 것을 밝혀 내게 하였 다. 사원수 (4 장)로부터 비못된 새로운 대수의 창조는 보동의 실수 및 산 수와 대수의 논리적 뒷바침을 재검도해 보아야 할 정도로 수학자 들 을 당 황하게 만둘었는데, 수학자들은 이들 수의 성질이 안전하게 확립된 것 인가 를 그둘 자신 재확인하려는 것 이외의 다론 이유는 없는가 를 재검 도一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분야에서 그들이 발견한 것 역시 눈라운 깃이었 다. 그들이 고도로 논리적인 과목이라 생각해 왔던 것은 실재로 전적으로 미논리적으로 전개되어 왔던 것 이다. 몽찰력 (i ns ig h t)의 가장 풍부한 근원은 일이 일어 난 뒤의 이해 (h i nds ig h t) 이고, 이같은 새로운 창조에 의하여 수어지고 예리해진 이해력을 써서, 수학자들은 그들의 선조들이 및 세대에 걷쳐서도 발견하지 못했거나 발 견했더라도 진리를 얻으려는 성급하고 얻렬한 충동 때문에 겉핥기로 해 놓은 것을 종국적으로 찾아낼 수 있었다. 수학자둘은 분명히 그들의 과 목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과학에 있어서의 수학의 계속적인 현저한 유효성 을 넘 어 서 , 참된 수학은 풀라돈 이 후의 많은 수학자들이 초감각적 실체로 간주한 지식의 체계이다. 그러므로 수학자들은 그들이 할 수 있 는 최소한의 것은 수학의 논리적 구조를 재검토하고, 결함 있는 부분을 보완 또는 재구성하는 것이라고 걷정했다. 우리는 연역적 수학이 그리스인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첫번째의 외견 상 굳건한 구성은 유클리드의 《원론》임을 안다. 유클리드는 정의와 공 리에서 시작하여 정리들을 연역해 냈다. 이제 유클리드의 정의 및 가지 믈 살펴보자. 정의 I, 접은 부분을 가지지 않은 것이다. 정의 2. 선 [현대 용어로는 곡선]은 나미가 없는 길이이다. 정의 3. 직선은 그 위에 있는 접들에 관하여 곧게 먼은 선이다. 아리스토델레스는, 정의란 반드시 이미 알려진 다른 개념의 용어를 써 서 정의된 개념을 기술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논 반드시 어디에서인가 시각하여야 하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하기를 시작으로. 삼아야 할 정의되지 않은 개념이 있어야만 한다고했다. 기원전 3000 년
겅 알 렉산드리 아에 살 면서 활동했 던 유 큘 리드가 고전기의 그리 스 인의 업 적, 묵 히 아리 스토텔 레스의 업적 을 알고 있었다는 여러 가지 시사가 있 옵 에 도 불구 하고 그는 모 든 개 념을 정 의하려고 하였다. 이 갇은 결함 에는 두 가 지 선명 이 있어 왔 다. 유 큘 리 드 가 무 정의용어 가 있 어 야만 한 다 는 것윤 인 정 하지 않았거 나, 또 는 유큘 리 드 의 어떤 옹 호 자 등 이 말 하 는 바와 같 이 유 클 리 드는 무 정 의용어 문 이 반 드 시 있어야 한 다 는 것을 알았지 만, 그의 앞 의 쪽 정 리 둘 은 그 정의 된 용어가 무 잇 을 의미 하는 가 약간의 직관적 아이디 어 만 윤 주 기 위한 것 으 로서 , 그 뒤 에 나타나 는 공 리 들 이 실제로 옳은 진술 임 을 알아 강 수 있 게 하 려던 의 도였다 는 것 이다. 후자 인 경 우에 그 는 그 자신이 쓴 언본 에는 그 같 은 정 의 를 포함 시 키지 않았 어야 만 한다. 유 클 리드의 의도 가 무잇 이었던 간에 실 재 적 으 로 2 천년 동 안 그 를 따 르 는 모 든 수 학자 들 은 무정 의용어의 핀 요 성 을 인 식 하지 못하였 다. 파스칸은 《 기 하학적 정 신에 관 한 논고 》 Treati se on Ge om e tr i c a l Sp irit (1658) 에 서 이 같 은 팔 요성 에 주 의 를 환기 시 켰으나 그의 주 의는 무시되었다. 유 클 리드의 공리에 대하여는 어떠한가? 아마도 아리 스토 델레스 를 마 라서 그는 모 든 추론 에 적용되는 다 섯 개의 보편 개념과 만지 기하학에 만 적 용되는 다섯 개의 가정 윤 진 술 하였다. 보편 개념 중 하나는 같은 것 과 같 은 것 들 은 서 로 갇 다 (Thin g s eq u al to the sam e th in g arc eq u al to ,each oth er) 는 것이다. 유 큘 리드는 것 (사 군 , th in g ) 이라는 단어 를 길이 • 면적 • 제적 및 정수에 대하여 사용하였다. 분명히 “사 물 ’’이라는 만어는 대단히 모호하다. 그러나 더욱 오해되기 쉬운 것은 그의 보편 개념 중 다음의 것 이 다. 일치 하는 것 들 은 칼다 (Thin g s whic h coin c id e arc eq u al). 그는 이 공리 를 써서 두삼각형이 합동이라는 것 윤 보였는데, 한 삼각형 을 다론 삼각형 위에 놓고 주어진 사신 들 을 사용하여 두 삼각형이 일치 한다는 것을 보였다. 그러나, 한 상각형을 다 몬 삼각형 위에 놓는 데에 는 그것 을 움직여야만 도]고, 그 렇 게 하는 데 있어서는 그는 움직이는 동 안에는 성질이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 을 가정해야만 한다. 따라서, 그공 리 가 실제 로 말하는 바는 우리 의 공간이 동질져 (homog e neous) 이 라는 것 , 죽 도형의 성질은 어디에 놓여 있든 간에 같다는 것이다. 이것은 합리 적인 가정으로. 보이지만, 여하간 추가된 가정인 것이다. 또한 운동의 게념은 정의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다. 더구나, 유클리드는 그가 제시하지 않은 많은 공리 문 사용했다. 가~
스가 언급한 바와 같이, 유클리드는 다몬 정들 “사이에 놓인 점 과 댜 론 선들 사이에 놓인 선에 관하여 말랬지만, “사이에라는 개념과 그 성질을- 다루지는 않았다. 분명히 그는 도형을 마음 속에 생각하고 실재 의 도형이 갖고 있는 성질을 그의 추론 속에서 다루었지만, 이같은 성진 울 공리로 제시하지는 않았다. 도형은 생각과 기여에 도움아 원지는 모 르지만 추론의 근거가 뢸 수는 없다. 명백한 언급없이 사용된 또 다른 공리로는, 라이프니츠가 지적한 바와 감이, 전문적으로는 연속성이라고 불리우는 것에 관련된 것이 있다. 유 문 리드는 직선 l 의 한 쪽 핀에 있 는 점 A 와 다몬 쪽 편의 접 B 풀 연전하는 직선은 l 가 공 동 김 을 가진 다는 사실-을 사용했다(그립 5. I). 아것은 도형상으로 는 분명랬다. 그러 나 이 공통정의 촌재를 확신캐 하여 주는 직선에 관한 공리가 없었다. 직선 l 의 양편이 있다는 말조차 할 수 있는가? 이것 역시 어떤 공리 를 팔요로 한다. 정의와 공리에 있는 걷함 이외에도 《원론 》 은 또한부적합한증명을- 포 함하고 있다. 몇몇 정리는 잘못 증명되어 있다. 어떤 것은 진술된 정리 의 목벌한 경우 또는 묵 밀한 형태에 관하여만 증명되어 있다. 그러나 이같은 절합은 곧 수정할 수 있기 때문에 밀로 중요하지 않다. 아마 유 쿨리드는 대충 그려진 그립에 대하여 엄격한 증명을 했을 것이다. 그러 나 유클리드의 업적을 총괄하여 판단할 때, 실제로 유클리드가 정확히 그려진 그럼에 대하여 대충 증망했다고 말해야만 한다. 간만히 말해서 유클리드의 표현은 지독하계 결함이 많다. 《원론〉〉에 들어 있는 이같은 모든 견함에도 불구하고, 1800 년 경 이전 의 가장 뛰어난 수학자 • 과학자 • 철학자들은 그것을 업격한증명의 이상 적인 전형으로 간주하였던 것이다. 과스칸은그의 처서 《수상록》 Pensees 에서 기하학적 정신은 완전한 해석을 할수 있는 이같은 모든문재에서 막원한 힘을 발휘한다. 그것은 공리로부터 시작하고 보편적인논리적 규 칙에 의하여 참입이 증명되는 추론을 작성한다”라고 말하였다. 캠브라
A
지 대 학교 에서의 뉴 돈 의 스승이었으며 선임자였던 바로우 Isaac Barrow 는 기하 학 의 확 실성 에 관 한 여 덟 가지 이유 를 일 거하였다. 죽 , 개념의 명백 성, 명확한 정 의, 보편 개념의 보편적 진리성에 대한 우리의 직관적인 확 신, 공준 의 명백한 가능성과 연상의 용이성, 공 리의 갯수의 적음, 크. 기 를 전 정하 는 방법 의 명백한 인 석 , 증 명 순 서의 용이 함 , 알려지지 않 은 사 물 의 기피 동 이다. 그러 한 증 거 룬 더 많 이 들 수도 있겠다. 1873 년 까 지 도 저 명 한 정 수론학 자인 스미 스 Henry Joh n Ste p h en Smi th 는 기 하 학 이 엄 격 하 지 않 으 면 의미가 없 다 . ••• 거의 보 편적 인 의견의 일치로 유쿨리드의 방법은 엄 밀성 이 라 는 점 에서 완전하다”라고 말하였다. 그 러 나, 미 유 문 리 드 기 하학에 관한 연구는 유 클 리 드 기 하학의 수많은 결함윤 밝혀 냄으로 써 그 논 리적 완결 성이 더 이상 찬양 될 수 없음을 보 였다. 미 유클 리드 기하학은 유 클 리드 기하학의 논리 를 침 몰 시킨 암초이 었다. 견 고하다고 확 신되어 오던 땅이 늪 이라는 것이 증명된 샘이다 . 물론 유클 리드 기하학은 수학의 한 부분일 분이다. 1700 년까지도 수 에 관 한 수학이 더 큰 부 분이었다. 여기에서 수의 논리적 전개가 어멍 게 이 루 어 져 왔는지 알아 보자. 이집트인과 바빌로니아인은· 정수 • 분수 및 ,/2, ,/3 과 같 은 무리 수 들 을 다 루 었다 . 그 들 은 실제 응용에 서 무리 수의 근사값 을 구했다. 그러나 이 사람 들 의 수학이나 기원전 4 세기 이 전의 그리스의 수학조차도 직관과 겅협에 기초 를 둔 것이었으므로, 논 리적 구조에 대한 찬양이나 비평이 있을 수 없었다. 우리에게 알려쳐 있는 정수에 관한 첫번째 논리져 취급은 유 클 리드의 《 원론 》 7,8,9 권에 나와 있다. 여기에서 유클리드는, 그것에 의하여 존 재하는 사물의 각각을 하나라 부를 수 있는 랐위 (un it)와, 단위가 및 개 결합된 크기로서의 T(number) 와 같은 정의 를 도입하였다. 분명히 이들은 부적철하며, 여기에서도 역시 유클리드가 무정의 개념의 판요 성을 인식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움 말해줄 분이다. 정수의 성질을 유도 함에 있어서, 유클리드는 앞서 설명한 바 있는 보편 개념을 사용하였 다. 불행히도 그의 증명 중 일부는 결함이 있다. 그럽에도 불구하고 그 리스인과 그 후계자들은 정수론이 만족스러운 논리저 기초 위에 있다고 믿 었 다. 그들은 또한 후세 에 분수라고 부르게 된 정 수 의 바 (ra ti o) 에 대 하여, 그것을 정의하지 않은 채로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 었다. 그리스인둘은 수의 논리져 전개에 있어서 타개하기 어려운 문제에 직
떤하게 되었다. 잘 알다 싶이, 기원전 5 세기의 피타고라스학파는 자연 을 연구합에 있어서 정수와 정수의 미를 강조한 최초의 사람들이었는데 실재 로 그들은 정 수는 모든 사물의 처 도 (measure ) 라고 주장하였 다. 그 둘은 어떤 바, 예를 들어 직각이등변삼각형의 빗면의 다 른 변에 대한 미 같은 것이 정수의 비로써 표현 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놀- 라고 당황앴 다. 그들은 정수로써 표현원 수 있는 비 를 동약미 (commensurable rati o) 라 하고 그렇 게 표현되 지 않는 미 를 미 동 익미 (inc ommensurable rati o) 라 고 불렀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리수 J T 로 표현 하는 것은 미동익에이 다. 미동약비의 발견은 히파수스 H ipp asu s of Mcta p o nt u m (B . C . 5 세기)의 기여라 한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그 당시 바다에 나가 있었고, 히파수 스는 우주의 모든 현상은 정수나 정수의 미로 구]착된다는 피타고라스의 교리 를 부정하는 우주의 한 요소 를 발견앴다는 이유로 배 밖으로 단저 졌다는 엣 얘기가 있다. J 1 가 무리수라는 증명은 미타고라스 학파에 의하여 주어졌는대, 아 리스토델레스에 따르면 그 증명법은 키퓨밀 (reduc ti o ad absurdum) 죽 간 접증명법이었다 한다. 만약 직각이둥변삼각형의 빗변의 다른 년에 대한 비가 유리수라면 같은 수가 짝수이면서 동시에 홍수이어야 하는데 그것 은 물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식의 증명이었다. 그 증명은 다음과 같 다: 직각이동년삼각형의 빗면의 다른 변에 대한 비가 a/b 로씨 표현된 다고 가정하자. 여기에서 a 와 b 는 정수이다. a 와 b 가공약수를 가지 고 있울 메는 약분했다고 가정하자. a/b= ,/2 라면 a2 =2 b 언 임의의 홀 수의 재곱은 홍수*이므로, a2 이 짝수이면 a 는 짝수이다. 비 a/b 가 약 분되어 있고 a 가 짝수이므로 b 는 홀수 이다. a 가짝수이므로 a=2c 라 고 두자. 그러 면 b2=4c2, 그란데 a2=2b2 이므로 4c2=2b2 즉 2c2=b2 이 다. 그러 므로 b 도은 짝수이 다. 홀수 의 제 곱은 홀수 이 므로, b 는 짝수일 . 수밖에 없다. 이것은· 오순이다•
* 임의의 훈수는 어먼 ?’에 대하여 2’'+1 이라쓸수있다· 그러므로 (211+1)'=411'+411+ c. 이 되고, 이것은 반드시 흡수이다.
피 타고라스 학파와 그리스인들은 무리수의 개 념을 이해하지 못했고, .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타고라스학파의 증명은 J T 가 정수의 비 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지만, 무리수가 무엇인가를 알려주지는 못한 것이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바빌로니아사람도 그러한 수를 사용했 다. 그러나 의십할 나위 없이 그들은 그둘의 십진법 (60 진법) 근사값이
정확한 값일 수 없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 이다. 우리는 그 둘 의 명쾌한 생각 을 환영할 수는 있지만, 그 들 은 절코 수학자는 아니있다. 고대 그 리스인 들은 지적인 면에서 색다 른 인종이었으며, 근사값으로 만 족할 수 는 없었던 것이다. 무리수의 발견은 그리스 수학의 중심 이 되는 문재 를 재기하였다. 푼 라 본 은 그의 《 법 뮬〉〉 Laws 에서 비동약수에 대한 지식을필요로했다. 문 재의 해전은 한메 풀 라 몬의 재자였던 유독 소스 Eudoxus 에 의하여 얻어 쳤는데 , 그는 모든 양을 기하 학적 으 로 생각했다. 숫자로 표현한 다면 무 ` 리수가 컬 수 있는 건이 • 각 • 면적 • 체적 등이 기하학적으로 다루어졌 다. 예 를 둘-어 유 클 리드는 피타고라스의 정리 를 , 직각삼각형의 빗변 위 의 정사각형은 다 른 변듄 위의 정사각형들의 합과 같다는 꼴로 표현앴 다. 그는 정사각형둘의 합이타는 말을 그 두 면적 을 기하학적으로 합한 것 이 빗변 위의 정사각형 의 면적과 같다는 뜻으로 썼다. 기하학에 의존 한 것은 이해 할 만하다. l 과 ..;了 몰 길이, 즉 선분으로 취급할때 I 가 J了의 차이 는 그 목칭 이 사라진다. 무리수 때문에 나타난 문재는 길이 • 면적 • 체적을 수치적으로 표현하· 논 문제 이상으로 크다. 이차방정식, 예 를 들어 국 -2=0 의 근은 확실 히 무리수가 원 수 있으므로, 고전기의 그리스인 들은 이같은 방정식을 기 하학적 으로 풀었 다. 죽, 제 곱근을 선분으로 나타냄으로써 또다시 무 ~ 리 수률 사용할 필요를 피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전개 방식은 기하학적 대수학으로 알려져 있다. 유 큘 리드의 《 원론》은 결국 기하학분만 아니타 대수학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정수론을 제외한 모든 수학을 기하학적으로 전환한 것은 몇가지 중요 한 결과를 낳았다. 그 중 하나는 수와 기하학 사이에 엄격한 구분이 생 겨난 것인데, 이는 기하학만이 비동악비륜 다 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 클 리 드 시 대 이 후 로 수학의 이 갇은 두 분야는 엄 격 히 구분되 어 야만 앴 다. 또, 기 하학은 수학의 태 반을- 포함하므로 최 소한 1600 년까지 는 기 하 · 학은 거의 모든 엄밀한 수학의 기본이 되었다. 잉어에서 군과 죠윤 mI] 곰, x 새재곱이라 부르는 대신 x sq u are, x cube 라 부르는 것은 일 반적인 양 죠 ,x3 이 한 때는 기하학적 의미만을 가졌었기 때문이다. 수와 수어! 관한 연산의 기 하학적 표현 은 물론 실용적 이 아니 었 다 . ..;2 • ..;T 을 사각형의 면적으로 생각하면 논리적으로 만족원지는 모르 . 지만, 그 꿈을 수치적으로 알 팔요가 있을 때는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자,
못하다. 과학과 공학에 있어서는 도항이 십진법의 팔요한 만큼 많은 자 리수-단 계산할 수 있는 수치적 답만큼 실용적일 수는 없다. 응용과학과 공학온 양적이어야만 한다. 바다에 떠 있는 매가 그 위치윤 위도와 겅 도를써서 알려고할메, 그것들의수치몰알아야한다. 전문·교량·선 박 • 댐 등을 효윤적으로 전설하자연 거기에 사용되는 길 이 • 연적 • 제적 둥의 양적 측도를 알아야만 하며 , 그밍 개 합 으로 씨 부분(부풍)둘이 잔 맞 아 들어가게 될 것이다. 실재로 이 양적 지식은 건설 이전에 얻어져야만 한다. 그러 나 고전기 의 그리 스인둘은 정 확한 추론을- 가장 중요한 것 으 로 간주하고 상업 • 항해 • 전설 • 객력 계산둥에의 응용을- 무시했으므로, 무리수에 관련된 곤란성을 기하학적으로 해결한 데 만 족 앴단 것 이다 . 고전기의 그리스 문화는 기원전 300 년 겅부터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 문화 (1 장)로 계승되었다. 이것은 고전 그리이스 문화와 이 집트 • 바 빌로 니아 문화의 융합이었다. 논리적 전개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 문화는 연 역적 수학과 경험적 수학의 기묘한 혼 성 품을 낳았다. 이 매의 주요한 수 학자인 아르키메데스와 아 폴 로니우스는 유클리드의 《 원 론〉〉 에 들 어 있 는 공리적 • 연역적 기하학을 추구하였다. 아르키메데스조차도 역학에 관한 그의 논문에서 공리로 시작하여 정리를 증명하였다. 그러나 알랙산드리 아 사람들은 종 더 실용적인 정신을 가전 이집트인과 바빌로니아인의 영 향을 받아 수학을 이용하는 데 힘썼다. 그리하여 우리는 알렉산드리아 시대에 길이 • 면적 • 체적의 양적 축도를 할 수 있는 공식이 도입되어 있 음을 안다. 그리하여 알렉산드리아 시대의 이집트인 공학자 헤론 Heron ’(A .D. 1 세기)은 그의 저서 《매트리카》 lv[c t r i ca 에서 삼각형의 면적의 공 식으로 心 (s_a) (s— b) ( s_c) 올 둘었다. 여기에서 a,b,c 는 변의 길이, 그리고 s 는 둘레의 만이다. 그러므로 이 공식에 의해서 주어지는 값은 무리수일 수도 있다. 이 목 이한 공식은 주목할 만하다. 고대 그러스인들은 3 개보다 많은 수의 곰 은 기하학적 의미가 없으므로 무의미하다고 여겼는데, 헤론은 그러한 의구십을 갖지 않았다. 알렉산드리아 시대의 그리스인들이 발전시킨 많 온 순수 또는 응용과학, 예를 문어 체력 계산· 시간 측정 ·항해 수학· 광학 • 지리학 • 기체 및 유체역학 ( 1 장\ 등에서 무리수는 자유롭게 사용 되었다.
알렉산드리아인들의 최고의 업적은 히파르쿠스와 몰레미에 의한 양직 천문학의 창시인데, 이는 행성 • 태양· 달의 운동을 예측할수 있는 지구 중십 적 인 천문학이 었 다 (1 장). 히 파르쿠스와 톨레 미 는 같은 양칙 천문학 을- 개발하기 위 하여 삼각법을 창시하였는데, 이는 삼각형의 및 요소(각· 변) 를 알 때 어떤 요소 를 계산하는 방법에 관한 수학의 한 분야이다. 몰 레미는 삼각법을 현대 의 방법과 다르게 다 루 었기 때문에. 그는 원의 현 의 길이 를- 계산해 야만 랬 다. 그는 현물- 사이의 크기에 관련된 기본적인 결과 를 얻는 데 연역적 기하학을 사용 랬 지만, 그런 뒤에는 그가 최종적 으로 구하려는 현 의 길 이 를 계산하는 데 산수와 약간의 대수학을 사용 랬다. 이 길이의 대 부 분은· 무리수였다. 몰레미는 유리수에 의한 값을 구하는 것 으로 만 족 하였지만, 그는 연구 도중에 무리수를 주저없이 사 용하였다. 그러 냐 알렉 산드리 아의 그리 스인들이 자유로이 사용하던 산수와 대 수학은 이 집트 인과 바빌로니아인의 것을 받아들인 것인데, 논리적 기초 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물- 레미 를 미못한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인들은 대체로 이집 트 인과 바빌로니아인 들 의 방법을 따랐다. r, J;’ ✓ 了등과 갇은 무리수들은 무비판적으로 사용되었고 팔요하다면 근사값으로 얻어 겼다. 예 물 들 어, 무리수의 가장 유명한 사용은. 11:가 3 1/10 과 3 10/71 사이에 있다는 아르키메데스의 계산이다. 그가 r 는 무리수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그는 근사값을 얻기 위해서 확실히 무리 수라고 알고 있는 임의의 제곱근을 계산했다. 우리의 현재의 목적을 위해서 무리수의 자유로운 사용만큼이나 주목 할 만한 사실은. 기하학과는 독립된 이집트인과 바빌로니아인들의 대수 학을 다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갇은 부흥에서 주요한 역할울 한 것은 헤론과 또다론 알렉산드리아 시대의 그리스인인 디오판무스 D i op hnn t us (A.D. 3 세기)이다. 두 사람 모두 산수와 대수 문재를 다루었는데, 그 문 재 제기의 동기 또는 논리적인 뒷바침에 있어서 기하학에 의존하지는 않 았다. 헤론은 순전히 산수의 과정을 써서 대수적 문재를 형식화하여 풀 었다. 예 를 들어, 다음과 같은 문제룹 다루었다: 면적과 둘레의 길이의 합이 896 퍼트로 주어진 정사각형의 두 변운 구하여라. 관계되는 이차 방정식을 풀기 위하여 양변에 4 를 더하여 완전제곱꼴로 고찬 위 제꼽근 올 구했다. 그논 증명을 하지 않고 다만 어떤 연산울 시행해야 하는가 판을 기술했을 분이다• 헤론의 업적에는 이와 갇은 문제가 많이 있다.
해 몬 은 그의 《 기 하학 》 Ge o metr ic a 에 서 연적 • 둘레 • 지 공 운 더 한 다는 말을 쓰 고 있다. 물론 그는 이 같 은 말을 수 치 들 더한 다 는 뜻으로 쓴 것 이다. 마 찬 가지로 그가 정사 각형 에 정 사각형을 곱한 다 고 말한 것은 수 차 의 곱을 구한다는 뜻 으로 쓴 것 이다. 헤론은 또한 그 리 스 인 둘 의 기하학 적 대 수학 의 많 은 부 분 을 산 수와 대 수적 인 과정으로 바 꾸 었다 . 그와 그` 의 후계 자 들 의 어 떤 문제 들은 기 원전 2000 년 의 바 빌 로니 아와 이 집 브 사 람 둘 의 기 록 에 있 는 것 과 똑같다. 이 같은 그리 스의 대 수 적 업적은 구어 체로 씌어 있다. 기호는 씌어지 지 않 았다. 또 증명 과정 이 전혀 주 어지 지 않았다. 헤론 의 시대 이 후로 방 정 식 으 로 귀착되는 문 재는 수수께끼 , 의 형 태였다. 알 렉 산드리아 시대의 그리스 대 수학 의 최고 의 겅지는 디오 간무 스 에 , 의하여 개 치 되었다. 우리는 그의 출 생과 생 애에 대 해 시 아 는 바 가 거의 없다 . .:::z.. 시대의 사람 들을 능가 하는 그의 연 구 는 불행 히 노 너 무 눗- 어서 그 시대에 큰 영 향을 수지는 못 했는대 , 왜 냐 하 연 파괴의 조유 ( 2 장)가 · 이미 그 문 명 을 엄 습하 고 있었기 때 문 이다. 디오 판두스는 여러 권 의 책 윤 썼는데, 그 들은 모 두 망 실 되 고 , .:::z..의 가 장 위대한 입적 인 《 산 수 》 Arith m cti ca 중 6 부만이 남아 있 을 뿐 이 여 , .:::z.. 는 이 것 이 13 부로 되 어 있다고 기록했다. 이 책 은 이집 트 의 린드 파 피우스 Rh i nd p a p y ru s 와 마 찬 가지로 문재 를 모은 것이다. 그 제 의 헌정의 말 ( ded i c a t i on ) 에 는 그 책 이 그의 학생 한 사람의 산수 공 부에 도웅이 되 도록 엮 어진 일련 의 연 . 숨 문 제라고 씌어 있다. 디오판두스의 큰 공현 중 하나는 대수학에 약간의 기호 를- 도 입한 것이 었다. 그.가 쓴 원고가 납아 있는 것이 아니라 13 세기 이 후 로 추정 되는 · ’ 핀씬 뒤의 것이 남아 있으므로, 그가 실제로 쓴 형태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우리 둘 이 쓰고 있는 x, x 5 까지의 X 의 거듭재 곱 , 1/x 에 해당하는· 기호 들을 사용했다. 그러한 기호의 출 현은 물론 괄 목 할 만한 것이지만. 세재 곱 보다 큰 거듭제곱의 사용은 찬싼 목 이하다. 왜 냐 하면, 앞서 밝힌 바와 감이 그리스인에게는 셋보다 많은 인수의 곱은 기하학적으로 의미 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전히 산수저인 관점에서 그러한 곱은 분 · 명히 의미가 있고, 바로 이것이 실재로 디오판두스가 택한 관접이었다. 디오판두스는 마치 우리가 산문을 쓰는 식으로 그의 해법 을 계속된 문 장으로 써 나갔다. 그가 수행한 연산은· 완전히 산수적이었다. 죽, 그의 ` 주장을 예를 들거나 구체화할 때 기하학에 호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 x-x)(x-2) 는 우리가 하는 것처럼 대수적으로 계산했다 . .:::z:.. 는 또한 a 도 -b 도 (a + b) ( a-b ) 와 종 더 복잡한 대수적 항동석을 사용했 다. 엄밀하게 그는 항동식을 씨서 과정을 진행해 나갔지만. 이 들 항등 석 자체는 나타나 있지 않다. 디오판두스의 대수학의 비법한 일면은 부정방정식 , 예를 들어 두 미지 수를 가전 한 방정식과 감은 것의 해법이다 . 그와 같은 방정식은 죠 +.)· 2 =났으] 정수해에 관한 키타고라스 학파의 연구나 다론 굴에서 이미 다 루어져 왔던 것이다. 그러나 디오판무스는 이둘을 더욱 깊이 추구하였 으며, 오늘난 디오판두스 방정석의 이론으로 알려진 대수학의 한 분야 의 창시자가 되었다. 미 목 디 오판두스가 대 수학의 사용으로 유명 하지 만, 그는 양수인 유리 수근만을 받아들이 고 그밖의 근은 모두 무시 하였 다. 일원이 차방정 식 이 두 개의 양의 유리수근을 가지는 겅우에조차, 그는 그 중 큰 것만을 근` 으로 택하였다. 방정식이 두 개의 음수근, 또는 무 리수근 또는 허근을 가질 때 그는 그 방정식을 배재하고 해물 구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 무 · 리수근이 나다나는 경우, 그는 과정운 다시 밟아서 방정식을 어떻게 고 쳐야 유리수근을 가지는 새 방정식을 얻을 수 있는가를 보였다. 이러한 정에서 디오판두스는 헤론이나 아르키 1 세데스와 다르다. 해론은 기술자 었으며 그가 구하려는 양이 무리수일 수도 있었다 . 그러므로, 물론 유 · 용한 값을 얻기 위하여 근사법을 쓰기는 했으나, 그는 무리수를 받아둘 · 였다. 아르키메데스 또한 정확한 탑을 추구했지만, 그것이 무리수일 메 는 그 무리수의 한계를 추정한 수 있는 부등식을 구했다. 우리 는 어 멍게 하여 디 오판두스가 그간은 방법 에 도달했는지 모른다. 그는 기하학에 호소하지 않았으므로, 이차방정식을 푸는 데 유쿨리드의 : 방법을 사용한 것갇지는 않다. 더구나 부정방정식의 문재는 유클리드에 나타나 있지 않으며, 디오판두스에 의한 새 분야이었다. 우리에게 후기 알렉드산리아 시대의 사상의 연속성에 관하여 알려진 바가 없으 · 므로 디 오판무스의 업저에서 그리스인 선행자둘의 영향을 많이 찾아낸 수는 없 다. 실제로 그의 방법은 바빌로니아인의 것에 보다 가까우며, 바빌로 . 니아인의 영향을 받은 막연한 훈적이 보인다. 그러나 바빌로니아인과는 달리 그는 기호운 사용하였고. 부정방정식의 해법을 창시하였다. 전체 적으로 그의 업적온 대수학에 있어서의 한 기념미이다. 헤론, 디오판두스, 아르키메데스, 몰레미의 업적듈은 산수와 대수에 ,
관한 한 이집트인이나 바 빌로니 아인 들의 과정을 나타내는 교재들과 비 슷하다. 즉, 어떻게 문제들을 해결하는가를보여줄분이었다. 유클리드, 아 폴로 니우스, 아르키메데 스의 기하학에서와 갇은 연역적인 정돈된 증명 은 사라졌다. 문제들은 귀납적으로 다루어졌으며, 그명계 함으로써 일반 적인 문제에 적용시킬 수도 있는 구체적인 문재 물 푸는 방법을 보여주었 다 . 그러나 어느 정도로 일반적인 문재로 다 물 수 있는가는 밝혀져 있지 않다. 자연수 • 정 수 • 분수 및 무리 수와 같 은 여 러 종류의 수둘은(유쿨 리 드의 정수에 관한 불완전한 연구 윤 제외하고는 ) 분명히 정의되지 않고 있다 . .또 , 연역적 구 조를 세웅 수 있는 어민 공리저 기초도 설정되지 않았 다. 그러므로, 그리 스인은 누 개의 완전히 상이하며 또 상이하게 발전된 수학의 분야들을 후세 에 남겼다 . 그 하나는 비록- 다소 결함이 있기는 하지만 연역적 • 체계적인 기하학이고, 다 른 하나는 경험적인 산수와 그 의 대수로의 확장이다 . 고전기의 그리스인들이 수학적 결과는 명백한 공 리적 기초로부터 연역적으로 얻어질 것을 요구했다는 사실에 미추어, .::z. 자체의 논리적 구조가 없는 독립적안 산수와 대수의 출현은 수학의 역 사에 있어서 위대한 변칙의 하나가 된 것을 재공한 샘이다. 아람인 들 에 의하여 알 렉산드리 아의 그리스 문명 이 최종적으로 파괴된 뒤에 인도인과 아랍인 들 이 수학의 주여이 되었는데, 이 들은 고대 그리 스인들의 수학적 개념을 훤씬 더 무시랬다. 그 들은 물론 정수와 유리수 률 사용했지만, 무리수도 서슴지 않고 사용하였다. 실제로, 그 들 은 무 리수의 사칙에 관한 새 롭 고 바 론 규칙을 도입했다. 이 규칙들은 논리저 기초가 없었으므로, 어 떻 게 고안되었으며 왜 옳 은 것인가? 대답은 인 · 도인과 아랍인 들 이 유추법 을 써서 추론한 것이다. 그러므로, 분명히 ..j°j6 = ✓ 4 ✓ 9 가 옳 기 때문에 모돈 수 a,b 에 대해서 ✓ ah= ✓ a ✓ b 라 는 규칙이 정당화되었다. 실재로 인도인 들 은 거듭제곱근이 정수와 같이 취급킬 수 있다고 말했다 . 인도인은 무리수의 개념에 포함되어 있는 논리적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였을 정도로 그리스인보다 원씬 소박했다. 계산에 대한 관심 때문 에 그들은 그리 스인의 사고의 기 본이 었 던 구번 (dis t i nc ti on ) 을 간과했 던 것이다. 그러나 유리수에 사용되는 과정을 우연히 무리수에 적용함으로 써, 그들은 수학의 진보에 도웅이 되게 하였다. 더우기 그 들 의 산수 전 체는 완전히 기하학과 무관한 것이었다 . 인도인은 빚을 나타내는 데 음수를 도입함으로써 수학자들에게 논리져
곤란을 첨가했다. 이같은 용법에 따르면, 양수는 자산을 의미한다. 그 ; 같은 용법 울 처음 쓴 것은 서기 628 년경의 브라마굽타 Brahrna gu pta로 알 려져 있는데, 그는 음수의 사칙 연산의 규칙을 진술했을 분이다. 정의 • 공리 • 정리 같은 것은 나타나 있지 않다. 12 세기의 지도적인 인도 수학 자였 던 바스카라 Bhask ara 는 양수의 재 곱근은 양과 음 두 개 가 있음을 지 적했다. 그는 을宁 의 제곱근의 문제를 제기했지만, 그같은 재곱근의 재 곱은 옵수 이고 음수 는 제 곱 이 원 수 없으므로, 음수의 재곱근은 없다고 섣명했다. 모든 인도인 들 이 음수를 받아 들 인 것은 아니 다. 바스카라조차도 50 과 -5 가 어떤 문재의 두 해일 메 두번째 수는 부적합하므로 이 겅우에 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 사람 들은음수 근을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말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수가 도입된 뒤에는 접전적으로 사용되었다. 인도인 들은 대수학에서도 약간의 진보 를 보였다. 그들은 말을 생략하 여 사용하였고 연 산과 미지수 를 나타내는 데 약간의 기호 몰 사용하였다. 광범위하지는 않았으나, 기호주의의 관접에서 인도의 대수가 디오판두 스의 대수보다 위어나다고 여길 수 있는 것이다. 풀이에 대하여는 오칙 . 단계만이 주어졌을뿐 이유나 증명은 서술되어 있지 않다. 일반적으.로, 이차방정식의 옵수근과 무리수근이 인식되었다. 안도인은 우리가 언급한 것보다 대수학을 찬싼 더 자유로이 구사하 였다. 예 를 들어서, 우리는 삼각법에서 임의의 각 A 에 대하여 sin 2 A. +cos2A=l 임을 배웠다. 삼각법의 창시자이며 체계적인 개발자 중 한 사람인 톨레 미라면, 이 방정식은 원의 현들 사이의 관계에 관한 기하학 一 적 진술로 표현하였을 것이다. 이미 아는 바와 갈이, 볼레미는 알고 있 논 길이를 써서 미지의 길이를 재산하기 위해 산수를 자유로이 사용했지 만, 그의 기본져인 수학과 논증은 기하학적인 것이었다. 인도인은· 많은 一 삼각법의 관계식을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표현했다. 더우기, :.i nA 로 . 부터 cosA 를 계산하기 위해 위의 둥식과 간단한 대수를 사용할수 있었 으며 또 사용했다. 즉, 인도의 삼각법은 각의 s i n 과 cos 에 관한 관계식 · 울 표현하거나 도입하는 데 기하학보다는 대수학에 인싼 더 의존했다. 우리들의 고찰에 따르면, 인도인들의 수학적 활동은 연역적 패턴보다 는 오히려 산수와 계산에 관십을 가졌으며 또 거기에 기여했다• 그들은 수학을 가니타g an it a 라 불렀는데, 이는 계산의 과학이라는 뜻이다. 그 ~ 둘의 수학에는 매우 좋은 과정과 기술적 편의성이 보이지만, 그들아 층 ·
영을 생각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그들은 규칙을 갖고 있었지만 명백 히 논리적 조십성은 없었다. 더구나, 수학의 어느 분야에서도 일반적인 방법이나 새로운 관접에 도달하지는 못랬다. 인도인들이 그들 자신의 공헌의 중요성을 알고 있지 못랬다는 것은 아 주 확실하다. 그물이 가졌던 훌 융한 착상들, 죽 l 에서 9 까지의 수들의 따로따로의 기호, 60 진법에서 J O 진법으로 전환할 때의 자리 기호, 음 수, 0 을 수로 인식한 것 둥은 그들이 가치 있는 창안이라는 명백한 인,<--l 없이 우연히 도입되었다. 그문은 수학적 가치에 대하여 예민하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둘이 발전시킨 훌 융한 아이디어를 이집트인과 바빌로니아인 의 조잡한 착상과 혼동시 켜 놓았다. 아랍의 역 사가인 알 미 우 니 al-Bi run i (973-1048) 는 인도인들에 대해서 다음과 갇이 말하었다: “나는 그들의 수학과 천문학적 문현에 대 하여 ••• 그것 을 진주조개 와 신 대 추야자의 열매운 뒤섞은 것, 또는 진주와 거 봄 을 뒤섞은 것, 또는 값미싼 수정과 혼해마진 조약돌을 뒤섞은 것으로 미유한 수 있다. 그둘의 눈에는두 가 지 종류의 사물이 같은 것으로 보였는데, 그것은 .::z..둡- 자신의 엄 밀한 과 학적 연역법을 세울 수 없었기 메문이었다.’' 그둘의 목민한 재능은 산 수적이었고 산수와 대수에 공헌하였으므로, 인도인의 업적의 영향은 겅 협적이고 직관적인 기조에 근거물 둔 수학의 분야를 확대시킨 것이다. 인도인둘이 연역적 기하학을 실질적으로 무시했던 대 미하여, 아랍인 둘은 그리스 기하학의 업적을 비판적으로 연구했고, 이 분야를 성립시 키는 데 있어서의 연역적 증밍의 역할을 참으로 바르게 인식있다. 그러 나 아랍 수학에서 큰 역할을 랬던 산수와 대수의 분야에서 아랍인들은 인도인과 아주 미숫하게 계속해 나갔다. 그들은 이들 분야를 앞선 인도 인과 마찬가지로 겅협적 • 구체적 • 직관적인 근거 위에 다루는 데에 그쳤 다. 및및 아랍인은 이차방정식의 근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기하학적 논 증을 하였는데, .::z.. 주된 접근 방법은 고전기의 그리스인과는 달리 대수 척이었다. 죠 +3x2+7x+5=0 과 같은 삼차방정식을 푸는 경우에. 대수 적인 과정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그들은.::z..근울 기하학적으로 작 도하였윤 분이나 그러나 이같은 작도도 자와 컵퍼스 없이는 수행원 수 없었으며, 또 그 논증도 업밀하게 연역적인 것은 아니었다. 아랍의 수 학이 환발하던 여 러 세 기 동안, 아랍인들은 그들 자신의 공헌에 관한 한 엄밀한 추론의 유혹을 과단성 있게 거부하였다. 인도인과 아랍인의 수학의 가장 홍미 있는 양상은 수학에 관하여 그들
이 가졌던 모순되는 개념이다. 아랍인과 바빌로니아인들이 그들의 '갖 가지 산수와 기하학의 규칙을 경험적인 근거로 받아둘이는 데 그쳤다는 것은 눈- 라울 만한 사실은 아니었다. 깅협은 거의 모든 인간 지식의 자 연스러운 근거이다. 그러나 인도인과 아랍인은 이마 그리스인들에 의하 여 세상에 공포 된 수 학적 증명의 전적으로 새로운 개념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산수 와 대수 학에서 는 그리스인 들- 도 연역적 증명의 개념에는 전혀 관십을 기 웅이 지 물 않았다. 인도인의 자세는 어느 정도 합리적이었 다. 미 목 그등은 그리스인의 업 적 에 관하여 다소의 지식을 실재로 가지 고 있었지만, 그 것 에 주 의 를 기 운 이지 않고, 산수와 대수학에서 알렉산 드리아의 그리 스 인의 방법 을 주로 따랐다. 그러나 아랍인 들 은 그리스의 기하학 을 완전히 알고 있었고, 우리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그것에 대 하여 미 판 적으로 연구하기조차 하였다. 더구나 이 두 문명에 있어서는, 수 세기 동 안이나 순 수과학의 탐구릅 위한 좋은 조건둘이 갖추어져 있 ·어서, 실 재적으로 유용한 결과 를 생산하여야 한다는 압력 때문에 수학 자둘이 즉각 적인 유용성을 위하여 증명을 회생시켜야 하는 일이 일어날 필요는 없었다. 어째서 인도인과 아람인은 수학의 두 분야 를 고전기의 그리스인 및 많은 알 고비 산드리아의 그리스인둘- 과 그토록 다르게 다 물 수 있었을까? 많은 가능한 대답이 있다. 연역적 기하학에 대한 아랍인둘의 주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문명은 대체로 무 U1 판적이었다. 그러므로 그 둥은 그들이 본 바 대로, 죽 기하학은 연역적이어야 하지만, 산수와 대 수는 겅랍적이고 발견적 (heuris t i c) 인 것일 수 있다는 식으로 수학을 간 주하는 데 그 쳤 는지도 모른다. 두번째 가능성은 두 인종 목 히 아랍인들 이 산수와 대수학에 미하여 기하학에 관한 크게 다론 기준윤 높이 평가 랬지만, 산수의 논리적 기초 룹 마련한 방법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와 같은 설명을 입증하는 듯한 한 가지 사신은 아랍인들이 최소한 이차· 삼차방정식에 관한 그들의 해법을 정당화하는 데 기하학적 근거을 사용 랬다는 것이다. 또 다몬 가능성도 있다. 인도인이나 아갑인들-이 모두 산수 • 대수와 삼 각법의 관계식을 대수적으로 수식화하기을 좋아했다. 이러한 깅향이 다 론 정신적 북성을 마련하였거나 또는 그 문명에서의 수요에 대한 웅납 울 반잉하는 것일 수 있다. 이을- 두 문명은 신용적인 경향을 며었고 또 ·우리가 여러 먼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인들과 걷부하여 말해온 바와 같
이, 실용적 팔요는 산수와 대수에 재공하는 양적인 결과를 요구하 게 된 다. 서로 다른 정신적 목성 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뒷바침하는 한 가지 작은 중거 는, 인도인과 아람인 들 의 수학적 유산을 직 접 인계 받은 유럽 인들의 반응으로부터 나타난다. 우리 가 앞으로 알게 되 겠지 만, 유 럽인은 산수와 기하학의 상반된 상태에 훨씬 더 고십을 하였다. 어느 경 우에나, 인도인과 아랍인의 대당성은 산수와 대수룹 또 다시 앞세웠 고 실용성에 관한 한 기하학과 거의 동등한 위치에 두었다 . 중세 말기와 르네상스 시대의 유럽인이, 한편으로는 아람인옵 동 하여 또 한편으로는 그리스인의 원고들을 직접 입수합으로씨 현존하는 수학 의 지식을 얻게 되자, 그 들은 두 가지 수학에 의해서 재기된 밀레 머에 도 전하려 시도겠다. 진정한 수학은 마땅히 그리스의 연역적 기하학이어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한편, 유럽인은 고대로부터 발전되어 왔지만 논리 적 기초가 없는 산수와 대수의 유용성과 효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 들 이 직면한 첫째 문재는 무리수물 어떻개 생각하느냐는 것이었다. 이 탈리 아의 수학자 파치 운리 Luca Pacio l i (c. 1445- c. 1514), 저 명 한 독일 의 산부이 며 예 나 Jen a 대 학교의 수학 교수였 던 스티 펠 M ich ael St ief e l ( 1486? -1567), 의사이며 학자이며 사기꾼이었던 카르단 Jer ome Cardan (1501- 76), 군사기 술자 스데 빈 Sim on St ev in (1548-1620) 은 인도인과 아랍인을 답습하여 무리수 를 사용했고, 더 많은 유형의 무리수들을 도입했다. 그 리 하여 스티 팬은 1 죠「 Tr 꼴의 무리 수를 연구하였 다. 카르단은 세 제 곱을- 포함하는 무리 수 물 연구하였 다. 무리 수의 사용의 좋은 예 는 비 에 타 Franco i s Vi et n (1540-1603) 에 의한 T 의 표현을 들 수 있다. 단위원에 , 내접하는 정 4, 8, 16, ••• 각형을 생각하여, 비에타는 눈潟二 ✓王 ++潟· ✓+ +土二『… 임을 발견하였다. 무리수는 르네상스 시대의 새로운 창조물의 하나인 로그수에서 자유 로이 사용되었다. 양수의 로그수는 16 세기 후반에 네이피어 Joh n Nnp ier (1550-1617) 에 의해서 고안되었는데, 산수 계산울 마르게 하기 위한 묵 적에서였다. 대부분의 양수의 로그수는 무리수이지만 __ \.1l 이피어의 로. 그 계산법은 무리수를 자유로이 사용하였으므로-모든 수학자들은 .::z... 둘이 쏟아야 할 노고가 절약된 접에서 환영있다.
무리 수의 계산은 자유로이 수행되었지만, 무리수가 과연 수인가 하는 문재 는 그 것-운 다 우 던사람 들 자신을 괴롭었다. 그리하여 스티벨은 산수 와 대 수를 다문 그의 주처 인 《 정 수의 산수》 Arith m eti ca i11 t eg r a (1544) 에 서, 크기 (ma gn it ude) 를 수와 다른 것으로 보는 유클리드의 견해(유독소스 의 기하 학적 이온) 를 들 반복한 뒤에, 새로운 전개 방향으로서, 무리수를 소 수 기 호로 표현하는 것을 생각하였다 . 그를 괴롭힌 것은 · 소수로 나타넬 메 무한소수로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한편 그는 다음과 같이 논했다: 도 형의 증명에 있어, 유리수로 안 되는 경우에는 무리수 윤 대신 써서 유리수 로 층명한 수 없었던 것둘을 정확히 증명할 수 있었으므로, ••• 우리로 하여 금 무 리 수가 참된 수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으며, 이것은 또 .::z.. 듄 윤 씨서 얻어 지 는 진과물._우리가 받아 들 이기에 현실저이고 확실하며 일정한 견과들 로 말 미압아 그 평 다고 할 수 밖에 없다 . 한편으로는 다른 고갈에 의하여 무리 수는 수라 는 것운 전적으로 부정할 수 밖에 없다. 즉, 우리가 무리수의 수치 [소 수 전개〕 윤 구하려 할 때 ••• 우리는 그것들이 무한히 계속되어서, 어느 한 무리수라 도 실재로 그것이 무엇인지 잡운 수가 없다. 이처럽 정확히 과악 한 수 없는 성진 운 가진 것윤 참된 수라 부 운 수는 없다. ••• 따라서 무한수가 수가 아닌 것처럼 무리수는 참된 수가 아니다. 그러나 무리수는 무한이라는 일 종 의 구 읍 속에 숨어 있다. 그란 뒤에 스티엘은 실수는 반드시 정수이거나 분수라 했고 , 무리수 는 분명히 정수도 분수도 아니므로 건국 실수가 아니라고 했다. 1 세기 후에 파스칼과 바로우는, 무리수는 촌재가 없는 기호일 분 연속적인 기 하학적 양과 무관한 것으로서 , 무리수에 관한 연산의 논리는 양에 대한 유 클 리드의 이론에 의하여 정당화되어야 하지만, 그 이론은 그 목적에 논 부적합하다고 했다 . 한편으로는 무리수가 정당한 촌재라고 하는 긍정적인 주장도 있었다. 스데빈은 무리수를 수로 인식하고 유리수를 써서 얼마든지 근사시킬 수 있었으며, 또한 월리스J ohn Wall i s(1616-1703) 는 그의 《대수학》 Al g ebru (1665) 에서 무리수문 완전한 의미가 있는 수로 받아둘였다. 그러나스대 . 빈이나 월리스도 모두 어떤 논리적 근거를 제공하지는 않았다. 더 우기 , 데 카르트가 그의 《기 하학 》 Geometr y (1637) 에 서 , 그리 고 매 르 . 마가 1629 년의 그의 원고에서 각각 해석기하학을 창시하였-을 때도, 두 사람 다 무리수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갖지는 못했다 . 그럽에도 상구하-
고, 둘다 모두 양의 실수와 직선 위의 정 사이의 일대일 대응 관계, 또 는 직선 위의 어떤 원점으로부터 임의의 접까지의 거리가수로표현철 수 있다는 사실을 가정하였다. 그런데 이 같은 수들의 대부분아 무리수이 므 로, 두 사람 모두 논리적 근거는 마련하지 못했지만 무리수 를 암암리에 받아들인 것아다. 유럽인은 또한 음수에도 직면하게 되었다. 이 수는 아람 서적 을 동해 서 유럽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16, 17 세기의 대부분의 수학자 들 은 그 것 을 수로 인정하지 않았거나, 또는 그것 을 인정하였더라도 망정석의 근 으로는 인정하지 않으려 하였다. 15 세기의 슈케 Ni co las Chuq u et (1 445;. -1500?) 와 16 세기의 스티벨은 둘다 음수를 불합리한 수라고 말하였다 . 카르단은 움수를 방정식의 근으로 삼았지만, 그것을 불가능한 근으로서 단지 기호에 불과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는 그것 을 가공의 것이라 부 르고 양수근 을 실제의 것이라고 불렀다 . 비에타는 움수를 전적으로 매 제했다. 데카르트는 음수룬 어떤 한도 안에서만 받아들였다. 그는 음수 는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 작은 수 를 방정식의 근으로써 표현한다는 관 접에서 거짓인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주어진 방정식에서 원래의 근보다 임의로 주어전 양만큼 더 큰 근둘을 가지는 다른 방정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였다. 그러므로, 음수근둘을 가지는 방정식을 양수근 들을 가지는 방정식으로 변환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그는 거짓인 근을 실제의 근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랬으며, 그리하여 마음에 내키지는 않 으나음수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는 그것으로도 만 족할수는 없었다. 파스칼은 0 에서 4 를 맨다는 것을 순전히 무의미한 일이라고 여겼다. 그는 그의 저서 《수상록》에서 다음과 갇이 말했다. “나는 0 에서 4 를 빼면 0 이 남는다는 것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음수에 관한 홍미있는 한논의는 신학자·수학자이며 파스칼의 절찬한 천는구 크였 던이 아+놀I 드보 다An t작 o i 다ne는 A 사rna실ul로d 부(1터61 2-—941) : 에 I =의I해 : 서_ I 주에어 졌의다문.율 제아기놀하드 였다. 죽 어떻게 큰 것에 대한 작은 것의 비가 작은 것에 대한 큰 것의 비와 갇윤 수 있논가? 라이프니츠는 거기에 문재가 있다는 것을 시인 하였으나, 바로 상상의 양(우리가 곧 알게 되겠지만 앞서 도입한 개념)을 · 계 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헝십이 옳기 대문에 그 비례 문제를 계산할 수 있다고 논하였다. 그럽에도 불구하고 그는 로그값이 없는 그런 모든 양윤 상상의 양(비촌재)으로 불러 마땅하다는 식으로 일버무렀다. 이란
관접에서는 _I 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왜냐 하면, 양의 로그값은 1 보다 큰 수에 대응되고 음의 로그값[!]을 가지는 수는 0 과 I 사이의 수 이기 때문이다. 그 렇 다면, 음수의 로그값은 없다. 만약에 log (-1) 이 수라면, 로그의 법 칙 에 따라 log .j =-i 은 log (크) 의 숙-이 어 야 한다. 그러나 분명히 J =T 은 로그값이 없다는 것이다. 때때로 방정석의 한 번에 음수 만 을 둔 것을 다룬 첫 대수학자중의 한 사 람은 해 리 옷 Thomas Harrio t (1560-1621) 이 었 다• 그러 나, 그는 음수를 인정 하지 않았고, 그의 사후 에 출판된 《응용해 석 법 >A rtis a 11alyt ica e pra xis (영어 Analyt ica l Arts Ap pli e d , 1631) 에서 그런 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까치 하였다. 봅-벨리 Rap h ael Bombelli (16 세기)는 음수 를 비교 척 명백히 정의하였는데, 당시에는 양수에 관하여서조차 팔요한 연산 규칙의 기초가 없었던 시기였으므로 음수의 연산에 관한 규칙을 정당화 하지는 못했다.* 스태빈은 방정식에 양과 음의 계수를 사용하였고 음 수근을 인 장랬 다. 지 라드 Albert Gi ro d (1595-1632) 는 그의 《대 수학에 서 의 새 발명 >I nvc11t io11 nouvelle e11 Alge bra (영 어 New Inventi on in Alge bra, 1629) 에서 음수를 양수와 동등하게 다루고, 이 차방정 식 의 근이 둘다 음수일 때조차 근으로 받아들였다. 지라드와 해리옷 둘 다 멜샘 연산과 음수를 나타내는 데 마이너스 기호 륜 썼는데, 음수는 독립된 개념이고 멜셉은 연산이므로 서로 다른 기호를 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같이 했다.
• 오든 W. H. Auden 이 노래한 것처럼 읍수 곱하기 읍수는 양수이 다. 그 이유윤 우리는 따질 판요가 없다 .
전반적으로, 16, I7 세기의 수학자 중 대부분이 음수를- 불편하게 생각 랬거나 옵수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으며, 물론 음수를 방정식의 참된 근 으로 인식하지 않았던 것이다. 음수에 대하여는 또 진기한 신념이 있었 다. 월리스 Wall i s 는 그 시대에 있어서 앞서 있었고 음수를 받아들였지 만, 음수는 0 보다는 작으나 00 보다는 큰 것 이 라고 생 각했다. 그의 《무 한 산수》 Arith m eti ca inf i 11i t or iu m (영 어 Arit hm eti c of Infi n it es im al, 1655) 에 서 그는 a 가 양수일 때 미 a/o 가 무한대이므로, b 가 음수일 때의 미 . a/b 처럼 a/o 에서 분모가 음수로 바뀌면, 그 비는 분모가 더 작아졌으 므로 그 미는 a/o 보다 커져야 마땅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그 비 는 00 보다 큼에 들림없는 것이다. 봄벨리나 스데빈과 같이 더 진보적인 사상가들은 실수 전체의 체계를
궁극적 으로 승인하는 데 분명 히 도움이 되 는 표현을 제 안했 다. 봄벨리 는 실수와 (주어진 단위 구간을 갖고 있는 ) 직선 위의 길이 사이에 일대일 대웅이 있다고 가정하고, 길이에 관하여 네 가지 기본적인 연산을 정의 하였다. 그는 실수와 그들의 연산을 이같은 길이와 그에 대응하는 기하 학적 연산으로 간주하였다. 그리하여 실수 체계는 기하학적인 근거를 써서 합리화되었다. 스태빈도 역시 실수를 길이로 간주하고, 이와 같은 해석으로싸 무리수에 대한 난정이 역시 타개원 수 있다고 믿었다. 물론 이런 관접에서 산수는 여전히 기하학에 의촌되어 있었다. 무리수와 음수에 관한 난정을 극복하지 못한 채, 유럽인은 지금 우리 가 복소수라고 부르는 것을 우연히 발견함으로싸 그둥의 침을 가중시켰 다. 무슨 수든지 나타나기만 하면 재곱근의 산수적 연산을 그냥 확장하 여 적용함으로써, 예 를 들 어, 이차방정식융 푸는 데에서 그 들은 위와 갇 은 새로운 수를 만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카르단은 그의 《위대한 방법》 Ars mag n a (영어 The Great Art, 1545) 37 장에서 꿈이 40 이고 합이 10 인 두 수를 구하는 문제를 설정하고 풀었다. 얼핏 보기에는 불합리한 이 문 재는 해를 가진다. 이에 대하여 달랑메르는 대수학은 관대하다; 흔히 요 구하는 것 이 상으로 재 공한다”라고 말하였 다. 만약 X 가 한 수라면, x 에 관한 방정식은 x(10-x)= 40 이다. 카르단은 근 5+ .j=巧와 5- .j=巧릅- 구한 뒤에 '‘교묘하기는 하지만 쓸모없는궤변적인 양이 있다 고 말하였다. 관련된 정신적 고문을 배재하고 5+ .j=巧와 5- .j=巧 를 곱하면, 꼽은 25-(-15) 죽 40 이 된다. 그런 뒤에 그는 산수적 모 호성이 그렇게 발전되고 그 과정 끝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쓸모는 없으나 세련되어진다”라고 말하였다. 카르단은 그의 책에서 재시한 삼차방정석을 푸는 대수적 방법을 다우 면서 복소수에 핀싼 더 말려들게 되었다. 그는 실근만을 추구하여 얻었 지만, 그의 공식은 복소수가 나타나는 경우에는 복소수근도 주는 것이 었다. 기.B..하게도 모든 근이 실근일 때, 그의 공식은 실근을 마땅히 줄 수 있는 복소수를 나타내게 된다. 그러므로 그는 복소수의 중요성에 매 료되었어야 하지만, 그는 복소수의 세제공을 구할 줄 몰랐고 또 거기에 서 실근운 유도하는 방법을 찾지 못하였으므로, 이 난접을 해결하지 못 한 채 남겨 두었다. 그는 싣근을 다론 방법으로 발견하였다. 봅벨리 역시 삼차방정식의 근으로서의 복소수를 생각했는데, 그는 복 소수의 사칙 연산을 실제적으로 현대적인 방식으로 형식화하였지만, 복
소수 를 여 전 히 쓸 모없고 ‘네면적인 것으로 보았다. 지라드는 -서 - 소수불 최소한 방정식의 형식적인 근으로서 인식하였다. 그는 그의 《 대수학에 서의 새 발명 》 에서 이 불가능한 근 [부소수근] 이 무엇인가타고 말할지 모른다. 나는 다 -3 - 과 같은 세 가지에 대하여 대 답할 수 있다. 일반적 규 칙 의 확실성에 대한 것, 다른 근이 없다는 것, 그리고 그것들의 유용 성에 대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지라드의 진보적 견해는 영향력 이 없었다. 대카르 트 또한 복 소 수근윤 배재하고 허수 ( i ma gi nar y ) 라는 용어를 만들 어 냈다. 그는 그의 저서 《 기하학 》 에서 참인 근이나 거짓(옵수)인 근 이 반드시 실수인 것은 아니다; 매로는 허수일 때도 있다”라고 말하였 다. 그는 움수근 을 가지는 방정식을 양수근을 가지는 다몬 방정식으로 변환함으로씨 옵수근 을 최소한 실수”로 만둘 수 있지만, 이 방법을 복 소수근에 내하여 적 용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이것들은 실수가 아니고 허수이다; 이것 들 은 수가 아니라고 논하였다. 뉴돈마저 복소수근을 의미가 없는 것으로 간주했었는데, 그 시대에는 복소수의 물리학적 의미를 몰랐기 매문이었던 것같다 . 실재로, 그는 자 신의 저 서 《보편산수》 U11i ve rsal Arith m eti c ( 2 판 1728 년) 에 서 “그러 나 그. 것은 바로, 방정석의 근들이 가능한 경우처럼, 문재의 불가능한 겅우를 설명하여 줄 수 있게 되지는 않도록 방정식의 근이 흔히 불가능[복소수] 이어야만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죽 문리학적 또는 기하학적 의 미가 있는 근을 가지지 않는 문재는 마땅히 복소수근을 가져야 한다. 복소수의 명백성의 견여는 신의 정신이 우리가 음수 단위의 허근이라 고 부르는 해석학의 경이, 이상적 세계의 전조, 존재와 바존재 사이의 양서류에서 숭고한 배출구운 발견했다'’는 라이프니츠의 흔히 인용되는 진술로 예시된다. 바록- 라이프니츠는 형식적인 복소수를 연구했지만 그 것 의 성 질을 이 해 하지 는 못하였 다. 그와 촌 베 르누이 Joh n Bernoulli 가 미적분학에서 복소수운 사용한 것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그것이 아무 -E.!. 위해를 가져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 16,17 세기에 아무런 명백한 아해가 없었옹에도 불구하고, 신수와 복 소수의 연산 과정은 향상되고 확장되었다 . 원리스는 그의 저서 《대수학》 .Algc bra (1685) 에서 실제 수 이 차방정 식 의 복소수근을· 기 하학적 으로 표현 하는 방법을 보였다. 실제로 월리스는 복소수가 옵수에 비하여 더 모호 한 것은 아니며, 음수는 유향직선 위에 나타낸 수 있으므로, 평면 위에
복소수를 나다내 는 것 이 가능하여 야 당연하다고 말하였 다. 그는 불완전. 하기는 하지만 복소수의 표현을 재시했고, 또 근이 실수 또는 복소수일 때 a 국 +bx+c=o 의 근의 기하학적 작도 를 재시하였다. 월리스의 연구 · 는 옳았지만, 복소수의 사용을 수학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았었기 매운에 무시되었다. 수학의 논리에 관한 다 론 문제 등 이 17 세기에 재기되었지만, 다음 장 소 에서 다우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18 세기에 무리수 • 음수 • 복소수와 대 수학에 있어서 수학자 룹 이 봉착랬던 어려응 을 설려나가기로 한다. 무리 수(양수 ) 에 대해서는 그 둘을 정의하거나 그 들 의 성질을 확립하는 대 아 무것도 한 일이 없었으나, 그들의 성잘은 정수나 분수의 성질과 같으므- · 로. 무리 수는 직 관적 으로 받아 둘 이 기 쉬 웠 다. 그러 므로 수학자들은 양의 무리수 를 자유로이 사용했고, 그 둘 의 의미나 성질 들 에 관한 새로운 문재 가 재기되지는 않았다. 오일러 를 비못한 및및 사람은 그 논리적 기조가 바로 가까이 유 칼 리드의 《 원론〉〉 의 5 권에서 상세히 설명되어 있는 유독 소스의 양의 이몬에 있다고 믿고 있었다. 유독소스는 크기의 미레에 대 한 이론을 세웠는데, 그것은 기하학과 결부된 이론이었지, 걷코 무리수 의 이론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둘 18 세기 사람둘의 의식은 무리수에 관 한 한 명백하였으나, 그들의 논리는 그러하지 못했다. 음수는 무리수보다 훨씬 더 수학자들을괴삼셨는데, 아마도 움수는 기 하학적 의미를 쉽게 얻지 못했고 연산 규칙이 더 이상랬기 메문이었을 것이다. 옵수는 1650 년경 이후 비교적 자유-유게 사용되었지만, 그것의 개념이나 논리적 기초가 분명하지 않았었으므로 수학자들은 그것의 정 당화를 얻머무리거나 그것의 사용을 거부하기물 계속하였다 . .:z. 유명한 프랑스 《백과전서》 E, icyclop e d i e 에서의 '‘음수 (Ne g a ti ve) 항목에서 “이성 , 의 시대의 가장 위대한 지성인 중 한 사람인 달랑 UI] 르 Jea n Le Rond d'Alembert (1717-83) 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음수해를 가지는 문재는 가정의 어느 부분이 거짓이지만 그것을 참이라 가정했음을 뜻한다.” 음 의 양에 대 한 그의 논문에 서 그는 다음과 같이 첨 부하였다. ‘‘음수근에 도달한다는 것은 그 수의 덧셉에 관한 역원 [그에 대응되는 양수] 이 원하 던 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18 세기의 수학자 중 가장 위대했던 오일러 Leonhard Euler 는 모돈 시 대를 동률어 출중한 대수학 교재 중 하나를 썼다. 그의 《대수학의 완전 、 한 입문》 Comp le te Intr o ducti on to Alge bra (1770) 에서 그는 ”빚을 갚는 갓
은 선문울 주는 것 을 의 미 하므로 一 b 를 맨다는 연산을 b 를 더 하는 것 으로 정 당화하였다. 그는 또 (-1) (-1 ) =+ 1 을 논증하였는데, 그 곱은 +1 또는 -l 이어야 하고, 우리는 이미 1( - 1)=-1 임을 알고 있으·므로 ( -1 )( -1 ) 은 +1 이어야 된다고 하였다. 18 세기의 가장 훌 융한 교재둘 도 게 속 하여, 떨셈을 나타내는 데 쓰이는 마이너스 기호와 에 물 을- 어 -2. 같 이 움수 을 나타내는 데 쓰이는 마이너스 기호 를 혼동하고 있다. 움수 에 대 한 많 은 반말이 18 세기 를 봉 해서 매아리 쳤 다. 영국 수학자 마세 례 남 작 Bnron Francis Masere s( 1731 - 1 8 ~4 ) 은 캠브리지 대학교 륜 래 어 C lare 대학 의 평 의원이었고 왕립 학회 Roy nl Soc i e ty의 회원이었는데, 수 학에 관한 훌 융 한 논 문 들을 썼고, 생명보첩이론에 관한 중요한 논문운 발 표했 다. 1759 년에 그는 《 대 수학에서의 음 의 부호의 사용에 관한 연 구논 문 》 Di ss er t a t ion on the Use of the Neg a t ive Sig n in Alge bra 률 발표했 다. 그는 음 수 를 기피하는 방법올 보였고 ( 작은 양으로부터 큰 °상 윤 대는 것 윤 선 재 로 하지 않 고 암시한 접 운 재외하고 ) , 이차방정식의 유형을 조심스럽 게 분리함으로 써 독 히 음 의 근을 기피하는 방법도 보였다. 움의 근을 가지는 이차방정식은 밀 도로 고려되었고, 물론 음의 근을 배재하였다. 그는 또 삼차방정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다루었다. 그리고 그는 읍- 의 근에 대하여 다음과 갇이 기술하였다: … 내가 판단하는 한도 안에서, 음 의 근은 단지 방정식의 전체저인 수장을 혼란하게 하는 역한만 한 분이고, 평법하고 간만한 그들 자신의 본성윤 넘어서 는 모호하고 신미한 것을 재공할 문이다 .••• 따라서 바라건대, 옹의 근이 대 수학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거 나 또는 대수학에서 버 렀으면 한다. 왜 냐 하면, 만 약 그명계 된다면, 많은 식자들이 대수적 계산에 대하여 거의 비지성적인 개 념운 가진 불명료.하고 난감한 존재로 보.는 것이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되는 충_ 분한 이유가 있다; 대수학 또는 보편져인 산수는 본질져으로 기하학보다 더 잔 단하고 명료하고 증명할 수 있는 성질을 가진 것이 아님이 확실하다. 복소수의 의미와 용도에 대한 논쟁은 좀더 듣기 거북한 것이었다. 그 곤경 은 및 및 수학자가 음수의 로그수(마찬가지 로 복소수의 로그수)윤 복소 수로서 도입한 데서 더욱 복합적으로 나타났다. 1712 년 이후로 라이프니츠, 오일러, 존 대르누이는 편지나 논문윤몽 ‘ 해서 복소수의 의미와 묵히 음수와 복소수의 로그수에 대하여 드거운 논쟁을 벌였다. 라이프니츠와 베루누이는 복소수를 데카르트의 용어인
허 수”(i ma gi nar y)로 부르고, 아 와 같은 수 ( 와 음수)는 존재 하지 않는 것 이라고 하였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이들 존재하지 않는 수 룰 미적분학에서 기적적으로 잔 사용하였다. 우리가 이미 아는 바와 같 이 라이 프니 츠는 음수의 로그수는 존재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 하여 여 러 가지 논의를 하였다. 존 베르누이의 입장은 lo g a = lo g ( ― a ) 이었고, 이 사실을 및 가지 주장으로 지지하였다. 그 중 하나는 , 양수의 로그에 관한 정리 를 써서, log (-a)=+log ( 一 a )2 = +lo g a2=lo g · a 라는 것이었다. 또 미적분학을 써서 같은 결론을 얻은 것도 있다. 많은 편지가 여러 해에 걷쳐 라이 프 니츠와 촌 매르누이 사이에 고환되었 는데 그 대부분은 넌센스였다. 오일러는 실제의 해답을 얻었다. 그는 1751 에 자신의 전 과 를 《방 정 식의 허근에 관한 연구 〉〉 라는 논문으로 발표하였다. 그의 최종적 인 결과 는 옳았지만, 불 란 논증으로 얻어졌으며, 모든 복소수에 적 용되는 것이 었다. 복소수 x+ iy에서 y =O 이라 두 면 실수를 얻으므로 복소수 는 실 수 를 포함하는 것이다. 그의 절 과는 log (x+iy ) = log (pe ; I) =log p+i(
* 오일러는 여기에서 복소수의 국형식이라는 것운 썼다 . p= ✓ 규 =T· 이고 ¢는 원정에시 ::c+iy에 이르는 선분과 ::c숙과의 교각운 나타냈다 . y가 0 일 대에는 ¢도 0 이다 .
이었다. 그러나 오일러의 논문 을 당대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였다. 오일러는 그의 결과물 1747 년 4 월 15 일자 편지로 달랑매르에게 전 하였다. 그는 또한 양의 실수의 로그수는 무한히 많지만 그 중 실수인 것은 단 한 개라는 사실도 지적하였다; 이것은 실수룹 계산할 때 우리 가 흔히 사용하는 것이다. 달랑베르도 그 편지나 그 논문에 대하여 확 신을 가지지 못하였지만, 그의 논문 《음의 양의 로그수에 관하여〉〉에서 이갇은 로그수의 촌재를 부정하기 위하여 형이상학적 • 해석학적 • 기하 학적인 모든 종류의 논증을 진전시켰다. 그는 그 문제 를 좀더 신비스럽 게 은패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는 또한 대가인 오일러와 자기의 차이정 은 언어의 문재일 분이라 함으로써 그 차이 를 은패하려 시도하였다.
이 논쟁에 참여한 모든 사람둘은 그들 자신의 사고 자체에 오순이 있 었다. I8 세기 전반 동안, 복소수의 몇 가지 연산, 예 를 들어서 복소수 의 복소수 거듭제곱 7같 은 것은 전적으로 새로운 종류의 수가 원지도 모 른다고 믿어졌다. 그러나 복소수에 관한 모든 연산이 복소수만을 이끌 어낸다는 것울 증명한 것은 달랑메르가 쓴 《정신의 일반적 원인에 관한 고찰 〉〉 Refl ect i on s 011 th e General Cause of M i,uis ( 1747) 에서 였다. 그의 증명 온 오일러와 라그랑즈에 의해서 수정되어져야만 했으나, 그 때까지는 이 문제에 대해서 중요한 진전을 이문 것이었다. 아마도 달랑매르는 복 소수에 관한 그 자신의 개념이 혼동된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 왜냐 하면 그가 수학 부분을 쓴 프랑스 《백과전서〉〉에서 그것들 예 대한 이야기 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히 오일러 역시 여전히 복소수에 대해서 확실한 것을 몰랐다. I8 세기의 가장 홍 융한 대수학 교재였던 그의 I770 년도판의 〈〈 대수학》에서 그는 다움과 같이 말하였다: 음수의 재곱근은 0 도 아니고 0 보다 크지도 작지도 않다. 그래서 음수의 개곱 근은 가능한 수〔신수]에 포함되지 않음이 분명하다. 결국 이것은 불가능한 수 라고 말해야만 한다. 그래서 이러한 상황은 그 본성이 불가능하고, 보.몽 허수 [상상의 수〕 또는 공상적인 수라 블리우는 수의 개념율 유도한다. 이갇은 이 몸이 분은 것은 그것둥이 만지 상상 속에서만 촌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복소수에 대하여 실수를 하였는데, 그의 《대수학》에서 그는 ../a ✓ -b - = ../ab 이므로 ..;=-i..;=급=.J 4=2 라고 하였다. 복소수를 분가능한 수라고는 하었지만, 오일러는 복소수가 유용하다 고 말하였다. 그리고 .:z. 용도에 관한 그의 아이디어는 그들이 어떤 문 계가 답을 가지는가 안 가지는가 를 알려 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꼽 이 40 이 되고 합이 12 인 두 수를 구하는 문계 (카르만의 영향) 에서 답은 6+ .J=와 6- .j二국임윤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는 그 문재가 풀랄 수 없다고 말하였다. 복소수에 관한 많은 반대에도 문구하고, 18 세기를 몽하여 실수에 져 용되는 법칙을 복소수에 적용함으로써 복소수가 효과적으로 사용되었고. 따라서 수학자들은 복소수에 어느 정도 신뢰를 갖게 되었다. 수학적 논 의의 중간 과정에 사용되었을 때에는 최종적인 결과는 옳다고 판명되었 무 이와 같은 사실온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아직은· 논의의 타당성에
대해 의십이 품어졌고 종종 견과의 타당성까지도 수학자들을 괴롭혔다 .. 무리수 • 음수 • 복소수와 같은 및 가지 골치 아픈 유형의 수들을 받아 둥 이려는 일반적인 태도는 《백과전서〉〉 에서의 달랑메르의 음수에 관한 군 에 잔 표현되어 있다. 그 균은 전혀 분명치 않 다. 달랑`비르는 '‘음수에 관한 대수의 규칙은 이 양에 대하여 우리가 가전 개념이 무엇이돈 간에 전세계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또 정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유럽인둥이 여러 가지 종류 의 수 를 이해하려고 애쓰단 수 세기 동 안 .. 또 다른 주요한 논리의 문제가 전면에 대두되었는데, 그것은 대수학의 논리룹 재공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결 과 들을 팔목할 만하게 조직한 첫번 . 째 업적은· 카르단의 《위 대한 방법》인데, 이 객은 x3+3x2+6x = 10 과 갇 온 삼차방정식과 군 +3x3+6 죠 +7x+5=o 과 같은 사차방정식을 무는 방 법올 보인 것이다. 대체로 백 년 이내에 수학적 귀납법, 이항정리, 저차 또는 고차방정식의 근의 근사해법 같은 많은 다몬 질과들이 대수학의 본체에 첨가되었는데, 여기에 기여한 주요한 사람들은 미에다, 해리옷, 지라드, 패르마, 데카르트, 뉴돈이었다. 그러나 이 들 견과 에 대한 증명 은 없었다. 카르단과 그 후의 대수학자 봄밸리와 미에타가 상차 • 사~l- 방정식에 관한 그둘의 해법을 뒷받침하는 기하학적 논의 를 한 것은 사 · 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음수근과 복소수근을 우시하였으므로, 이같은 논의는 분명히 종명은 아니었다. 더구나 4 차, 5 차 같은 고차방정식의 도입은 3 차원으로 제한되어 있는 기하학이 증명의 근거가 원 수 없다 는 것 을 의 미 한다. 다몬 저 자들에 의 한 전과는 대 개 의 겅 우 구체 적 인 에 로 제시한 주장에 불과할 분이었다. 옳은 방향으로의 진보는 미에타에 의해서 이 루 어졌다. 이집드인과 바 빌로니아인둘의 시대로부터 바로 미에타의 업적까지 수학자들은 일차 • 이차 • 삼차 • 사차의 자연수계수만의 방정식을 풀었다. 그러므로 3x2+5x - +6=o, 4x1+7x+8=0 과 같은 방정식에 같은 해법이 적용된다는 분명 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상호번개의 것으로 간주되었었다. 더구나음수를 피하기 위해서 군一 7x+8=0 와 같은 방정식은· 오렌 동안 죠 +8=7x 와 · 같은 꼴로 다루어 져 왔다. 그러 므로, 같은 차수라도 많은 유형 의 방정 식이 있었고, 그 각각이 벌개로 다루어졌다. 비에타의 입적 중 뛰어난 · 것은 문자계수를 도입한 것이다. 비에타는 범물가로 교육을 받았다. 대체로 그는 수학을 취미삼아 하-
였고 그의 연구를 자비 를 들여서 인쇄하고 배부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7 때메로 우연한 목적 으로 문자를 사용하였으나, 비에타는 문자를 의도저 이고 계동적으로 사용한 첫번째 사람이었다. 그 . 주된 새 용법은 마지수 · 나 미지수의 거 듭제곱을 나타 냈을 뿐만 아니라 일반 적 인 계수로 나타낸 것이었다. 그러므로 모든 이차방정석은 (현대의 기호운 사용하면) 문자계 수 a,b,c 가 임의의 수를 나타내고 X 가 미지의 양이거나 값을 구하려는 양이라고 할 때, ax~+ bx+c=o 이타 씀 으로써 한꺼 번에 표현할 수 있 었다. 비 에 타는 그의 새 로운 대 수를 수의 계 산 log isti ca numerosa (calculati on < wi th numbers) 에 반대 되 는 종 의 계 산 log isti ca sp cc i os a (ca lculati on wi th· typ es) 이라 불렀다 . 그가 일반적인 이차방정식 a 죠 +bx+c=o 을· 연구할 때 그는 그 같 은 식을 가지는 모든 것 전체를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 알고 있 었 다. 그의 《 해 석 적 방법 의 입 문》 In arte m a11alyt ica m isa g o g e (영 어 Intr o ducti on to the Analyt ic Art, 1591) 에서 수의 계 산'’과 종의 계 산 ,,. 의 차이룬 보이기 위하여 미에타는 산수와 대수학 사이에 선을 그었다. 그는 대수학은 종류 또는 사물의 형석에 관한 방법이며 이것이 종의 계산이라고 하였다. 산수와 수계수 방정식은 수에 관한 것이므로 수 2 의 계산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비에타에 의한 이같은 전보 를 볼 때, 대 수학은 형식과 방정식의 일반적인 형대의 연구가 되었다. 왜냐하면, 일 . 반적인 경우에 대하여 한 일은 무한히 많 은 목수 한 겅우 를 포괄하기 때 . 문이다. 어떤 유형의 수 를 나타내는 데 문자 불 쓰는 비에타의 방법의 장접은. • 만약 a 군 +bx+c=o 의 해법이 옳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때, 그· 방 법은 3 죠 +7x+5=0 와 같이 무한히 많은· 구체적인 방정식의 해법을 정 당화시켜 준다는 것이다. 비에타의 업적은· 대수학에서 증명의 가능한 일 반성을 계시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문자 a,b,c 가 一 임의의 실수나 복소수를 나타낼 때, a,b,c 에 관한 연산을 하려면, 이 연산아 논리적으로 정당화되지 않았으므로-수의 유형에 대한 정의 자 체도 이루어져 있지 않았으므로――일반적인 a,b,c 에 관한 연산의 정당 성에 도달하지 못한다. 비에타 자신도 움수와 복소수 룹 배제하었으므로 . 그가 그의 종의 계산에서 보인 일반성도 제한적인 것이었다. 비에타의 생각은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라면 분명히 불가해한 것이었 다. 한편으로는 그는 문자계수를 사용랬다는 매우 중요한 공헌을 렀고-
:도 이 과정이 일반적인 증명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 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음수를 인식하는 데 실패렀고 문자계수가 움 수를 나타내는 것을 배재했다는 사실은, 최고의 인간 정신의 엄한 한계 를 보여주는 것이다. 음수의 연산 규칙은 8 백여년 동안 존재해 있었고 \ 그 규칙은 옳은 결과를 낳았다 . 미에타는 그같은 규칙을 배재할 수 없 • 었는데, 그 이유는 그 규칙을이 그의 시대의 대수로 해전할 수 있었던 것 이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수는 양수가 지닌 직관적이고 물 리적인 의미 를 가지지 못했다. 논리가 아니라 직관이 수학자둘이 받아 둘이려는 것을 결정한다는 것이 분명하게 보인다. 1657 년 이후에야 허 • 드 Joh n Hudde (1633-1704) 가 문자계수가 음수와 양수릉- 모두 나타내는 것을 허용하였다. 그 이후로 대부분의 수학자들은 그같은 것을 자유로 이 하게 되었다. 16 세기 후반인 미에타의 시대에는 대수학은 기하학의 미미한 첨가물 이었다. 기하학 또는 상업에서 나타나는 간단한 실재적 문제로부터 나 타난 한 미지수에 관한 한 방정식 또는 두 미지수에 관한 두 방정식의 해법이 얻어졌다. 그러나 대수학의 힘이 인식된 것은 17 세기 이후의 일 이 다. 거 창한 진보는 데 카르트와 패 르마 Pie r re de Fermat (1601-65) 에 의 、 한 것으로서 (대수적 기하학이라고 부윤 수도 있는) 좌표기하학의 창안이었 ` 다. 물론 여기에서의 기본적인 착상온 곡선이 방정식으로 표현될 수 있 · 다는 것이다. 예 를 들면, x 나+y :=25 는 반지 몹 5 인 원을 나타낸다. 고 전기 의 그리 스인돌의 순수기 하학이 나 종합적 인 방법 보다도 대 수적 표현 · 에 의해서 원씬 더 빨리 곡선의 많은 성질울 증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1637 년에 데카르트가 그의 《기하학》을 출판했을때, 그나 패 르마의 1629 년의 업적 (사후 ·· 문 판)은 음수를 받아들일 대세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기하학에의 대수적 접근 방법은 전적인 것은 아니지 ' 만 그 착상은 명백하였다. 그러나 데카르트와 페르마의 후계자들은 좌 표기하학에 음수를 도입했는데, 그것은 해석학과 기하학의 수요한 발전 · 의 초석이 되었다. 대수학을 활발하게 만든 두번째 혁신은 함수를 나타내는 데에 대수식 • *운 사용한 것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갈탄레이 (2 장)는 물체의 운동윤 식 - 으로 기술하려는 아이디어를 도입하였다. 그러므로, 가령 매초 100 퍼 · 드의 속도로 던쳐올란 물체의 지상으로부터의 높이는 h=1oo t -6 t 2 이라 냐는 식으로 주어진다. 이 식으로부터 그 운동에 관한 많은 사실을 대수
적 방법을 써서 연역한 수 있는데, 예를 들면, 도달할 수 있는 최고 높` 이, 그 높이까지의 경과 시간. 땅에 뗄어질 때까지의 시간 같은 것들이 다. 실제로 대수의 힘이 강락함이 곧 인식되어서 수학자둘은 그것을 대 대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대수학이 기하학을 지배하는 위치를 좌 지할 싹이 렀다. 대수학의 자유로운 사용은 나수의 만대자 릅 윤 자극하였다 . 철학자 홉 ` 스 Thomas Hobbes 는 비 목 수학에 있어서는 작은 존재일 분이지만, “그 노 둘의 대수학을 기하학에 적용시키는 한 매의 수학자들을 만대하면서 그` 들에 관하여 논하였 다. 홉스는 이 물 대 수 학자등이 기 하학의 기 호를 오` 용하고 있다고 말하였고, 원뿔윤 대수학으로 다문 월리스의 채울 야바 한 책 이 고 “기 호의 병 뭉치 라고 규정 하였 다. 파스칸과 바로우를 포함하 는 많은 수학자들이 논리저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대수학의 사용운 반 대하였으며, 그둘은 기하학적인 방법과 증명만을 고집하였다. 몇잊 사 람들은 기하학으로 되돌아 감으로써 대수학의 논리적 기초를 확립할 수 있다고 믿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것은· 환상이 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수학자둘은 실용적인 근거 위에 대수학 · 을 자유롭게 사용하였다. 온갖 종유의 실재 문재물 다물 때의 참된 매 수학의 가치와 기하학적 문재를 다울 매에조차 대수학의 우월성온 수학 · 자들이 수학의 바다속 깊이 위어든 것처럼 명백하다. 대수학을 기하학의 종으로 간주하고 있었단 데카로트와는 달리, 월리· 스와 뉴몬은 대수학의 대단한 힘을 인식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 . 학자들이 기하학적 접근을 포기한 것은 본의가 아니었다. 뉴돈의 《프 란키 키 아》의 3 판을 편집 했 던 멤 버 ~ Henry Pemberto n 에 따르면, 뉴은 . 온 그리스의 기하학자들을 항상 찬양했을 분 아니라, 그문을 좀더 적. 국적으로 본받지 않았던 접에 대하여 자체랬다. 재임스 그레고리 Jam es. Greg o ry (1638-75) 의 조카인 데 이 빗 David Greg o ry (1661-1708) 에게 보낸 편지에서 뉴돈은 “대수학은 수학에서의 서두론 사람의 분석이다”라고 하、 였다. 그러나 그의 《보편 산수》 Univ e rsal Ar it hme ti c(1707) 에서는 대수학 · 의 우월성을 확립시키려고 할만치 할 일을 다 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산 . 수와 대수학울 기본적인 수리과학으로 선정하였고, 기하학은· 증명이 뭘 요할 때에만 허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재로 이 체온 규칙융 모 온 것이었다. 수와 대수적인 과정에 관한 전술에 대한 증명과 직관적 ,
논중조차도 드물었다. 뉴 돈 의 입장은 대수식에서의 문자는 수 를 나타낸 다는 것이었고. 아무도 산수의 확실성에 대해서 의십할 여지가 없다는 직이었다. 라이프니츠 역시 대수학이 접접 지배적임을 지적하였고 대수학의 유 효성을 높이 평가랬다. 그러나 중영 이 걷여된 데 관해서 그는 흔히 기 하학자는 미적분학에서 매우 간 증명을 단 및 줄로 할 수 있다 .••• 대 수학의 사용은 보증되지만, 그러나 그것이 더 나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랬어야만 한다고 느꼈다 . 그는 당대의 대수학의 연 구 결과를 중은 행 운과 기회의 혼합물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오일러는 그의 《무한소 해 석 학 입 문》 lntr o ducti o11 to foji11i tes im al Analys is (1748) 에 서 대 수학이 그 리스인들의 기하학적 방법보다 낀씬 더 우월하다고 공공연하게 거침없이 찬양하였다 . 1750 년까지는 대수학을 사용하기 꺼려함은 극복되었으며 . .그 메까지는 대수학은 많은 가지를 지닌 찰 성장한 나무가 되었지만 뿌 리가 없었다. 수체계와 대수학의 발전은 기하학의 발전과 현저한 대조를 이 두었 다. 기하학은 기원전 300 년겅에 이미 연역적으로 조직되었다. 극소수의 결 합이 나타났지만, 위에서 보는 바와 갇이, 곧 보완원 수 있었다. 그러 나 산수와 대수학은 여하간 논리적 근거가 없었다. 어떤 논리적 근거도 없다는 것은 모든 수학자들을 괴몹혔을 것이다. 그리스의 연역적 기하 학에 능동한 유럽 인들이 걷코 논리적으로 확립되지 못한 여러 가지 형 데의 수와 대수학을 줄 기고 적용할 수 있었겠는가? 거기에는 및 가지 이유가 있다. 정수와 분수의 성질을 받아들이는 근 거는 분명히 경험적이었다. 새로운 형대의 수가 수체계에 첨가되면 양 의 정수나 분수에 관해서 이미 받아들여전 경험에 근거를 둔 연산의 규 칙은 새로운 수들에 적용되었다. 이 매 기하학적인 사고가 손쉬운 지도 정신이 되었다. 문자가도입되었을때, 문자는수를 · 나타냈으므로수와 마찬가지로 다루어질 수 있었다. 좀 더 복잡한 대수적 기술은 카르단이 사용한 것과 7같 은 기하학적인 논증에 의해서 정당화되거나 또는 목별한 경우에 관한 순수한 귀납법으로 정당화된 것으로 부안다. 물론 이 물 과 정의 어느것도 논리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하다. 요망되는 곳에서조차 기 하학은 음수 • 무리수 • 복소수에 대한 논리를 계공하지 못했다. 확실히 자차방정식의 근은 기하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었다. 둘째로 , 최초부터 특 히 l6, l7 세기의 초기 대수학은 그 자신의 논리
적 근거가 요구되는 수학의 독립적 분야로 간주되지 못하였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기하학의 문제인 것을 분석하는 방법으로 간주되었다. 특히 데카르트 를 포함하여 대수학에 관십을 가졌던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해 석학의 한 방법으로 생각하였다. 카르단의 책 《 위대한 기술》과 미에타의 《해석적 기 술 입문 》 의 제목은 바로 그들이 ar t라는 단어를 오늘난 우리 둘이 쓰듯이 과학에 대립시켜서 사용했던 것이타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데카르 트 의 대수적 기하학의 오늘날의 이름인 해석기하학이라는 용어는 대수학에 관한 이같은 데도를 확증하는 것이다. 1704 년에까지도 엔리 Edmund Halley 는 《 왕립 학회 철학논집 》 에 실 린 굴 속에 서 대 수학을 해 석 적 기 술 (n nnlyt icn l art) 이 라고 불 렀 다. 그러 나 데 카르트의 해 석 기 하학 은 아마도 수학자둘-에게 대수학의 강릭함을 인석시킨 결정적 창조물이 었을 것이다. 마지 막으로, 과학적 연구에 서 음수 • 무리 수의 사용과 대 수학의 사용은· 관찰과 실험에 탁월하게 들어맞는 결과를 낳았다. 에를 들어, 어떤 과학 적 연구에서 음수를 사용할 매 수학자둘이 어떤 의혹을 가지고 있든간 에 최종적인 수학적 길과가 물리적으로 확고하게 증명되기만 하면 그갇 은 의혹은 말끔하게 해소되었다. 과학적 응용이 주된 관십사였고, 그 연 구에서 유효성이 보장되는 어떠한 축도 또는 도구는 거의 조십성없이 채 댁되었다. 과학의 팔요가 논리적 정확성을 압도하였다. 탐욕스런 기업 가가 윤리적 원칙울 무시하듯이. 대수학의 확실성에 대한 의십은 무시 되고 수학자둘은 활기차고 자신있게 새로운 대수학을 채덱하여 나아갔 다. 그 이후로 수학자들은 접차 대수학을 수와 기하학에 관한 결과들을 포용하고 확립시키는 독립적 과학으로 전환시켰다. 실재로 월리스는 대수학의 과정이 기하학의 과정만큼이나 정동적인 것이라 확신하였다. 17 세기 말까지 수와 대수학은 기하학과 독립된 것이라고 인식되었 다. 그러 면 왜 수학자들은 논리 저 전개 를 시 도하지 않았는가 ? 유큘리 드의 《원론〉〉에 나타난 기하학의 연역적 조직의 전형이 주어져 있는데도 왜 수학자들은 수와 대수학에 대하여 마찬가지 것을 개발하지 않았는 가? .::z. 대답은 기하학적인 개념 • 공리 • 정리논 산수나 대수학의 그것 들보다 직관적으로 훨씬 더 접근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립(기하학의 겅 우, 도표)이 구조를 제시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무리수· 음수·복소수의 개념은 핀씬 더 모호하고 선사 그립이 가능한 경우에조 차 수로서의 수와 수 위에 세워진 문자식의 논리저 조직을 압시해 주지
못했다. 수체계와 대수학의 논리적 기 초문 전설하는 문제는 어려운 것 이어서 I7 세기 수학자들이 이해할 수 있었던 것보다 원싼 더 어려웠다. 우리는 두 1(8 강)에서 그것을 살켜볼 기회가 있 울 것이다. 수학자들이 논 리적으로 미세한 것까지 세십하지가 못한 대신에 쉽게 믿고 소박했던 것 은 오히려 다행스런 일이었다. 왜냐 하면, 형석화나 논리적 기초보다도 자유로운 창조가 선행되어야만 하며, 이미 수학적 창조의 위대한 시대 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6 비논리적안 전개 : 해석학의 수령 어떤 방향의 연구에서이건 시작을- 하여야만 한다. 그리고, 야 시각은 거의 언제나 아주 분완전한 시도이어야 하며, 흔히 성공 적인 것이 아니다. 어떤 길로 가야 얻어진지 알 수 없는 진리들· 이 있는데, 그 길은 여러 시곱(지방)에 걸쳐 있으며, 최선의 길 은 모든 길운 다 다녀본 뒤에야 안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 은 다론 이에게 바론 걷올 보이기 위하여 그 길을 벗어날 위험 운 댁해야 한다. ••• 우리는 거의 언제나 진리에 도달하기 위하 여 과오윤 겅 험 하는 1 기 닌· 운 받는다. _--디 드로 Denis Di de rot 산수와 대수학의 존재하지도 않는 논리적 기초와 유클리드 기하학의 약간 불완전한 기초 위에, 수학자들은 해석학을 건설하였는데, 그 핵십 은 미적분학이었다. 미적분학은 모든 수학 중에서 가장 미묘한 과목아 다. 비교적 간단한 분야에서도 우리가 본 바와 같은 걷접이 있기 때문• · 에, 미적분학의 개념이나 논리적 구조가 이루어지는 데는 수학자들의 큰 노 지적인 역량을 요구했을 것으로 추축된다. 이러한 기대는 충족되었다. 미적분학은 간단히 말해 변수들 사이의 관계라고 할 수 있는 함수의’ 개념을 활용한다. 가령, 공을 지붕 우]에서 떨어드렸을 때 낙하 거리와 ~ 낙하 시간은 증가한다. 이 때 거리와 시간이 변수가 되고, 거리와 시간 사이의 관계를 주는 함수는 공기의 저항을 무시할 때, t가 공이 낙하한 · 시 간(조)이 고 d 가 시 간 t 동안에 낙하한 거 리 (f ee t)라 하면 d= x6t 2 이 라 는 식으로 주어진다. 중요한 개념의 기원은 항상 몇십 년 또는 몇백 년까지 거슬러 윤라가는 대, 합수의 개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함수의 개념은 J 7 세기에 이 르러 명백히 인정되었다. 자세한 역사는 덜로 중요하지 않다. 보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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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것은. 함수의 개념은 간단하지만 가장 단순한 형태의 함수라도 모 돈 형대의 실수가 관련된다는 사실이다. 위의 겅우에 있어서 t = ✓ 2 일 때의 d 의 값을 명백히 물을 수도 있다. 또 d = 50 일 때의 t의 값을 불 을 수도 있는데, 이 때의 t의 값은 J죠万 6 이 되며, 이것도 역시 우 리수이다. 우리가 알다시퍼 17 세기에는 무리수가 잔 이해되지 않았었 으므로, 수봅 다 물 때의 모든 논 리적 결함은 함수룬 다 물 메도 °4 시 마 찬가지였다. 그러나 1650 년까지는 무리수를 자유로이 사용하게 되었으 므로 이러한 닌점은 그런듯한 말로 얻머무리쳤다. 미적분학은 함수를 취급하면서 두 가지의 새롭고 낀씬 복잡한 개 념 죽 도함수와 정적분을 도입하고, 또 이 들은 수에 대한 논리적 기 초 외 에 또 다몬 논리적 기초 를 팔요로 한다. 이 두 개 념은 17 세기의 위대한 수학자 · 읍 에 의해 개척되었는데, 대표 척 인 인물로는 케 푼 러 , 데 카르트, 카발리 에 리 Bonaventu r a Ca v alie r i ( 1598 -1647), 패르마 Fermat (1601- 6 5), 파스칸 Blais e Pascal (1623-62), 그레고 리 Jam es Greg o ry (1638-75), 로베 르발 Gi ll e Persone de Roberval (1602-75), 호이 겐스 Chris t i an Huy ge ns (1629-95), 바로우 Issa c Barrow (1630- 7 7), 원 리스 Joh n Wallis ( 1616-1703) 및 물론 뉴돈 lssoc New t on(1642 - 1727) 과 라 이프니츠 Go ttfri ed W ilh elm Leib niz (1646-1716) 등이 있다. 이 들 각자는 도함수와 정적분을 정의하고 계산하는 대 있어 각자 고유한 방법으로 접 근했다. 어떤 사람들은 순전히 기하학적으로, 일부는 순전히 대수적으 로, 또 다른 사람들은 그 둔윤 혼합한 방법으로 추론하였다. 우리의 관 십사는 그 사람들이 언마나 수학적 추론의 규범을 잘 지컸느냐 를 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 및가지 대표적인 예문 들어 보면 된다. 사실 많 은 방법둘은 매우 재한된 것이어서 여기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없다. 도함수의 본질은 뉴돈이 그랬던 것처럼, 속도를 써서 생각하여 보면 아마 가장 찰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어떤 문체가 4 초 동안 200 피트를 간다면 그것은 초당 50 피트의 평굼 속도로 움직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물체가 일정한 속도로 웅칙인다면 그 평균속 도는 4 초 동안의 각 순간의 속도도 원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운동 온 일정한 속도를 갖지 않는다. 지상으로 떨어지는 물체, 총에서 발사된 탄환, 태양의 주위를 도는 행성은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속도를 가지고 운동한다. 많은 경우에 있어 운동하는 동안 어떤 순간의 속도를 알아야 할 훨요가 있다. 예를 들면, 탄환이 사람을 때리는 순간의 속도는 치명
척이다. 만약 그 속도가 초당 0 미 터라면 탄환은 땅에 떨 어지고, 초 당 i ,ooo 미 터라면 사람이 땅에 쓰러진다. 한 순간이라는 것 의 의미 자체는 시 간의 겅과랑 이 0 이다. 시간의 경과가 0 이면 그 문체가 움직인 거리 도 0 이 다. 그레서 평군속도를 구할 때처럼 거리를 시간으로 나누어 순 간속도 를 구하려고 한다면 o/o 가 되어 의미가 없다. 이 갇은 난관 을 17 세기 수학자둘은 암암리에는 알고 있었으니- 확실 히 는 봅랐 으며, 그것 윤 타개하는 데 다음과 갇이 하였 을 것이다. 한 물체 가 땅으로 뗄어지는 데 낙하 4 조 후 의 순간속도를 알려고 한다고 가정 해 보자. 어떤 순간 대신에 낙하하는 시간의 어떤 구간을 생각하고 , 그 구간 동안의 낙하 거리를 ' 시간으로 나눔으로써 평군속도불 구할 수 있 을 것이다. 그 래서 낙하 4 초 후부터 1/2 초 동안의 평군속도. 낙하 4 초 후 1/4 초간 의 평군 속도 , 낙 하 4 초 후 1/8 조간 의 평균속도 , ••• , 이런 식으로 계속 구해보자. 그러면, 분명히 구간이 짧 아질수 목 그 평군속 도 논 4 초 후 의 순간속도에 가까와질 것이다. 그래 서 여러 구간의 속도 가 얼마인지를 알아서 그 값 들 이 어떤 값에 접.근.하.는.지. 를 구 해야 한다 . 이 값이 바로 구하려던 4 초 후 의 순간속도 가 원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께우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보이나, 앞으로 알게 되는 바와 갇 이 이 방 법은 근본적인 어려움 을 가지고 있다. 어 쨌든 계산할 수 있다면 4 초후 의 순간속도를 d =16 t 2 의 t =4 에서의 무할t (der i va ti ve) 라 부른다. 위에서 말로 설명한 것을 기호로 나타내 보면 그 어려움 을 확실히 알 · 수 있다. 본질적으로 오 늘날 쓰이고 있는 수학적 기호는 께르마에 의해 채택된 것이다. 그러면 함수 (1) d= 16t1 으로 표현 되는 낙하운동을 하는 공의 4 초 후의 속도를구해 보자. t= 4 일 매 d=16.42=256 이다. h 를 시간의 증분(종가량)이라 하면 공은 . 4+h 초 동안에 256+k 만큼 낙하할 것이며, 여기에서 k 는 거리의 증분 이다. 그러면 256+k= 16(4+h)2= 16(16+8h+h2) 즉 256+k= 256+ 128h+h2 이다. 양변에서 256 을 빼면
k= 128/i + h' 이며, h 초 동안의 평균속도는 (2) hk -= 128hh +h2 이다. 패르마는 이와 간은 간만한 함수의 겅우에 있어서 운이 좋았다고 . 봅 수 있는데, 그것은 윗 식의 우면의 분자와 분모를 h 로 나눌 수가 았 어서 (3) k/h=12B+h 라는 식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는 h 를 0 으로 놓옵 으로써 , 낙하 4 초 후의 순간속도로서 (4) d=128 운 얻었다(기호 d 는 뉴七에 의한 것이다). 걷국 d 가 t =4 일 때의 d=16t:t : 의 도함수의 값이다. 이 방식에서의 문제정은 0 이 아닌 h 로 시작해서 분자분모 를 h 로 냐 누는 등의 연산운 시행했는데, 그것은 h 가 0 이 아닐 매에만 옳은 것이 다. 그러므로 (3) 은 h 가 0 이 아닐 때에만 옳다. 그런 뒤에 전론을 꾼 어내기 위해 h 를. 0 으로 놓는다는 것은 불합리하다. 더구나 d=16 t 2 과 갇이 간단한 함수에서는 (기식이 (3) 식으로 간단화되지만, 종더 복잡한 함수인 겅우 (2) 식을 꼭 다루어야 되는데 그란 경우 h=o 일 때 k/h 는 o/o 이 되어 의미가 없다. 페르마는 자기가 얻은 결과문 정당화시키지 못하였으며, 사실상 그는 미적분학의 선구자로 인정되기는 하나, 이같은 연구를 더 발전시키지는 않았다. 그는 자기가 완전히 정당화시킬 수 없는 개념을 만들었을 때 일만적인 정리를 주장하지는 않았을 정도로 조십스러웠다. 그는 자기의 연구 전과에 기하학져인 해석을 줄 수 있었으므로 그가 옳은 과정을 얻 은 것으로 생각하고 그에 만족했으며, 또 언제인가는 적당한 기하학적 증명이 발견륄 것이라고 믿었다. 미적분학의 창시자들을 혼란시켰던 두번째 개념인 정적분은. 예를 들 ` 면, 어떤 도형이 전체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곡선으로 둘러싸인 것일 때 그 면적을 계산할 때나, 략딩으로 둘러싸인 도형의 체적, 여러 가자 꼴의 입체의 무게중십을 계산할 때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제 관련된 난 ·
접둘을 알아 보기 위해, 부분적으로 한 곡선으로 둘러싸인 면적을 계산 하는 문재를 생각해 보자. y=군의 그래프의 일부인 호 FG 와 선분 DE, 연칙인 선분 DG, EF 로 둘러싸인 영역 DEFG( 그립 6.l) 의 면적을-구해 보자. 여기에도 구하 는 면적에 정접 가까와지는 근사값으로 구하는 값에 접근시켜 가는데. 이것 은 17 세기 수학자둘이 시도한 바와 같다. 선분 DE 를 상등분하여 나눈 구간의 각각의 길이가 h 가 되도록 하고 그 분겁을 각각 D1oD2,D3 로 표시하고 D3 는 E 와 일치하도 록 한다(그립 6.2). y I, y 2, y 3 를 각각 Di , Dz, D3 에 서 의 함수값이 라 두자. Y1h, Yzh, y3 h 는 그립 6. 2 의 세 칙 사각형 의 면적이 되며, 그 합인 (5) Y1h+y 2 h+y 3 h 는 세 직사각형의 면적의 합아 되어 DEFG 의 면적의 한근사값이 된다.
Jy
보다 작은 직사각형둡융 더 많이 써서 면적 DEFG 의 종머 정확한 근사값을 구할 수 있다, 구간 DE 를 6 동분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립 • 5.3 은 그립 6.2 의 가운데 사각형이 어떻게 되는지 를 보여 준다. 이 직 사각형은 두 개의 작은 직사각형으로 대치되고, 각 분접에서의 y의 값 울 직사각형의 높이로 삼았으므로 그립 6.3 의 빗금천 부분은 이 그립
y
의 6 개의 직사각형의 면적의 합노 에 둘어가지 않게 되어, 이 면적 의 합이 DEFG 의 면적에 보나 가까와전다. 그러므로, 합 (6) y1 h+y 2h +y 3 h+y .h +y~ h+y 6 h 가 합 (5) 보다 면적 DEFG 에 더 가까운 근사값이 된다. 우리는 이러한 근사 과정에 관 하여 일반적인 전술을 할 수 있 다. 만약 구간 DE 를- n 등분한다 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나미가
h0J n 개의 적사각형이 생길 것이다. 이 매의 각 등분접에서의 함수값 을- yI, y l …,y” 이라 하면 n 개의 칙사각형의 연적의 합은 (7) Y1h+y 2 h+ • • • +y.h 가 된다. 위에서 말한 바에 의해 구간 DE 를 더 작은 구간으로 나누면 합 (7) 은 n 이 커침에 따라 DEFG 의 면적에 보다 더 가까운 근사값이 된다. n 이 커진수목- h 는 작아진다. 지금까지 선분으로 이루어진 도형 一현재의 겅우에는 직사각형―둘의 면적의 합이 어멍게 곡선으로 둘 러싸인 면적의 근사값으로 이용되는지를 알아 보았다. 직 관적 으로, 직 사각형 의 갯 수가 많아질수록 그들 면적 의 합이 구하려 는 곡선도형의 면적에 더 가까와지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직사각형 이 50 개나 IO0 개가 되었을 때 멈춘다면 아직도 그들 면저의 합은 구하 려는 면적이 되지 못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을 생각해 낸 17 세기 수학 자둘에게 떠오론 생각은 n 을 무한히 크게 해 보는 것이었다 . 그러나. 무한이라는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의 수인가, 만약 그렇 다면 이 수물 어떻게 제산해야 하는가? 페르마는 (7) 과 같은 n 개의 적 사각형의 떤저의 합을 나타내는 ,<--l을- 구해서 그것이 팔연적으로. I/n 이 나 I/ 군과 갇은 항을- 포함하는 것을 알았을 때, n 이 무한대가 되면 이 항들은 무시할 수 있다는 근거로 이들 항을 없애고 생각하였다. 여기서 도 역시 도함수의 경우처럼 페르마는 증명이 만둘어질 수 있다고 믿었 .
는데, 아마도 유독소스가 도입한 착춤법 ( me t hod of exhaus ti on) 에 의해 이 루어질 것으로 보았다 (착출입은 매우 한정되고 다소 복잡한 기하학적 방법으. 로 아르키메데스가 그것윤 익숙하게 사용하였다). 정적분을 이용하여 면적과 체적을 구한 초기의 연구 걷과 중에서 카 발리에리의 것이 주목할만한 것인데, 그. 이유는 그것이 그.시대와 그후· 의 많은 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도 그 시대의 모호한 사고의 전형적 OJ . 예이기 메문이다. 카발리에리는 그럽 6. I 에서와 같은 면적을 무한 히 많은 불가분량 (ind iv i s i b l e) 이라 볼리우는 단위들의 합으로 보았는데. 이 때의 불가분량은 아마도 선이라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카발리에리는 · 그의 불가분량 이 정확히 무엇인지 분명히 밝히지는 못했고, 다만 면적을 · 그 림 6. 3 에서처럽 무한히 작은 직사각형들로 나눈다면 불가분량에 도 달한다고 있을 분 이다. 그의 저서 《여섯 개의 기하학 문재》 Exerc it a ti ones geo metr i c a e sex (S ix Geometr i c a l Exercis e s, 1647) 에 서 그는, 목걸 이 가 구술 로 이 루 어져 있고, 옷감이 실로, 책이 페이지로 이루어진 것처럼 문재 의 연적은 불가분량들로 이루어쳐 있다고 설명하였다. 이러한 개념으` 로 그는 두 면적이나 두 체적을 미교할 수 있었고, 그들 두 개 사이의 관계도 얻어넬 수 있었다. 카발리 에 리 의 미 판자들은 만 족하 지 않았다. 동시 대 의 굴단 Paul Guldin , (1557-1643) 은 그리스의 수학을 이해하는 대산에 혼란시켰다고 하여 그 룹 미난겠다. 그리고 최근의 한 역사가는 카발리에리의 업적에 대해 평 하기를 만약 모호함에 대한 상이 있다면 단연 그가 차지할 것이라고 하 · 였다. 카발리에리는, 어떻게 무한히 많은 원소 즉 불가분량들이 유한한 크기의 문체를 구성하고 있는지를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의 분가 분량에 대한 해석을 거부합으로써 답을 회피했다. 때때로 그는 무한대 의 본성운 설명하지 않고 무한히 많은 선들의 합에 대하여 말하기도 하~ 였다. 또한 그는 그의 방법이 복잡한 그리스의 착출범운 피하는 산용적 인 도구라고 주장했다. 더구나 카발리에리는 동시대의 기하학자둘이 자 · 기보다 더 수학적 개념을 자유로이 취급랬다고 주장했다. __ 'Ii]풀러의 · 처 서 《포도주몽의 체 적 측정 >S te r eometr i a doli oru m vin a rio r um (Measurin g Volumes of W ine Casks, 1616) 을- 예 로 들었 다. 그는 계 속하기 윤 이 들 기 하학자들은 아르키메데스의 방법을 오방한 면적의 계산법으로 만족했으 나, 위대한 그리스 수학자 아르키메데스가 자신의 업적을 정밀하게 ~ 것처럼 완전한 증명을 주지는 못했다고 하였다. 그러합에도 불구하고 ..
이둘 기하학자 들은 그둘의 결과가 유용랬기 메운에 그 들의 계산에 만족 하였다. 그러한 관접에서 카발리에리는 그의 방법이 새로운 발명을 이 끌어넬 수 있고, 또한 그의 방법은 전 혀 어떤 기하학적 구조가 무한히 많은 요소들로 이 루어 져 있 다고 생 각하도록 - 강요하지 않는 다고 말했 다; 그것은 면적 들 또는 체적 들 사이의 미 를 구하는 것 이외의 목적은 없다 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미는 도형의 구성에 대해 어떠 한 의견 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나 그 의미와 값을 잘 나타 내었다 . 마지막 방편으로서 그 는 개념의 문제 를 철학으로 돌 려 버리고, 따라서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 하였다. ‘정밀성 (r ig or) 은 철학의 문제이지 기하학의 문재가 아니다라 고 그는 말했다. 파스칼은 카발리 에 리 를 변호했 다. 그의 《드몽 비 유에 의 편지 >L e tt er s oj Dett or roil le ( 1658) 에 서 그는 불가분량 의 기 하학과 고전적 인 그리 스의 기 하학은 서로 잘 일치한다고 주장하였다. 불가분량 의 참된 규칙으로 중 명된 것은 엄밀하고도 고전적안 방법으로도 역시 증명될 수 있다. 그 것은 다만 용어의 차이였을 뿐이다. 미구나 불가분량의 방법은 기하학 자 축에 낄려고 하는 모든 수학자들에개 받아들여져야만 했다. 사실상 과스칼도 업밀성에 대해 서로 반대되는 양립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때때로 그는 기하학적 논리보다도 져철한 기교(fi ne ss e) 가 웁-바온 일 을 하는 데 더 팔요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이것 을 마치 은총에 대한 종교 져 신앙이 이성을 초월하는 것으로 비유했다. 미적분학에서의 불가분량 의 위치는 마치 하나님의 정의와 미교한 매의 인간의 정의와 같은 것 이다. 더 구나 개 념 의 정 당성 은 때 때 로 마옵 (henr t)에 의 해 전 정 지 어 진다 (2 장). 그는 《수상록》에서 “우리는 전리 를 이성에 의해서 뿐 만 아니라 마·유에 의해서도 역시 알게 된다. 최초의 원리를 알게 되는 것은 바로 후자 에 의해서이며, 거기에 근거하지 않은 이성이 그것과 싸우려는 것은 헛된 일이다. … 그리고 이성이 팔연적으로 의촌하는 것은 마음과 직관에 의한 지식이며 이성은 모든 논의에 있어 그 들 에 기초 를 두고 있다”라고 말하였다. 물론 파스칼은 카발리에리의 방법의 정당화에는 아무것도 기 · 여하지 못했다. 미츠4 분학의 창조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둘은 뉴돈과 타이프니츠이 다. 뉴돈은 저분의 개념에는 빌로 공현한 것이 없었으나 도함수는 광법 위하게 이용하였다. 도함수 을 이끌어내는 그의 방법은 근본적으로 페르
마의 것이다. 그러나 이 근본 개념에 대한 논리적 정당화에는 그도 분 명치 못랬다. 그는 미적분학에 관한 세 편의 논문을 썼으며, 그의 걸작 《프린키 키 아 》 The Math emati ca l Prin c iple s of Natu ral Phil oso p hy 의 세 판을 출간하였다 . 첫번째 논문 (1669) 에서 그는 도함수 를 구하는 방법윤 선명 랬는데 여기서 그는 “정확히 증명되었다기보다는 간단히 설명되었다”고 말랬다. 여기에서 그는 h 와 k 가 불 가분량이라는사실을사용하였다 . 두 번째 논문 ( 1 671 ) 에서 그는 디 진전랬다고 공언했는데. 변수가 이산적 인 양만큼 면화한다 ( 이 깅우에 h 는 궁극적으로 상가분 의 단위가 된다)는 것 대 신에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것 이라 본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는 첫반 째 논문에서 재택했던 불가분량 에 관한 어설폰 학설을 제거했다고 말했 다. 그러 나 그의 용어 로는 유윤( fl u x i on) 이 라고 불 리 우는 도함수를 계 산 하는 과정은 본질적으로는 갇았 고 그 논리는 첫번째 논문보다 더 나아 치지 않았다. 미 적 분학에 관한 그의 서 1 번째 논문인 《곡 선의 구적 법 >Q u adratu re of Curves (1 6 76) 에서 뉴돈은 무한소량 (궁극적 불 가분량) 을 포기했다고 반 복 랬다. 그리고 그 는 위의 (3) 에서 h 라고 나타낸 것을 포함하는 항을 무 시 하는 것을 미 판했 다. 왜냐 하면, 그는 말하기를 수학에서는 미세한 오차라 도 무시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그가 유율이라고 말 한 것에 대한 새로운 설명울 진행하였다. “유율이란 쉽게 말해 가눙한 한 잘게 그리 고 균등히 나누어 진 시 간 동안의 유량(fl uen t, 변수) 의 증가 량이고, 정확히 말해서 발생하기 시작한 중분의 초기의 비율이다. •••“ 물론 이 같은 모호한 표현은 벌 도움을 주지 못했다. 유윤을 계산하는 뉴돈의 방법에 관해서 그의 세번째 논문은 첫번째 것만큼이나 논리적으 로 미숙랬다. 그는 (2) 식의 h2 처럼 h 의 2 차 이상의 거 듭 재꼽 을 포함 하는 항을 모두 무시하여 도함수를 얻었다. 그의 위대한 작품인 《프란키피아》(초판, 1687) 에서 그는 유율에 관하여 및 가지 진술을 하였다. 그는 궁극적인 불가분량을 매처하고 소실되는 가분량 죽 꾼없이 작아질 수 있는 양으로 대체했다. 《프린키파아》의 초 판과 재 3 판에서 뉴몬은 다음과 감이 말했다: 무한히 작아지는 양의 궁극적인 비는 엄격히 말해서, 궁극져인 양의 미가 아 니라, 이러한 무한히 감소하는 양들의 미가 다가가는 극한이며, 주어진 어떠 한 차이보다 가깝게 접근하기는 하나, 그 양 둘 이 무한히 작아지기 전에 그 국 칸을 지나치지도 않고 거기에 도달할 수도 없다.
전혀 명확하지는 않으나 이것은 뉴돈이 그의 유윤의 의미에 관하여 말한 진 술 중 가장 확실한 것이다. 뉴 돈은 여기서 문재의 용어 ‘'극한 에 손 운 댔으나 그- 개념-운 더 추구하지는 않았다. 의십의 여지없이 그는 그의 유..,운에 관한 설명이 불만족스럽 다는 것을 께닫고 있어서, 아마도 절망하여 물리학적인 의미에 의촌하였다 . 그는 ’〈 프린키피 아》에서 말했다: 아마도, 그 양둘의 사라지기 전의 미는 궁극적이 아니며 그 문 이 사라지면 의 미가 없어지므로, 소신되는 양 듄의 궁극적인 미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대 반대 가 있운 수 있다. 그러나 간은 논리로 한 상체가 어만 지점에 도착할 때, 즉 거기서 그 운동이 꾼난 때, 그 꿍국적인 속도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 하연, 그 물체가 궁극적 지점에 도삭하기 전의 속 도는 궁국적 속도가 아 니고 도착댔을 때는 속 도가 없기 매운이다. 그러나 답은 쉽다: 궁 극적 속도 라 는 것은 살재가 마지막 지접에 도착해서 운동 이 임추기 전의 속도도 아니고 그. 후의 속 도도 아니며 바로 도착한 그 순간의 속도 이다: 숙 그 ·상재가 마지막지 접에 도착한 때, 죽 운동이 꾼난 때의 속도이다. 마찬가지로 소산되는 양의 꿍 극적인 미는 그 양둥이 사라지기 전의 미도 사라진 후의 미도 아니고 바로 사 · 라지는 순간의 미로 아해되어야 한다. 그의 수학적 연구 결과가 물리학적으로 참이 되었으므로 뉴문은 미적분 · 학의 논리적 기초에 관하여 먼로 시간옵 소비하지 않았다. 그의 《프린 키 피아〉〉에서 그는 기하학적 방법을 사용했고 국한에 관한 정리둘을- 기하 · 학적 형대로 제시했다. 그는 천씬 나중에 《프란 키키아〉〉 의 정리블- -을 발 견하는 데 해석학을 사용했다는 것을 인정했으나, 그는 고대의 수학자 · 들처럼 추론이 안전하도록 기하학적으로 증명을 만들었다. 물온 기하학 · 적 증명은 전적으로 업밀한 것은 아니었다 . 뉴돈은 유찰리드 기하학을 · 신뢰하고는 있었으나 그것이 미적분학을 지지해 준다는 사실적 증거를 가지지는 못랬다. 라이프니츠의 미적분학에 대한 접근법은 다소 달랐다. 그는 h 와 k 가 감소함에 따라 (그는 dx 와 dy 로 썼 다) 그들은 ‘‘소면되 는 작은 또는 무 한히 작은 값에 도달한다고 주장했다. 이 단계에서 h 와 k 는 0 은 아니 지만 임의로 주어진 수보다는 작은 값이었다• 그래서 h 의 임의의 거듭 재곱, 죽 h2,h, 과 갈은 것은 당연히 무시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비 k/h 가 구하려는 양, 죽 도함수가 되는데, 그는 이것을 몫 dy /dx 로 나-
y
타내었다. 기하학적으로 라이 프 니츠는 h 와 k 를 다음과 갇 이 기술하였다. P 와· Q 가 곡선 위 의 무한히 가까운 접 일 매 dx 는 그 들 의 가로좌표들의 차이고 dy 는 세로좌 표들 의 차가 된다(그립 6.4). 더구나 T 에서의 접선 은 호 P Q와 일치하게 된다. 그레서 dy 를 dx 로 나눈 값은 그 접선의 기울기가 된다. 목 성삼각형이라 불 리우는 삼각형 P QR 은 라이프니츠가 고안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일찌기 라아 프 니츠가 공부한 파스칼과 바 로우에 의해 이미 쓰여졌다. 라이프니츠도 역시 삼각형 P Q R 이 삼각형 , STU 와 닮았다고 주장했고, d y /dx 에 관한 및 가지 결론을 증명하는 데 그 사실을 이용했다. 라이프니츠는 또한 적분의 개념에 관해서도 강법위하게 연구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독립적으로 위의 (7) 식에서처럼 직사각형의 합을 구하는 . 것을 생각해 내었다. 그러나 유한 개의 직사각형의 합으로부터 무한 개 로 나아가는 과정 이 모호했 다. 그는 h 가 무한히 작아지 면 그. 무한의 합에 도달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을 그는fy dx 라고 표시했다. 그는 그. 러한 져분을 계산할 수 있었고, 사실상 독자져으로, 오늘날 미적분학의 기본 정리라 불리우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도함수를 구하는 과정의 역개
산 (an ti d iff eren ti a ti on) 으 로 그러 한 합이 구해 진 수 있 다는 것 이 다. 그는 자신의 미적분학을 얻는 데 12 년 동 안을 고부한 꾼에 1684 년 《악타 에 우디 도움》 Acta erudit or um 에 그 주재 에 관한 첫 번째 논문을 발표하였 다. 아마도 이 논문에 관한 가장 적절한 평은 그의 찬구들이었던 배르 누이 형제 제임스와 존이 한 말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것홀 실명이 라기보다는 수수께끼라고 표현하였다 . 뉴돈과 라이프니츠의 아이디어는 분망하지 않았으며, 둘 다 미 판을 받았다. 뉴 돈은 비 평 가을에 개 반옹옵 보이 지 않았으나, 라이 프 니 츠는 반옹윤 보였다. 묵히 그의 무한소(우한히 작은 수)의 개념을 실명하리는 시도는 하도 많아서 많은 지면을 판요로 하는 것이었다 . 1689 년 《 악 다〉〉에 실란 논문에서 그는 무한소란 실재의 것이 아니타 허干적인 수라 고 말랬다. 그러나 이 허구적 또는 이상적인 수는 보동 수와 똑갇은 법 칙을 따른다고 그는 주장섰다. 한편, 이 논문에 서 그는 기 하학지 으로 말하자면, (dx)2 과 감은 높은 차수의 미분(무한소)과 dx 와 간은 낮은 차수의 미분과의 관계는 한 정 과 한 직선과의 관개와 간고 , dx 와 X 와의 관계는 한 접과 지구 전재 또는 지구의 지 몸과 하늘의 지옵의 관계에 미교한 수 있다고 수장 하였 다. 그는 두 무한소의 미는 크기을 줄 수 없거나 무한히 작은 양둘의 몫 으로서 어떤 유한한 값으로 나타낸 수 있는 미라고 생각했다. 예룹 을 면, 기하학적으로 dy 대 dx 의 미는 세로좌 표 대 접선영 (sub t an g en t)의 비이다(그립 6.4 에서 TU 대 SU). 라이 프니 츠의 업 적 은 니 오] 맨티 드 Bernhard Ni eu wcnt ijdt (1654-1718) 의 미 판윤 받았고, 라이프니츠는 1695 년 《악타》지에서 이에 회답했다. 거기 서 그.는 지나치게 정 밀한'' 미평옵· 공겨했고. 지나찬 완고합아 새로운 만명의 진실을· 배재해서는 안 된다고 말랬다. 라이프니츠는 그의 방법이 다만 표현에 있어서만 아르키메데스의 것과 다를 분이며, 그 자신의 표 현이 새로운 발견을 하는 대 있어서 더 쳐합하다고 말하였다. 무한이 라돈가 무한소라는 용어 는 단순히 원하는 만큼 인마든지 크게 또는 작 게 취할 수 있는 양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어연 주어전 수보다도 오차를 작게 할 수 있도록, 죽 오차가 없도록 취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대수 학자둘이 허근올 사용하여 큰 효과물 얻은 것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궁 극적인 것-죽, “사설상 무한인 수와 무한히 작은 양을 도구로 사 · 용할 수 있다(우리는 라이프니츠 시대의 허수의 지위문 다사생각해 봅 판요가
있다). 1699 년 월리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라이프니츠는 약간 다른 설명을 재 시했다: 무한히 작은 양군운 생각하고 그 미운 구한 때에, 그 양둘운 0 으로 생각해서 는 안 되지만 미교한 수 없이 더 곤 양을- 과 함께 나타난매에는 종종 무시하는 것이 도웅이 핀다. 그러므로 x+dx 에서는 dx 가 무시된다. 그러나 x+dx 와 z 의 차이운 생각한 때는 다르다. 마찬가지로 xdx 와 dx·dx 는 공존할 수 없 다. 그 래서 x y 을 미분한 매 [죽 , 도함수문 구할 때] 우리는 (x+dx)(y + dy) -xy =x dy + y dx+dxdy 라고 쓴다. 그러나 여기에서 dxdy 는 xdy +y dx 에 미하여 무한히 작으므로 우 시된다. 그래서 어느 겅우에나.:z.오차는 어떤 유한 한 양보다 작아진다. 이 렇게 라이프니츠는 그의 미적분학이 정동적인 수학적 개념만을 사 용했 다고 주장했 다. 그러 나 그는 비 평 가들을 만족시 키 지 못했으므로, 연 속의 법칙으로 알려진 철학적 원리 풀 명확히 표현했는데 , 그것은 사실 상 이미 캐픕러가 말한 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라이프니츠가 이마 1678 년 3 월 19 일 곤링 Herman Conrin g 에게 보낸 그의 미적분학의 업적에 관 한 편지에 따르면, 그 원리는 만약 한 변수가 모든 단계에서 어떤 성 질을 가진다면 그것의 국한도 그 성질을 가지게 된다”는 주장이었다. 1687 년 매일 Pi er re Ba y le 에게 보낸 편지에서 라이프니츠는 이 원리에 대해 더 자세히 표현했다: 어떤 주어전 년화에서 그것이 어디에서 꾼나
든지, 꾼접도 포함되는 어연 일반적 인 추론을- 세-운 수 있 다.” 그리고 그 원리룹 포물 선 y= x2 의 dy / dx 를 계 산하 는 데 적용하였다. dy / dx= 2x+dx 를 구한 다음, 그는 “우리의 가정에 의해 • (그립 6.5 의) 세로.좌표 꾸y 2 가 움직 여서 고정된 세로좌표. X iY1 과 일치할 때까지 검정 접근 하는 겅우에는 일반적 추론울 적용할 수 있다. 이 겅우 dx
/입
는 0 과 같아져 무시할 수 있다 .• •• ”라고 하였다. 라이 프 니 츠 는 그 식 의 좌변에 있는 dx 와 d y가 dx 가 0 일 때 어떤 의미 를 갖게 되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물론 철대적으로 같은 것은 절 대 적 으로 아 무 것도 아닌 차를 가 진다고 말했다. 어떤 변화 상대, 예윤 들면 소인하는 상대로서 진코 어연 값과 감아지거 나 멈 추지는 않으나, ••• 이 간은 상대로 변해가고 있으며, 그· 차 이 가 어떤 주 어진 · 양보다 작게 한 수 있는 예윤 생각해 보자; 이 상대에서도 역시 약간의 차이, 약간의 속노, 약간의 각도는 납지만 , 어느 겅우에 나 이 들은 우한히 각은 것이 다. … 현재로서는, 그러한 순간의 면화(부등식이나 등식에서의)가 ••• 임저한 또는 형 이상학적 의미 운 가지는지 하는 문재와 , 한없이 증가하는 무 한한 크기나, 계속 감소하는 우한소가 정당한 생각인지 하논 문제는 아마도 의문으로 재기 친 것이라는 것운 인정한다 .••• 무한히 큰 (또는 보다 임 밀하게 무계한 인) 양이 나 무한히 각은 양 (즉, 우리 피 지식 안에서 이 윤의 최소량)에 대하여 언급할 대, 인마 든 지 크게 하거나 작 계 한 수 있는 양, 죽 당신이 원하는 만큼 큰 양 또는 작은 양으로서 아무나 가 준 수 있는 오차가 어연 수 어진 값보다 각아지게 만 문 수있는것윤 말한다 · 고 이해하면 충분할 것 이다. 이러한 가정 아래 1684 년 10 인 《 악타 〉) 에 재시된 것과 갇은 우 리의 모돈 계 산 규칙은 어렵지 않게 증 명킬 수 있다. 그런 뒤에 라이프니츠는 이 규칙들 을 논했지만, 명확성을 기하기 위한 것은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았다. 라이프니츠의 연속성의 원리는 분명히 수학적 공리는 아니었고, 현재 도 마찬가지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것 을 강조했고, 이 원리 를써서 많은 논의 를 하였다. 예 를 들면, 1698 년 월리스에게 보낸 편지 에서 라이프니츠는 크기가 없는 삼각형 즉 크기가 0 으로 줄어쳐도 형태 를 유지하는 것으로서의 목성삼각형(그립 6.4) 의 사용을 변호했고, 이어 서 도건져으로 물었다. 누가 크기가 없는 형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말인가?” 마찬가지로 1713 년 그란디 Guid o Grand i에게 보낸 펀지에서, 그는 무한히 작다는 것은 단순하고 절대저 인 0 이 아니고 상대적 인 o, · 죽 사라져가는 묵-성을 지닌 무한히 작은 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라이 프니 츠는 때 로는 참된 무한대 나 참된 무한소에 관하여 확신하지 못한다
고 말하 기 도 했 다. 1716 년 일 생을 마 칠 메 까 지 라이 프 니츠는 그가 말하는 것의 무한히 작은 양(무한소 , 미분)과 무한히 큰 양이 무 엇인지에 대해 설 명 을 계 속 했 다. 이 설명은 위 에 서 이미 보 았던 것 보다 더 나아지지 않았다. 그는 그 의 미 적분학에 대한 확실 한 개 념 이나 논리적 정당 화를 가지지 못랬다. 뉴 튼과 라 이 프 니 츠 가 그 들의 추론 에 있어서 그 렇 게 세련되지 못랬던 것은 다 소 눈 라운 일 이다. 그 둘 이 미 적분 학 을 탐구하기 전에 이미 다른 위대한 수학자등 이 적지 않은 공현을 했 었고, 두 사람 모두가 그 선행 자 들 의 연구 진과를 읽었었 다. 사 실 상, 뉴 돈 의 스 승 이었던 바로우는 이 미 기 하학적 인 형 대로 많은 기본적인 결 과 들을 얻었었다. 뉴 돈 이 내가 다론 사 람 들 보다 멀 리 볼 수 있 었던 것 은 내가 거인 둘 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것은 , 단순한 겸손이 아니라 사 실 이었다. 라 · 이 프 니 츠에 대해서 말하자 면, 그는 위 대한 지성인이었다. 우리는 이미 많 은 분야에 서의 그의 공헌 에 대하여 언 급했 다 ( 3 장 ) . 그는 지 적 인 힘 이 나 넓 이 에 있어 서 아리스 토델 레 스 와 도 견 줄 만하다. 물 론, 미적분학은 새 롭고 매우 미묘 한 개념 에 관 한 것이어서 가장 창조적인 사람 둘 조차도 필 연 적 으 로 그 물- 자신의 창조 물을 확실 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개 념을 명확 히 하거나 그. 연산 을 정당화시키지 못하게 되자, 두 사람 모두 자 신들 의 방법의 생산성과 그 들 의 결 과의 일관성에 의존하였으며. 업 밀성 (ri g o r) 대 신 정 인 (v ig or ) 로 일고 나갔다. 뉴 돈 보다도 비 판에 관해 서는 에 만했 지만 엄밀성에 대해서는 관십이 적었던 라이프니츠는 그의 작업의 궁 극 적 정당성은 그것의 유용성에 있다고 느꼈다. 그는 그가 창 조한 것 의 과정이나 계산의 가치 물 강 조 있다. 아마도 그는 연산 규칙 을 명확히 형 성하고 그것이 적 절 히 적용된다면, 거기에 관련된 개념의 의 미가 아무리 오호하다 할지라도, 다당하고 옳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 데카르트처럼 그는 광법위한 분야 를 생각했던 식견있는 사람이 었다. 그는 새로운 개념의 장기간에 걸찬 의의 를 생각했고 새로운 과학 이 도래하고 있다고 선언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미적분학의 기조는 불분명한 재로 남아 있었다. 뉴온의 업적의 지지 자들은 처음 미와 국한의 미에 대하여 계속 거론하였고, 타이쓰니츠의 추종자들은 무한소, 즉 무한히 작으면서 0 이 아닌 양을 사용하였 다. 이 러한 서로 다몬 접근 방식의 존재가 적절한 논리적 기초설-세우는 데 어 려움을 더있다. 더구나 많은 영국 수학자들은 아마도 그둘 대부분이 그.
리스의 기하학을 고수하고 있어서 엄밀함에 더 집착하였으므로, 미적분 학에 대한 이 두 가지 접근을 모두 분신하였 다. 어떤 영국 수학자들은 수학 대신에 뉴돈을 연구하는 것을 댁있으므로 엄밀 화에 대해서는 더 이상 전진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17 세기는 산수와 대수학에서와 마,:,.J: 가지로 미적분학도 혼란한 상태에서 막이 내렀다. 이같은 혼란과 어려움과 또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 18 세기의 위대한 수학자들은 미적분학을 널리 확장댔울문 아니라 그로부터 전칙으로 새 로운 과목들을 이꿀어 내었다. 죽 , 무한급수, 상미분 및 편마분방정식 . 미 분기 하학, 변분학, 복소변수함수론과 갇이 오 늘날 의 수학의 핵 십 이 며 총칭 하여 해 석 학 (anal y s i s) 이 라 불 리 우는 분야를- 개 척 하였 다. 회 의 론자 오l 미판자 -를까 지도 더 이상 논리적 기 초 의 문계는 없는 것처럼 여러 가지 수와 대수학과 미적분학의 방법을 자유로이 사용렀다. 미적분학의 새로운 분야로의 확장은 그 주재를 엄밀화하는 문재와 혼 합된 새로운 개념과 방법론을 발생시컸 다. 무한급수의 취급은새로운복 잡성을 보여 주는 예가 된다. 먼저 무한급수가 수학자들에게 던진 문재 가 무엇이었던가를 살켜 보자. 1/(1+x) 이라는 함수는 (1+x)-l 로 표시원 수 있고 여기에 이항정리 룬 적용하면 다음과 같은 식을 얻는다. (8) ---I-+:-I i-x-= --= (1 +x)-1 = 1-x+x2_ 국+군 •• •. 여기에서, 뒤의 접둘은 항들이 무한히 계속되면서 앞 쪽 에서 재시된 및 개의 항으로 주어진 규칙에 마른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미적분학 에 무한급수를 도입한 원래의 의도는 미분(도함수 운 구 하는 것)이나 적분 과 같은 것에 그것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왜냐 하면, 급수의 간단한 항둘이 다루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sin x 와 같은 함수에 대한 급 수둘은 함수값을 계산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러한 용도들을 불 매, 급 수가 함수와 동둥하다는 것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이재 X 에 어떤 값 울 줄 매 함수는 어떤 수치를 가진다. 이 메 첫째로 급수에 대하여 할 · 수 있는 질문은 주어전 z 의 값에 대하여 그 급수가 어떤 값을 가지게 되느냐 하는 문제이다. 다른 말로 하면, 무한급수의 합이 무엇을 의미 하며, 그것을 어떻게 구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둘째 질문은그급 수가 임의의 z 에 대하여 그 함수물 나타내느냐 아니면 적어도 그 함수
가 의미를 가지는 모든 값에 대하여 함수를 나타내느냐 하는 문재이다. 뉴돈은 미적분학에 관한 그의 첫번째 논문 (1669) 에서 의기양양하게 미 적분학의 과정을 진척시키는 데 무한급수의 이용을 도입했다. 뉴돈은 y =I/(I+ 죠)을 적분하는 데 이항정리를 이용하여 y= I 一 x2+x'-x6+x8- • • • 을 얻고, 각 항을 적분했다 . 그는 위와 갇이 하는 대신에 갇은 함수를 · y =I/(x'+I) 로 쓰면 이항정리에 의하여 y=--x-Iz ; ;----x-I ·'. - +' _xIG_ _ —xI8 + ... 울 얻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 뒤에 그는 X 가 충분히 작으면 첫번째 전 개석윤 이용하고, X 가 크면 두번째 식이 이용될 수 있다고 했다. 그레 서 그는 오늘난 우리가 수령이라고 부르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 나, 그것에 대한 정확한 개념온 갖지 못하고 있었다. 무한급수의 사용에 관하여 뉴돈에 의하여 주어진 정당화는 그 시대의 논리의 예물 보여 준다. 1669 년의 그의 논문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 · 랬다: 보동 해석학[대수학]이 유한 개의 항의 방정식에 의하여 행하는것은그것이 무 · 엇이돈 이 새로운 해석학도 무한금수에 의하여 마찬가지로 할 수 있다. 그래서 이것에 대하여 해석학 갇온이몽운 산이는문재윤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에서의 추론은 다론 데에서만큼 명백하며 방정식도 엄밀하다. 비목 이성의 힘이 좁은 법위로 한정된 우리 인간이 이듭· 무한금수의 모든 항문운 나타낼 수도 지각할 수도 없 다고 할지 라도, 그것 으로부터 우리 가 구하려 하는 양윤 알아낸 수 있 다. 그러므로 뉴튼에게 있어 무한급수는 유한 개의 항 대신에 무한 개의 항 을 다루는 고차적인 대수학이었다. 뉴본, 라이프니츠, 메르누이 일가, 오일러, 달랑매르, 라그랑즈와 그 밖의 18 세기 수학자들은 무한급수의 이상한 문제들에 고전했고, 그것둘 울 해석학에서 다루면서, 룹란 증명윤 하고 듄란 전론을 꾼어내는 둥의 모든 종류의 실수들을 법했다. 그물은 오늘-난 우리가 후대의 지해윤 밀 어 바보같다고 해야만 할 정도의 논증을 하기조차 랬다 . 그같은 논의봅 약간만 검 토해 보면 우리 는 그들이 무한급수문 다물 매 당면했 던 당황 합과 혼란을 알 수 있다.
.x=1 일 때, 1/(1+ 따)를 나타내는 급수 (8), 죽 1+l x = i -x+x2- x 3+x•-• • • 은 1-1+1 一 I+I··· 이 된다. 이 합이 무엇이냐에 대한 의문은 끝없는 논쟁 을 야기시킨다. 그급수를 (1 -1) + (1 - 1) + (1-1)-• • 로 쓰면 그 합은 0 이 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 을 1-(1 —1 )-(1-1) • • • 이라 쓰면, 마찬가지로 분명히 그 합은 1 이 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만 약에 S 를 .::z.. 급수의 합이타고 하면, S= 1 -(1 -1 + 1 -1 + -• ·) · 죽 S=1-S · 도 역시 옳다. 그러므로 S=1/2 이다. 이 마지막 결과는 다른 논의에 의 에 지지되었다. 이 급수는 공마가 -1 인 기하급수이다. 그리고첫째 항 이 a 이고 공비가 r0J. 무한동미급수의 합은 a/(1-r) 이다. 이 경우에 합은 1/[1-(-1)]=1/2 이다. 그란디 Guid o Grandi (1671-174 가 는 그의 작은 책 《원과 포문선의 구적 법 >Q 1 1adratu ra cir c uli et hy pe rbolae (Qu adratu re of Ci rc les a,i d Hy pe rbolas, 1703) 에서 다른 방법을 써서 세번째 결과인 1/2 을 얻었다. 그는 (8) 에 ..x =l 을 대입하여 I ―2 =1-1+1 一 I••• 올 얻었다. 결국 그란디는 그 급수의 합이 1/2 임을 주장했다. 그는 또 한 반대로 그 합이 0 이라고도 주장했다. 그리하여 그는 세계가 무에서 창조컬 수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 셉이다.
라이 프니 츠는 1713 년에 《악타 에 루디 토뭄》에 발표한 볼프 Chris t i an Wo lf에게 보낸 편지에서 갇온 급수 몰 다루었다. 그는 그란디의 결과 에 동의했으나, 원래의 함수에 의지하지 않고 그것을 얻을 수 있어 야만 한다고 생각랬다. 첫째 항을 잡고, 처음 두 항의 합을잡고, 처음 세 항 의 항·운 잡고 , 이와 갇이 계속하면 I,o, I,o, I, ••• 울 얻는다. 그레서 I 과 0 이 천 가능성이 같다. 그러므로 산수평균을 내면 x/2 이 가장 가 능성 있는 값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베르누이 일가의 제임스, 존, 다니 엔과 라그랑즈에 의 하여 받아들여 졌다. 라이 프니 츠는 그의 주장이 수학적이기보다는 형이상학칙 이라고 인정했으며. 수학에는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것보다 더 많은 형이상학적 진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오일러는 1745 년의 편지와 1754/55 년의 논문에서 급수의 합운 다루 었다. 계속 항둘을 더해 감으로써 그 값이 어떤 고정된 수에 접접 접근 해 갈 매 그 급수는 수령한다고 말하고, 그 고정된 값을 그 급수의 합 이라고 부른 다. 오일러에 의하면 이러한 현상은 그 항들이 정접 감소할 페 생긴다. 항둘이 감소하지 않거나 더우기 증가하는 급수는 발산한다. 그는 말하기를 이러한 타입은 알려진 양함수로부터 유레하기 때문에 그 함수의 값을 그 급수의 합으로 잡을 수 있다. 오일러의 이론은 또 다른 문제를 재기하였다. 그는 전개식 (1 +l x)2 =(1 +x)-2= 1-2x+3x2-4x3+ • • • 윤 다루었다. x=-1 이라 두면 00= 1 +2+3+4+ • • • 이다. 이 합은 사리에 맞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오일러는 니 (l-z) 에 관한 급수, 죽 1-I x =1+x+x2+ 죠+ ••• 을 생각하었다. :x =2 라고 두면 -1=1+2+4+8+•·· 울 얻는다. 우변의 급수의 합은 앞에서의 급수의 합보다 크므로, 오일 려는 -l 이 무한대보다 크다고 결론을 내렀다. 오일러와 동시대의 어떤
사합물은 누한대보다 콘 음수는 0 보다 작은 음수와는 다르다고 주장댔 다. 오일러는 이의를· 재기하고, 0 이 양수와 음수를- 가르듯이 00 도 양수 와 음수를 가른다고 주장했다. 오일러의 수령과 발산에 대한 견해는 단단하지 못있다. 그의 생애에 서도, 급수의 항을이 계속 감소하여도 그의 의미로는 합을 가지지 않는 것 들이 발견되 었 다. 또 그 자산도 양함수로부터 유래 하지 않 는 급수룹 다루었다. 걸국 그의 ”이론은 불완전했다. 디구나 지금은 없어진 1743 년의 편지에서 니콜라스 메르누이 Ni ch olas Bernoulli (1687-1759) 는 오일러 에게 7같 은 급수가 다몬 표현을 가질 수도 있다. 그래서 이 급수등이 당 신의 정의대로 한다면 다른 합을 가져야만 한다”라고 지적했옵이 등 립 없다. 그러 나 오일러 (1745 년의 군드바하 Go ldb ach 에개 보낸 건지에서 ) 는 매 르누이가 에봅 재시하지 않았고, 오일러 자신은 간은 급수가 왼전히 다 론 두 가지 대수적인 표현에서 유래한다고 믿지는 않는다고 대답있다. 그러 나 ;삼례 Jea n-Charles Collet (1744-99) 는 두 개 의 다른 함수로부터 유 래하는 간은 급수의 예룹 재시하였는데, 라그랑스는 이 에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논증하였으나 두 1 에 그의 논층이 거짓임이 판명되었다. 오일러의 무한금수에 대한 논법은 또다몬 이유 로씨도 불합리있다. 급 수는 미분가능하고 적분가능한대 , 급수을 미분하거나 저분한 것이 각각 그.급수 를 나다내는 함수의 도함수나 저분과 같아지야 한다는 사설이 정 당화되어야만 했다. 그럽에도 불구하고 오일러는 한 무한급수가 어연 한 닫힌 식 〔함수석 ]을- 전개 한 것 이 라면 급수가 발산하는 변수값에 대 해 서조차, 그 급수가 그 식과 동등하게 수학적 연산을 시행한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마라서 그는, 우리는 발산하는 급수의 유용성을 유지한 수 있으며 모든 반대로부-더 그것을 사용하는 것을 변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몬 18 세기 수학자들도 미목 그들이 지금 우리가 수렵급수 • 발산급 수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정확한 차이정을 확실히는 몰랐지만 , 그 둘은 만드시 구빈되 어 야 한다고 인식 하고 있 었다. 곤란성 의 근원은 -군론 그. 둘이 새로운 개념을-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며, 모든 가 1 처자들과 마찬가지 로 그둘은 혼마합운 없애기 위하여 몸부립쳐야 랬다. 분명히 라이프니 츠, 오일러, 라그랑즈가 받아듄였던 뉴돈의 처옵 생각――급수는 건 다 항식이며 마라서 대수학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 __. 은 급수에 관한 업적 을 엄밀화하는 데 도웅이 되지 못하였다. 이 7같 은 형식적 견해는 무한급수에 관한 18 세기의 업져올지배하고 있;
었다. 수학자들은 그둘의 일을 수행하는 데 수립성윤 생각해야 안 일요 가 있다는 것과 갇은 재약에 분개하기까지도 하였다. 그둠의 작입은 유 용한 걷과들을 만들어 냈고 그들은 이 신용적인 건과에 만족했다. 그등 온 그둥이 정당화할 수 없는 한계를 넘었지만, 대체로 그를은 말산하는 급수의 이용에는 신중했다. 비록 수재계와 대수학의 논리가 미적분학의 논리보다 더 잔 되어 있 치는 않았지만, 수학자등은 미적분학을 공겨하는 대 그들의 입을 집중 시켜 거기에서의 던 논리적인 것윤 보강하려 하였다. 그 이유는 의심할 나위 없이, 여러 형대의 수둥이 1700 년까지는 친근하고 자연스러운 것 이 된 반면에, 아직 이상하고 신미한 미적분학의 개념은 달 받아 들여졌 기 미 1 문이다. 더구나 수를- 사용한 때는 모순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마 적 분학과 그것 의 확장인 무한급수와 해 석 학의 다온 분야를 사용하는 데 에서 모순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비우 라이프니츠의 방법이 디 유동적이고 옹용에 머 편리했지만, 미 적분학에 대한 뉴튼의 접근 방식이 라아프니츠의 것보다 잠재적으로는 업밀화하는 대 쉬웠다. 영국인들은 두 접근 방식을- 유칼리드 기하학과 걷부시킵으로써 그 업밀성운 확보할 수 있다고 여전히 믿었다. 그러나 그들도 역 시 뉴돈의 모멘트(그의 불가분량인 증분)와 그의 연속변수의 이 용에 대하여는 혼동하고 있었다. 유럽 대육에서는 라이프니츠를 따라 그의 미분(무한소)의 개념을 엄밀화하리고 시도하였다. 미칙분학에 관한 뉴돈과 라이프니츠의 접근 방식을 선밍하고 정당화하기 위하여 씌어진 객듄은 보증할 수 있을- 정도로 검도하기에는 너무나 많고 너무나 잘못 되어 있다.*
* 이설- 책에 관한 자세한 것은 다운 객윤윤 보라. Flo 『in n Cujo ri: A Hi st o r y of /he Concep tion s of Li m i ts a nd Fluxio n s in Creal Bril a i1 1 fro m New/011 lo Woodhouse, The Op en Court Publis h in g Co., Chic a g o , 1915. Carl Boy e r: The Concep ls of lhc Ca/c11/us, rep ri n t by Dover Public u t ion s, 1949; orig ina l edit ion , Columbia Univ c r- sily Press, 1939.
이러한 노력이 미적분학윤 엄밀화하기 위한 것이었던 반면에 어떤 사 상가들은 그 확실성 (soundness) 윤 공져 하였 다. 가장 강력 한 공지 은 철학 자 바칼리 주교 Bi sh op George Berkeley (1685~1753) 에 의 한 것 이 었는대 그 는 수학적인 엉향을 받은 기계론과 걷정론의 철학의 종교에 대한 증대 되는 위협을- 두려우녔다. 1734 년 그는 《해석학자 또는 한 이단 수학자 . 률 위 한 강론》 The Analys t Or a Di sc ouru Addressed to an Infi de l Math e-
mati cia n 을 출간하였 다. [이 만자는 Edmund Halley 였 다. J 여 기 에 서 는 한 대 해석학의 대상 • 원리 • 추론 둥이 종교적 신비나 신앙의 관접보다도 뚜렷이 착상되어 명백히 전개되었는지가 검도된다. “먼저 너의 눈 에서 빛을 내라: 그레야만 확실히 볼 수 있어서 너의 형제의 눈 속의 더물 없 앤 수 있다.” 버칼리는 수학자들이 불가사의하고 난해하게 나아가고 있 다고 옳게 불평랬다: 그둘은 단계마다 논리나 이유 볼 재시하지 않았다. 버 클 리는 뉴돈의 주장 중 여러 개를 미판했으며, 독-히 뉴돈이 논문 〈〈 곡 · 선의 구적 법 >( 증분윤 X 로 나타냈 는데 우리 는 h 운 대 신 쓴다) 에 서 및 가지 대수적 과정옹 썼는데, h 를- 포함한 항을 h 가 0 이라는 이유로 무시했 던 사선운 지적랬다(앞의 사 ( 4) 와 미교해 보라). 이것은 모순의 법칙에 위 배된다고 1 사쿨리는 말했다. 그러한 추론은 신학에서는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일차 유윤(인차 도함수)은 유한의 영역 밖에 있기 때문에. 인간의 이해 능력옹 넘어서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리고 인차 [유윤1 운 이해할 수 없는대 어찌 이 차와 삼차 〔도함수의 도함수] · 둥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가? 시작의 시작 또는 꾼의 꾼 ••• 윤 알 수 있는 사감은 아마 이러한 것.등도 안 수 있 을- 정도로 빈 옵 이 없윤 것 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감은 어떤 뜻인지 도대재 ••• 이해한 수 없으리라고 믿는다. 이차. 삼차 유윤윤 이해 한 수 있는 사람은 ... 생각킨내 신학의 어민 접에서도 까다 로울- 판요가 없운 것이다• h 와 k 의 소면에 대하여 버쿨리는 말했다. 분명히 증분이 4 군김한다고 . 가정랬을 때는 그것의 크기나 표현, 그밖에 그것의 촌재성의 가정으로 . 부터 얻어진 모든 것들도 그것과 함께 소민해야 한다.” 뉴돈에 의하여 재시된 무한소량 h 와 k 의 비로서의 도함수에 관해서는 “그둘은 유한한 · 양도 아니고 무한히 작은 양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가 그것 율 동떨어진 양의 유령이라고 부르게 되지 않기을 빈다.” 버클리는 라이프니츠의 접근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미판적이었다. 초기 의 업 적 《인간 지 식 의 원리 에 관한 논문》 A Treati se Concernin g th e· Princ ip le s of Human Knowledg e (1710, 개정판 1734) 에서 그는 라이프니츠 . 의 개념을· 공져랬다. 잊잊 저명한 인사둔은 유한한 칙선들이 무한히 많은 부분으로 나뉘는것에 만족 하지 못해, 다시 또 이들 각각의 무한소문 무한 개의 다론 부분으로 가르려는 것 축 이 차 무한소 [(dx) 기로 나누고, 그런 식 으로 무한히 계. 속. 하. 려. 고. 주장한다.-
이둥은 무한소의 무한소의 무한소가 있다는 것이다. 끝도 없이 ! ••• 또 한편 의 다론 사람 들은 이차 이상의 모든 무한소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 해석학자 〉〉 에서 라이프니츠에 대한 공격을 계속했다: 라이 프니 츠와 .:::z..의 추종자듄은 .:::z..등의 〈〈 미 분학〉) calculus dif fere nti ali s 에 서 엄 일성없이 무한히 작은 양듄은 처옵에 가정자고 나중에 버 렀다: 그 추론의 이해 와 성 당성에 있는 명확합과 나산어 : 이 들에 치우치지 않은 생각있는 사람아라 떤 그러한 점도 쉽게 식벌한 수 있운 것이다. 마 분 ( d i ff eren ti als ) 의 미 는 버 클 리 에 의 하면, 기 하학적 으로 접 선의 기 울· 기 가 아니라 할선의 기울기 물 전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오유는 고계 미 분욥 무 시함으로써 회복원 수 있다. 그레서 두 번 뭉립 으로써 과학에 는 도딸하지 못 했 으나 전실에는 도착했다. 왜냐하면 실수들이 서로 상 쇄되었기 때문이다 . 그는 또한 이계 미분인 라이프니츠의 d(dx) 에 대해 언급 겠는 대 그는 그것이 가장 최소의 분할량인 dx 의 차이라고 말앴다. 두 가지 접근법에 관해 버큘리는 수사적으로 오늘날의 수학자들이 자 연과학자 둘처럼 그들의 원리를 이해하는 데보다도 적용하는 데 더 많은 수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었 다. 그는 또 모든 다론 과학에서 는 그들의 걷돈을 써서 그들의 원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고, 원리를 써서 결론을 증명한다”라고 말하였다. 버 클 리는 및 가지 질문으로 《해석학자》를 끝맺었는데, 그 중 하나는 다옵과 같다: 종교져 인 문재 에 관해 서 는 그명 개 도 까다로운 수학자들이 그들 자신의 과학 에 관해서는 업져히 철저한가? 그물국본 권위에 복종하지 않고, 믿음 위에 사 물윤 말아들이지 않으며, 이해한 수 없는 것은 믿지 않는 것이 아닌지 ? 그물 은 그둘의 신비와 더 나아가 부조화와 모순은 가지지 않는가? 많은 수학자들이 버클리의 마판에 응답했으며, 미목 성공하지는 못랬으 나각자가 미적분학을 엄밀화하려고 시도하였다. 이러한 노력들중가장 중요한 것으로 오일러의 것이 있다. 오일러는 미적분학의 기초로서의 기 하학을 전적으로 배제하고 함수에 대하여 순전히 형식적으로 일하려 하 였다. 죽 대수적(해석적)인 표현을- 써서 논증하였다. 그는 라이프니츠의 무한소의 개념, 죽 미리 주어진 임의의 수보다도 작으나 0 은 아닌 양을 ~
부인랬다. 18 세기 미적분학의 고전인 그의 《미분학의 원리 》 lns tit u t lones calculi di ffere nti als (Prin c ip le s of Di ffere nti al Calculus, 1755) 에 서 그는 다 읍과 같이 논하였다: 모돈 양둘이 무한히 줄어 둘 어 완전히 소민되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무한히 각은 양은 다만 소면하는 양인 분이어서 그 것 은 바로 0 가 7J -다. 그것은 무한히 각은 것이 란 어떠한 수어진 양보다도 작 은 것 운 말한다라고 정의하는 것과 일치한다. 그것은 분명히 무가 되지 않 을- 수 없 을 것이다; 그것이 0 이 아니라면 어떤 동등한 양이 그것에 주어지게 되어서 가정에 모순되기 때문이다. 오일러는 말하기를 (라이프니츠의 기호로 ) dx 와 같은 무한소가 0 이므 로 (dx) 라 (dx)3 도 마찬가지이지만, 관례상 이러한 것 들 은 dx 보다 높 온 차수라고 붕리 우고 있다. 그러 므로, 라이 프니 츠의 dy / dx 는 라이 프 니츠에 의하면 무한소량들의 미였으나 오일러에게는사실상 o/o 이었다. 그러나, 그는 o/o 은 여러 가지 값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 했 다. 오일러 의 주장은 모돈 수 n 에 대해 n•o=o 이다. 그래서 이 식을 0 으로 나누 면 n=o/o 이 된다. 도함수 를 구하는 보통- 과정은 관련된 독 정한 함수에 대하여 o/o 의 값을 정하는 것이다. 그는 함수 y =X2 울 예로 들어 선명 했다. 그는 x 에 증분 h 를 주었다(그는 0 운 썼다). 이 단계에서 h 는 · O 이 아닐 것이다(이것을 (1) 부더 (4) 까지의 식과 비교해 보라). 걷과적으로 ..hk: ;-=2x+h 가 된다. 여기서 라이프니츠는, h 는 0 은 아니지만 무한소가 되는 것을 허용하였는데, 오일러는 h 가 0 이라 말했고, 그래서 이 겅우에 비 k/h 는 o/o 이지만 2X 와 같음이 밝혀진다고 하였다. 오일러는 h 와 k 의 궁극적인 값인 이들 미분은 절대적인 0 이며, 그 들로부터는 결국 유한인 값으로 계산되는 그들 사이의 미 외에는 아무 것도 나운 수 없다고 강조했다. 《미분학의 원리〉〉의 3 장에는 이러한 성 질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나와 있다. 거기서 그는 이러한 내용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미적분학에 의혹을 품게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보통- 생 각하는 것처럼 많은 신비불 숨기고 있지는 않다고독자들을격려하였다. 물론 도함수의 계산 과정에 관한 오일러의 정당화가 뉴돈이나 라이프
니츠의 것보다 견실한 것은 아니었다. 오일러가 그의 형식적이고 부정확한 접근법으로 기여한 것은, 미적분 학을 기 하학으로부터 해 방시 켜 산수와 대 수학에 기 초 를 두개 하였다는 것이다. 이 단계는 적어도 수에 기초를 둔 미적분학의 궁극적 정당화의 길을 준미해 준 것이다. 그 뒤. 미 적분학의 기초를 세우기 위한 가장 야심적인 18 세기의 시도 는 라그 랑즈에 의하여 이 루 어졌다. 버쿨리와 다른 몇몇 사람들처럼 그도 미적분학에 의해 얻어전 옳은 견과들은 오류들이 서로 상쇄됨으로써 이 루어 진 것 이 라고 믿 었 다. 그는 그의 《해 석 함수의 이 론》 Theorie des fo1 1c- tion s a11alyt iqu es( 1 797; 재 2 판 1813) 에서 미적분학을 개조하려 하였다. 그 책의 부재목은 다음과 같다: 무한소량, 소멀하는 양, 극한과 유윤을 이 용하지 않고, 유한량의 대수적 해석의 기술로 귀착시킨 미분학의 주요 정리 들을 포함하여 (민정은 첨가된 것임). 라그랑즈는 , 뉴돈이 호의 현에 대한 비의 극한을 생 각했을 메 현과 호가 소멀되 기 전이 나 소멀된 후가 아니 라 바로 소멸될 때 갈아진다고 생각한 것을 지적함으로써 뉴돈의 방법을 미판했다. 라그랑즈는 바로게 지적한 것이다: 그 방법은 그들이 멈추는 상대에 있을 때의 양을 양으로 생각하여야한다는분 편이 있다. 즉 미 목 우리가 그들이 유한인 양일 때에는 두 양의 비운 생각하 고 맏아 문 일 수 있지만, 만약 그 양둘이 동시에 0 이 되는 순간에는 그 미는 우리에게 명확하고 정확한 개념운 수지는 못한다. 그는 또한 라이 프니 츠의 무한소량과 오일 러 의 절 대 영 (nbsolut e • zero) 에 도 불만을 나타냈는데, 그 둘은 비록 실제에는 맞을지 모르지 만, 확실성 을 그 자신의 자명성에 두어야 하는 과학의 기초로서는 충분히 명백하 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라그랑즈는 미적분학에 고대인의 증명과 같은 모든 엄밀성을 수려고 하였으며, 그러기 위하여는 미적분학을 대수학으로 귀착시키려 하였다. 특히 라그랑조는 무한급수륜 사용하여 미 적 분학의 논리 를 엄 밀화한 것 율 제안랬다. 그런데 무한급수는 대수학의 일부분으로 간주되고 있었으 나, 그 논리는 미적분학보다 더 혼란되어 있었다. 라그랑즈는 뉴는이 자 기의 방법과 같은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 눈랍다고 ‘겸손하게 알랬다.
우리는 미저분학에 대한 라그랑즈의 기초를 자세히 살켜 볼 팔요는없 다. 전적으로 정당화되지 않은 방법으로 급수를 사용한 것 외에도 그는 · 많은 분량의 대수적 과정을 밟았는데. 그것은 사태 를 더욱 어렵게 만들 어 서 독자들로 하여 금 도함수의 참된 정 의 가 전핍 되 어 있 다는 생 각율 하 게 겠다. 사설상 그가 한 것은 그 전의 사람 들 과 아 찬 가지로 서 두 른 방 법으로 한 것이었다. 라그랑 즈 는 그가 극한 개념은 쓰지 않 고 대수적 입 장에서 미적 분 학울 세운 것으로 믿었다. 그의 모 든 섣객 에 도 불구하고 라그랑즈의 기초 개념은 수많은 위어난 계승자 -등 에게 받아 등 여졌다. 라크르와 Sy lv estr e -Francois Lacroix (1765-1843) 는 그의 영 향릭 있는 세 권의 저서 (1797-1800) 에서 미적분학은 단순히 대수학의 확장에 불과하다 는 입장을 견지했는데, 그것은 라그랑즈 를 추종한 것이었다. 좀더 짧 온 한 권짜리 저 서 〈〈 미 적 분학의 기 본 이 론 》 An Elementa ry Trea t ise on th e Di ffere nti al and Inte g r al Calculus ( 1802) 에 서 라크 르 와는 극한의 이 론 (그 시대에 이해천 한도 내에서)을 이용했으나, 그는 단지 개이지 수 를- 철 약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19 세기 초기의 및및 영국 수학자둘은 해석학에서 뛰어난 대육의 업 적을 받아들이기로 길정했다. 당시 캠브리지 대학생이었던 매미지 Charles Babbag e (1792-1871), 허 앤 Joh n Herschel (1792-1871), 피 콕 George Peacock (1791-1858) 윤은 해 석 학회 Analyt ica l Socie t y 윤 걷성 하고 라크르와의 간단 한 미적분학을 번역하였다. 그러나 그 번억자둘은 그 머릿말에서 다음 과 같이 썼다: 지금 번역되어 공개되는 라크르와의 연구는 ••• 미적분학에 관한 그의 훈융 한 입저의 요약으로 봉 수 있다. 미목 - 최초의 원리윤의 층밍에서 전에 사용되 었던 가장 정확하고 자연스러운 라그망즈의 방법 대신 단랑베르의 국한의 개념 운 사용하기는 했지만 •••• 피콕은 극한의 이론은 미분학의 원리들을 대수학으로부터 분리시켰으므 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허앤과 배비지도 그에 동의하였다. 18 세기 말의 수학계에는 미적분학의 참된 기초의 팔요성이 철박해졌 고, 라그랑츠의 제안으로. 그가 1766 년부터 1787 년까지 책임자로 있었 던 매를란 과학 아카데미의 수학부는 1784 년에 수학에서 무한에 관한 문재에 최선의 해결을 하는 사람에게 1786 년에 상을 주겠다고 제안댔 다. 그 상의 공고문은 다음과 같다:
수학이 가진 유용성, 귀중함, 이개 막 주어진 영에로운 이 몽 인 닥.원..한 ‘‘정밀 과학 등은 모두 수학의 원리들의 명확합, 그 증명의 엄밀성, 그리고 그 정리 문의 정확성에 기인한 것이다. 이 우아한 분야의 지식이 가진 가치있는 장접설--윤 영구히 보존하기 위해 숫 학에서 무한 이라 불리우는 것에 대한 명. 확. 하. 고. 도. 장확한 이 론 이 판요하다 . 고동한 기 하학[수학]이 종종 무한히 큰 또는 무.한. 히 작은이 라는 말운 쓰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신이다. 그러나 고대의 기하학자등과 고대의 해석학자들까지 도 무한으로 가까이 가는 것윤 모두 피하러고 에썼고, 어연 처명한 현대의 해 석 학자문도 무. 한. 한. 크기 라는 만이 용어 상의 모순이 라고 인정 했 다 . 그래서, 우리 아카대미는 이러한 모순된 가정으로부터 어영게 그리도 많은 정확한 정리를이 언어지는가에 대한 선명과 함께, 王합의 이 론을- 대신한수 있 고 그것 윤 이용하는 인구가 지나치게 난해하고 장황하게 되지 않게 할 수 있는 · 명확하고 확신한, 간단히 말해 진정으로 수학적인 원리운 아라고 있다. 또한 그 내용 은 가능한 한 인만적이고 임겨하며 명학하고 단순해야 한다. 이 경쟁은 아카대미의 정규 회원윤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되었 가. 모 두 23 편의 논문이 접수되었다. 이 행사의 성과에 대한 공식적인 견해는 다음과 같다: 아카데미는 이 주재에 관한 많은 군윤 받았다. 모두 무한히 큰 양에 관한 것 과 갇은 모순된 가정으로부터 어렇게 옳은 칭리문이 나왔는가에 대한 선명윤 소훈:히 하고 있었다. 그 문은 모두 다소간 요구되었던 엉학설, 앞습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업일설을 겅시하고 있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구하려는원리가 무 · 한소의 제산법에 국한되지 않고, 대수학과 고대인등의 방법으로 다루어졌던 기 하학까지 확장되어야 한다는 사신조차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아카데미의 의견은 .:r. 전문이 충분한 답운 얻지 못했다고 본다. 그러나 그 취지에 가장 가까운 참가자는 프랑스어 논문의 저자인데 그 재목 온 ‘‘무한은 우리 등의 사고가 말려 든 십 연이 다 (The in fi n it e is the abys s in whic h our tho ug h ts are eng u lf ed ) 이 다. 그래 서 아카대 미 는 그에 게 상윤 주기 로 정정하였다. 수상자는 스위스의 수학자 뭔리어 Sim on L'Hu i ll i cr 이었다. 아카데미는 갈은 해인 1786 년에 그의 《고등 미적분학의 초등적 선명》 Elemen t ary Exp os it ion of Hi gh er Calculus -문 출판랬 다. 아카데 미 의 수학부에 서 내 린 판단이 본질적으로 옳다는 것을 의십할 수는 없다. 다른 어떠한 논문도 . (카르노 Carno t (7 장)의 것윤 재의하고는) 어떻게 해서 무한소 해석학이 七 ·
인 가정에서 출발해서 옳은 정리돌을 구했는지에 대해 그만큼 설명하려 시도하지조차 못했다. 윌리어의 기본적인 아아디어는 비 목 조금도 독창 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그 수준에 있어서 뛰어났다. 킬리어는 그의 논 문에서 개념의 전개에 관하여 ••• 달랑매르가 프랑스의 《 백과전서 〉〉 에 실린 '미분' 항목과 그의 〈〈 잡북 》 Mklan g es 에서 재시한 것과 같이 그 윤 곽만 그렀다고 하였다. 《 조동 적 선명 》 의 첫 장에서 월 리어는 국 한의 이 론 그 자체를 얼마간 발전시컸다. 그는 안케도J 체에시 처 옵 으 로 극 한을 나타내 는 기 호 1im 문 도입 하였 다. 그리 하여 그는 도함수 dP/ d x 릅' Jim . AP/Ax( 우리의 k/h) 로. 나타내었다. 그러나 국한 론 에 대한 월 리어의 기 여는 미미한 것이었다. 18 세기의 거의 모돈 수학자 들 이 미적분학의 논리에 대 해 노 릭셨 거나 발표했고 한 두 사람은 옳은 건을 걷고 있었으나, 그 들 의 노력 은 오 두 · 유용하지 못했다. 어떠한 미묘한 의문정도 무시되거나 간과되 었 다. 매 우 큰 수와 무한한 수의 구민이 잔 되어 있지 않았다. 어떤 유 한한 수 n 에 대하여 성립하는 정리는 당연히 n 이 무한일 매도 성립함이 명백 한 것처 럽 보였다. 차의 미 k/h ((3) 윤 보라) 가 도함수로 대치된 것처 럽 (7) 식에 나타난 것과 같은 유한 개의 항의 합과 적분이 잔 구만도 1 지 않 았다. 그들은· 한 가지에서 다온 것으로 자유로이 넘어갔다. 그들의 입 겨온 미적분학에 대하여 산데르가 말한 “그 촌재도 알 수 없는 것을 세 고 측정하는 기술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18 세기의 미적분학의 업일화 에 대한 노력, 목히 오일러와 라그랑즈와 감은 거인둘의 노리의 참된 효과는 동시대와 다음 시대인을 혼란시키고 오도한 것이었다. 그들은 대 재 로 요란하게 물려 있 었으므로 수학자들이 관련된 논리 물 밝히 지 못할 것이라는 실망을 낳게 하였다. 수학자듄은 논리보다도 원씬 기호몰 신뢰하였다. 무한급수는 모든 x 의 값에 대하여 갈은 기호적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 무한급수를 수 럽하개 하는 x 의 값과 발산하게 하는 X 의 값에 대한 구면은 빌로 주목 운 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1+2+3+•·· 과 갇은 급수들은 무한한 합운 가진다고 인정되었음에도 -상구하고, 그 합산의 적용이 가능 한 것인가 하논 문재보다도 그 합에 의미를 주려고 노력하였다. 물몬. 그들은 어떤 증명의 판요성윤 궁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미 오 일러가 발산급수의 사용설- 정당화시키려고 노릭한 것을- 보았었고, 다온 사람들과 갇이 그와 라그랑즈가 미적분학의 기초를 새우려고 노력랬다
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러나 엄밀성을 갖추려는 약간의 노락도-사 대에 따라서 엄밀함의 기준이 면화한다는 사실윤 보여 주었다는 접에서 중요한__그 시대의 연구를 정당화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했고, 그래서 사람 들 은 치료되지 못하는 것은 견뎌야 한다는 입장을 거의 기꺼이 받 아들이개 되었다. 18 세기 사상가들이 사용한 논법 중 흥미있는 것은 그들의 형이상학 이라는 용어에의 의촌이다. 그것은 참된 수학의 영역 의부에 존재하는 진리의 실체가 있어서. 바로 그 전리가 무엇인지 분명히 모르면서도 팔 . 요한 때는 자신 들 의 입적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꿀어 울 수 있다는 뜻으. 로 이용되었다. 형이상학에의 호소는 이성으로는 지뎅할 수 없는 주장 을 합리화시켰다. 그레서 라이프니츠는 형이상학이 우리가 알고 있는 · 이상으로 수학에 더 많이 이용된다고 말랬다. 1-1+1-, .. 의 합을 1/2 로 잡은 논법과 그의 연속의 원리논 둘 다 라이프니츠 자신의 주장만큼 ` 널리 권장되어지지는 못했지만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정당화''되었으므 1, 、 마치 그 '‘정당화는 노론할 수 없는 것처럼 정당화시켰다. 오일러도 형: 이상학에 의존했으며, 해석학에서 형이상학윤 묵인해야 한다고 주장하 · 였다. 17, 18 세기의 수학자물은 어떤 주장에 더 좋은 논법을 펄 수 없 으면, 그 이유가 형이상학적이라고 말하기 일수였었다. 그래서 18 세기는 미적분학과 그에 기초를 둔 해석학의 여러 분야의 논리가 완전히 혼란되어 있는 상태에서 꾼났다. 사실 1700 년보다 1800 년에 기초가 더 못한 상대였다고 말할 수도 있다. 복-히 오일러와 라그 랑즈같은 거인둘이 몰린 논리적 기초를 세웠다. 왜냐 하면, 이 사람들이 권위 자이 었기 때 문에 많은 그의 동료들이 그들이 주장한 것을 받아들였 고 무 l)1 판적으로 반복했으며. 그물의 기조 위에서 머 많은 해석학을 건 설하기조차 했기 때문이다. 다몬 작은 대가·`축은 권위자들이 이룩한 것 에 그렇게 만족하지는 않았지만, 약간만 수정되면 완전히 명캐한 기초 가 얻어질 수 있는 것으로 확신했다. 뭉온 그들은 윤런 건로 인도되어 ! 가고 있었다.
7 비논리적 발전 : 1800 년경의 궁지 아 ! 너회 산등이여, 왜 둘 더하기 둘이 넷이 되어야 하는가? ― 포우프 Alexander Pop e •1 800 년까지 수학은 매우 역설적 인 상황에 있었다. 문리적 현상운 설 평하고 예 측하는 데에 있어서의 수학의 성공은 최상의 기대 이상인 것 이었다. 한편, 많은 18 세기의 사람들이 이미 지적하였듯이, 그 거대한 체계는 논리적인 기조물 갖고 있지 못하였고, 마라서 수학이 옳은 것이 라는 아무런 확신이 없었다. 이 역설적인 상황은 19 세기 전반 까지 계속 · 이어졌다. 많은 수학자를이 뭉리과학의 새로운 영역을 개쳐하여 나아가 아직도 위대한 성공을 이 무고 는 있었으나, 기초는 밀로 문재시되지 않 았다• 오히려 옵수와 ·부소수 , 대수학, 미적분학과 해석학이라고 불리우 는 그의 확장에 대한 미판이 계속되었다. 19 세기 초기에 있어서의 궁지룹 검토해 보자. 우리 들 은 무리수의 사 용에 대한 그 당시의 및 가지 반대에 대하여 간만히 살펴보기로 하자. 앞에서 본 바와 갇이, 무리수는 직선 위에 있는 접이라고 생각원 수 있 다. 직관적으로 무리수는 정수나 분수보다 받아둘이기가 권씬 머 어려 운 것은 아니며, 그둘도 정수나 분수와 똑같은 법칙을 따른다. 그들의 유용성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마라서 무리수에 대한 논리저 기초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둘은 인정되었던 것이다. 말썽많고 직관 져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은 음수와 복소수이었다. 그둘은 앞의 몇
새기에서와 마찬가지로. ,9 세기에 있어서도 격 전하기 1 공격을 받았으며 거부되었다. 드 모르강 Au g us t us De Mor g an 의 장인 이며 캠브리지의 지서스 대학 Jes us Colleg e 의 평 의 원이 었 던 프 렌드 W ill ia m Frend (1757-1841) 는 《대 수 학의 원리 》 Prin c i p le s of Alge bra (1 796) 의 서문에서 철처히 선언하였다: 그 자신보다 본 수로부터 맨다는 것은 괜찮지만, 자신보다 각은수로부터 대려 고 시도하는 것은우스운 일이다. 아직도이와같은 시도가무 (no t h i n g)보다미 각은 양이라는 것에 대해서, 음수와 옹수윤 곱해서 양수가 되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히수에 대해서 말하는 대수학자들에 의하여 이 루어 지고 있다. 그러므 로, .:z.등은 모든 이차방정식의 두 근에 대해서 말하고 있고, 그리고 학순자는 어느 것이 수어진 방정석에 듄 어맞는지 윤 알아 보아야 된다. 그물은 방정식이 해읍 가지도 우 만윤기 위해시 두 개의 상가능한 근윤 요구하·논 방정석의 풍이 에 대해서 말하기도 한다. 그둘은 서로 곱하 면 단위가 되는 불가능한 수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모 두 허은 소리이며 상식에 위배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한민 게 l 거되고 나면, 다론 많은 가공의 일문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가 장 안십인 지지자등운, 믿음으로 사물·운 댁하기 좋아하고 진지한 사고의 색 ... ,1 운 싶어하는 사람문 중에서 얻게 되는 것이다. 마세레 남작 Baron Mascres (5 장)이 1800 년에 출판한 책에 포함된 논 문에서, 프렌드는 한 방정식이 그차수와 같은 갯수의 근을 가진다는 일 반적인 규칙을 미판하였다. 그는 이것이 단지 및 개의 방정식에 대해서 만 성립한다고 말했는데, 물론 그는 양수근만을 가지는 것들을 지적한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일반적인 규칙을 받아들이는 수학자둘에 대해서 “그 둘은 이 방정식들의 근이라고 여기게 하려고 하는 일단의 양들에 대 해서 그것들이 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런듯한 이름을 부여할 뭘요성 을 느끼고 있다. 그들의 일반적인 규칙의 들린 접을 위장하고 최소한 말로라도 진리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 ••• ”라고 말하였다. 프랑스의 유명 한 기 하학자 카르노 Lazare N. M. Carnot (1753-1823) 는 그 가 지 은 《무한소 계 산의 형 이 상학에 대 한 반성 >R efl ect i on s on th e Meta - ph y si c sof I nfi nit es im alCalculus(1797, 개정 2 판 1813) 덕분에 그자신 독창 져 공헌 이상으로 영향력이 있었다. 이 책은 많은 언어로 번역되었다. 그는 막잘라서 무보다도 작은 것 의 개 념 은 불합리 하다고 말랬 다. 옵수들 온 계산상 유용한 허구적인 존재로서 대수학에 도입원 수 있다. 그러나
그것 둘은 확실 히 양은 아니기 때문에 오뉴가 들 어 있는 걷온 으 로 유 도 한 수가 있다. 18 세기의 움수와 복소수의 로그수에 대 한 논쟁은 수학자들윤 매 우 당 황하게 하였으므로, 19 세 기 에 도 수학자들을 음수와 복소수의 문재 로 물 아갔다. 1801 년에 캠브 리지 대학의 우느하우스 Robe rt Woodhou s e 는 (〈 허 구적인 양에 의해서 얻어진 어 떤 걷론들 의 밀연적 인 진리성에 대해서 》 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는 ”로그수 문 움 수와 불가 능한 양에 대하 여 적용하는 데에 관한 논쟁에 참여한 수학 자 둘 에 의해서 주장된 상호간 의 역선과 모순 둘은 , 연구에 이 앙 들 의 사용운 반대하는 논법으로도 사용원 수 있다”고 말하였다. 확실히 가장 위대한 수학자 둘 중 의 하나이며, 19 시 1 기의 처움 및십 년 간 복소변수함수의 이론을 창시하였단 코우수] Cauch y는 a+ b .. ;= -i 같 은 식윤 수로 다루는 것 을 거부하였다 . 그의 유명한 《 해석학 강의 》 Cours d'an alys c(Course on Analys is , 1821) 에서 그는 전체로서의 그 란 식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실수 a 와 b 에 대해서 무 잇인가 · 운 말한나 예 를 들 면, 방정식 a +b../ - 1 =c +d. j 一 I 은 우리 들 에게 a=c 와 b=d 임움 말해 준다. “모든 허수방정식은 단자 실수인 양 들 사이에 성립하는 두 방정식의 기호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 다. ” 1847 년까지 도 그는 복소수의 연산을 정 당화하는 좀 복잡한 이 론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J =7 의 사용은 피했는데 그것에 관하여 다음과 갇이 말랬다. “우리 둘 은 그것을 완전히 거부할 수 있고, 후 회없이 포기 한 수 있는 것이다. 왜냐 하면 사람 들 은 이 그럴듯한 기호가 무엇을 의 미하는지 를 모르고 있고, 그것에 어떠한 의미 를 부여하여야 하는지도 `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1831 년에 유명한 수리논리학자이며 대수학에 공헌한 드 모르강 (1806- 71) 은 옵수와 복소수에 대 한 그의 반대 를 《수학의 연구와 어 려 움에 관 하여 >O n th e Stu dy and Di ffic11 lti es of Math e mati cs 라는 그의 저 서 에 서 발 표하였다. 그는 부수져으로, 그의 책이 옥스포드와 캠브리지에서 쓰이고 있던 최고의 처서에서 발견된 수 있는 것보다 더한 것을 포합하고 있자 는 않다고 말하였다.
상성적인 식 J =T 와 음수적인 식 _b 는 미슷한 정이 있는데, 한 문제의 해 로시 나타날 때 그들은 오누 어떤 상합리성과 부져합성운 나타낸다. 실재의 의 미가 관계되는 한, 양 쓱은 똑갇 이 상상적인 것이다. 왜냐 하면, o_a 는 J二굽 와 마 찬 가지로 맏아들인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움에 드 모르강은 한 문재물 둘어 설명한다. 아버지의 나이는 56 세 이고, 그의 아들은 29 세이다. 언제 아버지의 나이가 아들의 나이의 2 배 가 되는가? 그는 56+x=2 ( 29+x ) -롭 풀어서 x= 一 2 라고 말한다. 그는 이 전과를 불합리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계속하기를 x 를 -X 로 바꾸어서 56-x=2 ( 29 一 x ) 를 불면 x=2 를 얻게 된다. 여기에서 그는 우리등이 원레의 문재를 잘못 나타냈다는 결론을 내란다. 음수해는 처 음에 방정식을 세웅 때 우리둘이 실수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움에 복소수에 대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둘은 기호 J二교는 의미가 없고, 자기오순적이며, 붑합리하다는 것윤 보 었다. 그러합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기호윤 수단으로 하여 유용성이 큰 대수학 의 일부가 형성되어 있다. 그것은 대수학의 공몽저인 규칙이 픕란 전과에 도. 닫합이 없이 이감은 식 [복소수]에 응용천 수 있다는 겅험에 의해서 증명되어 야 하는 사실에 의촌한다. 이러한 성질의 겅험에의 호소는 이 처서의 앞 부운 에 선정된 첫번째 원리에 어굿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들은 그것이 사실상그. 러하다는 것운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거대한 주계의 단지 조그.마한 고립된 일부에 지나지 않고, 그것의 모든 다몬 분야에 이 원리들은 완전한 의 미에서 적용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가 언급한 원리둔온 공리로부터 연여져 추돈에 의해 필연져으로 얻어지는 수학져 전리윤 말한다.] 그 다음에 그는 음수근과 복소수근을 미교하였다: 다옵에, 음수의 걷과와 허수의 전과에는 이갈은 뚜릿한 차이가 있다. 한 문재 의 답이 옵수이면, 그 결과문 낳은 방정식에서 .:r문 -.:r로 바꿈으로씨, 우리 둘은 방정식윤 만둘 대의 실수·문 발견하든가, 문제의 물음이 너무나 제한되어 있었다는 것윤 보여줄 수 있고, 만족스러운 해답윤 얻도독 그 물옵윤 확대할 · 수도 있다. 그러나 문계의 해가 허수일 겅우에는 이와 갈이 할 수는 없다. 그 객의 조금 뒤에서 그는 다음과 갈이 썼다: 우리돌은 음의 양의 사용 등과 갇이 학생이 이해할 수도 없고 또 어느 면~ 로나 걷정저이 아닌 (요령부득 oJ .) 이와 갇은 의문을 위한 논의와 반대되는 논 의둔 전부에 깊이 듣어감으로써 학생둘의 발전윤 정지시키는 것윤수장하는사
갑은 아니다. 그러나 학생은 어민 곤 란성이 존재한다는 것운 알게 되었운 것 이 고, 그 본질이 학생에게 지저의어졌운 것이며, 또 그때에 학생은 따 로따로 나 우 어진 충분히 많은 예둘윤 산김으로싸 그 규칙들에서 얻어진 진과물에 대한 깍신윤 얻게 원 것 이다. 위 대 한 수학자 중 하나인 해 밀돈 W ill ia m R. Hami lton 의 다른 분야에 서의 업칙에 대하여는 이미 다 문 바가 있는대, 그는 더 이상 음수와 복 소수물 받아물일 생 각이 없었다. 1837 년의 한 논문에서 그는 그의 만 대문 피력하였 다: 그 라 나 다옵 -과 감은· 원리등을 · 진술할 때(흔히 있는 일이지만) , 옵·수와 허수 의 수장을 의심하거나 도는 믿지 않기조차 한 적 - 이한 회의감은 인어나지 않는 다: 곤 양이 작은 양에서 미어진 수 있고, 그 때의 나머지( 차)는 우 ( no t h i n g ) 보다 작다; 두 옵 · 수 죽 무보다도 각각 작은 양옵 나타내는 두 수는 서로 곱한 수 있고, 그 곱은 양수 숙 무보다도 콘 양·안 나타내는 수이다 ; 따 라서 한 수의 젝~I- .주 그 수읍 자신과 곱해서 얻어진 꿈은 그 수가 양이든 옵이돈 항상 양수 이다. 한편, 허수라고 상리우는 수는 '0 건되거나 맏아들여지거나진정원 수있 으며, 또 양수와 옵·수에 관한 모든 규칙에 따라 연산되는대, 마치 이 등 규칙 운 마부\ · 것처럼 보인다. 그긴대 허수의 재곱은 옵수이므로, 허수가 나다낸다 고 생각되는 양은 무보다 크지도 않고 , 무보다 각지도 아니하며, 무와 간지도 않나. 허수와 갇 은 것윤 바방으로 하여 성립된 과학옵 생각하기는 어 접다. 살 온 논리의 형 식은 그 문 허수로부터 연립대칭식윤 세운 수 있게 한다. 신계져 인 기순은 그 문과 관계있는 것으로 보이는 유용한 규칙옵 바르게 지 용 합 으로 씨 얻어 질 수도 있다.*
* 우라는 다옵 강에시 복소수에 판하여 재기왼 문계에 관한 해인돈의 해걷운 다 운 다.
부홀~ Geor g e Boole(1815- 야)은 드 모르강과 비견되는 논 리학자인대, .::z.. 는 《사고의 법 칙 의 연구 》 Ari l11v est i ga t io11 of th e Laws of Thoug h t (165 4) 에서 J=고은 해석이 불가능한 기호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 을 삼각 법에 사용함으로써 우리 들 은 해석가능한 식으로부터 해석불가능한 식 을 동하여 해석가능한 식에 도달한다. 복소수에 대해서 수학자들을 약간 안십시킨 것은 논리가 아니라. 메 셀 Wessel, 아르강 Arga n d, 가우스 Gauss (4 장) 에 의 한 기 하학적 표현이 었 다. 그러나, 가우스의 업적에서도 우리들은 여전히 복소수를 받아들이는 데 그가 마읍내켜하지 않은 증거 를 발견할 수 있다. 가우스는 대수학의 기본 정리, 죽 모든 n 차 다항방정식은 정확히 n 개의 근을 가지고 있다
는 것의 내 가지 증 명을 하였다. 처음 새 개의 증명 (1799, 1815, 1816) 에서 그는 계수가 실 수인 방정식을 다루었고, 부가적으로그는좌 표 평면의 정 들 과 목소 수픕 사이의 일대일 대웅을 가정하였으나, 그 대응욥 명확히 정의하지 는 않았 다. 즉 , x+ iy 을 실재로 접으로 나타내지는 않았고, 다 만 X 와 Y 옵 좌 표 평면의 접의 좌표로 보았다. 더구나그 증명 들- 온 실재 로 뷰소수함 수 론을 사용하지 않았다. 왜 냐 하면, 그는 관련된 함수룹 싣 수 부분과 허수 부 분 으로 분리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대 II 년 매셀 Bessel 에게의 편지에시 보다 명확하게 a + i b 는 접 ( a,b ) 로 표 시되고, 부소평 면 위에서 한 접 으로 부 터 다몬 접으로 가는데 많은 정로가 있다는 것윤 말하였다. 이 세 가지 증명과 다본 미발표 업적에 나타난 사고 방식으로 부더 판만하건대, 복 소수와 복소함수의 지위에 대하여 가우스가 아직도 고십하고 있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1825 년 I:! 월 II 일의 편 지 에 서 그는 ”-g.수와 허 수의 참된 형 이 상학으로부터 자신걸- 분리 시 킬 수 없으며 J=;의 진정한 의미가 언제나 나의 마음운 익누르지만, 그 것을 말로 정확히 표현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그러나 1831 년까지는, 가우스가 아직 그 자신이나 다 온 수학자가 복 소수룹 받아들이는 데 망선아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가우스는 그것둘을 극복하였다. 그는 공공연하게 복소수의 기하학적 표현울 기술하였다. 그 해의 논문설-에서 가우스는 아주 명백히 a+b i뭍 복소평면에서의 접 으로서 표현랬울 분만 아니라, 복소수의 기하학적 덧샘과 곱샘을- 기술 하였 다 (4 강). 그는 그란 다음에 분수 • 옵수 • 실수둘은 그 당시 로는 잘 이해되어 있었으나, 복소수는 그 대단한 가치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야 허용되어졌옵윤 지저하였다. 많은 사람들에게 복소수는 단지 기호의 유 회처럼 보여졌다. 여기[이 기하학적 표현)에서 J =7 의 직관저 의미의 증명은 완전한 기초가 주어졌으며, 이 양둘을 산수의 대상의 잉역으로 받아문이는 데에는그밖의 것은 팔요하지 않다.” 이처럼, 가우스 자신은 칙관적 이해로 만족하고 있었다. 그는 또한 1, -1, ..;=x의 양수, 옵 수, 허 수의 단위 라는 이 음 대 신에 각각 칙 수 (d i rec t), 역 수(i nverse), 축수 (l a t eral) 라는 이름을 붙였다면, 사람둥은 이들 수에 어민 어두운 신미가 있다는 인상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타고 말하였다. 그는 기하학적 표현 은 허수의 참된 형이상학윤 새로운 빛으로. 조명한다고 말하였다. 그는 · '‘복소수 ”(com p lex number) 라는 새 로운 용어 를 데 카르트의 허 수라는 용 ·어 대신에 도입하였다. 그리고 J =7 운 i로 나타냈다. 가우스는 간은
정도로 중요한 것, 죽 그와 동시대 사람둘이 실수가 논리석 기조를 7}- 지고 있지 않읍에도 불구하고 실수를 자유몹-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1849 년의 한 논문에 관하여 우리 는 참 시 후에 이 야기 를 하겠으나, 거 기에서 가우스는 복소수를 인씬 미 자유스럽게 사용하였는대, 가우스에 따르만 그 이유는 이제는 모든 사람이 복소수를 잔 알게 되었기 때문 이 라는 것 이 다. 그러 나 사실온 그 렇 지 않았다. 복소년수의 복소함수의 이론이 I9 세기의 처음 I/3 동안에 주로 코우쉬어] 의해서 발전되고, 유체 역학에서 응용이 된 훨씬 후에도, 캠브리지의 교수둘은 마음에 안 드는 J=i에 대한 국복할 수 없는 형오를 지속하고 있었고, 성가신 고안 들 이 있을 수 있는 복소수의 출현이나 사용을 피하기 위해서 제용되었다. 19 세기의 초반에 대수학의 논리적 기초가 없음이 역시 인식되었다. 이 분야에 있어서의 문제는 문자 들 이 모든 종류의 수를 나타내는 데 서 용되었고, 그것들이 자연수의 모돈 잘 알려진 직관적으로 받아 들여질 수 있는 성질물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계산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계산의 결과는 어떠한 수 __ . g .수 • 무리수 • 복소수――이든지 문자 대신에 대입 되었을 때에는 옳았다. 그러나, 이러한 찮내의 수들은 실재로 이해되지 않았고, 그둘의 성질도 논리적으로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문자들을 ` 이갈이 사용하는 것은 명확히 정당화될 수 없었다. 문자식의 대수학온 그자신의 논리를 가지고 있는 것처럽 보였고, 그것이 그 유용성과 정확 성을 선명하여 수는 듯 하였다. 따라서, 1830 년대에는 수학자들은 문 자식 또는 기호로 된 식의 연산운 정당화시키는 문계를 탐구하였다. 이 문제는 캠브리지 대학의 수학 교수였던 피콕 Geor g e Peacock (1791- 1858) 이 처읍- 다루었다. 그는 산수적 대수학과 기호적 대수학 사이에 구만을 지었다. 전자는 자연수를 나타내는 기호에 관한 것이고, 따라서 단단한 근거룹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서는 단지 자연수에 이르는 연산 들만이 허용되었다. 파콕은 기호저 대수는 산수적 대수의 규칙을 채용 하지만 자연수로 제한하지는 않는다고 논하였다. 산수적 대수학에서 얻 어진 모든 건과들에서의 식은 형식에 있어서 일반적이나 값은 목수하다. 이듄 결과는 기호적 대수에서도 똑같이 정확하지만, 기호적 대수에 있어 서는 형식에 있어서문만 아니라, 값에 있어서도 일반적이다. 따라서 ma+na=(m+n)a 는 산수적 대수학에서는 a,m,n 이 자연수일 때에 성, 립한다. 그러므로 모든 a.m.n 에 대하여 기호적 대수에서도 성립한다-
m 이 자연수일 메의 ( a+h)” 의 이항전개는 자연수에 관계없는 일반적인 꼴로 쓸 수 있다면, 모든 n 에 대하여 성립한다. 동등 형식 불변의 원 리”로 알려진 피곡의 논의는 1833 년에 그가 영국 과학 발전 협회에 낸 ‘‘해석학의 어떤 분야의 최근의 발전과 현황에 관한 보고에 둘어 있다. 그는 독단적으로 확언했다: 기호 들 이 형식에 있어 일반적이나 값에 있어 목 수[자연수]한 메에 어떤 대수 식이 같다면 , 그 기호들이 형식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값둠이 일반적일 매에 도 간다 . 퍼곡은 이 원리를 복소수에 관한 묵벌한 연산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 하였다. 그 는 “기호 들 이 형식에 있어서 일반적일 때에는이라는 구철에 관한 의미 를 방어하려고 노력했다. 따라서, 사람들은 단지 0 과 I 만이 가지는 성질을 진술할 수는 없다. 왜냐 하면, 이 수들은 목별한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아다. 그의 《 대 수 연구 》 Treati se on Alge bra (초판 1830) 의 재 판 (1842-45) 에 서 . 괴콕은 그의 원리를 공리로부터 유도하였다. 그는 명확하게 대수학은 기하학처럼 연역적인 과학이라고 진술하였다. 그러므로 대수학의 모든 철차는 그 철차에 사용되는 연산을 지시하는 법칙이나 공리를 완전히 진술하는 데 기초룹 두어야 한다. 연산을 위한 기호들은 적어도 대수학 이라는 연역과학을 위하여는 법칙에 의해서 그들에 주어진 것 이외의 뜻 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덧셈은 덧셉에 관한 법칙을 따르 는 철차 이외의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그의 법칙문은 예를 들면. 덧셈과 곱셈에 대한 결합법칙 • 교환법칙이라든가 ac=bc 이고 C-:/:-0 아면 .a= b 라는 법칙과 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형식 불변의 원리는 여기에서 공리들을 채택함으로써 정당화되었다. 19 세기의 대부분을 동하여 피콕이 주장한 대수학에 관한 견해가 받 아들여졌다. 그것은 그레고리 Duncan F. Greg o ry (1813-44), 드 모르강, 항첼 Hermann Hankel (1839-73) 등에 의 하여 약간의 수정 끝에 승인되 었다. 그 원리는 본질적으로 임의적이며, 왜 여러 가지 종류의 수들이 정수 와 똑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느냐 하논 의문운 남겨두었다. 그것은 겅협 적으로는 정확하였지만, 논리져으로는 확립되지 않은 규법에 의해서 신 게로 인정되었다. 분명히 피콕, 그레고리, 드 모르강은 그윤이 신수나
복소수의 성질에 무관한 대수학 밖의 과학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 였 다 . 물돈 및 가지 실제적인 규칙을 연거한 다 하여도 한 원리가 그것의 논리적 상태 를- 개선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버 클 리 주교가 말있듯이. “오래되고 뿌리깊은 편견은 흔히 진리로 동한다 ; 그리고 한번 월리로서 의 힘과 평가를 얻은 명재들은 그 자신분만 아니라, 거기에서 유도원 수 있는 모든 것 이 똑같 이 모든 검토에서 떤 재된 것으로 생각된다 . ” 형식 불변의 원리는 대수학을 기호와 그들의 연산 법칙의 과학으로서 취급한다. 이 기 초는 모호하고 탄력성이 없는 것 이었다. 그것의 주 창자 둘은 산수적 대수학과 일반 대 수학 사이의 평행성(유사성 )을 너무나 강하 개 주장하여서 , 만약에 그것이 받아둘여졌다면 대수학의 일반성은 없어 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등은 전코 기호둘의 한 가지 해석에 대해 서 옳은 공식이 다 론 해석에 대해서는 등란 수 있다 는 것욥 인 식하지 못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므로, 그 원리는 사원수의 창조에 의해서 손상 받게 되는데, 왜냐 하면 이 수을――-우 러가 다 원수라고 부르는 첫째 것 —은 곰샘 의 교환법 칙 을 만 족하지 않기 매 문 이 다 (4 장) . 그러 므로 , 일 종의 다원수 를 나타내는 문자둘은 신수와 복소수 의 성질둘을 모두 만 족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 원리는 들렀 다. 퍼콕과 그의 추종 자 듄 이 인 식 하는 데 실패랬 으나 사원수의 도입 후에 명백하게 되었던 것은, 대수학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 지의 대수학이 있다는 것이다 . 그리고 신수와 복소 수 위에 세워진 대수학은 단지 그 문자들이 나타내는 수들이 문자에 부여된 모 든 성질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층 '성함으로써 정당화찬 수 있다는 것이다. 대수학 외에도, 해석학은 1800 년대 초기에 아직 논리적 혼미 속에 있 었다. 마적분학에 대한 라그랑즈의 기초 확립은 (6 장) 모든 수학자둘을 만 족 시키지 못하였으며, 및 사람들은 오유가 서로 상쇄된다는 버 클 리갇 은 사람들의 입장으로 돌 아가기도 하였다. 프랑스혁명에서의 위대한군 사적 지도자였던 카르노도 그의 《무한소 계산의 형이상학에 관한 반성》 Refl ect i on s 011 th e li1et a p h y si c s of 111/ init es im al Calculus 에 서 이 와 같은 입 장윤 취랬다. 그의 형이상학은 오류가 서로 상쇄된다는 것을 선명한 다.’' 그매까지 재시된 미적분학의 여러 가지 접근 방식을 충분히 토의 한 후에 카르노는 걷론을 내리기 를 , 달랑베르의 국한 개념의 사용적卜 마 찬가지로 모든 방식이 실제로는 그리스의 착출범과 동등한 것이지만, 무 한소는 휠싼 신속한 것이라 했다. 카르노는 미적분학의 개념들을 명료 -
화하는데 공헌하였 으나그 공헌은 중 요한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뉴돈, . 라이 프 니 츠 , 달랑매르의 아이디어 들갈 그리스의 착춤법에 연관시킨 대 에서 그는 잘못된 주석을 도입했다. 그리스의 기하학이나 대수학에는 도함수와 관련되어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해석학에 있어서의 대신계은 19 세기에도 여시 계속되었다. 그. 예는 수없이 많지만, 아마도 한 두 개 룹 들면 충분할 것이다. 해석학의 모든 ` 분야에 있어서의 기본은 연수함수와 함수의 도함수의 개념이다. 직관 적 으로 연속함수는 연팔을 메지 않고 그려진 곡선에 의해서 표시원 수 있
는 함수 이 다 ( 그럽 7, I). 이 같은 연속함수 의 도함수의 기 하학적 의 미 는 곡 선의 한 접 P 에서의 접선의 기울기이다. 직관적으로는 연속함수는 모 돈 접에서 도함수를 가져야만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19 세기 초 기의 및및 수학자들은 그러한 적관적 인 근거에는 만 족 하지 못하고 있었 고, 그 들 은 그둘이 한 수 있는 것을 모두 논리저 논법으로 증명하기 시
작하였다 . A B c
불행히도 그립 7.2 의 접 A, B, C 에서와 같이 우리가 이재 모둥이 (c orner ) 라고 부르는 것 윤 가지 고 있 는 연속함수는 그감은 접 에 서 도함수 -강 가지지 않는 다. 그라함에도 -상 구하 고, 1806 년에 암페르 Andre-M arie Amp er e (1775- 183 6`) 는 모든 함수는 그것이 연속인 정에서 도함수-감 가 지고 있다고 증명있다 ”. 다 르 거나 유사한 증명 을은 라크르와 Lucroix 의 유명 한 3 권의 저 서 《 미 적 분학에 관한 논문 》 Treati se on Di ffere nti al and Inte g r al Calculus( 제 2 판; 1810-19) 과 19 세기의 거의 모돈 지도적인 교과서에 주 어져 있다. 베르트랑J ose p h L. F. Bertr a nd (1822-1900) 은 · 원
씬 늦게 1875 년의 논문에서 미분가능성을 증명하였다. 이둘 증명은 모두 물렀 었다. 이들 수학자의 몇몇은 함수의 개념이 오랫동안 잘 정의 되어 있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용서되어질 수 있다. 그러나, 1830 년 경까지는 이 실수는 수정되었다. 연속성과 미분가능성이 해석학의 모든 분야에서의 기본적인 개념이고. 해석학이 1650 년경에서부터 이제까지 주요한 활동 분야이었다는 것을- 생 각할 때에 사람들은 수학자둘이 이 개념들에 대하여 얼마나 모호하고 분 확실하게 알고 있었던가에 충격울 받을 분이다. 그 실수들은 너무나 커 서, 오늘날의 학부 수학과 학생이라 할지라도 .:::z..갇은 실수 를 한다면 용 서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실수들은 가장 유명한 사람들__ 푸 리에. 코우쉬, 르장드르, 갈르와, 가우스―一과 덜 유명하기는 하나 그레도 ..:::z.. 시대의 지도적인 수학자들이었던 많은 사람둘에 의하여 처질러졌다. 19 세기의 교과서둘은 미분과 무한소같은 용어를 자유돕게 썼는데. 이 두 용어는 .:::z.. 의미가 불분명하거나 0 이기도 하고 0 이 아니기도 한 양 으로 불합리하개 정의되어 있었다. 미적분학을 공부하는 학생둘은 여전 히 당혹하고 있었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달랑베르의 지속하라. 그러면 신앙이 너에게 운 것이다'’를 마르는것이었다. 1890 년부터 1894 년까지 캠 브리 지 대 학교의 트리 니 터 대 학에 다녔 던 럿 셀 Betr a nd Russel 온 《나의 철학적 발전》 My Phil o sop h ic a l Dev elop m ent 에 서 다음과 감이 썼 다. “나에게 무한소 계산법을 가르쳤던 사람들은 그것의 기본정리의 다 당한 증명울 문랐으며, 그리고 신앙의 일처럼 공적인 궤변을 받아들이 도록 나를 설득하려고 애썼다.” 17, 18, 19 세기를 몽하여 수학자들윤 괴몹혀 왔던 논리적 곤란은 해석 학, 죽 미적분학과 미적분학위에서 세워진 우한급수와 미분방정식 감은 영역에서 가장 십랬다. 그러나, 19 세기 초에 기하학은 다시 가장 인기 있는 연구 분야가 되었다. 유물리드 기하학은 확장되었고, 새로운 기하 학의 분야인 사영기하학 (한 장소에서 다몬 곳으로 한 도형윤 사영하였운- 매 도형의 어떤 성질이 보촌되는가에 관한 기하학으로시, 실제의 이차원츠4 인 도항 이 카메라의 문'올 몽-하여 판읍에 누사되는 것 갑은 것이 사영이다) 이 퐁순에 Je on-Vi ct o r Poncclct ( 1788-1667) 에 의 해 서 처 옵으로 적 절히 기 술되 었 다. 초기의 역사에 근거하여 예상한 수 있듯이 퐁슬레와 다론 사람들이 많 은 정리플 예언하였지만, 그문은 그것둥울 증명하는 데에 끝없는 어려 웅운 겪었다. 이 때에는 기하학적 절과를 증명하는 데 대수학적 방법이
이용되었는데, 주로 I7 세기의 데카르트와 패르마의 업적에 의한 것이 었다. 그러나 I9 세기 초의 기하학자들은, 대수학적 방법을 이색적이 고 순수기하학이 재공하는 동찰과 가치에 침투할 수 없는 것으로, 겅밀 랬다. 퐁슬레는 그의 걷과를 순수한 기하학적 방법으로 확립하기 위하여 연속성의 원리에 호소하였다. 그의 《도형의 사영적 성질에 관한 논문》 Treati se on th e Proje c ti ve Prop e rti es of Fig u res (1822) 에 서 그는 그것 을 다 음과 갇이 말 하였다: “한 도형이 다른 것으로부터 연속적인 면화에 의 하여 얻어지고, 뒤의 도형이 앞의 도형만큼 일반적이라면, 앞의 도형의 어떤 성 질 도 뒤의 것에 대해서와 갇이 곧 주장되어질 수 있다.” 두 도 형이 어떤 겅우에 일반적인가 하는 것의 결정은 설명되지 않았다. 그 원리의 확실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퐁슬레는 유클리드 기하학의 한 정리 를 사용했다. 그 정리는 한 원의 서로 교차하는 현의 부분들의
그립 7.3 그립 7.4
꼽이 일정 하다는 것 이 다 (그립 7. 3 에서 ab=cd). 그는 교접 이 원 밖으로 웅칙여 갇 때, 한선과 그의 바깥 부분의 곱이 일정하다는 것에 주목하 였다(그립 7.4). 연속성의 원리가 정리를 보증하기 때문에 어떠한 증명 도 팔요하지 않았다. 더구나, 한 할선이 접선이 될 때에 한선과 그것의
바깥 부분은 같게 되고, 그들의 꼽은 다른 할선과 그것의 바깥 부분의 곱 과 갇게 된다(그립 7. 5 에 서 ab=c2). 퐁 슬레가 연속성의 원리를 예시하기 위 해서 사용하였던 걷과듄은 세 개의 서로 다몬 잘 확립된 정리들이 되는 데, 이들은 그 원리를 만족시키든가
그립 7.5
그 원리등의 예가 된다. 그러나 연속성의 원리라는 술어를 만들어 냈 던 퐁슬레는 그 원리를 절대적 진리로서 밀고 나가서, 그것을 그의 《논 문〉 〉 에서 사영기하학의 많은 새로 운 정리들을 증명하는 대 대담하게 사 용하였다. 그 원리는 퐁슬레로부터 미 못 되는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 넓은 철학 적 의미에 있어서, 그 원리는 라이프니츠에게로 소급된다. 앞에서 지적 한 바와 같은 방법 으로 (6 강) 라이 프니 츠는 미 적 분학과 관련하여 그것 을 수학적 원리로 사용하였다. 그 뒤 몽즈 Gas p ard Mong e (1 746 -18 18) 가 어 떤 형태의 정리 를 새우는 대 그것을- 다시 사용 할 때까지는 그 원리는 단 지 매매로만 사용되었었다. 그는 일반적 정리를 증명하는 데 처음에~근 도형의 득변 한 위치에 관한 경우에 증명한 뒤에, 정리가 도형 속의 원소 、 둘이 상상적입 것이 원 때에조차도 일반적으로 옳다고 주장하였다. 이 처럽, 직선과 곡선에 관한 한 정리 를 증명하기 위해서, 그는 그것을 직 선이 곡선을 만난 때에 증명하고 , 다음에 직선이 더 이상 곡선과 만나지 않고 교정이 허정이 원 때에도 그 전과가 성립한다고 주장하였다 . 파리 과학 아카데미의 어떤 회원들은 연속성의 원리블 미 판하였고 , 그 것욥 단지 무엇인가을 발견하는 방법으로서만의 가치볼 가진 것으로 간 . 주하였다. 목 히 코우쉬는 그 원리 볼 다음과 갇이 미판하였다: 바르게 말하자연 아 원리는 단지 귀납적인 것으로서, 그것의 도움으로씨 어민 계한하에서 확립된 걷과윤 그 재한이 더 이상 성 럽하지 않는 겅우로 확장한다 는 것이다. 이차곡선에 칙용되었윤 때, 그것은 지온이 운 정확한진과로유도한 다. 그럽에도 불구하고, 우리 듄 은 그것이 일만져으로 승 인되어 전 수는 없다고 . 생각한다. 그것윤 너무나 강조합으로씨 간혹 명백한 오유윤 범한 수도 있다. 불행하게도 코우수 1 가 이 정리의 건전성을 공걱하기 위해서 돈 에들은 · 다몬 방법에 의해서 바르게 증명되어 있던 걷과 를 이 원리로부터 이끌 어낸 것이었다. 비평가들은 또 퐁슐레와 다른 사람들이 그 원리에 가졌던 신괴가 실 제로 그 원리가 대수학적 근거로 정당화원 수 있다는 사실에 의촌하고 . 있다고 공격하였다. 사실상 퐁슬레가 러시아에서 포로로 있던 동안(그는 나푼대웅 군대의 병사였다)에 만들었던 어떤 노트는 그가 그 원리의 확실 증성명운이 시 .형대.하수.기.학 에위 해근서거 를대 둘수 학수을 있사는용 하데 였동다의는했 으것나을, 보그여는준 다그• 원퐁리슬가레 :는:L. .·
러한 증명에 의촌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퐁슬레가 어떤 겅우~ 에 성립하는가를 보기 위하여 대수적 방법울 쓴 뒤에 그 원리를 이용하 여 정당화함으로써 기하학적 걷과를 주장하였다는 것은 아주 확신하다. 몇 가지 비판에도 불구하고, 19 세기를 동하여 연속성의 원리는 직관 · 적으로 분명하으로 증명의 방법으로 적용원 수 있는 것으로 인정되었다. 기 하학자들은 그것 울 자유로이 사용하였 다. 그러 나 수학의 논리 적 발전 의 관점으로 보아서, 연속성의 원리는 그 시대의 사람들이 순수한 연역 적인 증명으로 확립할 수 없었단 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의도를 나타내 : 는 독단적인 독 밀한 수장 외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원리는 눈에 보 . 이는 직관적인 것이 유도한 것윤 정당화하기 위해서 고안되고 요청되었 단 것이다. 퐁슬레가 연속성의 원리물- 주장하고 적용한 것은, 수학자들이 타당한 · 증명으로 확립할 수 없었던 것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밟았던 방법 중 바 정상적으로 오레 긴· 유일한 예이다. 그러나 기하학의 논리적 상태는 거 의 모돈 분야에서 마참하였다. 우리가 알듯이 (5 장), 유클리드 기하학의 연역적 구조에서 중대한 장함이 노출된 것은 주로 18 세기의 후반과 19 세기의 초반에 걷찬 미유물리드 기하학에 관한 업적 때문이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수학자들은 이 전함을 수정하려고 서두르지 않았고, 도. 리어 실제로는 정리들의 절대적 확실성을 계속 고집하였다. 정리들의 직관적 근거와 확증이 사람들로 하여금 아무도 그같은 결함에 깊이 관. 여하지 않게 했다고 안전하게 주장할 수도 있다. 그 상황은 미유클리드 기하학의 경우에는 약간 달랐다. 1800 년대 초 에 미유클리드 기하학의 창조자들인 람매르브, 가우스, 로바쳅스키, 보 요이와 그 밖의 및및 사람들은, 그들이 창조한 기하학이 비록 유클리드. 기하학만큼 그 논리적 기초가 확실히 좋은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 전정 한 분야라고 받아들였다. 그러 나, 득히 이 과목에 대 한 가우스와 리 만의 업적이 알려진 후에, 단지 앞의 네 사람만이 아니라 그들의 거의 모든 후계자들은. 비록 증명은 하지 못하였지만, 비유큘리드 기하학은· 무모순, 죽 그 정리들이 서로 모순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또 사케리 자신이 모순에 도달하였다고 믿은 것이 찰못이었음을 인식하 였다. 그러나 이 기하학 안에서 모순둘이 발견월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게 속 남아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그 때에는 쌍곡선 기하학의 평행선 공 ·
리물 가정하는 것은 둡리게 원 것이고, 사케리가 믿었듯이, 유찬리드의 평행선 공리는 다온 공리들의 결과가 원 것이다. 이처럽 적어도 믿운 수 있는 논법으로 여겨졌단 새로운 기하학의 무모순성 또는 응용성의 착증 없이 많은 수학자둘은 그 -E 의 선행자들이 불합리한 것으로 간주했단 것 둘을 받아둘였다. 그들의 받아들임은 신앙과 같았다 · 미유 큘 리드 기하 학의 무모순성의 문재는 그 후 50 년 동안 미해진로 남아 있었다 ( 8 장). 분명히 19 세기 조에 수학 의 어떤 분야도 논리적으로 안전하지는 않았 다. 실수계, 대수학, 유쿨리드 기하학과 보다 새로운 비유쿨리드 기하 학과 사영기하학 동은 부적당한 기조 를 가졌거나 또는 전혀 기초룹 가 지고 있지 않았다. 해석학 죽 미적분학과 그것의 확장은 자유로이 사용 되는 신수계와 대수학의 논리적 기초륜 가지고 있지 않았을 분만 아니 라 미적분학의 고유 개 념-도함수 • 적분 • 무한급수一一의 밍로성도 가 지고 있지 못했다. 수학의 어느 것도 건전하게 확립되어 있지 않다고 정 당하게 만할 수도 있었다. 많은 수학자들에 의해서 채용된 증명 에 대한 대도는 수학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관접에서 믿을 수 없는 것처럽 보였다. 18 세기에 해 석학에서의 모호성은 분명있으며, 어연 수학자등은 이 분야에서 엄밀성 윤 포기했다. 그래서 로운 M i chel Rolle(1652 - 1719) 은 미적분학이 교묘한 오유 를 모은 것이라고 가르쳤다. 다른 사람들은 더 나아가 포도에 관한 여우갇이 행동했으며, 그리스인의 엄 밀성윤 명 백히 조롱하였다. 칼레로 Alexis - C laude Clair a ut ( 1713-65) 는 자신의 《 기 하학의 기 본》 Eleme11ts of ,Geome t ry (1741) 에서 말하였다: 유찰리드가, 서로 만나는 두 원이 갇은 중심윤 가지고 있지 않다거나, 한 삼각 형의 내부에 있는 다른 삼각형의 년의 길이의 합은 원래의 삼각형의 년의 길이 의 합보다 각다는 것을- 중영하는 고조훈 겪어 나갔던 것은 눈맏 일이 아니다. 이 기하학자〔유문리드]는 가장 명백한 진리문 거전합으로씨 빛을 내는 완고한 궤변가들윤 확신시켜야만 하였단 것이다. 그러므로 기하학은 논리학처럼, 궤변 가문 반박하기 위해서 형식저인 추온에 의촌하여야 랬다. r칼 레로는 다읍과 감이 덧분였다. “그러나 입장이 바뀌었다. 미리 상식 으로 알고 있는 것에 관한 모는 추론은 오늘난 문제시되지 않으며, 다 1 만 진리를 숨기고 독자룹 성가시게 하는 일만 한다.” 18 세기와 19 세기 초기의 태도를 돈스키 J. Hoene-Wronski (1775-1853)
의 말로 들어 보자. 그는 위 대 한 계 산가 (a l gor it hm i s t)였으나 엄 밀성 에 는 · 관심이 없었다. 그의 어떤 논문이 파리 과학 아카데미의 한 위원회에서 엄밀성이 없다고 비판 을 받았울 메, 론스키의 대답은 엄밀성이란 목표- · 에 이르는 수단윤 더 좋아하는 현학이다라는 것이었다. 라크 르와 Lacroix 는 그의 세 권으로 되 어 있는 《 미 적 학분에 관한 논문 》 Treati se on Di ffere nti al a11d l11t eg r al Calm/us 의 재 2 판 (1810-19) 재 1 권의 서문에서 “그리스안들이 괴로와했던 그러한 미묘합을 우리는 더 이상 팔 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그 시대의 대표적인 대도는, 처음부터 의 심치 않는 것을 난해한 추론으로 증명하거나 달 밍백한 것을 써서 더 명 백한 것운 증명하는 것과 같은 귀찮은 일을 왜 해야 하는가이었다. 그보다 두 1 인 19 세 기 에 도, 야코미 Karl Gusta v Jac obi (1804-51) 는 ERl. 함수에 관한 그의 업적에서 많은 것을 불완전하게 남겨 두었는데, ”가우 스적인 엄밀성에 대해서는 우리는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_ . 은 증명이 되지 않은 것은 증명을 팔요로 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였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엄밀성은 관심 밖이었다. 그들은 흔히 아르키메데 . 스의 방법에 의해서 엄밀화한 수 없는 것은 현대의 아르키메데스에 의 해서도 엄밀화할 수가 없다고 말랬다. 이 말은 묵 히 그리스 수학에서는· 미슷한 것이 없었던 미분법에 관한 업적에 관하여 쓰여졌다. 달랑매르 가 1743 년에 말한 현재까지 ••• 출 입구 운 조명하는 것보다 건물을 확 장시키는 것에, 기초를 적절히 강화하는 것보다 건물을 보다 높게 하는 것에 보다 많은 관심이 주어지고 있다”는 18 세기 전체와 19 세기 초기 ` 의 모 든 업적에 적용된다. 19 시 1 기의 중반쯤까지는 층명에 대한 관십이 낮아쳐서, 어떤 수학자들 은 그들이 증명할 수 있는 것에 관하여조차 완전한 증명윤 하는 것을 귀 찮아할 정 도가 되 었 다. 무] 어 난 대 수기 하학자이 며 행 렐온 (ma t r i x alge bra) 의 발명자인 케일리 Arth u r Cay le y (1821-95) 는 캐일리 - 해밀몬의 정리라 고 알려져 있는 행련에 관한 정리를 얻었다. 행탄이란 수윤직사각형 꼴 로 배열한 것이며, 정방행련의 겅우에는 가 행과 연에 n 개의 수가 들 ' 어 있다. 케일리는 2x2 급성탄에 대해서 그의 정리가옳다고증밍하였고, 1858 년의 한 논문에서 “나는 행 런이 임의 차수 [nXn] -문 가지는 일반적 인 겅우에 그 정리의 형식적인 증명운 하는 일운 할 킬요가 있다고 생 각하지 않는다”라고 진술하였 다. 실베스터 Jam es Jos ep h Sy lv este r (1814-97) 는 잉 국의 위 어 난 대수학자였
는데, 1876 년부터 1884 년까지 촌스 홉킨즈J ohns Ho pk i ns 대학에서 교수 로 있었다. 그의 강의에서 나는 이것을 증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옳다는 것을 내가 증명할 수 있는 것만큼 확신한다”고 말하기 일 쑤였다. 그리고 나서 그는 새 정리둘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 걷과를 사 용하있다. 종종 다음 강의의 꾼에서 그는 그가 그토록 확신하였던 것이 뭉렀다 는 것을 인정하기도 했다. 1889 년에 그는 3X 3 행 렬 에 관한 한 정리 윤 증명하고, 그 정리를 일반적인 nXn 행렬에 대해서 증명하 기 위 하여 고려되어야 할 및 개의 부가적 인 것을 지적하기만 하였다. 기하학과 정수를 다 루는 데, 유클리드가 시작한 훙 융한 출 발의 관점 에서 볼 때, 이러한 비논리적 발전의 역사는 다음과 갇은 의문을 축전 시킨다: 왜 수학자들은 그 뒤의 무리수 • 음수 • 복소수 • 대수학 • 미적분 학과 그의 확장 등의 발전을 논리화하는 대 그토 록 많이, 또 그토목 비 효과적 으로 해 왔어 야만 하는가 ? 우리 들 이 본 바와 같이 (5 장), 유큘리 드 기하학과 정수에 관한 한에 있어서는 이것 들은 쉽게 직관적으로 잘 이해가 되어서, 유클리드의 전개에 있어서 약간 걷접이 있기는 하였으 나, 다론 성질둘을 이끌어 낸 수 있는 기본적인 원리 또는 공리 를 발견 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쉬웠다. 그 렇 지만 무리수 • - g - 수 • 복소수 • 문자 끼리의 연산이나 미적분학의 개념들은 천씬 더 잡기 힘들 었던 것이다. 그러나, 보다 더 깊은 이유가 있다. 수학의 본질에 대한 미묘한 변화 가 거장들에 의해서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졌다. 1500 년까지는 수학의 개 념들은 경험으로부터의 직접적인 이상화 또는 추상화였다. 그때까지는 음수와 무리수가출현하였고, 그것들이 인도인과 아람인에게 받아둘여졌 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목그둘의 공헌이 바난받을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정당화에 관계되는 한에 있어서는 그들은 직관적이고 경험적인 것에 만족하였다. 거기에 덧붙여, 복소수, 문자계수 를 사용하는 광범위 한 대수학, 도합수와 적분의 개념 등이 수학에 들어왔을기대에 수학은 인 간 정신의 깊은 내부에서 얻어전 개념들에 의해서 지배되게 되었다. 묵 히, 도함수 죽 순간변화율의 개념은 물론 속도라는 물리적 현상에 약간 의 직관적 근거률 가지고는 있었지만, 그보다는 낀씬 머 지적인 창조물 이었다. 그것은 수학적인 삼각형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론 것이다. 마찬 가지 로, 그리 스인둘이 신중히 피 하였던 무한히 큰 양, 그리 스인들이 기 교적으로 우회하였던 무한히 작은 양, 음수, 복소수를 이해하려는 노력 은, 수학자둘이 이 개념둘이 직접적인 경험을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 정
신의 창조물이라는 것을 몰랐었기 매문에 더밀 수밖에 없었다. 다른 말로 말해서, 수학자 들 은 실세계에서 추상화된 아이디어물 얻었 다기보다 개념 을 만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디어 -문 만드는 데 있어. 그들은 감각기관으로부터 지적인 눙력으로 전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개념들이 응용연에서 접접 유용하다는 것을 알게 됨에 따라서 그것들은 처음에는 마지 못하여 나중에는 연성적 으로 취급되었다. 이러한 깅우들 올 찬근하게 알게 되자 경연감이 사라지고 무비판적으로 자연스러운 것 이라는 생 각이 생 겨 났 다. 1700 년부터 자연에서 유리되고 인간의 정 신으 로부터 활짝 키어난 접정 더 많은 개념들이 수학에 들어와서 낸다른 불 안감 없이 받아들여졌다 . 자승자막에 빠진 수학자들은 수학이 단단한 대지보다 천싼 높이 운 라와 있옵 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이 새로운 개념둘의 목성 의 변화 물 인식하는 대 실패하였으므 로, 그 들은 또한 자명한 진리가 아닌 공리적 전개의 근거가 팔요하다는 것을 인 석하지 못하였다 . 물론 , 새로운 개념들은 오레된 개념 물 보다 훨 씬 미묘 했으며 , 우 리 들 이 지금 알고 있돗이 참된 공리적 기초라는 것이 쉽게 정립킬 수 는 없었다. 그런데 수학자둘이 어멍게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를 알았으며, 그들 의 증명의 전 동에 서 볼 메, 어떻게 규칙을 적용하여 그것만으로 결론의 신빙성을 감히 주장 할 수 있겠는가? 물리학의 문재를 해결하는 것이 목 표를 제공하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일단, 물리 문제가 수학 척으로 형식화되고 나면, 기술적인 기교가 나타나고, 새로운 방법론과 결론이 나타나개 되었다. 수학의 물리적 의미는 또한 수학적인 단계를 제시하게 되었고, 흔히 비수학적인 단계룹 채워야 할 부분적인 논법을 재공하였다. 이같은 절차는 원리적으로 기하학의 정리의 증명과 다르지 않았는데, 기하학에서는 도형에서 전적으로 명백한 사실둘이 공리나 정 리들의 아무런 뒷받침 없이 사용되었다. 물리적 사고를 넘어서, 모든 새로운 수학의 업적에는 건전한 직관의 역할이 존재한다. 본질적인 아이디어나 방법은 결론에 대한 합리적인 논법이 고안되기 훨씬 전에 직관적으로 파악되었다. 위대한 수학자둘은 그들이 어떤 면허를 받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들 자신을 결정져인 재 난으로부터 구하는 확실한 천품을 가지고 있었다. 위인들의 직관은 평 범한 사람들의 연역적인 증명보다 더 건전하다. 물리적 문재의 본질을 어떤 수학적 형식화로 파악하고 나자, 무히 18
새기의 수학자들은 공식 들 에 매 혹 당 했 다. 분명히, 공식들 이 란 그들에게 } 너무나 매력적아어서 한 공식 을- 다른 공식으로부 터 곧 아 꾼 어내는데 마 분이나 적분 같은 형식적인 연산 을 썼다연 ::::r... 공 석 을 충분 히 정당한 것 으로 간주했다. 기호 들 의 매력은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이성적으 로 생각 · 하지 못할 정도였다. I8 세기는 수학에서 영웅적인 시기라고 불 리우고 있다. 왜냐 하면 수학자 둘 은 `U 로 대단치 않은 논 리 적 장비를 가지고 그토 록 장려한 과학적인 정 복을 하였기 때문이다. 수학자둘이, 묵 히 I8 세기에 미적분학의 개념 들 이 모 호하게 형성 되었 고 그 증명들이 적당하지 않았다는 것 을 알고 있으면 서도 , 그 들 의 질 과 가 정확하다고 어떻게 확신하였는가 하는 의 문 은 아 직 남아 있 다 . 부분 적인 대답은 많은 전과 들 이 겅험과 실험에 의해서 확 인되 었 다는 것이다. 천문학적인 예언은 현저한 예였다 (2 장). 그러나 17, 18 세기 사 람들 이 그 둘의 업적 을 믿게 만든 또 다 른 연관된 요소가 있다. 이 사 란둘은 신이 세계 를 수학적으로 설계하였으며, 수학자 들은 그 설계 를 발견 하 고 밝 혀 주는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2 장). I7, I8 세기의 사람 들 이 밝혀 낸 것은 -¥- 분적이었지만 , 그 들 은 그것이 근 본적인 전리의 일 부 라 고 생각하 였었다 . 그 들 이 신의 작 품 의 일부 를 발 견하고 있다는 믿움 과 그 들 이 걷국 완 전 하고 영원한 진리의 약 속 된 땅에 도착 원 것이라는 믿음은 그 들 의 정신 과 용기 룹 받쳐 주었으며, 그러는 동안 풍요한 과학적 성과 둘은 그 들 의 영혼의 양식이 되어 그 들 의 정신 울 살찌우고 그 들 이 계속 추 구하게 하 · 였던 것이다 . 수학자들은 단지 보 물 찾기의 일부만 을 발견하였던 것이지만, 보다 많 은 것이 발견원 것이라는 충 분한 시사가 있었다. 그 렇 게 정확히 옹용과 는 수학적 법칙들이 정확한 수학적 증명이 없다고 하여 모호한 알로 얻 버무인 팔요가 있겠는가? 과학적 증거에 의하여 지지받는 종 교적 확신 은 약하거나 또는 촌재하지도 않는 논리적인 힘 을 대신했다. 그 둘 은 신 의 진리 를 확신히 하는 데 연 중한 나머지 확실한 기초가 없이도 계속 새 위나갔다. 그들은 성공을 가지고 그들의 양십의 상처 를 고쳤다. 실재로 성공의 도취는 그 시기의 대부분 동안 이 론과 업밀성을 잇게 랬다. 때때 로 철학저이거나 신미적인 원리에 의존하는 것은 어떤 곤란성을 더 이 상 눈에 보 이 지 않도록 덮어 버렸다. 논리적으로 17, 18 세기와 19 세가 초의 업 적 둘은 확실히 조참하였다. 그러 나, 그것 은 또한 거 장다운 창조 척인 데가 있는 것이었다 . 이 업적의 실책과 비정확성은 I9 세기의 후 -
반과 20 세기의 사린릅·에 의해서 그 승리 -를 미하하기 위하여 약간 공정 치 못하게 강조되었다. 17 세기와 18 세기의 수학은 마치 수많은 거레와 분주하게 배달을 하 지만, 미숙한 경영 때문에 기본적으.로 파산하고야 마는 거대한 상사오l- 미 숫하다. 문론, 고객 들――수학의 상품을 사서 사용하였 던 과학자들_ ―과 채권자들――수학의 주식에 주저 않고 두자하였던 대중들_은 · 참된 재정 상대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고도의 역설적 인 상황을 발견하게 된다. 이재 거 대하게 확대된 수학의 논리는 결코 더 유감스러운 상황에 있는 것은 아 니었다. 그러나, 자연이 갈 길윤 표현하고 예측하는 데 있어서의 수 학의 성공은 매우 인상적인 것이어서, 그리스인들 이상으로 I8 세기의 오 돈 지 식 인 둘은 자연이 수학적으로 설계되었다고 선언하였으며, 수학 을 인간 이성의 훌풍하고 장려한 산물로서 져찬하였다. 애디슨J ose ph.. Addis o n 이 그의 《 찬송가》 Hy n m 에 서 천체 에 대 하여 말하였듯이 , 이 성 의 귀로 그들은 모두 준거워하였다. 잘 생각해 보면, 수학적 추론의 이같은 영광은 믿을 수 없는 것처럽 보인다. 확실히 한다면, 추론의 넝마(t a tt ers) 가채택되었던 것이다. 그러 나, 특-히 18 세기에, 복소수, 음수와 복소수의 로그수, 미적분학의 기 초, 급수의 총합 둥의 의미와 성질 및 그밖에 우리들이 기술하지 않은 주재에 관한 연연 논쟁둘이 문헌을 메웅 매에 혼란의 시기”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더욱 적절해 보인다. 1800 년까지는 수학자들은 논리적 정 당화보다는 결과들을 더욱 확신하였다. 증명의 관접에서 본다면, 결과 등은 신앙이었던 것이다. 이재 곧 알게 되겠지만, ”이성의 시대라는 이 용 이 더욱 적합한 것은 19 세기의 후반기의 업적들-인 것이다 (8 장). 대부분의 수학자들이 증명에 대한 많은 관십이 없이 새로운 일을 하 는 데에 만족하고 있었던 반면에 및명의 지도적인 수학자둘은수학의 미 논리적 상황에 관한 경종 소리룹 듣고 있었다. 해석학의 상황이 절망적 ’ 임은뛰어나고 조숙했던 노르웨이 수학자인 아벨 N i els Henric k Abel (1802 -29) 이 1826 년에 한스탄 Chris t o f f er Hanste e n 교수에게 보낸 편지에 강조. 되어 있다. 그는 다음과 갇이 문평했다: 해니학에시 아무런 의심없이 우리 -문 이 안진하는 그 업청난 모호성 •••. 그것 은 계서성과 조적성이 완전히 전여되어 있어서. 그법개 많은 사감둥이 그것운r 공+'-하였다는 것이 이상합니다. 가장 나쁜 것은, 그것이 전코 언저하사 나무-
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논리 져 으로 조 리있는 방 법 으 로 선 명이 된 고 등해 석학에서의 정리는 및 개 안 킵니 다 . 어디에서나 사람등 은 목 수에 서 일반으로 넘어가는 이 미 참 한 결론 방식 윤 봉 수 있으며, 이러한 가 정 이 그 헝 계 적 은 수 의 소위 여선만 운 낳 았다는 것 은 극히 이 상 합니다. 북- 히 발산급수에 관하여 져 철 하게, 아벨은 1826 년 1 월 에 그의 은사인 훈 음 보 I Berndt Holmboe 에게 편 지 를 보냈 다: 발산급수는 악마의 발 명 품 입니다. 무 엇이 든 지 간에 그 것들에 근거운 두 고 중 명 운 한다는 것 은 부끄 러 운 일입니다 . 그 것듄운 사용 함으로싸 사 람둘은 그가 원 하는 어떠한 전과 라도 얻어 낸 수가 있는 데 , 그 것 이 이 급수 가 그멍 게도 많은 오 유 와 역설윤 만 들 어낸 이유입니다 .••• 나 는 아 주 이 모 든 것 에 깊이 주의하 계 되었 옵 니다. 왜냐 하 면 기 하급수윤 재외 하고 는 수학 전체에 그 합 이 입일하 게 결 정되어진 만 하나의 우한급 수 도 없 기 때 문 입니다 . 다 른 알로 안해서 , 수 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또한 가장 기 초 가 약 한 것 이라는 것 입니 다 . 그 럼 에 도 산 구하고 이 둥 의 대 부분 이 깅 확하 다고 하 는 것 은 눈 라 운 일 입니다. 나는 이 에 대한 이유 운 발 견하려 하고 있 읍 니다. 많은 사람 들 중에서 어떤 이 들 은 그 둘 의 술품 메 문 에 술 에 마지는 것 으로 만 족 하지 못한다. 수학자 가운데에서도 몇 사람은 수 학 의 미논리 척 상황에 관한 그 들 의 관십 때 문 에 물 리적 성공에 심 취 하는 것만으로는 만 족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들 용기있는 사람 들 이 그 들 이 신의 설계의 조각 들 을 과해쳐내고 있다는 믿음에서 어떤 위안 운 받았던지간에 이 위 안은 18 세기 후반에 그같은 민음의 포기에 의해서 무효화되어 버 렀다 · (4 장). 그갇온 뒷받침이 없어지자, 그 들 은 그 들 의 업적 울 재검토하여야 할 팔요륜 느꼈으며, 그 둘 은 모호성, 증명의 결여, 촌재하는 증명의 미 적합성, 모순 및 그리고 창조된 것 중 무엇이 정확한가에 관한 혼란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둘은 수학이, 명성이 높았던 것만큼 이성의 본보기 가 아님을 실감하였다. 이성 대신에 그것은 직관, 기하학적인 도형, 뭉 리학적인 논의. 형식 불변의 원리 같은 목 수한 원리였으며, 승인된 것 운 정당화하는 형이상학에의 의존이었던 것이다. 논리적 구조의 이상은 확실히 그리스인들에 의해서 명확하게 만들어 졌고 선언되었었다. 그래서 산수· 대수학·해석학에서 그것을 성취하 논 일을 떠 말았던 몇몇의 수학자들은. 그둘이 노력하는 동안 수학자들 이 적어도 아주 중요한 경우인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실제로 그렇게 댔
디는 확신으로부터 기운을 얻었던 것이다 . .::z..둘은 누군가가 운림푸스 Ol y m p us 에 올라갔었다면, 다론 사람들도 다시 운림푸스에 올라갈 수 있 으리라고 생각하였다. 그 들 이 예견하지 못하였던 것은 촌재하는 모든 수 학에 대하여 엄밀한 기초 를 제공하는 일이 1850 년대의 수학자들이 상상 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미묘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들 온 잇달아 일어나는 확실히 해야 할 곤란성을 예견하지 못했다.
8 비논리적 발전 : 낙원의 문에서 오늪-난 전대적인 업 일성이 이우어져 왔다고 말할 수 있운 것이다. ―프앙카데 Henri Po i n 역 수학에서 비판 운동이라 불리어 온 것의 창시자등은, 2 천년 이상이냐 수학자둘이 거찬 칙관, 그펄듯한 논법, 귀납적인 추론, 기호로 나타낸 식들의 형식적인 계산 속에서 방황하여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그때까지 전혀 촌재하지 않았던 진정으로 논리저인 수학기초론을 새우 논 것, 모호한 개념과 모순을 배제하는 것, 유쿨리드 기하학과 갇은 분 야에서 촌재하던 기초를- 개선하는 것 둥을 재안하였다. 이러한 계최은 1810 년대부터 비못되었다. 이 운동은 미유찰리드 기하학에 관한 업적 이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을 때에 확대되고 가속화되었는 대, 그 이유 논 이 업적으로 말미암아 유문리드 기하학의 구조에 결함이 있다는 것 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업밀한 증명의 요새이며 전형으로 간주되었던 그 구조마처도 정밀겁사를 해 불 필요가 있다는 사신이 분명해졌다. 얻 마 두 1(1843 년)의 사원수의 창조는 실수와 복소수를 계산하논 데 있어서 의 보장에 도전한 것이었다. 물론 그들 자신의 업적운 확신하던 어떤 수 · 학자들은 그들의 추돈을 서두르게 계속하다가, 그들이 옳은 결과를 얻 게 되면 그들의 증명과 교과서에 제시된 것들이 건전하다고 믿도목 스 스로를 기만하였다. 비판적인 사상가들은 수학이 물리적인 세계에 관한 진리라는 주장이 포기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윤 인정하고 있었옵에도 불구하고, 천체』
와 지 상의 역 학 • 움향학 • 유제 역 학 • 단성 • 광학 • 전기 • 자기 • 공학의 많 은 분야에서 기대한 성과 를 얻은 것과. 이러 한 잉역에서 믿윤 수 없을 정 도로 정확한 예 측 이 이 루 어진 것 을 충분히 인석하고 있었다. 수학이 진 리라는 무적의 기치의 보호하에 싸워 왔윤지라도, 어떤 본질적이고 아마 도 신미로 운 힘을 동하 여 승 리 를 성취하였옹에 뭉림 없다. 자연에 대한 수학의 현저 한 웅 용성은 조 만간 선영 되겠지만 (1 5 장), 아무도 사실 그 자 채를 부정 하거나 그러한 전눙한 도구 를 감히 내던져버리지는 못할 것이 다. 확실히 이 러한 함 은 논리적인 어려움과 모순에서 오는 표면상의 분 규 때 문 에 무력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수학자들은· 논리적인 엄밀성 을 가`사게 여김으로씨 그 물- 자신의 원리 를 어겨 왔음에도 분구하 고, 그들의 주재 를 싣 용저인 근거 위에 잉 원히 남겨 두려고 하지는 않 았다. 그 들의 위신은 말이 아니었다. 그 렇 지 않으면 어멍게 그들의 숭 고한 정신의 산동을 땅이나 파는 기 술 자나 직공의 황동과 구멀한 수 있 겠는가? 그래서 어떤 수학자들은 간신히 구` 선 되는 길둘을 따라 성급하게 왔던 진행 과정 을 다시 다녀보고, 그 둘 이 이미 이르렀던 대상에 이르는 탄탄 하고 잔 옮란 길윤 다 듬 는 일에 착수하였다. 그 들 은 그 들 의 정력의 대 부분 을 수학 의 기초 룹 전선하거나 어떤 분야에서는 재건하는 일에 바치 기로 걷십하였다 . 수학의 체계 를 질서있게 세우기 위해서는 강력한 방책이 요구되었다 . 걷보기로는 단단한 전리의 근거가 속임수로 판명되었기 메문에, 수학의 기조 를 삼을 만큼 확실한 기반은 없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그러나. 아마도 다몬 종류의 확실한 기조를 세웅으로써 안정된 구조윤 만 들 수 는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완전하고 민 음 없이 표현된 공리들 및 정의들 과, 미 목 직관에 의해서는 아무리 명백해 보이는 건과라 한지라도 모두 명확한 증명을 주는 것들로 이두어질 것이다. 더구나, 진리에 의존하는 대 신에 논리 적 인 일치 성 (com p a ti b ility)이 냐 무모순성 (cons i s t enc y)이 존재 하여야만 했다. 공리들과 정리들은 원전히 서로 종속침으로씨 전재저인 구조가 탄탄해질 수 있게 되어야만 앴다. 수학이 대지와 어떤 관계 룹 가지고 있든간에. 마천루가 바람에 혼둘리지만 기반으로부터 꼭대기까 겨 견고하게 유지되는 것처럼, 서로 걷속되어 있욥 것이다. 수학자들은 미적분학의 논리운 세우는 것부터 시작랬다. 미적분학은 실수의 체계와 대수학을 그전제로 가정하는데, 이 둘 다 논리적인 기초
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에서 순수한 논리적인 관장 으로 볼 때 나타나는 불합리성은 유사한 것을 써서 설명 월 수 있을 것이 다 . 50 층짜리 사무용 건물이 전세 인둘, 가구 들 , 다른 장미 들 로 붐 U1 계; 되자, 소유주는 전체 구조가 흔들리므로 다시 지어야만 한다는 것을 강 자기 느끼게 된다 . 그는 20 충에서부터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시작하는 점의 선댁에 관한 설명을 해보자, 1800 년까지는 여러 가자 형태의 수가 이미 잔 알려겼기 때문에, 그것 들 이 논리적인 기초를 가자 고 있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그것들의 성질이 정당한가에 대하여서는 큰 관십이 없었다는 것을 이미 밝힌 바 있다. 유쿨리드 기하학의 신성 불가 칭성에는 역시 의문이 있어 왔으나 응용면에서는 어려움이 역시 나타나 지 않았다. 사실 2000 년 동안이나 잘 응용되어 왔기 때문에, 논리를 싸 서 증명하는 데 실패한 것에 대하여도 보장이 되는 샘이었다. 반연에 미 . 저분학은 해석학의 원천인데, 이 거대한 분야에서 엉성한 증명, 역선, 십지어 모순까지도 나타났으며 모든 걷과의 기본이 되는 법칙이 없었다. 19 세 기 초에 -상차노 Bernhard Bolzano (1781-1848), 아벨 Ni el s Henric k Abel, 코우쉬 Aug u sti n- Louis Cauchy (1789-1858) 세 사람은 각각 미적분학 올 엄밀화하는 문제를 추구하려고 결십했는데, 볼차노는 목사이며 철학 자이며 수학자였다. 불행히도 볼차노는 프라그에서 일했기 매문에 그의 저작은 수십년간 알려지지 않았다. 아벨은 27 세에 죽었기 메문에 그 일 에 깊이 파고들지 못했다. 코우쉬는 그 시내의 수학의 세계의 중십지에 서 일했으며, 1820 년까지는 위대한 수학자의 한 사람으로 인정운 받았 다. 마라서, 수학의 엄밀화 운동의 시작에 있어서는 코우쉬의 역한이 가장 크게 인정받고 가장 콘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코우쉬는 미적분학의 논리를 수 위에서 세우기로 결정했다. 왜 수 위 에서 세워야 하는가? 영국인들은 뉴돈을 마라 미적분학을 기하학을 싸 서 엄밀히 하려고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코우쉬에게는 기하학이 적 당한 근거가 되지 못함이 명백하였다 . 더구나 대륙에서는 라이프니츠를 따라 분석적(해석저) 방법을 사용해 왔었다. 또한 1820 년까지는 비유클 리드 기하학의 연구가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수학자들로 ` 하여금 기하학을 조십하게 할 정도로는 알려져 있었던 것 같다. 반면에, 수의 영역에서는 1843 년 해밀돈이 사원수를 만들 때까지는 새로운 창 조가 수학자들을 괴롭히는 일이 없었고, 사원수의 창조도 실수의 체재 가 옳다는 것에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 .
현명하게도 코우쉬는 극한의 개념으로부터 미적분학의 기조물 세우기 로 결정했다. 수학에 있어서 되풀이되어 일어나듯이, 이러한 정당한 집 근 방식은 이미 여러 예리한 사람들에 의해서 권장되고 있었다. I7 시} 기 의 월 리 스 Joh n Wallis 는 그의 저 서 《무한소의 산수》 Arit hm eth ic of infini t es im als (1655) 에 서 , 스코 블크 렌드의 교수 그레 고리 Jam es Grego ry (16 38-75) 는 그의 저 서 《원 과 포물선의 바 론 구적 빌 >T rue Qu adratu re of th e Cir c le a11d Hy pe rbola (1667) 에 서 , 또 18 세 기 의 달랑베 르도 국한의 개 념 이 가장 적당한 것으로 확신하였다. 달랑매르의 견해는 그가 저술할 시 기에 뉴돈, 라이프니츠, 오일러의 업적둘을 쉽게 입수할 수 있었기 때 문에 가장 중요하다. 프랑스 《 백과전서》 (1751-65) 에 들어 있는 그의 논 문 ‘‘국한에서 달랑매로는 뚜럿이 밝히고 있다: 한 양이 나온 양의 극한이라 함은, 접근하는 양이 접근되어지는 양윤 넘을 수는 없다 할지라도, 상상할 수 있는 어민 양보.다도 작은 수어진 양보.다 더 가 까이 접근시킬 수 있음운 말한다 .••• 국한의 이론은 미분학의 갑된 형이상학적 근거이다 .••• 달랑베르는 역시 《백과 전서〉〉 의 “미분'’이타는 제목의 굳에서 바로우. 뉴 돈 , 라이 프니 츠, 로울 둥의 업 적 들을 논한 뒤 에 , 미 분(무한소)은 무한 · 히 작거나 임의로 지정할 수 있는 양보다 작은 양이라고 말했다. 그·러 나 그는 그러한 단어들을 동용되는 용법에 따라서 사용한다고 선명했 다. 그는 말하기를 이 용어는 생 략된 꼴이며 오호한데, 정의하는 뜻보 다 백배는 더 모호하다고 했다. 국한이 맞는 언어이며 옳은 접근법이었 다. 그는 뉴돈이 속도를 써서 도함수를 선명한 것을 비판하였는데, 그 이유는 순간적인 속도의 명확한 개념은 존재하지 않으며, 운동이라는 미수학적인 개념을 도입하였기 때문이타는 것이었다. 달랑 1 비르는 그의 《잡록》 Melan g es(1767) 에서 양은 유도 무도 아니다; 그것이 유라면 사 라지지 않을 것이요; 그것이 무라면 완전히 사라져버탈 것이다”라고 받 복하였다. 그는 다시 국한의 개념을 제안했다. 그러나 그는 이 개념을 본래의 미적분학에 적용하지 않았으며, 그의 동시대인들은 달랑메르의. 제안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 국한에 대한 아이디어는 카르노의 《회상록》 Refl ect i on , J7 80 년 베를린 아카데미의 공개 경쟁에서 상을 탄 월리어 L'Hu i llcr 의 논문, 비록 그 상 · 을 타지는 못했지만 존경받을 만한 카르노의 논문에도 나타나 있다. 거 ,
의 둥럽없이 코우쉬는 이러한 저작-등에게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어 밍돈 그의 유명한 처작인 《대수적 해석학 강의》 Cours d'analys e alge briq u c (Course on Alge braic Analys i s , 1821) 의 서 문에 서 코우쉬 는 수학에 서 요 구되는 모돈 엄밀성을 주기 위하여 내가 주구해 온 방법에 관하여라고 아주 명백히 밝혔다. 그의 체의 재목의 대수적이라는 단어에도 불구하고, 코우쉬는 대수 학으] 일반성에 의촌하던 당시의 경향둘을 만대하였다. 그가 의미하는 바는동시대인들이, 실수에서 참 인 것은 복소수에서도 참 이고, 수령하는 수연에 관하여 참인 것은 발산하는 수일에 관하여서도 참이고, 유한인 앙에 대하여 참인 것은 무한소에 대하여도 역시 참이라고 가정하고 있 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는미적분학의 기본개념-함수·국 한 ·연 속성 • 도함수 • 적분――둘을 조십스럽게 정의하였고 그 성질둘을 획립하 였다. 그는 또한 무한급수 중에서 그가 말한 의미에서의 합을 가지는 것 과 가지지 않는 것, 즉 수령하는 급수와 발산하는 급수 를 구만하였다. 그는 후자를 추방하였다.* 1826 년 10 원에 아벨은. 그의 은사 훈음보 1 에 개, 코우쉬는 현재로 수학이 어망게 다 루 어져야만 하는가 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입니다”라고 쓸 수 있었다. 아벨은 코우쉬가 어리석고 고집 동이이지만 명백히 아무리 하잘 것 없는 것이라도 공정하게 처리해야 한 다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덧 붙 였다.
• 코우수 1 가 발전시컸던 잔근처인 깅의나 겅러에 대하여 수구한 핀요는 없다. 우리의 목 적운 위해시는 코우수 1 에 의해서 건국 적진한 입일화가 착수되었다는 사신이 중요한 것 이다 .
코우쉬가 해석학을 엄밀화하기 시작랬고, 《 강의 》 의 1829 년의 개정 JJ:에서 그가 해석학에 궁극적인 엄밀성을 주었다고 기술했지만, 그가 다 루었던개념은 미묘했으며, 그는 많은잔못옵저질렀다. 함수·국한·연 속성 • 도함수에 관한 그의 정의는 근본적으로는 옳았음에도 불구하고 . 그가사용한언어는모호하고불명료했다. 그의 동시대인들처럼그도연 속이면 미분가능하다고 믿었으며 (7 장), 그래서 그는 많은 정리 들을 단 지 연속성만을 가정하고서 기술하였으나, 실재로는 미분가능성을 사용 하였으며, 잘못된 곳에 주의 를 기울인 후에조차 그는 완강하게 고집하 였다. 코우쉬는 정적분을 조십스럽게 정의한 뒤에 모돈 연속함수의 정 져분은 정확한 값을 가진다는 데까지 진전했다. 그러나 그의 증명은 들 려 있다(왜냐하면 그는 균등연속성이 판요함윤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논 명백히 수림급수와 발산급수를 구번하였지만, 수령급수에 대한 거짓 된 명제들을 제시하고 증명하여 나아갔다. 예 를 들면, 그는 연속함수 둘의 무한급수의 합은 연속이라고 주장하였다(그것은 균등수령의 조건없이 는 거짓이다). 그는 무한급수를 항먼로 적분하였고, 적분한 급수가 본래 의 급수가 나타내는 함수의 적분운 나타낸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에서도 역 시 그는 균등수림 성 이 팔요함을- 깨 닫지 못하였 다. 그는 오늘날 코우 쉬의 조건으로 안리저 있는 수연의 수림성의 판정법을 얻었지만, 이 조 건의 충분성을 증명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 이유는 그 증명이 코우수]나 그의 동시대인등이 알지 못했던 실수계에 관한 지식이 요구되었기 때문 이다. 코우쉬는 만약 21 선수함수가 각 만수가 독립적으로 어떤 접에 접근할 메 그 접에서 국한윤 가지고 있다면 두 변수가 동시에 면하면서 그 접에 접근할 때에도 그 함수는 그 국한에 접근한다고 믿었다. 해석학의 잉민화작업은 처움부터 소동을 일으컸다. 코우쉬가 카리 과 학 아카대미의 학술 회합에서 급수의 수령에 관한 그의 이론을 발표하 자, 라준라스는 곧 집 으로 급히 돌아가서 그의 《천 체 역 학》에 나타난 급 수들의 검토를 꿉낸 매까지 두문불출하였다. 운좋게도 그.는 모든 급수 가 수림함윤 발견하였다. 역설적으로, 코우쉬는 엄밀성에 대한 그 자신의 관십 때문에 속박당 하기 룹 거부하였다. 그는 주로 엄밀성울 확립하기 위한 묵적으로 제을 세 권 (1821, 1823, 1829) 이나 썼으나, 연구 논문을 쓰는 데는 그것을 무시 랬다. 그는 연속성이 무엇인가를 정의하였으나, 그가 사용한 항수들이 연속임을 증명하지는 않았다. 그는 급수와 목이적분의 수림성이 중요함 올 강조했으나, 급수 • 푸리에 변환 • 무이적분이 수령성에 아무 문제가 없는 것 치 럽 그둘을 계 산하였 다. 그는 국한으로서 도함수를 칭 의 하였 으나, 라그랑즈가 그랬던 것처럼 (6 강) 순전히 형식적인 접근 방식을 쓰 기도 하였다. 그는 1-1+1 ― 1+•·· 와 갇은 반수령(전동) 급수와, 조전 수령급수(양수항과 옵-수항윤 가지고 있는 어민 급수)의 항둘을 재배인하는 것윤 인정하였다. 그는 다른 잘못들도 저전렀지만, 그. 자신의 제의 표 준에 따라 참 임을 확립하지 않았던 것이라 할지타도 무엇이 참인가에 대한 확실한 느낌은 가지고 있었다. 해석학의 엄밀화에 관한 수많은 업적둥이 코우수 1 의 공헌으로부터 영갑 올 받았다. 그러나 주된 잉에는 또한 사람의 대가 바이에르수 1 드라스 Kurl Wc i cr ~ t rass(1815 - 97) 에게 물아간다. 그의 입적으로 해석학의 기조의 입
밀화는 완성되었다. 그는 매를린 대학에서의 1853-59 년의 강의에서 그; 의 해석학의 기초를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가장 오레된 기록은 1861 년 봉에 수 1 바르츠 H. A. Schwarz 가 받아쓴 노트였 다. 바이 에 르쉬 트라스의 업적은· 마침내 그의 시대에 확실히 의십스러웠던 운동, 직관적인 이해, 기하학적인 개념에 의존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해석학을 해방시켰다. I86I 년까지는 바이에르쉬트라스는 연 속 성이 미분가능성을 의미하지 는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잘못된 것을 오랫동안 확실하다 · 고 믿어온 견해 때문에 (7 장) 바이에르쉬트라스가 1872 년 매 를 린 아카 데미에서 (1875 년 브와-레이몽 Poul du Bo i s-Re y mond 에 의하여 춥 판된 ) 모든 실수값 X 에서 연속이지만 모든 실수값 X 에서 미분가능이 아난 함수 의 예를 발표했을 때 세계는 충격을 받았다. (그 전에 이미 1830 년 봉차노 의 기하학적인 애가 있었으나 출판되지 않았으며, 1830 년겅의 셀 러리어 Charles Celler i cr 에 의한 에는 1890 년에야 출판되었다. 따라서 이것 등 중 어느 것도 어 민 영향윤 미치지는 못하였다.) 어떤 접으로는, 바이에르쉬트라스의 에가 늦게 나타난 것이 미적분학 의 발달에 는 행 운이 었는데 . 그것 은 피 카르 Emi le Pic a rd 가 1905 년에 말한 것처럼 만일 뉴돈과 라이프니츠가 연속함수가 도함수 를 팔연적으로 갖 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미분학은 철대로 창조되지 못했을 것 이기 매운이다. 엄밀한 사고는 창조의 방해물이 얻 수 있다. 코우쉬와, 해석학의 업밀화에 관한 자신의 작업의 초기에 있어서의 바이에르쉬트라스마저, 실수와 복소수 체재의 모든 성질들을 당연한 것 으로 받아들였다. 실수와 복소수에 대한 논리적인 근거를 세우는 첫 발 자국은 사원수의 발명자인 해밀돈에 의하여 1837 년에 주어졌다. 해밀 돈은 복소수가 한 평면상의 벡터를 표현하는 데 사용원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며, 공간내의 베터를 표현할 수 있는 삼차원수를 찾으려 하였다 (4 장). 따라서 그는 복소수의 성 질윤 일 반화하려 는 관겁 에 서 연구하였 다. 그의 논문 《대수적 쌍들; 시간에 관한 준비 단계의 논문 포함〉〉에 둘 어 있는 그의 업적 중의 하나의 결과는 복소수에 대한 논리적인 근거였 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실수는 찰 알려진 성질둘을 가지고 있는 것으 로 가정되어 있다. 복소수 a+b ✓ =-i° 대신 해밀몬은 실수의 순서쌍 (a, b) 를 도입했고 이 쌍둘의 연산을 정의하였는데, a+b ✓ =-i° 꼴로 된 복 소수로 연산했을 때와 똑같은 결과를 얻게 되도록 하였다. 해밀돈이 복_ 소수의 새로운 이론을 구하려고 애쓴 것은 주목할 만한데, 왜냐 하면.
모든 선행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J =T 이나 십지어 음수까지도 납득 ;· 할 수 없었기 메문이었다. 그 논문의 뒤에 그는 다움과 같이 썼다: 여 기 에 서 쌍의 이 론 (Theor y of Cou p les) 은 t부소수의 ] 숨은 의 미 움 명 백 히 하 · 기 위해서, 또한 이 눔라운 에로씨 보몽 견해에 따르면 기호져일 문이고 질 · 선명되어진 수 없는 그러한 식이 사상의 세계에 들어 와서 현실성과 중요성을 · 얻윤 수 있옵운 보여 수기 위해서 순판되 었다. 그는 그 논문에서 다움과 같 이 첨가했다: 단일수의 이 온 에 서 는 기 호 J=; 은 무후학구 [absurd, 해 밀돈은 이 단어 윤 이 : 낸락체로 썼다], 상가능한 제곱근 또는 단순히 상상적인 수윤 나타낸다; 그러 나 쌍의 이 온 에시는 7같 은 기호 .;=,-은 의미운 갖게 되며, 가능한 제곱근 또 는 신수의 쌍 즉 (방 금 우리가 보아온 것처럼) 쌍 (-1,0) 의 주된 제곱근운 나 · 타내 준다. 따라서 앞의 이 론에 서와 탈리 두 1 의 이돈에서는 아 기호 J= 1 은 적 절히 받아 등 여질 수 있으며 입의의 쌍 (a i. a2) 에 대하여도 (ai, a,)=a1+a 깁= 라 쓸 수 있다. … 이 식에서의 기호 ../=;운 2 차저 단위원 또는 순 2 차적 . 쌍 (o, I) 로 나타냄으로씨 선명되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해밀돈은 그가 말한 형이상학적인 장애물을 복소수계에서’ 재거하였다. 해밀돈은 쌍둘의 이론에서 실수의 성질둘을 미리 가정하였었다. 그는 - 1837 년의 논문에서 실수계의 논리적인 전개룹 시도하였다. 시간의 개 념으로부터 그는 양의 정수의 성질을 이끌어냈고, 이것윤 유리수(양과 옵의 정수와 분수)와 무리수로 확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전개는 논리적 으로 빈약했고, -특히 무리수의 취급에서 실패했다. 이 업적은 불분명할 문만 아니라 부정확하기도 하였다. 그것은 수학계에서 무시되었다. 실 수와 복소수의 기초에 대한 해밀몬 자신의 관십은 재한된 것이었다. 그 .. 의 목적은 사원수였다. 그러므로, 그의 시대의 대부분의 사람듄처럼 해 석학을 연구할 때 그는 실수와 복소수의 성질을 자유몹게 사용하는 것 을 주처하지 않았다. 바이에르쉬트라스는 실수문 더 잘 이해하지 않고는 해석학의 엄밀화·
는 완성철 수 없다는 것을 최초로 인석하였고, 또 유리수의 찰 알려진 성질을 근거로 하여 최초로 무리수의 명확한 정의 를 내리고 그 성질 들 윤 확립하였다. 그는 1840 년대에 이 연구의 및 가지 를 착수 ·겠 지 만, 그 당시에는 그것을 출 판하지 않았다. 그것은 1860 년대의 매 를란 대학에서 의 그의 강의를 동하여 알려 졌 다. 그밖의 여 러 사람 둘 , 묵히 데 데 킨트 Ri ch ard Dedekin d 와 칸토르 Georg · Can t or 는 역시 유리수의 성질을 인정하고 무리수를 바르게 정의하였으며 , 무리수의 성질 들을 정립하였다. 그들의 연구는 1870 년대에 출 판되었 다. 바이에르쉬트라스와 매우 유사하게도 데데킨트는 미 적분학 을 가르치 면 서 무리 수의 분명 한 이 론 이 믿요함을 인 식 하였 다. 데 데 킨트는 〈( 연속성 과 무리 수》 Cont inu it y and Irrati on al Numbe rs ( 18 72) 에 서 , 1858 년 이 후 '‘저 자는 산수의 엄밀한 기초의 전무 ] 을 전보다 더욱 더 에인하게 느꼈다라 고 썼다. 칸토르는 해석학 의 정리둘 (9 장)에 대한 그의 연구에서 무리수 의 이 론이 필요합운 인식 하였 다. 그러 므로 바이 에 르수] 도라스 , 데 데 킨 트 , 칸도르의 연구 윤 동하 여 수학은 아침 내 .J2 .J3 = .J 6- 운 증명 할 수 있 게 된 것이다. 유리수의 논리는 여전히 없었다 . 데데킨트는 이것 옵 깨달았고 , 《 수 의 본성 과 의 미 >T he Natu re and Meanin g of Numbers (1888) 에 서 그는 유리 수 를 공리 몬 적으로 다 루 는 데 씁 수 있는 기본적인 성질듄운 서술하였다. 패 아노 Gi us ep pe Peano (1858-1932) 는 《 산수의 원리》 Prin c iple s of Arith m eti c ( 1889) 에 서 의 데 데 킨트의 생 각과 그라스만 Herm: in n Grass m ann 의 《 산수의 교과서》 Textb o ok on Arith m eti c ( 1861) 에서의 및 가지 생 각을 환 용하여 자 연수의 공리로부터 유리수문 전개해내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므로 마침 내 실수와 복소수의 체계의 논리적 구조 운 얻은 것이다. 수체계의 기초 확립은 역시 그 부산문로서 갇 알려져 있는 대수학의 기초를 세우는 문제 륜 해 결 하였다 . 문자가 양의 정수를 나타내는 것처 럼 자유롭게 계산천 메, 그 결과가 문자 대신 실수나 복소수를 대입했을 페에도 똑같이 잘 적용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대답은 다른 종유의 수가 양의 정수와 똑같은 형식적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소 ‘ 어설프게 이야기하자면, 2•3=3•2 와 마찬가지로 .J2 . .J3 =.J 3 • .J2 도 옳기 때문에. ab=ba 는 a,b 가 양의 정수이거나 무리수이더라도 옳 아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주목한 만하다. 정수와 분수에서 시작하여
무리 수 • 복소수 • 대 수학 • 미 적 분학으로 나아가는 대 신에 수학자들은 역 순으로 이 주재들을 연구했다. 그들은 마치 분명히 이해했었던 것처럽 남겨둘 수 있는 것을 추구하기를 꺼리는 것과 갇이 행동했고, 주제를 논리화한 팔요성이 요구되었을- 메에만 그둘은 그것을 시작했다. 여하간 이집트인과 바빌로니아인이 정수 • 분수 • 무리수-롭 다루기 시작한 후 6 천년이나 지난 1890 년겅까지는 수학자둘은 마침내 2+2=4 임을 증명할 ` 수 있었다. 위대한 수학조차도 엄밀성윤 고리하여야만 한다는 것을 나` 타내 준 것이다. 19 세기 말에는 또다은 유밍한 문재가 해전되었다. 가우스가 미유클 · 리드 기하학은 물 리적 세게의 기하학일 수 있다는 확신 때문에 모순이 없다는 신념-앞 표명한 매부더. 그 문 재에 관한 가우스의 연구와 리만의 사강사 자겨 강연이 출판된 1870 년깅까지의 대략 60 년 동안, 대부분의 수학자 둘은 미유 물 리드 기하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4 장). 그` 내용은 받아 들 이기에 너무나 색다른 것이었다 . 이갇은 수학자들은 여러 가지 미유 윤 리드 기하학의 각각에시 언젠가논 모순이 발견되어 그것이 넌센스로서 추방되기를 바라고 또 그멍게 믿는 쏙운 덱하였다. 다행스럽게도 모든 기본적인 미유칼리드 기하학의 무모순성의 의문은 . 마침내 해걷되었다. 그 방법은 검증윤 보장하는데, 묵히 뒤에 일어난 일 에 비추어 볼 때 그러하다. 여러 가지 미유 쿨 리드 기하학 중에서 리만의 1854 년의 논문 (4 장)으로 재안된 이중다원 기하학은 본질적인 면에서 유 · 쿨리드 기하학과 다르다. 평행선은 존재하지 않으며. 임의의 두 직선-은 . 두 접에서 만나고.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 보다 크며, 그밖에도 많 은 정리들이 유클리드 기하학과 다르다. 벨드라미 Eug e ni o Beltr n mi (1835_ -1900) 는 1868 년에 평면의 이중타원 기하학에서의 직선들을 구에서의 대원 여도% 나타내는 원처럽 중십이 구의 중십과 감은 원)으i로 해석한 매 .. 평면의 이중타원 기하학은 구의 표면에 적용된다고 지저했다. 이러한 해석은 인정되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모든 미유 · 쿨리드 기하학의 창조자둘의 직선은 유문리드 기하학에서와 갇은 직선 울 의미했다. 그러나 우리는 유큘리드의 직선과 다론 개념듄의 정의가 지나찬 것임을 상기해 보자 (5 장). 아리스 도델레스 가 강조했던 것처럽 수` 학의 어떤 분야에서돈지 우정의용어가 존재하여야 하며, 이 7갈 은 직산 둥 에게 요구되는 전부는 그것들이 공리읍을 만족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구면 위에서의 대원둘은 이중타원 기하학의 공리들을 만족한다`
이중 E ki 기하학의 공리물이 구면 위에서의 대원에 적용되는 한, 그 기 하학의 정리들은 공리 들의 논리적인 결과이기 때문에 정리들 역시 적용 되어야만 한다. 칙선을 대원으로 해석하는 것을 인정하면, 이중타원 기하학의 무모순 성온 다음과 같이 확립된다. 이중타원 기하학에서 모순된 정리들이 있 다면, 구의 표면의 기하학에 관하여도 모 순된 정리들이 있 을 것이다. 이 재오 순구이는 라 면유, 큘 리이 드중 타기원하 기학 의하 학일도부 이역 다시. 무그오순러 므이 로어 야유.만 클. 리한.다 드.. 기. 하. 학. 이. 무. 쌍곡 기하학 (4 장)의 무모순성에 대한 경우는 그멍게 간단히 될 수 없 다. 그렇지만 이중타원 기하학의 무오순성이 구의 표면을 모형으로 사 용하여 확립된 것처럼, 쌍곡 기하학의 무모순성은 유쿨리드 기하학의 더 복잡한 도형을 이용하여 확립월 수 있다. 우리는 그것 을 검토할 팔요는 없다. 그 렇 지만 쌍곡 기하학이 무모순이라는 사실은 역시 유클리드의 평 행선 공리가 다른 유큘리드의 공리들과 독립적 임 을 의미한다. 왜냐 하 떤, 유 클 리드의 평행선 공리가 다몬 유클리드의 공리 들과 독립적이 아니 라면―—죽, 그것이 다온 유클리드의 공리들에게 연역되어진다면――그 것은 쌍곡 기하학의 한 정리가 되어야만 한다. 왜냐 하면, 평행선 공리 를 재외한 쌍곡기하학의 다 른 공리들은 유클리드 기하학의 댜론 공리들 과 같기 메문이다. 그런데 유 큘 리드 기하학의 이 정리는 쌍곡 기하학 .의 평행선 공리와 모순되므로, 쌍곡 기하학에 모순이 나타나게 원 것이 다. 그러므로 유클리드 기하학의 다몬 공리둘로부터 유 클 리드의 평행선 공리를 이꿀어내려는 오렌 동안의 노력은 실패로 물아갈 운명이었다. 직선이 보동의 의미 를 가지는 기하학으로 의도되었던 비유클리드 기 하학이, 원레 의도되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도형에 적용된다는 눈라운 . 사실은 중대한 견과룹 낳았다. 우리가 선명했던 것처럼 전적으로 다론 해석이 가능한데, 그 이유는 무정의용어들이 입의의 공리적 전개에 팔 연져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런 해석은 모델(모형)이라불리운다. 그 러므로 한 의도된 물리적 의미에 관하여 창조된 수학의 한 분야가 전혀 다론 물리적 또는 수학적인 상황에 적용원 수 있다. 바 유클리 드 기 하학의 무모순성 은 유클리 드 기 하학이 무모순이 라는 가 정하에 확립된 것이다. 1870 년대와 1880 년대의 수학자들에게는 유클리 - 드 기하학의 무모순성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가우스, 로바쳅스키, 뵤요이, 리만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유클리드 기하학은 아직도 물리적
제계의 팔수적인 기하학으로 받아둘여졌고, 물리적 세계의 기하학에서 어떤 모순된 성질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상상할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 러나, 유쿨리드 기하학이 무모순이라는 논리적 증명은 없었다. 미유클리드 기하학을 거의 겅멀랬던 많은 수학자들에게는 위의 무모 순성의 증명들이 또 다론 이유로 환영받았다. 이들 증명은 미유클리드 기하학에 의미-흥 부여했지만, 유클리드 기하학 안에서의 모델로서 분이 었다. 그러므로 이런 의미에서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지만, 직선이 몽 례의 의미 를 가지는 물리적 세계에 적용길 수 있는 기하학으로서는 필 요하지 않다 . 문몬 이것은 가우스, 로바쳅스키, 리만의 견해와는 상만 되는 것 이 었다. 엄 밀화에 관한 단 하나의 수된 문제 만이 남았다. 유클리 드 기 하학의 기초는 붕완전하다는 것이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해석학에서의 상황 과 달리, 기하학의 본성과 개념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무정의용어를 - 고정시키고, 정의를 정확히 하고, 빠뜨란 공리를 보충하고, 증명을 왼성 하는 것은 미 교적 간단한 일이었다. 이 일은 팟수l Morit z Pasch (1843- 1930), 매로니스 .G i u s e pp e Veronese (1854-1917), 피에리 Mnrio Pi er i (1860- . 1904) 에 의하여 독립적으로 이루어졌다. 팟수 1 의 공헌을 인정한 힐버트 David Hi lb er t (1 862-1943) 는 오늘날 가장 널리 받아 들 .여 지는 견해를 발 표하였 다. 거 의 동시 에 람베 르트, 가우스, 로바챕 스키 , 보요이 가 창조 한 비유 클 리드 기하학의 기초와, 묵히 사영기하학을 미못하여 19 세기에 창조된 다른 기하학의 기초가 연구되었다. 1900 년까지는 산수 • 대수학 • 해석학(정수에 관한 공리의 기초 위에서) • 기하학(접 ·선과 다론 기하학적 개념에 관한 공리의 기초 위에서)이 엄밀회되 었다. 많은 수학자들은 더 나아가 수를 근거로 하여 기하학의 모든 것 울 전설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것은 해석기하학을 써서 할수있는일 이었다. 기하학은 그 자체가 여전히 미십찍은 곳이 있었다. 미유쿨리드 기하학의 교훈의 하나로서, 유클리드 기하학은 업밀성의 모델로 여겨져 왔으나 실재로 걷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수학자들의 마 음을 괴롭었다. 그러나, 기하학의 전부를 수로 귀착시키는 것은 신재적 으로 1900 년까지는 수행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수학자 들은 수학의 산수화를 주장했는데, 사신은 해석학의 산수화라하는 것이 려욱 더 정확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1900 년 파리에서 개최된 재 2 차 국제 수학자 대회에서, 프앙카레는 오늘날 해석학에 남아 있는 것은 정
수들과 동식 또는 부동식의 관계의 그물 (ne t)로 연관되어 있는 정수들으' 유한 또는 무한 체 계 들뿐이 다. 수학은 우리 가 말한 바와 같이 산수화되 어 왔다”라고 주장했다. 파스칼은 기하학을- 초월하는 것은 모두 우리들 _ 의 이해를 초월한다”라고 말했었다. 1900 년에 수학자들은 산수 를 초 월하는 것은 모두 우리들의 이해를 초월한다”라고 말하기 룹 좋 아있다. 그들의 주장이 접접 더 지지를 받게 됨에 따라, 원래 그 들 의 목표에만 재한되었던 그 운동은 원래 계획되었던 것보다 찬씬 더 많은 문재접을 다루게 되 었으며 , 그란 문제 에 휘 말려 들기 조차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이 혼했다. 수학의 기초에 있어서의 미판 운동은 수학적인 한 과정을 다론 것에서 이꿀어내는 데 쓰이는 추론의 원리인 논리 여시 목표 로 삼 았다. 논리 의 과학은 아리 스토델레 스의 《도구》 Orga non (In str u ment 〔 아 reaso- ni ng ], c.300 B.C. )에서 창안되었다. 그는 수학자들에 의해 사용된 추 론 의 원리에 주목하고 그들을 추상화하였으며, 그둘이 모든 추 론 에 적용가능 한 원리들임을 안식했다고 명백히 밝혔다. 이간은 기본적인 원리 중 하 나는 배중문(t he law of excluded m i ddle) 인데, 그것은 모든 뜻이 있는 문 장은 참이돈가 거짓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그는 이것을 모든 정수가 홍 수 또는 작수인 것과 같은 수학적 문장으로부터 추상화하였운 것아다. 대제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는 상단논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2000 년 이상이나 수학자들을- 포함한 지적 세계는 아리스도넬레스의 ’ 논리를 받아들였다. 모돈 신념과 학설에 의문을 제기한 데카르트가 논 · 리의 원리들이 옳다는 것울 어멍게 아느냐는 의문을 실제로 재기한 것 은 확실하다. 그의 대답은 신이 우리들을 속이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에게는 우리가 지닌 이 원리들의 정확성에 대한 확신이 정당 · 화된 셉이었다.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는 논리의 법칙들을 확장하여 사고의 모든 영 역에 적용되어질 수 있는 추론의 보편저 과학, 죽 추론의 보편적 계산 一 법을 생각하게 되었으며, 대수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추론의 법칙들을 정확하고도 편리하게 사용하기 위하여 기호를 쓰는 아이디어를 품게 되 었다. 데 카르트는 수학적 방법 에 대 하여 다론 모돈 것들의 원천으로서 인간의 행동에 의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다론 어떤 것보다도 더 강력한 · 지식의 도구이다”라고 하였다. 데카르트의 것보다 다소간 더 실재적인 보편적 논리에 대한 라이프나 ,
츠의 계획은 4 가지 주된 요소로 구성된다. 그 첫째는 보편문자 (charac ter is t i ca u11 it •ersal i s) ――부분적 으로 또는 넓 은 의 미 에 서 기 호적 일 수 있 고, 추론으로써 얻어지는 모든 진리에 적용되는 보편적이고 과학적인 언 어이어야 한다. 두번째 구성 요소는 추론의 논리적 형태를 모조리 모은 것 ――추 론 의 계 산법 (calculus· r a ti o ci 11a t or) ――으로서 , 이 것 은· 원래 의 원 리 들로부터 가눙한 오돈 연역법을 얻게 해 주는 것이다. 세째는._걷 합법 (ars comb i 11a t or ic a)_ _기 본적 개 념 들 의 모임 인데 , 그것 으로부터 댜 온 모든 개념들을 정의할 수 있는 것, 죽 모든 단순한 아이디어를 기호 로 나타내 주고. 이들 기호 들 의 결합과 연산으로써 더 복잡한 개념을_ 표현하고 다물 수 있게 해주는 사고의 알파벳이다• 기본적인 원리들은. 예 를 들어 A 는 A 이고, A 는 미-A 가 아니다'’ 라는 동일윤 (th e low of ide nti ty) 갇은 것 이 다. 이 같은 원리 들로부터 4-- 학을 포합하는 모든 추론의 진리가 유도원 수 있다. 여기에 덧붙여, 사 선에 관한 전리들아 있으나, 이들은 부수적이며, 그가 말한 바 충족률 죽 충족 이 유의 원리 (the pr in c ip le of suff ici e n t reason) 에 의 하여 지 지 되 는, 그러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들이다. 라이프니츠는 기호논리학의 창시자 었으나, 이 분야에서의 그의 연구는 1901 년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데카르트나 라이프니츠는 추론의 기호적 계산법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그들은 단지 단편적인 것만을 남겼다. 그러므로 19 세기까지 아리스토텔’ 레스의 논리가 지배적이었다. 1797 년에 칸트는 그의 《순수 이성 비판》 · 의 재 2 판에서, 논리는 학설의 폐쇄적이고 완전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1900 년겅까지 대부분의 수학자들은 미형식적이고 말로 표현된 아리스 토델레스의 원리들에 따라추론을 계속했지만, 그들은 아리스토델레스가 전혀 주장한 바가 없는 다른 방법도 이용하였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논 ` 리적 원리둘을 면밀히 조사하지 않았으며, 져철한 연역져 논리를 사용 한다는 인상을 풍겼다. 실제로 그들은 직관적으로는 합리저이지만 명획 하지는 않는 논리의 원리들운 쓰고 있었다. 대부분의 수학자들이 수학 그 자체의 엄밀화에 연중하고 있는 동안에 몇몇은 사용되고 있는 논리룹 과제로 삼았다. 그 다음의 주된 발전은 아일랜드의 코르크에 있는 귄즈 대학의 수학 교수인 부운 George Boole. (1815- 야)에 의해서였다. 부울의 연구의 동기는 의십할 여지 없이 피콕, 그레고리, 드 모르강· (7 장)이 채택한 대수학의 관접이었다. 그들의 형식 불변의 원리는 실수-
와 복소수를 나타내는 문자 계수에 관한 대수학의 연산울 실재로 정당 화할 수는 없었으나, 그둘은 아마도 의도적은 아니지만 대수학을 임의 의 대상을 나타넬 수 있는 기호와 연산의 학문으로 보는 새로운 관접을 채용하였다. 그리고 해밀 돈의 사원수에 관한 업적 (1843) 은 실재로 또 다 돈 대 수 둘 이 가능하다는 것 을 보여 주 었 다. 부울은 1884 년에 연산자의 계산법이라 불리우는 대수적 추론의 일반화에 관하여 기술하였다. 그러 므로 그는 대수학이 꼭 수만을 다 루 어야 할 팔 요는 없다는 것과 대수학 의 법칙들이 설수와 복소수의 법칙일 전요는 없다는 아이디어를 생 각해 냈 다. 그는 《 논리 의 수학적 분석 >M ath e mat ica l Analys is o f Log ic ( 1847) 의 첫 부분에 이것을 언급했고, 그리고 나서 논리의 대 수를 재안랬다. 그 의 걸 작은 《 사고의 법 칙 의 연 구》 An Invest i ga ti on of the Laws of Thoug h t (1854) 이었다. 부운의 주된 아이디어는 라이프니츠보다 멀 야십적이고. 라이프니츠의 《추론 의 계산법》보다 더 두철하였 으며, 존재하는 추돈의 법칙은 기호의 형태로. 나타낼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은 현존 하는 논리물 적용할 때 정확하기 1 신 속 히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 체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옵-과 감은 논고의 디 자인은 수론·운 수행 하여 나가는 정 신 (m i nd) 의 이 등 어 산 의 기본적인 법칙운 조사하고, 그룹을- 기호적 언어의 게산법으로 표현하고, 이 감은 기조 위에 논리의 과학을 확럽하고 그 방법윤 세우는 것 이다. 부·울은 마음 속에 독 정한 웅용면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예 를 둘연 , 확 윤의 법칙 같은 것이었다. 기호의 장정은 다양하다. 사람둘은 논증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의도 하지 않은 의미를 도입하거나 옳지 않은 연역적 원리 를 사용하는 실수 를 저지를 수 있다. 그러므로 광학적 현상으로서의 빛을 논할 때 대상 의 빛 (lig h t)을 보는 것 또는 대 상의 ”가벼 운(lig h t) 무게 에 관하여 혼 동을 가쳐운 수 있다. 그러나 만일 물리적 빛을 l 로 사용한다면, l 에 판한 .:z. 이후의 모든 기호적 취급은 광학적 현상만을 가리키는 것이 된 다. 더구나 모든 증명둘은 말로 나타낸 논리의 법칙들을 대신하는 기호 의 변환에 관한 규칙에 의하여 기호의 집합들을 새로운 집합들로 변환 시키는 것이 된다. 이 규칙들은 운-바론 원리들을 정확하고곧저용프J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 된다. 부운의 논리대수를 조금 이해하기 위하여 그의 생각을 및 가지 들어
보자. 이재 기호 X 와 Y 가 어떤 대상의 집합, 예를 둘어, 개들의 집합 과 빨간 동물들의 집 합을 나타낸다고 가정 하자. 그러 면 xy (오 · :-난의 xny ) 는 X 와 Y 의 양쪽에 속해 있는 대상문의 집합을 나타낸다. 개들과 안 간 동물 들 의 경우에 있어서 xy 는 빨간 개들의 집합이 되는 것이다. 임 의의 X 와 Y 에 대하여 x y=y x 는 참이다. 만일 z 가 흰 대상들의 집합 울 나다내고 x= y라면 zx=zy 가 된다. 또 xy 자재의 의미로부터 XX =x 를 얻는다. 기호 x+y (오놉- 난의 xUy)는 x 에 들어 있거나 Y 에 들어 있는 대상등 의 집 합을 의 미 한다(이 것 은 부운의 생 각운 뒤 에 제 본스 W ill ia m Sta nley Jev ons {1835-82) 가 수정 한 것 이 가). 그러 므로, 만일 X 가 남자둘의 집 합이 고 Y 가 유권자등의 집합이라면 x+ y는 남자들과 (여자 유권자설겔- 포함링는) 유권자 들 의 합집 합이 다. 또 만일 z 가 35 세 이 상의 사람설- 나타낸다면, z(x+y ) =zx+zy 임 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X 가 집합이라면 1-x 죽 一 x( 둔 다 오 늘-난 의 여집합 표)는 x 에 들어 있지 않는 모든 대상 들 의 집합이다. 그러므로, 1 이 모든 대상들의 집 합이고 .x가 개둘을 나타낸다면, 1-x 죽 _x 는 게가 아닌 대상들의 집 합 을 나타낸다. 이 때, _(-.2:)는 개 들 의 집합을 나타낸다. 등식 x+(I— x )=I 은 모든 것은 개이거나 개가 아니거나입을 말한다. 이것은 집합에 관한 배중 뮬 이다. 부울은 이러한 순수한 대수적 연산율 써서 여러 가지 분야 에서 어멍게 추론을 수행하는가를 보여 주었다. 부울은 또한 명재논리 (the log ic of pr op o sit ion s) 라는 것을 도입했는데. 이 갇은 논리 의 사용의 시 초는 스토아 학과 th e Sto ic s (B.C. 4 세 기 ) 까지 거 슬러 을-라간다. 이 설명에 있어서 P 는 촌이 남자이다”라는 것을 나다 넬 때 , P 라고 주장한다면 촌이 남자이 다”가 참이 라고 말한 것 이 된다. 그러면 1-p (즉 -p)는 존이 남자이다가 거짓임운 의미한다. 역시 -(-p)는 촌이 남자가 아니다라는 것이 거짓이다, 죽 존이 남자임을 의미한다. 명제에 관한 배중윤, 죽 어떤 명제이든지 참이거나 거짓이다 러는 것은, 부울에 의하면 p+(-p)=i 로 표현되는데, 여기에서 1 은
참임을- 나타낸다. 곱pq는 명제 P 와 q가 둘 다참임을의미하고, p+q, 는 P 또는 q 또는 둘 다 참임운 의미한다. 또 다른 혁신은 드 모르강에 의해 이 루 어졌다. 드 모르강은 주된 업적 ’ 인 《형식 논리학》 Formal lo gi c(1847) 에서 논리는 일반적인 관계를 다루 어야만 한다는 생각운 도입랬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는 동사 ”이다' (to be) 의 관계 -롭 다운다. 고전적 인 예 로 모든 사람은 죽 는 것 이 다를 들 수 있다. 드 모르강이 말한 것처럼 아리스토 벨레스 학파의 논리는 ‘‘말은 동물이다”에서 ‘‘말의 머리는 동물의 머리이다”를 연역하는 것을 정당화시킬 수가 없다. 여기에는 모든 동물은 머리 를- 가진다는 전재 가 부가적으로 팔요하다. 아리스토 델레 스는 모호하게 광법위하지 않은 · 관계의 논리에 관하여 기술하였다. 더구나, 아리스 토델레스 의 처술과 중새 학자듄에 의하여 이루어진 그 확장 중 많은 것이 17 세기까지는 망실되어 있었다. 관계의 논리의 륄요성은 곧 알 수 있다. 관계 이다” 만에 근거 룹 둔 논증의 예, A 는 p이다; B 는p이다; 그러므로, A 와 B 는 p둘이다, 논 곧 거짓임을 알게 된다. 왜냐 하면, 논증, 존은 형이다; 피터는 형이다; 그러므로, 촌가 피터는 (서로의) 형들이다, 는 분명히 옳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사과는 시다; 신 것은 맛이다; 그러 므로, 사과는 맛이 다, 는 물란 결론이다. 관계의 논리를 발전시키지 못한 것은, 라이프니츠가 말한 바와 갑이, 아리스도텔레스 논리의 주된 결합이다. 판계문산은 혼히 주어와 술어로 옮겨 놓을 수가 없는데, 이때의 술어는 단순히 그 주어가 그 술어로 지시되는 집합에 들어 있음을 말해 줄 문 .
이다. 그러므로, 2 가 3 보다 작다, 또는겁 Q가 P 와 R 사이에 있다는 것처럼, 관계를 나타내는 명제를 생각해야만 한다. 이러한 명재둘에 대 하여 그 부정, 역, 논리합, 그밖의 논리적 걷합이 무엇을의미하는가생 각해 보아야만 한다. 관계 의 논리 는 피 어 스 Charles Sanders Peir c e (1839-1914) 에 의 하여 I870 낸에서 1893 년까지의 여러 논문에서 확장되어졌고, 쉬되더 Ernst Schroder ( ,841-1902 ) 에 의하여 체계화되어졌다. 피어스는 관계 를 표현하는 명제들 올 나타내기 위한 목수 한 기호 를 도입했다. 가령 l;; 는 i가 j를 사랑한 다는 것을 나타낸다. 실제로 그의 관계의 대수는 복잡했고 크게 유용하 지는 않았다. 우리는 뒤에 관계가 현대의 기호논리학에서 어떻게 다루 어지는가 룹 알게 될 것이다. 부울에 의해 간략하게 다루어진 논리의 과학에 피어스는 새로운 것을 유효하게 도입하였다. 그는 명제함수의 개념을 강조했다. 수학에서 10 =2•5 와 감은 상수에 관한 명재에 대하여 y =2x 와 갇은· 함수를다루는 것처럼, 존은 남자이다는 명제이지만 X 는 사람이다는 명제함수이 고, 여기에서 X 는 변수이다. 명제함수는 X 는 Y 를 사랑한다에서처럼 둘 또는 더 많은 변수를 포함할 수 있다. 피어스의 공헌으로 말미암아 추론은 명제함수로까지 확장뭘 수 있었다. 피어스는 또한 한정기호(q uan tifi ers) 라는 것을 도입하였다. 보동 언어 는 한정기호에 관한 한 모호하다. 다음 두 문장을 보자: 한 미 국인 (an Americ a n) 이 독립 전쟁 을 이 끌어 나갔다. 미 국인 (an Americ a n) 은 민주주의 를 신봉한다. • 이 들에 서 는 an Amer i야 n” 이 라는 용어 를 두 가지 뜻으로 사용했 다. 그 첫 번째 는 목정 한 마 국인 워 싱 돈 George Washin g ton 을 가리 킨다. 두번째 는미국인모두를나타낸다. 흔히 이갇은모호성은그용어가쓰여전문 맥 죽 문장의 전후 관계를 살퍼 봄으로씨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모호성은 엄밀한 논리적 사고에서는 허용원 수 없다. 진숟은 마땅히 명 확하여야만 한다. 그 해걷온 한정기호를 사용하는 것에 있다. 명제합 수가 어떤 집합의 모든 원소, 예물 들어 미국인 개개인에 대하여 감입 울 주장하려고 한다고 하자. 그래서 이제 모든 X 에 대하여 x 는 남자 이다라면, 그것은 마국에 있는 모든 사람둘이 남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 이때의 구 “모든 즈에 대하여는 한정기호이다. 반면에 적어도 한 x 가
있어, X 는 미국에 있는 남자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경우가 있 을 것이다 이 경우에서 ” ••. 울 만 족하는 저어도 한 X 가 있다도 한정기호이다. 이 두 한정기호를 각각 Vx 와 꼬 z 로 나타낸다. 논리를 관계로, 명제함수로, 또한정기호로까지 확장한 것은 수학에서 사용되는 추론의 형태를 포용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논리 를 좀더 적철 하게 만 들었 다. 수학을 논리화하러는 방향에서의 19 재기의 마지막 단계는 예나J cn a:. 대학의 수학 교수 프레게 Gott lo b Freg c (1848-1925) 에 의하여 이 루 어졌다. 프레게는 《개념- 기술 》 Conce pt -Wr iti n g (1879), 《산수 의 기조 》 The Funda- menta l Laws of Arith m eti c (1 권, 1893; 2 권, 1903) 과 갇은 및 개 의 주요한 저작을 썼다. 그는 명제논리, 관계 몽 포함하는 명재, 명재함수 , 한정기 호에 대한 아이기어 를 계승하였다. 그도 역시 그 자신 몇 가지 공헌을 하였다. 그는 명제의 단순한 진술과 그것이 참 이라 는 주장과의 차이를 도입 하였 다. 주장은 명 제 앞에 1--라 는 기 호를 동으로써 나타냈 다. 그는 X 와 X 만으로 이 우 어진 집합 {x} -문 구`선하고, 또 한 집합에 속하는 대 상과, 한 집합이 다른 집합에 포함되는 것의 차이 룰 구벌했다. 프레게는 실질합의 (m olcrio l im p li c a ti on ) 라는 보다 넓은 함의의 개 념을_ 형식화했는데, 그것 을 말로 표현한 것은 팔로 Ph i loo f Me g ara(c . 300B . C . ) 로까지 거숟러 운타갈 수 있다. 논리학은 명재와 명재함수에 관한 추론 을 다 루 며, 이 과정에서 함의는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만일 존은 현 명하고 현명한 사람은 오래 산다고 가정하면, 촌은 오래 살 것이라는· 합의물 연역할 수 있다. 실질함의는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것과는 약간 다르다. 예 를 들 어. 비가 오면 나는 국장에 갇 것이다.,라고 주장했을 매, 두 명제 사이에 는 어떤 관계분만 아니라, 선행하는 비가 오면이 성립할 메, 결과는 “나는 국장에 갇 것이다'’가 필수적으로 따른다는 함의가 생간다. 그러 나, 실질함의의 개 념은 선행하는 P 와 걷과 q를 임의의 명재로 두는 것 윤 허용한다. 이때의 명제둘은 서로 인과 관계나 또는 어떤 관계조차도 있을 팔요가 없다. 마찬가지로 X 가 짝수라면 나는 영화를 보러 갈 것 이다”라는 것운 다물 수 있다. 더구나, 실질함의논 X 가 짝수라는 것이 거짓일지라도, 결과는 영화를 보러 갇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X 가 짝수가 아니라면, 나는 영화를 보러 갈 것이다.” . 더구나 X 가 짝수가· 아니라면, 나는 영화를 보러 가지 않을 것이다”라는 함의도 허용된다~
그러므로, 맨 앞의 함의는 X 가 짝수 이고, 나는 잉화문 보러 가지 않는 경우에만 거짓이다. 더 형석적으로 말해서 P 와 q가 명재일 때, 만일 P 가 참이라면 P 이 면 q이다(이 것을 P 는 q 음 합의한다”라고도 한다)라는 함의는 q가 참이 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질함의는, 만일 P 가 거짓이라 할지라도 q가 참이거나 거짓일 수도 있으므로, 우리는 “P 이연 q이다”라는 합의 는 참인 것으로 간주한다. p가 참 이고 q가 거짓인 경우에만 이 함의는 거짓이다. 이 같은 함의의 개념은 동상적 인 의미 를 확장한 것이다. 그러 나 이 함의는 P 가 감인 것을 알 미1 에만 “P 이면 q이다” 를 사용하기 매 문에 모순아 없다 . 더구나 실질함의는 일마간은 일상적인 용법과 일치 되어 있는 것이다. 해몽드가 오늘 돈을 받는다면, 그는 음식을 살 것 이다”라 는 진술윤 생각해 보자. 여기에서 p는 해 물 드가 오늘 돈을 받 는다”이고, q는 그는 음식을 살 것이다'’가 된다. 이제 그가 오늘 돈을 · 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음식을 살 수는 있옵 것이다. 그러므로, p가 기 짓이고 q가 참 인 킹우를 합리적인 함의로 포함시킬 수 있다. 확실히 걷 과는 거짓이 아니다 . 비슷하게 해몰드가 오늘 돈을 받지 못한다면 그는 읍석윤 사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이 거짓 전술이 아니타는 것은 확실하 · 다. 마지막 경우의 아마 더 좋은 예의 하나로서, 만일 나무가 금속이 라면 나무는 펴서 늘일 수 있다”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두 진술이 거 짓이고, 함의는 사실임을- 알수 있다. 그러므로 P 가 거짓이고 q도 거짓 인 함의의 경우 p이면 q이다'’ 를 참인 경우에 포함시킨다. 이 개념을 사용하는 데 있어 중요한 정은, p가 참이라는 것과 함의 “P 이면 q이 다로부터 결론 q를 얻는다는 것이다. p가 거짓인 경우로의 확장은 기 , 호논리학에서 편리하며 도움이 되는 최선의 것이다. 그러나 p이면 q이다에서 q가 감이돈 거짓이돈 간에 P 가 거짓이 떤 q가 함의되므로, 실질합의는 거짓 명재가 임의의 명재 를- 함의한다~ 는 것을 허용한다. 이같은 결정에 대하여 사람듄은 논리와 수학의 을 바론 체계에서 거짓 명제논 발생할 수 없다는 것으로 반박할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질함의의 개념에 관한 반대가 있어 왔다. 예옵 듄 어서, 프앙카레는 시험을 치는 학생이 문린 방정식에서 시작하여 바론 결론을 이끌어 낸 겅우몰 둘어 실질함의운 조롱하였다. 그러나, 그 개 념을 개선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질함의는 저어도 수학의 기초로 사용되는 기호논리학에 있어서는 이제는 표준이 되어 있다.
프레게는 뒤에 아주 중요성을 갖게 된 또 하나의 공헌을 하였다. 논 리는 추론의 많은 원리들을- 포함한다. 이것 들은 유클리드 기하학 속에 들어 있는 삼각형 • 사각형 • 원 및 그밖의 도형 에 관한 수많은 주장들과 미교길 수 있다. 기하학에서는 19 세기 말의 수학의 다른 분야의 재조직 의 결과로서 , .::z.. 많은 주장둘이 및 개 의 기 조적 인 주 장 즉 공리 로부터 유 도된다. 프레게는 이갇은 작업을 논 리학에 대하여도 정확하게 앴다. 그 : 의 기 호법 과 공리 둘은 복잡하였으므로, 우리 는 단지 논 리 학의 공리 론적 전개에 대한 접근법윤 말로 간단히 보일 것이다 (10 장도 참조한 것) . p이 면 P 또는 q이다는 주장울 한 공리로 재택하여도 확실히 안전하다고 느낄 것이다. 여기에서 p 또는 q의 의미는 P 와 q 중 적어도 하나가 감 · 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P 가 감 임 웅 알고 시작한다 면 , 설림없이 P 와 q 둘 중의 하나는 참이 다. 또한, 만일 A 가 참인 어떤 명재 (또는 명재둘의 진합) 이고, B 가 나른 명재(또는 건합)이며, 또 A 이면 B 이다일 때, B 룹 분리하여 주장해도 된다는 것을 공리로 사용한다. 한 추론규칙 (a rule of inf e r ence) 이라 분 리우는 이 공리는 새로운 명제를 연역하고 주 장 할 수 있게 하여 준 다 . 위와 같은 공리 들 로부터, 예 륜 둘 어, 다움과 같은 것을 연역 할 수 있 다: p는 참이거나 P 는 거짓이다. 이것은 바로 배중윤이다. 우리 는 모순윤(t he lnw of con t rad i c ti on) 도 연 역 해 넬 수 있 는데 , 이 것 을 말로 나타내면, P 와 미 -P (not P , P 가 아니다)가 둘 다 참일 수는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두 가능성 중에 단 하나만 성립할수 있다. 모순윤은수 학의 간접증명법에서 사용된다. 만일 P 가 감이라 가정하고, 그것에서 p가 거짓임을· 연역하였다면, 우리는 P 와 미가’-을 동시에 가지게 된다. 그러나 둘 다 성립할 수는 없다. 그러모로 P 는 거짓이어야만 한다. 이 간접증명법은 혼히 또 다본 형태블 취한다. p-홍 가정하고 p가 q 불 합 의함올 보인다. 그러,.__l- q가 거짓임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러므로 논리의 한 법칙에 마라 P 는 거짓이어야만 한다. 논리의 법칙으로 혼히 사용의 는 많은 다른 것들도 공리로부타 인역 할 수 있다. 논리학의 이 같 은 연 여져 조직은 프레게의 《개 념-기술 )) 에서 미 못 되었고, .::z..의 《 기본 법칙)〉 에서 계속되었다.
프레게는 그 밖에도 야십적인 목표룬 가지고 있었는데, 이에 대하여 우리는 뒤의 장 (10 장)에서 더 살펴보기로 하자. 여기서 잠시 간단히 말 하자면, 그는 그의 논리학에 관한 업적에서 수 • 대수학 • 해석학에 관한 새로운 근거를 확립하려 하였는데, 그 근거는 19 세기의 과거 및 십년 동안에 이 루 어진 미판 운동보다 원싼 너 엄밀한 것이었다. 수학의 엄밀성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기호논리학을 사용한 또 다른 주 요한 인 물은 개아노 Peano 이었다. 데데킨트와 마찬가지로, 그도 가로치 는 도중에 알려진 엄밀성이 부적합하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논리적 기 초를 개선하기 위하여 그의 생애를 바쳤다. 그는 기호논리학을 논리의 원리물분 아니라 수학의 공리를 표현하는 데에도 여시 적용하였으며, 기 호로 표현된 공 리 을 다움으로써 기호논리학의 원리를 싸서 정리들을 연 역해 내 는 대에도 적용하였다. 그는. 우리들이 직관을 버려야 하고, 그 러기 위해서는 기호를 씨서 일해야만 하는데, 그명계 함으로써 의미는 참된 수학에서 아 무란 역한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확고하게 밝 혔다. 기호는 일상적인 언어에 붙 어 있는 직관저 연상에 호소하는 위험 을 괴한 수 있게 해준다. 패 아노는 개 념 , 한정 기 호 및 and, or, no t과 감은 접 속사에 대 한 자기 자신의 기호-홍 도입하였다. 그 자신의 논리학은 종 미숙한 것이었 으나 그의 영 향은 컸 다. 그가 편집 한 학술지 인 《수학 평 론》 Revis t a di Mate m ati ca (1',fat h e mati ca l Revie w , 18 년에 창간되 어 1906 년까지 간행 됩 )과 5 권으로 된 《수 학 공식 집 >F ormulary of Math e mati cs (1894-1908) 은 그의 주요한 업적이다. 《공식집》에서 그는 앞서 언급한 자연수에 대한 공리계 물 세웠다. 패아노는 논리학자들의 한 학파를 창립했으나, 이에 만하여 피어스와 프레게의 입직은, 럿셀이 프레게의 업적을 1901 년에 찾아냈을· 때까지 대재로 주목을 꾼지 못했다. 럿셉은 패아노의 업적을 1900 년에 알게 되었으며 프레게의 것보다 패아노의 기호듄울 더 좋아했다. 부울로부터 쉬되더, 피어스, 프레게에 이르기까지 논리학에 있어서의 혁신은 수학적 방법을 적용하는 것으로 이두어쳐 있었다. 즉, 기호주의 와 논리의 공리둘로부터 논리의 원리들을 연역져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형식논리학 또는 기호논리학에 관한 이들 모든 업적은 논리학자설-가 모 돈 수학자들의 마음에 듄었다. 왜냐하면 기호의 사용은 십리적 • 인식론 져 • 형이상학적 의미와 함축된 것을 피한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명계함수, z 는 Y 를 사랑한다” 또는 A 는 B 와 C 사이에 있다
와 간은 관계, 한정기호를 포함하는 논리 체계는 오 눈날 일반적으로 일 계숭어제산 또는 일계논리라 불리운다. 어떤 논리학자에 마르면, 일계 논리는, 예컨대 수학적 귀납법과 같 이, 수학에서 쓰이는 모든 추론 망 식을 포합하는 것은 아니라 하지만, 그것은 현대의 논러학자둘 이 가장 널리 받아 들 이는 체계이다.*
* 수학에서 쓰이는 모든 수온운 포합하기 위하여 어인 논리학자는 이계논리라는 것윤 요 구하는데, 이 논리는 술어에도 한정기호곱 쳐용안 수 있는 것아다. 아라서, x= y 운 나 타내기 위하여 우리는 x 에 적용되는 모든 술어는 y에도 저용된다고 수강하기문 원굴卜 며, 또 “모든 순어에 대하여,.릅 포합시킴으로써 술어마저도 한정하여야만 한다 . 이것-은 기호로 나타내면 x=y ~ (F)(F(x)~F(y )) 이다.
수학에서 쓰이는 오 돈 형태의 주론을 포함하도목 논리의 잉도를 확 대 하는 것, 명제와 명재함수 사이의 차이운 밝힘으로씨 진술. -을 월등히 정 확하게 할 수 있게 된 것 . 및 한정 기 호의 사용은 수학자불이 19 세기에 확럽하려고 추구하였던 엄 밀성설 확실히 높여 주었다 . 논리 학의 공리화 는 그 당시 의 운동이 나아가던 방향과 그만큼 디 가까 워 섰 다. 수학의 논리적 구조에 대하여 후 에 우리가 언급해야만 하는 것에 관 한 관점에서. 수학 자재와 논 리 학 의 엄밀화는 유윤리드가 치움으로 채 댁한 공리적 접근법을 써서 성취되었옵-을 강조해 둔다 . 이 방`서의 여러 가지 뮤 칭은 I9 세기의 공리화 운동 기간 중에 명백해섰다 . 이재 이 들 을 회고해 보자. 첫째는 무정의용어의 팔요성에 관한 것이다. 수학은 다 온 과목과는 독 립적이기 때문에. 정의는 다은 수학적 개념 을 써서 주어져 야만 한다. 그 란 과정은 정의 를 무한히 계 속해 나아가개 할 것이다. 이 닌점의 해전은 기본적인 개념을- 정의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그윤을 이 멍게 사용할 · 수 있는가? 그 들 에 관하여 주장할 수 있는 사실찰 어 멍 게 알 수 있는 가? 그 대답은, 공리들이 무정의개념(과 정의된 711 님)에 관한 주장둘이 되며. 그렇게 해서 공리둘이 우리가 주장할 수 있는 것을 말해 준다. 그 러므로 만일 검과 직선이 정의되지 않았다면, 두 접이 유일한 직선을 전 정한다는 공리와 세 접이 평면을 결정한다는 공리가, 정 • 선 • 면에 대한 또 다몬 견과를 연역하는 데 쓸 수 있는 주장을 재공해 준다. 아리스토 덴레스의 《도구》, 파스칼의 《기하학의 정신에 관한 연구 》 , 라이프니츠 . 의 《모나드 이론〉〉에서는 무정의용어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왔지만, 묘하 게도 수학자둘은 이 사실을 간과합으로써 결국에는 무의미한 정의 들을 만들어 왔다. l9 세 기 초의 재 로공 Jos ep h -Di az Gergo nne (1771-1859) 은 공
리는 무정의용어에 대하여 우리가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해 준다 고 지적했다 ; 죽 공리는 함축된 정의라고 부릅 수도 있는 것이다. 팟 쉬 가 1882 년에 무정의용어의 팔요성을 다시 주장할 때까지 수학자 들 은 이 문재 를 십 각하게 다 루 지 않았다. 임의의 연역적 체계가 공 리 들을 만 족 하는 임의의 것으로도 해석원 수` 있는 무정의용 어 를 포 함해야만 한 다 는 사실은 수학 에 추상화의 새로운 단계 를 도입하였다. 이 것은 일찌기 그라스만에 의하여 그의 《 선형 확장 이 론》 The o ry of Li n ea r E. rten si o n ( 184 4) 에 서 인 식 되 었 는데 , 그는 기 하학 · 아 물리적 공간 의 연 구와 는 구반되 어야 한 다 고 지적 했 다. 기하학은 물_ 리 적 공간에 적용원 수 있는 순수한 수학적 구조이지만, 그와 감은 해석 에만 재한되는 것은 아니다. 팟쉬 , 께아노 , 힐 버 트 와 뒤에 공리 론을 연 구한 사 람둥은 추상화를 강조 하였다. 갓 쉬 는 무정의 용어가 존재하고 공 · 리 들만 이 그것들 의 의미 를 한정할 수 있다는 사설을 분명히 알았지만, 그는 기하학이 정신 속 에 있는 것 이라고 생각랬다. 팟 수 1 의 연구 를 알고 . 있었단 패아노는 1899 년의 그의 논문에서 많은 다론 해석이 가능하다· 고 더 분명 히 맑었다. 《기 하학의 기 초》 Foundati on s of Geometr y (1899) 에 서 힐 버트는, 사용된 용어는 접 • 선 • 면 동이지만, 그것 들 이 공리 들을· 만 족 하는 것들이기만 하면 맥주컵 • 의자 또는 다 른 것일 수도 있다고 말랬 다 . 한 연역적 체계의 여러 해석의 가눙성온 실제로 은혜로운 일이 다. 왜냐 하면, 그것은 더 많은 적용면 을 가질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역시 혼란스 러운 질과물 갖게 된다는 것을 알게 . 원 것이다 (7 장). 팟쉬는 현대의 공리론에 대한 훙융한 이해 룹 가지고 있었다 . 그의 취 ‘ 지는 19 세기 말에는 확실하게 평가 를 받지는 못했지만, 그는 공리들의 집합의 무모순성, 죽 공리 들 이 모순되는 정리들을 이꿀어내지 않는다는 . 것이 확립되어져야 한다는 접운 지적했다. 무모순성의 문제는 비유쿨리 드 기하학에 관하여 생겨났고, 그 기하학에 관한 한 문제접은 만족스럽 게 해결되었다. 그러나 바유 물 리드 기하학은 낯선 것이었다. 정수론 또 ` 는 유클리드 기하학과 같은 기본적인 분야에 관하여는 무모순성에 의문 울 가지는 것이 순전히 학문적인 것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팟 ` 쉬는 이들 공리계에 대한 무모순성이 확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문제에 관하여 《산수의 기 초》 Foundati on s of Arith m eti c ( 1884) 를 썼던 프` 레게가 그의 뒤를 이었다:
단순한 가정은 그것운 궁족시키는 것과 동등한 것으로 보고 진행해 나가는 것 이 보몽이다 . 우리는 모든 겅우에 있어서 전생 • 나눗셈 • 제곱근 계산과 갇은 연산운 수행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가정하고 , 그것윤 가지고 충분히 해내었다 고 생각한다 . 그러나, 임의의 세 겁운 동과하는 직선운 그리는 것이 가능하다 고 가정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안가? 왜 우리는 덧셈 • 꿈샘에 관한 모든 법칙 · 이 신수에서 성립했던 것처럼, 3 차원 ·斗소수에 대해서도 성립한다고 가정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냐 하면, 이 가정은 모순운 포합하기 때문이다. 그 멍다면, 우리가 첫째로 해야 할 인은 이닌 다 론 가정들이 어떤 모순윤 포함하 지 않는다는 것윤 증명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것윤 이운 대까지는 우 리가 원해서 노력해 왔던 모 든 엄밀성은 너무나도 허황왼 것이다 . 케아노와 그의 학파 역시 1890 년대에 무모순성의 의문운 약간 전지하 게 다루기 시작했다 . 개아노는 그것을 확립하는 방법이 곧 발견원 것이 라 믿었다 . 수학의 무모순성은 그리스 시대에서도 의문시되어 왔다고 말할 수 있 을 것이다. 왜 그것이 19 세기 말에야 표면에 나타나게 되었는가? 우 리는 미유큘리드 기하학의 창조가, 수학이 인간의 산물이며 실세계에서 · 일어나는 일둘을 단지 근사적으로만 기술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이미 밝힌 바 있다. 이란 기술은 괄목할 만하게 성공적이었다 . .::z.. 러나 우주의 고유의 구조룹 나타낸다는 의미로서는 진리가 아니며 , 따 타서 팔연적으로 무모순인 것은 아니다. 실재로, 19 세기 말의 공리화 운동은 수학자들이 수학과 실세 계 사이 룬 갈라 놓는 십 연이 있음을 께 닫게 만둘었다. 모든 공리계는 무정의용어둘을- 포함하며. 그것둘의 성 질은 공리둘에 의하여 규정된다. 이들- 용어의 의미는 고정된 것이 아니 어서, 우리들은 마옹속에 그것들운 수 또는접 또는 선이라고 직관적으 로 받아들인다 . 확실히 공리둥은 성질들을 고정시키는 것이어서, 이런 용어들은 우리가 적관적으로 그들에 결부시키는 성질둘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해왔다는 것울 확신할 수 있으며, 우리가 바라 지 않거나 실제로 모순을 이꾼어 낼 수 있는 어떤 성질이나 항의가 들어 오도록 허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가? 공리저 방법의 또 하나의 양상도 역시 팟수 1 에 의해서 지져되었다 . 되 도록이면 수학의 어떤 한 분야의 공리들은 독립적이어야 한다. 즉 공리 - 둘 중 어느 하나가 그 분야의 다은 공리들로부터 연역되지 말아야 한다. '만약에 그렁게 된다면 연역된 공리는 정리가 되기 때문이다. 한 공리의
독립성을 확인하는 방법은 다른 공리들에게 어떤 해석 또는 모델을 주 / 어서 그물 공리들은 그것을 만족하지만, 문재가 되는 것은 그것을 만족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이 해석이 문재가 되는 공리의 붓집과 무모순이 천 핀요는 없다). 그러므로, 유클리드 기하학의 평행선 공리가 그 기하학 의 다론 공리들로부터 독립임을 확립시키기 위하여는. 평행선 공리가 아· 닌 다른 모든 유클리드의 공리들은 만 족하 지만 평행선 공리는 만족하지 않논, 쌍곡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모델 을 사용할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공리 룡 만 족 하고 또 그것과 모순이 되는 공리를 만족하는 모델은 무모. 순이 아니다. 그러므로 한 공리의 독립성옵 증명하기 위한해석 또는모 z 델을 사용하기 전에 모델이 무모순임을 먼처 알아야만 한다. 그레서, 우 리가 앞서 언급한 바와 같 이, 유클리드의 평행선 공리의 독립성은 유쿨 리드 기하학 안에서 쌍곡 미유 큘 리드 기하학의 모델을 구성함으로써 확 : 립시킬 수 있다. 잇달은 역사의 많은 부분이 수학의 공리화로 말미암아 재기된 의혹, . 부적당성, 십오한 문 재 들 에 관계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20 세기 초에 논 공리적 방법은 이상적인 것으로 환영받았다. 그 방법을 가장 찬양한 · 사람은 그 당시의 세계의 지도적인 수학자였던 인버트였다 . 《공리저 사 고 》 Axio m ati c Thin k in g (1918) 라는 논문에서 그는 선언했다: 수학적 사고의 대상이 친 수 있는 모든 것은, 그에 판한 이론이 성립되자마 자, 공리져 방법윤 따로게 되고 그명개 함으로써 곧바로 수학의 일부가 된다. 공리 물운 더 깊이 만들어 가는 것 운 신속히 함으로씨 ••• 우리 는 과학져 사고에 관하여 깊은 몽찰력윤 얻윤 수 있고 우리준의 지식의 몽일성윤 안게 된나. 목 히 공리적 방법의 여으로 수학은 모돈 지식윤 이꾼어 가는 여할운 요청받게 되 • 논 것이다. 1922 년에 그는 다시 주장했다: 공리져 방법은 실제로 , 어떤 분야에 있어서나 모든 정밀 담구의 깅 AJ .에 져철 하고 판요불가길한 도움이 되며 앞으로도 그러한 것이다; 그것은 논리져으로 ; 공쳐받을 수 없으며 동시에 효과룹 많이 낳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답구 r 의 완전한 자유문 보장한다. 이런 뜻에서 공리온처으로 진행한다는 것은 우라 가 목죠하는 지식을 생각한다는 것 이외의 다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인 찌기 공리적 방법 없이 독단처럽 확실한 관계성운 믿는 데 대하여 소박하게 니? 아갔던 반면에 공리져 접근법은 이신 소박성운 재거하면서도 신념의 이정운허. 용한다.
수학자들이 그들의 과목을 견고하고 엄밀한 토대 위에 세운다는 것을 환영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학자들은 바로 인간이다. 무리수 • 연속성 • 도함수와 같은 기본 개 념의 정확한 형식화가 모든 수학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새 로운전문적인 언어 를 이해하지 못했고, 정확한 정의들 을 수학을 이해하 거나 엄밀한 증명을 하는 데 붕뭘요한 도락으로 간주하였다. 이러한 수 학자들은, 눈럽게도 도함수 퓸 가지지 않는 연속함수가 촌재하고. 논리적 으로는 옳으나 미적판적인 다론 창조물이 촌재함에도 불구하고, 직관만 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키카르 Em i le P i card ( 1856-1941 ) 는 19 04 년에 편미분방정식의 엄밀성에 관하여 참된 엄밀성은생산적인 것으 로서, 다루고자 하는 문재에 그늘을 던지는 순수하개 형식적이고 지루 한 다른 엄밀성과는 구밀되어진다”라고 하였다. 에르밋 Charles Hermi te (1822-1901) 는 1893 년 5 월 30 일에 스탈제 스 Thomas Jan Sti el tj es 에 게 보 낸 편지에서 “나는 도함수를 가지지 않는 연속함수라는 한탄스러운 악 마로부터의 두려움과 형오감에 싸여 있읍니다”라고 말하였다. 프앙카레 . Po i ncar~(1854-1912) 의 수학에 대한 철학에 관하여는 다옵 강에서 살켜 보겠으나, 그는 다움과 갇이 불평했다: “전에는 새로 운 함수가 도입원 메 그 목적은 그것을 응용하는대 있었다. 반대로오 늘 난에는 우리 선행 자들이 얻은 견론에 반대되는 함수를 건설하며, 어연 다몬 목적에 그것 을 결코 응용할 수도 없다.” 이재 그들의 정의와 증명에 걷함이 있다고 알려진 많은 수학자들은 그들이 얻은 것은 정확히 엄밀성이 낳은 것이라는 대도룹 견지랬다. 대 가인 보렐 Emi le Borel 조차도 이 런 대 도로 자신을 변호하였 다. 다론 사 람둘은 그들.이 이 잡기 (nit -pick in g ) 라 부르던 것에 반대했다. 1934 년 의 논문에 서 하디 Godf rey H. Hardy 는 업 밀성 은 상례 적 인 문재 라고 말했 다. 여전히 다돈 사람둥은 업밀성운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그것울 방 · 어적으로 불찬성했다. 및및은수학에서의 무정부상대라고 말했다. 새로 운 아이디어들, 죽 현재의 겅우에는 수학의 엄밀화에 기여한 생각들이, 다몬 집단의 사람들보다 수학자들에 의해서 더 편견없이 받아들여진 것 은 아니다. 엄밀성은 수학져 창조의 또 다른 면모윤 보여주었다. 엄밀성은 19 세 : 기의 요구는 충족시켰으나, 그 최종적인 결과는 수학의 발전에 관하여 ·우리들에게 교훈도 주었다. 새로 발견된 엄밀한 구조는 다분히 수학의
건전함을 보장하지만, 이러한 보장은 거의 거저 얻은 것이었다. 산수 • 대수학 • 유 클 리드 기하학의 어느 정리 하나라도 전과적으로 바꾸어지지 않았고, 해석학에서의 정리 듐윤 총더 조심스럽게 구성하기만 하연 되었 다. 그러 므로 연속함수 의 도함수 를 사용하기 를 원할 매, 함수가 미분가 능하다 는 가정윤 덧붙 여야만 랬다 . 사 실 상 많은 새로운 공리적 구조와 엄밀성이 한 일의 전체는 수학자들 이 알고 있는 것들을- 그와 같이 되도 목 강 화시킨 것 이었다. 실 재로, 공리는 촌재하는 정리 릅- 유도했어야만 랬지 다은 것둥윤 끌 어 낸 것은 아니 었다. 왜 냐 하면, 정 리 들은 전체적으 로 옳은 것 이 었기 메문이다. 위에서 말 한 것은 모두, 수학이 논리에만 의존하는 것 이 아니라 건전한 직관에도 의촌함 을 의미한다. 아다마르 Jac q ue s Hadama rd 가 지 적 했 던 것 처 럽 , 엄 밀 성 은 직 관이 정 복 한 것 을 만 순히 윤허 항 문 이 다. 또는 바일 Hermann Wey ! 이 말했 던 것 처 럼 , 논 리 논 수학자들이 그등의 아이디어 룬 건강하고 강하게 지키기 위해 실행하는 건강 법일 뿐 이다. 여 하간 1900 년까지 는 엄 밀성은 수학 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다시 주장 하게 되었고, 뉘눗개나마 수세기 동안의 수학의 입적 을 확실하게 해 주 었다. 수학자등은 그리스인 둘 이 정해 놓 은 기준을 지키는 것을 완수하 였다고 수장할 수 있게 되었으며, 또 미교적 사소한 수정을 재외하고는 그 둘 이 겅칩적이고 직관적 인 근거 위에 세워 놓은 그 들 의 거대한 학문 이 논리에 의하여 인정받게 되었다는 것 을 알고는 편안히 지낼 수 있었 운 것이다. 사실성 수학 자 들 은 크게 기뻐하고 자만하기조차 하였다 . 그 둘 은 우 리수 • 미 적분학 • 미유 칼 리드 기하학과 사원수에 관한 여러 먼의 위기 운 되 봅· 아보고, 이것 둘 이 창조원 때마다 재기되었던 문재들을 극복 할 수 있었다는 대 자축할 수도 있었 을 것이다. 1900 년 과리에서 연란 제 2 차 국재 수학자 대회에서, 수학계의 지도 자로서 인 버트의 깅쟁자인 프 앙카레는 중요한 연설을 하였다. 수학의 기초에 도입된 및 가지 문재의 가치에 관한 그의 회의에도 붑구하고, 그 는 다옵과 간이 자랑하였다: 우리는 마침내 전대적 입밀성에 도단랬는가? 엄밀성의 전개의 각 단계마다 우리 의 선구자 등-은 업 일성 에 도단랬 다고 믿 었 다. 만약 그듄이 속았있 다면, 우 리 역시 그들처럼 속고 있는 것은 아닌가? ••• 그러나 오눔난 해석학에시 우 리가 업일하게 하기 위한 노력윤 겅주해 본다면, 우리윤 속일 가능성이 없는 것은 다만 상단논멉과 순수한 수에 관한 직관에의 호소문이다. 오놉- 난 전대저
인 업일성이 이루어져 왔다고 말한 수 있을 것이다. 프앙카레는 그의 처서 《과학의 가치》 The Value of Scie n ce (1905) 에 들어: 있는 논문에서 이 자랑을 반복성 ·랬 다. 수학자들이 수학의 많은 분야 를 엉 밀화하는 데 서 보여 준 예 리 함 (keenness) 윤 살켜 본다면 만 족해 하는 이 유 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수학은 이제 및및 느립보 들을 제외한 모돈 수학 자 둘 이 줄거이 받아 들 이는 기 초를 가졌고, 따라서 그 들 은 기뻐했던 것 이다. 볼데 르의 풍자국 〈〈 깡디 드》 Candid e 에 서 철학자 팡글로쓰 Pang lo ss 박사 壘 는 자신이 교수형에 처해지러고 할 메조차도 ”이것은 모든 가능한 세계 중에 서 최 선의 것 이 다”라고 말했다. 마 찬가지 로, 그둘이 곧 자승자막에 빠질 것이라는 것 을 알지 못하는 수학자들은, 그 들 이 최선의 가능한 상 대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실제로는 폭풍우의 구 름 이 몰려 오 고 있었고, 1900 년에 개최된 수학자 대회에 참가하고 있던 수학자 들은 창밖을- 내다 보고 그것을 알아차릴 수도 있었겠지만, 서로 축 매 를- 드는 데에만 너무 열중 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1900 년 그 대회에 참가한 한 사람은 수학의 기초에 대 한 모든 난정이 해결되지는 못했다는 것을 전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 대 회에서 힐버트는 23 개의 문재의 목록을 발표했는대, 그는 그 문재둘의 해걸이 수학의 발전을 위하여 가장 중요하다고 간주하였다. 이 들 문재 의 첫째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칸토르는 무한집합의 원소의 갯 수 릅 나타내 기 위 해 초한수 (tra ns fi n it e number) 를 도입 했 었 다. 이 갇은 혁 신에 관하여 힐버트는 자연수 전체의 초한수 다음으로 큰 초한수는 실 수 전채의 갯수임을· 증명하는 문제를 재기하였다. 이 문제에 관하여는 ` 9 장에서 다시 다루게 컨 것이다. 첫 문제의 둘째 부분은 실수의 집합에 다론 순서를 주어 그것이 소우 1 · 정 련집 합 (well ordered set) 이 되 게 할 수 있는가 하는 방법 을- 묻는 것 이 었다. 이 개념에 대하여 뒤에 더 자세히 언급하게 되겠지만, 실수물 정 연시킨다는 것은 새 순서를 준 실수의 집합의 공집합이 아닌 임의의 부 · 분집합이 반드시 첫째 원소 를 갖도록 한다는 것이다. 실수의 보동 순서 에 관하여 가령 5 보다 큰 모든 수의 부분집합은 첫째 원소룹 갖지 않 는다. 힐버트의 둘째 문제는 보다 분명하고 광법위한 중요성운 가지는 것아
다. 무모순성의 문재는 비유클리드 기하학과 관란하여 재기되었고, 유 콜리드 기하학이 무모순이라는 가정 아레 증명이 주어졌다는 것을 이마 언급한 바 있다. 힐버 트는, 만약에 산수의 과학이 무모순이 라면, 유쿨리 드 기하학도 무모순이라는 것을 해석기하학을 수단으로 하여 보였다. 그 러 므로, 그의 둘째 문제 에서 그는 산수의 과학이 무모순임 을· 증명 하는 것을 재기랬다. 칸도르가 이미 힐버트의 첫 문제의 두 가지를 알고 있었던 것은· 사실 이다. 그리고 팟쉬, 패아노, 프레게는 무모순성 문재에 대하여 주의믈 환기시킨 바 있다. 그러나, 1900 년에 다른 사람 아닌 힐버트만이 이들 문재 설- 일시적이 아닌 우럿한 문재로 간주하였던 것이다. 1900 년의 재 2 차 국제 수학자 대회에서 힐버트의 문제를 들었던 수학자들 중 대부 분은 이 문재 률 사소하고, 중요하지 않으며 , 단순한 호기 십 정 도로 생 각하였고, 항버트가 제안한 다론 문제들에 훨씬 더 중요성을- 부여했던 것은 의십할 나위가 없다. 산수의 무모순성에 관하여 아무도 그것을 의 십하지는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무모순성을 의십 했던 것――이상하기도 하고 직관에 반대되기조차 하므로-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실수계는 5 천년 이상 사용되어 왔고, 실수에 대한 수 없이 많은 정리가 증명되어 왔었다. 어떤 모순도 발견되지 않았었다. 실 수의 공리는 잘 알려진 정리들을 이끌어냈다. 이같은 공리게가 어떻게 모순일 수 있겠는가? 위에서 기술한 문재들을 재기하고 실제로 그의 23 개의 목록의 첫 머 리에 그것들을 써 넣은 힌버트의 지해로움에 관한 의문은 곧 소산되고 말았다. 건물 밖에 몰려들었던 검은 구룹들은 서로 겹쳐지고 두 1 엉컸으 며, 어떤 수학자둘은 천둥소리뭉 듣기 시작했지만, 힐버트조차도 앞으 로 일어날 십한 폭풍우를 예견한 수는 없었다.
9 닫혀진 낙원 : 이성의 새로운 위기 수학 에는 갑된 논쟁은 없다. —가우스 Gauss 논리 학은 확산을 가지 고 잘못으로 나아가는 기 술이 다. ―불 명 몇 세기에 걸쳐 지적인 안개 속을 방황한 끝에 , 1900 년까지는 수학자 들은 유쿨리 드의 《원론〉〉 에 묘사되 어 있는 이 상적 안 구조물 수학에 전달 한 것처럼 보였다. 그 들은 마침내 무정의용어의 팔요성을 인정하였으며. 정의에서는 모호하거나 이의가 있는 용어가추방되었고, 및 가지 분야가 엄밀한 공리적인 근거 위에 창립되었으며, 유효하고 엄밀하며 연역적인 증명이 직관이나 경험에 근거를 둔 걷론을 내신하게 되었다. 십지어는 논리의 원리마저도 확장되어, 수학자들이 혼히 미공식적으로 또는 묵시 적으로 사용하던 추론 형식들을 모 두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중에 는 1900 년에 사람 들 이 알 수 있는 한 그 용법이 건전한 것은 모 두 들 어 있다. 그래서,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수학자들은 즐거워할 이유가 있 었다. 수학자들이 스스로 자축하고 있는 동안에, 미유클리드 기하학이 나 사원수의 창조가 19 세기 전반에 했었던 것 이상으로 그 들 의 평정운 깨뜨리게 될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프레게가 말했듯이 전물이 완 성되자마자 기초가 붕괴되었다.” 힐버트가 수학의 기초에 관련된 몇 가지 미해결 문제 (8 장)에 관십 을 환기시킨 것은 사실이다. 이들 중에서, 여러 가지 공리화된 분야의 무모 순성운 확립하논 문계는 기본적이었다. 그는 공리적인 방법에 있어서의
무정의용어와 이것 들 에 관한 꽁리를 사용하는 것이 필요함을 인식했다. 직관적으로 이러한 용어들과 공리 들 은 매우 묵 뗄한 의미 를 지닌다. 예 를 들- 어, 점 • 선 • 면 동의 낱말에는 물리적인 대응-개념 (coun t er p ar t)이 있 으며, 유 클리드 기하학의 공리 들 은 이같은 개념 들 에 관한 물 리저인 사 실을 주장 하는 의도인 것이다. 그러나, 힐버트가 강조 했 듯이, 유 클 리드 기하학 의 추 상적이고 순 수히 논리저인 구성에서는 접 • 선 • 연 둥이 이러 한 한 가지 의도 된 해 석 과 연관 원 팔 요가 없다. 공리 들 에 관해서는, 수 학 자 들은 가능한 한 공 리 둘 안에 서 는 조금만 가정 하고, 그 들 로부터 가 능한 한 많 은 것 을 연 여해 내 려 한다. 비 록 수학자 들 이 공리 들을 구성할 때 그 것둘 이 물리 적으로 옳 은 것들을 주장할 수 있도 록 노력하지만, 그. 렇게 구 성된 공 리 들 이 무 모순이 아닐 위험이 있다. 죽, 그것 들 이 모순을 이 끌 어넬지도 모 른 다. 팟 쉬, 패아노, 프레게는 일찌기 이러한 위험성을 인 식했 으며, 힐 버 트 는 1900 년의 파리 수학자 대회에서의 연설에서 이 문재를 강조했다. 물리적 실재물 추상적 으로 구성하는 데 나 타날 수도 있는 걷함은 조잡 한 미유를 써서 간단 히 알 아 볼 수 도 있다 . 어떤 법죄가 있어 왔다고 하 자(많은 사 랍둘은 수학 이 범죄라 는 데 동의한 것이다)· 그 법죄 를 수사하는 형 사 는 범 인 • 법 행 시 각 둥의 무 정의용어 를 가지고 있다. 그는 그가 발 견 할 수 있는 사실 을 모 두 기 록 한다. 이것 들 이 그의 공리 둘 이 된다• 그. 란 두 1 에, 그는 그 범 죄에 관하여 무엇인가 전술 을 할 수 있게 되리라는 회망 아래 사 실을 연 역 해 낸다. 그는 서로 모순되는 추론 윤 하게 되는 수가 있는데, 그 이유는, 및 및 가정이 가능한 한 실제로 일어난 일에 근 거 했 다 하더라도, 그것 이상이거나 또는 그것에 근접한 것일 분이기 때 문 이다. 실 재의 물 리적 상황에는 모순이 있을- 수 없다. 범죄와 범인은 있었으나, 그의 생각에 범인의 키가 동시에 5 퍼트이면서 6 피트라고 추 론원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에 새로운 발전이 없었다면, 여러 가지 공리적 구조의 무모순성의 증명이 과연 중요한 문재로 간주되었을는지 의십스럽다. 1900 년까지는 수학자들은 수학에서의 무모순성운 확인하는 데 있어 더 이상 물리저 진 실에 의존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이전에 유 클 리드 기하학이 물리적 공간의 기하학으로 받아 들 여졌 을 때는, 유클리드 기하학의 정리 둘을 계 속 연역해 가면 모순이 나온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1900 년까지는 유 클 리드 기하학은 단지 사람이 만 든 20 여개의
공리들의 집합 위에 세워진 논리적인 구조일 분이라는 것이 인식되었으` 며, 신제로 모순되는 정리들이 갑자기 나타날 수도 있었다. 이 렇 게 된 다면, 이전의 많은 연구가 의미없는 것이 되어버리는데, 그 이유는 만 약 두 개의 모순되는 정리가 갑자기 나타난다면 r 둘 다 다 론 모 순둘을 이끌어내는 데 이용원 수 있 을 것이며 그 결 과로 얻어진 정리는 쓸모없 는 것이 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힐버트는, 만약에 산수 즉 실수계 의 논리적 구조가 무모순이라면, 유클 리드 기하학도 무모순 이라 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이런 가공할 가능성을 배재하였으며, 또 실수계의 무모순 성에 대해서는 논란도 간급할 것도 없었다 ( 8 장) . 그러나 눔 랍게도 r900 년 직후에, 수에 관한 지석윤 뒷받침해 주고 동 시에 확장해 준 이 론 에서 실제 로 모순이 발견되었다. r 9 04 년 까지는 탁 월한 수학자인 프 링샤임 Al fre d Prin g s heim (1850-1914) 이, 수학에서 추구 하는 진리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바로 무 모 순성 이라고 정확히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힐 버 트가 l9l8 년의 논문에서 그 문재를- 다시 한 번 강조했 을 때, 그는 r900 년의 그의 강연에서보다 그껑개 해야만 할 천씬 더 많은 이유 윤 가지고 있었다. 모순을 생기게 하고,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오레 된 분야에서의 모순 에 눈뜨 게 한새로 운 이 론은 무한집합의 이 몬 이었다. 해석학을 엄밀하게 하려면 수령하는―― 죽 그 합이 유한인一― 무한급수와 발산하는 무한 급수의 구벌을 고려해야만 했다. 급수 중에서도 푸 리에 Jos e p h Fourie r 에게 경의 룹 표 하기 위하여 푸리에 급수라고 부르는 삼각함수 들 의 무한 급수가 중요한 역 할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업밀하게 다 루 는 과정 에 서 생 긴 및 가지 의 문 둥 은 칸토르 Georg Canto r (1845-1918) 가 그것 을 해전하려고 시작한 매까지 미해결 상태였다. 그는 수의 집합에 대한 이 론을 연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는데 , 묵 히 , 홍수 전재 의 집 합, 유리 수 r 전체의 집합(양 또는 옵 OJ . 정수와 분수 전 체), 실수 전체의 집합과 갇은 무 한집합의 갯수 를 도입하게 되었다. 칸토르가 무한집합을, 인간의 정신으로 생각할 수 있는 실체인, 총체 로서 파악했다는 사실 자체가, 오태 동안 내려온 견해 물 깨뜨린 것이었 다. 아리스도덴레스 이후 수학자들은 대상들의 실무한 (actu a l in fi n it y) 과 가능한 무한 (po te n ti al in fi n iy ) 을 구번해 왔었 다. 지 구의 나이 룬 생 각해 보자. 만약 지구가 어떤 묵정한 때에 창조되었다면, 그 나이는 어느 빠 이돈 유한이지만, 한없이 증가한다는 의미로서 가능한 무한이다. (양의 )
정수 전재의 집합도, 만약 100 만에서 .::z..섰다고 하면, 또 하나 더, -E 머와 같 이 계 속 하여 생각할 수 있다는 뜻에서 역시 가눙한 무한으로 간 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만약 지구가 과거에 항상 촌재했었다면 그 나 이는 언재나 선무한이다. 마찬가지로 정수 전체의 집합도 전재로서 존 재하는 것으로 보면 실무 한이다. 무한집합을 실무한 으로 생각해야만 하느냐 또는 가능한 무한으로 생 각해야만 하느냐 하는 문재 에는 오렌 역사가 있다. 아리스 도델레 스.는 그의 저서 〈〈-판 리학》에서 이제 남은 대안은 무한은 가능한 존재성윤 가 진다는 것이다 .••• 실무한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전온지었 다. 그.는 수 학에서는 실무한은 팔요하지 않다는 주장윤 견지랬다 . 대부분의 그리스 인 둘은 무한을 인정할 수 없는 개념으로 간주하였다. 그것은 끝이 없고 결정되지 않는 어떤 것이었다. 후에는 많은 수학자둘이 무한을 어떤 수 처럼 이야기하연시도 그 - 개념을 밝히거나 그것의 성질을 확립해 놓지 않 았기 매문에, 이따금 논의가 어지럽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일러는 그. 의 저 서 《내 수학 》 Alge bra (1770) 에 서 (미 목 무한운 정 의 하지 는 않고 단지 00 라는 기호로 모 시 했지만) 1/0 이 무한 이라고 했으며, 그리고 나서 아무런 의 십 한 것 도 없이 2/0 가 1 /0 의 두 배 라고 했 다. n 이 OO 로 접 근할 때 1/n 의 국한은 0 이다”에서와 갇 은 상황에서 oo 라는 기호 를 사용했기 매 문 에 디 많은 혼란이 일어났다. 위에서의 OO 는 단지 1/n 과 0 의 차이가 원하는 만큼 작게 되 도 록 n 이 정 점 더 큰 값을 가질 수 있 다는 것 을 의미 할 분 이었다. 마라서, 실무한은 관련되어 있지 않다. 그러 나, 7J :란레 이 , 라이 프 니 츠, 코우쉬 , 가우스 등 대 부분의 수학자 둘 은 가능한 무한집합과 신무한집합을 분명히 구밀하고 있었고, 실무한 에 대한 생각을 거부하였다. oI] -문 들 어, 만약 그 둘 이 유리수의 집합에 대하여 말하였다면, .::z..둘은 그 집합에 갯수물 지정시키기 룹 거부랬을 것이다. 데카르트는 무한이란 인식인 수는 있지만, 이해 할 수는 없는 것이다”라고 말랬다 . 가우스는 1831 년에 슈마커 Schumacher 에게 보낸 편지에서 수학에서는 무한량이 어떤 최종적인 것처럼 사용되지는 않을 것 이 다. 무한이 란 만지 말하는 법 (faf 01 1 de pa rler) 일 분 , 어 떤 미 가 꾼 없이 증가하게 원 때 원하는 만큼 가까이 접군하여 가개 원 어떤 국한 을 의 미 한다”라고 썼다. 따라서, 칸도르가 신무한집합운 도입했을 때, 그는 과거의 위대한 수 학자들이 지녀온 개념에 반하여 그의 창조불운 전전시켜 나가야만 랬다.
그는 가능한 무한이 실재로는 논리적으로 우위에 있는 실무한에 의존해 1 있다고 논하였다. 그는 또 J了와 같은 무리수를 소수로 표현하면, 임 의의 유한소수는 단지 근사값일 뿐이므로, 무리수는 실무한과 관련된다 고 논하였다. 그는 자신이 선행자둘이 해온 것을 반 품 없이 깨뜨리고 있 다는 것을 인식하였고, 1833 년에 “나는 스스로, 멀리 알려져 있는 수 _ 학적 무한대에 관한 견해와 또 수의 본질에 관한 여러 사람 들 의 방어적 . 의견에 반대되는 어떤 입장을 취한다”고 말했다. 1873 년에 그는 무한집합을 총체로서 존재하는 것으로서 어떤 실체로 . 생각하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그것 들 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그는 연재 두 무한집합이 감은 갯수 또는 다른 갯수의 원소를 가지게 되는가 를 걷 정하는 정의를 도입했다. 그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일대일 대웅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갇이, 한 권의 체에 꼭 한 개의 공기 돌을 짝지 윤 수 있기 때문에 5 권의 객과 5 개의 공기돌은 똑같이 5 라는 수로 표 현원 수 있다. 그레서 칸토르는 일대일 대응을 무한집합에 적용시컸다. 이제 자연수 전체의 집합과 짝수의 집합 사이의 일대일 대응을- 다음과 · 갇이 만들 수 있다: I 2 3 4 5 ••• 2 4 6 8 IO ••• 죽 각각의 자연수는 그 수의 두 배인 단 하나의 짝수에 대응된다. 또한 각각의 짝수는 그 수의 반인 단 하나의 자연수에 대웅된다. 따라서, 칸 토르는 이 두 집합이 갇은 갯수의 원소를 가진다는 걷몬윤 내렀다. 이 대웅관계, 죽 자연수 전체가 그 집합의 일부분과 일대일 대웅이 된다는 · 사실은· 처옵에는 사상가들에게 불합리하개 여겨졌으며, 그들로 하여금 무한집합에 대한 모든 노력을 거부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칸 도르는 단념하지 않았다. 그는, 예를 들어, 사원수가 실수에서는 성립 하지 않는 새로운 법칙을 따를 수 있는 것처럼, 무한집합도 유한집합에 서는 성립하지 않는 새로운 법칙을 따를수있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사 실상 그는 무한집합운, 그 집합과 그 집합의 어떤 진부분집합이 일대일 대웅이 원 수 있는 것으로 정의했다. 실제로는 칸토르도 일대일 대응을 이용해 이끌어낸 결과에 대하여 눈 랐었다. 그는 직선 위의 접들과 평면 위의 접들(더 나아가 n 차원 공간의 · 정둘)이 일대일로 대응된다는 것을 보이고, 1877 년에 데데킨트에게 보반.
편지에서 “나는 그것 을 발견 했 지만, 믿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그 . 는 사실 그것 을 믿었으며, 무한집합 둘 이 대동하다는 것올 보이는 데 일 대일 대응의 원 리 를 고집 했 다. 칸도로 는 또 어떤 무한 집합 이 다 몬 무한집합보다 크다는 것이 무슨뜻 인 지를 정 의하였다. 만약 집합 A 가 집 합 B 의 어떤 부분 집합과 일대일 대옹이 되지 만, 집 합 B 가 집 합 A 나 집 합 A 의 부분집 합과 일대일 대 웅이 되지 않을 때 , 집 합 B 는 집합 A 보 다 크 다. 이러한 정의는 유한 집 합에 서 는 당연한 사 실을 무한집 합까지 확 장 한 것 에 불 과하다. 만약 ; 개 의 공기문과 7 권 의 객 이 있 다면 , 공기둥 과 책들 중 및 권 사이의 일 대 일 대응 관계룹 만 들 수 있 다. 그러 나 모 든 체 에 공 기 둥을 일대일로 대 웅시킬 수 는 없 다. 칸 토르는 그 가 내란 대 응 성과 크다는 것 의 정의 를 이용 해서 , 자 연수 전 체 의 집합 이 유 리 수 전 체 의 집합과 대 등 하지만, 살 수(유리수와 무 리 수) 전 체 의 집 합보다는 작다는 눈 라운 절과 픕 얻었다. 유한집합에 대 하여 원 소의 갯수룹 나타내는데 5, 7 , IO 동 의 수의 기호 을 쓰면 편 리 한 것처럽 칸토르 는 무한집합 의 원 소의 갯수 륜 나타내는 데 기 호 를 사 용하기 로 했 다. 자 연수 전체 의 집합이나 그것과 일대일로 대 옹되 는 집 합은 원소의 갯수가 감 으므로, 이 수 를 ~o ( 알 레 프 널 alep h -null) 로 표시하 기로 했다. 하지만 실수 전체의 갯수는 자연수 전체의 갯수보 . 다 크 다는 것이 증 명 되었으 므 로 그 는 이 수 를 새로운 기호 C 로 표시하 기로 했 다. 더구나, 칸토르는 임의로 주 어진 집합보다 머 큰 집합이 항상 촌재한 다 는 것 을 보일 수 있었다. 즉 , 주어진 집합의 부분집합 들 전체의 집합 은 항상 원래의 집합보다 크다. 우리는 이 정리 를 증명하려 하지는 않 으나, 이 정리가 타당한 것인가는 유한집합을 생각하여 보면 알 수 있 다. 만약 원소가 4 개인 집합이 있으면, 원소가 1 개인 부분집합이 4 개, 원 소 가 2 개인 부분집합이 6 개, 원소가 3 개인 부분집합이 4 개, 원소가 4 개인 부분집합이 1 개 있다. 여기에 공집합까지 생각하면, 부분집합 전 체 의 수가 군이라고 간견하게 말할 수 있다. 또 군온 당연히 4 보다 크다. 칸토르는 묵 히 자연수 전체의 집합에서 가눙한 모든 부분집합을 생각해본 걷과, 실수 ,전체의 집합의 수 C 가 2 '과 같다는 것을 보일 수 있었다. 칸토르가 1870 년대에 무한집합에 관한 연구 문 시작하였을 때와그후 한동안은, 이런 이론은 지연적인 것으로 간주륄 수도 있었다 . 그가 증-
명한 상각급수에 관한 정리울은 초보석인 것이 아니었다. 그러냐 1900 년까지는 그의 집합론이 수학의 다른 분야에 중요하게 적용되었다. 그 리하여 칸토르와 데데킨트는 집합론이, 수(유한 또는 초한)의 이론 을 새 우는 데, 또 곡선과 차원의 개념을 분석하는 데 유용하며. 더구나 모든 수학의 기초룹 제공한다는 접에서조차 유용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보텔과 르벳구 Henri Lebesg u e (1875-1941) 감은 다른 수학자 들은 이 미 칸 도르 의 무한집합의 이론에 기반을 둔 적분의 일반화 를 연구하고 있었다. 따라서, 칸토르 자신이 난접을 발견했을 때 이는 사소한 문제일 수가 없었다. 그는 이미 한없이 큰 초한집합과 그에 대응되는 초한수가 촌재 한다고 밝혔다. 1895 년에 칸토르는 모든 집합둘의 집합운 고리하려 하 였다. 이 집합에 대응하는 갯수는 촌재할 수 있는 수 중 가장 문 것이 어야만 했다. 그러나, 칸토르는 주 어진 집합의 부분집합둘- 전체에는 원 래 주어진 집합보다 큰 (초한)수가 대웅된다고 이미 증명했었다. 마라 서, 가장 큰 수보다 더 큰 초한수가 만드시 촌재하여야만 한다. 칸토르 는 그때 그가 무모순집합과 오순집합이라고 부르던 것윤 구만해야만 한 다고 걷론짓고, 1899 년에 데데킨트에게 편지로 알렀다. 죽 , 모든 집합 의 집합이나 그 갯수는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럿 셀 Bertr a nd Russel 이 처 움으로 집 합들 전체 의 집 합에 관한 칸도르의 전론과 마주쳤울 때, 그는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는 1901 년의 한 논문에서, 칸토르가 “아주 미묘한 잘못을 범했움'’에 등림없 으며, 다음 에 쓰는 굳에서 이에 대한 설명을 하고 싶다”고 앴다. 그는 만약 모든 것을 다 모은다면 더 이상 할 것이 없기 매문에, 최대의 초한집합이 존 재해야만 한다는 사실은 명백하다고 덧산였다. 럿셀은 이 문제를 십사 숙고해 보았고, 그 당시의 문제정들에 그 자신이 얻은 역리'’(p aradox) 붙 덧붙였는데, 이에 대하여는 잠시 후에 다루기로 한다. 16 년 후에 럿 셀 이 그의 《신 미 주의 와 논리 >1 vf yst i cis m and Log ic 에 둘어 있 는 논문의 재판을 냈윤 때, 그는 그의 신수문 사과하는 각주풀 달았다. 지 금까지 말해 온 초한수는 초한기 수(t rans fi n it e cardin a l number) 라는 것 인데 칸토르는 이 에 이 어 초한서 수(t rans fi n it e ordin a l number) 를 도입 댔 다. 그- 차이는 약간 미묘하다. 예를 들어, 100 원 짜리 동전들의 모임이 있다면, 으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어잉게 배연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전채의 갯수이다. 그러나 만약 학생들을 시험 성적에 따라 동수를 매길 겅우에는 첫째, 둘째, 세째 둥이 있다. 예를 들어,
그 0 명의 학생이 있다면, 그들의 등수는 첫째에서 열째까지의 수의 집합 올 이우게 되는데, 이것이 서수들의 한 집합이다. 비록 어떤 고대 문명 에 서 는 기 수 (card i nal numbers, 야 rd i nals) 와 서 수 (ord i nal numbers, ordin a ls) 를 구밀했 음에도 불구하고 , 그들은 10 개의 대상들의 순서집합과 순서 룬 생각하지 않은 집합에 대하여 같은 기호 를 써서 나타내었다. 이러한 관습은 우리 들 의 문영을 포함한 뒤의 문명에서도 계속되었다. 그리하여 열번째 사람까지 순서지어진 다움에는, 그렇게 순서지어전 사람둘의 수 는 역시 10 이므로, 연 개의 원소의 순서집합이냐 순서가 없는 집합이나 모두 IO 으로 표시된다. 그러나, 무한집합에서 는 기수와 서수의 구분은· 데우 중요한 걷과를 가져오게 되므로 서로 다른 기호를 써서 나타낸다. 즉 I,2,3, •••의 차례로 되어 있는자연수 전체의 무한집합의 서수를 칸 토르는 o 라는 기호로 나타내었다. 따라서, 순서집합 I, 2, 3, • • •, I, 2, 3 은 w+ 3 으로 나다낸다. 칸토르는 초한서수들의 서 일울 도입했는데, 이 서인은 W, W•(J J, (JJ , (JJ”, 및 그 이상으로 확장되었다. 초한서수에 관한 이 론을 세운 뒤인 1895 년에 칸토르는 이 서수 들 에도 역시 난접 이 있옵울 인식했고, 그래서 같은 해에 힐버트에게 이 . 사실을 알렀다. 1897 년에 부탄 리 포르티 Cesare Buroli -F orti (1861-1931.) 가 처음 으로 이 난접을 공표하였다. 칸토르는 실수들이 그 크기에 따라 순서가 정해지 듯 이, 서수들의 집합도 어떤 적당한 방법으로 순서지어질 수 있 을 것으로 믿있 다. 그러나 초한서수에 관한 정리 하나는 임의의 서수 a 이하의 모든 서수 전체의 집합은 a 보다 크다는 것이다. 따라서, 서 수들의 집합 1, 2, 3, …, CJ)의 서수는 CJ)+ I 이다. 그러므로, 모돈 서수 둘의 집합은 그 집합에서 가장 큰 서수보다 더 큰 서수 를 가져야만 한 다. 실재로, 부할리 포르티는, 최대의 서수에 I 운 더함으로씨 더 큰 서 수릅 얻을 수 있옵운 알았다. 그런데, 그 집합은 모돈 서수 둘을 다 포 함하기 때문에 이는 명백히 모순이다. 부할리 포르더는 서수들- 사이에 논 단지 반순서 (pa rti al order) 만이 가능하다고 결론지 었 다. 만약 이 두 가지 난겁 밖에 없었다면, 대부분의 수학자 듄은 19 세기 말의 수학의 업밀화가 창조한 낙원에서 사는데 만족했운 것임에 문럽없 다. 가장 큰 초한기수나 초한서수가 촌재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문재는 잊어버렀을 것이다. 걷국, 가장 큰 자연수는 없는 셈이 되며, 이 사신
온 아무도 괴롭히지 않는다. 그러나, 칸토르의 무한집합에 관한 이론은 거센 반발울 일으켰다. 이’ 미 이야기한 것처럼, 이 이론이 수학의 여러 분야에서 이용되고 있었음 에도 불구하고, 어떤 수학자등은 아직 실무한집합과 그 것 의 옹용 을 인 . 정하지 않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도 칸 토 르 룹 싶 어 랬던 크 로넥커 Leop o ld. Kronecker 는 칸토르룹 허 풍 쟁이라고 불 렀다. 프 앙카레는 무 한 집합의 이 . 론이 십각한 병패이고 병리학적이라고 생각했다 . 1908 년에 그 는 후 세 사람-동은 집합론이 이재 막 치료된 명으로 생 각할 것이다 라고 말하였 다. 1920 년대 에 와서 조차도 그밖의 많은 수학자들은 초 한 수룬 이 용하 _ 는 것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10 장). 칸토르는 자기의 업적 을 변호했다. 그는 자신이 풀라돈주의 자이 고 인간과는 무관한 객 관 적 인 세 계 에 촌재 하는 아이디어 봅 믿는다고 말했다. 이 같 은 아이디어의 실 재를 인 식 하기 위하여는 이들 아이디어 룹 생각하기만 하면 족 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철학자둘의 미 판 에 맞서기 위해서 형이상학과 신까지 들 고 나왔었다. 다행히도 칸토르의 이론은 다몬 사람 들 에게는 환잉 을 받았다. 럿셀은 칸도르 를 19 세기의 위대한 지성인 중 한 사람으로 기 술 했다. 1910 년에 그는 ”이전에 수학적 무한을 둘러싸고 있던 난정의 해 결 은 아마도 우리 시대가 자랑해야 할 가장 위대한 업적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 인 버트는 “아무도 칸토르가 우리 를 위해 만 들 어 놓은 낙원에서 우리 뭉 내 물 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또한 1926 년에 칸도르의 업적에 관하여 “나에게는 이것이 수학적 지성의 가장 아 름 다운 꽂이며, 또 순수한 이 성적 인간 활동의 최고의 성취로 여겨진다”라고 말했다. 집 합론에 의 해 야기 되 었 던 논쟁 의 이 유는 하우스도르프 Felix Hausdorff 가 그의 저서 《집 합론의 기 초》 Foundati on of Set Theory (1914) 에서 재치 있게 묘사하였는데, 그는 집합론을 “그 안에서는 아무것도 자명하지 않 으며, 그것의 옳은 진술은 흔히 역선적이고, 그럴듯한 진술은 거짓인 분야라고 복칭지었다. 그러 나, 대 부분의 수학자들은, 여 러 가지 크기 의 무한집 합을 전적 으 . 로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유로, 칸토르의 업적의 견과· 로 혼란을 겪었다. 칸토르가 모든 집합들의 집합과 모든 순서수들의 집 합에 수를 대웅시키려다가 발견한 모순 때문에, 수학자들은 그들이 새 · 로운 창조에서문 아니라 찰 확립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던 오래된 수학 一 에서도 이와 비숫한 개념을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
다. 그 들은 이 같 은 모순 (co ntr a dic t i on ) 들울 역 리 (pa radox) 들 이 라 부르는 · 편을 덱했는데, 그 이유는 역리는 해걷킬 수 있다는 것이었으며, 또 수 학자들은 이 들 역리가 해질인 수 있는 것으로 믿기-흥 원했다. 오늘날훈 · 히 쓰이 는 전문용어 로는 이 윤배 반 (anti no my ) 이 다. 이 들 역리 중 및 가지 운 등어 보자. 미수학적인 예로는 “모든 규칙에 · 는 예외가 있다라는 명재가 있다. 이 명재 또한 규칙 이므로 예외가 있 다. 그러므로 예외 없는 규칙이 있게 된다. 이 런 명재둘은 그 자신에 관하여 언급하면서 또 그 자신을 부정 한다. 가 장 널리 알려진 비수학적인 역리는 거짓말장이의 역 리(th e liar par a- dox ) 이다. 이 것은 아리스토델레스와 그 후의 많은 논리학자들-에 의하여 토론되었다. 고전적인 형대는 ”이 문장은 -문 란 것 이다”라는 문장에 관 한 것이다. 이 문장을r S 라 나타내자. 만약 S 가 옳 다면, 그 문장이 말 하는 것이 옳다 . 즉 S 는 등 란 것이다. 만익 , S 가 윤렀다면 , 이는 그: 문 장이 말하는 바와 같다. 그레서 S 는 옳은 것 이다. 이 역리의 년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어떤 사람이, 아마도 그-가 말한 어연 주장에 관하여 나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나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진술은 참 인가, 거짓인가? 만약 실 재로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그는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 되고, 만약 그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면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된다: 다론 변형으로는 달 칙접적으로 자신을 이끌어 둘 이는 것에 관~ 것이다. 두 문장, 다 옹 문장은 문렀 다. 앞의 문장은 옳 다도 역시 모 순을 포함하고 있 다. 왜 냐 하면, 두번째 문장 이 옳다면, 앞의 문장에 서 둘째 운장 이 듄 란다고 했고, 또 두번째 문장이 를린다면 , 앞 문장이 맡 한 바와 갇으므로, 두번째 문 장이 옳게 된다. 금세 기 의 주요한 논리 학자인 괴 델 Kurt Godel (1906-78) 이 위 의 모순과 약간 다 몬 예 를 들었다: 1934 년 5 월 4 일에 A 라는 사람이 다음과 감 은 단 한가지 전술 을 겠다. “1934 년 5 월 4 일에 A 가 하는 말은 다 뭉 린 것이다.” 이 진 술은 옳을 수가 없다. 왜냐 하면, 그것은 그 자신에 대하여 옳지 않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문장은 거짓일 수도 없 다. 왜냐 하면, 거짓이 되기 위하여는, A 는 5 월 4 일에 맞는 진술을 · 랬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위의 단 한 진 숟 만 랬던 것이다. 참으로 다루기 어 려 운 수학적 모순의 첫 째 것 은 럿 서~ Bertr a nd Russeb (1872-1970) 이 제기했고, 이것이 1902 년에 프레게에게 전해졌다. 그. 당
시에 프레게는 수체계의 기초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건설하려던 그 의 처 서 《기 본 법 칙 >F undamenta l Laws 의 재 2 권을 막 출간하려 하고 있 었다(다음 장에서 이 접근에 대하여 더 이야기할 것이다). 프레게는 집합 또 는 류 (closs) 의 이몬을 이용하였는데, 그것은 럿셀이 그에게 보낸 편지에 서 지적한 바로 그 모순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이 모순은 럿셀의 《 수학 의 원리 > Prin c iple s of Math e mati cs (1903) 에 실 려 있 다. 럿 셀은 칸토르의 모든 집합의 집합이라는 역리에 대하여 연구한 뒤에 그 자신의 것을 만 들어 내었다. 럿셀의 역리는 모임(류)에 관한 것이었다. 책들의 모임은 객 이 아니 므로, 그 자신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디어의 모임은 아이디어이 므로, 그 모입에 속할 수 있다. 또 목록들의 목록은 목록이다 . 그러므 로, 어떤 모임은· 그 자신에 속하고, 또 어떤 모임은 .::z. 자신에 속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에 속하지 않는 모임 들 전체의 모임 N 을 생각해 보 자. N 은 어디에 속할까? 만약 N 이 N 에 속한다면 , N 의 정의에 의 · 해서 N 은 N 에 속하지 않아야 한다. 만약 N 아 N 에 속하지 않는다면 · 마찬가지로 N 의 정의에 의하여 N 은 N 에 속해야 한다. 럿셀이 처음 ·이 모순을- 발견했을 때는, 수학 자체라기보다는 논리학의 어디엔가 난 첨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이 모순은 수학 전반에 걸쳐 사용되고 있는 개념인, 대상들의 모임이라는 바로 그 개념을 강타한 것 · 이다. 힐버트는 이 역리가 수학의 새겨 1 에 카국적인 잉향을 미찬다는 사 실에 주목했다. 럿셀의 이율배반은 1918 년에 럿셀 자신에 의하여 대중적인 형태로표 · 현되 었 는데 , 이 것 은 이 발사의 역 리 (the barber pa radox) 로 알려 져 있 다. 한 마을의 이말사가, 자기는 마 을 사람둘 중 스스로 면도 를 하는 사람 은 아무도 면도 윤 해 주지 않지 만 자기 스스로 면도를 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면도을 해준다고 광고 를 겠다. 문론, 그 이발사는 아무도 그와 겨 눌 사람이 없다고 자랑을 랬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면도 를 스스로 하 는가 하는 질문을 받게 되었다. 만약 그가 스스로 한다면 강고의 앞부 분 __ 죽 스스로 면도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면도 를 해주지 않는다―― 예 의해 그는 면도를 스스로 하지 않아야 한다. 또 만약에 스스로 하지 않는다면, 그가 스스로 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면도를 해준다고 자랑한 것에 따라, 그는 스스로 면도를- 해야 한다 . .::z. 이발사는 논리져 곤정에 마전 것이다 .
수학에 있 어 서 의 또 다온 대 표적 인 역 리 는 1908 년 수학자 그델 링 Kur t Cur t Grell i ng (1886-1941) 과 넬슨 LeonardNelson(1882-19:?7) 에 의해 처음 서술되었다. 이 역리는 스스로를 묘사하기도 하고 하지 않기도 하는 항 용사에 관한 것이다. 즉 짧은 영어 형용사는 자신을 묘사하거나 자신에 적 용되 지 만, 긴 프랑스어 형 용사는 그러 하지 않다. 마찬가지 로, 다-음절 (po llys y ll abic ) 이 라는 형 용사는 다음전 이 지 만, 단음절 (monosy ll abic ) 이 라는 형용사는 단옵절이 아니다. 따라서 모든 단어는 스스로에게 적용되거나 ` 적용되지 않거나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 옳은 것처럼 보인다. 스스로에 게 적 용되 는 형 용사를 자논리 적 (au to log icn l), 그렇 지 않은 것 을 이 논리 적 (hc tc r olog ica l) 이 라 부르기 로 하자. 이 재 이 논리 적 이 라는 단어 자체 를 ` 생 각해 보자. 만약 이논리적이라 는 형용사가 이논리저이면, 그것은· 스` 스로에 적용되므로 자논리적이다. 그러나 만약 이논리적이라는 형용사 가 자 논 리적이라면, 자논리적이라는 말의 정의로부터 그 자신에 적용되 므로 ”이논리적'’은 이논리적이다. 그러므로, 그 단어에 대한 어떤 가장 도 모순윤 이꿀어 낸다. 기호로 이 역리 문 나타내면, X 가 X 가 아나 면 X 는 이논리적이다.” 1905 년에 리샤르 Jul es Ri ch ard (1862-1956) 는, 칸토르가 자연수 전체의 · 집합보다 실수 전체의 집합이 크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썼던 것과 똑7J' 은 철차 를 이용하여 또다른 여리를 재시했다. 그 논법은 약간 복잡한데 같은 모순을 보들리 안 Bodleia n 도서 관의 매 리 G. G. Berry 가 단순화된 항 태로 나타냈다. 이것은 럿셀에게 전해져, 그가 l9o6 년에 공표하였다. 이 것 은 단어 의 역 설 (word par adox) 이 라 불리 운다. 모든 자연수는 단어 ’ 둘을 씨서 여 러 가지 방섭으로 묘사원 수 있다. 죽, 5 를 다섯”이 타는 . 말 또는 4 다음의 정수라는 말로 나타낸 수 있다. 이계 l00 개 이하의 영어 알파벳으로 가능한 표현을 생각해 보자. 이때 기껏 많아야 27100. 의 표현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27100 의 표현 방법으로 나타낼 수 있는、 수는 유한하다. 따라서 자연수 중에 는 27100 의 표현 방법으로 나타넬 수 없는 수가 반드시 존재한다. “IO0 개 이하의 알파벳으로 나타낸 수` 없는 가장 작은 수” (the smallest number not describ a ble in 100 lett er s or fe wer)를- 생각해 보자. 이 수는 위와 갇이 IO0 개 이하의 알파벳으로 나` 타낸 수 있다. 1900 년대 초의 많은 수학자들이, 당시에는 새옵고 변두리에 있던 집: 합론에 관련되었다는 이유로 위와 같은 역리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음 .•
예 반하여, 이 역리문이 고전적인 수학분만 아니라 일반적인 추론에도 잉항을 준다는 것을 인식한 다본 사람 들은 혼란을 겪었다. 몇몇 사람 들 은 제 임 스 W ill ia m Jam es 가 그의 저 서 《신 용주의 >P rag m ati sm 에 쓴 오 순에 부딪칠 때마다 구밀을 해야 한다”는 말에서 어떤 도움 을 얻으려 겠 다. 램 지 Frank Plump to n Rams ey ( 1903 - 30) 률 미 못한 몇 몇 논리 학자들은 어 의 에 관한 (sem ant ic) 모순과 참된 모 순 죽 논리 적 모 순을 구멀하려 고 겠다. 그 룹은 말의 역리' ’, ”이 논리적 인 역리, 거짓말장이의 역리 둥 윤 어의에 관한 오순이라 불렀는데 , 그 이유는 그들이 참이나 정의 가능 성 갇은 개념 또는 단어의 모호한 용법에 관련 되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러한 개념 물을 정확히 정의하고 , 그에 따라 사용한다면, 위와 간은 역 리는 해결원 것이다. 반면에 럿셀의 역리 , 칸도르의 모 든 집합들의 집 합에 대한 역리, 부 할 리 포르티의 역리는 논 리적 모순이라고 생각되었 다. 럿셀 자신은 이러한 구분을 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역 리 는 그가 순환법의 원리라고 불렀단 오 유에서 야기된다고 믿었다. ::J.. 오 류룹 그 는 다음과 같이 기 술했다 : “ 한 모임의 무 등 원소를 포함하는 것은 무엇 · 이든지 그 모임의 한 원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서 , 만약 어 떤 대상들의 모임욥 정의하기 위해서 그 모임 전체문 이용 해야 한다면 , 이 런 정의논 무 의미하다. 1905 년에 럿셀이 이 멍게 선명한 것을 1906 년 에 프앙카레 가 받아들였 다. 또한 후자는 미 서 술적 정 의 (im p r edic a ti ve deli - , n iti on) 一그 안에 서 한 대 상이 정 의 원 대 상을 포함하는 대 상 들 의 모임 (class) 를 써 서 정 의 (또는 기 순) 되 어 진 것 ――·라는 용어 -간 만 둘 었 다. 이 러 한 정의는 불합리하다. 《수학 원리》 Prin c ip ia Ma t hema ti ca(10 장)에서 럿센 자신이 만든 예 춘 생각해보자. 배중 뮬 은 모 든 명재는 참이거나 거짓이라고 말한다. 그러 나 그 자신도 명재이다. 마라서, 그 의도가 논리의 참된 법칙을 확실히 해 주는 데 있다 해도 그것은 명재이고, 따라서 그것 역시 거짓일 수가 있다. 럿셀이 선명한 것처럼, 배중문의 진술하는 바는 무의미하다. 다른 및 가지 예들은 도움이 월 것이다. 전능한 촌재는 불멀의 대상 윤 창조해 낸 수 있을까? 그는 전지전능하니까 물론 그렇게 할 수 있 욥 것이다. 그러나 그가 전지전능하다면 그는 어떤 대상이든지 파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예에서는 전지전능하다는 단어가 부적당한 전체 ·에 걷쳐 있냐 논리학자 타르스키 Alfr ed Tarski 가 지적했듯이, 그러한 터리들은 비목 어의적인 것이기는 하나, 언어 자체에 도전한다.
그 밖에도 역리들-을 해결하기 위한 많은 시도가 있었다. “오돈 법칙 에는 예외가 있다”에서의 모순은 몇몇 사람들에게는 의미 없는 것으로 무시되었다. 그리고 ”이 문장은 네 만어불 포함한다 ”(Th i s sen te nce con- ta in s fou r word s) 라는 문장과 갇이 논리적으로는 의 미 가 없거 나 룹렀지 만 문법적으로는 맞는 영어 문장들이 있다고 그들은 부언한다. 아찬가지로 원래의 럿 셀의 역리는 자기 자신을- 원소로 가지지 않는 모임접· 전제의 모임은 의미가 없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일소되었다. ”이발 사의 역리는, 그런 이 발 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거나, 그 가 면도 을 해 주 는 또는 안 해주는 사람둘의 모임에서 그 자신을 제외시 킴으로써 해견되었다. 이는 마치, 선생이 그 수업에 참석한 모든 사 람 을 가 르 친다는 진술에서, 그 자신을- 재외하는 것과 꼭 같다 . 럿셀은· · 이같은 선 명 을 거부했다 . 럿셀이 1908 년의 한 논문에서 밝있듯이 간 코 를 가전 사람과 이야기함에 있어서, 가령 내가 코에 관하여 말할 때 미 정상적으로 간 코는 재외한다'’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하는 것 은 고 동 스런 주재 를- 피하기 위한 성공적인 노력이 원 수는 없다. “모 든 (al l) 이 라는 단어 는 사실 모호하다. 및 및 사람들에 따르면 및 가지 어의에 관한 역리는 “모든이라는 단어 때문에 나온다. 부할리 포 르티의 °우리는 모든 서수들의 모임에 관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모임 은 모임 전체에 대응하는 서수를 포함하는 것일까? 마찬가지로 이논리 적인 역리는 단어의 모임을 정의한다. 그· 모임에 ”이논리적이라는 단 어 자신이 포합원까? 비서술적 정의에 대한 럿젤과 프앙카레의 반대는 널리 받아들여졌다. 불행하개도 그러한 정의는 고전 수학에서 쓰여 왔다. 가장 관십울 일으. 키 는 에 는 최 소상계 (lea st up pe r bound) 의 개 념 이 다. 3 과 5 사이 의 모든 수둘의 집합을 생각해 보자. 상계란 그 집합의 가장 큰수보다 더 큰수 로서 , 예 봅 등면 5, 5 2/1, 6, 7, 8 동이 다. 이 중에 서 5 는 최 소상계 이 다 . . 그래서 최소상계는 정의되고 있는 자신을 포함하는 상계들의 모임을 써 서 정의되어진다. 비서술적 정의의 또다른 예는, 주어전 구간에서의 함 수의 최대값에 대한 정의이다. 최대값은 그 구간에서 함수가 취할 수 있는 값 중에서 제일 큰 값이다. 최소상계와 최대값의 개념은· 모두 수 학에서는 기본적인 것이고, 해석학의 많은 부분이 이 개념들에 의존해 있다. 그밖에도, 많은 비서술적 정의가 그밖의 수학적 문장에 쓰여지고 있다.
비목 II1 서술적 정의가 모순을 일으키는 여러와 관련되어 있기는 하지 만. 수학자들은 그들이 아는 한 모든 ti 1 서술적 정의 들 이 모순을 일으키 는 것 감지는 않기 때문에 당황하게 되었다. “촌은 그의 님에서 가장 크다나 ”이 문장은 짧다와 갇은 진술들은 비목 ti 1 서술적이지만 분명 히 옳은 말이다. “1, 2, 3, 4, ) 중에서 가장 큰 수는 5 이다라 는 진술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비서술적 문장은 흔히 사용된다. 이재 원소가 5 개 보다 많은 모든 모임 들의 모임 을- 정 의 한다면, 자기 자신을 포함하는 오 임도 정의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최대한 25 개 이하의 단어로 정의할 수 있 는 모든 집 합들의 집 합 S (t h e set S of all sets defi n able in 25 words or less) 는 3춘 포함한다. 수학에 이 러 한 정 의 들 이 많다는 것 은 상 으로 눈라운 일이다. 불행하게도, 어떤 미서 술적 정의가 모 순을 일으키는가 또는 일으키지 않는가를 결정할 수 있는 판정법은 없다. 따라서, 모순 을- 일으키는 미 서술적 정의들이 더 발견되어질 수 있 는 위협성이 존재한다. 이 문제는 · 체르멜로 Erns t Zermelo 와 프앙카레가 처옵· 논의하기 시작댔년 바로 그때 부터 시급한 것이었다. 금세기 전반의 지도저인 수학자였낸 바일 Her-mnnn We y l 은, 및및 마서술적 정의들이 정말 모순을 일으키는가에 관십 욥 두었고, 최소상계의 미서술적 정의 를 피하기 위하여 그 정의를 다론 말로 바꾸려고 상당히 노력했었다. 그러나 그는 성공하지 못랬다. 그는 · 불안하게 되었고. 해석학의 기초는 잔 되어 있지 않으며 해석학의 많은 부분이 회생원지도 모른다고 결론지었다. 럿셀의 집합·윤 전정하 기 위 한 조건을 임의의 것으로 허용한 수는 없으며, 마라서 그 렇 게 형성된 집합을 다른 집합들의 원소로 무조건 허용한 수도 없다”는 겅고도, 분 명히 어먼 미서술져 정의가 허용원 수 있느냐 하는 문재상 해결하지는 못한다. 모순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원인은 명백해 보이지만, 그것듭 을 배제하 · 기 위해서는 수학을 어멍게 전선할 것인가, 그리고 미 중요한 것은 새 로운 모순이 생길 수 없다고 어영개 확신하는가 하는 문재가 남게 되었 다. 이재 우리는 왜 1900 년대 초에 무모순성의 문제가 그렇게 다급했 느냐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 수학자들은 그 모순을 집합론 의 역리라 했다. 그러나, 집합론에서의 연구는 고전 수학에 있어서조차 · 가능한 모순돌에 그둘의 눈윤 뜨게 하였 다. 수학의 기초몹 견고하게 하터는 노력 중에서도, 무오순성을 확립하려 I
는 것이 가장 팔요로 하는 문재가 되었음이 확실하다. 그러나 1900 년 대 조 에, 그때까지 얻어전 전과를 확실히 한다는 관접에서 보아, 그에 못 지 않게 중요한 다른 문재물이 인 식 되었다. 19 세기 말엽에는 미판적 정신이 더욱 날카로와졌고 수학자 들 은 이미 인정되어 오던 모든 것윤 재 검도하였 다. 그 들은 이전의 많은 층명에서 벌 주의없이 이용되었던, 보. 다 등립 이 없 어 보이는 한 주장에 관심운 가졌다. 이 주장은, 유한이돈 무한이돈, 임의로 주어전 집합들의 모임에 대하여 각각의 집합에서 한· 원소씩 을 뽑 아 새로운 집합을- 만 둡 수 있다는 것이다. 예 를 들면, 미국- 50 개 주의 모돈 국민 중에서, 각 주 에서 한 사람씩을 뽑아 새로운 집 단 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1904 년에 발표된 체르벨로 Ernst Zcrmelo (1871-1953) 의 논문에서, 위의 주장이 선은 선출공리 (ax io m of cho i ce) 라는 공리 를 가정 하고 있 다는 사실 이 인 석 되 자 수학자들은 깊은 인상 을 받았다. 여기에 관련된 역사몰 삼 켜 보자. 칸도르는, 그의 조 한 수들 의 크 기 에 따라 순서 를 정 할 수 있으려 만, 싣수들의 임의의 집합이 정 현 가능하다는 정리가 팔요했다. 어떤 집 , 합이 정 밀집 합이 되 려 면 우선 순 서 집 합 ( ordered se t)이 되 어 야 한다. 순서 집합이란, 정수 전체의 집합과 마 찬가 지로. a,b 가 그 집합의 원소일 때 a 가 b 보다 앞에 있거나, b 가 a 보다 앞에 있어야 하고, 또 만약에 a 가 b 에 앞서 있고, b 가 c 에 앞서 있으면 a 가 c 에 앞서 있어 야 : 한다는 뜻이다 . 순서집합이 정렬집합이 된다는 것은. 어떻게 골라냈든 간에 임의의 부분집합이 순서상 첫째 원소를 가져야 된다는 뜻이다. 그 러므로 자연수 전체의 집합은 정 렬집합이다. 실수 전체의 집합은 보동 의 크기 순서로는순서집합이지만정 텔 집합은 아니다. 왜냐하면, 0 보다 큰 실수 전체로된 부분집합은 첫째 원소 를-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정털 집합이라는 개념은 1883 년에 칸토르에 의하여 도입되었는데, 칸토르는 (새로운 순서 운 중으로써) 모든 집합은 정면집합으로 만둘 수 있다고추축 하고, 그것울 증명하지 않은 채 사용하였다. ' 우리가 이미 알다시피, 힐 버트는 그의 1900 년의 수학자 대회의 강연에서 실수 전체의 집합이 정 런이 되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문제물 재기했다. 재르멜로는 1904 년에 모든 집합이 정련화뭘 수 있다는 것울 증명했는대, 그는 그. 증명에서 그가 선출공리를 사용랬다는 사실에 주의를 환기시켰다. 과거에도 그레왔듯이, 수학자들은 무의식적으로 어떤 공리문 이용하 다가 한참 후에야 그들이 그 공리불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윤 인식할 분-
아니라 그 공리룹 받아들이는 근거물 생각하게 되는 일이 많았다. 칸토 르는 1887 년에, 임의의 무한집합은 기수가 ~o 인 부분집합을 가진다는 것옵 증명하는 데. 아무 생각없아 선출공리를 이용랬다. 또한 선출공리 는 위상수학 • 측도론 • 대수학 • 함수해석학의 많은 증명에서 암암리에 쓰 여져 왔다. 한 예로, 실수들의 한 부분집합이 유계일 때 그 집합의 국한 정 (li m i t p o i n t )으로 수령하는 수연을- 고 를 수 있다는 것울 증명하는 데 에 이용왼다. 또한, 그것은 페아노의 자연수에 관한 공리계로부터 실수 봅 전선하는 데에서도 이용 된다 . 이 매, 자연수의 집합의 공리계는 가 능한 한 가장 근본적인 것으로 쓰여지고 있다. 또다른 용도는 유한집합 의 'i1 집 합(p ower set ) , 즉 유한집 합의 부분집 합 전재 가 이 루는 집 합이 유 한집합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 1923 년에 안버트는 이 공리가 수 삭적 추론의 첫번째 단계부터 꼭 판요하고 대놓윤 수 없는 일반 적 인 원 리라고 기 술했 다. 패아노는 처옹으로 선·총 공리에 주의문 환기시컸다. 1890 년에 그는 많 은 모임둘의 각 모임에서 한 원소씩을 뽑아내는 임의 의 멉칙 을 무한번 적용할 수는 없다고 썼다. 그가 다무고 있던 문 재(미 분방정식 의 저분가능 성)에서 그는 분명한 선출 법칙윤 제시했고. 그래서 그 난정을 해전했 다. 이 공리 가 이 런 식 으로 이 해 된 것 은 1902 년에 레 미 Bepp o Levi 에 의 대 서 였고. 이 는 수 1 미 트 Erhardt Schmi dt 에 의 하여 1904 년에 체 르엘로 에개 알려졌다. 재르멜로가 선출공리 를 분명하게 사용하자 권위 있는 학술지 《수학 연 보》 Math c mati sch e A1111alen ( 1904) 의 바로 다음 호에 그것 에 대 한 맹 전 한 항의들이 실렀다. 보렐 Emi le Borel (1871-1956) 과 번스타인 Felix Bernste i n (1878-1956) 의 논문 물 은 그 공리의 사용욥 U1 판했다. 이 런 I11 판을은 거 의 동시 에 보렐, 매 르 Ren~ Bair e (1874-1932), 르벳 구, 아다마르 Jac q u es Hndnrnnrd (1865-1963) 와 7같 은 지 도적 수학자들 사이 에 주고 받은 편지 물 에 서 도 나타났는데 , 이 편지 들은 1905 년에 《프랑스 수학회 회 보)) Bulleti n de la Socii: te Math e mati qu e de France 에 공표되 었 다. 이갇온 미판들의 핵십은, 각각의 집합에서 어떤 원소-문 고르느냐는 것운 지정하는 명확한 규칙이 없다면, 실재적인 선출이 이루어질 수 없 으며, 따라서 새로운 집합은 실제로는 구성되지 않은 것이라는 것이었 다. 선출 방법이 증명 과정운 동하여 변할 수도 있고, 따라서 그증명은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보텔이 말한 바에 따르면, 어떤 규칙이 없는
선출은 믿움에 의존하는 행위이며, 그 공리는 수학의 한계 바깐에 있다. 따라서, 럿셀이 1906 년에 발표한 예 룹 이용하면, 나에게 만약 100 킬레 의 신발이 있고, 가령 각 칸레에서 왼쪽 신말만을 고른다면, 나는 분명 한 선덱을 가리칸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나에게 100 킬레의 양만이 있고 그리고 각 킬레에서 어느 것을 골랐는가룹 가려내야만 한다면 나는 의 존할 아 무런 분명한 규칙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선홍· 공리룹 옹호하는 사람 둘은 선덱의 규칙이 없을지도 모돈다는 것윤 인정하떤서도, 그간은 규칙의 판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그-홈에게는 단지 그 선맥을이 길정된 것으로 생각하기만 하연 이마 전정된 것으로 본다는 것이었다. 또 다 몬 반대자와 반대의 근거가 있었다. 프앙카대는, 그 공리는 인 정했으나, 체르멜로의 정 밀화에 관한 층명은 그것이 미서술직 밍재웅 사용하고 있다 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매로와 보델은 그 공리뿐만 아니라 정i산화의 증명에도 만대하었는대, 그 이유는 그것이 츠 1 종적으.로 어멍게 정전된다는 것을 보여주지 못하고, 나만 단지 그것이 가능하다 는 것만 증멍하기 매문이었다. 브라우어 Brouwer 의 철학에 대하여는 뒤 에 ( 10 장 ) 검토하기로 하겠으나, 그는 실무한집합을 인정한 수 없었기 때 문 에 반대했다. 럿셀의 반대는, 어떤 집합이돈 그 집합의 모든 원소 가 가지고 있는 성질로 정의된다는 것에 의한 것이었다. 따라서, 녹색 모자운 썼다는 성질에 의해서 녹색 모자를 쓴 모든 사람의 집합이 정의 윈 수 있다. 그러나 선출공리는 선출된 그 원소둡이 어떤 확정된 성질 욥 가지는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단지 주어전 각 집합에서 한 원소씩을 곧타낸 수있다고 말할 문이다. 체르멜로자신은 집합을 직 관적인 의미로 사용하는데 만족셨으므로, 그에게는 주어전 각 집합에서 한 원소씩 골라낸 견과는 분명히 한 새로운 집합윤 형성하는 것이었다. 아다마르만이 체르멜로를 완강하게 옹호해 준 사람이었다. 그는 그가 칸토르의 업적을 옹호하던 것과 갇은 근거로, 선출공리도 받아봅-여진나 고 주장했다. 아다마르에게는, 어떤 객체가 촌재한다는 주장이 그 객재 룹 묘사하는 것운 요구하지는 않았다. 만약 수학자들이 단지 존재한다 논 주장만으로도 더 나아갈 수 있다면, 그 주장은 받아등여진 수 있는 것이다. 체르멜로는 이갇온 미판에 대답하기 위하여, 정련화 정리에 대한 두 번째 증명을- 제시했는데, 이것도 역시 선출공리를 사용했고, 사신상 이 두 명제가 동치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체르멜로는 이 공리의 사용을 옹
호했으며, 수학자는 이 공리가 모순을 이 꾼 어내지 않는 한 그것을 계속 하여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 공리는 순수히 객관적인 꾹 - 성 걀 가지고 있는대, 이 독성은 쉽게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 공 리가, 무한개의 집합들로부터 원소를 선덱하는 것에 관한 것 이기 매문 에 엄저하게 보면 자명하지는 않다는 데 동의랬다. 그러나, 그 공리는 중요한 정 리 듐옹 증명 하는 대 이 용되 고 있으므로 과학(학문)을 하는 데 팔요한 것이었다. 선출공리와 동치인 명재가 많이 발명되었다. 이 둘은 , 그 공리운 집합 론의 다른 공리둘과 함께 채택한다면 정리들이 되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 공리 를 보다 논쟁의 여지가 적은 것으로 대치하려는 모든 시도는 실 패했으며, 모든 수학자·읍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 는 것으로 대치된다는 것은 가망이 없어 보인다 . 선 출공 리에 관한 가장 중요한 논접은, 촌재한다는 것 이 수학적으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및멋 사람 들에게는 유 용함이 알려진 임의의 정신적 개 념으로서, 모순 을 이꾼어내지 않는 것윤 포함한다. 예 룹 문어, 연적이 무한대 인 보동 패곡면 같은 개념을- 포합한다. 다 른 사 람몰에 게 는, 존재 란 어 떤 개 념 의 꾹-정 하고 명 확한 동일화 (id e nti fica ti on ) 내지는 그란 개념의 예 룹 의미하는데, 그 . 예는 누구든지 그 개념을 지 적해낸 수 있거나 최소한 묘사한 수는 있는 것이다. 단지 한 먼 꿉라 낼 수 있다는 것으로는 분충분했다 . 이들 대립되는 견해는 그 후 에 다 욱- 난카로워졌는대, 우리는 두 1 의 장들에서 이들에 관하여 좀더 자세히 다뭉 것이다. 당면과재는 그 공리가 십각한 쟁접이었다는 사신이다. 이러함에도 상구하고 많은 수학자 둘 은 그후 수십년 동안 그 공리뭉 수학운 확대시키는 데 계속하여 이용했다. 수학자 들 사이에는, 그것이 합당하고 받아둘여질 수 있는 수학인가에 관한 논쟁이 계속 격화되었다. 그것은 유칸리드의 평행선 공리 이후 가장 논란이 많았던 공리가 되었 다. 르벳구가 지적했듯이, 그 공리을 반대하는사람 들 은 서로의견의 일 치가 없었기 매문에 서로 미방할 수밖에 없었다. 그 자신은 그 공리에 대하여 부정적이고 불신하는 태도룹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표현대 로 그는 대담하지만 조십스럽게 그 공리를 이용랬다. 그는 장래의 발전. 이 우러가 결정하는 데 도웅을 줄 것이라는 대도 를 견지했다. 1900 년대 초에 또 다론 문계가 수학자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 당 시에는 그 문제가 먼로 중요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칸토르-
의 초한기수와 초한서수에 대한 이론이 접접 더 유용해지자 그 문제의 해걷이 중요한 관십사가 되었다. 칸토르는 그의 후기의 연구에서 초한서수의 이론에 기반운 둔 초한기 수의 이론을 만들었다. 예를 듣면, 유한서수를 갖는 가능한 모든 집합 전체의 집합의 기수는 ~o 이다. 가부번 (R 。)개의 원소만을 가지는 가능 한 모든 서수 전체의 집합의 기수는 R1 이다. 이런 식으로계속해서, 그 는 R 。』 `I 』 `2· ••• 등으로 표시되는 더욱 큰 기수들을 얻었다. 더구나 각 ~l+ I 은 `,보다 바로 다음으로 큰 기수였다. 그러나 그는 아주 초기의 초한수에 대한 연구에서 실수 전체의 기수는 2••. 죽 보다 간단히 나타 내면 c 이고, 2•• 은 ~o 보다 크다는 것울 여시 보었다. 그리하여 그가 재기한 의문은 이 C 가 수열 {R i l 의 어느 것에 대응되는가 하는 것이었 다. R1 이 ~o 바로 다음으로 큰 수이기 매문에 c 는 ~l 이상이어야만 한 다. 그는 c=`1 이라고 예상했다. 이 예상은, 칸토르가 1884 년에 처음 말했고 같 은 해에 출판되었는데, 연속체 가설 (con ti nuum h ypot hes i s) *아라 고 불리 운다. 이 가설을 종 간단하게 말하면, ~o 과 c 사이 에 초한수가 없다는 것이다. 죽 실수의 무한부분집합의 기수는 ~o 이거나 C 이다.** 금세기 초 십여년 동안 이 연속체 가설은 해걷되지 않은 많은 논란을 설-러일으컸다. 이 가설로 인하여 새로운 정리들이 증명될 수 있다는 사 실을 비못해서, 이 가설은 또 무한집합의 이해, 일대일 대응, 집합론을 세우는 데 사용월지도 모르는 선출공리 둥을 위하여서조차 아주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 우합의리 는기 수기수는 가” 'll 1이 o다J_ . 집 또합 운2• '>생1각1, 한이다 수. 있여고기,에 이시 집2합•'의= \,’! 1 및집 합2 •윤• = R생. 자令 1 해이 라보는자 .가 .신:z. 윤'
... 이것은 선순공리와 관련되지 않는다.
그리 하여 금세 기 초의 수학자들은 및 가지 십 각한 문재 에 당면하개 되었다. 이미 발견된 모순둘은 해결되어야만 했다. 더구나 새로운 모순 이 생겨날 수 없다고 보장하려면, 더 중요한 모돈 수학에서의 무모순성 울 증명해야만 했다. 이 문제는 아주 결정적인 것이었다. 선출공리는 많 온수학자둘에게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고있었고, 걷과적으로 그 공리에 관련되는 많은 정리들이 의문시되고 있었다. 그 정리들이 보다 받아둘 여질 수 있는 공리를 사용해서 증명원 수 있을까? 아니면 선출공리문 전적으로 무시할 수 있을까? 또한, 새로운 발전을 하는 데 그 중요성 이 더 명백해진 연속체 가설은 증명되거나 아니면 오류임이 증명되어야
만했다. 비록 I900 년대 초에 수학자들이 당연한 문재가 십각한 것이었지만, . 다론 상황이었더라면 벌로 큰 혼란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모순둘은 해결되어야 하지만, 실제로 알려진 모순둘은 집합론에서 나타 났으며, 질합론은 시간이 지나면 엄밀화윌 수도 있는 새로 운 분야이었 다. 고전수학에서 새로운 모순이 발견원 위험에 관하여는, 아마도 바서 술적 정의가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무오순성의 문제는 산수 의 무모순성의 문재로 구]착되었으며, 실재로 아무도 그 사실을 의십하지 않았다. 실수계는 5 천년 이상 쓰여져 왔고, 실수에 관한 수많은 정리가 증명되었다. 그러나 아우 모순도 발견되지 않았다. 한 공리(지금의 겅우 선 ·1· 공리)가 암암리에 쓰여져 왔었고, 앞으로도 더 쓰여질 것이라는 사 실은, 많은 사람들을 혼란시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I9 세기 말겅의 공 리화 운동에서 많은 공리들이 암암리에 쓰여져 왔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 당시 연속체 가선은 단지 칸토르의 연구의 세 부적 인 문재 에 붕과했고 어떤 수학자들은 칸토르의 이론 전체을 미웃었다. 수학자둘은 디욱 십 각한 난제둘윤 침착하거] 대처해 나갔다. 에-간 등어, I8 세기의 미적분 학의 기초에 관한 근본적인 난재들이 잘 알려처 있었지만, 그럽에도 분 구하고 그들은 미적분학에 기반윤 둔 해석학의 거대한 분야를 전산해나 갔으며, 그 뒤에 해석학은 수개념·울 기반으로 하여 엄밀화되었다. 우리가 이야기한 문제들은 폭탄의 접화선에 붕을 붙이는 성냥과 같은 것이었다. 어연 수학자들은 그때까지도 참된 수학이만 전리의 실체라고 믿고 있었다. 그들은 이것을 확립하려 하였고, 프레게는 이미 이 운동 에 착수하고 있었다. 더구나 선출공리에 대한 반대는 단지 그 공리가 말 하는 것에 근거운 두고 있지는 않았다. 특히 칸토르룹 미못한 수학자들 은 정신의 소산을 더욱더 많이 도입했는데, 그등은 이같은 정신의 소산 은 예를 둘어 삼각형의 개념만큼이나 실체인 것이라는 대도 를 견지했 다. 그러나 다본 사람둘은 이갇은 개념아 너무 희박하여 그것에 근거를 · 둔 구체적인 것은 전혀 만들 수 없다는 이유로 그것을 거부하였다. 칸 도르의 연구, 선출공리, 이와 유사한 개념들에 관한 근본적인 논접은 수학적인 개념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것 둘이 물리적 실체에 대응되거나 그 실체를 이상화한 것이어야만 하는 가? 아리스토델레스는 이 문계를 고려했었고 그와 대부분의 그리스인 들에게는 실제로 대응되는 것이 팔요했다.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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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집합 을 전체로서 받아 들 이지 않으려 있고 또 정철각형을 인정하지 않 으려 했 단 이유이다. 그 반면에 걸- 라 돈주 의자 (칸도르는 .:::z.. 중 한 사갑이었 다)는 인간과 무관한 어떤 객관적인 세계에 존재한다고 믿는 아이디어 룹 받아들였다. 인간 은 이런 아이디어 를 발견했다. 즉 , 컬- 라 돈 의 말을 빌면, 인 간은 그 것을 회상해 내었다. 존재 하는가 하는 뭉읍의 다몬 면 은 존재 한다는 증명 의 가치 였 다. 한 ` 에로 가우스는 모든 실제수 또는 복소수계수 n 차 다항방정식은 최소한 · 한 개의 군 을 가진다는 것욥 층명했다 . 그러나 그 증명은 이 근걸- 어멍 게 계산하는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 이와 미숫하게, 칸토르는 내 수적 수 (다 항 방칭 식 의 근이 되는 수) 보다 더 많은· 실수가 있다고 증명했 다. 마라서 초원 수 인 무리수가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란 존재 증명만으 로 는 단 하나의 초월수 도 계산은 고사하고 예문 드는 것조차 불 가능했다. 보렐, 매로, 르 벳 구 를 미못한 20 세기 초의 및및 수학자들은 단지 존재한다는 증명은 가치가 없는 것으로 간주했다. 촌재한다논 증 명은 수학자 둘 이 원하는 만 큼 의 정확도로 그 존재하는 양을 계산해 넬 수 있 어 야 한다. 그들은 이 러 한 증명 을 건설적 (constr u cti ve , 구성 적 )이 러 고 불렀 다. 또 다 론 문재가 어떤 수학자 들울 괴 몹 히고 있었다. 수학의 공리화는 · 많은 당연한 사신들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대한 반작용이었다. 이런 운동 이, 예 룹 들 어 해석학에서, 모순과 불분명한 정들 을 재거했다 는 것은 사 실 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명확한 정의, 공리, 또 너무나 당 연해서 전에는 직관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사실들 의 종명까지 고집했다 (8 장)· 그 결과로 얻어진 연역적인 구조는 실재로 복잡하고 대규모적인 것이었다. 마라서, 자연수의 공리를 근거로 하여 유리 수 , 또 득 히 무리수 를 전개하는 것은 자세하고 복잡했다. 이란 모 든 것 이 및 및 수학자, 묵 히 크로'시 커 Leop o ld Kronecker (1823-91) 에 게 는 고도로 인위적이고 불팔요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크로네커는, 사람들의 직 관이 건전하다고 확인해 주는 것 을 논리 저 인 수단으로 더 건전하게 할 수는 없다고 느끼는 독벌 한 집단의 첫번째 인물이었다. 다몬 쟁점은 수학적 논리학이 크게 발달한 것이다. 수학자들은 이로 인하여 논리적 원리의 이용조차도 더 이상 비형식적이고 우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 을 알게 되었다. 페아노와 프레게의 연구에서는 수학자들 이, 어떤 모임에 속하는 원소와 다몬 모임에 포함되는 오입의 구분과·
갇이, 그들의 추론에서 날카롭게 구분을 할 것이 요구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현학저이고, 도움이 되기보다는 장애가 되는 것처럼 보 였다. 핀씬 더 중요한 것은, I8o0 년대 말까지도 분명하지는 않았지만, 많 온 수학자들이 논리적 원리를 제한없이 적용하는 것을 불안해하기 시작 한 정이었다. 무엇이 그 원리가 무한집합에 적용원 수 있다고 보장하는 가? 만약 논리적 원리가 인간의 경험에 의한 산물이라면, 경험적 근거 가 없는 정신적 소산으로까지 논리의 적용이 확대될 수 있는가 하는 의 문이 당연히 생겼 을 것이다. I900 년 훨씬 이전에, 수학자 들은 우리가 지적 했던 그런 논접에 동의 하지 않기 시각했었다. 따라서 새로운 역리는 이미 있는 불만을 악화시 킬 분이었다. 해가 지남에 따라 수학자들은 모순이 발견되기 이전의 짧 지 만 행 복했 던 시 철, 브와 레 이 몽 Paul du Bois - Ray m ond 이 “우리 는 아직 도 낙원에 살고 있다”고 표현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회고해야만 앴었 다.
10 논리주의 대 직관주의 논리학과는 붑임이 아니다 ; 그것은 이윤배반운 낳는다. -프앙카레 Henri Po i n 댜 집합론에서의 역리들의 발견과, 현촌하는 고건수학에 있어서 아직 찾 아내지는 못했지만 유사한 역리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의 인식은. 수학자들이 무모순성의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된 원인이 되었다. 묵- 히 선출공리 물 자유로이 사용합으로써 제 기 된 수학에서 의 촌재 성 이 무 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문제도 여시 당면 과제가 되었다. 기초를 새우는 데와 새로운 분야를 창조하는 데 있어서 무한집합의 사용이 증대된 것 온 실무한집합이 합당한 개념인가 하는 접에 관한 오래 된 의견 차이를 표면화시컸다. 19 세기 말의 공리화 운동은 이런 일들을 다루지는 않았 었다. 그러나, 수학자둘로 하여금 참된 기초에 관한 전체적인 주재를 검토 하게 한 것은, 이러한 논접들과 앞 장에서 다문 다른 운제들이 전부는 아니었다. 이 논접들은 연기만 나는 불을 논쟁의 백열 속에서 천천 타 오르게 한 바람이었다. 및 가지 새롭고 급진적인 수학에의 접근 방식이 1900 년대 초에 주창되고 약간 다듬어졌다. 그러나 그것둘은 각광을 받 겨 못했고 대부분의 수학자들은 그것들을 십각하게 여기지 않았었다. 금 제기의 첫 십년 동안에 수학의 거인둘은 기초의 새로운 접근 방식에 관 하여 싸우러 나왔다. 그듄은 반대되는 캠프로 분산되고 그둘의 져에 대
하여 선전포고를 하였다. 이 준 사상적 인 학파 중 첫 째 는 소위 논리 학과(t he log ist i c school ) 로 알 려 져 있 다. 이 학파의 주장을 우선 간단히 요약하면, 모 든 수학은 논리 학으로부터 유도원 수 있다는 것이다. 1900 년대 초에 논리의 법칙둘은 대부분의 수학자들에게 진리의 실체로서 받아 들 여졌다. 그리하여 논리 주의 자들은 수학도 당연히 그와 같이 되 어 야 한다고 주 장랬 다 . 그리 고 진리는 무모순이므로, 수학도 무모순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모 든 혁신의 경우와 아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아 이 학파의 주 장이 명 확한 형태와 광법위한 주목을 꿉기 전에 공헌을 했 다. 수 학이 논리학으 로부터 유도되 어 야만 한다는 주의 는 라이 프니 츠로 거 순러 홍 라간다. 라 이프니츠는 이성의 진리 또는 원연적 진리 를 사실의 진리 또는 우연적 진리와 구분하였다 (8 장). 자신의 찬구 코스태 Cos t e 에게 보낸 견지에서 라이프니즈는 이 구분을 선명하였다. 진리가 책입직 ( ne c essar y ) 이라는 것 은 그 부정이 모순을 일으키는 것 을 가리키고, 킬인 적 이 아닌 진리-룹 웃엇적 (co11t i11g c1 1t ) 전리 라고 성렀다. 신은 촌재 한다, 모 는 직 각은 같다. 둥은 원연적 진리이지만; 나 자신은 촌재한다, 정확하게 90° 의 각도를 가진 뭉재 가 자연에 촌재 한다. 둥은 우연적 전리 이 다. 우연적 진리 들은 전우주가 다른 식으로 되어 있을 수도 있으므로 참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다. 그리고 신은 우한개의 가능성 중에서 가장 적당하다고 판단 · 한 것들을 선택하였다. 수학적 진리는 팔연적이어야 하 므 로 그 둘 은 마 땅히 논리학으로부터 유도되어야 하는데, 논리의 원리 들 은 팔연적이고 모든 가능한 세계에서도 참이라는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논리학으로부터 수학잡 이끌어내는 계획을 수행하지 못 하였고, 갇은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표명한 다 론 사람-등도 거의 200 년 동안 그것을 하지 못했었다. 예 를 둘면, 데대건트는 수는 공간과 시간 · 의 직 관으로부터 유도되 는 것 이 아니 라 순수한 사고의 법 칙 으로부터 즉각적으로 얻어지는 발산물이라고 굳게 확신하고 있었다. 수로부터 우리논 공간과 시간의 정확한 개념을 얻는다. 그는 이 이돈을 발전시키, 려고 시작했으나 계속 추구하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수리논리학의 발전에 크게 공헌했고 (8 장) 데데킨트의 영 향을- 받았던 프레게는 논리학파의 주장을 전개하기 시작랬었다. 프레게 는 수학의 법칙이란 분석적 (anal yti c) 이라 불리우는 것이라고 믿었다. 수 · 학의 법칙은 선협적으로 진리인 논리의 원리둘에서 암암리에 나타나는 -
것에 분과한 것을 말해 준다. 수학적 정리와 그들의 증명은 무엇이 압 암리에 나타나 있는가를 보여준다. 모돈 수학은 물리적 세계에 모두 적 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이성의 진리둘로 구성되어 있다. 프레게 는 그의 처 서 《개 념 -기 술 》 Concep t-W rit ing ( 1879) 에 서 분명 한 공리 위 에 논리 학을 세 운 뒤 에 , 《수학의 기 초 》 Foundati on s of Math emati cs (1884) 와 두 권으로 된 《 수학의 기 본 법 칙 >F undamenta l Laws of Math emati cs ( 1893, 1903) 에서 논리적 전재로부터 산수의 개 념과 수의 정의와 법칙을 이끌 어내는 것을 계속하였다. 수의 법칙들로부터 내수학 • 해석학 • 기하학을 이꿀어내는 것이 가능한대, 기하학까지도 가능한 이유는 해석기하학이 기하학의 개 념과 성질 을- 대수적 망 '0 으로 나다내 주기 매문이다. 불행 히도 프레게의 기호법은 수학자 물- 에게 매우 복잡하고 낮선 것들이었으- . 므로 그는 당시의 사람 들 에게 거의 영향 을 주지 못랬다. 다소 아이로닉 하기도 한 것은 다음과 같 은 자주 거론되는 이야기이다. 프레게는 자 서 《기본 법칙 〉〉 의 재 2 권을 1902 년에 인쇄에 걷 매쯤에 럿셀로부터 편 지를 받았는데, 그 편지는 이 책 속에 둘어 있는 집합들의 집합'’이라 ` 는 개념은 모순을 이끌 수 있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제 2 권의 마지막 에서 프레게는 과학자에게 있어, 일이 꾼남과 동시에 그 기초를 포기 , 해야 하는 것보다 더 바람직스럽지 못한 것을 만날 수는 없다. 럿셀씨 . 로부터 받은 편지는 거의 인쇄가 꾼나가논 이 순간에 나를 이런 상태로 . 만들었다”라고 썼다. 프레게는 이미 설명한 역리들을 객울 쓰는 동안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독립적으로, 럿셀도 7같 은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울 진행하는 . 동안 프레게의 일과 부닥쳤다. 럿셀은 그의 《자서전》 Auto b io g r aph y (1951) 에서, 그가 1900 년 제 2 차 국재 수학자 대회에서 만난 페아노에게서도 `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 대회는 내 지츠4 인 생환의 전환접이 되었다. 왜냐 하면 거기서 나는 데아노 、 문 만났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그의 이음운 알고 있었으며, 그의 및 가지 업 져윤 보았었다. … 그의 기호법이 내가 수년 동안 찾고 있었던 해석학의 도 ~ 구윤 재공하며, 그윤 공부합으로씨 내가 오래 동안 하기윤 바라던 내 인에 새 몹고 강력한 기숟운 얻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는 그의 처서 《수학의 원리》 Prin c iplt:s of Math e mati cs (초판 1903) 에서 ' “모든 수학이 기호논리학이라는 사실은 우리 시대의 최대의 발견 중의 하나이다 .••• ” 라고 덧붙였다.
1900 년대 조에 럿셀은 프레게와 마찬가지로, 수학의 기본 법칙들이 논리로부터 유도된 수 있다면, 논리는 확실히 진리의 실체이므로, 이 런 법칙들이 또한 진리이며, 무모순성의 문재는 해결원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저서 《나의 철학적 발전》 My Phil o sop h ic a l Develop m ent (19 59) 에서, ”의심할 여지가 없는 완벼화된 수학에 도달하는 것을추구했 었다고 적고 있다. 럿 셀은 물론 케 아노가 자연수에 관한 공리 로부터 실수 전체 를 유도해 낸 것을 알고 있었고, 인버트가 실수계 전재에 관한 공리들의 집합을 제시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저서 《수리철학 서설 》 In tro - ducti on to Math emati ca l Phil o sop hy (191 9) 에서 데 데 킨트에 의 한 유사한 전 개에 관해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가정하는 방법은 많은 이접이 있다. 이 것은 정직하게 고생하는 것에 대한 절도의 이정과 갇은 것이다'’라고 말 랬다. 럿셀의 실재 관심은, 말하자면 수에 관한 연 개 내지 연다섯 개 의 공리를 가정하는 것이 그 공리들의 무모순성과 진리성을 보장해 주 . 지는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그가 말한 바와 갇이 , 그것은 재산 대신에 붕팔요한 인질을 잡는 것과같다. 1900 년대 초에 럿셀이 논리의 원리들 은 진리이고 따라서 무모순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동안에, 화이트해드는 1907 년에 논리적 전제 자체의 무모순성의 형식적 층명은 있을 수 없 다”라고 겅고하였다. 여러 해 동안 럿셀은· 논리의 원리와 수학적 지식의 대상은 각자의 정 신 속에 독립져으로 존재하고, 단지 정신에 의하여 감지된다고 생각하 . 고 있었다. 이 지식은 객관적이고 불변 이다. 이갇은 입장을 분명히 진 술한 것은 그의 I9I2 년의 저서 《철학의 문재》 The Proble,ns of Phil oso p hy 에서이다. 럿셀의 의도는 진리에 관한 한 프레게보다 천씬 더 나아가는 데 있었 다. 젊었을- 메의 그는 수학이란 물 리적 세계에 관한 진리를 재공하는 것이라고 믿었었다. 유윤리드와 미유클리드 기하학이 둘다 물리적 세계 에 적합한 기하학이라는 (4 장) 대립 가운데에서, 그는 어느 것이 진리인 지 확신할 수 없 었으나, 그의 《기 하학의 기 초에 관한 시 론》 Essay on tlz e Foundati on s of Geometr y ( 1898) 에 서 , 물리 적 공간은 균질 적 (어 디 에 서 나 강 온 성진운 가지는)이라는 사신__역당시에 그는 이것을 물리져 진리라고 믿 고 있었다――과 같은 어떤 수학적 법칙운 찾으려 노력했다. 이와 대조 척으로, 삼차원 공간은 겅험적 사실이었다. 그러합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그에 관하여 정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하나의 객관적 신세계는 존 / 재하였다. 이리하여 럿셀은 물리적으로도 역시 진리인 수학적 진리를 추 · 구하였다. 이런 법칙들은 마땅히 논리직 원리들로부터 유도되어야 한다. 그의 저서 《 수학의 원리 》 (1903) 에서 수학의 물리적 진리성에 관한 그 · 의 입장을 부연하였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공간과 같이 실재로 촌재 하는 것에 관한 모돈 명재는 실험과학 또는 경험과학에 속하는 것이지 수학에 속 하는 것 은 아니 다. 응용수학에 속하는 명 재 들은 순수수학의 명재의 하나 또는 여러 개의 년수에 적당한 상수값울 중으로써 얻어전 다”라고 만했다. 비 록 이런 관접에 있어서조차 그는 어떤 기본적인 물 리적 전리가 논리로부터 유도된 수학에 포합원 수 있다고 계속 믿고 있 었다. 전 대적 진리는 없다고 주장한 회의론자에 대한 답으로서 그는 수 학은 그러한 회의 론 에 관한 영원한 질책이다. 왜냐 하면 수학이탄 진리 의 제계는 의십하 는 냉소주의의 오돈 무기 앞에서 흔들럼없이 삭제됨이 없이 버티고 있다”라고 말했다. 럿셀이 《 수학의 원리 〉〉 에서 간략히 밝힌 아이디어는, 화이트해드 A lf red North Wh it ehead ( 1861-1947) 와 럿셀에 의한 자세한 입적 《수학 원리》 Prin c ipia Ma t hema ti ca(3 권; 초 판 1910-13) 에서 전개되었다. 《수학 원리》는 논리학과의 입장을 명확히 밝한 것이므로, 그 내용을 살펴보자. 그 접근 방식은 논리학 자체의 전개로 시작된다. 논리의 공리는 조십 스럽게 진술되어 있는대, 그것으로부터 뒤의 추론에 사용뭘 정리둥이 연역된다. 그 전개는 모든 공리저 이돈이 그러하듯이 (8 장) 무정의용어 로부터 시작된다. 이들 무정의용어 중 및 가지는 기본 명제의 개념, 기 본 명재가 참이라는 주장, 명제의 부정, 두 명재의 합접 (conj un cti on ) 과 이 접 (dis j u n cti o n), 명 재 함수의 개 념 이 다. 럿셀과 화이트해드는 이 개념둘을 설명셨지만, 그들이 지저한 것처럼 이 설명은 논리적 전개의 일부가 아니었다. 명재와 명재함수는 피어스 Pe i rce 가 이마 도입한 것과 같은 뜻으로 썼다. 그리하여 “촌은 남자이 다라는 것은 명재인 반면에 X 는 남자이다라는 것은 명재함수이다. 명재의 부정은, 명제가 성립하는것이 감이 아님을 뜻한다. 죽 P 가 존 은 남자이다라는 명제이떤, ~p로 표시되는 p의 부정은 존은 남자 이 다타는 것은 참이 아니 다” 또는 “촌은 남자가 아니 다”를 뜻한다. 두 명제 P 와 q의 합접은 p•q (오싶-난의 PA q)로 표시되는데, P 와 q두 밍 재 모두가 참임을 의미한다. 두 명제 P 와 q의 이접은 p V q로 표시되
는데, p 또는 q를 뜻한다. 여기에서의 또는의 의미는 남자 또는 여 자가 지원해도 좋다”라는 문장에 나오는 것과 같은 뜻이다. 죽, 남자가 지원해도 좋다, 여자가 지원해도 좋다 , 둘 다 지원해도 중 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남자 또는 여자이다라는 문장에서의 또는은, 둘 중에 한 가지가 되어야 하며, 둘 모두 천 수는 없는 보다 동상적인 의미 를 가지 고 있다. 수학에서의 또는의 의미는 첫번째의 의마로 쓰이지만, 때로 는 두번째 의미처럽 오직 한 가지 가능성 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그 삼각형은 이등면상각형이거나 또는 그 사각형은 평행사년형이 다”는 문장은 첫째 의미의 보기이다. 우리는 또 모든 실수는 양수 조는 옵수이 다라고 말한다. 여 기 서 양수와 음수 에 관한 또다른 사실은 두 가 지 모두가 참이 원 수는 없음을 말해준다. 이리 하여 《 수학 원리 〉〉 에서 P 또는 q라는 주장은 P 와 q 둘 다 참이거나, p는 거짓이고 q는 참이 거나, p가 참이고 q는 거짓입 을 의미한다. 명 재 둡- 사이 의 가장 중요한 관계 의 하나는 함의 (im p li c a ti on ), 죽 한 명제가 참이라면 다른 명재도 참 이 되게 하는 것이다. 《 수학 원리〉〉에는 함의가 정의되어 있고, C 로 표 시되어 있다. 이것은 프레 게가 실질함의 라고 불렀만 (8 장)것과 감은 뜻 이다. 죽 P 가 q 룹 함의한다(의미한다)는 것은, p가 참이면 q도 반드시 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 나 P 가 거짓이면, q가 참이냐 거짓이냐에 관계없이 P 가 q 품 함의한 다. 죽 거짓 명제는 임의의 명재를 함의한다. 함의의 의미 를 위와 갇이 정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적어도 무모순이다. a 가 짝수이다가 참이 떤 2a 는 반드시 짝수이다. 그러나 a 가 짝수이다가 거짓이면, 2a 는 짝 수일 수도 있거나 (a 가 분수라면) 2a 는 짝수가 아닐 수도 있다. a 가 짝수이다라는 명재가 거짓이면, 어느쪽 결론도 이꾼어낼 수 있다. 물론, 정리를 이꿀어내기 위하여는 논리의 공리들이 있어야 한다. 이 제 공리 및 가지 를 적 어 보면, A. 참인 기본 명재로부터 함의되는 것은 모두 참이다. B. p는 참이거나 또는 p는 참이면 P 는 참이다. 'c. q가 참이면 p 또는 q가 참이다. D. p 또는 q는 q 또는 P 를 함의한다. E. p 또는 ‘q 또는 r’ 이 참이면 ‘P 또는 q' 또는 r 이 참이다. F. 주장 P 와 주장 p::,q는 주장 q를 뜻한다.
이런 공리들로부터 처자들은 논리의 정리들을 이꾼어내는 것을 진행한 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보동 삼단논법 (sy ll og ism ) 들은 정리로 나타난다. 논리 자체가 어떻게 형식화되고 연역적으로 구성되는가를 보기 위하 여 《수학 원리 〉〉 의 앞 부분에 나오는 몇 가지 정리를 살펴보자. 하나의 정리는, p의 가정이 P 가 거짓임을 함의하면 p는 거짓이다라고 기술 하고 있 다. 이 것 이 귀 류법 (re ducti o ad absurdum) 의 원리 이 다. 또다론 정 리는, q가 1· 울 함의할 메 p가 q 룹 함의하면 p는 r 울함의한다라고 적고 있다 ( 이것은 아리스 토 델레스의 상단논법의 한 형대이다). 기본 정리 중 하나는 매 중률( th e pri n c ip le of excluded mi dd le), 죽 임 의 의 영 제 p 는 참 이거나 거짓이다 . 명제의 논리 룹 세운 뒤에, 저자둘은 명제함수로 계속해 나아간다. 명 제함수는 신 재로 모임이나 집합을 나타내는대, 그 이유는 한 모임의 원 소들 을- 연 거하 는 대신에, 한 명재함수가 그들이 지녀야 할 성질울 기 술하기 매문이다. 예 를 들 면, 명제함수 X 는 붉은 것이다’’는 모든 붉 온 대상들의 집 합을 표시한다 . 한 모임을 정의하는 이 방법은 유한개 의 모임 문 만 아니라 무한 모임도 정의할 수 있게 해준다. 이와 같이 하 는 것 을 . 모임의 원소 룹 연거하는 외연적 정의에 대하여, 내포적 정의 라고 부 른 다. 물론 럿 셀과 화이 트해 드는, 사물들의 모임 이 자신윤 원소로 포함하도 록 정의원 매 일어나는 역리들울 파하려고 했다. 이 난정에 대한 그들 의 해길은 “모임의 모든 원소에 관련된 것은 무엇이돈지, 그 모입 자신 윤 원소로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요구한 것이었다. 《수학 원리〉〉에서 · 이 런 재 한윤 시 행 하기 위 하여 그둘은 유형 론(t heor y of typ es) 을 도입 했 다. 유형돈은 다소 복잡하다 . 그러나 그 아이디어는 간단하다. 존 또는 어떤 특정한 제 같은 각 개체는 0 형(typ e o) 이다. 개체들의 성잘에 관한 한 주장은 1 형(typ e l) 이다. 개재돌의 성질에 관한 것이거나 관련된 명 제는 2 형(typ e 2) 이다. 모든 주장의 형은 그것이 어떤 낮은 형에 관하여 주장하는 것보다높은 형이 된다. 집합이라는 말을 써서 표현하면, 유형 론은 7-)- 개 재 는 0 형 ; 개 체 들의 집 합은 1 형 ; 개 체 들의 집 합의 집 합은 2 형 등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a 가 b 에 속한다면, b 는 a 보다 더 높은 형이 되어야만 한다. 또 이 멍게 하면 자기 자신에 속하는 집합운 말할 수는 없다. 유형돈은 명제함수에 적용되었을 때는 실재로 약간 더 복잡해진다. 영재함수는 그 함수 자신을 써서 정의된 어떤 것이든지 자
신의 성 분 (ar g umen t, 변수의 어 떤 값)으로 가질 수 없 다. 그리 고 명 제 함수 는 변수들의 형보다 더 높은 형을 가진다. 이 이돈을 근거로 하여, 처 자둘은 현재의 역리들을 검토하고 이 역리들이 제거됨을 보였다. 유형론을 써서 모순을 회피하는 것은 비수학적인 예 를 보면 판씬 분 명하다. “모든 법칙은 예외 를 가진다라는 진술에서 제기되는 모순을 생각해 보자 (9 장). 이 전술은 “모든 책에는 오석이 있다와 같은 독정 한 법칙에 관한 것이다. 모든 법칙에 관한 그 진술이 혼히 그 자신에도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되어, 예의 없는 법칙도 있다는 모순 을 이끄는 받 면에, 유형돈에서는 일반적 법칙은 더 높은 형 이므로 독정한 법칙에 관 · 해 이야기하는 것은 그 자신에 적용원 수 없다 . 따라서 일반적 법칙은 예외를 가질 팔요가 없다는 것아다. 마찬가지로 이논리적인 역리――자기 자신에게 적용되지 않는 단어를 이논리적 단어라 정의할 때의 역리――는 모돈 이논리적 단어의 정의이 고, 따라서 어떤 이논리적 단어보다 높은 형이 된다. 그러므로, 이논리 , 져이라는 단어 자신이 이논리적인지 아닌지의 문제는 재기할 수 없다. 어떤 독정한 단어, 가령 짧다 (shor t)가 이논리 적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물을 수 있다. 거짓말장이의 여리 역시 유형론으로 해결된다. 럿셀이 말한 바와 같 이,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라는 진술은 내가 주장하는 명재가 있 는데, 그것은 거짓이다임을 의미한다. 죽, “나는 한 명재 P 를 주장하 는데, p는 거짓이다”라는 뜻옵 나타낸다. 만약 P 가 n 차의 형이면 p에 관한 주장은 그보다 높은 형이다. 그러므로, p에 관한 주장이 감이면 p 자신은 거짓이고, p에 관한 준장이 거짓이면 P 자신은 참이다. 그러 나 거기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다. 마찬가지 용법으로, 유형론은 리샤르 의 역리문 해결한다. 모두가 낮은 형의 전술에 관한 높은 형의 진술에 관련된 것이다. 분명히 유형론은 진술들이 형에 마라 조십스럽게 구분되어져야 합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유형돈에 따라 수학을 건설하려 시도한다면 그 전개는 터무니없이 복잡해진다. 예를 둘꾹 l, 《수학 원리〉〉에서 두 대상 · b 와 a 가 같다는 것은, a 에 적용되거나 또는 a 에 관하여 성립하는 모 돈 명재함수는 b 에 적용되거나 b 에 관하여도 성립하고, 또 그 역도 성 럽하는 것아타고 했다. 그러나 이들 여러 가지 주장들은 서로 다른 형 들이다. 견과적으로, 같다는 개념은 다소 복잡하다. 마찬가지로, 무라
수는 유리수 를 써서 정의되고, 유리 수 는 자연수 옵 씨서 정의되었으므로 우 리수 는 유 리 수 보다 높 은 형이고, 유리수는 자연 수 보다 높은 형아다. 그러브로, 실수계는 서로 다론 형의 수들로 구성되어 있다. 마라서, 실 수 전 체 에 대한 정의 를 주장할 수는 없으며, 각 형 에 따라 마로따로 주 장해 야만 한 다. 왜냐 하면, 어떤 형 에 적용되는 정리는 다른 형 에 자동 적 으 로 적용 되 는 것 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형론은 실수들의 유계 집 합 의 최 소상계의 개 념 에 관하여도 역시 복 잡성을 도입한다 (9 장) . 최 소상계 는 상재 들 중 가장 작은· 값으로 정의된 다 . 마라서 , 최소상계는 실 수의 집 합 에 의하여 정의된다. 그러므로, 그 것은 실수둘보 다 더 높은 형 이 되어 야 하므로 그 자신은 실 수일 수 없 다. 이 란 복잡성훈 피 하 기 위하여 럿 셀 과 화이 트 헤드는 약간 미묘한 환원 공리 (ax io m of r e du c i b i l ity )를 도입하였다. 명제에 관한 환원공리는, 높 ~ 은 형의 임 의 의 명제는 1 형 의 한 명 제와 동 등하다는 것을 주장한다. 명재함수에 관한 환원공 리논, 1 변 수 또는 2 변수의 임의의 함수는. 덥 수 의 형에 관.계.없. .이 같은 갯수 의 년수 를 가지는 1 형의 함수와 감은 확 장윤 가진 다 는 것을 말한 다. 이 공리는 《 수학 원리〉 〉 에서 사용된 수학적 귀 납법을 지지하는 데에도 팔요 했 던 것이다. 명 제 함수 를 다 우 고 난 다음에 저 자 들 은 관계 의 이 론(t heor y of relati on s). 울 다 루 었다. 관 계는 두 개 이상의 변수 를 가진 명제함수 를 써서 표시 . 된다 . 이리하여 z 는 y 를 사랑한다'’는 한 관계 를 표시한다. 관계의 이 론을- 따르 면, 명제함수 를 써서 정의된 모임이나 집합의 분명한 이온이 나 온 다. 이런 기초 우 1 에서 처자 들 은 자연수의 개념의 도입을 준비하였 다 . 물 론, 자연수의 정의는 상당히 홍미있다. 이것은 모입둘 사이의 일대 , 일 대웅이라는 앞에서 도입된 관계에 의존하고 있다. 만약 그 모임이 일 대 일 대 응 이 되 면, 그 들 은 닮았다(상사, s i m il ar) 고 말한다. 모든 닮은 · 모임 들은 공 동 성, 죽 그 들 의 수 붑 가지고 있다 . 그러나 닮은 모임돕온 또다 론 이같은 공 동 성 을 가질는지도 모은다. 럿센과 화이트해드는 프레 게가 한 것처럽, 모임의 수(집합수, 기수) 를 주어진 모입과 닳운 모임들 전 체 의 모임으로 정의함으로써 그것을 퍼하였다. 이리하여 3 이탄 수는 재 개의 원 소 몰 가전 모든 모임 윤 의 모임이며, 새 원소로 된 모임을 모 두 Z *y수 z 인 {.x, y, z} 로 표시 하였 다. 수의 정 의 는 일대 일 대 웅의 개 념
을 미리 가정하므로, 그 정의는 순환적이라 보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처자들은 관계가 일대일이라는 것 은 , x 와 x' 이 y와 관계가 있 을 에 x 와 x1 은 동일하고, x 가 y와 y'과 관 계가 있 을 때 y와y’은 동 일하다 라는 의미임 을 지적하였다 . 그러 므 로, 일대일 대 옹의 개념 은 “ 일이라 는 말로 표현하였지만, 수 l 에 관련 된 것은 아니다. 자연수 를 구성 한 뒤 에는 실 수 와 복소 수의 체계 , 함수 , 해석학 전 채를 세우는 것은 가능하다. 기 하 학 은 좌표 와 곡선의 방정식을 사용 함 으 로 써 수에 관한 수 학을 동하여 도 입 할 수 있다. 그 러 나 그둘의 목 적 을 성취 하기 위하여 럿 셀과 화 이 트해드 는 두 개 의 공 리 를 더 도입하였 다 . 명 재 함수 문 써서 우선 자연수 운 정의 하고 더 복잡한 유 리 수와 무 리 수 를 정 의한 뒤에, 초한수아저 도입하 는 과정 을 수 행하기 위하여 럿센과 화 이 트 해드는 무한모임 (논리의 용어 윤 씨시 안맞 게 장 의된 모 임) 이 존재한 다는 무한공리 (axio m of i n fi n ity ) 와 선 출공 리 (4 장 )을 도입 하 였 는 데 , 이 것 은 유 형론 에서 팔 요하다 . 지금까지 말해온 것이 논 리 학 파의 거 대 한 프로그 램 이 다. 이 학파 가 논 리 자체에 관하여는 무엇을 하였는가 하 는 것 은 이야 기 가 길 어지지 만, 여기서는 아주 간 략 하게 줄 인다. 우리가 강 조해 야만 할 것은 , 논 리 학과가 수학을 위 해 서 한 일은 논리 위에 수 학의 기 초를- 세 우 려는 것이 었다. 수학은 논리학의 법 칙 과 주재 물 자연스럽게 확 장 한 것 에 불 과하 다는 것이다. 수학에 대한 논리학과의 접 근 방식은 많은 비 판을 받았다. 환 원공리 는 많은 사람둘에게 매우 임의적인 것으로 보였기 때 문 에, 많은 반대 를 불러일으켰다. 이 공리가 거짓이라논 증명도 없지만, 그것이 옳 다는 증 거 또한 부족하다 . 어떤 사람은 이 공리 룹 다행스런 사고이지만 논리 적 팔요는 아니 라고 말하였 다. 렙 츠 1 Frnnk Plump ton Ramsey 는 논리 학파의 이몬에 공감하고는 있었지만 그런 공리는 수학에서 설 자리가 없다; 그리고,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증명할 수 없는 것은 증명되었다고 전 혀 볼 수 없다라는 말로 그 공리 를 미판했다 . 또다론 사람 들 은 이것을 지성의 회생물이라 붕렀다. 바일 Hermnnn We y!은 솔직하게 이 공리 을 배격했다. 어떤 미평가는 그 공리가 비서술적인 정의 들 을 회복시킨다고 선언하였다. 아마도 가장 십각한 의문은, 그것이 논리의 공리인가 하는 정과, 따라서 수학이 논리 위에 세워진 것이라는 주장이 실제로 구체화 되었는가 하는 문제이었다.
프앙카레는 1909 년에 환원공리는 실제로 그 공리로 증명되는 수학적 귀납법의 원리보다 더 문재성이 있고 덜 분명하다라고 말했다. 이 공리 는 수학적 귀납법의 변장된 꼴 이다. 그러나 수학적 귀납법은 수학의 한 부분이고 , 수학을 세우는 데 팔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모순성을 증 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럿셀과 화이트해드가 《수학 원리》 (1910) 의 초판에서 그 공리에게 부 여한 정당화는 이것이 어떤 결과들에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J... 것을 사용하는 데 관하여 분명히 편안하지는 않았다. 그 객에서 그것을 변호하기 위하여 저자들은 다움과 같이 썼다: 환원 공 리의 경우에는 , 그것운 지지해 주는 직관적인 증거가 매우 강하다. 왜 냐 하면, 그것윤 허용하는 추온과 그것으로부터 얻어지는 건과들은 나타난 바 와간이 모두 옳다. 그러나 비목 공리가 거짓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은 걷코증 명한 수 없운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다론 보다 기본적이고 보다 명백한 어 민 공리로부터 연역되어 나온다는 것이 발견원 수 있으리라는 것은 진코 증 명한 수 없윤 것이다.
후에 럿셀 자신은 환원공리의 사용에 관하여 더 깊은 관십을 가졌다. 그의 지서 《 수리철학서설》 (1919) 에서 말하기를: 이 엉밀한 논리적 견지에서 보던 환원공리는 논리져으로 핀요한 것이라고, 죽 모든 가능한 세계에서 참이라고 말하는 것과 갇온 의미에서, 믿윤 어연 이유 도 없다. 그러므로 가령 이 공리가 겅협적으로는 참이라 하더라도 이것윤 논 리학의 재계에 받아등이는 것은 논리학의 큰 긴합이다. 《수학 원리》 재 2 판 (1926) 에서 럿셀은 환원공리를- 고쳐 썼다. 그러나 이것은, 고도의 무한울 허용하지 않는 것, 최소상계의 정리를 재거하는 것, 수학적 귀납법의 사용을 복잡하게 하는 것 등의 여러 가지 곤란성 윤 만물어 내었다. 럿셀은 다시 환원공리는 더 명백한 공리로부터 이끌 어내어질 수 있기 를 회망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는 다시 이 공리에 논리적 걷정이 있음운시인하였다. 럿셀과화이트헤드는 《수학원리》 제 . 2 판에서 다음과 갇이 동의했다: ”이 공리는 순전히 실용적인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바라는 견과 이외는 아무것도 이꾼어내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우리가 만족할 수 있는 종류의 공리는 아니다.” 그들은 그것이 운바론 걷론으로 이끈다는 사실이 남을 수긍캐 하는 논법이 아 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환원공리를 사용하지 않는 논리학으로 수학·앞환원시키려는 많은 시도가행해졌으나, 아무도 깊이있게 추구하지는 못다 랬고, 그둘 중 일부는 그들이 그롯된 증명을 만들어냈다는 근거로 비난 울 받았다. 논리학파 기초론에 관한 또다른 미판은 무한공리를 반대하는 방향의 것이었다. 이 공리에 대한 믿음은 산수의 전체 구조가 본질적으로 이 공리가 감이라는대 달려 있다는 사실에 있는 반면, 이것이 참임을 믿을 만한 약간의 이유도 없으며, 더 좋지 않은 것은 이것이 참이라는 것을 결정하는 대 이르는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더우기 이 공리가 논 리의 공리인가 하는 의문이 있다. 럿셀과 화이트해드에 7l1 공정하게 말해서 , 그둘이 무한공리 물 논리의 한 공리로 받아들이는 데 주처했다는 것은 마땅히 지적되어야 한다. 그 둘은 그 공리의 내용이 실재로 있는 것처럽 보이는 것 (fac tu a l look) 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매문에 당황하였다. 그것의 논리성분만 아니라 그 것이 진리라는것까지도그들을괴롭홉!다. 《수학원리 〉〉 에서 개체(i nd i v i dual) 라는 용어에 관하여 재안된 해석 중의 하나는, 궁극적인 입자 죽 우주룹 구성하는 원소들이라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무한공리는 논리적 인 용어 속에 들어 있으면서도, 우주가 유한 또는 무한개의 꿍국적 입 자들로 구성되어지느냐 하는 문재문 재기한 것처럼 보인다. 이 문재는 아마도 물리학에서 해답이 얻어질 수 있을 것이지만, 확실히 논리학으一 로는 해답이 얻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한집합 이 도입되 어져야만 한다면, 또 무한공리물 사용함으로써 얻어지는 수학의 정리-등 이 논리학의 정리들임을 층명하러 한다면, 이 공리를 논리학의 공리로 ·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요약하면 수학이 논리학 으로 환원되 려 면, 논리 학은 무한공리 를 포함해 야 되 는 것 으로 보여 진다. 럿셀과 화이드해드는 또 그들이 곱샘공 리 (the multip l ic a ti ve axio m ) 라 고 불렀던 선출공리 (9 장) 도 사용하였다. 죽, 어느 것도 공집합이 아니 고, 또 서로 소(공동인 원소문 가지지 않는) 인 모임들이 주어져 있을 때 자각의 모임과 단 하나의 원소만을 공유하고 다른 원소를 가지지 않는 새로운 모입이 촌제한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이 공리는, 유클리드의 평행선 공리를 제외하면, 어떤 다른 공리들보다 더 많은 검토와 논쟁을 낳은 것이었다. 럿센과 화이트해드도 다론 이들과 마찬가지로 선 출공 리 에 대하여는 편안하지 못했고, 다온 논리적 공리와 동등하게 이것을 논 리적 진리로 다루는 것을 그들 스스로도 만족할 수 없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선 출 공리를 써야만 얻어지는 고전수학의 일부가 논리학으로 환원되려면 이 공리 역시 논리의 일부로 생각해야만 하는 것으로 보 인다. 환원공리 • 무한공리 • 선출공리 의 새 가지 공리 들의 사용은, 모든 수 학이 논리로부터 이 끌 어져 나온다는 전체 논리학파의 학설에 대한 도전 이었다. 논리와 수학 사이의 어디에 줄을 그을 것인가? 논리학과의 학 설의 제 안자는 《수학 원리 〉〉 에 서 사용된 논리 는 순수논리 ” 또는 순수 화된 논리라는 주장을 견지했다. 다른 사람 들 은 이 논의의 여지가 있 는 세 공리를 마음에 두고, 사용된 논리의 순수성에 의문을 가졌다. 그러므로, 그 들 은 수학 전채분만 아니라 수학의 어떤 중요한 분야마저 도 논리로 환원되어진다는 것을 부 정하였다. 어떤 사람은 논리라는 말 의 뜻을 확장하여 이 들 세 공리 를 포함하도 록 하려 고까지 하였다. 논리학파의 학선을 강력히 방어했던 럿셀은, 한동안 그와 화이트해드 가 《수학 원리》 초판 에서 랬던 모든 일을 변호했었다. 그는 《 수리철학 서설 》 에서 다옵과 갇 이 논하였다. [수학과 논리학의〕 동일성의 증명은 분은 세부적인 문재이다; 동상적으로 논 리학에 속 하고 있다고 인정되는 것운 전개로 하고, 그것으로부더 연역에 · 의하 여 분명히 수 학 에 속하 는 길과에 도탄한 메, 어떤 정에 있어서도 논리학은 왼 쪽으로 수학은 오른 쪽 으로 두는 것과 갇 은 명확한선운 그을 수는없옵운 알게 된다. 그래도 아저 논리학과 수학의 동인성운 받아 둘 이지 않는 사랍이 있다면 우리는 그 늘- 에게 《수 학 원리 〉〉 의 계 속 되는 정의와 연역의 어떤 정에서 논리학 이 꾼나고 수학이 시작왼다고 생각하는가 윤 지저해 보라고 도전한 수 있다. 그러면 어민 담도 아주 임의적으로 원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한 것이다. 칸토르의 입적과 선 출공 리 • 무한공리에 관한 논쟁은 1900 년대 초에 고도로 져 털화되는데, 이같은 논쟁의 견지에서 봅 매 럿셀과 화이트해 드는 그 두 공리 를 그들의 전재계의 공리라 밝히지는 않았으나, 북정한 정리에만 이것을 사용했는데 (1926 년의 제 2 판에서), 이란 정리들에서 그 둘은 그 공리를 사용했다는 사실에 대하여 분명히 주의 운 환기시컸다. 그러나, 그 공리들은 고전수학의 많은 부분윤 이끌어내는 데 사용되어 야만했다. 《수학의 원리〉〉의 제 2 판 (1937) 에서 럿센은더욱 머 후되겠 었다. 그는 무잇이 논리의 원리인가 하는 모든 의문은 아주 상당히 입 의적인 법위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무한공리와 선출공리는 단지 깅껍 적 증거에 의해 증명되거나 부정되어질 수 있을- 분이다. 그럽에도 불구
하고 그는 논리학과 수학은 갇은 것이라고 고집했다. 그러 나, 미 판이 잠잠해 질 수는 없 었 다. 바일 Hermann Wey ! 은 처 사 《수학과 자연과학의 철학》 Phil o sop h y of Math emati cs and Natu ral Scie n c~ (1949) 에서 말하기물 《수학 원리》는 논리학분 아니라 수학에도 근거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논리수의자들의 일종의 천국에서 보면, 우주는 보다 더 복잡한 구조 윤 가진 궁극적 가구'’을 가지고 있다 .••• 어떤 현실적 정신의 소유자가 강히 이 초원저인 세계윤 믿는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 이 복잡한 구조는 교회 의 초기의 교부나 중세의 스 콜라 철학자들의 독단보다 연하지 않는 강안한 신 념을 부과한다. 논리주의에 대항하여 또다론 방향의 미판이 가해졌다. 기하학은 《수 학 원리〉〉의 세 권에서 전개되지 않았으나, 이미 지적하였듯이, 해석기하 학을 사용함으로써 전개원 수 있음이 분명한 것으로 보였다. 그렇지만, 《수학 원리〉〉에서는, 자연수의 공리계를 논리학으로 환원하고, 그렇게 . 함으로써 산수·대수학·해석학을 논리학으로 환원하였지만. 기하학· 위상수학 • 추상대수학과 미산수적인 수학을 논리학으로. 환원하는 것 은 하지 않았었다는 것이 가끔 논의되었다. 이것은 예 문 들어 논리학자 · 헵벨 Corl Hem p el 과 같은 사람의 견해인데, 그는 산수의 겅우, 무정의 개념 또는 원초적 개념의 동상적인 의미 를 순수한 논리적 개념윤 씨 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가눙함에도 불구하고, ”이와 유사한 과정은 산수의 산물이 아닌 이들 분야에는 적용할 수 없다”고 했다. 한편, 수 학이 논리학으로 환원된다”는 입장운 취한 논리학자 과인 W ill ard Van, Orman Q u i ne 은 기하학을 논리학으로 환원하는 방법은 가까이에 준1.l]되 어 있다”고 했고, 또 위상수학과 추상대수학을 논리의 일반적 구조에 적합하다”고 보고 있었다. 럿셀 자신은 기하학 전체가 논리학만으로 이 꿀어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십하고 있었다. 논리학파 전체의 입장에 관한 십각한 철학적 비판은, 논리학파의 견 해가 옳다면 수학 전제는 순수히 형식이고 논리학에서 연역되는 과학으 . 로서, 그 정리들은 사고의 법칙으로부터 얻어지개 된다는 것이었다. 바 로 어떻게 사고의 법칙의 이러한 연역적 결과가 자연 현상의 다양한 변 화, 수의 사용, 공간의 기 하학, 음향학, 전자기 학, 여 학의 사용을 표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선명되어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일어 L 대한 바일의 비판은, 무로부터 무가 나온다라는 것이었다.
프앙카레의 견해에 대하여는 뒤에 더 이야기 를 하겠지만, 그는 논라 적 기호 들 의 성과 없는 계산이라 생 각 하던 것에 대하여 마찬가지로 미 판적이었다. 당시 럿셀(과 인 버 트) 아 그 들 의 프로그램을 충분히 선명한 뒤인 1906 년에 프앙카레는 한 군 에서 다움과 갇이 썼다: 이 과학 [수 학] 이 영원히 자기의 배꼽만을 아라보고 있는 것이 그 유인한 묵적 은 아니다; 그것 은 자연과 접해 있으며 어느날앤가는 자연과 관계 윤 맺게 원 것 이다. 그난이 오면 순전히 말로만 하는 정의는 버려야만 할 것이고, 내용없 는 민 알로 인간 이 짓윤 하는 것은 더 이 상 술 1· 용되지 않운 것이다. 같은 군에서 프앙카레는 역시 다움과 감 이 말했다: 논리수의는 다시 만듭·어져야 하며 , 그 중 언마만 한 부분 이 구재뮐 수 있는가는· 알 수가 없다. 여기에 서 문재가 되고 있는 것이 칸토르주의와 논리수의에 한 한 것임은 디 말한 원요도 없다; 참된 수학 , 즉 무엇엔가 도웅이 되는 수학은 ‘ 그 외부에서 상어닥치는 폭풍우운 고려함이 없이, 그 자신의 원리에 따라서 말 전 운 계속할 수가 있윤 것 이며, 궁극적이 고도 전코 포기한 수 없는 그 자신의 . 여 전한 정복을- 한 말자국씩 하 여 나간 것 이다 . 논리주의의 계획 에 관한 또 다 른 십각한 비판은, 수학의 창조에 있어 지각적이거나 상상적인 직관이 겅험으로부터 이꿀어내어진 것이돈 아니 돈 간에 새로운 개념을 제공하여야 한다는 것울 주장한다. 그렇지 않다· 떤 어멍개 새로운 지식이 일어날 수 있는가? 그러나 《수학 원리〉〉에서 는, 모든 개념이 논리의 개념으로 환원된다. 형식화는 분명히 어떤 실 재적 의미의 수학을 나타넬 수 없다. 그것은 껍질이지 옥수수가 아니다. 럿 셀 자신이 어떤 기회에 말한 바 있는, 수학이란우리가 무엇에 대하여 이야기하는가를 알지 못하고,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이 참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과목이라는 말은 논리주의에 대항하여 말할 수 있다. 만약에 수학의 내 용이 전적 으로 논리 학으로부터 유도된다면, 새 로운 아이디어가 어멍게 수학에 들어윤 수 있는가, 수학이 물리적 세계에 어 멍게 적용 가눙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들은 쉽게 대답할 수 없으며, 럿 셀 또는 화이트해드도 대답하지 않았다. 논리주의가 왜 수학이 물리적 세계에 져합한가 하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주장은, 수학이 기본적인 물리학의 법칙에 적용된다는 사실로 반박될 수 있다. 이것은 현실성에 관련되는 한 전계이다. 수학적 기술이 p v= 상수 또는 F=ma 와 갇온 물리적 법칙둘을 이끌어 낸다. 이 런 결론들은 아직도 물리져 세계에 적용
된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왜 세계는 수학적 추론을 따르는가? 우리 는 이 토픽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15 장). 《수학 원리〉〉의 제 2 판이 출판된 후 및 년간, 럿셀은 논리주의의 계회 에 대하여 재속해서 생각하였다. 그는 《 나의 철학적 발전 》 ( 1959) 에서, 이것이 그가 가능한 한 많은 확실성을 구제하기 위하여 노 력 하면서 유 큘리드주의로부터 조금씩 후되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말하였 다. 논리주의의 철학이 받은 미판이 럿셀의 후의 사상에 영향 을 주었다 는 것은 의십할 여지가 없다. 20 세기 초에 럿셀이 그의 처작 을 시작했 을 때, 그는 논리의 공리들이 진리라고 생 각했었다. 그는 I937 년 판의 《수학의 원리〉〉에서는 이 생각 을 버 렀었다. 그는 논리의 원리 들 이 선형 적 진리라는 것올 더 이상 확신하지 않았으며, 수학은 논리학으로부터 이끌어내어지므로, 수학도 마찬가지로 선협적 진리일 수가 없었다 . 만약 논리 의 공리 들아 진리 가 아니 라면, 논리 주의 는 수 학의 무 모순성 의 겹쳐진 의문을 대답하지 못한 채 남겨두게 된다. 불 확실한 환 원공리 는 무모순성을 더욱 위협한 곳에 놓고 있다. 《 수학 원리 〉) 의 초 판과 재 그판에서 환원공리 를 받아 들 인 럿셀의 이유인 거의 확실한 많은 명재 둘이 그것으로부터 연역되고, 이 공리가 거짓이라면 이 명재 둘 이 감이 되게 할 수 있는 다른 손수 1 운 방법이 알려지 있지 않았으며, 또 그런돗 한 거짓이 아것으로부터 연역되지도 않았다”는 것은 콘 무게 를 가지지 옷한다. 《수학 원리》 (와 논리의 많은 재계) 에서 받아 들 이고 있는 실질함 의는, 함의의 앞의 명제가 거짓인 겅우에도 그 함의가 옳다는 것을 허 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짓인 명제 P 가 공리로 도입되었다면, p가 q를 함의한다는 명재는 이 체계에서 성립하며, q 역시 감일 수 있다. 이리하여, 공리로부터 확실한 명재가 연역원 수가 있다는 쟁점은 무의 미하다. 왜냐 하면 《수학원리》의 논리에서, 공리가설사 거짓이라도 임 의의 확실한(i ndub it able) 명제는 공리로부터 대단히 찰 연역원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학 원리》는 위에서 우리가 분명하게 다우지 않은 여러 가지 근거 로도 미판을 받았다. 형의 계급은 유효하고 쓸모있는 것으로 판명되었 으나 이것이 목져올 완전히 달성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형의 고안 은 이윤배반을 방지하기 위해서 도입되었으며, 집합론과 논리학에서 알 려진 이윤배반이 생기는 것을 효과적으로. 막았다. 그러나, 형의 계급 으로도 막을 수 없는 새로운 이윤배반이 제기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합에도 불구하고, 닥월한 논리학자들과 수학자둘, 예윤 둘어 과 인과 처어추] Alonzo Church 갇은 사람들은, 비록 논리주의의 현상태에 비 판적이기는 하지만, 논리주의 몰 아직도 변호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결함을 제거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논리주의의 모든 주장을 꼭 고 집하지 않는 다른 사람 들 은 논리학과 수학은 분석적, 죽 공리가 말하는 바 를 단순히 확충하는 것이타고 주장하고 있다. 이리하여 논리주의의 프로그램은, 반대하는 원인이나 어떤 발전에 방해되는 장애물을 재거하 는 것을 추구하는 연광적인 지지자 를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 울 경 건한 희 망으로 간주하며 , 또 다론 사람들은, 잠시 후에 살펴 보겠지 만, 수학에 관한 완전히 거짓된 구상이라하여 공걱한다. 의십스러운 공 리와 길고 복잡한 전개 때문에 , 모든 비판자들은 훌뭉한 이유를 가지고 논리주의는 근거 없는 가정으로부터 기정 결론을 이끌어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럿셀과 화이트해드의 업적은 다론 방향으로 공헌을 하였다. 논리학의 수학화는 I9 세기 후반 (8 장)에 시작되었었다. 럿셀과 화이트해드는 전 적인 기호 형식으로 논리학의 완전한 공리화를 이룩하였고, 따라서 수 리논리학의 주재에 거대한 전전을 가져왔다. 아마도 논리주의에 관한 마지막 말은 럿셀 자신에 의해 ((추여의 초상》 Portr a it s f ro m Memory (1958) 에 씌 어 진 다음의 굳일 것 이 다: 나는 사람들이 종교져 믿음윤 원하는 방법과 갇은 종류의 확실성윤 원했다. 나는 확신성이 다분히 다본 데에서보다 수학에서 발견되리라고생각하었다. 그 러나 나는 내가 받아둘이기윤 스승들이 기대했던 많은 수학적 증명들이 허위 로 가 득 찬 것이었움과, 또 수학에서 확신성이 신개로 발견찬 수 있다면 그것 은 지금까지 안전하다고 밀어온 것윤보다 더 단단한 기초문 가진 수학의 새로 운 분야가 인 것입운 받견했다 . 그러나 일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계속해서 코 끼리와 거북이의 우화문 상기하곤 랬다. 수학적 시 1 계가 기 C 신 수 있는 코끼리몹 만들고 나자, 나는 코끼리가 미설-거리는 것윤 발견하였고, 계속하여 코끼리가 넘어지는 것윤 막을 거북이융 만듄었다. 그러나 거북이는 코끼리보.다 더 안전 하지 옷랬다. 그래서 약 20 년의 고생스러운 노력 꾼에, 나는 수학지 지식윤 확실하게 만둥 수 있는 방법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는 건론윤 내리기에 이르렀다. 《나의 철학적 발전》 (1959) 에서 럿셀은 내가 수학에서 갖기문 항상 바
랐던 장려한 확실성은 혼란된 미궁 속에서 길을 잃었다 .••• 그것은 창 으로 복잡하고 개념적인 미궁이다”라고 고백랬다. 비극은 럿 셀 만의 것 은 아니다. 논리주의가 형성 뭘 동안, 수 학 에 관하 여 근본 적 으로 다 론 정반대 방 · 향으로의 접 근법 이 직 관주의 자 ( i n t u iti on i s t )들 이 라 불 리 우는 수 학자 그룹 · 에 의하여 착수되었다. 논리 주 의자 들 이 수 학의 기 초를 구하기 위 하여 다 욱더 재밀한 논리에 의지해 왔던 반연에, 다 론 사 람들은 논 리 를 괴 해 가 거나 심지어 포기해 왔었다는 것은, 수학의 역사상 가 장 흥 미있 는 과라 · 독스이다. 한 관점에서 보면, 양 쪽 모두 같은 목표를 추 구하였다 . 19 세 기 말의 수학은 물리적 세계의 설계에 내재된 법칙 을 표현 한다는 의미 에서 전리임 을 주장할 수는 없게 되었다. 프레게와 럿 셀로 대 표 되는 초 기의 논리주의자들은 논리학은 진리의 본체이고, 따라서 논 리 위에 세 위진 참된 수학도 전리의 본체라고 믿었다. 궁 극 적으로 그 둘은 이같은 틀 입장에서 논리져 원리들이 단지 실 용상의 규정이라는 데 까 지 후도 ]해야 만 했다. 직관주의자 들 도 인간의 정신으로 허용되 는 규정 위에 참된 수 학의 진리 운 확 립 하려고 노력했다. 논리적 원리 둘 로 부 터의 연 역 은 직접 직관한 수 있는 것보다 더 믿 을 가치가 없었다. 역 리의 발 견은 이 불신 을 더 확신 한 분 아니라 직관주의의 확정된 학 선을 형 성하는 것 을 가속 · 화시컸다 . 넓은 의미에서의 직관주의는 적어도 데카르트와 파스 칼로 까지 거슬러 운라간다. 데 카르트는 그의 《정 신 지 도의 규 칙 〉〉 에 서 다음과 갇 이 말했 . 다: 우리의 이해가 오류의 두려웅 없이 지식으로 인 수 있는 방법윤 선언해 보 _ 자. 두 가지 방법이 있는대, 칙판과 연역이다. 직관은 감각의 변하기 쉬운 증 거문 의미하지 않으며, 허구의 상상력의 .::z.. 못 된 판만도 아니지만, 주의깊은정 신의 파악으로서, 이해하는 것에 관하여 아무런 의심도 남기지 않윤 정도로 뮤 이 하고 분명 한 파악이 다. 또는 바꾸어 말하면, 건전하고 주 의 깊은 정 신의 자 · 밍한 파악, 다만 이성의 빛만으로부터 생겨나는 파악이며, 또 미목 - 위에서 말 한 대로 연여으로도 인간의 마옵- 이 오유 문 법할 수 없지마는, 연역 자체보다 · 더욱 단순하므로 더욱 확실한 파악이다. 이리하여 모든 사람은 직관에 의해서 자기가 촌재한다는 것, 자기가 생각한다는 것, 삼각형은 세 변으로 둘 러싸여 1 있다는 것, 구는 하나의 곡면으로 둘러싸여진 것 동윤 알 수 있다.
아마도 왜 직관 이외에 연역에 의한 암의 다론 양식운 첨가하는가 곧게 원 , 것이다. 연역이란, 우리가 확실히 안고 있는 지식으로부터 핀연져으로 따르는 ~ 걷과문 이 꿀어내 는 과정이다 . 그러나 우리는 두번째 단계윤 반드시 맏아들여 야 한다 . 왜냐하면, 많은 사물들이 자기 자 제로는분명하 지 않지만 각각의 사 문운 명료하게 칙관하여 나아가는 사고의 연속적 이고 중단되지 않는 운동에 의해 서, 참이고 기지인 원리둘로부터 연역되기만 한다면, 확신성의 증표윤 가 지계 되기 때 문 이다. 마 치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간 이, 긴 사 술 의 마지막 고 _ 리가 첫째 것과 연건되 어 있음윤 아는 데, 미 목 한 번의 눈길로는 중간 것윤 다 분 수는 없지만, 그들을- 차례로 거쳐 본 위에 처음부터 꾼 까지 각 고리는 .• 그 다음 것과 연진되어 있음운 기여하고 있기만 하면 충분 한 것과 갇다. 이리 하여 우리는 연역으로부터 다음과 감은 집에서 직관을 구 번 한다. 연역의 경우 는 직관과는 다르게 어떤 과장이나 계속을 생각한 수 있다 . ••• 이 멍개 하여 ’ 원 리 듄로부터 직접 연역되는 기조적인 명재들윤, 그 것윤 보는 관접에 따라서 혹은 칙판으로, 혹은 연역으로 안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원리 자 체 는 직관 에 의해서만 알 수 있는 반면에, 언리 떨 어전 전과 는 연역에 의해서만 알 수 一 있다. 과스 칼 역시 직관에 깊은 신뢰를 두었다. 수학적 업적에서 보면 실재 로 파스 칼 은 대체로 직관적이었다; 그는 큰 걷과를 예상하고, 훌 융한 · 추 측을 하고 . 지 음길을 보았다. 만년에 그는 모돈 전리 의 원천으로서 칙 관에 호의를 보였다. 이 주제에 관한 그의 및 가지 말은 유명하게 되었 다. 마 음은 이성이 알지 못하는 그 자신의 이성 을 가지고 있다.” 추 론이란 진리 를 모르는 자가 그것 을 발견하는 느리고 두 1 몰란 방법이다.” 무기력한 이성이여, 겸손하라.” 넓은 의미의 직관주의는 철학자 칸트 Kan t (1724-1804) 에 의하여 예견되 었다. 주로 철학자이면서도 칸트는 퍼니히스베르크 Kon ig sber g대학에서 1755 년부터 1770 년까지 수학과 물리 학을 가르쳤다. 그는 우리 가 가상 의 의부재계로부터 감각을 받아 들 이는 것윤 인정했다. 그러나, 이란 강 각이나지각은중요한지식 을 재공하지 못한다. 모든지각은지각하는 자와 지각되는 대상간의 상호 작용에 관련한다. 정신은 지각을 구성하 고 이 구성은 공간과 시간의 직관이다. 공간과 시간은 객관적으로 촌재 하지 않으나 정신의 공헌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정신은 오로지 정신만 . 울 일깨우는 경험에 대하여 공간과 시간의 이해 를 적용한다. 지식은 겅 험으로부터 시작할지 모르지만 실재로 겅협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 다. 그것은 정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수학이란, 경험과는 독립적으 Z
· 로, 우리가 선형적이거나 참인 지석으로 얼마나 많이 나아갈 수 있느냐 하는 빛나는 예이다. 더구나 수학은 칸트가 종합적이타고 부론 것이다; 즉, 그것은 새로운 지석윤 재공한다. 반면 모든 물재 는 크기가 있다 · 와 같은 분석적 명재는 새로운 지식을 주지 못하는대, 그 이유는 바로 물체의 본성에 의하여, 크기가 성질이기 매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칙 선은 두 접 사이의 최단거리이다라는 명재는 종합적이다. 칸트가 유클리드 기하학의 선험적 종합적 목 성 을 주장한 것은 잘 못이 었지만, 그것은 당시의 모든 철학자와 수학자 사이에 유행하던 믿음이 었다. 이 잘못은 후새의 철학자와 수학자로 하여금 그의 철학윤 불신하 게 하였다. 그러나 칸트에 의한 직관의 일종인 시간의 분석과 정신이 기본적인 진리윤 제공한다는 일반적인 주장은 꾼없는 잉향을 주었다. 수학자들은 데카르트, 파스 칼 , 칸트 같은 사람 들의 견해에 미교적 정 동하고 있었으므로, 직관주의 학과에 의해 충겨울 받지는 않았었을 것 이다. 이 학파는 적어도 그 시작에서부터 급진적인 것으로 간수되었다. 그러 나 데 카르트, 파스칼, 칸트 중 어 느 누구도 마음 속 으로 오는 수학 에 직관주의적 접근을 하려는 생각은 없었다. 수학의 기조에 관한 접근 방식으로서의 직관주의는 현대의 것이다. 현대 직관주의의 직접 선구자는 크로넥커 Leop o ld Kronecker( 1 823-91) 이다. 그의 겅구(어떤 만찬 후의 연선에서 주어진) 신은 정수운 만둘었고. 나머지는 인간의 일이다”는 잘 알려진 것이다. 칸도르와 데데킨트가 집 합의 일반 이론을 써서 재시한, 보용의 칭수의 복잡하고도 논리적인 도 입법은 정수룹 직접적으로 받아 들 이는 것보다 더욱 믿을 수 없는 것처 럼 보였다. 이런 것둘은 직관적으로 분명했고 미 안전한 기조가 팔요하 지 않았다. 정수에서 더 나아가면, 오돈 수학적 구성은 사람들이 분명 한 의미움 가질 수 있는 용어윤 씨서 건설되어야만 한다. 크로넥커는. 정수불 근거로 한 실수의 집선에서 단순히 일만적인 존재 정리만윤 주 논 것이 아닌 실제로 신수의 계산을 가능하게 해주는 방법이 건설되어 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리하여 그는 다항방정식의 근을 계산할 수 있 는 겅우에 한하여 그런 근으로 나타나는 무리수만을 받아들였다. 칸노르는 초월수, 족 대수방정식의 근이 아닌 무리수가 촌제한다는 것 울 증명 하였으며 , 1882 년에 란데 만 Ferdin a nd Li nd emann 은 T 가 초월수 임윤 종명하였다. 이 일에 대하여 크로넥커는 란데만에게 r 에 관한 당신의 아봅다운 연구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런 무리수는 존재하지
도 않는데 왜 그란 문재를 연구하는가?”라고 불었다. 크로넥커의 이의 는 모든 무리수에 관한 것이 아니라 문재가 되는 수의 계산운 허용하자 않는 증명에 있었다. 란데만의 증명은 건설적인 것이 아니었다. 실재로 1t'는 무한급수의 석을 씨서 원하는 자리만큼의 소숫겅 아레 숫자를 구 할 수 있으나, 크로넥커는 이러한 급수운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크로넥커는 무한집합과 조한수불 인정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단지 잠재적 무한만을 인칭했기 매문이다. 이 분야에 관한 칸토르의 압 적은 수학이 아니라 신미 주의였다 . 고전해시학은 말의 제임이었다. 그` 는 마땅히, 신이 다 른 수학윤 가졌다면 , 그는 스스로 그것을- 세워 야 한· 다”고 덧붙였어야만 했다. 크로'바키는 자신의 견해를- 퍼릭했을 분이자 그들을 전개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과격한 개념을- 그다지 진지 하개 생 각하지 않았던 것 갇다 . 보렐, l 비르, 로뱃구의 선출공리에 관한 만대에 대하여는 앞에시 알이 、 보았지 만, 그들은 반직 관주의 자 (se mi -int u it ion is t ) 들이 었 다. 그둘온 실수 · 계를 기초로 받아 들였다 . 그들의 견해의 세부적인 것은· 다소 역사적으- . 로만 흥미거리가 된다. 왜냐 하면, 그둘- 자신은 뮤밀 한 문재에 관해서, 만 의견을 나타냈으나, 그둥 역시 체계적인 철학을 재시하지 않았기 때: 문이 다. 프앙카레 는 크로낵 커 와 마찬가지 로, 자연수를 정 의 하거 나 공리 ' 져 기초에서 자연수의 성질을 구성하거나 할 팔요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우리의 직관은 이러한 구조에 선행한다. 프앙카레는 또한 수학적 귀납법 이 견과의 일반성가 새로운 걷과의 창조윤 실제로 허용한다고 논하였다. 그것은 직관적으로는 건전하지만, 이 방법을 논리로 환원할 수는 없다 고 주장했다. 프앙카레가 본 대로 수학적 귀납법의 본성은 겁토되는 것이 당연한데, 그 이유는 그것이 오늘-난의 한 쟁점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방법으` 로, 예를 둘어, 모든 자연수 n 에 대하여 (1) 1+2+3+•··+n= n(n2+ 1) 임울 증명하려면, n=I 일 때 참임을 보이고, 어떤 자연수 k 에 관하여 성립함을 가정하면 k+1 에 관하여도 참임울 증명한다. 그러므로 프앙 카레는 이 방법이 무한 번의 논증을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것 은 (I) 이 n=I 일 때 참이므로 n=2 일 때도 참이다라는 것윤 주장한다` n=2 일 때 참이므로 n=3 일 때 참이고, 계속해서 모든 자연수에 대하
여 성립한다. 어떤 논리의 원리도 무한 먼의 논증을 보장한 수 없고, 이런 원리들로부터 이 방법을 이 꿀 어낼 수 없다. 그러므로 프앙카데에 게는 무모순은 수학을 논리로 환원한다는 취지로는 증명컬 수 없었던 것이다. 무한집합에 관하여 프앙카레는 실무한은 존재하지 않는다 . 우리가 무한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아무리 많은 대상이 이미 존재하돈 관계 없이 새로운 대상을 창조하 는 끝없는 가능성만을 나타낸다”라고 믿고 있었다. 프앙카레는 십하게 기호 응 쓰는 논리학카의 접근법에 대하여 전적으 로 만대하였는데, 저서 《 과학과 방법 》 Scie n c e and Me t hod 에서는 조소하 기까지 했다. 자연수에 관한 이같은 접근 방식의 한 예로 부탈리 포르티 의 1897 년의 논문운 둥 었는대, 거기에서 프앙카레는 1 을 정의한 기호의 미로 를 찾-알 수 있다고 했고, 이것은 자연수 I 을 이전에 전코 둘어보 지 못한 사람에개 수 I 으 1 개 념깊- 주 는 데 아주 적당한 정의라고 말했 다. 그는 덧 문여 서 “나는 이 정 의 가 선전 문 제 요구 (pet i tio pr in c ipii= beg gin g the qu esti on ) 의 허 위 룹 포함하고 있지 않는가 크게 두렵 다. 좌 변에 I 이라는숫자가있고, 우면에 un(1 이라는뜻)이라는단어가둘어 있옵올 보기 때문이다”라고 맡셨다. 그리 고 프앙카레 는 논리 주의 의 조기 지 지 자였 던 쿠두라 Louis Cout u rnt (1868-1914) 에 의하여 창안된 잉 (zero) 의 정의에 눈을 둘렀다. 영이란 공집합의 원소의 갯수이다. 그러면 공집합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원 소를 가지지 않는 집합이다.” 그리고 쿠두라는 기호 를 써서 그의 정의 룬 다시 표현하였다 . 프앙카레 는 다옵과 간이 옮겨 적 었다: 영 이 란 전 코. 성립하지 않는 어떤 조전을 만족하는 사물의 갯수이다. 그러나 껀 코 ••• 않는'이란 만의 의미는 그런 깅우가 없다(i n no case) 는 것이므 로, 내게는 어떤 큰 진보가 있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다음으로 프앙카레논 쿠두라의 수 I 의 정의에 대하여 비판하였다. 쿠 두라는 I 이란 어느 두 개의 원소도 같은 한 모임의 원소의 수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가 쿠두라에게 두 개i!J: 무 엇인가라고 물을 때, 그가 I 이라는 단어를 써야만 한다는 것이다•“ 직관주의의 창시자들인 크로넥커, 보렐, 르벳구, 프앙카레, 메르―― 대가둘의 명부 __- 는 표준적인 수학적 논법과 논리적 접근 방식에 많은 비판을 했고 새로운 원리들을 제안하였으나, 그둘의 공헌은 일시적이고
단편적이었다. 그들의 생각은 모두화란의 수학교수이며 직관주의 철학 의 창건자인 브라우어 Luit ze n E.J. Brouwer (1881-1966) 에 의 한 밍 확한 주 장 속에 합병되었다. 그의 박사 학위 논문 《 수학의 기초에 관하여》 On th e Fotm dati 01i s of lvlath emati cs (1907) 에서 브라우어 는 직 관주의 철학을 재 안하기 시작하였다. 1918 년 이후 계속 그는 그의 견해 를 확장하고 여 러 가지 학술지 를 동하 여 자세히 설명하였다. 수학에 서 의 그의 직 관주의 적 입 장은 그의 철학으로부터 나왔다. 수학 이란 정신에서 시작하고 정신에 자리잡은 인간안동이다. 그것은 인간의 정신의 외부에는 손재한 수 없다. 그러므로 그것은 실세계와 독립 되어 있다. 정신은 기본적이고 분명한 적관·울 인식한다 . 이란 것둘은· 감각적 이나 경험적인 것이 아니라 수학의 어떤 개념에 대한 즉각적인 확신등 이다. 정수가 이란 것에 속한다 . 기본적인 직관은· 시간의 연속에서 일 어나는 서로 다론 사건의 인식이다. 수학이란 시간의 겅과에서 생간 둘임 의 주 재 (sub je c t of lwoncss ) 가 모든 득밀한 사건들로부더 추상화원 매 일어난다. 모돈 이란 둘 임의 공동 내용의 나머지 빈 형식이 수학의 원초적인 직관이 되고 새로운 수학의 주재를 반복하여 재한없이 창조한 다.” 재한없는 반복이란· 브라우어에게는 자연수를 차례로 구성하는 것 을 의미한다. 시간의 직관으로부터 정수를 이끌어낸다는 생각은 칸트와 《 시 간의 과학으로서 의 대 수학》 Alge bra as a Scie n ce of Ti m e 이 타는 논문 ·에서의 해밀 돈 과 철학자 쇼펜하우어 Arth ur Scho p enhauer 에 의해 견지되 었던 것이었다. 브라우어는 수학적 사고룹, 경험과는 독립적으로 스스로의 세게를 세 우는 정신적 전선의 과칭이라고 여겼다. 다만 여기에서의 재한은, 그것 이 기본적인 수학적 직관을 근거로 하여야 한다는 것분이라는 것이다. 이런 기본적인 직관적 개념은· 공리져 이론에서 나타나는 것과 갇은 무 정의 아이디어의 본성과 같은 것으로 생각되어서는 안 되며. 이런 아이 디어가 수학적 사고에 실제로공헌한다면, 여러 가지 수학적 구조에서 일 어나는 모든 무정의 아이디어를 직관져으로 받아둘이게 하는 그 무엇으 로 생각되어지는 것이다. 더우기 수학은 종합적이다. 수학은 논리의 합 의둘을 이꿀어낸다기보다는 진리륜 구성하는 편이다. 브라우어는 이런 건설져 과정에서 어떤 주장이 정신에게 자명한 직 관으로 받아둘여질 수 있고 어떤 것이 그령지 않은가를 사고의 숙고, 게련, 수련으로써 알아보아야 하는 구속으로 제한되지만, 수학에서 오
직 가능한 기초는 추구되어져야 한다”라고 여겼다. 직관이 아이디어의 건전성과 수용가능성을 걷정하는 것이지, 경험이나 논리가 결정하는 것 은 아니다. 물론 이 전술은 경험이 담당한 역사적 역할을 부정하는 것 이 아니라는 것은 기억되어야만 한다. 자연수 아의에도, 브라우어는 덧샘, 곱셈, 수학적 귀납법은 직관적으. 로 분명하다고 주장하였다. 디우기 자연수 1,2,3, ••• 운 얻고 난 뒤, '민 형식, 죽 n 에서 n+1 로의 단계 를 무한히 만부하는 가능성을 사용드 하여 정신은 무한집합을 창조한다. 그러나 무한집합은 그 안에서 임의로 . 주어진 수문의 유한집합에 더 콘수품 항상 더한 수 있는 잠재적 무한집 합이다. 브라우어는 모든 원소가 동시에 나다나는 칸도르의 무한집합 을 반대했으며, 따라서 초한수의 이론, 재르멜로의 선출 ·공 리, 실무한 집 합을- 사용하는 해석학의 부분둘을 배겨랬다. 1912 년의 한 강연에서 그 . 는 (J)까지의 서수와 가부 1 산집합 을 받아 들 였다. 그는 또 아무란 형성의 규칙이 없는 자유 선맥의 수연인 유리수의 수연로 정의된 무리수를 허용하였다. 이 정의논 모호하지만 실수의 미가부언집합 을 허용한 것이 다. 한편, 기 하학은 수와는 달리 공간 둥에 관련되 므로 우리 의 정 신의 완전 동제 아래 있지 는 않으며 , 종합기 하학은 물리 과학에 속하는 것 이 , 라 하였다. 무한집 합에 관한 직 관주의 자의 개 념 과 관련하여 직 관주의 자 바일은 · 1946 년의 논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미 도단한 어느 단계문 넘어서 커져가는 수연은 ••• 무한까지 인려 있는 가 능성의 다양재이다; 이것은 창조의 상대로 영원히 남아 있으나, 그둘 자신 속 에 촌재하는 것듄의 닫혀진 왕국은 아니다. 우리가 맹목적으로 어민 것윤 다 온 것으로 바꾸려 하는 것은 우리의 곤겅의 감된 원천인대, 이민 곤겅 중에는 이윤배반[역리] __ 럿셀의 불완전한 순환원리가 지시하는 것보다 미 기본적인 . 성전의 원천인 __- 도 있다. 브라우어는우리의 눈운드게 했고 우리에게, 현실 의 모는 인간적 가능성윤 초원하는 전대에 대한 신념으로 키위저 온 고전수학· 이 인신적인 의미문 가침과 명백성 위에 건설된 진리입윤 주장하는 그러한 진 _ 슌춘.윤 넘어서, 얼마나 머 나아찬 수 있는가 하는 것윤 보게 했다. 그란 뒤에 브라우어는 수학과 언어의 관계를 다루었다. 수학이란 전 적으로 자윤적이고 그 자체로 충분한 완동이다. 그것은 언어와는 독립 되어 있다. t:-.J:어나 말의 결합은 진리물 전달할 때에만 사용된다. 수학· 적 아이디어는 언어보다도 인간의 정신 속에 더 깊이 묻혀 있다. 수학적
직관의 세계는 지각의 세계와는 만대이다. 언어는 수학이 아니라 지각 의 세계에 속하며, 거기에서 공-공적인 행동의 이해를 돕는다. 언어란 기호와 소리로 인간의 정신 속에 생각의 복사를 일깨워 준다. 그 구벌은 산에 오르는 것과 그것을 단어로 설명하는 것과의 차이와 비슷하다. 그 러나 수학적 아이디어는 언어의 의복과는 독립되어 있고 사실은 더욱 풍부하다. 사고는 기호적 만어를 포함하는 수학적 언어에 의해서조차 전코 완전히 표현원 수 없다. 미구나 언어는 참된 수학의 주재와는 거 리가 먼 것이다. 묵 히 논리주의에 대한 반대에서, 더욱 격 렬한 것은· 논리에 대한 직관 주의자의 입장이다. 논리는 언어에 속한다 . 그것은 진리를 전달하려는 의도인 또 다른 말들의 걷합의 연역을 허용하는 규칙들의 체계를 재공 한다. 그러나 이 렇 게 전달된 전리는 이전에 직관적으로 포착한 것과 같 지 않고, 그 렇 개 포착할 수 있도록 허용된 것도 아니다. 논리란 진리를 아는 데 믿 을 수 있는 도구가 아니며, 또 논리는 어떤 다론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어떤 진리 를 연역해내지도 못한다. 논리의 원리들은 언어 에서 후 천적으로 관찰된 규칙성이다 . 논리의 원리들은 언어룰 조종하는 고안이거나 언어의 표현의 이론이다. 논리는 말의 체계로 세워진 것이 지 그 이상은 아니다. 수학에서의 가장 중요한 발전들은 논리져 형식을 완이화함으로써 얻어진 것이 아니라 기본 이론 자체를 변경하여 얻어전 것이다. 논리가 수학에 의존하는 것이지 수학이 논리에 의촌하는 것은 아니다. 논리는 우리의 직관적 개념보다 원씬 불확실하며, 수학은 논리 , 의 보증을 팔요로 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논리의 원리들은 유한개의 대상을 가진 경험으로부터 추상화되었고, 그 뒤에 선협적으로 유효.함과 일치되었으며. 다시 무한집합에 적용되었다. 브라우어는 어떤 선협적으로 지켜야 할 논리의 원리들을 인정하지 않 았으므로, 공리로부터 걷론을 연역해내는 수학적 작업도 역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논리주의와 마찬가지로 19 세기 후반의 공리론 올 배격하였다. 수학은 논리의 법칙을 지키는 데 구애월 팔요가 없다. 수학을 안다는 것이 형식적 증명을 아는 것올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므 로 역리에 관련되는 수학적 개념과 구성을 받아둘여야 한다 해도 여리 논 중요한 것이 아니다. 역리는 논리의 결합이지 참된 수학의 걷합은 아니다. 따라서 무모순성은 도깨비이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모 순성은 올바론 사고의 결과로서 확신되며, 그. 사고는 우리가 그것이 참
임을 직관적으로 판단 할 수 있는 의미 를 가진다. 그러나, 논리의 영역에도 어떤 명확하고 직관적.으..로 받아 들 일 수 있 는 논리적 원리나 과정이 있 는 데, 이 들은 낡은 정리로 부터 새로운 것 을 주장하는 대 쓰일 수 있다. 이 런 원리 둘 은 기본적인 수학적 직관의 일 부이다. 동상적인 논리의 원리 전부가 기본적인 직관으로 받 아 들 여지는 것은 아니고 . 아리스 토덴래스 시대로부터 어떤 것 이 받아 들 여져 왔는가 하는 네 대하여는 미칸이 있어야만 한 다. 수학자둘이 너무 자유롭-게 이 둡 재한된 아리스 도델레스의 법칙을·올 옹 용 앴기 메문에, 그둘은 이 윤매 만 을 만 들 어 낸 것 이 다. 직 관주의 자문은, 수학적 건설에 종사함 에 있 어 일시적으로 직관을 무시하고 언어의 구조로 일을 한다면 , 우엇이 허용 킨 수 있고 무엇이 안전한가라 고 문고 있다. 그러므로 직관주의자둘은, 어 연 논 리 적 원리들을 받아 ·2· 여 야만 , 부물 논리가 그것등 을 따르고 또 바 본 직관을 적절히 표현하게 되는가· 붑석 하는 것을 계속셨다 . 너 무나 자유로이 적용되는 논리적 원리의 돕밀한 예로서, 브라우어는 매중풍을 지적하였다. 이 원리는 모든 의미있는 전 술은 · 감이거나 거짓이다라고 주장하는 것 인대, 역사적으로 유한집합의 추본 에 적용하는 대서 나타 났으며 , 그 뒤에 추상화되었다 . 그런 누 1 에 이것은 독립적으로 선 협적 인 원리로 받아들여졌고 무한집합에 정당성없 이 적용되어졌다. 유한집합의 겅우에서는 모든 원소가 어떤 성질을 가 지고 있는지는 각 원소를 검사해 봉으로써 길정할 수 있지만, 무한집 합 에서는 이 과정이 불가능하다. 무 한집합의 한 원소가 그 성질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 을 알게 원 수도 있으며, 또는 그 집합운 구성한 바로 그 방식으로부터 모든 원소가 그 성 질을 가진다는 것 을 알거나 증명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어느 경우에나 그 성질이 성립침 을 증명하는 데 배중윤을 사용할 수는 없다. 이리하여, 정수 들 의 무한집합에서 모든 정수가 짝수인 것은 아니라고 증명했다면, 적어도 홍수인 정수가 존재한다는 결론은, 브라우어에 의 하면, 부인되어져야 한다. 왜냐 하면. 이 논법은 무한집합에 배중뮴융 적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형대의 논법은 수학에서 실체의 촌재를 증명하는 데 널리 쓰인다. 예 를 들면 , 모든 다항방정식은 근을 가진다 (9 장)논 증명과 같다. 그러므로 많은 촌재 증명은 직관주의자에 게는 받아들-여지지 않고있다. 그들은, 그러한 증명은 그 존재가 의도 져으로 확립되어 있는 실체에 관하여는 너무나 모호하다고 주장하였다.
때 1 중윤은 만지 유한개의 원소만이 관련되는 경우에만 사용한 수 있다. 이리하여, 정수의 유한집합에서 모돈 수가 짝수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면, 적어도 하나가 홍수라는 전론을- 내란 수 있다. 바일은 논리에 관한 칙관주의자의 견해를 확장하였다: 그의 [브라우어의] 견해에 따르거나 역사윤 보면, 고전논리는유한집합과 그들 의 부분집합에 관한 수학으로부터 추상화된 것이다 .••• 이 게한된 원천운 잇 으면 그 뒤로는 논리문 수학보다 위에 또는 앞선 어떤 것으로 잔봇 이해하고, 진국 정딩성 없이 그것윤 무한집합의 수학에 적용하게 된다. ’ 이것이 이윤-매반 으 로 정당하게 번을니같은 집합본의 문라이고 원리이다. 설- 라운 것은 이인 모 순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만 모순이 이 간 이 뒤늦게야 나타났다는 것아다 . 언마후에 바일은 매중률은, 자연수의 무한수연을- 내려다 보는, 만하자 떤 한 눈에 알아보논 하느님에게는 성럽하는 것일지 모르나 인간의 논 리로는 그렇지 않다”고 덧붙였다. 브라우어는 1923 년의 한 논문에서, 우리가 무한집합에 대한 매중품의 적용을 거부 할 때 성립하지 않는 정리들의 예 불 보였다.* 특 히 볼차노 바이에르쉬트라스의 정리, 죽 실수들의 무한집합으로서 유계인 것은 국 한강을 가진다는 것은 증명된 것이 아니다. 패구간에서 연속인 실함수 의 최대값이 촌재한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어떤 유계인 패구간 을 덮는 구간둘의 모임들로부터 유한게의 구간을 골라내어 처음 구간을 덮개 할 수 있다는 하이네-보렐의 정리도 거부되었다. 물론, 이란 정리 둘로부터 얻어진 걷과들도 받아둘일 수 없다는 것이다.
• 우리돕의 목시설- 위하여는 이돕 깅리의 전문시인 의미는 안 고.!.요가 없다. 그군은 다만 유정한 예윤 윤기 위하여 언급된 것이다 .
수학적 신재의 촌재 를 확립하는 데 매중률의 재한없는 사용을 거부한 뒤에, 직관주의자들은 다론 요청윤 재안했다. 그둘은 모든 원소의 속성 져 독성으로 정의된 집합, 예를 문면 붉은 속성을 지닌 집합을 받아들 이려 하지 않았다. 직관주의자등이 수학적 논의에서 정당한 것으로 받 아문이리 하는 개념이나 대상――진실로 촌재한다고 말한 수 있는 대상 ―은 구성적 (cons t ruc ti h i e) 인 것이어야 한다 ; 즉, 유한회의 단계로 그 실체릅 나타낼수있는 방법을 재시해야하거나, 또는 임의로 원하는 정 도의 정확성으로. 그들을 계산하는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이리하여,
•• 프앙카데는 예외지이었다 . 그는 형식주의자군가 마산가지로 (ll 장), 한 개납은 그것이 모순운 이꾼어내지 않-온 대 받아윤인 수 있는 것이라 하있다.
r 는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소숫점 아레 자리까지 계산할 수 있으므로 받아·:-일 수 있다. 만약 2 보다 큰 자연수 n 에 관하여 x•+ y • = z” 을 만 족하는 정수 x, y ,z 와 n 의 존재만운 증명하고, 그러한 정수의 값옹 지 정할 수 없었다면, 직관주의자물은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편 , 솟 수의 정의는 구성적인데, 그 이유 는 아떤 수가 솟수인가 아닌가 웅 전정 하는 데 유한회의 단계로 된 과정·압 적용한 수 있기 대문이다. 다른 예· 를 들어보자. 쌍둥솟수 ( t w i n p r i mes) 는 l 一 2 와 l 의 짤로 된 두 솟수, 예 를. -:· 면 5 와 7, 11 과 I3 동이다. 무한히 많은 쌀둥솟수가 촌제 하는가 하는 것은 수학의 미해전 운재 중 하나이다. 이재 수 l 이 l 一 2 도 솟수가 되는 최대의 솟수라고 하고 최대의 솟수가 없으면 l=l 이라 고 임의로 정의하자. 고전주의자는 최대의 쌍둥솟수의 쌍이 존재하돈가 안 하돈간에, l 을 완전히 잘 정의된 것으로 받아둘인다. 왜냐 하면 매 중문에 의하여, 그러한 쌍은 존재하든가 그밍지 않든가이기 매문이다. 첫째 깅우에는 l 은 l 一 2 도 솟수가 되는 최대의 솟수이고 , 둘째 겅우에 는 l=l 이다. l 옵· 실제로 계산한 수 없다는 사실은 직관주의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관계가 없다. 그러나 직관주의자등은, l 이 계산청 매까지. 죽 쌍둥솟수의 무한히 많으냐 아니냐 하는 문재가 해걷원 메까지는, 위 의 l 의 ‘‘정의를 의미있는 것으로- 받아둘이지 않는다. 구성적 과정에 관한 주장은 곡·히 우한집합의 결정에 적용된다. 선출공리룹 씨서 만들 어진 무한히 큰 집합은 받아들여질 수 없다. 위에서 보인 및 가지 예처 럼 어떤 촌재 정리는 구성적이 아니다• 그러므로, 매중 윤 의 사용을 떠 나서, 그간은 촌재 정리들을 거부하는 또다몬 근거가 있는 것이다. 바일은 미구성적 촌재 증명은, 감추어 둔 장소몰 밝히지 않고 보물 이 존재한다고 세상에 알리는 것이라고 말랬다. 그러한 증명은 의미와 가치가 없으므로 구성적인 것운 대신할 수 없다. 그는 또한 직관주의자 의 철학울 고집하는 것은 고전해석학의 기본적인 촌재 정리들의 포기를 의미한다고 지적하였다. 칸토르의 조한수의 계급에 대하여 바일은 오리 무중이 라고 묘사했 다. 그가 쓴 《연속체 >D as Konti nu um (1918) 에 서 , 해 석학은 사상누각이라고 했다. 단지 직관주의자의 방법으로 이 록 된 것만 · 이 확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배 중문의 거 부는 새 로운 가능성 , 죽 비 결 정 적 명 재 (undecid a ble pro p o- sit ion s) 가 생 겨 나게 하였 다. 직 관주의 자들은 무한집 합에 관하여 재 3 의 상대, 즉 증명할 수도 없고 듄 렀다고도 할 수 없는 명재가 존재할지 모-
르는 상태가 있다는 것을 고집했다. 그들은 그러한 명제의 예로서 다음 울 들었다: T 의 소수 전개에서 k 번째 자리를 정의하는데, k 번째 자리 에 0 이 나타나고, 그 뒤에 미로소 1 에서 9 까지의 정수가 차례로 나타 나게 되는, 최초의 0 의 자리수가 k 인 것으로 정의하자. 아리스토먼레 스의 논리에 의하면 k 는 촌재하든가 않든가이며, 아리스토텔레스를 추 종하는 수학자들은 이 두 가지 가능성의 근거에 입각하여 논의를 계속 한다 · 브라우어 와 직 관주의 자들은, k 가 촌재하는지 촌재 하지 않는지 를 증명할 수 있는가 를 모르기 때문에, 이같은 논의를 일반적으로 배격한 다. 그러므로 직관주의자에 의하면, 수학의 임의의 기초의 근거로써도 결코 해 결 할 수 없는 의미있고 실질저인 수학적 의문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문 들 은 걷정원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신념의 근거가 그것들이 과거에는 결정되어지던 종류의 수학적 개념이나 문제에 관련 되어 있다는 것에 불과하다. 직관주의자의 견해로는 실수계의 고전적 구성과 논리주의적 구성, 미 적분학, 실함수의 현대적 이론, 르벳구 적분, 그밖의 다른 주제들은 받 아들여질 수 없다. 브라우어와 동시대의 그의 동조자들은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이미 재시한 구성법을 근거로 하여 수학을 세우려 고 노력하였다. 그들은 위에서 언급한 주계의 일부분을 구재하는 데 성 공했으나, 그들의 구성이 매우 복잡하였으로, 한패인 바일조차도 증명 의 참기 어려운 거복합을 불평했을 정도였다. 직관주의자들은 또한 대 수학과 기하학의 초보적인 부분을 재건하였다. 그러나 재구성은 느리개 진행되었다. 그러므로, 1927 년의 논문 《수 학의 기 초 》 Thi!! Foundati on s of Math emati cs 에 서 힐 버 트는 현 대 수학의 거대한 넓음 (ex p anse) 에 미하면 전관주의자둘이 얻어낸 바참한 부스러 기, 불완전하고도 연관성 없는 및 가지 고립된 길과들은 무엇운 의미하 는가”라고 말했다. 물론 1927 년에 직관수의자들은 그들의 기준에 의한 고전. 수학의 재구성에 큰 진전을 하지는 못했었다. 그러나, 그듄의 철 학적 반대자들의 자극은 그들에게 박차를 가했다. 그후로 접점 더 많은 직관주의자들이 기초의 재건에 손을 댔다. 불행하게도 논리주의의 경우 와 7같 이 직관주의자들도 무엇을 기초로 받아들이느냐에 관하여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 어떤 이는 모든 일반저인 집합본적 개념을 삭제하고, 효과적으로 정의되거나 구성천 수 있는 개념에만 재한하기로 결정했다. 고전. 논리에 도전하지 않고 오히려 이것을- 모두 사용하는편인 구성수의
자 (cons t ruc ti v i s t)들은 덜 극단적 이 었 다. 어 떤 이 는 수학적 대 상의 모임 을 받아들이고 그 다음에 구성적 과정울 주장하였다. 이리하여 적어도 실 수의 한 집합(그러나 이것온 실수 전체의 연속재로 확장되지는 않는다)을· 허 용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났다; 다른 사람둘은 정수만을 받아들인 뒤 에 단지 계산할 수 있는 다온 수와 함수 갇은 것만을 개념으로 받아들 였다. 계산할 수 있는 것으로 고려되는 것도 그움에 마라 달랐다. 이리 하여 수가 계산가능하다는 것은 처음에 받아 들 인 수의 집합에 의해 그 수에 접정 가까이 근사시킬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것은 마치 보 동의 무리수가 유한소수에 의해 얻마든지 더 가까이 근사시킬 수 있는 것과 갇았다. 불행하게도, 구성의 개념을 에리하고 모호하지 않게 할 방법은 없었 다. 수 N 의 다읍과 같은 정의 N=1+ (-IO1,.) ' 룹 생각해 보자. 참시 P=3 이라 가정해 보자. 그러면 N=i - o.001= o.999 이다. 한편 p =2 이면 N=1.01 이다. 이제 P 가 r 의 소수 전개에 서 그 뒤에 수연 123456789 가 뒤따라 나오는 첫번째 숫자라고 정의하 자. 만약 그러한 P 가 없다면 우리는 N을 1 이라 정의한다. 만약 P 가 촌재하고 짝수이면, N=I.000••• 으로 정의하는데, N 의 소수아래 P 먼 째 자리는 1 인 것으로 한다. 만약 P 가 홍수이면, I) 번째 자리까지 9 가 계속되는 N=0.999··· 으로 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위와 같이 정의 한 P 가 존재하는지 모론다. 만약 촌재하지 않는다면 N = l 이다. 만약 그간은 P 가 촌재하고, 가령 r 의 소수 전개에서 처읍의 천 자리까지에 있지는 않다면 우리논 N 의 값을 적기 시작할 수 없다. 그렇지만 N 은 정의되고, 어떤 원하는 근사값까지 알 수 있다. N 은 구성적으로 정의 된 것인가? 물론, 선술공리 나 연속체 가선을- 사용한 존재 증명 은 구성적 이 아니 므로 직관주의자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지만, 직관주의자가 아닌 많은 수학자에게도 받아둘여지지 않고 있다. 비 록 구성 주의 자물- 사이 에 서 도 의 견이 서 로 다르지 만, 그둘은 고전. 수 학의 많은 부분운 재건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재건된 정리 중 어떤 것 은 고전적 정리와 똑갇온 것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이에 관하여 직관주 -
’ 의자들은, 고전 해석학이 미록 유용하지만 수학적 진리운 덜 갖고 있다 고 대답한다. 종합하면, 이재까지의 그들의 전전은 재한된 것이었고. 이전에 받아들여지던 수학 전체에 대하여 그 들 의 업적을 확장한 전망은 좋지 못하다. 진전은 느렸기 매 문에 , 나중에 좀 더 다 루 게 원 부르 바키 Bourbaki 학파의 수학자들은 1960 년에 직관주의 학파의 추억은 윤립 없 이 단지 역사적 호 기십으로만 남아 있 는 운명이 원 것이다”라고 언급했 다. 직 관주의 에 관한 미 판자들은 시 인 호팬쉬 타인 ~amuel Ho ff en s t c i n 을 인용 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씩 조금석 우리는 엔다 . 사 실로부터 믿음과 허위운, 진실로부더 착각윤 , 그리 고 난 두 1 에는 나머지 위에서 아사한다. 그러나, 직관주의자에게는 , 건전한 기 초의 값어치가 고전 수학의 일부 룹 회생하는 것 이라면 그것이 비 록 칸토르의 초한수의 이돈의 낙원이 라 할지라도 그 값이 너무 비싸지는 않은 것이다. 반대자 들은 직관주의 철학울 기각하는 데 있어 너무나 거침이 없거나 너무나 독단적일지 모르지만, 보다 동조적인 사람 들 의 미 포J :중에는매우 심각하게 받아둘여져야 할 것이 있다. 이같은 비판 중하나가 지적한 것 은, 칙관주의자 들 이 그 둘 의 원칙에 일치하는 방법에 따라 열렬하게 재건 에 노력하는 바로 그 정리들이 인간의 직관에 의해 재시된 것도 아니고. 인간의 직관에 의해 보장된다고 생각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 정리들 은 수학자들이 이미 사용하여 오던 · 방법에 의해서 발견되었는데, 그같은 · 방법은 온갖 종류의 추론, 추 축 , 북벌한 겅우로부터의 일반화, 원천을 설명할 수 없는 갑작스런 동찰 둥이다 . 그러므로, 미목 직관주의자 둥 이 그들 자신의 원칙과 일치하도록 증명윤 재건하려 노력했지만, 직관주의 자 들 은 모든 수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보몽의 창조법과 고전 논리에마자 실재로 의촌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직관주의자둘은 보몽의 발견법이 사 용되었어야만 할지라도 그 걷과는 여전히 인간의 직관에 받아둔여질 수 있어야만 한다고 대답할 수도 있다. 직관주의의 다른 주장의 중요성운 부정 하지 아니 하더 라도, 직 관주의 자 물- 마저 도 받아 들 이 는 많은 정 리 문은 직관적으로 모호하고 이상하여 그 들 이 감임을 정신이 곧 알 수 있는지 , 밀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수학적 창조의 보동 방법과 수학적 이상화 • 추상화의 보동 방법이 팔 수적 이 라는 논접 은 클라인 Felix Klein 과 팟수] Morit z Pasch 에 의 하여 더 욱 추구되었다. 모든 점에서 미분가능이 아닌 연속함수나, 정사각형을 다 채우는 곡선 (페아노 Peano 곡선) 을 직관으로 발견할 수 있는가? 그것 이 설사 칙관으로 암시되었다고 하더라도, 이같은 것들의 창조는 이상 화와 추상화에 의하여 다듬어져야만 얻어지는 것이다. 큘라안은 소박한 직관은 정확하지 않은 반면에, 다듬어진 칙관은 전혀 참된 칙관이 아니 며, 공리에 근거한 논리적 전개로부터 얻어진다고 말했다. 공리로부터 의 논리적 연역에 궁극적으로 의지해야 한다는 요구에 관하여 브라우어 는, 공리계는 무모순인 해석이나 모델 (8 장)을 써서 그 무모순성이 증명 되어진 것이어야 한다고 대답하였다. 우리는 항상 그러한 해석을 가지 고 있는가? 그들의 무모순성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직관적 근거에 의촌 하지는 않는가? 라고 그는 날카롭게 물었다. 바일 역시, 창조와 증명에 있어서의 전동적 방법이 더 강 력하 다는 주 장에 도전하였다. 그의 저서 《정신과 자연》 M ind and Na t ure ( 1934) 에서 그는 저관으로 알 수 있는 것보다 더 깊은 본질이 인석되어져야만 한 다는 기대는 어리석은 꿈이다”라고 말했다. 직관주의의 반대자 중의 어떤이는 수학이 인간의 창조라는 데는 동의 하나 그들이 옳은가 믈린가는 객관적으로 결정될 수 있다고 믿는데, 반 면에 직관주의자들은 오류에 빠지기 쉬운 인간 정신에게 자명한 것 (self -ev id e ncy ) 에 의 존한다는 것 이 다. 힐 버 트와 매 로나이 스 Paul Bernays {1888-1978) 가 수학의 기초에 대한 그들의 공저의 초판에서 논하였듯이 우리는 직관주의 철학의 큰 약접윤 여기에서 발견한다. 옳다는 것이 인 간 정신에게 자명한 것울 의미한다면, 우리는 어떤 개념과 추론에 의 존해야 하는가? 모든 인간에게 객관적으로 성립하는 진리는 어디에 있 는가? 직관주의에 관한 다른 비판은, 그것이 자연에 대한 수학의 응용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직관주의는 수학과 지각을 관련시키지 않는다. 브라우어는 직관주의 수학은 실제의 웅용에는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인정 랬다. 사실상, 브라우어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부인했다. Ii 1 판 이 어떠하돈, 바일은 l95J 년에 수학적 명제들은 순수한 진리, 죽 증거 에 근거를 둔 진리을 말해 준다는 신념을 견지하기를 원하는 모돈 사람 은 .!!.라우어 의 주장을 받아들여 야 한다고 생 각한다”라고 말하였 다.
직관주의자둘의 학설은 그와 관련된 문재정들을 제기시켰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그들은 건전하고 수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는 인간의 정신 에 의해서 생각되어질 수 있는 것이라 고집한다. 이런 아이디어는 말의 형태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실재로 언어란 이런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불완전한 연장에 불과하다. 길게 논의하였던 문제정은, 말이 없이 사고 가 존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요한 복음에서처럼 표현 되는 입장이 있다: “대초에 말이 있었다.” 성 요한은 마음 속에 수학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의 전술은 그리스의 철학적 입장과 현대의 및및 심리학자둘의 견해와 일치한다. 한편, 버클리 주교는 말이란 사 고에 방해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오일 러 는 프 러 시 아의 프레 데 릭 대 왕의 조카말인 안할트 데 싸우 Anhalt- Dessau 공주에게 보낸 편지 (1768-72 년에 출판된)에서 이 문제를 논했다: 인간이, 수상의 입운 시험해야 하는 데, 또 일반적 아이디어윤 그 자신이 갖추 는 데 어떠한 대도운 가지든 간에, 말해졌거나 씌어진 언어의 도웅없이는 어떤 상당한 전보도 한 수 없다. 양쪽 모두 다양한 단어둔운 포합하는데, 이 단어 문은 우리의 생각에 대응되는 어민 기호이며, 그듄의 의미는 관순 또는 함께 살고 있는 여러 사감의 무언의 동의에 의해 정착된다. 이간은 사선로부터, 인유에게 언어의 유일한 묵져온 그문의 감정운 서로 건 단하고, 혼자 있는 사람은 언어없이 찰 지넬 수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 나 약간만 숙고하여 본다면, 다론 사람과의 의 사 전달을 유지 하기 위 하여 자신의 생각운 추구하.Jl. 가꾸는 데 있어서, 인간은 언어윤 팔요로 한다는 것 이 확신되어진다. 아다마르는 그의 저 서 《수학적 영 역 에 서 의 발명 의 십 리 학》 The Psyc ho- Jo g y of broenti on in the Math e mati ca l Fie l d (1945) 에 서 수학자들은 어 떻 게 사고하는가 하는 문제를 조사하였는데, 그가 발견한 사실은, 창조 과정 에서 실재로 모돈 수학자가 정확한 언어의 사용을 피하고 있다는 것이 다; 그들은 시각저이거나 촉각적인 막연한 이미지를 사용한다. 이와 갇 은 사고의 방법 은 아다마르의 책 에 다시 수록된 아인쉬 타인 Ei ns te in 의 편지에서 선명되었다: 단어나 언어는, 그것들이 씌어졌든, 말해졌돈, 나의 사고의 메카니층에 있어 서는 어떤 여한윤 하는 것 갇지는 않다 .... 사고의 요소 노릇윤 하는 것처럼 보이는 물리져 신재는 어떤 기호윤과 자발져으로 재생되고 건합전 수 있는 다
소간 분명한 이미지이다 .... 앞에서 말한 요소는 내 겅우에는, 눈으로 봉 수 있고 립찬 꾼 (muscular type ) 중의 어연 것이다. 편리한 난어나 다몬 기호는 두번째 상대에서만 힘들-개 갖아지는 깃이다 .••• 물몬 시각화는 강조 완동에서 중요한 역할울 한다. 무한 적선이 유클 리드 평면윤 두 부분으로 나눈다라는 것은 시각화로부터 얻어진다. 그 러면 문제정은, 칙관주의자들이 고집한 것처럼, 어떻게 얻어진 것이돈 사실에 대한 정신의 신뢰는, 정확한 언어와 논리적 증명에 의한 설명의 팔요가 없게 되도록 확신할 수 있는가 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브라우어 뒤 의 지 도적 인 전형 적 직 관주의 자인 하이 당 Arend Hey li n g (1898- )은, 형식논리학자들과의 의사 교환을 잘 하기 위한 재스추어로 1930 년의 논문에서, 직관주의의 명재논리의 형식적 규칙을 재시하였다. 이깃들은 고전적 형식논리의 일부만을- 포함한다. 하이탕은 P 가 참일 매 P 가 거짓이라는 것이 거짓임운 항의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그 러 나, p 가 거 짓 이 라는 것 이 거 짓 이 면, p 가 감이 되 지 는 않는다. 왜 냐 하 떤, p가 수장하는 것은 구성적이 아닐지 모르기 때문이다. 매중풍―― p 또는 이 -p 가 참이 다-은 사용되 지 않았다. 그러 나 명 재 P 가 명 재 q 를 함의한다면, q의 부정이 P 가 거짓임을 함의한다. 이것의 형식화는 직관주의자들에개는 기본적인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것은 그러한 아이디어의 불완전한 표현이다. 더구나, 하이딩의 형식화는 그것 하나 · 분은 아니다. 직관주의자들은 받아들일 수 있는 논리의 원리들에 관하여 . 도 서로 의견이 달랐다. 직관주의자들이 제기한 수학에 대한 재한과 직관주의 철학에 대한 다· 론 사람둘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직관주의는 건전한 영향을 주어 왔다. 직관주의는 선출공리와 관련하여 처움으로 십각하계 논의된 문제를 표 면화시켰다. 수학적 촌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일의 말윤 의역하 면, 무엇인지 알 수도 없고 계산할 수도 없는 목정한 성질을 가전 수의 촌재를 안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배중문을 제한없이 소박하게. 확대하여 사용하는 것은 재고되어야만 한다는 것이 명백하다. 직관주의 의 공헌 중에서 아마도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존제하지 않으면 모순이 유도된다는 것만을 보임으로써 그 존재가 확립되어진 수 또는 함수의 계산에 관한 그들의 고집이다. 이런 수를 직접 안다는 것은 한 찬구와 합께 살고 있다는 것과 같은데, 그 친구는 지구 위의 어단가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식이다.
논리주의자와 직관주의자의 대결은 수학의 참된 기초 를 세우기 위한 전쟁의 서전에 지나지 않았다. 다른 전사 물 도 싸웅으로 돌입하였고, 우` 리는 아직도 그 들 의 이야기 를 들 어야 한다.
l l 형식주의 기초론과 집합론적 기초론 c i대 수학의 거대한 넓음에 미하면, 직관수 의자들이 얻어낸 미참한 부스러기, 및 가지 불완전하고도 연관성 없는 따로따로의 길과 문은 무엇운 의미하는가? —인 버 트 David Hi lb ert 금세기의 처음 10 년 동안에 시작되어 수학의 참된 기초론에 대한 관 정에서 정면으로 맞섰던 논리주의와 직관주의의 철학은 마치 발사되어 야 할 첫 대 포들이 었 다. ·인 버 트는 형 식 주의 (fo rmal i sm) 라고 불리 우는 세 번째 학파를 창시하고 이꾼어 나갔다. 네번째로 체르멜로가 집합론 학 .Sl} (the set- t h eoreti c school) 봅 창시 하였 다. 1900 년의 국재 수학자 대회 (8 장)에서의 강연에서 힐버트는 수학의 무 모순성의 증명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그는 또한 실수를 정렬화하는 방 법운 문재로 재시했다. 우리는 재르멜로의 연구 결과로, 정면화 가능성 이 선출공리와 동치임옵 알고 있다. 꾼으로 힐버트는 ~o 와 c 사이에는 초한수가 없다는 연속제 가선의 증밍에 착수할 것을 제안했다. 그 곤란 스러운 여리둘이 알려지기도 전에, 또한 선출공리에 관한 논쟁이 벌어 지기도 전에, 힐버트는 이 모든 문제들을 해걷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고 내다 보았다. I904 년의 제 3 차 국재 수학자 대회에서 인버트 자신은· 무모순성의 · 층명법을 포함한 기초온에 관한 그의 접근법의 스캣취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한동안 그는 더 깊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다음 I5 년 동안, 논 리주의자들과 직관주의자물은 그들의 주장을 널리 알렀다. 그러나, 온
건하거 1 표현한다면, 인 버 트는 기 초론을 둘러 싼 문제 들에 관한 그움의 , 해 답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논리주의자의 프로그램을 도리어 냉정히 거부했다. 그의 기본칙 인 반론은, 1904 년의 강연과 논문에 마르면, 논리 의 길고 복잡한 전개 과정에서 명백히 밝히지는 않았다하더라도, 정수는 이미 포함되어 있다 · 는 것이다. 따라서 논리 위에서 수를 건설한다는 것은 순환논법이다. 그는 또한 집합들을- 그들의 성질윤 써서 정의하는 것을 비판하였다: ::J... 렇게 한다면, 팔연적으로 명재와 명재함수를 유형에 따라 구분해야 되 는데, 유형론은 의십스러운 환원공리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는 무한 집합이 마땅히 있어야 한다는 럿셀과 화이트해드의 주장에는 동의했다. 그러 나 이 것 은 무한공리 (axio m of i n fi n ity)룹 요구하며 , 힐 버 트는 다론 사 · 람들과 마찬가지로 이것이 논리학의 공리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반면에 직관주의자 둘 의 주장은 힐버트를 높- 라게 했는데, 그 이유는 그 들이 촌재 증명에 으店은하는 것과 감은 해석학의 대단히 많은 부분을 배 격했기 미 1 문이다. 그래서, 그는 그들의 철학을 맹밀히 공격했다. 1922 년에 그는, 칙관주의가 수학을 파괴하고 변형하려 한다”고 말했다. 19 27 년의 논문에 서 는 수학자로부터 매 중률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것 은, 말 하자면 천문학자에 개 서 망원경 을 페 앗는다든가 권두 선수에 게 주먹 의 사 용을 금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배중윤을 사용함으로씨 얻어지는 촌재 증명의 거부는 수학의 과학 전반을 집어치우는 것과 같다'’라고 항의했다 . 바일 We y l 은 1927 년에 직관주의에 관한 인버트의 입장에 대해서 다 음과 갇이 말랬다. ”이러한 [직관주의의〕 관정에서 고전적 수학의 한 부 분, 아마도 오로지 미참한 한 부분만이 조리가 있다고 하는 것은 불가 피한 사실이다. 힐버트는 이러한 훼손을 참윤 수 없었던 것이다.” 논리주의와 직관주의 모두를 향하여, 인버트는 그 어느 쪽도 무모순 성울 증명하지 못했다고 주장 ·겠 다. 1927 년에 인버트는 외쳤다: 그것 [수학〕윤 세우기 위해서 나는 크로넥키처럽 신이 핀요하지 않으며, 또는 · 프앙카레처럼 [그는 수학적 귀납법운 사용하는 채게의 무모순성은 증명한 수· 없다고 말했다.J 수학져 귀납법의 원리에 맞는 ..:.;·민한 이해력의 가정이 뮐요 하지 않으며 , 브라우어 의 핀수지 인 직 관도 펀요하지 않으며 , 마지 막으로 릿 샛 이나 화이트헤드가 그랬던 것처럼, 실재로는 한신저이고 신체저인 명재이기는 • 하지만 무모순성의 층명에 의해서는 확립시킬 수 없는 무한공리 • 환원공리 •• 완비공리도 팔요하지 않다.
1920 년대에 힐버트는 기조론에 관한 그의 접근법을 형성랬으며, 그 의 여 생을 그 일에 바쳤다. 1920 년대와 1930 년대 조 사이에 힐 버트가 발표한 논문 중에서, 1925 년의 논문이 그의 아이디어 를 밝힌 주요한 것이다.* 그는 이 논문 《 무한에 관하여 〉〉 에서 내 이론의 목적은 단 한 번에 수학적 방법 들 의 모든 확실성 을 확럽하는 대 있다”고 말랬다. 그의 주장의 첫째는, 논리학의 전개가 실제로 수학적 아이디어 룹 풍 고 있으며, 고전 수학이 보존되기 위해서는 무한공리와 같 은 조 논리적 공리들이 여하간 도입되어야 하므로, 수학에의 홉- 바 론 접근은 논 리학과 수학 둘 다의 개념을아 공리품을 포함해야 한다. 더구나 논리는 무언가 에 작용해야 하며, 그 무언가는, 어떤 논리적 전개가 착수원 수 있기 전 · 에 이미 직관 안에 촌제하는, 수와 같 은 어떤 초논리적인 구체적 개념 둘로 구성되어 있다.
* 대나세라프 Pnul Bcnacc raff와 구드납 H i lar y Pu t nam 의 (수학의 철학》 Phil o sop hy of Math e mati cs, Prenti ce Hnll, 1964, 134-81 에 춘 1 있다.
힐버트는 논리학을 위한 공리적 근거 를 세우는 것에는 관십이 없었으 므로 보다 많은 논리적 공리 를 가정겠지만, 공리들은 럿셀의 것과 본질 적으로 다 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인버드에 마르면, 수학은 논리만으로 부터 이꾼어낸 수는 없기 때문에― ― 수학은 논리의 전 과가 아니고 자 윤적인 과목이다-각 분야는 논리학과 수학 모두의 적 절 한 공리를 갖 추어야 한다. 더구나, 수학을 다 루 는 가장 믿을 만한 방법은 그것을 사 실상의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형식적인 과목, 죽 추상적 • 기호적아며 의 미와는 판게가 없는(그러나 마공식적으로는 신체에 대한 의미와 관계가 설-어 간다) 것으츠i 다루는 것이다. 연역이라는 것은 논리의 원리들에 따르는 기호의 조작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및 가지 역리의 원인이 되는 언어의 모호성과 적관적인 지식 의 무의식적인 사용을 피하고. 다른 역리들을 없애고, 또 증명과 객관 성의 정확함을 얻어내기 위해서, 힐버트는 논리학과 수학의 모돈 진술 들은 기호의 형태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기호들은, 그 것들이 칙관적인 의미가 있는 지각둘을 나타넬 수도 있지만, 그가 재 안한 형식적 수학 안에서는 해석되어쳐야 할 팔요가 없다. 및 가지 기 호들은 무한집합을 나타낸 수조차 있는데, 그 이유는 힐버트가 무한집 합을 포함시키기를 원했기 매문이며, 이 경우에도 무한집합들은 직관적 인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힐버트도 실세계에는 유한개의 대상만이 존
개한다고 믿었지만 , 그가 이 음 분였듯이 이러한 이상적인 요소 들은 모 돈 수학을 구성하는 대 팔요했 고 , 그레서 그들의 도입이 정당화되었다. 물질은 유한개의 원소로 구성된다. 여기에서 일버트의 논법은 한 가지 유사한 경우 룬 생각함으로써 이해 된 수 있다. 무 리수는 수로서의 직관적인 의미는 없다. 길이가 무리수 인 것 을 도입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 그 길이 자체는 무리순에 대한 어떠 한 직관적인 의미도 부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리수는 이상적인 요소로서 소등 수학에 서 조차 판요하다. 그리 고 이 것 이 , 수학자들이 I870 년대까지 어떠한 논리적인 근거조차도 없 이 그것들을 사용한 이유이다. 힐버트는 J=; 살 포함하는 수인 복소수에 대해서도 같은 견해를 제시 했다 . 복소수는 실세계에서 직접 대응되는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붕 구하 고, -부소수는 모돈 n 차 다항방정식이 꼭 n 개의 근을- 가진다는 둥의 일반 적인 정리들을- 가능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복소변수함수론운 가능 케 랬는데 . 이 이 론은 물리학의 탐 구에 대단히 널리 사용됨이 판명되었 다. 기호들이 직관적인 의미 봅 가전 대상들을 나타내 돈 않든간에, 개념 과 연산의 모돈 부호와 기호는 의미률 가질 인요가 없다. 기 초론 의 목 표 를 위해서는, 수학적 사고의 요소는 기호와 명재들-인데, 명재는 기호 의 긴합 또는 연세이다. 따라서 형식주의자문은 하나의 댓가, 죽 으]미 없는 기호등욥 다운다는 댓가로서 , 확실성을 사고자 했다. 다행하게도, 논리학 의 기호주의는 19 세기 말과 20 세기 초에 발전 되 어 (8 장) 안 버 트는 그가 팔요 로 하는 것운 손에 넣은 생이었다 . 따라서 ..... 이 아니 다”에 해 당하는 ~, “그리 고에 해 당하는 A. 또는에 해 당 하는 v, ···이면 ••• 이다”(합의 ) 에 해당하는 -+, “촌재한다에 대한 3 와 강은 기호설· 울 쑬 수 있었다. 이것둘은 정의되지 않거나 또는 원조 적인 개념둘이다. 물돈 , 순수한 수학만을 위해서 기호주의는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었다. 힐버트가 선덱한 논리학의 공리 들 은 실재로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의 모든 원리군웅 이 꿀 어내도 목 의도되어졌다. 사람둘은 이러한 공리들윤 받아 들 이는 데 아무 의문이 없 을- 것이다. 예룹 듄면, X. Y.Z 가 명제 들일 때, X 이연 XVY 이다라는 공리가 설정되는데, 이것은 문자 그 대로, 만일 X 가 참이면 X 또는 Y 가 감이다 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 하나는 말로써 죠현 하면 다음과 감은 진술 ·음 나타낸다: 만약 X 이면 Y 이다일 때, Z 또는 X 이면 Z 또는 Y 이다. 기본져인 공리 중 하나
논 합의의 규칙 또는 추론의 규칙이다. 그 공리는, 만일 논리식 A 가참 이고 논리석 A 가 논리식 B-분 함의한다면 논리식 B 도 참이다 라는 것 이다. 논리학의 이 원리는 아리스도델레스 논리학에서 mod11s p onens( 연역 원리)라 불렀던 것이다. ' 인버트는 또한 매중뮬을 쓰기를-원겠고, 이것을· 기호 형대로 표현한 기술적인 고안을 내 놓았다. 이와 마찬가지 고안이 선출공리에도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물론 수학에서의 공리이나. 그것은 “모든이라는 단어의 명확한 사용을 미했는대, 그평개 합 으로써 일버트 는 모든 역리를- 퍼하기를- 기대했다. 수를· 다루는 수학으1 분야에 는, 할 머 드의 프로그램 에 마르면 수의 공 리들이 있다. 에룹 들어, a=b 이면 a'=b' 이다 라는 공리가 있는데, 이 는 만인 두 정 수 a 와 b 가 갇으면, 그둘의 후자 (su ccess o r, 직 관직 으로 그 , 다옵- 의 정수)들도 간다는 것이다. 수학적 귀납법의 공리도 물 론 포함되 어 있다. 일반적으로 공리들은 최소한 자연 현상에서의 겅험이나 이미 존재하던 수학적 지식의 새계와 관련되어 있다. 만일 집합론-윤 형식적 체계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어연 집합들이 만둘 어질 수 있는가를 말하는(기호 형대의) 공리들을- 포함해야만 한다. 마라 서 공리둘은 두 집합의 합과 주어진 집합의 모든 부분집합으로 된 집합 운 만드는 것윤 허용한다. 논리학과 수학의 공리들을 기호화된 식이나 기호의 모임으로 표현한 뒤에, 인버트는 객관적인 증명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도 말할 준미가 되어 있었다. 그것은 다읍의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어만 논리식의 주 장; 그 논리식이 다른 논리식을 함의한다는 것의 주장; 두번째 논리식 의 주장. 마지막으로 주장된 논리식은 그에 앞선 공리나 걷온둘로부터 함의된다는 것과 갇은 단계들의 연케가한정리의 증명을 이룬다. 또한, 한 기 호 또는 기 호의 한 그움을 다른 것 으로 대 입 (subs tit u ti on) 하는 연산 도 허용된다. 따라서, 논리식은 이미 확립된 논리식이나 공리들의 기호 로 연산한 것에 논리학의 공리를 적용합으로써 얻어진다. 한 논리식이 참이라는 것은 그것이 논리식들의 연쇄의 마지막 것으로 얻어질 때 또 그 때만을 가리키는데, 증명은 본질적으로 기호들의 기계 적인 계산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주어진 논리석이 논리식문의 적정 한 연케에 의해서 얻어졌는지 겁증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형석주의자의 . 관접에서논 증명과 엄밀성은 잔 정의되어 있고 객관적이다. 그리하여, 형식주의자들에게는 참된 수학은 형식적 체계의 모임인데
각 체계는 자신 의 수학에 마르는 자신 을 의 논리를 세우며, 각 제계는 _ 자신의 개념 동 , 공리들, 정리듄옵 이 끌 어내는 자신의 규칙 들 , 정리 들을 가진다. 이 윤 연역적 체 계의 각각을 발전시키는 것이 수학의 과제이다. 이 것이 참된 수학의 구성에 대한 할 버트의 프로그랩이었다. 그러나 이 문 공리로부터 얻어지는 걷론문에 모순이 나타나지는 않는가? 수학 의 주요한 분야에서의 무모순성에 내한 이전의 증명은 산수가 무모순이 라 는 가정 민에 얻어진 것이었으므로―一실재로 힐버트 자신은 유클리 드 기하학의 무모순성 이 산수의 무모순성에 의촌된다는것을 보였다 후자 의 무 모순성이 결정적 인 문재가 되었다. 힐 버드는 기하학과 물리 학의 이 론에 서 무모순성 의 증명 은 그것 을 산수의 무모순성으로 환원함 으로씨 이루어진다. 이 방법은 분명히 산수의 무모순성울 증명하지 못 했 기 때 문 에 걷함 이 있다”고 말했다. 그메 힐버트가 추구했던 것은 상 대 적 무모순성에 반대되는 철대적 무모순성의 증명이었다. 그리고 이것 이 바 로 그가 몰두했던 문재였다. 이것과 관련해서 그는, 1900 년대 초 에 일어난 바와 같은 불쾌한 물 의 를 장차 피할 수 없으리라고 말했다. 이재, 무모순성의 증명 은 보여지지 않았다. 사람은 공리들의 모든 함 의 룹 에 견할 수 없다. 그러나 기초본에 관계한 거의 모든 수학자들처럼 인버브는 거짓인 명재가 어떠한 명재도 합의한다는 실질합의 (7 장)의 개 념윤 사용 했 다. 만약에 모순이 있다면, 모순 률 에 따라 두 명재 중 하나 는 반드시 거짓이고, 만약 거짓인 명재가 있다면 그것은 1=0 을 의미 한다. 그러므로 무모순성을 확럽하기 위하여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l = O 이 라는 진 술 에 도달할 수 없음욥 보이 연 된다. 1925 년의 논문에 서 인 버트는, 그 망 다면 우리는 처음에는 무한소의 계산법의 역리로, 다옵 에 는 집합론의 역리로 두 번씩 경 험 한 것은 세민째는 일어난 수 없고 또 다시는 일어나지 않 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힌버트와 그의 재자 아커riJ- W i lhelm Ackermann(1896~1962), 메르나이스 Paul Bernay s (188 8- 1 978), 폰 노이 만 Joh n von Neumann (1903- 5 7) 은 1920 년 부터 1930 년까지 힝 버트의 증명돈 (B i: w eis t l ieo rie , pr oof th eory) 또논 초 수학 ( me t ama t hema ti c s) , 즉 모돈 형식 제계 의 무모순성의 종명욥 확립하 는 방법을 차차 전개랬다. 초수학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유추성 써서 이해원 수 있다. 만일 누군가 일본어의 효용성과 포판 · 성에 대하여 연구 하기 읍 원한다면, 일본어로 그란 일욥 산다는 것은 일본어의 재한훌 받 기 쉽기 매문에 그 분석에 방해운 받을 것이다. 그러나 잉어가효과적인
언어라면 그는 일본어를 연구하는 데 영어를 사용할 수 있다. 조수학에서, 힐버트는 어떠한 만대도 받지 않을 목밀한 논리룹 사용 할 것을 제안했다. 논리의 원리등은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둘일 수 있옵 만큼 명백한 진리일 것이다. 실제로, 그것은 직관주의의 원리와 매우 밀접했다. 논란이 되는 추론_구]류법에 의한 촌재 증명, 초한 귀 납법, 실무한집합들, 비술어적 정의둘, 선출공리――둘이 사용되어서는 안 되었다. 촌재 증명은 구성적이어야 한다. 형식 체계는 꾼 이 없으므 로, 초수학은 최소한 잠재적 무한 체계에 관련된 개념과 문게 들 을 용납 해야 한다. 그러나 논리식들의 무한한 구조적 성질이나 논리식둘 의 무 한한 연산을 사용하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실무한집합을- 나타내는 기호 들에 관한 논리식 을 고려하는 것도 허용한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 둘 은 단지 논리 식 안의 기 호에 불과한 따 릅- 이 다. 자연수에 관한 수학적 귀납법은 허용되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임의의 유한인 n 까지 는 한 명제가 성립함울 증명할 수 있기 매문이며, 그렁다고 자연수 전 체의 무한집합에 대한 명재를 증명하는 것으로 이해원 킬요는 없다. 이 와 같은 수학적 증명 의 개 념 들과 방법 들윤 그는 유한적 (fini tar y ) 이 타고 불렀다. 힐버트는 유한적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는 약간 모호했다. I925 년의 논문에서 그는 다음의 예 룹 들 었다. 만일 P 가 솟 수라면 P 보다 더 큰 솟수가 있다는 진술은 P 보다 큰 모든 정수에 대 한 진술이므로 유한적이 아니며, 만일 P 가 솟수이면 P 와 p! +I (p의 계승 다하기 1) 사이에 솟수가 촌재한다”는 진술은 P 와 p!+ 1 사이에 있 는 유한개의 정수 중에 솟수가 있다는 것만을 조사하면 되므로 유한적 · 이다. 1934 년에 메르나이스와 함께 저술한 책에서, 힐버트는 유한적이라는 말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우리는 문제에 관한 토론, 주장, 또는 정의가 대상의 철처한 생산성가 과정의 천처한 신용성의 한계 내에 있고, 따라서 구체져으로 검사한 수 있는 영역에 서 수행되고 있음운 가리키는 데 '‘유한쳐이라는 단어윤 항상 사용할 것이다. 초수학은 직관적이거나 비형식저인 수학의 언어를, 의문의 여지가 없을 때. 기호주의의 도움을 빌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1928 년의 국계 수학자 대회에서의 그의 초수학의 프로그램에 관한 강연에서 힐버트는 증명론이라 적철히 부를 수도 있는, 이같은 새로운
수학기초론으로, 나는 기초론적인 모든 문재를 세계로부터 추방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자신있게 주장했다. 묵히 그는 무모순성과 완전성의 문재를 해걷할 수 있었던 것으로 확신했다. 죽, 모든 의미 있는 진술은 증명 가능하돈가 증명 불능 이돈가 둘 중 하나이다. 미결정적인 명제는 있 -장 수가 없다는 것이다. 형식누의자둘의 프로그램이 그들의 라이벌에 의해 미판을 받을 것이 타는 것은 예견되어 있었다. 《수학의 원리》 (1937) 재 2 판에서 럿셀은형 식주의자에 의해 사용된 산수의 공리는 기호 o, 1,2, •••의 의미를 확고히 고정시키지 못한다고 반박했다. 그것둘 대신에 우리가 100, 101, 102, ••• 를 칙 관적 으로 아는 것으로부터 출발할 수도 있다. 따라서 '‘12 사도가 있었다”라 는 명재는 형식주의자들에게는 의미가 없다. '‘형식주의자들은 시계 륜 에쁘게 만드는 데 너무나 연중한 나머지, 시계의 목적이 시간을 말해주는 것에 있음을 잊고 모든 부품을 끼워 넣는 것을 빠뜨린 시계공 과 미슷하다.” 수에 관한 논리주의자들의 정의는 수와 실세계와의 관련 성 운 명확화하 지만, 형식주의자들은 그평지 못하다. 럿셀은 촌재에 관한 형식주의자의 개념도 공격했다. 힐버트는 무한집 합과 다몬 이상적인 원소들운 받아들였었고, 배중율과 모순율을 포함한 어떤 한 분야의 공리들이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그 공리들을 만족 하는 실재의 촌재성은 보장된다고주장했었다. 럿셀은 이러한 촌재 개념 울 형이상학적이라 불렀다. 더구나 럿셀은 발명된 수 있는 무모순인 공 리계둘의 다양성에 대한 한계는 없다고 말했다 . 그는 계속해서 우리는 겅협적 대상에 적용되는 재계에 관십이 있다고 말했다. 럿셀의 미판은 남미 하나가 솔올 보고 검다고 하는 것을 생각나게 한 다. 그는 그가 1901 년에 최초로 쓴 것을 1937 년에는 잊고 있었다. 수 학은 우리가 무엇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지, 또 우리가 말하고 있는 것 이 참인지 아닌지 결코 알 수 없는 과목이라 정의할 수 있다.” 형식주의자의 프로그램은 직관주의자들에게도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무한과 배중뮬에 관한 기본적인 차이윤 넘어서, 직관주의자문은 수학의 확실성운 결정하는 데 있어 그들이 수학의 의미에 의촌하고 있는 데 반 하여, 형식주의자(그리고 논리수의자)둘은 이상적이거나 초원적인 의미가 없는 세계를 다루고 있다고 계속하여 강조하였다. 브라우어는 이미 논 리와 의미는 고전 해석학의 및 가지 기본적인 주장에서 서로 십한 모순 울 가짐을 보였다. 그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봅차노-바이에르수 1 도라
스의 정리 (신수들의 유계인 무한집합은 적어도 한 개의 국한접운 가진다는 다 . 소의 전문적인 정리)이다. 브라우소어는, 자연수의 선협적 개념과, 유한적 으로 증명 가능한 것을 넘어선 어미한 임의의 논법에 배중 윤윤 자유로 이 사용하는 것 중의 어느 하나 를 선덱해야 한다고 말랬다. 아리스 도 델 레스 논리의 자유로운 사용은 형석적으로는 다당할 지 모르지만 의미가 없는 주장이다. 고전 수학은 많은 논리적 건설에서 의미를- 버 립으로 씨 실체성을 버렀다. 브라우어의 미판은 많은 사람 .를 로 하여금, 수학의 위대한 이 몬을 이 어떤 근본적인 실재 내용의 참된 표현이라는 지금까지의 의십 한 수 없는 신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였다 . 그등 이 론은 본질적인 섣 체나 한상에 대한 이상화인 것으로 생각되었었다. 그러나 뮤 · i] 19 새기 에 많은 고전 해석학이 직관주의자둘이 말하는 논리저인 불만 족은 차치 하고라도, 어떠한 직관적 의미로부터도 천씬 언어졌다. 브라우어 룹 맏 아군인다는 것은 상당히 많은 고전 수학이 직관적 의미가 전핍되어 있 다는 근거로 배재된다는 것이 된다. 오늘날 칙관주의자둘은, 선사 인버트가 주장하는 형식화된 수학 의 무 모순성의 증밍이 만둘어진다 하더라도, 그이론, 죽항식화된 수학은무 력한 것이라고 말한다. 바일은 인버트가 고전 수학윤 의미의 근본적인 재 해석설- · 함으로써 구 출했 다.” 죽 그것을 형식화하고 의미 문 실재로 맷읍으로써 원리적으로는 칙관적 걷과의 체계로부터 주어전 규칙을 마 라 진행되는 논리식문의 게임으로 전환시켜 버 렀다”고 선-평랬다. “인버 드의 수학은 논리식에 관한 우아한 눈이로서, 아마도 서양장기보다 더 재미있는 것일지 모르지만, 그 논리식들욥 써서 직관적인 전리 운 표현 한 수 있는 어민 실질적 의미도 가지고 있지 않음이 분명하므로, 그것 이 인식에 관하여 무슨 관계가 있는가?” 형식주의 철학의 입장에서 보 면, 사람둘은 그것이 오로지 무모순성 • 완전성과, 수학을 의미없는 논 리식으로 환원시키는 및 가지 다른 성질들을 증명하기 위한 것임을 알 아야 한다. 수학 전반에 관하여 형식주의자들도 그것이 단순히 게임이 라는 생각을 거부한다. 그들은 수학을 객관적인 과학으로 간주한다. 럿셀과 마찬가지로, 직관주의자들은 형식주의의 존재 개념을 거부한 다. 힌버트는 어떤 실체의 존재는 그것이 도입된 수학의 분야의 무모순 성에 의해 보장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존재의 개 념은 직관주의자둘에 게는 받아문여질 수 없다. 무모순성은 순전한 존재 정리들이 참임을 보.
증하지 않는 다. 이 논법 은 이 미 200 년전에 칸트의 《순수 이 성 미 관》에 서 다우어졌다: 개념의 논리저 가능성 (말하자면 , 자기 모 순 이 없는 개념) 으로 사 산 의 초원적 인 가능성(알하자면 그 개님에 해당하는 대상)을- 대체하 려는 것은 오로지 단순한 사람만 윤 속 여서 만 족 하게 할 수 있다.” 형석주의자와 직관주의자의 치연한 논쟁은 1920 년대에 벌어졌다. 19 그 3 년에 브라우 어 는 형식주의자를 저주했다. 그는 말하기를 , 물론 공리 적이고 형식식인 수 1 급은 모순을- 피할 수는 있지만, 이 란 방법으로는 아 무란 수학적 가치를 얻을 수 없을 것 이다. ”옳지 않은 이 론은 , 마록 그 것윤 매겨하게 만드는 어떠한 모순 때문에 거부되는 일이 없었더라도. 여전히 옳지 않은 것 이다. 이는 바로 범죄 행위가, 어떤 법정이 그것을 미리 막을 수 있었돈가 없었든가에 관계없이 범죄 행위인 것과 같다.” 1912 년 암스덴담 대학에서 행한 연신에서 그는 수학적 엄밀성이 어디 에 있는가 옹 묻논 의문에 대해서 두 부류가 다 몬 답을 내놓고 있다. 직 관주의자는 인간 의 지성에 있다고 하고, 형식주의자는 종이 위에 있다고 한다”라고 야유했다. 이번에는 인버트가 브라우 어와 바일에게, 그 물 이 그둘에게 맞지 않는 것은 모두 다 버리리 하고 있으며, 독단적 으로 금지령을 선포했다고 공 박 랬다 . 1925 년의 논문에서, 그는 직관수의논 과학에 대한 배신 행위 라고 말랬다. 그러나 바일이 지적한 대로, 그는 그의 초수학에서, 그의 원리들을 본질적으로 직관적인 것에 한정하였다. 여전히 형식주의에 대한 또 다몬 마칸이 조수학의 원리들에 가하여졌 다. 그것들은 모두에게 받아 등 여질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형 식주의자는 신제로 그것들윤 선대겠다. 왜 그 -E 의 직관이 시금석이 되어 야 하는가? 왜 직관주의자둘의 모든 수학에 관한 접근법은 그 렇 지 않 아도 되는가? 하나의 방법이 초수학 에서 받아 물 여질 수 있는가 없는가 에 대한 궁국 적 인 검 사는 물론 그것이 확신되는지 아닌지가 되어야 하 지만, 누구를 확신시켜야 한다는 만인가? 형식주의자둥이 모든 미판을· 충족시키지는 못겠지만, 그 급 은 1930 년 에 그 들 의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주장운 했다. 당시에는 럿센과 그의 동료 논리주의자둘이 논리학의 공리들이 전리가 아니며. 마라서 무모순 성온 보장되지 못한다는 데 의견의 일치룬 보았으며, 직관주의자문은 그들의 직관의 건전성만이 무모순성옵 보장한다는 것만을 고집할 수 있 었다. 반면에 형식주의자들은 무모순성을 확립하는 잔 생각된 과정훈
가졌고, 간단한 체재들 에 관하여는 아갈은 것이 성 공함으로써 산수 와 ' 무모순성 과, 따라서 모 든 수학에 서 의 모무순성 의 증명 이 성 공하리 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재 여기에서, 형식주의를 그들의 상대적으로 유리 한 입장에 남겨둔 채로, 수학기조론의 또 다 몬 경쟁적인 접근법철 살켜, 보기로 하자. 집합 론 학파에 속하는 이 등 은 처음부터 분명한 철학을- 내세운 것은 아 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정차 많은 지지 를 얻게 되었고 분명한 프 로 그램 욥 가지게 되었다. 오 늘날 이 학파는 확실히, 지 금까지 기 술 한 세 가지 입장의 하나와 갇윤 정도로 많은 수학 자 들- 에게 지지 운 받고 있다고 말· 할수 있다. 우리는 집합론 학과의 시작 을 데데킨트와 칸토르의 업 적까 지 거슬러 운라갇 수 있다. 그 두 사람은 원래 무한집합에 관십올 가졌지만, 또한 一 둘 다 집합 개념의 근거 위에서 자연수의 이 론을- 세우는 것마저 시작했 다. 운론 모든 자연수가 확립되기만 하면, 수학 전체가 전설원 수 있다 (8 장). 칸토르의 집합 온 자제에 둘 어 있는 최대 기수와 최대 서수의 모순과. 집합에 관련된 럿셀과 리샤르의 모순이 알려졌을 때, 및및 수학자들은 이 모순 둘 이 집합의 약간 비형식적인 도입에 기인한다고 믿 었다. 칸토. 르는 대담하게 급전적인 개념울 도입했지만 그의 표현은 다소 엉성댔다 .. 그는 1884, 1887, 1895 년에 각각 말로써 집합의 여러 가지 정의 를 하였 다. 집합에 대한 그의 개념은 본질적으로 우리의 직관이나 사고의 대상 으로서 명확하고 구빈 가능한 것 들 의 모임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집합 은 임의의 대상 .x에 대하여, 그 .x가 집합에 속하는지 아닌지 를 알 수 있을 때 정의된다. 이러한 정의들은 모호하며. 칸토르의 집합론에 관한 전체의 업적은 오늘날 흔히 소박한 (nn i ve) 것으로노 기술되고 있다. 따라 서, 집합론자들은 조십스럽게 선택된 공리적 기초는 집합론에 있어서의 여리문운 제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는 마치 기하학과 수의 체계의 공리화가 이들 분야에서의 논리저 인 문계문 해결한 것과 마 · 찬가지로 생각한 것이다. 집합론은 수학의 논리주의직 접근법에 합쳐졌었지만, 집합론자들은공 리문 동해서 그것에 직접 접근하려 하였다. 집합론의 공리화는. 1908 년 체르멜로의 논문에서 처음으로 시도되었다. 그 역시 집합론의 역리들은· 칸토르가 집합의 개념을 계한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체르멜로는 명백하고 분명한 공리는 집합이 무엇을 의미하며 집 합이 어떤 성질울 가져야만 하는가룹 분명하게 해 주리라고 믿었다. 독 히 재르멜로는 가능한 집합의 크기불 재한하고자 했다. 그는 철학적 근 거읍 가지지는 않았으며, 다만 역리들을 키하려고만 했다. 그의 공리계 는 기본적인 무정의 개념으로 집합과 한 집합이 다론 집합에 포함되는· 관계 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것 둥 과 정의된 개념들은 공리들에서의 진술을 만 족 해야 한다. 집합의 어떠한 성질도 공리에 의해서 주어진 것 이 아니면 사용원 수 없다. 공리 중에는 우한집합의 존재와, 합집합과 부분집합 운 구성하는 것과 같은 연산이 준미되어 있다. 체르멜로는 또한 선 출 공리 를 사용했다. 체 르멜로의 공리 계 는 몇 년 후 (1922) 프랭 캠 Abraham A. Froenkel (18 안 -1965 ) 에 의하여 개선되었다. 체르멜로는 집합의 성질과 그 집합 자체 룰 구:산짓는 데 실패했다. 이들은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 구벌이 1922 년에 프랭첼에 의하여 이루어전 것이다. 집합론자들에 의해서 가 장 혼히 사용되는 공리는 체르멜로-프랭젠의 공리계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 오두 그들의 시대에 알려져 있던 세련되고 날카로운 수학적 논리 학을 전재로 하고 있었으나, 논리의 원리들을 지정하지는 않았다. 그들· 온 이러한 것들을 수학의 한계 밖에 있는 것으로 간주했으며, 1900 년 이전의 수학자들이 논리학을 적용했던 것 이상으로 확신을 가지고 적용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겼다. 체 르멜로-프랭 펜의 집 합론의 공리 물 및 가지 들어 보자. 우리 는 그들 공리를 언어로 표현해도 무방할 것이다. I. 갇은 원소들을 가지는 두 집합은 같다. (칙관저으로 이것이 집합의 개 념을· 정의한다.) 2. 공집 합이 존재 한다. 3. :r:,y가 집합이면 순서가 없는 쌍 {:r:,y}도 집합이다. 4. 집합들의 집합의 합도 집합이다. 5. 무한집합은 존재한다. (이 공리는 초한기수문 허용한다. 그것은 겅협윤 넘어서기 때문에 중대하다.) 6. 집합론의 언어로 형식화될 수 있는 임의의 성질은 집합을 칭의하는` 데 쓰일 수 있다. 7. 입의의 집합의 멱집합을 구성할 수 있다. 즉, 주어진 집합의 모돈 -
부분집합의 모임도 집합이다. \ 이 과깅은 우한히 되준이원 수 있다; 죽 임의의 주어;;,.J. 집합의 부분집합 전재의 집합은 새로운 집합으로 생각하면. 그것의 켜집합은 조 새로우 집합이다. ) 8. 선출공리. 9. X 는 x 에 속하지 않는다 . 이 공리게에 대하여 묵히 주목할 만한 것은 모든 것 을 포함하는 집합 윤 고려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으며. 마라서 다분히 역리 를- 피 할 수 있다 는 접이다. 그러면서도 그것들은 고전 해석학에 원요한 집합 론 의 모 든 성질을 이문어 내는 데 적합하다. 집합론의 근거 위에 자연수 픕 전개하 는 것은 쉽게 수행할 수 있다. 칸 토 르는 1885 년에 순수 수학은 집합론 에 환원원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실재로 이것은 럿셀과 화이 트해 드에 의하면 이부어졌다 . .:z.들의 집합론에의 접근법은 찬씬 복잡하기는 랬었 다, 그리고 수에 관한 수학에서 모든 수학이 이꾼어 내어진다. 꿈온 해 석기하학 위에서 만들어지는 기하학도 포함된다. 따라서 집합론은 모돈 수학의 기초 노릇운 하고 있다.*
* 후에 거 `!! Godel (1940) 과 에로나이스 Bernay s (1937) 는 집 합과 유 (class) 군 구분하기 위 하여 체르인로-프맹커i의 공리계산 년형랬다. 괴빈과 때브나이스는 몬노이만의 1925 년 의 공리계문 안순화있다. 집합은 다은 집합에 속한 수 있다· 모돈 집합은 유이지만 모 든 유가 집합인 것은 아니다 . 유는 머 논 유에 속한 수 없다. 집합과 유의 이갇은 구 분은 어미한 거대하게 곤 모임도 다은 유에 속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옵운 뜻한다. 따 라시 칸도르의 모순적인 집합들은 사라진다. 체르덴로-프갭켄 계지의 입의의 정리는 괴델-에로나이스 체계의 정리가 선 수 있고 여도 성립한다. 실계로, 집합온의 공리계 에는 여러 가지 형이 있다 . 그러나 어인 하나가 다七 것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기준은 없다.
되풀이하면, 역리문 피하러고 하는 희망은 집합둘의 형태 를- 제한하는 집합론의 공리화에 의존하게 되며, 그 제한은 해석학의 기초가 되기에 충분하도록 허용할 만큼의 재한이다. 집합론의 공리들은 아직 어민 사 람도 그. 이온에서 역리문 꾼어내지 못했윤 정도로 여리운 키해 온 것이 다. 제르멜로는 역리를 이끌어내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 후의 집합론자들은, 체르멘로와 프랭켄이 집합들과 .:z.등의 성질에 관한 초기 의 업적에서의 엉성함움 피할 수 있도록 집합의 위계 를 신중히 전선했기 미 1 문에 역리가 나타날 수 없다는 데 대하여, 일말의 의구십윤 가지면서 도 그것을 믿어 오고 있다. 그러나 공리화된 집합론의 무모순성은 증명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집합론자둘은 아직 십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무모순성의 미해전 문재에 내해서 그것을 공격하던 사람 중의 하나인
프앙카레는 그의 머못대로 빈정대기 를 , “우리는 늑대둘로부터 양대를 보호하기 위하여 울타리를 쳤으나, 늑대가 이미 울타리 안에 들어 있는 치 아닌지 룹 잔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다 몬 학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집합론자들도 미판을 받는 영광윤 얻 었다. 선출공리의 사용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다몬 미판 자들은, 집합론자둘 이 그들의 논리적 근거를 지정하지 않은 것에 대하 여 반대하였다. 규새기의 첫 10 년 동안에 이미 논리학 그 자체와 수학 에 대한 관계가 연구되고 있었지만. 집합론자들은 논리적 원리둥에 대해 서는 약간 무관심했다. 물론 무모순성에 대한 그 둘 의 확신을 소박한 것 으로 여간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는 칸토르 자신이 곤란성을 발견할 메 까지 소박한 입장에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9 장)· 또 다론 비판은 집합론 의 공리물이 보다 임의적이고 인위저이라는 것이었다. 그. 것 들은 역리움 없애기 위해서 고안되었지만 및 가지는 자연스럽지 못하 거나 직관에 근거몰 두고 있다는 것이다. 논리적인 원리들이 집합론자 물에 의해서조차 전제되었으면서도, 왜 산수 그 자체로부터 출발하지 않 는가? 그럼 에 도 붕구하고 집 합론의 체 르멜로-프랭 켈 공리 계 는 모돈 수학을 건설하는 데 바람직한 기초로서 여러 수학자들이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그것은 해석학과 기하학을 건설하는 데 가장 일반적이고 기본적인 이몬 이다. 실재로, 수학에 관한 다몬 접근법들이, 각각의 지도자들이 계속 해서 그들의 철학을 말전시키고 향상시킴에 따라 지지자들을 얻었던 것 처럼, 집합론적인 접근도 마찬가지였다. 몇및 논리주의자들, 예 문 둥면 과인 W i llard Van Ormnn Qu in e 갇온 이 는 집 합론을- 정 착시 키 려 했 다. 아 . 칙도 많은 중요한 사건이 이야기되어야 하지만, 현재의 맥락으로는 부 르바키 Ni ch olas Bourbaki 라는 집단적 가명으로 활동하는, 탁월하고 높이 촌경받는 수학자의 한 그운아, 대부분의 수학자들이 진리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들의 상세한 증명을 1936 년에 착수했음윤 우리는 주목해 야 한 다. 죽, 만일 우리가 재르멜로-프랭벨의 집합론의 공리계, 묵히 매르나 이스와 괴 l 산에 의한 그 변형과 및 가지 논리학의 원리문 받아군인다면 그 위에 수학 전제문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르바키 학파 에게도 역시 논리학은 수학 그 자재의 공리계에 종속되어 있다. 논리는 수학이 무엇인지 또는 수학자들이 무잇을 하는지 봉제하지 옷한다. 부르바키 학카는 논리 에 대 한 그 ·군 의 입 장윤 《기 호논리 학 연 보〉~ Jo ur11al
for Sy m bolic Log ic ( 1949) 에 발표했다: 다른 말로 하면, 수학자들이 관 련되는 한, 논리학이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관한 문법 이상도 이하 도 아닌데, 문법 이전에 존재했어야 할 언어는 건설 월 수 있 을 것이다.” 미래의 수학의 발전은 논리의 수정을 요구할 지도 모 른다 . 이단 일은 무 한집합을 도입할 매도 있었고, 우리가 미표준해석학*을 이야기 할 매 보 듯이 다시 또 일어날 것이다. 마라서 부르바키 학파는 프레게 , 럿셀 , 브 라우어 , 인 버 트를 완전히 포기 한다. 그둘은 선출공리 와 매 중산을 사용 하는데, 이 매에는 그것 둘을- 일버트의 기 술적 인 고안 옹 써서 도입한 다. 부르바키 학과는 무모순성의 문재에는 관십아 없다. 이 문제에 대해서 부르바키 학과는 말한다. “우리 는 단순히 , 이 러 한 난접 둘은 모든 반대 룹 재거하고 추론의 정확성을 의심받지 않는 방법으로 국부인 수 있음 에 주의한다.” 역리들은 과거에도 있었으나 극복되었으며 미레에도 있 을 것이다. “25 세기 동안 수학자들은 그들의 오류 룹 시정해왔다 . 그리 고 전국은 그들의 과학이 풍성하게 되고 수학이 퍼패된 적이 없음윤 보 고 있다. 그리고 이 접이 수학자들로 하여금 미레 를 침착하게 바라볼 수 있개 랬다.” 부르바키 학파는 집합론적 접근법에 대한 그 들 의 전개 룹 약 30 권의 객으로 출판했다.
• 1 2.장윤 보라·
이리하여 1930 년까지는 4 개의 분리되고 분명한, 그리고 다소간 서로 대럽되는 접근 방식이 확립되고, 그둘의 제안자둘은 서로 전쟁을 치르 고 있었다 해도 과장된 말은 아니다. 수학의 한 정리가 운바르게 증명 되었다고 주장할 수 없었던 시대였다. 1930 년까지는 누구의 기준에 의 해 그 정리가 옳다고 생각되는지 풀 덧붙였어야 했다. 새로운 접근법의 동기가 된 주요 문재였던 수학의 무모순성은, 인간의 직관이 무모순성 운 보장한다는 직관주의의 입장을 배제한다면, 걷국 해결되지 않았다. 1800 년에는 논리저 전개에서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과학으로 노 불리었으며, 오류가 없고 의십할 수 없는 추론에 의해서 전론이 내려지 는 과학, 그 걷몬은 오류가 없윤 분만 아니라 우주의 진리도 월 수 있 는 과학, 그리고 및및 사람둘이 주장하는 바와 갇이. 그 전론이 모든 가 · 능한 우주의 진리였던 과학은 이제 진리라고 주장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기초돈 학파들의 대립과 추론의 정확한 원리에 대한 주장으로 인해 더i 럽혀졌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긍지는 격십한 고뇌에 싸여 있다 .
1930 년대의 상황을 수학자 벨 Eric T. Bell 은 다움과 갇이 표현하고; . 있다: 경험은 대부분의 수학자들에게 한 수학적 세대 동안 굳건하고 만족스럽게 보 이던 대부분의 것이 다옵 세대의 종 더 안정된 검토에 의해 거미줄 속에서 녹 ~ 아 없어지듯 한 것으로 보일 수 있음을 가르쳐 주어 왔다 .••• 수학의 기초에 대한 합리적으로. 공동된 일치라는 의미에서의 지식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갇다 . ••• 사선에 대한 노꿈적인 나열은 인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의 한 가지 윤 확립하는 데 충분하여야만 한다. 즉, 똑갈이 능력있는 건문가들이 일치윤 보지 못렀으며, 보판성 • 일반성 또는 져철성에 관하여 암묵저이돈 명시적이 돈간에 약간의 주장이 라도 하게 해 주는 임 의 의 추론 의 가장 간단한 양상에 관 하여 지 급 도 의견이 각각 다르다. 미레는 무엇을 가져다 줄까? 앞으로 보겠지만, 그 후에 핀싼 비참한 문재들을 파생시컸다.
12 여러 재앙 무서운 재앙의 부적이 되도록, 지옥의 잡당처럼 펄펄 꿇 어라. 두 배나 신고하고, 두 매나 애윤 써서 타라 붕 아, 꿇 어 라 송 아. —새 익 스피 어 Shakespe are, 《백 매 스》 Macbe th 돌이 켜 보면 1930 년의 수학기 초몬의 상태 는 참을만하다고 말할 수도 있울 것이다. 여러 학파 들 이 각각의 목 이한 방법 을 썼 다고는 하지만, 찰 알려진 역리들이 해결되었다. 옳은 수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견의 일치는 더 이상 없었으나, 수학자들이 자기 마음에 드는 접근법을 취할 ·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란 뒤에, 그들은 그 접근법의 원리에 맞추 어서 창조를 계속해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두 가지 문제가 계속해서 수학자들의 양심을 괴옵혔다. 가장 힘든 문제는 수학의 무모순성 (cons i s t enc y)을 확립하는 것이었는데, 그것 은 바로 1900 년에 힐버트가 그의 파리 강연에서 제기한 문제였다. 알 려진 역리둘은 해결되었지만, 새로운 역리가 발견원 위험은 항상 있었 다. 두번째 문제는 완전성 (comp le te n ess) 이라 불리어져 오던 것이었다. 일반져으로 완전성이란, 임의의 분야의 공리계는 그 분야의 개념에 관련 된 임의의 의미있는 주장이 참인지 거짓인지 가리는 데 져합해야 한다 는뜻이다. 아주 기초쳐인 수준에서 볼 때 완전성의 문제는, 예를 들면, 삼각형 의 세 높이들이 한 접에서 만난다는 것과 같은 유클리드 기하학의 합리 척인 가설이 유클리드의 공리들을 근거로 하여 증명(또는 반증)될 수 있
느냐 하는 것과 같다. 보다 높은 수준에서, 조한수의 영역을 생각하면. 연속체 가선 (9 장)울 예로 들 수 있다. 완전성은 그것이 초한수 이돈의 기초가 되는 공리들을 근거로 하여 증명되거나 반중천 것을 요구한다. 마찬가지 로 완전성 은 골드 바하 Goldbach 의 추측__모든 짝수는 2 개 의 솟수의 합이다_―이 정수몬의 공리들을 근거로 하여 증명되거나 반증 ` 욀 것을 요구한다. 완전성의 문재는 수십년, 매로는 수백년 동안 수학 ` 자 들이 그 증명에 도전해 오단 많은 다른 명재물운 실재로 포함한다. 무모순성과 완전성 의 문재에 대해서 여러 학파가 약간씩 다른 데도물 취했다. 럿셀은 논리주의적 접근에서 사용된 논리적 공리들이 참이라는 그의 믿음을 실재로 버리고 그의 환원공리 (10 장)의 인위성을 자인했다. 그의 유형돈은 알려진 역리들을- 피할 수 있개 했고, 럿셀은 그것이 모 돈 가능한 역리둘을 피하게 해준다고 확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 신과 증명은 밀개의 문제였다. 그는 완전성의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집합론자 둘은 그들의 접근법에서는 어미한 새로운 역리도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확신했으나, 이 확신에 대한 증명은 없었다. 완전성은 그들 의 관십사였지만 주된 것은 아니었다. 직관주의자들도 마찬가지로 무모 순성의 문제에 무관십했다. 그들은, 인간의 정신에 받아들여전 직관이 원조부터 ( eo ips o) 무모순이므로, 형식적인 증명은 불팔요하고, 도리어 그들의 철학에 부적절한 것이라고까지 확신했다. 완전성에 대하여 직관 주의자들은, 인간의 직관은· 모든 의미있는 명제들의, 미목 및 가지 전 정할 수 없는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과 거짓을 걷정하기에 충분하 도록 힘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힐버트에 의하여 영도되는 형식주의자들은 만족하지 않았다 .. 무모순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1900 년대 초 및 가지 제한된 노러운 기울 · 인 후로, 1920 년에 힐버트는 이 문제와 완전성의 문제로 되돌아왔다. 그의 초수학에서 그는 무모순성의 증명에 대한 접근법의 윤곽을 잡았 다. 완전성 에 대 하여 , 1925 년의 논문 《무한에 관하여 〉〉에 서 힐 버 트는 본` 질적으로 1900 년 과리 강연에서 그가 말한 것을 다시 표현했다. 여기 에서 그는 “모든 확정된 수학적 문제는 팔연적으로 정확한 해결이 가능 해야 한다”고 말했다. 1925 년에 그는 이 주장울 상세히 설명했다: 기초적인 의문돋이 다루어질 수 있는 방법의 한 에로시, 나는 모든 수학적 문 · 계가 해걷될 수 있다는 학선운 선백하리 한다. 우리는 모두 그것윤 확신한다` 걷국 우리가 수학져 문제에 · 윤두해 있을 때 우리운 가장 매로시키는 것 중의 ,
하나는 정 확하게 우리 가 우리 의 마옹 속에 항상 다옹과 갇은 부읍을 듣 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운재가 있으니 그 해답윤 갖으라; 너는 그것을 순수한 사고 로 갖운 수 있 다, 왜 냐 하연 수학에 는 우리 가 안지 못한 바가 (ig1 1orabim us) 없으므로. 1928 년 볼로냐 Bolog n a 의 국재 수학자 대회에서의 연설에서 일버트는 완전성의 엣 증명-높을 미칸겠는데, 그 이유는, 그 층명들이 그의 초수 학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논리학의 원리들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러 나 그는 그 자신의 체계가 완전성옵 가졌다고 확신하였다: “우리들의 · 이성은 신미로운 기순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 판단의 절대적인 객 관성윤 보장하는 아주 정확하고 전술할 수 있는 법칙문에 마라 나아간 다.” 그는, 모든 수학자가 모든 확정된 수학적 문재물이 해걷원 수 있음 에 물립이 없다는 확신설-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1930 년의 논문 《자연 져 지식과 논리〉〉에서 그는 ‘‘해전한 수 없는 문재를 찾는 일에 대한 공 트 .Com t e 의 신패의 진실한 이유는, 내 의견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 재는 없기 때문이다”라고 맏랬다. 1927 년에 발표되고 1930 년에 출판된 《수학기조론〉〉에서 인버트는 19 05 년에 그가 쓴 것을- 상세히 밝혔다. 무모순성과 완전성을 확립하려는 그의 수학적 방법 (증명론)에 대하여 그는 다음과 감이 주장했다: 우리가 층명론이라 져전히 부운 수 있는 수학의 기조윤 제공한 이 새로운 방 법 으로 나는 중요한 복-Jl윤 수구한다. 왜 냐 하면, 나는 모든 수학저 명 재 둘 윤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입긱하게 이꿈어 내어지는 논리식문-로 바꾸고, 그리하 여 수학적 유도와 추온운 확고하게 모든 과학의 저전한 묘사룹 계공할 수 있 는 방법 으로 개 조합으로씨 , 수학기 조론에 관한 문재 문윤 그것 들이 현재 주장 되고 있는 형대에서 만번에 모두 다 제거하고 싶기 때문이다. 선사 완전히 전 개하려면 많은 양의 인운 아직 미 해야 되겠지만, 나는 나의 증명으로씨 이갇 온 목져윤 완전히 성취한 수 있다고 믿는다. 분명히 힐버트는 그의 층명론이 무모순성과 완전성의 문제를 결정할 것 이라고 확신했다. 1930 년까지 완전성에 대한 및 가지 결과둘이 얻어졌다. 인버트 자신 온 산수의 일부분에 관해서만 약간 인위져인 체계를 구성해서, 그것의 무모순성과 완전성을 확립했다. 이와 갇이 계한된 또 다론 결과들이 다 몬 사람들에 의해서 곧 얻어졌다. 그렁게 해서 명제계산과 갈이 상대적 으로 명백한 공리계가 무모순이며 완전하기까지 하다는 것이 증명되었
다. 이갇은 종명들 중의 몇 가지는 힐 버트의 재자들의 업적이다. 두 1 에 프란 스턴의 고동연구소 교수가 된 괴 델 Kurt Godel (1906-78) 은 I930 년에 명 제 와 명 재 함수를 다 루 는 일계 술 어 계 산 (firs t order pre dic a te 댜 lculus) 의 완전성윤 증명앴 다.다 ’ 이러한 결과둘은 형식주의자들을 기쁘게 앴다. 힐 버트는 그의 조수학 , 죽 그의 증명론이 수학의 모 든 분야에서의 완전성 올 확립하는 데 성공하리라고 굼개 믿었다.
* 이것은 역시 무모순이며 .:z. 공리계는 독립적이다. 이것은 민버드와 다은 사감 문 에 의해 층명되었다 .
그러나 바로 그 다음 해 괴델은 판도라 Pandora 의 상자를 연 다른 논 문을 발표하였다 . 이 논문 《수 학 원리》 및 연관된 체계들에서의 형식적 으로 질정 할 수 없는 명재들에 대하여 ( 1931 ) 는 두 가지 눈만 만한 결과 륜 포함 한 것이었다 . 수학의 세계를 더욱 황패화시킨 주장은, 자연수 들 의 산수까지 포함할 만큼 충분히 넓은 임의의 수학적 체계 의 무모순성은 논리주의자, 형식주 의자, 집합론자들과 갇은 기초돈의 학파 들 이 체택한 어떠한 논 리 적 원리들에 의해서도 확립원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묵 히 형식주의자등에게 적용되는대, 그것은 인 버트가 그의 초수학의 논 리적 원리둘을 직관주의 자들에개조차 받아들여질 수 있도목 면밀하게 제 한해서 극히 적은 수의 논리적 도구만 사용하도 록 했기 때문이다. 괴델 의 컬과는 바일로 하여금, 수학이 의십할 바 없이 모순이 없으므로 신 은 존재하며 , 우리가 그 무모순성을 증명할 수 없으므로 악마도 존재한 다는 말을 하도 목 촉진 시 컸 다. 괴 델의 위 와 같은 진 과는, 괴 델의 불완 전성 정 리 (Godel' s inc omp le te n ess t heorem) 라고 ·불리우는 똑같 이 늘할만한 그의 다론 전과의 따 몹- 정리이 다. 그것은, 만일 자연수의 이론을- 포함할 정도로 충분한 어떤 형식이돈 T 가 무모순이면, T 는 불 완전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것은, 자연 수론의 어떤 의미있는 명제 S 가 있어, S 도 S 의 부정도 그 이온에서 논 증명할 수 없옵 을 의미한다. 그란데, S 또는 S 의 부정은 참이므로, 자연수론에 증명이 불가능한 참인 명제가 촌재하게 되며, 그래서 그 명 계는 결정할 수 없다. 괴델은 관련된 공리계문의 모임에 대해서는 그다 지 뚜릿하게는 못했으나, 그의 정리는 럿셀-화이트해드의 체계, 체르멜 로-프랭첼의 제계, 힐버트의 자연수론의 공리화, 그리고 사실상 널리 받아 들 여전 모든 공리계들에 적용된다. 명백히, 무모순성의 뎃가는 불
•* * 이 건과는 또한 이계 숟어 계산 (8 강)에도 져용핀다. ·t완전하다고 해서 중밍가능한 정리가 옳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완전성이다. 설상가상으로, 몇몇 결정불가능 명제들은, 위에서 말한 형 식 체계에서 사용된 논리문 초원하는 논증, 즉 추온의 규칙에 의해서 참임을 보일 수도 있다. 쉽게 침작되겠지만, 괴델이 그 늘- 라운 전과 들 을 숫 1 개 얻은 것은 아니 다. 그의 전체 스컴은, 가령 논리주의나 직 관 주의에서의 오 든 기 호 또는 기호의 연결에 자연수를 대응시킨 것이었다. 그리고, 한 증 명절- 구성 하 는 임의의 명제 또는 명제의 집합에도 그는 괴델수 ( Godel number ) -건 대 응시컸다. 특히 그의 산수화 (ar it hme ti za ti on) 는 수학적 개 념 -율 에 자연 수 불- 대 옹시 키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l 에 1 울 대응한다. 둥호에 2 윤 , 할 머 트 의 부정 기호에 3, 덧셉 기호에 5 를 대응시키는 둥 다 론 기호에 도 아찬가 지로 하였다. 그래서 1=1 이라는 기호의 모임에 I, 2, I 을 대 응 시켰다. 그러나 그 다음에 괴델은 1=1 의 식에 I,2, I 이라는 기호 를 대옹시키는 대신 단 하나의 자연수를 대응시컸는데, 이매에도 여전히 구성 성분이 나다나도록 하였다. 즉, 그는 최초의 세 솟수 2, 3, 5-감 덱하여 21·32. 51=90 을 만들고, 마라서 1=1 에는 90 운 대응시컸다. 90 은 항상 감. 32.5' 로 유일하게 소인수분해원 수 있음에 주의하면, 우리는 다시 I,2, I 을 찾아낸 수 있다. 그가 생각하는 체계의 모든 논리식에 괴델은 수 를 대옹시컸다. 그라 고 한 증명운 구성하는 논리식의 전체 연걷에도 마찬가지로 그는 수를 대웅시켰다. 이같은 수의 소인수 분해의 지수들이 그 논리식의 수 들 이 되는 것이다. 그것들은 솟수는 아니지만 솟수에 관련된다. 그러므로 2’00.3” 은 한 증명의 수가 원 수 있다. 이 증명은 논리식 900 과 논리 식 90 운 포함한다. 따라서 증명에 대응되는 수로부터 우리는 증명의 논리식들윤 재구성할 수 있다. 그리고 괴델은 그가 생각하고 있는 형식 체계의 논리식에 관한 초수 · 학의 개 님도 여시 수로 표현원 수 있음울 보였다. 그리하여 초수학의 각 주장에는 그에 대웅되는 괴델수가 존재한다. 이 수는 조수학의 명계 의 수이면서 또한 산수 명제의 수이기도 하다. 따라서 초수학은 또한 · 산수 속에 “사상된다 (ma pp ed). 이러한 산수저인 용어불 써서 괴델은, 초수학의 언어 대신 일상적인 말로 나타넬 때, 가령 괴델수 m 을 갖는 진술은 증명할 수 없음을 말하 는 한 산수적 준장 (ar it hme ti cal asssertio n ) G 를 구성 하는 방법 을 보였 다-
그러나 G 는 기호의 연결로서 괴델수 m- 울 가진다. 그러므로 G 는 그 자 신이 증명 불가능함을 말해준다. 그러 나 만일 산수적 주장 G 전체 가 증 명 가능하다면 이 는 그것 이 증명 불가능함을 수장하고, 만일 G 가 증명 불가능하다면 그것은 바로 그 사실이 증명 불가능함을 보여 준다. 그러 나 산 수적 주 장은 증명 가능하거 나 증명 불가능하므로, 그 산수적 주장이 속하는 형 식 체 계 가 푸무숭이 라면, 그것은 불완전하다. 그럽 에도 불구하 고, 산수 직 명 재 G 는, 그것이 형 식 체계가 허용하는 것보다 핀씬 직관 적인 추론에 의하여 확립린 수 있는 자연수에 관한 명재이므로 참이다. 괴 델 의 스킴 의 핵십은 다음의 예에서도 역시 볼 수 있다. 만일 진술 ”이 문장 은 참 이 아니 다” 를 생 각하여 보면, 우리 는 하나의 모순을 얻게 된다. 왜냐 하면, 만약 그 전체 문장이 참이라면, 그것이 주장하는 바 에 마라 그것은 거짓이며, 만약 그것이 거짓이라면 그것은 참이 되기 메 문 이다. 괴 델 은 거짓이라는 대신에 증명 불가능을 대체시켜서 그 문장 아 ”이 문 장은 증명할 수 없다”가 되게 했다. 이제는, 만일 그 진술이 층명 원 수 없다면, 그것이 말하는 바는 참이다. 반대로, 만일 그 문장 이 증명원 수 있다면, 그것은 참이 아니다. 죽, 표준적인 논리를 써서 그것이 참이라면 그것은 증명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그 전술이 참 이 원 팔요충분조건은 “그것은 중명 불가능이다”가 된다. 그러므로 그 전과는 오순이 아니다. 증명 불가능이거나 아니면 결정 불가능인 참명 재인 것이다. 전정 불능인 명제를 보이고 난 후에 괴맨은 산수는 무모순이라는 초 수학적 명계를 표현하는 산수적 명재 A 를 구성하고, A 가 G 를 함의합 울 증명했다. 따라서 A 가 증명 가능하면 G 도 증명 가능하다. 그러나 G 가 결정 불능이므로 A 도 증명된 수 없다. 그것은 결정 불능이다. 이 걷과는 산수의 체계로 바꿀 수 있는 어떠한 방법이나 논리저 원리로도 무모순성을 증명할 수 없음을 말한다. 불완전성은 논리적 원리들을 첨가하거나 형식 체계에 수학적 공리문 · 첨가시킴으로써 피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괴델의 방법은. 만일 그 첨가된 명제듈이 기호나 논리식에 수룹 대응시키는 그의 스킵 에 의해서 산수적 용어로 표현원 수 있다면, 한 결정 불가능한 명계가 또 다시 형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령지 않다고 두면. 오로지 산수 속으로 “사상된 수 없는 추론의 원리들에 의해서만 걷정 불능인 명재윤 ` 피할 수 있고 무모순성이 증명월 수 있다. 약간 엉성한 다몬 미유를 한 -
다면, 추론의 원리들이나 수학적 공리등이 일본어로 되어 있고, 괴델의 산수화가 영어로 되어 있다연, 일본어가 영어로 번역원 수 있는 한 괴 델의 결과들이 얻어진다. 그러므로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괴델이 사용한 것과 감은 어연 방 법으로 산수화원 수 있는 어떠한 수학적 • 논리적 공리계도 모든 수학 에 대하여는 말할 것도 없고 그 공리계 단 하나에서 얻어지는 모돈 진실을 포함하기에는 부적합합운 주장한다 . 왜냐 하면, 그러한 어떤 공리계도 불완전하기 메문이다. 이렌 체계에 속하는 의미 있는 영재로서 그 제계 속에서는 증명할 수 없는 것이 촌재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 그것문 은 미형식적 논법에 의해 참임이 밝혀질 수 있다. 공리화에 의해서 얻 어잘 수 있는 것에는 재한이 있다는 이 전과는, 수학이 공 리화된 분야 의 모임과 동일한 것이라는 19 세기 말의 관접과 난카로운 대조 를 이 운 다. 괴델의 결과는 포판적 공리화에 치명다 물 준 것이다 . 공리적 방법의 이 같은 부적합성은 그 자체는 모순은 아니지만 눈타운 것이다. 그 이유는 수학자 나 히 형식주의자둘은 어떤 참영재도 어떤 공리적 체계 의 구조 내 에서 성립킬 수 있옵 을- 기대앴기 매문이다 . 그래서 브라우어가 직관적으 로 확실한 것이 고전 수학에서 증명된 것에 걷여되어 있다는 것을 밝히 는 동안, 괴델은 직관적으로 확신한 것은 수학적 증명의 법위룹 넘어서 까지 확장될 수 있음을 보였다. 1 비르나이스가 말한 대로 오 늘날 에는 공 리온을 권장하는 것은 그것의 과대평가설- 겅고하는 것보다 현명치 못하 다. 물론, 위의 논의는 새로운 증명법이, 기초론 학파들이 받아둘이는 논리적 원리들이 무엇을 허용하는가 룹 넘어서 더 발전원 가능성을 배재 하지 않는다. 괴델의 두 가지 결과는 파괴적이었다. 무모순성 증명의 불가능은, 인 버트가 그의 초수학에서 그러한 증명윤 재회했고 성공하리라고 확산랬기 때문에, 그의 형식주의 철학에 가장 직접적으로 치명타룹 가한 것아다. 그러나 이 재앙은 인버트의 프로그램보다 원씬 머 멀리 확대되었다 . 괴 벨의 무모순성에 관한 전과는 완전한 논리적 원리들을 써서는 어띠한 수학적 접근법으로도 무모순성을 증명할 수 없음을 말한다. 그때까지 진행되어온 어떠한 점근법도 예외가 아니다. 금세기에 그 철대적인 확 실성 또는 결과의 타당성을 주장할 수 있었던 수학의 한 가지 묵면한 양상온 이계 더 이상 주장된 수 없었다. 불행히도, 무모순성이 증명킬 수는 없기 때문에 언제 모순이 발견욀 지 모르므로, 수학자는 넌센스를
이야기하고 있 을 위험이 있다. 만약에 어떤 모순이 나타나고 그것 이 해 걷원 수 없다면, 모든 수학은 촛점을 잃을 것이다. 왜냐 하면, 두 개의 모순되는 명재 중 하나는 만드시 거짓이며, 실질함의 (8 장)라고 부르는 모든 수리논리학자들에 의해 채택된 함의의 개념은, 거짓 명재는 모든 명제물 함의하는 것을 허용한다. 마라서 수학자들은 과일의 위협 아대 시 연구하는 셉이다. 불완전성 정리는 또 다은 다져이다. 여기에서도 역시 한버트가 직접 관련되지만, 그 정리는 수학의 형식적 접근법 전부 에도 적용된다. 수학자들은 대체로 힐버트가 랬던 만콤 자신있게 표현하지는 않았지 만, 분명히 임의의 명백한 문제들을 해전하기설- 기대했다. 사신, 예 를 둘어 n 이 2 보다 쿨 매 x•+ y =z” 을 만족하는 0 아닌 정수문은 없다고 주장하는 게르마의 최후의 정리'’를 증명하려는 노력은 수백 편의 길고 십오한 논문을 생산랬다. 아마 이 모든 노력은 그 주장이 정말 걷정 불 능일지 도 모르므로 헛 된 것 일지 모른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어떤 범위에서는 매중률을 거부하는 것이다. 우리는 한 명재가 참이거나 거짓임을 믿는다. 그리고 현대의 기조론에 서는 이 사실은 논리의 법칙들과 그 명재가 속하는 북정한 과목의 공리 들에 의해서 그 명재가 증명되거나 반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근거로 매중문을 배격하던 직관주의자에게 도움이 되는 논의이다. 괴델의 접근법과는 달리, 우리가 하나의 체계가 결정 분능 인 명제를 가지고 있옵울 보일 수 있다면, 무모순성울 증명할 가농성이 있다. 왜냐 하면 앞에서 이 야기한 실질함의에 관한 논의에 의하여, 만일 모순이 있 다면 모돈 명재는 증명전 수 있기 메문이다. 그러나 이재까지 이것은 이 루 어지지 않고 있다. 인버트는 그가 실패했다는 것을 납득하지 않았다. 그는 낙관주의자였 다. 그는 인간의 이성과 이해의 힘에 끝없는 확신을 가졌다. 이 낙관은 그에게 용기와 힘을 주었으나, 그가 결정 불능인 수학칙 문재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운 방해했다. ·인 버트에게는, 수학은 그 연구자 가 자신의 개인척 능릭을 재외한 어떠한 재한도 받을 수 없는 잉역이었 던 것이다. 괴델의 I93I 년의 걷과는 ·인버트 와 매르나이스의 기초론에 관한 기본 척 업적의 재 1 권 (실재로는 1934 년에 ·출판되었다) 과 재 2 권 (1939) .운 집고.l 하던 중간에 출판되었다. 따라서 제 2 권의 서문에시 저자둡은 조수학에
서의 추론 방법을- 눈여야 한다는 대 동의하고 있다. 그를은 조한 귀납법 : 을· 포함시켰다.* 힐 버드는 이 새로 운 원리가 직관적으로 건전하고 보견 적으로 받아·조여질 수 있다고 생각랬다. 그는 이 방향웅 고집랬지만 어 연 새로운 결과를 얻지는 못댔다.
• 보몽의 수학시 귀납입은 한 정리가 모든 유한인 자연수들에 대하여 감입운 증명한다. 조한귀납법은 간은 방법설· 쓰지만, 그것운 소한기수읍· 가지는 정낀순시집합에까지 획\ 장안다 .
결정적인 해였단 1931 년 이 후의 발전은 앙상 을- 더 복잡하게만 만 들 었고, 수학과 그 옳은 절과가 무잇인가 를 정의하려는 어떠 한 시도도 좌 설시컸다. 그러한 발전의 하나는 사소하기는 하지만 최소한 언 급되 어야 한다. 할 머 트 학파의 한 사람인 갠 ;; .iJ. Gerhard Gcnt ze n (1 909- 4 5) 은 인 미 드 의 조수학에서 허용된 증명 방법을 늦추 어서, 예 문 둘 연 초한 귀납법을 써서, 1936 년에 자연수와 해석학의 재한된 부분에서의 무 오 순성걀 확립 하였다 . 켄첸의 무모순성 증명은 및및 인버트 학파의 사람 들 에 의해 옹호되고 받아 들여졌 다. 이 갇은 형식주의자둘은 겐센의 방법이 이미 허용된 논 리 의 한계·홍 넘어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따라서 형식주의운 웅호하기 위해 서 는 우리 는 브라우어 의 유한적 (fin it ar y) 논리 로부더 캔첸의 조한적 (t ra ns - fin it e) 논리 로 넘 어 가야 한다. 캔첸의 방법 의 만대 자듄은, 허 용가능한 논리 가 얻마나 소피 스티 캐 이 트 (sop h is t i ca te ) 할 수 있는가 눕-라우며 , 또 만일 우리가 자연수의 무모순에 대하여 의십 을품는다면 , 아 직도의심 스 러운 조 수학적 원리 를 씀으로써 우리의 의십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라 고 공박했다. 조한귀납법의 문재접은 겐첸이 사용하기 전에도 논쟁갑이 어서, 어먼 수학자들은 가능한 한 증명에서 그것을 퍼하려고 노력했다. 그것은 직관적으로 인정되는 원리가 아니다. 바일이 언급한 바와 같 이. 그러한 원리는 유효한 추론의 기준 을 신망할만한 것에서 모호한 것이 되 . 는 정까지 저하시킨다. 괴벤의 붑-완전성 정리는 언급의 가치가 있는 부수적인 문 재 들을 야기 시컸다. 다소간의 어떤 복잡성이 있는 수학의 어떠한 분야에서전, 증명 할 수도 반증원 수도 없는 주장이 있으므로, 우리는 어떤 목 정한 명재 가 층명되거나 반증원 수 있는지의 어부를 결정할 수 있느냐 하는 의문 이 발생한다. 문현에서는 이 의문을 결정 문계 (dec i s i on p roblem) 라 부론 다. 그것은 유한번의 과정으로씨 한 명재 또는 명제 들 의 모임의 증명가-
능성 (참 또는 거짓)을 결정할 수 있게 해주는 유효한 과정운 요구한다. 아마도 이같은 과정은 컵퓨터가 채용하는 것과 갇은 것이다. 결 정 과정 (decis i o n pr ocedure) 의 개 념 을 바로 구체 화시 키 기 위 하여 몇 가지 사소한 예를 들어 보자. 한 정수가 다론 정수문 나누어 떨어뜨리 는가 를 걷정하기 위해서 우리는 나눗셉의 과정을 쓰는데, 나머지가 없 으면 이 답은 옳다. 한 다항식이 다른 다항식을 나누어 떨어뜨리는가를 보기 위해서도 똑 갇온 과정이 적용된다. 마찬가지로 a,b,c 가 정수일 매 방정식 ax+b y =c 가 x, y에 대한 정수해를 가지는가 를 걷정하기 위 해서도 분명한 방법이 있다. 그래서, 1900 년 과리의 국재 대회에서 힐버트는 연번째로 디오판무스 방정 식 (D i op h anti ne cq u nti on , 부정 방정 식 )에 관한 매 우 재 미 있는 문재 를 계 시하게 되는데, 그러한 방정식이 정수해를 가질 수 있는가를 걷정하는 효과적 인 방법 을 우리 가 구할 수 있는지 물었다. 따라서 ax+b y= c 꼴 의 방정식들은 미지수 2 개에 식은 1 개이고 해는 반드시 정수이어야 하 므로 디오판두스 방정식이 된다. 힐버트의 디오판두스 문계는 보다 일 반적이었다. 어떠한 경우돈 결정 문제는 힐버트의 문재가제시한 것보다 더 넓고 더 복잡한 것이었다. 그러나 결정 문제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z.. 것을 흔히 힐버트의 문계라 부르는데, 그 이유는 힐버트가 재기한 문제 · 에 관한 전과를 얻는다는 사실은 바로 결정 문제의 결과를 얻는 것이 되 기 때문이다. 무엇이 실제적인 과정이냐 하는 개념은 프란스턴 대학 교수 처어취 Alonzo Church(1903- )에 의 해 서 귀 납적 함수 (recurs i ve fun cti on ) 또는 계 산가능함수 (com p u 야 le fu nc ti on) 라 부윤 수 있는 것으로 정의되었다. 귀 납성에 관한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만일 f (I) 은 1 로 f (n+ i)은 f( n)+ 3 으로 정의하면 /(2)=/(1)+3=I+3=4 이냐 또 /(3)=/(2)+3=4+3 =7 이 된다. 그래서 우리논 계속되는 f (n) 의 값을 계산할 수 있다. 이 합수f (x) 를 귀납적이라 부은다. 처어추 1 의 귀납성의 개념은 보다 일만 척이지만, 계산 가능성으로 구1 결된다. 1936 년에 처어추]는 자신이 새로 도입한 귀납적 함수의 개념을 써서 일반적으로 어떠한 걷정 과정도 가능하지 않음을 보였다. 그러므로 주어 진 목정한 주장에 대하여 그것이 증명 가능한지 반증원 수 있는지 걷정 할 수 있는 °실거리돕(계산 과정)을 항상 찾을 수는 없다. 어떤 무번한 깅 우에 우리는 증명운 할 수는 있으나, 그러한 중명이 발견원 수 있는지
어떤지에 대한 어떤 고등한 검사법은 없다. 그러므로 수학자들은 증명 이 분가능한 것을 증명하려고 및 년을 허송할지도 모른다. 힐버트의 열 번째 문재 의 경 우에 , 마챠세 미 추 1 Yuri Maty a sevic h 는 197. 0 년에 정 수둘이 관련된 디오판두스 방정식을 만 족 시키는지 아닌지 를 결정할 어떠한 앨 거리듬도 없다고 증명했다. 그문제는 결정 불능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러나 오 늘날 대부분의 수학자에게 귀납적 과정 (반드시 위에서 든 예일 원 요는 없다)을 의미하는 어떤 실제적 인 과정도 우리에게 그것이 해법 가 눙한지 몰 말해줄 수는 없다. 결정 불능의 명제들과, 어떤 질정 과정도 없는 문재들 사이의 구`일은 약간 미묘하지만 명확하다. 결정 불능 인 명재들은 어 떤 목멸한 공리계 안에서 결정 불능인 것이며, 중요성이 있는 임의의 공리 구조에서도 존 재한다. 그러므로 유클리드의 평행선 공리는 다른 유문리드 공리들을 근 거로 한다면 결정 불능 이다. 또 다론 예는 실수의 집합이 실수의 보동의 공리적 성질들을 만 족하는 가장 작은 집합이라는 주장 이다. 아칙 풀리지 않은 문재둘은 결정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것을 항상 미 리 알수는 없다. 임의의 각을 자와 컵퍼스로 상등분하는 문재도 적어도 수 세기 동안 걷정할 수 없는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각 의 삼동분은 불가능함이 밝혀졌다. 처어추 1 의 정리는 한 명제가 증명철 수 있는지 반증이 되는지 를 미리(i n advance)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 다 는 것이다. 그것은 어느 한 경우일 것이다. 그것은 또한 아무 쪽도 아 니며 따라서 걷정 불능일 수도 있으나, 이것은 이미 알려진 결정 불능 인 명재의 경우와 같이 명백하지 못하다. 모든 짝수는 두 솟수의 합이라는 골드바하의 가설은 현재까지 증명되지 않고 있다. 그것은 자연수의 공 리 들 의 근거로는 결정 불능일지도 모르지만, 괴델의 예가 있는 한 현재 는 분명히 걷정 불능인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언젠가는 그것도 증명되 거나 반증원 것이다. 불완전성 과 무모순의 증명 불 가능에 대 한 괴 델의 업 적 이 수학자들에 게 미찬 충격은 10 년쯤 후에 새로운 충격이 수학을 위협할 때까지 사라지 지 않았다. 건전한 수학이란· 무엇이며 그 방향을 어떻게 취해야 하는가 에 대한 의문을 보다 큰 혼돈 속으로 몰아 넣은 또 다른 일련의 연구를 착수한 사람은 역시 또 괴델이었다. 우리는 금세기 초에 시작된 수학의 접근법 중 하나가 집합본 위에서 수학을 건설하려는 것 (11 장)임을- 상가 해 보자. 그러기 위하여 체르멜로-프랭첼의 공리계가 개발되었다.
《선출공리 및 일반화된 연속체 가선의 집합론의 공리둘에 대한 무모순 성 >T he Consis t e n cy of the A.xiom of Choic e and of the Generaliz e d Conti nu um Hy po th e sis wi th the Axio m s of Set Theory (1940) 에 서 괴 델은, 선출공리 가 없는 체르멜로-프랭첼의 공리게가 무모순이면 이 공리 를 첨가하여 얻 어진 공리계도 무모순이다, 죽 그 공리는 반증원 수 없음운 증명했다. 마찬가지로 칸토르의 연속재 가선―― ~o 와 2`' (이것은 실수의 기수 C 와 갇 다) 사이에는 기수가 없다. 죽, 2R0 보다 작은 기수를 가진 미가산인 실 수들의 집합은 없다――온(또한 인만화된 연속체 가선조차*) 체르멜로一프 랭렌의 공리계 에, 선사 선출공리가 포함된다 한지라도, 무모순이다. 다 ` 시 말하면 이러한 주장들은 반증원 수 없다. 그의 결과를 증명하기 위 해서 괴델은 이 주장둘을 성립시키는 모델을 만들었다. 이 두 주장, 선 출공 리와 연속체 가설의 무모순성은 다소간 확신을 새 • 로이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우리는 그 두 주장을 다른 체르멜로-프랭 캥의 공리들을 사용할 수 있었던 만큼 확신을 가지고 사용할 수 있을 것 이다.
* 인만화왼 연속체 가설은 기수 l\.-은 가지는 집합의 모든 부분집합의 집합의 기수 2 •• 은 R •• 1 과 감다는 것이다. 칸도르는 2••> 1'.입운 증명냈다.
만일 수학자들이 만족하게 느꼈다면 그들의 만족은 그 다음 발전에 의 . 해 산산히 부서져 버렀다. 괴델의 질과는 선출공리와 연속체 가설이 체 르멜로- 프랭첼 의 다론 공리들을 써서 증명펄 수 있을 가능성을 배재하 지 않았다. 최소한 선출공리가 이 근거 위에서 증명될 수 없다는 생각은 원싼 전인 1922 년에 표명되었다. 그 해와 그 다음 및 년간 프랭커J. 자 신을 포함한 및 사람이 선출공리가 독립적임울 증명했으나, 그들은 각 각 그 중명을 하기 위해서 체르멜로-프랭괜 체계에 및 가지 부수적인 공리운 첩가해야 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다론 사람들에 의한 그 후의 증밍도 똑같은 반대에 부딪혔다. 1947 년에 괴델은 연속체 가설도 역사 체르멜로-프랭벨의 공리계 및 선출공리에 독립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1963 년 스텐포드 대 학 수학 교수인 코헨 Paul Cohen (1934-) 은 선출공리 와 연속체 가설은 , 만일 다른 체 르멜로-프랭 캔 공리 계 가 무 모순이면, 두 개 다 그것들과는 독립이라는 것; 다시 말하연 두 수장은 다본 체르멜로-프랭첼의 공리들윤 써서는 증명원 수 없다는 것옵 증명 랬다. 더구나 체르멜로-프랭깬 공리계에 선출공리가 추가된다 해도 연 속체 가설(그리고 분명히 일반화된 인속재 가선도) 증명원 수 없다. (그러나
선춘공리가 없는 체르멜로-프랭 첼 공리계에 일반화된 연속 채 가 선 이 첨 가되면 선 춘공리논 증명된다.) 이 두 가지 독립성의 결과는 선 출 공리와 연 속 체 가 설이 체르멜로-프랭젤 공리계 내에서 결정 불능임을 의마한다. 특 히 연 속체 가설에 대한 코헨의 결과는, 미 목 ~o 와 2•• = c 사이의 초 한수 를 가 지는 집합이 알려져 있지는않지만, 그와 같 은 초 한수가있 을 수 있음운 의미한다. 강재법(fo rc i ng me t hod) 이라 블 리우는 코 헨 의 방법 은 , 원 리 적 으로는 다 론 독립성의 증명과 차이가 없었다. 우리는 유클 리드의 평행 선 공리가 유클리드 기하학의 다론 공리 들 과 독 립임 윤 보이기 위해 서, 다 론 공 리 둘을 만족하면서 문재의 공리 를 만 족 하지 않 는 해석 이나 모델을 찾았 옵 을 상기하여 보자. * 그 도델은 무모순으로 알려 져 있어야 하며, 그 망 지 않다면 문재의 그 공리 역시 만 족 할 수도 있다 . 코헨 의 증 명은 그가 어 떤 부수적 조건도 없는 체르멜로-프 랭?신 의 공리만 을 썼으 므 로 그 전의 프랭첼, 괴델과 다론 사람의 증명 을 개량한 것이었다. 선 출공 리의 독립 성에 대하여는 미 목 만족스럽지는 못한 것이었지만 전에도 증 명이 있었 으나, 연 속 체 가설은 코헨의 연 구 이전에는 미 해결 문 재였다.
• 군온(g rou p t heor y)의 가환 공리는 군의 다 본 공 리 윤 과 목입서이다. 대 문 돕 어, 정 ·수 의 집합과 갈이 그 공리 운 만 족 시키는 군의 모델이 있고. 사원수의 예와 갑이 그 공미 붑 만 족 시키지 않는 군의 오 ' !!.이 있다.
그러므로, 수학 -응 집합 론 (또는 논리주의나 형식주 의) 위에 전 선 하려면 우리는 및 가지 입장 을 취할 수 있다. 우리는 선 출 공리와 연속체 가 설 의 사용을 피할 수 있다. 그 렇 게 한다면 증명 원 수 있는 정리 들 이 제 한 킬 것이다. 《수학 원리》는 선 출 공리 를 그 논리직 원리로는 포 합 시키지 않 았지만, 그것을 몇 개의 정리의 증명에 사용하였으며, 그런 경우에 그 사실을 정확히 밝혀 놓았다. 그것은· 사실상 현대 수학에서 기본적이다. 양자택일로 우리는 둘 중 하나나 또는 두 개 를 모두 공리로 택할 수 있 다. 그리고 우리는 두 개 모 두를 거부 할 수도 있다. 선 출공 리 를 거부한 때, 우리는 집합들의 가산 개의 모임에서조차 선 출 공리 를 사용 할 수 없 다고 가정할 수 있다. 연 속 체 가설운 거부할 때, 우리는 2••= ~z 나 2••= . R3 라 가정할 수도 있다. 이것은 사신상 코헨에 의해 이루어졌고, 그는 모델을 만둘었다. 그러면 많은 수학들이 있을 수 있다. 집합론이 (다론 수학기조 론 과는 인 개로) 나아갈 수 있는 수많은 방향이 있다. 더구나 우리는 유한개의 집
합듄 또는 가부번개의 집합들에만 해당되는 선출공리를 ;;軒비할 수도 있 고 임의의 수의 집합들에 관한 선출공리도 물론 채덱할 수 있다. 수학 자들은 그 공리에 관하여 이같은 각각의 입장을 취해 왔다. 코헨의 독립성 의 증명으로, 수학은 미유클리드 기하학의 창조 매만큼 이나 혼란스러운 궁지에 빠졌다. 우리가 알듯이 (8 장), 유클리드의 평행 선 공리가 다론 공리설- 과 독립 이라는 사실은 및 가지 비유클리드 기하학 의 구성 을 가능하게 했다. 코헨의 전과둘도 다음과 같은 문재겁을 재시 하였다: 두 공리의 많은 가능한 꼴 중 수학자는 어떤 것설- 선택해야만 하는가? 만일 집합론적인 접근법만을- 생각한다고 할지라도 그 선택의 다양함은 당 혹스 러 운 것 이 다. 그 많은 선덱 중 어느 것을 취할 것인가는 가벼이 걷정할 수 없는데, 그 이 유는 각각 의 경우에 긍칭적인 견과와 부정적인 것의 두 가지가 있 기 매문이다. 어느 공리의 사용도 삼가는 것, 말하자면 어떠한 궁정도 부정도 피하는 것은 앞서 말한 대로 증명원 수 있는 것을 십하게 재한 하며, 수학의 존재에서 기본적인 것으로 여겨지던 많은 것을 배재한다. 무한집합 S 가 가부번 무한부분집합을 포함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서 조차선 출공 리가요구된다. 선출공리를 요구하는 정리 들 은 현대 해석학· 위상수학 • 추상대수학 • 조한수론 기타 영역에서 기본적인 것들이다. 그. 러므로 그 공리룹 쓰지 않는 것은 수학 을 절름발이로 만든다. 반대로 선출공리룬 취합은 적어도 직관을 무시하는 정리를 증명할 수 있 게 한다. 이 것 중의 하나는 바나하_타르스키 의 역 리 (the Banach-Tor- ski pa radox) 라는 것 이 다. 우리 는 이 것 을- 다음과 감은 방법 으로 표현할 수 있다: 하나는 야구공 크기만 하고 하나는 지구의 크기만한 두 개의 구체가 주어졌을 때, 공과 지구룹 유한 개의 겁치지 않은 작은 입체 부 분으로 분한하되 공의 각 부분은 지구의 한 부분과 일대일로 합동이 되 도 독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그 역리를 다음과 감이 말한 수 도 있다: 우리는 지구 전채 운 작은 조각눕- 로 나누어 그것울 재건합함으 로써 지구 를 공의 크기로 만들 수 있다. 1914 년에 발견된 이 여리의 북변 .한 경우는, 구면을 두 개의 부분으로 분한하되, 각 부분을 지음이 처읍의 구와 같은 완전한 구면으로 재걷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역 리 들은, 1900 년대 초의 집 합론의 역 리 설-과는 달리 , 모순이 아니 다. 그 것들은 집합론의 공리들과 선술공리의 논리져 건과인 것이다. 더욱 이상한 걷론이 일만져 인 선출공리의 거부로부터 얻어진다. 아마
전문가들에게만 이해될 또 하나의 기술적인 결과는 모든선형집합(li near set) 이 가축 (masurable) 이 라는 것 이 다. 말하자면, 선출공리 가 가축이 아 닌 집합의 촌재를 함의하므로, 모든 선형집합은 가축이라고 가정함으로 써 선츈공리 를 거부할 수 있다. 또 다몬 이상한 결론은 조 한기수에 관 하여 성립하는 것이다. 연속체 가설에 대해서는 우리는 마지의 세계로 ` 빠질 수 있고, 그것을 긍정하든 부정하돈 중요한 결과들이 아직도 알려 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만일 2“=`2 라 가정하면 모든 실수의 집합은 가축이다. 그 밖에도 많은 새 결론들이 역시 얻어질 수 있다. 그러나 · 그것들은 중요한 것은 아니다. 평행선 공리의 연구가 기하학을 어러 방향으로 분리시켰듯이, 집합에 관한 이들 두 공리에 대한 코헨의 연구는 다른 기조론적 접근법에도 영 향을 끼쳤지만, 톡- 히 집합론에 근거몰 둔 모든 수학을 여러 방향으로 다 양하거 1 분리시켰다. 그것은 수학이 취할 수 있는 어러 가지 길은 재시 했으나 어느 하나를 다몬 것의 우위에 두어야 할 어미한 이유도 재공하 지 않는다. 실제로 코헨의 1963 년의 연구 이레 체르멜로군프랭젤 집합론 · 에서 결정 불능인 명재들이 아주 많이 발견되어서, 기초적인 체르멜로 프랭젤 공리계와 하나 또는 여러 개의 결정 불능인 명재들을 사용할 수 있는 선택의 다양성은 혼란스럽다. 선출공리와 연속제 가설의 독립성의 증명은, 건축가가 그의 계획을 약간만 변경하면 사무용 건물 대신 성채 를 지울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에 비유된다. 현재 의 집 합론 연구자들은, 선출공리 나 연속체 가설이 나 아니 면 둘 다 · 가 수학자둘이 널리 받아들일 수 있는 공리들의 한 모임으로부터 추론 원 수 있는지 어떤지를 결정할 수 있도록, 집합론의 공리를 어떤 건전 한 형태로 수정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괴델의 의견으로는 이 가 · 능성온 확실히 실현될 수 있다. 노력은· 대단했지만 그만큼 성공하지는 · 못했다. 아마 언젠가 어떤 공리들을 사용해야 하는지 합의가 있을 것이 다. 괴델, 처어취, 코헨의 업적들만이 수학자들을 당황하게 한 것은 아니 었다. 문제정은 해가 거듭될수록 늘어가기만 했다. 1915 년에 뢰밴하임 Leop o ld Lowenheim (1878-c.1940) 에 의 하여 시 작되 어 1920 년부터 1930 년 . 사이의 일련의 논문에서 스콜렘 Thoralf Skolem(1887-1963) 에 의하여 단 · 순화되고 완성된 연구는수학의 구조의 새로운 결함을폭로하였다. 현재 되벤하입-스콜렙 이론으로 불리우는 것의 실체는 다음과 같다. 만일 누 ` -
가 수학의 한 분야나 또는 모든 수학의 기초로서의 집합론에 대하여 수~ 학적이고 논리적인 공리들을 설정했다고 가정하자. 가장적철한 예는자 ~ 연수의 공리 들의 집 합이 다. 이 공리 들은 자연수를, 또 자연수만을 완전 히 규정짓도록 의도된 것이다. 그러나, 늄갑게도, 공리들을 만족하면서 도 전혀 딴 판인 해석_모델 __ 울 줄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 리 하여 자연수의 집 합은 가부번, 죽 칸토르의 기 호로는 R 。 7ll 의 자연수 만 있지만, 실수의 집합과 갇은 갯수 또는 그보다 더 큰 초한기수를 가· 지는 모델이 있다. 이 역 현상도 역시 일어난다. 즉, 우리가 한 가지 집 합론의 한 공리계 를 취하고 이 공리 들 이 집합의 비가산 개의 모임을 허 용하고 또 실제로 그같은 모임을 규정하려는 의도 를 가졌다고 가정하자. 그럼에도 우리는 그 공리계를 만 족 하는 가부번 개의 집합의 모임을 찾 울 수 있고, 우리가 의도했던 바와는 전혀 다른 초한 모델을 찾을 수` 있다. 실재로, 모든 무모순인 공리계는 가부번 개로 된 모델을 갖는다 .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만일 미국인의 목성을 규정하고 또 오로 지 미국인만을 규정한다고 믿어지는 묵 칭의 일람표 를 만들었다고 하자. 그러나, 놀랍게도 , 그 일람표에 있는 북 칭들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 미 국인과는 전혀 다른 목 징도 지닌 동물의 일종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다` 시 말하면, 수학적 대상의 단 하나의 모입만을 규정짓기로 고안된 공리 , 계는 그렇게 되지 못한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가, 공리들의 한 집합은` 그 공리들이 담당하려고 시도된 수학의 한 분야에 속한 모든 정리들을 、 증명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울 말하고 있지만, 뢰버J.하임-스콜렝 의 정리는, 공리들의 한 집합은 의도됬던 바와는 본질져으로 다른 원싼 더 많은 모델을 허용합운 말해 준다. 그 공리들은 해석이나 모델을 재 한하지 않는다. 그러 므로 수학적 실체 는 공리 계 를 써 서 모호하지 않거 l 동합될 수는 없다.*
* 더 오대된 재 중에는 기본계가 법주저 (cot og o ric o l) 입을, 다시 말하연 어민 기본저 공 리계의 모돈 모빈이 동형이라는 것운 중명한 것이 있다.-본문의 얘기는 법주쳐이 라는 것과 본질져으로 같고 용어만 다르다. 그러나 그 증명은, 인버르의 초수학에사 허용되지 않은 논리저 원리문 썼고 공리쳐 근거둘이 지금만큼 조십스럽계 형성되지 않 았기 때문에 엉성하다 . 인버트와 다은 사합윤에 의한 중명에도 불구하고 어연 공리둘 : 의 모임도 법주서이 아니다.
의도되지 않은 모델이 가눙한 한 가지 이유는 각 공리계가 무정의용 어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에는, 공리들이 이러한 용어를 암묵적; 으로 “정 의 한다고 여 겼 다. 그러 나 공리 들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
그러므로 무정의용어의 개념은 아직까지도 예측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바뀌어져야 한다. 뢰버J.하임-스콜램의 정리는 괴멘의 불완전성 정리만큼 놀라운 것이었 다. 그것은 1900 년대로부터 최근까지 유일하고 전전한 접근법으로 여겨 겼고 아칙도 논리주의자, 형석주의자, 집합론자에 의해서 채용되고 있는 공리져 방법에 또 하나의 치명타를 가했다. 뢰밴하임-스콜램의 정리는 전적으로 눈라운 것만은 아니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모든 공리계가 불완전함윤 말해준다. 즉, 결정 불능인 명제들이 있다. 이재 P 가 그러한 명재라 하자. 그러면 P 도 p의 부정 도 그 공리들로부터 이꾼어 내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독립적이다. 그러 므로 우리는 그 공리계와 p 또는 그 공리계와 p의 부정으로 된 더 콘 공리계를 취할 수 있다. 이 두 공리계는 그 모델들이 동형일 수 없으므 로 법주적이 아니다. 말하자면 불완전성은 마범주적임을 의미한다. 그 러나 되벤하임-스콜렘의 정리는 보다 강력하거나 보다 근본적인 방법으 로 범주성을 부정한다. 그것은, 주어진 공리계에, 어떤 새 공리 를 첨가 하지 않고도, 근본적으로 다몬 모델이나 해석이 촌재함을 입증하고 있 다. 물론 불완전성은 현존하여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근본적으르 다몬 해석은 가능하지 않을지도 모돈다. 한 해석의 어떤 의미있는 명제는 걷 정 불능이어야 하는데, 그평지 않으면 그것은 두 가지 해석에서 동시에 성립한 것이다. 그 자신의 결과를 십사숙고한 후에, 스철템은 1923 년의 논문에서 집 합론의 기초로서의 공리적 방법을 미난했다. 폰노이만조차도 1925 년 에 그 자신의 것과 다른 집합론의 공리계들이 ‘네현실적이라는 낙인”을 가지고 있다는 데 동의했다. 법주적인 집합온의 공리화는 존재하지 않 는다. … 수학· 기하학 등에서 집합론을 가정하지 않는 어떤 공리계도 존재하지 않으므로 분명히 법수적인 공리적 무한계는 없을 것이다.” 그 는 계속하여, 이 현상은 ‘‘나에게는 직관주의에 관한 논법으로 보인다 고랬다. 수학자들은 비 유클리 드 기 하학의 역 사운 회 상함으로싸 그들 자신을 진정시키려 했다. 평행선 공리에 대한 수 세기에 걸찬 두쟁 끝에, 로바 쳅스키와 보요이가 그물의 미유큘리드 기하학윤 만들고, 리만이 또 다 론 기하학울 시사했을 때, 수학자들은 처음에 그것들은· 물립없이 모순된 것이라 하여 몇 가지 근거로써 이 기하들을 거부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후에 만들어진 해석들이 그들이 무모순임을 보였다. 예를 들면,.. 리만의 이중타원 기하학은 보동의 평면에서의 도형에 적용하기 위하여 만들어졌지만, 원래 의도한 바 (8 장 )와 는 전혀 다론 해석인 구면에서의 도형에 관하여 해석되었다. 그러나 이 모델이나 해석의 발견은 환영받 았다. 그것이 무모순성울 증명했다. 미구나, 그것은 리만에 의하여 의 도된 점 • 선 • 평면 • 삼각형 둥 대상의 수와 그 해석에서의 그것들과의 사이에 불일치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 두 가지 해석은, 수학적인 용어 로 동형 이다. 그러나 뢰밴하임-스콜렘의 정리에서 다루어진 공리계의 해시들은 동형이 아니다. 그것들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프앙카레는 수학 의 추상성에 관하여, 수학은 서로 다론 것에 갇은 이 름을 분아는 기술이라 말한 바 있다. 그러므로 군의 개념은 덧샘에 관 한 정수들의 집합, 같은 크기의 행텔둘의 집합, 기하학적인 변환의 성 질을 표현한다 . 뢰밴하임_스콜렘의 정리는 프앙카레의 진술을 지지하지 ’ 만 그것의 의미 를 바꾼다. 군의 공리가 모든 해석은 같은 범위. 같은· 성질의 것 이 라는 것을 묵 정지으려고 의도된 것은 아닌 데 대하여――군 7 · 의 공리는 법주적이 아니며, 평행선의 공리 를 대 면 유클리드 기하학의 공리도 범주적이 아니다-로p신하임-스콜렘의 정리가 적용되는 공리계 둘은 하나의 목수한 해석을 지정하려고 의도된 것들이며, 그것들이 아 미 근본적으로 다 른 것들에 적용된다는 사신의 발견은 원레의 목적을 뒤 엎는 것이다. 신들은 파괴하고 싶은 것둘을 처음에는 미치게 랬다. 아마도 신들은 괴델, 코헨, 뢰벤하임, 스콜램의 연구가 목적을 이루었다는 것을 확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학자들을 더 확실하게 낭떠러지로 보내는 한 가 지 발전윤 활동시켰다. 미적분학의 접근법으로서 라이프니츠는 무한소 라고 하는 양움 도입했다 (6 장). 라이프니츠에게 무한소는 0 은 아니자 만 0, I, 0,OI, 0,001, •••, 그리고 임의의 다론 양수보다 작은 양이었다. 더구나, 그는 주장하기를, 무한소는 보동의 수들윤 연산하듯 똑같이 연 . 산할 수 있다고 했다. 그것들은 이상적이거나 허구의 요소이지만 유용 · 한 것이었다. 사실상, 두 개의 그갈은 무한소의 미는 라이프니츠에게는 군 미적분학의 기본 개념인 도함수이었다. 라이프니츠는 또한 보몽의 수처 럼 무한히 큰 수도 사용했다. 18 세기를 동하여 수학자들은 무한소의 개념에 대항하여 두쟁했고, 암 의의 미논리저이기조차한 규칙에 따라 그들 - 암사용랬으며, 그것문윤 년 .
센스라 하여 거부함으로써 끝을 냈다. 코우쉬의 연구는 그것들을 재거 하였을 뿐만 아니라그것 들 의 어떠한 팔요성에도 반대랬다. 그러나 무한 소가 정당화된 수 있는가의 문제는 계속하여 남아 있었다. 미탁레플러 -Go sta M itt a g -Lc fll cr(1846-1927) 가 칸토르에게 유리수와 실수 사이에 다른 종류의 수가 있겠는가 를 물었을 때, 칸토르는 험주어 그멍지 않다고 대 답했다. 1887 년에 그는 주어전 두 실수 a,b 에 대하여 어떤 정수 n 이 존재하여 na 가 b 보다 크게 할 수 있다는 이 른 바 아르키메데스의 공리 에 근본적으로 의촌하여, 무한소의 논리저 불가능성을 증명했다. 께아 노도 역시 무한소의 미촌재성운 보여주는 증명을 공표했다. 《 수학 의 원 리》 (1903) 에서 럿셀도 이 결론에 동의했다. 그러나, 진실로 위대한 사람의 신념도 너무 쉽게 만아들여지서는 안 된다. 아리스토델레스 시대와 그 후 오랫동안, 지구가 둥 굳 다는 개념은 많은 사상가들에 의하여 년센스라고 거부되었는대, 그 이유는 지구의 반대편에 사는 사람들이 그들의 머리를 공중에 달아 미 1 야 한 것이기 때 문이라는 것이었다. 이제 구면성은 참된 개념임이 밝혀졌다. 마찬가지 로 라이프니츠의 무한소가 추방되어야 함이 증명되었옹에도 성 구하고, 사람둘은 그러한 양에 대한 논리적 이론 을 세우기 위해 계속 노력하여 왔다. 브와 레 이 몽 Paul du Bois - Rey m ond, 쉬 톰츠 c Ot to Sto lz, 쿨라인 Felix Klein 은 무한소에 기초 룹 둔 무모순인 이론이 가능하다고 생각랬다. 사실 쿨 타인은 그러한 이론을 얻으려면 실수의 바로 공리 자재, 죽 아르키매대 스의 공리는 버려야 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스 콜렙 자신은 1934 년에 새로운 수-초정수 (h yp er i n t e g er) -룹 도입하기 시작랬는데, 그것은 보동의 실수와 다르다. 그는 그둘의 성질 및 가지 를 증명했다. 및및 수 학자들에 의한 일련의 논문의 최정상은 무한소물 정당화하는 새로운 이 몬의 창조이 다. 가장 중요한 공현자는 로빈슨 Abraham Robin son (1918- 74) 이었다. 이 새 로운 체 계 는 비 표준 해 석 학 (non-s t andard analy s i s) 이 라 불리 우는데 예전의 실수와 무한소를 포함하는 초실수 (h yp erreal number) 를 도입한다. 무한소는 라이 프니 츠의 그것 과 실재 로 갇게 정 의 된다: 말하자면 양의 무한소는 임의의 보동 양수보다 작고 0 보다 큰 수이며, 마찬가지로 음 의 무한소는 입의의 보몽 음수보다 크고 0 보다는 작은 수이다. 이 무 한소들은 고정된 수로서, 라이프니츠의 의미에서의 변수도 아니고, 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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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코우쉬가 사용하던 0 으로 접근하는 년수도 아니다. 더구나 U1 표준 해석학은 새로운 무한수를 도입하는데, 그것은 무한소의 역수이며 칸토 르의 초한수는 아니 다. 모든 유한인 초실수 r 은 x+a 꼴로 나타나는 데, 여기에서 x 는 보동의 실수이고 a 는 무한소이다. 무한소의 개념으로씨 우리는 두 개의 초실수가 무한히 가깝다는 것을 정의할 수 있다. 이것은· 단지 그들의 차가 무한소임을 의미한다. 모돈 초실수는 또한 (보동의) 실수와도 그 차가 무한소이므로 무한히 가깝다. 우리는 보동의 실수를 계산하듯 조실수를 계산한 수 있다.*
• 만인 보용의 신수의 공리시 성진만 사용한다민 칸노브와 대아노의 중밍은 깅외하다. 소 신수운 . ;; l 강하 기 위해시 URl 어지야 한 성전문은 구 1 에시 만한 아 르 키에데스의 공리이 다 . 조신수개 R. 는 보몽의 의이에시 미아르키메데스서이다· 그러나 만인 우리가 소신 수 계의 수 a*91 우한매.::;_. 인정한다면 그것은 아로키메데스서이 선다.
이 감은 새로운 조실수계로써 우리는 함수값이 보동의 실수이거나 초 실수인 함수룹 도입할 수 있다. 이 수의 개념으로, 우리는 함수의 연속 성윤 다시 정의할 수 있다. 그러므로 x-a 가 무한소일 매 f( x)-J( a ) 가 무한소이 면 f ( x ) 는 x=a 에 서 연속이 다. 우리 는 또한 도함수와 다론 · 미적분학의 개념을 정의하고 해석학의 모든 결과룬 증명하는 데 조실수 를 사용한 수 있다. 중요한 정은 초실수로써 예전에는 불분명하고 년센 스라고까지 하여 매겨했던 미적분학의 접근법에 정밀성을 부여할 수 있 다는 것이다. **
_. . 에분 군민, 미고준 해석학에서 무한소의 미 dy /d% 가 R• 에 촌재하는대, y=%’에 대만 dy /d% 는 2x+dx 가 되며, 여기에시 dx 는 구한소이다. 즉, dy /d% 는 초신수이다. 그러 나 그 도함수는 이 조신수의 .Il.순 부분인 2X 이다. 마찬가지오 정서분은 우한소의 우한 개의 압의 표.준 쑤분이며. 그 우한소의 갯수는 그 자재가 미표순 자연수이다.
이 새로운 수체계의 사용이 수학 의 힘을 증가시킬까? 현재까지 어떤 중대성철- 지닌 어느 새로운 결 과도 이 방법을 동해서 얻어지지는 않았 다. 중요한 것은 및및 수학자들이 연심히 탐구할 또 하나의 새로운 길이 연렀다는 것이다: 사실 비표준 해석학에 관한 책이 이미 나오고 있다 . 다른 사람 둘은 하나나 또 다론 기초에서 그새 해석학을- 미난할 것이다 . 물리학자-잡은, 선사 무한소가 코우수 1 에 의해 추방되었다는 것을 알았더 라도, 편의상 무한소룹 계속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해방이 된 셈이다. 1900 년 이래의 수학기조론의 발전은 갈피룬 못 잡고 있으며, 수학의 현 상태는 번대적이고 미참하다. 진리의 빛은 더 이상 앞으로의 길을 밝히지 않는다. 수학에서의 증명은 가끔 수정이 요구되긴 했지만 십오 한 이성의 국치로 여겨졌고, 유일하게, 보편적으로 숭배되고 보편적으
로 만아둘-여졌던 수학의 본재 대신에, 우리는 이제 수학에의 상반되는 접근법들을 가지고 있다. 논리주의자, 직관주의자, 형석주의자의 기반 구 울 떠나, 집합론 하나를 동한 접근법은 많은 대안을- 준다. 몇 개의 길 이 다르고 상반되기조차 한 입장들이 같은 학파 내에서조차 가능하다. 그리하여 칙관주의 철학 안에서의 구성주의 운동은 많은 분파 를 가지고 있다. 형식주의 안에서도 초수학의 어떤 원리들을 채덱하느냐에 따라 여 러 가지 선택들이 있다. 비록 한 학파의 학설은 아니지만, 비표준 해석 학은 길이 다르고 상반되기까지 하는 관접으로 이문 수 있는 해석학의 또 다론 접근법울 허용한다. 최소한 바논리적이며 추방원 것으로 여겨 졌던 것이 어떤 학파에 있어서는 논리적으로 타당한 것으로 반아들여지 , 고 있다. 가능한 모순을 없애고 수학적 구조의 무모순성을 입증하려 랬 던 노력 은 이렇게 십하게 실패했다. 공리적 접근법을 반아 들 이느냐-또는 만 일 그렇다면 어떤 공리들을 덱하느냐_~ 미공리직인 직관주의적 접근법을 받아둘이느냐에 대한 어떤 일치정도 이재는 더 이상 없다 . 그 각각은 그 자신의 공리들의 모임에 근거 융 둔 각각의 구조의 모임으로 서의 수학의 과거의 개념은 수학이 수용해야 한 모든 것을 수용하기는 부적합하며, 반면에 그것이 수용해야 할 것보다 머 많은 것을 수용하고 있다. 이제 불일치는 추론의 방법에까지도 확장되었다. 매중 률은 더 이 상 논리의 의심할 바 없는 원리가 아니며, 그 촌재가 확립된 양들의 게 산윤 허용하지 않는 촌재 증명은 그 증명이 배중문을 썼든 안 썼든, 논 쟁의 쟁접이다. 그러므로 걷접 없는 추론이라는 주장은 포기되어야 한 다. 분명히 수학의 서로 다른 실체는 선덱의 다양성의 전과로 나타날 것이다. 기초론의 최근 연구논 오칙 황무지만을 만나게 되는 한계를 몽 ~ 해 깨어졌다. 우리가 기술해 온 결과들이 논리주의자, 형식주의자, 그리고 집합론 · 자둘의 가슴을 찢어 온 1930 년 이후의 기간 동안에. 약간의 평정과 독 선을지킬 수 있었던 수학자들은 직관주의자들이었다. 지적 거인들의 정 신에 과해졌던 논리적 기호들과 원리들에 관한 모돈 늘이는 그들에게는 · 넌센스였다. 수학의 무모순성은 직관적인 의미가 그것을 보장하므로 명 백하다. 선출공리와 연속체 가설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고, 브라우 어가 1907 년에 말했다. 불완전성과 결정 불능인 명제들의 존재는 그들 · 올 혼란시키지 않았을 분 아니라 그 듄은 당당하게 내가 당신에게 말한
대로이지 않아라는 식으로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직관주의자들조차 - 1900 년 이전에 그들의 표준을 만족하지 않은 채 세워진 수학의 모돈부 분운 말살시키려 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배중 률을 써서 수학적 실재의 촌제를 입증하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는 것과, 우리가 그 존재가 증명 된 양을 우러가 원하는 만큼 정확하게 계산하는 것이 허용된 구성만이 만 족 스럽 다는 것 을 주장한다. 그러 므로 그물은 아직 구성 적 촌재 증명 과 싸우고 있다. 간단히, 어떤 학파도 그것이 수학을 표.현한다고 주장할 권리는 없다. 그리 고 상행 히 도 하이 탕 Arend Hey ting 이 1960 년에 지 적 하였듯이 , 1930- 년 이래 우정있는 협조 의 정신은 화해되기 힘든 논쟁의 정신으로 바뀌 었다. 1901 년에 럿셀 이 말했다. 현대 수학의 가장 주된 승리의 하나는 실 , 재의 수학 이 신재로 무엇인가 를 발견한 데 있다.” 이 말은 오늘날에도 ~ 소박한 우 리의 생각과 갇다. 여러 학파에 의해서 오늘날 수학으로 받아 등 여전 것 의 차이와는 달리, 우리는 미레에 보다 많은 것을 기대한다. 현촌하는 학과들은 현존하는 수학의 정당화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러나 만일 그 리스시대, 17 세기, 19 세기의 수학을 돌이켜보면, 드라마티하고 겨 민한 변화를 본다. 현대 의 여 러 학파는 1900 년대 의 수학을 정 당화하 려 추 구한다. 그 들 은 과연 2000 년대 의 수학을 위 해 봉사할 수 있을까 ? 직 관주의 자들은 수학을 성 장과 발전으로 본다. 그러 나 그들의 ‘직 관이 역사적으로 발전되지 않은 것을 생성하거나 예 측 하여 줄 수 있을까? ' 분명히 이것은 1930 년에조차 사실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기초론의 제 , 조정은 항상 팔요할 것으로 보여진다. 수학기초론과 관계된 금세기의 발전은· 한 이야기로 가장 찰 요약된다 . 라인강 둑에 아 롭 다운 성이 수 세기 동안 서 있었다. 그 성의 지하실에 사는 부지런한 거미들에 의해서 복잡한 거미줄망이 구성되었다. 어느~ 강한 바람이 그 망을 날려서 부서 버 렀다. 거미들은 미찬 듯이 손상된 곳을 수리했다. 그들은 성을 떠 받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들의 거 미줄망 · 이라 생각했다.
13 수학의 고립화 나는 오직 추상적 기하학, 즉 정신을 훈련시키는 대만 쓰이는 문재만을 다루는 것을 그만두기로 건십하였다. 다론 종류의 기하학 즉 자연 현상윤 선명하는 것윤 목 표로 가지는 것윤 연구하기 위해서이다. —데 카르트 Renl! Descart es 수학의 역사는 빛나는 업적들로 이루어진 왕관을 쓰고 있지만. 한편 으로는 재난의 기록이기도 하다. 진리의 상실은 확실히 가장 큰 미극이 다. 왜냐 하면 전실온 인간의 가장 구 1 중한 재산이며, 비록 단 하나만을 상실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슬픈 일이기 때문이다. 안간의 이성이라는 화려한 전열장에는 완벽한 구조물은 결코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약접으 로 얼룩지고 항상 불길한 모순이 발견되고는 하는 연약한 것들분이라는 깨달음은 수학의 지위에 대한 또 하나의 충격이었다. 그러나 이것만이 고뇌의 근거는 아니다. 수학자들간의 심각한 불안과 이견의 원인은 지 난 백 년간의 수학의 연구 겅향에 그 까닭이 있다. 대부분의 수학자들은 속세를 등지고 수학 안에서 제기된 문재에 집착해 왔다. 그들은 과학을 버렀다. 이러한 경향의 변화는 응용수학에 반대되는 순수수학으로의 전 환이라고 흔히 표현된다• 그러나, 우리가 사용하게 될 순수와 응용이라 는 용어가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운 전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수학은 무엇이었던가? 지난세대까지 수학은 자연을 연구하는 데 인간의 가장으뜸가는 탁월한 창조물이었다. 수학의 주요한 개념, 다 양한 방법, 대부분의 중요한 정리들은 이러한 연구 과정에서 얻어졌다. 과학은 수학의 생명의 피이며 영양분이었다. 과학적인 기획에 있어서
수학자는 물리 학자 • 첫문학자 • 공학자의 자발적 인 동료이 었다. 사실, 17 재기, 18 세기, 대부분의 19 세기에는 수학과 이론과학과의 차이는 거의 없었다. 또한 주도적인 수학자 중 많은 사람들이 그들 본연의 수학에서 보다도 천문학 • 역학 • 유체역학 • 전기학 • 자기학 • 단성학 등에서 더욱 위대한 업적 을 이루었다. 수학온 과학의 여왕인 동시에 시너이었다. 앞에서 (1-4 장) 자연으로부터 수학적인 비밀을 캐내려는, 그리스 시대 이후의 계속된 간 노 력을 다루었다. 이러한 자연의 연구에 대한 몰두는 물 리학 적 문 제의 해결에 관한 모든 응용수학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었 다. 위 대한 수학자들은 흔히 당연한 과학적인 문제 들을 초월하였다. 그. 묻은 위대했고 또한 수학의 전통적 역할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기 때 문에, 과학적인 기획에서 그 중요함이 밝혀지거나 자연을 연구하는 데 이미 쓰이고 있던 개 념을 더욱 개선할만한 연구 방향을 구별할 수 있었 다. 이 렇 듯 아 , 오렌 기 간 천문학 연구에 종사하여 《천체 역 학》 Celes tial M ccl wnic s 세 권을 가장 유명한 저서로 남긴 프앙카레 Poin e ar~(1854-1912) 는 결과적으로 천문학을 발 전시킬 수 있는 미분방정석에서의 새로운 데 마 를 추 구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던 것이다. 수학의 연구는 그 유용함이 밝혀진 과목을 확장하거나 완성한다. 여 러 가지 응용에서 같 은 형태의 미분방정식이 나타난다면, 개선된 해법 이나 일반 적 인 해법을 발견하기 위하여, 또는 해집합 전체에 관한 가능 한 한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해서 일반형을 연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바 로 그 추상성 때문에 다양한 물 리적 현상윤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수학 의 묵 칭 이 다. 따라서 , 문건 • 음파 • 전파가 모두 파동방정 식 (wave eq u a- -ti on) 이라 불 리우는 하나의 편미분방정식으로 표현된다. 최초에 음파의 연구에서 비못된 파동방정식 그 자체 를 보다 더 연구함으로써 얻어지는 부가적인 수학적 지식은 가령 전파의 연구에서 나타나는 문재에도 유용 함이 밝혀질 수 있다. 실세계의 문재 들 에서 생겨난 창조의 풍성한 조직 은 서로 다돈 상황과 그들의 공동적인 추상적 기초에 듄어 있는 수학적 구조가 같음을 인식 함으로써 강화되 고 계 발킨 수 있을- 것 이 다. 코우수 1 가 처음 시작한 미분방정식의 해의 촌지 1 정리의 확립은, 물리학 적 문계의 수학적 형식화가 실제로 해를 갖고 따라서 의십없이 그 해를 찾을 수 있음을 보장하기 위한 의도에서였다. 그러므로 이 업적이 전적 으로 수학적이라 하여도 걷국은 문리학져으로도 중요하다. 칸토르의 무 한집합에 관한 업적은 순수수학에서 많은 연구 운 이꿀었는대, 그 동기
는 푸리 에 Fourie r 급수라는 대 단히 유용한 무한급수에 관한 미 해 결 문재 룹 풀려는 그의 욕구에서 나타난 것이었다. 수학의 발달은 과학과는 무관한 문재의 탐구를 제기하고 또 요구하가 까지 하였다. 앞 (8 장)에서 19 세기의 수학자둘이 많은개념이 모 호하고 그들의 논법이 산만함을 인식했 음을 보았다. 엄밀성 을- 주입하려는 방대 한 운동 그 자체는 확실히 과학적 문재를 탐구하려는 것도 아니었고, 및 및 학파가 기초 를 재건하려는 게속적인 시도도 아니었다. 이란 모 든 일 둘은 오직 수학그자체 를 위한 것이었지만, 확실히 전체적인 수학적 구 조가 당면했던 팔요에 대한 응답이었다. 요약하여 말하자면, 과거 의 분야를- 포함하고 더 우기 응용에 킬수적 일 돗한 새로운 분야 운 탐구하는 많은 순수수학의 연구가 있다. 이런 연구 의 모든 방향을 넓은 의미로의 웅용수학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그렁다면, 백 년 전까지는 그 응용과는 전연 무관한 수학 자체만을 위하여 창조된 수학은 존재하지 않았는가? 촌재하였다. 두드러진 예로 정 수론 (the ory of numbers) 이 있 다. 피 타고라스 학카에 게 는 정 수의 연구 가 물질의 본질에 관한 연구였지만 (1 장), 정수 론은 곧 그 자체가 관십 의 대상이 되었으며, 페르마의 주된 연구 분야의 하나가 되었다. 르네상 스 시대의 미술가둘이 회화의 사실성을 확립하기 위해 시작했고, 대자 르구 Gi ra rd Desargu es 와 파스칸이 유쿨리 드 기 하학의 개 선된 방법 론을- 마 련 하기 위 해 받아들였 던 사잉 기 하학(p ro j ec ti ve g eome t r y)은, 19 세 기 에 이 르러서는 그것이 미유 란 티드 기하학과 중요한 관련이 있기 매문에 연구 되기도 하였지만, 순전히 미학적인 관십의 대상이 되었다. 그밖의 많은 데마 들 은 수학자둥이 단지 홍미룹 느끼거나 해 볼만하다고 판단하였기 메문에 연구되었다. 그러 나, 과학과는 전져 으로 무관한 순수수학이 주요한 관십 의 대 상은 아니었다. 그것은 과학에서 재기된 아주 중요하고 어려운 문재로부더의 기분 전환인 취미였다. 페르마는 정수론의 창시자였지만. 해석기하학의 창조, 미적분학의 문제와 광학에 대부분의 노력을 기울였다 (6 장)· 그는 파스칸과 호이겐스가 정수론에 관십을 갖도-루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l7 세기에는 정수론에 조금이나마 관십을 가진 자둘은 극히 드물었다• 오일러도 한때 정수론에 몰두했다. 그는 18 세기 최고의 수학자였을 문만 아니라 최고의 수리물리학자였다. 그의 업적은 미분방정식의 해법 과 간은 물리 문재의 해걷에 관한 십오한 수학적 방법론으로부터 천문-
착. 유체 운동, 매와 돛의 설계, 포술, 지도 제작, 악기의 이온, 광학에 걸치 다양하다. 라그랑즈도 역시 한매 정수론에 몰두하였지만, 그 역시 대부분의 노 릭운 해석학, 죽응용에 팔수적인 수학 (3 장)에 기웅였으며, 수학울 역학 ·에 응용한 《 해 석 역 학 》 Meca11iq u e a11alyt iqu e (Analyt ica l Mechan i cs) 라는 걸작 을- 남 겼 다. 사신, 그는 1777 년에 산술의 연구자둘은 나·문 가장 괴봅히 는 사람 들 이면서도 이마 가장 가치가 없는 사람 둘 ’’이라고 불평하기도 하 였다. 가우스도 역시 정수온에서 뛰어난 입적을 남겼다. 그의 《산수 연 구 》 D i s q u i s iti o11es arith m eti cae (Arit hm eti ca l Di ss erta t i on s, 1801) 는 고전이 다. 만약 가우스의 이 업적에만 주목한다면, 그가 순수수학자라고 믿게 킬 것 이 지 만 그는 주로 응용수학을 연구하였 다 (4 장). 륜라인 Feli x Klein 은 19 세기 수학사에서 가우스의 《 산수 연구》 를 그의 청년기의 작품이라고 말하였다. 가우스는 말년에 다시 정수론으로 돌아왔지만, 이 과목을 가장 중요 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았던 것이 확실하다. 그는 자주 패르마의 마지막 ‘‘정리 __- n 이 2 보다 큰· 정수일 때, x+y =z 을 만족하는 자연수 .x,y ,z 는 촌재하지 않는다-를 증명하는 문제를 생각했다. 그러나 18 16 년 3 월 21 일 운매로스 W i lhelm Olbers 에게 보낸 편지에서 가우스는 패르마의 가설은 고립된 정리이기 때문에 관십의 가치가 작다고 썼다. 그는, 증명 도 반증도 할 수 없는 이 같은 추축 (con j ec t ure) 은 많이 있으며 자기는 다른 일로 바쁘기 매문에 그가 《산수 연구〉〉에서 랬던 그란 연구 논 할 몸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페르마의 가설이 그가 행한 다몬 연구 를 기 초로 층명 원 것 이 고, 가장 흥미 가 없 는 따릅-정 리 (corollary) 중 하나가 원 것으로 희 망했다. 수학은 과학의 여 왕이 며 , 산수는 수학의 여 왕이 다. 정 수론은 종종 천문학과 다론 자연과학에 봉사하는 은혜 를 베 풀-지 만, 어 떠 한 경 우에 도 첫째 자리는 정수론이다”라는 그의 말은, 순수수학에 대한 그의 편애봅 보여주는 데 종종 이용되는 것이지만, 가우스의 생애는 위의 만과는 다 르다; 아마도 지나가는 말로 하었운 것이다. 그의 좌우명은 자연이여, 당신은 나의 여산입니다. 당신의 법칙에 봉사하겠옵니다”라는 것이었 다. 수학과 자연과의 조화에 관한 그의 무민한 소십성이, 그의 미유란 리드 기하학의 연구를 동하여, 수학적 법칙의 진리문 분신케 하는 의미 십장하고 국적인 결과룹 초래한 것은 역설적이다. 1900 년 이전에 창
조된 모든 수학에 관하여 순수수학은 존재하있지만 순수수학자는 존재 ’ 하지 않았다고 넓게 일만화하여 말할 수도 있다. 여러 가지 발전둘은 수학자들의 스스로의 업적에 대 한 대도 를 근본적 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 첫째는, 수학은 자연에 관한 진리의 본재 가 아 님을 인식한 것이었다 (4 장). 가우스는 기하학에서 이 것을 확실하게 인식 하였으며 , 사원수와 행 전 의 창조는, 헬 몹 -홍츠 Helmholt z 를 집 으로 달려 가게 하였고, 보몽의 수를 다우는 수학조차도 선험적으로 응용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강요하였다. 수학의 응용 가능성은 전함없 이 닙 아 있었지만, 진리의 탐구는 더 이상 수학의 노릭을 정당화한 수 없었 다. 더구나, 울리학적 고려에서 동기를 얻은 것이기는 하지만 미유 칼 리드 기하학과 사원수와 간은 중대한 발전은 자연과는 조화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창조된 전과는 그레도 응용원 수 있옵이 판명되었다. 인간 의 창조 -풍 조차도 자연의 설계 와 조화되 는 듯이 보이 는 것 과 마 찬가 지 로 매우 널리 응용원 수 있다는 인식은 곧 수학의 전적으로 새로 운 접근법 에 판한 논쟁으로 바뀌었다. 왜 이같은 일이 장레의 정신의 자유로운 창 조물에 있어서는 안 되는가? 마라서, 많은 수학자등이 실세계의 문 재만 윤 다 물 필요는 없는 것이라고 걷론지었다. 인간의 정신 속에서 셉솟아 난 아이디어로만 이두어진 인조 수학이 분명히 유용할 수도 있다. 사설. 물리저인 현상에 집착하지 않는 순수한 사고가 더욱 웅 융한 수도 있다. 어떤 구속도 받지 않는 인간의 상상력이 자연운 이해하고 조종하는 데 이용할 수 있는 원씬 더 강력한 이론조차 만들어 낸 수 있을지도 모돈다. 여러 가지 다른 요인들도 수학이 신세계로부터 유리되는 데 잉향옵 미 쳤다. 수학과 과학으 1 방대한 확장 때문에 그 두 분야에서도 편히 지내 기가 원씬 더 어려워졌다. 더우기 과거의 거인들이 연구해 왔던 과학의 미해전 문제듄은 원씬 더 어렵다• 왜 순수수학에 집착하여 좀더 쉽게 . 연구하지 않는가? 많은 수학자둘이 순수수학의 문재를 다루게 만든 또 다른 요인이 있 다. 완전히 해결되는 과학의 문재들은 매우 드물다. 더욱 더 근사한 해 는 갖을 수 있지만, 최종쳐인 해를- 구할 수 없는 겅우가 있다. 예를 들 어 , 상체 문제 (thr ee-body p roblem) -태 양 • 지 구 • 달과 갇이 각각이 다 돈 2 개를 인력으로. 끌어 당기는 세 물체의 운동__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들도 아직 해걸되지 않았다. 베이컨 Franc i s B11con 이 말했듯이 자연
의 오묘함은 인간의 지 력 보다 원씬 위 대 하다. 한편으로는, 순수수학은 완전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뚜럿하고 한계가 분명한 문제를 허용한다. 잉원히 계속된 듯이 심오하고 복잡한 문재와는 반대되는 뚜렷한 문재의 매러도 있다. 드물기논 하지만, 군드바하의 가선과 같이, 아직 해전뇌 지는 않았지만, 매혹적으로 간단히 전술된 문재도 있다. 순수수학의 문제 윤 다루게 되 는 또 다른 요인으로 대 학과 갇은 연구 기관으·로부터 수학자에게 부과되는 연구 발표의 압릭을 둘 수 있다. 웅 용 운재는 수학문 만 아니라 다몬 과학의 광법위한 지석을 요구하고, 또 미해 걷 문재는 더욱 어렵기 매문에, 자기 자신이 문제를 만둘어서 자기 가 한 수 있는 것을 해질하는 것이 더욱 용이하다. 교수들은 손쉽게 해 전되는 순수수학의 문재를 人바시 할 분만 아니라, 그러한 문재를 그들의 . 박 사 과정 학생에게 과함으로써 박사 논문을 빨리 써낼 수 있도록 하기 도 한다. 또한 교수들은 학생 들 이 당면하는 어 려 웅을 극복하도록 좀 다 쉽사리 도와 줄 수도 있다. 현대의 순수수학이 취하는 연구 방향의 약간의 예들이 순수와 옹용의 주재의 차이운 확실히 해 줄 것이다. -상 리학으로의 응용을 영두에 두고 해밀돈이 사원수를- 도입한 이후에, 많은 대수 (al g ebras) 가 촌재할 수 있 음을- 께 탄은 수학자들은 오돈 가능한 대 수들의 웅용 가능성 을 조사하기 시 작겠 다. 오늘날, 주상대수학의 분야에서 이러한 연구 겅향을 많이 볼 수 있다. 순수수학의 또 다른 방향은 일반화이다. 원뿔곡선 (conic secti o ns)- 타원 • 포물선 • 쌍곡선――온 대 수적 으로 2 차방정 식 으로 표현된다. 3 차· 방정식으로 표현되는 극히 적은 수의 곡선들은 응용면에서 유용하다. 일만화는 대번에 n 차의 곡선으로 미약되고, 이둘 방정식 중 어느 것도 자연 현상에서 나타나지 않을 것 갇더라도 그들의 성질을 자세히 연구 한다. 만지 연구 논문을 쓸 수 있기 때문에 행해진 일반화와 추상화는 대개 거의 응용의 가치가 없다. 실재로 이런 논문들 중 대부분은, 더 구체적 이고 목벌한 용어로 이미 존재해 오던 사실듄윤 종 미 일반적이거나 추 상적인 용어로 또는 새로운 용어로 재구성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런 재구성은 수학을 응용하려는 사람에게는 어떤 힘이나 몽찰을 주지 못한 다. 대부분:이 인위적이고, 물리져 개념과는 연관이 없으나 단지 새로운 생각을 제시하려는 취지의 전문 용어의 확산은, 확실히 수학윤 사용하
는 데 장애가 원 분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한다. 그것은 새로운 언어이 지 새로운 수학이 아니다. 순수수학 연구의 세 번째 경 향은 전문화 ( s p ec i al i댜ti on) 이 다. 유 클 리 드 가 솟수가 무한히 촌재하는가에 관한 의문을 생각하고 해질하였던 반면에, 요즈옵은 입의의 연속된 7 개의 정수 중에 솟수가 반드시 존재하 는 가 문 는 것 이 자연스럽 다. 피 타고라스 학가는 우호수 (ami ca ble numbers) 의 개념울 도입했다. 어떤 자연수의 약수의 합이 다론 수와 같고, 또 우 자 의 약수의 합이 앞의 수와 같으면. 두수는 우호수이다. 예 옵 들 면, 책 4 와 220 은 우호수이 다. 정 수론의 대 가 중 한 사 람인 디 슨 Leonard Di c:k s o n 은 새 개 의 우호수 (am i cable thr ee numbers ) 의 개 념 을- 도입 했 다. “ 한 자인 수의. I 과 자신이 아난 약수의 합이 나머지 두 수의 합과 같을 때, 세 수는 우호수라 하자. 그리 고, 그는 그러 한 재 수들을 구하는 문재 .:;_.. 재 가겠다· 또 다론 예는 떠수(p ower f ul number ) 에 관한 것이다 . 떠수만 솟 수 P 로 나누어지면 p 2 으로도 나누어지는 자연수이다. 1 과 4 운 재외하 고 무한히 많은 방법으로 서로 소인 두 려수의 차로 표시원 수 있는 자 연수가 존재하는가? 이와 갇은 전문화의 예둘은 서술과 이해가 용이하기 메문에 선덱한 것들이지, 그.갇은 문재문의 부집성과 깊이를 공정하게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문화는 널리 퍼진 반면에 그문재들은 매우 판협하여 쳐서, 상대론(t heor y of rela ti v ity)을 이해하는 사람은 12 명분이라는 과거 한매의 부정확한 표현이 대부분의 전문화에도 적용원 수 있다. 목수화가 너 무 널리 퍼 져 있 는 데 대 하여 부르바키 Ni co las Bourbaki 라 는 가명 으로 완동하는 일류 수학자등의 한 학과――물론, 응용수학에 전 념하는 학파는 아니다――는 미칸옹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수학자윤이 수학의 잉여 중 한 구석에서 환동하고 있으며, 그곳운 머나 려 하지 않는다; 그듄의 전공 분야와 무판한 것에 대해서는 거의 전칙으로 우 시한 문만 아니라, 그듄로부터 멀리 연어진 또 다른 구석에서 환동하는 그들 의 동료듄이 사용하는 언어와 용어 등윤 이해하지도 못한다. 가장 넓은 운틴 윤 쌓은 사갑듄 중에서조차도, 수학이라는 무한한 세계의 어떤 분야에서 당황 하지 않는 사감은 없다; 프앙카데나 인버트와 갇이 거의 모든 영역에서 건재 성윤 안휘한 사합듄은 가장 위대한 업져운 남긴 사람들~가운데에서조차도 아주 위대한 예의이다. 전문화의 보상은 빈곤이냐 그것은 기교를 요구하는 겅우가 많지만, 그
중요성을 나타내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추상화 • 일반화 • 전문화는 순수수학자듄이 취하는 세 가지 유형의 완 동이 다. 네 번째 는 공리 론 (ax i oma ti cs) 이 다. 그것 이 기 초론저 인 문제 물- 해 결하는 마지막 만어임이 증명되지는 않았더라도, 19 세기 말의 공리화 운동이 수학의 기 초를 세우는 데 도움이 되었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당시에는 많은 수학자물이 새로이 창조된 공리계에 하찮은 변형 올 하였나 . 한 공리를 바꾸어 말하여 좀 더 간단해침을 보인 사람도 있 다. 용어을 복집하게 하여 세 개의 공리둘을 두 개의 공리로 나타낼 수 있 음운 보 인 사람도 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새로운 무정의용어문 고 르고, 그에 마라 공리 를 바꾸어 마찬가지 정 리 들에 도달하기 도 하였다. 앞서 본 바와 간 이, 모든 공리화가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대수 롭지 않은 가능한 년형들은 전져으로 쓸모가 없는 것이다. 실재 문 게는 회피할 수 없으므로 그의 해결은 인간의 최상의 능력을 요구하는 반면에, 공리화는 모돈 자유 를 허용한다. 그것은 근본적으로는 십오한 결과룹 인간이 조직화하는 것이지만, 다른 공리계보다는 차라리 이것을, 20 개 대신에 I5 개 를 고르고 하는 것은 거의 중요하지 않다. 실재로. 유명한 수학자가 시간을 들 인 많은 변형들마저도 자명한 것을 가정한 것으로 1 판되기도 한다. 20 세기 초 수십년간 그토록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공리를 연구 한 것에 대하여, 바일은 1935 년에, 미목 그는 공리화의 가치를 충분히 의식하고 있었지만, 공리화의 결실은 꾼이 났다고 불평하고, 본질적인 문제로 돌아갈 것을- 간청하였다. 그는, 공리화는 본질적인 수학에 정확 성과 체계을 부여한 따 몸 이며, 그것의 기능은 분류하고 목록을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하었다. 모은 추상화 • 일만화 • 전문화된 문재 , 공리화가 순수수학운 석칭짓는 것은 아니다. 이미 기초적인 연구의 가치와 더불어 이런 연구 안동의 일부의 가치윤 지적한 바 있다. 우리는 일의 동기를 살펴 보아야 한 것 이다. 순수수학의 뮤 징은 즉각걱이돈 잠재저이돈 그 응용의 부저절합에 있 다. 순수수학의 문재 는 문재 라는 문제 에 있 다 (thn t n pr oblem is n pr o- blem is a pr oblem). 어 떤 순수수학자들은 어 떠 한 수학적 인 발전에 서 도 참재적 웅용성이 있으며, 아무도 미래의 실제적인 응용성은 미리 알 수 없 다고 주장한다. 그럼 에 도 불구하고, 수학적 주계 는 마치 석 유가 나는 대지의 일부와 같다. 지죠면의 검은 진흙온 어떤 무정한 곳의 석유 답
사를 암시하기도 하며, 결국 석유가 발견된다면 그 지역의 가치는 인정 ’` 된다. 그 지여의 이미 증명된 가치로 말미암아, 원래 석유가 발견된 지 정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석유가 더 발견되리라는 기대로 또 다른 · 시추 를 하게 된다. 물론, 먼리 뗄어쳐 있기는 하지만 시 추가 용이한 곳 을 선택하여 역시 석유가 발견월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 그 멍 지만 인간의 노력과 능력은 한정된 것이므로, 성공할 수 있는 일에 전념해 야 한 것이다. 만약 잠재적인 옹용성이 목적 이라면, 위대한 불 리야자 깁스 _ Jos ia h W ill ard Gi bb s 가 말한 바와 같이 , 순수수학자 들은 그등 의 기 호에 맞는 것을 할 수 있지만, 응용수학자들은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재 정신 이 있어야만 한다. 수학 그 자재 만을 위 한 순수수학에 관한 비 판은 베 이 컨 Francis Bacon• 의 《학문의 권장》 The Advancement of Learnin g (1620) 까지 거 숟러 운라 간다. 거기서 그는 순수하고 신비적이고 자기만 족저 인 수학윤 “사 물 과, 자연천학의 공리들과 전져으로 단절되어 있으며 .••• 인간의 정신에 혼 히 있을 수 있는 상술 (exp a ti a ti on) 과 명상의 욕구를 채워 줄 '' 분이라 고 받 대한다. 그는 응용수학의 가치 룹 이해했다: 자연의 많은 부분이 수학의 도움과 조정이 없다면 충분히 정교하게 반명원 수 · 도 없고, 충분히 명쾌하게 표현원 수도 없으며, 재치있게 이용원 수도 없는데, 그러한 것들의 예로는 원근화법 • 옵악 • 천문학 우주형상지 • 건축 • 기계 등이 있다 . ••• 문리학이 날마다 더욱 더 발전하여 새로운 공리·동윤 발전시킵에 따 · 라, 여러 사물에서 수학의 신선한 도웅이 편요해지며, 따라서 혼합된 [응용] 수학의 부분문이 보다 많이 나타날 것 이 다. 메이컨의 시대에는 물리적 연구에 관한 수학자둘의 관십을 고무할 팔 요가 없었지만 오늘날에는 수학이 과학으로부터 단절되어 있는 것이 사 실이다. 지난 백년간 수학져 완동에 있어서의 내용과 유용한 주게를 공 급해 오고 있었던 옛부터의 명예로운 동기에 에착을 느끼는 사람들과. 바람마라 항해하며 그들의 기호에 맞는 것을 연구하는 사람둘이 분열되 기 시작했다. 오늘날, 수학자와 물리학자는 서로 떨어쳐서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 더 새로운 수학적 창조는 거의 응용되지 않는다. 더구나 수 · 학자와 과학자는 머 이상 서로를 이해하지 않으며, 불편하계도, 전문화 가 너무 심해져서 수학자들도 다른 수학자문 이해하지도 못한다. 현실로부터의 이탈, 죽 수학 자체만을 위한 수학은 거의 시초부터 :
분쟁을 일으켰다. 푸리에는 그의 고전적인 처서인 《연 의 해석적 이몬》 ( 18 20) 에서 수학을 문 리학적 문재에 응용하는 것에 대한 그의 연의를 표 현했다: 자연윤 깊이 연 구하는 것은 수학쳐 발견의 가장 풍부한 근원이다. 이간은 연 구 는 찰 진정된 목표에 관한 이 접 문만 아니라 모 호 한 의문과 붑핀요한 계신 · 윤 재거해내는 이정도 재공한다. 그 것은 스스로의 분석의 수단이고, 또 가장 중요하고 과학 이 항상 견지해야만 하는 아이디어 윤 갖 아내는 수단이다. 기본 적인 아이디어는 자연 현상윤 표현하는 것 이다 .... 그 것의 수 요한 공헌은 명쾌합 이다; 그 것은 혼란된 아이디어문 나타내는 기 호는 없다 . 그것은 가장 다양한 현상들운 동시에 나타낸 문만 아니라, 그 둘을~ 동인하는 갑추 어진 유사겁운 발견하 기도 한다. 만약에 공 기나 빛과 간은 뭍진 이 국도로 회막하기 때문에 우리가 포착하기 어 립거나, 무한한 우주 공간 속 2 의 대상이 우리로부터 먼리 멀어져 있거나, 여러 세기 동안의 계속된 廳 천재 운 동운 이해하려거나, 중력과 인의 힘 이 영원히 우리가 접근하지 못한 구면체의 깊은 곳 에서 작용하 고 있다면, 수학저 해석학은 여전히 이런 현상들의 법칙을 _ 알아낸 수 있다. 수학은 그문운 나타나기 1 하고 측정할 수 있도 록 하며, 수학 은 짧은 삼과 감각의 상완전합운 보상하 도 무 운밍지위진 인간 이성의 한 기능 인 것처럼 보 인다; 그리고 더욱 더 관목한만한 것은, 모든 현상윤 연구하는 데 간은 방법윤 따온다는 것이다; 마치 우주의 계의이 동인성과 간만성윤 증명하 려는 듯 이 모돈 자연의 사 물운 다스리는 진서문 미욱 더 명백히 하려는 듯이 간은 언어로써 그 물--완 해석하는 것이다. 야 코비 Carl Gusta v Jac ob Jac obi (1804-51) 는 역 학과 천문학에서 일유의 업적 을 남겼옵-에도 불 구하고, 고작해야 일방적인 선언이라고 그가 생각 한 접 만 을 문제 로 삼았었 다. 1830 년 7 월 2 일에 르장드르 Adrie n -Marie Le g endre 에게 보낸 편지에서, 푸리에가 수학의 주목적은 잔 알려진 우r 용성과 자연 현상읍 설명하는 것이라는 의견윤 가졌다는 것은 사실이지 만. 그와 감은 과학자는, 과학의 유일한 목적은 인간 정신의 위대합에 있음을 알아야 하고, 이 런 근거로 정수론에 관한 문제도 행성 체계에 관 한 문재만큼이나 가치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썼다. 물론 수리물리학자들은 야코미와갇은 견해룹 가지지 않았다. 첼빈 겅 Lord Kelvin (W illiam Thomson, 1824-1907) 과 대 이 트 Pete r Guth r ie Tait (11 !· 31 - 1901) 는 1867 년에 가장 위 대한 수학을 응용성으로 알 수 있다고 주장
‘영역에 종사하는 대신에, 순수 해석학이나 기하학에 자신을 국한시키는 수학자들에게는 거의 깃들지 않는 것과 같은, 순수수학의 놀라운 정리 들이라는 것이다. 순수 연구의 새로운 동향을 많은 수학자들도 한단했다. 1888 년에 크 로넥커는 수학 • 물리학 • 의학에 공헌한 헬름홈츠에게 보낸 한 편지에서 “전전하고 흥미있는 문제들로부터 얻은 당신의 실제적 경험의 풍부함 은 수학자들에게 새로운 방향을 주고 새로운 촉진제가 원 것이다 .• •• 일방 적이고 내성적인 수학적인 사색은 황패한 둘판으로 인도한다”고 썼다. 그 당시 수학계의 주도자였던 클라인 Felix Klein 도 역시 1895 년에 순 수수학의 추상적인 겅향에 항의할 팔요 를 느꼈다: 현대저인 사고가 급격히 발전하는 가운데 우리 학문이 정정 더 고럽되어가는 위험에 처해 있다는 느낌운 피한 수 없다. 현대해석학이 등장한 이후 계속 촌 재해서 양쪽 모두에 도웅이 되었던 수학과 이론자연과학 간의 찬밀한 상호 관 계가 분연의 위협윤 받고 있다. · 그의 《정 상에 서 의 수학져 이 론》 Math emati ca l Theory of th e Top (1897) 에 저 클라인은 이 주제에 관하여 다시 언급했다: 현재의 수리과학에서는, 라그랑츠나 가우스의 언적에서 그 유용함이 증명되었 듯이 순수과학과, 수학이 가장 중요하계 응용되 는 물리 과학의 분야문이 다시 친밀해지는 것이 시급하다. 프앙카레는, 19 세기 말의 순전히 논리적인 창조물에 대한 그의 역설 척인 비평 (8 장)에도 불구하고 그의 《과학과 방법〉〉에서 공리론, 예외적 인 기하학, 목이한 함수들이 외부 세계의 횡포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진 수록 인간의 정신이 무엇을 창조해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인정했 다. 그럽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것은 다른 방향, 우리 군대의 대부분 윤 이끌어 나아가야만 할 자연이라는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과학의 가치》에서 그는 다음과 갇이 썼다: 자연윤 이해하려는 욕구가 수학의 발전에 가장 중요하고 행복한 영향윤 미쳤 다는 사실을 기여하지 못하도록 과학의 역사문 완전히 잊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 의부 세계가 촌재한다는 사살윤 잊어야만 하는 순수수학자는, 색 과 모양윤 조화 있게 결합하는 방법은 알고 있지만, 그립 대상이 없는 화가와 갑다. 그의 창조력은 곧 없어쳐버란 것이다. 얻마 후, 1908 년에 클라인은 다시 말했다. 입의의 구조를 창조하는
자유가 남용되는 것을 두리위하여, 그는 임의의 구조들은 “모든 과학의 죽 움이라고 강조했다. 기하학의 공리둘은 임의의 것이 아니타, 일반 적으로 공간에 관한 지가에 의해 유도되고, 편의에 따라 그 정확한 ' 내 용이 킬 정되는 감각적인 명재 들 이다 . ” 미유찬리드 기하학의 공리률 정 당화하기 위하여 쿨 라인은, 시각화는 유 큘 리드의 평행성 공리가 단지 적 당 한 한계의 정확도 안에서만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또 다론 기회에 그. 는 자 유 의 묵 권 을 누리려면 책 임 또한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쿨리 인의 객 임은 자연 을 연구하는 데 대한 봉사룹 의미했다. 쿨 라인은 수학의 세계적 중심이었만 괴덩겐 대학교의 수학과장이었는 、 데, 그 생 애의 말년에 한 가지 다 항의 곱 하지 않을 수 없음을 느꼈다. 그의 <1 9 세 기 수학사 》 De ve lop m e 11 t of 1vlath emati cs in th e Ni 11 ete e nth Centu ry, (1925 ) 에서, 그는 실재적 인 문재 윤 가장 유용한 수학으로 풀려는 푸리에 의 관십을 상 기시키고, 그것과 순 수수학적인 세련된 도구와 구체적인 ' . 개념의 추 상 화릅· 비교했다. 그런 뒤에 그는 만하였다: 우리 시대의 수학은 평화 속 의 거대한 우기 공장과 미숫히다. 전연장 속에는 . 그 송 씨가 전문가의 눈을 끄는 연 '성구 들 로 가득 차 있다. 이 뭉건들의 본래의 동기이며 목지인, 싸우 1 서 져윤 재압하는 것은 의식의 두]안으로 사라져 잊혀졌 윤 정도이다. 칼 라인의 뒤 를 이어 괴딩겐의 수학과장이 되었고, 그 뒤 뉴욕 대학교의, 당시 부터 그렇 게 불리 어 지 던 쿠란트 수리 과학 연구소 Courant Insti tut e of· Math r: m ati ca l Scie n ces 의 소장이 된 쿠란트 Ri ch ord Cournnt 도 역 시 순수수 학의 강조를 한탄하였다. 1924 년에 씌어진 쿠란트와 힐버트의 《수리물 리 학의 방법 >M eth od of Math emati ca l Phy s ic s 의 조판 서 문에 서 쿠란트는 다음과 감은 관찰에서 시작하였다: 에로부터 수학은 해석학의 문재와 방법과 산리학의 직관저 개념 사이에 존재했 던 밀접 한 관계 로부터 강한 자국운 받았다. 지 난 수십 년간, 수학적 담구는 직 관적인 출발접에서 많이 벗어났으며, 나히 해석학에서 그 람구는.::z.자체의 방 법윤 세련시키고, 그. 개념윤 엄밀화하는 내에만 관십운 보였다는 접에서, 그., 관계는 많이 소원해졌다. 따라서 해석학의 많은 지도자둔이 다론분야 문만 아 니라 그둘의 과목과 물리학 사이의 연관에 대한 지식을 잃게 되었고, 다론 한 · 편으로는 수학자듄의 방법가 문재에 대한 살리학자둘의 이해, 더구나 .::z.윤의 관십 영여 전재에 대한 물리학자-등의 이해와 언어마저 잃게 되었다. 의십일. • 여지 없이 이러한 모든 깅향은 모든 가학에 위협이 되고 있다. 요즈옵-과학의.
경향은 정점 더 세분화되어 서서히 그리고 아주 사라쳐가는위험에 처해 있다. 이러한 운명운 벗어나기 위해서는 많은 험운 기 웅- 여서 여러 사실의 내적인 연 판윤 갇은 관접 아래 확실히 둥으로씨 분리되어 있는 것윤 전합해야 한다. 안 지 이멍게 합으로써 학생운은 설견!에 대한 효가적일 수단을 동달할 수 있고, 연구자들은 유기적인 맏전에 대미할 수 있을 것이다. 1939 년에 다시 쿠란트는 썼다: 수학은 정의와 가정에서 이 꾼어 내어지는 긴론등의 체계에 불 과하며, 다만 이 때의 가정듄은 우모순이어야 한문, 그 밖에는 수학자의 자유 의지로 강조된 것 일 수 있다는 주장은, 과학 자체의 생명에 대한 심각한 위협을 의미한다. 만 약 이 표현이 맞는 것이라면, 지각있는 어떤 사람도 수학에 관심운 기운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동기도 없는 정의 규칙 • 상안논법의 게임에 불과할 것 이다. 지성은 마음이 내키면 의미있는 가선의 체계윤 만 문 어낸 수 있다는 생 각은 속기 쉬운 U占 목만의 진리이다. 유기적 전제에 대한 책입의 규윤 아래에 서만, 또내져인 핀요로 인도되어져야만, 자유로운 정산은 과학적 가치가 있는 걷온을 얻윤 수 있운 것이다• 미 국의 지 도적 수학자였 단 버 코프 George David Bi rk hoff (1884-1944) 는 .,9 43 년에 잡지 《미 국 과학자 》 Americ a n Scie n t ist 에 서 같은 주장을 랬 다 : 장태에는 이론문리학자가 수학의 원리에 관하여 더욱 더 깊은 지 석윤 얻게 컫 것이 희망된다• 또한 수학자들도 미 이상 수학적인 추상화의 미학적인 발전에 만 국한시키지는 않운 것이 회망된다. 수리 물리 학자라고 할 수 있는 신지 Joh n L. Sy n g e 는 1944 년의 상황을 한 논문의 셔 Shnw 풍의 조금 간 서문에서 표현했다: 이의없이, 대부분의 수학자들은 확실히 수학에 속하는 개념들만을 가지고 연구한다. 그둥은 패 !I 녀인 동업조합운 이루고 있다. 창시자는 그 제계의 것 임 윤 선서 하고, 대 개 그것 윤 준수한다. 아주 국소수의 수학자들만이 여 기 처 기 며듄아 다니며 과학의 다른 분야에서 직접 발생하는 문게에서 수학의 받침 정윤 찾는다. 1744 년이 나 1844 년에는 두번째 부유에 대부분의 수학자들이 속 댔었다. 1944 년에는 그윤이 너무 적은 소수여서, 다수에게 소수의 촌재윤 상 기시키고 또 그듄 소수의 판접윤 선명해 줄 팔요가 있다 . .::z. 소수 집 단은 유문리 드, 아르키 메 데 스, 뉴돈, 라그랑츠, 해 밀돈, 가우스, 프앙카레의 이몹듄윤 포합하는 2 천년 이상에 걸친 수학의 전몽을 따라 왔으 으로, ‘‘물리학자나 공학자”로 볼리우는 것윤 원하지 않는다. 그소수집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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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방법으로도 다수 집단의 업져운 흠잡 으려 하지는 않지만, 수학 자체만운 양육하는 수학이 곧 그 홍미문 잃을 것윤 두려워한다. 본연의 수학의 미래에 대한 영향윤 머나서라도, 수학의 고립화는 나머지 과 학으로부터, 과거에 의지했던 받침대륜 대앗고 말았다 .••• 자연운 연구하는 길과로 , 수학자들만의 사고의 에두리 속 에서 창조된 문재보다도 권싼 어려운 문재둘이 생겨났다(어연 경우라도 계속 생겨납 것이다). 과학자·군은 이러한 문 재 등에 만 전 념 하는 수학자들에 게 으 k 은해 왔다 . 과학자들은 수학자가 이 미 만문 · 어져 있는 어민 연장윤 다만 숙련되게 사용하는 사란에 분과하지는 않다는 것 을 알고 있다-과학자들은 그란 연장들을 그들 자신이 대수읍 · 지 않게 숙련 없이 사용할 수 있다. 그보다는 수학자등에게 석이한 자질-논리적 몽찰력, 묵- 수한 것에 서 인만적인 것윤, 일반적인 것에서 목 수한 것윤 봉 수 있는 능력 등에 유의한다 .••• 이 단 모든 점에서 , 수학자란 지매적이고 훈련 된 힘이었다. 수학은 과학에게 그의 계 산 방 \l - 로그수 • 이 적 분학 • 미 분방정 사 등-一올: 재 공하지 만, 사신 은 그보다 디한 것을 재공한다. 그것은 청사진이다. 수학은 사고가 논리적이 기 윤 요구한다. 새로운 과학이 생겨나면, 유 클 리드가 이집트인의 도지 측 량법에 재공한 것처럼 , 언긱한 논리져 구조웅계공한다-또한 재공하고자노력한다. 한 주재가 수학자의 손에 들어·운 때는 잡초밥윤 이리처리 해메다가 찾아낸 거 칠은 문이지만, 그 손운 떠난 때는 잘 닦여진 보석이 되는 것이다. 요즈옹의 과학은 예전보다 원씬 판기운 띠고 있다. 쇠퍼의 명백한 칭조는 보이지 않는다. 가장 수의깊은 사람만이 경미원[수학자]이 미번으로 자리에 없 옵운 알아 차랐다. 그는 잠자리에 든 것이 아니다. 그는 어떤 때보다도 연십 히 일하고 있지만, 지금은 혼자 외로이 일운 하고 있다 . ... 간략하게 말하면, 연회는 꾼이 났다-그것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재미있었 다. ••• 자연은 강력한 문제·군운 단질 것이지만, 그듄은 건코수학자 들 에게 도 탄하지 못한 것이다. 수학자는 그의 상아탑에 앉아서 대포문 가전 지윤 기다 리지만, 전코 져온 그들에게 나타나지 않운 것이다. 자진은 곧 형성원 수 있 논 문재들윤 재시하지는 않는다. 그 문재듄은, 삽과 곡팽이로 망운 과해쳐서 얻어져야만 한다. 홍윤 손에 묻히지 않으려는 사람듈은 건고 그 문재듄윤 분 수없다. 인간사에 있어서의 변화나 죽음과 마찬가지로 아이디어의 세게에서도 면화와 죽음은 피할 수 없다. 변화와 죽음이 발생할 때, 그영지 않은 것처럼 가장하 는 것이, 물온 전리운 사랑하는 수학자군의 일부는 아닐 것이다. 인위저으로 겨져 동기의 깊은 근원윤 자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민 것은 상상력윤 붑 러 일으키지만, 그업지 못한 것도 있으며, 만약 상상력윤 설-러 인으키지 옷한
다면, 상분지도 않을 것이다. 안악 수학자문이 그둘의 오렌 보연적인 감각운 실계로 잇어버렀다면-신계로, 벌들의 운동에서보다 세련되고정확한 논리에 서 산의 손운 더욱 진지하게 봅 수 있다면-.::z.듄의 원래의 낡은 보금 자리 로 운아가도목 달래려는 어민 시도도 소용이 없운 문만 아니라 ――- 그 것은 지적 자 유에 대한 개인의 권리운 거부하는 것이 원 것이다. 그러나, 자기의 찬 학운 확립한 김은 수학자 각자는-그리고 .::z.멍게 한 모든 사람 둘은― 一 이 러 한 사 신윤 충분히 이해한 후, 전정을· 내려야 할 것아다. 만약 .::z.가 인 대 수 학의 양 상윤 아른다면, 위대한 전동의 상속자가 되기는 하더라도 다만 부 분적 인 상속 자가 침 윤 깨 달아야 한다. 나머 지 유산은 다론 곳으로 운아가 고 그 는 그것 을 전코 문려받지 못할 것이다 .••• 우리의 과학은 수학과 더붙어 시작랬으며, (만약 수학이 사라 진다면) 수 학이 과학으로.JI-더 사라전 두 1 언마 안 있어 설림 없이 과학도 꾼 이 당 것 이다. 100• 년 후에는 사신운 대량 생산해 내는 더 크고 다 중은 실겁신이 생 겨 날 것 이다. 이 사신윤이 단지 사실에 지나지 않을지, 과학이 원지의 여부는 그 것 이 수학 의 정신가 집속·하는 정도에 달려 있다. 충격 옵 받은 몬 노이 만 Joh n von Neumann 도 겅 고하였 다. 흔 히 인용되 지 만 빌로 주목 받지 못한 수찬 《수학자 》 The Math emati cia n (1 947) 에서 그는 말했다: 깅험져 근원에서 너무 밀리 벗어난 수학의 과목이 있다면, 또는 더더구나. 만약에 그 과목이 현실로부더 단지 간접쳐으로 영강을 얻은 듄째, 세째 세 대라면 그것은 대단히 중대한 위협으로 둥러싸인 것이다. 수학은 디옥 다 순 · 전히 십미저이 되어가고, VI-우 미 순수하게 예술운 위한 예순이 되어 7J -다. 만약에 그 분야가 아직은 겅험과 밀접한 관계윤 갖고 있는 관련 분야로 둘러 싸여 있거나 그 과목이 예외쳐으로 잔 발달된 취향훈- 가진 사람의 영향 아래에 있다면 그리 나꾼 까닭은 없다. 그러나, 그 과목이 거의 저항이 없는 방향으로 발전하돈가, 근원과 너무 먼리 밀어져 있는 호읍이 거의 가치없는 많은 갈래 로 나뉘어지든가 • .::z. 과목이 자세하고 복잡성윤 가진 잘 조칙되지 못한 뭉치 로 면하게 인, 중대한 위협성이 있다. 다시 말하면, 겅험적 근원으로부터 너 , 무 언리 벗어나거나, 혹은 수상화운 거둡합으로써, 수학으 1 분야가도 1 보할 위기 에 처해 있다. 처읍에는. 그 양식은 대개 고전져이다. 그것이 바로크식 Oaro-· q uc) 이 칠 조집이 보일 때. 위협 신호가 나타난다 .••• 어떠한 경우에도, 이런 상황에 이르면, 나의 판검에서 유일한 처방은 그 근원으로 윤아가서 다시 젊 어지는 것이다. 다소간 칙겁쳐으로라도 겅험적 아이디어문 다시 주입하는 것 이다. 나는, 이것이 그 과목의 신선합과 활력을 유지하기 위해 핀요한 조건아 :
며, 장래에도 마찬가지로 진실이 원 것운 확신한다. 그러 나 순수한 창조의 경 향은 아직 제 동되지 못하였 다. 수학자물은· 계 속 하여 과학에 서 부터 딸어 져 나왔고, 그들 자신의 진로를 계 속 추구 하였다. 아마 그 둘 자산의 잉심을 위로하기 위하여, 응용수학자룹 비천 한 재 도 사로 멀시하는 경향울 취한 것 같다. 그들은 순수수학의 감미로 운 움악 이 기 술 의 트 럼펫 소리에 떠내려가고 있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그 .` 급 도 역 시 위에서 인용한 바와 감 은 미관에 맞선 팔요를 느꼈다. 역 사에 무 지하 거 나 역사 운 고의적으로 왜곡하여 거침없이 말하는 사람은. 이 재는 과거의 많은 중요한 강조는 단지 지적인 관십만이 그 동기가 되 었 고 , 그 뒤에 응용면에서 아주 중요함이 밝혀졌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순수수 학자 물 이 여사에서 인용한 및 개의 예들울 살펴보기로 하자. 그 둘 이 순수 한 것이라 말한 수학은 얼마만큼 순수한가? 가 장 흔 히 재시되는 예는 포문선 • 쌍곡선 • 타원에 관한 그리스인들의 업 적 을 이 다. 순수수학자들의 논의 는, 이 들 곡선들이 아풀로니 우스몰 미 돗- 한 그 리 스인들이 단순히 그들의 수학적 홍미 를 만족시 키 기 위 하여 연 구 해 온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1800 년이 지난 후, 케플러는 대양 주 위의 행성 운동을 표현하는 데 팔요한 곡선이 바로 ER i임을 발견했다. 미 목 우리 가 원뿔·곡선의 오래 전의 역 사를 모른다고 하더 라도, 권위 있 는 역 사가 노이 게 바우어 Ot to Neug e bauer 의 이 론에 의 하면, 그 곡선둘은 해시계 읍 건설하는 과정에서 나타났다고 한다. 원불을 사용하는 고대의 해시계는 알려쳐 있다. 더구나, 빛을 솟접에 맞추기 위해 원뿔곡선이 시 용원 수 있다는 사실은, 아풀로니우스가 그것에 관한 그의 고전적인 업 적 (1 장)에 전념하기 천씬 이전에도 알려져 있었다. 따라서, 그리스인 둘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 과목인 원.l용곡선운 물리적으로 이용한 것은, 원뿔곡선에 관한 연구의 일부가 그 동기가 되었음이 확실하다. 그리스 기하학에서는 작도가 촌재물 증명하는 방법이었는데, 아문로 니우스의 시대 원씬 이전에도 그리스 기하학의 중요한 문제였던 주어진 정육면체의 2 배의 체적을 가지는 정육면체의 한 변을~ 작도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원뿔곡선이 역시 연구되었다. 또한 아풀로니우스가, 원칸에 관하여 직접적이거나 잠재적인 응용성 이 없는 수백 개의 정리를 증명했움도 의십한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이 란 연구에서, 실질저 인 주제운 찾은 뒤에,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중 요한 과목에 관해 더 많은 지식을 얻으려는 이유나 지적인 도전과 갇은`
이유로, 그 주재를 다듬어나가는 것을 제속앴다는 접에서 아 풀로니우스 논 현대 수학자와 차이 가 없다. 다음으로 흔히 인용되 고 차후에 그 옹용성 이 밝혀 졌 던 순수수학의 예 로, 미유 클 리드 기하학을 들 수 있다. 짐작컨대, 단지 유클리드의 평행 선의 공리블 바꾸면 어떤 전과가 나타날지 을 사색한 사람들이 미유 클 리 드 기하학을 만둥어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2 천년의 역사 봅 무시하는 것이다. 유쿨리드의 공리들은, 물리적 공간에 관한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여졌었다 (1 장) . 그러나, 유 클 리드가 평행선의 노골적인 가 정을 키하기 위하여 종 고의적이고 뗄 나게 기술한 평행선의 공리는 , 나 미지 공리들처럼 그리 자명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그보다 그먼 듯 한 표한윤 갖기 위한 수많은 노력 덕분에 궁극적으로 평행선의 공리가 만 드시 감일 핀 요가 없으며, 평행선에 관한 다론 공리도_전과적으로 미 유칼리드 기하학이――마찬가지로 물 리 적 공간 을 잘 표현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중요한 정은, 유 클 리드의 평행선 공리가 진 리임 윤 보장하 기 위한 노 력 이 “사색적인 두뇌의 오 락 이 아니라, 본연의 수학과 웅용 수학의 수천 개의 정리의 근거가 되는 기하학이 전리임운 안전하게 하 려는 시도였다는 것이다. 순수수학자 둘 은 리만의 업적 운 흔히 인용하는데, 그는 그 당시의 미 유탄리드 기하학을 일만화하여 오 늘날의 리만 기하학 들 ( R i emann i an ge o. mc t r i es) 로 알려 진 다양하게 많은 미 유 문 리 드 기 하학물--울 도입 하였 다. 여 기에서도 순수수학자둘은, 리만이 어떤 것이 가능한가를 알아내기 위하 여 그의 기하학 들을 창조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은 옳 지 않다. 유 클 리드 기하학의 물 리적 타당성 을 의십 할 여지없이 하려는 수학자 들 의 노력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감이, 물리적 공간을 표현하는 데 유칼 리드 기하학과 마찬가지로 유용한 미유 큘 리드 기하학의 창조에서 그 절 정에 이르렀다. 이 두 개의 기하학이 서로 7같 지 않은 이상, 이 예상하지 못했던 사실은, 어느 것이 물리저 공간에서 옳은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하는 문재윤 재기하였다. 이 의문은 리만의 뚜릿한 출발겁이며, I854 년의 논문에서 이 의문에 대한 답변으로 (4 장) 더욱 일반적인 기하 학윤 만듄어내게 된 것이다. 우리의 한정된 물리적 지식에 의하면, 이 것들은 유클리드 기하학과 마찬가지로 물리적 공간을 표현하는 데 유용 할 수 있었다. 사실, 리만은 공간과 물질이 합께 고려되어져야 할 것이 라고 예견하였었다. 그렇다면, 아인쉬타인이 리만 기하학의 유용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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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은 데에 의십이 가는가? 리만이 이 기하학의 타당성을· 에견한 것 ·이. 아인쉬타인이 그것을 이용한 천재성운 감소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 것이 적합함은, 그때까지 수학자들이 씨음해오던 불리적 공간의 본질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문리학 의 문재에 관한 업적의 견과이었다. 하나의 예를 머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현대 수학중 가장 완동적 으로 연구되 었던 분야의 하나가 군론(g rou p t heor y)인데, 그것은 그 자재 의 홍미 때문에 연구되었다고 순수수학자들은 주장한다. 라그랑즈나 우 피니 Paolo Ru ffi n i의 연구가 먼저 있기는 하었지만, 군론은 대재로 걷르 와 Evar i s t e Galo i s(1811-32) 가 창조해 내었다. 갇르와가 다루었던 문재는 본질적으로는 모돈 수학의 문제 중 가장 간만하고 실재적인 것으로서, 3 죠 +5x+1=0 과 갇은 이차방정식,
4 국 +6 죠 -5x+9=0 과 7같 은 삼차방정식이나 고차방정식과 갇은 간단한 다항방정식을 푸는 문재에 관한 것이었다. 이런 방정식은 물리 문재에서도 및 천개나 나타 난다. 갇르와 시대까지의 수학자들은 일차에서 사차까지의 일반적 방정 식의 해법을 찾는 데 성공하였으며, 아벨 N i els Henrik Abel(1802-29) 은 .a,b,c,d,c, f가 임의의 실(복소)수일 매 a 갔 +bx'+c 죠 +d 군 +ex+ f =o 과 감은 5 차와 그보다 높은 차수의 일반적인 방정식을 대수적으로 푸는 것이 분가능함울 증명했다. 여기에서, 갈르와는 왜 그러한 5 차 이상의 일반적인 방정식은 대수적으로 푼 수 없으며, 어떤 뮤밀한 방정식은 풀 수 있는가를 증명하기 시작했다. 이와 갇온 그의 연구에서 갇르오 H 즌 군 돈을 창시하게 된 것이다. 다항방정식의 해법과 갇은 기본적인 문제에 서 유도된 주제가, 다른 많은 수학적 • 물리적 문재에 응용원 수 있다는 것은 늘할만하지 않은가? 확실히 군론은 신재적인 문재와 무관하게 고 무되어 나타난 것은 아니다. 더우기 , 군론의 동기는 갈르와의 연구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순 수수학자둘은 흔히 석 영 • 금강석 • 암석 과 7갈 은 결정 의 구조에 관한 ..!!.라 메 Aug u ste Bravais ( 1811-63) 의 업 적 을 간과하는 것 같다 . 이 꾼질-군은 상 이한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원자들은 걷정 전체윤 동하여 반복되13 수학의 고립화 347
는 패턴으로 매연되어 있다. 디우기, 소금이나 보몽 광물의 걷정은 그: 원자배연법이 아주 독이하다. 예를 들면, 가장 간단한 겅우로, 인접하여 있는 원자들은 육면재의 꼭지정에 위치하는 것으로노 생각할 수 있다. 18. 48 년부터 브라메는, 한 전정을· 어떤 축울 중심으로 회전하거나 또는 어 떤 축에 관하여 평행이동하거나 대칭이동하는 것을 허용할 때 그 걷정 이 원래의 것과 같아지는 가능한 번환둘을 연구하였다. 이러한 변환 둘 은 여러 유형의 군을이문다. 조르단 Cam i lle J ordan(1848-1922 ) 은 브라매의 이 연구에 주목해서, 1868 년의 자신의 논문에서 이 연구를 확장하였고. 걷 국 이 것 은 콘 영 향을 미 찬 그의 《치 환의 이 론》 Trait e des Substi tut ion s (Treati se on Substi tut i on s, 1870) 에 서 의 유한군의 연구의 여 러 동 기 중 하 나가 되었다. 브라메의 연구는 또 조르단에게 무한군_一평행이동군과 회전군 __ 의 연구를 암시하였다. 무한군의 주제는 1872 년의 큘라안 Felix Klein 의 논문과 강연으로 칼목할만한 것이 되었는데, 거기에서 쿨라인은 그 당시 까지 알려져 있던 서로 다몬 기하학들을, 그 기하학들에서 가능한 운동 들의 군과 이듄 운동으로 불변인 성질들을 써서 분류하였다. 이리하여 유큘리드 기하학은 도형의 회전 • 평행이동 • 닮음변환에 의해 불변인 성 질을 연구한다는 사실로 육칭지위진다. 여러 가지 알려진 기하학을 구 번하는 1872 년의 문재와 어느 기하학이 물리적 공간에 적합한가 하는 문재-당시의 수학자들에게 최우선의 문재――는 순수수학이라 하기 어렵다. 미분방정식의 해법을 득정짓기 위한 무한연속군가 무한불연속 군에 관련되는 더 많은 연구물이, 1890 년대에 추상군의 현대적인 개념 이 확립되기 이전에 이미 수학 속에 들어와 있었다.*
• 1849 년과 l8,4 년의 논군에시 케인리 Arth ur Ca y lc y는 수상군의 정의웅 제안하었다. 그러나 앞에시 기순한 많은 구체지인 이용이 이무어지기 전에는. 수J- 개념의 중요성이, 인식되지 않았다.
행 턴, 맨서 (ten sor) 해 석 , 위 상수학 (top o log y) 과 같이 순수수학의 산물 · 이라고 주장되는수학의 분야를 살펴보아도 결국은 같은 이야기가된다. 예를 들면, 현대의 추상대수학 전체는 그 기원을 해밀돈의 사원수의 발 견 (4 장)에 두고 있다. 그 동기는 직접 또는 간접으로. 물리학적이며, 관 련된 사람둘은 수학의 이용에 주된 관십을 갖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순수수학의 취지에서 창조되었으나 차후에야 그 응용성을 알게 된 과목 ’ 문도 역사적 사신윤 보면 현실적인 물리학져 문제나 직접적으로 물리학-
겨 문제와 관련된 것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창조되었다. 혼히 일어나는 일은, 원래 문 리학적 문계에서 유발된 훌륭 한 수학이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 운 응용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함으로써 수학은 과학에 진 빚을 갚는 것이다. 그런 이용은 예상 원 수도 있다. 돌 을 깨기 위해 발 명되었을지도 모르는 행머가 나무에 못을 박는 데도 역시 사용될 수 있 다는 것은 놀라운 일인가? 수학적 이론은 시초에는 물리학적 근거 위 예 있었 고 , 자신의 영혼 속 에서 외로아 무쟁하는 수학 전문가의 예언자 적 몽찰에 근 거가 있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했던 과 학적 응용 이 생겨 나는 것이다. 계속해서 수학이 성공적으로 이용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영 국의 지 도 적 인 수학자의 한 사람이 었던 하디 Godfr ey H. Hardy (1877- 194 7) 는 다 음 과 같은 축 배의 인사말 을 한 일이 있다고 한다. 여기 순수 수학을 위하 여 ! 바라전대 걷코 이용되지 않기를 ! 쉬카고 대학교의 권 위 자였 던 디 슨 Leonnrd Eug e ne Di ck son (1874-1954) 은 정 수론이 어 떤 웅 용에 의해서도 더럽혀지지 않은 것에 대하여 신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말 히곤 하였 다. 전시 (1940 년)의 수학에 관한 논문에서 하디는 말하였다: 수학이라 함은, 매르마와 오일러와 가우스와 아벨이 하던 수학이지, 공학 신 험실윤 거쳐서 나온 재료가 아닌 진짜 수학윤 의미하는 것이라고 곧장 말하 는 편이 낫겠다. 나는 단지 순수” 수학만윤(자연스럽게, 그것이 나의 첫째 관 심사이지만) 생각하.Jl.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막스센과 아인쉬타인과 에딩든 Eddin g ton 과 디 라 Di ra c 도 진짜 수학자로 간주한다. 하디 가 《 한 수학자의 변 명 >A Math emati cia n 's Ap ol og y (1967 년판) 에 서 반 복하였던 앞의 인용문에 의하면, 그는 최소한 약간의 응용수학을 받아들 이려 랬다고 믿을지도 모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갈이 계속한다. 나는 영원한 십미적 가치 문 지닌 수학져 지식의 전 재계문 [여기에] 포합시긴 다. 예 룹 들 면, 그리스의 최고의 수학이 그러했던 것처럼, 영속져인 수학은그 최상의 부분이, 마치 최고의 문학과 갈이, 잊 천년 후에도 수천을 헤아리는 사 람둘에게 계속져으로 정서져 만족윤 줄 것이기 때문이다. 하디나 더슨은 역사 를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편히 쉴 수 있다. 그 둘의 순수수학은 그 자체만을 위하여 창조된 모든 수학과 마찬가지로
거의 쓸모가 없을 것이 확실하다. 그링지만 그 가능성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화판에 아무렇게나 색칠하는 어린이가 마젤란젤로 M ich elang e lo 에 판적 하게 원지 도 모른다 (현대 미 순에 머 가까우] 지 겠지 만). 또한 에딩돈이 지적한 바와 같이, 아무렇게나 타이프 를 치는 원숭이가 쉐익스피어 수준의 희곡을 만들어 낼 지도 모른다. 사실, 완동하고 있 는 수천의 순수수학자들로부터, 유용한 수학을 포함하는 우연한 절과가 나타난 수도 있다. 길거리에서 금화 룹 찾는 사람이, 동전윤 발견한 수· 도 있다. 그러나 현실과 맞지 않는 지적인 노력은 거의가 미생산적인 것 이 윈 것 이 확실하다. 버 코프 George David Bi rk hoff 가 말랬 듯이 “대 초 부터 자연이, 자연의 언어인 수학이 따라야 할 방법과 패턴 을 재시하고 확립하였기 때문에. 아마도 장래에 언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물 리학걀 동해 재시된 수학의 새로운 발견이 친 것이다. 그러나, 자연은 결코 자 신의 미밀을 띠번이지 않으며, 다만 항상 속삭일 따 몸 이다. 그리고. 수 학자는 그것을 겅청해야만 하고, 그런 뒤에는 그것을 확장하고 알리고. 자 해야 한 것이다. 역 사적 증거 에 도 상구하고, 아직 도 및 몇 수학자 들은 순수수학의 미 래 의 응용가능성을 주장하며, 실재로 과학으로부터의 독립이 이러한 전망 을 더욱- 나아지게 한 것이라고 선언한다. 얼마전 (1961 년)에도 하바드. 예 일, 쉬 카고 대 학교의 교수를 지 낸 스토운 Marshall Sto ne 은 이 주장을 계천명하였다. 《수학의 혀명》이라는 굴에서 스도운은 과학에 있어서의 수학의 중요성에 대한 찬사로 시작하여 다옵과 같이 게속한다: 1900 년 이래 수학에 관한 우리의 관념 뜨는 수학에 관한 우리의 판정에 여러 가지 중요한 면화가 나타났는데, 아이디어상의 혁명운 참으로 포합하는 것의 하나는 수학이 꿉- 리학지 세게와 전지으로 독럽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 다 .••• 수학은 이계, 두뇌 속에서 사고되어진 진술이 암앙리에 내포하는 모 호합과 상가해성운 넘어선 물리쳐 세계와 연관이 있윤 팔요가 없는 듯이 보인 다. 사실 그러하다는 것윤 발견한 것은 수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지저 반전운 나타내는 것이라 하여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 지금의 수학윤 I9 세기 말의 수학과 비교하여 분 때, 분량져으로나 복잡성에 서 인마나 만리 발전하였는가운 알고 놉알 수도 있지만, 이 발전이 추상화의 강조와, 널리 수학져 패던의 지각과 분석에 대한 종대되는 관냐 l 과 인마나 밀 접하게 관련되어 왔는지훈 간과해서는 안 월 것이다. 사실 , 더욱 더 면밀하게 살펴보면 수학이 응용과의 관계문 며남으로써 미로소 가능해전, 이 새로운 방
향이 금세기 동안의 왕성한 환동성과 말전의 진정한 원찬입윤 안게 된 것이다. 현대의 수학자등은 수학이 인만적 추상칙 체계들에 대한 연구라고 명확하게 ' 뮤칭짓기운 원하는데, 각 제계는 북정한 추상지인 원소문로 이루어지고, 아러 한 수상적 원소들 사이의 임의이지만 명확히 지정된 관계·를로 세위진 건꿉·이 다. 현대 수학자는 이러한 체계와, 그 제계의 구조쳐 성진운 연구하기 위한 논리학의 수단, 어느 것도 문리적 세계와 직접저이거나 판연적인 관련이 없다 는 생각운 견지한다. 왜냐하면, 수학이 한신의 목 수한 양상과 맺고있단 과거 의 연관으로부터 어 느만큼 자유로워 지 는가에 따라, 수학이 우리 의 한계 윤 넘 어선 영역으로 물 어가는 데 팔요한 대만히 웅동성이 있고 강력한 수단이 킨 수 있기 매문이다. 이 주장윤 뒷받침하는 에는 이미 무수히 존재한다 .... 스도운은 유전학, 게 임 (gn mc) 이 론, 동신 (commun i ca ti on) 의 수학적 이 론 · 을 예로 들 었다. 사실 이것들은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는 약한 것 이 다. 그것 들은 건전한 고전수학을 응용하는 과정 에 서 나타난 것 들이 다. 1962 년 (
〔스토운의〕 논문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업겨운 능가하는 위대한수 학져 성공의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대 수학의 승리는, 추 성화와, 불리저이거나 그 밖의 실체로부터의 의식져인 분리라는 하나의 기본 저인 원칙 덕분이다. 따라서, 모태주머니가 멀어져 나간 수학의 정신은 높이 솟아홉·라 거기서 지상의 현실윤 완비하게 관찰하고 지매할 수 있운 것이다. 권위있는 처자의 주장과 교육저인 진돈운 왜곡하거나 격하한 생각은 없다. 그러나 포판적인 주장으로서, 또 연구 방향윤, 그리고 무엇보다도 먼저 교육 · 방향윤 제시하려는 시도로서의 그의 논문은 위협 신호인 듯이 보이며, 확신히 무언가 보충해야 한 핀요가 있다. 인정져 수상화라는 위협 속에는, 이 방법이 . 7..[코 넌센스윤 변호하지는 못하며, 단지 안진리문 속전할 문이라는 사신이 섞 여 있다. 한쪽으로 치우친 반전리가 잔 균형잡힌 전적인 전리의 환동저인 전 망운 옆으로 치위 놓도 ·무 허 락해서는 안 된다. 군론 수학적 사고는 추상화합으로씨 작용한다. 수학적 개 념 은 수상저 이 고 진 보적인 세민화 • 공리화 • 전정화가 판요하다. 신재로 구조에 대한 -몽찰러이 높 은 위치에 도단댔운 때, 중요한 간전화가 가능해진다는 것은 참이다. 어느 정 . 도 신진저인 현신윤 기순하는 것으로서의 수학적 개념에 대한 힘이상학저 편 견웅· 포기한다연, 수학의 근본적인 어려웅이 사라질 것이타는 것은 살온 사신
이며 오렌 동안 명백하게 강조되어 왔다. 그러나 수학의 생명수는 그 부리로부터 솟아나오며, 그 부 리는 현실 (real ity) 이라 부운 수 있는 것 속으로 한없이 세분되어 깊숙이 내려지고 있다 . 이 현 실'’은 가명 여학 • 물리학 • 생물학 • 겅제 판동 • 측 지학 동과 그밖의 이미 찬숙 한 수학져 실체 등이다. 추상화와 일반화는 현상의 개체성이나 더우기 귀납적 칙관보다도 수학에 환력을 불 어 넣은 바가 져다. 오직 이러한 힘들 또는 그문 의 종합 사이의 상호작용만이 수학윤 환기있게 하고 수학이 죽은 해꾼로 말라 가는 것윤 여개할 수 있다. 삶을 허미하는 자기 모순이라는 극운 향하여 맏전 윤 일방적으로 몰고 가려는 시도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 수리과학의 궁극적인 정당화는 인간 지성의 영광’’이라는 오랜, 붑겅스란 년 센스윤 받아둔여서는 안 된다. 수학이 순수와 ‘‘응용의 두 다양체로 분리퍼 고 찢어지도목 허락해서는 안된다. 수학은 과학이라는 넓은 호몸 속에서 동일 된 판력있는 줄기로서 지속되고 강화되어야 하며, 전 국은 모래 사장에 서 사라 지고 말 조그만 실개천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 분리의 경향은 수학에 내재하는 것이며, 이미 언제나 나타나는 위험임이 밝혀졌다. 고립주의적 추상화주의의 광신은 위협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속 이 팅빈 허위와 헌신지인 연망윤 구벌하지 못하는 보수적인 반동도 역시 마찬 가지이다. 쿠란트는 추상화의 가치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1964 년의 논문 ·에서 수학은 구체적이고 북벌 한 실체에서 그 동기를 찾고 현실성이 있 는 곳을 겨냥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만약 추상화로의 비행이 필요하 다면, 그것이 도주보다도 나은 것임에 문림 없다. 비록 어떤 비행사가 그 궤도 전체를 비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지표로의 재돌입은 불가결한 것이다. 수학은 흔히 비옥한 대지에 깊고 굳세게 뿌리 박은 나무에 미유되어 왔다. 그 줄기는 수와 기하학적 도형이며, 그로부터 뻗어나온 다양한 가지들은 수학의 많은 분야를 나타낸다. 어떤 가지는 돈론하여 많은 분 지를 낸다. 어떤 가지는 그 전체 구조에 크기와 힘도 별로 더해주지 봇 하는 사소한 분지를 낸다• 그리고 죽어가는 가지도 있다. 그러나 당면 판십사는 그 나무가 단단한 대지에 뿌리를 박고 있다는 것이다. 각각의 가지는 뿌리와 줄기 을 통해 그 현실에 의지하고 있다. 그 흙을 전적으 로 제거하고, 나무 • 부리 • 줄기 • 상부 구조 등을 계속 보존하려는 노력 온 성공할 수 없다. 많은 가지-같은 무리가 비옥한 땅 깊숙히 파고 들어 갈 때에만 번성할 것이다. 현실성이라는 잉양분이 없는 새로운 가지에
접목하려는 사람은 실 제로 결코살아 남을수없는 가지만을 넬 것이다. 이 런 살 아 남을 수 없는 가지들도,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면 진짜 가지 로 보이도목 한 수도 있고, 산 가지와 얽히도록 할 수도 있고, 줄 기에 서 뻗어나온 가지처럼 보이도록 할 수도 있겠으나, 그들은 곧 죽게 월 가지이며 아무 해도 없이 잘 라낸 수 있을 것이다. 순수수학을 추구 하는 자유가 응용수학으로의 새 로운 접 근을 강화하고 그에 기 여할 것이라는 스토운의 주장윤 약화시키는 돗이 보이는 그밖 의 많은 논 의 둘 이 있다. 순수수학의 추구는, 그것이 어느 정도 세련되 었는지 또는 그것 을 추구하는 사람이 어느 정도 유명하든지 간에, 실용 적 상 황 에 대한 수학적 추론의 위력을 감소시키는 것이 몰 립없다. 추상 수학에 많은 시간과 노 력을 소비한다 하더라도, 팔연적으로 .:::z. 성공적 인 실행에 킬요한 분위기와 마음가침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응용의 팔 요에 대해 공부할 시간과 그 응용을 다 루 는 데 팔요한 도구물 형성하는 시간이 부족한지도 모른다. 응용수학자는 현재 추상수학자들이 무엇을 하고 있 는가 또 무엇을 성취하였는가를 유용하게 살필 수 있지만, 너무 깊은 관십을 가지는 것은 자원을 해롭게 전환하는 것이다. 응용에 무관 심하면 고집이 되고, 아마도 수학 전체의 위축을 초래할 것이다. 역 사적 증거 로 보아, 스토운은 확실히 옳지 않다. 폰 노이 만이 그의 글 《수학자》 (1947) 에서 지적했듯이 : 수학에서의 가장 위대한 영광 중의 인부가 __- 누구나 생각하듯이 순수수학의 분야에서-자연과학에서 나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 내 생각으로는 수학의 가장 환력있고 뮤 칭져인 사신은 매우 둑석-한 과학과의 관계, 종 더 인 반 적 으 로는 , 단지 순수한 서순져 수준보다 미 높은 수준에서 겅협윤 해석하는 임의의 과학과의 매우 독두 한 관계이다. 프랑스의 주도적 인 수학자 수 1 바르츠 Laurent Schwarz 는 오늘날의 가장 활동적인 분야인 추상대수학과 대수적 위상수학이 응용성이 없다고 말 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어떤 논문들은 이듄 분야의 언어오} 개 념윤 씨 서 구체적인 응용을 가장하고 있지만 응용 문제를 푸는 데는 아무란 발 전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순수추상수학의 지지자들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지도저인 해 석 학자 디 의 돈1.-Jj Jea n Di eu donne 교수는 1964 년의 논문에 서 , 스스로 먹고 사는 수학은 영양실조로 죽을 것이라는 주장윤 반박했다:
다른 과학에 의 응용을 스스로 전 단합으로씨 수학에 무서 운 전 과가 초래 원 것 임운 규칙적으로 경고한 카멀한 예언자의 겅건한 어귀에 키조의 역사는 언 마 나 순응하지 않으려 하였는가운 강조하고자 한다. 이 론물리학과 간은 다은 분 야와의 밀접한 점수이 그와 관련왼 모든 집단에 이·롭지 않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초함수론을 재외하고는 LII 가 지 금까 지 이야 기해 왔던, 눕한 말 한 전보 전체가 어느 하나도 물리학에의 홍 · 용가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지 아니 합은 아주 자명하다. 또한 편미분방정삭온에시마저도 직접지인 물리적 중요 성 운 갖고 있는 문재보다도 이재 내적인 구조적 문재가 천씬 더 강 조되고 있 다. 수학이 인간의 노력의 모돈 깅로로부터 강재로 분리된다고 하 여 도 , 우리가 수학 속에시 해전해야만 하는 큰 운재 속에는 수 세기 동안의 사고 을 위한 석 량이 남아 있운 것이다. 디오1 돈네가 순수수학의 문재들이 꾼없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고 하더 라도, 공정히 말하여, 그가 순수수학의 어떠한 창조 불 도 궁 극적으로 유 용한 것이라는 주장을 믿지 않았다는 사실을 첨가해야 한다. 그는 순수 수학의 많은 연구를 연거 하였는데 , 」.:;-히 정 수론에 관하여 그는 ”이 같은 견과둘이 어떠한 문리학적인 문재에라도 웅용판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다구나, 그는 일반적으로 순수수학을 변호하 、 였지 만, 수학자둘이 과학에 대 한 순수수학의 가치 룹 과장하는 것 은 가 벼운 종류의 사기”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는 지적하기를, 순수수학 자는 어떤 문재의 해의 유일성운 증명하는 데 굉장한 어려움을 겪게 마 련이지만, 그 해를 찾으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리학자는 해의 유 일성은 알지만――지구가 두 궤도물 도는 것은 아니다――실재의 궤도 몰원한다. 추구해야 할 종류의 수학의 가치에 좀 더 현실적인 사람으로., 순수수· 학운 연구했던 같은 정도로 처명한 사람이 있다. 1958 년의 국제 수학자 대회에서 가딩 뇨 rs Gard i n g은 솔직히 말하였다: 나는 여기에서 차분방정석, 시스뎁 이온과 양자역학에의 응용, 미분기하학과 · 갈은 많은 중요한 과목에 대하여 언급할 수는 없다. 나의 주개는 편미분작용 ~ 소의 인반 이론이다• 이것은 고전물리학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것의 실재적인 중요한 응용성은 없다. 여전히 물리학은 그 이론의 홍미있는 문재들의 원천으 로 남아 있다. 내가 하였던 것과 같은 일반 강연이, 새로운 수학쳐인 테크닉운 · 요구하는 듯이 보이는, 물리학의 미해전 문계에 판한 해설 논문보다 아마 덜 유 용한 것같다는 느낌이 돈다. 그러한 해선 논문이 물은 전문가에게는새로운 d::..
식이 아니겠지만, 많은 수학자에게 가치있논 문계윤 제공할 것이다. 수학과 -춘 리학간의 상호작용운 심화시키려는게외된 노력은 지금까지 드물었다. 물 리 학으로 더 렵 혀 지 지 않은 수학의 창조 를 자랑하고, 압력 을 받으면 서도, 현재의 그들의 목표 없는 노력의 정 당성을- 다른 사람들도 언젠 7] 알게 원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 들 은 그들 자산의 정신적 일상사에 남아 ` 연구하게 욀 지도 모른다 . 그러나 그들은 역사의 전적인 과정에 모순된 다. 과학의 속박에서 자유로위진 수학이 낡은 수학보다도 핀씬 응용성 이 많 은 , 더욱 풍요하고 다양하며 생산적인 수재들을 만들어 낸 것이라 · 는 그 들 의 확신은, 말뿐이지 다 몬 어떤 것으로도 뒷받침되지 못한다. 순수수학의 지지자 들 은 그 둘 의 입적의 가치에 대하여 다몬 주장, 죽 · 내재적인 아 음 다움이나 지적 도전이라 든 가 등을 할 수도 있고, 또 그렁 게 하고 있다. 그러한 가치가 있다는 것은 부인할수없다. 그러나 순수 · 수학의 악대한 수확을 정당화하는 것은 실재로 도전 받윤 가눙성이 있 다. 이 문제에 어떤 판단을 하든간에, 이러한 가치들은 자연의 탐구타는 수학의 주요한 중요성에 공헌하지 않았다. 아 음 다움과 지적 도전은 수학 을 위한 수학이다. 의십할 여지없이, 이러한 내재적 가치의 전가는 수학 · 의 고립에 관한 현재의 논의가 허용한 것 이상의 인식을 정당화한다. 순수수학의 변호자와 비판자 사이에는 분명히 서로의 불화가 있다. 모든 논쟁 은 해 학 (humour) 에 찬 논평 과 미 꼬는 (sarcas ti c) 논평 을 촉진한 다. 응용수학자는 엄밀한 증명에는 관십이 없다. 그들에게는 그둔의 추 론이 물리 현상과 부합하는가가 주된 관십사이다. 이들 중 전형적인 사· 람은 해 미 사이 드 Ol ive r Heavis i d e 이 었 는데 , 그는 순수수학자에 게 는 전직 으로 부당하고 이상하게 보이는 데크닉을 사용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십 한 비 판을 받았다. 해 미 사이 드는 그가 논리 겁 사자(l o gi c-cho pp er) 라고 -산 · 렀던 부류를 경멀랬다. 논리학은 영원하기 때문에 참을성이 있을 것이 타고 반복하였다. 얼마 후에 그는 순수수학자들운 더욱 혼란하게 하였 다. 당시에는 이미 발산급수라는 것은 추방되어 있었다. 헤미사이드는 묵정한 발산급수에 대해 ‘‘홍, 그 급수가 발산한단 말이지. 그멍담 이걷 갖고 무언가 할 수 있겠군이라 말하였다. 그런데 헤미사이드의 데크닉 은 모두 엄밀화되었고, 더우기 새로운 수학져 주재를 재공하고 있옵-이 판명되었다. 순수주의자들을 성내개 하기 위하여 응용수학자문은, 순수 · 수학자들은 어떤 해에서도 난겁을 찾을 수 있지만, 응용수학자둘은 아 떤 난정에 대해서도 해를 갖을 수 있다고 말하였다.
응용수학자들은 순수수학자들을 다시 한 먼 조롱하였다. 응용수학의 문제들은 물리적 현상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에 관련된 수학자둘은 그 것을 풀어야 하는 반면에, 순수수학자둘은 그들 자신의 문제 를 만들어 넬 수 있다. 후자는 어두운 긴 어던가에서 연쇠를 잃은 경우에 가로등 민이 더욱 밝기 매문에 그곳에서 연쇠를 갖는 사람가 잡-사하다고 옹용 수학자는 말한다. 그들의 적을 더욱- 홍잡기 위해 응용수학자들은 또 다론 이야기-문 한 다. 서나물을- 한 집 가진 사람이 세 닥소를 갖고 있 다. 그는 마침 창문 속에 ‘내막합니다라는 간판이 있는 가개를 찾아가서 옷침을 카운어에 운려 놓았다. 접원은 약간 눈란 돗 물었다. ”이전 무엇입니까?” 그 사 람은 대답했다. 세닥하려고 가져왔는데요.” 하지만 여기선 새탁을 하 지 않습니다타고 정원은 대답있다. 이번에 눈란 쪽은 옷을 Al1 막하려던 사람이다. 그는 그 간판을 가리키며 불었다. 저 간판은 무엇이오? 정원이 만하기를 아 ! 우리는 간관만 만드는데요.” 순수수학자와 응용수학자 사이의 논쟁은 계속되고 있으며, 이재는 순 수수학자문이 숙소운 다스리고 있는 까닭으로 다른 길로 들어선 그둥의 동료둘을 만시할 수 있고, 진께하기까지조차 한다. 트루스벨 Clif for d E. Truesdel 교수가 만앴 듯이 ‘응용' 수학은 자신을 '순수' 수학자라고 생 각하는 사람들이 순수하지 못한 수학자라고 간주한 사람들을 모욕한 것 이다 .••• 그러나 인간의 감성으로부터의 생장운 거부하는 반역자적 짜 증으로서 의 , 또 -산순한 자문 가려 내 기 위 한 시 험 하는 말 (shib boleth ) 로 서의 '순수'수학은 지난 세기에 만들어진 질병이다. 그것은 어면 목 적으로 상사하여야 한지 생가도 못하는 그 자체로서 꾼이 가까와 오고 있다. 그 자체는 아윤다웅의 상태가 아니다. 수학은 알아둘 만한 가치 가 있는 무엇을 발견하는 것이 목표이다. 현 상대로는 연구는 연구를 낳는 연구운 낳는다. 오늘난의 수학의 전당에서는, 감히 의마와 목적 윤 문어서는 안 된다. 수학은 현실에 의해 더럽혀쳐서는 걷코 안 된다. 담쟁이넝물이 너무 무성하게 자라서 그 안의 연구자는 바깥 세상운 더 이상 분 수가 없다. 이란 은둔자둘은 그들의 고립 속에서 만족하고 있 다. 수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맞지 않윤 수도 있지만, 물리학자와 그 밖의 다른 과학자들은 그들이 궁지에 빠져 있음을 한단할 수 밖에 없을 마봅 . 이다. 최근까지 M. I. T. 의 명예교수였던 슬레이터 Joh n C. Slate r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물리학자등은 수학자둔로부터의 도움운 거의 구한 수 없다. 폰노이만과 갇 ; 이 이러한 [앞에서 기순한] 문재문 이해하고 실재적으로 공헌한 사람 하나하나 · 에 미하여, 그런 문재에는 전혀 관십이 없거나, 물리학과는 판십이 먼 분야에 서 연구하거나, 수리물리학의 낡고 잔 안려진 부분윤 강조하는 사람은 20 명 · 이나 된다. 이 런 상황에서 수학자운 갖는 군리학자등이, 과기의 수학의 위대 합에 그듄윤 이 꾼어 주었던 전윤 잃었다고 생각하는 것, 또 과거에 수학의 가 장 효과적인 발전윤 이꿀어 주었던 수리불리학의 진전의 주요한 흐문에 다시 한 번 단호하게 위어듄기 전에는 진코 다시 이 길윤 갖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 · 하는 것은 높-라운 일이 아니다 .••• 물리학자문이 확고하게 느끼기에, 그것만 이 현재의 수학자가 위대성윤 얻는 지공건이다. 과학의 등한시 는 디 손 Freeman J. Dy so n 교수가 1972 년 수학자들에 게 행한 주요한 강의의 주계였다. 메우 처명한 물리학자인 디손은 과거와 현재에, 수학자들이 과학에서 중요하고 두드러진 문제를- 차지할수 있었 으나 놓쳐버란 기회들을 지적하였다. 이 물문 재 중 및 가지와 그 단편들 은 그리저러 스며둘었지만, 수학자들은 그것들의 기원과 문리학적인 중 · 요성 을 알지 못한다. 마라서 그 들 은 아무 방향이나 향하고 있거나 또는 성취한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디손이 표현했듯 이, 수학과 물리학의 결혼은 이혼으로 꿈나고 말았다. 금세 기 동안 과학으로부터 의 이 할은 가속호 h 되 어 왔다. 오늘난 수학자 가 과학으로부터의 독립윤 주장하는 것을 듣고 읽는 것은 혼한 일이다. 수학자둥은 오직 본연의 수학에 대한 그들의 관십과 과학에 대한 무관삼 을- 자유로이 말하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정확한 동계는 어렵지 만, 오늘날 활동하고 있는 수학자의 거의 90% 가 과학에 대해 무지하고 그러한 축복받은 상대에 남아있는 것에 아주 만 족 하고 있다. 여사와 반 대에도 불구하고 추상화와, 일반화만운 위한 일반화, 입의로 선덱한 문 계 를 추구하는 겅향은 계속되고 있다. 구재적인 경우에 대해 더욱 많은 · 것을 배우기 위해 문재들 전체룹 연구하려는 합당한 긴요와, 문재의 핵 심을 파악하기 위한 추상화에 대한 합당한 월요가, 수학 자제 안의 수 학 자체를 위한 추상화와 일반성을 탐구하는 구신이 되고 말았다. 수세기에 걷쳐서 인간은 유집-리드 기하학, 대양중십설, 뉴돈 역학. 전자기이온, 최근에는 상대론과 양자론과 갇은 웅장한 구조윤운 창조했 다. 이 모든 것과 그 밖의 중요하고 강락한 과학의 주요 부분에서 이재 ·
우리가 알고 있듯이 수학은 그 구성과 구조의 방법이었고 사실 그 본질 인 것이다. 수학의 이론은 자연에 관하여 무엇인가 알게 해주었고 , 다양 하게 보이는 많은 현상들을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게 해 주 었다. 수학의 이론은 인간이 자연에서 갖아낸 모든 질서와 계획을 나타 내 주었으며, 광범위한 영역을 지매하거나 부분적으로 지배 할 수 있도 록 해 주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학자들은 그 들 의 전통과 유산 울 버리고 말았다 . 자연이 우리의 감각에게 보내는 의마있는 멧세지는 이제는 닫힌 눈과 기울이지 않는 귀에 전해지고 있다. 수학자들은 그 들 의 선배둘이 외득 한 명성 위에서 살며, 과거의 업적이 보장했던 지지와 갈계를 여전히 기대하고 있다. 순수수학자들은 그보다도 더하다. 그들은 응용수학자들 을 그들의 동업 조합에서 추방하였는데, 그것은 수학자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매정함으로씨 그 들 만이 선배 들 에게 수여되었던 영광을 차지하리 라는 희망에서였다. 그 들 은 그 들 의 아이디어의 풍요한 원천 을 버리고. 이재는 과거에 모아 두었던 부문 소미하고 있다. 그 들-은 그들을 이 세 상 밖으로 이끌어간 회미한 빛을 뒤따랐다. 과거에 수학 연구의 동기가 되었으며, 뉴돈과 가우스에게 주어졌던 영광을 보장하는 훌융한 전동을 알고 있는 사람 들 중 일부도, 그둘의 수학적 업적이 과학윤 위한 잠재 져 가치가 있다고 여전히 주장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들은 과학의 모형 (model) 둘을 창조한다고 말한다. 그러 나 사실 그 들은 이 목표에 는 관십이 없다. 실제로, 대부분의 수학자들은 아무런 과학도 모로기 때문 에 그들은 모형을 창조한 수 없다. 그들은 과학과 잠자리를 같이 하기 보다는 처녀로 남아 있기를 원한다. 대체로 수학은 현재 내부로 이동하 고 있다; 그것의 식량은 그 자신이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로 미루어 판 단하자면 대부분의 현대수학의 연구 결과가 과학의 진보에 걷코 기여하 지 않을 것 같다. 수학은 어두움 속을 더듬을 운명이 킬는지도 모론다. 수학은 이재 거의 전적으로 자체로서 완비된 (se lf -con t a i ned) 기업이다. 수 학은 당면 관십사와 뛰어남에 대한 자신의 기준이 결정한 방향으로 웅 직이면서, 외부로부터의 문재 • 동기 • 영감으로부터의 독립울 자랑하기 조차 한다. 그것에게는 더 이상 일관성과 목적이 없다. 오늘날 대부분의 수학자들의 고립은 많은이유로 보아 한단할 만하다 . 수학의 과학적 • 기술적 이용은 거대한 비운로 증가하고 있다. 최근까지 도, 수학은 인간의 지성의 최고의 성취를 나타내고, 경험론에 대한 이
성의 승리를 나타내며, 궁극적으로는 모든 과학 분야가 수학에 기조문 둔 방법론으로 가득차게 뭘 것이라는 데카르트의 견해가 먼지않아 실현 원 듯이 보였다. 그러나 수학적인 접근 방식이 그토록 많은 분야로 퍼 겨나간 바로 그메에, 수학자들은 모서리로 후퇴하였다. 백 년 이상으로 거 슬러 옹- 라가면, 수학과 물리 과학이 친근하게 연관되 어 있 었으나 (물론 꿉 · 라 돈 적인 근 거에서), 그때 이후로 그들은 서로 분리되었고, 우리의 시 대에 그 분리가 두드러지게 되었다. 수학이 자연의 이해와 지매에 공헌 하기 때문에 가치있다는 사실은 이재 찾아볼 수 없다. 현재의 대부분의 수학자 둘 은 그 들 의 과목을 고립시키기를 원하며 단지 멀리 떨어진 연구 만을 재시한다. 과거에 가장 효과적인 주제를 재공하였던, 수학 활동의 고대의 영광된 동기에 애착을 느끼는 자들과, 바람 따라 매 처어 가다 가 그 둘 의 기호에 맞는 것을 연구하는 자들간의 분열이 공표되었다. 어 느미 1 보다도 더 순수한 수학의 새기에 눈이 멀어서 대부분의 수학자들은 자연이라는 게을- 읽으려는 능력과 의지를 잃고 말았다. 그들은 추상대 수학과 위상수학과 감은 분야로, 함수해석학과 같은 추상화와 일반화로, 응용과는 멀리 뗄어전 미분방정식의 촌재성의 증명으로, 사고의 다양한 몸체의 공리화로, 메마론 두뇌의 게임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오직 소수 만이 여전히, 꾹· 히 미분방정식과 그 관련 분야에서 더 구체적인 문재설 해결하려 시도하고 있다. 대부분의 수학자윤이 과학을 버탄 것이 과학에서 수학이 빼앗간 것을 의미하는가? 전혀 그렁지 않다. 소수의 분번이 있는 수학자들은 미래 의 뉴돈, 라갈라스, 해밀돈이 그물이 과거에 해 왔던 것과 똑같이 그들 이 팔요한 수학을 창조할 것 임 을- 알고 있 다. 이 사람들은 수학자로서 촌겅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물리학자이었다. 1957 년에 쿠란트는 멜리히 Franz Rellic h 봅· 우]한 추도문에서, 만악· 현재의 겅향이 계속된다면 미 레의 응용'수학은 문리학자와 공학자에 의해 발전월 것이며, 직업수학 자라는 지위는 새로운 발전과 아무런 관련이 없게 원 것이라고 말하었 다. 쿠란드는 응용이라는 단어에 인용부호를 붙였는데, 그는 그 단어가 실재로는 모든 중요한 수학을 의미하였기 매운이다. 그는 순수수학과 응용수학급 구밀하지 않았다 . 쿠란트의 예 언은 맞아들어 가고 있 다. 수학 사회 는 순수수학에 호의 ;,.-I ·이 기 미 1 문에 , 오늘날의 최 상의 응용에 관한 연구는 전기 공학 • 전산과학 ` ,、 com p u t er scie nce) • 생 뭉학 • 물리 학 • 화학 • 천문학의 과학자웅이 하고 있
다. 걸리버 Gu lli ver 가 라푸타뇨p u t a 에 여행했 을 때 만난 수학자들과 7같 이, 순수주의자들은 대지 위의 공중에 매달려 있는 섭 위에 살고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둘에게 지구 그 자체 위의 사회에 관한 문계문 남겼다. 이 수학자들은 참시 동안 과거의 수학자들이 그 주재에 공급한 분위기 (공기) 속에서 살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진공 속에서 소멀해 갇 운명 이다. 이상주의자는 그가 현실주의자가 아니면 오래 촌속하지 못하고, 현실 , 주의자는 그가 이상주의자가 아니면 오태 존속하지 못한다고 델리렌 드 Talley ra nd 는 말하였 다. 이 것 을 수학에 적 용한다면, 이 말은 실재 문제 문 이상화하고 그것을 추상적으쵸 L 연구하여야 할 필요에 대해서 말하 지 만, 실재를- 무시하는 이상주의자의 활동은 살아남지 못할 것임을 지적 하기도 한다. 수학은 땅 위에 다리를 받치고 서 있지만, 그 머리는 구 샵 속에 있는 것이다. 생명과 활력과 중요성을 수학에 부여하는 것은 구체적인 문제와 추상화의 상호 작용인 것이다. 수학자들은 추상적 사 고라는 구 름 속으로 솟아 운라가는 것을 좋아할지 모르지만, 새와도 갇 이 그 양식을 위해서 대지로 몰아와야 한다. 순수수학자는 후식용 케이 크로 비유될지도 모론다. 그것은 식욕을 만 족 시키고 어느 정도는 어떤 체계에 양분울 공급할지도 모르지만, 그 몸체는 실제 문제라는 기초 양 분인 고기와 감자가 없이 케이크만으로는 살아 남지 못한다. 인위적인 문제에 너무 많은 관십을 기울이는 데에 위협이 있다. 만약 현재의 순수수학에 대한 강조가 계속된다면, 비 록 이 름은 같더라도 미 태의 수학은 과거에 가치있던 그러한 과목이 아닐 것이다. 수학은 놀라 운 창조이지만, 그 놀라움은 복잡하고 수수께끼 갇이 보이는 자연 현상 올 이해할 수 있는 모형으로 만들고. 그럼으로써 인간윤 계몽하고 인간 에게 힘을 주는 인간 정신에 있다. 그렇지만, 자신의 진로를 선택하는 데 개개인은 자유로워야 한다. 호 . 우머 Homer 는 《오딧세이》 Od y ssey 에서 ‘‘서로 다른 사람 들 이 서로 다른 완동에서 기쁨을 얻는다”고 하였으며, 호우머 다음 세기의 시인 아킬로 쿠스 Arch i lochus 는 개개인은 각자의 길 속에서 기쁨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괴테 Goe t he 도 갇은 생각울 나타냈다. 자기의 관십을 끌고. 자 기에게 줄거옹을 주며, 자기에게 유용할 듯이 보이는 것에 종사할 자유 가 개인에게 남겨쳐 있다.” 그러나 괴테는 덧붙이기을 '‘인류의 참된 연 구 대상은 인간이다.” 우리의 목적 대로 바꾸어 망한다구 수학자 본연의
연구 대상은 자연이다. 메이컨이 그의 《새 도구》에서 언급한 대로 실 제적이고 타당한 과학의 목적은 새로운 발명과 재물로 인간 생활을 풍 족하게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분석하건대, 건전한 판단은 어떤 연구가 추구될 가치가 있는가를 걷정해야 한다. 수학적 세계가 관십을 갖는 것은 순수과학과 응용수학 사이의 구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건전한 목저으로 연구되는 · 수학과 개인적 목표와 변덕운 만족시키는 수학 사이의, 목적 있는 수학 과 목적 없는 수학 사이의,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 수학 사이의, 활력 있는 수학과 환력 없는 수학 사이의 구벌에 있는 것이다.
14 수학은 어디로 가는 것인가? 하찮은 그대, 무력한 이성이여 ! ―파스칼 Pascal 건전한 수학은 무엇인가, 새로운 수학의 창조물 추구할 때 어떠한 기 초를 채덱해야하는가를 결정하려는 시도에서 수학자들이 당면하였던 혼 란이 계속적으로 증대되어 온 데 대한 우리들의 간 논의는 현재의 곤경 올 알려준다. 수학자들이 그들의 업적에서 얻어냈던 단 하나의 위안, 죽 수학이 눈라울 정도로 유효하게 자연과학에 적용된다는 사실마처 머 이 상 위안이 될 수 없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대부분의 수학자들이 응용 윤 포기하였기 매문이다. 그둘이 처한 이윤배반에 대하여, 또한 그둘 이 기대할 수 있는 것에 대하여 수학자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 것 인가? 수학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러면 우선, 어떻게 해서 수학이 지금과 7같 은 궁지에 몰리게 되었으 며, 그 근본적인 문제접둘이 바로 어떤 것둘인가를 다시 살펴보기로 하 자. 수학을 멘 처음 만들기 시작했던 이집트와 바빌로니아 수학자둘은 그들이 어떠한 종류의 구조를 세우게 길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마 라서 그들은 십오한 기초를 다지지 못했다. 지표 위에 직접 지은 셉이 다. 당시에는 땅은 안전한 기초가 되는 것처럼 보였고, 건설을 하기 시 작할 때 사용한 재 료둘, 죽 수나 도형 들에 관한 사실들은 단순히 땅으 로부터 얻윤 수 있는 겅협둘로부터 나왔다. 수학의 이러한 역사적 기원
은· 우리 가 아직 도 계 속하여 쓰고 있는 geo metr y (기 하학) 라는 말이 땅을 잰다 (the measurement of land) 는 의 미 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잘 나 타나고 있다 .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땅 위로 솟아오르게 되자 혼들리기 시작했고, 그보다 더 높이 세우려 했다가는 아주 위험한 사대가 일어날 것이 명백 하게 되었다. 고대의 그리스인 들 은 이러한 위험을 알아차렀을 분만 아 니라 팔요한 재건 축을 시도했다. 그 들 은 두 가지 수단을 택했다. 그 첫 께 수단은. 단단한 땅의 띠 를 골라내어 그에 따라 벼운 쌓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이었다. 이러한 며 둘 은 공간과 자연수에 관한 자명한 전리들이 었다. 그 두번째 수단은, 구조의 들 에 철근을 넣는 일이었다. 그 철근은 구조에 새로운 것을 첨가시킬 매의 연역적 증명이었다. 그리스 시대의 수학의 발전에 관한 한, 주로 유클리드 기하학으로. 이 루 어진 그 구조는 안정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러다가 한 가지 결정 이 나타나게 되었다. 즉 , 민변 과 높이가 1 단위인 이등면 직각삼각형 의 빗변 의 길이가 ✓ 2 단위가 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리스인 둘이 인정하고 있던 수는 보몽 정수들만이었기 메문에 ✓ z 와 갈은 실 체 는 받아둘일 수가 없었다. 그 들 은 이러한 무리수” 를 추방합으로씨 그. 딜레 머 룹 해결할 수 있었는데, 동시에 선분에 길이라는 수치를 부여 하는 것이나, 면적 • 체적 둥의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자연 수 의 법위와 기하학에 동합컬 수 있는 것들올 넘어서는 산수나 대 수학을 더 이상 발전시킬 수가 없었다. 묵 히, 아르키메데스와 갇은 알렉 산드리아 시대의 및몇 그리스 수학자들이 무리수를 써서 계산을 했다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이것 들 은 수학의 논리저인 구조 속으로 동합 되어지지는 못했다. 인도인과 아갑인들은 안정성에 관한 고려는 거의 없이 수학의 구조에 재로 및 충옹 더 쌓아올렸다. 무엇보다도 먼처, 기원 우:. 600 년 경에 인 도인들은옹수를 도입했다. 그리고 나서, 그리스인문보다는 덜 까다로웠 던 인도인과 아랍인 들 은 무리수를 도입했을 분만 아니라, 무리수의 연산 규칙까지도 개발했다. 그리스, 인도, 아랍의 수학을 물려받았던 르네상 스 시대의 유럽인둘은 멘 처음-에는 이러한 이질저인 요소둡웁 받아듄이 기운 주저하였다. 그러나, 과학으로부터의 요구가 우새해져서 유럽인들 각 : - 수학의 논리적 전전성에 대한 집착을 극 복 할 수가 있었다. 수에 관한 수학웅 확대합으로씨 인도인, 아랍인, 유럽인윤은 숭 위에
또 충을 쌍아 올라갔다. 즉, 복소수, 더 많은 대수학, 미적분학, 미분 방정식, 미분기하학과 그밖의 많은 과목들이다. 그러나, 철근 을 사용하 는 대신에 칙관과 물리적 논법으로 구성된 나무기둥과 들보 를 사용하였 던 샘이다. 그러나, 이러한 나무기둥과 나무 들 보는 무게 를 이기지 못해 서 벽에 군연이 생기기 시작했다. I800 년 경까지는, 구조는 또 다시 위 험에 처하게 되어서, 수학자들은 나무를 철근으로 교환하는 것 을 서두 르게 되었다. 상부구조가 강화되는동안에, 그리스인들이 선댁한 공리 들 로 된 기초 가 벼 믿에서 가라앉았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탄생은 유 쿨 리 드 기하 학의 공리들이 참되고 단단한 기반이 되지 못하고, 단지 겉으 로 보기에 그걸길게 보였을 뿐이라는 것을 밝혀주었다. 미유 큘 리드 기하학 들 의 공리 들조차도 확실한 기반이 되지 못했다. 수학자 들 에 의해서 자연의 실체 라고 받아둘-여졌던 것 들 조차도, 그 들 의 정신이 이러한 인식을 확실히 지 지해 주는 것으로 믿어 왔었으나, 믿을 수 없는 감각 자료 (sense da ta)라 는 것이 밝혀졌다. 이러한 문제거리에 더하여, 새로운 대수의 창조는 수학자들로 하여금 수의 성질들이 기하학의 성질들과 마찬가지로 현실 에 확실한 근거를 두고 있지 않다는 사실울 깨닫게 하였다 . 그리하여 수 학의 전반적 구조인 기하학, 산수와 그것의 확장인 대수학과 해석학은 아주 위협한 지경에 마지고 말았다. 이제는 아주 높게 세워진 빌딩이 무너지고 진창과 7같 은 곤경에 마지게 되었다. 수학의 구조윤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조치가 요구되었고. 수학자둘은 거기에 도전했다. 수학의 근거를 두어야 할 어떤 단단한 지 반도 없다는 것이 확실했다 . 왜냐 하면 겉으로는 단단해 보이는 지반도 실재로는 그렇지 못합이 밝혀졌기 때문아다. 그러나, 아마도 다몬 종류 의 견고한 기초룹 세웅으로씨 수학의 구조를 안정시킬 수 있을 것 같았 다. 이러한 기초는 명확한 말로 된 정의들과, 완벽한 공리들의 집합. 그리고 직관적으로는 아무리 당연하게 보이는 것이라 할지라도 모든 결 과들을 명백하게 증명하는 것들로 이루어쳐야 할 것이다. 더구나, 진리 성 대신에 논리져 무모순성이 있어야 했다. 모든 정리둘이 아주 조심스 럽게 짜여침으로써 전체 구조가 몬돈해지도록 되어야 했다 (7 장). I9 세 기 말엽의 공리주의 환동을 동하여 수학자들은 겉보기에는 수학의 구조 룹 견고하게 만든 것처럽 보였다. 그리하여, 수학은 현실에서의 근거는: 잃었지만, 수학사에서의 또 다론 위기는 해걷되었다.
불행하게도, 새 로운 구조의 기초를 다지는 대 쓰였단 시맨트가 적절 하게 궁지 않았다. 그 무모순성 이 건축가에 의 하여 보층되 지 을 않았고, 집합 론의 0~ 리 들- 이 나다나자 수학자둘은 찬씬 더 십각한 위기가 그를의 수공예품을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 불론 , 그둡은 수 새기 동 안의 노력이 물거품 이 되는 것을 수수방관하려 하지는 않았다. 무모순성은 추론을 위해서 선택된 근거둘에 의존하는 것이므로, 분명히 수학의 전체적 인 기조를- 다시 재 건 하면 충분할 것으로 보였다. 재건된 수학의 군거가 되는 논리적 및 수학적 공리들은 강화되어야만 ·셨 다. 그 리하여, 수학자들은 땅을 더 깊이 파기로 결정 · 겠다. 불행 하게도, 그 들 은 어디에다 연마만큼이나 기 초를 더 다져야 하는가에 대하여 의견이 일 치하지 않았고, 그리하여 각자는 자신이 견고성을 확실히 할 수 있으리 라 주장하면서, 자기 나 룹 대로 제전 설을 시도랬다. 그 질과 나타난 구 조는 먼로 높지도 않고 기초도 돈돈 하지 못했으며, 모양없이 퍼졌었고 불안장섰다 . 전물의 각 날개들은 수학의 유일한 정전이라고 주장되었는 데, 그 각각은 수학적 사고의 주옥으로 알려진 것들윤 수용하고 있었다. 우리 모 두는 어렀 을 때, 일곱밍의 장님과 교끼리에 관한 이야기를 읽 었 운 줄로 안다 . 각자는 코끼리의 몸의 다론 부분윤 만져 보고는 코끼 리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제 나 름 대로의 걷론을 내란다. 이와 마찬가지 로, 수학은 아마도 코끼리보다는 천씬 더 우아한 구조문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제각기 다론 관점에서 수학울 고찰한 기조론자 들 에게는 서로 다 은 지식의 체계로 보이는 것이다. 그리하여 수학은, 과연 무엇 이 수학을 적진하게 나타낸 수 있는가에 내해서 사람마다 서로 상반되는 견해들을 가지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죽 , 이 간은 견해는 논리주의, 직관주의, 형식주의, 그리고 집합몬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이 둥 각 학파 안에서도 다소 서로 의견이 엇갈리는 겅우가 있다. 그리하여, 직관주의자을은 무엇을 근본적이고 확실안 직 관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서로 달랐다 . 죽 정수만윤 받아등인 것인 지 아니면 어 떤 무리수까지 받아들일 것인지, 배중·문의 법칙을 유한집 합에만 적용할 것인지 또는 가부만집합까지 적용할 것인지, 또 그밖에 구성적 방법의 개념에 대해서도 달랐다. 논리주의자등은 오로지 논리에 만의존했지만, 환원 ·선 출·무한동의 공리움에 관하여 아직도불안운 가지고 있다. 집합본자들은(선 출 공리와 연속체 가선운 그 군 이 받아 윤 이느냐 · 아니냐에 따라) 여러 가지 다론 방향 중 어느 쪽으로도 나아갈 + 있나.
형석주의자들조차도 여러 가지 킬을 따를수있다. 무모순성 운 확립하는 · 데 쓰여져야만 할 초수학의 원리들에 관하여 서로 다 몬 견해 들 이 있다. 인버트가 주장한 유한의 원리는 (일계의) 술어논리외 완전성을 층명하는 데조차도 충분치 못하며, 또한 일버트의 형식적 수학 제계의 무모 순 성을 ~ 확립 하는 데 충분치 못하다는 것 이 확실하다. 마라서 미 유한적 인 방법 이 사용되어 오고 있다 (12 장). 더 나아가서 힐버트가 설정한 재한 안에서. 괴델은 임의의 의미있는 형식 체계도 미결정적 명제, 즉 · 공리 들 과 독립 인 명제들을 가진다는 것을 보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명재, 또는 그것 의 부정윤 새로운 또 하나의 공리로 받아들일 수가 있다. 그러나 이멍 게 선덱하고 난 뒤에도, 괴델의 결과에 마르면. 이 확장된 체계는 역시 결정할 수 없는 명제둘을 가지고, 따라서 또 다른 선덱이 가능해진다. 실재로, 이러한 과정은 끝없이 계속된다. 논리주의자, 형식주의자, 집합론자들은 모두 공리적인 기초에 의존하 · 고 있다. 금세기 초 및 십년 동안에는 이러한 유형의 기초가 그 위에다 수학을- 세울 선덱도J. 기조로서 환영받았다. 그러나 괴벨의 정리는 어떠 한 공리계도 어느 한 구조에 속하는 모든 사실들을 포합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보였고, 되벤하임-스콜렙 정리는 각 공리계는 의도된 것보다 더 많은 것 을- 포항한다는 사실을 보었 다. 오직 직 관 주 의 자윤만이 공리 적 인 . 접근법에 의해서 재기된 문재들에 대해서 무관십할 수 있었다. 어떤 기조가 최선의 것이냐에 관한 모든 불일치와 모든 불확실성을 극복하더라도 무모순성의 증명을 모두 다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다모큘 · 레스 Dnmocles 의 칼처럼 수학자들의 머리 위에 걸리 있다. 어떠한 철학 운 수학자윤이 재 r식 한다고 하미라도, 모순에 도달할 위험성은 항상 있 는 것이다. 수학에 관한 여 러 가지 상반된 접 근 방식 으로부터 나타난 주요한 시 _ 실은 수학은 몸체가 하나인 것이 아니라 여러 개가 있다는 것이다. 수학 (mnth e mnti cs ) 이 라는 단어 는 복수의 개 념 으로 이 해 되 어 야 하며 . 아마도 단수형 ma th ema ti c 는 어느 한 가지 접근 방식에 대하여 써야만 할 것이 다. 한 매 질학자 산타야나 George Snnta yn nn 는 신은 없으며 , 마리 아가 신의 어머니이다”라고 말한 저이 있다. 오늘날에 있어서는 사람들은 다 옵과 갇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수학. • 의 몸체는 없으며 그리 스인들이 그 창시 자이 다. ” 실제 로, 수학자들이 오 늘날 선택할 수 있는 다양성온 셸리 Shelle y의 싯귀에 찰 나타나 있다:.
••• 여기 이 망망하고 거찬 우 주 상라만상의 무한한 공간에 솟 아오 르 는 환상의 휘청거럼이여 ! 분밍히, 가 까운 장래까지는 불림없 이, 참된 수학으로의 바람직한 접근 법에 관한 기준도 없이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무엇 이 옳은 수학인가-또는, 적어도 수학이 나아가야 할 참된 방 항은 무엇인가 -에 관한 서로 다론 견해둘을 조정하기 위해서는 수학 자들이 서로 다 론 견해들을 갖게 되는 문재정 (i ssue) 들을 먼저 인석해야 한다. 근본적 인 문제접은 증명이 무엇인가에 있다. 주로, 이 문제접에 관한 견해의 차이로 인하여, 정동적인 수학은 무엇인가에 관한 견해의 차이가 나 타 난다. 수학적 증명이란 명백하고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항상 간주되야 왔다. 바르게 말하면, 수 세기 동안 이것이 무시되어 온 뒤에 (5-8 장). 수학자등은 대체로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개념은 이 재 생겨났 고. 수학자들이 다소간 성실하게 신봉하고 있던 전형적 기준아 되어 왔다. 무엇이 증명에 대한 관십과 십지어는 이해 충돌까지도 야가 시컸는가? 논리에 대한 고전적 견해, 죽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 성 문화된 논리의 원리들이 철대적인 진리라는 견해는 2 천 여년 동안이나 받아 들 여져 왔다. 이에 대한 확신은, 오랜 동안의 믿을만해 보이던 용 법 (usa g e) 에 의해서 지지되어 왔다. 그러나, 수학자들은 이러한 논리의 원리들이 유클리드 기하학의 공리둥과 마찬가지로 경험으로부더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따라서, 건전한 원리가 무엇인가에 관한 일종의 의혹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직관주의자들은 매중 문 을 적용하는데 제한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느꼈다. 만약 과거에 논 리의 원리들이 불변의 것이라는 것이 증명되지 않았었다면, 어영계 우 리가 현재 받아들이고 있는 원리들이 미래에도 그러하리라는 것윤 알 수가 있을 것인가? 증명에 관한 두번째 문재접은 논리주의 학파가 생겨났을 때 나타났는 · 데, 논리의 원리들이 무엇듐로 구성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럿센과 화이트헤드는 《수학 원리〉〉의 초판에서 무한공리와 선출공리를 주저없이 도입했지만, 뒤에 이를 분명히 철회랬는데, 논리의 주된 원리듐이 절 대적 진리가 아님을 인정했을 분만 아니라, 이들 두 공리가 논리의 공
리가 인 수 없음을 인정했다. 《수학 원리〉〉의 제 2 판에서는, 이들 공리 둘은 처음에 연거되지는 않았고, 어떤 정리들울 증명하는 데 팔요한 겅 우 이 공리들을 사용할 매에는 목밀히 명시하여 놓았다. 무엇이 논리의 원리로 받아들여지는가에 관한 견해 차이 외에도, 어 느 정도까지 논리 자체 를 사용할 수 있는가에 관한 견해 차이도 있다. 우리가 알다시피 그들의 주장은 논리는 수학 전체물 위하여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형 식 주의 자둘은 논리 자체 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고, 수학을 구성하기 위하여는 논리의 공리들에다 수학의 공리들을 첨가시키야만 한다고 믿는다 . 집합론자 들은 논리의 원리둥에 관하여는 다소 무관심하 며, 어떤 이는 그들을 명확히 밝히지도 않는다. 직관주의자둘은 원칙상 논리와는 무관하다. 또 다론 문제접은 촌재의 개념이다. 예 를 둘면, 모든 다항방정식은 저어도 하나의 근을 가진다는 증명은 한 촌재 정리가 된다. 무모순이기 만 하다면 어떠한 증명도 논리주의자, 형석주의자, 집합론자들은 받아 둘 인다. 그러나, 어떤 증명이 매중문을 쓰지 않았더라도, 증명 자재는 촌재하는 대상을 계산하는 데 아무런 방법도 재공하지 못하는 수 있다 . 마라서 이와같은 존재 증명둘을 직관주의자둘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직 관주의자들은 초한기수와 초한서수를 받아둘이려 하지 않았는데――그 이유는, 이들이 사람의 직관으로 분명하지가 않고, 직관주의자들이 생각 하는 구성 가능성과 계산 가능성이라는 의미로는 구성할 수 없다는 것 매문이었다-이것은 무엇이 존재룹 구성하는가에 대한 서로 다몬 기 준의 한가지 예가 된다. 어떤 방정식의 근과 같은 개벌적인 실재 뿐만 아니라, 수학 전체가 어떤 의미로 존재하는가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정 이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이 장의 뒷 부분에서 더 이야기하려 한다. 참된 수학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관십은 또한 다른 근원으로부터도 나 온다. 무엇이 받아들일만한 수학적 공리인가? 묵출한 예의 하나는 선 춘-공리을 씁 수 있는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수학자들은 만레 머의 절정에 놓이게 된다. 선출공리를 사용하지 않거나 이것을 부인하 는 것은, 수학의 커다란 부분을 버리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 선출공 리윤 사용한다는 것은 우리가 알다시피 역리 분만 아니라 직관적으로도 · 이치에 닿지 않는 건온을 이끌어내게 되고 만다 (12 장). 수학의 전반적인 이상을 손상시키는 것은 수학자들이 수학의 무모순 성운 층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역리들은 예상치도 않던 곳에서 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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났다. 수학자들은 다소간 받아들여질 수 있는 형태로 해결하여 왔지만, 새로운 역리들이 또 발견월지도 모른다는 위험은 몇몇 수학자들로하여 금 수학을 엄밀화하려는 업청난 노력에 내하여 회의를 품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수학이 유일하고 엄밀한 논리적 구조가 아니라면, 수학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수학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적용하 려 하고 적용할 수 있는 논리에 의해서, 엄격히 걸러지고 정제되고 조 직된 훌융 한 직관들 의 연캐이다. 수학자들이 수학의 개념들을 더욱 머 정확히, 연역적 구조문 더욱 더 체계화하려 하면 할수록, 더 복잡해지 는 것이 바로 이 직관듄이다. 그러나 수학은 인간의 감각기관 • 두뇌 • 외부 세계 둥의 산 물 이라 할 수 있는 어떤 직관들에 의존하고 있다. 수 학은 인간이 건설한 것이며, 그것의 절대적인 근거를 찾아내려고 하는 어떠한 노력도 실패하고야 말 것으로 보인다. 수학은 : 용융한 칙관들이 계속 발달함으로써 말미암아 성장하며, 그리 고 이러한 과정은 한 단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증명이 그 시대에 받 아들여질 수 있는 수준에 오를 때까지는 계속적으로 빠뜨란 것과 잘못 된 것들을 계속해서 수정해 나감으로써 나중에야 확립된다. 어떠한 증 명도 최종적인 것은 아니다. 새로운 반례들은 이전의 증명들을 뒤엎어 놓는다. 그리고 나면, 그 증명들은 고치지고, 다시 영원히 증명된 것으 로 착각된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그 증명을 엄격하게 검증할 만한 시 기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할 분이라는 것을, 역사는 밝혀 주고 있다 . 이러한 김중은 혼히 고의로 지연된다 . 오류를 발견해 내는 것이 잉광도 아닐 분만 아니라. 어떤 정리의 증명에 의문윤 가질 이유 가 있는 수학자들도 그 자신의 연구를 위해서 이 정리를 인용하고자 할 수도 있다. 수학자들은 현촌하는 전과들에서 홈을 찾기보다는 자기 자 신의 정리을 만드는 데 훤씬 머 많은 관십운 쏟고 있다. 및몇 학카들은 수학을 인간의 논리의 한계 안에 넣으려고 노려해 왔 다. 그러나 칙관은 논리 속으로 들어가기물 거부했다. 수학이 돈는한 기초 위에서 세워진 안정되고 의십의 여지와 오류가 없는 제게이어야 한다는 관념은, 뭉본 유클리드의 업적으로 구체화된 그리스인문의 이상 으로부터 나타난 것이다 . 이 이상은 2 천년 이 상 수학자들의 사고읍 이 끌어 왔다. 그러나 분명히 수학자둘은 바로 이 악의 천재 (ev i l ge niu ~ ) 유클리드에 의해서 잘못 인도되어 왔다. 실재로 수학자들은 보동 생각하는 정도로 업일한 증명에 의존하지는
않는다. 그의 창조물둘은 그에게는 어떠한 형식화보다도 선 행 하는 의미 ! 룹 가지며, 그 의미가 그 강조물에게 사실 그 자체로 ( ip so fa c t o) 존재오卜 실체를 부여한다. 공리적 구조로부터 그 결과 를 끌어냄으로씨 그 결과 · 의 정 확한 겅 계 (mete s and bounds) 룹 걷 정 하려 는 노 력 은 어 느 정 도 도움 이 되겠지만 실재로 그 걸과의 지위룹 향상시키는 것은 아니다. 직관은 논리보다 더 만 족 스럽고 oJ :,심할 수 있는 것 일 수도 있다. 어 째서 어떤 걷과가 성립해야만 하는가 를 자기 스스 로 에 개 웅 어 봅 매, 그 수학자가 갖는 해답은 어떤 직관적 이해이다. 실재 로 , 그 질과가 직관 적인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면, 엄밀한 증명도 그에게는 아 무란 의미가 없다. 직관적인 의미를 가지지 않을 때, 그는 그 증 명을- 매우 비판적으 로 검토할 것이다. 또, 그 증명이 옳아 보이면, 그는 자기 직관의 어디 가 잘못되었는지를 알기 위해서 연십히 노력할 것이다. 수학자 들 은 삼 단논법의 연쇄가 성공·하는 내면적인 이유를 알고 싶어한다. 프 앙카레는 다소 간 논법으로 간단하고 두럿한 견과 를 이꾼어 낼 때, 그 걷과 전 체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주된 요정을 미리 예견할 수 있었다는 것을 보 여 주기까지는 우리는 만 족 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랬다. 많은 수학자들이 직관에 낀싼 더 의촌해 왔다. 철 학자 쇼 펜 하우어는 이러한 대도를 다옵과 갇이 표현했다. 수학에서의 방법 을 개선하기 위 해서는, 직관적 지식보다 증명된 사실이 더 우위에 있다고 믿는 선입.:;iJ:. 윤 버리는 것이 무엇보다도 요구원 것이 팔요하다.” 파스 칼 은 기하학적 정 신 (csp , · it de g eome t r i c) 과 성 세 의 정 신 (esp r it de fi nesse) 이 라는 말을 만· 들어냈다. 파스칸의 기하학적 정신은 강력한 논리적 추론으로 나타내어 지는 것과 갇은 정신의 힘과 업정합을 의미했다. 또, 성세의 정신은, 더 깊고 동찰력 있게 볼 수 있는 능력인 폭넓은정신윤 의미했다. 파스칼에 게는, 과학에 있어서조차도 성세의 정신은 논리 를 넘어서고 또 논리오) 는 미교한 수 없는 사고의 수준이었다. 심지어는 이성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것이지만 사실인 것도 있다. 오래 전에 다론 수학자둘도 직관저 확신이 논리 를 농가하는 것은 아 치 햇빛의 맑음이 어슴프레한 달빛을 능가하는 것과 갇다고 말했다. 대 카르트는 기본적인 직관에 의존했는데, 논리에 관해서 다옵과 감이 말 랬다: 논리에 관해서 말하자면, 그 삼단논법들과 그 원칙들의 대다수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서로 주고 받거나 ••• 모르고 있는 사실에 대하여 판단하지 않고 이야기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
다.” 그러나, 그는 직관을 연역적 추론으로 보충하려 했다 (2 장). 위대한 수학자둘은 논리적 증명이 구성되기도 전에 어떤 정리가 성립 ; 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며, 그들은 때때로 증명 방식을 지적하는 것만으느 로도 만족한다. 실재 로, 페 르마는 정 수론에 관한 그의 방대 한 고전적 업적에서, 뉴돈은 삼차곡선에 관한 그의 업적에서. 증명의 방법조차 재 · 시하지 않았다. 확실히 수학적 창조는, 엄밀한 증명을 할 수 있는 눙력 보다는 차라리 직관릭이 뛰어난 사람 들 에 의해서 그 대부분이 이루어졌 다. 증명의 개념은, 일반인들의 생각이나 수학자들이 쓴 굳에서는 어럼풋 壘 이 크게 나타나는 것처럼. 흔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그러한 역할을 해 오지 않았다. 수학에 관한 상반된 철학들은 증명에 관한 자신의 기준을 고집하고 있으며, 이같은 철학들의 운현은 증명의 가치에 대한 많은 화 의 품 조장시컸다 . 그리하여, 여러 가지 철학이 정립되고 그 상반된 견 해 를 이 널리 알려지기도 전에 증명의 개념에 관한 공격이 나타나기 시 작랬다. 1928 년까지 거숟러울라가면, 하디는 그가 항상 그렇듯이 무뚝 7 뚝하게 다움과 같이 말했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수학적 층밍과 감은 것은 없다; ... 마지막 분석에서, 우 리는 지저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 증명듄은 리윤우드 L itt lewood 와 니 1 가 기긴 1 (g as) 라고 부르는 것인데, 십리어] 영향윤 주기 위해서 고안된 수사학적 문구윤이머, 강의할 때 칠판에 그려지는 그립듄이며, 학생운 의 상상력 윤 자국시 키 는 고안울둥이 다. 하디에게 있어서, 증명이란 수학적 구조를 떠받치는 기둥이라기보다는 수학의 겉모습이었다. 1944 년에 미 국의 저 명 한 수학자 와일 더 Ray m ond L. W ild er 는 증명 의 지위를 져하하는 것을 오히려 정당화랬다. 그는 말하기를, 증명이란 다 음의 것에 불과하다 : 우리의 직관의 소산물윤 검사하는 것 ••• 분명히 우리는, 시대와는 관계 없는 어떠한 증명의 기준도, 층명되어야 할 것도, 증명운 하는 사랍이나 학파도 가 지고 있지 않으며, 아마도 걷코 가지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수 있는 현명한 일은, 대중들이야 어멍게 생각하든지 간에, 수학에 있어서는 안 반져으로 철대저 인 진리 (종명] 감은 것은 없다는 것윤 인정하는 일이라고 생, 각된다.
증명 의 가치 에 관하여 화이 트해 드는 불밀성 im morta lity 이 라는 재 목 .’ 의 강연에서 공격하였다: 전론은, 사고의 발전에 대한 적철한 해석으로 생각한 수 있는 것인 논리가 가 짜라는 것이다. 이것은 화려한 도구이다. 하지만 상식의 배겅윤 판요로 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천학적 사고의 최종적 견해는 목 수한 과학등의 기 초윤 형성하는 엄격한 진 순을-에 근거윤 물 수 없다는 것이다. 업져성은 속임 수이다. 증명 , 절 대 적 엄 격 성 동과 갇은 동류둘은 도깨 비 불 (wi ll-o ' -th e wi sp ) 들이고, 수학적 새겨 1 속에 자연적인 서식처 를 갖지 못한 이상적 개념 둘이다. 업일성의 엄밀한 정의는 없다. 그 시대의 지도적인 전문가둘의 보증을 얻거나 그 당시에 유행하는 원리들만을 사용했다면 증명은 받아 들여진다. 그러나 오늘 날 에 어떠한 보편적으로 받아 들여지는 기준은 없 다· 오눈날은 수학적 엉밀성을 위하여는 최상의 시대는 아니다. 분명 · 히, 이전에는 받아들여지던 수학의 양상인, 명확한 공리들로부터 나온 의십할 나위없는 증명둘이, 이재는 한물 간 것처럼 보인다. 논리는 인 간의 사고를 제한시키는 모돈 오류와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수학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기본적 가정둘을, 인식하지조차 못한 재로. 습관적으로 하고 있는가에 눈-라게 된다. 철학자 니체 N i e t zsche 는 농담은 감정의 비문이다라고 말하였다. 낙 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수학자들은 수학의 논리에 관하여 농담을 하였 다. 논리져 증명의 미덕은 믿도록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의십을 불러일으키는 데 있다. 증명은 우리 들 로 하여금 우리의 의십을 어디에 집중시켜야 할지문 알으켜 준다.” 수학적 증명을 촌경하되 의십하라 (re sp ec t but susp ec t) . “우리 는 더 이 상 논리 적 이 기 률 회 망하지 못한다; 우리가 회망한 수 있는 최선의 것은 미논리적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다. ” 더 강력 해 질수록 먼 엄 밀해 진다 (more vig o r and less rig o r). 직 관주 의 자였 던 수학자 로뱃 구 Henri Lebesg u e 는 1928 년에 다움과 갈이 말했 다. 논리는 우리로 하여금 어떤 증명둘을 거부하게 만둘 수는 있으나. 논리가 우리로 하여금 어떠한 증명이라도 믿게 만들 수는 없다.” l94l 년에 쓴 굴에서 그는, 논리가 환산운 하도목 하거나 신뢰를 얻도목 하 는 데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고 닷붙였다. 우리는 우리의 직관과 일치하 는 것을 믿는다. 르뱃구는 우리 가 수학에 관해서 더 많이 배울수 록 이 칙관이 미 복잡해진다는 것을 인정랬다.
럿셀조차도, 자신이 논리주의의 프로그램윤 세웠옵-에도 불구하고, 논 리에 대해서 동렬하게 미판하기물 거리끼지 않았다. 《수학의 원리》 (1903) 에서, 그는 증명된 전과에 대해서 어 느 정도 의십이 가게 하는 것은 증명의 주된 장접들 중의 하나아다”라고 말했다. 그는 도 . 같은 채에서, 질과들 이 역 리의 발견에 의하여 반층원 수는 있지만 걷코 증명원 수는 없다는 사실은 , 우정의 개념 물-과 원 초적 인 멍재설-의 체계 위에 수학의 근거 를 두려는 시도의 성격 자재로부터 나온다라고 말했다. 결국에 가 서는 모든 것은· 직접적인 지각에 딸려 있다. 약간 뒤인 1906 년의 업적 , 에서 당시의 역리들로 혼란도J 가운데 그는 그 뒤에 말했던 것보다 더 전설되게 말했 다. 역리들이 그 당시의 논 리적 증명은 절 대로 옳은 것은 . 아님 홈 보였을 때 그는 말했다. 마치 찬문학에서 그러하듯이 불확실성 의 요소가 항상 남아 있기 마련이다. 시간이 지남에 마라 현격하게 줄 · 어를낀 하지만; 철대로 오류가 없다는 것이 잉원할 수는 없다.” 증명에 관한 이러한 조롱에 덧붙여, 수학의 논리에 관한 지도적 학자 포커 Karl Po pp er 의 말융 둘어보자: 증명을 이해하는 데 세 단계가 있 다. 가장 낮은 단계는 그 논법을 이해했다는 줄 거운 느낌이고; 두번째 단계는 이것을 반복할 수 있는 농릭이고; 세번째 가장 높은 단계는 이 . 논증을 반박할 수 있는 능 력 이다.” 엄밀성에 관한 수학자들의 관십운 겅년있단 해미사이드의 반론은 다 . 소 미꼬는 두 이다. 논리는 무적이다. 왜냐 하면, 논리를 져파하기 위해 서 논리 를 써 야만 하기 때 문이 다 . 세 계 의 수학의 중십 이 었 던 괴 덩 겐 대 학교의 금세 기 조 사반세 기 동안의 수학과장이 었 던 칼라인 Felix Klein 은. 기조론의 문재들에 주된 관십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여사에 의해 서 최소한 그때까지 확증된 수학의 성장에 관해서 무엇인가을 인식댔 다. 그의 저 서 《고등한 입 장에 서 본 초등수학》 Elementa ry Math emati cs fro m an Advanced Sta ndp oi n t (1908) 에 서 문 라인은 수학의 성 장운 다옵과 갇이 서술했다: 실제로, 수학은 나무처럽 자라왔다. 나무는 아주 작은 우리부더 시각해서 단 순히 위로만 연어옹-라가는 것이 아니라 이 나우의 가지와 잎듄이 위노 얻어 운라가는 것과 동시에 갈은 미운로 무리도 겁김 나 깊게 내란다 .••• 우리가 · 보다시 피 , 수학을 근본적 으로 연구해 보자면, 수학에 는 최 종적 인 꾼이 없으며 •. 또 한편으로는, 첫 시작도 없는 것이다. 다소 다른 것에 관련하여, 프앙카레도 미슷한 견해 읍 나타냈다: 해결된 ..
문제는 아무것도 없다. 그저 다소나마 해결된 문재둘만이 있을 분 이다. 수학자들은 금송아지――엄밀하고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모든 가 능한 세게에서 전리인 증명-을 마치 신인 양 숭배해 왔다. 이재 그 둘은 그것이 가짜 신임을 인식했다. 그러나 진짜 신은 자신을 나타내기 를 거부하고 있다. 그래서 수학자들은 이제 신이 존재하는가 아닌가를 문어 야만 한다. 그 말을 전해 줄 모서 1 Moses 는 아직 도 나타나야만 한다 . 이유룹 물운 만한 이유가 있다. 이들- 수학기조론자들의 뚜럿한 차이정을 더욱 참지 못하는 기조몬의 전전한 비 판자들이 있 다. 라카토스 Imrc Lakato s ( 1922-74) 의 말을 U설 자 면 수학이 궁극적으로 칙관에 의존하고 있다면, 어째서 우리는 더욱 더 깊이 파고 들어가는가? 왜 우리는 좀 더 인찌기 중단하지 않는가? 어째서 “한 방법이 산수에서 받아 문여지는가 아닌가는 궁국적인 검증은 물론 이것이 직관져으로 확신윤 수는가 아닌가 하는 것 이 다”라고 만하지 못하는가 ? ••• 우리 의 궁극적 인'' 직 관·등 을· 인위칙으로 짜 모 ·움으로씨 최근에 찢 겨진 부분윤 눈에 퍼지 않게 다시 기 운 수 있다고 우리 스스로운 속 이는 대신에, 어째서 정직하계 수학의 오 유윤 받아 · 군이지 못하고, 조소적 회의·돈으로부터 잘못된 지식의 권위운 지키리고만 하는가? 증명에 대한 직관의 가치는 한 일화로 잔 서술된다. 어떤 물 리학자가 자기 실험실의 문에 말징을 걷어 놓았다. 이것을 보고 아연실색한 한 방문자가 그에게 이것이 그나 그의 연구에 행운을 가져다 주느냐고 뭉 었다. 아닙니다”라고 그 군리학자는 대답했다• “나는 미신을 믿지 않 습니다. 그항지만 그청개 해 놓는 것이 도웅이 되는 것갇아 보여서요.” 에덩본은 한때 말했다. 증명이란 바로 그 앞에서 수학자들이 자기 자 신을 고문하는 우상이다.” 어째서 그둘은 계속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 인가? 수학에 무모순성이 있는지 더 이상 알지도 못하고 또 묵히 무엇 이 정확한 증명인지 미 이상 의견이 일치하고 있지 않다면, 추론을 강조 하고 있다 하더라도 수학자들이 과연 무엇을 성취할 수 있겠는가 하고 꾼-어보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차라리 엄밀성에 대해서는 무관십하게 되 어 두 손운 들어버리고 , 수학이 기초가 돈돈한 지식 체계라는 것은환상 이라고 말해야만 할 것인가? 연역적 증명을 포기하고 단지 직관적으로 확실한 논증문을 확신하는 것에만 의존할 것인가? 결국 물리과학들은 이러한 논증을 사용하며 그들이 수학을 사용하여야 하는 곳에서조차 수
학자둘의 엄밀성에 관한 열정에 대해서는 먼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엄밀성 을 포기하는 것은 권유한 만한 것이 못된다. 수학이 인간의 사고 에 기여한 것둘옹 알아본 사람이면 누구나 다 증명의 개념을 회생시키 려 하지 않을 것이다. 논리는 부분적 인 역할 밖에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민. o- l· 직관이 주인 이고 논리가 하인이라면, 하인이 주인에게 미치는 어 떤 힘을- 가진 셉이다. 논리는 제멋대로의 직관을 재한한다. 마 복 직관 이 주된 역할윤 하지만. 이것은 너무 일반적인 주장들로 이끌어 갈 수 있다. 적절한 재한 조전들은 논리에 의해서 주어진다. 직관은 방향에 주의를 주지만 논리는 여재력운 가르친다. 논리에의 집착은 많은 가선 둘에 의해서 재한된 긴 주장들에 관련되며, 강력한 직관이 일거에 정복 할 수 있는 것을 논리논 조심스럽게 여리 단계에 걸쳐 많은 정리들과 증 명들이 도달하기룹 혼히 요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직관에 의해 서 정복된 강락한 교두보들은 이 교두보를 포위해서 무너뜨리려는 적의 ·연합군을- 철지 히 소당함으로씨 안전하게 지켜질 수 있다. 직관은 믿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19 세기 대부분을 동해서, 업밀성 의 창시 자인 코우쉬 를- 포함한 수학자둘이 연속함수는 도함수 를 가져 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바이에르쉬트라스는 어느 정에서도 도함수를 가 · 지지 않는 연 속함수를 보임으로써, 수학의 세계를 깜짝 눈라게 만들었 다. 그러한 함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직관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수학직 추론은 직관을 보완해서 확신을 시키거나 수정윤 하도목 하기도 하지 만, 가끔 직 관을 능가하기 도 한다. 수학이 추론을 동해서 얻게 되는 것은 어떤 유추를 씨서 명백히 보일 수도 있다. 어떤 농부가 황패한 땅을 겅작하려고 땅을- 일구는 것윤 상 상해 보자. 그는 땅의 일부분을 일구지만, 이 경작지문 둘러싸고 있는 숲 속에서는 언재 그물 해칠지 모르는 둘짐승들이 살고 있다는 것윤 알 개 된다. 그레서 그는 이 지역운 개간하기로 한다. 그가 여기문 개간하 고 나면 그 동물들은 다론 지역으로 옮겨간다. 그러고 나면 그는 또 동 물들이 옮겨간 지역을 또 개간한다. 그러면 동물둘은 이 새로운 개간지 밖의 다론 지역으로 또 다시 옮겨간다. 이 과정은 무한히 계속된다. 농 부는 더욱 더 많은 땅을 개간해 나가지만 항상 그 변두리에는 짐승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 농부는 무엇운 얻었는가? 개간된 땅이 넓어집에 따 라서 동물들은 더 멀리 쫓겨가고 최소한 그 농부가 개간된 내부에서 일
하는 한에서는 더욱 더 안전하게 된다. 동물들아 항상 거기에 있기 때 문에 언젠가는 농부 를 해치러 운 지는 모르지만 , 그농 부 의 상대적인 안 전성은 그가 더 많은 땅을 개간함에 따라 더욱 더 증가한다. 마 찬가 지 로 우리가 수학의 중심 부분을 사용할수있는 안전성도, 논리가 기 조론 의 문제정들을 하나씩 둘씩 해결해 나감에 따라서 증가하기 마련이다. 바꾸어 말하면, 증명은 우리에게 상대적인 확신을 준다. 우리가 증명하 는 것보다 직관적으로 더 잔 받아 들여질 수 있는 수나 도형에 관한 합 리적으로 건전한 명제들을 근거로 하여 우리가 어떤 정리-건 중 '성 한 메. 그것이 정확하다는 것을 핀씬 더 잔 확신할 수 있다. 와일더의 말로 는 증명은 우리의 직관이 재시한 생각 물- 에게 적용 하는 김사 과정이다. 불행하게도, 한 세대의 증명둘이 다음 세대에서는 오유로 밝혀지 는 일이 있다. 미국의 일류수학자무어 E . H . Moore 는 이미 1903 년에 이 에 관하여 언급했다: 논리와 수학을 포함한 모든 과학이 시대의 함수이 다-이미 성취된 것 분만 아니라 이상으로서의 모 든 과학이 그링다.”. “오늘날까지 충분했던 것은 그 시대에서의 엄밀성이다.” 오 늘날 증명의 , 개념은 자기가 고수하고 있는 학파에도 관계된다. 와일미 자신은, 우리 가 알 수 있는 한 모순을 포함하지 않고 수학적으로 유용한 증명에 대 해서만 만족할 것이다. 예를 들면, 그는 연속체 가설 을 공리로 사용할 · 것이다. 증명의 중요성운 져하시키면서, 그는 여러 학파들의 분인을 비 판했다. 어떤 한 학파가 다돈 학파에 내하여 자기 주장을 하는 것은, 마 치 종교의 광신자들이 자기 종교가 진정한 신을 대표한다고 주장하면서 나머지 다른 교파둘을 배쳐하는 것과 똑감지 않은가? 우리는 이재 절대저인 증명이라든지 보편적으로 받아 블- 여질 수 있는 증명이란 것은 없다는 사실-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직관적 인 근거에서 받아들이는 명재에 대하여 의문을 던진다면, 우리가 이것 을 증명하는 데는 직관적인 근거로 다몬 명제둘을 받아돌일 때에만 가능 하게 된다는 것윤 우리는 안다. 역리나 다론 해결되지 않은 난접둘, 목 · 히 어연 것둘은 논리 그 자체의 영역에 있는 것들에 빠지지 않고는, 이 러한 궁극적인 직관들을 더 이상 탐구해 나갈 수는 없다. 1900 년 경에 유명 한 프랑스 수학자 아다마르 Jac q u es Hadamard 는 말했 다 . 수학적 업 밀성의 목적은 오로지 직관이 정복한 것을 신성화하고 합법화시키기 위 한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어떠한 판단을 받아둘이지 않는다. 바일이 한 말이 더 적절할 것 같다. 논리라는 것은 수학자둘이 그의 생각들을 -
건강하 고 강 력 하게 하기 위해서 실시하는 위생학이다.” 증명은 분명히 한 가지 역 할울 한다. 죽 모 순 의 위 험 을 국소화시켜 준다• 절 대 적 인 증명은 실 체 가 아니라 목표 아며, 추구되어져야 할 목표이지 달 성되 지는 않 을 것 같 은 것임 옹 인정해야 한다. 그것은 계속해서 추구 되지만 잡 윤 수 도 없는 환상에 불과하다 . 이것 을 완전하게 하는 것 을 기대하지는 못 하지만, 우리가 가진 것 을 강화하기 위해서 계속 노력해 야 만 한 다 . 증명 의 역사가 가 져 다 주 는 교 훈 은, 비록- 우리가 달성하지 도 못 할 목 적 을 추 구하고 있지만, 이전에 수학이 가쳐다 주었던 놀란만 한 가치 들을 여전히 제공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면, 수학에 대 한 우 리의 자세 를 재조정하고, 우리가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에도 불구 하고 그 주체 를 추 구하는 데 만 족 하게 될 것이다 . 직 관 이 수 학적 전리 들을 확실하게 하는 데 근본적 인 역 할을 하고, 증 · 명 은 오 직 보조 하는 역할만 을 한다는 인식은, 보다큰의미에서, 확실하 수학은 동그란 원 을 돌 고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 수학은 직관적이 , 고 칭 험적 인 근거로부터 출발 했다 . 증명은 그리스인들의 목표가 되었으 며, 19 새기 이전에는 달성되지 못했지만 19 세기 말까지는 달성 뭘 것같 이 보였다. 그러나 극도로 엄밀성 을 추 구하려는 노력들은, 자기 꼬리 를 불 려고 하는 개처럼, 논리가 논리 를 몰락시키는 난국에 이르게 되었다. 파 스같 이 그의 《수상 록 》에서 말하듯이 , ”이 성 의 마지 막 단계 는 그것 을 넘어서는 무한히 많은 것 들 아 놓여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 ,, 칸트도 역시 이성의 한계 를 안정했다. 그는 《순수 이성 비판》에서 다 옵과 같 이 인정했다: 우리의 이성온 이러한 묵 별한 운명윤 가지고 있다. 이성으로. 알려진 지 시의 한 부 류 에 판하여, 이성온 무시원 수 없는 의문들로 항상거로웅윤 당해 왔다. 그 이유는, 이 의문둘이 바로 이성의 본잘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리고 이 의문둘은 인간의 이성의 능력윤 넘어서는 것이기에 답해진 수도 없는 것이다. 또, 《인생 의 비 극적 의 미 > The Tragi c Sense of Li fe 에 서 우나무노 Mi g· uel de Unnmuno 가 말했듯이, ”이성의 최고의 승리는 그 자신의 타당성 에 대해서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바일은 논리의 역할에 대해서 디 비관적아었다. 1940 년에 그는 우 리의 기질인 바판적인 몽찰력에도 불구하고, 또 그것 때문에, 이 이전
1-4 수학은 어디로 가는 것인가? 377
의 어느 시대보다도 오늘날에 있어서, 수학이 의존하고 있는 궁극적인 기조에 관해서 월씬 얼 확신한다”고 말겠다. 1944 년에 그는 좀 더 자 세히 말했다: 수학의 궁극적인 기초와 궁극적인 으 I 마에 관한 의문들은 미해 진로 남아 있다; 어느 방향에서 이의 최종적인 해진운 발견할 수 있을 것인지 또는 십지어 어 민 최종적인 해답윤 기대할 수 있운 것 인지 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수학화 란 언어 나 옹악과 마찬가지 로 아 주 독창적 인 인간의 창조적 황동 이 라 말할 수 있으며, 인간의 여사적 전성들이 이의 완버하고 객관적인 합리화운 무시한 것 이라 할 수 있다. 바일이 말했돗이, 수학은 사고의 활동이지, 정밀한 지식의 체게는 아 니다. 이러한 사실은 역사직으로 잘 나타나고 있다. 기 초론들의 합리적 인 전선과 재건은 이재 역사의 회화로 보여진다. 가장 국단적인 견해는 처명한 과학 철학자인 포퍼 Karl Po pp er 의 저서 (( 과학져 1살 견의 논리 》 The Log ic o f Scie n ti fic D i sc overy 에서 나타났다. 수 학적 추론은 전코 증명월 수 없으며, 오로지 위조 원 뿐이다. 수학적 증 명-들은 어떤 방법으로도 보증되지 않는다. 더 나은 이론이 없기 때문에 현존하는 이론을 계속 쓰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뉴 돈 의 역학 이 온이 상대성 이돈 이전의 200 년 동안 사용된 것과 감으며, 리만 기하학 이전에는 유클리드 기하학이 사용되었던 것과 같다. 그러나 윤람없 다는 것을 보장할 수는 없다. 고정되고, 객관적이고, 유일한 수학은 없다는 견해를 역사가 지지해 준다. 더구나, 역사로 미우어 봅 매 수학에는 새로운 기초둘을 요구하는 새로운 첨가물들이 디 있게 원 것이다. 이러한 관접에서 볼 때, 수학은 물리과학의 어느 것과도 마찬가지이다. 새로운 관찰이나새로운 실험 결 과가 이전에 확립된 이론과 상반친 매, 현재의 이론이 수정되거나 새로 운 이론이 만둘어지게 된다. 수학적 진리에 대한 시대 를 초월하는 견해 논 불가능하다. 흔들리지 않는 기반 위에 수학을 세우려고 하는 노력은 실패하여 왔다. 유클리드로부터 시작하여 바이에르쉬트라스를 거쳐 현 재의 기초론 학파들에 이르기까지, 확실한 기초를 만들려는 계속적인 시도들은 걷국에 가서는 성공할 것이라 기약하는 어떤 진화론적 발전에 대한 압시도 주지 못한다. 직관과 증명의 역할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오늘날의 수학에 대한 전
망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것은 미래에 내한 모든 의견 등 을C I 번영하지는 않는다. 논리 에 관한 경 우는 부르바키 Ni co las Bourbaki 라는 가밍 으로 저 작 완동윤 하는 수학자 들 의 집단에 의해서 재확인되었다. 《수 학의 기 본》 Elements of Ma t hema ti cs 의 1 권의 서론에서 그 들 은 다음과 같이 말 하였 다: 역 사 적으로 이야기한 때, 군론 수학이 모순이 없다는 말은 분 명히 잔못된 말 이다. 무 모순은 달성하려는 목표로 나타나는 것이지 우리에게 잉원히 신아 부 여 한 자진은 아니다. 오래 전부너 , 전만적으로 수학의 원리곱 개정하거나 또 는 수학의 어떤 분야설- 개정하려는 모돈 미판적인 개정 작업 · 홍 의 다옵-에는 모 순이 나타나서 이것이 해정되어야만 하는 분확신성의 시기가 항성 뒤따 온 다. … 그리하여 이재는 25 세기에 걸쳐서 수학자듄-이 그 둘 의 오 유근 고쳐가는 각 업운 계 속해 오고 있고, 그팅게 합으로씨 그 윤의 과학온 공부해졌지 빈곤해지 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왔다. 이러한 사신은 수 학자 ·근로 하여 급 앞으로의 장 래옵 평온한 마음으 로 봅 수 있게끔 해주었다. 이 같 이 역사에 호소해 보는 것은 조금은 우]안이 원 수 있다. 그러나 여 사는 역시 새로운 위기가 나타날 것이라는 것까지 말해 준다. 그항지만 이러한 전망이 부르바키의 낙관론을 위축시키지는 않는다. 프 랑스의 지 도적 인 수학자 중 한 사람이 며 부르바키 학과의 한 사람인 디 오l ~네 Jea n Di eu donn~ 는 논리 학에 서 나타나는 문제 정 들 이 항상 해 결 컨 것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앞으로 언재인가 수학이 모순저이라는 것이 보여진다면, 어민 규칙이 전과윤 모 순 으로 이 꾼 게 했는지운 안아내어서, 이 법치운 재거해버리거나 이것운 저전 하게 수정함으로씨, 모 순윤 기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라고 부연할 수도 있다. 간만히 말하자면, 수학은 방향 전환운 한 것이지만 과학으로서의 수학이 사라 지지는 않운 것이다. 이것은 건져으로 추축만은 아니다. 이것은 구리수의 맏 견 후 에 인어났던 인과 거의 미슷하다• 무리수의 맏견을- 피타고라스 수학의 모 순홈 나타낸 것이라고 한만하기는 커녕, 오눕-난에 있어서 우리윤은 이깃윤 인 간 정신의 커다란 승리 중 하나로 간주한다. 디의돈네는 마찬가지로 미적분학에 관한 라이프니츠의 접근법의 겅우곱 예로 들 수 있겠다 (7 장). 18 세기에 그 방법이 받았던 모든 11] 판의 뒤 를이어, 그것은 새로운 형대-비표준 해석학 (12 장) __- 로 엄밀화되었 는데, 이는 논리주의자, 형식주의자, 집합론적 기초돈읍과 부합되는 기 초 위에 세워진 것이다.
부르바키 학과와 갇은 사람들이 수학의 논리는 계속 수정되어 나가야 만 한다는 사실을 믿은 반면에, 수학이 미 목- 물리적 세계에 적용원 수도 있고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유일 • 정확 • 영원한 수학의 새겨 1 가 있 다는 것을 믿는 수학자 둘 도 있다. 이 영원히 존재하는 사 고의 재계 전 부가 사람에게 알려질 수는 없지만, 그러한 체 계는 존재한다는 것 이다. 그 들 의 주장은, 층명의 불 일치와 불확실성 은 오로지 인간의 이성의 한 계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사람 들 의 현재의 서로 다 몬 견해들은 접차로 극복되어질 일시적인 장애에 불 과하다는 것 이다. 이같은 접에서 칸트학파라 볼 수 있는 및및 사람 둘은 수학을 , 인간의 이성 속에 너무 깊숙이 들 어 있어서 무엇이 정확해야 하는가에 내한 의 문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예 를 들 면 해밀 논은 마목 그가 산 수의 물리학적 진리성에 관한 의문 을 제기시킨 대상물이 되는 사원수문 발견했지만, 1836 년에 데카르 트 의 입장과 대단히 미슷한 주장을 겠 다: 대수학이나 기하학과 갇온 이 문 순수한 수리과학은, 신협으 로부더 중요한 것 운 이 꾼 어내거나 도웅윤 만거나 하지 않고 또 모든 의계의 현상 및 우연의 현 상으로부더 분리의어 있거나 최소한 분리킬 수 있는, 순수 한 이성의 과학이 다 .••• 그러나, 이 것등은 우리 ·듄 머리 속 에서 오랫 동안 자리참고 있었기 때 문에, 이것윤 어느 정도 인식한 수 있는 정도에서 알고 있는 것은 우리가 가진 원래의 능력윤 泊 8 시키는 것 문 이고, 우리의 저전한 인간성 운 발휘하는 것이 라고 보여진다. 19 세기의 지도적 대수학자 중 한 사람인 케일리 Arth ur Ca y le y는 잉국 과학 진보 협 회 Brit ish Associa t i 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 n ce 의 한 연 선 (1883) 에서 다 - 움과 갇이 말했다. “우리논 ••• 이란 처런 경험 들 로부터 가 아니라 전대적으로 모든 겅협으로부터 독럽적인 선형적 인석들을 가 지고 있다 .••• 이러한 인식들은 정신이 겅협을 해석하도록 하는 데 기 여한다.“ 해밀돈이나 케일리와 같은 사람들이 수학을 인간들의 정신 속에 들어 있는 것이라고 보는 반면에, 다몬 사람들은 이것이 인간의 외부 세계에 서 존재하는 것으로 본다. 1900 년 이전까지는 인간들과 무관한 수학작 진리의 유일하고 객관적인 세계에 대한 믿음이 유지되어 왔다는 사실이 확신히 이해가 간다. 이 믿음은 플라돈까지로 거슬러 을-라 가며 (1 장) 여 · 러 차례 재확인되었다. 그 중에서도 묵 히 라이프니츠는 이성의 전리와 사실의 진리를 구번했는데, 전자는 모든 가능한 세계에서 성립한다. 삼
지어는 미유클리드 기하학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인정했던 가우스조차도 수와 해석학이 진리임울 주장하였다 (4 장). 19 세기의 훌륭한 해석학자 에르밋 Charles Herm it e(1822-1901) 도 수학 에는 객관적인 실제 세계가 있다는 믿음을 나타냈다. 수학자 스탈체스 Thomas Jnn Sti el tj es 에 게 보낸 한 편지 에 서 그는 이 렇 게 말했 다 : 나는 수와 해석학의 함수들이 인간 정신의 임의져인 산물이라고 믿지는 않는 다; 나는 그들이 객관적 현실의 대상들과 감은 팔연저인 성격을 가지고 인간 의 외 부에 서 촌제 한다고 믿는다. 문리 학자나 화학자나 동물학자눕-이 하는 것 처럼 우러는 그 들운 찾 아내거나 발견하고 또 그둔윤 연구한다. 또 다돈 때 에 , 그는 “우리 는 수학의 주인들이 라기 보다는 종둘이 다”라고 말랬다. 기 초론에 관한 논쟁 들에 도 불구하고, 20 세 기 의 대 부분의 수학자둘은 갇은 입장을 취했다. 집합론과 초한수의 창조자였던 칸토르는, 수학자 는 개념과 정리를 발명하는 것이 아니고 발견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 둘은 인간 사고와는 무관하게 촌재한다. 칸토르는 자신을 기자이며 미 서라고 생각했다. 하디는 인간의 증명에 대해서 회의적이었지만, 1929 년에 쓴 글에 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수학적 전리의 붕변성과 무조건적인 타당성에 관해서 어느 정도 인정하려고 하 지 않는 수학자에게 는 어떠한 철학도 아마 공감윤 주지 못할 것갇아 보인다. 수학의 정리둘은 참이든지 거짓이다; 그 둔 의 창과 거짓은 .::z.듄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는 선대적으로 무관하다 . 어멉 의미에서는, 수학져 진리는 객관적 신채 의 부분 이다. 그는 그의 처서 《 한 수학자의 변명》에서 갇온 견해물 나타내었다: 사소한 오해들윤 피하기 위해서 나 자신의 입장윤 독단적으로 말하겠다. 나는 수학적 산체가 우리들 밖에 있고, 우리가 하는 기능은 이것윤 발견하고 관찰하 는 것이며, 우리가 증명하는 정리들이나 우리가 강조하였다고 과장하여 표 현하는 정리등은 단지 우리가 관칼한 것듄윤 기목해 놓은 것이라 믿는다. 금세 기 의 프랑스의 지 도적 수학자 아다마르 Jac q u es Hodomord (1865-19 ,63) 는 그의 《수학적 영 역 에 서 의 발명 의 십 리 학》 Psyc holog y of Invmt ion i11 the Math e mati ca l Fie l d 에 서 비 록 진리 가 우리 에 게 아직 알려 지 진 않았 거만, 그것은 미리 존재하고 있고(it pre -exis t s ), 우리가 따라가야 할 걷 을 분가피하게 부과한다”고 주장했다.
괴델도 역시 수학의 초월적 세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집합론에 관해: 서, 그는 모든 집합문을 실체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 랬다: 그러한 대상들을 가정한다는 것은 물리적 대상을 가정하는 것과 간이 타당한 것이며, 그둘의 촌재윤 믿윤만한 감은 정도의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웅체가 우리의 감각에 관한 만족할 만한 이론을 얻는 데 핀요한 것과 아찬가지 의미로, 만족할 만한 수학 이론윤 얻기 위해서는 이러한 객체들이 판요하다. 그리고, 이 두 가지 경우 모두에 있어서, 이 실체문에 관해서 주장하기윤원하 는 명재듭을 대이타, 죽 물체에 관하여 실제로 일어나는 감각들에 관한 . 명 재들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분가능하다. 이 들 주장들 중 및 가지가, 기초론에 먼로 관십을 가지지 않았던 20 새 기 의 수학자물- 로부터 나왔다. 놀라운 것은 기 초론의 지 도자둘 중의 및 사람둥――인버트, 처어취, 부르바키의 구성원설- __ 조차도 수학적 개 념둘과 성질둘이 어떤 객관적 의미로 존재하고, 그 들은 인간의 정신에 의해서 이해원 수 있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 이리하여 수학적 진리는 말 견되는 것이지 발명되는 것은 아니다. 진보한 것은 수학이 아니라 수학 에 관한 인간의 지식이다. 이러한 견해을 가전 이 들 은 흔히 플라돈주의자둘 이라고 불리운다. 미 -부 풀라돈 이 수학은 인간과는 무관한 어 떤 이 상적 인 세 계 에 촌재 한다고. 믿었지만, 그의 주장은 현재의 관접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들을 많이 포 함한다. 마라서 준라몬주의라는 호칭 의 사용은 도움이 되기보다는 낀싼 부적절하다. 수학의 객관져이고 유일한 체계가 촌재한다는 이러한 주장등은 어디 에 수학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이들은 단지 수학은 인 간 밖의 어먼 세계, 하늘에 있는 성채 속에 있고, 사람들에 의해서 간 파원 분이라고 말한다. 이돌 공리와 정리는 인간의 순수한 창조물이 아 니고, 단지 연십히 땅을- 파서 지상으로 끌어낸 땅 속의 보물과 같은 것 이다. 그러나, 이 들의 존재는 하늘에 있는 행성과도 갇이 인간과는 무 관한 것이다. 그러면 수학이만 우주 속 깊이 숨겨쳐서 조금씩 땅 밖으로 케어져 나 오는 다이 아몬드의 모임 인가, 아니 면 사람들이 만든 인조석 의 모입 이 어 서, 너무 눈이 부서서 수학자들 자신의 창조물에 대한 자신감으로 이야 다소 눈이 어두워진 그러한 수학자들을 현혹시켜 버란 것인가?
더구나, 만약 초감각적이고 초원직으로 절대적인 살채둥의 새계가 있 다면, 그리고 논리와 수학에 있어서의 우리의 명재둘이 단지 이 들 실체 들 에 대 한 관찰들을 기 록해 놓은 것 에 지 나지 않는다면, 모순물-과 찰못 된 명제 들 이 참인 명재들과 완전히 똑갇은 의미로 존재하지 않는 것인 가? 거짓과 모순성의 잡 초 둘은 선하고 진실되고 아 롭 다운 것들과 나란 히 무성하게 자라날 수도 있다 . 아마 악마는 진리의 신과 나란히 악마 의 씨 를 뿌 려서 자신의 곡 물윤 재배 할 것이다 . 걷-라몬주의자등은 군론. 등 란 명재 들 과 모순 둘 이 진리 운 파악하려는 사람문의 노력이 부저절했 기 매 문 에 생겨난 것이라 반박 한 수도 있었다. 수학이 완전히 인간의 사고의 산물이라는 두번째 진해는 문돈 직관주 의 자등 에 의하여 지지되어졌지만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운라갈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진리는 정신에 의해서 보증원 수 있다고 주 장 하는 반면에. 다론 사람둘은 수학은 고정된 지식의 체계라기보다는 오 . 유 가 있기 마련인 인간 정신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 이에 관한 고전적 인 문구가 현대의 논쟁들이 생기기 오래 전에 파스칼의 《수상록》에 나와 있다. 진리논 너무나 미묘한 한 점이어서 우리의 연장과 같이 무단 것 으로는 정확하게 갖다 델 수도 없는 것이다. 이 도구들아 여기에 닿을 매, 이 접을 부수어 버리고 그것 주위를 압도하는데, 참인 것보다 거짓 인 것 위에 더 십하다.” 지도적인 직관주의자인 하이팅 Arend He yti n g은 · · 오눈 난 어느 누구도참된 수학, 족 정확하고유일한 지식의 체계라는의 미에서 참된 수학에 관한 말을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항 ;,) )_ Hermann Hankel, 데 데 킨트, 바이 에 르쉬 트라스 모두 다 수학은 인 간의 창조라고 일었다. 매버 Hein r ic h Weber 에게 보낸 펀지에서 대대킨 드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 “나는 더구나 우리가 수에 의해서 그 집합 자체 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어떤 것으로서 ••• 정신이 만듄어 낸 것을 이해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신과 감은 종 족 이머 우리 는 창조할 수 있는 힘 ••• 울 가지고 있읍니다.” 바이에르쉬드라스는 아 생각에 다움과 같이 찬성했다. 진정한 수학자는 시인이다.” 그리고 럿 셀의 제자이 며 그 자신 권위자였던 빗겐쉬 타인 Ludwi g W ittge nste i n (1889 一 1951) 은 수학자는 발명가이지 발견자가 아니라고 믿었다. 이윤 모두와 다론 사람들도 수학은 경험상의 발견과 이성적 연역의 속박을 넘어서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랬다. 그들의 입장을 지지해 주는 사실로서, 무리수 나 음수와 같은 초보적인 개념둘은 겅협상의 발견으로부터 나온 연역·군
도 아니고 어떤 외부 세계에 분 명히 촌재하는 실체들 도 아니다. 바일 Wey l 역 시 영 원한 전리 에 관하여 다소 비 꼬았다. 그는 《 수학과 · 자연과학의 철학 》 에서 다 음 과 같 아 썼 다: 초원걱 논리에 대한 기본 쳐 인 믿음운 갖 고 있 던 피델 은 우리 의 논 리 적 인 시 각 온 약간 솟검이 맞지 않다고 생각 하 기 을 중 아 하 고, 이 것윤 약간만 수정해 수 고 나면 우리는 엔리학건 1 봅 수 있어서 모 든 사 람들 이 우 리 가 옳게 보는 것 운 찬성해 주기 를 희 망했다 . 그러나 이러한 믿 옵 윤 갖 지 않 은 사 랍 둘은 2 [) I ] 르 멜로의 것]와 갇은 체 계 나 인 버 트 의 체계 에 서 조 차 도 심한 정도의 임의성 때 문 에 혼란을 느끼게 원 것이다 .••• 어떤 다론 인 버 트 도 영원히 우리 에 게 무모 순성에 대해서 보장해 주지 못할 것이다; 수학의 한 간 단 한 공리계 가 이 계까 지의 우리의 정교한 수학적 실험 윤 의 데스트 문 충족 시컸다면 우 리 는 만 족해 야 한다. 나중에 가서 불일치 들 이 생겨 난 때 기 초듄윤 바꾸어도 늦 지 않윤 것 이 다. 노벨 물리 학상 수상자인 브리 지 멘 Percy W . Brid g m a n 은 그 의 《 현 내 물리 학의 논리 >T he Log ic o f Modern Phy s ic s (1946) 에 서 수 학의 어 떠 한 객 관적 세계도 단호하게 부정했다 . 수학이 인간이 만 든 것이라는 것은 단 한 번의 관찰만으로 명백한 단 순 한진리이다.” 이 돈 과 학은 수학으 로 믿 게 만드는 (of mo th ema ti댜 I make-beli ev e) 게 임 이 다. 이 들 모든 사 람은. 수학이 인위적인 것일 분만 아니라 그것이 그 안에서 발전된 문화 에 의 한 영향을 아주 많이 받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수학의 진리성은 색 깐 에 대한 지식이나 영어와 갇이 인간에 의존한다. 정치나 정재나 종 교의 학설 들 과는 반대로, 수학이 상대저 보 편 성 을 가지고 받아 들 여질 수 있다 는 것만이 우리로 하여금 , 이것이 인간의 외부에 객관적으로 존재하 는 진리의 체계라고 믿게꿈 했을 것이다. 수학의 존재는 어느 한 개인과 는 무관할 수 있지만, 그 개인이 몸담고 있는 문화와 무관 할 수는 없다. 바일의 말을 바꾸어 말하면, 수 학은 고립된 기술적 성취가 아니라 전체 처으로 인간 촌재의 한 부 분에 불 과하다. 마라서, 여기에 그 정당 화·辻 구한 수 있다. 수학은 사람이 만든 것이라는 견해에 찬성하는 사람 들 은 본질적으로 칸 트 학파이다. 왜냐하면, 칸트 는 수학의 근원을 정신의 조직력에다 두 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수 의자 둘 은 수학의 근원은 정신의 형대학 이나 생리학에 있는 것이 아니며, 도리어 정신의 활동에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수학은 진화되어 온 방법들로 조칙된다. 정신의 창조적 관 동은
계속해서 디 새유고 너 높은 형대의 사고를 말전시킨다. 수학에 있어서 인간 정신은 홍이있거나 유용해 보이는 지식 체계를 자유몹개 만들어낸 수 있다는 사설운 명백하게 볼 수 있다. 더구나 창조의 분야는 닫혀진 것이 아니다. 현존하거 나 새로 일어나는 사고의 분야에 적용되는 개념 둘 이 창조월 것이다. 정신은 겅협된 자료물 포용하고 또한 이들을 조절 하는 양석을 재공하는 구조 들을 발명해 낸 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 수 학의 근원은 정신 그 자체의 진보적인 발전이다. 수학 그 자제의 본질에 관한 현재의 의견 충돌과, 오늘날에 있어서의 수학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반박할 수 없는 지식의 체계가 아니라 는 사산이, 수학이 인위적이라는 견해를 확실히 지지해 준다. 아인쉬타 인이 말랬듯이 진리와 지식의 분야에서의 재판관인 체 하는 사람은 누 구나 신 물 의 미옷움으로 파밀인 것이다.” 이 성의 시대에 있어서의 지성인 들 이, 수학을 인간의 이성의 힘과 전 리를 얻을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의 증거로 지적하면서, 이성이 인간의 모 돈 문재를- 해전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주장한 것은 다소 아이러닉하다. 20 세기의 지성인들은, 이성의 힘을 아무리 확신하다 하더라도. 확실히 수학을- 기준이나 전형으로 지적할 수 없다. 이같은 사건의 전환은 지적 인 재난을 수반하 지 않는 것이 걷코 아니다. 정확하고 효윤적인 사고를 달성하기 위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광범위하고 십오한 노력이 수 학이라는 것과, 수학이 이 룩 한 것은 인간 정신의 능력의 쳐도가 된다는 것은 여전히 사설이다. 수학은 모돈 이성적인 영역들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기 를 희망하는 상한(t he up pe r l i m it)을 대표하고 있다. 그러나 오 늘날에 있어서, 무엇이 유효한 수학인가에 관한 현재의 혼란으로부터 견 안함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이것이 어째서 힐버트가 객관적이고 공격받 울 수 없는 연역이라는 의미에서의 전리윤 복구해내기 위해서 그멍게 핀.사적 으로 추구했 던 이 유이 다. 1925 년의 논문 《무한에 관하여 > On the . In fi n it e 에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수학적 사고조차 실패한다면 도 대체 어디에서 확실성과 전리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는 이 문재를 볼로냐에서 개최된 국재 수학자 대회 (1928) 에서의 강 연에서 반복했다: 수학에 진리가 없다면, 무엇보다도 우리의 지식이 옳음과 과학의 촌재와 반전 온 도대체 어렇게 되는 것인가? 신로 오늘t}에 있어서 지식에 대한 회의든가 낙담이 전문가물의 균이나 공개 강인 등에서 혼히 나타나고 있다; 이것온 악잉
향을 끼치는 것으로 간수되는 일종의 신미수의이다. 절대적인 것에 대한 계속적이고 풍임없는 추구는 절대적인 것을 실재 로 얻는 것의 차선책으로 보인다. 그러나 오래 전에 괴 r1] Goe t he 는 이 것을 인간의 구원의 은총이라고 지적했다: 계속 노력하는 자는 구원을 맏윤 것이다.*
• Wer im mer str e bend aic h bemi lht Den kOnnen wir erlOsen.
오늘날의 지도적 수학자 중 한 사람인 웨이유 Andre We i l 는 절대적인 진 리의 촌재에 대하여 확신하지는 않았지만, 수학의 추구가 비목 인간 이 성의 거대한 탑이 되지는 못하디라도 계속되어야만 한다고 수장했다: 그리스 사고의 유산물을 물려받은 우게로 어께가 축 처지고, 르네상스 시대의 엉웅들의 말자쉬가 남겨진 길운 따라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시 수학 이 없 는 문명이만 생각할 수가 없다. 평행선 공리와 마찬가지로, 수학이 계속 산아 납운 것이라는 가정도 그 ‘'명백성''운 상실해버렀다; 그러나, 성행선 공리는 더 이상 판요한 것이 아니지만, 위의 가정 없이는 우리논 어렇게 해 나갈 도리가 · 없다. 수학의 장래에 대해서 큰 희 망이 있은 져온 없다. 수학의 본질이 이 . 렇게 밀 분명한 적도 없었다. 분명한 것을 자세하게 분석해 보면 꾼도 없 이 복잡한 나선형 임 이 밝혀 진다. 그러 나 수학자들은 기 초론의 문제 들· 과 계속해서 두쟁해 나갈 것이다. 대카로트가 말했듯이 확실한 어떤 것을 발견할 매까지 나는 꾸준히 노력하겠다_一아니떤, 최소한, 확실 한 것이 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때까지라도.” 호우머 Homer 에 의하면, 신들은 코린트 Corin t h 의 왕인 시지푸스 S i s yp hus 의 사후의 운명운, 영원히 커다란 돌을 언덕 위로 굴려 홀-리고. 정상 부근에 가까이 다가갈 때마다 그 둘이 다시 믿바닥으로 굴러 떨어 지도목 하였다. 그는 그가 하는 일이 꾼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가 드 없었다. 수학자들은 수학의 기초둘을 완전하게 하고 몬돈하게 하려는 거 의 본능에 가까운 의지와 용기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노력도 역시 영 원히 계속인 것이다; 그들 역시 진코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의 시지푸스는 계속 노력할 것이다.
15 자연의 권위 그리고 내가 하는 이 기도로, 그녀 물 사랑했단 이 마옹 윤 ••• 자연은 걷코 매반가지 않옵운 안개 하시고 —워 스위 드 W ill ia m Wordsworth 수학자들은 새로운 걷과 를 유도하기 위하여 많은 상반된 방향들을 추 ` 구 할 수 있다. 여러 방향 중 목민 히 한 방향을- 좋아하거나 정당화하는` 내적 기준이 없기 때문에. 선댁은 의적 기준에 근거윤 두어야만 한다. 외적 기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학의 창조와 개발의 전동적이고 아직 가장 정당화한 수 있는 이유인, 과학에 대한 수학의 가치이다. 수 . 학의 참된 기초에 관하여 이재 명백해전 불 확실성과, 수학의 논리의 견 고성에 대한 의문은, 자연에 대한 수학의 옹용을 강조함으로써 완전히 ! 해소되지는 않더라도, 회키원 수는 있다. 에머슨 Emerson 의 표현 대로 .. 우리는 '‘물질로 정신을 위한 집을~,, 짓자. 생산된 수학의 정리들이 믿연 적으로 직접 응용된 수 있는가. 또는 그것들이 타당한 뭉리적 원리와 걷 합되어 이용될 때 그 원리에서 유도되는 것들이 물리적으로 옳은 결과 인가 하는 것은 선형적 근거로 결정원 수는 없다. 그러나, 옹용은 실용 적인 데스트를 마련해 준다. 여러번 옳은 결과문 보여준 정리들을 이용 할 메는 보다 믿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선출공리뮬 계속 이용 해도 타당한 물리져 걷과문 얻는다만 그것윤 받아둠이는 데에 대한 의 혹은 확실히 감소된다. 역 사적 관점에서 보면, 응용에 의 호소는 오늘-난의 수학적 순수주의 자 .
줄에게서 보여지는 것만큼 급진적인 것은 아니다. 개념과공리는 물리적 제계를 관찰하는 데에서 얻어졌고. 논리의 법칙마저도 이제는 경험의 산 물로 일반적으로 인정된다. 정리를 이란어내는 문재와 증명 방법에 관 한 암시까지도 7같 은 근원에서 얻어진다. 그리고, 적어도 75 년 정도 전 까지는, 공리들로부터 연역되는 전과둘의 가치 또는 중요성은, 그것 둘 ·이 물리저 세계에 대하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따라서 판단되었다. 왜 수학의 정확성을 수학이 불리적 현상을 얻마나 잘 묘사하고 예 측 하 는가로 데스트하지 않을까? 만약 우리가 수학의 정확성을 그것의 응용 성으로 판단한다면, 물론 절대적인 데스트는 있을 수 없다. 어떤 정리 는 n 번째 경우까지는 맞고 n+1 번째 경우에는 물탈는지도 모른다. 한번 만 맞지 않으면 그 정리는 틀란 것이 된다. 그러나 그것을 수정하면 계 속해서 유용하게 원 옳은 것이 월지도 모르며, 역사적으로는 그 렇 게 하 여 왔다. 수학의 경험적 기초와 대스트는 밀 Joh n St u art M i ll(1806-73) 에 의하여 주장되었다. 그는 수학은 불리과학들보다는 더 일반적이라는 것을 인정 랬다. 그러나 수학을 정 당화하는 것은 수학의 명제들이 물리과학의 명제둘보다 더 광법위하게 검사되고 확인되었다는 접이다. 그러서 사람 둘은 수학의 정리들은 다몬 분야의 과학들의 확인된 가정들이나 이론듄 · 과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잔못 생각하게 되었다. 수학의 정리들은 확실 한 것으로 간주된 반면에, 불리적 이론들은 매우 그럴듯하거나 단지 겅 험에 의해서 확증된 것으로 생각되어졌다. 밀은, 현대의 기조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기 오레 전에, 철학적 근거 위에 그의 주장을 졌다. 보다 많은 이유로 최근의 많은· 기초론 연구자 듄은 신용적이 되어 갔다. 인버트가 말한 것처럼, 수학의 연매에 의해 수학을- 알개 원 것이다.” 인버드는 또 1925 년에 ‘‘다몬 경우에서처럼 수학에서도 성공이 누구나 마라야 하는 결정운 내리는 대법원이다”라고 말했다. 기 초론에 서 저 밍 하고 산동적 인 수학자였 던 모스토우스키 Andrzej Mos- t owsk i도 인버트의 견해에 동의했다. 1953 년 문란드에서 열란 국제 수 학자 대회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건전한 인간의 이해문 아니라 수학의 전동에도 일치하는, 유일한 무모순인 견 해는 도리어 수의 개념――자연수 분만 아니라 신수까지도__의 근원과 촌재 이유가 겅험과 신계적 응용성에 있다는 가정이다. 같은 가정이 집합론의 개념
들에 관하여 서 도, 그것 등이 수학의 고건작 분야에 원요한 한 성 립 한다. 모스토우스키는 더 나아간다. 그는 수학은 자연과학이다라고 말하였다 .. 수학의 개념과 방법은 경험에 그 근원이 있으며, 수학의 근원이 자연과 학과, 수학의 응용과, 수학의 역 사에 있 다는 것을 생 각하지 않고, 수학 의 기 조를- 세우려는 모든 시도는 운명적으로 실패하게 되어 있다. 아마 도 , 직관주의자인 바일 wcy I 역시 타당성은 물리적 세계에의 웅 용으로 판단되어야 할 것이라는 대에 동의한 것은 더욱 놀라울 것이다. 마 일 은 수리 물 리학에 기여한 바가 크고 직관주의의 원리들을 굳게 지지 있지 만, 유 용한 결과 들 을 회생해 가면서까지 이 원리들을 고수하고 싶 어하지 는 않 았다. 그는 《 수학과 자연과학의 철학 》 에서 다옵과 같이 인 정있 다: 아인쉬다인의 인만상대성이몬이나하이첸 1 비르그-수 l 로 1 덩어의 양자여학에서의 발 긴지 인 논 1 ',l 과 그에 뒤마 본 체계적 구성 윤 이 안마나 선 -무 력이 있고 사실에 미 가 까 운 가. 참 으로 현실적인 수학은 물 리학과 함께 유일한 실세계의 이론적 구 성의 한 부 분으로서 받아 윤 여져야 하며, 문리학에서 보여전 것처럼 기초의 가 선 칙 확 장에 대하여 똑 7같 이 진지하고 조심스러운 대도문 취해야 한다. 바일은 확실히 수학을 과학의 한 분야로 취급하기물 주장했다. 수학의 정리 듄 은 물리학의 정리들과 마찬가지로 일시적이고 불안정하다. 그것 둘은 수정되어야 할지 모르나 실재와의 일치는 타당성의 한 가지 확실한 검사법이다. 저명하고 완동적인 형식주의자인 커리 Haskell B. Curr y는 기꺼이 미 나아간다. 그는 자신의 《수리 논리 학의 기 초 》 Fou11dati o11 s of Math emati ca l Log ic( 1963) 에서 다음과 감이 주장랬다: 그러나 수학은 스스로의 정당화·읍 위해서 전대적인 확신성이 핀요할까? 유히 왜 우리는 하나의 이론윤 이용해 보기도 전에, 그것이 무모순입운확신해야 하 거나 또는 철대적으로 확실한 직관인 순수한 시간으로부터 유도된다는 것운판 요로 할까? 다론 과학에서는 그러한 요구운 하지 않는다. 물리학에서는 모든 정리등이 가정에 근거문 두었고, 물리학의 아론은 그것이 예측에 유용할 때만 받아들여지고, 그렇지 못한 때는 곧 수정되거나 페기핀다. 과거에는수학의 이 론에 관하여도 마찬가지로 하였는데, 모순이 맏견되면 그때까지 받아 듄여졌던 수학의 학설들은 수정되었다. 왜 우리는 미래에도 이간은 방법윤 댁하연 안 되 는가?
과인 W illar d Von Orman Qu in e 은, 바 목 성 공하지 는 못했지 만 럿 셀-화 ’ 이트헤드의 《수학 원리》 을 간단히 하려고 많은 노릭을 랬단 활동적 인 논리주의자인데, 적어도 현재는, 역시 물리적 타당성에 기꺼이 안주하 려 하여 왔다. 《현대 논리 학의 철학적 대 도》 The Phil o sop h ic a l Bearin g of -Mo dern Log ic 라 는 논문집 의 일부인 1958 년의 한 논문에 서 그는 다음과 갇이 말했다: 우리는 자연과학의 이 론 져 부분 운 보는 것과 갇온 방법으로 집합 론 을, 일만져 으로 수학을, 보다 합리저으로 진리 또는 가선로 이 루 어진 것으로 분 수 있 을 지 모른다; 여기에서의 진리 또는 가정은 순수 이성의 빛에 의하기보다는 도 리어 그들의 자연과학에서의 겅첩적 자료 들 윤 조정 할 때처럼 간접적인 체계 적 공헌에 의하여 증명되어져야만 한다. 형식주의와 집합론에 기본적인 공헌울 한 폰노이만도 지금의 난국을 같은 방법 으로 국복하려 고 랬 다. 그의 유명 한 글 《수학자》 The Math e· ·111a ti cia 1 1 (Robert B. Hey w ood 의 The Works of th e M in d (1947) 에 수록되 어 있 옹) 에 서 , 그는 수학기 조론의 여 러 학파들이 고전수학을 정 당화하는 데 실패하고 있지만, 여하간 대부분의 수학자들은 그 수학을 이용하고 있다고 논했다: 진국 고전 수학은 우아하면서도 유용한 진과들을 생산하고 있으며, 미목 그것 이 믿윤 만한지룹 전대져으로 환선하게 하는 것은 걷코 한 수 없지만, 고전 수 학은 지 어 도, 예 윤 들어 , 전자 (electr o n) 의 촌재 만큼은 확신한 기 조문 가지 고 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과학운 말아둘이려 한다면 수학의 고전져 체계도 마찬가지 로 받아들여 야 한다. · 그래서, 수학의 지위는 설-리학의 지위보다 나울 게 없다는 것이다. 1901 년에 수학적 진리라는 건물은 논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혼들 립이 없다고 주장했던 럿셀마저도 I 안 4 년의 수팔에서는 ‘‘물리적 기하 학에 관한 우리의 지식은 종합적이지만 선험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인 정했다. 수학은 논리만으로 이끌어내어질 수는 없다. 《수학 원리》 재 2 판 (1926) 에서 그는 보다 많은 것울 인정했다. 전자기학의 맥스웰 Maxwell 방정식처럼 논리와 수학도 ‘‘일마간의 논리져 견과들이 진리라는 것이 관찰되었기 메문에 믿어지는 것이다.” 아마도 괴델이 1950 년에 한 말은 더욱 눈라울 것이다:
소위 기조라는 것의 역할은, 물리학 이 돈에서의 선명저인 가정듄의 기능에 비유월 수 있다 .••• 수의 이온이나 다른 잘 체계화된 수학 이론의 소위 논리적 기초 또는 집합론적 기조는 기초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선명적 이다. 이는 마 치 물리학에서 공리의 실재 기능이 이러한 정리들의 참된 기초문 이우는 것이 라기보다는 도리어 이 체계의 정리들이 기술하는 현상듐울 설덩학놉 것과 갇 다. 이러한 수학자둘이 인칭하는 것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고 논리적으로 타당하게 수학을 체계화하려는 시도가 실패앴다는 것이다. 수학은 인간의 완동이고 그러기에 인간의 모든 약겁들과 견접둘의 영향 을 받는다. 이러한 형식적이고 논리적인 설명도, 그것이 아무리 이성적 인 요소을 가진다 해도 의사 수학(p seudo-ma t hema ti cs) 이며 허구이며 신화 에 불과하다. 기 초론 에 종 사하는 많은 저명한 수학자들도 신재적인 해결책으로서 타당한 수학은 어떤 것인가 하는 마찬가지 검사법을 받아들였다. 수학 온 미 목 가끔은 수정원 팔요가 있을지라도, 그것의 응용성에 의해 절대 적은 아니더라도 탄탄히 보증된다 . 워즈워드가 표현한 것처럼 영원히 건 축하는 정 신은 자연의 단단한 땅을 믿 는다. ” 수학의 과학에의 응용성이라는 실용적인 검사뭉 주장함에 있어. 수학 기초돈자 둘은 그들의 원리들과 신념들윤 철회한 것처럽 보이는 것 같다. 그러나, 그둘이 알고 있돈 않든, 그들은 단지 언제나 수학이 타당성의 검사법이었던 것만을 주장하고 있다. 미논리적 발전 (5-8 장) 올 보였던 시대에는, 왜 수학자들은 수학을 믿었을까? 그들은 그둘의 증명이 불 렀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어떤 걷과운운 증명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떠한 논리도 음수 • 무리수 • 복소수 또는 대수, 또는 미적분학 을 뒷받침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히 알았다. 그들은 응용성에 의존 랬던 것이다. 과학적인 웅용성에의 호소, 또는 겅험적 중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에 는 주의할 만한 의미가 숨겨져 있다. 유찰리드의 이상은 우리가 진리 인 공리 들로부타 출발하여 , 이 공리 둘로부터 우리 는 유효한 추몬에 의 해 보다 많은 진리·동운 연역해 나간다는 것을 가정한다. 물리적 옹용에 의 의존은 수학의 모든 개념들을- 뒤엎어버란다. 만약에 연역된 것듈이 응용된다면, 공리들은 , 미록 그것문이 그러한 걷돈을- 내리게 하여줄 수 있는 유일한 것들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이치에 맞는 것이 된다. 유용
하거나 옹용할 수 있는 수학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진리는 자연히 떠오 . 르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수학기초론의 여러 학파들의 지도자들은 적어도 오랫 동안 자 신들의 신념을 버렀었다. 그래서 직관주의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인 크로 넥커는 대수학에서 그의 기준에 맞지 않는 훌융 한 업적 을 남겼는데, 이 것은, 프앙카레가 평한 것처럼, 크로넥커 자신의 철학을 앗어버 렀기 매 문이었다. 브라우어도 역시 1907 년의 논문에서 직관주의 철학을 공표 한 후에 직관주의자로서의 주장을 무시하고 위상수학에서의 연구 와 증 명으로 다음 10 년을 보냈다. 이러한 견해 들 의 걷론은, 타당한 수학은 어느 한 기 초론에 의해서 걷 정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 기초론이 어느 난 옳은 것으로 판 명인 수도 있다. 수학의 옳음은 그것의 물 리적 제계에의 응용성에 의 해서 판단되어야 한다. 수학은 다분히 뉴돈의 역학처럼 겅랍과학이다, 수학은 찰 적용인 때까지만 옳은 것이고, 그 렇 지 않을- 매에는 수정 되어 야 한다. 그것은 미목 2000 년 동안 그렇게 간주되어 오기는 . 겠으 나 선 험적 지식은 아니다. 그것은 절대적이거나 불면적 이 아니다. 만약 수학이 과학 중의 하나로 취급된다면, 과학이 어떤 것인가를 완 전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과학은 관찰과 실 험을 하고 이 돈을 세우는데 운동 •I~ •소리 • 연 ·전기 ·화학결합 동에 관한 이 론을 에로 들 수 있 다. 이 이론 들 은 인간의 작품이고 또 다른 관찰과 실험도 예 측할 수 있 논지 검사된다. 만약 예측이 저어도 실험오차의 범위 안에서 옳으면 그 이돈이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그것은 나중에 전복원 수도 있고, 연재나 이론으로 간주원 분 물리적 세계의 선계에 심어져 있는 진리로서 간주 되지는 않는다. 우리논 과학적 이론들에 대한 이런 견해에 익숙해처 있 는대, 왜냐 하면 새로운 이돈에 의하여 전복되고 거부된 많은 과학이돈 의 예들이 존재하기 매문이다. 사람들이 수학에 관하여 이러한 견해 를 가지지 않는 유일한 이유는, 밀이 지적했듯이, 기본적인 산수와 유클리 드 기하학이 오렌 세월 동안 유효했기 때문에 사람둘이 그것들은 진리 라고 잘못 생각해 온 데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수학의 어민 분야도 단지 성럽하는 이돈윤 제공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이론이 성립하 는 한 우리는 그것을 받아둘이지만, 나중에 보다 나은 것이 뭘요하게 된지 모은다. 수학은 인간과 자연 사이를, 인간의 내적 세계와 외적 세 계 사이윤 중개한다. 수학은 우리 자신과 외부 세계 사이에 놓인 대담·
하고도 압도적인 교량이다. 그 다리가 실체나 인간 성신에 굳전히 이어 져 있지 않다는 것불 인식해야만 하는 것은 마국이다. 아성은 스스로의 계획에 마라 스스로 만든 것에만동찰력을 발휘한다. 이성 은 스스로의 계획에 관해서는 선구자가 원 수도 있지만, 그러고 나 서는 산항에 의해서 그 계획의 예지를- 자연으로부터 꿀어내야 한다. 이 론 운 만 문 어야 할 시기가 있고, 그 이론이 자연의 행태에 적합한지 검 사해야 한 시기가 있다. 대부분 의 수학이 물리적 아론과 구분되는 한 가지 자질이 있다. 과학 에 시는 이 몬 의 급전적인 면화가 있었지만, 수학에서는 논리 • 정수론 • 고 전해석학의 대부분이 수 세기 동안 변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계속 적 용되 어 왔 고 아직도 적용철 수 있다. 이런 정도로 수학은 과학과 다르 . 다. 수 학의 이런 부분들이 전대적으로 신뢰할 만한 것인가는 모르지만, 그것 등 은 전· 쓰여 져 왔다. 그것 둘은 의 사 겅 협 적 (q uns i -em pir i댜 l) 이 라고 부 룬 수 있겠다 . 이러한 견해 를 뒷받침해 주는 것을 묵히 미적분학의 역사로부터 끌어 낸 수 있다. 미적분학의 논리에 관한 마해결의 논쟁에도 불구하고, 방 법 론 으로서는 성공적이었다. 아이러닉하게도 마표준 해석학 (12 장)은· 라 이프니츠의 무한소 이론은 정당화했지만, 미적분학의 모든 기법을 정당 화하지는 못했다. 우리는 선출공리에조차도 응용성의 검사를 적용할 수 있다. 체르멜로 자신이 1908 년의 논문에서 말랬듯이, ‘네아노는 어떻게 그가 결국 하 나도 층명할 수 없었던 ••• 그의 근본적인 원리들에 도달한 수 있었을 까? 명백히, 역사의 과정에서 다당하다고 간주되어 온 추론 형식둘을 분석함으로써, 또 그 원리들이 직관적으로 명백하고 과학에 륄요하다는 것을 지적해 냄으로씨 [그 원리둥에 도달한 것이다] •• ·.'' 체르멜로는 선출공리 의 사용을 정 당화하기 위 하여 선출공리 들을- 사용하여 얻은 성 공국중을 지적랬다. 그는 1908 년의 논문에서 초한수의 이돈, 내대킨트의 수의 이돈, 그리고 해석학의 상당히 기술적인 문제붑에서 선·: · 공리가 얻마나 유용한가를 연거했다. 무잇이 믿을 만한 것인가 갖아내고 검사하는 데 과학에의 응용성훈 쓸 수 있다는 여러 지도적인 수학자윤의 주장은, 여러 가지 기조돈 중 에서 선댁하려는 욕구보다 큰 동기에서이다. 이 수학자들은 · 상리지 현 상을 규명하는 수학의 힘이 매우 중강되어 왔고. 인유에게 수는 이러한-
이로움은 기초의 문제정들이 철저하게 검토되는 중이라고 포기뢸 수는 없다는 것을 인식했다. 약 100 년 전에는 많은 수학자들이, 가치있다기 보다는 처속하다는 이유로 과학을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가장 위대한 수학자들인 프앙카레, 힐버트, 폰노이만, 바일은 계속해서 물 리학적 응용을 추구했다. 불행하게도 오늘날의 대부분의 수학자들은 응용 분야의 일을 하지 않 는다 (8 장). 대신에 그들은 전에 볼 수 없었던 빠른 속도로 순수수학에 서 새로운 결과들을 생산하고 있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새로운 전과 둘의 짧은 평 을 싣 고 있 는 《수학 평 론》 Math emati ca l Revie w s 이 라는 잡지 름 보면 순수와 옹용수학 분야의 요즈음의 연구량이 얼마나 방대 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잡지에는 달마다 약 2, 500. 즉 1 년에 약 30, 000 편 의 업적이 살린다. 사람들은, 어느 학파가 가장 타당한가 하는 옳은 수학에 관한 현재의 곤경과, 한 학과 안에서도 수학이 추구할 수 있는 여러 방향둘이. 순수 수학자들로 하여금 어쩌면 논리적으로 듄린 것이 원지도 모르는 새로운 수학을 창조하기 전에 잠간 중지 하고 기 조에 대 한 문재 들에 집 중하도독 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수학자들은 어떻게 응용이 되 지 않는 수학의 분야에 그명개 기쁜 마음으로 새로운 전과둘을 생산하 고 있을까? 이 질문에는 여러 가지 대답이 있다. 많은 수학자둘은 기초에 관한 문재등을 모으고 있다. 1900 년 이래 순수수학자들이 연구하고 있는 방 식은 인류가 많은 문재듄에 직면앴윤 매 취했던 방식들의 전형적인 것 이 다. 거 의 모든 수학자둘은 수학이 라는 높은 건물에 그들의 사무실을 계속해서 가지고 있다. 기초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그 건물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 더 깊이 파들어가고 있는 동안에도, 그 건물에 세둘어 있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곳에서 일운 한다. 기초를 다지는 사람들은 지하 로 너무 깊게 파둡-어가서 전혀 보이지 않으며, 전세자들은 그 건물의 도대의 불안이나 붕괴의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그래서 그 둘은 관습저인 수학을 계속 이용하고 있다. 그들은 유력한 정동성에 대 한 도전운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 안에서 그렇게 행복하게 연구하고 있 논 것이다. 이 시대의 다른 수학자둘은 기초에 대한 불확실성운 알고는 있지만. 그둘이 (순수히 수학적인 것에 반대되는 것으로서의) 철학적 문제라고 규정해
버란 것에 관하여 초연한 태도를 취하는 편을 택한다. 그들은 기초에 관한 것 또는 적어도 그 들 자신의 수학적 활동 에 관한 것에 어떤 십각 한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둘은 진부한 신조에 것 어 있 는 편을 택한다. 이 사람 들 에개는 지난 75 년 동안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계속 나아가자라는 불문물 이 있다 . 그들은 어떤 보편적 으로 인정 월 수 있논 증명에 관하여 말하지만 그러한 것은 촌재하지 않 으며 그 들은 또 불확실 성이 촌제하지 않는 것처럼 씨내고 발표한다. 그 들에게 중요한 것은 다다익선인 새로운 발표이다. 그 들 은 기껏해야 일 요일에나 타당한 기초에 대해 생각하지만, 그때 그들은 용서 를 밀거나 그 들의 경쟁자들이 하고 있는 것을 읽기 위하여 새로운 논문 을 쓰는 것 윤 중단한다 . 개인적 진보는 옳 7J _ 그르건 있어야만 한다. 그 렇 다면 기초에 관한 문제정이 아직 해걷되지 않는다는 근거로 자제 룹 촉구하게 하는 당국은 없 을까 ? 학술 잡지의 편집자들이 논문을 거 절할 수도 있다. 그러나. 편집자들이나 십사원들은 대개의 수학자들과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는 동료둘이다. 그레서 1900 년의 업밀성과 갇이 어느 정도 엄밀성과 유사한 것 을 갖춘 논문들은 접수되어져서 공표된다. 만 약 황재 와 궁정의 모든 사람둘이 옷을 입지 않는다면 나체는 놀 라운 일도 아니고 당 황하게 하는 일도 아닐 것이다. 라 준 라스가 썼던 것처럽, 인간의 이성은 전보 자체를 연구하는 대에서보다 진보 를 만드는 데에서 덜 어려움운 느낀다. 어느 겅우에나 기 초 에 대한 의문은 많은 수학자 들 에 의해서 뒷전으로 밀려났다. 수리논리학자들은 기초적 문 제에 온 힘을- 쏟고 있지만, 이 사 람둘은 흔히 진정한 수학의 영역을 벗어난 것으로 간주된다. 기초에 관한 문제들을 무시하고 그것 들 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계속 나아가고 있는 수학자들 모두릅 미난할 수는 없다. 그 중 일부는 진지하게 수학의 이 용에 관상운 가지 면서 그둘의 생 환 태 도 (modus viv e ndi) 의 지 지 룹 역 사에서 갖는다. 우리가 보았듯이 (5,6 장) 수체계와 그 안에서의 연산이 나 마 적분학 의 논리적 기조의 길여와, 그런 것 둘 에 대해 한 세기 동안 연떤 논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학자둘은 그것 들 을- 이용하는 것과 확실히 효과적인 새 결과들을 만드는 것을 계속하고 있었다. 증명둥은 완벽하지 못하거나 아예 촌재하지도 않았다. 모순이 발견되었을 매 수 학자둘은 그들의 추론을 겁토하고 수정했다. 혼히 추론은 나아지기도 : 랬으나 l9AI1 기 말의 기준으로 보아도 아직 업밀하지는 않았다. 만일
수학자들이 그 기준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렀었다면 그들은 전혀 진보할 _ 수 없었을 것이다. 피카르 Em il e P i card 가 언급한 것처럼, 만약에 뉴몬 이 나 라아 프니 츠가 연속함수들이 반드시 미 분가능한 것은 아니 라는 사 실을 알았다만 미적분학은 걷코 대어나지 못했 을 것이다. 과거에는 대 담성과 세십성이 중요한 진보를 낳았던 것이다 . 철학자 산다야나 George Santa ya na 는 그의 《 회 의 론과 동물 신앙 》 Seep- ticis m and .A,1im al Fait h 에 서 회 의 와 의 혹은 사고하는 데 중요하고, 동물 신앙은 행동에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 많은 수학적 연구의 가치는 매우 높고, 이 가치들이 나아지려면 연구는 계속되어야 한다. 맹목적 산념 은 행동에의 확신을 준다 . 및 및 수학자들은 그둥의 연구에 의 문을 부여 하는 기 초론적 문재 등 에 관십을- 나타냈다. 보렐 Emi le Borel. 베르 Rene Bair e , 르뱃구 Henri Lcbes- guc 는 집합론적 방법의 정당성에 관한 의십을 명백히 말하면서도, 그 방:사이 만들어낸 것의 신뢰성에 약간의 재한을- 두고 그것 들을 계속 사 용랬다. 보덴은 1905 년에, 칸도르의 초한수둘은 중요한 수학적 연구에 도움이 되기 메문에, 추론에 있어서 기꺼이 그것을 받아 들 이겠다고 말 댔다 . 그러나 보델과 다른 사람들이 택한 길은 유케하지 못했다. 가장 십오하고 가장 박식한 현대 수학자 중 한 사람인 바일 Wc y l 의 말을 듄 어보자: 우리는 수학과 논리학의 궁극적 기초에 대해서 어느 때보다도 적은 확신을 가 지고 있다. 오 ·능날 세계의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처럼 우리는 위기”에 직면 해 있다. 우리는 그 위기운 맞은지 거의 50 년이나되었다 [1946 년에]. 외관성 으로는 그것이 우리의 일상적인 일운 방해하지 않은 것 간으나, 나는 그 위기 가 나의 수학저 생애에 주목한 만한 신재쳐인 영향윤 주었다는 것운고백한다. 그 위기는 내 판십윤 내가 생각하기에 미교적 '‘안전한 분야로 이 꿀 었고, 내가 연구하는 데 있어야 한 연의와 전의운 부단히 고갈시킨 원인이었다. 이러한 겅 협은 아마도 자신듄의 과학쳐 노력이 인간의 판십과 지식과 고동과 세계의 창 조적 촌계와의 관계에서 의미하는 것에 무관십하지 않는 다론 수학자윤에게도 있었운 것이다 . 수학의 타당성을 그것의 응용성으로 시험한다면 곧 다음과 갇온 의문 이 생긴다. 수학은 연마나 찰 적용뭘까? 1800 년 이전에 창조되고 옹r 용된 수학에 대해서는, 우리는 벌써 수학이 물리져 세계에서 일어난 것 움 얼마나 판목할만 하게 잘 기술하고 예측했는지를 여러 예들을 동해
보인 바 있다 ( 3 장). 그러나 19 세기에는, 수학자들은 아무리 동기가 훙 융하다 해도 자연으로부터 직접 이꾼어 내어지지는 않는, 더 나아가서 는 자연과는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개념둡-과 이론들을 도입랬다. 그 예 를 뭄 면, 무한수연, 비유클리드 기하학들, 복소수, 사원수, 목 이한 대 수들 , 여러 크기의 무한집합, 그리고 우리가 다우지 않은 다론 창조 뭉둘 이다. 선험적 근거로는, 이러한 개념과 이몬아 적용원 수 있어야 한다고 기대하는 이유가 없다. 먼저 우리 자신들에게 이러한 현대 수학 이 참 으로 눈 란만하게 잔 응용된다는 것을 확신시키자. 지난 100 년 동안의 가장 위대한 수학적 창조는 전자기학 • 상대성이 론 • 양자역학인데, 이둘이 모두 현대 수학을 광범위하게 이용하고 있다. 이것 둘 중 그 웅용성이 우리 모두에게 매우 익숙한 처옵 것만 생각해보 자. 19 세기 전반에 전기와 자기에 관한 많은 연구가 물리학자들과 수 학자 설- 에 의해서 이루어졌고, 그 두 현상의 행동에 대한 약간의 수학적 법치 등 이 얻어졌다. 1860 년대에 막스앤 Jam es Clerk Maxwell 은 이 법칙 문을 모아 그들이 서 로 상충되 지 는 않는가룹 알아보았다. 그는 수학적 일관성 (comp a ti b il i ty ) 이 그 방정식 들 에 그가 변위전류라고 밍 명한 한 항 이 더해저야 할 것을 요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이 항에 줄 수 있었던 유일한 불리적 의미는전원(대재로 전유가 호르는 선)으로부터 전 자기장 또는 건자기파가 공간으로 퍼져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전 자기 과둘은 다양한 주파수를 가질 수 있으며 , 우리 가 오눈가} 라디 오나 델레미전을 동해 받는 것들을- 포함하고, 마찬가지로 X 선 • 광선 • 적외 선 • 자외선 모두 를- 포합한다. 이러한 순수한 수학적 고찰에 의해 막스 앤은 당시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던 많은 현상들의 촌재윤 예언했고, 빚 은 전자기 현상아라는 옳은 걸론을- 내렀다. 전자기카에 관하여 묵 히 주목할 만한 것은-중력에 관하여 그랬던 것처럼 (3 장)_―우리에게는 전자기파가 어민 것인지에 관한 불리적 지식 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수학만이 그 존재윤 보증하고, 수학만이 공학자물에게 그 신기한 라디오나 델레비전을 발견한수있게 해주었다. 같은 관갈이 원자나 핵 현상에도 적용된다. 수학자설-과 이온실-리학자 둘은 장(fi eld) ――중력 장 • 전자기 장 • 전자 (electr o n) 장 • 기 타__군에 관 하여 마치 그것들도 공간으로 퍼 쳐 나가고, 수면과가 배 나 해 안에 부딪 치듯이 그들의 잉향을 나타내는 물질과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러한 장들은 허구이다. 우리는 그것둘의 불리적 성질에 대해서는 아
무것도 모돈다. 그것들은 및 • 소리 •• 물체 운동, 그리고 이제는 너무 0~ 숙해진 라디오와 델레비전 같이 관찰 가능한 감각들에 단지 간접적으로 관련원 분이 다. 버 클리 Berkeley 주교는 한때 도함수를 사라져 버 린 앙 (q uan tity)의 유령으로 묘사했다. 현대의 물리 이돈은 물질의 유령이다. 그러나 실재에 명백한 대응물이 없는 이 허구의 장에 관한 법칙을 수학 적으로 형식화함으로써, 그리고 이 법칙들의 결과를 연역해 냄으로써 우리는 물리적 용어로 알맞게 해석되떤 지각에 의해 확인원 수 있는 걸 론들윤 얻는다. 과학의 현대적인 허구적 성격은 1901 년 아인쉬타인에 의해 강조되었 다: 뉴몬의 체계에 따르면, 문리적 신체는 공간 • 시간 :인접 • 합 (진집의 반작 : 용) ••• 등의 개념에 의해 묵칭지위진다. 막스엔 이후, 물리적 실체는 역학적으로는 선명할 수 없지만 편미분방정 4 , 둔윤 따르는 연속강둘-에 의해 표현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신재윤 인식하는 대 있어서의 이 변과는 뉴본 이래 물리학에 있었만 가장 강력하고 많은 변화윤 주었던 건과이었다 .••• 방급 내가 대충 말한 과학적 이론의 근본이 순전히 허구적인 성격이라는 긴 해는 18 세기와 19 세기에는 걷코 인만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전해는 한핀으로는 기본 개념과 법치, 다론 한편으로는 우리의 겅험과 관계운 가지개 되어야 한 진온을 사이의 사고 속에서의 거리가 커지면 커진수목 논리칙 구조 는 간만해진다―一말하자면, 그 구조윤 지뎅하는 데 판요하다고 생각되는 논 리적으로 독립적인 개념져 요소문의 수가 져어진다――-는 사산 때문에 꾸준히 , 근거문 얻어가고 있다. 현대 과학은 자연 현상들에게 합리적 설명을 부여함으로써 유머어 • 악 마 • 천사 • 귀신 • 마법 그리고 정령숭배 (an i m i sm) 를 없앴다고 칭찬받았 다. 우리는 이재 현대 과학은 접전져으로 감각들에 의존하는 직관적이고 물리적인 내용을- 제거하고 있다는 것을 덧붙여야 한다; 그것은· 물질을 재거하고, 우리가 그것에 대하여 아는 것이라고는 수학적 법칙분인 장과 전자간은 순전히 인위적이고 이상적인 개념들을 사용하고 있다. 과학은 수학적 연역의 긴 연세를 써서, 지각들과 적지만 팔수적인 접촉만을 유 지하고 있다. 과학은 합리화된허구이며, 수학에 의해 합리화된 것이다. 위대한 물리학자이며, 전자기파가 공간에 퍼져나갈 수 있다는 막스웰 : 의 예 언을 처 음으로 실험 적 으로 확인한 사람인 헤 르츠 Hein r ic h Her t z 는 ...
수학의 힘에 어찌나 깊은 인상을 받았던지 그의 연광을 억제하지 못랬 다. “우리는, 이 수학적 공식들이 그들 자신의 독립된 존재와 지성운 가졌으며, 그 공식들은 우리보다 현명하고, 그 공식들의 발견자보다도 도리어 현명하며, 또 그 공식둘은 만-등어질 때 의도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준다는 느낌을 뗄쳐버란 수 없다.” 진스 겅 Sir Jam es Jea ns (1877-1946) 은 자연의 연구에 서 수학이 맡은 역 할 을 강조했다. 《 신미스란 우주》 The My st e rio u s U11 i verse 에서 그는, 본 질 적인 사산은 과학이 자연을 묘사한, 관찰된 사실과 일치할 수 있으리 라고 보는 모돈 그립은 수학적 그림이라는 집이다 .••• 수학적 공식을 을 넘어서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물리적 개념과 매카니즘들은 수 학 적 설명을 하기 위해서 가정되는데, 그러고 나면, 역선적으로, 문리 적 도움은 거의 환상에 불과하고, 다만 수학적 방정식둘만이 현상을융 확산하게 파악한 유일한 것으로 남는다. 《 살리 학과 철학 사이 >B etw ee11 Phy si c s a11d Phil o sop h y 에 서 진스는 그의 생 각 을 다시 밝혔다. 자연은 감각들에 의해 파악뭘 수 있는 모형이나 그럼을 놉-하여 인간 정신이 이해한 수 있는 방법으로 움칙이지 않는다. 우리는 사전이 무엇인지를 결코 이해할 수 없으나, 우리 자신이 사건들 의 패턴을 수학적으로 기술하는 데 그쳐야만 한다. 물리학에서의 최종 진과는 언제나 수학적 공식들의 모임이 될 것이다. 물질의 참된 본질-은 잉원히 알 수 없는 것이다. 아라서, 이제 현대 과학에서의 수학의 역할은 수된 도구로서의 역할 을 인싼 넘어서는 것처럽 보인다. 그 역할은 훈히, 물리적으로. 관찰되 거 나 실험으로써 물리적으로 확립된 것을 기호나 식을 써서 요약하고 체계화하는 것으로 표현되며. 그 식들로부터 관찰이나 실험으로써는 곧 얻을 수 없거나, 또는 보다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로써는 얻을 수 없는 부가적인 정보들을 연역해 내는 것으로 표현되어 왔다. 그러나 수학의 역할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수학이 성취한 업적에는 핀씬 못 미친다. 수학은 과학적 이론의 본질이며, 순수한 수학적 이론윤 근거로 한 19, 20 새기의 응용은, 수학자들이 꿀-리적 현상에서 곧장 암시되어 얻어낸 개념만을 쓰던 전 시대의 응용보다는 원싼 강력하고 놀라운 것이다. 현 대 과학의 업적들_一·라디오 • 델레비전 • 미행기 • 전화 • 전보 • 고성능 축움기와 녹음기 • X 선 • 트렌지스터 • 원자력과 원자란 둥 친근한 및 가 지만 들어보아도_一의 명예는 수학에만 둔려질 수는 없지만, 수학의 역
할은 실험과학의 어떤 기여보나 도 근본적이고 팔수불가결 이다. 17 세기에 매이컨 Franc i s Bacon 은 코케르니쿠스나 케중러의 천체 이 론 같은 이론들에 회의적이었다. 그는 그 이 론둘 이 관찰이나 실험에 의해 요구된다기보다는 철학적이나 종교적인 신님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 을 두려워했다―一죽 단순성에 의한 신의 편애나 수학적 인 질서 를 가진 자 연에 관한 신의 설계 간은 신 념을 가리킨 다. 베이컨의 태도는 확산 히 합리져이지만, 현대의 수학 이론문은 그것둘이 매우 효과적이기 때 문에 물리과학을 좌우하게 되있다. 물론 관찰과 일치해야 하는 것은 과학 의 어떠한 수학적 이론 을 받아둘이는 데에도 팝수적 인 것이다. 그러므로 수학이 유용한가에 관한 어떤 의문도 자신있게 그 밍 다 고 대 답윈 수 있다. 그러나 왜 수학 이 유용한가에 관한 의문 은 그 멍 게 십개 대답되지 않는다. 그리스 시대와 그 후의 수 세기 동안 수 학자 등은 어 디에서 금――수학은 물 리적 시 1 계에 관한 전리이고 논리의 원 리 등도 또 한 진리였다一一 을 찾아야 하는지에 대한 명백한 칭 후뭉 알고 있었기 때문에, 힘들 여 완말하게 열십히 그곳을 팠다 . 그둘은 훌 융히 성공 겠 다. 그러나 이재 우리는 금으로 생각되었던 것이 금은 아니 지만 귀금 속 임운 안다. 이 귀금속은 자연의 움직임을- 매우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 윤 제속 한다. 왜 그것이 그렇게 잔 적용되는지는 분석해보아야 안다. 사람둘은 왜 독립적이고 추상적이며 선협적인 정 밀한 사고 체계의 구 조물이 인 간의 물 리적 세게와 관계가 있기 를 바란까? 혹자는 수학적 개념과 공 리는 경험에 의해서 재시된다고 대답할지 모 른다. 논리의 법칙까지도 겅협에 의해 재시되고, 따라서 겅험과 일치한 다고 인정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설명은 너무나 단순하다. 어쩌면 왜 50 마리의 암소 들 과 50 마리의 암소 들 이 JO O 마리의 암소 들을 이 두는 지 뮬 선명하면 충분할지 모 른 다. 수와 기하학의 분야에서는 겅험은 정말 적당한 공리 들윤 제시겠고, 그것 윤 에 사용된 논리도 겅험이 가르찬 것에 불과한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대수학 • 미적분학 • 미분방정식 • 기타 분야에서 경험으로 재시되지 않는 수학적 개념과 기법을 만 들 어 강조해 왔다. 이 미겅협적 수학의 예 들 의에도, 우리는 수학적 직선은 미가산 개의 많은 수의 정둘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미적 분학은 신수계 의 수들처 럼 ‘ ‘파 들어 찬 ”(crowded to g e th er) 순간들로 이 루 어진 시간의 개념운 사용한다. 도함수의 개념 (4 장)은 어떤 무한소인
시간 동안의 속도라는 문리적 개념으로부터 제시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도함수가 속도를 나타넬 매는 한 순간의 속도를 나타낸다. 여러 가지의 무한집합들은 확실히 경험에 의해 재시되지는 않지만, 수학적 추론에서 이용된 분만 아니라, 물체가 지각에 팔요한 것처럼 만족할만한 수학 이 론에 팔 요한 것이다. 수학은 또한 전자기장 감이 물리적인 본질이 우리 에개 알려지지 않음이 확실한 개념들에게도 기여했다. 더구나, 논리의 법칙과 어떤 물리적 원리들이 경험으로부터 유도되었 다 해도 , 물 리적으로 중요한 걷론의 대규모적인 수학적 증명의 과정에서 논리의 법칙 들 은 수십번 이용되고 증명은 단지 논리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순 전히 수학적인 추론은 해왕성의 존재와 갇온 예언을 랬다. 그 렇 다면 자연은 논리의 원리 를 마르는 것인가? 다르게 말하면, 어떻게 얻어졌 돈 간에 자연이 어멍게 움직여야 한다고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논 리의 체계가 있는가? 추상화에 관한 수 백의 정리들과 수 천의 연역들 을 포함하는 주요한 이론들이 공리들처럼 신재에 매우 가깝게 부착되어 있다 는 사실은,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정확성으로 실제 현상들을 표현하 고 예언하는 수학의 힘을 나타낸다. 어째서 순수한 추론의 간 연쇄가 그 멍 게 훌 융하게 응용원 수 있는 결과둘을 생산할까? 이것은 수학에서 가장 큰 역설이다. 그레서 우리에게는 이중의 신미가 남겨진다. 물리저 현상들은 물리적 술어들에 의해 이해된다지만, 왜 수학온, 공리들로부터 연역된 수 백의 결과들이 공리들 자체만큼 응용된다고 알려진 곳에서조차 적용이 가능할 까? 그리고 왜 수학은, 우리가 단지 물리적 현상에 대하여 추측만을 할 수 있고, 이 현상윤 기술하기 위해서는 거의 전적으로 수학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영역에도 적용될까? 이러한 의문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잇어 질 수는 없다. 너무나 많은 과학과 기술이 수학에 의존하고 있다. 미목 진리라는 무적의 기치 아래 싸워 왔지만, 아마도 내져인 신미스러운 힙 에 의해서 승리를 실제로 쟁취하는 어떤 마술적인 힘이 수학에 있을까? 이 문재는 반복하여 재기되었는데, 묵히 아인쉬타인은 그의 《상대성 에 관한 간접적 선명》 S i del ig h t s on Rela ti v ity (1921) 에서 다-움과 감이 언 급하였다: 여기 모든 시대의 과학자들을- 혼란시컸던 난제가 생겨난다. 겅협과 무관한 인 간의 사고의 산 · 살인 수학이 그병 제 훈융하게 물리 져 실재 의 대 상들에 적 합하 다는 것이 어멍게 가능할까? 인간의 이성이 겅험없이 실계의 사산의 성진운
순수한 사고만으로 발견할 수 있는가? ••• 수학의 명재둘은 실재에 관한 한 확실하지 않으며, 확실하다면 실재에 판한 소 것이 아니다. 그는 수학의 공리화가 이 차이를 명확하게 랬다고 선명해 나아간다. 아 인쉬타인은, 수학의 공리와 논리의 원리가 경험에서 유도되었다고 이해 있지만, 겅럽과는 무관하게 인간의 정신에 의해 창조된 개념 들을 포함 하는 길고 복잡한 순수한 추온이 어망게 해서 그 렇 게 관목할 만 하게 웅 용인 수 있는 결은둘을 만물어내는지 를 묻고 있는 것이었다. 칸트로부터 그것에 대한 현대적인 선명을 얻을 수 있다. 칸트는 (4 강) 우리는 자연운 모르고 또한 알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지각둘만 을 가질 문이 다. 공간과 시 간이 라는 기 촌 구조 들 (칸트의 용어 로는 직 관을:) 움 부여 받은 우리의 정신들은 이들 짜넣은 (bu ilt-i n) 정신적 구조가 구 술하는 것에 맞추어 지각들을 조직한다. 그래서 우리는 공간의 인식을 유큘리드 기하학의 법칙들과 일치되게 구성하는데, 왜냐 하면 우리의 정신설-아 이멍개 하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 렇 개 조직되었기 때문에 공간의 인식은 계속해서 유클리드 기하학을 따온다. 뭉론, 칸 트 는 유클 리드 기하학을 고집한 대에서 물렀지만, 인간의 정신이 자연이 어멍게 움직이는가룹 결정한다는 그의 견해는 부분적인 선명이 된다. 정신이 우리의 공간과 시간으 1 개념을 빚어낸다. 우리는 자연에서 우리의 정신 이 우리에게 보여주기로 미리 결정한 것둘만을 본다. 칸트의 견해와 약간 비숫하지만. 그보다 확장된 견해가 우리 시대의 저 명 한 꿈- 리 학자들 중의 한 사람인 에 덩 몬 Arth ur Sta n ley Eddin g ton (1882 -1944) 에 의해 주장되 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정 신이 자연이 어 떻게 움직여야 하는가룹 길정한다: 우리는 과학이 가장 진보된 곳에서 정신은 자연으로부터 정신이 그곳에 놓아 둔 것운 단지 다시 모으기만 한다는 것윤 알았다. 우리는 미지의 해안에서 이 상한 반자국운 발견했다. 우리는 그것의 기원운 선명하기 위해 하나머 하나씩 십오한 이론듄윤 고안했다. 진국 우리는 그 발자국운 만문었던 생풍운 재구성 하는 대 성공했다. 그런데 보라 ! 그것은 우리 자신이다. 수학이 왜 자연에 적용되는가 하는 것의 칸트적 인 설명은 화이트해드 에 의해 근레에 상세하게 다듬어졌고, 1923 년의 브라우어의 논문에서 도 지지되었다. 그 핵십은, 수학은 의부 재계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무-
관한 것이거나 그 형상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현상을 · 인식하는 방법의 구성 요소라는 것이다. 자연 세게는 우리에게 객관적으 로 주 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갑각에 근거한 인간의 해석이거 나 구성이겨, 수학은 감각들융 조직하는 중요한 도구이다 . 그멍게 되면 거의 자동적으로 수학은 인간에게 알려지는 정도까지의 의적 세계 를 그 » 대로 묘사한다. 많은 사람 들 이 같은 수학적 조직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인간의 정신들은 실제로 미슷하게 활동한 다는 명재 또는 인간은 그 들 로 하여 금 묵벌 한 수학적 구조 를 받아 들 이도 록 조정하는 문화나 언어에 접 하면서 길러진 다는 사실로 설명된다. 유 큘 리드기하학의 우세는, 그것이 공간에 대한 마지막 말은 아니지만, 뒤의 견해 를 지지해 준다. 같은 이 야기 -강 대양중십설에 대해서도 할 수 있는데. 왜냐 하면 그것이 처옵에 · 는 찬동선과 관측상 년 차이가 나지 않았기 매문이다. 더구나, 만일 천 동설이 촌속되 어서 더 많은 최근의 관찰들과 일치하도록 수정되었다면. 그 것은 수학적 으로 복잡 하다는 것을 재 외하고는 의십 할 바 없이 지동선 과 동등하게 잔 적용 된 것이다. 위의 사상의 본질은 다음과 같이 표현원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복 잡한 현상들로부터 수학적 으로 기 술하기 쉬 운 성 질 윤 가지 는 단순한 체 계 들웅 주 상 화해 내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 추상화의 힘은 자연에 관한 눈란만한 수학적 묘사의 원인이다. 더구나 , 우리는 우리의 수학적 시 각이 우리에게 보는 것을 허락한 것만 을 본다. 이란 사상은, 예 를 듄 어 철학자 재 입 스 W ill ia m Jom es 에 의 해 그의 《 실용주의 에 관한 강의 > Lectu res 011 Prag m ati sm 에 서 도 표현되 었 다 : 수리 과학과 물리 과학의 모 든 위대한 업적 들 은 ••• 우리의 마음에, 겅협의 조잡한 질서에 의해 던 쳐진 형 대보다는 보다 합리적인 형태로 세계 룹 그리려는 불굴의 욕망으 로부터 출발 한다 . ” 어민 현대 작가의 보다 시적인 언어 룹 밀면 다-움과 갇다: 실재는 가 장 매 -- 추적 인 여 자 (courte s an) 이 다. 왜 냐 하면 그너 는 당신이 바로 그때 그녀에게 바라는 모습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너에게는 당신의 영 혼을 붙잡아 멜 바위가 없다. 왜냐 하면 그녀의 본질은 그립자이기 매 문이냐 그녀는 당신의 꿈 밖에서는 촌재하지 않으며, 자연의 얻굴에 미 치 는 당신 자신의 사상의 반영 에 불과하다. ” 그러나, 우리는 자연에서, 우리의 정신이 우리에게 볼 수 있도목 미 리 정해놓은 것만을 본다는 칸트적인 선명은, 왜 수학이 적용되는가 하 /
논 의문의 완전한 답은 아니다. 전자기학과 같이 칸트 시대 이두에 발달 된 것은 인간 정신의 산물이라거나 감각들 의 정신에 의한 조직이라고 하 기가 어렵다. 타디오와 델레 미전은 촌재하는 것이 아니다 . 왜냐 하면 정 신이, 자연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에 관한 정신의 개념의 전과로서, 타디오와 델레마전을 우리가 겅험할 수 있게 해주는 내적 구조와 일치 하도 록 감각 둘을 조직했기 때문이다 . 수학은 자율적이라고 믿는 수학자들 도 있다 (15 장 ) . 죽 , 수학의 공 리 둘이 순수이성의 산물이돈 경험에 의해 재시되었든 수학 전체는 겅칩과 . 는 무관하게 만 들 어진다. 이 견해에 따르면 수학은 물 리 적 세계 , 동 ·히 물리져 현상에 어 멍게 응용원 수 있을까? 및 가지 대답 둘 이 있다. 하 나는 수학적 공리 들은 무정의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 것문은 물리적 상 황에 맞도록 다르게 해석되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레서 작은 에로서 ' 타원적 미유 클 리드 기하학은 보동 의미의 직선문에도 적용되 고 , 직선 이 대원인 구면기하학에도 적용된다. 이런 유형의 설 밍은 프앙카레에 의해 제안되었다. 그는 수학은 그 공 리들이 함의하고 있는 것 들을 연역해내기만 하는 순수한 연역적 과학이 라는 것윤 기꺼이 인정랬다. 그래서 사람 들은 아마도 감각에 의하여 암 시 받은 그럴듯한 공리들을 아용해서 유 클 리드 기하학이나 미유 물 리드 기하학운 구성한다. 이 기하학 둘의 공리와 정리는 겅험적인 진리도 아 니고 선협적 진리도 아니다. 그것들은 참도 거짓도 아닌 데 , 이는 아치 직교좌표 대신에 극좌표를 이용하는 것이 옳은 것도 그 온 것도 아닌 것 과 갇다. 프앙카레는. 그것 등은 물재들을 정돈하고 측정하는 규약이라 든가, 개념의 위장도J. 정의 둘 이라고 불렀다 . 우리는 가장 편리한 기하학
을 이용한다. 그러나, 그는 우리는 언제나, 유클리드 기하학이 가장 간 단하기 때문에, 직선을 쭉 뻗은 현 이나 자의 가장자리 등으로 일상적 으로 해석해서 유클리드 기하학을 · 이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 왜 그 연역둘은 아칙 응용원 수 있 을 까? 프앙카레의 대답은 우리는 수 학이 거기에 알맞게 되도 록 불리적 법칙둘윤 수정한다는 것이다.
C'
프앙카레의 주장을 설명하기 위하여, 측량기사가 어멍게 거리 를 축장. 하는가 을 생각해보자. 그들은 길이를 실재로 줄자를 써서 축정한 편리 한 기선 AB 를(그럼 15,1) 정하는 것부터 시각한다. 거리 AB 룬 걷정하 기 위해서 각 A 를 먼처 걷정하는대, 측량기사는 정 A 에 선치된 망원 겅으로 정 C 를 보아서 그때의 눈금을 읽고 망원겅을 접 B 가 보일 매 까지 문란 다. 그러면 각도표에서 그가 망원경운 얻마나 회전시켰는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각 A 의 크기를 알게 된다. 갇은 방법으로 B 의 크 기 를 젠다 . 측량기시는 C 로부터 A 로, B 로부-더 A 름지나온 빛은 AC, AB 씁 잇는 직선( 곧 게 믿 은 현)을 마라왔다는 가정 아래 계속한다. 유클 리 드 기하학 의 공리는 곧게 멜은 현에 적합하므로, 그는 유물리드 기하 노 학이나 삼각법을 이용해서 AC 와 BC 의 길이를 계산한다. 그러나 측량 기 사의 견론은 문렀을 지도 모돈다. 3ll ? c 에서 A 로의 광선은 그립 I5- l 의 접선을 마라 왔기 때문에 접 A 에 있는 측량기사는 .:z. 빛을 받기 완 해서 빛에 접하는 방향으로 망원겅울 향하게 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 래서 그는 접 C 를 보고 있지만 망원깅온 실재로는 C' 을 향하고 있는지 도 모 은 다. 걷가적으로 그가 실재로 축 정하는 각은 CAB 가 아니라 ch AB 가 된다. 그러면 유쿨리드 기하학을- 이용하는 것은 AC 와 BC 에 메 해 문란 전과를 이끌어낸 것이다. 여기에서 광선은 어떤 걷운 마라 움직이는가 하는 문제가 생간다. 어 느 때는 그 길온 진짜 직선이고 어느 때는 대기의 영향으로 굴절된다 .. 측량 기사가 AC 와 BC 에 대해 듭란 질과를 얻었다고 가정하자. 그에게 는 광선이 휘어졌다고 믿을만한 어이한 이유도 없다고 하더라도, 그는 . 당연히 그렁개 간주해야 한다. 그러면 그는 점 A 와 정 B 에서의 각의 측정을 수정할 수 있고 AB 와 BC 의 옳은 값을- 얻기 위해 유쿨리드 기 하학을 적용할 수 있다. 수학은 물리져 실재에 맞도 목 만 듄 어잘 수 있다는 프앙카레의 주장의 다론 예로서, 그가 지구는 자전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말했던 것윤 보 . 자. 그는 우리 는, 자전이 천문학에서 우리 에 게 보다 단순한 수학적 이 몬을 고안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에, 그것운 문리적 사실로서 받아둘 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재로 수학져 이론의 단순성이 코매르니쿠스와 · 케꿉-러로 하여금 낡은 지구중십설에 반대되는 대양중심선윤 택하여 말 · 전시킬 수 있게 한 이유였다. 프앙카레 의 과학철학은 장정 아 있 다. 우리 는 가장 간단한 수학윤 이 1
용하려 서도하고 만약 킬요하다면 우리의 추론을 물리적 사실에 일치시 키기 위해서 물리적 법칙둡올 바꾸려 한다. 그러나 오늘 날의 수학자들 과 문리 학자둘이 사용하는 기 준은 무등 수학적 이 론과 물리 적 이 론들의 단순성이다. 만약 우리가 가장 단순하고 동합된 이론을 만 둘 기 위해서 ―아인수 1 타인이 상대성이돈에서 랬던 것처럼__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이용해야 한다면, 우리는 그 멍 게 해야 한다. 프앙카레는 수학이 어멍게 적용원 수 있게 만 들 어졌는가에 대해 보다 상세하게 설명했는데, 그는 수학과 자연의 일치는 인간의 정신 들 에 의해 서 만들어졌다고 믿는 접에서 어느 정도 칸트의 설명에 동의한다. 그의 .((과학의 가치 》 에 서 그는 주장했 다 : 인간 지성이 자인에서 맏견하있다고 생각하는 조화는 그 지성과 민개로 촌재 할까? 확신히 아니다. 그것을 인식하는, 보거나 느끼는 , 정신과 완전히 유i ;l 된 실재는 삼가능한 것이다 . 세계는, 선사 촌재하디라도, 우러에게는 잉원히 접근하기 어려윤 만 큼 외적인 것이다. 우리가 객관저 실재'’라고 부르는 것은 . 임밀히 말하면, 여러 생각하는 존재들에게 공 -응 된 것이고 아아도 모두에게 공 동된 것일 것이다; 우리가 보게 원 이 공동부분은 수학적 법칙문로 표현된 조 화인 문이다. 수학이 왜 적용원 수 있는가에 대한 약간 모호하고 아마도 너무 간단 한 설명이 있다. 이 견해에 마르만 객관적인 물리적 세계가 있고 인간 이 계속해서 그의 수학을 그것에 맞추려고 노턱한다. 우리는 응용에서 · 수학에 문란 명제나 명백한 오유가 있다는 것이 나타나면 수학을 수정 한다. 이 견해는 일버트가 재 2 회 국재 수학자 대회 (1900) 에서의 강연 에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감은 순수 사고의 창조저인 환동이 계속되는 동안에, 외적 세계는 다시 한번 그것이 성립합운 재주장하고, 반생하는 현상윤윤 동해 우리 에게 새 로운 문제들운 중으로씨, 외적 세계는 수학저 지식의 새로운 영역 을 연어준다; 그리고 우리가 이 새로운 영역들윤 순수 사고의 지배 아래 가져오려고 노력한 매 우리는 흔히 미해진의 문계들에 대답한 수 있고, 그래서 그와 동시에 기촌 의 이론듄윤 가장 효과적인 방멉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내가 보기에는, 사고 와 겅험의 끊입없는 성호 작용은, 수학자들이 흔히 지식의 다양한 영역들의 운 계 • 방법 • 개념에서 감지하계 되는 수 많고 눕- 라운 유사성둘과 명백하게 예정 된 조화에 의촌한다. 왜 수학이 적용원 수 있는가에 대한 보다 간단한 설명은, 우리 시대
에서는 덜 믿을만 하지만, 그리스 시대로부터 1850 년 겅까지의 수학자 들이 믿었던 것을 되풀이한다.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자연이 수학적으 로 선계되 었다고 믿는다. 그들은 물리적 환상에 관한 전시 대의 많은 수 학적 이론 들 이 불완전랬다는 것은 인정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수 학이 보다 많은 현상 들 을 포용한 분아니라 휠싼 더 정확하게 관찰과 일 치하도 록 하는 수학의 발달이 계속되고 있는 것을 지적한다. 뉴돈의 역 학은 아리스도델레스의 역학을 대신랬고, 상대성이론은 뉴돈의 역학보 다 나아졌다. 이 역사가 자연에는 섣계가 있고, 인간은 진리에 접접 가 까이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에르밋 Herm it e 은 수학 과 과학의 일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만약 내가 속고 있지 않다면 , 수학적 진리문의 집합인 세계가 존재한다. 이는 마치 불 리적 실재의 새재가 촌재하는 것과 같으며, 우리가 우리의 지성에 의 해서만 점 군 항 수 있는 세계이다; 우라에게는 무관한 이 두 세계는 모두 신의 창 조 물 이며, 우리 정산윤의 쉬약성 매문에 다르게 보이지만, 보.다 강력한 사고 방법에 의 해 시는 하나이며 같은 것이다. 이 둘의 종합은 추상수학과 물리학의 모 든 분야 · 홉 사이의 눈할만한 일치에 부분셔으로 나타난다. 쾨니히스버거 Leo Kon ig sber g er 에개 보낸 편지에서 에르밋은 해석학의 이 개념들은 우리와는 떨어져서 존재하고 , 그것들은 우리에제 단지 일 부만 보여지고, 신미스럽지만 명백하게, 우리가 감각 기관을 동해 지각 한 것들의 총체와 관련된 전체룹 구성한다”고 덧붙였다. 진스 경은 《신미스러운 우주》에서 역시 “그의 창조물의 본질적인 증 거 로부터 우주의 위 대 한 창조자는 이 재 순수수학자로 모습을 나타내 기 시작한다”는 오레 된 견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처음에 그는 인간의 수학은 “아직 궁극적인 실재와 접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었다. 그. 는 그 객의 뒷부분에서 보다 독단적이 되었다: 우리의 수학자설-이 연구운 한 때 조금도 외계의 겅협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들 의 내적 의식으로부터 그 법칙들윤 형식화하는 것처럼, 자연은 순수수학의 규 칙문에 정동한 것처럼 보인다 .... 어민 겅우에도, 자연과우리의 의식저인 수 학져 정신이 갇은 정신에 따라 웅직인다는 것은 논박되기 어렵다. 에딩돈도 역시 말년에는 자연은 수학져으로 설계되었다고 확신하기] 되었고, 《기본적 이론》 Fundamen t al Theory (1946) 에서 우리의 정신은 선 험적인 지식으로부터 자연에 대한 순수과학을 세운 수 있다고 단언랬다.
이 과학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것 이 고, 다본 과학은 논리 적 모순을 포함 할 것이다. 그 과학의 모든 상세한 부분들이 그렇게 얻어지지는 않겠지 , 만 자연의 일반적인 법칙들은 그럴 것이다. 그래서 빛은 유한인 속도로 전해진다는 것은 정신에 의해서 얻어진다. 자연의 상수 설― ―-전자와 양 자의 질량의 바와 갇은 것_~조차도 선험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이 렇 게 얻은 지식은 우주의 실재 관찰과는 독립되어 있고 겅험적 지식보나 더욱 확실하다. 미국의 최초의 위대한 수학자인 버코프 Geor g e David B i rkho ff는 194c 년에 에덩돈의 말들을 반복하고 지지하는 데 주처하지 않았 다: ... 물리학의 법칙둘의 전체 체계에는 인식 론적 고갈로부터 모 호하지 않게 언 역원 수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우리의 우수는 모 르 지만, 인간의 성신이 강 각져 겅협의 내용을 해석하는 데 쓰는 사고의 체계 운 알고 있는 지저 촌 ZII 는 , . 우리가 신협에 의해 얻을 수 있는 모 든 문리지 지석 운 얻 운 수 있어야 한다 . … 예문 둔어 , 그는 라듐의 촌재가 성진 들을 추론한 수 있 윤 것 이다. 그러나 지구의 크기는 그런 수 없다. 아인쉬타인은 젊은 시철에 (1918) 왜 수학이 실재와 일치하는가에 대한 · 약간 부적절하지만 합리적인 설명을 했다: 뭍리학의 맏단은 임의로 주어진 순간에, 모든 생각할 수 있는 전선들 중 에시 하나가 진정적으로 나머지들보다 우선하다는 것윤 스스 로 증명하있옹을 보여준 다. 현상 듄 과 그것들의 이돈져 원리둔 사이에는 어먼 논리서 연진도 없다는 사 실에도 상구하고, 문전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사람은 아무도 신계로는 현상의 세계가 이론적 체계은 유일하게 진정한다는 것윤 부정하지 못한 것이다. 이것 이 라이프니츠가 그렇게도 행석잡1-게 011 정된 조화라고 기술했던 것이다. 그는 원숙해전 두 1 에 《내가 본 세계》 The World As I See It ( 1934) 에서 , 다옵과 같이 주장했다: 지금까지의 우리의 겅협은, 자연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수학져 아아 디어의 신현이라고 우리가 믿는 것윤 정당화해준다. 우리는 순수하게 수학적 인 이해들에 의해서 자연 현상윤 이해하는 데 연쇠가 되는 개념들과 그개념둔 윤 연진하는 법칙듄율 발견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아마도 겅협이 알맞는 수 학적 개념듄윤 계시해 주겠지만, 그 개념들이 겅험으로부터 연역륄 수 없다는 것은 매우 학신하다. 겅험은 물온 수학져 이해의 유용성의 유일한 판정법으로 납는다. 그러나 창조쳐인 원리는 수학 안에 있다. 그러므로 어연 의미로는. 고-
대안 들 이 꿈꾸었던 것처럼, 순수한 사고는 산재 ·홍 카악한 수 있다는 것이 진 . 신이라고 생각한다. 다 론 글에서 아안쉬타인은, 오늘날 유명해진 신에 관한 문구로 그의 신 념을 재차 단언했다. 하여간 나는 신은 주사위 눈이를 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 만약 신이 주사위 눈이 룰- 한다면 그메 는 에 머 슨 Ralph Waldo Emerson 이 말했던 것처럼, 신의 주사위는 언제나 목정한 수가 나오게 되어 있 을 것이다.” 아인쉬타인은 여기서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수· 학적 법칙들이 옳은 것이라고는 주장하고 있지 않지만, 그러한 것은 촌 재하고, 우리는 그것들에 종 더 가까이 가는 것을 바랄 수 있다. 그가· 말한 것처럼, 신은 난해하지 십술궂지는 않다.” 아인쉬 타인과 마찬가지 로, 위 대 한 과학사가이 며 과학철학자인 두헵 Pie r re Duhem 은 《물 리 적 이 론의 목적 과 구조》 The Ai m and Str u ctu re of Phy si c a l Theor i es 에서 명료한 단언에 의십을 품었다. 그는 처음에 물리 적 이 론을 “그 목적이 실험적 법칙들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성운 요약하고 논리 적 으로 분류하는 것 인 추상적 체 계로 간주했다. 이문들은 근사적이고, 일시적이며, “모든 객관적인 참고물들을 없애버 만 것이다. 과학은 느낄 수 있는 외양만을 잔 알고 있고, 우리는 이론 화에 의 해 이 느낄 수 있는 외 양둘로부터 장악을 걷어 낸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천재적인 과학자가 혼란된 겉모습을 수학적으로 정돈하고 명확하게 한다면, 그는, 미교적 알기 쉬운 개념들 대신에 우 리의 진짜 자연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는 상칭적인 추상둘을 덱한 댓가 만으로 그의 목적을 이문다. 그러나 두행은 이 질서와 조적 [수학져 이 론 에 의해 만 둔 어진)이 실재의 질서와 조직의 영상이 아니라고 믿는 것은· 우리에게는 불가능하다”라고 선언함으로써 끝맺었다. 세계는 위대한 건 축 가에 의해 수학적으로 선계되었다. 신은 영원히 기하학져으로 설계하 고, 인간의 수학은 그 설계를 묘사한다. 바일 Wey ! 은 수학은 자연의 질서 를 반영 한다고 확신랬다. 한 강연에 서 그는 말했다: 우리의 정신에게 간단한 수학적 법칙듄의 모숭으로 나타나는, 자연이 본래부 터 가전 숨겨진 조화가 있다. 이것이 자연에서 일어나는 사건둘이 판찰과 수 학적 분석의 걷합에 의해서 예언원 수 있는 이유이다. 물리학의 여사에서는 여러번 조화에 대한 이 신념이, 나는 이것을 꿈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우리의 기대 이상으로 충족되어 왔다.
그러나 그가 그의 《수학과 자연과학의 철학 》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 윤 보면, 그의 소망은 사상의 전조였나보다: 진리와 신재에 대한 조원적인 신님의 지지와, 한편으로는 과학의 사설 들 과 전 선등과 다 돈 편으로는 아이디어의 상상등 사이의 계속적인 상호 작용이 없다면 과학은 믿써 사라졌윤 것 이 다. 우리는 진스, 바일, 에딩돈, 아인수 1 다인의 의견 들 을 가`서게 잊 어내란 수는 없지만, 수학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그둥의 견해는 지배적인 견해 가 아니다. 자연에 대한 수학적 묘사의 성공은 너무나 놀타 운 것 이어 서 그들이 재공한 설명을 합리적으로 보이게 한 것은 사실이다. 이는 마 치 유 칼 리드 기하학이 수 세기 동안 학자 들 에게 의십 할 바 없는 진 리처럼 보었단 것과 같다. 그러나 오눈날에는 자연의 수학적 설계 룹 믿 는 것 은 대단히 어리운 일로 보인다. 아직 수학과 설-리적 새겨 1 의 관계에 대한 또 다 른 설명 이 남아 있지만 그것은 일만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종류 의 것이 아니다 . 지난 백년 동 안 에 자연윤 동계적으로 설명하는 진해가 생겨났다. 다소간 역 선적 으로. 그같은 견해는 타 갈- 라스에 의하여 창시되었는데, 그는 자연의 행위는 수학적 법칙등과 일치하도목 엄격하게 전정된다고 믿었으나, 행위의 원 인은 언재나 알려지지 않고 관찰은 단지 근사적으로만 옳다고 굳게 믿 었 던 사람이 다. 그러 므로 우리 는 확뮬 론 을 가능성 이 큰 (most lik e ly) 원 인과 옳을 가능성이 큰 자료 를 질정하는 데 옹용해야 한다. 라 문 라스의 따 윤 의 해 석 적 이 론》 Analyt ica l Theory of Probabil i t y (3 판 1820) 은 이 분 야의 고전이다. 확뮴론과 동계학의 역사는 광대하고 아마도 그것윤 여 기에 쓴다는 것은 설-팔요할 것이다. 그러나 100 년도 지나기 전에 자연 의 움직임은· 전혀 결정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무질서하다는 견해가 두] 마라 나왔다. 그러나 가장 개연적인 행위 죽 평균적인 행위가 촌재하고 · 이것이 우리가 관찰하고 말하는 것인데. 그것은 수학적 법칙에 의해 질 정되어진다. 사람들이 여러 나이에 걸쳐 사는 것처럼-어떤 사람둘은 어려서 죽고 어떤 사람들은 백살까지 산다――모든 남자와 여자에 대한 평균 수명 (기대 수명) 이 있을 분만 아니라 어느 주어진 연령의 평균 수 명이 있다. 그리고 보험회사는 이 자료를 이용하여 매우 성공적인 사업 을 하고 있다. 자연을 동계적으로 보는 견해는 양자역학의 발전 때문에 최근 뮬-어 굉장한 지지룹 받고 있는데, 양자역학에 따르면 단단하고 분
리된 위치룹 정유하는 입자들은 없다. 그것둘은 공간의 모든 부분에서 어떤 확문로 존재한 분이지만 확뮴이 특히 높은 한 장소가 있다. 하여간, 동계적 견해에 따르면, 자연에 대한 수학칙 법칙은 고작해야 자연이 움직이는 방법 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을 묘사한다. 그리고 . 그 법칙 들 은 지구가 갑자기 공간을 방황하게 원 가능성도 배재하지 않 는다. 자연은 스스로 걷정할 수 있고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하지 않 기로 결정할 수도 있다 . 및 사람의 과학철학자둥이 오늘난 체덱하고 있 는 결론은, 수학의 설명할 수 없는 힘은 선명할 수 없는 채로 남아 있다 는 것 이 다 . 이 결론은 철학자 피 어 스 Charles Sonders Peir c e 가 처 옹 표현 랬다: 발견되도록 남겨진 비밀이 이 시접이]도 있다는 것은 가능하다 . ” 보다 최근에 (1945 년) 쉬뢰딩어 Erwi n Schrod i n g cr 는 《 생명은 무엇인가》 What I.5 L I Tc 에서, 인간이 자연의 법칙을 발전한 기적은 인간의 이해의 범위를 벗어난 것인지도 모돈다고 말했다. 매우 두 1 어난 불리학자인 디 손 Freeman D yson 도 ‘‘물리적 세계와 수학적 세계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 기까지는 우리는 아직도 먼 것 같다”고 동의하였다. 위의 말에 우리는 아인쉬 타인의 말을 덧붙일 수 있다: ‘재계에 대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점은 그것이 이해된 수 있다는 것이다.”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바 있는 위그너 Eug e ne P. W ig ner 는 1960 년에 자연과학에서의 수학의 터무니 없는 유효성에 관한 문재를 바로 그러한 제목의 굳에서 논했는데 , 그 균은 그 문재정을 재천명한 것과 다품없는 설명이었다: 물 리학의 법칙들윤 형식화하는 데 수학적 언어가 지당하다는이 기저은우러가 이해한 수도 없고 당연히 받아둡일 수도 없는 눈항만한 산판이다. 우리는 그 것에 대해 강사해야 하고, 그것이 미래의 인구에도 유효하기룹 아라며, 좋게 돈 나쁘게든 당황하기) 하기도 하겠지만, 우리윤 기쁘개 하도목 학문의 여러 분 야에 저용되기을 바란다. 위와 갇은 마지막 설명들은 변명이다 . 그것은, 수학이 왜 효과적인 가 하는 대에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을 부드럽게 승인하는 인상칙인 언어 로 표현되었지만 거의 말하는 것이 없다. 왜 수학이 응용진 수 있는가라는 어떤 선명이 아무리 만족스럽든 그 령지 않돈 간에, 자연과 자연의 수학적 표현은 갇은 것이 아니라는 것 울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 차이는 수학은 단순하 이상화된 것이라
는 것만이 아니다. 수학적 삼각형은 확실히 물리적 삼각형이 아니다` 그러나 수학은 편씬 더 언리 나아간다. 기원전 5 세기에 제논 Zeno of Elea 은 및 개의 역선들을 재기했다. 그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운동에 관 한 그의 첫째 역설도 수학적 개념화와 경험의 차이룰 예시한다. 재 논의 첫째 역선은, 겅주자는 전코 겅주로의 마지막 지정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 하면, 그는 먼저 거리의 I/2~운 가야 하고, 다움은 나머 지 거리의 1/2 을, 그 다음은 나머지 거리의 1/2 을, ••• 가야 하기 때문 이다. 죽 경주자는 2I +4I + 8I +16I + ••• 울 가야 하는데, 재논은 주장하기웅, 무한히 많은 거리들찰 가려면 무 、 한 시간이 걸려야 한다는 것이다. 재논의 역설의 물리적 해결로서 가장 명백한 것은 겅주자는 유한 먼 의 걷옵으로 그 거리들을- 다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가 재논의 수학적 분석윤 받아들인다 해도 걷리는 시간은 1/2 분, 더하 기 1/4 분, 더하기 r/8 분, ••• 해서 이 무한 개의 시간 간격돌의 합은 1 분이 원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불 리적 과정과는 일치되지 않지만. 그 럼에도 불구하고 전과는 갇다. 어멍게 보면, 사람 들 이 재한되고 인위적이기조차 한 개념 들을- 도입해 서, 오로지 이 개념들로 자연의 법칙윤 만들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인 간의 수학은 적용원 수 있는 스킵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연 자 체는 원싼 더 복잡하거나 전혀 고유의 설계를 가지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분구하고수학은자연의 연구·표현 ·지배를 위한 더할 나위없 는 (pa r excellence) 방법 으로 남을 것 이 다. 수학이 효과적 인 영 역 에 서 는 주학은 우리가 가전 전부이다. 수학이 실재 자체가 아니라면 그것은 우 리가 이해한 수 있는 실재에 가장 가까운 것이다. 수학은 순수한 인간의 창조군이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준 자연의 어 ’ 떤 영역둘에의 접근법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기대를 넘어서까지 진보하 게 했다. 신재로부터 그렇게 동떨어진 추상화가 그렇게 많은 것을 성취 겠다는 것은 참으로 역선저이다. 수학적 선명은 인위적인 것이며, 아마 、 도 동화일지도 모르지만 교훈을 가전 동화일 것이다. 인간의 이성은 쉽; 세 설명되지 않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다.
수학적인 성공들은 세계를 크기 • 물질 • 무게 • 계속기간, 그리고 다론 비슷한 개념들로 파악하는 댓가로 얻어진다. 그런 선명은 풍부하고 다 양한 경험들에 관하여, 사람의 키가 그 사람을 나타내는 만큼보다, 더 완전한 표현 일 수는 없다. 수학은 고작해야 자연의 어떤 과정들을 묘사 하기는 하지만, 수학의 기호들은 자연의 모든 것을 포함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수학은 물 리져 세계의 가장 간단한 개념과 형상운 다문다. 그 것은 인간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없는 물질을 다룬다. 물질의 행위는 반복적이어서 수학온 그것을 묘사할 수 있다. 그러나 생물학분 아니라 경제학 • 정치학 • 십리학 둥에서는 수학은 훨씬 덜 유용하다. 물 리학의 영역 에서마저도 수학은, 곡선이 접선과 한 점에서 만나돗 실재 와 조금 접하 기만 하는 단순화된 것을 다문다.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 의 궤도는 타원인가? 아니다. 지구와 태양이 정들로 간주되고, 우주의 모돈 다른 물체들 이 무시욀 때만 타원이다. 지구에서의 사 계철은 매년 똑같 이 되풀이되는가? 거의 그렇지 않다. 다만 대체적인 모습 둘 로만, 그것둘이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지만, 되풀이된다. 수학이 터무니 없이 효과적인 것을 우리가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하는가? 해비사이드 Heav i s i de 는 이령게 말한 바 있다: 내가 소화의 과정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저녁 식사를 걷러야 하는가? 경험은 의십하는사람 들운 반박한다. 합리적 선명들은 확신에 의해 무시 당한다. 우리는 종교 • 사회과학 • 철학에 당연한 관십올 가지 고 있고, 수학이 인생의 이런 면둘을 다루지 않는다는 것을 명백히 알 지만, 수학이 우리에게 지식을 주는 데 있어서는 매우 성공저이었다는 것은· 사실아다. 이 지식은 그것이 옳다는 말분만으로으] 지식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타디오와 원자력 발전소의 작동에서, 일식의 예언에서, 실 험실이나 일상 생환에서 일어나는 수학의 사건 들 에서 매일 시형되고 있 다 . 수학은 물리적 세계라는 간단한 문제 를 다우지만, 그 분야에서는 그 것이 가장 성공적인 발전이다. 인간이 어떤 중요성운 가졌을 것이라는 기대의 어느 정도는 수학을 봉해 얻은 힘으로부터 나온다• 수학은 인간 이 자연을 이용하개 하여 인간의 침을 얻어주었다. 우리는 수학의 승리 로부터 용기를 낼 수 있다. 수학은 왜 적용원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은 단지 학문적 (academ i c) 인 것 만은 아니다. 수학을 공학에 이용할 때, 예축하고 겨 1 외하기 위하여 우리
는 어느 정도까지 수학에 의존해야 하는가? 우리는 무한집합과 선 출공 리문 포함하는 이론을 이용해서 교량을 설계해야만 되는가? 그 교량이 붕괴되지는 않을까? 다행히 일마간의 공학적 계회들은 아십하고 이용 한 수 있을 만큼 과거의 경험에 의해서 잘지지되는 정리 들을 이용한다. 많은 공학적 계획둘은 일부러 여유있게 설계된다. 교량은 강철강은 재 료를 사용하여 세우]지는데, 우리가 물질의 강도에 대해 아는 지식이 부 정확하기 때문에 공학자둘은 이론에 의해 요구되는 것보다 단단한 케이 설과 들보룹 쓴다. 그러나, 전에 건설되어 본 적이 없는 공사의 경우에 는 사람둘은 이용되는 수학의 신뢰성 을 걱정해야 한다. 그란 경우에는 신중을 기해 작은 크기의 모형을 만둘어보거나, 진짜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다른 시험을- 거찬다. 이 장의 관십은 수학과 수학자둘이 빠쳐 있는 닌 ·국 의 해걷 ;J I 을 다소라 도 찾는 데 있었다. 보편적으로 인정된 수학의 재계는 없고 여러 집단 들 에 의해 주장된 많은 건둥이 모두 추구원 수 없는대, 왜냐 하면 그멍게 하면 과학의 맏전이라는 수학의 주목적이 방해를 받기 메문이다. 그래 서 우리논 그 주목적을 기준으로 삼기를 주창했다. 우리는 또한 이러한 건에 수반되는 문재들과 쟁접을 논했다. 그 렇 지만 과학에의 옹용을 강조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길처럽 보일 매에도 응용의 강조는 수학의 영역에서 다몬 가치있고 현명하기까지 한 연구들을 배재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응용수학의 연구에도 추상화 • 일 반화 • 엄밀와 그리고 방법론의 진보 등의 다양한 뒷받침이 있어야 한 다는 것을 지적랬다 (13 장). 이것들 의에도, 우리는 당장은 과학 연구에 유용성 이 밝혀진 수학윤 낳지는 않는 기초론 연구도 정 당화할 수 있다. 일부 직관주의자둘의 구성적 프로그랜은 의미 없는 존재 정리 을 대신하 려는 의도였었지만, 순수한 촌재 정리가 단지 존재만을 알려준 양들을 개산하는 방법등을 알아낸다. 간단하게 오래 된 예 를 들자면, 유큘리드 는 원의 면적과 그 원의 반지읍의 제곱의 미는 모든 원에서 같다는 것 윤 증명했다. 이 미는 물몬 r 이다. 그러므로 유클리드는 순수한 촌재 정리을 증명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떤 주어진 원의 면적운 계산하려면 r 의 값욥 아는 것이 명백히 중요하다. 다행히 아르키메데스의 근사 계 산과 나중에 발견된 여러 가지 급수 전개둘 때문에 직관주의자들이 순 수한 존재 정리에 도전하기 핀씬 전에 우리는 r 의 값을 계산할 수 있 다. 확실히 r 룹 계산한 수 있다는 것은 중요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 존재만이 확립된 다른 양 · 등도 계산되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구성적 프 로그램 은 마땅히 추구되 어 야 한다. 기초론적 접근법의 또 다른 참정저인 가치는 모순에 도단한 가능성이 다. 무모순성이 증명되지 않았으므로 모순이나 명백히 불합리한 정리를 찾는 것은 적어도 지금 어연 수학자들의 시간과 정력을- 대앗고 있는 일 둘을 배재하게 친 것이다. 수학의 지위에 대한 우리의 선명이 기분 중은 것은 확실히 아니다. 수학은 전리라는 이 름을 빼앗겼다; 수학은 독립적이고, 확실하고, 단단 · 하게 기 조를 둔 지석의 체계가 아니다. 많은 수학자둘은 과학에의 헌신 을 단념했는데, 그것은, 역사상 어느 시대에서나 목히 응용이 수학이 추구해야 할 전전할 방향을 안내해 줄지 모르는 시대에는, 동단할 일인 것이다. 결국 응용되어전 것들의 눌할만한 확증과 힘은 아직 설명되어 져야 할 것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결함과 재한에도 분구하고 수학은 기여하는 바가 크다. 그것 은 인간의 최고의 지적 성취이며, 인간 정선의 가장 독창적인 창조물이 다. 음악은 영혼을 께우거나 평안하게 하고, 그립은 눈을 즐겁게 하고, 시 는 감정 을 자극하고, 철학은 정 신을 만족시 키 고, 공학은 인간의 물질 적 삶을 향상시 킬지 모른다. 그러 나 수학은 이 모든 가치 들을 재 공한다. 니구나 수학자들은, 추론이 성취할 수 있는 것에 관한 방향에서, 그문 · 이 얻은 결과의 확실성을 수호하기 위해 인간 정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 의 노력을 해왔다. 수학적 정확성이 본보기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수학은 아직도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은 지식의 전형이다. 수학의 업적은 인간 정신의 업적이고, 인간이 무엇윤 성취한 수 있는 가의 이 중거는 사람들에게, 일견 이해한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우주 의 신바에 도전할 수 있는, 질리기 쉬운 치명적인 병들·울 국복한 수 있 는, 그리고 사람이 사는 정치 구조를· 연구한 수 있고개선할 수 있는 용 기 와 확신을 주었 다. 이 란 노릭 물에 수학이 효과적 일지 아닌지 모로지 만 성공에의 억재할 수 없는 기대는 수학으로부터 나온다. 수학의 가치는 그런 곳에 있는데, 그것둘은 저어도 인간의 어느 창조 물이 제공할 수 있는 것만큼이나 큰 가치들이다. 그 모돈 것들이 쉽고. 넓게 인식되고 평가되지는 않는다 해도, 다행스럽게도 그것둥은 이용 되고 있다. 그것둡에 이르는 등반이 예룹 듄어 음악에서보다 힘이 윤더 라도 그 댓가는 더 나윤 것이다. 왜냐 하면, 그것들은 인간의 창조군에
제공할 수 있는 지적 • 미적 • 감정적인 가치들을 거의 모두 갖고 있기 때문이다. 높은 산에 오르는 것은 낮은 언덕에 오르는 것보다 힘들지 모르지만, 정상에서의 전망은 핀씬 먼 지평선까지 확장된다. 거기에 있 는 가치들은 풍부한데, 다만 문재가 되는 것은 중요성의 순서이다. 그 러나 이 문제는 각자가 스스로 대담해야 한다; 여기에는 개인의 판단 • 의견 • 취향이 개입된다. 지식의 확실성에 관한 수학은 우리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일지 모르지만, 도달하려고 애쓰는 이상으로 알맞다. 확실성온 아아 계 수 대 서 따라가도 끝까지 알기 어려운 호J:잉에 불과할 수도 있다 . 그러나 아 상온 힘과 가치를 지닌다. 정의, 민주주의, 그리고 신도 이상 등 이나. 사람들이 신의 이몽 아래 살인을 하고. 정의의 실패가 악명 높다 는 것 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국하고, 이 이상들은 수천년 문명의 수요 산 상 이 다. 비옥 수학이 단지 이상일지라도, 역시 주요한 산물이다. 아마도 우 리가 이상운 관조해보면, 어느 분야에서나 진리 를 얻기 위해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을 더욱 잘 알개 원 것이다. 인간의 곤경 은 비 참하다. 우리 는 방대 한 우주의 방랑자 들 이 며 , 자안 의 황패에 손을 쓸 수 없으며, 윤식과 다몬 킬수품을 자연에 의지하며. 또 우리가 왜 태어났고 살아야 하는지 모르고 있다. 인간은 이 냉담하 고 낯선 우주에서 외롭기만 하다. 인간은 이 신비스럽고 재빨리 변해가 는 꾼없는 우주를 응시하며 그 자신의 하찮음에 혼란되고, 당황하고. 겁 올 먹기까지 한다. 과스칼은 이멍개 표현했다: 도대체 인간이 자연 속에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한에 미하면 무이고. 우에 미하면 전체이니, 무와 전체 사이의 중십적이어서, 어느 것도 이해하기 는 까마득히 먼 촌지 l 이다. 사물의 꾼과 시작은 간파할 수 없는 비밀 속에 인 간이 공략할 수 없게 숨겨져 있다. 그는 .::z..윤 대어나게 한 우와 .::z..윤 감싸게 한 무한윤 똑 갇이 안 수 없 다. 몽데뉴 Mon taig ne 와 홉스 Hobbes 는 다은 말로 갇온 이야기를 했다. 인간 의 삼은 외롭고, 가없고, 불결하고, 야만적이고. 짧다. 그는 불의의 사 고의 회생물이다. 재한된 감각 기판 및 개와 두뇌 하나물 가진 덕분에, 인간은 자신 주 우 1 의 신비윤 간파하기 시작랬다. 감각 기관묻이 직접 드러내는 것이나 겅협으로부터 추론할 수 있는 것들을 이용해서 인간은· 공리들을 채댁하
고 그의 추론 능릭을 응용하게 되었다. 그의 탐구는 질서의 탐구였으며. 그의 목적은 일시적인 감각둠에 반대되는 것으로서의 지식의 체계 룬 구 축하고. 그가 그의 환경을 조금이라도 지배하는 데 도움을 줄지도 모 르는 설명 의 패턴들을 만드는 것이다. 그의 주된 성취는, 인간 자신의 이성의 산 물 인, 수학이다. 그것은 완벽한 보석은 아니고, 계속해서 닦 는다고 해도 아마 모든 홍둘을 없애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붕구하 고, 수학은 감각 세계와의 가장 훌륭 한 연결고리 (link ) 였고, 그것의 기 초 가 단단하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정이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해도, 수학은 여전히 인간 정신의 가장 구]중한 보석이며, 소중히 여겨지고 아꺼져야 한다. 그것은 이성의 선두에 있어 왔으며, 보다 깊 은 담 구에 의해 새로운 결함들이 발견된다 하더라도 의십할 바 없이 계 속 그 지위를 누릴 것이다. 화이트해드는, 수학의 추구는 인간 정신의 신성한 광기 (a div i n e madness) 라는 것을 인정하자”라고 말한 적이 있다. 광 기일 수는 있으나, 윤 림없이 신성하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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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해설 M이at h e 책m 은at i cs모 —리 스T h클 e 라Lo인ss Mof o rrCise r tKa iln int ye , 의 O《xfo수 r학 d ―U一n확iv 실e r성si t의 y P상re실s》s, New York, 1980 을 번역한 것이다. 지은이는 저명한 수학사가이며, 뉴 -우 대학교 쿠란트 수리과학연구소의 명예교수이다. 지금까지의 일반독자 를 상대로한 수학의 역사와질학을 다문 체이나 계몽적인 해설서둘은 모두 수학에 관한 찬사로 재위진 것들이고, 그. 결 과 로 수학은 항상 성공적인 역정만을 거쳐 왔다는 인상을 주어 온 것이 사 실 이다. 극히 소수의 전문가들만이 이 거대한 학문체계의 실상을 참 으로 아해 하 고 있는 것 도 사실이 다. 큘 라인은 이 같은 전문가들만이 알고 있단 내용도 과감하개 일반 대중에게 공개한 샘인데, 그 부제부터가 약 간 선 동 적이고 그 내용도 약간의 편견과 자기 신념에의 고집이 섞여 있 다. 이 저서에 대한 미국의 한 서평도 신할한 것으로 미루어, 이 책은 문제작으로 논란이 뭘 소지가 있다. 그러나 노대가 큘라인의 말에도 귀담아 들을 만한 얘기가 있으며, 수 학의 장래의 역사에 대한 그의 우려는 백분 옳은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잘 소화해서 듣는다떤 건전한 시사로 바뀔 수도 있다. 여하간, 이 객은 주로 20 세기 전반의 수학의 기초에 관한 우]대한 수학자들의 노력을 다 루고 있으며, 그것이 만족할 만한 상대로 해질되어 있지 못한다는 것이 그 주재이다. 2 수학은 혼히 거대한 전당 또는 나무에 비유된다. 이 겅우에 수학기초 온은 건설의 기초 또는 나무의 뿌리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문자 그대 로 수학의 기초에 관한 연구이다. 이재 쭙라인의 이야기를 둥어 보기로 하자. 참된 수학이 무엇인가, 새로운 수학을 창조하려고 할 때 어떤 기조윤 채택하여야 하는가를 결정하려는 시도는 계속적으로 곤경에 처해 있다.
다만 응용 가능성만이 수학의 지위를 보장해 주는데 순수수학자들은 옹 용을 포기함으로써 수학의 지위를 격하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수학의 본질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을 재고해야 한다. 그러면 우선 어떻게 해서 수학이 이같은 곤경에 놓 이게 되었으며, 근 본적인 문제접 들은 무엇인가 살펴보기로 하자. 수학을 최초에 만 들 어 쓴 이집트인과 바빌로니아인 들은 십오한 기초 를 다지지 못랬다. 그들에 게는 대지는 안전한 기초로 보였고, 수학을 세우는 대 사용한 재료인 수나 도형에 관한 사실들은 단순히 땅에서 얻을 수 있는 강형에서 나왔 다. 수학의 이같은 기원은 기하학 ( g eome t r y ) 이 “땅을 잰다”는 뜻에서 나온 것과 부합된다. 그러나 대지 위에 세운 수학이라는 건물은 세우자마자 혼들리기 시작 했고, 더 높이려 했다가는 위험한 사대가 생길 것이 분명해졌다 . 고대 그리스인둘은 이 위험을 간파하고 재건축응 시도하였 는대 , 이매에 그 들 아 기초로 잡은 첫째 수단은· 공간과 자연수에 관한 자명한 진리를 공리 로 백한 것이고, 둘째 수단은 연역적 증명을 철골처럼 전물 속 에 집어 넣은 것이었다. 그리스 시대의 주된 수학은 유클리드 기하학이었는데 처음에는 안정된 것이라 생각되었으나, 거기에 한 결접이 드러나게 되 었다. 그것은 무리수의 발견으로서, 그것이 그리스인 둘이 인정하고 있 던 자연수들의 比로 표시되지 않는다는 것은 놀 라운 사실이었다. 그들 은무리수를추방합으로씨, 길이·면적·체적등으 1 개념 을확립할수 없게 되었으며, 그 길과로, 자연수의 범위와 기하학에 동합될 수 있는 것 이의의 산수나 대수를 미 이상 발전시킬 수 없었다. 예외적으로- 아 르키메데스와 같은 알렉산드리아 시대의 그리스 수학자들이 무리수 룹 써서 계산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들은 수학의 논리적 구조 안에 편입 되지는 못했다. 인도인들과 아랍인들은 안정성에 대한 고려 없이 수학의 구조에 몇 충 울 더 쌓아올렸다. 기원후 600 년경에 인도인들은 0 과 음수를 도입했 고, 인도인과 아랍인들은 무리수를 도입하고 그 연산규칙까지 개발했 다. 그리스, 인도, 아랍의 수학운 물려받은 르네상스 시대의 유럽인들 은 처음에 이같은 이질적 요소몰 수용하는 데 주처했으나, 과학으로부 터의 요구가 강해지자, 논리적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이룰 사용하지 않 윤 수 없었다. 이 리 하여 수에 관한 수학은 층 위 에 또 충을 쌓아올라가서 복소수.
대수학, 미지분학, 미분방정식, 마분기하학과 그밖에도 많은· 분과가생 겨났다. 이것은 마치 철군을 사용하는 대신에 칙관과 물리져 논법으로 구성된 나무기둥과 물보를 사용한 셉이다. 나무로 된 기둥과 둘나보는 무 개를 이기지 못해, 1800 년경까지는 대수리를 해야 할 형편이 되었다. 상부 구조를 강화하고 있는 동안에, 그리스인들이 세운 기초인 공리 들이 가라앉기 시작하여 비유클리드기하학의 탄생올보게 된다. 수학자 둘은 자연의 실재·롭 다룬다는 생각을 버리게 된 것이다. 또, 사원수의 발견은 수학자들로 하여금 수의 성질조차도 기하학과 마찬가지로 실세 계에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음을 깨닫게 하였다. 그리하여 당시 의 수학의 전제계인 기하학, 산수와 그것의 확장인 대수학과 해석학은 논리적 엄밀성이라는 접어 1 서 곤겅에 처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전전한 수학의 기초로서 명확히 표현된 정의, 완벽한 공리 계, 그리고 직관적으로는 아무리 당연해 보이는 사실이라도 그것을 명 백히 증명하는 것둘을 생각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실세계에 대비되는 수학의 진리성 대신에 논리직 무모순성을 추구하게 되었다. 19 세기에 있어서의 수학의 엄밀화 운동이나 19 세기말의 공리주의 운동을 동하여 적어도 겉보기 로는 견고해진 대신에 현실에서의 근거는 버려야 했다. 그러나 그 무모순성은 보증되지운 못했고, 집합론에서 역리가 발견되 자, 몇 세기에 걷쳐 세워 온 논리적 기초가 뒤혼둘리기 시작했다. 수학 은 마땅히 재조직되었어야만 했으며, 재전된 수학의 기초가 되는 논리 적 및 수학적 공리들은 강화되어야만 했다. 여기에서 극적인 의견대립 이 나타났다. 그리하여 과연 무엇이 수학의 본질이냐 하는 데 대해서 상반된 견해가 나타났는데, 그 양상은 논리주의, 직관주의, 형식주의. 및 집합론자등으로 칼라졌으며, 이들 각학파 안에서 다소 엇갈리논 견 해가 나타났다. 브라우어 Brouwer 로 대 표되 는 직 관주의 자문 가운데서 도 무엇 윤 근본 적이고 확실한 직관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르며, 정수만운 받아둘 일 것인지 아니면 어떤 무리수까지 받아돌이느냐에 따라 다르며, 매중 뮬을 유한집합에만 적용할 것인지 가부번집합에까지 적용할 것인지에 따라 다르며, 또 구성적 방법의 개념에 대해서도 달랐다. 럿셀 Russell 로 대죠되는 논리주의자둘은 오로지 논리에만 의존했지 만, 환원공리 • 선총공리 • 무한공리 둥에 대한 불안운 밀쳐 버리지 못하 고 있으며, 논리가 진리라는 것조차 포기하고 있는 상태이다. 집합온자
둘은 수학의 전체계를 집합론 위에 세우려 하는데, 선출공리 또는 연속 체 가선을 받아둘이 느냐 아니 냐에 마라 여 러 가지 다론 수학을 만들어 내 게 된다. 인버트 H i lber t로 대표되는 형식주의자도 여러 가지 길을 갈수 있다. 무모순성을 확립하려는 힐버트의 초수학의 원리에 관하여도 서로 다른 견해가 있다. 인버트가 주장한 유한의 원리는 괴델 Godel 이 일계술어 논리의 불완전성을 증명함으로써 불충분한 것임이 밝혀졌고, 또 힐버트 의 형식적 수학 체계의 무모순성은 확립할 수 없다는 것이 밝혀져 미유 한적인 방법이 사용되어 오고 있다. 더 나아가서, 힐버트가 선정한 재한 안에서, 괴델은 임의의 중요한 형식 체재도 미결정적 명재, 죽 공리들과 독립인 명재를 가짐을 증명하 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명재 또는 그 부정을 새로운 또 하나의 공리로 수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이 한 뒤에도, 괴델의 결과에 따르면 이 확장된 채계는 역시 비결정적 명재룹 가지게 되고, 따라서 새로운 선댁 이 가능해진다. 마라서 이러한 과정은 끝없이 계속된다. 논리주의자, 형식주의자, 집합론자들은 모두 공리칙인 기초에 의존하 고있다. 금세기초 및 십년 동안은 이런유형의 기조가 성공한듯이 보였 으나, 괴델의 정리논 어떠한 공리체계도 어느 한 구조에 속하는 모든 사 실을 포함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뢰밴하임 Lowenhe i m 과 스콜 렙 Skolem 의 정리는 각 공리체계가 의도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포함 한다는 사신윤 보였다. 어떤 기초가 최선의 것이냐에 관한 상반된 견해와 모든 불확실성을 국복하더라도 무모순성의 증명운 다한 수 없다는 사실은, 어만 컬학을 덱하더라도 모순에 도달할 위협성이 항시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큘라인이 수학의 기초에 관한 역사적 회고를 꾼낸 뒤에, 괴덴의 정리를 수학의 확실성에 관한 조종처럼 묘사하고 수학의 나아갈 길에 관하여 논하는 중에 서 순수수학을- 매 도하고 응용수학만이 고귀 한 것이며, 새로운 걷과를 이꾼어내는 대 수학자들이 힘써야 할 것은 수학 의 창조오1- 개발의 전동적이고 아직 가장 정당화할 수 있는 이유인, 과 학에 대한 수학의 가치를- 기준으로 상아야 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클 라인은 위와 갈은 수많은 미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수학이 눌랄 만하게 효과적으로 유용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고, 수학을 창조해낸 인간의 . 정신에 대한 갑동적인 찬사로 354 패이지의 내용운 끝내고 있다.
3 위와 같은 내용에 내하여 역자는 수학기초론의 실상을 대중에게 잘 해설앴다는 접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그가 독단적인 견해룹 수없이 반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쿨 라인과 갇은 노대가 (1 908 년생)의 노작(집판 당시 72 세 ) 에 대하여 말꼬리 를 잡는 것 갈은 논의는 파하겠거니와, 이 객 의 부재조차도 상실'’이라 할 것이 아니라 추구라 했더라 면 좋았을 것이타생각되며, 그밖의 여러 가지 접에서도 의견을 달 리한다 . 공정윤 기 하기 위하 여 역 자의 비평 대신 펜실매이니어 주립대학교 야 윤 Ray m ond G. Ay o ub 교수의 서 핑 (미 국 수학원 보, 1982, pp. 715~ 717 ) 을 살펴보기 로 하자. ”이 객에서 저자는 그가 줄겨 하는 주재 및 가지물- 부연하였으나, 그에 덧붙여 , 재로운 독 단 론을 주창하고 있다. 죽 , 1900 년 이래, 수학은· 계 속적인 위기와 재난 을 겪어 오면서 이제는 수학자신의 뿌리와전리성에 회 복 불가능한 손상웅 가져 운 정 도로 기 초가 두目흔들려 혼란한 상태 에 까 · 지 도달하였다는 것이다 .••• 이 체의 대부분은수학의 역사적 발전에 대 하여 홍 미있는(항상 정확하지는 아니하지만) 설명을 포함하고 있다. 따 라서 그가 멋대로 고집스럽고 연명처럼 과장법을 쓴 것은 불행한 일이 다”. 서평자는 계속하여 큘 라인의 논점 둘을 인거한 뒤에 “큘라인이 수학에 서의 전리에 관한 자신의 개념을 논하지 않았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진리에 대한 어떠한 해석으로 그가 결론의 일부에 도달했는지 상상하기 어렵다’’고 했다. 서평자가 불 만스럽게 생각하는 것의 시작은, 왜 미유칼리드 기하학의 발견이 클 라인의 말대로 괴멀 (debacle)” 이어야 하는가이다. “그것은 반대로 위대한 승리가 아닌가? 시원수에 관하여, 어떤 의미에서 미가 환제법완의 발견이 재난 (calam ity)이어야 하는가? 이간은 발견들이 재 난이라면 음수와복소수의 발견은무엇이 되어야하는가?” 이진 접에서 저자는 사대 를 보는 안목에 관한 한 미난윤 면한 수 없겠다. 그리스 시대에 수학적 형식주의가 최고위의 것으로 간주되었 PJ _ 데에 미하여 17, 18 세기에 있어서의 해석학(미적분학과 그것의 여리 새분화 또는 확장)의 엄밀성의 7J.여에 대한 큘 라인의 논평에 대하여도 반박하
고있다. 역자가 아는 바로는 17 세기의 해석학에 힘입은과학적 발견은 인류정신사의 영웅적 세기로 기여되고 있다. 서평자는 쿨라인의 견해에 대하여 두 가지 논평을 하고 있다. ”(a) 탈레스와 유클리드 사이에는 3 세기의 격차 가 있다 . 만족 할 만 한 공리 체계 를 형성하는 데 그토 록 오래 걸린 것이다. 그레서, 예 품 둘어 뉴돈도 유율법(뉴돈의 미적분학 ) 의 길함을- 완전히 알고 있었음에 도 상 구하고, 그 아이디어들이 성숙하는 데는 시간아 팔요했다. (b) 미 적분 학의 발견은 새롭고 경이로운 세계에의 문 운 열어 준 것으로서, 너 무 나 흥분된 나머지 엄밀성 을 위하여 쉬고 있 을 몽 이 없었다 . 발견과 응용이 고속도로 나타났다. 매 르누이 Bernoulli 와 오일 러 Euler 의 겅 우처 럼 말 견이 거의 매주마다 나타나서, 그 들 이 업밀성에 보다 관십을 가질 수 없었다는 것은 늘만 만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그들이 초 기에 엄밀성을 등한히 한 것을 미난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큘 라인이 유용한 수학만이 가치가 있다는 견해를 보이는 중에서 가우 스 Gauss 의 경 우 를 예 시 한 것 도 온당하지 않다. 쿨 라인은 유용한 수학 이 좋은(g ood) 수학이라 말하고 있으나, 서평자는 수학의 그 넓은 영 역에서 좋고 나쁜 것을 어망개 구벌할 수 있으며, 중요한 것과 그러하 지 않은 것울 어떻게 구벌할 수 있는가 묻고 있다. 수학의 포착하기 어려운 본질에 관하여서도, 서평자는 다 론 과학과 달 리 구재적인 연구 대상이 없는 수학이 계속하여 성공적으로. 번영해 온 접 을 강조하면서 유용한수학에 관한 큘 라인의 견해를맹공격하고 있다. 서평의 말미에서, “꾼으로. 쿨라인 교수는 그의 독자들에게 정칙하지 못 하다. 그는 박식 한 사람이 며 , 추상적 으로 창조된 많은 수학적 아이 디 어들이 실세계에 중요한 응용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완전히 알고 있 다. 그는 수학의 가장 광적인 반대자들조차도 인정하는 위와 같은 사실 을 무시하는 쪽을 택했다. 그는 이렇게 해서 지지받기 어려운 독단돈을 지지하려 한다.” 그런 뒤에 서평자는 우이 14 세의 惡詩를 조동한 궁정 재동꾼의 이야기를 적고 그것이 이 객에 그대로 적용된다고 하였다. 4 역자는 처자와 서평자의 신안성에 동참할 생각은 전혀 없으며, 이 두 사람의 생각 중 옳은 것은 받아들이고 들린 것은 거부할 것이며, 충고 에는 구1 률 기울일 생각이다. 그러나 처자가 편협한 수학관을 가지고 있
다 는 것 은 반드시 지 적 하고 싶다. 수학이 자연의 설계 를 묘사하는 데 시종해야 한다는 것과 갇은 큘라 인의 견해는 구시대적이다. 해석학 적 • 기계 론적 인 우주관 대신에, 쿨 라인 은 약 간밖에 언급하지 않았지 만, 확물론적 우 주 관도 강조되 어 야 한 다. 수학기초 론에 관한 수많은 갈등 속 에서 논리의 정체가 밝혀지고, 수리논리학 이 체 계 화되었으며, 그것이 인조 언어의 개발에 직결되어 대 량정보 처 리 시대 를 낳게 한 원 인이 되었다 는 것도 알아야 한다. 자연 을 해석하는 물 리과학 분 아니라, 생 물 과학, 여러 사회과학, 여러 행동 과학에 적 용되 는 수학에 도 시 야 릉- 문려 야 한다. 오 늘 날의 모돈 과학기 술이 불확실 한 수학에 근거 를 두 고 있다는 것은 일 종 의 아아러니이다. 수학의 기 초가 원하던 방 향 으 로 완성 되지 못한 것은 사 실 이다• 그것 은 우리 인 류 의 사유능 력 의 한계 룹 재시 해 주 는 것인지도 모론다. 그 렇 다 고 하 여 그것 을 수 학에 있어서의 확 실 성의 상 실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는 것 이다. 이는 17, 18 세기의 해석학의 겅우와도 감은 시대저 상황 이다 . 이 책 의 교 훈 은 여러 가지 있다. 읽는 사람은 역사에 정 동 했을 때 그 갇은 교 훈을 찾 을 수 있 을 것이며, 한편으로는 저자의 독단을 쉽게 배 제 할 수도 있 을 것이다. 이 책 의 내용에 대한 깊은 이해와 건전한 비판 정신 이 없이는 서평자의 우려가 적중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꾼으로 수학기 초론에 관한 우리 학계 의 이 해 는 팔 자의 수학기 초론연 구 를 위 한 서 설 (상) 문리 대 학보 6 권 :z 호 (1958) pp. 10~I 16, (하) 7 권 1 호 (1958), pp.5 8~67 이후에 1 선로 나아진 것이 없다. 개인적 회고 의 감이 있어 독자들에게 최송하지만, 30 년 전에 수학을 시작했을 때 수학사상의 십오함에 매료되어 이 이론의 연구 를 뜻했었다. 그뒤 클 라 인이 좋아하지 않는 순수수학의 길로 들 어서 이 이론에서 멀어졌지만, 쿨라인의 책을 읽는 동안 나의 '‘청춘의 꿈이었던 수학기초몬에 관힌 이야기를 읽으면서 많은 강호]가 있었다. 아무쪼 록 이 체울 전전하게 읽, 은 독자들이 많이 나와서, 인류정신사의 최대의 난제 를 이해하고 도전 : 하는 사람이 우리 학계에서도 배출되기 불 기대한다.
색인
기 가당 354 가쌍디 65 가우스 85-871100-1091 I23-1 적, 186- 188, 192, 195, 214-215, 234, 333 갇대 79 갇르와 1201 I921 347 갇란 레 이 59-64, 66-67, 88- 89 , 148 거짓말장이의 역리 264 갠첸 316 진정 과정 317-318 공리등 I2129,I23 공리 온 227, 234, 314, 337 과학그갇작리인 베스방인이밉의의 ———- . 6549--6653, 66 뉴돈의 ―一 66-73 데카르트의 __. 65 · 강 · 학 37-39, 58, 79, 81-82 뉴온의 - 72 ( 수) , 73 괴델 나 ,243, 304(1- ), 311-316, 318, 328,390 괴 대 15, 360, 386 구성성 283-286 군 론 347 굴단 159 귀납수법학 적 —— 277 초한 - 3I6 . 그라스만 n2, 2I2, 227 그란디 166, 170-171 그레 고리 (던칸) 189 그레고리 (데이 빗) 149 그대고리 (계 입 스) 149, 154, 207, 217 그첸링 걱 5 그리스문명
고전기의 ——- 17-32 안멕산드리 아의 —- 32-40, 128- 132 국한 개념 236 기게론 58,65,71 기 독교 42-46 기하학 단언타원 - 105- 1 06 리 만 _ 346 미분 _ 86 미유 찬리드. - 100-108, 121-122 125, 195-196: 213-215, 346 사영 - 117,192-194,215,352 쌍곡 - 102-1 0 3, 106, 214, 229 유찰리 드 ―一 33, 93-108, 122- 이 중타I2원5, I—28—, 2 141-20155-1 06 좌표 - 148 해석 _ 57, 151 L- 나 ·홍 레 옹:- 89, 194 네수 22 네이피어 136 넬슨 245 노미게바우어 345 노이 만 297, 304( 주), 3 걱, 344, 353, 39° 논리 (학) 29-32, 216-226, 260-264 , 281-283, 290, 295, 367-369 논리 대 칙 관 368-376 기호논리학 218-225 수리논리학 218-226 논리 학파 257-274, 365-366 뉴돈 64-76, 88-89, 94, 141, 146, 149, l54, l6o-l62, 1 야, 167-169, 172, 206-207
_의 광 학 72( 수) , 73 ―의 운동법칙 63, 94 ―의 종교 칙 견해 73-75 니의 멘디트 164 니체 372 C 단인 타 원 기 하학 105-106 달랑메르 77,8 0, 11 9, 142, 144- 1 46, 169, 197 , 207 대수학 129- 1 30, 132-133, 144-152, 188 - 1 90, 21 2 기하 적 _ 127-128 발견의 방법으로서의 - 150-151 추상 - 335-344 데데킨트 212, 24 0, 258, 302, 383 데모크리 두 스 적 데자르 구 332 데 카르트 54- 5 8, 62- 6 6, 88, 119, 137- 138, 141, 146, 148, 154, 216-217, 274,276,330,370,386 동로마재국 43 동일운 217 두헵 409 디 드로 67, 83, 9o-91, 153 디 손 357, 411 디오쿨데스 39 디 오판 무 스 129- 1 31, 317-318 디 의 돈네 353-354, 379 더슨 336, 339 2 라그랑즈 73, 77-78, 80, 85, 89, 169, 172, 177-178, 181, 333 라이 프니 츠 70, 75-76, 88-89, l:l4 1 I38, 141, 143-144, 150, 154, 160, 162- 167, 169, 171-172, 181, 194, 207,
216-217, 258 라카토스 374 라크르와 178, 191, 197 라꿉-라스 12, 77- 7 8, 83, 85, 89, 209, 395,410 랍 1 비 르트 99,103,195,215 램지 246 , 266 럿 셀 I 16-117, 192, 225, 240-244, 251, 259-274, 299, 326, 329, 373, 390 ―의 역리 244 데우키푸스 걱 렌 67 로마인 42-43 로바쳅스키 102-107, 195, 214-215 로베르발 154 로빈슨 326 로운 196 로이머 79 로크 91 론 스키 196-197 되 밴하입 322, 325 괴 밴하임 -스콥렘 정 리 322-325 우문프 약] 48 편리어 179, 207 르벳구 113, 240, 250, 252, 277-278, 372, 396 르브리에 79 르장드르 192 리 만 104-105, 108, 195, 215, 346-347 리 만 기 하학 346, 378 리샤르의 여리 걱 5 린데만 276-277 Cl 마세레 143, 183 마챠세비치 318 만유인력의 법칙 67-68
망원겅 53 맥스앤 86, 390 에 `1 라우스 33 에르센느 56 모메르뒤 81-82 모스로우스키 388-389 몽즈 194 몽비뉴 416 무모순성 14, 213-215, 227-228, 233- 236,272,308-3l5,366,368 우어 376 무정으 1 개 념 (용어) 29, l22~123, 213, 215, 226-227, 234 무한공리 266, 268-269 누한대 236-238 수인의 무한(및 무한급수) 168- 173, 209 집 합과 수의 무한 236-242, 253 우한소 164, 167, 176-177, 179, 325-327 우한집 합 236-242, 253 미 분가능성 가 연속성 191, 210 미분기하학 86 미 적 분학 153-169 ―의 인 민화· 206-209 밉 31111, 392 닙 바나하-타로스키 여 리 321 바로우 66, 125, 137, 149, 154, 167 바밀로나 아인 18, 28 바스카라 133 바이 에 르쉬 트라스 209-2t1 , 283, 383 바인 1 5, 23 1, 248, 266, 270, 280, 283- 284, 288, 293, 300, 316, 337, 377- 378,384,389,396,409-410 배비지 178 매중 - ~ 30, 216, 224, 282-284, 315, 365
버코프 350,408 버 쿨리 주교 71, 91, 173-175, 190, 289, 398 법 주성 323-324 매로니스 215 메르. 250-251, 396 매르나이스 288, 297-298 매르누이(니콜라스) 171 매르누이(재입스, 존, 다니엘) 77 鬱 80, 141, 143- 1 44, 164, 169 메르트랑 191 메버 86 베셀(밀헨문) 52, 101, 106 베셀(카스카) 109, 186- 1 87 매 이 킨 62, 87, 334, 338, 361. 400 벡 터 109-110 벨 3°7 벤트라미 105 보델 230, 240, 250, 277-278, 283 보여 173(1' -) 보요이 (산프강) 100- 1 01
보요이 (요한) 1020 105, 107, l\1 · , 복소함수 86 문차노 206, 283 분데르 70,81,83, 180, 232 봅벨리 139-140, 146 부만리 포르티 걱 l, 걱 6, 278 부르바키 I 5, 287, 305-306, 336, 379, 382 부바르 78 부운 186, 217-219 브라마굽타 133 브라메 347-348 브라우어 251, 279-290, 299-301 브라에 48 브리지멘 384 브와 레 이 웅 256, 3 26미진정 명재 284,311-313,318,322 비 서 순 저 정 의 246-248 미에타 136, 146-148 미 유 철 ·러 드 기 하학 100-108, 121-122, 125, 195-196, 213-215, 346 빗 갠 쉬 타인 383 人 사영기하학 117,192-194,215,352 사 원수 110-J 11, 206, 218 사 케 리 98-99, 195-196 산 타야나 366, 396 상 각법 33- 3 4, 133 쌍곡 기 하학 102- 1 03, 106, 214, 229 선 출 공리 249-251, 266, 268-269, 280 세 네카 120 소 리와 음악 22,80 쇼벤하우어 279 수 125-129 —의 이 온 238- 걱 2, 280 무리 수 126-129, 136-137 우한대 236-242, 253 복소수 109, 110, 140-145, 182-189, 210-213 실수 I39-145,211-212 음수 I 38-140, 142-143 초한수 232, 240- 걱 2, 280 수연 ―의 수령 172-173, 209 ―의 무한 (및 무한급수) J6 8- 173, 209 수학 —과 과학 JJ-J2 , J8 -19,28,34- 40, 47-50, 56-59, 66-73, 199, 387-393,396-400 —가 논리 217-226 ―과 언어 280-281, 289-290
―가 종교 46-48, 73-75, 82-84, 88-90, 200 __- 의 개 념 198-199 ―의 언 밀화 13, 204-215, 230- 232 순수 수학과 응용 수학 330-340, 413 가 14 엔리 366 수]되 다 221 쉬로 1 덩어 411 쉬바르츠 353 쉬뭉츠 326 슈우케 138 스넬 58, 79 스미스 125 스콜렙 322-3 따 스데빈 136, 139 스도운 350-351 스티멘 136-,3~ 숟레이터 356 신지 34° 신매스터 197 。 아낙사고라스 19 아낙시 만더 19, 3:z - 3, 아낙시메네스 19 아눈드 138 아다마르 :z3 1, :z5 0-:z5 1, :z8 9, 376,-4 8 1 아랍인 43-44, 13:z , 134-136 아르강 109, 186 아르키디우스 43 아르키메네스 3:z - 33,39-40, 1:z 8 , 131, 159, 164, 197, 363, 4 나 아르키타스 26 아리스타로쿠스 47 아리 스로빈 레 스 23, 29-30, 3:z , 60 -6 :z ,
71, 122-123, 126, 216-217, 220, 226 아벨 202, 206, 208, 347 아보가드로 113 아인쉬 타인 I 18, 289, 346-347, 385, 398, 401 一 402, 408-409, 411 아카데 미 (아네 게) 33, 35 아문로니 우스 32-3 5, 39, 128, 345 알멕산다 대왕 33, 4° 알미우니 134 암페르 191 에디슨 84, 201 액커만 297 야구산수 113-114 야코미 lo8, 197, 339 에 딩 돈 374, 402, 407- 4 08 에라스도데네스 39-4o 에 르밋 230, 381, 407 에머슨 307,409 에어리 79 엠페도 · 갇데스 38 여 리 (여 선) 14, 236, 240-248, 260-264, 412 여학갇 민대이의 —— 59-60,66-78 그리스의 - 35 뉴본의 - ,8 연속성과 미분가능성 191,210 인속의 원리 165-166, 193-195 연속체 가선 253, 292, 319-320 인여져 수온 12,30-32 연의 이온 87 영 79 오드 139( 주) 오마르 43 오비드 17 오인러 77, 80, 82-83, 142-146, 150, 169, 171-172, 175-177, 181, 237,
289,332 운버스(빌 헬몸 ) 86 -홍미스(하인리히) 107 와일나 371 완전성 299, 308-3 I 5 우나무노 377 우드하우스 184 워즈워드 120-121 원자론 25 월리스 137, 139, 141, 149, 154, 165, 207 웨이유 386 위그너 411 유 독 소스 26, 33, 35-36, 127, 137, 142 유체역학 8o 유체정력학 39-4o 유 군 리 드(기 하학) 22, 32~35, 93- 1 08, 122-125, 127, 128, 137, 214-215, 369,378,414 유항 온 263 크 z65 이 논리 의 역 리 다 5 - 246, 264 이말사의 여리 244 이오니아인 17, 19 이 중타원 기 하학 105-Io6 이집트인 18, 28 인도 43-44, 132-136 인문수의 45 인계술어계산(논리) 226,311,366, 일반화 335, 337 인차적 성진과 이차저 성질 57 x: 전문화 336-337 정 던집합 232, 249 정저분 156-159 제논의 역선 412 제르공 226
재본스 219 존슨. 8 존 재 중명 252, 255, 330-331, 368 종교 46- 4 8, 73-75, 82-84, 88-90, 200 카표기하학 148 중 세 유런 44 층명 30-33, 196- 2 02, 367-368, 372- 378 촌재 __• 252, 255, 330-331, 368 지 라드 l39, l4l, l46 지리학 40 칙 관 대 논리 368-376 칙 관주의 274-291, 293, 299-301, 365- 366 진리 13, 17, 25, 55-59, ll2, u5-120, 258- 2 59 진스 겅 73, 399, 4o7 집 합론(학가) 296, 302-305, 320, 365- 366 云 강조성 288-290 처어취 317-318, 322, 382 천문학 그리스의 —— 22-23,35-37,129 뉴돈의 - 66-72 대 양중십선 ―一 47-54 체르멘로 뀌 8-251,3o3,393 초수학 297-298 초원수 255, 276 초한귀납법 316 초한수 232, 240-242, 280 최소 시간의 원리 81 최 소작용의 원리 82-83, 90 · 추상화 29 축-지학 86
더 카르노 179, 183, 190,207 카르단 136, 140, 145-146, 251 카발리에리 154, 159-160 카조리 173( 수 ) 카씨니 81 칸토르 107, 212, 236-242, 걱 9, 302, 326, 331, 381 칸트 64, 93-95, 106, 217, 275-276, 279, 301, 377, 384, 402, 403 캐스트너 100 커리 389 케 인리 111, 116-117, 197, 348( 주), 380 께꾼러 43, 47-54, 64, 154 —의 법 칙 49- 5 0, 66 코우수] 85-87, 90, 184, 192, 194, 2o6- 209,331 코패 르니 쿠스 47-54, 64 코헨 319-322 곤스탄틴 대제 42 과인 270, 273, 305, 390 쿠란트 341-342, 351-352, 359 쿠 두 라 278 크로넥 커 340, 392 큘 라인 106( 주), 116, 288, 326, 340 쿨 라크 88 문래 로 78, 196 잡무 ] 겔 99, 242, 255, 276-277 드 안데스 19 태양 중십선 47-54 대이트 339 ti리 맨드 360 대 오도시 우스 42-43
도리누스 IOI 피어스 221,41I -E에 미 22, 32- 3 7, 40, I 29 피에리 215 운대미 소더 40 파 카르 210, 230, 396 몹슨(캔빈 겅) 339 피 콕 178, 188- 1 89, 217 트우스벨 356 피 타고라스 학카 20-26, 126, 332, 336 곡성삼각형 163 핀로 222 판훌라우스 22 .II 판럽왕 32 파스 칸 54, 58-59, 64, 123-1 더, 137 -_lo I 38, 149, l54, 160, 216, 274-275, 332, 362, 370, 377, 383, 416 하디 230, 339, 376, 48I 파치운리 136 하우스도르 프 다 2 팟쉬 215, 227-228, 288 하이 덩 290, 329, 383 패로마 81, 137, 146, 148, 154-156, 158, 합수 148, 153- 1 55 332 복-소 - 86 페 아노 21 2, 225, 227-228, 250, 255, 326 합의 (신전함의 ) 222-223, 262 평행선공리 96-103,229 항켄 189, 383 포파 373, 378 해리옷 139, 146 포프 182 해밀~ 83,90,110-112,116,186,210- 퐁순례 192-195 21 I, 27 9, 380 풍-대뉴 91 해석기하학 57, 151 무리 에 80, 85, 87, 192, 236, 239 해석학 153, 168, 190-192 프랭캔 3°3 미 표준 ——~ 326- 3 28 프대 게 222, 224-225, 227, 254-255, 해 왕성 의 만 7J . 78-79 258-259 벤리 67, 151, 174 프레스넨 79,87 행 란 111, 197-198 프렌드 183 허드 148 프링사입 236 허엔 78 프앙카데 11, 204, 215, 230-232, 걱 2, 해라칼리누스 19 걱 8, 251, 257, 267, 271, 277-278, 해 온 38- 4 0, 128-131 325, 331, 310, 370, 404-406 헤르츠 398 꿉· 라온 걱 -26, 29, 108, 122, 127, 255 헤비사이드 355 _-_주의 13, 21, 382-383 벤몹훈츠 112, 340 꾼탱크 lo8 헵펠 270 설예이페어 97 형 식 분번의 원리 189-190, 21'] I 준우타크 25 형 식 주의 292-302, 365-366 피아찌 86 호노리우스 43
호 이 겐스 62, 65, 68-70, I54, 332 호 펜쉬타인 287 훈몸 뵈 20 2, 208 홉스 65,91, 149,416 화 이 트해 드 26 1-273, 372, 402, 417 환 원공리 265, 267, 269 회 상 29,31
후 크 63,67 흄 91-92, 106 히파르쿠스 33, 35-36 히파수스 126 힐버 트 215, 227, 231, 234-235, 걱 2, 285, 288, 292-301, 309-311, 314- 317, 382, 385, 388, 406
朴世熙 서운대학교 문리과대학 수학과 및 同대학원 쥰 업 미국 인디아나 대학 교 대학원 (Ph.D.) 캘리포니 아 대학교(버물리) 연구원 저서 • 논문 국내의에 60 여편 발표 현재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교수 대한수학회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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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확실성 조 판1984 년 12 월 작안 5 관자,99c 년 8 인 m 인 저발역발행행자 처인모리스 朴朴큘孟世라熙 沿인 民音社 춘· 판동목 1966. 5. 19 계 1-142 호 우핀대체구가번호 010041-31-,23282 I10 -I1 1 서 · 홍 종로구 관철동 44-' 515-2000~5 값 9,000 원 ※ 파본은 교산해 드립니다.
대우학술총서(번역) l 유왁신족재국사 묵곤텐 宋 만中 옵김/값 9,001 인 2 수학의 확실성 모리스 물 라인사世 F f 옵 김/값 9.u u i 3 중세첩학사J . R . 21 안버그 · 頂英란 옮김/값 5 . 었)인 4 日本뜸의起源 R.A. 일라숲芳濱 옮김/값 2. 있인 5 古代濱居音韻學 槪要 버니드 말그렌·崔 1 i 愛 움김/값 2 . 었 ) 인 6 말과사물 0| 셉 푸코 · 李光來 옮김/값 7 . ~ 7 쓴|철학과 과학침학 하르만 오 1 입·김상운 옵김/값 9, 00J 인 8 기후와 진화 로널드 피어슨·김준만 옮김/값 8 .~ 언 9 이성·진리 · 역사 힘러리 마트남숲視明 옵김/값 5, CXXJ인 10 사회과학에서의場理論 쿠르트태반박재로 옵김/값 6, (lX)은 11 영국의 산업힉명 말 라스 단患 t ·주 H 丙 옮김/값 4 , 700 인 12 현대과학첩학논쟁 토마스 문 91· 조승옥·김동식 옮김/값 10 . (lX)인 13 있옹게서 됨으로 일리야 프리고진 · 01 접 수 옮 김/값 7, 5 00 인 14 바교종교학 요이힘 바하김중서 옮김/값 4,600 인 15 동물행동학 로버트 A . 하인드 · 장현감 옮김/값 6, (lX)인 16 현대우주론 D.W . 시이마·잉층민 옮김/값 8. 있판 17 시베리아의 사머니즘 V. C| 오세지 사죄 걸 싱 옮김/값 1 0,(lX)인 19 원 시국가의 진화 죠대 H I 스· 볼• • 틀깁 길5,떠 蕙 20 힐 버 트 - I 畢파 살 른 스 만 스리 드 • 0 1 戴.길말 1 0. CCXII 21 畵 文 빼 ' 乃 蠶 顧 1 9. JXII ZZ 마 을 의 뿔쾰확 꼬 W I 庫· 庫 繩 H/111 . 23 흔 든속의 릴 I . 또口간 I . 식스 · fD II 鵬 m U 偵 의 기 휩 麟외'불桐馮 H/IIII L- 2S 밀 函메 O I! 麟鳴驗 · 81111 麟 n 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