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화공과, 同대학원 졸업, 텍사스 에이엠대학교 화학과 이학박사. 현재 고려대학교 화공과 교수. 저서로는 『 科學 A 의 歷史識 科學 現 科學 어디까지 왔나』 등.
河斗.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생물학과 졸업. 일본 東北대학교 이학박사. 현재 서울대학교 자연 과학때학 동물학과 교수. 저서로는 般生 物學 動 物生理學 』 등.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물리학과 졸업. 리버 사이드대학원, 루이지애나대학교 물리학박 사. 현재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물리학과 교수. 저서로는 『 자연과학개론 ( 공저 植 하버드대학교 신학과 졸업. 보스톤대학교 Ph. D. ( 사회윤리와사회학 ) . 보스톤대학교 에모 리대학교 사회학 교수, 버클리대학교 Korette 초빙교수 역임. 현재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저서로 『 종교와 사회변동 』 등. 〈 논문거재순〉현대과학과 윤리
현대과학과 윤리
金容駿河斗鳳張會翼鄭載植(논문계재순)民音社책 머리에
17세기의 소위 과학혁명 이후 오늘에 이르는 2~3세기 동안은 자연과학과 그 과학지식 에 바탕을 둔 산업 기 술의 발달로 말미 암아 이지구상에 인류가 정주한 이래로 일찌기 없었던 가장 격동의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특히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인간척도를 넘어드는 거시세계와 미시제계 를 향한 인간담구는 엄청난 힘 을 인간에계 안겨다 주었다. I945년 8월 6 일 아침 8 시 15분에 일본 광동시 에 두하된 우라늄 원자단과 같은 해 8월 9 일 아침 II 시 2분에 역시 일본의 장기시에 두하된플루토늄 원자탄은 인간에게 주어진 힘을 잘못 사용한 상칭적인 비극이타고 말할수 있다.그러나 이렇게 뼈아픈 비극을 경험하면서도 인류는 근본적인 반성을 할 줄 몰랐다.I960년대 중반이 넘도록 인류의 미래는 그야말로 화려한 장미색윤 꿈꾸는 유토피아에 도취해 있었다해도과언이 아니었다. 인간에게 아쉬운 그 어떠한 것도 과학과 기술은 해견해 준다고 인간들은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I96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인구 • 공업생산 및 이에 따르는 환경오영의 기하급수져인 성장에도불구하고 이와 반비례해서 고갈되어 가는천연자원의 십각성은그때까지 도취하고 있었던 꿈에서 사람둘을 불러일으켰다. 이와 갈은연유로 이루어전 첫번째의 세계적인 모임이 1972년 6월에 스목훈롭에서 개최 된 UN 인간환경 회 의 The United Nations Conference on theHuman Environment 였 다. 무려 110개 국이 참가한 그야말로 전지구저인 회의였다. 그러나 이 모임은 어디까지나 정부주도형의 집회였다. 이와 거의 때를 갈이하여 순 민간단체로서 스위스의 법인으로노출발한 로마클럽 The club of Rome's 의 제 1 보고서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우리 말 역 본 『인류의 위 기 』( 김 승환 역 삼성 문화문고)가 출간되어 전세계의 화재를 모았다. 1979년 7월 1.2 일에서.24 일까지 미 국의 MIT 대 학에 서 ‘Faith and Science in an unjustWorld’ 라는 주제 하에 세 계 교회 협 의 회 World Council of Church 가 주선한 국제회의도 이와 같은 백락에서 평가받아서 마땅하리라고 생각한다.
이와같은세계저인 추세와는너무나도 대조적인 정치 • 사회풍토가우리나라의 1970년대의 실정이었다. 공해라는 소리는 하나의 터부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갈은 사회풍토에서 〈현대과학과 윤리〉라는 문제를 놓고 왈가왈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뜻있는사람들도 범어리 냉가슴 앓듯이 그처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대의 도도한 흐름이란 결코 막을 수가 없는 법이다.1970년대가 끝나면서 우리나라에도 새로운 물결이 밀어닥쳤고 만족할 수는 없었지만 그런대로 조금씩 숨몽이 터 가는 느낌은 가질수 있게 되었다.아주 작은 규모의 모임이기는 하였지만 대우재단의 지원하에 「현대과학과 윤리」라는 위크샵이 I983년 1.2월 9 일, IO일 양일에 걸쳐서아카데미 하우스에서 열릴 수 있었던 일은 위에서 살퍼본 맥락에서생각한다면 매우 중요하고도 의미 있는 쾌거였다고 자부하고 싶은십정이다 . .20세기의 전반을 물질과학시대라고 한다면 20세기 후반부는 생명과학시대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물리학자와 생물학자 .그리 고 사회학자 및 종교학자의 발제와 이 에 따르는 응답과 코멘트로 워크샵온 매우 진지하계 진행되었다.그러나 이것들을 굴로 가꾸어서 세상에 한 권의 책자로 내놓는다는일은 그리 쉽지가 않았다. 이 위크샵에 참석한 분들의 개인 사정과기타 여러가지 사정으로 그로부터 만 4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야 이렇게 선율 보이게 되었다. 이렇게 늦어전 책입의 대반은 이 머리말을 쓰고 있는 팔자에게 있음을 여기에 밝히면서 이 워크샵에 관련된 분들과 특히 이 프로젝트를 지원해 주신 대우재단에게 깊은 감사와 더불어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 책자는 워크샴의 프로씨딩의 형대로 출판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여기서 밝혀 두고자 한다. 워크삶이 끝난 다음 워크살에서 지적된 여러 문제점을 보완해서 각 분야의 발계자들이 다시 집필하여 완성한 논문이 일정한 십사과정을 거쳐서 출판에 이르게 되었음을 밝혀 둔다.시대는 변하고 또 인간의 활동으로서의 과학도 그리고 기술도 변해 가고 있다. 앞으로 우리에게 던져지는과학과기술로부터의 메시지가 과연 어떻게 변해갈지 아무도 알지 를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것은 새로운 메시지가 계속 우리에게 던져지리라는 사실이다• 이런뜻에서 여기에 발간되는 이 조그마한 책자가 이 시대의 귀중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가치 있는 매개체가 되어 줄것을 바라면서 머리말윤 대신할까 한다.1988. 2월김용준현대과학과 윤리
•차례책 머리에 • 5金容駿과학의 역사성 • II河斗屈생 명 과학의 발달과 전동윤리 관의 동요 • 4I張舍gg과학과 윤리의 구조적 연관성과 현대사회 • 89정재식과학과 가치와 인간화 • 139과학의 역사성
金容駿l987년도 정월을 장식한 세계저인 화제는 〈베이비 M> 사건이타고 할 수 있다.인간세계에 있어서 아니 한 발짝 더 나아가서 동물세계까지를 포함해서 만약에 윤리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어버이와 자식 사이의 천문칙인 관계에서 비못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와 갈은 출생의 윤리가 하나의 상품화됨으로써 야기된 문제가 〈베이비 M> 사건이라 할 수 있다.〈베 이 비 M> 사건의 개 요는 다음과 같다. 생 화학자인 스턴과 소아과 여의사인 그의 아내는 만약에 임신윤 하게 되면 생명을 잃을지도 모르는 부작용을 수반하게 된다는 전단을 받게 되 어 이 부부는 대리모를 생각하기에 이른다. 결국 현대의 발달된 의학기술로서 수정된 卵을 다론 여인의 자궁에 착상시켜 9개월 후에 자기들 부부의 어린이 를 얻게 되는 것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윤리적인 문제는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자기들 부부간의 수정란을 타인의 자궁을 빌어 부화시키는 데 불과하거 때문이다. 옛날에는 노예제도가 있어서 인신매매가 공공연하계 허락되어 있었는데 비해 이번에는 신체의 일부만을 일정한 기간만 빈다는 이야기가 될 분이다. 여하든·스턴부부는 자기들의 아이룰 낳아 줄 대리모를 고르는 데매우 신중윤 기했다. 무려 300 명이나 되는 후보자들 중에서 담배피우는 여자, 숟 마시는 여자, 마약을 복용하는 여자는 제외하고나중에는 자기들과 외모까지도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여자를 선백하는 데 힘을 기울여 결국 두 어린이의 어머니이고 더이상 자기 들이어린아이돌을 갖지 않기로 한 화이트해드부인을 대리모로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모든 의료비를 벌도로 하고 순수한 수고비로 만 불을지불하기로 계약을 맺어 결국 스턴부부의 수정란은 29세인 화이트헤드부인의 자궁 안에 착상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9개월 후에 화이트해드부인은 어린아이를 분만하계 되었는데 문제는화이트해드부인의 십경변화에서 비못되어 결국은 이 문제가 법정에까지 비화하계되었다. 화이트해드부인의 십경변화란 다름아닌 9개월간이나 뱃속에서 자란 어린아이에 대한 모성애의 발로였다. 화이트해드부부는계약을· 무시하고 이 어린아이를· 데리고 멀리 도망까지 치게 되었던것이다. 결국 계약에 엄연히 명문화되어 있는 모자관계를 주장하지않는다는 조항을 위반하여 어머니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기에 이몬것이다. 이 사건온 지난 3월 30 일 재판정의 판결에 의하여 이 아이의 양육권은 대리모에는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러나 대리모의 형대는 단순치 않다. 얼굴도 모르는 어느 남자의 정자률 자기의 난자에게 인공수정시켜 그 얼굴도 모르는 남편에게 출산되는 아이를 들려준다는 약속 아래 일정한 돈을 받고 계약윤 체결했던 어느 여인은 역시 출산 후에 십경의 변화를 일으켜 그어 란아이의 양육권율 법정에 호소하였다. 미국의 고동법원은 이 경우에 그 아이의 양육권은 그 생모에게 있다는 판걷 윤 내렸다. 이 경우는 남편의 얼굴윤 모른다는 점만 재외한다면 그 아이는 혈 연칙으로 이 여인의 자식임에 불 립었다.또 다른 경 우는 옛날 우리나라 사회에서 성행했던 씨받이와 똑같은 이야기 물 연상케 된다. 즉 일정한 기간 동안 돈을 받고 임신할때까지 남자와 동침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출생한 아이의 양육울 주장한 여인에게 영국의 고등법원은 그 여인의 성생 찰 이 애정 행위가 아니었다는 점을 들어서 양육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판결을내리고 있다.2대리모에 관한 논란은 어떻게 보면 개인차원의 이야기에 그친다.그러나 우리는 현대과학과 기숟이 갖다 주는 엄청난 문제로서 우주선 지구호라고 명명되고 있는 우리가 몸 담고 또한 우리의 삶을 의촌하고 있는 지구의 생태학적 위기 를 간과할 수 없다•지난 (1987 년) 9월 I8 일에 미소 양국 사이에서 중단거리 핵미사일Intermediate Nuclear Force( 약칭 INF) 패 기 협 정 에 합의 하였 다고 발표하였다. 미래의 일을 놓고 단언하기는 매우 힘들지만 이번의 INF협정은 아마도 인류역사상 길이 기여될 중요한 사건이 될 지도 모르떤 또한 그렇 개 되기 울 비는 마음 간절하다.I938 년 오토 한 Otto Hahn(1879-1968) 이 우라니 움에 중성자를 照射해서 핵분열반응이 일어는 것을 최초로 발견하였을 때는 이는 어디까지나 물질의 궁극적인 구성요인이 무엇인지 를 탐구하기 위한순수한 학문적인 동기에서 비못된 연구결과였다.I945년 8월 6 일 아침 8시 I5분에 일본 廣島에 두하된 원자폭탄은순식간에 IO 여 만 명의 인명을 앗아 갔고 또 그 만큼의 부상자를 냈다. 이와 갈은 소식이 라디오를 통해 당시 연합군의 감시 룹 받으며영국의 대학도시 캐임브리지 근처에 연금되어 있었던 소위 독인의원자물리학자들에도 전달되었다.
연금당하고 있었던 독일 원자물리학자들 중에는 오토 한을 위시해서 하이젠버그 Werner Heisenberg(1901-1976), 막스 폰 타우에Max von Laue(1879-1960) 그리고 칼 프리드리히 폰 바이쯔재커 Carl Friedrich von Weizsacher(""~) 동 쟁 쟁 한 학자들이 포함되 고 있 었 다. 오토 한은 이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방문을 절어잠그고 칩거하고 만다. 주위의 사람들은 혹시나 그가 자살이나 하는 것이 아닌가 큰 근십에 싸이게 된다. 이러는 동안에 하이젠버그와 바이쯔재커는 〈연구자의 책임〉이라는 문제믈 놓고 의미심장한 대화를 나눈다. 폰 바이쯔재커는 그때 방문을 참그고 칩거하면서 고민하고 있는 오토 한을 상기하면서 발견자와 발명자를 구분해서 이론을 전개시키고 있다. 죽 원자핵의 분열에 관한 한의 실험은 하나의 발견이었고 원자폭탄의 제조는 하나의 발명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발견자는 일반적으로 어떤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기 이전에는 그 사실의 이용가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 그 발견으로 비못되는 그 어떠한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갈바니 Galvani 나 불타 Volta 는 휴네의 전자기술에 대하여 아무것도 상상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발견한 사실과 이론들의 실제적 이용에서 오는 이익이나 위험에 대한 책임을 그들에게 물을 수 없었던 것과 갈이 한이 지금 처렇게까지 자기의 연구결과에 대해서 최책을 느낄 필요는 없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미국에 있어서의 원자폭탄의 제조는 하나의 발명이라는 테두리에 속하는 일이며 발명이란 저어도 그 어떤 사용목저울 전제로 하고 있고 그 목표달성이란 하나의 가치를 수반하기때문에 그에 대한 웅분의 책임을 쳐야 한다는 이론을 전개시킨다. 이와 같은 폰 바이쯔재커의 이론전개에 대하여 하이젠버그는 대체적으로 긍정저인 반응을 보이면서 다음과 갈은 말을 하고 있다.
우리는 세계사에 있어서 선을 위해서는 모든 수단이 허용될 수 있으나 악을 위해서는 허용될 수 없다는 대원칙 좀더 나쁘게 표현한다면 목적은 수단을 신성화한다는 이 원칙 이 항상 반복해서 실천에 옮겨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갈은 사고과정을 처지시킬 수 있는 무엇이 촌재할 수는 없는 것일까?
과학과 기술의 진보는 결과적으로는 룰림없이 세상에서 독립된 정치칙 단위를 점점 크게 할것이고 따라서 그수가 점차로 감소하면서 결국에는 하나의 중심적인 질서믈 유지하는 관계를 지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중심적 질서로부터 여전히 개인과 개체적인 민족의 자유는 충분히 보장되기를 희망할 수 있운 것이다. 이러한 방향으로나가는 것을 나로서는거의 불가피한당연한거추1 라고보며 다만 문재는 이와같이 종국적으로질서지어전상태로가기까지는 아직도 많온 난관들을 동과해야만한다는 것뿐이다. 따라서 이전쟁 후에는 남아 있는소수의 강대국들이 그들의 노력범위를 가능한한확장하려고노력할 것임은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라고본다. 이와같은 일은 본래 단순히 공동이익과유사한 사회적 구조에 의해서 또는 공몽적인 세계관이나 경제적 정치적 압력에 의해서 생길 수 있는 동맹관계로 말미암아 신현되는 것이다. 강대국의 직접적인 영향권 밖에 있는 약소한 그품들은 강자에 의하여 위협 또는 억 압을 받게 뭔 것 이 고 그렇 게 되 면 강대 국들은 이 약소국둘을· 원조하게 되고그로 인하여 약소국들도 세력균형윤 잡게 될 것이다. 그결과로. 강대국듄이 이전보다 더 강한 엉향력윤 행사하계 뭘 것은 뭄립없는 일이다. 미국이 두 번에 걷찬 세계대전에 개입하계 된 것도 이러한 각도에서 해석이 가눙하게 될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이와갈은 방향으로 세계역사는 진행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에 반대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물몬 이 갈은 팽창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강대국들은 제국주의라는 비난윤 면치 못할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바론 수단의 선덱에 대한 문재가 결정적인 역할윤 한다고 생각된다. 즉 영향력 행사륜 매우 신중하계 조십성 있게 다루며 원칙적으로 경제적인 측면과 문화정책저인 측면에서만 그 수단윤 사용하고 상대국의 내정에 대한 폭력적 간섭이라는 인상윤주는·모든 수단을회피하는강대국은폭력을 사용하는다론나타에 비해서 이와 갈은 비난윤 쉽게 모면할 수 있을 것이다. 오로지 이러한 수단만을 사용하는 강대국의 세력권 내에 있어서의 질서구조는 세계의 미래칙인 통-일질서의 구조를 위한하나의 모법으로간주될 것이다.이러한 견지에서 미합중국은 많은 사 람들로부터 개인이 가장 용이하게 그리고 매우 자유롭게 발전할 수 있는 사회 구조를 가지고 있는 자유의 본거지로 인정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미국에서는 어떠한의견이라도 자유롭게 발표할 수 있으며 개개인의 발의는 국가칙인 법규보다도 종종 더 중요시되며, 개인이 존중되는――예 룹 든다면 전쟁포로둘 이 다론 나라에 바해서 월 등하게 인도적으로취급되어 왔다는――점 동, 미국의 모든 내부구조가 미래세계의 내부구조에 대한 모형 이 될 수 있다는 희 망을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환기시키고 있다. 미국사람들 이 원자폭탄을 일본에 두하할 것인지 그 여부륜 숙고하고 결정내릴 때에 바로 이 많은 사 람들이 미국에 대하여 가지고 있었던 희 망을· 고려에 넣 었어야 했 을 것이다. 왜냐하면 원자폭탄의 사용으로 말미암아 이 희 망에 일대 충격을 가하는 견과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 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미국도 제국주의라는 비난이 미국과 경쟁하고 있는 강대세력에 의해서 제기될 것이고 원자폭탄을 두하하였기 때문에 이런 비난은 섣득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전쟁의 승리 를 위해서는 원자폭탄의 두하가 꼭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것은 단순한 힘의 과시로밖에는 이해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여기서부터 어성 계 세계직인 자유질서 를 향한 길이 열랄 것인지 매우 곤란한 문재가 재기되리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하이젠버그의 말이 지금으로부터 반 세기 전에 있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50 여 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그의 이와 갈은 발언은 너무나도 적중된 예언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평가되기 때문이다.현재 전세계가 미소의 양대 핵우산으로 양분되어 있다는 점, 미소양대국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가 5만여 핵탄두에 달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 핵무기가 가지고 있는 파괴력은 지~역춘 수십 번 가루로 만들고도 남는다는 계산이고 보면 우리가 오늘날 살고 있는 이구체칙인 상황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 지금부터 50 여 년 전에 하이챈버그가 우려한 문제를 다시 한 번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이와 같온 맥락에서 우리는 생존논리라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또한 너무나도 급박한 과제를 오늘의 과학과 기술에 묻지 않을 수 없다.
3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이 시대률 과학기술문명의 시대라고 말하는 데 이의를 , 제기하는 사람은없을것이다. 그런데 제계쳐으로·도그런 경향이 없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목히 과학기술에 대한 물음이 없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한다. 과학기숟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그 과학기술이 과연 무엇인지를 묻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들 주변에는 너무나 자명하기 때문에 물으면 도리어 대답하기가 어려운 그런 개념이 많다. 비근한 예로. 〈어머니〉라는· 단어의 개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어머니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과학기술이라는 개념도 이러한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일까.이 물음에는 아니다라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그 까닭온 이미 서구사회에서는 일찍부터 과학에 대한 불읍이 있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분명히 해두어야 할 점은 과학과 기술은 전혀 다른 개념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과학과 기숟이 밀접하계 연관되어 있는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더까지나 17세기의 소위 과학혁명 이후에 전개된 산업사회에서 져용되는 말이지 근원적으로. 과학과 기술은 다른 개념이다. 그것은 각각 그 기원이 다르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우리는 과학과 기숟의 기원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과학이라는 말은 본래 동양에는 없었던 말이다. 과학이라는 단어는 영어의 ‘science’ 라는 말윤 일본사람들이 번역한 신조어이다. 그리고 ‘science’ 라는 영어단어는 라탄어인 ‘scientia’ 라는 단어에서 비못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라탄어인 'scientia’ 라는 말은 단순이 〈앎〉 죽 지식윤 의미하고 있다고 한다.이와 갈이 어원져으로 생각해 볼 때 우선 우리는 〈과학은 지식이다〉라는 정의를 내탈 수 있다. 그렇다면 한걸음 더 나아가서 〈지식온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던져 보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인간에계 있어서 〈지식〉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이 문제는 결코 간단하게 처리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너무나도 찰 알고 있다. 앎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나도 주관칙인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과학이라고 할 때 거기서 논의될 수 있는 지식이란 과연 주관칙인 〈앎〉이라는 개념으로 정의가 가능할것인가. 어떤 지식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역시 하나의 객관적으로타당성을 지닌 일정 방법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죽 객관적인 타당성이 부여되는 일정한 방법을 동해서 얻어지는 지식만이 우리는 과학적 지식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와 갈은 물음은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실재로 이와 갈은 문제는 현재 과학철학분야에서 매우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한마디로 'postempricist philosophy of science’ 라고 이 름하는 일 련 의 논쟁에 서 현재도 매우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매우 소박한 차원에서 고려해 보기로 하겠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지금 우리가 묻고 있는 지식이란 인간이 자기 자신이 처해 있고 그리고 자기가 맞나고 있는 세계 안의 모든 현상으로부터 얻은 경험을 재정리해 놓은 것이 바로 오늘날 인류가 간칙하고 있는 지식이라고 말해서 대과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여기서 다시 한 번 우리의 질문을 확대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위에서 우리는 〈과학은 무엇인가?〉 그리고 〈지식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그때마다 반드시 문제되는 주체가 인간이었다. 과학은 인간의 지식이요 지식이란 인간의 경험을 정리해 놓온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바로 그 인간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무엇인가?〉 이 질문 역시 그렇게 간단하계 처리될 수 있는 질문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피해 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여기서 이 문제를 철학적인 관점에서 그리고 종교적인 관점에서 추구해 보자는 것은 걷코 아니다. 다만 우리가 인간 아닌 다른 생물에게서 과학과 지식을 운운할 수 없다면 오로지 이와같은 과학이요 지식이타는- 것이 문재가 되는 그 인간이란 무엇이냐라는 점윤 지극히 상식적인 차원에서 짚고넘 어 가지 않을 수 없다고 생 각한다.
따라서 매우 소박한 차원에서 〈사람〉이라는동물과다론생문과의 그 형대상의 차이 또는 해부학칙인 목칭이 무엇인가를 묻는데 그치고자 한다. 예컨대 사람과 가장 가깝다는 유인원과 〈사람〉윤 미교해봉 때 〈사람〉의 특칭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사람〉이 고란라나 침판치에 비해서 엄청나게 큰 대뇌를 가지고 있다는 득칭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즉 유인원의 두뇌의 크기가 400~45occ 인데 비해서 〈사람〉의 두뇌는 무려 그 새 배인 1,400~1,5oocc라는 사실을 지칙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다론 기관에도 다소의 형태상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거의 갈은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오로지 목칭적으로 그 기눙의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곳이 바로 대뇌 것이다.우리가 과학이요 지식이요 또는 철학이요 예술이요 하는 이 모든것이 바로 인간의 대뇌에서 유래된다는 이 너무나도 당연하고 엄연한 사실을 우리는 잊고 있는 것이다. 까닭에 인간의 모든 활동이 그렇듯이 과학도 역시 그 기원을 인간의 대뇌에다 두지 않을 수 없다. 죽 인간의 대뇌작용,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문제 삼고 있는 과학의 기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이라는 생물종이 어떻계 탄생되었든지간에 1,400 내지는 1,500cc 의 두뇌를 갖게 됨으로써 비로소 〈사람〉이라는 생물종이 되었다. 바로 ‘Homo Sapiens’ 가 탄생한 것이다.기술이라는 말의 기원도 영어의 ‘Technology’ 에 두는 것 같다. 이 ‘Technology’ 라는 단어 의 어원도 회 랍어 인 ‘Techne’와 ‘logos’ 가 합해져서 성립된 단어라고 한다. ‘Techne’ 는 영어의 ‘art’ (術)이나 •craft’ (技墓)를 뜻하고 ‘logos' 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가는 〈말씀〉올뜻한다.오늘날 우리 가 기 술이 라고 할 때 우리 는 단순히 전자 죽 ‘techne'만을 뜻하고 후자인 ‘logos’ 는 그 뜻을 잃고 말았다. 이미 지저한 바와 같이 ‘logos’ 는 사람과 사람 사이 를 오가는 말 또는 〈조직 화된 말씀〉을 뜻한다. 따라서 ‘Technology' 란 ‘processes’와 ‘technique’와 그리고 ‘goals' 죽 과정, 기술 그리고목칙의 체계적인 조직체이 어야만 하는 것이다. 어쩌면 오늘의 기 술문명의 비극이 바로 이 ‘techne’ 와 'logos’ 가 분리되어 버린 데서 기인되는 것인치도 모르겠다.
여하돈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art' 나 ‘craft' 만을 문제삼는다면 이는 비단 인간에게 한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우리주위에서 사람 이외의 동물둘의 놀랄 만한 생존기숟·울 봉 수 있 다. 높은 나무 끝에 매달려 있는 새 둥우리 를 볼 수 있고 거의 완전 에 가까운 기하학적 미 를 갖춘 벌집 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곳에서 우리 는 일반 생 물에 있어서의 기술의 기 원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죽 기 숟의 기원은 생 물의 생존본능에 있다 는 엄 연 한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죽 생 물들이 가지고 있 는 기 숟이 란 생 존에대한· 본능에서 비못된 생존수단으로서의 기 술 이 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멕 라 에서 사람에게 있어서도 기 숟 의 기원은· 어 린 아이가 어머니의 것을 빠는 그 혀 눌 립에서 찾 을 수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므로 기술이란 ‘Homo £apiens' 죽 〈微知人頭〉가 이 지구상에 출현하기 훨 씬 이전부터 있어 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Homoerectus’ ( 直立猿人) 아니 그 보다도 더 이전에 불을 사용했 다고 보야지는 ‘Homo habilis’ (손윤 조작하는 인 뮤) 때부터 기술은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그리고 청동기, 철기시대 동등으로 인류문화의 역사를 구분하는 것은 바로 ‘Homo’ (사람이 라는 생 물종)가 사용해 왔던 도구의 종류에 따라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우리는 기 술이 과학보다 선행 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여기서 우리논 과학의 기원을 〈호모 사피엔스〉에 두어야 한다면 기 술의 기 원은• 'Homo Faber’ (죽 도구듄 만드는 인 류) 에 다 두어 야 하지 않겠는가. 여하튼 피셔 Robert B. Fisher 의 말을 빌떤 과학과 기숟온 다음과 갈이 정의된다.과학은 관찰에 바탕을 둔방법에 의해서 얻어전 지식체이다. 기숟 인간의 생존과 평안을 위한 물체를 제공하는 사람들의 순완의 총체이다.Science is the body of knowledge obtained by methods based upon observation. Technology is the totality of the means employed by peapies to provide material objects for human sustenance and comfort.
여기서 우리는 과학과 기술은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계 알 수 있다. 과학은 지식이고 기술은 우리들이 물리칙이고 물질적 환경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나가는 행동 doing 인 것이다. 과학으로 사람은 그의 물리직이고 물질져인 환경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기술로는 그 환경 은 여 제 controll하려 고 한다.4사람도 다론 생물과 같이 자기의 생촌윤 위하여 생촌기숟을 발전시켜 온 사실을 우리는 인칭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이 발전시킨 생촌·기술은 다른 생물들에게서 볼 수 있는 생존기술보다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발전되 어 왔다. 다른 동물과는 달리 유별나계 큰두뇌, 즉 I,400 내지는 1,500cc라는 엄청나기\큰대뇌를가지개 됨으로써 단순히 다른 동물둘과 갈이 조건반사직인 차원에서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항상 주위에서 만나고 경험하는 사건들윤 정리하여 소위 지석윤 축저해 나감으로써 자기가 몸담고 있는 자연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왔다. 이팅게 자연을 이해하게 되는 그 지식을 바탕으로 자기의 생촌윤 위한 기술윤 발전시켰던 것이다. 따라서 :::L. 기술은 자기 자신을 위협하는 환경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져 리 하고 그래 서 자기 자신윤 보호하는 다몬 동물에게서 분 수 있는 직접저인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연을 이해함으로써 그 자연환경윤 재어하고 극복해서 자기 자신의 생존을 위한 환경울 조정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어 나갔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한편에서는 나 자신윤 보호하려는 욕망과 한편에서는 바로 그 자연을- 이해하려는 욕망이 서로 융합하기 시작하면서 부터 소위 우리가 말하는 인류의 문명은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처음에 사람은 자연에 있는 그대로의 물체를 사용하고 이용하는 데 그쳤지만 그들의 지식이 축적되어 감에 따라 자연에 있는 물체의 형태 를 자기들이 사용하기에 편리하도록 년 형 해 나가기에 이르렀다. 그레서 천연석을 깎아서 일정한 모양을 갖춘 도구를 만들었고 건 막대기 를 이용하여 지레 를 삼았다. 그리고 그들은 머지않아서 불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고 그래서 어느 정 도 자연의 기후를 극복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수렵으쵸L 먹을 것 운 그때그때 팔요에 따라서 획 득하였 던 생 활방식 이 소위 불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먹을 것을 요리할 수 있게 되었고 또한 식 물을 저장하는 기술도 고안해냈으며 결국에는 먹이룰 따라 이동하지 않으면 아니되었던 수렵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농작물을 재배하는 새로운 기술윤 발전시키게 된다. 더 나아가서 야생동물들을 순육 하여 가축을 가지게 됨으로써 수렵생활은 완전히 농경생활로 바뀌게 된다.
I970년대 후반에 아프리카의 케냐에서 발견된 〈집터 Home base>에서 이미 지금부터 200만 년 전에 우리둘의 조상들은 불을 피워 놓고 둘러앉아서 음식을 나누어 먹었으며 몸이 불편한 자들에게도 음식을 나누어 주고 이둘을 보호하였던 사실이 밝혀졌다. 이로 인하여 종래 의 〈살생 자 원숭이 시 나리 오 Killing Ape Scinario〉로 대 표되 는 다아트 Raymond A. Dart 의 학A길온 수정 을 강요당하계 된다. 지금까지의 살생술을 배우는 원숭이로서의 인간의 조상온 불을 피어 놓고 평화롭게 공생공유하는 〈집터〉 중십의 조상으로 그 면모를 바꾸어 가고 있다. 즉 직립함으로써 두 손이 자유롭게 된 우리의 조상은 그 두 손으로 무기 를 생산하는 살벌한 모습이 아니라. 그 두손으로 먹을 것윤 수집해다 이 를 처장하고 또한 불구자와 어 린이 믈먹여서 이 를· 양육하는 평화스러운 모습으로 변모되어 가고 있다. 이와 같이 그들은 점차로 자연을 자기들이 살기 좋고 편리한 고장으로 바꾸어 나갔던 것이다.또한 원시적인 생촌기술은 단순히 자연만을 극복하는 데 멈춘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 남부지방의 프레제동굴 Freses cave 에서 발견된 지금부터 약 I,500년 전의 것이라고 추정되는 마술사의 벽화가 말해 주듯이 그들의 관찰의 대 상온 그들의 환경 으초난杓터 그늘 자신에게로 그 눈을 둘리계 되었다. I94 다민에 서거한 프레이처 James George Frazer 의 연구를 빌지 않더 라도 그들 사이 에 주술과 마술이 등장하게 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구1 추였다. 우리가 흔히 원시인들 의 원시종교를 한낱 미신이라고 일소에 부치기 쉽지만 그들에게 있어서는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과학이요 기술이었던 것이다. 그둘의 생사가 달려 있는 철대명령이요 그들로서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윤 총동원해서 수립해 높은 이론체계였던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분자생물학을 믿고 컵퓨터 를 믿는 것과 마찬가치 로 그들에게 있어서는 그들의 생 활을· 영위해 나가는 데 절대로. 팔요한 과학이 그들의 종교였으며 그 종교로부터 파생된 주숟이야말로. 그들의 생명을 이어 주는 생존기숟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과학과 종교가 연결되는 가장 원시저인 예증을 찾윤수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서 엮어낸 종교체계는 오늘날 우리가 엮어내고 있는 과학체계보다도 훨씬더 믿음직한 과학체계였으며 그 지식체계에 밑바탕을 둔 여러가지 의식행사는 바로 그들의 생촌을 위한 중요한 생존기술체계였던 것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부터 약 6만 년전의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는 이라크의 자그로스二 산백에 있는 샤니다르동굴 shanidar cave 에서 발굴된 샤니다르人의 시체는 이미 지금부터 6만전의 사람들이 가지가지의 꽃으로 그를 덮고 또한 주변에 꽃씨를 뿌려서 장지를 화려하계 장식했었다는· 사실을 밝혀 주고 있다.이렇게 되어서 시대의 차이는 있지만 지중해지역의 메소포타미아문명이 형성되고 고대의 바빌로니아 • 애급의 문명이 탄생하였으며 중국에서는 殷周시대의 문명이 그리고 인더스강 유역에는 인도문명이 꽃을 피웠던 것이다. 까닭에 우리는 근대과학과 그· 과학을 바탕으로 하는 근대기술을 논할 때 어느 날 갑자기 그 과학과 기술이탄생하였다고는 철대로 말할 수 없다. 그야말로 진화사적인 간 세월을 두고 인류 역사와 더불어 그 기원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오늘의 과학과 기술을 논할 수 없는 것이다.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과학과 기술윤 논하려면 인간윤 논하지 않고서는 이를 말할 수 없다는 점은 이미 언급한 바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것이다. 비단 인간분만 아니라 모든 생물이 사회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서는 더 말한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인간을 논할 때 그 인간이 몸담고 있는 그 사회칙 배경을 제외하고는 정확하게 그 인간을 논할 수 없다. 죽 〈콘텍스트〉 없는 〈덱스트〉는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그 인간이 실존칙이고 역사칙이며 또한 사회칙인 존재라면 그 인간의 황동에 의해서 만들어진 과학과 기 술의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측면을 논하지 않고 그 과학 및 기 술을 논할 수 없을것이다. 따라서 회랍의 철학 그리고 그들의 과학을 회 람시대의 역사성 및 사회성을 저버리고는 논할 수 없을 것이고 l7세기의 근대과학을 논하는 데 그 당시의 구라과의 사회적 배경윤 무시하고 그시대의 과학과 기술이 이해될 까닭이 없다. 이 말은 오늘의 과학과 기술을· 논하는 데 있어서도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5근대과학을 논함에 있어서 우리는 희랍의 학문 그리고 희랍의 문화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갈이 과학은 지식이고 기술은 물질저인 환경을 소재로. 인간의 생촌·과 그- 평안을 위해 만들어내는 행위라고 한다면 과학은 우리가 만나고, 우리가 겅험하는 자연 울 이해하고 그리고 그 이해한 자연을 기술하는 산 언어라고 말할 수 있다. 브로노프스키 Jacob Bronowsky 는 I965 년에 출간한 그의 처 서 『나는 누구인가 The Idendity of Man』( 筆者tJj 譯)에서 과학은 자연의 모델이라기보다는 자연을 기술하기 위한 산 언어이다. 과학은 언어의 구조 죽 어휘와 규칙적 문명과~그리고 그번역을 위한 사전운 구비하고 있다. 과학의 어휘는 만유인력이나 중성자로부터 신경세포나 무의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학적 개념으로 구성되어 있다. 과학의 문법의 재규칙은 이들의 개념을 배열하고 그리 고 의 미 가 동하는 문장으로 만드는 방법 __예컨대 원자는 중성자를 흡수할수 있고 질량수가높은원자는 분열할때에 중성자를 방출하게 될 것이타는사실――울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그리 고 과학의 사전은 이 와 같은 추상저 문장윤 예 컨대 푼루토늄이 분열 할 때에 방출하는 그 중성자가 불러일으키는 재난과 같이 우리들이 우리의 일상생 활에서 검증할 수 있는 실제칙인 여러가 지 관찰로 번역해 주고 있다.
따라서 과학은 세계의 움직임을모방하는 구조를 지닌 하나의 언어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이 언어륜 사용할 때는 새로운 개념을 필요로 하여 낡은 개념을 버리게 된다. 이와 같은 과정윤 동해서 우리 들은 스스로 기술하고 있는 그 작용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분리시켜 버럴 수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이 렇 게 되는 까닭은 모든 언어라는 것도 발전의 여지 문 가지고 있으며 또한 살아 있고 그리고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예리하계 그의 과학론을 전개하고 있다.이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한다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희랍문화는 자기들이 몸담고 있는 세계 를 보다 깊이 알고 이해하려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전 문화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논 이오니아학과라고 불리우는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그리고 아낙시메레스를 위시해서 피타고라스학파, 헤라큘레이토스 그리고 엘레인학파를 논하계 되며 결국은 소크라테스와 플라돈 그리고 아리스토텔 레스물 논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이 들을 하나하나 상세히 논할 필요성윤 느끼지 않는다. 다만 이 들에게서 공동저으로 볼 수 있는 특칭은 그둘은 그 어떤 기술보다도 어떤 이데아 Idea 에 머 깊은 관십윤보였다는사실이다. 특히 피타고라스학과에 속해 있었다고보여지는 폴라돈에게 있어서는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로부터 〈……온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받은 도덕져 영여으로부터 보다더 넓 은 법위에 걸쳐서 그의 이데아를 고안해내기 위한 도약대의 여 할윤 한 것이 그의 수학이었다. 수학이란 오늘날 일반이 생각하고 있 는 것과 갈은 계산은 결코 아니다. 특히 오늘날에 와서 보면 계산이라면 컵퓨터가 사람이 할 수 있는 몇천 배 아니 수십억 배 를 더 정 확하계그리고 신속하게 대행해 주고 있다. 수학은 하나의 이 데 아라고 할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플라돈에 있어서는 수학 없이 는 그의 철학이 존재할 수 없었다. 현대의 양자역학의 시조라고도 할 수 있는 하이젠버그의 대동일장이론이 플라톤의 철학 아니 그의 수학과 얼마나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가를 그의 처서를 동해서 우리는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지나치게 단순화한 감이 없지 않지만 풀라돈을 수학자라고 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몰 생물학자로 비유할 수 있다. 오늘의 용어 를 빌떤 풀라돈윤 물리과학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명과학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수많은 저서 중에서 우리는 그의 『자연학 Physica』『천체론 De Caelo』, 『동물지 Historia Animalium』그리 고 『동물발생 론 De Ge,zeratione Animalium』둥에서 그의 생물학자로서의 면모를 볼 수 있다. 서구의 철학사상사를 연구해 온 학자들 중에는 서구의 철학사상의 역사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사상의 주석서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을 정도로 이 두 사람의 영향은· 철대적이라고 할 수 있고 지금도 우리들의 사고구조 안에 여전히 그 부리를 깊이 내리고 있다고 생각해서 大過는 없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로 2000년간 서구사회를 지배해 온 그의 우주관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그의 과학칙 방법론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모든 자연사상에 대한 그의 四因說에서, 내용에 있어서는 다론 점이 있다고는 하지만 근대과학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뉴돈의 인과론적인 운동방정식의 모델을 볼 수 있는 것이다.혼히들 17세기 과학혁명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철학을 베이컨에서 비못되는 경험주의 Empricism 에다 두려고 하지만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17세기의 과학혁명은 도리어 풀라론적인 합리주의 Rationalism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석하고 있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할것이다.여하튼 풀라돈과 연결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천체는 회전주기에 따라 지구를 중십으로 하는 동십원으로 달·태 양·금성 ·수성 ·목성 ·토성의 순서로 배열되고 있었고그리고달 밑에 있는 지구위에서는 생성과 소멸이 있었으며 원소인 흙, 물, 공기, 그리고 불로써 모든 물체는 만들어지고 있었고 지상의 모든 물체는 각각 구성되어 있는 원소의 근원지로 되돌아가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사과나무에 매달려 있는 사과는 흙이라는 원소로 만둘어져 있기메 문 에 그 사과는 흙의 고향인 땅 위로 떨어진다고 설명하였다. 이렇게 그들은 인과윤을 설정하였고 이 인과율에 입각해서 그둘의 합리주의칙 사고방식을 전개시켜 나갔다. 이와같은 사고가 그 시대에 있어서는 가장 합리칙인 사고방식으로 통용되었고 이와 같은 합리주의적 설명이 I7세기의 과학혁명이 일어날 메까지 무려 2,000년간을 서구사회에서 동용되어 왔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할 팔요가 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간과해서는 아니될 중요한 점은 I7세기의 과학혁명에 이르기까지는 과학의 주대상이 되어 왔던 자연은 인간을 매개체로 신과 연결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죽 신-인간-자연, 이와 같은 관계에서 그 자연울 기술하고 표현하는 언어로서 의 과학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윤 우리는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과학 죽 지식이란 신을 섭기는 성직자 내지는 일부 득수권력충의 점유물로서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지식의 독점이 급기야는 중세기의 암혹시대라는 무서운 세태를 가쳐오기는 하였지만 그러나 그때까지의 과학자란 거의 모두가 과학자인 동시에 형이상학자였던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일상언어로 사용하고 있는 〈과학자Scientist〉라는 말이 I83I 년에 영 국과학진홍협회 British Association of the Advancement of Science(BAAS라는 약자로 몽용되고 있음)에 운집한 일군의 〈물질세계에 관한 지식의 탐구자들〉을 호칭할 져철한 용어가 없는 것을 개만한 영국의 과학철학자 위웰 William Whewell, (1794-1866) 이 I834년에 신조한 용어 라는 사실은 유명 한 일화이 다. 따라서 그때까지는 〈과학자〉라는 말은 없었고 소위 오늘날 부르고 있는 과학자를 과학인 Man of Science 또는 자연철학자 Natural Philosopher라고 부르고 있 었 다. 『세 계 사 Tlze Outline of History』라는 처서로 유명한 영국의 소설가요 문명비판가인 웰즈 Herbert George Wells 는 I946년에 서거했는데 그는 죽는 날까지 〈과학자〉라는 신조어에 반대하였으면 〈과학인 Man of Sciece〉이야말로 가장 적절한 호칭이라는 것을 주장했다는 일화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고 생각된다.
617세기의 과학혁명을 논할 때 우리는 역시 당시의 서구사회의 역사적인 맥락을 고찰해야만 할 것이다. 이미 잠깐 언급한 바와 같이 지식의 독점에 따르는 성직자들의 횡포는 1000년간이라는 긴 중세기의 암혹시대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우선 상기할 팔요가 있다. 1000년간이라는 긴 암흑시대를 거쳐 서구사회에서는 15 세기에 르네상스가 있었고 16세기에는 종교개혁이 있었다. 이와 같은 흐름에서 17세기의 과학혁명이 가능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르네상스, 종교개혁 그리고 과학혁명으로노 이어지는 서구사회의 역사저 조류는 한마더로 인간해방의 부르젖음이었다고 말해서 찰못은 없다고 생각된다.아이작 뉴돈의 묘비에 새겨져 있다는 알렉산더 포오프 AlexanderPope 의 시의 〈하나님이 뉴돈 있으라 하시니 이 세상에 빛이 있었다〉라는 한 구철은 당시 미국사회에 널리 퍼지고 있었던 동요의 한구절이라는 사실만 보아도 당시 영국사회에 있어서 뉴돈의 존재가 얼마나 큰 존재였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주고도 남음이 있다. 모든 운동의 궁극칙인 원인을 신에다 두었던 당시의 폐쇄칙인 서구사회에 있어서 모든 質뻥占의 운동의 원인을 만유인력이타는 새로운 개념에다 설정한 뉴돈의 운동방정석은 그때까지의 모든 지상의 현상들윤 일목요연하계 설명해 주는 데 충분하였던 것이다.X7세기 이후로. 과학의 제계를 지배하게 되는 뉴튼의 패러다입을 결정론적 인과론이라고 말한다. 이미 인과론적인 모델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갈이 희람시대부터 내려오는 서구사회의 전동이었다. 그러나 뉴튼의 세계는 질점의 운동계로서 설명되었고 따라서 이 제계에서 우리가 관찰할 수 있다. 모든 운동현상온 그의 유명한 운동방정식에 의해서 설명이 가능해졌던 것이다. 그래서 그때까지 모든것이 그때그때의 신의 간섭에 의해서만 가능했었던 가시세계의 모든 현상들이 이미 자동칙으로/설정된 일정한 메카니즘에 따라서 움직이는 과정으로느 설명되었던 것이다. 천체의 운행 묵히 만월과 壯5 月, 干滿潮그리고 일식 월식 둥 이 모든 협상에 대한 정연한 선명과 그 예언의 칙중 그리고 기타 모든 물체의 운동들이 일목요연하게 설명됨으로써 득히 해상무역권이었던 영국에서의 뉴본의 촌재는 그야말로 신과 같은 것이었다고나 할까.
뉴돈 자신은 매우 겅건한 신학자와도 갈은 과학자였지만 그러나 그로 인하여 확립된 고전역학에서는 점차쳐으로 그때까지 모든 사람의 머리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신―인간-자연의 도식에서 신은 사타지고 인간-자연의 관계만 남계 되는 과정을 우리는 보게 된다. 이와같은 과정을 여러 가지로 해석하고 또한 이해하는각도가 다를수도 있지만 17세기 전반기에 살고 있었던 교학자는 물리학자인 동시에 철학자이기도 했었던 르네 데까르뜨 Rene Dccarto 가 신-인간_자연의 삼자관계 를 분리시켜 놓은 장본인인지도 모돈다. ‘res cogitans' (사유하는 것 즉 〈나〉라는 뜻)의- 'res extensa' (外廷하는 것 즉 〈문체 〉라는 뜻) 를· 완전히 분리시키고 그래서 이원론을· 확립시켜 놓음으로써 오늘의 물질문명 죽 오늘의 ‘Big Science’ (거 대과학)와 ‘BigTechnology' (거대기숟)는 그 싹이 렀는지도 모를 일이다. 버터팔드 Herbest Butterfield 가 고대 희 랍의 자연학체 계 로부터 근대 과학체 계로 이행하는 과정윤 〈과학혁명〉이라고 부르고 여기서 그 어떤 역사적인 불연속성을 설정하고 있지만 도리어 이때부터 신-인조1-자연의 관계에서 신이 완전히 떨어져나갔다는 데서 그야말로 〈혁명〉이타는 실감은 더욱 적철하게 표현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즉 〈전지전능의 신〉으로부터 〈인간의 이성〉으로 그리고 〈교회〉에서 〈실험실〉로 과학온 그야말로 혁명을 이루었던 것이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갈이 르네상스, 종교개혁 과학혀 명 그리고 계몽주의시대 를 거쳐 산업혁명 이렇게 눈부신 역사의 과정을 거치면서 〈레스 엑스덴사res extensa〉를 담구하고 연구해 온 근대 과학은 그리 고 기 술문평 은양져 팽창 일로의 길을 걸어왔다.여하튼 신이라는 제동이 없어전 인간一자연의 도식에서 근대과학과 기술은 그야말로 'laissez faire' (자유방종이라는 뜻)의 일로를 걸어 나왔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18세기까지는 전혀 없었던 〈전보 Progress>라는 새로운 개념이 18세기 계몽주의시대를 통해서 인간의 사고구조의 중십에 자리잡게 되었다.
로마클럽 의 재 I 보고서 「인류의 위 기 The Limits to Growth」(우리나라 말로 표기의 재목으로 번역되어 있음)에서 우-리는-기하급뉴수적인 성장의 신화를 너무나도 뼈저리게 느끼고 또 실지로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거리에서 실갑하고 있다. 이와 같이 진보의 사상 그리고 성장의 신화가 밑받침이 돼서 과거 200,-...,.,,300년간을 컬어온 과학과 기술의 발달상은 이미 거론한 원자폭탄으로 상칭되는 오늘의 지구생대의 위기에서 단적으로 그 편모를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20세기에 접어들면서 그야말로 과학혁명이 이루어졌다. 아리스토텔레스시대부터 그리고 뉴돈에서 한충더 굳어진 결정론칙 인과론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 그리고 하이젠버그의 불확정성원리에 의해서 허물어지고 말았다.아인슈타인은 어려서부터 만약에 초속으로 달리는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한다면 과연 어떠한 년화가 올까라는 꿈을 안고 성장해 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즉 광속보다 훨씬 낮은 속도가 지배하고 있는 운동계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이원론적으로 분리해서 생각해도 하동찰못될 것이 없다. 그러나 속도가 광속에 가까워지면 시간과 공간온 이원론적인 차원에서 일원론져 차원으로 변동하계 된다. 죽 시간과 공간이 독립 함수로서 움직 이 는 것 이 아니 타 상호간의 관련함수로서 움직이계 된다. 다론 말로 바꾸어서 이야기한다면 정지계에 있는 사람과 운동계에 있는 사람의 시간이 각각 달라진다는 말이 된다. 즉 보편저인 시간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아인슈타인의 목수상대성원리이다. 공간과 시간이 각각 철대적으로 독립된 이원저인 존재가 아니라 그것은 光運을 매체로 하는 상대적인 존재라는것이다. 1905년에 발표한 복수상대성원리는 갈은 속도로 움칙이고 있는 두 慣性系사이의 관계를 논한 데 그쳤지만 1915년에 발표한 일반상대성원리는 임의의 좌표계 사이에서도상대성원리는 성립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독일의 위대한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라이프니 쯔 Gottfried W. Leibniz(1646-1716) 는 아인슈타인보다 2세 기 앞서서 공간은 물체의 순서나 관계에 불과하다고 간파하였던 것과 갈이 공간이란 그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물체간의 상호관계가 없다면 그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고 만다. 그래서 뉴몬의 철대공간에 있어서의 만유인력은 아인슈타인의 사차원 상대공간에서는 물체와 물체 사이를 연결하는 최단거리로 표현된다. 그리고 질량과 에너지와의 상관관계 (E=mc2) 역시 오늘의 입자물리실험에서 다반사로 입증되고 있다.
거시세계에 있어서는 물체의 위치와· 운동량은 정확하계 측정할 수 있다. 그 까닭은 그 물체의 관찰을 가능케 하는 光線죽 光표子의 크기와 그 물체의 크기가 천문학저 숫자의 차원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시세계에 있어서는 전혀 상황이 달라진다. 위치를 측정하려는 대상이나 광량자의 크기가 갈은 차원으로. 비슷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측정하려는 대중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하계 측정할 수 없게 된다. 아주 소박하계 표현하면 측정하려는 대상에게 가서 충돌하는 광선의 크기 가 엇 비 슷하기 때 문에 광선 즉 광량자가 가서 측정하려는 대상인 입자와 충돌을 하면 이 입자는 측정자로서는 도처히 알 수 없는 어떤 일정한 영역 내로 밀려서 그곳에서 반사하는 광선을 보고서야 그 입자의 위치를 말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입자의 정확한 위치는 도저히 알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이것이 하이젠버그의 불확정성원리의 내용이다. 죽, 불정확한 어떤 영역을 설정하지 않고서는 미시세계의 운동은 논할 수 없게 된다는 이야기가 된다. 따라서 거시세계에서와 같이 연속적 운동의 추적온 불가능해진다. 즉 달리 표현해 본다면 블랙박스 안에 듄어갔다가 나오는 광선밖에는 우리는 볼 수 없기 때문에 우리 눈에 비치는 미시입자들의 운동은 불연속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이미 인용한 바 있는 브로노프스키의 말을 빌어 보면 다음과 갈다.우리의 경험은 단순히 우리들을 외부세계와 연결짓고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 모든 경험이란 바로 우리들 자신이며 또한 우리로위한 세계 자체입니다. 즉 그- 경험은 우리들을 세계의 일부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세계가 그 자체로서의 절대적인 연속성을 가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의 연속이고 우리들은 단순히 그사건의 연속을 바라보고 있는 존재라고 간주한다면 우리는 분명히 잘못된 세계상윤 가지개 될 것입니다. 여기서 나는 철학에서 물리학으로 뛰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그의 상대성이 론에서 위의 사실을 하나의 자명한 이치로 증명했읍니다. 만약에 우리가 자연의 법칙은 우리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럽 써내려간다면 우리는 지극히 기초적인 문제――예컨대 수성의 퀘도에 관한 문제 갈은 것에서 그릇된 답을 얻게 됩니다. 즉 수성궤도의 계산에서 우리가 범하고 있는 기본적인 오차는 자연이라는 것은 우리가 그처 담 너머로 구경하고 있는 그 자체로서 아무런 혼들림 없이 대연하계 움직이고 있는 기계라고상정하는데서 비롯된다는 점을그는지칙하고있읍니다.이와 같은 상정은· 불 리학에 있어서나또는 철 학에 있어서도 잘못된 세계상인 것입니다. 자연이라는 것은 사건들의 조직망 Network이며 그 사건들은 시간 안에서 펼쳐지는 빨간 카피트 같은 것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부분에 얽혀 있는 하나의 네트위크입니다. 그리고 우리둘 자신도 이러한 부분 안에 있읍니다. 이와 같은 연쇄척인 집합체 안에서 우리는 어떤 객관적인 확정성으로. 도달하게끔 그곳에 따로 떨어져 촌재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확정성에도 도달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확정성이란 찰못된 모델에 부수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확정칙 답변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확정성이란 세계를 외부에서 사변하고 있는 철학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전 요청이었읍니다. 그리고 과학져 지식이란 행동윤 위한 지식이지 사변을 위한 지식은 아닙니다. 상대성에 있어나 또는 어떠한 과학에 있어서도 자연을 보는 눈은 사람의 눈이지 결코 하나님의 눈은 아닙니다.이상의 굴만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나 하이젠버그의 불확정성원리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명석하게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있는 굴은 없다고 팔자는 생 각하고 있다•
720세 기 의 전반부를 물질과학 Material Science 의 시 대 라고 한다면 .20세기 후반부는 생명과학의 시대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I 95 2년 에 왓슨 James Dewey Watson 과 크릭 Francis Harry Crick 에 의한 DNA 의 이중나선구조의 규명은, 생명학에 있어서는 물질과학에 있어서의 뉴돈 의 과학혁명에 버금가는 일대 장거가 아니할 수 없다. I7세기 이후로 뉴본의 파라다임이 과학 전분야에 있어서 하나의 센트랄 도그마 central dogma 가 되 어 왔듯이 DNA 의 구조규명이야말로 생명과학에 있어서의 센트랄 도그마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I7세기에 뉴돈의 역학이 거시세계의 모든 가시현상을 일목·요연하계 설명 해 줌으로써 그로부터 2~3 세기 동안에 오늘의 거대한 물질문명을 구축해 놓았듯이 DNA 의 구조가 밝혀지고 이에 따르는 分子生物&요 의 기초가 닦아지면서 계속 각분야로 발달되어 가는 생명과학은 앞으로 다시 한 번 새로운 산입혀명과 거기에 따르는 새로운 또 하나의 생명과학혁명이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라는 기대와 우려를 갖게 한다.그래서 물질과학에 있어서 모든 가시현상이 뉴본의 결정적 인과울로서 설명되었듯이 모든 생명현상도 DNA 라는 하나의 센트랄 도그마에 의해서 설명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었던 것이 50~60년대에 걸찬 생물학계의 큰 흐름이라 보아서 큰 잘못은 없을것이다.1961 년에 니 랜버그_ Marshall W. Nirenberg 가 유전암호의 해독윤 발표하고 또한 I965년에 모노 Gacque Monod 와 재이곱 Francis Gacob이 DNA 복사의 유전져 조철기구로서 유명한 오페론說Operon Theory을 발표하여 노벨상이 수여됩으로써 분자생물학은 전정에 이론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분자생물학이란 어디까지나 단세포생물에서 쳐용되는 이몬에 불과했다. 이것이 다세포생물로 옮겨 오면서 문재는 점점 난관에 부딪치게 되었다. 죽 다세포생 물 이 단세포생물의 연장선상에 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물질과학의 세계와는 반대로 생명과학에 있어서는 미시세계의 차원에서는 센트팔도그마인 DNA 의 기계적인 메카니즘이 통용되었지만 이것이 거시제계로 옮겨 오면서 이와 같은· 미시세계에서의 물리화학적인 필연져 메카니즘만으로는 실명이 완전히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분자생물학분만이 아니라 거시적 차원을 다루는 동물행동학을 비롯해서 발생생물학 그리고 더 나아가서 사회생물 학에 이르기까지 생명과학의 영역은 점점 그- 범위 를 넓혀나가고 있다.1970년에 모노가 〈우연과 팔연〉이라는 저서 를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생명현상의 우연성이 화제가 되었으며 최근에는 뇌의 연구로 많은 학자들이 새로운 연구결과를 속속 발표하고 있다.1981 년에 〈지금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뇌의 내부세계에 대한 동찰〉을 높이 평가하여 노벤상이 수여된 스페리 Roger Sperry는 1983년에 Science and A1oral Priority 라는 저시 률 내놓으면서 다음과 갈은 주장윤 하고 있다. 그는 뇌의 좌우반구믈 철만하는 수술의사로서도 세계적인 권위로 알려져 있는데 좌반구에 손상을 입은 환자 또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치료와 연구믈 동해 지금까지의 정선과 육체의 이원론적인 차원을 지양하고 ‘Mentalist monism' 내지는 ‘emergent interactionism' 이라는 새로운 일원론적 파라다임을 주창하고 있다. 그는 언덕 위에서 굴러떨어지고 있는 차량을 예로 들면서 차 바퀴를 구성하고 있는 각 물질은 그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내지는 분자들의 물리화학적인 팔연칙 반응메카니즘에 의해 각각 구성되고있지만 일단이와같은 물질들이 접합되어 한바퀴를형성하계되면 분자 원자 차원의 물리화학적인 성질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언덕을 굴러내려가는 성질이 현현 emergence 된다는 것이다. 일단 이와 같은 성질이 현현되면 이 성질이 하나의 원인이 되어 전체를 지배하게 됨으로 그는 이를 〈하향성 인과율 Downward Causation〉이라고 말하고 있다. 죽 지금까지는 모든 원인을 보다더 작은 부분으로 분석하고 쪼개어 결 국은 성질을 구성하고 있는 최소단위인 입자로까지 내려간 다음 그곳에서부터 상향성으로 어떤 원인을 찾으려는 〈상향성 인과윤 Upward Causation〉이 지 배 해 왔으나 인간에 게 있어서는 뇌에서 현현되는 성질이 원인이 되어 하향칙으로 지배하는 말하자면 〈하향성 인과율〉이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하향성 인과움〉이 지배하는 곳에서 'The Grand design of Nature’ 를 볼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인간에게 있어서의 도덕과 종교적 차원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종래의 ‘Gestalt' 심리학에서 말하는 ‘Gestalt’ 와는 전혀 다론 개념으로서 일정한 상호연관작용 Interactionism 에 의해서 나타나는 emegent 새로운 성질을 뜻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그가 주장하는 이 와 갈은 과라다임 을 ‘Holist Mentalist' 파라다임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최근에는 뇌의 연구가 진척되어 감에 따라 〈의식〉문제와 〈기여〉문제도 상당히 깊이 있는 연구결과가 우리들의 관십을 끌고 있다. 예컨대 단기기여과 장기기억, 의식 및 무의식과 생물에게 있어서의 수면과의 관계 그리고 꿈 둥에 관해서도 속속 재미있는 그리고 주목할 만한 연구결과가 발표되고 있다.1975년에 윌슨 Edward 0. Wilson 은 『사회생물학 Sociobiology,· The New Synthesis』이라는 처서 를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생물학의 또 하나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는 계속에서 I978년에 『인간의 본성에 관하여 On Ht1man Natur다라는 또 하나의 저서 를 츈간하였다. 윌슨은 모든 생 물종의 사회적 행동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각 생물종의 유전인자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따라서 사회성 을 띠고 있는 벌의 세계 를 예로 든다면 갈은 암놈이라도 여왕벌에게 모돈 생장은 맞기고 자기는 불임의 일벌이 되어서 말하자면 자기의 형 재자매 를 기르게 되는 이타현상을 자기와 보다 가까운 DNA 를 소유하는 후손을 많이 생존케 하려는 일종의 본능에서 오는 행동이타고 섣명하고 있다. 따라서 어미와새끼와의 관계, 군집행동, 적대성, 이기성, 이타성 그리고 협 력 등등의 동물의 사회성을 유전인자의 팔연적 결과로써 이 룰 섣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때는 사회생 물학은 인간의 사회 현상윤 생 물학적 본성 의 소산으로써 이 물 합리 화하려는 새로운 생물학적 결정론이라는 비난도 받았지만 이와 갇은 비판에 대 한 답변으로서 위 에 서 언급한 On Human Nature를 출간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1977년에 『비평형 세력학 특히 산일구조의 연구』로 노벨화학상을 탄 프리고전 llya Prigogine 은 1984년에 철학자인 스텐저스 Isabelle Stengers 와의 공저 로 낸 Order Ot1t of Chaos 라는 처 서 에 서 지 금까지의 기계의 시대 Age of Machine 에 있어서의 전동칙 인 과학은 안정, 질서, 획일성 그리고 평형성을 강조하고 주장해 왔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페소11 계 Closed system 에 있어서의 선 형 관계 linear relationship 만울 문제 삼는 데서 비롯된 것일 문, 오늘날과 같이 가변화되는 사회면화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무질서, 불 안정성, 다양성 비평형성 그리고 비선형관계가 매우 중요한 의미 를 가져온 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과학은 주로 무시간성을 다루어 왔지만 앞으로의 과학은 시간성윤 문제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질과 에너지와 그리고 정보의 교환이 자유로운 개방계 Open Systern 에너지의 과학은 바로 생물학적 체계의 과학이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져 체계의 과학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가 발전시킨 〈비가역 열역학〉의 이론으로. 개방계에 적용될 수 있는 새로운 과라다임을 주장하고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혼란과 혼돈으로부터 자발져으로 발생되는 질서요 조직화 organization 라는 것이다.8그야말로 20세기에 접어들면서 과학혁명은 성취되고 말았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 하이젠버그의 불확정성원리, 왓슨과 크릭에 의 한 DNA 의 구조 규명 과 :::L.에 따르는 분자생 물학의 대 두 그리고 여기서 발단되는 유전공학, 인류사상 그 예외를 볼 수 없는 핵무기 그리고 지금 무섭계도 우리의 일제생활 속에 깊이 파고드는 컵퓨터문화, 이 모든 것이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이~ 과학혁명의 소산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짚고넘어가야 할 점은 이상의 고찰에서도 명백하계 드러났듯이 과학에서 사용하고 있는 언어가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변화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과학의 패러다임이 변함에 따라 자연스럽 계 그 사용하고 있는 언어 도 변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철대성에서 상대성으로, 확정성에서 불확정성으로, 팔연성에서 우연성으로, 단일성에서 이중성으로, 획일성에서 다양성으로, 연속성에서 불연속성으로~, 무한성에서 한계성으로 그리고 가능성에서 비가능성으로 그 언어가 자꾸만 변해 가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또 어떠한 언어가 나타나서 우리를 당황하게 할지 모를 것이다. 다만 확실한 사실온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과학의 언어 역시 부단히 변해 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또한 분명한 것은 앞으로도 다시 이 언어는 변해 갈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브로노프스키가 지적한 대로 모든 자연현상온그리고사물들은 부단히 움직이고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참시도 쉬지 않고 음칙이고 있는 이 자연 그리고 세계라는 그 네트워크 안에 얽혀 있는 우리자신도 또한 참시도 쉬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과학의 역 사성을 본다. 과학과 기 술이 인간활동의 산물이 라면 그 과학과 기술은 물가치성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인간존재 그자체가 물가치성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에서이다.그런데 모노가 그의 처서 『우연과 팔연』에서 절규하고 있듯이 현대사회는 과학이 발견해 준 부와 힘을 받아들였지만 그 과학이 갖다 준 가장 십오한 메시지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메시지에는 귀조차도 기울이려 하지않고 있다. 그 메시지란 새로운 그리고 유일한 진리의 원천을 정의하는 일이고 윤리의 기초에 대한 전면직인 재겁토와 물리론저인 전동으로부터의 완전한 철연을 요구하는 일이며 구약을 결정져으로 폐기하고 신약을 만들어내야만 하는 팔요를 주장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한편에서는 과학의 덕테으로 얻어전 협으로 무장하고 모든 부룬 향유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바로 이 과학에 의해서 이미 그뿌리로부터 혼둘려 버린 낡은가치체계에 따라서 생활을 계속하고 그리고 그 가치체계를 가르치고. 있 는 것이다.
그래서 근대 과학혁명 이후로 과학과 기 술은 사회제도화하면서 다시금 과학과 기술은 성역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즉 중세기 성직자의 자리에 오늘의 과학자가 들어서게 되었고 오늘의 과학지식은 그리고 그 과학지식에 바탕을 둔 오늘의 거대기술은 범포드 Lewis Mumford 가 말하는 애급의 피라미드를 건설하는 데 사용되었던 메 거 마AJ. Megamachine 과도 같이 20 세 기 현대 판의 앙혹시 대 를 전개시키기고 있는 것이다.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오늘의 과학지식과 기숟은 구가치체계에 기반을 두고 이 를 고집하는 일부 선전국가나 또는 일부 목수충의 점 유물이 되 고 말았다. 마치 중세기 까지의 모든 지식이 승려들과 목수 권력충의 보호를 받고 있었던 일부 어용학자들의 점유물이 되어서 저 중세기의 암흑시대 를 만들었던 것과도 같이 오늘의 거대기술은 또다시 오늘의 승려인 과학자 및 공학자들과 그들이 봉사하고 있는 일부 득수중의 점유물이 되어서 오늘의 인간소외 자원고갈 그리고 환경파괴의 참담한 세계를 구축해 가고 있는 것이다.1973년에 영 국의 경 제 학자 슈마하 E. F. Schumacher 는 Small is Beautifttl 이라는 처서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리고 그는 그 저서 안에서 〈중간기 술 Intermediate Technology> 또는 〈적정기술 Appropriate Technology〉이라는 새로운 개 념을 제시하였다. 일리치 Ivan Illich는 The Sclwmacher Lectttres 에 서 〈그 지 방 목유한 가치 vernacular value〉라는 말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일리치는 1981 년 일본에서 행한 〈민중에 의한 과학〉이타는 강연에서 I2세기의 서구사회에 있었던 소위 기 술혁 명 당시 의 성 빅 톨· 위 3I.. Hugo de Saint-Victor 가 제 창한 〈치료로서의 과학〉이라는 과학이라는 개념을 소개하고 있다.근대과학이 일어났을 메 우리의 조상들은 인간해방을 구가하였다. 그런데 그 과학이 그리고 그 과학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기술이 다시 인간을 구속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거대기술문명의 메카니즘이라는 톱-니바퀴 속에 끼여서 오늘의 인류는곤 불안에 떨고 있는 것이다. 벌써 몇 년 전의 동계이지만 전세계칙으로 I,500만 가량의 사람들이 매년 아사하고 있 31.. 또 그 만큼의 사람들이 굶주림과 영양실조에 허덕이고 있는데 매 90초마다 100만 달러씩 전세계적으로 무기제조에 막대한 자금을 방출하고 있다는 이 엄연한 사신을 우리논 어떻게 해석해야 옳 단 말인가.
이 굳을 쓰고 있는 동안에 〈레이건〉 미국대동링과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서기장은 전세계가 TV를 동해 지켜보는 가운데 미국의 수도 위성 돈 디 씨 백악관 이스트 룸 조인식에서 약 200프11 이지의 INF 폐기 협 정 문서에 서명하였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1987 년 12 월 8일 하오 2 시 2 분). 세계평화를 위해 길이 기념될 역사저인 순간이 되기 를 마음속 깊이 기원할 따름이다.앞으로의 기 술은 인간의 얼굴을 가전 인간처 도 Human scale 의 기술이 어 야 한다. 그리 고 우리 는 지 식 의 생 태 학 Ecology of Knowledge을 연구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 지구상에 생대학칙 균형이 깨지는 날 전인류의 운명은 어더로 갈 것인가.이러한 뜻에서 르네 듀보 Rene Dubos 가 그의 저서 『인간이탄 동묻 So Human A11 Anima』에서 부르짖온 바와 갈이 지금까지 골몰해왔던 〈4勿i協의 科學Science of Thing〉으로부터 〈人間性의 科學Science of Humanity〉으로 우리 는 그 방향을 과감히 전환시 켜 야만 할 것 이다. 그래서 세계평화를 위해서 이 땅 위에 건인류의 〈생촌윤리〉름세워 나가야 할 것이다.생명과학의 발달과 전동 윤리관의 동요
河斗鳳1 서론자연과학온 자연현상에 대한 인간의 순수한 지저 호기십에 의하여 발달되어 왔다. 그리하여 자연현상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여러가지 법칙성이 발견되고 이들이 지식체계를 이루게 되면서 인간은 이 법칙성을 자신의 생 활에 유용하계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자연의 법칙성을· 탐구하는 행위 그 자체는 초기 인간의 생활에 칙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나, 이 지식의 이용은 원시 인류의 생촌을· 크게 유리하계 하였고 또 편리한 생활의 도구몰 탄생시컸다. 이와 갈이 응용과학이 라는 유용한 활용처가 인식되면서 자연과학은 그 응용의 가능성으로 말미암아 더욱더 발달하게 되어 오늘날에 이르고있다.
한편, 기술은 과학과는 무관하게 인류의 경험의 바탕에서 서서히 발전되어 왔다. 원시 인류가 직립 보행을 하계 되면서 양손이 보행으로부터 해방되어 원시적인 도구를 만들고 사용하는 데에 쓰이계 되고, 이 도구는 지능을 자극하여 보다더 정교한 도구를 만들게 하였다.기술이라는 면에서 볼 때 인류의 역사는 대제로 크계 세 단계로 구분할 수가 있을 것이다.1) 즉, 첫단계는 수렵채집의 단계였다고 할 수 있냐 그리고 이어서 정착생활을 하면서 식물재배를 하는 농업단계가 두번째 단계일 것이다. 이 단계는 기원전 3,500년 쯤일 것으로 추측되는데, 인류 역사에서 가시적 문화의 출발시기타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에는 인류가 아직 문자를 갖지 않았으므로 지식의 축적과 전승이 극히 미미하여 기술과 문화의 발달속도도 대단히 늦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집단정착생 활인 농업사회에서는 그 구성원이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수렵채집의 단계에 미해서는 경험과 지식의 축적 전승이 훨싼 용이하였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인류의 자연과 기술에 관한 지식은 주로 농업사회에서 비로소 발달 팽창하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도 기술은 주로 인간의 생활경험의 소산이었고, 자연에 대한 지식, 죽 오늘날의 자연과학과는 거 의 무관하게 발달되 어 왔었 다.인류역사의 세번째 단계는 I8세기까지 지속된 기나간 농업사회의 다음에 도래된 산업혁명에서 비못된다. 죽 I9세기 초에 산업혁명이 결실하면서 인류는 공업사회로 전입하계 되었고, 여기서 비로소 과학과 기술이 융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근대과학의 시초는 혼히 I7세기 쯤이라고 일컬어지고 있으나 이 과학이 기술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 것은 위와 같이 I9세기 초의 산업혁명 이후라고 할 수 있다.1)이때부터 과학은 그 부산물로서 기술을 발달시켰고, 기술은 또한 과학적 연구에 편리하고 정밀한 도구를 제공함으로써 과학의 발달을 축전시켜 왔다. 산업혁명 이후 과학과 기술은 이와 갈이 상승작용을 롱하여 급격히 발달하여 고도의 물질문명을 구가하는 현대사회 룹 탄생시켰으며, 아울러 과학과 기술을 상호분가분의 관계를 맺계 하였다. 이에 따라 과학과 기숟온 서로 밀착하여 이재는 하나의 동의어처럼 되고 있다.
이러한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공학 · 농학 · 의약학 등 많은 웅용과학이 탄생 발전하여 인류의 물질적 복지와 수명연장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인류 복지 향상에 대한 과학기숟의 이러한 기여는 인류의 모든 문제가 자연과학에 의하여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과학만능 풍조를 불러일으켰고, 국제 경쟁사회에서 한 나타의 존망 여부가 과학의 발달 여부에 달렸다는 인식윤 낳게 하여 세계 각국이 과학진흥에 정책의 큰 미중운 두개 되었다.반면에 이러한 과학지상주의에 대하여 많은 회의론이 대두하고 있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현대과학의 급격한 발달은 인류의 생활양식, 사고방식, 가치관, 윤리관 등에 커다란 변혁을 초래하면서 인류사회에 극심한 혼란을 야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목히 생명과학의 최근의 발달은 인간의 생명관 또는 인간의 촌업성에 대한 전통가치관을 동요시키고 있어서 현대의 정신문명의 붕괴라는 불안감을 확산시키고 있다.자연과학은 본질적으로는 물질이라고 하는 구체적 존재물을 그 연구대상으로 하고 있으므로 물질과학이라고도 불리우고 있다. 기술은 이 물질과학에 이론적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어서 인간이 물질을 다루고 이용하는 방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최근까지에는 인류에게 물질져 풍요를 가쳐다준 시해의 사도였으며 인류로부터 찬양받는 존재였다. 그러나 이 물질과학이 점차 그 영 역을 확대하여 생명과학이타는 이름으로 생명의 물질져 본질까지를 다루게 되면서 종래의 생명관, 그리고 그에 연유한 윤리관 등이 혼들리기 시작한 것이다.모든 가치관 또는 윤리라는 것은 전통적으로 인간의 생명의 신비성 혹은 촌업성이라는 개념을 그 기처로 하여 형성되어 왔기 때문에 생명을 하나의 물질체로 보는 현대 생명과학의 출현을 팔연져으로 위와 갈은 생명관에 변혁을 일으켜 전동 윤리의 동요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과학, 목히 생명과학 그리고 생명공학의 발달과 이에 대한 사회의 수용-대세를 균형 있게 조화시켜 현대사회에 있어서의 전몽윤리관과 과학기술 사이의 마찰을 최소한으로 줄이도록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이제까지 인류가 쌓아 온 정신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면서 동시에 과학기술에 의한 물질문명도 아울러 향유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목져으로. 이 굴에서는 생명과학의 발달이 앞으로노 인류사회에 미칠 긍정직 및 부정적 영향을 분석하고, 부정적 측면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려 한다.2 현대생물학의 대두와 생명관의 변천앞에서도 말한 바와 갈이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현대사회에서 윤리문제가 독히 크계 대두되고 있는 것은 전통 가치관이나 윤리관이 기본적으로는 인간의 생명의 신비성에서 비롯되어 있고, 또 이 신비성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개념이 성립되고, 그- 바당 위에서 윤리관이 형성되어 있는데, 과학기술 특히 생명과학이 이 생명의 신비성을 물질세계로. 환원시키려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수천 년 전부터 인류는 생명의 신비성 그리고 죽음에 대한 본눙져 공포감에서 현세와 내세라는 사고, 그리고 여기서 나아가서 종교를 탄생시켜 오늘날에 이르고 있으며 ,2) 또 인류자신의 집단생활울 위한 편리한 안전판 죽 생활규법으로서의 윤리를 탄생시켜 오늘날까지 인류의 사회생활의 지주로 삼아 왔다.그러나 이러한 생명의 신비성이 조금씩 엷어져 감에 따라 현대문명의 정신저 지주인 종교나 윤리가 다갈이 동요되어 인류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에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이러한 동요의 과정과 그에 따른 사고의 변화,, 죽 생명관의 변천을 요약해 본다.(1) 중세기론
생명이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은 대고에 인간이 사고의 눙력윤 지니게 되면서부터 줄곧 간직해 온 최대의 의문이었을 것이다. 대양의 출몰, 계철의 변천 둥 여러 자연현상은 반복되지만, 죽음은 반복되지 않고 따라서 생명은 누구나 하나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윤 경험으로 터득한 인류는 죽음에 대한 본눙칙인 공포도 인식하계 되면서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줄곧· 사유해 왔을- 것이다.이러한 사유는 물질론적인 것과 추상론적인 것의 두 가지로 대별될 수 있겠으나, 전자는 20세기 초까지는 거의 아무런 발전도 있을 수 없었고, 주로 추상론적 생명관만이 인류의 전 역사에 걸쳐 줄기차게 논의되어 왔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러한 추상론에는 물론 아무런 객관적인 그리고 실증적인 근거가 없었을 것이므로. 그. 논의도 다양하고 해석도 여러 갈태였을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다양한 추상론의 공통적인 견해는 아마도 생명은, 묵히 인간의 생명은, 인간의 인식능력을 초월한 초인간직인 그리고 초자연적인 어떤 〈힘〉, 죽 〈생기 vital force〉에 의하여 창조되었으며 유지되고 있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이 초자연칙인 힘은 창조주, 조물주, 둥의 이름으로 불리었고, 인류 집단에 따라 그 힘의 주체나 해석도 가지각색이었을 것이다.이 생기론 vitalism 은 중세 종교, 특히 서구의 교회사상과 부합되어 사회에서 당연한 이론으로 수용되어 있었고, 또 종교, 사회윤리 가치관 둥의 기저를 이루면서 20세기 초까지 전인류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었다.특히 I9세기에 이르러 종래 분류 명명 위주였던 박물학적 생물학이 점차 :::z.. 영역을 확대하여 생체의 여러 동적 현상 또는 기능에 관한 분석 기술이 활발해지면서 생체 기능의 철묘한 적응현상이 속속 밝혀지자 이 생기론은 더욱더 확고한 기반을 얻게 되었다. 왜냐하면 생체기능의 내부를 둘여다보면 볼수록- 그 기눙이 지극히 합목저성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이러한 합목적성온 〈생기〉라는 힘에 의한 설계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고낚에 해석할 도리가 없었 DJ.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오로지 초자연적인 그리고 철대적인 어떤 힘의 의지에 의하지 않고서는 그토목 절 묘한 생체 기능이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이 I9세기의 박 물학적 해 석이었던 것이다.
또한 이러한 생기론칙 생명관은 생 명의 신 미성을 지 극히 당연한 귀결로 받아들이게 하였다. 생명 현상 그 자체 가 신비스런 현상으로 인식되고 있었거니와, 이 현상이 초인간적인 어떤 철대주의 힘에 의하여 설계되고 창조되었다는 사고는 생명의 신비성 을 더욱더 심화시키는 결과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생명에 대한 이 신미감은 당연히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사상을 낳게 하였다. 인간의 힘으로는 죄우-하지 못할 어떤 존재에 대하여 존엄성을 부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다. 모든 자연현상에 대한 신비감은 자연현상의 존엄성으로 이어지고, 그 가운데서도 가장 일차적인 관십사인 생명에 대해서는 이 존엄성은 무엇보다도 컸을 것이다. 그리고 지구상의 수많은 생물 가운데서도 인간 자신의 생명에 대한 촌업성은 더 말할 것 없이 지고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임은· 물론이다. 중세기에는 갈은 생물이라 하더라도 인간과 여타의 생물 사이에는 본질져으로 다론 요소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되고 있었던 것 같다• 죽 현대생물학에서 생각되고 있는 바와 같은 모든 생물종은 근본적으로 동일한 물질과 기구로써 존재한다는 인식, 따라서 모든 생물종은 본질적으로는 똑같다는 인식은 당시로서논 상상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생명은 자연 가운데서도 가장 신비롭고 존엄하며 숭고한 것이라고 거의 맹목적으로 신봉되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신봉은· 그 정도의 차이는 약간 생겼을망정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인간생명에 대한 이와 같은 존엄성 사상온 또한 인간의 사회생활에서 유이한 생활규범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을 것이다. 특히 인류가 집단생 활을 하게 되고, 그 집단이 점점 커지면서 한편으로는 밀집화되어 감에 따라 살상윤 비못하여 각종 범죄가 늘어났을 것이므로. 집단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에도 인간생명의 존업성을 강조하는 것이 유익했을 것이다. 그것은 또한 당시의 사회 윤리의근간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이러한 생명 존엄 사상온 현재의 사회윤리에서도 근간이 되고 있다.
위와 같이 중세의 생기론은 서구 교회 사상과도 부합되고 생활규범으로서도 적합하여 사회의 모든 윤리관과 가치관의 기저 를 이루계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갈이 형성된 인류사회의 윤리관은 현대까지도 지속되어 왔으며 또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울린 정신문명의 기반이 되고 있으나, 최근에 이르러서의 생명과학의 발달로 말미암아 이 기반이 혼들리기 시작한 것이다.(2) 진화론의 출현찰즈 다원 Darwin 에 의하여 l9세기 말엽에 재창된 생명전화론"은 생기론에 일대 수정을 불가피하계 하였다.생물의 진화라는 것은 생물이 오렌 세월에 절쳐 그 대를 거듭해가는 동안 형태적으로나 기능적으로 여러 갈래로 서서히 변화되어가서 나중에는 서로 닮지 않은 그리고 상호 지배도 불가능해진 개체 군으로 변천한다는 것 이 다. 한마디 로 말하여 생 물종 species 의 분화릎 말하는 것이다.사 단듄이 사물이 변천한다는 것을 인식한 것은 오렌 옛날부터였다고 생각된다. 기원전 5~6세기 희람시대의 자연철학자들도 이미 생물은 면화해 간다고 믿고 있었다. 예컨대 아나키시만드로스Anaximandros(B.C. 6u-54~)는 지구상에 나타난 처음의 생물은 대양이 물에 영향운 주어서 생긴 것이고, 동물은 여기서 점차로 발달되어 온 것이라고 하였으며, 또 사람은 물고기에서 점차 변해 생간것 이 라고 하였 다. 또 아리 스토텔 레 스 Aristoteles(B. C. 384―322)는 생물은 무기물질에서 점차 복잡한 생물체로 변화된 것이타고 생각하였다.그러나 이러한 원시적인 사상온 아무런 실증적 근거도 없고 따라서 윤리직인 체계도 갖추지 못한 채 중세기에 들어와서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리고 교회 신학사상이 서구사회 를 지배하고 있던 중세기에서는 그 대신 사람을 미못하여 모든 생물은 신이강조하였다는 창조설 또는 생기론이 비판 없이 신봉되고 있었던 것이다.
과학의 암혹시대였던 중세기적 굴레 를 벗어나서 박물학자들이 진화의 사상윤 가지기 시작한 것은 르네쌍스 이후 자연과학이 발달하기 시작한 I8세기에서부터이다. 그리고 1858 년에 다원이 그의 전화론을 발표하면서 그의 사상의 체계적인 그리고 구체적인 근거 물 계시하자 현재 널리 인정되고 있는 생물전화의 사상이 처음으로 과학적인 체계를 갖추어 사회에 널리 인식되기 시작하였다.다원은 다년간에 걸친 자료의 수집과 관찰의 결과, 생 물개체간의 변의一생존경쟁一적자생존-종의분화-생물전화라는 개념에 도달하였다. 죽 생물은 유전에 의하여 자신과 형대적으로나 기능칙으로나 닮은 자손을 많이 낳는다. 그러나 갈은 어버이로부터 대어난 자손일찌라도 개체간에는 다소의 변이가 있다. 우리가 실제로 보는 바와 같이 형제간에도 외모나 능력에 약간씩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 개체간의 차이, 죽 개체변이에 자연도태가 작용하고 그 결과 생물은 오렌 세월을 지나는 동안 서서히 년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윈은 이 개체변이몰 전화의 일차적 요인으로 간주하였다.또한 대체로 생물은 그 종족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수보다 훨씬 많은 수의 자손을 낳는다. 따라서 생물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그러나 서식처나 먹이에는 제한이 있 쿠 개체간에는 생존을 위한 경쟁이 생기계 된다. 이 경쟁에는 종과 종 사이의 경쟁도 있고, 동일종 안에서의 개체간의 겅쟁도 있다. 그러나 생존경쟁에서는 동일종간의 경쟁이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그는 추정하였다. 이 경쟁에서 생촌하고 또 자분근을 남길 수 있는 개체는 생존에 유리한 형질을 조금이라도 많이 가지고 있는 개체일 것이며, 그령지 못한 개체는 궁극에는 절멸하게 될 것이다. 생물개체 간에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갈은 변이가 존재하므로- 어떤 조건하에서 생촌에 유리한 형질을 많이 가진 변이체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여 생존경쟁을 통하여 적자생존이라는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다윈은 생물이 전화한다는 것을 동일종의 생물이 생촌경쟁과 적자생존을 동하여, 또 서로 다론 환경에 처해침으로써 생기는 환경적응의 절과로 점점 그 형태나 기능이 달라져 가는 현상이어서, 걷과적으로는 새로운 종이 생겨나는 과정으로 보았다. 즉 생물전화라는 것은 종의 분화라고 파악한 것이다. 그리고 이 종의 분화의 걷과가 오늘날 우리가 보는 다양한 생물종이라고 실명하였다. 혼히 우리가 다원의 「전화론」이라고 불리우는 그의 처서는 『자연도대를 통한 종의 기 원 011 the origi11 of species by means of nat11ral selection』(1859) 이타는 이름으로 출판된 것이어서, 다양하게 분화된 종의 기원을 분석한 것이었다.
다원은 생물전화론을 합리적으로 체계화시킨 최초의 인물로서 그 영향은 비단 생물학에만 아니라 인류의 사상체계 전반에 크게 미치고 있다. 다원의 이 진화론은 그 사상의 기본 개념에 있어서는 현재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겠으나, 그가 생각한 전화의 요인, 죽 개체변이의 유전과 자연도대라는 두 가지 큰 요인에 대해서는 현대생물학칙으로 보아 타당하지 못한 점들이 많이 지적되고 있고 또 이에 대한 수정론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 예컨대 개체변이의 유전에 대해서는, 그가 말하는 개체변이라는 것은 현대 유전학에서 말하는 소위 방황변이이어서 이것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다. 따라서 개체변이가 유전되지 않는다면 생존에 약간 유리한 형질을 가전변이체라 하더라도 그 형질이 유전을몽하여 축칙되지 않을 것이므로 척자생존은 당대에 그치고 만다는 결론이 된다. 죽 대를 거듭하면서 생존경쟁은 일어나지만 승자의 형질이 축처되지는 않는 것이다. 따라서 개체변이는 라마르크 Lamarck 의 획득형질의 경우나 마찬가지로 전화를 일으키는 힘이라고 볼 수가 없는 것이다.다원의 진화요인에서의 또 하나의 난점은 생촌에 유리한 형질이라는 것은 환경에 찰 적응된 형질을 말하고 있는 것인데, 한 개제의 수많은 형질 가운데 어떤 한두 가지의 특정 형질만이 환경에 찰칙응되었다 하여 그 개체 전체의 생존에 과연 유리한 것인가 하는 의문도 생기는 것이다. 또 어떤 기관이 발달하여 유효한 져옹기관이 되는 도중의 어떤 시기에는 :::L. 생물의 생존에 오히려 볼리하게 작용할 때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박쥐의 앞발이 날개가되어 비행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할 때까지는 오히려 보행하는 데에 더 불리하계 된다는 것도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몸의 일부에 일어난 약간의 변이가 그 생물체의 존망에 결정저인 역할을 할 수가 있는가도 의문이 된다. 가령 어떤 기란의 목이 갑자기 길어졌다면 그 개체는 생존경쟁에서 유리하겠지만 그런년이가 갑자기 일어난다고는 생각할 수 없고, 따라서 극히 서서히 일어나서 축적된 결과라면 예컨대 .1mm 정도 목이 길었다고 하여 생존에 얼마나 유리하였겠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점으로 말미암아 다원의 진화론은 그 골격은 유지되고 있지만 그 요인에 대해서는 현대 생물학에서 상당한 수정이 가해지고 있다. 그리하여 현재는 종의 분화는 유전자 집단 gene pool의 지역져 변동에 의하여 서서히 일어나며, 또 돌연변이에 의하여 급져하게 일어난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진화의 요인에 대한 해석은 생물학의 발달에 따라 달라진다 하더라도 진화라는 개념 그 자체는 다원의 재창 이래 변함없는 인류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다원의 진화론은 결국 생 물종의 분화론이 어 서 현존하는 모든 종온 과거 어느 때에는 모두가 공동 조상인 종에서 분기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도 역시 이 전화의 산물이어서 다른 모든 동식물과 마찬가지로 어떤 원시 공몽조상 종에서 분화되어 나온 한 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이 진화론이 내포하는 의미는 인간의 져하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인간도 다른 생물, 득히 다론 동물과 동적시된 것이다.다윈의 전화론은 중세기부터의 생기론에 일대수정윤 불가피하게 하였다. 모든 생물종이 현재 있는 그대로 창조주에 의하여 창조되었다고 하는 생기론의 입장으로는 전호只몬이 용인될 수 없는 것이었다. 또한 인간도 전화의 소산이 라는 전화론의 개 념 에 따라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건동칙 사고도 크게 혼들리게 되었다. 생명관, 특히 인간의 생명관의 가장 큰 변혁이 여기서 초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전화론은 또한 생명은 신의 창조물이라고 하는 중세 종교개념과 정면으로 대립하는 결과를 낳았고, 현대 생물학의 분석쳐 방법론의 기반을 조성하였다고도 볼 수 있다.전화론은 또한 생물학에 커다란 과제를 하나 제공하게 되었나. 그것은 생명의 기원에 관한 문제였다. 진화론에 의하면 모든 생물온 먼 과거 한때 어떤 공동 조상으로부터 분화되어 왔다는 것이므로 이 공동 조상, 죽 최초의 생물은 무엇에서부터 대어났는가 하는 원시 생명체의 기원에 관한 의문을 제기시킨 것이다. 이러한 의문에 따라 20세기에 들어오면서부터 원시 생명체의 기원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연구의 결과들은 기계론 그리고 생명물질론을 서서히 대두시키게 되었다.
(3) 기계론중세 르네상스 이후 가속화된 자연과학의 연구는 18세기 중엽에 이르러 급속히 발달하여 현재 의 물리 학, 화학의 기 반을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점차 체계화되어 가기 시작한 이 분야의 지식과 분석 수단은 전화론에 의 하여 바야흐로 분석 적 방법 론이 대 두하기 시작한 당시의 생물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계 되었다.진화론이 세상에 나오기 약 200년 전인 1650년 경, 헬몬트 van Helmont 는 이미 생명과 물질의 상관관계에 대한 개념을 지니고 있었다고 보인다• 그는 커다란 화분에 약 90kg의 흄윤 넣고 무게 약 2kg 인 버드나무 묘목을 십었다. 그리고 이것윤 격리시킨 상대에서 6년간 물만 주면서 키운 다음 화분의 홈의 무게를 재어 보니 무게가 불과 50g 정 도밖에 줄어 있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러 나 그 사이 버드나무의 무게는 2kg에서 75kg까지 늘어나 있었다. 그는 이 무게의 중가가 모두 물에서 연유한다고 해석하였다. 그는 이 식물의 생장에서의 기체와 태양광선 역할에 관해서는 알 길이 물론 없었지만 생물의 생장에는 물이라는 물질이 직접 관계한다고 하는 중요한 개념을 실험으로노 입증한 최초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생명과 물질의 상관관계에 관한 개념의 형성에 하나의 이정표몰 세운 것이었다.그로부터 약 100년 후인 1772년에 이 식물의 생장에는 기체가 관여 한다는 것을 프리 스리 J. Priestley 가 처음으로 밝혀 내 었 다. 전화론이 나오기 약 IOO년 전에 그는 이미 산소를 발견하였고, 또 동물온 이 산소를 꿇임없이 소비하고, 식물은 이것을 생산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밀폐된 공간에 촛불을 켜 두면 얼마 후 이 촛불이 꺼지는데, 촛불이 꺼진 다음 그 공간에 쥐 를 넣어 두면 쥐도 곧 죽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촛불이 꺼진 다음에도그공간속에 식물이 들어 있으면 쥐가 죽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그의 이 실험결과는 촛불이 타는 데에 필요한 기체, 죽 산소가 쥐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도 똑같이 팔요한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관점에 따라서는 생명기계론의 칙접적인 효시라고도 볼 수 있다. 곧 이어라보이지어 A.L. Lavoisier 는 1780년대에 동물의 호흡이라는 것은 산소를 소비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았고, 또 알콜발효라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화학반응의 한 가지임윤 알았다. 또 I8l0년에는 개이루삭크Gay-Lussac 가 알콜발효를 화학방식 으로 나타냄 으로써 생 체 내반응을 화학물질의 바탕에서 서술하는 길을 열었다.
그러나 생체 내 반응을 물질론적으로 해석하는 데에 가장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한 것은 아마도 1828 년에 필러 F. Wohler 가 요소믈영화암모늄과 시안산은으로부터 합성한 것일 것이다. 이것은 생물체만이 만들 수 있다고 생각되고 있던, 그래서 생물체의 목칭이라고 생각되고 있던 유기물을 무기물로부터 생물체의 존재 없이 시험관 내에서 합성한 최초의 업져인 것이다. 이것으로 당시까지 생물과 무생물의 차이로 간주되었던 유기물과 무기물의 개념이 수정윤면치 못하게 되었다.또 물리학적으로도 1842년에 매이어 J. von Mayer 는 열역학 제일법칙이 생체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함으로써 생명기계론에 박차를 가하였다.다윈이 진화론을 그의 머리속에 잉태시키고 있던 바로 그 무렵인 1850년대에 일어난 목기할 만한 일은 파스되르 L. Pasteur 이 생문의 자연발생설을 실험으로 부인하고 〈모든 생물은 생물로부터 생겨난다〉는 개념을 확고히 수립한 것이었다. 이것은 때 맞추어 나온다원의 진화론과 합께 20세기 초부터의 원시생명의 기원에 관한 분석적 연구의 유발계기가 된 것으로서 생물학에 있어서의 획기적인사건의 하나타고 평가되고 있다.
위에서 및 가지 예 를 돈 바와 갈이 19세기에 들어와서의 물리 화학적 분석 수단의 발 달과 그. 정밀성온 생 물학에도 도입되어 생명기계 론 의 기반을 조성하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까지의 생물학은 동식물의 분류와 명명, 그리고 그 생활사의 究明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서 오늘날 말하는 소위 박물학적 연구가 대부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물질의 분석수단이 전혀 없었던 당시의 생물학으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귀 컬 이어서 형대의 관찰과 그 기재 이외에 할 도리가 없었 을 것이며, 또 당시까지의 生氣論의 입장에서 보면 생물의 기능분석 , 나아가서 그 구조의 해명이라는 것은 생각할 팔요조차 없었던 것이 아니었는가 생각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생명의 본질 깊숙히 파고들어가는 분석칙 생물학은 19세기 초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19세기에 들어와서의 물리 화학져 지식의 축칙 과 물질분석 수단의 비약칙인 발전온 그때까지 생기론의 그늘에 가려 정 적 인 세계에 머물러 있던 생물학에 커다란 동요룹 언으키기 시작하였다. 이 동요의 걷론은 생명체의 기계론인 것이다. 그리고 생기론의 배제라고 할 수 있다. 그 동요의 원동력이 된 및 가지 사례 룰 보면, 우선 생체물질의 분석을 둘 수가 있을 것이다. 죽 화학쳐 물질분석의 수단으로 여러 가지 생물체의 구성성문독히 그 구성원소의 분석 결과를 보면, 생체는 자연 무생 물게 률 구성하고 있는 원소들과 똑같은 원소들로써만 구성되어 있으며, 생체에만 독특하게 촌재하는 소위 생체원소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분석 컬 과였다. 그리고 생물체가 자연 무생물계와 다론 점이라면 각 원소의 조성비가 무생물계, 예컨대 지각이나 대양의 조성비와 현처히 다른 것뿐이타는 점이었다. 이 원소의 조성비가 다론 것은 무생 물계에서도 물질에 따라 원소조성비가 제각기 다르므로 그것이 생물과 무생물을 경계 짓는 북칭이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 결론은 생 물체라 하더라도 자연에 촌재하는 원소둘로만 구성되어 있어서 말하자면 하나의 기계와 같다는 개념이었다.이러한 기계론적 개념의 대두에 대하여 생기론자둘은 생기 을 구성하는 원소 또는 요소는 극미량이어서 당시의 분석수단으로는 겁출되지 않는 것이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러한 반박 그 자체가 소위 생기의 물질론을 뒷받침하는 격이 되었나. 또 생기론자둘은 생기라는 것이 물질의 바탕에서 파악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고 어떤 철대주의 〈힘〉이기 때문에 생체물질 분석의 견과는 생기를 섣명할 수 없다고도 반박하였다.
그러나 I9세기 말까지의 기계론칙 분석의 결과들은 한결같이 생기론을 부인하는 것분이었다. 예컨대 1897 년 뷰크너 E. Buchner 에의한 무제포계에서의 알콜 발효, 1893 년 오스트왈드 F.W. Ostwald에 의한 효소의 촉매성 둥, 생체 내에서의 물질대사가 근본적으로 는 무생물계에서의 화학반옹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것이었다.이러한 분석적 연구는 20세기에 들어와서 더욱 활발해져서 세포의 미세구조, 세포내 각 소기관의 기능, 세포 내 각종 물질대사 경로의 구명 둥, 생체의 기계적 구조와 기능 분석이 생물학의 주요과제로 등장하였고, 20세기의 개막과 함께 재발견된 멘델의 유전법칙온 생명의 가장 큰· 신비인 유전현상을 분석저으로 해부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이러한 분석칙 생물학의 대두로 인하여 종래의 생기론은 점차 그 설득력을 잃어가고, 대신 생체라는 것은 하나의 기계와 갈은 것이어서, 물질로 구성된 생물체 속에서 복잡한 화학반응둘이 일어나고있는 결과가 바로 생명이라고 하는 기계론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하였다. 즉 생명현상도 자연 무생물계에서 칙용되는 물리화학져 법칙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확신이 생물학계에 점차 널리 퍼져가게 된 것이다. 실로 20세기 초까지의 생물학의 역사는 한마디로 말하여 생기론과 기계론의 두쟁사라고 할 수 있고, 또 기계론이 생기론을 구축해 나간 역사라고 할 수 있다.(4) 분자생물학의 대두생명의 기계론쳐 해석에 따르면 생명현상이라는 것은 물질의 바탕에서 물리 화학적 법칙성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고, 따라서 생명의 신비라는 것도 생체 물질의 분석을 동하여 물질론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라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생체물질 의 화학처 분석과 생체 내 화학반응의 경로해명이 생물학 연구의 대종을 이루었다.
이러한 연구의 걷실로 생체 내 효소의 순수분리 및 건정화가 속속이 루 어졌고, 이러한 진 정화 효소륜 사용한 시험관 내에서의 화학반응 이 생체 내 반응과 근본칙으로 동일하다는 인식이 보편화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런 물질반응에 수반하여 일어나는 에너지의 출입과 전환관계도 열역 학처으로 축·정 분석됨에 따라 생체 를 하나의 정교하고 효윤성이 높은 내연기관, 죽 엔진으로 간주하게 되었다.일면, 생 체 구성 물질의 정밀분석윤 동하여 단백질, 핵산과 같은 고분자의 구조가 점차 밝혀침에 따라 생체기계론은 바야흐로 그 질정에 달하계 되었다. 득히 단백질 분자의 입체구조의 해명을 동하여 생물학계에 대두된 커다란 개념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구조와 기능의 상호관련성〉이었다. 종래 생물학에서는 분류학, 해부학, 조직학, 세포학 둥 주로 생체의 거시적 또 미시적 형태의 연구와, 생리학이나 생화학 동 생체기능의 연구가 두 주류를7 이루고 있어서, 전자는 형대학이라는 이름으로 후자는 생리학이라는 이름으로 각각 거의 관련성윤 지니지 않은 채 연구되어 왔었다. 좀 극단적인 표현이겠으나, 이 두 분야에서 형태학은 생물의 외형과 내부 미세구조의 관찰 기재에만 몰두되어 있었고 그러한 구조가 기능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크계 관십을 갖지 않았으며 반면에 생리학에서는 예컨대 세포 내에서의 화학반응이나 연의 출입관계 또는 신겅섬유에서의 흥분의 발생 • 전도 • 전달관계 동을 세포 또는 세포 내각 구조물의 형대와는 거의 무관하계 구명해 온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중엽에 다가올 무렵부터 생체 고분자의 입체구조가 주로 X 선호1 절법에 의하여 생리학져으로 구명되어 감에 따라 점차 대두된 인식이 〈모든 생체 기눙은 구조의 소산〉이타는, 현재로서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인식이었다. 죽 기능이라는 것은 목정 구조에서 팔연져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어서 구조와 벌개의 것이 아니며, 또 북정 기능을 나타내지 않는 구조는 생체에서 무의미하다는 인식인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여 구조( 형 태) 없이 기능이 나타날 수 없으며 또 기능없는 구조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전자현미경의 ' 출현으로 인하여 가능하게 된 , 세포의 미제구조 관찰, X 선회철법에 의한 각종 단백질의 , 분자형 대 분석, 초원심분리기에 의한 세포의 분획 둥에 의하여 20세기 중엽에 와서는 확고부동한 개념으로 정착되었다.또 한편, 1940년대 후반부터 실용화되기 시작한 동위원소의 윤현이 생물학계에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을 확 립시컸다. 그것은 생체구성 물질의 동적 상대(또는 유동상대)라는 개념이었다. 즉 생체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물질은 항상 분해되고 배 춤되며, 또 새로 합성된 물질이 그 자리 를 매운다는 것이다. 마치 일 정 한 수위 를 유지하면서 흐르고 있는 강물 에서, 어느 한 지점의 물분자는 항상 흘러내려가고 새 물분자가 그 자리 믈 메우고 있는것처 럼 생 물의 몸울 구성하고 있는 모든 물질은 연재나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항상 분해, 이동, 그리고 매 출되고 있으며, 막이 륜 동하여 둘어온 새로운 물질이 그 자리 륜 메우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동물의 근육윤구성하고 있는 단 백질 은 끊임없이 아미노산으로 가수분해되고 또 분해된 아미노산은 세포 내 화학반응에 참여하여 물, 암모니아, 그리고 이산화탄소로 된 후 체외로 배 출된다. 그리고 동물 이 섭취한 먹이 속의 단백질이 소화관에서 아미노산으로: 분해된 다음 세포 속으로 홉수된 후 다시 그 근육의 단백질로 재합성되어 근육의 구성성분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생체 구성 물질은 항상 동적인 상대에 있다는, 이것 역시 현 재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는 개념이 동위원소의 이용으로 입증되어 보편화된 것이었다. 이러한 모든 개념둘은 생체기계 론을 더욱 확고히 그 기반을 갖게 하였고 생기론을 생물학에서 거의 완전히 추방하는 결과가 되었다.이와 같은 기계론의 전성은 생명현상윤 모조리 물질의 물리 화학져 성질과 상호작용의 결과로써 설명하려는 연구 방법론에 실험적근거를 부여하였으며, 또 물질의 기본 단위는 분자이므로 생명현상을 분자의 수준에서 해석하려는 연구 방법론을 도입하게 .하였다.이러한 연구조류에 따라 I940년대부더 분자생물학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둥장하여 생물학의 대명사처럼 불리기 시작하였다.
분자생물학은 이와 . 같이 생물학의 연구 방법론에 일대 혁신을 가처다 주었고, 그 결과 생물학은 1950년대부터 비약칙인 발전을 하여 종래의 생명론에 큰 변혁을 일으켰다. 분자생물학의 이런 업칙 가운대 가장 현저한 것은 유전물질의 . 구명과 그에 . 의한 유전현상의 물잘론칙 기구해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전현상온 생명현상 가운데서도 가장 전형적이며 신비스럽고. 가시적인 현상이며, 또 모돈 생물에 있어서 하나의 예외도 없는 : 공동칙인 현상이다. 따라서 이 유전의 신비가 기계온칙으로 물질의 바탕에서 · 해명된다면 그것은 생명물질 론의 가장 확고한 뒷받침이 될 것이었다.20세기 초에 멘델의 유전법칙이 재발견되면서 수많은 유전학자둘이 초기에는 주로 초파리를 . 그리고 후기에 와서는 주로 · 곰팡이와 세균 둥 미생물윤 재료로 하여 , 연구물 거듭한 결과, 1950.년대 초까지 유전을 담당하는 어떤 요인 또는 . 인자(이것이 고분자 물질임운 아무도 의십하고 있지 않았다)는 세포 내에 . 있는 영색체 상에 , 자리잡고있다는 것을 밝혔다. 그리고 이 인자는 생물의 무수히 많은 유전형절을 반영할 수 있는 물질이어야 하므로 고분자로서 많은 정보를 간직할 수있는 물질이라고 추측되었다.· 이러한 점에사볼 때 그 후보 물질로서는 단백전 이외에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당시에는 이미 단백질의 구조가 20종의 아미노산의 배열 순서에 의하여 결정된나고 하는 것이 알려쳐 있었고, 이 배연 순서에는 천문학적으로 많온 조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밝혀쳐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생체 모든 물질대사의 촉매역할을 하는 것이 효소이고 이 효소는 예의없이 모두가 단백잘임이 입증되고 있었기 때문에 유전이라고 하는 생명현상을 지배하는 유전자도 이 ‘ 단백질인 것으로 쉽게 추츄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전에 이미 핵산이 ·유전물질임을 강력히 시사하는 실험전과둘이 더러 발표되고 있었으나 거의 세인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4)이러한 관점에서 많은 분자생물학자들이 단백질의 분자구조와 우전자의 기능과를 대응시켜 보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던 1950년대초에 왓슨 J.D. Watson 둥이 핵산의 일종인 디옥시리보핵산 DNA 의 구조를 해명함으로써 DNA 가 유전물질일 가능성을 명확히 제시하였다 (r953).5) 그들이 밝힌 DNA 의 구조에 의하연 유전자의 충실한 자기복제기구와 유전정보의 다양성을 단번에 설명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 DNA 의 분자구조 해명에 의하여 돌파구가 열린 유전학온 급격한 발전을 거듭하여 IO년 사이에 유전자의 복제기구의 상세한 해명, 모든 유전부호의 판독, 그리고 유전형질 발현의 기구(단 백 질 합성기구) 등 유전의 신비가 칙어도 그 기본 골격은 단숨에 해명이 되었고 일부는 시험관 내에서 인공적으로. 재현시킬 수 있게까지 되었다.이러한 연구의 결과, 모든 생물의 모든 유전형질을 지배하는 유전자는 DNA라고 하는 고분자 물질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며, 또다른 유전형질이타는 것은 단백질이타는 물질에 의하여 나타나는 것임이 명백하계 되었다. 유전자는 생물의 유전형질만큼 많은 수의 종류가 있어야 하는데, 이 유전자의 종류라는 것은 DNA를 구성하는 4종의 기본물질 즉 4종의 뉴클레오티드가 어떤 순서로 배열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며, 또 유전형질이라는 것은 단백질인데 이 단백질은 20종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이 아미노산의 배열순서에 따라 무수히 많은 종류의 단백질이 만들어질 수가 있고, 따라서 유전형질의 다양성을 단백질의 다양성으로 설명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갈이 하여 1960년대 초에는 이미 20종의 아미노산의 배열순서를 결정하는 DNA의 뉴클레오티드 배열순서, 죽유전부호를 모두 해명하게까지 되어 적어도 유전현상에 관한 한 그기본 메카니즘은 의문의 여지없이 해명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기본메카니즘은 세균으로부터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물에서 공동이라는 것도 명백하게 되었다.이와 같이 생명현상 가운데 가장 전형적이고 신비한 현상의 하나인 유전현상이 DNA와 단백질이라는 물질로써 파악됨에 따라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머지않아 생명의 인위져 개조와 인공합성까지도내다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생명이라~ 것은 여러가지 물질의목수한 집합상태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물리 화학적 현상이라고 해석되게 되었다. 생명기구론 또는 생명물질론이 보편칙인 생명관으로 전인류 앞에 나타난 것이다.
3 생명과학에서의 생명관위에서 개관한 바와 간이 생명기계론의 입장에서 생명현상윤 물질론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한 분자생물학은 마침내 생명현상온 물질의 물성과 상호작용의 결과라고 해석하게 되었다. 이러한 해석의 근원 가운데 하나는 생명의 기원에 관한 연구결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앞에서도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I9세기 중엽의 다원의 진화론출현과 파스되르에 의한 생물자연발생설의 부인은 팔연져으로 원시생명체의 기원 문제를 대두시켰었다. 이 기원 문제를 생각하계 된 것자체가 이미 생명물질론적인 사고타고 할 수가 있으니, 그것은 생기론적 개념에 따른다면 인간이 생명의 기원 문제를 논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화론의 출현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갈이 인간의 격하를 의미할 분만 아니라 생명물질론적 사고를 유발 고무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그러나 전화론의 출판 당시의 생물학은 여전히 박물학적인 영역을 벗어나지 못했었고, 물리 화학적 분석수단도 아직 정밀성을 갖지 못한 상대여서 생명체의 기원에 관한 분석져 연구는 대동하지 못한 상대였고, 이러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의 일이었다.원시 생명체의 기원에 관해서는 현재까지도 추축의 법위 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생명의 기원은 수십여 년이라는 오렌 옛날의 일이라고 생각되고 그 당시의 상황을 우리는 정확히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최초의 생명이 어떤 상태에서 어떤 경로를 거쳐 창조 또는 형성되었다고 하여도 우리는 그것을 직접 증명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따라서 이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 여러가지 가 설 이 재창되고 있다. 이러한 가설 가운데는 현재 과학칙인 사고로는 도저히 수긍하기 어려운 것도 있고 또 상당한 과학칙 논리성 을 지닌 것도 있다. 전자의 예로서는 소위 창조설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은 오늘날의 모든 생물종은 종 그대로 대고에 창조주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것으로서 중세기 생기론과 유사한 가설이며 현재도 주로 일부 기독교 신자들 사이에서 신봉되고 있는 설이다. 그러나 이 설에는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고, 또 생기론이나 근본적으로는 마찬가지이므로 생명기계론적 입장에서는 서술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후자의 예로서는 소위 天體飛것책念마 화학진화설의 두 가지 를 들 수 있는데, 천체비래섣온 원시 생명체의 배아가 지구 이외의 천체에서 운석에 묻혀 지구에 도달하였다는 것인 바, 운석의 분석 결과 등 및 가지 근거가 있기는 하나 생명의 기원을 다른 천체에 전가시키는 것뿐이고 기원 자체를 논하는 것이 아니므로 역시 이 굴에서는 논할 팔요가 없을 것이다.
화학진화설은 1930년대에서 I950년대에 걸쳐 주로 오파란 A. Oparin둥에 의하여 제창된 설로서 현재 생물학계에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섣이다. 이 설도 다론 섣이나 마찬가지로 어더까지나 가설에 불과하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 생명의 물질론에 시사하는 바가 대단히 크기 때문에 여기에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오파린 동의 화학전화섣 6)에서는 약 45 여 년 전의 원시 지구의 대기가 물(수중기), 암모니아, 메탄 그리고 수소들로서 구성되어 있었고, 이 대기에 강렬한 태양의 자외선과 꿇임없는 공중방전이 쏟아지고 있었다고 가정한다. 이러한 가정은 물론 천체물리학칙인 충분한 근거에 입각한 것이다. 이 원시 대기의 조성 기체들은 지각의 고열, 자의선, 방전 동 풍부한 에너지를 받아 · 무수히 많은 화학반응울 거듭하여 아미노산, 지방산, 그리고 퓨린이나 피리미턴 유도체듄은 자연 합성하였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유기물 합성의 가능성온 실재로 실험실에서 당시의 대기조성과 지구의 상대였다고 생각되는 현상을 재현시켜 실험적으로 입증되고 있다.7)위와 갈이 자연합성된 아미노산들은 다시 무수히 많은 화학반응을 거쳐 중합됨으로써 아미노산의 배열순서가 서로 다몬 여러 가지종류의 폴리팹티드를 형성하고, 이 풀리팹티드들은 그 아미노산 배열순서 여하에 따라 열역학적으로 걸정되는 이차 또 삼차 구조(공간임재구조 ) 를 갖게 된다. 이들 각종 구조의 폴리팹티드(단백질)는 주변의 여 러 가지 무기 및 유기 분자들을 흡착하여 복잡한 복합물이되고, 그 중 어떤 것은 우연히 효소의 촉매능 같은 성질을 가전 것도 나타나서 에컨대 ATP 가수분해 효소와 같은 활성도 지니게 되었을 것이다. 또 이들 단백질 분자들 이 원시 대양 속에서 여러가지 크기와 조성의 液商을 만듄고 그 엑칙 속에서 또각종화학반응듈이 일어나서 서서히 현재의 세포 원형질과 같은 조성으로 발전해 갔을 것이고, 。시 저 의 겉윤 싸고 있는 단백질에는 지질 분자들이 홉착되어 현재의 세포막의 조성으로 또 발전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화학변화들을 수여 년에 걸쳐 거듭한 결과 원시 생명체라고 봅 수 있는 물체, 즉 자기증식능과 촉매능을 지닌 복합물이 형성되었을 것이며 또 이 가운데서 우연히 자기증식에 약간이나마 더 알맞는 조성과 구조를 가진 것이 나타나게 되고, 이러한 우연의 선백성이 장구한 시일을 거쳐 거둡되면서 점점더 복잡한 원시생명체로까지 발전되었 을 것이다. 원시 생명체는 이와 같이 오렌 시일(저어도 수어 년)에 걸쳐 일어난 우연의 연속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과란의 이 화학진화실온 수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실험적으로 뒷받침을 받고 있다. 다만 실험저인 뒷받침을 받고 있다는 것이 이설의 진실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이 섣의 내용의 가능성이 뒷받침받고 있다는 뜻이다. 죽 원시 대기의 상태가 이 설에서 말하는 바와 그런 상대였다면 이 설에서 말하는 각종 화학반응들이 일어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가능성만이 실험져으로 입증되고 있을 분인 것이다.이 화학진화에 의한 생명기원설은 일종의 자연발생섣이다. 그러나 이 자연발생설은 17,8세기까지 사람둘이 생각하고 있던 자연발생설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서 지구의 생성초기의 어느 한때 무기물에서 유기물의 진화(유기 물의 자연합성 및 유기 물의 부합화)가 일어났고 뒤이어 원시 생명체가 서서히 비못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연발생은 수십여 년의 먼 과거의 한때, 그 당시의 지구의 목수한 상황 아래에서 우연히 한번 가능하였고, 그 후 지구가
냉각됨에 따라 또 독립영양식물의 출현으로 대기 중에 산소가 풍부해지면서 오촌충이 형성되어 자의선이 차단됨에 따라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또 극히 소량이나마 현재도 대기의 상충또는 해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하더라도 곧 풍부한 미생물에 의하여 분해되어 버리므로 사실상 위와 같은 자연발생은 되 풀 이되고 있지않다고 생각된다.이 화학진화설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갈이 현재로서는 직접칙으로 입증할 도리가 없지만 그 논리성과 각 단계의 가능성의 실험적 뒷받침으로 현재 널리 생명의 기원섣로 인정되고 있다. 이 설이 지니는 중요한 의미는 생명과 물질의 동일시라는 점이다. 죽 원시 생명체는 각종 화학원소가 무기물을 형성하고 이들이 유기물을 합성하고 이 유기물이 점차 복잡해지면서 서서히 대어난 것이며, 이 일련의 반응은 연속적이어서 어디서부터 원시생명체다 하고 경계 를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물질이 서서히 변하면서 그 결과가 생명체가 된 것이고, 생명체가 어떤 시점에서 불쑥 생겨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물질의 어떤 집합체가 바로 생명체이 고, 생명현상이라는 것은 이 물질의 집합체의 총합적인 성질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생명 물질론의 요점이라고 할 수 있다.위와 갈이 생명의 기원에 관한 화학전화설에서 우리는 물질과 생명의 동일성을 엿볼 수 있는데, 이 동일성을 표현하는 보다 극적인 예를· 우리는 비루스(또는 바이러스라고도 분리우고 있다)에서 볼 수 있다.비루스는. 1935년에 스덴리 W.M. Stanley 가 담배잎에 기생하여 모자이크병을 일으키는 비루스인 TMV 를 처음으로 결정화하는 데에 성공한 후, 수많은 종류가 발견되었다. 이 비루스의 공통점은 살아있는 생물의 세포 속에서만 증식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즉 비루스 자체 내에는 생존과 증식에 팔요한 물질대사계가 없고 다만 자신의 증식에 필요한 유전자만 들어 있다는 점이다.이 비루스 가운데 TMV를 담배모자이크병에 걸린 담배잎에서 순수추출하면 결정으로 얻을 수 있다. 이 결정을 그릇에 담아 방치해두면 언제까지나 결정 그대로 있게 된다. 마치 밀가루나 분팔가루와 마찬가지로 변함없이 결정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서는 증식이고 유전이고 또는 반응이고 하는 전형직인 생명현상이라는 것은· 전혀 볼 수 없다. 명백히 이 상대에서는 무생물인 것이다. 그러나 TMV 의 이 결정을 미량 물에 타서 담배잎에 묻혀 주면 얼마안 가서 온 밭의 담배잎이 모자이크병에 걸리계 된다. 이 병에 걸린 담배 잎을 모아 거기서 미루스몰 다시 위에서와 같은 방법으로 추출해 보면 처음에 묻혀 준 TMV와 똑같은 TMV가 이번에는 대량 생겨 있 음윤 알게 된다.
이것은- TMV가 단순한 독성물질이어서 모자이크병을 일으킨 것이 아니고, 엄연한 생물임을 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처음과 똑같온 TMV가 처음 묻혀 준 양보다 훨씬 많이 생겨났기 때민이다. 즉 TMV가 유전과 증식이라는 생물의 가장 본질적인 목성울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는 비루스는 분명히 생물인 것이다.TMV뿐만 아니라 모든 비루스를 건정화하여 그 성분을 분석해 보면 모두가 공동적으로 단백질과 핵산만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수 있다(대부분의 비루스는 핵산 가운데 DNA 만을 가지고 있고 일부는 DNA 대신 또 한 종의 핵산인 RNA 윤 가지고 있다). 죽 유전자인 핵산과 유전형질인 단 1비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생명을 표현하는 최소한의 물질만을 가지고 있는, 따라서 가장 간단한 형태의 생물이라고 할 수 있다.위에서 본 바와 갈이 비루스는 결정화시켜 놓으면 단백전과 핵산이라는 두 물질의 단순한 결합체이어서 무생물이라고 분 수밖에 없지만, 일단 살아 있는 다론 세포 속에 들어가면 증식과 유전을 하므로 업연한 생물인 것이다. 따라서 비루스는 우리가 생물을 또는 생명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생물이라고도 할 수 있고 무생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유전과 증식의 능력이 있으면 물질대사의 능력은 없어도 생물이다라고 정의하면 모든 비루스는 다 생물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논 생물 또는 생명을 어떻게 정의하느냐 하는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그러나 누구나 수궁하는 철저히 객관적인 정의는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앞에서 본 생명의 기원문제나 바로 위에서 살펴본 비루스의 예에서 우리는 이재 생명의 정의에 대해 종래와 갈은 유전, 증식, 반응자기조철 등의 표현으로는 부적당함을 느낀다. 죽 철저한 기계론적인 입장인 분자생물학에서는 생명이라는 것을 물질의 바탕에서 새롭게 정의해야 하는 팔요성을 느끼는 것이다.이 분자생물학적 생명의 정의는 사람에 따라 또 관점에 따라 여러가지로 표현될 수 있겠으나 필자로서는 다음과 갈은 정의가 가장 보편적이 아닌가 생각한다. 죽 생명이라는 것은 물질의 어떤 목정 존재양식에 의하여 팔연적으로 나타나는 물성이라는 것이다.이와 갈은 사고방식을 좀더 부연하면, 이 지구상에서 물질과 생명체 사이에는 뚜렷한 경계가 없고 양자는 동일한 것이라고 할 수있다. 그래서 가령 이 지구상의 모든 물질 을 그· 구성의 복잡성에 따라 일직선상에 배열한다면(그러나 이 런 배 열 이 실 재로 가능한 것은아니다), 그 배연선의 한쪽 끝에는 가장 간단한 물질, 죽 소립자의 세계가 될 것이며, 그 반대 쪽 끝은 가장 복잡한 물질조성을 갖는 고등생물이 될 것이다. 소립자의 세계에서 보다 복잡한 쪽을 향하여 이 배열선을 따라가 보면 거기에는 예컨대 수소나 헬뮴과 갈은 간단한 원자의 세계가 펄쳐질 것이고, 좀더 가 보면 각종 분자의 세계 예컨대 소금분자 NaCl 와 같은 비교적 간단한 분자의 세계, 그리고 또 아미노산 동 처분자 유기화합물의 세계, 이것을 지나 단백질이나 핵산과 갈은 복잡한고분자의 제계들이 차례로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단백질과 핵산의 복합체 둥 점점 복잡한 물질조성의 세계로 들어가서 이윽고 비루스나 박테리아와 같은 간단한 형대의 물체가 나타날 것이며, 더 .나아가 각종 식물과 동물들이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여러 . 물질 들의배열은 물론 질서정연한 것은 아니어서 서로의 위치가중복된 곳이 대단히 많을 것이다. 예컨대 복잡한 원자들의 세계에 앞서저 이미 간단한 분자들의 세계가 펼쳐져 있을 것이며, 또 단백찰과 핵산의 복합체들이 나타나기 훨씬 이전에 비루스 갈은 것이 자리잡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 각종 화합물들이 위치하는 곳은 집으로 표시되는 것이 아니고 영역으로 표시되어야 할 것이며, 이 영역들이 서로 포개져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 배열선에서 양극단만을 보면 그 물질들이 나타내는 현상이 너무나 판이하여 거의 직관적으로 한쪽은 무생물, 그리고 반대쪽은 생물이라고 인식할 수 있윤 것이다. 그러나 이 매연선을 따라 한쪽 끝에서 다른쪽 끝으로 서서히 옮겨가 보면 여러 화합문 사이에 뚜렷한 경계가 없고 연속되면서 반대쪽 끝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죽 이 배열선은 단철되어 있지 않고 연속선인 것이다. 따라서 무생물과 생물 사이에도 이 배열선이 연속되어 있어서 그 중간에 경계 를 의미하는 단철이 없는 것이다.이와 같이 분자생물학자들은 생명체를 물질의 묵정 조성의 결과라고 파악한다. 그래서 물질이 어떤 상태의 조성을 가지면 예컨대 물이 되고, 또 여러가지 물질들이 모여 어떤 특정 조성과 구조를 이루면 그 집합체에서 생명현상이라고 하는 하나의 현상이 나타난다고 해석한다. 예를 들어 소금분자 NaCl 을 보면 그구성원소인 나트뮴 Na 과 염소이를 따로따로 분리해 놓으면 이들 원소는 소금분자의 물성과는 전혀 다론 성질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 둘을 화합시켜 소금분자를 만들면 물에 대한용해도, 수용액에서의 전기전도도, 비중 둥둥 소금분자의 물리저 화학칙 독성인 성질이 비로서 나타나는 것과 같다. 그리고 같은 논리로 어떤 생물체를 구성하고 있는 원소나 분자는 따로따로 분리했을 때는 각기 자신의 물성만을 갖지만 이들이 우연히 어떤 조성으로 집합하여, 또 그 조성으로 말미암아 필연칙으로 나타나는 어떤 구조를 갖게 되면 거기서 생식, 유전, 물질대사 등 생물체의 여러가지 성질, 즉 몽물어서 말하는 생명현상이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다.위와 갈이 생명을 물질의 어떤 특정조성의 결과, 혹은 물질의 국정 촌재 양식이라고 해석합으로써 우리는 여러가지 생명현상윤 합리적으로 섣명할 수 있다. 이러한 사고물 바탕으로 하여 생체 내의 물질대사나 유전현상은 이미 설명할 수 있게 되었고, 앞으로는 예컨대 사고, 기여 둥의 고차적인 정신활동도 설명될 수 있 을 것이다 이미 인간의 정신활동도 그 일부는 물질적으로 분석이 시도되고 있으며, 바야흐로 생명의 합성도 가능하게 되리라고 전망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이러한 생명물질론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가치관에도 커다란 혼란을 일으키게 할 것이 분명하다. 서론에서도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현대문명은 생명의 신비성과 촌임성, 그리고 인간의 고귀함을 바탕으로 구축되어 있는데, 이제 생명물질론의 출현은 이러한 신비성이나 존엄성을 비합리적인 사고로 몰아부칠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따라서 인류는 지금 물질과학, 득히 생명과학의 발 달에 의하여, 그리고 이들의 응용과학의 발달에 의하여, 심각한 정신적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할수있다. 아래에 생명과학의 몇 가지 응용분야의 발딸에서 야기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을 살펴보기로 한다.4 생명과학의 발달에 따른 가치관의 동요자연현상에 대한 순수한 지칙 탐구욕의 충족을 위하여 발달된 자연과학온 20세기에 이르러 수많은 응용과학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이 응용과학에서 발달된 기술은 다시 순수 자연과학에 이용되어 그 발전율 더욱 가속화시켜 왔다. 20세기 초기까지의 자연과학의 지식은 인간의 사유의 세계 를 넓히고 풍부하계 만들었으나 그 자체로써는 인간의 생 활양식이나 윤리 도덕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그러 나 자연과학의 발달에 연유한 응용과학은 점 차 경 제적 이득과 직결되어 인류에게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주면서 그 생활양식이나 사고방식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다. 예컨대 물리학이나 화학의 발달은 각종 공업의 발달을 축전시켰고 그로- 하여고도의 현대 물질문명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 물질문명이 불과 수십 년 사이에 인류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을 격변시킨 것이다. 현대 인류의 커다란 위기라고 운위되고 있는 가치관의 동요 동의 원인 가운데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이러한 공업의 발달이라고 할 수 있다. 가치관의 동요라고 하는 추상적인 측면분만 아니라 환경오영, 자원의 고갈, 기계화로 인한 인간소외 둥 현사회의 여러 심각한 문제들도 여기에서 연유된 바가 크다.
물리학이나 화학과 달리 생물학의 발달은 20세기 중엽까지는 비교적 완만하였고, 주변 옹용과학 즉 농학이 나 의학을 동한 사회칙공헌도라는 것은 주로 의료나 식량 둥에 관한 것이어서 물리학이나 화학에서처럼 사회의 십각한 부정적 측면온 많지 않았고 개개가 복지에 직결되는 긍정적인 떤이 많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20세기의 중엽에 이미 확립되다시피 한 생명물질론이라는 것도 대부분의 생 물학자둘과 관련 과학자들 사이의 인식이어서 대중화까지는 되지못하였으므로 가치관이나 윤리관 둥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었다.그러나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의 분자생물학의 비약적인 발달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갈은 생명관의 변혁을 널리 파급시키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지금은 전동 윤리관에 커다란 동요를 일으키게 되었다 그리고 그 지식의 응용이 생명공학, 의료기술, 그리고 생물兵器의 발 달을 급격하게 촉진시켜 환경오영이나 자원고갈에 못지않는 십각한 사회갈등을 초래시키고 있다. 그중에서도특히 생명공학은 인류를 복지의 낙원으로 인도할 것인가 철멸의 나락으로 몰고갈 것인가 하는 열떤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래에 분자생물학이 유발시킨 및 가지 측면을 살펴보려 한다.(1) 생명공학의 대두생명의 신비감에 의하여 유발된 지칙 욕망이 분자생물학으로 충족되어 감에 따라 한편에서는 종래의 농학, 의학, 약학등의 응용과학 외에 생명공학이라고 하는 새로운 응용분야가 탄생하였고, 이것은 또한 그 엄청난 경제칙 효과라는 기대감에 의하여 1970년대 후반부터 급격히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생명공학온 생물체의 효윤적인 기능을 공학에 도입함으로써 현재의 산업, 몽AJ., 정보처리 동윤보다 향상시키려는 옹용과학이다. 20세기 초부터 생물학이 발달합에 따라 생물체는 이 지구상의 어떤 인공기계보다 성능이 우수하고 효율적인 기계임이 널리 인식되었다. 현재 이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수십억 년에 건천 자연의 겅 험 의 소산이며, 자 연 이 행한 수많은 시행착오의 산물이다. 죽 전화론에서 말하는 자연 도 태의 산물인 것이다. 따라서 이 생물들은 현 재로서는 자연이 만들어 놓은 최 고 최선의 작품인 것이다. 인간이 과학과 기 숟울 동하 여 만둘 어낸 어떤 기계나 도구도 이 생물의 기능에 비하면 그 효율성 이 엄청 나 게 떨어진다. 그러므로 생물의 이 기능윤 분석하고 이 해한 다음 그것을 공학칙으로 응용한다면 현재의 생산성이나 눙윤성 은 몇 매로 항상 뭘것이며 자원고갈이나 환경오영 같은· 문제도 줄일 수가 있 을 것 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태어난 생명공학은 이제 또 하나의 산업 혁명을 초래하려 하고 있다.
득히 생명공학의 여러 갈리 중에서도 유전공학은 최근여 년 사이에 온 인류의 비상한 관십 윤 모으고 있나. DNA 의 구조 발견과 이 물질의 생물학적 기눙의 이해가 산업경제와 직결 되리라고는 초기에는 아무도 예상하지 뭇랬었으나, 1970년대에 들어와서 DNA 재조합 기 술이 개발되자 그 응용에의 무한한 가능성이 인식되어 현재유전공학은 생명공학의 대표적인 영역이 되고 있다. 이 유전공학의 핵십적인 내용은 유전자의 인위조작이라고 할 수 있다.생물의 모든 유전 형 질 을 지배하는 물질은 DNA이고 유전 형질이 라는 것은 특정 단백질에 의해 나타나므로, 어떤 생물 A의 어떤 DNA 률 때내어 이것 윤 A와는 전혀 다몬 생물 B 에 넣 어 주면 B는 A 의 단백질, 죽 유전형질을- 만들어낸 것이다. 예 를 들어 사람의 몸에서는 미량의 인슐란이 항상 만들어지고 있어서 혈 당량을 일정수준에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사람의 세포에는 인슐란이라고 하는 단백질을 만들게 하는 유전자 죽 DNA 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컨대 대장균은 인슐린을 만들개 하는 DNA 를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인슐란을 만들지 않는다. 따라서 이 대장군의 몸 속에 사람 의 인슐란 DNA 를 도입해 주면 대장균은 자신에게는 팔요 없는 인슐린을 계속해서 만들게 될 것이고, 또 DNA 는 바로 유전자이므로 대장균이 분열하면 이 유전자도 분열에서 생간 새 대장균에 옮겨져 간다. 대장균은 분열속도가 빠르고 그 배양이 대단히 용이하므로 이와 같이 사람의 인슐린 DNA 를 도입시킨 대장균을 대량 배양함으로써 우리는 당뇨병 치료에 필요한 인슐린운 값싸게 그리고 신속하계 대량으로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유전공학윤 DNA 재조합 기술이라고도 부르는 이유는 B 생물의 DNA 속에 A 생물의 DNA를 끼워 넣어서 B 의 DNA 를 재조합시킨다는 뜻에서이다. 현재 이유전 공학의 주된 목표는 인터패론과 같은 고가의 회귀약품을 대장균과 같이 대량 배양이 용이한 균을 이용하여 값싸게 얻고자 하는 것과, 농작물의 유전자 조작으로 당면한 인류의 식량난을 해소시키고자 하는 데에 있다. 그리고 인슐린, 인터페론, 우로키나아제, 성장호르몬 둥 몇 가지 의약품의 경우는 이미 실용화의 단계에까 지와 있다.
유전공학은 각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이윤추구에 급급한 민간 대기업의 두자에 의하여 현재 전세계에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어시 농작물의 품종개조, 가축의 대량화, 의약품의 대량생산, 환겅 오영 물질의 생물학적 제거, 암과 같은 질병의 추방, 유전병의 근원칙 치유 둥등 인류의 복지에 한없이 기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따라 DNA 재조합이 이루어전 각종 생물(현재는 주로 대장균 등의 박대리아)의 특허문제가 생기고 있다. 이 생물특허는 민간기업의 이윤추구라는 면에서 봅 때는 불가피하게 대두되는 문제이지만, 종래 신의 창조물이타고 생각해 온 생물에 인위져 물질 조작을 가하여 그것윤 사용합으로써 생기는 경제칙 이득을 목허로써 보호받는다는 것은 생명체를 인공기계와 완전히 동일시하는 사고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미연방 대법원에서는 이 생물목허에 대하여 져렬한 논쟁이 일었으나 꾼내는 1980년에 특허 물 인정하기에 이르렀다.8) 그리고 현재 여러 종의 개조생물이 목허로등록되고 있다.유전공학은 인간이 원하는 특정형질을 가전 〈인조생물〉의 다량생산윤 그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갈은 인조생물은 자연계에서는 거의 철대로. 생기지 않는 것이다. 예를 둘어 자연상태에서 대장균은 사람의 인슐란을 철대로 만둘지는 않는 것이다. 이러한 대장균에 사람의 특칭적인 유전형질의 하나인 인슐린을 만들게 하면 이 새대장균은 분명히 인공져으로 만들어진 인조생물이지 자연생물은 아닌 것이다. 따라서 유전공학은 이제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인공생물을 만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현재 유전공학에서는 몇몇 유전자를 〈인공합성〉하여 재조합 DNA 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합성기술은 지금도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어서 머지않은 장래에 임의의 유전자를 모조리 합성하여 이 지구상에 수많은 인조생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인공개조〉에서 〈완전인조〉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유전공학은 생명을 합성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합성생물의 생산이 기업화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마치 전자공업회사에서 라디오나 델레비전을 양산하고 있듯이.
여기서도 우리는 과연 생명이란 무엇인가 하는 깊은 의문율 다시 갖게 되는 것이다. 아직은 부분합성이지만 유전공학에 의하여 개조된 세균도 합성된 것이라고 보아야 하는데, 이 세균이 생물인가 아닌가, 가령 생물이라면 그래서 생명이 있는 것이라면, 유전 공학이 좀더 발달해서 완전합성까지 도달되었을 때 그 합성체도 물론 생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생명관은· 완전히 물질론으로 바뀌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생명존엄사상, 또 이것에 바탕을 둔 현대의 여러 정신문명과 생명과학 사이에 어떤 조화를 이루어야 할 필요를 느낀다.생명공학의 또 하나의 화려한 국면으로 세포융합 기술의 발달이 있다. 이것은 기능이 서로 다른 두 종의 세포를 인위칙으쵸L 융합시켜 말하자면 잡종세포를 만드는 기술이어서 그 경제적 효과는 유전공학과 맞먹을 정도라고 기대되고 있다. 현재는 주로 〈하이브리도마〉라고 불리우는 융합세포를 통하여 단일항체의 대량생산이 실용화 단계에 들어가 있는데, 이 기술도 개조생물을 만든다는 점에서는 유전공학과 마찬가지 이 다.생명공학에서 시도되고 있는 또 하나의 기술은 쿨로닝 cloning 기술이다. 이것은 어떤 개체의 단일세포를 메내어 중식시켜 완전한 개체로 분화시키는 기술이다. 자연상태에서와 갈이 생식세포를 수정시켜 발생 분화시켜서는 어떤 개체의 모든 유전형질을· 그대로 다발현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발생을 완료한 개체의 체세포를 메내어 그것으로부터 새로운 개체를 발생시키면 이 새 개체는 어버이개체와 한치도 차이가 없는 완전한 〈복사〉 생물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기술은 식물의 접목 둥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이용되고 왔지만 고동동물에서는 최근까지 불가능했던 것인데 생명공학의 발달로 이제 그 실현성을 눈앞에 내다보게 되었다. 현재는 이 기술의 개발로 우수가축의 다량 번식 가능성이 전망되고 있지만, 머지않아 〈우수인간〉의 다량 확보, 〈예비인간〉과 〈실험용 인간〉의 보유둥을 괴하계 될지 모를 일이다. 이와 같은 〈복사생물〉 또는 나아가 〈복사인간〉이 출현하였을 때 생물의 개체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의 개체성에 대한 개념도 수정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것은 아직은 먼 장래의 일이라고 할지 모르나 과학의 발달은 나날이 가속화되고 있어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가까운 시일안에 실현될는지 모를 일이 다.
재조합 DNA 기술이나 세포융합 기술은 그 본래의 의도대로만 발전된다면 인류의 식량난, 질병, 환경오영 동윤 성공적으로 해결하여 적어도 물질이나 건강면에서는 인류를 낙원으로 인도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 나 우리 는 이 제까지 과학이 특히 응용과학이 인류의 복지를 목적으로 발달되어 오면서 물질적 풍요를 인류에게 안겨주기는 하였지만, 반면에 뜻하지 않은 부작용도 동시에, 안겨 준 것을 찰 알고 있다. 그리고 이 부작용은 이재는 오히려 인류의 생존자체를 위협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그 가장 전형적인 예로서 우리는 환경파괴와 환경오영 문제를 둘 수 있고 또 자원고갈문재도 들 수 있다. 이 환경오영이나 자원고갈로 말미암아 인류는 현재대로 간다면 300년 후에는 멀망을 피할 수 없윤 것이라고도 예측되고 있다.2) 또 하나의 보고에 의하면 불과 I5년후인 2000년에는 인류는 십각한 위기에 처하계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 이다. 9)생명공학이라고 하여 위와 갈은 부정적 측면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가령 유전공학적 기술에 의하여 만둘어진 어떤 개조생물이 유전공학자가 목적한 바의 유용한 형질을 가지면서 동시에 어떤 예측하지 않았던 기상천외의 형질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온 이미 많은 생물학자들에 의하여 지적되고 있다. 재조합 DNA 연구의 선구자의 한 사람인 푼 버그 Paul Berg 도 〈일견 무해한 것 같은 재조합 DNA 생물일지라도 결국에는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 그런 종류의 세균에 감영되어도 즉각적인 증상은 나타나지 않고 및 년이나 지난 다음에 예컨대 종양비루스의 해로운 영향이 나타나서 인류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계 될지 모른다〉라고 경고하고 있다.10) 버그분만 아니라 많은 생물학자들이 DNA 재조합 기술은 역사상에서 가장 위험한 기술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10) 예를 들어 카발레 리 Liebe Cavalieri 는 〈재 조합 DNA에 의 하여 만들어 전 새로운 생물의 위협은 손을 쓰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이것이 일단 자연생대계에 방출되고 나면 우리는 그 생물을 제어할 수도 없앨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질병이 자연계에 퍼쳐나가 수없이 많은 사람들윤 괴롭히계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11)
원자력발전의 완전성에 대해서는 식자들 간에 논란이 많다. 그러나 유전공학적 기술의 안전성에 관해서는 생물학자들 이외에는 논의하는 사람이 벌로 없다. 원자력에 관해서는 〈히로시마〉 이후 40년간 거의 매일같이 듣고 왔으나 유전공학이니 재조합 DNA 니 하는것은 불과 IO년 사이의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죽 지식대중이 아직 이 분야의 명암 양면의 참재력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기 때문일것이다. 그러나 원자력은 무기로 쓰거나 발전으로· 쓰거냐 인간의 의지에 의하여 통제를 할 수 있다. 또 일단 그 에너지가 폭발하였다고 하여도 그것은 일과성이고, 핵물질의 오영도 어느 정도는 제거할 수가 있다. 그러나 재조합 DNA 로 찰못 만들어진 개조생물은 일단 자연생태계에 방출되고 난 다음에는 스스로 증식하므로 그것을 만든 인간이 전혀 통제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위험이 도사리고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기업은 일반 지식충의 무관십 속에서 다만 이윤 추구를 위하여 급속하게 유전공학을 추진시킬 우려가 있으며, 유전공학자둘은 또 그들대로 특허와 공명십에 사로잡혀 연구를 거듭하면서 기업을 돕게 될 우려가 다분히 있는 것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과학자의 연구 윤리라는 측면을 진지하게 겁토해야 할 필요성도 느깐다. 과학이 인류의 현가치관이나 윤리관에 충격을 주고 있는 일면이라고 할 것이다.
(2) 의료기술의 발달분자생물학과 생명공학의 발달은 또한 의료기술의 발달도 촉진시컸다. 이 의료기술의 발달은 수많은 환자를 회생시킴으츠~Ml 인류의 복지에 이바지한 공은 물론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여타의 응용과학에서나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여러가지 문재들이 파생되고 있다. 그 한 가지에 臘器移植문제가 있다.장기이식, 또 나아가 인공 장기의 개발이 인간의 개체성의 보존 문제를 둘러싼 논란윤 일으킨 지는 꽤 오레다.12》 최근에는 미국에서 쥐의 뇌의 일부를 이식하는 데에 성공하였다는 보도도 둔리고 있다 (1984,3,). 대뇌생리학의 발달에 의한 인간의 정신조작도 일부에서는 이미 임상화의 단계에까지 와 있다.12) 종래 신의 영역이라고도 하였고, 생기론의 마지막 보루라고도 하였던 인간의 정신활동의 영역에까지 물질론저 형이하학이 도입되게 된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것은 생명의 신비성, 특히 정신판동의 불가사의성이 그 근간이 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는 바, 이제 이 정신의 신비성마처 화학반응식이나 전기현상으로 표현된다고 할 때 인류는 어떤 거부반응을 나타낼 것인가? 자신의 대뇌가 남에 의하여 조작될 때, 그것이 아무리 예컨대 어떤 정신잘환을 치유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하여도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혼히 일컬어지는 〈인간성의 상신〉이리운곤 우려륜 여기서도 여력히 분 수 있다.또 의료기술의 발달은 인류집단의 역도대 현상윤 빛고 있으며 소수에 〈건전한〉 인간이 다수의 〈허약한〉 인간울 부양해야 하는 사회칙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다. 여도태 현상은 많은 우생학자듄이 오래전부터 우려해 왔다. 출생아 수의 격감, 허약체질울 가진 아이들의 보호, 영양과 환겅의 개선을 동한 처항성의 약화 등이 생물져 진화의 대원칙에 역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의 우생학이 다시금 고개 를 둘려는 조침마저 보이고 있는 것이다.10》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아무리 강력한 국가권력이라 하여도 인간에게 우생학의 원리 를 깅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인류는 그 허약체질, 처항성이 약한 신체로써 보다 허약한 동료를 부양해야 하는 도덕칙 집을 점점더 많이 지고 가야 할 것이다. 그 결과 의료기숟과 의료시설의 발달은 인류 집단 전체 를 점점더 의료에 의존케 함으로써 자연생대계에서의 적응력과 생존력을 약화시켜 약간의 천재지번과 같은 환경변화 또는 산업구조의 붕괴에도 견더지 못하는 심각한 우1 기를· 조성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생활환경의 유지 그리고 개선을 위해 더 많은 에너지의 두입이 필요하고, 그로 말미암아 인류는 더욱더 허약해지고 따라서 그 허약성윤 지탱할 수 있는 환경의 유지를 위해 또 더 많은 에너지의 소비가 따르는 악순환윤 한없이 되풀이해야하는 운명에 있는 것이다.
의료기술의 발달은 인구중가에도 큰 촉진제 역할을 하여 왔다. 물론 인구증가는 비단 의료기술의 발달에만 연유한 것은 아니고 영양과 환경의 개선, 수송수단의 발달 둥 모든 응용과학의 발달에 의하여 복합적으로 나타난 현상이지만 의료기술의 발달이 그 일차적 요인이타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생태계에서는 모든 생물은 개체의 수를 희생하면서 종의 계몽을 유지하고 생태계의 평형도 유지하고 있다. 즉 생존경쟁과 식물연쇄의 원리에 의하여 개체를 회생시키면서 종의 존속을 유지하고, 그 결과 자연생대계의 평형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독 인류만은 개체의 희생 없이 종을 유지 번영시키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자연과학 그리고 옹용과학에 의하여 최근까지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래서 이 성공에 일차칙 역할을 한 의료기술은 인류에게 그야말로 인술이었다.그러나 이제 이 의료기술의 발달이 과연 인류 전체로 보아서 진정 갑사받는 기술인가 하는 회의론이 일고 있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갈이 의료기술의 발달은 인구증가의 결정적 요인이 되었고, 또 평균 수명의 연장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인구증가는 또 에너지의 소비를 급증시켜 각종 환경오영을 낳게 하였고, 또 일면 자원고갈의위험운 가 속화시컸다• 인구 증가는 또 인구의 도시 집중 현상을 부체 질 하여 자연계에서의 물질 순환계 를 파괴하고 있다. 자연계에서는 모든 물질은 순환하고 있어야 하지만, 현대의 도시화에서는 농촌에서 수확한 농작물은 그 대부분이 도시에서 소비되고, 도시에서 배출된 배설물은 내부분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 버리고 농촌에 되돌아가지 않는다. 따라서 농토는 점점더 금비에 의존하게 되어 토양의 황폐 화 가 가속되고 있다. 이 물질순환의 파괴는 비단 농작물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금속을 미롯하여 모든 물질에 공동된 현상이다. 그러한 결과는 환경오영으로 요약되고 있고, 이 환경오영으로 말미암은 또 다른 질병의 만연으로 요약된다.
이와 갈은 인구중가를 여제하기 위하여 오래전부터 세계 각국에서 가족계 획 사업 이 추전되 어 출산율을 현저 히 낮충으로써 인구중가의 속도를 급격히 떨어뜨리는 데에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사회의 노령화라는 현상이 초래되었고, 건전한 젊온이는 다수의 노인과 허약한 사람을 부양해야 하는 사회칙 부담이 더욱 가중되었다. 또 생물학자, 사회학자 그리고 사회십리학자들 사이에는 젊 온 양천에서 대어난 단 하나 또는 두 아이의 생물학적 형질과 사회학적 성격 둥에 대한 결함론도 분분하다. 13)이와 갈이 살펴보면 여타의 모든 응용과학이나 마찬가지로 의료기 순의 발달에도 명암 양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윤 것이다. 의료기순은 당면한 인간 개개인의 문재에는 인술이 되고 있지만, 인류전 체 의 먼 장래 문제 를 생각하면 과연 인류에게 감사만 받을 수 있는 것인가 하는 회의론에도 충분한 근거가 있는 것이다.14) 그러나 현 대사회의 모든 구조로 보아 인류는 이 의료기술에 참시도 의존하지 않을 수 없고, 또 이 의존도는 날이 갈수록 더욱더 커질 건이다.의료기술에의 의촌도가 이와 갈이 십화되어 감에 따라 의료 기술온 더욱 대형화되면서 기업과 밀접히 결부되어 기업의 생리인 영리추구의 성져이 나날이 두럿해지고 있다. 이러한 대형 화 또 기업화는 보다 양질의 의료기술을 재공하고 기술 자체의 발달을 가속화시키지만, 그 반면에 병원이라고 하는 커다란 기계 속에서 의사나 환자는 하나의 조그마한 부품과 같은 존재 가 되 어 양자간의 접촉이 기계화 사무화되어 가는 냉각된 관계로 면해 가고 있다. 극단칙으로 말하면 기계의 수리공장화되어 가고 있는 것아다. 그리하여 가진자는 보다 우수한 〈수리〉를 받아 살아남게 되고 갖지 뭇한 자는 보다 빈약한 〈수리〉를 받음으로써 생명의 유지 자체에 빈부의 격차가 노출되고 빈부간의 위화강 조성이 현저해질 것이다. 과거에는 죽음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였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의료기술의 기업화는 이제 죽음에도 빈부의 격차가 생기계 된 것이다. 돈만 있으떤죽지 않는다는 사고와 돈이 없어서 죽는다는 사고 사이의 마찰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물론 사회복지 정책으로 이 마찰은 어느 정도는 해소될 수 있겠으나 근본적인 해소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마찰은 필겅에는 생명의 고귀성도 돈에 따라 달라진다는 인식윤 심어 금전만능 사상을 부체질할 것이 들림없다. 과연 의료기술의 발달은 인류의 복지에 공헌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윤 여기서도 다시금 지니게 된다. 이런 점에서 의료.윤리타는― 문제를, 당면한 의료비 또는 의료시선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보다 장기저인 안목에서, 사회 전체가 진지하계 다루어 야 하리 라고 생 각한다.(3) 생물병기의 개발생명과학의 발달은 가공할 생물병기의 개발을 가속화시키고 있는것도 지칙되어야 할 것이다. 생물병기는 20세기 초엽의 제 1 차 세계대전에서 이미 사용되어 사상자 총수 약 130만 명, 사망자만 약10만 명에 이르렀다고 기록되고 있다.16) 이 생물병기의 위험성은 곧 전세계에 인식되어 제 1 차 세계대전 종식 직후인 I925년에 생물 화학병기의 사용금지에 관한 〈제네바 조약〉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생물병기의 재조 개발은 각국에서 거의 공공연한 비밀로 행히지고 있었으며, 1965년에는 미국이 월남전에서 〈비치사성 가스〉와 고영재륜 사용하여 세계의 여론을 끓개 한 바가 있다. 이것이 가되어 UN에서 생물화학병기의 사용금지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캐 일어서, I972년에는 〈세균 및 독소병기의 개발과 생산 그리고 처장의 금지 및 페기에 관한 조약〉이 체결되기에 이르렀다.15)
그러나 현재 미 · 소를 미롯하여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각종 생물병기의 개발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한다.15)이와 같이 세계 각국에서 생물병기의 생산 개발을 멈추지 않는것은 종래의 화학무기나 핵무기와는 다론 텃 가지 특칭을 생물병기가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 목칭 몇 가지 를 보면 :첫째 생물병기는 생산이 대단히 쉽다는 점이 있다. 예컨대 핵무기는 고도의 기술과 독수시설이 있어야 하고, 따라서 그 기밀이 유지되기 어렵다. 그러나 생물병기는 예컨대 항생물질을 만드는 미생물 배양 탱크나 왁짠 재조공장에서 간단히 대량 생산할 수 있고 그제조공정이 의약품의 제조공정과 대단히 유사하기 때문에 비밀리에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또 생산비도 핵무기에 비하면 극도로 저링하다.둘째는 단위중량당 살상효과가 엄청나게 크다. 가령 탄처균을 예로 -들면 수폭의 850배라는 효과가 있다고 계산되고 있다. 15)세째는 그 효과가 즉각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지속시간이 엄청나게 길다는 점을 둘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년 또는 수십 년지속시켜 상대국을 괴롭힐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이 생물병기에 대해서는 방어조치가 어렵기 때문에 이 지속시간은 더욱 길어진다.네째는 생물병기의 사용운 비밀리에 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효과가 즉각적이 아니고, 또핵무기처럼 가 ·시적인 파괴 를 수반하지 않으므로 은밀히 사용하고 나서도 비밀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상당한 시간이 지나 그 효과가 현처히 나타났다고 하여도 사용하였다고 하는 증거가 포착되기 어려운 이점이 있다•다섯째로는 시설의 파괴 를 전혀 수반하지 않고 다만 칙국의 사람과 생물만을 살상한다는 점이다.위와 같은 몇 가지 이점으로 말미암아 생물병기는 위정자나 작전권자의 윤리관이나 생명관의 여하에 따라 대량 살상에 쓰일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은 일단 사용된 생 문병기는 자연생태계에서 스스로 증식하면서 생대계의 파괴를 초래할 위험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또 개발된 생물병기의 비사용시의 안전유지도 문제가 된다.
이러한 위험성을 생각하면 생 물병기는 핵무기에 마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위력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이러한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국가 또는 민족 혹은 어느 특정집단의 이익과 안보를 이유로 미공개적으로 그 개발에 열중하고 있는 것이다. 이 비공개성도 또한 십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이러한 상황에서 인류수근 지금 집단멸망의 공포 속에서 생존하고 있다. 그리고 〈힘에 의한 생존〉을 위하여 상대국보다 조금이라도 더 힘의 우위에 서야 하므로 핵무기와 함께 생물병기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쟁은 어더까지 지속될 것인지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다. 또 생물병기에 의한 대량 살상은 우선은 적국에 치명타를 주게 되겠지만 궁극에는 자국을 비롯하여 전 지구에 돌이키기 어려운 피해를 준다는 것을 인식은 하고 있겠지만 그생산울 중단할 용기는 어느 국가도 지니고 있지 않다. 이런 환경에서 인류는 그 생존을 국가통수권자나 작전명 령 권자의 건전한 판단과 양식에만 맡기고 있는 것이다.이와 같은 공포감은 앞서 서술한 생명물질론적인 생명관과 더불어 미래 없는 현재 속에서의 향락주의를 부채질하여 물질만능의 되페풍조까지 조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윤리, 가치, 생명촌업성, 종교 동 종래 인류 문화의 정신적 근간이 되어 왔던 사상을 무너뜨리고, 소위 철학 없는 물질문명, 정신 없는 세속적 향락, 미래 없는 암담한 현실 둥 메마론 인류사회를 형성해 가고 있다는 비판이 강력히 계기되고 있는 것이다.(4) 사회조직의 기계화와 거대화비단 생명과학분만 아니라 자연과학의 전반적 발달에 따라 현대사회는 그 조칙이 점차 기계화되어 가고 또 거대화되어 가고 있다.이러한 기계적 거대조직 속에서 인간은 조직체 내에서의 참여의식의 약화 내지는 상실을 느끼게 되고, 그에 따라 〈일의 보람〉 또는 〈나의 존재〉에 대한 회의 를 가지게 되면서 소위 인간소외 현상어 두드러지계 나타나고 있다. 직업은 극도로 분업화되어 어느 개인이 맡은 일의 전체에 대한 기여도는 점점 작아지고 있으며, 개인은 자신이 하는 일이 전체에서 어떤 의미 를 지니는지 점점 알지 못하게되고 있다. 따라서 어떤 사회조직이 어떤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지 누구도 뚜렷이 알지 못하고 있으며, 또 설혹 인식하였다고 하여도 그 개인으로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는 철망감을 가지게 된다. 모든 사람이 하나의 커다란 열차에 몸을 실은 채 그 열차의 진행방향에는 아랑곳 없이 다만 그 속에서 자신이 맡은 조그만한 일에만 집착하고 있을 분인 것이다.
이러한 소외감은 종래의 직업윤리관의 붕괴를 초래하여, 다만 눈 앞 의 향락을 추구하고, 물질만능 풍조를- 조성하고, 개인의 이익 위주 나아가서 이기주의적 사고의 팽창만을 초래하고 있다.또 사회구조의 거대화와 각종생산수단의 기계화는일면에서는 실업과 빈곤을 초래하여 빈부격차를 더욱 십화시키고, 거대한 기계화에의 도전을 체념한 좌철된 인간을 사회 곳곳에 방치해 두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 인간이 기계만 못하고 그래서 기계만큼도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한탄하게 된다. 이런 현상온 또 종래의 윤리관이나 도먹관을 팽개치게 하여 각종 사회법죄의 온상 구실을 하게 된다. 컵퓨터와 로보트의 출현은 이러한 자아를 상실한 현대인운 더욱더 증가시킬 것이다. 이런 점에서도 인류수근 과학기술의 발달과 전동윤리관 사이의 괴리 몰 좁히기 위한 진지한 겁토에 하루 속히 착수해야할 것이다.5 부각된 문제와 그 대책이상에서 간략하게나마 언급한 바와 갈이 생명과학의 발달과 그반작용은 여타의 자연과학 및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현대사회의 윤리관이나 가치관에 십각한 동요룰 야기시키 고 있 다. 아래에 이러한 문계들을 요약해 보고 그에 대한 가능한 대책을 살펴보려 한다.
(1) 부각된 문제첫째, 자연과학의 발달은 특히 20세기에 들어와서 고도의 물질문명을 이룩하여 인류의 물질생활을 풍요하계 하였 고 생 활환경 윤 크게 개선하였으나, 반면에 지나친 물질주의 응 팽 창시켜 전봉 가치관에 커다란 동요를 일으킴으로써 〈삶〉의 정신져 의미 를 상실케 하고 있다. 또 수명의 연장과 유아사망윤의 저하는 급격한 인구중가를 초래하여 자연생대계의 파괴, 환경오영, 자원의 고갈 등 인류의 생존 자체를 오히려 위협하는 반작용을 십화시키고 있다.둘째, 생명과학의 발달로 인하여 생명윤 물질론칙으로 해석하게 됨으로써 생명의 신미성에 그 근원을 두고 있던 사상, 즉 생명의 촌업성이라는 신앙적인 사상의 의미가 박약해지고, 그에 따라 물질만능이라는 사고방식 또는 금전만능사상이 팽배하계 됨으로써 정신의 숭고성이라고 하는 전동적 사고방식이 흐려져 가고 있다. 더우기 생명물질론의 극단화는 생명경시사상까지 부채질할 우려가 대단히 크다고 생각되고 있다. 이와 같은 생명의 물질론은 필연처으로 전동윤리관에 동요를 일으키게 되었고, 그에 따라 앞으로의 과학의 연구방향을 전몽 윤리관에 부합되도록 통제 조철해야 하느냐 또는 전동윤리관을 수정하여 물질과학적 사고에 부합되도록 해야 하느냐하는 논란을 분러일으키고 있다.세째, 생명기계론의 팽배로 소위 인생에는 현세분이며 내세라는 것은 없다는 절망주의가 점차 확산되어 인간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상이 지나치게 현실 위주로 치우쳐 가고 있으며 〈이상〉이라는 정신적 지주가 혼들리고 있다. 이에 따라 또한 인간의 행동에서 동물충동저인 면이 강하게 노출되어 가고 있으며 지나친 현실향락이 노정되어 가고 있다.네째, 생명공학의 발달에 의하여 의료기술도. 고도로. 발달합으로써 당면한 인류복지에는 크게 기여하고 있으나, 반면에는 인류의역도태, 인구증가, 인류의 연령 분포의 불균형,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인간 신체의 기계화라는 현상까지 빚어 생명의 촌임성이라는 개념을 갈수록 흐리계 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전동 윤리관이 혼들리고 있다는 지칙도 많다.
다섯째, 사회조직의 기계화, 거대화, 그리고 자동화로 말미암아 인간소외감이 대두되고 있다. 그리하여 인간은 직업에 대한 보람을 잃고, 직업을 현실생활을 위한 단순한 수단으로 생각하계 됨으로써 전래의 가치관의 하나였던 직업윤리관이 박약해져 가고 있다.종합적으로 볼 때, 자연과학 특히 생명과학의 발달은 생명관에 큰 변혁을 초래하면서 전동 윤리관의 동요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2) 대책위와 같이 부각된 문제점들에 대하여 인류는 하루 빨리 적철한 대처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현재 노출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이 더 십각해지기 전에 또 새로운 문제들이 더 노출되기 전에 인류는 중지를 모아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그러나 과학의 영향은 이제 너무나 깊게 인류생활에 침두되어 있어서 현대문명은 과학 없이는 하루도 지탱되지 못할 정도에 이르고 있으므로, 그리고 이 과학의 발달은 현재는 인류 대중의 의사오즌거의 관계 없이 자기증식적인 성격으로 가속화되고 있으므츠느 그 만작용에 대한 직효칙인 처방이 현실적으로는 존재할 것 갈지 않다. 따라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대처방안이타는· 것은 장기저이고 迎勅적인 것에 불과할 것이다. 이러한 방안으로저 검토의 대상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사항을 몇 가지 들어본다. 과학의 대중화과학기술의 발달은 인위적으로는 여제 또는 정지시킬 수 없다. 지적 탐구욱이나 응용옥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어서 지적판동을 멈춘 인간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의 발달온 불가피하다 하겠으나, 다만 그 응용에 있어서는 인류가 자재력운발휘하고 또 중지를 모아 응용의 방향성이나 한계성을 조철 동제하는 노력을 기울일 수가 있을 것이며, 또 이러한 노력을 반드시 기울여야 할 것이다. 특히 이러한 노력은 어떤 지식이나 기술이 경제와 직전되어 기업 화되기 전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분만 아니타 과학은 경제분만 아니라 정치의 시녀가 되어서도 안된다. 예술처럼 과학도 정치와 분리되어야 하고, 정치의 수단이나 목칙이 되지않아야 한다. 이것은 어느 개인, 집단 또는 국가 단위 로는 실행이 불가능하다. 인류 전체로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과제인 것이다.
위와 갈은 육향조철을 위 해 서는 무엇보다도 과학 의 대중화가 팔요하다. 대중이, 특히 사회의 지도충에 있는 또는 정책입안이나 집행에 관여하는 지식인이 과학의 가능성과 그 위험성을 철 저히 인식함으로써 과학의 발달과 그 응용의 방향성 조절에 기여 롤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물론 극도로 전문화되어 있는 현대과학의 지식을 이들에게서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발전하고 있는 과학 각분야의 개요와 그 의의만은 이해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 를 위해서는 대학과 갈은 고등교육기관에서의 교양과학 교육의 질적 향상과 십화가 철실히 요청된다.위와 갈은 정규교육을 동한 교육의 대중화 보편화 외에도 일반사회 지식충에 대한 과학 계몽의 중요성도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과거에는 과학의 동속 계몽은 일종의 오락의 성격을 띠고 있었으나 현대는 과학이 인류 전체의 생과 사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으므로 과거 어느 때보다도 그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다고 처명한 과학해설자 아시모프 I. Asimov 는 말하고 있다. 16)현대의 과학과 기술은·그연구가 점점 대형화되어 가고 있어서 막대한 연구자금윤 필요로 하고 있다. 그래서 그 전보는 정부나 대기업의 두자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두자에 소용되는 자금온 최종적으로는 일반대중의 부담인 것이다. 따라서 일반대중은 자신들의 부담에 의하여 추전되는 과학 기술의 연구개발 내용에 대하여 이해하고 관여할 필요성과 권리가 있다. 그리하여 과학발달의 방향조철에 참여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학의 대중화에 과학해설자들의 역할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과학의 대중화는 과학의 이용면에서나 과학의 동재면에서나 다같이 철실히 요청되었는데, 특히 한국의 경우 이것이 더욱 철실하다고 생각된다. 한국에서의 자연과학은 사실상 8·I5 광복 후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정부의 과학진홍정책 아래서도 아직 과학의 대중화는 요원한 감이 질다. 더우기 오렌 유교져 사회 구조 속에서 물질과학에 대한 인식이 대단히 낮았기 때문에 과학용어 자체가 일반 대중에게는 지극히 생소하다. 이러한 여건으로 말미암아 우리 나라의 자연과학은 사회와 유리되어 있고, 따라서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지식충에서도 과학의 이해가 부족하고 과학에 대한 비판능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해방 후 급격히 이루어진 공업화로 말미암아 물질지상주의가 은 사회에 팽배하게 되어 전동 가치관이나 윤리관의 동요는 서구 어느 사회보다도 더 십각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득히 우리 나라의 경우 과학의 계몽은 철실한 과제라고 생각된다.
인구중가의 억제자연과학에 의하여 야기된 현대의 여러 가지 문제 가운데 하나는 전술한 바와 갈이 인구증가이고, 이것이 또한 환경과피와 환경오영 그리고 인간성의 상실 동이 이 굴에서 논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재들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따라서 인구의 증가를 가급걱 여제함으로써 사회의 경쟁완화를 어느 정도 기할 수 있을 것이며, 그것으로 또 환경오영의 극소화와 인간성의 회복 동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인구증가의 여제가 물론 근본적인 방안은 되지 못한다는 것은 본론에서 지져하였지만 당면한 현신문제 해결하는 데에는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따라서 여러가지 장기저대책과 아울러 이 인구증가의 여재책을 현재보다 더욱더 강력히 추진해 가야 할 것이다. 자연과학 교육내용의 개선현재의 각급 학교에서의 자연과학 관계 학과목의 교육 내용운 지나치게 전문 지식의 전수에 치우하고 있는 감이 있다. 묵히 생명과학의 경우 이런 현상이 더욱 십하다고 생각된다. 예컨대 중 고교에서의 생물 교과서의 내용은 생체의 기능면을 지나치계 강조하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보아 분자생물학적 서술이 현저하다. 이런 현상온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세계 공동칙인 현상이라고 보인다. 더우기 현대 사회의 도시화 현상으로 말미암아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 시철에 각종 동식물이나 광물과 접 촉하면서 노는 시간을 거의 갖지 못하고 싸늘한 기계 속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청소년의 실정이다. 이와 같이 자연과 어울리는 기회 를 델로 갖지 못한 체 TV와 더불어 시간을 보내 고 교실에서는 자연과학의 전문적 지식만을 암기하고 자란 세대에게 는 생물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자연현상에 대한 발견, 경험, 감동 둥이 전혀 없을 것이며 따라서 자연을 이들에게 홍미와 강동의 대상이 아니고 무미건조한 기계적 존재일 문일 것이다.
따라서 저어도 초중등교육까지는 생명의 존엄성과 신비성을 거의 신앙적으로 강조함으로써 생명물질론의 충격울 완화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리고 생명은 설흑 물질론적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지구상의 모든 현존생물은 수십억 년에 걷찬 기나간 전화의 소산이며, 자연의 역사의 산물이며, 또 인간분만 아니라 모든 생물이 현재로서는 모두가 진화의 극치에 도달해 있는 고귀한 촌재라는 개념을 교육의 초기에서 강조해야 할 것이다. 풀러 J. Fowler가 강조하는 바와 같이 〈과학교육의 인간성〉이 철실히 요구되는 것이다.17)이러한 교육과 아울러 또 강조되어야 할 점은, 현대 생명과학이분자론적으로 생명의 신비 를 파해치고 있고 또 그러한 연구의 결과C은 생명물질은을 더욱더 확고히 해 가고는 있으나, 이러한 생명과학이 과연 모든 생명현상을 완전히 방정식과 분자식으로 다 표현할 수 있윤 것이냐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론다는 것이다. 사실 생명과학에서는 어떤 현상의 물질적 기구가 밝혀지면 그 기구 뒤에 숨겨진 또 하나의 신비가 나타나고 새로운 의문이 대두된다는· 것이 모든 생물학자듄의 공몽된느낌인것이다. 그래서 신비의 그속에는 또 다른 신비가 가려져 있어서 가도가도 끝이 없는 신비의 세계가바로 생명현상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인간이 어디까지 이 신미의 배일을 벗길 수 있는가, 과연 인간은 이 신미의 베일을 마지막 한 장까지 모조리 벗길 수 있는가, 이것은 누구도 대답하지 못할 의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인간은 참시도 지칙 활동을 멈추지 못하는 본성을 지넜기에 인류가 존속하는 한 이 끝없는 신비에 대하여 도전을 할 따름이라고 생각된다. 생물학의 교육에서는 이러한 생명의 한없는 신키성을 강조합으로써 생명물질론이 현대사회에 미치고 있는 충격에 대하여 완충작용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저어도 중고교까지의 생물교육에서는 생대학에 묵히 중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그리하여 자연에의 경의십을 함양해 가야 할 것이다.
전동 윤리관의 수정가치관 또는 윤리관이라는 것은 그 본질에 있어서 주관저인 것이며 가변적인 것이다. 이것은 민족에 따라 또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는 관념들이어서 어떤 객관칙인 자연의 전리는 아닌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관념들도 과학기숟의 발달과 발맞추어 점진칙으로 수정되어 가야 할 것이다. 과학에 의하여 오늘날의 사회에서 전동가치관과 윤리관이 크게 동요되고 있는 것은과학은급속도로 발달해 가고 있는데 이 관념들의 변화속도는 훨씬 느란 데에 그 원인의 일단이 있다고 할 것이다. 물질면에서의 생활양식은 과학의 발달에 따라 급속도로 변하고 있으나 그 생활의 주체인 인간의 사고방식은과학처럽 빨리 전환되지 않기 때문에 양자 사이에 룹이 점점더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전통적인 가치관이나 윤리관도 과학의 발달에 맞추어 수정되어 가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도 지식충에 있어서의 과학의 대중화가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다.과학에 의하여 야기된 현대사회의 동요와 위기는 과학자만의 책임은 물론 아니며, 정치가나 경재가의 책임만도 물론 아니다. 이것온 인류 문명 자체의 팔연적 귀결이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그 책임은 인류 모두에게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인류 모두가 과학을 이해하고 과학을 생각합으로써만 그 해결의 실머리룹 찾을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팔자는 무엇보다도 과학의 대중화가 과학의 독주, 악용, 또 그 반작용을- 사전에 막거나 칙어도 극소화 시킬 수 있는 첩경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과학과 사회〉에 관한 연구가 국내외에서 완발히 대두되고 있는데 ,18) 이러한 연구가 비단 〈과학과 사회〉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종교 등과도 관련되어 확산되어 가야 하리라고 믿는다.
이 굴에서는 과학과 기술 중에서도 주로 생명과학과 생명공학의 발달이 종래의 생명관과 전동 윤리관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였고 이영향으로. 말미암아 야기된 현대사회의 동요에 대한 가능한 대책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이 분석과 대책은 어디까지나 필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일 분임울 밝혀 두고자 한다.이 〈과학과 윤리〉라는 거창한 논제에 대해서는 이 굴에 이어 물리학자의 견지에서 또 사회학자의 관점에서 보다 십도 있게 다룬 논문들이 소개될 것이다.6 요약진화론의 출현 이후 급속히 발달한 생물학은 중세 생기론을 추방하고 기계론을 확립합으로써 생명물질론을 대두시켰다. 이 생명물질론을 .20세기 중엽부터 분자생물학의 발달을 축전시키면서 종래의 생명관을 변모시켜 생명운 물질의 물성과 상호작용의 결과로. 해석하게 하였다. 이에 따라 전통 가치관이나 윤리관이 크게 동요되었고 급기야 현대사회의 정신칙 위기의식까지 낳게 하였다. 또 생명공학의 발달은 인조생물의 합성까지 내다보게 하여 생명경시사상까지 대두시키게 되었고, 여타의 자연과학 및 여러 응용-과학과 더불어 완겅파괴, 환경오영, 인구증가 등 현대사회의 여러 문제믈 야기시켰다. 그 결과 생명의 신비성과 존엄성이라는· 전통적 사고방식이 흐려져 가게 되었고, 물질지상주의가팽배하게 되었으며, 현실 향락주의가 만연하개 되었으며, 또 인류의 역도태를 우려케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회조칙의 기계화와 거대화로 말미암아 인간소외 현상이 두드러지게 되었으며, 일의 보람을 잃고 전동적인 직업윤리관도 무너지게 되었다.
이러한 과학의 반작용에 대한 대책으로서는 과학의 대중화, 인구중가의 억제, 교육의 개선, 전동 윤리관의 점진척 수정 둥을 생각할 수 있으나, 어느 것도 하나의 사회 또는 하나의 국가단위로 할성 질 의 것은 범세계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므로 그 실효성은 극히 희박하다. 그리고 이러한 대책은 단시일 내에 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더우기 그 신행이 어렵다 할 것이다. 그러나 전 인류가 중지 를 모아 이에 대한 노력을 기운임으로써만 과학 의 반작용을 극소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과학의 지식충에 대한 대중화가 가장 실효성 있는 대책이라고 생각된다.참고문현I) 山田鹿兒: 『科[및&技術CT) 近代』, 198.2, 朝日新聞社, 束京, 日本. 2) E. Benoit: Progress and Survival, 1980, Praeger Publishers. New York, U. S. A. 3) C. Darwin : On the Origin of Species by Mca11s of Natt1ral Selection. 1859, 河永七澤: 『征의 起源』, x984. 4) H. F. Judson: The Eighth Day of Creation, 1978, 河斗鳳弱『glj造의 第八日』, I983, 況洋社. s) J. D. Watson and F. Crick: Nature, 171 (1953, 4, .2s). 6) A. I. Oparin: The Origin of Life, 1953, Dover, New York, USA.1) S. L. Miller and L. E. Orgel: The Origin of L,-fe 011 the Earth. 1974, Prentice-Hall, N. J., U. S. A. 8) 河斗鳳: 「人造生物과 特許」I980, 〈(週刊朝gt》6x8 拔(I980. z.2. 7. ), 朝鮮El 報社. 9) •The Global .::iooo Report to the President'-A report prepared by the Council on Environmental Quality and the Department of State of USA, 1980. 10) T. Howard and J. Rifkin: Who Should Play God. 1977. 姜葛植 露: 『人間造傳工學』, 198.2, 三묘文化文庫 165, 三星美f此文化財Iffi.u) L. Cavalieri: •New Strains of Life or Death•, New York Times Magazine (1976. s • .22). I2) 每日新聞社: 『神^(7J 挑戰』, 1973. 河斗屈譯: 『神에의 挑戰』1979, 科후 과 人間社. 13) G. Taylor: •The Biological Time Bomb•, 1968, New Am~rican Library, Inc. New York, U. S. A. 14) F. Warshofsky: The Control of Life, 1970, The Viking Press, Inc. New York, U. S. A. I5) 岡芳月1i : 『生物(t 따兵器』 1978, 敎育社, 束京, 日本. 16) Isaac Asimou: Natttre(1983. 11. 10). 17) J. Fowler: •science and Education•, (Science and Society, edited by N. Steneck, 1976, The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18) 宋相庸: 「과학과 사회에 관한 해외연구의 배 경과 현 황」, 유네스코 韓國委只含刊, 『現代社會와 科學技術』, I98I. I2. I5.
과학과 윤리의 구조적 연관성과 현대사회
張會冀1현대문화의 목성을 한마디로 규정하자면 아마도 〈여선저〉이라는 표현이 가장 칙철할 것이다. 현대인이 이룩한 고도의 기술문명은 궁핍과 고역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인류의 오렌 소망을 성취시켜 나가는 데에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각종 질병과 재해로부터 인류룹보호하는 데에도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현대 기술문명의 소산인 각종 정보 및 교동 수단들을 비못하여 여러가지 生活利器둘은 인류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경이로운 생활완경운 재공해주고 있으며 또 앞으로 얼마나 더 놀라운 문명의 이기가 출현할는지 예상을 어렵게 하고 있다.그렵애도 불구하고 ·헨디 언은 역사상 그 어느 혜보다도 더욱 어렵고 심각한 문제 뜰 에 당연하고 있다. 역사상 처음으로 안류 는 소수의 최 고 권력자 들 이 지난 엄의로운 판단에 의하여 안류 천체가 영원히 지쿠상 로푸태 철멸되어 배럴 가공한 가능성을 지니게 되었며, 또한 안류블 부양해 주고 있는 지구상의 각종 생존여건 들을 언류 자신의 손에 의해 파손시킴으로써 결국 지구상에서의 생좀가능성올 악탈당해 1니 렬 위험도 안고 살아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현대의 기울운영이 이룩-한 각종 연의와 해텍들도 전체 언류에게 팔 고루 비 l 품되지 뭇하고 지역 또는 계충에 따라 크게 펀중됨으로써 여러가지 사회척안 풀얀 요소들이 장재하고 있£며 이에 판랜펀 크고 작은 붐쟁들이 그치지 않고 있다. 그리고 한 세대천까지만 해도 거의 예상하지 뭇했던 폭말척안 언쿠증가 문제괄 비롯하여 각종 심리적 갈둥 및 불안 품제 둥 헤아럴 수 없이 많은 운제들이 헨대안 앞에 놓여 있마.
그렌더 l 여기서 현대뭄화의 득성을 〈역설적〉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단지 벤영과 풀안, 기대와 낙망이 공존하고 있는 상황울 지칭하려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역설척이라고 하는 것은 안류가 당연한 이러한 모든 운제들이 안류의 힘이 마치지 뭇할 어떤 외척 요안에 의해서 야기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안류가 힘을 카우고 그 키운 혐을 스스로 선의의 옥척이라 생각되는 일에 활용하려고 노력한 끝에 얻어진 결과둘이라는 점이다.그 대표적안 경우로서 안쿠폭딸의 운제를 본다연, 이는 의료 및 보건 커술의 향상에 짜른 유아 사망율 감소에 크게 기안하고 있며 이것은 다시 누가 보머라도 안도척이며 성살한 선의의 노력이 운제 릎 조장시키는 데에 기여한 경우라고 하지 않올 수 없다. 경우는 마소 다르다 하마라도 안류가 지난 헥천쟁의 위기 및 환경 파손의 푼제도 외계의 어먼 악마 7} 지쿠상에 잠업하여 쳐지르고 있는 앨 둘 이 아니다. 지쿠상의 안쿠 I 안당 폭발불 (TNT) 한 트럭품 이상의 파피력에 해당하는 펙무기를 저장해 놓고도 계속 머 무서운 파괴력융 지난 우기 블 개발하려고 애쓰고 있는 초강대국 정치 빛 군사 지도자플도 그 나릎대로 자신이 속한 국가의 안보를 위하‘ 여 일하고 있다고 믿고 있으며 그가 속한 국가의 군사적 우위가 곧 전체 인류의 안보와 평화를 위하는 길이라고 하는 소신윤 깊이 지니고 있다. 그리고 지구상의 환경을 파손시키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 나름대로 저어도 표면칙으로는 현대 기술문명윤 보다 칙극적으로 활용하여 궁핍과 고역에 시달리는 국민의 생활수준을 하루속히 향상시켜 보겠다고 하는 우리의 행정가들 기업가들이 아닌가?
현대문화가 지닌 이러한 역선적 성격, 죽 인간이 선의의 목적이라 생각되는 의도를 지니고 노력을 하더라도 노력을 하면 할수목 더욱 어려운 문제로 이꿀려들어간다고 하는 기묘한 목성온 매우 십각한 우려 를 자아내게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적어도 표면져으로 는 인간의 지혜로는 풀 수 없는 숙명칙인 문제인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차라리 인간의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구세주의 출현을 기다려야 할 것인가? 그럴 수도 없다. 상황은 이미 스스로.의 관성에 의하여 더욱 심각한 상태로 치닫고 있기 메문아다. 오칙 한 가지 희망은 문제의 성겨울 본질적으로 파악하고 이를 해결할 보다 고차적인 지해문 추구하는 데에 걸어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현대인이 당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이며 이 시점에서 인류 생존의 고리를 다음 세대로 연결해 줄 역사칙 과제가 아닐 수 없다.2현대인이 당면한 이러한 문제에 접근하기 위하여 재일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어째서 유독 현대인만이 과거에 없던 이러한 문제를 지니게 되었는가, 무엇이 현대로 하여금 과거와 다론 독목한 양상을 며계 하였는가 하는 점이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비교직 간단하다. 죽 현대인은 과거 어느 시대의 인류도 지녀 보지 뭇랬던 고도의 과학기술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현대인은 과학저인 지식윤완용함으로써 걱어도 물질영역에 관한 한 상당히 넓은 범위 내에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의 변화를 초래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상 이러한 능력울 가진다고 하는 것은 오렌 옛날부터 인류가 꿈꾸어 온 간전한 소망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능력을 지녔다는 것이 , 어째서 문재가 되는 것인가?
모든 동물이 그러하듯이 사람도 살아가기 위해서는 행동을 해야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이 이 루어지기 위해서는 두가지 기본적인 요건이 만족되어야 한다. 그 첫째는 무엇이 이루어져야 할 것인가 하는 방향설정의 요건이며 둘째는 이것윤 현실적으로신현시킬 수 있는 눙려구비의 요건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요건은 서로· 독립된 것이 아니며 서로 사이에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상호. 보완칙으로 발전되 어 간다.가장 초보적인 단계로서는 생존본능적 행동욕구와 신체기능적 행위능력이라는 두 여건이 결합되어 행동이 이루어지는 경우로서 이 경우에는 행동의 방향이 이미 본능속에 부각되어 있어서 본능적인 충동을 따라 신체를 움직여나가기만 하면 처철로 행동이 이루어지는 매우 간편한 철차를 지닌다. 인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동물들은 거의 전적으로 이러한 철차에 그 행동윤 의촌하고 있으며 이들이 성공적으로 생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이 두 가지 요소가 주변환경에 맞도록 매우 저철한 조화를 유지하고 있기 대문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욕구를 가지지 않을 뿐 아니라 필요 이상의 능력윤발휘하지 않는 것이 성공적인 생존을 위한 천수 요건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미 이러한 동물적인 행동양식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는 생활환경 속에 놓이게 되었다. 따라서 인간은보다고차칙인 행동양식을 개발하계 되었으며 이것이 곧 문화적 가치이념과 기술적 행위능력이라는 새로운 유형이다. 인간은 이제 사회적 협동을 통해 개번져인 신체칙 한계를 벗어나는 보다 큰 규모의 행동능력을 구비하는 동시에 이러한 행동이 지향해야 할 보다 높은 문화적 가치이념윤 창출하게 된다. 이 경우에도 이 두 가지 요쇼잦의 칙철한 균형과 조화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러한 균형과 조화는 문화형성의 오렌 역사쳐 과정 속에서 상당한 시행착오의 과정을 겪어 가며 단계척으로 이루어지계 된다.
인류의 역사 발전과정 속에는 기술문명의 점진적인 발전이 항상 존재해 왔으며 이에 따른 사회적 문화적 대응 및 조정이 때로는 비교져 순조롭게 때로는 상당한 어려움을 거쳐 가며 이무어져 왔다. 새로운 기술적 혁신이 대두될 때마다 필연적으로 이에 따른 새로운 사회적 계충 및 제도가 발생하계 되며 따라서 사회적 행동규범과 가치이념 안에서도 새로운 조정이 불가피해진다. 반대로 이미 형성된 어떠한 사회적 문화적 여건은 그 성격에 따라 기술문명 자체물 어느 기간 동안 정체시킬 수도 있고 또는 크게 촉진시키는 기능을 나타낼 수도 있다. 인류의 기술적 행위능력과 문화적 가치이념간의 이러한 역동적 과정 즉 이들간의 단계적 대응관계를 깊이 고찰해본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 될 것이며 최근의 과학사 또는 기술사의 연구들도 대체로 이러한 관점에 초점을 맞추어 전개되어 나가는 경향을 띠고 있다.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이러한 점에 대한 자세한 역사저 고찰을 ·수행하기보다는 인간의 기술적 행위능력을 종래의 〈경험기술적〉행위능력과 현대의 〈과학기술칙〉 행위능력이라는두가지 유형으로 대벨하고 이들 각각에 대응하는 문화적 가치이념을 겁토해 봉으로써 과학기술적 행위능력의 대두에 따른 현대문명의 문제점을 보다 명확히 부각시켜 보기로 한다.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생존을 위한 구체적 행동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행동의 방향을 섣정해 줄 욕구 또는 가치이념과 이뮬 현실칙으로 실현해 줄 행위능력이 구비되어야 하며, 이들은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할 것이 아니라 서로의 규모와 성격에 따라 져전한 조화나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 오직 이러한 조화와 균형이 이루어졌을 때에 한하여 이에 의거한 행동이 행위 주체자의 성공적인 생촌을 위하여 져잘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행위 주체자의 행위능력을 신체기눙져 행위능력, 경험기술져 행위능력 그리고 과학기숟져 행위능력의 세 단계로 구분해 본다면 이들에 대응하는 욕구또는 가치이념은각각생촌본능적 행동욕구, 전동문화적 가치이념 그리고 현대문화져 가치이념이라 불리울 수 있운논지 모른다. 이륜 도식적으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신체기능져 행위능력생촌본능적 행동욕구 경험기술칙 행위능력-一전동문화칙 가치이념 과학기숟져 행위능력 (현대문화적 가치이념)위에서 〈현대문화칙 가치이념〉을 괄호 속에 표시한 것은 〈생존본능적 행동욕구〉라든가 〈전동문화적 가치이념〉이라는 말들이 비교적 명확한 내용을 지닌 개념들임에 반하여 〈현대문화적 가치이념〉이라는 말은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규정될 만큼 명확히 섣정된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의 어느 누구도 〈생존본능적 행동욕구〉라든가 〈전동문화적 가치이념〉과 명백히 구분되는, 그러면서 현대의 과학기술적 행위능력에 적절히 부합되는, 현대문화적 가치이념이라는 것을 규정해내기는 어려울 것이며 더우기 이것이 현대인의 생활 속에서 살아 있는 문화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하기 어려울 것이다.그렁다면 이것은 무엇윤 의미하는가? 현대문화는 〈행위능력〉과 〈가치이념〉이라는 두 가지 팔수적인 요소간에 대단히 큰 불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현대문화가 지닌 〈역섣적〉 성격의 기본·요인이 되고 있는 점이다.3이러한 논의와 관련하여 하나의 중요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즉 현대의 과학기술적 행위능력이라고 하는 것이 과연 종태의 경험기술져 행위능력에 비하여 치언을 달리할 만큼의 커다란 차이를 가지는 것인가? 과학기술적 행위능력과 경험기술적 행위능력 사이에 정도의 차이폴 벗어난 성격의 차이가 있다면 과연 어떤 것인가?이러한 점이 명확히 정립되지 않는다면 여기에 부응할 〈현대문화척가치이념〉윤 굳이 〈전동문화져 가치이념〉과 다른 차원.에서 추구처다는 것이 벨 로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처 과학기술적 행위능력이 종래의 경험기술적 행위능력과 구분되는 성격적 차이 를 및 가지 요약해서 고찰해 보기로 한다.
첫 째로 생각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차이는 행위의 대상이 지니논 성격의 차이이다. 종래의 경험기술적 행위능력으로는 그 행위대상의 범 위 가 대체로 소수의 개인에 영향을 미치는 소규모의 환경여건 조성 에 국한되는 것이었다. 그 대표적인 경우로 종래의 생산노동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것은 대체로 가족단위 또는소규모지역사회 의 수요를 만족시키는 범위의 것이었고 이 를 위한 환경여건조정의 규모도 전체 자연환경에 비하면 극히 사소한 변형을 받는 정도의 것 이어서 그 변형의 효과는 비교칙 짧은 기간 내에 원래의 상태로 되 둘아가는 성격의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종래의 행위대상온 전체 인 류와 전체 지구환경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소수와 부분적인 일부에 그 영향이 국한되는 것이며 사실상 전체 인류, 전체 지구환경의 상황은 개벌적인 행위 여부에 거의 무관하게 지속되어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과학기술칙 행위능력은 이러한 범위 를 훨 씬 벗어났다. 생산구조만 보더라도 가족 또는 지역사회 수요의 개념을 훨씬 벗어나 세계시장을7 대상으로. 생산활동을하계 되었으며 이에 부수되는 환경여 건 의 변형정도도 대개는 짧은 기간 내에 회 복될 수 없는 성격의 것이고 많은 경우에는 영구히 돌이킬 수 없는 손상윤 지구상에 남기개 되는 성져의 것이다. 이 가운데서도 가장 가공스러운 것은 과학기 술윤 동한 살상능력의 확대라고 할 수 있다. 종래의 전쟁무기들은 대체로 단위 행위당 발생효과가 소수인의 살상 정도의 법위를 넘지 않는 것이 보몽이었으나 이제는 명령 하나로 전체 인류를 및 번이고 전멀시킬 수 있는 눙력의 범위에 도달했 다. 그러나 물론 인류는 오직 한 번의 전멸밖에는 겪을 수 없는 촌재이므로 이러한 행위가 가능하다는 그 자제만으로 종래의 행위능력과는 근본져으로 다론 법주에 속한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종래의 경험적 행위능력이 개별 인간 또는 소수집단의 생 존에 영 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 범위에 속하는 것이었다떤 현대의 과학기술적 행위능력은 인류 및 전체 생태계의 운명에영향을 미칠 능력법위에 속하는 것이다. 개별 인간의 수명이 불과 백년을 미치기 ' 어려운 데 비해 인류물 포함하는 지구 생대계는 이미 수십여 년을 간단없이 존속해 왔으며 앞으로도그수명에 있어서 이론상의 제한을 가지지 않는 것이므로 개벌 인간의 생촌· 여부의 문제와 전체 인류의 생존 여부의 문제는 그 차원에 있어서 하늘과 땅의 차이를 가지는것이다. 이 점에서 과학기술적 행위능력은 종래의 경험기술적 행위능력 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차원의 면모를 지니고있다.
과학기술적 행위능력이 지니는 두번째 성격적 목성온 그 효과의 복합적인 연관성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종래의 경험기술적 행위능력의 법위 내에서는 입력과 출력 사이의 관계가 대체로. 단일 변수의 선형함수저이어서 이론바 〈노동〉을 하면 그 댓가로서 목칙했던 성과만이 노동량에 비례하여 산출되는 것이며 그- 이외의 효과는 사실상 무시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러나 과학기술적 행위능력은 이것이 초래하는 변화의 폭이 엄청나게 큰 것이어서 입력과 출력의 고계가 대단히 복잡한 복합적 비선형 관계를 형성한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대규모 산업시설 운영에 부수되는 각종 환경오영의 효과라고 봉 수 있겠으나 이것 이외에도 일차적으로. 눈에 띄지 않는 십리적, 사회져 부수효과들이 얼마든지 발생하게 된다.과학기술적 행위능력에 의해 야기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목성은 행위자가 놓이개 될 상황 자체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타 지속적으로 그리고 급격히 변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과학기술적 행위의 결과가 행위자가 놓인 상황에 지속져으로 반영되고 있음으로인하여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결과적으로 행위자는 항상 과거와는 다론 상황에서 수행하도록 요청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금거 기 후반에 들어와 갑자기 십각해전 인구문제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는 어느 의미에서 과학기술적 의료행위의 효과가 반영되어 급져히 상황을 변화시키고 있는 경우라고 해석되며 이는 인구문제에 대한 대응자세믈 지속직으로 수정해 나갈 것을 요청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예로서 과학기술을 동한 대규모 산업화로 인해 손쉽게 야기되는 새로운 사대로서 생산과잉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는 혼히 판매경쟁을 동한 소비조장이라는 새로운 사회 상황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서 이미 필요에 의해 생산이 유도되는 정상적인 상황을 역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져 행위능력이 주는 이러한 독성들은종래의 비교적 고정적인 상황에서 행위률 하게 되던 경험기술칙 행위자의 입장과 커다란 대조품 이문다.
과학기술적 행위능력과 경험기술적 행 위능력간에 존재하는 이터한 성격적 차이 룰 개략적으로나마 일단 규정하고 나면 전동문화적 가치이념은· 오직 경험기술적 행위능력의 법위 내에서만 행동지침으로서의 기능윤 발휘할 수 있으며 과학기술칙 행위능력이 미치는 영역에서는 거의 아무런 구신도할수 없게 됨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윤 좀더 구체칙으로 확인하기 위하여 전동문화적인 가치이념과 행동규범들이 과학기술적 행위능력의 출현과 더불어 나타나는 새로운 양상들을 포괄하기에 어떠한 점에서 미흡한가를 위에 제시한 세 가지 목성을 중십으로 살펴보기로 하자.제일 먼처 전통문화적 가치관념 속에는개벨 인격으로서의 인간의 존엄성이 강조되고 있으며 따라서 대인관계의 행위규법이 중요시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집합으로서의 가정과 종족, 그리고 재도화된 사회조직으로서의 국가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집합적 촌재단위로서의 전체 인류와 전체 생대계의 개념은 거의 결여되어 있다. 이는 물론 인격 및 생명의 존엄성 을 전체 인류, 전체 생대계에까지 확대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전체 인류, 전체 생대계가 지니는 고차적 의의 죽 개 빌 인격, 개 밀 생명체의 중요성에 비길 수 없는 철대적 중요성의 개념이 전혀 반영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전몽문화적 가치이념 속에 이러한 고차져 중요성이 반영되지 않은 것은 이러한 고차적 중요성이 의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종태의 경험기술쳐 행위능력의 법위 내에서는 이것이 어떠한 실질칙인 영향을 받을 수 없는 영역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둘째 로 전동문화적 행위규범 속에서는 행위결과의 중요성이 강조되기보다는 행위동기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실질적 삶의 현실에 반영되는 것은 행위의 동기가 아니라 행위의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행위의 동기만이 강조되고 있는 것은 행위의 동기가 좋으면 행위의 전과도 대체로 좋은 방향으로 결정될 것이라고 하는 대전재 속에서만 이해원 수 있다. 사실상 입력과 출력의 관계가 매우 단순하던 종래의 경험기술적 행위능력의 범위 내에서는 동기와 질과가 거의 상응하도록 행동이 이루어지게 되므로 이러한 전제는 유효한 것이었다. 그러나 과학기술을 행위에 도입할 경우 그 행위의 걷과가 매우 중대하고 복합적이므로 행위컬과에 대하여 충분한 책임을 가하지 않는 동기위주의 행위규범은 대단한 위험성을 내포하계 된다.
세째로 전동문화적 행위규범은 대체로 행위 자체 물 선한 행위와 악한 행위로 구분하여 상황여건과 무관하게 그 옳고 그름윤 판정하려는 경향윤 지닌다. 이것도 비교적 고정적인 상황여건 아래서만 행위를 하계 되던 종래의 전동사회에서는 떨 무리 없는 실용칙인 행위규법일 수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칙 행위능력의 출현에 의하여 행위자가 놓인 상황여건이 급속히 바뀔 분 아니라 수시로 역전되고 있는 상황 아래서는 대단히 위험스런 행위규법이타 하지 않윤 수 없다.이상의 및 가지 사실만 고찰해 보더라도 전동문화적인 가치이념이 과학기술적 행위능력을 지닌 현대사회에서 행동방향윤 재시해 주기에 부적당할 분 아니라 오히려 커다란 위험성마저 내포하고 있음윤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현대사회가 과학기술적 행위능력에 상옹할 어떤 확고한 새로운 가치이념윤 확립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운 앞에서 언급하였다. 그렇다면 현대사회는 과연 어떠한 가치이념 아래서 움칙여나가고 있는· 것인가?41983년 원 31 일 미국 위성론 시에는 .20 여 개국으츠모터 수백명의 저명한 과학자들이 모여들었다. 물리학, 기상학, 생물학, 의학 등 여러 과학분야를 대표하는 이들 과학자들 이외에도 미국을 위시한 여러 나라의 행정가, 교육자, 외교관계 전문가들이 이 자리에 참여했다. 물론 백여 명의 신문, TV, 라디오 등 각종 동신매체의 기자들도 모여 들어 취재활동을7 벌였다. 한편 이 모임의 진행은 위성중계 를 동하여 모스크바에 전달되었고 거기에 모여 있던 일군의 소련과학자둘과도 왕복동신을 몽하여 직접져인 의견교환이 이루어 졌다.
그러면 이 모임에서 논의된 내용은 무엇이었는가? 이 모임은 그 이전에 는 오직 일부 과학자들 사이에만 논의가 되고 있던 이른바 〈핵 겨 울 Nuclear Winter>에 관한 공식 적 인 학술토론회 였 다. 《디 스커버 Discov er》지의 저명한 과학 컬럼니스트.인 루이스 토마스 Lewis Thomas 는 이 모임이 전해 주는메시지를 두고 〈20세기에 들어서 과학으로부터 들려오는 ’ 가장 반가운 소식〉이라고 말하고 있다.*• Lewis Thomas, •Nuclear Winter, Again', Discover, October, 1984.
1980년대에 들어서 과학자들은 핵전쟁에 대한 새로운 양상윤 발견하기 시작했다. 종래에는 핵무기가 폭발할 경우 이것이 방출하는 엄청난 열 에너지와 방사능에 의해 막대한 피해륜 볼 것이라는 점은 이해하고 있었으나, 그 후에 닥칠 새로운 기상학적 이변과 이것이 초래할 엄청난 결과에 대해서는 벨로 고려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지난 및 년간에 이루어전 거의 결정적인 연구에 의해 새롭게 밝혀진 사실은 일정 규모 이상의 핵무기가 폭발할 경우 막대한 양의 연기 및 흙먼지가 대기 중으로- 휘말려 운라갈 것이고 운타간 이 연기와 흙먼지는 상공에서 상당한 기간을 머무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란데 상공에 머물러 있는 이러한 민지들은 지구에 도달하는 대양광의 대부분을- 상공에서 차단시키게 됨으로써 지구는 갑자기, 섣혹 한여름에 핵무기가 폭발했다 하머라도, 영하 수십 도가 되는 〈핵겨울〉을 맞이하계 되며 이 엄청난 암혹과 추위가 수개원이나 지속되리리수큰 것이다.
이러한 사태가 지구 생대계에 미치는 효과는 물론 주기저으로 닥치는 계절적인 겨울의 효과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 뜻밖의 겨울을 맞이하는 경우 정상저인 계철환경을 바탕으로 이루어전 생대계 구조는 완전히 파괴되고 이 생대계에 의존하여 생존해 가던 대부분의 고동 동식물들은 거의 멀종하고 만다. 오직 각종 병원균운 포합한 극히 하등생물들만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오는 시체의 홍수 속에서 일시적으로나마 번성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닥치는 경우 선혹 상당수의 사람들이 핵무기의 직접칙인 피해를 면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결국 극도로 참혹한 생활 속에 빠지고 말 것이며 아마도 지구상의 인류가 몇 세대 이상 촌속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해질 것이다.
물론 현재 지구상에 적재된 TNT 18,ooo메가론 정도로 추정되는 핵무기의 대부분키 폭발되는 핵전쟁이 발발하게 된다면 직접적인 파괴력 및 방사능의 피해에 의해 〈핵 겨울〉이 미치기도 전에 인류는 멀종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핵 겨울에 대한 논의 자체가 벌로 큰뜻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핵 겨울 문제가 득히 관십을 끄는 것은 현재 칙재된 핵무기의 극히 일부분만 폭발되더라도 이 엄청난 현상이 유발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대부분 학자들은 100매가돈 정도를 핵 겨울 유발의 경계치로 보고 있으나 학자에 따라서는 그 이하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그렇다면 루이스 토마스는 어째서 이러한 발견을 〈20세기 과학으로부터의 가장 반가운 소식〉이타고 말하는 것인가? 물론 이러한 엄청난 사건이 실재로 발생하기 전에 이 플 미리 알았다고 하는 것은 일단 다행스런 일이며 손에 땅이 날 만큼 아순아슬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반가운 소식〉일 수 있겠는가? 그는 이것이 전해 주는 메시지 를 다음과 갈이 해석했기 때문이다. 죽 앞으로 핵전쟁은 불가능하며 핵무기는 이제 한갓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선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만일 핵전쟁이 발생하는 경우, 이것이 극히 우연한 사고나 또는 어떤 광저인 집권자에 의한 전혀 무분벌한 도발행위에 의한 것이 아닌 한에서는, 이것이 어떤 전략적인 목쳐을 달성시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핵전쟁에 있어서 전략적으로. 의미를 지니는· 거의 유일한 작전은 일방적인 선취공적을 몽하여 상대방의 대응공격 능력을 완전히 파괴시킴으로써 보복공격을 피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핵 겨울〉의 메시지가 말해 주는 것은 섣혹 이러한 작전에서 100% 성공을 거두는 경우라 하더라고 이미 발생한 핵폭 말 분 량에 의하여 〈핵 겨울〉 현상이 유알되으로 결국은 자살행위에 불 과하다는 것이다. 사실상 이는 핵무커 플 포함하는 군사천략띤에 있어서 천혀 새로운 차원의 고려 릎 강요하고 있으며 핵우기천략가 들 로 하여금 크게 당황하게 만 들 어 주고 있다.
그런데 매우 기이한 사살운 이러한 〈안가운 소식〉에 대한 일만 사회의 지나친 우반응이라는 점이다. 워싱번에서 〈펙 겨울〉에 판한 이러한 큰 논의가 있었던 것과는 극히 대조적£로 얼만 언폰 및 매스컴에서는 마치 커다란 살망이나 했마는 듯이 거의 아우런 만응이 없었다. 이 논의에 대하여 미국의 주요 일간신문들은 z 연 또는 3 연에 극히 의려 1 척인 간단한기사플실었-올뿐 특 펠한관심을보이지 않았으며 TV 에 서 도 요직 헨- 땅송국 (ABC) 에 서 〈야간특집 Nightline)으로 만시간 동안 소개펀 이외에 거의 아무렌 언급조차 없었다.그 렇 다면 이러한 기이한 우만응은 무엇을 의마하는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다음과 강은 가상척인 경우 흘 한벤 상상해 보자.인류의 절별 가능성을 포함한 인류가 지난 모든 문제는 안류 스스로 만 들 어낸 운 제가 아니라 지구 밖에 사는 어떤 외계안들이 지쿠 를 괴좁히기 떼문에 일어만 문제라고 가상하자. 그리고 현재 지쿠가 발고 있는 가장 큰 위협은 이 들 이 만들어 지구를 겨냥하고 있는 핵무기 정도의 무서운 새 종류의 우기라고 생각하자. 그런데 그플의 최근 연구에 의하여 그들이 이 무기 블 동해 지쿠를 공격할 경우 그 들 자신도 똑갇은 피해 릎 엽어 자멸하게 펀다는 사살이 밝혀짐으로써 그들의 우기가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소식이 지쿠에 둘려 왔다고 하자.이것이 과연 신문 연, 3 면에나 간단히 언급되고말, 그리고 대푸푼의 TV 에서는 언급초차 하지 않융 기사거리언 7} ? 사겔상 그 천해 주는 메시지의 내용에 있어서냐그의미의 심각성에 있어서 위의 두 가지 사건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럽에도 콸구하고 이 사건들을 보는 우리의 감수성에 이렇게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은 무엇올 의미하는가?이것이 바로 현례안의 관심사 및 가치관념이 과학기술척 챙위농력 말생 이천의 천동척 판심사몇 가치판녕에 쁨 려박고 있읍 뿔 의미한다. 이것은 종태의 소규모 경험기숟적 행위능력의 범위 내에서 경험해 은 사회저 관십 죽 〈우리편〉과 〈상대편〉이라는 사고의 양식 안에서만 우리의 관심과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죽 우리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대상이 바로 우리 자신이 아니고 어떤 현실져으로 느껴지는 외부적인 적이라고 보아야 이해가 되는 사고방식이다. 따라서 의부의 적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피해에 대해서는 극히 예민하면서도 우리 스스로가 우리 를 자멸시킬 가능성에 대해서는 매우 냉담하다. 이것은 아직 인류의 사회적 상황운 이해함에 있어서 〈전체인류〉라고 하는 통합적 집합관념이 〈우리편〉과 〈상대편〉이라고 하는 종래의 소집단적인 집합관념을 통제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상 현재 인류를 위협하는 가장 십각한 문제는 인류 전체를 절멀시킬 수 있는 가공할 과학기술적 행위능력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 여전히 이러한 소집단의 이해관계 속에서만 인류 문제를 이해할 수 있으러 이러한 적대적인 이해의 충돌속에서만 적극적인 관십이 나타날 수 있는 현대인의 정신적 자세라 할 수 있다.
눈앞에 놓인 인류의 철밀이라는 무서운 가능성온 오히려 외면하면서 〈우리편〉과 〈상대편〉 사이의 상대적 이해관계에만 관심이 집중되고 있논 현상은, 아무런 실질져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운동경기의 승부에 열을· 올리다가 때때로 귀중한 생명까지 희생시키고 있는 현대인의 전도된 십리적 상황과 일백상동한다고 보아야 한다.5우리는 앞에서 현대인의 행위능력과 가치이념 사이에 존재하는 붑균형 및 이것이 내포하는 위험성에 관해 논의했으며 이것이 바로 현대사회가 지닌 가장 십각한 문제임을 지적하였다. 측 현대인은 그둘이 지닌 업청난 과학기술칙 행위능력에 비하여 여기에 걱철한 현대문희척 가치이념을 구비하지 못했으며 이로 인하여 현대인은 자신둘의 철멸을 포함한 무서운 가능성들을 안고 살아가게 되었다.그렇 다면 우리에게 당면한 가장 간박한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보다 직전한 새로운 가치이념을 마련할 것인가 하는 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문제를 생각함에 있어서 가장 커다란 장애가 되는 요소는 현대인 각자 각자가 그 누구를 막론하고 이미 스스로 직전한 가치이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세이다.
적어도 가치관념에 관한 한 누구나 이미 어떤 기촌의 가치관념을 지니고 있으며 그의 모든 판단기준이 바로 이 가치관념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가치관념 자체의 반성이란 지극히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관념이 스스로의 십리적 성향 속에 깊이 연걸되어 있으면 있을수록 이에 대한 반성은 그만큼 더 어려워진다.인간의 가치관념은 대개의 경우 어떤 비판저이고 합리저인 철차률 따라 스스로 겁토하여 마련한 것이 아니라 비판져 합리적 기능이 미처 마련되지 않은 성장과정 및 교육과정에서 거의 일방칙으로 주입되는 것이며 이것이 효과적으로 주입되면 될수록 그의 십리칙 성향 속에 깊숙이 융합되어 이른바 그의 내면저인 〈성품〉을 형성하계 된다. 그리고 일단 인간의 내면에 깊숙이 자리잡은 그의 가치관념은 좀처럼 의식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고 일생을 동해 그의 모든 가치판단 기준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이제 논의를 보다구체화시키기 위하여 〈선〉, 〈악〉의 관념과 〈우리편〉, 〈상대편〉이라논관념이 체질화하는과정윤고찰해 보자. 비교져 행동반경이 좁고 사고기능이 단순한 유년기에는 〈선과 악〉이라는양분법져 관념이 그들 행동의 지침을 위하여 대단히 유용하며 효과척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지침은 그 기능의 구체화를 위하여 구체적인 행위 하나하나에 선과 악의 구분을 제시하게 되며 아직 미숙한 행위 주체자는 그의 십성 발전과정에서 이룰 그의 성품 속에 융합시켜 나가게 된다. 물론 이것은 대부분의 경우 인간이 지닌 본능적인 행위성향 묵히 그의 이기저인 행위성향에 수정윤 가하여 보다 폭넓은 사회생판에 져합한 성품으로 개조시켜 나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행위자가 실제 살아가야 할 사회가 주입된 패턴에 적합하지 않을 경우에는 대단히 조정하기 어려운 문재에 부딪찬다. 이렇게 형성된 선과 악의 관념은 지능이 성숙해지는 성장기 말기에 가서 다소 주체적인 반성과정을 거치기는 하지만 대체로 별 로 큰 수정 없이 그의 일생을 지매하게 된다.
이러한 선과 악의 관념에 비하여 혼히 〈우리편〉과 〈상대 편〉이라고 나누어 생각하는 구획 관념은 보다 깊숙이 인간의 본능 속에 그 기반윤 두고 있는 듯하다. 인간의 선조가 득히 맹수들과의 경쟁 속에서 성공적인 생존을 유지해 운 수 있었던 인간의 전화과정윤 생각해 보면 〈우리 편〉과 〈상대편〉의 철처한 구분의식이 대단히 유용한 역할을 했으리라는 점이 쉽게 침작된다. 외부의 직과 대 결함에 있어서 집단적인 협동을 중요한 무기로 사용해 온 인류의 선조는 이러한집단구획의식을본능속에 간직하지 않을수없었을것이며, 일단 본능 속에 새겨진 이러한 성향은 비교처 짧은문화발전과정의 기간 내에 북벌한 수정을 받기가 어려웠으리라고 짐작된다. 분만 아니라 현대 이전의 문화발전기간 내에서는 묵히 민족의 생존을 위하여 이것이 유용한 방향의 기능을 해왔으리라고도 생각된다. 그러나 현대에 접어 들어 갑자기 역기능을· 나타내기 시작한 이러한 성향은·〈운동경기〉라는 목별한 행동양식을 몽해 묘한 철충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른바 〈스포츠〉라는 극히 무의미한 행동양식이 현대사회에서 불길갈이 번져나가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집단구획의식이 주는 현실저 독소를 대부분 제거하면서 인간이 지닌 이러한 본능져 욕구를 채워 주기 때문이타고 이해될 수 있다. 인간의 성장과정에서 보면 이러한 집단구획의식이 비교져 이론 유년기에 이미 발현되기 시작하며 이것이 곧 선과 악의 관념과 결부하여 〈좋온 편〉과 〈나쁜 편〉으로의 구분으로 발전한다. 이 러 한 관념 은 물론 성장과정의 진행과 더불어 상당한 수정이 가해지지만 근본적으로. 이러한 방식의 사회의식 경향은 그 바탕에 깔린 본능처 구획성향과·합께 거의 누구에게 있어서나 일생 동안 그 사고 및 행동양식을 지배하게 된다.이것 이외에도 인간의 가치관념 및 인식형태 를 구성하는 대부분 의 기본 요소들은 묵히 성장과정을 통해 인간십성의 십층부에 깊숙이 자리잡고 그의 모든 사고 및 감정을 지배하는 것이므로 이 을 의식처으로 수정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바로 이러한 가치관념 및 인식형태가 현대의 과학기술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 룬 제기하고 있는 점둘이므로 이들을 문아내고 새로운 가치이념으로 대치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가를 침작할 수 있다.
그렇 다면 우리는 이러한 어려운 과재 를 어떠한 방향에서 접근할 것인가? 이 문제는 다시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문재의식의 제공이며 둘째는 해결방향의 재시이다. 말할 것도 없이 문재해결의 첫걸음은 분명한 문제의식을 가지는 일이다. 그런데 현대사회가 지니고 있는 문제는 그 성격상 문제 자체 를 분명히 의식하는 것부터 매우 어렵다고 하는 목성을 지니고 있다. 우선 현대인들은 그 둘의 문제상황을 직접적인 체험이나 또는 역사상 경험을 통해 쉽게 발견할 수가 없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서 인류의 철멀 가능성의 문제 믈 생각해 본다면 이는 도처히 체험할 수 없는 일일 분 아니타과거의 역사 속에서도 유사한 경우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이는 마치 어떤 북 정 개인이 자신의 죽음을 체험할 수 없다는 사실과 흡사하다. 그러나 죽음의 경우는 주변에서 발생하는 타인의 죽음을 혼히 관찰할 수 있으므로 직접적인 체험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체험에 가까운 문재의식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멀절의 경우는 인류 전체가 오칙 한번 겪을 수 있는 일이며 그 한번으로써 더이상 경험의 의미를 살릴 아무것도 남지 않는 목이한 상황이다. 물론 인류가 아직까지 절밀하지 않고 존속한다는 사실온 그 간 전화의 과정 속에서 생존에 유리한 본능져 지해 룹 쌓아 왔다는 이야기도 된다. 그러나 인류가 진화과정을 몽해 지금까지 경험한 생촌경험은 인류가 현재 당면하고 있는 생촌위기와는 전혀 다르다. 인유는 이재 진화의 역사상 처음으로 〈자신의 힘〉에 의해 자멀할 수 있는 기묘한 상황 아래 놓인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현대의 인류가 본능이나 문화 · 속에 새겨진 과거의 경험을 동해 문제 를 의식하려 한다면 현대사회가 지닌 문제는 전혀 의석될 수 없는 성져의 것이며 이것이 바로현대인이 이중요한문재에대하여놀말만큼무감각한상태에 놓인 원인이라 할 수 있다.그렇다면 문재의식 자체몰 지니는 작업부터 불가능한 것인가? 물론 대단히 어렵기는 하지만 불가능하지 는 않다. 다행히도 현대인은 여기에 커다란 도움을 줄 수 있는 매우 훙융한 무기 를 하나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현대과학이라 불리우는 새로운 사물이 해 의 방식이다. 현대과학 자체의 위력은 이 를 활용한 현대의 과학기 술윤 동하여 충분히 입증되고 있다. 그러나 현 대과학 의 진정한 유용성온 이를 환용한 과학기숟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륜 동해 인간의 삶에 관련된 과거와 미레의 주요 관심사에 대한 가장 신뢰할 만한 지식윤재공받을수있다는데에 있다. 현대과학은인간 및 우주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가장 합리적이고 객관저인 방식으로- 추구되어 온가장 체계적인 인식의 소산이므로 현 대과학만이 인간이 직접 체 험하지 않을, 그리고 역사 속에서 유사한 사건을 찾아볼 수 없는 미래의 가능성에 대해 가장 신빙성 있는 예측윤 할 수 있다. 특히 과학기술윤 동해 일으킬 수 있는 사건들과 결과에 대해서는 그 과학기숟윤 가능하게 랬던 바로 그 과학칙 지식을 동원하지 않고는 분명한 예측을 할 수 없을 것임이 극히 당연하다.
가장 대표적인 예를 〈핵무기의 개발〉과 〈핵 겨울의 에 축〉이라순곤 서로 연관된 그러면서도 매우 대조저인 성격을 지닌 두 가지 사대의 발전을 몽해 찾아볼 수 있다. 현대과학은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핵무기 믈 만둘어 인류를~위협할 가공할 목져에도 사용될 수 있지마는 또 한편 핵 파괴가 몰고 윤 무서운 가능성을 컬처히 구명하여 제시해 중으로써 현대과학기술의 무모한 활용이 초래할 처참한 결과를 경고할 분 아니타 이러한 상황에 처한 인류의 반성을 촉구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물론 현대과학의 이러한 경고와 촉구에 대하여 현대인이 얼마나 큰 관심을- 기울일 것인가 하는 것은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이며, 앞서 지적한 바와같이 현대 사회가 〈핵 겨울〉의 소식에 놀랄만큼 냉담렀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러한 길이타도 연려 있다는 것이 문재에의 접근을· 위하여 무척이나 다행스런 일이다. 또한 현실적으츠느 눈에 보이지 않는 진척이 이 방향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6
이제 현대사회가 지니고 있는 문재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현재 우리가 지니고 있는 가치관념이 보다 고차적인 새로운 가치관념으로 조속히 대치되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이러한 새 가치이념의 탐색을 위한 의식적인 추구를 시도하지 않으면 안된다.그런데 이러한 의식적인 추구를 시도할 경우 부딪치는 가장 어려운 문제는 가령 우리가 하나의 가치이넘을 참정적으로 섣정했다고 할 때,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가장 소망스러운 가치이념인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를 판정할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문재이다. 만일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이념이 어떤 근원저인 가치이념이 아니라 지엽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이미 설정된 보다 기본저인 가치이념을 동해 이것의 채덱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나,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이념 자체가 가장 본원적인 것이라고 할 경우에는 이러한 방식으로서의 결정은 가능하지 않다. 그렁다면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어떠한 가치이념을 가장 합당한 것이라고 판정하게 해줄 것인가?이 점에 관한 우리의 해답윤 제시하기 전에 여기에 대해 지금까지 혼히 주장되어 온 몇 가지 이론들윤 먼저 살퍼보고 이들이 지닌 문제점들을 겁토해 봄으로써 보다 만족스런 이론이 갖추어야 할 점들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일반칙으로 가치이념이라고 하는 것은 행위의 방향을- 재시해 줄당위의 개념분 아니라 이를 포합하여 보다 넓은 의미로도 사용될 수 있는 개념이므로 여기서는 논의상의 명확윤 기하기 위하여 가치이념의 추구라고 하는 것을 오칙 당위 또는윤리이념의 추구라는것으로 국한시켜 생각하기로 한다.역사적으로 볼 때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며 살아야 하는가 하는 당위의 본원직 원리를 재시하고· 이 물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대단히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쳐 왔으나 여기서는 오직 비교직 폭 넓게 지지되어 온 및 가지 경우에 대해서만 고찰하기로 한다.첫째로 생각해 볼 경우슈근 인간이 마땅히 지켜나가야 할 당위를 규정하는 가장 본원적인 원리는 이미 하나의 법칙으로 우리 마음속에 심어져 있거나 또는 여타의 사물에도 함께 적용되는 하나의 보편적 원리로서 현실세계 안에 주어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합리직인 이성을 동원하여 전지하게 추구함으로써 결국 찾아낼 수 있으리라는 사상이다. 이는 마치도 자연현상들을 지배하는 객관적 자연법칙이 촌재함과 같이 인간의 도덕적 행위에 관해서도 이 룰 지시해 주는 엄정한 법칙이 존재하여 인간은 마땅히 이 를 찾아내고 이어 순응하여 살아나가야 한다는 것이며 이러한 도덕적 법칙은하나의 자명한 형대로 이미 우리에게 알려져 있거나 또는 알려질 수 있는 성져올 지녔다는 주장이다.
논의의 편의상 〈자명론〉이라고 불리울 이러한 주장은 동양의 여러 지배적인 사상속에 담겨 있을 뿐 아니타 칸트을 미못한 서구의 대표적인 사상가들의 생각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역사적으로 볼 때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지녀 온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지닌 커다란 약점은 이것이 자명하다고 상정하고 있는 구체적 도덕법칙이 아직 재시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죽 어느 경우에나 엄져히 적용되는 보편성을 지녔으며 또 누구에게나 자명하다고 느껴질 명중성을 지니고 있는 당위의 기본 원칙온 아칙도 발견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과연 인간의 도덕적 행위를 지배할 보편타당한 당위의 원리가 신제로 존재하느냐 하는 점에 대해서도 어떠한 근거를 제시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사실상 이러한 주장이 내세우는 가장 강력한 논지가 자연계의 사물을 지배하는 자연법칙이 존재하는 것과 갈이 인간의 행위를 지배하는 당위의 법칙도 존재하지 않겠느냐고 하는 유추의 논법이겠으나 이러한 유추의 타당성이 입증되기 어려움은 물론이고 현대의 인식론에 의하면 자연계의 사물을 지배하는 자연법칙의 존재에 관해서조차도 객관저인 존재성을 인정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절대져인 당위의 개념을 인정하면서 이의 추구방식을 달리하는 또 하나의 사상으로서 당위의 원리가 우리에게 자명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의 계시〉 또는 이와 유사한 신비져인 방식으로 우리에게 주어진다고 하는 사상이 있다. 묵히 전통적으로. 종교적 신조에 깊 이 뿌리박고 있는 이러한 사상은 현대사회에서도 매우 강력한 영향력윤 지니고 있다. 이는 우리가 당위의 원리만윤 마로 에어내어 독립적 으로 추구하고 식별해낸 것이 아니라 〈신〉 또는 〈하눈〉의 개념을 포함하는 보다 큰 세계관운 인정하고 그 속에서의 자신의 위치와 사명을 파악함으로써 자신이 마땅히 지니게 뭘 역 할의 일환으로 당위의 원리문 맏 아 둘 이려고 하는 자세이다.
논의의 편의상 〈계 시 론〉 이라고 불리울 이러한 사상은 앞의 〈자명론〉의 경우와는 반대로 구체적인 해답을 너무 많 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문재점이다. 지구상에는 수없이 많은 서로 다론 종교칙신조가 있으며 이들은 모두 각기 다론 〈신의 계시〉 또는 〈하늘의 명령〉을 받고 있는 것이다. 더우기 이들은 지극히 독단적이고 경칙된 자세 를 지니는 것이 보통이어서 부당히 경직된 규법 속에 인간의 행위를 구속시킬 위험을 지니고 있으며 묵히 이들이 어떤 사회져 세력을 형성하거나 칭치적 권력과 건부될 경우 건잡을 수 없는 시회적 정치적 문재 를 야기시킬 위험을 지니고 있다.위에 논의한 〈자명론〉이나 〈계시론〉의 경우와 같이 철대저인 당위의 개념을 내세우는 입장과는 반대로 모든 당위의 주장은 상대저인 의미밖에 지니지 않는다고 보는 윤리상대주의 또는 〈약정론〉이라 불리우는 입장이 있다. 이는 어떤 보편저인 형대로서의 당위의 원리 를 인정하지 않고 윤리적 규법이타는 것을 단지 구체적인 현실의 편의와 필요에 따라 약정된 것이라고 보는 입장으로서 사회의 전봉이나 여건에 따라 얼마든지 다론 윤리의 규법이 설정될 수 있으며 이들은 상대적으로 서로 대동한 의미 를 지닌다고 하는 주장이다. 이는 특정 원리의 철대성운 인정하지 않음으로서 목정 원리의 고집 및 강요에서 오는 불팔요한 마찰을 해소시킬 장점을 지니고있논 반면 당위 자체의 당위성을 약화시킵으로써 보다 고차74 인 당위에 대한 전지한 추구와 보다 폭넓은 합의에로의 노력 을 소홀히 할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7
앞에서 우리는 본원적 당위의 성격 및 추구방식에 관한 몇 가지 상반된 이론들을 살퍼보고 이들이 주장하는 핵 십 적 내용과 이 들이 지니는 문제점 들에 관하여 간략히 고찰해 보았다. 그런더] 우선 이렇게 여러가지 상반된 주장들이 성립 될 수 있었다는 사신 자체가 말해 주는 것은 이 들 각각이 적어도 어떤 부분적인 진실 온 내포하고 있으면서 그 어느 것도 아직 완전한 전실온 아니라는 점 이다.그렇 다면 이러한 사실에 입각해서 우리는 보다 완전한 진실 을 말해 주는 이론을 모색해 볼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이론둘이 주장하는 핵 심적인 내용을 포함하면서도 이 들 이 지닌 문재점들과 모순점 둘을 내포하지 않는 하나의 동일된 이 론 이 얻어진다면 이는 분명히 보다 진실에 가까운 이론이라 할 수 있 을 것이다.이재 이러한 이론을 찾아보기 위하여 앞의 이론들이 주장하는 핵십저인 내용에 대체로 수립될 수 있는 다음 두 가지 기본적인 사실윤 전제하기로 한다.첫째로 본원져 OJ. 당위에 관하여 객관저으로 입증될 수 있는 완전무결한 보편저 원리의 촌재를 상정하기는 어려우나 현실적 상황과 주어진 여건에 적합한 최선의 원리는 존재할 수 있으며 또 찾아잘 수 있다고 하는 기본저인 사실을 전제한다. 이 주장은 완전무컬한 보편저 원리를 전제하는 〈자명론〉의 입장이나 〈계시론〉의 입장과 일치하지는 않으나 현실져 상황에 적합한 최선의 원리가 존재함을 인정합으로써 그 극한의 경우 철대적 원리에로의 수령이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이들 입장의 핵십적 내용을 반영시키고 있다. 한편 이 주·장은 철대저 당위의 개념윤 내세우지 않음으로서 〈약정론〉의 입장과 일치되는 바 있으나 당위의 원리가 현실의 편의와 필요에 따라 단순히 약정되는 것이라고 하는 약정론의 입장을 따르지 않음으로서 약정론이 지닌 극단저인 상대주의져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둘째로 전계하려는 기본저인 사실은 이러한 최선의 원리에 도달하고 이것이 최선의 원리임을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는 마땅히 우주속에 처해 있는 인간의 상황에 관한 최선의 지식과 함께 합리저이고 전지한 구도의 자세 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며 이러한 지식과 자세 를 갖 출 때 인간은 자신의 마음이 지닌 본연의 기눙에 의하여 이러한 최선의 원리를 찾아내고 확 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두번째 전제는 인간이 주체적으로 이 최선의 원리 률 찾아내고 확인한다는 점에서 〈자명론〉의 경우에 매우 가까이 접근하고 있으며 또한 우주 속 에 처해 있는 인간의 상황에 관한 최선의 지식을 요구합으로써 우주와 인간에 대한 독정한 세계관을 전제하는 〈계시론〉의 경우와 공동된 일면 을 지닌다. 그러나 임의로운 지식이 아니라 〈최선〉의 지식을 요구한다는 면에서, 이러한 특정된 요구가 없는 〈자명 론〉의 경우와, 그리고 무비판적인 세계관을 전제하는 〈계시 론〉의 경우와 각각 구분된다. 그리고 이러한 구체칙 지식이 제공됨으로써 여기에 대응되는 구체적 해답이 얻어질 것이므로 〈자명론〉이 지닌 구체쳐 해답 결여의 문제점이라든가 〈계시론〉이 지닌 구체적 해답 과다의 문재점에서 모두 벗어날 수 있다.한편 약정론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 표면적 현실의 여건만을 고려하여 구체적 현실의 편의와 팔요만을 제공하려는 것에 비하여 우주와 인간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에 기반올 둔 보다 고차적인 당위의 원리 를 찾아내고 이것에 입각하여 현실적 편의와 필요뭍 포함한 모돈 행위의 규범윤 설정해 나가려 한다는 데에 차이 물 지닌다.본원적 당위의 추구에 관해 우리가 전제한 이러한 두 가지 기본적인 사실이 함축하고 있는, 종래의 사상에서는 빌로 찾아볼 수 없었던 가장 중요한 최 기적 내용을 요약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즉 우리는 항상 우리에게 알려진 최선의 지식을 동원하여 본원져 당위에 관한 최선의 원리에 도달할수있으며, 우리의 상황과 우리의 상황에 대한 지식이 달라지는 경우에는 그때마다 이 새로운 지식윤 활용하여 새로운 상황에 대비할 새로운 당위의 원리문 추구해야 한다는 점이다.사실상 최선의 지식 윤 동원함으로써 최선의 원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상온 그 자체로서 ' 선 로 새로운 것이 아니다. 완벼한 지식운가지고도 악한 사람은 없다고 한 소크타테스의 사상이나 몸을 바르게 닦으려면 먼저 앎울 두철히 하여 사물을 구명해야 한다는 유가의 사상, 또 해탈이라는 것은 결국 사물을 깨우치는 것이라는 불가의 사상이 모두 이러한 바탕 위에서 이루어전 것이지만 이 주장이 새로운 의미을 지니게 되는 것은 종래에 모든 의미 있는 지식이 미교적 고정되고 제한되어 있었음에 비하여 오늘날에는 우주와 인간에 대한 획기적인 새로운 지식이 급격히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점에 관련하여 주의깊은 겁토를 요구하는 및 가지 부수적인 문제들이 제기뭘 수 있다. 그 첫째는 우리가 가령 사실세계에 대한 최선의 지식을 가졌다고 할 때에 이 지식이 과연 순수한 논리적인 추리과정만을 몽하여 인간의 당위에 대한 최선의 원칙으로 우리를 이꿀어 줄수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것은 곧 〈사실〉의 세계에 속하는 지식으로부터 〈가치〉의 세계에 속하는- 당위 판단으로의 논리쳐 접속이 가능한가 하는 매우 커다란 논란의 대상이 되어 온 이른바 〈사실一당위〉(is-ought) 의 문제 이 다.이 문재가 지닌 핵십적인 매듭은 사실세계에 대한 지식의 논리로 보아 당위에 관한 어떤 독립적인 가정을 설정하지 않는 한 사실에 관한 서숟형태의 전술로부터 당위에 관한 지시형대의 전술로 넘어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사실에 관한 지식 자체가 당위에 관한판단에 걷정적인 영향윤미치고있다는사실속에 들어 있다. 죽 〈논리칙 단철성〉과 〈사실적 연관성) 사이의 모순을 어떻게 섣명해야 하느냐 하는 이 문제는 현재에도 활발한 쟁점이 되고 있는 문제이나 우리논 여기서 칙접적인 논의를 취하는 대신 인간 정신활동의 구조를 겁토함으로써 이러한 문제가 지닌 모순이 사실상재거될 수 있음을 보이기로 한다.인간의 정신활동 가운데에는 한편에서 사물에 대한 정보를 받아둘이고 이를 기촌의 지식들과 결합하여 사실세계에 대한 앎의 내용윤 정리하는 사물인식 활동이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이것을 바탕으로 하여 원하는 방향으로의 행동윤 결정짓는 행동결정 활동이 있다. 이 두 가지 활동은 결국 밀접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지만 객관져인 실재를 최대한 업격히 반영하기 위해서인지 사물인식관동은 일단 행동건정 과정에 관계없이 엄격한 독립논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것이 곧 서술형대로 표시되는 사신세계에 대한 지식의 논리 뮬 구성한다.
그러나 이 렇게 얻어진 지식이 현실칙으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행동절정 활동으로의 천이가 요청되며 이것은 이러한 전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마음의 요소 죽 〈앎〉의 논리에서 〈함〉의 논리로 전향시 켜 주는 어 떤 마음의 자리 를 몽과함으로써 가능하게 된다. 이때 앎의 논리에서 함의 논리로 전향시켜 주는 마음의 자리 그자체는 어떤 지식내용도 아니며 어떤 구체저인 행동의지도 아니다. 단지 구체칙인 지식내용이 그 자리를 몽과함으로써 구체적인 행동의지로 바뀌게 되는 순수한 마음의 바탕이다. 이러한 마음의 자리 또는 마음의 바탕을 우리는 〈본연의 의향〉 또는 간단히 〈의향〉이라 부르기도 한다.만일 위에 재시한 정신활동의 구조가 인간의 정신활동을 어느정도 사실대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사실-당위〉의 모순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정신왕동 구조의 각각 다론 일면만윤 보는 데서 오는 피상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죽 아직 논리의 전향이 이루어지지 않은 단계 즉 〈의향〉윤 거치지 않은 단계의 지식내용은 그 자체 속에 아무런 행동 의지가 들어 있지 않음으로 사실에 대한 지식의 형대에 머물러 있운 문 아무리 정교한 논리칙 추리를 거치더라도 논리만으로는 행동의 의지로 바뀔 수 없다고 보논 것이 〈논리칙 단철성〉의 주장이며 반대로 지식의 내용이 실제로 〈의향〉을 몽과하계 된다는 사신과 또 이 몰 동해 행동의 의지로 바뀐다는 사실을 현실적으로 긍정하는 입장에서 보면 〈사실상의 연관성〉이 분명해지며 이것이 곧 〈사실적 연관성〉의 주장이 된다.이제 이러한 정신관동의 구조를 활용하여 앞에 논의했던 본원져 당위의 추구과정을 다시 한 번 겁토해 보자. 우리는 앞에서 본원저 당위의 추구뮬 위하여 우주 속에 처해 있는 인간의 상왕에 관한 최선의 지식과 합께 합리적이고 전지한 구도의 자세 롤 가져야 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요구하는 최선의 지식이라 합은 어떤 부분적 사실에 대한 보편적 지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와 인간에 관한가장 종합적이고 균형된 지식을 의미하며 또 진지한 자세 를 취한다고 함은 바로 우리의 〈의향〉을 기촌에 형성된 모든 구체 적 행동의지들로부터 분리시켜 순수한 본연의 상대로 유지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 요소 죽 균형된 최선의 지식 과 모든 기존의 행동의지에서 벗어난 순수한 본연의 의향이 마련 되었으면 우리는 다시 가장 진지하고 합리칙인 정선활동을 통하여 이 두 요소를 결부시킴으로써 하나의 본원적인 행동의지 를 얻게 된다.
이제 우리에게 남아 있는 문제는 이러한 본원칙인 행동의지와 우리가 추구하는 본원적 당위의 성격이 서로 어떻게 고J련 되는가 하는 점이다. 얼핏 보기에는 이 두 가지 개념은 서로 상반되는 성격을 가지는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사실상 당위의 규범 이라고 하는 것은 목정된 행동의지들을 규재하는 기능을 가지는 데에 그 의미가 있다. 만일 우리의 행위률 행동의지에만 맡겨 둘 수 있다면 당위의 규법이란 사신상 필요 없는 존재가 된다.그러나 다론 한편에서는 행동의지 롤 수반하지 않는 당위의 규범이라는 것도 생각하기 어렵다. 행동의지라는 말이 지닌 가장 근원져인 의미에서 볼 때 행동의지가 수반되지 않는 그 어느 것도 행동에 옮겨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행동의지와 당위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맺어지는 것인가?그 해답온 전국 본원적 행동의지와 일상칙 행동의지 사이의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본원저 행동의지가 앞에 논의한 바와 같이 최선의 균형된 지식과 순수한 본연의 의향이 가장 전지하고 합리적인 정신활동을 봉해 결부될 경우에만 얻어진다고 한다떤 이는 어느 누구에게 있어서나 그리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 를 봉해 보머라도 이러한 성취에 접근한 사람은 그리 쉽게 발견되지 않으며 이둘을 일러 우리는 흔히 哲人또는 성현이라 한다. 모돈 사사로움을 떨쳐 버리고 우주나 인간의 모든· 중요한 면모를 성찰하고 난 후에 이들을 몽해서 들려오는 본연의 목소리는 이미 이들 개인의 사사로운행동의지를말해주는것이 아니라, 우주와 인간에 대하여 저어도 이들이 이해한 정도의 이해에 도달한 인간이 나타낼 수 있는 인간 본태의 행동의지를 들려주는 것이어서, 이를 듣는 여타의 사람들에게는 이들의 목소리가 섣혹 자신들이 지닌 일상적 행동의지와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자신들의 깊은 내면으로부터 어떤 여제할 수 없는 공감을 불러일으킹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공감을 느끼게 된 사람들온 스스로의 행위 를 이제까지 자신들이 지녀 온기존의 행동의지에 예속시키기보다는 새로 느끼게 된 보다 고차저인 행동의지에 맞추어야 하겠다는 일종의 당위 의식이 싹드계 된다. 이는 십지어 이러한 본원적 행동의지 를 자신 속에서 유발시켰던 당사자에게 있어서조차도 이러한 본원적인 행동의지가 자신이 일상 경험해 온 사사로운 행동의지와 너무도 큰 차이를 가지는 것이어서 이 를 자신의 의지라고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동해 들려오는 어떤 절대자의 목소리-__그가 댁한 세계관에 따라 혹은 〈신의 계시〉 혹국는 〈하늘의 명령〉――라고 느끼게 될 만큼 강한 당위로서의 위력을 지닐 수 있는 것이다.
사실상 우리는 많은 경우에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혹은 그 이상의 행동의지를 경험하게 된다. 그 하나가 보다 사사롭게 경험되는 일상적 행동의지타면 다론 하나는 보다 깊은 성찰을 거친 또는 보다 십층으로부터 공감되는 고차적 행동의지이다. 혼히 일상적 행동의지를 자신의 행동의지로 생각하고 고차칙 행동의지를 이를 견제하기 위하여 마음속에 십겨진 도며뮴 또는 양십이라 생각하나 이 두 가지 다 본질적으로 자신의 행동의지이며 어느 쪽이 더 우세한가에 따라 실질적인 행동방향이 결정된다.이제 다시 요약해 보면, 우리가 추구하는 본원저 당위라고 하는것은 사실상 최선의 지식과 최선의 의향윤 동원하여 얻게 되는 본원져 행동의지 그 자체의 한 표현이며 이러한 당위가 행동 유발의 힘을 가지는 것도 그 자체가 근본져으로 행동의지 바로 그것에 기반을 가진 것이기 때문이다.8우리는 앞에서 본원져인 행동의지가 어멍게 이루어지며 이것이당위의 의식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하는 점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그런데 이 본원적인 행동의지는 비단 당위 의식으로만 관념화하는 것이 아니타 보다 다양하계 각종 가치 의식으로 관념화한다. 죽 〈보다 하고 싶은 것〉, 〈보다 원하는 것〉을 이루는 데에 도움이 되는 모든 것은 〈보다 중은 것〉, 〈보다 귀중한 것〉 둥으로 하나하냐 채색되어 나가계 된다. 그리고 이들은 다시 좀더 추상적인 개념인 〈좋음〉이라든가 〈귀중함〉 둥의 일반개념으로 발전해 나간다.
물론 구체적인 사물이나 구체적인 행위는 그 놓인 상황에 따라 이것이 우리의 〈하고 싶은· 것〉, 〈원하는 것〉에 크계 도음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사실상 우리의 본원적인 행동의지에 미추어 보아 이것이 정말로 도움이 뭘 것인지 아닌지 하는 것을 밝혀낸다는 것은 상당한 성찰윤 요하는 일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사물이나 행위는 많은 경우에 있어서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있어서 이러한· 행동의지 실현에 도움 또는 방해되는 경향을 어느 정도 고정적으로 지니는 것이 또한 사실이므로- 이들에게 일단 그 지니는 정도에 따라 일정한 가치등급을 부여해 놓고 나면 우리가 이들을 활용하여 생활해 나가는 데에 대단히 편리한 구실윤 하계 된다.특히 윤리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행위, 타인의 이해에 영향을 미칠 행위에 대하여 일정한 가치등급을 부여하는 체계라고 말할 수 있다. 원칙적으로는 어떠한 행위를 취하려 할 경우, 먼저 본원적인 당위 관념을 기준으로 하여 그 행위 및 이것이 초래할 예상되는 모든 결과들을 일단 이 기준에 비추어 보고, 이것이 과연 합당하다고 확인이 된 후 행동을 취하는 것이 바론 철차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이것이 몹시 번거러운 일이므로 예상되는 행위 하나하나에 미리 그 가치등급을 부여해 놓고 이에 따라 거의 관습적으로 행동윤 하게 된다.일반져으로 윤리관념이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의 다론 가치관념들과는 달리 당위 의식을 매우 강하계 풍겨 주는관념이다. 이는 단순히 행동에 부여된 가치관념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만은 아니며 머욱 중요한 것은 〈나〉와 〈남〉 사이에 그리고 〈우리편〉과 〈상대편〉 사이에 막혀 있는 생리져, 십리쳐 장벽을 어떻게든 뛰어넘어야 한다는 요청을 받는 관념이기 때문이다.
사람온 누구나 생리칙으로자신의 신체 내에서 발생하는 상황민·윤직접 의식할 수 있고 타인의 상황에 대해서는 오직 자신의 것과의 유추를 동한 간접적인 추측밖에 할 수 없는 신체구조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람은 십리칙으로 자신과 목벌한 관계믈 지닌 사람 또는 자신이 속해 있는 무리의 이해만을 앞세우고 여타의 사람 또는 자신이 속해 있지 않은 무리의 이해는 가볍게 여기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그러나 본원적 당위의 관념은 이러한 생리져 십리저 제약에서 오는 불합리한 행동 경향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윤리직 결단이 요청되는 현실상황 내에서는 항상 이미 지니고 있는 이러한 재약과 이러한 제약을 철패하라는 강력한 요구 사이에 팽팽한 간장이 유지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윤리관념이 강력한 당위 의식울 느끼게 해주는 소치라 할 수 있다. 전봉져 윤리관념은 특히 〈나〉와 〈남〉 사이의 장벼울 주로 문제삼아 왔으며 이른바 윤리규법의 황금률이 라 불리 우는 〈네 이 웃을 네 몸과 갈이 사랑하라〉는 윤리강령이 바로 이 장벼 울 완전히 철폐하라는 요구의 대표적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져으로는 이러한 요구를 철저히 만족시키는 대신, 사회칙으로 무리가 없는 범위 내에서 인간이 지닌 생리저 십리칙 제약과 본원저 당위의 요구 사이에 용납되는 경계가 져철히 그어지개 된다.역사적으로 보면 이러한 윤리규법은 어느 복정 시기에 어느 폭정인물이 재정했다기보다는 사회의 문화전동 속에 깊이 부리내리고 오렌 진화과정윤 거쳐 서서히 이루어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뉵히 급져한 사회적 년동이 없는 경우 문화전동 속에 깊이 뿌리박은 윤리규법은 거의 아무도 손댈 수 없는 성역에 위치하게 되며 사회칙인 필요나 여건에 마라 소규모의 수정이 요청되는 경우에도 그 기반의 흔들립 없이 점진칙인 조정에 의하여 그 형대 룰 수정해 나가는 자연스런 전화과정을 밟게 된다.그러나 상황에 따라서는 윤리규법 자체를 성역에서 끌어내려 의석칙으로 비판하고 적극져으로 개조해야 할 북벌한 경우도 발생한다. 이재 그 대표칙인 몇 가지 경우를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급격한 의칙 생활환경의 변화에서 오는 불가피한 수정의 요청이다. 이 경우에는 변화된 현실로 인하여 윤리규범 그 자체가 본래의 의미 룰- 상실했거나 역기능을 하고 있는 경우로서 본래의 의미를 되살려 수정할 수 있다. 이때에는 이 사회에 이미 수용되어있는 본원적인 당위 자체에는 변동이 없는 것이므로 이 본원적인 당위의 권위 를- 내세워 벨로큰마찰이나 충둘 없이 조정될 수 있다. 가령 신대륙에 이주한 주민들이 새로운 생 활환경에 적응하여 생활방식 및 윤리규범을 바꾸어 나간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둘째로 생각되는 경우는 외적 생활환경에 변화가 없다 하더라도 보다 십오한 새로운 본원적 당위가 밝혀침으로써 윤리규범의 전반적인 조정이 요청되는 경우이다. 이는 외래의 종교라돈가 문화가 과급되어 오는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며 이 경우에는 기존관념 과의 상당한 마찰과 충돌이 거 의 불가피 하다.마지막으로 이 두 가지 경우가 중첩되는 것으로서 득히 현대와 같이 인간의 행위능력이 급상승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생활환경의 변화와 문화의 상호교류는- 물론, 그 문화 자체가 지닌 폭발력에 의하여 자체파멀의 위험까지 지니게 됨으로써 행위규법의 수정은 물론 본원적 당위 그 자체의 재검토마저 철실히 요청된다. 사실상 우리가 지금까지 고찰해 온 내용이 바로 이 경우률 맞이하여 보다 적절한 본원직 당위가 어떠한 방식으로 형성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으며 또 이것이 현실적 윤리규범과는 어떻게 연관되는가 하는 문제였다.이계 본원적 당위가 주어졌다고 할 때 이로부터 현실적 윤리규법이 어떻게 도출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좀더 자세히 겁토해 보자.원리적으로만 이야기하자면 이 과정은 비교칙 간단하다. 우선 첫 단계로 어떤 전형적인 상황 아태에서의 전형직인 행위를 가상하고 이것을 수행했을 경우 초래될 모든 가능한 결과들을 예상해야 한다. 그리고 이미 주어진 본원적 당위 개념에 비추어 이 결과들이 과연 본원직 행동의지에 일치되는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 를 판정해야 한다.만일 그렇다고 판정되면 우리는 이러한 행위 믈 실험적으로 수행해 볼 수 있으며 그 행 위의 결과물 직접적으로 관찰하여 과연 이것이 예상했던 대로 본원적 행동의지에 일치되고 있는지 를 확인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동일한 상황에서의 동일 형대의 행 위에 대한 거둡된 실험 결과가 항상 합당한 결과를 준다는 것이 확인되고 나면 우리는 해당 상황 아래에서의 해당 형대의 행위가 주어진 본원적 당위 관념에 일치하는 합윤리칙 행위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러나 현 실 적으로는 이러한 과정을 밟아 윤리규법 을 섣칭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또 이러한 방법으로 하나의 윤리규범이 정해졌다고 하더라도 이 믈 올바르게 활용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먼처 이러한 윤리규법을 섣정할 수 있기 위하여 만족해야 할 조건이 무엇 인가를 고찰해 보자.첫째, 우리는 행위를 수행할 배경 상황에 대하여 정확한 파악윤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를 위해서는 목히 배경 상황에 대해서 알아야 할 지식의 성격이 어떠한 것인지 그리고 이 지식에 대한 정보가 어떠한 방식으로 얻어질 수 있는지 하는 점들이 규정되어야 한다.둘째로, 행위 를 수행할 배경상황에 대하여 충분한 지식을 가졌다고 할 때에 이 상황 속에 행위가 가해침으로써 초래할 결과에 대하여 신빙성 있는 예측윤 할 수가 있어야 한다. 이는 물론 팔연성윤 지니는 예측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나 개연성을 지닌 예측이라 하더라도 그 결과가 확문칙으로나마 예측에 일치할 수 있다는 신빙할 만한 토대 를 지녀야 한다.세째, 예 측된 결과를 놓고 그 합당성 여부를 명확히 판정할 수 있윤 만큼 본원저 당위의 관념이 구체저으로개념화돼 있어야 한다.네째, 충분히 많은 수의 행위가 동일한 상황 아래 놓인 동일한 종류의 행위라고 구분될 수 있어야 한다• 만일 모든 행 위가 유일한 상황 아래 놓인 유일한 성격의 행위 들이라고 한다면 행위규법 을 정하여 이것에 맞추어 행동한다는 자체가 무의미해지기 때 문 이다.다음에 이러한 윤리규법이 정해졌다고 할 때 이 뮬 윤바로 완용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조건을 생각해 보자.
첫째의, 규법에서 말하고 있는 배경 사항이 현재 행동이 가해질 앞에 놓인 배경 사항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현재 행동하려는 행위가 규범에서 말하고 있는 행위와 동일한 종류의 행위인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만일 이것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고 부분적인 유사성만을 가질 경우 그 규범의 내용을 부분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인지를 판정할 수있어야 한다.둘째에서는, 활용하려는 윤리규법 자체가 어느 정도 확고하계 설정된 것인지 특히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의 확인 과정윤 거찬 것인지를 겁토해야 한다. 완벽하계 설정된 윤리규범이라고 하는것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 겁토된 정도에 따라 신빙도를 달리 해야한다.이제 이와같은고찰들을 요약해 보면 설혹 본원적 당위 관념이 명백히 확정되어 있다 하더라도 이로부터 현실적인 윤리규범을 도출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룰 위해서는 구체적 현실 상황의 파악 및 합리적 행위 결과의 예상윤 위한 신방할 만한 지식이 마련되어 있어야 하며 또 이를 활용하여 엄격히 결과·룰 도출해 낼 냉철한 자세물 지녀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9우리는 지금까지 인간의 본원저 행동의지를 형성하는 과정과 그리고 이로부터 구체적 행동규범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묵히 우주와 인간에 대한 균형된 지식은 본원적 행동의지를 형성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며 또 인간의 구체적 현실상황과 그리고그- 안에서의 행동의 결과륜 말해 줄 지식은 구체적 행동결정 및 행동규범윤 마련하는 데에 팔수처인 요소가 되고 있음을 보아 왔다.그렇다면 이러한 지식 그 자체는 어영계 형성되는 것인가, 그리고 어평계 하여 의미 있는 지식을 마련할 것인가 하는 점울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득히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이러한 지식은 우리가 지닌 기촌의 관념과는 무관하게 독립칙으로 얻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이미 지니고 있는 기존의 관념인 가치 관념이 지식의 성격윤 규제해 주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이미 우리의 지식이 인간의 본원적 행동의지 전정에 크게 관여하고 있으며 인간의 본원저 행동의지는 다시 인간의 각종 가치관념을 결정하는 기반이 된다는 점을 논의해 왔다. 그런데 만일 인간의 가치관념 자체가 다시 인간의 지식을 규제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논의는 일종의 순환논리에 빠지는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일반적으로 지식 득히 자연과학적 지식은 가치중립적인 것이며 또 가치중립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오랫동안 알려처 왔다. 이는 근대 자연과학이 종래의 형이상학적 선입관으로부터 해방되어 직접적인 실험적 관찰과 엄격한 논리적 추리에만 기반을 두고 성장해 왔다는 데에 그 주장의 근거를 두고 있다.이와는 달리 사회과학 에 있어서는 일찍부터 지식의 가치의 촌성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줄기차게 이어져 왔고 근자에 이르러서는 자연과학적 지식조차도 이러한 가치의존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주장들이 강력하계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주장둘이 내세우는 논의의 요지 를 간략히 추려 보면, 모든 과학은 〈사실〉에 기반윤 두고 있다고 하나 십지어 자연과학에서 객관칙 관찰의 대상이 되는 〈사실〉이라는 것도 엄격히 이야기하면 사실을 해석하는 관념의 물인 〈이론체계〉에 크계 의존하고 있으며 또 이러한 〈이몬체계〉는 이 물 구상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이미 지니고 있던 가치관념 을 비못한 기존의 관념체계에 크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는 논지이다.그러면 이 두 가지 엇갈리는 주장 속에 얽혀 있는 논의의 매 듭겔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가? 이 논의도 앞에서 우리가 겁토한 〈사실당위〉의 문제와 홉-사한 일면 윤 지니고 있으며 사신상 〈사신당위〉의 문재를 뒤집어 놓은 문제에 해당한다. 여기서도 이듄은 서로 모순되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의 각각 다론 인면윤 말해 주고 있는 것뿐이다. 즉 지식 자체의 내 적 논리는 본질적으로 가치관념에 의촌할수없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지식 자체의 내칙 구조에 대해서는 지식의 가치중립성이 엄격히 성립하는 반면, 지식을 추구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은 그 주재의 선정, 관점의 선덱 그리고 이론체계의 구상과정에서 가치관념을 비롯한 기존의 관념체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또한 사실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지식 형성과정에서의 지식의 가치의 존성은 그것 나름대로 성립하는 것이다.
우리의 논의에 있어서는 지식의 성격이 지니는 이 두 가지 면들이 각각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먼저 지식을 추구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이 지니는 필연적인 가치관념 의존성과 이것이 초래하는 견과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지식의 이러한 가치의존성을 인정할 경우 우리의 논의는 일종의 순환관계를 이루게 된다. 죽 우리가 지닌 최선의 지식은 가치관념을 형성하는 데에 크계 기여하고 있으며 우리의 가치관념은 다시 우리의 지식을 형성하는 데에 적지않은 역할을 하계 된다. 그렇다면 인간의 지식과 인간의 가치관념은 서로가 서로에 영향을 미치는 순환의 고리를 형성하여 영원한순환속에 정체되어 버리고 마는 것인가?이론상으로는 이것이 폐쇄된 순환의 고리 속에서 정체되어 버랄수도 있고 끝이 열린 나선형의 순환관계를 이물 수도 있다.가령 우리가 임의로 어떤 독정 시점의 지식을 출발점으로 잡아본다면, 이 지식에 의하여 하나의 가치관념이 형성되며 이 가치관념온 또다시 우리가 추구할 지식의 성격을 결정해 준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추구된 지식 그 자체가 바로 우리가 출발했던 처음의 지식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으로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하면 이것은 폐쇄된 순환의 고리가 되는 것이며 이 전체는 하나의 자체충족적인 과정을 이루어 정체되고 만다. 실제 역사과정 가운데에도 거의 이러한 자체충족적 순환과정에 빠쳐 상당한 기간 동안의 정체가 지속되었던 일이 져지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만일 이렇게 한바퀴 회전을 거쳐 추구된 지식이 처음출발했던 지식과는 다론 새로운 내용을 충분히 담고 있는 것이 된다면 이것은 폐쇄된 순환관계가 아니라 끝이 열려 있는 나선형 순환관계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나선형 순환관계는 특히 I5~I6세기의 근대 자연과학이 대두된 이래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어 나가고 있다. I5~I6세기의 과학혁명은 〈새로운〉 지식의 획득가능성을 알려주었고 이것은 다시 우리에게 〈새 지식의 추구〉라고 하는 새로운 가치이념을 십어 주었으며 이 가치이념이 다시 보다 적극적인 과학적 지식 탐구의 여건윤 형성시켰다. 그리고 과학적 지식을산업기숟에 활용할 수 있음을 알려준 19세기의 과학은 다시 과학적 지식 추구의 열풍이라고 할 금세기의 가치관념을 형성시켰으며 이것이 현대 과학기술문명을 더욱 가속시키는 정신칙 바탕을 이루고 있다.
한편, 지식의 내적 논리가 지닌 가치중립성온 어떠한 의미를 가지며 특히 이러한 순환의 과정 속에서 어띠한 기능을 하계 되는지 고찰해 보자.아무리 지식 추구의 동기와 방향이 기존 가치관념에 크계 의촌된다 하더라도 이를 동해 구성된 지식의 내져 구조는 이러한 가치관념에 무관한 언어와 논리로 짜여지계 되며 또한 지식의 확인과정도 객관적 증거 및 증명의 제시만에 의존한다.이렇게 함으로겨 지식 자체는 역시 지식 추구의 동기와 과정에는 무관하개 하나의 독자적인 존재성을 부여받게 되며 또한 탑구자의 기촌·관념과는 무관하게 새로운 사실을 말해 주는 독립적인 기능윤 가지게 된다. 오직 기존의 가치관념이 지식의 성장 자체 믈 여제하는 것일 경우에는 지식은 고정되어 화석화할 것이며 더이상 새로운 사실을 말해 주는 독립져인 기능을 지니지 못하계 된다. 그러나 일단 지식 성장의 가능성과 중요성이 기촌의 가치관념 속에서 시인되기만 하떤 지석과 가치관념 사이의 순환과정은 지식 그 자체의 성장에 의하여 팔히 하나의 급격한 불매 를 지닌 나선형대의 발전적 순환과정을 형성하지 않을 수 없다.요약하면, 지식의 형성과정은 필연져으로 기존의 가치관념에 의하여 영향을 받게 되나 일단 구성된 지식은, 지식 자체의 내져 구조가 지닌 가치중립성에 의하여, 이물 탄생시킨 탐구자의 기존 가치이념에는 무관하게 객관적인 사실을 말해 주는 기능을- 가지계 되며, 득히 새로운 가치이념의 추구과정에 있어서도 기존 가치이념에 종속되는 종속변수가 아닌 독립변수적인 기능을 할 수 있게 된다.
10우리가 새 가치이념을 추구한다고 할 때 이것이 과연 기존의 가치이념들과는 다론 어떤 〈새로운〉 것이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새로운〉 내용의 지식이 투입되지 않으면 안된다.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갈이 가치이념의 추구에 있어서 독립변수적인 기능을 할수있는것이 곧 지식이므로 지식 자체의 내용에 있어서 새로운 것이 없다면 이것의 종속변수로 얻어질 가치이념 속에서 새로운 것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그렇다면 과연 우리에개는 새로운 내용의 지식이 있는가, 그리고 있다면 그· 내용이란 어떠한 것인가? 이것을 생각하기 위하여 먼저 우리가 〈새로운〉 내용의 지식이라고 할 때 이 〈새롭다〉는 것은 무엇을 기준으로 말하는 것인지 를 밝혀야 할 것이다. 어떤 전문분야의 학자에게는 아직 학계에 발표되지 않았던 지식이 새로울 것이며 현재 학문을 배워나가는 학생에게는 아칙 배우지 않았던 내용이면 무엇이든지 새로운 지식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새로운 지석이라고 말할 때에는 기촌의 가치이념들이 형성되던 역사적 시기 이후에 알려진 모든 의미 있는 지식들의 내용을 말하게 된다. 그리고 기촌의 가치이념이란 무엇이며 또 언제 형성된 것인가를· 논의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 어려운 문계가 되겠으나 우리는 여기서 편의상 근대 이전에 형성된 가치이념들을7 동틀어 기촌의 가치이념이라 부르기로 한다.이렇게 규정해 놓고 나면 새로운 지식이라고 하는 것은 근대 이후에 알려진 여러가지 지식의 내용들을· 의미하게 된다. 이제 근대 이후에 알려진 중요한 지식 내용들을 크계 몇 가지로 분류해 보면다음과 같다. 첫째는 근대 이후의 활발한 정보교환에 의하여 연어진 여타의 문화권에 관한 지식으로서 종래에는 개벨 문화권 내에만 국한되어 외부에는 벤로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이 근대 이후의 각종 정보매체의 도움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내용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것은 인류 전체로 볼 때에는 누구인가가 이미 알고 있었다는 의미에서 새 지식은 아니겠지만 개펄칙인 인식 주체의 입장에서 보떤 새롭게 알려진 지식임에 들림없다. 특히 자신이 속하지 않았던 문화권의 역사 및 문화내용에 대한 지식은 보다 포괄쳐인 가치이념울 형성함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다.
둘째로는 근대 이후에 발생한 모든 역사 문화적 사건둘에 대한 지석을 생각할 수 있다. 특히 근대 이후의 사회는 급적한 년천의 과정에 있었으므로 그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성격의 사건들이 많이 발생하였으며 따라서 이 모든 역사 문화적 사건들을 집합적으로 볼 때 하나의 중요한 새 지식의 원천을 이문다고 할 수 있다.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본질칙인 새로운 지식으로서는 근대 이후의 과학적 탐구과정에서 얻어진 체계화한 각종 전문지식운 들 수있다. 사회과학을 포함하여 현대과학이라고 불리우는 넓은 테두리 속에 담긴 이 지식의 내용은 너무도 광법위한 것이어서 어느 독정 개인으로써는 이 전체 물 섭렵한다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 속에는 우주와 인간에 대하여 그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중요한 새로운 내용들이 대단히 많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새로운 가치이념의 추구를 위해서는 팔히 그 개략처인 줄거리나마 간추려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우리는 위에 열거한 몇 가지 〈새로운〉 지식 가운데서도 묵히 현대과학 속에 담긴 및 가지 주요 내용을 살펴보고 이것이 새로운 가치이념을 구성하는 데에 어 떻 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 보기로 한다.우선 현대과학 속에 담간 그 많은 내용들 가운데 어떤 것이 우리의 목칙을 위하여 중요한 내용이 될 것인가? 물론 이것 자재가 적지않은 문제가 되겠으나 우리는 단지 우주와 인간 그리고 삼의 의미를 규정해 나가는 데에 도움이 될 자료들 득히 전체적인 세계관과 깊은 관련을 가지는 것으로서 근대 이전의 전동적 세계관에서는 별로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내용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기로 한다. 죽 인간은 어떠한 세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계 된 어떠한 존재인가 하는· 기본칙 관심사에 대하여 현대 과학이 말해 줄 수 있는 믿을 만한 자료들이 우리가 고찰해 보아야 할 중요한 내용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관십사에 대해서는 종래의 전동문화에서도 그들 특유의 세계관을 몽하여 나름대로의 관점을 제시해 왔으나 현대과학은 보다 체계저인 지식의 테두리 안에서 보다 확실시되는 증거에 입각하여 새로운 내용들을 말해 주고 있다. 불행히도 아직까지 현대과학에 입각한 종합적인 세계관이라고 할 만한 어떤 완성된 형상온 재시되지 않고 있으나 현재까지 알려진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새로운 세계관이 지니게 될 몇몇 중요한 새로운 면모들을· 찾아볼 수 있다.이제 그 가운데 몇 가지만 간추려 생각해 보면 첫째로 현대과학은 우주의 엄청난 시간적 공간적 성격과 규모, 그리고 그 안에 성립되는 엄격하고 조화로운 자연법칙들의 주요 내용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는우리가 일상 경험하는 규모의 세계에 비하여 너무도 방대하고 장업한 것이어서 우리의 모든 것을- 초월하는· 우주적 질서와 우주적 실상의 존재를 느끼게 하며 그 안에서 이 질서에 맞추어 살아가게 되는 우리 자신의 상대적 위치를 자각하게 해준다.둘째로 현대과학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어 나가는 지구상의 신비로운 각종 현상들의 발생 및 성장과정들을· 먼 과거에까지 추적하여 알려주고 있다. 득히 엔트로피의 증가라고 하는- 전체적인 변화의 흐름가운데서도이 흐름의 경로를 척철히 이용하여 그 줄기 줄기에서 피어나는 물질, 생명, 인간, 문화등놀라운현상들, 그리고 이둘 사이의 미묘한 ·상호의존적 존재양상은 이 과정의 한 작은 부분을 이루고 있는 우리들 자신으로 하여금 우주의 이 큰 조화와의 강력한 일체갑을 느끼게 해준다.세째로 현대과학은 인간의 정신현상에 대한 신경생리학적 기반을·마 련 함으로써 인간의 의식 및 정신현상에 대한 객관저인 이해 를 가능하게 해주고 있다. 이는 마치 인간의 정신현상에 대하여 스스로를 비쳐 볼 수 있는 거울을 마련해 준 샘이다. 혼히 〈나〉라고 느끼는 의식 주체로서의 자신을 우주의 그 많은 촌계양상 가운데 하나인 어느 한 객체적 대상으로서의 자신과 일치시켜 줌으로써 자신의 객관칙 존재양상윤 분명하게 보여주는 반면, 이번에는 이러한 객체적 대상으로- 파악된 자신이 하나의 의식 주체가 되어 독자져인 인식과 독자적언 행위 를 수행해 가며 삶을 엮어 갈 수 있다는 놀라운 신비 를 새삼스럽계 인식함으로써 삶에 대한 보다 높은 긍지와 보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재 이러한 지식을 동원하고 전지한 구도의 자세 를 갖추어 인간 본연의 의향에 호소함으로써 본원의 당위가 무엇인가를 찾아내었다고 할 때 이것으로서 우리가 추구하는 새 가치이념이 얻어졌다고 할 수 있윤것인가?이것으로서는 가치의 지향성이 견정될 수 있고 행동의 방향이 지시 될 수는 있겠으나 구체칙인 가치의 내용, 구체적인 행동의 형태는 지정 된 수 없다. 이 를 위해서는 다시 현실세계에 대한 구체져인 파악과 행위결과에 대한 신빙성 있는 예상이 가능해야 한다. 불행히도 이러한 과악과 예상을 가능하게 해줄 지식은 아칙까지 충분히 마련되지 않고 있으며 이러한 방향으로의 관십조차 충분히 성숙되지 않고 있다. 단지 이러한 지식도 현대과학 특히 현대 사회과학의 탐구방식을 동하여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는 점만은 명백하며 따타서 우리는 다시 현대과학에 기대를 걷어 보지 않을 수 없다.그러면 보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것 윤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어떠한 형태의 지식이 추구되어야 할 것인가? 현대의 지식은 대 부분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당위의 문재 를 해결하기 위하여 추구되기보다는 우리가 이미 목적하고 있는 바를 어떻게 성취시킬 수 있 을까 하는 목적달성 동기에 의하여 강력히 추구되고 있다. 따라서 추구되는 지식의 험태도 대부분 묵져추구형식인 〈A 라는 목적윤 성취하기 위해서는 뮤엇을 하면 될 것인가〉의 형식에 맞는 지식이 주로 관십의 대상이 되며 견과예상형 식인 〈a 라는 행위룹 하면어떠한 컬과가 초래될 것인가〉하는 형식에 맞는 지식에 대해서는 많은 관십이 기울여지지 않고 있다.
얼핏 보기에 이 두 가지 형식의 지식은 동일 한 내용의 것이라고 생각되며 사실상 완비한 지식만 가질 수 있다면 이 두 가지 지식은 완전히 동일한 내용이 지식이 될 것이나 현실칙 으로는 현격한 차이률· 가진다.목적추구형의 지식에서는 〈A라는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하면 될 것인가〉의 해답으로 〈a 를 하면 된다〉는 답을 얻었다고 할 때 a 의 견과로 A가 나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겸하여 B,C…둥의 예상치 않았던 견과가 함께 나오더라도 이는 개의치 않으므로 오직 a 와 A 간의 국소적인 관계만을 확실하게 추구하는 데에 중점을 두는 반면, 결과예상형의 지식에서는 〈a 리수근 행위 를 하면 어떠한 건과가 초래될 것인가〉의 물음에 대하여 지금까지의 지식 목히 현대과학이 전체칙 관련성을 해명하기 보다는 부분져 확신성을 추구하는 데에 집착해 온 것은 목적성취라고 하는 동기 자체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며 방법론칙인 원인에도 그 기인하는 바가 크다고 보아야 한다. 즉 부분홍1 확실성만을 추구할 경우에는 문제 를 크게 단순화시킬 수 있을 분 아니라 탐구의 작업운 전문화시켜 나갈 수 있다. 한편 전체적 관련성을 추구하려는 겅우에 는 필연적 으로 〈전체 칙 접 근〉 (holistic approach) 을 시 도하지 않으면 안되며 이렇게 할 경우 문재가 복잡해질 뿐 아니라 개별적인 전문지식만으로는 점근이 불가능해진다. 예 를 들어 행위 a 의 결과가 A,B,C·· 라 할 때 A 는 물리적 결 과, B 는 십리적 결과, C 는 사회적 결과 동일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우리가 목적하는 바와 갈아 새로운 당위의 추구를 위하여 전체 칙 인 관련성 을 위주로 하는 걷과에상형의 지식을 효과적으로 마 련하려 면 여기에 대한 새로운 관심윤 불러 일으킬 분 아니라 새로운 방법론 마련에도 함께 힘윤 기울여야 할 것이다.
11현대 사회 를 위한 가치이념의 추구과칭에 있어서 가장 본질적이 고 우선적인 작업은 사회처으로 합의할 수 있는 본원적인 당위의 내용을 선정하고 이 뮬 실천의지 속으로 수용하는 일이라 할 수 있나. 그리고 이 물 위해서는 기촌의 가치이념 형성에는 관여하지 않았던 새로운 지식들이 요청되며 이러한 - 지식들은 득히 현대과학을 몽하 여 그 중요한 일부가 마련될 수 있윤 것이라는 점을 논의하였다.그러면 이재 앞에서 고찰한 현대과학의 새로운 세계관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이념 윤 추구한다고 할 때 우리가 얻게 될 본원칙 당위의 내용은 어떤 것들이 될 수 있윤 것인가? 이 해답에 이르기 위해서는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갈이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최선의 지식문 아니라 기존의 여러 행동의지에서 벗어난 순수한 마음의 자리가 마련되어야 하며 다시 이 들을 바탕으로 전지하고 고된 추구의 과정이 있어야 하겠으나 여기서는 단지 어떠한 형태의 해답이 기대되는가만 알기 위하여 하나의 참정적인 해답윤 제시해 보기로 한다. 그리고 이 잠정칙인 해답은 편의상 새로운 세계관에 대해 현대과학이 제시하고 있는 몇 가지 면모둘과 관련지어 찾 아나가기로 한다.제일 먼처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은 우주의 장엄하고 방대한 규모와 엄격하고 조화로운 질서 앞에서 우리는 임의 롭게 행 동할 수 없는 경건한 자세 를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는 져어도 무질서한 카오스가 아니며 또 우리의 힘과 생각만으로 쉽게 좌우될 수 있는 규모의 것도 아니다. 분만 아니라 우리가 션혹 그 안에 새겨진 의미 륭 포착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속에는 우리가 함부로 침해할 수 없는 그 어떤 신성함이 것들어 있을 것으로 보아야 한다. 물론 이러한 자세와 느낌은 이러한 지식 속에서 논리적으로 이꿀어낸 수 있 는 것이 아니다. 그러떤서도 이러한 느낌은 우주에 대해서 깊이 이해하면 할수록 더욱 깊어지는 느낌이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둘째로, 지구상에 장엄하계 펼쳐져 나가고 있는 물질, 생명, 정신, 문화… ..• 의 전개과정, 죽 한마디로 전체생대계의 전 개과정이 전혀 무의미한 것만이 아니라면――만일 이 모든 것이 전혀 무의미하다고 느낀다면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이것의 조화를 존중하고 이것의 존속을- 보장하는 것을 당위의 첫과제로 삼아야 한다.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는 우리가 우리 속에 느껴지는 삶의 의지에 순응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우리 속에 느껴지는 삶의 의지가 어떤 〈의미〉믈 지닌다면 그 〈의미〉는 곧 전체 생대계가 유지되어 나가야 한다는 보다 큰 〈의미〉의 극히 작은 한 단편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살아나가기 위하여 생대계가 존속해야 할 것이 아니라 우티 자신에 앞서서 생대계가 촌속해야 한다는 당위가 성립한다. 더우기 우리의 개별칙인 삶은 불가피하게 유한한 촌속기간밖에 지니지 못하지만 이 생대계의 전개는 이론상 어떠 한정된 기간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유한한 존속기간과 유한한 행위능력을 지닌 우리가 이 생태계의 무한한 촌속을 위해 중요한 기여를 할수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보다 큰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직은7 〈나〉를· 버리고 큰 〈나〉와 일체가 되는 길이기도 하다.특히 현대인들은 그들의 집합적 행위능력에 의하여 지구상의 생대계에 대해 결정적인 타적을 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완전한 종말까지도 고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계 되었으므로. 생태계에 대당위 문제에 대하여 심각한 관십울 가지지 않으면 얀판다. 아칙도 현대인에게는 개별 개체가 지닌 생명의 중요성과 생대계 자체의 중·요성 사이에 존재하는 현적한 차이에 대한 인식이 불충분하다. 이사이의 차이는 나뭇잎 몇 개 떨어지는 것과 나무 자체가 쓰러지는것 사이의 차이에 해당하는 것임을 우리는 깊이 의식하지 않으면 안된다.
세째로, 과학이 비춰 주는 우주의 실상과 그 안에서의 자신의 위치 를 과악한 우리는 이 위치에 놓인 〈나〉라는 존재가 다시 이 전체 우주를 파악하고 또 자신의 내면을 의식하는 의식의 주체가 되어 하나의 주체적인 삶을 영위하계 된다는 신비로운 사실에 경단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러한 경만은 다시 소스쿠의 삶에 대해 보다 큰 존엄과 긍지 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존엄과 궁지는 바로 똑같은 이유 때문에 자신과 대등한 위치에 놓여 있는 모든 다론 의식의 주체들에대해서도 적용되지 않을 수 없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모돈〉 의식 주체에 대해 주어진 삶을 주체적으로 의미있게 영위할 여건의 부여, 죽 존엄성보장이타는 강력한 당위의 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현대과학은 또한 의식현상과 신경생리현상 사이의 많은 중요한 관계들을 밝혀 줌으로써 〈의식 주체〉에 대한 객관적 정의를 가능하게 해준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바위나 돌에까지 의식 주체로 대우몰 하던 우매성에서 벗어남은 물론, 사회적 신분적 조건에 따라 인간을 구분하던 과거의 편견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현대과학을 동한 정신현상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가 지금까지 무의식칙으로 우리를 지배해 온 본능적 욕구 둥 여러 생리적 십리적 충동에 대하여 그 전화적 문화적 기원을 분석하고 밝혀중으로써 이들의 맹목칙인 지배로부터 벗어나 보다 주체져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가능성윤 제공한다. 현대과학의 도움에 의한 이러한 새로운 〈계몽〉이 보다 높은 차원의 행동의지 곧 새로운 당위로 이꿀어 줄 것임은 의십의 여지가 없다.요약하단 현대과학이 보여주는 새로운 세계관윤 동하여 우리는 본원적 당위에 관한 다음과 갈은 하나의 잠정저 명제에 도달할 수 있다. 즉 〈우리는 장엄한 우주의 질서와 그 안에 주어진 삶의 기회를 경건한 자세로 받아들여야 하며 모든 삶의 모체가 되는 생대계의 보촌과 그 안에 대어난 모든 의식 주체들의 주체져 삶의 존업성 보장을 본원칙인 당위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물론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위의 명재는 어더까지나 참정걱인 것이며 오직 하나의 가능성 재시 를 위하여 제안해 본 것뿐 이 겠 으나 이와 갇은 성격의 명제가 보다 진지한 추구률 동해 보다 완전한 형대로 얻어졌다고 할 때 과연 모든 사람이 여기에 랍의 할 수 있겠는가?
만일 이러한 합의에 도달할 수 없다면 그 이유는 아마도 다움 및 가지 중에서 갖아볼 수 있을 것이다.첫째는 우리가 고려한 과학칙 사실 들 자체에 대해 이 견윤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다. 과학적 사실이라는 것도 그- 안에 불확실 한 요소 물 얼마든지 담고 있는 것이므로. 이러한 요소들- 때 문 에 의견의 일치 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학적 사실 에 있어서 의견의 일치 를 보기 어려운 내용들은 대개의 경우- 세부사항이거나 지엽적인 내용들이고 커다란 줄거리에 있어서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사실상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적 철 한 증거가 재시될 메 과학적 사실들처럽 합의가 쉽게 이루어지는 논제도년로 없다.둘째로 인간이 지닌 본연의 의향 자체가 개인 벨 로 커다란 차이몰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섣혹 사실에 대한 동일한 지식이 두입되더라도 본질칙으로 서로 상치되는 행 동의지가 발현뮐 수 있고 따라서 서로 다론 본원직 당위에 도달할 수 있다. 사실상 인간 본연의 의향이 사람에 따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는 명백한 증거 을 재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인간의 생리 직 구조가 지닌 기본칙 공동성으로 보아 인간의 가장 본질칙인 정신기능이 사람에 따라 크게 다르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가령 인간의 사고 기능을 보더라도 사고의 기본 논리에는 거의 보편저이타 할 만한 공몽점이 있으며 이것이 바로 언어가 몽하고 의사가 교환될 수 있는 원인인 것이다. 분만 아니라 경험적인 사실 들을 동해 보더라도 완전히 동일한 생 활환경이 주어질 때 두드러진 가치관의 차이 를 나타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세째는 기존관념의 완전한 제거가 가능하지 않음으로써 기촌관념의 차이에서 오는 이견의 가능성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현실 칙 으로 가장 큰 어려움을 던져 주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본원처인 당위의 추구과정에서 모든 기촌의 행동의지 를 제거하고 순수한 본 연의 의 향에만 그 판단을 맡긴다고는 하나 현실적으로 과연 그러한 상대에 도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오직 우리는 노력 의 여하에 따라 이러한 상대로의 접근이 점차칙으로나마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경험적 사실에 바탕을 둘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선 혹 본인이 이러한 상태에 도달하기가 어렵다 하더라도 이러한 상대 을 동해 얻어전 의견에 대해서 공감하기는 훨씬 쉬운 일인 듯하다. 그러므로 보다 높은 당위에의 추구를 진정으로 성실히 추구해 나 갈 경우 기촌관념이 주는 장애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아마도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기존관념의 하나는 본인의 신앙 속에 부각된 종교칙 신념일 것이다. 전동칙인 신비적 세계관에 연루된 종교적 신조륜 지닌 사람들에게는 현대과학이 그들의 신앙을 허물어 버리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해석에 따라서는 현대과학의 세계관이 대부분의 종교직 신조에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률 심화시키는 기능을 할 수 있다. 예 률 들어 유대-기독교적 〈신〉의 개념은 보다 심화된 의미에서 현대과학의 세계관 위에 살아 있 을 수 있으며 오직 종래의 좁은 세계관 내에서 의인화하였던 외형만을 교체하떤 되는 것이다.이재 이러한 본원저 당위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할 메 이러한 합의가 과연 이 물 현실세계에 옮겨 줄 충분한 신천의지까지 수반할 수 있 을 것인가에 대하여 간단히 생각해 보자.이미 앞에서 상세히 논의했던 바와 갈이 본원적인 당위는 다음아닌 본원적 행동의지의 소산이며 따라서 본원칙 당위는 마땅히 실천의지 롤 동반해야 한다. 그러나 본원칙 행동의지가 반드시 현실져 행동의지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논 이미 일상져 행동의지 윤지니고 있으며 이는 많은 겅우에 본원저 행 동의지와 충돌 또는 간장 관계에 놓이게 된다. 그러므로 본원적 당위에 대해 충분한 실천의지 를 수반한다는 것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본원의 행동의지가 발현되는 마음의 상대 또는 이에 가까운 마옵의 상대를 의식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유지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12지금까지의 우리 논의에서는 우리 앞에 놓인 현실상황을 일단 제쳐 놓고 가장 원리적인 의미에서 본원칙인 당위의 추구와 여기에 대한 합의의 가능성을 고찰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 우리가 임의로 선덱할 수 있는 어떤 이상적인 출발점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형성된 하나의 구체칙 현실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느 이제 우리가 생각해야 될 문제는 우리가 본원적인 당위의 문제를 추구하여 기촌의 통념과는 다른 하나의 새로운 당위의 원칙을 얻었다고 할 때 이것을 우리의 구체적 사회현실 속에 어떻게 수용시킬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우리가 이재 새 가치이념을 들고 현실 속으로 뛰어든다고 할 때 우리는 팔연적으로 현실을 대변하고 있는 두 가지 커다란 기존질서와 부딪치게 된다. 새 가치이념의 반영에 있어서 커다란 처굴 요소로 작용할 이 두 가지 기촌세력은 바로 기존의 가치관념과 기촌·의 사회계도이다. 따라서 문제는 새로운 가치이념에 상치되는 기존의 가치관념과 기존의 사회제도를 어떻게 조정해 나갈 것인가 하순근것으로 귀착된다.사실상 이 문계는 얼핏 생각할 수 있는 바와 갈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모든 재도와 관념은 그 내부에 자체 방어적인 기능을 지니고 있어서 외부로부터 이 를 변형시키려 할 경우 오히려 그 반대방향으로의 반응을 나타내는 경향마저 가지게 되므로 각벌한 주의 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상져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기존질서에 대하여 우리가 어떤 구체적인 액션윤 가할 때 그 견과로 얻어지는 효과가 어떠할 것이라는 정확한 예측이 가능할 수도 있겠으나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에게는 아직 이러한 수준의 신뢰할 만한 지석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므로 오직 가장 신중하면서도 가장 본질적인 접근의 방식을 백하지 않운 수 없다.여기서 신중하면서도 본질적인 접근방식이라고 하는 것은 이러한 기존질서와의 대립윤 괴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질서를 구체칙인 이해 를 동하여 포용한 후 이를 보다 높은 단계로 이끌어올리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기촌의 가치관념과 기존의 사회제도에 대하여 그 근원칙인 존재이유부터 철저히 파악하고 그것의 긍정적인 기능과 현실적인 역할을 분명히 확인한 후 보다 높은 당위의 안목에서 현실적인 부적철성이 발견되면 이를 예리하게 지적해야 하는 것이다. 이형게 함으로써 일단 기존질서의 옹호자 입장에 서서 이것의 미비점을 발견하고 이를 향상시키는 내져작업에 참여하는 것이 된다.
이제 전동적 윤리규범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대부분의 전동적 윤리규범은 이것이 제정되어 전해쳐 내려온 오렌 기간 동안 상당한 긍정적 기여 를 해왔으리라고 예상이 되나 현대와 갈이 변화의 폭이 큰 상황직 여건 아래서는 만일 이것의 경직된 형식을 그대로. 고집한다면 의도하지 않은 불합당한 결과들이 초래될 가능성이 다분히 있다. 이러한 경우 우리는 이를 무비판져으로 준수하거나 직접적으로 배격하는 자세에서 벗어나 보다 고차적인 당위의 원리에 입각한 그 긍정적 의미를 확인한 후 이러한 긍정적 측면이 변화된 여건 아래서는 그 내용을 상실하거나 오히려 역기눙을 할 수 있다는 명확한 실증을 할 수 있어야 한다.전통적 윤리규범들 가운데에는 그 타당성을 새로운 각도에서 인정할 수 있는 것둔도 있겠으며 또 현대적 상황에서 그 타당성을 인정할 수 없거나 그 타당성의 영역 밖으로 확대 적용되고 있는 것들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을 우리는 위에 재시한 신중하고 본질적인 접근 방식에 의하여 선별적으로 재수용하거나 수정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그리고 정치, 경제, 교육, 종교를 포합한 기존의 사회재도에 대해서도 흡사한 방식의 접근이 가능하겠으나 이돌은 현실사회 내에서 부정적이건 긍정적이건간에 막강한 현실적 기능을 행사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보다 구체저인 현실 고려룹 포합한 보다 조십스런 접근방식이 요청된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기촌의 사회제도기존의 가치관념 및 여러 기존의 질서 둘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상호의존적으로 존속되어 나간다. 이리한 경우 이들에 대한 접근방식도 보다 포괄적이고 보다 깊이 있는 방식윤 덱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며 때로는 한 걸음 물러서서 보다 깊숙이 본원적 가치 문제로 복귀하여 기본칙인 합의부터 추구해 나가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한편 우리는 현실문재에 대한 이러한 일반적인 접근방식과는 별도로 보다 직접적으로 관심을 집중시켜야 할 몇 가치 기본적인 당면과제들을 안고 있다. 이제 이들을 조목벨로 간단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I) 현대의 가치이념에 대한 문제의식 제고현대 과학기술을7 동한 인간의 행위능력 향상과 이에 부옹하는 현대문화적 가치이념의 결여로 인한 십각한 불균형의 문제를 부각시켜야 하며 여기에 대한 웅분의 관십을 환기시켜야 한다.(2) 과학져 지식의 보급 및 지식추구의 방향성 문재새 가치이념의 추구 과정에서 요청되는 균형된 지식의 마련을 위하여 현대과학이 말해 주는 중요한 내용들을 신속히 정리하여 일만에게 보급해야 할 것이며 지식 추구의 방향에 있어서 종래의 부분져 확실성 추구의 겅향에서 전체적 관련성 추구의 경향으로느 그 강조참운 전환시 켜 야 한다.(3) 사회적 합의뮬 동한 본원적 당위의 설정 문제상반된 이해관계와 대립된 이데올로기를 지닌 인류 사회의 모든 계층에서 다갈이 합의할 수 있는 본원적 당위의 명제-률 조속히 섣정하고 모든 사회문계 해결의 기본 준거로서 이를 활용하도록 해야한다.(4) 단편저 고정가치관념의 불식 문제전몽적 가치관념을 무비판적으로 홍주=하는 과정에서 구체적 행위 및 구체져 대상 위에 부여한 선, 악, 귀, 천 둥의 단편적 고정가치관념은 보다 근원쳐인 새 가치관념에 의하여 미판적으로 겁도되고 합리적으로 치환되어야 한다.
(5) 소집단적 이해관념의 불식 문제〈우리편〉과 〈상대편〉으로 구분하여 인위칙인 대립을 조장시키는 소집 단적 이 해관념 은 현대 인류가 물려받은 가장 위협한 본능적 문화칙 페습임윤 구명하고 부분보다 전체를 앞세우는 보다 근원적인 당위의 관념에 의하여 이 를 조속히 치환시켜야 한다.(6) 산업개발과 생태계의 보존 문제지구 생대계에 대한 비가역적 변화 조작을 최대한으로 여제하며, 불가피한 경우에는 그 결과에 대한 세심한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생대계 보존에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이며, 특히 새로운 산업의 개발에 있어서 그것이 생대계에 주는 영향분 아니라 인간 자체에게 주는 영향을 보다 간 안목으로 겁토해야 한다.위에 제시한 여섯 항목들은 이미 앞에서 논의하였거나 또는 논의된 원칙으로부터 쉽게 파생되어 나운 수 있는 내용들이다. 그러나 그 중요성의 막중함에 바하여 전통적 가치관념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중요성이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 항목들이어서 여기서 의도적으로 다시 한 번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서 이들은 앞으로 다론 모든 것에 우선하여 집중져인 관십의 대상이 되어야 할 항목들이기도 하다.참고문헌Graham, L. R., Between Sdence and Valtl6s, Columbin University Press (1981). Hare, R. M., Moral Thiltking, Clarendon Press, Oxford(1981). Kranzberg, M.. (ed. ) Ethics in 011 Age of Pervasive Technology, Westview Press, Boulder Colorado (1980).Regis Jr., E., (ed. ) Gewirtlt's Ethical Rationalism, U. of Chicago Press (1984) . Sperry, R., Science and Moral Priority,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3). Storer, M. B., (ed. ) Humanist Ethics, Prometheus Books, Buffalo, New York (1980). Taylor, R., Good and Evil, Prometheus Books, Buffalo, New York (1984). Warnock, G. J., The Object of Morality, Methuen & Co, London (x97x).
과학과 가치와 인간화
鄭載植머리말1970년대 초부터 우리는 환경, 에너지, 식량, 인구문제 등으로 인류가 위기에 처하계 되었고, 과학·기술을 동하여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 제한된 것이라는 사신윤 뒤늦게나마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현대인이 경제성장과 번영을 추구하기 위하여 그동안 너무나 인간저인 대가를 지불해 왔다는 정윤 께닫게 된 것이다. 과학 • 기술의 무제한져인 발전윤 동하여 인간과 환경융 조작함으초난서 인간 사회와 경재가 끝없이 발전하고 번영할 수 있으리라는 문화적인 가치관과 이와 관계된 사회 구조는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판명된 것이다.환경보전과 경재 성장, 취업, 건강과같은 가치 를 우리는 다 함께 추구할 수는 없다. 우리는 뒤늦게나마 늘어나는 인구로 인해 자원의 제약윤 받게 되고, 경제성장은 자연보전의 요구와 상반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상반되는 가치 때문에 우리는 어떤 가치를 더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선호하느냐 하는 어려운 선덱의 문제에 당면하게 되었다. 이런 선맥의 문제는 인간이 사람답게 살아남기 위하여 짊어쳐야 할 책임이 무엇이며 사회적, 문화칙으로 우리가 결정해야 할 정책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와 관련된 윤리적인 사색을 요구한다.
여기서 우리가 말하는 윤리란 종래의 개인적인 인간관계의 윤리가 아니타 인류공동체의 생존을 책임지는 문제에 촛점을 두는 보다 거시적인 윤리다. 이란 인류공등체의 생존과 관계된 윤리는 개인의 양심과도 관계되지만, 자연 생태계의 파괴, 인류의 떨종을 가져운 수 있는 무기, 인간생명관의 과격한 변혁가능성, 자연의 고갈과 인간의 팔요를 충당하는 문제와 관련된 정의의 문제 둥을 어떻게 구조적으로 해건하느냐 하는 기능적인 윤리의 성격을 띤다. 이것은 또한 종래의 존재론적인 윤리로부터 인간이 살아남기 위한 목칙을 위하여 우리가 어떻계 행위를 해야 하느냐 하는 규범적인 평가와관계된 책임윤리로의 전환을 뜻한다. 인간의 지식이 그 기술적 응용윤 거친 산업화, 기계화를 동하여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게끔 된 상황을 감안할 때 기존의 사회구조나 규범칙 규칙을 대체할 수 있는새 차원을 탐구하는 과제는 지식 • 기술 · 윤리의 연관성에 관한 매우 어러운 문제를 제기한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윤리〉라는 말은 단지 도덕적인 원리, 또는 도덕칙 규범체계라는 좁은 의미보다는 인간 • 사회의 존속에 대한 책임의 문제믈 뜻한다. 이러한 윤리는 과학 • 기술에 대하여 인간이 기대하는 바가 무엇이며 그것이 인류에게 미치는 영향이 무엇이며, 과학 • 기술에 대하여 인간이 져야할 책임이 무엇인가를 밝혀 주어야 할 것이다.1)1) C. A. Van Peursen, T/,c Strategy of Cr1/ture(Leyden: North-Holland Publishing Co., 197-4).『文化의 戰略』吳榮煥옵김, 法文社, 1979, 제 7 장•
여기서 말하는 윤리는 순수한 지져인 직관이나 계시나 형이상학
칙인 군재 론적 규법과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핵 과학, 생명 과학,의 료 기 술과 같은 놀라운 과학 · 지식의 발달로 인해 조성된 구체적인 인간 상 황 에서 인류가 어떻게 살아남느냐 하는 문제와 관계된다.즉, 이것은 연달아 일어나는 구체적인 상황을 인간의 생명에 내한외 경 이나 자유 · 정 의와 같은 미래지향적이고 전체 지구의 성원들에계 찬동을 받윤 수 있는 가치체계의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2)
2) Eric Ashby, •The Search for An Environmental Ethic," Sterling M. McMurrin ed., The To1111er Lectures 011 Human Values(Salt Lake City: University of Utah Press, 1980), pp. 1,..,,,47; Emile Benoit, Progress 011 S11rvival(New York: Praeger, 1980).
현대 사회의 묵징은 자연을 지매하는 유효한 수단이란 논리 속에서 인간의 경험을· 도구적으로 정리해 주는 과학 · 기술이 주도저인 역할을 하면서 문화와 사회를 변화해 온 것이라 할 수 있고, 과학·기 술의 발달은 최근까지 문명 발달의 쳐도가 되어 왔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과학 • 기술의 창조성과 우리 인간의 대표적인 가치라고 할 수 있는 물질적, 사회칙, 환경져 가치와는 서로 어긋난 갈등 관계에 있다는 것 을 알게 되었다.
3) Jan G. Barbour, Tccl111ology, Envirq11me11I, and Huma11 Volucs(New York: Praeger, 1980) pp.
물질칙 가치는 핵전쟁이나 인구의 폭발이나 우주저인 기후의 년화와 같은 위 협 으로부터 살아남는 문제, 농업 기술과 의약의 부작용으로부터 건강윤 보호하는 것, 기술 혁신윤 동한 보다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것, 뜻 있논 직업을 갖는 것 둥을 포함한다. 한편 사회칙 가치는 분배의 정의, 자발적인 참가의 자유, 공동체저인 인간 관계, 행 복한 삶의 비전에 따라 자기 몰 실현하는 것 등을 뜻한다. 환경칙 가치는 장기적으로 자원윤 보존하고, 인간과 모든 창조물듄과 미래의 세대 들올7 위해 생대계 품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4)
4) 윗균.
기숟져 창조성을 동해 물질져 가치 륜 추구하는 한편, 사회지으로인간의 자기 해방과 자기 성취란 인간적 가치 몰 실현하는 과업윤환경보촌의 책임과 함께 수행하기 위해서는, 인간성취에 대하여 이때까지 가졌던 이미지와는 다론 대안적인 이미지와 미래에 대한 새
로운 세 계관이 요구된다.
과학 • 기술과 자연환경과 자원, 경제 성장의 문제, 정치 사회 문재 둥의 상관 관계물 고려하기 위해서 우리는 인간이 자연에 대해 갖고 있는 대도를 규정해 준 여러가지 문화적인 전제 죽 기본칙인 신념과 가치를 제대로 이해할 팔요가 있다. 이것은 오늘날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생태학적인 위기와 과학 • 기술로 인해 인류가 겪고 있는 난처한 입장윤 가져오는 데 기여한 문화적인 태도와 제도률 분석하는 한편, 앞으로 이런 문제해결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해 보는 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서구의 자연관은 자연을 정복하고 이용하는 대도를 낳았고, 이러한 태도는 성서적인 견해와도 관련될 수도 있고, 그리이스 사상과 현대 과학과 미국의 개척 정신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와 산업 ·기숟과도 관계된다. 현대 문명의 위기를 가져오는 데 기여한 이러한 자연관과 대조되는 태도는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주장하는 견해다. 이러한 자연관은 近겨t과 미국 인더안과 동양의 자연관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I8, I9세기 의 로맨틱 문학과 I9세기 의 초월주의 transcenden. talism 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최근의 생대학 운동도 인간과 자연의 일치를 주장하고 있는 경우라 할 것이다. 세번째의 자연관은 자연의 정복과 자연과의 합일과의 중간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 즉 자연의 수호자로서의 책임을 강조하는 견해이다. 이러한 견해는 혹은 전자에 가깝기도 하고 혹은 후자에 기울어지기도 하지만, 대체로 문명과 자연의 중간지대를 겨냥하는 견해로서, 우리는 이런 입장을 기독교 성서 사상 속의 청지기 책임 stewardship 사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한편 경계 성장에 회의를 품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책임과 합께 사회 정의률 부르짖는 여러 주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기술의 역할과 성장의 문재와 정치 · 경제재도의 변혁에 관한 새로운 해석이다.5)5) 윗균, pp, 13~3.C.
우리가 당연한 어려운 선택은 안간과 자연의 문제뿐만 아니라 기술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도 판계펀다. 자연과 안간에 대한 기술의 영향올 평가하는 문제와 함께 우리는 기술의 미래를 명가하는 데 있
어서 인간적 환경적 가치가 어떻게 관계되는지도 생각해 봐야 할것이다. 기숟은 우리에게 보다 나은 삶을 줄 수 있다는 낙관론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는 동시에 우리논 신학자, 실촌주의 철학자, 사회 사상가, 대항 문화 추종자들이 본 비관직인 기술관도 살펴봐야 하겠다. 그런데 우리는 기술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인간성취에 대한 너무 일방적인 신념과 가치관이 문제라는 점도 생각해 봐야 하겠다. 여기서 우리는 개인의 의식의 변화, 대안적인 삶의 스타일, 공동체의 경험, 그리고 인간의 복지와 사회정의, 자유 등을 위해 기술을 재평가하고 재정립할 수 있는 사회 • 정치 제도의 확립과 갇은 문계도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기술은 사회적 권력의 도구로 이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과 환경의 가치 실현을 위해 이용될 수 있도목 기술을 인간화하는 문제는 생태학칙으로 건전하고, 사회척으로 정의롭고, 인간성취에 이바지할 수 있는 창조적인 기술의 개발과 관계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적인 가치와 환경저인 가치를 윤리적인 원칙분만 아니라 정책 결정, 정치 책략, 개인의 삶의 스타일에 어떻게 반영하느냐 하는 문제는 아주 실제적인 지혜를 요구한다.6)
6) 윗 굳, pp. 58.
환경 윤리는 인간이 개명된 자기이익윤 추구하고, 미래의 세대들에 내한 의무륜 다하며, 인간 외의 촌재들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일과 관계된다• 환경 윤리는 인간의 생존 윤리와 관계되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의 생존과 자유, 정의, 물질적 복지와 갈은 가치가 어떠한 서열 관계에 놓이게 되느냐 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문재는 어떻게 인간과 환경의 가치를 이론적 실천직으로 종합하느냐 하는 과제다. 사회변혁은 가치와 제도의 변혁과 관계되며 한편 이것은 새로운 방향를 모색하는· 문제와도 관계된다. 좀더 정의몹고 민중이 다같이 참여할 수 있고 환경을 보존할 수 있는 사회륜 이묵하기 위하여 우리는 새로운 방도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란데 이것은 기술의 재정립 reorientation, 새로운 개인의 삶의 스타일의 정립, 미래에 대한 새로운 비전의 발견을 구한다.
1 현대사회와 인간의 생존
(1) 현대과학에 대한 〈새로운 비관주의〉서기 2000년이 다가음에 따라 인류의 미래는 인류가 자기 과멀의 경로를 밟고 있기 때문에 아주 어둡계 보인다는 미관론이 팽만하고 있다. 서구문명을 주축으로노 하는 현대문명은 붕괴되고 있으며, 핵전쟁, 완경의 공해, 자연자원의 고갈, 국재칙 국내적인 빈부의 져차와 같은 문제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인한 사생황의 사회칙인 감시와 규제로 전동칙인 문화처인 삶은 어려워지고 있다. 과학 · 기술은 세계를 점점 지배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미래륜 개척해 나갈 수 있다는 종래의 낙관주의는 흔들리고 있으며 〈새로운 비관론〉7) 마처 일어나고 있다. 도시문제, 인종문제, 국재간의 분쟁 같은 문제는 이젠 도처히 우리가 해전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르고 만 것이 아니냐는 느낌윤 준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위구십을 더해 주는 것은 핵전쟁, 생명과 건강의 위협, 오토메이션의 증가와 과학칙 기술이 가져오는 예측하기조차 어려운 결과이다. 과학적 기술은 인류의 멸망을 초레하여 삶의 質율 처하시키는 것 말고도 우리의 전동칙인 종교직, 철학적 가치를 붕괴시키며 궁극적인 삶의 뜻을 잃게 만드는 것이 아니냐 하는 새로운 비관주의를 우리는 주목하게 된다.8) 아직도 과학적 지식을 확장할 기회는 무한하다고 믿는 것이 모돈 과학자들의 공통적인 신념이겠지만, 이 이상 지식의 응용을 확장하는 것이 과연 현명하며 안전한 것이냐라는 질문을 하는 과학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사실윤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지구 위에서 해야 할 일, 예를 들면 질병의 극복, 세계 평화의 유지, 도시문제 해결, 자연의 보호 갈은 일들이 시급한 데도 불구하고, 우주 탐색과 같은 일들이 단순히 우리가 감7) Rene Dubos, So Human An Attimal(New York: Charles Scribne.r's, 1968).pp. 9~22.8) 윗군.
당할 수 있는 도전이라는 이유로 이것을 추전한다면, 이것이 과연 경제칙으로나 윤리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느냐 하는 전문을 우리논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질문은 가치판단과 선멕의 문재와 관계된다.
기술적인 발전은 우리가 예기하지도 못한 문재들을 야기하기 때문에 가치판단과 선택의 문제는 점점 새로운 딜레마를 낳고 복잡해진다. 이것은 경제적 기술칙 성장은 사회봉재의 강화, 교동지옥, 환경오염, 소음공해와 갇은 바람칙하지 못한 건과믈 낳는 것을 보떤 알 수 있다. 우리가 식량부족, 육체칙으로 감당하기 힘든 노동, 사회칙인 고립과 갈은 문재들을 과학적 기술운 동하여 보다 많은 식량생산, 안락한 생활, 편리한 커뮤니케이션의 혜덱 둥을 누리는 생활상대에 이르도록 어느 정도 해결한다 해도, 그 대신 우리는 전보다 더 귀찮고 어려운 문제들을 부산물로 낳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경제적인 풍요와 과학적인 획기적 발전은 역설칙으로 우리가 바라는 황금시대에서 우리가 점점 멀어져 가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같다. 이러한 〈새로운 비관주의〉는 과학이 모든 문재를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윤 대중들이 점점 깨닫게 된 것 때문에 생간 현상이다.9) 윗굴, pp. 9~13.
고전직인 시대, 신앙의 시대, 이성의 시대, 로멘틱한 시대와 갈은 역사저인 시대구분은 하나의 실재라기보다는 어떤 좋았던 흘러간 지난날이라고 기여되는 삶의 질을 영두에 두고 하는 말들이다. 이에 비해 우리의 시대는 원자력의 시대니 우주시대니 오토메이션시대니 유전자 공학시대니 하는 과학 • 기술저인 시대로 이름 붙여 표현하는 것을 혼히 볼 수 있다. 과학 • 기술의 시대에 사는 우리는 전보다 풍요와 기술적인 발전과 의료적인 해덱을 많이 누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한편 거꾸로 만성적 질병과 고뇌와 전망에 더 시달리계 된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인간의 삶과 전체져인 완겅과의 화합적인 관계를 잃어버린 데서 오는 소의감에 사로잡혀 의미상실에 마쳐 있다. 이것은 신촌주의 철학자들이나 신학자둘, 뭇소 Jean Jacques Rousseau 나 마르크스 Karl Marx 와 같은 고전져 사회사
상가들뿐만 아니라 뒤보 Rene Dubos 와 같은 현대 과학자들도 다 지적하고 있는 현상이다.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분리시켜 놓은 기술세계인 현대인의 생활환경 속에서 현대인은 동물원 에 갇힌 동물처럽 자기의 본래적인 변하지 않는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은 다론 사람둘과 자연에서분만 아니라 자기의 기본적인 자아로부터도 소의된 존재가 되고 말았다.10) 기계 화된 동물과 같은 인간은 장차 바인간적이고 집단칙인 기관들의 수동칙 이고 목적 없는 도구로 전락되고 말 것이라는 비판은 아주 비현실적인 말은 아닌것 같다.11) 인류의 멀망과 같은 종말론적인 상황을 연하계 된다 해도 장차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의 삶이 모래알처럼 산산히 훈어지고 대중사회 속에서 집단화되는 역설적인 견과에 이르리라는 것을 집작할 수 있다. 12)
JO) 윗 굽 pp. 16~17.11) Lewis Mumford, Tl,a Mytli of Machina(NewYork: Narcourt, 1967).12) William Kornhauser, Tits PoUtics of Mass Socicty(Glencoe, Ill. : FreePress, 19,9).
문명이란 살아 있는 유기체와 같아서 한 문명은 그에 속한 사람듈이 지나 온 역사저인 경험과 그 문명의 자연조건과 그 문명이 가지고 있는 습득된 재주나 기술을 종합하는 하나의 내적인 논리에 따라 개발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서양의 중세기 문명윤 말할때 그 문명의 내적인 논리 를 이루었던 기독교 신학과 스콜라 철학을 생각하게 되며 그것이 낳은 바람칙하지 못한 결과로 중세기가 끝을 맺게 되었다는 것을 지칙하게 된다. 이와 같이 현대문명을 말할 때 우리는 과학져 기술울 주목하게 되고, 이것이 현재의 추세대로 간다면 현대 문명은 자멸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기술은 주어전 시간에서 무엇이 가능하냐 하는 것은 우리에게 보여주지만 무엇이 바람직한 목적이냐 하는 문제는 규정해 주지 않는다. 이것은 공동의 신념이 있을 때에만 가눙한 것이다. 우리에게 무엇이 바람직한 목표가 되어야 하는가를 보여줄 공동의 신념을 우리 현대인은 아칙도 갖고 있지 못하다.
(2) 현대인의 신화- 진보
과학 · 기술을 주축으로 형성된 현대문명의 근본칙인 문재는 물질저인 차원의 문제로 보일지 모르나, 사실은 그러한 문재의 밑에 깔려 있는 가치체계, 동기, 대도의 문재와 관련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가 물어야 할 근본칙인 문제는 기계적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다.이것은 인류가 영원히 물질적인 성장윤 이 룩해 갈 수 있다는 진보와 성장의 개념과 관계된다. 우리는 지금 점점 고갈해 가고 있는 유한한 에너지, 즉 자연자원 때문에 이재는 더이상 우리가 그 동안 믿어 왔던 진보와 성장의 개념을 유지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고 말았다.13) 우리는 지금 유한한 자원을 보존하고 지구의 파멀울 방지하고 인간이 이 땅 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이때까지 우리가 믿어왔던 전보의 개념을 대체할 새로운 신념 을 찾아야만 하는 다급한 지점에 처해 있다. 새로운 세계관과 그것에 의해 초래될 새로운 사회의 개념을 생각해 보기에 앞서, 우리는 현대 서구문명의 기초가 되어 왔고 전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끼쳐 온 사고방법인 진화의 개념을 살펴봐야 하겠다. 우리의 미래에 대한 비견은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는 데서 가능해진다. 역사는 우리의 미래를 비쳐 주는 등불이기 때문이다.13) Jeremy Rifkin with Ted Howard, Entropy: A New World View, 김 건, 김 명자 옮김, 엔르로파 : 새로운 세계관』, 정읍사, 198', 계 1 장.
우선 고대 그리이스의 역사관을 살펴보면, 그리이스 철학자들은 역사를 현대인과는 달리 파악하였다. 그들은 여사란 완전한 상대로 향해 가는 것이 아니타 질서로부터 혼돈으로 끊임없이 혼돈윤 되 풀이해 가는 과정으로 보았다. 그들의 세계관에는 꿇임없는 변화나 진보의 개념은 있을 수 없었다. 진보란 훌륭한 가치나 질서 륜 세계에 실현시키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정반대로 혼돈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질서와 혼돈운 거듭하는 순환의 역사관에서는 가장 좋은 사회질서란 되도록 변화하지 않는 세계, 되도록 전보 즉 타락을 외떤하는 질서를 뜻했다. 인간의 과
거에 관한 사색은 그리이스 사상의 두드러진 득칭이었지만 미래에 관한 추측은 드물었다. 전형적인 그리이 스인 은 과 거지향적이었다. 인간의 과거, 현 재, 미래에 관해서 처 음으로 이 론칙 으로 밝혔던 헤시오드 Hesiod(ca. 700B.C. )는 역사를 점진적 인 타 락의 과정으로 해석함으로써 일종의 미관주의칙 견 해 를 보였다. 기원전 5세기경에는 과학을 동한 〈진보〉란 개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이후에는 에피큐리안들윤 제하고서는 〈전보〉의 개념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없었고 모두 다 순환론저인 역사관을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온 과학의 발달은 그와 반대로 도덕적인 되보률 가져온다고 생각하였다. 14)
U) Rifkin, Entropy, pp. 19~21 ; E. R. Dodds, .. Progress in classical Antiquity,• D:"ctionary of the History of Ideas, Philip P. Wiener, editor in chief (New York: Scribner's, 1978), 3 : pp. 623~633.
중세유럽을 지배하고 있던 기독교의 역사관은 그리이스의 〈순환·회기〉의 세계관을 부정했다. 그러나 역사를 창조, 속죄, 최 후의 심판으로 나누고 역사를 악과 선의 두쟁 속에서 악이 혼돈과 붕괴 를가져오는 것으로 본 점은 그리이스의 역사관과 공동한 바도 있었다. 기독교도들에게 있어서 역사를 만드는 것은 신이지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이 이지칙인 자기 뜻대로 살기 위하여 신의 뜻을- 어기고 싸워나간다는 생각은 있을 수 없었다. 모든 인간의 행동과 사건온 신의 뜻으로 향해 전진해 나간다는 뜻에서만 의의가 있었다. 여기에서는 인간이 신의 뜻에 따라살아야하는 의무감, 책임감이 문제였지 인간의 자유나 권리나, 또는 그의 노력으로 완전한 상태로 진보할 수 있다는 전보의 개념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인간이 자기의미래 를 자기의 능력으츠L 개척해 나갈 수 있으며 또 그래야만 한다고 믿는 〈전보〉의 신념은 과학이 발달하고 합리적이고 휴머니스틱한 세계관이 정립되고 정치적 종교직인 자유를 얻게 된 이후에 생간 것이다.15)
1~) Dodds, ~군, 3 : pp. 633~636.
전보의 개념 즉 인간의 역사는 바람직한 미래 를 향하여 다소간계속적으로. 웅칙여 나간다는 생각은 17세기 말에 형성되기 시작하여 19세기에 그· 철정에 이르렀다. 무엇이 바람칙한 것이냐 하는· 데
는 여러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전보의 개념은 목정한 목표나 어떤 방향을 향해 간다는 뜻을 내포하며, 이것은 여러 다른 가치 개념에 따라 무엇이 진보냐 하는 판정이 각각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 자연의 정복, GNP 의 증가, 도덕저 발전, 학문의 증가 같은 것이 진보를 가늠하는 척도가 될 수 있은까? 기술의 발전이 진보의 쳐도라면 기술 발전이 도덕적 발전을 동반하지 .않는다는 문계는 어찌 되는가? 베리 J.B. Bury 는 〈증가되는 행복〉을 바람직한 것으로 보았고 칸트 Immanuel Kant 는 자유를 몽하여 얻 는 도덕적인 완성울 바람직한 발전의 목적으로 생각하였다. 스팬서 Herbert Spencer 는 발전의 목저 온 최 대 의 행 복인데 , 점 점 개 인화즉 분화되면서 상호의존적으로 되는 것이 전보를 가늠하는 쳐도라고 보았다.
16) 귓균, pp. 636-638.
우리가 전보를 말할 때 또 문제로 삼아야 할 것은 우리가 지성이나 행 복을 추구하는 데 사실 얼마나 진전을 보았느냐 하는 물음온 전보해 나아갈 이상저인 목표와는 구별 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 는 진보란 일반저이고 불가피한 목표이며 우리는 이미 확정된 어느 목표륜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도 문계로 삼아야 하겠다. 인류는 하나이기 때문에 각 민족의 역사를 종합한 것과는 다론 인류의 보편저인 역사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비꼬 Giovanni Battista Vico, 보르메 르 Fran(jois Marie Aionet Voltaire, 뮈 르고 Anne Robert Jacques Turgot, 허 더 Gottfried von Herder, 칸트 동이 지 처 한 바이다. 인류사회의 현상을 데카르트 Rene Descartes 의 자연법의 개념윤저용합으로써 역사발전의 법칙을 추구하는 데 공헌윤 한 뭉데스키 외 Charles de Secondat Montesquieu 의 뒤 룹 이어 생 시 몽 ClaudeHenri Saint-Simon 과 콩트 Isidore Auguste Marie Fran(joic Comte 가 사회발전 또는 진화의 법 을 재시하고자 한 시도는 찰 알려진 사실이다. 진화나 전보물 논할 때 우리는 진보가 불가피한 것이냐 또는 환경조건에 부수려1 인 것이냐 하는 문재 외에도, 인간의 본성은 상황과 재도와 교육에 따라 바뀔 수 있거나 완전해질 수 있느냐 하는 여부룹 묻는다. 인간이 완전해질 수 있다는 낙관적인 신념은 인간
본성이 환경의 변화에 따라 바꾸어질 수 있다는 이론과 인간의 지식이 증가하면 인간의 행위도 개선될 수 있다는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전보의 개념은 득히 과학 · 기술의 발전과 관련하여 윤리적인 문제를 제기하는곤 동시에 과학자의 윤리칙 책임문제 믈 낳는다. 또한 진보의 개념은 동서의 이데올로기의 도덕칙인 요소와도 관계된다. 동서 양전영이 겉으로 표방하는 것은 다같이 도덕적인 것이치만 그둘의 궁극적인 목적이나 가치관은 서로 다르고 그들이 사용하는 방법도 다르다. 마르크스주의가 주장하는 전보의 개념에 의하면, 인간이 생산력의 발전을 동하여 자연을 지배하는 힘이 중가함에 따라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현상 즉 자본가들에 의한 노동자 압박이 저어지는 것이 곧 진보이다. 그런데, 자본가들에 의한 노동자 착취와 같은 인간에 의한 인간 지배는 생산수단의 사유화에서 오며, 이런 조건으로부터 의 인간해 방은 공산주의 로 사회 가 년동해 나가는데서만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공산사회로의 년동은 역사적으로 필연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개인이나 계급도 그 년동의 방향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자기자신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는 자유는 완전히 발달된 공산사회 안에서만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인 증거를 미루어 볼 때 우리는 이러한 마르크스주의의 진보의 개념이 얼마나 헛된 꿈이었는가을 찰 알 수있다. 17)17) 윗 군, 3 : pp. 644,...,646.
진보의 개념은 혼히 〈전화 Evolution〉의 개념과도 갈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전보가 어떤 윤리적인 질서의 실현을 뜻한다면 진화는 윤리적으로 중립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물의 복잡성과 분화가 더해진다는 것을 반드시 진보적인 것이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카스트 Caste 제도는 매우 분화된 계충제도지만 그렇다고 카스트가 반드시 윤리쳐으로 가치가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진화가 여러가지 다론 형대로 풍성하게 나타나면서 환경을 크게 지배하게 되어 환경의 변화나 우연성으로부터 지배를 받지 않으면서 좀더 융봉성 있게 환경에 반응할 수 있게 될 때 사람들은 그
런 변화를 전보라고 불러왔다. 그런데 이러한 전보의 과정은 보편칙 인 진화의 법칙이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생물의 역사에는진보분만 아니다 되보와 타락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 사회가 불가피적으로 집단주의로 흐론다든가 Joseph Needham,인간의 진보를 위해서는 계급의 구분을 유지해야 한다든가William Bateson, 전체 주의 나 권위주의 는 찰못된 것 G. G. Simpon 이라는 말과 같은 일반칙이고 과학적인 진화의 법에 근거한 주장을할 수는 없다.18) 생물학이나 사회학에서 불변하는 진화의 법을 찾는다는 것은 과학칙인 방법 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생명체나 인간사회 의 전화는 하나의 독북한 역사직 과정이며 그러한 과정은 여러가지 목수한 원인들에 의하여 일어나기 때문이다. 하나의 특수한과칭을 근거로 불년하는 일만적인 과정에 관한 법칙을 세운다는 것은 과학적, 보편칙 법칙이라고는 할 수 없다.19)
18) 윗 균, 3 : pp. 646~647. 19) Karl R. Poppe.r, The Poverty of Historicism(Boston: Beacon Press, 19.57), pp. 108~109.
많은 인간 사회에서 사람들은 역사의 년동과정을 대체로 생각할매 인간의 조건은 더 나빠질 수는 있어도 좋아질 수는 없다고 믿어온 것이 사실이고, 황금시대 를 생각하더라도 그것은 과거에 있었던 것이지 미래에 다가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18세기 이 후의 현대사회에서는 변동과 개혁에 관한 큰 역류현상이 일어났다. 이 들은 이성을 통하여 사회 · 도덕 · 종교 · 정치 동 모든 것이 전보하고 자기 자손들은 보다 나온 세상에서 살 수 있게 되리라고 믿게 된 것 이 다. 매 이 컨 Francis Bacon, 데 카르트, 디 드로 Dennis Diderot, 콩도르세 Marquss de Condorcet, 다윈 Charles Danvin, 마르크스 그리고 콩트와 같은 사상가들은 이러한 인간의 전보의 개념과 함께 연상되는 대표적인 인물둘 이다. 20세기 미국의 실용주의자들, 마르크스주의자들, 논리저 경험주의자들도 이 전몽을 이어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제 1 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이러한 진보의 개념은 자유주의와 합리주의 전몽의 가장 큰 오류라는 지저 울 받게 되었다. 20) 과시즘, 나치즘, 공산주의와 같은 정치종교, 제 2차대전과
20) Paul Edwards, editor in chief, Tito Encyclopedla of Philosophy(NCW
동서간의 각축, 날로 늘어가는 국제적인 분쟁과 폭력 둥은 인간사회가 무한하게 진보할 것이라는 꿈을 겠다. 그간 과학과 기숟이 발달하여 인류에게 병의 치유, 농업기술, 물질생산, 신속한 교몽, 커뮤니케이션, 문맹의 되치와 같은 혜맥을 주어 온 것은 사실이다. 현대과학 자체는 본래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이 지식이 갖는 엄청난 힘이 사람들에 의해 어떤 목적을 위해 어 떻 게 사용되느냐 하는 것을 결정해 준 가치와 신념체제이다. 2 1) ·현대 륜 부패시킨 진법인은 과학의 철학적인 사고방식이 아니고 오히려 이기십, 개인저 권력, 물질 소유욕, 순간칙인 쾌락의 추구 등과 관계된 세속저인 가치체계라고 본 위딩돈 Conrad Waddington 의 견해는 대표져인 것이라 하겠다.22> 그런데 이때까지 과학 • 기술이 인류사회에 끼친 영향을 평가해 볼 때 과학 · 기술이 우리에게 준 혜댁 을 위해 인류가 그동안 지 분해 온 댓가가 너무 크지 않았느냐 하는 의문이 일어나게 되었고, 현대과학, 지식이 지금까지 응용되어 온 추세대로 간다면 인류를 멸망시키고 말 것이 아니냐 하는 위구십이 편만하게 된 것이다. 물론 여기서 우리는 지식의 발달과 응용으로 말미암아 인류가 연마나 큰 혜덱을 받게 되었고, 핵무기의 동제와 원자력의 관리와 같은 어려운 일을 위하여 지금 인류가 무척 노력하고 있는 점이라든지 인간의 복지 를 위해서 인류가 끈질기게 에쓰고 있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따라서 전보와 과학. 기술의 역할과 윤리적인 문재 플 다 함께 올바르게 평가하는 일은 매우 어렵고 모호한 작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York, London: MaCmillan & Free Press, 1967), 6 : pp. 483-87. 21) Van Rensselaer Potter, Bioethics: Bridge to the F11ture(Englewood Cliffs, N. J. : Prentice-Hall, t 971). r夕久_―生存0 科平』, 東京, ' / 4 十근 / F 社, 1974, p. 1 ooff. ; Roger Sperry, Science a11d Moral Priority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3), p. 22) 콘라드 H. 위 딩 돈, 李元植옮김, r미태의 인유사회 J 서 운 : 한마·음 사, 1982
전보의 개념은 거대한 역사적 추세의 윤리적인 성격 을 식 별 하는일, 죽 인간에게 좋은 것이 무엇이냐롤 규정하는 도덕적인 개념과 관계된다. 또한 이것은 우리의 도덕칙인 이상과 정의의 개념이 시대저인 상황에 따라 변하며 이 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도 달라질 것
이며, 인간은 자기의 미래 를 개척해 나갈 능력과 의무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진보의 개념은 인간이 이 땅 위에서 보다 사람답게 살아 나가기 위하여 공동의 과재로 삼아야 할 일이 무엇이며 극복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 를 비판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원칙을 모색하도록 촉구해 준다.23)
23) E. R. Dodds, •Progress in Classical Antiquity,• 3 : 6.(7--.,6.(9
2 가치의 충돌과 위기에 빠진 현대의 가치체계
(1) 과학파 가치지금까지 전보라는 개념은 기계적 세계관을 내포하는 뜻으로 사용되어 왔다. 진보란 질서가 잡혀 있지 않은 자연계가 보다 질서가 잘 잡혀 있는 물질져 환겅으로 변화되고 그것을 인간이 이용하게 된다는 뜻으로 사용되어 온 것이다. 이것은 원초적인 자연을 인간의 조작을 동해 인간에게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드는 방법 즉 과학의 발달윤 진보와 동 일시했다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과학은 방법론이며, 이 를 동해 얻은 자연에 관한 지식을, 정한 사례에 응용하는 기술은· 과학과 함께 기계저인 세계관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24) 이러한 기계적 세계관을- 마련한 이둘은 베이컨, 데카르트, 흄 David Hume 및 뉴론 Isaac Newton 둥인데 현대인은 아직도 이들의 생각에 의거하여 살아가고 있다.24) Rifkin, Entropy, pp. 40.
정신은 물질과는 근본적으로 다론 것이라는 物心二元論과 실체와 현상을 原子化하는 분석 져 사고는 디 마크리 터 스 Democritus C(460-370 B. C. )와 데카르트 Rene Descartes, (1596-1650) 에 의해 주장되었다. 흄과 갈은 철학자는 가치관과 물질과는 전혀 다몬 것이며 과학연구에서 가치관의 문제는 배제되어야 한다는 주장윤 하였다. 뉴론온 기계져 운동윤 설명하기 위한 수학져 방법윤 발견하였고 자연의 모든 것을 수학법칙과 관찰에 종속시컸다. 이런 기계져 세계관
온 생활의 모든 質울 晶의 개념으로 환원함으로써 생명이 없는 우주관을 형성하였고 물질지상주의의 시대 를 초래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25) 뉴론과 같은 과학자들은 우주에는 정확한 기계칙 질서가 있으며, 이는 천체의 운동을 살퍼봉으로써 추론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들은 이 지구상 즉 인간사회의 정치 · 경제 생활에 혼란이 있는 까닭은 이 우주를· 지배하는 자연법칙에 사회가 충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그듄은 자연법칙의 지식윤 인간이 알아서 그 지식을 구사하며 자연법 칙 의 방법에 따라 살면, 사회는 무질서로부터 질서에로 나아갈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25) 윗문, 위 딩돈, r未來의 人碩社~.J, pp. 248, 2.53 : Dubos, So Ht1man An A1timal, p. 27.
이러한 우주의 법칙과 사회의 기능과의 관계 물 연결하는 이론을 세운 사람은 록-크 John Locke 와 아담 스미드 Adam Smith 였다. 록크는 인간온 타고나면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이므로 쓸데없는 습관이나 전동윤 배재하기만 하면 인간은 자연의 질서에 따라 개개인의 재산울 보호하고 富를 축칙하려고 노력할 것이고, 이러한 개인들이 모인 사회는 전체적으로- 풍요해지리라고 믿었다. 이러한 사상은 현대의 개인주의적인 사리사욕과 물질 중심의 사상을 낳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스미드는 록크와 마찬가지로 뉴돈의 기계적 세계관에 매혹되어 경제도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인다고 보았다. 그는 록크와 마찬가지로 인간 활동의 기반은 물질적 욕망을 만족시키는 일이라고 믿었다. 또한 이런 개인의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인만큼 국가가 사회져 규제를 가한다면 해로운 것이라고 주장하였다.26)
26) Rifkin, Entropy, pp. 33"'-J39; John Locke, Two Treatises of Government, ed. Peter Laslett(Cambridge University Press, 1967) ; Adam Smith, An I"qui" ,·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 ed. Edwin Cannon(London: Methuen, 1~1), vol. I.
데카르트, 뉴돈, 록크 및 스미드는 기계칙 세계관을 정립하여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다. 그들은 보다 많은 물질져 풍요묻 추구하는 일을 〈전보〉로 보고 풍요한 사회가 도래하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과학 • 기술은 물질적 풍요를 추전하기 위한 도구라고 생각한 현대 사회의 기수들이었다.
이러한 기계적 세계관은 1859년에 출판된 다원의 「種의 기원」에서 그 철정에 이르렀는데, 스팬서는 다윈의 학섣윤 기초로 하여 사회의 전화 · 존속의 이론을 세웠다. 여기서 自然海泳說은 造者生存說로 표현되면서 개인의 이기십을 조장하고 물질적 복지의 증진을 동하여 사회질서 를 정립할 수 있다는 견해로 발전하였고 현대의 기계저 세계관, 물질주의, 공리주의의 가치관을 이루어 온 것이다.
기계적 세계관은 진보의 개념과 연관되면서, 질서가 없는 자연계률 과학 죽 자연을 조작하는 방법을 통하여 보다더 질서가 잡힌 물질 처 환경으로 만들고 그것을 인간이 이용하계 된다는 낙관주의적인 견해 를 낳았다. 그탄데 이러한 현대의 여러 세계관들은 그동안 현대 사회 품 지탱해 온 에너지 환경이 이제 한계점에 다다르고 있기 때문에 면 화하지 않으면 안될 지점에 도달한 것 같다.27) 그러면 앞으로 세계관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이 문제를 다루기 전에 우리는 현대 과학적 세계관의 제한성윤 좀더 알아보아야 하겠다.27) Rifkin, Entropy, pp. 28~40.
우리는 앞에서 디마크리터스의 원자론저인 철학과 데카르트의 환원주의를 언급했다. 이 들은 인간의 주관성을 초월한 비인격적인 지식 추구의 방법 을 주장하고 그러 한 방법 만이 자연 현상을 과악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다. 이들의 견해는 I9세기 전반까지 주도적인 과학적 사고방식을 이루었으며 주로 생명이 없는 것을 대상으로 삼는 화학과 물리학의 발달에 기여했다. 그런데 최신의 과학 중에서 는 생물과학이 두각을 나타내게 되고 물리학도 기계칙 환원주의져인 견해를 넘어 전체적이고 생태학적인 견해에 홍미 를 갖게 되었는데, 이것은 아주 혁명칙인 추세인 것 같다.28) 뒤보는 만물이 유동한다는 것을 가르쳤던 그리이스 철학자해라크타이더스 Heraclitus 야말로 디마크리터스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과학적 휴우머니즘〉의 선구자라고 하면서 삶에 충실하기 위해서 과학은 유기재가 전체
28) Potter 는 전 체 적인 생대 학가 휴머니즘에 의 해 보완된 새로운 현재의 생군과학 온 일종의 과학 여 명 이 라고 할 수 있 다고 말한다. Potter, Bioethics, pp. 9~11, 11~39 ; Fritjof Capra, The Tao of Plzyslcs, 1979 『現代物理學가 東洋思想J, 況洋社., 1979 ; Fritjof Capra, .Buddhist Physics,. TIte Schumach(!r L‘cIures, ed. with an Introduction Satish Kumar(New York: Harper & Row, 1980), PP. 121~136, 137~143,
적인 환경에 어멍게 반응하느냐 하는 문재 를 취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과학적 지식에 이르는 길은 原子나 池子와 갈은 순 객관저 실체로서의 粒子로 환원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삶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 삶의 상황들을 복잡한 상관관계를 구성하고 있는 시스뎀으로 보는 상관관계성, 커뮤니케이션, 추세의 변화 ' 등과 연루된다. 삶을 여러 전문화된 목정한 기눙으로만 본다면 그러한 삶은 의미 를 잃 어버 린 삶 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우리는 더마크리터스의 원자주의와 데 카르트 의 환원주의를 보충할 수 있 는 생 태 학적 인 지 혜 , 죽 〈인 간과학 a science of humanity〉을 동해서 인간과 그의 기술과 환경의 조화를 찾아 현대 과학이 가져온 비인간화의 추세 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본래저인 재한성과 가눙성, 그가 습득된 후천칙인 특칭과 願望이 어 떻 게 서로. 뒤얽히면서 환경에 반응하는 가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29)
29) Dubos, So Human At1 Animal, pp. 27rv30.
인간의 정신과 비인간적인 자연 윤 아주 따로 갈라 생각하는 데카르트가 말하는 純客觀性이란 하나의 허구일 분이다. 인간의 환경에 대한 반응은 단순한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선덱적이다. 그는 환경의 어떤 양상온 외면하는가 하면 어떤 양상은 선호하여 친숙히 창조쳐으로 대응하는 살아 있는 경험의 주체다. 보어 Niels Bohr, 1885,...,1962) 는 과학은 객관직인 서술이나 실재의 섣명을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사실 과학자둘이 하는 일이 란 세계 듄 스스로 직접 관찰하거나 간접적인 계산이나 도구적인 조작을 동해서 얻는 경험을 분명하계 전술하는 방법을 발전시키는 데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실재〉란 말은 찬숙한 인간적인 경험과 관계되며 대체로 주관적인 요소듣 지닌다고 하였다. 30)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유전과 기여과 願望과 갈은 우리가 가진 과거에 의거하여 · 환경을 경험하며, 우리의 감각에 실재저인 것으로. 나타나는 현상만을 볼 수 있을 분이다.31) 객관성을 찾아서 과학자들은 〈나〉라는 추상적인 지각의 주
30) 윗군, pp.101~1os에서 재인용. 31) 윗균, PP. 1os~109.
체와 추상적 사고의 대상인 수동적 객체로 환원시킨다. 그러나 〈나〉와 〈그것〉(I-It) 의 관계 륜 몽해서는 인간과 사물의 전체성운 알 수가 없다. 부버 Martin Buber 에 의하면 인간의 본질은 개인이나 집단으로 환원하여 추상화된 것에 있지 않고 나와 당신 I-Thou 이란 관계에서처럼 다론 사람들과 세계와만물과의 살아 있는 관계륜 맺는 데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32)
32) 윗균, PP. 10~116.
생물학을 포함한 자연과학은 모든 생물과 사물에 공통저인 일반구조와 메카니즘을 파악하는 데 그 목칙이 있지, 하나의 특수한 개체로저의 생 물 이 환경에 반응하는 독특한 성격에 관해서는 관십이 없다. 그러므로 과학이 인간의 삶에서 참으로 중요한 문제들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일은 휴우머니스틱한 지식과 과학의 종합운 동해 서만 가능하다고 뒤보는 주장한다. 기계론적인 접근방법에 의해서 유기체 를 산산이 쪼개떤 우리는 인간의 삶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석적인 방법과는 다론 유기체칙이고 생태학처인 대도를 가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또 살아 있는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신적, 생리적인 목칭들이 항상 변하는 환경으로부터의 자극과 함께 개인의 득성에 의해서도 걷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개성을 이해해야만 된다는 것이다.33)
33) 윗굴, pp, 11~121.
생물학에서는 인간의 모든 생물적이고 정신저인 과정은 유전과 과거의 경험과 환경에 의해 조건지위지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란 용납되지 않는다고 믿어 왔다. 현재의 생명과학이 갖는 결정론칙인 성격 때문에 의식적인 自由意思란 생명과학에서는 용납되지 않는다고 인식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전 가장 인간적인 것은 바로 인간이 기계칙인 것이 아닌 무엇을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타는 사실을 기계적인 인간관은 간과하고 있다고 뒤보는 지칙하고 있다.34) 한편 그는 자유의사와 결정론의 양립성운 초월하기 위해서 우리는 새로운 개념윤 팔요로 한다고주장하고있다.3G) 자유의사나 선택의 기능은 아직도 과학자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보어
3) 윗굳, p. 132, 3) 윗굳 p, 129.
가 지적한 바대로 인간 행동은 관찰자의 시각 여하에 따라 자유의사에 의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고 결정론의 표현이라고도 생각될 수 있는것 같다.36)
36) 첫군, pp.129~130 ; 만일 인간이 기계이면 자유의지는 어떻게 되는가? 인간이 기계이민 기계는 어입게 새로운 생각운 만듭-어내는가? V.R. Potter는 이 덜레마는 인간은 질서와 무진서가 고도의 복잡한 건합운 이두고 있는 존재이기 때운에 대건이 가능하다고 봄으로씨 인종의 걷정론적인 설명옵 하고 있는 것 갈다. Potter, Bioethics, pp. 86~88.
인간의 자유는 환경과 유전된 본래적인 특성과 습득된 생물학적인 목칭에 의해 결정되지만, 한편 이런 제한윤 받으면서 표현될 수 있는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 인간은 물리학적, 화학적 결정요인의 지매몰 받지만 창조져으로 자기의 자유 결정에 따라 선덱하고 그에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참으로 인간적인 자질도 있다. 물리적, 사회적인 환경이 자유률 행사하는 데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 큰 만큼 우리논 할 수 있는 대로 인간이 행사할 선덱의 법위가 커지도록· 환경조건을 마련하는데 노력윤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인간본성에 대해 보다 잘 알 뿐만 아니라 인간의 환경을 어떻게 인간이 살아나가기에 쳐합하도록 설계해 나가느냐에 관한 확신, 죽 가치의 무제를 생각해 봐야만 할 것이다. 인간 행동의 지침이 되는 가치는 실제적으로 사회의 지배적인 태도와 인간의 성향, 편견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얻은 상식과 관계된다. 그런데, 앞으로 우리는 과학칙인 사실에 관한 지식을 근거로 삼아 좀더 분벨력 있계 가치를 선택할 가망성도 있다. 살충제나 제초제는 곤충이나 잡초 이외의 생명에도 예기치 못할 해독을 미찬다. 이와 같이 생명制御의 지식은 취급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위험한 지식〉이다. 불균형하게 발달한 지식을 무질서하게 버려 두지 않고 거기에서 새로운 평형을 찾는 일은 보다 많은 지식을 얻는 데서 가능해진다. 과학은 사회에 대하여 홍수와 갈이 새로운 위험한 지식을 공급하고 있지만 우리는 생명제어의 결과가 무엇인지는 찰 모른다. 따라서 우리는 이에 대한 보다 나온 지식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지식이 우리에게 미칠 수 있는 위험을 면하고 인간의 상태를 개선하기 위한 지혜룬 얻기 위해 우리는 보다 많은 지식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이 된
다. 인간의 자유는 제멋대로 행동하는 무질서륜 뜻하지 않고 도리어 의식칙인 가치선택을 동해 장래률 꾸려나가는 것을 뜻한다.37)
37) Potter, Bioatlzics, pp, s1~93, 97~104, 121~13,.
인간의 미래의 생존과 미래 세대의 삶의 질의 향상이란 관점에서 우리는 과학처 지식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하는 문재를 과학은 다루지 않는다. 과학칙 지식을 사회의 善윤 위해서 어떻계 쓸 것인가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지식은 지혜다. 이 지혜는 과학을 다론지식과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지식이기도 하다.38) 슈바이쳐는 〈우리의 시대는 지식을 사상에서 분리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그 결과로 실재로 제멋대로 움직이는 과학은 있지만, 반성하는 과학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라고 하였다.39) 우리는 지구의 환경을 평화적으로 보존하고 인간과 환경의 균형을 유지하며, 개인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인류가 살아남고 번영하기 위해서는, 이때까지 현대사회의 경제기능의 밑에 깔려 있던 가치관을 재검토하여 단산업사회의 새로운 가치관을 다시 세우고, 이룰 위하여 과학과 기술을 어떻게 이용하느냐 하는 가치판단·울 내려야 할 것이다.40)
38) 윗굴, pp. u~1,, 10~11, 92~94. 39) Albert Schweitzer, An Anlho/ogy(Boston: Beacon Press, 1948), Potter의 Bioethics, p, 71에 서 재 인용. ) 인간의 생뮴학져 본성과 생물학져 세계에 관해서 현실주의저인 지식에 근거하여 환원론울 생대학져 전재온과 휴머니스틱한 사상으로 보완하민서 지혜 즉 사외 ,4 인 신윤 위해서 어임계 지식운 사용하느냐 하는 문계윤 bioethics의 관점에서 다문 Potter의 윗 균, 뮤히 pp. 3~39 참조.
(2) 가치의식의 이론
인간의 생촌과 관계된 자연과 기술의 문제를 생각할 때 우리가 당면하는 문제는 도며적인 선덱의 문제다. 예를 들면, 자원이 고갈되어 가고 궁핍해지고 있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자원의 배분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누가 더 이익을 즐길 것이며 누가 사회가 결정한 정책에 의해 댓가룹 지불할 것인가? 개인과 사회를 위해 우리가 어떤 선댁윤 할 때 그 견과를 가늠하기 위한 규범은 무엇인가? 윤리져 가치의 규법 자체가 혼들탈 때 우리는 가장 고귀한 꿍극져 가치는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묻는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우주 속에서 인간이 해야 할 역할과 실존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묻는다. 옳고 그론 것윤 판단하는 문제에 관련된 가치는 인간의 가치가 끝없이 복잡하고 주관적인 데다가, 등임없이 바뀌는 목적에 따타 상대적으로 달라지는가 하면, 혼히 분합리하기도 하고 직관과 종교문화에 근거하여 있기 때문에 과학적인 분석이 힘들다.
인류의 미래는 기술이나 바깥 세계에 딸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의지하고 살고 있는,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가치와 산앙체계의 년동에 달려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오늘의 세계는 환경을 보촌하고 인류가 다같이 살아남기 위한 〈생 대 학적 인 신학〉41)을 요구하고 있다. 인간은 어느 정도까지 자기의 삶윤 스스로 결정한다. 인간의 가치나 신양체계는 환경의 조건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형성하고 다스리는 데 큰 역할윤 한다. 인구, 과학 • 기술, 물량주의, 신앙과 도덕져 가치의 상실과 갇온 현대의 문제둘은 따지고 보면 인간의 가치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왜 우리는 가치의 문제에 촛점윤 두어야 하는가? 인간의 가치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가? 가치의 근원과 구조, 그것의 역할은· 무엇인가?.CI) Gerhard Liedke, •solidarity in Conflict,• Faitli and Science in An Unjust World: Report of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Conference on Faith. Science and the Future, Vol. 1, ed. Roger L. Shinn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so), pp. so, 73~so.
가치의 연구는 주체져, 실천윤리칙인 선택 내지 결단의 과정 즉 우리는 무엇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길 것인가란 주체적 실천의 지침에 대한 반성과 관계된다. 한편, 그것은 우리는 무엇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고 있는가라는· 객관저 경험저 연구에 의거한·다. 사람둘이 지금 무엇을 귀하계 여기고 바라고 있는가를 알아야 우리는 적극쳐으로 우리가 바라고 추구해야 할 실천적인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우리가 가치의식을 말하는 이유는 우선 인간 자신과 그의 행위률 이해하고 인간의 행동을 예측함으로써 그 방향을 바로 잡자는 데 있다• 사실 인간은 자기가 의식적으로- 의욕하는 목져올 추구합으로써 자기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기 때문이다. 가치의식의 논의는 사회과학 제분야의 기초이론으로서 동일져인 인간과학
윤 정립하는 데 중심적인 요인의 된다. 가치의식은 개인칙으로나 사회전 체칙으로 우리가 어 떠 한 가치관을 사회에 정립함으로써 현실윤개 혁 하려 할 때 필수직인 조건이 된다. 42)
클럭혼 C. Kluckhohn 은 가치란 〈행 위자에 있어서 가능한, 행위의 여러 가지 방도, 수단, 목칙 중에서 선덱 을 하는 데 있어서 영향을 주는 바 람직한 것에 관하여 개인 또는 집단이 갖고 있는 明示的인 또는 II읍默的인 개 념 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43) 여기서 클러혼은 가치란 단순한 선호 이상의 것인데, 그것은 바람직한 것의 개념에 기초한 선호칙 인 행동에 한정된다〉44) 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가치는 주 체축의 요인으로 생각되 지만 가치 를 단순한 선호나 욕구와는 구벨 하고 규범저인 것에 의한 한정윤 강조하고 있다. 가치는 어느 독정의 대상 또는 대상의 속성으로서 객체측의 상황구조의 요소이돈가, 대도, 관념 내지 선호로서 주체측의 의식구조의 요쇼켜수도 있다. 가치는 단순한 욕구, 원망도 될 수 있지만 어떤 뜻에서논 규법 칙 인 기준에 관계되는 것에만 한정된 수도 있다. 가치는 의식칙인 행위에 있어서 선덱의 기준도 되지만 그것은 사람들의 선덱칙 행 위에서 추론된 구성개념이기도 하다. 가치는 의식적 선택행위와 관계되는데, 가치의 논의는 이 선덱 행 위가 역사저 사회칙으로 볼 때 미래에 다론 사람들에게 어떠한 질과를 가져올 것인가에 대한 의식적인 반성도 전제한다.45)42) 見田宗介, 『偵値意識0理설U, 東京, 弘文堂, 1966, pp. l~78, 253~313. 43) C. Kluckhohn, •values ..:nd Value-Orientations in the Theory of Action,• Talcott Parsons and Edward Shils ed., Toward A Ge1111ral Theory of Actio11(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51), p, 395.44) 윗 굴, p. 422. 45) 見田, r偵値意識0理始』, pp. l4~19.
인간은 동물과 달라서 자기 의 직 접 적 인 본눙쳐 충동에 사로잡힌 노예가 아니라, 현재의 자기의 충동윤 일단 상대화하여 사회륜 생각하고 미래의 상황 전개에 대한 기대 를 결며 〈사회〉와 〈미래〉에 미칠 자기의 행위의 결과물 〈의식칙〉으로 평가하는 가치판단의 주체다. 자기의 충동이나 욕구에 빠쳐 있는 한 우리는 주체저인 선덱행위를 할 수 없고 지금 여기에 있는 자기 를 뛰어넘어 미래와 사
회를 생각하는 의식적인 가치의 선덱은 할 수 없다.46) 가치판단의 시각은 〈지금〉을 초월한 〈미래〉와, 〈자기〉를 초월한 〈사회〉를· 생각하고 지금 여기에 있는 자기의 욕망을 일단 객관화하고 상대화하는 문제믈 제기한다. 여기서 문계는 현재의 자기 욕망을 따르는가 또는 미래의 재 결과를 감안하고 그것윤 억제하는가 하는 문제와, 자기의 이해관계를 따라 행동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남에게 미칠 걷과를 고려하여 자기중심주의를 버리고 이타적인 규범의식을 가치고 규재하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 있는 자기자신은 일반칙인 가치의 궁극적인 준거점이지만, 그 자체로서 추상적으로 파악될 메는 무의미하며, 현재와 자아와 대조되는 미래와 회사를 매개로 삼을대에만 의미가 있다.47) 지금의 자기자신을 초월한 어떤 궁극적 가치 죽 善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이 논문에서는 그것을 인류사회의 존속과 번영이라고 규정하기로 한다.48)
46) 윗균, pp. 2,~21; C. Kluckhohn, •values and Value-Orientations in The· ory of Action,• p. 390. 47) Emile Durk/Jcim on Morality a11d Society, ed. & With an Introduction by Robert N. Bellah(Chicago & Lond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3), pp. 136, 149~163, 169~177. 48) Emile Durkheim, Sociology and Philosophy, trans, D. F. Pocock with an Introduction by J. G. Peristiany(New York: Free Press, 1974), pp. 35~62, 60~97.
인간 조건에서 분가피하계 생기는 공동저인 인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본저인 가치 지향은 인간의 사고와 행위에 질서와 방향을 준다. 인간 사회는 어디 문 가나 공동저인 문제를 당면하며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가치 지향의 기본칙인 유형을 가지고 있다. 가치지향은 다음과 갈은 문재에 대한 일정한 대답을 준다. 죽 인간의 본성은 악한 것인가, 중립적인 것인가, 선악이 섞인 것인가, 또.는· 선한 것인가란 문재가 그 첫번째 예이다. 둘째로 오든 문화는 인간파 자연의 관계에 대하여 일정한 견해물 전제로 하고 있는데 인간은 자연에 종속된 것인가, 자연과 화합해서 살아야 하는 촌재인가, 혹은 자연운 정복하고 사는 존재인가 하는 문재다. 이것이 이 굴에서 중요하계 다루어질 문제다.
그 밖에 가치 지향과 관련해서, 우리는 인간 생활의 시간적인 촛점이 과거지향칙인가, 현재지향적인가, 또는 미래지향적인가 하는 문제 를 묻는다. 우리 는 또한 인간의 행위 양식 즉 다이어나이서스Dionysus 적 인 현재 욕망의 충족이 냐, 아푼로 Apollo 직인 온건한 균형 잡힌 삶이 냐, 또는 프로미 디 어 스 Prometheus 적인 왈동적이고 성취직인 삶이 중요하냐 하는 질문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개인 중심적인 개인주의에 의해 규제되느냐, 대대로 내려오는 전동이나 세대의 차이나 연링 같은 것을 중심으로 구성되느냐, 또는 친족의 방계적인 것을 중요시하느냐가 문재다. l, 9 ) 우리는 이 논문 에서 이런 여러 가지 가치지향과 관계된 문제 를 간접 칙 으로 접하게 되지만, 주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중요하계 다루기 로 한다. 가치 를 논할 때 우리는 또한 가치체계의 변용의 문제, 년용의 방향, 년용의 메카니즘 둥을 고려하여야 할 것이고 지 배계급에 의한 가치의 교화의 문제와· 민중의 욕망과 기성 가치에 항거하는 전위적인 사람들에 의한 내면적인 양십 자체를 뒤혼들어 놓는 가치 의식의 년혁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49) Florence R. l
오늘의 과학 · 기술 사회의 가치와 신념 체계를 논할 때 우리는 과학 · 기술 사회의 주도칙인 〈사회져 패러다임〉을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한 문화 안에서 가장 공동적으로 소유되고 있으며 사회제도에 의해 대대로 전승되어 온 세계관을 형성하는 규범, 신념, 가치 및 종교관을 모아 놓은 것을 말한다.60) 사회적 패러다임은 사회적 실재의 해석울 제공하며 우리의 행동과 기대감의 지침이 된다. 현대산업 사회는 물질적 풍요와 경제 성장과 근로정신과, 기술능력과 자연지배 등을 소중히 여간다. 또한 경쟁십과 개인주의, 무제한적인 물질적 발달과 물질적 성장과 소비, 효눙성과 생산성, 과학, 기술에 대한 신앙과 자연의 정복 등도 산업사회의 중요한 패러다임의 요소라고 할 수 있다. 5l)
,o) Dennis Pirages and Paul Ehrlich, Ark II: Social Responses to Envfronmental Jmperatives(San Francisco: W. H. Freeman, 1974), p. 43; Barbour, Technology, E11viro11ment, and Human Values, pp. 61~62 에 서 재 인용. 5l) 윗굴, Willis Harman, A11 Incomplete Guides to 1h11 Future(San Francisco
San Francisco Book Co., 1976) ; George Cabot Lodge, The New Amcrica11 Ideology (New York: Knopf, 19.57), Barbour, Technology, Environment, a11-d H111na11 Values, p. 62 에 서 재 인용.
사회 과학에서 가치는 독립 년수로도 간주될 수 있고 종속년수로도 간주뭔 수 있다. 독립 년수로 본다면 한 집단이 가지고 있 는 가치는 행동과 제도에 앞서 이것 들을 좌우하는 창시 적 인 대도, 신 념 경 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대조처으로 사회제 도가 바뀜에 마라 가치가 바뀐다고 보면 이 경 우에 그 가치 는 종속변 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가치는 사회 현상의 원인과 건과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프로테스탄트의 원리와 같은 문화적인 가치가 서구의 과학, 기술 의 발전을 가져왔다고도 말할 수 있지만, 한전 과학 · 기술은 서구의 주도칙 인 가치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할 수도 있 다. 어기서 우리는 인간의 가치 는 완킹의 조건을 반영 하기 도 하지만 그것윤만들고 좌우한다는 입칭울7 취하기로 한다.62) 본질 칙 으로 한 인 간이나 사회 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결국엔 그 인간이나 사회의 행위 를 질정하기 때문이다. 마라서 우리가 과학 • 기술과 같은 현대사회의 진정적인 문제 물 생각할 때 문제는 과학 · 기 술의 실패라기보다는 이 뮬 응용한 현대 사회의 가치와 신앙체계가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는 바이 다. 53)
52) 가치가 사회에 미치는 영 향에 대하여, Max Weber, The Protestant Ethica11d the Spirit of CapitaUsm, trans., Talcott Parsons(New York: Charles Scribner's, 1930), reprinted edition, 19.5&; Robert K. Merton, Science, Taclmology a11d Society in S(!ocnIc(!?1lh·Cc11/11ry Eugland(Broges, Belgium:Saint Catherine Press, 193&; with a new Preface, New York: Howard Fertig and Harper & Row, 1970). 인간의 가치는 환깅의 조건 윤 반영한다는 마르크 스의 입 장, 묵히 마르크스의 과학관에 대 하여 , Robert K. Merton, •Paradigm for the Sociology of Knowledge,• in The Sociology of Scie11c(!, ed. with an Introduction, Norman W. Stover(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3), pp. 18~22. 53) 이 러 한 입 장은 Sperry, Scie11cc and A,foral Priority, pp. 1~1, s~l3, 13~ 16.
사회과학은 사람들 이 가지고 있는 가치가 무엇이냐하는 문제를밝혀 둔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가치 를 가져야 하느냐 하는 문재는 취급하지 않는다. 이것은 철학, 윤리학, 종교 등이 취급하는 문재다. 흔히 우리는 과학은 〈어떻게 ?〉란 문재는 취급하지만 〈왜?〉란
문제는 취급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문제인 인간의 가치의 문제와 〈어떻게〉 과제를 해결하느냐 하는 문제를 다루는 과학은 각기 다론 궤도륜 달리고 있고, 가치와 과학은 서로 만날 수 없다고 믿어 왔다. 그러나 발달된 현대신경정신과학의 입장에서 과학칙 방법과 가치는 상부상조하여 화합하는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주목할 만한 입장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감안해야 할 것이다. 64)
이 문계에 대해 Sperry의 위에 적은 체운 갑조.
가치의 문제는 과학칙 기술의 문제와 관계되어 논의되기도 한다. 원래 이 문제는 고전칙 정치경제학의 〈노동의 가치이론〉에서 취급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기숟칙 대상물이 금전칙인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어찌하여 가치가 있는가란 문재가 생간다. 그런데 물론 그 이유로 노동, 자본의 유용, 유용성과 갈은 요인이 지적되지만 경제학이나 審美學의 겅우를 제외하고서는 왜 그런 대상물이 내재칙으로 가치 있는 것이 되었느냐 하는 문제는 텔로 논의되어지지 않았다. 최근의 기 순과 가치의 관계에 관한 논의는 기술과 문화와 종교의 논의에서 생기는 윤리저 문제들을 좀더 분석적 경험적으로 명확하계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경향윤 보인다. 이것은 객관칙인 대상물과 주관적인 가치 를 구분하고 윤리를 일반칙인 가치의 이론 안에 포함하고자 하는 현대의 추세 를 반영하는 것인데, 이러한 기술과 가치에 대한 접근은 기술적인 사고가 윤리에 미치는 영향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기술과 가치의 관계는 마르크스의 논지인 기숟생산수단이 가치를 좌우한다는 겁과 베버 Max Weber 의 가치가 기술적 말전을 조장하거나 방해한다는 입장 중에서 어느 한쪽에 기울어지지 않고 가치와 기술은 상호의존칙이란 견해가 지금까지는 지배칙이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이 문재를 취급할 때 촛점은 대체로 기술이 가치에 미친 영향에 두어져 왔다.56)
55) 이러한 입장의 대표적인 예 : Kurt Baier and Nicholas Rcscher eds., Va/ties and t!te Future: Tltc Impact of Tech110/ogical Cltange 011 American Valuas(New York: free Press, 19 69) ; Emmanuel G. Mesthcne, Tccl:no/ogical Cltange: /Is Impact 011 Man and Society (Cambridge, Mass: Harvard Univ. Press; New York: New American Library, 1970) ; UNESCO에 의해 군판되는 제 간지, Impact of
Society의 입 장.
기술적인 변동을 겪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미래의 가치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예측하는 〈가치의 과학〉의 출현도 예상할 수 있다. 피임약의 늘어나는 사용으로 오늘날의 성윤리는 크계 변하계 되었다. 인공磁器의 이식기술과 유전자 공학 컵퓨터의 발달로 인한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전은 필연코 가치관에 큰 변동을 가져올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가치의 본성에 대한 가설을 정립하고 이런 가설을 겁중함으로써 가치와 사회적인 행동의 관계에 관한 과학적으로 신빙성 있는 이론을 수립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56) 기술적인 변동이 십한 오늘날 가격과 혜덱의 계산분석을 동하여 어떤 가치는 어떻게 그 중요성을 더 갖게 되며, 어떤 가치는 어떻게 그 중요성을 잃어버리게 되는가 하는 가치변혁 문제의 연구는 중요한 관십사가 되고 있다. 가치란 결국엔 어떤 사물에 내재한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주관저인 대도와 관계되는 것이라고 본다면, 기술변혁에 따라 앞으로 어떤 가치는 더 중요해질 것이며 한편 어떤 가치는 점점 중요성을 잃어버리계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인류 지향적인 가치가 등장하면 국가중십적인 애국십 같은 가치는 경시될 것이다. 집단저인 협조가 중요한 가치로 인정된다면 개인의 독립성이나 자족주의저인 태도는 그 중요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사회복지의 강조는 개인주의 되조를 뜻할 것이고, 사회져 책임을 강조.하계 되면 개인의 이익추구를· 중요시하는 가치는 쇠퇴할 것이다. 앞으로 민중의 교육정도가 더 높아지고 여가 지향저인 삶의 스타일이 더 편만해집에 따라 예술저인 창조성과 예술은 오늘날보다 훨씬더 중요한 위치률 차지할 것은 침작하기 힘들지 않다. 67)
56) Alvin Toffler, •Introduction: Value Impact Forecaster-A Profession of Future,• Kurt Baier and Nicholas Rescher eds., Values a11d the Future, pp. 1~30. '7) Nicholas Rescher, 깨hat is Value Change? : A Framework for Research.• Baier and Rescher, eds., Values a11d the Future, pp. 6S~to9.
기술과 과학의 관계를 논할 때 또 하나의 문재는 새로운 기술은 인간과 사회를 위해 새로운 기회도 만들어 주지만 새로운 문제를 일으킨다는 점이다. 그런데 새 기술의 발전은 결국에는 인간해방의
방편이 될 것이며, 새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생기는 문제는 보다 나은 기술의 개척과 사회변동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 있다. 예 를 둘면, 농업과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생기는 인구과잉문제의 해결은 피임약 제조기술의 발전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이다.68) 그러나 이런 낙관적인 기술관은 경제 이론의 자유방임주의와 같은 것이란 비판을 받는다.59) 낙관저인 기숟관의 또 하나의 결점은 가치룹 조직적으로 서열에 따라 분류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와 비교할 때 셀러 Max Scheler 같은 지식사회학자는 현대철학과 사회과학이 유행하는 경향에 반대하여 구체적인 행위의 철저한 현상학적인 분석을 몽하여 인간은 가치의 서열에 따라 정신적인 자기실현을 한다고 주장하면서 가치의 서열관계를 규정하고 있다. 그는 가치를 유쾌-불유쾌와 같은 밑바닥에 있는 감각적 가치로부터 실제칙, 실용적인 유용성의 가치에로, 그 다음으로 고귀한 것一야비한 것과 갈은 생물적 가치의 영역으로, 또 나아가서 심미적인 가치, 정의, 진실과 같은 정신적 가치, 그리고 마지막으로 종교적인 聖과 같은 철대적 가치로 서열이 올라가게 된다고 지적하면서, 기술적 가치는 가장 낮은 가치로서 유용성이란 개념 밑에 유쾌―불유쾌의 범주에 속하는 가치라고 분류하고 있다. 셀러에 의하면 도덕적 행위란 이 가치의 서열에서 높은 가치를 향하여 선택하는 것을 뜻한다. 60)
58) 이 러 한 입 장에 대 하여 , Emmanuel G. Mesthene, Tltecltnologlcal Clta11ge: Alvin M. Weinberg는 이 러 한 입 장윤 ‘technological fix' 라고 부르고 있 다. Carl Mitcham, •Philosophy of Technology,• A Guide to the Ct1lture of Science, Tecltnology, and Medicine, ed. Paul T. Durbin(New York: Free Press; London: Collier Macmillan, 1970), p. HO. ,9) Mitcham 의 윗굴, p, 330, Go) Max Scheler, Problems of A Sociology of Knowledge, trans. Manfred S. Frings(London, Boston and Henley: Routledge & Kegan Paul, 1980), pp. 14~1.5.
이 런 가치 의 서 열 문재는 매슬로우 Abraham maslow 의 인간 팔요의 서열에서 가치의 순서를 규정한 것과 비슷하다.Gl) 매슬로우는
61) Abraham Maslow, Toward A P.sycltology of Being, 2d, ed. (Princeton, N. J. : Van Nostrand, 1968) ; Religious Values and Pealt Expericttces (Columbus: Ohio State University Press, 196-4).
과학적 연구를 몽-하여 인간의 팔요를 다섯 가지 로 구분하는데, 첫께는, 의석주, 건강과 같은 생리칙 요구와 관계된 생존의 요구, 둘째 는 우1 형과 위협으로부터 보호되고자 하는 안전의 요구, 세째는 우칭, 사랑과 같은 사회칙 요구인 소속감, 네째는 자존십, 인칭, 지위와 같은 자아의 요구인 자기존중, 다 섯째 로, 창조성 , 인간의 참재칙 능력 울 신현하고자 하는 자기성취의 요구 이다. 매 슬로우는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도 있듯이 우선 인간의 기본칙인 물질칙 요구가 충족돼야 인간은 창조성이고 정치칙 자유고 요구하계 된다고 보면서, 기본저 물질적 가치의 성취 릎 근본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매슬로우에 의하면 善이란 자기실현 죽 최고의 가치 를 선댁하는 것이다. 매슬로우의 가치의 서열은 인간 경험의 여러 차원을 고려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는 사회정책을 생각할 때 어 떻 게 하면 사람들의 물질저인 요구를 충족시켜 주는 동시에 그들-에게 공동체의 삶과 인간의 참재적인 가능성을 표현할 수 있도록- 정책 윤 세워나가느냐 하는 문제물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가치 실현의 문제는 과학적인 연구 의에도 종교, 철학적인 차원과도 관계되는 복잡한 문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3) 가치의 충돌파 선택의 필요지난 .200여 년 동안 서구의 산업발전은 값싼 에너지와 풍부한 자원과 무한한 자원의 낭비를 흡수할 수 있으리타고 보았던 환경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워진 것이다. 1970년 초기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앞서 우리가 지칙한 바 있던 전보의 신화를 믿고 기술이 자원의 계한성조차도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유류과동 이후 70년대 말기에 이르러 우리는 날이 갈수록 십해만 가는 환경의 위기, 에너지위기, 식량위기와 인구위기를 동해 기술적인 발전은 너무나 환경과 인간적인 댓가를 요구하는 것임을 철강하게 되었다. 늘어나는 인구는 제한된 자원으로 감당할 수가 없게 되었고, 확장되는 산업 때문에 생기는 페기물과 공해는 극십한 상대에 다달았다. 우리는 환경의 보호, 경재성장, 취업, 건강, 사회정의와같은 여러 가치 들 이 갈둥을 보일 때 어떤 선맥의 표준과 정치저인 요인에 따라 무엇을 선호해야 하느냐 하는 선맥의 팔요에 직면하계 되었다. 묵히 우리는 현대 과학 · 기술이 주는 혜댁윤 환경과 인간적인 댓가와 비교해 봄으로써 균형 있는 선덱을 해야 할 처지에 있다.
우리 는 지 금 환겅보존과 자연보호의 구호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에너지 와 경제성장의 중요성에 비해 뒤에 처지는 가치로 간주되고 있다. 득히 환경보존의 경비문재가 거론되면 환경보존을 위한 규칙은 완화되고 타 협 되는 것이 흔히 보는 예나. 따라서 환경보존주의자들은 자연보호와 환경보호는 경제적 정치칙인 과정윤 몽해서는 불가능하고 오직 대안적인 생활 스타일과 태양열이나 재생 가능한 자원의 유용을 동해서만 가능하며, 우리논 이 룰 위해 과감한 난화를 겪어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발전 도상에 있는 국가에서는 I970년대에 가졌던 경제성장과 녹색혁명의 꿈은 극히 소수의 득권계급의 치부에 끝나고 말았고 대다수는 여전히 빈곤하다. 인구문제와 식량사정은 더 심각해지고 있으며, 기계화 집약된 농업은 막대한 자연환경의 파괴와 경재칙인 댓가를 치르고 있다. 국가간의 빈부의 차는 격십해지고 있고 부유한 나라가 낭비하는 자원은 너무나 불균형하게 크다. 많은 미국인들은 과식에서 오는 십장병으로 고생하고 있는가 하면, 세계의 5 억이 넘는 인구는 기아와 영양실조로 고생하고 있다. 미국의 개 한마리가 먹는 단백질의 양온 방굴라데쉬의 한 아이가 먹는 것보다 더 많다고 한다.62) 농업 생산 기술의 발달로 인한 식량 중산, 노력은 이 땅의 지구력을 좀더 연장시킬 수 있겠지만, 결국엔 십각해지고 있는 환경의 파괴 융 막을 수도 없고 인간적인 댓가를 감당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외면할 수 없다.63) 걸국에 우리는 서로 갈등관계에 있는 인간의 제 가지가치――물질적 가치, 사회칙 가치, 완경의 가치 중에서 어려운 선텍을 해야 하는 입장에 있다. 64)62) Frances Moore Lappe and Joseph Collins, Food First (Boston: Honghton Mifflin, t 977). 63) 이 점 에 관하여 Jeremy Rifkin 의 Entropy와 대 도 로파 n : 유간자 공학시 대 의 세계관J(Jeremy Rifkin, Entropy: Algeny), 서윤 圓츈社, 1984, 참조. 64) 이 세 가지 가치 의 갈등에 관하여 , Barbour, Tech11ology, Environment, and Human Val11es, pp. 1~9, 0~106,
먼처 인간의 기본요구에 관계된 물질칙 가치를 살펴보기로 한다. 생명은 모든 다론 가치 실현의 전제조건이며 생명에 대한 위협은 인간에게 가장 철박한 위협이다. 핵전쟁, 생물권의 파괴, 지구의 기후변화와 같은 위협은 비록 반드시 일어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인류를 전멸시킬 수 있다. 농업과 의료 기술의 발달로 인해 우리는 굶주림과 질병을 더 줄일 수 있게 되었고, 우리의 연장된 수명이 공기와 물물의 오영, 살충제, 발암물질의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단기적인 경제적 혜덱은 장기적인 해독의 위험을 낳는다. 기술은 우리의 물질적 생활수준을 높여 주었고, 우리의 가옥, 교통, 서비스둥을 보다 안락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그 댓가로 우리는 에너지와 자원을 낭비하계 되었고 자연환경과 사회에 여러가지 부작용적인 문제에 의해 시달리개 되었다. 취업은 사람들의 생계와 자촌심을 좌우한다. 그런데 개발도상 국가에서 자본과 에너지 집약적인 기술이 노동 집약칙인 기술을 대체하계 됨에 따라 실업의 위협은 커지고 있다. 산업화된 국가들은 그들대로 실업윤 증가의 두려움 때문에 공해방지와 자원보호 운동윤 마음대로 추전하지 못하고 있다. 기술은 생산성 증가를 가져왔고 일을 쉽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뜻 있는 노동을 하지 못하고 소외감에 사로잡혀있다. 65)
6,) 윗 군, pp. 3~~.
물질적 가치 다음으로 우리는 사회칙 가치를 생각해 봐야 하겠다. 식량과 에너지와 자원의 소비패턴을 보면 분배의 불균형이 점점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공해의 피해자는 공해를 만드는 장본인들은 특권계급들이 아니라 공장지대에 사는 불우한 사람들이다. 원자력 공장에서 홀러나오는 방사성 페물의 해독을 입은 사람들은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앞으로 대어날 사람들이다. 경재와 기술 문제에 관한 정책 결정에 있어서 우리는 누가 댓가를 지불하고 어떤 위협을 무룹쓰고 누가 혜택을 받느냐 하는문제도 생각해야 하겠지만, 이것이 여러 계층의 사람들에게 분배되고 누가 결정권을 갖느냐하는 문제도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 기술이 빈부간의 간격과 가난한 나라와 부유한 나타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서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느냐 하는 분배의 정의에 관계된 문제는 오늘날 심각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민중이 자기들의 삶에 직접직으로- 관계되는 중대한 일들을 결정할 때 그들이 스스로 정치적 결정에 참가하여 그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추세가 강해지고 있다.66) 이러한 추세는 기술칙인 문제와 관련될 때 어떻게 기술을 민주주의칙으로 지배하느냐 하는 과제로 나타난다. 복잡한 정책 결정에 기술 전문인들과 더불어 시민이 참가하는 권리는 기본적인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중앙집권칙인 규제를 지양하고 지역 자치저인 관리를 허락하는 지역적으로 분산된 기술이 요구되고 있다.67) 자원 고갈, 인구 중가, 환경의 파괴 같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권위주의적인 정부가 필요하다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군대식의 규울과 수도하는 승려들과 같이 욕심을 규제하는 새로운 승려주의칙인 삶의 스타일이야말로 우리가 팔요로 하는 것이라는 흥미로운 견해도 있다. (8)66) Daniel Bell, Tile Coming of Posl-l11duslrial Socicly(New York: Basic Books, 1973), pp. 364~367. 67) Ivan lllicb, "Vernacular Values,• The Scl111macher Lectures, ed. Satish Kumar, pp, 10~19, ao~94. 68) Robert Heilbroner, An Inquiry into the Human P,ospcct(New York: Narton & Co., 19n) pp. 1.c1~1Gs, esp, p. 161,
기술사회에서 생기는 소외나 비인간화, 공동치1 의 상실과 갈은· 문제는 현대인들로 하여금 새로운 삶의 스타일과 의미와 자기성취를 찾도록 촉구하고 있다. 기술 위주의 산업사회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대안적인 사회의 모색은 인문사회과학의 중요한 관십사가 되고 있다. 이것은· 고도로 발달된 서구 산업사회에서문만 아니라 서
69) Daniel Yankelovich, New Rules: Searching for Self-Iulft'llme11/ ill A World Tur11ed Upside Down(New York: Random House, 1981) : Theodore Roszak, The Malling of A Co11nter C11lture(Garden City, New York: Doubleday, Anchor Books, 1968) ; Theodore Roszak, Where the Wasteland Ends(New York: Doubleday, 1972) ; E. F. Schumacher, Small is Beautiful (London: Blond & Briggs, 1973) ; Philip Slater, The Pursuit of Loneliness (Boston: Beecon Pres~, 1976) ; J. Milton Yinger, •counter Cultures and Social Change,• in J. Milton Yinger and Stephan J. Cutler eds., Major Social Issues: A M11llidlscip!i11ary Views(New York: Free Press, 1978) :
D. Bell, The C11/t11ra/ Conlradictions of Capitalism, (New York: Basic Books, 1976) ; Jacques Elluhl, Tise Technological Socicty(New York: Random House, Vintage Books, 1964).
구 과학기술의 충격을 받고 정치칙 지매룔 정당화하여 온 전통과사최적인 유대감과 공동체를 잃어가고 있는 비서양 사회에서도 불 수있는 십각한 현상이다.70) 여기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기술이 어멍게 인간관계의 붕괴를 막고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적극처으로 원용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상업화된 대형 기술이 아니라 민중의 일상 생활과 직결된, 그들이 매일 생활하는 데 필요한기술을 개발해야 인간과 정치와 윤리를 기술과 경재의 굴레에서 해방시킬 수 있고 인간화할 수 있 다는 슈마허 E. F. Schumacher 의 〈중간 기 숟 Intermediate technology〉이 나71) 일리 치 Ivan Illich 의 서 민적 인 〈일상칙 가치 Vernacular Value〉에 관한 주장은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뜻을 갖고 있다. 72)
70) Jurgen Habermas, Toward a Rational Society, trans. Jeremy J. Shapiro (Boston: Beacon Press, 1970), pp. s1, 94~100. 71) Schumacher, Small is Beautiful, pp. I42~Hs, 161~1ss. 72) Ivan Illich, •vernacular Values,• pp. 10~94.
기술 사회의 주도적인 가치관은 물질주의와 소비지향적인 생활을 행복과 동일시한다. 그런데 보다 인간적인 자기성취는 이러한 거꾸로된 가치지향을 바로잡고 진정한 인간의 자기성취란 무엇인가를 묻는 근본적인 가치와 태도의 변화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에너지와 자원의 소비가 막대한 물질주의적 소비생활을· 지양하고 전정한 자기 성취믈 위해서 교육이나 평생교육, 예숟적인 자기 표현, 따뜻한 인간관계, 자연을 줄기는 일과 갈은 인간칙인 경험을 중요시하는 가치가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73) 이러한 가치는 우리의 바람직한 좋은 삶이 무엇이냐 하는 비전과 관계된다.74)
73) Daniel Yankelovich, New R11/cs, pp. 241~262. 74) Barbour, Tech110/ogy, E11viro11111cnt, and Human Values, pp. 4~,.
우리의 선백은 또한 환경보전의 가치에 연관된다. 환경문제와 관련된 우선적인 문제는 간 시간적인 안목에서 볼 때 자원이 얼마나 고갈되지 않고 유지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유한한 자원이 유지되려면 인구가 평형을 유지하고 자원이 계속해서 재생되어야만 가
능하다. 또 이 를 위해서 우리는 자연자원을 절약 보호하고 소비생훨을 규제해야만 한다. 우리의 후손들과 제 3 세계의 여러 나라들의 생존을 위해서도. 이것은 불가피한 요청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정치경제 재도는 근시안칙으로 우선 눈앞에 보이는 이익의 추구에 급급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 문재와 관련해서 우리는 소위 〈앤트로피의 법칙〉윤 포함한 〈열역학의 법칙〉을 생각하게 된다.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은 엔트로피의 법칙은 과학의 근본법칙이 라고 했고 에 딩 돈 Arthur Eddington 은 전 우주의 형 이 상학적 인 법칙이라고 주장했다. 열역학 제 1 법칙은 〈우주의 물질과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계 생성되거나 소멸될 수 없고 오직 형대만이 바뀌는 것〉이라고 말한다. 재 2 법칙은 곧 엔트로피의 법칙인데, 이것은〈물질과 에너지는 한 방향으로만 바뀔수 있다〉는것이다. 이 말은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부터 사용할 수 없는 형태로, 얻을 수 있는 것에서 얻을 수 없는 것으로, 질서가 있는 모임에서 질서가 없는 모임으로 변할 수 있음〉을 말한다. 사용 가능한 값어치가 있는 에너지가 사용할 수 없는 형대로 얼마나 변했는가에 대한 척도가 바로 엔트로피이다.75) 따라서 앤트로피가 증대한다는 것은 낭비된 에너지가 사용할 수 없는 페기물로 늘어나서 공해가 생간다는 말이다. 공해란 엔트로피의 델명이라고 할 수 있다•76) 앤트로피의 증가로 인한 모순은 이제 점점 지구상에서 노정되고 있으며, 엔트로피의 법칙은 현대인의 진보에 대한 신념을 송두리체 뒤혼들어 놓고 있다. 과학과 기술에 의해 질서 잡힌 살기 좋은 세계가 이루어지리라고 기대해 왔던 현대의 신화는 깨어졌다. 우리는 이재 새로운 가치와 규법을 찾지 않으면 안되는 철박한 상대에 처해 있다.77)75) Rifkin; Entropy, p. 16. 76) 윗 굴, pp. 43r.J70. 77) 윗굴, pp. l.5r.Jl8.
최근에 우리는 생대학을 동해서 모든 생물은 상호의존 관계에 있기 때문에 인간의 행위는 다른 생물들에게 생각지 않았고 예기하지도 못하는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이미 인간이 생태학칙인 균형을 깨뜨리고 생태계에 돌이킬 수 없는 손실
울 가해 온 사실울 우리는 이재 뒤늦게나마 깨닫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 인간 의의 다론 존재와 함께 구성하고 있는 생태계의 존속을 위해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자연보전의 윤리에 눈을 뜨고 있다.78) 공기와 물과 땅의 오염 죽 공해 롤 방지하는 일은 우리의 건강뿐만 아니타 심미적인 이유 때문에도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환경의 질과, 경제성장, 사회정의와 개인의 자유는 서로 충돌되는 가치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들 중에서 무엇을 더 중요시하고 우선적인 가치로 선덱하느냐 하는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한다. 흔히 기업의 이해관계 때문에 공해방지를 위한 여러 법률과 규정은 후되하고, 댐, 고속도로, 발전소 동의 건설은 환경보존 문제는 도외시한 채 진행되고 있다. 토지개발과 이용에는 공적이고 사적인 이해관계의 조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보존과 사회정의 를 아울러 추구하는 일 ecojustice 은 지금까지 대체로 따로따로 추구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서구사회에서 환경보존 운동울 앞장서 온 사람들은 대체로 비교적 유복한 백인 중상류층이었다. 가난한 미서양 사회에서는 물몬이지만 서구사회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은 환경문제 같은 것은 생각할 겨률도 없이 우선 먹고사는 문제에만 급급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환경의 파괴는 결국에는 농업의 생산력을 저하시키고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가는 곳마다 민중윤 착취하고 있는 장본인은 바로 다름아닌 환경을 과괴하고 있는 원흉둘이며, 인간해방과 환경보존은 서로 직견된 문제임을 알아야 한다. 70)
78) 식물, 동문, 인간과 그 문리지 환겅의 관계 읍 취급하는 생대학적인 관계에 우리가 눈윤 뜨고 인뮤의 무한한 성강에 대한 의문윤 우리에게 일으켜 준 문재각은 칼슨(Rachel Carson) 이 1962 년에 숟판한 『침묵 의 봅; Sile11t springJ 이었다고 마터 (Van Rensselaer Potter) 는 지 쳐 하고 있 다. Rachel Carson, Silent Spring(Boston: Houghton Mifflin, 1926, 196-1). Potter, Bioethics, p. 6. 생 존의 윤리 와 Bioethics에 관하여 , Potter의 윗 굴, Barbour, Technology, E11viro11me11t, and Human Values, Chap. s. 79) Barbour의 윗굴, pp. s~6; Rifkin, Entropy, pp. 212~220; Western Ma11 and E11viro11mcntal Ethics : Attitudes toward Nature and Technology, ed. Barbour(Reading Mass. : Addison-Wesley, 1973), μ. 4 ; Gabriel Fackre, •Ecology and Theology,• in Ian G. Barbour ed., Western Man and En· viromnental Ethics, pp. 121~122.
한 사회의 에너지 즉 부가 한 개인이나 집단에 의해 독점되면 이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생존하기에 필요한 에너지는 메앗기고 만다.그러면 그들의 생존은 위협을 받고 그 사회는 분열되고 혁명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인간 사회는 이러한 불균형을 시정하고 균형을 되 찾기 위하여 사회 정의 를 실현해야 한다. 이것은 자연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생 물학적인 자기 조정기관에 의지하는 것에 비할 수 있다.80) 지금 우리는 기숟저인 창조성과 환경보호와 인간직인 가치 를 어떻게 함께 균형 있게 추구하느냐 하는 어려운 선텍의 문제롤 직 면하고 있다. 이 러 한 문제 를 앞에 두고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의 인 간조건을 형성해 온 자연과 7li문과 사회에 대한 문화적인 가정이 랄까 신념체계 를 살펴보아야 하겠다.
) Rifkin, Entropy, pp. 212-220.
3 자연, 기술, 인간 사회
―세 영역의 엇물림과 갈둥(1) 인간파 자연우리는 과학기숟과 가치의 갈등을 논하면서 먼저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규정해 준 자연에 대해 인간이 가져왔던 여러 태도를 살펴봉 필요가 있다. 자연에 관해 사람들이 가져왔던 종교·문화적인 신념과 가치는 자원 • 기술 · 경제성장 동과 같은 중요한 문제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관계되며 오늘날의 문제점과 내일의 변동의 방향윤 생각하는 데 기본이 된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대도는 크게 셋으로 나누는데, 첫째로 우리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태도, 둘째로인간과 자연과의 일체감, 세째로 인간은 자연을 가꾸고 책임지는 청직이란 개념이다• 8l)81) 이 문재는 대재 로 Barbour의 분뮤와 해석에 크게 의촌한다. Barbour, Technology, Enviromncnt, and Human Values, pp. 13,...,34
먼저 인간은 자연을 지배한다는 대도를 보기로 하자. 이러한 태
도는 서구의 이기칙인, 자연 을 개발하고 이 용하는 대도에 나타난다. 기독교 구약성경 창세기에는 창조된 인간에게 〈자식을 낳고 먼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 복하여 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률 몰아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려라 ! 〉(강세기 I : 28, 공동번여 )하는 명령윤 내렸다고 걱혀 있다. 성서칙인 종교에서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독특한 존재이고, 하나님은 자연에 내재한 촌재가 아니라 여사칙인 사건 속젝 자기 를 드러내는 초월자라는 점이 어느 종교에서보다 강조되 고 있다.
한데, 최근에 환경보호론자들 중에 이러한 성서적인 자연관운 둘어서 기독교야말로 그 인간 중심적인 자연에 대한 교만한 내도 메문에 환경적인 위기 룹 초래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장본이라고 꼬집는 이들이 있다. 이러한 견해 를 가진 대표적 사 란 이 역사학자 화이드 Lynn White 이다. 그는 기독교가 아시아의 종교문과는 대조칙으로 인간과 자연의 2원론에 기초하여 인간이 자연을 그의 목적을 위해 과학 • 기술을 동해 이용하는 대도를 낳았다고 고발하고 있다. 그는 현대의 생대학적인 위기는 주로 종교칙인 자연관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그 해결체도 종교칙인 자연관의 년혁에서 찾아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또, 그는 모든 생물과 무기물과의 상호촌중 속의 공존을 믿는 〈범십평주의 pan-Psychism 〉를- 주장함으로써 중세기적인 기독교의 자연관에 항거 했 던 성 프란시 스 St. Francis of Assisi 를 생 대학적으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인물로 천거하고 있다.82) 이와 비슷한 입장을 취하면서 자연으로부터의 인간의 소외 를 극복하기 위해서 조경건축 및 지역계획 전문가 멕하그 Ian L. McHarg 는 생대학칙과학과 전체론적인 철학을 동해 인간과 자연의 상호의촌과 협동의 윤리 를 주창하고 있 다. 83) 문학가 베 리 는 위 즈워 드 William Wordsworth 나 도로 Henry David Thoreau 나 두보와 갈은 문인들의 시 나 산문에 나타난 자연으로의 귀의를 몽한 인간과 자연의 만남은 계도화된 종62) Lynn White, Jr., •The Historical Roots of Our Ecological Crisis,• in Barbour, Western Man and E11vfronme11tal El/lies, pp. 1s~3o ; Lynn w·hitc Jr., •continuing the Conversation,. 오지문, pp. n~64. 63) Ian L. McHarg, •The Place of Nature in the City of Man,• Western Man and Environmental El/lies, , pp_ 111~1&6.
교보다 더 종교적인 것이라고 보고 있다.81)
84) Wendell Berry, "A Secular Pilgrimage,• Barbour의 윗굴, pp. 132rv1.S.S.
층세기의 기독교 전동이 신의 초월 성 을 강조하고 인간과 자연을 대조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연질서 를 기계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유기적으로 생각하였던 점이라던가, 서구의 인간 중심적인 사상은 기 독교 때문만이 아니라 플라돈 Plato, 아리스토벨레스 Aristotles, 스토아 철학자둘의 그리이스 사상의 영향 매문이기도 하다는 주장에 우리는 유의해야 하겠다. 또한 우리는 환경 파괴의 찰못은 비록 서구 문화의 기본칙 신념체계 죽 유대교와 기독교의 전통의 탓도 있지만, 산업 자본주의 기술, 도시화, 개인의 늘어가는 寫, 자연에 대한 침략적인 태도의 찰못이기도 하다는 주장에도 귀믈 기울여야 한다. 비기독교 문화권 에서도 산업화와 도시화의 패해는 마찬가지로 일어나고 있음울 우리는 상기해야 할 것이다.85) 過度放牧과 참혹한 삼림체벌과 토양 침식현상은 뒤보 Rene Dubas 가 지적한 바와 같이, 고대 중국, 그리이스, 서양문명에서도 볼 수 있었던 현상들이지, 기독교 문화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한편, 창세기에 있는 인간이 자연 즉 〈동산을 갈고 간직하라〉(2 : 15)는 말씀을 상기하면서 뒤보는 피조물을 경건한 마음으로 대했던 성 프란시스보다는 자연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이용하고자 했던 성 베네딕트 St. Benedict를 〈창조적 인 조정 creation intervention>의 모법 즉 생 대 학처 인 운동가들의 보호자로 천거 하고 있 다. 86) 신학자 패쿨 Gabriel Fackre은 기독교의 창조관은 자연을 신져화하고 로맨틱한 것으로 만드는 경향윤 배척하는 동시에 자연을 손상하는 일도 배격한다고 지저하고 있다. 패클의 입장은 자연에 대한 책임적인 청지기의 역할을· 주장하는 것이라 하겠다.
s.s) Lewi:. W. Moncrief, "The Cultural Basis of our Environmental Crisis,• Barbour 의 윗군, pp. 31rv41. 86) Rene Dubas, "A Theology of the Earth,• Barbour의 윗균, pp. 43~54. 87) Gabriel Fackre, "Ecology and Theology,• Barbour의 윗군, pp. l16~13l.
17세기에 일어난 과학적인 세계관에서 우리는 인간의 자연 지배져 대도가 점점 강력해졌던 것을 알 수 있다. 베이컨 Francis Bacon과 데카르트 Rene Descartes 는 인간중십의 이원론적인 인식론과 자
연지매칙 사고를 주창하였으며, 뉴돈 Isaac Newton 은 기계적인 자연관을 주장하였다. 록크가 개인주의, 富의 축적, 기술 발전을 정당화하는 정치철학을 주장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88) 18 세기의 산업기술의 출현으로노 자연지배는 이론과 실제에 있어서 큰 진전을 보았다. 특히 자본주의 의 발달로 말미 암아 자연을 개 발하여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고 생활수준을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은 기술문명과 함께 자연파괴와 자연의 고갈과 공해 의 원인이 되었다. 자연지배적인 태도는 미국의 독득한 발전사와도 관계된다. 광막한 미개척 지대 를 개발하고 서부믈 개 척 한 미국인 들에게 자연은 정복과 개발의 대상이었고, 자연자원은 무한한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미국인의 낙찬칙이고 개척적인 정신은 과학기술의 발 달과 함께 자연 정복적인 태도와 무한한 발전의 신념 윤 낳았다. 과학기 술을 몽해 자연을 관리한다면 환경 보호주의자들이 우려하고 있는 생대학적인 위기를면할 수 있고, 현대산업사회 를 유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견해 륜 따르고 있는 미국인들은 아직도 제법 많다. 이들은 환경보호주의자들이 경고하고 있는 살충제의 피해나 기아의 위협이나 생태계의 과밀 갈은 현상온 너무 과장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89)
88) Barbour, Technology, E11viro11mc11t, and Human Va/tics, pp. 15~ 16 ; 매 이 컨의 자연관에 대 하여 , Willian Leiss, The Domillation of Nature (New York: George Braziller, 1972), Chap. 3 ; 현 대과학의 발생과 관계 된 자연관에 대 하여 , Alfred N. Whitehead, Scicnco and the .Modem World (New York: Macmillan, 1925) ; 목-크의 경 재 기 순의 대한 견 해 , Victor Ferkiss, The Future of Teclmological Civilizatio11 (New York: George Braziller, 1974), Chap. 3 and 4. 89) John Maddox, TIie Doomsday Syndrome(New York: McGraw-Hill, 1972),p. 181.
자연 정 복적 인 대 도는 마르크스 사상 특히 후기 마르크스 사상에도 나타나고 있다. 마르크스는 인간에게는 자연을 변화함으로써만 충족시킬 수 있는 욕구가 있으며, 한편 인간은 자연을 변화시키는 기술에 의해서 변화된다고 믿었다. 마르크스는 인간은 역사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지 자연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타고 믿었다. 그는 인간적인 필요의 성격과 질과 그런 팔요를 충족시키는 방법의 변화에서 역사적 변화의 기초문만 아니라 인간 본성의 변화의 기
초를 찾았다. 90) 마르크스는 경제와 기술의 영향력을 너무나 찰 알고 있었고, 생산수단의 소유제 도를 혁신함으로써 인간 착취 믈 종결 시킬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는 인간에 대한 자연의 착취 문제에는 무관심 했 다.91)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자본과 노동과 갈은 생산 요인에 대해서는 신 경윤 썼지만 자원 고갈의 가능성에 관해서는 벨 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러시아 같은 사회주의 국가의 환경 파괴 의 죄 악상 은 자본주의 국가들 의 경 우에 못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상기 할 필요가 있다. 92)
90) Sidney Hook, From Hegel to Mar.x(Ann Arbor: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1962), p. 277 ; Daniel Bell, •Technology, Nature, and Society,• in The Wi11ding Passage(New York: Basic Books, 1980), pp. 4~6. 91) Howard Parsons, Marx a11d Engels on Ecology(Westwood, Coon. : Gre· enwood Press, 1977) ; Alfred Schmidt, The Concept of Nalt1re in Marx(New York: Humanities Press, 1972). 92) Marshall Goldman, •The Convergence of Envirorunental Disruption,• Science 110(1970) : 37~42 quoted by Barbour, Technology, Enoiron~nt, and Ht1ma11 Valttcs, p. 18.
지금까지 개 관한 자연 정복칙 대도와 비교되는 생각은 인간과 자연의 일체감을 주장하는 견해다. 인간의 삶과 자연과의 융합을 주장한 철 학은 중등의 문화, 그리이스 민간종교, 류크리셔스 Lucretius와 같은 쾌락주의자들의 사상에 나타나 있다. 중세기의 기독교 사상에 서도 앞서 언급했던 성 프란시스가 자연과 생물을 하나의 연관된 살아 있는 존재로 보았던 것은 잘 알려쳐 있다. 산업혁명에 대한 반응으로 일어났던 I8 세기 후기와 19세기 초의 브레이크 William Blake, 위 즈워 드 Wordsworth 와 괴 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와 같은 낭만주의자들이 가졌던 인간과 자연의 유기적인 관계에 대한 견해는 자연과 원시성을 찬양하는 사상이었다. 미국의 뉴잉굴렌드의 초월주의칙 이상주의자들, 특히 도로 Henry Thoreau 는 발전, 富, 기술적 산업사회와 비인간적인 도시생 활을 비판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자유와 용기와 생기의 상칭인 신선한 자연에서 정신적으로 새로와지는 경험을 추구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문명의 포기가 아니타 자연과 문명의 사이를 오고가며 그 둘의 균형을 유지할 것울 주장했던 것이다. 자연 보호 운동의 선구자인 뮤어 John Muir 의
철학도 미국에서는 잘 알려져 있는 경우다. 93)
93) Barbur, Technology, Environment, and Human Va/110s, pp. 20~2::?.
중국의 도가사상, 無爲의 사상과 禪佛敎미 국의 토착 인디 안사상도 인간과 자연의 일체라는 정 윤 강조한다. 불교윤리는 자아의 강박적인 충동이나 물질 소유욕을 초월 할 것과 겸허하고 단순하고 겁소한 삶을 살 것을 가르친다.9~) 전동칙 중국 사회에서도 산림체벌이나 환경의 파괴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체로 동양사회에서는 자연을 보다 존중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대도가 변화하고 환경보존의 문제가 의식되기 시작한 것은 근대서구의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우선 가난한 인민둘을 먹여야하는 판국에 자연에 대한 싸움을 선언하고 인간의 의지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겠다고 나선 중공의 경우는 전동적인 중국의 자연관에 역행하는 과격한 I:唄!海]라 하지 않을 수 없다.95) 서구의 영향에 의해 이루어전 일본의 산업화는 한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토착적인 자연관과의 간장관계를 낳았고, 재한된 토지에서 늘어나는 인구과밀현상 즉? 도시화현상온 극심한 공기와 수질의 오영과 교통난을 가져왔다. 노사간의 가족적 관계와 정부와 산업계와의 강한 정치져 유대관계로 인해서 공해 방지 률 위한 시민의 자발적 행위와 정부의 규재는 제약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이 이제는 결국에는 공해방지가 자기들의 이해 관계와 직걷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전동저인 자연 존중의 대도가 아칙도 그들에게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에, 일본은 어느 나라보다 많은 예산시인 국민총생산액의 2% 를 공해처리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96)
94) Barbour의 윗굴, pp. 10~19, 20 ; Hajime Nakamura, •Environment and Man: Eastern Thought,• in Encyclopedia of Bio•El!iics, ed. Warren Reich (New York: Macmillan, 1978) ; Walter Capps, ed., Seeing wil/1 a Native Eya(New York: Harper & Row, 1976) ; 붑교겅 개 윤리 에 대 하여 , Schumacher, Small ,·s Bcat4ti/ul, Chap. 4. 9.5) Barbour, Technology, Environment, and Human Valttcs, pp. 19~20 ; 중국 공산당 치 하에 서 의 개 발과 환깅 파괴 의 문재 에 대 하여 , Rhoads Murphy, •Man and Nature in China,• Modern Asian Slttdies/(1967) : 313-33 ; Leo Orleans and Richard Suttmeier, •The Mass Ethic and Environmental Quality,• Science 170(1970) : 1173-76, quoted in Barbour, Technology, En·viro11mcnt, and Human Values, pp. 19~20.96) Norie Huddle and Michael Reich, Island of Drean:s: E11viro11mc11/al Cri-
sis ht Japan(Ne;v York: Autumn Press, 197'), cited by Barbour, Teel,- 110/ogy, E11viro11ment, and Human Values, p. 20.
I9세기 다원 Charles Darwin 의 「租의 기원」(1895) 의 출현을· 계기로 그동안 발전되어 온 생대학은 오늘날 우리에게 네 가지 기본적인 윤리 를 가르쳐 주고 있다. 첫째로, 모든 생명은 서로 거미줄처럽 얽혀 있는 바이아탁 커뮤니 티 biotic community 속에서 서로 의촌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사람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인구, 자원., 공해와 같은 요인 대문에 무한히 성장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세째로, 생대학적인 안정온 다양한 구성요소들 의 동적인 평형 homeostasis 을 유지하기 위한 자동제 어 장치 feedback mechanism 때 문에 가능하다는 사실 이 다. 네째로, 생대학은 우리의 행동이 뒤에 운 세대둘과 다른 생물들에게 장기칙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장기칙인 댓가를 지 분해야 하는 잘못을 처질러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생 대학적 바이아티 커뮤니티에 관한 지식의 덕덱으로 우리는 모든 생물이 의존하고 살아가고 있는 자연과 협조하고 그 앞에서 겸하해야겠다는 사실과 인간의 제한성을 알게 되었다.l7)
97) Barbour, Tech110/ogy, Envfro1:me11t, and Human Values, pp. 22~2-1 : Paul Shc;,:ird and Daniel Mckinley, eds., Tise Subversive Science (Boston: Houghton Mifflin, J 969) ; William Murdoch and Joseph Connell, •All about Ecology, ,,, Barb:>ur ed., Westcr11 Ji.fan and Enviromo11tal Ethics, pp. 156~ 170
그동안 우리는 동물의 행동, 인류학, 십리학, 사회학의 연구를 동해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유전자와 문화칙인 기초에 대해 더 배우게 되었고, 소음, 인구과밀, 자연환경 둥의 요인이 인간 문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더 알게 되었다. 우리의 장레 생존을 위해서도 물론, 바이아턱 커뮤니티의 완전성, 안정성, 아름다움을 보촌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땅과 인간 외의 다른 생명에게도 윤리쳐인 책임을 지고 겸손해야 한다고 리어폴드 Aldo Leopold 는 주장하고 있다.98) 최근에 우러는 유명한 〈로마클럽의 보고〉에서 주장된 바와
98) Aldo Leopold, •The Land Ethic,• in A Sand County Almanac(New York: Oxford Unirersity Press, 19-49) ; Barbour, Technology, E11vfro11ment, and Human Values, pp. 2-4, 91~9.f. 산층계가 생문의 끼치는 에두운 과학져 으로 분석하고 인간과 자연의 상호의존판게 윤 낭만쳐인 정신윤 방분하는 아운다운 핀
재 로 해 석 하면서 생 대 학지 인 양십 윤 붑러 일으.:;,J_ Rachel Carson 의 Silent Spring 온 너무나 유명하다•
같 이 경재성장과 인구물 제한해야만 자원의 고갈과 공해 를 막을 수 있다는 주칭-~ 흔히 듣게 되었다. 이러한 생대학적인 관점은 과학직인 견해이지만 인간의 제한성과 인간 중심주의 률 반성하는 겸허한 종교칙인 태도와도 관계된 것이다.99)
99) Barbour, Tecl,110/ogy, E11vironme11t, and H11ma11 Values, Chap. 12 ; Donella H. Moadows et. al., The Limits to Growth (New York: Universe, 1972) ; Heilbroner, An Inquiry into the Human Prospect: Daniel Yankelovich, The New Morality: Profile of American YoutJ나?1 the 70S (New York: McGraw-Hill, 1974) ; Yankelovich, New Rules, Parts II , m.
자연에 대한 세번째 대도는 지금까지 살펴본 자연지배와 자연과의 일체감과의 중간 지대에 있는 입장이다. 이미 언급한 바도 있지만, 성서칙인 자연관은 인간 중심적인 자연지배 를 정당시하지 않았다. 〈이 땅과 그 위에 사는 것이 모두 야훼의 것〉(시편 24 : I) 이라고 다윗온 노래하였다. 야훼 하나님이 땅을 창조하였기에 그에게 속한 땅을 우리는 청지기로서 다만 찰 가꾸고 보존해야만 하는 책임이 있울 따름이다. 이러한 하나님 중십의 자연관에 의하면, 창조된 세계는 인간의 방편으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하나님이 모시기 에 좋은 것 이 었 다(창세 기 I : IO, I2, I8, 2I, 25, 3E 시 편 19, 89, 104). 성서에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놀라운 현상을 찬양한 구철이 너무나 많다. 자연은 인간과 더불어 장차 구속뭘 대상이다. 이러한 성서칙 자연관을 잘 대표하는 것이 성베네딕트의 일과 명상과 자연을 하나로 연결하는 철학이었다.100)
100) Barbour, Technology, Environment, and Human Values, pp. 24,.._,25 ; W. Lee Humphreys, •Pitfalls and Promises of Biblical Texts as a Basis for a Theology of Nature,• in A New Ethic for A New Earth, ed., Glenn Stone(New York: Friendship Press, 1971).
삭막한도시와 황량한 광야의 사이에서 찰가꾸어전자연의 전원적인 이 상을 찬양한 문학작품은 버 질 Virgil 로부터 오늘날 마르크스 Leo Marx 가 현 대 문명 과 자연 의 〈중간 풍경 Middle landscape〉을 찾고자한 것에 이르기까지 매우 풍부한 전봉을 가지고 있다.l0l) 오늘날 자
101) Leo Marx, The Machine i11 the Garden: Technology and the Pastoral Ideal in Amcri'ca(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64) ; Leo Marx, •Pastoral Ideals and City Troubles,• in Barbour ed., Western Man and Em'iro""'mtal Ethics, pp. 93~11
5.연보호운동의 이상도 무제한적이고 오만한 자연이용과 철대저인 자연 보호 사이의 중간점을 지향하고 창조칙인 자연이용과 자연보호와 의 균형을 유지하자는 데 있는 것이다. 인간과 땅은 놀랍고 창조적인 공생칙 싸이버네틱 시스뎀 속에서 두 다른 존재이지만 서로 이익 윤 주면서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102) 인간과 자연의 일체성과 인간의 청지기로서의 역 할의 중간지점을 겨냥하는 사상으로 우리는 과정신 학 Process theology 을 들 수 있다. 과정신학은 화이트해드Alfred N. Whitehead 사상의 영 향을 받아 칸트나 데 카르트나 실존주의자둘처럼 자연과 인간을 형이상학칙으로 구분하지 않고 서로 의촌하면서 영향을 주고받는 창조칙 과정으로 본다. 이러한 사상에서는 모든 존재는 내재적으로 가치 있는, 소중히 대하여야 할 대상이 된다. 그러면서도 인간의 득수한 우월한 입장은 유지가 된다.103)
102) Rene Dubos, •A Theology of Earth,• Wester11 Man and Environmi'ntal Etlzlcs, ed. Barbom, pp. H, .C3~H. 103) John Cobb and David Griffin, Process Tlzeology(Philadelpbia: Westminster Press, 1976) ; John Cobb, ls It Too Late? A Theology of Ecology (Beverley Hills, Calif.: Bruce, 1972).
지금까지 우리는 인간의 자연에 대한 몇 가지 태도를 살펴보았다. 우리에게 바람직한 입장은 역시 자연과의 일체성과 청지기로서의 책 임을 연결하여 주는 중간지점인 것 같다. 우리는 인간 이외의 생물의 촌재도 그것이 인간에게 유익하기 때문이라기보다 그 자체로서 존재할 이유가 있는 귀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자연을 육성하는 대도를 가져야만 하겠다. 그레야만 기술, 산업위주의 현대사회의 추세 를 막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2) 인간과 과학기술우리의 도덕적인 선덱의 문제는 자연에 관한 태도와 아울러 과학기술에 대한 대도와도 관계된다. 기술은 〈실제적 목져의 성취 를 위해서 지식을 조직한 것〉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104) 또 기술은 공리적인 목쳐을 위해서 자연을 변화하는 노력이기 때문에 언제나 자연에104) Emmanuel Mesthene, Change: Its Impact on Man and Sodcty, p. 25.
기초하고 있는 전통적 사회형식과 문화를 파괴한다. 기술은 인간에개 재 2 의 본성윤 준다. 기숟은 인간의 적응력과 방향 전환할 수 있는 사고를 봉해서 자기의 생각대로 실재 를 바꿀 수 있도록 해준다.105) 기술이란 말을 쓸 때 대체로 19세기 중엽부터 발달된 과학에 근거한 기술울 말하기 때 문에 과학기술이란 말을 쓸 수도 있다.
10s) Daniel Bell, •Technology, Nature, and Society,• in The Winding Passage, pp. 7, 9, 20,..,,26.
인간의 기술에 대한 대도는 크계 셋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기술은 기근과 병과 전병이나 빈곤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주고 그에게 물질적인 발전과 성취 를 약속해 주는 것이라고 보는 낙관적인 기술론이다. 둘째는 기술에 대한 미관적인 비판론이고, 세째는 기술은 그 자체가 중거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연 사회칙 컨덱스드에서 무슨 경제칙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용되느냐에마타 그것을 평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첫째로 낙관적인 기숟론을 말하면서, 기술이 우리에게 준 해덱이나 낙관적인 견해를 소개할 팔요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널리 알려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몇 가지 홍미있는 견해 률 짚고 넘어간다면 기술을 통해 전적으로 통제된 미래의 환경윤 우리 계최대 로 만들 수 있 다는 풀러 Buckminster Fuller 의 견 해 나, 유전자 공학을 동해 우주여행 때와 같은 특수환경에서 살 수 있는 인조인간cyborgs 을 만들 수 있다는 견해를 둘을 수 있다• lOG) 사회 학자 벨Daniel Bell 은 지금 출현하고 있는 후기산업사회에서는 재산보다 지식이 권력의 기반이 되며, 과학자, 기술자, 전문가들이 지배계급이 되기 때문에 대학, 실험실, 연구기관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계 되고, 경제도 생산보다 서어비스 중십으로 되어 갈 것이라고 한다. 후기 산업사회에서는 합리적 기술적인 근거에서 모든 결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데운로기는 되색될 것이며, 전문인들과 데크노크래드들이 등장하는 사회가 되리라는 것이다.107) 한편, 컴퓨터와 우106) Barbour, Tccl:no/ogy, Ettvironmcnt, and Human Values, p. 39. 101) D. Bell, Tlte Coming of Post-/nd11slrial Society, (New York: Basic Books, 1973) ; idem, Tile End of Ideology (New York:, Free Press, 1 960). 이와 미슷한 견해로 Herman Kahn and Anthony Weiner, Tltc Year 2000. (New York: Macmillan, 1967).
주탐험에 나타난 인간의 창조성은 자연을 지배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이는 것이라고찬양하는 신학자들로있다.108) 이러한 낙관칙인 기술론은 기술을 위해 우리가 지불하는 환경직이고 인간직인 댓가나 사회정의나 기술의 가공할 만한 위험성이나 기술 전문가들이 지배하는 사회의 동제성 둥을 생각하면 섣불리 우리가 동조할 수 없는 견해라 하겠다. 109)
10a) Myron Bloy, The Crisis of Human Va/ues(New York: Seabury Press, 1962) ; Kenneth Vaux, St,bduing Iha Cosmos: Cyber11etics and Man's F社 urc(Richmood, Va.: John Knox Press, 1970) ; Harvey Cox, •The Christian in a World of Technology," in Sicie11ce and Religio11, ed. Ian G. Barbour (New York: Harper & Row, 19GB). 109) l:3arbour, Tec/11wlogy, Human Values, and Envfr011mc11l, pp. 39~41. Peter N. Stearns, •Protest Movements," Dt'clionary of the History of Ideas, l : 676.
우리의 관심은 낙관칙 기술관보다는 비관칙인 기술관에 더 쏠린다. 기술 비판의 주요점은 기술 때문에 지불한 인간적인 댓가가 너무 크다는 데 있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인간적인 피해와 착취는 잘알려진 사실이다. 미인간적인 공장의 노동조건과 기계의 사용으로 고용이 감소되었다고 믿었던 성난 영국의 수공업 노동자들이 기계률 때려부시고 난동을 부렀던 러다이트 Luddite Campaign(18u-16) 운동 이래 산업사회와 기계문명에 대한 반대는 꾸준근하게 계속되었다. 문학의 낭만주의 운동은 기술문명에 대한 반항이가도 하였다• 낭만주의자들은 흉악한 산업화의 물결에 항거하여 자연의 아름다움을 변호하는 동시에 기술적인 합리성에 대해 인간의 상상력과 칙관성을 변호하였다.110) 그러나 기계문명의 대세 앞에서 낭만주의적 사상은 무력하였다. 기계문명과 기술에 대한 회의가 강해진 것은· 제 2차 대전의 파괴 목히 원자탄의 파괴력이 너무나 컸던 때문이었다. 그 후 메트남에서 막대한 과학기술을 동원하여 싸운 허무한 전쟁은 많은 미국의 젊은이 둘 에게 기술에 대해 완밀감을 주었다. 기술이 환경과 인간에게 미치는 예기치도 않았던 결과와 7卜순의 놀라운 밭전에 비해 너무나 느리게 면하는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태도와의 모순에 대해 눈을 뜨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개 된 것이다.
인간칙인 성취와 과학기 술이 서로 용납할 수 없는 관계에 있다면그것은 무엇일까? 첫째로 우리는 현대기술의 획일적인 성격을 지적할 수 있다. 대량 생산은 표준화된 물품을 만들어내고, 대중매체는 최일화된 문화를 주입한다. 개성이나 지역적 특성이나 인간의 자발칙인 자유는 기계화, 객관화, 표준화의 추세에 의해 짓눌린다. 전자, 자동화된 사회에서 개성이나 자유가 더 신장된다는 증거는 찾기 힘들다.111> 둘째로 합리성의 문제를 보기로 하자. 실증적인 증거에 기초한 과학적 태도와 기술응용을 중요시하는 서구인들에게 〈합리적〉이란 말은 모든 사물의 구성 요소를 쪼개고 분석하여 다시 조립하고 조작하여 그 결과를 계산하는 대도를 말한다. 이러한 뜻에서의 합리성은 관찰과 증명을 동해서 전리를 검증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도는 실재의 한 측떤만 보고 다론 차원 죽의미와· 신화와 상칭에 관계된 측면은· 보지 못하는 결점이 있다.112) 합리성이란 개념은 이러한 뜻과는 다른 뜻으로 쓰기도 한다. 죽 그것은 메버 Max Weber 에 의해 사용된 개념인데, 여기서 합리성은 효율성을 뜻한다. 그것은 어떻게 하면 수단과 경비를 최소한으로 들여서 최대한의 유용한 건과를 얻느냐 하는 문재와 관계된다.113)
111) Barbour, Teclmology, Htunan Values, and E硏"''me11t, p. 43. 112) Denis Goulet, •science and Technology for a Global Society,• in Impact of Science on Society No. 2, 1983, p. 182. 113) D. Bell, The Comi11g of Post-/띠usthrial Soci"ttly, pp. 7.5~76, pp. 274~276 •
이런 뜻에서의 합리성온 사물의 분열상대, 전문화, 스피드, 생산의 최대화를 요구한다. 능률 자체가 목적이 될 때에 능뮬을 판단하는 표준은 매우 좁은 전문화된 모델이기 때문에 보다 넓은 범위에 미치는 인간칙 인 결과나, 댓 가나, 부작용은 간과되 기 가 쉽 다. 수량져인 표준에 집착하면 질적인 표준은 무시된다. 이러한 협소한 서구적인 능물관은 비서양사회의 지배적인 문화와 갈등을 보인다. 서양사회에서는 능 홀 을 따질 때 순전히 일 그 자체에 한정시키고, 종교 가족관계, 오락 갈은 가치는 게임시키지 않는 것이 상습이다. 그러나 비서양사회에서는 그들이 따지는 능률의 방정식에서 이러한 주관적이고 인간저인 요소를 뒤섞어서 보는 것이 혼한 예다. 여기서 우리는 사회의 표준자체가 서로 갈등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양적인 능률 위주의 사회에서는 근로자는 기계의 도구로 전락되어 기계의 스케줄과 뎀포와 요구에 응하계 된다. 그란 환경에서는 뜻 있는 일이 란 불가능해진다. 114)
114) Deuis Goulet, •Science and Technology for a Global Society,• pp, 1s2~183 ; Barbour, Technology, Human Values, a11d Enviro11ment, p, 43.
기술 사회의 인간관계는 전문화된 기눙적인 것이다. 인간은 잘 돌아가는 기계의 한 부분품에 불과한 취급을 받는다. 여기서 전정한 공동체 안에서의 인간관계란 있을 수 없다. 거대한 비인간적인 관료제칙 조직 속에서 사람들은 아무런 책임감을 느끼지 않고 익명의 인간으쵸L 지낼 수 있다. 인간 공학, 전자 감시, 약물을 동한 행동 조종, 심리적인 조절 둥 인간조작은 과학기술이 가쳐온 숟픈 현상이다. 115)
11.5) Barbour, 윗균, p. 43.
인간은 과학기술을 만들어낸 장본인이지만, 과학기술은 그 자체로서의 논리와 동력을 가전 포괄칙이고 영향력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일단 그것이 작동하기 시작하면 제작자인 인간도 .주체할 수 없는 끔찍한 일들을 처지를 수 있다. 여기서 이루 다 파악할 수도 없고 주체할 수도 없는 엄청난 과학기술 앞에서 인간은 주인이 아니타 노예이며 무력하고 소외된 존재임을 느끼게 된다. 기술은 정부와 정치가도 그 지배하에 둘 수 있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다. 기술은 너무나 엄청난 독자칙인 힘을 가지고 있다. 기술은 엄청난 독자적인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악의 규범을 초월하여 그 자체가 무엇이 좋고 나쁜 것인가를 규정할 〈새로운 도의성의 창조자〉이기도 하다. 116)
116) Barbour, 윗 굳, p. 44 ; Jacques Ellul, TIie Technological Society, trans. J. Wilkinson (New York: Knopf, 196,), Chapter n ; Langdon Winner, Auto,wmous Tec/1110/ogy(Cambridge: MIT Press, 1977).
과학 기술과 인간 문화의 관계에 관하여 1930년대부터 많은 업적을 남겨 온 멈포드 Lewis Mumford 는 현대의 전기 및 합성물에 대해 많은 희망을 걸고 기계 • 기술은 인간의 삶에 적용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였다. 그런데 그 후에 멈포드는 거대한 기술이 산업과 전쟁의 수단으로 전락하여 인간의 복지 에 어 긋나는 방향으로 훌러 가게
됨에 따라, 과학기술에 대해 좀더 비관적인 견해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적어도 인간이 기계적인 세계관울 대신할 수 있는 생물공학 biotechnics 을 발전시켜 생물과 기계와의 관계를 연구함으로써 인간이 자유를 누탈 수 있고 다양성 있는 공동체를 이루게 되리타는 기대를 결고 있다.117)
111) Barbour, 윗굴, p. 44 ; Lewis Mumford, Tee/mies and Civilizalion(New York: Harcourt Brace, Brace, 1934) ; idem, Tlze Myth of tlza Macliine, Vol. 1 : Teclmics and Human Davelop111e11t ; Vol. 2 : Tlze Pc,:tago11 of Power(New York: Harcourt Brace Jovanovich, 1967 and 1970),
소위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사회사상가 마르쿠제 Herbert Marcuse는 기술저인 합리성에 대한 철학적인 고발을 하고 있다. 마르쿠제논 기술적 합리성을 민중을 조종하기 위한 도구로 본다. 산업사회는 대중매체의 광범위한 힘을 이용하여 기업체들이 만들어낸 제품들을 팔아먹기 위해 허위칙인 수요를 만들어내고, 소바자들에게 마치 자기들이 마음대로 상품을 선댁할 자유라도 있는 것처럼 느끼게끔 허위의식을 조장시켜 준다는 것이다. 마르쿠제는 기술적 이념의 개념 자체가 이데운로기저인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기술의 응용분만 아니라 기술 자체가 자연과 인간을 과학적 타산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기술은 언제나 역사적인 프로젝트로서 한 사회의 지배적인 이익을위해 종사하는 것이라고규탄한다.118)
118) Herbert Marcuse, One-Dimensional Man(Boston: Beacon Press, 1964) ; Jurgen Habermas, •Technology and Science as 'Ideology',• Toward A Ratio11al Society, pp.122.
실존주인 철학자 부버 Martin Buber 는 과학기 술에 나타나는 나와 그것 (I-It) 과의 객관적으로 분리된 관계는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 및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요구되는 개방적이고 감수성 있는 관계를· 불가눙하게 만돈다고 지적한다.
119) Martin Buber, I a11d Thou, tans. W. Kaufman(New York: Scribner's, 1970).
현대 과학기술의 주도적인 정신은 인간이 스스로의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자긍십 죽 인간이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기술에 대한 무제한적인 충성온 신학적으로 볼 때 하나의 우상숭배의 죄라고 볼
수 있다. 과학기술이 우리 를 궁핍으로부터 구원해 주려고 우리에게 물질칙인 번영을 약속해 준다고 믿는 신앙은 하나의 세속적인 구원관이다. 풍부한 사회가 될수목 인간의 욕망과 물질칙 번영과 안락의 추구는 더 강해지고 인간은 정신적인 가치와 남과의 관계를 외면하고 자기 욕십의 노예가 된다. 자율성 합리성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면 우리는 상상력이나 정서적인 생활이나 인간적인 삶을 잃어 버 리 계 된다. 120)
120) Paul Tillich, "The Person in a Technical Society,• in Soclal EtMcs, ed. Gihson Winter(New York: Harper & Row, 1968) ; Barbour, Tcc/,,w/ogy, Huma', VaUcs, and Enviro,Immt, pp. 45~46.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 미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소위 대항문화 counterculture 는 비목 하나의 유행으로 그치기는 했지만 미국인의 가치관에 큰 영향윤 미쳤다. 대항문화는 기술사회의 능률, 질서, 합리성과 같은 가치에 반기를 듄었으며 경쟁적인 성공의 추구와 풍요한 생 환과 물질칙인 소유와 일에 대한 강박관념을 버리고, 그. 대신현대조직사회에서 회생된개성, 자연성, 자유와 같은 대체적인 가치물 찬양하였다. 대항문화는 동양종교에 나타나는 자연과의 일체성, 명상의 생활, 직관을 통한 궁극칙인 진리의 추구, 생명 • 외경의 철학에 동감을 느낀다. 도시에 등울 돌리고 자연에 귀의하여 무공해 농작물을 재배하여 단순하고 겁소한 삶윤 사는 것은 대항문화룰 따르는 젊은이돌 사이에서 유행이 되었다. 그들은 도시의 비인간적인 환경을 동지고 농촌의 작온 공동체에서 서로 의지하고 소속감을 갖고 사는 인정 있는 인간관계를 이상으로 삼았다. 이러한 대항문화는 하나의 유행 비슷한 것이었고, 지금에 와서 이 운동에 속하는 인구는 비록 미국 인구의 2~3퍼센트에 불과하지만, 대항문화의 이상온 기성사회의 많은 사람둘에게 물질적인 가치 이외에 이제는 좀더 삶의 질과 관계된 가치를 찾아야만 진정한 인간성취가 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쳐 준 것이다.121)
111) Daniel Yankelovich, New Rules, pp, 11:z~1n.
대항문화의 이론칙인 대변인인 로젝 Theodore Roszak 온 산업기술의 비인간직인 영향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묵히 그는 획일성, 눙률, 비인간성 동과 갈은 기술의 폐해 률 과학에서 주관과 객체 불 양분하
여 대상화하는 데카르트가 말한 객관적 의식의 탓으로 둘리고 있다. 이런 객관적 의식은 기계적인 세계관을 낳았고, 기계적 세계관은 인간이나 생명을 물체처럼 본다. 로책은 현대인이 그동안 잃어버렸던 낭만적인 요소, 즉 상상력, 개성을 마술이나 꿈을 통해서라도 배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황무지와 같은 산업사회에서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팔요한 것은 잃어버렸던 환상과 꿈을 되찾는 것이타고 그는 지적하고 있다. 122)
122) Theodore Roszak, The Making of a Counter Cttllure 목히 재 7 장 .The Myth of Objective Consciousness• ; idem, Where tile Wasteland Ends.
대항문화가 주장하는 자연과의 화합, 따뜻한 인간적인 관계, 정서적이고 인간적인 경험과 같은 가치는 현대인이 철실히 요구하고 있는 가치이다. 그런데 이런 가치를 현대인이 망각하거나 잃어버린 채 살고 있는 것은 과학기술의 탓이라기보다는 현대인이 너무나 일방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기술 · 물질칙인 전보 없이는 우리의 삶은 불편하고 꿍색해질 수밖에 없다. 기숟져 이성의 비판이 너무 일방적으로 될 때 우리는 인간 경험의 전체성을 회복할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이성과 함께 정서도, 사고와 함께 느낌 도, 비 판적 인 탐문과 함께 창조적 인 상상력 도 필요하다. 우리는 물질적인 발전분만 아니라 표현의 자유, 정서칙인 생활, 따뜻한 인간관계도 있어야만 잘 살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체저인 인간의 회복〉이며 이성에 대한 보다 폭넓은 이해이며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협력이다.123) 대항문화의 기술산업사회 비판의 맹점은 환경과 사회파괴를 가져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정치 · 경제적인 제도와 사회정의의 차원을 동한시함으로써 환경을 보호하고 기아와 빈곤과 질병을 되치하는 실제적인 과업을 외면한다는 점이다. 과학기술은 중립적인 환경에서 촌재하는 것이 아니라 특수한 정치 • 경제체제의 이해관계와 직결되어 있고 흔히 권력의 도구로 사용된다. 기술은 빈부간의 차이를 줄이는 것보다는 늘리는 방향으로 이용되고, 선진 산업사회와 종속칙인 사회와의 불균형을
123) Ian G. Barbour, "Science, Religion and the Counter Culture,• Zygon, 10(197') : 380~97 ; Barbour, 윗균, pp. 47~48.
조장하는 데 이바지해 왔다. 정부 관료제와 결탁한 기업체둘, 소위
천문기 술관리 계 급 technostructure 은 창조성 윤 결 한, 보수쳐 이 고 권위주의칙인 관리자들이다.124) 기술은 지금까지 근시안칙인 기업체의 사적 이익과 경제성장을 위해 종사해 왔고, 굴레 벗은 기업체는 공익보다는 사익을 채우기에 급급해 왔다. 그러나 이재는 환경과 인간의 요구를 중요시하는 사회학칙인 모델이 경재학적인 모델보다 우선처으로 인정되어야만 하는 지점에 서 있다.l25) 기술을 인간의 해방과 환경의 균형과 같은 목칙을 위해 재정립하는 일은 경재질서를 재구성하고 기술의 산물을 보다 정의로운 원칙에 의해 분배하는 철학과 정치적인 수단을 정립하는 일과 관계된다.126) 우리는 과학기숟 그 자체를 배격해서는 안될 것이다. 〈인간은 자연에 반대하여 살수 없듯이 과학과 기술 없이 살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학기술울 어떻개 사용하느냐 하는 지혜이다.127)
1 24) John Kenneth Galbraith, The Ni(!w Indus1n·a1 Stale, 2d. rev. ed. (Boston: Houghton Mifflin, 1972).t 2') Daniel Bell, Th11 Coming of Posl-ittduslria/ Society, pp. 269~2911. 126) Norman Faramelli, TeclmetMcs (New York: Friendship Press, 1971). 나 7) Schumacher, Small is beautiful, p. 138.
우리는 과학기술이 잘뭇된 목적에 사용되지 않고, 인간의 진정한 복지와 사회정의, 자유의 신장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과학기술의 나아갈 방향을 걷칭해 줄 사회칙 · 정치칙 제도를 바로 잡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과학기술이 인간적이고 환경적인 가치를 위해 어떻게 사용될 수 있도록 방향을 재정립하느냐하는 문제에 관심을 돌려야 할 것이다.
4 새로운 방향의 모색 : 과학기술의 인간화와 환경윤리 확립의 문제(1) 과학기술의 인간화자원고갈과 대규모의 현대과학 • 기술로 인한 인간과 환경에 대한· 충격이 막대한 오늘날, 우리는 생태계를 유지하고 인간의 성취를이루기 위하여 우리의 가치관과 기 술 의 방향윤 재 정 립하고 보다 나은 인간사회에 대한 비전 을 찾아야 한다. 프롬 Erich Fromm 은 〈희망의 혁 명 The Revolution of Hope>이 란 체 에 서 현 대 산업 사회 의 비인간화되어 가는 모습윤 찰 묘사하고 있다. 능윤과 생산을 숭상하는 기계화된 사회에서 현대인은 물질적 으로는 전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부하게 되었지만, 진정한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프롬은 고발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상기한 책 의 부제 를 〈인간화된 기술을· 향하여 Toward a Humanized Technolg y〉라고 부쳤듯이 , 과학기술은 물질 을 최대한으로 생산하는 것 보다 인간의 충분한 발전을 위해 과격하계 방향전환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방향전환은 과격한 정치 · 경제의 혁 명 을 거치거냐 전문인들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서도 시민들의 광범위한 참 여 물- 동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그는 지 적 한다. 128) 한편 제 계 기 독교협 의 회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는 1975 년 나이로비회의에서 〈인간의 발전 : 권력 의 애매성과 기술과 삶의 질〉이란 선언문을 채덱하였다. 그런데 이 선언문에서도 대량적인 기아, 자원의 고갈, 환경의 파괴로 인해 큰 재해에 임박해 있는 세계현황을 상기시키면서, 〈인류순곤 민중의 기본적인 육체적 • 정 신칙 요구를 충당하고 인간의 고동을 최소한도로 줄이고 모든 사람들을 위한 알맞는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기술이 동원되고,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는 전지구적인 사회로 계획적으로 이행해 갈 수 있도록 할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이 목적을 위해서 〈과격한 문명의 변혁, 새로운 기술, 기술의 새로운 사용, 그리고 전지구저인 정치 • 경제체제〉가 팔요하다고 밝히고 있다.129) 또 이 선언은 믿음과 사랑과 희망을 통해서 자유믈 얻은 민중이 〈정의롭고 참여적이고 유지 될 수 있 는 사회 a just, participatory and sustainable society〉를
12s) Erich Fromm, Tlte Revolution of Hope: Toward a Huma11izod Tee/mology(New York: Bantam, 1968).129) •Breaking Barriers, Nairobi 197.5,• quoted in Faitlt and Scie11ce ill a11 Unjust World: Report of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Conference on Faith, Science and the Future, MIT, Cambridge, USA, 12-H July, 1979, Vol. 1(Plenary Prese.ntations)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0), pp. 24~25.
건설하기 위해서 사고와 세계관과 삶의 스타일을 과격하게 변혁할것 metanoia 윤 강조하고 있 다. 130) 여 기 서 말하는 새 로운 기 술이 란 인간화된 기술이다.
130) 윗균.
그러면 인간화된 기술은 무엇인가? 그것은 환경과 인간적인 가치를 아울러 유지하면서 기술적인 문제믈 해결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도 능뮬성 있는 기술을 말한다. 이것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 Small is Beautiful〉의 저자 슈마허 E.F. Schumacher 는 〈적철한 기술 appropriate technology> 또는 〈인간의 얼굴윤 가진 기 술 technology with a human face〉이라고 부른다.131) 〈인간의 얼굴을 가진 기숟〉이란 말은 비인간직인 거대한 기숟과 이와 관계된 대량생산 소비지향적인 경제와 엘리트 중십의 전제적인 정치와는 다른 대안적인 기숟울 말한다. 인간화된 기술은 고도로 발달되고 자본집약저이고 에너지 의촌적인 대량생산적인 기술이 아니다. 대량생산적인 기술은 비싼 기계와 내도시에 집중된 고도로 훈련된 근로자들을 필요로 하고, 자원낭비가 심하고, 사람을 기계화한다. 이에 비해 우리에게 팔요한 기 숨은 대다수의 민중이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그 지역에서 나는 자원이나 목성에 합당한 생산품, 묵히 그둘의 의식주와 건강과 갈은 기본적인 요구와 관계된 것들운 현대저인 7li분을 이용하여 만들어낸 수 있는 기술이다. 이런 기술은 생대학저으로도 건전하고, 민중의 지방자치와 참여를 권장하고, 많은 실업자듈에게 직장을 제공하며, 그듄에게 스스로 창의성윤 가지고 일할 기회를 주는 인간적인 기술이다. 이런 기술은 원시칙인 기술보다 훨씬 우수하지만 부강한 사회의 대형기숟보다는 훨씬 작고 단순하며 경비가 멀 들고 안전하고 자유로운 기 술이 기 때 문에 〈중간 기 술 intermediate technology 〉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민중이 〈스스로를 돕는 기술 self-help technology> 또는 〈민주적 인 혹은 민중의 기 술 democratic or people's technology〉이라고 부를 수 있다. 132) 이 런 기술은 사치스러운 욕망이 아니라 인간의 전정한 실질적인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기술이며 <
131) Schumacher, Small is Beautiful, pp, 142~1.5.5, 173~17.5. 132) 윗균, pp, 1.50. 142~1.5.5, 167~18.5.
간의 실제 사이즈〉에 맞는 기술을 뜻한다. 〈인간은 작다, 그래서 작온 것이 아름다운 것 이 다. >133)
133) 윗균, p.
인간화된 기술윤 찾는 일은 〈상상력과 공포감을 버리는 노력〉을 요구한다. 134) 인간의 생촌, 건강, 최소한의 물질적 복지는 인간에게 기본적으쵸i 필요한 가치이다. 우리는 이런 기본적인 요구를 충족시키 되 보다더 높은 욕구, 즉 마술로우가 말하는 소속감, 촌경 , 자기성취와 같은 요구를 회생하지 않고 충족할 수 있는 방법윤 모색해야 할 것이다. 기술온 정의의 도구로서, 빈부간의 격차를 줄이고 가장 불우한 자둘에 게 가장 많은 혜 덱 이 돌아가도록 함으로써 모든 불균등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도 다갈이 혜택윤 받을 수 있고 공정한 기회균등이 마련될 수 있는 방향으로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자연처 행운에 의해 부여되거나 사회져 행운에 의해 획득된 개인의 재능이나 능력은 사회의 공동재산이기 때문에 이것윤 사회의 가장 불우한 자들의 최대이이율 도모하는 방향으로 이용해야 할 것이다.136)
134) 윗균, p. 155. u,) John Rawls, A Tht!ory of JusUce(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71), p. 302,
사회정의의 문제는 부유한 나타와 가난한 제 3 세계와의 관계에서 어려운 문제를 낳는다. 선진국가의 부유충이나 지식인둘이 제한의 시대, 물질져 기대상승의 여재, 제로성장의 경제 둥을 말할 때 그듄온 한정된 자원을 후세들을 위해 보존해야 한다고 외친다. 그러나 겨우 연명할 정도조차도 못되는 제 3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구호를 부르짖는 선전국의 사람둘은 너무나 위선저으로 보일 것이다. 그들은 부유한 나라의 사람들이 자연보호의 윤리의 미명하에 가난한 재 3 세계윤 여전히 빈곤 속에 갇혀 있도록 하고자 하는 속셈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러므로 선전국듄온 우선 그들 자신이 물질저인 부뮬7 크게 제한하고 새로운 삶의 스타일운 따르는 일을 솔선수범해야 할 것이다.
136) C. T. Kurien, •A Just, Participatory and Sustainable Society: A Third World Perspective, • Paper presented at the Conference on F:iitb, Science and the Future, World Council of Churches, Boston, Mass, July 12~ 1979.
그러면 제 3 세계에는 어떤 유형의 개발이 적철할 것인가? 미국과 같은 자본과 자원이 풍부하지만 노동력이 귀하고 비싼 사회에서 생산의 자동작업화 automation 는 자본집약적이지만 노동절약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런대로 유지가 되어 왔다. 그러나 자본이 귀하고 노동력이 남아돌아가는발전도상에 있는나라들에서는노동집약적이고 자본이 적 게 드는 기 술이 요구된다. 제 3 세 계 가 미 국의 본윤 따라 녹색혁명의 길을 걷게 되면 재생불가능한 자원에 더 의지하계 되어 얻마 안 가서 모든 석 유화학물질은 동이 나고 빈곤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한편 高에너지 산업개발은 전봉처 생활양식의 파괴물 가져온다. 선진국의 생산, 소비수준,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표준, 가치관, 행동양식을 무턱대고 따르게 되면 부유한 나라에 멋도 모르고 의존하게 되고 자립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제 3 세계는 서양 선전사회와는 다른 형대의 개발을 추구해야 한다. 제 3 세계 국가가 산업화물 추구하계 되고 생산이 자동화되면 일자리가 줄어들고 실업자들이 많이 생기게 된다. 이와 함께 녹색혁명에 의한 기계화 영농은 농부둘로 하여금 농촌을 떠나게 만들고 강제 이농현상은 도시와 농촌의 빈곤현상을 악화시킨다. 농촌과 도시의 격차는 십각한 사회붕괴의 위험윤 가져온다. 이런 사회에서 요구되는 기숟온 농촌이 나 작은 고을에 서 직장윤 마련해 줌으로써 인구의 도시 유출과 그에 따른 도시문제와 실업윤 막을 수 있는 중간기술이다. 현대기술과 전동적인 경제, 기술이 뒤섞여 있는 개발도상의 국가에서는 선전국가의 대량적인 기술이 생산하는 무기나 소수의 특수계급들의 수요에 응하는 사치품보다는 민중의 일상 생활품, 특히 식량생산이 더 유익한 것이다. 선진국가에서도 자원집약적이고 공해를 가져오는 소비자들의 소모품보다 교육, 건강, 커뮤니케이션 갈은 써어비스에 관계된 산업이 더 바람칙한 것이다.137)
137) Schumacher, Small is Bca11tif11I, pp. u2~1,,, 1'9~166, t61~1s,, 186 ~199 ; Rifkin, Entropy, pp. 202~201, 2oe~210.
적철한 기술은 현대인의 환경에 대한 관십, 산업기술에 대한 환멸, 대체적인 삶의 스타일에 대한 요구를 반영하는 중간적인 기술이다. 미국에서도 이러한 기술에 대한 관십온 그.동안유행해 온 「전
지 구 카탈로그 The Whole Earth Catalog」와 관련된 생 대 학적 운동, 유기적 농업, 재생적인 에너지와 여러가지 공동체적인 自活· 自助운동에 잘 반영되고 있다.138) 중간적인 칙합한 기술은 중앙집중화된 국가적으로 필요한 산언과 환경보전, 자원배당, 기업의 권력제한과 같은 요구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요는 크고 작은 기술을 인간적인 요구와 생대학칙인 필요성과 민중 중십의 삶에 맞도록 재조정하는 것인데 이런 목표는 혼히 작은 혹은 중간칙인 기술에 의해 보다더 찰 충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슈마허는 〈기술의 선덱은 모든 선덱 중에서 가장 중요한 선덱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139)
138) Barbour, Teclz110/ogy, E11vz'ro11me11t, a11d Human Values, pp. 299,-..,.300. 139) Schumacher, Small is Beat1tif:el, p. 201.
(2) 대안적인 가치와 제도들
우리는 인간여사에서 이때까지 볼 수 없었던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다. 리프킨의 표현을 빈다면 우리는 물질적 전보에 대한 신념과 경제학의 기초 자체와 시간과 문화의 개념과 기술에 대한 신앙 그 자체를 뒤흔들어 놓고 있는 엔트로피 패러다임 Paradigm 의 가치관에 따라 살아야 하는 시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 역사적 상황에서 우리는 먼저 우리의 신념체계를 반성하고 우리가 살아온 삶의 대도와 생활양식을 재편성하여, 그것이 새로운 패러다임에 부합되도록 해야 한다. 한편 우리는 민중적인 사회참여를 통하여 엔트로피시대의 인간조건을 반성하는 새로운 가치관에 따라 새로운 사회를 건섣할 비전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모든 질적이고 정신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것을 무시하고 육체와 정신, 자연과 인조H끌 갈라놓았고, 인간이 자연을 이용하여 끊임없는 물질적 진보를 추구할 수 있다는 신화를 믿 어 왔다. 물질적 진보, 효윤성 , 분업 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전동과 공동체와 인간성을 과괴해 왔다. 우리는 하이 High 엔트로피 사회를 대체할 수 있는 로우 low 엔트로피 사회의 구조와 경계체제를 생각하기에 앞서 인생의 의미와- 방향을 가리켜 주는 기본적인 가치와 삶의 스타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슈마허는 우리 세대가 당면한 근본칙인 과업은 〈형이상학칙인 재건〉인데, 이것이야말로 모든 교육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다. 그는 교육의 과제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선덱을 해야만 하는 場인 세계의 가장 큰 문제들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도덕적인 선덱을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상을 밝혀 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어떻게 하느냐 하는 방편에 관한 단편적인 전문적 지식온 찰 알고 왔지만, 〈무엇을〉 하느냐 하는 지혜, 즉 목적 선택의 능력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의 사물을 그대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을· 통해서 생각하고 사물을 해석하고 판단한다. 알고 보면 소위 인간의 〈사고〉라는 것도 이미 촌재하고 있는 관념을 주어전상황에 응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 말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치 관념 value-ideas 에 따라 사물을· 평 가한다는 것 이 다. 그평 다면 대양에서 광선이 유출되듯이 모든 전문분야는 아무리 전문화되었다할지라도 하나의 중심과 연결되어 있다고 분 수 있다. 그러면 우리의 중십울 구성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형이상학과 윤리와 같은 사실을 초월하는 관념이다. 진정한 교육은 자기의 삶의 의미에 대한 이러한 중십적인 신념을 가진 全人을 길러내는 것윤 뜻한다고 슈마허는 주장한다.l·IO) 이러한 중십직인 신념은 과학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나 석가와 공자 갈은 위대한 스승들의 고전적인 휴머니스틱한 지혜를 배위 내재화하는 데서 온다.
140) 윗 균, Chap. 6.
그러나 현대 지식인들은 다음의 여섯 가지 부분적인 진리들윤 마치 그것들이 보편저인 진리인 양 주장합으로써 지식을 우상화하고 있다고 슈마허는 꼬집고 있다. 현대 지성은 모든 실재는 심지어 종교나 언어와 같은 정신저인 현상들까지도 전화한다는 것을 믿는다. 둘째로 지식인들은 모든 현상의 진화과정윤 경쟁과 자연도태와 져자생존의 보편적인 자연법에 의해 파악한다. 세째로 그들은 종교와 철학과 갈은 고차원의 인간의 삶에 관계된 현상들은 물질적 생활과정의 반영에 불과하며 경제적인 이해관계를 위장하기 위한 상충구조에 지나지 않는다는 마르크스의 이론에 현혹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부분적인 사실을 마치 그것이 보편적인 사실인 듯 주장하는데 있다. .그들은 인류역사는 더러는 계급두쟁으로 구성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두쟁은 〈모든 지금까지 있어 왔던 역사〉의 전체적인 과정이었다고 말함으로써 부분적 고占찰을 보편저인 전리로 삼는 미 과학적 인 대 도를 보인다. 이 러 한 오류는 프로이 트 Sigmund Freud 의 인간동기의 해석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다섯째는 상대주의의 경우인데 이것은 모든 규범과 표준을 없애고 심지어는 자신까지도 부인하는 일종의 형이상학이다. 이러한 형이상학적인 오류는 자연과학의 방법론만을 동해서 인식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실증주의 Positivism 의 경 우에 도 볼 수 있 다. 141) 이 여 섯 가지 현대 지성의 목칭은 다같이 환원주의 reductionism 적이고 인간의 정신세계와 문화칙인 성취를 부인하는 공동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지식들이 부분적인 지식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식벨할 줄 알아야만 우리는 비로소 전정한 지식을 가질 수 있다.l42) 이것은 지금 논의한것 같은 인간과 사회에 관한 지식체계를 다 부정하고 버려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이런 지식체계가 실재를 설명하는 전체적인 세계관인 듯이 믿는 그릇된 신앙을 버려야 하겠다는 말이다.
l4l) 윗균, p. 6S~S6. 142) 성경은 〈야에윤 두려워하여 섭기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 (갑언 1 : 7) 라고 하였다.
현대사회의 병페룬 치유하고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온 먼저 형이상학적인 지혜률 찾아 인간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을 믿으며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가? 둥의 질문에 대하여 확신을 갖는 일이다. 이런 질문은 바쁘게 몰아가는 현대인들이 혼히 만지는 것들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과격하계 딸라져 가고 있는 역사칙인 상황 속에서 이러한 오래된 근본적인 물음을 다시 물어야 하는 입장에 서 있다. 이 지구촌의 환경칙인 요구와 현대사회의 인간조건을 감안할 때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이 따라야 할 기본적인 윤리, 죽 생존윤리는 무엇일까? 그것은 에너지 유출을 극소화하고 우리의 생명의 조건인 자연윤 보전하는 의무와 관계된다.
모든 위대한 역사칙인 종교는 오렌 세월에 걸쳐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물질적 욕구의 충족이 아니라, 우주의 형이장학적인 실재와 화합하여 하나가 되는 데서 오는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이러한 초월적인 실재에 따라 사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것을 전통적인 종교들은 가르쳐 왔다. 예수 • 석가 · 모하메드 · 이스라엘의 예언자들 • 인도의 성인들은 모두 욕심을 철제-할 것과 청빈하고 겁소한 삶을 살며 남과 더불어 서로 봉사하고 돕는 삶을 살 것윤 가르쳤다. 우리는 이런 전봉직인 종교의 지혜와 가치를 인간의 물질적 생활과 현대 과학칙 기술의 혜택과 어떻게 융합하여 脫現代사회의 새로운 삶의 좌표로 삼느냐 하는 문제에 당연하고 있다.
우리는 철망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우리는 메타테크니칼 metatechnical한 사회 의 성 취 , 즉 단속된 기 술적 인 진보와 전보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된 인간의 실존을 새로이 종합하는 과업에 대한 희망을 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죽 일의 보다 인간적인 형식, 자연에 보다 가까와지는 것, 보다 균형된 사회구조, 그리고 비물질적인 필요, 인간칙인 가치둘, 다시 말하면 금전으로는 표현될 수 없지만 오직 그것만이 삶을 살아갈 보람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가치들을 실현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려서는 안될 것이다.〉l43)143) Hans Krug, On Being a Chrt'slian, trans. Edward Oninn(Gardcn City, New York: Doubleday, 1976), p. 43.
예수는 인간의 물질적인 필요를 부정하지 않았다.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라〉 (마태복음 7 : 31)고 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찰 알고 계신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복음 7 : 3:z-34) 라고 가르쳤다. 진정한 인간화를 방해하는 장애물은 물질이나 宮가 아니라, 이런 것들에 에착을 갖고 종속되는 까닭에 인간의 본래 목저인 인간답게 자유롭개 사는 일을 소홀히 하는 것이다. 예수는 소유와 소비생활 전체를부정하고금욕주의와자기회생만울가르치지 않았다. 다만땅의
소유, 경제성장, 소비만 추구하는 데서 행복을 느끼려는 강박관념에서 해방되어야만 비로소 인간이 인간다운 생활을할수있다는 진리를 가르친 것이다. 돈, 소비, 생산, 일과 같은 것들은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지, 인간이 이 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러한 인간의 삶의 수단들을 마치 그들이 인생의 목적인 것처럼 생각하고 추구하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오직 한분이신 하나님 대신 많은 우상들을 숭배하는 것이 된다. 경제칙 가치가 최고의 가치가 아니라 그 대신 〈소유물로부터의 내칙인 자유〉를 연어서 겁소하게 내일 일을 걱정하지 않고 단순하계 창조주의 뜻을 믿는 삶을 사는 마음, 죽 〈마음이 가난한 사람〉의 심정으로 우리의 가치관과 대도가 과격 하게 바뀌 는 것 (回心, metanoia) 이 바로 과학기 숟과 현 대 경제구조를 〈인간화〉하는 첫걸음이 되는 것이다.144) 예수는 환경의 보호, 자원의 배분, 도시계획, 공해처리 등 구조칙인 개선을 위한 기숟적인 문제의 해결방안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메시지는 우리의 근본칙인 가치와 대도가 진정한 하나님의 뜻, 죽 인간의 행복을 위해 변해야만 다론 모든 구조적이고 기술칙인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인간의 전정한 복지 • 행복이야말로 하나님이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과학, 기술, 경제, 그 외의 모든 제도둘이 인간율 섭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곧 〈인간화〉를 뜻한다. 인간을 섭기고 사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섭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145)
144) 윗군, pp. 249~2.52, 267~271, .59.5~.597. 145) 윗굴, pp. 249~26.5.
우리는 특정한 인간들의 이기적인 이해관계와 결탁된 과학 • 기술 • 경재구조가 각각 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을 띠고 질대화되는 경향울 경계하고 그것을 부정하려는 것이지, 과학 • 기술 • 경제 자체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과학은 부분적인 지식이지, 실재를 전칙으로 다 설명할 수 있는 세계관이 아니다. 기술과 테더누더라시는 모든 문재를 해결할 수 있는 〈대리적인 종교〉가 아니다.146) 경제학에서는 모든 사물을 물량화함으로써 사물의 본질을 망각하고 인간이 자연
146) 이 표현은 Hans Krug 이 쓰고 있 다. p. 43.
의 일부로서 자연에 의촌하고 있다는 사실윤 무시한다. 사물을 물량화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동일시하고모든경재와 관계 없는 가치까지도 가격과 이익을 따져 생각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경제적 사고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신성한 것이란 있을 수가 없고, 모든 것은 사고파는 대상이 된다. 이것은 〈경제의 종교〉라고 할 수 있다.14” 이런 〈경재의 종교〉는 무한한 경재성장을 숭상한다. 그러나 무한한 경제성장은 자원이 고갈되고 환경이 그것을 지탱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이제는 한계점에 다다르고 말았다.148) 정신직인 측면에서 볼지라도 욕십과 선망에 기초한현대 경재는정신칙인 과산을 뜻한다. 욕심과 선망에 의해 눈이 어두워지면 마음의 평안을 잃게 되고 남과충돌하고 싸우게 되는 것은 물론, 사물과 세상도 재대로 보지 못하계 된다. 그렇게 되면 비록 통계칙으로는 국민총생산율이 눌어난다 해도 사람들은 사회칙인 문제, 특히 일상생활과 관계된 문제듄조차도 해결할 수 없게 되고 전보다 더 실제 생활에서 좌철감, 소외감, 불안 동을 느끼게 된다. 사회에 도피의식과 냉소감이 編滿하계 되면 과학 • 기술이 잘못되거나 모자라서가 아니타 모든 사람둘이 이제는 서로 정신적으로 허탈감에 빠져서 서로 협력을 하지않게 되 니 까 국민총생 산율도 상승하지 못한다. 〈사람은 땅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마태 5:4)는 혁명직인 지혜를 깨닫아야만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다. 경제 • 과학 · 기술은 환경을 보전하고 인간의 자유 • 평화 · 정의와 같은 복지에 이바지하는 한 존재할 이유가 있냐는 가장 기본칙인 지해 률 우리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147) Schumacher, Small is Bea11ti/ul, p. 43. 148) 윗군, p. 28. 149) 윗굴, pp, 28~31.
〈지혜는 과학과 기술이 유기적이고, 온유하고, 비폭러쳐이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것에 새로이 지향될 것을 요구한다.〉160) 평화는 무모한 과학과 폭력적인 테크놀로지 위에 세위질 수는 없다. 우리는 인류 전체룹 위협하고 있는 파괴적인 경향을 역전시킬 수 있는 발명과 기계를 우리에게 제공할 〈기술혁명〉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에게 팔요한 과학 • 기술은 되도록 많은 사람둘에개 보람 있는1,0) 윗군, pp. 30~31.
생업을· 보장해 줄 수 있으며 많은 사람둘이 쉽게 싼값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기계와 기숟이다. 자본과 에너지 집약적인 기계나 공장이나 기술은 富와 권력을 몇몇 소수자들에게 집중화하는 현상을 낳고 낙오자와 실업자를 만들어내어 사회를 위협하는 구조적인 원인이 된다. 이는 또한 도시화로 인한 인구집중화와 좌절감, 소외감, 범죄윤의 상승 갈은 문제믈 가져온다. 또한 바람직한 기술과 기계는 핵에너지나 운수기술과 같은 자연환경에 회복할 수 없는 파괴를 가져오는 거대한 기술과 기계가 아니타, 자연환경에 덜 해로운 작은 규모의 기술과 기계이다.
데크놀로지의 인간화를 논하면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중요한 사항은 가정과 더불어 우리가 자고 깨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우리가 하는 일이 인간의 창조성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겠다는 점이다.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고, 무의미하고, 기계칙이고, 단조몹고, 바보스러운일은인간본성을거역하는것이다.151)151) 윗굳, pp, 32~36.
일은 산업사회에서처럼 생산과 소비의 수단만은 아니다. 슈마허논 「불교경제학」이란 홍미있는 논문에서 일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인간에게 자신의 일은 능력을 활용하고 개발할 기회를 준다. 다론 사람들과 함께 공동의 임무에 참가함으로써 자기중심성을 국복하도록 만들어 준다. 인간다운 실촌에 팔요한 재물과 서어비스를 제공한다.〉162) 일은 여가와 함께 상호보완적인 것이고 삶의 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에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일은 우리의 인격을 재대로 형성시켜 준다. 인간적인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일하는 사람과 그가 만드는 생산물에게 아울러 덕이 된다.153)
152) 윗굴, p. 52. 153) 윗 굴, pp • .53~.s.s.
기독교적인 입장에서도 그렇지만, 불교적인 입장에서 보더라도우리는 사람보다 재물을, 일을 하는 인간보다 일의 결과인 생산품을 더 중요시하는현대 산업사회의 거꾸로된가치관을바로세워야할 것이다. 물질주의는 물품의 생산과 소비믈 추구한다. 그러나 불교경제윤리에서는 인간의 해방이 강조된다. 인간의 해방을 방해하는
요인은 부 자체가 아니라 부에 대한 애착이라고 보는 것이다. 부는 인간의 행복의 수단이지 부의 축칙과 소바가 곧 행복을 뜻하지 않는다. 현내 경재학은 소비의 물량이 많을수록 인간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아주 불합리한 가치관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불교는 우리가 최소한의 소미로 최선의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과 단순하고 평화스러운 삶윤 살 것을 가르치고 있다. 불교경재학은 우리의 생산을 위해 하는 수고가 적을수록 우리가 예술저인 창조성윤 위해 쓸 수 있는 시간과 힘은 더 많아진다는 경재윤리를 가르쳐 준다. 재물의 소유와 소비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 불교경제학은 주어전 목적을 최소한의 수단으로 어떻게 달성하느냐 하는 문재 를 조직적으로 연구한다. 불교경제학은 최소한의 물질을 가장 칙철히 사용함으로써 최선의 인간적인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이것은 최대한의 소비가 곧- 행복이라고 믿고 이를 위해 혈안이 되어 압력을 받고사는 현대인의 삶보다 훨싼 스트레스가 덜한 단순하고 행복하고 평화스러운삶이다. 어딜 가나자원은 개한되어 있다. 따라서 자원을 멀 쓰고 아주 겁소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자원을 낭비하는 화려한 삶에 익숙한 사람들과는 달리 남과 생사룰 무릅쓰고 싸울 필요가 없으며 그대신 석가가 가르친 착한 일을 하고 살 수 있다.
자급자족적인 지방공동체에서, 산출되는 물자에만 의존해서 겁소하고 단순하게 살아가는 사람둘은, 세계적인, 너무 거대하고 에너지소모가 크고 지나치게 분업화된 경제체재에 의존하는 사람들보다 대규모칙인 폭력에 휘말려들어갈 가능성이 적다. 그러므로. 불교경제학적인 견지에서 본다면, 지역적인 필요를 충당하기 위해 그 지역의 생산품에 주력을 기울인다는 것은 고도의 소비경제를 위해 해외무역, 죽 다국적기업에 의존하는 것보다 지극히 합리적인 경재적 삶이라고 할 수 있다. 164)154) 윗굳, pp . .51~57 ; Rifkin, Entropy, pp. 234~236.
현대경제학에서는 재생 가능한 물질들(예문 들면 재목이나 수력)과·재생불가능한물질들(석탄, 천연가스, 유유 등)윤 구분하지 않고 모든 자원을 똑같은 금전의 가치로 환산해 버란다. 그래서 현대경재는 불
가절한 경우에만 재생불가능한 자원을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자원보촌저인 대도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을 함부로 남용한다. 이것은 수입 대신 자본을 뜯어먹고 사는 기생 충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제한된 자연자원, 그나마 지구에 골고루 퍼져 있는 것이 아니라 불균형하계 산재되어 있는 자원을 무제한적으로 착취하는 행위는 자연을 경의하는 대도와 비교되는, 자연에 대한 폭행이며, 불가피칙으로 인간 서로간의 폭력행사를 낳는다.155)
t .5.5) Schumacher, Small is Beautiful, pp . .57~.59.
여기서 우리는 도가의 과학 • 기술 · 경제에 관한 시각도 참고해 볼 필요가 있다. 도가는 유교의 문명주의와 역사관, 곧 올바론 문화와 정부와 인간관계 를 동하여 이 세상을 자연상대보다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견해에 만기 를 돈 반문명 · 반역사적인 사상이었다. 도가는 현실사회와 문명을 떠나 자연에 돌아가서 조용히, 평 안하고, 소박하계 늙지 않고, 오랫 동안· 행 복하계 사는 삶을 추구 하였다. 도가의 이상적 삶은 작은 스케일의 마울 공동체 속에서 자연스럽게 단순한 삶을 사는 것이었다. 『莊子』률 보면, 야생칙인 말( 馬)의 행복한, 자연스러운 삶(天放)과 성인의 仁義益智윤 강조하는 불행스러운 인간의 인위적인 문명주의를 대조하는 구철이 있다.
처 백성에게는 공동된 성격이 있다. 그것은 직조해서 옷을 입고 땅을 갈아 식량을 얻는 일이다. 이것을 누구나 다 갖춘 며(同德)이라 한다. 백성은 각기 동떨어져 있으며 무리를 짓지 않는다. 이것을 아무 구속도 없는 것(天放)이라 한다. 때문에 최고의 덕이 이루어전 평화로운 세상에서는 사람들의 거동이 유유자적하며 눈매가 밝고 환하다. 그무렵 산에는 길이 없고 못에는 배나 다리가 없으며 만물이 무리쳐 생겨나, 사는 곳에 경계를 두지 않았다. 새와 짐승은 데지어 살고 초목은 마음껏 자랐다. 그래서 새와 침승윤 끈에 매어 노닐 수가 있었고 까치둥지에도 올라가 둘여다볼 수 있었다.대체 지극한 며이 이루어진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새나 침승과 함께 살고, 만물과 합께 나란히 모여 있었다. ‘그런데' 어찌君子와 少人이라는 ‘차별'을 해아리겠는가! 멍청하니 아무 지식도 없어서 본래의 참모습을 떠나지 않았다. 멍청하니 아무 욕망도 없어서 그야말로 소박하다 할 수 있었다. 소박하므로 곧 백성의 자연스런 본성도 온전했던 것이다. ‘그러나’ 성인이 나타나게 되자, 에써 仁울 행하고 허둥지둥 義률 행해서 온 천하가 비로소 의혹을 품게 되었다. ‘또' 제멋대로 음악을 연주하고 번잡하계 예의를 만들어 천하에 비로소 구년이 생기게 되었다(篤諦第九)166)
1.56) 安東林"'注, 莊子』, 上(諸子百家) ).g諦J{jL, 서 운, 玄岩社, 1977, pp. -409~411. 〈彼民有常性, 齡而衣, 耕而食, 是tW同亂-而不fkt, 命曰天放. 故至鉛之世, 其行坦損, 其祝四混當是時也, 山燕朗險澤無)lt 梁, 災物筑生, 迎屈其鄕. 白[幻成筑, 草木送長. 故其白默可f: OO而遊, r십節之災可{꿉援而1싸 *至t3 之世, 同Vi! l1S l:싸꿈, 族與幽物竝 惡子知君子• 小人哉. 同平祭知, 其t급기:t산, 同平無欲, 是印素!JS . ~t, 而民性1사矣 及至聖人, 炫斑爲仁, 段岐爲穀, 而天下始疑矣, 沮皮腐樂, 1t;갤f伐a, 而天下始分矣〉
윗굴에는 만사를 자연에 맡간 채 함부로 人爲, 죽 인공적인 테크놀로지나 기술칙인 노력을 가하지 말라는 장자의 가치관이 나타나 있다. 天下를 잘 다스리는 자는 인위저인 노력을 자연에 부과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들의 생명을 브촌하기 위해서 스스로- 만든- 기계로 옷을 짜 입고 땅을 갈아 먹을 것을 얻는 자급자족칙인 생활울 할 줄 안다. 장자는 이런 원시저인 자유롭고 소박한 天生, 즉 자연적인 삶을 이상적인 삶이라고 보았다. 도가는 사람들이 배나 다리와 같은 교통수단, 죽 기계 · 기술에 의지하지 않고 먼 지역에 있는 사람들과 벨로 상관하지 않고 지내는, 자급자족하는 고장을 이상사회로 보았다. 도가의 이상사회는 나와 남, 사람과 금수, 초목이 차벌이나 반목없이 각각 천부의 생명윤 성장시킬 수 있는 조화된 자연세계였다. 장자가 말하는 同德, 죽 〈누구나 다 갖추고 있는며〉이란 개념은 孟子가말한 보편적인 인간성 갈은 인간사회의 평등사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장자는 인간, 동물, 생물을 포합한(同與葛耿居) 생대계에 다같이 존재하고 있는 만물;(族與萬物竝)은 다 갈은 하나의 보편저인 존재원리에 근거하고 있다는 보다 포괄적
이고 철저한 평동개념을 제시하고 있다.157)
1.57) Wolfgang Bauer, China and tl,e Search for Happiness, trans. Michael Shaw(Ncw York: Seabury Press, 1976), pp. 33~34. 赤塚忠, 『莊子』上(全釋漠文大系16), 束京, 渠英社, 1974, pp. 372~377.
이러한 개념은 하이 엔트로피 사회에 풍미하고 있는 자연정복적인 정신과는 달리, 인간이 다론 생물들과 전체 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뒤에 올 인간이나 다른 생명체들도 삶을 즐길 수 있도록 최대한 으로 자연을 보존해야 한다는 로우 엔트로피 사회의 새로운 가치관에 알맞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도가는 문명창조 이전의 상대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다. 분업화되고 仁義i덮智와 같은 도덕이 지배하는 사회를 떠나야만 타고난 덕에 따라 살 수 있고, 욕심도 없이 소박하계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無知란 현대과학 · 기술과운곤 반대되는 개념이고 無悠이란 욕십과 선망십울중요시하는 현대경제와는 상반되는 개념이다. 도가의 이상적 인간은 세속을 초월하여 外物에 굴복하지 않고 욕망을 초월하고 無心히 평안하계 자연을 따라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이상칙인 인간(虹人)은 인간의 얕은 주관적 마음 때문에 도에 어긋나지 않고(不以心損道) 인위적으로 자연을 돕지 않는 사람, 죽 과학 · 기술로써 자연을 손상하지 않는 사람(不以人助天)이었다 158) 이러한 도가의 이상칙인 인간상은 로우 엔트로피 시대에 요구되는 모범적 인간상이라고 할 수 있다.) 『莊子』上〈大宗師第六〉安東林帥注, 『莊子.1l, 上; pp. 276~280 ; 赤塚忠, 『莊子 pp. 260~26~ ..
장자에서와 마찬가지로 老子의 『道德經人』에서도 우리는 도가의 이상적 사회를 만나게 된다. 〈소수의 人民이 거주하고 있는 약소국가에서는 병기가 있어도 사용하지 못하계 한다. 백성들에게는 죽는 것을 큰 일로 생각계 하여 다론 지방으로 이사 가지 않게 한다. 비록 배와 수레가 있더라도 이것을 타고 바깥으로 나아가지 않게 한다. 비록 군대를 가지고 있더라도 전쟁마당에 나아가지 않게 한다. 백성들을 다시 有史以前의 시대로. 듄아가계 한다. 백성들에게 자기네들이 지온 곡식을 달게 먹게 한다. 자기네들이 방직하여 지온 의복을 훌륭하게 생각하도록 한다. 자기네들이 지은 집에서 평안히 살게 한다. 자기 네 들의 풍속을 즐겁 게 향유하게 한다. 이웃나라
끼리 서로 바라보고 닭이 울고 개가 짖는 소리가 서로 들려 와도 백성 들 이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오고가고 하는 일이 없다.〉159)
) 金敬玩;임諒 『老子』(諸子百家〈第八十, 因立〉),서 윤,玄岩社, 1977,pp. 293~
이 유명한 구철은 이것을 과거時相으로 읽으면, 흘러간 낭만칙인 추억 속의 아상향이고, 현재시상으로 읽으면 하나의 개방적인 가능한 사회상이 된다. 이 구철을 미래시상으로 읽으면 이것은 고도로 발달된 현대과학 · 기술사회 를 대체할 무정부적인 유토피아에 관한 혁명적인 청사진이 된다. lGO) 도가의 이상적 사회의 비전에 의하면 국가중심적인 이익사회는 상호협 동적인 농촌사회에 의해 대체되고 전쟁준비에 광분한 사회는 평화적인 사회로 변하며, 해외로 진출하여 고향을 잃어버린 현 대인은 고향을 되찾아 정착해 서는- 인간이 된다. 기계문명은 지나가고 사람들은 토착칙인 자연생활에서 줄거움을 느깐다. 도를 따라 사는 인간은 내칙인 생활이 풍족하므로 외적 요구에 의한 압력을 받지 않고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서 자급자족하는 자유스럽고 독자칙인 삶을 즐간다. 도가는 현내사회의 技巧, 즉 기술과 이익 죽 산업사회의 공리성을 버리면(絶巧棄利) 도저이 없어지고, 한편 지식을 버리고(棄知), 기술 • 경제 • 지식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 를 없에면(絶聖) 백성들의 이익이 백배로 늘어나리라 보았다. 素朴과 宜悠만이 사람을 이롭게 하는 길이라 본 것이다.161)
160) Baucr, CI"''a ar:d thc Scarch for Happi,ICSS, pp. 34~35. 161) 〈絶聖棄智, 民利百條絶仁棄義, 民德孝慈, 絶巧菜利, 盜賊無有, 此三者, 以 店文足, 故令有所函, 見素抱朴, 小私iK次〉 r老子道從症』上, 返淳, 第十九阿部吉雄, 山本炫夫, 老子(祈휴淡文大系 7) 束京 明治홉院, 1966, pp. 42~43,
풀라돈 Plato 의 이상처인 국가의 개념도 문명발전 이전의 상대를 동경하고 있다. 단순하고 소박한 삶, 내적인 갈등을 일으키는 빈부의 문제가 없는 사최 , 외국과의 교역은 도덕져인 부패 륜 가져오기 때문에 그런 것이 없는 사회, 도시문명의 장단점을 초월한 삶, 이런 환경에서 인간은 웅바론 삶을 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플라돈 역시 인간의 역사에서 기숟문명이 발전할수록· 인간이 도며적으로 타락하고 역행한다고 본 점은 老ilE 의 견해와도 상동하는 바 있다.
162) E. R. Dodds, "Progress in Classical Antiquity", Dictionary of tlur His·tory of Ideas, 3 : 629.
재생불가능한 자원시대에서 대체적인 에너지시대로 넘어가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가치관, 문화, 경제, 정치재도를 모색해야만 하는 입장에 있다. 우리는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지구상의 자원의 한계와 기술이용에 따르는 한계성을 자각하고 도시주의 · 산업주의 • 소비주의 를 초월하고 욕망을 절제하여 검소하계 사는 로우 엔트로피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물질주의보다 내칙성장에 더욱 관십을 가져야 할 것이다. 도가의 지혜는 예수와 석가의 가르침과 더불어 현대인에게 새로운 도덕적 선택과 가치판단을 위한 길잡이가 될 수 있다. 구체 칙 으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는 우리 자신의 세계관 · 가치 · 대도의 전향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논의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우리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이해하고 새로운 가치관과 삶의 좌표에 따라 자발적으로 생활을 재편성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대중칙인 사회참여와 제도적 변화, 교육윤 동해 새로운 사회쳐인 善, 죽 자유와 정의와 환경의 보존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맺는말인간은 그가 왜 존재하는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하는 삶을 · 다스리는 기준이 없이는 살 수가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지배하고 사물에 대한 인식과 행동을 지배하는 세계관을 무의식칙으로 받아들이고, 의지하고 살기 때문에 평상에는 이에 대해 벌로 의식하지 않고 살아간다. 그러나 역사적인 큰 년동이 일어날 때 비로소 사람들은 지금까지 무의식적으로 그들이 믿어 오던 의미의 들을· 다시 의식하고 그것에 대해 반성하게 된다. 끊임없는 지식과 기술의 축적을 동해 세계가 보다 나은 상태로 발전할 수 있다는 진보의 개념과, 과학적인 지식이 보다 질서 있는 세계 률 만든다는 신앙과, 물질적인 세계관 등 그동안 현대인이 믿어 왔던 세계관은 이제 근본적으로 혼들리고 있다. 우리는 현존하는 패러다임을 대체할 새로운 세계관을 필요로 하고 있다. 뒤늦게나마 우리는 지구가 개방된 체계가 아니라 닫힌 체계라는 것과 자연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사람들은 자연이 재생할 수 있는 것보다 자원을 더 빨리 소모하고 있기 때문에 자원은 고갈되고 있다는 것윤 알게 되었다. 우리는 새로운 물질적 에너지 베이스로 전환해야만 하는 입장에 있다. 그리고 새로운 대체적 에너지 기초는 이에 알맞는 새로운 재도, 가치관과 세계관의 출현을 요구한다. 새로운 에너지시대에 알맞는 경제와 기술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자연의 미묘한 밸런스를 존중하고 인간의 제한성을 겸손하계 께닫는 동시에 사회적인 善, 죽 인간의 생존과 향상을 위해 과학 · 기술 • 경제믈 어렇게 이용하느냐 하는 지해에 의해 재조종된 과학 • 기술 • 경제이다.
우리논 현대세계의 발전 자체를 문재 삼고 성장과 비성장 중에서 하나를 선덱할 것이 아니라 어떠한 발전이 사람이 바로 살 수 있는 발전이냐 하는 문제에 주목한다. 또 발전과정에서 노출된 여러 기숟칙인 문제들을 따지고 보면 기술 자체의 탓이기보다 사람들의 가치와 대도와 정책의 탓이타는 점에 착안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논 어땅게 문제를 기술칙으로 해전하느냐 하는 과재보다도 우리의 목적하는 표칙이 무엇이냐 하는 데 더욱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기술의 장단점을· 따지고자 한다떤, 우리는 기술이 무슨 목적을 위해 이용되며 무슨 이익을 옹호하며 어떠한 사회변혁을 가져오는가 하는 문재 동윤 고려하여 할 것이다. 요점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찰 관리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이것은 우리가 원하는 사회가 무엇이며 이런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기숟윤 어떻게 원용하느냐 하논 문제 를 밝혀 줄수있는 지혜를 요구한다. 어명계 인간적인 가치들을 섭기는 기숟윤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느냐 하는 문재는 시급한 대답을 요구하고 있다.·우리는 이와 관련하여 자연과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단중십화 정책, 노동집약적 기술, 자연자원의 철약과공정한사용, 다양한 지역적 자급자족등져철한 기술이란 무엇인가하는· 문재 뮬 살퍼보았다. 그런데 우리는 대체걱인 자원윤 찾아 재생가능한 에너지기초룹 조칙화하는 방법인 유전공학을 동해서 지금까지 현대인이 지며 왔던무한한 성장의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새로운 낙관론의 등장을 목격 하고 있 다. 알게 니 Algeny 라고 불리 는 새 로운 연금술 alchemy은 컵퓨터 프로그래 밍을 동해서 생물의 질을 자연계에 촌재하는 상태보다 더 효율이 좋을 것으로 만들고 완전성을 향해 가는 자연의 과정을 촉진하는 힘이다. 알게니의 최종목표는 완전한 생물을· 만드는데 있고 이것은 엄청난 기술혁명인 동시에 과학기술과 자연과의 새로운 관계를 상칭하는 하나의 자연관으로서, 다가오는 시대의 큰 사상혁 명 을 뜻한다. 유전자 조작의 실현으로 우리는 인류 과학기술사상 분기점에 접근하고 있다. 생명을 창조하고 대량으로 조작할 수 있을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인류의 생존에 관하여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컵퓨터가 생물을 경제 제품으로 바꾸어 갈 수 있는 〈컵퓨터 정보경제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163)
163) 계레미 리프킨, 「엔트로피 Il : 유전자 공학시대의 세계관J.
우리는 지금 자연을 완전히 조작해서 인간의 이미지에 맞는 제 2의 자연을 만드는 공학적 어프로우치를 덱할 수 있다. 우리가 이런 창조자의 길을 덱하면, 그 대가로 우리는 삶의 모대인 자연과의 유대를 잃어버리게 된다. 또한 우리는 생물을 존중히 여기고, 모든 삶은 자연으로부터의 선물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모든 생물과 미래의 후손들과 삶을 나누어 갖는 생대학적 또는 환경적인 시각운 덱할 수도 있다. 리프킨은 인류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이 어려운 선텍은 생물에 대한 공학칙 어프로우치를 취하느냐, 환경적 어프로우치를 취하느냐 하는 문제라고 규정하면서, 이 선덱의 문제는 결국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에워싼 두개의 가치관의 대결이다〉라고 요약하고 있다. l64) 우리의 가치관이 물질주의에 치우쳐서 물질적인 번영과 안정이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자연과 인간성을 포함한 어떠한 값을 치르더라도, 기숟처 조작을 사용해서 생명의 변화과정을 전체적으로 바꾸는 길을 덱할 것이다. 그러나 생명의 모방, 변화과정의 조작은 우리 인류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업청난 댓가를 요구할 것이다.
164) 윗 균, p. 294 •
「詩篇」의 처자의 표현을 빌면, 〈야훼를 두려워 하는 것이 지혜의 근원이다〉(시편 Ill : IO) 라고 하였다. 미묘한 자연의 균형을· 검허한 마음으로 촌중하고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이 찰 사는 것이냐 하는 지혜 를 우리는 되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풍임없이 물질적인 번영을 추구하기 위해 생명의 근원인 자연에 도전하고 있다. 이러한 인간의 교만은 인간의 자멸을 가져올 것이다.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은 생존에 팔요한 최소한의 자원만을 사용함으로써 다몬 생물계와 미래의 사람들을 위해 우리의 욕십을 재어하고 겸손하게 자연의 오묘한 법칙에 순응하는 지혜를 되찾는 일이다. 따라서 우리 자신의 생존과 향상온 바로 우리 자신의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이치에 우리는 눈을 떠야 할 것이다.165)
165) 윗 굴, pp, 293~301 ; 리프킨은 현 대의 위기 문 극복 하기 위하여 프로테스만드의 근로운리 the Protestant 'work' ethic 윤 초원 하여 새로운 프로데스만브의 〈환경 〉보존의 윤리 the Protesiant 'Conservation' ethic 문 찾아서 새 로운 사외의 계약적인 미전 a new Covenant vision 으로 삼아야 만다고 주장안다. 그는 지금 미국에서 인 어나고 있는 성 링운동자문 Charismatics 속에서 완겅보존윤 위한 새로운 초원 적인 가치 재제의 숟현윤 기대하고 있다. Jeremy Rifkin with Ted Howard, TIie Emergillg Order:God i11 tile Age of Scardty(New York:Ballantine Books, J 979).
지혜는 복잡한 문제들을 당면하고 극복한 후에야 얻을 수 있는 동일된 단순한 지식이다. 서구사회의 모델울 중십으로 구성된 현대 사회는 지난 300 여 년 동안 너무나 경험적이고 실제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문화 • 정치 • 경제의 동일성을 잃어버리고 문화는 문화대로, 정치는 정치대로 제각기 놀아나는 분열상태 를 보여왔다. 16G)
166) Daniel Bell, TIie Cultural Co11tradiclions of Capitalism, pp. 3~3o.
현대사회에서 특수 전문화된 지식은 매우 발달되어 있지만, 이런 과학적인 지식을 중요한 인간의 가치와 연결시키는 지혜는 너무나 미숙하다. 후진적인 비서양 사회 들은 그들 나름대로 복잡한 현대과학과 기술의 도전 앞에서 그들의 전몽저인 지혜를 되살려 현실에 맞는 좋은 삶과 사회에 대한 이미지 를 구성하는 과업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과학과 기술이 전통적인 지혜와 조화를 이루어 인류의 생촌과 향상을 위해 새로운 통일된 방향을 찾지 못한다면
인류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과학 · 기술에 종속된 노예가 아니라 그것을 통속하는 주체이기 때문에 과학기술을 인류의 복지를 위해 사용할 수 있다. 과학 • 기술을 보다 유기적이고 인간적인 것으로 길들이는 과업은 과학 • 기술이 우리 인류에게 미찬 밝고 어두운 측면을 제대로 인식하고, 우리가 바타는 좋은 삶과 사회가 무엇인가를 똑바로 아는 데서 가능해진다.167)
167) Dennis Goulet, •science and Technology for a global Society•, in : Impact of Sci,nc• on Society, pp. Mumford, Tcchnics a11d Civilization(New York: Harcourt Brace & World, 193") p. 363.
현대파학과 윤리
•적은날―― 1988년 3월 5일펴낸낱- I988 년 3월 I5인지은이__金容駿·河張습固·郞敍植퍼낸이 __ -朴孟浩퍼낸곳__民音社•출판등목 1966, 5, 19 재 1-142호우편대재계좌번호 010041-31-23282110-111 서윤 종로구 관철동 44- 1734-4234•6110 (편집부)734-2000•2101 735-8S24 (영입부)파본은 바꾸어 드립니다.•값 6,000원•© 김용준 • 하타 • 장외이 • 정계식, 1988과학철학(인만교양), KDC/401科學薰命 김영식/값 4 , 200 원 수학의확실성 모리스 콜라인 • 박세희 / 값 7 , 0α) 원 수리철학과과학철학 헤르만 와일 · 김상문/값 7 , 400 원 기후와진합 로널드 피어슨 • 김준민 /값 6 , 000 원 현대과학철학논쟁 라카토스, 무스그레이던· 조승옥,김동식 / 값 8 ,뼈원 있음에서됨으로 일리야 프리고진 . 01 절수/값 4 , 600 원 생명의역사 A.L. 맥칼레스터 • 장기홍/값 3 , 500 원 현대기초불리학 웨이드너, 셀즈 · 강익주 / 값 12 , 000 원 찰스댄/값 8 , 000 원 정용재 현대우주론〈많〉 D.W. 시 O~ 마 · 양종만